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모순나선, 6) 돌아오지 않는 시키를 기다리는 사이에, 거리는 아침을 맞이해 버렸다. 날씨는 음울하게 구름 낀 하늘. 말로 하기 힘든 불안을 가슴에 묻어두고 사무소로 발을 옮긴다. 시각은 아침 8시경. 책상에 앉아있는 토우코씨 이외의 사람모습은 없어서, 시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최후의 기대는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언제나 대로의 인사를 하고 책상에 앉아서, 일단 어제의 일을 계속한다. ……아무리 어두운 불안이 있어도 몸은 제대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해온 작업이어서 일까, 코쿠토 미키야 본인의 마음이 소극적이라도, 반복한 일상의 힘은 평소대로의 생활을 보내려고 한다. 「코쿠토, 어제의 일말인데」 창문을 등진 소장의 책상에서 토우코씨의 말이 들린다. 나는 하아, 하고 의심쩍은 눈길로 반응했다. 「예의 맨션의 입거자(入居者)말야. 50건 중에 30건밖에 조사할 수 없었다고 고민하고 있던 것 같은데, 조사는 그걸로 끝났던 거야. 그건 조사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이름과 가족구성밖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남은 20건의 입거자는 가공의 가족이야. 그 뒤로 조사를 해봤는데, 네 번째 반복까지 결과가 똑같아서 그만뒀어. 이미 몇 년 전에 죽은 인간들의 호적과 역사들을 재이용해서, 있지도 않은 입거자를 날조해낸 거야」 나는 다시 한번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조작되어있었던 것은 한결같이 동동의 거주인들 뿐이야.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말을 하다가 토우코씨는 눈썹을 찡그린다. 무언가, 몸 위에 개미의 행렬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침입자다, 라고 중얼거렸다. 토우코씨는 책상 속에서 풀로 만들어진 반지를 꺼내어, 이쪽을 향해 던졌다. 「그걸 가지고 벽 쪽에 서있어, 손가락에는 끼지 말도록. 곧 손님이 올 건데, 철저하게 무시해. 소리도 내지마. 그러면 손님은 너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떠날 거야」 엄청 불쾌한 표정으로 토우코씨가 말한다. 거기에는 다른 건 묻지 말라는 절박한 긴장감이 있어서, 나는 그것에 따르기로 했다. 아주 서투르게 만들어진 풀반지를 쥐고 시키가 애용하는 소파의 뒤쪽 벽에 선다. 그러자, 곧 발소리가 들려왔다. 공사도중에 방치된 이 빌딩의, 콘크리트가 드러난 바닥을 일부러 과장하는 듯한, 높게 울리는 구두소리. 그것은 한번도 멈추지 않고, 일직선으로 이 사무실이 있는 방까지 찾아왔다. 문이 없는 사무소의 입구에 붉은 형체가 나타난다. 어두운 금발에 벽안.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아무리 봐도 품위 있는 행동거지. 나이가 20대 전반정도 되어 보이는 독일인. 붉은 코트를 입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미남자는 사무소에 들어오자 쾌활하게 손을 들었다. 「야아, 아오자키! 오래간만이야, 그 동안 잘 있었나?」 청년은 친근함에 가득 찬 미소를 띄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뱀처럼 악의에 찬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붉은 코트의 청년은, 토우코씨의 책상 앞 까지 걸어가서 그곳에 멈춰 섰다. 토우코씨는 의자에 앉은 채로, 명백하게 환영하지 않는 태도로 청년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 슈폰하임 수도원의 차기 원장이 이런 벽지에 무슨 일이지?」 「하하, 당연한 것을 묻는군! 모든 것은 너를 만나기 위해서야. 런던에서는 신세를 졌으니까 말야, 옛 학우로서 충고를 해주러 왔지. 아니면 나의 호의는 폐가 되는 건가?」 청년은 과장된 몸짓으로 양손을 벌리고, 선의에 가득 찬 웃음을 짓는다. 어쩐지 독일인이라기보다는 프랑스인 같은 왕자님흉내를 내는 것이, 토우코씨와는 정 반대다. 토우코씨는 차가운 눈빛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 그것을 앞에 두고서도, 청년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은 좋은 곳이야. 너는 벽지(僻地)라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협회의 감시도 소홀한거다. 이 나라에는 독자적인 마술계통이 존재하고 있어서 우리 조직과는 양립할 수 없어. 대륙에서 파생한 음양도(陰陽道)였던가. 나에게는 신도(神道)와 구별이 가지 않지만, 뭐어 별 문제는 없겠지. 그들의 좋은 점은 말야, 자신들의 지배권을 침범하지 않으면 손을 뻗쳐오지 않는다는 점이야. 협회와는 다르게 폐쇄적이더라구. 일이 일어나기 전이 아니라 일이 일어난 후에 움직이지. 사후처리의 달인들이야. 일본인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라구. 앗차, 이것은 악의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야. 오히려 나에게는 기쁜 일이지. 계획 도중에 방해가 들어오지 않는다니, 나의 나라에서는 생각할 수 없어. 협회에서 벗어난 마술사에게 있어서, 이 나라는 이상향(理想鄕)이야」 애초에, 나는 협회에 속한 마술사니까 관계없지만, 하고 덧붙이면서 청년은 웃었다. ……그는 토우코씨만 보고 있다. 정말로 나를 보지도 않고 있고, 눈치 채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관총처럼 주절대는 청년을 한쪽 눈으로 노려보면서 토우코씨는 겨우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러 온 거라면 돌아가 주기바래. 남의 공방(工房)에 무단으로 발을 들여 놓은 거야. 죽더라도 할말이 없어」 「뭐야, 너도 무단으로 나의 세계에 들어 왔었잖아. 일행이 있는 것 같아서 인사를 하는 것은 참았지만, 원래대로라면 너야말로 예의를 모른다고 욕을 먹었어야 했어」 「호오, 그 맨션은 너의 공방이었던 건가. 그 결계 아닌 결계가 너의 농간에 의한 것이라고 하면,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크큭, 하며 토우코씨가 평소대로의 심술궂은 웃음을 흘린다. 청년은 희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우리들의 공방은 현대에서는 그것만으로 이계(異界)다. 무리(群)라는 것은 외계의 이계(異界)는 무시하지만, 내부의 이계(異界)를 병적일 정도까지 배제하려하지. 그것을 피하기위해서, 마술사들은 무리 속에 있으면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 결계를 만들어. 그렇게 해서 마술사는 이계를 더욱 이계로 만드는 거지. 하지만 이계를 격리하려고 하는 결계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이번에는 협회가 그것을 감지해버려. ───결국, 인간사회에서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결계를 만들 수 없어. 궁극의 결계란 것은 문명사회에 감지되지 않고, 마술협회에도 감지되지 않는 것을 말해. 저 맨션이 바로 그거지. 혼연일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술적인 실험을 하고 있는 반면, 그 이상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사회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어. 그것은 마술사가 되지못한 마술사에게는 절대 다다를 수 없는 결론이다.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을 실천할만한 녀석은 한 사람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가, 너는 겨우 녀석을 따라 잡은 거야. 축하해,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 「값싼 평가하지 말아 주게나, 아오자키. 나는 아라야 따위는 문제시하고 있지 않아. 인형들의 몸을 준비하고, 뇌수(腦髓)만을 살려두는 기술은 나만의 것이야. 그 이계(異界)는 나의 힘이 아니고서는 성립할 수 없어」 지금까지 넘치던 젊음은 어디에 간 걸까, 청년은 잘난체하는 노인처럼 언성을 높인다. 「그런가 그런가. 그래서, 용건은 뭐지 아르바. 설마 자랑 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학생이었을 무렵이라면 모르겠지만, 너나 나나 협회에서 떨어진 몸이야. 자신의 연구 성과라면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있는 제자들을 상대로 보여 주라구」 「흥. 변함 없군 너는. 알았어, 쌓인 얘기는 나중에 하지. 곧 나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야. 확실히 너의 본거지에선 마음이 놓이지 않는군. 즐거운 이야기는 편안한 장소에서 하는 법이니까. ────아오자키. 태극(太極)은 맡아두겠어」 여유에 넘친 청년의 말에, 토우코씨는 미약하게 눈을 번뜩인 것 같았다. 「───태극의 안에 태극을 가둬넣은 건가. 정말로 근원에 근접하려 하는 의지는 인정하겠지만, 억지력이 움직인다구. 세계 아니면 영장(靈長), 어느 쪽이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과거에 한번도, 그것을 피한 마술사는 없어. 스스로 자멸할 생각이야 아르바?」 토우코씨는 붉은 코트의 청년을 노려본다. 그러나 청년은 내 뜻대로 될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씨익 웃었다. 「억지력? 아아, 그 방해자는 움직이지 않아. 이번에는 스스로 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열려있던 길을 더듬어갈 뿐 이니까. 반동(反動)이 있을 리 없어. 하지만, 그래도 일은 신중하게 진행할 생각이야. 료우기라는 샘플은 조심스럽게 취급해주지」 ──료우, 기? 「시키를 어떻게 한거야, 너!」 순간, 나는 외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일제히 이쪽을 돌아본다. 이 바보, 라고 말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토우코씨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청년. 아차, 하고 자신을 꾸짖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붉은 코트의 청년은 나를 발견하자,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씨익 하고 웃었다. 「어제의 소년이군. 그런가, 제자는 두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제대로 있었잖아. 기쁜데, 즐거움이 하나 늘어버렸어 아오자키!」 빙글, 하고 토우코씨를 향해 돌며 그는 말한다. 오페라의 가수처럼 양팔을 벌리고 말하는 그는,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저건 제자도 뭐도 아냐. ……라고 말해도 소용없나」 토우코씨는 두통을 참는 것처럼 턱에 손가락을 대고, 한숨을 쉰다. 「용건은 그것뿐인가. 일부러 알려주러 온 것에는 감사하지만, 내가 협회에 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흥, 너는 그런 짓은 안 해. 그렇게 한다 다더라도, 놈들이 오는데 까지는 6일은 걸리겠지. 협회의 한 무리가 일본에 상륙하려면 이쪽의 조직과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거기서 또 이틀. 자, 봐. 어딘가의 책에서 나오는 신이라면 세계를 창조해도 여유가 있잖아!」 아하하하하, 하고 청년은 몸을 ㄱ자로 구부리면서 웃었다. 그렇게 홀로 웃고는 만족했는지, 왔을 때처럼 상냥한 언행으로 돌아가더니, 청년은 발길을 돌렸다. 「그러면, 다음에 보자. 너도 준비가 있을 테지만, 될 수 있는 한 빠른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어」 마지막까지 쾌활한 어조로 인사를 남기고, 청년은 붉은 코트를 망토처럼 펄럭이면서 떠나갔다. 「토우코씨, 지금은 무슨 소리에요!?」 「아아, 시키가 납치감금 되었다는 이야기겠지」 붉은 코트의 청년이 떠나간 뒤, 곧바로 소장석에 달라붙자 토우코씨는 시원스레 그렇게 대답해주었다. 그, 너무나 덤덤한 그 태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하면서도 나는 스스로 충분히 알고 있는 질문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감금되었다면, 어디에?」 「코카와 맨션. 아마도 최상층. 근데, 그곳에 옥상은 없었지. 그러면 10층의 어딘가의 동이겠지. 시키는 음성이니까 서동인가」 토우코씨는 어디까지나 냉정했다. 가슴 포켓에서 담배를 꺼내서, 천정을 바라보면서 한 대 피워 무는 여유까지 있다. 같이 그러고 있을 정도로, 나는 낙천주의자가 아니었다. 시키가 납치되었다는 소리는 갑작스러워서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 해도 확인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달려 나가려고 하는 차에, 토우코씨가 기다려, 하고 말을 걸어왔다. 「───뭐에요. 소장님은 언제나 처럼 상관없다는 방침이잖아요?」 울컥해서 내뱉자, 토우코씨는 언짢은 얼굴로 끄덕였다. 「기본적으로는. 하지만 이번에는 남의 사건이 아냐. 아무래도 나에게도 관계가 있는 사건 같아. 무엇보다, 시키에게 관계하기로 마음을 정했을 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말야」 정말, 뭐 이런 인과가 다 있냐며 그녀는 이전에도 말했던 대사를 되풀이한다. 「게다가 말야, 코쿠토. 마술사의 성(본거지)에 간다는 것은 싸우러간다는 소리야. 나의 이 공방이나, 아르바의 그 맨션이나───마술사에게 있어서 성이란 것은 방어를 위한 것이 아냐. 오히려 공격을 위한 도구, 쳐들어오는 외적을 확실하게 처단하기 위한 도구야. 나는 그렇다 쳐도, 코쿠토가 찾아가면 현관문에서 집오리(家鴨)가 되 버릴지도 몰라」 그 말을 듣고서, 나는 겨우 그 붉은 코트의 청년이 토우코씨와 동류(同類)의 인간인 것이라고 생각이 미쳤다. ……확실히, 그 조금 이상한 제스쳐는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지만,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어제는 일반인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겠지.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마술사는 마술사 이외에는 마술을 사용하지 않아. 섣불리 손을 대서 트러블이 일어나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지. 그 맨션이 이상(異常)이라고 밖에 알려지는 것은 아르바가 바라는 바가 아냐」 그렇게 말하지만, 마술사라면 나 정도는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최면술도 인간의 기억을 애매하게 만들 수 있다, 마술이라고 이름 붙은 것이라면 그 이상의 일이 가능할거라 생각한다. 그 의문을 이야기하자, 토우코씨는 끄덕이면서 아니야, 라는 모순 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건 말야, 인간의 기억에 관련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손을 댈 수 있어. 룬에는 망각이라는 그야말로 그것만을 위한 각인까지 있고 말야. 