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 - 김동리 본 데이터의 무단 전제 및 복제를 금합니다. 원하는 목차로 커서를 옮겨 를 누르십시오. ----- 차 례 ----- 작가 소개 화랑의 후예 산화(山火) 바위 무녀도(巫女圖) 황토기 등신불 역마 솔거(率居) 늪 밀다원 시대 까치소리 작가 소개 - 한국 현대문학의 거봉인 김동리는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을 한 이후,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화랑의 후예),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산화)가 각각 당선되면서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았다. - 그 이후 <무녀도>, <바위>, <술> 등 일련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1937년에는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어머니>, <솔거> 등을 발표하였다. - 그 이후 1946년에는 '한국청년문학가 협회' 초대 회장직을 역임했으며, 1952년에는 '문인협회' 부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 1958년에는 <사반의 십자가>로 예술원 문학부분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1973년에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이 되기도 했다. 화랑의 후예 1 황진사(黃進士)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해 가을이었다. 아침을 먹고 등산을 할 양으로 신발을 신노라니 웃방에서 숙부님이 부르셨다. "오늘 네 날 따라가볼래?" 숙부님은 방문을 열고 툇마루에 나오시며 이렇게 물었다. "어디요?" "저 지리산에서 도인이 나와 사주와 관상을 보는데 아주 재미난단다." "싫어요. 숙부님이나 가슈." 나는 단번에 거절하였다. "왜, 싫긴?" "난 등산할 참인데......." "것두 좋긴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한번 따라와봐....... 무슨 사주 관상 뵈이는 게 재미난단 말이 아니라, 그런 데서도 배울 게 있으니....... 더구나 거기 뫼드는 인물들이란 그대로 조선의 심벌들이야." "조선의 심벌요?" 나는 반쯤 웃는 얼굴로 이렇게 물은즉, 숙부님도 따라 웃으며, "그렇지 심벌이지." 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의 심벌'이란 말에 솔깃해진 나는 등산하려던 신발을 끄르기 시작하였다. 파고다 공원에서 뒷문으로 빠지면 서울 중앙 지점치고는 의외로 번거롭지도 않은 넓은 거리가 두 갈래 갈려져 있고, 바로 그 두 갈래로 갈려지는 길목에 '중앙여관'이란 간판을 걸고 동남쪽으로 대문이 난 여관이 있고, 이 여관에 소란한 차마 소리와, 사람의 아우성과 입김과 먼지와, 기계의 비명이 주야로 쉬지 않는 도시의 심장 속에 - 접신통령(接神通靈)의 간판을 내걸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도인'이 있다. 방 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술이 묻고 때에 결은 옷을 입고 눈에 핏줄들을 세우고 볼에 살이 빠져 광대뼈들이 불거진 불우한 정객, 불평지사들이며, 문학가, 실업가, 저널리스트, 은행원, 회사원들이 무수히 출입하고, 금광장이, 기미꾼들이 방구석에 뒹굴고 있었다. 나는 무슨 아편 굴 속에나 들어온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얼굴을 붉히며 숙부님을 향해 얼른 다녀 나가자는 눈짓을 했을 때, 그러나 숙부님은 나의 눈짓에 응한다느니보다는 분명히 묵살을 하고 나를 좌중에 소개를 시키셨다. 바로 그때, "아, 이분이 김 선생의 조카 되시는 분이구랴." 하고, 거므스름한 두루마기에 얼굴이 누르퉁퉁한, 나이 한 육십 가량 된 영감 하나가 방구석에서 육효를 뽑다 말고 얼굴을 돌리며 어눌한 음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는 하도 살아갈 지모가 나지 않아 육효를 뽑아보았노라 하면서 반가운 듯이 삼촌 곁으로 다가앉았다. 그의 까닭없이 벗어진 이마 밑의 두 눈엔 불그스름한 핏물 같은 것이 돌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고치고 머리를 굽히려니까, "괘, 괜찮우. 그, 자리에 앉우." 하고 손을 내저으며, "나 황일재(黃逸齋)유, 이 와, 완장 선생과는 참 마, 막역지간이우." 하는 것이었다. 좌중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집중된 듯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나와 바로 마주앉은 접신통령의 도인은 그 손톱 자국과도 같이 생긴 조그만 새빨간 눈으로 몇 번 나의 얼굴을 흘낏흘낏 보고 나더니, "부모와는 일찍이 이별할 상이야." 불쑥 이렇게 외쳤다. "형제는 많지 않고, 초년은 퍽 고독해야......." 하고, 또 인중이 명윤하고 미목이 수려하니 학문에 이름이 있으리라 하고, 준두와 관골이 방정해서 중정에 왕운이 있으리라 하고, 끝으로 비록 부모가 없더라도 부모에 못하지 않은 삼촌이 계셔서 나의 입신 출세에 큰 도움이 되리라 하였다. 나는 어쩐지 쑥스럽고 거북하여져서 얼굴을 붉히며 그만 자리를 일어나버렸다. 내 뒤를 이어 숙부님이 일어나시고 따라 황일재 황진사가 밖으로 나왔다. 파고다 공원 뒤에서 황진사는 때 묻은 헝겊 조각 같은 모자를 벗어쥐고 그저 몇 번이나 절을 하고 나서 공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디루 가우?" 숙부님이 물으신즉, "나 여기 공원에서 친구 좀 만나구......." 했다. 해는 오정에 가까웠다. 구름 한 점 없는 갠 하늘엔 북한산이 멀리 솟아 있었다. 안타까움에 내 몸은 봄날같이 피곤하였다. 2 나뭇잎이 다 지고 그해 가을도 깊어졌을 때다. 삼촌은 금광에 분주하시느라고 외처에 계시고 없는 어느 날 막 밥상을 받고 있으려니까, 문 밖에서 '에헴, 에헴' 연달아 헛기침 소리가 나더니, "일오너라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밥숫가락을 놓고 문 밖으로 나가보니, 어느 날 관상소에서 육효를 뽑고 있던 그 황진사였다. 이날은 처음부터 그 '조선의 심벌'이란 생각을 머릿속에 가지지 않은 탓인지,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불쾌하거나 우울하지도 않고, 그보다도 다시 보게 된 것이 나는 오히려 반갑기도 하였다. "웬일로 이 추운 아침에 이렇게......." 인사를 한즉, "괘, 괜찮우. 거 완장 어른 안 계슈?" 하는 소리는 전날보다도 더 어눌하였다. 그 푸르죽죽하고 거무스름한 고약때 오른 당목 두루마기 깃 밖으로 누런 털실이 내다뵈는 것으로 보면 전날보다 재킷 한 벌은 더 입은 모양인데도 그렇게 몹시 추운 기색이었다. "네, 숙부님은 출타하셨어요." 한즉, "어디 출타하신 곳 모루. 예서 얼마나 머, 멀리 나가셌수?" "네." "언제쯤 도, 돌아오실 예, 예정......." "글쎄올시다, 아마 수일 후라야......." 한즉, 갑자기 그는 실망한 듯이, "아아이." 하는 소리가 저 목구멍 속에서 육중한 신음과도 같이 들려왔다. "어쩐 일로 오셨다가...... 춘데 잠깐 들오시죠." 한즉, 그는 두루마기 속에 찌르고 있던 손을 빼어 모자를 쥐려다 말고 한참 동안 무엇을 망설거리며 내 눈치를 보곤 하더니, 모자를 잡으려던 손으로 콧물을 닦으며 왼편 손은 사뭇 두루마기 속에서 무엇을 더듬어 찾고 있었다. "이거 대, 대, 댁에 잘 간수해두." 하며 종이 조각에 싼 것을 주는데 받아서 보니 이건 흙에다 겻가루를 섞은 것 같아 보였다. "......?" 내가 잠자코 의아한 낯빛으로 그를 쳐다보려니까, 그는 어느덧, 오연(傲然)한 태도를 가지며 위엄 있는 음성으로, "거 쇠똥 위에 개똥 눈 건데 아주 며, 며, 명약이우." 한다. 나는 그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해 있으려니까, "허어, 어떻게 귀중한 약인데그랴!" 하며 그 핏물이 도는 두 눈에 독기를 띠고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민망해서, "대개 어떤 병에 쓰는 게죠?" 하고 물은즉, "아, 거야 만병에 좋은걸 뭐." 하며, 나를 흘겨보고 나서, "거, 어떻게 소중한 약이라구...... 필요한 때는 대, 대갓집에서두 못 구해서들 절쩔매는 겐데, 괜히......." 그는 목을 내두르며 무척 억울한 듯한 시늉을 지었다. 나는, 왜 그가 이렇게 공연히 분개하고 억울해 구는지를 알 수 없어, 한순간 내 자신을 좀 반성해보고 있으려니까 그도 실쭉해서 잠자코 있더니, 갑자기, "괘앤히 모르고들그랴." 또 한번 고함을 질렀다. 내가 막 아침 밥상을 받았다 두고 나간 것을 언짢이 생각하고 몇 번이나 힐끔힐끔 밖을 내다보시곤 하던 숙모님이, 기다리다 못해, "얘, 무얼 밖에서 그러니?" 하고, 어지간하거든 손님을 모시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밖에서'란 말에 힘을 주어 주의를 시킨다. 바로 그때였다. "거, 아침밥 자시고 남았거든 좀......." 하고, 입가에 비굴한 웃음을 띠고 고갯짓을 하고 하는 양은 조금 전에 흙가루를 내어놓고 호령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나는 그를 방에 안내한 뒤 나의 점심밥을 차려 내오게 해였더니 그는 밥상을 받으며 진정 만족한 얼굴로, "이거 미안하게 됐소그랴." 하였다. 그는 밥을 한입에 삼킬 듯이 부리나케 퍼먹고 그릇을 긁고 하더니, 숟가락을 놓기가 바쁘게 곧 모자를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번이나 절을 하곤 했으나, 아까의 약에 대해선 아주 잊어버린 듯이 다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 후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 또 황진사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그이 친구라면서 그보다 키는 더 크고 흰 두루마기는 입었으되 그에 지지 않게 눈과 코와 입이 실룩거리는 위인이었다. 이 흰 두루마기 친구는 어깨에 먼지투성이 된 자그만 책상 하나를 메고 왔다. 황진사는, "이거 댁에 사두." 하고 거의 명령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글쎄올시다. 별루......." "아아이, 값이 아주 염하니 염려 말구 사두." "그래두, 별루 소용이 없는 걸......." "아아이, 값이 아주 염하대두그랴." "......." "자, 오십 전 인주." 황진사는 그 누르퉁퉁하고 때가 묻은 손바닥을 내 앞에 펴보였다. "글쎄 온 소용이......." "그럼 제에길, 이십 전만 내구 맡아두." "......." "것두 싫우?" "......." "그럼 꼭 십 전만 빌려주." 황진사는 어느덧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애걸을 했다. "나 그날 댁에서 그렇게 포식한 이래 여태 굶었수다. 여북 시장해서 이 친구를 찾아갔겠수. 아 그랬더니 이 친구도 사정이 딱했던지 사무 보는 이 책상을 내주는구랴." 그는 손으로 콧물을 닦아가며 한참 신이 나서 떠들어대었다. 그의 친구란 사람은 연방 입을 실룩거리며 외면을 하고 서 있었다. 한 오분 뒤, 내가 안에 들어가 돈 이십 전을 주선해 나와 그들에게 주었을 때, 그들 두 사람은 무수히 절을 하고 나서 책상을 도로 메고 가버렸다. 3 길바닥이 얼어붙고 먼 산에 눈발이 치고 그해는 이른 겨울부터 몹시 추웠다. 그 동안 숙부님은 몇 번이나 집에 다녀가시고 관상소 출입도 더러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황진사의 얼굴은 그 뒤로 뵈지 않았다. 다만 삼촌을 통해서 그의 시골이 충청도 어디란 것과, 그의 문벌이 놀라운 양반이란 것과, 그의 조상에는 정승 판서 따위가 많이 났다는 것과, 그 자신도 현재 진사 구실을 한다는 것과, 그의 머릿속은 자기 가벌에 대한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가지 우스운 것은 그가 곧잘 진사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처음 관상소에서 어느 장난꾼이 농담 삼아 그에게 서전과 시전을 외게 하여 강급제를 주고 진사라 부르기 시작한 것인데 그 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반조롱으로 '황진사, 황진사' 부르게 된, 그러나 황진사 자신은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럴싸하게 여겨 요즘 와서는 아주 뽐내고 진사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몹시 추운 날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넣고 방구석에 숯불을 피우고 나는 온종일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낮이 짐짓했을 때다. 밖에서, "일오너라아." 하는 소리가 마치 '사람 살리우' 하는 소리같이 바람결에 새어들어왔다. 나가보니 황진사가 연방 손으로 콧물을 닦고 서 있는 것이다. 나는 대체 얼어 죽지나 않았나 하고 궁금해하던 차라 이렇게 다시 보게 된 것이 진정 반가웠다. 나는 곧 그를 나의 방에 안내한 뒤, "그런데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한즉, "거야 친구 집에서 지냈지요 뭐, 흐흐......." 하며 재미난 듯이 웃었다. "아 참, 완장 선생은 여태 안 왔수?" "수차 다녀가셨지요." "아, 그렁거루 난 여태 한 번두 못 뵈았으니 이거 죄송해서, 흐흐......." 그는 숯불을 안고 앉아 또 히히거리고 웃었다. 흰떡을 사다 숯불에 구워서 그에게 대접을 하고, 나는 아까 하다 둔 일을 마저 해치울 양으로 잠깐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까, 그는 언 것 구운 것도 가리지 않고 한참 부지런히 집어먹더니 그 동안 흥이 났는지 목청을 뽑아서, '관관재구는 재하지주로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로다.' 하고, 시전(詩傳)을 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동안 책상에 앉아 있느라고 모른 체하고 있으니까, "아, 성인께서도 실수가 있단 말야!"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아, 공자님께서 시전에 음운을 두셨거든!" 그는 무슨 큰 문제나 발견한 듯이 나 있는 쪽을 곁눈질로 흘겨보며 마구 기염을 뽑는 것이다. 그래두 내가 모른 체하고 있으니까 그는 화로 곁에서 일어서더니, 두루마기 자락을 뒤로 짖히고 저고리섶을 위로 치들고 손을 넣어 무엇을 꺼내는 시늉을 하였다. 나는 속으로, 옷의 이를 잡아내어 숯불에 넣으려는 겐가, 하고 있는데 그는 또 한번 나 있는 쪽을 흘겨보고 나서 배에 두르고 있던 때 묻은 전대 하나를 꺼내었다. 전대 속에서는 네 귀가 다 이지러지고 종이빛까지 우중충하게 묵은 사책 한 권과, 백지로 싸서 노끈으로 챙챙 감아 맨 솔잎 한 줌과 휴지 몇 장이 나왔다. "거 무슨 책이우?" 내가 이렇게 물은즉, "아, 주역책이지그랴." 하고 된소리를 질렀다. 과연 이지러진 네 귀마다 넓적넓적한 괘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주역책임에 틀림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주역책을 왜 하필 전대에 넣어서 두르고 다니느냐고 물은즉, "아, 공자님께서도 역은 삼천독을 하셨다는데그랴." 하고 된소리를 질러놓고 나서, 다시 조용히 음성을 낮추어, "아, 여북해 지략의 조종이요, 조화의 근본 아니오." 하였다. 나는 처음 관상소에서 그를 보았을 때부터 '하도 지모가 나지 않아 육효를 뽑아 보았노라' 한 것을 들은 일이 있어서 그가 평소에 얼마나 이 '지략'과 '조화'를 부려보고 싶어 하는 위인인가를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이와 같이 언제나 몸에 지닌 솔잎 한 줌과 네 귀 모지라진 주역 속에서 우러나온 음양 오행의 지모 조화가 겨우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 약과, 친구에게 책상을 들리우고 다니는 것쯤인가고 생각할 때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녁 때가 되어 그는 전대를 다시 배에 두르고 돌아갔다. 종종 오라고 한즉, 매양 신세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하며 절을 몇 번이나 하였다. 그해 겨울 그는 내가 성이 가시도록 자주 나를, 아니 내 삼촌을 찾아왔다. 그는 언제나 나를 볼 때마다 오랫동안 삼촌께 못 뵈어 죄송하다고 하였다. 그는 나에게 한시를 지어달라면서 사오 차나 운자를 가지고 왔다. 어디 쓰느냐고 물으면 친구의 환갑 잔치에 내노리라고 한다.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면 이참봉, 윤승지, 무슨 참판, 어디 남작하고 모조리 서울서도 유수한 대가와 부자들의 이름만 꼽지만 거리에서 그가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나 가끔 친구라고 데리고 오는 것을 보면 그의 말과는 딴판으로 황진사 자신보다 별로 유여한 축들도 아니었다. 좋은 규수가 있으니 장가를 들지 않겠느냐고, 그는 여러 차례 나를 졸랐다. '좋은 규수'가 어딨느냐고 물으면, 단번에 친구의 딸이라 하고, 어떤 친구냐고 하면 무슨 승지, 무슨 자작하는 예의 대갓집 따위들을 꼽았다. 색시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하면 매양 자기의 누르퉁퉁하게 부운 얼굴을 가리키며 이렇게 아주 유복스레 생겼다고 한다. 내가 웃으며, 색시가 일재 선생 같아서야 좀 재미 적다고 하면, "아, 일등 규수라는데그랴." 하고 화를 내었다. "그렇지만 너무 육중해서야." 하면, "아, 거기 식록이 들었는걸그랴. 아, 여북해 일등 규수라는데 그래도 못 믿어서그랴?" 하고 기를 쓰곤 하였다. 4 눈에 괸 물이 눈물이라면 황진사의 두 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있었다. 그는 가끔 나에게 그의 혈육 없음을 한탄하였다. '친구' 집 회갑 잔치 같은 데서 떡국 그릇이나 배불리 얻어먹고 주기라도 얼근해서 돌아오는 날은, "아, 구가 직손으로 혈육 한점이 없다니, 천도가 무심하지그랴." 이렇게 개탄하곤 했다. "혼담은 시방 있지만, 어디 천량이 있어야지." 이런 말도 하였다. 언젠가 숙모님이, 그의 맘에 제일 드는 규수의 나이와 이름을 물었더니, 하나는 열아홉 살이고 하나는 갓 스물인데 열아홉짜리의 성은 오씨고 갓 스물짜리는 윤씨라 하였다. "열아홉 살?" 듣던 사람이 놀라니, "아, 자식을 봐야지유." 하였다. 숙모님이, "좀 나이 지긋해두 넉넉할걸 뭐." 하니, "그야 그렇지유, 허지만 암만하면 젊은 규수를 당할라고." 하는 것이, 아무래고 그 열아홉 살인가 갓 스물인가 난 규수에게 마음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숙모님이 황진사의 중매를 들게 되었다. 그 즈음 황진사는 거의 날마다 우리 집에 들리게 되었는데 그의 딱한 형편을 은근히 걱정하고 있던 숙모님이, 그때 마침 집에 돌아와 계시던 숙부님과 의논하고 그를 건넛집 젊은 과부에게 중매를 들어주자고 하였다. 나는 물론 그리 되기를 원했다. 숙부님은 웃는 얼굴로, "아무리 과부긴 하지만 그렇게 늙고 가진 게 없는 이한테 가려구 할지?" 하셨다. 그러나 숙모님이, "젊고 예쁜 홀아비가 어딨어요. 달린 자식 없구 한 것만 해두......." 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고 나도 적이 안심이 되었다. 그날 저녁 때 황진사가 온 것을 보고, 숙부님이, "일재, 여기 젊고 돈 있는 색시가 있는데 장가 안 들라우?" 하고 물어보았다. "아, 들면야 좋지만 선생도 아시다시피 천량이 있어야지." 하는 그이 얼굴에는 완연히 희색이 넘쳤다. 그의 얼굴에 희색이 넘침을 보신 숙모님은 돈이 없어도 장가를 들 수 있다는 것과, 장가만 들게 되면 깨끗한 의복에 좋은 음식도 먹을 수 있으리라 하는 것을 일러주신즉, "아, 그럼야 여북 좋갔수. 규수 나인 몇 살이구...... 집안도 이름 있구......." 그는 연방 입이 벌어져 침을 흘리며 두 눈에 난데없는 광채를 띠고 숙모님께로 대어드는 판이었다. "과부래야 이름 아깝지 뭐, 이제 나이 삼십밖에 안 된걸......." 숙모님도 신명이 나는 모양으로 이렇게 자랑삼아 말한즉, 황진사는 갑자기 낯빛이 홱 변해지며, "아 규, 규수가, 시방 말씀한 그 규수가, 과, 과부란 말씀유?" 이렇게 물었다. "왜 그류."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황진사의 닫힌 입 가장자리에 미미한 경련이 일어나며, 힘 없이 두 무르팍 위에 놓인 그의 두 손은 불불불 떨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 소리가 똑딱똑딱하고 들리었다. 그는 조용히 고갯짓부터 좌우로 돌렸다. "당찮은 말씀유....... 흥, 과, 과부라니 당하지 않은 말씀을......." 그는 곧 호령이라도 내릴 듯이 누렇게 부은 두 볼이 꿈적꿈적하며 노기 띤 눈을 부라리곤 하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황후암(黃厚庵) 육대 직손이유." 하고, 다시, "황후암 육대 직손이 그래 남의 가문에 출가했던 여자한테 장가들다니 당하기나 한 소리요....... 선생도 너무나 과도한 말씀이유." 그는 분함을 누르노라고 목소리에 강한 굴곡이 울리었고 낯에는 비통한 오뇌의 경련이 일어나 있었다. "내일이래두 그럼 어린 숫처녀 골라 혼인하시지요, 뭐......." 하고 숙모님도 무안해서 일어났다. 숙부님도 딱했던지, "일재, 일재 염려 말우, 농담했수. 그럼 일재 되구야 한번 타문에 출가했던 사람과 혼인을 하다니 될 말이유? 내가 어디 황후암을 모루, 황익당을 모루?" 한즉, 그때야 그도, "아아무렴그랴, 그렇지 게 어디라고 함부로 어림없이들....... 황후암이 누구며 황익당이 누군데그랴?" 얼굴을 펴고 이렇게 높은 소리로 외쳤다. 5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었다. 숙부님은 사뭇 금광에 계시느라고 새해 명절까지도 숙모님과 나와 단둘이서 쓸쓸히 맞게 되었다. 섣달 중순 즈음 해서 한 보름 동안 일금 얼굴을 뵈지 않던 황진사가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대문 밖에서, "일오너라아." 하고 언제보다도 호기 있게 불렀다. 그 고약때에 결은 두루마기를 빨아입은 위에 어이한 색안경까지 시커먼 걸로 하나 쓰고는, 숙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왔노라고 하였다. 숙부님이 안 계시다고 하니 그러면 숙모님이나 뵙고 가겠다고 하였다. 숙모님은 마침 있는 음식에 반가워 굴으시며, 떡과 술상을 차려 내주었다. 그는 몇 번이나 완장 선생을 못 뵈어 죄송스럽다고 유감의 뜻을 표하고는, 술을 몇 잔 들이켜고 나더니, "일배 일배 부일배로 우리 군사 사람끼리 설쇰을 이렇게 해야지." 흥취에 못 배기겠다는 듯이 손으로 무르팍을 치곤 하였다. 숙모님이, "새해에는 장......." 하다가 말끝을 움츠려 들여버리자 그는 그 말끝을 잡아서, "금년 신운은 청룡이 농주랬지만 아, 천량이 생겨야 장갈 들지." 하였다. 이튿날도 찾아왔다. 사흘째도 왔다. 그리하여 정월 한 달 동안은 거의 매일같이 숙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려야 할 것이라면서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결국 숙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뒤 한철 동안을 그는 아주 우리 집에 발길을 끊고 나타나지 않았다. 검은 둥치에 새움이 트고 버들개지에 물기가 흐르는 봄 한철을 나는 궁금한 가운데 보내었다. 봄도 지나 여름이 되었다. 새는 녹음 속에 늙고 물은 산골을 훑으며 흘렀다. 그때 돌연히 숙부님이 어떤 사건으로 피검(被檢)이 되자, 나는 시골 어느 절간에 가 지내려던 피서 계획을 포기하고 괴로운 여름 한철을 서울서 나게 되었다. 물론 숙부님의 사건이란 건 당시 나도 잘 몰랐는데, 세상에서 들리는 말로는 만주에서 발단한 '대종교 사건'의 연루라는 것으로 숙부님이 검거, 금광 채굴 중지, 가택 수색,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당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은 서대문 밖의 숙부님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 광화문통을 지나오려니까, "아, 이건 노상 해후로구랴!"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연록색 인조견 조끼에 검은 유리 안경을 쓴 황진사가 빨아말린 두루마기를 왼쪽 팔에 걸고, 해묵은 누렁 맥고모는 뒤통수에 잦혀쓰고, 그 벗어진 앞이마를 햇살에 번쩍거리며 총독부 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네, 일재 선생 오래간만이올시다." 하고, 내가 인사를 한즉, "댁에서들 모두 태평하시구, 완장 선생께도 소식 자주 듣고....... 아 이건 참 노상 해후로구랴!" 또 한번 감탄하고 나더니, "이리 잠깐 오, 날 좀 보." 하고, 그는 나를 한쪽 구석에 불러놓고, 지극히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노라고 한다. 나는 사정이 전과 다른 형편에 있던 터이라 혹시하 이런 데서 무슨 숙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나 알게 되나 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긴장한 낯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인데, 그는, "아, 내 조상께서도 모르고 지낸 윗대 조상을 근일에 와서 상고했구랴."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어리둥절해 있노라니, "왜 그루, 어디 편찮우?" 한다. 괜찮으니 얼른 마저 이야기하라고 하니, "아, 이런 수가....... 온, 내 조상이 대체 신라 적 화랑이구랴!" 하고 혼자 감개해서 못 견디는 모양이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한즉, 근일에 여러 가지 서적을 상고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황진사를 광화문통에서 만난 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숙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총독부 앞에서 전차를 내려 필운동으로 들어가노라니 모르핀 중독 환자 치료서 옆에서 자칫하면 모르고 지나칠 뻔하다가 그를 보게 되었다. 머리가 더부룩한 거지 아이 몇 놈과 아편 중독자 몇과 그밖에 중풍쟁이, 앉은뱅이, 수족 병신들이 몇 둘러싼 가운데에 한두어 뼘 길이쯤 되는 무슨 과자 상자 같은 것을 거꾸로 엎어놓고 그 위에 비쩍 마른 두꺼비 한 마리와 그 옆의 똥그란 양철통에 흙빛 연고약을 넣어두고 약 쓰는 법을 설명하는 위인이 있다. "두꺼비 기름, 뚜꺼비 기름, 에헴, 두꺼비 기름이올시다. 옻 오른 데도 쓰고, 옴 오른 데도 쓰고, 등창, 둔창, 화상, 동상, 충치, 풍치, 이 앓는 데도 쓰고, 어린이 귀젖 앓는 데, 머리가 자꾸 헐어 들어가 항에 아다마(대머리) 되랴는 데, 남녀노소, 어른, 애, 계집, 사내 할 것 없이, 서울내기 시굴띠기, 물을 것 없이, 그저 누구든지 헌 데는 독물을 빼고, 살이 썩는 데는 거구생신을 하고, 자, 깊이 깊이 감춰두면 반드시 한 번씩은 찾게 되는 약! 첩첩이 싸서 깊이 깊이 넣어두면 언제든지 한 번은 보배가 되는 약! 자아, 두꺼비 기름이올시다. 두꺼비 코에서 짠 두꺼비 기름, 자아, 그러면 이 두꺼비가 얼마나 무서운 신효가 있는가를 여러분의 두 눈앞에 보여드릴 테이니까 단단히 보시오." 그는 약물에 흙빛 고약을 찍어 저으며, "자아, 단단히 보시오. 우리 몸에 있는 썩은 피가 두꺼비 코끝만 들어가면 그만 이렇게 홍로일점설, 봄철의 눈과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하고 약물 접시를 들어 여러 사람 앞에 한 번 내두르고 나서 기침을 한 번 새로 하더니, "여러분, 여기 계시는 이분은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선생이올시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두 달 전부터 충치를 앓으셔서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이 약으로 말미암아 어저께 벌레를 내고 오늘부터 이렇게 이곳까지 나와 주시게 되었습니다." 하고, 궐자가 손으로 가리키는 바로 그 곁에는, 전날에 보던 그 검정색 안경을 쓴 우리 황진사가 점잖게 먼 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궐자는 다시 말을 이어, "선생께서는 또 이 방면에 대한 연구가 대단히 깊으실 뿐 아니라 곰의 쓸개, 오리의 혀, 지렁이 오줌, 쥐의 똥, 고양이 간 같은 걸로 훌륭한 약을 지어서 일만 가지 병마를 퇴치시킬 수도 있는, 말하자면 이인과 같은 능력을 가지신 어른이올시다!" 할 즈음에 순사가 왔다. 에워싸고 있던 거지, 아편쟁이, 수족 병신들은 각기 제 구석을 찾아 헤어졌다. 이 꼴을 보신 숙모님은 나에게 눈짓을 하시며 앞서 가셨다. 나도 숙모님 뒤를 쫓아 한참 오다 돌아다본즉, 아까 연설을 하던 작자는 빈 과자 상자에 마른 두꺼비와 고약통을 담아 가슴에 안고, 황진사는 점잖게 두 손을 두루마기 옆구리에 찌른 채 순사를 따라 건너편 파출소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산화(山火) 1 사방 산으로 둘러싸인 뒷골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대개 숯을 굽는다. 굽지 않으려야 않을 수도 없고 또 동구 앞까지만 가면 참봉네 화물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으니 옛날처럼 읍내까지 지고 들어가야 할 수고는 던다 하여, 무슨 큰 유리한 조건이나 되는 것처럼 모두들 생각하는 편이었다. 오늘도 그들은 동구 앞까지 숯을 져내고 시방 굴로들 돌아가는 길이었다. "뒷실 어룬은 몇 짐 져냈능교?" 젊은이가 묻는다. "나아이? 난 넉 짐......자네는?" "나요? 난 다섯 짐요." 그들은 갈림길에서 갈리었다. 해는 산마루에 걸려 있다. 뒷실이는 젊은이와 갈리어 숯굴까지 왔다. 굴 안에는 벌건 불이 타고 있다. 그는 숯굴 곁에 있는 헛간에 가서 지게를 벗고 광이를 들고 나온다. "내일쯤은 꺼내 묻을구나." 그는 숯굴 위로 오르는 흰 연기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처음엔 검은 연기, 다음엔 푸른 연기, 맨 나중이 흰 연기라 하지만, 이 흰 연기 중의 여러 빛깔을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광이로 숯굴 곁의 흙을 파기 시작하였다. 내일은 숯을 묻으려는 것이었다. 솔숯 같으면 한 예니레 불이 타면 앞뒤 아궁이를 꽉꽉 막아놔두면 그만이지만, 참숯은, 참숯 중에도 이 백탄은 벌건 불덩어리를 그대로 꺼내어 흙에다 묻고 문질러야 하는 것이다. 건너편 산골에서는 '송아지'가 혼자서 나무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이 나무 넘어간다. 에라에라 넘어간다 심심산 이후후야 건너 산으로 물러가자 어제 벼린 무쇠 도끼에 낙락장송이 다 넘어간다. 한참씩 저르렁저르렁하고 도끼 소리가 산골에 울리다가는 '지저끈 쾅' 하고, 나무 자빠지는 소리가 나곤 한다. 뒷실이는 흑흑하고 흙을 파던 광이를 멈추고 꽁무니에서 곰방대를 빼어물었다. "오늘이 초엿새라, 이달 초순께 산고할께랬는데, 아아, 이건 낭팬걸......숯은 아직도 참봉 영감이 말한 데서 반도 못 냈고, 이거 어째야 되노." 뒷실이는 잠깐 동안 곰방대를 물고 앉아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다. 건너편 산골에는 붉고 검고 푸르죽죽한 누더기를 두른 이골 사람들이 솔잎을 따고 있다. 뒷골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많이 솔잎을 먹게 된다. 솔잎을 먹으면 장수를 하느니, 병이 없어지느니, 정신이 좋아지느니, 별별 영효를 다 들먹이며 서로 권하고 기리는 것이나 기실 그나마 씹고 굶어죽지 않으려는 수작들이다. 풍년이라도 풀뿌리를 캐야 봄을 치르는 이곳이라 먹을 만한 풀뿌리가 쉽사리 있을 리도 없고, 또 이십 리 삼십 리씩이나 먼 산을 가서 혹시 칡뿌리깨나 본다 하더라도 흙이 얼어붙어서 광이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쓰든 떫든 결국 솔잎을 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입에 곰방대를 문 채 건너편 산골로 어정어정 내려갔다. 그는 산기슭에서 손을 들어 누구를 부르려다 말고, 그냥 멀거니 바라보고 서 있다. 그러자, "아배." 하고, 여섯 살 먹은 작은쇠가 시퍼런 콧덩이를 입에 물고 이쪽으로 달려온다. 겨드랑이에 낀 조그만한 오그랑 바가지에는 파란 솔잎이 담겨 있다. "아배, 저기 돌이 즈 엄마가 야아, 석탄 파다가 야아, 죽었단다이." 작은쇠는 그 아버지를 따라 저희 숯굴 곁으로 가며, 아까 솔잎 따면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응, 누가?" 뒷실이는 그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느라고 잘 듣지 않아서, 이렇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전에 우리 동네 안 있었나, 저 돌이 즈 엄마말이다." "돌이 엄마가 석탄을 파다 죽어?" "응." 뒷골에는 각별나게 흉년이 잦다. 해마다 어디론지 없어지는 사람도 많다. 지금 작은쇠가 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돌이 엄마'도 결국 솔잎 못 먹어서 달아난 사람 중의 하나다. 어둡다. 어느덧 햇빛이 없다. 산중이란 본디 그렇거니와 이 운문산(雲紋山) 뒷골은 더욱 오후 해가 절반이다. 낮이나 짐짓한 해가 산마루에 걸리는가 하면 벌써 황혼이 시작된다. 뒷실이는 숯굴 앞에 앉아 어느덧 두 꼭지째 담배를 넣어 물었다. 담배라야 구기자잎이면 썩 상등이요, 대개는 호박잎이나 아무런 잡풀이나 되는 대로 뜯어 말린 걸로 담배 피우는 신명을 때우는 게지 제법 희연 봉이나 사들고 하는 날이라고는 한 해에도 그다지 여러 번은 아니다. 그런대로 그에게는 곰방대를 빨아 연기를 내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다. 뒷실이란 그의 택호요, 그에게는 또 찬물이란 별호도 있었다. 이 별호는 누가 처음으로 부르게 되었는지 모르나 그의 위인이 찬물처럼 단맛도 아무런 까닭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여간 큰 변이나 불행이 닥치더라도 놀라 당황한다든가, 흥분하는 법은 없었다. 아무리 아내가 퍼붓고 조르고 쫑알거리고 원망을 해도 꽥 소리 한 번 지르는 법도 없었다. ㄴ은 어머니가 고기 타령을 하든, 어린 자식이 밥 타령을 하든, 그는 들을 만하고 앉아 곰방대만 뻐끔뻐끔 빨면 그만 만사는 절로 해결되어 가는 것,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주는 대로 한 숟갈 뜨고 일터로만 나가면 하루 해는 지는 것이었다. "아배." 어딘지 곧장 사람 소리가 나는 것 같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곰방대를 한 모금 드묵 빨고는 손으로 눈물을 닦고 얼굴을 돌려 사방을 휘휘 살펴보는 것이나 역시 아무것도 없다. "아배." 이번에는 바로 귀곁에서 들려온다. -아니, 이건....... 바로 눈앞에 한쇠가 와 서 있다. "아배, 그렇게 눈이 어둔교?" "응야, 한쇠가?" 그는 또 눈물을 닦으며 한쇠를 쳐다본다. 그의 모친 말마따나 너무 오래 기름기 있는 걸 못 먹어서 그런지 혹시 워낙 불에 시달린 탓인지, 이즈음은 한참 동안만 불을 보고 나면, 그만 눈물이 질질 흐르고 조금만 어두우면 바로 턱 앞에 다가서도록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쇠는 걱정스럽게 그 아버지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이번 숯은 내가 낼난요." 한다. "니가 어떻게?" "저 송아지 아저씨랑 내지요." "......" "......" 아비와 아들은 한참 동안 말 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오늘 장엔 일찍이 댕겨왔나?" "팔기사 진작 팔았지만 삼십 전 받아서 좁쌀 한 되 팔고 성냥 한 갑 사고 나니 그만 미역 살 돈은 없습데요." 그리고 다시, 한쇠는 말을 달아, "참, 아침에 갈 때 윤참봉이 보고, 매양 그라면 숯을 못 굽게 할 게라나요." 한쇠는 이 말을 하기가 어쩐지 숨결이 가빠 물을 마시듯 말이 마디마디 끊어졌다. 2 불긋불긋한 빈대 피와 시꺼먼 숯 그을음이 이리저리 혼란히 그려진 바람벽과, 머리를 내리누르는 듯한 나지막한 천장 아래, 어둠침침하고 가물가물하는 호롱불이 켜져 있다. "아이고 사람이나 얼핏 와야지, 사람이나." 구석구석이 너절하게 흩어진 버선 목다리, 헝겊 나부랑이들을 주섬주섬 거둬 훔치며, 늙은이는 목메인 소리로 혼자 중얼거린다. 네 귀가 아주 떨어져나가고 군데군데 낡아 봉당이 드러난 삿자리 위엔 온갖 때와 오예물이 겹겹이 끼여, 오줌 지린내와 땟국 결은 내가 석유 냄새와 겹쳐서 건건찝질하고 구리터분한 공기가 코를 쏜다. 며느리는 죽은 사람같이 창백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가 이따금 울상을 하여 몸을 뒤틀곤 한다. 이때마다 늙은이는 그저, "아이고, 사람이나 얼른 와야지 사람이나......." 하며, 당황히 뛰어들어 며느리의 배 위에 손을 얹는 것이다. "배가 아프나?" "......" "자꾸 뻐찌르는가뵈." "......" 그러나 며느리는 늙은이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모양으로 그저 '아이고 아이구' 하며 몸을 뒤틀 따름이다. 얼굴에 여기저기 숯검정칠을 하고, 입엔 연방 곰방대를 문 찬물이가 들어오자, 그의 아내는 마침 정신이 나는지 그 잿빛같이 된 얼굴을 들어 무슨 구원이나 청하듯이 잠깐 그를 바라본다. 순간 방 안이 고요해졌다. 그러자 그 구리터분하고 건건찝질한 고약한 냄새가 일시에 코를 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베개를 넣어주며, 아들을 향해, "이 얼굴 좀 봐라, 핏기 한 점 있나, 곧 죽은 사람 안 같으나?" "......" 찬물이는 잠자코 있다. "곧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라, 그래도 인제 겨우 숨을 좀 쉴구만, 아까사 그저 사죽을 틀고 네 구석을 매고 차마 눈으로 못 보겠더라니." 늙은이는 온 얼굴을 비쭉거리며 목메인 소리로 호소하는 것이나, 그래도 아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된장국이라도 한 그릇 끓여줄라니 어디 건더기가 있나, 맨 된장국이야 어디 써서 먹을 수가 있어야지....... 세상에 이런 꼴이 어디 있담? 금년 내내 하루도 쉴 새 없이, 소같이 일을 하고서 제 몸 푸는데 된장국 한 그릇도 못 얻어먹다니, 째, 째...... 그 더운데 보리밭을 맨다, 논을 맨다, 똥물을 여 낸다, 오줌을 여 낸다, 가물에 물 대인다, 이웃집에 소를 얻어다 콩씨를 넣는다, 머슴이래도 상머슴이지, 차라리 머슴 같으먼야 바깥일이나 하지. 이건 바깥일은 바깥일대로 하고 집에 들면 또 질쌈을 한다, 빨래를 한다, 그래도 옷가지를 꿰맨다, 어느 거 한 가지 제 손 안 가고 되는 게 있나? 일 년 열두 달 어느 하루 잠을 실컷 자본 날이 있나, 먹을 걸 남대도록 먹어 본 날이 있나? 낮이고 밤이고 그저 갈팡질팡, 진일 마른일 다 해주고 그러고도 이제 몸을 풀라니 속이 비어 이렇게 널치가 나는구나.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고, 쩌, 쩌, 하느님도 무심하다, 하느님도 무심해." 늙은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찬다. 눈꺼풀이 들썩들썩 뛰며 입이 왼쪽으로 비뚤어져 실룩거린다. "하기사 아무리 세(혀)가 빠지게 해도, 하늘이 비 안 주니 헐 수는 없더라만......." 늙은이의 넋두리는 이제 '하느님'에 대한 원망으로 돌아가려 한다. 아들의 저녁상을 내다줄 것도 잊은 모양이다. 이때 며느리가 몸을 꿈쩍이며, 무어라고 남편의 저녁상 내올 것을 주의하는 기척이 있자, 늙은이도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일어나, 시렁 위에서 아들의 저녁상을 내려놓는다. 도토리 가루에다 서속을 넣고, 거기다 여러 가지 풀뿌리를 얼버무려 죽을 쑨 것이다. "어느 건 아이 밴 에미게는 음식이 젤이라고, 태산도 모두 기름으로 된다는데 일 년 열두 달 풀만 먹고 사는 것이 무슨 주제로 힘을 쓴담? 더군다나 올해사 야속한 하느님이 비까지 안 줘서 쌀알 하나 천신 못하고 있는데....... 무슨 놈의 재앙이 하필 우리 에미 해산에 흉년이 든단 말고?" "......" "사람이 너무 청렴해도 못 쓴단다, 어디 가서 쌀이나 쌀사발하고, 국거리나 좀 하고 못 구해올랑아?" "......" 죽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하고 어느덧 곰방대를 물고 앉아 있는 찬물이는 무어라고 했으면 좋을는지 알 수 없어 입맛을 찍찍 다시었다. "지금 이대로 두면 해산도 안 되고 사람만 점점 더 늘어질 뿐이고 자칫하면 생목숨 잡는다....... 뭐든지 얼른 구해다 속을 좀 채워줘야지 이러고만 있다간 큰일 나는데......." "......" 찬물이는 곰방대를 문턱에 대고 떨며 또 한 번 입맛을 쩍쩍 다신다. "어디든지 나가봐라. 사람 사는 세상에 이다지도 절박할라구, 어디든지 한번 나가봐라." "그렇거던 송아지한테라도 가보소." 오래 두고 연구해서 입을 뗀 찬물이의 의견이란 것이 겨우 이것이다. "그렇잖아도 아까 저녁 때 가보았는데 송아지네가 안직 안 돌아왔두만...... 고것이 꼴값하느라고, 일을 해줬거든 진작 제 집으로 돌아오잖고 되잖게 바람이 들어서 그 어질고 인심덩어린 송아지 속을 생히는가 보더군." "......" "어쨌든 고걸 만나야 될 건데...... 그래도 고개 큰 대문에 드나든다고 그러는 겐지 윤참봉 집에 빌말이 있는지 인저 온 골 사람들이 다 고것한테 청을 하데." 늙은이는 바쁜 듯이 일어나 희끄무레한 겉치마를 두르며 한쪽 손으로는 연방 실룩거리는 왼쪽 얼굴을 싸아쥐며, "아이고 가기사 가보지만 또 헛걸음을 하면 어쩔꼬?" 볼멘 소리로 이렇게 근심을 하며 밖으로 나간다. 늙은이가 나가고 조금 있으니까 찬물이의 아내는 또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찬물이는 평소에 그 우악스럽고 무뚝뚝한 아내가 이렇게 늘어져 누워서 신음하는 것을 볼 때 어딘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어머니의 말마따나 정말 소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래 위인이 부지런한 데다 원력이 좋아서, 천생이 약질로 생긴 그의 시어머니나, 본래 좀 느리고 게으른 편인 찬물이가 입으로만 걱정을 하고 있는 여러 가지 들일을 자기가 떠맡듯이 거의 혼자서 해내는 것을 보고 그녀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아끼는 마음으로, "대강 해라...... 소같이도 한다." 이렇게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작년 봄이다. 어릴 때 친정에서 보니 누에를 먹일 만하더라고 하며 뽕나무 준비도 없이 누에 씨를 받았다. 처음엔 열 잎, 다음엔 한 바구니, 또 그 다음엔 한 광주리, 누에가 자라면 자랄수록 몇 갑절 뽕을 먹어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본래 무어든 하기만 하면 남대도록 해내는 솜씨라, 첫 시험이라 해도 누에 똥을 치는 거며 치잠(治蠶)을 가리는 거며, 여러 해 먹이던 사람같이 익숙했다. 그 차에 홀가분하여 병잠(病蠶) 하나 없이 여간 충실히 되지 않았다. 그만큼 재미도 나고 또 애도 쓰이고 하여 여러 날과 밤을 쉬지 못한지라 얼굴이 부석부석 붓고 두 눈엔 시뻘겋게 핏대까지 서게 됐다. 제사령 사흘째 되던 날부터 누에는 완전히 뽕을 굶게 되었다. 비는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고, 먹을 대를 놓친 누에는 대가리들을 쳐들고 잔박 가로만 기어나왔다. 뒷실댁(즉 찬물이의 아내)은 온종일 벙어리처럼 그 빗대 선 두 눈으로 누에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다가 어둠이 들자 뽕도둑질을 나갔다. "엄마, 그러지 말고 누에를 갖다 내버려라." 한쇠가 이렇게 말하니, 뒷실댁은, "아까워서 어째 내버리노?" 하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한쇠는 이날 밤 문고리를 잡고 앉아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그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몇 번이나 방문을 열고 밤비가 좌락좌락 내리는 어두운 뜰을 내다보곤 하였으나, 그의 어머니는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틀림없이 뽕 임자에게 들키어서 경을 치는가보다고 혼자서 발버둥을 치고 있노라니까 무엇이 툇마루에 철썩하며 무슨 물건 부딪뜨리는 소리가 났다. 옷은 젖어 몸에 휘감겨 붙고, 머리는 흐트러져 아주 물귀신 모양처럼 된 그의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온 뽕 보퉁이를 툇마루에 내려놓기가 바쁘게 연방 우물가로 가서 손발을 씻고 있었다. 오다가 비녀를 길에 빠뜨려서 그걸 찾느라고 길바닥을 더듬다가 개똥을 주물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굶을 대로 굶고 지칠 만큼 지친 누에는 인제 그만 뽕을 먹지 못했다. 한쇠 어머니가 아무리 정성껏 물기를 닦고 좋은 잎을 골라 누에 입 끝에 대어주어도 누에는 고개를 두를 뿐이었다. 한쇠 할머니는 곁에서 며느리의 하는 양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차마 볼 수 없었던지, "오냐, 이 짐승들아 부디 먹어라이, 부디부디 받아먹고 살아나거라이, 조금씩 맛봐 가면서 부디 살아나거라이." 이렇게 어린애 달래듯이 타일렀으나 종시 소용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한쇠 어머니는 누에를 죄다 거름 속에 갖다 묻어버렸다. 뽕까지 누에와 함께 거름에 버리려다 아깝다고 해서 이웃 사람을 주었다. 거기서 말이 난 겐지 어쩐지 뽕 임자가 알고 찾아왔다. 윤참봉 맏아들의 소실이다. 성이 뽀로통하게 나서 처음 아무런 말도 없이 마루에 올라와 권련부터 한 개 피워 물더니, "세상에 사람 사는 법이 언제나 제 손으로 벌어서 제 것을 먹고 살아야지, 남의 것을 욕심 내서 함부로 훔쳐가려고 해서는 허구한 세월에 하루 이틀도 아니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법이라." 하고, 무릇 사람의 사는 법부터 설교하여 차곡차곡 죄목을 캘 모양이었다. 한쇠 어머니는 감히 밖에 나올 수 없었던지 잠자코 부엌에 앉아 있었다. 이때 빌기 잘하는 한쇠 할머니는 목메인 소리로 온 얼굴에 근육을 실룩거리며, "그저 살라 하니 그러십내다." 하고 여자에게 빌붙기 시작하였다. "언제든지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의 덕 안 보고 살 수 있십내까? 목구멍이 포도청이지요, 그저 없고 보니 죄가 많심내다." "암만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동정을 빈다면 그건 또 모르지만 남의 물건을 생으로 훔치려 들어서야 이건 도저히 나쁜 사람들 아니오." 바로 이때다. 평상 사람의 몸에 손찌검이라고 해본 적이 없었다는 찬물이가 도리깨로 그의 아내를 자꾸 두들겨서 나중엔 아주 숨이 끊어지게까지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윤참봉네 맏아들 첩은 그만하고 돌아갔지만 그 뒤로부터 한쇠 어머니는 날만 흐려도 온 몸이 부서지는 듯이 아프다고 하였다. 이렇게 찬물이는 지금 곰방대를 물고 앉아 아내의 싯누런 팔다리를 바라보면서 작년 봄 그 봉변당하던 때의 자기의 도리깨질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3 국거리를 구하러 나갔던 늙은이는, "아이고 밖에서는 굿을 해도 우리 집 구석에서는 모르는구나." 하며, 삽짝 밖에서부터 중얼거리며 들어왔다. "성님 좀 어떠신교?" 늙은이 앞서 송아지 처가 고기 소쿠리를 안고 들어온다. 소쿠리에는 빛깔이 거무스레하고 누렁 냄새가 물컥 오르는 쇠고기가 반 소쿠리나 실하게 된다. "아따, 웬 고음거리는 이처럼 많이 가져오능교?" 찬물이도 소쿠리를 들여다보며 놀라운 듯이 인사를 한다. "윤참봉네 집에서 그 큰 소를 잡아 동네에 논으던가만 감쪽같이 모를 뻔했네." 늙은이는 너무나 흥감해서 어디부터 먼저 이야기해야 좋을지 두서를 못 차린다. "이게, 일 원어치다. 공께지 공께라, 장에 가 살라먼 암만 해도 삼 원 덜 주고 이렇게 받을랑아? 더러라. 백정놈들 파는 거사 일 전어치라고해도 새 한 마리만한 걸 뭐......." 늙은이는 뼈와 꺼풀만 남은 주먹을 쥐어 보이며, 온 얼굴을 절룩거리며 어쨌든지 이것이 공것 마찬가지로 싸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 살림에 이럴 때 한 번 안 사 먹으면 좀해서 쉽나, 마침 맘낸 적에 눈 질끈 감고 그만 낫게 가져와버렸지, 온 집안 식구가 한 번 고로 먹어야지 사철 풀만 먹고 기름기 있는 걸 안 먹으니 살 수가 있나? 그러나 참 나도 늙으니께 송장이다. 아까버텀 이 송아지네 이야기를 한다는 게 엉뚱한 소리만 실컷 했구나, 실지로 알고 보면 이게 모두 송아지네 덕이다. 우리보고 누가 이렇게 인정을 쓸라고, 모두 보는 데가 있지그리." "어디메요, 저를 보고 드리는 게 아니라 올해가 참봉 어른 환갑이라고, 소 한 마리 잡은 셈치고 이렇게 헐값으로 온 동네 논아 드리는 게랍데다." 송아지네는 변명하듯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까만 우단 저고리에 연분홍빛 내의까지 받쳐입고 이 골짜기에서는 드물게 보는 호사를 했다. "아, 참 그렇다지, 올해가 참봉댁 회갑이구나, 아무리나 팔자 좋다, 살림이 부자라, 자식들 많아, 세상에 다시 더 바랄 게 있나." "그럼요, 팔자야 상팔자지요." 송아지네는 수줍은 듯이 턱으로 덜 여며진 옷깃 사이로 내다뵈는 분홍색 내의를 가리며 이렇게 장단을 맞춰 준다. 그런데 여기 소개하기 늦은 인물이 하나 있다. 금년이 그의 환갑이라 소 한 마리 아주 잡은 셈치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헐값으로 논아 먹이고, 그의 맏아들 첩은 일찌기 뽕 도난을 만나 무릇 사람 사는 법을 설교하러 이집 마당에도 나타난 일이 있었고, 시방 여기 고기 소쿠리 곁에 까만 우단 저고리에 분홍색 내의를 받쳐 입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송아지 처의 정부(情夫)인 동시 화물 자동차 운전사이기도 한, 낯에 여드름 많이 난 사내를 둘째 아들로 가진 윤참봉이란 사람은 대체 어떠한 인물인가. 뒷골 사람들은 모두 그를 윤참봉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요즈음 일이다. 삼사 년전까지만 해도 그는 윤주사로 불리었고, 또 윤주사로 불리기 전에는 윤새령(尹使令)으로 불리었다. 그는 본래 읍내의 사령 노릇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아직 부자가 되기 전엔 물론이요, 이제 내노라 하는 부자가 되어서도 읍내 사람들은 여태 윤새령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뒷골 사람들고 그가 듣는 데서는 윤참봉 윤참봉 하나, 듣지 않는 데서는 '윤새령'이 보통이었다. 이 눈치를 챈 윤참봉은 '윤새령'이라 부르는 사람만 보면 반드시 시비를 걸었다. 그만큼 그는 '윤새령'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였고, 또 이제 와서는 그를 면대해서까지 '윤새령'으로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으로 이 뒷골로 들어올 ㄸ까지만 해도 그는 아직 '윤주사'도 되기 전이었다. 그때 벌써 내용으론 살림이 착실했던 모양이나, 그는 머슴을 데려 농사를 짓는 한편,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장리벼를 준다, 현금을 대부한다 하여 말하자면 이 골 사람들의 유일한 금융 기관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기를 한 십여 년 하고 나니 뒷골 부근의 좋다는 토지는 대개 그의 소유가 되어버렸고, 그와 동시에 그는 '윤새령'에서 '윤주사'로 승진해져버린 것이다. 요즈음은 또 그의 두 아들이 장성하여 일찍이 그가 손을 뻗쳐보지도 못한 신기한 꾀를 쓴다. 맏아들은 첩을 얻더니 동구 앞에다 말하자면 지점(支店)-돈놀이 하는-을 내고 거기서 술, 담배, 석유, 성냥, 비료, 북어, 포목, 기타 잡화를 갖추어놓고 아주 떡 벌어지게 장사를 하는 것이다. 특히 이 가게가 동네 사람들을 끄는 것은 그 '고뿌 술'이란 거다. 양조 회사가 생긴 이후로 술이라면 전혀 사 먹게 되니 그 부드럽고 배부른 막걸리를 마음 놓고 먹을 수가 없다. 부드러우니 만큼 많이 먹어야 하고, 많이 먹을라니 돈이 헤프다. 이 수요에 따라 꼭꼭 찌르는 왜소주가 나온 것이다. 막걸리로는 십 전어치나 먹어야 속이 한 번 후련할 것이 소주로 하면 오전짜리 한 고뿌면 제법 화뜩해진다. 여름으로 논에 물을 대다 숨이 차면 온다, 겨울 밤으로 숯굴에 불을 보다 온다, 투전을 하다 온다, 내기를 하다 온다. "조ㅇ타, 탁배기보다사 참 우에 있다." "흐, 한 모금을 먹어도 어디라고, 탁배기보다사 위지, 양반이다." 그들은 소주 고뿌를 기울일 때마다 이 모양으로 칭송을 했다. 그러면 윤주사 맏아들의 첩도 생긋이 웃으며, "그러먼요, 막걸리보다야 참 정하지요." 하고, 주전자를 들어 빈 잔에 다시 부우려고 하면, 대개는, "아무렴, 막걸리에서 정기만 뽑아낸 거 아닌가베," 하고, 한 잔씩 더 드는 편이었고, 혹 뒷일을 여물게 닦아나가려는 사람들은, "어디요, 그만두소, 없는 사람들이 먹구 싶다구 자꾸 먹을 수 있능교?" 하며,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소주 이외에도, 여자는 팔 수 있는 것을 팔고, 혹은 사고, 또 뒷밭에는 뽕을 심어, 봄에서 여름까지 이웃 여자들을 데려다 누에를 먹이고 하여 일 년에 이 여자의 손으로 들어오는 돈만 해도 적지 않은 것이라 한다. 둘째 아들은 맏아들보다도 더 신식 재주다. 그는 화물 자동차를 끌고 다니며 겨울이면 이곳 사람들이 구워내는 숯을 실어다 읍내에 내기도 하고, 나무를 실어다 팔고, 가끔 해변으로 나가면 어물을 실어다 원근 각 동에 페어 먹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금년 환갑이 된 윤참봉은 매년 가을이면 벼를 오륙백 석이나 받게 되고, 겨울 한철 동안은 온 골 사람들이 그에게 숯을 구워바쳐야 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한쇠네도 물론 가을이면 윤참봉에게 벼를 갖다바치고, 겨울 한철 동안은 쉴새없이 숯을 구워바쳐야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풍년이 들면 벼 열두어 섬 나는 논 마지기 주고는, 지주 앞으로 여덟 섬을 매니, 나머지 서너너덧 섬으로 농비 덜고 지세 치르면 쭉지벼 한두 섬 남는 것이 고작이요, 흉년엔 물론 남는 거래야 빚뿐이다. 찬물이와 그의 아내는 여러 해 동안, 타작 마당에서 이렇게 빚을 지거나, 쭉지벼 한두 섬을 앞에 놓고 입을 비쭉거리며 하늘을 쳐다보곤 하였다. 그러나 또 봄이 온다. 산기슭에 진달래가 붉게 피고, 깊은 골짜기에서 접동새가 피나게 울고 하면 찬물이와 그의 처도 억울함과 주림의 동면에서 깨어나 또 한 번 들로 나가 광이로 흙을 파고 씨를 넣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윤참봉은 금년 환갑 기념으로, 송아지 처나 한쇠 할머니 말대로 하면 아주 착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온 동네 사람들에게 거의 공으로 논아 먹이다시피 헐값으로 처분한 쇠고기 이야기다. 얼마 전부터 병이 들어 있던 소가 지난 밤에 죽었다. 윤참봉은 머슴과 의논하고 이것을 아주 고기로 팔 계획을 세웠다. 푸줏간같이 많은 이익을 보지 말고 현시가대로 소값만 계산해서 실비로 부근의 모든 소작인들과 이웃 사람들에게 논아 보낼 작정을 했던 것이다. 그것이 마침 이 낌새를 알고, 군청 축산계에서 출장 나온 사람이 있어, 윤참봉이 평소로 이러한 출장원들을 홀대해 왔느니만큼 이 출장원이 윤참봉네 소청을 준엄히 거절을 해서, 할 수 없이 아까운 황소를 땅 속에 묻지 아니치 못했던 것이다. 출장원은 현장까지 따라가서 완전히 다 묻은 것을 보고 그제야 읍내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고 보니 아무리 아까운 황소지만 도리가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손해만 볼 수도 없고 하여, 머슴에게 일임한 것같이 해서 다시 그 소를 땅에서 파오게 한 것이다. 병이 들어 죽은 소요, 이미 땅 속에까지 묻히었던 것이라 파내오긴 했지만 빛깔이며 냄새며 도저히 속이고 팔 수는 없어, 그저 그만큼 짐작할 사람은 짐작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까지는 하지 않고 대강 이리저리 처분해 넘기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한쇠 할머니가 소쿠리를 들여다볼 때마다 즐거워 못 견디는 이 거무스레한 쇠고기도 물론 그것이다. 4 송아지 처가 돌아간 뒤 이내 한쇠가 들어왔다. "야아 이거 와봐라." 할머니는 탁은히 불러 턱으로 고기 소쿠리를 가리킨다. "아이고 누렁내야." 한쇠는 고기 소쿠리를 들여다보자 이내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 할머니는 약간 악의 띤 눈으로 잠자코 손자를 바라본다. "어째 이렇게 누렁내가 자꾸 나?" "개사, 하면, 소고기에 누렁내 안 나?" 할머니는 한쇠가 고기를 보고 얼마나 반가워하고 기뻐하는가를 좀 보려고 한 것이 의외로 자꾸 누렁내만 난다고 하니 잔뜩 못마땅해서 볼멘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아주 썩은 냄새가 나요." "뭐?" 할머니는 악의에서 다시 증오에 가까운 무서운 얼굴로 한쇠를 똑바로 노려본다. "할매, 이거 어디 가 사왔능교?" "오 오냐 오냐, 니는 먹지 마라, 내 내 혼자 먹을란다, 니는 먹지 마라." 할머니는 왼쪽 입아귀와 눈언저리를 실룩거리며 손을 내저으며 고기 소쿠리를 안고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고기를 안고 뒤안까지 뛰어 온 늙은이는 까닭 모를 분노에 숨이 차고 가슴이 뛰어 진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철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세상에도 죄 많고 복을 차는 버르장머리 아닌가. 윤참봉과 같은 복 많고 하늘 아는 사람이 일껏 회갑 기념으로 헐값에 논아 준 귀물의 음식을 보고 썩은 냄새가 난다니, 오오 생각만 해도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산신님네, 산신님네, 불쌍한 우리 인간들이 산신님네 덕만 믿고 삽내다. 산신님네 태산 같은 덕만 믿고 삽내다. 우리 맏손자 한쇠는 성품이 제 아비를 닮지 않고 제 어미를 닮아 그저 뚝심이 세고 성질이 괄괄하오나 효성이 많고 슬기가 있삽내다. 모두 이 늙은 것이 망령한 탓이오니 이 늙은 것에다 벼락을 쳐주소서, 부디부디 벼락을 쳐주소서. 모두 이 늙은 것의 망령이옵내다. 그러하고 우리 한쇠 에미는 본래 아무 죄도 없읍내다. 이 늙은 것이 하도 명주옷이 입고 싶어 보니 이 늙은 것의 옷을 해주려고 누에를 멕였으니 모두 이 늙은 것의 죄이올시다. 그뿐 아니라 한쇠 애비한테 매도 많이 맞았습내다. 우리 한쇠 애비가 제 안사람께 손찌검한 것도 그게 첨이오며, 우리 한쇠 에미는 그때 아주 기절했다 살아났사옵내다. 산신님네, 산신님네, 부디 굽어살펴주옵소서, 우리 한쇠 에미게는 아무 죄도 없사오니 그저 이 늙은 것의 머리 우에다 벼락을 쳐주옵소서, 벼락을 쳐주옵소서." 늙은이는 고기 소쿠리를 앞에 놓고 북쪽 산을 향해 두 손을 비비며 그저 몇 번이든지 절을 하는 것이었다. 늙은이가 한 여남은 번이나 산을 향해 절을 하고 났을 때 문득 방에서 며느리의 신음 소리가 들려 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늙은이는 별안간 조바심이 났다. 노파는 고기 소쿠리를 안고 도로 방으로 들어갔다. 久 ㄴ ㅁ怪 ㅁ 못 竟ㅁ ㅁ ㅁ ㅎ款ㅖ款 ㅁ   곶 ㅁ      ㅁ 适  ㅇ ㄴ  ㅁ ㅁ    ㅁ ㄱ ㅁ   ㅇ몽      ㅁ  ㅁ몽 餃ㅁㅁ ㅇ ㅁ 몽 ㅁ怪     珖 ㅇ ㅁ   ㅇ ㅈㅁ 공ㅁ  關 ㅁ공 ㅇ   ㄱ목 竟 ㅁ ㄸ    ㅁㅊ   ㅁ ㅁ ㅇ   竟 ㅁ ㅁ   菅  ㄱ ㅁ   ㅁ ㄱ  ㅂ   ㅇ   ㅁ못ㅁ ㅁ ㅁ   ㅁ 炚 ㅁ   ㅁ洸   ㅁ洸 ㅂ   竟ㅁㅁㅁ 竟  ㅇ     ㅇ ㅁ ㅁ ㅁ  ㅇ ㅁ參  ㅁ 久 ㅁ  ㅁ  ㅁ ㅇ  ㄱ 내던진다. 소리를 지른다-눈을 뜬다. 방 안에는 그이 어머니가 앓고 누었고, 밖에서는 그이 할머니가 국솥에 불을 넣고 있다. "야야 한쇠야 와 그카노?" "할매." "니 와 자꾸 그케쌌노?" "할매 여태 안 잤능교?" 5 이튿날 새벽이다. 고음국이 끓었다. 할머니는 먼저 고사를 지낸다고 소반에다 고음국 한사발을 얹어 들고 뒤란으로 가서, "산신님네, 산신님네. 산신님네 은혜는 태산 같삽내다만 불쌍한 우리 인간들은 산신님네 은덕을 다 갚을 수 없삽내다. 이 국을 먹고 나거든 이 늙은 것도 소생하여 눈 언저리와 입아귀가 실룩이는 병을 본데같이 낫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쇠 에미는 본래 아무 죄도 없삽네다. 이 늙은 것이 웬걸 산신님네 보고 거짓말을 하오리까. 참봉댁 뽕밭에 뽕 도둑을 간 것도 근본은 모두 이 늙은 것 때문이올시다. 이 늙은 것의 머리에다 벼락을 쳐주옵소서. 그리고 우리 한쇠는 천품이 제 애비를 닮지 않고 제 에미를 닮아 뚝심이 세고 성미가 괄괄합네다만 효성이 놀랍습내다. 산신님네, 이 고음국을 먹고 나거든 부디 병과 화는 이 집에서 다 물러나고 복과 재수만 들어와 주옵소서. 부디부디 산신님네 태산 같은 은혜만 믿삽내다." 두 손을 비비며 몇 번이나 절을 하고 나서 그제야 안심한 듯이 그 상을 들고 천천히 앞뜰로 나왔다. "인제 모두 오너라...... 자 한쇠도 얼른 오너라." 할머니는 고음국을 방에 들고와서 식구마다 한 그릇씩 놓았다. "자아, 한쇠도 얼른 오너라." 할머니는 곧장 한쇠를 불렀다. "나는 싫구만요." 한쇠는 밖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야 야 그러지 말고 들어와 먹어봐라, 먹어보고 싫거든 싫다캐라." "할매나 많이 잡소." 한쇠는 역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쇠 어머니가 보다 못해, "이 못된 것아, 남의 애 대강 태우고 그만 들어오너라." 하고, 나무라도, "내사 싫구만요." 한쇠는 끝까지 버티었다. 늙은이도 한쇠가 끝까지 고집을 부릴 것 같으니까, "오냐, 싫거든 마라, 내 다 먹을게......." "내사 없어 못 먹겠다, 병든 소먼 어때? 죽은 소먼 어때? 먹으니 맛만 좋고, 배 부르고 힘만 나네." 혼자 약이 올라서, 일부러 한쇠가 보란 듯이 고음 뼈다귀 하나를 들고 모모이 돌려핥고 살살이 우벼빨고 소리가 짝짝 나도록 입맛을 다시었다. 그들은 워낙 오랫동안 벼 쭉정이와 풀뿌리만 먹어 오던 차이라, 처음은 고음국이란 말만 들어도 살 것 같고, 솥뚜껑을 열 때 훅훅 오르는 허연 김과 구수무레한 냄새만 맡아도 침이 돌았다. 그러나 한 사발씩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에는 벌써 육초도 끼고 누렁 냄새도 각별나게 비위를 거슬러주었다. "고기가 다르든가베."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한쇠 어머니는 얼굴을 찡그렸다. 찬물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입맛을 다시며, 곰방대를 내어 물었다. 다만 늙은이만이 끝까지 달게 굴었다. 그는 작은쇠가 먹다 남긴 국물을 들고 마시며, 아직도 한쇠를 두고 빈정대었다. "싫거든 말지, 마라...... 내 먹지, 내 다 먹지, 내사 늙은 게 실컷 먹고 죽으면 어딴? 내사 이왕 죽느니, 곯아 죽기보다 실컷 먹고 죽을란다." "......" 한쇠는 한참 동안 할머니를 흘겨보고 있던 두 눈에서 눈물을 닦고 나서 잠자코 입술을 깨물며 산으로 갔다. 6 겨울이라도 유달리 따뜻한 날씨다. 찬 기운이 서린 솔산 잔등에 아침 해의 금빛이 퍼붓는다. 저르렁, 저르렁! 도끼 소리가 산골에 울리며, 저저끈 꽝! 하고 나무 넘어가는 소리가 난다. 이 나무 넘어간다 어라어라 넘어간다 분 바르고 향수 뿌린 주막집 똥갈보야 산골 숯장수라 괄시를 마라 아주까리 기름 바른 뒷골 처자 백탄 장수 총각 보고 밭 못 맨다 송아지가 혼자 나무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는 금년 스물아홉이다. 작년까지 윤참봉 집에 머슴을 살아서 그 돈으로 금년 봄에 사십 원을 내고 처음 장가란 것을 갔다. 처음 그의 아내를 이 산골에 데려왔을 때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십 원짜리 각시 좋은데!" "흥, 가시나 풍년은 들었구마는." 혹은, "그렇지만 너무 예쁘다...... 송아지한테는 좀 과한데......." 이렇게도 말했다. 제 식구를 가진다면 살림을 해야 되고, 살림을 하려면 살림 글터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송아지는 사십 원 들여 장가를 가고, 십오 원에 오막 한 채를 사고 그러고는 사실 왜솥 하나 살 돈도 남지 않았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까이 왕래할 친척도 없고 보니, 자연 의지할 곳이래야 그가 십여 년이나 머슴살이를 한 윤참봉네 집밖에는 더 없었다. 하여, 그들 내외는 안팎없이 윤참봉네 집에 거의 살듯 무시로 출입을 하게 되었다. 