범우문고 79 (소설) 사실주의 문학의 백미 표본실의 청개구리 저자: 염상섭 출판사: 범우사 (저자약력) * 염상섭(1897--1963) 소설가. 서울출생. "폐허" 동인으로 활동. 1921 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면서 한국 근대문학의 기수로 자리를 굳힘. 이후 "만세전", "삼대" 등의 뛰어난 작품을 남김. 사실주의 문학을 확립하고 식민지적 현실을 부정하고 전통을 계승하고자 함. 염상섭론 정직한 리얼리스트 염상섭의 문학은 소설을 재미있는 사건, 훌륭한 인생론적 교훈 등으로 받아들이려는 사람에겐 약간 짜증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엔 드라마틱한 박력이 없고 심각한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작품은 우리가 작중인물의 대화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고급한 지적 무드도 없다. 표현 자체에도 감각적인 것은 거의 없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피부로 느끼고 그대로 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그런 감각적인 섬세한 표현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서정적 무드가 없이 좀 메마른 느낌이다. 초기 작품 몇 편을 제하고는 거의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염상섭의 문학을 결코 과소 평가할 수는 없다. 그가 신문학사상에 나타난 대 선배였다는 문학사적 위치를 떠나서 작품의 순수한 예술적 가치만을 가지고 보더라도 그는 결코 만만한 작가는 아니었다. 신문학 초창기에 나타난 "창조", "폐허", "백조" 3대 동인지 중에서 폐 허파에 속해 있던 그는 그 동인지의 쟁쟁한 많은 소설가와 시인들 중에서 단연코 제일인자적인 실력자였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같은 동인작단시대에 있어서 그의 문학은 매우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세상에 오만과 자존 망대로 누구도 따를 수 없었던 김동인도 염상섭이 맨 처음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했을 때를 회고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사람이 소설을 썼다.' 이러한 마음으로 나는 그 작품을 보았다. 그러나 연재물의 제1회를 볼 때 벌써 필자의 마음에는 큰 불안을 느꼈다. 강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직각하였다. 이인직의 독무대를 지나서 춘원의 독무대, 그리고 2, 3년은 또한 필자의 독무대와 다름없었다. (중략) 과도기의 청년이 받는 불안과 공포의 번뇌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나타난 것은 그것이었다. 필자는 상섭의 출연에 몹시 불안을 느끼면서도 이 새로운 햄릿의 출연에 통쾌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김동인의 "한국근대소설고"에서 김동인이 이정도로 놀라움을 표현했다면 상섭의 문학이 이미 그 등단시기에서부터 얼마나 큰 비중을 지닌 것이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그의 문학은 그처럼 안하무인격이던 동인에게까지 강적으로 위압감을 주게 되었을까? 그의 문학은 시기적으로 두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단계는 "표본실의 청개구리"에서부터 "제야", "만세전" 등이 나오던 1923년까지의 약 2년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후부터 60년대까지의 약 40년간의 문학이 다음단계에 속한다. 40년간이라면 너무 긴 편이지만 그 동안에 그의 작품 경향은 거의 변한바가 없다. 여기서 초기의 대표작인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우선 소설 기법에 있어서 그 무렵엔 전혀 새로운 경이적인 것이었다. 내면적인 심리적 갈등을 상징적인 수법으로 전개시켜 나감으로써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생물 수업 시간에 해부되는 개구리, 날카로운 메스, 냉엄한 과학 기구, 주인공의 잠재 의식 속에서 가끔 되살아나는 그 옛날의 기억 이것은 상징적으로 표현된 당시의 시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라고 한다면 3,1^ 운동 직후의 역사적 현실을 말한다. 누가 감히 그 불안과 공포의 시대에 그 고통을 고발하고 증언할 수 있었으랴! 이 시대에는 어느 작가도 그 같은 야만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규탄하지 못했으며 그 슬픔을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섭은 여기서 상징적인 수법으로 그 시대의 불안과 공포를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외부 세계를 직설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그는 그 같은 실체보다는 그 실체가 인간의 내면 세계에 투영된 그림자를 표현함으로써 결국 그 시대를 고발하는 작품을 낳은 것이다. 어떤 비평가는 그의 문학사에서 이를 가리켜'신비주의적인 현실 도피의 환상 세계'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는 아닐 것이다. 주인공 '나'의 잠재 의식,'김창억'의 비정상적인 망상 등이 얼핏 그 같은 인상을 줄는지 모르지만 작품 전체에 일관된 불안과 공포 의식은 신비주의나 환상이란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주인공 '나'는 김창억을 본 후 이렇게 말한다. "현대의 병적 다크 사이드를 기름 가마에 몰아넣고 전축하여 최후에 가마 밑에 졸아붙은 오뇌의 환약이 바지직바지직하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내면적 세계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3,1^ 운동 직후의 역사적 현실을 표현한 것이며, 그 수법의 새로움에 있어서 문학사적으로도 높게 평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만세전", "암야", "제야" 등을 통해서 계속 이와 같은 시대상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그 후 그의 작품은 그 같은 역사적^5,23^사회적 감각이 벌로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또 인간의 내면적인 심리적 불안이나 공포를 깊숙이 채색해 나가는 수법도 나타나지 않았다. 작품의 소재가 그럴 뿐만 아니라 표현 기법도 마찬가지다. 상징적인 수법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사물을 냉엄하고 객관적으로만 묘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주관성을 배제해 버린 것이다. 그것이 그가 작고하는 날까지 약 40년간 변함없이 지속된 셈이다. 주관성을 배제한 문학이란 일반적인 독자에겐 때때로 권태를 주는 것이 아닐까? 이시기에 들어서기 전의 작품엔 이런 독백도 나타난다. 공동묘지다! 공동묘지 속에서 살면서 죽어서 공동묘지에 갈까봐 애가 말라하는 갸륵한 백성들이다. 그는 "만세전"의 주인공을 통해서 이처럼 노골적인 분노와 절망감을 표현하며 이 나라의 '백성'을 명확히 지적하기도 했다. 그만큼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강하고 자기 주장을 피력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작가의 진실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작품은 매우 통쾌감을 준다. 그런데 그 후 그의 작품에서는 이 같은 개인적 인격, 인생관^5,23^세계관이 철저하게 제거당하고 만 것이다. 이런 작품들 중에서 김동리는 "문예"지(1949년 '성하의 작단')를 통하여 이렇게 말했다. "염씨의 지금까지 써온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은 '임종'과 '두파산'이다." 사실상 상섭의 제2기의 작품들 중에서 이들은 그의 문학세계를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는 작품이며, 그만큼 빈틈없는 그 수법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단편 "임종"은 사건치고는 너무나 간단하고 평범하다. 단편소설이라면 간단한 소재는 얼마든지 많으니까 별로 특이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작품의 소재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간단하다는 데 있다. 명호의 형이 병사하게 된다. 그런데 병자에게는 남달리 강한 생명에의 애착이 있어서 그 같은 심리적 세계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는 너무나 눈물겨운 투병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소설이 일반적으로 허구적인 상상력이나 특이한 체험을 통해서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는 전혀 없다. 병자는 생에 대한 애착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강한 것이 아니고 오직 평균치에 해당될 따름이다. 차라리 애착이 없는 인물이라면 그런대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그것도 아니다. 또 병자에게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5,23^정신적 고통이 있다면 문제가 되지만, 이 병자는 가장 평균치에 해당하는 약간의 고통이 있을 뿐이다. 또 치료도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적당히 입원도 하고 약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 쓴다. 그래서 이것도 평균치다. 마지막 죽은 장면이나 장례식이나 모두 평범치요, 따라서 가장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간단한 사건일 뿐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처럼 가장 평범한 일상 생활의 일부를 따내서 그의 솜씨로 요리를 해나갔다. 그의 요리 방법이란 딴 것이 아니다. '물리학적 정확성'을 가지고 정밀한 관찰을 해 나가고 아주 성실하게 메모해 나가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원인과 결과를 빈틈없이 측정하고 기록하는 것이 작가의 작업이다. "두 파산"의 경우도 그렇다. 작가는 조그만 구멍가게(문방구점)를 갖고 있는 여인을 중심으로 그녀의 동창생과 고리대금업자들이 제각기 살아나가는 모습을 통해서 서민적인 인간들이 모여 사는 평범한 일상적 세태를 그려 나간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그 가게를 마침내 남의 손에 내놓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객관적인 분석을 통하여 정밀하게 묘파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이야기 속에는 남녀간의 사랑도 없고, 아름다운 자연도 없고 현대적인 삭막한 도시도 없다. 인간의 심각한 내면적인 심리적 불안도 없고 갈등도 없다. 비극적인 종말도 없다. 주인공은 가게를 빼앗기게 되기는 하지만 완전한 파산으로의 절망적 위기가 없고 그런데로 다시 살아갈 방도가 제시되고 있으며, 가게를 빼앗은 동창생에게 헌 택시를 팔아먹어 골탕먹여 줄 기회가 생기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이것은 가장 평범한 인간들의 평범한 일상적인 삶이며, 그런 삶 속에서의 평범한 심리를 추적하며 정밀한 사실화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같은 작품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우선 플로베르의 문학이론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술은 개인적 애정이나 신경질적인 감수성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은 이미 무자비한 방법으로 예술에 물리학적 정확성을 부여해야 할 때다. 플로베르의 "서간집"에서 염상섭의 문학은 바로 이 같은 사실주의 문학의 강령을 실천한 것이다. "두 파산"에서 보면 그는 정례 어머니와 그의 동창생 옥임 어느 쪽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적 표현을 하지 않고 있다. 선악의 판단도 독자에게 맡기고 있을 뿐이지 개입하지 않는다. 이 작품만이 아니라 어떤 작품에 있어서도 이 같은 태도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인생론적인 철학도 없고 사회나 역사의식에 입각한 사상도 없다. 주어진 현실에서 무엇이 값있는 삶인지 그 삶의 방법도 없고, 인간이 추구해 나가야 할 목표도 없고 현상도 없다. 그리고 사회적 현실의 모순이나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한 사상적 입장도 전혀 없다. 말하자면 작가는 항상 타인이며 오직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입장에서 선택한 그 소재 자체가 가장 일상적인 것이요 평범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요한 특성이 있다. 그는 지극히 정밀한 묘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처럼 평범한 소재나마 사건으로서의 진행속도가 없고 박력이 없다. 말하자면 움직이는 활동사진이 아니라 한 폭의 사실화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주관적인 해석에 의하여 선택된 색채를 지닌 사실화가 아니라 그 같은 주관성울 철저히 배격한 사실화다. 이러한 작품이 우선 대중적 취미에 맞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품 속에 철학이 없고, 이상이 없고, 흥미 있는 사건이 없고 끝없는 잔소리만 계속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여기엔 작가의 아주 정직한 문학관이 작용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자연의 세계, 남녀간의 애정관계, 그 순정의 드라마, 또는 추악한 동물적인 인간 세계, 그리고 비극적인 역사와 그 속에서 작가들이 제시해 나가는 이상이나 철학 등은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은 부분들이 현실을 기만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실 자체는 대개 그런 것이 아니며 평범하고 권태로운 것이요, 한때의 이상은 모두 거짓임이 판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상섭은 거짓 아닌 진실을 가장 평범한 일상적인 삶, 일상적인 의식 구조에서 찾고 이를 과장한 어떤 표현도 거부해 버린 것이다. 염상섭은 이런 의미에서 철저히 주관성을 배제하고 사실 그것만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리얼리스트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 같은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에 많은 흥미를 기울여 나갔다. 그래서 사건 진행을 서두르지 않고 아무 데서라도 죽치고 앉아서 많은 요설과 다변을 늘어놓았다. 평범한 일상적인 삶을, 평균치의 서민적 인간들만을 이렇게 평생 묘사해 나간 그의 문학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친근할 수 있는 서민적 문학일지도 모른다. 김우종(문학평론가) 표본실의 청개구리 1 무거운 기분의 침체와 한없이 늘어진 생의 권태는 나가지 않는 나의 발길을 남포까지 끌어왔다. 귀성한 후 7,8 삭간의 불규칙한 생활은 나의 전신을 해면같이 짓 두들겨 놓았을 뿐 아니라 나의 혼백까지 두식하였다. 나의 몸의 어디를 두드리든지 알콜과 니코틴의 독취를 내뿜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피로하였었다. 더구나 6,7월 성하를 지내고 겹옷 입을 때가 되어서는 절기가 급변하여 갈수록 몸을 추스리기가 겨워서 동네 산보에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친구와 이야기하려면 두세 마디째부터는 목침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무섭게 앙분한 신경만은 잠자리에서도 눈을 뜨고 있었다. 두 홰, 세 홰 울 때까지 엎치락뒤치락거리다가 동이 번히 트는 것을 보고 겨우 눈을 붙이는 것이 일주일간이나 넘은 뒤에는 불을 끄고 드러눕지를 못하였다. 그 중에도 나의 머리에 교착하여 불을 끄고 누웠을 때나 조용히 앉았을 때마다 가혹히 나의 신경을 엄습하여 오는 것은, 해부된 개구리가 사지에 핀을 박고 칠성판 위에 자빠진 형상이다. 내가 중학교 2 년 시대에 박물 실험실에서 수염 텁석부리 선생이 청개구리를 해부하여 가지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오장을 차례차례로 끌어내서 자는 아기 누이듯이 주정병에 채운 후에 옹위하고서 서있는 생도들을 돌아다보며 대발견이나 한 듯이, "자 여러분, 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시오." 하고 뾰죽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대로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는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8 년이나 된 그 인상이 요사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서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애를 써도 아니 되었다. 새파란 메스, 달기똥만한 오물오물하는 심장과 폐, 바늘 끝, 조그만 전율^5,5,5^ 차례차례로 생각날 때마다 머리끝이 쭈뼛쭈뼛하고 전신에 냉수를 끼얹는 것 같았다. 남향한 유리창 밑에서 번쩍 쳐드는 메스의 강렬한 반사광이 안공을 찌르는 것 같아 컴컴한 방 속에 드러누웠어도 꼭 감은 눈썹 밑이 부시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머리맡에 놓인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둔 면도칼이 조심이 되어서 못 견디었다. 내가 남포에 가던 전날 밤에는 그 증이 더욱 심하였다. 반 간통밖에 안 되는 방에 높이 매단 전등불이 부시어서 꺼버리면 또다시 환영에 괴롭히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는 않았으나, 심사가 나서 웃통을 벗은 채로 벌떡 일어나서 스위치를 비틀고 누웠다. 그러나 '째응'하는 소리가 문틈으로 스러져 나가자 또 머리를 엄습하여 오는 것은 수염 텁석부리의 메스, 서랍 속의 면도다. 메스^5,5,5^ 면도, 메스^5,5,5^ 잊으려면 잊으려 할수록 끈적끈적하게도 떨어지지 않고 어느 때까지 꼬리를 물고 머리속에서 돌아다니었다. 금시도 손이 서랍으로 갈 듯 갈 듯하여 참을 수 없었다. 괴이한 마력은 억제하려면 할수록 점점 더하여 왔다. 스스로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소스라쳐 눈을 뜨면 덧문 안 닫은 창이 부옇게 보일 뿐이요, 방 속은 여전히 암흑에 침적하였다. 비상한 공포가 전신을 압도하여 손끝 하나 까딱거릴 수 없으면서도 이상한 매력과 유혹은 절정에 달하였다. '내가 미쳤나? 아니, 미치려는 징조인가?' 하며 제풀에 겁이 났다. 나는 잠에 취한 놈 모양으로 이불을 와락 차 던지고 일어나서 서랍에 손을 대었다. 그러나 '그래도 손을 대었다가^5,5,5^' 하는 생각이 전뢰와 같이 머리속에 번쩍 할 제 깊은 꿈에서 깬 것같이 정신이 반짝 나서 전등을 켜려다가 성냥통을 더듬어 찾았다. 한 개비를 드윽 켜들고 창틀 위에 얹어 둔 양초를 집어 내려서 붙여 놓은 후 서랍을 열었다. 쓰다가 몇 달 동안이나 꾸려둔 원고, 편지, 약갑들이 휴지통같이 우글우글한 속을 부스럭부스럭하다가 미끈하고 잡히는 자루에 집어넣은 면도를 외면하고 꺼내서 창밖으로 뜰에 내던졌다. 그러나 역시 잠은 못 들었다. 맥이 확 풀리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어져 나왔다. 시체 같은 몸을 고민하고 난 병인처럼 사지를 축 늘어뜨려 놓고 누워 생각하였다. '하여간 이 방을 면하여야 하겠다.' 지긋지긋한 듯이 방안을 휘익 둘러본 뒤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디든지 여행을 하려는 생각은 벌써 수삭 전부터 계획이었지만 여름에 한 번 놀러가 본 신홍사에도 간다는 말뿐이요, 이때껏 실현은 못 되었다. '어디든지 가야겠다. 세계의 끝까지, 무한에 영원히, 발끝 자라는 데까지, 무인도! 시베리아의 황량한 벌판! 몸에서 기름이 부지직부지직 타는 남양! 아아.' 나는 그림엽서에서 본 울창한 산림, 야자수 밑에 앉은 나체의 만인을 생각하고 통쾌한 듯이 어깨를 으쓱하여 보았다. 단 일분의 정거도 아니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힘있는 굳센 숨을 헐떡헐떡 쉬는 풀스피드의 기차도 영원히 달리고 싶다^5,5,5^ 만일 타면 현기가 나리라는 염려만 없었으면 비행기! 비행기! 하며 혼자 좋아하였을지도 몰라었다. 2 내가 두어 달 동안이나 집을 못 떠나고 들어앉았는 것은 금전의 구애가 제일 원인이었지마는 사실 대문 밖에 나서려도 좀처럼 하여서는 쉽지 않았다. 그 이튿날 H가 와서 오늘은 꼭 떠날 터이니 동행을 하자고 평양 방문을 권할 때에는 지긋지긋한 경성의 잡담을 등지고 떠나서 다른 기분을 얻으려는 욕구와 장단을 불구하고 하여간 기차를 타게 될 호기심에 끌리어서, "응, 가지, 가지." 하며 덮어놓고 동의는 하였으나 인제 정말 떠날 때가 되어서는 떠나고 싶은지 그만두어야 좋을지 자기의 심중을 몰라서, 어떻게 된 셈도 모르고 H에게 끌려 남대문역까지 하여간 나왔다. 