하지만, 그것이 통한 것은 과거의 이야기야. 옛날은 기억을 잃은 사람이 한두 명쯤 있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어. 요정에게라도 홀렸었나, 하고 끝나버려. 하지만 현대에서는 다르잖아? 한 사람의 기억에 이상이 있으면 철저하게 조사해 준다구. 조사하려 하는 것은 기억이 지워진 개인이 아니라 주위의 인간들이야. 가족과 친구, 상관이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확실한 기억의 소거는 불가능해. 결계와 마찬가지야. 하나의 이상을 은폐하기 위해서 기억을 조작하면, 이번에는 그 기억의 조작이라는 이상이 노출돼. 거기부터 원인을 더듬어서 그 맨션에 다다를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야. 기억이 지워진 본인이 갑자기 기억해 낼 가능성도, 절대 없다고 단언할 수 없고」 토우코씨는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말했다. ……과연, 확실히 그 말 대로다. 다소 걱정이 지나친 경향이 있지만, 요즘 세상에는 조그마한 불가사의조차도 무시되지 않고 추궁당하고 있다. 아니, 모든 일이 설명 되어버렸기 때문에, 역으로 설명되지 않은 것이 부각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기억이 아닌, 그 인간 그 자체를 지워버린다면 어떨까? 지성을 파괴해서 폐인으로 만든다던가, 생명 그 자체를 소거해서 죽은 자로 만든다던가.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이거라면 비밀은 샐 일도 없다. ……아아 그런가. 그래도 결과는 똑같다. 주위는 반드시 그 구멍을 알아차린다. 정보화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에서, 사라진 인간 한 명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 맨션에 이르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그 맨션을 방문한 일반인은 아무런 이상을 눈치 채지 못한다. 그 건물의 이상한 구조는, 그런 외적요인을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리기 위한 것이다. 그 아르바라는 사람이 마술사이고,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다(라고 할까, 아까까지의 말로는 그렇게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묵묵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빈집을 털러 들어간 강도나, 폭력배에게 습격당해서 도망쳐 들어간 여성이 경찰을 부르는 것은 알고 있었어도, 손을 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그, 죽여버리던가 하면 오히려 그것으로 관심의 눈이 쏠린다. 그렇다───어디까지나 평범한 맨션으로서, 그 운 나쁜 사람들이 일으킨 사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 이 사무소에서 아자카가 말했던, 패러독스를 떠올린다. 현상을 지우기 위해서 일으킨 현상이, 결국 자기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는 행위가 된다. 하지만 역시 처음의 현상을 남겨도 막다른 곳에 몰려 버린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현상"이라는 말이 사라져주지 않는다──. 문제가 문제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일어나 버린 현상은,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완전히 덮어 감추는 수밖에 없다. 현상 그 자체는 결코 무(無)로 돌릴 수 없으니까. 「그런 거야. 그 결계에 허점은 없었어. 두개의 사건만 없었더라면 우리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시키가 사라져버려서 그 곳을 특정(特定)할 수 도 없었겠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말야, 코쿠토. 모든 일에는 언제나 방해꾼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완벽한 것 따위는 없다는 거야」 토우코씨는 꽤나 핵심을 찌르는 소리를 한다. ……그 자신이 완벽하더라도 밖에서 찾아온 예측불능의 방해자. 저 맨션을 덮친 방해자는 우연히 겹쳐진 그 두 사건을 말하는 거겠지. 「저기, 아까 전 사람이 말했던 억지력이란 그것을 말하는 건가요?」 방금 전 까지 있었던 두 사람의 마술사의 대화를 기억해내어 묻자, 토우코씨는 또다시 몹시 기분 나쁜 얼굴을 하면서 끄덕인다. 「───그럴지도 몰라. 억지력(抑止力)이라는 것은 말야, 우리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우방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최대의 적이기도 한 "방향의 수복자(方向の修復者)"를 가리켜. 우리들 인간은 죽고 싶지 않아. 평화롭게 있고 싶어. 우리들이 있는 별도 죽고 싶지 않아. 오래살고 싶어. 억지력이라는 것은 그거야. 영장류라는 군체(群體)의 누구나가 가진 통일된 의식, 자신들의 세계를 지속시키고 싶다는 원망(願望). 자아(自我)를 분리한, 인간이라는 종의 본능에 있는 방향성이 한데 모여서 형체가 된 것. 그것이 억지력이라고 불리는 카운터 가디언. 그렇지, 예를 들면 a라는 우수한 인간이 세계정복을 했다고 하자. 그는 정의로운 사람인데다가, 그의 통치는 이상적이었다고 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본 도덕상의 한계에서 말이야. 그러나 a의 행동이 한사람의 인간으로서가 아닌, 영장류전체의 시점으로 봐서 악(惡), 곧 멸망의 요인이 되는 경우 억지력이 구현돼. 이것은 영장의 세상을 유지시키고 싶다, 라는 a까지 포함된 인류의 의식하(意識下)의 집합체야.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서 인류를 구속(拘束)하는 이 존재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나타나서 누구에게도 관측되는 일 없이 a를 소멸시키지. 사람들의 무의식 하의 소용돌이가 만들어낸 대표자는, 역시 무의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의식되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형체 없는 의식(意識)이 저주가 되어 a를 죽인 것이 아냐. 억지력은 대개 촉매가 될 수 있는 인간에 깃들어서, 적이 된 a를 구축(驅逐)하지. 촉매가 된 인간은 a만을 쓰러뜨리기 위한 능력을 가지지만, 그 이상의 능력은 부여 되지 않아. a를 대신할 수 없도록 말이야. 억지력이라는 영장류전체의 의지를 떠맡은 수신자(受信者), 그런 특수한 채널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는 드물게 존재해. 역사는, 이것을 영웅이라고 부르면서 찬양하지.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이 호칭은 사용되지 않아. 문명이 발달해서 인간은 자신들을 멸망시키는 일이 간단해져버렸어. 어떤 기업의 회장이 전 재력을 기울여 아마존의 삼림의 벌목량을 증가시키면, 1년 뒤에 지구는 끝장나. 봐, 언제어디서나 지구는 핀치잖아? 억지력에 떠밀려 움직여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를 구하고 있는 놈들은 도처에 깔려있어. 영웅은 한 세대에 한 명 뿐. 현대에는 세계를 구한 것 정도가지고서는 영웅이라고 불리지 못해. 또, 이 a를 인간의 손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경우, 억지력은 자연현상이 되어 a와 함께 주위를 소멸시키지. 아주 옛날에 어딘가의 대륙이 가라앉은 것도 이 녀석 짓이야. 이렇게 말하면 인류의 수호자 그것이지만, 이 녀석은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없어. 가끔씩은 만인을 행복하게 하는 행위의 앞을 가로막는 일도 있어. 귀찮은 점은, 이 녀석이 결국 인간 그 자체의 대표자라는 점이야. 우리들이 그것을 인식할 수 없어도, 억지력은 최강의 영장 인거야. 과거 몇 번이나, 어떤 실험에 도전했던 마술사들 앞에는 이것이 나타났고 그 마술사들은 모조리 참살 되었어」 ……토우코씨의 말은, 어쨌거나 길다. 하지만 그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는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다. 그것은 어떤 과목의 어떤 내용이었던 걸까. 인간은 모두 따로따로지만 어딘가에서 이어져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과는 다르게, 나는 지금 이야기로 오를레앙의 성녀를 연상했다. 단순한 농민의 딸이 신의 계시를 받고서 싸웠다는 옛이야기. 실제로는 당시의 기사들이 비겁하고 미천하다며 쓰지 않았던 전법을 취한 것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도 무언가에 떠밀렸던 결과는 아니었을까. 돌연히 사람이 변한 것처럼 활약하는 어떤 사람. 그 때만 다른 인격이 되어 악과 싸우는 어떤 사람. 그것이 억지력이라는 영장의 수호자라는 존재. 「……이야기는 이해했어요. 그래서, 그 실험이란 것이 시키에게 관련되어 있는 거군요?」 나도 토우코씨와 같이 지내면서, 이 사람의 회화의 흐름은 읽을 수 있게 됐다. 이 사람은 의미 없는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는다. 나중에 반드시 실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던 것에 관계하게 된다. 그래서───그 실험이란 것이 시키가 납치된 이유라고 느꼈다. 토우코씨는 담배의 불을 비벼 끄면서, 기쁜 듯이 이쪽을 바라본다. 「───아르바가 시키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몰라. 단지 녀석의 목적은 근원의 소용돌이로의 도달이야. 그렇다면 시키의 몸을 열겠지만, 아마도 녀석에게 그런 용기는 없어. 기한이 아슬아슬할 때까지 생각하겠지.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레드캡을 산채로 잡았다고 기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적절한 해부법을 몰라서 결국 썩게 만들어 버렸던 일도 있었던가. 뭐어 본인도 그런 말을 했으니, 시키의 신체는 7일간은 무사하겠지. 무엇보다 무사히 산채로 잡혀 줬을 때의 얘기지만」 엄청나게 불길한 얘기를 토우코씨는 말한다. 「──시키는 무사해요. 그 자식, 맡아뒀다고 말했잖아요. 그것은 살아있단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말이라구요!」 반론하는 나는, 나도 모르게 토우코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냐면, 스스로의 말로 인해──────시키가 죽어있는 모습을 이미지 해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빨리 구하지 않으면」 중얼거린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때 나에게는 방법이 없다. 경찰을 불러서 그 맨션을 조사해달라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짓은 아무런 효과도 없겠지. 그만큼 용의주도한 장치를 만드는 상대다. 경찰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아무런 미련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 틀림없다. 시키를 구할 거라면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그 붉은 코트의 남자를 쓰러뜨리던가 눈치 채이지 않고 시키를 되찾아오던가. ────나에게 가능하다고 하면, 그것은 후자의 방법이다. ……응, 그 맨션의 설계도를 다시 조사해보자. 어딘가 만든 본인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침입경로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자, 토우코씨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기다려 기다려. 뭐든지 시키가 관련되면 너는 이성을 잃어버려. 병원 때도 말했잖아. 위험하니까 코쿠토는 얌전히 있으라고. 이번엔, 네 차례는 없어. ──마술사의 상대는 마술사가 하는 거니까」 말하면서, 그녀는 일어섰다. 평소대로의 슈트 차림인 채로, 위에 롱코트를 걸친다. 브라운의 가죽제 코트는 무거워 보여서, 나이프 정도로는 잘릴 것 같지 않았다. 「───아르바 녀석은 그렇게 말했지만, 녀석의 성(城)에 쳐들어갈 준비는 이삼일씩이나 필요 없어. 바라는 대로 지금 바로 가줘야지. 코쿠토, 내 방의 옷장에 가방이 들어있으니까 가지고 와 줘. 오렌지색 쪽이야」 토우코씨의 말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없었다. 마술사 같은 그녀의 말에 재촉당해 옆방으로 이동해서, 옷장을 연다. ……가운데에는 옷들 대신에 가방이 놓여져 있었다. 007가방(アタッシュケ-ス)을 조금 부풀려놓은 듯한 오렌지색 가방과, 그대로 여행이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가방이 있다. 들은 대로 오렌지색의 가방을 손에 든다. 의외로 무겁다. 멋지게 생긴 가방이었는데, 가방의 바깥쪽에는 이런저런 스티커 같은 것들이 붙어있었다. 사무소에 돌아와서 가방을 건네자, 토우코씨는 가슴포켓에서 담배 갑을 꺼내서 나에게 넘겨주었다. 「맡아둬. 대만의 맛없는 담배인데, 이제 이것밖에 안 남았어. 만든 회사는 당연히 없고, 어딘가의 괴짜 장인이 상자하나 분량만 만든다는 물건. 그렇지, 지금 우리가 가진 비품 중에서 두 번째 정도로 가치 있는 물건이라 할 수 있겠군」 이상한 말을 남기고, 그녀는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설마 첫 번째로 중요한 비품이란 것은 나를 말하는 걸까하고 생각하고 물어보자, 그녀는 얼굴만을 돌리면서 말했다. 「실례야. 아무리 나라도 사람을 비품취급하지는 않는단 말야」 마치 안경을 끼고 있을 때의 그녀처럼, 삐진 표정으로 입술을 비쭉거린다. 그런 뒤에, 평소의 냉담한 얼굴로 돌아온 토우코씨는 계속 말했다. 「코쿠토. 마술사라는 인종들은 말이지, 제자나 가족들에는 친절해지는 거야. 자신의 분신 같은 존재니까 필사적으로 지키려 하지. ……뭐어 그런 거니까, 너는 안심하고 있어. 오늘밤에는 시키를 데리고 돌아올테니」 뚜벅뚜벅하고 걸어가는 소리. 나는 그 뒷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차색(茶色)코트의 마법사를 배웅했다. 矛盾螺旋 · 續く -------------------------------------------------------------------------------- * 툴레 : 툴레의 나무(Arbol del Ture) - 멕시코의 툴레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멕시코 변백나무(Mexican cypress) 툴레는 오아하카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190번 도로 옆에 있고, 툴레의 나무는 툴레의 산타마리아 마을의 성당 앞 정원에 있음. (사진 가운데 있는 건물이 성당인 듯) 연령 2000년 이상. 높이 41.85m, 둘레 57.9m, 중량 636.107t, 직경 14.05m, 체적 816.829㎥ (1995년 자료) * 큐레이터 : curator n. (특히 박물관 · 도서관 따위의) 관리자, 관장; 감독, 관리인, 지배인; (대학의) 평의원 [Sc.