송아지가 윤참봉네 머슴과 함께 거름을 내면 그의 처는 안에서 부엌일을 해준다든가, 목화를 따준다든가, 송아지의 할 일이 언제나 있는 거와 같이 그의 처가 해줄 일도 언제나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윤참봉 둘째 아들과 송아지 처와의 사이에 험한 풍설이 돌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은 송아지의 처가 윤참봉 집에 일을 하러 간다. 어떤 사람은 송아지 처가 윤참봉 집에 일을 하러 간 첫날부터 벌써 다른 일이 있었다느니, 혹은 그 이튿날부터라느니 별별 말이 다 많았다. 워낙 숙설거리니 송아지의 귀에도 그 말이 들어가지 않을 리 없었지만 본시 위인이 태평인 데다 달리 의지할 데가 없는 터라 속으로 잔뜩 못마땅히 굴면서도 아주 발길을 뚝 잘라 끊을 수도 없었다. 혹 밤이 너무 늦어 돌아오고 할 때 송아지가 나무라면, 그의 처는, "그래 얼른 돈 벌어 오라문...... 나도 앉아 먹게......." 하고 도로 뽀로통해지곤 하였다. 모두가 내 없는 탓이려니, 금년 겨울만 치르면 내년 봄엔 거리에서 죽더라도 이 고장을 뜨려니 그는 속으로 혼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윤침봉 둘째 아들의 버릇을 고쳐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한쇠가, 동네에서 들은 말이 있어, "아저씨, 윤새령네 둘째 아들 그 버릇 좀 고쳐주소." 한즉, 겨우 대답이라는 것이, "그래도 아이 때는 그처럼 못돼 먹을 것 같지 않았는데......." 하는 것이었다. 숯굴까지 와서 한쇠는 송아지를 건너다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송아지 아저씨!" 이렇게 두어 번 큰 소리를 질러 부르니 그제야 송아지는 도끼를 멈추고 서서 이쪽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오늘 우리 숯 좀 묻어주소." "아배는?" "아배는 다른 일이 좀 있어서요...... 시방 곧 건너와주소." 한쇠는 헛간에서 길다란 쇠갈퀴와 삽을 들고 나왔다. 송아지는 숯굴 앞으로 와서 먼저 불을 들여다보더니, "아직 늦잖구나." 하며, 저고리 안섶을 들고 담배쌈지를 꺼낸다. 한쇠가 쇠갈퀴로 숯굴의 불덩이를 꺼내며, "아저씬 흙을 덮어주소, 내가 꺼낼게......." "한 대 피우고 천천히 하자꾸나." 하고, 송아지는 곰방대를 입에 문 채 삽을 들고 일어선다. 참숯 가운데도 금탄과 백탄이 있어, 이 백탄은 뻘건 불덩이를 쉬갈퀴로 꺼낸 뒤 흙을 덮어 문질러서 껍질을 한 번 더 벗겨야 하기 빼문, 여간 까다롭지 않다. "나는 이 백탄은 질색이다." 송아지는 삽으로 흙을 뜨며 이렇게 말한다. "와요?" "성이 가셔서 어디 해먹겠드나?" 조금 뒤에 한쇠가, "참 아저씨, 어젯밤 저 홍하산 불 좀 봤능교?" 한즉, "시방도 저기 타고 있네." 하며, 허리를 편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멍멍히 서서 멀리 흰 연기가 안개처럼 이는 홍하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이때다, 감동 강아지 한 마리가 그들이 숯을 묻고 있는 헛간 앞에 얼씬하더니 어디론지 달아나버린다. 이것을 본 한쇠는 돌연히 쇠갈퀴를 내던지고 강아지 뒤를 쫓아 내닫는다. 조금 뒤에 한쇠가 강아지를 붙잡지 못하고 숨을 씨근덕거리며 돌아오니, 삽을 짚고 서서 이것을 바라보고 있던 송아지는 빙그레 웃으며, "인제 아주 집에 안 오나?" 한다. "......" 한쇠는 대답 대신 고개를 둘렀다. 금년 봄이다. 여러 해를 두고 늘 고기 타령을 하던 그의 할머니가 봄철 들면서부터 그만 얼굴이 비뚤어져버렸다. 의원에게 물어보니 늙은 사람이 여러 해 동안 너무 영양 섭취를 못 해서 그러니 먼저 보신을 많이 돋우고 침을 맞아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한쇠 어머니는 며칠 동안 궁리를 하고 나더니 뒷골목에서 이십 리나 되는 친정에 가서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왔다. "아이고 강아지는 웬걸 그래 얻어 오노?" 하고, 시어머니가 반색을 한즉, "......"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비죽이 웃었다. "엄마 감동이 나 다오." 하고, 작은쇠가 감동이를 안고 달아나려고 하니, "강아지 너무 주무르지 마라, 얼른 안 큰다." 하고,그 어머니는 작은쇠를 나무랐다. 그러나 사람도 굶는 형편에 강아지 먹일 게 있을 리 없었다. 한쇠 어머니는 한 끼에 죽 한 그릇도 채 못 돌아오는 자기의 요식을 강아지와 논았다. "강아지 멕일랴다 사람 먼저 죽겠다." 하고, 늙은이는 며느리의 하는 양을 못마땅히 여겼으나, 강아지는 또 강아지대로 좀처럼 살이 붙지 않는다. 이것을 작은쇠의 주무른 탓으로 작은쇠만 여러 번 매를 맞곤 하였다. 그러할 즈음 하루는 송아지네가 와서 보고 살갑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요새 참봉네 댁에서는 큰 개 한 마리를 잡아 먹어버리고 그 대신 강아지를 한 마리 더 두어야 되겠다고 애를 쓰고 구하는 중이니 이때에 그만 이 강아지를 '선사품'으로 갖다 드리면 여간 생색이 나지 않을 것이며 선사한 보람도 있을 것이라고 권하자, 늙은이도 그럴싸해 구는 것을 한쇠 어머니가 염치 없는 소리 말라고 거절해버렸다. 그 뒤에도 또 이웃집 여편네들이 와서 송아지네와 비슷한 말들을 해 한쇠 어머니는 그런 게 아니라 이건 어디 긴히 '쓸 데가' 있는 개라고 거절을 하였다. 이리하여 강아지는 역시 한쇠 어머니의 죽그릇과 작은쇠의 똥 누는 것만 바라보고 말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 뒤 강아지는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굶고 으끌뜨려 누웠다가도 마을을 나가면 그래도 어디서 무엇을 주워 먹고 들어오는지 번번이 배가 불룩하다. 혹은 하루씩 묵어 들어올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이삼 일씩 눈에 안 띄기도 하였다. 한쇠 어머니는 찬물이를 보고, "인제 어디서든지 보는 대로 잡아 들여오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찬물이는 강아지가 자기 집 뜰 아래까지 와도 가만히 바라보며 곰방대만 빨고 있었다. 한번은 집에 온 것을 한쇠 어머니가 나무 막대를 찾는 동안 어느덧 작은쇠가 품에 안고 얼른 놓아주지를 않아, 놓기만 하면 후려갈기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 눈치를 챈 강아지는 작은쇠의 코만 한 번 핥아주곤 어느새 수채 구멍으로 빠져 달아나버렸다. 이때도 작은쇠가 감동이 대신 매를 맞게 되었다. 어느 날을 송아지네가 와서, "오새는 강아지가 참봉댁에 와 아주 살데요. 암만 가라고 쫓아도 사람의 눈치만 할끔할끔 보곤 뒤란으로 가 숨어버려요. 그래 참봉댁 할머니는 그러지 말고 강아지 값을 치러드리라더군요." 하고, 슬그머니 한쇠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었다. 한쇠 어머니는 골난 목소리로, "팔 걸 이십 리나 허둥지둥 가서 구해왔을라구." 하였다. 한쇠는 강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뛰어 한참 동안 쇠갈퀴를 잡은 채 정신 없이 먼 산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판에 벌겋게 벗어진 이마 위에 탕건을 쓰고 누런 명주 바지 저고리를 입은 윤참봉이 두꺼비처럼 엉금엉금 기어 올라온다. "참봉 어른 나오시능교?" 송아지는 삽을 잡았던 손을 문지르며 그 앞에 허리를 굽신한다. 윤참봉은 송아지의 인사에 대답을 하는 대신, "니 아비는?" 하고, 그 움쑥하고 암팡스런 두 눈으로 한쇠를 바라본다. "편찮읍죠." "......" 윤참봉은 잠자코 한쇠를 한참 노려본다. 그의 눈은 점점 모가 나기 시작하고, 법령 위에 얹힌 누런 사마귀는 꿈쩍거리는 것 같았다. "이번 숯만 내라." 그는 드디어 최후의 선고를 내렸다. 한쇠는 말의 뜻을 잘 알았다. 한쇠는 두어 번 장에 숯을 내다 팔다가 그에게 들키었다. 그들이 굽는 숯은 윤참봉네의 빛을 갚아나가는 방법으로 모조리 윤참봉에게 내어야 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차 이에 위반을 하였으니 지금부터는 숯을 굽지 말라는 것이다. 한쇠는 얼굴을 들어 윤참봉의 얼굴에 훌훌 뛰고 있는 사마귀를 바라보았다. 이때 퍼런 콧덩이를 입에 문 채 작은쇠가 올라온다. "성아, 집에 오나." "와? 엄마 아이 낳았나?" "아이 낳아서 죽았다." "아이가 죽어?" "아이 죽어서 아배가 안고 갔다." 하더니, 콧덩이를 도로 콧구멍으로 빨아들이고 나서, "할매가 아파......." 할 즈음 조금 전에 나타났다가 그새 어디 가 숨어 있던 감동이가 다시 나타났다. 감동이는 조그만 꼬리를 치며 작은쇠 곁으로 살랑살랑 걸어왔다. 작은쇠는 하던 이야기도 잊어버린 채 기함을 하고 뛰어가 감동이를 안는다. 작은쇠는 기쁨으로 벌겋게 된 두 빰을 번갈아 감동이의 목에 문지르며, "감동아, 니 어디 갔던? 니 윤새령네 집에 갔던? 감동아, 니는 내 안 보구 싶던?" 작은쇠는 윤참봉 앞에서 윤새령이라고 불러서는 그에 대한 욕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강아지에게 이런 말을 한다. 강아지는 작은쇠의 낯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감동아, 내 안고 우리 집에 가, 엉이, 배 고파? 배 고프면 내 곧 똥 눌게,...... 고음국도 줄게, 으냐, 으냐, 엄마가 때리면 말려줄게, 인저 다시 윤새령 집에 가지 마 엉이." 작은쇠가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서려 할 때, "아나, 이놈아!" 하고, 윤참봉이 소리를 질렀다. 작은쇠가 놀라 고개를 들자, 윤참봉의 높게 쳐들었던 긴 담뱃대의 커다란 쇠꼭지가 작은쇠의 머리 위에 날카롭게 내려졌다. 담뱃대는 한가운데가 '자작근' 분질러져 한 동강은 숯굴 위로 푸르르 날았다. 작은쇠의 이마 위로 벌건 피가 흘러내린다. 작은쇠는 강아지를 놓아버린다. 이와 거의 동시에 한쇠는 불에 걸쳐두었던 쇠갈퀴를 잡아들었다. 쇠갈퀴를 잡은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었다. 그리하여 그 벌겋게 단 쇠갈퀴가 막 윤참봉의 누런 사마귀를 찌르려는 순간 송아지는 한쇠의 손을 잡았다. "아서, 아서." 7 한쇠가 집을 나온 뒤다. 고음국 한 그릇을 먹고 난 한쇠 어머니는 조금 쉬어서 검붉은 핏덩이와 죽은 아이 하나를 낳았다. 늙은이는 소반에다 냉수 한 그릇을 얹고 빌려니 웬 셈인지 머리가 몹시 아프고 정신이 흐리멍덩하였다. "싸, 쌈신님네, 쌈신님께 빕내다." 겨우 손을 좀 비비고 절이라고 몇 번 하고 나서 해산국을 뜨러 나가, 솥뚜껑을 밀치니 국 위에는 어느덧 육초가 꽉 덮이고 솥에서 훅 끼치는 누렁 냄새가 소스라치게 거슬리었다. '이거 벨일이다, 금시 그렇게 좋던 국이 별안간 웬일일까?' 노파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간신히 육초를 헤치고 국 한 그릇을 떠서 방으로 들여갔다. 골치가 벌름거리고 속이 욱신거리며 곧장 구역질이 나려고 하였다. 그는 곧 쓰러지듯이 방구석에 드러누워버렸다. 죽은 아이와 핏덩이를 산기슭에다 아무렇게나 묻고 돌아온 찬물이 역시 골치가 벌름거리고 속이 뒤틀려 견딜 수 없었다. 한쇠가 피투성이 된 작은쇠를 등에 업고 집에까지 왔을 때, 방 안에서 사람 앓는 소리가 들리었다. "아야, 아야, 한쇠야이, 한쇠야-" 한쇠는 작은쇠를 업은 채 방문을 열었다. 방안에는 그의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드러누운 채 두 눈에 야릇한 광채를 띠며 천둥같이 앓고 있다. "아야, 아야, 한쇠야, 한쇠야이-" 순간, 한쇠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이고!" 엉겁결에 그는 목이 째지도록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다음 순간, "엄마!" 그는 본능적으로 그의 어머니에게로 뛰어들었다. "엄마, 와 이러노?" "......" "엄마, 엄마, 엄마!" 한쇠는 어머니의 손을 흔들며 목을 놓고 울었다. 한쇠의 울음 소리에 찬물이는 억지로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그는 세 사람 가운데서는 비교적 중독이 가벼운 모양이었다. "한쇠야, 느 엄마가 어떻누?" 찬물이는 이렇게 물었다. 이때 한쇠 어머니는 그 야릇한 광채가 떠도는 눈을 열어 한쇠와 찬물이를 보았다. 그러고는 한쇠의 손을 잡으며, "한쇠야!" 하고 불렀다. "엄마, 엄마." 한쇠는 두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서 어머니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볼 수도 없었다. "할매는?" "할매는 괜찮다, 할매는 여기 누워 있다." "......" "......" 한참 동안 어미와 아들은 서로 마주 바라보았다. "한쇠야, 나는 인저 죽는다. 할매는 부디 니가 잘 봐드려라......." "엄마, 안 죽는다, 엄마, 엄마!" 한쇠는 미친 것처럼 고함을 질렀다. 한쇠 어머니는 또 조용히 눈을 열어 한쇠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더니, "저 어린 게......끌, 끌, 끌." 하고, 간장이 녹아내릴 듯이 혀를 찼다. 그러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엄마, 엄마, 엄마." 한쇠는 목이 째지도록 자꾸 '엄마'만 불렀다. '엄마'의 눈 언저리에 경련이 일어나며, 반쯤 눈이 열리다 말고 목에서 딸꾹질 소리가 났다. "엄마! 엄마! 엄마!" 운문산 뒷골에는 오후 해가 절반이다. 낮 짐짓한 해가 산마루에 걸리는가 하면 어느덧 황혼이 시작된다. "아야!" "사람 살려라!" 골목골목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나왔다. 윤참봉네 죽은 쇠고기를 먹은 사람은 한두 집이 아니었고, 먹은 사람은 거의 중독이 들었다. 이리하여 집집마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가 밤이 깊어갈수록 산골에 울리었다. "이 동네 사람 다 죽는다!" 누군지 이렇게 외치며 골목을 내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와 함께 바람 소리도 우우하고 울려왔다. 산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마을로 내려왔다. 숯굴마다 불이 났다. "저 불 봐라!" "야아, 불났다!"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만 지를 뿐 아무도 불을 끄러 산으로 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 중에는, 산이 비어서 숯굴의 불 보는 사람이 없는 데다 바람까지 불고 해서 절로 불이 났을 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일부러 누가 질렀을 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은 삽시간에 뻗어, 합친 불은 다시 골을 건너고 산등을 넘었다. "저 불 봐라, 저 불 봐라!" "바람이 자꾸 세어 가는군!" 사람들은 골목마다 우글거렸다. 어느덧 그들은 불과 바람과 같이 소리를 지르며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입입이 불과 바람과, 그리고 육독(肉毒)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은 윤참봉이 병들어 죽은 소를 그대로 속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다는 둥, 한 번 소 공동 묘지에 갖다 묻었던 것을 도로 파내 팔았다는 둥, 이말 저말 갈피없이 떠들어대었으나, 어쨌든 육독이 든 것은 윤참봉네 쇠고기 탓이라는 생각은 모두 마찬가지들이었다. 게다가 작은쇠가 '윤새령'이라 했다가 그이 대꼭지에 맞아서 머리가 뚫어졌다는 것과, 그의 둘째 아들이 송아지의 처를 화물차에 싣고 어디론지 달아나버렸다는 이야기들도 쑥설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아까, '이 동네 사람 다 죽는다.'고 외치며 골목을 돌아다니던 사람이 바로 송아지더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려나, 엊그제부터 홍하산에 산불이 났더라니." 한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또 한 사람이, "홍하산에 산불이 나면 난리가 난다지요?" 하고 물었다. "난리가 안 나면 큰 병이 온다지." 그러자, 또 한 사람이, "그보다 이 몇 해 동안 통이 산제를 안 지냈거든요."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사람이 이에 덩달아, "옛날 당산제를 꼭꼭 지낼 땐 이런 변이 없었거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람은 점점 그 미친 날개를 떨치고 불은 산에서 산으로 뻗어 나갔다. "우----" "울----" 불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는 한 곳으로,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바라보았다. 바로, 뒷산의 불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골목의 비명 소리도 잠깐 잊은 듯 그들은 멍멍히 서서 먼 산의 큰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한 쪽을 아주 녹여낼 듯한 벌건 먼 산불이었다. 바위 1 북쪽 하늘에서 기러기가 울고 온다. 가을이 온다. 밤이 되어도 반딧불이 날지 않고 은하수가 차츰 하늘 한복판으로 흘러내린다. 읍내에서 가까운 큰 다리(인도교) 밑 모래밭 위에는 한떼의 병신과 거지와 문둥이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병신과 거지들은 윗머리에, 문둥이들은 아랫머리에, 각각 떨어져 자리 잡고 있다. 병신과 거지들이 모인 윗머리에서, 거적으로 아랫도리를 덮고 누운 다리 병신 늙은이가, "기러기가 벌써 오노." 누구에겐지 항의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모기 대신 치위가......." 곁의 곰배팔이가 받는다. 그들이 낮게 신음하는 듯한 대화는 한결같이 다가오는 가을의 싸늘한 그림자에 싸여 있다. 병신들이 중얼거리는 곁에서는 거지들의 장타령 공부가 한창이다. "요놈의 각설이 요래도 정승 판서 자제로 팔도 감사 마다고 동전 한푼에 팔려서......." "허허, 문서만 외우면 되나? 몸 놀리는 거며 침 뱉는 거며 장단이 맞아야지......." 늙은 거지의 장타령 강의가 한창 신나게 계속되고 있을 때 저쪽 기차 다리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 소리는 장타령 강의를 중단시킨 대신, 윗머리에 웅크리고 있는 문둥이들에게 새로운 화제를 던졌다. "아주머니 아들 소식 듣는교?" 젊은 남자 문둥이가 물었다. "......." 아주머니는 말 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같은 무리들 중에서도 제일 신참자였다. 대화는 그것으로 그쳤고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기차가 다리를 다 지나가고 났을 때 아까의 젊은 사내는, "인제 풍병 든 사람들을 다 잡아 가둘 거라고 하던데......." 다른 문둥이들을 돌아다보며 딴은 새로운 소식을 퍼뜨리는 셈이었다. 그들은 문둥이 또는 나병(癩病)이란 말 대신에 '풍병'이란 대어(代語)를 썼다. "잡혀가는 건 하나도 겁 안 나지만 그렇게 되면 가족들 구경은 다 했제?" 늙은 문둥이가 받았다. '가족들 구경'이란 말에 아까의 아주머니는 가슴이 흠칫했다. 문득 아들과 영감 생각이 되살아난 것이다. "우리 술이는 어디 있을꼬?" 여인은 가만히 한숨을 지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식보다도 부부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게 있어 절실히 그리운 것은 영감이 아니고 아들이었다. 아들에 견준다면 영감(남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녀에게는 생각되었다. "너도 나를 잊어뿌리지는 안했지러." 여인은 혼자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몸이 말을 잘 들어 주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끙끙대다가 겨우 몸을 일으키자 다릿머리께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다릿머리께까지 온 여인은 다리 위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온 그녀는 다시 산기슭 쪽을 향해 발을 떼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한 여남은 걸음이나 걷고 있던 그녀는 문득 발을 멈추고 섰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이나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다시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반 마장이나 남짓 더 가서 그녀는 또다시 걸음을 멈추고 섰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이나 어둠 속을 응시하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약간 고개를 아래로 수그렸다. 어렴풋이나마 바위가 보였던 것이다. 그녀는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몇 걸음을 옮겨놓고 있을 때 바위는 그 희끄므레한 얼굴로 어둠을 헤치며 그녀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다, 바위다. 바위 위엔 아무도 없다.' 여인은 사뭇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바위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하여 두 손으로 바위를 짚었다. 짚은 채 한참 동안 숨을 돌리고 나서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바위 위를 슬슬 어루만져보았다. 무언지 바위의 그것 같지 않은 짜릿한 감촉이 그 무딘 손바닥으로 느껴져왔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손바닥으로 바위 위를 쓰다듬고 있던 여인은 드디어 그 위에 올라가 앉았다. 그리하여 손돌을 더듬어 찾았다. 손돌이란 바위를 갈(磨)기 위하여 그 위에 얹어두는 큰 주먹만한 차돌멩이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그 차돌멩이(손돌)로 바위를 갈다가 그것(손돌)이 바위에 붙으면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는 것이었다. 여인은 손돌로 천천히 바위를 갈기 시작했다. '천지신명 우리 신주님, 제발 우리 술이를 만나게 해주옵소서.' 그녀가 맘 속으로 비는 말은 언제나 이 한마디였다. '천지신명과 우리 신주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녀는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비는 법이거니 하고 빌어왔을 뿐이었다. '천지신명 우리 신주님, 우리 술이를.......' 그녀는 그렇게 빌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밤이 깊었는지 몸이 썰렁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은하수도 몹시 차가워 보였다. '내일은 꼭 움막을 지어야지. 누가 해줄 거라고 기다리다가 얼어 죽을라.' 여인은 혼자 속으로 단단히 결심을 했다. 지금까지 아들을 만나면 어렵잖이 될 거라고 하루하루 미루어왔던 것이다. 2 여인이 예 살던 동네를 떠나온 것은 그해 봄이었다. 그때까지는 동네 뒤에 외따로 지어진 움막 속에서 혼자 지내왔던 것이다. 비록 움막살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은 영감이 먹을 것을 갖다 주었고, 아들도 가끔 특효약이란 것을 구해다 주곤 하여 혹시나 하는 희망조차 걸고 지냈던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움막살이가 그녀에게는 불만일 리는 없었다. 그보다도 그녀와 그녀의 움막에 대하여 불만인 것은 동네 사람들 쪽이었다. 그녀의 움막이 동네 뒤에 남아 있는 한 동네 전체가 문둥이 동네라고 불리우게 된다는 것이 동네 사람들의 불평이자 압력이기도 했다. 이러한 동네 사람의 불평과 압력은 영감에게보다 아들에게 쏠리었다. 영감은 손바닥만한 냇가 밭뙈기나마 그래도 손수 붙여 먹고 지내지만 아들은 십여 년간을 줄곧 남의 집 머슴살이로만 돌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들 술이(述伊)가 처음 남의 집 머슴으로 들어간 것은 그의 나이 열일곱 살 나던 해였다. 그때부터 술이는 일 잘하고 사람 얌전하다고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었다. 그리하여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났을 때는 새경 모은 것도 제법 목돈이 되었고, 혼담도 있었으나 이왕이면 한두 해 더 벌어서 간다고 장가도 미루었던 것이, 바로 그해 여름부터 어미의 몸에 그 무서운 증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 한 해 동안은 남이 알세라 쉬쉬하며 새경 모은 돈으로 그 병에 대한 약이라면 무엇이나 구해다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음 해엔 병이 드러나 숨길 수 없게 되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문둥이집 식구라고 외면을 당하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동네 뒤에 움막을 짓고 그녀를 그리로 옮겨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한집에 살 때보다는 동네 사람들의 눈총이 다소 누그러지긴 하였으나 그러면서도 문둥이 아들이라는 딱지가 술이에게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동네 사람들의 차가운 눈살에 견디다 못하여 그때까지 어미의 약 값으로 쓰다가 남은 십여 원을 하룻밤에 술과 노름으로 털어버린 채 어디론지 표연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아들을 잃은 영감은 날로 더 거칠어져 갔다. 저녁때면 자주 욕질을 하고 발길로 차기도 하며 제발 어서 죽어달라고 악을 쓰곤 하였다. 어떤 때는 여러 날씩 먹을 것을 갖다주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날씩 굶겨 두었다가도 영감은 그녀를 아주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듯 먹을 것을 가져다주곤 하였지만, 그때마다 노상 죽어달라는 당부는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는 으레, "나도 이만할 때라사 꽝꽝 묻어나 주지." 하고 꽁지를 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인은 그럴 때마다 몹시 서럽게 울었다. 그 뭉개진 눈에서 맑은 눈물이 곧장 솟아나는 것을 차라리 얄궂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여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영감은 거친 목소리로, "와 우노. 죽으락 하니 설웁나?" 나무라듯이 물었다. "......." 여인은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그렇다문 와? 내 말이 야속하나?" "......." 여인인 이번에도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여인은 진정으로 영감을 야속하다거나 원망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영감이 그녀더러 죽어달라는 당부가 진정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알면서부터는 자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눈물이 그렇게 곧장 쏟아지곤 하는 것이다. "에이 속 썩어, 빌어먹을 년의......." 영감은 또 욕질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흘 뒤였다. 그날도 영감은 술이 취한 채 움막을 찾아왔다. 영감은 신문지에 싸인 찰떡 뭉치를 여인 앞에 내놓았다. 여인은 처음은 고맙고도 반갑다는 듯이 떡 뭉치를 받아 들였다. 그러나 신문지를 헤치고 그 안에 싸인 찰떡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던 여인은 얼굴을 들었다. 그리하여 무서운 눈으로 영감을 바라보았다. "......." "......." 영감이 얼굴을 돌렸다. 영감도 굳이 여인을 속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그 전부터 비상 빛깔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비상을 떡 속에 교묘히 감추지 않고 그냥 그 위에 얹어두었던 것이다. 그녀 자신이 알아서 처리해달라는 심정이었다고 할까. 여인의 얼굴이 더욱 무섭게 일그러지면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 빌어묵을 놈의 원수야, 그만 자빠져주라문." 영감은 또 욕질을 남기고 돌아갔다. 여인은 영감이 돌아간 뒤에도 오랫동안 혼자서 울다가 밤이 이슥하자 겨우 마음을 굳힌 듯 스스로 그 떡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물론 비상도 섞어서였다. 그녀가 떡 한 개를 겨우 다 먹어갈 때 동네에서 첫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닭 우는 소리는 다음에서 다음으로 번져갔다. 그녀는 떡 먹기를 멈춘 채 닭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까 문득 아들 생각이 났다. '그렇다. 우리 술이가 이 동네를 떠나던 날 밤에도 나는 여기 앉아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술이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녀는 손에 집어들고 있던 떡을 도로 신문지 위에 놓아버렸다. 그와 동시 지금까지 겨우겨우 삼켰던 떡이 목구멍으로 솟아올랐다. 그녀는 비상과 떡을 다 토해버리고 그 곁에 쓰러지고 말았다. 날이 훤히 새일 무렵 다시 눈을 뜨게 된 그녀는 간신히 움막 밖으로 빠져나오자 아무데랄 것 없이 길 난대로 한걸음씩 발을 옮겨 놓았다. 3 동네를 떠난 여인은 발길이 닿는 대로 낯선 거리와 동네를 날이날마다 헤매어 다녔다. 그녀가 이렇게 무거운 다리를 이끌며 날이날마다 거리와 동네를 헤매는 것은 그냥 먹을 것을 빌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혹시나 아들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쪽이 더 많은 자리를 그녀의 마음 속에서 차지하고 있었다. 동네나 거리를 헤매어 다니지 않을 때는 이 길마재 밑 산기슭의 복바위 근방을 맴돌고 있었다. 다른 사람(여인)들이 바위를 갈고 있을 때는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길마재 밑 복바위는 큰 다리를 건너서 산기슭 쪽으로 한 마장 반쯤 되는 거리에 있는 자연암(自然岩)이었다. 보통 청석바위라 하였지만, 푸른 빛보다 흰 빛이 많았고 크기는 펑퍼짐하게 옆드린 황소등만 했는데, 그것이 얕고 위가 평평하여 누가 반석으로 쓸려고 일부러 다듬어놓은 것 같았다. 빛깔이 맑고 깨끗한 데다가 위가 그렇게 평평하니 보는 사람마다의 눈길을 끌었을 뿐 아니라 이왕이면 한번 올라가 앉아보고 싶은 유혹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누가 첨으로 그 바위 위에 올라가 앉았는지, 그리하여 복을 빌기 위하여 돌을 갈기 시작했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었으나 그 바위의 이름이 복바위니 원바위니 하고 불리워지는 것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의 일로 전해지고 있었다. 복바위는 복을 주는 바위란 뜻이었고 원바위는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바위란 뜻이었다. 그리하여 아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 몹쓸 병이 든 사람, 남편의 소식을 모르는 사람, 너무 가난해서 자식을 성취(혼례)시키지 못한 사람(대개는 여인들이었지만) 그밖에도 별의별 불행한 사람들이 다 와서 돌을 갈았다.한 나절이고, 하룻밤이고, 또는 며칠 동안이고 그렇게 손돌을 갈다가 그것이 바위 위에 붙으면 소원이 성취되는 증거라고 그녀들은 믿었다. 술이 엄마가 큰 다리 밑을 거점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 바위에서 멀리 떠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이 바위의 영검을 톡톡히 보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이 복바위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동네를 떠난 지 한달쯤 지났을 때였다. 그날도 잘 곳을 찾아 큰 다리 밑에까지 왔다가 거기서 우연히 같은 환자(풍병)로부터 이 바위의 영검과 소재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 날부터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바위 위에서 보냈다. 아들을 만나게 해줍시사고 돌을 갈았던 것이다. 다른 손님들이 많이 꾀면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지만 비는 시간의 대부분은 그녀의 독차지였다. 그만큼 복바위는 큰다리 밑에서 가깝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레째 되던 날 새벽이었다. 손돌이 붙었던 것이다. 여러 날 동안 거의 굶다시피한 위에 밤새움을 해서 허기가 졌기 때문이었는지, 돌이 바위의 작은 요철면(凹凸面)에 걸렸는지, 그녀의 손에서는 돌이 바위에 붙은 거라고만 느껴졌던 것이다. "고맙습니더. 천지신명 우리 신주님. 인저 이 불쌍한 년의 소원을 들어 주실라캄니꺼, 고맙습니다, 우리 신주님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 여인은 바위에다 몇 번이나 절을 하고 물러났던 것이다. 그것이 우연인지, 바위의 영검인지, 바로 그 다음 날 그녀는 장터에서 그렇게 꿈에도 못 잊던 아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바가지를 들여다 보며 음식전으로 들어가려 할 때 문득 소매를 잡는 사람이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녀는 그것이 술이라고 느꼈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아들을 보았다. 순간 여인의 희고 긴 덧니가 잠깐 보였다. 아들은 여인의 소매를 잡은 채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장터에서 조금 나가면 무너진 옛 성터가 있고 그 아래로 잡초에 덮인 좁은 길이 나 있었다. 이 길이 언제 어떻게 난 길인지 그 무렵엔 행인이 끊어진 채 어쩌다 들개(野犬)들이 오줌이나 깔기고 지나칠 정도였다. 여인과 아들은 이 잡초로 덮인 좁은 길 위에 앉아 서로 붙잡으며 마주 바라보았다. "엄마." "술아." 두 사람의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 어디서 어째 지냈능교?" 아들도 그녀가 전날의 움막을 떠났다는 소문은 이미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여인은 희고 긴 덧니를 젖히며 자꾸 울기만 했다. 달리 대답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들도 그것을 더 캐어묻지 않았다. 본디 살던 마을 근처의 움막에서도 쫓겨났다면 어느 낯선 마을에선들 그녀의 접근을 허용하랴. 어느 다리 밑에서고, 어느 동네 밖 상엿집 추녀밑에서고, 그렇게 이미 흘러다니는 신세라면 어디메라고 정처인들 있으랴, 아들은 속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여인은 혼자 속으로 몇 번이나 길마재, 하고 생각했으나 웬지 그것이 목구멍 밖으로 나와지지 않았다. '길마재 밑 복바위......복바위가 보이는 큰 다리밑.......' 그녀는 이렇게 아들에게 일러주고 싶었으나 끝내 입이 열리지 않고 말았다. 그것은 아들에게 짐(부담)을 끼치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웬지 복바위의 비밀 같은 것을 아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의 영검이 줄어질 듯한 막연한 의구심(疑懼心)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엄마 아바(아버지) 봤나?" "......." 여인은 또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바도 동네에서 떠나고 없더라." "가봤나?" 가보았느냐고 묻는 말이었으나 발음은 콧소리로 뭉개져 있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동해 쪽으로 갔닥 하더라, 한번 찾아가 볼람더." 했다. 이번에는 여인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인도 아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다음 순간, 여인은 문득 어떤 다른 소망을 담은 듯한 눈으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움막' 여인의 소망은 이것이었다. 그것도 복바위에서 멀지 않은 길마재 근방에다 움막을 가지기가 소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이번에도 역시 입을 열지 못했다. 다만 어떤 간절한 소망을 품은 채 그냥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들에겐들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들은 자기의 저고리 앞섶에 붙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하여 그 안에 들어 있는 돈 석냥 반(칠십 전)을 몽땅 내어 여인의 손에 쥐어주었다. 여인은 굳이 사양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드러나게 반기는 기색도 없이 아들이 하는 양대로 그것을 받아쥔 채 멍청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 내 돈 벌어 오께, 나하고 살자이, 부디부디 죽지 마라이." 아들의 두 볼 위에는 그냥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들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로 사뭇 번지르르하게 된 그녀의 얼굴은 처음보다도 더 붉고 검어 보였다. "엄마 어디로 가노?" 아들이 물었다. 여인은 길마재 쪽을 가리켜 보았다. 그쪽을 돌아다보는 아들의 눈에는 멀리 큰 다리가 보였다. '아, 저 큰 다리 밑이로구나.' 아들이 생각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인과 아들은 다 같이 맘 속으로, 반드시 다시 만나리라고 믿고 있었다. 여인은 그 뒤에도 계속 바위를 갈았으나 여름 한철이 다지나도록 웬지 아들을 다시 만나 볼 수는 없었다. 그러자 여인은 그때 아들의 있는 곳을 똑똑히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그때는 바위의 영검을 너무나 믿었기 때문에 바위만 갈면 언제든지 자주 만날 수 있거니 하고 아들의 주소도 똑똑히 묻지 않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지금도 바위의 영검 자체를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마을 사람들의 방해로 인하여 자기가 제대로 바위를 갈지 못하기 때문이거니 믿고 있었다. 본디 그 복바위는 장승배기 마을에서 오 마장(오리) 가량 되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원근 마을에서 치성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 이외에, 역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네 자랑거리라고 믿는지 자주 나와 돌보곤 하였다. 근처에 지저분한 것이 있으면 치워줄 뿐 아니라 바위 위에서 누워 쉬거나 음식 따위를 먹거나 하면 복 못 받을 거라고 야단을 쳐서 ㅉ기도 했다. 더구나 문둥병 환자는 '부정을 탄다' 하여 접근도 시키지 않았다. 여인도 처음엔 눈치껏 갈아왔지만 고삐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은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바위 위의 여인을 처음 발견했던 것은 마을의 동소임(동하인)이었는데 그는 긴 꼬챙이로 여인을 위협했기 때문에 여인도 말 없이 바위에서 물러나고 말았지만, 그런 지 며칠 뒤엔, 다시 동장 아들인 젊은이에게 들키게 되었던 것이다. "안 내려가믄 끌어내룰 꺼다이." 젊은이는 이렇게 말하고 일단 사라지더니, 조금 뒤, 저희 또래 서넛을 더 데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다짜고짜 준비하여 온 새끼줄로 여인을 걸어 잡아당겼다. 여인은 바위 위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젊은 패들은 여인을 새끼줄로 감은 채 큰 다리 근처까지 개같이 끌어갔다. 온 몸이 터져 피투성이가 된 채 여인은 한참 동안 의식도 잃고 있었다. 여인이 다시 의식을 돌이켰을 때 동소임은 물을 길어다 바위를 씻고 있었다. 4 자기 힘으로나마 움막을 짓기로 결심한 여인은 자기와 같은 나병 환자지만 자기보다는 나이 훨씬 젊은 남자 한 사람을 데리고 길마재 밑으로 갔다. 움막을 짓기 위해서였다. 나무 작대기 서너 개와 거적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것이다. 여인은 남자 환자를 데리고 산기슭의 갈대밭으로 갔다. 갈대밭 풀섶 속에 나무 작대기와 거적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작대기와 거적을 산기슭 아래 있는 밭구석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모래흙을 파고 작대기 세 개를 세웠다. 거기다 거적을 두르고 새끼로 이리저리 얽어매는 정도로 간신히 움막은 지어진 셈이다. 일이 끝난 뒤, 여인은 자기의 속곳 주머니 속에 꽁꽁 싸서 남겨두었던 돈 두냥 반(오십 전)에서 닷돈(십전)을 내어 젊은 환자에게 주었다. 젊은 환자는 처음 사양을 했으나 여인이 자꾸 권하자 고맙다고 하며 받았다. 젊은 환자가 돌아간 뒤 여인은 움막 안에 누더기를 깔고 누웠다. 저물도록 움막을 짓는답시고 너무 무리를 해서 그런지 전신이 쑤시고 아팠다. 으슬으슬 한기가 들며 머리가 빙빙 도는 듯했다. 이틀을 정신 없이 앓았다. 사흘 만에, 여인이 겨우 움막 속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밖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밭 임자가 온 모양이었다. "얼른 안 나올래?" 움막을 향해 지르는 고함 소리였다. "남의 밭에 누가 마음대로 움막을 지으락 하더노?" 역시 움막을 향해 야단을 치는 밭 임자의 목소리인 듯하였다. 여인은 밖에 나가 사정을 하고 싶었지만 꼴을 보이는 편이 도리어 더 불리할 것 같기도 해서 잠자코 있기만 했다. "오늘이라도 댕강 뜯어내지 않으면 불을 놔버릴 꺼다." 밭 임자는 이렇게 위협을 해놓고 돌아갔다. 그러나 여인은 움막을 뜯어내려 하지 않았다. 길마재 아래는 그보다 더 구석진 데가 없었고 또 본디 그곳은 밭이 아니고 산자락이던 것을 밭 임자가 밭으로 일구어 먹을 욕심으로 대강 바랭이나 걷어내고 돌멩이나 몇 치워놓은 데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농사란 것도 이미 일구어진 밭에서도 가운데 쪽에만 모밀이 좀 심어져 있을 뿐 가장자리는 그냥 허옇게 비어 있는데 손바닥만한 고석지땅 가지고 핏대를 올릴 건덕지도 사실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그녀와 같이 험악한 질환의 여인을 접근시키기 싫다는 데 지나지 않았다. 여인은 자기가 움막 속에 드러누워 있는 한 불을 놓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에서 움막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먹을 것이 떨어지고 보니 하는 수 없었다. 이튿날 여인은 바가지를 들고 움막을 나왔다. 장터로 먹을 것을 빌러 나가는 길이었다. 복바위 곁을 지날 때 그녀는 발길을 멈췄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바위는 어딘지 거룩하고 숭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전 같으면 하루를 점 치기 위하여 잠깐 올라가 돌을 갈아보기도 했지만 먼젓번에 젊은 패들로부터 그 몹쓸 짓을 당한 뒤로는 밤이 아니면 좀체 손돌을 잡아볼 수도 없었다. 그럴수록 바위는 더 거룩하고 더 깨끗해 보이기만 했다. "그렇지, 돌이 어쩌면 저렇게 잘났을꼬, 돌이 아니지, 신령님이지, 신령님이고말고......." 그녀는 아쉬움이 지나쳐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발길을 옮겨놓았다. 쉬엄쉬엄 여인이 장터에 당도했을 때는 거의 점심 때가 다 되어 있었다. 머리가 곧장 어지럽고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은 앓고 난 탓도 있겠지만 속이 너무 비어 있기 때문이라고 여인은 생각했다. '뭘 좀 묵어야지, 묵어야 살지.' 여인은 자기 쪽에서만 단골이라고 생각하는 나문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문집 안주인은 쉰 살 남짓 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인상 좋은 아주머니로 거지들을 푸대접하지 않는다 하여 얻어먹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거지 문둥이들은 누구나 다 특별한 친면이 있는 것처럼 아지머이 아지머이 하고 따랐다. 그러나 그녀가 안주인을 특히 단골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또 다른 까닭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그것은 여인과 이 아주머니의 나이가 비슷했을 뿐만 아니라 옛날에 절에서도 가끔 만난 일이 있었는데, 지금 비록 몹쓸 병으로 일그러진 얼굴이라곤 하지만 아주머니가 첫눈에 알은 체를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그 아주머니가 자기를 알은 체 해주는 것만으로도 끝없이 고맙고 만족했지만 거기다 다시 먹을 것을 후하게 담아주는 데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목구멍 속에서나마 '극락'을 몇 번씩 외우곤 했다. 극락으로 가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날 여인이 나문집까지 갔을 때는 아주머니가 없고 그 자리엔 작은 안주인이 대신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는 절엘 자주 다니기 때문에 그럴 때엔 작은 안주인이 대신 앉는 것으로 듣긴 했지만 이 젊은 안주인이 그녀를 알아볼 리 만무했던 것이다. 젊은 안주인은 국자를 든 채 그녀를 물끄러미 흘겨보더니, "인저 시작인데 객군버터 먼저 오면 어짜노, 저물 때 와봐라." 하고는 얼굴을 돌려버렸다. "이거 오늘도 술이 만나기는 틀렸는가베." 여인은 처음부터 일이 빗나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음식전을 돌아 큰 장터로 빠졌다. 거기에는 떡전, 묵전, 두부전이 있었고 두부전을 지나면 생선전과 건어물전이 나왔다. 이렇게 시장 안을 대충 한 바퀴 돌다시피했지만 바가지에는 겨우 식은 밥 두어 덩이와 먹다 남은 콩나물과 김치 그리고는 두부 조각, 조깃대가리, 북어꽁지 따위가 담겨져 있을 분이었다. 나흘이나 닷새에 한번 나오는 비럭질인데 요 정도로는 사흘치도 모자랐다. 그녀는 자기 속곳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 두 냥을 생각하며 다시 묵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인은 돈 한 돈(이전)을 묵 장수에게 내어 보였다. "묵을 한 모 달라꼬?" 묵 장수 아주머니가 물었다. 여인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묵 장수 아주머니는 쓰거운 표정으로 묵 한 모를 여인의 바가지에 담아주었다. 그러나 여인은 떠나지 않았다. 묵 장수 아주머니는 도끼눈으로 여인을 쏘아보다가, 생각 난 듯이 바가지에 양념장을 쳐주었다. 여인은 떡전에서 나와 천천히 장터를 빠져나왔다. 지난 오월에 아들과 함께 갔던 옛 성터 밑 오솔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오솔길은 지금도 가을풀로 덮여 있었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앉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혼자서 풀 위에 앉았다. 그리하여 바가지의 것을 먹기 시작했다. 우선 밥 한 덩이와 김치를 먹었다. 그러고는 콩나물도 집어 먹어보았다. 오랫동안 굶던 끝이 되어서 그런지 식은 밥과 쉰 김치건만 곧장 입에 당겨지기만 했다. 묵도 좀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다음 날을 위해서였다. 여인은 바가지를 옆으로 밀어놓고 풀 위에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너무도 지쳐 있었던 것이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여인의 가슴 위에 고추쨍이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여인은 고추쨍이 같은 미물이나마 자기를 버리지 않고 날아와 앉아주는 것이 고마웠다. "고추쨍이야, 고추쨍이야, 늬는 우리 술이 있는 데를 아나?" 여인은 입속말로 고추쨍이에게 물었다. 고추쨍이는 여인의 물음에 대답이나 하는 것처럼 가슴에서 휘 솟아오르더니 해가 기울고 있는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여인은 바가지를 집어들자 다시 풀 위에서 일어났다. 해가 너무 저물기 전에 움막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여인이 장승배기 마을 앞을 지날 때 해는 서산에 걸쳐진 채 저녁놀이 온 천지를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여인은 걸음을 멈추고 바가지를 들여다보았다. 바가지에는 밥, 김치, 묵, 콩나물, 두부, 조깃대라기, 북어꽁댕이 따위들이 한데 섞여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여인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놀 속으로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리를 건널 때, 놀은 냇물에 녹아 흐르고 먼 들끝에서는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다리 난간을 짚으며 걸음을 멈추고 섰다. 웬지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빙빙 돌며 다리가 휘둥거려 곧장 넘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앓다 겨우 일어난 데다 굶어 있던 빈 속에 갑자기 식은 밥과 쉰 김치가 들어갔기 때문인지 몰랐다. 게다가 온종일 너무 과로를 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녀가 겨우 다리를 다 건너서 바위 앞까지 왔을 때는 해도 이미 떨어진 뒤었다. 그녀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바위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움막이 있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길마재 아래 벌겋게 타오르는 불길이 눈에 비쳤다. 어쩌면 놀이 타오르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려 그쪽을 바라보았으나 놀이 아닌 불길이 틀림이 없었다. 움막이 불길로 타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끝내 그 밭 임자가 불을 놓았구나.' 그녀는 가슴이 콱 막히며 정신이 멍해짐을 깨닳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도 불길이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불, 불, 불....... 그녀는 간신히 바위를 더듬어 짚었다. 그리하여 그 위에 픽 쓰러지고 말았다. 거의 의식도 없이 그녀는 두 손으로 바위를 더듬었다. 그리하여 두 팔로 바위를 쓸어 안았다. 이튿날 아침 역마을 사람들이 복바위 곁에 모였다. "더러운 게 하필 이 위에서 죽었노." "문둥이가 복바위를 안고 죽었다이." "아까운 바윈데......." 그들은 모두 얼굴을 찡그리거나 침을 뱉으며 말했다. 여인의 검은 얼굴엔 눈물이 번질번질 말라 있었다. 무녀도(巫女圖) 1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질펀히 흘러내리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래벌엔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들의 얼굴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워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잣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아버지가 장가를 들던 해라 하니 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이전의 일이다. 우리 집은 옛날의 소위 유서 있는 가문으로, 재산과 세도로도 떨쳤지만, 글하는 선비란 것도 우글거렸고, 특히 진기한 서화(書畵)와 골동품으로서는 나라 안에서 손꼽힐 만큼 높이 일컫어졌었다. 그리고 이 서화와 골동품을 즐기는 취미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아들에서 다시 손자로, 대대 가산과 함께 물려 받아 내려오는 가풍이기도 했다. 우리 집 살림이 탁방난 것도 아버지 때였으나, 그 즈음만 해도 아직 옛날과 다름없이, 할아버지께서는 사랑에서 나그네를 겪으셨고, 그러자니 시인 묵객(詩人墨客)들이 끊일 새 없이 찾아들곤 하였다. 그 무렵이라 한다. 온종일 흙바람이 불어, 뜰 앞엔 살구꽃이 터져 나오는 어느 봄날 어스름 때였다. 색다른 나그네가 대문 앞에 닿았다. 동저고리바람에 패랭이를 쓰고, 그 위에 명주 수건을 잘라맨, 나이 한 쉰 가량이나 되어 뵈는 체수도 조그만 사내가, 나귀 고삐를 잡고 서고, 나귀에는 열예닐곱쯤 나뵈는 낯빛이 몹시 파리한 소녀 하나가 안장 위에 앉아 있었다. 남자 하인과 그 상전의 따님 같아도 보였다. 그러나 이튿날 그 사내는, "이 여아는 소인의 여식이옵는데 그림 솜씨가 놀랍다 하기에 대감의 문전을 찾았삽네다." 했다. 소녀는 흰 옷을 입었었고, 옷빛보다 더 새하얀 그녀의 얼굴엔 깊이 모를 슬픔이 서리어 있었다. "아기의 이름은?" "......." "나이는?" "......." 주인이 소녀에게 말을 건네 보았었으나, 소녀는 굵은 두 눈으로 한번 그를 바라보았을 뿐 입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아비가 대신 입을 열어, "여식의 이름은 낭이(琅伊) 나이는 열일곱 살이옵고......" 하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여식은 귀가 좀 먹었습니다." 했다. 주인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사내를 보고, 며칠이든지 묵으며 소녀의 그림 솜씨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들 아비 딸은 달포 동안이나 머물러 있으며 그림도 그리고, 자기네 지난 이야기도 자세히 하소연했다고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들이 떠나는 날에, 이 불행한 아비 딸을 위하여 값진 비단과 충분한 노자를 아끼지 않았으나, 나귀 위에 앉은 가련한 소녀의 얼굴에는 올 때나 조금도 다름없는 처절한 슬픔이 서려 있을 뿐이라고 한다. ......소녀가 남기고 간 그림 -이것을 할아버지께서는 '무녀도'라 불렀지만 -과 함께 내가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2 경주읍에서 성밖으로 십여리 나가서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여민촌 혹은 잡성촌이라 불리어지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 한구석에 모화(毛火)라는 무당이 살고 있었다. 모화서 들어온 사람이라 하여 모화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머리 찌그러져 가는 묵은 기와집으로 지붕 위에는 기와버섯이 퍼렇게 뻗어 올라 역한 흙냄새를 풍기고, 집 주위는 앙상한 돌담이 군데군데 헐리인 채 옛성처럼 꼬불꼬불 에워쌓고 있었다. 이 돌담이 에워싼 안의 공지 같이 넓은 마당에는 수채가 막힌 채 빗물이 괴는 대로 일 년 내 시퍼런 물이끼가 뒤덮어, 늘쟁이, 명아주, 강아지풀 그리고 이름도 모를 여러 가지 잡풀들이 사람의 키도 묻힐 만큼 거멓게 엉키어 있었다. 그 아래로 뱀같이 길게 늘어진 지렁이와 두꺼비같이 늙은 개구리들이 구물거리며 항시 밤이 들기만 기다릴 뿐으로, 이미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에 벌써 사람의 자취와는 인연이 끊어진 도깨비굴 같기만 했다. 이 도깨비굴같이 낡고 헐리인 집 속에 무녀 모화와 그 딸 낭이는 살고 있었다. 낭이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경주읍에서 칠십 리 가량 떨어져 있는 동해변 어느 길목에서 해물 가게를 보고 있는데, 풍문에 의하면 그는 낭이를 세상에 없이 끔찍이 생각하는 터이므로, 봄 가을철이면 분 잘 핀 다시마와, 조촐한 꼭지 미역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녀가곤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 욱이(昱伊)가 돌연히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도깨비굴 속에 그녀들을 찾는 사람이래야, 모화에게 굿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과 봄 가을에 한번씩 낭이를 찾아주는 그의 아버지 정도로, 세상 사람들과는 별로 교섭도 없이 지나야 할 쓸쓸한 어미 딸이었던 것이다. 간혹 먼 곳에서 모화에게 굿을 청하러 오는 사람이 있어도 아주 방문 앞까지 들어서며, "여보게, 모화네 있는가?" "여보게, 모화네." 하고, 두세 번 부르도록 대답이 없다가 아주 사람이 없는 모양이라고 툇마루에 손을 짚고 방문을 열려고 하면, 그때서야 안에서 방문을 먼저 열고 말 없이 내다보는 계집애 하나 -그녀의 이름이 낭이였다. 그럴 때마다 낭이는 대개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놀라 붓을 던지며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와들와들 떨곤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화는 어느 하루를 집구석에서 살림이라고 살고 있는 날이 없었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성 안으로 들어가며 언제나 해가 서쪽 산마루에 걸릴 무렵에야 돌아오곤 했다. 술이 얼근해서 수건엔 복숭아를 싸들고 춤을 추며, "따님아, 따님아, 김씨 따님아, 수국 꽃님 낭이 따님아, 용궁이라 들어가니 열두 대문이 다 잠겼다, 문 열으소, 문 열으소, 열두 대문 열어주소." 청승가락을 뽑으며 동구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모화네, 오늘도 한잔 했구나." 마을 사람들이 인사를 하면, 모화는 수줍은 듯이 어깨를 비틀며, "예에, 장에 갔다가요." 하고, 공손스레 절을 하곤 하였다. 모화는 굿을 할 때 이외에는 대개 주막에 가 있었다. 그만큼 모화는 술을 즐기었고 낭이는 또한 복숭아를 좋아하며, 어미가 술이 취해 돌아올 때마다 여름 한철은 언제나 그녀의 손에 복숭아가 들려 있었다. "따님 따님 우리 따님." 모화는 집안에 들어서면서도 이러한 조로 낭이를 불렀다. 낭이는 어릴 때,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어미의 품에 뛰어들어 젖을 빨듯, 어미의 수건에 싸인 복숭아를 받아 먹는 것이었다. 모화의 말을 들으면 낭이는 수국 꽃님의 화신(化身)으로, 그녀(모화)가 꿈에 용신(龍神)님을 만나 복숭아 하나를 얻어 먹고 꿈꾼 지 이레 만에 낭이를 낳은 것이라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수국 용신님은 따님이 열두 형제였다. 첫째는 달님이요, 둘째는 물님이요, 새째는 구름님이요...... 이렇게 열두째는 꽃님이었는데, 산신님의 열두 아드님과 혼인을 시키게 되어 달님은 햇님에게 물님은 나무님에게, 구름님은 바람님에게 각각 차례대로 배혼을 정해 가려니까 막내따님인 꽃님은 본시 연애를 좋아하시는 성미라,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미처 기다릴 수 없어 열한째 형인 열매님의 낭군님이 되실 새님을 가로채어 버렸더니, 배필을 잃은 열매님과 나비님은 슬피 울며 제각기 용신님과 산신님께 호소한 결과 용신님이 크게 노하사 벌을 내려 꽃님의 귀를 먹게 하시고 수국을 추방하시니 꽃님에게서 그만 복사꽃이 되어 봄마다 강가로 산기슭으로 붉게 피지만, 새님이 가지에 와 아무리 재잘거려도 지금까지 귀가 먹은 채 말 없이 벙어리가 되어 있는 것이라 한다. 모화는 주막에서 술을 먹다 말고, 화랑이들과 어울려서 춤을 추다 말고, 별안간 미친 것처럼 일어나 달아나곤 했다. 물으면 집에서 '따님'이 자기를 부르노라고 했다. 그녀는 수국 용신님께서 낭이 따님을 잠깐 자기에게 맡겼으므로 자기는 그 동안 맡아 있는 것 뿐이라 했다. 그러므로 자기가 만약 이 따님을 정성껏 섬기지 않으면 큰어머니 되는 용신님의 노염을 살까 두렵노라 하였다. 낭이뿐 아니라, 모화는 보는 사람마다, 너는 나무귀신의 화신이다, 너는 돌귀신의 화신이다, 하여 걸핏하면 칠성에 가 빌라는 둥 용왕에 가 빌라는 둥 했다. 모화는 사람을 볼 때마다 수줍은 듯 어깨를 비틀며 절을 했다. 어린애를 보고도 부들부들 떨며 두려워했다. 때로는 개나 돼지에게도 아양을 부렸다. 그녀의 눈에는 때때로 모든 것이 귀신으로만 비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뿐 아니라 돼지, 고양이, 개구리, 지렁이, 고기, 나비, 감나무, 살구나무, 부지깽이, 항아리, 섬돌, 짚신, 대추나뭇가지, 제비, 구름, 바람, 불, 밥, 연, 바가지, 다래끼, 솥, 숟가락, 호롱불...... 이러한 모든 것이 그녀와 서로 보고, 부르고, 말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성내고 할 수 있는 이웃 사람같이 생각되곤 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님'이라 불렀다. 3 욱이가 돌아온 뒤부터 이 도깨비굴 속에는 조금씩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부엌에 들어서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낭이도 욱이를 위하여는 가끔 밥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이면 오직 컴컴한 어둠과 별빛만이 차 있던 이 쓰러져 가는 기와집 처마 끝에도 희부연 종이 등불이 고요히 걸리는 것이었다. 욱이는 모화가 아직 모화 마을에 살 때, 귀신이 지피기 전,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 생긴 사생아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부척 총명하여 신동이란 소문까지 났으나 근본이 워낙 미천하여 마을에서는 순조롭게 공부를 시킬 수가 없어서 그가 아홉 살 되었을 때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어느 절간으로 보내진 뒤, 그 동안 한 십 년간 까맣게 소식조차 묘연하다가 얼마 전 표연히 이 집에 나타난 것이었다. 낭이와는 말하자면 어미를 같이하는 오뉘뻘이었다. 낭이가 대여섯 살 되었을 때 그때만 해도 아직 병으로 귀가 먹기 전이라 '욱이' '욱이' 하고 몹시 그를 따르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욱이가 절간으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낭이는 자리에 눕게 되어 꼭 삼 년 동안을 시름시름 앓고 나더니 그 길로 귀가 먹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귀가 어느 정도로 먹은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두 번 그의 어미를 향해 어눌하나마, "우, 욱이 어디 가아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절에 공부하러 갔다." "어어디, 절에?" "지림사, 큰 절에......"