열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승객은 입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급히 표를 사가지고 재촉하는 H를 따라갔다. 시간이라는 세력이 호불호^5,23^긍불긍을 불문하고 모든 것을 불가항력하에서 독단하여 끌고 가게 된 것을 나는 오히려 다행히 알고 되어 가는 대로 되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풀려 나가는 행렬 뒤에 섰었다. 그러나 검역 증명서가 없다고 개찰구에서 H와 힐난이 되는 것을 보고 나는 행렬에서 벗어나서 또다시 아니 가겠다고 하였다. 심사가 난 H는 마음대로 하라고 뿌리치고 혼자 출장주사실로 향하다가 돌쳐와서 같이 끌고 들어갔다. 백 촉이나 되는 전등 밑에서 히스테리컬한 간호부가 주사침을 들고 덤벼들 제 나는 반쯤 걷어 올렸던 샤쓰를 내리면서 돌아서 마주 섰다. 그러나 간호부의 핀잔과 재촉에 마지못하여 눈을 딱 감고 한 대 맞은 후 황황히 풀랫폼으로 들어가서 차에 올랐다. 차에 올라앉아서도 공연히 후회를 하고 앉았었으나 강렬한 위스키의 힘과 격심한 전신의 동요, 반발, 차바퀴 달리는 소리, 암흑을 돌파하는 속력, 주사 맞은 어깨의 침통^5,5,5^ 모든 관능을 일시에 용약케 하는 자극의 와중에서 모든 것을 잊고 새벽에는 쿨쿨 잘이만큼 마음이 가라앉았다. 덕택으로 오늘밤에는 메스도 번쩍거리지 않고 면도도 뛰어나오지 않았다. 동이 틀락말락하여서 우리들은 평양역에 내렸다. 남포행은 아직 2,30분이나 있는 고로 우리들은 세면소에서 세수를 하고 대합실로 나왔다. 나는 부석부석 붉은 눈을 내리깔고 소파 끝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서, "난 예서 좀 돌아다닐 테니^5,5,5^." 내던지듯이 한마디를 불쑥 하고 H를 마주 쳐다보다가, "혼자 가서 Y군을 만나보고, 오늘이라도 같이 이리 오면 만나보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돌아다니다가 밤차로 갈 테야." 하며 H의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서 나왔다. "응, 뭐야? 그 왜 그래^5,5,5^ 또 미친증이 난 게로군." 하며 H는 벗어 들었던 레인코트를 뒤집어쓰면서 쫓아 나와 붙든다. "^5,5,5^ 사람이 보기 싫어서^5,5,5^ 사실 X군과 만나기로 별로 이야기도 없고." 하며 애원하듯이 힘없는 구조로 한마디하고, "영원히 흘러가고 싶다. 끝없는 데로^5,5,5^" 혼잣말처럼 힘을 주어 말을 맺고 훌쩍 나와 버렸다. H도 하는 수 없이 테이블에 놓았던 트렁크를 들고 따라나왔다. 우리 양인은 대동강가로 길을 찾아 나와서, 부벽루로 훤히 동이 틀까말까한 컴컴한 길을 소리 없이 걸었다. 한바탕 휘돌아서 내려오다가 종로에서 조반을 사먹고 또다시 부벽루로 향하였다. 개시를 하고 문전에 물을 뿌린 뒤에 신문을 펴들고 앉았는 것은 청량하고 행복스럽게 보였다. 아까 내려올 제는 능라도서 저편 지평선에서 주홍의 화염을 뿜으며 날름날름하던 아침해가 벌써 수원지 연통 위에 올라서 천변 식목 밑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곁빰을 눈이 부시게 내리쬐었다. 칫솔을 물고 바위 위에 섰는 사람, 수건을 물에 담그고 세수하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뛰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무심히 내려다보다가 자기도 산뜻한 물에 손을 담가 보고싶은 생각이 나서 얕은 곳을 골라서 물가로 뛰어 내려갔다. H도 쫓아 내려와서 같이 손을 담그고 앉았다가, "X군, 오후 차로 가지?" "되어 가는 대로^5,5,5^" 다소 머리의 안정을 얻은 나는 뭉쳤던 마음이 풀어진 듯하였다. 나는 아침 햇볕이 반짝이며 청량하게 소리 없이 훌러 내려가는 수면을 내다보며 이렇게 대답하고 '물은 위대하다' 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때에 마침 위 동둑에서 누군지 이리로 점점 가까이 내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우리는 무심히 힐끗 돌아다보았다. 마른 곳을 골라 디디노라고 이리저리 뛸 때마다 등에까지 철철 내리덮은 장발을 눈이 옴폭 팬 하얀 얼굴 뒤에서 펄럭펄럭 날리면서 앞으로 가까이 오는 형상은 도꾜 근처에서 보던 미술가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이 기괴한 머리의 소유자는 너희들의 존재는 나의 의식에 오르지도 않는다는 교만한 마음으로인지 혹은 일신에 모여드는 모든 시선을 피하려는 무관심한 태도로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오른손에 든 잘막한 댓개비를 전후로 흔들면서 발끝만 내려다보며 내 등뒤를 지나 한 간통쯤 상류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도 우리와 같이 손을 물에 성큼 넣고 불쩍불쩍 소리를 내더니 양치를 한 번하고 벌떡 일어나서 대동문을 향하여 성큼성큼 간다. 모자도 아니 쓴 장발과 돌돌 말린 때묻은 철겨운 모시박이 두루마기 자락은 오른편 손가락에 끼우고 교묘히 돌리는 댓개비와 장단을 맞춰서 풀풀풀풀 날리었다. "오늘은 꽤 이른걸." "핫 하! 조반이나 약조하여 둔 데가 있는 게지." 하며 장발객을 돌아서 보다가 서로 조소하는 소리를 뒤에 두고 우리는 손을 씻으며 동쪽으로 올라왔다. 진정한 행복은 저런 생활에 있는 게야, 하며 혼자 생각했다. 우리는 황달이 들어 가는 잡초에 싸인 부벽루 앞 축대 밑까지 다다랐다. 소경회루라 할만큼 텅 빈 누내에는 뽀얀 가을 햇빛이 가벼운 아침 바람에 안기어 전면에 흘러 들어왔다. 좀 피로한 우리는 누내에 놓인 벤치에 걸터앉으면서 여기저기 매달린 현판을 쳐다보다가, "사람이란 그럴까, 저것 좀 보아." 좌편에 달린 현관 곁에 붙인 찰을 가리키며 나는 입을 열었다. 자기의 존재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려는 것이 본능적 욕구라면 그만이지만 저렇게까지라도 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면^5,5,5^ 참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고사하고 지금 지나온 절벽에 역력히 새긴 이모 김모란 성명은 대체 누구더러 보라는 것이야^5,5,5^ 이러구서도 밥이 입으로 들어갔으니 좋은 세상이었지." 나는 금시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서 벌떡 일어나와 성벽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섰었다. "그것이 소위 유방백세라는 것이지." H도 일어나며, "그렇게 내려다보고 섰는 것을 보니^5,5,5^ 이폴리타(다눈치오의 장편소설 "죽음의 승리"의 여주인공)가 없는 게 한이로군^5,5,5^" "내가 조르조." 하고 나는 고소하였다. "적어도 조르조의 고통은 있을 테지." "그야^5,5,5^ 현대인 쳐놓고 누구나 일반이지."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잠시 섰다가 을밀대로 향하였다. 외외히 건너다보이는 대각은 엎드러지면 코 닿을 듯하여도 급한 경사는 그리 쉽지 않았다. 우리는 허위단심 겨우 올라갔다. 그러나 대상의 어떤 오복점 광고의 벤치가 맨 먼저 눈에 띌 때 부벽루에서는 앉기까지 하여도 눈서투르지 않았던 것이 새삼스럽게 불쾌한 생각이 났다. 나는 눈을 찌푸리고 잠시 들여다보다가 발도 들여놓지 않고 돌쳐서서 그늘진 서편 성 밑으로 내려왔다. 높은 성벽에 가려진 일면은 아직 구슬 이슬이 끝만 노릇노릇하게 된 잔딧잎에 매달려서 어디를 밟는지 먼지가 앉은 구두 끝에 까맣게 반짝거렸다. 나는 성에 등을 기대고 앞에 전개된 광야를 맥없이 내려다보고 섰다가 다리가 풀리어서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엄동에 음산한 냉방에서 끼치는 듯한 쌀쌀한 찬바람이 늘어진 근육에 와 닿을 때 나는 정신이 반짝 들었다. 그러나 다리를 내던지고 벽에 기대어서 두 손으로 이슬 방울을 흩뜨리며 앉았는 동안에 사지가 느른하고 졸음이 와서 포켓에 넣어 둔 신문지를 꺼내서 펴고 드러누웠다. ^5,5,5^ H에게 두세 번 흔들려서 깬 때는 이렁저렁 30분이나 지났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으니까 H는 단장 끝으로 조약돌을 여기저기 딱딱 치며 장난을 하다가 소리를 내어 깔깔 웃으면서, "아, 예가 어덴 줄 알고 잠을 자아? 그리고 잠꼬댄 무슨 잠꼬대야? 왜 얼굴이 저렇게 뒤틀렸어?" 나는 멀거니 H의 주름 많은 얼굴을 쳐다보고 앉았다가 "으응^5,5,5^" 하며 무엇이라고 입을 벌리려다가 하품에 막히어 말을 끊고, 일어나서 두 손을 바지 포켓에 지르고 이리저리 거닐었다. H가 내 꽁무니의 앉았던 자리가 동그랗게 이슬에 젖은 것을 보고 놀라는 데에는 대꾸도 아니하고 나는 좀 선선한 증이 나서 양지로 나서면서 가자고 H를 끌었다. "왜 그래? 무슨 꿈이야?" H는 따라오며 물었다. "^5,5,5^ 죽은 꿈^5,5,5^ 아주 영영 죽어 버렸더면^5,5,5^ 좋았을걸^5,5,5^" 나는 무엇을 보는 것도 없이 앞을 멀거니 내다보며 꿈의 시종을 차례차례 생각하여 보다가 이같이 내던지듯이 한마디하고 궐련을 꺼내 물었다. "자살?" H는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5,5,5^ 미인의 손에^5,5,5^ 나 같은 놈에게 자살할 용기나 있는 줄 아나? 아아하." "누구에게? 미인에겔 지경이면 한 두 번 죽어 보았으면 ^5,5,5^ 해해해." "참 정말^5,5,5^ 하여간 아무 고통 없이 공포도 없이 죽는 경험만 해보고 그러고도 여전히 살아 있을 수만 있으면 여남은 번이라도 통쾌해^5,5,5^. 목을 졸라 매일 때의 쾌감! 그건 어떤 자극으로도 얻을 수 없는 거야." 나는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썩어 가는 듯한 심사를 이기지 못하여 입을 다물고 올라가던 길로 천천히 내려오다가 H의 묻는 것이 귀찮아서 다점 앞으로 지나오며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5,5,5^ 무슨 일이었는지 분명치는 않으나^5,5,5^ 아마 쌀을 찧어서 떡을 만들었는데 익지를 않았다고 해서 그랬던지^5,5,5^ 하여간 흰 가루가 뒤바른 한 손을 들고 마루끝에서 어정버정하다가 인제는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처럼 손에 들었던 수건으로 목을 매고 덧문을 첩첩이 닫은 방 앞 툇마루 위에 반듯이 드러누우니까, 어떤 바짝 말라서 때만 남은 흰손이 머리맡에서 슬그머니 넘어와서 목에 매인 수건의 두 자락을 좌우로 슬금슬금 졸라대었다. 그때에 나는 이것이 당연히 당할 약조가 있었다는 것처럼 어떠한 만족과 안심을 가지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드러누웠었다. 그때에^5,5,5^ 차차 목이 메어 올 때의 이상한 자극은 낙지 이후에 처음 경험하는 쾌감이었다. 그러나 무슨 까닭에 이같이 일찍 죽지 않으면 안 되는가^5,5,5^ 참 정말 죽었는가 하는 의문이 나서 몸을 뒤틀며 눈을 번쩍 떠보았다^5,5,5^ "깜짝 놀라 일어날 때에 빙그레 웃고 섰는 군은 악마가 아닌가 생각하였어^5,5,5^ H군의 웃음은 늘 조소하는 듯이 보이지만 아까는 참말 화가 나서^5,5,5^" 실상 아까 깨었을 때에 제일 심사가 나는 것은 꿈자리가 사나운 것보다도 H가 조소하듯이 빙그레 하며 웃고 섰는 것이었다. "^5,5,5^ 그러나 암만 생각하여도 희안한 것은 처음부터 눈을 감고 누웠는데 어찌하여 그 '손'의 주인이 여성이었다고 생각되는지 자기가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어^5,5,5^" 이야기를 마친 후 나는 말할 수 없는 심화가 공연히 가슴에 치미는 것 같아서 올라올 제 앉았던 강물가로 뛰어 내려가서 세수를 하였다. 3 남포에 도착하였을 때는 벌써 오후 두 시가 훨씬 넘었었다. 출입하였던 Y는 방금 들어와서 옷을 벗어 던지고 A와 마주앉아서 지금 심방하고 온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우리들을 보고 놀란 듯이 뛰어나와 맞아들였다. 우리를 맞은 Y는 웬 셈인지 좌불안석의 태도였다. "P는 잘 있나? 금명간 올라가려고 하였지. 평양서 전화를 하였더면 내가 평양으로 나갈걸. 곤할 테지. 점심은?" 순서 없는 질문을 대답할 새도 없이 연발하였다. 나는 간단간단히 응대하고 졸리다고 드러누웠다. Y는 무슨 다른 생각을 하면서 좌중의 흥을 돋우려고 애를 쓰는 듯이 이 사람 저 사람 쳐다보며 입을 쫑긋쫑긋하다가 나를 건너다보며, "^5,5,5^ 웬 셈이야? 당대의 원기는 다 어디 갔나? 그 표단은? 하하하." "글쎄^5,5,5^ 그것도 인제 좀 염증이 나서^5,5,5^" 나도 시든 웃음을 띠며, "여기까지 가지고 오긴 왔지!" 하고 누운 채 벗어 놓은 외투를 잡아당기어 찻간에서 먹다 남은 위스키병을 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내미니까 일동은 하하하 웃으면서 잠자코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본다. "그러나 그것 큰일났군. 제행무상을 감하였나^5,5,5^ 무표단 이면 무인생 이라던 것은 취소인가." Y는 다소 과장한 듯이 훌훌 느끼며 웃었다. "그런데 표단이란 무엇이야?" 영문을 모르는 A는 Y에게 묻고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흥흥흥, 한마디로 쉽게 설명하면 위선 X군 자신인 동시에 X군 의 인생관을 심벌한 X군의 술병이랄까." "응? X군의 인생관인 동시에 X씨 자신의^5,5,5^ 무엇이야? 어디 나 같은 놈은 알아들을 수가 있나?" 하며 A는 손을 꼽다가 웃고 말았다. "아니랍니다. 내가 일전에 서울서 어떤 상점에 갔던 길에 표단 모양으로 만든 유리 정종병이 마음에 들기에 사가지고 왔더니 여럿이 놀린답니다." 나도 이같이 설명을 하고 웃어버렸다. "그러나 이 술을 선생한테나 갖다 주고 강연이나 들을까?" H는 병을 들어서 레테르에 씌어진 글자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남포에도 표단이 있는 게로군^5,5,5^" H도 웃었다. "응! 그러나 병 유리가 좀 흐려^5,5,5^ 닦은 유리(스리까라쓰 모래로 간것)랄까." 일동은 와하하 하며 웃었다. 나는 눈을 감고 드러누워서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일어나 앉으며, "A씨도 표단당에 한몫은 가겠지요." 하고 위스키병을 들어서 한잔 따라 권하고 나도 반배를 받았다. "그래 여기 표단은 어때?" 하며 H는 나를 쳐다보는 모양이었으나 나는 술을 마시느라고 못 보았다. "^5,5,5^ 별로 표단을 달고 다니진 않지만 3원 50전에 3층집을 지은 대건축가인데^5,5,5^" "3원 50전에? 하하하, 미친 사람인 게로군?" H가 웃었다. "글쎄 미쳤다면 미쳤을까^5,5,5^ 그러나 인생의 최고 행복을 독점하였다고 나는 생각해^5,5,5^" Y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였다. Y와 H가 이야기하는 동안에 나는 A와 잡지계에 관한 2,3 문답을 하다가 자기들 이야기를 들으라고 H가 부르는 바람에 나도 말 참례를 하였다. "술 이야기는 아니나 3원 50전에 3층집을 지은 대 철인이 있단 말이야^5,5,5^" Y는 다시 설명을 하고 어느 틈에 빈 병이 된 것을 보고 "술이 없군, 위스키를 사올까." 하더니 하인을 불러 명하였다. "옳은 말이야. 철학자가 땅 두더지로 환장을 하였거나 위인이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3원 아니라 3전으로 30층을 지었거나 누가 아나^5,5,5^ 표단 이상의 철학서는 적어도 내 눈에 보이지를 않으니까." 나는 냉소를 하면서 또다시 A에게로 향하였다. "그러나 군은 무슨 까닭에 술을 먹는가?" "논리는 없지. 다만 취하려고." "그러게 말이야^5,5,5^ 군은 아무 것도 붙을 수 없었다. 아무 것에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알콜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비통하고 비참은 하나 그 중에서 위안을 얻기에 먹는 게 아닌가. 그러나 결코 행복은 아니다. 그는 고사하고 알콜의 힘을 빌지 않아도 알콜 이상의 효과가^5,5,5^ 다만 위안뿐 아니라 행복을 얻을 만한 것이 있다하면 군은 무엇을 취할 터이냐는 말이야. 하하하^5,5,5^" "알콜 이상의 효과? 광증이냐, 신념이냐, 이 두 가지밖에 없을 것이오^5,5,5^ 그러나 오관이 명확한 이상에, 피로, 권태, 실망^5,5,5^ 이외에 아무 것도 없는 이상^5,5,5^ 그것도 광인으로 일생을 마칠 숙명이 있다면 하는 수 없겠지만 할 수 없지 않는가." 주기가 들수록 나는 더욱더 흥분이 되어 부지불식간에 한마디 한마디씩 힘을 들여 명확한 액센트를 붙여서 말을 맺고, "하여간 위선 먹고 봅시다. A공 자^5,5,5^" 하며 잔을 A에게 전하였다. "그러나 A군, 톨스토이즘에다가 윌슨이즘을 가미한 선생의 설교를 들을 제 나는 부끄럽던걸." 술에 약한 Y는 벌써 빨개진 얼굴을 하고 A에게 향하고 동의를 구하였다. "오늘은 좀 신기가 불편한데^5,5,5^ 연일 강연에 목이 쉬어서 이야기를 못 하겠달 제는 사람이 기가 막혀서^5,5,5^ 하하하." A는 Y와 3층집에 갔을 때의 일을 꺼내었다. "듣지 않아도 세계 평화론이나 인류^36^애쯤 떠드는 게로군." 하며 나는 웃목으로 나가 드러누웠다. 아랫목에서는 Y를 중심으로 하고 3층집 주인의 이야기가 어느 때까지 끝이 아니 났다. 가다가다 와아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나는 소르르 오는 잠이 깨고 깨고 하다가 종내 잠을 잃어서 나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Y가 두 발을 쳐들고 엉덩이로 이리저리 맴을 돌면서 3층집 주인이 자기 집에 문은 없어도 출입이 자유자재라고 자랑하던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여럿이 웃는 통에 나도 눈을 떠보고 일어났다. 약간 취기가 오른 나는 찬바람도 쐬고 싶고 또 어차어피에 오늘밤은 평양에 나가서 묵을 작정인고로 정거장 가는 길에 3층집 아래를 가고 싶은 생각이 나서, "우리 구경가 볼까?" 하고 Y에게 물었다. "글쎄 좀 늦지 않았을까?" 하며 Y는 시계를 꺼내 보더니, "아직 다섯 시가 못 되었군^5,5,5^ 그러나 강연은 못 할걸! 보시다시피 역사를 벌여놓고 매일 강연에 목이 쉬어서^5,5,5^" 하며 흉내를 내고 또 웃었다. 네 청년은 두어 시간 동안의 홍소훤담에 다소 피로를 느낀 듯이 모두 잠자코 석양판에 갑자기 번잡하여 오는 큰길로 느럭느럭 걸어 나왔다. 4 황해에 잠긴 석양은 백운을 뚫고 흘러 멀리 바라보이는 저편 2층집 지붕에 은빛으로 반짝거리었다. Y의 집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축동 거리를 1정쯤 북으로 가다가 십자로에서 동으로 꼽쳐 새 거리로 들어섰다. 왕래가 좀 조용하게 되었다. 나는 Y의 말이 과연 사실인가, 실없는 풍자나 조롱을 잘하는 Y의 말이라 혹은 나에게 대한 일종의 우의를 품은 농담이 아닌가 하는 제 버릇의 신경과민적 해석을 하며 따라오다가, "선생은 원래 무엇을 하던 사람인구?" 하며 Y에게 물었다. "별로 자세히는 모르지만^5,5,5^ 보통학교 훈도라든가!^5,5,5^ A군도 아마 배웠다지?" "응! 일본말도 제법 하는데^5,5,5^ 이전에는 그래도 미남자였었는데. 하하하^5,5,5^" A의 말끝에 Y도 웃으며, "미남자이었든 추남자이었든 하여간 금년 봄에 한 서너 달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에 이상하여졌다는데^5,5,5^ 자세한 이유는 몰라^5,5,5^" "처자는 있나?" "예, 계집은 친정에 가서 있다고도 하고 놀아났다기도 하나 그 역시 자세한 것은 몰라요." 라고 Y가 대답하였다. "Y군, 그 계집이 어느 놈의 유혹으로 팔리어서 돌아다니다가 그 유곽에 굴러 들어와 있다면 어떨까?" 나는 자자코 있다가 말을 걸었다. "흥^5,5,5^ 그리고 매일 찾아가서 미친 체를 부리면^5,5,5^" Y는 대꾸를 하였다. 새 거리를 빠져 황엽이 되어 가는 잡초에 싸인 벌판 중턱에 나와서 남북으로 통한 길을 북으로 고불뜨려 유정을 바라볼 때는 십여 간통이나 떨어져 보이는 유곽 2층에서는 벌써 전등 불빛이 반짝거리며 흘러 나왔다. "응! 저기 보이는군^5,5,5^" A가 마주 보이는 나직한 산록에 외따로 우뚝 선 참외 원두막 같은 것을 가리켜 주는 대로 희끄무레한 것이 그 위에서 움질움질하는 것을 바라보며 발길을 재촉하였다. 십여 보쯤 가다가 나는, "이것이 유곽이야?" 하며 좌편을 가리켰다. 방금 전기가 들어온 헌 등이 일자로 총총 들어박힌 사이로 목욕탕에서 돌아오는 얼굴만 하얀 괴물들이 화장품을 담은 대야를 들고 쓸쓸한 골짜기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부화하다 함보다 도리어 처량하게 보였다. "선생이 여기 덕도 꽤 보지^5,5,5^ 강연 한 번에 술 한 병씩 주는 곳은 그래도 여기밖에 없어^5,5,5^" A는 웃으며 설명하였다. 3층집 꼭대기에 퍼더 버리고 앉아서 희미한 햇발이 점점 멀어 가는 산등성이를 얼없이 바라보고 있던 주인은 우리들이 우중우중 올라오는 것을 흘끔 돌아보더니 별안간 돌아앉아서 무엇인지 똑딱똑딱 두드리고 있다. 우리는 싸리로 드문드문 얽어맨 울타리 앞에서 들어갈 곳을 찾노라고 이리저리 주저하다가 그대로 넘어서서 성큼성큼 들어갔다. 앞서 들어간 A는 주인이 돌아앉은 3층 위에다 손을 걸어 잡고 들여다보며, "선생님! 또 왔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였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A는 소리를 내어 웃으며 잼처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농장 문짝에 못을 박고 있었다. A와 Y는 동시에 H와 나를 돌아보고 눈짓을 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5,5,5^ 신기가 그저 불편하신가요? 오늘은 꼭 강연을 들으러 왔는데요." 이번에는 Y가 수작을 건넸다. 그제야 그는 깜짝 놀란 듯이 먼지가 뿌옇게 앉은 더벅머리를 휙 돌이키며, "예? 왔소?" 간단한 대답을 하고 여전히 돌아앉아서 장도리를 들었다. 세 사람은 일시에 깔깔 웃었다. 그러나 귀밑부터 귀얄 같은 수염이 까맣게 덮인 주먹만한 하얀 상을 흘끗 볼 제 나는 앗! 하며 깜짝 놀랐다. 감전된 것같이 가슴이 선뜩하며 심한 전율이 전신을 압도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에는 다소 안심된 가슴에 이상한 의혹과 맹렬한 호기심이 일시에 물밀듯하였다. 