법률] (미성년자 · 정신 이상자 등의) 후견인. [ 출처 : 한글2002SE - 한컴사전 - 영한사전 ] 큐레이터란 화랑과 같은 문화공간에서 예술작품 소개 및 전시를 기획하고 유치하며 고객을 관리하는 사람들로서 '화랑의 꽃'이라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큐레이터란 직업명이 붙여진 것은 88올림픽 이후로 미개척 분야라 할 수 있다. 화상학, 미학, 미술사에 정통해야 하는 전문성 때문에 많은 큐레이터 들이 외국유학 출신이거나 회화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미학,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들이다. 또한 굳이 미술관련학과를 졸업하지 않더라도 미학이나 문학전공자들이 다년간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 분석을 통해 큐레이터로 데뷔하곤 한다. 홍익대학교에 전문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예술학과가 있다. 졸업을 하고 2-3년의 사회적 경험을 쌓아야 활동할 수 있다. 큐레이터에 종사하면서 얻는 수입은 보통 화랑주가 고객에게 작품을 판매하는 수익금으로 채워진다.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종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보다는 한 나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문화창달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출처 : 청소년세계(Korean Youth world Association) - http://www.youth.co.kr/ → http://www.youth.co.kr/yt/yt03032.htm ] * 아카식 레코드 (Akasic Record) : 우주의 집단의식이나 우주의 마인드, 혹은 집합체적 도서관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알려지지 않은 제 5원소 - 에테르의 영역이라고도 하며, 불교에서는 인간의 6식을 넘어선 제7식, 제8식, 혹은 말라야식, 아뢰야식 등으로 표현한다. 과거 이 우주상에 살다간, 인간과 모든 생명체들의 생각과 경험, 지식들을 포함한 기나긴 시간과 공간의 기록들은, 차곡차곡 포개어져 날실과 씨실처럼 엮여 가면서 점차 일련의 에너지로써 작용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아카샤(akasha)라 불리는 광대한 영역 주변의 에너지장(場)에 고밀도의 진동수로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기계어를 이용하여 컴퓨터에 자료가 저장되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 살다간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면 그 나쁜 생각들은 그 사람의 사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아카샤의 에너지장의 일부가 되어 존재하면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생명체의 의식과 시공간 자체는 층을 형성해가면서 우주의 집단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카식 레코드란 이 영역과 에너지장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상기한 바와 같이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기록과 우주의 법칙이 새겨져 있는 탓에, 이와 접촉하게 되면 세계의 구성과 원리 · 법칙을 알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에 의해 거대한 정보 창고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카식 레코드란, 이런 사실(시공간의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는 단순한 정보창고 혹은 도서관이기 이전에, 모든 생명체 하나하나의 심층의식과 직접 연결되어있는 거대한 태초의 "대영역" 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는 동양 사상에서 이야기하는 무극(태극 이전의 혼돈)의 개념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츠키히메와 허공의 경계를 비롯해 멜티 블러드에서 등장하는 "대원의 일" 과 "아라야식(아뢰야식)", "아카식 레코드", "근원" 의 의미와 본질은 모두 동일. [ 자료제공 : 유준영(Nownuri : 성야)군 ] 추가. 주)비브로스의 칼라풀 퓨어걸이란 잡지의 2003년 7월호 TYPE-MOON 특집에서 발췌. 작품 내의 표현을 빌자면 「모든 것의 근원,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을 기록한 것. 원래는 오스트리아의 신비사상가, 루돌프 · 슈타이너가 제창한 개념으로, 우주창생이래의 모든 존재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져 있는 기록의 층. 산크리스트어의 「아카샤(akasha)」가 어원. [ 출처 : Colorful PUREGIRL 2003년 7월호 - Encyclopedia of TYPE-MOON ] * 쿠페(Cooper) : 프랑스어(coupe). 적히지 않는 관계로 영어로 적음. 승용차의 차체형식. 원래는 2인승의 세단(상자형 차)을 가리켰으며, 어원적으로는 마부석(馬夫席)이 외부에 있는 2인승인 4륜 상자형 마차의 뜻이다. 최근에는 4~6인승이라도 2도어(door)이며, 지붕이 낮고 스마트한 형태의 것을 쿠페라고 한다. 2도어 세단과의 구별이 어려우며, 이 밖에 컨버터블 쿠페 · 하드톱 쿠페 등의 변형도 있다.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152589&Ad=map ] 그 외, 일본의 쿠페 사이트 [http://www.71club.net/] 마이너-1000은 미니쿠페의 이름인 듯 하나 자세한 정보는 모르겠음. * 카네사다(兼定) : 일본도의 한 종류이기 이전에 사람 이름. 전국시대에 미노(美濃)에서 활약한 명공(名工). 그 뒤에 그가 만든 칼을 토대로 만든 일본도들에게 모두 카네사다라는 이름이 붙는 듯. 사진은 무로마치(室町)시대에 만들어진 이즈미노카미후지와라(和泉守藤原)의 카네사다. 일본도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으신 분은 한국사회인검도연맹[ http://www.kumdos.org ]에서 일본도 페이지를 읽어보시길. [ → http://www.kumdos.org/home/class/japando_1_1.htm ] 역자의 노파심 한마디 추가. 쿠지 카네사다라는 칼도 실제로 있다는군요. 위 사진은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이지, 작품 중에 나오는 카네사다가 저렇게 생겼다는 건 아니니까 염두 해두시라는 겁니다. * 시키가미(式神) : 식신이란 음양도에서 쓰이는 귀신(鬼神) · 사역신(使役神)을 말한다.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신이며, 불교의 그것 같은 명확한 루트는 없습니다. [ 참조 : 京都町家街道 - http://www.machiya.ne.jp → http://www.machiya.ne.jp/ura/u_index.htm에서 좌측 하단에 음양사(陰陽師)에 들어가서, 우측상단에 음양이란(陰陽とは)에 들어가서 좌측하단 다섯 번째 메뉴 ] * 태극도(太極圖) : 흑과 백의 구옥(勾玉)의 형상을 서로 맞춘, 「상승하는 땅의 기와 하강하는 하늘의 기」를 의미하는 것이 태극도입니다. 「하늘의 양의 기와, 땅의 음의 기에 의한 상승과 하강의 유동이 만물을 탄생 시킨다」라는 말이 있어, 우주와 세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태극도에서는, 天 · 地 · 人 · 時 · 五行을 상징할 수 있는 정오각형과 별의 그림이 있어, 별에서 우주의 소용돌이가 생겨난다. 태극도 안에는 음양오행과 우주의 소용돌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참조 : 京都町家街道 - http://www.machiya.ne.jp/ → http://www.machiya.ne.jp/ura/u_index.htm에서 좌측 하단에 음양사(陰陽師)에 들어가서, 우측상단에 음양이란(陰陽とは)에 들어가서 좌측하단 두 번째 메뉴 ] 태극 : 음양(陰陽)의 이기(二氣)가 태극의 일원(一元)에서 생성했다고 하는 사상은 《주역(周易)》의 〈계사상(繫辭上)〉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태극을 일원으로 보는 사상은 진한(秦漢) 때의 제서(諸書)에서 볼 수 있으며, 《여씨춘추(呂氏春秋)》의 〈대악편(大樂篇)〉에는 음악의 근원을 태일(太一)에 있다 하고, 이 태일에서 양의(兩儀)와 음양이 생성한다고 풀이하였다. 또한 《예기(禮記)》의 〈예운편(禮運篇)〉에는 예의 근원을 대일(大一)에 있다 하고, 이 대일에서 천지 · 음양 · 사시(四時)가 생성한다고 하였다. 《순자(荀子)》의 〈예론편(禮論篇)〉에 나오는 것은 《예기》와 마찬가지여서, 중국 고대의 전통사상에서는 만물이 생성 전개하는 근원을 일원으로 보고, 이것을 태일 · 대일 · 태극 등으로 일컬었으며, 이 일원에서 이기 · 오행(五行) · 만물이 화생(化生)한다고 설명하였다. 위에서 말한 것 가운데 태일사상이 가장 오래되었고, 태극사상은 후에 정리되어 역사상(易思想)에 도입되었다.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154482&Ad=Encyber ] 성리학의 태극설 : 태극이라는 말은 성리학 이전에도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데, 그것에 의하면 태극을 만물의 근원, 우주의 본체로 보고 "태극은 양의(兩儀:음양)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고 팔괘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 우주관을 계승하고 여기에 오행설(五行說)을 가하여 새로운 우주관을 수립한 것이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이다. 《태극도설》은 만물 생성의 과정을 ‘태극―음양―오행―만물’로 보고 또 태극의 본체를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그 본체는 무성무취(無聲無臭)한 것이므로 이를 무극이라 하는 동시에 우주 만물이 이에 조화(造化)하는 근원이므로 태극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자는 이것을 해석하여 태극 외에 무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만일 무극을 빼놓고 태극만을 논한다면 태극이 마치 한 물체처럼 되어서 조화의 근원이 될 수 없고, 반대로 태극을 빼놓고 무극만을 논한다면 무극이 공허(空虛)가 되어 역시 조화의 근원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이같이 무극과 태극은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유(有)가 즉 무(無)이며, 절대적 무는 절대적 유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소옹은 태극이 곧 도(道)라 하였다. 만물의 근원적 이치가 도 또는 도리(道理)라 한다면 태극은 곧 태초부터 영원까지, 극소에서 극대까지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치라 하였으니, 다시 말하면 공간적으로 대 · 소가 있을 수 없고, 시간적으로 장(長) · 단(短)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자는 천지도 하나의 태극이요 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태극이라 하였고, 이 태극에서 음양으로의 이행(移行)은 태극의 동정(動靜)에 의하는 것이며 동정은 곧 음양의 두 기운을 내포하고 있어, 만물의 근원적인 생성(生成)이 전개된다고 하였다.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726917&Ad=map ] 태극과 무극 : 무극(無極)이란 문자 그대로 우주의 대생명력(大生命力)이 음극(陰極)도 양극(陽極)도 아닌즉 +.-도 아닌 절대 중(中)으로서 공(空)의 상태인 것을 말한다. 현대물리학에 의하면 우주의 공간(空間)은 진공(眞空)이며, 모든 물질도 원자핵만 압축시켜 놓으면 진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질소를 뺀, ≪우주의 진공도 마이너스(-) 에너지의 전자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공(空)이 단순히 텅빈 무(無)가 아니라, 모든 소립자(素粒子-물질)를 낳는 본체(本體)로 생멸(生滅)작용을 무한히 반복하며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까닭은 기(氣:전자파)의 본질이 운동에너지인 동시에 진동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현대물리학은 공(空)이 단순히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성소멸의 무한한 반복작용을 하는 ≪살아 있는 공(空)≫이라는 것입니다. 진공 자체의 이같은 동적 작용의 발견은 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만물은 ≪진공(眞空)≫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우주창조의 본체(本體)는 무극(無極)이라는 것이 입증되는 셈입니다. 우주창조의 본체는 비록 무극(無極)이지만, 우주만물의 실질적인 창조와 분열작용은 태극(太極) 생명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태극(太極)은 음양이 나누어지기 이전체인 음양(+.-)전체를 내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극(無極)이 일단 창조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 진동(振動)이 압축된 ≪공(空)≫의 상태로 전환하였다가 여기서 ≪물(水)≫을 창조하면서 변화작용이 시작됩니다. 태극(◐)은 무극(○)의 대생명 막이 자체 스스로의 자율적 창조력으로 음양의 상대성(相沖)운동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천지만물은 모두 물(水)에서 생겨난 것이며, 우주계의 모든 변화는 물의 변화운동으로서, 그 물(水)은 진공(眞空)에서 생겨났으므로 우주만유(宇宙萬有)의 본질은 텅빈 공(空)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따라서 만물의 본질은 아무것도 없는 무허(無虛)한 공(空)입니다. 그러므로 공(空-無極)을 ≪우주창조의 본체≫라 하고, 태극수(太極水)를 ≪우주운동의 본체≫라 합니다. 우주 공간에 충만한 물질의 기본입자는 수소(水素)원자인데, 수소가 모든 원자의 기본이 되므로 원자번호가 1입니다. 이는 무극의 대생명 막이 자체 스스로의 자율적 창조력으로 음양의 상충(상대성)운동을 시작하여 처음으로 창조하는 태극수(太極水)를 1태극수라 함과 동일한 것입니다. 현실세계의 창조와 우주운동의 기본적 요소를 말할 때는 흔히 태극수(太極水)로 일컽지만, 태극수가 생긴 대생명의 본원(本源)을 말할 때는 태극수의 근본 뿌리인 공(空-無極)을 말하는 것이니, 무극(○)은 우주창조의 본체로 무형의 근원이며, 태극(◐:空과 水)은 우주운동의 본체로 유형 창조의 모체가 되는 것이다. 우주창조란 우주의 대생명 막이 무극(○)에서 태극(太極-◐)으로의 전환운동을 말하며, 우주의 변화운동 중 가장 심오하고 신비로운,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첫 출발이기도 합니다. 