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모화 자신도 사실인즉 욱이가 어느 절에 가 있는지 통이 모르고 있었고 다만 모른다고 하기가 싫어서 아무렇게나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을 뿐이었다. 모화는 장에서 돌아와 처음 욱이를 보았을 때, 그 푸른 얼굴에 난데없는 공포의 빛이 서리며 곧 어디로 달아날 것같이 한참 동안 어깨를 뒤틀고 허둥거리다 말고 별안간 그 후리후리한 키에 두 팔을 벌려 흡사 무슨 큰 새가 저희 새끼를 품듯 뛰어들어 욱이를 안았다. "이게 누고, 이게 누고? 아이고......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모화는 갑자기 목을 놓고 울었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늬가 왔나, 늬가 왔나?" 모화는 앞뒤도 살피지 않고 온 얼굴을 눈물로 적셨다. "오마니, 오마니." 욱이도 어미의 한쪽 어깨에 왼쪽 볼을 대고 오래도록 울었다. 어미를 닮아 허리가 날씬하고 목이 가는 이 열아홉 살 난 청년은 그 동안 절간으로 어디로 외롭게 유랑해 다니던 사람 같지도 않게 품위가 있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낭이도 그때야 이 청년이 욱이인 것을 진정으로 깨닫는 모양이었다. 처음 혼자 방에 있는데 어떤 낯선 청년이 와서 방문을 열기에, 너무도 놀라고 간이 뛰어 말-표정으로라도- 한 마디도 못하고 방구석에 박혀 앉아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낭이는 그 어머니가 욱이를 얼싸안고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우는 것을 보고 어쩌면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낭이는 그 어머니에게도 이렇게 인정이 있다는 것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깨닳았다). 그러나 욱이는 며칠을 가지 않아 모화와 낭이에게 알 수 없는 이상한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음식을 받아 놓거나, 밤에 잠을 자려고 할 때나, 또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반드시 한참 동안씩 주문(呪文) 같은 것을 외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틈틈이 품 속에서 조그만 책 한 권을 꺼내어 읽곤 하는 것이었다. 낭이가 그것을 수상스레 보고 있으려니까 욱이는 그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너도 이 책을 읽어라." 하고 그 조그만 책을 낭이 앞에 펴 보이곤 했다. 낭이는 지금까지 '심청전'이란 책을 여러 차례 두고 읽어서 국문쯤은 간신히 읽을 수 있었으므로 욱이가 내놓은 그 조그만 책을 들여다보니, 맨 처음 껍데기에 큰 글자로 '신약전서'란, 넉 자가 똑똑히 씌어져 있었다. '신약전서'란 생전 처음 보는 이름이다. 낭이가 알 수 없다는 듯이 욱이를 바라보자, 욱이는 또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너 사람을 누가 만들어낸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낭이에게는 이 말이 들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욱이의 손짓과 얼굴 표정을 통해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지금까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어려운 말이었다. "그럼 너 사람이 죽어서 어떻게 되는 줄은 아니?" "......"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모두 씌어져 있다." 그러고는 손으로 몇 번이나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하여 낭이가 알아들은 말이라고는 겨우 한 마디 '하나님'이었다. "우리 사람을 만든 것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뿐 아니라 천지 만물을 다 만들어 내셨다. 우리가 죽어서 돌아가는 곳도 하나님 전이다." 이러한 욱이의 '하나님'은 며칠 지나지 않아 곧 모화의 의혹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욱이가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 밥을 받아놓고 그가 기도를 드리려니까, 모화는, "너 불도에도 그런 법이 있나?" 이렇게 물었다. 모화는 욱이가 그 동안 절간에 가 있다 온 줄만 믿고 있으므로 그가 하는 짓은 모두 불도(佛道)에 관한 일인 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오, 오마니, 난 불도가 아닙네다." "불도가 아니고 그럼 무슨 도가 있어?" "오마니, 난 절간에서 불도가 보기 싫어 달아났댔쇠다." "불도가 보기 싫다니, 불도야 큰 도지...... 그럼 넌 뭐 신선도야?" "아니오, 오마니, 난 예수도올시다." "예수도?" "북선 지방에서는 예수교라고 합데다. 새로 난 교지요." "그럼 너 동학당이로군!" "아니오, 오마니, 나는 동학당이 아닙네다. 나는 예수교올시다." "그래, 예수도온가 하는 데서는 밥 먹을 때마다 눈을 감고 주문을 외이나?" "오마니, 그건 주문이 아니외다. 하나님 앞에 기도 드리는 것이외다." "하나님 앞에?" 모화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내셨으니깐요." "야아, 너 잡귀가 들렸구나!" 모화의 얼굴빛은 순간 퍼렇게 질리었다. 그러고는 더 묻지 않았다. 다음날 모화가 그 마을에 객귀 들린 사람이 있어 '물밥'을 내주고 돌아오려니까, 욱이가, "오마니, 지금 어디 갔다 오시나요?" 하고 물었다. "저 박급창 댁에 객귀를 물려주고 온다." 욱이는 한참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그럼 오마니가 물리면 귀신이 물러나갑데까?" 한다. "물러나갔기 사람이 살아났지." 모화는 별소리를 다 묻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 경주 고을 일원을 중심으로 수백 번의 푸닥거리와 굿을 하고, 수백 수천 명의 병을 고쳐왔지만 아직 한번도 자기의 하는 굿이나 푸닥거리에 '신령님'의 감응을 의심한다든가 걱정해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누구의 객귀에 물밥을 내주는 것쯤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그릇을 떠 주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손쉬운 일로만 여겨왔다. 모화 자신만이 그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굿을 청하는 사람, 객귀가 들린 사람 쪽에서도 그와 같이 믿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슨 병이 나면 먼저 의원에게 보이려는 생각보다 으레 모화에게 찾아갈 것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각에는 모화의 푸닥거리나 푸념이 의원의 침이나 약보다 훨씬 반응이 빠르고 효혐이 확실하고, 준비가 손쉬웠던 것이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수그리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던 욱이는 고개를 들어 그 어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마니, 그런 것은 하나님께 죄가 됩네다. 오마니, 이것 보시오. 마태복음 제 구장 삼십오절이올시다. 저희가 나갈 때에 사귀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다려 오매, 사귀가 ㅉ겨나니 벙어리가 말하거늘......" 그러나 이때 벌써 모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구석에 언제나 차려 놓은 '신주상' 앞에 가서, "신령님네, 신령님네, 동서남북 상하천지, 날것은 날하가고 길것은 기허가고, 머리검하 초로인생 실낱 같안 이 목숨이, 신령님네 품이길래 품속에 품았길래, 대로같이 가옵네다, 대로같이 가옵내다, 부정한 손 물리치고, 조촐한 손 받으실새, 터주님이 터 주시고 조왕님이 요 주시고, 산신님이 명 주시고 칠성님이 둘로시고, 미륵님이 돌보셔서 실낱 같안 이 목숨이, 대로같이 가옵내다. 탄탄 대로같이 가옵내다." 모화의 두 눈은 보석인양 빛나며, 강렬한 발작과도 같이 전신을 떨며 두 손을 비벼댔다. 푸념이 끝나자 '신주상' 위의 냉수 그릇을 들어 불을 머금더니 욱이의 몸에 확 뿜으며,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여기는 영주 비루봉 상상봉헤, 깍아질린 들 베랑헤, 쉰 길 청수헤. 너희 올 곳이 아니니라. 바른손헤 칼을 들고 왼손헤 불을 들고, 엇쇠, 잡귀신아, 썩 물러서라. 툇 툇!" 이렇게 외쳤다. 욱이는 처음 어리둥절해서 모화의 푸념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수그려 잠깐 기도를 올리고 나서 일어나 잠자코 밖으로 나가버렸다. 모화는 욱이가 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 푸념을 계속 하며, 방구석마다 물을 뿜고 주문을 외었다. 4 욱이는 그 길로 이 지방의 예수교인을 찾아 보기로 했다. 그날 곧 돌아올 줄 알았던 욱이는 해가 지고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화와 낭이, 어미 딸은 방구석에 음울하게 웅크리고 앉아 욱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것이었다. "예수 귀신 책 거 없나?" 모화는 얼마 뒤에 낭이더러 이렇게 물었다. 낭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갑자기 낭이도 욱이의 그 '신약전서'란 책을 제가 맡아두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모화는 욱이의 '신약전서'를 '예수 귀신 책'이라 불렀다. 모화는 분명히 욱이가 무슨 몹쓸 잡귀에 들긴 것으로만 간주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마치 욱이가 모화와 낭이를 으레 사귀 들린 여인들로 생각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모화뿐만 아니라 낭이까지도 어미의 사귀가 들어가서 벙이리가 된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었다(예수 당시에도 사귀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서 몇 번이나 고쳐 주지 않았다). 욱이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힘으로 자기가 하나님께 열심으로 기도를 드림으로써 그 어미와 누이동생의 병을 고쳐야 한다고 마음 속으로 굳게 결심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무리들이 달려와서 보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와 귀머거리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사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마라 하시니 사귀가 소리지르며 아이들 심히 오그러뜨리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매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거늘. 오직 예수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드디어 일어서더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와 가로대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ㅉ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 가라사대 기도 아니 하여서는 이런 류를 나가게 할 수 없나니라(마가복음 제구장 제 이십오절- 제 이십구절). 그리하여 욱이는 자기도 하나님께 기도만 간절히 드리면 그 어미와 누이동생에게 들어 있는 사귀도 내어ㅉ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일방 그는 그가 지금까지 배우고 있던 평양 현 목사와 이 장로에게도 편지를 띄웠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오마니를 찾아왔삽내다. 그러하오나 이 지방에는 아직 우리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아서 사귀 들린 자와 우상 섬기는 자가 매우 많은 것을 볼 때 하루 바삐 주님의 복음을 이 지방에 전파하도록 교회를 지아야 하겠삽내다. 목사님께 말씀 드리기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나 저의 오마니는 무당 사귀가 들려 있고, 저의 누이동생은 귀머거리와 벙어리 귀신이 들려 있습내다. 저는 마가복음 제 구장 제 이십구절에 있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이 사귀들을 내어 ㅉ기 위하여 일심으로 기도를 드립니다마는 교회가 없으므로 기도 드릴 장소가 매우 힘드옵내다. 하루 바삐 이 지방에 교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 올려주소서.' 이 현 목사는 미국 선교사로서 욱이가 지금까지 먹고 입고 공부하게 된 것이 모두 전혀 그의 도움이었다. 욱이는 열다섯 살까지 절간에서 중의 상좌 노릇을 하고 있다가, 그 해 여름에 혼자서 서울 구경을 간다고 나선 것이, 이리저리 유랑하여 열여섯 되던 해 가을엔 평양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서 그해 겨울 이 장로의 소개로 현 목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욱이가 평양서 어머니를 보러 간다고 하니까 현 목사는 욱이를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삼 년 안에 이 사람 고국 갈 것이오. 그때 만일 욱이가 함께 가기를 원하면 이 사람 같이 미국 가게 될 것이오." "목사님 고맙습니다. 저는 목사님 따라 미국 가기가 원입니다." "그러면 속히 모친 만나 보고 오시오." 그러나 욱이가 어머니 집이라고 찾아온 곳은 지금까지 그가 살고 있던 현 목사나 이 장로의 집보다 너무나 딴 세상이었다. 그 명랑한 찬송가 소리와, 풍금 소리와, 성경 읽는 소리와, 모여 앉아 기도를 드리고 맛난 음식을 향해 즐겁게 웃음 웃는 얼굴들 대신에 군데군데 헐려져 가는 쓸쓸한 돌담과 기와버섯이 퍼렇게 뻗어 오른 묵은 기와집과, 엉킨 잡초 속에 꾸물거리는 개구리 지렁이들과, 그 속에서 무당 귀신과 귀머거리 귀신이 각각 들린 어미 딸 두 여인을 보았을 때 그는 흡사 자기 자신이 무서운 도깨비굴에 홀려 든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새삼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욱이가 이 지방 예수교인들을 두루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온 뒤로부터 야릇하게 변해진 것은 낭이의 태도였다. 그 호리호리한 몸매와 종잇장같이 희고 매끄러운 얼굴에 빛나는 굵은 두 눈으로 온종일 말 한 마디 웃음 한번 웃는 일 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은 채 욱이의 하는 양만 바라보고 있다가, 밤이 되어 처마밑에 희부연 종이등불이 걸리고 하면, 피에 주린 모기들이 미친 듯이 떼를 지어 울고 날아드는 마당구석에서 낭이는 그 얼음같이 싸늘한 손과 입술로 욱이의 목덜미나 가슴패기로 뛰어들곤 했다. 욱이는 문득 목덜미로 가슴패기로 낭이의 차디찬 손과 입술을 느낄 적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으나, 그녀가 까무러칠 듯이 사지를 떨며 다시 뛰어 들 제면 그도 당황히 낭이의 손을 쥐어주며 그 희부연 종이등불이 걸려 있는 처마 밑으로 이끌곤 했다. 낭이의 태도가 미묘해진 뒤부터 욱이의 얼굴빛은 날로 창백해갔다. 그렇게 한 보름 지난 뒤 그는 또 한 번 표연히 집을 나가고 말았다. 모화는 욱이가 집을 나간 지 이틀째 되던 날 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곁에 누워 있는 낭이를 흔들어 깨우더니 듣기에도 음울한 목소리로, "욱이가 언제 온다더누?" 물었다. 낭이가 잠자코 있으려니까, "왜 욱이 저녁밥상은 보아두라고 했는데 없노?" 하고 낭이더러 화를 내었다. 모화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초조한 빛으로 밤중마다 부엌에다 들기름 불을 켜고 부뚜막 위에 욱이의 밥상을 차려 놓고는 치성을 드리는 것이었다. "성주는 우리 성주, 칠성은 우리 칠성, 조왕은 우리 조왕,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주님께 비나이다. 하늘에는 별, 바다에는 진주, 금은 같안 이내 장손, 관옥 같안 이내 방성, 산신헤 명을 빌하 삼신헤 수를 빌하, 칠성헤 복을 빌하 용신에 덕을 빌하, 조왕님전 요오를 타고 터주님전 제주 타니 하늘에는 별, 바다에는 진주, 삼신조왕 마다하고 아니오지 못하리라 예수 귀신하, 서역 십만리 굶주린 불귀신하 탄다 훨훨 불이 탄다 불귀신이 훨훨 탄다. 타고 나니 이내 방성 금은같이 앉았다가, 삼신 찾아 오는구나, 조왕 찾아 오는구나." 모화는 혼자서 손을 비비고, 절을 하고 일어나 춤을 추고 갖은 교태를 다 부리며 완연히 미친 것같이 날뛰었다. 낭이는 방에서 부엌으로 난 봉창 구멍에 눈을 대고, 숨소리를 죽여 오랫동안 어미의 날뛰는 양을 지켜보고 있다가 별안간 몸에 한기가 들며 아래턱이 달달달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미친 것처럼 뛰어 일어나며 저고리를 벗었다. 치마를 벗었다. 그리하여 어미는 부엌에서 딸은 방안에서 한 장단, 한 가락에 놀듯 어우러져 춤을 추곤 했다. 그러한 어느 새벽, 낭이는(정신을 차리고 보니) 발가벗은 알몸뚱이로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녀 자신을 발견한 일도 있었다. 두번째 집을 나갔던 욱이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녀들 어미 딸 앞에 나타났다. 모화는 마침 굿 나갈 때 신을 새 신발을 신어보고 있었는데 욱이가 오는 것을 보자, 그 후리후리한 허리에 긴 팔을 벌려, 흡사 큰 새가 알을 품듯 그의 상반신을 얼싸안고 울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무런 푸념도 없이 오랫동안 욱이의 목을 안은 채 잠자코 울기만 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퍼런 그 얼굴에도 이때만은 붉은 기운이 들며, 그 의젓한 몸짓은 조금도 귀신 들린 사람 같지 않았다. "오마니, 나 방에 들어가 좀 쉬겠쇠다." 욱이는 어미의 포옹을 끄르고 일어나 방에 들어가 누웠다. 모화는 웬일인지 욱이가 방에 들어간 뒤에도 오랫동안 툇마루에 걸터앉은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꼴이었다. 긴 한숨과 함께 얼굴을 든 그녀는 무슨 생각으론지 도로 방으로 들어가더니 낭이의 그림을 이것저것 뒤져보는 것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밤중이나 되어 욱이가 잠결에 문득 그의 품 속에 언제나 품고 있는 성경책을 더듬어 보았을 때, 품 속이 허전함을 느꼈다. 그와 동시 웅얼웅얼하며 주문(呪文)을 외는 소리도 들려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았으나 품 속에서 성경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낭이와 욱이 사이에 누워 있을 그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떤 불길하고 무서운 예감에 몸이 부르르 떨리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귀에는, 땅 속에서 귀신이 우는 듯한, 웅얼웅얼하는 (주문을 외는 듯한) 소리가 좀더 또렷이 들려왔다. 순간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방에서 부엌으로 난 봉창 구멍에 눈을 갖다 대었다. "서역 십만리 굶주리던 불귀신하, 한쪽 손에 불을 들고, 한쪽 손에 칼을 들고, 이리 가니 산신님이 예 기신다. 저리 가니 용신님이 제 기신다. 칠성이라 돌아가니 칠성님이 예 기신다. 구름 속에 쌔어 간다 바람결에 묻혀 간다. 구름님이 예 기신다. 바람님이 제 기신다. 용궁이라 당도하니 열두 대문 잠겨 있다. 첫째 대문 두드리니 사천왕님 뛰어나와, 종발눈 부릅뜨고, 주석 철퇴 높이 든다. 둘째 대문 두드리니 불개 두 쌍 뛰어나와, 꽃불은 수놈이낼룽, 불씨는 암놈이 낼룽. 세째 대문 두드리니 물개 두 쌍 뛰어나와, 숫놈이 멍멍 꽃불이 죽고, 암놈이 멩멩 불씨가 죽고......" 모화는 소복단장에 쾌자까지 두르고, 온갖 몸짓 갖은 교태를 다 부려 가며 손을 비비다, 절을 하다, 덩싯거리며 춤을 추다 하고 있다. 부뚜막 위에는 깨끗한 접시불(들기름의)이 켜져 있고, 그 아래 차려진 소반 위에는 냉수 한 그릇과 흰 소금 한 접시가 놓여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지금 막 그 마지막 불꽃이 나불거리고 난 새빨간 불에서 파란 연기 한 오리가 오르는 <신약전서>의 두꺼운 표지는 한머리 이미 파리한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모화는 무엇에 도전이나 하는 것처럼 입가에 야릇한 냉소까지 띠우며, 소반에 얹힌 접시의 소금을 집어, 인제 연기마저 사라진 새까만 재 위에 뿌렸다. "서역 십만리 예수 귀신이 돌아간다. 당산에 가 노자 얻고, 관묘에 가 신발 신고, 두 귀에 방울 달고 방울 소리 발맞추어 재 넘고 개 건너 잘도 간다. 인제 가면 언제 볼꼬, 발이 아파 못 오겠다. 춘삼월에 다시 오랴, 배가 고파 못 오겠다......" 모화의 음성은 마주(魔酒) 같은 향기를 풍기며 온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 보석 같은 두 눈의 고태와 쾌잣자락과 함께 나부끼는 손짓은 이제 차마 더 엿볼 수 없게 욱이의 심장을 쥐어짜는 것이었다. 욱이는 가위 눌린 사람처럼 간신히 긴 숨을 내쉬며 뛰어 일어났다. 다음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방문을 뛰어나온 그는, 부엌문을 박차고 들어가 소반 위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집어 들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냉수 그릇을 집어 들기 전에 모화의 손에는 식칼이 번득이고 있었고, 모화는 욱이와 물그릇 사이에 식칼을 두르며 조용히 춤을 추는 것이었다.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너 이제 보아하니 서역 십만리 굶주리던 잡귀신하, 여기는 영주 비루봉 상상봉헤 깍아질린 돌벼랑헤, 쉰 길 청수헤, 엄나무 발헤, 너희 올 곳이 아니다. 바른손헤 칼을 들고 왼손헤 불을 들고, 엇쇠 서역 잡귀신하 썩 물러서라." 이때, 모화는 분명히 식칼로 욱이의 면상을 겨누어 치려 하였다. 순간, 욱이는 모화의 칼날을 왼쪽 귓전에 느끼며 그의 겨드랑이 밑을 돌아 소반 위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들어 모화의 낯에다 그릇째 끼얹었다. 이 서슬에 접시의 불이 기울어져 봉창에 붙었다. 욱이는 봉창에서 방 안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잡으려고 부뚜막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물 그릇을 뒤집어 쓰고 분노에 타는 모화는 욱이의 뒤를 ㅉ아 칼을 두르며 부뚜막 위로 뛰어올랐다. 봉창에서 방 안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덮쳐 끄는 순간, 뒷등이 찌르르하여 휙 몸을 돌이키려 할 때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은 허옇게 이를 악물고 웃음 웃는 모화의 품 속에 안겨져 있었다. 5 욱이의 몸은 머리와 목덜미와 등에 세 군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욱이의 병은 이 세 군데 맞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두 눈자위가 패어 들기 시작했다. 모화는 욱이의 병 간호에 남은 힘을 다하여 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낮과 밤을 헤아리지 않고 뛰어갔다. 가끔 욱이를 일으켜 앉히어서 자기의 품에 안아도 주었다. 물론 약도 쓰고 굿도 하고 주문도 외었다. 그러나 욱이의 병은 낫지 않았다. 모화도 욱이의 병 간호에 열중한 뒤부터 굿에는 그만큼 신명이 풀린 듯하였다. 누가 굿을 청하러 와도 아들의 병을 핑계로 대개 거절을 했다. 그러자 모화의 굿이나 푸닥거리의 반응이 이전과 같이 신령치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기도 했다. 이러할 즈음에 이 고을에도 조그만 교회당이 서고 전도사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것은 바람에 불처럼 온 고을에 뻗쳤다. 읍내의 교회에서는 마을마다 전도대를 내보냈다. 그리하여 이 모화의 마을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여러 부모 형제 자매 우리 서로 보게 된 것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것이오. 하나님 우리 만들었소 매우 사랑했소. 우리 모두 죄인올시다. 우리 마음 속 매우 흉악한 것뿐이오. 그러나 예수 우리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우리 구원받을 것이오. 우리 매우 반가운 맘으로 찬송할 것이오. 하나님 앞에 기도드릴 것이오." 두 눈이 파랗고 콧대가 칼날같은 미국 선교사를 보는 것은 '원숭이 구경'보다도 더 재미나다고들 하였다. "돈은 한 푼도 안받는다. 가자." 마을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 이 마을 방 영감네 이종사촌 손자사위요, 선교사와 함께 온 양조사(楊助事) 부인은 집집마다 심방하여 가로되, "무당과 판수를 믿는 것은 거룩거룩하시고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죄가 됩니다. 무당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무당은 썩어 빠진 고목나무나, 듣도 보도 못하는 돌미륵한테도 빌고 절을 하지 않습니까. 판수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제 앞도 못보아 지팽이로 더듬거리는 그가 어떻게 눈 밝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생을 만든 것은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 아버지올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읍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리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온갖 사귀 들린 사람, 문둥병 든 사람, 앉은뱅이, 벙어리, 귀머거리를 고친 이야기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한정없이 쏟아진다. 모화는 픽 웃곤 했다. "그까짓 잡귀신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방과 저주는 뼛골에 사무치는 듯 그녀는 징을 울리고 꽹과리를 치며 외쳤다.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당대 고축년에 얻어먹던 잡귀신아, 늬 어이 모화를 모르나냐. 아니 가고 봐하면 쉰 길 청수에, 엄나무 발에, 무쇠 가마에, 백말 가죽에, 늬 자자손손 가두어 못 얻어 먹게 하고 다시는 세상 밖을 내주지 아니하여 햇빛도 못보게 할란다. 엇쇠 귀신아 썩 물러가거라. 서역 십만리로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벼락같이 떠나거라." 그러나 '예수 귀신'들은 결코 물러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점점 늘어만 갔다. 게다가 옛날 모화에게 굿과 푸닥거리를 빌러 다니던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모두 예수 귀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러는 중에 서울서 또 부흥 목사가 내려왔다. 그는 기도를 드려서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 하여 온 고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가 병자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이 죄인은 저의 죄로 말미암아 심히 괴로와하고 있사옵니다." 하고 기도를 올리면, 여자들의 월숫병 대하증쯤은 대개 '죄씻음'을 받을 수 있고 그 밖에도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고, 반신불수와 지랄병까지 저희 믿음 여하에 따라 모두 '죄씻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자들의 은가락지, 금반지가 나날이 수를 다투어 강단 위에 내걸리게 된다. 기부금이 쏟아진다. 이리 되면 모화의 굿 구경에 견줄 나위가 아니라고 하였다. "양국놈들이 요술단을 꾸며 왔어." 모화는 픽 웃고, 이렇게 말했다. 굿과 푸념으로 사람 속에 든 사귀 잡귀신을 ㅉ는 것은 지금까지 신령님께서 자기에게만 허락하신 자기의 특수한 권능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령님은 오늘날 예수군들이 그렇게도 미워하고 시기하는 고목이기도 했고 미륵돌이기도 했고 산이기도 했고, 물이기도 했다. "무당과 판수를 믿는 것은 절대적 한 분밖에 안 계시는 거룩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죄가 됩니다." '예수 귀신'들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비방을 하면, 모화는 혼자서 징을 울리고 꽹가리를 치며,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서역 십만리로 물러서라 잡귀신아." 이렇게 응수하곤 했다. 6 욱이의 병은 그해 가을을 지나 겨울철에 접어들면서부터 드러나게 악화되어 갔다. 모화가 가끔 간장이 녹듯 떨리는 음성으로, "이것아 이것아, 늬가 이게 웬일이고? 머나먼 길에 에미라고 찾아와서 늬가 이게 무슨 꼴고?"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 "오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죽어서 우리 아바지께로 갈 것이오." 욱이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무어 생각나는 게 없느냐고 물으면 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어미가 밖에 나가고 낭이가 혼자 있을 때엔 이따금 낭이의 손을 잡고, "나 성경 한 권 가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듬해 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그가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현 목사가 평양에서 찾아왔다. 현 목사는 방 영감네 이종사촌 손자사위인 양조사의 인도로 뜰안에 들어서자 그 황폐한 광경과 역한 흙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이런 가운데서 욱이가 살고 있소?" 양조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욱이는 현목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두 눈에 광채를 띠며, "목사님 목사님." 이렇게 두 번 불렀다. 현 목사는 잠자코 욱이의 여윈 손을 쥐었다. 별안간 그의 온 얼굴은 물든 것처럼 붉어지며 무수한 주름살이 미간과 눈꼬리에 잡혔다. 그는 솟아오르는 감정을 누르려는 듯이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양조사는 긴장된 침묵을 깨뜨리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경주에 교회가 이렇게 속히 서게 된 것은 이 분의 공로올시다." 그리하여 그의 말을 들으면 욱이는 평양 현 목사에게 진정을 했다. 현 목사께서는 욱이의 편지에 의하여 대구 노회에 간청을 했고, 일방, 경주 교인들은 욱이의 힘으로 서로 합심하여 대구 노회에 연락한 결과 의외로 속히 교회 공사가 진척되었던 것이라 하였다. 현 목사가 의사와 함게 다시 오기를 약속하고 일어나려 할 때 욱이는, "목사님 나 성경 한 권만 사 주시오." 했다. "그럼 그 동안 우선 이것을 가지시오." 현 목사는 손가방 속에서 자기의 성경책을 내 주었다. 성경책을 받아 쥔 욱이는 그것을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았다. 그의 감은 눈에서는 이슬방울이 맺히었다. 7 모화 집 마당에는 예년과 다름없이 잡풀이 엉기고 늙은 개구리와 지렁이들이 그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동안 거의 굿을 나가지 않고, 매일 그 찌그러져 가는 묵은 기와집, 잡초 속에서 혼자서 징 꽹과리만 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화가 인제 아주 미친 것이라 하였다. 모화는 부엌에다 오색 헝겊을 걸고, 낭이의 그림으로 기를 만들어 달고는, 사뭇 먹기조차 잊어버린 채 입술은 먹같이 검어지고 두 눈엔 날로 이상한 광채가 짙어 갔다. "서역 십만리 예수 귀신 돌아간다.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알강달강 왈강달강, 엇쇠 귀신아 썩 물러가거라, 늬 아니 가고 봐하면, 쉰 길 청수에, 엄나무 바알에, 무쇠 가마에, 흰말 가죽에, 너이 자자 손손을 다 거두어 죽일란다. 엇쇠! 귀신아!" 그녀는 날마다 같은 푸념으로 징 꽹과리를 울렸다. 혹 술잔이나 가지고 이웃 사람이 찾아가, "모화네 아들 죽고 섭섭해서 어쩌나?" 하면, 그녀는 다만, "우리 아들은 예수 귀신이 잡아갔소." 하고, 한숨을 내쉬곤 했다. "아까운 모화 굿을 언제 또 볼꼬?" 사람들은 모화를 아주 실신한 사람으로 치고 이렇게 아까와하곤 했다. 이러할 즈음에 모화의 마지막 굿이 열린다는 소문이 났다. 읍내 어느 부잣집 며느리가 '예기소'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그래 모화는 비단옷 두 벌을 받고 특별히 굿을 응낙했다는 말도 났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모화가 이번 굿에서 딸(낭이)의 입을 열게 할 계획이라는 소문도 났다. "흥, 예수 귀신이 진짠가 신령님이 진짠가 두고 보지" 이렇게 장담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와 호기심에 들끓었다. 그들은 놀랍고 아쉬운 마음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모여들었다. 굿이 열린 백사장 서북쪽으로는 검푸른 소 물이 깊은 비밀과 원한을 품은 채 조용히 굽이 돌아 흘러내리고 있었다(명주구리 하나 들어간다는 이 깊은 소에는 해마다 사람이 하나씩 빠져 죽기 마련이라는 전설이었다). 백사장 위에는 수맣은 엿장수, 떡장수, 술가게, 밥가게 들이 포장을 치고 혹은 거적을 두르고 득실거렸고, 그 한복판 큰 차일 속에서 굿은 벌어져 있었다. 청사, 홍사, 녹사, 백사, 황사의 오색사 초롱이 꽃송이같이 여기저기 차일 아래 달리고 그 초롱불 밑에서 떡시루, 탁주 동이, 돼지 통새미들이 온시루, 온 동인, 온 마리째 놓인 대감상, 무더기 쌀과 타래실과 곶감고치, 두부를 놓은 제석상과, 삼색 실과에 백설기와 소채 소탕에 자반, 유과들을 차려 놓은 미륵상과, 열 두 가지 산채로 된 산신상과, 열두 가지 해물을 차린 용신상과 음식이란 음식마다 한 접시씩 놓은 골목상과, 냉수 한 그릇만 놓인 모화상과 이밖에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전물상들이 쭉 늘어놓아져 있었다. 이날밤 모화의 얼굴에는 평소에 볼 수 없던 정숙하고 침착한 빛이 서려 있었다. 어제같이 아들을 잃고 또 새로 들어온 예수교도들로부터 가지각색의 비방과 구박을 받아 오던 그녀로서는 의아스러우리만큼 새침하게 갈앉아 있어, 전날 달방으로 산에 기도를 다닐 적의 얼굴을 연상케 했다. 그녀는 전날과 같이 여러 사람 앞에서 아양을 부리거나 수선을 떨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호화스러운 전물상들을 둘러보고도 만족한 빛 한번 띠지 않고, 도리어 비웃듯이 입을 비쭉거렸다. "더러운 년들, 전물상만 차리면 그만인가." 입밖에 내어놓고 빈정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자리에서는 모화가 오늘밤 새로운 귀신이 지핀다고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여자가 돌연히, "아, 죽은 김씨 혼신이 덮었군." 하자 다른 여자들도, "바로 그 김씨가 들렸다. 저 청승맞도록 정숙하고 새침한 얼굴 좀 봐라, 그리고 모화네가 본디 어디 저렇게 이뻤나, 아주 김씨를 덮어 썼구먼." 이렇게들 수군거렸다. 이와 동시, 한족에서는 오늘 밤 굿으로 어쩌면 정말 낭이가 말을 하게 될 게라는 얘기도 퍼졌고, 또 한쪽에서는 낭이가, 누구 아인지는 모르지만 배가 불러 있다는 풍설도 돌았다...... 하여간 이 여러 가지 소문들이 오늘밤 굿으로 해결이 날 것이라고 막연히 그녀들은 믿고 있는 것이었다. 모화는 김씨 부인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물에 빠져 죽을 때까지의 사연을 한참씩 넋두리하다가는 전악들의 젓대, 피리, 해금에 맞추어 춤을 덩실거렸다. 그녀의 음성은 언제보다도 더 구슬펐고 몸뚱이는 뼈도 살도 없는 율동(律動)으로 화한 듯 너울거렸고...... 취한 양, 얼이 빠진 양 구경하는 여인들의 숨결은 모화의 괘잣자락만 따라 오르내렸다. 모화의 괘잣자락은 모화의 숨결을 따라 나부끼는 듯했고, 모화의 숨결은 한많은 김씨 부인의 혼령을 받아 청승에 자지러진 채, 비밀을 품고 조용히 굽이 돌아 흐르는 강물(예기소의)과 함께 자리를 옮겨 가는 하늘의 별들을 삼킨 듯했다. 밤중이나 되어서였다. 혼백이 건져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화랑이들과 작은 무당들이 몇 번이나 초망자(招亡者) 줄에 밥그릇을 달아 물 속에 던져도 밥그릇 속에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김씨가 초혼에 응하질 않는 모양이라 하였다. 작은무당 하나가 초조한 낯빛으로 모화의 귀에 입을 바짝 대며, "여태 혼백을 못 건져서 어떡해?" 하였다. 모화는 조금도 서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손수 넋대를 잡고 물가로 들어섰다. 초망자 줄을 잡은 화랑이는 넋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초혼 그릇을 물속에 굴렸다. "일어나소 일어나소, 서른세 살 월성 김씨 대주 부인, 방석으로 태어날 때 칠성에 복을 빌어." 모화는 넋대로 물을 휘저으며 진정 목이 멘 소리로 혼백을 불렀다. "꽃같이 피난 몸이 옥같이 자란 몸이, 양친 부모도 생존이요, 어린 자식 누여 두고, 검은 물에 뛰어들 제 용신님도 외면이라, 치마폭이 봉긋 떠서 연화대를 타단 말가, 삼단머리 흐트러져 물귀신이 되단 말가." 모화는 넋대를 따라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갔다. 옷이 물에 젖어 한 자락 몸에 휘감기고, 한 자락 물에 떠서 나부꼈다. 검은 물은 그녀의 허리를 잠그고, 가슴을 잠그고 점점 부풀어 오른다...... 그녀는 차츰 목소리가 멀어지며 넋두리도 허황해지기 시작했다. "가자시라 가자시라 이수중분 백로주로, 불러 주소 불러 주소 우리 성님 불러 주소, 봄철이라 이 강변에 복숭꽃이 피그덜랑, 소복 단장 낭이 따님 이내 소식 물어 주소, 첫가지에 안부 묻고, 둘째 가......" 할 즈음, 모화의 몸은 그 넋두리와 함께 물 속에 아주 잠겨져 버렸다. 처음엔 괘잣자락이 보이더니 그것마저 잠겨 버리고, 넋대만 물위에 빙빙 돌다가 흘러내렸다. 열흘쯤 지난 뒤다. 동해변 어느 길목에서 해물 가게를 보고 있다던 체수 조그만 사내가 나귀 한 마리를 몰고 왔을 때, 그때까지 아직 몸이 완쾌하지 못한 낭이가 퀭한 눈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사내는 낭이에게 흰죽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버으이." 낭이는 그 아버지를 보자 이렇게 소리를 내어 불렀다. 모화의 마지막 굿이 (떠돌던 예언대로) 영검을 나타냈는지 그녀의 말 소리는 전에 없이 알아들을 만도 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 "여기 타라." 사내는 손으로 나귀를 가리켰다. "......" 낭이는 잠자코 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귀 위에 올라 앉았다. 그네들이 떠난 뒤엔 아무도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밤이면 그 무성한 잡풀 속에서 모기들만이 떼를 지어 울었다. 황토기 솔개재(鳶介嶺)에서 금오산(金鰲山) 쪽으로 뻗쳐내리는 두 산맥이다. 등성이를 벌거벗은 채 십 리, 시오 리씩을 하나는 서북, 또 하나는 동북으로 뛰어 내려와서는, 거기 황토골이라는 조그만한 골짝 하나를 낳은 것뿐으로, 그 앞을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보며 동네 늙은이들의 입으로 전하는 상룡(傷龍), 또는 쌍룡(雙龍)의 전설을 이룬 지리적 결구(地理的 結句)는 여기서 끝을 맺는 것이다. 상룡설/옛날 등천(騰天)하려던 황룡 한 쌍이 때마침 금오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에 맞아 허리가 상하니라. 그 상한 용의 허리에서 한없이 피가 흘러내려 부근 일대를 붉게 물들이니 이에서 황토골이 생기니라. 쌍룡설/역시 등천하려던 황룡 한 쌍이 바로 그 전야(前夜)에 있어 잠자리를 삼가지 않은지라, 상제(上帝)께서 노하시고 벌을 내리자 그들의 여의주(如意珠)를 하늘에 묻으시매 여의주를 잃은 한 쌍의 용이 슬픔에 못이겨 서로 저희들의 머리를 물어 뜯어 피를 흘리니, 이 피에서 황토골이 생기니라. 이상은 상룡설, 또는 쌍룡설 밖에 또 절맥설(絶脈設)도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절맥설/옛날 당(唐)나라에서 나온 장수가 여기 이르러 가로되 앞으로 이 산에서 동국의 장사가 난다면 감히 중원을 범할 것이라 하여 이에 혈을 지르니 이 산골에 석 달 열흘 동안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이로 말미암아 이 일대가 황토 지대로 변하니라. 1 용내[龍川]를 건너 황토골 앞들에는 두레논을 매는 한 이십여 명 되는 사람이 한일자(一字)로 하얗게 구부려 있고, 논둑에는 동기(洞旗)를 든 사람과 풍물 치는 사람이 너댓 나서 있다. 해는 바야흐로 하늘 한가운데서 이글거리고, 온 들과 산은 눈 가는 끝까지 푸르기만 하다. 께겡 께겡 떵땅 쾌에....... 풍물이래야 꽹과리 하나, 장고 하나, 그리고 징 한 채다. 그런대로 그들은 논 매는 일꾼들과 더불어 끈기 있게 논둑을 타고 다니며 들판의 정적을 깨뜨려 가고 있다. 그런데 그들 두레꾼들과는 동떨어진 이쪽 산기슭 쪽에 혼자 논을 매노라고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곁에서 이를 본다면 그의 팔 다리나 허리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크고 길 뿐 아니라, 어깨나 몸집이 다 그렇게 두드러지게 장대하게 생겼고, 또한 머리털이 이미 희끗희끗 세어 있음을 알리라. 그의 이름은 억쇠다. 그는 몸이 그렇게 보통 사람보다 두드러지게 큰 것처럼 일도 동떨어진 곳에서 혼자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억쇠는 논 매던 손을 쉬고 논둑으로 나온다. 그는 두어 번이나 고개를 돌려 산밑 쪽을 바라본다. 아직도 분이(粉伊)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문다. 논뚝에 서 있는 소동나무에서는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온다. 억쇠가 담배를 두 대나 태우고 나서 화가 치밀어 숫제 주막으로나 찾아갈 양이면 막 허리를 일으키려는데 그때서야 저쪽 소나무 사이로 조그만 술동이를 이고 오는 분이가 보이었다. "멀 하고 인제사 와." 가까이 온 분이를 보자 억쇠는 약간 노기(怒氣) 띤 목소리로 물었다. "멀 하긴, 멀 해?" 분이는 머리에서 술동이를 내리며 마주 배앝는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확 끼치고 양쪽 눈언저리와 귓바퀴가 물을 들인 듯이 발긋발긋하다. '또 술을 처먹은 게로군.' 억쇠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이다. "자아, 옛수." 억쇠에게 술사발을 건네는 분이의 입 가장에는 어느덧 그 야릇한 웃음이 떠돌기 시작한다. 억쇠는 분이의 손에서 사발과 술동이를 나꾸듯이 빼앗는다. 동이 속에서 술이 출렁하며 밖으로 튀어 나온다. 사발과 동이를 빼앗기듯이 된 분이는 화통이 치미는지, "흥, 이년을 어디 두고 보자." 하며 이를 오도독 갈아 붙인다. 설희(薛姬)를 두고 하는 욕질이지만 당치 않은 수작이다. 억쇠는 아랑곳 없다는 듯이 술을 따라 마시고 있다. 그 동안 잔뜩 독이 오른 눈으로 억쇠를 노려보고 있던 분이는 "년놈을 한칼에 푸욱......" 하고 또 한 번 이를 오도독 간다. "이년아, 말버릇 그게 뭐여." 억쇠가 꾸짖자 분이는, "어디 임자 보고 말했나, 득보 말이지." 한다. 더욱 모를 소리다. "득보면 너의 아저씬가 무엇이 된다면서 그건 무슨 소리여." 이에 대하여 분이는, "흥, 아저씨? 아저씸 어쨌단 말요?"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풀 위에 발랑 드러누워 버린다. 걷어 올려진 베치맛자락 밑으로 새하얀 다리를 드러내 보이며 그녀는 어느덧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소동나무에서는 또 한바탕 매미가 운다. 억쇠는 세번째 술을 따라 든 채 멍하니 소동나무를 바라보고있다. 아까 분이가 '년놈을 한칼에 푸욱.......' 하던 것이 아무래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를 두고 하는 강짜란 말이냐. 억쇠는 어이가 없었다. 억쇠가 술동이를 밀쳐 놓고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을 때다. 득보가 나타났다. 한쪽 손에 멧돼지 한마리를 꺼꾸로 대룽거리며 그쪽 산비탈에서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새 산에 갔던갑네." 억쇠가 인사 삼아 묻는 말에 득보는, "빈손으로 갔더니......." 하며 멧돼지를 억쇠 곁에다 던지고 누워 자고 있는 분이 앞에 와서 털썩 앉아 버린다. 그도 보통 사람과는 딴판으로 몸집이 크게 생긴 사나이다. 키는 억쇠보다 좀 낮은 편이나 어깨는 더 넓게 쩍 벌어졌다. 게다가 얼굴은 구리(銅)빛같이 검푸르다. 그 검푸른 구릿빛이 어딘지 그대로 무서운 비력(臂力)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머리털도 칠흑같이 새까맣다. 나이는 억쇠보다는 에닐곱 살 젊어 보인다. "한 사발 하겠나?" 억쇠가 턱으로 술동이를 가리키며 묻는다. 득보는 잠자코 술동이를 잡아당긴다. 그리하여 손수 한 사발을 따라 마시고 나더니, "좋구나." 한다. 그는 연거푸 또 한 사발을 따라 마시고 나더니, "얼마나 있누." 하고 억쇠를 노려본다. "아직 많이 있다." "그럼 낼 모두 걸러라." 득보는 이렇게 말하며 의미 있는 듯한 눈으로 억쇠를 노려본다. 순간 두 사나이의 눈에서는 다같이 불길이 번쩍한다. 그것은 땅 속의 유황이라도 녹일 듯한 무서운 불길이었다. 2 이튿날은 여름하고도 유달리 더운 날씨였다. 하늘에는 가지각색 붉은 구름들이 연기를 머금은 불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안냇벌은 황토골에서 잔등 하나 넘어 있는 아늑한 산골짜기요, 또 개울가이었으므로 거기엔 흰 모래밭과 푸른 잔디와 게다가 그늘진 노송(老松)까지 늘어서 있어 억쇠와 득보들 같이 종일 먹고, 놀고, 싸우고 할 자리로서는 더 할 나위 없이 알맞은 곳이었다. 두 사람은 짤막한 잠방이 하나씩만 걸치고는 몸을 벌거벗은 채 소나무 그늘 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처음엔 돼지족(足)도 한 가리씩 의논성스럽게 째어 들었고, 술잔도 서로 권해가며 주거니 받거니 의좋게 건네 다녔다. 한 철에 한 번씩 이 안냇벌에서 대개 이렇게 술을 마시게 되었지만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럴 때처럼 가슴이 환히 트이도록 즐겁고 만족할 때가 없다. 그리고 거룩한 향연(饗宴)이기도 하였다. 이에 견준다면 분이나 설희의 자색도 한갓 이 놀이를 돋구고 마련키 위한 덤에 지나지 않을 듯했다. 두 사람은 술이 얼근해짐을 따라 말씨도 점점 거칠어져 갔다. "얼른 들어 마셔라, 이 백정놈아." "도둑놈같이, 어느새 고기만 처먹누." 이렇게 그들은 서로 욕질을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연방 술을 따라 주고 고기 뭉치도 던져주곤 하였다. "옛다. 이거 마저 뜯고 인제 뒈지거라. 늙은 놈이 계집을 둘씩이나 끼고 거드렁거리는 꼴 정 못보겠다." 하며 득보가 족발 하나를 던져준다. "네 이놈, 말버르장머리 그러다간 목숨 못 붙어 있을 게다." 억쇠는 득보 잔에 술을 따라 주며 이렇게 으르댄다. 싸움은 대개 득보가 먼저 돋구는 편이었다. 그것도 으레 분이나 설희를 걸어서 들었다(득보는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계집 핥듯이 어지간히 칙칙하게도 핥고 있다. 더럽게 늙은 놈이." 하고 득보가 먼저 술자리를 걷어차고 일어나자, 억쇠는 뜯고 있던 족발을 득보의 얼굴에다 내던지며, "옛다, 그럼 이놈아, 네가 마저 뜯어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때부터 싸움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얼굴에는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긴장이 서린다. 득보는 주먹을 들어 억쇠의 얼굴을 겨누며, "얼시구 절시구 가엾어라, 이 늙은 놈아, 내 한 주먹 번쩍하면......." 아주 노래 조(調)로 목청을 뽑으며 껑충껑충 억쇠에게로 뛰어 들어왔다 물러갔다 하는 것이다. "네 이놈, 새뼈 같은 주먹으로 멋대로 한번 때려 봐라." 억쇠는 그를 아주 멸시하듯이 태연자약하게 버티고 서 있다. "내 한 주먹 번쩍하면......네 놈 대가리가 박살이라......." 순간, 득보는 주먹으로 억쇠의 왼쪽 눈과 콧잔등을 훌쳤다. 그것을 억쇠는 대강밖에 막지 않았으므로 금시 퍼렁덩이가 들며 눈알에는 핏물이 돌기 시작하였다. "네 이놈, 새뼈 같은 주먹으로 많이 쳐라...... 실컨...... 자아." 할 때 득보의 두번째 주먹이 또 억쇠의 오른쪽 광대뼈를 쥐어 질렀다. 세번째 주먹이 또 먼저 때린 눈을 훌쳤다. 억쇠는 저만치 물러가 있는 득보를 바라보고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허연 이를 드러내며 큰 소리로 껄껄껄 웃어대었다. 득보는 저만치 물러선 채 아까와 마찬가지 노래조로 목청을 뽑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네번째 주먹이 오른쪽 눈 위를 그리고 다섯번째 주먹이 또다시 콧잔등을 때렸을 때, 그러나 억쇠는 역시 먼저와 같이 큰 소리로 껄껄껄 웃어만 주었다. "네 이놈, 그 새뼈 같은 주먹으로 저 산을 한 번 물러 세워봐라." 여섯 번, 일곱 번, 득보는 몇 번이든지 늘 마찬가지 내 한 주먹 번쩍하면을 되풀이하며 뛰어들어서 억쇠의 면상과 목과 가슴과 허리를 힘껏 지르는 것이었으나, 그때마다 억쇠는 간단한 몸짓으로 그것을 받아 내었을 뿐 적극적으로 득보에게 주먹질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렇게 득보에게 같이 주먹질하지 않고, 그냥 얻어맞기만 하는 것이 그지없이 즐겁고 만족한 모양으로, 상반신이 거진 피투성이가 되도록 끝내 큰 소리로 껄껄껄 홍소(哄笑)만을 터뜨리고 서 있는 것이었다. 득보는 더욱 힘이 솟아오르는 듯 주먹질과 함께 곁들이는 발길이 억쇠의 아랫배와 넓적다리 근처에 와 닿는 것으로 보아 그 겨냥이 무엇이라는 것은 억쇠도 곧 짐작하였다. 그래서 그의 발길만은 그대로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도 그 옛날에 붕새란 새가 있었나니, 수격 삼천 리 니일니일 얼시구야 지화자자 저절시구." 득보는 입에 하나 가득 찬 피거품을 문 채 이렇게 목청을 뽑으며 덩실거리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억쇠는 피로 물든 장승처럼 뻣뻣이 서서 뛰어들어오는 득보의 주먹질과 발길을 받아낼 뿐이었다. 득보의 네번째 발길이 억쇠의 국부를 건드렷을 때 그는 한순간 그 자리에 퍽 쓰러질 뻔하다가 겨우 한쪽 팔로 득보의 목을 후려 안으며 어깨를 솟굴 수 있었다. "이놈아!" 산골이 쩌러렁 울리는 억쇠의 목소리였다. 이리하여 한 덩어리로 어우러진 그들의 입에서는 어느덧 노래도 웃음 소리도 동시에 뚝 끊어지고 다만 씨근거리는 숨소리와 뿌득뿌득 밀려 나갔다 들어왔다 하며 근육(筋肉)과 근육 부딪는 소리만이 났다. 두 사람의 코에서는 거의 동시에 피가 터져 나왔다. 게다가 땀으로 번질번질하던 두 사람의 낯과 어깨와 가슴은 어느덧 아주 피투성이로 변해져 버렸다. 득보가 억쇠의 아래턱을 치지르며 막 몸을 옆으로 빼뜨리려는 순간이었다. 억쇠의 힘을 다한 바른편 주먹이 득보의 왼쪽 갈비뼈 밑에 벼락을 쳤다. 억쇠의 모진 주먹을 맞은 득보는 갑자기 얼굴이 아주 잿빛이 되어 뒤로 비실비실 몇 걸음 물러나가다 그대로 모래 위에 꼬꾸러져 버린다. 억쇠의 목과 입과 코에서도 다시 피가 쏟아졌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두 손으로 아래턱을 받쳐 피를 받으며 우두커니 앉아 있다 말고 돌연히 미친 것처럼 뛰어 일어나는 길로 또 한 번 와락 득보에게로 달려들어 쓰러져 있는 그의 바른편 어깨를 물어 떼었다. 어깨의 살이 떨어지며 시뻘건 피가 팔꿈치까지 주르르 흘러내리자 득보는 몸을 좀 꿈적이었으나 역시 일어나지 못하는 채 그대로 뻗어져 누워 있는 것이었다. 억쇠는 입에 든 득보의 어깨살을 질겅질겅 씹다 벌건 핏덩어리를 입에서 뱉어내고 그러고는 다시 술항아리를 기울여 술을 몇 사발 마시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누구의 입에서 항복이 나온 것도 아니요, 어느 쪽에서 쉬기를 청한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다같이 죽은 듯이 늘어지고 잠든 듯이 자빠졌으나 아주 숨통이 멎은 것도 아니요, 정말 평온한 잠이 든 것도 아니다. 흐르는 냇물에서 저녁 바람이 일고 높은 소나무 가지에서 매미 소리가 서슬질 무렵이 되면 그들은 마치 오랜 마주(魔酒)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털고 일어나 낮에 먹다 남겨둔 술항아리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녁 때의 싸움은 대개 억쇠가 먼저 거는 편이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억쇠가 먼저 주먹질로 시작하였다. 두 사람의 몸뚱이는 그러나 몇 번 모질게 부딪고 할 새도 없어 이내 다시 피투성이가 되어 버리기 마련이었다. 득보는 되도록이면 억쇠의 주먹을 피하려는 듯이 저만치 선 채 춤만 덩실덩실 추고 있는 것이었다. "새야 새야 붕조새야 북명 바다 붕조새야 치징 치징 치징 치징 지하자자 지절시구." "야, 이놈, 득보야!" 억쇠는 또 한번 건너편 산이 쩌르릉 하도록 소리를 질렀다. "간다 훨훨 날아간다. 수격 삼천리...... 내 한 주먹 번쩍하면 네놈 대가리가 박살이라, 치징 치징 치징 치징 지하자자 저절시구." 득보는 이렇게 목청을 뽑으며 점점 억쇠에게로 가까이 다가들어 왔다. 웬일인지 싸울 태세를 갖추지 않고 그냥 춤만 덩실덩실 추며 억쇠의 턱 앞까지 다가들어 왔다. 억쇠는 뛰어들어 그의 목을 안았다. 득보도 억쇠와 같이 하였다. 두 사람은 큰 나무가 넘어가듯 쿵하고 한꺼번에 자빠져 버렸다. 득보의 목을 안고 한참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던 억쇠는 갑자기 큰 소리로 껄껄껄 웃어대었다. 그의 왼쪽 귀가 붙어 있을 자리엔 찢기인 살과 피가 있을 따름, 귀는 절반이나 득보의 입에 가 있고, 득보는 아끼는 듯 그것을 얼른 뱉어 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해가 지고 어두운 산그늘이 내려오도록 이 커다란 피투성이들은 일어날 생각도 없이 연방 서로 피를 뿜으며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 것이다. 3 억쇠와 득보는 지난 해 봄에 첨으로 만났다. 그리하여 그날로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날부터 그들의 생활이 시작되었던 겐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전부터 그들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먼저, 주인격인 억쇠로 말하자면, 그는 이 황토골 태생으로 나이는 쉰두 살, 수염과 머리털이 희끗희끗 반이나 넘어 세인 오늘날까지 항상 가슴 속에 홀로 타는 불길을 감춰온 사람이다. 그것은 언젠가 한번 저 무지개와도 같이 하늘 끝까지 시원스레 뿜어졌어야 했을 불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자기 동네 장정(壯丁)들도 겨우 다룬다는 들돌을 들어서 허리를 편 것으로 온 마을을 뒤집어 놓은 것은 그의 나이 열세 살 나던 해다. "장사 났군." "황토골 장사 났다!" 사람들은 숙덕거리기 시작하여, 이튿날은 노인들이 의관을 하고 동회(洞會)로 모여들었다. -예로부터 황토골에 장사가 나면 부모한테 불효하거나 나라의 역적이 된댔것다. -허긴, 이제는 대국 명장이 혈을 지른 뒤이니 별 수는 없으리라. -당찮으니. 바로 내 종조뻘되는 이가 그때 장사 소릴 듣고 사또 앞에 잡혀 가 오른쪽 팔 하나를 분질러 나왔거든. 이따위 소리들을 서로 주고받고 하다가 결국 억쇠의 오른쪽 어깨의 힘줄에다 침을 놓으라는 결론이 났다. 그 중에서도 유독 심히 구는 사람이 억쇠의 백부뻘되는 영감이었다. "황토골 장사라면 나라에서 아는 거다. 자, 자식 하나 버릴 셈치면 그만일껄. 자, 괜히 온 집안 멸문 당할라." 하고 동생을 윽박질렀으나, 그러나 동생은 끝까지 묵묵히 앉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억쇠 하나밖에 더 자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 밤 그의 어머니는 억쇠의 소매를 잡고, "이것아, 어쩌다 그런 철없는 짓을 했노. 너이 아바이 속을 너는 모를라." 하며 울었다. 이튿날 아침 그 아버지는 억쇠를 불러, "늬 나이 열세 살이다. 몸 하나라도 성히 지닐라거든 철없이 아무 데나 나서지 마라, 네 일신 조지고 온 집안 문 닫게 할라. 모도가 늬 맘 먹을 탓이다." 하였다. 억쇠는 아버지의 이 말을 새겨 들었다. 그리하여 씨름판이고 줄목이고 들돌을 다루는 데고 짐내기를 하는 마당에도 일체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나 무슨 힘겨룸 따위를 하는데는 비치지 않았다. 그의 나이 스무 살 남짓 했을 때는 과연 솟는 힘을 제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다. 어떤 날 밤에는 혼자서 바위를 안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골짜기로 내려왔다 하는 동안 어느덧 밤이 새어 버리는 수가 있었다. 상투가 풀려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두 눈엔 벌겋게 핏대가 서고 하여 흡사 미친 사람 같았다. 밤사이는 또 이렇게 바위와 씨름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낮이 되면 무엇이든지 눈에 뵈는 대로 때려 부수고 싶고 메어치고 싶고 온갖 몸부림과 발광이 치밀어 올라 잠시도 견딜 수가 없었다. 힘자랑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힘을 써 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억쇠의 이런 소문이 또 한번 황토골에 퍼지자 그의 백부는 그의 아버지를 보고, "인제는 그놈이 무슨 일을 낼 끼다. 자아, 그때 내 말대로 단속을 했더면 이런 후환은 없었을걸. 자아,인제 그놈을 누가 감당할꼬. 자아, 그러면 늬 자식 늬가 혼자 맡아라. 나는 이 황토골에 못 살겠다." 이러고는 재를 넘어 이사를 가 버렸다. 억쇠는 이 말을 듣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목을 놓고 울었다. 집에 돌아와 낫을 갈아 아버지 모르게 오른쪽 어깨를 끊고 피를 흘렸다. 이것을 안 그의 어머니는, "어리석게 인제 와서 그게 무슨 짓이람. 힘세다고 다 부량할까, 제 맘 먹기에 달렸는걸...... 괜히 너의 어른 알면 시끄러울라." 하고 되려 못마땅히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그에게 남긴 유언도 다만 힘을 삼가라는 것뿐이었고 그의 아버지가 임종에 이르러 그에게 신신당부를 한 것도 역시 이것이었다. "늬가 어릴 때 누구에게 사주를 봤더니 너의 팔자에는 살이 세다고, 젊어서 혈기를 삼가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할 게라더라...... 그렇지만 사람에게는 힘이 보배니 너만 알아 조처할 양이며는 뒤에 한번 크게 쓰일 날이 있을 게다. 조용히 그때가 오기만 기다려라." 아버지가 숨을 거둘 때 남긴 이 말이 억쇠에게 있어서는 그 무슨 하늘의 계시(啓示)와도 같이 들렸던 것이다. '한 번 크게 쓰일 날이 있을 게다.' '때가 오기만 기다려라.' 그는 잠시도 이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질 때가 없었다. 그 미칠 듯이 솟아 오르는 힘의 충동을 누르며, 그 한번 크게 쓰일 날을 기다려 오늘인가 내일인가 하는 사이, 그러나 그 기다리는 날이 오기도 전에 어느덧 그의 머리털과 수염만이 희끗희끗 반넘어 세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주막으로 나갈 색시와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고 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의 일이었다. 하루는 삼거리 주막에서 분이라는 예쁘장스러워 뵈는 젊은 색주가와 더불어 술을 먹고 있는데, 계집이 잠깐 밖에서 손님이 저를 찾는다면서 곧 다녀 들어온다, 하고 나간 것이 종시 들어오질 않은 채, 때마침 밖에서는 무슨 싸움 소리 같은 것이 왁자지껄하기에 문을 열어 보았더니, 어떤 낯선 나그네 한 사람이 주인의 멱살을 잡아 이리 나꾸고 저리 채고 하는 중이 아닌가. 그새 뒤안에서 노름을 놀고 있던 패들이 우우 몰려나와 이 말 저 말 주고받고 하던 끝에 시비를 가로맡었나 본데, 그것은 주인의 말이, "아, 생전 낯선 나그네가 와서 남의 주모더러 이 여자는 내 딸이다, 이리 내어 달라, 하니 온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하매, 필시 이 나그네가 분이의 상판대기에 갑자기 탐을 낸 모양이라고......, 허나, 분이는 자기네도 누구나 다 끔찍이 좋아하는 터이요, 더구나 생전 낯선 작자가 돈 한푼 어떻다는 말 없이 가로집어 채려 하니, 이 부량하고 경우 없는 작자를 그냥 둘 수가 없다하여, 노름패 중에서 한 사람이 먼저 따귀 한 찰을 올려 붙였는데, 낯선 사내는 펄쩍 뛰듯이 일어나 그 노름꾼의 멱살을 덥석 잡아 땅에 메꽂아 놓았다. 이것을 본 온 마당 사람들은 다 겁을 집어먹었으나 원체가 이쪽엔 수효도 많고 또 노름꾼 중에는 힘센 놈도 있고 독한 자도 있자니까, 그렇다고 그대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이놈이 대들고 저놈이 거들고 하나, 낯선 사내는 좀처럼 꿀려들어갈 듯도 하지 않은 채 하나둘 자빠져눕는 것은 모두 이쪽 편이다. 머리가 터진 놈, 아랫배가 채인 놈, 허구리를 쥐어 박힌 놈, 따귀를 맞은 놈, 부상자들이 마당에 허ㅇ게 나가 누웠다. 억쇠도 술이 얼근했던 터이라, 이 꼴을 그냥 볼 수 없다 하여 방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며, "아니 웬 놈이 저렇게 불량한 놈이 있누?" 한번, 집이 쩌르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호령을 쳤다. 낯선 사내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억쇠를 한번 흘겨보더니, "흥, 너도 이놈......." 하는 말도 채 맺지 않고, 별안간 뛰어들며 머리로 미간을 받으며, 억쇠도 한순간 정신이 다 아찔하였으나, 그 다음 순간엔 그도 빈 손으로 놈의 멱살을 잡아 쥘 수 있었다. 보매 기골도 범상히는 생긴 놈은 아니로되, 그래도 처음 억쇠는, 그 놈이 그저 힘깨나 쓰는데다 싸움에 익은 놈이려니쯤으로밖에 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한번 힘을 겨뤄보자 그냥 이만저만 센 놈이나 부량한 놈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순간, 억쇠는 문득 자기의 몸이 공중으로 스르르 떠오르는 듯한 즐거움이 가슴에 솟아 오름을 깨달으며 저도 모르게 멱살 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놓아 버렸다. 4 이 낯선 사내-그의 이름은 득보였다-가 억쇠를 따라서 황토골로 들어와 억쇠와 징검다리 하나를 사이하고 살게 된 것은 바로 그날부터의 일이었다. 