중학교 실험실의 박물선생이 따라온 줄로만 안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 이유없이 무의식하게 경건한 혹은 숭엄한 느낌이 머리 뒤를 떼미는 것 같아서 나는 무심중간에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흥흥 하며 웃는 것을 볼 때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무슨 큰 불경한 일이나 하는 것 같아서 도리어 괘씸한 듯이도 보이고 혹은 이 사람이 심사가 나서 곧 뛰어 내려와 폭행이나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생겼다. "선생님! 정말 신기가 불편하신 모양이외다 그려!" A는 갑갑증이 나서 또 말을 붙였다. "서울서 일부러 손님이 오셨는데 강연을 하시구료. 하^5,5,5^." 때묻은 옷가지며 빨래 보퉁이 같은 것이 꾸역꾸역 나오는 것을 꾹꾹 눌러 떼밀면서 고친 문짝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앉았던 주인은 서울 손님이란 말에 귀가 띄었는지 우리를 향하여 돌아앉으며 입을 벌렸다. "예^5,5,5^ 감기도 좀 들었소이다." 하고 영채 없는 뿌연 눈으로 나를 유심히 똑바로 내려다보다가, "^5,5,5^ 보시듯이 이렇게 역사를 벌여놓고^5,5,5^" 한 번 방을 휘익 둘러다본 후 또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주며, "요사이 같아서는 눈코 뜰 새도 없쇠다^5,5,5^ 더군다나 연일 강연에 목이 꽉 쇠서^5,5,5^" 말을 맺고 H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별로 목이 쉰 것 같지는 않았다. Y가 H와 나를 소개하니까, "예^5,5,5^ 그러신가요? 서울서 멀리 오셨소이다 그래." 반가운 듯이, "나는 남포 사는 김창억이외다." 하며 인사하는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까지 나타났다. "예^5,5,5^ 나는 ^456,1346,1346,1346,123^올시다." 나는 정중히 답례를 하였다. H도 인사를 마쳤다. "선생님 그 용하시외다 그래^5,5,5^ 이름도 아니 잊으시고^5,5,5^ 하하하." H가 놀렸다. 창억은 거기에는 대꾸도 아니하고 나를 향하여, "좀 올라오시소 그래 아직 역사가 끝이 안 나서 응접실도 없쇠다마는^5,5,5^" 하며 올라오라고 재삼 권하다가, "제다가 차차 스토브도 들여놓고 손님이 오시면 좀 들어앉아서 술잔이나 나누도록 하여야 하겠지마는^5,5,5^" 어긋매인 선반 같은 소위 이층간을 가리키며 천연덕스럽게 인사치레를 하였다. 세 사람은 깔깔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나 자기의 말에 조금도 부자연한 과장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웃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힘없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웃는 사람을 내려다보다가 힝 하고 코웃음을 치고 외면을 하였다. 나는 이 사람이 미쳤다고 하여야 좋을지 모든 것이 대오하고 모든 것에서 해탈한 대철인 이라고 하여야 좋을지 몰랐다. "너무 황송하여 올라가진 못하겠사옵니다마는 어떻게 강연이나 좀 하시구료." 하며 이번에는 H가 놀렸다. "글쎄 모처럼 오셨는데 술 한잔 없어서 미안하외다." 그는 딴전을 부렸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고 술 이야기만 꺼내는 것이 이상하였다. "여기 온 손님들은 모두 하느님 아들이기 때문에 술은 아니 먹는답니다." 늘 웃으며 대화를 듣고 섰던 Y가 입을 열었다. "예? 형공도 예수 믿습니까?" 그는 놀란 듯이 나를 마주 건너다보다가 히히히 웃으며, "예수꾼도 무식한 놈만 모였나 봅디다^5,5,5^ 예수꾼들 기도할 때에 하느님 아버지시여! 나의 죄를 구하소서, 아맹^5,5,5^ 하지 않소? 그러나 아맹이란 무엇이요. 맹자 같은 만고의 웅변가더러 버버리라고 아맹이라 하니 그런 무식한 말이 아 어디 있단 말이오? 나를^5,5,5^ 나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할 지경이면 아면이라고 해야 옳지 않습니까." 강연의 서론을 꺼낸 그가 득의만면하여 히히 웃는 데 따라서 둘러섰던 사람들도 웃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비상한 공상가라는 것을 직각한 외에 웃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었다. 여럿이 따라서 웃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강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참 지공무사하시외다. 나를^5,5,5^ 이 3층집을 단 서른 닷 냥으로 꼭 한 달 열 사흘만에 짓게 하신 것이외다^5,5,5^ 하느님의 은택이외다. 서양놈들이 아무리 문명을 했느니 기계가 발달되었느니 하지만 그래 단 서른 닷 냥에 3층집을 지은 놈이 어디 있습니까^5,5,5^ 날마다 하느님이 와보시고 칭찬을 하십니다." "칭찬을 하시니까 지공무사한 것 같지요." H가 한마디 새치기를 하였다. "천만에, 이것이 모두 하느님 분부가 있어서 된 것이외다^5,5,5^ 인제는 불의 심판이 끝나고 세계가 일대 가정을 이룰 시기가 되었으니 동서 친목회를 조직하라고 하신고로 위선 이 사무소를 짓고 내가 회장이 되었으나 각국의 분쟁을 순찰할 감독관이 없어서 큰일이 났소다." 일동은 와 웃었다. "여기 X군이 어떨까요?" Y는 나의 어깨를 탁 치며 얼른 추천을 하였다. "글쎄, 해주신다면 고맙지만^5,5,5^" 세 사람은, "야^5,5,5^ 동서 친목회 감독 각하!" 하며 한 층 더 소리를 놓여 웃었다. 아닌게 아니라 첨아에 주레주레 매단 멍석 조각이며 밀감 조각들 사이에 '동서 친목회 본부'라고 굵직하게 쓰고 그 옆에 '회장 김창억'이라고 쓴 권련상자 껍질 같은 마분지 조각이 모로 매달려 있었다. 나는 모자를 벗어 든 채 양수거지를 하고 서서 그 마분지를 쳐다보던 눈을 돌이켜서 동서 친목회 회장에게로 향하여, "회의 취지는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다. "아까 말씀한 것같이 성경에 가르치신 바 불의 심판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구주대전의 그 참혹한 포연 탄우가 즉 불의 심판이외다그래. 그러나 이번 전쟁이 왜 일어 났나요^5,5,5^ 이 세상은 물질 만능, 금전 만능의 시대라 인의예지도 없고, 오륜도 없고, 애도 없는 것은 이 물질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욕에 더럽혀진 까닭이 아닙니까^5,5,5^ 부자^5,23^형제가 서로 반목질시하고 부부가 불화하며 이웃과 이웃이, 한 마을과 마을이^5,5,5^ 그리하여 한 나라와 나라가 서로 다투는 것은 결국 물욕에 사람의 마음이 가려졌기 때문이 아니오이까. 그리하여 약육강식의 대 원칙에 따라 세계 만국이 간과로써 서로 대하게 된 것은 즉 구주대전이외다그래. 그러나 인제는 불의 심판도 다아 끝났다, 동서가 친목할 시대가 돌아왔다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대로 나는 신종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의 계시대로 세계 각국으로 돌아다니며 경찰을 하여야 하겠쇠다^5,55^ 나도 여기에는 오래 아니 있겠쇠다^5,5,5^ 좀더 연구하여 가지고^5,5,5^ 영미법덕으로 돌아다니며 천하명승도 구경하고 설교도 해야 하겠쇠다," 말을 맺고 그는 꿇어앉아서 선반 위를 부스럭부스럭하더니 먹다가 꺼둔 궐련 토막을 찾아내어 물고 도로 앉는다. "선생님 그러면 금강산에는 언제 들어가실 텐가요?" A가 놀렸다. "한번 다아 돌아다닌 후에 들어가야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합니까.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릴 수가 있습니까?" "응^5,5,5^" 그는 눈을 뚱그렇게 뜨고 A를 바라보았다. "아, 선생님 망령이 나셨나 보구면. 금강산에 들어가심 군수나 하나 시켜 주신다더니^5,5,5^" 일동은 박장대소를 하였다. "응, 가기 전에 시켜주지!" 그의 말에는 조금도 농담이 없었다. 유창하게 연설 구조로 열변을 토할 때는 의심할 여지없는 어떠한 신념을 가진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금강산에 옥좌는 벌써 되었나요?" Y는 웃으며 물었다. "예, 이 집이 낙성되던 날 벌써 꾸며 놓았답니다." 하고 여러 사람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성 중에서 김씨가 제일 좋은 성이외다. 옥은 곤강에서 나지만도 금은 여수에서 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말씀이 너는 김가니 산고구려 한 금강산에 들어가서 옥좌에 올라앉아 세계의 평화를 누리게 하라고 하십디다^5,5,5^" 하고 잠자코 가만히 섰는 나의 동정을 얻으려는 듯이 미소를 띠고 바라본다. "대단히 좋소이다^5,5,5^ 그러나 이 3층집은 무슨 생각으로 지셨나요?" 나는 이같이 물었다. "연전 여름방학에 서울에 올라가서 중등학교에 일어 강습을 하러 다닐 때에 서양 사람의 집을 보니까 위생에도 좋고 사람 사는 것 같기에 우리 조선 사람도 팔자 좋게 못살란 법이 어디 있겠소? 기왕이면 3층쯤 높직이 지어 볼까 해서^5,5,5^ 우리가 그놈들만 못할 것이 무엇이오. 나도 교회에 좀 다녀 보았지만 그놈들처럼 무식하고 아첨 좋아하는 놈은 없습디다^5,5,5^ 헷, 그 중에서도 목산지 하는 것들 한참때에 대원군이나 뫼신 듯이 서양놈들이 입다 남은 양복 조각들을 떨쳐입고 그 더러운 놈들 밑에서 굽실굽실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이 주먹으로 대구리를^5,5,5^" 하며 새까만 거칫한 주먹을 쳐들었다. 그때의 그의 눈에는 이상한 광채가 돌고 얼굴은 경련적으로 부르르 떨리면서 뒤틀리었다. 나는 무심히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날은 점점 추워 오고^5,5,5^ 어떻게 하실 작정인가요?" 나는 화제를 이같이 돌렸다. "춥긴요, 하느님 품속은 사시 봄이야요^5,5,5^ 그러나 예다가 스토브를 놓지요." 하고 2층을 가리켰다. "그래 스토브는 어디 주문하셨소." 누구인지 곁에서 말참견을 하였다. "주문은 무슨 주문^5,5,5^" 대단히 불쾌한 듯이 한마디하고, "스토브는 서양놈들만 만들 줄 알고 나는 못 만든답디까^5,5,5^ 그놈들이 하루에 하는 일이면 나는 한 반나절이면 만들 수 있소이다. 이 집이 며칠이나 걸린 줄 아슈? 단 한 달하고 열 사흘! 서양놈들은 13이란 수가 흉하답디다마는 나는 양옥을 지으면서도 꼭 한 달 열 사흘에 지었다오." "동으로 가래도 서로만 갔으면 고만 아니요." H가 말대꾸를 하였다. "글쎄 말이오. 세상놈들이야말로 동으로 가라면 서로만 달아나는 빙퉁그러진 놈뿐이외다^5,5,5^ 조선이 있고 조선 글이 있어도 한문이나 서양놈들의 혀꼬부라진 말을 해야 사람의 구실을 하는 쌍놈의 세상이 아닙니까." 한마디 한마디씩 나의 동의를 얻으려는 것처럼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잠깐씩 말을 멈추다가 나중에는 열중한 변사처럼 쉴 새 없이 퍼붓는다^5,5,5^. "네, 그렇지 않습니까. 네^5,5,5^ 그것도 바로 읽을 줄이나 알았으면 좋겠지만^5,5,5^ 가령 천지현황 하면 하늘 천 이렇게 읽으니 일대라 써놓고 왜 '하늘 대' 하지 않습니까. 창공은 우주간에 유일 최대하기 때문에 창힐이 같은 위인이 일대라고 쓴 것이 아니외니까. 또 '흙 야' 할 것을 '따 지' 하는 것도 안 된 것이외다. 따란 무엇이외니까? 흙이 아니오? 그러기에 흙 토변에 언재호야라는 천자문의 왼쪽자인 이끼 야자를 쓴 것이외다그래. 다시 말하면 따는 흙이요, 또 우주간에 최말위에 처한 고로 흙토자에 천자문의 최말자 되는 이끼 야자를 쓴 것이외다." 우리들은 신기히 듣고 섰다가, "그러면 쇠 금자는 어떻게 되었길래 김가를 하느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나요?" 하고 Y가 물었다. "옳은 말씀이외다. 네^5,5,5^ 참 잘 물으셨소이다^5,5,5^" 깜빡했더면 잊었을 것을 일깨워 주어서 고맙고도 반갑다는 듯이 득의만면하여 그 일사천리의 구변으로 강연을 계속한다. "사람 인 안에 구슬 옥을 하지 않았소. 하므로 쇠 금이 아니라 사람 구슬 금^5,5,5^ 이렇게 읽어야 할 것이외다." 일동은 킥킥킥 웃었다. "아니외다. 웃을 것이 아니외다^5,5,5^. 사람 구실을 하려면 성현이 가르치신 것같이 첫째에 인하여야 하지 않쇠니까. 하므로 사람 인 하는 것이외다그려. 그 다음에는 구슬이 두 개가 있어야 사람이지 두 다리를 이렇게(인. 손가락으로 쓰는 흉내를 내며) 벌리고 선 사이에 딱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도저히 사람 값에 가지 못할 것이외다. 고자는 그것이 없어도 사람이라 하실지 모르나 그러기에 사람 구실을 못하지 않습니까. 히히히^5,5,5^ 그는 하여간 그 두 개가 즉 사람을 사람 값에 가게 하는 보배가 아닙니까. 그런고로 보배에 제일가는 구슬 옥에 한 점을 더 박은 게 아니외니까^5,5,5^" 한마디마다 허리가 부러지게 웃던 A는, "그래서 금강산에 옥좌를 만들었습니다 그려^5,5,5^ 하하하." 하며 또 웃었다. "그러면 여인네는 김가가 없구면요?" 이번에는 H가 놀렸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눈만 멀뚱멀뚱하며 앉았다가 별안간에, "옳지! 옳지! 그래서 내 댁내는 안가로군^5,5,5^ 응! 히히히. 여편네가 관을 썼어^5,5,5^ 여인네가 관을 썼어^5,5,5^ 히히 히히히." 잠꼬대하는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서는 히히히 웃기를 두세 번이나 뇌었다. "참 아씨는 어디 가셨나요?" 나는 '내 댁내는 안가로군' 하는 그의 말에 문득 그의 처자의 소식을 물어보려는 호기심이 나서 이같이 물었다. "예? 못 보셨소? 여보, 여보, 영희 어머니! 영희 어머니!" 몸을 꼬고 엎드려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부르다가, "또 나갔나!" 혼잣말처럼 하며 바로 앉더니, "아마 저기 갔나 보외다." 하고 유곽을 가리켰다. "또 난봉이 난 게로군^5,5,5^ 하하하, 큰일났소이다. 비끄러매 두지 않으면^5,5,5^" A가 말을 가로채서 놀렸다. "히히히, 저기가 본대 제 집이라오." "저긴 유곽이 아니오?" H도 웃으며 물었다. "여인네가 관을 썼으니까^5,5,5^ 하하하." 이번에는 Y가 입을 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앉았다가, "예, 그 안에 있어요^5,5,5^ 그 안에. 5 년이나 나하고 사는 동안에도 역시 그 안에 있었어요. 히 히히 히히." '^5,5,5^ 그 안에 그 안에!' 나는 아까 그의 처가 도주를 하였다는 소문도 있다고 하던 A의 말을 생각하며 속으로 뇌어 보았다. "좀 불러오시구료." "인제 밤에 와요. 잘 때에^5,5,5^" "그거 옳은 말이외다^5,5,5^ 잘 때밖에 쓸데없지요. 하하하." H가 농담을 붙이는 것을 나는 미안히 생각하였다. "히히히, 그러나 너무 뜨거워서 죽을 지경이랍니다. 어제는 문지기에게 죽도록 단련을 받고 울며 왔기에 불을 피우고 침대에서 재워 보냈습니다^5,5,5^ 히히히." 무슨 환상을 좇듯이 먼 산을 바라보며 누런 이를 내놓고 히히히 웃는 그의 얼굴은 원숭이같이 비열하게 보였다. 산등에서 점점 멀어 가던 햇발은 부지중 소리 없이 날아가고 유곽 2층에 마주 보이는 전등불빛만 따뜻하게 비치었다. 홍소, 훤담, 조롱 속에서 급격히 피로를 느낀 그는 어슬어슬하여 오는 으슥한 산 밑을 헤매는 쌀쌀한 가을저녁 바람과 음산하고 적막한 암흑이 검은 이빨을 악물고 휙휙 한숨을 쉬며 덤벼들어 물고 흔드는 3층 위에 썩은 밤송이 같은 뿌연 머리를 움켜쥐고 곁에 누가 있는 것도 잊은 듯이 기둥에 기대어 앉았다. "인젠 가볼까." 하는 소리가 누구의 입에선가 힘없이 나왔다. 동서 친목회 회장^5,5,5^ 세계평화론자^5,5,5^ 기이한 운명의 순난자^5,5,5^ 몽현의 세계에서 상상과 환영의 감주에 취한 성신의 총아^5,5,5^ 오욕육구 칠난팔고에서 해탈하고 부세의 제연을 저버린 불타의 성도와, 조소에 더러운 입술로 우리는 작별의 인사를 바꾸고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울타리 밑까지 나왔던 나는 다시 돌쳐서서 그에게로 향하였다. 2층에서 뛰어 내려오는 그와 마주칠 때 그는 내 손에 위스키병이 있는 것을 보고 히히 웃었다. 나는 Y의 집에서 남겨 가지고 나온 술병을 그의 손에 쥐여준 후 빨간 능금 두 개를 포켓에서 꺼내 주었다. "이것 참 미안하외다." 그는 만족한 듯이 웃으며 받아서 2층 벽에 기대어 가로 세운 병풍 곁에 늘어놓고 따라나와 인사를 하였다. 가련한 동무를 이별하고 나온 나는 무겁고 울적한 기분에 잠기어서 입을 다물고 구두코를 내려다보며 무심히 걸었다. 역시 잠자코 앞서 가던 Y는 잠깐 멈칫하고 돌아다보며, "X군 어때?" "글쎄^5,5,5^" "^5,5,5^ 그러나 모자를 벗어 들고 공손히 강연을 듣고 섰는 군의 모양은 지금 생각을 해도 요절을 하겠어^5,5,5^ 하하하." "흐흥^5,5,5^" 나는 힘없이 웃었다. 저녁 가을바람은 산듯산듯 목에 닿는 칼라 속을 핥고 달아났다. 일행이 삼거리에 와서 A와 헤어질 때는 2,3간 떨어진 사람의 얼굴이 얼쑹얼쑹 보였다. 시시각각으로 솔솔 내려앉는 땅거미에 싸인 황야에, 유곽에서 가늘고 길게 흘러 나오는 샤미센 소리, 탁하고 넓게 퍼지는 장구 소리는 혹은 급하게, 혹은 느리게 퍼지어서 정거장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우리의 발꿈치를 어느 때까지 쫓아왔다. 컴컴하고 쓸쓸한 북망 밑 찬바람에 불리며 사지를 오그리고 드러누운 3층집 주인공은 저 장구 소리를 천당의 왈츠로 듣는지, 지옥의 아비규환으로 깨닫는지, 나는 정거장 문에 들어설 때까지 흘금흘금 돌아다보아야 오직 유곡의 요화 같은 유곽의 전등불이 암흑 가운데 반짝거릴 뿐이었다. 5 평양행 열차에 오를 때에는 일단 헤어졌던 A도 다시 일행과 합동되었다. 커단 트렁크를 무거운 듯이 두 손으로 떠받쳐서 선반에 얹고 나서 목이 막힐 듯한 한숨을 휘이 쉬며 앉는 A를 Y는 웃으며 건너다보고, "인젠 영원인가?" "응! 영원히. 하하하." A는 간단히 말을 끊고 호젓해하는 듯한 미소를 띄웠다. "그러나 평양이 세계의 끝일지도 모르지^5,5,5^ 핫하하." "하하하." A도 숙였던 고개를 쳐들며 힘없이 웃었다. "왜 어디 가시나요?" A와 마주앉은 나는 물었다. "글쎄요, 남으로 향할지 북으로 달릴지 모르겠소이다." A는 말을 맺고 머리를 창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5,5,5^ A군은 오늘 부친께 선언을 하고 영원히 나섰다는 게라오." Y가 설명을 하였다. "하하하, 그것 부럽소이다그려^5,5,5^ 영원히 나섰다는^5,5,5^ 그것이 부럽소이다." 나는 이같이 한마디하고 A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고 눈을 뜬 A는 바로 앉으며 빙긋 웃을 뿐이었다. 우리는 엽서를 꺼내 들고 서울에다가 편지를 썼다. 나는 P에게 대하여 이렇게 썼다. "무엇이라고 썼으면 지금 나의 이 심정을 가장 천명히 형에게 전할 수 있을까! 큰 경이가 있은 뒤에는 큰 공포와 큰 침통과 큰 애수가 있다 할 지경이면 지금 나의 조자를 잃은 심장의 간헐적 고동은 반드시 그것이 아니면 아닐 것이요^5,5,5^ 인생의 진실된 일면을 치켜들고 거침없이 육박하여 올 때 전령을 에워싸는 것은 경악의 전율이요, 그리고 한없는 고민이요, 샘솟는 연민의 눈물이요, 가슴이 저린 애수요^5,5,5^ 그 다음에 남는 것은 미치게 기쁜 통쾌요^5,5,5^ 3원 50전으로 3층집을 짓고 유유자적하는 실신자를^5,5,5^ 아니오, 아니오, 자유민을 이 눈앞에 놓고 볼 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소. 현대의 모든 병적 다크 시이드를 기름 가마에 몰아넣고 전축하여 최후에 가마 밑에 졸아붙은 오뇌의 환약이 바지직바지직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욕구를 홀로 구현한 승리자 같기도 하여 보입디다^5,5,5^ 나는 암만 하여도 남의 일같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는 엽서 한 장에다가 깨알같이 써서 Y에게 보라고 주고, 다른 엽서 한 장에 다시 계속하였다. "P군! 지금 아무리 자세히 쓴다 하기로 충분한 설명은 못 하겠기로 후일에 맡기지마는 그러나 이것만은 추측하여 주시오^5,5,5^ 지금 나는 얼마나 소리 없는 눈물을 정거한 화차의 연통같이 가다가다 뛰노는 심장 밑으로 흘리며 앉았는가를^5,5,5^ 지금 나는 울고 있소. 심장을 압축할 만한 엄숙하고 경건한 사실에 하도 놀라고 슬퍼서^5,5,5^ 지금 나는 울고 있소. 모든 세포세포가 환희와 오뇌 사이에서 뛰놀다가 기절할 만큼 기뻐서^5,5,5^" 6 북국의 철인, 남포의 광인 김창억은 아직 남포 해안에 증기선의 검은 구름이 보이지 않던 30여 년 전에 당시 굴지하는 객주 김건화의 집 안 방에서 고고의 소리를 울리었다. 그의 부친은 소시부터 몸에 녹이 슨 주색잡기를 숨이 넘어갈 때까지 놓지를 못한 서도에 소문난 외도객 남편보다 네 살이나 위인 모친은 그가 14세 되던 해에 죽은 누이와 단 남매를 생산한 후에는 남에게 말못할 수심과 지병으로 일생을 마친 박복한 여성이었다. 이러한 속에서 자라난 그는 잔열포류의 약질일망정 7,8세부터 신동이라 들을이만큼 영리하였다. 영업과 화류 이외에는 가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의 부친도 의외에 자식이 총명한 것은 기뻐할 줄 알았다. 더구나 자기의 무식함을 한탄한 이만큼 자식의 교육은 투전장 다음쯤으로 생각하였다. 그 덕에 창억이도 남만큼 한학을 마친 후 16세 되던 해에 경성에 올라가서 한성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3 년급 되던 해 봄에 부친이 장중풍으로 졸사했기 때문에 유학을 단념하고 내려오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때 숙부의 손으로 재산 정리를 하고 보니까 남은 것이라고는 몇 두락의 전답하고 들어 있는 집 한 채 뿐이었다. 유산이 있어도 선고의 유업을 계속할 수 없는 창억은 연래 지병으로 나날이 수척하여 가는 모친과 일년 열 두 달 말 한마디 건네 보지 않는 가속을 데리고 절망에 싸여 쓸쓸한 큰 집 속에 들엎드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친도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였다. 전생명의 중심으로 믿고 살아가려던 모친을 잃은 그에게는 아직 어린 생각에도 자살 이외에는 아무 희망도 없었다. 백부의 지휘대로 집을 팔고 줄여 간 뒤로는 조석 이외에 자기 아내와 대면도 않고 종일 서재에 들엎드렸었다. 