태극수의 음양운동은 상대성 운동으로, 태극은 음양미분이전(陰陽未分以前)인체 음양전체를 내포하고 있어, 실로 일체현상의 출현 이전체인 동시에 완성체 바로 그것이어서 만상에 무소부재(無所不在)란 절대 원리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이 태극수가 우주의 전 공간 속을 스며들어가자, 이 우주에는 무궁무진한 시간과 공간이 엮어내는 생장소멸(生長消滅)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물질은 양성자(+), 중성자(전기를 띠지 않은 입자), 전자(-)의 3가지 입자로 형성되어 있고, 이들을 더욱 추적해 본 결과 반(反)양성자, 반(反)전자라는 반(反)입자가 동시에 생겨나 운동의 작용(作用), 반작용(反作用)의 법칙(두 물체 사이에 쌍으로 작용하는 운동법칙. 예컨데, 손으로 나무를 당기는 힘과 당겨질 때의 반발하는 힘)에 의하여 쌍으로 쌍호의존하여 존재함을 알아낸 것이다. 현대물리학자들은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입자를 소립자(素粒子)라 일컬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들 소립자들은 다시 수많은(300여개) 소립자들로 쌍호 형성되어 서로 의존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는 우주의 신비를 밣혀 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체 만물이 생성되는 태극수(太極水)가 음양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므로,≪공간과 시간≫,≪남과 여≫의 상호관계처럼 태극체(음양체)를 이루어 하나의 음양체를 구성하며, 이들은 서로 분리되어 작용할 수 없는, 한 존재의 양면성인 것이다. 우주의 기(氣)에서 나오는 에너지 군(群)인 소립자들은 그 자체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진동≫으로 나타나며, 또한 진동과 입자의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氣)는 공간의 ≪어느 때≫≪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연속체≫이지만, 그 입자성은 ≪비연속≫적인 알맹이 모양(소립자)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시간과 공간≫, ≪정신과 물질≫, ≪입자와 진동≫, ≪연속과 비연속≫과 같이, 한 실재(實在)에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변화한다는 것이니, 그 이유는 태극 생명수 자체가 스스로 음양의 상대성을 모두 지니고, 서로 의지하고 연관을 맺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통일체로 자존{自存}≫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의 본질인 것이다. 우주만물은 태초에 창조된 이후로 순간의 멈춤도 없이 무상하게 변화해 가고 있으니, 한 알의 모래나 먼지를 비롯한, 모든 동.식물은 물론이요 우리의 육신도 정지해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인간이 감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몇 수천만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시간을 수명으로 하는 수많은 소립자가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생성소멸의 작용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이같이 찰나의 멈춤도 없이 무상히 변화하는 연유는, 만물의 기(氣)의 본질이 진동적 존재이기 때문이며, 또한 진동성은 입자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기(氣)의 운동에너지 때문인 것입니다. 대우주 운동의 본질은 진동의 원리로서, 여러 물질의 상위(相違)는 진동의 구성 즉 양전자(+)를 중심하고 회전하는 음전자(-)의 수에 따라 다른 것이며, 이같은 진동의 차이에 따라 빛의 흐름과 색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며, 에너지의 강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컨데, 태양 광선의 스펙트럼(무지개 색의 띠)의 경우, 일곱가지 색깔 중에서도, 노란색 부분이 가장 진동이 빠르고 에너지량도 가장 많으며, 그 양쪽으로 갈수록 에너지량도 적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오감(五感) 즉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를 맡는 다섯 가지의 감각도 결국은 외계(外界)의 물체가 발산하는 진동을 받아드리는 것이며, 우리가 소리를 듣는 것도 결국 음(音)의 진동으로 전해오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인간의 오감으로 수신(受信)할 수 없는 성능 이상(以上)이나 이하(以下)의 아주 높거나 극히 적은 주파수(周波數)를 가진 진동도 적지 않으므로 그것은 인간의 오감으로 감지(感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리학에 의하면 음양의 진동수(1초 동안에 왕복운동을 하는 횟수)가 1초에 16회 이상이 되면 1개 음향의 조자(調子)가 되며, 그 수가 가해질수록 조자가 높아지며, 조자가 더욱 고조(高調)되어 4만 이상으로 진동되면 열(熱)로 화(化)하며, 다시 고도화(高度化)되어 1초에 몇억의 수로 진동하면 광열(光熱)로 화(化)하며, 그 이상 고도화되면 색(色)으로 화(化)한다고 한다. 따라서 색(色)과 광열(光熱)에도 음파가 진동한다는 이치가 명백해지는 것이니, 우리가 파란 나뭇잎이나 빨간 꽃을 본다는 것도 빛의 선의 진동을 눈으로 받아드려 그것을 뇌로 보내는 작용을 말한다. 이와같이 어떤 물체가 발산하는 진동은 사람이나 다른 물질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그 진동파의 영향으로 인간의 심신(心身)에 조화(調化). 부조화(不調化)가 작용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무극이 ≪우주창조의 본체≫라면, 태극은 ≪우주운동의 본체≫로써 음양을 모두 내포한 음양의 본체요, 이기(理氣)의 본체이니 음양은 ≪만물 생성의 본원(本源)≫이라 하겠다. 우주의 대생명력은 우주만유를 창조할 때, 두 기운(+.-)이 서로 대립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통일체(태극체.◐)를 형성하도록 창조되었으니, 우주만상(宇宙萬象)은 음양(+.-)으로 조직 형성되어 있으며, 음양 이기(陰陽二氣)의 교감(交感)으로 만물이 생성변화하는 것이다. 예컨데, 인간의 세포전자(細胞電子) 형성의 경우, 남자는 1개의 양전자(+)와 47개의 음전자(-), 여자는 1개의 양전자(+)와 48개의 음전자(-)로 형성되어 있으며, 각각 1개의 양전자(+)를 중심으로 음전자(-)가 급속도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정자(-)가 서로 교감하여 새로운 인간이 생성되듯이, 만물은 음양 조직(體) 원리와 음양교감의 순환반복하는 운행(運行)법칙으로 생성변화하는 것이니, 생명의 순환리듬은 ≪무극,태극,음양≫에서 다시 무극으로 순환반복하는 것입니다. 이 무극(主).태극(體).음양(用)은 따로따로 전혀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우주 대생명력(精氣)이 만물을 창조 변화시키기 위해서 상호연관성과 상호 의존성에 의해 통합된 전체로서의 유기체(有機體)로 존재하면서, 그 유기체는 그 구성요소들을 부단히 갱생(更生)시키고 재순환시키면서 전체적 구조를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 출처 : 길벗철학원 - http://ujuhim.co.kr/ → 보국풍수 http://ujuhim.co.kr/main42-24.htm → 4. 풍수지리학과 과학의 상호관계 http://ujuhim.co.kr/main42-24.htm ] * 쿠지(九子) : 「臨兵鬪者皆陣(陳)列在前」하고 문자를 영창하면서, 횡(5줄), 종(4줄) 순으로 손가락으로 쿠지를 긋는다. 이것은 구성구궁(九星九宮)을 나타내며, 가장 극에 달한 숫자로 최대라는 의미입니다. 쿠지의 중앙에 점을 더해서 쥬지(十字)로 한 강력판도 있습니다. 원래, 고대중국에서 「사기를 피하고, 재앙을 제거하고 복을 부르며, 적을 파괴한다(邪氣を避ける、除災招福、敵を破却する)」라는 용도로 있었습니다. 쿠지와 오망성(五芒星)을 셋트하여, 마물방지 · 전쟁방지로도 쓰였습니다. [ 참조 : 京都町家街道 - http://www.machiya.ne.jp/ → http://www.machiya.ne.jp/ura/u_index.htm에서 좌측 하단에 음양사(陰陽師)에 들어가서, 우측상단에 음양이란(陰陽とは)에 들어가서 좌측하단 네 번째 메뉴] [ 추가 참고 : 文化財覺書 - http://www.konanmachi-stm.ed.jp/oboegaki/oboegakitop.htm] * 게이치오(慶長) : 1596년부터 1614년까지의 연호. 당시의 정유재란을 일본에서는 慶長の役이라 부른다. (임진왜란은 文祿の役이라 부른다. 文祿은 1592년부터 1595년까지의 연호) * 3LDK : 방 둘에 마루,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 일본에서 이정도 맨션에 살면 상위 중류층 수준. * ところ-てん [心太] : 우무. 한천(寒天). 우뭇가사리를 달여 그 달인 물을 식혀 굳힌 투명한 식품. gelidium jelly -しき[-式] 뒤에서 밀어 자연히 앞으로 밀려 나가게 되는 일. [ 출처 : 한글2002SE - 한컴사전 - 일한사전 ] * 레드캡(赤帽子) : 어둠에 둘러싸인 폐허나 야산에 살며, 마치 망령 같은 요정. 불행한 참사를 당한 인간이나 동물이, 언젠가부터 이 요정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레드캡은 그 이름대로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이 모자는 인간의 피로 물들여져 있는 거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키가 작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고, 눈이 붉고 입술에서 삐져나온 긴 이빨이 있다.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고 철장화를 신고 있다. [ 참조 : Fairy Tales - http://gackt-c-web.hp.infoseek.co.jp/fairytop.htm ] -------------------------------------------------------------------------------- * 덧붙임 이 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언어 인코딩을 한국어로 하기 위해서(For NonUnicode) Encoding이 Korean일 경우 표현이 불가능한 한자는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보통이라면 대체한자를 쓰거나 그도 없을 경우 그냥 빼버리고 넘어가겠습니다만, 이번의 경우엔 엔죠우를 비롯한 각종 성씨들이 걸리는 바람에 좀 곤란해져 버렸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유니코드(Unicode)를 따로 저장을 하였으니 유니코드가 깔려 있고(왠만하면 깔려 있으리라 믿습니다) 논유니코드 페이지에서 읽지 못한 성씨(엔죠우, 쯔지노미야, 에노모토)의 한자표기를 보고 싶으신 분은 유니코드 페이지를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어짜피 차이점은 저것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대체한자로 교체 및 교체 불가시 삭제를 시행하였습니다.) [Unicode Page로 이동] 그리고, 메인 페이지에서 언급 한 건 아니지만 이 홈페이지는 기본적으로 가장 유행인 사이즈 1024 768에 최적화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러한 텍스트 페이지도 기본적으로 이 사이즈의 창 크기로 조절하여 테스트를 한 뒤 업로드를 합니다. 태그만으로 완벽하게 표현 되는게 아니다보니 이래저래 억지로 짜맞춘 부분도 약간 있기에, 1024 768 사이즈가 아니면 주인장이 의도한대로 표시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겁니다. 주인장은 최대한 원작 제본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원작 제본이 좀 많이 정교합니다. 그걸 최대한 따라하고 있습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텍스트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그쪽을 따라가고 있기에 한국어 측면에서 다소 무리가 있긴 합니다만 '미관상'의 이유가 발목을 잡는군요.) 3차 교정을 노트패드로 하면서도 이렇게 피를 토하며 작업하는 것입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게습니다. -------------------------------------------------------------------------------- [←|↑|→] -------------------------------------------------------------------------------- / 12 붉은 태양빛이, 나선의 탑을 비춰준다. 일몰을 앞둔 오렌지색 세계 속에서 아오자키 토우코는 맨션의 부지에 발을 들였다. 도마뱀 가죽을 차색으로 물들인 듯한 가죽 롱코트는, 가느다란 그녀의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외투는, 옷이 아니라 갑옷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녀는 한번 맨션을 올려다보고는 오렌지색 가방을 한 손에 들고 걷기 시작했다. 푸른 잔디로 덮인 정원을 지나, 맨션의 내부로 들어간다. 유리로 둘러쳐진 로비 역시 석양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바닥도, 벽도, 윗 층으로 이어진 엘리베이터가 있는 기둥도, 태양 속에 있는 것처럼 붉다. 한동안 생각한 끝에, 그녀는 빙글 하고 목적지를 변경했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그대로 로비를 동쪽으로 걸어간다. ……두개로 나뉘어있는 이 맨션은, 동과 서에 각각의 로비가 만들어져있었다. 그녀는 그 중의 하나인, 동동의 1층에 있는 로비로 향한다. 로비는 반원형의 넓은 공간이었다. 천장 없이 2층으로 곧바로 이어져있는 대형 응접실일까. 이미 건물의 내부인 이곳에, 석양의 오렌지 빛은 없다. 단지 전등의 노란 빛 만이, 대리석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놀랬는걸. 성질이 급하구나, 너는」 남성으로서는 높은 톤의 목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진다. 토우코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말없이 시선을 올린다.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2층으로 이어진 계단. 그 도중에 붉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쁜 일이기도 해. 어서 오게 나의 게헤나에. 환영한다, 최고위(最高位)의 인형사」 마술사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는 기쁜 듯이 웃으며, 연극 같은 몸짓으로 크게 인사했다. ◇ 「게헤나?」 「그렇고 말고. 이곳은 힌놈 골짜기에 있었던 불의 제단의 재현이다. 사람들을 불태우고, 죽이고, 괴로움에 쓰러진 상념을 모으는 용광로지. 때마침 신전의 주인인 몰록은 없지만, 어쨌든 그럭저럭 훌륭하지? 