냇물가에, 길을 향해 앉아 있던 오두막 한 채를 억쇠가 그를 위하여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한 사날 뒤에 득보는, "털이 그렇게 반이나 세인 놈이 여태 자식 새끼 하나도 없다니 가련하다. 헌데 나는 네놈한테 아무 것도 줄 게 없구나. 그래서 분이를 데리고 왔다. 네 새끼 삼아 네가 데리고 살아라." 하였다. 억쇠가 거북하게 웃으며, "너는 이놈아......." 하고 물으니까. "늙은 놈이 남의 걱정까지 하게 됐느냐. 고맙다 하고 술이나 한턱 걸쭉하게 낼 일이지. 하기야 그렇지 않기로서니 아무람 이 득보가 조카딸년 데리고 살겠나마는......." 하며 입맛을 다시었다. 득보의 조카딸이란 말에 억쇠는 그렇다면 생판 남은 아닌 모양이라고 좀더 마음을 놓으며, "너도 이놈아, 같이 늙어가는 놈이 웬 걸 주둥아리만 그렇게 사나우냐. 더구나 내가 늙었음 네놈 같은 것 하나쯤 처분하지 못할 성부르냐." "늙은 것이 잔소리 중얼중얼 잘 줏어섬긴다." 두 사내가 이런 말을 건네고 있는 동안 분이는 억쇠네 술항아리에서 술을 퍼내다 거르고 있었다. 이것이 분이와 억쇠의 혼사요, 또 그녀에게 있어서는 시집살이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술이 얼근했을 때 억쇠가 또 득보를 보며, "너는 이놈아 혼자 살래." 하고 물어보았더니, 득보는 곧, "세상에 계집이 없어?" 하고 자신있게 말했다. "네놈 그 험상궂은 상판대기하며 웬걸 계집들이 그렇게 줄줄 따르겠다." "흥, 이놈아 너무 따라서 걱정이다. 그러기 땜에 분이도 네놈의 차지가 되는 거다. 저년은 강짜를 너무 놀기 땜에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거든. 너 같은 농사꾼한테나 제격이지." 이러한 득보의 대답을 억쇠는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몰랐다. 아까는 자기가 그에게 집을 마련해 준 사례로, 그리고 또 이왕 제 조카딸을 데리고 살 수 없으니까 데리고 왔노라고 해놓고, 지금 와서는 강짜가 심해서 어차피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처음 주막에서 득보는 분이를 자기 딸이라 했고, 그 다음엔 조카딸이라 하더니, 지금 와서는 제가 데리고 살자니까 너무 강짜가 심해서 억쇠에게 양보를 한다는 것이다. 아무렇거나 억쇠는 어차피 후처를 얻어야 할 형편이요, 또 분이와는 본래 그녀가 주모로 있을 적부터 이미 색념이 있던 터이고 하여 구태여 마다할 까닭도 없었다. 그러나 득보가 분이를 두고 딸이니 조카니 하는 것처럼 득보에 대한 분이의 태도도 또한 야릇한 것이 있어, 어떤 때는 아저씨랬다, 어떤 때는 그이랬다, 심하면 아주 득보라고도 불렀다. 그러다가 어느날 밤엔, "아무 것도 아니오. 외가는 외가뻘이라 하지만 그이와는 직접 걸리지 않고 내 외삼촌의 배 다른 형제라요." 했다. 어느 날은 술이 또 취해서, "왜 내가 아일 못 낳아? 저 건너 득보한테가 물어 보지. 분이가 열여섯에 낳은 옥동자를 어쨌는가고. 씨 글러 못 낳지 내 배 탓인줄 알어?" 라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걸핏하면 곧잘 득보의 이름을 걸치고 드는 분이가 여간 못마땅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숫색시인 줄 알고 장가 든 것이 아닌 바에야 못 들은 체 해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거기서 그 두 사람이 이리저리 걸치는 말들을 종합해서 그들의 과거란 것을 대강 추려보면, 득보는 본래 이 황토골에서 한 팔십 리 가량 떨어져 있는 어느 동해변(東海邊)에서 그의 이복(異腹) 형제들과 더불어 대장간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번은 그 형제들과 싸움을 하다 괭이로 머리를 때려서 그 형제 하나를 죽이고 그 길로 서울까지 달아나 거기서 누구 집 하인 노릇을 하던 중 이번에는 또 그곳 어느 대가의 부인과 관계를 맺었던 모양이다. 그랬다가 그것이 남에게 드러나게 되자 거기서 도망질을 쳐서 도로 고향 근처로 내려와 다시 옛날과 같은 대장간 일이나 보고 있으려니까 이번에는 다시 옛날 형제를 죽인 사람이란 소문이 퍼져 더 머물러 살 수 없게 되니 하는 수 없이 또 나그네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분이는 득보가 두번째 그의 고향 근처로 내려와 살려다 못 살고 다시 나그네길을 떠나게 된 데 대하여 그것은 그녀 자신이 그의 옥동자를 낳게 되었기 때문인 듯이 말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확실한 이야기인지 모를 일이다. 분이의 그 야릇한 말투와 행동으로 보아서, 그 관계란 것을 가령 분이가 아직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계집애의 몸으로서 자기의 외삼촌의 배 다른 형제뻘이 되는 득보의 아이를 낳게 된 것이라 하더라도, 득보와 같은 그러한 위인이 그만한 윤리적 탈선이나 과실로 인하여 일껏 벌였던 일터를 동댕이치고 다시 나그네길을 떠나게 되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보면 거기엔 위의 두 가지 이유가 다 걸려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분이가 걸핏하면 득보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그녀의 마음이 거기 있는 까닭이요, 마음이 있는 곳에 몸도 대개 가 있어, 한 달 잡고 스무 날 밤은 억쇠가 홀아비로 자야 하였다. 낮에 가서 술잔이나 팔아 주고 돼지 마리나 삶아 주고 하는 것 쯤은 분이의 과거가 그러한 만큼 혹 예사라 치더라도 잠자리까지 그러한 데는, 제 말대로 비록 제 외삼촌의 이복 형제뻘쯤 된다 할지라도 바로 징검다리 이쪽에 제 서방의 집을 두고 있는 처지에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억쇠가 득보더러, "너 이놈, 분이는 왜 밤낮 네 집에 붙여 주는 거야." 하고 꾸짖으면, "늙은 놈이 계집 투정은 어지간히 한다." 하며 득보는 가래침을 탁 뱉곤 했다. "어디 보자, 네놈 주둥아리가 곧장 성한가." "벼르지만 말고 낼이라도 당장 끝장을 내렴. 끝장을 못 내면 그 대신 계집은 내게 넘기던지......." "흥......." 하고 억쇠는 코웃음을 쳤다. 네놈 하나쯤은 가소롭다는 뜻이다. 이럴 때 만약 어느 쪽에서든지 술과 안주만 준비되어 있다면 이튿날로 곧 싸움이 벌어진다. 그들과 같이 가끔 싸움을 가져야 하는 사이에 있어 분이의 그러한 생활 태도는 그것을 돋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기는 득보가 처음부터 조카딸이라는 구실로 그녀를 억쇠에게 갖다 맡긴 것도 미리 다 이러한 효과를 노렸던 것인지 몰랐다. 분이는 분이대로 두 사나이가 자기를 두고 무슨 수작을 하든지 그런 것은 아랑곳도 없다는 듯이 밤에나 낮에나 부지런히 징검다리를 건너다녔다. 억쇠가 볼 때 더욱 해괴한 노릇은 분이가 득보를 두고 강짜를 노는 일이었다. 득보는 언젠가도 천하에 흔한 게 계집이라는 큰 소리를 쳤지만, 과연 제 말대로 분이가 아니더라도 계집에 그다지 주릴 사이는 없었다. 이디로 한번 나가 며칠을 묵고 들어올 적에는 으레 낯선 계집 하나씩 달고 들어오곤 하였다. 그것들이 그러나 사흘도 못 가 대개 달아나 버리기는 하였지만. 그런데 또 한 가지 망칙한 일은 이렇게 가끔 득보가 달고 들어오는 계집들에게 분이가 번번히 강짜를 부린다는 사실이었다. 강짜를 놀되 이건 어처구니도 없이 이년아, 왜 남의 은가락지를 훔쳤느냐, 내 다리를 찾아 내라, 수젓가락이 없어졌다, 모시 치마는 어디 갔느냐...... 이런 따위로 낯선 계집들의 노리개나 옷벌을 뺏기가 일쑤요, 그러고서도 계집이 얼른 물러가지 않으면 이번에는 육박전으로 달려들어 머리를 뜯고 옷을 찢곤 하는 것이다. "너 때문에 득보는 평생 어디 장가 들겠나?" 하고 억쇠가 나무라면, 분이는, "벨소릴 다 듣겠네. 그럼 도둑년을 붙여 둘까?" 하고 톡 쏘는 것이다. 한번은 역시 그러한 여자 하나가 득보에게 몹시 반했던지 얼른 달아나지 않고 한 달포 동안이나 붙어 살게 되었다. 분이가 그런 따위 수작을 붙이면 서슴지 않고 보따리를 털어서 척척 내어 주어 버린다. 몸집도 큼직하려니와 여자치고는 힘도 세어서 분이가 본래 남의 머리를 뜯고 옷벌이나 찢는 데는 여간한 솜씨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 여자에게만은 그리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몇 번 머리를 뜯으려고 달려들었다가는 번번이 실패를 보고 말았다. 그러자 분이는 일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며칠이든지 득보네 방구석에 그냥 박혀 있었다. 밤 사이에는 셋이서 무엇을 하는지, 밖에서 들으면 흡사 씨름을 하는 것처럼 툭턱거리고 쾅쾅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어떤 때는 그것이 밤새도록 계속되기도 하였다. 이러하고 난 이튿날 아침에 보면 세 사람이 다 으레 머리를 풀어 흐트린 채 눈들이 벌개져 있었다. 그것을 보는 억쇠는 입맛이 쓴지, "더러운 년놈들!" 하면서 침을 뱉곤 하였다. 그렇게 얼마를 지난 어느 날 새벽녘이었다. "년놈이 사람 죽이네!" 하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분이의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특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득보의 생활에 사생결단의 관심을 걸고 있는 분이가 그러면 제 서방 격인 억쇠를 보지 않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정부는 정부요, 본부는 본부란 속인지 득보의 집에서 국그릇도 들고 오고 밥사발도 안고 오곤 하여, 시어머니와 억쇠의 밥상을 보는 체도 했고, 가다가 빨래가 밀리면 빨래 방망이를 들고 나서기도 하였다. 그밖에 무슨 잠자리 같은 데서 몸을 사리거나 하느냐 하면 그런 일은 한번도 없고, 그보다도 분이의 말을 빌리면, 억쇠에 대한 그녀의 가장 중요한 불만이 잠자리에 있어 그가 너무 심심한 점이라 한다. 5 분이가 밤낮으로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을 무렵 억쇠는 맘 속으로 그녀를 단념하고, 그 대신 그 전부터 은근히 눈독을 들여오던 설희를 손아귀에 넣고 말았다. 억쇠는 집안이 농가요, 과거가 또한 그러니 만큼 잠자리에 뿐만 아니라 분이의 모든 점이 그에게는 맞을 수 없었다. 더구나 늙은 어머니까지 모시는 몸으로 여태 혈육 한 점 없다는 것도 여간 송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심정으로서도 자식 하나쯤은 기어이 남겨야 할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음씨나 몸가짐이 그러한 분이에게 이 일을 기대할 수는 없었고, 또 그러니 만큼 그것을 통정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녀와는 상의 없이 저 설희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이는 또 분이대로 잔뜩 배알이 틀리는지, "흥, 씨 글러 못 낳지 배 글러 못 낳는 줄 아니. 어느 년의 그건 어디 별난가 두고 보자!" 하며 이를 갈아 붙였다. 설희는 용모가 미인이었고, 게다가 행실까지 얌전하다 하여, 부근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만큼 소문이 높이 나 있던 여자였다. 스물셋에 홀로 되어 그 동안 여러 군데서 무수히 권하는 개가도 듣지 않고 식구래야 하나밖에 없는 늙은 시아버지를 지성껏 섬겨가며 군색한 빛 남에게 보이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얼마 전 그 시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버리고 의지가지 없게 되자, 그 동안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을 두고 몇 차레 집적거려 보기까지 하여 오던 억쇠가 드디어 그녀를 손에 넣고 말았던 것이었다. 한편 설희에 대하여 침을 흘려온 자로 말하면 물론 억쇠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가운데도 득보는 잔뜩 제 것이 될 줄로만 믿어왔던 모양으로, 설희가 억쇠와 함게 지내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자 으흥하고 신음 소리를 내었다. "늙은 놈이 계집을 둘씩이나 두고 거드렁거리다 쉬 자빠질라. 괜히 헛욕심 부리지 말고, 진작 하날랑 냉큼 내놓는 게 어때." 안냇벌에서 돌아오며 억쇠에게 하는 말이었다. 억쇠는 그냥, "그놈 주둥아릴......." 하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이놈이 끝내 그냥 있진 않겠구나.' 했던 것이다. 어느 날 밤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한 이경이나 되어 억쇠가 설희에게로 가니 방문의 불빛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불그레하게 비쳐 있는데 그 안에서 사내의 코 고는 소리가 드르렁거렸다. 아차 싶어 신돌 위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침침한 불빛에서도 완연히 크고 낯 익은 메투리 한 켤레가 놓여 있지 않는가. 순간 억쇠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온 몸의 피가 가슴으로 모여드는 듯하였다. 떨리는 손으로 막 문고리를 잡으려 할 때 저쪽 뜰 구석에서 사람의 기척 소리가 나는 듯하여 얼른 머리를 돌려서 보니 그쪽 어두컴컴한 거름 무더기 곁에 하얗게 서 있는 것이 분명히 사람의 모양이요, 한두 걸음 가까이 들어서는데 보니 바로 설희였다. 설희는 억쇠의 턱밑으로 다가 들어서며, "득보요. 벌써 초저녁에 와서 어른을 찾데요. 안 계신다고 해도 그냥 들어와서 어떻게 추근추근히 구는지, 할 수 없이 측간엘 간다고 나와서 뒤곁에 숨어 안 있능교." 이렇게 소곤거렸다. "으-." 하고, 혼자 속으로, '죽일 놈이다.' 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방문 고리를 잡을 때는 이놈을 아주 잠이 든 채 대가리를 부셔놔라, 했던 것이다. 득보는 억쇠가 문을 열고 들어와도 모르고 방에 하나 가득 찰 듯한 큰 덩치를 뻗드리고 자빠져 누워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고 있었다. 유달리 검붉고 뼈가 뚝뚝 불거진 얼굴에 희미한 불그림자가 가로 비껴 있고, 여줏덩이만이나 한 콧마루 위에는 마침 파리까지 한 마리 붙어 있다. 파리는 콧잔등을 타고 기어 올라가다가 산근 위에 가 앉았다. 파리와 함께 그의 시선도 그 혹 위에 가 멎어서 더 움직이질 않았다. 그것은 금년 삼월 삼짇날 싸움 때 억쇠의 주먹에 맞아서 생긴 게라는 혹이었다. 그러자 억쇠는 문득 어떤 비창한 생각이 들였다. 그는 후들거리는 발길로 득보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이놈 득보야!" 하고 불렀다. 몸을 좀 꿈틀거리다 그대로 다시 코를 골기 시작하는 득보를 이번에는 좀더 거세게 걷어차며, "이놈 득보야!" 하니 그제야 핏대가 벌겋게 선 눈을 떠, 방 안을 한번 살펴보고 나서 기지개를 켜며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억쇠가 목소리에 노기를 띠고, "네 이놈 여기가 어디여." 한즉, 그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는 대답이 없었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여." 또 한번 호통을 치니 그제야 그 벌건 눈으로 억쇠를 한번 힐끗 쳐다보며, "어딘 어디라." 한다. "흥, 이놈!" 억쇠는 한참 득보의 낯을 노려보고 있다 이렇게 선웃음을 한번 치고 나서, 얼굴을 고쳐, "따로 매는 맞을 날이 있을 터이니 오늘 밤엔 우선 술이나 처먹어라." 하고 설희를 불러 청했다. 이날 밤 이래로, 득보의 설희에 대한 태도가 조금 은근해진 듯하기는 했으나, 그 대신 전날보다도 더 걸음이 쉽고 잦게 되었다. "아지매 있어?" 득보는 언제나 밖에서 이렇게 불렀다. 설희는 설희대로 득보가 비록 자기를 찾더라도, "안 계시는데요." 하고 으레 바깥 주인이 안 계신다는 뜻으로만 대답을 하곤 했으나 득보는 억쇠가 있든지 없든지 그냥 방으로 들어오므로 나중에는 잠자코 방문을 열기만 하였다. 이렇게 방 안에 들어온 득보는 처음에 으레 농지거리 비슷한 인사말을 붙여 보곤 하였으나, 수작이 지나치면 그때마다 설희의 두 눈에 싸늘한 칼날이 돋침을 발견하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 앉는가 하면 의외로 빨리 자빠져 누워 코를 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놈아 맞아 죽을라, 조심해라." 억쇠가 은근히 얼러 보면, "더럽게 늙은 놈아! 친구가 네 계집 궁둥이에 좀 붙어 자기로서니 늙은 놈 처신으로 그것까지 샘질이냐?" 득보는 아니꼬운 듯이 가래를 돋구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억쇠는 득보가 언젠가 분이를 두고도 이렇게 가래만 뱉던 것을 기억하고, "흥, 이놈이 어디 두고 보자."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면, "이놈아, 그렇다면 낼이라도 끝장을 내자. 어느 놈의 계집이 되는가 말이다." 하고 득보는 또 언젠가 분이를 두고 하던 것과 같은 말투었다. "어디 이놈!" 하고 이번에는 억쇠도 이전과 다른 눈살을 쏘았다. 이 모양으로, 두 사람 사이에 설희가 새로 등장한 이후로는 언제나 그녀로써 싸움의 동기를 삼았다. 그것도 물론 분이의 경우와 같이 한갓 싸움을 돋구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분이의 경우보다는 양쪽이 다 좀 심각한 체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억쇠도 설희에 대해서만은 진지한 태도로 어쩌다 술이라도 얼근해지면, "난 자네가 암만 해도 염려스러이." 하고 슬쩍 그녀의 마음을 떠보기도 하였다. 그럴라치면 그때마다 설희는 소곳이 고개를 수그릴 뿐 대답이 없었다. 한번은 분이의 이야기를 하던 끝에 설희가, "아주 떼내어 버려요." 하기에 그때 역시 술기가 얼근하던 억쇠라, 농담 삼아, "그랬다가 자네마저 득보놈이랑 어울려 버리면 어쩌라구." 했더니 설희는 갑자기 낯빛이 파랗게 질리어 한참 앉아 있다가, "나같이 팔자 험한 년이 앞으론들 좋기로사 바라겠소....... 그저 이 위에 더 팔자는 고치지 않을 작정......." 하고 조용히 수건으로 눈물을 받으매 억쇠는 취한 중에서도 설희의 팔자란 말에 문득 자기의 반 넘어 세인 수염을 쓸어 쥐며, "미안하이, 미안해." 진정으로 언짢아하였다. 득보가 밤낮없이 설희의 방에 걸음이 잦을 무렵이었다. 밤마다, 달이 있을 때에는 그 집 뒤곁의 늙은 홰나무 그늘에 숨고, 달이 없을 때엔 캄캄한 어둠에 싸인 채 그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는 설희의 방문을 분이는 노리고 있었다. 그녀의 낯에는 그믐달빛 같은 독기(毒氣)가 서리고 그 두 눈에는 야릇한 광채(光彩)가 감돌며, 그리고 품 속에는 헝겊에 싸인 날이 새파란 비수(匕首) 하나가 들어 있었다. 6 억쇠와 득보 두 사람이 서로 겨루듯이 열을 내어 설희에게 다니기 시작한 뒤부터 분이의 낯빛과 거동엔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전과 같이 수다스레 지껄이지도, 노골적으로 입을 비쭉거리지 않았다. 밤으로는 어디 가 무엇을 하고 오는지 집안에 붙어 있지도 않다가 낮이 되면 온종일 이불을 쓰고 잠을 자는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끼니를 치르는지 그녀는 거의 식음을 전폐하듯 하였다. 그녀의 낯빛은 이제 종잇장같이 되고, 입가에 언제나 뱅글거리던 웃음도 아주 흔적을 감추어 버렸다. 분이의 이러한 심상찮은 거동을 억쇠 역시 깨닫지 못한 바는 아니었으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병환으로 경황이 없을 즈음이라 설마 어떠랴 하고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어느 날 밤에는 억쇠가 그의 어머니의 병 시중을 들고 있노라니까 밤이 이슥해서 건너편 득보네 집에서 갑자기 싸우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분이의 비명 소리가 났을 때 억쇠의 어머니는 갑자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야야, 저게 무슨 소리고? 저게, 저게!" 하고 억쇠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이때부터 병세는 갑자기 위중해져서 그런지 사흘째 되던 날 밤 그맘 때엔 그녀의 몸에서 이미 숨이 없어진 뒤었다. 황토골 뒷산 붉은 등성이에 억쇠네 무덤 한 상이 더 늘던 그날밤이었다. 억쇠가 그의 친척 몇 사람과 더불어 아직도 뜰 가운데 타고 있는 화톳불을 바라보고 있을 바로 그때, 그의 설희는 그 뱃속에 또 하나 다른 생명을 넣은 채, 목에는 비수가 꽃힌 채, 그녀의 가련한 일생을 끝내고 말았다. 설희의 몸이 채 식기도 전에, 손과 소매와 치맛자락을 온통 피로 물들인 채, 분이는 다시 그 캄캄 어두운 홰나무 밑을 돌아 득보를 찾아가고 있었다. 아직도 핏방울이 듣는 그녀의 오른쪽 손에는 다시 설희네 집에서 들고 나온 식칼이 번득이고 있었다. 낮에 상여를 메고 갔을 뿐 아니라 산에서 고된 흙일을 하고 돌아온 득보는 술이 잔뜩 취하여 마침 분이가 치마 속에 그것을 숨기고 설희집 뒤의 홰나무 그늘을 돌아나올 때쯤 하여서는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 안에 막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방문 앞까지 와서 방 안의 득보의 코고는 소리를 들은 분이는 흡사 조금 전에 설희의 방문 고리를 잡으려던 그 순간과 같이 별안간 가슴에서 걷잡을 수 없는 쌍방망이질이 일어나며, 그와 동시에 코에서는 어릴 적 남 몰래 쥐어 먹던 마른 흙냄새가 훅 끼쳐오르며, 정신이 몽롱하여졌다. 바로 그 다음 순간 분이는 반무의식 상태에서 바른손에 든 식칼로 어둠 속에 코를 골고 자는 득보의 목을 내리 찔렀다. 그러나 칼날은 그의 목을 치지 못하고 목에사 한 뼘이나 더 아래로 빗나가 그의 왼편 가슴을 찔렀다. 가슴이 뜨끔하는 순간 득보는, "어엇!" 하고 놀라 일어나려는데, 무엇이 와락 가슴으로 뛰어 들어와 안기려 하였다. 분이라는 생각이 섬광처럼 머릿속에서 번쩍하는 다음 순간, 득보는 무슨 악몽에서 깨는 듯, 가슴의 것을 힘껏 후려 던져 버렸다. 분이는 문턱에 가 떨어졌다. 그제야 정말 정신이 홱 돌아 들어오며 거의 본능적으로 그 손이 그쪽 가슴께로 갔다. 가슴에서 뜨뜻한 액체 같은 것이 손에 묻어지자, 그 순간 또 한번 꿈 속에 벼락을 맞듯 등골이 찌르르하여짐을 깨달으며, 그대로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이튿날 새벽 억쇠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왔을 때엔 온 방안이 벌건 피요, 피비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득보!" 하고 억쇠는 큰소리로 불렀다. "......" 득보는 잠자코 눈을 떠서 억쇠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벌건 핏대가 서 있었다. "......" "득보" "죽든 않겐나, 죽든." "......" 대답 대신 득보는 왼쪽 가슴을 더듬었다. 거기엔 시뻘건 핏덩이가 풀처럼 엉켜 붙어 있고, 다시 그의 엉덩이 즈음에서는 피철갑이 된 식칼 하나가 나왔다. 쇠칼을 집어들어서 보고 있는 억쇠의 신발에서는 피가 스며 올라와 버선을 적시었다. 그동안 부엌의 억새풀 위에 쓰러져 누워 있었던 분이는 새벽녘이 되어, 억쇠의 목소리가 나자 놀라 일어나, 거기서 그림자를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는 두번 다시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7 득보의 가슴의 상처는 달포 만에 거죽만은 대강 아물어 붙었으나 그 속이 웬일인지 자꾸 더 상해만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양쪽 광대뼈가 불거져 나오고, 광대뼈 밑에는 우물이 푹 패이고 게다가 낯빛은 마른 호박같이 되어 옛날의 모습은 볼 길이 없는데, 이마에는 칼로 그어낸 것처럼 깊고 험상궂은 주름살만 늘게 되었다. 그는 달포 동안에 완전히 늙은 사람이 되었다. "분이는?" 억쇠를 볼 때마다 늘 이렇게 물었다. 처음 억쇠는, 득보가 분이를 찾는 것은 분이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는 줄 알았으나, 두 번 세 번 그의 표정을 보아 오는 동안, 그렇기만도 한 것이 아니고, 어쩌면 분이를 도리어 아쉬워하고 있는 듯한 눈치이기도 하엿다. "내가 찾아오지." 억쇠는 늘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분이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혹은 그녀의 고향인 동해변 어디에 가 산다는 말도 있고 혹은 남쪽의 어느 객주집에 가 역시 주모 노릇을 한다는 말도 잇고, 또 일설에는 영천(永川) 지방 어디서 우물에 빠져 죽어 버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뭐 하노." 득보는 억쇠에게 곧잘 역정을 내었다. "그 동안 찾아내지." 그러나 억쇠는 분이를 찾아 길을 떠나지는 않았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세안에 가끔 장 출입을 하던 득보는 땅에서 풀이 돋고 건너 산에 진달래가 필 무렵이 되자 표연히 어디로 길을 떠나고 말았다. 억쇠는 억쇠대로 그날부터 득보를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매일같이 주막에 나가 득보의 소식만 들어려 하여다. 이른 여름이 되었다. 나뭇가지마다 녹음이 우거져가는 단오 무렵 어느 날 득보는 의외로 어린 계집애 하나를 데리고 황토골로 돌아왔다. 유록 저고리에 분홍 치마를 입은 열두어 살 가량 되 뵈는 이 어린 계집애는 분이가 열다섯 살 때 낳은 그녀의 딸이라는 것이었다.(그녀 자신은 일찍이 옥동자라고 했지만.......) "분이는 어쩌고?" 억쇠가 물은 즉 득보는 힘 없이 다만, "아마 뒈진 모양이여." 하였다. 그뒤에도 득보는 가끔 집을 나가면 한 예니레씩 묵어 들어오곤 하였다. "어디 갔더누." 억쇠가 물으면 득보는 힘 없이 그저, "저어기......." 하고 마는 것이 분명히 분이를 찾아다니다 오는 눈치였다. 분이를 찾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는 수시로 계집애를 보내어 억쇠의 거동을 엿보게 하였다. "뭘 하더누." "누워 있데요." 이것이 그들 애비 딸의 대화였다. 만약 억쇠가 집에 없더라고 하면 몇 번이든지 계집애를 되돌려 보내었다. 그리하여 결국 그가 집에 돌아와 있더라는 보고를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는 모양이었다. 한번은 주막에서 술이 취해서 돌아오는 길로 억쇠에게 들른 득보는 그 커다란 주먹을 억쇠의 턱 밑에 디밀어 보이며, "너 같은 놈은 아직 어름 없다." 고 하였다. 억쇠도 자칫 흥분을 하여, "허허허......." 소리를 내어 웃어 버렸더니 득보는 그 주먹으로 억쇠의 볼을 쥐어 박으며, "이 늙은 놈아, 더러운 놈아." 분이 찬 목소리로 이렇게 퍼부었다. 억쇠도 그제서야 자기의 경망한 웃음을 뉘우치며, "술만 깨면 네놈 죽여 놓을 게다." 하고 호통을 쳤더니 그제야 득보도 눈에 광채를 띠우며, "응, 이놈아 정말이냐." 하고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 듯이 이렇게 한번 다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튿날도, 사흘째도 억쇠는 득보를 찾아주지 않았다. 그런지도 보름이 지난 뒤였다. 낮이 다 되어 득보는 억쇠를 찾아와 그동안 노름을 해서 돈이 생겼으니 술을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마침 목이 컬컬하던 참이라 억쇠도 즐겁게 술잔을 나누게 되었는데, 그러나 득보의 행동이 웬일인지 이날따라 몹시 굼뜨게 보였다. 억쇠는 마음 속으로 득보가 분이를 못 잊어 그러려니 하고, "너 이놈 죽은 분이는 왜 못 잊고 그 지랄이냐." 했더니, "늙은 놈이 더럽게 기집 생각은 지독하게 헌다." 하며 도로 억쇠를 나무래 주었다. "이 불쌍한 놈아, 분이는 영천서 우물에 빠져 죽은 지도 벌써 옛날이다." 하고 억쇠가 한 마디 던져 본즉, "그놈이 영천만 알고 언양은 모르는구나." 하였다. 그러면 영천이 아니라 바로 언양(彦陽)서 죽은 게로구나, 억쇠는 속으로 짐작을 하며, 그래서 저놈이 이 한 달포 동안은 그렇게 아가리에 술만 들이부은 게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너는 이놈아, 상제 노릇을 해야지." 하는 억쇠의 말에 득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 동안 잠자코 있더니 흥, 하고 그저 코웃음을 한번 칠 뿐이었다. 술이 거진 다 마쳐갈 무렵이었다. 득보는 돌연히 술상 위에다 날이 시퍼렇게 선 단도 하나를 내놓으며, "너 이놈 네 죄 알지." 하였다. 그러나 억쇠는 마치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것을 예기하고나 있었던 것처럼 조금도 당황하거나 겁을 집어먹는 빛도 없이, 자칫하면 또 언제와 같이 웃음이 터져 나올 듯한 것을 억지로 누르고, "흥, 내가 이놈......." 하고 엄숙한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네놈의 목숨 하나 오늘까지 남겨온 것은 다 요량이 있었던 거다." 억쇠의 두 눈에도 불이 켜졌다. 억쇠의 장엄한 목소리와 불을 켠 두 눈에서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을 깨달으며, 그러나 득보는 비웃는 듯이, "너도 사내 새끼로 생겨나 방 안에서 자빠지기가 억울커든 나서거라." 하며 단도를 도루 집어 고의춤에 감추었다. 억쇠는 득보를 먼저 안냇벌로 들여 보낸 뒤 자기는 주막에 남아서 술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소주는 역시 깔깔한 놈이 좋군." 억쇠는 안주인이 맛뵈기로 비어 준 사발의 소주를 기울이며 바깥 주인을 보고 이런 말을 건네곤 했다. "안주가 마른 것뿐인데......." 하고 안주인이 문어 가리를 들고 나왔다. "문어 가리면 됐지, 머......." 억쇠는 문어 가리를 꾸려서 조끼 주머니에 넣은 뒤 소줏두르미(큰병)를 메고 득보의 뒤를 쫓았다. 막걸리를 먹은 다음에 소주를 걸친 때문인지, 옛날 첨으로 장가란 것을 가던 때처럼 가슴이 다 설레이며 걸음이 흥청거렸다. "네놈이 내 초상 안 치르고 자빠질 줄 아나." 억쇠는 문득, 언젠가 득보가 가래와 함께 배앝아 놓던 이 말이 머리에 떠오르며 동시에 아까 술상 위에 내어 놓던 득보의 그 날이 시퍼렇던 단도가 생각났다. 그 한 뼘도 넘어 될 득보의 단도 날이 자기의 가슴 한복판을 푹 찔러 이 미칠 듯히 저리고 근지러운 간과 허파를 송두리째 긁어 내어 준다면, 하는 생각과 함께 자기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문득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들었을 때 해는 이미 황토재 위에 설핏한데, 한 마장 가량 앞에는 득보가 터덕터덕 혼자서 먼저 용냇가로 내려가고 있었다. 등신불 등신불(等身佛)은 양자강(揚子江) 북쪽에 있는 정원사(淨願寺)의 금불각(金佛閣) 속에 안치되어 있는 불상(佛像)의 이름이다. 등신금불(等身金佛) 또는 그냥 금불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이 등신불, 등신금불로 불리워지는 불상에 대해 보고 듣고 한 그대로를 여기다 적으려 하거니와 그보다 먼저, 내가 어떻게 해서 그 정원사라는 먼 이역의 고찰(古刹)을 찾게 되었는지 그것부터 이야기해야겠다. 1 내가 일본의 대정대학 재학중에 학병(태평양 전쟁)으로 끌려 나간 것은 일구사삼(一九四三)년 이른 여름, 내 나이 스물세 살 나던 때였다. 내가 소속된 부대는 북경(北京)서 서주(西州)를 거쳐 남경(南京)에 도착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부대가 당도할 때까지 거기서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엔 주둔(駐屯)이라기보다 대기(待機)에 속하는 편이었으나 다음 부대의 도착이 예상보다 늦어지자 나중은 교체부대(交替部隊)가 당도할 때까지 주둔군(駐屯軍)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대체로 인도지나나 인도네시아 방면으로 가게 된다는 것으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남경에 더 머물면 머물수록 그만치 목숨이 연장되는 거와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교체부대가 하루라도 더 늦게 와 주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빌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실상은 그냥 빌고 있는 심정만도 아니었다. 더 나아가서 이 기회에 기어이 나는 나의 목숨을 건져내야 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이런 기회를 위하여 미리 약간의 준비(조사)까지 해두었던 것이다. 그것은 중국의 불교학자(佛敎學者)로서 일본에 와 유학을 하고 돌아간-특히 대정대학 출신으로-사람들의 명단을 조사해 둔 일이 있었다. 나는 비장(秘藏)의 작은 쪽지에서 남경 진기수(陣奇修)란 이름을 발견했을 때, 야릇한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며 머리속까지 휑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낯선 이역의 도시에서, 더구나 나 같은 일본군에 소속된 한국 출신 학병의 몸으로서, 그를 찾고 못 찾고 하는 일이 곧 내가 죽고 사는 판가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들, 또 내가 평소에 나의 책상머리에 언제나 걸어두고 바라보던 관세음보살님이 미소로써 나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던들, 그때의 그러한 용기와 지혜를 내 속에서 나는 자아내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나는 우리 부대가 앞으로 사흘 이내에 남경을 떠난다고 하는-그것도 확실한 정보가 아니고 누구의 입에선가 새어 나온 말이지만-조마조마한 고비에 정심원(靜心院)-남경에 있는 중국인 불교 포교당-에 있는 포교사(布敎師)를 통하여 진기수 씨가 남경 교외의 서공암(捿空庵)이라는 작은 암자에 독거(獨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내가 서공암에서 진기수 씨를 찾게 된 것은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나는 그를 보자 합장을 올리며 무수히 머리를 수그림으로써 나의 절박한 사정과 그에 대한 경의를 먼저 표한 뒤 솔직하게 나의 처지와 용건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평생 처음 보는 타국 청년-그것도 적군의 군복을 입은-에게 그러한 협조를 쉽사리 약속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의 두 눈이 약간 찡그러지며 입에서는 곧 거절의 선고가 내리려는 순간, 나는 미리 준비하고 갔던 흰 종이를 끄집어 내어 내 앞에 폈다. 그리고는 바른편 손 식지 끝을 스스로 물어서 살을 떼어낸 다음 그 피로써 다음과 같이 썼다. '願免殺生 歸依佛恩'(원컨대 살생을 면하게 하옵시며 부처님의 은혜 속에 귀의코자 하나이다.) 나는 이 여덟 글자의 혈서를 두 손으로 받들어 그의 앞에 올린 뒤 다시 합장을 했다. 이것을 본 진기수 씨는 분명히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것은 반드시 기쁜 빛이라 할 수는 없었으나 조금 전의 그 거절의 의향만은 가셔진 듯한 얼굴이었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진기수 씨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를 따라오게."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깊숙한 골방이었다. 진기수 씨는 나를 컴컴한 골방 속에 들여 보낸 뒤 자기는 문을 닫고 도로 나가 버렸다. 조금 뒤 그는 법의(法衣-中國 僧侶服) 한 벌을 가져다 방 안으로 디밀며, "이걸로 갈아 입게." 하고는 또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사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나의 가슴 속을 후끈하게 적셔주는 듯했다. 내가 옷을 갈아압고 났을 때, 이번에는 또 간소한 저녁상이 디밀어졌다. 나는 말없이 디밀어진 저녁을 또한 그렇게 말 없이 받아서 지체 없이 다 먹어 치웠다. 내가 빈 그릇을 문 밖으로 내어 놓자 밖에서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이내 진기수 씨가 어떤 늙은 중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 분을 따라가게. 소개장은 이 분에게 맡겼어. 큰절(本刹)의 내 법사 스님한테 가는......." 나는 무조건 네, 네, 하며 곧장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를 살려 주려는 사람에게 무조건 나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길은 일본 병정들이 알지도 못하는 산 속 지름길이야. 한 백 리 남짓 되지만 오늘이 스무 하루니까 밤중 되면 달빛도 좀 있을 게구...... 불연(佛緣) 깊기를...... 나무관세음보살." 그는 나를 향해 합장을 하며 머리를 수그렸다. 나는 목이 콱 메어옴을 깨닳았다. 눈물이 핑 돈 채 나도 그를 향해 잠자코 합장을 올렸다. 2 어둡고 험한 산길을 경암(鏡岩)-나를 데리고 가는 늙은 중-은 거침없이 걸었다. 아무리 발에 익은 길이라 하지만 군데군데 나뭇가지가 걸리고 바닥이 패이고 돌이 솟고 게다가 굽이굽이 간수(澗水)가 가로지른 초망(草莽) 속의 지름길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잘 뚫고 나가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믿는 것은 젊음 하나뿐이련만 그는 이십 리나 삼십 리를 걸어도 힘에 부치어 쉬자고 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쉴새없이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어가며 그의 뒤를 따랐으나 한참씩 가다 보면 어느덧 그를 어둠 속에 잃어 버리곤 했다. 나는 몇 번이나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우고, 돌에 채여 무릎을 깨우고 하며 "대사......" "대사" 그를 불러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경암은 혼잣말로 낮게 중얼거리며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나, 내가 가까이 가면 또 아무 말도 없이 그냥 획 돌아서서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하는 것이다. 밤중도 훨씬 넘어 조각달이 수풀 사이로 비쳐 들면서 나는 비로소 생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경암이 제아무리 앞에서 달린다 하더라도 두번 다시 그를 놓치지는 않으리라 맘속으로 다짐했다. 이렇게 정세가 바뀌어졌음을 그도 느끼는지 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자 그는 나를 흘낏 돌아보더니 한쪽 팔을 들어 먼 데를 가리키며 반원을 그어 보이고는 이백 리라고 했다. 이렇게 지름길을 가지 않고 좋은 길로 돌아가면 이백 리 길이라는 뜻인 듯했다. 나는 한 마디 얻어들은 중국말로 "셰 셰"하고 장단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했다. 우리가 정원사 산문 앞에 닿았을 때는 이튿날 늦은 아침 녘이었다. 경암은 푸른 수풀 속에 거뭇거뭇 보이는 높은 기와집들을 손가락질로 가리키며 자랑스런 얼굴로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하오! 하오!"를 되풀이했다. 산문을 지나 정문을 들어서니 산무더기 같은 큰 다락이 정면에 버티고 섰다. 현관을 쳐다보니 태허루(太虛樓)라 씌어 있었다. 태허루 곁을 돌아 안마당 어귀에 들어서니 정면 한가운데 높직이 앉아 있는 가장 웅장한 건물이 법당이라고는 짐작이 가거니와 그 양 옆으로 첩첩이 가로 세로, 혹은 길쭉하게 눕고, 혹은 높다랗게 서고, 혹은 둥실하게 무수한 집들이 모두 무슨 이름에 어떠한 구실을 하는 것들인지 첫눈에 그저 황홀하고 얼떨떨할 뿐이었다. 경암은 나를 데리고 그 첩첩이 둘러앉은 집들 사이를 한참 돌더니 청정실(淸淨室)이란 조그만 현판이 붙은 조용한 집 앞에 와서 기척을 했다. 방문이 열리더니 한 스무 살이나 될락말락한 젊은 중이 얼굴을 내밀며 알은 체를 한다. 둘이서 (젊은이는 방문 앞에 서고 경암은 뜰 아래 선 채) 한참 동안 말을 주고받고 한 끝에 경암이 나를 데리고 집 안으로 데리고 갔다. 방 안에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키가 성큼하게 커 뵈는 노승이 미소 띤 얼굴로 경암과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노승 앞에 발을 모으고 서서 정중히 합장을 올렸다. 어제 진기수 씨 앞에서 연거푸 머리를 수그리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한 번만 정중하게 머리를 수그려 절을 했던 것이다. 노승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자리를 가리킨 뒤 경암이 내어 드린 진기수 씨의 편지를 펴 보았다. "불은(佛恩)이로다." 편지를 읽고 난 노승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중 가서 알아보니 그랬다. 그리고 그것도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이 노승이 두어 해 전까지 이 절의 주지(住持)를 지낸 원혜대사(圓慧大師)로 진기수 씨가 말한 자기의 법사(法師) 스님이란 곧 이 분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원혜대사의 주선으로 그가 거처하고 있는 청정실 바로 곁의 조그만 방 한 칸을 혼자서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그 방으로 인도해 준 젊은 중-원혜대사의 시봉(侍奉)-은, "저와 이웃이죠." 희고 넓적한 이를 드러내 보이며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청운(淸雲)이라 부른다고 했다. 3 나는 방 한 칸을 따로 쓰고 있었지만 결코 방 안에 들어 앉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나를 죽을 처지에서 건져준 진기수 씨-그의 법명(法名)은 혜운(慧雲)이었다-나 원혜대사의 은덕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결코 남의 입질에 오르내릴 짓을 해서는 안 되리라고 결심했던 것이다. 나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예불을 끝내면 청운과 함께 청정실 안팎과 앞뒤의 복도와 뜰을 먼지 티끌 하나 없이 쓸고 닦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스님들을 따라 산에 가 약초도 캐고 식량 준비도 거들었다(이 절에서도 전쟁 관계로 식량이 딸렸으므로 산중의 스님들은 여름부터 식용이 될 만한 풀잎과 잎새와 나무뿌리 같은 것들을 구하러 산으로 가곤 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손발을 깨끗이 씻고 내 방에 끓어 앉아 불경을 읽거나 그렇지 않으면 청운에게 중국어를 배웠다(이것은 나의 열성에다 청운의 호의가 곁들어서 그런지 의외로 빨리 진척이 되어 사흘만에 이미 간단한 말로-물론 몇 마디씩이지만 대화하는 흉내까지 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방에 혼자 있을 때라도 취침 시간 이외엔 방 안에 번듯이 드러눕지 않도록 내 자신과 씨름을 했다. 그렇게 버릇을 들이지 않으려고 나는 몇 번이나 내 자신에게 다짐을 놓았는지 모른다. 졸음이 와서 정 견디기가 어려울 때는 밖으로 나와 어정대며 바람을 쐬곤 했다. 처음엔 이렇게 막연히 어정대며 바람을 쐬던 것이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어정대지 않게 되었다. 으레껀 가는 곳이 정해지게 되었다. 그것이 저 금불각(金佛閣)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물론 나는 법당 구경을 먼저 했다. 본존(本尊)을 모셔둔 곳인 만큼 그 절의 품도나 품격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는 까닭으로서보다도 절 구경은 으레껀 법당이 중심이라는 종래의 습관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옳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법당에서 얻은 감명은 우리 나라의 큰 절이나 일본의 그것에 견주어 그렇게 자별하다고 할 것이 없었다. 기둥이 더 굵대야 그저 그렇고, 불상이 더 크대야 놀랄 정도는 아니요, 그밖에 채색이나 조각에 있어서도 한국이나 일본의 그것에 비하여 더 정교(精巧)한 편은 아닌 듯했다. 다만 정면 한가운데 높직이 모셔져 있는 세 위(位)의 불상(훌륭히 도금을 입힌)을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힘 겨룸을 시켜 본다면 한국이나 일본의 그것보다 더 놀라운 힘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힘겨룸을 시켜 본다면' 하는 가정에서 말한 것이지만, 그네의 눈으로써 보면 자기네의 부처님(불상)이 그만큼 더 거룩하게만 보일는지 모를 일이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내가 위에서 말한 더 놀라운 힘이란 물론 체력(體力)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어떤 거룩한 법력(法力)이나 도력(道力)으로 비칠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특히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은 금불각을 구경한 뒤었다. 금불각 속에 모셔져 있는 등신불(등신금불)을 보고 받은 깊은 감명이 그 절의 모든 것을, 특히 법당에 모셔져 있는 세 위의 큰 불상을, 좀 더 거룩하게 느끼게 하는 어떤 압력 같은 것이 되어 나타났다고 할까. 물론 나는 청운이나 원혜대사로부터 금불각에 대하여 미리 들은 바도 없으면서 금불각이 앉은 자리라든가 그 집 구조로 보아서 약간 특이한 느낌이 그 안에 불상(등신불)을 구경하기 전에 이미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법당 뒤꼍에서 한길 반 가량 높이의 돌 계단을 올라가서 거기서부터 약 오륙십 미터 거리의 경사진 석대(石臺)가 구축되고 그 석대가 곧 금불각에 이르는 길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더구나 그 석대가 꼭 같은 크기의 넓적넓적한 네모잽이 돌로 쌓여져 있는데 돌 위엔 보기 좋게 거뭇거뭇한 돌옷이 입혀져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법당 뒤꼍의 경사진 동북쪽 언덕을 보기 좋은 돌로 쌓아서 석대를 만들고 그 위에 금불각을 세워 놓은 것이다. 게다가 추녀와 현판을 모두 돌아가며 도금을 입히고 네 벽에 새긴 조상(彫像)과 그림에도 도금을 많이 써서 그야말로 밖에서 보는 건물 그 자체부터 금빛이 현란했다. 나는 본디 비단이나 종이나 나무나 쇠붙이 따위에 올린 금물이나 금박 같은 것을 웬지 거북해하는 성미라 금불각에 입혀져 있는 금빛에도 그러한 경계심(警戒心)과 반감 같은 것을 품고 대했지만, 하여간 이렇게 석대를 쌓고 금칠을 하고 했을 때는 그네들로서는 무엇인가 아끼고 위하는 마음의 표시를 하노라고 한 짓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아끼고 위하는 것이 보나마나 대단한 것은 아니리라고 혼자 속으로 미리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나의 과거 경험으로 본다면 이런 것은 대개 어느 대왕(大王)이나 황제(皇帝)의 갸륵한 뜻으로 황금을 많이 넣어서 주조(鑄造)한 불상이라든가 또는 어느 천자가 어느 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친히 불사를 일으킨 연유의 불상이라든가 하는 따위-대왕이나 황제의 권위를 보여 주기 위한 금빛이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이러한 생각은 그들이 그 금불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을 보고 더욱 굳어졌다. 적어도 은화(銀貨) 다섯 냥 이상의 새전(賽錢)이 아니면 문을 여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선남 선녀의 큰 불공이 있을 때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큰 불공이 있을-에도 본사 승려 이외에 금불각을 참례하는 자는 또 따로 새전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구나 신도들의 새전을 긁어 모으기 위한 술책으로 좁쌀만한 언턱거리를 가지고 연극을 꾸미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으리라고 나는 아주 단정을 하고 도로 내 방으로 돌아왔다가 그때 마침 청운이 중국어를 가르쳐 주려고 왔기에, "저 금불각이란 게 뭐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물어 보았다. "왜요?" 청운이 빙긋이 웃으며 도로 물었다. "구경 갔더니 문을 안 열어 주던데......." "지금 같이 가볼까요?" "무어, 담에 보지." "담에라도 그럴 거예요. 이왕 말 난 김에 가 보시구려." 청운이 은근히 권하는 빛이기도 해서 나는 그렇다면 하고 그를 따라 나갔다. 이번에는 청운이 숫제 금불각을 담당한 노승에게서 쇳대를 빌어 와서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문 앞에 선 채 그도 합장을 올렸다. 나는 그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미묘한 충격에 사로잡힌 채 그가 합장을 올릴 때도 그냥 멍하니 불상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선 내가 상상한 대로 좀 두텁게 도금을 입힌 불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내가 미리 예상했던 그러한 어떤 불상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 향로를 이고 두 손을 합장한, 고개와 등이 앞으로 좀 수그러진, 입도 조금 헤벌어진, 그것은 불상이라고 할 수 없는, 형편없이 초라한, 그러면서도 무언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등신대(等身大)의 결가부좌상(結跏趺坐像)이었다. 그렇게 정연하고 단아하게 석대를 쌓고 추녀와 현판에 금물을 입힌 금불각 속에 안치되어 있음직한 아름답고 거룩하고 존엄성 있는, 그러한 불상과는 하늘과 땅 사이라고나 할까. 너무도 거리가 먼 어이가 없는,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悲願)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꽉 움켜잡는 듯한, 일찍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그러한 어떤 가부좌상이었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나는 미묘한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미묘한 충격을 나는 어떠한 말로써도 표현할 길이 없다. 다만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처음 받았을 때 받은 그 경악과 충격이 점점 더 전율(戰慄)과 공포로 화하여 나를 후려갈기는 듯한 어지러움에 휩싸일 뿐이었다고나 할까. 곁에 있던 청운이 나의 얼굴을 돌아다 보았을 때도 나는 손끝 하나 까닥하지 못하며 정각마루와 아래턱을 그냥 덜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부처님이 아니다! 불상도 아니야!' 나는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나의 목구멍은 얼어 붙은 듯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지 않았다. 4 이튿날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내가 청운과 더불어 원혜대사에게 아침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스님은, "어제 금불각 구경을 갔었니?" 물었다. 내가 겁에 질린 얼굴로 참배했었다고 대답하자, 스님은 꽤 만족한 얼굴로, "불은이로다." 했다. 나는 맘 속으로 그건 부처님이 아니었어요, 부처님의 상호가 아니었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깨달았으나 굳이 입을 닫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스님(원혜대사)는 내 맘속을 헤아리는 듯, "그래 어느 부처님이 맘에 들더냐?" 물었다. 나는 실상 그 등신불에 질리어 그 곁에 모신 다른 불상들은 거의 살펴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다른 부처님은 미처 보지도 못했어요. 가운데 모신 부처님이 어떻게나 무, 무서운지......." 나는 또 아래턱이 덜덜덜 떨리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원혜대사는 말없이 나의 얼굴(아래턱이 덜덜덜 떨리는)을 가만히 건너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나는 지금 금방 내 입으로 부처님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될 것을 말한 듯한, 야릇한 반발이 내 속에서 폭발되었다. "그렇지만...... 아니었어요...... 부처님의 상호 같지 않았어요." 나는 전신의 힘을 다하여 겨우 이렇게 말해 버렸다. "왜, 머리에 얹은 것이 화관이 아니고 향로래서 그러니?...... 그렇지, 그건 향로야." 원혜대사는 조금도 나를 꾸짖는 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그러한 불만에 구미가 당기는 듯한 얼굴이었다. "......" 나는 잠자코 원혜대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곁에 있던 청운이 두어 번이나 나에게 눈짓을 했을 만치 나의 두 눈은 스님을 쏘아보는 듯이 빛나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 하면 부처님이 아니고 나한(羅漢)님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나한님도 머리 위에 향로를 쓴 분은 없잖아. 오백나한(五百羅漢) 중에도......." 나는 역시 입을 닫친 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스님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그렇지, 본래는 부처님이 아니야.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됐어. 본래는 이 절 스님인데 성불(成佛)을 했으니까 부처님이라고 부른 게지. 자네도 마찬가지야." 스님은 말을 마치고 가만히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나도 머리를 숙이며 합장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청정실로 건너 올 때 청운은 나에게 턱으로 금불각 쪽을 가르키며, "나도 첨엔 이상했어. 그렇지만 이 절에선 영검이 제일 많은 부처님이라오." 했다. "영검이라고?" 나는 이렇게 물었지만 실상은 서슴지 않고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말에 더욱 놀랐던 것이다. 조금 전에도 원혜대사로부터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때까지의 나의 머리속에 박혀 있는 습관화된 개념으로써는 도저히 부처님과 스님을 혼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래서 그렇게 새전이 많다오." 청운의 대답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들려 주었다. 5 ......스님의 이름은 잘 모른다. 당(唐)나라 때다. 일천 수백 년 전이라고 한다.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성불을 했다. 공양을 드리고 있을 때 여러 가지 신이(神異)가 일어났다. 이것을 보고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서 아낌없이 새전과 불공을 드렸는데 그들 가운데 영검을 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뒤에도 계속해서 영검이 있었다. 지금가지 여기 금불각(등신금불)에 빌어서 아이를 낳고 병을 고치고 한 사람의 수효는 수천, 수만을 헤아린다. 그 밖에도 소원을 성취한 사람은 이루 다 헤일 수가 없다....... 나는 청운에게서 소신공양이란 말을 들었을 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면 그럴 테지-." 나는 무슨 뜻인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잇달아 눈을 감고 합장을 올렸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의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염불이 흘러 나왔다. 아아, 그 고뇌! 그 비원(悲願)! 나의 감은 두 눈에서는 눈물이 번져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는 발작과도 같이 곧장 염불을 외었다. "나도 처음 봤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오. 그 뒤에 여러 번 보고 나니까 차츰 심상해지더군." 청운이 빙긋이 웃으며 나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아무래도 석연치 못한 것이 있다. 소신공양으로 성불을 했다면 부처님이 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부처님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모든 불상에서 보아 온 바와 같은 거룩하고 원만하고 평화스러운 상호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에 가까운 부처님다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거룩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러움은 지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금불각의 가부좌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 고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얼굴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어떠한 대각(大覺)보다도 그렇게 영검이 많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의 머리속에서는 잠시도 이러한 의문들이 가셔지지 않았다. 더구나 청운에게서 소신공양으로 성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는 금불이 아닌 새까만 숯덩이가 곧잘 눈에 삼삼거려 배길 수 없었다. 6 사흘 뒤에 나는 다시 금불을 찾았다. 사흘 전에 받은 충격이 어쩌면 나의 병적인 환상의 소치가 아닐까 하는 마음과 또 청운의 말대로 '여러 번' 봐서 '심상해'진다면 나의 가슴에 사무친 '오뇌와 비원'의 촉수(觸手)도 다소 무디어지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문이 열리자 나는 그날 청운이 하던 대로 이내 머리를 수그리며 합장을 올렸다.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눈꺼풀과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며 나의 눈이 열렸을 때 금불은 사흘 전의 그 모양 그대로 향로를 이고 앉아 있었다. 거룩하고 원만한 것의 상징인 듯한, 부처님의 상호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가부좌상임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그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전날처럼 송두리째 나의 가슴을 움켜잡는 듯한 전율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나의 가슴은 이미 그러한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으로 메워져 있었고, 또 거기서 거룩하고 원만한 것의 상징인 부처님의 상호를 기대하는 마음은 가셔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합장을 올린 뒤 바르르 떨리는 듯한 입술로 오랫동안 아미타불을 부르고 나서 금불각을 나왔다. 그날 저녁 예불을 마치고 청운과 더불어 원혜대사에게 저녁 인사(자리에 들기 전의)를 갔을 때 스님은 나를 보고, "너 금불을 보고 나서 괴로워하는구나?" 했다. "......" 나는 고개를 수그린 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그 금불각에 있는 그 불상의 기록을 봤느냐?" 스님이 또 물으시기에 내가 못 봤다고 했더니 그러면 기록을 한번 보라고 했다. 이튿날 내가 청운과 더불어 아침 인사를 드릴 때 원혜대사는 자기가 금불각에 일러 두었으니 가서 기록을 청해서 보고 오라고 했다. 나는 스님께 합장하고 물러나와 곧 금불각으로 올라갔다. 금불각의 노승이 돌함(石函)에서 내어준 폭이 한 뼘 남짓, 길이가 두 뼘 가량 되는 책자를 받아 들었을 때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벌레를 막기 위한 향료인 듯). 두터운 표지 위에는 금 글씨로 <만적선사 소신성불기(萬寂禪師 燒身成佛記)>라 씌어 있고 책 모서리에도 금물이 먹혀져 있었다. 표지를 젖히자 지면은 모두 잿빛 바탕(물감을 먹인 듯)이요, 그 위에 사연은 금 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여져 있었다. 萬寂法名俗名曰耆姓曹氏也金陵出生父未詳母張氏改嫁 謝公仇之家仇有一子名曰信前室之所生也年以與耆各十有 餘歲一日母給食干二兒秘置以毒信之食耆偶窺之而按是母 貪謝家之財爲我故母害前室之子以如此耆不堪悲懷乃自欲 將取信之食母見之驚而失色奪之曰是非汝之食也何取信之 食取信與耆默而不答數日後信去自家行蹟杳然耆曰信已去 家我必搜與信而然後歸家卽以隱身而爲僧改稱萬寂以此爲 法名住於金陵法林院後移淨願寺無風菴修法干海覺禪師寂 二十四歲之春曰我生非大覺之材不如供養吾身以報佛恩乃 燒身而供養佛前時忽降雨沛然不犯寂之燒身焚光漸明忽縣 圓光以如月輪會衆見之而感佛恩療身病衆曰是寂之法力所 致競擲私財賽錢多積以賽鍍金寂之燒身拜之爲佛然後奉置 干金佛閣時唐中宗十六年聖曆二年三月朔日 [만적은 법명이요, 속명은 기, 성은 조씨다. 금릉서 났지만 아버지는 어떤 이인지는 잘 모른다. 어머니 장씨는 사구(謝仇)라는 사람에게 개가를 했는데 사구에게 한 아들이 있어 이름을 신이라 했다. 나이는 기와 같은 또래로 모두가 여나문 살씩 되었었다. 하루는 어미(장씨)가 두 아이에게 밥을 주는데 가만히 독약을 신의 밥에 감추었다. 기가 우연히 이것을 엿보게 되었는데, 혼자 생각하기를 이는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사씨 집의 재산을 탐냄으로써 전실 자식인 신을 없애려고 하는 짓이라 하였다. 기가 슬픈 맘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신의 밥을 제가 먹으려 할 때 어머니가 보고 크게 놀라 질색을 하며 그것을 뺏고 말하기를 이것은 너의 밥이 아니다, 어째서 신의 밥을 먹느냐, 했다. 신과 기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 뒤 신이 자기 집을 떠나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기가 말하기를 신이 이미 집을 나갔으니 내가 반드시 찾아 데리고 돌아오리라 하고 곧 몸을 감추어 중이 되고 이름을 만적이라 고쳤다. 처음은 금릉에 있는 법림원에 갔다가 나중은 정원사 무풍암으로 옮겨서 거기서 해각선사에게 법을 배웠다. 만적이 스물네 살 되던 봄에, 나는 본래 도(道)를 크게 깨칠 인재가 못 되니 내 몸을 이냥 공양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함과 같지 못하다, 하고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치는데 그때 마침 비가 쏟아졌으나 만적의 타는 몸을 적시지 못할 뿐 아니라 점점 더 불빛이 환하더니 홀연히 보름달 같은 원광이 비치었다. 