조석 상식에 어린 부부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으나 그 설움은 각각 의미가 달랐다. 그것이 창억으로 하여금 더욱 불쾌하고 애통하게 하였다^5,5,5^ 이 세상에는 자기와 같은 설움을 가지고 울어줄 사람은 없구나! 이런 생각이 날 때마다 5 년 전에 15세를 일기로 하고 간 누이생각이 새삼스럽게 간절한 동시에 자기 처가 상식마다 따라 우는 것이 미워서 혼자 지내겠다고까지 한 일이 있다^5,5,5^ 독서와 애곡 ^5,5,5^ 이것이 3 년 전의 그의 한결같은 일과이었다. 그러나 부친의 3 년상을 마치던 해에 소학교가 비로소 설시되어 유지자의 강청으로 교편을 들게 된 뒤로부터는 다소 위안도 얻고 기력도 회복되었으며 가속에 대한 정의도 좀 나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주연의 맛을 알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의사의 주의로 반주를 얼굴을 찌푸려 가며 먹던 사람이 점점 양이 늘어 갈 뿐 아니라 학교 동료와 추축이 잦아 갈수록 자기 부친의 청년 시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처는 내심으로 도리어 환영하였다. 그 이듬해에 식구가 하나 더 는 뒤부터는 가정다운 기분도 들게 되었다^5,5,5^ 이와 같이 하여 책과 눈물이 인제는 책과 술잔으로 변하였다. 그 동시에 그의 책상 위에는 신구약전서 대신에 동경 어떠한 대학의 정경과 강의록이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기이한 운명은 창억의 일신을 용서치는 않았다. 처참한 검은 그림자는 어느 때까지 쫓아다니며 약한 그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다. 자기가 가르치던 2 년생이 졸업하려던 해에 그의 아내는 겨우 젖떨어질 만하게 된 것을 두고 시부모의 뒤를 따라갔다. 부모를 잃었을 때 같지는 않았으나 자기 신세에 대한 비탄은 한층 더하였다. 어미 없는 계집자식을 끼고 어쩔 줄 몰라 방황하였다. 친척들은 재취를 얻어 맡기려고 무수히 권하였으나 종내 듣지 않았다. 오직 술과 방랑만이 자기의 생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마침내 서재에서 뛰어나왔다^5,5,5^ 학교의 졸업식을 마친 후 그는 표연히 유랑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멀리는 못 갔다. 반년쯤 되어 훌쩍 돌아와서 못 알아볼 만큼 초췌한 몸을 역시 서재에 던졌다. 그리하여 수삭쯤 지나 건강이 다시 회복된 후 권하는 대로 다시 가정을 이루었다. 이번에는 나이도 자기보다 어리거니와 금실도 좋았다. 그러나 애처의 강렬한 사랑은 힘에 겨워서 충분한 만족을 줄 수 없었다. 혈색 좋은 큼직하고 둥근 상에서 디굴디굴 구는 쌍꺼풀 눈썹 밑의 안광은 곱고 귀여우면서도 부시기도 하며 밉기도 하며 무서워서 바로 볼 수가 없었다^5,5,5^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였다. 이 같은 중에 재미있는 유쾌한 5,6 년간은 무사히 지냈다. 소학교는 제10 회 창립 기념식을 거행하고 그는 10 년 근속 축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은 역시 그의 호운을 시기하였다. 내월이면 명예로운 축하를 받게되는 이 때에 그는 불의의 사건으로 철창에 매달리어 신음치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5,5,5^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의 일생을 통하여 노려보며 앉았는 비운은 그가 4개월 만에 무죄 방면되어 사바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하품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4개월간의 옥중 생활은 잔약한 그의 신경을 바늘 끝같이 예민하게 하였다. 그는 파리하고 하얗게 센 얼굴을 들고 감옥 지붕의 이슬이 아직 녹지 않은 새벽 아침에 옥문을 나섰다. 차입하던 집으로 찾아오리라고 생각하였던 자기 처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60이 가까운 백부만이 왔다. 출옥하기 1삭 전까지는 일이 있어도 하루가 멀다고 매일 면회하러 오던 아내가 근 1개월 동안이나 발을 끊은고로 의심이 없지 않았으나 가끔 백부가 올 때마다 영희가 앓아서 몸을 빼쳐 나지 못한다기로 염려와 의혹 속에서도 다소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출옥하던 전날 면회하러 오던 인편에 갑갑증이 나서 내일은 꼭 맞으러 와달라고 한 것이라서 뜻밖에 보이지 않는 고로 더욱 의심이 날 뿐 아니라 거의 낙심이 되었다. 백부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이것이 자기의 신경과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나서 갑갑한 마음을 참고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도중에서 일부러 길을 돌아 백부의 집으로 가자는 데에도 의심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잠자코 따라갔다. 대문에 발을 들여놓자, "아, 아버지!" 하며 영희가 앞선 백부와 바꾸어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 탈이 났다더니 언제 일어났니?" 영희의 어깨에 손을 걸며 눈이 휘둥그래져서 숨찬 듯이 물었다. 영희는 멈칫하며 둘러보았다. "어머니는?" 그는 자기가 추측하며 무서워하던 사실이 점점 명백하여 오는 것을 깨달으며 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어머니는 어디 갔어^5,5,5^" 그에게 대한 이 한 마디가 억만 진리보다 더 명백하였다. 그 동시에 자기의 귀가 의심쩍었다. 온 식구가 뛰어나오며 웃음 속에서 맞으나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인사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맥없이 얼굴이 새파래서 뜰 한가운데 섰다가, "인제 가보지요^5,5,5^ 영희야!" 하며 그대로 뛰쳐나오려 했다. 뜰 아래에 여기저기 섰던 사람들은 그가 얼빠진 사람처럼 뚱그런 눈만 무섭게 뜨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며 주저주저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입을 벌리지 못하고 피차에 물끄러미 눈치만 보다가, "아, 아침이나 먹고 천천히^5,5,5^" 숙모가 끌어당기듯이 만류하였다. "아니요. 왜 영희 어미는^5,5,5^ 어디 갔어요?" 그는 입이 뻣뻣하여 말을 어우를 수 없는 것처럼 떠듬떠듬 겨우 입을 열었다. "으응^5,5,5^ 일전에 평양에^5,5,5^ 어쨌든 올라오려무나." 평양이라는 것은 처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숙부가 말을 더듬는 것이 위선 이상히 보였다. 더구나 '어쨌든'이란 말은 웬 소리인가. 평시 같으면 귓가로 들을 말도 일일이 유심히 들이었다. "흐흥^5,5,5^ 평양! 흐흥^5,5,5^ 평양!" 실성한 사람처럼 흐흥흐흥 코웃음을 치며 평양을 뇌고 섰는 그의 눈앞에는 금년 정초에 평양 정거장 문밖 우체통 위에서 누구하고인지 수군거리다가 휙 돌쳐서 캄캄한 밤길에 사라져 버리던 양복장이의 뒷모양이 환영같이 떠올랐다. 그는 차차 눈이 캄캄하여 오고 귀가 멀어갔다^5,5,5^ 절망의 깊은 연못은 점점 깊고 가깝게 패어 들어갔다. 그는 빈 집에라도 가서 형편도 보고 조용히 드러누워서 정신을 가다듬을까 하였으나 현기가 나서 금시 졸도 할 듯하여 권하는 대로 올라가서 안방으로 들어가 픽 쓰러졌다. 피로, 앙분, 분노, 낙심, 비탄, 미가지의 운명에 대한 공포, 불안^5,5,5^ 인간의 고통이란 고통은 노도와 같이 일시에 치밀어 와서 껍질만 남은 그를 삶아 죽이려는 듯이 덤벼들었다. 옴푹 팬 눈을 감고 벽을 향하여 드러누운 그의 조막만한 얼굴은 납으로 만든 데드마스크와 같았다. 죽은 듯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으나 격렬한 심장의 동기와 가다가다 부르르 떠는 근육의 마비는 위에 덮어 준 주의 위로도 분명히 보였다. 한 시간쯤 되어 깨었다. 잔 듯 만 듯한 불쾌한 기분으로 일어나 밥상을 받았다. 무엇이 입에 들어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속에 들어앉았을 때에는 나가면 이것도 먹어보리라 저것도 하여 보리라고 벼르고 별렀으나 이렇게 되고 보니까 차라리 3,4 년 후에 나오는 것이 좋았겠다고 생각하였다. 밥술을 뜨자마자 그는 허둥지둥 뛰어나왔다. "아버지!" 하며 쫓아 나오는 영희를 험상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며 들어가라고 턱짓을 하고 나섰다. 머리를 비슷이 숙이고 동구까지 기어 나오다가 돌쳐설 때 숙부의 손에 매달려 나오는 딸을 힐끗 보고 별안간 눈물이 앞을 가리며 낳은 어미 없이 길러낸 딸자식이 불쌍히 생각되어 금시로 돌쳐가서 손을 잡고 오고 싶은 생각이 불쑥 나는 것을 억제하고 "야아 야아"하며 부르는 백부의 소리도 못 들은 채하고 앞서서 왔다. ^5,5,5^ 범죄자의 누명을 쓰고 처자까지 잃은 이내 신세일망정 십여 년이나 정을 들이고 살던 4개월 전의 내 집조차 나를 배반하고 고리에 쇠를 비스듬이 차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그대로 매달려서 울고 싶었다. 백부는 숨이 찬 듯이 씨근씨근하며 쫓아와서 "열대가 예 있다." 하며 자기 손으로 열고 들어갔으나 그는 어느 때까지 우두커니 섰었다. 1개월 이상이나 손이 가지 않은 마당은 이사짐을 나른 뒤 모양으로 새끼부스러기, 종잇조각들이 즐비한 사이에 초하의 잡초가 수채 앞이며 담 밑에 푸릇푸릇하였다. 그의 숙부도 역시 그럴 줄이야 몰랐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한번 휙 돌아보고 나서 신을 신은 채 툇마루에 올라섰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퇴 위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여기저기 산국화송이같이 박혀 있었다. 뒤로 쫓아 들어온 그는 뜰 한가운데 서서 덧문을 첩첩이 닫은 대청을 멀거니 바라보고 섰다가 자기 서재로 쓰던 아랫방으로 들어가서 먼지 앉은 요 위에 엎드러지듯이 멀떡 드러누웠다. "할아버지^5,5,5^ 여기^5,5,5^ 농이!" 안방으로 들어온 영희는 깜짝 놀라며 큰 소리를 쳤다. "옛!" 하며 어름어름하던 조부는 서창 덧문을 열어 젖히고 안방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농장이 없어진 것을 보고 혀를 두세 번 차고 나서, "망할 년의 새끼^5,5,5^ 어느 틈에 집어 갔노^5,5,5^" 하며 밖으로 나왔다. 아닌게아니라 창억이가 첫 장가 들 때 서울서 사다가 17,8 년 동안이나 놓아두었던 화류농장 두 짝이 없어졌다. 백부가 간 뒤에 일꾼아이와 계집애년이 와서 대강대강 소제를 한 후 저녁밥은 먹기 싫다는 것을 건네 왔다. 그 이튿날도 꼼짝 아니하고 들어앉았다. 백부의 주선으로 소년과부로 50이나 넘은 고모가 안방을 점령하기까지 5,6일 동안은 한 발짝도 방문 밖에 나오지 않았다. 백부가 보제를 복용하라고 돈푼 든 약첩을 지어다가 조석으로 달여다 놓아도 끝끝내 손도 대지 않았다. 하루 2,3차씩 백부가 동정을 살피러 와서 유리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앉았다가도 별안간 돌아누워서 자는 체도 하고 우릿간에 든 곰 모양으로 빈 방안을 빙빙 돌아다니다가 누가 들여다보는 기척만 있으면 책상을 향하여 앉기도 하였다. 아침에 세수할 때와 간혹 변소 출입 이외에는 더운 줄도 모르는지 창문을 꼭꼭 닫고 큰 기침소리 한 번 없이 들어앉았었다. 그가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 그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었다. 가다가다 몇 해 동안이나 손도 대어보지 않던 성경책을 꺼내 놓고 들여다보기도 하였으나 결코 한 페이지를 계속하여 보는 법이 없었다. 이러한 모양으로 1삭쯤 지내더니 매일 아침에 한 번 씩 세수하러 나오던 것도 폐하고 방으로 갖다 주는 조석만 먹으면 자는지 깨어서 누웠는지 하여간 목침을 들어 드러눕기로만 위주하였다. 백부는 병세가 더 위중하여 그렇다고 약을 먹이지 못하여 달래도 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약은 기어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하루 3,4차씩은 궐하지 않고 와서 방문도 열어보고 위무하듯이 말도 붙여 보나 벙어리처럼 가만히 돌아앉았다가 어서 가달라고 걸인이나 쫓아내듯이 언제든지 창문을 후다닥 닫았다. 하루는 전과 같이 저녁때쯤 되어 가만가만 들어와서 유리 구멍으로 들여다보려니까 방 한가운데에 눈을 감고 드러누웠다가 무엇에 놀란 듯이 깎아 세운 기둥처럼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나더니 창에 대고, "이놈의 새끼! 내 댁내를 차가고 인제는 나까지 죽이러 왔니?" 주먹을 불끈 지고 소리를 버럭 질렀으나 감히 창문을 열지 못하고 얼러붙은 장승같이 섰다. 백부는 기가 막혀서 미닫이를 열며, "이거 와 이러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문만 열면 곧 때려 죽이겠다는 듯이 딱 버티고 섰던 사람이 금시로 껄껄 웃으며, "나는^5,5,5^ 누구라고! 삼촌 올라오시소그래." 하고 이번에는 안방에 대고, "여보, 영희 오마니! 삼촌이 왔는데 술 좀 받아 오시소그래." 하고 나서 경련적으로 켕기어 네 귀가 나는 입을 벌리고 히히히 웃었다. 그의 백부는 한참 쳐다보다가, "야^5,5,5^ 어서 자거라, 잠이 아직 깨지 못한 게로구나^5,5,5^ 술은 이따 먹지, 어서어서." "그런데, 여보소 삼촌! 영희 오마니는 지금 어데 갔소? 술 받으러? 히히히^5,5,5^ 아하, 어젯밤에도 왔어!" 그 사진을 살라 달라고^5,5,5^ 그^5,5,5^ 어디 있던가?" 하며 고개를 쳐들고 방안을 휙 둘러보다가 무슨 생각이 났던지 별안간에 책상 앞으로 가서 꿇어앉으며 무엇인지 부리나케 찾는다. 노인은 뒷모양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방문을 굳게 닫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 방에서는 히히히 웃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의 손에는 두 조각이 난 사진이 있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어느 틈에 방을 뛰어나와서 부엌을 들여다보고 요사이는 왜 세숫물도 아니 주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며 대야를 내밀고 물을 청하였다. 밥솥에 불을 때고 앉았던 고모가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까 근 반년이나 면도를 아니한 수염에는 먼지가 뿌옇게 앉았고 솟은 듯한 붉은 눈찌에는 이상한 영채가 돌면서도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고모는 무서움증이 나서 아니 나오는 웃음을 띄고 달래듯이 온유한 목소리로, "예예 잘못하였쇠다. 처음 시집살이라 거행이 늦었쇠다. 히히히^5,5,5^" 웃으며 물을 퍼주었다. 아침상을 차려다 디밀며 차차 좋아지는 듯한 신기를 위로삼아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니까, "영희 오마니 나 뭐든지 해주시소." 하며 의논할 것이 있으니 들어오라고 강청을 하였다. 고모는 주저주저하다가 오늘은 맑은 정신이 난 듯하여 안심하고 방을 치워 줄 겸 걸레를 집어들고 들어갔다. 책상 위와 방구석을 엎드려서 훔치며, "무슨 의논이야?" 하며 말을 꺼냈다. "^5,5,5^ 어젯밤에 영희 오마니가 왔더랬는데, 오늘 낮에는 아주 짐을 지워 가지고 오겠다고^5,5,5^" "무어? 지금은 어드메 있기에?" 고모는 역시 제정신이 아니 들어서 저러나 보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하여 눈이 휘둥그래지며 걸레 잡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5,5,5^ 지금? 히히히, 연옥에서 매일 단련을 받는데 도망하여 올 터이니 전죄를 용서하고 집에 두어 달라고 합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본 것이 생각나서 연옥이란 말을 썼으나 고모는 물론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다만 옥이라는 말에 대개 지옥이라는 말인 줄 짐작하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냉면이나 한 그릇 받아다 주지." 하고 나오다가 아침에 세수하던 것을 생각하고 혼자 빙긋 웃었다. 날이 더워 갈수록 그의 병세는 나날이 더하여 갔다. 8월 중순이 지나 심한 더위가 다 가고 뜰에 심은 백일홍이 누릇누릇하여 감에 따라 그에게는 없던 증이 또 생겼다. 축대 밑에 나오려던 풀이 폭열에 못 이기어서 비틀어져 버리던 6,7월 삼복에는 겨우 동창으로 바람을 들이면서 불같이 끓는 방 속에 문을 봉하고 있던 사람이 무슨 생각이 났던지 매일 아침만 먹으면 의관도 아니하고 뛰어나가기를 시작하였다. 무슨 짓을 하며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아무도 몰랐다. 대개는 어슬어슬하여 돌아오거나 혹은 자정이 넘어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별로 곤한 빛도 없었다. 안방에서 혹 변소에 가는 길에 들여다보면 그믐 달빛이 건넌방 지붕 끝에서 꼬리를 감추려 할 때에도 빈 방 속에 생불처럼 가만히 앉았었다. 너무 심하여서 삼촌이 며칠을 두고 찾으러 다녀 보아도 종적을 알 수 없었다. 집에서 나갈 때에 누가 뒤를 밟으려고 쫓아 나가는 기색만 있어도 도로 들어와서 어떻게 하여서든지 틈을 타서 몰래 빠져 달아 나갔다. 그러나 그는 별로 다른 데를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기 집에서 동북으로 향하여 1 마장쯤 떨어져 있는 유곽 뒤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뫼 위에 종일 드러누웠을 뿐이었다. 무슨 까닭에 그곳이 좋은지는 자기도 몰랐다. 하여간 수풀 위에서 디굴디굴 구는 것이 자기 방 속 보다 상쾌하다고 생각하였다. 아침에 햇발이 두텁지 않은 동안에 잠깐 드러누웠다가 오정 전후의 폭양에는 해안가로 방황한 후 다시 돌아와서 석양판에 가만히 누웠는 것이 얼마나 재미스러웠는지 몰랐다. 그것도 처음에는 동리 아이들이 덤벼들어서 괴로워 못 견디었으나 1주, 2주 지나갈수록 자기의 신경을 침략하는 자도 점점 없어졌다. 그러나 김모가 미쳤다는 소문은 전시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가 매일 어디 가 있다는 것은 삼촌의 귀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그 후부터는 매일 감시를 엄중하게 하여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2,3일 동안을 근신한 태도로 칩복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4,5일 동안 신용을 보여서 감시가 좀 누그러져 가는 기미를 챈 그는 또다시 방문 밖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땅으로 꺼져 들어간 듯이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었다. 7 반 달 동안을 두고 찾다 못 하여 경찰서에 수색원을 제출한 지 사흘 되던 날 밤중에 연통 속에서 기어 나온 것처럼 대가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탈을 하고 훌쩍 돌아와서 불문곡직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코를 골며 잤다. 이튿날 아침에는 조반을 걸신들린 사람처럼 그릇마다 핥듯이 하며 먹고 삼촌이 건너오기 전에 뛰어나갔다. 3,4시간 뒤에 쫓아간 그의 백부는 유정 윤곽산 뒤에서 용이히 그를 발견하였다. 그가 처음 감시의 비상선을 끊고 나올 때는 맑은 정신이 들어서 그리하였는지, 하여간 자기의 고향을 영원히 이별할 작정으로 나섰었다. 위선 시가를 떠나 촌리로 나와서 별장 이전의 상지를 복하려고 이 산 저 산으로 헤매었다. 가가호호로 돌아다니며 연명을 하여가며 5,6일 만에 평양 부근까지 갔었다. 그러나 평양이 가까워 오는 데에 정신이 난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포로 향하였다. 그 중에 다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지는 않았으나 무엇보다도 불만족한 것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기 서재로 자기를 위하여 영원히 안도하라고 하느님이 택정하신 바 유정 뒷산 밑으로 기어든 것이었다. 인간에게 허락된 이외의 감각을 하나 더 가지고 인간의 책임을 허락지 않은 유수미려한 신비의 세계에 들어갈 초대장을 가진 하느님의 총아 김창억은 침식 이외에는 인간계와 모든 연락을 끊고 매일 같은 꿈을 반복하며 대지 위에 자유롭게 드러누워서 무애무변한 창공을 쳐다보며 대자연의 거룩함과 하느님의 은총 많음을 홀로 찬양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가 달포나 되어 시월 하순이 가까와 초상이 누른 풀잎 끝에 엷게 맺을 때가 되었다. 하루는 어두워서야 들어오리라고 생각한 그가 의외에 점심때도 채 아니 되어서 꼭 닫은 중문을 소리 없이 열고 자취를 감추며 들어와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고모는 도둑이나 아닌가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고 문틈으로 지키고 앉았으려니까 한 식경이나 무엇인지 부스럭부스럭하더니 금침인 듯한 보따리를 들고 나온다. 가슴이 덜렁하던 고모는 문을 박차며 내다보고, "그건 어디로 가져가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도망꾼처럼 한숨에 뛰어나려던 그는 보따리를 진 채 어색한 듯이 히히히 웃으면서, "새집 들래^5,5,5^ 히히히, 영희 어머니를 데려오려고 저기 한 채 지었어^5,5,5^" 또 히히히 웃고 휙 돌아서 나갔다. 고모는 삼촌 집에 곧 기별을 하려도 마침 아이가 없어서 걱정만 하고 앉았었다. 조금 있다가 또 발소리가 살금살금 난다. 