이 정도의 이계(異界)라면 외계의 물질법칙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돼. 길을 열 준비는 이미 끝났어, 아오자키」 붉은 마술사는 눈 아래의 토우코를 내려다보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쾌활한 청년과는 정 반대로, 그녀는 어디까지나 감정을 억제하며 대답한다. 「아그리파(Agrippa)의 직계(直系)가 유태교에 심취했다니 웃기는 얘기야. 그러니까, 너는 이곳의 본질을 깨닫지 못해. 지옥? 그런 것은 지구상의 여기저기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어. 사람의 상식을 넘은 살육(殺戮)을 보고 싶으면 전장에 가.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기아(飢餓)의 나라에 가면 돼. 이런 곳은 지옥도 뭐도 아냐. 단순한 연옥(煉獄)이라구, 이건」 말하며, 그녀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텅, 하는 마른 소리. 「작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지옥에도 천국에도 가지 못하고 영원히 괴로워하는 혼의 거처. 그것이 이곳의 정체다. 목적이 있어서 괴롭히는 것이 아니야. 괴롭히는 것만이 목적인 닫혀진 고리인 거다. 이런 것에, 아무런 마술적인 효과는 없어. ───적어도, 제3자인 너 자신에게는」 날카롭게 찌르는 듯 한 말에, 붉은 마술사는 꿈틀하고 얼굴을 경련시킨다. 그녀는 계단에 서있는 청년이 아니라, 이 건물을 상대로 하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뜬다. 「태극도(太極圖)의 구현은 네 생각에 의한 것은 아니지? 이제 됐으니까 아라야를 내놔. 너로서는 기량부족인데다가, 이 뒤에 일어날 일로 이득 볼 일은 없어. 너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네가 구할 것 같은 알기 쉬운 가치는 없다구. 저번의 충고의 답례로서, 그것만은 말해주지」 자아 그러면, 이라고 말하듯 토우코는 주위를 이리저리 살핀다.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 붉은 마술사에게는 눈도 주지 않고 있지도 않는 상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마술사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계속 바라본다. 지금이라도 울 것 같은, 살의에 가득 찬 눈동자로. 「넌, 언제나 그랬어」 중얼거린 말은, 참아내지 못하고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래. 언제나 그랬어. 그렇게 나를 과소평가해. 룬도 내가 먼저 전공 했었다구. 인형사로서의 명예도 나만이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너의 그 태도에 저능한 녀석들이 속아버렸지. 나를 밑으로 취급하는 너의 태도가, 녀석들 모두에게 내가 열등하다고 인식시켜 버린 거야. 생각하면 알텐데! 나는 슈폰하임의 차기원장이라구? 마도를 공부한 세월은 40년을 넘어. 그런 내가 어째서 고작 스무 살 남짓한 계집애의 밑에 위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 중얼거림은, 어느새 격앙되어 로비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금까지의 친근함에 가득 찬 태도를 버리고 저주를 흩뿌리는 상대를 토우코는 흥미 없다는 눈길로 바라본다. 「학문에 나이는 관계없어. 젊게 꾸미는 것도 괜찮지만, 코르넬리우스. 너는 겉모습만 신경 쓰기 때문에 속에 든 것이 못 따라 오는 거야」 냉정한 한마디는, 그렇지만 더할 나위 없이 도발적인 모욕이었다. 연령 50을 넘은 미안(美顔)의 청년의 얼굴이, 증오로 일그러진다. 「────아직, 나의 목적을 말하지 않았군」 애써 냉정하게, 붉은 마술사는 이야기를 바꾼다. 「나는 말이지, 아라야의 실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사실 근원의 고리 같은 것에도 흥미 없어. 그런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것을 추구하는 것 따위는 넌센스야. 신의 영역에 닿고 싶으면 그노시스(gnosis)에 전념하면 돼. 거슬러 올라갈 필요 따위는 없어」 한발 짝, 그는 뒤로 물러섰다. 2층으로 올라가려는 듯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너에게 료우기 시키의 일을 알린 것은 나의 독단이다. 아라야는 료우기 시키를 붙잡기 위해서 목숨을 잃었다. 그건 같은 부류의 인간들 간의 싸움이었어. 그것에 의해 이 결계는 내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말야, 나는 녀석의 실험의 뒤를 이을 생각 따윈 없어. 당연하잖아? 나는 말야, 아오자키. 너를 죽일 수 있다고 해서 이런 벽지까지 찾아왔던 거다!」 마술사는 목을 망가뜨릴지도 모를 기세로 크고 높은 웃음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마술사가 2층까지 올라가는 것을, 그녀는 그냥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1층의 로비에는, 이미 마술사의 악의(惡意)의 구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는 지금까지의 어떤 일보다 모욕과 증오를 담아서 말했다. 「───슬라임인가, 이건」 아오자키 토우코는 자신의 주위에 넘쳐 나오는 이형(異形)의 존재들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로비의 외벽에서 스며 나온 그것들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크림색의 점액은 벽에서 뚝뚝 흘러나와서는 급속하게 형체를 이루어간다. 어떤 것은 사람형상으로, 어떤 것은 짐승형상으로. 표면은 그야말로 켈로이드 상태로 녹아있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형체를 다시 만들어 가는 그들의 겉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리얼했다. 예를 들자면, 진짜 인간과 짐승이 영원히 부패해 가는 것 같은 추악함과 정교함을 겸비한 존재들. 「이 정도의 자리를 마련하고서, 이런 것밖에 구현화 할 수 없는 건가. 아르바, 마술사에서 영화감독으로 전향해야겠다. 너라면 크리쳐를 준비하는 예산이 굳겠어. 싸구려 호러 전문이 되겠지만, 뭐어, 너에게는 원장같은 것 보다는 어울리는 직업이야」 로비를 가득 채울 정도의 물체들에 둘러싸여, 그녀는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 상황은 호러 영화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이것들에는 십자가도 산탄총도 효과가 없다는 것 정도겠지. 그렇게, 자신의 주위 1미터 정도의 여지만을 남기고 슬라임 형상의 물체에 둘러싸여 버렸는데도, 그녀는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고 가슴포켓에 손을 넣었다. ……칫, 하고 혀를 찬다. 그러고 보니, 담배는 미키야에게 맡겨버렸었지, 하고 토우코는 조금 후회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일본제라도 상관없으니 사뒀으면 좋았을 걸, 하고 내심 욕설을 내뱉는다. 그녀는 설마 이런 시시한 결과물이 나올 줄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래서는 담배라도 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감독도 못할까. 연출이 너무 서툴러. 이 정도로는 요즘의 관객들은 기뻐해주지 않아. 할 수 없지. 한 수 가르쳐 주마, 아르바. 기괴(奇怪)를 표방할거라면, 적어도 이 정도 레벨은 유지해야해」 퉁, 하고 그녀는 발치의 가방을 발끝으로 찼다. 「────나와라」 거부를 허용하지 않는, 위엄에 찬 명령. 호응하며 가방이 열린다. 덜컹하고 튤립처럼 열린 가방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동시에────무언가 검은 것이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마술사의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검은 것은, 몸을 가진 태풍이었다. 토우코를 태풍의 눈으로, 빙글빙글하고 고속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미친 듯한 기세였다. 수초도 못 있어, 로비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로비에 넘쳐날 것 같았던 것들은 그림자도 형체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아오자키 토우코와 닫혀져버린 가방. 그리고 그녀 앞에 앉아있는 고양이 뿐이었다. 「─────뭣,」 그 광경을, 아르바는 꿈을 꾸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토우코보다 크다. 그 몸은 새까맣고, 두께란 것이 없다. 그림자로 이루어진 평면의 검은 고양이. 아니, 고양이인지조차도 판별이 가지 않는다. 고양이 같은 실루엣으로 머리부분에 이집트의 상형문자 같은 눈만이 달려있다. 「뭐냐, 그건───」 2층에서, 그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의 그림 같은 눈과 시선이 마주친다. 그러자──고양이는 씨익 하고 입 부분만을 없애며 웃음을 표현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하고 아르바는 숨을 삼킨다. 토우코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지지지지지, 하는 소리만이 나고 있었다. 「이야기가 틀려, 네가 부리던 사용마(使い魔)는 여동생에게 잃었다고 한 말은 거짓이었나……!」 침묵에 견딜 수 없어졌는지, 아르바가 외친다. 그녀는 글쎄, 란 대답만 하고 검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이동했다. 「──맛없는 것을 먹게 했구나. 하지만 다음 것은 조금 나아. 이런 에텔 덩어리가 아닌 진짜 사람고기야. 영적(靈的)인 영양도 충분히 있어. 나의 학우(學友)라고해서 사양할 필요는 없다구. 낮부터 가르쳐줬지? 적은 먹어서 죽이는 것이다, 라고」 갑자기, 검은 고양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대리석의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횡단하여, 계단으로 달려간다. ……그렇지만 고양이의 발은 움직이지 않는다. 주저앉은 실루엣인 채로, 눈만을 움직여서 붉은 코트의 인간에게로 질주해간다. 토우코가 있던 1층의 로비에서 아르바가 있는 2층의 층계참까지, 아마도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허용할 정도로 아르바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마술사다. 「Go away the shadow. It is impossible to touch the thing which are not visible. Forget the darkness. It is impossible to see the thing which are not touched. (그림자여 사라져라. 자신(己)이 보지 못할 수단을 가지고. 암흑이라면 망각하라. 자신이 접하지 못한 상식을 되풀이하라.) The question is prohibited. the answer is simple. (질문은 금한다. 나의 해답은 명확하리니!) I have the flame in the left hand. And I have everything in the right hand──────── (이 손에는 빛. 이 손에는 모든 것이 있음을 알라.)」 침착한, 그러나 한계에 가까울 정도까지의 속도로 아르바는 주문을 영창 한다. ───마술에 있어서 주문이란 것은, 그 개인에 의한 자기암시밖에 되지 않는다. 바람을 일으키는 마술이 있다. 이것은 하나의 무기와 같고, 처음부터 성능이 결정되어있는 힘이다. 어떠한 마술사가 사용하더라도 효력은 바뀌지 않는다. 그저, 영창만이 달라진다. 주문의 영창이란 것은 자기의 몸에 익힌 마술을 발현시키기 위한 것으로, 그 내용에는 마술사의 성질이 짙게 드러난다. 그 마술의 발현이 필요해진 의미와 정해진 키워드만 포함되어있다면, 영창의 세부(細部)는 각 마술사의 취향에 따르기 때문이다. 야단스럽고 과장된, 자기 도취하기 쉬운 마술사의 영창은 길다. 하지만 오랫동안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위력이 증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에게 거는 암시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자신으로부터 끌어내는 능력도 더욱 향상되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르바의 영창은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부분 없이 필요최저한의 운(韻)을 밟고, 거기에 자기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단어를 포함하면서도, 영창 그 자체의 발음에 2초란 시간도 필요치 않는다. 그 사실에 토우코는 호오, 하고 감탄했다. 아르바란 청년은 필요이상으로 길고, 쓸데없는 것이 많은 영창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 몇 년 사이에 확실히 성장해있다. 주문영창을 구성하는 형태와 속도, 그리고 물질계에 행해지는 회로의 연결법이, 놀랄 정도로 정교하다. 그의 영창은, 단순히 물건을 파괴하는 마술이라면 틀림없이 일류의 실력이었다. 「I am the order. Therefore, (나의 존재는 만물의 도리. 모든 것의 앞에서, 너는(汝). you will be defeated securely───────! (여기에, 패배가 확실할 지어니───────!)」 아르바의 한쪽 팔이 내밀어진다. 계단의 첫째 단에 검은 고양이가 도달한 순간 희미하게 대기가 진동하더니───계단이 불타올랐다. 지면에서 흔들리며 솟아오르는 신기루처럼, 푸른 화염의 바다가 계단을 가득 메운다. 수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화염은 계단 그 자체에서 출현하여, 천장 없이 뚫려있는 2층의 플로어를 통과해서 천장으로 사라져간다. 마치 화산지대의 간헐천(間歇川)같다. 로비의 산소를 이 한순간에 전부 빼앗아간 불의 바다는, 검은 고양이만을 이 세계에서 소멸시켰다. 그것도 당연. 섭씨로서 1000도를 충분히 넘어가는 마력의 화염은, 모든 동물을 버터처럼 고체에서 기체로 바꾸어버린다. 액체를 경유하는 과정 따위는, 찰나의 순간조차 없었겠지. 그러나, 아르바는 보았다. 화염이 타오른 후, 훌쩍 모습을 나타낸 고양이의 기괴한 모습을. 「───있을 수 없어」 벽안이 계단을 응시한다. 검은 고양이는 옅어진 자신의 몸을 안타깝다는 듯 핥고서, 붉은 마술사를 향해 눈을 부라린다. 검은 기괴(奇怪)가 질주를 재개한다. 아르바는 고양이의 정체를 간파할 여유조차 없었다. 「Repeat……! (명한다)」 갈라 찢듯 날카롭게, 아르바는 주문을 반복했다. 계단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양이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이 화염에는 익숙해졌다는 건지, 일직선으로 마술사에게 뻗어간다. 「Repeat!」 불의 바다가 다시 한번 뿜어져 오르고, 사라진다. 고양이는 이미 계단을 다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Repeat!」 네 번째의 화염도, 무의미하게 끝났다. 검은 고양이는 2층에 도달하자, 아르바에게 다가가서, 입을 벌렸다. 인간 크기의 고양이의 몸이, 그 발끝부터 쩌억 하고, 벌어진다. 