모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크게 불은을 느끼고 모두가 제 몸의 병을 고치니 무리들이 말하기를 이는 만적의 법력 소치라 하고 다투어 사재를 던져 새전으로써 만적의 탄 몸에 금을 입히고 절하여 부처님이라 하였다. 그 뒤 금불각에 모시니 때는 당나라 중종 십육년 성력(연호) 이년 삼월 초하루다.] 내가 이 기록을 다 읽고 나서 청정실로 돌아가니 원혜대사가 나를 불렀다. "기록을 보고 나니 괴롬이 덜하냐?" 스님이 물었다. "처음같이 무섭지는 않았습니다마는 그 괴롭고 슬픈 빛은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한 일이야, 기록이 너무 간략하고 섬소(纖疏)해서......." 했다. 그것이 자기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말씨였다. "그렇지만 천이백 년도 넘는 옛날 일인데 기록 이외에 다른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 내가 물었다. 이에 대하여 원혜대사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산(절)에서는 그것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러니까 그만큼 금불각의 등신불에 대해서는 모두들 그 영검을 두려워하고 있는 셈이라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원혜대사가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물론 천이백 년간 등신금불에 대하여 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원혜대사가 정리해서 간단히 한 이야기이다. ......만적이 중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대개 기록과 같다. 그러나 그가 자기 몸을 불살라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동기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다른 이야기가 몇 있다. 그것을 차례로 쫓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만적이 처음 금릉 법림원에서 중이 되었는데 그때 그를 거두어 준 스님에 취뢰(吹뢰)라는 중이 있었다. 그 절의 공양을 맡아 있는 공양주(供養主) 스님이었다. 만적은 취뢰 스님의 상좌로 있으면서 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취뢰 스님이 그에 대한 일체를 돌보아 준 것이다. 만적이 열여덟 살 때-그러니까 그가 법림원에 들어 온 지 오 년 뒤 취뢰 스님이 열반(涅槃)하시게 되자 만적은 스님(취뢰)의 은공을 갚기 위하여 자기 몸을 불전에 헌신할 결의를 했다. 먼적이 그 뜻을 법사(법림원의) 운봉선사(雲峰禪師)에게 아뢰자 운봉선사는 만적의 그릇(器)됨을 보고 더 수도를 계속하도록 타이르며 사신(捨身)을 허락하지 않았다. 만적이 정원사의 무풍암에 해각선사를 찾았다는 것도 운봉선사의 알선에 의한 것이다. 그가 해각선사 밑에서 지낸 오 년간의 수도 생활이란 뼈를 깎고 살을 가는 정진이었으나 법력의 경지는 짐작할 길이 없다. 만적이 스물세 살 나던 해 겨울에 금릉 방면으로 나갔다가 전날의 사신(謝信)을 만났다. 열세 살 때 자기 어머니의 모해를 피하여 집을 나간 사신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이 사신을 찾아 역시 집을 나왔다가 그를 찾지 못하고 중이 된 채 어느덧 꼭 십 년만에 그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때 다시 만난 사신을 보고는 비록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린 만적으로서도 한줄기 눈물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착하고 어질던 사신이 어쩌면 하늘의 형벌을 받았단 말인고. 사신은 문둥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적은 자기의 목에 걸었던 염주를 벗겨서 사신의 목에 걸어 주고 그길로 곧장 정원사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만적은 화식(火食)을 끊고 말을 잃었다. 이듬해 봄까지 그가 먹은 것은 하루에 깨 한 접시씩 뿐이었다(그때까지의 목욕 재계는 말할 것도 없다). 그 해 이월 초하룻날 그는 법사 스님(운봉선사)과 공양주 스님 두 분만을 모시고 취단식(就檀式)을 봉행했다. 먼저 법의를 벗고 알몸이 된 뒤에 가늘고 깨끗한 명주를 발끝에서 어깨까지(목 위만 남겨 놓고) 전신에 감았다. 그리고는 단 위에 올라가 가부좌(跏趺坐)를 개고 앉아 두 손을 모아 합장을 올렸다. 그리하여 그가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곁에서 들기름 항아리를 받들고 서 있던 공양주 스님이 그의 어깨에서부터 기름을 들이부었다. 기름을 다 붓고 취단식이 끝나자 법사 스님과 공양주 스님은 합장을 올리고 그 곁을 떠났다. 기름에 결은 만적은 그때부터 한 달 동안(삼월 초하루까지) 단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부좌를 갠 채, 합장을 한 채, 숨쉬는 화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레에 한 번씩 공양주 스님이 들기름 항아리를 안고 장막(帳幕-흰 천으로 장막을 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면 어깨에서부터 다시 기름을 부어 주고 돌아가는 일밖에 그 누구도 이 장막 안을 엿보지 못했다. 이렇게 한 달이 찬 뒤 이날의 성스러운 불공에 참여하기 위하여 산중의 스님은 물론이요, 원근 각처의 선남선녀들이 모여들어 정원사 법당 앞 넓은 뜰을 메꾸었다. 대공양(大供養-燒身供養을 가리킴)은 오시 초에 장막이 걷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백을 헤아리는 승려가 단을 향해 합장을 하고 선 가운데 공양주 스님이 불 담긴 향로를 받들고 단 앞으로 나아가 만적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와 동시에 그 앞에 합장하고 선 승려들의 입에서 일제히 아미타불이 불려지기 시작했다. 만적의 머리 위에 화관같이 씌워진 향로에서는 점점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오랜 동안의 정진으로 말미암아 거의 화석이 되어가고 있던 만적의 육신이지만, 불기운이 그의 숨골(정수리)를 뚫었을 때는 저절로 몸이 움칠해졌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그의 고개와 등 가슴이 조금씩 앞으로 숙여져 갔다. 들기름에 결은 만적의 육신이 연기로 화하여 나가는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그 앞에 선 오백의 대중(승려)는 아무도 쉬지 않고 아미타불을 불렀다. 신시(申時) 말(末)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단 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만적의 머리 위로는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염불을 올리던 중들과 그 뒤에서 구경하던 신도들이 신기한 일이라고 눈을 휘둥그래져서 만적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월광이 씌워져 있었다. 이것을 본 대중들은 대개 신병을 고치고 따라서 이때부터 새전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그 뒤 삼 년간이나 그칠 날이 없었다. 이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가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고 석대를 쌓았다....... 원혜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맘 속으로 이렇게 해서 된 불상이라면 과연 지금의 저 금불각의 등신금불같이 될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부처님(불상) 가운데서 그렇게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그대로 지닌 부처님(등신불)이 한 분쯤 있는 것도 뜻있는 일일 듯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난 원혜대사는 이제 다시 나에게 그런 것을 묻지는 않았다. "자네 바른손 식지를 들어 보게." 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가 이야기해 오던 금불각이나 등신불이나 만적의 분신 공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달포 전에 남경 교외에서 진기수 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고 내 입으로 살을 물어 떼었던 나의 식지를 쳐들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더 말이 없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보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 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겐지, 이제 그만 손을 내리어도 좋다는 겐지 뒷말이 없는 것이다. "......" "......" 태허루에서 정오를 아뢰는 큰 북소리가 목어(木魚)와 어우러져 으르릉거리며 들려온다. 역 마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땅 구례(求禮) 쪽에서 오고, 한줄기는 경상도쪽 화개협(花開峽)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치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 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蟾津江) 본류(本流)였다. 하동(河東), 구례, 쌍계사(雙磎寺)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 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성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智異山) 들어가는 길이 고개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洗耳岩)의 화개협 시오 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다. 경상.전라 양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火田民)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화 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들이 또한 구례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이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 조기, 자반고등어들을 올려오곤 하여 산협(山峽)치고는 꽤 은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했으나, 그러나 화개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이 서지 않는 무셋날일지라도 인근(隣近) 고을 사람들에게 그곳이 그렇게 언제나 그리운 것은, 장터 위에서 화갯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의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 나오는 그 한(恨) 많고 멋들어진 춘향가 판소리, 육자배기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끔 전라도 지방에서 꾸며 나오는 남사당, 여사당, 협률(協律) 창극 광대들이 마지막 연습 겸 첫 공연으로 여기서 으레 재주와 신명을 선보이고서야 경상도로 넘어간다는 한갓 관습과 전례(前例)가 화개장터의 이름을 더욱 높이고 그립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가운데서도 옥화(玉花)네 주막은 술맛이 유달리 좋고, 값이 싸고, 안주인-옥화-의 인심이 후하다 하여 화개장터에서는 가장 이름이 들난 주막이었다. 얼마 전에 그 어머니가 죽고 총각 아들 하나와 단 두 식구만으로 안주인 옥화가 돌아올 길 망연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라 하여 그들은 더욱 호의와 동정을 기울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혹 노자가 딸린다거나 행장이 불비할 때 그들은 으레 옥화네 주막을 찾았다. "나 이번에 경상도서 돌아올 때 함께 회계하지라오." 그들은 예사로 이렇게들 말하곤 하였다. 1 늘어진 버들가지가 강물에 씻기우고 저녁 놀에 은어가 번득이고 하는 여름철 석양 무렵이었다. 나이 예순도 훨씬 더 넘어 뵈는 늙은 체장수 하나가 쳇바퀴와 바닥 감들을 어깨에 걸머진 채 손에는 지팡이와 부채를 들고 옥화네 주막을 찾아왔다. 바로 그 뒤에는 나이 열여섯 살쯤 나 뵈는 몸매가 호리호리한 소녀 하나가 조그만 보따리를 옆에 끼고 서 있었다. 그네들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저 큰애기까지 두 분입니까?" 옥화는 노인보다 '큰애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저녁상을 물린 뒤 노인은 옥화에게 인사를 청했다. 살기는 구례에 사는데 이번에 경상도 쪽으로 벌이를 떠나온 것이라 하였다. 본시 여수(麗水)가 고향인데 젊어서 친구를 따라 한때 구례에 와서도 살다가 그 뒤 목포로 광주로 전전하였고, 나중 진도(珍島)로 건너가 거기서 열일여덟 해 사는 동안 그만 머리털까지 세어져서는 그래 몇 해 전부터 도로 구례에 돌아와 사는 것이라 하였다. 그렇지만 저런 큰애기를 데리고 어떻게 다니느냐고 옥화가 묻는 말에 그렇잖아도 이번에는 죽을 때까지 아무 데도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떠나지 않고는 두 식구가 가만히 굶을 판이라 하는 수 없었던 것이라 했다. "그런, 저 큰애기는 하라부지 딸입니까?" 옥화는 남포불 그림자가 반쯤 비낀 바람벽 구석에 붙어 앉아 가끔 그 환한 두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곤 하는 소녀의 동그스름한 어깨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노인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평생 객지로만 돌아다니고 나니 이제 고향 삼아 돌아온 곳(求禮) 이래야 또한 객지라 그네 아비 딸이 어디다 힘을 입고 살아가야 할는지 아무 데도 의탁할 곳이 없다고 그네의 외로운 신세를 호소도 했다. "나도 젊었을 때는 노는 것을 좋아했지라오. 동무들과 광대도 꾸며 갖고 댕겨 봤는듸 젊어서 한번 바람 들어 농개 평생 못 잡기 마련이랑게. 그것이 스물네 살 때 정초닝게 꼭 서른여섯 해 전일 것이여, 바로 이 장터에서 하룻밤 논 일이 있었지라오." 노인은 조용히 추억의 실마리를 더듬는 듯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곤 하는 것이었다. "어이유! 참 오래 전일세!" 옥화는 사뭇 놀라는 시늉이었다. 이튿날은 비가 왔다. 2 화개장날만 책전을 펴는 성기(成麒)는 내일 장 볼 준비도 할 겸 하루를 앞두고 절에서 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쌍계사에서 화개장터까지는 시오 리가 좋은 길이라 해도 굽이굽이 벌어진 물과 돌과 산협의 장려한 풍경이 언제 보나 그에게 길멀미를 내지 않게 하였다. 처음엔 글을 배우러 간다고 할머니에게 손목을 끌리다시피 하여 간 곳이 절이었고, 그 다음엔 손윗동무들의 사랑에 끌려다니다시피쯤 하여 왔지만 이즘 와서는 매일같이 듣는 북 소리, 목탁 소리, 그리고 그 경을 치게 희맑은 은행나무, 염주나무(菩提樹), 이런 것까지 모두 싫증이 났다. 당초부터 어디로 훨훨 가 보고나 싶던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러나 어디로 간다는 건 말만 들어도 당장에 두 눈이 시뻘개져서 역정을 내는 어머니였다. "서방이 있나, 일가 친척이 있나, 너 하나만 믿고 사는 이년의 팔자에 너조차 밤낮 어디로 간다고만 하니 난 누굴 믿고 사냐?" 어머니의 넋두리는 인제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다. 이러한 어머니보다 차라리 열 살 때부터 절에 보내어 중질을 시켰으니 인제 역마살(驛馬煞)도 거진 다 풀려 갈 것이라고 은근히 마음을 느꾸시는 편이던 할머니는, 그러나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 당사주라면 다시는 더 사족을 못 쓰던 할머니라 성기가 세 살 났을 때 보인 그의 사주에 시천역(時天驛)이 들었다 하여 한때는 얼마나 낙담을 했던 것인지 모른다. 하동 산다는 그 키가 나지막한 명주 치마 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혹시 갑자을축을 잘못 짚지나 않았나 하여 큰 절(쌍계사를 가르킴)에 있는 어느 노장에게도 가 물어 보고, 지리산에서 도를 닦아 나온다던 어떤 키 큰 노인에게도 다시 뵈어 봤지만 시천역엔 조금도 요동이 없었다. "천성 제 애비 팔자를 따라가려는 게지." 할머니가 어머니를 좀 비꼬아 하는 말이었으나 거기 깊은 원망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말엔 각별나게 신경을 쓰는 옥화는, "부모 안 닮는 자식 없단다. 근본은 다 엄마 탓이지." 도리어 어머니에게 오금을 박고 들었다. "이년아 에미한테 너무 오금 박지 마라. 남사당을 붙었음, 너를 버리고 내가 그놈을 찾아갔냐, 너더러 찾아 달라 성화를 댔냐?" 그러나 서른여섯 해 전에 꼭 하룻밤 놀다 갔다는 젊은 남사당의 육자배기 가락에 반하여 옥화를 배게 된 할머니나 구름같이 떠돌아 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어 성기를 가지게 된 옥화나 다같이 화개장터 주막에 태어났던 그녀들로서는 별로 누구를 원망할 턱도 없는 어미 딸이었다.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했던 때문이라면 성기의 역마 운도 결국은 할머니가 장본이라, 이에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서 살을 때우려고도 서둘러 보았던 것이고 중질에서 못다 푼 살을 이번에는 옥화가 그에게 책 장사라도 시켜서 풀어 보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성기로서도 불경(佛經)보다는 차라리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실토이고 하여, 그러나 옥화는 꼭 화개장만 보이기로 다짐까지 받은 뒤 그에게 책전을 내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성기가 마루앞 축대 위에 올라서는 것을 보자 옥화는 놀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더운데 왜 인저사 내려오냐?" 곁에 있던 수건과 부채를 지어 그에게 주었다. 지금까지 옥화에게 이야기 책을 들려 주고 있은 듯한 낯선 계집애는 책 읽던 것을 멈추고 얼굴을 들어 성기를 바라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흰 자위, 검은 자위가 꽃같이 선연한 두 눈이었다. 순간, 성기는 가슴이 찌르르 하며, 갑자기 생기 띠어진 눈으로 집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를 바라보았다. 계집애는 이내 안으로 들어가고, 옥화는 성기의 점심상을 차려 들고 나왔다. "채장수 딸이다." 하였다. 어머니도 즐거운 얼굴이었다. "채장수라니?" 성기는 밥상을 받은 채, 그러나 얼른 숟가락을 들지도 않고, 그의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례 산다더라. 이번에 어쩌면 하동으로 해서 진주 쪽으로 나가볼 참이라는데 어제 저녁에 화갯골로 들어갔다." 그리고 저 딸아이는 그 체장수의 무남 독녀인데, 영감이 화갯골 쪽으로 들어 갔다 나와서 하동 쪽으로 나갈 때 데리고 가겠다고 하도 간청을 하기에 그 동안 좀 맡아 있어 주기로 했다면서 옥화는 성기의 눈치를 살피듯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갯골에서는 며칠이나 있겠다던고?" "들어가 보고 재미나면 지리산 쪽으로 깊이 들어가 볼 눈치더라." 그리고 나서, 옥화는 또, "그래도 그런 사람의 딸같이는 안 뵈지?" 하였다. 계연(契姸)이란 이름이었다. 성기는 잠자코 밥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밥은 반도 먹지 않고 상을 물려 버렸다. 이튿날 성기가 책전에 있으려니까 그 체장수 딸이 그의 점심을 이고 왔다. 집에서 장터까지래야 소리 지르면 들릴 만한 거리였지만, 그래도 전날 늘 이고 다니던 상돌 엄마가 있을 터인데 이렇게 벌써 처녀 티가 나는 남의 큰애기더러 이런 사환을 시켜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 쪽에서는 그러한 빛도 없이 그 꽃송이같이 화안한 두 눈에 웃음까지 담은 채 그의 앞에 점심 함지를 공손스레 놓고는 떡과 엿과 참외들을 팔고 있는 음식전 쪽으로 곧장 눈을 팔고 있었다. "상돌 엄만 어디 갔는듸?" 성기는 계연의 그 아리따운 두 눈에 흥건한 즐거움을 가슴으로 깨달으며, 그러나 고개는 엉뚱한 방향으로 돌린 채, 차라리 거칠은 음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손님이 마루에 가뜩 찼는듸, 상돌 엄마가 혼자서 바빠서두닝께 어머니가 나더러 갖고 가라ㅎ어라오." 그 동안 거의 입을 열어 말하는 일이 없었던 계연은 성기가 묻는 말에 의외로 생경한 전라도 쪽 토음(土音)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가냘프고 갸름한 어깨와 목 하며, 어디서 그렇게 힘차고 탄력적인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줌이나 될 듯한 가느다란 허리와 호리호리한 몸매에 비하여 발달된 팔다리와 토실토실한 두 손등과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을 가진 탓인지도 몰랐다. "계연아, 오빠 세숫물 놔 드려라." 이튿날 아침에도 옥화는 상돌 엄마를 부엌에 둔 채 역시 계연에게 성기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세숫물 놓는 일뿐 아니라, 숭늉 그릇을 들고 다니는 것이나 밥상을 차려오는 것이나 수건을 찾아주는 것이나 성기에 따른 시중은 모조리 그녀로 하여금 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아이가 맘이 컴컴치 않고, 인정이 있고, 얄미운 데가 없어." 옥화는 자랑 삼아 이런 말도 하였다. "저의 아버지는 웬일인지 반 억지 비슷하게 거저 곧장 나만 믿겠다고 아주 양딸처럼 나한테다 맡기구 싶은 눈치더라만......." 옥화는 잠깐 말을 끊어서 성기의 낯빛을 살피고 나서 다시, "그래, 너한테도 말을 들어 봐야겠고 해서 거저 대강 들을 만하고 있었잖냐...... 언제 한번 데리고 가서 칠불(七佛) 구경이나 시켜줘라." 하는 것이, 흡사 성기의 동의를 구하는 모양 같기도 하였다. 그러고 나서 옥화는 계연의 말을 옮겨, 구례 있는 저의 집이래야, 구례 읍에서 외따로 떨어진 무슨 산기슭 밑에 이웃도 없이 있는 오막살인가 보다 라고도 하였다. "그래 살림은 어쩌고 나왔을까?" "살림이래야 그까진 거 머 방문에 자물쇠 채워 두었으면 그만 아냐. 허지만 그보다도 나그네길에 데리고 나선 계연이가 걱정이지." 이러한 옥화의 말투로 보아서는 체장수 영감이 화갯골에서 나오는 대로 계연을 아주 양딸로 정해 둘 생각인 듯이도 보였다. 다만, 성기가 꺼릴까 보아 이것만을 저어하는 눈치 같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옥화는 성기더러 장가를 들라고 권했으나 그는 응치 않았고, 집에 술 파는 색시를 몇 차례나 두어도 보았지만 색시 쪽에서 간혹 성기에게 말썽을 내인 적은 있어도 성기가 색시에게 그러한 마음을 두는 일은 한번도 있은 적이 없어, 이러한 일들로 해서 이번에도 옥화는 그녀로 하여금 성기의 미움이나 받지 않게 할 양으로 그녀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는 듯한 눈치 같기도 하였다. 3 아랫집 과일 가게에서 성기가 짚신 한 켤레를 사들고 오려니까 옥화는 비죽이 웃는 얼굴로 막걸리 한 사발을 그에게 떠 주며, "오늘 날씨가 너무 덥잖냐?" 고 하였다. 술 거를 때 누구에게나 맛뵈기 떠 주기를 잘하는 옥화였다. 계연이는 방에서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계연아, 너도 빨리 나와, 목마를 텐데 미리 좀 마시고 가거라." 옥화는 방을 향해서도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항라 적삼에 가는 삼베 치마를 갈아 입고 나오는 계연은 그 선연한 두 눈의 흰 자위, 검은 자위로 인하여 어리인 한송이 연꽃이 떠오는 듯하였다. "꼭 스무 해 전에 입었던 거다." 옥화는 유감(有感)한 듯이 계연의 옷맵시를 살펴 주며 말했다. "어제 꺼내서 품을 좀 줄여 놨더니만 청승스리 맞는구나. 보기보단 품을 여간 많이 입잖는다, 이앤....... 자, 얼른 마셔라, 오빠 있음 무슨 내외할 사이냐?" 그러자 계연은 웃는 얼굴로 술잔을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가 마시고 나오는 모양이었다. 성기는 먼저 수양버들 밑에 와서 새 신발에 물을 축이었다. 계연이도 곧 뒤를 따라 나섰다. 어제 성기가 칠불암(七佛菴)까지 책 값 수금 관계로 좀 다녀올 일이 있다고 했더니, 옥화가 그러면 계연이도 며칠 전부터 산나물을 캐러 간다고 벼르는 중이고 또 칠불암 구경은 어차피 한번 시켜주어야 할 게고 하니 이왕이면 좀 데리고 가잖겠느냐고 하였다. 성기는 가슴도 좀 뛰고, 그래서 나물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싫다고 했더니, 너더러 누가 나물까지 캐라느냐고, 앞에서 길만 끌어주면 되잖느냐고 우기어 기승한 어머니에게 성기는 더 항변을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성기는 처음부터 큰 길을 버리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수풀 속 산길을 돌아가기로 하였다. 원체가 지리산 밑이요, 또 나뭇길도 본디부터 똑똑이 나 있지 않은 곳이라 어려서부터 자라난 고향이라곤 하지만 울울한 수풀 속에서 성기는 몇 번이나 길을 잃은 채 헤매곤 하였다. 쳐다보는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산봉우리요, 내려다보면 바 아래는 바다같이 뿌우연 수풀뿐, 그 위에 흰 햇살만 물줄기처럼 내리 퍼붓고 있었다. 머루, 다래, 으름은 이제 겨우 파랗게 맹아리져 있고, 가지마다 새빨간 복분자(나무딸기), 오디(산뽕나무의 열매)는 오히려 철이 겨운 듯 한머리 까맣게 먹물이 돌았다. 성기는 제 손으로 다듬은 퍼런 아가위나무가지로 앞에서 풀덩굴을 헤쳐가며 가고 있는데 계연은 두릅을 꺾는다, 딸기를 딴다, 하며 자꾸 뒤로 처지곤 하였다. "빨리 오잖고 뭘 하나?" 성기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무라면 계연은 딸기를 따다 말고, 두릅을 꺾다 말고, 그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물고는 뛰어오는 것인데, 한참만 가다보면 또 뒤에 떨어지곤 하였다. "아이고머니 어쩔꺼나!" 갑자기 뒤에서 계연이가 소리를 질렀다. 돌아다보니 떡갈나무 위에서, 가지에 치맛자락이 걸려 있다. 하필 떡갈나무에는 뭣하러 올라갔을까고, 곁에 가 쳐다보니 계연이의 손이 닿을 만한 위치에 그 아래쪽 딸기나무 가지가 넘어와 있다. 딸기나무에는 가시가 있고 또 비탈이 서 있어 올라 갈 수가 없으니까, 그 딸기나무와 가지가 서로 얽힌 떡갈나무 쪽으로 올라간 모양이다. 몸을 구부려 손으로 치맛자락을 벗기려면 간신히 잡고 서 있는 윗가지에서 손을 놓아야 하겠고, 손을 놓았다가는 당장 나무에서 떨어질 형편이다. 나무 아래서 쳐다보니 활짝 걷어 올려진 베치마 속에 정강 마루까지를 채 가루지 못한 짤막한 베고의가 훤한 햇살을 받아 그 안의 뽀오얀 것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성기는 짚고 있던 생나무 지팡이로 치맛자락을 벗겨 주려 하였으나, 지팡이가 짧아서 그렇겠지만, 제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 끝은 계연의 발가스레하고 매초롬한 종아리만을 자꾸 건드리고 있었다. "아이 싫어! ㅆ에서 떨어진당게!" 계연이는 소리를 질렀다. 게다가 때마침 다람쥐란 놈까지 한 마리 다래 넌출 위로 타고 와서, 지금 막 계연이가 잡고 서 있는 떡갈나무가지 위로 건너뛰려 하고 있다. "아 곧 떨어진당게! 저 막대로 저 다램이나 때려 줬음 쓰것는듸." 계연은 배 아래를 거진 햇살에 훤히 드러내인 채 있으면서도 다래 넌출 위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그 요망스런 턱주가리를 쫑긋거리고 있는 다람쥐가 더 안타까운 모양으로 또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요놈의 다램이가......." 성기는 같은 나무 밑둥이에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계연의 치맛자락을 벗겨 주고 그러고는 막대로 다시 조금 전에 다람쥐가 앉아 있던 다래 넌출도 한번 툭 쳤다. 이 소리에 놀랐는지 산비둘기 몇 마리가 푸드득하고 아래쪽 머루 넌출 위로 날아갔다. "샘물이 있어야 쓰겄는듸." 계연은 치맛자락을 걷어올려 이마의 땀을 씻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롱이를 돌아 새로운 산줄기를 탈 때마다 연방 더 우악스런 멧부리요, 어두운 수풀을 지나 환하게 열린 하늘을 내다볼 때마다 바다같이 질펀한 골짜기에 차 있으니 머루 다래 넌출이요, 딸기, 칡의 햇덩굴이다.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여기저기서 난장판으로 뻐꾸기들은 울고, 이따금씩 낄낄거리고 골짜기를 건너 날아가는 꿩 울음 소리마저 야지의 가을 벌레 소리를 듣는 듯 신산을 더했다. 해는 거진 하늘 한가운데를 돌아 바야흐로 머리에 불을 끼얹고, 어두운 숲 그늘 속에는 해삼 같은 시꺼먼 달팽이들이 허연 진물을 토한 채 땅에 붙어 늘어졌다. 햇살이 따갑고, 땀이 흐르고, 목이 마를수록 성기들은 자꾸 넌출 속으로만 들짐승들처럼 파묻히었다. 나무딸기, 덤불딸기, 산복숭아,아가위, 오디, 손에 닿은 대로 따서 연방 입에 가져가지만 입에 넣으면 눈 녹듯 녹아질 뿐 떨적지근한 침을 삼키면 그만이었다. 간혹 이에 걸린다는 것이 아직 익지 않은 산복숭아, 아가위 따위인데, 딸기 녹은 침물로는 그 쓰고 떫은 것마저 사양없이 넘겨졌다. 처음엔 입술이 먼저 거멓게 열매물이 들었고, 나중엔 온불에까지 묻어졌다. 먹을수록 목이 마른 딸기를 계연은 그 새파란 산복숭아서껀, 둥그런 칡잎으로 하나 가득 따서 성기에게 주곤 했다. 성기는 두 손바닥 위에다 그것을 받아서는 고개를 수그려 물을 먹듯 입을 대어 먹었다. 먹고 난 칡잎은 아무렇게나 넌출 위로 던져 버린 채 칡넌출이 담뿍 감겨 있는 다래덩굴 위에 비스듬히 등을 대이고 누웠다. 계연은 두번째 또 칡잎의 것을 성기에게 주었다. 성기는 성가신 듯이 그냥 비스듬히 누운 채 그것을 그대로 입에 들이부어 한입 가득 물고는 나머지를 그냥 넌출 위로 던졌다. 그리고 그는 곧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세번째 칡잎에다 딸기알, 머루알을 골라 놓은 계연은 그러나 성기가 어느덧 잠이 들어 있음을 보자 아까 성기가 하듯 하여 이번엔 제가 먹어 치웠다. "참 잘도 잔당게." 계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기도 다래덩굴에 등을 대이고 비스듬이 드러누워 보았으나 곧 재채기가 났다. 목이 몹시 말랐다. 배도 고팠다. 갑자기 뻐꾸기 소리가 무서워졌다. "덩굴 속에서 샘물이 없는가?" 계연은 덩굴을 헤치고 한참 들어가다 문득 모과나무 가지에 이리저리 얽히고 주렁주렁 열린 으름덩굴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익어 있음 쓰것는듸."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직도 파아란 오이를 만지듯 딴딴하고 우들두들한 으름을 제일 큰 놈으로만 세 개를 골라 따 쥐었다. 그리하여 한나절 동안 무슨 열매든지 손에 닿는 대로 마구 따 입에 넣고 하던 버릇으로 부지중 입에 가져다 한번 덥석 물어 떼었더니 이내 비릿하고 떫직스레한 풀 같은 것이 입에 하나 가득 끼었다. "아, 풋내 나!" 계연은 입 안에 것을 뱉고 나서 성기 곁으로 갔다. 해는 벌써 점심 때도 겨운 듯 갈증과 함께 시장기도 들었다. "일어나 샘물 찾아 가장게." 계연은 성기의 어깨를 흔들었다. 성기는 눈을 떴다. 계연은 당황하여 쥐고 있던 새파란 으름 두 개를 성기의 코끝에 내어밀었다. 성기는 몸을 일으켜 그녀의 그 둥그스름한 어깨와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입술이 포개졌다. 그녀의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에서는 한나절 먹은 딸기, 오디, 산복숭아, 으름들의 달짝지근한 풋내와 함께 황토흙을 찌는 듯한 향긋하고 고소한 고기(肉) 냄새가 느껴졌다. 까악까악 하고 난데없는 까마귀 한 마리가 그들의 머리 위로 울며 날아갔다. "칠불은 아직 멀지라?" 계연은 다래덩굴에 걸어 두었던 점심을 벗겨 들었다. 4 화갯골로 들어간 체장수 영감은 모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떠날 때 한 말도 있고 하니 지리산 속으로 아주 들어간 모양이라고 옥화와 계연은 생각하고 있었다. "산중에서 아주 여름을 내시는 갑네." 옥화는 가끔 이런 말도 하였다. 그리고 그녀들은 끈기 있게 이야기 책을 들고 앉곤 하였다. 계연의 약간 구성진 전라도 지방 토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맑고 처량한 노래조를 띠어 왔다. 그동안 옥화의 계연의 사이에 생긴 새로운 사실이 있다면 옥화가 계연의 왼쪽 귓바퀴 위에 있는 조그만 사마귀 한 개를 발견한 것쯤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의 머리를 빗어 주고 있던 옥화는 갑자기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참빗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머니 왜 그리여?" 계연이 놀라 물었으나 옥화는 그녀의 두 눈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을 따름 말이 없었다. "어머니 왜 그러시여." 계연이 또 한번 물었을 때 옥화는 겨우 정신이 돌아오는 듯 긴 한숨을 내쉬며, "아무 것도 아니다." 하고 다시 빗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계연은 속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옥화에게 다시 더 캐어 물을 도리가 없었다. 이튿날 옥화는 악양(岳陽)에 볼 일이 좀 있어 다녀오겠노라면서 아침 일찍이 머리를 빗고 떠났다. 성기는 큰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소나기가 왔다. 계연이가 밖에서 빨래를 걷어 안고 들어오면서, "어쩔 거나, 어머니 비 만나시겠는듸." 하였다. 그녀의 치맛자락은 바깥의 신선한 비바람을 묻혀다 성기의 자는 낯을 스쳐 주었다. 성기는 눈을 뜨는 결로 손을 뻗쳐 그녀의 치맛자락을 거머 잡았다. 그녀는 빨래를 안은 채 고개를 휙 돌이켜 성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볼에 바야흐로 조그만 보조개가 패이려 할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니 옷 다 젖겄는듸." 또 한번 이렇게 말하면 계연은 마루로 나갔다. 성기는 어느덧 또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성기가 다시 잠을 깨었을 때는 손님들이 마루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계연은 그들의 치다꺼리를 해주고 있는 모양으로 부엌에서, "명태랑 풋고추밖엔 안주가 없는듸." 하는 소리가 났다. 나중 손님이 돌아간 뒤 성기는 그녀더러, "어머니 없을 땐 손님 받지 말라고." 약간 볼멘소리로 이런 말을 하였다. "허지만 오늘 해 넘긴 이 술은 시어질 것인듸 그냥 두면 어머니 오셔서 화내시지 않을 것이오?" 계연은 성기에게 타이르듯이 이렇게 말했다. 조금 뒤 그녀는 다시 웃는 낯으로 성기 곁에 다가서며, "오빠, 날 면경 하나만 사 주시오. 똥그란 놈이 꼭 한 개만 있었음 쓰겄는듸." 하였다. 이튿날 마침 장날이라 성기는 점심을 가지고 온 그녀에게 미리 사 두었던 조그만 면경 하나와 찰떡을 꺼내 주었다. "아이고머니!" 면경과 찰떡을 보자 계연은 놀란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 꽃 같은 두 눈에 웃음을 땀뿍 담은 채 몇 번이나 면경을 들여다보곤 하더니 그것을 품 속에 넣고는 성기가 점심을 먹고 있는 곁에 돌아앉아 어느덧 짝짝 소리까지 내어 찰떡을 먹고 있었다. 성기는 남이 보지 않게, 전 앞에 사람 그림자가 얼씬할 때마다 자기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그것을 가리워 주었다. 딴은 떡뿐 아니라 참외고 복숭아고 엿이고 유과고 일체 군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그녀의 성미인 듯하였다. 집 앞으로 혹 참외 장수나 엿 장수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계연은 골무를 깁거나 바늘 겨레를 붙이다 말고 뛰어 일어나 그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멀거니 바라보며 섰곤 하였다. 한번은 성기가 절에서 내려오니까 어머니는 어디 갔는지 눈에 뜨지 않고 그녀만이 마루 끝에 걸터앉은 채 이웃 주막의 놈팡이 하나와 더불어 함께 참외를 먹고 있었다. 성기를 보자 좀 무안스러운 듯이 얼굴을 약간 붉히며 곧 일어나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오빠!" "......." 그러나 성기는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그대로 자기의 방으로만 들어가 버렸다. 계연은 먹던 참외도 마루 끝에 놓은 채 두 눈이 휘둥그래서 성기의 뒤를 따라왔다. "오빠 왜?" "......." "응, 왜 그리여?" "......." 그러나 성기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녀가 두 팔을 성기의 어깨 위에 얹어 그의 목을 껴안으려 했을 때 성기는 맹렬히 몸을 뒤틀어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 돌연히 미친 것처럼 뛰어들어 따귀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처음 그녀는, "오빠, 오빠!" 하고 찡그린 얼굴로 성기를 쳐다보며 두 손을 내어밀어 그의 매질을 막으려 하였으나 두 차례, 세 차례 철썩철썩 하고 그의 손이 그녀의 얼굴에 와 닿자 방구석에 가 얼굴을 쿡 처박은 채 얼마든지 그의 매질에 몸을 맡기듯이 하고 있었다. 이튿날 장에 점심을 가지고 온 계연은 그 작고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문 채 말이 없었으나 그의 꽃같이 선연한 두 눈엔 어제의 일엔 조그만 원한도 품어져 있지 않은 듯하였다. 그날 밤 그녀가 혼자 강가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성기는 그녀의 뒤를 쫓아 나갔다. 하늘엔 별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으나 나무 그늘은 강가를 칠야같이 뒤덮어 있었다. "오빠." 계연은 성기가 바로 그녀의 곁에까지 왔을 때 일어나 성기의 턱 앞으로 바싹 다가 들어서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불렀다. "오빠, 요즘은 어쩌자고 만날 절에만 노가 있는 것이여?" 그 몹시도 굴곡이 강렬한 전라도 지방 토음으로 이렇게 속삭이었다. 그 즈음 성기는 장을 보러오는 날 이외에는 절에서 일체 내려오지를 않았다. 옥화가 악양 명도에서 갔다 소나기에 젖어 돌아온 뒤부터는 어쩐지 그와 계연의 사이를 전과 달리 경계하는 듯한 눈치라 본래 심장이 약하고 남의 미움 받기를 유달리 두려워하는 그는 그러한 어머니에 대한 노여움도 있고 하여 기어코 절에 배겨내려 했던 것이다. 이날 밤만 해도 계연의 물음에 성기가 무어라고 대답도 채 하기 전에 "계연아, 계연아!" 하는 옥화의 목소리가 또 어느덧 들려오고 있었다. 성기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 어머니도 어쩌면 저다지 야속할까?" 성기는 갑자기 목이 뿌듯해졌다. 반딧불이 지나갔다. 계연은 돌 위에 걸터앉아 손으로 여뀌풀을 움켜잡으며, 혼잣말같이 또 무어라 속삭이는 것이었으나 냇물 소리에 가리어 잘 들리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성기가 방 안으로, 부엌으로 누구를 찾으려는 듯 기웃기웃하다가 좀 실망한 듯한 낯으로 그냥 절로 올라가고 말았을 때 그녀는 역시 이 여뀌풀 있는 냇물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사흘 뒤에 성기가 다시 절에서 내려 오니까 체장수 영감은 마루 위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계연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마루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머리를 감아 빗고 새옷-새옷이래야 전날의 항라 적삼을 다시 빨아 다린 것-을 갈아 입고, 조그만 보다리 하나를 곁에 둔 채 슬픔에 잠겨 있던 계연은 성기를 보자 그 꽃같이 선연한 두 눈에 갑자기 기쁨을 띠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순간, 그 노기를 띤 듯한 도톰한 입술은 분명히 그들 사이에 일어난 어떤 절박하고 불행한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막걸리 사발을 들어 영감에게 권하고 있던 옥화는 성기를 보자, "계연이가 시방 떠난단다."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 옥화의 말을 들으면 영감은 그날 성기가 절로 올라가던 날 저녁 때에 돌아왔었더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이니까, 즉 어제, 영감은 그녀를 데리고 떠나려고 하는 것을 하루 더 쉬어 가라고 만류를 해서 그래 오늘 아침에 일찍이 떠난다고 이렇게 막 행장을 차려서 나서는 길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나중 다시 들어서 알게 된 것이었고, 처음엔 그저 쇠뭉치로 돌연히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골치가 띵하며 전신의 피가 어느 한 곳으로 쫙 모이는 듯한, 양쪽 귀가 머리 위로 쫑긋이 당기어 올라가는 듯한, 눈 언저리에 퍼어런 불이 번쩍번쩍 일어나는 듯한, 혀가 목구멍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듯한, 눈 어지러움과 노여움과 조마로움이 한데 뭉치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의 그의 전신을 어디로 휩쓸어 가는 듯만 하였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마음이 가 있어 떨어질 수 없게 되었으리라고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이것이 이제 영원히 헤어지려는 이 순간에 와서야 갑자기 심지에 불을 켜듯 확 타오르기 마련이던가, 하는 것이 자꾸만 꿈만 같았다. 자칫하면 체면도 염치도 다 놓고 엉엉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이 목이 징징 우는 것을, 그러는 중에서도 이 얼굴을 어머니에게 보여서는 아니 된다는 의식에서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마루 끝에 궁둥이를 찧듯 털썩 앉아버렸다. "아들이 참 잘 생겼소." 영감은 분명히 성기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성기는 그쪽으로 고개도 돌려보지 않은 채 그녀에게 무슨 적의나 품은 듯이 앉아 있었다. 옥화는 그 동안 또 성기에게 역시 그 체장수 영감의 이야기를 전해 들려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리산 속에서 우연히 옛날 고향의 친구의 아들이 된다는 낯선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영감의 고향인 여수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실업가로 지리산 유람을 들어왔다가 이야기 끝에 우연히 서로 알게 되었다. 그는 영감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고 했다. 영감은 문득 고향 생각도 날 겸 그 청년의 도움으로 어떻게 형편이 좀 펴질 것같이도 생각되어 그를 따라 여수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오는 길이라-, 옥화가 무어라고 한참 하는 이야기는 대개 이러한 의미인 듯하였으나 조마롭고 어지럽고 노여움으로 이미 두 귀가 멍멍하여진 그에게는 다만 벌떼처럼 무엇이 왕왕거릴 뿐 아무 것도 분명히 들리지 않았다. "막걸리 맛이 어찌나 좋은지 배가 부르당게." 그 동안 마지막 술잔을 들이키고 난 영감은 부채와 지팡이를 집어들며 이렇게 말했다. "여수 쪽으로 가시게 되먼 영영 못 보겠구만요." 옥화도 영감을 따라 일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 일을 누가 알간듸. 인연 있음 또 볼 터이지." 영감은 커다란 메투리에 발을 끼며 말했다. "아가, 잘 가거라." 옥화는 계연의 조고만 보따리에다 돈이 든 꽃주머니 하나를 정표로 넣어주며 하직을 하였다. 계연은 애걸하듯 호소하듯한 붉은 두 눈으로 한참 동안 옥화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또 오너라."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쓸어 주며 다만 이렇게 말하였고, 그러자 계연은 옥화의 가슴에다 얼굴을 묻으며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옥화가 그녀의 그 물결같이 흔들리는 둥그스름한 어깨를 쓸어주며, "그만 울어, 아버지가 저기 기다리고 계신다." 하는 음성도 이젠 아주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럼 편히 계시요." 영감은 옥화에게 하직을 하였다. "하라부지, 거기 가 보시고 살기 여의찮거든 여기 와서 우리하고 같이 삽시다." 옥화는 또 한번 이렇게 당부하는 것이었다. "오빠, 편히 사시요." 계연은 이미 시뻘겋게 된 두 눈으로 성기의 마지막 시선을 찾으며 하직 인사를 했다. 성기는 계연의 이 말에 꿈을 꾸듯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계연의 앞으로 당황히 몇 걸음 어뚤어뚤 걸어 오다간 돌연히 다시 정신이 나는 듯 그 자리에 화석처럼 발이 굳어 버린 채, 한참 동안 장승같이 계연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편히 사시요." 이렇게 두번째 하직을 하는 순간까지도 계연의 그 시뻘건 두 눈은 역시 성기의 얼굴에서 그 어떤 기적과도 같은 구원만을 바라는 듯하였고, 그러나 성기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릴 뻔하던 것을 겨우 버드나무 가지를 움켜잡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계연은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은 옥화와 그녀의 아버지가 그네들을 지켜 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이 성기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인 성기의 두 눈엔 다만 불꽃이 활활 타오를 뿐 아무런 새로운 명령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빠, 편히 사시요." 하고 거의 울음이 다 된 마지막 목소리를 남기고 돌아선 계연의 저만치 가고 있는 항라 적삼을 고운 햇빛과 늘어진 버들가지와 산울림처럼 울려오는 뻐꾸기 울음 속에 성기는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5 성기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것은 이듬해 우수(雨水), 경칩(驚蟄)도 다 지나 청명(淸明) 무렵의 비가 질금거릴 때였다. 주막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는 다시 실같이 푸르러지고 살구, 복숭아, 진달래들이 골목 사이로 산기슭으로 울긋불긋 피고 지고 하는 날이었다. 아들의 미음 상을 차려들고 들어 온 옥화는 성기가 미음 그릇을 비우는 것을 보자, 이렇게 물었다. "아직도 너, 강원도 쪽으로 가 보고 싶냐?" "......." 성기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장가 들어 나랑 같이 살겠냐?" "......." 성기는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해 아직 봄이 오기 전, 보는 사람마다 성기의 회복을 거의 다 단념하곤 하였을 때 옥화는 이왕 죽고 말 것이라면 어미의 맘 속이나 알고 가라고, 그래, 그 체장수 영감은 서른여섯 해 전 남사당을 꾸며 와 이 화개장터에 하룻밤을 놀고 갔다는 자기의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었다는 것과 게연은 그 왼쪽 귓바퀴 위의 사마귀로 보아 자기의 동생임이 분명하더라는 것을 통정하노라면서 자기의 왼쪽 귓바퀴 위의 같은 검정 사마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나도 처음에는 영감이 '서른 여섯 해 전'이라고 했을 때 가슴이 섬칫하긴 했다. 그렇지만 설마 했지, 그렇게 남의 간을 뒤집어 놀 줄이야 알았나. 하도 아슬해서 이튿날 악양으로 가 명도까지 불러봤더니 요것도 남의 속을 빤히 듸려다나 보는 드키 조잘대는구나, 차라리 망신을 했지." 옥화는 잠깐 말을 그쳤다. 성기는 두 눈에 불을 켜듯이 형형한 광채를 띠고 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또 모르지만 한 번 알고 나서야 인륜이 있는듸 어찌겠냐." 그리고 부디 에미 야속타고나 생각지 말라고 옥화는 아들의 뼈만 남은 손을 눈물로 씻었다. 옥화의 이 마지막 하직같이 하는 통정 이야기에 의외로도 성기는 도로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 불타는 듯한 형형한 두 눈으로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성기는 무슨 결심이나 하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 쪽으로 가볼 생각도 없다, 집에서 장가 들어 살림을 할 생각도 없다, 하는 아들에게 그러나 옥화는 이제 전과 같이 고지식한 미련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쩔라냐? 너 졸 대로 해라." "......." 성기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도로 자리에 드러 누워 버렸다. 그리고 나서 한 달포가 지난 뒤였다. 성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연달아 자꾸 내려오는 이른 여름의 어느 장날 아침이었다. 두릅회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난 성기는 옥화더러,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마춰 주." 하였다.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성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지도 다시 한 보름이나 지나 뻐꾸기는 또 다시 산울림처럼 건드러지게 울고, 늘어진 버드나무가지엔 햇빛이 젖어 흐르는 아침이었다. 새벽녘에 잠깐 가는비가 지나가고 날은 다시 유달리 맑게 개인 화개장터 삼거리 길 위에서 성기는 그 어머니와 하직을 하고 있었다. 갈아 입은 옥양목 고이 적삼에 명주 수건까지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로 맞춘 새하얀 나무 엿판을 걸빵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었다. 윗목판에는 새하얀 가락엿이 반넘어 들어 있었고, 아랫목판에는 팔다 남은 이야기책 몇 권과 간단한 방물이 좀 들어 있었다. 그의 발 앞에는 물도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 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쪽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 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롱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항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하여서는 그도 제법 육자배기 가락으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솔거(率居) 상여 나가는 소리가 난다. 어어훠엉......어어훠엉 어어훠엉......어어훠엉 바람결에 아련히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상여 소리는 높게 처량하게 들려온다. "어머니......어머니." "......"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귀가 먹은 게다. 문득 상여 소리가 그친다. 상여를 쉬고 술을 먹으려는가보다. "예수교인도 공동 묘지로 가나?" 어머니는 발칵 성이 난 목소리다. 낯은 조금도 돌리지 않는다. 크고 억센 손으로 키의 팥을 만지고 있다. 저래 봬도 저이도 한땐 여간 독실한 예수교인이 아니었다. "어머니...... 엄머니." "......" 어머니는 고개도 까딱하지 않는다. "으...... 이......" 길게 뽑는 상여꾼들의 구성진 목소리와 함께 다시 상여가 뜬다. 운삽이 나오고 명정이 따르고 만서가 이으고, 그리하여 꽃송이처럼 나불나불 떠오는 것이 상여라 한다. 어디 가서 저렇게 고운 비단을 가져다 감았을까. 빛깔이 너무 진하다. 눈가에 어뚝어뚝 현기가 난다. 공동 묘지에 무지개가 걸린다. 아련히 목메인 상여 소리는 바람결에 높았다 낮았다 하며 어느덧 물을 건너고 모래펄을 지나서 산기슭을 오르고 있다. 상여를 따라가던 혜룡선사(慧龍禪師)가 뒤를 돌아다보며 그를 부른다. 그는 문득 어머니의 얼굴이, 눈이, 저 상여 속에 들어서 산기슭을 오르고 있는 것이 답답해서,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영영히 가버리고 가맣게 없을 것이 아득해서, 어이할까, 아, 엉엉엉...... 엉엉엉...... 아련히 목메인 상여 소리는 아직도 오색 무지개가 하늘거리고 있는 공동묘지로 향해 오르고 있다. 데그렁...... 데그렁...... 데그렁...... 재호(宰浩)는 자기의 울음 소리가 데그렁거리는 요령 소리와 섞갈리는 것을 깨달으며 눈이 뜨이었다. 은은한 요령 소리는 의연 꿈에서와 같이 들려오고 있었다. 데그렁...... 데그렁...... 데그렁...... 재호가 누워 있는 방 건너채 뒷방에서, 밤새도록, 어저께 죽은 공양주(供養主)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염불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재호는 후줄근히 맥없이 늘어진 손으로 이마의 찬 땀을 씻고 이어 자기의 마른 가슴을 더듬었다. 그리하여 그 앙상한 갈비뼈 여남은 대 속에 나날이 여위어가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헤아리며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곧 감은 눈에 비친 것은, 찬 바람이 휘휘 도는, 덩그렇게 빈 터, 엉클어진 잡풀, 여기저기 희뜩희뜩 누워 있는 주춧돌...... 그는 다시 손으로 이마를 씻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방문은 아직 캄캄하고, 이따금 툇마루에는 밤비 치는 소리가 들린다. 비 치는 소리를 듣자 문득 그도 고향이 그리워졌다. '올해가 몇 해째나 될까?' 동경서 나오던 길로 잠깐 집에 들르고는 아직까지 이렇게 객지로만 돌아다니고 있으니, 스물둘에서 여섯이라 그 동안이 벌써 삼사 년이나 되는 셈이다. '그 동안 고향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조금 전에 본 꿈이 또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꿈에 어머니와 상여를 보았는데, 혹 어머니께서 병환이나 나시지 않았는가, 그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그보다도 도대체 이즘 와서는 거의 밤마다 고향 일이 꿈에 보이니 이건 아마 무슨 곡절이 있는 일인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엊그제 밤 꿈에는 십 년 전의 그 소녀가 마치 생시와 같이 똑똑한 얼굴로 나타나 뵈었다. 재호가 막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기차에서 내리자 소녀는 대합실에서 뛰어나오며 트렁크를 같이 들자고 하였다. 소녀는 검정 세루 치마 저고리를 입고 검자주빛 구두를 신고 갸름한 얼굴에는 엷은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정거장을 나와 '와까미쓰'라는 일인의 여관 앞을 지나 아이들이 구워 파는 군밤 가게 모퉁이를 돌아, 논들이 보이는 작은 길에 나왔을 때, 소녀는 트렁크 들었든 손을 놓고, 길바닥에 서서 웃으며, 재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맨 처음 얼굴이 왜 그렇게 희어졌느냐고 하였다. 시험 공부 하느라고 햇빛을 통히 못 본 거 아니냐고 하였다. 그리고 서울은 아직도 그렇게 날씨가 추우냐, 무슨 예과 시험을 보느냐, 하면 그 희고 가직한 이로 웃어 보일 때 재호는 너무도 가슴이 답답하여 꿈을 깨고 말았던 것이다. 얼마 전 고향에서 온 형의 편지에서도, 사람이 결혼을 하는 것은 반드시 제 자신을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때로는 부모를 위해서도, 때로는 집안을 위해서도 하는 법이라고, 나이 삼십이 가깝도록 연만하신 부모를 고향에 두고 그렇게 독신으로 객지로나 돌아다니는 것은 도저히 남의 자제 된 도리가 아니라고, 지금 마침 가문으로나 자색으로나 적당한 규수가 있으니 빨리 돌아와서 결혼을 하여 부모님을 안심시키라 하였다. 형이 편지마다 이와 같이 그의 결혼을 재촉하는 데는 형제로서 부모에 대한 도리를 세우려는 것 이외에 또 재호에 대한 다른 의미의 회한이 들어 있지 않은 바도 아니었다. 그 해 열일곱인가 나던 재호는 같은 동네에서 어릴 적부터 보고 지내던 소녀와 우연히 뜻이 맞아 함께 산과 들을 헤매며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교환한 뒤이라 지극히 순조로운 부모들의 약혼 승인을 믿고 바랐던 것인데 의외에도 양쪽 가문의 반목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고 만 일이 있었다. 재호 쪽 형들의 말로는 재호가 아직 중학생의 몸이요, 게다가 마침 졸업반에 있으니까 한 해 동안 공부에 더 전심을 해서 대학 입학이나 치른 뒤에 보자 하는 것이었으나 이것은 오히려 구실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보다는 그때까지도 아직 그 고을에서 향반의 지체를 지키려는 주체스런 자만에서 소녀의 집이 옛날 아전 줄거리란 것을 은근히 흠잡았던 것이고, 소녀의 집에서는 또 전날 그쪽엣 도회의원 입후보를 했을 때 이쪽이 저희와는 대립된 쪽에다 협조했던 사실을 들추어내어 그까짓 향반 부스럭지가 다 무어냐고 씹어뱉듯 하여, 이리하여 소녀는 감금이 되고, 재호는 재호대로 물 마른 땅의 송사리처럼 파닥거리다 못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 이내 거기 열중해버려, 그 길로 아주 달아나듯 동경으로 건너가고 말았던 것이다. 본디 무엇에든 한 군데 아주 마음을 잘 쏟아버리는 성질인 그는 소녀 잃은 슬픔까지 겹쳐서 거의 손에서 화필을 놓을 사이가 없으리만큼 이에 열중하여 있었고, 그리하여 그 뒤 그가 솔거(率居)의 유적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그림에서 이미 연애에 못지 않은 또 하나 다른 황홀한 세계를 발견하고, 거기 잠길 수 있었던 것이었으나, 그의 집에서는 그래도 그런 줄은 모르고 실연으로 인하여 그림에 미쳤다느니, 또 그 일이 있은 이래 십 년이나 지난 이제 와서 그보다는 또 한 번 별개의 동기로 오늘날 이렇게 절간에서 병들어 누워 있는 것까지도 모두 그때에 입은 상처가 의외로 깊었던 것으로만 간주하는 모양이었다. '소녀는 지금 어디 가 무얼 하고 있을까?' 그는 지금도 밤비 치는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몸에는 병이 들고 그림마저 아주 버리듯 하게 된 오늘날의 그에게는 문득 고향이 그리워지고 고향과 함께 그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 소녀의 얼굴이곤 하였다. 원당(願堂)에서 땡땡땡 울리는 날카로운 종 소리를 뒤이어 근처에 있는 여러 암자들이 이에 따라 경쇠를 치고, 이 여러 암자에서 요란히 나던 경쇠 소리들이 수그러지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큰 절에서 우렁찬 큰 북소리가 우르렁거리고, 이리하여 이 가야산(伽倻山) 일대의 모든 암자에서 이날의 새벽 예불이 시작되는 것이다.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레......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모따모따 모따야, 모다야, 대마리야......사바하 시따야 사바하 마하 시따야 사바하......' 큰방으로부터 천수경 외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연달아 경쇠 소리가 땡하고 울린다. '아금 청정수 변이 감노다 봉헌 삼보전 원수 애납수 원수 자비 애납수.......' 청정하고 은은한 송주 소리가 밀물처럼 그의 마른 가슴을 흥건히 적시어 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촛대에 불을 붙인 뒤고 조그마한 향합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조그만한 불상(佛像)을 모셔둔 복도 구석으로 가 분향을 하려 할 때 바로 그의 곁에서, 흑, 흑, 느껴우는 울음 소리가 들리었다. 고개를 돌이켜 아무리 살펴보아야 아무것도 없다. 그러자 울음 소리도 잠깐 그치고 들리지 않아, 응당 그의 귀에서 일어난 착각이려니 생각하고 다시 향로에 향을 넣으려니까 이번에는 또 그의 바로 발 앞에서 울음 소리가 들리었다. 놀라서 뒤로 주춤 두어 걸음 물러서서 들여다보니 탱불 바로 밑의 컴컴한 구석에 나이 열 살도 채 못 돼 뵈는, 지금까지 이 산중에서 그의 길 인도를 해주곤 하던 개동(開東)이란 소년이 온 낯을 눈물로 적신 채 앉아 있었다. "너 왜 여기서 울고 있느냐?" 그는 우선 이렇게 물어놓고, 그때 마침 또 뒷방에서 아까의 염불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요령 소리를 듣자, 문득 이 소년이 이번에 죽은 저 공양주의 상좌였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괜히 쓸데없는 걸 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소년은 별안간 한층 더 섧게 울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기 시작하였고 그와 동시 재호는 자기 자신도 어쩐지 설운 생각이 들어서 얼른 불상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합장을 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처음은 재호도 이 모양으로, 눈을 감고 합장을 하거나 분향을 하는 것보다는 물론 그림을 그리려 하였고, 이왕 그림을 그릴 양이면 솔거처럼 유마상(維摩像)이나 아주 관세음상(觀世音像)을 그리는 것이 어떠냐는 선사의 말도 있었지만, 그러나 불화엔 아직 경험이 없는 그는 이 절 저 절 다니며 우선 구경이나 고루 한다고 시작한 것이 이제 와서는 자기가 그릴 생각보다도 차라리 이렇게 구경하는 편에 더 마음이 기울어졌고, 그와 동시에 어느덧 이렇게 합장하는 버릇까지 생겨지고만 것이다. "불상은 향일암이 그 중 거룩하다두만요." 저 개동이란 소년은 재호에게 제가 아는 암자를 인도해 주는 것이 무슨 큰 영광이나 되는 것처럼 즐거운 얼굴로 이런 말을 하며, 그 꼬불꼬불한 산길을 그와 더불어 오르내리곤 하였던 것이다. 향일함(向日庵)의 불상(佛像)은 소년의 말처럼 과연 음전하고 거룩하게 생각되었으나 본시 조상(彫像)보다 그림에 더 관심을 가진 그에게는 불상보다도 그곳의 나한도(羅漢圖)에 더 마음이 끌리곤 하였다. 큰 채 앞툇마루를 돌아 뒤채 마루로 건너 들어서자, 사철 햇빛을 모르는 음울한 벽에 십육 나한의 새하얀 머리들이 해골 바가지들처럼 오글오글하고 있음을 보았을 때, 저 어느 영겁으로부터 내려오는 고달픈 촉수(觸手)가 그의 온 심장을 쓸어쥐는 듯하였다. 불화에도 이 나한도만은 비교적 흔치 않은 모양으로 향일암에서 본 것말고는 불이암(不二庵) 한 군데밖에 이렇게 큰 것을 더 찾아볼 수 없었다. 