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PROFILE FREETALK LABORATORY GUEST LINK ■ 空の境界 ■ 그리고, 료우기 시키는 긴 잠에서 깨어났다. 후유증으로 생겨난, 사물의 죽음을 보는 눈. 나이프만으로 모든 것을 "죽인다"는 것이 가능한 힘은, 시키를 어둠의 세계로 인도한다. 2년 전의 살인귀. 부유하는 유령의 무리. 사물을 보는 것만으로 왜곡시키는 소녀. 사람의 죽음을 수집하는 나선건축. 수많은 괴현상과 시키의 마안이 충돌할 때, 잊혀져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 『空の境界 式』은 1998년 10월부터, 홈페이지「타케보우키」에 게재됐던 나스 키노코(奈須きのこ)의 연작소설입니다. 그것이 제1~4화는 동인소프트「月姬PLUS-DISC」에 재수록 되어「月姬」팬들에게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5화는 이미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불가능했고, 제6,7화에 가서는 완전한정본으로 copy지를 만들었던 탓에 환상의 작품이 되어버린『空の境界 式』입니다만, 「月姬」팬을 중심으로 전부 읽어 보고 싶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새롭게 완전판『空の境界』로 간행하였습니다. 이번에 제본화를 하면서 게재할 당시의 것들을 가필수정(주로 수정)을 하였고, 추가로 비쥬얼적인 면으로는 게재당시에도 일러스트를 담당하였고, 「月姬」에서도 나스 키노코와 발군의 콤비네이션을 보여준 타케우치 타카시(武內崇)가 커버 일러스트·삽화를 전부 담당하였습니다. -------------------------------------------------------------------------------- 『空の境界』(上) (下) 총매수/각 400매 (전2권구성) 가격/각 1500엔 동인샵 각점에서 위탁판매중 もうひとつの、シキの物語───── 또 하나의, 시키의 이야기───── 「空の境界」(WEB공개 당시엔 「空の境界 式」)는 1998년 10월부터 1999년 5월까지 武內崇(타케우치 타카시)와 奈須きのこ(나스 키노코)의 개인HP「타케보우키」에서 한달에 한화 정도의 페이스로 게제했던, 연작소설입니다. 원래는「사물의 부서지기 쉬운 선을 보는 주인공(モノの壞れやすい線を見る主人公)」의 구상은, 꽤나 오래전부터 나스가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따끈따끈해진 그 제재에 미스테리라고 하는 엣센스를 더해서 집필 한 것이「空の境界」입니다. 이「사물의 부서지기 쉬운 선을 보는 주인공」이라고 하는 설정은, 月姬(츠키히메)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설정의 유용이라고 하기 보다는, 원점회귀에 가까운 것입니다. 원래 나스가 생각 했던「사물의 부서지기 쉬운 선을 보는 주인공」의 구상이, 츠키히메의 기본틀이 되었습니다. 가장 처음의 발상인「사물의 부서지기 쉬운 선을 보는 주인공」은, 그 특별한 힘을 사용하는 여자를 해체해버리는 순수한 살인귀였습니다. 그가 죽인 여자가 실은 흡혈귀여서…. 당시에 그 막연했던 구상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 츠키히메란 겁니다. 그런 의미로, 「月姬」와「空の境界」는 같은 이야기로 다른 완성형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이름의 읽는 방법이 중복되고, 등장인물이 약간 크로스오버하고 있는 것은, 같은 세계의 다른 이야기, 라고 하기 보다는, 제작자 측의 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두개의 이야기와 세계의 공통되는 부분과, 다른 부분. 그리고 연관관계를 조금이라도 즐겨주신다면 좋겠습니다. -------------------------------------------------------------------------------- ■ 캐릭터 소개 ■ 兩儀 式(りょうぎ しき - 료우기 시키) 『空の境界』의 주인공. 중성적인 미형. 담백한 성격. 사고에 의해 2년간 혼수상태에 빠진다. 보통 기모노(和服)를 입고 있는 괴짜. 추워지면, 기모노 위에 가죽 점퍼를 입는다. 사고의 후유증인지, 사물(物)의 “죽음(死)”을 보게 되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불확정한 삶의 실감. 불확정한 살인의존증(殺人依存症). 불학정한 과거. 불확정한 기본인격. 무색(無色) 黑桐幹也(こくとう みきや - 코쿠토 미키야) 시키의 교교시대부터의 친구. 극히 보통인 사람. 제각각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부주인공. 현재는 대학을 중퇴하여 취직해있다. 꾸밈없는 흑발과 흑테안경이 특징. 남이 좋아하기 쉬운 성격. 본인에게 그런 자각은 없다. 극히 보통인 인간이지만, 사물을 찾는 다는 것에 관한한 그 이상은 없을 정도로 효과를 발휘한다. 蒼崎橙子(あおざき とうこ - 아오자키 토우코) 마법사(魔法使い)가 되다만 마술사(魔術師). 안경을 끼다→벗다, 로 인격을 의도적으로 스윗치(swich) 한다. 이십대 후반의 여성. 기본적으로 짓궂은 사람. 전문마술은 룬. 특기분야는 인형 만들기. 공방「가람의 당(伽藍の堂 - 가란노도우)」의 오너. 차가운 인격이면서, 근본은 로맨티스트. 모순(矛盾). 아오코라는 여동생이 있다. -------------------------------------------------------------------------------- ■ 스토리 소개 ■ 空の境界 年表 1995년 3월 4월 9월 1996년 2월 1998년 3월 5월 6월 7월 9월 11월 1999년 1월 2월 … 시키, 고교에 입학. 미키야와 알게 된다. 2/살인고찰(前) 시키, 사고로 병원에. 미키야 고교졸업. 대학진학. 미키야, 토우코의 활인형과 만난다. 토우코와 알게 되고, 대학을 그만둔다. 4/가람의동 3/통각잔류 1/부감풍경 5/모순나선 6/망각녹음 …살인귀, 재래. 1/俯瞰風景 여름의 끝, 소녀 자살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인은 반드시 높은 빌딩 옥상에서의 추락사라고 한다. 거리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그림책에서 본 탑 같았다. 달이 밝은 저녁에는, 추락한 소녀들의 유령이 나타난다. ───떨어졌는데도 날고 있다니 짓궂구나, 라고 아오자키 토우코는 중얼거렸다. 그것은 자살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 목숨이라는 것을 느끼는 방법의 하나. ……즉, 도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목적이 없는 도주와, 목적이 있는 도주. 일반적으로 전자를 부유, 후자는 비행이라고 부른다고 하는 듯 하다───. 2/殺人考察(前) 그것은, 그들이 아직 고교생이었던 시절. 거리에는 엽기살인사건이 연속되고, 밤의 거리는 정체불명의 살인귀를 위해 그 불빛을 빼앗았다. 코쿠토 미키야는 료우기 시키와 친해지는 가운데 또 하나의 시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긍정의 인격인 시키(式). 부정의 인격인 시키(織). ……살인밖에 모른다고 하는, 시키(織)라고 하는 소년. 계속 되는 엽기살인. 살인현장에 황홀히 서 있는 료우기 시키. 이 고찰의 결론은, 3년 후로 넘어간다. 3/痛覺殘留 혼수상태에서 눈을 떴을 뿐인 료우기 시키는, 삶의 실감을 가지지 못 한 채 아오자키 토우코의 일을 협력하기로 한다. 아사가미 후지노. 그녀에게 입혀진 상처는, 완치 된 후에도 그 통증이 계속된다. 통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복수를 되풀이 하는 소녀는 무차별적인 살인귀로 변모해간다. 무통증. 존재 그 것이 사회에 부적합이라고 하는 인간. 초능력이라고 하는 “현상”.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왜곡시킬 수 있는 소녀의 “눈”. 그리운 여름비 속에서, 료우기 시키는 최고의 살해능력을 가진 소녀와 충돌하게 된다. 4/伽藍の洞 사고로부터 2년이 지난, 6월. 료우기 시키가 긴 혼수상태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하지만 눈을 뜬 료우기 시키는 이전의 료우기 시키와는 달랐다. 결핍된 감정과, 불확실해져버린 삶의 실감. 무언가, 결정적으로 비어버린 부분이 있다고 느낀 시키. 유령처럼 멍하니 존재하고 있는 시키는, 면회사절을 하고 있는 병실에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이름의 마법사와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을 긍정한다면, 상처는 입지 않아. 모든 것을 부정한다면, 상처 입을 수밖에 없다. 두 가지 마음은 가람동. 긍정과 부정의 양극 밖에 없는 것. 그 가운데, 아무 것도 없는 것. 그 안에, 내가 있는 것. 5/矛盾螺旋 팔괘를 묶어 사상을 돌려 양의에 도달한다 오늘밤, 상극하는 나선에서 너를 기다린다 6/忘却錄音 코쿠토 아자카. 오빠를 시키로부터 되찾기 위해 아오자키 토우코의 제자로 들어간, 코쿠토 미키야의 여동생. 그녀가 다니는 전원 기숙사 입사식 여학원에, 잊혀져 있던 기억이 편지로 도착한다, 고 하는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인마저 잊고 있다는 일을, 어찌하여 수집하는 건가. 밀폐된 공간, 외부 세계의 더러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폐쇄 당한 학원에, 료우기 시키가 학생으로서 침입한다. 봉인지정. 위신의 서(僞神の書)라고 불리는 현상. 흩어지기 전의 통일언어를 쓰는 마술사가, 시키의 잊혀졌던 과거를 형상화 한다. 영원을 찾고 있다, 라고 위신의 서는 말한다. 하지만, 오랜지색의 마술사는 읊조린다. ───보답받지 못하는구나. 영원 따위, 어디에나 있다고 하는데도 말야. 7/殺人考察(後) 과거를 되찾은 자는, 그 청산을 강요당한다. 재래하는 3년 전의 살인귀. 자신을 살인귀라고 부정할 수 없는 료우기 시키는, 코쿠토 미키야의 앞에서 사라진다. 료우기 시키를 찾는 코쿠토 미키야. 재발한 엽기살인은 매일 같이 되풀이 된다. 흑과 백. 코쿠토 미키야는 료우기 시키의 진실과, 3년 전의 사건의 진상에 다다른다. 살인이라고 하는 행위의, 하나의 고찰. ───토우코씨,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답은, 그렇게 뜻밖의 것도 아닌. 극히 단순하고, 고로 범용성이 높은, 고찰. 初出一覽 1/부감풍경 2/살인고찰(前) 3/통각잔류 4/가람의동 5/모순나선 6/망각녹음 7/살인고찰(後) 1998년 10월 HP「타케보우키」게재 1998년 11월 HP「타케보우키」게재 1998년 12월 HP「타케보우키」게재 1998년 12월 HP「타케보우키」게재 1999년 3월 HP「타케보우키」게재 1999년 8월 코믹마켓 56에서 판매 1999년 8월 코믹마켓 56에서 판매 -------------------------------------------------------------------------------- ■ 주인장의 말 ■ 우선, 이 이곳에 방문하시어 여기까지 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더 멋지게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바쁘다보니 손이 안 가는 점도 있고, 실력도 미숙하다 보니 결국 이렇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제 성격상 '원본중시'란 것도 적용되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이 페이지에 한해선 심할정도로 태그를 무단도용(?)해서 썼군요. 기본적으로, TYPE-MOON 홈페이지의「空の境界」 페이지를 참고로 작성하였습니다. 초반 소개글 밑에 중앙정렬 되어 있는 것은「月姬讀本」에 있는「空の境界」 소개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月姬」와「空の境界」의 관계를 설명하는 글인지라, 필요하다 싶어 적었으니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올라오는 번역본은 지금은 군복무 중인 정수형(Nownuri: 정수군)이 군복무 중에 짬짬이 읽고 번역한 것입니다. 초기 자료 제공자가 저였고, 제 홈페이지의 성격을 고려하여, 이곳에 올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정수형이 제대할 때까지 번역에 관한 모든 권한은 제게 위임되어 있으니,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정수형이 읽은 것은 WEB공개 당시의 텍스트입니다. (「月姬PLUS-DISC」에 4화까지 수록) 이후 5~7화는 어디의 고마우신 분께서 책을 직접 타이핑 하셔서 텍스트화 시켜 배포한 물건입니다. 책(완전판)은 상, 하권으로 나뉘어 상권에 1화부터 5화 중간까지, 하권에 5화 이후부터 7화, 空の境界까지 있습니다. 제가 구해서 정수형에게 준 텍스트본 중 상권부분은 WEB공개 당시의 텍스트이고, 하권은 완전판 제3판 인쇄본의 텍스트입니다. 이점을 고려하여, 본 주인장이 정수형의 번역본을 교정하면서 임의로 모두 제3판 인쇄본 기준으로 번역을 일부 수정 및 교정을 하였습니다. (주인장이 샀던 책이 제3판 인쇄본이었습니다.) WEB공개 당시의 텍스트와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어, 빠진 문장과 추가된 문장을 각각 처리하고 문단구분도 모두 제3판 인쇄본 기준으로 최대한 똑같이 하였습니다. 이 점 참고하시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당부의 말씀입니다. 본 작품의 번역자와 당 홈페이지의 주인장(이자 교정자)의 노고를 봐서라도, 무단전제는 삼가해주십시요. 본 번역본은 일체의 이동을 금합니다. 어짜피 공개되어 있는 홈이니 이곳으로 링크를 걸어서 알려주시는 쪽이 더 감사합니다. 단, 번역본으로의 직링크는 삼가해 주십시요. 번역본만큼이나 노고를 쏟은 소개 페이지입니다.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께서 「空の境界」에 대해좀 더 알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니,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담입니다만,「空の境界」를 읽는 방법은 위에 타이틀에 후리가나를 보시면 알겠지만 '카라노쿄우카이'라고 읽고, 뜻은 '허공의 경계'가 가장 올바른 해석입니다. 주인장은 이전부터 '하늘의 경계'라고 부르는게 입에 익었고, 어감상 이쪽이 더 좋아서 그대로 사용 중입니다만 '空'이란 한자가 '하늘'이 되기 위해선 '소라(そら)'라고 읽어야 하고 '카라(から)'는 '허공'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키노코씨와 타카시씨의 개인 HP「타케보우시」는 한자가 일식한자였고, 대체한자도 없어서 발음을 적어놓았습니다. 뜻은 '대나무 빗자루', 한글 독음은 '죽추'입니다. 그 외에 모르는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방명록에 글을 남겨주시면 친절하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단, 책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해드리기 어렵습니다. 책을 파는 일본 동인샵은 모두 해외발송을 하지 않고 있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일본 야후 옥션에 올라온 매물을 경매를 통해 구입하였고, 이 과정도 제가 직접한게 아니라 대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 책을 구하셔서 읽고 싶다고 하여도 저로서는 도와드릴 방도가 없습니다. 이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며, 양해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읽고도 번역본 페이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우측하단의 메뉴에서 TOP을 눌러 위로 올라가, 가운데 큰 그림을 누르면 됩니다. 2002년 9월 추가적인, 타이틀에 관한 언급. 사실, 따지고 보면, '카라(から)'라는 단어의 뜻을 이 작품에 비추어 해석하자면 '텅 비어 있다'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허공'은 약간 진부적인 해석이었을런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때문에 가장 알맞은 뜻해석을 위해 '공의 경계'라고 하기엔, 발음상 뭔가 허전하고 안 어울린다는 본인과 주위의 의견과 함께, 개인적으로 '저건 한자를 그대로 발음한 것 뿐이지 않느냐'라는 느낌이 들어서, 계속 '허공의 경계'라고 부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타이틀을 어떻게 해석하던, 작품의 내용 자체엔 영향을 끼치는 일이 없으므로 (작품중에 '카라(から)'는 보통 「 」로 표기 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이점 유의하시고, 주인장의 뜻을 이해하여주셨으면 감사합니다. 2003년 5월 Back / TOP 그 날은 집에 돌아올 때 큰길을 통해서 오기로 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별일이다 싶을, 작은 변덕이다. 질리도록 보아온 빌딩들에 기억을 할당하는 일 없이 걷고 있자, 얼마 안 있어 사람이 떨어졌다. 그다지 들을 기회가 없는, 퍼걱 하는 소리. 빌딩에서 떨어졌으니, 죽은 것은 명백했다. 아스팔트 위에는 진홍색이 흘러간다. 그 속에서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긴 흑발과. 가느다란, 백색을 연상시키는 가녀린 팔다리. 그리고 형체 없는, 찌부러진 얼굴. 그 일련의 영상은, 낡은 페이지에 끼워진 뒤, 책 사이에 짓눌려 납작해져버린 꽃잎을 연상시켰다. ───어쩌면. 머리만을 태아처럼 구부린 그 시체가, 나에게는 부러진 백합과 닮아보였기 때문이겠지. / 부감풍경 -------------------------------------------------------------------------------- / 1 막 8월로 접어든 날 밤, 미키야가 사전에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안녕. 변함없이 나른한 얼굴이네, 시키」 갑작스런 방문자는 현관입구에 서서, 웃는 얼굴로 재미없는 인사를 했다. 「실은 말이지, 여기 오기 전에 사고가 난걸 봤어. 여자애가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 다른 사람의 집에 찾아오자마자, 미키야는 자연스런 말투로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에 많다고 듣기는 했지만, 실물과 조우할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말야. ───자, 이거. 냉장고」 현관에서 부츠의 끈을 풀면서, 손에 들고 있던 편의점 비닐봉지를 던지듯 넘겨준다. 안에는 하겐다즈의 스트로베리가 두 개. 녹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두란 소리인 것 같다. 내가 완만한 동작으로 그 속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에, 미키야는 신발을 다 벗고서 문지방을 넘어와 있었다. 내 집은 맨션의 한 방이다. 현관에서 1미터도 안되는 복도를 빠져나가면, 곧바로 침실 겸 거실인 방에 다다른다. 거리낌 없이 방으로 걸어가는 미키야를 흘겨보면서, 나도 내방으로 이동했다. 「시키, 너 오늘도 학교 빠졌지. 성적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지만, 출석일수를 채워두지 않으면 진급 못 한다구. 같이 대학에 가자던 약속, 잊은 거야?」 「학교에 관한 일로 내게 지도할 권리, 너에게 있어? 게다가 그런 약속은 기억나지도 않고, 너는 대학을 때려치웠잖아」 그렇게 말하며 노려보자, 미키야는 할말이 없어져서 약간 고개를 숙였다. 「……우. 권리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런 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없지만」 미키야는 못마땅한 말투로 이야기하면서 바닥에 앉았다. 이 녀석은 자신이 불리해지면, 직설적이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기억해낸 일이다. 미키야는 방의 한가운데에 앉았다. 나는 미키야의 등 뒤에 있는 침대에 앉고, 그대로 몸을 눕혔다. 미키야는 나에게 등을 보이는 상태 그대로다. 남자치고는 자그마한 그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관찰한다. 코쿠토 미키야(黑桐幹也)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나와는 고교시절부터 친구였던 것 같다. 수많은 유행이 차례차례 나타나서 질주하다가 폭주한 끝에 소멸해가는 현대의 학생들 속에서 따분해질 정도로 '학생'이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귀중품이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기르지도 않는다. 살갗을 태우지도 않았거니와 장신구도 없다. 휴대전화도 없고, 여자와 어울려 다니지도 않는다. 키는 170이 조금 안되는 듯 하며, 얼굴생김새는 좋은 부류에 든다고 생각한다. 온화한 얼굴형은 귀여운 편인데, 검은 테의 안경이 그런 분위기를 한층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고교를 졸업하고 평범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잘 빼입고 거리를 걷는다면 지나가는 사람 몇 명은 시선을 멈출 정도로, 실은 미소년이 아닐까──── 「듣고 있어? 네 어머니하고 만나봤어. 한번은 료우기 본가에 얼굴정도는 내밀어야지. 퇴원한지 두달이 되도록, 연락도 안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몰라. 실감이 안 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만나봤자, 더욱 거리가 생길 뿐이야. 너한테도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는데, 그런 타인하고 이야기가 될 것 같냐?」 「그러면 언제까지고 해결이 안 되잖아. 시키 쪽에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평생 이 상태라구. 친자식이 근처에 살고 있는데 얼굴도 볼 수 없다니, 그런 건 좋지 않아」 꾸짖는 듯한 말투에, 나는 눈썹을 찡그린다. 좋지 않다니, 뭐가 안 좋다는 걸까. 나와 양친 사이에서 법을 어긴 일은 없다. 단지,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이전의 기억을 상실해버린 것뿐이다. 호적상으로도 혈연 상으로도 친자임이 분명하니, 이대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키야는 언제나 사람 본연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며 염려한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데도. ◇ 료우기 시키(兩儀 式)는 고교시절부터의 친구다. 우리 학교는 사립이고, 유명한 진학교였다. 합격자발표 때, 료우기 시키란 이름이 꽤 드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 나는 시키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명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사복도 OK라는 조금 유별난 진학교였기 때문에, 모두 각자의 복장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학교안에서의 시키의 모습은 아주 눈에 띄었다. 왜냐하면, 언제나 기모노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간소한 평상복차림으로 서있는 모습은 시키의 부드럽게 쳐진 어깨에 잘 어울려서, 걷고 있는 것만으로 그곳이 무가(武家)저택의 일부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복장뿐만이 아니라 행동에도 불필요한 움직임은 한점도 없고, 수업 중 이외엔 대화다운 말을 입에서 꺼내지 않았다. 시키가 어떤 인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시키 본인의 모습은 이것 이상으로 뛰어났다. 머리카락은 흑단처럼 고운데, 그것을 귀찮다는 듯 가위로 자르곤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것이 딱 귀를 가릴 정도의 숏커트가 되는데, 이것이 또 묘하게 어울려서 시키의 성별을 헷갈리는 생도도 많았을 정도다. 시키를 보는 사람이 남자라면 여성으로, 여자라면 남성으로 잘못 볼 정도의 미인인데, 아름답다기보다는 늠름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런 개성들보다, 내가 무엇보다 매료된 것은 시키의 눈이었다. 눈매는 예리한데, 맑고 고요한 그 눈동자와 가느다란 눈썹. 무언가 우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그 모습이, 나에게 있어서 료우기 시키라는 인물의 전부였다. 그래. 시키가 그렇게 되기 전 까지는. ◇ 「투신」 「에───? 아, 미안, 못 들었어」 「투신자살. 그건 사고가 되는 걸까, 미키야」 의미없는 중얼거림에, 말없이 있던 미키야는 움찔, 하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대로, 지금의 의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으음, 그건 사고가 틀림없겠지만……그렇군, 확실히 그건 무엇인걸까. 자살인 이상, 그 사람은 죽어버렸지. 하지만 자신의 의지인 이상, 책임 역시 자신만의 것이야. 단,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사고니까───」 「타살도 아니고 사고사도 아니다. 애매하네, 그런 건. 자살이라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으면 좋았을 텐데」 「시키. 죽은 사람을 나쁘게 이야기 하는 것은 좋지 않아」 나무라는 것 같지 않은, 온화한 어조. 그런 미키야의 대사는 듣기 전에 예측 할 수 있을 정도로 진저리가 나 있다. 「코쿠토. 나, 너의 일반론이 싫어」 자연스럽게, 반론에 가시가 돋친다. 하지만 미키야는 기분나빠하는 기색도 없다. 「아아. 정말 오래간만인걸, 그렇게 부르는 건」 「그런가?」 응, 하고 미키야는 앵무새처럼 끄덕인다. 그를 부르는 방법은 미키야와 코쿠토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나는 코쿠토라는 발음의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의 공백에 생겨난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키야가 기억났다는 듯 손바닥을 쳤다. 「그러고 보니 신기한 일이 있는데, 아자카(鮮花)가 봤대」 「……? 봤다니, 뭘?」 「그러니까, 전의 그거라구. 후죠우 빌딩의 여자. 하늘을 날고 있다는 거 있잖아. 시키도 한번 봤다고 말했었지?」 「───────」 아아, 생각났다. 분명 3주정도 전부터 시작한, 별거 아닌 괴담이다. 오피스가(街)에는 후죠우 빌딩이라는 고급맨션이 있고, 밤이 되면 그 상공에서 사람처럼 생긴 형체가 보인다고 했다. 나만이 아니라 아자카에게도 보였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것은 진짜인 것 같다. 교통사고로 2년간 혼수상태였던 이후로, 나는 그런 『원래 있을 수 없는 것』 이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토우코쪽에 이야기해보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인지한다', 즉 뇌와 눈의 인식레벨이 상향된 것뿐인 것 같지만, 나는 그런 구성 따위에는 흥미가 없다. 「후죠우 빌딩의 놈들이라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봤어. 게다가 최근에는 그 주변을 돌아다니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보일지 어떨지는 알 수 없어」 「흐응. 그쪽으론 자주 다니지만, 나는 본적이 없는 걸」 「너는 안경을 끼고 있어서 안 보이는 거야」 관계없다고 생각해, 라며 미키야는 토라졌다. 그 행동은 악의가 없고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녀석은 그런 것을 보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난다느니, 떨어졌다느니 하는 별 재미없는 현상이 이어진다. 그런 일에 어떤 흥미가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의문을 입 밖에 내었다. 「미키야. 사람이 하늘을 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미키야는 글쎄, 하며 고개를 한번 수그리더니, 「나는 이유도 떨어지는 이유도 모르겠어. 왜냐면, 난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당연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 2 8월도 마지막에 접어든 밤, 산책을 하기로 했다. 여름의 끝 치고, 바깥공기는 차갑게 느껴진다. 전철막차는 한참 전에 끊겼고, 거리는 정적에 휩싸여있다. 고요하고 추운 것이, 아무도 찾지 않는 어딘가의 죽음의 거리 같기도 하다. 오가는 사람들도, 따스함도 없는 그 광경은, 한 장의 사진같이 인공적이며, 불치의 병을 연상시켰다. ───질병, 병환, 병적. 불빛 없는 집이건 불빛이 있는 편의점이건 무엇이건 간에, 긴장을 풀면 기침소리 한번에 붕괴할 것 같은 느낌. 그런 가운데, 달빛은 푸르스름하게 밤을 부각시킨다. 모든 것이 마비된 세계, 달만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아주, 눈이 아프다. ───그래서, 병적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집을 나올 때, 천총색의 기모노위에, 검은 가죽점퍼를 걸쳤다. 기모노의 소매가 웃옷에 감겨들어서, 몸이 더워진다. 그래도 덥지는 않다. ───아니. 나는, 원래부터 춥지도 않았다. ◇ 그런 한밤중에도 길을 걷다보면 사람과 만난다.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는 청년. 자판기 앞에서 멍하니 서있는 소년. 편의점의 불빛에 모인, 몇 명의 젊은이들. 그곳에 뭔가의 의미가 있는 걸까하고 살펴보지만, 어차피 제3자인 나로서는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 자신이 이렇게 밤에 산책을 하는 것부터가 의미는 없었다. 나는, 예전부터 내 취향이었던 이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년전. 고등학교 2학년으로의 진급이 틀림없었던 료우기 시키(兩儀 式)란 이름을 가진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곧바로 병원에 실려 갔다. 비가 내리는 날 밤의 사고다. 나는 자동차에게 치인 것 같다. 다행히도 몸 자체에는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출혈도 골절도 없는 깨끗한 사고였다고 한다. 그 반면, 데미지는 머리 쪽에 집중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 뒤로, 혼수상태가 계속되었다. 몸에 상처가 거의 없었다는 게 화가 되었던 걸까, 병원 측에서는 나를 계속 생존시킬 수 있었고, 의식이 없는 나의 육체는 필사적으로 생명을 유지했다. 그렇게 해서 약 두 달 전, 료우기 시키는 회복했다. 의사들은 죽은 자가 되살아 난 것만큼이나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곧, 나는 그 정도의 회복이 예상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나 자신도, 그 정도로 대단치는 않지만, 어떤 종류의 충격을 받고 있었다. 자신에게 확신이 들지 않는, 다고 말할까. 자신의 지금까지의 기억이, 아무래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신의 기억을 신용할 수 없다. 이것은 과거의 일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라는 기억장해……속칭 기억상실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토우코가 말하기를, 기억이란 것은 뇌가 행하는 명기(銘記), 보존, 재생, 재인(再認)의 4대 시스템이라고 한다. 『명기』는 보았던 인상을 정보로서 뇌에 기록하는 일. 『보존』은 그것을 간직해두는 일. 『재생』은 보존한 정보를 불러내는, 곧 기억해내는 일. 『재인』은 재생한 정보가 이전의 것과 동일한지 어떤지를 확인하는 일. 이 네 가지 프로세스중 하나라도 할 수 없다면 기억장해가 된다. 물론, 어디에 문제가 있느냐에 따라 기억장해의 케이스도 달라진다. 하지만, 나의 경우, 이것 중 어느 것도 장해 없이 동작하고 있다. 이전의 기억에 실감을 느낄 수 없지만, 자신의 기억이 이전의 내가 받았던 인상과 아주 똑같다. 곧, 『재인』도 동작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예전의 나라는 존재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료우기 시키라고 불리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보아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일로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틀림없이 료우기 시키인데도. 2년간의 공백은 료우기 시키를 무(無)로 돌려놓아버렸다. 사회의 평가가 아니라, 나의 내용물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나의 기억, 내가 가지고 있었을 성격. 그 연결이 절망적일 정도로 단절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어 버리고나니, 기억은 단순한 영상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그 영상 덕분에, 나는 예전의 나 같은 차림새는 할 수 있다. 부모에게도, 전부터 알던 사람에게도, '그들이 알고 있던' 료우기 시키로서 접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상관하지 않고서.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마치, 의태(擬態)다.    나는 조금도 살아 있지 않아. 막 태어난 갓난아기와 마찬가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18년이라는 기억이, 나를 한명의 완성된 인간처럼 만들어놓고 있다. 본래, 여러 가지 경험에 의해서 얻어져야할 감정은, 이미 기억으로 습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하려고 해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거기에는 감동도, 살아있는 실감도 없다. ……비밀이 들통나버린 요술이 더 이상 아무도 놀라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살아온 실감도 느끼지 못한 채 예전의 나다운 행동을 반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예전의 나 자신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하면, 이 밤중의 산책의 의미도 알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아아, 그런걸까. 그렇다고 하면, 나는 예전의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 꽤나 걸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오피스가(街)에 와있었다. 같은 높이의 빌딩들이 길의 양쪽에 사이좋게 쭉 늘어서 있다. 빌딩 표면은 전부 유리창으로, 지금은 그저 달빛만을 반사시키고 있다. 큰 길가에 늘어선 빌딩 무리는, 괴인이 배회하는 그림자그림의 세계가 되어있었다. 그 중에 유달리 높은 그림자가 있다. 20층 건물의 사다리 같이 보이는 그 건물은, 달까지 닿기 위해서 뻗어있는 가늘고 긴 탑처럼 보였다. 탑의 이름은 후죠우(巫條)라고 한다. 맨션인 후죠우 빌딩에 불빛은 없다.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는 것이겠지. 시각은 곧 오전 2시를 지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보잘 것 없는 영상이 망막에 비쳐 들어왔다. 사람 모습 같은 실루엣이 시계(視界)에 떠올랐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그 소녀는 떠있었다. 바람은 없다. 여름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밤공기. ───목덜미의 뼈가, 추위에 의해 찡하고 삐걱인다. 물론, 그런 것은 나만의 착각. 「뭐야, 오늘도 있잖아」 불쾌하지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예의 그 소녀는 달에 기대듯이 비행하고 있었다. 부감풍경\ … ───이미지는 잠자리. 바쁘게 날고 있다. 한 마리의 나비가 따라오지만, 나의 속도는 늦추지 않는다. 나비는 언젠가부터 따라올 수 없게 되었고,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힘없이 떨어져갔다. 호를 그리며 떨어져간다. 고개를 쳐든 뱀 같은 모양의 낙하. 하지만 그것은 부러진 백합과 닮아있었다. 그 모습이 아주 애처롭다. 같이 갈 수는 없더라도, 하다못해 조금만 더 곁에 있어줘야 했었겠지.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땅에 발이 닿아있지 않는 나는, 서있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았으니까. … 누군가의 이야기소리가 나서, 할 수 없이 일어나기로 했다. ……눈꺼풀이 상당히 무겁다. 이건 2시간으로는 잠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움직이려하다니 나는 정말 인색한걸, 하며 잠깐 자기도취하고 있다보니, 의식은 졸음을 무찔러버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너무 단순해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 분명 어젯밤은 철야로 도면을 완성시키고, 그대로 토우코씨의 방에서 잤을텐데. 푸욱, 하고 소리를 내며 몸을 소파에서 일으키자, 역시나 이곳은 사무실이었다. 아직 정오에 다다르지 않은 여름의 햇살 속에서, 시키와 토우코씨가 무언가 이야기에 몰입해있다. 시키는 벽에 기대선 채였고, 토우코씨는 파이프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시키는 여전히 기모노를 산뜻하게 입고 있다. 토우코씨는, 이라고 말하면, 겉치장 없는 타이트한 검은색 바지에, 새것처럼 빳빳한 흰색 와이셔츠. 머리는 짧고, 목을 드러낸 토우코씨는 아무리 봐도 어딘가의 사장비서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곤 해도, 안경을 벗었을 때의 나쁜 눈매는 필설하기 어려울 정도니, 평생 그런 쪽으론 취직 못 하겠지. 「좋은 아침이야, 코쿠토」 힐끗하고 보는 토우코씨의 곁눈질은, 뭐어 언제나 그렇다. ……안경을 벗고 있는 것을 보면, 시키와는 그쪽 관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죄송합니다, 자버렸던 것 같아요」 「하찮은 일 설명 하지마. 보면 안다구」 내뱉듯이 말하면서, 담배를 입에 문다. 「일어났으면 차 좀 끓여줘. 좋은 리허빌리가 될거야」 「…………………?」 리허빌리란 건, 역시 갱생운동(rehabilitation)을 이야기하는 걸까. 내가 어째서 그런 소릴 듣지 않으면 안 되는가는 의문이지만, 토우코씨는 언제나 이런 식이니 따지지 않기로 했다. 「시키는 뭔가 마실 거야?」 「난 됐어. 곧 잘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시키는, 분명 잠이 부족해 보였다. 어젯밤, 내가 돌아오고 나서 밤중에 산책이라도 나갔던 걸까. ◇ 사무소 겸 토우코씨의 개인 방으로 쓰이는 방 옆에는 부엌같이 생긴 방이 있다. 원래는 어딘가의 실험실이었는지, 수도꼭지는 학교의 식수대처럼 가로로 3개나 늘어서 있다. 안쪽 2개는 계금(計金)에 묶여서 사용금지상태다. 이유는 불명. 알기 쉬워서 좋잖아, 라고 토우코씨가 말했지만, 살벌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별로 기쁘지는 않다. 그러면. 커피메이커를 작동시킨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 끓이기라서, 지금은 자면서도 할 수 있을 만큼 숙달되었다. 나, 코쿠토 미키야가 이곳에 취직한지 곧 반년이 된다. 아니, 취직이라 하기엔 좀 안 맞는다. 무엇보다 여긴 회사로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각오하고 들어온 것은, 그 사람의 작품에 한눈에 푹 빠져 버렸기 때문이겠지. 시키가 혼자서 17세인 채로 시간을 멈춰버린 후, 나는 목적도 없이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 대학에 들어간 것은 시키와의 약속이었다. 시키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해도, 그 약속만은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생이 된 나는, 그저 달력의 날짜만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때, 친구의 초대로 모임에 가기위해 발을 옮기다가, 하나의 인형을 발견했다. 그것은 도덕의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육박할 정도로, 극히 정교 하게 만들어진 인형이었다. 인간을 그대로 정지시킨 것 같은 그것은, 동시에, 결코 움직일 수 없는 인형인 것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확실히 인간이 아닌, 동시에 인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인간모양(ヒトガタ). 지금이라도 숨을 쉴 것 같은 인간. 하지만 처음부터 생명 같은 것은 없는 인형. 생명만을 지니지 못한,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장소. 그 이율배반에, 나는 포로가 되었다. 아마, 그 존재하는 모습이 그 무렵의 시키, 그 자체였으니까. 인형의 출전은 불명이었다. 팜플렛에는 그 존재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조사해보니, 그것은 비공식적인 출품작으로 제작자는 업계에서는 복잡한 사정을 가진 인물이었다. 제작자의 이름은 아오자키 토우코(蒼崎橙子). 그녀는, 쉽게 말하자면 속세를 떠난 사람이었다. 인형제작이 본업인 듯 하지만, 건물의 설계 같은 것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물건을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지만, 일을 떠맡는 일은 전혀 없다. 언제나 스스로 "이런 물건을 만듭니다"라며 상대에게 팔러가고, 보수를 선불로 받고 나서야 제작에 착수한다. 상당한 도락가일까, 아니면 이상한 사람일까. 흥미는 한층 깊어져가서, 나는 그 이상한사람의 주소를 조사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도심에서 떨어진, 주택가라고도, 공장지대라고도 말할 수 없는, 뭔가 어중간한 곳이었다. 아니. 토우코씨의 거처는, 일반적인 집이 아니었다. 폐허였다. 그것도 어중간한 폐허는 아니다. 수년 전, 경기가 좋았을 때에 공사가 시작되었다가, 경기가 나빠져서 도중에 방치되어버린, 진짜 폐빌딩. 어쨌든, 건물로서의 모습은 만들어졌지만, 내부 장식은 전혀 없다. 벽도, 바닥도 소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완성했다면 6층 건물이 되었을 테지만, 4층위로는 없다. ……요즘에는 빌딩을 최상층부터 만들어가는 편이 효율이 좋지만, 당시엔 아직 옛날 방법이었던 것이겠지. 공사가 도중에 방치되었기 때문에, 만들기 시작하던 5층의 플로어(floor)가 옥상처럼 되어버렸다. 빌딩의 부지는 높은 콘크리트의 담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침입하기는 용이하다. 근처 사는 아이들이 비밀기지로 삼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 할 정도로, 매우 수상한 건물이다. 어쨌든, 그렇게 구매자가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있던 빌딩을, 아오자키 토우코가 구입한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커피를 끓이고 있는 부엌같이 생긴 방은, 그 빌딩의 4층에 위치해있다. 2,3층은 토우코씨의 작업장이기 때문에, 대개 우리들은 이 4층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도록 되어 있다. ……아차, 본론으로 돌아오자. 그 뒤로, 나는 토우코씨와 알게 되었고, 막 입학했던 대학을 관두고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급료도 꼬박꼬박 나온다. 토우코씨의 말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2종류 2속성이 있어서, 창조하는 자와 찾는 자, 사용하는 자와 파괴하는 자로 나뉜다고 한다. 미키야군에게 창조하는 자로서의 재능은 없군, 이라고 딱 잘라 말하면서도, 토우코씨는 어째서인지 나를 고용해주었다. 찾는 자로서의 재능이 있대나 어쨌대나. 「──늦어, 코쿠토」 옆방에서 그런 재촉이 들려온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커피메이커에는 시커먼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 「어제로 여덟 명 째가 되던가. 세상에서도 슬슬 관련성을 알아차려도 될 텐데 말이야」 재가 된 담배를 비벼 끄면서, 갑자기 토우코씨가 말을 꺼냈다. 최근에 연속 되고 있는 여고생의 투신자살에 대한 이야기겠지. 금년 여름은 단수(斷水)라는 괴로운 체험도 없었으니, 토우코씨가 좋아하는 비참한 화제거리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을 테니까. 「여덟 명 째……? 어라, 여섯 명이 아니었었나요?」 「네가 홀려있는 사이에 늘어났다구. 6월부터 시작해서, 달마다 평균 세 명인가. 앞으로 3일 이내에 추가로 한명이 나올려나」 토우코씨가 불건전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흘끗, 달력에 눈길을 주자, 8월은 앞으로 3일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3일……? 무언가, 그곳에 걸리는 점이 있었지만, 의문은 곧 의식의 바닥으로 가라앉아갔다. 「하지만, 관련성은 없다는데요. 자살해버린 여자애들은 모두 학교도 다르고, 친구관계도 아니었다고 하는데. 경찰이 정보를 은폐하고 있는 것뿐인지도 모르겠지만」 「비뚤어진 소리를 하네. 코쿠토 답지 않은걸」 야유하듯, 토우코씨가 입가를 치켜 올렸다. 안경을 벗고 있으면, 이 사람은 마음씨가 한없이 고약해진다. 「하지만 유서가 공개되지 않았잖아요. 여섯 명, 아니 여덟 명인가요? 그만큼이나 되는 숫자라면, 한명쯤은 유서 같은 것을 공개해도 될 텐데, 그것을 계속 숨기기만 하고 있다. 이건 은폐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관련성이야. 아니 공통점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여덟 명중에서, 태반이 사망자 스스로 뛰어내리는 현장을 복수의 사람들이 보았고, 그녀들의 사생활에서 아무런 문제도 찾아볼 수 없었어. 약을 하고 있었다던가, 괴상한 종교에 빠져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극히 개인적인, 개인 자신에게 불안을 안고서 자살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그러니까 경찰도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거야」 「……유서는 공개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준비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반신반의하면서 그렇게 이야기하자, 토우코씨는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곳에는 무언가 모순이 있다. 커피 컵을 들고, 그 씁쓸함을 음미하며 머리를 굴려본다. 유서가 없는 것은 어째서일까. 유서를 썼다면, 사람은 죽지 않는다. 유서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미련'이다. 죽음을 피하려하지 않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자살할 때, 그 이유로서 남기는 것, 그것이 유서일 터. 유서가 없는 자살. 유서를 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이 세상에 아무런 의견 없이, 순수하게 사라져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자살이다. 완전한 자살이란 것은 유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그 죽음조차 밝혀지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완전한 자살이 아니다. 사람의 눈에 띄는 죽음은, 그 자체가 유서가 되어버린다. 남기고 싶은 것,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행동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유언은 준비 되어 있는 게 도리다. 그러면 어떻게 된 걸까? 그것과는 다른 것을 이용한다고 한다면───제3자가 그녀들의 유서를 가지고 갔다던가. 아니, 그러면 자살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면 무언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한가지다. 문자 그대로, 그것은 사고였던 것은 아닐까. 그녀들은 애초에 죽을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유서를 쓸 필요도 없다. 잠깐 뭔가 사러 나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과 같은 경우라면. 어젯밤, 시키가 중얼거렸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잠깐 뭔가를 사러 나왔다가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린 이유를 짐작 할 수 없었다. 「미키야, 투신자살은 여덟 명으로 끝이야. 그 뒤로는 한동안 없을 테고」 폭주하기 시작하던 나의 사고(思考)를 제지하듯, 시키가 대화에 끼어들어왔다. 「끝났다니, 알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되물어 버렸다. 시키는 먼 곳을 바라보면서 아아, 하며 끄덕였다. 「보고 왔으니까. 날고 있는 것은 여덟 명이었어」 모양 좋은 작은 입술이 그렇게 속삭였다. 「호오, 그 빌딩에 그만큼 있었던 건가. 너는 처음부터 사람 수를 알고 있었던 거군」 「응. 그 녀석은 처치했지만, 그 여자애들은 한동안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야. ──저기, 토우코. 아무생각 없이 하늘을 날아버리면, 인간이란 것은 그런 말로를 향하게 되어버리는 존재인 걸까?」 「어떻게 될까. 개인차가 있으니까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과거에 인간의 힘만으로 비행을 시도해서 성공한 자는 없어. 비행이란 말과 추락이란 말은 연결되어있지. 그러나 하늘에 홀려버린 사람일수록 그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 결과, 죽은 뒤에도 구름 위를 목표로 비행하는 처지가 되어버리지. 지상으로 떨어지는 일도 없이, 허공에 잠겨 가는 것처럼」 토우코씨의 대답에 시키는 납득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화가 나있다. 하지만, 무엇에? 「죄송하지만, 무슨 말인지 통 못 알아듣겠는데요」 「응? 아니, 그 후죠우 빌딩의 유령이야기야. 어찌 됐던 간에, 그것이 실체였었는지, 단순한 이미지였었는지는 실물을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지. 그래서 시간이 나면 보러가려고 생각했었는데, 시키가 죽여 버렸다니, 확인할 방법이 없어」 ……아아, 역시 그쪽 이야기인가. 안경을 벗은 토우코씨와 시키라는 조합은 대개 이런 오컬트 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키가 후죠우 빌딩 옥상에 떠있는 소녀를 봤다, 라는 이야기는 들었겠지. 그 이야기에는 이어지는 게 있는데, 소녀의 주변에는 사람형체를 한 것이 쉬지 않고 날아다니고 있었다는 거야. 후죠우 빌딩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으로 볼 때, 그곳에 일종의 그물이 쳐져있는 게 아닌가하고 이야기하던 중이었어」 이야기의 기발함과 난해함은 점점 그 농도가 진해지고 있어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런 이쪽의 얼굴빛을 읽었는지, 토우코씨는 단순하게 정리해 주었다. 「곧, 후죠우 빌딩에는 한사람의 떠있는 인간이 있고, 그 주변에는 투신자살해버린 소녀들의 모습이 있었어. 그 소녀들은 유령 같은 존재겠지. 이야기하자면 그것뿐인, 간단한 구조야」 하아, 하고 일단 끄덕여본다. 괴담의 요점은 알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나는 사건이 다 끝난 뒤에 관계하고 있는 것 같다. 아까의 시키의 말을 생각하면, 시키가 그 유령이란 것을 처치해버린 것이겠지. 토우코씨와 시키를 서로 알게 한지 두 달. 나는 이쪽 관련 이야기는 언제나, 해결 된 뒤의 이야기만을 듣는 입장이 되었다. 두사람과는 다르게 평범한 자신으로서는 그쪽의 이야기에는 관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무시당하는 것도 어째 따분한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어느 쪽에도 관련되지 않은 입장은 딱 좋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말하길, 이런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던데. ◇ 「어쩐지, 그렇게 들으니 싸구려 소설 같네요」 그렇지? 라며 토우코씨는 동의했다. 시키만이 노기어린 시선으로, 곁눈질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 내가 뭔가 시키를 화나게 하는 짓을 한 걸까. 「어라? 하지만, 시키가 처음에 유령을 봤다는 것은 7월 초였지요? 그러면 그 무렵의 후죠우빌딩에 있던 것은 네 명이었던 건가」 확인을 위해서 당연한 이야기를 해보자, 시키는 신경질적인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저었다. 「여덟 명. 처음부터 날고 있던 형체는 여덟 개였어. 말했잖아. 여덟 명 이상 뛰어 내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녀석들의 경우에는, 순서가 반대였으니까」 「그건 처음부터 여덟 명의 유령이 보였다는 건가? 그 뭐냐, 그 언젠가의 미래를 보는 아이처럼」 「설마. 나는 정상이야. 그쪽의 공기가 이상한 것뿐이지. 그렇지,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이 딱 마주치고 있다는 느낌이라서 이상했어. 그래서……」 애매한 시키의 말을, 토우코씨가 곧바로 받아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그곳은 시간이 기울어져 있는 거야. 시간의 경과는 한 종류가 아니야. 희미해져 갈 때까지의 거리는, 그것자체부터 모든 것에 불균등해. 그렇다면 인간이라고 하는 한 고체와, 그 한 고체가 가지고 있는 기억에도 엷어져 가는 시간의 차라는 것이 있는 것이 도리겠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나? 아니지? 기억하고 있는 자(관측자)가 남아있는 한, 모든 것은 무(無)로 갑자기 소실되지 않아. 무한히 엷어져 가는 거야. 인간의 기억, 아니, 기록인가. 그 관측자가 그것을 둘러싸는 환경이었던 상황에서, 그녀들처럼 특이한 인종은 사후에도 환상으로서 거리를 활보하지. 유령이라고 불리는 현상의 일부가 이거야. 이 환상을 보게 되는 사람은, 그 기록의 일부를 공유하는 자……죽은 인물의 친구나 육친이 되고. 시키는 예외지만. 뭐어, 그런 『기록뿐인 시간의 경과』가 존재하는데, 그 빌딩의 옥상은 그것이 늦어. 그녀들의 생전의 기록이, 아직 본래의 그녀들의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그 결과, 기억만이 아직 살아있는 거지. 그 장소에 환상으로서 보이는 것은, 지극히 느리게 경과되고 있는 소녀들의 행동과 현실인 거라구」 토우코씨는 거기서 몇 번 째 인가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요약하자면, 무언가가 없어져도 그 무언가를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한, 그것이 없어진 것은 아니며,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으로, 살아있는 것이라면 눈에 보여 버린다, 라는 말일까. 그건 마치 환각이다.──아니, 토우코씨 본인이 『환상』이라고 바로잡은 것은, 그것이 역시 원래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겠지. 「이치설명은 됐어. 그런 것에 해는 없어. 문제는 그녀석이잖아. 반응은 있었지만, 본체가 있는 한, 다시 반복 해버린다구. 미키야를 지키는 것, 이제 난 사양 하겠어」 「동감이야. 후죠우 키리에(巫條霧繪)의 뒷처리는 내가 하지. 너는 코쿠토를 바래다주면 돼. 코쿠토의 퇴근시간까지 다섯 시간정도 남아 있어. 잘 거라면 그쪽 바닥에서 자도 좋아」 토우코씨가 가리킨 바닥은, 최근 반 년 간 한번도 청소하지 않아서, 휴지조각이 소각로 속처럼 수북이 쌓여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시키는 그것을 무시한다. 「그래서, 결국. 그 녀석은 무엇이었던 거지?」 담배를 문 마법사는, 흐음, 하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발소리도 없이 창가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밖을 바라본다. 이 방에는 전등이 없다. 실내는 밖의 햇빛만으로 조명을 대신하기 때문에, 낮인지 저녁인지 불분명하다.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창밖의 풍경은 확실한 낮이었다. 토우코씨는 여름 한낮의 길거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에는, 그녀도 비행하던 부류였던 거겠지」 담배연기가 하얀 햇살에 동화되어간다. 창밖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뒷모습. 하얗게 흐려지는 신기루처럼. 「코쿠토.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은 무엇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하지?」 갑작스런 질문에, 멍해져있던 의식이 되돌아왔다. 높은 곳이라면, 어렸을 적에 도쿄타워에 올라갔던 것뿐이다. 그 때 무엇을 생각했었는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자신의 집을 찾아본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정도만이 기억날 뿐이다. 「……그, 작다, 인가요?」 「그건 핵심을 꿰뚫고 지나가버린 것 같은데」 ……정나미 떨어지는 반론이 돌아왔다. 정신 차리고 다른 것을 연상해본다. 「……글쎄요. 연상되는 것은 별로 없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에는 압도되어 버리니까요」 아까보다 본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겠지. 토우코씨는 응, 하고 살짝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역시 시선은 창 밖을 향한 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장관이야. 보잘것없는 풍경조차 멋진 풍경으로 느껴지지. 하지만 자신이 있는 세계를 한눈에 보았을 때에 느끼는 것은 그런 충동이 아니야. 부감(俯瞰)의 시계(視界)에서 얻을 수 있는 충동은 단 하나──」 충동, 이라고 입 밖에 내고서, 토우코씨는 잠깐 동안 말을 끊었다. 충동은 이성이나 지성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다. 충동이란 것은, 감상처럼 자신의 안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덮쳐오는 것이다. 설령 본인이 그것을 거부하려한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덮쳐오는 폭력 같은 인식. 그것을 우리들은 충동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부감의 시계가 초래하는 폭력이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멀다', 라는 거야. 너무나 넓은 시계(視界)는 역으로 세상과의 격차를 명확하게 만들어버리지. 인간은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던 것들이 없으면 마음을 놓지 못해. 매우 정교한 지도가 있어서, 자신이 어디어디쯤의 여기에 있다, 라는 사실을 알아도, 그것은 단순한 지식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잖아? 우리들에게, 세계라는 것은 피부로 느껴지는 정도의 주위에만 존재하는 거야. 뇌가 인식하고 있는 지구의, 나라의, 도시의 연결부 같은 것을, 우리들은 실감 할 수 없어. 그 연결부에 가지 않으면 말야. 그리고 실제로, 그 인식방법에 잘못된 점은 없어. 하지만 너무나 넓은 시계(視界)를 가져버리면, 그것에 어긋남이 생겨버려. 자신이 지금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방 10미터의 공간과 자신이 내려다보고 있는 사방 10킬로미터의 공간. 둘 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지만, 보다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은 전자라는 거지. 봐, 여기서 또 모순이 생겨나잖아? 원래, 자신이 체감할 수 있는 좁은 세계보다, 자신이 보고 있는 넓은 세계 쪽을 『살고 있는 세계』라고 인식하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작은 세계에 자신이 있다고 하는 실감이 들지 않아. 어째서일까. 그것은 실감이 언제나 본인의 주위에서 얻어지는 정보에 우선되는 것이기 때문이야. 여기에 지식으로서의 이성과 경험으로서의 실감이 서로 마찰하고, 곧 어느 한쪽이 닳아져서, 의식의 혼란이 시작되는 거지.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어째서 작은 걸까. 저 곳에 내 집이 있다니 상상도 할 수 없어. 저 공원은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던가. 저런 곳에 저런 건물이 있었던 것은 몰랐어. 이것은 마치 모르는 거리 같아. 어쩐지, 아주 먼 곳까지 와버린 것 같다──너무 높은 시점은 그런 실감이 솟아나게 만들어버려. 먼 곳도 무엇도, 지금도 그 본인은 분명, 거리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는데도」 높은 곳은 먼 곳이다. 그것은 거리로 판단해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토우코씨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겠지. 「그 말은, 높은 곳에서 무언가를 계속 보는 것은 좋지 않은 건가요?」 「비약이 심한데. 옛부터 하늘은 다른 세계라고 인식되고 있었어. 난다는 일은, 곧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것이고. 문명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다른 의식에 물들어버리지. 문자 그대로 정상적인 의식이 고장나버리는 거야. 무엇보다, 제대로 된 인식의 프로텍트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악영향은 받지 않겠지. 확실한 기반이 있으면 문제는 없어. 지상으로 돌아오면 정상으로 되돌아오니까」 ……말하자면, 학교 옥상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봤을 때, 갑자기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 적이 있다. 물론 그건 장난이다. 실행할 생각 같은 것은 요만큼도 없지만, 명백히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런 생각이 떠올라버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개인차가 있다고 토우코씨가 말했지만, 높은 곳에 있다가 떨어지는 일을 이미지하는 것은 그렇게 드문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일시적이지만, 사고(思考)가 미쳐버린다는 건가요?」 떠오른 감상을 이야기하자, 토우코씨는 아하핫, 하며 마른 웃음을 흘렸다. 「터부(taboo)를 몽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야, 코쿠토.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며 기뻐하는 대단한 자위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단지, 그렇지…… 지금 것은 조금 가깝겠군. 중요한 것은 그 장소 외에는, 그 장소에 관계되는 금기를 향한 유혹이 오지 않는다 라는 것일까.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의 너의 예는 의식이 미쳐 있다는것이 아니라, 마비되어있는 거라고 생각해」 「토우코, 말이 길어」 더 이상 못 참겠다, 라고 하듯 시키가 끼어든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본제에서 어긋나버린 것 같다. 「길지는 않아. 아직 기승전결로 하자면 두 번째야」 「나는 '결'만 듣고 싶다구. 너하고 미키야의 잡담을 듣고 있기는 싫어」 「시키……」 좀 심하지만, 정당한 의견이었다. 한마디도 없는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시키의 불평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의 풍경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보통의 시점은 뭐야. 걷고 있을 때도, 우리들은 지면보다 높은 시점을 가지고 있잖아」 트집을 잡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시키의 태도와는 반대로, 지금의 발언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인간의 눈은, 분명히 지상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풍경은 대체로 내려다볼 때의 그것이 비칠 때도 있을 테니까. 그런 시키의 말에, 토우코씨는 좋은 말이야, 라면서 끄덕였다. 아무래도 결론으로 들어가 줄 것 같다. 「하지만, 네가 수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면도, 불확실한 각도를 이루고 있어. 그리고, 그것들을 포함해도 통상의 시계(視界)는 부감(俯瞰)이라고 부르지 않아. 시계(視界)라는 것은 안구가 받아들이는 영상이 아니라, 뇌가 이해하는 영상이지. 우리들의 시계(視界)는 우리들의 상식에 의해서 보호되고 있으니, 자신의 키만큼의 높이로는 높다고는 느끼지 않으며, 그것이 상식이기까지 하지. 거기에 높다고 하는 개념은 없어. 그러나 그 반면, 인간은 누구나 부감의 시계에서 살고 있지. 신체적인 관측으로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관측으로서. 그 개인차가 제각각이야. 팽대한 정신만큼 보다 높은 것을 목표로 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상자를 이탈하는 일은 없어. 사람은 상자 속에서 생활하는 존재고, 상자 속에서 밖에 생활 할 수 없는 존재야. 신의 시점을 가져서는 안돼. 그 선을 넘으면, 저런 괴물이 되지. 환시(幻視)가 현사(現死)로 바뀌면서, 어느 게 어느 쪽인지 애매하게 되서, 결과판별이 힘들어지게 돼」 그렇게 말을 잇는 토우코씨 본인도, 지금은 하계(下界)를 내려다보고 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 문득, 꿈에서 보았던 것을 생각해냈다. ──나비는 최후에는 추락해버렸다. 그녀는, 나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았다면, 좀더 우아하게 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 부유하듯이 날갯짓을 했다면, 좀더 오래 날 수 있었을 테지. 하지만 난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비는, 부유하는 자신의 가벼움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날았다. 떠있는 것을 포기하고. 거기까지 생각하고, 자신이 이런 시적인 인간이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가의 토우코씨가 담배꽁초를 밖으로 던졌다. 「후죠우 빌딩의 흔들림은, 그녀가 보고 있던 세계인지도 몰라. 시키가 느꼈던 공기의 차이는 상자 안과 밖을 구별하는 벽이 아니었나 하고 추측할 수 있어. 그것은 사람의 의식만이 관측할 수 있는 불연속면이야」 토우코씨의 말이 끝나자, 시키는 겨우 기분 나쁜 듯한 태도를 풀었다. 흥, 하고 숨을 내쉬고 시선을 허공에 띄우고 있다. 「불연속면이라. 어느 쪽이 난류고 어느 쪽이 한류였던 걸까, 그 녀석에게 있어서」 심각한 듯한 대사와는 반대로, 시키는 그것에는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토우코씨는 똑같이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물론, 너에게 있어서의 반대겠지」 라고 대답했다. →/3 ───목덜미의 뼈가 찡, 하고 울린다. 떨림은 바깥공기의 추위에서 오는 것일까, 기분에 따른 것일까. 판별되지 않는 그것을 내버려두며, 시키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걸어갔다. 후죠우 빌딩에 인기척은 없다. 오전 2시, 하얀빛의 전등만이 맨션 안의 통로를 비추고 있다. 크림색의 벽은, 완벽한 빛에 비추여져 통로의 안쪽까지 이어짐이 보였다. 어둠을 완벽하게 불식시킨 인공의 빛은, 역으로 인간미가 없어서 기분이 나쁘다. 카드체크식의 현관을 그냥 지나치고서, 엘리베이터에 올라선다. 안은 아무도 없다. 안에는 거울이 붙어있어서, 이용자의 모습을 비춰 보이고 있었다. 천총색의 기모노 위에 검은 가죽점퍼를 걸친, 나른한 눈매를 한 인물이 그곳에 있다.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멍한 그 눈동자. 시키는 거울에 비친 자신과 마주한 채로, R버튼을 눌렀다. 조용한 기동음과 함께, 시키의 주위세계가 올라간다. 기계장치의 상자는, 수초도 걸리지 않아 옥상에 다다르겠지. 잠깐 동안뿐인 밀실. 지금 이 밖에서 무엇이 일어나려해도 시키에게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관계할 수 도 없다. 그 실감이, 공허했어야 할 마음에 조금 스며들었다. 이 작은 상자만이, 지금은 자신이 실감해야할 세계.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린다. 그 앞은 일변하여, 불빛이 없는 공간이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만이 있는 작은 방에 나오자, 시키를 남겨두고 엘리베이터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전등도 없어, 주위는 숨 막힐 정도로 어둡다. 발소리를 내며, 작은 방을 횡단하여,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새까만 어둠이, 혼탁한 어둠으로 바뀐다. 눈앞에 한 가득 거리의 야경이 날아든다. 후죠우 빌딩의 옥상은, 특징이 없는 모습이었다. 드러난 콘크리트가 평평하게 계속 이어지는 바닥과, 그 주위를 둘러싼 그물눈 펜스. 지금까지 시키가 있던 작은 방 위에는 급수탱크가 있을 뿐, 그밖에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들어 진 것 자체는 아무런 특이점도 없는 옥상이다. 단지, 그 풍경만이 이질적이었다. 주위의 건물보다 10층은 높은 옥상으로부터의 야경은, 아름답다고 하기보다, 어쩐지 불안하다. 가느다란 사다리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어두운, 빛이 닿지 않는 심해 같은 밤거리는, 분명 아름답다. 거리의 이곳저곳에 빛나는 불빛은 심해어의 반짝임과 닮아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세계의 전부라고 한다면. 분명 지금, 세계는 잠이 들어있다. 어쩌면 영원할지 모를, 하지만 아쉽게도 일시적인. 그 정적은 어떤 추위보다 심장을 조여들게 하여, 아픔을 느낄 정도다─── 그런 눈 아래의 모습과 뒤지지 않을 만큼, 맑게 개인 밤하늘도 뛰어난 모습이었다. 거리가 심해라고 한다면, 이쪽은 단지 순수한 어둠. 그 어둠 속에 보석함을 흩뿌린 것처럼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달은 구멍. 밤하늘이란 검은 화선지에 뚫려있는, 유난히 큰 구멍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저것은 태양의 거울 같은 것이 아니라, 저쪽편의 풍경이 엿보이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시키는 료우기가(家)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달은 다른 세상의 문이라고 한다. 그, 신대(神代)이래로 마술과 여자와 죽음을 등에 지고 있는 달을 뒤로하고, 하나의 사람의 형체가 부유하고 있었다. 그 주위에 여덟 명의 소녀를 날게 하면서. ◇ 밤하늘에 떠오른 하얀 형체는 여자의 것이다. 드레스로 착각할 만큼 화려한 흰색 의상과,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 옷자락에서 엿보이는 가느다란 수족은, 이 여자를 한층 우아하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가는 눈썹과 냉담함에 흐려진 눈동자는, 미인 가운데서도 빼어난 미인의 부류에 들어가겠지. 연령은 20세전반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유령 비슷한 상대에게 생명으로서의 연령이 적용될 것인가는 의문이지만. 하얀 여자는, 그렇다고 유령이라 할 정도로 불확실하지는 않다. 실제로 그곳에 존재한다. 유령이라면, 그것은 그녀를 중심으로 밤하늘을 배회하고 있는 소녀들 쪽이겠지. 둥실둥실 끊임없이 허공을 방황하고 있는 소녀들은 날고 있다기보다는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그 모습도 불확실해서, 때때로 형체 자체가 투명해진다. 지금, 시키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은 하얀 여자와, 그것을 지키려는 듯 밤하늘을 헤엄치는 소녀들이다. 그 일련의 광경은 기분 나쁜 느낌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흠───분명히, 이 녀석은 마적(魔的)이다」 시키는 조소하듯 중얼거린다. 이 여자의 아름다움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다. 특히나 검은 머리카락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 비단실을 한 올씩 빗은 것처럼 윤기가 있었다. 바람이 강했더라면 흑발이 휘날리는 모습은 유현의 미를 이루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겠지」 시키의 중얼거림을 알아차렸는지, 그녀는 시선을 아랫 세상으로 내렸다. 이, 지상 40미터를 넘는 후죠우 빌딩의 옥상보다 4미터나 높은 곳에 있는 그녀와, 올려다보는 시키의 시선이 교차한다. 오가는 말 같은 것도 없을 뿐더러, 서로 통할 언어조차 없다. 시키는 겉옷의 가슴 안쪽에 손을 넣어서 단도를 꺼냈다. 날 길이가 6치정도 되는, 칼이라기보다는 칼날 그 자체인 흉기를. 상공으로부터의 시선에 살의가 일어난다. 곧, 하얀 옷자락이 흔들렸다. 그녀의 손이 흐르듯 움직이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시키에게 향한다. 그 가녀린 수족이 연상시키는 것은 백색이 아니다. 「────뼈인가, 백합이군」 바람 없는 밤의 목소리는, 허공에 오랫동안 향기를 남기었다. 가리킨 손끝에는 살의(殺意)가 어려 있다. 하얀 손끝은 정확히 시키의 모습을 향했다. 비틀, 하고 시키의 머리가 흔들린다. 가느다란 몸이 쓰러질 듯이 발을 헛딛는다. 미약하게, 단 한번. 「───────」 머리 위의 여자는, 그것에 약간 놀랐다. 너는 날 수 있다, 라는 암시가 이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상대의 의식 그 자체에게『날고 있었다』라는 인상을 박아 넣는 그것은, 암시의 영역을 넘어서 세뇌의 영역에 이르러 있다. 저항은 할 수 없다. 인간은 결과적으로 정말 그것을 실천해버리던가, 그것을 믿지 못하지만, 날 수 있다고 하는 확고한 실감에 두려움을 느끼며, 서둘러 옥상에서 도망치게 하는, 피할 수 없는 암시. 그러한 암시를, 시키는 가벼운 현기증만 느끼고서 이겨냈다. 「──────」 접촉이 얕았던 것일까, 라고 의심하며, 그녀는 다시 한번 암시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좀더 강하게. "날 수 있다"라는 얕은 인상이 아닌, "날아라"라는 확고한 인상으로서.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시키는 그녀를 보았다(視た). 양다리에 두 개, 등에 한 개. 중심에서 약간 왼쪽의 흉부에 점 한 개. ───죽음이라는 이름의 절단면이 확연히 보인다. 노릴 거라면 그중에서도 가슴부근이 낫다. 그곳이라면 즉사다. 설령, 환상이건 무엇이던 간에, 살아 있는 상대라면 신이라 하더라도 죽여 보겠어. 시키는 오른손으로 단도를 들었다. 자루를 역수로 쥐고, 상공의 상대에게로 눈동자를 맞춘다. 그 순간, 다시 한번 시키의 마음속에 충동이 일어났다. ……날 수 있어. 나는 날 수 있어. 예전부터 하늘이 좋았어. 어제도 날고 있었어. 아마도 오늘은 더욱 높이 날 수 있을 거야. 그것은 자유롭게. 편안하게. 미소처럼. 빨리 가지 않으면. 어디로? 하늘로? 자유로? ────그것은 현실에서의 도피. 드넓은 하늘로의 동경. 중력의 역작용.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어. 무의식하의 비행.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라! 「농담」 그렇게 중얼거리곤, 시키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왼손을 들어올렸다. 유혹은 시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미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그런 동경심은, 내 안에 없어. 살아 있다는 느낌이 없으니까, 삶의 괴로움 따위도 알 리가 없지. 아아, 사실 너 따위 어찌되든 상관없어」 ────그것은 노래하는 듯 한 중얼거림. 삶에 붙어 다니는 희비교차와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속박을, 시키는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고통에서의 해방 같은 것에 매력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녀석을 데려간 상태로는 곤란하지. 의지할 곳으로 삼은 것은 이쪽이 먼저니까, 되돌려 받겠어」 아무것도 없는 왼손이 허공을 쥔다. 그대로 뒤쪽으로 잡아당긴 왼손에 끌려오듯이, 여자와 소녀들의 형체가 쭈욱-, 하고 시키에게로 이끌려간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떼가 바닷물 채로 육지로 끌어올려지는 것처럼. 「─────!」 여자 형상이 변한다. 그녀는 더욱 힘을 모아서 의지를 시키에게로 내던졌다. 말이 통했다면, 그녀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겠지. 떨어져, 라고. 그 원망을 깨끗이 무시하며, 시키는 무서운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네.가. 떨.어.져」 급속하게 낙하해온 여자의 가슴에, 단도가 꽂힌다. 과일을 나이프로 찌르듯 간단히, 찔린 자가 황홀할 정도로 예리하게. 출혈은 없다. 여자는 가슴에서 등 뒤로 꿰뚫은 칼날(刃物)의 쇼크로 인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꿈틀하고 한번 경련할 뿐이다. 그 유체를, 시키는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펜스의 바깥───밤거리의 한가운데로. 여자의 몸은 펜스를 빠져나가며, 소리 없이 낙하해갔다. 떨어지는 순간에서 조차, 흑발은 휘날리지 않고, 하얀 의상만이 바람에 부풀며 어둠 속에 녹아간다. 그것은 심해의 바닥에 가라앉아가는, 하얀 꽃 같았다. ◇ 그리고, 시키는 옥상을 떠났다. 머리위에는, 아직도 허공을 떠도는 소녀들의 모습이 남아있다. / 4 … 가슴에 비수가 꽂혀서 눈을 떴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람의 가슴을 손쉽게 꿰뚫다니, 그 아이는 대단한 힘을 가졌던 거겠지. 하지만, 그것은 광폭한 힘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움직임 없이, 뼈와 뼈의 사이, 살과 살의 틈을 정확하게 관통한 것이다. 그, 두려울 정도의 일체감. 온몸을 훑고 지나 가는 죽음의 실감. 심장이 찔려 터져나가는 소리와 소리와 소리. 나에게는 아픔보다 그 실감이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공포이면서,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열락(悅樂)이었으니까. 등골에 퍼지는 오한은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라,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울고 싶을 정도의 불안과 고독, 그리고 삶으로의 집착이 그곳에 있기에,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무섭기 때문도, 아프기 때문도 아니다. 매일 밤, 내일 아침에 일어나도록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잠드는 나조차도 느낀 적 없는, 죽음의 체험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아마도, 나는 영원히 이 오한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 오히려, 나 자신이 이 감각을 사랑해버린 이상은───. … 짤깍,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오후. 닫힌 창문에서 햇님의 빛이 비쳐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진찰시간이 아니니까, 면회인 일까. 나의 병실은 독실이라, 다른 사람은 없다. 있는 것은 넘칠 듯이 비쳐 들어온 햇빛과, 바람에 흔들릴 일 없는 크림색 커튼, 그리고 이 침대뿐이다. 「실례. 후죠우 키리에란 사람이 당신인가?」 들어온 사람은 여성인 것 같다. 아주 허스키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의자에도 앉지 않고, 내 쪽까지 다가왔다. 멈춰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선은 차가운 느낌이 난다. ……이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분명 나를 파멸시킨다. 그래도 나는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면회 온 사람은 수년만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나의 숨통을 끊으러 온 사신이라 하더라도, 되돌려 보낼 수 는 없다. 「당신은 나의 적이지?」 으응, 하고 여성은 끄덕였다. 나는 의식을 집중해서, 어떻게든 이 방문객의 모습을 보려고 노력한다. ───강한 햇빛 탓일까, 커다란 실루엣밖에 알 수 없다. 겉옷은 입지 않았지만, 주름하나 없는 수트차림이 학교선생님 같아서 조금 안심한다. 단지 그 하얀 셔츠에 진한 오렌지색 넥타이는 너무 튀는 것이, 옥에 티였다. 「그 애와 아는 사람? 아니면 본인?」 「아니, 당신이 덮친 사람과, 당신을 덮친 사람의 지인이야. 공교롭게도 이상한 사람들과 관계했군. 당신도──아니, 서로 운이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여성은 가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곧 도로 집어넣었다. 「병실에선 금연이었던가. 특히 당신은 폐를 앓고 있는 것 같아. 흡연은 독이 되겠지」 아쉬운 듯 이야기한다. 지금 것은 담배갑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담배엔 손댄 일이 없지만, 어쩐지 이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아니, 분명히 리저드 펌프스를 신고서 백을 걸친 마네킹처럼 어울리겠지. 「나쁜 것은 폐만이 아니지? 그것이 원인이기는 하지만, 신체의 여기저기에 종양이 보여. 말단에는 육종이 시작됐고, 속은 더욱 심해. 멀쩡한 건 그 머리카락정도인가. 그런데도 잘도 체력을 유지하고 있군.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까지 병마에 먹히기 전에 사망했을 텐데 말이야. ───몇 년이나 됐지, 후죠우 키리에?」 입원 생활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답할 수 없다. 「그런 것 몰라. 세는 것은 포기 했어」 왜냐하면 의미가 없는걸. 나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나갈 수 없으니까. 여인은, 그런가 하고 짧게 중얼거렸다. 동정도 혐오도 없는 그 울림이, 싫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은혜는 누군가에게서의 동정밖에 없다. 그것조차도, 이 사람은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키에게 절단된 곳은 괜찮은 건가? 이야기를 듣기론 심장의 좌심실에서 대동맥 중간까지라고 하니까, 이첨판 부근을 찔린 걸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굉장한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 말의 기묘함에, 곧 웃음을 흘려버렸다. 「이상한 사람이네. 심장을 잘리면, 이렇게 이야기 같은 것은 할 수 없잖아」 「맞는 말이야. 지금 것은 확인이야」 아아, 그런가. 내가 그 일본풍도 서양풍도 아닌 옷차림의 인물에게 당했던 존재인지 아닌지, 이 사람은 대화로 확인한 건가.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영향이 있을 거야. 시키의 눈은 강력해. 그게 이중존재였다고 하더라도, 붕괴는 곧 당신 본체에 다다르겠지. 그 전에 두세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발걸음을 했다는 얘기지」 이중존재……그 또 하나의 나에 대한 이야기일까. 「나는 떠있다는 당신을 본적이 없어. 정체를 알려주지 않겠어?」 「나로서도 알 수 없어. 내가 볼 수 있는 풍경은 이 창에서 보이는 풍경 뿐 인걸.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몰라. 계속 이곳에서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사계절을 채색하는 나무와 차례차례 입원해가는 사람들을. 목소리를 내보아도 들어주지 않고, 손을 내밀어보아도 닿지 않아. 이 병실 안에서, 나는 계속 괴로워 해왔어. 오랫동안 바깥 풍경을 미워해 왔어. 그런 행동은 저주라고 하잖아?」 「……흠, 후죠우의 피인가. 당신의 가문은 유서 깊은 순수혈통이야. 기도가 전문이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저주가 생업이었다고 보여. 후죠우(巫條)란 성도, 부정(不淨 : ふじょう)의 말바꿈인지도 모르지」 가문. 나의 집. 그것도 이미 몇 년이나 전에 끊겨버렸다. 내가 입원하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부모님과 동생은 사고로 죽었으니까. 그 뒤로 나의 의료비는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사람이 맡아주고 있다. 스님 같은 어려운 이름이라서, 어떤 사람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하지만, 저주는 무의식 하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당신은 대체 뭘 바란 거지?」 ……그런 거, 나로서는 알 수 없어. 분명 이 사람이라고 해서 알 수 는 없겠지. 「당신, 계속 밖을 바라보고 있었던 적이 있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의식이 두절되어 버릴 때까지 계속 바라보기만 했던 일이. ……나는 바깥이 싫고, 밉고, 무서웠어. 계속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했었어. 그러고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눈이 이상해졌어. 마치 저쪽 안뜰의 허공에 떠서, 밑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말야. 몸과 마음은 여기에 있고, 눈만이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감각. 하지만 나는 여기서 움직일 수 없어서, 결국에는 이 부근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 주위의 풍경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건가. 그렇다면 어떤 각도에서라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시력을 잃은 것은 그 무렵이었군?」 놀랐다. 이 사람은, 내 시력이 이젠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점점 세계가 하얗게 되어가고, 곧 아무것도 없어졌어. 처음에는 새까맣게 되었나 하고 생각했었지만, 아니었어. 아무것도 없어진 거야, 눈에 보이는 것은 말야. 하지만 그것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 왜냐하면, 나의 눈은 이미 하늘에 떠있는걸. 병원주위의 풍경밖에 보이지 않지만, 원래부터 나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아무것도──」 그쯤에서, 나는 기침을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던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으니까. 게다가 어쩐지 눈꺼풀이 뜨겁다. 「과연. 그래서 당신의 의식은 하늘에 있었다고 이야기 하는 건가. 하지만───그러면 당신은 어째서 살아있는 거지? 후죠우 빌딩의 유령이 당신의 의식이었다면, 당신은 시키에게 죽었어야했어」 그래, 나도 그것에는 의문을 품고 있다. 그 애……시키라고 불리는 것 같은데, 그 아이는 어떻게 나를 찌를 수 있었던 걸까. 그 곳의 나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대신에, 어떤 것에도 상처를 입을 수 없는데. 마치 저곳의 내가 진짜로 몸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간단하게 살해 당해버렸다. 「대답해. 후죠우 빌딩의 당신은, 진짜 후죠우 키리에였던거야?」 「후죠우 빌딩의 나는 내가 아니야. 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나와, 하늘에 있던 나. 그곳의 나는 나를 버리고 날아가 버렸어. 나는 자신에게 조차 버림받은 거야」 여인이 숨을 들이쉰다. 처음으로, 이 사람이 감정다운 것을 보였다. 「인격이 두 개로 나뉘었다───는 것 은 아니겠군. 원래부터 하나였던 당신에게 두 개의 그릇을 준 사람이 있어. ……하나의 인격으로 두 개의 몸을 조종하고 있던 것인가. 분명히 이런 건 유래가 없어」 말하자면,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 있는 나를 내버리고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의 나도 절대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그냥 공중에 떠있는 것뿐이었다. 창밖의 세계와 완전히 떨어져있는 나는, 아무리 원해도 그 거리를 돌파할 수는 없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도, 결국 우리들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겠지. 「───납득이 갔어. 하지만, 어째서 당신은 바깥세계를 환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 한거지? 그녀들을 떨어뜨려버릴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들───아아, 그 부러운 여자아이들. 그 애들에게는 가여운 짓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애들이 멋대로 뛰어내린 것뿐이니까. 「후죠우 빌딩의 당신은 의식체에 가까웠어. 그것을 이용했었군? 그 소녀들은 처음부터 날고 있었던 거지? 그것이 그녀들 꿈속의 이미지라고 하던, 실제로 비행능력이 있었다고 하건 간에 말이야. 몽유병자가 아닌 몽유비행자는 의외로 많지만, 그렇게 문제는 되지않아. 어째서일까. 그것은, 그들은 무의식 하가 아니면 절대 증상이 드러나지 않고, 무의식하에 있어야,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비행할 뿐, 정상시에는 날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기 때문이야. 그녀들은 그 가운데서도 더욱 특별했어. 피터팬은 아니지만, 유년기라는 것은 자칫하면 들뜨기 쉽지. 한두 명은 실제로 비행하고 있었겠지만, 태반은 의식만이 비행하고, 그런 꿈을 꾸었다는 감각에 지나지 않았을 테지. 그것을 당신은 의식시켰어. 그녀들의 그런 무의식 하에서의 인상을 현실로 되돌려서. 그 결과, 그녀들은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지. 아아, 물론 날 수 있고말고. 하지만 그것은 무의식 하에서의 이야기지. 사람 한 개체의 비행은 어려워. 나도 빗자루가 없으면 날 수 없어. 의식하고서 비행할 성공률은 3할 정도. 소녀들은 당연한 것처럼 날려고 했고, 당연한 것처럼 떨어졌지」 그래. 그 아이들은 내 주위를 날고 있었다.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나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단지 물고기처럼 떠돌 뿐이었다. 의식이 없다, 라고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그 아이들이 의식하게 만들면, 알아차려 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뿐인데, 어째서────. 「추운가, 떨고 있어」 여인의 목소리는 변함없다. 플라스틱처럼 아무런 풍미가 없다. 나는 오한이 멈추지 않는 몸을 끌어안았다. 「또 한 가지 물어보지. 당신은 어째서 하늘을 동경했지? 바깥세상을 미워하고 있었으면서」 그것은, 아마도─── 「하늘에는, 끝이 없으니까.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날아갈 수 있다면, 내가 싫어하지 않는 세상이 있을 거라 생각 했어」 그것은 찾았나,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오한은 멈추지 않는다. 몸은 누군가가 흔드는 것처럼 떨리고, 눈꺼풀은 한층 뜨거워져있다. 나는 끄덕였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아침이 되면 눈을 뜰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어. 내일은 살아있을까 하고 겁을 먹었고. 잠이 들면, 이제 일어날 체력은 없다고 알고 있었어. 얽혀오는 그물을 빠져나가는 것 같은 나의 일상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밖에 없었어.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지. 그런 허무한 나날에는 죽음의 냄새밖에 없었고. 하지만 그 죽음의 냄새만이 살아가는 의지가 되었어. ……평상시의 나는 이미 빈 껍데기였으니까. 죽음과 직면한 순간밖에는,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없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삶보다 죽음을 연모하고 있다. 어디까지라도 난다. 어디라도 간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꼬마를 데려간 것은, 길동무인가」 「아니. 그 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어. 나는 삶에 집착해서, 살아있는 채로 날고 싶었어. 그와 함께라면 그것이 가능했을 테니까」 「……시키와 너는 비슷해. 코쿠토를 선택했을 때엔 구제할 방법이 있었어. 자신이 할 수 없는 삶의 실감을 타인에게서 구하는 것은, 뭐어 그리 나쁜 짓은 아니지만」 코쿠토. 그랬던가, 그 시키라는 아이는 그를 되찾기 위해서 온 것이었나. 구세주는 나에게 결정적인 사신이기도 했었구나. 하지만, 그것에 후회는 없다. 「그 사람, 어린애야. 언제나 하늘을 보고 있어. 언제나 올바르게 살고 있어.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어디에라도 날아갈 수 있어. 그래───나는, 그가 데려다줬으면 했었어」 눈꺼풀이 뜨겁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는 울고 있다.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정말로 그와, 어딘가에 갈 수 있었다면,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을까.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이루면 안 되는 꿈이기에, 그것은 이렇게도 아름답게, 나의 눈동자를 적시는 것이다──. ──그것은 이 수년간 내가 꾸었던, 단 하나의 꿈(幻想)이었다. 「하지만 코쿠토는 하늘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어. ……하늘을 동경하는 자일수록 하늘에는 가까이 갈 수 없다, 라는 건가. 얄궂은 일이군」 「맞아. 인간은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한가득 가지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 나는 떠있을 뿐이었어. 날지도 못하고, 떠있는 것 밖에 하지 못 했어」 눈꺼풀의 뜨거움은 사라졌다. 아마, 이 뒤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겠지. 지금 나를 지배하는 것은, 등골에 퍼지는 이 한기뿐이었다. 「시간을 뺐었군. 이게 마지막인데, 당신은 이 뒤로 어떻게 할 거지? 시키에게 입은 상처라면 내가 치료 해줄 수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 여자는 약간 눈썹을 찡그린 것 같다. 「……그런가. 도주에는 두 종류가 있어. 목적 없는 도주와, 목적이 있는 도주. 일반적으로 전자를 부유라고 부르고, 후자를 비행이라고 부르지. 당신의 부감풍경이 어느 쪽일지는, 당신 자신이 결정할 일이야. 하지만 만약, 당신이 죄를 의식해서 어느 쪽인가를 고른다면 그것은 잘못된 거야. 우리들은 등에 진 죄에 의해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길로 인해 죄를 등에 져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녀는 떠나갔다. 끝까지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알 수 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내가 취할 결말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는 날 수 없었다. 단지 떠있을 뿐이었으니까. 나는 약하기 때문에, 그 사람 말대로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유혹에도 이길 수 없다. 그 때───심장을 관통 당하던 순간에 느낀 섬광. 압도적일 정도였던 죽음의 격류와 삶의 고동.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아직 그런 단순하고 소중한 것이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것은 죽음.