정수리를 덮개처럼 여는 보물 상자 같았다. 두께가 없는, 평면이었을 고양이 속에는 아까 삼킨 이형(異形)의 존재들의 잔해가 진흙처럼 늘어져 달라붙어 있었다. 아르바는 겨우 깨달았다. 이것이 고양이를 닮은 모습을 한 것뿐인, 입 밖에 없는 생물이었다는 것을. 「Repeat────!」 죽음을 목전에 둔 공포가 최후의 주문을 반복시킨다. 그러나 그 전에, 상어의 턱 같은 고양이의 몸이 마술사를 조여든다, 붉은 코트 위로부터 통째로 덮어 삼켜져, 아르바는 정신을 잃었다. ◇ 「, 왕현(王顯)」 갑자기, 짧은 운이 흘렀다. 아르바의 몸을 비스듬하게 물고 있던 고양이가 움직임을 멈춘다. 이 일을 방관자처럼 바라보고 있던 토우코조차, 그 소리에 반응한다. 아르바의 등 뒤에, 남자가 있었다. 변함없는 고민에 가득 찬 엄숙한 얼굴을 한 남자는,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남자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난 기척이 없었다. 검은 남자는 아르바를 한 손으로 쥐고, 고양이에서 거칠게 잡아 빼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뜨린다. 고양이는 남자가 이끌고 이동하는 3중 결계 중 하나에 닿아버려서 움직이지 못한다. 남자는 눈 아래의 여자를 돌아본다. 그것만으로 로비의 공기는 일변했다. 공기가 얼어 붙어간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아까 전까지의 대기의 여유가 사라져 간다. 진짜 주인을 맞이하여, 이 맨션자체가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오래간만이군, 아오자키」 「아아. 서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었을 테지만」 1층과 2층───하늘과 땅으로 나뉘어, 토우코는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이름의 원흉과 대치했다. 「아르바가 눈에 띄는 짓을 한 모양이군. 원래는 네가 모르는 채로 일을 끝마쳤을 텐데, 할 수 없지. 나 혼자서는 64인이나 되는 몸을 준비할 수 없었다. 이 도시에 네가 있던 것은 우연이지만 필연이기도 하다는 것인가」 「어느 쪽이 끌어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뭐어 그렇겠군. 우연이라는 것은 신비란 단어의 은어(隱語)야. 모르는 법칙을 감추기 위해서 우연성이란 단어가 끌려나오는 거지」 대답하면서 토우코는 벽 쪽으로 후퇴했다. 이 상대는 아르바와는 격이 틀리다. 능력적으로는 동격이겠지만, 이 건물에 있어서 아랴아 소우렌은 누구보다도 유리하다. 벽을 배후로 해서, 전방에만 신경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헛점을 보여 버리겠지. 「───그래서. 이 맨션은 무엇을 위한 장치지? 설마 살아있지만 죽어있다는 불확정성을 형상화한 상자란 소리도 아닐 거야. 하루 만에 완결하는 세계를 날조해서, 죽음에 이르는 순간의 혼의 작열을 모으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몇 백 년이나 전에 결론이 내려졌잖아. 몇 백이란 죽음을 모아도, 너의 목적은 이룰 수 없어」 「물론이다. 그러나 네가 알 수 없는 사실도 있다. 분명히, 나는 죽음의 숫자만을 쫓고 있었다. 몇 만이나 되는 다른 인간의 다른 죽음을 경험하면, 그 안에 근원으로 통하는 혼의 확산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근원에는 도달할 수 없어. 그걸로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기원』 뿐이다. 영장이라는 총체(總體)의 기원에는 이를 수 없지. 중요한 것은 죽음의 양이 아니다. 죽음의 질이다. 근원을 더듬으면 죽는 법의 종류는 보다 크게 구별된다. 나는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능한 만큼 크게 해부하여, 결과 그것이 64종류라고 추정했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종류의 죽음을 등에 진 자. 말하자면, 세계의 축도(縮圖)다. 나는 그들의 괴로움을 체험하고, 그들의 괴로움을 내포한다. 얼마 안 있어 팔괘(八卦)보다 사상(四象)으로 단순화되어, 양의(兩儀 : 료우기)에 이르기 위해서」 「흥. 그렇게 하나로 있는 것이 좋은 거냐, 아랴야. 빛과 어둠은 적대해야하기 때문에 나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일 많은 것들을 내포하는 속성이기 때문에 나뉘어 진 거다. 모든 것은 하나로는 고독해. 그래서 많이 나뉘어 지려고 하지. 너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뿐이잖아. 갖가지 인간의 죽음을 조사하고, 그 인생을 열심히 연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축적하지. 나의 죽음조차, 너는 뇌수 구석에 보존할거야. 그렇게 인간의 가치를 분석하는 것은 자기 맘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은 야마(耶摩)의 역할이다. 사람의 몸인 너로서는, 그저 죽음을 계속 빨아들이는 지옥밖에 있을 수 없어」 「───그걸로 좋다. 지옥이던 천상이던, 바닥에 가까운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라야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다. 이 세계에는 자신밖에 없다고 결론지은 너무도 강한 의지. 토우코는 생각한다. 일상이라는 나선을 반복하는 이 건물에는, 인간이 체험하는 온갖 죽음의 원형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 건물은, 지금까지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육체가 행하고 있던 기록을 계승한 것이다. 이곳은 녀석 자체이면서,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의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곧, 나는 지금 녀석의 체내에 있다는 건가. 토우코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로비에 가득 찬 공기를 관찰한다.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는, 아라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녀석에게 적대하는 이 건물에 살해당한 거주인들의 소리 없는 원념(怨念)이다. 그녀조차 짓눌릴 듯한 원념의 양을 아라야는 하루, 또 하루 늘려간다. 그의 말을 빌리면 양이 아니라 질을 높이고 있는 것이겠지. 몇 백이나 되는 죽음은, 결국 한 종류의 같은 죽음이니까. 애정사(愛情死), 곧 가족, 연인, 모성, 부성, 육아. 증오사(憎惡死), 곧 가족, 연인, 친구, 선배, 타인.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한 여러 가지 죽는 방법. 매일 되풀이되어, 보다 확실해져 가는 같은 결과. ───진해져 가는, 죽음. 이 건물은 주문이다. 녀석이, 아라야 소우렌의 의식을 강고한 것으로 하기 위한 제단. 고수준의 마술을 행하기 위해서는 영창과 자신의 마력뿐만이 아니라, 생명의 희생과 토지자체의 힘까지도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라야는 현대에 신전을 건설하는 것으로, 보다 고수준의 마술을 행하려 하고 있다. 아니, 마술이 아니다. 이 정도의 이계(異界)를 이용한 신비는 이미, 마술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그래──지금세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의 신비. 마법(魔法)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금단의 힘의 행사나 다름없다. 「───근원으로의 길을 여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해서? 마술적인 결계를 펼치지 않고 자신이 마술사가 아니라는 증명을 해본댔자 영장의 의지는 속일 수 없어. 근대적인 기술에 의한 결계로 속일 수 있는 것은 같은 마술사뿐이야. 확실히 이 건물이라면 길은 열려. 태극도의 구현이니까, 틀림없이 구멍은 낼 수 있겠지. 그러나, 그 구멍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영장의 수호자다. 우리들은 우리들인 이상, 그것에는 절대로 맞설 수 없어」 「───억지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네가 이 도시에 살고 있는 것.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한 우연을 가지고 도둑질하러 숨어든 남자. 이 일대에서 과거에 한 건도 없었던 노상강도에게 살해당한 여자. 나 자신이 움직이는 것을 이 정도까지 억제했는데도 억지력은 세 번이나 움직이고 있어.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는, 이 이상 근원에는 가까이 가지 않아. 몇 번에 걸친 실패를 헛되이 하지 않겠다. 억지력에게 들키지 않고 길을 열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의 눈은 속일 수 없어. 언젠가 억지력 그 자체를 쓰러뜨릴 수단을 조사해서 도전했지만, 그것은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나타났다. 결론은 하나다. 나에게는 재능이 없었다」 처음으로───감정 같은 운(韻)을 품은 목소리가 흘렀다. 검은 남자는 눈 아래의 마술사를 시야에 넣었다. 「억지력은 이 정도까지 길로의 도달을 방해한다. 그것이 인간이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힘, 무(無)로의 회귀로의 원인이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고체가 완성되어버리면, 생존의 의미는 없어져. 그런데도 유상무상의 인간들은, 단지 살아 있고 싶다는 원망(願望)을 위해서 완성하는 것을 무의식 하에 거부하고 있어.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 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짐승 이하의 무리들이다. 완성하기 위해서 생존하고 있는 데도, 생존하기 위해서 완성을 받아들이지 않아. 인간의 시작은 처음부터 모순에서 시작하고 있어. 그러면, 그렇다면 어째서, 근원에 도달했던 자가 있는 걸까. 대답은 단순하다.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단순히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이 있었던 것뿐인 것이다. 온갖 예지(叡智)를 익혀도, 어차피 마술사는 나중에 부속된 후천적인 존재일 뿐이다. 재능이란 그런 것이다. 태어났던 시점에서 가지고 있나 가지고 있지 않느냐. 선택되어 있나 아니냐의 차이인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근원과 연결된 인간. 복잡화해서 종류를 늘리고 근원인 대원(大元)에서 너무 벗어나 버린 영장이지만, 드물게 근원에서 직접 태어나있던 자가 있다. 「 」에 연결된 채로 태어난 무색(無色)의 혼.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대원에 다다를 수 있는 존재겠지. 그렇다면 그것을 찾아낼 뿐이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에 나는 10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그런가. 그래서 료우기 시키를 파괴하자는 결론에 다다른 거군」 그녀는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 료우기 시키. 료우기가(家)는 범용성을 극대화시킨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릇(器)으로서의 육체가 텅 비어있는 자를 낳으려고 오랜 세월동안 노력해온 일족이었다. 텅 비었다는 것은 「 」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시키라고 하는 「 」로 통하는 육체를 낳아버렸다. 「───그래서 후죠우 키리에와 아사가미 후지노를 사용했던 건가. 네가 직접 움직이면 억지력에게 들켜.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너의 존재를 눈치 채이지 않게 하며 시키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 그렇지? 시키와는 정 반대의 컨셉을 가진 살인자를 맞닥뜨리게 하는 것으로 시키 본인에게 자신의 본질을 깨닫게 만들었지. 무언가를 깨우치게 하려면 알려주는 것 보다, 체험시키는 쪽이 빠른 법이니까. 그래서. 너는 무엇을 바랬나, 아라야. 시키(式)와 ‘시키(織)’가 서로 잡아먹어서 텅 비어버리는 건가. 아니면 료우기 시키와 만나고 싶었던 것뿐인가」 「───2년 전에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론은 나왔다고 말하지 않았나. 시키에게 그 육체는 불필요하다. 근원으로 이어지는 몸은, 내가 받겠다」 당당한 발언에, 토우코는 에?, 하고 입을 벌렸다. 한순간에 아랴야가 말한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녀의 의식은 새하얗게 되었던 것이다. 「설마 너, 자신의 뇌수를 시키의 몸에 옮길 생각은 아니겠지……!?」 믿을 수 없다는 토우코의 말에 아라야는 대답이 없다. 말할 것까지도 없다는 눈빛에, 토우코는 정말이지 악취미인 녀석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뭐어, 네가 그 몸인 상태로 있다는 것은 시키는 무사하다는 소리군. 혹시 몰라서 묻겠는데, 시키를 되돌려줄 생각은 있어?」 「가져가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항.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건가. 나 참, 나는 원래부터 전투요원이 아닌데 말야. 그런 놈과 관계하자마자 골치 아프게 됐어」 「나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묻지, 아오자키. 협력할 의사는 있는가」 적대(敵對)의 시선,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라는 의지를 바꾸지 않은 채 아라야 소우렌은 그렇게 물었다. 토우코는 대답한다. 딱딱한 호박색의 눈동자만으로, 결코 없다, 라고. 「……그런가. 유감이다. 나는, 너를 옳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서로 근원에 도달하려고 경합했던 적도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마음에 든다고도 생각했었다」 뚜벅, 하고 발소리를 내며 아라야는 앞으로 나아간다.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다가가기 위해서. 「그 학원에서, 너만은 군체(群體)가 아니었다. 나는 혼의 원형을. 너는 육체의 원형을 목표로 했다. 나는, 먼저 도달하는 것은 너라고 확신하고 있었지. 하지만────너는 포기했다. 어째서냐. 지금의 너는, 자신이 마술사라는 것조차 내팽개치고 있어.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무엇을 위해서 힘을 얻었나. 무엇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이루기 위한 편력이냐」 검은 마술사가 으르렁거린다. 조용히, 평소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은 어조에, 두 눈동자만이 분노에 타오르고 있다. 그것을 받아서 토우코는 대답했다. 「뭐 그리 대단한 이유는 아냐. 원리를 거듭하면 할수록 역설(逆說)을 생산해 내는 것에 지친 것 뿐이야. 