이번에도 안방으로 향하여 어정어정 들어오더니 부엌간으로 들어가서 시렁 위에 얹어놓은 병풍을 끌어내려다가 아랫방 앞에 놓고 퇴로 올라서서, "아지먼네, 그 농 좀 갖다 놓게 좀 주시소고래." 하고 성큼 뛰어와서 웃간에 놓았던 붉은 농짝을 번쩍 들고 나갔다. 다행히 영희의 계모가 갈 때에 그의 의복이며 빨래들을 모아서 농장 속에 넣어 두었기 때문에 고모는 걱정을 하면서도 안심하였다. 낙지 이래로 이때껏 비 한번 들어보지 못하던 그가 그 무거운 농짝에다가 병풍을 새끼로 비끄러매어 가지고 나가는 것을 방문에 기대어 보고 섰던 고모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랐다. 기지 이전에 실패한 그는 유정에 돌아와서 1,2주간이나 언덕에 드러누워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다. 답답한 방을 면하려면 위선 여기다가 집을 한 채 지어야 하는데 단층으로는 좁기도 하거니와 제일 바다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5,5,5^ 그러면 2층? 3층만 하면 예서도 보이겠지?" 하고 일어나서 발돋움을 하고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인가에 가리어서 4,5정이나 상거가 있는 해면이 보일 까닭이 없다. "3층이면 그래도 내 키의 3,4배가 될 터이니까^5,5,5^ 되겠지." 하며 곁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들고 차차 햇발이 멀어 가는 산비탈에 앉아서 건축의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누렇게 된 잔디 위에 정처없이 이리저리 줄을 쓱쓱 그으면서 가다가다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해가 저물어 가는 것도 모르고 앉았었다. 그날 밤에 돌아와서는 책궤 속에서 학생 시대에 쓰던 때묻은 양척과 사기가 물러난 삼각정규를 꺼내 가지고 동이 트도록 책상머리에 앉았었다. 도안을 얻은 그는 동이 트기도 전에 산으로 달아났다. 위선 기지의 검분을 마친 후 그는 그 길로 돌을 주워들이기 시작하였다. 반나절쯤 걸리어서 두세 삼태기나 모아 놓은 후 허기진 줄도 모르고 제일 가까운 유곽 속으로 헤매며 새끼오라기, 멍석 조각이며 장작개비, 비르궤짝, 깨진 사기그릇 나랑이^5,5,5^ 손에 걸리는 대로 모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돌아다니는 동안에 유곽 속에서 먹다 남은 청요리 부스러기를 좀 얻어먹었으나 해질 무렵쯤 되어서는 맥이 풀려서 하는 수 없이 엉기어 들어와 저녁을 먹고 곧 자빠졌다. 그 이튿날은 건축장에 나가는 길에 헛간에 들어가서 괭이를 몰래 집어 숨겨 가지고 도망하여 나왔다. 오전에 위선 한 간통쯤 터를 닦아서 다져 놓고 산을 내려와 물을 얻어다가 흙을 이겨 놓고 오후부터는 단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 모퉁이에서부터 쌓아 나와 기역자로 고불릴 때에 비로소 기둥이 없는 데에 생각이 나서 일을 중지하고 산등에 올라앉아서 이 궁리 저 궁리하여 보았다^5,5,5^ 자기 집에는 물론 없지마는 삼촌 집에 가면 서까래 같은 것이라도 서너 개 있을 터이나, 꺼낼 계책이 없었다. 지금의 그로서 무엇보다도 제일 기외하는 것은 자기의 계획이 완성되기 전에 가족의 눈에 띄거나 탄로되는 것인 동시에 이것을 계획하는 것, 더우기 이 계획을 절대 비밀리에 완성하는 것이 유일의 재미요 자랑거리이며 또한 생명이었다. 만일 이때에 누가 와서 "너의 계획은 이러저러하고 너의 포부는 약차약차히 고대하나 가엾은 일이지만 그것은 한 꿈에 불과하다"고 설파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는 경악 실망한 나머지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였을지도 모를 것이다. '^5,5,5^ 어떻게 하였으면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동안에 하루바삐 이 신식 3층 양옥을 지어서 세상 사람들을 놀래 보일까!' 침식을 잊고 주소로 노심초사하는 것이 오직 이것이었다. 그는 삼촌 집의 재목을 가져올 궁리를 하였다. '밤에나 새벽에 가서 집어와? 그것도 아니 될 것이다. ^5,5,5^ 그러면 어느 재목상에나 가서? 응응 옳지옳지!' 하며 그는 흙 묻은 손을 비벼 털며 뛰어 내려와서 정거장으로 향하여 달아 나왔다. 그는 '재목상에나!' 라는 생각이 날 제 십여 년 전에 자기가 가르치던 A라는 청년이 재목상을 경영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뛰어나온 것이었다. 삼거리로 갈리는 데 와서 잠깐 멈칫하다가 서로 고불뜨려서 또다시 뛰었다, 'Y재목상회'라는 기단 간판이 달린 목책으로 돌아막은 문전에 다다라 우뚝 서며 안을 들여다보고 멈칫거리다가 문안으로 썩 들어섰다. 그는 무엇이나 도둑질하러 온 사람처럼 황황히 사방을 돌아보다가 사무실에서 누가 내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곧 그리로 향하였다. "재목 있소?" 발을 들여놓으며 한마디 부르짖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요^5,5,5^ 재목이야 있지요. 하하하^5,5,5^" 테이블 앞에 앉아서 사무원들과 잡담을 하고 있던 주인은 바로 앉아서 그를 마주 쳐다보며 웃었다. 그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사무원들을 차례차례로 쳐다보다가 마치 취한이나 광인이 스스러운 사람과 대할 특별한 주의와 긴장을 가지는 거와 같이 뿌연 눈을 똑바로 뜨고 서서 한마디 한마디씩 애를 써 분명한 어조로, "아니 좀 자질구레한 기둥 있거든 몇 개 주시소고래. 지금 집을 짓다가^5,5,5^" "그건 해 무엇 하시랴오? 그러나 돈을 가져 오셔야지요^5,5,5^ 하하하." 사소한 대금을 관계하는 것은 아니나 그가 광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주인은 그대로 내주는 것이 어떨까 하여 물어보았다. "응응! 옳지! 돈이 있어야지 응응! 돈이 있어야지^5,5,5^" 돈이란 말에 비로소 깨달은 듯이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멀거니 섰다가 아무 말도 없이 도로 뛰어나갔다. 처음부터 서로 눈짓을 하며 빙긋빙긋 웃고 앉았던 사무원들은 참았던 웃음을 왓하하하 하며 웃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유리창을 흘겨다보며 급히 달아 나왔다. 그 길로 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방에 쑥 들어서면서 흙이 말라서 뒤발을 한 손으로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뒤적거리며 한참 찾더니 돈지갑을 들고서 선 채 열어 보았다. 속에는 일원짜리 지폐가 석 장하고 은전 백동전 합하여 90여 전쯤 들어 있었다^5,5,5^ 옥중에서 차입하여 쓰고 남은 것이었다. 그는 혼자 히이 웃으며 지갑을 단단히 닫아서 바지춤에다 넣고 뜰로 내려갔다. 대문을 막 나서렬 때 삼촌과 마주쳤다. 그는 마치 못된 장난을 하다가 어른들에게 들킨 어린아이처럼 깜짝 놀라며 꽁무니를 슬슬 빼며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자는 체 하고 드러누워 버렸다. 그날 밤에는 종내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위선 재목상을 찾아갔다. 마침 나와 앉았던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들어와서 훔척훔척하다가 3원 50전을 꺼내 놓고 "얼마든지 좀 주시고래"하고 벙벙히 섰는 그의 태도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얼마나 드리리까?" 하며 웃었다 "기둥 여섯하고^5,5,5^" "기둥 여섯만 하여도 본전도 안 됩니다." 주인은 하하 웃으며 그의 말을 자르고 사무원을 돌아다보고 무엇이라고 하였다. 그는 사무원을 따라 나가서 서까래만한 기둥 여섯 개와 널빤지 두 개를 얻어서 짊어지고 나섰다. 재목을 얻은 그는 생기가 더 나서 위선 네 기둥을 세우고 두 편만은 중간에다 마주 대하여 두 개를 세운 뒤에 삼등분하여 새끼로 두 층을 돌라매어 놓고 담을 쌓기 시작하였다. 담 쌓기는 쉬우나 돌멩이 모아들이기에 날짜가 많이 걸렸다 약 3주간이나 되어 동편으로 드나들 구멍을 터놓고는 사방으로 3,4척의 벽을 쌓았다. 위선 하층은 되었는고로 널빤지를 절반하여 한편에 기대어서 걸쳐 놓고 나머지 길이를 이등분하여 어긋매어서 3층을 꾸렸다. 그 다음에는 2층만 사면에 멍석 조각을 둘러막고 3층은 그대로 두었다. 이것도 물론 그의 설계에 한 조목 든 것이었다. 그의 이상으로 말하면 지붕까지라도 없어야 할 것이지만 우로를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역시 멍석을 이어서 덮었다. 이같이 하여 이렁저렁 1개월 이상이나 걸린 역사는 대강대강 끝이 나서 위선 손을 떼던 날 석양에 그는 3층위에 올라앉아서 저물어 가는 산 경치를 내다보고 혼자 기꺼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인생의 모든 행복이 일시에 모여든 것 같았다. 금시라도 이사를 하려다가 집에 들어가면 또 잡히어서 나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어둡기까지 그대로 드러누웠었다. 드러누워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위선 세계평화 유지 사업으로 회를 하나 조직하여야 할 터인데^5,5,5^ "회명은 무어라고 할까? 국제연맹이란 것은 있으니까 국제평화협회? 세계평화회? 그것도 아니 되었어. 동서양이 제일에 친목하여야 할 것인즉 '동서 친목회'라 하자! 옳지 동서 친목회^5,5,5^ 되었어." 그 다음에 그는 3층 양옥을 어떻게 하면 거처에 편리하게 방세를 정할까 생각하였다. 우선 급한 것은 응접실이다. 그 다음에는 사무실, 침실, 식당, 서재^5,5,5^ 차례차례로 서양 사람 집 본새를 생각하여 가며 속으로 정하여 놓고 어슬어슬한 때에 뛰어 내려왔다. 일단 집으로 향하였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돌쳐서서 유곽으로 들어갔다. 헌등 아래로 슬금슬금 기어가듯 하며 이 집 저 집 기웃기웃하다가 어떤 상점 앞에 와서 서더니 저고리 고름 끝에 매인 매듭을 힘을 들여서 풀고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드는 것도 모르는 것같이 시치미를 떼고 풀더니 은전 네 닢을 꺼내어 던지고 일본주 2 흡 병을 받았다. 낙성연을 베풀려는 작정이었다. 공복에 들어간 2 홉 술의 힘은 강렬하였다. 유정의 사람 자취가 그칠 때까지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동서회 친목회장이 너희들을 감독하려고 내일이면 또 나오신다고 도지개를 틀며 앉았는 여희원들을 웃기며 비틀거리고 돌아다닌 것도 그날 밤이었다. 8 세간을 나르노라고 중문 대문을 훨씬 열어 젖혀 놓은 것을 지치려고 뒤를 쫓아 나간 고모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그의 가는 방향을 한참 건너다보다가 긴 한숨을 쉬고 들어와서 큰집에 갈 영희만 기다리고 앉았으려니까 15분쯤 되어 삐이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또 들어와서 이번에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한참 동안 훔척훔척하다가 석유통으로 만든 화덕 위의 남비를 들고 나왔다. 그 속에는 사기그릇이며 수저 나부랑이를 손에 잡히는 대로 듬뿍 넣었다. 그는 안에서 무엇이라고 소리를 칠까 보아서 연상 흘끗흘끗 돌아다보며 뻥소니를 쳐서 나왔다^5,5,5^ 십 수년 동안 기거하던 자기 집을 영원히 이별하였다. 그날 석양에 고모는 영희를 데리고 동리 사람이 가르쳐 주는 대로 그의 신가정을 찾아갔다. 고모에게 대하여는 가장 불행하고 비통한 집안이었다. 엿과 성냥 대신에 저녁밥을 싸가지고 갔었다. 물론 가자고 하여야 다시 집에 돌아올 그가 아니었다. 영희가 울면서 가자고 하니까 그는 무슨 정신이 났던지 측은해하는 듯한 슬픈 안색으로 목소리를 떨며, "어서 가거라. 어서 가거라^5,5,5^ 아아 춥겠다. 눈이 저렇게 왔는데 어서 가거라." 혼잣말처럼 꼭 한마디하고 아랫간에 늘어놓은 부엌 세간을 정돈하고 있었다. 고모는 하는 수 없이 돌아와서 남았던 시량과 찬을 그에게로 보내 주고 나서 어둑어둑할 때 문을 잠그고 영희와 같이 큰집으로 건너갔다. 근 보름이나 앓아 누운 그의 백부는 눈물을 흘리며 깊은 한숨만 쉬고 아무 말도 없었다. ^5,5,5^ 소년과부로 50이 넘은 그의 고모는 건넌방에 영희를 끼고 누워서 밤이 이슥하도록 훌쩍거렸다. 영희의 흘흘 느끼는 소리도 간간이 안방에까지 들렸다. 아랫목에 누어있던 영감이, "여보 마누라, 좀 가보시구료." 하는 소리에 잠이 들려던 노마님이 건너갔다. 조금 있다가 이 마누라까지 훌쩍훌쩍하며 안방으로 건너왔다. 미선을 가슴에 대고 반듯이 드러누운 노인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십칠야의 교교한 가을 달빛은 앞창 유리 구멍으로 소리 없이 고요히 흘러 들어와서 할머니 가슴에 안기어 누운 영희의 젖은 베게 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9 평양으로 나온 우리 일행은 그 이튿날 아침에 남북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그 후 2개월쯤 되어 나는 백설이 애애한 북국 어떠한 한촌 진흙방 속에서 이러한 Y의 편지를 받았다. "형식에 빠진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있어 벌써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아니오? 어느 때든지 자기의 생활에 새로운 그림자(그것은 보다 더 선한 것이거나 혹은 보다 더 악한 것이거나 하여간)가 비쳐 올 때나 혹은 잠든 나의 영이 뛰놀만한 무슨 위대한 힘이 강렬히 자극하여 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군에게 무엇이든지 기별하고 싶은 사건이 있기 전에는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타임 속에서 동면 상태로 겨우 서식하는 지금의 나로는 절하고 대적으로 누구에게든지 또는 무엇에든지 붓을 들지 않으려고 결심하였소. 자기의 침체한 처분, 꿈꾸는 감정을 아무리 과장한들 그것이 결국 무엇이오^5,5,5^ 그러나 지금 펜을 들어 이 페이퍼를 더럽히는 것이 현재의 내가 무슨 새로운 의의를 발견하고 혹은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게 된 까닭은 아니오. 다만 내가 오래간만에 집을 방문하였다는 것과 그 외에 군이 어떠한 호기심을 가지고 심방하였던 3원 50전에 3층 양옥을 건축한 철인의 철저한 예술적 또한 신비적 최후를 군에게 알리려는 까닭이오." 여기까지 읽은 나는 깜짝 놀랐다. 손에 들었던 편지를 책상 위에 놓고 바로 앉아서 한 자 한 자 세듯이 하여가며 계속하여 보았다. "사실은 지극히 간단하나, 이 소식은 군에게 비상한 만족을 줄 줄로 믿소.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시어 꾸며 놓으신 옥좌에 올라앉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치 않으면 아니 될 시기라고 생각한 그는 신의로써 만든 3원 50전짜리 궁전을 이 오탁에 싸인 속계에 두고 가기 어려웠을 것이오. 신의 물은 신에게 돌리리라. 처치하기 어려운 3층집을 맡길 곳이 신 이외에 없었을 것도 괴이치 않은 것이겠소. 유곽 뒤에 지어 놓았던 원두막 한 채가 간밤 바람에 실화하여 먼지가 되어 날아간 뒤에 집주인은 종적을 감추었다 라고 하면 사실은 지극히 간단할 것이오. 그러나 불은 왜 놓았나?" 나는 이하를 더 읽을 기운이 없다는 것같이 가만히 지면을 내려다보고 앉았었다. 의외의 사실에 대한 큰 경이도 아니려니와 예측한 사실이 실현됨에 대한 만족의 정도 아닌 일종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다대한 호기심과 기대에 긴장하였던 마음을 일시에 느즈러지게 한 상태였다. 나는 또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추위에 못 견디어서 라고 세상 사람들은 웃고 말 것이오. 그리고 군더러 말하라면 예의 현실 폭로라는 넉자로 설명할 것이오. 그러나 그가 3층집에서 내려와 자기 집 서재로 들어가기 전에는 불을 놓았다고도 못할 것이오. 또 현실 폭로의 비애를 감하여 그리하였다 하면 방화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오. 신의에 따라서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확집한 그는 인제는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다고 3층 위에서 뛰어 내려온 것이오. 그리고 그 건축물은 신에게 돌린 것이오^5,5,5^ 아아 그 위대한 건물이 홍염의 광란 속에서 구름 탄 선인같이 찬란히 떠오를 제 그의 환희는 어떠하였을까. 그의 입에서는 반드시 할렐루야가 연발되었을 것이오. 그리고 1 편의 시가 흘러 나왔을 것이오 마치 네로가 홍염 가운데의 로마 대도를 바라보며 하프에 맞춰서 시를 읊듯이. 아아, 그는 얼마나 위대한 철인이며 얼마나 행복스러운가^5,5,5^ 반열 반온의 자기를 돌아볼 제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매도치 않을 수 없소^5,5,5^" ^25,25,25,25,25,25,25^ 10 기뻐하리라고 한 Y의 편지는 오직 잿빛 납덩어리를 내 가슴에 던져 주었을 따름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골라가며 또 한 번 읽은 뒤에 편짓장을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채 드러누웠다, 음산한 방 속은 무겁고 울적한 나의 가슴을 더욱더욱 질식케 하는 것 같았다. 까닭없이 울고 싶은 증이 나서 가만히 누웠을 수가 없었다. ^5,5,5^ 나는 뛰어 일어나서 가만히 방밖으로 나섰다. 아침부터 햇발을 조금도 보이지 않던 하늘에 뽀얀 구름이 건너다보이는 앞산 위까지 처져서 방금 눈이 퍼부을 것 같았다. 나는 얼어붙은 눈 위를 짚신발로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R동 고개로 나서서 항상 소요하던 절벽위로 향하였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통행할 만한 길 오른편 언덕에 거무스름하게 썩어서 문정문정하는 짚으로 에워싼 한 간 집이 있고, 그 아래에는 비스듬하게 짓다가 둔 헛간 같은 것이 있다. 나는 늘 보았건만 그것의 본체가 무엇인지 아직껏 물어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3층 양옥의 실화 사건의 통지를 받고는 새삼스럽게 눈여겨 보았다. 나는 두세 걸음 지나가다가 다시 돌쳐서서 언덕으로 내려와서 사면팔방을 멍석으로 꼭 틀어막은 괴물 앞에 섰다. 나는 무슨 무서운 물건이나 만지듯이 입구에 드리운 멍석 조각을 가만히 쳐들고 컴컴한 속을 들여다보았다. 광선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속에서는 쌀쌀한 바람이 휙 끼칠 뿐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연히 마음이 선뜻하여 손에 쥐었던 거적문을 놓으려다가 다시 자세자세히 검사를 하여 보았다. 그러나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5,5,5^ 기둥 두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위에 나무 관 같은 것을 놓고 그 위에는 언젠지 대동강변에서 본 봉황선 대가리 같은 단청한 목판짝이 얹어 있었다. 나는 보지 못할 것을 본 것같이 꺼림하여 마른침을 탁 뱉고 돌아서 동둑 위로 올라왔다. 나는 눈에 묻힌 절벽 위에 와서 고총 앞에 놓인 석대에 걸터앉으려다가 곁에 새로 붉은 흙을 수북이 모아 논 것을 보고 외면을 하며 일어 나왔다. 이것은 일전에 절골에선가 귀신이 씌어서 죽었다는 무녀가 온 식전 굿을 하던 떼도 안 입힌 새 무덤이었다. 저녁 밥상을 받고 앉아서 주인더러 등 너머의 일간두옥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그것이 이 촌에서 천당에 올라가는 정거장이라우." 하고 웃으며 동리에서 조직한 상계의 소유라고 설명하였다. 이 촌에서 난 사람은 누구나 조만간 그곳을 거쳐야만 한다는 묵계가 있다는 그의 말에는 무슨 엄숙한 의미가 있는 것같이 들리었다. 나는 밥을 씹으며 저를 손에 든 채로 그 내력을 설명하는 젊은 주인의 생기있는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앉았었다. 그 순간에 나의 인생의 전국면을 평면적으로 부감한 것 같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동시에 무거운 공포가 머리를 누르는 것 같았다. 그날 밤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용기가 없어서 몇몇 청년이 몰려와서 떠드는 속에 가만히 드러누웠었다. 어쩐지 공연히 울고 싶었다. 별로 김창억을 측은히 생각하여 그의 운명을 추측하여 보거나 3층집 소화한 후의 행동을 알려는 호기심은 없었으나 지금쯤은 어디로 돌아다니나 하는 생각이 나는 동시에 작년 가을에 대동강가에서 잠깐 본 장발객의 하얀 신경질적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다. 과연 그가 그 후에 어디로 간 것은 아무도 몰랐다. 더구나 뱀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꺼리는 평양에 나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몽상 외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평양에 왔다. 평양은 그의 후취의 본가가 있는 곳이다. ^5,5,5^ 일년 열 두 달 열어 보는 일이 없이 꼭 닫은 보통문 밖에 보금자리 같은 짚더미 속에서 우물우물하기도 하고 혹은 그 앞 보통강가로 돌아다니는 걸인은 오직 대동강가의 장발객과 형제거나 다만 걸인으로 알 뿐이요, 동리에서도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1921년) 두 파산 1 "어머니, 교장 또 오는군요." 학교가 파한 뒤다. 갑자기 조용해진 상점 앞길을 열어 놓은 유리창 밖으로 내어다보고 등상에 앉았던 정례가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본다. 그렇지 않아도 돈 걱정에 팔려서 테이블 앞에 멀거니 앉았던 정례 모친도 저절로 양미간이 짜붓하여졌다. 