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이 공포. 있는 힘껏 죽음에 맞부딪혀, 삶의 기쁨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지금까지 멸시해왔던, 나의 생명이었던 모든 것을 위해서. 하지만 그 날 밤 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이겠지. 그 정도로 선명하면서도 강렬한 최후는, 이제 한동안은 바랄 수 없다. 바늘처럼, 검처럼, 벼락처럼 나를 꿰뚫었던 그 죽음은.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그것에 다다가려고 생각한다. 생각은 떠오르지 않지만, 나에게는 앞으로 며칠의 기한이 남아있으니까 괜찮다. 게다가 방법만은 이미 정해져있다. 말할 것도 없지만, 나의 최후는, 역시 부감에서의 추락사가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감풍경\ 해가 지고, 우리들은 토우코씨의 폐빌딩을 뒤로했다. 시키의 아파트는 이 근처지만, 내가 사는 집은 20분 가까이 전철에서 흔들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잠이 부족한지, 시키는 위태로운 발걸음을 하고 있지만, 내게 바싹 붙어서 걷고 있다. 「자살은 옳은걸까, 미키야」 갑자기, 시키는 그런 것을 물어왔다. 「……응, 어떨까. 예를 들면 내가 엄청난 레트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살아있기만 해도 도쿄의 모든 시민들이 죽어버린다고 하자. 내가 죽어서 모두를 구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아마 자살할거야」 「뭐야, 그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예가 될 수 없어」 「괜찮으니까 계속 들어봐.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도쿄 시민 전부를 적으로 돌리고서 살아가겠다는 배짱이 없으니까, 자살하는 거야. 그쪽이 편하잖아? 일시적인 용기와, 영구히 지속되지 않으면 안 되는 용기. 어느 쪽이 고통스러운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딴 얘기지만, 죽음은 달콤하다고 생각해. 그것이 어떤 결단 하에 있더라도 말야.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겠지. 그것은 부정할 수 없고, 반론도 할 수 없어. 왜냐하면 나도 약한 인간이니까」 ……하지만, 아마 지금 말한 것 같은 상황에서의 자기희생은 바른 것이고, 그 행위는 영웅으로 평가받겠지. 하지만, 틀리다. 아무리 바르고 훌륭하더라도, 죽음을 선택하는 일은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들은 아마, 아무리 보기 흉하고 잘못되었더라도, 그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꿋꿋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행한 결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아주 용기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쩐지 대단한 일 같이 느껴졌고,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서 입에 담는 것은 접어두었다. 「……에∼그러니까, 어쨌든 사람 나름이라는 것 아닐까」 일단 어중간한 말로 정리하자, 시키는 의심스럽다는 듯한 시선을 향해왔다. 「하지만, 너는 달라」 마치 이쪽의 마음속의 중얼거림을 들여다본 것처럼 시키는 말했다. 그것은 차가웠지만, 어딘가 열기가 있는 말이었다. 어쩐지 멋 적어져서,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큰 거리의 시끄러운 소리가 다가온다. 화려한 불빛과 혼잡함, 북적이는 자동차 라이트와 엔진소리. 넘쳐날 듯 한 인파와 잡다한 소리들. 큰길의 백화점군을 빠져나오면 역은 바로 앞이다. 그때, 시키는 딱 멈춰 섰다. 「미키야, 오늘은 자고가」 「하아? 왜, 갑자기」 괜찮으니까, 라며 시키는 손을 잡아끈다. ……물론 시키의 아파트는 가까우니까 편하긴 하지만, 역시 도덕상 자는 것은 꺼려진다. 「괜찮다니까. 시키의 방엔 아무것도 없잖아. 언제나 따분하고. 아니면 뭔가 용무라도 있어?」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말하는 것이니, 시키에게 반격의 기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키는 이쪽에 찬스가 있다는 듯, 비난 섞인 눈초리로 반론해왔다. 「스트로베리」 「하아?」 「하겐다즈의 스트로베리 두 개. 네가 전에 사와서 그대로 남아있어. 해치워버려」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네」 있다 있어. 시키의 집에 가던 도중, 너무나 더워서 사갔던 선물이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은 그런 물건을 사갔던 것일까. 이미 달력의 날짜는 9월이 되려하고 있는데. 뭐어, 그런 사소한 일은 아무래도 좋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시키에게 따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어쩐지 아니꼬운 일이기도 하니, 약간만 반격하기로 하자. 시키에겐, 그것을 이야기하면 짜증을 내면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약점이 있다. 어찌 되었던 간에 그것은 코쿠토 미키야의 진심에서 우러난 바램이기도 하지만, 시키는 아직 들어주지 않는다. 「할 수 없지, 오늘은 자고 갈게. 하지만 말야 시키」 응? 하고 시선을 돌린 시키에게, 나는 진지한 얼굴로 제안했다. 「해치워버려, 는 아니겠지. 그 말투만은 어떻게 좀 해줘. 넌 여자니까 말이야」 「──────」 여자아이, 란 단어에 반응하는 시키. 시키는 화가 난 듯이 고개를 픽 돌리며, 시끄러, 내 맘이잖아,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俯瞰風景/了 ◇ 그 날은 집에 돌아올 때 큰길을 통해서 오기로 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별일이다 싶을, 작은 변덕이다. 질리도록 보아온 빌딩들에 기억을 할당하는 일 없이 걷고 있자, 얼마 안 있어 사람이 떨어졌다. 그다지 들을 기회가 없는, '퍼걱'하는 소리. 빌딩에서 떨어졌으니, 죽은 것은 명백했다. 아스팔트 위에는 진홍색이 흘러간다. 그 속에서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긴 흑발과. 가느다란, 백색을 연상시키는 가녀린 팔다리. 그리고 형체 없는, 찌부러진 얼굴. 그 일련의 영상은, 낡은 페이지에 끼워진 뒤, 책 사이에 짓눌려 납작해져버린 꽃잎을 연상시켰다. 그것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졸음은, 역시 현실로 되돌아가게 되는 걸까. 몰려가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걷고 있자, 탁탁탁 하고 이상한 발소리를 내며 아자카가 따라왔다. 「토우코씨, 지금 거, 투신자살이었죠?」 「으응, 그런 것 같은데」……애매하게 대답한다. 정직히 말해, 거의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사자의 결의가 어떤 것이었다고 해도, 자살은 역시 자살로 취급된다. 그녀의 최후의 의지는 비행도 아니고 부유도 아닌, 추락이라는 단어로 매듭지어져 버렸다. 그곳에 있는 것은 허무함뿐이다. 흥미가 생길 리 없다. 「작년에는 많았다고 들었지만,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는 걸까요. 하지만 저는, 스스로 죽어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르겠어요. 토우코씨는 알겠어요?」 아아, 하고 또 애매하게 끄덕인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본래 있을 수 없는 환상을 바라보듯이 대답했다. 「자살에 이유는 없어. 그저, 오늘은 날지 못했던 것뿐이겠지」 ◇ -------------------------------------------------------------------------------- * 후죠우(巫條)가에 관하여 : 이름 그대로, 무녀(巫女)의 집안. 나나야(七夜)와 같이 자손에게 특이능력을 전수하는 집안이지만, 그 전승방식은 혈연을 통한 것이 아닌 기술 · 지식의 교수(敎授)이다. 후죠우의 성을 받은 여성은 눈이 멀게 된다. 현세가 보이지 않게 되는 대신에 저쪽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일까. 이 집안의 분가로, 히스이(翡翠)와 코하쿠(琥珀)의 집안이 존재 했다. 히스이들의 집안은 후죠우와는 달리, 자신의 혈연으로 능력을 계승한다. 히스이들의 모친이 금기를 깨는 바람에 집안에서 파문 당해, 히스이 · 코하쿠는 토오노 마키히사(시키와 아키하의 아버지)에게 끌려오게 되었다. [ 출처 : 月姬讀本 ] 참고적으로 츠키히메 독본(月姬讀本)에서는 巫淨(ふじょう)로 표기 되어 있다. 독본의 초판 발행이 2001년 5월 13일, 개정판 발행이 동년 9월 8일(현재 교정자가 소유 중인 것). 허공의 경계 초기 HP 공개 시 1장 부감풍경의 첫 기재가 1998년 10월, 완전판의 초판 발행 2001년 12월 30일, 제 3판 발행 2002년 2월 6일(역시 교정자가 소유 중인 것). 이후 드라마 시디 ~부감풍경~의 발매가 2002년 8월 9일인데, 소설이나 드라마에는 모두 巫條로 표기 되어 있다(가지 條(조)자는 일식한자라 약간 표기가 틀리지만). 아마도, 츠키히메와 허공의 경계에서의 ‘후죠우’라는 가문이 다르다는 건지, 단순한 실수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본적인 설정이 비슷하기에 주석에 기재하기로 했다. -------------------------------------------------------------------------------- [←|↑|→] -------------------------------------------------------------------------------- ────1995년 4월     나는 그녀를 만났다 / 살인고찰(전) -------------------------------------------------------------------------------- / 1 오늘도 밤에 산보를 하기로 했다. 늦여름치고는 선선해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아가씨, 오늘밤에는 빨리 돌아오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나에게, 내 시중을 들어주는 아키타카(秋隆)가 그런 당부의 말을 한다. 무뚝뚝하고, 억양 없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현관을 나섰다. 정원을 넘어 문을 지난다. 저택을 나서면 그 앞으로는 전등의 불빛은 없다. 주위는 어둠. 사람모습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심야. 시각은 곧 8월 31일에서 9월 1일로 바뀌려고 하는 오전 0시. 바람이 희미하게 불고 있어서,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이 쏴아- 하는 소리를 냈다. ───가슴속에, 기분 나쁜 이미지가 떠오르게 하려는 것처럼. 그런, 극도의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고요함 속의 산책이, 시키란 이름을 가진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어둠도 더욱 진해져간다.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걷는 것은, 자신이 혼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반대로 혼자라고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느 쪽이라 해도, 시시한 자문이다. 어찌하더라도 나는 혼자가 될 수 없으니까. ───큰 길을 걷다가, 좁은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올해로 열여섯이 된다. 학력으로 말하면 고교1학년으로,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립고교에 입학했다. 어차피 어느 학교에 가더라도 졸업하면 나는 집안에 붙박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학력은 무의미하겠지. 그럴 거라면 거리적으로 가까운 학교에 들어가서, 등교시간을 단축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결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골목길은 큰길보다 더욱 어둡다. 신경질적으로 점멸하고 있는 가로등이 하나 있을 뿐이다. 갑자기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라버렸다. 뿌득, 하고 나는 어금니를 깨문다. 나는 요즘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렇게 산보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그 남자가 머릿속에 떠올라버리니까. 고교생이 되어도 나의 환경에 변화는 없었다. 동급생이나 상급생이나,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태도로 잘 드러나는 거겠지. 나는 극도로 사람과의 접촉을 싫어한다. 어릴 적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좋아할 수 없었다. 정말 어쩔수 없는 것은, 나도 그 인간이기에, 자신조차도 싫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친절하게 대할 수 없다. ……특별히 싫어하거나 미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선 그렇게 알아주었다. 나의 그런 성격은 학교 내에 널리 알려져서, 한달 남짓 한 시간사이에, 나와 관계하려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도 조용한 환경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주위의 반감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로, 이상적인 환경을 손에 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동급생 가운데 단 한사람, 나 료우기 시키를 친구로 대하며 다가오는 학생이 있다. 프랑스의 시인 비슷한 성을 가진 그 인물이, 나에게는 신경에 거슬렸다. 그래. 정말로, 걸리적 거렸다. ──멀리 가로등 밑에 사람 모습이 보였다. ……실수다. 그 녀석의 무방비한 미소를 떠올려 버렸다. ──사람모습은, 어딘가 거동이 수상해보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때, 어째서. ──어째서인지, 나는 사람모습의 뒤를 밟았다. ……나는, 그런 흉폭한 고조감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 골목길에서 더욱 안쪽골목으로 들어간 그곳은, 이미 다른 세상이었다. 막다른 길인 그 곳은, 길이 아닌 밀실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주위가 건물의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은, 한낮에조차 햇빛이 비쳐들지 않는 공간이겠지. 거리의 사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틈새에는 한명의 부랑자가 살고 있어야 했다. 지금은 없다. 빛바랜 좌우의 벽에는 새로운 페인트가 칠해져있었다. 길이라 할 수 없는 좁은 골목에 무언가가 질퍽거리고 있었다. 언제나 풍겨나던 썩은 과일냄새는, 더욱 농후한 또 다른 냄새에 오염되어 있었다. ───그 일대는 피바다였다. 붉은 페인트라고 생각되던 것들은 엄청난 양의 혈액이었다. 지금 길바닥에 줄줄 흐르는 혈액 역시 사람의 체액. 코를 찌르는 냄새는 끈적거리는 주홍빛. 그 중심에 인간의 사체가 있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양팔이 없고, 양 다리도, 무릎부근에서 잘려져 있는 듯 했다. 그는 인간이 아닌, 지금은 단지 피를 흩뿌리는 스프링쿨러가 되어있었다. 이미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이다. 밤의 어둠조차, 피의 적색에 패퇴하고 있다. ───시키는 그곳에 꽃피어있다. 천총색의 기모노 옷자락이, 지금은 붉은 빛. 학을 연상시키는 우아함으로 지면에 흐르는 피를 만지곤, 그것을 자신의 입술에 발랐다. 피는 입술에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그 황홀함에 몸이 떨린다. 그것이 그녀의, 첫 입술연지였다. / 2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생활에 변화는 없다. 있다고하면, 교내의 학생들의 복장이 변했다는 것 정도. 그들의 복장은 여름의 그것에서 가을의 그것으로 조금씩 겹쳐지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기모노 이외의 옷을 입은 적이 없다. 아키타카는 열여섯 소녀다운 옷을 준비해주었었지만, 나는 걸쳐보려는 생각한번 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 학교는 사복등교였기 때문에, 나는 기모노인 채로 다닐 수 있었다. 사실은 후리소데가 있는 정식 기모노를 입고싶었지만, 그래서는 체육시간이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 끝나버릴 정도다. 타협안으로 유카타처럼 생긴 히토에를 애용하게 되었다. 겨울의 추위는 어찌할까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은 어제 해결되었다. ……그것은 수업사이의 쉬는 시간의 일이다. 자리에 앉아있는데, 느닷없이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춥지않아?, 시키」 「지금은 아직 춥지않지만, 얼마후에는 추워지겠네」 나의 대답에서, 겨울에도 기모노로 지낼 것이란 의도를 읽은 것이겠지. 상대는 눈썹을 찡그렸다. 「겨울에도 그런 차림을 할거야, 너는?」 「그럴거야. 하지만 괜찮아, 겉옷을 입을거니까」 얼른 대화를 끝내고싶어서,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상대는 기모노위에 걸치는 겉옷같은게 있구나, 하면서 놀라면서 멀어져갔다. 나도 자신의 의견에 놀랐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겉옷을 사러갔다. 제일 따뜻한 겉옷이라고 해서, 가죽제 블루종을 구입했다. 겨울이 되면 입게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옷장행이다. ◇ 그의 권유를 받아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장소는 제2교사(校舍)의 옥상으로, 주위에는 우리들 같은 남녀 한쌍은 그런대로 찾아볼 수 있었다. 그것을 찬찬히 관찰하고 있는데, 귓가에 뭔가 이야기가 들려왔다. 무시하려고 생각했지만, 그 단어가 조금 어수선한 것이라 흘려버릴 수 없었다. 「───에?」 「그러니까 살인. 여름방학 마지막날에, 서쪽의 상점가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대. 아직 보도되지 않았지만」 「살인이라니, 평화스런 일은 아니겠네」 「응. 내용도 상당히 화려해. 양손양발을 칼 같은 걸로 깔끔히 자르고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지. 현장은 피바다가 되었고, 감식을 하기 위해서 길 입구에 함석판으로 문을 만들어 붙여서 감춘 것 같아. 범인은 잡히지 않았어」 「양손양발만? 그것만으로 사람이 죽어?」 「피가 없어지니면 산소결핍으로 생명활동이 정지하잖아. 하지만 이 상황에선 쇼크사 쪽이 먼저인 것 같아」 우물우물하면서 입을 움직이면서 중얼거린다. 귀여운 편인 외견과는 반대로, 이 녀석은 이런 화제를 달고오는 일이 잦다. 확실치 않지만 친척이 경찰쪽의 인물인 것 같다. ……친척에게 기밀을 이야기할 정도라면, 그다지 높은 지위의 인물일리는 없다. 「아 미안. 시키에겐 관게없는 이야기였어」 「글쎄. 관계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말야 코쿠토군」 왜? 라고 되물어오는 동급생에게 나는 눈을 감으며 항의했다. 「그런건, 식사때 할 이야기는 아니잖아?」 그렇구나, 라며 코쿠토는 끄덕인다. ……정말. 덕분에 막 사왔던 토마토 샌드위치를 못먹게 되어버렸잖아. ◇ 나의 고교1학년 여름은, 그런 뒤숭숭한 소문을 듣는 것으로 끝났다. 계절은 완만하게 가을로 바뀌어간다. 료우기 시키에게 있어서 지금까지와 미묘하게 다른 생활은, 곧 추운 겨울을 맞이하려하고 있었다. ◇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빗소리가운데, 나는 일층을 가로지르는 복도를 걷고 있다. 수업이 모두 끝난 방과후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코쿠토가 이야기했던 살인사건이 보도되었기 때문에, 학교측이 학생들의 부활동을 금지시킨 것이다. 사건은, 분명 이번달로 네 번째였다. 오늘 아침 차안에서 아키타카가 이야기해준 것이었으니까 틀림없겠지. 범인의 확증은 아직도 잡지못하고 있고, 그 동기조차 명백치않다. 피해자들에게 동일점은 없고, 모두 한밤중에 밖을 돌아다니다가 살해당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사건이라면 방관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자신이 사는 거리가 된다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학생들은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갔으며, 여자 뿐 아니라 남자들도 그룹을 지어서 하교하고 있었다. 밤엔 아홉시를 지날 무렵부터 경찰관이 순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들어서는 밤중의 산책도 만족스럽게 할 수 없었다. 「……네 명……」 중얼거린다. 그 네 번째의 광경을, 나는. 「료우기씨」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발을 멈추고 돌아보자, 그곳에는 본 적 없는 남자가 서있었다. 청바지에 흰 셔츠의 평범한 복장에, 어른스런 얼굴을 한 인물. 아마 상급생이겠지. 「그렇습니다만, 뭐죠?」 「아하,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코쿠토군을 찾고 있는거야?」 빙긋, 하고 일부러 짓는 듯한 미소를 띄우며, 그 남자는 그렇게 놀리듯이 말했다. 「저는 하교하는 도중이에요. 코쿠토군은 관계없습니다」 「그래? 그게 아닐텐데, 넌 모르고있어. 그래서 초조한거야. 그런 것을 남에게 마구 발산해버리면 안돼. 남을 괴롭히는 것은 재미있어서 버릇이 되거든. 아하하, 네 번은 너무 심하잖아」 「───에?」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남자는 일부러 지은 듯한──아니, 확실히 거짓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얼굴──나와 닮았다. 「마지막으로 너와 제대로 된 이야기해보고 싶었어. 그것도 해봤으니까, 그럼, 안녕」 상급생으로 생각되는 남자는,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멀어져갔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지도 않고, 신발장으로 향했다. 신발을 갈아신고 밖으로 나오자, 내리는 비만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마중나왔을 아키타카의 모습은 없다. 비가 오는 날은 기모노가 젖기 때문에 아키타카가 차로 데리러 와주지만, 오늘은 늦는 것 같다. 다시 신발을 갈아 신는 것도 귀찮아서, 승강구의 계단 옆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얇은 베일같은 비가 교정을 하얗게 얼리고 있었다. 12월의 추위덕에 호흡은 하얗게 얼어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인가 내 옆에는 코쿠토가 와있었다. 「우산 있어」 중국인 같은 발음이었다. 「괜찮아, 데리러 올 사람이 있으니까. 코쿠토군은 얼른 돌아가세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 그때까지는 여기에 있으려는데, 괜찮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응, 하고 끄덕이며 콘크리트 벽에 기댄다. 나는 지금, 코쿠토와 이야기상대를 해줄 심경이 아니었다.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해도 전부 무시할 생각이다. 그래서 그가 여기에 있던 없던 관계없다. 나는 그냥 빗속에서 서있을 뿐이다. 이상하게 고요했다. 빗소리 만이 들린다. 코쿠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벽에 기댄 채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자고 있나하고 어이없어하며 자세히 보니, 무언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유행가겠지. 더욱 기가막혔다. 나중에 아키타카에게 물어보니, 그것은 싱잉 인 더 레인이란 유명한 곡이었다. 그래도 유행가이긴 마찬가지다. 코쿠토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나와 그의 거리는 1미터도 되지않는다. 두 명의 인간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이야기가 없으면 어쩐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 곤란한 상황은, 하지만 괴롭지 않은 침묵이었다. ───이상하다. 어째서 이 침묵은 따스한 걸까. 하지만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대로라면 '그녀석'이 나와버릴 것이라 직감했으니까. 「───코쿠토군!」 「예!?」 무의식중에 지른 소리에, 그는 깜짝놀라 벽에서 떨어졌다. 「왜 그래, 무슨일이야?」 이쪽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내가 비치고 있다. 아마도 이때. 나는 처음으로 코쿠토 미키야란 인물을 보았다. 그것은 관찰이 아닌. 그의 얼굴은 아직도 소년의 모습이 남아있는, 부드러운 생김새를 하고있었다. 커다란 눈동자는 온화하면서, 탁하지 않은 검은색이었다. 그 성격을 드러내듯 머리모양은 자연스럽고, 머리칼을 물들이지도, 뭔가를 바르지도 않았다. 쓰고있는 안경은 검은테로, 그런 것은 지금은 소학생도 쓰지않는다. 장식없는 옷차림은, 위아래 둘다 검은색. 그 색의 통일이, 코쿠토 미키야의 유일한 멋이라면 멋이겠지. 곧, 생각해버렸다. ……이 사람 좋은 소년은, 어째서 나 같은 것에 신경을 쓰는 걸까, 하고. 「……지금까지……」 고개를 숙이고, 나는 그를 보지않으려 했다. 「어디에, 있었어?」 「여기에 오기 전에는 학생회실에 있었어. 선배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서, 환송회 비슷한게 있었거든. 시라즈미 리오란 사람인데, 정말 의외였어. 어른스런 사람이었지만, 하고싶은 일을 찾았다며 퇴학신청서를 내버렸는걸」 시라즈미, 리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런 모임에 불려나가는 코쿠토의 넓은 인간관계는 알고 있다. 그는 동급생에게는 친구로서 밖에 보이지않지만, 상급생 여자들에게는 은근히 인기가 있었다. 「시키에게도 어제 이야기했었어. 환송회라고 말했었는데. 학생회실에 오지않았잖아. 교실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고」 분명히 어제, 그는 그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모임에 내가 가도 분위기가 깨질 뿐이다. 코쿠토의 초대는 단지 사교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랬어. 그거 진심이었구나」 「당연하잖아.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시키는」 코쿠토는 화를 냈다. 그것은 자신의 언동이 무시당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닌, 내 한심한 생각에 대한 것이겠지. 나는 그것에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까지 체험조차 할 수 없었던 미지(未知)였으니까.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오늘만큼 아키타가가 오는 것이 몹시 기다려지는 날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안있어 교문에 나를 데리러온 차가 도착해서, 나는 코쿠토와 헤어졌다. ◇ 밤이 되어 비가 그쳤다. 시키는 붉게 물들인 가죽 블루종을 걸치고 밖에 나왔다. 머리위의 하늘은 얼룩져있다. 구멍투성이의 구름이, 간간히 달을 엿보이게 한다. 거리에는 사복경찰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그것과 마주치는 것이 귀찮아서, 오늘은 강가로 발을 옮겼다. 비에 젖은 노면이, 가로등 불빛을 반사시킨다.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처럼 반들반들 빛나고 있다. 멀리 전철의 소리가 들렸다. 쿵쿵하고 울리는 소리로, 다리가 가깝다고 알 수 있었다. 강을 횡단하는 다리는, 인간이 아닌 전철용의 다리인 것이겠지. ───거기에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흔들흔들, 천천히, 시키는 다리로 향했다. 다시 한번, 전철이 달린다. 아마 막차겠지. 아까까지의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굉음이, 주위에 울려퍼진다. 마치 좁은 상자속에 솜을 채워넣은 듯한 소리의 중압에, 자신도 모르게 그녀는 귀를 막았다. 전차가 떠나자, 다리 아래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가로등도 없고 달빛도 들지 않는 다리 아래의 공간은, 그곳만이 어둠에 파먹힌 듯이 어둡다. 그 덕분이겠지. 지금은 강가를 적시는 적색 조차도 어둡다. 이곳은 다섯 번째의 살인현장이다. 무질서하게 나있는 잡초밭에 비하면, 사체는 꽃처럼 모습을 바뀌어 있었다. 잘린 머리를 중심으로, 양손 양발이 네 개의 꽃잎처럼 놓여있다. 머리와 같이 잘려진 팔과 다리는 관절이 구부려져서, 더욱 꽃다움을 강조하고있었다. ……그렇다고해도, 꽃보다는 卍자로 보여져버리는 것이 조금 유감이다. 풀밭속에, 인공의 꽃이 버려져있다. 흩뿌려진 피에 의해, 꽃의 색은 붉다. ───점점 손에 익어왔다. 그것이, 그녀가 자신에게 품은 감상이었다. 꿀꺽하고 침을 삼키며, 아주 목이 마른 것을 깨닫는다. 긴장인가, 아니면 흥분 때문인가───목의 갈증은 이미 뜨거움 까지 느껴졌다. 이곳에는, 죽음만이 충만해있다. 시키의 입술이 소리도 없이 미소를 만들고 있다. 그녀는 황홀감을 억누르며, 계속 사체를 바라보고만 있다. 이 순간이아말로, 자신은 살아있다고 강하게 실감할 수 있었기에. / 3 월초에 사범대리와 진검으로 시합을 하는 것이, 료우기가(家) 계승자의 규칙이다. 아득한 선대에, 일부러 타 유파의 검장(劍匠)을 초청하는 것에 싫증이 났던 료우기 가의 당주는, 자신들의 집에, 도장을 만들고, 자기들 멋대로 새로운 유파를 날조해냈다. 그 전통은 현대까지 이어져버려서, 어떤 인과인지, 여자의 몸인 나까지 칼을 휘두르는 것이 요구되었다. 아버지의 그것을 상회하는 실력차, 체력차를 뚜렷히 보인 시합이 끝나고, 나는 도장을 뒤로했다. 도장에서 본관까지의 거리는 상당해서, 학교라고 하면 체육관과 학교본관의 거리정도는 되겠지. 삐걱거리는 소리도 나지않는 재미없는 판자로 만든 복도를 걷는다. 그러던중 기다리고 있던 아키타카와 만났다. 고용인인 아키타카는, 나보다 열 살은 위다. 땀으로 더러워진 나의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겠지. 「수고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어떠셨죠?」 「언제나대로. 비켜, 아키타카. 옷은 나 혼자서도 갈아 입을 수 있어. 너도 내 전속은 아니잖아잖아. 형 쪽에 붙는 편이 이득이라구. 어차피 마지막에 대를 잇는 것은 남자니까」 나의 난폭한 말에, 아키타카는 웃음지었다. 「아뇨, 료우기가의 후계자는 아가씨 이외엔 안계십니다. 오라버님은 그 기질을 타고나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것에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거야」 나는 그대로 아키타카의 옆을 지나쳐 본관으로 돌아왔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한숨을 쉬고서 옷을 벗었다. 그대로 거울을 쳐다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여자의 몸이다. 얼굴은 화장을 하고 눈매를 나쁘게 한다면, 뭐어 남자로 보이지 못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몸만은 어찌할 수 없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성장하는 여성의 육체는, 시키는 놔두더라고 '시키(織)'를 조금씩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나,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없는데 말을 건다. 아니───이야기상대는 있다. 나의 안에. '시키(織)'라고 하는 이름의, 또 하나의 인격이. 료우기가(家)의 아이에겐 같은 발음의, 다른 이름이 두 개 준비된다. 양성, 남성으로서의 이름과, 음성, 여성으로서의 이름이. 나는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시키(式). 남자로 태어났다면 '시키(織)'로 이름붙여졌겠지. 어째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료우기가의 아이는 높은 확률로 동일성해리증(同一性解離症)──속칭 이중인격자가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컨대, 지금의 나 같은. 료우기가의 피에는 그러한 초월자의 유전이 있다고, 아버지는 이야기했다. 그것이 저주라고 하는 것도. ……분명히 저주다. 내가 보기에는 초월자이기는 커녕, 정신이상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다행히, 요 몇대까지 나 이외에 그 증상을 가진 후계자는 없었다. 이유는 단순해서, 모두 성인이 되기전에 정신병동에 가게되었던 것 뿐이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인격이란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 현실과 현실의 경계가 불확실해져서, 결국에는 자살해버리는 케이스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나는 그중에서도 정신이상의 기미 없이 자랐다. 나와 '시키(織)'는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무시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육체의 소유권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있다. '시키'는 어디까지나 내 안의 대리인격에 지나지않는다. 지금 같은 때, 검의 수련에는 공격적인 남성인격인 '시키'가 적임이니까 교대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나와 '시키'는 거의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세간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중인격이란 것과는 다르다. 나는 시키이면서 '시키'인 것이다. 단지,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것 뿐. 아버지는 기뻐했다. 자신의 대에서 정통적인 료우기의 계승자를 생산할 수 있었다며. 그런 연유로 나는 오빠를 제치고, 여자의 몸이면서 료우기가의 계승자로 취급되고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어두는 거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어딘가 이지러진, 하지만 평온한 생활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활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설령 '시키'가 살인을 즐기는 살인귀라 하더라도, 나는 '시키'를 없앨 수 없다. 스스로 '시키'를 기른 나는, 역시 그와 같은 시키에 지나지 않으니까. 살인고찰(전)\ 1 「미키야, 너 료우기하고 사귄다는 거 진짜냐?」 가쿠토(學人)의 말에, 나는 하마터면 커피우유를 내뿜을뻔 했다. 기침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점심시간인 교실은 소란스러워서, 다행히 지금의 가쿠토의 폭언을 들은 녀석은 없는 듯 했다. 「가쿠토, 그거, 어떤 의미야?」 넌지시 속을 떠보니, 가쿠토는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너 뭔소리하는거야. 1학년 C반의 코쿠토가 료우기에게 푹 빠졌다는 것은 다 알고있는 사실이라구. 모르는 것은 당사자들 뿐이야」 가쿠토의 악담에, 나는 아마 눈썹을 찡그렸다고 기억한다. 시키와 서로 알게된지 일곱달. 계절은 겨울을 앞둔 11월이 되었다. ……뭐어 분명히,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면 사귀고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가쿠토, 그건 오해야. 나와 시키는 단순한 친구. 그 이상의 관계는 아냐」 「그래에?」 유도부의 기대주는, 그 다부진 얼굴을 심술궂게 일그러뜨렸다. 가쿠토(學人)란 이름과는 정반대인 육체파친구와는 소학교때부터의 오래된 친구다. 그 경험에서 이쪽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차려준 것이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너는 경칭을 안붙이고 막 부르잖아. 그 료우기가 단순한 클래스메이트에게 그런 것을 허락할 리가 없을텐데」 「저기말야, 시키는 그런 것을 싫어해. 전에 료우기씨라고 불렀더니 아주 기분나쁜 듯이 노려보더라고.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들 하는데, 시키에게는 그 소질이 충분히 있어. 그건그렇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는 성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대. 성으로 부를거라면 '너(おまえ)'라고 불러, 라고 이야기하더라니깐. 그것은 내가 싫어서 타협안으로 '시키씨'가 되었는데, 그것도 싫다고 해서 '시키'. 어때, 이 재미없는 진상은」 4월의 사건을 기억해내며 계속 이야기하자, 가쿠토는 그거 재미없네, 하고 동의해주었다. 「과연. 전혀 색기 없는 이야기잖아」 유감이라는 듯 가쿠토가 중얼거렸다.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이 녀석은. 「그럼 지난주에 승강구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던거야? 젠장, 1-C조 촌구석까지 와서 손해를 보다니. 얌전히 교실에서 밥이나 먹는게 좋았을텐데」 「……잠깐. 어째서 네가 그런걸 알고있는거야?」 「그러니까 유명하다고 말했잖아. 지난주 토요일, 너하고 료우기하고 신발장 옆에서 비를 피하고있었다는 이야기는 오늘 오전에 다 퍼졌어. 상대가 료우기니까,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화제성이 넘쳐난다구」 하아, 하고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최소한, 이 이야기가 시키의 귀에 들어가지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 진학교였지? 조금 불안해졌어」 「선배말로는 취업률은 좋대」 ……점점 이 사립고교의 존재에 의문이 깊어져 버렸다. 「하지만 대체 뭐야. 어째서 료우기인거냐구. 아무리봐도 이미지가 안맞잖아」 비슷한 이야기를 선배에게도 들은 기억이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는 좀더 순한 애가 적당한데, 라는 의견이었지만, 이것도 같은 의미인 거겠지. ……어쩐지 불쾌해졌다. 「시키는 그렇게 무서운 애가 아냐」 곧, 기분나쁘다는 듯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가쿠토가 씨익하고 웃는다. ……꼬리를 드러내셨군, 이라고 말하는 듯한 그 노골적인 미소. 「뭐가 친구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걘 딱딱한 여자라구, 틀림없어.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이미 푹 빠져버렸다는 증거가 아니겠어?」 딱딱하다, 라는 것은 무뚝뚝하다란 의미겠지. 아마 그것은 그말대로겠지만, 가쿠토의 말에 끄덕이기는 싫었다. 「그런건 알고있어」 「그럼 어디가 좋은거야, 겉모습이야?」 ……가쿠토의 말은 거리낌이 없다. 분명 시키는 미인이다. 하지만, 그녀가 내 마음을 끄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시키는 언제나 큰 상처를 입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부상은커녕 생채기도 나지 않을 정도로 똑바로 행동하고 있지만, 언제나, 항상 크게 다칠 것 같은 위태로움이 있었다. 그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저 애가 상처 입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다. 「가쿠토는 모르는 것 뿐이야. 시키도 귀여운 면은 있어. ……그렇지, 동물에 비교하면 토끼만큼 귀엽다구」 ……스스로 말해놓고서 조금 후회했다. 「바보같은 소리하지마, 걘 고양이과야. 아니면 맹금류거나. 토끼하곤 거리가 멀어, 너무 멀다구. 료우기가 쓸쓸하다고해서 죽기야 하겠냐」 가쿠토는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과 친숙해지지 않는 점이라던가, 멀리서 이쪽을 빤히 보고있는 모습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흠, 그것이 나 한사람의 착각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바라는 바다. 「이젠 됐어. 가쿠토하고는 일절 여자얘기는 안할거야」 절연장을 내던지자, 가쿠토는 미안하다면서 웃음을 멈추었다. 「그렇지. 의외로 토끼도 어울려」 「가쿠토. 눈에 빤히 보이는 동의는 기분나뻐」 「그런게 아냐. 토끼도 무해하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해냈어. 세상에는 이쪽의 운이 나쁘면 한방에 머리를 잘라버리는 토끼도 있다구」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기에, 조금 콜록거렸다. 「어쩐지, 아주 말도안되는 토끼인걸, 그 토끼」 가쿠토는 오우,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엉터리지. 이건 게임이야기니까」 2 2학기의 기말고사가 끝났던 그 날, 나는 믿을 수 없는 물건을 보았다. 자신의 책상 속에 편지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 사건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보낸 사람과 내용이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키로부터의 데이트 신청이었다. 그것은 휴일인 내일, 나를 데리고 놀러가라, 라는 협박장 비슷한 내용으로, 나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집에 돌아왔고, 어쩐지 할복을 명 받은 사무라이 같은 마음으로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다. ◇ 「여-, 코쿠토」 나타난 시키의 첫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약속장소인 개의 동상이 있는 역앞에 나타난 시키의 복장……고엽색의 기모노에 새빨간 가죽 점퍼를 걸친 모습에 놀라기도 전에, 그 말투를 듣고 나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기다렸냐? 미안미안, 아카타카를 떼버리는데 너무 시간을 잡아먹었어」 정말로 당연하다는 듯, 그녀는 줄줄 말을 풀어놓는다. 내가 알고 있는 시키가 아닌, 완전히 남자 같은 말투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나는 그저 그녀의 모습을 재확인했다. 시키의 모습에 변화는 없다. 자그마한 신체, 하지만 서늘해진 등줄기와 그녀의 행동 탓인지 형용하기 힘든 박력……우아함이 있다. 약동하는 활인형같은 언밸런스함. 참고로 말하자면 활인형이란 것은 『꼭두각시 인형』을 둘로 나누어 조작하는 것으로. 겉으로 보기에 극히 자연스럽고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인형을 말한다. 「뭐야, 한시간정도 늦은 걸 가지고 화난거야? 의외로 속이 좁구나, 너」 검은 눈동자로, 시키는 이쪽을 들여다본다. 난폭하게 잘려진, 숏커트의 아름다운 머리칼. 작은 얼굴의 커다란 눈동자는, 양쪽 다 유려한 윤곽을 하고 있다. 먹을 흘려 넣은 것 같은 새까만 눈동자는, 코쿠토 미키야의 모습을 비쳐보이면서도 더욱 먼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던 그 눈 내리는 날부터, 나는 이 먼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에 끌리고 있었다. 「에…그러니까, 시키…지, 너는」 으응, 하고 시키는 웃었다. 입가를 끌어올리는, 어딘가 뻔뻔스런 모습으로. 「아니면 뭘로 보이는데? 그런 것 보다 시간이 아까워. 자, 재미있는 데로 데려가 줘. 어디에 가는지는 코쿠토에게 맡길께」 그렇게 말하면서, 시키는 강제로 이쪽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걷기 시작했다. ……맡길께, 하고 이야기했지만, 결국엔 그녀가 선도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을 패닉상태에 빠진 내가 깨달을 리도 없었다. 어쨌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시키는 물건은 사지 않고, 백화점내의 이런저런 가게들에 들어가서 상품들을 돌아보다가, 질리면 다음 가게로 이동했다. 영화라던가 찻집에서 한숨돌리자, 라는 의견은 기각되었다. ……분명, 이쪽도 지금의 시키와 그런 곳에 가도 재미있지는 않다. 시키는 잘 떠들어댔다. 나의 착각이 아니라면, 그녀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양되어있는 것 같았다. 하이(high)해졌다, 라고 말할 상황이겠지. 보고다니는 가게들의 태반은 옷가게였었는데, 전부 여성전문점이라는 것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네시간만에 백화점 네 곳을 정복하고나니 역시 지치는지, 시키는 식사가 하고싶다는 말을 꺼냈는데,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패스트푸드점에 다다랐다. 자리에 앉자 시키는 겉옷을 벗었다. 장소를 잘못 찾은 것 같은 기모노 차림의 시키에게 주위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을 굳히고, 나는 아까부터 품고있던 의문을 말했다. 「시키. 너, 평소에 그런 말투를 쓰고 있어?」 「 '나'일 때는. 하지만 말투에 의미는 없어. 이런 건, 코쿠토도 바꿀 수 있잖아」 우물우물하고 맛없다는 표정으로 햄버거를 먹어가는 시키. 「뭐, 이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어. 오늘이 처음이야, 겉으로 나와본 것은. 지금까지는 시키와 같은 의견이라서 잠자코 있었지만」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 「그렇지……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이중인격이란 걸까. 내가 '시키(織)'고, 평소에는 시키(式). '시키'는 직물의 직(織)자. 다만, 시키와 나는 다른 사람이 아냐. 료우기 시키는 항상 한사람이지. 나와 시키의 차이는, 단순히 일의 우선순위가 다른 것 뿐이구. 좋아하는 것의 순위가 어긋나 있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 말하면서, 그녀는 적신 손가락으로 물수건에 글자를 썼다.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시키(織)'와 시키(式)란 같은 발음의 문자를 만들었다. 「나는 코쿠토하고 이야기해보고 싶었어. 그것 뿐이야. 시키에게 있어서 그것은 제일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대신 해주는 거고. 알았어?」 「뭐어, 말하고 있는 것은 어느정도」 조금 못미덥게 즉답한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사실, 상당부분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중인격 운운하는 것에 관해서는, 실제로 짐작이 가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입학하기 전에 시키와 만났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때는 나를 싫어하고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간다. 아니, 그런 것 보다. 이렇게 반나절을 보내보니, 그녀는 역시 시키 이외의 다른 누구도 아니다. 시키……아니 '시키(織)'가 말하는 대로 말투만이 다를 뿐, 그 행동자체는 시키의 그것과 동일했다. 말투에서 느끼고 있던 위화감은 어느사이엔가 느끼지 못하게 될 정도로. 「하지만, 어째서 그걸 나에게 이야기하는 거야?」 「계속 숨기고 있을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새침한 얼굴로 시키는 쥬스를 마신다. 그녀는 스트로에 입을 대었다가, 곧 떼었다. 시키는 차가운 것을 잘 못 먹는 것 같다. 「자백하자면, 나는 시키의 파괴충동같은 존재야. 그것이 제일 하고 싶은 감정.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상대가 없었어. 료우기 시키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담담하게 '시키'는 이야기한다. 그 검고, 깊고깊은 눈동자가 응시해와서,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으응, 하지만 안심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는 그래도 시키(式)야. 시키의 의견을 내가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 뿐이니까, 난폭하게 굴지는 않아. 말했잖아, 말투가 다를 뿐이라고. ……하지만, 요즘 나와 그 녀석은 어긋나있으니까. 이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농담반진담반으로 흘려들어줘」 「……어긋나있다니……그, 너와 시키사이에서 말다툼이라도 하는거야?」 「야, 어떻게 자기 혼자 말싸움을 할 수 있겠냐. 어떤 일을 한다해도, 그것은 어느쪽이고 다 원하고 있는 일이야. 그래서 서로 딴소리는 없어.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육체의 사용권은 시키것이야. 내가 이렇게 코쿠토하고 만나는 것도 시키가 만나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구. ……뭐어, 이런 소리하면 나중에 반성하겠지만, '코쿠토하고 만나도 괜찮아' 같은 얘기는 시키가 입에 담을 대사가 아니잖아?」 그렇네, 하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시키'는 우습다는 듯이 웃었다. 「나, 너의 그런 점이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시키는 그런 것이 싫은거야. 어긋나 있다는 것은 이런 거지」 ……? 그건 무슨 말이지? 시키는 내 생각없는 부분이 싫은걸까. 아니면,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는 시키가 싫은 걸까. 확증은 없지만, 나는 그것이 후자라고 이해했다. 「이걸로 설명은 끝. 오늘은 여기까지」 갑자기 일어서서, '시키'는 겉옷을 걸쳤다. 「나중에 봐.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얼마 안있어서 또 만나게 될거야」 가죽 점퍼 주머니에서 햄버거 값을 테이블에 놓고서 '시키(織)'란 이름을 한 시키(式)는 씩씩하게 자동문 쪽으로 나가버렸다. ◇ '시키'와 헤어지고 자신의 거리로 돌아오니, 이미 해가 져있었다. 예의 길거리살인마 덕분에 저녁에도 오가는 사람들의 수는 적어져있다. 집에 돌아오자, 사촌형인 다이스케 형이 와있었다. '시키'와의 일로 지쳐있던 탓인지, 인사도 대충하고 코다쯔에 다리를 넣고 드러눕는다. 다이스케 형도 코다쯔에 다리를 뻗고 있어서, 좁은 공간에서 다리를 놓는 지배권을 놓고 한동안 말없이 다투었다. 결과 나는 잘 수 가 없어서, 일어나 앉게 되었다. 「바쁘지않아? 형?」 테이블위에 있는 귤을 집으면서 말을 걸자, 다이스케 형은 뭐어 그렇지, 하며 의욕없이 대답했다. 「요 3개월간 다섯명이야, 당연히 바빠. 집에 돌아갈 시간도 없어서 형님네 집에서 쉬고 있는 거라구. 1시간만 있다가 나갈거야」 다이스케 형은 경시청 수사1과에서 형사일을 하고 있다. 게으름뱅이를 공언하는데 거림낌없는 이 사람이, 어째서 그런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수사는 잘 되어가?」 「그럭저럭. 지금까지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지만, 다섯 번째에서 겨우 단서가 나왔어. 뭐어 상당히 작위적이긴 하지만말이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서, 다이스케 형은 코다쯔위에 엎드리듯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앞에 형의 진지한 얼굴이 있다. 「이제부터 하는 말은 부외비(部外秘)야. 너도 무관계하지는 않으니까 이야기해둘게. 첫 번째 사체의 상황은 알려줬었지?」 그렇게 다이스케 형은 두 번째, 세 번째, 계속해서 사체의 상황을 아야기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형사들이 이렇게 입이 가벼운 사람들이 아니기를 기도하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두 번째는 몸을 세로로, 사타구니에서 정수리까지 두토막. 흉기는 불명. 반으로 나뉜 사체의 한쪽만이 벽에 찰싹 붙어있었다. 세 번째는 양손 양발을 잘라서, 다리에는 손을, 팔에는 발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네 번째는 몸을 조각내어서 뭔가 문자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었고, 다섯 번째는 머리를 중심으로 손발로 卍자 모양을 만들어놓았다는 것 같다. 「진짜 알기 쉬운 정신이상자네」 구역질이 날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감상을 말하자, 으응, 하고 다이스케형은 동의했다. 「너무 알기 쉽다는 것도 작위적이지만. 미키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뭐랄까, 어쨌든.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 자체에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 그 외에는 모르겠지만. 단지……」 「단지?」 「익숙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에는 바깥에서 저지르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 라며 형은 머리를 감싸안았다. 「동기가 없고, 법칙성도 없어. 지금은 바깥이지만, 이 녀석은 집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타입이야. 밤에 나다니는 사냥감이 없어지면, 더욱 그 색이 강해지지. 그런 점을 위쪽 자식들도 각오해줬으면 좋을텐데」 그래서 말인데, 라며 형이 말을 꺼냈다. 「다섯번째 현장에. 이런게 떨어져있었어」 다이스케 형이 코타쯔 위에 놓은 물건은, 우리학교의 배지였다. 사복을 입는 고등학교인 탓에 경시되는 느낌이지만, 등교시에는 착용이 의무화되어있다. 「현장이 풀밭이었기 때문에 범인이 알아차리지 못한건지, 아니면 일부러 떨어뜨렸는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어느쪽이라고 해도 의미는 있을거야. 얼마안있어 그쪽에 가게될지도 모른다구」 마지막에 형사의 얼굴을 하며, 형은 불길한 이야기를 했다. 3 고교1학년의 겨울방학은 앗하는 사이에 끝났다. 그 사이에 있던 일이라고 하면 '시키'와 하쯔모데에 갔던 것 정도. 그 뒤론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3학기가 시작하자, 시키는 더욱 심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주위에 거부의 의지를 표하고 있었으니까. … 방과후. 모두가 하교한 것을 확인하고 교실에 가면, 항상 '시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그녀가 부른 것도 아니고, 청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역시 언제나 상처 입을 것 같은 이 여자애를 가만히 놔둘 수 없어서, 의미 없이 그녀와 함께하고 있었다. 겨울의 일몰은 빨라서, 교실은 저녁노을로 새빨갛다. 그, 적과 흑의 콘트라스트 뿐인 교실에서, '시키'는 창가에 기대어 있다. 「내가 사람들하고 접촉하는 것을 싫어한다는거, 알고있었어?」 이날, 별 생각 없이 말하는 분위기로 '시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듣는데. ……그랬어?」 「응. 시키는 낯을 많이 가려. 어릴적부터 그래. ……저기, 어릴적엔 말야, 아무것도 모르잖아. 만나는 사람 전부, 세상의 모든 것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생각하고 있는거야. 자신이 좋으니까, 상대도 당연히 나를 좋아해준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잖아」 「그렇게 말하면 그렇겠네. 어릴 적에는 의심하지도 않았어. 분명히 무조건적으로 모두가 좋았었고, 나를 좋아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어. 무서운 것이라고 해봤자 괴물정도니까. 지금 무서운 것은 인간인데 말야」 정말그래, 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시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야. 무지는 필요한 거야, 코쿠토-. 어릴 적에는 자신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타인의 어떤 악의도 알아차리지 못해. 설령 잘못을 하게 되더라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을 경험하게되어, 누군가를 다정하게 대해줄 수 있게 되지.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밖에 드러낼 수 없으니까」 저녁노을의 붉은 빛이, 시키의 옆얼굴을 물들인다. 이때───그녀가 어느쪽의 시키인지, 자신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의미없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쪽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료우기 시키의 독백이니까. 「하지만 나는 달라. 태어나면서, 타인을 알고 있었어. 시키는 태어날때부터 '시키'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타인을 알아버렸어. 자신이외의 인간이 있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던 거야. 어릴적에 타인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안 시키는, 그들을 사랑할 수 가 없었어. 언젠가부터 관심도 가지지 않게 되었지. 시키가 가진 감정은 거절뿐이야」 ───그래서,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키'가 눈빛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러면 쓸쓸하지않아? 넌」 「어째서? 시키에겐 내가 있어. 외톨이라면 분명 고독하지만, 시키는 혼자가 아냐. 고립되어있지만, 고독하진 않았던거야」 의연한 얼굴로 '시키'는 말한다. 그것은 강한 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그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지만, 정말로? 「하지만, 최근의 시키는 이상해. 스스로 나라는 정신이상자를 품고있으면서, 그것을 부정하려하고 있어. 부정은 내 역할이야. 시키는 긍정밖에 할 수 없을 텐데」 어째서일까, 하고 '시키'는 웃는다. 아주 살벌한──살의조차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코쿠토-.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어?」 그때. 떨어지는 석양이 새빨갛게 보여서, 가슴이 덜컥했다. 「지금은 없어. 때려주고싶다, 정도가 고작이지」 「그래. 하지만 나에겐 그것 밖에 없어」 교실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에?」 「말했잖아. 인간이란 것은 자신이 체험한 감정밖에 드러낼 수 없다고. 나는 시키의 안에서는 금구(禁句)를 떠맡고 있어. 시키의 우선순위의 하위가, 나에게 있어서의 상위야. 그것에 불만은 없고, 그래서 내가 존재한다고 알 수 있지. 나는 시키의 억압된 지향을 담당하는 인격이야. 그래서, 항상 의지를 죽여왔어. '시키'라고 하는 어둠을 죽여왔어. 자신이 자신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죽여 왔어. ……봐, 내가 체험한 적이 있는 일은 살인뿐이지?」 그리고 그녀는 창가에서 떨어졌다. 발소리도 없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녀를──어째서 무섭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러니까 말야, 코쿠토-. 시키의 살인의 정의는 말이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 「'시키'를 죽이는 것이야. '시키'라는 녀석을 밖으로 꺼내려는 것을 죽이는거야. 시키는 말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시키의 봉인을 열려고 하는 자를 모두 죽여버리고 싶은거야」 쿠쿡, 하고 웃으며 '시키'는 교실을 뒤로 했다. 그것은 장난을 치고난 뒤처럼, 천진난만한 작은 미소였다. ◇ 다음날 점심시간. 점심 같이 먹자, 라고 시키에게 말을 걸자, 그녀는 정말로 놀란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이 때 그녀는 나와 알게된 후 처음으로, 나에게 놀란 얼굴을 보였다. 「……무슨, 짓을」 그렇게 말끝을 흐리면서도, 시키는 이쪽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다. 장소는 그녀의 희망대로 옥상이 되었고, 시키는 말없이 나의 뒤를 따라온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시키의 시선이 등뒤에 꽂힌다. 설마 화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테지. ……그건, 나도 어제의 '시키'가 남긴 말의 의미정도는 안다. 그것은 이제 자신에게 관여하지 마라, 그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라는 시키로부터의 최후통첩다. 하지만 시키는 모르고있다. 그런 것은 항상 시키가 무의식적으로 보이던 것이었고, 이쪽은 그런 것에는 이미 익숙해 져버려있다는 것을. 옥상에 나가자,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1월의 겨울 하늘 아래서, 점심을 먹으려 하는 사람은 우리들 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역시 추운걸. 장소를 바꿀까?」 「나는 여기가 좋아. 바꿀거라면 코쿠토군만 가도록해」 은근한 시키의 말에 고개를 수그린다. 우리들은 겨울 바람을 피하기 위해 벽 가까이에 붙어 앉았다. 시키는 사왔던 빵의 포장을 뜯지도 않고 앉아있다. 그런 시키와는 반대로 나는 이미 두 번째의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있었다. 「어째서 나에게 말을 건거야?」 시키의 소근거림은 갑작스러웠고, 잘 들을 수 없었다. 「지금 뭔가 말했어? 시키?」 「……어째서 코쿠토군은 그렇게 경박한걸까, 라고 말했어」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시키는 심한 말을 한다. 「너무한걸. 분명 바보같이 정직하다란 소리는 들었지만, 경박하단 소리를 들은 것은 없었다구」 「주위에서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를 꺼린 것 뿐 일거야, 분명히」 과연, 하고 멋대로 납득한 시키는 토마토 샌드위치의 포장을 뜯었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는, 추운 옥상에 어울렸다. 시키는 그뒤로 입을 다물고, 쓸데없는 움직임 없이 토마토 샌드위치를 씹기 시작한다. 서로 교대하듯, 막 식사를 끝마친 이쪽으로서는 할 일이 없다. 식사에는, 역시 활기있는 회화가 필요하겠지. 「시키, 너, 역시 조금 화났지?」 「……조금?」 힐끗 노려본다. ……말을 걸려고 할 때엔, 화제에 주의해야했다고 반성한다.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코쿠토군이 있으면 초조해져. 어째서 너는 나에게 관여해오는지. 어째서 '시키'에게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게 했는데 어제와 태도가 바뀌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는걸」 「이유같은 것은 나도 몰라. 시키하고 있으면 즐겁지만, 어째서 즐거운지는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으니까. 뭐어……어제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분명히 낙천가인지도 모르지만」 「코쿠토군. 나는 정신이상자란거, 이해하고있지?」 그 말에 나는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시키의 이중인격(같은 것)은 진짜고, 그것은 분명히 상식에서 벗어나있다. 「응, 상당히 보통은 아니지」 「그렇지? 그러면 그것을 인식해야해. 나는 정상적으로 관계할 인종이 아니니까」 「사귀는 것은 정상도 이상도 관계없는거야」 시키는 딱 멈춰버렸다. 호흡조차도 잊어버린 것처럼, 시간을 멈춰버렸다. 「하지만, 나는 너처럼 될 수 없어」 그렇게 말하고, 시키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팔락, 하고 기모노의 소매가 흔들린다. 그 아래에 있는 가느다란 팔에 붕대가 둘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팔의 팔꿈치 부근에 감겨진 붕대는 새것이었다. 「시키, 그 상처───」 신경이 씌여 말을 거는 것보다 먼저, 시키가 일어섰다. 「'시키'의 말로 전해지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이야기해줄게」 시키는 이쪽을 보지 않고, 어딘가 먼 곳을 지켜보면서 마랬다. 「이대로라면, 분명 나는 너를 죽이게 될거야」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했어야할까. 그 뒤에 시키는 점심식사 후 남은 쓰레기도 정리하지 않고 교실로 돌아갔다. 혼자 남겨지고 난 뒤, 일단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큰일인데, 이러면 가쿠토의 말 대로잖아」 언젠가 가쿠토와의 이야기를 기억해낸다. 가쿠토의 말대로, 나는 바보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지금, 눈앞에서 더 이상 없을 정도의 거절의 말을 들었는데도, 나는 시키가 전혀 싫어지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졌을 정도다. 시키의 함께 있으면 즐거운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지않은가. 「이미 푹 빠져버린거야, 나는」 ……아아, 좀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죽이겠다는 말까지 들은 일 따위는 웃으며 날려버릴 정도로, 코쿠토 미키야는 료우기 시키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4 2월이 된 후 첫 번재 일요일. 눈을 뜨고 식탁에 가자, 다이스케 형이 지금 막 외출하려던 참이었다. 「어라, 있었어?」 「으응. 막차를 놓쳐버려서 하룻밤 자러왔지, 이제부터 출근이야. 학생은 좋은걸, 휴일이란 약속이 확실히 지켜지니까」 형은 정말로 잠이 부족해, 하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예의 길거리살인마 사건에 진전이 있어서 바쁜 것이겠지. 「그러고보니 우리학교에 온다던가 하는 말을 했었는데, 그건 어찌됐어?」 「아아, 다시 한번 가게 될 것 같아. 사실은 말이지, 3일전에 여섯명째가 나왔거든. 그 피해자가 범인에게 최후까지 저항을 한건지, 손톱에서 피부가 검출되었어. 여자의 손톱은 기니까, 있는 힘껏 범인의 팔을 할퀸 것이겠지. 죽는 순간까지 저항했었는지, 상당히 깊게 할퀸 것 같아. 검출된 피부가 3센티나 되었거든」 형의 정보는 아직 어떤 신문에도 TV에도 나오지 않은 최신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 보다, 나는 무언가 다른 점에서 아찔해졌다. ……그것은 아마도, 얼마전의 시키의 언동에서 죽인다라는 불길한 단어가 섞여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째서 난, 한순만이나마 시키와 길거리살인마의 모습을 겹쳐보았던 것일까. 「……할퀸 상처란, 곧 범인이 긁힌 거?」 「당연하지. 피해자가 자신의 팔을 할퀴겠냐. 검출된 피부는 팔꿈치 부근의 피부라는 감식도 나와있어. 혈액감정도 끝나있으니까, 곧 체크메이트다」 그럼 갈께, 하며 다이스케 형은 집에서 나갔다. 다리의 힘이 풀려, 나는 의자에 무너져내렸다. 3일전은, 저녁놀 속에서 '시키'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이다. 그 다음날에 봤던 그녀의 붕대는, 분명히, 팔의 팔꿈치 언저리에 매여져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렇게. 정오를 넘긴 무렵, 생각만하고 있어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깨달았다. 고민만 하고있을 거라면, 시키 본인에게 그 상처에 대해 물어보면 된다. 그것이 별것 아닌 상처라고 듣게되면, 이런 우울한 기분도 사라질테니까. ◇ 학교의 주소록을 의지해서, 시키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녀의 자택은 근처 역의 교외에 있어서, 찾았을 무렵엔 이미 저녁때가 되어버렸다. 주위는 대나무숲에 둘러싸인 료우기가의 저택은, 무가저택의 그것대로 만들어져있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저택의 넓이는, 걷고 있는 것 만으로는 알 수 없다. 비행기에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지않으면, 그 규모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겠지. 산길처럼 느껴지는 대나무숲길을 걷다가 커다란 문에 도착했다. 에도시대부터 남겨진 것 같은 이 저택에도 요즘 같은 인터폰이 설치되어있어서 조금은 안심한다. 벨을 눌러서 용건을 말하자, 검은 수트 차림의 남성이 나왔다. 삼십대 전반의 망령같은 어둠을 가진 그는, 시키의 시중을 드는 일을 맡고있다고 했다. 아키타카라고 하는 그 사람은, 나 같은 학생에게도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대응해주었다. 애석하게도 시키는 외출중이란 것을 알게되었고, 아키타카씨는 들어오셔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말해주었지만, 그건 사양했다. 솔직히, 이런 저택에 혼자 들어갈만한 담력은 없다. 날도 저물어서, 오늘은 돌아가기로 했다. 한시간 정도 걸어서 역 앞에 왔는데, 우연히 선배와 만났다. 선배의 청으로, 저녁식사를 가까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먹게되었고, 이야기에 빠져있는 사이에 시계는 10시를 가리켜 버렸다. 선배와 다르게 이쪽은 아직 학생의 신분. 슬슬 돌아가지않으면 안된다. 선배와 작별인사를 한 뒤에, 이번에야말로 역의 개찰구에서 표를 샀다. 시각은 곧 오후 11시가 되려하고 있다. 시키는 이미 돌아와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 「뭘하고 있는 걸까, 나는」 한밤중의 주택가를 걸으며,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심야. 익숙치 않은 거리속에서, 시키의 집을 항해서 발을 옮기는 자신이 조금 이해되지않았다. 지금 가도, 그녀와 만날 수 없는 것은 알고있다. 그래도, 어째서인지 시키의 집에 불이 켜져있는 것이 보고 싶어서, 역에서 되돌아 와버렸다. 얼어붙을 것 같은 밤의 한기에 어깨를 움츠리며 걷는다. 그 한가운데, 깨끗하게 포장된 외길을 나아간다. 오늘밤은 바람이 없어서, 대나무숲은 아주 고요하다. 가로등은 없고, 달빛만이 의지가 되었다. 이런 곳에서 누군가에게 습격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농담같은 일을 생각해보았더니, 그것이 점점 마음속에 침투해왔다. 스스로도 떨쳐내고 싶은 망상은, 마음과는 반대로 이미지가 선명하게 강해졌다. 어릴적엔 괴물이 무서웠다. 대나무숲의 그림자가 요괴로 보여서 겁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 무섭다. 무서운 것은 누군가가 대나무숲 사이에 숨어있지 않은가, 하는 착각 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들은 정체불명의 존재가, 단지 모르는 타인일 뿐이라고 인식해버렸던 걸까. ……정말로, 기분나쁜 예감이란 것은 좀처럼 사라져주지 않는다. 아아, 그러고보면, 언젠가 시키가 같은 이야기를 했었던가. 그건, 분명히──── 그것을 기억해내려고 했을 때, 앞에 무언가가 보였다. 「─────」 딱 발이 멎었다. 나의 의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때. 코쿠토 미키야의 의식은, 텅 비어버렸으니까. 수미터 앞에, 하얀 사람의 형체가 서있었다. 빛나는 것처럼 보일정도로 새하얀 순백의 기모노. 하지만 붉은 얼룩무늬에 더럽혀져있다. 기모노의 얼룩무늬가 점점 퍼져가고 있다. 그녀의 바로 앞에 있는 물건이 붉은 액체를 뿜어올리고 있는 탓이다. 그, 하얀 기모노의 소녀는 시키. 그 앞의 물건은 분수가 아닌 인간의 사체였다. 「──────────」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이 에감만은 어딘가에 있었다. 시키가, 사체를 앞에 두고 서있다고 하는 이미지 만은. 그래서 나는 놀라지 않는다. 당황하지도 않는다. 의식이, 아주 깨끗하게 새하얘져서. 사체는 지금 막 숨이 끊어진 것이겠지.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맥을 잘리지 않으면 저렇게 힘차게 혈액을 뿜어내지 않으니까. 치사상은 목덜미와, 몸에 세로로 일문자를 그린 절상. ──이 무가저택의 앞에 상응하는, 가사로 자른 것일까. 시키는 미동도 하지않고 사체를 바라보고 있다. 사체는 죽음 그 자체다. 흩뿌려진 피의 색깔 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고, 내장이, 배에서 모조리 흘러내려, 그것은 이미 전혀 다른 생물체로 전락해있었다. 나에게는 흐물흐물해진 무언가가 인간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흉내 조차 서툴러서, 도저히 똑바로 쳐다볼 수 가 없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시키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사체를 바라보고 있다. 유령같은 그녀의 기모노에, 튀긴 피가 묻는다. 얼룩무늬는 붉은 나비와 닮아있었다. 나비는 힘차게, 시키의 얼굴에도 날아앉는다. 피에 젖은 시키의 입가가 일그러져있었다. 무서움인가─────기쁨인가. 그녀는 시키인가────아니면 '시키'인가. 「────────」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지면에 쓰러졌다. 토했다. 위에 있던 것도, 위액도, 할 수 있다면 이 기억도. 눈물이 날때까지 구토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다. 기분전환도 되지않았다. 압도적인 피의 양은 냄새만으로 뇌수를 혼란스럽게할 정도로 진했다. 이윽고 시키가 이쪽을 알아차렸다. 얼굴만을 이쪽으로 돌린다. 무표정한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시원스럽고, 아주 침착한, 모성을 느끼게 하는 미소를. 그것은 이 참상에는 너무도 맞지 않아서, 나는 오히려, ────등골이, 오싹해졌다 의식이 멀어진다. 그녀가 다가온다. 최후에, 잊고 있었던 그녀의 말을 기억해냈다. ──조심해 코쿠토 군. 기분나쁜 예감은, 기분나쁜 현실을 이끌어내니까─── ……역시 나는 바보다. 생각하지 않으려던 나쁜현실을, 맞닥뜨려버린 이 순간까지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5 다음날, 학교를 쉬게 되었다. 살인현장에서 멍하니 있던 나를 발견한 경관과 함께, 그대로 사건진술을 위해 경찰서로 왔기 때문이었다. 보호된지 수시간,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텅 비어버린 의식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거의 4시간정도. ……나의 뇌의 현실로의 복귀기능은, 별로 우수하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저런 것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서 해방되었을 무렵엔, 이미 학교에 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사체의 피해상태로 봐서 뿜어져 나올 피를 뒤집어쓰지 않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이쪽의 옷에는 한방울의 혈액도 없었고, 내가 다이스케 형과 친척관계라는 점도 있어서 취조실에서의 취조없이 비교적 부드럽게 일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돌아가는 길은, 형이 차로 바래다준다고 해서, 사양않고 형의 차에 탔다. 「그래서, 정말로 아무것도 못봤다는 거지, 미키야」 「끈질기네, 못봤다니깐요」 운전을 하는 다이스케 형을 노려보면서 나는 차의 조수석에 깊게 몸을 맡겼다. 「그래. 젠장, 네가 봤다면 일이 빨라졌을텐데. ……생각해보면 범인이 목격자를 내버려둘 리가 없겠군. 뭐, 네가 죽었더라면 형님을 뵐 면목이 없지. 나에게 있어서는 네가 아무것도 못봐서 다행이야」 「형사실격네, 다이스께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형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자신이 싫어졌다. 거짓말쟁이, 하고 마음속에서 자신을 매도한다. ……나 자신도, 이렇게 당당하게 주위에 거짓말을 해버리는 것을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형사사건이다. 본 것을 정직히 말하지 않으면, 사태는 나쁜 쪽으로 흘러가버린다. 그런데도, 나는 시키가 그 현장에 있다는 것을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뭐어, 뭐가 어찌됐든간에,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처음으로 시체를 본 감상은 어땠어?」 심술궂은 이 사람은, 이 상황에서도 그런 얘기를 꺼내온다. 「최악. 두 번다시 보고싶지 않아」 「이번 것은 특수한 녀석이였어. 보통, 쪼-끔더 나으니까 안심해」 ……하아. 정말로, 뭘 안심하라는 소릴 하는 걸까. 「하지만, 미키야가 료우기가의 딸하고 아는 사이인 줄은 짐작도 못했어. 그러고보면 세상 참 좁은데」 형에게 있어서는 의외로 즐거웠을 그 사실은, 반대로 나를 어둡게 했다. ……료우기가의 저택 앞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지금까지의 길거리 살인마와 동일범이라고 판단되었지만, 수사는 딱 멈춰서있었다. 경찰도 필요한 현장검증을 마쳤지만, 료우기가의 저택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형이 말하길, 료우기가에서 압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의 사건은 2월 3일(토요일)의 오후 11시반부터 12시에 걸쳐서 범인에 의한 살해가 이루어졌고, 유일한 목격자는 코쿠토 미키야 뿐이라고 기록되었다. 그 목격자인 나도, 사건이 끝난 뒤에 현장을 목격하고, 사체를 본 쇼크로 의식이 혼탁해져있는 것을 순찰중인 경관에게 보호되었다고 되어있다. 료우기가쪽도, 나도, 시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형, 료우기가의 사람들은 조사해봤겠죠?」 넌지시 떠보는 질문을 하자, 아니, 하고 다이스케형은 고개를 저었다. 「딸인 시키는 네가 다니는 고교에 다니고있어서, 한반 이야기를 듣고싶었는데, 거절당했어. 저택안의 일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밖에서 일어난 일은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척 보니까, 걘 결백해. 사건에는 관계없어」 「에?」 나도 모르게 되묻는다. 나는 이래뵈도 형을 신뢰하고 있다. 서에서도 이 사람이 퇴직당하지 않는 것은 그 유능함때문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래서 분명, 형은 시키를 의심하고 있을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근거는 있어?」 「으음- 뭐어. 너, 그렇게 예쁜 애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거라 생각할 수 있어? 상상도 못하겠지? 나도 상상 못하겠어. 이런 것은 남자로서의 당연한 결론이야」 ……그러니까, 어째서 이 사람이 형사따위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 그 전에 나보다 더 태평한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과연. 형은 평생 독신이야」 「얌마, 너 다시 쳐넣는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니깐. ……하지만, 형의 의견에는 나도 찬성이다. 형처럼 직감은 없다고 해도, 일련의 사건은 시키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게 코쿠토 미키야의 의견이다. 설령 그녀 본인이 그것을 인정한다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한가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생겨버렸다. … 사건은 해결에 가까워졌다. 이렇게 다음날부터 3년후의 그날까지, 거리를 활보하던 살인귀의 모습은 완전히 두절되게 된다. 이 때의 나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완전한 제3자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나와 시키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자신들에게 관한 사건이기도 했다. 殺人考察(前) · 了 / 4 저택 앞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그 날, 밤에 산책이 나갔던 뒤로의 기억이 애매했다. 하지만 불선명한 기억을 서로 이어맞춰보면, 무엇을 했는지는 명백해진다. '시키'도 그렇지만, 나도 피냄새에는 약한 체질이다. 보고있는 것 만으로 의식이 멍해진다. 이번 사체의 피의 흐름은 특히 아름다웠다. 저택으로 통하는 납작한 돌로 덮인 길. 돌과 돌사이의 틈은 미로같아서, 그 미로를 달려가는 붉은색의 선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우아함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정신이 들어보니, 누군가가 등뒤에서 구토를 하고있고, 돌아보니, 그것은 코쿠토 미키야였다. 어째서 그가 그 장소에 있었던 걸까, 나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때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생각한다. 그 뒤에 나는 저택으로 돌아왔는데, 사건의 발견은 훨씬 뒤가 된 것 같았다. 내가 그장소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때에 보았던 그는 꿈이겠지. 그 정직한 동급생이, 살인귀를 감싸줄 도리는 없으니까. 그렇지만───하필이면 집 앞이라는건. 「'시키', 너야……?」 물어보아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와 '시키'는 어긋나있다. 그 감각은 날로날로 더해가고 있었다. '시키'에게 몸을 넘겨도, 결정권은 나의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기억이 애매한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설마. 자신만이 깨닫고 있지 않을 뿐, 나도 료우기의 혈통을 이은 자들처럼 미쳐버리는 것일까. "자각이 있는 정신이상자 따위는 가짜야"라고 말했겠지. 정신이상자가 본다면, 주위가 이상한 것이니까, 스스로에게는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는다. 조금이지만, 자신도 그랬다. 그렇다는 것은, 나는 16년에 걸쳐서 겨우 주위와 자신의 차이를 깨닫게된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 의해서 였던 것일까. 「아가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을 노크하고 아키타카가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뭐죠?」 들어오세요, 라는 의미의 말에 아키타카가 따른다. 잠이들기 직전의 시간대이기 때무에, 그는 문만 열고 안으로 들어오려고는 하지않는다. 「집 주위에 잠복하고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찰이라면 아버지가 쫓아냈다고 들었어요」 예, 하고 아키타카가 끄덕인다. 「경찰의 감시는 어젯밤부터 철수 시켰습니다. 오늘밤은 다른 것이 아닌가해서」 「좋을대로 하세요. 저는 관계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감시하고있는 사람은 아가씨의 학우분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저택의 문이 멀리 바라다보이는 창문에 다가가서, 커튼을 살짝 젖히고 밖의 풍경을 본다. 문의 주위의 대나무숲 가운데, 아주 조금이라도 몸을 숨겨줬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로 눈에 띄는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 ……갑자기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지시를 내려주시면, 돌려보내겠습니다만」 「저런 사람, 가만내버려둬도 괜찮아요」 나는 침대까지 종종걸음으로 돌아와서는 그대로 누웠다. 아키타카는 편히 쉬십시오, 란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방의 불을 끄고 눈을 감아도, 전혀 잠이 오지 않는다. 할 일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나는 다시한번 밖의 동태를 확인했다. 차색의 더플코트를 걸치고, 미키야는 추운 듯이 몸을 떨고 있다. 그는 하얀 입김을 토하면서 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발밑에는 보온병과 커피컵을 지참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그때의 미키야가 꿈이라고 했던 것은 취소다. 그는 그때에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이렇게 나를 감시하고 있다. 그 의도는 짐작이 가지 않지만, 아마 살인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겠지. ……어쨌든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 그런 일이 있던 다음날도, 미키야는 언제나대로였다. 「시키, 점심 같이 먹지 않을래?」 이런 소릴 하며 말을 걸어와서, 옥상에 같이 가게 되어 버렸다. 식사의 제안만은 매번 받고있기 때문인지, 나는 미끼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와는 관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미키야가 그 날 밤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흥미가 있다. 아마 오늘 쯤에 추궁해오겠지, 하고 예측하고서 나는 옥상에 올라갔다. 하지만, 미키야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시키네 집은 무의미하게 큰거 아냐? 찾아갔었을 때 하인이 상대하게 하다니, 콧대가 너무 높아진구」 하인이란 단어의 뜻을 알고있는 이상, 미키야가 그런 소릴 할 자격은 없다. 「아키타카는 아버지의 비서야. 그리고 지금은 하인이 아니라 관리인이라고 하고. 코쿠토군」 「뭐야, 결국 그런 사람이 있는 거잖아」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것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감시하는 것을 이쪽에서 알아차렸다는 것을 알지 못할테지만, 그렇다해도 너무 이상하다. 그때, 피를 뒤집어쓴 나를 보았었을텐데, 어째서 미키야는 지금까지와 변함없이 웃고있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스스로 말을 꺼냈다. 「코쿠토군. 2월 3일날 밤, 너는───」 「그 이야기는 됐어」 나의 질문을, 그는 그런 말만으로 받아넘겨버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코쿠토-」 ……믿을 수 없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키'의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분명히 시키인 나에게서 코쿠토란 발음이 나오는 것을 보고, 미키야는 조금 당황했다. 「분명히 해줘. 어째서 경찰에게 말하지 않고 있는지」 「───하지만, 나는 보지 않았어」 거짓말이다. 그럴리는 없다. 왜냐하면 그때, '시키'는 구토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서─── 「시키는 단지 그곳에 있었던 것 뿐이잖아. 적어도 나는 그것밖에 보지 않았어. 그러니까 믿기로 한거야」 거짓말이다. 그러면 어째서 집앞을 엿보는 것인가. ───그에게, 다가가서─── 「뭐,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은 괴로워. 그래서 지금은 노력하고 있어.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지게 된다면, 시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되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그 말은 접어두자」 어딘가 토라진 것 같은 그 표정에, 나는 도망치고 싶어졌다. ───다가가서, '시키'는, 틀림없이 코쿠토 미키야를 죽이려고 했었다─── 나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는데. 미키야는 믿는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었다면, 여지껏 겪어보지 않은 이런 괴로움을 맛보는 일은 없었을텐데. … 그날 이후, 나는 미키야를 완전히 무시하기로 했다. 이틀정도 지나자 저쪽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은 없어졌지만, 심야의 감시는 계속되고 있었다. 겨울의 추운하늘아래, 새벽3시쯤까지 미키야는 대나무 숲 속에 있다. 덕분에 나는 밤의 산책도 못하고 있었다. 감시는 이미 2주간이나 계속되고 있다. 그 정도로 살인귀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 걸까, 하고 나는 창으로 그의 상태를 몰래 지켜보았다. ……엄청나게 잘 견디고 있다. 슬슬 오전 3시가 되려고 하지만, 미키야는 계속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귀기가 느껴지기는 커녕──떠날즈음 해서는 웃음까지 보였다. 「──────」 애가타서, 혀를 깨물었다. 아아, 겨우 알았다. 저것은 살인귀의 정체를 폭로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나를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밤에 산책을 나가지 않는 것을 확신하고 저곳에 있다. 나의 결백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저곳에 있다. 그래서 아무일도 없이 날이 밝으면, 행복하게 웃는 것이다. 진짜 살인자를, 정말로 결백하다고 굳게 믿으면서. 「───정말이지, 행복한 남자야」 중얼거리며 생각한다. 미키야와 같이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안정돼. 미키야와 같이 있으면, 그와 함께라고 착각하게 돼. 미키야와 같이 있으면, 그쪽으로 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게 돼. 하지만, 그래도, 절대로. 저 밝은 세계는 내가 있어서는 안되는 세계다. 자신이 있을 수 없는 세계, 자신이 있을 곳이 없는 세계다. ──그녀석은 당연하다는 듯한 웃는 얼굴로 나를 끌어들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미키야에게 초조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키'라고 하는 실인귀를 키운 나. 정신이상자인 나를 정신이상자라고 인식시켜버린 저 소년─── 「나는 외톨이로 만족하고 있어. 그런데도 너는 나를 방해하고 있네, 코쿠토-」 시키는 미치고 싶지 않다. '시키'는 부서지고 싶지 않다.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환상따위는 가지지 않고 이대로 살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 3월이 되어, 밖의 추위는 어느정도 누그러졌다. 나는 몇주간, 방과후의 교실에서 밖을 보고 있었다. 창에서 내려다본 부감의 시계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안도를 느끼게 한다. 다다를 수 없는 곳의 풍경은 다다를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희망을 품게하지 않으니까. 석양에 새빨갛게 물든 교실에, 언제나처럼 미키야가 찾아왔다. 이렇게 둘만이서 교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키'는 좋아했었다. ……나도, 결코 싫지는 않았다. 「시키쪽에서 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무시하는 것은 그만두는거야?」 「그럴 수가 없어서 부른거야」 미키야는 눈썹을 찡그린다. 나는 '시키'와 섞여있는 감각에 휩싸이면서 말을 이었다. 「너는 내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저녁해가 새빨개서,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유감이야. 나, 살인자야. 너도 현장에서 봤으면서. 어째서 나를 못 본체 하는거야?」 미키야는 멍한 얼굴을 한다. 「못 본체 한 것이 아니야. 시키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 「내가 그렇다고 이야기하는데도?」 아아, 하고 끄덕이는 미키야. 「자신이 하는 말은 농담반진담반으로 들으라고 한 것은 시키 쪽이겠지. 게다가 너에게 그런 짓은 할 수 없어. 절대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단정짓는 미키야에게 나는 분노를 느꼈다. 「───절대라는 것이 뭔데? 네가 나의 뭘 이해할 수 있는데? 네가 나의 무엇을 믿을 수 있는데?」 분노는 말이 되어 미키야에게 날아가 꽂힌다. 미키야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쓸쓸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근거는 없어. 하지만 나는 시키를 계속 믿고있어. ……응, 너를 좋아하니까, 계속 믿고 싶어」 「──────」 그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순수한 힘, 순수한 말은,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그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이 말은, 시키라는 나에게 있어서 자그마한 행복이었으며, 막을 수 없는 파괴였다. 그래, 파괴다. 나는 이 행복한 사람을 통해서, 이룰 수 없는 시간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누군가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세계는 즐거운 세상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모른다. 분명,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가지면, '시키'가 그 사람을 죽여버린다. '시키'의 존재이유는 부정이니까. 그리고 긍정으로 존재하는 나는, 부정없이는 존재 할 수 없다. 지금가지 무언가에 빠져있었던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 모순에서 멀어져있었다. 알아버린 지금은, 바라면 바랄수록 그것이 절망적인 소원이란 것을 깨달아버린다. 그것은 아주 괴롭고, 밉다. 처음으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 녀석이 밉다고 느꼈다. ───미키야는 당연하다는 듯이 웃는다.    나는, 그곳에 있을 수 없다는데도. 그런 존재에게는 당해낼 수 없다. 나는 확신했다. 미키야는, 나를 파멸시킨다──── 「───너는, 바보야」 마음속에서의 진심으로 고했다. 「응, 자주 들어」 석양만이 빨갛다. 나는 교실 밖을 향한다. 떠나기 전에, 돌아보지 않고 말을 걸었다. 「저기, 오늘도 나를 감시하러올거야?」 「에……?」 놀란 목소리. 역시 나를 감시하러 오는 것을 들킨 상태라고는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미키야는 당황하면서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제지했다. 「대답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내키면 갈께」 그래, 하고 대답하고 나는 교실을 뒤로했다.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에는 잿빛 우산이 있다. 갑작스럽게 뛰쳐나온 구름의 움직임에서, 오늘밤은 비가오겠네, 하고 생각했다. / 5 ───그날 밤. 밤이 되자, 하늘을 뒤덮은 비구름은, 얼마 안있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밤의 어둠을 소란스러움으로 중화시킨다. 비의 강함은 폭우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랑비라고 할 정도도 아니었다. 3월초라고 하면, 밤의 비는 차갑고 아프다. 조릿대 잎과 함께 비에 젖으면서, 코쿠토 미키야는 멍하니 료우기 저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산을 쓴 손이 추위에 빨갛게 되어있다. 후우, 하고 간 한숨을 토했다. 미키야로서도, 언제까지고 이런 변태 같은 짓을 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이러는 사이에, 경찰이 살인범을 잡아준다면 감지덕지였고, 앞으로 1주일간 아무 일도 없다면 그만두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빗속에서 감시하는 것은 힘들다. 겨울의 추위와 물방울의 이중고는, 익숙해지기 시작한 미키야에게 있어서도 괴로운 것이었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것은 비가 내리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시키의 행동이었다. 