우리들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멀어져가. 근원의 소용돌이도 마찬가지야. 무지(無知)라는 순수함이 아니면 가까이 갈 수 없는데도, 무지인 상태로는 인식 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나는 인정했고, 너는 인정하지 않았어. 단지 그것뿐인,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야」 쓸쓸한 운을 담은 고백을, 아라야는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고 들었다. 양자의 시선이 충돌한다. 토우코는 아라야에게 말한다. 마술사의 본성, 현명해지면 현명해질수록, 어리석어지는 배리(背理)를. 아라야는 토우코에게 말한다. 마술사의 본질, 공부하면 공부하는 만큼 높은 곳에 다다르는 도리(道理)를. 「너는, 타락했다」 짧게, 모든 감정을 담아서,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향하나. 무엇을 위해서 그곳에 있나」 「……그렇군.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사실 아무 것도 없어. 시키도 별로 관심 없어. 그 녀석의 몸은 블랙박스 투성이라서 비슷한 것조차도 만들어낼 수 없으니까」 그렇다, 그녀에게 명확한 이유는 없다. 설마 그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억지력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떠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녀는 지금의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생활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환경이 얼마만큼의 기적과 우연에 의해 축적된, 두 번 다시 구성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설령 이 모순 된 맨션처럼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한다 해도 지금과 완벽히 동일한 생활은 얻을 수 없다. 그래서────지킬 수 있다면 지키자고 생각한 것뿐이다. 「……정말로. 엄청나게 타락했어. 나는 점점 약해져가. 아라야. 내 이상(理想)의 초월자라는 것은 말야, 선인(仙人)이야. 탁월한 힘과 지식을 가졌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산 속에 틀어박혀 있기만 할 뿐────. 나는 그런 존재방식을, 계속 동경하고 있었어. 하지만 돌아보면 이미 늦었어. 안에 이런저런 것들이 너무 들어차 버린 나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아. 계속,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저기, 아라야. 마술사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바쁘게 살아가. 무엇 때문일까.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면 외계(外界)에는 관여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어째서 외계와 관계하지? 어째서 외계에 의지하지? 그 힘으로 무엇을 이룬다는 걸까. 아르스 · 마그나(Ars Magna)로 무언가를 구제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마술사가 아니라 왕이 되면 돼. 너는 사람들을 더럽다고 하지만, 너 본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거야. 추하다고, 무가치하다고 알면서도, 그것을 용인(容認)하고 살아갈 수조차 없어.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만이 이 늙어가는 세계를 구원하는 자라는 긍지를 가지지 않는다면, 도저히 존재할 수 없어. 아아, 나도 그랬어. 하지만 그것에는 의미가 없어. ───인정해라 아라야. 우리들은 누구보다 약하니까, 마술사라는 초월자로 있는 것을 선택한 거야」 마술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한 발짝, 또 한 발짝 계단으로 다가간다. 「……근원으로의 길은 이미 손에 넣었다. 남은 몇 발짝으로 나의 바램이 이루어진다. 방해하는 자, 이 모든 것을 억지력이라고 간주하겠다. 아오자키, 너도 어차피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로비의 공기가 긴장되어 간다. 공간이 응고되고, 그대로 마술사의 살의(殺意)에 의해서 찌그러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하고 의심할 정도의 압박감. 그 가운에 그녀는 예전의 동포(同胞)를 먼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떨어져있던 몇 년을 메우기 위한, 긴 문답은 여기까지다. 최후에────그녀는,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마술사로서 아라야 소우렌에게 묻는다. 「아라야, 무엇을 찾는가」 「진정한 지혜를」 「아라야, 어디에서 찾는가」 「단지, 내 안에 있을 뿐」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발소리는, 계단의 입구에서 멈췄다. 서로의 존재를 이 세계에서 배제(排除)하기 위해서, 양자는 행동을 개시했다. ◇ 검은 코트 아래서, 아라야의 한쪽 팔이 올라갔다. 스르륵, 왼팔을 어깨와 수평이 될 때까지 들어올린다. 그 손바닥은 힘없이 펼쳐져 있어서 먼 곳의 누군가를 불러 세우는 것 같은, 그런 몸짓과 비슷했다. 그는 한쪽 팔을 올려서 상대와 대치한다. 이것이,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마술사가 싸우는 자세였다. 그에 대해, 아오자키 토우코는 그런 검은 마술사의 모습을 올려다볼 뿐이다. 발치에 가방을 둔 채로, 주의 깊게 적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부하인 검은 고양이는 지금은 아라야의 배후에서 움직임을 봉인 당해, 굳어있었다. 토우코는, 아라야가 스스로를 중심으로 3중의 결계를 펴고 있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불구(不俱), 금강(金剛), 사갈(蛇蝎), , 대천(戴天), 정경(頂經), 왕현(王顯). 지면과 공간, 평면과 입체에 둘러쳐진 마술사의 거미줄. 생물이라면, 그 원을 이루는 선에 닿은 순간에 동력을 잃어버린다. ……보통, 결계라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보호하는 움직일 수 없는 경계를 말한다. 적은 그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데리고 걷는 괴물 같은 짓을 행하고 있다. 보고 있는데도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접근전에 있어서라면, 아랴아 소우렌은 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아라야에게는 그것밖에 없다. 원래부터 토우코와 아라야는 아르바처럼 물질계에 작용해서, 파괴를 행하는 마술을 습득하고 있지 않았다. 토우코가 습득하고 있는 룬 마술에도, 공격수단은 확실히 있다. 룬이란 것은 힘이 있는 각인을 상대에게 새기는 것에 의해, 새긴 문자의 의미를 현실로 만드는 마술이다. 불의 의미를 가진 소웨르(Sowulo)를 아라야의 몸에 직접 써넣으면, 아라야의 몸은 불타오르겠지. ……약점은 문자를 직접 써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으로, 멀리서 문자를 겹치는 행동 따위는 마술사를 상대로는 통용되지 않는다. 간접적인 마력의 작용은, 직접적인 마력을 몸에 펼치고 있는 마술사에게는 튕겨져 버리는 것이다. 학원시대부터, 양자(兩者)는 공격마술에 관해서는 아예 흥미가 없었다. 토우코는 인형 만들기에, 아라야는 죽음의 수집밖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라야가 토우코를 소거하는 방법은 가까이 다가간 뒤의 격투전이 된다. 아라야는 동란(動亂)의 시대에 살아남은 남자다. 몸을 무기로 싸우는 것으로는 지금 시대의 어떤 인간도 당해낼 수 없겠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토우코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 1층의 로비에 아라야가 발을 내딛었을 때 시작하려고 노리고 있다. 그런데도. 검은 마술사는 계단의 앞에서 멈춰 선 채로, 앞으로 내뻗은 팔을 미약하게 움직였다. 「───숙(肅)」 짧은, 말소리. 마술사는 펴져 있던 손바닥을 꾹 하고 쥔다. 그것은, 무언가를 쥐어 찌부러뜨리는 듯한 동작이었다. 동시에 토우코의 몸이 꿈틀, 하고 진동한다. 온갖 마술계통의 회로를 차단하는 그녀의 코트가, 투둑투둑 하고 깨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공격이 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 모든 방향에서 전신을 고르게 찍어 누르는 충격을 받고,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토우코는 지금의 충격이 무엇이었는지 한순간에 파악했다. ……아라야는 토우코가 서있던 공간을 그대로 쥐어짜버린 것이다. 예를 들면, 전신을 프레스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토우코는 믿기 어려운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저런 약간의 몸짓만으로 공간에 작용하는 마술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당했군. 젠장, 몇 대 나갔지────?” 입안에 흐르는 피를 삼키면서, 토우코는 자신의 육체의 손상을 확인한다. 육체를 단련하지 않은 토우코에게는, 시키처럼 자신의 뼈가 몇 대 부러졌는지를 알 방법은 없다. 단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코트가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것뿐이다. 다시 한번 당하면, 틀림없이 찌부러진다. 「────가랏!」 그렇다면, 그녀에게 손어림은 없다. 갑자기────움직임이 멈춰져있던 검은 고양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연극이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방심하고 등을 보이고 있는 아라야에게로 달려든다. 「뭣」 희미한 놀라움을 보이며, 아라야는 곧바로 돌아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내민 손바닥을 펴고, 다시 한번 강하게 쥔다. 웅, 하는 진동. 토우코는 보았다. 아라야의 눈앞의 공간 그 자체가, 안쪽으로 계속해서 압축되어가는 모습을. 검은 고양이는 압축되기 전에 위쪽으로 뛰고 있었다. 중력이 역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천장에 발부터 착지하고서 마술사를 노려본다. 「거기까지다」 검은 코트 아래에 숨어있던 또 하나의 팔이, 주먹을 강하게 쥔다. 검은 고양이는, 천장 채로 찌부러졌다. 콰직, 하고 천장의 한구석이 바깥쪽으로 움푹 파이면서 검은 고양이는 찌부러졌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압축되어, 소실되었다. 「너의 말(駒)은 사라졌다. 마술사란 것은 본인이 강자(强者)일 필요는 없고, 그 실력으로 최강의 존재를 만들면 된다. ……학원시절의 네가 한 말이다. ───어찌되든. 인형사는 인형이 진 시점에서 패배다」 다시 토우코쪽을 돌아보고, 손바닥을 펴면서 아라야는 말한다. 그녀는 그것을 불유쾌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아아, 그 지론은 아직 굽히지 않아. 그러나 대단한데. 잊고 있었어, 이곳은 너의 몸속이었지. 그렇다면 공간을 압축하는 것도 생각한 대로야. 나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마술 속에 뛰어들었다는 건가. ……흥, 그 정도의 준비를 해놓고선, 어째서 시키에게 죽기 직전까지 궁지에 몰렸던 거야, 너?」 「───산채로 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함부로 진짜 힘을 써버리면 부서져버리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죽여야 할 상대는, 전력을 다해 상대한다」 「그 정도로 시키의 몸이 탐났던 건가. 너에게 있어서 시키는 유일한 길이겠군. 죽지 않도록 죽이는 것은 상당히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겠지. 그것이 헛수고가가 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무너졌던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그녀는 천천히 벽으로 등을 기댔다. 「───아르바에게는 말했지만. 너도 호러라는 것을 알지 못해.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요건은 세 가지 필요하다는 것, 알고 있어? 첫째, 괴물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괴물은 정체불명이 아니면 안 된다. 셋째───괴물은 불사신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 아라야가 뒤돌아본다. 찌부러뜨렸을 천장에는 검은 고양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숙(肅)!」 그는 천장을 향해서 손바닥을 강하게 쥔다. 공간이 우직, 하고 압축된다. 그 비틀림에 울렁이면서, 검은고양이는 마술사를 향해서 날아 내려와 쩌억 하고 입을 열었다. 검은 마술사는 피할 새도 없이 한입에 먹힌다. 「카앗───」 그는 단말마 같은 탁한 소리를 토해낸다. 으적, 하는 둔탁한 소리. 시키 때와 다르다. 마술사는 반격할 틈도 없이 육체의 대부분을 잃었다. 퉁, 하고 얼굴과 어깨만이 남아있던 마술사가 지면에 떨어진다. 죽어서 더욱 고민에 찬 얼굴로, 인간이었던 육편(肉片)이 계단을 굴러 떨어진다. 그 상황을 냉정하게 관찰하면서 토우코는 짧게 말했다. 「처치할거라면 일격에 숨통을 끊는다. 속여서 친다는 것은 이렇게 하는 거야, 아라야」 그러면, 하고 벽에서 떨어져서 토우코는 걷기 시작한다. ───푸억. 소리. 묵직한 소리가 났는데, 하고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생각했다. 입에서 피가 떨어진다. 몸속에서 밀려 올라와, 달아날 곳을 잃은 피가 견디지 못하고 토해져 나온다. 흐려져 가는 시선을 미약하게 내리자, 팔이 있었다. 누군가의 팔이, 자신의 가슴부터 튀어나와 있다. 기괴한 오브제군, 하고 아오자키 토우코는 생각했다. 자신의 가슴에서 남자의 굵은 팔이 뻗어나와 있다. 팔은 둥그런 심장을 쥐고 있었다. 분명, 저것은 자신의 심장이다. 결론은 곧 나왔다. 자신은 배후에 나타난 적에게 몸을 꿰뚫려, 곧 죽게 되리란 것이다─────. 「처치하려면 일격에 인가. 과연, 좋은 교훈이 되었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난다. 슬픔도, 탄식도, 미움도, 섞여있는 무거운 소리. 틀림없이,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마술사의 것. 「그건────인형인가」 피를 토해내면서 토우코는 말한다. 그녀의 등 뒤에 갑자기 나타난 마술사는 물론, 하고 대답했다. 「인형 만들기로는 너를 따라갈 수 없지만, 나에게도 선도자의 업이 있다. 인형 만들기를 행한 요승(妖僧)의 이름, 모르지는 않겠지」 토우코의 몸을 뚫고, 끄집어내어진 심장을 바라보면서 마술사는 말을 잇는다. 「───그리고, 너는 진짜다. 이 심장의 힘찬 기운은 틀림없다. 아름답고, 멋진 모양이다. 