점방 안에는 학교를 파해 가는 길에, 공짜 만화를 보느라고 아이들이 저편 구석 진열대에 옹기종기 몰려섰다가, 교장이라는 말에 귀가 반짝하였는지 조그만 얼굴들을 쳐든다. 그러나 모시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 하며, 우둥퉁한 중늙은이가 단장을 짚고 쑥 들어서는 것을 보고, 학생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눈짓을 하고 킥킥 웃어 벌린다. 저희 학교 교장이 온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째 이렇게 쓸쓸하우?" 영감은 언제나 오면 하는 버릇으로 상점 안을 휘휘 둘러보고 말을 건넨다. "어서 옵쇼. 아침 한때와 점심 한나절이 한창 붐비죠. 지금쯤야 다 파해 가지 않았에요." 안주인은 일어나지도 않은 채 무관히 대꾸를 하였다. 교장은, 정례가 앉았던 등상을 내어주니까 대신 걸터앉으며, "딴은 그렇겠군요. 그래도 팔리는 거야 여전하겠죠?" 하고 눈이 저절로 테이블 위의 손금고로 갔다. 이 역시 올 때마다 늘 캐어묻는 말이지마는 또 무슨 딴 까닭이 있어서 붙이는 수작 같아서, 정례 어머니는 "그야 다소 둘쭉날쭉이야 있죠마는 온 요새 같아서는^5,5,5^" 하고 시들이 대답을 하여 준다. "어쨌든 좌처가 좋으니까^5,5,5^ 하루에 두어 번쯤 바쁘고, 편히 앉아서 네다섯 식구가 뜯어먹고 살면야, 아낙네 소일루 그만 장사가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 그리구두 빚에 쫄리다니 알 수 없는 일이로군." 왜 그런지 이 영감이 싫고 멸시하는 정례는, '누가 해달라는 걱정인감!' 하는 생각에 입이 빼쭉하여졌다. "날마다 쓸쓸히 나가기야 하지만 원체 물건이 자니까 남은 게 변변해야죠." 여주인은 마지못해 늘 하는 수작을 뇌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 영감이 더 유난히 물건 쌓인 것이며 진열장에 늘어놓인 것을 눈여겨 보는 것이었다. 정례 모녀는 그 뜻을 짐작하겠느니만큼 더욱 불쾌하였다. 여기는 여자 중학교와 초등학교가 길 건너로 마주 붙은 네거리에서 조금 외진 골목 안이기도 하나, 두 학교를 상대로 하고 벌인 학용품 상점으로는 그야말로 좌처가 좋은 셈이다. 원체는 선술집이었다든가 하는 방 한간 달린 이 점방을 작년 봄에 8천 원 월세로 얻어 가지고 이것을 벌이고 앉을 제, 초등학교 앞에는 벌써 매점이 있어서 어떨까도 하였으나, 여학교 만은 시작하기 전부터 아는 선생을 새에 넣고 선전도 하고 특약하다 시피 하였던 관계인지, 이때껏 재미를 보는 편이지, 이 장삿속으로만은 꿀리는 셈속은 아니다. "이번에, 두 달 셈을 한꺼번에 드리쟀더니 또 역시 꿀립니다 그려. 우선 밀린 거 한 달치만 받아 가시죠." 정례 어머니는 테이블 위에 놓인 손금고를 땡그랑 열고서 백원짜리를 척척 샌다. "이번에는 본전까지 될 줄 알았는데 이자나마 또 밀리니^5,5,5^ 장사는 깔축없이 잘되는데, 그 원 어째 그렇단 말씀유?" 하며, 영감은 혀를 찬다. 저편에서 만화를 보며 소곤거리던 아이들은 교장이라던 이 늙은이가 본전이니 변리니 하는 소리에 눈들이 휘둥그래져서 건너다본다. "7천 5백 원입니다. 세보십쇼. 그러니 댁 한 군델 세야 말이죠. 제일 무거운 짐이 아시다시피 김옥임이네 10 만 원의 1 할 5부, 1 만 5천 원이죠, 은행 조건 30 만 원의 이자가 또 있죠^5,5,5^ 기껏 벌어서 남 좋은 일 하는 거^36^예요. 당신에게 이자 벌어 드리고 앉았는 셈이죠." 영감은 옆에서 주인댁이 하는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고 골똘히 돈을 세더니, 커다란 검정 헝겊 주머니를 허리춤에서 꺼내어 넣는다. 옆에 섰는 정례는 그 돈이 아깝고 영감의 푸둥푸둥한 넓적한 손까지 밉기도 하여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그래 이달치는 또 언제쯤 들르리까? 급해 내가 쓸데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본전까지 해주어야 하겠는데^5,5,5^" 하고 아까와는 딴판으로 퉁명스럽게 볼멘 소리를 하였다. 만화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또 한 번 이편을 건너다본다. 부옇고 점잖게 생긴 신수가 딴은 교장 선생 같고, 저기다가 양복이나 입고 운동장의 교단에 올라서면 저희들도 꿈질하려니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잣돈을 받아 넣고 나서도 또 조르고 두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설마 저런 교장이 어디 있으랴 싶어서 저희들끼리 또 눈짓을 하였다. "되는대로 갖다 드리죠. 허지만 본전은 조금만 더 참아 주십쇼. 선생님 같으신 어른이 돈 5 만 원쯤에 무얼 그렇게 시급히 구십니까." 정례 어머니는 본전을 해내라는 데에 얼레발을 치며 설설 기는 수작을 한다. "아니, 이자 안 물구 어서 갚는 게 수가 아니겠나요?" "선생님두 속시원하신 말씀두 하십니다." 정례 어머니는 기가 막혀 웃어 보인다. "참, 그런데 김옥임 여사가 무어라지 않습디까?" 그만 일어설 줄 알았던 교장은 담배를 붙이어 새판으로 말을 꺼낸다. "왜, 무어라구 해요?" 정례 모녀는 무슨 말이 나오려는지 벌써 알아채고 입이 삐쭉들하여졌다. "글쎄, 그 20 만 원 조건을 대지루구 날더러 예서 받아가라니 그래 어떻게들 이야기가 귀정이 났지요?" 영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례는 잔뜩 벼르고 있었던 듯이 모친의 앞장을 서서 가로 탄한다. "교장 선생님! 그 따위 경위 없는 말이 어디 있에요. 그건 요나마 우리 가게를 판들어 먹게 하구 말겠단 말이지 뭐^36^예요!" 하고, 얼굴이 빨근해지며 눈을 세로 뜬다. "응? 교장이라니? 교장은 별안간 무슨 교장^5,5,5^ 허허허^5,5,5^" 영감은 허청 나오는 웃음을 터뜨리며 저편 아이들을 잠깐 거들떠보고 나서, "글쎄, 그러니 빤히 사정을 아는 터에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5,5,5^" 하며 말끝을 어물어물해 버린다. 이 영감이 해방 전까지 어느 시골선지 오랫동안 보통학교 교장 노릇을 하였다는 말을 옥임에게서 들었기에 이 집에서는 이름은 자세히 모르고 하여 교장 교장 하고 불러 왔던 것이 입버릇으로 급히 튀어나온 말이나, 고리대금업의 패를 차고 나선 지금에는 그것을 내세우기도 싫고, 더구나 저런 소학교 아이들 앞에서는 창피한 생각도 드는 눈치였다. "교장 선생님이 이럴 수도 없구 저럴 수도 없으실 게 뭐^36^예요. 그 아주머니한테 받으실 건 그 아주머니한테 받으십쇼 그려." 정례는 또 모친이 입을 벌릴 새도 없이 풍풍 쏘아 준다. "얜 왜 이러니." 모친은 딸을 나무라 놓고, "그렇겐 못 하겠다구 벌써 끝낸 말인데 또 왜 그럴꾸." 하며 말을 잘라 버린다. "아, 그런데 김씨 편에서는 승낙한 듯이 말하던데요?" 영감의 말눈치는 김옥임의 편을 들어서 20 만 원 조건인가를 여기서 받아 내려는 생각인 모양이다. "딴소리! 내가 아무리 어수룩하기루 제 사폐만 봐주구 제 춤에만 놀까요?" 정례 어머니는 코웃음을 쳤다. 김옥임이의 20 만 원 조건이라는 것이, 요사이 이 두 모녀의 자나깨나 큰 걱정거리요, 그것을 생각하면 밥맛이 다 없을 지경이지마는, 자초는 정례 모녀가 이 상점을 벌이고 나자, 장사가 잘될 성부르니까 김옥임이가 저도 한 몫 끼자고 자청을 하여 10 만 원 을 들여놓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지고 들어온 동사 밑천 10 만 원의 두 곱을 빼가고도 또 새끼를 쳐서 오늘에 와서는 20 만 원까지 달라는 것이다. 2 정례 모친은 남편을 졸라서 집문서를 은행에 넣고 천신만고하여 30 만 원을 얻어 가지고 부비 쓰고 당장 급한 것 가리고 한 나머지 22,3 만 원을 들고 이 가게를 벌였던 것이었다. 8천 원 월세의 보증금 8 만 원은 말고라도 점방 꾸미고 탁자 들이고 진열대 세 채 들여놓고 하기만도 6,7 만 원 들었으니, 갖다 놓은 물건이라야 10 만 원어치도 못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생 아이들이 차츰 꾀게 될 수록 찾는 것은 많아 가고 점심때는 찾는 빵이며 과자라도 벌여 놓고 싶고, 수실이니 수틀이니 여학교의 수예 재료들도 갖추갖추 갖다 놓고는 싶은데, 매일 시내로 팔리는 것을 가지고는 미처 무더기 돈을 빼내는 수도 없는데, 쫄금쫄금 들어오는 그 돈 중에서 조금씩 뜯어서 당장 그날그날 살아가야는 하겠으니, 자연 쫄리는 판에 김옥임이가 한 다리 걸치자고 덤비니, 동사란 애초에 재미없는 일이거니와, 요 조그만 구멍가게를 동사로 해서 뜯어먹을 것이 무에 있겠느냐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당장에 아쉬우니 5 만 원씩 두 번에 질러서 10 만 원 밑천을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말이 동사지 2 할 넘는 고리로 10 만 원 빚을 쓴거나 다름없었다. 빚놀이에 눈이 벌게 다니는 옥임이는 제 벌이가 바빠서도 그렇겠지마는, 하루 한 번이고 이틀에 한 번 저녁때 슬쩍 들러서 물건 판 치부장이나 떠들어 보고 가는 것밖에는 별로 거드는 일도 없었다. 실상은 그것이 쌩이질이나 하고 부라퀴같이 덤비는 것보다는 정례 모녀에게는 편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여튼 그러면서도 월 말이 되면 이익의 3분지 1 가량은 되는 2 만 원 돈을 또박또박 따가곤 하였다. 담보물이 있으면 1 할, 신용대부로 1 할 5부 변인데, 동사란 말만 걸고 2 할 2 할이 안 될 때도 있었지마는 셈속 좋은 때면 2 할 이상의 배당도 차례에 오니, 옥임이 생각에는 실사고로는 이익이 좀더 되려니 하는 의심도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별로 힘드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 가마니 앉아서 2 할이면 하고한날 삘삘거리고 싸지르면서 긁어들이는 변릿돈보다는 나은 셈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하여간 올 들어서 밑천을 빼어 가겠다고 하기까지 아홉 달 동안에 20 만 원 가까운 돈을 벌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정례 부친이 만날 요 구멍가게서 용돈을 얻어다 쓰는 것도 못할 일이라고, 작년 겨울에 들어서 마지막 남은 땅뙈기를, 그야 예전과 달라서 삼칠제인데다가 세금이니 비료니 하고 부담에 얽매이니까 그렇겠지마는 하여간 아버지 전장으로 물려받은 것의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팔아 가지고 전래에 없는 눈이라고 하여, 서울 시내에서 전차가 사흘을 못 통할 동안에, 택시를 부리면 땅 짚고 기기라 하여, 하이어를 한 대 사들여 놓고 택시를 부려 보았던 것이라서 이것이 사흘돌이로 말썽을 부려 고장이요 수선이요 하고, 나중에는 이 상점의 돈까지 하루만 돌려라, 이틀만 참아라 하고, 만원 2 만 원 빼내고는 시치미를 떼기 시작하니 점방의 타격은 의외로 큰 것이었다. 이꼴을 본 옥임이는 에그머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지, 올 들어서면서부터 제 밑천은 빼내 가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잘못하다가는 자동차가 이 저자터까지 들어먹을 판인데, 별안간 옥임이가 빠져 나간다니 한편으로는 시원하나 10 만 원을 모개로 빼내 주는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거덜거덜할 바에야 집어치우지." 겨울방학 때라, 더구나 팔리는 것은 없고 쓸쓸하기도 하였지만는, 옥임이는 날마다 10만 원 재촉을 하러 와서는 이런 소리도 하는 것이었다. 남은 집문서를 잡혀서 이거나마 시작해 놓고, 다섯 식구의 입을 매달고 있는 터인데 제 발만 쑥 빼놓았다고 이런 야멸친 소리를 할 제, 정례 모녀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곤 하였다. "세전 보증금이나 빼내구 뉘께 넘겨 버리지? 설비한 것하구 물건 남은 것 얼러서 한 10 만 원은 받을까? 그렇다면 내 누구 하나 지시해 줄까?" 이렇게 권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뉘께 넘기게 해서라도 자기가 10 만 원만 어서 뽑아 가려는 말이겠지마는, 어떻게 보면 10 만 원에 이 점방을 자기가 맡아 잡겠다는 말눈치인 듯도 싶었다. "내가 바쁘지만 않으면 도틀어 맡아 가지고 훨씬 화장을 해놓으면 이꼴은 안 되겠지만, 어디 내가 틈이 있는 몸이야지^5,5,5^" 이렇게 운자를 떼는 것을 들으면 한 발 들여놓고 한 발 내놓는 수작 같기도 하였다. 자동차 동티로 밑천을 홀짝 집어먹힐까보아서 발을 뺀다는 수작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한참 꿀리고, 학교들은 방학을 하여 흥정이 없는 이판에 빤히 나올 구멍이 없는 10 만 원을 해내라고 못살게 굴면, 성이 가시니 상점을 맡아 가라는 말이 나오고 말리라는 배짱같이 보이는 것이었다. 모녀는 그것이 더 분하였다. "저의 자수로는 엄두로 안 나구 남이 해놓으니까 꽨 듯 싶어서, 솔개미가 까치집 채어들듯이 이거나마 뺏어 가지고 저의 판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지만 첫째 이런 좋은 좌처를 왜 내놓을라구." 누구보다도 정례가 바르르 떨었다. "매사에 그렇게 될 성부르니까 뺏어 차구 앉았지, 거덜거덜하면 누가 눈이나 떠본다든!" 정례 모친은 코웃음을 치기만 하였다. 하여간 이렇게 쫄리기를 반 달쯤이나 하다가, 급기야 8 만 원 보증금의 영수증을 옥임에게 담보로 내주고, 출자금 10 만 원은 1 할 5부 변의 빚으로 돌라매고 말았다. 옥임으로서는 매삭 2 할 배당의 맛도 잊을 수 없었으나, 기위 상점을 제 손으로 못 휘두를 바에는 이 편이 든든하였던 것이다. 그러고도 정례 모친은 옥임이와 함께 들러서 알게 된 교장 선생님의 돈 5 만 원을 얻어 가지고 개학 초부터 찌부러져 가던 상점의 만회책을 다시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땅뙈기는 자동차 바람에 날려보내고, 자동차는 수선비로 녹여 버리고 나니, 상점에서 흘러 내간 7,8 만 원이라는 돈은 고스란히 떼버렸고 그 보충으로 짊어진 것이 교장의 빚 5 만 원이었다. 점점 더 심해 가는 물가에, 뜯어먹고 살아야는 하겠고, 내남없이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라도 덜 사겠지 더 팔리지는 않으니, 매삭 두 자국 세 자국의 변리만 꺼가기도 극단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연 좋지 못한 감정으로 헤어진 옥임이한테 보낼 변리가 한두 달 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8 만 원 증서가 집문서만큼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기어이 1 할 5부로 떼를 써서 제멋대로 매놓은 것이 얄미워서 어디 네가 그 이자를 긁어다가 먹나, 내가 안 내고 배기나 해보자는 뱃심도 정례 모친에게는 없지 않았다. 옥임이 역시 제가 좀 과하게 하였다고 뉘우쳤던지, 또 혹은 8 만 원 증서를 가졌으니만큼 마음이 놓여서 그런지, 별로 들르지도 않으려니와, 들러서도 변리 재촉은 그리 아니하였다. 도리어 정례 어머니 편에서 변리가 밀려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고 그 끝에, "이 여름방학이나 지내고 개학 초에 한몫 보면 모개 내리다마는 원체 1 할 5부야 과한 것이오. 그래 형편에는 한 달 후면 자동차를 팔아서라두 곧 갚겠거니 해서 아무려나 해둔 것이지만 벌써 2월서부터 여덟 달이나 됐으니 무슨 수로 그걸 다 내우. 1 할씩 만 해두 8 만 원이구료. 어이구^5,5,5^ 한 반만 깎읍시다." 하고, 슬쩍 비쳐 보면 옥임이도 그럴싸한 듯이, "아무려나 좋도록 합시다그려." 하고 웃어 버리곤 하였다. 그러던 것이 개학이 되자, 이달 들어서 부쩍 잦히면서 1 할 5부 여덟 달치 변리 12 만원 어울러서 20 만 원을 이 교장 영감에게 치러 달라는 것이다. 급한 사정으로 이 영감에게 20 만 원을 돌려썼는데, 한 달 변리 1 할, 2 만원을 얹으면 22 만원 부리가 맞으니, 셈치기도 좋고 마침 잘되었다고 생글생글 웃어 가며 조르는 옥임이의 늙어 가는 얼굴이, 더 모질어 보이고 얄밉상스러워 보였다. 마치 22 만 원 부리를 채우느라고 그동안 여덟 달을 모른 체하고 내버려 두었던 것 같다. 정례 어머니는 기가 막혀 말이 아니 나왔다. 옥임이에게 속아 넘어간 것 같아서 분하였다. 그러나 분한 것은 고사하고 이러다가 이 구멍가게나마 들어먹고 집 한 채 남은 것마저 까불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곰곰 하면 가슴이 더럭 내려앉는 것이었다. 소학교 적부터 한 반에서 콧물을 흘리며 같이 자라났고 도꾜 가서 여자 대학을 다닐 때도 함께 고생하던 옥임이다. 더구나 제가 내놓은 10 만 원은 한푼 깔축을 안 내고 20 만 원 가까운 돈을 벌어 주었으니, 아무리 눈에 돈 동녹이 슬었기로 제가 설마 내게 1 할 5부 변을 다 받으려 들기야 하랴! 한 반절 얹어서 16 만 원쯤 해주면 되려니 하는 속셈만 치고 있던 자기가 어리보기라고 혼자 어이가 없는 실소를 하였다. 그러나 15,6 만 원 이기로 한꺼번에 빼내는 수는 없으니 이번에 변리 6 만원만 마감을 하고서 본전을 5 만 원씩 두 번을 갚자는 요량이었다. 집안 식구는 조밥에 새우젓 꽁댕이를 우겨대더라도 어떻든지 이 겨울방학이 돌아오기 전에 그 아니꼬운 옥임이 조건만이라도 끝을 내고야 말겠다고 이를 악무는 판인데, 이렇게 둘러대고 보니 살겠다고 기를 쓰고 기어 올라가는 놈의 발목을 아래에서 붙들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맥이 풀리고 사는 것이 귀찮은 생각만 드는 것이었다. 평생에 빚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는데 펀펀히 노는 남편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시작한 노릇이라서 은행에 30 만 원이 그대로 있고 옥임에게 22 만 원, 교장 영감에게 5 만 원 도합 57 만 원 빚을 어느덧 걸머지고 앉은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아니 오고 앞이 캄캄하여 양잿물이라도 먹고 싶은 요사이의 정례 어머니다. "하여간 제게 10 만 원 썼으면 썼지, 그걸 못 받을까봐 선생님을 팔구 선생님더러 받아 오라는 것이지만, 내가 아무리 죽게 돼두 제 돈 떼먹지 않을 거니 염려 말라구 하셔요." 정례 어머니는 화를 바락 내었다. 해방 덕에 빚놀이를 시작해 가지고 돈 백만 원이나 착실히 잡았고, 깔려 있는 것만도 백만 원 이상은 되리라는 소문인데 이 영감에게 20 만 원 빚을 쓰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못 받을까 애도 쓰겠지마는, 12 만 원 변리를 본전으로 돌라매어 놓고 변리의 새끼 변리, 손자 변리까지 우려먹자는 수단인 것이 뻔한 노릇이었다. 10 만 원에 1 할 5부면 5천 원밖에 안 되나, 22 만 원으로 돌라매 놓으면 1 할 변만 해도 매삭 2 만 2천 원이니 7천 원이 더 붙는 것이다. "그야, 내 돈 안 쓴 것을 썼다겠소. 깔려만 있고 회수가 안 되면 피차 돌려두 쓰는 것이지마는 나 역시 한 자국에 20 만 원씩 모개 내놓고 오래 둘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5,5,5^" 영감은 무척 생색을 내고, 이편 사폐를 보아서 석 달 기한하고 자기 조카의 돈 20 만 원을 돌려 주게 할 터이니 다시 말하면 조카에게 20 만 원을 1 할로 얻어 쓸터이니 우수리 2 만 원만 현금으로 내놓고 표를 한 장 써내라는 것이다. 옥임이는 이 영감에게로 미루고 영감은 또 조카의 돈을 돌려쓴다고 표를 받겠다는 꼴이, 저희끼리 무슨 꿍꿍잇속인지 알 수가 없으나, 요컨대 석 달 기한의 표를 받아 놓자는 것이요, 그 사품에 7천 원 변리를 더 받겠다는 수작이다. 특별히 1 할 변인 대신에 석 달 기한이라는 조건을 붙이는 것도 무슨 계교 속인지 알 수가 없다. 석 달 동안에 20 만 원을 만드는 재주도 없지마는 석 달 후면 마침 겨울방학이 될 때니 차차 꿀려들어가는 제일 어려운 고비인 것이다. 정례 어머니는 이 연놈들이 무슨 원수를 졌다고 이렇게 짜고서들 못살게 구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한바탕 들이대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선생님께 쓴 돈 아니니, 교장 선생은 아랑곳 마세요. 옥임이더러 와서 조르든, 이 상점을 떠메어 가든 마음대로 하라죠." 하고 딱 잘라 말을 하여 쫓아 보냈다. 3 그 후 일주일은 옥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례 모녀는 맞딱뜨리면 말수도 부족하거니와 아귀타툼하는 것이 싫어서 그날그날 소리 없이 넘어가는 것만 다행하나, 어느 때 달려들어서 무슨 조건을 내놓고 졸라댈지 불안은 한층 더하였다. "응, 마침 잘 만났군. 그런데 그만하면 얘기는 끝났을 텐데, 웬 세도가 그리 좋아서 누구를 오너라 가거라 허구 아니꼽게 야단야^5,5,5^" 정례 모친이 황토현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열 틈에 섰으려니까, 이리로 향하여 오던 옥임이가 옆에 와서 딱 서며 시비를 건다. "바쁘기야 하겠지만 좀 못 들를 건 뭐구." 정례 모친은 옥임이의 기색이 좋지는 않아 보이나 실없는 말이거니 하고 대꾸를 하며 열에서 빠져 나서려니까, "그래 그 돈은 갚는다는 거야 안 갚을 작정야? 세도 좋은 젊은 서방을 믿고 그 떠세루 남의 돈을 무쪽같이 떼먹으려 드나 부다마는 김옥임이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어^5,5,5^" 원체 예쁘장한 상판이기는 하면서도 쌀쌀한 편이지마는 눈을 곤두세우고 대드는 품이 어려서부터 30 년 동안을 보던 옥임이는 아니다. 전부터 "네 영감이 어째 점점 더 젊어 가니? 거기다 대면 넌 어머니 같구나" 하고, 새룽새룽 놀리기도 하고, 60이 넘은 아버지 같은 영감밑에 쓸쓸히 사는 옥임이는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였지마는, 밑도끝도없이 길바닥에서 '젊은 서방'을 들추어내는 것을 보고 정례 어머니는 어이가 없었다. "늙은 영감에 넌더리가 나거든 젊은 서방 하나 또 얻으려무나." 하고 정례 모친도 비꼬아 주고 싶었으나 열을 지어 섰는 사람들이 쳐다보며 픽픽 웃는 바람에, "이거 미쳐나려나? 이건 무슨 객설야." 하고, 달래며 나무라며 끌고 가려 하였다. "그래 내 돈을 곱게 먹겠는가 생각을 해보렴. 매달린 식솔은 많구, 병들어 누운 늙은 영감의 약값이라두 뜯어쓰랴구, 이렇게 쩔쩔거리구 다니는 이년의 돈을 먹겠다는 너 같은 의리가 없는 년은 욕을 좀 단단히 봬야 정신이 날 거다마는, 제 사정 보아서 싼 변리에 좋은 자국을 지시해 바친 밖에! 