자신의 무엇을 믿을 수 있느냐, 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무엇을 전했던 것일까. 그때의 시키는 너무나도 약했다. 울고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비는 그치지 않는다. 바닥돌을 검은빛으로 반짝이게하는 물웅덩이가, 작디작은 파문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빗소리. 그걸 멍하게 듣고 있던 미키야의 귀에, 한가지,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찰팍, 하고 큰 물소리가 났다. 미키야가 그쪽에 시선을 향하자, 그곳에는 붉은 히토에가 서있었다. 히토에를 입은 소녀는 비에 젖어있다. 우산도 쓰지않고, 내리쏟아지는 비에 젖은 소녀는 바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것처럼, 비에 젖어있었다. 짧은 흑발이 뺨에 달라붙어있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동자는 어딘가 공허했다. 「───시키」 당황해서 미키야가 달려간다. 갑자기 나타난 소녀는, 얼마동안 비를 맞고있고 있었던 것일까. 붉은 기모노는 피부에 달라붙어, 그 몸은 얼음보다 차가워져있었다. 미키야는 우산을 받쳐들고서, 가방에서 배스타올을 꺼냈다. 「자, 몸좀 닦아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자기 집이 저기에 있는데」 핀잔을 주면서 앞으로 내민 팔. 그 무방비 함을, 그녀는 비웃었다. 슈웅, 하고.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에?」 깨닫는 것 보다 훨씬 빠르다. 내민 팔에 뜨거운 감각이 느껴져서, 미키야는 갑자기 물러섰다. 주륵, 하고 무언가 따스한 것이 팔을 타고 이동한다. 베였다? 팔을? 어째서? 움직이지 않아? 너무나도 예리한 아픔이기 때문에, 그것이 보통 느끼는 아픔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없다. 너무나 강한 아픔에, 통각조차 마비되었다. 미키야에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시키라고 생각하고있던 붉은 히토에의 소녀가 움직인다. 이전의 장소에서 참극을 본 것 때문인지, 미키야의 의식은 아직 또렸했다. 극히 냉정하게 뒤로 물러섰고, 이곳에서 도망치지 시작했다. ────아니.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키야가, 뒤로 물러선 순간, 그녀는 그의 품에 달려든다. 그 속도는 사람과 짐승의 차이였다. 미키야는 자신의 다리쪽에서 팍, 하는 소리를 들었다. 빗물에 붉은 것이 섞인다. 그것은 돌 바닥에 흘러가는 자신의 피라고 알아차렸고──미키야는 위를 보며 쓰러졌다. 「아────」 바닥돌에 등을 부딪혀, 괴로워한다. 쓰러진 미키야의 위에, 붉은 히토에의 소녀가 덮쳐눌렀다. 거기에 망설임은 없다. 소녀는 손에 든 나이프를 미키야의 목언저리에 들이밀었다. 미키야는 그 광경을 올려다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어둠과───그녀다. 검은 눈동자에 감정은 없다. 그저, 진심이었다. 나이프의 날끝이 미키야의 목에 닿는다. 소녀는 비에 젖어있는 탓인지, 울고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표정은 없다. 가면같아 보이는 우는 얼굴은 무서웠고, 동시에 가련했다. 「코쿠토-, 뭔가 말좀 해봐」 시키가 말했다. 유언을 들어줄게, 라고. 미키야는 떨면서, 시키에게 눈을 떼지 않으면서 말한다. 「나는……죽고……싶지, 않아───」 그것은 시키에게 향한 말인지도 의심스럽다. 미키야는 시키가 아닌, 지금 덮쳐오는 죽음 그 자체에게 말한 것이다. 시키는 미소지었다. 「나는, 널 죽이고 싶어」 그것은, 아주 상냥한 웃음이었다. 空の境界/序 1998년 6월. 토우코씨의 사무실에 취직하고, 나는 처음으로 일을 무사히 끝마쳤다. 라고 해도, 하는 일은 토우코씨의 비서같은 일이라, 계약상의 절차를 변호사와 상담하고 처리하는 일 뿐이다. 한사람의 어른으로써 취급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은 남아있지만, 대학을 도중에 그만둬버린 자신의 취급은 반쪽어른이라는 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알고있었다. 「미키야군,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 아니었어?」 「예에, 일이 끝나면 갈께요」 「빨리 끝내도 돼. 어차피 할 일도 이젠 없으니까」 안경을 낀 토우코씨는 아주 친절한 사람으로 변모한다. 오늘은 그런 럭키데이로, 본인도 막 한 건을 끝냈다며 애차(愛車)의 핸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러면 잠깐 다녀올께요. 두시간 정도있다가 돌아오겠습니다」 「선물 잘 부탁해-」 팔랑팔랑 손을 흔드는 토우코씨를 뒤로하고, 나는 사무실을 나왔다.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오후에 나는 그녀의 병문안을 간다. 그날 밤 이래, 이야기도 할 수 없게된 료우기 시키의 곁에. 그녀가 어떤 괴로움을 안고서, 어떤 일을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째서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키가 마지막에 보였던 공허한 미소만으로 충분했다. 가쿠토가 말한대로, 어차피 코쿠토 미키야는 옛날부터 료우기 시키에게 푹 빠져있었다. 한번 죽을 뻔한 것 정도로는,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병실에서 계속 잠을 자는 시키는, 그때 그대로다. 마지막 방과후, 저녁놀 속에서 서있던 시키를 떠올린다. 불타는 것 같던 황혼 속에서, 자신의 무엇을 믿을 수 있느냐며 시키는 물었다. 그때의 대답을 반복한다. ……근거는 없어. 하지만 나는 시키를 계속 믿고있어. 너를 좋아하니까, 계속 믿고있고 싶어─── 그건, 얼마나 미숙한 대답이었던가. 근거는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그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키는 살인의 아픔을 알고 있다.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가해자이기도 한 너는───누구보다, 그것이 슬픈 일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믿었다. 상처입지 않는 시키와, 상처밖에 없는 '시키'를. ───언제나 상처를 입을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던, 단 한번도 본심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애처로운 너를. 0 준비된 말은 세개. 죽음에 빙의하여 부유하는 이중신체자. 죽음에 접촉하여 쾌락하는 존재부적합자. 죽음에 도피하여 자아하는 기원각성자. 서로 뒤얽히면서, 상극하는 나선에서 기다린다. -------------------------------------------------------------------------------- * 역자 주 시키(式)와 시키(織)의 구분은 織를 '시키'로 표기하였습니다. (이건 역자의 표기방법입니다.) 가사 : 한쪽 어깨에서 반대쪽 옆구리까지 대각선으로 베는 것 * 교정자 주 아키미 다이스케(秋巳大輔) : 일단 형식상으로는 미키야의 삼촌뻘이 되지만, 아버지 대에서 가장 막내라 미키야와 별로 나이차가 나지 않는 탓에 형아우 하면서 지내는 듯 하여, 역자가 삼촌으로 표기했지만 원문의 분위기를 중시하여 형으로 고쳤습니다. -------------------------------------------------------------------------------- [←|↑|→] -------------------------------------------------------------------------------- 제가 아직 어릴 적, 소꿉놀이를 하다가 손바닥을 베인 적이 있었습니다. 빌린 것에, 모조품, 가짜들. 그런 보잘 것 없는 요리도구 가운데서, 단 하나 진짜가 섞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멋진 장식이 달린 가느다란 칼을 손에 대고 놀고 있던 저는, 어느새 그랬는지 손가락 사이가 깊게 베여 있었습니다. 손바닥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나를 꾸짖으면서 눈물을 흘리셨고, 나중에는 다정하게 끌어 안아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팠지, 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이유를 알 수 없는 말 같은 것 보다 끌어 안아준 것이 기뻐서, 어머니와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후지노, 상처는 나으면 아프지 않단다─── 상처에 하얀 붕대를 감으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의 의미도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번도 아프다고 느끼지 않았으니까요. / 통각잔류 -------------------------------------------------------------------------------- (0) 「별난 소개장을 가지고 왔군, 자네」 대학의 연구실. 하얀 옷이 어울리는 초로의 교수는, 어딘가 파충류 같은 느낌의 미소를 띄우면서 악수를 청해왔다. 「헤에, 초능력이라. 자네, 그런 것에 흥미가 있나?」 「아뇨,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 것을, 흥미라고 하지. 뭐어 상관없지만. 헤에, 명함을 소개장 대용으로 쓰다니, 그녀답군. 그녀는 나의 제자 중에서는 유별났기 때문에 마음에 두고 있다네. 이곳도 쓸만한 녀석이 적어지기만 해서, 인재가 없어. 부족한 건, 곤란한 일이야」 「저기, 초능력의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아아, 그래그래, 초능력. 하지만 말야아, 초능력이라고 말해도 종류가 있어. 우리 쪽에선 본격적으로 계측하지도 않으니까 참고가 될 수 있을까? 이 업계는 일본에서는 인기가 없어서, 연구시설이 셀 수 있을 정도밖에 없거든. 그런 것은 거의가 블랙박스가 되어버리니까. 내가 있는 곳까지 자세한 얘기가 오지 않아. 응, 요 3년간 상당히 실용적인 레벨까지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어떨까. 그건, 태어날 때부터 특출 나지 않으면 안 되거든」 「초능력의 구별은 괜찮습니다. 아마도 PK(Psycho Kinesis)라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인간이 초능력을 어떤 식으로 가지게 되어버리는가, 라는 이야기입니다」 「채널이야. 자네, 텔레비전 보나?」 「하아, 당연히 보지요. ───그것에 뭔가 관련이 있습니까?」 「텔레비전이야 텔레비전. 인간의 뇌를 채널로 생각하는 거라네. 자네, 평소에 많이 보는 채널이 뭔가?」 「……글쎄요, 8채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거야. 그건 제일 시청률이 좋은 채널이란 소리겠지? 인간이란 존재의 뇌에는 12개의 채널이 있다고 가정하지. 나와 자네의 뇌에는, 이미 그 8채널……제일 시청률이 좋은 방송에 맞춰져있어. 그 이외의 채널도 있지만, 우리들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아. 모두가 제일 많이 보는 방송, 즉 상식일까. 그 상식의 안에서 살아가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채널이 8채널. 이해가 가나?」 「───그러니까, 제일 깨끗하게 나오는 방송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까?」 「아냐아냐. 그것이 제일 좋은 것. 19세기의 상식, 즉 제일 시청률이 좋은 법칙이 8채널. 우리들은 그곳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것이 제일 평화롭지. 상식 안에서 살아가고, 상식이라고 하는 절대법칙에 보호되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거라네」 「과연. 다른 채널은 평화롭지 않다는 말씀이신지?」 「글쎄, 어떨까. 예를 들자면 3채널은 인간의 말 대신에 식물의 말을 수신해버릴 수 있는 채널이라고 하지. 또 4채널은 본래, 육체를 움직여야할 뇌파가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자신의 몸 밖의 물체를 움직여버리는 채널이라고 하지. 이런 채널이 있다면 굉장할 거야. 하지만, 그곳에는 8채널에서 흐르고 있는 상식은 없겠지? 다른 채널에는 그 채널의 독자적인 "방송(룰)"이 흐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시대에 맞춰서 살아가기 위한 채널은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8채널이니까, 4채널을 보고 있는 사람이 사회(8채널)에 적응될 리가 없어. 다른 채널에는 8채널에서 흐르고 있는 당연한 상식이 없으니까 말야」 「───즉, 8채널이 없다는 것은 정신이상자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만약 3채널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이 있다고 하면, 그 인간은 식물과 말을 할 수 있는 대신에 인간과 말을 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사회에서는 정신이상자로서 병동에 감금되지. 초능력자란 것은 그런 것이야. 태어날 때부터 모두의 공통채널이 아닌, 다른 채널을 가지고 있는 인간. 하지만, 대개의 초능력자들은 8채널과 또 다른 채널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서 구분해서 사용하지. 채널이니까, 보고 싶을 때 방송을 바꿀 수 있잖아? 4채널을 보고 있을 때는 8채널은 볼 수 없어. 8채널을 보고 있을 때는 4채널을 볼 수 없고. 세상에 섞여든 초능력자들은, 그런 식으로 능력을 구사하며 살아가지. 그래서 우리들은 좀처럼 그들을 발견할 수 없는 거지」 「과연, 그러니까──4채널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것이 없군요」 「그렇지. 그런 사람을 말이지, 세상에서는 살인귀라던가 광인(狂人)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부르지. "존재부적합자(存在不適合者)"라고. 사회에 부적합한 인간은 널려있지만, 그들은 그 존재자체가 이미 부적합해. 존재하고 있어서는 안 되지. 아니, 해서는 안돼. 가정을 해볼까. 지금까지 평소에 쓰던 채널과 4채널을 가지고 있던 인간이 있는데, 어떤 사고로 인해 육체의 기능이 파괴되어서 평소의 채널로 갈 수 없게 되었다면, 그 인간은 끝장이야. 지금까지의 생활로 상식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채널로 갈 수 없으니, 결국 우리들과 말이 통하지 않게 되지. 전파가 다르니까」 「……그럼, 존재부적합자를, 적합자로 되돌릴 방법은 있나요?」 「응, 생명활동이 정지되면 되는 거 아닐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이상한 채널을 파괴하면 돼. 하지만 그것은 뇌를 박살내버린다는 소리니, 결국 죽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지. 육체의 기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그 조직만을 파괴하는 융통성 있는 기술은 아직 없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초능력이겠군. 제일 강력한 12채널정도 될까. 그 채널은,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아하하, 하고 교수는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참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그, PK라고 불리는 초능력으로 제일 유명한 것은 스푼 구부리기 인가요?」 「뭐야, 스푼을 구부리는 거야?」 「스푼은 모르겠지만, 인간의 팔정도라면」 「그건 자네정도의 성인의 팔? 그거 대단한데, "왜곡"은 물체의 견고함보다는 물체의 크기가 문제가 돼. 인간의 팔을 구부린다고 해도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그런데, 그건 어느 쪽 방향이지?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그것에 의미가 있습니까?」 「있어. 지점의 문제. 지구도 회전방향이 있잖아. 에, 일정치 않아? ……흐─음, 그게 실존하는 능력인가? 그렇다면 관계하지 않는 편이 좋겠네. 채널을 2개 이상 가지고 있어, 그 존재부적합자. 아마도 좌회전과 우회전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거야. 나는 말이지, 채널을 두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케이스는 들은 적이 없어. 001과 002가 합체하면 009라도 이길 수 없지 않겠나?」 「……저기, 시간이 없어서 이쯤해서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나가노현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어서요. 에에, 오늘은 정말 실례했습니다」 「응, 괜찮아 괜찮아. 그녀의 소개라면 얼마든지 오게나. 그런데 말야, 자네. 아오자키군, 잘 있는가?」 / 1 멍한 의식인 채로, 아사가미 후지노(淺上藤乃)는 몸을 일으켰다. 후지노는 방안에 있었다. 주위에 사람의 모습은 없다. 방안에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새까만 어둠만이, 그녀의 주위에 남아있었다. 「아─────」 고민하는 듯한 숨을 내쉬면서, 후지노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만져본다. ……왼쪽어깨에서 가슴 쪽까지 늘어뜨려져 있던 부분이 잘려있었다. 아까까지 자신을 덮쳐누르고 있던 남자가 나이프로 잘랐기 때문이겠지. 그것을 기억해내고서야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지하에 만들어진 술집. 반년 전에 경영난을 이유로 방치되어, 그 뒤로는 불량소년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린 폐허다. ……방의 구석에는 거칠게 밀려 넘어진 파이프 의자가 남아있다. ……방의 한가운데에는 당구대가 하나 남아있을 뿐이다. ……편의점에서 사온 간이식을 먹어치우고 버린 용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런 여러 가지 나태한 모습이, 추악한 향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 했다. 방에 충만한 쉰 냄새에, 후지노는 불쾌해진다. 이곳은 폐허. 아니면 어딘가의 먼 나라에 있는 슬럼가의 뒷골목일까.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정상적인 거리가 존재하다니, 상상도 하기 힘들다. 이곳에서 제대로 된 것을 꼽으라면, 분명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알코올램프의 냄새뿐이겠지. 「에에 그러니까────」 두리번두리번하고, 조심스런 태도로 주위를 둘러본다. 후지노의 의식은 아직 완전히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일어났었던 일이,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주위에 굴러다니고 있는 손목을 집어 들었다. 비틀려 잘린 손목에는 손목시계가 매여 있다. 디지털 표시가 98년의 7월 20일을 표시하고 있었다. 시각은 오후 8시. 그로부터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큿……!」 돌발적인 통증이 덮쳐와 후지노는 신음했다. 복부에 엄청난 감각이 남는다. 자신의 뱃속이 죄어드는 듯한 답답함에,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찰팍, 하고 바닥을 짚은 손이 소리를 낸다. 바닥을 보니, 이 폐허의 바닥은 온통 물에 잠겨있었다. 「……아아, 확실히 오늘은 비가 왔었어요」 누구에게 말하는 것도 아닌 중얼거림과 함께, 후지노는 일어섰다. 흘끗, 자신의 복부를 본다. 그곳에는 피의 흔적이 있었다. 자신이, 아사가미 후지노가, 이곳에 흩어져있는 남자들에게 찔린 상처가. … 후지노를 나이프로 찌른 남자는, 거리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탈선한 고교생가운데서도 제일 눈에 띄고, 거리를 노다니는 패거리의 리더 같은 존재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서 하고 싶은 짓만 하고 있던 그는, 오락의 일환으로 후지노를 능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그녀가 레이엔(禮園)여학원의 학생인데다, 미인이었기 때문이겠지. 약간 야만적이고, 뒷일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제멋대로이며, 어딘지 모르게 머리가 나쁜 것 같았던 그와, 그의 유사품 같았던 그 패거리들은, 한번의 폭행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원래는 자신들이 고소당할 입장이라고 알고 있던 듯 했으나, 후지노가 누구와도 상담하지 않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생각을 바꾸었다. 강한 것은 자신들이라고 깨닫자, 그들은 수없이 그녀를 이 폐허로 끌고 들어왔다. 오늘저녁도 그 연장으로, 그들은 안심하다 못해 이 행위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나이프를 꺼내든 것도, 그런 타성적인 반복을 타파하기 때문이었던 것이겠지. 능욕당하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는 후지노에게 젊은이들의 리더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있던 것이다. 그는 후지노를 지배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확실한 증거를 원했다. 그것을 위해 수반되는 폭력으로, 나이프를 준비했다. 하지만, 소녀는 더욱 차가운 얼굴을 할뿐이었다. 그는 나이프를 들이밀어도 표정을 바꾸지 않던 소녀에게 격분해서, 후지노를 밀어 쓰러뜨렸고, 그리고──── … 「……이래서야,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어」 피로 물들여진 자신을 감싸 안으며, 후지노는 눈을 찌푸렸다. 자신이 흘린 피는 복부에 남은 찔린 상처뿐이었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들의 피로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러워지다니───바보 같아」 오늘까지 계속 능욕 당해온 일보다, 피에 더러워진 것 쪽을 참을 수 없는 걸까. 바닥에 흩어진 젊은이들의 육체의 하나를 걷어찼다. 평소의 자신으로서는 너무나 다른 흉폭함에 놀라고서, 후지노는 생각한다. 밖에는 비가 온다. 이제 1시간만 지나면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적어진다. 비라고 해도 계절은 여름이니까, 차갑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비로 핏자국을 씻으며 공원에 가서, 거기서 어떻게든 더러움을 떨어버리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그녀는 곧 안정을 찾았다. 피 웅덩이 속을 걸어서, 당구대위에 앉는다. 거기서 천천히 사체의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넷. ……넷. ……넷? ……아무리 세어도, 넷……! 깜짝 놀랐다. ─────하나, 부족하다. 「한명, 도망쳐버렸네요────」 허망하게 중얼거린다. 그렇다면 자신은 경찰에게 붙잡혀버리겠지. 그가 경찰서에 뛰어 들어가면, 나는 그대로 체포된다. 하지만───정말로, 그가 경찰서로 갈까?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사가미 후지노라는 소녀를 여러 명이 모여 능욕하고, 그 일을 학교 측에 공표당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굴어라, 라고 협박했던 처음부터 설명할까───? 설마. 그런 일은 불가능한데다가, 이런 녀석들에는 진실을 숨기면서 잘 둘러댈 능력도 없다. 후지노는 조금 안심하고, 당구대에 있는 램프에 불을 붙였다. 후욱, 하는 마른 소리가 나면서 램프의 불이 암흑을 밝힌다. 열여섯 개의 너덜너덜해진 수족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찾아보면 몸뚱이도 머리도 네 개씩 있겠지. 오렌지색의 빛에 비추이며, 미쳐버린 듯한 붉은 빛에 물들여진 방은, 여러 가지 의미로 끝이 나있었다. 그 참상을, 후지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한명, 도망쳤다. 그녀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쁘게도,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 「나, 복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아직 남아있는 한명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사실에 후지노는 두려움을 느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라고 하며 몸이 떨린다. 하지만 그의 입을 막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하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죽인다니, 그런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이젠 싫다─── 그것은 그녀의 진정한 본심이었다. 피 웅덩이에 비친 그녀의 입은, 살며시 웃고 있었다. 통각잔류 \ 1 7월의 끝에 접어들어서, 내 주위는 갑작스럽게 시끌벅적 해졌다. 2년 동안이나 혼수상태로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친구가 의식을 회복하고, 대학을 관두고 취직한 직장에서 두 번째의 큰 건이 끝나고, 5년 정도 만나지 못했던 여동생이 상경해오는 등, 숨 돌릴 틈도 없다. 나 코쿠토 미키야의 19세의 여름은, 그런 어수선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오늘은 오래간만의 휴일이었지만, 고교시절의 친구들의 초대로 술자리에 얼굴을 내밀었고, 정신이 들고 보니, 막차를 놓쳐버렸다. 술자리에 참가했던 녀석들은 택시를 잡거나 해서 돌아갔지만, 봉급날인 내일을 기다리는 나에게 그런 여분의 돈은 없다. 할 수 없이 걸어서 돌아오기로 했다. 다행히 집은 여기서 두 정거장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아까까지 7월20일이었던 날짜는, 이미 다음 날인 21일로 바뀌어버렸다. 오전 0시가 지난, 밤거리를 홀로 걷는다. 내일이 평일이기도 해서, 번화가는 잠이 들려고 하고 있다. 오늘 저녁은 비가 심하게 왔다. 심야가 되어 비는 멈춰주었지만, 아스팔트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젖은 노면이 물소리를 낸다. 여름도 한창. 오늘밤도 기온은 30도를 충분히 넘고 있다. 밤의 열기와 비의 습기가 살갗에 달라붙어서 넌더리를 내며 걷고 있는데, 길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검은 학생복을 입은 그녀가, 괴로운 듯, 배를 누르고 가드레일에 기대어 웅크리고 있다. ……그, 교회의 수녀를 생각나게 하는 그 학생복은 본 기억이 있었다. 수수한 모습이면서 파티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디자인은, 아가씨학교로 이름 높은 레이엔여학원의 것이다. 가쿠토는 메이드복 같아서 좋아, 라고 말하던 그쪽 계통사람들에게는 대인기인 교복이다. 단언컨대 결코 내가 그 계통의 사람인 것이 아니라, 여동생이 그곳에 입학해서, 본 기억이 있던 것이다. 「레이엔은 기숙사제라고 들었는데……」 그런데,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 있는 것은 너무 수상하다. 무언가의 트러블에 휘말렸다던가, 아니면 교칙을 지키지 않는 불량학생이라던가. 여동생이 다니는 학교이기도 해서, 나는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하고 말을 걸자, 소녀는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스르륵, 하고 길게 묶인 흑발이 흐른다. 「─────」 소녀는 희미하게───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이 긴 아이였다. 눈동자는 침착해서, 아주 어른스러웠다. 균형 잡힌 생김새는 작고 귀여우면서도, 가늘고 예각적인 윤곽을 하고 있었다. 그 미묘한 밸런스는 일본인형의 미에 가깝다. 긴 머리를 스트레이트로 뒤로 내리고, 귓가에서 머리카락을 약간 묶어서 가슴부근까지 좌우 대칭으로 늘어뜨리고 있다. 그 좌우 대칭으로 늘어진 술의, 왼쪽만이 가위로 잘린 것 같이 없었다. 앞머리는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것이, 한눈으로도 양가집의 따님을 연상시킨다. 「예, 왜 그러시나요?」 푸른 얼굴로 소녀는 말했다. 입술이 보랏빛. 치아노제(Zyanose)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명백했다. 「배, 아프니?」 「아뇨, 그───저는, 저기───」 소녀는 평정을 가장하면서, 말을 헛돌린다. 소녀는 어딘가 위태로웠다. 마치 시키를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지금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너, 레이엔의 학생이지. 전철을 놓친 거야? 여기서 레이엔은 멀어. 택시를 부를까?」 「아뇨, 괜찮아요. 저, 약속이 없으니까요」 「응, 나도 없어」 소녀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눈을 깜빡거렸다. ……스스로 보기에도 엉뚱한 조건반사를 해버렸다. 「그래. 그러면 집이 가까운 거구나. 레이엔은 완전기숙사제라고 들었지만, 외박도 할 수 있는 건가?」 「아뇨, 집은 더 멀어요」 하아, 하고 머리를 긁었다. 「곧 가출 같은 거?」 「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곤란해졌다. 척 보니, 소녀는 푹 젖어있다. 방금 전까지 내리던 빗속에서 우산도 쓰지 않았던 것인지, 뚝뚝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 사건이래, 나는 비에 젖은 여자는 싫었다. 그랬기 때문이겠지. 자연스레 이런 말이 나왔다. 「오늘밤만이라도, 내가 있는 곳에 올래?」 「에엣, 괜찮으신가요……!?」 쭈그린 채, 의탁하는 듯한 눈길로 소녀는 되물었다. 나는 끄덕였다. 「혼자 사니까 문제는 없지만, 보증은 못해. 어쨌든 간에 그런 생각은 없지만, 이상한 우연히 일어나서 이쪽이 그런 기분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이래 뵈도 건강한 성인남자니까, 그런 점은 고려해 줘. 그래도 괜찮다면, 오도록 해. 때마침 봉급날 전날이라 아무 것도 없지만, 진통제정도는 있어」 소녀는 기뻐했다. 그 무방비하고 순수한 미소에, 나도 기쁘다. 손을 내밀자,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순간. 소녀가 앉아있던 아스팔트에, 붉은 얼룩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좀 걸어야하니까, 아프면 얘기해. 여자 한명 정도라면, 어떻게든 업고 갈 수 있으니까」 「네. 하지만 상처는 아물어있으니까, 아프지 않아요」 그녀는 그렇게 사양했지만, 아직도 복부에 한쪽 손을 대고 있다. 어떻게 보아도 무언가의 아픔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왠지 모르게, 아까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배, 아프니?」 아뇨, 하고 소녀는 부정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잠시 걷는다. 아주 약간의 침묵 뒤에,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 아주……아주 아파요. 저, 울어버릴 것 같아서───울어도, 괜찮을까요?」 이쪽이 끄덕이자, 소녀는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소녀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기에, 나도 이름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 것이 어쩐지 로맨틱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소녀는 샤워를 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젖은 교복도 말리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비워주기로 한다. 담배를 사러갔다 온다는 흔한 변명을 하고서 집을 나왔다. 피우지도 않는 물건을 사러 간다고 말하는 것만큼, 자신이 호인(好人)이라고 실감할 때는 없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다가 돌아와 보니, 소녀는 거실의 소파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자명종을 7시 반에 맞춰놓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 때, 배 쪽 부근이 베어져 있는 소녀의 학생복이 몹시 신경 쓰였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소녀는 할 일이 없었는지 거실에 정좌해있었다. 이쪽이 일어나자, 꾸벅하고 인사를 한다. 「어젯밤은 신세를 졌습니다. 답례는 할 수 없지만, 정말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만, 하고 소녀는 일어서서 나가려고 한다. ……그 답례인사를 하기 위해서 정좌를 하고 기다린건가 하고 생각하니, 차마 이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려. 아침밥정도는 먹고 가」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순순히 따랐다. 남아있는 재료는 파스타와 올리브 캔뿐이어서, 아침식사는 자연스럽게 스파게티가 되었다. 두 사람 분을 재빨리 만들어서 식탁으로 나르고, 소녀와 함께 먹는다. 분위기가 적적해져서 TV를 켜자, 아침부터 굉장한 뉴스가 나왔다. 「───우와아. 이건 정말이지, 딱 토우쿠씨 취향인데」 본인이 있었다면 슬리퍼라도 날아올 것 같은 소릴 중얼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뉴스의 내용은 엽기적이었던 것이다. 현장에 있는 캐스터가 담담하게 말하는 내용을, 나는 식사를 하면서 들어본다. 반년 전부터 방치되고 있던 지하 술집에서 4명의 청년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네 명은 모두 누군가에게 손발이 뜯어 발겨져, 현장은 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장소는 의외로 가깝다. 어젯밤의 술자리에서 네 정거장정도 떨어진 부근인가. ───손발을 절단 당했다, 가 아니라 뜯어 발겨지다, 라는 표현은 어딘가 부적절하다. 그런데도 뉴스에서는 그것에 대한 말은 없이, 피해자들의 신원을 공표하기 시작했다. 피해자 4명은 모두 고교생 소년으로 현장부근의 거리를 중심으로 놀고 있던 불량학생들인 듯 하다. 약의 판매에도 손대고 있었다는 등, 뉴스캐스터가 마이크를 들이댄 관계자가 피해자들의 생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죽었다고 해도 상관없잖아요, 그 자식들" 그런 말이, 목소리의 질을 달리해서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다. 죽은 자를 책망하는 듯한 뉴스 내용에 기분이 나빠서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문득 소녀를 보자, 그녀는 괴로운 듯 배를 누르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한입도 먹지 않은 것을 보니, 역시 배의 상태가 안 좋은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표정은 알 수 없다. 「───죽어도 괜찮은 사람 따위는, 없어요」 거친 호흡을 하는 상태로,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다 나았는데, 이런일이……!」 소녀는 난폭하게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현관까지 달려간다. 당황해서 쫓아가자, 소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한쪽 손을 내밀었다. 가까이 오지마라, 라고 하는 의사표시였다. 「기다려. 진정하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해」 「괜찮아요, 저───역시, 이젠 돌아갈 수 없어요」 괴로움에 일그러지는 얼굴. 아픔에 견디는 그 얼굴은, 아주───시키와 닮아있었다. 소녀는 진정하고 나서, 깊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안녕.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요」 일본 인형처럼 희망 없는 모습 속에서, 눈동자만이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2 알지 못하는 소녀와의 일이 있은 후, 회사로 향했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 정식 이름은 없다. 전문은 인형제작이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건축 관계의 일이다. 소장인 아오자키 토우코씨는 겉보기엔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공사도중에 방치된 폐 빌딩을 사들여서 자신의 사무소로 쓰고 있는 괴상한 사람이다. 결국, 그것은 회사가 아닌, 토우코씨 본인의 취미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지금은 이것이 코쿠토 미키야의 일상이다. 푸념은 있지만, 불평은 없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까지 생각하고 있다. ……문제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직 참을 수 있는 범위고. ───그런 일을 생각하는 사이에 회사에 다다랐다. 빌딩은 4층 건물로, 사무실은 4층에 있다. 공사지대와 주거지의 사이에 있는 이 빌딩은, 어딘지 모르게 절의 커다란 건물 같다. 별로 높지도 않은 주제에, 올려다보는 사람을 위압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계단으로 4층에 올라갔다. 사무소에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흐트러진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하나. 흑색에 가까운 남색 기모노의 소녀가, 나른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기모노에는 물고기 같은 모양이 있었다. 「어라? 시키,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이런 곳이라니 실례야. 변변찮지만 어쨌거나 이곳은 네 직장이잖아, 코쿠토」 시키의 반대편 책상에 앉아있는 토우코씨가 빤히 노려보았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토우코씨는, 변함없이 수수한 복장을 하고 있다. 장례식에서나 입을 것 같을 정도의 스마트한 검은 바지에 하얀 셔츠. 한쪽 귀에만 샾─모양같은 피어스를 하고 있는데, 색은 물론 오렌지다. 이유는 불명이지만, 이 사람은 반드시 오렌지색의 장식을 하나정도 다는 기호가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빠른걸. 한동안 일의 수주는 없을 테니까, 오늘은 오후에나 얼굴을 내밀라고 했잖아」 「아뇨,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말이죠」 그렇다, 이쪽의 금전상태가 그럴 수 없게 한 것이다. 잔금이 전철의 패스와 전화카드뿐이라면, 마음이 안 놓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보다, 어째서 시키가 있는거에요?」 「내가 불렀어. 조금 사무적인 일이 생겨서 말야」 시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졸린 듯이 한쪽 눈을 비볐다. 어젯밤에도 밤에 돌아다녔던 것일까. 아직 그녀가 혼수상태에서 회복한지 한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어쩐지, 서로에게 말을 걸기 힘든 사이였다. 시키는 말하기 싫은 듯해서, 자신의 책상에 앉기로 한다. ……할 일이 없으니까, 답답해졌다. 이런 때에는 잡담이 제일이다. 딱 좋은 화제도 있으니까. 「그런데, 토우코씨, 뉴스 보셨어요?」 「브로드 브리지 말이야? 외국도 아닌데, 일본에 그런 큰 다리는 필요 없어」 그런 말에 나는 움찔하고 몸을 빼었다. 토우코씨가 말하고 있는 것은, 내년에 완성이 예정되어있는 전장 8백미터의 커다란 다리를 말하고 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는 항구에 가깝다. 차로 20분정도 달리면 투박하게 매립된 인공의 항구에 다다르지만, 이 항구는 지형에 문제가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맞은편에 해안이 있는 것이다. 지도로 보면 초승달 같은 모습의 항구로, 초승달의 맨 위에서 제일 아래까지 가려면 상당히 크게 돌아가야 한다. 거대한 호를 그리는 초승달의 바깥 선 쪽을 둥글게 달려야하는 까닭이다. 이것을 염려한 도심의 개발부는 거물 건설그룹과 협력해서, 시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행동을 개시했다. 초승달의 양쪽 끝에 거대한 다리를 만들어 곡선을 직선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 드는 막대한 자금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세금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시민의 불만을 해소한다고 하면서 진짜 불만을 부풀린다, 제일 알기 쉬운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문제의 다리는 내부에 수족관과 미술관이 들어서며 천대단위의 주차장을 내포한, 다리인지 어뮤즈먼트 파크인지 알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하루 전까지는 베이 브리지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토우코씨의 말로는 브로드 브리지라고 정식명칭이 결정 된 듯 하다. 덧붙이자면, 나도 토우코씨도 이 일에는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토우코씨, 싫어하고 있으면서도 다리내부의 전시스페이스를 확보 하셨네요」 「그건 나의 본의가 아니야. 아는 사람이 보수 대신에 이권을 주고 간 것 뿐이라구. 팔아치워도 상관없지만, 아사가미(淺上)건설과는 다소의 인연도 있어서 유출시킬 수도 없어. 정말, 돈이 되지 않는 어음은 휴지조각만도 못해」 악담을 하는 토우코씨는, 아무래도 돈에 쪼들리는 듯 하다. ……어쩐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저기, 소장님. 회사에 나오자마자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한데, 월급주세요」 「코쿠토. 그것 말인데, 곤란하게도 돈이 없어. 미안하지만 이번 달 분은 다음달에 받아줘」 완전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토우코씨는 잘라 말했다. 그것도, 단언. 마치 이쪽이 악당이라는 것처럼. 「잠깐만요. 어젯밤, 100만중에서 20만엔을 은행에 불입했잖아요. 어째서 그런데도 돈이 없다고 하시는 거에요!?」 그건 썼으니까 그렇지, 하고 토우코씨는 의자를 끼이끼이 울리면서 반론해온다. 그런 토우코씨의 행동을, 시키는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토우코씨는 척 보기에도 이것을 즐기고 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대체 무엇에 쓰신거에요, 토우코씨」 「아아, 그거 자체는 보잘 것 없는 물건이야. 빅토리아조(朝) 무렵의 위자보드(Ouija board : 靈應盤)야. 효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지만, 백년이상 되었으니까, 무가치라고 할 수 도 없어. 아무리 쓸데없는 물건이라도 그곳에 마술의 흔적과 긴 세월이 있다면 부가가치가 창출되지. 뭐어, 그래도 도움이 안 되는 것에는 변함없나. 분류한다면 취미의 한가지라는 녀석일까」 담담하게 말하는 이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인물은 마술사이기도 하다. 단순한 카드요술쟁이 같은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실로 인정 할 수밖에 없다. 마법사 같은 그녀는 다시 변명을 계속 했다. 「갑작스럽게 나온 물건이라서 앞 뒤 안 가리고 매입해버렸어. 그렇게 화내지마, 나도 이걸로 땡전 한 푼 없다구」 ……화내지 말라니, 그건 무리다. 실제로 토우코씨의 기적을 눈앞에서 보는 이쪽으로서는 이 사람의 이런 생활력 없는 부분은 장난으로 생각 해버리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렇게 관대해질 수 없었다. 「즉, 그건가요. 농담이 아니라, 이번 달 월급은 없다, 라는」 「아아. 사원은 각자 알아서 금전을 변통해 줘」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이번 달의 생활비를 조달해 올테니까, 회사를 조퇴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으시겠죠?」 「좋아. 그런데 코쿠토, 그것과는 다르게 부탁이 있어」 말투를 바꾸어서 토우코씨가 말한다. 시키가 불려나온 것에 관계가 있는 걸까. 나는 내심 분노를 억제하면서 멈춰 섰다. 「뭐죠? 토우코씨」 「돈 좀 빌려주지 않을래? 보다시피 빈털터리야」 「───전력으로 거절 하겠습니다」 있는 힘껏 문을 닫고, 나는 사무소를 뒤로했다. ◇ 미키야와 토우코의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다가, 시키는 겨우 입을 열었다. 「토우코, 하던 얘기」 「그랬지. 이런 쪽의 의뢰는 거의 받은 적이 없지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 ……정말이지, 연금술사도 아닌데 금전에 궁해지다니. 이런 것도 코쿠토가 돈에 무심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구」 불쾌하다, 라며 그녀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눌러 비볐다. 아마도 미키야는 더욱 불쾌하겠지, 하고 시키는 생각한다. 「그럼, 어젯밤의 사건의 이야기인데───」 「그건 이제 됐어. 대충 알았어」 「흐음───그래. 아직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상황밖에 설명하지 않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었나. 눈치가 빠른데, 너는」 토우코가 의미 있는 시선을 보내온다. 그녀는 어젯밤, 저녁 일곱시부터 여덟시 사이에 벌어진 지하 주점의 살인 사건의 결과밖에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키는 그것만으로 어떤 사건이라는 것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건, 료우기 시키가 토우코 이상의 인간이란 것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뢰주는 범인에게 짚이는 것이 있는 것 같아. 너의 임무는 그 범인을 가능하면 보호하는 것. 하지만 조금이라도 저항하려고 하면───망설이지 말고 죽여줬으면 한다, 라더군」 시키는 그래, 하고 대답할 뿐이다. 내용은 간단. 범인을 찾아서, 죽이는 것 뿐. 「하지만, 그 뒤는?」 「만약 죽였을 경우에는, 저쪽 측에서 사고사로 처리할거야. 의뢰주에게 있어서 그녀는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인간이야. 죽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아. 어때, 할거야? 정말 네 취향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거, 대답할 것까지도 없어」 그렇게 말하며, 시키는 사무소에서 나가려고 한다. 「성급한데, 그렇게 굶주려 있는 거야? 시키」 시키는 대답하지 않는다. 「자, 상대의 얼굴사진과 경력이야. 얼굴도 모르면서 뭘 어쩌려는 거야, 너는」 어이없어하며 자료를 던지는 토우코에게 시키는 눈빛만으로 답했다. 자료가 든 봉투가 철퍽,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필요 없어. 그 녀석은 틀림없이 나와 동류. ────그러니까 분명히, 만난 순간 서로 죽이려 들겠지」 시키는 사무소를 떠나갔다. 기모노 옷자락의 마찰음과, 냉혹한 눈빛을 남기고. ◇ 열이 올라서 사무실에서 뛰쳐나온 뒤, 할 수 없이 친구에게서 돈을 빌리기로 했다. 6월에 그만둬버린 대학의 식당에서 만날 약속을 잡고 기다리고 있자, 정오를 넘긴 즈음에 가쿠토가 휘적휘적하고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교시절부터 덩치가 컸던 이 녀석은, 그때보다 더욱 박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쪽의 용건을 말하자, 가쿠토는 역시 얼굴을 찡그렸다. 「놀랬는데. 돈을 빌리기 위해서 사람을 불러내다니, 네가 정말 코쿠토 미키야군이야?」 「나라고 해서 궁지에 몰리면 못 할 것 없어. 즉, 지금이 그런 상황이란 거지」 「그래서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다는 소리가 돈 빌려줘, 냐. 너 답지 않군, 내가 늘 돈에 쪼달려 사는 건 너도 잘 알잖냐. 무엇보다, 그런 것은 부모님께 빌리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이봐아, 부모님하곤 대학을 관뒀을 때에 다투고 헤어진 뒤로 연락을 끊고 있어. 지금 와서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라고 하는 거야? 너는」 「하아, 미키야는 이상한 점에서 완고하다니깐. 아버지하고 멋지게 한바탕 한 거야?」 「내 사정은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그래서 빌려 줄거야, 말거야?」 「뭐야, 기분이 안 좋은가 보구나, 너」 쓸데없는 참견이라며 노려보자, 가쿠토는 간단하게 오케이 해 주었다. 「네 이름을 대면 모금을 하는 것만으로도 5,6만은 모일테고, 그래도 부족하면 내가 도와줄게. 단,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법이지」 ……아무래도 이 녀석에게도 부탁이 있는 것 같다. 가쿠토는 주위에 신경을 쓰더니, 사람들이 적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소곤소곤 말하기 시작했다. 「뭐어,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을 찾는 것뿐이야. 우리 후배 중에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녀석이 한명 있어. 이게, 아무래도 이상한 사건에 발을 들여 놓아버린 것 같아서」 가쿠토의 말은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행방불명된 후배의 이름은 미나토 케이타(湊啓 太) 어제부터 행방불명이라는 미나토 케이타는, 어제저녁의 엽기살인 피해자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어젯밤, 미나토 케이타는 단 한번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 상태가 너무나 이상해서, 미나토 케이타에게 연락을 받은 친구가 선배인 가쿠토에게 상담을 해왔다는 것이다. 「케이타 녀석이 살해 당한다 어쩐다 하고 주절댄 것 같은데, 전화는 그것뿐이었대. 휴대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전화를 받은 녀석의 말로는 상당히 취해있던 것 같다는데」 취해있다. 라는 것은 약을 말하는 건가. 후유증이 남지 않는 초심자 취향의 마약은 최근에는 가격도 싸져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LSD쪽이라면 고교생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무리해서 구할 필요는 없다. 「……저기말야, 나에게 이런 바이올런스한 세계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뭔 소리하는 거야. 이런 잃어버린 것 찾기가 특기중의 특기인 주제에」 대답하지 않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케이타란 애, 평소에도 약을 하고 있어?」 「아니, 하고 있는 건 죽은 놈들 쪽이지. 케이타라고 기억 못해? 너를 몹시 따르던 녀석 중에 하나라구」 「───아아. 그 애라면, 알고 있어」 고교시절, 어째서인지 나는 그런 쪽의 후배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아마도 가쿠토의 친구란 것이 특별하게 보였던 것이겠지. 「……하아. 중독성 없는 약으로 트립하고 있는 거라면 좋겠지만. 녀석들이 하고 있던 약은 UP계열, DOWN계열 중 어느쪽이야?」 마약에는 신경이 고양되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UP계열과, 반대로 음울해져서 기분이 가라앉는 DOWN계가 있다. 가쿠토가 말한 마약의 이름은 UP계열이었다. 「무서워져서 약으로 도피하고 있다───라면 큰일인데. 정말로 범인이 그 애를 노리고 있는지도 몰라. ……할 수 없지. 받아들일게. 녀석들의 친구 관계를 알려줘」 가쿠토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주소록을 내민다. 친구들의 숫자만은 많은 것이 그들 그룹의 특징으로, 수십 명이나 되는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그것과 각 그룹이 모이는 장소가 적혀있었다. 「발견하는 즉시 연락 할께. 만약의 상황엔 내 쪽에서 보호하게 되겠지만, 상관없겠지?」 이 '보호', 라는 것은 형사인 아키미 삼촌에게 맡긴다, 라는 의미다.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가쿠토는 응, 하고 끄덕였다. 상담성립이다. 우선 수사자금으로 2만 정도를 빌린다. 가쿠토와 헤어진 뒤, 살해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할 거라면 진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이미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일을 떠맡은 것이 아니다. 사실은 관계할 일이 아니라고 깨닫고 있으면서도, 그 케이타란 후배가 위험한 입장인 것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 2 전화벨이 울린다. 다섯 번 정도 울리던 소리는 멎고, 자동응답으로 바뀌었다. 삐─ 하는 발신음 뒤에, 지금까지 내가 듣는데 익숙해 있던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흐른다. 「안녕, 시키. 갑작스럽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어? 오늘 정오쯤에 역 앞에 아넨엘베란 찻집에서 아자카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갈 수 없을 것 같아. 너, 한가하잖아? 가서 나는 오지 못한다고 말 좀 전해줘」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나는 나른한 몸을 움직여서, 침대 곁의 시계를 본다. 7월 22일, 오전 7시 23분. 자신이 돌아 온지 아직 4시간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어제, 토우코의 의뢰를 승낙하고서 밤거리를 새벽 3시경까지 돌아다닌 탓인지, 아직 몸이 잠에서 덜 깨어있었다. 나는 시트를 다시 뒤집어쓴다. 한여름 아침의 더위도, 나에게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다. 료우기 시키는 어릴 적부터 더위나 추위에는 강한 체질로,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자, 다시 한번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는 자동응답으로 바뀌었고, 다음에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다. 뉴스는 봤나? 안 봤군. 안 봐도 괜찮아. 나도 안 봤어」 ……평소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확신했다. 저 여자의 사고 구조는 나하고는 크게 동떨어져있다. 토우코가 하는 말의 본의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 「어제저녁 일어난 사망사건은 세건. 이미 항례가 된 투신자살의 추가와, 치정에 얽힌 것이 둘이야. 그 어느 것도 보도되지 않았으니까, 어디까지나 사고로 처리되어버린 것이겠지. 하지만 나머지 하나만은 기괴한 케이스야. 자세히 듣고 싶으면 내가 있는 데로 와. 아아, 아니, 역시 안 와도 돼. 생각해보면 이걸로 충분해. 알았어? 잠에 취해있는 너를 위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면, 희생자가 한 명 늘었다는 거야」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나도, 거기서 끊고 싶어졌다. 희생자가 한둘 늘었다고 해도, 나에게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몸 가까이의 현실조차도 불확실한 나에게 있어서, 그런 동떨어진 사건은 그것이야말로 무가치하다. 이름도 모르는 녀석들의 죽음 따위, 지금 살갗을 찌르는 햇살보다도 인상이 약하다. 몸의 피로가 가실 무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전의 시키가 16년간에 걸쳐서 학습했던 상식대로 아침을 준비하고, 그것을 입으로 옮기고, 외출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은 엷은 귤색의 쯔무기를 걸친다. 한낮에 거리를 걸을 것이니까, 기모노는 외출복인 쯔무기가 어울린다. ──자신의 의견이라고 생각되는 그 옷 선택도, 실은 과거부터의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활을 코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혀 나는 혀를 깨문다. 2년 전. 료우기 시키가 17세였던 무렵은 이렇지 않았다. 2년간에 걸친 혼수상태가 나를 변하게 했을 리도 없다. ……2년간의 공백이 초래한 것은, 좀 다른 것이었다. 그런 것은 놔두더라도, 지금의 나는 나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없다. 료우기 시키라는 16년간의 끈이 나를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는 착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착각이겠지. 아무리 공허하다, 허구다, 반사(飯事:소꿉놀이)다, 라고 매도해도, 나는 결국 자기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있다. 그곳에 나 이외의 의지가 개입할 수는 없을 테니까. 옷을 다 갈아입자, 시각은 거의 11시가 되려하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자동응답의 녹음을 리피트 한다. 과거, 몇 번이나 들었을 목소리가 되풀이되었다. 대기 중으로 날아가 사라졌을 목소리는, 이렇게 녹음되어 있다. ……코쿠토 미키야. 2년전,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인물. 2년전, 내가 단 한번 마음을 허락했던 클래스 메이트. 그와의 여러 가지 과거는 알고 있지만, 그 최후의 영상만 없다. 아니, 그와 관계하고 있던 1년간의 기억은 구멍투성이다. 여기저기, 중요한 부분이 누락 되어있다. 어째서 시키는 사고를 당한 걸까. 어째서 그 순간에 미키야의 얼굴을 보고 있던 걸까. 망각했던 기억이 녹음되어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편리할까. 나는 그 누락이 신경 쓰여서, 아직 미키야와 대화를 잘 할 수 없었다. ……자동응답의 재생이 멈춘다. 미키야의 목소리를 듣자,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무언가, 확실한 기반이 생긴 것 같은 감각을 얻을 수 있었지만, 소리라는 것이 기반이 될 리도 없다. 그것도 착각이겠지. 아마도 분명, 착각이다. 지금의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살인을 범할 때의 불타는 듯한 고양감 뿐이었으니까. ◇ 아넨엘베는 안티크(antique)한 찻집이었다. 독일어로 쓰여 진 가게의 간판을 확인하고 안에 들어간다. 정오를 넘겼는데도 손님의 숫자는 적었다. 어떻게 된 구조인지, 가게 안은 어두컴컴하다. 바깥쪽에 맞닿은 테이블만 밝고, 카운터가 있는 가게의 안쪽은 더욱 어둡다. 벽에는 사각형의 창이 네 개정도 만들어져 있어서, 조명은 그곳에서 들어오는 햇빛뿐이었다. 창가의 테이블만이, 사각형으로 도려내진 것처럼 밝다. 여름의 강한 햇살 탓인지, 그 빛과 어둠의 색채는 음울하지 않고 오히려 장엄하게까지 느껴진다. 제일 안쪽 테이블에 코쿠토 아자카가 앉아있었다. 서양풍의 디자인의 학생복을 입은 소녀가 두 명, 나란히 앉아서 미키야를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 이야기가 틀리다. 미키야의 말로는 아자카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또 한 명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면서 소녀들을 관찰했다. 두 명 다 검은 흑발을 스트레이트하게 등 뒤로 늘어뜨리고 있다. 얼굴 생김새도 비교적 비슷해서 어느 쪽이나 아가씨 학원답게 차분하고 이지적인 미형이다. 그 인상은 정반대였지만. 아자카의 눈은 다부져서, 무언가에 도전하는 듯한 강함이 있다. 청초한 아가씨처럼 행동하고 있어도, 아자카의 심지가 굳은 것은 숨길 수 없다. 미키야는 그 인덕으로 인해 동급생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지만, 아자카는 그 위엄으로 존경받는 타입이겠지. 그런 아자카의 옆에 있는 소녀는 아주 가냘프다. 자세도 늠름하고 당당하지만, 부러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함이 느껴진다. 「아자카」 그녀들의 테이블에 다가가면서 말을 걸었다. 아자카는 나에게 시선을 옮기자, 명백하게 눈살을 찌푸린다. 「료우기───시키」 나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희미한 적의가 존재했다. 칼날 같은 적의(敵意)를 숨기지도 않는다. 더할 나위 없는 미소녀 같던 분위기는, 이 소녀의 장식인 것이다. 「저, 오라버니와 만날 약속이 있거든요. 당신에게 용무 같은 건 없어요」 극히 냉정을 유지하며, 아자카는 가시 돋친 말투로 말한다. 「그 오라버니로부터의 전언. 오늘은 올 수 없어, 라더군. 바람 맞았어, 넌」 아자카가 숨을 들이쉰다. 미키야에게 약속을 취소당한 것이 상당히 쇼크였던 걸까. 아니면 그것을 이야기하러온 것이 나이기 때문인 걸까. 「시키, 당신 짓이지……!」 부들부들하고 손을 떠는 아자카. 아무래도 내가 왔다는 것이 쇼크였던 것 같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나도 피해자라구. 아자카하고는 만나지 못하니까 돌려 보내줘, 라고 일방적으로 부탁을 받았다니까」 불같은 눈동자로 아자카가 노려본다. 이대로 가만히 두면, 컵을 던져올 것이 분명한 아자카를, 옆에 있는 소녀가 말렸다. 「코쿠토, 저기, 다른 사람들이 놀라고 있어요」 선이 가녀린 목소리. 그것에, 나는 한발 물러섰다. 「……그랬지, 후지노. 오늘의 용건은 너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내가 화낼 입장이 아니었어」 미안, 하고 아자카는 후지노라 부른 소녀에게 사과한다. 나는 어른스런 소녀를 본다. 저쪽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너────아프지 않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대답이 없다. 그저 나를 보고 있다. 마치 풍경이라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무관심함과, 곤충 같은 무기질함으로. 내 안에서 두 가지의 확신이 떠오른다. 이 녀석이 적이다, 란 직감과, 그럴 리가 없다는 실감이. 「……아니, 네가 아냐」 결국, 나는 실감을 믿었다. 이 후지노라는 소녀는 살인을 즐길 수 없다. 왜냐하면 즐길 이유가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소녀의 가느다란 팔로 네 명이나 되는 남자의 사지를 뜯어 발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처럼 인간이라는 정상적인 규격에서 벗어나버린 눈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나는 소녀에게서 관심을 잃고 아자카에게 말을 건다. 「용건은 그것뿐이야. 뭔가 전할 말이라도 있어?」 「그럼 한마디만 전해주세요. 오라버니, 어서 이런 여자와 손을 끊어 주세요」 아자카는 진심으로, 그런 전언을 남겼다. ◇ 「오라버니, 어서 이런 여자와 손을 끊어 주세요」 시키라는 기모노 차림의 소녀에게, 아자카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단지 서로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도,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있어서, 나는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했다. 어쩐지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틈이 생기면 단숨에 베어버리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에, 나는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하다못해, 소란스러운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그걸로 아무 말도 없었고, 아름다운 귤색의 쯔무기를 걸친 소녀는 반해버릴 정도로 유려한 걸음걸이로 떠나갔다. 나는 그 등을 눈동자로 따라간다. 시키라는 애는, 말투가 남자 같았다. 그 탓인지 나이를 가늠해 볼 수 없었지만, 혹시, 나와 연배인지도 모른다. 료우기, 라는 성은, 아마도 그 료우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저 고급스런 쯔무기도 납득이 간다. 원래부터 쯔무기는 외출복이지만, 저 애가 입었던 것은 이곳저곳의 되 접힌 부분에서 요즘 시대의 고안이 엿보였다. 료우기가의 아이라면 자신전문의 직물직인(織物職人)을 두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름다운 사람이네요」 나의 독백에, 아자카는 뭐어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상대를 싫어하면서도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는 아자카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과 비슷할 정도로 무서운 사람. ──나, 저런 사람 싫어요」 아자카가 놀라고 있다. 그녀는 정말로 놀라고 있었다. 나도 이 기분에 당황했다. 아마도──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반발심을 가졌으니까. 「의외네. 나, 후지노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애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내 인식력도 아직 멀었는걸」 「미워해────?」 ……싫다는 것은 미워함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렇게까지 심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저 사람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던 것뿐인데. 나는 눈을 감았다. 시키. 너무나 불길한 칠흑의 머리칼. 너무나 불길한 백순(白純)의 살결. 너무나 불길한 무저(無底)의 눈동자. 저 사람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저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뒤에 깔린 바탕을 알아차려 버렸다. 저 사람에게 있는 것은 피 뿐이다. 스스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스스로 누군가를 상처 입히려 한다. ……저 사람은 살인귀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번도, 스스로 하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시계(視界)가 닫힌 현기증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그렇게 외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은 사라져 주지 않는다. 단 한번, 말도 나누어 보지 않았는데, 그녀의 모습은 이 안구에 달라붙어 버린 것이다. 「미안해, 후지노. 모처럼의 휴일이 엉망이 돼서」 아자카의 말에 눈을 떴다. 나는 연습한대로 미소를 짓는다. 「괜찮아요. 오늘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니까」 「안색이 안좋은걸, 후지노. 원래부터 하얘서 알기 힘들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은 것은, 사실은 다른 이유. 하지만 아자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 상태가 나쁜 것은, 몸의 반응이 조금 느린 것으로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나쁘다고는 깨닫지 못했었다. 「할 수 없네. 미키야에게는 내가 부탁해 볼 테니까, 오늘은 돌아갈까?」 아자카는 나를 걱정 해준다. 고마워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오라버니에게 전할 말은 그걸로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 그 전언은 이걸로 몇 번째인지 잊어버릴 정도니까, 미키야도 익숙해져있겠지. 실은 말야, 이건 저주야. 끊임없이 반복된 말은, 그것으로 인해서 현실을 일그러뜨릴 수 있어. 정말로, 소녀다운 순진한 저주. 바보 같아서, 어딘가 가여워」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런 말을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엉뚱함에는 익숙해져있다. 나는 조용히 아자카의 투명한 미성(美聲)을 듣기로 했다. ……학원의 안에서는 거의 항상 수석, 전국모의고사에서도 10내에 들어가는 코쿠토 아자카는, 조금 이상한 곳에 신사적인 면이 있다. 아자카는 레이엔여학원에서의 내 친구 중 한명이다. 나도 그녀도 고교에서 학원으로 편입했다. 소학교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방식인 레이엔에서는, 우리들처럼 고교에서 편입해오는 사람은 드물다. 나와 그녀는 그런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휴일은 가끔씩 둘이서 외출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나의 고집으로 그녀의 오라버니를 통해서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나는 집 근처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1학년때의 총체육대회때 다른 학교의 선배가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최근 괴로운 일이 일어나서 침울해져있던 나는, 그 선배를 기억해 내는 것으로 기운을 되찾았다. 그것을 아자카에게 이야기하자, 그렇다면 본인을 찾아내자,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오빠도 그 근처의 중학교였고, 깜짝 놀랄 정도로 교우관계가 넓다고 한다. 아자카의 오라버니는 우리 정도 나이의 사람을 찾는 것은 특기중의 특기인 것 같았다. ……사실은 그 정도로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자카의 기세에 거절하지 못하고, 나는 선배를 찾기로 했다. 오늘은 그것에 대한 상담을 위해서 아자카의 오라버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오지 못하겠다고 한다. ……솔직히, 그 일은 그것으로 끝나서 안심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은, 그렇다. 나는 그와 이틀 전에 우연히 만나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때, 3년 전에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목적은 이미 달성했으니까, 찾지 않아도 괜찮다. 아자카의 오라버니가 올 수 없게 된 것은, 하느님이 내 마음을 알아주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갈까. 홍차 두 잔으로 1시간 동안 죽치기는 힘들어」 아자카는 일어선다. 오라버니와 만나지 못해서 낙담하고 있을 텐데도, 스르륵 자리를 일어나는 자연스러움은 아주 우아해서 반할 정도다. 그녀는 때때로 아주 당차다. 뒤끝이 없는 성격과 말투 때문이겠지. 정중한 말투가 지금처럼 모습을 바꾸며, 남자처럼 호쾌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본성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부분도 타고난 그녀의 성격이다. 나는 이 친구를,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만나는 것은 이걸로 마지막으로 하자. 「아자카, 먼저 기숙사로 돌아가세요. 나는 오늘 저녁도 집에서 자고 갈테니까」 「그래? 알겠지만, 너무 외박이 잦으면 수녀님들께 찍혀버려. 무엇을 하든지 적당히 해야지」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아자카도 어두운 찻집에서 떠나갔다. 나는 혼자가 되자, 문득, 가게의 간판에 시선을 옮긴다. 아넨엘베. 독일어로 유산(遺産)이란 의미였다. ◇ 아자카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간다, 라는 것은 거짓말. 나에게 이미 돌아갈 곳은 없다. 이틀 전의 그날 밤부터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아마도 어젯밤의 무단결석으로 학교에도 갈 수 없다. 분명 어제의 무단결석으로 아버지께 연락이 갔겠지. 집에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추궁 당한다.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있는 대로 말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아버지는 분명 나를 경멸하겠지. 나는 어머니에게 딸려 온 자식이다. 아버지가 필요로 하고 있던 것은 어머니와 집의 토지뿐이었고, 나는 옛날부터 덤이었다. 그래서 이 이상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필사적이었다. 어머니처럼 정숙한 여자로,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할 우등생으로,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보통 아이로────────옛날부터, 그렇게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그 꿈을 동경하며 지켜왔다. 하지만 끝이다. 그런 마법은, 내 주위에는 어디를 찾아봐도 없었다. 나는 점점 해가 저물어 가는 거리를 계속 걸었다.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인파와, 무신경하게 점멸하는 신호의 사이를 계속해서 거닐었다. 나보다도 어린 사람들도, 나보다도 나이 많은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 보였다. 꿈틀, 하고 마음이 축소된다. 문득, 생각이 나서 볼을 꼬집어보았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좀더 강하게 꼬집는다. ………………아무 것도. 단념하고 손을 떼자, 손가락 끝이 붉었다. 손톱이 살을 파먹을 정도로 꼬집어 버린 것 같다. 그래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살아있다,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후후……」 이상해서 웃음이 나와 버렸다. 나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째서 마음은 아프다고 느끼는 것일까. 대체 마음이란 것은 무엇일까. 상처 입은 것은 심장인 것일까, 아니면 나의 뇌인 것일까. 아사가미 후지노라는 개인을 공격하는 의미를 가진 말을 뇌가 받아들이면,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상처가 나는 것이다. 상처가 나면, 그것이 아프다고 알 수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반론도 변호도 매도도, 받은 상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뇌가 만들어내는 약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픔을 모르는 나도, 마음의 상처만은 아픈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아마도 분명히 착각이다. 진짜 아픔은, 결코 말만으로는 씻겨지지 않는다. 마음에 입은 상처는 곧 잊혀져 버린다. 마음에 입은 상처 같은 것은 대단치 않으니까. 하지만 육체에 입은 상처는, 상처가 있는 한 아픔이 계속된다. 그것은 얼마나 강하고, 확고한 삶의 증거인가. 마음이 뇌에 있다면, 뇌가 상처를 입어주면 된다. 그렇게 하면 나도 아픔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나의 지금까지의 나날처럼. 동년배, 아니면 연하였을 소년들에게 능욕당한 기억이, 상처가 되어 준다면. ───아아, 기억나 버렸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무서운 얼굴들을. 협박당하고, 괴롭힘 당하고, 농락당하던 나의 시간을. 나의 몸을 덮어 눌렀던 남자가 나이프를 가지고 덤벼들었을 때. 배가 뜨거워지면서 복부의 옷은 찢겨지고, 피에 젖어있었다. 찔린다고 생각했던 때, 나는 공격적이었다. 그들을 해치운 뒤에, 나는 그 뜨거움이 아픔인 것이라고 실감한 것이다. 다시 한번, 마음이 축소되었다. 용서 못해, 라는 발음이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마음속에서 반복되었다. 「─────큿」 덜컥, 하고 무릎이 저리고 힘이 빠진다. 또 그것이 찾아왔다. 배가 뜨겁다. 보이지 않는 손에, 나의 몸속이 움켜쥐어지는 듯한 불쾌감이. 토할 것 같다. ───평소에는 그런 일은 없다. 현기증이 난다. ───평소에는 갑자기 의식을 잃는다. 팔이 저린다.───평소에는 눈으로 보고 확인한다. 아주, 아프다. ───아아, 살아있다. 찔린 상처가 쑤시기 시작했다. 나았을 상처의 아픔이지만, 이렇게도 돌발적으로 되살아난다. 아주 오래전, 상처는 나으면 아프지 않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칼에 찔렸던 나의 상처는, 완치된 뒤에도 이렇게 아픔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 저는 이 아픔이 좋아요. 살아있다는 실감이 없었던 저에게 있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이것 이상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한 일은 없었으니까요. 잔류하는 이 통각만은, 결코 착각이 아니니까요. 「빨리, 찾지 않으면」 거친 호흡을 하며 나는 중얼거렸다.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놓쳐 버린 소년의 숨통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 정말 싫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살인자라고 밝혀져 버린다. 겨우 아픔을 손에 넣었는데, 그런 것은 싫다. 좀더 살아 있다는 쾌락을 느끼고 싶다. 나는 걸을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 몸을 이끌고, 이전의 그들이 모이던 장소로 걸어갔다. 격통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부자유함조차 사랑스러웠다. / 3 아자카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일단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날이 저문 뒤에 밖으로 나간다. 오늘까지 살해당한 인간의 수는 다섯. 이틀 전에 지하의 술집에서 네 명, 토우코의 말로는 어젯밤의 공사현장에서 또 한 명. 전의 네 명은 그렇다고 해도 어젯밤의 피해자에는 별로 관련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남이라고도 생각 할 수 없다. 밤거리에 노다니는 패거리들은 얼굴을 안다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관계가 있다, 라고 미키야가 말했었다. 어젯밤의 사체도 전의 네 명과 친구일 가능성이 높은 거겠지. 「그 자식───」 갑자기, 나는 아자카와 같이 있던 여자를 떠올렸다. ──모세혈관처럼 몸속에 뿌리내리고 있던, 죽음의 기미. 아직 자신의 눈을 다루는 것에 익숙치않은 나는, 준비도 없이 그것을 보아버렸다. ……그것은 이상하다. 어쩌면, 이 료우기 시키보다 특별하다. 그런데도, 그 소녀는 보통이었다. 피 냄새도 났고, 나처럼 자신이 서 있는 경계를 알지 못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사냥감은 그 녀석인데도, 나는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 소녀에게는 이유가 없었다. 자신처럼 살인을 즐기는 이유, 살인을 즐기게 하는 어둠이. 살인을 즐긴다. 그것을 원하고 있다. 이것을 코쿠토 미키야에게 들려주면 어떻게 생각할까. 역시,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고 나를 꾸짖을까. 「바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자신에 대해서인지, 아니면 미키야에 대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코쿠토 미키야는 나는 이전과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에 의해 혼수상태가 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편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전의 나도 이런 식으로 밤거리를 걷고 있었던 걸까. 뭔가 누군가와 서로 죽이려 들 수 없을까, 하고 찾아다니는 정신이상자처럼. 「─────」 아냐, 틀리다. 시키에게 그런 기호(嗜好)는 없었다. 있었지만, 그것은 거의 우선되지 않았을 터. 그렇다면 이것은 '시키(織)'의 감성이다. 음성, 여성으로서의 료우기 시키에게 있던 양성, 남성으로서의 료우기 시키의. 그 사실에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나에게는 그가 있었다. 지금은 없다. 없다는 것은 죽어 버렸단 것이겠지. 그렇다면────살인을 원하는 의지는, 틀림없이 지금의 나에게서 끓어오르는 것이 틀림없다. 토우코의 말대로, 이번 사건은 정말 내 취향이다. 무조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이 상황을, 나는 확실히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시각은 곧 밤 12시.    지하철을 타고서 좀처럼 오지 않는 역에 다다랐다.    불야성 같은 소란스러움을 보이는 이 거리로부터    멀리 커다란 항구가 보인다. ◇ 아자카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목적지를 변경했다. 놓쳐버린 나머지 한 명의 행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사할 방법은 있다. 아사가미 후지노와 직접관계를 가지고 있던 것은 해치운 네 명과 도망친 또 한 명뿐이지만, 나는 곧잘 그들이 모여 놀던 곳에 끌려간 일이 있다. 그곳에 가서 그들의 친구에게 물어 보면, 도망쳐 버린 또 한 명이 있는 곳도 알 수 있겠지. 집에 돌아가지도 않고, 학교에도 경찰에도 의지하려 하지 않는 그들이 믿을 것은 자신과 비슷한 동료들뿐일테니까. 나는 뜨거운 배를 안고서, 낯선 밤거리를 걷는다. 밤중에 혼자서, 저속한 그들의 놀이터에 들어가는 것은 꺼려짐이 있었지만, 고통과 능욕의 기억에 시달리는 지금의 나에게는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 가게에서 미나토 케이타의 친구라는 인물과 만났다. 커다란 빌딩을 통째로 가라오케 룸으로 쓰고 있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그는, 어쩐지 기분 나쁜 미소를 띄우면서, 나와 만나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점원 일을 끝마치고,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가자며 걷기 시작했다. 이 사람의 동료들이 애용하고 있는 집합 장소에 안내되는 것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약한 인간을 정확하게 판별 해낸다. 붙임성 있는 미소를 가장하고 있는 그는, 내가 더럽히기 쉬운 상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분명, 미나토 케이타의 패거리가 나를 농락하던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선뜻 나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거기까지 알고 있는데도, 나는 그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나보다 몇 살인가 연상인 그는, 점점 인적이 없는 길로 나아간다. 나는 더욱 아파 오는 배를 누르면서 각오를 굳혔다. ───시각은 곧 밤 12시.    반복되던 능욕을 저주하면서 그와 걷는다.    불야성 같은 소란스러움을 보이는 이 거리로부터    멀리 커다란 항구가 보인다. ◇ 청년은 자신의 운이 좋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미나토 케이타의 패거리가 어딘가의 여학교의 학생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케이타 본인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불러내서는 하고 싶은 짓을 하고, 그 자랑을 하는 것이 케이타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있어서, 그것은 완전히 딴사람의 일이었다. 케이타가 속한 패거리와는 거의 관계는 없었고, 뿌리내리고 있는 구역도 멀었다. 그래서 언제나 허풍 섞인 이야기 삼아 케이타의 자랑을 듣고 있었지만, 그것이 설마 자신에게 굴러 들어올 줄이야.v 차려진 밥상을 먹지 않을 리 있겠는가. 그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후지노를 데리고 나오기로 했다. 그다지 청년이 성관계에 부자유하다는 건 아니었다. 네다섯 명의 여자를 바꿔가며 노는 것은 그들 속에서는 그리 별난 일은 아니다. 청년이 기뻐하며, 동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요는 후지노가, 아사가미 건설의 영애(令孃)라는 점이다. 그녀를 범하고 나서 그 사실 전부를 공표 하겠다고 협박하면, 어떻게든 돈을 챙길 수 있겠지. 케이타의 패거리는 그런 일에는 어둡다. 리더인 남자가 별로 머리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아니, 아니면───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돈 같은 것은 필요 없었던 걸까. 뭐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쨌든 청년은 기대에 차 있었다. 보수는 한 명인 편이 수입이 좋다, 라며 청년은 동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미나토 케이타에 대해 물어 보러온 소녀───아사가미 후지노는 말없이 따라 온다. 그녀를 동료들의 집합소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청년은 인적이 없는 항구의 창고들 쪽으로 향했다. 밤도 깊어, 0시경. 창고가(街)에는 아무도 없다. 가로등도 적고, 창고와 창고의 사이에 들어가면 누구에게 들킬 일도 없다. 신경 쓰이는 거라면 파도소리와, 멀리 바다에 보이는 건설 중인 브로드브리지의 불빛 정도겠지. 후지노를 그 어둠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나서야 청년은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이 근처가 좋겠지. 근데, 묻고 싶은 일이 뭐지?」 청년은 우선 당초의 목적───후지노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한다. 갑자기 덮치는 것은 스마트하지 않다, 라는 그 나름대로의 미학이었다. 「───네. 케이타씨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계시는지 해서」 후지노는 고개를 숙이고, 한쪽 손으로 복부를 누르고 있다. 얼굴은 단정하게 다듬어진 앞머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아니, 케이타는 요즘에 안보여. 그 녀석, 자기 집도 없으니까, 남의 아파트를 옮겨 다니지. 휴대전화도 없으니, 연락도 할 수 없다구」 「아뇨───연락은 할 수 있어요」 「하?」 고개를 숙인 소녀의 언동이 이상하다. 있는 곳은 모르는데, 연락은 할 수 있다? 설마 이 여자, 너무 당해서 맛이 가 버린 건가, 하고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 나름대로 이 뒷일은 재미있어지겠지만, 일이 거칠어지면 계획하고 있던 것만큼 맥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어 괜찮겠지, 하고 청년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헤에, 연락을 할 수 있구나. 그렇다면 있는 곳을 물어보면 되잖아」 「그게───케이타씨가 저에게는 숨어있는 장소를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래서 제가 이렇게 케이타씨의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거에요. 알고 있어도, 알지 못해도 좋으니까, 대답해 주세요」 「야야야, 잠깐만. 뭐야, 그 숨어있다는 건. 그 자식이 뭔가 큰일 날 짓이라도 했다는 거야?」 점점 수상해지는 소녀의 언동에 그는 초조해졌다. 숨어있다, 라는 것은 후지노를 레이프했던 일을 들킨 걸까. 아니, 그렇다면 이 소녀 자신이 올 리가 없다. 청년은 생각한다. 그러나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뉴스 따위는 보지 않았으니까. 「뭐, 상관없나. 그것보다 말이지, 알고 있어도, 알지 못해도 좋으니까 란 건 뭐야. 설마 너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다는 거? 케이타에 대한 것은 표면상의 이유고, 새로운 남자라도 찾으러 왔다던가 말야!」 지금까지의 사근사근한 미소가 아니라, 그는 정말로 유쾌해져서 웃었다. 정말로 자신은 운이 좋다. 이렇게 되면 협박하지 않아도 돈이 생기게 됐다. 게다가───아사가미 후지노는, 자신들에게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을 정도의 미인이기도 하다. 고가(高價)의 꽃과 고령(高嶺)의 꽃이 양손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을 운이 좋다고 말하지 않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미안한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내 집에 데리고 가는 건데. 아니아니, 아니면 이런 장소가 좋은 걸까, 아가씨는」 검은 제복을 입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대답해주세요. 케이타씨가 있는 곳, 알고 계신가요」 「바보, 그런 건 이제 됐어. 처음부터 말야, 내가 그 녀석이 있는 곳 따위를 알 리가 없잖아」 그래요, 하고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청년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정상이 아니다. 나선을 밝히는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에는 감정이 없었다. ────제 정신이, 아니다. 「……?」 그 광기를 깨닫지 못한 청년은, 이상한 사태와 조우했다. 자신의 팔이, 멋대로 움직였다. 관절이 구부러진다. 거의 90도 각도까지 팔꿈치가 구부러지고, 더욱 관절은 꺾여져서───곧, 부러졌다. 「에에─────!?」 얼빠진 비명. 청년의 운명은 여기서 끝을 맞았다. 확실히 그는 운이 좋았다. 악운도, 불운도, 운이라는 것의 동포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달빛도 닿지 않는 골목 안에서, 참극이 시작되었다. … 「,,,,,,,,,!」 신음하는 소리는, 짐승 비슷한 발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청년은 양팔은 이미 팔이 아니었다. 마치, 지혜의 고리(智慧の輪). 아니면 종이비행기를 날리기 위해서 잡아당겨진 고무줄. ───어쨌든, 두 번 다시 인간의 팔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다. 「사, 사, 살려, 줘……!」 청년은 눈앞에 서 있을 뿐인 소녀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둥실, 하고 그의 몸이 떠오르더니 오른쪽 다리가 갈갈이 찢겨나간다. 철퍽, 하고 양동이로 물을 끼얹듯 피가 흩뿌려진다. 창고의 콘크리트 벽에 튀긴 그 흔적은, 무언가의 예술 같기도 했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것을 차가운 눈동자로 보고 있다. 「ㅂ, 비ㅌ,, 틀어,,, 하하, 나사다, 내 발이 나사가 되 버렸다, 히히, 아하하하하……!!!」 그의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없다. 머리가 나쁜 탓이겠지, 하고 후지노는 무시하기로 했다. 「……구부러져」───하고 중얼거린다. 그것은 몇 번째인가의 같은 발음. 반복하고 반복하는 단어는 저주가 된다고 그녀의 친구는 알려주었다. 청년은 지면에 찰싹 엎드려서, 머리만을 움직이고 있다. 양손은 비틀렸고, 오른쪽 다리는 없다. 다리에서의 출혈이 지면을 적신다. 붉은 융단 같아, 하고 후지노는 그곳에 걸어 들어갔다. 신발이 피에 잠긴다. 여름의 밤은 덥다. 끈적끈적한 대기가 살갗에 달라붙어 답답해졌다. 자욱한 피의 향기는 그것과 닮아 있었다. 「────아아」 애벌레같이 꿈틀대는 청년을 내려다보면서, 후지노는 한숨을 흘린다.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자,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다. 이 사람이 지하의 바에서의 사건을 모르는 것은 행동으로 알았지만, 그래도 곧 알게 되어버린다. 그 때 미나토 케이타를 찾고 있던 나를 그는 수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이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간접적이 되겠지만, 이것도 아사가미 후지노의 복수인 것이다. 자신을 침범한 자에게로의 반격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이 그들이 타인을 침범하는 능력과 후지노가 타인을 침범하는 능력의 차가 너무 큰 것 뿐. 「미안해요────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청년의 남아있던, 왼쪽다리가 산산조각 났다. 그걸로 간신히 남아있던 그의 의식도 끊겼다. 미동하는 청년의 육체를, 후지노는 고개를 숙이고 바라본다. 지금은, 그의 기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알 수 없었다. 타인이 고통스러워하는 몸짓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픔을 안 지금의 그녀는, 청년의 아픔을 강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것이 기쁘다.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을 겪어간다는 것이니까. 「이렇게 해서 겨우───나도 보통사람이 될 수 있어」 자신의 아픔. 타인의 아픔.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자신. 저 상처를 준 자신. 아사가미 후지노가 뛰어나다는 것. 이것이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으면 살아가는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잔혹한 나 자신. 「───어머니, 후지노는 이런 일까지 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인가요」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초조함을 견디기 힘들다. 심장이 몹시 두근거린다. 지네가 등줄기를 기어 올라오는 듯한 오한─── 「나, 살인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지도 않아, 너는」 갑작스런 목소리에 후지노는 뒤를 돌아본다. 창고와 창고의 사이에 있는 이 골목의 입구에, 기모노 차림의 소녀가 서 있었다. 고요하게 달빛을 머금은 항구를 등에 지고, 료우기 시키가 그곳에 있다───── ◇ 「시키────씨?」 「아사가미 후지노. ……과연, 아사가미(淺神)와 관계가 있는 자였나」 딸까닥, 하고 발소리를 내며 시키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창고 안에 충만한 피 냄새에, 시키는 눈을 가늘게 뜬다. 그것은 혐오가 아니라, 오히려 기쁨. 「언제부터───」 그곳에, 라고 말을 걸다가 후지노는 그만두었다. 그런 것은 물어 볼 것도 없다. 「계속. 네가 저 고깃덩이를 꾀어내던 때부터」 차가운 목소리에, 후지노는 섬짓 해졌다. 시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다. 보고 있었으면서도, 나왔다. 보고 있었으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이렇게 될 것을 알았으면서도, 계속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고깃덩이란 소린 말아 주세요. 이 사람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사체예요」 마음과는 반대로, 후지노는 그런 반론을 하고 있었다. 청년을 고깃덩이, 라며 인간 이하로 폄하하는 시키의 말이 심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아아, 인간은 사체이라도 인간이지. 마음이 없어진 것 정도로는 고깃덩이로 전락하지 않아. 하지만, 그건 인간의 죽음이 아니잖아. 인간은 말야, 저런 모습으로 죽지는 않는다구」 딸그락, 하고 또 한 발짝 내딛어간다. 「인간다운 죽음을 맞지 못한 녀석은, 이미 인간이 아냐. 머리가 남아있던지, 상처가 없던지 간에, 너에게 살해된 자들은 상식으로 취급될 수 없잖아. 경계에서 벗어난 녀석은 의미를 모조리 박탈당한다구. 그래서, 그건 단순한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아」 갑자기───후지노는 이 상대에게 반발심을 느꼈다. 시키는 이 청년의 사체와, 그것을 행한 자신이 상식 밖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참극을 보고 있던 이 소녀와 똑같이. 「……아니에요. 저는 정상이에요. 