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사   김동인(金東仁)     서울로 이사를 와서 행촌동(杏村洞)에 자그마한 집을 하나 마련한 이삼 일 뒤의 일이다. 그날 나는 딸 옥환(玉煥)이를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하여 잠시 문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동안 집은 아내 혼자서 지키고 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매 집 대문간에 웬 자그마한 새 쓰레기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래서 웬거냐고 아내에게 물으매 그의 대답은 경서부청 관리가 출장 와서 사라 하므로 샀노라 하면서 값은 이 원인데 시재 일 원 칠십전밖에 없어서 그것만 주고 저녁 다섯 시에 나머지를 받으러 오라 하였다 한다. 나는 의아히 여기었다. 첫째로 경성부청에서 쓰레기통 행상을 한다는 것부터가 이상하였고, 둘째로 비록 행상을 한다 할지라도 이런 엉뚱한 값(그것은 일 원 내외의 값밖에는 못 갈 것이다)으로 폭리를 취한다는 것도 이상하였고, 셋째로 대체 관청의 일이란 이 편에서 신입을 하고 재촉을 하고 하여도 여러 날이 걸리는데 당일로 들고 와서 현금을 딱 받아가며 더구나 삼십 전의 외상까지 놓았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그래서 아내에게 캐어물으매 아내에게서는 더욱 기괴한 대답이 나왔다. 즉― 아까 열 시쯤 웬 양복쟁이가 하나 와서 자기는 경성부 위생계 관리인데 쓰레기통을 하여 놓으라 하였다. 그래서 아내는 주인이 지금 없어서 모르겠노라고 하니까 그는 주인의 돌아올 시간을 재차 물으므로 아내는 다섯시 내외면 넉넉히 돌아오리라고 하매 그는 그때쯤 다시 오마 하고 그냥 돌아갔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나서 그 자가 다시 왔다. 웬 인부에게 작다란 쓰레기통을 하나 손에 들리어 가지고 그리고 그자의 하는 말은 대략 이러하였다― 쓰레기통은 경성부의 위생을 위하여 부민이 반드시 해놓아야 할 것이며 이것이 주인의 의사로서 하고 안하고 할 것이 아니라 관청의 명령으로서 시키는 것이다. 부에서 온공히 시킬 때에 하지 않았다가 경찰서에서 먼저 말을 내게 되면 과료에 처한다. 이것은 주인의 유무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관청의 명령이니 곧 사놓아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쓰레기통의 값으로서 이 원을 청구하였다 한다. 아내는 어리둥절하였다. 아직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아내는 관청의 명령이라는 데 질겁을 해서 돈을 주려고 보매 불행히 일 원 칠십 전밖에는 시재가 없었다. 그래서 그 관리(?)에게 시재 이 원이 없으니 저녁때 주인이 돌아온 뒤에 다시 돈을 받으러 오라 하였다. 그러매 그자는 그럼 있는 것만 미리 받고 나머지는 저녁때 또 받으러 오겠다 하므로 있는 일 원 칠십 전을 내어주고 삼십 전은 외상을 졌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기가 분명하였다. 그래서 아내의 세상물정 모르는 것을 꾸짖었다. 경성부청에서 부민에게 폭리를 취하여 쓰레기통을 팔아먹을 리는 없고 더구나 위협을 하여 가며 억지로 팔 리도 만무하며 마지막으로 주인이 저녁에댜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오전 중에 재차 쓰레기통을 들고 와서 돈을 받아간 점의 괴상함을 설명하고 어리석게도 이런 사기에 걸렸느냐고 하였다. 아내는 사기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분해서 펄펄 뛰었다. 저녁때 나머지 삼십 전을 받으러 올 터인데 그러면 그때 잡아서 경찰로 보낸다고 펄펄 뛰었다. 그러나 나는 그자가 다시 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내 예상에 반하여 저녁때 삼십 전을 받으러 웬 자가 왔다. 「노형 경성부에서 왔소?」 「네, 위생계에서.」 이 한마디의 응답뿐. 나는 오른손을 들어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 「명함을 내 놓우.」 「명함 없―없습니다.」 「없어? 무슨 어림 없는 소리야. 그래―」 이 통에 아내가 뛰어나왔다. 그리고 아내의 말은 이자가 아침에 왔던 자는 아니라 하는 것이다. 즉 대리를 보낸 것이다. 대리라도 좋다. 그 일미(一味)인 이상에는 이런 사기꾼들은 없이 하여야 한다. 「그래 경성부에서 쓰레기통 행상을― 더구나 오시우리를 하며 이 이십 전짜리도 되지 못할 물건을 부민에게 이 원에 판단 말이야? 시비는 여기서 가릴 것이 아니라 경찰서로―」 그러매 그자가 깜짝 놀란다. 「이 원이라뇨?」 「이 원이기에 일 원 칠십 전을 받고 삼십전을 또 받으러 왔지―」 「아니올시다. 그런 고약한 놈. 이 쓰레기통은 일 원 이십 전이올시다. 아까 구십 전만 받았노라고 삼십 전을 더 받아 오라기에 왔습니다. 엑 고약한 놈. 잠깐 기다리세요. 제 그놈을 잡아 가지고 오리다.」 이 깜빡수에 나는 속았다. 그래서 빨리 잡아 오라고 그자를 놓아 주었다. 놓아준 지 한 푼 내외에 속은 것을 알은 나는 그자를 찾으러 길로 뛰쳐나가 보았다. 그러나 그자의 행방은 벌써 모르게 되었다. 그 근처를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스몄는지 그자의 거처는 보이지 않았다.   행촌동은 신개지(新開地)다. 신개지니만치 쓰레기통 장사도 흔하였다. 그들은 모두 근엄한 얼굴로 손에는 수첩을 들고 부리(府吏)의 행세를 하며 쓰레기통을 사라고 호령하며 다녔다. 