불이암은 뒤로 층층이 난 바위와 비스듬히 드러누운 노송(老松)을 등에 지고 옆으로 넓은 계곡을 비껴보며 험준한 산비탈에 겨우 붙어 있는 조그마한 묵은 암자였다. 기와가 한 모서리 벗어져 벌건 흙이 드러나고, 벽은 헐리고, 추녀가 썩어 무지러지고, 기둥이 모두 굽어지고 하여, 오래 전부터 그냥 비워져 있는 모양이어서, 처음은 그도 선뜻 들어서기를 주저하다가 드디어 신발째 툇마루에 올라가 방문을 열어 보았다. 옛날 불상을 모셨던 듯한 정면 벽에, 채색이 거의 벗어지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어긴 불화 한 폭이 붙어 있어 곧 뛰어들어가 한참 동안 자세히 들여다보았으나, 불보살(佛菩薩)의 얼굴들은 하나도 제대로 가려볼 수 없으리만치 화면이 헐리고 퇴락되어 있었다. 그림에 비기어 방바닥은 그래도 오히려 정한 편으로 구석구석이 흙무더기가 쌓아지고 새, 짐승들의 발자국과 쥐똥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널려는 있었으나 봉당이 패이고 구들이 헐려 있는 것은 아닌 듯하였다. 재호는 불현듯, 그의 거처를 이리로 옮겨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어, 그 방에서 샛문을 열고 곁방으로 들어서자, 그쪽 어둠침침한 바람벽엔 역시 언젠가 향일함에서 본 듯한 그 새하얀 해골 바가지들이 오글오글 끓고 있으매 또 한 번 가슴이 흠칫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지붕 밑이라 이 해골 바가지들에도 군데군데 곰팡이 나고 채색이 벗어지고 전체가 우중충하게 흐려져 있었으나 큰방 정면 벽에 붙어 있는 것에 비해서는 훨씬 성한 편일 뿐 아니라 저 향일암의 것에 비겨서도 각자의 표정과 성격들에 있어 월등 뛰어나 있다고 생각되었다. 제사존자(第四尊者) 소빈타(蘇頻陀)의 날개처럼 그려내린 새하얀 눈썹과 상투처럼 머리 위에 솟아오른 육계와 북같이 생긴 둥그런 배에 혹처럼 튀어나온 배꼽과 이러한 생리상의 기형적 발달이 그의 얼굴 표정과 꼭 어울리어 조금도 부자연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소빈타의 도력(道力)이나 도심(道心)에 조화시킨 때문이 아닌가고도 그에게는 생각되는 것이었다. 중생(衆生)으로서의 인간이 불(佛)을 향해 화(化)해 가고 있는 과정, 부처와 인간 사이의 어떤 중간적인 동물로서,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려 할 즈음 올챙이의 몸에 네 발이 뾰족뾰족 나기 시작했을 때와 같은 그러한 내적(內的) 변화에 따른 외적(外的) 현상이리라 하였다. 먼저 향일암에서 본 소빈타의 얼굴에는 이러한 도심의 발로 같은 것이 포착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만큼 그의 긴 눈썹과 육계들의 특수한 발달이 조금도 어울리지 않고 부자연스럽기만 했다. 필자로서도 그러한 부자연을 느꼈던 겐지 낙구라(諾矩羅) 벌사라불다라(伐사羅弗多羅)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육계를 그리지도 않고 말아서 그 앉은 자리의 순서로써 헤아리지 않는다면 다른 존자들과 구별해 낼 만한 아무런 얼굴의 특징도 찾아볼 길이 없었다. 이 불이암의 것은 그러한 각자 개성 무시의 획일적인 필법과는 아주 대척적으로 여기서는 또 너무 개성들을 날카롭게 살리려 한 데서 오히려 무리가 생긴 것같이도 생각되었다. 너무 형용 구별과 개성적 특징에 유의한 나머지 혹은 영악한 고양이 모양도 바슷하고 혹은 청승스런 노새 모양 비슷도 하고, 혹은 영성한 삽사리 모양, 변덕스런 여우 모양, 넋 잃은 두꺼비 모양, 미련한 곰의 모양, 능글맞은 늑대, 암팡스런 딱저구리, 딱딱한 나귀, 불행스런 잔나비....... 여러 가지 동물들의 차고 외로운 얼굴들을 지니어 캄캄한 칠야, 혹은 비바람이나 치는 어스름으로 야단스레 저희들의 해골 바가지들에 푸른 불을 켜고 난무와 아우성을 칠 것 같은 창백한 의욕이 눅눅한 벽에 가뜩 스며져 있는 듯하였다. 어느 날은 무우암(無憂庵)에서 해를 지워버렸다. 아미타불은 역시 무우암의 것이 제일 그의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색조로나 필법으로나 이 산중에서는 제일 오래 된 것이라는데 아직 화면이 그다지 헐리지도 않았고 곰팡이도 나지 않는 것이 어딘지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림을 그리려도 말고 솔잎도 먹지 말고 참선을 해보려 애쓰지도 말기로 하고 이대로 흐렁흐렁 아미타불이나 바라보며 이렁저렁 어떻게 간단히 늙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곤 하였다. 혜룡선사(慧龍禪師)는 그에게 생식(生食)하기를 권하며 늘 솔잎 가루와 대추와 하얀 생청을 조금씩 구해다 주곤 하였다. "건강을 회복해야지 건강 없이야 아무리 존 도리가 있은들 어떻게 수득한담?" 선사는 건장한 체구와 화기 띤 얼굴을 들고 평로로 쳐도 오리가 넘어 되는 산길을, 재호를 위하여 사흘들이 내려오곤 하는 것이었다. 그의 불그스름한 낯에는 언제나 자신 있는 듯한 안심과 행복이 빛나고 있었다. 지난해 늦은 가을 재호가 이미 처리하기 거북한 가슴의 상처를 지닌 채 이 선사의 산방을 찾아왔을 때 그때 마침 선정(禪定)에 들어 있던 그의 얼굴은 그 너무도 치열한 의욕으로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방선한 뒤 그는, "저를 찾아오신 것은 너무나 황송합니다." 재호에게 처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저 부처님께 의지함으로써 병고는 없이 지냅니다만 저 이외의 사람에게 얼마만한 도움을 줄 수 있을는지 의문이올시다." 선사는 무척 수줍은 듯이 재호의 수척한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그 커다란 두 눈을 슴벅거리며 말을 머뭇거리곤 하였다. 이튿날 재호는 그에게 거사계(居士戒)를 받고 그의 수계 상좌가 된 뒤 그의 지시대로 건강이 다소 회복될 때까지 이 대공암에 거처를 정하고 우선 요양하기로 되었던 것이었다. "하루에 두 번씩은 밥을 먹을 때 반드시 솔잎을 먹으시오. 재호 같은 이에게는 체질에도 대단히 맞을 것이오." 그러나 재호는 그것이 의외로 그의 식성에 거슬렸을 뿐 아니라 체질에도 그다지 맞지 않는 듯하였다. 재호가 이런 말을 선사에게 했더니 선사는 그 동안에 차차 맞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옛날 공부하던 스님네들 생각을 해보라고 하였다. 꿀이 다 무엇이냐, 사람 발자취도 아주 없는 깊은 산 바위 틈으로나 굴 속 같은 데 들어가서 일 년내 밥 구경 한 번 못 하고 솔잎과 도토리 따위나 조금씩 주워먹고도 견디어 내지 않았더냐, 우리가 빚지지 않고 햇빛을 바라보기란 이렇게 힘들고 거창한 사업이 아니겠느냐고 이런 말도 하였다. 그는 업(業)이란 말 대신 가끔 빚(債)이란 말을 가져와서 우리가 우리의 업을 다스려야 하는 것은 곧 우리의 부채를 갚는 것이니 사람의 할 일 가운데서는 이것이 아마 제일 큰 사업이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래 재호도 이즈음은 매일 암자로 돌아다니며 불상 불화들만 바라보고 지내노라니 가끔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즐거울 때가 있더라고 했더니 선사는 만면에 희색을 띠며 고마운 일이라고, 부처님의 은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모양이라고 여간 즐거워하지 않았다. 부처님의 은덕인지 스승의 덕택인지는 몰라도 그의 심경에 어느 정도의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재호 자신도 생각될 때가 있었다. 처음엔 불이암의 나한도가 아니면 아무런 자극도 받아지지 않던 것이 이즘 와서는 나한도보다도 아미타불을 보는 편이 차라리 더 마음이 편했다. 특히 이 무우암의 아미타불 상에서는 진한 초록과 빨간 빛깔에 웬일인지 마음이 끌리었다. 한가운데 앉은 아미타불은 전신 금(金)을 써서 그것이 오랜 세월에 절로 주물린 것이 도로 아미타불다운 존엄과 품위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미타불이 양쪽 어깨 위로, 연화대(蓮花臺)를 들고 서 있는 좌우보체(左右保體)의 관세음 대세지(大勢至) 양 보살은 초록빛 장삼(長衫)위에 붉은 가사를 두르고 머리엔 화관을 쓰고 있었다. 좌우보체의 아래로는 일광(日光), 월광(月光) 양 보살이 버티고 서 있고 위로는 문수(文殊), 보현(普賢) 양 보살, 다시 그 뒤에는 금강장(金剛藏), 제장애(除障碍), 인로왕(引路王) 세 보살이 삼태같이 둘려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누구나 다 기쁨과 안심이 넘치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재호는 빈정거리듯 입술을 비쭉거리며 지장보살 위에 시선을 돌렸다. 다른 보살들처럼 화관도 하나 쓰지 않고 홀로 그 새까만 지옥 중생을 위하여 사는 저 지장보살의 손길은 어쩌면 자기의 머리 위에도 닿을는지 모른다고 재호는 또 이런 생각도 하였다. 사르르 내리감은 그 가느다란 두 눈에서 그는 문득 처음 이 불공(佛供)을 이룩한 화승(畵僧)의 발심(發心)과 정열이란 것이 머리에 떠올라, 그의 두 눈 언저리에는 어뚝어뚝 현기가 났다....... 그가 당채(唐彩)에 기름을 풀었을 때에는 이미 마흔 아흐레 동안의 정신재계(淨身齋戒)의 분향예불(焚香禮佛)로 두 볼의 살은 한점도 없이 내리고, 두 눈에 새로운 광채만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가끔 붓을 쉬고 고개를 젖혀 까마득한 하늘 위에 가만히 돌고 있는 소리개를 한참씩 바라보곤 했을 것이다. 곁방에서 그 절 감원 스님과 그 상좌 아이가 의논성스레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에도 이미 그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는 또 한 번 합장을 한 뒤 아난(阿難)존자의 새빨간 가사에 화필을 가져갔다. 존자의 아름다운 얼굴에 떠도는 미소와 그 달고도 조촐한 숨결은 그의 새빨간 가사에서 화필을 통해 혈관 속으로 맥맥히 흘러드는 듯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는 어느 까마득하게 젊은 날에 보리밭을 매다 부지중 호미 끝으로 찍어 죽인 그 어느 흙벌레 한 마리의 명복을 빌며 또다시 합장을 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몇백 년 전에 이름도 없이 사라졌을 그 어느 화승의 밝은 두 눈초리와 약간 떨리는 붓끝이 시방 재호의 눈 앞에 선히 보이는 듯하였다. 아무런 유감도 미련도 없이 만족한 웃음을 띠며 조용히 붓을 놓고 떠나간 화승의 숨결에는 이지러진 신경과 고지식한 집착이라고는 한 나부랭이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재호에게는 생각되었다. 이제 모든 일에 아무런 흥미도 긴장도 느껴지지 않는, 다 풀린 태엽과도 같이 이완(弛緩)된 그에게는 날과 날을 외로운 달팽이처럼 어둡고 눅눅한 벽 아래 붙어서서 이 차고 숨기 없는 채색만을 벙벙히 쳐다보기로만이 마련이던가. 재호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밤중에 오던 비는 날이 새면서부터 어느덧 다시 눈보라로 변해져 있었다. 지대가 좀 높은 탓인지 겨우내 곧잘 눈보라가 치고 하더니 새해 들어서부터는 정말 함박눈이 퍼붓기 시작하여 한 스무 날 동안은 채 녹을 새도 없이 쌓인 눈 위에 다시 쌓이곤 하는 것이었다. 중들은 어깨를 쪼그린 채 알머리로 눈을 맞으며 아침부터 이 암자로 모여들었다. "이만한 눈에는 상관없겠지요." 큰절 감사로 있는 키가 나지막하고 머리통이 뚝뚝 불거진 사내는 연방 한쪽 손으로 단주(短珠)를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상관없다뿐이오." 대공암 감원 스님이 대답하였다.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큰절 감사는 또 단주를 돌렸다.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곁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렇게 합장을 하였다. 재호는 문득 추위를 깨달으며 복도같이 된 긴 툇마루에서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부엌 쪽 복도 구석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이켜보니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젊은 공양주가 어린 소년 하나를 쥐어박고 있는 것이었다. "안 올라거든 아주 나가버려! 어디로든지 나가버려! 썩 나가! 썩!" 새 공양주는 소년의 팔을 잡아당겼다. 머리를 앞으로 쓰러엎었다 하다가, 나중엔 주먹으로 볼을 쥐어박았다. 그러나 소년(개동)은 엉엉 울며 불상이 걸려 있는 복도 구석으로만 곧장 파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놈애 좀 보십시오." 공양주는 재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이놈애가 시방 어저께부터 밥을 굶어 있습니다요. 그런데 제가 나와 밥을 먹으러 가재도 안 간다, 그러면 어디 다른 데로 나가서 얻어 먹으래도 안 간다, 그리고 늘 이 구석에서만 앉아 울고 있습니다요." 재호는 이 젊은 공양주가 처음부터 좀 모자라는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에도 재호가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데 와서, 곧장 저의 상판을 들이밀며 사진을 박아달라고 조르던 위인이었다. "왜 그래? 밥을 먹잖고." 재호는 그 소년이 아침부터 거기 앉아 울고 있던 개동이임을 알고 이렇게 한 마디 참견을 하였다. "누가 아나요? 쳇, 그 공양주 스님 죽었는데 제깟놈이 암만 울면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 스님이 어릴 적부터 주워다 키웠다고는 합디다만 정말 저의 아버진지 아닌지야 누가 압니까요? 그 동안 공양주를 하자니까 저놈앨 먹이긴 많이 먹였지요. 밥이랑 누렁지랑 불공 때는 떡이랑 유과랑 하고..." 젊은 공양주는 곁눈질로 소년을 흘겨보며 이렇게 늘어놓았다. "그런데 왜 그리 때리고 야단이오." 재호는 이 새 공양주가 요즘 며칠 동안 늘 먼저 공양주의 흉을 보고 다니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 소년에 대해서도 결코 호의를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저한테 왜 그리 야단이나 하십니까요." 공양주는 너무도 억울하다는 듯이 한참 동안 눈을 흡뜨고 그의 얼굴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런 제기랄, 온 산중 스님네들이 모조리 나만 골라 댈라고 하지요, 쳇, 쇠견이 있거든 좀 생각해 보시지요. 이 절 스님네들은 어지간히 욕심들을 채워야지요. 대체 저놈애를 저에게 맡깁니다요, 대체 저에게 무슨 재산이 있습니까요." 그는 어느덧 울상이 되어 두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곤 하는 것이었다. 재호는 공양주의 하는 양을 멍청히 바라보고 섰노라니까 문득, 그의 마음 한구석에 진작부터 이 소년에 대한 어떤 동정 같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어, 그 순간의 야릇한 충동으로 소년을 그대로 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이리 오너라." 재호가 부르자 소년은 단번에 복도 구석에 나와 그의 곁으로 왔다. 자기의 방에 데리고 들어온 재호는 방구석에 놓아둔 조그만 상자에서 밤 대추를 한 웅큼 움켜내어 소년에게 주었다. 소년은 양쪽 손에 밤 대추를 한 움큼씩 논아 쥔 채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두어 시간 쯤 지난 뒤 점심을 먹여서 재호는 소년을 데리고 백일암(百日菴)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선 혜룡선사에게 데려다 주어서 당분간 맡겨두려는 것이었다. 계곡을 건너 수풀을 거쳐 산모퉁이를 돌아나오니, 저 멀리 화장터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는 것이 보이었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고개를 수그린 채 밤도 오지 않는 영원한 어스름 같은 것을 생각하며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따금 흰 눈과 소년의 빨간 두 손이 비치곤 하였다. 소년은 몇 번이든지 고개를 들이켜 먼 화장터에서 오르는 허연 연기를 바라보곤 하였다. 눈은 그새 잠깐 멎은 모양으로 나뭇가지가 흐느낄 때마다 푸숫푸숫한 눈덩이가 그의 목덜미로, 이마위로 떨어져 내리곤 하였다. 재호가 작년 가을 처음으로 혜룡선사를 찾아 이곳을 지났을 때는 눈 대신 누런 나뭇잎들이 이 길을 덮고 있었다고 그는 지금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때 선사는 오랫동안, 진실로 한 십 분 동안이나 묵묵히 눈을 내리감은 채 앉아 있다가 드디어 수줍은 듯한 얼굴을 들며 말하는 것이었다. "솔거를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꿈같이 아득한 말을 얼굴의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일러주는 선사의 심경을 재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황룡사지(皇龍寺地)에도, 분황사(芬皇寺)에도 단속사(斷俗寺)에도, 솔거의 그림은 흔적도 없어졌더라고 재호가 입을 비쭉거리며 간신히 말을 한즉, 선사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재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선사의 얼굴에서 그 꽃 같은 미소를 보는 순간, 재호는 갑자기 뜻하지 아니한 울음이 솟아올라, 손수건으로 낯을 가린 채 오 분간이나 흑, 흑, 느껴 울었다. 황룡사의 노송은 본디 벽에 그렸던 것이니까 건물과 함께 사라졌다 하더라도, 그렇지만 분황사의 관세음상이나 단속사의 유마상(維摩像)은 어떻게 보존되어 있을 줄 생각했던 것이라고, 이틀 뒤 역시 미련을 가진 재호가 이렇게 말한 즉, 그거래야 비단 아니면 종이에 그렸을 터인데 설사 지금까지 있다손 치더라도 앞으로 며칠 더 있어 먼지 티끌이 될 것이냐고 선사는 오히려 약간 성을 내듯이 말했었다. 눈 쌓인 산길이라 오리 남짓한 거리라고 하지만 성치않은 재호에게는 홀가분하지 않았다. 이따금 까마귀들은 길가 소나무 가지에서 어둡게 울며 눈을 떨어뜨리는데 우우 우우, 하고 바람이 화장터의 노린 냄새를 풍기며 연기가 불어올 때마다 소년은 온 낯에 눈물을 좍좍 흘리며 눈 속에 발을 빠뜨리곤 하였다. 산비탈을 끼고 돌아나가면 거기서 산등성이로 오르는 작은 길이 있었고 이 길로 꼬불꼬불 산등성이로 올라가면 저만치 높은 층층대 위에 백일암은 사뿐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래 눈 속에 오우?" 그 동안 수좌들과 큰 방에서 함께 선정중에 들어 있은 모양인 선사는 꿈에서 깨인 듯한 약간 열적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선사는 처음으로 재호가 혼자 오지 않고 개동이를 데리고 온 데 대하여 자못 호기심을 가지는 듯, 그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쪽으로 가끔 시선을 돌리곤 하였다. 재호가 이에 그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선사는 무척 흥미있게 귀를 기울이며 고개까지 끄덕거리곤 하였으나, 그러나 재호의 부탁에 대해서는 간단히 승낙을 하지 않고, 아무튼 잘 왔다고, 오래간만이고 하니, 오늘 하룻밤 여기서 쉬어가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재호가 떠름해 하니까, 선사는 자기도 재호가 밖에 나가 묵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성미인 줄은 짐작한다고, 그렇지만 사람이 그렇게 인정이 없어서야 쓰느냐고, 밤에 천천히 이야기나 하며 자기한테서 쉬어가라고, 재차 삼차 만류를 해서, 재호도 굳이 이를 거역한달 수도 없었으나, 한 가지 이상하게 생각된 것은 그가 데리고 간 개동이를 스승이 아주 재호와 같이 손님 대접을 하는 일이었다. 개동이로 말하면 재호가 이 산중에 들어오기 전부터 대공암 공양주의 상좌로 선사와는 같은 산중에 있는 아이요, 승가(僧家)의 견지로 보더라도 재호의 거사계보다는 사미계를 치른 터이다. 더구나 재호가 자기에게 맡기려고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까지 다 듣고 난 선사로서, 이 소년에 완전히 손님 대우를 하는 데는 어떠한 곡절이 있는 것이라고 재호에게는 헤아려졌다. "너 이름이 뭣이지?" 선사가 물었다. "개동(開東)이 올시다." "개동이, 거, 이름 참 좋구나." 선사는 소년과 더불어 한참 재미나게 이야기를 주고받곤 하기도 하였다. 저녁을 치른 뒤, 선사는 자기의 솜옷 바지 저고리 한 벌을 재호에게 내주며, 양복이 거북할 터이니까 이것을 갈아입으라고 하였다. 처음 재호는 무척 사양을 했으나, 그의 스승은 듣지 않고 기어이 갈아입으라고 권고를 해서, 재호는 속으로 얼마든지 혀를 차면서도 마지못해 그것으로 갈아입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남의 처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자본 적이 과히 없고 또 그것을 무척 꺼려하는 재호는, 이날 밤 선사와 소년이 좌우로 누워 있는 가운데 더구나 선사의 솜옷까지 빌려 입은 채,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내 잠이 들어버렸던 것이었다. 평소의 습관에 비추어서는 극히 어색하고 거북하고, 여러 가지 불합리적이요 모순된 일들이 선사의 곁에서는 모두가 아무렇지고 않게 절로 돌아가는 듯이만 생각되었다. 선사가 그에게 제일 처음으로 한 말도 재호에게는 언제나 잊혀지지 않았다. 일천 수백 년이나 그보다도 더 옛날에 이미 죽고 없는 솔거를 이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멀쩡한 거짓말이요, 허황한 꿈과 같은 말이었으나, 그러나 선사의 곁에서는 그것이 조금도 거짓말 같지도 않고, 어색할 것도 거북할 것도 없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실같이만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의외로 하룻밤을 편히 쉬고 난 재호는, 이튿날 아침 까닭 모를 미소까지를 띤 얼굴로 선사에게 하직을 하였다. 선사는 한참 동안 멍청히 앉아 있더니, 겨우 입을 열어 한다는 말이 소년을 도로 재호가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다. 재호는 어안이 벙벙하여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선사와 인연을 끊기 전에는 선사의 본부를 도저히 거역할 수 없게시리 되어 있는 재호는 그러나, "저도 물론 그럴 작정은 합니다만 그저 당분간만 여기 두었으면 해서..." 한즉, 선사는 수줍은 소녀처럼 입을 오물뜨리며 돌연히, "나도 실상은 내일부터 여행을 좀 떠날 작정인데." 하였다. 조금 뒤 돌 층층대를 내려가는 재호의 뒤에, 선사는 소년에게 옷 보따리-재호가 지난 밤 입고 잔 솜옷을 싼 것- 까지 들려서 함께 따라 내려오는 것이었다. 층층대를 다 내려와서 산모퉁이를 돌아나가는 데까지 와서, 선사는 재호를 불렀다. 내일 일찍이 떠나면 혹 재호를 못 보고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럼 부탁한다고, 이렇게 선사는 말하는 것이었다. 재호는 고개를 들어 선사의 얼굴을 보았다. 순간, 재호의 두 눈에서는 까닭 모를 눈물이 핑 도는 것이었다. 재호가 백일암을 다녀온 이튿날 아침 일찍이 선사는 과연 어디론지 길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아직 안거(安居)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지금까지 안거중에 먼 길을 떠난 적이 없는 선사가, 따라나온 수좌들이 언제나 돌아오겠냐고 묻는 말에는, 그저 나가봐야 알겠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언제 돌아오게 될는지 모른다는 말같이도 들리어, 산중에서는 이상한 일이라고들 말하였다. 재호는 재호대로 선사가 길을 떠난 지 한 보름이나 지난 뒤까지도 거의 매일 같이 소년과 더불어 싸움하기만이 일이었다. 특별히 소년에게 무슨 과실이 있다든가, 아이의 질(質)이 나쁘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었으나 공연히 밉고 성이 가시고 화가 치오르는 것이었다. 재호 자신도 물론 그것이 자기의 신경쇠약 탓인 줄 알았으며 옛날의 소녀와 헤어진 이래로 갑자기 생긴 염인증으로 해서 그가 동경 있을 때부터 독신거처(獨身居處) 밖에는 못하던 버릇의 탓인줄도 잘 알고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병폐와 악습이 쉬 가셔지는 것도 잊혀지는 것도 아님에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얘 이불은 누가 개키라고 했어, 누가?" 재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호령을 하였다. 본디 몸이 성치 않은 데다 또 추위를 몹시 타는 그는 겨우내 이불을 깔아 놓은 채 지냈던 것이었다. 그것이 또 이 소년의 소제하기 좋아하는 성미와 맞지를 않아서, 소년은 몇 번이나 그로부터 무서운 호통을 듣고서도 부지중 다시 그의 노염 살 짓을 저지르곤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의지가지 없는 아이를 길에 쫓아낸달 수도 없었고 어디 맡겨버릴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에 대한 재호의 짜증과 미움은 한층 더 격심해질 뿐이었고 나중에 가서는 선사가 슬그머니 원망스럽기까지도 하였다. 하루는 그가 무우암에서 아미타불상을 보고 있다, 문득 화필 잡을 생각이 나서 돌아오려니까, 나갈 때 그리다 벌여둔 화가가 어디로 치워지고 붓과 물감도 모두 마룻방 쪽으로 집어 넣어 버린 채 방 안이 화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재호를 보자 손에 걸레를 쥔 채 일어서는 소년에게 그는, "그림을 누가 치우랬어, 그림을?"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소년의 이마를 힘껏 떼밀어버렸다. 뒤로 휘딱 자빠진 소년은 방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뒤통수를 찧고 일어나더니, 방구석에 가 서서 무척 서럽게 느켜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래도록 훌쩍훌쩍 울고 있는 소년을 재호는 그러나 달래려고도 하지 않고 이불을 뒤쓰며 눈을 감아 버렸다. 문득, 백일암에서 떠나올 때 그의 뒤를 따라나와서 하직을 하던 선사의 얼굴이 감은 눈에 떠올랐다. 선사는 수줍은 듯이 고개를 수그렸다. 재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선생님." 하고 저녁 때가 되어 저녁상을 갖다두고 소년이 재호의 어깨를 흔들었으나 그는 손을 내저었다. 그날 밤 그는 끙끙 소리를 내어 가며 앓았다. 새벽녁이었다. 그는 소년의 따귀를 때리고 있었다. 소년은 무척 서러운 듯이 조그만 어깨를 달싹거리며 방구석에 돌아서서 울고 있었다. 문득 선사가 나타나, 그럼 부탁한다고, 부디 잘 가라면서 그에게 하직을 하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선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는 돌연히 눈물이 핑 돌았다. 까닭 모를 설움이 목구멍에 복받쳐 올랐다. 그는 목을 놓고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때였다. 스승은 그의 곁에 다가서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는 또 한 번 고개를 들어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스승의 얼굴은 그러나 낯선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는 미소를 띄며, 왜 그리 울어쌌느냐고 하였다. 스승보다 멀쑥한 키대에 어깨가 약간 구부정하고, 귀가 크고 눈썹이 길다란, 창백한 얼굴에, 먹물 누비두루막을 입은 중이- 솔거였다. 재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에게 절을 하였다. 그는 아직도 미소가 만연한 채. "난 첨엔 단군상만 자꾸 그렸었지.." 하며 문짓문짓 물러가...... 안개에 싸인 산이 나타났다. 산에는 퍼런 소나무들이 서 있고 새가 울고....... 눈을 뜨니 온 몸이 물에 빠진 것처럼 땀에 젖어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도 의아스러우리만큼 몸이 가벼운 듯함을 깨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으로 땀을 ㅆ었다. 밖에는 벌써 새들이 지저귀고 문종이에는 아침 햇빛이 훠언하게 비치고 있었다. 한 여드레 지난 뒤였다. 오랜 밤을 헤치고 푸른 하늘이 그 씻은 얼굴을 내어놓고 처마 끝에서는 눈 녹아내리는 낙숫물 소리가 처정처정 들리는 이른 봄날이었다. 흰 햇빛이 강물처럼 번쩍거리는 동구 앞 황토길 위로 커다란 트렁크와 조그만 나무 가방과 보따리 하나를 지게에 지우고 재호와 그의 소년은 절에서 마을 쪽으로 향해내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註= 솔거는 신라의 황룡사 중으로<노송(老松)>,유마상(維摩像)>,관음상(觀音像)> 등의 3대 신품(神品) 이외에 단군상(檀君像)을 무수히 그렸으나, 후자는 그 전해진 것이 없다 한다. <잉여설>,<완미설> 참조. 늪 1 석은 사뭇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또 늪가에 왔다. 길에서 늪에 이르는 그 넓은 보리밭 들의 좁은 밭둑길을, 석은 알 수 없는 야릇한 기대와 호기심에 이끌린 채 키를 넘는 보리를 헤치며 마구 달려온 것이다. 오늘은 늪을 건널 것이라고? 아니다. 그러한 자신이 새삼 석에게 솟을 리 없다. 그러면서 그 "알 수 없는 야릇한 기대와 호기심"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모른다. 다만 그 넓은 보리밭 들을 건너, 검푸른 잡풀을 헤치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서면, 그리하여 그의 눈이 하늘가에 닿은 듯한 먼 수풀을 바라보면 모든 것은 끝난다. 그렇다. 수풀을 바라보는 소년의 두 눈에는 한 순간 이상한 불길이 켜진다. 그리고 그것이 그 "알 수 없는 야릇한 기대와 호기심"의 마지막 불길인 것이다. 소년의 고개는 점점 아래로 수그러진다. 그리하여 눈길은 자기의 발 아래 부글거리는 수렁과 수렁에 이어 있는 늪- 언제나 파란 물 파래로 덮여 있는- 위에 가 머문다. "야릇한 기대와 호기심" 대신 절망과 슬픔에 가득 찬 소년의 눈길은 오랫동안 그 거품이 부글거리는 수렁과 물파래 위에 떨어진 채 움직이지 않는다. 다 저쪽도 수렁이요, 수렁에서 산기슭까지는 이쪽보다 더 넓고 거칠은 잡풀밭이다. 잡풀밭을 지나면 산기슭, 산기슭을 오르면 검은 솔밭,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수풀은 얼마나 넓고 먼지 하늘 끝에 닿은 듯하다. 저녁 때마다 불꽃 같은 노을의 이불로 덮여지는 저 수풀, 개인 날이면 솜뭉치 같은 뭉게구름을 끝없이 뿜어내는 저 수풀, 아아, 저 수풀 속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으며 가지가색의 새들이 우짖고 있을까.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달고 신기한 열매들을 바구니에 하나 가득 담아놓고 계실까. '석아 먹어라, 하고 할아버지는 그 이름도 모를 여러 가지 과일들을 바구니째 석에게 내민다. 석은 그 가운데서도 그 중 붉고 맛있게 익은 과일을 골라 들자 이상한 새 소리를 따라 숲 속으로 숲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파란 노란 꽃을 따서 얼굴에 문질러 본다. 아아 얼마나 부드럽고 향기로운 꽃들이냐?' 그러나 순간, 소년은 손에 들고 있던 제일 붉고 맛있게 익은 과일도, 그리고 그 부드럽고 향기로운 파란 노란 꽃도 다 놓아버리고 만다. ......늪 속에서 그 파란 물파래를 헤치고 무엇이 불쑥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불쑥 솟아올랐다가는 이내 물 속으로 푹 내려가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때 석은 숲 속을 헤메느라고 그곳을 똑똑히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늪 속엔 무엇이 살고 있을까? 수면(水面)은 언제나 파란 물파래로 덮여 있지만 이따금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하얀 왕방울(수은으로 된) 같은 것이 물 속에서 부터 쑥 꿰어져 올라와 물파래를 동그랗게 헤치면 팡 소리를 내고는 도로 퐁퐁퐁퐁 아래로 내려가 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아마 늪 속에서도 제일 여러 해 묵은 무서운 벌레가 방귀를 뀌는 것이리라. 그리고 저 물 위에 꽉 덮인 물파래는 배암밥이란 말이 있으니 늪 속에 얼마나 많은 독사와 구렁이들이 우글거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언젠가는 두꺼비도 늙어서 아래턱이 축 처지고 두 눈에 금테를 두른 놈이 수렁 위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더니 불룩불룩 독 뿜는 시늉을 하고는 도로 들어가 버리지 않았는가. 거머리도 지렁이만큼 큰 놈은 예사라고 한다. 만약 이런 놈이 한번 사람의 몸에 붙기만 하면 잠깐 동안에 뼛속까지 파고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석은 이 밖에도 더 무서운 벌레들이 늪 속에 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석은 그것을 아버지에게도 물어 보았지만, 아버지 역시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거기는 독사와 무서운 벌레들이 많고 수렁이 있어서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라고 누나가 하는 말대로 일러주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아무도 이 늪가에 오지 않는다. 석은 언제나 혼자다. 이 늪을 지나서 저 먼 수풀을 가려면 어디로 어떻게 가느냐고 물어 보려도 상대가 없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혼자서 늪가를 이리저리 헤메다 돌아가는 것이다. 늪은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까지 나 있는지도 모른다. 북쪽에 험상궂은 산이 있고, 동남쪽에 큰 강물이 바다같이 펼쳐져 있으니까 북쪽 산기슭이나 어느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동남쪽의 큰 강물에 잇닿아 있거니 하고 상상할 따름이다. 그래 어떤 때는 험상궂은 산이 있는 쪽으로, 또 어떤 때는 강물이 바다같이 펼쳐져 있는 쪽으로 길을 찾아보기도 한다. 명아주, 개머루, 달기왕다리, 여귀풀, 바랭이들이 키를 넘도록 엉켜 있는 속을 헤치며 얼마쯤 나가 보다가는 지쳐버리기 마련이다. 키를 넘는 검푸른 잡풀 속엔 풀쇄기가 들끓고,땅은 질척질척해서 지렁이, 개구리들이 제 세상처럼 우글거리고, 게다가 방개와 집게벌레들까지 덤비는 판이다. 그러나 석도 이러한 벌레들쯤이야 그처럼 켕기지 않는다. 도마뱀도 문제가 아니다. 제일 무서운 놈이 독사다. 만약 그놈의 꼬리나 잔등을 밟기라도 하는 날이면 마지막인 것이다. 설령 독사를 밟지 않는다 하더라도 희망은 없다. 끝까지 헤치고 나가 본대도 거기는 험상궂은 산이나 바다같이 넓은 강물이 있을 뿐이니까 말이다. 석이 잡초를 헤쳐보는 것은 그냥 안타까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석이 늪을 찾아오는 것부터가 그처럼 안타까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늪을 건널 수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 그 야릇한 기대와 호기심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어제 분이 엄마는 부엌에서, "제 에미를 따라 뒈질려고 그런다." 밥을 푸면서 말했다. 물론 석이 엿듣는 줄을 모르고 분이에게만 하는 말이었다. 이건 필시 석이 늪에 간다는 얘길 분이에게서 전해 듣고 뇌까리는 말이었으리라. 그러나 석은 분이가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늪엔 제발 가지 말아달라고 몇 번이나 붙잡는 것을 기어이 뿌리치고 왔으니까 분이도 화가 났을지 모른다. 아니 그보다도 제딴엔 걱정이 되어서 저의 엄마에게 일러바쳤는지 모른다. 분이는 정말 석이가 늪에 가면 꼭 죽을 줄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보다도 분이 엄마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석은 분이 엄마가 그렇게 말한 뜻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저 석을 미워했기 때문에, 그리고 죽은 석이 어머니를 미워하기 때문에 악담으로 내뱉는 말이거니 생각할 뿐이다. 2 석이 어머니를 따라 숲 속 할아버지를 찾아가 본 것은 꼭 한 번뿐이다. 그의 나이 세 살인가 네 살 났을 때다. 어머니는 석을 업은 채 재를 넘고, 강을 건너고(배를 타고) 하여 겨우 그 수풀 어귀에 이르렀던 것이다. 석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수풀 어귀에 이르렀을 때 맑고 깊은 개울이 그(수풀)잎을 휘감아 흐르고 그리하여 바다같이 넓은 강물로 간다는 것이었다. 개울 저편에는 몇 아름이 될지 모르는 늙은 소나무,전나무, 느티나무, 포구나무, 상수리나무들이 가지를 겯고 엉켜있는 속에 껍질 벗겨진 허연 고목 등걸이 거인(巨人)의 해골처럼 팔을 벌리고 서 있던 것을....... 석은 어머니의 등에 업힌 채 개울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하늘을 가린 울울한 수풀 속에 찔레가 엉켜 있고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 석은 어머니의 등에서 내렸다. 그리하여 꽃을 꺾으러 가려고 할 때, "아서, 길 잃어버림 어떡해?" 어머니는 그의 손목을 잡았었다. "엄마, 할아버진 어딨어?" "자꾸 들어감 계신다." 어머니는 길도 없는 수풀 속을 잘도 찾아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엄만 할아버지 집 알어?" "잎 넓은 나무가 많이 있는 데 가믄 계신다." 어머니는 길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 모양을 대중하고 찾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가도 잎 넓은 나무가 많이 있는 데는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새 소리만 곧장 더 야단스러워지는 듯했다. 아마 새들도 낯선 손님이 온다고 저희들끼리 서로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이 넓은 숲 속에 새와 짐승뿐이라고 생각하자 석은 와락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겁 집어먹은 듯한 눈으로 석이 뒤를 돌아다 보았을 때 어머니는 그가 지친 것을 알고 풀 위에 쪼그리고 앉으며, "석아 업자." 했다. 다시 어머니 등에 업힌 석은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석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느덧 할아버지 집에 와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진 없었다. "엄마, 할아버진?" "열매를 얻으려 나가셨다." "무슨 열매?" "할아버지 오심 안다." "어서 얻는데?" "수풀 속에서......." "수풀 속엔 무슨 열매든지 많이 있어?" "그럼." 어머니는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어머니도 어릴 때 할아버지가 얻어 온 열매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숲에선 열매만 먹고 살어?" "아냐, 감자두 있구, 옥수수, 기정, 조, 호박 같은 것두 있단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부엌(부엌이자 헛간인 듯한)으로 들어가 나무 함지에 담긴 감자를 집어내다 씻어서 삶을 채비를 했다. 어머니가 옹달샘에서 감자를 ㅆ어 왔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시꺼먼 수염이 온 얼굴을 덮은 키가 나지막하고 두 눈이 오끔한 무서운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울긋불긋한 오얏과 살구와 능금과 오디가 담긴 바구니를 말 없이 석에게 내밀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꺼먼 수염 속에 빨간 입술을 보이며 웃음을 짓는 할아버진 어쩌면 말을 할 줄도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할아버지다." 어머니가 말했을 때 할아버지는 또 그 시꺼먼 수염 속에서 빨간 입술을 보이며 바구니에서 잘 익은 살구와 능금을 골라 석의 손에 쥐어 주었다. 할아버지는 이튿날도 아침을 먹자 이내 숲 속으로 들어가더니 저녁 때나 되어 역시 어제와 같은 열매들을 어제보다 더 많이 더 잘 익은 것으로만 바구니에 하나 가득 담아 왔다. 석은 할아버지를 따라 숲속 깊이 가보려고 했으나 어머니가 붙잡아서 가지 못했다. 그 대신 석은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다니며 여러 가지 꽃을 꺾었다. 파랑 꽃, 흰 꽃, 붉은 꽃, 지금껏 보지 못하던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들이었으나 석은 물론, 어머니도 그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 새들도 마을에서 보지 못하던 아름다운 빛깔과 울음 소리로 이 나무 저 나무를 날아 다녔으나 꽃같이 손에 잡아 볼 수는 없었다. "엄마, 저 꼬리가 길고 날개가 붉은 새 한 마리만 잡아 줘." 석이 말했으나 어머니는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내가 새같이 날아다닐 수 있니?" 했다. 석은 자기 힘으로 붉은 새를 잡아 보려고 한나절 동안 숲 속을 헤매었으나 허탕을 치고 맥이 풀려서 돌아왔다. 할아버지께 그 얘기를 했더니 할아버지는 또 그 검은 수염 속에서 붉은 입술을 드러내 보이며 밑도 끝도 없이, "너도 숲 속에서 살렴." 했다. 석은 그 붉은 새를 마음대로 잡을 수 있다면 숲 속에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세 밤인가 네 밤을 자고 났을 때 이젠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석은 어머니에게 업혀서 숲 속을 나오고 말았다. 숲 속에서 지낸 사나흘 동안을 석은 언제나 잊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다시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즐거운 시간이 어느덧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슬픔의 씨가 되고 말았다. 숲 속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모진 매를 맞고 끝없는 구박을 받아야 했다. 그때 겨우 네 살밖에 되지 않았던 석으로서는 아버지의 노여움이 무엇 때문인지를 전혀 알길 없었다. 아버지의 허락 없이 어머니는 숲 속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던 모양이었으나 그 까닭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너무나 예뻐서 잠시 떠나 있기가 싫어서였을까. 그렇지 않으면 분이가 즈네 엄마한테 들었다면서 늬네 엄마 아는 사람 저 먼 산 너머 있었다나봐, 늬네 외할아버지 사는 큰 수풀 있잖아, 거기도 찾아왔었다나봐, 하고 몇 마디 뚱기다만 그 사람 때문일까. 그나 그 사람은 엄마의 외사촌인가 된다고 했었는데..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고 착한 어머니가 왜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가혹한 명령을 받아야 했었는지 석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석은 요즘도 늪가에 오면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왜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야 했으며 구박을 받아야 했을까. 그렇게도 아름답고 착한 어머니가 처음부터 왜 숲 속에서 외할아버지와 그냥 살지 않고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을까. 아버지는 그 싶은 숲 속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알고 찾아가 장가를 들었을까. 할아버진 그 외로운 숲 속에서 어쩔라고 어머니를 아버지에게 주어서 따라가게 했을까? 그렇게도 아름답고 착한 어머니를 아버지는 어쩌면 그렇게도 미워하고 집에서 내ㅉ으려고 했을까? 어머니는 왜 아버지에게 대들지도 않고 그냥 울기만 하다 집에서 나가버리고 말았을까....... 어머니는 집을 나가기 전날 밤 석을 무릎에 안은 채 밤새도록 느껴 울었다(아버지는 어머니를 내ㅉ기 위하여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있었다). 새벽녘이나 되어 석이 잠든 사이에 어머니는 집을 빠져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사람들은 어머니를 찾으려고 어디론지 떼를 지어 나갔으나 아무도 어찌 되었는지를 그에게 들려주는 이는 없었다. 누구의 입에선지 중질을 갔다는 말이 새어 나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했다. 석은 작년(그러니까 여섯 살 때) 봄에 십 리 길이나 되는 극락사(極樂寺)까지 어머니를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절에서도 누구 하나 어머니에 대하여 아는 이는 없었다. 그때부터 석은 어머니가 절에 중질을 갔다는 말도 어쩌면 터무니 없이 꾸며 내어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석은 극락사에도 어머니가 없더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들으면 필시 화를 내어 매를 때릴지도 모른다고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석이 어머니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지 이내 무서운 얼굴이 되며 호통을 치거나 매를 때리는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석이까지도 미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석이 언제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3 아버지가 새엄마를 데려온 것은 지난 해 가을이다. 이태 동안이나 아버지는 석과 단둘이서 살아왔던 것이다. 새엄마는 분이(粉伊)란 딸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왔다. 석이보다 네 살이나 위인 열한 살이라고 했다. 그래서 석한테 누나가 된다고 새엄마는 석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석은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분이라고만 부른다. 새엄마는 화를 내며, "쬐꼬만 녀석이 깡지가 세서 무슨 짝에 쓰겠담?" 하고 눈을 흘기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새엄마가 석을 미워하는 까닭은 또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새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분이 엄마라고 부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건 이웃집 할머니도 석에게 타일러 주었지만 석의 입에서는 엄마란 말이 나오지 않으니까 하는 수 없다. 석이 생각으론 분이 엄마는 자기의 없어진 엄마보다 너무나 망칙스럽게 생겼기 때문인 것이다. "조막만한 녀석이 청승만 꽉 차서, 쯔쯔......." 새엄마는 걸핏하면 눈을 흘기고 혀를 차고 때로는 주먹으로 머리를 떼밀기도 한다. 그러나 분이는 다르다. 분이는 제 엄마처럼 석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 증거로 분이는 저의 엄마가 몰래 쥐어주는 누룽지나 감자나, 작년 겨울에는 홍시와 콩강정과 그런 것을 결코 제 혼자 먹는 일이 없다. 가만히 석을 불러서 쥐키어 주거나 어떤 때는 아주 석에게 몽땅 주어버리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나 분이 엄마에게 석이 야단 맞을 일은 결코 일러 바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석은 아버지가 분이를 미워하는 것도 분이 엄마가 석을 미워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생각될 뿐이다. 아버지는 물론 분이 엄마가 석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신 분이를 미워하는 겐지 모르지만, 석이 넉넉히 할 만한 일도 꼭 분이에게만 시키는 아버지가 어쩌면 분이 엄마를 닮은 것 같기만 하다. 그런데도 분이는 한번도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욕을 한 적이 없다. 또 석이 분이 엄마라고 부르듯이 석이 아버지라고 아버지를 부른 적도 없다. 언제나 그냥 아버지라고만 불렀다. 그걸 보면 분이는 정말 누나 같기도 했다. 그래서, "분이, 넌 너이 엄마 안 밉나?" 물어 보면 분이는 고개를 흔들며, "엄만데 왜?"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도리어 석에게, "넌 너이 엄마가 밉데?" 하고 따지려 든다. 석은 엄마란 말에 덮어 놓고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늘 생각하는 어머니요, 혼자 속으로 몇만 번이고 불러보는 어머니인데도 남에게서 '너이 엄마' 하고 불리워졌을 때 그 순간, 웬지 눈물이 불끈 솟아진 것이다. 석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한 것을 본 분이는 자기 손의 보리피리를 석에게 쥐어주며, "너 이제 늪에 가지 마." 했다. 여러 번 들어왔지만 지금 이렇게 말하는 분이의 눈빛과 목소리는 어딘지 그 전과 달랐다. 그것은 하나뿐인 친누나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요, 목소리 같았다. 분이는 결심한 듯이, "늪에 안 가지? 안 간다고 그래." 다짐을 받으려 든다. "왜, 독사 땜에?" "......." 분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수렁이 있다고?" "......." 분이는 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무서운 벌레?" "아냐, 그런 건 나두 다 들었어." "그럼 뭐?" "너이 엄마가 어쩜......." 분이는 말끝을 맺지 않는다. 차마 늪에 빠져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석은 분이가 말하려는 뜻을 잘 모르고 있었다. 다만, 어머니가 참혹하게 없어진 일을 말하고 있거니 했다. "울 엄만 어쩜 할아버지한테 가 있을 거야. 늪에 가면 수풀이 보여...... 할아버지가 사시는....... 울 엄마 중질 갔다는 건 거짓말야." 분이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석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4 사흘 뒤다. 석은 분이를 뿌리치고 또 늪을 향해 달아나 버렸다. 이날 따라 분이도 웬지 석을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석의 뒤를 따라 보리밭 사잇길을 달렸다. 늪이 보였다. 아니 늪가에 서 있는 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분이는 달려가 석을 붙잡으려다 주춤했다. 만약 석이 잡풀밭 속으로 숨어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분이는 보릿대를 꺽어 석이 좋아하는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피리 소리를 들으면 석이 그녀 곁으로 다가오리가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석은 피리 소리를 들었을 때 뒤를 돌아보았을 뿐 거기서(잡풀 속) 분이를 발견하자 그냥 고개를 돌이키고 말았다. 그녀의 신나는 피리 소리도 그를 늪에서 돌이켜 세우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분이는 더욱 신나게 피리를 불며 점점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석은 그녀의 피리 소리가 자기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도 먼 수풀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바로 곁에까지 다가선 분이는 입에 물었던 피리를 석에게 내밀며, "이거 너 줄게." 했다. 석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분이는 피리를 늪에 던져버리고 가만히 석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자!" 분이가 그의 팔을 끌기 시작하자 석이 마주 힘을 쓰려는 (버티느라고) 순간 언덕 끝의 흙이 무너지며 석의 한쪽 발이 수렁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그때 분이는 엉겹결에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렸으나 석의 남은 발이 마저 힘을 쓰려다 도리어 수렁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것을 보자 한쪽 발을 언덕 아래로 내려 디디며 팔을 뻗쳐 그의 손끝을 잡았다. 석을 수렁 속에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머리 수렁으로 뭉개어져 들어가는 언덕 끝의 흙이 그녀로 하여금 석을 끌어 올리도록 버티어 주었을 리 없었다. 그녀의 한쪽 발이 흙과 함께 수렁으로 미끌어져 들어 갔을 때 석은 이미 머리까지 수렁 속에 잠겨지고 있었다. 석을 끌어올리려던 전신의 힘으로 그의 손끝을 굳게 잡은 채 부글거리는 흙탕 속으로 그녀도 잠겨들고 있었다. 밀다원 시대 부산진(釜山鎭)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차는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몸을 뒤로 뻗대었다. 초량역(草梁驛)에서 본역(本驛)까지는 거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재듯 늑장을 부렸다. 이중구는 팔목 시계를 보았다. 여섯시 이십분. 어저께 세시 십오분 전에 탔으니까 꼭 스물일곱 시간 하고 삼십오 분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 그 동안 중구의 머릿속은 줄곧 어떤 '땅 끝'이라는 상념으로만 차 있는 듯했다. 끝의 끝, 막다른 끝, 거기서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한걸음만 더 내어디디면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지고 마는, 그러한 최후의 점(點) 같은 것에 중구의 의식은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그것은 승객의 거의 전부가 종착역(終着驛)인 부산을 목적하고 간다는 사실 때문만도 아니었다. 부산이 이 선로 종점인 동시, 바다와 맞닿은 육지의 끝이라는 지리적인 이유 때문만도 아니었다. 또, 그 열차가 자유의 수도 서울을 출발지로 하고, 항도 부산을 도착점으로 하는 마지막 열차라는 이유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를 다 합친 그 위에 또 다른 이유가, 무언지 더 근본적이며 더 절실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중구는 그것을 알 수도 없었을 뿐더러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그런 채 그는 다만 기차에서 내렸다. 기차에서 내리는 것까지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서울을 떠날 때 이미 예정되었던 행동이었고, 또 기차는 이 예정에서 벗어나거나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부산진에서부터 목이 쉬도록 울며 조심조심 기어나온 것이 아닌가. 홈에 내렸을 때까지는 아직도 약 이천 명에 가까운 동지들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오십일년 일월 삼일이라는 최후의 시간까지 자유의 수도를 지킨 같은 겨레의 같은 시민이요, 같은 시간에 같은 차로 같은 목적지에 내린, 같은 '운명체'가 아닌가. 그들의 살벌한 얼굴에도, 위엄 있는 얼굴에도, 아부적인 웃음을 띄운 얼굴에도 그들이 아직 홈에서 발을 옮기고 있는 동안에는 다 같이 '동지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한번 출찰구를 빠져 나와 그 넝마전 같은 역 마당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들의 얼굴에서 '동지'는 어느덧 다 죽어버렸다. 출찰구를 통과함으로써 '동지'는 절로 해산이었다. 그리고 해산은 동시에 새로운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구는 이 '새로운 자유'를 안고 출찰구 밖으로 던져진 채 한순간 전의 '동지'들이 이제는 모두 남이 되어 돌아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어디로 저렇게 찾아가는 것일까? 중구는 그것이 신통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모두 부산에 친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란 것은 중구로서도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본시 부산 사람들이 아님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찌하여 그들은 출찰구를 빠져 나오자마자 그렇게 쓱쓱 찾아갈 곳이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들은 한순간에 '동지'에서 벗어나 그렇게 용감하게 자유를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이 부산의 '끝의 끝' '막다른 끝'이란 것을 모른단 말인가. 이 '끝의 끝' '막다른 끝'에서 한 발짝이라도 옮기면 바다에 빠지거나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그렇지도 않다면 정녕 이 '끝의 끝' '막다른 끝'까지 온 사람은 중구 자신뿐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이렇게 일천오백 명도 넘는 사람 가운데 중구 자신과 같이 서성대고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이 모두들 그렇게 용감하게 찾아갈 곳이 있단 말인가. 이것은 기적이다, 엄청난 기적이다. 중구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뇌까리며 저도 모르게 와아 몰려가고 있는 행렬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발을 옮겨 놓았다. '저도 모르게', 그렇다 그것은 '동지'의 관성(慣性)이었는지도 몰랐다. 중구가 '저도 모르게' 또는,'동지의 관성'으로, 이 '기적'의 행렬 속에 휩쓸려 막 전찻길을 건너서려 할 때였다. "이 형은 어디로 갈 데 있어요?" 하는 소리가 왼쪽 귓전을 울렸다. 자줏빛 머플러에 손가방 하나-그것이 중구의 것보다 좀 반짝거리고 배가 불러 보이기는 했지만-를 든 K통신사의 윤(尹)이었다. 중구는 언제나 하는 버릇대로 카키 빛 털실 장갑을 낀 왼쪽 손으로 입을 가려 보임으로써 말씀 아니라는 뜻을 나타낸 다음, 이번에는 와아 몰려가고 있는 '동지'들을 턱으로 가리키며, "모두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하고 웃음을 띄어 보이며 "다 갈 데가 있는 모양이지요." 할 뿐이었다. 전찻길을 건너 섰다. 이번에는 중구가 또 물었다. "윤형은 어디로 가시오?" 이것은 그냥 인사가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까 윤이 중구에게 먼저 이렇게 물었을 때는, 아는 사람 사이에 건네는 지나가는 인사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중구와 같이 자기의 처지를 이미 표백한 다음에는, 어디 좀 같이 따라갈 수 없겠소,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윤은 먼저와 같이 입술을 꼭 다문 채 입 안에 소금을 머금은 듯한 웃음을 띠어 보이며, "우리 같은 놈이야 별 수 있소? 염치 불고하고 통신사 지국(支局)을 찾아가는 길이지요." 한다. 이 '염치 불고'는 중구를 경계하기 위하여 덧붙인 말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이 중구에게는 도리어 반대적인 효과를 나타내었다. 중구는 '염치 불고'에 한몫 끼기를 '염치 불고' 하고 희망했기 때문이다. 윤은 세번째 그 소금을 머금은 듯한 같은 웃음을 띄어 보였다. 그뿐이었다. 승낙도 거절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경우 중구는 이것을 승낙으로 취하는 '자유'를 행사하고, 잠자코 그의 뒤를 밟아 가면 되었다. K통신사의 지국은 보수동이었다. 윤과 중구가 인도받아 들어간 곳은 넓이가 서너 칸이나 남짓 되어 보이는 지국 사무실이었다. 윤은 "할 수 없지, 여기라도 자지 어떡해?" 했다. 중구는 "그럼." 했다. 윤은 또 저녁을 사먹으러 나가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을 중구는 싫다고 했다. 나중, 윤이 저녁을 마치고 오는 길에 조그만 소주병 하나를 들고 와서 한 컵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을 중구는 또 싫다고 했다. 테이블 네 개를 한데 붙여서 탁구대(卓球臺) 모양으로 만들고, 오바도 입은 채, 털모자도 쓴 채, 중구는 그 위에 자기의 몸을 뉘었다. 어디서인지 문풍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피리 소리 같기도 한 것이 울려 왔다. 지국장이 불 붙인 초 한 자루를 내어다 주며 "주무실 때는 끄고 주무이소." 했다. 윤이 고맙다고, 대신 인사를 했다. 중구는 중구대로, 저 촛불이 켜진 공간만큼은, 이 시커먼 얼음덩이에도 구멍이 나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벽의 얼음도 조금씩은 녹아 내릴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유리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컴컴한 어둠 속에 서 있는 검은 얼음장은 어느덧 중구를 위하여 자장가를 불러주는 시꺼먼 곰이 되어 버렸다. 중구는 꿈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몇 번이고 자기가 벼랑에 붙어 있는 거라고 느껴졌다. 천길 벼랑에 붙어 있는 거라고 느꼈다. 천길 벼랑에서 떨어지면, 그 밑은 쉰길 청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무런 연결도 비약도 없이 그대로 기차이기도 했다. 기차는 상당히 경사가 심한 내리막을 달리고 있었다. 기차는 이미 어떠한 방법으로도 정지를 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브레이크를 듣지 않는 자전거가 내리막으로 쏠리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속력으로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기차가 미처 바다에 빠지기 전에, 중구의 의식과 잠재 의식은 혼선이 되며, 자기의 몸은 지금 벼랑인지도 모르고 테이블 끝인지도 모르는 데서 떨어지려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식과 잠재 의식의 혼선 상태는 밤새도록 무수히 되풀이되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중구는 그가 부산에 와 있다는 사실과, K통신사의 지국 사무실에 자고 있다는 사실과, 윤과 함께 누워 있다는 사실을, 그 의식과 잠재 의식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채였다. 그만큼 그의 심신은 피로해 있었다. 