당신과는 달라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여하의 이유도 없이 후지노는 외치고 있었다. 시키는 미소 짓는다. 우습다는 듯이. 「우리들은 서로 비슷해, 아사가미」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후지노는 시키를 응시한다. 징, 하고 자신의 눈동자에 잡힌 영상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어릴 적에 가지고 있던 "힘"이 행사된다. 하지만, 그것은 갑자기 엷어져 갔다. 「────!?」 그러나 놀라는 것은, 후지노와 시키 둘 다였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사용할 수 없게 된 자신의 "힘"에 료우기 시키는 갑자기 변해 버린 아사가미 후지노에게. 「또냐────너,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야!」 시키는 회를 냈다. 일을 망쳐버렸다, 라는 것처럼 머리를 긁는다. 「아까까지의 너라면 죽였을 텐데. 찻집에 있었을 때도 그랬어. ……이제 됐어, 기분만 잡쳤네. 지금의 너 같은 건 흥미 없어」 그렇게 말하고는, 시키는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후지노에게서 멀어져간다.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 그러며 두 번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거야」 모습도, 그것으로 멀어졌다. 후지노는, 피 웅덩이 속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이전의 나로 돌아가 버렸다.    또,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후지노는 다시 한번, 청년의 사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까지의 감각도 없다. 죄의식만이 뇌를 마비시킨다. 남아 있는 것은, 시키가 남긴 말뿐이다. 자신들은 같은 살인귀다, 란 고발 같은 대사만이. 「아니야────난, 당신 같은 존재와는 틀려」 우는 것처럼 후지노는 중얼거렸다. 사실, 그녀는 살인을 싫어하고 있다. 이 뒤에도, 미나토 케이타를 발견하기 위해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자 몸이 떨려온다. 사람을 죽인다니, 용서받을 리가 없으니까. 그것은 그녀의 진정한 본심. ……피 웅덩이에 비친 그녀의 입가는, 살며시 웃고 있었다. 통각/잔류 3 7월 23일의 이른 아침, 겨우 나는 미나토 케이타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의 친구들에게 들어서 얻은 정보와, 그의 행동범위의 한계, 그리고 미나토 케이타의 사람됨으로 추측한 결과, 딱 하루 걸려서, 숨어 있는 집을 좁혀 들어간 것이다. 도심에서 떨어진 주택가의 맨션의 하나, 6측의 빈방에 미나토 케이타는 불법침입해서 머무르고 있다. 그 방에 벨을 울리고, 큰소리가 되지 않게 말을 걸었다. 「미나토 케이타. 네 선배에게 부탁을 받고서 도와주러 왔어. 실례할게」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조용히 안에 들어간다. 방안은 전등이 켜져 있지 않아서, 아침인데도 엷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플로어링 복도를 걸어서 거실로 나간다. 아무것도 없는 거실에서 부엌과 침실이 보였다. 원래부터 아무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일절의 가구도 없다. 텅 비어버린 방에, 여름의 아침 햇살만이 눈부셨다. 「안에, 있지? 들어갈게」 침실과는 다른 또 하나의 방이 있다. 그곳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안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덧문을 닫았기 때문이었다. 아침 햇살이 열려진 문을 통해 내리 쬔다. 빛에 반응한건지, 어둠 속에서 힉, 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 역시 이방에는 아무 것도 없다. 가구가 없는 방은 상자와 마찬가지다. 생활의 냄새도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밀실에는 16세 정도의 소년과, 먹어 치운 음식물의 용기, 그리고 휴대전화만이 있다. 「미나토 케이타군이지? 이런 곳에 틀어박혀 있으면 몸에 안 좋아. 게다가,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해서 멋대로 방을 사용하는 것도 안돼. 이런 것도 빈집 털이 취급을 받는다구」 방에 들어가자, 케이타는 깜짝 놀라며 벽에 붙었다. ……그 얼굴은 아주 지쳐보였다. 사건 저녁부터 아직 3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볼은 여위었고 안구는 핏발이 서 있다. 한숨도 자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약을 하고 있다, 란 얘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소리다. 그는 약의 도움 같은 것이 없더라도, 제정신을 잃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분명,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참극을 보아 버렸기 때문에. 이 인공적인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으로 그는 간신히 자아를 보호하고 있다. 아주 극단적인 방어 방법이지만, 3일 정도라면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누구에요, 당신」 흐릿하게 흘린 목소리에는 지성이 남아 있다. 나는 발을 멈췄다. 상대는 엽기 사건에 직면해서 정신이 혼란스럽다. 범인을 보고 공황하고 있는 점도 있으니, 경솔하게 가까이 다가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의심은 모든 것을 두려워지게 만드는 법이니, 그것은 나를 범인과 한패로 밖에 인식시키지 않겠지. 하지만 회화가 가능하다면 말이 달라진다. 말을 하고 있으면, 이성이 소생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진정시키는 것 보다, 나는 멈춰 서서 말을 하기로 했다. 「누구에요, 당신」 반복된 질문에, 나는 양손을 들었다. 「가쿠토의 아는 사람이야. 일단 너의 선배이기도 하고. 코쿠토 미키야라고 하는데, 기억하고 있을까?」 「코쿠토───선배?」 그에게 있어서, 나는 예상외의 등장인물이었던 것이겠지. 한동안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그는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선배, 선배가 어째서 제가 있는 곳에 온 거에요?」 「가쿠토의 부탁으로 너를 보호하러 왔어. 귀찮은 사건에 휘말려 들었다고 걱정하고 있더라. 가쿠토도, 나도 말야」 가까이 가도 돼? 하고 묻자 케이타는 격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 여기서 나갈 수 없어요. 밖에 나가면 죽을 거에요」 「여기에 있어도 죽을 거야」 케이타가 눈을 크게 뜬다. 적의(敵意)를 노출한 핏발선 시선을 받으며, 나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 대 피워 문다. ……사실은 피우지 않지만, 냉정한 체 해서 상대를 안정시키는 효과적인 제스쳐이기 때문이다. 「사건에 대해서는 들었어. 케이타, 너 범인을 알지?」 보랏빛 연기를 토해내면서 캐묻자, 케이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잠깐, 혼잣말을 해보기로 할까. 너희들은 20일 밤, 평소에 모이던 곳인 바(Bar) 신기루에 모여 있었어. 그 날 저녁에는 비가 왔었지. 나도 그 무렵에 술자리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가쿠토에게 너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이런저런 얘길 들었어. 사건이 나던 날 밤에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짐작하고 있고. 경찰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녀석들, 경찰아저씨들에겐 협조적이지 않으니까」 곤란한 일이지, 하며 어깨를 늘어뜨린다. 케이타는 아까와는 다른 두려움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가 아닌, 지금까지 해온 일이 폭로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겠지. 「사건이 일어났던 밤, 현장에는 너희들 다섯 명 외에 한 명이 더 있었어. 너희들이 협박하고 있던 여고생.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녀가 술집으로 내려가는 것을 본 애가 있어서 알았지. 그 여고생은 사건이 일어났어도 경찰에 출두하지도 않았고, 발견되지도 않았어. 그렇다고 해도 살해당한 네 명처럼 유체도 없어. 너, 그 애가 어떻게 됐는지 몰라?」 「몰라요───나, 그런 녀석은 몰라요」 「그러면, 그 네 사람을 죽인 것은 너겠구나. 경찰에 연락한다」 「설마! 그 건 제 탓이 아니라구요……! 그런걸, 그런걸……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응, 그건 동감이야. 그러면 여자 애는 정말로 있었던 거네?」 한동안 말이 없다가, 케이타는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의문이야. 그 사건은 여자 한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야냐. 너희들. 약이라도 마셨던 거야?」 소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자가 범인이 아니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들은 평소대로였다, 라는 의미로. 「남자가 다섯 명이나 있으면서 여자 한 명에게 당하다니, 있을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구요……! 그 자식,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정상이 아니었어요! 괴물, 괴물이었다구요!」 자신이 입으로 말한 "그때"의 일을 기억 해낸 것이겠지. 딱딱하고 이빨을 부딪치면서, 소년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 자식, 멀거니 서있을 뿐이었는데, 모두가 비틀려져 버렸어. 빠직빠직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어. 둘이 당했을 때, 나, 정신이 들었어. 역시 후지노는 정상이 아니라고. 이곳에 있으면 죽는다고───!」 케이타 소년의 독백, 확실히 이상했다. 소녀───후지노라는 그 애는, 단지 서서 노려보는 것만으로 소년들의 팔과 다리를 비틀어 잘라 버렸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장소에 있던 케이타에게는 피부로 실감되었던 거겠지. 죽이는 쪽과, 죽는 쪽의 차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해도───보는 것만으로 물건을 구부린다? 스푼을 구부리는 것도 아니고,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것도 있을 수 있겠군, 하고 끄덕여 버렸다. 시키라는 특별한 눈을 소유해 버린 소녀와, 마술사인 토우코씨를 알고 있는 자신이 이제 와서 무엇을 부정할 수 있을까. 뭐어 그것은 그렇다고 보류 해 두자. 그런 것보다도 신경 쓰이는 단어가 있었으니까. 「알았어. 그 후지노란 애가 저지른 일은 믿겠어」 「────헤?」 놀란 얼굴을 하는 케이타. 「하지만, 선배, 그런 건 거짓말이에요. 이런 건 아무도 믿지 않잖아요!? 저기, 부탁이니까 거짓말이라고 말해 주세요……!」 「그러면, 트릭이라고 해 두자. 그것보다 최면술이라고 하는게 좋을까. 어쨌든 너무 깊게 생각하면 안돼. 알 수 없는 일은 무리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좋아. 그것보다 말야, 처음에 이상하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야?」 나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이상한 답변에 케이타는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까까지 넘쳐흐르던 긴장감이 점점 엷어져 간다. 「아……이상하다라……그, 이상했어요. 어쩐지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무슨 짓을 해도 반응이 늦다고 할까. 리더에게 협박당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약을 먹여도 그대로였고, 때려도 태연한 낯짝을 했고」 「……헤에, 그래」 그들이 후지노란 소녀에게 폭행을 일삼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뻔뻔스럽게 술술 말하는 걸 보니 할말이 없었다. 반년 간에 걸쳐서 능욕을 당한 후지노란 소녀는, 그 복수로서 그들을 살해했다. 그곳에 정의는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정의와 법률은 옛날부터 사이가 나쁜 걸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생긴 건 최고였지만, 해도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인형을 안고 있는 기분이라서. 하지만……그래, 그때는 달랐어. 최근에 있던 건데, 애들 중에서 위험한 녀석이 한 명 있었어요. 그 자식, 아무리 때려도 무표정인 아사가미를 재미있어 하다가, 나중에는 금속 배트를 가지고 와서 등에다 한방 갈겼어요. 팡 하고, 아사가미는 나가떨어지면서 아픈 듯이 얼굴을 찡그렸구요. 저, 그때에 오히려 한숨 돌렸어요. 아아, 얘도 아파하는구나, 하고. 그 날 밤만은 그 녀석, 사람 같아서 좋았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지만」 「……너, 잠깐 입 좀 다물어」 케이타는 입을 다문다. 더 이상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나로 있을 자신이 없었다. 「대강의 사정은 알았어. 경찰 중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보호받도록 하자. 그게 두 번째 정도로 안전해」 주저앉은 소년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다가간다. 그러자, 그는 싫어, 라고 외치면서 몸을 움츠렸다. 「안돼, 경찰서 같은 데는 안가. 게다가───나가면 죽어. 그, 그런 식으로 비틀려 버릴 거라면, 계속 여기에 있는 편이 나아!」 「밖에 나가면 죽어……?」 그 대사에는 무언가 미묘한 어긋남이 있었다. 나와 소년과의 사이에는 아직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밖에 나가면 발견 당한다, 라고 말하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서 갑자기 죽는다, 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래서는 마치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과─────똑같은 것이다. 거기서, 겨우 나는 깨달았다. 케이타의 옆에 있는 휴대전화의 역할을. 「……전화가 걸려오는 거야? 아사가미 후지노에게서」 그 한마디로 케이타는 공황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여기 있는 건, 이미 알고 있는 거야?」 모르겠어, 하고 소년은 떨면서 말한다. 「나, 도망칠 때, 리더의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었어. 모두 죽은 뒤에, 전화가 걸려 왔어. 나를 찾겠다고. 절대로 발견해 내겠다고. 그러니까 숨지 않으면 나는!」 「휴대 전화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건 어째서야?」 알고 있었지만, 물어보았다. 「하지만, 버리면 죽이겠다고 했어……! 죽고 싶지 않으면 가지고 있으라고. 가지고 있는 한 못 본 체 해주겠다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아사가미 후지노의 원한은, 이 얼마나 깊은가. 「그런데도, 그 자식, 매일 저녁에 전화를 걸어와. ……제정신이 아니야. 그저께는 쇼우노, 어제는 코헤이와 만났대. 내가 있는 곳을 몰라서 죽였대. 다정한 목소리로 다행이야, 라고 하면서……! 친구들이 소중하면 찾아오라고 나불댔지만,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짓!」 ……그것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일까. 매일 저녁 걸려오는 전화의 내용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상대로부터의 보고다. 오늘은 너를 죽이지 못했다. 그 대신에 너의 친구가 한 명 죽어 버렸다. 친구를 죽이고 싶지 않으면 찾아 와라. 오지 않아도 좋지만, 그때까지 살인은 계속되어, 언젠가 네가 있는 곳에 다다른다────. 「어쩌지, 나. 죽고 싶지 않아. 그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아. 아프다면서 울부짖었다고 걔네들!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말야, 목이……목이 걸레처럼 비틀려졌어!」 「그 전화를 버려. 그러지 않으면 희생자가 늘어나」 「모르겠어? 그런 것 하면 내가 죽는다고 말했잖아!」 그것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인간이 두 명 죽었다. 그것 때문에, 아사가미 후지노는 의미 없는 살인을 두 번이나 했다. 「지금 상태로는 어떻게 되든 살해당할 거야, 너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비비고는, 나는 걷기 시작했다. 주저앉고서, 무릎을 안고서 틀어박혀 있으려는 소년의 팔을 잡아당긴다. 「선배, 좀 봐 주세요. 저, 이젠 어찌할 수 도 없어요. 가만히 내버려둬 주세요. ……싫어, 아니야, 사실은 무서워. 저, 이젠 혼자 있는 것은 싫어요. 부탁이니까 도와주세요…!」 아아, 하고 나는 끄덕였다. 「도와줄게. 너는 경찰에겐 맡길 수 없어. 내가 아는 한 제일 안전한 장소로 데려가지」 이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곳은 토우코씨가 있는 곳 밖에 없다. 그것이 누구에 대해서도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서, 나는 케이타와 맨션을 뒤로 했다. 4 토우코씨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케이타를 보호해 주겠다고 했다. 사건 당일부터 한숨도 자지 않았던 소년을 침실의 소파에 재우고는, 나와 시키가 있는 사무소로 돌아왔다. 토우코씨는 자신의 의자에 앉았고, 시키는 서있는 채로 벽에 기대어있었다. 케이타를 재우고서 겨우 안정이 되자, 둘은 입을 모아 「사람 좋은 놈」이란 말을 해주었다. 「예에, 슬슬 그런 식으로 바보 취급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다면 성가신 일에 관계하지는 않아. 코쿠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쪽 놈들에게 선뜻 손을 빌려준단 말이야」 「할 수 없잖아요.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대답하자, 토우코씨는 흠, 하고 생각에 잠긴다. 독설을 퍼붓고 있지만, 토우코씨 본인은 소년의 보호에 찬성 해주고 있었다. 한편, 벽 쪽에 있는 시키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말없이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것이, 화가 난 건지도 모른다. 「상황이 상황, 인가. 확실히 평범한 케이스가 아니란 건 알겠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사가미 후지노를 찾아서 설득이라도 할 셈이야?」 「───글쎄요. 언제까지고 보호해 줄 수도 없고, 그 사이에 아사가미 후지노가 다시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르죠.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 얼간아. 그러니까 널 사람 좋은 놈이라고 부르는 거야」 시키의 말은 거칠게 없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한층 더 공격적이다. 그녀는 정말로 화가 나있다. 「그 자식에겐 말이 통하지 않아. 완전히 늦었어. 목적을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아. 아니, 달성해도 멈출지 어떨지 몰라.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 버렸으니까」 「시키, 마치 아사가미 후지노를 알고 있는 듯한 말투네」 「알고 있고, 만났어. 어제의 부탁으로 아자카와 만났을 때, 함께 있었으니까」 에, 하고 하는 소리를 냈다. 어째서 아자카가 아사가미 후지노와 함께 있는 걸까. 말이 전혀 이어지지 않……는 것은 아닌가. 불량배들에게 협박당하던 것은 여고생이었다는 것 밖에 듣지 않았지만, 아사가미 후지노가 레이엔여학원의 학생이라면 이야기는 틀리다. 「뭐야, 굼뜨잖아 코쿠토. 아사가미 후지노의 조사는 안한 거야?」 「저기 말이죠, 그 이름을 들은 것은 딱 두 시간 전이에요. 이쪽은 미나토 케이타의 보호만이 목적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신경은 못 썼다구요」 ……하지만, 무언가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그것은 아자카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라던가,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라던가 하는 불안이 아니다. 좀더 뭐랄까……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부득이 하게 생각해내기 전의 초조감에 가깝다. 「……하지만, 그러면 아사가미 후지노는 지금도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건가요?」 「아니. 사건 당일 저녁부터 기숙사에도 집에도 돌아오지 않았고, 학교도 무단결석을 계속하고 있어. 완벽한 행방불명이야. 아자카도 어제부터 만나지 못했다고 했고」 「토우코씨, 언제 그런 것을 조사하셨나요?」 「조금 전부터야. 그녀의 부모에게서 수색 의뢰를 받아서 말이지. 어젯밤, 시키에게서 아자카와 아사가미 후지노가 같이 있었다고 듣고서, 연락을 해봤는데, 아자카는 친구인 아사가미 후지노의 이상(異常)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어」 ───얼마나 얄궂은가. 아자카와의 약속이 하루만 늦었더라면, 아니, 좀더 빨리 케이타를 찾아냈더라면, 어젯밤의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는데. 「이런 상황이니, 미나토 케이타의 보호는 우리로서도 쓸데없는 행위는 아니야. 이대로 아사가미 후지노를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면 미끼로서 써먹어 줘야지. 이 뒤로는 거친 일이 될 테니, 코쿠토는 케이타와 함께 남도록 해」 그 억양 없는 목소리에,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시키가, 계속 이곳에 있는 이유를. 「거친 일이라니───아사가미 후지노를 어떻게 할 생각이신 건가요? 토우코씨」 「경우에 따라서는 전투도 감수해야지. 어쨌든 의뢰주가 그것을 바라고 있어. 딸이 살인귀로서 보도되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 같아. 적어도 표면으로 드러나기 전에 처리해 달라고 하더라구」 「그런, 아사가미 후지노는 무차별로 살인을 일으키는게 아닐텐데요……! 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아아, 그건 무리야. 코쿠토, 너는 중요한 사실을 못 들었어. 아사가미 후지노가 그들을 학살한 상황의 결정타를 몰라. 아까 미나토 케이타를 재울 때에 고백을 들었어. 그들의 리더는 말이지, 마지막 날 밤에 나이프를 들고 후지노에게 달려들었대. 그때, 아무래도 후지노는 찔려 버렸던 것 같아. 복수의 방아쇠는 그거야」 ……나이프. 능욕당하고, 거기에 나이프로 협박당했다는 건가. 하지만──그것이 어째서 대화가 불가능한 이유가 되는 걸까? 「문제는 여기서부터야. 복부에 칼로 찔린 상처가 20일 밤. 시키가 만났을 때가 그 2일후다. 그 때, 아사가미 후지노에게 상처는 없었다. 완치 됐다는 거야」 「배에 찔린 상처……」 잠깐. 그 이상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이성이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20일 밤, 레이엔여학원의 학생. 복부의 찔린 상처. 「케이타에게서 들었는데, 후지노는 전화로 상처가 아프니까 잊을 수 없어, 라고 되풀이해서 이야기했대. 완치되었을 상처가 아프기 시작한다고. 아마도 과거의 능욕이 뇌리를 스칠 때, 복부를 찔렸을 때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거야. 혐오스런 기억이, 혐오스런 상처를 불러일으키는 거지. 아픔은 착각이겠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현실일 테지. 이래서는 발작하고 마찬가지야. 아사가미 후지노는 존재하지도 않은 아픔을 기억 해낼 때에, 돌발적인 살인을 범하고 있어 한참 대화하던 도중에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지?」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상처만 아프지 않으면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내가 그것을 말하려 하는 것 보다 빠르게, 침묵하고 있던 시키가 말했다. 「달라, 토우코. 그 녀석은 진짜로 아픔이 있어. 아사가미 후지노의 아픔은 몸속에 아직 남아 있다구」 「그럴 리가 없어. 그렇다면, 시키. 상처가 완치되었다는 것은 너의 착오야?」 「찔린 상처라면 완치되었어. 속에 금속 조각 같은 것도 남아있지 않아. 정말로 그 녀석의 아픔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한다구. 아파하고 있을 때의 아사가미 후지노는 손쓰기엔 늦었어. 반대로 보통의 후지노는 하찮은 존재야. 죽일 가치도 없어서 돌려보냈다고 했잖아」 「……게다가 내부에 금속조각 같은 것이 남아 있다면 이미 죽어 있겠지. 헤에, 완치되어 있는데 아픈 상처, 인가」 이상한데, 하고 말하는 것처럼 토우코씨는 담배를 집어 들었다. 나도 시키의 말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배를 찔린 상처가 나을 때까지 아픈 것이라면 정상이다. 하지만 완치된 뒤에도 아픔이 돌발적으로 되살아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통각만이 잔류하고 있는 상태 같은 것이 아닌가. 「아」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사가미 후지노의 정체불명의 증상을 해결 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이상하다는 의미를 "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어에서 연상 해낸 것이다. 「뭐야, 코쿠토. 오십음도에 의한 건강법이야?」 ……그런 거, 있다고 해도 아무도 안할 거라 생각한다. 「아녜요. 아사가미 후지노가 이상했다던 이야기 말인데요」 응? 하고 토우코씨는 한쪽 눈썹을 올린다. 아아, 그러고 보면 사건의 개요밖에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이것은 아직 설명하지 않았었다. 「미나토 케이타가 했던 말 속에 있던 건데, 아사가미 후지노는 무슨 짓을 당해도 움직이지 않았대요. 처음에는 굳센 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에요. 그 애는 그렇게 강한 애가 아니었어요」 「───알고 있는 것 같은 말투인데, 미키야」 어째선지 시키가 예리한 시선을 보내 왔다. 지금의 시키의 대사는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본능이 명령한다. ……덤불을 헤집어서 뱀을 나오게 하는 결과가 될게 틀림없으니까. 「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혹시……그녀는 무통증(analgesia)이란 게 아닐까 해서」 무통증이란 것은, 문자 그대로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특수한 병이다. 희귀한 병이기 때문에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녀의 불가사의한 통각도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래. 그렇다면 조금은 설명 할 수 있겠지만……그렇다고 해도 원인은 있을 거야. 복부를 칼에 찔렸다 해도 무통증이라면 아픔은 처음부터 느낄 리가 없어. 아사가미 후지노가 태어나면서부터 무통증인가의 확인도 필요하고, 그 감각 마비가 해리증(解離症)인지 아닌지도 확인해야 하지. 뭐어 그녀가 무통증이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무언가 거기에 이상을 일으킬만한 원인은 없는 거야? 등을 강타 당한다든지, 목덜미에 대량의 부신 피질 호르몬을 맞았다던지」 등을 강타───그건가. 「정도는 알 수 없지만, 등을 야구 배트로 맞은 일은 있는 것 같아요」 감정을 억제한 나의 말에 토우코씨는 우습다는 듯 웃었다. 「하하아, 놈들 짓이군. 풀 스윙이었겠지, 그건. 그렇다면 등뼈는 부러진 건가. 균열이 간 것만으로도 훌륭한 골절이니까. 그래서 등뼈에 금이 간 뒤에도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 감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들에게 농락당했다는 거군. ……정말이지, 처음에 느낀 아픔이 그건가. 그녀는 그 초조함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텐데. 이야, 정말 대단해. 코쿠토. 너, 잘도 미나토 케이타를 보호할 생각을 했는데?」 토우코씨는 입가를 치켜 올리며 말한다. 이 사람은 기분이 내키면, 누구든지 말로써 궁지에 몰아넣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사람을 이성으로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 피해는 대개 나에게 돌아온다. 평소에는 그것에 대항하지만, 지금은 대답할 수가 없다. ……대답 해낼 만한 자신이 없다. 고개를 숙이고, 나는 그 해답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토우코씨. 등뼈와 무통증이 관계가 있나요?」 「있지. 감각을 관리하는 것은 척수잖아. 통각의 이상이 있는 경우에, 대개는 척수에 무언가의 이상이 있어. 코쿠토, 척수공동증(脊髓空洞症 : syringomyelia)이라는 걸 알고 있어?」 ……의학생도 아닌 내가, 그런 전문적인 병명을 알 리가 없다. 말없이 고개를 흔들자 그래? 하면서 토우코씨는 유감이라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공동증은 감각마비의 대표적인 것인데 말이지. 알았어? 코쿠토, 감각에는 두 종류가 있어. 감촉과 통각, 온도 같은 것을 맛보게 하는 표재감각(表在感覺) 육체의 움직임, 위치를 자신에게 보고하는 심부감각(深部感覺) 보통, 감각마비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 완전히 감각이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겠어?」 「말로 하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어요. 만져도 느껴지지 않고, 먹어도 맛이 나지 않는 것 말이죠?」 그래그래, 하면서 끄덕이는 토우코씨는 어쩐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게 감각을 가지고 있는 자의 당연한 의견이야. 감각이 없더라도 몸이 있으니, 분명히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 이외는 자신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감각이 없다는 것은 말이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거야, 코쿠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럴 리 없다. 물건도 잡을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만지고 있다는 실감 없는 것뿐이지 않는가. 그것이 어째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일까. 몸이 없는 것도 아닌데. 몸의 일부가 없어서 괴로워하는 사람에 비하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 거기서, 깨달았다. ………몸이, 없다. 만져도, 그것을 만지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눈으로 보고서 만지고 있다 라는 사실을 인식할 뿐. 그런 것은 책을 읽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빨간 거짓말, 가공의 이야기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걷고 있어도, 몸이 움직이는 것 뿐. 지면의 반동도 느끼지 못하고, 단지 다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밖에 없다. 아니, 그 인식이란 것도, 눈으로 보고서 겨우 믿을 수 있을 정도의 희박한 인식이겠지. 감각이 없다. 그것은 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유령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들에게 있어서, 모든 현실은 단지 보고 있는 것들일 뿐. 그런 것은, 만지고 있다 하더라도, 만져지지 않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그것이 무통증인가요」 「그래. 아사가미 후지노의 무통증은, 등을 강타 당한 것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나았다고 가정하도록 할까. 그러면 그녀도 아프다, 라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겠지. 지금까지의 체험으로 얻지 못했던 그 감각이, 그녀의 살인 충동의 하나 일거야」 아픔을 알게 된 소녀는, 그것에 적의(敵意)를 표했다는 것일까? 그랬을 리가 없다. ……유령 같은 후지노. 아픔을 알았을 때, 그녀는 얼마나 기뻤을까. 그, 기쁘다는 감정조차도 몰랐을 테지만. 「……무통증이 일시적으로 나아서, 아픔을 느끼게 되고, 밉다고 하는 감정을 알았을까. 겨우겨우 손에 넣은 통각이, 복수의 방아쇠가 되어버리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 점이야. 상처가 아파서 복수한다, 라고 아사가미 후지노는 말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일까. 정확히 말해서, 상처가 아픈 것 때문에 과거의 능욕이 기억 나 버려서 복수한다. 이게 동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확실히 모르겠어. 일단, 시키의 말로는 그녀는 무통증으로 돌아간 거지? 그렇다면 이미 복수의 의미 따위는 없는 거잖아. 상처는 나으면 아프지 않다구」 「그게 아니에요. 토우코씨, 감각이 없다는 것은 성감(性感)도 없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능욕 당해도 그 아픔도 감각도 없어요. 아사가미 후지노라는 애로서 보자면, 그것은 능욕 당했었다는 사실 뿐인 일이에요. 하지만, 싫었기 때문에, 몸이 아프지 않은 대신 마음만이 상처가 나버린 거죠. 그녀의 상처는 육체에 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난 게 아닐까요. 그래서 기억과 함께 통각이 되살아나는 거죠. 마음이 아프니까」 토우코씨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시키가 웃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있겠냐. 마음은 존재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아프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확고한 반론 같은 것은 없다. 왜냐면 마음이란 시(詩)적이고 감상적인 것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의외로 토우코씨가 아니야, 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음은 부서지기 쉬워. 형체가 없다고 해서 상처 입지 않는다, 라는 것은 좀 그런데. 사실, 정신이 병든 것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있어. 그것이 어떤 착각망상의 종류라 하더라도, 그런 사실이 있는 한, 그 불계측한 현상은 "아프다"라고 표현 되는 거야」 토우코씨로서는 애매한 반론.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의지가 되는 아군이다. 시키는 부루퉁해져서 팔짱을 낀다. 「뭐야, 토우코. 너까지 아사가미 후지노를 두둔하는 거야? 그 자식은 그렇게 예쁘장한 녀석이 아니라구」 「아아, 그것에 관해서는 시키와 동감이야. 아사가미 후지노에게 그런 감상(感想)은 없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복수한다고? 설마. 왜냐면 코쿠토. 무통증은, 그 마음조차 아프지 않는 거야」 아군은, 순식간에 최대의 적이 되었다. 「잘 들어, 인격이란 것은 의학적으로 "개인이 외부에서의 자극에 반응하여, 그것에 대응하는 현상"이라고 표현되지. 사람의 정신……다정함과 미움은, 자신의 내부에서만은 결코 스스로 발생하지 못하는 거야.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없으면 생겨나지 않아. 그 때문에 아픔이 있지. 아프지 않다, 라는 것은 차가워져 있다는 거야. 선천적인 무통증 환자는 인격에 문제가 있어. 아니, 만들기가 어려워. 성장과정에서 인격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자는, 오랫동안 무감동적인 자신과함께 하는 것이 되지. 그런 병을 가진 사람은 말야, 코쿠토처럼 당연한 사고(思考)도 기호(嗜好)도 없어. 그들에게는 상식이 거의 통용되지 않아. 그리고, 지금 현재 그 증세의 절정에 달한 아사가미 후지노에게 정상적인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 거야」 잊고 있었던 대화의 결론을, 토우코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했다. 그 극도의 자연스러움은, 역으로 최후통지 같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말씀 말아주세요」 참지 못하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것은 처음부터 무통증이라는 가정 하에서의 소리겠죠.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요」 「무통증이라고 말을 꺼낸 것은 너야, 코쿠토」 토우코씨는 냉담하게 말했다. ……이 사람은 정말이지 어떤 일이든 제3자 같은 언행을 한다. 여자인데도 어째서 이렇게까지 아사가미 후지노에게 차가워질 수 있는 걸까. 아니 그게 아니면. 여자이기 때문에 한없이 차가워질 수 있는 걸까. 「뭐어 나에게도 신경 쓰이는 점은 있어. 아사가미 후지노는 단순한 피해자일지도 몰라. 문제는 대체 어.느.쪽.이.먼.저.였.냐. 라는 점이야」 ……어느 쪽이 먼저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토우코씨는 중얼중얼하며 생각에 잠겨버려서, 그 이상은 설명해 주지 않았다. 「시키는 어떻게 생각해? 등 뒤의 그녀에게, 돌아보지 않고서 묻는다. 시키는 예상대로의 대답을 했다. 「토우코와 같은 의견. 단, 나는 토우코의 사정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아사가미 후지노를 용서할 수 없어. 그 자식이 또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나」 「근친증오(近親憎惡)인가. 역시 이쪽 인간들은 뭉치지 못하지」 시키의 말을 토우코씨가 받았다. 나는, 시키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시키 본인은 어느 사이엔가 깨달은 거겠지. 살인을 기호(嗜好)하는 그녀는, 사실은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사가미 후지노와 료우기 시키. 이 두 사람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결정적인 그 차이를 용납할 수 없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싸우는 상황이 된다면───시키는, 자신 속의 진실을 깨달아 줄까. 아니……두 사람이 싸우는 일 그런 사태가 일어나 버려서는 안 된다. 「──알았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아사가미 후지노를 조사 해보겠어요. 그녀의 자료가 있다면 빌려 주세요」 토우코씨는 간단히 자료를 넘겨주었다. 시키는 네 멋대로 해, 라면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자료를 보자, 아사가미 후지노는 소학교까지 나가노현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성은 아사가미(淺上)가 아니라 아사가미(淺神). 지금의 그녀의 부친은 진짜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떠맡겨진 아이란 소리다. 조사하려고 한다면 이 무렵부터겠지. 「조금 멀리 갔다 올께요.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아, 그리고 토우코씨. 초능력이란 진짜로 있는 걸까요?」 「코쿠토는 미나토 케이타의 말을 믿지 않는 거야? 아사가미 후지노는 틀림없이 그런 류의 능력자라구. 초능력이란 조잡하고 유치한 명칭은 적절치 않지만,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전문가를 소개하지」 말하고는, 토우코씨는 자신의 명함 뒤쪽에 슥슥하고 초능력의 전문가라는 사람의 주소를 적어간다. 「어라, 토우코씨는 조사하지 않는 거에요?」 「당연하지. 마술은 학문이야. 그런 이론도 역사도 없는 선천적인 반칙 따위에게 관계할 것 같아? 나말이지, 그런 식의 선택받은 자들만의 힘이란 것이 제일 싫거든」 맨 마지막에는 안경을 썼을 때의 어조가 된 것으로 봐서, 정말로 싫은 거겠지. 나는 명함을 받아들고, 마지막까지 위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던 시키에게 말을 건다. 「시키. 그러면 갔다 올건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도록 해」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은 너야. 바보는 죽을 때까지 낫지 않는다는데, 진짠가 봐」 그렇게 시키는 그렇게 독설을 내 뱉었지만, 그 뒤에 노력 해볼게, 라고 작게 중얼거려주었다. / 4 7월 24일. 코쿠토 미키야가 아사가미 후지노를 조사하러 떠난 지 하루가 경과했다. 그 사이에 일어난 사건 중에 특별히 눈에 뜨일 만한 것은 없다. 예를 들면 오늘 저녁부터 내일 새벽까지 대규모의 태풍이 상륙한다는 것이라던가, 승용차를 무면허로 운전하고 있던 열일곱의 청년이 길을 벗어나는 사고를 일으켰다는 정도다.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료우기 시키는 전등 없는 아오자키 토우코의 사무실에서, 그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름의 하늘은 한번 보는 것만으로 싫증이 날 정도로 넓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요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있을 뿐이다. 이, 푸른 그림물감으로 그린 듯한 넓은 하늘이, 오늘밤부터 휘몰아칠 암운(暗雲)에 먹혀버린다니, 그것이야말로 질 나쁜 꿈같다. 카─앙, 카─앙, 하는 소리가, 귀 울림처럼 울린다. 사무소의 옆은 제철공장이다. 창가에 있는 시키에게, 그 소리가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었다. 시키는 말없이 토우코를 힐끗 본다. 그녀는 안경을 쓴 채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예에, 그렇습니다. 그 사건에 대한 거에요. ……아아, 역시 접촉사고를 일으키기 전에 사망했다, 라고요. 사인은 교살입니까? 틀림없겠지요. 목이 비틀려 잘려있다면, 그건 교살이에요. 강도의 가감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쪽의 견해는 어떠신가요? 역시 접촉사고로 취급하시나요. 그렇겠죠, 차안에서는 피해자밖에 없었으니까. 달리는 밀실이라니, 어떤 명탐정이라도 해결할 수 없을 거에요. 아뇨, 이 정도만 알려주셔도 충분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아키미 형사」 토우코의 대화는 정중하고, 더없이 상냥한 여성의 것이었다. 평소의 말투와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는 그것을 그녀를 아는 사람이 듣는다면 등골이 오싹해질게 틀림없다. 전화가 끝나자, 토우코는 안경을 살며시 콧등에 걸쳤다. 따스한 감정이 완전히 단절된 눈빛이 그곳에 있다. 「시키, 일곱 번째가 나왔어. 이건 2년전의 살인귀에 대한게 아니야」 시키는 아쉬운 듯이 창가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이 하늘이 암운에 침식되는 순간을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 봐. 이번이야말로 무관계한 살인이잖아?」 「그런 것 같네. 미나토 케이타도 사건을 일으킨 다카기 쇼우이치란 이름은 모른대. 이것은 그녀의 복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필요이상의 살인이야」 하얀 쯔무기를 입은 시키는 뿌득, 하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분노. 그녀는 붉은 가죽 상의를 기모노 위에 거칠게 겹쳐 입는다. 「그래. 그렇다면, 이젠 기다릴 수 없어. 토우코, 그녀석이 있는 곳을 알아?」 「글쎄. 숨어있는 곳이라면 두 세군데 짐작이 가는 곳은 있지만, 찾으려면 닥치는 대로 뒤져 볼 수밖에 없어」 토우코는 책상에서 몇 장의 카드를 꺼내더니, 시키에게 던졌다. 날아온 카드를 쥐는 시키. 「……이거, 아사가미 그룹의 신분증명서? 누구야, 아라야 소우렌(荒耶宗蓮)은」 세 장의 카드는 모두 아사가미 건설에 관계된 공사 중의 시설로의 입장허가증이었다. 전자식 잠금장치가 설치 되어있는 건지, 카드 가장자리에는 자기 판별 슬릿이 있다. 「그 가명은 나의 지인이야. 적당한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말이지. 의뢰인에게 신분증명서를 만들게 할 때에 사용했어. 뭐어,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아. 아사가미 후지노가 숨어있다면, 그 중 어딘가 일거야. 귀찮으니까 코쿠토가 돌아오기 전에 처리해버려」 시키는 토우코를 노려본다. 평소에는 공허한 시키의 눈은, 이렇게 되면 나이프처럼 예리해진다. 시키는 몇 초 동안 토우코에게 무언의 항의를 보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결국은, 그녀도 토우코와 같은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시키는 그리 서두르는 모습도 없이, 평소대로의 유려한 걸음걸이로 사무소에서 사라져갔다. 혼자가 된 토우코는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코쿠토는 시간을 맞추지 못 한건가. 자 그럼. 폭풍이 오는게 먼저일까, 폭풍이 일어 나는게 먼저일까. 시키 혼자서는 오히려 역습을 당할 모른다구, 료우기」 마술사는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은 말을 중얼거렸다. ◇ 정오를 넘긴 쯤에서, 날씨는 점점 변해갔다. 그만큼이나 맑았던 하늘은, 지금은 이미 납 같은 쟂빛으로 덮여 있다. 바람이 불어온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저마다 태풍이 온다, 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다. 「큿────」 나는 뜨거워진 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배를 누르면서 걷는다. 태풍의 이야기 따위, 나는 몰랐다. 계속 사람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는 어수선하긴 했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적어져간다. 이래서는 오늘밤에는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이나 걸려서, 도보로 항구에 도착했다. 하늘은 이미 어둡다. 아직 여름밤의 7시일뿐인데. 폭풍의 도래는, 계절이 가진 본래의 시간조차도 고장 나게 한다. 하루 종일 반응이 느린 몸을 움직여서, 나는 다리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 다리는 아버지가, 제일 정성을 쏟고 있는 건물이다. 이쪽의 항구와 맞은편 해안의 항구를 잇는, 커다랗고 훌륭한 다리. 차도는 4차선이나 되며, 다리아래에는 고래에 달라붙은 빨판상어 같은 통로가 만들어져있다. 지하는 쇼핑몰이다. 바다 위에 떠있는데도 도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지하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지상의 자리에는 경비원이 있어서,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지하의 쇼핑몰의 입구는 무인이라, 카드만 있으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집에서 가지고 나온 몇 장의 카드에서, 한 장을 꺼내, 그 입구를 열었다. ……안은 어둡다. 이미 대강의 내부 장식은 끝나있었지만, 전기가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인의 쇼핑몰은, 열차가 끊기기 직전의 역 같았다. 끝없이 4각형으로 뻗어있는 통로. 통로의 좌우에는 여러 가지 가게가 있다. 500미터정도 걷자, 몰은 거칠고 무딘 철근이 숲처럼 늘어선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아직 공사 중이라, 어질러져 있었다. 벽도 아직 미완성으로, 비를 막기 위해 벽에 붙여진 비닐이 펄럭펄럭 소리를 내고 있었다. ──슬슬 8시가 되는 것일까. 바람이 강해진다. 휘이휘이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해면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귀를 막고 싶어진다. 벽을 때리는 빗소리는, 영화에서 보았던 기관총보다 격한 불꽃을 튀기고 있다. 「비───」 그날도 비가 왔었다. 첫 살인 뒤, 따뜻한 비로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렸다. 그 후, 그 사람과 만났다. 중학시절에 딱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었던 소원(疎遠)한 사람과. ……아아, 기억하고 있다. 멀리 지평선이 불타는 것 같던 해질녘. 축제였던 총체육대회가 끝난 뒤, 혼자서 운동장에 남아있던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다른 학교의 선배를. 나는 발을 삐어버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 무통증인 나는, 사실은 움직일 수 있었다. 움직여도 마음에 아무런 지장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부어오른 복사뼈는, 더 이상 움직이면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단지 저녁노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부르고 싶지 않았다. 부르면 분명히 모두 말한다. 잘도 여기까지 참았구나. 아프지 않니? 괴롭지 않니?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니? 라고. 그런 것은 싫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다. 누구에게 들키겠냐며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어머님에게도, 아버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주변사람들에게 후지노는 보통 아이라고 생각하게 하지 않으면, 나는 분명 부서져버리겠지. 그때, 툭, 하고 누가 어깨에 손을 짚었다. 감각은 없었지만, 귀에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 사람이 서있었다. 내 기분도 모르면서 다정한 눈길을 보내고 있던 그 사람에게 느꼈던 첫 인상은, 얄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아프니?」 그 사람은, 믿을 수 없는 말로 인사를 해왔다. 절대 알 수 있을 리 없는 발의 상처를, 어떻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들킬까보냐, 하고 오기를 부렸다. 그 사람은 체육복에 붙은 나의 명찰을 보고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서, 나의 삔 발을 만지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아아, 분명히 신물 나게 들었던 그 말을 하려는 거야, 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아프니, 라던가 아프지 않니, 라던가. 그런 평범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무신경하게 입에 담는 걱정의 말 따위, 나는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다른 말이 들려왔다. 「바보구나, 너는. 알겠어? 상처는 견디는 것이 아니야. 아픔은 알리는 거야, 후지노쨩」 ……그것이 중학시절, 내가 선배에게 들었던 말. 그 선배는 나를 안고서 양호실까지 가서 내려놓고는,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왠지, 어렴풋한 꿈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가 좋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나의 아픔을, 염려해 주었던 그 미소가──── 「읏…………!」 욱신, 하고 배가 쑤신다. 그것으로 꿈은 깨었다. 피에 물든 내가, 추억에 잠기는 것이 허락 될 리가 없다. 하지만─────, 비는, 부정(不淨)을 씻어내려 줄지도 모른다. 나는 다리 위에 올라가고 싶어졌다. 태풍은 본격적으로 다가와 있다. 다리 위는, 그야말로 남국의 스콜이 되어있겠지. 어째서인지 가슴이 설렜다. 이젠 아픔이 사라져 주지 않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는 주차장의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다리위로. 그리운 여름의 비를 맞기 위해서. ◇ 대교는, 얕은 호수가 되어있었다. 4차선이나 되는 넓은 아스팔트는, 온통 빗물에 잠겨, 걸을 때마다, 발목까지 적셔버린다. 부딪쳐오는 비는 비스듬하게 쏟아지고, 바람은 버들가지 같은 가로등을 부러뜨리려는 것처럼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하늘은 어둠. 이곳은 이미 아득한 해상. 항구에 보이는 거리의 불빛은, 마치 지상에서 달을 보는 것처럼, 멀고멀어서 다다를 수 없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 폭풍 속을 찾아왔다. 검은 학생복은 까마귀같이 밤에 녹아든다. 그녀는 비에 젖으면서, 자주 빛으로 변한 입술로 숨을 내쉬며 걷는다. 가로등 아래까지 다다랐을 때, 사신(死神)과 만났다. 「겨우 만났어, 아사가미」 폭풍의 바다에, 하얀 옷차림을 한 료우기 시키가 있었다. 붉은 가죽 상의가 탁탁, 하고 비를 튕겨내고 있다. 그녀도 비에 젖어서, 유령처럼 보였다. 시키와 후지노는, 둘 다 가로등아래 서있다. 두 사람의 거리는, 그래. 딱 10미터 정도겠지. 이 호우와 광풍 속에서도, 서로의 모습은 잘 보였고, 서로의 목소리도 잘 들리는 것이 신기했다. 「료우기────시키」 「얌전하게 집에 돌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피 맛을 알아버린 짐승이야. 살인을 즐기고 있어」 「───그건 당신이겠죠. 나는 즐긴 적 따윈 없어요」 후지노는 거친 호흡인 채로, 시키를 응시한다. 그곳에 있는 것은 적의(敵意)와 살의(殺意). 그녀는 조용히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의 틈에서, 차갑게 빛나는 두 눈이 엿보인다. 대답하듯이, 시키는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쥐었다. 이것으로 두 사람의 대면은 세 번째. 이 나라에서는 세 번째의 정직, 이란 속담이 있었지, 하며 시키는 시시한 듯 웃었다. 지금의 아사가미 후지노는, 충분한 살인대상이다. 「……실감했어. 우리들은 서로 비슷한 존재라고. 아아─────지금의 너라면 죽여주겠어」 그 말에, 두 사람의 족쇄는 완전히 풀렸다. / 5 시키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물에 젖은 바닥, 휘몰아치는 호우 속에서, 그 스피드는 홀려버릴 만큼 빠르다. 10미터의 거리를 좁혀드는 것에, 아마 3초도 걸리지 않겠지. 후지노의 연약한 몸을 지면에 내동댕이치고 심장에 나이프를 꽂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 경이적인 속도도 시력에는 당할 수 없다. 접근해서 공격할 수밖에 없는 시키와. 그저 그 두 눈으로 목표를 포착하기만 하면 되는 후지노의 차이는, 3초로는 너무 늦다. 「────」 후지노의 두 눈이 빛난다. 왼쪽 눈은 좌회전을, 오른쪽 눈은 우회전을. 시키의 머리와 왼쪽다리에 지점을 고정시키고, 단숨에 비틀어 찢는다. 이변은 곧 바로 나타났다. 시키는 자신의 몸에 걸리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낀 순간 바로 옆으로 뛰었다. 튀는 듯한 옆쪽으로의 도약. 하지만 시키의 몸에 걸리는 힘은 여전히 느슨해지지 않았다. 후지노의 능력은 날리는 도구가 아니다. 그 장소에서 떨어져 있다고 해도 그녀의 시야에 들어와 있는 한, 피하는 것은 불가능인 것이다. ───이 자식───! 시키는 내심 혀를 찼다. 후지노의 힘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력하다고 실감하면서. 시키는 더욱 달렸다. 후지노의 시계(視界)에서 달아나려는 것처럼, 그녀를 중심으로 둥글게 달린다. 「그런 짓을 한다고 해서───」 놓칠 것 같아요, 라고 후지노는 중얼거리다가, 말을 잃었다. 놓쳤다. 믿을 수 없게도, 시키는 다리 위에서 바다를 향해 뛰어내린 것이다. 쨍그랑, 하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난다. 어떻게 된 운동신경인가. 료우기 시키는 이 대교에서 떨어져서, 그 바로 아래 펼쳐진 주차장으로 옮겨간 것이다. 「정말───터무니없는 사람이네요」 중얼거리는 그 입은, 웃고 있다. 확실히, 놓치긴 했다. 하지만 후지노의 시계(視界)는 시키의 왼손을 마지막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시키의 가죽 상의가 비틀리는 광경을, 확실히 끝까지 지켜본 것이다. 우선, 한쪽 팔을 망가뜨렸다. 후지노는 실감한다. 「내 쪽이────강해」 복부의 통증은 점점 강해져간다. 그것을 참으면서, 후지노는 지하로의 내리막을 내려간다. 료우기 시키와는, 여기서 결판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주차장 안은, 온통 어둠이었다. 시계가 나빠서, 걷기 힘들다. 어쩐지 미니어쳐의 도시에 있는 것 같았다. 곳곳에 서있는 철근과, 지면에 쌓아 올려져있는 자재의 산은 빌딩처럼 늘어서있다. 시키를 쫓기를 몇 분. 후지노는 이곳을 싸움터로 삼은 것을 후회했다. 그녀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대상이 시계(視界)에 들어오지 않으면 회전 지점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철근의 그늘에 숨어있다고 알고 있어도, 시키를 안구로 포착하지 않으면 '지점'은 철근에 생겨버리는 것이다. 다리 위에서의 얼마 안되는 그 일순간의 교차로, 시키는 후지노의 능력을 간파했다. 그래서 도망쳤다. 자신에게 승산이 있는 이 장소로. 확실히 전사(戰士)로서의 능력이 열세인 것을, 후지노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 자신 쪽이 강하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벗겨내 버리면 된다. 후지노는 방해가 될만한 철근을 닥치는 대로 구부려 쓰러뜨린다. 하나, 또 하나 파괴할 수 록 복부의 통증은 깊어지고, 주차장의 흔들림은 격해져갔다. 「엉망진창이구나, 너」 시키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진다. 그 장소를 후지노는 순간적으로 돌아보았다. 시키가 숨어있던 자재의 산이 분쇄된다. 찰나──그 그림자 속에서 하얀 옷자락이 뛰어나왔다. 「───거기!」 후지노의 양 눈이 시키를 포착한다. 하얀 옷과 붉은 상의의 소녀는, 피에 물든 왼팔을 앞으로 내밀고서 달려온다. 「───큿……!」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후지노는 구부렸다. 빠직, 하고 소리를 내며 시키의 왼팔이 부러진다. 다음은 목. 그곳에 시선을 옮기던 때────시키는, 이미 후지노를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었다. 휘둘리는 나이프가 그리는 한 가닥 선은, 그야말로 섬광. 어둠 속에 언제까지나 궤적을 남길 듯한, 은백색 곡선이었다. 주저 없이 일격을 날린 시키의 나이프는, 그러나 후지노에게 맞지 않았다. 분명히 목의 경동맥을 향해 휘두른 시키의 일격을, 후지노는 몸을 웅크려 피했으니까. 아니, 다르다. 지금 것은 단순한 우연이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왼팔이 부서지면서도 즐겁다는 얼굴로 달려오는 료우기 시키가 무서워서 얼굴을 고개를 돌린 것뿐이었으니까. 「치잇────」 혀를 차며, 시키는 헛손질한 오른손의 자세를 바로 잡는다. 후지노는 정신없이 시키의 동체를 응시했다. 「───사라져───!」 후지노의 외침보다, 시키의 행동이 빠르다. 시키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어둠 속으로 섞여든다. 놀라운 것이라면 그 운동신경보다, 곧바로 이탈을 선택한 사고(思考)의 빠름이겠지. 「───어떻게 된───」 사람이야, 하고 후지노가 중얼거린다. 그녀의 호흡이 거친 것은, 결코 복부의 상처 때문은 아니다. 후지노는 신경질적이 되어 주위의 어둠에 바짝 긴장한다. 언제, 그 속에서 시키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후지노는 목덜미에 손을 가져갔다. ……지금 일로, 자신의 목에 비스듬하게 상처가 나있었다. 4밀리 정도의 상처, 하지만 출혈이 없다. ……피는 나지 않지만, 호흡이 괴로웠다. 「팔을 망가뜨렸는데, 어째서───」 멈추지 않는 거야, 하고 그 의문에서 오는 공포에 견디지 못하고, 후지노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방금 전의 한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왼쪽 팔이 부서지면서도, 맹렬하게 달려드는 시키의 눈이. 즐기고 있었다. 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자신조차 긴장해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상황을, 그 사람은 즐기고 있었다. 설마───료우기 시키에게 있어서, 팔이 못쓰게 된 것은 괴로움이 아닌 기쁨인지도 모른다. 후지노는 지금까지 살인행위를 즐긴 일은 없다. 살인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다르다. 그 사람은 서로 죽이려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 상황이 극한이면 극한일수록, 료우기 시키는 환희한다. 후지노는 생각해 본다. 료우기 시키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간다는 감각이 부족한 인간이라면, 그 대상행위(代償行爲)를 무엇에서 구하고 있을까. 후지노는 살인이었다. 자신과 같은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형용하기 힘든 초조함이 가슴속에 샘솟았다. 아픔이라는 것을 안 후지노는, 누군가에게 그 아픔을 가하는 것에 의해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타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자신이 이 곳에 존재하고 있다고 실감케 했다. 일방적인 살인이야말로, 후지노의 대상행위. 본인이 지금도 깨닫지 못하는, 그것은 살인쾌락증(殺人快樂症). 그러면, 료우기 시키는 대체 무엇에────? 「───지금 건 안 좋은데」 자재의 그늘에 숨어서, 시키는 한마디 중얼거렸다. 다리 위에서 비틀렸던 왼쪽 팔은, 이미 악력(握力)이 없었다. 어차피 사용할 수 없다면 방패로 하자고 생각하고 방금 전의 일격에 걸었지만, 그것은 아사가미 후지노가 생각보다 겁쟁이였다, 란 사실 앞에서 실패해버렸다. 시키는 윗도리를 벗어서 팔 부분을 잘라냈다. 잘라낸 옷을 이용해서 요령 있게 왼팔의 지혈을 한다. 상완 부분을 칭칭 동여매는 것뿐인 난폭한 지혈이다. 후지노에게 비틀린 왼팔의 감각은 없다. 아마, 일생동안 제대로 움직일 수는 없겠지. 그 사실에, 시키는 등줄기가 떨렸다. 「좋아 아사가미. 너는 최고야───」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자신의 혈액. 정신이 점점 멀어져가는 감각. ──원래부터 핏기는 많았다. 불필요한 여분이 빠져나가면, 머릿속이 깨끗해져주겠지── 시키는 신경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아마 이 뒤로도 만나볼 수 없을 정도의 강적이겠지. 한 발짝 실수하면 자신은 순식간에 죽게 된다. 그것이 즐겁다. 살아있다, 라고 실감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에 갇혀 있는 시키에게 있어서, 그 순간만이 현실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에 의해서 얻어지는 감각. 단 하나 지금의 자신의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 작은 생명. 서로를 죽이려들고, 죽이기 위해 싸운다. 일상조차 모호하게 느끼던 시키는, 그런 가장 단순하고,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생명을 실감할 수 없다. 아사가미 후지노가 살인에서 쾌락을 구한다고 한다면. 료우기 시키는 살인을 기호(嗜好)하는 것으로 실감을 구한다. 양자의 차이는, 이 부분에서 결정적이었다. ……후지노의 호흡음이 어둠 속에 울린다. ……거칠고, 강하게. 괴로운 듯, 겁먹은 듯. 아직 상처를 입지 않은 그녀의 호흡은, 하지만 지금의 시키와 같을 정도로 격하다. 어둠 속, 두 사람의 호흡이 겹쳐진다. 고동도 사고(思考)도, 생명조차도 같은 것일까. 폭풍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다리는, 요람의 리듬과 비슷하다. 시키는, 처음으로 후지노가 사랑스러워졌다. 그 생명을, 이 손으로 빼앗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쓸데없는 짓이라는 거, 알고 있다구」 찻집에서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사가미 후지노의 내부가, 이미 붕괴 직전이란 것은. 여기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녀를 처치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쓸데없는 짓에 쓸데없는 짓을 겹쳐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인간은 쓸데없는 짓을 행하는 생물이다, 라던 토우코의 말을 기억 해냈다. 시키도, 지금은 그 말에 동감이었다. 이 다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쓸데없는 짓은 어리석다고 업신여기고, 어떤 쓸데없는 짓은 예술이라 찬양한다. 대체, 그 경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경계는 불확실하다. 정하는 것은 자신인데도, 결정하는 것은 외부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계 따위는 없다. 세계는 모두, 텅 빈 경계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이상(異常)과 정상을 가르는 벽 따위는 사회에는 없다. ───거리를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이다. 내가 세상에서 멀어지려 하는 것처럼. 미키야가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아사가미 후지노가 확실히 죽음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로, 시키와 후지노는 융화되어있다. 그녀들은 비슷한 존재. 이 좁은 세상에서, 같은 존재가 둘이나 있을 필요는 없다. 「───갈까. 네 재주의 비밀은 이제 보였어」 출혈에 의해서 새하얗게───클리어 되어 가는 머리를 흔들며, 시키는 일어서다. 강하게, 오른손의 나이프를 쥔다. 후지노가 스스로 경계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 뿐이다. 시키가 천천히 나타났다. 후지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이렇게 정면으로, 거리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데, 하고. 후지노 본인은 깨닫지 못한 그녀의 열은, 이미 39도를 넘고 있다. 복부의 아픔이 『어떤 병』 때문이라는 것도,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했다. 「……역시. 당신, 제정신이 아니네요」 후지노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시키를 바라보며, 구부린다. 시계(視界)가 일그러진다. 시키의 머리와 다리에 만들어진 지점이 제각기 역 방향으로 회전하여───시키의 육체를 천조각처럼 구부렸다. 구부러졌어야, 했다. 시키는 피를 머금은 왼손은 그대로 놔둔 채, 오른손에 든 나이프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후지노의 "왜곡"을 무력화 시켰다. 아니, 죽인 것이다. 「……형체 없는 것은 보이기 힘들지만 말이지. 너, 너무 활발해. 덕분에 겨우 볼 수 있었어. 너의 능력은 녹색과 적색의 나선(螺旋)이라서 말야, 정말로─────아주, 아름다워」 후지노로서는, 시키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시키에게 살해당할 것이란 사실뿐. 후지노는 반복해서 비틀었다. 구부러져, 구부러져, 구부러져, 구부러져. 그렇게 노려보자 시키는 나이프를 휘둘러, 그것을 사라지게 해버린다. 후지노의 복부의 아픔은, 한계를 넘으려 하고 있었다. 「당신───대체 뭐야?」 후지노의 경외(敬畏)에, 시키는 무저(無底)의 눈동자로 답했다. 「만물에는 모두 이음매가 있어. 인간은 말할 것 도 없고, 대기(大氣)에도, 의지(意志)에도, 시간에도 말이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도 당연. 나의 눈은 '존재의 죽음'이 보인다구. 너와 마찬가지로 특제거든」 언젠가 후지노가 불길하다고 느꼈던 검은 눈동자로, 시키는 후지노를 보았다. 「그러니까───살아있는 것이라면, 신이라도 죽일 수 있어」 시키는 달렸다. 걷는 것 같이 우아했다. 후지노에게 접근하자 그녀를 밀어 쓰러뜨린다. 그 위를 덮듯이 덮쳐눌렀다. 만져질 듯 확실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후지노는 목을 떨었다. 「나를───죽일 거야?」 시키는 대답이 없다. 「왜 죽이는 거야? 나는, 단지 상처가 아파서 죽이고 있던 것뿐인데」 시키는 웃었다. 「그건 거짓말이야. 그렇다면 어째서───너는 웃고 있는 거야. 그때도, 지금도, 어째서 그렇게 즐겁게 보이는 거지?」 그럴 리가, 하며 후지노는 말을 잇지 못한다. 조용히, 그녀는 자신의 입가에 손을 대었다. ───그것은.    말 할 것도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 감각이 없는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분명히 웃고 있다. 첫 번째의 살인. 피 웅덩이에 비쳤던 나의 얼굴은 어땠을까. 두 번째의 살인. 피 웅덩이에 비쳤던 나의 얼굴은 어땠을까. 알 수 없었지만, 언제나 초조함이 있었다. 사람을 죽일 때, 언제나 초조해 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기쁨이었던 걸까. 능욕 당해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살인으로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너는 즐거워하고 있었던 거야.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좋은 거지. 그래서 그 아픔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사라져 버린다면, 사람을 죽일 이유가 없어지니까. 상처는 영원히 계속된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것이────대답?」 후지노는 중얼거린다. 그런 것,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런 것,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당신과는 다르니까──── 「말했잖아. 나와 너는 닮은 동지라고」 시키의 나이프가 휘둘린다. 후지노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모두, 구부러져 버려, 라고. 주자창이 열진(烈震)했다. 후지노의 뇌리에서 폭풍의 밤에 떠오른 해협의 전경이 떠오른다. 뇌가 요동치는 듯한 작열(灼熱)을 견디어 내면서, 후지노는 다리의 입구와 출구에 '지점'을 만들어──── ────그것을, 구부렸다. ◇ 쿠궁. 낙뢰가 떨어진 것 같은 굉음이 들렸다. 철근이 찌그러진다. 비명을 지른다. 지면은 비스듬하게 기울어지고, 이곳저곳의 천장이 무너져간다. 하나의 건물이 와르르 붕괴해가는 모습을, 아사가미 후지노는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덮쳐누르고 있던 소녀는, 갑작스런 세상의 기울어짐에 휘말려 들어가 떨어졌다. 바깥은 폭풍. 아래는 바다. ……무언가를 붙잡지 못하고 떨어진다면, 살아날 수 없다. 후지노는 괴로운 나머지 숨도 쉴 수 없는 몸에게 명령한다. 이곳에 있으면 떨어져 버려. 벗어나지 않으면 안돼, 라고. 불타는 듯한 몸을 질질 끌고, 주차장에서 탈출한다. 쇼핑몰은 비교적 무사했다. 사각형의 통로가, 지금은 마름모꼴이 되어있다. 후지노는 걸었고, 걸으려다, 쓰러졌다. 호흡을 할 수 없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있는 것은. 그렇다───몸 안의 격한 아픔뿐이었다. 죽는구나, 하고 처음으로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너무나 아프다. 이런 것은 견뎌낼 수 없다. 이 고통을 안고서 살아가느니, 죽는 편이 낫다. 「───콜록」 쓰러진 채로 엎드려, 후지노는 피를 토했다. 지면에 드러누워, 멍하니 있는다. 하얗게 변한 시계(視界)에, 바닥에 흐르는 자신의 피만이 선명했다. 붉은 피───붉은 경치 저녁놀이 불타는 것 같아서───언제나 힘차게 불타오르는 것 같아서. 「싫어……죽고 싶지, 않아」 후지노는 팔을 뻗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팔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기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저 사신(死神)이, 자신을 분명 쫓아온다. 후지노는 열심히 나아갔다. 감각은 모두 통각.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그런 단어밖에 이젠 생각나지 않는다. 겨우 손에 넣은 통각인데도, 지금은 이렇게도 증오스럽다. 하지만───사실이다. 아프니까──아주 아프니까, 죽고 싶지 않다고 갈망한다. 이대로 사라지는 것은 싫어. 좀더 살아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돼. 왜냐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어. 그런 것은 너무 비참해. 그런 것은 너무 허무해. ……그런 것은, 너무나 슬퍼. 하지만 아파. 살려는 마음이 마비될 정도로 아파서, 져버릴 것 같아.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하지만. ……후지노는 피를 토하면서 팔을 움직인다. 반복되는 것은 같은 단어. 그녀는 처음으로 아주 강한 의지로 빌었다. ───좀더 살고, 싶어. ───좀더 대화하고, 싶어. ───좀더 생각하고, 싶어. ───좀더 이곳에 있고 싶어─── 하지만, 이젠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픔만이 반복된다. 이것이───자신이 즐기고 있던 것의 정체. 그 사실이, 아사가미 후지노에게는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다. 자신이 범한 죄, 자신이 흘린 피의 의미를 지금은 알 수 있다. 의미는 너무 무거워서──용서를 빌 수조차 없었다. 지금은 그저, 상냥한 미소를 떠올릴 뿐이다. 그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그는 이런 나를 다시 안아 줄까. 꿈틀, 하고 자신의 몸이 경련했다. 목구멍에서 역류하는 혈액이, 마지막 아픔의 도래를 고한다. 그 충격으로, 빛마저 잃었다. 이미,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것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것조차도 엷어져 가려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후지노는 말했다. 지금까지 계속 고집부리며 지켜 왔던, 그녀의 진실한 마음……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작고 보잘 것 없는 소원을. 「───아파. 아파요, 선배. 너무 아파서……이렇게나 아프면, 저, 울어 버려요───. ……어머니───후지노는, 울어도, 괜찮은, 가요?」 ……이 마음을, 나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다. 3년 전 저녁놀이 비치던 날에, 내가 나를 전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얼마나───. 눈물이 흘렀다. 아프고 슬퍼서, 너무나 외로워서,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런 일 만으로 아픔은 엷어져갔다. 아픔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사랑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라고, 그 사람은 알려주었다. 만나서 다행이다. ──이렇게 되기 전에 만나서, 정말로 다행이다. 「괴롭냐」 괴로움의 끝에, 시키가 서있었다. 그 손에는 나이프가 있다. 후지노는 스스로 몸을 바로 뉘여서, 시키와 마주본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면 됐던 거야, 너는」 시키는,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했다. ……후지노의 추억과 같은 말. 정말 그래, 하며 그녀는 생각한다. 만약 지금부터라도, 아프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면───난 이런 잘못된 길에서 헤매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그 부자유한,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신은 죄를 너무 많이 지었다. 자신은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많은 사람을 죽여 버렸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스스로 천천히 호흡을 멈췄다. 그녀의 통각은 급속히 사라져간다. 지금, 가슴에 꽂힌 나이프의 아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통각잔류/ 5 태풍이 한창 도심에 직격하고 있을 때, 나는 사무소로 돌아왔다. 비에 젖어서 사무실에 들어오자, 토우코씨는, 툭, 하고 입에 물은 담배를 떨어뜨리며 맞아주었다. 「빠른걸. 아직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다구」 「태풍이 온다고 해서, 교통기관이 마비되기 전에 돌아 왔어요」 그런가, 하고 대답하며 토우코씨는 찡그린 얼굴로 끄덕인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냐, 지금은 그런 것 보다─── 「토우코씨. 아사가미 후지노에 관한 건데요, 그녀는 후천적인 무통증이에요. 여섯 살 때까지는 보통체질이었어요」 「뭔소리야 그건. 그런 바보같은 얘기가 어딨어. 잘 들어, 아사가미 후지노는 통각마비를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마비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아. 후천적이라면 역시 척수공동증이 유력하지만, 그 병은 운동능력에 지장을 일으키지. 그렇게 감각만 없다, 라는 특수한 케이스는 선천적인 것 이외엔 있을 수 없어」 「예에, 그녀의 주치의도 그런 말을 했었어요」 나가노의 산 속에서의 일을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나는 구(舊)아사가미(淺上)……아니 아사가미(淺神)가에서의 후지노의 이야기를 간단히 설명한다. 「아사가미(淺神)가는 나가노의 명가였지만, 후지노가 12살이 될 무렵에 파산했어요. 그 시기에 모친에게 떠맡겨 져서 지금의 아사가미(淺上)가에 왔구요. 아사가미(淺上)는 아사가미(淺神)가의 분가(分家)같은 곳이라서, 토지의 이권 넘겨받는 대신에 빚을 떠맡았다고 해요. 그래서 말이죠. 어렸을 적의 후지노에게는 분명한 통각이 있었어요. 다만 그 대신, 이상한 능력이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손을 대지 않고서 물체를 구부릴 수가 있었다, 더군요」 「───그래서?」 「마을에서는 귀신 붙은 아이다, 라며 몹시 싫어했다고 해요. 심한 박해를 받았죠. 그렇지만 후지노가 여섯 살이 될 무렵부터, 그 능력은 사라졌어요. 그녀의 통각과 함께」 「……」 토우코씨의 눈매가 변한다. 짓궂게 치켜 올라간 입가에서, 흥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무렵부터 그녀에게 주치의가 붙여졌는데, 아사가미(淺神)가에 그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어요. 이미 그곳은 폐허였으니까요」 「뭐야 그건. 그 다음이 중요한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인가!」 「설마. 그 주치의를 찾아내서 이야기를 들었죠」 「음───상당히 솜씨가 좋은걸. 코쿠토」 「네, 기록을 더듬어서 아키타(秋田)까지 갔다왔어요. 의사면허가 없는 무면허의사(暗醫)라서, 이야기를 듣는 데까지 하루가 걸려버렸지만요」 「……끝내주는데. 여기를 때려 친다면 탐정을 하도록 해, 코쿠토. 내 전속으로 삼아줄 테니까」 생각해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말을 잇는다. 「이 주치의 자체는, 약품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뿐인 것 같아요. 어째서 후지노가 무통증이 되어 버렸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후지노의 아버지가 혼자서 했다는 말을 하면서」 「혼자서 했다───? 치료 말야, 아니면 약물투여 말야?」 그 미묘한 어감의 차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약물투여죠. 주치의의 말로는 후지노의 아버지는 무통증을 치료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어요. 주치의가 빼돌린 약품의 대부분은 아스피린이랑 인도메타신(indomethacin), 스테로이드였죠. 주치의자신의 진찰로는 후지노는 시신경척추염의 가능성이 높았다, 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시신경척추염(視神經脊髓炎)───데빅증(症)인가」 데빅증(neuromyelitis optica[Devic]). 척추염의 한가지로, 이것도 감각의 마비를 일으키는 병이다. 주요 증상으로는, 양다리의 운동 · 감각마비. 그리고 양쪽 눈의 시력저하. 실명할 위험까지 있다고 한다. 이 질병에는 조속한 스테로이드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스테로이드라는 것은 전에 토우코씨가 말했던 부신피질호르몬인 듯 하다. 「그러면서, 통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인도메타신 따위를 사용한거야. 하하아, 과연. 확실히 그렇게 하면 그런 인간이 되지. 선천적이지도 후천적이지도 않아. 아사가미 후지노는 인공적으로 감각을 잃었어. 완전히 시키의 반대란 소리지!」 아하하하, 하고 토우코씨는 웃기 시작한다. 어쩐지 어제 방문했던 교수 같아서, 조금 무섭다. 「토우코씨, 인드메타신이란 건 뭐죠?」 「아픔을 완화시키는 물질이야. 말초성(末梢性)이든, 관련통(關連痛)이던, 아픔이란 것은 외부에서의 "생명활동에 이상을 일으키는 자극"에 반응해서 일어나. 발통물질(發痛物質)이 체내에서 생성되어 통증을 담당하는 신경말단을 자극, 뇌에 아픔의 신호를 보내지. 이대로라면 죽어버린다구, 하고 말야. 발통물질은 알고있겠지. 키닌(kinins)과 아민(amine)외에 이 두 가지를 강화하는 아라키돈산(酸)대사산물(代謝産物)이 있어. 아스피린과 인도메타신이란 건데, 이 아라키돈(arachidon)에 함유된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을 억제하지. 키닌과 아민 단체(單體)에 의한 아픔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으니까, 인도메타신의 대랑 투여로 아픔은 거의 소실되는 거야」 상당히 즐거운지, 토우코씨는 상당히 고양된 상태다. 정직히 말해, 아라키돈이라던가 키니돈이라던가 이야기를 들어도 괴수의 이름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즉 아픔을 없애버리는 약 인가요?」 「직접적인 것은 아니야. 단지 아프지 않게 하는 거라면 오피오이드(opioids)란 마약이 좋아. 유명한 것으로는 엔돌핀이 있지? 뇌내마약이라고 불리는, 뇌가 멋대로 아픔을 마비시키기 위해서 분비하는 것이지. 그것과 마찬가지로, 오피오이드는 중추신경을 진통시키지만───아아,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나. 과연, 대단해. 아사가미 후지노의 부친은 감각을 단절시켜서 능력을 봉하기로 했어. 필사적으로 능력자를 발현시키려고 하는 료우기와는 딱 반대의 순수혈통가야. 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짓에 의해서 더욱 후지노의 능력은 강해졌어. 이집트 쪽의 마술사는 말이지, 마력을 몸속에 잡아두기 위해서 눈을 봉했다구. 아사가미 후지노와 어디가 틀리겠어」 ……토우코씨의 말은, 각오하고 있었는데도 쇼크였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아사가미(淺神)혈족에겐, 후지노 같은 초능력자───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채널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 그들은 그것을 귀신들린 아이 라며 싫어했고, 그 힘을 어떻게든 봉하려고 했다. 그 결과가───무통증. 초능력이란 채널을 막기 위해서, 감각이란 기능도 막은 것이다. 그래서 아사가미 후지노는, 아픔이 되살아나면 초능력을 발현해버린다. ……단절되어있던 감각이 연결되어서. 「……잔인하네요, 그런 건. 비정상적 상태가 이 유일하게 정상으로 있을 수 있는 조건이라니」 그렇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무통증이란 이상(異常)이 아니면, 우리들과 같은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무통증인 이상, 그녀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단지 세상에서 사는 것을 허가받았을 뿐인, 유령에 지나지 않았다. 「아픔만 없었다면───그녀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이봐이봐, 아픔을 나쁜 것처럼 취급하지 마. 아픔은 좋은 거야. 나쁜 것은 어디까지나 상처. 앞뒤를 틀려서는 안돼. 우리들에게는 아픔이 필요해.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말이지. 인간은 아픔이 있기 때문에 위험을 알 수 있어. 불길에 손이 닿았을 때, 손을 빼는 것은 손이 불타기 때문이야? 아니지. 손이 뜨겁다, 곧 아프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손이 불타버릴 때까지 불이란 존재의 위험성을 알 수 없어. 상처는 아픈 것이 바른 거야, 코쿠토. 그것이 없는 자는, 인간의 아픔을 알 수 없어. 아사가미 후지노는 등뼈를 강타 당해서 일시적으로 통각을 되찾았어. 그 뒤에 받은 아픔으로, 처음으로 방위를 했던 거지. 지금까지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젊은이들을, 아픔에 의해서 위험한 존재로 이해할 수 있었어. ───뭐어, 그렇다고 해서 죽이는 것은 너무 심했지만 말야」 ……하지만, 그 후지노에게는 통각이 없다. 그녀의 방위에 의해서 젊은이들은 죽어버렸지만, 그 책임의 일부는 그녀를 습격한 녀석들에게도 있지 않은가. 그녀 한사람만을 악인 취급을 할 수는 없다. 「───토우코씨. 그녀는 나을 까요?」 「치료할 수 없는 상처는 없어. 낫지 않는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 죽음이라고 불러야겠지」 돌려 말해서, 그녀는 아사가미 후지노의 상처를 죽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원인은 복부의 자상(刺傷)이다. 그 아픔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니까, 그 원인만 알면─── 「코쿠토. 그녀의 아픔은 낫지 않아. 단지 계속 아플 뿐이야」 「에?」 「그러니까 말이지. 원래부터 상처 따위는 없었던 거라구, 그 여자애는」 ──그건, 예상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저기…그건, 어떤 의미죠…?」 「생각해봐. 복부를 나이프로 찔렸다고 하면, 상처는 스스로 아무는 걸까? 그것도 하루 이틀로」 ……그건───그렇지만. 뿌리부터 통째로 기반을 무너뜨리는 토우코씨의 지적에, 나는 어물어물하며 당황했다. 쿡쿡쿡, 하고 토우코씨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네가 아사가미 후지노의 과거를 조사하러 간 것처럼, 나도 아사가미 후지노의 현재를 조사해봤어. 후지노는 20일부터 도심내의 어떤 병원에도 들리지 않았어. 그녀가 비밀리에 다니고 있던 전속의사가 있는 곳에도 오지 않았던 것 같아」 「전속의사라니, 에에───!?」 토우코씨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눈썹을 찡그린다. 「……너는 뭔가를 찾는 것은 일류지만, 통찰력이 결여되어있어. 잘 들어, 무통증 환자에게 있어서 제일 두려운 것은 몸의 이상이야. 아픔이 없는 그들은, 스스로는 어떤 병에 걸려있는지 알 수 없어. 결과적으로 정기적으로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지」 그런가. 정말 그 말 대로다. 하지만, 그렇다면───아사가미 후지노의 지금의 부모는, 후지노의 무통증을 모르는 것일까. 「동기는 사소한 착각이야 코쿠토. 후지노는 나이프를 든 젊은이에게 깔리면서, 찔렸다고 생각했어. 아니, 사실 찔리기 직전까지 갔겠지. 그 때에 그녀의 통각은 이미 돌아와 있었기 때문에, 그 능력도 발현할 수 있었고. 베.이.느.냐.비.트.느.냐.는, 후.지.노.쪽.이.먼.저. 였다. 라는거야. 그 결과, 젊은이들의 목이 비틀려 잘렸고, 그 피가 깔려있던 후지노의 몸에 튀겼지. 후지노는 생각했겠지. 배를 찔려버렸다, 라고」 그 때의 영상이 극명하게 이미지 되어버려서, 나는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그건 이상해요. 통각이 돌아와 있었다면, 그런 착각은 안했겠죠. 찔리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아요」 「처음부터 아팠던거야, 후지노는」 ………에? 「지금의 후지노의 주치의에게 카르테를 보여달라고 했어. 그녀는 만성(慢性)의 충수염(蟲垂炎)……속칭 맹장염(盲腸炎)이야.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 애의 복부의 아픔은 나이프에 찔린 아픔이 아니라 내장의 아픔이라구. 그녀의 통각은 회복과 마비를 반복하고 있었어. 나이프에 찔리기 직전에 통각이 회복되었다면───틀림없이 찔렸다고 착각하겠지. 아픔을 모르는 채 자라났다면, 상처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도 없을 거야. 상처가 없어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어. 아아, 상처가 아물어주었다, 라고 말야」 「착각───인가요」 「상처의 종류 자체는. 하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아. 실제로 그녀는 궁지에 몰려있었어. 나이프가 있던 없던, 그녀는 그들을 살해하는 것 이외의 달아날 방법은 없었던 거야. 죽이지 않으면 죽어.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말이지. 하지만 미나토 케이타가 운 나쁘게 도망쳐버렸어. 복수가 그 장소에서 끝났었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시키의 말대로야. 어느 쪽이라고 해도 아사가미 후지노는 손쓰기에 늦었어」 그러고보니, 시키는 그 소리를 반복 하고 있었다. 어째서───늦은 것일까. 후지노가 살인을 범해 버렸다는 것 때문일까. 그래도 그렇다면 네 명을 죽여 버렸던 때에 이미 손을 쓰기엔 늦어 버렸을 텐데. 나에게는, 그 부분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늦었다니, 어째서」 「시키가 말하고 있던 것은 정신적인 면의 이야기야. 그녀의 살인은 말이지, 다섯 명까지가 살인이야. 그 이외의 행위는 살인이 아니라 살륙(殺戮). 시키는 그것에는 대의명분이 없다고 화를 냈던 거야. ……그 애는 자신이 살인기호증인 주제에, 죽음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어. 그래서 아사가미 후지노처럼 무차별적인 살인행위는 하지 않아. 그런 그녀로서 본다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인을 범하고 있는 후지노는 용서할 수 없겠지」 마음 내키는 대로───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던 건가, 아사가미 후지노는. 나에게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내가 말하는 때가 늦었다는 것은 육체에 대한 얘기야. 충수염을 그냥 놔두면 천공(穿孔)되어서 망막염(網膜炎)이 돼. 망막의 염증은 충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격통을 수반하지. 나이프로 찔린 정도에는, 뭐어, 필적할까. 이렇게 되면 고열을 발하거나 치아노제를 일으키거나 하다가, 결국에는 혈압저하에 의해 쇼크를 일으켜. 십이지장부근까지 번져버리면 최악이고, 반나절 만에 사망하지. 20일부터 오늘까지 5일. 슬슬 천공되어 있을 무렵이겠지. 불쌍하지만───틀림없이 치사상이야」 어째서 이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런 사실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아직 늦지는 않았겠죠. 서둘러서 아사가미 후지노를 보호하지 않으면……!」 「코쿠토. 이번의 의뢰주는 아사가미 후지노의 부친이야. 그는 어릴적의 후지노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거겠지. 그러니까 사건의 참상을 듣고서, 그것이 후지노의 소행이라고 느낀거야. 그 부친은 그 괴물을 죽여줘 라고 말했어. 그녀를 유일하게 보호할 수 있는 부친이, 그녀의 죽음을 바라고 있어. 자, 봐. 코쿠토. 여러가지 의미로 그녀는 살아날 방도가 없어. 게다가, 이미 시키가 가버렸어」 「────바보 녀석……………!」 나는 누구에게 향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6 브로드 브리지는 거인의 손으로 쥐어짜진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폭풍 속을 토우코씨의 버기로 달려가서 경비원과,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한쪽 팔을 피에 물들인 시키가 다리의 지하에서 불쑥, 나타났다. 경비원은 시키에게 달려갔지만, 시키는 경비에게 몸통박치기를 먹여서 간단하게 기절시켰다. 「여어, 있다고는 생각했었어, 왠지 모르게」 시키는 창백한 얼굴로, 자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산더미 같았지만, 그녀의 그런 가냘픈 모습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가가서 몸에 손을 대려고 하자, 시키는 아주 싫어하면서 부축도 하게 해주지 않았다. 「한쪽 팔로 끝난 거야? 시키」 토우코씨는 의외인 것 같았다. 시키는 불만스럽게 노려본다. 「토우코. 그 자식, 마지막엔 투시능력까지 발현 했다구. 가만 놔뒀다면 엄청난 능력자가 됐겠지」 「투시능력───클레어보이언스(Clairvoyance)인가. 확실히 그녀의 능력에 천리안이 더해지면, 그건 무적이야. 물체의 그늘에 숨어도 지점이 만들어져버리지. 엉───가만 놔뒀다면, 이라고?」 「……마지막에 그 자식, 무통증으로 돌아가 버렸어. 비겁하지만, 그런 아사가미 후지노는 대상이 안돼. 할 수 없이, 뱃속의 병만 죽여뒀어. 서두르면 아직 가망이 있을지도 몰라」 시키는 아사가미 후지노를 죽이지 않았다. 그것을 이해하자, 서둘러서 병원에 전화를 한다. 이 태풍 속에서도 와줄 지는 불안했지만, 그렇다면 이쪽이 데리고 가면 된다. 다행히, 그녀의 주치의였던 의사는 한마디로 승낙해주었다. 행방불명인 아사가미 후지노를 걱정하고 있던 그 의사는, 전화너머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적지만, 그녀에게도 우군이 있다. 감동하고 있는 나의 뒤에서, 두 사람이 뭔가 뒤숭숭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팔은 지혈 한거야? 피가 안 나는데」 「아아. 쓸 것이 못 되서 죽여 버렸어. 토우코, 의수(義手)정도는 만들 수 있지? 인형사(人形師)를 자칭하고 있으니까」 「좋았어. 이번 보수는 그걸로 하지. 너는 직사의 마안(直死の魔眼)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육체적인 면으로는 너무 보통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했었어. 그 왼팔, 영체(靈體) 정도는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어째, 그런 건 그만두어줬으면 좋겠는데. 「구급차가 와 줄 것 같아요. 이곳에 있으면 뭔가 귀찮아 질 테니까,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시겠어요?」 하긴 그래, 라면서 토우코씨는 끄덕여주었고, 시키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아사가미 후지노가 무사하게 실려 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겠지. 「연락을 한 저는, 마지막까지 있겠어요. 결과는 보고 할 테니까, 토우코씨는 돌아도 괜찮아요」 「이 호우 속인데, 코쿠토도 괴짜군. 시키, 돌아가자」 토우코씨의 제안을, 시키는 사양하겠어, 라며 거절했다. 하하아, 하고 기분 나쁜 미소를 띄운 토우코씨는 차량위반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오프로드용의 버기에 올라탄다. 「시키. 아사가지 후지노를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코쿠토를 죽이지는 마」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한 토우코씨는 아하하하, 하고 웃으면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여름비속에서, 나와 시키는 가까운 창고 아래서 비를 피하게 되었다. 