그것두 마다니 남의 돈 생으루 먹자는 도둑년 같은 배짱 아니구 뭐야?" 오가는 사람이 우중우중 서며 구경났다고 바라보는데, 원체 히스테리증이 있는 줄은 짐작하지마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기가 나서 대든다. 히스테리는 고사하고 이것도 빚장이의 돈 받는 상투 수단인가 싶었다. "누구 안 갚는대나? 돈두 중하지만 이게 무슨 꼬락서니냔 말야." 정례 어머니는 그래도 달래서 뒷골목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였다. "난 돈밖에 몰라. 내일 모레면 거리로 나앉게 된 년이 체면은 뭐구, 우정은 다 뭐냐? 어쨌든 내 돈만 내놓으면 이러니저러니 너 같은 장래 대신 부인께 나 같은 년야 감히 말이나 붙여 보려 들겠다든!" 하고, 허청 나오는 코웃음을 친다. 구경꾼은 자꾸 꾀어드는데, 정례 모친은 생전 처음으로 당하는 이런 봉욕에 눈앞이 아찔하여지고 가슴이 꼭 메어 올랐으나, 언제까지 이러고 섰다가는 예서 더 무슨 창피한 꼴을 볼까 무서워서 선뜻 몸을 빠져 옆골목으로 줄달음을 쳐 들어갔다. 뒤에서 발소리가 없으니 옥임이는 제대로 간 모양이다. 정례 모친은 눈물이 핑 돌았다. 스물 예닐곱까지 도꾜 바닥에서 신여성 운동이네, 연애네, 어쩌네 하고 멋대로 놀다가 지금 영감의 후실로 들어앉아서 세상 고생을 알까, 아이를 한 번 낳아 보았을까, 40 전의 젊은 한때를 도지사 대감의 실내 마님으로 떠받들려 제멋대로 호강도 하여 본 옥임이다. 지금도 어디가 40이 훨씬 넘은 중늙은이로 보이랴. 머리를 곱게 지지고 엷은 얼굴 단장에, 번질거리는 미국제 핸드백을 착 끼고 나선 맵시가 어느 댁 유한마담으로 알 것이지, 설마 1 할, 1 할 5부로 아귀다툼을 하고, 어려운 예전 동무를 쫓아다니며 울리는 고리대금업자로야 누가 짐작이나 할까? 해방이 되자 고리대금이 전당국 대신으로 터놓고 하는 큰 생화가 되었지마는, 옥임이는 반민자의 아내가 되리라는 것을 도리어 간판으로 내세우고 부라퀴같이 덤빈 것이다. 증경 도지사요, 전쟁 말기에는 무슨 군수품 회사의 취체역인가 감사역을 지냈으니, 반민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날이면, 중풍으로 3 년째 누웠는 영감이, 어서 돌아가 주기나 하기 전에야 으레 걸리고 말 것이요, 걸리는 날이면 떠 메어다 징역은 시키지 않을지 모르되, 지니고 있는 집간이며 땅 섬지기나마 몰수를 당할 것이니, 비록 자식은 없을망정 자기는 자기대로 살 길을 차려야 하겠다고 나선 길이 이 길이었다. 상하 식솔을 혼자 떠맡고 영감의 약값을 제 손으로 벌어야 될 가련한 신세같이 우는 소리를 하지마는, 그래야 남의 욕을 덜 먹는 발뺌이 되는 것이다. 옥임이는 정례 모친이 혼쭐이 나서 달아나는 꼴을 그것 보라는 듯이 곁눈으로 홀겨보고 입귀를 샐룩하여 비웃으며, 버젓이 사람 틈을 헤치고 종로 편으로 내려갔다. 의기양양할 것도 없지마는, 가슴속이 후련하니, 머릿속이고 가슴속이고 무언지 뭉치고 비비 꼬이고 하던 것이 확 풀어져 스러지고 화가 제대로 도는 것 같아서 기분이 시원하다. 그러나 그 뭉치고 비비 꼬인 것이라는 것이 반드시 정례 어머니에게 대한 악감정은 아니었다. 옥임이가 그 오랜 동무에게 이렇다 할 감정이 있을 까닭은 없었다. 다만 아무리 요새 돈이라도 20여 만 원이라는 대금을 받아 내려며는 한 번 혼을 단단히 내고 제독을 주어야 하겠다고 벼르기는 하였지마는, 얼떨결에 나온다는 말이 젊은 서방을 둔 떠세냐 무어냐고 한 것은 구석 없는 말이었고, 지금 생각하니 우스웠다. 그러나 자기보다도 훨씬 늙어 보이고 살림에 찌든 정례 모친에게는 과분한 남편이라는 생각은 늘 하는 옥임이기는 하였다. 남의 남편을 보고 부럽다거나 샘이 나거나 하는 그런 몰상식한 옥임이도 아니지마는 자식도 없이 군식구들만 들썩거리는 집에 들어가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늙은 영감의 방을 들여다보면, 공연히 짜증이 나고, 정례 어머니가 자식들을 공부시키느라고 어려운 살림에 얽매이고 고생은 하나, 자기보다 팔자가 좋다는 생각도 나는 것이었다. 내년이면 공과대학을 나오는 맏아들에 중학교에 다니는, 어머니보다도 키가 큰 둘째 아들이 있고, 딸은 지금이라도 사위를 보게 다 길러 놓았고, 남편은 펀둥펀둥 놀며 마누라가 조리차하는 용돈이나 받아쓰고, 자동차로 땅뙈기를 까불렸을망정 신수가 멀쩡한 호남자가 무슨 정당이라나 하는 데 조직 부장이니 훈련부장이니 하고 돌아다니니, 때를 만나면 아닌게아니라 장래 대신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8,9삭 동안 장사를 하느라고 매일 들러서 보면, 젊은 영감을 등이라도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듯이 지성으로 괴는 꼴이란 아닌게아니라 옆에서 보기에도 부러운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았지마는, 결혼들을 처음 했을 예전 시절이나 도지사 관사에 들어서 드날릴 때에야 어디 존재나 있던 위인들인가? 그것이 처지가 뒤바뀌어서 관 속에 한 발을 들여놓은 영감이나마 반민자로 지목이 가다니, 이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하면 쭉쭉 뽑아 놓은 자식들과 한창 활동적인 허위대 좋은 남편에 둘러싸여 재미있고 기운꼴차게 사는 양이 역시 부럽고 저희만 잘된다는 것이 시기도 나는 것이었다. 보기 좋게 이년 저년을 붙이며 한바탕해 대고 나서 속이 후련한 것도 그러한 은연중의 시기였고, 공연한 자기 화풀이였는지 모른다. 옥임이는 그 길로 교장 영감 집에 들러서, "혼을 단단히 내주었으니까 인제는 딴소리 안할 거외다. 내일 가서 표라두 받아다 주슈." 하고 일러 놓았다. 4 "오늘은 아퀴를 지어 주시렵니까? 언제 갚으나 갚고 말 것인데 그걸루 의 상할 거야 있나요?" 이튿날 교장이 슬쩍 들러서 매우 점잖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교장 선생님부터가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지만 김옥임이가 그렇게 되다니 불쌍해 못 견디겠어요.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원서를 끼구 다니구, "인형의 집"에 신이나 하구, 엘렌 케이의 숭배자요 하던 그런 옥임이가, 동냥 자루 같은 돈 전대를 차구 나서면 세상이 모두 노랑 돈닢으로 보이는지? 어린애 코 묻은 돈푼이나 바라고 이런 구멍가게에 나와 앉었는 나두 불쌍한 신세이지마는 난 옥임이가 가엾어서 어제 울었습니다. 난 살림이나 파산지경이지 옥임이는 성격 파산인가 보드군요^5,5,5^" 정례 어머니는 분하다 할지, 딱하다 할지, 속에 맺히고 서린 불쾌한 감정을 스스로 풀어 버리려는 듯이 웃으며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니 나두 듣기에 좀 괴란쩍습니다마는 다 어려운 세상에 살자니까 그런 거죠. 별수 있나요. 그래도 제 돈 내놓고 싸든 비싸든 이자라고 명토 있는 돈을 어엿이 받아먹는 것은 아직도 양심이 있는 생활입니다. 입만 가지고 속여먹고, 등쳐먹고, 알로 먹고, 꿩으로 먹는 허울 좋은 불한당 아니고는 밥알이 올곧게 들어가지 못하는 지금 세상 아닙니까^5,5,5^ 허허허" 하고 교장은 자기 변명인지 옥임이 역성인지를 하는 것이었다. 이날 정례 어머니는 딸이 옆에서 한사코 말리며, "그 따위 돈은 안 갚아도 좋으니 정장을 하든 어쩌든 마음대로 하라구 내버려 두세요." 하며 팔팔 뛰는 것을 모른 체하고, 20 만 원 표에 2 만원 현금을 얹어서 옥임이 갔다가 주라고 내놓았다. 정례 모친은 그 후 두 달 걸려서 교장 영감의 5 만 원 빚은 갚았으나, 석 달째 가서는 이 상점 주인이 바뀌어 들고야 말았다. 정말 교장 영감의 조카가 나서나 하였더니 교장의 딸 내외가 들어앉았다. 상점을 내놓고 만 바에는 자질구레한 셈속을 따진대야 죽은 아이 귀 만져 보기지 별수 없지마는, 하여튼 20 만 원의 석 달 변리 6 만 원이 또 늘어서 26 만 원인데 정례 모녀가 삭월세의 보증금 8 만 원마저 못 찾고 두 손 털고 나선 것을 보면, 그 8 만 원을 에끼고 남은 18 만 원이 점방의 설비와 남은 물건 값으로 치운 것이었다. 물론 옥임이가 뒤에 앉아 맡은 것이나, 권리값으로 5 만 원 더 얹어서 교장 영감에게 팔아 넘긴 것이었다. 옥임이는 좀더 남겨 먹었을 것이로되, 교장 영감이 그 빚 받아 내는 데에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5 만 원만 얹어먹고 말았다. 또 교장은 이북에서 내려온 딸 내외에게는 똑 알맞은 장사라고 생각이 있어서 애초부터 침을 삼키고 눈독을 들이던 것이라, 이 상점을 손에 넣으려고 애도 썼지마는 매득하였다고 좋아하였다. 정례 모녀는 일년 반 동안이나 죽도록 벌어서 죽 쑤어 개 좋은 일 한 셈이라고 절통을 하였으나 그보다도 정례 모친은 오래간만에 몸 편해져서 그렇기도 하였겠지만 몸살 감기에 울화가 터져서 그만 누운 것이 반달이나 끌었다. "마누라, 염려 말아요. 김옥임이 돈쯤 먹자만 들면 3,40 만 원쯤 금세루 녹여 내지. 가만있어요." 정례 부친은 앓는 마누라 앞에 앉아서 이렇게 위로하였다. "옥임이 돈을 먹자는 것두 아니지마는 무슨 재주루." 마누라는 말리는 것도 아니요 부채질하는 것도 아닌 소리를 하였다. "김옥임이도 요새 자동차를 놀려 보구 싶어한다는데 마침 어수룩한 자동차 한 대가 나섰단 말이지. 조금만 참어요. 우리 집 집문서는 아무래두 김옥임 여사의 돈으로 찾아 놓고 말 것이니^5,5,5^" 하며, 정례 부친은 앓는 아내를 위하여 뱃속 유하게 껄걸 웃었다. (1949년) 임종 1 "의사가 없으면 약이라두 지어 올 일이지. 사람이 성의가 없어." 침대 위에 간신히 부축을 하여 일어나 앉은 병인은 만경에 빠진 사람 같지도 않게 의식이 분명하고, 숨결은 차지마는 말소리도 또랑또랑하다. 병인은 어제부터 새판으로, 입원하기 전에 대었다가 맞지 않는다고 물린 한의를 병원 속으로 불러오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은 제쳐놓고 자기의 병 증세를 잘 이해하고, 의사와 수작이라도 할 만한 아우 명호더러 꼭 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 두 번을 갔다오면서 의사가 시골에 출장을 가서 못 만났다고 약도 못 지어 가지고 오는 것을 보니, 톡 건드리기만 하여도 끊어질 듯한 신경만 날카로운 판이라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서 퇴원부터 하시고 의사는 이따가 저녁때 불러오기로 하죠." 오늘도 부쩍 더워진 날씨에 전차를 타기도 어중된 거리라 왕복을 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병실에 들어선 명호는, 웃통을 벗어 놓고 땀을 들이며 천천히 병인을 달래었다. 오늘 해를 넘길지 모르는 병자에게 성의가 없다는 말을 들으니 몹시 섭섭하고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으나 어쨌든 약 한 첩쯤이 급한 것이 아니라 예정대로 퇴원을 어서 시켜야 하겠는데, 또 딴소리가 나올까 보아 어린아이 달래듯 달래려는 것이었다. "퇴원은 무슨 퇴원, 약이라두 지어 가지구 나가야지 이대루 나갔다간 당장 숨이 막혀 죽어^5,5,5^" 남의 고통은 조금도 몰라 주고 성한 사람들이 저의 대중만 치고 저의 형편 좋을 대로만 하겠다는 것이 화가 나서 역정을 와락 내어 보았으나 숨결이 또다시 되어지며 말은 입속에서 어름어름하여져 버렸다 병자는 성한 사람들이 자기에게 대한 동정과 성의가 부족하다고 늘 불만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동정이 한편에서는 아름다운 것이나 한편에 있어서는 비굴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육체의 고통이 극도에 오를수록 모든 사람이 부족하게 구는 것만 같고, 자기를 돌려내고 민주를 대는 듯싶어 고까운 생각이 늘 떠나지를 않는 때문이었다. 퇴원은 놀라는 급한 고비를 넘겼으나 이제는 아마 길게 걸리리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벌써부터 나온 문젠데 병자의 반대로 미루미루해 오던 것을 어제 한약을 먹겠다는 말끝에 거기에 따라 명호가 부쩍 우겨 대어 당자도 찬성을 하게 된 것이었다. 정신이 멀쩡할 때에는 옆의 사람이 송구스러울 만큼 입원료가 더껍더껍 많아지는 걱정도 하고, 죽은 뒤의 장비 마련까지 하던 사람이 병세가 차차 침중하여지고 육체적 고통이 시시각각으로 볶아쳐 대니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잊어버리고 덮어놓고 병원에만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것이었다. 그것은 병원에 누웠댔자 별도리가 없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마는 다만 하나 주사를 못 잊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뇌일혈로 인사불성에 빠질 뻔했던 것을 백지장 한 겹 시각에 요행히 붙들어서 한약으로 머리의 피를 내려앉게 하여 놓았으나, 한 달 전에 입원할 때 2백 얼마라는 혈압을 5,60 그램씩 두 번이나 쥐어짜듯이 하여 피를 빼고 무슨 주사인지 미국치를 비밀 가격으로 사들여다가 연거푸 놓고 한 덕분에 간신히 부지를 하여 온 머릿속이요 심장이다. 거기다가 신장염이 곁들여 부증이 들쑥날쑥하다가 어쩐 둥하여 부기가 내리고 구미가 붙기 시작을 하여 한동안 수미를 폈던 것이나 지금 와서는 완전히 마취제와 강심제의 농락으로 꺼져 가는 등잔의 심지를 돋우어 불꽃이 살아가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약이 없어 죽다니! 하기야 돈이 없지 약이 없겠나!" 병인은 목에 걸리는 소리로 이런 한탄도 하는 것이었다. 하여간 주사를 만날 놓아야 모르핀의 진통제나 강심제 따위로는 병균을 건드리지도 못하는 것쯤은 번연히 알면서도 그 주사나마 못 맞으면 당장 숨이 질 것 같으니 병원을 못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네 시간만큼씩에 놓던 것이 세 시간 두 시간으로 단축이 되고 나중에는 가슴이 타오르고 뻐개질 듯이 조비비하듯 할 제는 오밤중이라도 조르고 보채고 아귀다툼을 하다시피하여 한 대 맞고 나면 가슴이 후련히 툭 터지고 욱죄이던 사지가 느른히 풀리는 그 신통한 맛이란 감칠 듯하여 아편장이의 주사란 것도 이래서 못 떨어지나 보다고 생각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급한 고비를 넘기고 본 정신이 들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제는 다만 하나 한약을 다시 먹어 보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이었다. 기구가 있으면 주사약을 한 상자 간호부에게 들려 가지고 나가서 급할 때마다 주사로 숨을 돌려 가면서 한약을 써보고 싶으나, 그럴 형세가 못 되고 보니 한약을 먹으러 나가기는 나가겠으되 그러면 주사 대신에 숨이 지려할 때 붙들어 주는 즉효가 나는 한약을 지어 오라고 어린아이처럼 보채는 것이었다. "염려 마세요. 주사는 아침 저녁으로 선생이 댁에 가서 놓아 드리마 했으니까^5,5,5^" 이렇게 안위를 시키고 달래어도 보았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은 병인의 그러한 사정은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병원에서 객사를 시킬 것이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요, 다만 어서 집으로 나가서 운명을 시켜야 초상을 치르기가 편하다는 속셈만으로 서둘러 대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초상을 치르는 것이 도리러 비용이 덜 들겠다는 뒷공론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집안 식구가 거산을 할 것이오, 더 고생일 것이라 하여 병인이 퇴원하여 준다는 것만 다행하다고들 하였다. 사실 저희 성한 사람의 사정만 생각한다고 병인이 불평인 것도 그럴듯한 말인지 몰랐다. 그러나 병이 이미 기울어져서 산 사람과의 교섭이 차츰차츰 멀어져 가니 정성이나 애정이 한 꺼풀 두 꺼풀 벗겨져 가고 없어져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집에서 한 달, 병원에서 한 달, 두 달을 두고 잠시 한때 옆에서 떠나지를 못하게 하는 아내까지 이제는 진력이 나서 어서 병원에서 나가고만 싶어하였다. 또 요행히 고비를 넘긴다 하더라도 이러한 늙은이의 병이란 대개 중풍으로 누워 있게 되기가 십상팔구이니 그렇게 되면은 없는 살림에 서로 못할 노릇이요, 한 달에 2,3 만 환 하는 입원료를 무엇으로 대어 나가느냐는 걱정부터 앞을 서는 것이었다. 가장을 잃으면 어린것들과 노두에 방황하겠다고 애를 부덩부덩 쓰고 지성껏 병 구원을 하던 것도 아직 든든한 생활력이 남아 있고, 그래도 회춘할 일부의 희망이 있을 동안이었다. 산 사람이나 당장 내일부터라도 먹고 살아야지 하는 태산 같은 걱정이 앞을 가리니 다만 남는 것은 인연이라든지 의리나 체면뿐이었다. 그러나 앓는 사람은 그럴수록 동정과 애정과 성한 사람의 성의에 매달리고 애원하는 것이요, 역정을 내는 것이었다. 2 성한 사람의 정성이 부족하여 가거나 저희들의 사정만을 생각하거나 말거나 정신이 말짱하고 원체 체력이 든든하던 병인은 지치고 살이 야위기야 하였지만 좀처럼 자기가 그렇게 쉽사리 훌꺽 죽어 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큰 산소의 아버지 옆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하나 넉넉히 되지마는 장비는 터무니없고 이런 세대에 무어 볼 거 있소. 간략히 화장을 해서 뼈나 묻도록 하우."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 아이들의 교육과 취직이며 생활 방도를 의논한 끝에 이러한 유언도 하고 어떤 때는 유골을 갈아서 정한 산에 올라가 날려 보내도 좋겠다는 지나는 말도 하여 가족들을 놀라게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유언은 언제나 한 번은 죽을 것이니 이 기회에 미리 자기의 의사 표시를 하여 두자는 것이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각오를 하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주사의 힘으로 버티어 나가거니 하는 불안은 있었으나, 주사를 놓고 나면 그 저리고 쑤시던 가슴이 훤히 터지고 부축을 하여서도 몸을 가누고 일어나 앉을 수 있는 것을 보면 자기의 원기에 대한 자신이 다시 생기고 능히 소복되리라는 새 희망도 비치는 것이었다. 사실 어제 퇴원을 하느니 하고 한창 부산통에 C라는 젊은 위문객이 왔을 때는, 이때까지 서두르던 가족들이 무색할이만큼 병인은 내일이라도 일어날 듯이 명랑한 낯빛으로 수작을 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이렇게 편찮으신지는 몰랐습니다 그려. 지금 ^456,1346,1346,123^재단을 설립중인데 물론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어쩌면 선생을 부사장으로 추대할 듯싶더군요. 그야 이사자리야 하나 안 드리겠읍니까마는 공교히 이렇게 누워 계셔서 안됐습니다. 어서 속히 일어나기만 하십쇼." C청년은 병인의 기운을 돋워 주려고 위로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런 내통을 하여 주고, 또 그리하자면 자기에게도 좋은 일이 없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찾아다니다가 병원까지 왔다는 말눈치였다. "흥, 그런 이야기가 있어! 좀 있으면 일어나게야 되겠지만 하여간 그 축들 만나면 잘 부탁해 주우^5,5,5^ 어 오늘 C군이 찾아 준 것도 의외지만 아마 나도 이제 운이 틔려는군! 힘 좀 써주슈. 꼭 부탁하오." 병인은 젊은 친구의 손을 붙들고 은근한 정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젊은 객은 병증세를 캐어 묻고, 병인의 가다가다 허청 나오는 목소리와 어떻게 보면 사색에 질린 낯빛을 이리저리 뜯어보는 눈치더니 처음 달려들 때 떠벌려 놓던 기세와는 딴판으로 차츰 기색이 달라지면서 꽁무니를 빼는 수작으로 어름어름하고는 훌떡 나가 버렸다. 병인은 그래도 신기가 매우 좋아서 아내더러 내일은 P에게 연락을 해서 그 ^456,1346,1346,123^재단의 내용을 알아보고 A에게 가서는 이러저러한 전달을 하고 부탁을 하여 두라는 분별을 하고 누웠다. 옹위를 하고 앉아 있는 가족들은 이 양반이 오늘 해를 못 넘기리라고 서두르던 양반인가 하는 생각에 물끄러미 병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쨌든 반갑고 기쁘기도 하며 어떻게 보면 과히 병이 고황에 깊이 든 것이 아닌 것같이도 보여 다시 새로운 희망도 생기는 것이었다. 퇴원을 재촉하고 장사 지낼 걱정을 끼리끼리 수군거리던 것이 우습기도 하였다. C청년이 다녀간 뒤에 의사가 저녁때에야 들어왔다. 오늘도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막힐 때마다 K선생을 불러오라 하고, 출근을 아니하였거든 자택으로 전화를 걸라고 하던 K의사가 들어왔다. 병자는 아까 놓은 주사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리 급한 지경은 아니나 의사의 얼굴만 보아도 안심이 된다는 눈치로 반가와하였다. "오신 길에 주사를 또 한 번^5,5,5^" 환자는 조금 있으면 또 닥쳐올 고통이 무서워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의사를 붙든 김에 아주 미리 주사를 듬뿍 맞아 두고 싶은 생각이었다. "아, 놓아 드리죠." 진찰을 대강 하여 본 뒤에 의사가 주사약을 가지러 나가는 것을 명호는 병자의 눈에 안 띄게 슬며시 뒤쫓아나갔다. "오늘 퇴원을 시킬까 하다가 선생두 안 오시구 해서 그만두고 있읍니다마는 어떤 모양인가요?" "오늘 낼 새로 어떻겠읍니까마는 퇴원하시죠." 퇴원을 시킨다는 말에 의사는 도리어 반색을 하는 눈치였다. 급한 고비는 넘겼으나 이제는 길게 끌리라는 예고를 할 제부터 벌써 의사는 이 이상 더할 수는 없으니 데려내가라는 말눈치였던 것이다. 어차피 내일 한약을 지어 온 뒤에야 병인이 순순히 퇴원하겠고 또 오늘 내일 새로 어떨 리는 없으리라는 의사의 말에 안심이 되어서 퇴원은 내일로 미루기로 하였다. 그러나 뒤미처 주사침을 손수 들고 들어온 의사가 정맥주사를 한참 고생을 하여 놓고 나더니 명호에게 눈짓을 하며 나간다. 명호는 불길한 예감에 마음이 설레면서 눈치 빠른 병자의 눈을 피하느라고 머뭇거리다가 넌지시 따라나갔다. "될 수 있으면 오늘 해 전으로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 보다시피 약을 빨아들일 힘이 없는 것을 보니 이제는 심장이 완전히 주사 힘으로만 부지를 하는 건데요^5,5,5^" 하고 의사가 드디어 서두른다. 