샐 무렵이 되어, 창장도 없는 유리문-그것은 곧 사무실의 출입문이기도 했지만-에 어리인 희부연 새벽빛을 바라보자, 동시에 그의 의식은 현실로 점화(點火)되었다. 그것은 섬광(閃光)처럼 빨랐다. 순간에 그는, 곁에 누워 있는 윤을 의식히고, K통신사 지국 사무실을 의식하고, 테이블 위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거의 같은 순간에 서울 원서동 막바지 조그만 고가(古家) 속의 냉돌 방에 홀로 버려 두고 온, 천만(喘滿)으로 지금도 기침을 쿨룩거리고 있을 늙은 어머니와, 충청남도 논산인가 하는 데에 그 친정붙이를 의탁하여, 어린것까지 이끌고 찾아 내려간 아내의 얼굴이 한꺼번에 확 불켜지듯 했다. 이틀이나 끼니를 놓았을 어머니는 지금쯤 벌써 목에 해소를 끓이며 죽을 시간을 기다리고 늘어져 누워 있을 것이다. 어린 딸년은 그 복잡하고 살벌한 차 속에서 사람에게 밟히고 짐에 치이고 하다 굴러떨어져 죽은 것이나 아닐까, 중구가 지금까지 부산을 '끝의 끝' '막다른 끝'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 지금 누워 있는 K통신사 지국 사무실의 잠자리가 춥고 불편하다는 뜻이 아님을 깨닳았다. 어디서인지 또 바람 소리도 같고 젓대 소리도 같은 것이 들려왔다. "이 형은 그래 문단에 그만치라도 이름이 있으면서 부산에 그렇게도 아는 사람이 없단 말이오?" 윤이 구두 끈을 매며 중구에게 물었다. "글쎄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서...... 오늘 밀다방이래나 하는 데를 나가 봐야지......." 하고, 중구는 혼잣말같이 받아넘기는 하였으나, 실상은 '갑자기'가 아니요, 여러 날 두고 생각해 보았고, 차에 오는 동안에도 줄곧 생각해 본 것이 이 꼴이었다. 그만큼 그는 본디 주변머리도 없었지만 부산엔 또한 아무런 연고도 연락도 없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 지국장에게서, "서울서 온 문화인들은 모두 밀다방에 모인다지요."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들 그는 지금만큼도 활기 있게 지국 문을 나서지 못했을 것이었다. '밀다원'은 광복동 로터리에서 시청 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있는 이층 다방이었다. 아래층 한쪽에는 '문총' 간판이 붙어 있었다. 간판 바로 곁에 달린 도어를 밀고 들어서니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샛노란 평론가 조현식(趙賢植)과 그와는 반대로 키가 훨씬 크고 얼굴빛이 시뻘건 허윤(許允)이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중구를 보자 반가운 얼굴로 손을 내어밀었다. "당신도 왔군." 하는 것이 조현식이요, "결국 다 오는군요." 하는 것이 허윤이었다. 중구는, 친구란 것이 이렇게도 좋고, 악수란 것이 이렇게도 달고 향기로운 술과도 같이 전신에 퍼져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짐은 어쨌느냐, 가족은 어딨느냐, 차편은 무엇을 이용했느냐, 지난 밤은 어디서 잤느냐 하는 두 사람의 연극적인 질문에 중구는 통틀어 간단히 대답하고, 다시, 낯수건과 칫솔과 내복 한 벌과, 그리고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이 있는, 다 낡은 손가방 하나를 꺼뜩 들어 보이며, 이것이 전부라고 설명을 첨가했다. 현식은, 이층의, 다방으로 중구를 인도했다. 층계를 반쯤이나 올라갔을 때부터, 다방에서 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닝닝거리는 꿀벌 떼 소리같이 그의 고막을 울렸다. 중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한순간 발을 멈춘 채, 무엇이 그를 이렇게 즐겁게 하고 흥분시키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시굴 사람처럼 무얼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어?" 먼저 다방에 발을 들여놓은 현식의 핀잔이었다. 중구는 카키 빛 털실 장갑을 낀 왼쪽 손으로 또 입을 가림으로써 현식의 핀잔을 막아 내는 시늉을 했다. 다방 안은 밝았다. 동남쪽이 모두 유리창이요, 거기다 햇빛을 가리게 할 고층 건물이 그 곁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가운데는 커다란 드럼통 스토브가 열기를 뿜고 있고, 카운터 앞과 동북 구석에는 상록수가 한 그루씩 놓여 있었다. 그리고 얼른 보아 한 스무 개나 됨직한 테이블을 에워싸고 왕왕거리는 꿀벌 떼는 거의 모두가 알 만한 얼굴들이었다. 중구는 일일이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기가 쑥스러우므로, 가까이 앉아 있는 친구들과, 또는 저쪽에서 일어나 다가온 친구들과 악수를 하고,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목례와 점두(點頭)로써 인사를 치렀다. "이 양반 그 새 시굴 사람 다 됐어, 무얼 그렇게 자꾸 두리번거리고 서 있어?" 현식이가 두번째 주는 핀잔이었다. 중구는 악수를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화가 송시명(宋時明)과 여류 작가 길선득(吉善得) 여사가 몰려와서 테이블을 에워싸고 함께 앉았다. 언제 왔느냐, 가족은 어쨌느냐, 하는 것으로 질문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중구는 먼저와 같이, 통틀어 간단히 대답을 했다. 커피가 왔다. 현식은 중구에게 같이 들자는 인사도 없이, 자기 앞에 놓은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먼저 훌쩍 마시고 나더니, 오버 주머니에서 담배를 끄집어 내었다. 일체 사교적인 사령이나 형식적인 인사를 통 모를 뿐만 아니라, 가다가는 마땅히 필요한 예의까지도 가급적으로 무시하자는 것이 그의 취미요 성격인 듯했다. 이러한 그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취미'와 '성격'이, 그러나 의외로 오해를 많이 사지 않는 것은, 그의 조그맣고 샛노란 얼굴에 아예 욕기(慾氣)가 조금도 없어 보이기 때문인 듯했다. "아이고 세상에 인심도 무세라." 하고, 경남 출신인 길 여사가 경상도 사투리로 익살을 부리자 여러 사람들이 "와아!" 하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안 되겠임더, 우리도 이러다가는 굶어 죽겠임더." 하고, 길 여사는 사람 수대로 커피 여섯 잔을 더 시켰다. 중구는 여러 친구들의 '식기 전에'라는 권고에 의하여, 아직도 김이 모롱모롱 오르는 노리께한 커피를 들어 입술에 대었다. 닷새 만이다. 한 십 년 동안 시베리아 같은 데 유형(流刑)살이를 하다 돌아와서 처음으로 커피를 입에 대어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도 커피의 한 모금은 그의 가숨 속에 쌓이고 맺혀 있던 모든 아픔을 한꺼번에 훅 쓸어 내려 주는 듯했다. 중구는 입이 헤벌어지며, 곧장 바보 같은 웃음이 터져 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도 없었다. 사람이란 무엇일까요, 하고, 몇 번이나 입 밖에까지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그는 간신히 참았다. 커피 여섯 잔이 새로 왔다. 현식은 말없이, 자기 앞에 두번째 놓인 커피 잔을 테이블 한가운데 옮겨 놓았다. 자기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중구도 두 잔째니까 사양을 했으나 이번에는 길 여사가 듣지 않았다. "평론가가 내는 차는 먹고, 본인이 대접하는 차는 거절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해요." 길 여사의 항의에 장단을 맞추듯, 송 화백이 또한 손바닥을 내밀며, '빨리 드십쇼' 하는 제스처를 부렸다. 중구도 입에 손을 가져감으로써 제스처에 응수를 했다. 중구의 이 제스처는 이미 유명한 것이어서 때로는 곤란하다는 뜻, 때로는 거북하다는 뜻, 때로는 죄송하다는 뜻, 그 밖에 수줍다는 뜻, 고깝다는 뜻, 천만에 말씀이라는 뜻, 이러한 모든 델리케이트한 감정과 의사 표시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다방은 어느 날까지 열렸어요?" 이번에는 커피당인 송 화백이 물었다. 이십구일까지든가 삼십일날까지든가, 아무튼 그믐께부터는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라곤 거의 볼 수도 없었으니까, 나중은 병자, 노인들까지 모두 들것에랑 리어카에랑 태워서 나오는데, 아이유 하며, 또 입에다 손을 가져갔다. 순간,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모셔 오지 못한 그의 어머니의 생각이 가슴에 찔렸던 것이다. 그 때 허윤이 '문총' 사무실에서 이층으로 올라왔다. '혀 형 이리 오세요.' 하고, 현식이 좋은 수나 있다는 듯이 소리쳤다. 허윤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빙긋이 웃으며 곁에 와 서니까, 현식은 "당신들 둘이 잘 됐소." 한다. 무슨 말인가 하고 있으니 "허형은 어린애들을 길에 흩어 버리고 혼자 왔다지, 이 형은 지금 어머니를 서울에 버려 두고 왔대잖아." 그러니 비슷한 처지에 서로 위안이 되리라는 뜻이다. 그 자리에 있던 음악가 안정호(安定浩)와 송 화백은 조금 웃어 주었으나 허윤과 중구는 웃지 않았다. 다만 길 여사만이 중구의 흉내를 내느라고 왼쪽 손을 입에 갖다 대었을 뿐이다. 길 여사는 이미 나이도 오십이 넘고, 또, 하와이로 미국으로 여행도 여러 번 하고 돌아온 부인이라,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보아 가면서도 그 자리의 분위기와 남의 감정 혹은 체면 같은 것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서투른 제스처와 사교적인 사령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점에 있어, 별반 악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호의에 가까운 심정으로 남의 아픈 데를 콕콕 찔러 주는 조현식 평론가와는 어디까지나 대척적이기도 했다. 점심 때가 되었다. 길 여사가 우동을 사겠다고 했다. 일행은, 중구를 주빈으로 하고, 조현식, 허윤, 송 화백, 박운삼(朴雲森) 그리고 길 여사, 모두 여섯 사람이었다. 안정호가 다른 약속이 있어 빠지게 되고 그 대신 박운삼이 끼인 것이다. 박운삼은 시인이었다. 그는 처음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 자리에 혼자 '벽화'같이 앉아 있었으나 이들과는 본디 가까운 사이요 또 그의 하도 서글픈 표정으로 앉아 있는 꼴이 마음에 걸려서, 중구가 특별히 그를 일행 속에 끌어들였던 것이다. 박운삼은 우동 집에서나, 우동을 마치고 나서나,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없었다. 본시 좀 침울한 성격이기는 했으나, 육이오 이전에는 그렇게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 위인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저렇게 실의한 사람같이 말 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무슨 곡절이 있는 듯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곡절'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지거나 해명을 해보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날 밤은 조현식을 따라가 잤다. 조현식의 집은 남포동에 있었다. '항도 의원(港都醫院)'이라는 병원 간판이 붙어 있는 일본식 건물이었다. '경남 여중' 교원에 현식의 친구가 있어, 그 친구의 소개로 이 병원의 이층 입원실 한 칸을 얻어 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조 반'짜리 다다미였다. 거기다 오시이레가 동쪽 북쪽 두 면에 붙어 있어서 상당히 쓸모 있는 방이었다. 북쪽 오시이레에는 침구와 옷 보퉁이와 트렁크와 책 상자와 그 밖에 너저분한 피난살이 짐짝들이 들어 있고, 동쪽 오시이레는 친척들의 침실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은 조현식 부처와 아기 둘과, 어머니와, 과수 누이에 그 아기와, 그 현식의 오촌 조코와 이렇게 여덟 사람이었다. 여기다 또 그의 사촌 동생이 이따금 와서 잔다는 것이었다. 중구가 현식을 따라 들어갔을 때는 이 집 주인(의사)의 아들까지 합쳐서 남녀 노소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할머니와 어린 손자들은 옛날 이야기를 하느라고 자지러져 있고, 젊은 사람들은 윷놀이에 법석을 치는 판이었다. 그들이 들어가자 윷놀이는 곧 걷어 치워졌다. 현식의 부인과는 서울서부터 가족적으로 잘 알던 사이였으나 그 누나와 오촌 조카 사촌 동생들은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식이 중구를 그들에게 소개를 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방면이 다르고 계제가 다른데 우연히 자리를 같이했다고 해서 그러한 형식적인 수속을 치를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조현식의 그 어떻게 할 수 없는 성격이요 취미인 듯했다. "저기 가서 소주 한 병하고 오징어 좀 사오너라." 하고 현식은 국민 학교에 다니는 그의 아들아이에게 돈 천 원을 내어 주었다. "모친께서는 지금 어디 계세요" 하고, 현식의 부인이 술상-겸 밥상이지만-을 보며 중구에게 물었다. "서울 계십니다." 하며, 중구는 현식의 모친을 한번 흘낏 보았다. 과연 현식의 모친은 중구의 "서울 계십니다." 하는 말에 놀란 듯한 얼굴로 중구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머니를 버리고 온 것 아니냐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중구는 목젖이 뿌듯하게 아파짐을 깨달았다. 그럼 부인은 어떻게 됐느냐고, 또 현식의 부인이 물었다. 어린년(딸) 하나를 데리고 충청도 저의 오라범 댁으로 찾아 내려갔다고 한즉, 부인은 또, 그럼 서울에는 어머니 혼자만 계시는구먼요 하는 것이 흡사, 이것으로 심문을 끝내는 동시에 너에게는 불효자란 이름을 선언한다-하는 말같이 중구에게는 들려졌다. 조현식은 본래 술이 약했다. 그 대신 그의 사촌 동생이 상당한 술꾼이었으므로 중구는 그를 상대로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마셔 버렸다. 처음엔 목젖이 뜨끔뜨끔 아프던 것이 한잔 두잔 소주가 들어가면서부터 그것도 씻은 듯이 가셔져 버렸다. 다만 그의 입에서는 어떤 동기와 무슨 목적으로서인지도 모르게 다음과 같은 넋두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돈만 있었으면 나도 사실 어머니를 모시고 부산에 올 수 있었어. 원고료 몇 푼씩 받어서 그때그때 연명을 해오던 우리 처지에 육이오를 치르고 구일팔을 당했으니 깨끗이 빈손이지 어떻게? 사실 원서동의 그 오막이라도 팔까 했지만 섣달 초승께부터 벌써 슬금슬금 남하가 시작되는 판인데 팔기는 어떻게 팔어? 스무날 섣달이 넘어 아내가 딸년을 데리고 충청도 저의 오라범을 찾아간다고 했지만, 그것도 부모 없는 친정이요, 평소에 의까지 좋지 못했는데 정 할 수 없어, 죽여 줍시사 하고, 찾아가는 판인 걸 거기다 어머니까지 붙여 보낼 수가 있나, 또, 붙여 보낼래니 그만한 밑천이 있나? 어머니는 조형도 알지만 오래 전 천만병으로 보행은 어림도 없고, 기차나 자동차도 복잡하게 밀고 짓밟고 하는 판에는 도저히 오 분도 견디지 못하시지, 리어카나 달구지 같은 것을 구해서 그 위에 타시게 하고 내가 끌어 볼 수는 있겠는데, 내 주변으로는 그거 하나 구하기도 하늘에 별 따긴데 게다가 어머니는 찬 바람만 쐬면 그냥 기침이 연발하여 숨이 막히시는 판이니 그러다가는 노상에서 지레 죽으실 것 같고...... 또 어머니가 한사코 움직이지 않으려고만 하시니, 괜히 끌어 내다 길에서 지레 죽이려느냐고, 이왕 죽는다면 집안에서 이불 덮고, 편안히 누워 죽는 것이 얼마나 나으냐고 그리고 집 안에는 아직 연료와 식량이 다 남아 있으니 정 급하면 일어나 끓여 먹을 수도 있는데 왜 죽음을 사서 나가겠느냐고......." 그래서 중구도 차마 혼자 버려 두고 떠날 수가 없어 마지막 날까지 서울서 버티다가 일월 삼일의 최종 후퇴에 뛰어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중구들의 술상이 치워졌을 무렵에는 동쪽 오이시레는 이미 이중 침실로 화한 뒤였다. 현식의 누이 모자(母子)가 오이시레의 아래층으로 들어가자, 오촌 조카는 이층으로 올라가 눕고, 그러고는 후수마가 닫혀지는 것이었다. 중구가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무슨 슬픈 안개를 뿜는 듯한 뱃고동 소리가 들려 왔다. 그와 동시에, 어젯밤 K통신사 지국 사무실의 테이블 위에 누웠을 때 들려 오던, 그 '문풍지가 우는 듯한' '피리 소리'같기도 하던 그것이 바로 이 뱃고동 소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밥을 끝내자 중구는 또 그 낯수건과 칫솔이 들어 있는 낡은 손가방 하나를 든 채, 현식과 함께 밀다원으로 나왔다. "오늘은 오형이 나올라고 했으니 어쩌면 이형 숙소가 해결될 겝니다." 조현식의 말이었다. "부산 있는 문인이 누굽니까?" 하고, 중구가 물었다. 물론 중앙 문단에 알려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있기는 사오 명 있지만 다 소용 없어요." 조현식의 대답이었다. "하기야 이꼴 돼 오면 반갑다고 할 사람 없겠지" 중구가 도리어 현석을 위로하는 말투였다. 그들이 마찬가지로 서울서 피난 온 사람이면서도 이렇게 현식이 주인 행세를 하고 중구가 손님 노릇을 하는 것은 현식이 먼저 내려와 방을 잡았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현식의 아내가 첫째 이 지방 사람인데다, 그는 또 문총 사무국을 맡아 있는 관계로 각 지방에 많은 유기적인 동지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 전필업(全弼業)이 알지?" 현식이 물었다. "내 아는 사람은 전필업이하고 오정수(吳楨洙)뿐이야." 중구가 대답하자, "당신 전필업이하고는 상당히 친했지?" 하고, 현식이 꼭 심문을 하듯이 묻는다. "오정수만치는 친했던 편이지." 그러자, 현식은 여기서 말을 뚝 끊어 버리고 커피를 훌쩍 마시더니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의자에 비스듬히 자빠져 버린다. "그래, 전필업이 만났소?" 중구의 묻는 말에 현식은 한참 동안 담배만 피우고 있더니, 담배의 재를 떨굴 겸 상체를 일으키며 한 일주일 전에 여기서 만났다고 한다. "내 말 하던가?" 하고 또 중구가 묻는데, 현식은 이에 대한 대답은 없고, "그날도 나는 마침 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무심코 고개를 드니까 그는 이미 저쪽 들어오는 문 앞에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더군. 나는 처음 저 친구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어쩔 줄 몰라서 저러고 있나 보다 했더니, 종시 움직이지 않고 그냥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잖아? 나는 웃는 얼굴로 손을 들어 보이며 전형 하고 불렀지, 그랬더니 그는 그냥 그 자리에 선 채 고개만 까딱하잖아. 묘한 녀석이라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나중 저쪽 내 모르는 신문 기자들 있는 자리에 가서 같이 앉았다가 그냥 쓱 나가 버리더군....... 그것까지는 또 좋은데, 그러고 며칠 지난 뒤 그 자가 허형(허윤)을 보고 하더란 말이 걸작이야, 이렇대. 지금까지는 서울 있는 놈들이 문단을 리드해 왔지마는 지금부터는 부산이 수도로 됐으니까 재부(在釜) 문인들이 문단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대, 그래서 이번에는 중안 문인들이 재부 문인들 앞에 머리를 수그리고 나와 문안을 드릴 때까지 이쪽에서는 버티어 줄 작정이라는 거야." 조현식은 그 샛노랗고 바짝 마른 얼굴에 표정 하나 없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끝내자, 담뱃불을 비벼 끈다. "주도권이란 건 뭔고?" 하고 중구가 묻는다. "모르지, 아마 신문 잡지 같은 데다 글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 같애." "그렇다면, 하긴, 전필업이한테는 필요하겠군, 우리야 뭐 별로 발표할 글도 없고 하니, 필요한 사람들이 가지면 되잖아." "그렇다고 해서 누가 무얼 써달라고 하더라도 전필업이를 위해서 우리는 집필을 거절한다거나 유예해야 한다는 이유도 없잖아?" "그거야 물론이지." "그렇다면 문제는 또 복잡해지거든. 왜 그러냐 하면 우리도 쓰고 전필업이도 썼을 때 대부분의 안목 있는 독자들이 전필업이보다 우리를 상대하게 되면 어떡하느냐 말이지." "그거야 할 수 없지 어떡해?" "그러나 결국 문제는 거기 봉착되고 마는 거야. 전필업이가 주도권을 가지겠단 말은 우리와 그가 같이 글을 쓰더라도 사회가 우리보다 그를 상대하도록 해달라는 거야." "해주긴 또 누가 어떻게 해준단 말인고?" "해주지 않으면 제가 그렇게 만든다는 거지." "만들다니, 어떻게?" "그걸 알고 싶거든 전필업이가 내는 '항도 문학'이란 주간 신문을 좀 보시오, 거기 중앙서 내려온 문인으로서 글줄이나 바로 쓰는 현역 가운데 벌써 욕 먹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그 위에다 좀더 유력한 문인에 대해서는, 무전취식을 했다느니, '문총' 공금을 착복했다느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거짓말로 갖은 인신 공격을 다 하고 있으니까." 두 사람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한참 동안 서로 멀거니 건너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애들이 몇이나 되는고?" 하고, 중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르지, 전필업이 이외에도 그를 ㅉ아다니는 청년들이 몇 사람 있는 모양이더군." "그 정도 같으면 문제 없잖아? 어디서나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는 거니까." "그러나 다르지, 아무리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는 것이 세상이라 하더라도 이런 정도로 망나니가 용납되진 못했으니까. 지금과 같이 집이 막 쓰러지고 사람이 죽고 하는 전란중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권위라든가 표준까지도 다 쓰러뜨려 없애 버리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심리(心理) 경향인가 봐." 조현식은 말을 마치고 또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중구는 중구대로 요 며칠 사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끝의 끝' '막다른 끝'이란 말을 다시 한 번 혼자 속으로 되뇌이며 자욱한 연기 속에서 꿀벌 떼처럼 왕왕거리는 다방 안을 돌아다보았다. 오정수는 새까만 새루 두루마기에 새하얀 동정을 넓적하게 달아 입고, 코 밑의 인중이 길쑴한 입 언저리 위에 꼬물꼬물 무엇이 기는 듯한 얌전한 미소를 띄며 중구에게로 걸어왔다. "언제 왔어요?" 하는 인사가, 흡사, "언제 왔는기요?" 하는 거와도 꼭 같은 악센트였다. 그는 중구의 손을 꼭 잡은 채, "오느라꼬 고생 많이 했지요, 가쭉은 다 오셨입니까, 거처는 정했습니까?" 하는 일련의 인사가 다 끝날 때까지 놓지 않았다. "오형 인제 잘 됐어." 하고, 조현식이 오정수에게 자리를 내어 주며 히쭉 었었다. 오정수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뭐라꼬요?" 하며 조현식을 쳐다본다. "이형은 오형 나오는 것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요?" "이형한테 물어 보시오." 그러자 오정수는 또 그 입 언저리에 꼬물꼬물 기는 미소를 띄며 중구 쪽을 바라본다. 중구도 왼손으로 입을 가린다. 거북하다 미안하다 하는 뜻이다. "이형은 지난 밤에도 이 다방에서 잤답니다." 이번에는 또 조현식이 말을 붙인다. "정말이오?" 오정수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저 다방 색시한테 가 물어 보시오." 조현식은 시치미를 뗀다. "그럼 와 진작 나한테 안 찾아왔소?" "환영할지 안할지 알 수가 있어야지." 조현식의 이 말에 오정수도 농담인 것을 깨닫고, "에이 나쁜 양반!" 하고,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하듯 눈을 흘겨 준 다음, 중구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이오, 오늘 저녁에는 꼭 우리 집에 갑시대이." 한다. 이거 미안해서...... 하고, 중구가 머리를 긁으려니까 조현식이 곁에서, 잘 됐지 뭐, 한다. "정말 잘 됐어요." 하고 곁에 있던 송 화백도 성원을 했다. 뒤이어, 송 화백은 "오늘은 오 선생도 모처럼 나오시고 했으니까 빈대떡 집에나 갑시다.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했다. 아침에 삽화료(揷畵料)를 받은 것이다. 일행은 오정수 조현식 이중구 송 화백 이렇게 네 사람에다 작곡가 안정호(安定浩)가 끼어서 모두 다섯 사람이었다. 빈대떡 집은 남포동 뱃머리라고 하는 선창가였다. 바로 코 끝에서 시퍼런 바닷물이 철썩거리고 있었다. 갠 날엔 대마도가 빤히 건너다보인다는 영도(影島)와 송도(松島) 사이의 아득하게 트인 해변 위엔, 안개 같은 구름이 덮여 있고, 그 구름에서 일어 오는 듯한 쩝쩔한 바닷바람과 함께 이따금씩 갈매기 떼들이 허연 날개를 퍼덜거리며 몰려오곤 하였다. 술이 얼근하여지자 송 화백과 안정호는 서로 열을 올리며 기염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다 같이 대한민국이 예술가들을 천대한다는 요지의 것이었다. "대한민국 예술가들은 다 죽어야 해! 다아!" 그는 몇 번이나 이렇게 소리를 지르곤 하엿다. "그놈의 돈들이 다 어딜 갔냐 말야, 몇 억(億) 몇 조(兆) 하는, 천문학적 숫자의 발행고가 다 어딜 갔냐 말야. 그놈의 돈을 다 뭉쳐 놓으면 저 영도섬 더미보다 더 클 거 아냐 말야. 그놈의 돈들이 다 어딜 갔기에 우리는 사변이 나자 그 날로 당장 빈손이 되고 거지가 되느냐 말야. 지금 부산에 와서도 처자와 함께 제대로 밥이나 끓여 먹고 있는 예술가가 몇이나 있느냐 말야, 그놈의 돈들이 다 어디 가 뭉쳤기에, 몇도 되지 않는 대한민국 예술가들이 다 거지가 돼서 저놈의 바닷물에라도 빠져 죽어 버려야 하게 됐단 말인가?" 하고 기염을 토하는 송 화백의 눈에는 불이 척척 흐르는가 하면, "그놈의 돈 뭉치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 하고 시작하는 안정호의 음성은 잠긴 듯하다. "우리 처외삼촌(妻外三寸)이란 자는 본디 무역하는 사람인데 말씀에요. 이 작자 손에 지금 배가 몇 척 노는 줄 아세요?" 일조유사지시(一朝有事之時)엔 제주도로 가든지 대마도로 가든지, 혹은 일본으로 가든지 미국으로 가든지 자유 자재란 말씀에요. 그러니 그거 어디 저 혼자 하는 일입니까? 돈 가진 놈들과 권세 가진 놈들과 짜고, 권세 가진 놈들은 돈 있는 놈들과 짜고 권세 가진 놈들은 돈 있는 놈들과 끼리끼리 서로 통해 있고, 예약이 돼 있단 말씀에요." 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다. 그의 잠긴 듯한 음성이나 눈에 어리인 눈물로 보아 그도 아마 그의 처를 통해 한몫 끼어 보려다가 톡톡히 괄시를 당한 모양 같다. "그러니 다 죽고 없어져야지, 저놈의 바닷물에라도 얼른 뛰어들어서 모두 죽고 없어져야지!" 송 화백의 맞장구다. "그런데 그 사람 운삼이 왜 그래? 사람이 변한 거 같애." 하고 중구가 화제를 돌리려고, 어저께 본 박운삼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었다. "도무지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고, 등신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잖아?" 하는 중구의 말에, 송 화백이, "왜 그렇긴 왜 그래? 상사병(相思病)에 걸린 거지." 하고 자신 있는 듯이 말을 받는다. "사변 전에 늘 데리고 다니던 여자 있잖아? 여의대(女醫大) 학생 말야." "그래 그 여자와 헤였나?" "헤인 셈이지." "헤인 셈이란 건 뭔데?" "헤인 셈이란 건, 어쨌든 결과에 있어서 헤어졌단 말이지." 그러자 일동이 와아 웃었다. 일동의 웃음에 용기를 얻은 듯 송 화백은 말을 계속했다. "당사자들의 감정이나 의사로서 헤어진 게 아니고 형편이 그렇게 만들었단 말이지." "형편이라니?" "여자가 애인을 따라 거지가 되어 주지 않고, 부모를 따라 외국으로 떠났으니까." "그렇다면 거기엔 당자의 의사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나 그렇게 된 게 아니래, 적어도 박운삼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여기서 잠깐 이야기가 끊어졌다가, "여자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던가?" 하고 중구가 다시 물었다. "외교관도 아니지, 본시 주일부(駐日部)에 무슨 기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나 봐, 비행기로 노상 왔다갔다 하던 사람이래." 중구와 송 화백의 문답도 여기서 일단 끝이 났다. 중구는 바다로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얼얼한 술기운에 퍼런 해면이 보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내리막을 달리는 기차가 떠오른다. 최종 열차다. 땅 끝까지 가서는 바다에 빠진다는 것이다.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기차는 목이 쉬도록 울며 발목이 휘어지도록 뻗대어 본다. 그러나 내리막을 달리는 기차는 그 무서운 속력의 관성에 의하여 기어이 바다에 들어가야만 한다. 중구의 눈에 또 갈매기 떼가 비친다. 자기는 이미 바다에 빠져 있는 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는 이미 갈매기 떼에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오, 갈매기여, 갈매기여! 그는 시인 같은 심정으로 갈매기를 불러 본다. 그이 머릿속에는, 아까 '밀다원' 안에서 꿀벌 떼처럼 왕왕거리고 있던 예술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다 즐겁다.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두 눈에는 불을 흘리는 송 화백이나, 처외삼촌에게 설움을 당하고 목이 메인 안정호나, 거센 물결에 애인을 뺏기고 넋이 빠져 앉아 있는 박 시인이나, 어린 자식들을 길 위에 흩어 버리고 혼자서 하루에 떡 세 개씩으로 목숨을 이어나간다는 허 시인이나, 늙고 병든 어머니를 죽음에게 맡기고 혼자 달아나온 이중구 자신이나 그들은 다 같이 즐겁다. 다방에서는 꿀벌들처럼 왕왕거린다. 바다에서는 갈매기 떼처럼 퍼덜거린다. 앞뒤에 죽음과 이별을 두고, 좌우에 유랑과 기한을 이끌며, 그래도 아는 얼굴 커피 한 잔이 있어서 즐겁단 말인가, 그래도 즐겁단 말인가, 무엇이 즐겁단 말인가, 하고, 중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말을 끄기 위하여 또 한 번 한숨을 길게 뿜었다. 오정수의 집은 범일동에 있었다. 단층으로 된 일본식 건물이었다. 온돌방이 하나요, 다다밋방이 둘인데, 온돌방은 오정수의 부인과 아이들이 쓰고, 다다밋방 하나는 오정수의 서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다다밋방에는 오정수의 일가뻘이 되는 피난민이 들어 있었다. 뜰은 넓지 않으나 사철나무 소나무 벽오동 따위 정원목과, 라일락 침정화 같은 꽃나무들도 심어져 있었다. 툇마루 끝에는, 난초, 사보텐, 종려, 치자, 목련 하는 분종(盆種)들이 일고여덟 개나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새는 기르지 않습니까?" 중구가 물었다. "예에." 오정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기른단 말인지 기르지 않는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처마 끝에는 빈 새장 하나가 달려 있을 뿐이었다. 기르다 말았거나, 다른 새장에 옮겨 둔 모양이었다. "여기서 이런 거나 만지고, 심심하면 바다나 내다보고 하면 혼자 살아도 되겠네요?" 하고, 중구가 오정수의 말투를 흉내내어 보았다. 오정수는 또 먼저와 같이 "예예."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녁에 술상을 내어 오게 하고, 오정수는 중구에게 술잔을 건네며, "실상 조형(현식) 생각도 하고 이형(중구) 생각도 해서 방 한 칸을 비어 두고 있었입니대이." 했다. 그것은 이미 오 형에게 들었다고, 중구가 말했다. 그러나 오정수는 "잘 됐임더, 이형은 혼자 몸이시고 하니 그마아 나하고 여기서 같이 있입시대이." 하고, 입 언저리에 꼬물꼬물 기는 듯한 따뜻한 미소를 띄며 중구를 쳐다본다. "미안해서......." 하고 중구는 술잔을 내었다. 흐리멍텅한 대답이었다. 오정수의 부인이 들어와서 인사를 했다. 키가 훨씬 크고 몸이 뚱뚱하고 얼굴빛이 거무스름한데다 목소리가 컬컬한 부인이었다. 다만 가늘게 뜨는 실눈에는 어딘지 소녀다운 애티가 있어 보였다. "아무 꺼도 없임니더마는 마아이 드이소이." 하고, 절을 한번 하더니 그냥 나가 버렸다. 뒤이어 저녁상이 들어왔다. "아직 좀더 있다가 가지고 오너라." 오정수가 저녁상을 도로 들여보냈다. "술 좀 더 할란대이." 하고, 그는 또 안쪽으로 향해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이거 냉이 나물이지요, 맛있임대이." 하고, 중구도, 다시 지방 말을 흉내내었다. 냉이를 여러 가지 양념과 함께 멸치젓에다 무친 것이었다. "예에, 많이 드이소, 그런 거쯤은 얼마든지 있임더." 오정수도 젓가락 끝으로 냉이 한 토막을 집어 입에 넣으며 이렇게 응수를 했다. "오형은 술이 약해서 안 되겠임대이 고마아." 중구가 또 사투리로 농담을 붙였다. "와 이카십니꺼, 술은 내 혼자 멕에 놓고 괘니." 오정수가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하듯 웃음 담긴 얼굴로, 눈을 흘겼다. '부웅' '부웅' 하는 고동 소리가 잦게 들렸다. 그것은 먼젓번 보수동에서 듣던 '피리 소리'도 아니요, 어젯밤 조현식에게서 듣던 패앵패앵 하는 소리도 아니었다. 정말 무엇이 떠나가고 있는 듯한, 가숨이 찡찡 울어대는 그러한 뱃고동 소리였다. "저놈의 날라리 피리 소리들 땜에 나는 고마아 못 살겠심대이." 중구는 연거푸 술잔을 내며 주정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그것이 고동 소리를 가리켜 하는 말이라고는 오정수도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거기서 듣는 고동 소리를 '날라리 피리 소리' 하고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오히려 중구의 취한 가슴 속에서만 나고 있는 소리인지도 몰랐다. "그러지 말고 한잔 취하이소." 오정수는 중구의 빈 잔에 또다시 술을 쳐주었다. 중구는 취기로 인하여 이미 얼얼한 손으로 그 술잔을 잡으려 했다. 그 때, 갑자기 그의 두 눈에서는 취한 얼굴로서도 열도(熱度)를 깨달을 만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쏟아지며 뜻하지 못했던 울음이 북받쳐 오르는 것이었다. 그 순간, 취한 가운데서도, 이건 파렴치다, 언어 도단의 추태다, 하는 생각을 하며, 곧 일어나 방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툇마루에서 신돌 위에 내려서려 했을 때, 그는 미끄러지듯이 넘어지며 분종을 둘이나 신돌 위로 굴러떨어뜨렸다. 오정수가 이내 남포등을 들고 뒤따라 나와 있었으므로, 중구가 신돌 위에 구르지는 않았으나 분종 둘 가운데 난초분 하나는 세 조각으로 보기 좋게 깨어져 있었다. 이튿날 아침 중구는 밥상을 물리자, 이내 조현식과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칫솔과 낯수건이 들어 있는 그 낡은 손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와 이캅니꺼, 한 사알 푹 안 쉬이고." 오정수가 붙잡았다. "인제 매일같이 찾아올 텐데 뭐." 중구의 대답이었다. "예에, 매일 와도 좋고, 어중간할 때 와도 좋고, 나는 언제든지 기다릴랍니대이." "그렇지 않아도 인제 오형이 몸서리가 나도록 올 겝니다." 중구는 정말 무슨 급한 용건이나 있는 것처럼 달음박질을 치다시피 전차 정류소로 향해 달려나갔다. 무엇이 그렇게 급한 겐지 자기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덮어놓고, '밀다원'에 가보아야만 될 것 같았다. 조현식과 송 화백과 안정호와 허윤과 박운삼과 길 여사와 이런 사람들의 얼굴을 한시 바삐 보아야 숨이 돌아갈 것 같았다. 정류소마다 전차가 정거를 하여, 사람을 내리고 태우고 하느라고 꾸무럭거릴 때는 너무나 초조한 나머지 발을 구르고 싶었다. '밀다원'을 올라가는 층계 중간쯤에서, 닝닝거리는 꿀벌 떼의 소리를 들었을 때, 중구는 요 며칠 전과 같은, 가슴의 두근거림을 깨달았다. 왜 이렇게 급하며, 왜 이렇게 가슴까지 두근거리는지는 자기 자신도 통 알 수가 없었다. 구석 자리에서 원고를 쓰고 있던 조현식은 고개를 들어 중구를 쳐다보며, "오형 댁 편하지요?" 했다. "편하기는 그만이더군." 중구도 편하더란 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그 '편하기엔 그만인' 오정수의 집에서 감옥을 탈출하듯 달아나온 것이 아닌가. 그것을 오정수의 참되고 올바르고 따뜻한 인격과, 조용하고 아늑하고 또한 풍류적이기까지 한 서재와, 깨끗한 침구와, 그리고 그 구미 당기는 생전복과 생미역과 냉이무침과 여러 가지 젓갈과 이런 것을 모두 무어라고 칭찬하며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말들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날 저녁 때, 중구는 조현식과 함께, 토스트를 먹으며 "나 오늘 저녁에 또 조형 댁 신세를 져야겠는데......." 하고, 아침부터 별러 온 말을 드디어 입 밖에 내었다. "왜 오형 댁에 안 가고?" 조현식은 의아스러운 얼굴로 중구를 쳐다보았다. 중구는 처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한참 동안 머뭇머뭇했다. "너무 멀어서." -처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이것이었다. 그와 동시 스스로 한심스럽다는 듯이 필쭉 웃었다. 그러고는 잇달아 "내 맘대로 하라면, 잠은 조형 오시이레 속에서 자고 낮에는 온종일 이 밀다원에 나와 있었음 젤 좋겠더군, 무엇보다 조형 댁은 이 밀다원에서 가까워서 좋아."하고, 한숨에 지껄여 버렸다. 조현식은 의외에도 중구의 이 말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덩달아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 중구는 조현식의 웃음에 용기를 얻은 듯이 또 계속하였다. "오형 댁보다는 차라리 이 다방 한 구석에 자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애, 치운 건 인제 겁도 나지 않아. 아무렴 저 먼젓번 보수동 테이블 위에 잘 때보다 더 치울라고." "오형 댁에서 이까지 오는 데 한 시간 다 못 걸리잖아?" "그래도 그렇지 않아, 굉장히 먼 것 같애, 시베리아 같은 데 혼자 가 있는 것 같애, 가슴이 따가워서 견딜 수 없어, 이 밀다원에서 한 걸음만 더 멀어도 그만치 무섭고 불안하고 가슴이 따가워 죽겠어. 같은 피난민 속에 싸여 있지 않으니 못 배기겠어, 범일동이 어디야? 만 리도 넘는 것 같애." 중구의 푸념은 여기서 일단 그쳐야 했다. 저쪽 구석 자리에서 졸고 있던 박운삼이 이리로 옮겨 왔기 때문이었다. 박운삼은 무슨 용건이나 있는 것처럼 중구와 조현식이 마주 앉아 있는 자리에 와서 앉더니 그대로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을 때나 다름없이, 그야말로 '벽화'같이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조현식이 딱하니까, "박운삼 씨 요새 어디 있어요?" 하고 먼저 말을 건넨다. 그러나 박운삼은 역시 벽만 바라보고 있을 뿐 꼼짝도 하지 않는다. 조현식이 같은 말을 또 한번 물으니, 그 때야 고개를 돌리며, "저한테 무슨 말씀 하셨어요?" 하고 되물었다. 조현식이 웃으며, 같은 말을 세번째 물으니 그 때야 "친구한테 있었는데 그 친구가 어저께 결혼을 했어요." 한다. 무슨 뜻인지 요령 부득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먼저와 같은 '벽화'가 되어 버린다. 한 시간쯤 지났다. 그 동안 그 자리에는 송 화백과 허윤이 잠깐씩 앉았다 가고, 길 여사도 와서 한참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길 여사의 이야기는 중공군이 부산까지 온다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누구의 가슴 속에나 잠시도 떠나지 않고 있는 문제였다. 그러니만큼 아무도 말을 붙이려고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양성적(陽性的)인 송 화백이 "중공군이 오기 전에 우리는 모다 바다에 빠져 죽기로 했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곁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까지 "와아!" 하고 소리를 내어 웃어버렸다. "잘 알겠습니다." 길 여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합장을 하더니 그냥 나가 버렸다. 그러자 그 자리는 또다시 중구와 조현식과 박운삼과 세 사람이 되었다. 어슬녘이었다. 조현식이 테이블 위에 놓고 있던 담배갑을 집어 오버 주머니에 넣었다. 일어서려는 준비 행동이었다. 바로 그때다. '벽화'(박운삼)가 갑자기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조 선생." 하고 불렀다. 그는 올해 스물아홉 살이다. 조현식이나 중구들보다는 일고여덟살이나 젊었으므로 '선생'을 붙이는 모양이었다. 일어서려던 조현식이 도로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오늘 저녁에 제가 조 선생 댁에 좀 같이 갈 수 없을까요?" '벽화'가 건네는 말이었다. "여기 먼저 신청한 사람이 있습니다." 조현식이 웃는 얼굴로 중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박운삼은 두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빼돌려 도로 먼저와 같은 '벽화'가 되어 버린다. 조현식이 일어난 채 잠깐 망설이더니, "박운삼 씨 같이 갑시다." 한다. 그러자 '벽화'는 무슨 전기 장치에서 움직여지는 기계 인간과도 같이 즉시로 꼿꼿이 일어서는 것이었다. 조현식의 집에서 저녁을 마친 박운삼은 그가 언제나 끼고 다니는 하늘색 책보를 끌렀다(이것은 중구의 그 낡은 손가방에 해당하는 그의 전재산이었다). 그 안에는 세수 도구를 넣은 고무 주머니와 노트 두 권이 들어 있었다. 박운삼은 노트 두 권을 조현식에게 주며 "이거 좀 맡아 주시겠어요?" 했다. 조현식은 그것을 받아 그의 부인에게 주며, "이거 내 가방 속에 좀 너두." 하고 나서 중구를 돌아다보며, "이형, 소주 안 먹어도 견디겠소?" 했다. 바로 그 때였다. 박운삼이 무엇에 찔린 것처럼 갑자기 일어서며, 어저께 결혼한 친구 녀석한테는 카나디안 위스키가 몇 병이든지 있다면서, 그 녀석한테 좀 다녀와야겠다고 하더니 그냥 나가 버렸다. 그러고는 그 길로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중구와 조현식이 '밀다원'으로 나갔을 때, 박운삼은 어느덧 먼저 와서 드럼통(화덕) 곁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드럼통 곁으로 가도 그는 그들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역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현식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어저께 밤엔 어떻게 된 거냐고 한즉, 시간이 늦어졌던 거라고 한 마디로 간단히 대답하고는, 일어나, 그가 언제나 '벽화'같이 앉아 있는, 그의 전용석과도 같은 구석 자리로 옮겨 가버렸다. 점심 때 짐짓했을 때 길 여사가 나오더니, 중구와 조현식에게 긴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밖으로 같이 좀 나가자고 했다. 며칠 전에 갔던 우동집으로 갔다. 먼저, 정세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냐고, 어저께와 비슷한 말을 또 끄집어 내었다. "저놈들이 자꾸 밀고 내려오는 모양이지요." 하고, 조현식은 가볍게 받아넘겼다. 중구도, "중공군이 원주(原州) 오산(烏山)까지 침공해 온 모양이랍니다." 하고, 오전에, 길에서 K통신사의 윤을 만나 들은 정보를 제공했다. 길 여사는 눈을 내리감으며 또 합장을 했다. "아무튼 서울 방위는 철통 같다고 떠들어 대던 것도 필경 저놈들에게 내주고 말았으니 앞으론들 어느 지역에서 반드시 반격한다고 기필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하고 조현식도 침울한 목소리였다. "하여간 낙관할 수는 없지요?" 하고, 다지는 길 여사. 같은 말로 긍정하는 것은 중구다. 조현식의 침묵은 이것을 시인한다는 뜻이다. 길 여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래 거기 대한 무슨 대책이 있느냐고 했다. 지금 돈 있는 사람들은 다 만일의 경우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다방에만 모여서 우굴거리고 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비참하다. 그런데 마침 교회 관계로 제주도 가는 배가 한 척 있는데 사오 일 이내로 떠날 예정이다. 자기가 부탁하면 십여 명은 더 탈수 있게 되겠다. 조현식과 중구가 찬성한다면 그렇게 추진시켜 보겠다-하는 이런 내용이었다. "신중히 생각하세요." 하고, 길 여사는 꼬리를 달았다. 조금 뒤, "가서 무얼 먹고 사나?" 하는 것이, 조현식의 첫 발언이었다. "목숨이 첫째요, 먹는 것은 둘째입니다." 길 여사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생활 근거가 전혀 없이야 너무나 막연해서." "다른 피난민들도 다 많이 가잖았어요?" 이렇게 조현식과 길 여사가 문답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중구는 중구대로, 하루 전, 오정수의 집에서 맛본 고독의 무서움을 맘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어떠한 조건에서든지 '밀다원'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후까지 '밀다원'에 남아 있는 다른 모든 친구들과 행동을 같이하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송 화백의 말대로 설사 바다로 뛰어드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혼자 별개 행동을 취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꿀벌은 꿀벌 떼 속에, 갈매기는 갈매기 떼 속에, 하고, 그는 입에 내어 중얼거릴 뻔했다. "이중구 씨 소설가께서도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길 여사는 이런 경우에도 유머를 잊지는 않았다. "저는 무서워 안 되겠습니다. 밀다원에서 떠나는 것이 무섭습니다." 중구의 명확한 거절을 받은 길 여사는, 또 한번 합장을 올리고 나서, "기회는 한 번뿐이란 사실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하고 응수했다. 이 말에 가슴이 찔끔해진 조현식은, 지난 육이오 때, 서울서 괴뢰군에게 몇 번이나 죽을 뻔했던 일을 상기하고, "며칠이나 여유가 있겠습니까?" 하고, 또다시 현실적 조건을 따지려 들었다. 늦어도 닷새 이내에는 결행되리라는 길 여사의 말에, "그러면 닷새만 더 여유를 주십시오, 그 동안 좀더 연구해 보겠습니다." 하고, 조현식이 꾀를 내자, 길 여사도 찬성한다는 듯이 "두 분 동지께서 반대하신다면 본인도, 단독 행동을 취할 용기는 없다는 사실을 믿어 주십시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사람은 다시 '밀다원'으로 갔다. 그들이 층계를 올라서려고 하는데, 위에서, 음악가 안정호가 흥분한 얼굴로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서 오세요?" 하고, 안정호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동집에서 온다고, 조현식이 대답하자, 안정호는 손가락으로 이층을 가리키며, "박운삼 씨가 약을 먹었어요." 했다. "약이라니?" "수면제." "수면제를 왜?" "왜가 뭡니까, 아주 뻗어 버렸어요." 순간, 조현식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길 여사의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얼마나 먹었기에?" 중구가 묻는다. "형편없이 먹은 모양입니다." "페노바르비탈 육십 개에 새콜사나듐 다섯 개를 합쳐 먹었다니 말 다했지요 뭐." "그토록 몰랐을까?" "모르는 게 뭡니까 언제나 혼자 앉아 있는 그 구석 자리에서 그냥 졸고 있는 줄만 알았지요." 하고 안정호는 의사를 부르러 간다면서 뛰어나갔다. 세 사람이 다방 안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서북쪽 구석에 거멓게 둘러서 있었다. "이 망할 자식아! 이 못난 자식아!" 하고, 박운삼의 오버 소매를 잡고 흔들며 엉엉 울고 있는 것은 송 화백이었다. 아무리기로서니 그처럼 몰랐느냐고, 또, 길 여사가 다방 레지를 나무라듯이 말했다. 언제나 그이 혼자 앉아 있잖았어요? 레지의 답변이었다. 특히 이 날은 무얼 쓰고 있기에 원고를 쓰나 보다 하고 아무도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 눈을 감은 채 벽에 머리를 대이고 있는 것을 보고도 언제나 하는 노릇이기에 실컷 졸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라 한다. 허윤이 울먹울먹하며 곁으로 오더니 조현식에게 접어진 종이 쪽을 내어 주었다. 그 첫 장에는 '고별(告別)'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페노바르비탈 육십 알과 새콜사나듐 다섯 알을 한꺼번에 먹었다. 나는 진실로 오래간만에 의식의 투명을 얻었다. 나는 지금 편안하다. 나는 지금 출렁거리는 바다 저편에서 나를 향해 웃음을 보내는 나의 애인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지금 나의 앞에는 나의 친애하는 벗들이 거의 다 모여 있음을 본다. 나는 그들이 나를 지켜 주고 있는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더 나의 생애를 연장시키고 싶지는 않다. 잘 있거라, 그리운 사람들. 오십일년 일월 팔일 박운삼 박운삼의 자살로 인하여 '밀다원'엔 적지 않은 변동이 생겼다. 다방 문에는 '내부 수리'란 종이 딱지가 붙은 채 여러 날 동안이나 영업을 쉬었다. 뿐만 아니라, 아래층도 수리를 하겠으니 문총 사무실을 옮겨 달라는 명령을 내렸다. 밀다원에서 ㅉ겨 나오다시피 된 그들은 광복동 로터리 주변에 있는 다른 다방으로 분산되어 나갔다. 로터리를 중심으로 하고, 더러는 남포동 쪽의 '스타' 다방으로 나가고, 절반은 창선동 쪽의 '금강' 다방으로도 나갔다. '금강'은 '밀다원'보다 면적도 훨씬 좁았을 뿐 아니라, 다방다운 시설이나 장치라고는 전혀 없는 어느 시골 간이역 대합실과도 같은 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러한 '금강'의 그 딱딱한 나무 걸상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노라면 대낮이라도 곧장 뱃고동 소리가 들려 오곤 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을 치른 직후라 그런지 뱃고동 소리가 들려 올 때마다, 중구는 중구대로 지금쯤은 역시 주검이 되어 홀로 누워 있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끼치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줄곧 '금강'으로 나가게 된 것은, '금강' 바로 건너편에 있는 <현대신문>에 그들의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닷새를 지내니 조현식이 길 여사에게 약속한 십삼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그들의 심경도 결정되어 있었다. 십일일경부터 유엔군의 반격이 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책 문제는 절로 기각이 된 셈이었다. 십오일부터는 중구도 k통신사의 윤의 소개로, <현대신문>에 논설 위원 일을 보게 되었다. 십육일부터는 조현식이 또한 중구의 소개로, <현대신문> 이층 한쪽 구석방에나마 '문총' 간판을 옮겨 붙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원주(原州) 이천(利川) 오산(烏山) 등지가 유엔군에 의하여 탈환된 뒤였다. 중구가 일을 보게 된 사흘 후에 <현대신문> 문화란에는 '박운삼의 인간과 예술'이란 조현식의 평론과 아울러 송 화백의 컷이 곁들어진 박운삼의 유작시 '등대(燈臺)'가 게재되었다. 어쩌면 해일(海溢)이 있을 듯한 저녁 때 나는 홀로 바닷가에 섰다. 저 어리광을 부리듯한 푸른 물결에 드디어 무너져 가는가. 먼 바다 저쪽 흰 옷의 신부(新婦)는 등대(燈臺) 같이 섰는데 나는 나를 사르어 불을 켜는가. 까치소리 단골 서점에서 신간을 뒤적이다 <나의 생명을 물려 다오> 하는 얄팍한 책자에 눈길이 멎었다. <살인자의 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생명을 물려 준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나는 무심코 그 책자를 집어들어 첫장을 펼쳐 보았다. <책머리>에라는 서문에 해당하는 글을 몇 줄 읽다가 <나도 어릴 때는 위대한 작가를 꿈꾸었지만 전쟁은 나에게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어 주었다>라는 말에 웬지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비슷한 말은 전에도 물론 여러 번 들어 왔던 터이다. 그런데도 이날 나는 왜 그 말에 유독 그렇게 가슴이 뭉클해졌는지 그것은 나도 잘 모를 일이다. <위대한 작가를 꿈꾸었다>는 말에 느닷없는 공감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나는 그 책을 사왔다. 그리하여 그날 밤, 그야말로 단숨에 독파를 한 셈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감동적이며, 생각케 하는 바가 많았다. 특히 그 문장에 있어, 자기 말마따나 <위대한 작가를 꿈>꾸던 사람의 솜씨라서 그런지 문학적으로 빛나는 데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다음에 그 수기의 내용을 소개하려 하거니와 될 수 있는 대로 그의 문학적 표현을 살리기 위하여 본문을 그대로 많이 옮기는 쪽으로 주력했음을 일러둔다. 특히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소위 그의 문학적 표현으로서, 그의 본고장인 동시, 사건의 무대가 된 마을의 전경을 이야기한 첫머리를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을 한복판에 우물이 있고 우물 앞뒤에 늙은 회나무 두 그루가 거인 같은 두 팔을 치켜든 채 마주보고 서 있었다. 몇 아름씩이나 될지 모르는 굵고 울퉁불퉁한 둥치는 동굴처럼 속이 뚫린 채 항용 천 년으로 헤아려지는 까마득한 세월을 새까만 침묵으로 하나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밑동에 견주어 가지와 잎새는 쓸쓸했다. 둘로 벌어진 큰 가지의 하나는 중동이가 부러진 채, 그 부러진 언저리엔 새로 돋는 곁가지가 떨기를 이루었으나 그것도 죽죽 위로 벋어 오른 것이 아니라 아래로 한두 대가 잎을 달고 드리워진 것이 고작이었다. 둘 중에서 부러지지 않은 높은 가지는 거인의 어깨 위에 나부끼는 깃발과도 같이 무수한 잔가지와 잎새들을 하늘 높이 펼쳤는데, 까치들은 여기만 둥지를 치고 있었다. 앞 나무에 둘, 뒷 나무에 하나, 까치 둥지는 셋이 쳐져 있었으나 까치들이 모두 몇 마리나 그 속에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똑똑히 몰랐다. 언제부터 둥지를 치기 시작했는지도 역시 안다는 사람은 없었다. 나무와 함께 대체로 어느 까마득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이거니 믿고 있을 뿐이었다. ......아침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오고, 저녁 까치가 울면 초상이 나고...... 한다는 것도, 언제부터 전해오는 말인지 누구 하나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 까치가 유난히 까작거린 날엔, 손님이 잦고, 저녁 까치가 꺼적거리면 초상이 잘 나는 것 같다고, 그들은 은근히 믿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그런대로 까치는 아침 저녁 울고 또 다른 때도 울었다. 까치가 울 때마다 기침을 터뜨리는 어머니는 아주 흑흑 하며 몇 번이나 까무러치다시피 하다 겨우 숨을 돌이키면 으례 봉수(奉守)야 하고, 나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그것도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여 다오>를 붙였다.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이렇게 쿨룩은 연달아 네 번, 네 번, 두 번, 한 번, 한 번, 여섯 번, 그리고 또다시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두 번이고 여섯 번이고 종잡을 수 없이 얼마든지 짓이기듯 겹쳐지고 되풀이되곤 했다. 그 사이에 물론, 오오, 아이구, 끙, 하는 따위 신음 소리와 외침 소리를 간혹 섞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쿨룩>이 계속되다가는 아주 까무러치는 고비를 몇 차례나 겪고서야 겨우, 아이구 봉수야, 한다거나, 날 죽여 다오를 터뜨릴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기침병(천만)은 내가 군대에 가기 일 년 남짓 전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이때는 이미 삼 년도 넘은 고질이었던 것이다. 내 누이 동생 옥란(玉蘭)의 말을 들으면, 내가 군대에 들어간 바로 그 이튿날부터 어머니는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침 아침 까치가 까작까작 울자, 어머니는 갑자기 옥란을 보고, "옥란아, 네 오빠가 올라는가 부다." 하더라는 것이다. "엄마도, 엊그제 군대 간 오빠가 어떻게 벌써 와요?" 하니까, "그렇지만 까치가 울잖았냐?" 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처음엔 아침 까치가 울 때마다 얘가 혹시 돌아오지 않나 하고 야릇한 신경을 쓰던 어머니는 그렇게 한 반 년쯤 지난 뒤부터, 그것(야릇한 신경을 쓰는 일)이 기침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 년쯤 지난 뒤부터>라고 했지만, 그 시기는 물론 확실치 않다. 옥란의 말을 들으면 그전에도 몇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몇 달이 지나도록 편지도 한 장 없는 채, 아침 까치는 곧장 울고 하니까,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눈길엔 야릇한 광채가 어리곤 하더니 그것이 차츰 기침으로 번져지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첨에는 가끔 그렇더니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서 한 일 년 남짓 되니까, 거의 예외없이 회나무에서 까작까작 하기만 하면 방안에서는 쿨룩쿨룩이 터뜨러지기 마련이었다는 것이다(처음은 아침 까치 소리에 시작되었으나 나중은 때의 아랑곳이 없어졌다). 그러나 이런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들을 몹시 기다리는 병(천만)은 어머니가 아침 까치가 울 때마다(손님이 온다는) 기대를 걸어 보다간 실망이 거듭되자, 기침을 터뜨리고(그렇지 않아도 자칫하면 터뜨리기 마련인) 그것이 차츰 습관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는 얘길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서 터뜨려진 질기고 모진 기침 끝에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날 죽여 다오>를 덧붙였대서 그 또한 이해하기 힘든 일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전에도, 그렇게 까무러칠 듯이 짓이겨지는 모진 기침 끝엔 <오오, 하느님!> <사람 살려 주!> 따위를 부르짖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오오 하느님!> <사람 살려 주!>가 <아이구 봉수야!> <날 죽여 다오>로 바꿔졌을 뿐인 것이다. 살려 달란 말과 죽여 달란 말은 정반대라고 하겠지만 어머니의 경우엔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비슷한 말이라고 보는 편이 가까울 것이다. <죽여 다오>는 <살려 다오>보다 좀더 고통이 절망적으로 발전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군대에서 돌아와, 처음 얼마 동안은 어머니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설움과 울분을 누를 길 없어 나도 모르게 사지를 부르르 떨곤 했었다. (아아, 오죽이나 숨이 답답하고 괴로우면 저려랴, 얼마나 지겹게 아들이 보고 싶고 외로왔으면 저러랴). 나는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측은하고 불쌍해서 그냥 목을 놓고 울고만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어머니를 치료해 드릴 수 있는 어떠한 힘도 재간도 없었다. 그럴수록 어머니가 겪는 무서운 고통은 오로지 나의 책임이거니 하는 생각만 절실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심경도 누구에게나 대체로 이해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나 자신마저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에 곁들여 생긴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나의 심경의 변화라고나 할까... 나는 어느덧 그러한 어머니를 죽여 주고 싶은 충동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구 봉수야 날 죽여 다오>하고 부르짖은 것은, <오오, 하느님 사람 살려 주> 하던 것의 역표현(逆表現)이라기보다도 진한 표현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위에서도 말한 대로다. 나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러한 어머니에게 죽여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을까. 그것도 어쩌다 한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처음 한번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그 뒤부터 줄곧 그렇게 돼 버린 것이라. 까치가 까작 까작 까작 하면, 어머니는 쿨룩 쿨룩 쿨룩을 터뜨리는 것이요, 그와 동시 나의 눈에는 야릇한 광채가 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옥란의 말을 빌면, 옛날 어머니가 까치 소리와 함께 기침을 터뜨리려고 할 때, 그녀의 두 눈에 비치던 것과도 같은 그 야릇한 광채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목에 걸린 가래를 떼지 못하여 쿨룩 쿨룩 쿨룩을 수없이 거듭하다 아주 까무러치다시피 될 때마다 나는 그녀의 꺼풀뿐인 듯한 목을 눌러주고 싶은 충동에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다. 그것은 처음 며칠 동안이 가장 강렬했었던 것같이 기억된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내가 그것을 경험하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에서 이삼일간이었다고 믿어진다. 