얼마 안 있어 구급차가 왔고, 아사가미 후지노를 운반해갔다. 이 폭풍 속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 날 밤의 소녀였는지 확증은 얻을 수 없었지만, 그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시키는 멍하니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에 젖어서 추울 듯 한 모습으로 서있다. 그녀는 계속, 아사가미 후지노를 노려보고 있었다. 빗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것처럼, 그녀의 마음에 묻는다. 「시키, 지금도 아사가미 후지노를 용서할 수 없어?」 「───한번 죽인 녀석의 일 따위, 흥미 없어」 시키는 딱 잘라 말했다. 그곳에는 미움도 아무것도 없다. 시키에게 있어서, 후지노는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겠지. ……슬프게도, 그것은 그녀들에게 있어서 제일 모양 좋은 결말인지도 모른다. 시키는 힐끗하고 눈동자를 이쪽으로 돌려왔다. 「너는 어때. 어떤 이유라 해도 살인은 해서는 안 될 일이겠지?」 그녀는,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해서 물어오는 것 같았다. 「……응. 하지만, 나는 그녀를 동정하고 있어. 정직히 말해서, 그녀를 습격한 녀석들이 죽은 일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아」 「의외인걸. 나, 너의 일반론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책망해 주었으면 하는 거야? 시키. 하지만 너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잖아. 나는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는다. 「그런가? 하지만 이것이 나의 감상. 왜냐면, 시키. 제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아사가미 후지노는 보통 애야. 자신이 저질러버린 일을 얼버무리려고 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여버렸잖아. 설령 자수했다고 해도, 그 애가 한 일은 입증할 수 없고, 사회적인 죄는 물을 수 없어. 그것이 더욱 괴롭지」 「어째서?」 「……벌(罰)이란 것은, 그 사람이 멋대로 등에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 사람이 저지른 죄에 대응해서, 그 사람의 가치관이 스스로에게 지우는 무거운 짐. 그것이 벌이야. 양식(良識)이 있다면 있을수록 자신에게 가해지는 벌은 무거워져. 상식 속에서 살아가면, 살아가는 만큼, 그 죄는 무거워지지. 아사가미 후지노의 벌은 말이지,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무겁고 괴로워지겠지」 사람 좋은 자식, 이라고 시키가 중얼거린다. 「그러면, 양식(良識)이 없는 녀석은 죄의식도 벌의 무거움도 없다는 거야?」 「없지는 않겠지.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가벼울 뿐이지만, 역시 존재하는 거야. 아주 엷은 양식 속에서 생겨난 더욱 엷은 죄의식. 우리들로 보자면 그런 것, 길가에 널려있을 정도로 흔한 감정이겠지만, 그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족쇄야. 우리들이라면 웃으며 날려버릴 감각도, 엷은 양식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기분이 나빠지는 감상이 되는 거야. 크기는 달라도, 벌이라는 의미는 같으니까」 ……그래 예를 들면,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나토 케이타가 발광 직전까지 겁을 먹었던 것도, 그 나름대로의 죄의식이 빚어낸 벌이라고 생각한다. 후회도, 죄악감도. 경외도 공포도 초조도. 그것을 갚지 못하지만, 갚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확실히, 사회적으로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은 즐겁겠지만. 누군가에게 재판을 당하지 않는다면, 벌은 스스로 가할 수밖에 없어. 책임은 계속 사라져주지 않으니까. 사소한 일로도 그것을 떠올릴 수 있어. 아무도 용서해주지 않았으니까, 자신조차도 용서할 수 없지. 마음의 상처는 완치되지 못한 채로 계속 아픈 거야. 그 애의 통각이 잔류하고 있던 것처럼, 영원히 상처가 아무는 일은 없겠지. 시키가 말한 것처럼 형체가 없으니까────입어버린 상처의 치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시키는 말없이 듣고 있다. 아사가미 후지노의 과거를 조사했던 탓일까, 나는 격에 맞지도 않게 시적(詩的)이었다. 시키는 갑자기, 창고의 지붕에서 나와 비를 맞는다. 「미키야는 이렇게 말하는 구나. 상식이 있으면 있을수록, 죄의 의식을 느낀다고. 그래서 악인(惡人)은 없다고. 하지만 말야, 나에게는 그런 훌륭한 것은 없어. 그런 녀석을 풀어둬도 되는 거야?」 듣고 보니, 말 그대로다. 시키는 선인이라던가 악인을 따지기 전에, 상식이란 것이 희박한 애였다.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시키의 벌은, 내가 대신 짊어져 줄게」 그것은 진정한 본심이었다. 시키는 허를 찔린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고, 빗속에 멍하니 서있었다. 한동안 비를 맞다가, 시키는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겨우 기억해냈어. 너, 옛날부터 그런 농담을 진지한 얼굴로 했었지. 솔직히 말하겠는데, 그런 거, 시키는 아주 힘들어 했어」 「───하아, 그러신가요. 여자 한 명 정도는 안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저는」 힘없이 항의하자, 시키는 즐거운 듯 웃었다. 「또 하나 고백하지. ……나도, 이번 일로 죄를 짊어졌다고 생각해. 하지만 대신에 한 가지 알았어. 자신의 살아가는 법,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아주 애매하고 불확실한 것이지만, 지금은 그것을 쫓아 갈 수밖에 없어. 그렇게 쫓아가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혹독한 것이 아니었거든. 그것이 조금은 기뻐. 아주 조금──아주 조금뿐인, 너에게서 일어나는 살인충동───」 ……마지막 단어에서는 눈썹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며 빗속에서 웃는 시키는 아주 아름다웠다. 폭풍은 약해지고, 날이 밝아지겠지. 여름의 비를 맞는 시키를, 나는 그저 계속 바라본다. 생각하면 그것이───그녀가 눈을 뜨고 나서 처음으로 내게 보여준, 진짜 미소였다. 痛覺殘留 / 了 -------------------------------------------------------------------------------- * PK (Psycho Kinesis) : 간단하게 말하자면 PK는 초능력 중에서 술자가 ‘물리적인 힘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는’ 계열입니다. 대표적으로 염력(Tele Kinesis, 염동력), 투시(Clairvoyance, 천리안), 순간이동 등을 예로 들 수 있고, 예지력이나 폴터 가이스트 현상처럼 불확실하고 수동적인 초능력은 PK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미키야가 PK라고 단정 짓는 이유도 살해현장이 단순한 인간의 힘으로 저질러 진 것이 아니고, 초능력자가 개입 했다면 분명 그 능력은 ‘염력’일테니 PK로 단정 짓는 것이라고 봅니다. * 아넨엘베 (ア-ネンエルべ) : Erbe - 1. 상속인(남성) 2. 유산(Erbschaft - 상속, 유산(여성))(중성) Anerbe - 단독상속인 (An은 분음) Anerben - 1. 상속시키다. 유전하다. 2. 전해지다. (An은 분리 전철) [ 출처 : 동아 프라임 독한사전 ] 사족을 덧붙이자면, TSUKIHIME PLUSDISC에 수록된 閑話月姬의 제1화 幻視同盟에 처음 쓰인 이후로 月姬의 FunDisk인 歌月十夜에서도 종종 쓰이는 찻집도 아넨엘베…라고 함. (100% 확언은 못 하겠군요. 한지가 너무 오래 되서-_-;)(그리고 위에껀 어디까지나 '참고'니까 너무 믿지 마세요. 틀릴 수도 있으니..; 독일어 안 배운지 3년이 넘어서 대강 사전으로 때운겁니다-_-;) 추가. 주)비브로스의 칼라풀 퓨어걸이란 잡지의 2003년 7월호 TYPE-MOON 특집에서 발췌. 미사키마을(三笑町)의 영화관 옆에 있는 찻집. 호평 받는 곳인지, 스트로베리가 일품(逸品)이라고 한다. 『환시동맹(幻視同盟)』에서 토오노 시키가 세오 아키라를 이 가게에 데려갔었다. 도이츠어로 뜻은 「유산」. [ 출처 : Colorful PUREGIRL 2003년 7월호 - Encyclopedia of TYPE-MOON ] * 지혜의 고리(智慧の輪) : 장난감중 하나 * 아사가미(淺神)가에 관하여 : 아사가미 여학원(淺上女學院)을 창립한, 퇴마의 일족. 같은 가문으로 「후죠우(巫淨), 료우기(兩儀), 나나야(七夜)」가 있다. 이상, 4개의 가문은 「인간」과「인간이 아닌 것」의 혼혈인 토오노일족에게는 천적이 되어 있다. [ 출처 : Colorful PUREGIRL 2003년 7월호 - Encyclopedia of TYPE-MOON ] 덧붙이자면, 결국 여기서 보건데 「月姬」에서의 후죠우(巫淨)와 「空の境界」에서의 후죠우(巫條)는 일단 설정이 비슷할 뿐이지, 다른 가문으로 구분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키노코씨가 실수한게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만-_-;) 이제껏, 퇴마가 4대 가문이 나나야, 후죠우, 료우기, 아사가미가 아니냐는 의문이 계속 제기 되어 왔고, 그 때마다 고민하면서 ‘정확한 언급이 없었으니까 단정짓기는 힘들다’라고 그냥 결론을 내리는 걸 피해왔는데, 이번에 와서 드디어 확실해졌군요. 토오노(遠野)가와 분가인 코우마(軋間), 쿠가미네(久我峰), 토우자키(刀崎), 아리마(有間)와 함께 퇴마가도 일단 결론지어졌으니, 이제는 가문싸움인가(...뭐?) 위의 새로운(?) 용어사전은 일단 이제까지의 모든 TYPE-MOON 작품을 어우르는 것으로서, 「月姬」,「歌月十夜」,「MELTY BLOOD」,「空の境界」에 나오는 모든 용어들을 나열해놓았는데(7월호에는 あ행과 か행까지만 있음) 일단은 기본적인 틀은 「月姬」입니다. (독본도 마찬가지였고) 그냥 참고삼아 적는 것입니다. * 척수공동증(脊髓空洞症 : syringomyelia) : 척수공동증(SM)은 척수의 중심부에 공동(Syrinx-뇌척수액이 가득찬 물주머니)이 형성된 척수질환이다. 이 공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척수의 중심부를 파괴하며 길게 늘어지고 확장되면서 신경 손상을 일으키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처음 손상되는 구조는 전백색교련(anterior white column)이다.이곳은 척수시상로(spinothalamic tract)가 교차되는 부분이다.계속 진행되면 척수전각과 외측피질척수로가 손상되며 후섬유단은 잘 손상되지 않는다. 임상적으로 매우 드문 질환으로 선천적인 경우와 후천적인 경우 두가지 형태가 있다. 척수 손상(SCI:spinal cord injury)후 발병률은 15~20% 정도인 것으로 추측되나 신경 증상(통증, 마비, 두통, 저림 등)을 초래하는 경우는 단 0.3~3.2%에 불과하다. -척수공동증의 증상 증상은 공동(syrinx)의 형태(type), 위치(location), 크기(size)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주된 증상으로는 등, 어깨, 팔, 다리 등에 경직(stiffness)과 근육 약화(muscle weakness), 통증(pain) 등이 유발된다. 다른 증상으로는 두통(headaches), 특히 손(다른 신체부위 포함)에서의 온도 감각의 소실, 체온 조절 능력의 장애, 그리고 호흡 장애등을 일으킨다. 척수공동증은 또한 발한(sweating), 성(性) 기능(sexual function) 장애 그리고 방광(bladder)과 내장(bowel) 조절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감각 장애는 통각과 온도 감각은 소실되나 위치감각이나 분별성 촉각은 소실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차별적 감각소실(dissociated sensory loss)이라 한다. 계속해서 진행될 경우 하반신 마비나 전신마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과로(straining)와 재채기(sneezing), 기침(coughing), 배 누르기 등의 복압을 증가시키는 행위는 척수공동증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척수공동증의 발생원인 척수의 외상(Trauma) 또는 선천적인 뇌 또는 척수의 발생 과정상의 문제가 척수공동증을 유발시킬 수 있다. 척수의 외상(가령 자동차사고 또는 낙상에 의한 심각한 척추 골절)은 수년후 척수공동증(SM)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선천적인 뇌 또는 척수의 발생 과정상의 문제도 때때로 발견되지 않는 척수공동증을 야기할 수 도 있다. 이런 경우에,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신경 증상들(저림이나 통증, 마비, 근육 약화 등)이 의학적인 의심의 근거가 충분할 정도로 악화될 때까지 오랫동안(몇 달이나 몇 년) 그 상태(병)는 감지되지 않거나 잠복기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척수공동증(SM)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중년까지 진찰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정상적인 의학적 상태(척수 손상이나 선천적 중추신경계 기형)는 정상적인 뇌척수액(CSF : cerebrospinal fluid)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으며, 그것은 척수 안에서 뇌척수액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척수간 압력차는 낭포(Cyst)내부로 뇌척수액의 이동을 유발시킨다. 그 결과로 척수내부에 공동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계속적인 뇌척수액의 이동이 공동의 성장, 나아가 척수손상과 척수에 연결된 신경의 손상을 유발하는 것이다. -척수공동증의 종류 일반적으로 척수공동증(SM)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첫 번째 형태는 Arnold Chiari malformation(ACM)이라고 불리는 선천적인 뇌의 비정상적인 성장으로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척수의 경부부근(The cervical region)에서 공동(Syrinx)은 발생한다. 공동(Syrinx)은 하나의 물주머니 형태로 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를 교통성 척수공동증(Communicating Syringomyelia)이라 부른다. ACM을 가진 환자들의 일부에서 또한 뇌수종(Hydrocephalus : 뇌에 물이 찬 경우)과 두개골에 뇌척수액이 축적된 상태, 혹은 척수를 덮고 있는 지주막에 염증이 생긴 지주막염(arachnoiditis)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후천적인 것으로 외상(Trauma), 뇌막염(meningitis), 출혈(hemorrhage) 또는 종양(Tumor)등의 원인으로 발생한다. 여기에서, 낭포(Cyst) 또는 공동(Syrinx)은 척수의 여러 부분에서 한가지 혹은 여러 가지 상태로 척수를 손상시키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를 비교통성 척수공동증(Noncommunicating Syringomyelia)이라 부른다. [ 참조 : Cyber B-612 - http://cyberb612.com.ne.kr/index.htmll ] * 후지노의 능력에 관한 고찰 초능력이라 함은 인간단체(單體)가 사용하는 힘이기에 그 위력의 정도는 자연간섭에 미치지 않는다. 이에 관계없이 후지노의 능력은 그 예에서 탈선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 그 이유는 후지노가 드물게 예외적 존재였기 때문이고, 그녀는 통상의 초능력자를 훨씬 뛰어넘은 용량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인가, 혹은 그녀의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연비가 좋은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에서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생각이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계에 존재하는 거대한 개념을 구현화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연비가 좋은 능력, 이라는 생각과 조금 비슷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국엔 능력자 자신의 힘만으로 대상 물체를 왜곡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 다른 것이다. 어느쪽이냐고 하면 세계간섭이나 자연간섭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 구현화 하고 있는 거대한 개념이란 건 무엇인가. 나는 태극도에 관련된 상극하는 나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주인공인 료우기 시키와 후죠우 키리에 · 아사가미 후지노 이 세 사람은, 본편에서 아라야도 말했듯이 같은 기원에서 나뉜 동포라고도 할 수 있는 관계이다. 그리고 이 세 세람은 모두 인간을 초월한 인간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오래된 집안의 출신이기도 하다. 그 세 사람 중, 료우기 시키는 하나의 육체에 두개의 마음을 가진 태극도의 구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 후죠우 키리에는 하나의 마음에 두개의 육체를 가진, 료우기 시키와는 또 다른 형태로의 태극도의 구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아사가미 후지노도 태극도 같은 것과 관련성을 지닌 존재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상극하는 나선이란, 이것은 내가 조사한 결과의 해석이라서 틀릴 지도 모르나, 간단히 설명하자면 만상 속성(萬象の屬性)의 변천을 나타낸 나선운동일 것이다. 태극에서 태어난 양의(兩儀)에서 더욱 분화시킨 사상(四象). 이것은 양중음(陽中陰) · 양중양(陽中陽) · 음중양(陰中陽) · 음중음(陰中陰)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만물만상은 이 네 가지 속성에 들어맞게 되고, 상기한 순서대로 순차발생 한다. 이처럼, 나선을 그리면서 음양이 순환되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 태극도이다. 허공의 경계의 종반에서 『료우기 시키』가, 후지노의 눈 또한 세계의 축도를 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후지노가 보고 있던 것은 개념으로 밖에 존재 할 수 없는, 세계 만상의 변천을 나타낸 나선의 방향성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사의 마안에 의해 죽음이라는 개념을 보는 료우기 시키와 토오노 시키가 그것에 접촉함으로써 죽음을 발현시킬 수 있게 한 것처럼,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 나선의 방향성을 보고, 어떠한 수단에 의해 물리적인, 나선운동이라고 하는 형태로 발현시킨 걸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힘의 강함 자체는 자연간섭에 미치지 않는 초능력이면서 그 정도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는가.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것들은 모름지기 이 나선의 영향을 받고 있다. 물리적인 에너지를 발생시켜 온 힘을 다해 구부리는 것과는 달리, 이 나선을 구현화시키기만 하면 아무리 단단한 물건이라도 구부릴 수 있다는 것이 이치에 맞겠지. [ 출처 : 月姬硏究室 - http://www3.lunartecs.ne.jp/~lunar/tsukihime/ → http://www3.lunartecs.ne.jp/~lunar/tsukihime/kousatsu/04/rasen.htmll ] * 후지노의 능력에서 우회전과 좌회전의 차이 후지노의 능력이 『후지노의 능력에 관한 고찰』에서 말한 대로의 것으로 가정한다면, 같은 왜곡이라도 우회전과 좌회전은 다른 채널이라는 것도 설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회전이라면 태극도의 나선이 나타내는 개념상의 순환운동을 그대로 물리적인 나선운동으로 변환시킨 것이 된다. 하지만 좌회전이라면 어떤가. 앞의 순환은 자연계 그대로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살아 있는 것이 이윽고 죽음에 다다른다던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간다는 것도 그 속에 포함되겠지. 그렇다면 좌회전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현상, 즉 죽은 것이 소생하거나,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즉, 단순히 회전방향이 바뀌었다, 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좌우양방향으로 회전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정반대인 성질을 가진 두 가지의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직사의 마안을 가진 시키(式)와 시키(志貴)가 동시에 죽은 것을 소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갖추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후지노의 경우에 그 완전히 정반대인 개념을 단순히 물리적인 나선운동으로 변환시키고 있을 뿐이니까, 보는 사람에겐 어느 쪽도 똑같은 능력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 출처 : 月姬硏究室 - http://www3.lunartecs.ne.jp/~lunar/tsukihime/ → http://www3.lunartecs.ne.jp/~lunar/tsukihime/kousatsu/04/rasen2.htmll ] -------------------------------------------------------------------------------- [←|↑|→] -------------------------------------------------------------------------------- ──and she said 무엇이든 받아들인다면 상처는 입지 않아.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도. 자신이 싫어하는 것도.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것도. 반발하지 않고 받아들여 버리면 상처는 입지 않아. 무엇이든 거부한다면 상처밖에 입지 않아. 자신에게 맞는 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일도. 동의하지 않고 거부해 버리면 상처밖에 입지 않아. 두 개의 마음은 텅 빈 공간(ガランドウ) 긍정과 부정의 양끝에만 존재하는 것. 그 가운데에, 아무것도 없는 것. 그 가운데에, 내가 있는 것. / 가람의 동 -------------------------------------------------------------------------------- / 0 「저기, 3층 독실의 환자 얘기 들었어?」 「당연하지. 그건 어젯밤 사이에 다 퍼졌어. 농담한마디 안하는 뇌외과 아시카(芦家)선생님부터 평정을 잃었는데, 이쪽이라고 해서 입 다물고 있을 리 없잖아. 믿을 수 없게도 그 환자가 회복했다는 거구나」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니깐. 뭐, 확실히 그 여자애 얘긴데, 그 뒷얘기가 있어. 그 환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마자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놀라지 마, 스스로 자기의 눈을 짓눌렀대」 「──뭐야 그건, 정말이야?」 「응. 병원 안에서는 터부시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시카 선생님을 보조하던 간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니까, 틀림없어. 선생님이 한눈파는 사이에 손바닥을 눈꺼풀 위에 대고 자기 눈을 압박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완전히 호러네」 「잠깐. 그 애, 2년 동안 잠만 자고 있었지? 그렇다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치만 말야. 그 쪽 집이 부자잖아? 입원하고 있는 동안 우리들이 조심스럽게 리허빌리테이션을 해주니까, 관절 같은 건 굳어 있지 않았어. 그렇지만 뭐어, 본인이 움직인게 아니니까 관절도 부자유해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것 같아. 그 덕에 눈알 누르기는 미수로 끝났지만」 「───그래도 대단한걸. 드러누워 있는 것은 간단한 반면에, 몸이 제일 약해지지 쉽다고 배웠잖아? 2년 동안이나 자고 있었다면,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할텐데」 「그러니까 선생님도 방심하고 있었던 거겠지. 저기, 뭐라고 하더라? 흰자위가 출혈하는 케이스」 「구결막하출혈(球結膜下出血)」 「맞아, 그거그거. 보통은 자연 치유되는 것이라는데, 녹내장(綠內障) 일보 직전까지 안구를 압박했었기 때문에 지금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래. 본인의 희망으로 눈만 붕대로 칭칭 감고 있단 얘기」 「흐응. 그럼 그 환자는 눈을 뜨고 나서 한번도 햇빛을 보지 못했던 거네. ……어둠에서 어둠인가. 조금 정상적이진 않은걸」 「조금이 아냐. 게다가 얘깃거리는 아직 남았어. 아무래도 말이지, 실어증(失語症)?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구.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어서,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아는 언어요법사(言語療法士)를 불렀대. 우리 병원에는 그런 사람 없잖아」 「아라야(荒耶)선생님은 지난달에 그만둬 버리셨으니까. 하지만───그렇게 되면, 그 환자는 면회 사절이 되는 건가?」 「그런 것 같아. 정신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부모님도 하루에 잠깐씩 밖에 만날 수 없대」 「그런가. 그렇게 된다면 그 남자애, 불쌍한데」 「누구? 남자애라니」 「몰라? 환자가 실려 온 뒤로 매주 토요일 날 면회 오는 애가 있어. 이제는 남자애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가 됐지만, 그 애는 만나게 해주고 싶어」 「아, 그 바둑이군을 말하는 거구나. 헤에, 아직도 다니고 있었구나. 요즘에는 보기 드문 진지한 타입인걸?」 「으응. 요 2년 간, 그 애만이 환자를 지켜보고 있었어. 그래서───환자가 회복한 기적의 몇 분의 일 정도는, 그 애 덕분 아닐까 하고 생각해. ……몇 년이나 이 일을 하고 있으면서 그런 소망을 입에 담다니, 나도 어떻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 1 ◇ 그곳은 어둡고, 바닥은 칙칙했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은 어둠뿐이라고 깨닫고, 나는 죽어 버린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빛도 소리도 없는 바다에 떠 있다. 나신으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료우기 시키란 이름의 사람 형체가 가라앉아 간다. 끝은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가라앉아 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곳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둠조차도 없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라앉아 간다는 의미조차 없다. 아마, 무(無)라고 하는 단어조차, 존재할 수 없다. 형용조차 무의미한 「 」속에서, 나의 몸만이 가라앉아 간다. 나체인 상태인 나는, 시선을 돌리고 싶어질 정도의 농후한 색채를 띠고 있다. 이곳에는 「있는」 것은 모두 독기가 너무 강하니까. 「───이것이 죽음(死)」 중얼거리는 목소리조차, 아마도 꿈. 그저, 시간 같은 것을 관측한다. 「 」에는 시간조차 없지만, 나는 그것을 관측할 수 있게 되어 버렸다.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부패하듯 추하게, 시간만을 헤아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 계속, 계속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계속, 계속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평온해서, 만족하고 있다. 아니────일체의 의미가 없으니까, 이곳에서는 단지 「있다」는 것만이 완벽한 것이다. 이곳은 죽음(死)이다. 죽은 자 밖에 도달할 수 없는 세계. 살아 있는 자는 관측 할 수 없는 세계. 그런데, 나만이 살아 있다니─── 미쳐 버릴 것 같았다. 2년간. 나는 이곳에서 죽음이라는 관념과 닿아 있었다. 그것은 관측이 아닌, 오히려 싸움의 격렬함에 가까웠다. ◇ 아침이 되어, 병원은 갑자기 활기차게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가는 간호원들의 발소리와 잠에서 깨어난 환자들의 생활의 잡음이 수없이 반복된다. 밤중의 고요함에 비하면, 아침의 어수선함은 마쯔리(際)처럼 느껴졌다. 눈을 뜬 지 얼마 안 되는 나에게, 그 활기찬 소리는 너무 크다. 다행히, 나의 병실은 독실이었다. 밖은 소란스럽지만, 이 상자 안 만은 고요하게 안정되어 있다. 얼마 안 있어, 의사가 진찰하러 들어왔다. 「기분은 어떠십니까, 료우기씨」 「───글쎄, 잘, 모르겠어」 감정 없는 나의 대답에, 의사는 곤란해진 듯, 입을 다문다. 「……그러십니까. 하지만, 어젯밤보다는 안정되어 있는 것 같군요. 괴로우시겠지만, 현재 환자의 상황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기분이 나쁘다면 사양 말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무언(無言)으로 대답했다. 그런 뻔한 일 따위에, 흥미는 없었으니까. 「그러면,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오늘은 98년의 6월 14일입니다. 환자───료우기 시키는 2년 전의 3월 5일 심야에 교통사고에 의해서 당원에 실려 왔습니다. 횡단보도 상에서의, 승용차와의 접촉 사고입니다. 기억이 있으십니까?」 「…………」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모른다. 기억이라는 서랍에서 끄집어낸 최후의 영상은, 빗속에서 가만히 멈춰 서 있는 클래스메이트의 모습뿐이다. 어째서 자신이 사고를 당했나, 하는 것은 기억에 없다. 「아아, 기억나지 않아도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료우기씨는 승용차와 접촉하기 직전에, 그것을 알아차리고서 피하려고 했던 것 같으니까요. 그 덕분인지, 다행히 신체 면의 상처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두부(頭部)에 강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당원에 실려 왔던 시점에서 의식은 혼수상태였지만, 뇌 자체에는 상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2년간의 혼수상태에 의한 일시적인 의식의 혼란 일겁니다. 어젯밤의 진찰에서는 뇌파에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기억은 점차 회복될 테지만, 절대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하튼, 혼수상태에서의 회복 자체부터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니까 말이죠」 2년간이라고 이야기해도, 나에게는 그다지 실감되지 않는다. 자고 있던 료우기 시키에게 있어서, 그 공백은 무(無)에 가깝다. 료우기 시키에게 있어서의 '어제'란 것은 2년 전의 비 오는 날 밤이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어제는 그것이야말로 「무(無)」다. 「또, 두 눈의 상처도 깊은 것은 아닙니다. 둔기에 의한 상처는 안구 속에서는 가장 가벼운 것이니까요. 어젯밤, 환자 가까이에 날붙이가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붕대도 곧 풀 수 있겠죠. 바깥의 풍경을 보는 것은, 앞으로 일주일 정도 참아 주세요」 의사의 대사에는 어딘가 비난이 섞인 느낌이 있었다. 그는 내가 스스로 눈을 짓눌렀던 일로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겠지. 어젯밤도 어째서 그런 일은 했는지를 캐물어 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오전과 오후에 신체의 리허빌리테이션을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친지 분들과의 면회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가 적당하겠죠. 몸과 마음의 밸런스가 조절되면 곧 퇴원할 수 있습니다. 괴로우시겠지만 힘을 내주세요」 예상대로의 대사에 기분이 틀어졌다. 나는 빈정거리는 것에도 지쳐서, 자신의 오른손을 움직여 보였다. ……몸은, 그 어느 것이나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에 시간이 걸리고, 관절과 근육이 으득으득하고 터질 것처럼 아프다. 2년 동안이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도 당연한 일일까. 「그러면, 오늘 아침은 이것으로. 시키씨도 안정을 찾으신 것 같으니, 간호사는 붙이지 않겠습니다. 무언가 용무가 있을 때에는, 그 쪽의 버튼을 눌러주세요. 옆방에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이더라도 사양 말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완곡한 어조. 눈이 보였다면, 나는 의사가 인스턴트 적으로 웃는 얼굴을 보고 있었겠지. 뚜벅뚜벅 떠나가는 의사는, 마지막에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아, 그랬었죠. 내일부터는 카운슬러가 올 수 있습니다. 료우기씨에게 비교적 가까운 나이의 여성이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해 주세요. 지금의 환자에게, 대화는 회복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병실의 침대 위에 드러누워서, 스스로 닫은 눈을 안고서, 멍하니 존재한다. 「나의 이름────」 마른 입술로 말했다. 「료우기, 시키」 하지만, 그런 인간은 이곳에 없다. 2년간의 무(無)가 나를 죽였으니까. 료우기 시키로서 살아왔던 기억은 전부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한번 죽고, 다시 살아난 나에게 있어서 그런 기억이 뭐가 된다고 하는 것인가. 2년 동안의 공백은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연결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나는 틀림없이 료우기 시키이고, 시키 이외의 다른 누구도 아닌데───예전의 기억을, 자신의 것이라고 실감할 수 없다. 이렇게 소생한 나는,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인간의 일생을 필름으로 보고 있을 뿐인 것이다. 나는 영화의 등장인물을, 나라고 생각할 수 없다. 「마치, 필름에 찍힌 유령 같아」 입술을 깨문다. 나는, 나를 알 수 없다. 자신이 진짜 료우기 시키인지 조차 애매모호하다. 내가,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처럼 생각된다. 자신의 몸속은 텅 비어서, 동굴 같았다. 공기조차 바람처럼 통과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말로,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린 것 같다. 그것이 몹시 불안하고───아주 쓸쓸하다. 빠진 퍼즐 조각은 심장. 그 빈 공간을, 가벼운 나는 견뎌낼 수 없다. 너무나 공허하게 텅 비어 버려서, 살아가는 이유도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이───어떻게 됐다는 거야, 시키」 말을 해보면, 이렇다 할 것은 없었다. 이상하게도───가슴을 쥐어뜯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불안과 초조를, 나는 괴롭다고도 슬프다고도 느끼지 않는다. 불안은 있다. 아픔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료우기 시키였던 자가 안은 것이다. 나는 무감동이다. 2년 동안의 죽음으로부터의 소생에도 흥미가 없다. 그저 가벼이 하늘거리며 여기에 존재한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 따위, 조금도 실감하지 못하는 상태로. / 2 다음날이 되었다. 빛을 볼 수 없는 지금의 나에게도 아침의 도래를 알 수 있는 것은, 자그마한 발견이다. 나는 그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 몹시 기뻤다. 어째서 기쁜 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아침의 진찰이 시작되고, 어느 사이엔가 끝나 있었다. 오전 중은 그다지 조용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오빠가 면회를 와서, 이야기를 했다. 마치 타인 같아서, 대화가 성립되지도 않는다. 할 수 없이 시키의 기억대로의 대응을 하자, 어머니는 안심하고 돌아갔다.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 오후가 되어, 카운슬러가 찾아왔다. 일단, 언어요법사(言語療法士)라고 하는 그녀는, 터무니없이 밝았다. 「하~이, 잘 있었어?」 라고 인사를 하는 의사가 있다는 소리, 나는 들은 적이 없다. 「헤에, 빼빼 말라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부도 윤기 있고 고운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말야, 버드나무 아래 나타난다는 유령 같은 것을 상상해 버려서 별로 내키지 않았거든. 응, 내 취향인 귀여운 여자애라서 럭키야!」 목소리의 질에서 볼 때 20대 후반 같이 느껴지는 여성은,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환자의 실어증의 회복을 돕기 위해서 찾아온 언어요법사입니다. 이 병원 사람이 아니니까 신분 증명은 할 수 없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겠네」 「───실어증이라니, 누가」 무심결에 대답하자, 여의사는 응응, 하면서 끄덕이는 것 같다. 「그건, 당연히 화를 내겠지. 실어증이란 건 그다지 좋은 이미지도 아니고, 게다가 오진(誤診)이고 말야. 아시카군은 교과서대로 하는 사람이니까, 너 같은 특수한 케이스에는 약하다구. 하지만 너도 잘못한거야. 귀찮다고 해서 아무 말도 안 하려 하니까, 그런 의심을 산거라구」 여성은 아주 친근하게 말하곤, 쿡쿡하고 웃는다. ───완전한 편견이지만, 나는, 이 상대가 안경을 끼고 있는 인간이라고 단정했다. 「실어증이라고, 생각된 거군」 「그래. 너는 사고로 뇌를 다치기도 했으니까. 언어 회로가 파손된 것이 아닐까하고. 하지만 그건 오진. 네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신체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신적인 거지? 그러니까 실어증이 아니라 무언증(無言症). 회화를 할 수 있는데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뿐이야. 그렇게 되면 나는 할 일이 없어져 버리지만, 1분도 안돼서 잘리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고. 마침 본업도 한가하니까, 한동안 이야기 상대를 해줄께」 ……쓸데없는 참견이다. 나는 간호사를 부르는 버튼에 손을 뻗는다. 그러자, 여의사는 버튼을 재빠르게 나에게서 낚아챘다. 「───너」 「위험해요 위험해, 아시카군에게 지금 얘기를 해버리면, 나는 곧바로 퇴장인걸. 뭐 어때, 실어증이라고 생각하게 해두면. 너도 재미없는 문답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이득이잖아?」 ……그것은, 확실히 그 말 대로다. 하지만 그것을 확실히 입 밖에 내는 이 인물은 뭐하는 사람일까. 나는 붕대가 감겨진 눈으로 정체불명의 여의사를 향한다. 「너, 의사가 아니지?」 「으응, 본업은 마법사야」 어이가 없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요술쟁이에게 용무는 없어」 「아하하, 확실히 그렇네. 너의 가슴에 뚫린 구멍은, 매지션으로는 메울 수 없어. 메울 수 있는 것은 보통 사람뿐인걸」 「───가슴의, 구멍───?」 「응. 알고 있지? 환자는, 이제 혼자라는 사실을」 쿠쿡하고 웃으면서, 여의사는 일어섰다. 정리되는 의자 소리와, 멀어져 가는 발소리만이 나에게 전해진다.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올께, 바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그녀는 떠나갔다. 나는 움직이기 힘든 오른손으로, 입가에 손을 대었다. 이젠, 혼자. 가슴에 뚫린, 구멍. ───아아, 어떻게 된 일인가. 대체 무엇을,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인가. 없다. 어디에 외쳐 보아도, 그가 없다. 료우기 시키 속에 있던 또 한사람의 인격인 료우기 '시키(織)'의 기미가, 깨끗하게 사라져있다─────. ◇ 시키는, 스스로 다른 인격을 안고 있는 이중인격자였다. 료우기 가문에는 유전적으로 두 개의 인격을 소유한 아이가 태어난다. 세간의 일반 가정이라면 몹시 싫어할 그것은, 료우기 가(家)에서는 역으로 초월자(超越者)로 떠받들어지고 정통한 후계자로 취급된다. ……시키는 그 피를 이어받은 자였다. 남자인 오빠를 제쳐두고, 여자인 시키가 후계자가 된 것도 그것 때문이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두 개의 인격───양성인 남자와 음성인 여자의 인격의 주도권은, 양성인 남성 쪽이 강하다. 지금까지의 얼마 되지 않는 "정통한" 료우기 가문의 계승자는, 전원이 남성으로서 태어나서, 그 안에 여성으로서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키는 무언가의 잘못으로 그것이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여성으로서의 시키 속에, 남성으로서의 '시키(織)'가 내포되었다. 육체의 주도권을 가진 것이 여성인 시키────곧 나. '시키(織)'는 나의 마이너스적인 인격으로, 나의 억제된 감정을 담당하고 있다. 시키는 '시키'란 음의 어둠을 눌러 죽이면서 살아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신인 '시키'를 죽이면서 보통 사람처럼 살아왔다. '시키' 본인은 그것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대개 자고 있었으며, 검을 수련할 때 같은 상황에 불러 깨우면, 귀찮다는 듯이 그것을 떠맡았다. ……마치 주인과 종의 관계 같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다. 시키와 '시키'는 결국 하나다. 시키의 행동은 '시키'의 것이고, '시키'가 자신의 기호(嗜好)를 눌러 죽이는 것은 그 본인의 바램이기도 했다. ……그래. 시키는 살인귀였다. 내가 아는 한 그 경험은 없었지만, 그는 인간이란 자신과 같은 생물을 살해하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주인 격인 시키는 그것을 무시했다. 계속, 그것을 금지해 왔다. 시키와 '시키'는 서로를 무시하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시키는 고립(孤立)해 있었지만. '시키'라고 하는 또 한 명의 자신 덕분에, 고독(孤獨)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관계가 깨지는 날이 찾아왔다. 2년 전. ───시키가 고교 1학년생이었던 때. 지금까지 육체를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시키'가, 스스로 표면으로 나오고 싶다고 부탁을 시작했던 그 계절────. 그때부터 시키의 기억은 애매하다. 지금의 나는, 고교1학년 무렵부터 사고를 당할 때까지의 시키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살인 현장에 자리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 흐르고 있는 검붉은 혈액을 보면서, 침을 삼키는 자신의 모습. 하지만 그것 보다,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영상이 있다. 새빨갛게 불타는 듯한 석양이 비치던 교실. 시키(式)를 파괴해 버렸던, 그 클래스메이트. 시키(シキ)가 죽이고 싶었던, 한 명의 소년. 시키(シキ)가 지키고 싶었던, 하나의 이상. 그것을, 계속 예전부터 알고 있던 기분이 드는데. 긴 잠에서 깨어난 내게는, 그의 이름만이, 아직 기억나지 않고 있었다. ◇ 밤이 되어, 병원은 고요해졌다. 이따금 복도에 울리는 슬리퍼 소리만이, 나는 깨어 있다고 느끼게 한다. 어둠 속에서───아니, 어둠 속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는, 자신이 혼자라고 통감한다. 예전의 시키라면, 그 감각은 없었겠지. 스스로 또 한 명의 자신을 품고 있던 시키. 그렇지만 이제 '시키'는 없다. 아니───나는, 자신이 시키(式)인지 '시키(織)'인지 조차 알 수 없다. 자신 속에는 '시키'가 없었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 나는 자신이 시키(式)라고 인식한다. 「크크……어떻게 이런 모순이 다 있지. 어느 한 쪽이 없지 않으면, 자신이 어느 쪽인지도 알 수 없다니」 중얼거려 보지만, 가슴의 공허함은 조금도 채워지지 않는다. 하다못해, 슬프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 무감동한 마음이라도 무언가 변화가 있을 텐데. 나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구도 아니니까, 료우기 시키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실감 할 수 없다. 료우기 시키라는 껍데기가 있어도, 그 속이 깨끗이 씻겨 내려가 버렸다면 의미가 없다. 대체. 이 텅 빈 공간에는, 어떤 것이 들어가는 걸까. 「───내. 가, 들어,, 갈.. 께」 문득 그런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린 듯한 공기의 흐름. 기분 탓이겠지, 하고 나는 닫혀진 눈을 그쪽으로 향한다. 그곳에────있었다. 하얀 연기가,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을 나의 눈은, 그 연기의 모양만을 포착하고 있다── 연기는, 어딘지 모르게 인간과 비슷했다. 아니, 인간이 해파리처럼 뼈가 발라진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기분 나쁜 연기는, 일직선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직 몸을 만족스럽게 움직일 수 없는 나는, 그것을 멍하니 기다렸다. 이것이 유령이란 것이라 하더라도, 무섭지도 않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다. 설령 아무리 기괴한 것이라 해도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나는 무섭다고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유령이라면, 지금의 나도 비슷한 것이겠지. 살아 있지 않은 이것과, 살 이유가 없는 나에게 큰 차이는 없으니까. 연기는 나의 볼에 접촉해 왔다. 전신이 급속히 차가워져 간다. 등줄기에 퍼지는 오한은 새의 발톱처럼 날카롭다. 불쾌한 감각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멍하니 계속 바라보았다. 한동안 맞닿아 있자, 연기는 소금을 뿌린 괄대충처럼 녹아 갔다. 이유는 단순하다. 연기가 나에게 닿아 있던 시간은 5시간 정도였다. 시각은 곧 오전 5시가 된다. 아침이 왔기 때문에, 유령은 아침 햇살에 녹아 간 것이다.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부터 다시 자기로 했다. / 3 내가 회복하고 나서 며칠 째인가의 아침이 찾아왔다. 두 눈은 아직 붕대에 감겨진 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아침. 잔물결 같은 고요함은, 너무 화려해서, 자아를 잃는다. ──작은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햇살의 따스함을 느낀다. ──맑은 공기가 폐에 채워진다. ──아아. 저 세계에 비해서, 이곳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것을 기뻐하지도 않는다. 그저 기척으로 느끼는 아침 공기에 감싸이고 있을 때, 생각한다. ───이렇게도 행복한데.    인간은, 이렇게도 외톨이다. 외톨이인 것은 무엇보다도 안전한 것인데, 어째서 외톨이인 것을 견딜 수 없는 걸까. 예전의 나는 완성되어 있었다. 혼자서 만족하고 있었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이제 완전하지 않다.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계속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대체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까……? ◇ 카운슬러를 자칭하는 여의사는 매일 찾아왔다. 어느 샌가 나는 그녀와의 회화를 덧없는 하루의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흐음, 과연. '시키'군은 육체의 주도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았던 것뿐이구나. 들을수록 재미있는걸, 너희들은」 변함없이 침대 곁에 의자를 가져와서는, 여의사는 즐거운 듯 이야기한다. 어떻게 된 건지, 그녀는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료우기 가(家) 사람밖에 모르는 나의 이중인격에 대해서도, 2년 전의 길거리살인마 사건에 내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원래대로라면, 계속 숨기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사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일이다. 나도 모르게, 나는 카운슬러의 농담에 맞장구를 치듯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중인격에는 재미고 뭐고 없다고 생각해」 「아냐아냐. 너희들은 말야, 이중인격 같은 예쁜 것이 아니라구. 알았어? 동시에 존재하면서, 각자가 따로 존재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동이 총합되어 있어. 이런 복잡기괴한 인격은 2중 인격이 아니라 복합개별인격(複合個別人格)이라고 불러야겠지」 「복합……개별인격───?」 「그래. 하지만, 조금 의문이 남아. 그렇다면 '시키'군은 자고 있을 필요 같은 것은 없는 거야. 너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언제나 자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점이 좀, 그래」 언제나 자고 있던 '시키'. ……그 의문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나뿐이다. '시키(織)'는 시키(式)보다 ──────꿈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니까. 「그래서. 지금도 자고 있는 거야. 그는?」 여의사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가. 그렇다면 역시 죽은 거네. 2년 전의 사고 때, 너를 대신해서. 그래서 너의 기억에는 누락이 있어. '시키'군이 담당하고 있던 2년 전 사건의 기억이 애매한 것은 그것 탓이야. 그를 잃어버린 이상, 그 기억은 되찾을 수 없어. ……료우기 시키가 길거리살인마 사건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가는, 이걸로 진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 거야」 「그 사건. 범인은 잡히지 않은 것 같은데」 「으응. 네가 사고를 당하고 난 뒤에 거짓말처럼 행방을 감췄어」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여의사는 아하하, 하고 웃었다. 「하지만 '시키'군이 사라질 이유는 없었던 거네. 왜냐하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사라졌을 사람은 시키(式)쪽이었잖아? 그는 어째서, 스스로 사라지는 것을 바랬던 걸까」 그런 것을 나에게 이야기 해 봤자 알 수 있을 리 있겠는가. 「몰라. 그것 보다 가위는 어떻게 됐어?」 「아, 역시 안 된대. 너는 전과가 있어서, 날붙이는 절대 금지래」 여의사의 말은 예상대로였다. 매일 하는 리허빌리테이션 덕분인지, 나의 몸은 그럭저럭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했다. 하루에 두 번. 얼마 안 되는 수분간의 보잘것없는 운동으로 이렇게나 빨리 회복한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 축하를 하자던 여의사에게, 나는 가위를 갖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가위 같은 것을 뭐에다 쓸 거야? 꽃꽂이라도 할 셈이야?」 「설마. 단지, 머리를 자르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렇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니까, 등까지 자란 자신의 머리카락이 귀찮아졌다. 목덜미에서 까칠 거리는, 어깨로 흐르는 머리카락은 성가시기만 할 뿐이다. 「그거라면 미용사를 부르면 될텐데. 말하기 힘들다면 내가 불러줄까?」 「됐어. 남의 손이 머리카락에 닿는다니, 상상도하고 싶지 않아」 「그렇겠네-, 머리카락은 여자의 생명인걸. 너는 2년 전 그대로인데, 머리카락만 자라 있다니, 불쌍해」 여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그러면 대신에 이걸 줄게. 룬을 새긴 것뿐인 그냥 돌멩인데, 부적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해. 문 위에 얹어 둘 테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해」 여의사는 의자를 사용해서 문 위에 부적이란 것을 둔 것 같다. 그녀는 그대로 문을 연다. 「그럼, 나는 이걸로. 내일부터는 다른 사람이 올지도 모르니까, 그 때는 잘 부탁해」 괴상하게 돌려 말하면서, 여의사는 떠나갔다. ◇ 그날 밤, 언제나 찾아오던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심야가 되면 꼭 찾아오는 연기 같은 유령은, 이날을 기해서 병실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연기는 매일 밤 찾아와서 나에 닿아 있었다. 그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가만히 놔두었다. 그 유령 같은 것이 나에게 들러붙어 나를 죽이려 하는 거라면, 그것도 상관없다. 아니, 차라리 죽여준다면, 얼마나 간단할까. 살아 있는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나에게는, 살아가는 이유조차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라져 버리는 편이 편하다. 어둠 속, 눈꺼풀을 덮은 붕대에 손을 대었다. 시력은 이미 돌아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이야말로, 완전히 안구를 망가뜨려 버리겠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나아버리면 다시 그것을 보게 되어 버린다. 그 세계를 보게 되어 버릴 거라면, 이런 눈은 필요 없다. 그 결과로서 이쪽의 세계가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해도, 기분은 그것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나는 그 순간까지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예전의 시키라면 망설이지 않고서 안구를 파괴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잠시 동안의 어둠을 얻은 것으로 정체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꼴사나운가. 나는 살아갈 의지도 없는 주제에, 죽으려는 의지조차 없다. 무감동한 나는, 어떤 행동에도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긍정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라 해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 죽는 것에 매력은 느끼지 않지만, 그것에 저항할 생각도 없다. ……어차피. 기쁨도 슬픔도, 료우기 시키였던 자 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이라 한다면. 지금의 나는, 살아가는 의미조차 없는 것일 테니까. 가람의 동\ 1 아오자키 토우코가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막 6월이 된 날씨 좋은 점심 무렵이었다. 그녀가 변덕을 부려서 채용한 신입사원이 료우기 시키의 친구였기 때문에, 심심풀이 삼아 그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이야기의 발단이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료우기 시키란 인물은 2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혼수상태에 빠졌고, 생명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눈을 뜰 기미는 전혀 없다고 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육체의 성장도 정지해 버렸다고 했다. 생명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성장이 멈춰있다는 모순을 토우코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흐음. 성장하지 않는 생물은 죽어 있는 것인데 말이야. 아니, 시간의 압력은 죽은 자에게조차 영향을 미쳐. 사체는 부패라고 하는 성장을 마치고 흙으로 돌아가잖아? 움직이는 주제에 성장하지 않는 다는 것은, 요전에 네가 기동시켜 버렸던 자동인형 같은 것 정도야」 「하지만 사실이에요. 시키는 그때부터 나이를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 애 같은 원인 불명의 혼수상태에 다른 예는 없는 건가요, 토우코씨?」 신입사원의 물음에, 토우코는 흠, 하고 팔짱을 낀다. 「그렇지. 저쪽 물 건너 나라에서 유명한 것이 있었어. 당시 막 결혼했던 20대의 여성이 혼수상태에 빠져서, 실제로 50년이나 되는 세월을 넘어서 소생했다는 예가 있지. 모르는 거야?」 토우코의 말에, 신입사원은 아뇨, 라며 고개를 저었다. 「저기, 그 사람은 눈을 떴을 때 어떻게 되어 있었나요?」 「어땠었냐고 하면, 정상이었던 것 같아. 50년의 잠 같은 것은 그야말로 없었던 것처럼 말이지. 그녀는 20대의 마음인 채로 완벽하게 소생해서, 남편을 슬프게 했어」 「───에? 슬퍼하다니, 어째서인가요? 부인이 회복했으니까, 그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그러니까말야. 마음은 20대인 상태인데, 몸은 이미 70세로 성장해 버렸던 거야. 혼수상태인 사이에도 말이지. 살려둔다, 라는 것은 열화(劣化)시킨다는 것이니, 이것만은 어쩔 수가 없어. 그래서, 70세의 부인은 자신이 아직 20대인 것처럼 남편에게 놀러 가자고 떼를 쓰게 됐지. 남편 쪽은 착실히 70년 동안 살아왔으니까 그걸로 됐어. 문제는 부인 쪽이야. 50년이란 시간을 모르는 사이에 다 써 버렸던 그녀는,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그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아. 싫어서 인정하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실로서 인식하지 못 한거야. 비극이라면 비극이지. 주름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놀러 나가려는 그녀를, 남편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렸다고 해.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하더군. 이렇게 될 거였다면 눈을 뜨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야. 어때? 꿈 얘기 같은 비극은 말야, 사실은 그 옛날에 현실의 것이 되어 있는 거야. 참고가 되었어?」 토우코의 말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짚이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 심술궂게 히쭉거리는 토우코에게, 그는 희미하게 끄덕였다. 「……예에. 조금. 가끔씩 생각해요. 시키는, 스스로 일어나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일리 있는 데. 좋아. 시간도 때울 겸 얘기 좀 해봐」 정말로 시간을 때울 목적으로 말한 토우코에게, 그는 화를 내며 고개를 돌린다. 「거절하겠어요. 토우코씨의 그런 무신경한 부분은 문제가 있다구요」 「뭐야,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쪽이잖아. 괜찮으니까 말해. 나도 진짜로 흥미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야. 아자카 녀석이 전화로 매일 그 시키라는 이름을 말해서 말이지. 어떤 인간이었는지 알지 못하면, 대답을 할 수가 없잖아?」 아자카, 란 이름이 나오자 그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전부터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말이죠. 제 여동생하고 토우코씨, 어디서 알게 된 거에요?」 「1년 전의 여행지에서. 때마침 일어난 엽기 사건에 휘말려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정체를 들켜 버렸어」 「……뭐어 괜찮지만요, 아자카는 순진하니까, 이런저런 일들로 꼬드겨 이상한 걸 가르치진 말아주세요. 걔, 가만 놔둬도 불안정할 나이니까요」 「아자카가 순진하다, 란 거군. 확실히 그건 순진한 건지도 몰라. 뭐어, 여동생과의 사정은 너의 문제니까 관여하지 않겠어. 그것보다 시키란 애의 이야기를 하지」 책상위에 반쯤 엎드린 토우코에게, 그는 한숨을 섞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료우기 시키라는 친구의 성격과, 그 특이한 인격의 존재를. 그와 료우기 시키는 고교 시절의 클래스메이트였다. 입학하기 전부터 료우기 시키란 이름에 인연이 있던 그는, 그녀와 같은 반이 된 뒤로 친구가 되었다. 그다지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료우기 시키에게 있어서, 친하게 지내고 있던 사람은 그 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고교 1학년이었던 무렵 일어났던 길거리살인마 사건으로, 료우기 시키는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해 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이중인격자라는 것, 게다가 또 하나의 인격이 살인을 기호(嗜好)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밝힌 것이다. 실제로, 3년 전의 엽기 살인에 료우기 시키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지는 수수께끼다. 그것이 밝혀지기 전에, 그녀는 그의 눈앞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3월의 첫 번째, 차가운 비가 내리는 날 밤에. 그런 일련의 이야기를, 토우코는 심심풀이 정도로 밖에 듣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깊어짐에 따라, 그녀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져 갔다. 「───이상이 저와 시키의 전말입니다. 이젠 2년도 지난 얘기지만」 「───그래서 성장이 멎었다는 건가. 생명의 리저브라니, 흡혈귀도 아니고」 큿, 하고 입술 가장자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애의 이름은 어떻게 쓰지? 분명히 한자로 한 글자겠지?」 「수식(數式)의 식(式)인데요, 그것에 뭐라도?」 「시키가미(式神)의 시키(式), 인가. 거기에 성이 료우기(兩儀)라고 들었어. 너무 잘 만들었는데, 그거」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서, 토우코는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일어선다. 「병원은 교외였던가? 흥미가 생겼으니, 약간만 상황을 보고 올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토우코는 사무실을 뒤로했다. 설마 이런 장소에서 그런 것에 관계하게 될 줄이야, 어찌된 인과인가, 하고 어금니를 깨물면서. 2 료우기 시키가 회복한 것은 그로부터 수일 뒤의 일이 된다. 친족조차 쉽게 면회할 수 없는 상황은, 바꿔 말하면 일반면회의 불가능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 때문이겠지. 토우코가 자신의 방에서 나와 옆에 있는 사무실에 와 보니, 신입사원인 그가 사람이 바뀐 듯한 음침한 기운을 풍기며 데스크 워크에서 생각에 잠겨있는 것은. 「어두운걸, 아무래도」 「네. 전등, 이제 그만 구입하도록 하죠」 그는 토우코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서 대답한다. 성실한 인간이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의외의 기행을 저질러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청년도 그런 류일까, 하고 예상하고 토우코는 말을 걸기로 했다.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지 마. 오늘 중으로 불법 침입할 것 같은 기미가 보여, 너」 「무리에요. 그 병원, 연구소 수준의 경비 시스템이니까」 바로 대답하는 것을 봐서, 경비 시스템 쪽을 상당히 자세히 조사한 것이겠지. 모처럼의 신입사원을 범죄자로 만들 수 도 없지, 하며 토우코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입 다물고 있으려 했는데, 할 수 없으니 알려 줄께. 나 말야, 대단찮은 일의 대타로 오늘부터 그 병원에서 일하게 됐어. 료우기 시키의 근황에 대한 것을 알아봐 줄테니까, 지금은 얌전히 있도록 해」 「────에?」 「그러니까, 의사로 고용된 거야.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겠지만, 이번에는 아는 사람의 부탁이라서. 네가 억지로 이야기를 하게 만든 만큼, 예의 상 이것 정도는 해주려고 생각했어」 토우코는 한심하다는 투로 말한다. 그는 책상에서 일어나서, 그대로 토우코에게 걸어와서는 그녀의 양손을 잡았다. 붕붕, 하고 두 사람의 손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것이 감사의 의사표시인 것도 모르고, 토우코는 조금 굳어진 얼굴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괴한 취미를 가지고 있구나, 너」 「기뻐요. 깜짝 놀랐어요, 토우코씨에게도 보통 사람 같은 다정함이나 의리가 있었던 거군요!」 「……보통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입에 담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괜찮아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아, 그래서 오늘은 수트 차림이군요. 아주 멋져요, 잘 어울려요. 잘못 생각해 버리고 있었어요, 예에!」 「……평소대로의 복장이지만, 뭐어 됐어. 아첨은 들어주도록 하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나, 하고 판단하고서 토우코는 이야기를 빠르게 끝마쳤다. 「그렇게 됐으니까, 섣부른 행동은 하지 마. 안 그래도 그 병원은 수상해. 너는 여기에서 사무실을 지키는데 전념하도록. 알겠지?」 그 말에, 지금까지 무척 들떠 있던 그는 평소대로 침착해졌다. 「───수상하다니, 그 병원 말씀인가요?」 「으응. 결계 같은 것의 사전 준비가 이루어져 있어. 나 이외의 마술사가 개입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다고 해도 목적은 료우기 시키가 아니야. 그렇다면 2년 동안이나 가만히 둘 리가 없겠지」 명백한 거짓말이었지만, 당당하게 잘라 말했기에 그는 의심도 하지 않았다. 「……에 그러니까. 결계란, 이 빌딩의 2층 같은 것 말이죠?」 「아아. 결계라는 것은 레벨 차가 있는, 일정 구간을 격리하는 것을 말해. 정말로 벽을 만들어 버리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벽으로 뒤덮어 버리는 것도 있지. 제일 수준 높은 것은, 지금 여기에 확실히 존재하는 것에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라는 강제암시. 이 빌딩도 마찬가지야. 이곳에 올 목적이 없는 자는 의식할 수 없다, 란 암시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서 결계로 계속 존재할 수 있어. 멋대로 이계(異界)를 모방해서 주위가 이상(異常)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결계 따위는, 하급 중의 하급 결계라구」 이상(異常)을 들키지 않는 이상(異常), 그것이 그녀의 공방을 수호하는 방법. 지도에 있어도 아무도 못보고 지나쳐버리게 되는 '힘'. 탁월한 마술사가 자리 잡아 살고 있는 세계란 것은, 별다를 것 없는 이웃집 같은 곳인 것이다. 하지만───그 결계를, 이 신입사원은 무의식중에 깨뜨렸다.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인물을 알고 있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이 빌딩을, 그는 아주 쉽게 발견해 버렸다. ……뭐어, 그 점이 그녀가 그를 채용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병원의 결계란 위험한 것인가요?」 「사람 말을 좀 들어봐. 결계 자체에 해는 없어. 원래는 불교용어라구. 결계란 단어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계와 성지를 격리하는 것을 말해. 언제부터인가 마술사가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술법의 총칭이 되어 버렸지만. 알겠어? 아까도 말했지만 제일 수준 높은 결계는 일반인에게 이상하다고 느끼게 만들지 않는 "무의식 하에 호소하는 강제관념"이라구. 제일 고급인 것은 공간차단에 이르지만, 거기까지 가면 마술사가 아니라 마법사의 업(業)이 되지. 현재, 이 나라에 마법사는 한 명밖에 없으니까, 일단 그런 결계는 만들 수 없어. 하지만, 그 병원에 펼쳐진 결계는 상당히 교묘해. 나도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어. 지인 중에 결계제작의 엑스퍼트가 있었는데, 그 녀석과 동격의 제작자일까. ……뭐어, 결계제작의 전문가에는 철학자가 많아. 놈들은 치고 박는 것은 서투르니까, 일단 안심해도 되겠지」 ……그렇다, 결계 자체에 위험은 없다. 문제는 외계와 차단된 세계에서 무엇을 행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 병원의 결계는 바깥이 아닌 내부로 향해 있다. 즉, 원내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라는 종류의. 예를 들면 심야에 병실 하나가 폭발해도, 누구 하나 잠을 깨는 일은 없겠지. 토우코는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슬슬, 시간이다, 하고 시계에 시선을 던지면서 걷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그 등에 그의 목소리가 걸린다. 「토우코씨, 시키를, 잘 부탁드려요」 아아, 하고 토우코는 손바닥을 팔랑팔랑 흔들면서 대답했다. 뒤돌아보지 않는 그녀에게, 그는 다시 한번의 사소한 의문을 던졌다. 「맞다, 그, 아는 사람이라던 엑스퍼트는 누군가요?」 딱, 하고 토우코의 발이 멎는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빙글, 하고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왜 당연한 걸 묻고 그래. 결계의 전문가라면, 스님이기 마련이잖아」 3 토우코가 임시 의사로서 병원에 불려 간지 6일정도 경과했다. 날이 가면 갈수록 회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료우기 시키의 보고를 그에게 전할 때, 토우코는 어떤 종류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즉, 현재의 료우기 시키와 과거의 료우기 시키가 타인에게 있어서 동일한 존재일까, 하는 것을. 「하루에 두 번 있는 리허빌리테이션과 뇌파 체크가 그녀의 일과인 것 같아. 퇴원 날 정도는 면회도 할 수 있을테니, 이제 조금만 더 참도록 해」 병원에서 돌아온 토우코씨는, 오렌지색의 넥타이를 느슨히 풀면서 책상에 걸터앉는다. 여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저녁. 저녁놀의 붉은 빛이 전등 없는 사무소의 내부를 심홍(深紅)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의 리허빌리테이션이라니, 그것만으로 괜찮은가요? 2년 동안이나 자고 있었던 상태라구요, 시키는」 「환자가 자고 있어도 매일 관절은 움직여 주고 있었겠지. 게다가 리허빌리테이션은 운동이 아니야. 하루에 5분이나 하면 충분해. 원래부터 리허빌리테이션이란 것은 의학용어도 아니라구. 그건 말야, 인간으로서의 존엄의 회복이라는 의미야. 그러니까 지금까지 잠만 자고 있던 료우기 시키가 자신을 인간이라고 실감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야. 신체의 회복은, 또 다른 얘기」 거기서 한 박자 쉬고, 토우코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하지만. 문제는 신체적인 면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 그 애는, 이전의 료우기 시키가 아닌 것처럼 변했어」 「───기억상실, 인가요」 각오하고 있었던 걸까, 그는 머뭇거리다가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으음, 글쎄. 인격 자체는 이전 그대로라고 생각해. 료우기 시키 자신에게 변화는 없어. 변화가 있던 것은 시키(式)쪽이지. 너에게는 쇼크가 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는 걸」 「그런 것은, 지금까지 겪었던 일로 익숙해졌어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시키는……그, 어떻게 되어 버린 건가요?」 「아아. 솔직히 말하는 건데, 그녀는 텅 비어 버렸어. 지금까지 내부에 또 하나의 자신을 안고 있던 시키. 하지만 '시키(織)'는 이젠 없어. 아니, 그녀에게는 자신이 시키(式)였는지 '시키(織)'였는지 조차 애매하겠지. 눈을 뜬 그녀 안에는 '시키'가 없었어. 그것이 그를 잃어버린 것에 의해 그녀의 마음속의 공백이 되어 버린 거야. 아마도───그 애는, 그 빈 공간을 견뎌 낼 수 없어. ……가슴이 비어 있는 거야. 구멍처럼, 채워져 있지 않아. 공기조차 바람처럼 드나들지」 「'시키'가 없다니───어째서」 「시키 대신 나섰던 거겠지. 어쨌든 2년 전의 사고 때, 료우기 시키는 죽었던 거야. 억지로 생존시키고 있었으니 모순이 되어 버리지만, 죽은 것으로 가정해봐. 료우기 시키는 새로운 인간으로서 료우기 시키의 육체에 되살아났어. 지금의 시키에게 있어서, 과거의 시키, 그리고 그것에 의해 소생해 있는 현재의 시키는 타인에 지나지 않아. 누구라도 타인의 역사는 실감할 수 없어. 아마도 그 애는 지금도 나 자신이 내가 아니란 감각인 채 밤을 보내고 있겠지」 「……타인이라뇨. 그건 시키는 이전의 일은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건가요?」 「아니, 기억하고 있어. 지금의 그녀는 틀림없이 네가 알고 있는 시키일거야. 그녀가 계속 생존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시키와 '시키' 라는 개별 된 동격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료우기 시키가 사고에 의해서 정신사(精神死)했다. 그때에 죽는 역을 떠맡은 것이 '시키'라고 하자. 그래서 그녀는 사망해야 했지만, 아직 뇌 내에는 시키가 남아 있었어. 그 결과, 정신사에는 이르지 않았지. 시키는 료우기 시키가 죽어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계속 잠을 자 버리고 있었지만, 죽은 것은 '시키'니까 그녀는 살아 있었어. 그래서───2년간이나 혼수 상태였었을 테고, 생명 활동을 하면서도 성장하지 않았어. 죽어있다고 하는데도 살아있다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나 소생한 그녀는 이전의 시키와는 세부적으로 틀려. 기억상실, 이란 것 정도는 아니지만, 필요할 때가 아니면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타인이라고도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없지만, 그녀는 지금까지의 시키와는 틀린 거야. 시키와 '시키'라는 인격이 섞여서 제3의 인격이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면 되겠지」 ……하지만, 사실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시키가 료우기(兩儀)인 이상, 그 반쪽이었던 '시키'와 서로 섞일 리도 없고, '시키'가 빠진 공백을 시키 혼자서 메꿀 수도 없을 테니까.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토우코는 말을 잇는다. 「하지만, 설령 그녀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서 되살아났다 해도, 그녀는 료우기 시키야. 아무리 스스로에게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그 애는 역시 료우기 시키인거라구. 지금은 아직 삶의 실감조차 손에 잡히지 않겠지만, 곧 그녀도 자신이 시키라고 의식할 때가 와. 장미는 장미로서 태어난 거야. 자라는 땅과 물이 바뀐 것만으로 다른 꽃이 되지는 않아」 그러니까 그런 일로 고민 하지 마, 라고 그녀는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결국, 뚫린 구멍은 무언가로 메울 수밖에 없는 거야. 그녀는 기억이 아니라, 현재를 거듭해 쌓아 나가면서 새로운 자신을 형성해 갈 수밖에 없어. 그것은 누구도 손을 빌려줄 수 없는 건물 짓기 같은 일이야. 타인이 끼어 들 일이 아니라구. 요컨대, 너는 지금까지 대로 그녀를 접하면 되는 것뿐이야. 그 애의 퇴원, 가까운 것 같아」 다 피운 담배를 창 밖으로 떨구고, 토우코는 양손을 올리고 기지개를 켰다. 뚜둑뚜둑 하고 호쾌하게 뼛소리가 난다. 「정말이지, 익숙치 않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니까. 담배 맛이 안 나서 견딜 수가 없어」 긴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 4 평소대로의 아침 진료 후, 오늘이 20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눈을 뜬지 7일의 나날이 지나갔다는 소리다. 신체가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는 나는, 내일 퇴원하기로 되어 있다. 두 눈의 붕대도, 내일 아침에는 푼다는 소리였다. 7일……일주일간. 그 사이에 내가 얻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잃은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잃어 버렸는지 조차 애매하다. 부모님도 아키타카도, 아마도 예전 대로인 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다. 료우기 시키라는 나까지도 바꾸어 버렸으니까, 나를 에워싸고 있던 모든 사실들이 없어져 버리는 것은, 분명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득, 두 눈을 덮은 붕대에 손을 댄다. 잃은 것 대신에 얻은 것이 이거다. 2년간───살아 있는 상태로 '죽음'이라는 것에 닿아 있었던 나는, 그런 형체 없는 개념을 볼 수 있는 체질이 되어 버렸다. 혼수상태에서 눈을 뜨고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놀랍게도 간호사가 아닌……그녀의 관절에 그려진 선이었다. 사람에도, 벽에도, 공기에도───거짓말 같게도 정밀한 선이 보였다. 선은 언제나 유동하며, 일정치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그 고체의 어딘가에 있어서, 지금도 그곳에서 『죽음』이 배어나올 듯한 강박관념에 휩싸였다. 나에게 말을 거는 간호사가, 목덜미의 선부터 좌르르 무너져 가는 환상을 보았다.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를 이해했을 때───나는, 스스로의 손으로 이 두 눈을 찌부러뜨리려고 했다. 2년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던 양팔은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격통을 느꼈지만, 그래도 팔을 움직이려고 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나의 완력은 아직 약해서, 두 눈을 파괴하는 행위는 도중에 의사에 의해 멈춰지고 말았다. 그들은 의식의 혼탁에서 비롯된 돌발적인 충동이라고 결론짓고, 내가 두 눈을 짓누르고 있던 이유를 거의 묻지 않았다. 「이제 곧───눈이, 낫는 걸까」 그런 것은 싫다. 그런 세계 따위, 나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없는 세계. 그곳에 '있을' 때엔, 아주 평온해서 흡족해 하고 있었다. ──믿을 수 가 없다. 눈을 뜨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장소만큼 공포스런 세계는 없는 것이다. 그 어둠이, 자고 있던 내가 꾼 단순한 악몽이었다고 하더라도────그곳에 떨어지는 것은 견딜 수 없다. 그리고, 그곳에 연결되어 버린 이 두 눈도. 나는, 손가락을 눈동자에 갖다 댄다. 그 다음엔 죽도를 휘둘러 내리치는 것 같이 깔끔하게 힘을 가하는 것뿐이다────. 「잠깐잠깐. 포기가 너무 빨라, 너는」 갑자기, 소리가 났다. 나는 문에 의식을 향한다. 그곳에 있는 것은───뭐지? 발소리도 없이 누군가는 다가온다. 내가 드러누워 있는 침대 곁에 오자, 그 누군가는 딱 멈췄다. 「직사의 마안(直死の魔眼)인가. 그것을 없애는 것은 아까워, 시키. 무엇보다 눈이 멀어 버리는 순간부터, 한번 보아 버렸던 것을 영원히 보게 되어 버린다구. 저주란 것은 버려도, 역으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너는───인간이냐?」 나의 물음에, 그 누군가는 웃음을 눌러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슉, 하고 라이터가 불을 토해 내는 소리가 난다. 「나는 마술사야. 너에게, 그 눈의 사용법을 알려주려고 생각해서 말이지」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 ……이 누군가는, 틀림없이 그 카운슬러였다. 「이 눈의 사용법, 이라고……?」 「으응. 지금보다는 나은 정도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나아. 노려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죽음을 구현시킨다, 라는 마안(魔眼)은 켈트의 신 이래로 처음이야. 없애기엔 아까워」 발로르(balor)라고 하는데 말야, 하면서 여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릴 덧붙인다. 「마안(魔眼)이라는 것은 자기의 안구에 무언가 접속효과를 일으키는 영적수술(靈的手術) 같은 것인데, 너의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보여 버렸었지? 원래 그 재능이 있었고, 이번 사건으로 재능이 개화했다는 소리야. 들은 이야기일 뿐이지만, 옛날부터 시키란 애는 존재의 내면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 여자가 말하는 대로, 시키는 옛날부터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볼 때도 그 인간의 표면이 아닌, 그 속에 있는 심부(深部)를 포착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키 본인은 의식하고 있지 않았겠지만. 「그건 말이지, 료우기 시키가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던 제어법이야. 너는 표면을 보려고 해서는 안돼. 만물에는 모든 것에 이음매가 있어. 완벽한 물체란 것은 없으니까, 모두 부서져서 다시 만들어지고 싶다는 바램이 있지. 너의 눈은 그 이음매가 보여. 현미경 같은 거야. 영적인 시력이 너무 강해. 우리들로서는 보이지 않는 선이 보이고, 또한 죽음에 오랫동안 접하고 있던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뇌가 이해해 버리지. 결과, 죽음이 보여 버리게 되는 거야. 그뿐만 아니라 만지는 것도 가능할 테고. 생물의 사선(死線)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그 위치를 바꾸는데, 그것을 확실하게 포착해 버리는 능력은 노려보는 것만으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마안(魔眼)과 큰 차이가 없어. 네가 그것을 파괴하겠다고 하면, 내가 받도록 하지. 다시 말하면, 매입해 주겠어」 「……눈이 없어도 보이게 돼버린다고 말했지? 그렇다면 눈을 멀게 할 이유 따윈 없어」 「그래. 너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어. 고민하는 것도 거기까지 해 둬, 료우기 시키. 적당히 하고 정신 차려. 너는 원래부터 우리 쪽의 인간이잖아? 그렇다면───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꿈 따위는 꾸지 마」 「────────」 ……그 한마디는, 어떤 의미로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론을 한다. 「살아가는 의미 따위───나는, 가지고 있지 않아」 「흥. 마음이 비어서 인가. 하지만 죽는 것은 싫지? 왜냐하면 너는 저쪽의 세계를 알아 버렸으니까. 케텔의 카발리스트도 다다를 수 없는 심부(深部)에 있을 수 있었는데도. 사치스런 계집애 같으니. 알겠어? 너의 고민은 단순해. 타인으로서 되살아났기 때문이란 것. 단지 '시키'가 없는 것뿐인데도. 확실히 시키와 '시키'는 한 세트였어. '시키'가 없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벌써 딴 사람이지. 설령 네가 시키 그 자체라고 하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것도 알아.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것뿐이야. 그런데도 너는 살려는 의지가 없는 주제에, 죽는 것만은 사양하고 있어. 살아갈 이유가 전혀 없는 주제에, 죽는 것만은 두렵다고 하고 있어. 생과 사의 어느 쪽도 고르지 않고 경계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거야. 마음이 텅텅 비어 버릴 만도 하지」 「……다 아는 것 같은 소릴, 잘도───」 나는 여자를 노려본다. 그 순간───분명, 보이지 않을 눈이 여자의 윤곽과 검은 선을 포착해 버렸다. 『죽음(死)』이, 여자의 선에서 나 자신에 휘감긴다. 「본건가. 틈이 있으니까, 그 정도의 접촉으로 움직이는 거야 이곳의 잡념들로서 보자면, 너의 몸은 특상의 그릇(器). 정신 못 차리면 녀석들에게 홀려서 죽게 될 거야」 홀려서 죽게 된다는 것은, 그 하얀 연기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것은 이젠 오지 않는다. 「잡념이란 것은 말이지, 죽은 뒤에도 남아 버린 혼의 조각에 지나지 않아. 의지가 없으니까, 단지 떠돌 뿐이야. 하지만 조각인 이상, 녀석들은 점점, 덩어리를 이루어서 하나의 혼령이 되지. 녀석들에게는 의지가 없지만, 본능만은 남아 있어.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 인간의 몸이 가지고 싶다, 란 것. 이곳(병원)에는 잡념이 많아. 그것은 부유령이 되어 몸을 구하고 있어. 그들은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감지되지 않고 접촉도 할 수 없어. 형체 없는 영이 관계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영능력자 뿐이야. 영시(靈視)를 생업으로 하는 술사는 그들에게 홀리지 않도록 자아를 껍질로 보호하니까 부유령 따위에게 당하는 케이스는 흔하지 않아. 하지만───너처럼 마음이 텅 빈 사람은 홀려 버린다구」 여자는 경멸하듯 말했다. 과연, 그 연기가 내가 있는 곳에 온 이유는 그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그것은 나를 홀리지 못했던 걸까. 그것이 내 안에 들어오려고 한 일이라면 나는 저항하지 않았었는데. 「───꼴사납군. 룬의 수호도 이것으로는 무의미해. 이젠 됐어, 역시 성격에 안 맞아. 이제부터는 멋대로 해」 독설을 내뱉고, 여자는 침대에서 떨어져간다. 병실의 문을 닫을 때, 여자는 말했다. 「그런데 말야, '시키'는 정말로 헛되이 죽은 거야, 료우기 시키?」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다. 정말로───이 여자는, 내가 피하고 있는 것만을 가시처럼 남기고 간다. ◇ 밤이 되었다. 주위에는 칙칙한 어둠. 오늘은 복도를 걷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산 속에서 고요히 자리 잡은 호수의 수면처럼 평온한 밤중에, 나는 그 여자와의 대화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지막 말만을. 어째서 '시키'는 시키 대신이 되었던 걸까. 질문에 대답할 '시키'는 없다. ───이제는 없는 '시키'. 무엇 때문에 그는 사라져 버린 것일까. 무엇과 맞바꾸기 위해, 그는 사라져 버린 것일까. 꿈을 꾸는 것이 좋았던 '시키'. 그는 언제나 잠을 자고 있었다. 그 행위조차 포기하고 그 비가 오는 날 밤에 그는 죽었다. 이젠 만날 수 없는 자신. 처음부터 만날 수 없었던 자신. '시키'라고 하는 , 원래 자신이었던 것───. 의식은 가라앉는다. 그가 도달했던 결론에 다다르려, 그저 추억을 역행했다. 끼이, 하고 병실의 문이 열린다. 그 뒤를 따라, 완만한 발소리가 다가온다. 간호사일까. 아니, 시각은 이미 오전0시를 지나 있다. 방문객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때, 인간의 손이 나의 목에 달라붙었다. 차가운 손바닥은, 그대로 나의 목뼈를 부러뜨리려는 듯 힘이 들어갔다. / 5 「아────」 목에 걸리는 압박에, 시키는 괴로워했다. 호흡을 할 수 없다. 목구멍이 조여진다. 이래서는 호흡곤란 전에 목이 비틀려 잘려 버리겠지. 시키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 상대를 응시했다. ……인간이───아니다. 아니, 형체는 인형(人型). 그렇지만 그녀위에 올라타서 목을 조르고 있는 인간은, 이미 살아 있지 않았다. 사자(死者)가, 혼자서 움직여 침대 위에서 시키를 습격하고 있다. 목에 걸리는 힘은 약해지지 않는다. 시키는 상대의 양팔을 쥐고서 저항하지만, 힘의 차는 뚜렷했다. 무엇보다───이것은 자신이 원했던 일은 아니었던가. 「──────」 호흡을 멈추고, 시키는 죽은 자의 손에서 양팔을 뗀다. 그대로 살해당할 거라면, 그것도 좋다고 포기하면서. 왜냐면 살아있어도 의미가 없다. 살아 있다고 하는 감각이 없는 데도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고행(苦行)이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까지 생각되었다. 힘이 실린다. 실제로는 아직 몇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시간은 너무나 완만하다 고무처럼 늘어져간다. 죽은 자가 시키의 목을 조른다. 체온이 없는 목재 같은 손가락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이 살인행위에는 용서 따윈 없고, 처음부터 의지마저 없다. 목의 피부가 찢어졌다. 흐르는 피는, 살아 있다는 확실한 표시다. 죽어서──'시키'와 마찬가지로 죽어서──그것을 버린다. 버린다? 그 단어에, 시키의 의식이 되돌아온다. 문득 의문이 생겨났다. 정말로───그는, 기뻐하면서 죽었던 것일까. ……그렇다, 그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이유는 어찌됐든, 그곳에 그의 의지는 있었던 걸까. 죽고 싶었을 리는, 없다. 왜냐면──죽음은, 그렇게도 고독하고 무가치한데. 죽음은, 그렇게도 검고 기분 나쁜데. 죽음은, 어떤 것보다도 무서웠는데────! 「────사양하겠어」 순간, 시키는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양팔로 죽은 자의 팔을 쥐고, 밑에 깔린 채로 한쪽 발을 상대의 배에 붙이고──── 「나는, 그곳에 떨어지는 것만은 싫어───!」 ────있는 힘껏, 그 몸뚱아리를 차올렸다. 죽은 자의 양손이 주르륵, 하고 배어나온 피에 미끄러지며 목에서 떨어진다. 시키는 침대에서 일어선다. 죽은 자는 곧바로 시키에게 덤벼든다. 양자는 불빛 없는 병실 안에서 맞붙었다. 죽은 자의 육체는 성인 남자의 것이다. 시키보다 머리 두 개는 크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시키는 힘에서 밀린다. 양팔이 붙잡힌 채, 시키는 질질 후퇴했다. 좁은 독실이라, 곧 벽에 다다른다. 탕, 하고 벽에 떠밀려지자, 시키는 각오를 굳혔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그녀의 등 뒤에 창문이 오도록 피했다. 이렇게 밀려가는 것은 의도대로다. 문제는───이곳이 지상 몇 층이냐는 점이고. 「────망설이지 마」 스스로에게 말하며, 시키는 죽은 자를 밀고 있던 양손을 떼었다. 죽은 자가 목덜미를 향해서 손을 뻗어 온다. 그것보다 빠르게───그녀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유리창을 열었다. 그대로, 양자는 뒤엉키듯 밖으로 낙하했다. ◇ 떨어지는 한순간. 나는 죽은 자의 쇄골을 잡고서, 상하를 반전시킨다. 빙글, 하고 죽은 자를 지면으로, 자신은 위로 올라타는 모양이 되자, 그 다음에 육감에 따라 도약했다. 이미 지상은 코앞이었던 것 같다. 죽은 자의 육체가 지면에 부딪히고, 나의 육체는 부딪히기 직전에 지면과 수평으로 뛰고 있었다. 촤아아, 하고 병원 앞뜰의 흙을 무너뜨리면서, 두손두발로 착지한다. 사체는 병동의 화단으로 추락했고───나는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앞뜰에 미끄러져 내린 상황이었다. 도장(道場)에서도 한 적 없는 신기에 가까운 착지를 했지만, 3층 분의 높이의 무게는 나의 사지를 마비시키고 있다. 나의 주위는 앞뜰에 있는 나무들과, 이런 일에도 쥐죽은 듯 조용한 밤뿐이었다. 나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목의 아픔만을 느낀다. 아아───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저 사자(死者)도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죽고 싶지 않다면, 할 일은 명백하다. 죽기 전에 죽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의 공허함은 사라졌다. 동시에, 여러 가지 감정도 엷어져 간다. 「뭐야, 정말」하고 중얼거린다. 이 일로 나는 알아차렸다. 그렇다───고민하고 있던 내가 바보 같았다. 대답은, 이렇게나 단순한데도─── ◇ 「놀래라. 고양이냐, 너는」 목소리는 시키의 바로 뒤에서 났다. 시키는 되돌아보지 않고, 착지의 충격을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다. 「너냐. 어째서 이런데 있는 거야」 시키의 질문에, 자칭 마술사인 카운슬러는 한심하다는 듯 대답했다.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오늘 밤쯤이라고 추측했던 것뿐이야. 자, 쉬고 있을 틈은 없다구. 확실히 병원은 활기 좋은 사체가 있지. 놈들, 영체로서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이라서 실력행사로 나왔어. 사체에 깃들어서, 너를 죽이고 옮겨 들어갈 생각인거야」 「어찌됐건 간에, 너의 이상한 돌 때문이잖아」 지면에 엎드린 채로 시키가 말한다. 거기서, 지금까지 같은 망설임은 티끌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어라, 알고 있었던 거야? 응, 확실히 이건 나의 미스군. 영체가 들어올 수 없도록 병실에 결계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깨기 위해서 몸을 얻어서 찾아오리라고는. 보통, 녀석들에게 그런 지식은 없는데 말이지」 쿡쿡, 하고서 마술사는 유쾌하게 웃는다. 시키는 아직 착지의 충격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사지를 쉬게 하면서, 짧게 내뱉었다. 「그런가, 그럼, 네가 어떻게든 해봐」 「오케이」 파칭, 하고 마술사가 손가락을 튕긴다. 보이지 않는 시키에겐 어떻게 비쳤을까. 마술사는 담뱃불로 공중에 문자를 새긴다. 문자는 영사기처럼 죽은 자의 몸에 겹쳐졌다. 직선만으로 형성된, 먼 나라 먼 세계의 마술각인(魔術刻印). 룬이라고 불리는 회로가 작동하고, 갑자기───지면에 쓰려져 있던 죽은 자의 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F(アンサズ)로는 너무 약한데, 이건」 마술사가 중얼거린다. 화염에 휩싸인 죽은 자는, 천천히 일어났다. 완전히 부러져 있는 양다리로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걸까. 근육만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다리를 질질 끌며 시키에게로 다가온다. 화염은, 얼마 안 있어 꺼졌다. 「어이───이 사기꾼」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마. 인간 크기 정도 되는 물체의 파괴는 어려워. 살아 있다면 심장을 불태우면 끝나. 하지만 죽은 자는 그렇게 안 된단 말야. 죽어 있으니까, 몸이 없어지던, 머리가 없어지던 상관 안 한다구. 권총 정도의 폭력으로 인간 그 자체를 소거할 수 없는 것은 알겠지? 저걸 멈추려면 화장터 정도의 화력을 가져 오던가────덕망 높은 스님이라도 데려오지 않으면 안돼」 「자기자랑은 됐어. 요점은, 너로서는 무리라는 거야」 시키의 발언에, 마술사는 프라이드에 몹시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너라도 무리야. 