아닌게아니라 지금 주사기에 피가 자꾸만 흘러 나와서 주사약은 분홍빛으로 물이 들고, 의사는 몇 차례를 쉬어 가며 간신히 억지로 넣고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퇴원을 한다고 법석을 하다가 겨우 준비가 되고 병인도 ^456,1346,1346,123^재단이 되면 이사가 되리라는 뜬소문엘망정 기분이 좋은 터에 새판으로 퇴원하자고 소동을 할 수도 없었다. 병인은 두 번씩이나 의사를 따라나가서 수군수군하고 들어오는 명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무엇을 찾아내려고 몹시 초조해하는 기색이었다. 마음을 턱 놓았던 화색이 금시로 사라지고 불안과 공포의 빛이 휙 떠오르다가 꺼지면서 어색한 웃음을 띄고 무슨 말을 꺼내려는 눈치더니 자기도 입밖에 내어 물어보기가 무서운 듯이 멈칫하고는 또다시 퀭한 눈으로 언제까지 명호의 기색만 노려본다. 위중하다는 기별을 듣고 이른 아침이나 날이 저문 뒤에 뛰어나가면 어째 왔나 하고 도리어 놀라며 겁을 내고 싫어하거나 흥분이 되곤 하는 병인이었다. 이렇게 의혹과 공포에 질린 눈으로 쏘아보는 양은 마치 무서운 마굴에 불법 감금이나 당하고 앉아서 감시하는 옥졸의 눈치만 숨을 죽이고 슬금슬금 노려보는 것 같아서 명호가 도리어 얼굴을 둘 데가 없고 말이 막혀 버렸다. "의사 말이, 훨씬 차도가 있으니 오늘 내일 주사를 좀 더 넉넉히 맞으시구 내일 오후에 퇴원하시라는군요." 명호는 잠자코만 있다가 더 괴로와서 안 나오는 웃음을 지어 보이기까지 하였다. "응?" 병인은 바르르 떨리던, 잔뜩 당겨진 신경이 일순간 확 풀리는 듯하며 귀를 번쩍해하다가, "정말 그럴까?" 하고 의아한 눈초리로 맥없이 한마디하고서는, "그런 말씀이야 내게 직접 말못할 것은 무언구?" 하며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그 코웃음과는 반대로 좀더 자세한 의사의 말의 실증을 붙들어 보겠다는 듯이 일단 늦추어졌던 정신력과 주의력을 눈으로 힘껏 모아서 명호의 얼굴빛과 입술을 겨누어 보며, "별안간 어떻게 차도가 있다는 거야?" 하고 마치 명호의 말 한마디가 자기의 운명을 마지막 결정이나 한다는 듯 커다란 희망을 가지고 애원하듯이 매달려 오는 기색을 보인다. 명호는 마음이 무서워지며 괴로왔다. 조금전까지도 이제는 운이 트이나 보다고 좋아하던 이 안타까운 병인에게 꾸며선들 무어라고 대꾸를 해주어야 이 어려운 처지를 모면할지 선뜻 말이 아니 나왔다. "형님이 원래 기력이 좋으시니까 이제 한약을 제곬을 찾아서 잘 쓰기만 하면 염려 없다는 말이죠." "딴소리^5,5,5^" 아까 C청년이 왔을 때부터 너무나 긴장이 계속된 끝이라 뒷말을 더 하려고 입을 쭝긋쭝긋하다가 기운이 빠져서 맥이 풀려 가는 눈만 멀거니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반듯이 누웠다. 그러나 '딴소리'라고 핀잔 주듯이 힘있게 부인한 것은 명호가 거기 달아서 딴소리가 아니라고 무슨 변명이라도 하고 덤비기를 바랐던 것인데, 다시는 아무 대꾸가 없이 명호가 담배를 붙이고 마는 것을 보자 병인의 눈에는 절망의 빛이 차차 짙어 갔다. '그런 말이면야 내게 직접 말못할 리가 없지^5,5,5^' 탈진을 하여 가면서도 맑게 갠 병인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언제까지 스러지지 않았다. '^5,5,5^ 이것은 사형수보다도 더 못 견딜 일이다. 사형수는 제 운명을 알구나 있지 않은가? 사형을 집행할 때라 두 미리 일러는 줄 테지. 이놈들이 정작 내게는 누구보다 더 먼저 알아야 할 내게는 알리려 들지를 않구서 목숨의 임자가 저희들인 듯싶게 저희들만 뒷구멍으로 숙설숙설하구 우물쭈물하다니! 대관절 산다는 거냐? 살려 주겠다는 거냐?' 눈을 감고 누웠던 병인은 머릿속이 점점 환하여지며 조리가 뻔하게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눈을 별안간 번쩍 뜨고, 누구든지 눈에 띄는 대로 소리를 버럭 질러 보려고 이상한 광채가 솟으며 부리부리 휘둘러 보았으나,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목이 탁 잠겨서 소리가 아니 나왔다. 눈의 정채가 훅 꺼지며 앞에 앉은 아내의 얼굴이 차차 멀어간다. 다시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 감기며 잠이 혼곤히 들어 버렸다. 그러나 금시로 드르렁 하고 코고는 소리가 나다가 그 소리에 소스라쳐 다시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본다. '^5,5,5^ 응, 잠이 들었던 게로군!' 그는 죽는 것이 아니었고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잠이 들었다가 그대로 숨이 넘어가지나 않는가 하여 잠이 드는 것도 겁이 나고 싫었다. 3 "그럼 약을 지어 가지고 오죠." 젊은 아이가, 퇴원 수속을 마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명호가 벗어 놓았던 양복 저고리를 입고 나서려니까 침대에 꾸부리고 앉았는 병인의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고 있던 명호의 형수가 그만두라고 손을 두른다. 그러나 명호는 못 알아들은 체하고 나와 버렸다. 입원하던 맡에 용한 한의가 있다고 하여 몰래 불러다가 보이니까 고개를 내두르고 가버리는 바람에 왕복 자동차 삯만 없앤 일도 있었지마는 그러기에 병인이 아무리 졸라도 아내는 한의를 또 불러온다는 것은 반대요, 지금 입원료를 치르고 나면 병인을 태울 자동차 삯이 부족하지나 않을까 하여 애가 타는 판이라 그까짓 먹을지 말지도 모르는 한약 몇 첩 값이라도 절약을 하려 하는 것이었다. 물론 명호도 그만 짐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병인의 마지막 소원이라도 풀어 주고 싶고 산 사람의 유감이 되지나 않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명호는 자기 집 근처의 안면 있는 한약국에서 세 첩을 지어 가지고 나오는 길에 약에도 소위 연때가 맞는다는 말이 있으니 요행 들어서 또 지어 가게 되더라도 그 화제는 나를 주시오, 하여 약봉지 묶는데 끼어 가지고 나왔다. 지금 같아서는 기적을 바라는 것 그렇게까지도 죽지 않는다는 자신을 가지고 애를 부덩부덩 쓰는 그 정신력이라든지 체력으로라도 어쩌면 돌리지 말라는 법도 없으리라는 엷은 희망은 아직도 한편에 남아있고 또 사실 집안 형편이나 가족의 앞길을 생각하면 지금 이대로 세상을 떠나보내어서는 큰일이라는 걱정이 뉘게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산 사람의 사정부터 가지고 따지는 말이었다. 죽는 사람도 정신이 말짱하고 죽는다는 공포에서 벗어나서 한숨 돌릴 때는 가족이나 자식 생각이 앞을 서기는 하겠지마는 그 무서운 육체적 고통에서 이를 깨물며 헤어나려는 모질고 줄기찬 본능과는 거리가 먼 수작 같았다. '실상 사신대로 여년이 얼마 남은 것은 아니지만.' 올 정초에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동생들이 병인의 육십 잔치를 지낼 의논들을 하던 것이 머리에 떠올라서 이런 생각을 하다가 명호는 그 말이 어쩐지 앓는 형을 비난하는 뜻같이도 생각이 들자 찔금하였다. 그야 누구나 하는 말이지마는 여년이 얼마 남았거나 말거나 단 하루 단 한 시간이 남았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고 바드득바드득 애를 쓰는 그 형상을 비웃어서는 안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5,5,5^ 백년을 산대도 가던 길을 반도 못 걷고 하던 일을 손에 붙든 채 쓰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자기 완성을 하고 떠나지는 못하는 것인데 미완성인 대로 뒷대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야 죽은 뒤에 남은 처자식이 어떻게 되든지 뒤를 깡그리 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만 그것을 두 손으로 바당기고 막아 내리는 것이 생물의 본능이나 좋게 말하자면은 생리적 조건이 허락하는 때까지의 자기 주장이요, 자기의 존재를 잃지 않겠다는 무서운 단판 씨름이라 할 것이나, 그러나 자기 완성을 허락지 않는 바에야 항복이 아니라 앞질러 선선히 길을 비켜서서 뒤에 물려주고 시사여귀로 조용히 물러가라는 말인데, 그렇지만 시사여귀란 저마다 할 수 있는 노릇인가.' 명호는 병원으로 터덜터덜 오면서 갈피없는 이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지고 쓸쓸하였다. '^5,5,5^ 이번에는 내 차례인데^5,5,5^.' 명호는 무심코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이렇게도 살기 어렵고 보기 싫은 세상에 죽는 것쯤은 조금도 아깝거나 원통한 것은 없겠으나, 병고에 시달리고 부대낄 것을 생각하면 이때까지 겪어 온 평생의 고생을 한 묶음 묶어다가 앞에 놓인 듯싶게 벅찬 생각이 들며 지금부터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마취제 주사에 맛을 들이고 감질이 나지나 않고 죽는다면 얼마나 편하고 팔자 좋게 죽을 것인가 하고 혼자 실소도 하였다. 불도에 골독하던 재종형이 요새 앓아 누웠다는 말을 듣고도 병원에서 헤어날 새가 없어 아직까지 위문을 가지 못하고 있지마는 위문도 위문이려니와 불도에 신앙을 가진 사람의 투병술은 어떨지 견학도 하고 사생관도 한 번 가서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허얘져 가는 명호는 차차 죽을 차비를 차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곰곰이 하는 것이었다. 4 명호는 병실에 들어서며 손에 든 약을 병인에게 내보이고, "여기 이 화제는 이 약이 듣는 경우에 내게로 보내시든지 댁 근처에서라도 더 지어 잡숫게 하라고 가져온 것입니다." 하고 설명을 하니까 병인은 웃지는 않으나 만족하고 안심한 낯빛이었다. 약봉지는 거지반 다 꾸려 놓은 봇짐 속에 대수롭지 않은 듯이 꾹 찔러 넣었다. 자동차를 부르게 하고 2층에서 병인을 담아 내려갈 들것을 올려오고 하는 동안에 위문을 온 전도부인 같은 서너 부인들이 들어오더니 아낙네들끼리 수군수군한 뒤에 병상 앞에 둘러서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병인은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닌 모양이지만 병인의 아내의 옛날 친구들이 위문을 왔다가 의외의 중태인 데에 놀라서 마지막 축원을 드리는 것이었다. 어제 명호가 한의를 부르러 갔다가 오니까 형수의 말이 그 동안에 성당에서 와서들 세를 붙이고 갔다 하면서, "저기 성수까지 받아 놓았답니다." 하고 탁자를 가리키기에 명호는 잔소리가 하기 싫어서 그저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이상히 여겼던 것이다. 원체 병인은 불교를 좋아하였었다. 부모의 장례때도 일부러 승려를 청하였던 것이다. 이번에도 명호 형제들은 만일 형님이 돌아가시면 중을 부르겠냐 비용 관계가 있으니 제례하겠느냐는 것까지 벌써 의논하고 있던 터이다. 그러나 그동안 병원 안에 천주교를 믿는 간호부가 늘 와서 권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몇 번 사퇴를 하였으나 나중에는 병인도 그 설교에 마음을 돌리고 승낙을 하여서 세까지 붙이게 된 것이라는 것이었다. 병인이 승낙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로운 일은 아니니 그런가 보다고 별 이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안손님이 와서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고는 좀 이상하고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눈이 여린 명호는 부인네들 뒤에 가로놓인 마주잡이 들 것 옆에서 그 기도 소리를 듣다가 눈물을 걷잡지 못하여 방문 밖으로 피하여 나가 버렸다. 물에 빠진 자가 새끼토막이라도 붙든다는 격으로 이 신령, 저 부처에게 닥치는대로 매달려 공덕을 애걸하며 빌자는 것이 아니라, 주위와 지기가 제각기의 신앙을 빌어서 병인의 쾌복이나 명복을 빌어 주는 것은 물리칠 수도 없거니와 고마운 일이요 아름다운 일이거니 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병자는 기도 소리를 듣는지 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다만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들어가는 듯이 까딱도 하지 않고 누워 있다. 그래도 옮겨 놓을 때는 눈을 분명히 떠서 둘러보고 병원 문밖까지 나와서 차에 떼메어 올리려니까, "운전사한테 길을 잘 일러주어야지." 하고 분명히 소리를 하는 데에는 여러 사람이 서로 쳐다보며 신기해서 웃었다. 그러나 자동차 안의 시트에 들여 뉘자 병인의 눈자위는 틀려 갔다. 명호는 눈결에 홀끗 바라보고 다짜고짜 병원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서 간호부를 끌고 나왔다. 강심제를 또 한 번 놓아 달라는 것이다. 자동차 속에 들어서서 주사를 놓고 있는 간호부의 하얀 뒷모양을 바라보며 시급히 조수석으로 뛰어 들어가 앉았다.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병인의 증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앞의 운전대에 앉은 명호는 몰랐다. 5인승인 차 안에는 젊은 애들이 여상 좋은 낯으로 수작을 하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을 뿐이었다. 병인이 더 살고 싶고 말고간에 집에 들어갈 때까지만 숨이 붙어 있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 지경에 캠퍼 주사가 효험이 있을까 없을까를 헤아려 볼 새도 없이 간호부를 끌어 온 것은 다만 송장을 데리고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욕심이요, 밖에서 죽은 소장을 집에 끌어들였다는 말만 듣지 않게 하자는 발뺌이나 체면을 먼저 생각하였던 것이다. 5 신체를 모셔들인 방에는 불은 때어 놓았으나 미리 세간을 말끔히 치우고 병풍만 한 채 남겨 있었다. 병원에서 떠나기 전에 벌써 빈소방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발상전의 과수댁은 옆방에서 부리나케 보따리를 풀고 무엇을 찾았다. 명호가 오늘 반나절을 걸려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지어 온 약봉지가 먼저 방바닥에 떨어졌다. 병자가 이틀을 두고 성화를 대며 졸라서 먹으려던 한약이다. 과수댁은 컵 속에 넣은 물종지를 찾아내어 빈소로 가지고 가더니 신체의 주위에 말끔히 뿌렸다. 천주교에 세를 붙이고 받아 둔 성수였다. 발치께 서서 가만히 바라보던 명호가, "그럼 장례를 어떻게 지내시렵니까? 제사는 일체 폐하시나요?" 하고 물으니까 과수댁은, "그렇게까지야 하겠습니까." 하고 다만 좋은 일이니, 성당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초상집에서는 우선 삼일장이냐 오일장이냐 하는 의논이 벌어졌다. "화장을 하라신 유언도 계셨으니 화장으로 모시면야 삼일장도 넉넉할 겁니다." 명호는 첫째 장비 걱정으로 화장을 앞세웠다. "그야 우리 형세에 삼일장이죠마는 화장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런 말씀이 계셨지만 나중에는 아무래두 아버님 곁으루 들어가시겠댔는데요." 여기에 가서는 아무도 이렇다 저렇다 말할 나위가 없었다. 혹은 이 과수댁도 뒤미처 들어갈 테고 보니 자기부터 화장이 싫어서 그럴지도 모르나 돌아간 이도 아직 먼 일이거니 하고 가상적으로 여유를 두고 말할 때는 화장을 입밖에 냈을는지 몰라도 당장 실제 문제가 되고 보니 역시 선산에 묻히고 싶어하였을 것도 넉넉히 짐작할 일이었다. 나 죽은 뒤에는 수의를 무슨 감으로 하여 달라느니 관 속에는 이것저것을 넣어 달라느니 하는 유언도 하거든, 자기 묻힐 자리를 초점까지 해 놓고서 거기에 못 묻힐까보아 애를 쓰며 세상을 떠나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몰랐다. "말이 3일이지 오늘 해는 다 가구 내일 하루인데 첫째 산역이 문제로군." 호상차지의 걱정이었다. "영구차에 버스 한 대는 따라야 할 테니 자동차 삯만 해두 두 대에 4 만 환은 예산을 잡아야 할 걸." 홍제원 화장장이면 고작해야 5,6천 환 에 너끈할 것인데 없는 돈에 차삯이 4 만 환 예산이라니 엄청난다는 말눈치였다. "화장이나 매장이나 돌아간 뒤에야^5,5,5^" 젊은 축들은 저희들끼리 이런 소리를 수군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이 옳다고 찬성하는 사람도 없고 그르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었다. 하여간 하룻밤 하룻낮을 안팎에서 복작대고 들볶아쳐서 제 시간에 성복제를 지내고 나니까 앓아 누웠다던 명호의 재종형이 지팡이를 짚고 지척지척 조상을 왔다. "허! 내가 먼저 갈 줄 알았더니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하고 관을 붙들고 상제들보다도 더 섧게 울고 나더니 염주를 꺼내 염불을 시작하였다. 한 식경이나 옆사람들이 지루하도록 염불을 끝마치고는 이 늙은이는 품에서 훔척훔척하면서 백지에 기름하게 싼 봉투를 꺼내어 관상명정을 쳐들고 관 위에 끼워 놓은 것은 손수 베낀 경문인지 한 모양이었다. 장지에 나가서도 하관할 때 폐백과 함께 이 종이 봉지도 횡대 밑에 넣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성수에 말끔히 씻긴 혼백이 또다시 불타의 대자대비한 공덕에 안겨 안온히 잠들지 모르나 그보다도 먼저 산 사람이 제 각자의 소임이나 향의를 기울인 데 만족을 느낄 것이었다. (1949년) (연보) 1897 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서 염규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 호는 횡보, 천주교명은 바오로. 1907 년 9월 관립사범학교 부속 보통학교 입학. 1909 년 보성소학교로 전학. 11월 도일 동경 마포중학 2 학년에 전 입학. 다시 아오야마학원으로 옮겼으며 다시 쿄토 부립 제2중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함. 1917 년 케이오대학 사학과 입학. 재학중 3,1^ 운동이 일어나 10개월간 투옥. 1920 년 요코하마 복음인쇄소 직공으로 근무하다가 귀국.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정치부 기자로 입사. 잠시 정주 오산중학 교사로 재직. 7월에 유일한 첫 시작품 "법의" ("폐허" 제1 호) 발표. 1921 년 "폐허" 제2 호에 수필 "저수하", "월평" 발표 또한 그의 자연주의의 문제작 "표본실의 청개구리" ("개벽 16) 발표. 1922 년 단편 "암야" ("개벽" 19), "제야" ("개벽" 20--24), "E선생" ("동명" 2--15), 번역소설 "4일간" ("개벽" 25) 등을 발표. 1923 년 9월 주간지 "동명"의 편집장. 단편 "신혼기(옛 제목 '해바라기')", "만세전(옛 제목 '묘지')"을 "시대일보"에 발표. 단편 "밤", "조그만 일",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전화"를 발표. 1924 년 단편 "금반지", "2 년 후와 그 거친 터" 발표. 1925 년 "동명"이 "시대일보"로 개칭되자 최남선 밑에서 사회부장이 됨. 단편 "고독", "검사국의 대합실", "윤전기", "어여쁜 악마" 발표. 1926 년 단편 "초연", "조그만 일", "악몽", "미해결" 발표. 1927 년 장편 "사랑의 죄"를 "동아일보"에 연재. 단편 "남충서", "두 출발", "유서"를 발표. 1928 년 장편 "이심"을 "매일신보"에 연재. 1929 년 김영옥과 결혼. "조선일보" 학예부장 취임. 장편 "광분"을 "조선일보"에 연재. 단편 "조그만 복수", "썩은 호두", "출분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똥파리와 그의 아내" 발표. 1930 년 장편 "삼대"를 "조선일보"에 연재. 단편 "세 식구", "추락" 발표. 1931 년 장남 재용 출생. 장편 "모란꽃 필 때", "불연속선"을 발표. 1933 년 단편 "불똥" 발표. 1934 년 단편 "무현금" 발표. 1936 년 만주 장춘으로 가서 "만선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 단편 "실직" 발표. 1946 년 서울로 돌아와 "경향신문" 창간과 동시에 편집국장에 초빙. 1948 년 단편 "난풍", "그 초기", "영감가쾌와 돌검" 발표. 장편 "삼대". "만세전", "삼인선" 간행 1949 년 단편 "혼란" 발표. 단편집 "해방의 아들" 간행. 1950 년 6,2,5^ 사변 때 소령으로 해군 정훈국 근무. 단편 "굴레", "난류", "입하의 절" 발표. 1951 년 단편 "거품", "탐내는 하꼬방", "비스킷과 수류탄", "재크 나이프", "산도야지", "욕", "생지옥", "감격의 개가", "새 설계", "그리운 남의 정" 발표. 장편 "취우"를 "조선일보"에 연재. 1953 년 단편 "흑백", "해지는 보금자리 풍경", "짖지않는 개" 발표. 1954 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 예술원 회원. 서라벌예술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초빙됨. 단편 "미망인", "추도" 발표. 장편 "모란꽃 필 때", "신혼기", "취우" 간행. 1955 년 단편 "지평선", "부부", "젊은 세대" 발표. 1956 년 3월에 단편 "짖지 않는 개"로 제3 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단편 "부성애", "위협", "자취", "후덧침", "어머니" 발표. 1957 년 단편 "절곡", "신정", "동서", "인플루엔자", "정염에 사른 모욕감", "남자란 것 여자란 것", "아내의 정애" 발표. 1958 년 단편 "수절내기", "대목동티", "공습", "우주시대 전후의 아들딸", "법 없어도 사는 사람" 발표. 1959 년 단편 "싸우면서 사랑은", "복건", "올수", "박수", "동기", "십자매", "두 양주" 발표. 1960 년 단편 "해복", "20 대에 들어서" 발표. 장편 "일대의 유업" 간행. 1961 년 단편 "어설픈 사람들", "의처증", "얼룩진 시대 풍경", "모녀" 발표. 1962 년 3,1^ 문화상 예술부문 본상 수상. 1963 년 3월 14일 직장암으로 자택에서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