나는 그 무서운 충동을 누르지 못하여 사흘째 되던 날은, 마침 곁에 있던 물사발을 들어 방바닥에 메어쳤고, 나흘째 되던 날은 꺽꺽거리며 꼬구라지는 어머니를 향해 막 덤벼들려는 순간, 밖에 있던 옥란이 낌새를 채고 뛰어와 내 머리 위에 엎어짐으로써 중지되었고, 닷새째 되던 날은, 마침 설겆이를 하는 체하고 방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옥란이 까치 소리를 듣자 이내 방으로 뛰어들어 왔기 때문에 나는 숫제 단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역시 어머니의 까무러치는 꼴을 보는 순간, 나는 갑자기 이성을 잃은 듯, 나와 어머니 사이를 가로막다시피 하고 있는 옥란을 힘껏 떼밀어서 어머니 위에다 넘어뜨리고는 발길로 방문을 냅다 지르며 밖으로 뛰쳐 나갔던 것이다. 그 며칠 동안이 가장 고비였던 모양으로, 그 뒤부터는 어머니의 기침이 터뜨려지는 것을 보기만 하면 나는 그녀의 (봉수야, 날 죽여 다오)를 기다리지 않고, 미리(그때는 대개 옥란이 이미 나와 어머니 사이를 가로막듯 하고 나타나 있기 마련이기도 했지만)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 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내가 미리 자리를 피할 수만 있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었다. 여기서 먼저 우리 집 구조를 한 마디 소개하자면, 부끄러운 얘기지만, 세 평 남짓 되는(그러니까 꽤 넓은 편이긴 한) 방 하나에 부엌과 헛간이 양쪽으로 각각 붙어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우리 세 식구는 자고, 먹고 하는 일에 방 하나를 같이 써야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전날 술을 좀 과히 마셨다거나 몸이 개운치 못하다거나 할 때에도 내가 과연 그렇게 까치 소리를 신호로 얼른 자리를 뜰 수 있게 될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다 또 한 가지 해괴한 일은 어머니의 기침이 멎어짐과 동시 나의 흥분이 갈앉으면, 나는 어느덧 조금 전에 내가 겪은 그 무서운 충동에 대하여 나 자신이 반신반의를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나는 왜 그러한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었던가, 그것은 정말이었을까, 어쩌면 나의 환각(幻覺)이나 정신착란 같은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에겐 이러한 의문이 치미는 것이다. 그런대로 까치 소리와 어머니의 기침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대개 방문을 차고 나오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방문을 박차고 나온다고 해서 나의 흥분이 사라져 버리느냐 하면 그렇지는 물론 않았다. 방문 밖에서 어머니의 까무러치는 소리를 듣는 것이 방 안에서 직접 보는 것보다도 더 견딜 수 없이 사지가 부르르 떨릴 때도 있었다. 다만 방 안에서처럼 눈앞에 어머니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당장 목을 누르려고 달려들 걱정만이 덜어질 뿐이었다. 그 대신 검둥이(우리 집 개 이름)을 까닭없이 걷어찬다거나 울타리에 붙여 세워 둔 바지랑대를 분질러 놓는 일이 가끔 생겼다. 어저께는 동네 안 주막에서 술을 마시다 술잔을 떨어뜨려 깨었다. 그때 마침 술도 얼근히 돌아 있었고 상대자에 대한 불쾌감도 곁들어 있긴 했지만 의식적으로 술잔을 깨뜨릴 생각은 전혀 없었고 또 그렇게 해서 좋을 계재도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까작까작 하는 저녁 까치 소리가 들려오자 갑자기 피가 머리로 확 올라가 사지가 부르르 떨리더니 손에 잡고 있던 잔을(술이 담긴 채) 철꺽 떨어뜨려 버린 것이다. 아니 떨어뜨렸다기보다 메어쳤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루 위에 떨어진 하얀 사기잔이 아무리 막걸리를 하나 가득 담고 있었다고는 할 망정 그렇게 가운데가 짝 갈라질 수 있겠느냐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나 자신의 일에 대하여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했지만 이것은 결코 발뺌이나 책임 회피를 위한 전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우선 나 자신이 어떻게 해서 어머니의 기침에 말려 들게 되었는지 그 전후 경위를 있는 그대로 적어 보려고 한다. 여기서 미리 고백하거니와 나는 한 번도 어머니를 미워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온 뒤 날이 갈수록 어머니가 더 측은해지고 견딜 수 없이 불쌍해졌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봉수야, 날 죽여 다오>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고통을 못 이겨 울부짖는 넋두리만은 아니라고 차츰 깨닫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내가 죽고 없어야 옥란이도 시집을 가고 네도 색시를 데려오지." 하는 어머니의 (가끔 토해 놓는) 넋두리가 어쩌면 아주 언턱거리 없는 하소연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옥란의 말을 들으면(내가 군에 가고 없을 때) 위뜸의 장생원 댁에서 옥란을 며느리로 달라는 것을 옥란이 자신이 내세운 <오빠가 군에서 돌아올 때까지는>이라는 이유로 거절 아닌 거절을 한 셈이지만, 누구 하나 돌볼 이도 없는 병든 어머니를 혼자 두고 어떻게 시집갈 생각인들 낼 수 있었겠냐는 것이 그녀의 실토였다. 뿐만 아니라, 정순이가 나(봉수)를 기다리지 않고 상호(相浩)와 결혼을 해 버린 것도 아무리 기다려 봐야 너한테 돌아올 거라고는, 주야로 기침만 콜록거리고 누워 있는 천만장이(어머니) 하나뿐이라는 그의 꼬임수에 넘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호는 내가 이미 전사를 했다면서, 그 증거로 전사통지서라는 것까지(가짜로 꾸며서) 정순에게 내어 보이며 결혼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순이는 상호의 <꼬임수>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바로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주야로 기침만 콜록거리고 누워 있는 천만장이>보다도 나의 전사통지서 때문이라는 편이 옳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정순이를 놓친 원인이 반드시 어머니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나도 어머니의 넋두리를 곧이 곧대로 듣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알 수 없는> 야릇한 흥분에 정순이가 <그리고 상호가> 전혀 관련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하여간 나는 여기서 그 경위를 처음부터 얘기할 차례가 된 것 같다. 내가 군에서 (명예제대를 하고) 돌아 왔을 때- 그렇다. 나는 내가 첨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부터 얘기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우리 동네에 들어서면서부터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 내가 우리 동네 어귀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내 눈에 비친 것이 저 두 그루의 늙은 회나무였다. 저 늙은 회나무를 바라보자 비로소 나는 내가 고향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던 것이다. 저 볼 모양도 없는 시꺼먼 늙은 두 그루의 회나무, 그것이 왜 그렇게도 그리웠을까. 이것이 어머니와 옥란이와 정순이들에게 대한 기억을 곁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것이 고향이 가진 모든 것을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오오, 늙은 회나무여, 내 마을이여, 우리 어머니와 옥란이와 그리고 정순이도 잘 있느냐...... 나는 회나무를 바라보며 느닷없는 감회에 잠긴 채 시인 같은 영탄을 맘속으로 외치며 동네 가운데로 들어섰던 것이다. 나는 지금 <어머니와 옥란이와 그리고 정순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정순이와 어머니와 옥란이라고 차례를 바꾸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그렇게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 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순이에 대한 그리움 하나 때문이라고 해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병들어 누워 있는 어머니에 대한 불효자요, 가련한 누이동생에 대한 배신자 같이도 들릴지 모르지만, 나로 하여금 그 마련된 죽음에서 탈출케 한 것은 정순이라는 사실을 나는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련된 죽음>과 거기서의 <탈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하여간 나는, 나를 구세주와도 같이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와 누이동생 앞에 나타났다. 내가 동네 복판의 희나무 밑의 우물가로 돌아왔을 때, 우물 앞에서 보리쌀을 씻고 있던 옥란이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처음 한참 동안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멀거너 나를 바라보고, 있더니 다음 순간 그녀는 부끄럼도 잊은 듯한 큰 소리로 <오빠>를 부르며 달려와 내 품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껴 울었던 것이다. 일 년 반 동안에 완전히 처녀가 된, 그리고 놀랄이만큼 아름다와진 그녀를 나는 거의 무감각한 사람처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어쩌면 이다지도 깨끗한 처녀가 거지 꼴이 완연한 초라한 군복 차림의 나를 조그마한 거리낌도 꾸밈도 없이 마구 쏟아지는 눈물로써 이렇게 반겨 준단 말인가. 동기! 아, 그렇다. 그녀는 나의 누이동생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같이 옥란의 행복을 빌어 주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껴 본 적은 일찌기 없었다. 나는 옥란을 따라 집 안에 들어섰다.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는 뜰! 처음부터 무슨 곡식 가마라도 포개져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때 같이 우리 집의 가난에 오한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엄마 오빠야!" 옥란은 자랑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놀란 듯이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주름살과 꺼풀뿐인 얼굴은 두 눈만 살아 있는 듯, 야릇한 광채를 내며 나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기침이 터뜨려질 것을 저어하는 듯, 입은 반쯤 열린 채 말도 없이 한쪽 손을 가슴에 갖다 대고 있었다. "어머니!" 나는 군대 백(카아키빛의)을 방구석에 밀쳐 둔 채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냐든가, 기침병이 좀 어떠냐든가 하는 따위 인삿말도 나는 물어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눈에 번히 보이지 않느냐 말이다. 병과 가난과 고독과 절망에 지질린 몰골, "구, 군대선 어땠냐? 배는 많이 고, 곯잖았냐?" 어머니는 가래가 걸려서 거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묻는 말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성이 난 듯한 뚱한 얼굴로 맞은편 바람벽만 멀거니 건너다 보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가지고 돌아왔단 말이냐. 어머니가 낳아서 길러 준 온전한 육신을 그대로 가지고 왔단 말이냐 그녀의 병을 치료할 만한 돈이라도 품에 넣고 왔단 말이냐. 하다 못해 옥란이를 잠깐 기쁘게 해줄 만한 무색 고무신이나마 한 켤레 넣고 왔단 말인가. 그녀들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그녀들을 위해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정순이를 위해서, 아니 정순이와 나의 사랑을 위해서 군대를 속이고 국가를 배신하고, 나의 목숨을 소매치기해서 돌아왔다는 것을 그녀들은 알 리 없는 것이다). "엄마, 또 기침 날라, 자리에 누우세요." 옥란이는 어머니의 상반신을 안다시피 하여 자리에 눕혔다. "오빠도 오느라고 고단할 텐데 잠깐 누워요. 내 곧 밥 지어 올게." 옥란은 나를 돌아다보며 이렇게 말할 때도, 방구석에 밀쳐 둔 군대 백엔 우정 외면을 하는 듯했다. 그것은 역시 너무 지나친 기대를 그 백 속에 걸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에게는 헤아려졌다. 나는 백을 끄르기로 했다. 옥란이로 하여금 너무 긴 시간. 거기다 기대를 걸어 두게 하기가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내가 쓰던 담요와 군복." 나는 백을 열고 담요와 헌 군복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는 내복도 한 벌, 그러자 백은 이내 배가 훌쭉해져 버렸다. 남은 것은 레션 상자에서 얻어진(남겨두었던) 초콜렛 두 갑, 껌 두 매듬, 건빵과 통조림이 두세 개씩 그리고 병원에서 나올 때, 동료에게서 선사받은 카아키빛 장갑(미군용)이 한 켤레였다. 나는 이런 것을 방바닥 위에다 쏟아 놓았다. 그러나 백 속에는 아직 한 가지 남아 있었다. 그것은 포장지에 쌓여 있었다. 나는 그것만은 옥란에게도 끌러 보이지 않았다. 그 속에 든 것은 여자용 빨강빛 스웨터요, 내가 군색한 여비 중에서 떼내어 손수 산 것은 이것 하나뿐이란 말도 물론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나는 방바닥에 쏟아 놓았던 물건 중에서도 초콜렛 한 갑과 껌 한 매듬을 도로 백 속에 집어 넣으며, "이것뿐야. 통조림은 따서 어머니께 드리고 너도 먹어 봐. 그리구 이것 모두 너한테 소용되는 거면 다 가져." 했다. "......" 옥란은 처음부터 말 없이 내 얼굴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원망하는 눈이기보다 무엇에 겁을 집어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없지만...... 넌 나를 이해해 주겠지?" "아냐, 오빠, 난 괜찮지만......" 옥란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끝도 맺지 않은 채 방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역시 토라진 거로구나. 정순이한테만 무언지 굉장히 좋은 걸 준다는 불평이겠지. 그래서 <난 괜찮지만> 하고 어머니를 내세우겠지. <난 괜찮지만> 어머니까지 무시하고 정순이만 생각하기냐 하는 속이겠지). 나는 방바닥에 쏟아 놓은 물건들을 어머니 앞으로 밀쳐 두고, 접어진 담요(백에서 끄집어낸)를 베개하여 허리를 펴고 누웠다. 그녀가 섭섭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만 나로서도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점심 겸 저녁으로, 해가 설핏할 때 <식사>를 마치자 나는 종이로 싼 것(스웨터)과 초콜렛을 양복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오빠, 잠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옥란이 나를 불러 세웠다. "정순 언닌......" 옥란은 이렇게 말을 시작해 놓고는 얼른 뒤를 잇지 못했다. 순간, 나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확 들었다. 그것은 내가 집에 돌아온 지 꽤 여러 시간 되는 동안 그녀의 입에서 한번도 정순이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 "결혼했어." "뭐? 뭐라고?" 당장 상대자를 집어 삼킬 듯한 나의 험악한 표정에 옥란은 질린 듯 한참 동안 말문이 막힌 채 망설이고 있더니 어차피 맞을 매라고 결심을 했는지, "숙이 오빠하구......" 드디어 끝을 맺는다. "뭐? 숙이라고? 상호 말이냐?" "......" 옥란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나의 얼굴을 똑바로 지켜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그렇지만 정순이 어떻게......" 나는 무슨 말인지 나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다 입을 닫쳐 버렸다. 옥란이 안타까운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숙이 오빠가 속였대. 오빠가 죽었다고......" "뭐? 내가 주, 죽었다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다짐해 물으면서도, 일방, 아아, 그렇지, 그건 어쩌면 정말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속으로 자기 자신을 조롱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오빠가 전사를 했다고, 무슨 통지서래나 그런 것까지 갖다 뵈더래나." 옥란이 이미 분을 참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순간, 나는 눈앞이 팽그르르 돌아감을 느꼈다. 그때 만약 상호가 내 앞에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당장에 달려 들어 그의 목을 졸라 죽였을 것이다. 다음 순간, 나는 어디로 누구를 찾아간다는 의식도 없이 삽짝 쪽으로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그러나 삽짝 앞 좁은 골목에서 큰 골목(회나무가 있는)으로 접어들자 나는 갑자기 발길을 우뚝 멈추고 섰다. 그와 거의 동시, 누가 내 팔을 잡았다. 옥란이었다. 그녀는 나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빠, 들어가." 그녀는 내 팔을 가볍게 끌었다. 나는 흡사 넋 나간 몸뚱어리뿐인 듯한 나 자신을 그녀에게 맡기다시피 하며 그녀가 끄는 대로 집을 향해 돌아섰다. 돌아서지 않으면 어쩐단 말인가. 내가 그녀를 뿌리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와 목적에서일까. 그렇다, 나에게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 내가 없어진 거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있었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행동했을까.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일단 가련한 옥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옥란이 시키는 대로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아랫목 쪽에는 어머니가, 웃목 쪽에는 내가. 이렇게 우리는 각각 벽을 향해 돌아누워 있었다. 나는 흡사 잠이나 청하는 사람처럼 눈까지 감고 있었지만 물론 잠 같은 것이 올리 만무했다. 해가 지고, 어스럼이 짙어지고, 바람이 좀 불기 시작했다. 설겆이를 마친 옥란이 물을 두어 번 길어 왔고...... 나는 눈을 감고 벽을 향해 누운 채 이런 것을 전부 알고 있었다. 저녁 까치가 까작 까작 까작 까작 울어 왔다. 어머니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기침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물론 그때만 해도 까치 소리는 까치 소리대로 회나무 위에서 나고, 어머니의 기침은 기침대로 방안에서 터뜨려졌을 뿐이요, 때를 같이(전후)한대서 양자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다고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그 길고도 모진 기침이 끝날 때까지 그냥 벽을 향해 누운 채, <오오 하느님!> <봉수야 날 죽여 다오> 하는 소리까지 다 들은 뒤에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어머니의 등을 쓸어준다거나 위로의 말 한 마디를 건네 보지도 못한 채 그냥 방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집 앞의 가죽나무 위엔 별까지 파랗게 돋아나 있었다. 내가 막 삽짝 밖을 나왔을 때였다. 담장 앞에서 다른 동무와 무엇을 소곤거리고 있던 옥란이 또 나를 불러 세웠다. "오빠 어딜 가?" "......" 나는 그냥 고개만 위로 꺼떡 젖혀 보였다. 그러자 옥란은 내 속을 알아채었는지 어쩐지, "얘가 영숙야." 하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처녀를 턱으로 가리켰다. (영숙이가 누구더라?) 하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잠깐 스쳐갔을 뿐, 나는 거의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냥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와 거의 같은 순간에 영숙이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머리를 푹 수그려 공손스레 절을 하지 않는가. 날씬한 허리에 갸름한 얼굴에, 옥란이보다도 두어 살 아래일 듯한 소녀였다. (쟤가 누구더라?) 나는 또 한번 이런 생각을 하며, 역시 입은 열지도 않은 채 그냥 발길을 돌리려 하는데, "오빤 아직 면에서 안 돌아왔어요." 하는 소녀의 목소리였다. 순간, 나는 이 소녀가 바로 상호의 누이 동생이란 것을 깨닳았다. 내가 군에 갈 때만 해도 나를 몹시 따르던 달걀같이 매끈하고 갸름하게 생긴 영숙이. 지금은 고등학교 이삼학년쯤 다니겠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소녀를 한참 바라보고 섰다가 역시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오빠, 영숙이한테 얘기해 줄 거 없어?" (그렇다, 달걀같이 뽀얗고 갸름하게 생긴 소녀, 그녀는 정순이나 옥란이를 그때부터 언니 언니 하고 지냈지만, 그보다도 나를 덮어놓고 따르던, 상호네 식구답지 않던 애, 그리고 지금도, 내가 군에서 돌아왔단 말을 듣고 기쁨을 못 이겨 찾아왔겠지만, 그러나 나는 무슨 말을 그녀에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냥 돌아서 버리려다, "오빠 들옴 나 좀 만나잔다고 전해 주겠어?" 겨우 이렇게 인사 땜을 했다. "그렇잖아도 올 거예요." 영숙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맑았다. 나는 <부엉뜸>으로 발길을 돌렸다. 옥란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순이 친정 사람들의 얘기를 직접 한번 들어 보고자 했던 것이다. 정순이네 친정 사람들이라고 하면 물론 그 어머니와 오빠다(아버지는 일찍이 죽고 없었다). 그리고 오빠래야 정순이와는 나이 차가 많아서 거의 아버지같이 보였다. 나와 정순이는 약혼한 사이와 같이 되어 있었지만(우리 고장에서는 약혼식이란 것이 거의 없이 바로 결혼식을 가지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언제나 윤이 아버지라고만 불렀다. 윤이 아버지는 이날도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으나 면구해서 그런지 정순이 말은 입밖에 내비치지도 않은 채, 전쟁 이야기만 느닷없이 물어대었다. 나는 통 내키지 않은 얘기를 한두 마디씩 마지못해 대꾸하며 그가 따라 주는 막걸리를 두 잔째 들이키고 나서, "근데 정순이는 어떻게 된 겁니까?" 이렇게 딱 잘라 물었다. "그러니까 말일세." 그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대답이랍시고 이렇게 한마디 던져 놓고는, "자 술이나 들게." 내 잔에다 다시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야 어디 술을 좋아하는가? 이런 거 한두 잔이믄 고작이지. 그런 걸 자네 대접한다고 이거 벌써 몇 잔째야? 자 어서 들게, 자넨 멀쩡한데 나 먼저 취하면 되겠나?" (정순이 일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데 웬 술 이야기가 이렇게 길단 말인가). 나는 또 한번 같은 말을 되풀이해 물으려다 간신히 참고, 그 대신, 그가 따라 놓은 술잔을 들어 한숨에 내었다. "자네야 동네가 다 아는 수재 아닌가? 지금이라도 서울만 가면 일등 대학에 돈 한 푼 내지 않고 공부시켜 주는 거 뭐라더라? 장학상이던가? 그거 돼서 집에다 도로 돈 부쳐 보내 가며 공부할 거 아닌가? 머리 좋고 인물 좋겠다, 군수 하나쯤이야 떼논 당상이지. 대통령이 부럽겠나 장관이 부럽겠나. 그까진 시골 처녀 하나가 문젠가? 자네 같은 사람한테 딸 안 주고 누구 주겠나? 그보다 몇 곱절 으리으리한 서울 처녀들이 자네한테 시집 오고 싶어서 목을 매달 건데...... 그렇잖나? 내 말이 틀렸는가?" 나는 그의 느닷없이 지루하기만 한 말을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어, "그런데 정순이는 어떻게 된 겁니까?" 먼저와 같은 질문을 다시 한번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다. "정순이는 상호한테 갔지, 갔어. 상호 같은 자야 정순이한테나 어울리지. 그렇잖나? 자네는 다르지. 자네야 그때부터 이 고을에선 어떤 처녀든지 골라잡을 만치, 머리 좋고, 인물 좋고, 행실 착하고.....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그게 아니잖아요?" 내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다른 것을 깨달았는지 그도 이번엔 말을 그치고, 얼굴을 잠깐 보라보고 있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은 자네가 전사를 했다기에 그렇게 된 걸세. 지나간 일 가지고 자꾸 말하믄 무슨 소용 있겠는가. 참게, 자네가 이렇게 살아올 줄 알았으먼야...... 다 팔자라고 생각하게." "그렇지만 정순이가 그렇게 쉽사리 속아 넘어가진 않았을 텐데......" "여부가 있나. 정순이야 끝까지 버텼지만 상호가 재주껏 했겠지. 나도 권했고...... 헐 수 있나? 하루 바삐 잊어버리는 편이 차라리 날 줄 알았지. 저도 그렇게 알구 간 거고......" "알겠습니다."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윤이 아버지는 깜짝 놀란 듯이 따라 일어나며, "이 사람아, 그러지 말고 좀 앉게, 천천히 술이라도 들며 얘기라도 더 나누다 가세." 나는 그의 간곡한 만류도 듣지 않고 그대로 돌아오고 말았다. 상호는 출장을 핑계로, 내가 돌아온 지 일주일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직접 그의 집으로 찾아가면 출장을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나, 주막에 나가 알아보니, 면(사무소)에서는 만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면(사무소)으로 찾아가서 그의 출장 여부를 알아보기도 난처한 점이 많았다. 그러자 그가 출장을 간 것이 아니라, 면에는 출근을 하되 자기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읍내에 있는 그의 고모집에 묵고 있으면서 어쩌다 밤중에나 몰래(집엘) 다녀가곤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무렵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하여 동구에 있는 주막에 늘 나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내가 주막 앞에 앉아 장기를 두고 있는데 저쪽에서 상호가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그것도 당장 그렇게 알아본 것이 아니고, 술군 하나가 저게 상호 아닌가 하고 귀띔을 해 줘서 돌아다 보니 바로 그였던 것이다). 나는 장기를 놓고 길 가운데 나가 섰다. 그가 혹시 모른 체하고 자전거를 달려 주막 앞을 지나쳐 버리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나는 길 가운데 버텨 선 채 잠자코 손을 들었다. 그도 이날은 각오를 했는지 순순히 자전거에서 내리며, "아, 이게 누구야? 봉수 아닌가?" 자못 반가운 듯이 큰 소리로 내 손까지 덥석 잡았다. (나야, 봉수야.) 나는 그러나 입밖에 내어 대답하진 않았다. "언제 왔어?" (정말로 출장을 갔다 지금 돌아오는 길인가?) 이것도 물론 입밖에 내어 물은 것은 아니다. "하여간 반갑네. 자, 들어가지, 들어가 막걸리나 한 잔 같이 드세." 그는 자전거를 세우고 술청으로 올라서자 주인(주모)을 보고 술상을 부탁했다. 나는 그의 대접을 받고 싶진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려나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단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보기로 했다. 주막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에게 시선을 쏟았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따라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나 자신을 달래며 흥분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자, 들게, 이렇게 보니 무어라고 할 말이 없네." <할 말이 없네>-이 말을 나는 어떻게 들어야 할까. 이것이 미안하단 말일까. 그렇지 않으면 뭐라고 말할 수도 없이 반갑단 뜻일까. 물론 반가울 리야 없겠지만, 옛 친구니까 반가운 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권하는 대로 잠자코 술잔을 들었다. 물론 맘 속으로 좀 꺼림칙하긴 했으나 그것과는 전혀 별 문제란 생각에서 일단 술을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주로 어느 전선에서 싸웠는가, 중공군의 인해전술이란 실지로 어떤 것인가, 이북군의 사기는 어떤가, 식사 같은 건 들리는 말같이 비참하지 않던가, 미군들의 전의(戰意)는 어느 정도인가, 그들은 결국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 그의 질문은 쉴새없이 계속되었으나, 나는 그저, 글쎄, 아냐, 잘 모르겠어, 잊어버렸어, 그저 그렇지, 따위로 응수를 했을 뿐이다. 나는 그가 돈을 쓰고 징병을 기피했다고 이미 듣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전쟁 얘기를 하기는 더구나 싫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서도 술잔은 부지런히 비워 냈다. 나도 그 동안 군에서 워낙 험하게 지냈기 때문에 막걸리쯤은 여간 먹어야 낭패볼 정도론 취할 것 같지 않았지만 상호도 면에 다니면서 제 말마따나 늘은 게 술뿐인지 막걸리엔 꽤 익숙해 보였다. "그 동안 주소만 알았대도 위문 편지라도 보냈을 텐데 참 미안하게 됐어." (그렇다, 주소를 몰랐다는 것은 정말일 것이다. 내가 소속된 부대는 한 군데 오래 주둔해 있지 않고 늘 이동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위문 편지가 문제란 말이냐). 나는 이런 말을 혼자 속으로 삭히며 또 잔을 내었다. 내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리 없는 그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영숙이가 말야, 자네 기억하지, 우리 영숙이 말야, 정말 그게 벌써 고삼(高校三年)이야, 자네한테 위문 편질 보내겠다고 나더러 주솔 가르쳐 달라지 뭐야. 헌데 나도 모르니까, 옥란이한테 가서 물어 오라고 했더니, 옥란이 언니도 모른다더라고 여간 안타까와 하지 않데." (그렇지, 영숙인 물론 더보다 나은 아이다. 그러나 영숙이가 무슨 관계란 말이냐. 영숙이보다 몇 곱절 관계가 깊은 정순이 문제는 덮어 놓고 왜 영숙이는 끄집어내냐 말이다). 나는 또 술잔을 내면서, 이제 이쯤 됐으니, 내 쪽에서 말을 끌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순이 말일세. 어떻게 된 건지 간단히 말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러나,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입을 떼었다. 상호는 들고 있던 술잔을 상 위로 도로 놓으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리고는 간단히 한숨을 짓고 나더니, "여러 말 할 게 있는가. 내가 죽일 놈이지. 용서하게." 뜻밖에도 순순히 나왔다. 이럴 때야말로 술이 참 좋은 음식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나는 한 동네에 같이 자랐으며, 국민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동창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상대자의 성격이나 사람됨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는 나보다 가정적으로 훨씬 유여했지만 워낙 공부가 싫어서 고등학교까지를 간신히 마치자 면서가기 되었고, 나는 그와 반대로 줄곧 우등에다 장학금으로 대학까지 갈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내가 그에게 친구로서의 신의를 잃은 적은 없었고, 또, 그가 여간 잘못했을 때라도 솔직하게 용서를 빌면 언제나 양보를 해 주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우정과 나의 성격을 알고 있는 그는 정순이 문제도 이렇게 해서 용서를 빌면 내가 전과 같이 양해를 할 것이라고 딴은 믿고 있는 겐지 몰랐다. 그러나 이것만은 문제가 달랐다. "자네가 그렇게 나오니 나도 더 여러 말을 하지 않겠네. 그러나 이것은 자네의 처사를 승인한다거나 양해를 한다는 뜻이 아닐세. 그건 그렇다 하고 나도 내 태도를 결정하기 위해서 자네하고 상의할 일이 있어 그러네." "......" 그는 내 말뜻을 잘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간단히 말할께, 정순이를 한번 만나 봐야 되겠어. 이에 대해서 자네의 협력을 구하는 걸세." 나는 말을 마치자 불이 뿜어지는 듯한 두 눈으로 상호를 쏘아보았다. 그는 역시 나의 말뜻을 잘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멍하니 마주 바라보고 있다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려 버렸다. "......" "대답해 주게." 내가 단호한 어조로 답변을 요구했다. 그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나의 눈치를 살펴 가며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안된다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은 자네 상상에 맡기겠네. 어차피 결말은 자네 자신이 보게 될 것이니까. 다만 자네를 위해서 말해주고 싶은 것은 자네같이 안온한 일생을 보낼려는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행동은 피하는 것이 좋을 걸세." "자넨 나를 협박하는 셈인가?" 상호는 갑자기 반격할 자세를 취해 보는 모양이었다. "......" 나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그를 한참 동안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먼저보다도 더 부드럽고 더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자네에게 어떤 형식으로든지 보복을 한다거나, 어떤 유감이나 감정 같은 것을 품어 본다거나 그런 것은 단연코 없네. 이 점은 나를 믿어 주어도 좋아." "그렇다면......?" "내가 정순이를 한번 만나 보겠다는 것은 자네에 대한 복수라든가 원한이라든가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젤세. 아직도 말하지 않던가, <그건 그렇다 하고>라고. 과거지사는 과거지사대로 불문에 붙이겠다는 뜻일세." "그렇다면 꼭 정순이를 만나 봐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내가 과거지사를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은 자네와 정순이의 관계에 대해서 하는 말일세. 나와 정순이의 관계나 내 자신의 과거를 모조리 불문에 붙이겠다는 뜻이 아닐세. 나는 정순이와 맺은 언약이 있기 때문에 정순이가 살아 있는 한 정순이를 만나 봐야 할 의무가 있는 거야." "그 동안에 결혼을 해서, 남의 아내가 되고, 애기 어머니가 돼 있어도 말인가?" "물론이지. 남의 아내가 돼 있든지, 남의 노예가 돼 있든지, 내가 없는 동안,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은 불문에 붙인다는 뜻일세." 여기서 상호는 자기대로 무엇을 이해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고 나더니, "자넨 너무 현실을 무시하잖아?" 이렇게 물었으나 그것은 시빗조라기보다 오히려 어떤 애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현실? 그렇지, 자넨 아직, 전장엘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자, 보게 이게 현실인가 아닌가?" 나는 그의 앞에 나의 바른손을 내밀었다. 식지(食指)와 장지(長指)가 뭉턱 잘라지고 없는 보기도 흉한 검붉은 손이었다. "자네는 내가 군에 가기 전의 내 손을 기억하고 있겠지. 지금 이 손은 현실인가 꿈인가?" "참 그렇군. 아까부터 손을 다쳤구나 생각하고 있었지만, 손가락이 둘이나 달아났군. 그래서야 어디?" "자넨 손가락 얘길 하고 있군. 나는 현실 얘기를 하는 거야. 손가락 두 개가 어떻단 말인가? 이까진 손가락 몇 개쯤이야 아무런들 어떤가? 현실이 문제지. 그렇잖은가? 그렇다, 정순이가 이미 결혼을 한 줄 알았다면 나는 이 손을 들고 돌아오진 않았을 거야. 자넨 역시 내가 손가락을 얘기하는 줄 알고 있겠지? 그나 그게 아니라네. 잘못 살아 돌아온 내 목숨을 얘기하고 있는 걸세. 이제 나는 내 목숨을 처리할 현실이 없다네. 그래서 정순이를 만나야 되겠다는 걸세. 이왕 이 보기 흉한 손을 들고 돌아온 이상, 정순이를 만나지 않아서는 안되네. 빨리 대답을 해 주게." "정 그렇다면 하루만 여유를 주게. 자네도 알다시피 나 혼자 결정을 할 문제도 아니겠고, 우선 당자의 의사도 들어 봐야 하겠지만, 또, 부모님들이 뭐라고 할지, 시하에 있는 몸으로서는 부모님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는 문제겠고, 그렇잖은가?" 나는 상호의 대답하는 내용이나 태도가 여간 아니꼽지 않았으나 지그시 참았다. 그를 상대로 하여 싸울 시기는 아니라고 헤아려졌기 때문이었다. "내일 이 시간까지 알려 주게, 정순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나는 씹어 뱉듯이 일러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튿날 저녁때 영숙이가 쪽지를 가지고 왔다. 작일(昨日)은 여러 가지로 군(君)에게 실례되는 점(點)이 많았다고 보네. 연(然)이나 군의 하해(河海)같은 마음으로 두루 용서해 주리라 신(信)하며, 금야(今夜)에는 소찬이나마 제의 집에서 군을 초대하니 만사 제폐하고 필(必)히 왕림해 주시기 복망(伏望)하노라. 죽마고우 상호 서 내가 상호의 쪽지를 읽는 동안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영숙이, 발딱 일어나며, "오빠가 꼭 모시고 오랬어요." 새하얀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미안하지만 좀 기다려 줘." 나는 영숙에게 이렇게 말한 뒤 옥란을 불러서 종이와 연필을 내어 오라고 했다. 자네의 초대에 응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하네. 어저께 말한 대로 정순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내일 오전중으로 다시 연락해 주게. 만약 정순이가 원한다면 그때, 영숙이를 동반해도 무방하네. 봉수 내가 주는 쪽지를 받자 영숙은 공손스레 머리를 숙여 절을 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저녁 때에야 영숙이 다시 쪽지를 가지고 왔다. 오빠는 오전중으로 전하라고 일러 주고 갔지만 자기가 학교에서 돌아온 시간이 늦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노라고 영숙이 정말인지 꾸며댄 말인지 먼저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쪽지엔 역시 상호의 필치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군의 회신은 잘 보았네. 연이나, 정순이 일간 친정에 근친갈 기회가 도래(到來)하여 영숙이를 동반코 왕복케 할 계획이니 그리 양해하고, 그 시기는 다시 가매(家妹) 영숙을 시켜 통지할 것이니 그리 아시게 상호 서 이틀 뒤가 일요일이었다. 영숙이 와서 언니가 친정엘 가는데 자기도 동반하게 되었노라고 옥란을 보고 넌지시 일러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왜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옥란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리는지를 곧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나는 옥란에게 그녀들이 떠나는 것을 보아서 나에게 알려주도록 부탁해 두고 오래간만에 이발소로 가서 귀밑까지 덮은 머리를 쳐냈다. 면도를 마친 뒤, 옥란의 연락을 받고 내가 <부엉뜸>으로 갔을 때는 점심 때도 훨씬 지난 뒤였다. 내가 뜰에 들어서자, 장독대 앞에서 작약꽃을 만지고 있던 영숙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 알은 체를 하더니 곧 일어나 아랫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순이 그 방에 있음을 알리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더니 정순이, 아 그 어느 꿈결에서 보던 설운 연꽃 같은 얼굴을 내밀었다. 순간, 나는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얼굴의 어디가 어떻다는 것을 전혀 의식할 수 없었다. 다만 저것이 정순이다, 저것이 아, 설운 연꽃 같은 그것이다. 하는 섬광 같은 것이 가슴을 때리며, 전신의 피가 끓어오름을 느낄 뿐이었다. 나는 그 집 식구들에 대한 인사나 예의 같은 것도 잊어버린 채 정순이가 있는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하여 나는 방문 앞에 한참 동안 발이 얼어 붙기라도 한 것같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순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고개를 아래로 드리운 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영숙도 정순이를 따라 몸을 일으키긴 했으나, 요 며칠 동안 나에게 보여 주던 그 친절한 미소도 가뭇없이, 이때만은 새침한 침묵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들에게서, <들오세요>를 기다릴 수 없다고 알자, 스스로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도, 그리하여 스스로 자리에 앉은 뒤에도, 그녀들은 더 깊이 얼굴을 수그린 채 그냥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실상, 그녀들이 서 있건 말건 그런 것보다는, 나 자신 갑자기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누르노라고 어깨를 들먹이며 고개를 아래로 곧장 수그리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간신히 고개를 들었을 때엔 그녀들도 어느덧 자리에 앉은 뒤였다. (이것은 분명히 꿈이 아니다. 나는 정순이를 보았다. 아니, 지금도 정순이는 바로 내 눈앞에 앉아 있지 않은가. 그러다. 정순이다. 정순이다. 나는 이제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울부짖음이 내 마음 속을 지나가자 나는 비로소 이성(理性)을 돌이킨 듯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정순의 얼굴을 비로소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정순은 물론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이마를 바라보는 것이라도 좋았다. "정순이!" 내 목소리는 굵게 떨리어 나왔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진 모르지만, 이 자리에서만이라도 옛날대로 부르겠어. 용서해 줘요. 영숙이도." 내가 이까지 말했을 때, 나는 또 먼저와 같은 울음의 덩어리가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름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참노라고 이를 힘껏 악물었다. 울음의 덩어리는 목구멍을 몹시 훑으며 뜨거운 눈물이 되어 주르르 흘러내렸다. 소리를 내며 흐느껴지는 울음보다도 그것이 차라리 나았다. 나는 손수건을 내어 천천히 눈물을 훔친 뒤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괴로운 것만치 정순이도 괴로울 거야.내 이 못난 눈물을 보는 일이 말야. 그러나 내가 정순이를 만날려고 한 것은 이 추한 눈물을 보일려고 한 것이 아니야. 이건 없는 것으로 봐줘. 곧 거둬질 거야." 나는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연기를 두어 모금이나 천천히 들이켜고 나서 다시 말을 시작했다. "하긴 이 자리에 앉아 생각하니 내가 전선에서 생각했던 거와는 다르군. 이럴 줄 알았더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정순이를, 그리고 영숙이도 그렇겠지만, 너무 오래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내 얘기를 간단히 할게." 나는 이렇게 허두를 뗀 다음 내 바른손을 그녀들 앞에 내놓았다. "이것 봐요. 이게 내 손이야. 식지와 장지가 문질러져 나가고 없잖아. 덕택으로 나는 제대가 돼 돌아온 거야. 이런 손을 갖고는 총을 쏠 수 없으니까. 그런데 말야. 그게 뭐 대단한 부상이라고 자랑하는 게 아냐. 팔다리를 송두리째 잃은 놈들도 얼마든지 있는데 이까진 거야 문제도 아니지. 아주 생명을 잃은 사람은 또 별도로 하더라도. 그런데 내가 지금 와서 뼈아프게 후회하는 것은 역시 이 병신된 손 때문이야. 이건 실상 적에게 맞은 것이 아니고 내 자신이 조작한 부상이야. 살려고. 목숨만이라도 남겨 가지려고, 아아, 정순이, 요렇게 해서 지금 여기까지 달고 온 내 목숨이야." 나는 얘기를 하는 동안에 나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힘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 뒤 한참 동안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정순이와 영숙이도 먼저보다 훨씬 대담하게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나는 연기를 불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소속된 부대는 00사단 00연대 수색중대야. 수색중대! 정순이는 이 말이 무엇인지를 모를 거야. 그 무렵의 전투사단의 수색대라고 하면 거의 결사대라는 거와 다름이 없을 정도야. 한번 나가면 절반 이상이 죽고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야. 어떤 때는 두셋이 살아서 돌아오는 일도 흔히 있었어. 그러니까 원칙적으로 교대를 시켜줘야 하는 거지. 그런데 워낙 전투가 격렬하고 경험자가 부족하고 하니까 교대가 잘 안 되거든. 그 가운데서도 내가 특히 그랫어. 머리가 좋고 경험이 풍부하대나. 나중은 불사신(不死身)이란 별명까지 붙이더군. 같이 나갔던 동료들이 거의 다 죽어 쓰러졌을 때도 나는 번번이 살아 왔으니까. 얘기가 너무 길군...... 나는 생각했어. 정순이를 두고는 죽을 수 없는 몸이라고. 내가 번번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도 정순이 때문이라고. 거기서 나는 결심을 했던 거야. 사람의 힘과 운이란 아무래도 한도가 있는 이상, 기적도 한두 번이지 결국은 죽고 말 것이 뻔한 노릇 아닌가. 위에서는 교대를 시켜 주지 않으니까 결국 죽을 때까진,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을 몇 번이든지 되풀이해야 하는 내 자신의 위치랄까 운명이랄까 그런 걸 깨달은 거야. 거기서 나는 결심을 했어. 정순이를 두고는 죽을 수 없다고. 나는 내가 꼭 죽기로 마련되어 있는 운명을 내 손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이런 건 부질없는 얘기지만, 정순이! 나는 결코 죽음 그 자체가 두렵지는 않았어. 더구나 생사를 같이 하던 전우가 곁에서 픽픽 쓰러지는 꼴을 헤아릴 수도 없이 경험한 내가 그토록 비겁할 수는 없었던 거야. 국가 민족이나, 정의, 인도니 하는 건 집어치우고라도, 우선 분함과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라도 얼마든지 죽고 싶었어. 죽어야 했어. 정순이가 아니더라면 물론 그랬을 거야." 나는 잠깐 이야기를 쉬었다. 정순이는 아까부터 벽에 이마를 댄 채 마구 흐느끼고 있었고, 영숙이도 손수건으로 두 눈을 가린 채 밖으로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돌아와 보니 정순이는 결혼을 했군. 나는 지금 정순이를 원망하려는 건 아냐. 상호의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것도 듣고 있어." "아녜요. 제가 바보예요, 제가 죽일 년이에요." 정순이는 높은 소리로 이렇게 외치며 또 다시 흑흑 느껴울었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문제야. 나는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야. 내 목숨을 말야. 나는 이렇게 해서 스스로 훔쳐낸, 그렇지 소매치기 같은 거지. 그렇게 해서 훔쳐낸 내 목숨이 이제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이 됐거든. 내가 이 목숨을 가지고 이대로 산다면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용서받을 수 없는 국가 민족에 대한 죄인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불쌍한, 그 거룩한, 그 수많은 전우들, 죽어 넘어진 놈들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산단 말인가. 배신자란 남에게서 미움을 받기 때문에 못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외로와서 못 사는 거야. 정순이가 없는 고향인 줄 알았더면 나는 열 번이라도 거기서 죽고 말았어야 하는 거야. 전우들과 함께, 그들이 쓰러지듯 나도 그렇게 쓰러졌어야 하는 일야. 그것도 조금도 괴롭거나 두려운 일이 아니었어. 오히려 편하고 부러웠을 정도야. 이 더럽게 훔쳐낸 치사스런 이 목숨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를 차라리 죽여 주세요. 괴로와서 더 못듣겠어요." 정순이는 소리가 나게 이마를 벽에 곧장 짓찧으며 사지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정순이 들어 봐요. 나는 상호에게도 말했어. 내가 없는 동안 상호와 정순이 사이에 생긴 일은 없었던 거와 같이 보겠다고. 정순이가 세상에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면, 정순이가 나와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그 동안에 있는 일은 없음으로 돌리겠어. ...... 정순이! 상호에게서 나와 주어. 그리구 나하고 같이 있어. 우리는 결혼하는 거야. 이 동네에서 살기가 거북하다면 어디로 가도 좋아. 어머니와 옥란이도 버리고 가겠어. 전우를 버리고 온 것처럼." "그렇지만 그 집에서 저를 놓아 주겠어요?" 정순이는 나직한 목소리로 혼잣말같이 속삭였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훔쳐 돌아온 거나 마찬가지지. 결심하면 돼. 그밖엔 길이 없어. 그렇지 않으면 내 목숨을 돌려 줘야 해. 이건 내 게 아니야. 정순이와 같이 있기 위해서만 얻어진 목숨이야.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도 무서운 반역자의 더럽고 치사스런 목숨인걸. 잠시도 달고 있을 수 없는 추악한 장물이야. 어디다 어떻게 갖다 팽개쳐야 좋을지 모르는 추악한 장물이야. 정말야. 두고 보면 알걸." "무서워요." 정순이는 아래턱을 달달달 떨고 있었다. "무서울 게 뭐야? 정순이 첨부터 상호를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거나, 지금이라도 사랑하고 있다면 별도야. 그렇지 않다면 내 목숨에 빛을 주고, 두 사람의 행복을 찾아나서는 거니까 어디까지나 정당한 일이지 잘못이 아니잖아? 알겠지? 응? 대답을 해줘." "......" 정순이 대답 대신 고개를 한번 끄덕해 보였다. 이때 영숙이 방문을 열었다. "언니, 저기......" 문 밖에는 정순이 올케(윤이 어머니)가 진지상을 들고 서 있었다. "국수를 좀 만들었어. 맛은 없지만...... 그리고 아기씬 안에서 우리하고 같이 할까?" 그녀는 국수상을 방 안에 디밀어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순이는 국수상을 다시 들어, 내 앞에 옮겨 놓으며, "천천히 드세요. 그리구 그 일은 제가 알아 하겠어요." 이렇게 속삭이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국수상엔 손도 대지 않은 채 담배 한 개비를 피우자 밖으로 나와 버렸다. 정순이한테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기 낳고 살던 여자가 집을 버리고 나오려면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일 리 없다고는 나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끝없이 날만 보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은 나도 안다. 남편이나 시부모 이외에 아기도 걸리고 친정도 걸리겠지만 죽느냐 사느냐 한 가지만 생각해야 한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한시 바삐 결행을 바란다. 나는 이렇게 쪽지에 써서 옥란에게 주었다. "이거 네가 정순이 언니한테 남 안 보게 전할 수 있거든 전해 다오. ......역시 영숙이한테 부탁할 순 없겠지?" "요즘은 우물에도 잘 안 나오니 어려울 거야. 영숙인 오빠를 너무 좋아하지만 아무렴 저의 친오빠만이야 하겠어?" 옥란은 쪽지를 접어 옷 속에 감추며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옥란도 좀처럼 정순이를 직접 만날 기회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대로 영숙이와는 자주 왕래가 있어 보였다. "영숙이한테 무슨 들은 말 없어?" "걔도 요즘 세상이 비관이래!" "왜?" "그날 정순이 언니하고 셋이서 만났잖아? 자기는 누구 편이 돼얄지 모르겠대. 그리구 슬프기만 하대." "자기한테 관계 없는 일이니까 모르면 되잖아?" "그렇지도 않은 모양야. 걘 책도 많이 읽었어. 오빠 한번 만나 주겠어? 오빠가 잘 부탁하믄 걘 무슨 말이라도 들을지 몰라......" "......"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옥란에게 쪽지를 맡긴 지도 닷새나 지난 뒤었다. 막 저녁을 먹고 났을 때 영숙이 정순의 편지를 가지고 왓다. 저의 계획을 집안에서 눈치채어 버렸읍니다. 저는 지금 꼼짝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읍니다. 저는 영원히 봉수 씨를 배반할 마음은 아닙니다. 다시 맹세합니다. 언제든지 봉수 씨가 기다려 주신다면 저는 반드시 그 일을 실행할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간도 쓸개도 없는 썩은 고깃덩어리 같은 년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죽지 못해 살아 있는 불쌍한 목숨이올시다. 부디 용서해 주시고 너무 조급히 기다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정순이 올림 나는 편지를 두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다. 내용이 복잡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말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무언지 정순이의 운명 같은 것이 거기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정순이는 이런 여자였어. 참되고 총명하고 다정하고 신의 있는. 그러나 강철같이 굳센 여자는 아니었어. 순한 데가 있었지. 환경에 순응하는. 물론 지금도 그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러나 환경에 순응하고 있는 거야. 그녀를 결정하는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이기보다 그녀를 에워싼 그녀의 환경이겠지.) 나는 편지를 구겨서 바지주머니에 쑤셔넣은 뒤 영숙을 불렀다. "숙이 나한테 전한 편지 누구 거지?" "언니 거예요." 영숙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대답했다. "무슨 내용인지도 알지?" 영숙은 갑자기 얼굴이 홍당무같이 새빨개지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난 영숙일 옥란이같이 믿고 있어. 알면 안다고 대답해 줘, 알지?" "......" 영숙이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내가 없더라도 옥란이하고 잘 지내 줘." 나는 무슨 뜻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를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곤 밖으로 훌쩍 나와 버렸다. 나는 어디로든지 가 버릴 생각이었던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어디로든지 꺼져 버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여간 나는 방안에 그냥 자빠져 누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막연히 정순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아니 막연히 정순이를 원망하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 자신이 세상에서 꺼져 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집 뒤를 돌아 나갔다. 우리집 뒤로부터는 보리밭들이었다. 보리밭은 아스라히 보이는 산기슭까지 넓은 해변같이 출렁이고 있었다. 지금 한창 피어 오르는 보리 이삭에서는 향긋한 보리 냄새까지 풍겨져 오는 듯했다. 내가 보리밭 사잇길을 거의 실신한 사람처럼 터덕터덕 걷고 있을 때, 문득 뒤에서 사람의 발소리 같은 것이 들려 왔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뒤돌아 볼 만한 관심도 기력도 잃고 있었다. 나는 그냥 걷고 있었다. 그렇게 걷는 대로 걷다가 아무데나 쓰러져 버렸으면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검푸른 보리밭 위로 어스름이 덮혀 왔다. 그 어스럼 속으로 비둘기 뗀지 다른 세 뗀지 분간할 수도 없는 새까만 돌멩이 같은 것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문득 내가 어쩌면 꿈 속에서 걸어가고 있는 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섰다. 그리하여 아까 날아가던 새까만 돌멩이 같은 것들이 사라진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다. "오빠."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잠긴 목소리였다. 영숙이었다. 나는 영숙의 얼굴을 넋 나간 사람처럼 어느 때까지나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슬프다는 거냐? 나하고 슬픔을 나누자는 거냐?) 나는 혼자 속으로 영숙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영숙도 물론 꼼짝도 않고 있었다. (오빠 제발 죽지 마세요. 제가 사랑해 드릴게요. 오빠를 위해서 오빠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오빠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어요.) 영숙의 굳게 다문 입 속에선 이런 말이 감돌고 있는 듯했다. 다음 순간 영숙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그보다도 내가 먼저 영숙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고 하는 편이 순서일 것이다. 그러자 영숙이 내 가슴에 몸을 던지다시피 하며 안겨 왔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내가 영숙에게 갑자기 왜 다른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그것은 나 자신도 해명할 길이 없다. 아니 그보다도 갑자기 야수가 돼 버린 나에게 영숙이 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 반항을 하지 않았는지 이 역시 해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하여간 나는, 다음 순간, 영숙을 안고 보리밭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녀의 간단한 옷을 벗기고 그 새하얀, 천사 같은 몸둥어리를 마음껏 욕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숙은 어떤 절망적인 공포에 짓눌려서인지, 그렇지 않으면 일종의 야릇한 체념 같은 것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지 간혹 들릴 듯 말 듯한 가는 신음 소리를 내었을 뿐 나의 거친 터치에도 거의 그대로 내맡기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 이미 실신 상태에 빠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니 그보다도, 역시, 자기의 모든 것을, 생명을, 내가 그렇게 원통하다고 울어대던 것의 대가를 대신 나에게 갚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때 까치가 울었던 것이다. 까작 까작 까작 까작 하는, 어머니가 가장 모진 기침을 터뜨리기 마련인 그 저녁 까치 소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 나의 팔다리와 가슴 속과 머리끝까지 새로운 전류(電流) 같은 것이 흘러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까작 까작 까작 까작, 그것은 그대로 나의 가슴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였다. 나는 실신한 것같이 누워 있는 영숙을 안아 일으키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그녀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하여 다음 순간 내 손은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누르고 있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