죽은 자는 이미 죽어 있으니까 죽일 수 없어. 때마침, 가지고 있는 무장으로는 사람을 죽일 수 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어. 이곳은 피하자」 마술사는 후퇴했다. 하지만, 시키는 움직이지 않는다. 3층으로부터의 낙하로 다리가 부러져 버린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웃고 있었다. 「죽어 있다고 하던 뭐라고 하던, 저건 "살아 있는" 사체잖아. 그렇다면──────」 바닥을 기고 있던 자세가 올라간다. 그것은 등을 구부리고 사냥감에 덤벼들려는, 육식동물의 자세와 닮아 있었다. 스윽, 하고 그녀는 스스로의 목을 쓰다듬는다. 피가 흐르고 있다. 피부가 찢어져 있다. 목이 졸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살아 있다. 그 감각에, 오싹해졌다. 「───그렇다면, 뭐든 간에 죽여 보이겠어」 스르륵, 눈동자를 덮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어둠 속, 직사의 마안(魔眼)이 그곳에 있다────── 가느다란 양다리가 지면을 박찼다. 죽은 자는 달려드는 시키에게 양팔을 뻗는다. 그것을 종이 한 장 차로 피하고, 그녀는 한쪽 손으로 죽은 자를 갈라 찢었다. 오른쪽 어깨부터 가사(袈裟)로 베듯이, 왼쪽 허리까지 시키의 손톱이 파고 들어갔다. 그걸로 그녀의 손가락뼈는 부러졌지만, 죽은 자의 상처는 그것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주르르, 하고 조종하던 실이 끊어진 것처럼 죽은 자는 지면에 쓰러진다. 그래도 한쪽 팔 만은 끈이 남아 있었는지, 바닥을 기는 채로, 죽은 자는 시키의 한쪽 발을 쥐었다. 그 팔을, 시키는 망설이지 않고 밟아 짓이긴다. 「죽은 시체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서, 시키는 소리 없이 웃었다. 살아 있다. 지금까지의 마음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이렇게도 확실하게 살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니. 「시키!」 마술사는 외치면서, 무언가를 시키에 향해서 던졌다. 그것은 은색을 띈, 아무런 장식 없는 한 자루의 나이프. 시키는 지면에 박힌 나이프를 빼어 들고서 아직 움직이고 있는, 사마귀 같은 죽은 자를 내려다본다. 그대로, 그녀는 사체의 목에 나이프를 꽂았다. 죽은 자는 딱, 정지했다. ───그러나. 「멍청아, 할거라면, 본체를 치라구!」 마술사의 질타보다 빠르게, 그 이상(異常)은 나타났다. 시키가 사체를 찌른 순간───사체에서 연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연기는 도망치듯이 필사적으로───시키의 육체로 사라져 간다. 「───────」 덜컥, 하고 시키의 무릎에서 힘이 빠진다. 지금까지 시키의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홀릴 수 없었던 그들은, 시키가 살인에 의해서 고양(高揚)을 얻어 자아를 잊고 있는 순간을 노리고 그녀 안으로 침입한 것이다. 「마무리에서 실수한거냐, 얼간아」 마술사는 달려온다. 그것을───시키는 한쪽 손으로 제지했다. 다가오지 마, 라고 하는 의사표시에, 마술사는 멈춰 선다. 시키의 몸은 나이프를 양손에 쥐고, 그 칼끝을 자신의 가슴으로 향했다. 허무한 눈동자가, 강한 의지를 되찾는다. 굳게 다문 입술, 뿌득하고 이빨을 깨문다. 나이프의 칼끝이, 가슴에 닿는다. 그녀의 의지도 육체도, 망령 따위에는 침범 당하지 않았다. 「이걸로 놓치지 않아」 중얼거림은 다른 누구에게 향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보내진 것. 시키는 스스로의 내측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의 죽음을 직시한다. 꿰뚫는 것은 료우기 시키의 육체다. 그렇지만 그것은 존재하지도 못하는 조잡한 것을 죽이는 것뿐인 행동. 자기 자신은 결코 상처 따위 입지 않는다고, 시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힘을 넣는다. 「나는, 약한 나를 죽인다. 너 같은 것 따위에게────료우기 시키는 넘길 수 없어」 나이프는, 미끄러지듯 그녀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 은빛의 날이 뽑혀 나온다. 피는 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는 것은, 가슴을 찔렀다는 아픔뿐이다. 붕, 하고 시키는 나이프를 휘두른다. 칼날에 묻은, 더러운 영을 떨어내듯이. 「너, 말했지. 나에게 이 눈의 사용법을 알려준다고」 지금까지 일정치 않았던 그녀의 어조가 굳어져 간다. 마술사는 그것에 만족하면서 끄덕였다. 「조건을 붙여서. 나는 너에게 직사(直死)의 사용법을 알려주겠어. 그 대신에 나의 일을 거들어 줘. 부리던 녀석을 잃어서, 마침 실력 있는 수족이 필요했던 참이야」 시키는 마술사를 돌아보지 않고서, 그래, 하고 조용히 말을 흘렸다. 「그거, 사람은 죽일 수 있어───?」 마술사조차, 전율할 목소리로. 「아아, 물론이지」 「그럼 하겠어. 마음대로 써. 어차피, 그것 말고는 목적이 없어」 슬픈 듯한 목소리의 시키는, 그대로 천천히 지면에 쓰러 졌다. 지금까지의 피로 때문인가───아니면 스스로의 가슴을 찌른 난폭한 짓 때문인가. 마술사는 그녀의 몸을 안아 일으키곤, 눈을 감고 자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 같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죽은 자의 그것에 가까운 차가운 얼굴. 그것을 오랫동안, 마술사는 계속 바라보았다. 이윽고 말이 흘러나온다. 「목적이 없다, 인가. 그것도 비극이지만 말야, 너는 아직도 틀렸어」 평온한 시키의 모습. 마술사는 밉다는 말투로 말한다. 「텅텅 비어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소리잖아. 이 행복한 자식, 그 이상의 미래가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중얼거리고서, 마술사는 혀를 찼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 따위를 입에 담은 스스로의 미숙함을. ……정말이지, 그런 건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 가람의 동 꿈에 떨어져서, 의식을 가라앉혔던 때를 혼자서 생각한다. 없어져 버린 '시키'. 또 하나의 나. 그는 무엇과 맞바꾸어 사라졌고. 그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사라졌던 걸까. 료우기 시키의 기억을 더듬어서, 그것을 알아 버렸다. 아마도───'시키'는 스스로의 꿈을 지킨 것이었다.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그의 꿈. 그것이 그 클래스메이트였던 걸까. 아니면 그가 되고 싶었던 남자로서의 인간이, 그 소년이었던 것일까. 그것은 이젠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시키'는 그와 시키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라졌다. ───나에게, 이렇게도 깊은 고독을 남기고. … 아침 햇살이 비쳐 든다. 시력을 되찾은 나의 눈동자는, 그 따스함에서 잠에서 눈을 떴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어젯밤의 그 사건은, 그 마술사가 잘 처리했음이 틀림없다. 아니, 그건 사소한 일이다. 지금은 그런 것 보다, 단지 그에 대한 것을 생각하자. 나는 드러누운 채로, 머리조차 움직이지 않고서 아침 공기를 받아들였다. 빛 때문에 잠을 깬 것은, 얼마나 오래간만인 것일까. 엷으면서도 강하다. 그저 선명한 햇살에, 마음속의 어둠이 빈틈없이 색칠되어 간다. 지금 손에 넣은 이 우연한 삶과─── 이젠 돌아오지 않는 또 다른 내가, 녹아 섞여서, 빛 속으로 사라져 간다. 료우기 시키의 존재와. 그가 꿈꾸었던 것이 사라져 간다. 울고 있었다면, 나는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말라 있다. 이제 우는 것은 한 번 뿐이라 마음먹었고───이 일로 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젠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두 번 다시 후회하지 않는다. 아침 햇살에 엷어져 가는 이 어둠처럼. 그라면, 그렇게 미련 없이 사라져 가는 것을 바랬을테니까. ◇ 「안녕, 시키」 곁에서 소리가 났다. 목만 옆으로 움직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다. 검은 테의 안경도, 꾸밈없는 흑발도, 정말로 변하지 않았다. 「나, 알아보겠어……?」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아, 알고 있다. 네가 계속 시키를 기다렸고. 너만이 계속, 나를 지켜 주고 있었다는 것을. 「코쿠토 미키야. 프랑스의 시인 같아」 중얼거린 목소리에, 그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치 다음날 학교에서 만났을 때 같은, 평범한 웃는 얼굴이었다. 거기에 어느 정도의 노력이 숨겨져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단지───그도,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오늘이 맑은 날씨라 다행이야. 퇴원하기엔 딱이야」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할 수 있는 한 자연스럽게 그는 말한다. 텅 비어 있는 나에게, 그것은 무엇보다 따스했다. 우는 얼굴보다 웃는 얼굴을, 이 친구는 선택했다. 고립(孤立)해 있는 것 보다, 고독(孤獨)을 느끼는 것을, '시키'는 선택했다. ───나는 아직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지만. 「……아아. 없어지지 않는 것도, 있는 건가」 부드러운 햇살과 하나가 되어 갈 것 같은 그의 웃는 얼굴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질릴 때까지. ──그런 것으로 가슴의 구멍이 메워지지는 않을 거라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부드러운 그의 웃는 얼굴. 그것은, 나의 기억 속에 있는 것과 같은 웃는 얼굴이었다. / 伽藍の洞 · 了 -------------------------------------------------------------------------------- * 伽藍の洞(がらんのどう) : 직역하면 가람의 굴(동굴), 가람의 구멍, 건물의 (큰) 구멍 정도. 伽藍(がらん) : 승려들이 사는 건축물의 총칭. 일반적으로는 금당 · 강당 · 탑 · 식당 · 종루 · 경장 · 승방의 일곱가지 건물을 갖추고 있는 사찰을 가리킨다. 정식 명칭은 승가람마(僧伽藍摩)이며 어원은 산스크리트語의 상가라마(Saghrma). 인도에서는 수행하는 승려가 모여 수행(修行) · 숙박하는 원림(園林)을 말하였는데, 나중에는 가람에 7가지 건축물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것을 칠당가람(七堂伽藍)이라고 한다. 7당이란, 중국에서 생겨난 것으로서 금당(金堂) · 강당 · 탑 · 식당 · 종루(鐘樓) · 경장(經藏) · 승방(僧房)을 다 갖춘 형식을 말한다. 그런데 이 칠당의 명칭과 배치는 시대와 종파에 따라 다른데 보통 남향(南向)으로 세웠다.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l/?i=570&Ad=Encyber ] がらんどう : 텅 비다. * 가람에 관한 역자의 단상 : 여기서 伽藍(がらん)은 허공 4장에서는 은유적으로 '시키(의 마음)'를 뜻한다고 생각됩니다. '텅 비어버리다' 란 がらんどう란 단어와, (직역해서) '가람의 동굴'이란 뜻의 がらんのどう는 스펠도 거의 유사고, 아직 세부적으로 단정은 못하겠지만, '텅 비어버린(がらんどう)' 시키의 마음이겠죠. 마음에 큰 구멍이 나 버린 시키의 모습은 시키(의 마음) = 伽藍(がらん)으로 생각해서 伽藍の洞(がらんのどう)라고 하면 곧 시키(의 마음)에 뚫려버린 큰 구멍(빈 공간)이 될 듯도. 게다가 세 단어 모두에 'がらん'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으니 약간은 언어유희적……일까요? -_-; 그리고, 극중에 '건물짓기'란 것의 원 스펠은 伽藍作り(가람 짓기). "현재를 거듭해 쌓아 나가면서 새로운 자신을 형성해 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굳이 '伽藍'이란 단어를 썼다는 것은 위의 심증을 굳히는 요소중의 하나지만……과연 어떨런지는. 이상 역자의 잡설……이었습니다. 심심해서 같이 실어버립니다. * 켈트신 :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암흑의 마신 "흉안(凶眼)의 발로르(Balor)". 켈트 신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족이자 신화시대의 다섯 번째에 위치한 "투아하 데 다난(Tuatha de Danann)" 족. 발로르는 이에 적대하는 거인족인 포워르(Fomor)의 왕이다. 언제나 한쪽 눈을 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그의 한쪽 눈은 마법에 걸린 흉안(凶眼)으로 이 흉안에는 강력한 죽음의 힘이 깃들어 있어서 뜨이는 순간 모든 생명을 재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눈을 갖게 된 경위는 이와 같다. 어느 날 그는 어떤 집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 집은 그의 아버지의 드루이드들이 죽음의 마법을 만드는 곳이었다. 우연히 창문이 열려 있던 탓에 그는 호기심에 이끌려 안쪽을 들여다보았고 때마침 솟아오르던 독기(毒氣) 어린 마법의 연기가 그의 눈에 들어가 버린 결과, 그는 평상시엔 한쪽 눈을 감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눈을 뜰 때는 항상 그의 부하들이 상아 고리로 그의 눈꺼풀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흉안은 또한 발로르의 약점이기도 해서, 투아하 데 다난과 포워르 족의 전투였던 "제 2차 모이 티라 대전 (The Great Battle of Magh Tuireadh)" 당시 발로르가 그의 외손자이자 데 다난의 총사령관이던 빛의 신 루(Lugh)를 죽이고자 흉안을 뜨고 루를 보려던 순간, 루는 마법의 창인 "브뤼냐크"를 던져 발로르의 흉안을 꿰뚫고 빛의 검 프라가라흐로 그 목을 베어 죽였다고 한다. 작품 내에서는 시키가 지닌 직사의 마안을 비유하는 데 쓰였지만, 아무래도 발로르의 흉안에 비할 때 시키의 마안은 격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 발로르의 흉안은 뜨이는 순간, 죽음 자체를 시선이 미치는 곳에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쉽게 설명하자면, 직사의 마안의 능력과 후지노의 능력이 결합 되었다는 느낌일까). 물론 시키의 능력 또한 인간의 능력임을 감안하면 드물고 뛰어난 능력임은 부정할 수 없을 테지만. [ 자료제공 : 유준영(Nownuri : 성야)군 ] * 케텔의 카발리스트 : 카발라 Cabala (caballa, kabala, kaballa, Kaballah, qaballah.... ) 카발라는 일반적으로 유대 신비주의로 알려져 있는 고대의 비전 지식체계입니다. 카발라의 전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카발라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성서상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카발라의 맥을 이었던 카발리스트였습니다.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이 카발라의 가르침을 차례로 전해 받았으며, 아브라함은 이것을 다시 이집트에 전했다고 합니다. 한편 아브라함에게 카발라의 가르침을 전해준 것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세 역시 카발라의 비전에 입문한 입문자였으며, 모세는 다시 70명의 장로들을 카발라에 입문시킴으로써 이후 카발라의 전승은 이스라엘에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발라의 대부분은 유대교의 랍비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지만, 중세 기독교도에 의하여 쓰여진 것도 있습니다. 카발라의 저자들은 헤브라이 성서에 나타나는 문자나 단어, 숫자, 악센트를, 신비주의와 수비술에 근거하여 해석하고 마치 암호처럼 다룹니다. 카발라는, 신비적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단지 문자 그대로의, 또는 비유적인 의미로 밖에 읽혀질수 밖에 없는 경전속에서 신의 신비적 의지에 의하여 숨겨진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동시에 오컬트에 기호를 해석하는 방법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카발라(QBLH)라는 단어는 ‘받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어근 키벨(QBL, Qibel)에서 파생한 것으로, 본래는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서기 150년경에 처음으로 활자화되었습니다. 『세펠 조하르(빛의 서)』와 『세펠 예트지라(창조의 서)』 등이 중요한 카발라의 경전들입니다. 당시 카발라의 전통은 ‘마쉐 베레쉬트’와 ‘마쉐 멜카바’라는 두 개의 신비학파로 나뉘어 있었는데, ‘마쉐 베레쉬트’가 주로 우주의 창조와 역사에 관심을 두었다면 ‘마쉐 멜카바’는 신의 보좌에 들어가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었습니다. 후에 ‘마쉐 베레쉬트’는 사변적인 카발라로, 그리고 ‘마쉐 멜카바’는 실천적인 카발라로 그 전통이 이어집니다. 『세펠 예트지라』는 마쉐 베레쉬트 전통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에 처음 세피로트(생명의 나무)에 관한 교의가 등장합니다. 카발리스트들은 신이란 일절의 '속성' 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볼수도 느낄수도 없는 모든것을 초월한 존재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들은 전능한 신과 인간에게 느껴지는 신의 속성을 구분 하고 그걸 잇는 중간속성을 설정했는데, 그게 바로 10종류의 '세피라'(Sephira, 구슬) 라고 합니다. 이 세피라를 신의 속성에 대한 유출경로, 즉 인간의 감각의 방법에 따라 구성해 만든 것이 '세피로트의 나무'(생명의 나무)입니다. 천국에 있는 이 생명의 나무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에덴의 중앙에 심어져 있는 지식의 나무의 옆에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생명의 나무는 생명의 원천이자 인류의 탄생을 나타내는 존재로서 나무는 10개의 구슬(세피라)과 22개의 길 (파스,Pass)로 이루어져있다고 합니다. 현재 인간은 가장 아래의 마르쿠트 (왕국) 에 위치하며 22개의 길을 거쳐 세피라를 하나씩 얻어가면서 케테르(왕관)을 향해 정신적 수양이 되는 여행을 계속한다고 하죠. 각기 세피라에는 사람을 지도하고 수호하는 대천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 10종류의 세피라를 요약해 보면, [ http://aimship.new21.org/topic/kabbalah/kabbalah.html를 가보시면 세피라와 생명의 나무의 도해가 나옵니다. 아래 설명과 같이 참고하세요 ] 1. 케테르(Keather:왕관) 인간의 머리위에 있는 대우주와의 접점. 창조의 원천, 순수존재, 생명력의 원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곳의 천사는 메타트론(Metatron). 2. 코쿠마(Cochma:지) 남성원리의 상징인 '지고의 아버지' 의 별명을 가진다. '動性'의 상징이기도 하고 천사는 라지엘(Ratziel). 3. 비나(Binah:이해) '지고의 어머니'의 별명이 있다. 즉 코쿠마와 대응하는 관계이다. 모든 것에 형태를 준다고 한다. 이곳의 천사는 자피켈(Zaphkiel). 4. 케세드(Chesed:자비) 순수하고 성스러운 우주법칙으로서의 '사랑'의 비전을 의미하고 있다. 케세드를 수호하는 천사는 자드키엘(Zadkiel). 5. 게브라(Geburah:신의 힘) '신의 힘'을 상징. 정의를 앞에 둔 파괴적 성격을 가진다. 별명이 '천계의 외과의사' 라고 한다. 이곳의 천사는 카마엘(Camael). 6. 티파레트(Tiphreth:미) 천사 미카엘(Michael)이 진좌하는 이 세피라는 생명의 나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생물에게 생명 에너지를 공급하는 중심부인 것이다. 7. 네차크(Netreth:승리) '풍요'의 의미를 가지는 네차크는 7이라는 번호가 상징적이다. 7은 '창세기'에 있어서의 창조의 7일간의 이미지로, '견실', '용기'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천사는 하미엘(Hamiel). 8. 호드(Hod:영광) 라파엘(Raphael)을 천사로 두고 있는 호드는 물질적 형태의 '주형'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형태는 카발라에 있어서 내적존재의 구현이다. 9. 예소드(Iesod:기반)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아스트랄체'. 즉 영혼과 육체의 중간이 위치한다고 하는 영기이다. 카발라에서는 이에 대해 '전존재물질'이라고 하는 표현법을 취한다. 이곳의 천사는 가브리엘(Gabriel). 10. 마르쿠트(Malchut:왕국) 이곳에 존재하는 천사는 케테르와 마찬가지로 메타트론이다. 이곳은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말하자면 물질적 왕국이다. 이상의 카발라에 관한 서술은 아래의 국내 사이트를 참조하였습니다. [ http://www.rathinker.co.kr/skeptic/cabala.htmll http://members.tripod.lycos.co.kr/dew0309/index07.htmll http://aimship.new21.org/topic/kabbalah/kabl03.html http://aimship.new21.org/topic/kabbalah/kabbalah.html ] 다음은 카발라에 관한 해외 사이트입니다. [ http://www.newadvent.org/cathen/08590a.html (카톨릭 백과사전입니다) http://www.kabbalah.com/ksite/default.asp? (Shraga Berg's Kabbalah Center exposed by Rick Ross) http://www.digital-brilliance.com/kab/faq.html (Kabbalah FAQ) http://kabbalah-web.org/ (Kabbalah Home Page) http://www.digital-brilliance.com/kab/nok/index.html (Colin Low's Notes On Kabbalah) ] [ 출처 : empas 지식거래소 질문마당 - http://kdaq.empas.com/dbdic/db_view.jsp?ps=src&num=614082 ] -------------------------------------------------------------------------------- 境界式 -------------------------------------------------------------------------------- ◇ 평소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바뀔 리 없는 병실의 침대 위에서, 그녀는 쇠약해진 몸을 꿈틀하고 떨었다. 면회인 따위가 올리 없는 문이 열린다. 발소리도 내지 않고, 그러나 더 이상 없을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그 인물은 찾아왔다. 방문자는 남성이었다. 장신에, 떡 벌어진 체격을 하고 있다. 그 표정은 험상궂고, 영원히 풀 수 없는 명제에 도전하는 학자처럼 어두웠다. 아마도───그것이 이 인물의 변하지 않는 얼굴인 것이겠지. 남자는 침대 곁까지 다가와서는, 험상 궃고 엄숙한 눈길로 그녀를 응시한다. 그, 무서울 정도의 폐쇄감. 병실이 진공이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착각할 정도의 속박. 죽음이 아니라 잠시동안의 삶(生)만을 두려워하는 그녀조차, 이 인물에게서 죽음으로의 동경을 느껴버릴 정도로. 「네가 후죠우 키리에인가」 무거운 목소리는, 역시 어딘가 고뇌의 울림이 있었다. 그녀──후죠오 키리에는 시력이 없는 눈동자로 남자에게 대답한다. 「당신이, 아버지의 친구인가요」 남자는 끄덕이지도 않았지만, 후죠오 키리에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가족이 없는 자신에게, 계속 진료비를 대주고 있었던 것은 이 사람이 틀림없다, 라고. 「무엇을 하려 왔나요?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떨면서 키리에는 말한다. 남자는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네 소원을 들어주러 왔다. 자유로워지는 또 하나의 몸, 가지고 싶지 않은가?」 그, 아주 현실성에서 동떨어진 말에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적어도, 후죠우 키리에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왜냐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이 남자에게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받아들여버렸기 때문에. 잠시 동안의 침묵 뒤에, 목을 떨면서 그녀는 끄덕였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오른손이 올라간다. 키리에의 오랜 꿈과, 영원히 계속되는 악몽을 함께 수여한다. 하지만 그 전에───그녀는 한가지 물었다. 「당신, 누구죠?」라고. 그 질문에, 남자는 보잘 것 없는 질문이라는 투로 대답했다. ◇ 폐허가 된 지하의 술집에서 해방되어, 그녀는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귀로에 접어들었다. 호흡의 리듬이 이상해서, 현기증이 난다.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아마도, 원인은 방금 전의 흉폭한 짓 때문이겠지. 언제나처럼 그녀를 능욕하려고 하던 다섯 명의 소년 중 하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녀의 등을 야구배트로 후려친 것이다. 아픔은 없었다. 아니, 원래부터 그녀에게 아픔은 없었다. 그저, 무거워서. 등 뒤에서 치밀어 오르는 오한이 그녀의 얼굴을 고민(苦悶)시키고, 등을 맞았다고 하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일그러뜨려서. 그래도 눈물은 나오지 않고, 그녀는 소년들에 의한 능욕의 시간을 견디고, 이렇게 학생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 길이 끝없이 멀었다. 제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다. 문득 쇼윈도를 보고서, 자신의 안색이 창백해져있는 것을 알았다. 아픔이 없는 그녀는, 어떤 상처를 입고 있다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등을 얻어맞은 일도, 단지 그것뿐인 사실이다. 그 사실에 의해 등뼈가 부러졌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런 그녀도, 지금의 자신의 신체가 아주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차렸다. 병원에는 갈 수 없다. 부모님 몰라 다니고 있던 마을 의원은 너무 멀고, 전화로 부르려 해도 어째서 이런 상처를 입었냐고 질문을 받아버리겠지. 거짓말에 서투른 나는 의사의 추궁을 잘 얼버무릴 자신은 없었다. 「───어떻하지. 나, 어떻하지───」 숨을 헐떡이면서, 그녀는 지면에 쓰러진다. 그것을───굵은, 남자의 팔뚝이 멈추게 했다. 놀란 그녀는 얼굴을 든다. 그곳에 있는 것은, 험상궂은 표정을 한 남성이었다. 「네가 아사가미 후지노인가」 남자의 목소리는 부정을 허락지 않는다. 그녀───아사가미 후지노는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경외를, 이 때 처음으로 체험했다. 「등뼈에 균열이 있다. 이대로는 집에 돌아갈 수 없어」 집에 돌아갈 수 없다, 란 단어가 마술 같은 선명함으로 후지노의 의식을 속박한다. 그것은, 싫다. 집──기숙사에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싫다. 지금은 그 곳 만이, 아사가미 후지노가 쉴 수 있는 장소니까. 도움을 청하는 눈동자로, 후지노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여름인데도 코트 같은 겉옷을 입고 있었다. 겉옷도 옷도. 전부 흑색. 펄럭이는 망토 같은 겉옷과 남자의 엄숙한 눈빛은, 어쩐지───후지노에게 절의 스님을 연상시켰다. 「낫고 싶은가」 최면술 같은 마력을 띈 목소리가 난다. 후지노는, 자신이 끄덕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승낙했다. 너의 몸의 이상을 치료하도록 하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남자는 오른손을 후지노의 등에 댄다. 하지만 그 전에───그녀는 한 가지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라고. 그 질문에, 남자는 보잘 것 없는 질문이라는 투로 대답했다. ◇ 하지만, 그 전에───그는 한가지 물었다. 「당신, 누구야」라고. 검은 외투의 남자는, 눈썹하나 찡그리지 않고 대답한다. 「마술사────아라야 소우렌(荒耶宗蓮)」 말은 신탁(信託)처럼, 짓누르듯 무겁게 골목 안에 울려 퍼졌다. [←|↑|→] -------------------------------------------------------------------------------- 어릴 적, 그 작은 금속조각은 나의 보물이었다. 울퉁불퉁하고, 작으며, 단지 기능미 밖에 없다. 은색의 쇳조각은 차가웠고, 그것을 강하게 쥐면 아팠던 것을 기억한다. 철컥, 하고 하루의 시작에 절반 돌린다. 철컥, 하고 하루의 끝에 절반 돌린다. 어렸던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철컥, 철컥. 시작에 한번, 끝에 한번. 하루는 언제나 원을 그리며, 그것을 매일 반복했다. 돌고 또 돌고. 질리지도 않고 싫증내지도 않고. 기쁨도 슬픔도 절반씩. 빙글빙글 변하지 않는 나날은, 이발소의 간판 같았다. 하지만, 끝나지 않던 나선의 나날은 갑자기 끝나버렸다. 은색의 쇳조각은 그저 차가울 뿐이라. ───기쁘지도 않다. 강하게 쥐면 피가 배어 나왔다. ──────슬프지도 않다. 당연하다. 쇳조각은 쇳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에 환상은 없다. 현실을 안 여덟 살 때, 쇳조각은 이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 그 때에 깨달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환상을 현명함과 맞바꾸는 일이다, 라고. 어리석게도 그것을 조숙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 모순나선 -------------------------------------------------------------------------------- / 0 금년 가을은 짧았다. 11월을 앞두고 세간의 정취가 겨울의 그것으로 바뀌려하고 있던 무렵, 경시청 수사1과의 아키미 형사는 이상한 괴담을 들었다. 직업상, 사람 죽는 일이 병원 다음으로 많은 그의 직장은 괴담이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춘하추동, 언제나 그런 쪽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자연히, 어지간한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게 된 아키미 형사였지만,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었던 것들과는 격이 틀렸다. 무엇보다, 괴담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사건이 정규 보고서에 당당하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누구도 눈길도 주지 않을 한 파출소의 보고가 그의 곁까지 흘러 들어온 것은, 그가 미스테리를 엄청 좋아한다는 사실이 서 내에서도 유명하기 때문이겠지. 그 사건은, 조금 정신이 이상한 도둑에 대한 사건으로 처리되어있었다.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10월의 첫날,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주택단지의 변두리에서 절도사건이 있었다. 집사람들이 집을 비운사이를 노린 빈집털이였는데, 피해가 있었던 집은 열 곳이 넘는 맨션들 중도 제일 고급스러운 맨션의 한 집이었다고 한다. 범인은 전과가 있는 상습범으로 계획적으로 범행하는 타입은 아니고, 돌발적으로 빈집털이를 하는 유쾌범이었다. 범인은 평소 하던 대로 처음 본 맨션 안에 불쑥 들어가, 대충 봐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짐작되는 집에 침입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로, 수분 뒤에 이 범인은 인근의 파출소까지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는 것이다. 범인은 착란증세를 보이고 있어서 말에 두서가 없었지만, 그 맨션의 한 가족이 전원 사체로 방치되어있다고 간신히 말했던 것 같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경관은 범인을 데리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범인의 말과는 반대로 가족은 모두 멀쩡하게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범인은 점점 곤혹스러워했고, 그것을 수상하게 생각한 경관이 추궁해보자, 그가 빈집털이를 하려고 맨션에 들어왔던 것이 드러나, 절도미수로서 체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뭐야, 이건」 보고서를 대충 훑어보고는, 끼이끼이 소리가 나는 파이프의자에 등을 기대며 아키미 형사는 중얼거린다. 우습다고하면 우스운 이야기고, 특별히 마음에 둘만한 이야기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보고서에는, 범인은 술이나 약에 취하지 않았고, 정신상태에도 문제는 없었다는 사실도 덧붙여져 있다. 정신이상 절도범으로 체포된 빈집털이범은, 별나다고 한다면 확실히 별나다. 이런 별 볼일 없는, 게다가 끝나버린 사건(게다가 사건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조차 의문이다)에 신경 쓸 시간은 없다. 지금의 그는 3년 전처럼 바쁘다. 아니, 그 사건의 재래(再來)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싶어질 정도로, 항구에는 행방불명자가 잇따르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은 사태지만, 10월부터 시작해서 이미 네 명의 행방불명자가 생겼다. 피해자의 친족의 입을 막아두는 것도 슬슬 한계겠지. 그런 상황 하에서 이런 헛소리에 관여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그럴테지만, 아무래도 뒤가 켕기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빌어먹을」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수화기를 든다. 전화번호는 보고가 있던 파출소. 상대는 얼마 안 있어 전화를 받았고, 아키미 형사는 사건이 있었던 때의 대강의 줄거리를 들어보았다. 범인이 말했던 "사체가 방치되었던 가족"의 이웃집들은 확인했었는가, 범인이 설명했다는 사체의 묘사에 모순은 없었는가. 대답은 예상 했던 대로, 좌우의 집은 당연히 확인했었고, 범인이 정신없이 주절댄 사체의 상황은 미친 사람의 말이라기엔 너무도 극명했다는 것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그러자 등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뭐하고 있는 거야 다이스케. 서둘러, 두 번째의 유체가 나왔다는군」 「벌써 나와 버린 겁니까. 그 말투로 보니 또 먹다 남긴 건가 보지요?」 아아, 하고 끄덕이는 소리가 난다. 아키미 형사는 의자에서 일어서자, 깨끗하게 사고(思考)를 전환했다. 이 보고서가 아무리 마음에 걸린다고 해도 어차피 끝난 사건. 지금당장 우선되어야할 리 없다. 이렇게 1과 유일의 괴짜라고 불리는 아키미 형사조차, 이 괴상한 사건의 추급을 잊었다. / 1 (모순나선, 1) 이제 막 10월이 된 것뿐인데, 거리는 아주 추워져있었다. 시각은 오후 10시 조금 전. 바람은 차갑고, 밤의 어둠은 날카로웠다. 원래대로라면 거리는 아직 충분히 밝을 시간대인데, 오늘밤만은 시계의 바늘이 한 시간 정도 늦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거리는 음울했다.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겨울하늘은, 너무나 빨리 겨울의 도래를 느끼게 한다. 그 탓이겠지, 평소에는 인파로 북적일 역 앞에는 일상의 활기가 없다. 역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겉옷의 옷깃을 올리고, 곧바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라는 것은, 아무리 작더라도 따스한 안식의 땅이다. 이런 추운 날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집에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재촉하겠지. 흘러가는 사람들. 정체하지 않는 열기. 평소보다 어둠이 짙은 거리. 그런 광경을 소년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역 앞에서 떨어진 대로변, 캔 쥬스 자판기 옆에 숨듯이 주저앉아있는 소년의 시선은, 정상이 아니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주저앉아있는 소년은, 언뜻 보기엔 성별을 알 수 없다. 가냘픈 생김새에 호리호리한 몸집. 머리카락은 빨갛게 물들이고 있고, 머리칼이 한쪽방향으로 몰리는 스타일인지, 머리모양이 그리 깔끔하지 않다. 연령은 16,7세 정도일까. 초점 없는 눈동자는 가늘고 길어서, 여자의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 멀리서 본다면 여성이라고 착각할 정도겠지. 딱딱, 하고 이빨을 맞부딪치는 소리를 내고 있는 소년의 복장은 어딘가 이상하다. 더러워진 청바지에, 군청색을 한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블루종을 걸치고 있을 뿐. 겉옷 안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 소년은 추위인가──아니면 다른 무엇인가를 견디는 듯, 그저 이빨을 딱딱하고 울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얼마동안이나 그러고 있었던 것일까. 역에서 나오는 인적도 뜸해 졌을 무렵, 어느 사이엔가 소년은 몇 명의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여어, 토모에」 어딘가 깔보는 듯 느껴지는 친근한 말투로, 젊은이들 중의 한 명이 말했다. 목소리만이 흐른다. 빨간 머리의 소년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엔죠우, 이 자식, 무시하지 말란 말야」 젊은이는 난폭하게 겉옷을 쥐고서, 인형처럼 무저항한 소년을 일으켜 세운다. 말을 건 사람은 소년과 거의 동년배의 인간이다. 그의 주위에는 역시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다섯 명 정도 모여 있다. 「뭐야, 학교를 관두면 이젠 남이란 거야? 그래, 토모에쨩은 사회인이니까, 우리 같은 꼬마 애들은 상대 안 한단 거군요?」 아하하, 하고 일제히 웃는 소리가 난다. 그렇지만, 소년───토모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후응, 하고 남자는 토모에의 겉옷에서 손을 떼고, 소년의 볼에 주먹을 날렸다. 텅, 하는 충격. 짤그랑하고 무언가가 길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 「자지 말라구, 멍청아」 놀리는 듯 한 남자의 말에, 다시 주위가 웃기 시작한다. 그 소리에 소년───엔죠우 토모에는 쇼크 상태에서 소생했다. 「……엔죠우……토모에」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사고가 정지해 있었던 토모에는, 자신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은, 그 명칭의 활동을 재개시키는 의식 같은 행동이다. 제정신을 찾고, 토모에는 눈앞의 남자를 노려본다. 예전의 동급생과, 그의 동료들. 그들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다. 보통의 학생도, 그렇다고 해서 불량학생도 되지못하고, 자신 같은 약한 자만을 쫓아다니는 시원찮은 놈들이다. 「아이카와(相川)냐. 너, 이런 시간에 뭐하고 있는 거야」 「그건 이쪽이 할말이야. 나는 네가 몸을 팔고 있는 건가하고 걱정 했다구? 왜냐하면 토모에쨩은 연약한 여자니까 말이야」 그치? 하고 남자가 주위의 동료들을 돌아본다. 물론 토모에는 여자가 아니다. 아직 토모에가 고교생이었던 시절, 가냘픈 몸과 그 이름 덕분에 그렇게 놀림 받고 있었던 것뿐이다. 토모에는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고, 휙, 하고 빈 깡통을 집어 든다. 「아이카와」남자의 이름을 부른다. 앙? 하고 토모에를 돌아보는 그 여드름 난 얼굴에, 토모에는 빈 깡통을 쑤셔 넣었다. 남자의 입에 빈 깡통이 밀려들어간다. 그대로 토모에는 손바닥으로 빈 깡통을 후려쳤다. 「컥」 견디지 못하고 남자는 쓰러진다. 기침을 해서 토해낸 빈 깡통에는, 붉은 피가 끈적하게 늘어 붙어있었다. 남자의 동료들은 어이가 없어서, 아직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고교를 중퇴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 옛 클래스메이트를 발견해서 한턱 얻어먹으려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이쪽에서의 폭력은 있어도, 설마 토모에 쪽에서의 폭력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료가 맞아 쓰러졌는데도, 곧바로 대응할 수 없었다. 「아이카와. 너, 변함없이 돌대가리구나」 그렇게 말하고, 엔죠우 토모에는 쓰러져있는 남자의 머리를 걷어찼다. 축구공이라도 차듯이, 발끝으로 있는 힘껏. 담담했던 어조와는 반대로, 그 기세는 죽을지도 모를 정도로 강력했다. 남자는 그걸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실신한 것인가, 아니면 목뼈가 부러진 것인가. ───그저 아픔 때문에 곧바로 일어설 수 없는 정도인가, 하고 확인하고, 토모에는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은 역 앞이 아니라, 한적한 골목 안으로. 토모에가 달려가는 것을 보고서, 그들은 그제서야 지금의 상황을 파악했다. 돈을 빼앗았어야할 상대가, 동료를 때려 쓰러뜨리고 눈앞에서 도망쳤다. 맞은 동료는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있다─── 「저 자식, 우릴 뭘로 보고───때려 죽여 버리겠어!」 누군가가 소리치자, 격정은 남은 다섯 명 전원에게 감염되었다. 그들은 달아난 암사슴을 붙잡아, 보복하기 위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 때려죽이겠다, 라고. 녀석들의 고함소리를 듣고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 주제에,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 각오가 없는 자가, 지금 막 그 경험을 하고 온 상대에게 「죽인다」라고 말하다니, 얼마나 경솔한가. ───나는, 방금 전에 사람을 죽이고 왔는데. 짤깍짤깍짤짝. 사람을 찔렀을 때의 감촉이 살아나서, 하마터면 뱃속에 들은 것을 토해낼 뻔 했다. 다시 생각해내니 몸이 떨려온다. 이빨은 부서질 듯이 딱딱거리며 소리를 내고, 머릿속은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죽인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일인지, 그들은 모르고 있다.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알려주겠어. 아주 메마른 마음에, 나는 입가를 치켜 올렸다. ……나는 그리 광폭한 성격은 아니다. 당하면 되갚아주는 것이 신조지만 아까처럼 한 대 얻어맞은 것을, 상대를 혼절시킬 정도로 되갚아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오늘밤의 나는 이상했다. ……아니, 아니면. 단순히, 이상해지고 싶어 하는 것뿐일까. ───이 부근이 좋을까. 건물과 건물의 틈에 있는, 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얼마 안 있어, 나는 녀석들에게 따라잡혔다. 아니, 정확히는 따라잡혀 주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골목길에 멈춰 서서, 따라온 사람이 다섯 명이라고 확인하고 나는 선두의 상대에게 덤벼들었다. 손바닥으로 상대의 턱을 친다. 풋내기들끼리의 싸움은 때리고 맞는 것의 반복이다. 먼저 끈기에서 밀리는 쪽이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얻어맞게 된다. 서로 치고받는 상황이 되면 자신에게 승산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할거라면, 진짜로 죽일 생각으로 한다. 적당히 같은 것은 없다. 상대가 달려들기 전에, 녀석들에게 둘러싸이는 것 보다 빠르게, 한명 한명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얻어맞은 맨 앞의 인간이 반격해온다. 나는 그것보다 빠르게 녀석의 왼쪽 눈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딱딱한 젤라틴에 손가락을 후벼 넣는 감각. 「키───아아아악!」 아픔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틈에, 그 녀석의 얼굴을 잡고서, 혼신의 힘을 다해 후두부를 벽에 밀어붙였다. 쿵, 하는 소리가 나고, 선두의 남자가 주르르 미끄러지며 주저앉는다. 한쪽 눈에서는 피눈물. 후두부로부터는 피의 흔적을 벽에 남겨간다. ────이 정도나 했는데도, 아직 죽지 않았다.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참상(慘狀)에, 달려온 나머지 네 명은 깜짝 놀라서 멈춰서 있었다. 때려서 피를 보는 일 정도는 있었지만, 죽느냐 사느냐하는 사투의 유혈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그 사이에, 나는 제일 가까이에 있는 상대에게 달려든다. 손바닥으로 후려치면서, 머리카락을 쥔다. 그대로 머리를 끌어내리면서 자신의 무릎을 쳐올렸다. 뿌직, 하면서 코뼈를 부수는 감촉이 전해진다. 이 일격으로 상대는 반격의 의지를 잃었다. 거기서 3번 정도 더 무릎으로 얼굴을 들이받은 뒤에, 축 늘어진 상대의 후두부에 팔꿈치를 있는 힘껏 내리꽂는다. 충격으로 찡─하고 팔꿈치의 뼈가 저린다. 두 명 째가 쓰러졌다. 안면을 계속 짓이겼던 나의 무릎은 피에 젖어있다. 「엔죠우, 이 자식────!」 두 사람. 두 사람이나 재기불능이 되어버리고서야, 겨우 녀석들은 각오를 한 것 같았다. 남은 세 명은 이성을 통솔하지 못하고 일제히 달려 들어온다. 그렇게 되면, 다음 결과는 뻔했다. 나 혼자서 세 명이나 되는 인간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얻어맞고, 걷어차여서, 나는 맥없이 벽으로 몰렸고, 지면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얻어맞는다. 배를 걷어차인다. 그래도 녀석들이 내가 한 정도의 폭력을 가하지 않는 것을 차가운 눈으로 관찰한다. ───세 명이 무저항의 인간을 집단구타 할 뿐, 인가. 그것은 분명 죽인다는 의도가 없는 폭력이다.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곧 나는 죽겠지. 치명상이 되지 않는 충격이라도, 반복되면 결국 심장에 다다른다. 그때까지 계속 얻어맞는 아픔에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고통이라면 고통이었다. ───봐라. 죽일 생각이 없어도, 인간은 간단하게 살인을 저질러 버릴 수 있다. 그것은 죄인가. 자신처럼 명확하게 죽일 의지가 있어서 범한 살인과, 그들처럼 목적도 없이 단지 결과로서 범한 살인. 그 어느 쪽이, 보다 무거운 죄인 것일까. 그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계속 두들겨 맞는다. 얼굴도 몸도 멍투성이가 되어, 아픔에도 익숙해졌다. 아마도 놈들 역시, 두들겨 패는 것에 익숙해져버려서 멈추지 않겠지.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서도 꽤 하잖아, 엔죠우!」 텅, 하고 한번 강하게 가슴을 걷어 채여, 기침을 했다. 얻어맞아서 입안이 터진 걸까, 아니면 내장에서 나온 걸까. 침에는 피 같은 것이 섞여있었다. 이 세 사람에 그럴 생각은 없어도. 이 행위가 이 뒤로 수초만 계속되면, 엔죠우 토모에는 죽어버리겠지. ……거기서, 겨우 알아차렸다. 내가, 내 목숨이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놈들의 주먹에 한쪽 눈을 맞아서, 눈꺼풀이 감긴다. 눈꺼풀이 부어올라 시계(視界)가 두절되는 것처럼, 의식도 두절되려고 한다. 그 직전──── 딸그락. 맑은 소리가 났다. 사람을 후려치는 둔탁한 타격음에 비하면 아주 작은, 방울 같은 소리. 세 사람은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가 난 방향……자신들이 이 골목 안에 들어왔던 좁은 길의 입구 쪽을 돌아본다. 부어오른 눈꺼풀을 열어, 나도 그 상대를 보았다. 「──────」 의식이, 얼어붙었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그 상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정도로────골목길의 입구에 서있는 사람의 모습은, 상식에서 벗어나 있던 것이다. 그 녀석은, 이 겨울날씨에 맨발에 나막신 같은 것을 신고 있었다. 옻칠한 것처럼 윤기 나는 흑발과 붉은 옷이, 하얀 맨발을 더욱 눈에 띄게 해서, 말을 잃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아니, 가슴을 찌를 정도의 특이함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 인물은 귤색의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호화로운 나들이옷이 아니라, 축제날에나 보일 것 같은 간소한 기모노다. 게다가, 황당하게도 붉은 가죽점퍼를 걸치고 있다. 딸그락, 하고 또 한번 소리가 났다. ──나막신이 지면을 차는 소리. 한 발짝씩 다가온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끌리는 옷자락소리──자신의 눈이, 이 인물의 어떤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엔죠우 토모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형체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검은, 먹을 떨어뜨린 것 같은 흑발은 어깻죽지까지도 닿지 않는다. 난잡하게 잘려진 머리카락이었지만, 이 인물에게는 어울리게 보였다. 가냘픈 몸과 윤곽. 하얀 살결과───이쪽의 혼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검은 눈동자. 꾀죄죄한 골목길에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자태. 그것은, 아무래도 여자 같았다. ……아니, 연령은 우리들과 별 차이가 없으니까, 소녀라고 말해야할까. 너무나 간결한 생김새 덕분에 성별은 어느 쪽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어느 쪽 이라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의 미인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이 상대가 여자라고 이해해버리고 있었다. 「어이」 일본풍과 서양풍을 혼합시킨 소녀가, 무뚝뚝하게 말한다. 소녀는 기분 나쁜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망설임 없이 다가온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녀석들은 당황하면서, 소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폭력에 이성이 마비되어있던 녀석들은, 다가온 여자를 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평소의 녀석들로서는 할 수 없는 억압된 감정을 드러내며 여자를 위압한다. 「우리들에게 뭔가 볼일이 있어?」 녀석들은 한발 한발 다가가면서 말한다. 이미 달아나지 못하도록 둘러싼 걸 보면, 세 사람의 마음은 하나같았다. 비열한 자식, 하고 욕하면서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얻어맞은 팔다리는 멍투성이가 되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 기모노 차림의 여자가, 이런 가짜 같은 얼간이들에게 더럽혀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아니───하지만, 저것이 이런 놈들에게 더럽혀진다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무언가 볼일이 있냐고 물었잖아. 너, 귀 없냐?」 녀석들 중 한 명이 다가가면서 소리친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부드럽게 한쪽 손을 내민다. ……그 뒤로부터 일어나는 일은, 정말로 마법 같았다. 소녀의 가느다란 팔이 완만하게 움직여, 둘러싸고 있는 젊은이 중 한 명의 팔을 잡는다. 가볍게 끌어당긴다. 체중이 없어진 것처럼 남자는 빙글 하고 세로로 회전하여, 머리부터 땅바닥에 떨어졌다. 유도에서 말하는 샅걸이란 것일까. 일련의 행위는 매우 빠르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남은 두 사람이 기모노의 여자에게 달려든다. 그 한 명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밀어치자, 그것만으로 상대는 지면에 나뒹굴었다. 인간 한 명을 기절시키기 위해서, 이쪽은 그만큼이나 되는 폭력을 휘둘렀는데, 소녀는 필요최소한의 행동만으로 두 사람이나 되는 인간의 의식을 잃게 만들어버렸다. 시간으로 치면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사실에 내가 전율한 것처럼, 남은 한 명도 이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으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등을 돌리고 달려가는 그 머리를 소녀는 걷어찼다. 호쾌한 돌려차기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마지막 한 명을 혼절시켜 버렸다. 「칫, 돌머리네, 돌머리」 혀를 차면서, 소녀는 흐트러진 기모노의 옷깃을 추스린다. 나는 말도 없이,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의 불빛도, 달빛조차도 닿지 않는 이 쓰레기장 같은 곳 안에서. 그녀의 머리 위에만, 은색 광채가 내리쏟아지는 것 같았다. 「야, 너」 소녀가 이쪽을 돌아본다. 나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 속이 상처투성이라서 말을 삼켜버렸다. 소녀는 가죽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작은 열쇠를 꺼내서, 이쪽에 던져주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내 앞에, 낯익은 열쇠가 떨어진다. 「떨어뜨린 물건. 네 꺼지?」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울렸다. ……열쇠. 아아, 아까 얻어맞을 때 떨어뜨렸나. 이미, 지금에 와서는 어찌되어도 상관없는 집의 열쇠. 이 여자는 이것을 전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인가. 그리고는, 그걸로 용무는 끝났다고 말하는 듯 소녀는 등을 돌렸다. 안녕의 말도, 위로의 말도 없다.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하는 느낌의 발걸음으로 떠나간다. ……나 따위는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는 것처럼. 「────기」 다려, 하고 손을 뻗는다. 무엇을 붙잡지? 어째서 붙잡으려고 하지? 나도───엔죠우 토모에라도, 저런 미치광이 같은 여자는 상관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하지만, 지금 이렇게 내버려지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누구에게라도,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정말로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는 충동에 견딜 수가 없었다. 「잠깐 기다려, 너!」 그렇게 소리치고, 일어선다. ……아니, 일어서려고 했지만, 잘 일어날 수 없었다. 몸의 마디마디가 쑤셔서, 벽에 손을 짚고서 겨우겨우 엉거주춤한 자세를 잡을 뿐이다. 기모노의 소녀는 멈춰 서서, 오싹해질 정도의 차가운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뭐야. 그것 말고 떨어진 물건은 없었다구」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그 발치에 다섯 명이나 되는 인간이 쓰러져있는데도, 이 녀석은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다. 「어이, 설마 이대로 해놓고 가버릴 생각은 아니겠지」 숨넘어갈 것처럼 띄엄띄엄 말하자, 그녀는 그제서야 주위의 참상을 둘러보았다. 쓰러져있는 녀석들 가운데에는, 내가 상처 입혀서 피를 흘리고 있는 두 명도 있다. 서투른 폭력의 결과다. 흐응, 하는 소리를 내더니 소녀는 나를 치켜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안심해, 저쪽 녀석의 눈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맨 처음 눈을 뜬 녀석이 어떻게든 할거야. 아니면, 지금 당장 해결책이 있는 거야?」 여자의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남자 그 자체인 대사를 말한다. 나는 그래, 하고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어느 쪽을 부르면 좋을까. 경찰? 아니면 병원?」 진심으로, 어딘가 좀 어긋난 것을 진지하게 물어온다. 나는 병원밖에 생각해내지 못했지만, 이것을 어디까지나 정당방위로서 생각한다면 경찰을 부르는 편이 빠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찰은, 안돼」 어째서? 라고 여자의 시선이 묻는다. 어째서일까. 나는 결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비밀을, 비장의 카드를 내놓는 듯한 결의를 담아 고했다. 「나는, 사람을 죽였어」 잠깐. 시간이 멎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녀는 흥미를 가진 것인지 다가와서는, 필사적으로 벽에 기대어있는 나를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말야」 수상하다는 투로 말한다. 하지만 언짢은 표정으로 입술에 손을 대고서 고심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녀에게도 확증이 가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고열에 시달리는 것처럼 자학적인 고백을 계속한다. 「진짜야. 방금 전에 죽이고 왔어. 부엌칼로 뱃속을 헤집어버리고, 목을 따버렸어. 그렇게 했는데 살아있을 리가 있겠어. ……헤헤, 지금쯤이면 우리 집은 짭새들이 모여서 나를 눈에 핏대를 세우고 찾고 있을 거야. 그래, 날이 밝으면 나는 순식간에 유명인이라구──!」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자조적으로 웃고 있었다. 크크크, 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울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래. 그렇다면 진짜겠지. 그러면 병원에도 연락은 하지마. 그대로 철창행이 될테니까. ……아아, 옷은 피에 물들어버렸기 때문에 벗어버린 건가. 틀림없이 그런 차림이 유행인거라고 생각 했어」 차가운 손이, 나의 가슴을 더듬는다. 「────뭐」 숨을 삼킨다. 이 여자 말대로, 입고 있던 옷은 피에 젖어버렸기 때문에 벗은 것이다. 바지만 그대로고, 맨몸에 블루종만을 걸치고 도망쳐 나왔다. ……알고 있다. 이 여자는 내가 살인자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다. 그것이───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했다. 「너 무섭지 않아? 나는 사람을 죽이고 왔다구. 한명 죽이나 두 명 죽이나 마찬가지야. 사정을 안 너를 이대로 내버려 둘거라 생각해?」 「───한 사람 죽이는 것과 두 사람 죽이는 것은 틀려」 불유쾌한 듯 눈을 살짝 찡그리면, 기모노의 소녀는 더욱더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내 쪽이 머리하나는 높은데, 밑에서 들여다보는 그녀에게 위압돼버린다.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 나는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숨을 삼킨 것은, 위압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넋을 잃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깊이 감동한 적이 없었다. 17년간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무언가에 매료된 일은 없었다. 이렇게까지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로 감동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 이렇게까지. 인간을,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정말로───나는 사람을 죽였어」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다. 소녀는 얼굴을 수그리더니, 쿡, 하고 웃었다. 「알고 있어. 나도 그러니까」 옷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난다. 소녀는 이걸로 정말로 흥미를 잃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물러선다. 떠나간다. 딸각딸각하고 소리를 내면서. ……그 등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기다려, 자기도 그렇다고 말했지, 너!」 달려가려고 하다, 지면에 고꾸라진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서서, 나는 돌아보는 여자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러면 도우라구. 서로 비슷한 사람이잖아, 우리들────」 평소의 나로서는 생각해낼 수 없는 억지를 부리며 소리친다. 필사적이 되어, 부끄러움도 체면도 없다. 납득할만한 근거도, 이유도 없는 나의 목소리에 소녀는 눈을 깜빡이면서 놀라고 있다. 「서로 비슷한 사람……응, 확실히 너는 텅 비어있어. 하지만, 도우란 건 뭘 말하는 거야. 사람을 죽인 죄에서야? 아니면 그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라는 소리야. 미안하지만, 그 어느 쪽도 내 전문이 아니야」 ───아아, 그렇다. 나는,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일까? 누군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지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 건지, 나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라고, 엔죠우 토모에의 마음에 새겨져있는데도. 「────우선, 이곳은 사람의 눈에 띄어. 그 전에, 나를 숨겨」 하지만, 일단 그것이 최우선이다. 여자는 으~응, 하고 지금까지의 무표정함과는 정 반대의, 인간다운 몸짓을 하며 생각에 빠진다. 「숨기라면, 은신처를 제공하란 소리야?」 「그러니까,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손을 써주면 돼」 「이 거리에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장소 따윈 없어.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자기 집 안 뿐이잖아」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서 말한다. 그런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얻어맞은 아픔 때문에 성질이 급해진 것일까, 나는 역정을 내며 대답했다. 「그게 안 되니까 말하는 거야! 아니면 너의 집에라도 숨겨준다는 거야? 이 멍청한 계집애!」 젠장, 하고 욕을 내뱉는다. 그러자 소녀는 납득했다는 것처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있는 곳도 좋다면 마음대로 써」 「────에?」 「단순한 놈이네, 그런 게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라니」 걷기 시작한다. 나에게 부축해주지도 않을 뿐더러 손을 내밀지도 않고. 그렇지만, 소녀의 등이 따라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차게, 그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만으로 계속 얻어맞고 있었던 몸의 상처도, 사람을 찔렀을 때 멍든 마음의 상처도, 말끔히 잊을 수 있었다. 초연하게 걸어가는 등 뒤를 쫓아간다. 저 소녀는 혼자서 사는 것일까, 라던가 아직 이름조차 묻지 않은 것이라던가, 묻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산더미처럼 있는데, 아무 것도 생각할 수 가 없다. ……그렇다, 아마도. 지금까지 믿은 적은 없었지만, 이것이 운명이란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 전에. 나의 눈은 이미 저 여자밖에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 2 (모순나선, 2) 철커덕, 하고 소리가 났다. 옆방에서다. 시각은 슬슬 10시가 될 무렵 일까. 일에 지쳐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 몸을 잠자리에 눕히고, 수분도 지나지 않았다. 엷은 잠에서 깨어, 나는 느긋하게 졸고 있었다. 옆방에서 난 소리는 한번 뿐이다. 문이 열린다. 옆방으로 통하는 문. 불을 끈 어두운 나의 방에, 사각형 빛이 비쳐든다. 어머니인가? 나는 실눈으로 그쪽을 바라보고── ───언제나 여기서 생각한다.    이런 광경,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문을 연 것은 어머니다. 역광 때문에, 그냥 서있다는 것 밖에 알 수 없다. 나에게는 그 모습보다, 그곳에서 엿보이는 옆방의 참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싸구려 탁자 위에 엎어져있는, 아버지의 모습. 차색이었을 탁자는 시뻘겋게 되어서, 쓰러져 있는 아버지는 붉은 피를 계속 흘려보내고 있다. ……어쩐지, 부서진 수도관처럼 보였다. 「토모에, 죽어줘」 가만히 서있던 그림자가 말했다. 그 그림자가 어머니였다는 것은, 자신의 가슴을 찔리고서야 기억해냈다. 어머니는 나의 가슴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부엌칼로 찔러대었고, 최후에는, 부엌칼로 스스로의 목을 찔렀다. 악몽이라면 악몽이다. 나의 밤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끝나버린다. … 짤깍짤깍짤짝짤깍. ……귓속에서 울려오는 듯한 소리에 잠을 깨자, 료우기는 이미 나가있었다. 나는 얻어맞아서 멍투성이인 몸을 일으키고, 방안을 주욱 돌아보며 관찰한다. 이곳은 4층짜리 아파트의 2층 구석에 있는, 기모노 소녀의 집이다. 아니, 집이라기보다는 방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을까. 현관에서 거실까지 이어진 복도는 1미터정도로, 그 도중에 욕실로 통하는 문이 하나. 거실에는 아까까지 여자가 자고 있던 침대가 있는 걸 보니 침실과 겸하고 있는 듯 하다. 곁에 또 하나의 방이 있지만, 필요 없어서 쓰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젯밤. 그 여자의 뒤를 한 시간이나 따라와 도착한 곳이 이 방이었다. 아파트의 입구에 있던 우편함의 이름표에 료우기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여자의 성은 료우기겠지. 여자───료우기는 나를 방에 데리고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죽점퍼를 벗고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무관심에도 정도가 있다. 나는 화가 머리까지 치밀어 올라서, 덮쳐 버릴까하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큰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버리는 일은 곤란하다. 꽤나 고심한 끝에, 바닥에 놓여있는 소파를 침대삼아서 자기로 했다. 그렇게, 눈을 떠보니 그 여자의 모습이 없어졌다는 거다. 「───뭐야, 그 자식」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보면, 료우기는 나와 같은 나이 대 같았다. 여자, 라는 것 보다 소녀라는 형용 쪽이 딱 맞는다. 17세라고 하면 학생이다. 그렇다면 학교에 갔을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 방이 너무 살풍경하다. 방에 있는 것은 침대와 냉장고와 전화기. 거기에, 옷걸이에 걸린 네 벌의 가죽점퍼와 옷장뿐이다. 텔레비전도 오디오도 없다. 심심풀이 삼아 볼 잡지도 없는데다가 테이블조차 없었다. 문득, 어젯밤 그 녀석의 대사를 기억해낸다. 살인자라고 한 자신의 말에, 료우기는 나도 그래, 라고 대답했다. ……현실감이 없었던 료우기의 말은 진짜였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방은 도망자의 그것이다. 생활감이란 것이 병적일 정도로 결여되어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섬칫, 하고 등골에 오한이 느껴졌다. 나는 스페이드의 에이스를 뽑으려다가 죠커를 뽑아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쨌든, 오래 머물러 있을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인사 한마디정도는 해주고 싶었지만, 본인이 없으면 어쩔 수 가 없다. 나는 숨어 들어온 도둑처럼 신중한 발걸음으로, 모르는 소녀의 방에서 나오기로 했다. 밖으로 나와서, 목적도 없이 걸어 다닌다. 처음은 힐끔힐끔 눈치를 보아가며 주택가의 길을 걸었지만, 세상은 이쪽의 사정과는 관계없이 평소대로다. 시계 바늘과 마찬가지로, 변화 없이 빙글빙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결국 그런 것인가, 하고 나는 자포자기하여 큰길로 나갔다. 거리는 평소대로다. 엔죠우 토모에를 찾아다니는 경찰의 모습도 없는데다가, 나를 살인자라고 멸시하는 시선도 없다. 아무래도 사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 나 같은 얼뜨기가 저지른 행위로, 세상이 곧바로 바뀔 리는 없었던 거다. 나는 아직 쫓기는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집에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오가 지나, 나는 유명한 개의 동상이 있는 광장까지 와 있었다. 적당한 벤치에 앉아서, 빌딩에 만들어진 커다란 전광판을 올려다본다. 그대로, 멍하게 몇 시간이나 보냈다. 평일인데도, 이곳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오간다. 보도에는 사람들이 넘치고,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파래지면, 차를 파묻어버릴 기세로 인파가 흘러간다. 인파의 대부분은 나와 그리 차이 없는 연령의 인간이다. 모두 대개는 웃는 얼굴이거나, 자신 있는 얼굴로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그곳에 망설임은 없다. 아니───망설임 따위 생각한 적도 없겠지. 녀석들의 얼굴에는 사고(思考)의 ‘사’자도 없다. 이루고 싶은 꿈, 믿고 있는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살아가는 자의 얼굴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듯한 얼굴로 나아간다. 하지만 그 안에, 얼마만큼의 진짜가 있을까. 전원일까, 아니면 한줌정도 뿐일까. 진짜와 가짜. 녹아 들어갈 수 없는 무리 속에서 진짜를 발견하려고 계속 노려보지만, 전혀 판별할 수 없다. 당연 한가───게다가, 그런 것은 본인밖에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나는 사람들의 물결에서 눈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다.──적어도, 나는 진짜가 아니었다.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맥없이 본성을 드러내버렸다. ……고교에 입학할 때까지, 엔죠우 토모에는 육상계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스프린터였다. 중학시절에서는 패배를 몰랐고, 한번도 다른 선수의 등을 본 적은 없었다. 랩타임은 아직 줄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재능 역시 의심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나는, 달린다는 것이 좋았다. 그것만은 나의 진심이었다. 어떤 장해에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달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원래, 우리 집은 유복한 집이 아니었다. 소학교 무렵부터 아버지가 직장을 잃어서, 가정은 황폐해져가기만 했다. 어머니는 이름 있는 집안 출신으로, 아버지와는 본가와 연을 끊고서 결혼했다고 한다. 직업을 잃어서 일할 수 없게 된 아버지와, 세상물정을 몰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머니. 그저 부서져가기만 하는 가족 속에서,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게 지혜를 익혀갔다고 생각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이를 속이고 일을 하고 있었고, 학비만은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고 있었다. 집안일은 모른다. 나는 나의 일만으로도 벅찼다. 스스로 일하고, 학교에 가고, 자신의 힘만으로 고교에 입학했다. 이미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는 양친(兩親)과, 살아가기 위한 금전 문제. 그 두 가지의 초조함을 안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달리는 일 만이 낙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지쳐있어도 부활동 만큼은 계속하고 있었고, 고교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아버지가 사고를 일으켰다. 차로 사람을 치어버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운전면허 따위 없었다────. 상대에게의 배상금은, 어머니가 본가에 머리를 조아려서 어떻게든 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무렵에는 구제불능이 되어서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소동이 끝난 뒤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주위의 변화였다. 그 부모와 나는 이미 무관계한데도. 그들의 자식이라는 것만으로, 학교 측의 태도는 급변했다. 지금까지 협력적이었던 육상부의 고문은, 노골적으로 나를 무시했다. 기대되는 신입이라며 입을 모아 떠들던 선배들은, 부를 그만두라고 압력을 넣어왔다. 하지만 그런 일에는 익숙해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집안일이다. 사고 때문에 지금까지 간신히 일하고 있던 직업을 잃게 된 아버지에게 가정을 유지해갈 힘은 없었다. 어머니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그런 것은 광열비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수년 전부터 정식 직업을 갖지 못한 끝에 무면허로 차를 몰고 다니다가, 사람을 한사람 죽여 버렸던 거다. 그 소문은 부풀려지며 이웃에게로 퍼져나갔고, 아버지는 집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험담을 들으면서 일을 했지만, 한 직장에 오래있을 수 없었던 듯 하다. 나중에는 내가 걸어가고 있는 것만으로, 저리 꺼지라면서 돌이 날아올 정도가 되었다. ……주위의 핍박은 나날이 에스컬레이트 되었지만, 나는 그것에 분노는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한 짓은 사실이다. 차별도 매도도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나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아버지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 분노의 대상이 부모님이었다는 소리도 아니다. 나는, 그 때에 모든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굴레가 정말로 귀찮아졌다. 무엇을 해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차피 결과는 똑같아진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가족이란 성가신 존재가 들러붙어 다닌다면 장래가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나는 그때, 투쟁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당연한 생활을 원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다. 자신의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받아들여버리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없다. 어릴 적과 마찬가지다. 환상을 현명함과 맞바꾸고, 나는 나 혼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되자, 학교를 다니는 일이 바보 같아져서 학교도 그만두었다. 아니, 하루 온종일 일하지 않으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젊으면 경력이 어떻든지 일할 곳은 얼마든지 있다. 어리석게도 양심 따위를 가지고 있는 나는, 가족을 내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교를 때려치우고 난 뒤로 부모님과는 집안에서도 말을 한 적조차 없다. 그렇게───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나는 그렇게나 좋아했던 달리기를 아주 깨끗이 잊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그것만이 낙이었는데. 나름대로의 불행이 일어난 것만으로 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존재였다고 깨닫고, 깜짝 놀랐다. 칭찬해주었던 인간이 사라져서. 달릴 시간이 없어져 버려서. 그런 변명 같은 것에, 좋아하는 마음이 진 것이다. 진짜라면───달린다는 행위가 나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엔죠우 토모에라는 인간의 "기원(起源)"이었기에 그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어린 시절, 부모님이 데려간 목장에서 말을 보았다. 이름도 모르는 그 말을 보고서, 나는 울었다. 그저 달리기만 하는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전세(前世)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들이었던 것이겠지. 그렇게 믿어버릴 정도로, 달린다는 행위 그 자체에 감동했다. 하지만, 나는 가짜였다. 그래, 진짜 같은 확신을 가졌던 것뿐인, 모조품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사람을 죽여 버렸던 거지」 크크, 하고 웃어본다. 조금도 즐겁지 않은데 웃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고장 투성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에도 질려서, 거리를 바라본다. ……인파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웃는 얼굴과 무표정한 얼굴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진짜일 리가 없다. 무언가를 목적으로 살아간다면, 이런 놀이터에 있을 수 있겠는가. 아니, 노는 것이야말로 녀석들의 목적이라도 해도───그런 "진짜"를 ,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짤깍짤깍짤짝짤깍 문득, 거기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나는───이런 독선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주의주장 따위는 없었을 텐데. 시계를 보자, 곧 저녁에 접어들려 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이곳에 있을 수 도 없다. 나는 정처 없이 인파의 격류를 뒤로했다. ◇ 낯선 주택가의 길을, 가로등의 미약한 불빛이 비춘다. 가을의 태양이 저물고 나서 세 시간은 걸었다. 어디서 밤을 지낼까하고 고민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료우기의 아파트 근처까지 와있었다. 인간, 전락하면 이렇게까지 연약해지는 건가며 허탈해한다. 나의───엔죠우 토모에라는 녀석의 장점은 감정의 전환이 빠른 점이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래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미련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 아닌가. 올려다보니, 료우기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집을 비운 것 같았다. 「───어때, 이왕 왔는데」 아무도 없으니까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단을 올라간다. 심각한 현실에 직면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일한 구원에 매달리고 싶었던 것이다. 캉, 캉, 하고 소리를 내는 철제계단을 올라서, 2층 구석에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오늘 아침, 내가 나올 때 꽂혀있던 신문이 없다. 료우기는 한번 돌아왔었던 것 같았다. 문에 노크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봐, 없어」 나는 떠나려고 하면서, 도어노브를 돌려보았다. ───움직인다. 문은 순순히 열렸다. 안은 어둡다. 나는 노브를 손에 쥔 채로 얼어붙어서,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대로 몇 시간이나 멀거니 서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한 순간───나는 문안으로 몸을 살짝 들이밀어, 안으로 숨어들어가 버렸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믿을 수가, 믿을 수가 없다, 이런 일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비주류(アウトロ-)를 자처하고 있지만, 범죄 같은 짓은 싫어하고 있었다. 비겁한 짓은 어릴 적부터 싫어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인 다음에는 가택침입을 저지르고 있다. ───아냐, 이건 불가항력이다, 게다가 그 녀석도 말했지 않은가, 마음대로 쓰라고! 짤깍짤깍짤깍짤깍. 마음속으로 지리멸렬한 핑계를 대면서, 나는 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다. 현관에서 복도로, 복도에서, 거실로. 전등이 켜져 있지 않아서, 방은 시꺼멓다. 어둠 속, 숨을 헐떡이며 나는 소리 나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간다. ───젠장, 이래서는 정말로 도둑이다. 전기. 전기다. 어두워서 무서워진다. 아, 하지만 스위치는 어디 있지? 형광등의 스위치를 찾아서, 벽을 손으로 더듬어간다. 그러자───그때, 현관의 문에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료우기가 돌아왔다, 하고 대응하는 것보다 빠르게 이 집 주인이 불을 켜고 방의 문을 열었다. 열고서는 멍한 눈으로 불법침입중인 나를 바라본다. 「───뭐야, 오늘도 있었던 거야. 뭐하고 있었어, 불도 안 켜고」 동급생을 비난하는 듯한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며, 료우기는 방문을 닫고 가죽점퍼를 벗는다.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고서는, 한쪽 손에 들고 있던 편의점 비닐봉지에 부스럭부스럭하고 손을 집어넣었다. 「먹을래? 난 차가운 것은 싫어하거든」 휙, 컵 아이스크림을 던져준다. 상표는 하겐다즈의 스트로베리. 나란 침입자를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의문인데, 싫어하는 먹거리를 사오는 점도 수수께끼다. 나는 차가운 컵을 양손으로 잡고, 이성(理性)을 총동원 시켰다. 이 여자는,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살인자라는 것을…….어디까지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알고 있는 주제에. 그런데도 자신의 방을 은신처로 제공하고 있는 것은, 이 녀석 본인도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걸까……? 「……야, 너 말야, 맛이 좀 간 거 아냐?」 자기 일을 제쳐두고서 그렇게 묻자, 기모노의 소녀는 아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상한 놈이네, 너. 헤에───맛이 가다, 맛이 갔다고 느꼈나! 그거 좋은 표현이야, 느낌이 팍 왔다구, 정말!」 료우기는 진짜로 웃고 있다. 너덜너덜하게 잘린 흑발이 흐트러지는 모습이, 나에게는 정말로 맛이 간 인간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하, 아하하하하, 하───응, 맞아. 이 부근에서 나 정도로 위험한 녀석은 없을 거야. 하지만 너도 위험한 인간이지? 그러면 그런 건 상관없잖아. 할말은 그것뿐이야?」 소리 없이 웃으면서, 기모노의 소녀가 나를 올려다본다. ……어딘가 위태로움을 느끼게 하는 얼굴은,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와 닮았다. 「아니……또 하나. 너, 어째서 나를 돕는 거지?」 「도와달라고 말했잖아. 다른 할일도 없었으니까 도운 것뿐이야. 너, 잘 곳 없지? 한동안 여기를 써도 괜찮아. 어차피 당분간 미키야는 오지 않을 테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도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바보 같은 이유가 있겠는가. 확실히 나의 신경은 정상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그대로 믿을 정도로 망가져 버리지는 않았다. 그 증거로, 이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지 정도는 꿰뚫어볼 수 있다. 나는 기모노 차림의 소녀를 노려본다. 그녀는 그것을 눈꼽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무시하는 것과는 다른,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당당함이 있다. ……이 얼마나 모순 된 일인가. 곤란하게도, 료우기의 말이 진심인 것은 의심할 것까지도 없다. 그게 아니면. 설마 이 상대에게는, 일반적인 이유는 필요 없는 것일까. 친구이기 때문이라던가 돈이 되기 때문이라던가 하는 납득하기 쉬운 이유를,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이라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 진심이냐? 아무런 담보도 없이 나 같은 수상한 사람을 감싸는 거야? 설마 위험한 약이라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예의 없는 놈이네, 약은 싫고, 나는 지극히 제정신이야. 경찰에도 안 찌를 거야. 네가 찔러달라고 하면 하겠지만」 아아, 나도 그럴 걱정은 없다. 게다가 이 녀석이 경찰에 연락하는 장면 따위, 어떻게 상상하라는 건가. 내가 걱정하는 것은, 좀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저기 말야. 나는 남자야. 너는 여자잖아. 전혀 모르는 녀석을 재운다는 일은 그런 거라고. 그게 좋냐고 묻는 거야, 나는!」 「에? 여자를 안고 싶으면 다른 곳에서 자는 게 아니었어, 남자란?」 멀뚱한 얼굴로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말을 잃었다. 「아니, 그러니까───」 「아아 정말, 시끄럽네. 여기가 마음에 안 들면 딴 데를 찾아보면 되잖아. 어째서 내 생각을 떠보는 거야, 너는」 딱 잘라 말하고, 소녀는 다시 편의점 봉지에 손을 넣는다. 꺼낸 것은 삼각형 토마토 샌드위치였다. ……정말로,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그러면 나는 여기를 잠자리로 삼겠어. 그래도 괜찮은 거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상대는 안색도 바꾸지 않고 끄덕여버렸다. 「아아. 귀찮다면, 좀 귀찮지만」 우물우물하고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료우기는 말한다. 나는 그것으로 기운이 빠져버려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대로 시간만이 흘러간다. 어쨌든,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감정의 전환이 빠른 것이 엔죠우 토모에의 장점이다, 란 자부를 되찾으려는 듯 한 기세로 이 다음 일을 생각한다. 한동안의 잠자리는 확보했다. 식비는, 가지고 있는 3만 엔으로 한달은 버티겠지. 그 동안, 나는 경찰에 붙잡히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응?」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오늘 저녁, 이 집에 열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던 걸까, 하고. 「야, 어째서 문을 잠그지 않았던 거야, 너」 「당연히 열쇠가 없으니까 그런 거지」 「─────아?」 말을 듣고서 나는 졸도할 것 같았다. 이 료우기라는 여자, 집 열쇠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문을 잠그는 것은 자신이 잘 때뿐이고, 외출할 때는 문을 열어둔 상태. 본인 왈, 집을 비웠을 때에 도둑이 들어와도 자신에게는 해가 없으니까 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침입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도 뭐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 방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은 단골로 침입하는 도둑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로. 「이 바보, 열쇠정도는 잠궈 둬! 없다고 가만있지 말고, 관리인에게서 마스터키를 빌려오면 되잖아」 「마스터키는 잃어버렸어. 뭐 어때, 괜찮잖아. 네가 곤란해 할 이유도 없고, 그런 것은 짐만 될 뿐이야」 ……빌어먹을, 이렇게 말하니 저런 식으로 대답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열쇠가 없으면 내가 안심할 수 없다. 자신의 몸의 안전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료우기의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까 까지 료우기에게 품고 있던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발심을 잊고, 진심으로 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이 녀석을 걱정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 열쇠가 없는 집 같은 건 집이 아니야. 기다려, 이렇게 되면 도어노브 채로 새것으로 바꿔주지」 「……괜찮긴 한데. 돈 있어, 너?」 「얕보지마, 그 정도는 가지고 있는 돈으로 할 수 있어. 오늘 중으로 바꿔놓을 테니까, 내일부터는 문을 제대로 잠그고 다니도록 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난 이사업체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웬만한 집수리는 빠삭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아파트의 방문정도라면 수리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 이틀 전까지 다니고 있던 회사의 창고라면 도어노브의 재고정도는 있겠지. 나는 자신도 왜 그런지 모를 정도의 기세로, 밤의 거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떻게 회사에 숨어들까하고 진지하게 고심하다가, 자신이 언제 경찰에게 쫓길지도 모르는 몸이면서 아주 위험한 모험을 하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말, 료우기에게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다. 아직 이름조차 확실치 않은 여자를 위해서 일하고 있던 회사에 숨어들다니, 나도 꽤나 상식이란 것이 희박해져버리고 있었으니까. / 3 (모순나선, 3) 료우기의 방에 머무르게 된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다. 나도 료우기도 낮 동안은 나가있었기 때문에, 밤에 잘 때만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이상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일주일간이나 지나면 서로의 이름정도는 알지 않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신의 이름을 서로 알려주었다. 그녀석의 풀 네임은 료우기 시키. 놀랍게도 정말로 고교생이었다. 그 밖의 일은 전혀 모른다. 료우기는 나를 엔죠우라고 부른다. 그 탓인지 나도 료우기를 료우기라고 불렀다. 료우기 본인은 성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나는 아무리해도 시키라고 말을 터놓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내게는 그만큼의 각오가 없는 것이다. 얼마 안 있어 영원히 헤어져버릴 상대와는, 필요이상으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 시키란 이름으로 불러버리면, 나는 분명 이 소녀에게서 떨어지기 힘들어진다. 언제 경찰에게 붙잡힐지 모르는 나에게는, 그런 관계는 방해밖에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 「엔죠우, 넌 여자 없어?」 평소대로의 밤, 료우기는 침대 위에서 책상다리를 한 채로, 뜬금없이 그런 것을 물어왔다. 료우기의 질문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갑자기 튀어나온다. 「여자라……그런게 있다면, 이런 곳에서 뒹굴고 있을 리 없잖아」 「그런 건가. 너, 인기 있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말야」 「감정 없는 목소리로 칭찬 받아봤자 조금도 기쁘지 않아. 게다가 여자에게는 싫증이 났다구, 난」 「───헤에, 어째서?」 흥미를 가진 것일까, 료우기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료우기의 침대의 바로 옆 바닥에 누워있는 나로서 보자면, 얼굴만 빼꼼히 나와 있는 것처럼 보여서 어딘가 귀엽다. 「엔죠우는 게이야?」 ……전언철회다. 이 녀석이 귀엽다니, 제정신이 아니었던게 틀림없다. 「그럴 리 없잖아. 단지 귀찮을 뿐이야. 실제로 사귀어보니까,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았어」 애시 당초, 나는 이성(異性)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고교 무렵, 세 달 정도 사귀어본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달콤한 관계가 아니라, 심한 다툼이었던 기분이 든다. 어느 사이엔가 나는, 머뭇거리며 추억얘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도 많은 것을 바랬던 것은 아니라구. 그렇지만 상대는 나에게 많은 것을 바랬어. 처음에는 뭐어, 그런 것인가 하고 참고 있었지」 그래. 그녀석이 가지고 싶어 하는 물건은 사주었고, 예쁘게 꾸며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 주었다. 아마, 그 녀석의 많은 바램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적은 없었겠지. 상대는 그때마다 기뻐했지만, 나는 그 반면에 식어갔다. 같이 자는 것도, 모두 알고 있는 것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료우기는, 나의 독백을 제대로 듣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중에 말야, 싫어졌어. 주변의 환경만이 아냐. 시간도, 돈도, 감정조차, 그 녀석에게 나눠주는 것이 귀찮아졌어. 그 나름대로 좋았었지만, 성욕의 처리라면 혼자서도 가능하고. ──내가 보통 학생이었다면, 시간 같은 것은 남아돌았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자유로워질 시간은 없었어. 그 녀석과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면시간이 줄어버리니까. 시간이 여유롭지 못한 나에게, 연애 따위는 처음부터 무리였던거야」 그래도, 나는 헤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행복해 보이는 그 녀석에게 이걸로 끝이야, 라며 절연장을 내던져서 울리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상처 입히고, 자신이 상처 입는 것도 바보 같았다. 「하지만 헤어졌지? 어떻게 찬 거야, 너?」 「저기 말야, 나만 나쁜 사람 취급하지마. 채였다구. 호텔에서, 할 짓을 한 뒤에 갑자기 그런 소릴 들었어. 너는 나를 보아주지 않았어. 나의 겉모습만 보고 마음을 보아주지 않았어, 하고 말야.