이런 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아내를 불러내어 그자의 얼굴을 감정시키고 하였다. 아내도 평생에 처음 걸려 본 사기인지라 그자를 꼭 잡아내지 못하면 꺼림직하다고 늘 잡아 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두 달이 지났다. 봄은 여름이 되었다. 어떤 날 앞집에서 무슨 둥둥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는 부청이란 말이 있었다. 쓰레기통이란 말이 있었다. 그 소리에 귀가 번쩍한 나는 앞집을 내다볼 수가 있는 구멍으로 가서 내다보았다. 앞집에는 웬 양복쟁이가 하나 와서 주부만 있는 그 집에 쓰레기통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를 불렀다. 그리고 예에 의지하여 그자를 감정시켰다. 그랬더니 아내는 그자를 내다보더니 얼굴이 빨갛게 되며 내게는 아무 말도 없이 거기 있는 대(臺)에 올라서서 앞집을 넘겨다보며 흥분된 말씨로 「당신이 전에 우리 집에 쓰레기통 판 사람이지요?」 한다. 나도 뒤따라 올라섰다. 앞집 대문 안에는 웬 양복쟁이가 하나 서있었다. 그는 우리들이 넘겨다보는 바람에 당황하여 연하여 「아니올시다」「모릅니다」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아내는 내게 향하여 분명히 그 사람이라고 밝혀준다. 여기서 나는 곧 뛰어내려서 대문으로 뛰어나가서 길을 휘돌아서 앞집으로 달려갔다. ? ―이삼 분 전까지도 그 집 대문 안에 있던 사람이 내가 달려간 때는 벌써 없어졌다. 앞집 사람에게 물으매 오후 두 시에 쓰레기통을 가져오마 하고 달아났다 한다. 그래서 산으로 길로 달아난 그를 잡으려고 한참 헤매다가 얻지 못하고 하릴없이 앞집에 오후에 오거든 좀 알려달라고 부탁을 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두 시, 네 시, 앞집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없을 줄 짐작도 하였다. 그자가 아까 혼이 나서 달아난 이상에는 인젠 다시 안 오거나 온다 할지라도 밤에나 몰래 올 것이다. 여섯 시가 지났다. 밤 일곱 시도 지났다. 사면은 캄캄하였다. 그때 앞집에서 무슨 숭얼숭얼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우리 집으로 향한 담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왔다!」 나는 아내를 재촉하여 가지고 앞집으로 돌아나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지극히도 귀밝은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가 돌아오는 기색을 어느덧 살피고 쓰레기통을 내어 버린 채 또 달아났다. 또 잃었다. 우리는 할수없이 앞집에 다시 부탁하여 쓰레기통을 대문 안에 들여놓고 대문을 잠그게 하였다. 그가 몰래 다시 와서 쓰레기통을 가지고 돌아감을 막기 위해서다. 밤도 열 시가 지났다. 우리도 인젠 하릴없이 잘 준비를 하려 하였다. 그때였다. 앞집에서 또다시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낮추어서 주인을 찾는 소리로서 그것은 정녕 쓰레기통 장수의 소리였다.   그를 잡았다. 앞집에서 쓰레기통값을 내주는 것을 받으렬 때에 잡은 것이다. 「당신이 뒷집에 쓰레기통을 판 사람이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는 딱 잡아떼었다. 「몰라? 여보―」 나는 뒤따라 나온 아내에게 돌아섰다. 「분명히 이 사람이지.」 「―그 사람 같아요.」 그 사람이 너무도 딱 잡아떼므로 아내도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내가 언제 당신네 집에 갔더란 말요? 나는 이 동리에는 처음으로 온 사람이오.」 아내가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보고 그도 펄펄 날뛰었다. 그러나 낮에 두 번이나 도망을 한 일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자신을 얻은 나는 그의 팔을 내 옆에 꽉 꼈다. 「여기서 시비를 가릴 거 없이 요앞 파출소까지 잠시 갑시다.」 그리고 나는 그를 끌고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언덕길을 절반쯤 내려와서다. 그가 나를 찾았다. 「여보십쇼.」 「왜?」 「이 팔을 놔 주십시오.」 「못 놓겠소.」 「그럼 잠깐 거기 들어서서 한 말씀만 여쭙겠습니다.」 「못 들어서겠소.」 「그럼 여기서라도 여쭙겠습니다.」 「그럼 여쭈우.」 「저― 그― 그때는 잠― 잠깐 속였습니다.」 「?」 「미안합니다. 잠깐 속였습니다.」 「속여?」 「네― 그 영업상 거짓말을 조금 했습니다.」 「거짓말을 해?」 「네. 용서해 주십시오.」 이전에 차에서 사기꾼을 잡은 일이 있었다. 내 뒷주머니에 사람의 촉감을 느끼고 빨리 그리로 손을 돌리매 웬 사람의 손이 하나 붙잡혔다. 그때 그 손의 주인이 애원하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눈을 보고 나도 말없이 눈으로 한 번 꾸짖은 뒤에 슬쩍 놓아 주었다. 오래 잡기를 벼르던 인물이로되 급기 잡고 그이 애원을 들으매 경찰까지 끄을고 갈 용기가 안 생겼다. 그래서 나는 몇 마디 설유를 하였다. 영업상 값을 속이는 것은 혹은 용서할 수가 있으되 부리(府吏)의 행세를 하면서 부녀자나 무식한 사람들만 있는 데를 골라 다니며 억지로 팔아먹는 것은 용서치 못할 일이니 이뒤에는 아예 그런 행사는 하지 말라고―   그날 밤 아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잡는 맛이 여간이 아니외다. 잡는 맛이 그만하다면 또 한 번 속아 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