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쇼크였다구」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이야기를 매듭짓자, 료우기는 매너 없이 웃기 시작했다. 「대단한데, 마음을 보아주지 않았다, 라고! 하하하, 그거 성가신 여자에게 걸려들었었구나, 엔죠우!」 침대의 스프링이 비틀리고 있다. 이 자식, 침대 위에서 웃으면서 굴러다니고 있다. 「뭐야, 지금 얘기의 어디가 우스운 거냐구. 청춘의 쓰라린 추억인데」 화가 나서 일어선다. 그러자, 료우기는 딱하고 웃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아 왔다. 「하지만 이상하잖냐. 인간이 볼 수 있는 것은 겉모습뿐이지? 그것을 보아주었던 너는 필요 없고, 마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주지 않으면 싫다, 란 소릴 하는 여자는 정상이 아냐. 정상이 아니란 것은 이상(異常)이란 것. 봐, 이상한 얘기잖냐. 그 애도 말이지, 마음을 보아주길 바랬다면 종이에 써서 보여줬으면 됐을텐데 말야. 엔죠우. 너, 그런 애와는 헤어진 건 잘한 일이야」 냉정하게 독설을 내뱉으면서 료우기는 침대에 털퍽 하고 드러누웠다. 그대로 고양이처럼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료우기는 말하기 어렵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뭐어,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런 "보이지 않는" 불안이란 것은 말해버리면 거짓이 되잖아? 알 수 없는 상태로 믿는 것이 연애야. 연애는 눈이 머는 것이란 얘기는, 그런 의미 아니었어?」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지만 말야, 하고 덧붙이더니 료우기는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대나무를 쪼개는 것처럼 대화가 끝나자, 나도 떨떠름하게 드러눕는다. 불을 끄고, 잠 들어가는 고요함 속에 생각했다. "여자"라고 하는 정이 깊은 상대는 지긋지긋하지만, 이 소녀라면 그런 일방적인 강요는 없겠지. 아니. 료우기가 상대였다면, 그런 성가신 일도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 2주째의 밤. 열쇠로 문을 열고, 방에 들어오니, 료우기는 이미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나를 고양이 정도로 생각한 걸까, 소리를 들어도 일어날 기색조차 없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얻어맞은 뺨을 누르면서, 바닥에 주저앉는다. 짤깍짤깍짤깍짤깍. 침대 곁의 시계가 돌아간다. 시계의 바늘은 두 개 모두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시계판이 싫었다. 디지털 표시 쪽이 좋다. 돌아가는 시계 속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는 것 같아서, 무서워진다. 「아얏」 걷어차인 발이 욱신거려, 소리를 내 버렸다. 료우기는 죽은 것처럼 자고 있다. 일어날 기미는 없다. 그 옆얼굴을, 나는 목적도 없이 바라보았다. ──2주간이나 지내오면서, 깨달은 사실은 한가지 뿐. 이 녀석은, 마치 인형같다. 언제나 이 침대 위에서 죽은 사람처럼 자고 있다. 이 녀석은 아침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할 일이 있으면 죽은 자에서 살아있는 자로 소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일의 실마리는 전화인데, 어딘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료우기는 생기를 되찾는다. 그것이 심상치 않은 내용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료우기는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없으면, 이 여자는 이곳에서 계속 인형인 상태로 있는 것이다. 짤깍짤깍짤깍짤깍. 나는 그 모습을 아름답다고 느꼈다. 슬픔 따위는 없었다. 료우기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환희하며, 되살아난다. 그것은 군더더기 없는 완벽함이다. 나는 처음으로, 천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 짓고 있던 "진짜"와 만났다. 내가 그렇다고 믿고 있던 것. 내가 되고 싶었던 것. 자기 자신만 있으면 누가 무엇을 하더라도 신경도 쓰지 않는, 순수한 강함. 「────시키」 입에서 료우기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속삭임보다도 작았을, 한숨 같은 한마디. 그런데도, 료우기는 눈을 딱 떠 버렸다. 「───뭐야, 너 또 상처투성이잖아」 눈을 번쩍 뜨고서, 료우기는 눈썹을 찡그린다. 「할 수 없잖아. 저쪽에서 멋대로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야」 나는 사실대로 대답한다. 오늘 돌아오던 중에, 본적 없는 2인조와 시비가 붙어서 싸우게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때려눕혀 버렸지만, 이쪽도 풋내기라서 많이 맞아버렸다. 「너 뭔가 했잖아. 그런 것 치곤 약한데. 얻어맞는 거, 좋아하는 거야?」 료우기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무언가 했다, 라는 것은 가라데(空手)라던가, 유도라던가, 그런 것일까. 「멋대로 단정 하지마. 나는 무술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이야. 싸움이라면 뭐어 남들만큼은 하지만」 「그래? 때릴 때 손바닥을 사용 하길래, 분명히 그럴 거라 생각했었어. ───그러면 어째서 손바닥을 쓰는 거야?」 아아, 과연. 그러고 보니, 그걸로 한번 칭찬 받았던 적이 있다. 사람을 때릴 때, 주먹이 단련되지 않은 사람이 주먹을 사용하면 자신의 주먹에 무리가 가고, 계속해서 때리면 자신의 뼈가 나가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사람은 손바닥을 사용해서 때리는 편이 좋다. 아니 오히려 손바닥이 더 실전적이라는 무술도 있다. 물론, 나는 그런 것은 전혀 모른다. 「손바닥이 단단하잖아. 쥬스의 빈깡통을 찌그러뜨릴 때, 모두 손바닥이잖아. 주먹으로 하는 녀석은 별로 없다구」 「그건 손바닥쪽이 하기 쉽기 때문이겠지」 냉정하게 대답하는 료우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끄러미 내 얼굴을 본다. 부끄러워져서, 나는 억지로 말을 계속한다. 「그러는 료우기야말로 뭔가 했겠지. 합기도야?」 「합기도는 취미삼아서 한 정도. 어릴 적부터 한 것은 딱 한 가지 있어」 「어릴 적부터인가. 그러니까 강할 수밖에. 도망치는 상대의 뒤통수에 하이킥이었는 걸. 하는게 다르다고 느꼈어. 그런데, 그거 말야. 역시 필살기 같은게 있는 거야?」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같은 것을 묻는다. 그러자, 료우기는 우-웅, 하면서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다. 「그런 형태란 것은 있겠지. 모두 그걸로 쓰러뜨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수련할 테니까, 필살이라고 하면 필살의 마음가짐이야. 내가 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야. 원래부터 자기류(自己流)니까」 단련하는 것은 마음가짐이다, 라며 료우기는 말을 잇는다. 「몸을 다시 만드는거야. 그것을 가지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바꾸지. 호흡에서 보법(步法), 시계(視界), 사고(思考). 그런 것을 전투용으로 다시 만드는 것처럼. 근육의 사용법까지 바꾸니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감각일지도 몰라. 싸움이 일어나면 마음을 바짝 긴장시키고 싸운다는 것이 무도(武道)의 첫걸음일텐데. 우리는 그것만을 추구해서, 결과적으로 도를 지나쳐버렸어」 자기자신을 경멸하는 듯한 대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뭐야, 강하니까 좋잖아. 나같이 얻어맞는 꼴사나운 일도 안 당하고 말야. 세 명의 남자를 한순간에 처리해버렸잖아. 대단한 자기류(自己流)라구, 그거」 이 녀석과 만났을 때의 선명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하자, 료우기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그건 달라. 본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뿐이야. 무엇보다, 나는 아직 내 유파를 사용한 적이 없어」 아무렇지도 않게 무서운 소리를 하고, 료우기는 털썩하고 침대에 쓰러져서 자버렸다. ◇ ……어딘가에서 증기가 올라온다. 슈욱- 슈욱-하고 그림책에서 나올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불빛은 없고, 방은 어둡다. 이곳은 뜨겁다. 단지 철판을 가열하는 소리와, 그 마그마 같은 빛만이 유일한 조명이었다. 주위의 벽에, 커다란 병이 늘어서있다. 바닥에는 가늘고 길다란 튜브가 어지러이 흩어져있다. 아무도 없다. 단지 증기의 소리와, 물이 끓는 소리만이………………………………………………………………………… …………………………………………………………………………………………………………………………………………… ………………………………………………………………………………………………밤이 되어, 나는 문득 잠에서 깨었다. 기분 나쁜 꿈을───꾸었기 때문이다. 짤깍짤깍짤깍짤깍. 시계를 보자, 아직 오전 3시를 지나고 있을 뿐, 잠을 깰 시간에는 아직 멀다. 침대에 눈길을 주자, 료우기의 모습은 없었다. ……그 녀석은 이따금 밤중에 산보를 나가는 일이 있다. 그렇다 해도, 초목도 잠자는 야밤중에 나갔을리도 없다. 마중 나가볼까───서로의 사생활에 절대 상관하지 않는 것이 이곳을 잠자리로 삼기 위한 암묵의 양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꽤 망설이다가, 나는 좋았어라고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아무리 터무니없이 강하다고 해도, 료우기가 동년배의 소녀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의 그 옷차림은, 밤중에 무리지어 있는 얼간이들을 끌어 들이는데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마음을 굳히고 내가 복도로 나갔을 때, 소리도 없이 현관문이 열렸다. 기모노 차림에 가죽점퍼, 라는 평소대로의 소녀가 그곳에 있다. 료우기는 역시 소리도 없이 문을 닫았다. 「뭐야, 돌아온거야?」 어쩐지 허탕친 느낌이 들어서, 나는 그렇게 말을 걸었다. 흘낏, 료우기가 이쪽을 본다──── 순간,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다. 전기가 꺼져있는 복도는 어둡다. 그 가운데서, 료우기의 눈만이 푸르게 빛나고 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숨도 못 쉬고, 정상적인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아서, 나는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너라도 안돼」 목소리가 났다. 정신이 들고 보니 료우기는 스르르 나의 옆을 지나쳐가서, 신경질적으로 가죽점퍼를 침대에 던져버리고 있었다. 료우기는 침대 위에 앉더니, 벽에 기대어 천정을 바라본다. 나는 등줄기에 남아있는 오한을 참으며 방에 돌아와서 바닥에 앉았다. 그대로, 의식을 잃을지도 모를 정도의 말없는 시간이 흐른다. 갑자기───소녀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죽이러 갔었어, 나」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하라는 것일까. 나는 그래, 하고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헛수고였어. 오늘도 죽이고 싶은 상대를 찾지 못했어. 아까 복도에서 네가 있었을 때, 너라면 만족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 안돼. 해도 의미가 없어」 「……나는 완전히, 당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구」 솔직히 말하자, 료우기는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야, 라고 말한다. 「나는 살아있다는 실감을 원해.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어. 목적도 없이 밤중에 돌아다니는 거야. 이래서는 완전히 유령이라구. 언젠가───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일거야」 료우기는 엔죠우 토모에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말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금단증상의 마약중독자처럼 멍해져있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내가 만났을 때의 료우기는, 밤에 나돌아 다니는 일은 있어도, 저런 살기를 품고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어이, 왜 그래 료우기. 너답지 않아, 정신차려!」 이상하게도───나는 지금까지 건드린 적도 없었던 소녀의 어깨를 쥐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다. 이, 무엇보다도 초연해있던 소녀의 어깨가……이렇게도, 가냘프다니. 「……나는 멀쩡해. 여름에도 이런 느낌은 있었어. 그때도───」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을 떠올려버린 것일까, 료우기는 말을 끊었다. 나는 료우기에게서 손을 떼고 침대에서 내려간다. 료우기는 벽에 기대어있는 것을 관두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저기, 료우기」 말을 걸지만 대답은 없다. 저 녀석은 예전에 말했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고민 따위는 결코 타인에게 밝히지 않는다. 그렇다───료우기는 외톨이다. 나 역시 그랬지만, 기분을 달래기 위해서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친구는 몇 명이나 만들었다. 하지만, 이 녀석에게 그런 인간은 없겠지. 나와 다르게 세부까지 완벽한 이 녀석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저기, 료우기. 너, 친구 있냐?」 나는 소녀의 얼굴을 보지 않도록 하면서, 침대에 등을 기대고 물었다. 료우기는 조금 생각하다가, 있어, 하고 대답한다. 「에, 있냐? 네게!? 친구가!?」 놀라는 나와는 반대로 료우기는 냉정하게 아아, 하고 끄덕인다. 「그러면 얘기가 빠르지. 침울해져 있을 때는 말이지, 의미가 없어도 괜찮으니까 그 녀석들에게 걱정을 팍 털어놔 버리면 되는 거야. 임시방편이지만 꽤 후련해진다구. 이쪽의 고민 같은걸 털어버리면서,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지금은 없어. 먼 곳에 갔어」 소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료우기의 말이 아주 쓸쓸하게 느껴져 버려서. 하지만 그것은 나의 기분 탓이었던 것일까, 료우기는 텅, 하고 침대를 때리면서 혼자서 화를 내기 시작해버렸다. 「애초부터 그 자식은 제멋대로야! 멋대로 내 집에 오는가 싶더니, 나에게 알려주는 것은 전화번호뿐이야. 여름 때도 한달씩이나 퍼질러 자버리고, 어째서 그런 일로 내가 답답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투둥투둥, 하고 난폭한 소리가 났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믿을 수 없었다. 그 료우기가, 침대 위에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날뛰고 있는 것이다───. 아니. 실제로는 그런 간단한 짓이 아니라, 베개에 나이프라도 쑤셔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리가 투둥투둥에서 서걱서걱으로 바뀌어있다. 진위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서, 나는 료우기 쪽을 돌아보는 것만은 참기로 했다. 잠시 날뛰다가 료우기는 조용해졌다. 어찌됐든 간에, 료우기를 이렇게까지 흐트러지게 만드는 친구란 녀석이 부럽다. 나는, 그 녀석에 대한 것이 듣고 싶어졌다. 「저기, 료우기」 「……………」 아직 기분이 나쁜 걸까, 료우기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했다. 「그 친구란 어떤 녀석이야. 고등학교 때 알던 사람?」 「──아아. 고등학교 친군데, 시인 같은 녀석」 감정이 텅비어있는 중얼거림으로 료우기는 대답한다. 어디가 시인 같은 것인지, 같은 나이인지, 남자인가 여자인가, 같은 것은 묻지 않기로 한다. 내가 알아도 별 의미는 없다. 「그래서, 네가 밤에 돌아다니는 것은, 그녀석이 원인인거야?」 료우기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니야. 밤중의 산책은 내 취미고, 살인충동도 나 한사람의 것이야. 아무도 관계는 없어. 문제는 나 개인의 것이니까.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알고 있어. ……흠. 결국, 너를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지금의 나는 불안정하다는 거군」 료우기는 담담하게,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말한다. 「불안이라니───나는 특별히 불안 같은……」 「나에게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던 주제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목 뒤에서 날아온다. ……차가운 뱀이 목을 휘감아가는 감각. 나는 자신의 등 뒤에 누워 있는 상대가 정말로 인간인가, 한순간이나마, 의문을 가졌다. 「봐, 지금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그것은 착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이야. 내가 살인을 하는 것은 살아있는 실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니까. 너는 대상이 안돼」 ……어떤 의미일까. 나, 엔죠우 토모에를 죽여도 료우기는 즐거워지지 않는다는 소릴까. 「하지만───그렇지. 역시 너는 새로운 은신처를 찾도록 해야 해, 엔죠우. 나는 살아있는 실감을 느낄 수 없는 것뿐이지만───분명, 료우기 시키는 살인을 좋아해」 살짝, 고백하듯 얌전하게, 중얼거린다. 가라앉은 목소리의 톤. 심정의 불안을 토로하는,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 ……빌어먹을. 안 그래도 멀리 느껴지던 여자가, 더욱 멀게 느껴져 버렸다. 그걸로 깨달았다. 나는 이 녀석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아니, 그 이상으로 반해있다고. 「───바보, 그럴 리 있겠냐」 어쨌든 료우기의 말을 부정하고 싶어져서, 말을 잇는다. 「너는 정서불안정인 것뿐이야. 얼른 친구를 불러내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털어놔 버리라구. 친구란 것은 그 때문에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멀어져가 버리는 것이니까───」 거기까지 쏘아붙이다가, 나는 말을 끊었다. 아까의 료우기와 마찬가지다. 감정에 휩쓸려서 생각을 그대로 말하고, 정신이 들고 나서 깨달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차려버렸다. 「───그런거라구. 나는 자겠어」 벌레 씹은 말투로 내뱉고는, 마루에 드러누웠다. 료우기가 무언가 말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로 한다. 오늘밤은 이 이상, 료우기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의 말에 가슴을 찔렸다. 그렇다. 어떻게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 친구의 역할이 돌아오지 않는다. / 4 (모순나선, 4) 그날, 나는 료우기와 처음으로 만났던 뒷골목에 있었다. 한낮인데도 사람의 통행도 없는데다가, 거리가 가진 여러 가지 잡음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그 때의 피의 흔적도 깨끗하게 없어져있는 그곳에서, 나는 혼자 흰 입김을 토하며 서있었다. 짤깍짤깍짤깍짤깍. 10월도 끝나려하고 있다. 내가 집도, 일도, 모든 것을 버리고 달아나고 나서부터 한 달이 경과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이 나를 찾아 돌아다니는 기미는 없었다. 그 뿐 아니라 매일 빠짐없이 백화점에 들려서는 텔레비전의 뉴스를 체크하고 있는데도, 내가 저지른 살인은 보도되지 않은 것이다. 신문도 나름대로 보고 있지만, 역시 그런 기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사건은, 여느 강도 살인 사건과는 계통이 다르다. 틀림없이 텔레비전의 시청자를 끌만한 화제다. 그러니 간단하게 사고로서 처리될 리가 없다. 「───설마───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건가」 중얼거린 자신의 말에, 나는 위 속에 든 것을 토할 것 같았다. 그런 녀석들,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다만, 사체인 채로 한 달이나 발견되지 않고 방치되어있는 광경을 생각한 것만으로, 굉장히 우울해졌다. 보러 가볼까────아니, 그거야말로 무리다. 그런 용기도 없고, 경찰이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라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바깥쪽에서 상황을 살피는 일 뿐이다. ───단 한번.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텔레비전에 사건으로서 보도되면, 나도 공과 사의 구분을 짓고 료우기의 앞에서 사라질 수 있다. 엔죠우 토모에가 살인범으로서 세상에 알려지면 료우기에게 폐를 끼치게 되니까───나는 미련을 끊고, 이 거리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젠장, 어째서 나란 놈은───」 료우기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짤깍짤깍짤깍짤깍. 바람이 강해져왔다. 차가운 북풍에 내쫓기듯이, 나는 골목길에서 걸어 나왔다. 그대로 거리를 걷고 있자, 멀리 횡단보도에 료우기의 모습을 발견했다. 기모노 차림에 가죽점퍼란 스타일은, 그 녀석 외에는 있을 수 없다. 나는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다가───본 기억이 있는 얼굴을 발견했다. 나와 료우기가 만났던 밤, 그 원인을 만든 녀석들 중의 한 명이다. 그 녀석은 익숙한 발놀림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료우기의 뒤를 밟고 있었다. 짤각, 짤깍짤깍, 짤깍. ────왠지, 위험하다. 나는 인파에 섞여 들어서, 료우기를 미행하는 남자를 미행한다. 그 녀석은 한동안 료우기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다가, 어딘가에 가버렸다. 그 후, 교대로 그 때 멤버 중의 한 명이 그 뒤를 이어서 미행한다. 녀석들은 료우기를 어떻게 할 생각이 아니라, 그저 미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 해도───저 녀석들 치고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움직임이 조직적이고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다. 한 시간이나 녀석들을 감시하면서, 나는 교대하고 떠나가는 녀석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아야한다고 깨달았다. 마침 료우기에게 하이킥을 얻어맞고 혼절했던 녀석이 미행을 끝내고 떠나간다. 빠른 걸음으로 뒤쫓자 녀석은───아까까지 내가 있던, 그 골목으로 들어갔다. ────함정이다. 무얼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 불길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나는 골목 안으로 이어진, 좁은 선 같은 길의 입구에 멈춰 서서 그 안을 응시했다. 녀석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곳에서 무언가 찾을 수 없을까. 눈을 의심하자, 누군가가 서있었다. 와인레드의 긴 코트다. 훤칠한 장신(長身)의 인물은 남성일까. 머리카락은 길고, 금색을 띄고 있었다. 멀리서 보더라도, 사람을 깔보는 듯한 언짢은 얼굴생김새를 알 수 있다───. 그런데───저 녀석은 누구였을까. 「■■■■■■────────」 귓가에 유창한 발음이 흘러간다. 핫, 하고 정신이 들어 돌아보자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서둘러 골목 안을 다시 둘러보지만, 코트를 입은 남자도 사라져있었다. 차가운 북풍이 분다. 부들부들 몸이 떨린다. 나는 엔죠우 토모에의 의지와는 무관계하게 떨리는 몸을 끌어안고서, 이유도 알 수 없이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기분을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가을의 끝과, 나란 존재의 끝을 느끼고 있었다. ◇ 밤이 되어, 나는 료우기가 미행당하고 있던 일을 말했다. 그날 밤의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료우기를 감시하고 있다, 라고. 하지만 료우기의 대답은 평소대로 간결했다. 「헤에, 그래」 그래서? 라며 흐림 없는 눈동자가 되물어온다. 나는, 이번만은 이성이 흔들렸다. 「그래서라니. 감시하고 있는 것은 녀석들만이 아니야! 붉은 코트의 외국인이라던가 뭐 생각나는 거 없어?」 「그런 유쾌한 지인은 없어」 료우기는 그걸 끝으로, 이 이야기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흥미를 잃은 것이겠지. 이 녀석은 료우기 시키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라도, 료우기 시키 본인이 시시한 일이라고 인식하면, 뭐든지 내버려두는 것이다. 누명으로 살인범취급을 받아도 신경 쓰지 않겠지. 중요한 것은 밖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기분 뿐 일테니까. ……아아, 나도 그렇기를 바랬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기조차 한 료우기를 고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은 예외다. ……그 녀석들은───아니 그 녀석은 진짜다. 나와 녀석들처럼 가짜, 모조품의 위험성이 아니다. 료우기와 마찬가지, 순수한 충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말 좀 들어!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야. 틀림없이 너 본인에 대한 일이라구! 걱정하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보란 말이야!」 소리 지르는 내가 시끄러웠는지, 기모노의 소녀는 능숙하게 침대 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때. 나는 진짜로 화를 내고 있었다. 료우기가 너무나 무관심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좀더 단순하다. 그것은──── 「응. 그건 분명히 딴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야. 그런데 어째서, 엔죠우가 내 일로 걱정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것은─── 「이 바보, 걱정하는게 당연하지. 나는 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 나는──너에게, 반했으니까」 다투고 있던 공기가, 딱 멈춘다. ……말했다. 이제 곧 사라질 내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이 말은 무엇보다───나 자신을 위해서, 입 밖에 내서는 안 되었는데. 료우기는 이상한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몇 초정도 흐른 후, 기모노의 소녀는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무슨 소리야 엔죠우! 네가 나에게 반할 리가 있겠어. 그 빨간 코트의 남자에게 최면술이라도 걸린 거 아냐? 잘 생각해 봐, 이상한 소리가 섞여 있었을 거야!」 료우기───시키는, 웃으면서 상대해주지 않는다. 어떤 확신이 있는 걸까, 그녀는 정말로 그런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나는, 물론───그런 말은 인정할 수 없다. 「아냐! 나는 진심이야. 너를 보고서, 처음으로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꼈고, 겨우 비슷한 인간과 만났다고 생각했어. 너는 진짜야.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주겠어────」 앉아있던 료우기의 어깨를 쥐고, 나는 료우기를 노려본다. 료우기는 웃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런가」 메마른 목소리. 료우기의 손이 뻗어 와서, 나의 옷깃을 쥔다. 그러자───나는 빙글, 하고 종이라고 된 것처럼 가볍게 회전해서,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으로 침대 위에서 뒹굴러버렸다. 그 위에, 나이프를 손에든 료우기가 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어?」 목덜미에 칼날이 닿는다. 료우기의 눈은, 아무 것도 없다. 평소대로의 무관심하게 나이프를 휘둘러, 무관심하게 나를 죽이겠지. 료우기는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죽을 수 있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죽이겠어, 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그런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 녀석은 그런 것으로밖에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죽는 것은 무섭다. 지금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로 무섭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나의 생활도 길지 않을 것이다. 살인을 한 나는, 곧 경찰에게 붙잡혀서 두 번 다시 이쪽으로 돌아올 일은 없다. 그렇다면──── 「좋아. 널 위해서 죽어주겠어」 말했다. 료우기의 눈이, 인간다운 색을 띄어간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나는 존속살인범이니까 말야. 삐끗하면 사형이라구. 그럴거라면 ───교수형보다, 네 편이 나을 것 같아」 「존속살인범?」 나이프를 내 목덜미에 대면서, 료우기가 반복한다. 나는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기억을, 죽기 직전에 말을 꺼냈다. 그것은 분명히───죽기 전에 한번 정도는, 참회의 흉내를 내보고 싶었기 때문이겠지. 「아아, 나는 부모를 죽였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모라서 말야, 내 눈을 피해서 돈을 빌려서, 놀러 다녀. 나도 진저리가나서 견딜 수가 없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뭔가 잘못돼서 안 죽는 일이 없도록 몇 번이고───부엌칼로 내장을 들쑤셨어. 우리 집은 난방도 안 되거든. 그날 밤은 추웠잖아? 방에서 토하는 입김이 하얗게 보일 정도라, 사람의 내장 쪽이 따뜻하다구. 인간의 뱃속에서 김이 피어오르다니,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볼거리였어! 헤헤, 정말───모든 것이 마비되어서, 나는 바보가 되었던 것 같아. 손가락은 부엌칼을 놓지 않았고, 팔은 언제까지고, 뱃속을 헤집어댔어. 그러는 사이에 말야, 나는 부모를 죽이기 위해서 찌른 건지 창자를 헤집어버리기 위해서 찌른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나중엔 그것이 인간이었는지 뭐였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어」 우는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상쾌함까지 느껴진다. 나는 그 변변찮은 부모를 죽이고, 정말로 자유로워진 건가, 하고. 「───토모에, 너 어째서 죽인거야」 눈앞의 그녀가, 물었다. 생각한다. 나는 어째서 죽인걸까. 미웠던 걸까.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던 걸까. 아니다, 그런 깨끗한 감정이 아니다. 나는─────무서웠던 걸까? 「나는, 무서웠어. 꿈을───꾸었어. 일이 끝나고 돌아와서, 이불 속에 들어가. 잠시 그렇게 있으면 옆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말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려.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되어있고, 어머니가 서있었어. 어머니는 그대로 나를 찔러 죽이고, 자신의 목을 찌르고 죽어. 처음에는, 나는 그대로 죽었나하고 생각했어. 하지만 달라. 아침이 되어서 눈을 뜨면, 그런 일은 없어. 나는 분명 부모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그런 꿈을 꾸었던 걸 거야. 그 뒤로──그 꿈을 매일 밤 꾸었어. 매일매일, 그 꿈이 반복되었어. 꿈이라고 해도 매일이라구? 결국에는 참을 수 없게 돼. 나는 내가 죽는 밤이 무서웠어. 이젠 그 꿈을 꾸고 싶지 않게 되었어. 그래서───이제 꾸지 않기 위해서, 죽기 전에 죽이려고 한 것뿐이야」 그래. 그날 밤. 무언가의 용무로, 문을 연 어머니를, 숨기고 있던 부엌칼로 마구 찔렀다. 몇 번이나 살해당했었다. 지금까지의 울분을 토해내 듯, 있는 힘을 다해 죽였다. 나는 자유다. 그런 변변찮은 부모에게도, 그런 기분 나쁜 꿈에도, 더 이상 괴롭힘 당하는 일은 없다. 젠장, 이 얼마나───더럽혀진 자유인가. 「───바보구나, 너」 료우기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 직설적인 말은, 역으로 나를 후련하게 만들었다. 정말로 그 말이 딱 맞다. 나는 머리가 나쁘니까, 그 이외의 도망치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하지만 후회는 하고 있지 않다. 결과로서 경찰에게 붙잡히더라도, 그런 날들보다는 기분은 훨씬 나을테니까. ……다만 한 가지. 스스로의 죄를 입에 담고서, 깨달았다. 나는 자신의 일 만을 중요시해왔던 인간이다. 그런 녀석이 설령 진짜라고 해도, 타인에게 반했다는 걸 입에 담으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 자각조차 없다. 료우기가 웃으면서 상대해주지 않았던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이 녀석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만은 진짜다. 가짜였던 나에게 있는 유일한 ‘진짜’인데도. 더러운 살인자인 나는, 그 생각조차 더러워져있다. ───괴롭다고 하자면, 지금은 그것이 후회된다. 그것을 알아버린 순간. 방금 전 까지 나를 격하게 만들고 있던 열병은, 새 것과 교체되어 버려진 구형 텔레비전처럼 급속히 식어갔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살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살인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토모에가 말하고 있다. 료우기는 머나먼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엔죠우 토모에라는 나의 중심을 들여다보는 듯한, 한 점 흐림이 없는 관찰. 「───심각하게 잘못됐어. 견디는 것이 너의 장점이었는데, 결국, 괴로운 쪽을 선택했구나.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엔죠우 토모에를 소홀히 하고 있었어. 미래를 잃고서 텅 비어있던 너는, 지금처럼 죽고 싶어 했던 거야?」 ……나를 기분풀이 삼아서 죽이려고 하는 소녀. ……내가 살해당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소녀. 그 둘이 물어온다. ……어떤 것일까. 그날 밤, 나는 나를 아무렇게나 취급하고 있었다. 상대를 때려죽여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반대로 맞아죽어도 괜찮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죽고 싶지도 않았다. 그 때는, 그래……단지 살아있는 것이 어려웠던 것뿐이다.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가짜 같은 자신이 꼴사나웠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자살하지도 못하는 자신이 추해서, 가만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료우기에게 스스로의 죄를 밝히고 있는 지금도, 죽는 것은 싫다. ───하지만 어차피, 인간은 최후에는 죽는다. 나는 그것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빠르고, 다른 사람보다 추하고, 다른 사람보다 가치가 없는 것뿐이다. ……그런가. 그 점이, 분명 견딜 수 없다. 무가치한, 하찮은 죽음. 그런 식으로 죽을 거라면, 차라리──── 「───너를 위해서 죽는 편이, 진짜 같아서 훨씬 나아」 「거절이다. 네 목숨 따위, 필요 없어」 나이프가 떨어진다. 흥미를 잃은 고양이처럼, 료우기는 나에게서 멀어져간다. 어디에 가는 것일까. 료우기는 가죽점퍼를 손에 들고서 나갈 준비를 한다. 나는,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봐, 엔죠우. 너의 집은 어디야?」 료우기의 목소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차갑다. ……우리 집은 셋방을 전전하며 옮겨 다녔다. 반년정도 있으면 집세를 내지 못하게 되었고, 빌린 돈의 독촉이 심해서, 쫓겨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어릴 적부터 싫어서, 원래의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들어서 뭐하게. 어딘가의 맨션의 405호실이야」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야. 네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집을 말하는 거야. 모른다면 됐어」 료우기가 문을 연다. 나갈 때, 소녀는 돌아보지 않고서 말했다. 「그럼. 기분이 내키면 또 쓰라구」 료우기는 사라졌다. 혼자 남겨지자, 너무 살풍경한 이곳은 색이 흑과 백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모든 것이 흑백이 되어버린 녹슨 마음으로, 한 달을 보냈던 방을 바라보고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 5 (모순나선, 1) 겨울이 왔다. 나에게 있어서 올해 여름이 짧았던 것처럼, 거리 그 자체에 있어서 올해의 가을은 짧았던 것 같다. 사무소의 창문에서 내려다본 거리는, 지금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겨울하늘을 보이고 있었다. 예년에 없던 이상기상은, 사계절의 사(四)문자 중에서 가을이란 말만 말소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나날이 갈수록 가을의 정취는 희미해져갔다. 그렇다. 9월의 마지막에서 11월 7일인 오늘까지의 짧은 기간, 가을은 바쁘게 살아가는 경주마처럼 달려 나갔다. 그 기간 중의 나는, 하고 말하자면, 10월초부터 친척이 경영하고 있는 자동차면허 교습소에 다니고 있었다. 이 교습소는 나가노(長野)의 시골에 있는 기숙사제 학교로, 학생을 3주정도 합숙시키면서 일반 교습소의 과정을 재빨리 끝마쳐버린다고 한다. 한달 가까이 이 거리를 떠나 있게 된다는 사실에, 나는 그리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친척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한데다, 직장상사인 토우코씨도 이 합숙에는 찬성이라고 해서, 망설임 없이 합숙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교습소인지 수용소인지 알 수 없는 3주간이 끝나고, 나는 태어나서 자란 거리로 돌아온 것이다. 「……에에, 그러니까. 이름은 코쿠토 미키야」 손에 든 면허증을, 의미도 없이 중얼거려본다. 캐쉬카드보다 작은 면허증에는, 내 이름이 또렷하게 인쇄되어있었다. 그 밖에는 본적(本籍)과, 생년월일, 지금의 주소, 거기에 사진까지 붙어있다. 정말로 최소한의 퍼스널데이터를 기록하고 있을 뿐인데,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신분증 가운데서는 제일 범용성이 풍부하다는 물건이다. 그 점이 너무나 신기해서 참을 수 가 없다. 「이 면허란 무슨 자격인 걸까요, 토우코씨」 같은 방 한구석의 침대에서 자고 있는 토우코씨에게 말을 건다. 물론, 대답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계약서잖아, 그건」 그런데도, 토우코씨는 성실하게 반응해주었다. 이 사람은 독한 감기에 걸려서 벌써 일주일 가까이 드러누워 있다. 아까까지 38도나 되는 열에 못 이겨 쓰러져있었는데, 막 지금 눈을 떠버린 것 같다. 이유는───분명,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겠지. 왜냐하면, 시각은 정오를 가리키려하고 있으니까. 지금, 나는 회사인 사무소에 있다. 정확히는 사무소가 있는 빌딩의 4층의, 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토우코씨의 사실(私室)이다. 나는 창가로 의자를 옮겨서 막 취득한 면허증을 바라보고 있었고, 토우코씨는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 ……이건 색기 넘치는 사정이 아니라, 단지 토우코씨가 감기가 악화되어 쓰러져있는 것뿐이다. 합숙에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말없이 무언가를 비난해오는 시키와, 감기에 다운되어버린 회사의 소장이었다. 이 두 사람은 내가 없는 사이에 보다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말했었는데, 시키는 토우코씨의 간병은 단호히 거절했고 한술 더 떠서 뇌가 녹아버리라는 소리까지 했다고 한다. ……변함없는 냉혈함을 발휘하는 시키는, 나와는 고교시절부터의 친구다. 풀네임은 료우기 시키. 성별은 여자. 말투가 난폭한 것 덕에 착각하는 사람이 가끔씩 있다. 한편, 눈앞에서 이마를 젖은 타올로 식히고 있는 여성은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인물로,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소장이다. 사원은 나밖에 없으니, 회사라고 하는 것도 조금 무리가 있다. 이 사람은 천재기질이 있는 인간으로, 그런 사람의 예에 벗어나지 않게 지인이 적다. 감기에 걸려도 아무 것도 안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던 것 같다. 본인 왈, 금년의 감기에 대항할 면역이 지금의 몸에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면역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냥 누워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마법사이기도 한 토우코씨는 의사의 신세를 질 생각은 없는 거겠지. 분명, 자존심이란 것이 방해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나는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도 시키와는 거의 만나지 못하고 토우코씨의 간병을 하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계약서, 라고 성의 없는 대답을 하고서, 토우코씨는 베갯머리의 안경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는 너무 험상궂어서 미인인 것을 알 수 없지만, 쇠약해져있는 지금의 토우코씨는 다른 사람인가하고 생각할 정도로 온순하고, 아름다웠다.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의식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겠지, 토우코씨는 말을 계속한다. 「그건 말이지, 운전기술을 습득했습니다, 라고 하는 계약서야. 중요한 것은 공부한 일인데, 목적이 바뀌어 버렸잖아요, 이 나라는. 공부한 결과로 자격을 취득하는 게 아니라, 자격을 얻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어. 그러니까 자격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공부한 것의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거지. 이것만 공부했습니다 라는 증거로 전락해버리는 자격 따위는, 계약서 같은 거겠죠」 의미로 보자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소리네,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토우코씨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자격이란 그런 것 아닌가요? 누구나 목적이 있어서 공부 할테구요」 「물론 반대도 있어요. 닭과 달걀 같은 관계니까, 목적과 결과, 행동과 과정은 배리(背離)하는 거에요. 면허를 따 버렸기 때문에 차에 타게된 사람도 있겠죠. 자동차면허를 땄을 때, 교습소에 가지 않고 그대로 시험을 보러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안경을 쓰고 있는 토우코씨는 부드러운 어조가 되지만, 오늘은 감기에 걸려있어서, 더욱 친절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사람은 갑자기 시험센터에 찾아가서, 학과시험과 기능시험에서 토를 달지 못할 정도의 성적을 내고 시험관에게 눈총을 받으면서 자동차면허를 땄다고 한다. 「교습소에 다니지 않고 면허를 딸 수 있는 것은 들었지만, 토우코씨는 직접 부딪혀 보는 스타일인가요. ……그렇군요. 소장님이 교습소에 다니고 있는 모습 같은 건───」 ───무서워서, 상상할 수 없다. 나오려다 만 그 뒤의 말이 거슬렸던 걸까, 토우코씨는 가느다란 눈썹을 찡그리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실례에요, 미키야군. 그 무렵의 나는 아직 학생이었으니까, 교습소에 가도 잘못된 게 아니라구요. 그 나이 또래의 대학생처럼 말예요」 불만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눈을 감으면서 토우코씨는 말한다. ……과연. 말해보면 토우코씨도 10대였던 때가 있었다. 아직 학생이었다는 그녀의 사랑스런 소녀상을 상상하고, 나는 곧 숨을 삼켜버렸다. 그건 심장이 죄여들 정도로 강력한 정신공격이었기 때문이다. 「……그 쪽 편이 아득한 이차원(異次元)이네요, 소장님」 「───병자가 상대면 본심이 나오는군, 당신은」 물론. 평소에 괴롭힘 당하고 있었으니, 이럴 때 정도는 반격해두지 않으면 밸런스가 나빠진다. 타올이라도 교환할까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토우코씨는 배고파 라면서 아주 스트레이트한 욕구를 드러내왔다. 곤란하게도 만들어 두었던 죽은 오늘아침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가게에서 만든 거라도 사올까요. 콘게츠(昏月)의 쯔키미(月見)우동이라던가」 「안~돼, 이젠 물렸어요. 저기 미키야군, 뭔가 만들어주지 않겠어? 혼자서 사니까 웬만한 것은 만들 수 있겠죠?」 ……혼자살기 때문에 자취 가능하다, 란 것은 대체 어디의 누가 퍼뜨린 통설인걸까. 토우코씨의 기대에 찬 시선에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나는 조금 잔혹한 사실을, 하지만 단호하게 선언했다. 「죄송해요, 제가 만들 수 있는 것은 면종류 뿐이에요. 최저레벨이 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 거고, 최고레벨이 파스타를 익히는 정도의 조리정도. 그거라도 괜찮으면 주방을 빌리겠지만」 예상대로, 토우코씨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어주었다. 「그러면 오늘 아침의 죽은 어찌된 거야? 편의점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맛이었는데」 「그건 시키에요. 본인은 요리는 거의 하지 않지만, 어째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본요리라면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요」 헤에, 하며 토우코씨는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인다. 그 의견에는 나도 동감이지만, 실제로 시키는 요리사도 새파랗게 질릴 정도로 요리를 잘한다. 료우기의 집은 명가라서, 시키는 원래부터 입맛이 까다롭다. 본인은 무엇이든 먹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니까 어떤 맛이라도 봐줄 수 있다, 란 것인 듯 하다. 시키가 요리한다, 라는 것은 본인이 납득할 레벨의 요리를 한다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요리 실력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놀랬어, 시키가 나에게 무언가 해주다니. 하지만 뭐어, 당연한 걸까. 그 애, 날붙이의 취급에는 익숙해져 있을 테니. ……할 수 없지. 책상 위에 알약이 들어있는 병이 있으니까, 전부 가져다주지 않겠어?」 밥을 얻어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토우코씨는 다시 침대에 드러눕는다. 토우코씨의 책상에 있는 세 개의 약병을 손에 들었을 때───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외국의 풍경일까. 돌로 만든 길과,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시계탑. 오늘처럼 지금이라도 눈이 내릴 것처럼 구름 낀 하늘 아래, 세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다. 두 사람의 남성에 한 명의 소녀. 남자들은 양쪽 다 장신으로, 한 명은 일본인 같았다. 다른 한 명은 그 지방 사람인 듯 풍경에 녹아 들어가 있어서 위화감이 없다. 아니───일본인 남성의 인상이 너무나 강한 것이다. 어두운 표정으로 서있는 일본인의 존재감은 너무 강렬해서, 풍경에서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다. ……가슴이 괴로워질 정도의 답답함. 나는 이전에, 그것을 코앞에서 느낀 적이 있다. 그것은, 그래. 잊을 수 없는 그 때의 감각은 아니었을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진을 응시하자, 그 이상으로 인상적인 것을 보아버렸다. 검은 기모노 같은 코트를 입은 일본인 남성과 붉은 코트를 입은 금발벽안의 미남자. 그 두 사람 사이에 소녀가 있었다. 검은, 일본인 남자가 입고 있는 코트가 옅게 보일 정도의 흑단(黑檀) 같은 흑발.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려져 있는 머리카락은 긴 머리카락이라기보다, 아름다운 장식품 같았다. 아직 10대의 천진난만함이 남아있는 평온한 얼굴은, 한마디로 하면 영롱(玲瓏)일까. 소녀는, 사진 너머 서에도 혼을 빼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화려했다. 응달의 꽃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일본의 유령과, 외국의 동화에 나오는 요정이 서로 녹아들면, 이런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할 정도로. 「토우코씨, 이 사진────」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드러누워 있던 토우코씨는 안경을 벗으면서 대답했다. 「으응, 아아. 그건 옛날에 알던 사람들이야.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서 말야, 앨범에서 빼냈어. ───런던에 있을 무렵의, 단 한번의 불찰이란 거지」 안경을 벗은 토우코씨는 그 어조가 변한다. 예전에, 친구인 료우기 시키는 어딘가 애매한 이중인격자였지만, 아오자키 토우코란 사람은 진짜로 인격이 찰칵하고 스위치를 넣는 것처럼 바뀐다. 본인에게 듣기로는 인격이 아니라 성격을 전환하는 것뿐이란 말을 했지만, 나로 보자면 어느 쪽이고 별 차이 없는 문제다. 안경을 벗은 토우코씨는 한마디로 말하면 차가운 인물이다. 차가운 언동, 차가운 사고, 차가운 이론───그것들로 빚어진 인물상이, 안경을 벗은 토우코씨인 것이다. 「글쎄, 몇 년 전의 이야기였을까. 여동생이 고교에 들어가려고 했던 무렵이었으니까, 대충 8년 이상 됐을까.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특기지만, 기억해내는 것은 도무지 잘 안돼. 쓸데없는 행위니까, 보기 좋게 정리할 생각도 들지 않아」 토우코씨는 드러우눈 채로, 깊은 생각에 빠져들 듯이 중얼거리고 있다. ……토우코씨가 자신의 옛이야기를 하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감기란 것에 걸린 것이 처음이라는 말은 진짜 같다. 이런 것을 귀신의 곽란(藿亂)이라고 하는 거겠지. 「런던이라면──그, 영국의 수도 말이죠」 세 개의 약병을 토우코씨의 머리맡에 놓고서, 가까운 의자를 끌어당겨서 침대 곁에 앉는다. 토우코씨는 약병에서 알약을 꺼내서 삼키고는, 역시 드러누운 채로 말을 꺼냈다. 「그래. 당시, 할아버지 곁에서 뛰쳐나와 버린 나는 살 곳이 없었어. 공방을 처음부터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술도, 자금도 없었던 풋내기 마술사는, 커다란 조직 밑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계산한 거지. 대학과 마찬가지야. 기구(機構)자체는 오래되고, 닳았으며, 쇠퇴하고 있지만 시설 그 자체에 죄는 없어. 대영박물관의 뒤편에는 고금동서(古今東西)의 연구부문이 있었지. 과연 현재의 마술사들을 양분하는 협회야. 그것은 내가 바라던 이상의 비장량(秘藏量)이었어」 열에 의식이 흐릿해진 것처럼 혼자 중얼거리는 토우코씨의 안색은 창백해지기만 한다. 아까의 약은 약이 아니라 독이었던 게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나에게, 토우코씨는 독이 아니라구 하면서 말을 멈췄다. 「좋은 기회니까 조금 더 말하게 놔둬. ……아직 20살 남짓한 꼬마여자애가 학원에 유학하는 것은 어려워. 게다가 아오자키는 이단자취급을 받았으니까. 들어가기 위해서 나는 룬 마술을 전공으로 하기로 했어. 당시에, 룬은 인기도 없고 공부하는 사람도 적었거든. 협회 측도 연구자는 원하고 있었지. 그렇게 저쪽에서 룬 문자를 안정시키는데 2년, 툴레 협회에 있는 오리지널에 근접하는데 또 수년. 그걸로 겨우 자신의 연구실을 가질 수 있었던 무렵이었을까. 원래의 목적이던 인형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그 남자와 만났어. 원래는 타밀(台密)의 승려라는 괴상한 편력의 소유주로, 지옥 같은 남자였어. 강한 의지, 단련되어있는 자기(自己)의 껍질은, 불타오르는 업화처럼 한결같았지. ……지옥 같은, 이란 소리는 말야, 코쿠토. 만약 지옥이란 개념이 의지를 가지고 인간의 모습을 한다면, 이라는 가정(假定)이야. 그 정도로 녀석은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지 그 괴로움만을 계속 빨아들이고 있었어. 마술사로서의 능력은 허점 투성이었지만, 녀석의 강한 자기(自己)는 모두를 능가하고 있었지. ───나는, 그런 서투른 녀석이 마음에 들었었어」 스스로 말하는 추억의 남성을 노려보듯, 토우코씨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그것은 미움으로도, 슬픔으로도 보이는, 난해한 눈빛이었다. 말의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그런가요 하며 맞장구를 친다. 병자에게 거스르지 않는 것이 간병의 요령이라고 생각한다. 「하아, 토우코씨의 인형 만드는 기술은, 외국제로군요」 명백히 분위기를 깨는 질문에 그래, 하고 토우코씨는 진지하게 끄덕였다. ……틀렸다, 농담도 통하지 않는다. 토우코씨의 독백을 듣는 것은 좋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은 듣는 사람으로서 미안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는 시키나 아자카에게 하면 좋을 텐데, 열에 혼미해진 토우코씨는 이야기의 난해함의 기어를 올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내가 인형 만들기에 빠진 것은 말이야, 완벽한 인간의 모형을 통해서 「 」에 도달하기 위해서였어. 녀석은 반대로 육체가 아니라 혼, 다시 말해 측정할 수 없는 상자 속의 고양이 같이 「있는」 존재지만, 「없는」 것을 통해서 「 」에 도달하려고 하고 있었어. 육체는 명확한 모습이 있기 때문에 비쳐 보이지 않아. 그러나 형체 없는 혼은 비쳐 보여. 어딘가의 심리학자가 주창한 집합무의식(集合無意識)과 비슷해. 그 연쇄(連鎖)를 더듬어 가면 중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아아, 요컨대. 나도 녀석도 원작(原作)을 구하고 있었어. 대원(大元)이 되는 하나, 인간의 오리지널이라고 부르면 될까. 지금의 인간은 너무 나뉘어버려서 이미 측정 불가능할 정도의 속성과 계통을 이루어 버렸어. 그래서 대원에 도달할 수 없지. 속성과 계통. 바꿔 말하면 숙명일까. 수식과 마찬가지로, 그런 능력과 역할을 부여받고, 그런 결과를 도출하는 인생. 그런 결과밖에 도출되지 않는 인생. 당연해, 유전자에는 그런 능력밖에 부여 되어있지 않으니까. 그것을 숙명이라고 한다면 숙명이겠지. 우리들 영장(靈長)은 너무도 복잡하게 이루어져있어. 만능을 추구한 나머지, 여러 가지 능력을 부가해버린 결과야. 인간을 구성하는 정보인 유전자는, 단 네 종류의 염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그 네 종류의 염기가 섞인 단순한 나선이 계측 불능할 정도까지 축적된 것에 의해 계측 불가능이 된다는 모순에 빠져버렸어. 그렇기 때문에 해석할 수 없어. 대원(大元)에 다다르는 것은, 현대의 인간으로서는 불가능인거야. 그러니까───나는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결과는 무참했지만 말야. 아무리 사력을 다해도, 만들어진 것은 완벽한 나뿐이었어」 약이 듣기 시작한 걸까, 토우코씨의 얼굴에 홍조가 돌아왔다. 허공을 노려보는 눈동자도, 점점 흐릿해져간다. 「하지만───녀석은 아직 계속하고 있는 거겠지. 인간의 "기원(起源)"을 보는 그 녀석은, 혼의 모형을 찾다가 스승에게 파문당했다는 소릴 들었으니까. ……뭐 이런 인과가 다 있지. 지금 이런 것에 관계해버리다니. 알았어 코쿠토? 너는 상관이 없는 일이니, 사전에 주의를 주도록 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사진 속의 남자, 그 중(坊主)에게는 가까이 가지마」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듯이 말하고서, 토우코씨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자그마한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조용히 호흡을 반복하고 있다. 분명 약이 효력을 잘 발휘해서 잠든 것이겠지. 나는 토우코씨의 이마에 수건을 바꿔 얹고, 그녀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방을 뒤로했다. 옆의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다. 단지 이 빌딩의 주위에 있는 공장에서, 날카롭고 높은 소리가 울려올 뿐이다. 그 잔향을 피부로 느끼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가까이 하지 말라니, 무리에요 토우코씨. 왜냐하면 저는 그 사람을 2년 전에 알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때의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인화지에 찍혀있는 인물이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내 안에서 그 사진의 인물은 불확실했고, 열에 정신이 혼미해진 토우코씨의 말도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있었다. 불확실한 것이 불확실한 말을 불러냈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방금 전까지 평온했던 공기가 엷어져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말로 할 수 없는 불안만이 등골을 떨리게 하고 있었다. / 6 (모순나선, 2) 하룻밤이 밝아서 11월 8일의 낮. 날씨는 어제와 거의 바뀌지 않은 흐린 상태로, 전등 없는 사무실은 폐허처럼 어두웠다. 이 사무소는 나와 토우코씨 만으로는 너무 넓다. 책상도 떡 하니 10명분은 늘어놓아져 있고, 방문객을 접대하기 위한 소파도 있다. 바닥은 콘크리트의 거친 표면이 드러나 있고, 벽에는 벽지조차 발라져있지 않은 점이 눈에 거슬리지만, 사람 수만 채워지면 그 나름대로의 직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자신을 포함해서 3명밖에 없다. 창가에 있는 소장의 책상에, 토우코씨의 모습은 없다. 어제의 약이 잘 들었는지, 오늘 아침에 감기가 낫자 어디론가 외출해버렸기 때문이다. 소장이 없는 사무소 가운데, 나는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미술관의 회장(會場)건설에 드는 자재의 발주량과 가격조사 따위를 하고 있었다. 토우코씨의 계획도를 한 손에 들고, 공정에 알맞을 것 같은 자재를 싼값에 구입하기 위해서다. 그 사람은 ‘만들 수 있기만 하면 돼‘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서, 이런 귀찮고 검소한 노력은 해주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사원인 내가 할 수밖에 없다. 자재가게의 리스트를 노려보며, 여긴 어떨까하고 전화를 걸어 교섭하고, 다음 자재가게로 이동한다. 바쁜 건지 충실한 건지 구분을 할 수가 없는 나 자신 이외에는, 그밖에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한 명은, 방문객용의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있는 기모노의 소녀. 말할 것도 없이 료우기 시키로, 그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예절바른 자세로 앉아있다. 다른 한 명은, 나와는 제일 떨어져있는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검은 교복의 여학생. 시키와는 대조적인 긴 머리를 등 뒤로 길러 내리고 있는 그 녀석은, 코쿠토 아자카라고 한다. 성이 나와 같은 것은 변명할 여지없이 육친(肉親)이란 소리로, 여동생인 아자카는 고교 1학년생이다. 몸이 약해서, 10살 무렵에 도회지의 공기는 몸에 좋지 않다며 친척집에 맡겨졌고, 그 뒤로는 가끔씩 밖에 만나지 못했다. 확실히,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은 내가 고교에 들어간 뒤의 정월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때는 아직 앳된 그 또래의 여자애였지만, 올해 여름에 재회한 아자카에는 조금 놀랐다. 오래간만에 대면한 여동생은, 우리 집 자식이 아닌 게 아닐까하고 생각할 정도로 아가씨 티가 났으니까. 역시, 태어난 집과 환경이 다른 것만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훌륭하게 성장해버리는 것 같다. 언행도 늠름하고, 이전의 연약함은 전혀 없다. 10살부터 15살이라는 성장기에 만나보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겠지만, 나는 한동안 이 녀석이 아자카라고 실감하지 못할 정도였다. 흘끗 먼 곳의 책상에 앉아있는 아자카를 본다. 국어대사전보다 두꺼운 책을 몇 권이나 쌓아두고 열심히, 아주 조용하게 베껴 쓰고 있다. ……토우코씨가 떠날 때 아자카에게 남긴 과제다. 어제의 토우코씨의 무거운 대화도 마음을 음울하게 해주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나에게 있어서 최대의 걱정거리는 이 것인지도 모른다. 「오라버니. 저, 토우코씨의 제자로 들어가겠어요」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 한 달 전에 아자카는 나에게 그렇게 고했다. 물론 반대는 했지만, 여동생은 완고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정말이지. 어째서 평범한 우리 가계(家系)에서 마법사 같은 이상한 것이 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아자카」 전화가 일단락되어서, 마주보는 책상에 앉아있는 여동생에게 말을 건다. 아자카는 쓰고 있던 문장을 끝까지 다 쓰고 나서, 스르륵하고 흑발을 흔들며 얼굴을 들었다. 지기 싫어하는 억척스러운 성격인 주제에, 차분하면서도 기품 있는 눈동자가, 뭔가요, 하고 묻는 듯 예의바르게 이쪽을 본다. 「학교가 창립기념일이라서 휴일인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넌」 「오라버니, 가끔씩은 집에 얼굴을 내밀라구요. 학생기숙사는 화재가 나서, 지금은 폐쇄 중이에요. 집이 가까운 학생은 될 수 있으면 기숙사에서 일시적으로 퇴거해주었으면 한다는 학원 측의 요청, 어머니는 알고 계시다구요」 고교시절의 반장을 떠올리게 하는, 침착한 목소리와 눈동자가 대답했다. 「화재라니────기숙사가 전소될 정도의?」 「동관(東館)만이에요. 1학년과 2학년 기숙사의 절반이 불탔어요. 학원 측에서 무마시켰으니까 뉴스에는 나오지 않았겠지만」 시원스런 말투로, 아자카는 굉장한 말을 했다. 유명한 아가씨학원인 레이엔의 학생기숙사가 불탔다, 라는 일은 진위를 떠나서 분명히 스캔들이 된다. 대학교 급의 부지를 자랑하는 레이엔이라면, 확실히 화재를 비밀리에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생기숙사에 화재가 났다는 것은 심상찮은 일이다. 지금의 아자카의 말투에서 그것이 방화───그것도 학생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오라버니. 쓸데없는 생각하고 있는 것 아녜요?」 이쪽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아자카는 곁눈질로 노려보아 왔다. ……여름에 있던 일로, 여동생은 코쿠토 미키야가 쓸 때 없는 일에 고개를 들이미는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한동안 무언(無言)의 암투가 계속되어버리기 때문에, 말을 바꾸기로 한다. 「그것보다, 너, 뭐하고 있는 거야」 「오라버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이쪽이 말하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아자카는 쌀쌀맞은 대답을 한다. 「관계는 있다구. 여동생이 마법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니, 아버지께 어떻게 설명하란 말이야」 「어머, 집에 얼굴을 비쳐주실 거에요?」 ……우. 이 녀석, 이쪽이 부모님하고 말싸움 끝에 의절상태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리고 말이죠, 오라버니. 마법사하고 마술사는 다른 거에요. 토우코씨 밑에 있으면서도 못 들으셨어요?」 그러고보니, 토우코씨는 가끔씩 그런 이야기를 한다. 편의상, 일반인들에게는 마술사보다 마법사라고 말하는 쪽이 희망대로의 이미지를 전하기 쉽기 때문에 말하는 것뿐이지만, 이 두 가지의 호칭은 전혀 별개다, 라던가 뭐라던가. 「아아, 확실히 들은 적은 있어. 하지만 큰 차이는 없잖아? 어느 쪽이건 수상한 마법을 사용하니까」 「마법과 마술은 달라요. 마술이라는 것은, 확실히 상식에서 괴리된 현상. 하지만 그건, 단순히 상식으로 가능한 일을 비상식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어놓은 것뿐이라구요. 예를 들면, 그렇지───」 아자카는 토우코씨의 책상까지 걸어가서, 그곳에 있는 페이퍼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은제(銀製)의, 세공도 훌륭한 토우코씨의 애용품이다. 아자카는 필요 없어진 서류를 발견하자, 그곳에 나이프로 무언가를 휘갈긴다. 갑자기────서류는 화르륵 하고 연기를 토하기 시작하고, 천천히 타들어가 버렸다. 「…………………」 나는 말없이, 그 자초지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에, 토우코씨도 비슷한 일(그 때는 규모가 더욱 컸지만)을 했지만, 자신의 여동생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아니, 토우코씨에게 제자로 들어갔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상상은 하고 있었지만. 「───좀 참아줘. 그거, 아무런 속임수도 없는 거야?」 「물론 있어요.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고, 실제로는 대단한 것이 아니니까, 특별할 것 없어요. 왜냐하면, 요즘에는 그런 일은 구경거리 축에도 못끼니까요. 물건에 불을 붙이는 거라면 백엔짜리 라이터로도 족해요. 라이터로 하던, 손끝으로 하던, 불을 붙인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요. 그런 것, 전혀 신비롭지 않잖아요? 아시겠어요, 오라버니. 마술이란 것은 이런거에요」 담담하게 아자카는 말을 잇는다. 마술이란 건, 요컨대 문명의 대용품 같은 것인 듯 하다. 아니, 아자카 말대로, 따라잡혀 버렸다, 라고 하는 편이 바를까. 「예를 들면 비를 내리게 하는 일이라도, 마술도 과학도 마찬가지겠죠. 그저 방법이 틀릴 뿐이고, 그것을 하기 위해 투자하는 노고는 같은거에요. 마술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전에 깔려있는 준비는 대단한 것이죠. 시간과 자금으로 환산한다면, 과학적으로 비구름을 만드는 것과 완전히 동일. 확실히, 옛날이라면 그것은 기적의 종류였어요. 하지만 현대에서는 기적도 뭐도 아니에요. 옛날에는 마을 하나를 재로 만드는 마술사는 마법사로 불리며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돈만 있다면 누구든지 가능해져버렸어요. 미사일을 살짝 날려주면 되니까요」 오히려 그편이 아득히 효율적이고 빠르겠죠, 라는 소리를 아자카는 덧붙인다. 「마술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개인의 힘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시간을 소비해서 가능하게 만드는 일에 지나지 않아요. 학문으로서 봐도 그렇잖아요. 진리를 얻기 위해서 몇 십 년씩 명상할거라면 달에 가서 명상하는 편이 깨달음을 얻는 데는 빠를지도 모르죠. 유감이지만 마술은 비의(秘儀), 금기(禁忌)의 종류라 기적은 될 수 없어요. ───기적이란 것은 인간의 손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거잖아요? 현재 지구상의 모든 자력(資力)을 투자해도 할 수 없는 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마법사. 곧 마법이란 것이에요」 인간은 아직 할 수 없는 일. 그것이 마법이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아자카는 말했다. 「그럼, 옛날에는 마술사보다 마법사가 많았던 것이 아닐까. 옛날 사람들은 라이터도 미사일도 없었으니까」 「그렇겠네요. 그러니까 과거에는 마법사를 무서워했고, 직업으로 성립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확실히 말하자면 필요가 없는 거에요, 마법 따위는. 현대에 있어서는, 마법 그 자체도 적어졌어요.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란, 이미 숫자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밖에 없잖아요? 어쨌든 지금은 마법사는 다섯 명 정도밖에 없데요」 ……과연. 확실히 그런 의미라면, 마법사와 마술사는 다르겠지. 지금의 인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시간이라던가 공간을 조작하는 일 정도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과거를 추측하는 것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가능해져가는 시대니까, 불가능한 일이라면 정말로 셀 수 있을 정도밖에 없다. 언젠가───인간은 마법 그 자체를 배제해버리겠지. 어릴 적, 신기하게 생각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반해서 과학자가 된 청년이, 연구를 거듭해서 그 신기함 자체를 단순한 현상으로 끌어내려 버린 것처럼. 「흐음. 그렇게 되면 최후의 마법이란 것은, 모두 행복해지는 일 정도가 되어버리겠네」 응. 잘은, 모르겠지만. 「────────」 아자카는 어째서인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의외의 물체를 보는 듯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얼굴을 돌려버린다. 「……마법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이에요. 게다가 저는 마법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목적을 위해서 마술을 배우고 있는 것뿐이라구요」 「그런가. 마법은 안 되지만, 마술이라면 배울 수 있다는 건가. 지금, 아자카가 한 것처럼 말야」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아서 그렇게 매듭짓자, 아자카는 아니오, 하고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오라버니. 마술이라도, 옛날에는 마법이었어요. 그저, 단순히 인류의 문명에 따라 잡혀버린 것뿐이니까, 노력하면 어떻게든 습득과 사용이 가능한 것뿐이에요. ……아쉽게도, 제게는 마술사의 가계(家系)같은 축적된 역사가 없어요. 마술사란 사람들은, 피와 역사를 축적한 가계에요. 그들도 처음에는 보통의 학자였어요. 그들은 공부한 신비, 얻은 힘을 다음대의 자손에게 전해요. 자손은 더욱 연구를 거듭해서, 다시 자손에게 전하고. ───그렇게 해서 마법에 근접하려고 하며, 끝없이 반복을 한다죠. 토우코씨는 6대째인 것 같은데, 3대째의 계승자가 엄청난 천재였다고 해서 대단한 발전을 이뤄냈다던가. 그래서 토우코씨의 재능도 핏줄덕분 이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이제부터 마술을 공부하는 자는 그렇게 간단하게 마술사에는 이를 수 없어요」 「흐음. 어쩐지 고생일 것 같은데, 여러 가지로」 응, 하고 어쩐지 납득할 수 있었다. 핏줄───혈족의 힘. 확실히 그것은 어떤 가문이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에게 그것은 많은 친척이기도 하고, 물려받은 재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는 소리는, 곧──── 「야, 그러면 너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우리 집은 평범한 집안이라구. 누구하나 마술은 고사하고 불교에 심취한 적도 없어. 마술 같은 건 익히지 못하는 것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재능은 있는 것 같아요. 발화시키는 구성의 정교함은 보기 드물 정도라고」 삐진 듯한 말투로 아자카는 말한다. ……나 참, 불을 붙일 수 있게 되어서 어쩌겠다는 거야. 혹시, 기숙사에 화재를 낸 것도 이 녀석이 원인인 것이 아닐까. 「저기 말야, 한 세대뿐인 재능은 소용없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 그렇다면 뭘 해도 소용없는 것 아냐? 마법사───가 아니라, 마술사를 지향해도 어쩔 수 없어. 제대로 된 길로 돌아오지 않으면, 일자리도 못 구하게 된다구」 그게 아니라도, 요즘의 취직사정은 험하다. 아자카는 곧 반론을 해오려고 한다. 그 전에───보다 공격적인 대사가, 발소리와 함께 사무실로 날아 들어왔다. 「아니, 취직율은 좋아. 아자카의 나이로 그만큼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오라는 곳도 많아져. 표면적으로, 일류 큐레이터로서 채용될 수 있어」 텅, 하고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토우코씨가 돌아왔다. ◇ 병에서 막 나은 토우코씨는, 그것을 느끼게 하지 않는 확실한 걸음걸이로 소장의 책상까지 걸어간다. 겉옷을 걸고 의자에 앉고 나서, 자신의 책상을 보더니 눈썹을 찡그렸다. 페이퍼 나이프의 위치가 아까와는 달랐기 때문이겠지. 「아자카. 사람의 물건을 쓰지 말라고 말했잖아. 도구에 의지하면 실력이 무뎌진다구. 무엇보다 코쿠토 앞에서 실패하는 건 싫어서겠지, 으응?」 「───네, 말씀대로에요」 토우코씨의 힐문에, 아자카는 뺨을 붉게 물들이면서도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런 점은 여동생이라도 존경할만하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한 얘기를 하고 있었잖아. 코쿠토는 마술에는 관심 없었던 것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만…………저기, 토우코씨. 어제의 일 기억나세요?」 앙? 하고 안경을 벗은 토우코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초의 원인이었던 어제의 의미 불명의 대화를, 말한 본인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토우코씨는 담배를 입에 물고 한 대 피운다. 「그런데 말야, 아자카. 어째서 코쿠토에게 그런 말을 한 거야. 숨기는 것, 은폐하는 것이 마술의 대전제라구. ……뭐어 코쿠토가 상대라면 문제는 없겠지만」 「제가 상대라면 뭐가 좋은가요?」 「말해도 모르잖아. 비밀이 새는 일도 없어. 너는 상대에 따라 말하는 내용을 고르니까 말이야, 정상적인 인간에게 이런 이야기는 안 한다구」 「그건 그렇지만───역시 남에게 알려지는 것은 곤란한가요? 마술사란」 「당연히 곤란하지. 사회적으로는 아무래도 좋지만 말야, 마술의 위력이 떨어져. 코쿠토, 미스터리(ミステ-ル)의 어원을 알고 있어?」 「미스터리란건, 그, 미스터리(ミステリ- - mystery) 소설 말인가요?」 「그래. 추리소설이 아니라, 신비라는 의미의 미스테리」 「하아. 원래는 그리스어겠죠, 영어니까요」 「……뭐어 그렇지. 그리스어로 닫는다는 의미. 폐쇄, 은폐, 자기완결을 지향하지. 신비는 말이야, 신비로 존재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야. 숨겨두는 것이 마술의 본질이지. 정체가 밝혀진 마술은, 온갖 초자연적 기법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신비에는 이를 수 없어. 단순한 재주로 전락하지. 그렇게 되면 말야, 갑자기 그 마술은 약해져버려. 마술이라도, 원래는 마법이었어. 곧, 원천인 근원에서 끌어들인 정해진 힘인 것은 틀림없어. 부유하는 신비, 라는 것이 있다고 가정해볼까? 이것에는 10의 힘이 있어. 알고 있는 인간이 한 명이라면, 10의 힘 전부를 쓸 수 있어. 하지만 아는 사람이 두 명이라면, 이것은 5와 5로 나뉘어서 사용돼. 자, 힘이 약해졌어. 다르게 말하자면, 이 세계의 모든 기본적인 법칙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야, 이건」 토우코씨의 말의 전체상(全體像)은 변함없이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왠지 모르게 이해된다. 숨기는 것, 닫는 것이 마술이란 것의 존재방식이라면, 마술사란 사람들이 사람 앞에서 마술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군요, 토우코씨는」 「아냐, 안 해」 치익, 하고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말했다. 「마술사끼리의 싸움이라면 할 수 없지만, 그 이외에는 혼자 있을 때라도 쓰거나 하지는 않아. 마술적인 기법은 다음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의례(儀禮), 의식(儀式)의 시간 정도밖에 동반되지 않아. 중세 무렵부터, 학원(學院)이라고 불리는 것이 생겼어. 녀석들의 단속이 꽤나 병적이어서 말야. 학원은 오래 전부터 마술사들이 쇠퇴하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어. 그들은 그 조직력을 가지고 마술 자체를 결코 밝혀지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지. 눈에 보이는 신비를, 아무도 모르는 신비로 끌어 올린거야. 그 결과, 사회에서 신비는 옅어지게 되었어. 이것을 철저히 하기 위해서 학원은 여러 가지 형률(刑律)을 만들어 갔지. 예를 들면, 마술사가 일반인을 마술적인 현상에 말려들게 하면, 그 마술사를 죽이기 위해서 학원에서 자객이 와. 마술사라는 군체(群體)에 해가 되는 한 가지 요소로서 말살하기 위해서. ……마술사가 일반인에게 정체를 들키면 힘을 잃는다, 라는 일화의 원인이 이거야. 학원은 은폐성을 보다 강고히 하는 것으로 마술의 쇠퇴를 막으려했고, 그 결과 학원에 속한 마술사는 함부로 마술을 행사하지 않게 됐어. 그 계율을 싫어해서 초야로 내려간 마술사도 많지만, 학원이 소유하는 서적들과 토지는 막대한 것이야. 마술사가 마술사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학원이 제압하고 있어. 학원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따돌림 받는 것과 마찬가지야. 실험을 하려고 해도 지맥이 일그러진 영지(靈地)는 학원이 소유하고 있고, 마술을 공부하려해도, 교과서가 몰수되어 있어서는 공부할 수가 없잖아? 때문에 학원에 소속되지 않은 마술사는, 하고 싶어도 마술의 실천이 불가능해. 조직의 힘이지. 그런 점은 대단한 것이라고 칭찬할 수 있겠군」 「저기, 토우코씨. 그러면 저도 학원에 소속되지 않으면 안되는 건가요……?」 머뭇머뭇하고 끼어드는 아자카의 목소리는 어딘가 불안했다. 「안 해도 좋지만, 하는 편이 편리해. 학원에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것도 아니야. 그곳을 관두는 것은 자유야. 대의명분으로서 지배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러면 은폐성을 사수하는 의미가 없어요. 공부한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면, 마술이 퍼져버려요」 납득이 가는 아자카의 의견에, 으응, 하고 토우코씨는 끄덕였다. 「그렇지. 사실, 학원에 유학해서 힘을 얻고, 초야로 내려가려는 놈들도 많아. 하지만 10년 정도 지나면 그런 생각은 없어지게 되는 거야. 왜냐하면, 마술을 연구하는 것에서라면 학원은 최고의 환경이니까. 마술사로서 최고의 환경이 모여 있는데, 일부러 아무 것도 없는 초야에 내려간다는 바보 같은 행동은 일어나지 않아. 마술사는 마술을 공부하는 것이 최우선사항. 공부한 지식과 힘을 사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아. 그럴 시간이 있으면, 더욱 높은 단계의 신비를 공부하려고 하겠지. 하지만 아자카는 처음부터 목적이 우리들과는 다르니까, 학원에 들어가도 그쪽의 독에 물드는 일은 없어. 높은 곳을 지향하고 싶다면 한번쯤은 발을 들여놓아야 할 거야」 아자카는 곤란한 듯 눈썹을 늘어뜨린다. 아무래도 본인에게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여동생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 유학하는 것은 반대였기 때문에, 아자카의 망설임은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하나 묻겠는데. 그 학원 안에서도 비밀은 지켜지고 있단 소리야?」 그때, 갑자기 소파 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그곳에는 아까부터 말없이 앉아있던 시키가 있다. 그녀는 흥미 없는 대화에는 일절 참가하지 않는 성격이라 지금까지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뿐이었는데. 「───그렇지. 학원 안에서도 마술사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아. 이웃한 자들이 무엇을 연구하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무엇을 얻었는지도 수수께끼야. 마술사가 자기의 성과를 밝히는 것은 죽기 전에 자손에게 계승할 때 뿐이니까」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공부하는 주제에, 자신을 위해서는 힘을 쓰지 않아. 그런 존재방식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토우코. 목적이 공부하는 것이라면, 그 과정도 공부하는 것인가. 처음과 끝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것은 제로와 마찬가지잖아」 ……변함없이, 시키는 가늘고 투명한 여성의 목소리에, 남자 같은 말투로 이야기한다. 시키의 신랄한 추궁에, 토우코씨는 희미하게 쓴웃음을 짓는 듯 보였다. 「목적은 있어. 하지만, 네 말대로기도 하군. 마술사는 제로를 구하고 있는 거다. 처음부터 없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마술사들의 최종적인 목적은 말야, "근원의 소용돌이"에 도달하는 일이야. 아카식 레코드라고도 불리는데, 소용돌이의 가장자리에 그러한 기능이 붙어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 근원의 소용돌이라는 것은 말이지, 아마도 모든 것의 원인이야. 이것에서 모든 현상이 흘러나오고 있어. 원인을 알면 끝도 저절로 산출되지. 있는 그대로 말하면 "궁극의 지식"인가. 하, 궁극 따위는 기준을 만들어서 결국 유한한 것으로 만들고 있으니, 이런 호칭도 바르지는 않아. 하지만 제일 알기 쉬우니까 그렇게 부르고 있는 거야. 원래부터 세계에 유포되어있는 여러 가지 마술계통은, 이 소용돌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가느다란 하나의 강에 지나지 않아. 각국의 유사한 전통과 신화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야. 본래의 원인은 동일한 것으로, 세부를 각색하는 것은 "강(川)"을 이해한 자의 민족성이지. 점성술(astrology), 연금술(alchemy), 카발라(kabbalah), 신선도(神仙道), 룬(rune), 헤아리면 끝이 없는 연구자들. 그들은 근본이 같기 때문에, 결국 같은 최종목적을 가슴에 품고 있어. 마술이라는 근원의 소용돌이에서 갈라진 말단의 흐름에 섣불리 접촉해버렸던 그들은, 그 끝────정점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버렸으니까. 마술사의 최종적인 목적은 진리로의 도달밖에 없어. 인간으로서 태어난 의미를 안다, 따위의 속물적인 욕구도 없어. 그저 순수하게, 진리라는 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해. 그런 것들의 집합체가 그들이야. 자기(自己)를 투명하게 하고, 자아(自我)만을 가진 자들───영원히 보답 받을 수 없는 군체. 세계는 이것을 마술사라고 부르지」 담담하게 말하는 토우코씨의 눈빛은 지금까지의 어떤 때보다도 날카롭다. 호박색의 눈동자가, 불이 붙은 듯이 흔들리고 있다. ……그렇지만, 미안하게도 나에게는 그 말의 절반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한 것은 한가지뿐이어서, 우선 그것을 물어보기로 한다. 「저기, 괜찮은가요? 목적이 있으니까 공부하는 것에 의미가 있겠죠. 보답 받을 수 없다는 것은……그건, 그런가. 아직 아무도 다다르지 않았다는 거군요?」 「다다른 자는 있어. 간 사람이 있으니까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던 거야. 현재까지 남아있는 마법이란 것도, 다다랐던 자들이 남긴 것이지. 하지만───저쪽 편에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지. 과거,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마술사들은 도달한 순간 소실되었어. 저쪽 편은 그렇게 멋진 세계인걸까, 아니면 가버리면 돌아올 수 없는 세계인걸까. 그것은 알 수 없어. 가보지 않으면 말야. 하지만, 그곳에 다다르는 것은, 한 세대 정도의 연구로는 불가능해. 마술사가 피를 축적해서 연구를 자손에게 남기는 것은 자기의 마력을 증대시키는 것이 목적이야. 그것은 언젠가 근원의 소용돌이에 도달할 수 있는 자손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아. 마술사는 말이지, 이미 몇 세대나 근원의 소용돌이를 꿈꾸면서 죽고, 자손에게 연구를 계승하고, 그 자손 역시 또 자손에게 계승하지. 끝이 없는 거야. 그들은 영구히 보답 받지 못해. 반대로 도달할 수 있는 가계(家系)가 나타났다고 해도, 아마 불가능하겠지. ───방해자가 있으니까 말이야」 미워하는 듯한 어조와는 반대로, 토우코씨는 킥, 하고 마른 웃음을 흘렸다. 그 방해자라는 사람이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몸짓으로. 「뭐어, 어느 쪽이라고 해도 무리한 얘기야. 현대의 마술사에게는 소용돌이에 도달해서 새로운 질서───새로운 마술계통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이걸로 긴 이야기는 끝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토우코씨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나와 아자카는 그것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지만, 시키 만이 거리낌 없이 토우코씨의 말의 모순을 추궁했다. 「이상한 놈들이군. 무리란 걸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계속하는 거야, 너희들은」 「그렇네. 마술사를 자칭하는 무리는, 태반이 "불가능"이란 혼돈충동을 가지고 태어났던가, 혹은 포기할 줄 모르는 바보들뿐인 거겠지」 맥이 풀린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토우코씨는 대답한다. 그 행동에, 뭐야 알고 있잖아, 하면서 시키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 이야기가 끝나고 한 시간 정도 흐르자, 사무소는 평소대로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시각도 오후3시가 되려고 하고 있어서, 한잔씩 마시자는 듯, 사람 수대로의 커피를 타러간다. 아자카 것만은 일본차로 타서 잔을 돌리고, 자신의 자리에 다다랐다. 일도 전체의 목표가 정해진 것 같았고, 이 정도라면 이번 달 급료는 걱정 없겠구나, 하고 안심하면서 커피를 입에 댄다. 조용한 사무소에, 음료를 마시는 소리가 난다. 그런 평온한 정적을 깨듯이, 아자카는 시키를 향해 엄청난 말을 했다. 「───저기. 시키는 남자죠?」 ……컵을 떨어뜨릴 뻔 할 정도로, 지옥 같은 질문이었다. 「──────」 그것은 시키도 마찬가지로, 손에든 커피 컵에서 입술을 떼고, 불유쾌한 듯, 하지만 고민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해버렸다. 우리 바보여동생에게 할 반론은 지금으로서는 없다. 그것을 승기(勝機)라고 본 걸까, 아자카는 말을 계속한다.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그런가보네. 당신 틀림없는 남자인거에요, 시키」 「아자카!」 실수다, 참지 못하고 끼어들어버렸다. 이런 질문은 무시하는 것이 제일이지만, 일이 일인 만큼 나도 모르게 반응해 버린 것이다. 기세 좋게 일어나버리긴 했지만, 재치 있는 대사도 떠오르지 않아서 나는 말없이 의자에 도로 앉는다. ……어쩐지 패잔병 같은 기분이었다. 「시시한 일에 반응 하지 마, 너」 극히 무표정하게, 시키는 그렇게 말한다. 한쪽 손으로 이마를 누르고 있는 것을 보면, 화를 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아주 중요한 얘기야, 이거」 겉모습은 어디까지나 쿨─한 시키와 마찬가지로, 아자카도 어디까지 쿨─하게 반응한다. 책상 위에 양 팔꿈치를 대고 손가락을 마주 끼고 있는 모습은, 회의를 진행하는 반장 같았다. 「중요한 얘기, 인가. 내가 남자던지 여자던지 큰 차이 없잖아. 아자카에게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아니면 뭔가, 너 나한테 싸움이라도 걸고 있는 거냐?」 「그런 건, 처음에 만났을 때부터 정해졌잖아요?」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보지 않고 있었지만, 서로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뭐가 정해졌는지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다. 「……아자카, 어째서 지금 와서 이런 말을 반복하면 안 되는지 신기하지만, 마지막이 되길 빌면서 다시 한번 말할게. 저기, 시키는 여자야. 확실히」 우선, 그것만 말했다. 아자카의 무례를 감싸면서, 시키의 상한 기분을 진정시킬 회심의 한마디는, 어째서인지 두 사람의 신경을 거슬러 버린 것 같았다. 「그런 거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는 가만히 있어요」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너는. 「제가 듣고 싶은 것은 육체적인 면의 성별이 아니에요. 정신적인 면의 성별이 어느 쪽인지 명확히 하고 싶은 것 뿐. 뭐어 보아온 바로는, 시키는 남자 같아 보이지만」 보이지만, 의 ‘만’부분을 강하게 발음하면서 아자카는 시키를 흘겨본다. 시키는 더욱더 불쾌해져간다. 「몸이 여자라면 성별이 어느 쪽이라도 변하지 않잖아. 내가 남자라면 어쩌겠다는 거야 너」 「아 맞다, 레이엔의 친구라도 소개시켜줄까요?」 ────아. 이미 비꼬는 것이 아니라, 도전장 같아진 아자카의 대사를 듣고서 나는 간신히 숨을 삼켰다. 아자카 녀석, 아직 2년 전 일에 얽매여있는 건가. 고교1학년 때의 정월. 나는 시키와 하쯔모데에 갔다가 돌아올 때, 시키를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마침 지방에서 겨울방학 사이에 돌아와 있던 아자카는, 시키와 대면하고서 가벼운 쇼크 상태에 빠졌다. 그도 당연한 것이, 그때의 시키는 ‘시키(織)’ 라는 또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금의 시키보다 활기차고 소년의 그것이었던 시키의 행동과 말투에, 아자카는 꼬박 하룻동안 드러누워 버렸다. 라고는 해도, 지금 것은 말이 지나치다. 시키에게 얻어맞아도 할말이 없다. 「아자카, 너말야」 다시 일어서서 아자카를 노려보는 것과, 시키가 소파에서 일어나는 것은 동시였다. 「거절이다. 레이엔의 여자 중에는 제대로 된 녀석이 없으니까」 시키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말하고는, 그대로 사무소에서 나갔다. 감색의 기모노가, 소리를 내면서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그 뒤를 쫓을까하고 망설였지만, 그것은 오히려 시키의 불쾌함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될 것이 틀림없다.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기적에 감사하면서 의자에 앉고,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유감, 결국 얼버무려졌네」 칫, 하고 혀를 차면서 아자카는 자세를 풀었다. 저 녀석도 지금까지 임전태세였던 듯,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어째서 아자카는 시키와 말할 때만 태도가 휙하고 바뀌는 걸까? 이건 이야기를 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자카, 지금 건 뭐야?」 「뭐냐니, 시키와 오라버니가 확실히 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잖아요. 아니면 생각한 적이 없나요? 료우기 시키가 여자로서 오라버니와 사귀고 있는 지, 남자인데 오라버니와 사귀고 있는지」 말투는 그야말로 똑소리가 나고 있었지만, 아자카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 언밸런스 덕분에, 여동생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알아버렸다. 「아자카, 그런 것을 바보의 억측이라고 하는 거야. 시키가 남자든 여자든, 우리들이 화제로 할 일이 아니라구. 무엇보다 시키는, 처음부터 여자였으니까, 생각이 남자라도 별로 큰 차이가 없잖아」 아자카는 팟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본다. 「───그래요. 오라버니는 여자라면 다른 문제는 별 것 아니라는 거군요. 곧, 뒤집으면 동성끼리의 교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대답을 듣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여기에 성전환을 해서 남자가 된 여자와, 성전환 해서 여자가 된 남자가 있다고 해요. 이 두 사람이 정말로 오빠를 사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빠가 상대를 한다면 어느 쪽? 겉보기에는 여성이지만 마음은 계속 남자였던 쪽과, 겉보기에는 남자지만 마음은 계속 여자였던 쪽. 자아, 대답해 봐요」 ……아자카의 질문은, 어렵다. 잘 생각하면 할수록, 고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확실히, 쉽게 생각한다면 원래 여성으로서 태어났던 쪽이겠지만, 성별이 바뀌어버렸다면, 성별이 여성인 사람을 고른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은 남자인 상태니까, 곧 남자로서 남성인 코쿠토 미키야를 좋아하는 것이 된다. 연애에 성별은 상관없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가 득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겉으로 보이는 성별만으로 남녀를 구분하고 있다는 소리가 되는데, 어쩐지 자신이 아주 잔혹하게 느껴져 버린다. 게다가 원래부터, 동성끼리 짝을 짓는 것이 안 되니까, 남자가 남자로서 코쿠토 미키야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어디까지나 여자로서 좋아하는 전자(前者)가되겠지만, 그 사람의 성별은 남성으로─────아아, 어째서 이런 일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아냐, 잠깐. 이거, 어쩐지 전제부터 모순 되어 있는 것 아냐? 동성끼리의 연애를 인정하지 않은 주제에, 어느 쪽을 골라도 동성(同性)이라는 함정이 있으니까. 그것을 깨닫고서 얼굴을 들자, 토우코씨만이 유쾌한 듯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지저분해, 아자카, 이건 『동시에 진실과 거짓이 성립하고 있는 명제』 잖아!」 「예에, 그래요. 유명한 에피메니데스의 패러독스죠」 「그래, 코쿠토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모순의 추구야. 정말, 너희들은 심심하게 만들지 않는다니까. 코쿠토 집안은 전부 이런 거냐, 아자카?」 아직도 웃고 있는 토우코씨와는 반대로, 아자카는 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 ……그런가, 이 녀석은 이 녀석 나름대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시키가 명확히 하지 않은 만큼, 하다못해 자신만이라도 확실히 마음을 말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아, 확실히 아자카가 말하고 싶은 것도 알겠어. 단, 나는 시키가 어느 쪽이라고 해도 관계없다고 생각해」 부끄러움을 감추려 볼을 긁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아자카는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상대가, '시키'라도 좋다고 하는거에요?」 「…………응. 뭐어, 아마도」 갑자기 뭔가 두꺼운 것이 내 얼굴에 작렬했다. 「불결해────!」 다다다, 하고 달려가는 소리. 아까까지 아자카가 읽고 있던 책을 얼굴에 맞은 거다, 라고 알아차리면서 의식이 돌아왔을 무렵에는, 사무실에는 나와 토우코씨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시키는 아자카에게 화를 내며 퇴장했고, 아자카는 지금 막 밖으로 뛰어나가서 이것도 퇴장. 나는 지끈거리는 얼굴에 손을 대면서, 혼자서 계속 웃고 있는 토우코씨를 노려봤던 것이었다. ◇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나서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시키도 아자카도 돌아오지 않은 채, 나는 퇴근전의 약속이 된 마지막 커피를 두 사람 분 끓이고 이제부터 시키의 맨션에 들릴까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아, 그렇지 코쿠토. 미안하지만 잔업을 맡겨도 될까」 커피를 마시던 토우코씨의 한마디에 의해 그런 고민도 사라져버린다. 「잔업이란 건, 다른 건으로 일이라도 받으신 거에요?」 「아니, 그쪽 일이 아냐. 돈은 되지 않는 일이야. 오늘 아침에 그것 때문에 외출했었는데 말이지, 친하게 지내고 있는 형사에게서 재미있는 말을 들었어. 코쿠토, 카야미하마(茅見浜)의 코가와(小川) 맨션을 알고 있어?」 「카야미하마라면, 저 매립지에 세워진 맨션지대군요. 근 미래 모델구역이라고 하는」 「아아, 여기서 전철로 30분 정도일까. 도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사치스럽게 토지를 사용하고 있는 거리야. 그곳에 말야, 옛날 건축에 관계했던 맨션이 있는데, 묘한 사건이 일어난 것 같아. 어젯밤 오후 10시경, 20대 전반의 회사원이 길가에서 습격당한 것 같아. 피해자는 여자였으니까, 폭행을 노린 범죄자겠지. 근데 말야, 불운하게도 피해자는 칼에 찔려버렸어. 범인은 그대로 도망쳐버렸지만, 피해자는 그렇게 못했지. 복부를 찔린 피해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 그리고, 현장은 예의 맨션지대야. 주위에는 가게도 없고, 밤 10시여서 이미 행인도 없어. 그녀는 피를 흩뿌리면서 제일 가까운 맨션에 들어가서 도움을 청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 맨션의 1층과 2층은 사용되지 않았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3층이었으니까. 엘리베이터로 3층까지 올라간 시점에서 체력의 한계였어. 그녀는 거기서 충분할 정도로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는데도, 맨션에서 사는 그 누구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오후 11시에 그녀는 사망 했어」 ……비극적인 이야기다. 현대의 맨션은 그것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웃과의 만남이 없어진다. 오히려 무관심한 것이 예의바른 것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도회지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것과 비슷한 얘기를, 친구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밤중에 아래층에서 비명이 반복되는데도 누구하나 도와주러 가지 않았고, 아침이 되어보니 그 집의 애들이 부모에 의해 살해되어 있었다고 한다. 다른 이웃들은 듣고 있었는데도 장난이려니 생각하고 무시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다음이야. 피해자의 도움을 청하는 소리는 이웃 맨션에서도 들릴 정도였다고 해. 비명이 아니라,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목소리라구. 이웃 맨션사람들은 그렇게나 큰 소리니까 곧 그 맨션사람들이 달려 갈 거라고 생각하고, 무시 했대」 「그런───그 맨션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가요?」 「아아, 그렇게 증언하고 있어. 누구하나 예외 없이 평소대로의 밤이었다고 했대. 뭐어 이것뿐이라면 그렇게 이상한 얘기는 아닐텐데, 이 맨션에는 이전에 또 하나, 이상한 사건이 있었던 것 같아. 그것은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상사태가 두 번 계속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면서 형사씨에게 상담을 받았단 거야」 「……다시 말해, 저에게 그곳을 조사해라, 라는 말씀이시군요, 소장님은」 「아니, 현지에는 둘이 가자. 코쿠토는 부동산을 알아봐서 될 수 있는 한 빠른 시일내에 거주인들의 리스트업과 과거에 어디에 살았었는지를 조사해주면 돼.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니까 천천히 해도 된다구. 마감은 12월이야」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커피를 입으로 옮긴다. ……어쩐지, 또 이상한 사건에 발을 들여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말야, 코쿠토」 「예?」 「너, 정말로 시키가 남자라도 상관 없는 거야?」 ……이 말을 하는 상대가 가쿠토라면 나는 참지 못하고 입에 머금은 커피를 토해냈겠지. 「……그럴리 없잖아요. 당연히 시키는 좋아하지만, 욕구를 말하는 거라면 여자인편이, 좋아요」 「뭐야, 재미없게. 그러면 문제 없잖아」 김샜어, 라며 토우코씨는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커피 컵에 입을 댄다. ………그거라면, 문제, 없다? 「잠깐만요. 문제없다니, 어떤 거 말이에요? 그 말은, 곧────」 「그래. 시키는 틀림없이 정신적인 면으로도 여자야. 애초부터 양성인 ‘시키(織)’가 없으니까. 남자일 리가 없잖아?」 그것은───그렇지만, 그러면 그 말투는 뭘까. 예전의 시키는 여자의 말투를 쓰고 있지 않았던가. 「저기 말야아. 처음부터 남성을 양성, 여성을 음성이라고 전제한 것은 시키잖아? 그렇다면 말은 간단해. 이 음양의 생각은 태극도(太極圖)에서 나온 거야. 한국의 국기를 알고 있겠지. 몰라? 원모양과 닮은 건데」 원모양, 이라고 하면……그, 원형 가운데 파도 같은 선이 그어져 원을 양분하고 있는 그림 말인가. 그것은 반월이 아니라 2개의 혼령이 서로의 꽁무니를 물려고 하는 것처럼 이지러진 반월이다. 문자로 하자면 「の」라는 문자가 그나마 뉘앙스가 비슷하다. 「태극도라면 절반이 백, 절반이 흑이 되지. 그리고 그 어느 쪽이나 반대색의 작은 점이 찍혀있어. 백색 반월에는 검은 점이, 흑색 반월에는 하얀 점이, 말이지. 알겠지. 검은 부분이 음성, 곧 여자야. 이 그림은 서로로 뒤얽히면서 상극(相克)하는 그림, 흑과 백의 나선인거야」 「상극하는───나선?」 그 말을, 나는 이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래. 음과 양, 빛과 어둠, 옳고 그름이라고 해도 좋아. 근원에 있는 하나의 물체에서 두 개로 나뉘어 진 상태를 가리키고 있지. 이것을 말야, 음양도에서는 양의(兩儀 : 료우기)라고 해」 「───료우기(兩儀)라면, 그건」 「그래, 시키의 성이야. 그것이 2중인격인 것은 아득한 과거부터 정해진 사실이겠지. 료우기 가문이기 때문에 2중 인격이 된 것일까. 아니면 얼마 안 있어 시키가 태어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료우기란 성으로 한 것일까. 아마도 후자일거야. 료우기가(家)는 아사가미나 후죠우와 비슷한 오래된 가문 중의 하나야. 그들은 인간이상의 인간을 만들려고 하는 일족으로, 그들 각자의 방법과 사상(思想)으로 후계자를 낳았어. 자신들의 집안의 "유산"을 계승시키기 위해서 말이지. 그 중에서도 료우기 가문은 흥미로워. 그들은, 초상적(超常的)인 능력은 결국 문명사회로부터 말살되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보통의 인간으로서 생활할 수 있는 초능력을 생각했어. ──저기, 코쿠토. 프로페셔널이라고 불리는 인간은 어째서 한 가지 분야밖에 정점에 설 수 없는 거지?」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오늘은 정말로 긴 하루로, 들어오는 정보가 나의 한계를 넘고 있다. 게다가───시키가,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다니, 어째서──── 「그것은 아무리 우수한 육체 · 소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일 밖에 극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야. 높은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그 이외의 산은 오를 수 없게 돼. 료우기가(家)는 그것을 해결했어. 하나의 육체에 무수한 인격을 부여하는 것에 의해서. PC와 마찬가지야. 시키라는 하드웨어에 수십수백이라는 소프트를 넣으면, 온갖 분야의 프로페셔널이 탄생하지. 그러니까 그것의 이름은 시키(式)인거야. 시키가미(式神)의 시키. 수식의 식(式). 정해진 것만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프로그램. 무수한 인격을 가진, 도덕관념도 상식도 인격 채로 재 기록 할 수 있는 텅 비어있는 인형───」 시키는, 그것을 알고 있던 것일까. ……아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들과의 관계를 완강히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 자신이 이상한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인지하고서, 그저 조용히 살아가려고 하고 있던 것일까───. 「아까 하던 태극도 얘기 말인데. 혼돈인 「 」에서 두 개로 나뉜 것이 양의(兩儀). 그곳에서 더욱 안정되기 위해서, 종별을 늘리기 위해서 사상(四象)으로 나뉘고, 더욱 복잡화하기 위해서 팔괘(八卦)라는 2진법으로 나뉘어가. 이것도 시키의 기능을 나타내고 있군. 하지만, 이것은 이제 없어. 완벽한 프로그램은 버그가 생겨버렸어. 지금의 시키는 뭐어 다소의 문제는 있겠지만 확실히 자아(自我)를 가진 보통의 인간이야」 짤깍, 하고 라이터의 불이 켜진다. 토우코씨의 말에, 나는 에? 하고 되묻는다. 「왜 그런 얼굴을 하는 거야. 망가뜨린 것은 너잖아. 정신이상자는 말야, 자신을 정신이상자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파멸하지 않아. 시키도 예전에는 그랬었어. 하지만 코쿠토 미키야라는 인간이 깨닫게 해버린거야. 료우기 시키라는 존재방식은 이상(異常)이다 라고. 아아──그렇지. 구했다고 하자면, 너는 벌써 2년이나 전에 시키를 구했던 것이 아닐까?」 자아, 하며 토우코씨는 담배를 내밀어왔다.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서 불을 붙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운 담배는, 아주 애매한 맛이었다. 「앗차, 논점이 빗나갔네. 료우기에 관해서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요즘에 무엇인가에 재촉당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이 가벼워져. 어쩌면 내일쯤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코쿠토?」 「──무섭네요. 자동차에 주의하란 소리로 알아듣지요」 「아아, 그러는 것이 좋아. 그리고 말야, 태극도에 대한 얘기야. 양의(兩儀)에는 각자에 점이 있다고 말했지? 백 속의 흑, 흑 속의 백이야. 이것을 양속의 음, 음속의 양이라고 하지. 이것은 곧, 남자 안에 있는 여성적인 부분과, 여자 안에 있는 남성적인 부분을 가리키고 있어. 남자 말투를 쓰고 있으니까 양성, 이라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야. 어떤 인간이라도 이성(異性)적인 기호는 가지고 있어. 여장취미란 것은 그 극단적인 것이지. 지금의 시키는 음성의 시키임에 틀림없어. 남자말투인 것은 죽어버린 '시키'를 위해서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는 대상행위(代償行爲). 하다못해 너에게는 '시키'를 기억시키고 싶은 거겠지. 크크큭, 정말 귀엽지 않아?」 「───」 ……아아, 듣고 보니 그 말 대로다. 시키는 남자말투를 쓰고 있지만, 2년 전 같이 남자의 그것 같은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몸짓도, 행동도, 여자의 것이었으니까. '시키'라고하는 반신을 잃어버린 그녀는, 지금도 불안정하고 약한 상태인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나는 가슴이 조여 들어왔다. 2년간의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이전보다 견실하게 지내고 있어서,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독한 상태고, 지금도 항상 다칠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던 그 시절과 바뀌지 않았다. 나도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시키를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2년 전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지만. 만약 또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이번이야말로 그녀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7 (모순나선, 3) 다음날, 눈을 뜨자 시각은 오전 9시를 넘어있었다. 완전한 지각이다. 수화물이라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을 들고 사무소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토우코와 시키란 조합이었다. 「죄송합니다, 늦었어요」 들고 온 검도의 죽도주머니 같은 짐을 벽에 세우고, 나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마라톤을 끝내고 난 뒤처럼, 크게 심호흡을 하며 호흡을 진정시킨다. 길이가 1미터도 안되는 짐은, 쇳덩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무거워서, 집을 나올 때는 그렇게 무겁지 않았는데, 100미터정도 걷자, 이미 팔이 저려와 버렸다. 크게 숨을 고르면서 양어깨의 근육을 스스로 주무르고 있자, 시키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야아. 안녕 시키. 날씨 좋지?」 「응. 한동안 맑을 거라는군」 오늘은 무언가 용무라도 있는지, 시키는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소파에 던져져있는 붉은 가죽점퍼와의 조합은, 백색과 적색의 깨끗하고 선명한 배색이 되겠지. 보통은 모양이 들어간 띠를 좋아하는데, 역시 오늘만은 낙엽 같은 모양이 들어간 띠를 하고 있다. 언뜻 보니, 기모노의 옷깃에도 몇 개의 붉은 단풍잎이 흩어져있다. 「미키야. 그거, 누구 짓이야」 척, 하고 하얀 손가락을 뻗으면서 시키는 말한다. 그녀의 손끝은, 벽에 세워진 짐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아, 그건 아키타카씨에게 부탁받은 물건. 시키, 어제 밤에 외출 나갔었지? 돌아오는 길에 들리니까 시키가 집을 비웠고, 현관 앞에 아키타카씨가 기다리고 있었어. 오래간만이라서 한 시간정도 이야기에 빠져있었는데, 시키는 돌아오지 않아서 서로 자리를 떠났지. 그때 떠맡았던 것이 그거야. 메이(銘)가 없다던가, 카네사다(兼定) 같데 진위가 확실치 않다던가 뭐라던가」 「카네사다라니, 쿠지(九字)를 넣은 카네사다!?」 웬일로 눈을 빛내면서, 시키는 벽에 세워진 짐을 손에 든다. 나에게도 나름대로 무거웠던 물건을, 시키는 한 손으로 들고서 그것을 묶은 끈을 풀기 시작했다. 바나나껍질을 벗기듯이, 훌쩍, 포장의 머리부분 천이 풀린다. 얼마 안 있어, 나타난 것은, 가늘고 긴 금속판이었다. 아니, 금속이라기보다 녹슨 쇠라던가, 구리 같은 질감을 띄고 있다. 짐을 싼 천의 머리부분 밖에 풀지 않아서 전체상의 10분의 1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 것이 막대기 같은 물건이란 것은 분명하다. 죽도주머니 속의 쇠는, 다시 한번 솜 같은 것으로 싸여있다. 쇠는 가늘고 긴 자를 크게 만든 것 같은 철판으로, 작은 구멍이 2개 뚫려있었다. 녹슨 표면에는 한자가 새겨져있다. ……뭘까, 저건. 「아키타카 녀석, 이런 것을 가지고와서……」 곤란하잖아 라고 시키는 말했지만 눈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웬만한 일로는 미소조차 띄우지 않는 시키가, 정체불명의 철판을 손에 들고는 쿡쿡하고 웃고 있는 것은, 말로 하기 힘든 불쾌감이 느껴졌다. 「시키, 그건 뭐야?」 시키가 너무 이상했기에 물어본다. 그러자, 시키는 빙글 하고 돌아보면서 씨익 하고 웃었다. 「볼래? 좀 만나 뵙기 힘든 칼이야, 이 놈은」 기뻐하면서, 죽도주머니에서 내용물을 꺼내려고 하는 시키. 그것을 지금까지 묵묵히 있던 토우코씨가 제지한다. 「시키, 그건 고도(古刀)지? 500년 이상 된 칼 따위를 이곳에서 꺼내지마. 결계가 통째로 깨져버리면 어쩔 거야」 그 말을 듣자, 읏, 하고 시키는 움직임을 멈춘다. 토우코씨는 칼이라고 하지만, 저 스틸자를 크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도무지 물건 같은 걸 자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철판이 칼인걸까……? 「덤으로 쿠지(九字)까지 들어가 있어. 병투에 임하는 자는 모두 진열 앞에 있으라(兵鬪ニ臨ム者ハ皆陣烈前ニ在リ) 인가. 미안하지만 나 정도의 결계로는 100년 클래스의 명도에 버텨낼 수 없어. 그걸 여기서 꺼내 보라구, 아래층 물건이 흘러나올걸」 전에 없이 위기감이 느껴지는 토우코씨의 말에, 시키는 놀라면서 죽도주머니를 다시 포장하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 내가 자리를 비우고 있는 사이에 여러 가지 수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는 진짜인 것 같다. 「───그렇군, 검신(檢身)뿐인 일본도를 미키야에게 보여줘 봤자야. 자루(柄)를 준비하지 않다니, 아키타카도 얼빵하구만」 시키는 건성으로 그런 말을 한다. ……그녀가 10살 무렵부터 시중을 들어준 아키타카씨 보고 얼빵하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 아키타카씨는 이제 막 30대가 된 것 뿐인데다가, 그 유능함은 날이 갈수록 원숙해지고 있는데. 시키는 아쉬운 듯이 짐을 소파에 누인다. ……이것은 나중에 안 것인데, 이 때의 칼에는 자루가 붙어있지 않았다. 시대극에서 봤던 일본도는 이미 자루가 있는 상태였고, 검신(檢身)뿐인 칼은 커터 날처럼 장식이 없다. 뚫려있던 두 개의 구멍은, 그곳을 통해서 자루를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고도(古刀)라는 것은 헤이안(平安)중기부터 게이치오(慶長)까지의 칼을 말하며, 틀림없는 중요문화재다. 「알겠어? 시키. 역사가 축적된 무기는 그것만으로도 마술에 대항하는 신비가 되는 거야. 이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물건을 이 빌딩에 들이지 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 못 진다구」 여차하면 국보가 될 수도 있는 소중한 물건을 그렇게 취급하면서, 토우코씨는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코쿠토. 오늘 아침의 지각의 이유는 뭐지?」 「죄송합니다, 조사에 애를 먹어버려서요. 일단, 예의 코가와 맨션의 거주인 들의 리스트와 웬만한 정보는 모아왔는데요」 ───그래, 어젯밤부터 예의 맨션을 조사하기 시작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밤을 새고 있었던 것이 실수였다. 최근에는 인터넷이 보급되어서, 밤낮에 상관없이 조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여지껏 해오던 것처럼 밤엔 모두 자고 있으니 쉬자, 라는 구분이 없다. 결과, 아키미 형에게 묻거나, 넷서핑으로 자세한 이야기를 수집, 선별하다보니 일이 커져 버렸던 것이다. 「……12월까지 괜찮다고 말했을 텐데. 정말 코쿠토는 사소한 일에 얽매여 끙끙댄다니까. 좋아, 듣도록 하지」 「네. 코가와 맨션은 쯔미하마 일원의 맨션지대 안에서, 그중에서도 제일 고급지향의 건물이에요. 모양도 특이하니까, 나중에 설계도를 봐주세요. 설계기간은 96년부터 98년. 공사는 3사(社)합동이었어요. 토우코씨는 동동(東棟)의 로비를 맡으셨죠?. 일단 건설에 관계한 작업원 들의 이름도 리스트 업 해 뒀어요. 자세한 건설 스케쥴도 있으니까, 보시고 싶으시다면 여기」 갓 프린팅 한 자료를 가방에서 꺼내어 토우코씨의 책상위에 늘어놓는다. 어째서인지, 토우코씨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보면 아시겠지만, 이 맨션이란 것이 두 개의 맨션이 맞닿아 있는 모습이에요. 예쁜 반달모양을 한 10층짜리 건물이 두 개, 마주보듯 세워진 거죠. 항공사진으로 보면 놀랄거에요. 정말로 원형을 하고 있으니까요. 원래는 사원기숙사를 만들 생각이어서, 1층과 2층은 레크리에이션용의 시설이 되어있어요. 현재는 사용되지 않아요. 불경기라서, 그런 쓸데없는 전력은 쓸 수 없겠죠. 각 동은 10층 건물로, 방의 수는 각층에 다섯. 동서 합쳐서 10개. 방은 3LDK의 서양풍과 일본풍의 절충으로, 수도관의 배치가 비교적 조잡해요. 10년 정도 있으면 아래층으로 물이 새버리겠죠, 예에. 주차장은 맨션의 부지에 40대, 지하에 또 40대. 주거인의 숫자에 비해서 부족하지 않지만, 지금상태로는 부지쪽 만으로도 충분해요. 원래 사원기숙사로 쓰려고 했던 회사 자체가 축소되어 버리고, 중간에 오너가 바뀌었어요. 새로운 오너의 방침으로 사원 기숙사에서 일반용으로 전환되었다고. 주거인의 입주는 98년, 금년부터 에요. 3월까지 모집했던 것 같은데, 딱 절반의 입주자 밖에 모이지 않았어요. 서동(西棟)은 가까운 시일에 다시 짓는다는 말도 나오고 있구요. 자, 설계도의 카피본이에요」 찰팍, 하고 다음 자료를 책상에 내려놓는다. 토우코씨는 더욱 언짢은 표정이 되어서 얼굴을 찡그려버렸다. 「맨션은 동동(東棟)과 서동(西棟)으로 나뉘어 있지만, 1층의 로비는 공통이죠. 엘리베이터도 하나뿐이에요. 이렇게나 넓은데도, 생각 없이 대충 만들었단 소리에요, 이건. 기능성보단 외관을 중시한 것이겠지만. 엘리베이터도, 초기에는 고장이 잦았던 것 같아요. 관계자가 그런 말을 흘리더라구요, 5월경까지 엘리베이터를 사용 하지 않았다니까. 방의 수는 각 동에 다섯씩, 6시 방향부터 오른쪽으로 돌면서, 1호실, 2호실, 하고 구별되죠. 동동(東棟)은 1호실부터 5호실까지. 6호실부터 10호실까지는 서동이 돼요. 옥상은 진입금지구요. 3층의 거주인은 소노다(園田), 빈방, 와타나베(渡邊), 빈방, 이쯔키(樹), 다케모토(竹本), 빈방, 하이도(杯門), 빈방, 토엔지(桃園寺). 4층의 거주인은 빈방, 빈방, 사사타니(笹谷), 모치쯔키(望月), 아라타니(新谷), 빈방, 빈방, 쯔지노미야, 카미야마(上山), 엔죠우. 5층의 거주인은 나루시마(奈留島), 덴노지(天王寺), 빈방, 빈방, 시라즈미(白純), 우치토(內藤), 에노모토, 빈방, 빈방, 이누가미(戌神). 6층의─────」 「됐어, 알았어. 네가 고삐가 풀리면 얼마만큼 폭주하는지, 잘 알았어」 이쪽이 리스트를 읽어가는 것을, 토우코씨는 한숨섞인 목소리로 제지했다. 「어디, 리스트를 보여 봐. 가족구성부터 일하는 회사, 예전 주소까지 망라되어있어도 놀라지 않을 테니까」 「그렇네요, 저도 소리 내서 읽는 것은 피곤하죠」 그렇게 말하면서 리스트를 넘기자, 토우코씨는 와아, 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비명을 질렀다. 「젠장, 정말로 조사해뒀을 줄은. 코쿠토 진짜로 탐정이라도 해보지 않겠어? 아주 인기가 있을 거야, 분명」 「안 될거에요. 이번에도 절반정도의 거주인 밖에 조사할 수 없었어요」 그래, 아쉽다고 하자면 그것이 유감이었다. 결국 50세대정도의 입주자중에서, 연고를 찾은 것은 반수인 30뿐이다. 다른 것은 입주자의 이름과 가족구성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다. 토우코씨는 말없이 리스트를 넘기고 있다. 문득 시키 쪽을 돌아보니, 그녀는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노려보듯이 눈썹을 찡그린 그 얼굴은, 오싹함이 있었지만, 무섭다기 보단 아름답다. 「토우코, 그 리스트 잠깐만」 시키는 토우코의 뒤로 걸어가서, 리스트를 받는다. 「……그렇지. 이런 별난 이름, 또 있을 리가 없어」 칫, 하고 시키는 혀를 찬다. 「먼저 돌아갈게. 토우코, 타고갈 만한 것 있어?」 「차고 구석에 200짜리 바이크가 남아있는데」 「너 말야, 기모노 차림으로 바이크에 올라타라는 소리야?」 「쯔나기가 로커에 들어있어. 내 것이라서 클지도 모르겠지만, 기모노 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부탁인데 하레이는 꺼내지마. 사이드카의 연결부 마무리가 아직 안 끝났어」 아아, 하고 끄덕이는 시키는, 가죽점퍼를 걸치고, 죽도주머니에 싸인 일본도를 손에 들고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하얀 기모노가, 뱀처럼 불길한 마찰음을 낸다. 「────시키!」 ……뭘까. 뭔가, 말로하기 힘든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시키를 불러 세웠다. 시키는 가죽점퍼의 등을 보인 채, 고개만을 돌아본다. 마치 생각도 없는. 나쁜 장난의 주의를 받아 이상하게 생각하는 꼬마 같은, 소박한 의문을 띈 눈동자. 「? 뭐야 미키야. 나, 뭔가 나쁜 것에라도 홀려있어?」 정말로, 잠깐 가볍게 물건을 사러갔다 오려는 듯한 분위기의 그녀에게, 나는 무엇을 말해야만 하는지───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아무 것도 아니야. 밤에 갈테니까, 이야기는 그때 하자」 「뭐야, 이상한 녀석이네. 하지만 뭐어───상관없겠지. 밤이지? 그 시간이라면 방에 있을 거야」 자 그럼, 하면서 한쪽 손을 올리며 시키는 밖으로 나갔다. ◇ 시키가 토우코씨의 바이크를 빌려서 외출했다는 흔치않은 일이 있은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나와 토우코씨는 직접 맨션을 보러가게 되었다. 마이너 1000이라고 하는 미니쿠페 같은 토우코씨의 애차를 타고 도심의 빌딩에서 벗어나 차로 약 30분. 얼마 안 있어 우리들은 서해안의 거리같이 탁 트인 항구지구에 다다랐다. 카야미하마라고 불리는 그곳은, 우선 넓다. 토지가 남아도는 건지, 광대한 평면에 간간히 고층빌딩이 세워져있을 뿐, 한 세대 전의 폴리곤 게임의 필드를 연상시킨다. 분명히 브로켄인지 드라켄인지 하는, 네 명이 평평한 땅을 여행하는 게임이었던가. 예의 맨션은 확실히 맨션이 난립하는 지역의 가운데에 있었다. 주위에는 같은 모습의 거대맨션들 밖에 없어서 멀리서부터 원형의 탑이 보이는데도 도달하는 것에 시간이 걸려버렸다. 거의 모든 맨션이 두부같이 4각형인 가운데, 그 맨션 하나만이 법칙을 거스르며 우뚝 서있다. 10층 건물이라고 해도 높다. 정말로 원형의 맨션으로, 부지 주변에는 블록을 쌓아올린 벽이 있다. 부지에서 맨션으로 뻗은 길은 하나뿐이라, 타지마할로 이어지는 길 같았다. 단 하나의 길은, 그대로 맨션 로비로 뻗어있다. 「뭐야, 지하 주차장 따위는 없잖아」 운전석에서 그렇게 푸념하고서, 토우코씨는 차를 노상에 주차시켰다. 「자아, 갈까」 담배를 입에 물고, 토우코씨는 걷기 시작한다. 그 옆에 붙어서 맨션의 부지로 내딛을 때, 아찔하고 현기증이 났다. 오늘의 강한 태양 빛 탓이겠지. 탑처럼 우뚝서있는 맨션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현기증이 난 것뿐이다.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가는 토우코씨를 쫓아, 맨션 안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맨션 안의 로비의 벽은 크림색으로 통일되어있어서, 더없이 청결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이를 악물지 않으면 쓰러져 버릴 정도의 오한이 느껴졌다. 아니, 이것은 이미 혐오에 가깝다. 기분이 나빠져서 날뛰고 싶어진다. 밖의 공기는 그 정도로 차가웠는데, 맨션 안의 공기는 뜨뜻미지근했다. 온방이 너무 잘되어서 그런 것일테지만, 이것은 인간의 숨결 같다. 미적지근하게 살갗에 달라붙어서, 어쩐지───살아있는 생물의 체내에 있는 듯 한. 「코쿠토, 그건 기분 탓이야」 귓가에 들린 토우코씨의 목소리에, 나는 겨우 묘한 오한에서 구제되었다. 마음을 추스리고 주위를 관찰한다. 로비는, 두 개의 건물을 잇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 맨션은 원을 딱 반원 모양으로 자른 것 같은 건물이 서로 마주보듯 세워져있다. 두 개의 건물을 잇는 것은 중앙의 공간뿐으로, 2층부터 위는 동동(東棟)에서 서동(西棟)으로는 직행할 수 없다. 꼭 중앙의 스페이스에 되돌아와서, 로비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로비에는 관리실이 없다. 원형의 공간의 중심에는, 맨션의 등뼈라고 불러야할 거대한 기둥이 있다. 이것이 1층에서 10층까지를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로, 기둥주위에는 계단이 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벽으로 에워싸니까 기둥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둥으로, 어쩐지 기분 나쁘다. 「───기분 나쁜 건물이네요」 「유령의 집 같은데. 완전히 감추지 못해서, 불길한 것이 기척이 되어 떠돌고 있어. 분명 그런 건물은 의외로 많아.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건물은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말야. 벽지의 색, 계단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인간은 부조(不調)를 일으켜. 그것이 매일 사용하는 인간이라면, 더욱 심해질테고」 토우코씨는 우선 엘리베이터에 탔다. 「몇 층이 좋아 코쿠토?」 「아뇨, 몇 층이라도 좋아요. ……굳이 말해야 한다면 4층인데요」 「그러면 4층으로 하지」 토우코씨는 엘리베이터 안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말한다. 엘리베이터는, 벽의 사각이 약간 만곡한, 비틀린 기둥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B에서 10까지 있는 버튼에서 4층을 누른다. 우─────────────웅. 아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큰, 기동음이 났다. 몸은 올라가고 있는데, 땅바닥으로 떨어져 가는 듯한 감각이 든다. 얼마 안 있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4층의 로비도 원형. 엘리베이터를 나오자 바로 앞에는 동동(東棟)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다. 맨션의 입구는 남향이었으니까, 6시 방향으로 통로가 뻗어있는 것이다. 이 통로는 바깥까지 연결되어있어서, 외벽의 막다른 곳에 이르면 빙글 하고 3시 방향으로 반회전해서, 서동(西棟) 맨션의 외벽을 돌고 있다. 맨션의 각방의 입구는 역시 바깥쪽에 있다. 「지금, 4층이니까 저곳이 401호네요. 저기부터 405호까지 계속되고, 막다른 길. 서동은 어떻게 가는 거죠?」 「엘리베이터의 뒤편으로 도는 거야. 엘리베이터의 뒤에 있는 북측의 통로는 서동으로 이어져있어. 정말로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맨션」 「이상한 구조네요. 바깥쪽을 이어버리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서는 맛이 안 나잖아.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만들었어. 확실히 백과 흑으로 나뉘겠지. 그런데, 코쿠토. 4층에 무슨 용무가 있는거야? 죽어있는 가족의 방이라도 방문할거야? 듣고서, 나는 움찔했다. 토우코씨의 목소리는 크림색의 로비에 반향된다. 반질반질 윤이나는 로비 바닥에 전등의 빛이 반사되어, 어쩐지────지금이, 한밤중인 것처럼 착각했다. 그렇다.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이 맨션에 오고나서 아직 사람과 만나지 못했다. 아니, 그것은 고사하고────사람의 기척이란 것이 없다. 「소장님, 그 말을 어디서」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고 있는 형사로부터야. 강도 짓하러 들어갔더니 일가 전원이 죽어있었다는 이야기지? 그 방과 가족의 이름 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말야. 그렇지만, 너라면 조사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아아, 그 말 대로다. 어젯밤 아키미 형에게 전화를 했던 것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어쩔래? 확인해 볼 거야? 코쿠토」 「그럴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솔직히 말하자면 무섭다. 오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사건으로서 재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진짜다. 있는 것만으로 몸이 떨린다. 부끄럽지만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건이 있었다는 가족을 방문하는 것이 두려웠다. 「가봐. 나는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사용 하고 싶어. 그렇지, 이 윗 층에서 만나지. 저 쪽 계단을 사용해서 올라와. 아마도 나선 계단일텐데, 눈을 감는 편이 좋을 거야」 자아 그럼, 하고 한마디 남긴 토우코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윗 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램프는 10층까지 올라갔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비에는, 나 밖에 없다. 자신의 숨소리밖에 없는 세계. 한낮인지 심야인지, 판별이 안가는 거대한 밀실. 마치 방 전체가 진공 팩이 된 것 같은, 너무나 답답한 압박감. 몰랐었다. 맨션이라는 건물이, 이 정도로 기분 나쁘고 외계(外界)와 차단된 이계(異界)였다니. 「빌어먹을, 절대 내려와 주지 않겠지, 토우코씨」 혼잣말을 해서 활기를 넣으려했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반향 되어 돌아오는 자신의 목소리가 타인의 목소리처럼 되어 귓가에 전해져온다. ……한밤중의 공동묘지라도, 이 정도까지 기분 나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할 수 없다. 로비에 있는 한, 밀실이란 압박감이 따라다닌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동동으로 연결된 통로 쪽으로 향한다. 밖으로 나오자, 로비 정도의 압박감은 없었다. 바깥을 빙그르르 도는 복도에서 보이는 경치는 재미가 없다. 왜냐면 사방은 모두 똑같아 보이는 맨션들뿐이었으니까. 그것을 곁눈으로 바라보면서, 막다른 곳까지 나아간다. 동동을 끝까지 걸어서, 나는 4층의 5호실에 다다랐다. ───9일전의 밤. 이 방에 침입한 강도는, 그곳에서 여러 구의 사체를 보고 도망쳤다. 그대로 혼란에 빠져 경찰서로 찾아간 강도는, 다시 한번 방문했을 때 평소대로 생활하고 있는 가족과 만나고는 더욱더 혼란스러워 했다고 한다. 강도는 환상이라도 본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의 착오가 있던 걸까. 그만두면 될텐데, 나는 여기까지 왔다는 기세도 있어서 벨을 눌렀다. 띵-동- 하는 밝은 소리. 조금 있자────맨션의 방의 문은, 끼이,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나왔다. 우선, 인간의 팔. 그리고, 인간의 머리. 「네, 엔죠우입니다만. ……당신, 누구?」 문을 연 딱딱한 얼굴을 한 중년 남성이, 꽤나 귀찮은 듯이 그렇게 말했다. ◇ ───결국, 그 말은 단순한 헛소리였다. 사건이 있었다는 5호실의 엔죠우가(家)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로비에 돌아오자,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10층에 있는 상태다. 버튼을 누르면 내려오겠지만, 그 안에는 토우코씨가 타고 있다. 무서워서 계단을 사용 하지 않은거냐, 라면서 나무라는 것이 눈에 훤하다. 할 수 없이 엘리베이터 옆의 계단으로 발을 옮긴다. 로비에 충만한 공기의 무거움은 여전했지만, 엔죠우가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겠지. 어쩐지 어둡고, 불그스름한 전등에 비춰진 계단을 나는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은 직각으로 꺾어져 가는 타입으로, 엘리베이터의 주위에 뱀이 달라붙어서 몸을 감아가는 것처럼 위로 위로 뻗어있다. 토우코씨 말대로 분명한 나선계단이다. 각 층에 닿으면 계단의 도중에 뻥하고 구멍이 뚫려있어서, 로비로 나갈 수 있게 만들어져있다. ……크림색의 벽은, 불그스름한 전등에 비취어 중세의 성의 계단 같았다. 전등의 불빛이 어쩐지 흔들리는 듯 느껴진다. 불빛은 어두워서, 계단의 구석까지 닿지 않았고,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기분을 음울하게 만들어 간다. 구불구불한 계단 끝, 벽의 저편에서 무언가가 멈춰서있는 것 같은 두려운 착각과 싸우면서 계단을 올라가, 5층의 로비에 다다랐다. ……아니, 탈출했다는 표현이 맞을까. 5층의 로비는, 4층의 로비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맨션이니까 백화점처럼 각층에도 변화는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히 똑같아서 한기가 느껴진다. 「왔구나. 그럼, 내려가자」 로비에는 토우코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탄 그녀에게 다가간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토우코 씨는 각층에 대응하는 버튼 앞에 서서,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코쿠토, 밑을 보고 있어 봐. 간단한 퀴즈야」 「에? 하아, 밑을 보고 있으면 되는 거죠?」 엘리베이터가 닫힌다. 또 커다란 기동음. 아래로 내려가는 시간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맨션이라는 거대한 밀폐 속의, 제일 작은 밀폐의 상자가 정지한다. 「그럼 문제다. 이곳은 몇 층일까?」 말을 듣고 고개를 든다. 엘리베이터는 열려있고, 로비가 보였다. 아까까지의 층과 완전히 같은 로비의 벽에는 5라는 숫자의 플라스틱이 붙여져 있다. 「어라……5층 그대로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확실히 움직였다. 그렇다고 하면 틀린 것은 내 쪽이다. 잠시 생각하고, 당연한 결론을 입에 담는다. 「그러면, 아까는 6층이었던 거군요」 「정답. 코쿠토는 1층을 올라오려다가 2층을 올라와 버린 거야. 착각하기 쉬운 계단 설계지만, 뭐어 그것은 덤 같은 것이고. 그런데 말이야, 맨션이라는 것은 기괴하지? 자신이 살고 있는 층을 확인할 수단이, 로비에 있는 저런 작은 문자뿐이니까. 층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엘리베이터 안의 감각으로는 판단하기 힘들어져. 만약 엘리베이터의 스위치를 조작해서 각 층을 바꿔 놓아버리면, 오래 살지 않은 사람은 4층인지 5층인지 제대로 알 수 없게 되겠지. 기회가 있다면 가까운 맨션에서 시험해보면 돼. 시간은 심야가 좋겠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그런 말을 하고서, 토우코씨는 엘리베이터를 닫았다. 얼마 안 있어 1층에 도착했고, 우리들은 로비를 나왔다. 「그렇지, 잠깐 동동의 로비에 가보자. 확실히 어느 쪽 동이라도 1층은 로비가 있었지?」 「예에. 곧바로 2층의 시설과 연결된 천장이 없는 구조에요. 꽤 괜찮은 호텔의 로비 같은 느낌이죠……그런데, 동동의 로비를 설계한 것은 토우코씨잖아요」 그랬던가, 라고 적당히 대답하고, 토우코씨는 걷기 시작한다. 1층의 로비는, 말하자면 원의 중심이다. 이 중심에서 가느다란 선처럼 동서의 통로가 하나씩 뻗어가서 각 동의 1층에 있는 로비에 이어져있다. 각 동의 로비는 말하자면 라운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곧 동동의 로비에 도착했다. 꽤 넓은, 아무 것도 없는 광장. 천장이 없어서 커다란 계단이 일직선으로 2층의 층계참까지 뻗어있다. 영화에서 자주 보는, 서양건물의 커다란 응접실 같은 느낌일까. 반원형 라운지의 한가운데에 2층으로 이어진 투박하게 생긴 계단이 있다. 주위는 크림색의 벽뿐이고, 바닥은 마블모양의 대리석이다. 「손을 써둔다면, 뭐어, 이곳일까. 만의 하나를 위해서 도주경로정도는 만들어놓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토우코씨는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대로, 화석을 찾는 학자처럼 지면을 손으로 뽀득뽀득하고 건드리고 있다. 「───저기. 뭐하고 있는 거에요, 소장님?」 「신중에 신중. 그런데 말이지, 계단을 사용 하면서 뭐 느낀 거 없어? 움직인 흔적이 있을 텐데, 그거」 「?」 계단을, 움직였다……? 그 상자 속에 밀어 넣은 것 같은 계단을 움직인다는 소리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그 중심의 기둥을 움직였다는 소리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을 어떻게. 「기둥이 아냐. 계단만이야. 벽 구석 같은 데는 안 봤던 거야? 벽에 긁힌 자국이 있었겠지. 아아, 그런가. 무서워서 거기까지 신경을 못 썼던 건가」 바닥에 손을 댄 채로, 돌아보지도 않고 토우코씨는 말한다. ……확실히, 거기까지 신경은 못썼다. 아니, 계단은 어두워서 가장자리까지 불빛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 쓸 리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계단을 움직인다는 일은 불가능이에요. 그 기둥을 움직인다는 일은, 이 맨션을 무너뜨린다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계단만이라고 말했잖아. 로켓펜슬이야, 말하자면」 「로켓펜슬이란건, 뭔가요?」 딱, 하고 토우코씨의 손이 멎는다. 그리고, 그녀는 슥 하고 일어섰다. 「모르는거야? 한자루의 연필 속에, 10개정도의 연필심이 들어 있는 거야. 작은 미사일같은 것이 차있어. 권총의 탄환하고 비슷하지. 연필 속에 세로로 들어차 있어서, 심이 닳으면 오래된 미사일을 빼서, 제일 뒤로 다시 집어넣지. 그러면 밑에 있는 새로운 미사일이 나와서, 심을 깎는 수고 없이 글씨를 쓸 수 있다는 물건이야. ……지금도 팔고 있을까, 이미지 적으로는 우무(トコロテン)」 납득이 안 간다, 라고 하는 것처럼 토우코씨는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미사일펜슬은 이미지 할 수 없었지만, 우무틀이라는 표현으로 감이 잡혔다. 곧, 밑에서 계단만을 비튼 것이다. 「나선계단을 밑에서 밀어 올렸다고 하시는 건가요. 피스톤이나 뭔가로」 「그렇겠지. 처음부터 반 층 분의 여유를 두고 만들었을 거야. 엘리베이터를 사용 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밑에서 밀어 올린 거지. 한층 분을 늘리려는 게 아냐. 나선의 출구를 비틀기 위해서야. 그렇게 하면 북과 남이 바뀌게 돼」 자아, 돌아갈까, 하고 토우코씨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중앙의 로비에 돌아와서, 이 원형 맨션에서 나올 때. 소장은 납득이 안 간다는 듯 투덜투덜 이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정말로 모르는 걸까, 로켓펜슬. 내가 학생일 적에는 유행이었었는데 말야, 그거」 마지막 일로는, 노상주차하고 있던 차에 주차위반의 딱지가 붙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맨션의 앞의 도로는 넓었지만 차의 왕래가 없었고, 주차하고 있는 차는 토우코씨의 자동차뿐이었기에 눈에 띄었던 거겠지. / 8 (모순나선, 4) 그날 밤. 일이 끝나고, 나머지 조사할 일도 끝내놓은 뒤 시키의 맨션으로 향했다. 11월 9일 오후 8시를 지난 시각. 그리고 날짜가 다음날로 바뀌었어도, 시키는 돌아오지 않았다. / 9 (모순나선, 5) ……짤깍. 짤깍. 짤깍. 짤깍.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료우기의 방에 있었다. 그 녀석에게 부모를 죽인 일을 밝힌 밤부터, 결코 발을 들이지 않았던 이 살풍경한 방에. 밖은 해가 지려하고 있다. 변함없이 신경에 거슬리는 시계바늘은, 곧 6시를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프다. 료우기와 연을 끊고 나서 9일정도 지났을까. 나는 막 11월이 된 거리가운데서 부랑자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밥도 안 먹고, 그저 부모의 사체가 발견된 뉴스만을 찾고 있었다. 무리한, 인간으로서의 최저의 생활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두통은 매일매일 강해져갔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몸 쪽도 부실해졌다. 영양부족이 원인이었는지, 관절이란 관절이 모두 무거웠다. 「……뭐하고 있는 거야,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중얼거린다. 두 번 다시 이곳에는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그저, 료우기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따닥따닥, 하고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나는 겁먹고 도움을 청하듯, 어느 사이엔가 이곳에 와있었다. 불을 켜지 않은 암흑 속에서 얼마나 그렇게 하고 있었을까. 세상은 갑자기 빛으로 가득 찼다. 「뭐하고 있는 거야 엔죠우. 불을 켜지 않고서 숨어있는 걸 좋아하는 거냐?」 하얀 기모노와 붉은 가죽점퍼를 입은 소녀가 말한다. 내가 있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어깻죽지까지 내려오는 흑발도, 검고 깊이가 있는 눈도, 남자 같은 말투도, 무엇하나 예전대로인 상태로, 료우기는 방에 들어왔다. 「그렇다하더라도 타이밍이 너무 좋은데. 끝내주는데」 료우기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손에 든 짐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 뒤에, 곧바로 사용하지 않던 옆방에 들어가서 짐과 비슷할 정도로 가늘고 긴 나무상자를 가지고 나온다. 「잠깐 기다려, 다 짜맞춰버릴 테니까」 료우기는 짐을 푼다. 안에 든 것은 검신(檢身)뿐인 칼이었다. 기모노의 소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무상자를 열어서 칼집 같은 물건과 칼자루, 커다란 동전같이 생긴 쯔바(鍔)를 칼에 붙여간다. 「얼레, 하바키(はばき)가 너무 작아. 시노기제(鎬造り)인 주제에 어째서 맞지 않는 거야, 젠장. ……귀찮아졌네, 하바키는 이것밖에 없는데」 불만스럽게 말하며, 료우기는 검신(檢身)에서 훌륭한 일본도로 변신을 마친 칼을 침대 위에 놔두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됐어. 할말이 있는 거지?」 말과는 반대로, 료우기의 얼굴은 변함없이 무관심하다. 나는───무엇을 어떻게 말해야할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다고 생각한 것뿐이라서. ……변하지 않았다. 나는 료우기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도, 무엇으로부터 구해주었으면 하는지조차, 생각해내지 못했으니까. 「────모르겠어. 나는, 뭔가 이상해져 버렸어.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질 수 없어」 료우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길거리에서 어머니를 발견했어. 처음에는 많이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틀림없는 어머니였어. 뒤를 밟아봤는데, 어이없게도──그 사람은, 그 맨션으로 돌아가 버렸어───」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들어댄다. ───그러자. 료우기는 그래, 하고 말하면서 일어섰다. 「곧 부모님이 살아있던 거겠지.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야」 「그럴 리 있겠어! 나는 분명히 어머니를 죽였어. 아버지도 죽어있었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살아있다는 쪽이 잘못 된 거라구!」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평소처럼 살아가는 것일까. 당연한 듯 자기 집에 돌아간다. 그, 피투성이가 된 지옥 같은 집에, 어째서──── 「헤에, 잘못되어있구나. 그러면 확인하러가자」 「───ㅁ, 뭐?」 「그러니까, 그 맨션에 가서 확인하면 되는 거잖아. 정말로 엔죠우의 부모님이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 그 편이 후련해지겠지」 결정했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료우기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죽점퍼의 안주머니에 긴 나이프를 집어넣고, 기모노의 띠의 뒤춤에도, 두 번째의 나이프를 끼워 넣는다. 그런 심상찮은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하얀 기모노의 소녀는 잠깐 담배라도 사러나가는 듯한 느낌으로 걷기 시작했다. 료우기는 혼자서라도 갈 생각인 것 같다. 그곳에 갈 생각은 없었지만, 이 녀석을 혼자 가게 놔둘 수도 없어서 나는 동행하기로 했다. 「엔죠우, 바이크 운전할 수 있어?」 「……남들만큼은」 「그러면 그렇게 하자. 아까 타고 온 녀석이 있으니까, 그걸로 가자」 말하면서, 료우기는 지하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이런 작은 아파트가 지하주차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놀랬지만, 시키가 준비한 바이크에도 놀랐다. 하레이급의 대형 바이크에 사이드카가 붙어있다. 료우기는 망설임 없이 사이드카에 탔다. 나는 자포자기상태로 대형 바이크에 걸터앉아서 한 달 전까지 살고 있던 항구지구의 맨션으로 향했다. ◇ 익숙치 못한 대형 바이크 덕분에, 맨션에 도착한 것은 밤 7시가 되어버렸다. 11월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겨울하늘 아래, 달에 다다르려는 것처럼 원형의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주위의 사각형 맨션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이 맨션은 이상한 구조로, 동동과 서동으로 나뉘어 진 건물이다. 우리 집은 동동의 4층. 아니, 애초부터 서동에는 사람은 살지 않는다. 입주자가 적어서 이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입주희망자는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맨션의 오너가 낯을 좀 가려서 전체의 절반밖에 입주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고급지향의 맨션에 우리 집이 사는 것은, 아버지와 오너가 아는 사이기 때문인 것 같다. 「다 왔어. 여기야」 사이드카에 앉아있는 료우기에게 말을 건다. 료우기는, 무언가 유령이라도 보는 듯한 눈매를 하고 맨션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이거」 단지, 그렇게 말할 뿐이다. 나는 바이크를 길에 세워두고 맨션 부지에 들어갔다. 블록으로 만든 벽에 둘러싸인 부지는, 작은 소학교의 부지보다도 크다. 건물 자체는 원형이라서 폭을 잴 수 없지만, 주위의 정원은 꽤 괜찮은 편이다. 그 정원을 일도양단 하듯이, 포장된 길이 맨션을 향해 뻗어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있는 료우기를 데리고 로비로 들어갔다. 로비를 잠시 동안 걸어서, 맨션의 중심에 있는 큰 기둥에 도착한다. 기둥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그 옆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나선계단이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불렀다. 짤깍, 짤깍, 짤깍, 짤깍.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 심박이 평소보다 빠르다. 숨을 잘 쉴 수 없다. 그것도 당연할까. 지금부터, 내가 죽였던 사람들의 사체가 있는 방에 가려고 하고 있으니까. 엘리베이터가 왔다. 안에 들어간다. 료우기도 뒤를 따른다. 문이 닫힌다. 우─────────────웅. 듣기 익숙해진 기동음을 내면서, 엘리베이터는 올라간다. 「────비틀려있어」 료우기가 살짝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춘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바로 정면으로 이어진, 남쪽으로 향하는 통로로 걸어 나갔다. 그대로 맨션의 외측으로 나가자, 길은 직각으로 좌측으로 굽어진다. 동동의 외주(外周)를 돌아가는 복도다. 좌측에는 맨션의 방이 늘어서 있고, 오른쪽은 바깥. 4층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가슴께까지 이르는 벽이 있다. 「이쪽의 막다른 곳이 우리 집이야」 걸어간다. 변함없이 조용한 맨션이라, 집안에서 말소리는 나지만 복도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막다른 곳의 방 앞에 다다라서, 나는 멈췄다. ────정말로, 들어가는 건가.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앞이, 흐려져 버려서 문손잡이가 잡히지 않는다. 아냐, 그렇지. 그 전에 벨을 누르지 않으면. 설령 문이 잠겨있더라도, 벨을 누르고 들어가지 않으면 어머니가 놀라버린다. 예전에 빌린 돈을 받아내러 온 놈들이 갑자기 집안으로 밀어닥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어머니는 벨을 누르고 들어가지 않으면 어머니는 깜짝 놀라면서 겁에 질려버렸다. 손가락이 인터폰의 버튼을 향해 뻗는다. 그것을 료우기의 손가락이 멈췄다. 「벨은 됐어. 안에 들어가자, 엔죠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멋대로 들어갈 생각이야」 「멋 대로고 뭐고, 원래부터 여기는 네 집이잖아. 게다가 스위치는 넣지 않는 편이 좋아. 구조를 알 수 없게 돼. 열쇠 가지고 있지? 줘봐」 료우기는 나에게서 집 열쇠를 받아서, 철커덕 하고 돌렸다. 문이 열린다. ……안에서 나는 텔레비전 소리. 누군가, 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겉모습뿐인 가족의 이야기소리가 난다. 지금의 생활을 어머니와 세상의 인간들 탓이라고 푸념을 늘어놓는 아버지의 목소리. 그것을 말없이 듣고 있으면서, 그저 끄덕일 뿐인 어머니의 목소리. 「──────」 그것은, 틀림없는 엔죠우 토모에의 일상이다. 료우기는 소리도 내지 않고 안에 들어간다. 나도───그 뒤를 따랐다. 복도를 빠져 나와, 거실로 통하는 문을 연다. 훌륭한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 테이블과 소형 텔레비전. 제대로 청소도 되지 않은 휴지 투성이의 더러운 방. 그곳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나의 부모였다. “어이. 토모에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야? 벌써 여덟시라구, 일이 끝나고 한 시간이나 지났어. 정말이지, 어딜 싸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그 놈은” “글쎄요, 어떻게 된 걸까요” “그 녀석이 부모를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네가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둬서 그런 거야. 니미럴, 돈 같은 것도, 안 갚아도 되는 곳에 갚고, 나에게는 땡전 한 푼 안 줘. 누구 덕분에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 자식은” “글쎄요, 어떻게 된 걸까요” ───뭐야.    뭐야, 이건. 부모님이 있다. 소심한 인간인 주제에 자신을 거물이라고 의심치 않는 아버지와, 그 비위를 맞출 뿐인 어머니. 죽었을 두 사람이 변함없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사람들 어째서, 들어온 우리들을 돌아보지 않는 거지────!? 「엔죠우가 돌아오는 것은 보통 몇 시였어?」 귓가에서 료우기가 물어온다. 나는 9시경이라고 대답했다. 「앞으로 한 시간인가. 그때까지 기다리자」 「뭐야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료우기!」 너무나 덤덤한 태도에 화를 내면서 다가가자 료우기는 귀찮다는 듯이 나를 흘끗 쳐다본다. 「벨도 노크도 안했으니까 손님에게 대응하지 않는 것뿐이겠지. 정해진 패턴이외의 행동에 대응하기 위한 스위치를, 우리들은 누르지 않았어. 그래서 손님은 오지 않은 것이 되어, 엔죠우의 부모님들은 평소대로의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렇게 말하며, 료우기는 당당히 거실을 횡단하여 옆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나의 방이다. 나는 몹시 망설이다가 양친에게서 눈을 돌리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가만히 서 있는다. 료우기도 벽에 기대어 멍하니 기다렸다. 전등도 켜지 않은 방 가운데, 나와 료우기는 그저 계속 기다렸다. 무엇을? 핫,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평소대로 돌아오는 엔죠우 토모에 밖에 없지 않는가. 나는, 예전에 살인을 범한 장소에서, 나 자신을 기다렸다. 그것은 이상한 시간이었다. 영원으로도 한순간으로도 느껴지는 심한 괴로움. 현실감이란 것이 녹아버려서, 시계가 반대로 돌고 있는 것 같다. 역시, 나는 돌아왔다. 겨우 돌아와 주었다. 벌써 돌아와 버렸다. 두 가지 감정이 섞이는 가운데, 토모에는 부모와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말없이 방안에 들어왔다. 한쪽으로 쏠리는 붉은 머리카락. 호리호리한 몸. 중학 시절부터 여자취급을 받았던 갸름한 얼굴. 세상을 등진 눈매의 토모에는, 한번 깊은 한숨을 쉬었다. ……심호흡과 비슷하다. 마치 그러는 것으로 오늘 하루의 힘들었던 일이 지워질 거라 믿는 것 같은, 그것은 온 힘을 다한 조촐한 의식(儀式)이었다. 그 토모에조차, 이 토모에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와 료우기는 유령이 된 것 같았다. 이윽고, 토모에는 잠자리에 들어서 잠이 든다. 한동안의 시간. 나는, 이 다음의 전개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엔죠우 토모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실에서 말싸움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목소리와, 처음으로 듣는 어머니의 감정적인 목소리.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면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사납게 달려든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울부짖는 개 같았다. 정체를 모르는 금성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의 히스테리란 것은 열성팬처럼 난폭한 것이라고 처음 알았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진실의 체험인가. 쿵, 하는 기분 나쁜 소리. 어머니 같은 인간의 격한 숨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짤깍, 짤깍, 짤깍, 짤깍. 「……그만둬」 중얼거려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건. 짤깍, 짤깍, 짤깍, 짤깍. 문이 열린다. 토모에가 눈을 뜬다. 멈춰서있는 어머니의 손에는 커다란 부엌칼이 쥐어져있다. “토모에, 죽으렴” 무언가 끊어져버린 듯한, 감정 없는 여자의 목소리. 짤깍, 짤깍, 짤깍, 짤깍. 토모에에게는 역광 때문에 보이지 않았겠지. 어머니는, 정말로. 슬픈 얼굴로, 울고 있었다. 짤, 깍. 어머니가 토모에를 난도질한다. 배, 가슴, 목, 팔, 다리, 허벅지, 손가락, 귀, 코, 눈, 마지막으로는 이마까지. 부엌칼은 거기서 부러지고, 부러진 칼날로 어머니는 자신의 목덜미를 힘차게 그었다. ───방에 울리는, 쿠궁 하는 둔탁한 소리. 짤깍짤깍.짤깍짤깍. 짤깍짤깍.짤깍짤깍. 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 ………………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 아아, 이 얼마나──── 「───잔혹한, 꿈인가」 현실이 되어있는, 나의 악몽. 하지만, 이것이 어떤 현상인가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너무 리얼해서 나는 구역질을 참는 것이 전부였다. 스르륵, 하고 하얀 기모노가 움직인다. 료우기는 방에서 떠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기분이 풀렸다면, 나가자구. 이곳에 이젠 볼일이 없어」 「……볼일이 없다니, 어째서! 사람이───내가 죽어있는데」 「무슨 소리하는 거야. 잘 봐,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잖냐. 아침이 되면 눈을 뜰 거야. 아침에 태어나서 밤에 죽는 『고리』인거야. 그곳에 쓰러져있는 것은 엔죠우가 아니라구. 왜냐하면 지금 살아있는 것은 너잖아」 료우기의 말에 핫, 하고 참상의 현장을 둘러본다. ……분명히 그만큼의 흉측한 일이 있었는데도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어, 어째서───」 「몰라. 이런 짓을 하는 의미를 전혀 모르겠어. 어쨌든, 이곳은 이제 됐어. 자, 빨리 다음으로 가자구」 종종걸음으로 료우기가 걸어간다. 참을 수 없어서, 나는 그 등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음이라니────또 어디에 간다는 거야, 료우기」 「뻔하잖아. 너의 진짜 집이야, 엔죠우」 시원스럽게──마치 내게 붙어 다니던 혼란을 떨어내듯 료우기는 그렇게 말했다. ◇ 중앙 로비까지 돌아오자, 료우기는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고 그 뒤편으로 돌았다. 엘리베이터의 뒤……곧 북쪽으로는 서동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서동은, 동동과 완전히 똑같았다. 이 맨션의 성질상, 동동에 사는 사람은 서동에 들어가지 않는다. 반년이상이나 살고 있었는데도 나는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이제서야 알아차렸다. 서동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간다. 시간도 10시를 넘어서, 바람은 찌르는 듯 차가워졌다. ……서동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그 때문인가, 전등도 최소한 밖에 켜져 있지 않고, 늘어서 있는 방에서도 불빛이란 것이 전무했다. 달빛만이 의지가 되는, 겨울의 어둠. 그런 무인(無人)의 복도를 료우기는 힘차게 나아간다. 6호실, 7호실, 8호실, 9호실. ……막다른 곳인 최후의 10호실에 다다르자, 딱 멈춰 섰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말야, 사소한 일이야」 갑자기, 료우기는 문을 노려보면서 말을 꺼냈다. 「너는 405호실이라고 말했잖냐. 그런데 미키야는 네 이름을 마지막에 말했어. 그 꼼꼼한 녀석이 아무런 이유 없이 순서를 바꿀 녀석이 아냐. 그렇다면 엔죠우란 가족은 4층의 마지막의 방, 곧 410실이 아니면 이상한거야」 「────뭐라고?」 「그 엘리베이터는 한동안 쓰지 않았지? 입주자가 모이고 모두 이 맨션에 살기 익숙해질 무렵에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것이 시작의 신호였던 거야. 전부, 북(北)과 남(南)을 바꾸기 위한 장치였다구. 엘리베이터가 원형이고, 소리가 큰 것. 대단한 위장이지. 2층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것을 위한 것뿐이야. 타고 있는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면서 반회전 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1층 분의 거리가 필요했었던 거겠지」 북과 남이───바뀌었다……? 그런 애들 장난 같은 장치가, 정말로 있다는 건가. 하지만, 정말 있다면 어떻게 될까?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정면에 있는 길이, 동동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 그렇다면───엘리베이터가 반회전하고 있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면,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눈앞에 있는 통로로 가는 것이 일상이다. 만약 정말로 모르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회전해있어서 출구가 남이 아니라 북으로 향해 버렸다면, 나는 지금까지 서동으로 향하고 있던 것이 된다. 이 로비의 남측과 북측의 구조는 완전히 똑같다. 각 동으로 통하는 통로는 어느 쪽이고 왼편을 향해 직각으로 굽어있으니까, 바뀐 것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면───이쪽이, 나의 집이었다는 소리야?」 「응. 정확히는 입주해서 한 달간만 있던 집.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게 되고 나서부터는 아까의 집이야. 분명 계단도 엘리베이터의 기동에 맞춰서 옮겨놓았겠지. 계단의 출구도 반대로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이곳의 계단은 나선형으로 되어 있지 않냐?」 아아, 정말 그 말대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했다. 「하지만 거짓말이야. 보통은 알아차리잖아, 이런 거!」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반발하지만, 료우기는 역시 담담한 눈으로 나의 말을 부정했다. 「이곳은 정상이 아냐. 이계(異界)야. 주위는 모두 똑같은 4각형 맨션뿐이라서 풍경에 큰 차이가 없어. 맨션 안은 벽으로 나뉘어 있어. 크림색 벽의 군데군데에는 이상한 모양이 섞여 있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망막에 부담이 가해지지. ───토우코는 아니지만. 정말로 복잡한 결계야. 작은 이상(異常)이 하나도 없으니까, 커다란 이상(異常)을 알아차리지 못해」 료우기가 도어노브에 손을 뻗는다. 「연다. 반년만의 네 집이라구, 엔죠우」 료우기는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나는────그것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10호실 안은 끈적끈적한 어둠이었다. 어둠밖에 없었다. 짤깍짤깍짤깍짤깍. 귓속에서, 그런 소리가 난다. 몸이, 관절이, 무겁다. 「불은────이건가」 어둠 속에 료우기의 목소리가 난다. 번쩍하고 불이 들어왔다. 「───────」 숨을 삼킨다. 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그것이 있는 것은, 아주 옛날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사후(死後)반년이란 거군」 침착한 료우기의 목소리. 아아, 그렇겠지. 우리들이 들어온 방에는, 인간의 사체가 두 구 있었다. 더러워진 사람의 뼈와, 군데군데 붙어있는 살 같은 것. 썩어서 너덜너덜해진 살은 바닥에 떨어져 쌓여서 뭔지 모를 가루의 산을 이루고 있다. 엔죠우 타카유키(孝之)와, 엔죠우 카에데(楓)────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체다. 내가 한 달 전에 자신이 죽음을 당하는 악몽을 꾸기 싫어서 죽여 버렸던 부모의 사체. 하지만 반년전의 사체. 지금도 생활하고 있는 동동의 엔죠우란 하는 가족────. 그것들의 모순을, 나는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서있을 뿐인 료우기처럼, 나는 아무런 동요 없이, 떨어져 가는 모래시계를 바라보는 것처럼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체를 보고 있다. 아까의 광경───내가 매일 꾸고있던 악몽의 재생영상이었던 5호실의 사건에 비하면 이런, 모든 일이 끝난 뒤의 사체는 단순히 기분 나쁠 뿐이다. 별다른 쇼크는 없다. 아주 옛날에 죽어버린 인간의 사체. 누군지도 판별 불능한, 뼈의 산. 눈이 있던 부분은 어두운 동굴처럼 구멍이 뚫리고, 허공을 노려보고 있다. ……무가치하다. 이 정도로 무의미하고, 보상받지 못한, 바보 같은 죽음이, 부모였던 것. 주위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태도를 바꿔버린 아버지에게도 거스르지 못하다가, 반복되는 매일 끝에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도 죽은 어머니. 「──────────」 그런데도, 그것뿐인데도, 나는 그것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이것은 뭘까. 나는 어떻게 된 걸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필요 없다고. 그 정도로 혐오했었던 인간이 두 사람 죽은 것만으로, 어째서 나는 이렇게도 멍텅구리가 되어버린 걸까────? 그 때, 현관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난다. 「헤에, 한번 해볼 생각인가본데?」 료우기는 웃는 것처럼 말하고는 점퍼 안쪽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천천히 누군가가 거실에 들어온다. 목소리도 발소리도 내지 않으며 나타난 사람은, 어디에도 있을법한 중년이었다. 표정 없는 얼굴과 멍한 시선이 역으로 분명한 위험을 느끼게 한다. 어딘가를 보고 있던 것 같은 남자는, 그대로 우리들에게 덤벼들었다. 실에 조종되는 인형처럼, 낌새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것을 료우기는 간단히 죽여 버렸다. 한명. 두명. 세명. 네명. 현관에서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맨션의 거주인 들을, 춤추는 것처럼 화려하게 죽여 간다. 그곳에 불필요한 움직임은 일절 없다. 곧 거실은 사체로 뒤덮여 버렸다. 료우기는 나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다. 「오래있을 필요 없어. 간다!」 료우기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나는───부모의 사체를 봐서 이상해져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어째서───이렇게, 인정사정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까, 이 녀석은. 「료우기, 너─────!」 「말은 나중에 해. 게다가 그 녀석들은 인간이 아니야. 나도 몇 번 죽었는지 모를 정도라구. 그런 건, 인간도 죽은 사람도 아닌 그냥 인형(人形)이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죽고 싶어 안달을 해서, 구역질이 나」 처음으로───증오에 찬 얼굴을 하고, 료우기가 달린다. 나는 약간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살해된 가족 같은 집단의 사체를 밟고서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 나가자, 이미 다섯 명 정도의 인간이 복도에 쓰러져있었다. 내가 그것에서 눈을 돌리고 있는 사이에, 료우기는 8호실 앞에서 몇 번 째인가의 인간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강하다. 압도적일 정도다.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동동에서 넘어온 것일 텐데, 영화에 나오는 좀비 같이 움직임이 완만하지 않다. 인간이상으로 격렬하게 덤벼들어온다. 그런데도, 료우기는 눈썹하나 깜짝 안하고 간단하게 처치한다. 피가 나지 않는 것은 료우기가 말한 대로 녀석들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일까. 피 한 방울 뒤집어쓰지 않으며 거주인 들을 살해하고 중앙의 로비로 통한 길을 열어가는 료우기는 하얀 사신 같았다. 나는 료우기가 베어 넘기며 길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무리의 끝을 본다. 로비에서 전등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조명 없는 서동의 복도에 겨우 빛을 전하고 있는 그 통로의 입구에, 검은 사람형체가 서있었다. 의지가 없는 거주인 들과는 다르다. 검은 비석이 아닐까 하고 착각할 정도의 검은 덩어리는,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였다. 그것을 본 순간, 나의 의식은 얼어붙어서, 실이 끊긴 인형처럼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보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다르다. 나는 이곳에 와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만나버리는 일도 없었다. 저, 조용하고 처참한 사건에는 어울리는, 악마 같은 검은 그림자에────── / 10 남자는, 어두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의 로비로 이어지는, 하나밖에 없는 좁은 길을 막는 것처럼. 검은 외투를 걸친 남자는 달빛조차 거부하고 있어서, 밤보다 깊은 그림자 같았다. 암색(暗色)의 남자는, 맨션의 거주인 들을 베어 넘어뜨려 가는 하얀 기모노의 소녀를 감정 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을 알아차린 걸까, 덤벼든 마지막 거주인을 죽이고서, 기모노의 소녀는 발을 멈췄다. 소녀───시키는, 이렇게까지 가까이 와서야 겨우 남자를 알아차렸다. 거리로서는 5미터도 안된다. 이런 가까운 거리까지 『적』을 감지할 수 없다니, 그녀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아니───그것뿐만이 아니다.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미조차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시키의 마음에서 일절의 여유를 박탈하고 있었다. 「……얄궂은 일이군. 본래대로라면 이쪽의 완성이 끝난 후가 되어야했을 터인데」 무거운, 듣는 사람을 영혼부터 굴복시키는 목소리로 마술사는 말했다. 남자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온다. 별 것 없는 빈틈투성이의 그 전진에, 시키는 반응할 수 없었다. 눈앞의 남자가 『적』이고 자신과 엔죠우를 죽일 생각인 것도 알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달릴 수가 없다. ───이 자식, 보이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놀라는 것을 억누르면서 시키는 남자를 응시한다. 지금까지 긴장을 푸는 것만으로 보아버리고 있던 인간의 죽음이, 이 남자에게는 없었다. 인간의 몸에는 따라 그으면 그것만으로 그 부분을 정지시켜버리는 선이 있다. 그것이 생명의 이음매인지, 분자의 접합점의 약한 부분인지 시키는 모른다. 그저 볼뿐이다. 지금까지 누구 한 명, 무엇 하나에도 예외 없이 『죽음의 선』이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 선이 아주 미약했다. 시키는 강하게, 지금까지 행한 적도 없을 정도로 강하게 남자를 노려본다. 뇌가 가열되기라도 한 것일까. 의식이 거의 새하얗게 될 때까지 상대를 관찰해서, 겨우 찾았다. ……몸의 중심. 가슴 한가운데에 구멍이 보인다. 선이 아이들의 낙서처럼 빙글빙글하고 한 부분에 원을 그리고 있어서 구멍처럼 보인 것인가. 「────알고 있어, 네놈」 그, 기괴하게 존재하는 생명을 가진 상대를, 시키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기억해 낸다.   지금의 시키가 생각해낼 수 없는 먼 기억,   2년 전의 비 오는 날 밤에 일어난 사건의 단편을. 남자는 대답한다. 「그렇다(左樣). 이렇게 만나는 것은, 실로 2년 만이다」 듣는 사람의 뇌를 움켜쥐는, 무거운 목소리. 남자는, 천천히 자신의 왼쪽 관자놀이에 손을 댄다. 그곳에는 일직선으로 베어진 상처가 있다. 2년 전, 료우기 시키가 입혔던 깊은 상처가. 「네놈은─────」 「아라야 소우렌(荒耶宗蓮). 시키를 죽이는 자다」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고, 남자는 그렇게 단언했다. 남자의 외투는 확실히 마술사 같았다. 양어깨에서 드리워진 검은 천이, 동화에 나오는 마법사의 망토와 비슷하다. 그 망토 아래로, 남자의 한쪽 팔이 뻗어 나왔다. 떨어져있는 시키의 목을 붙잡으려는 듯, 천천히. 시키는 양발의 간격을 약간 벌려서 자세를 잡는다. 지금까지 한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도, 어느 사이엔가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 「악취미야. 이 맨션에 무슨 의미가 있나」 스스로의 긴장과───아마도 처음으로 체험한 두려움이라는 것에 견디기 위해서 시키는 말했다. 마술사는 대답한다. 시키에게는 그것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편적인 의미는 없다.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의지다」 「그러면 저 반복도 너의 취미란 소리냐」 시키는 번뜩하고 두 눈동자에 적의(敵意)를 담아서 남자를 노려본다. 반복────저 엔죠우가(家)처럼 밤에 죽고 아침에 되살아나는 불가사의한 현상. 「효과적이지는 않지만. 나는 하루에 완결하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단순히 생(生)과 사(死)가 서로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는 양의(兩儀)에는 이를 수 없어. 같은 인간들의 행위와 죽음이 아니면, 너를 제사지내 주기에는 불충분하다. 사망한 뒤에 소생하는 나선으로는 불완전하다. 서로 얽혀들면서도 상극하는 것이 조건이라면, 그들은 이어져 있어서는 안돼. 따라서, 음(陰)에는 그들의 사체를. 양(陽)에는 그들의 생활을 준비했다」 「하. 그래서 이쪽이 시체보관소고, 저쪽이 일상이란거야?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는데.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의미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을 텐데」 그리고, 남자는 시키의 등 뒤에 멍하니 서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엔죠우 토모에는,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어둠을 직시해서 굳어져있다. 「그래, 의미 같은 것은 없다. 원래부터 같은 인간이 두 개의 속성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죽은 자와 산 자는 양립 할 수 없어. 모순하고 있는 이 세계에, 개인이 공통할 수 있는 의미는 전무하다」 마술사는 시선을 소년에게서 소녀에게로 돌린다. 이젠, 엔죠우 토모에에겐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단순한 실험이다. 인간은, 정말로 다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그 죽음에는 각 사람마다 정해진 죽음밖에 없다. 한 개인이 최후에 맞는 죽음이란 것은 단 하나인 것이다. 화재로 죽는 자는 어떤 모습으로든 화재로 사망하고 가족에게 살해당하는 자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족에 의해서 목숨을 잃지. 첫 번째의 죽음의 직면에서 도망치려고 해도 두 번째, 세 번째의 죽음은 반드시 정해진 방법으로밖에 찾아오지 않아. 이 한정된 죽음을, 우리들은 수명(壽命)이라 부른다. 인간은 죽는 방법조차 정해져 있어. 하지만 같은 결말을 몇 천 번이나 반복하면, 그 나선에도 고장이 생기겠지. 고장은 사소한 사고라도 상관없다. 퇴근 중에 차에 치인다는 흔한 불행이라도 좋다. ───그런데도 지금으로서는, 결과는 동일하다. 2백 번 정도의 반복으로는 인간의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남자는 감정도 없이 말한다. 그것만으로───시키는, 이 남자를 이곳에서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직감했다. 어떠한 수단,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남자가 이런 일을 행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남자는 자기 본인조차 어찌되어도 좋다고 말한 실험으로 엔죠우의 가족에게 매일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동일한 죽는 방법……최후의 하루를 반복시키고 있는 건가. 같은 조건에서 시작하는 아침과, 같은 조건으로 살고 있는 가족을 준비해서. 그래서, 밤에 죽는 것은 엔죠우 쪽뿐이냐?」 「그래서는 이계(異界)의 의미가 없다. 이곳에 불려 들어온 가족들은 모두가 붕괴하고 있던 자들이다. 원래부터 부서져있던 관계는 여유를 없애는 것만으로 빠르게 종착점에 닿는다. 몇 십 년이나 걸리는 종말로의 길은 고행(苦行)이지. 그들은, 한 달 만에 곧 다다를 종말에 이르렀다」 ……자랑도 없고 탄식도 없이, 마술사는 말한다. 시키는 검은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검은 남자를 흘겨본다. 「……브레이크를 부수고 등을 떠밀었다는 소리잖아. 확실히, 이 건물은 스트레스가 쌓여. 모든 점에서 일그러져있어. 바닥은 바다처럼 군데군데가 경사져서 평형감각이 고장 나고, 눈에 부담을 주는 도장(塗裝)과 조명의 사용법으로 모르는 사이에 신경도 약해져가지. 아무런 주술적인 부속도 없이 인간을 이렇게까지 이상하게 만들 수 있다니. 대단한 건축가야, 너는」 「아니(否). 이곳의 설계는 아오자키에게 의뢰했다. 찬미라면 내가 아니라 그녀에게 돌아가야겠지」 남자는, 또 한 발짝 내딛어왔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인 듯 하다. 시키는 남자의 목덜미를 노리며───마지막으로, 진짜 의문을 물었다. 「아라야. 어째서 나를 죽이는 거지?」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이상한 소리를 했다. 「후죠우 키리에도 아사가미 후지노도 효과적이지 않았다」 「────에?」 예상치 못했던 인물들의 이름을 듣고서, 시키는 말을 잃었다. 그 틈을 이용해───남자는 또 한 발짝 나아갔다. 「죽음과 가까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후죠우 키리에는, 너와 비슷하지만 다른 속성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마에 먹힌 후죠우 키리에. 그것은 죽음을 통해서 밖에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없는 한 명의 여성. 죽음으로밖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없었던 한 명의 인간. ……하나의 마음에 두 개의 육체를 가진 능력자. 그리고. 죽음과 가까이하며 그것에 저항하는 것밖에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료우기 시키. ……두개의 마음에, 하나의 육체를 가진 능력자. 「죽음에 접촉하는 일 밖에 쾌락을 얻을 수 없는 아사가미 후지노는, 너와 비슷하지만 다른 속성이었다」 ……통각(痛覺)이 없기 때문에, 외계(外界)로부터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사가미 후지노. 그것은 인간을 죽인다는 종국적인 행위로밖에 쾌락을 얻을 수 없었던 한 명의 소녀. 인간을 죽여서 그 고통스러워하는 과정과 우월감 이외에는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었던 한 명의 인간. ……능력을 인공적으로 봉쇄한 오래된 혈족. 그리고. 죽음에 접촉해서 서로를 죽이려드는 일밖에 자신과 다른 사람을 느끼지 못하는 료우기 시키. ……능력을 인위적으로 개발한 오래된 혈족. 「죽음 가까이 있으면서 그녀는 죽음을, 너는 삶을 선택했다. 목숨을 내던지면서 그녀는 살인을 즐겼고, 너는 서로 죽이려드는 일을 중시했다. 알고 있을거다. 그녀들은 동포이면서, 료우기 시키와는 상반하는 속성의 살인자라고」 시키는, 깜짝 놀라며───이 말하면서 다가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2년 전엔 실패했다. 녀석은 너무 정 반대였다. 필요했던 것은 같은 "기원(起源)"을 가지면서 분화된 자들이었던 거다. 그렇다, 기뻐해라 료우기 시키. 그 두 사람은 너만을 위해서 준비했던 산 제물이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처럼 고양되어있었다. 그런데도, 얼굴만은 움직이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고민에 가득 찬 철학자의 얼굴. 「또 하나의 말(駒)이 준비되어 있지만, 아오자키가 알아차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엔죠우 토모에는 뜻밖의 수확이었다. 너는 나의 의지와는 벗어난 곳에서, 스스로 이 장소에 방문한 것이었으니까」 「네놈이─────」 시키는 나이프를 쥔 양손에 힘을 모은다. 남자는 발을 멈추고, 시키의 등뒤를 가리켰다. 그곳에 있는 것은, 지금 막 그녀가 쌓아버렸던 사자(死者)들의 무리밖에 없다. 그, 압도적일 정도의 죄와, 어둠의 구현. 「무(無)야 말로 너의 혼돈충동, 기원이다. ───그 어둠을 봐라.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내라」 마(魔)적인 운을 담은 주문이 울려 퍼진다. 「───원흉……!」 내뿜어지는 외침과 함께, 시키는 마술사를 향해 뛰어들었다. 극한까지 휘어진 활에서 튀어나간 화살처럼 빠르게, 짐승 같은 속도와 살의(殺意)를 품고서. ◇ 양자의 거리는, 이미 3미터정도 밖에 없었다. 좁은 복도에서 대치하는 시키와 마술사에게 있어서, 서로에게 도망갈 길은 없다. 후퇴 같은 것────양자(兩者) 모두, 사고의 끄트머리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시키의 몸이 튕긴다. 이 거리라면 접근에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단숨에 녀석의 가슴에 나이프의 칼날을 찔러 넣는다. 하얀 기모노가 어둠에 흐른다. 그 전에, 마술사는 발음했다. 「불구(不俱),」 공기가 변한다. 시키의 몸이, 갑자기 정지한다. 「금강(金剛),」 한 손을 눈앞 한가운데로 내뻗으면서, 시키를 향한 채로 마술사는 그런 단어를 읊는다. 시키는, 바닥에 떠오르는 선을 발견했다. 「사갈(蛇蝎),」 마술사의 주위로부터, 모든 유동(流動)이 두절되어간다. 대기에 흐르는 여러 가지 현상이 밀폐되어간다. 시키는 보았다. 검은 남자의 발밑에서 퍼져나오는, 세 개의 원형 문양(文樣)을. ───몸이, 무겁다……? 마술사를 보호하는 세 개의 서클은, 별의 궤도를 선으로 그린 도형과 비슷했다. 세 개의 가늘고 긴 서클이 동심원을 그리 듯 지면과 대기(大氣)에 떠올라 있다. 그 서클의 제일 바깥 선을 밟아 들어간 순간, 시키의 몸은 동력을 빼앗겼다. 거미줄에 붙잡힌, 가냘픈 하얀 나비처럼. 「그 몸. 아라야 소우렌이 받겠다」 마술사가 움직인다. 시키가 밤의 어둠에 하얀 기모노의 잔상을 남기면서 달린다면, 이 남자는, 밤의 어둠에 녹아들어, 사냥감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접근하는 과정조차 인식시키지 않는, 그것은 망령 같은 속도. 멈춰 선 채로 움직일 수 없는 시키의 바로 옆에서 마술사의 코트가 펄럭인다. 기미조차 없는 마술사의 접근에, 시키는 눈 하나 깜짝하지 못했다. 보고 있었는데도───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도, 남자가 자신의 바로 옆에 서있다고 지각(知覺)할 수 없다─── 한기(寒氣)가 느껴진다. 이 상황에 이르러, 그녀는 겨우 『적』이 진정한 괴물이라고 이해했다. 마술사가 왼손을 뻗는다. 바이스처럼 열린 손바닥이, 시키의 얼굴을 쥐어 으스러뜨리려는 듯 뻗어 나온다. 「오지……마……ㅅ!」 얻어맞는 듯한 등골의 오한이, 역으로 그녀의 몸을 정지상태에서 소생시켰다. 마술사의 손끝이 얼굴에 닿은 순간, 시키는 튕겨지듯, 얼굴을 뒤로 빼었다. 그대로 몸을 바로 옆으로 흘리면서, 마술사의 팔을 향해 나이프를 휘두른다. 쩍, 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나이프는 마술사의 왼손을 손목부터 절단했다. 「, 대천(戴天)」 마술사가 발음한다. 분명히 나이프의 날이 통과한 마술사의 손은, 팔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날은 무를 자르듯이 깔끔하게 통과했는데 마술사의 팔엔 상처하나 없다. 「, 정경(頂經)」 오른손이 움직인다. 죽지 않는 왼손에서 도망친 시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뻗어나간 오른손은, 확실히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소녀의 얼굴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마술사는 시키의 몸을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시키가 소녀라고는 해도, 팔 하나로 인간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모습은 도깨비나 마물 같았다. 「아─────」 시키의 목이 떨리고 있다. 신음과도 닮은 목소리에 의식은 없었다. 남자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것은 압도적인 절망감 뿐. 그것은 피부를 관통해서 뇌수에 이르고, 척추를 미끄러져 내려가 시키의 온몸에 침투했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대로, 죽을 거라 확신했다. 「───미숙. 이 왼손에는 불사리(佛舍利)를 채워 넣었다. 아무리 직사의 마안을 사용해도, 죽기 쉬운 부분 따위 보이지 않아. 단순히 잘라내는 것뿐이라면, 아라야는 상처입지 않는다」 마술사는 소녀의 얼굴을 쥔 손바닥을 압박시키며 말한다. 시키는 대답할 수 없다. 얼굴을 조여드는 힘이 너무 강해서,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남자의 팔은, 인간의 머리를 쥐어 으스러뜨리기 위한 기계 같았다. 얼굴에 파고드는 다섯 손가락은, 힘으로는 뿌리칠 수 없다. 어설피 몸을 흔들어 반격하려 하면 이 기계는 망설임 없이 시키의 머리를 부숴버린다. 마술사의 말은 이어진다. 「한마디 더하자면 나는 죽지 않는다. 나의 기원은 『정지(停止)』다. 기원을 일깨운 자는, 기원 그 자체에 지배당한다. 이미 멈춰있는 자를, 너는 어떻게 죽인다는 거냐」 시키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는 일절의 감정을 잘라 내버리고, 남자의 몸에 있는 미약한 선을 찾아내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전신을 휘감아버린 절망감이란 마취도, 얼굴을 조여들고 있는 아픔도 모두 무시하고, 유일한 돌파구를 열려고 한다. 그러나 그 전에. 마술사는 자신이 공중에 들어올리고 있는 소녀를 관찰하다가, 결론지었다. 「───그런가. 머리는 필요 없겠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마술사는 처음으로 팔에 힘을 넣었다. 삐직, 하고 뼈를 부스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료우기 시키라는 소녀의 얼굴을 으스러뜨리려는 그 오른팔이 이번에는 잘려졌다. 「────므」 마술사가 조금 후퇴한다. 공중에 매달렸던 자세로 마술사의 팔을 팔꿈치부터 잘라낸 시키는, 자신의 얼굴에 들러 붙어있던 손을 벗겨내고, 재빨리 물러섰다. 털썩, 하고 지면에 검은 팔이 떨어진다. 마술사의 3중의 원형에 닿지 않는,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떨어지자, 시키는 지면에 한쪽 무릎을 대고 쭈그려 앉는다. 얼굴이 으스러질 뻔한 아픔 때문일까, 아니면 마술사의 미약한 죽음의 선을 찾아내려고 의식을 집중한 것 때문일까. 시키는 거친 호흡을 하면서, 무릎을 꿇고 지면만을 응시한다. 두 사람의 거리가, 다시 한번 크게 벌어졌다. 「……과연, 내가 경솔했다. 병원의 일로 입증되었었지. 살아있던지 죽어있던지 움직이는 자라면 움직이고 있는 원천을 자른다. 그것에 너의 능력이다. 내가 이미 멈춰진 생명이라 해도,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이상 존재하게 하는 끈이 있다. 그것을 잘리면 분명히 죽겠군. 유일한 예외는 이 왼팔뿐이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아무리 성자의 뼈라 하더라도 활동하고 있는 이상은 그것을 재촉하는 인과(因果)가 있는 것이 도리다」 잘린 팔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마술사가 말한다. 「역시 그 눈은 필요 없다. 료우기 시키의 부속품으로서는 너무 위험하다. 그러나 부수기 전에는────마취가 필요할까」 마술사는, 3중의 결계를 유지한 채로 한 걸음 내딛었다. 시키는, 그 3중의 원형을 계속 바라본다. 「……소용없다. 너는, 지금 것으로 끝났어야했다」 나이프를 역수(逆手)로 쥐고, 시키는 말했다. 「나도 결계는 알고 있다구. 수험도(修驗道)에서는 성지인 산에 여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결계를 펴지. 들어온 여자는 돌이 되어 버린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계란 것은 경계에 지나지 않잖아. 원 안이 결계 인 것이 아냐. 그 구획만이 타자(他者)를 저지하는 마력의 벽이다. 그렇다면───선이 사라지면, 그 힘은 소실 된다」 그리고, 그녀는 지면에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마술사가 가진 3중의 원형의, 제일 바깥쪽의 원 그 자체를 "죽인" 것이다. 「────몽매(蒙昧)」 마술사가 조급한 듯이 앞으로 나왔다. 다시 한발 짝, 시키에게로 다가와도 시키에게 변화는 없다. ……남자의 결계는 3개에서 2개로 줄어있었다. 마술사는 내심 혀를 찼다. 시키의 직사의 마안이 이 정도의 물건이라고는 고려하지 않았었다. 설마 형체가 없는, 살아있지도 않은 결계라는 개념조차도 살해한다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절대성(絶對性)인가──── 경계에 접촉한 외적(外敵)을 처리하는 3중 결계의 바깥쪽 결계, 불구(不具)를 잃은 마술사는 시키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두 개 남아있다」 「───그것도, 늦어」 웅크린 자세인 채로, 시키는 등 뒤로 손을 뻗었다. 기모노를 묶고 있는 띠 안에는, 두 번째의 나이프가 있다. 시키는 등 뒤의 띠에서 나이프를 횡으로 잡아 빼며 곧바로 마술사에게로 던졌다. 칼날이, 2중의 결계를 관통 한다 수면을 튕기며 날아가는 작은 돌처럼 나이프는 원 위에서 두 번 정도 튕기며, 마술사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탄환 같은 속도였다. 「───!?」 마술사는 재빠르게 피했다. 나이프는 남자의 귓가를 스치고 통로의 안쪽으로 사라져가고, 피했을 귓가는 몽땅 도려내져 있었다. 피와 살과 부서진 뼈, 그리고 뇌장(腦漿)이 흘러나온다. 「────큭」 신음을 흘리는 마술사. 그것보다 빠르게───그는, 자신의 가슴을 꿰뚫는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탕, 하고 하얀 어둠이 마술사의 체구(體軀)에 작열한다. 그것이 나이프를 던진 뒤에, 곧바로 자신에게로 질주해온 시키라고 마술사가 파악했을 때, 승패는 결정 나 있었다. 어깨부터 몸통박치기를 해온 시키의 일격은 대포의 일격 같은 충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뼈가 몇 대는 나가 버릴텐데, 시키의 손에는 은의 나이프가 쥐어져있었다. 나이프는, 마술사의 가슴중심을 확실히 관통하고 있다. 「커────헉」 마술사가 피를 토한다. 피는 모래 같은 가루였다. 시키는 나이프를 잡아 빼서, 그대로 마술사의 목덜미에 나이프를 찔러 넣는다. 양손으로 있는 힘껏. 승패는 결정 나 있는데도, 필사적인 표정으로 두 번째 치명타를 날리려고 한다. 왜냐면─── 「……순순히 체념하지 못하는군. 그래서는 저승에서 헤메이게 된다, 시키」 ───적은,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빌어먹을, 어째서……!」 시키는 저주하듯 소리친다. 어째서───어째서 너는 죽지 않는 거냐고. 마술사는 움직이지 않는 무뚝뚝한 얼굴로, 눈알만으로 씨익 웃었다. 「확실히, 그곳은 나의 급소겠지.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직사의 마안이라고 해도, 2백년을 살아온 나의 세월을 치사시킬 수는 없다. 얼마 안 있어 이 몸은 두절되겠지만, 이렇게 되는 건 각오하고 있었다. 료우기를 붙잡을 수 있는 거다. 대가가 스스로의 죽음이라면 어울리겠지」 마술사의 왼손이 휘둘린다. ……그래. 승패는 이미 나있었던 것이다. 강하게 쥐여진 남자의 주먹은, 그대로 시키의 복부에 작렬했다. 거목 나무조차 꿰뚫을 것 같은 일격에, 시키의 몸이 들썩인다. 그 일격만으로 시키는 가슴과 목을 관통당한 마술사 이상으로 입에서 피를 역류시켰다. 빠직빠직하고 소리를 내며, 내장과 그것을 보호하고 있던 뼈가 부러진다. 「─────」 그대로 시키는 기절했다. 아무리 직사의 마안을 가지고 탁월한 운동신경을 소유하고 있더라 하더라도, 그녀의 육체는 연약한 소녀의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힘을 절반정도로 억제했다고 해도, 콘크리트 벽도 부수는 아라야의 일격에 견디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술사는 소녀의 배를 한쪽 손으로 쥐어 들어올리고, 그대로 맨션의 벽을 향해 내던졌다. 시키의 전신의 뼈를 부숴 버릴 듯한 기세로 행해진 흉행(兇行)은, 더욱 기괴한 현상이 되어버렸다. ……벽에 부딪힌 시키의 몸은, 물에 가라앉듯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부글부글하고 소리를 내면서 맨션의 벽이 시키를 완전히 삼키고 나자, 마술사는 겨우 팔을 내렸다. ……그 목에는 지금도 시키의 나이프가 꽂혀있고, 눈에는 아까까지의 위압감이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의 공백이 흘러도, 검은 외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마술사의 육체는, 완전히 죽어있었다. / 8 (모순나선, 5) 날짜가 11월 10일이 되어도, 시키는 자신의 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시키는 자신의 집에 열쇠를 잠그지 않고 외출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제대로 열쇠를 잠그고 있다. 그 탓에 나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몇 시간 동안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는 아키타카씨도 똑같이 계속 기다리고 있다가 끝내 방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는, 나한테 시키에게 전할 물건을 맡기고 갔었다. 시키가 밤의 산책을 나가면, 날이 밝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평소라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어제 시키가 떠나 갈 때는 어딘가 불길했다. 그것이 신경이 쓰여서, 충분히 기다려 봤지만, 아침이 되어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