부수기에는 아깝지만, 할 수 없지」 푸걱, 하고 물이 가득 찬 비닐봉지를 지면에 내던지는 듯이 무참하게, 아라야는 그녀의 심장을 쥐어 터뜨렸다. 「네가 부리던 마물의 구조도 알았다. 마물은 가방에서 나왔던 것이 아니다. 그건 가방이 비추고 있던 영상이었지?」 번뜩, 아라야가 노려보자, 바닥에 놓여져 있던 가방이 산산이 부서진다. 박살난 가방 속에는 렌즈와 필름을 갖춘 기계가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지지지지-, 하고 소리를 내며돌아가는 하나의 영사기였다. 「그림자 그림의 마술인가. 과연, 이거라면 온갖 공격을 무효화시키겠군. 대기에 비쳐서 나타난 에텔의 몸이 부서져도 본체인 환등기계가 작동하고 있는 한 몇 번이고 되살아난다. ……더욱 아깝군. 이 정도의 재능을, 나는 뜯어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니」 아라야의 중얼거림에 토우코는 대답하지 않는다. 사라져가기 전에 자기의 물음만을 자아내었다. 「……아라야. 이전에 했던 질문을 하지. 너는 마술사로서, 무엇을 바랬지……?」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과거에 나누었던 같은 질문, 같은 대답. 그것에 토우코는 크큭, 하고 웃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입술이 장렬할 정도로 아름답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과거, 그 질문을 했던 것은 토우코가 아니었다. 그녀들의 사부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물은 것이었다. 모였던 제자들은 각자의 마술이론의 완성과 그 영광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아라야만은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라고. 모였던 제자들은 그를 무욕(無慾)한 남자라며 웃어댔지만, 그녀는 웃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그때, 토우코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이 마술사는 바라는 것이 없다고 대답한 것이 아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 이 세계에서 일절의, 자신의 존재조차 바라지 않는 것. 아라야 소우렌은 완벽한 죽음의 세계를 바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바램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게까지 인간을 혐오하고, 자기(自己)의 껍질을 만들어낸 남자. 무욕이라고 하면 무욕이겠지. 이 남자는 사소한 행복조차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인간이라는 모순을 미워하고 있다. 「아라야. ……마지막으로 저주를 남겨 줄께」 「듣도록 하지. 서둘러라, 얼마 못 버틸테니」 자기가 죽여 놓고서 그렇게 지껄이다니, 하며 토우코는 욕설을 내뱉는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상황은 그의 말 대로다. 그녀의 몸은, 이미 입술밖에 만족스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카식 레코드에 접촉하려고 하면 억지력이 발동하기 시작해. 너처럼 인간을 미워하는 자가 전능해진다면, 세계의 종말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야. 이 억지력이라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어. 한 가지는 영장인 인간이, 자신들의 세상을 존속시키고 싶다는 무의식의 집합체.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세계 그 자체의 본능이야. ……이 양자(兩者)는 목적은 같지만 그 성질은 미묘하게 달라. 세계 그 자체의 본능이 아카식 레코드에 접촉한 자를 처리하는 것은, 단순히 지금의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지나지 않아. 인간의 문명사회가 붕괴한다는 것은, 이 천체의 죽음에 직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의지가 만들어낸 구세주는, 영웅과 함께 인간 세계의 붕괴를 막았어」 「───그래서?」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토우코에게, 아라야는 눈썹을 찡그린다. 그녀는 휴우-휴우-하고 숨을 토해내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말야, 별 그 자체를 생명체로 본 가이아론(論)적인 억지력과, 우리들 인간이 안고 있는 억지력은 다른 것이란 소리야. ……거기서 말인데, 아라야. 네가 평생의 적으로서 미워 해온 것은, 대체 어느 쪽인 걸까?」 ───흠, 하고 마술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들어보니, 확실히 그렇게 보는 방법도 있다. 아라야는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을 생각한다. ……그렇다. 길게, 너무 길 정도로 신비를 공부해온 그가, 생각하려 해보지도 않았던 그 사실. 가이아론적인 억지력. 인간의 세상을 존속시키려고 하는 이것은, 그렇지만 세계가 무사하다면 인간 따위는 어찌되던 상관없다는 결론을 가진다. 그에 반해, 인간 전체가 만들어낸 억지력은 별의 생명까지 탕진해가며 인간의 세상을 존속시키려고 한다. ……대답은, 명백하게 후자였다. 「말할 것까지도 없다. 내가 몇 번이나 싸워왔던 상념, 아라야가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천성이다」 「그쪽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의 의식이라구. 너는 단 한 명으로 60억에 가까운 사람의 의지에게 이길 수 있다는 거야?」 「───이기겠다」 망설임도 없이, 과장도 없이, 마술사는 곧바로 대답했다. 여러 가지 인간들의 죽음을 모으며 살아왔던 지옥. 어떤 무가치한 죽음이라도, 그 인간의 역사와 그 뒤에 있었을 미래를 구상하고 자신의 것으로서 살아왔던 마술사. 토우코는 생각한다. 그것은 전 인류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이긴다는 강철같이 단련된 극한의 자아(自我)다. 그것을 아라야 소우렌은 가지고 있다. 정말로 그런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단언하는 그 의지가 진실인 것이다. 이 물음을 던졌을 때, 아라야 소우렌은 명확하게 60억이나 되는 인간의 존엄과 하나하나 싸우는 장면을 상상했음이 틀림없다. 그, 극한까지 진실에 가까운 가상을 해보고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알면서도 아라야는 이기겠다고 단언한다. 이 의지의 강함이야말로, 이 마술사의 강함이었다. 그러나────그곳에, 최대의 함정이 있다. 그 정도 되는 마술사라면 제일 먼저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사실을, 여태까지 한번도 알려주지 않았던 최대의 모순과 억지가. 「……불쌍하구나, 아라야」 「뭐──?」 아라야는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이미 생명활동을 멈추고 있었다. 아오자키 토우코의 육체는 이미 사람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남겨진 사멸은 뇌수(腦髓) 뿐. 혈액이 통하지 않게 된 뇌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파손된다. 그녀가 축적해온 지식도 기술도 전부 잃어버린다. 검은 마술사는 토우코의 몸에서 자신의 팔을 빼내고, 그대로 그녀의 머리에 손바닥을 갖다댔다. 얼굴을 쥐고서, 빠직, 하고 목뼈를 부러뜨린다. 그 후, 찌익 하고 머리를 몸에서 잡아떼고는, 머리가 없어진 몸을 바닥에 내버렸다. 예전에 동포였던 자의 목을 한 손에 들고, 마술사는 발길을 돌린다. 나타났던 장소───토우코의 배후였던, 맨션의 벽. 토우코가 승리를 확신하고서 떨어졌던 그 벽이, 아라야 소우렌이 나타났던 장소였다. 토우코는 스스로의 입으로 말했으면서도, 그 의미를 최후까지 이해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이 맨션은 아라야 소우렌 그 자체다. 벽도 바닥도, 건물로서의 상식 같은 것은 아라야 본인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맨션내의 어떠한 장소에도 존재할 수 있고, 어떠한 공간이라도 손에 쥐고 있다. 이곳은 아라야 소우렌이란 이계(異界)인 것이다. 그는 이 부지 안이라면, 어느 곳으로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본체인 검은 마술사는 물에 잠겨 가는 것처럼 맨션의 벽 속으로 사라져 갔다. (14\) … 기억나는 것은, 단지, 온통 불타버린 들판뿐이다. 걸어도 걸어도 이어지는 시체들. 강가에 깔린 자갈은 돌이 아니라 뼛조각. 바람이 운반하는 죽음의 냄새는 온 세상을 채울 듯이 끊이지 않는다. 전란의 시대였다. 아직 병기라고 불릴 정도의 도구가 없던 시대. 손과 손으로 서로를 죽이고, 내일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자들. 어느 곳에 가도 싸움은 있고, 사람들의 사체는 예외 없이 무참하게 내버려져 있었다. 약한 마을 사람들이 강한 무리의 인간들에게 학살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전장에 선악은 없다. 있는 것은 몇 사람이 죽어서, 몇 사람을 구원할 수 없었는가 뿐이다. 싸움이 일어났다고 들으면, 그 곳으로 향했다. 반란이 일어났다고 들으면, 그 마을로 발을 옮겼다. 제때 도착한 적도 있고, 그렇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라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준비된 결말은 사자(死者)의 산밖에 없다. 인간은, 어찌 하지도 못하고 죽는 존재다. 원망의 말을 하면서 죽어간 남자도 있었다. 자기 아이의 내일만을 빌며 울면서 죽은 여자도 있었다. 배고프다며 웃으면서 숨을 거둔 아이도 있었다. 죽음은 불합리하게 덮쳐온다. 쌓인 선행도 살아왔던 인생도, 그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그저 어찌하지도 못하고, 반항할 만큼 반항하고 무참하게 죽는 것만이 인간의 생(生). 그래도 그들을 구하려고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본 것은 끝없이 불타버린 초원뿐이었다. 그들은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은 구원되지 못한다. 종교로는 인간의 구제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구원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맞게 해야 하는 것이니까. 절망을 절망으로 덮고, 어제의 한탄은 더욱 진한 오늘의 한탄으로 엷어져간다. 반복되는 압도적인 죽음의 숫자에 나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깨달았다. ───나(인간)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구하지 못할 거라면 하다못해, 그 죽음을 명확하게 기록하자. 너의 지금까지의 인생과, 그 뒤에 기다리고 있었을 인생을 새겨주겠다. 그 괴로움을, 내가 계속 살게 해 주겠다. 생명의 증거란 것은 어떻게 즐거워했는가가 아니다. 목숨의 의미란 것은 어떻게 괴로워했나, 이니까. ───죽음의 수집이, 시작되었다. … 증기의 소리와, 물이 끓는 소리 속에서 그는 눈떴다. 조명 없는 어둠 속, 맨션의 거주인들에게 둘러싸여서 아라야 소우렌은 조용히 일어선다. 잠깐,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내가 꿈이라니. 황혼의 미련을 본 적은 있었지만, 자신의 미련을 눈앞에 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사람, 마술사는 말한다. 아니, 그는 한사람이 아니었다. 그 주위에는 새장크기의 유리 용기가 있다. 커다란 유리의 용기 안에는 액체와……인간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머리만 남은 그것은, 자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고서 둥실둥실 떠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아오자키 토우코의 머리다. 슈우-, 하는 증기소리. 방의 중심에 놓여진 철판만이 밝게 빛난다. 새빨갛게 달궈진 철판의 조명만이, 이 마술사의 연구실을 비춰 준다. 마술사는, 그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료우기 시키와 아오자키 토우코. 두 사람으로 인해, 지금까지 사용했던 육체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육체는 예비로 준비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익숙해지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어차피 얼마 안 있어 료우기 시키의 육체로 이동할거라고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으로 일을 그르치기라도 한다면 되 돌이킬 수 없다. 아라야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미, 그를 위협할 존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라야!」 갑자기, 또 한 명의 마술사가 나타났다. 붉은 코트의 마술사는 납득이 안 간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라야에게로 바짝 다가선다. 「한가롭게 뭐하고 있는 거야. 할 일은 아직 남아 있어. 서둘러서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되잖아!」 「……일은 끝났다. 아오자키의 공방에 손을 댈 필요는 없어. 엔죠우 토모에도 마찬가지다. 그건 내버려둬도 아무 것도 못해. 그것은 무엇보다 네가 알고 있을 텐데」 「확실히, 슬슬 한계겠지만 말이야. ……좋아, 다른 것은 문제가 안 될 거라 인정하지. 하지만 료우기 시키는 어떻게 할거냐. 저건 지금 의식을 잃고 있는 것뿐이잖아? 눈을 뜨면 이곳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나는 더 이상 쓸데없는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아. 도망치려 하는 계집애를 붙잡는 것도, 더구나 계속 감시하는 일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그쪽의 기우도 필요 없다. 저건 맨션의 한 방에 유폐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과 공간을 이은 무한 속에 가둔 것이다. 이 일그러진 이계를 만들어낸 제 1목적은, 닫힌 고리를 만들어내는 것. 어떠한 수단, 어떠한 충격을 가졌다 해도 무한의 어둠에서는 빠져나갈 수 없어. 곧 료우기 시키가 눈을 뜬다하더라도, 그것은 어떻게 하지도 못한다. 감시 따위는 불필요하다. 게다가, 그 상처로는 일어나는 것조차 곤란하겠지. 눈을 뜬다 해도 몸은 만족스럽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변함없는 고민의 표정인 상태로 말하는 아라야에게, 붉은 마술사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뭐어 상관없어. 원래부터 료우기 시키에게는 흥미가 없었으니까. 내가 너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다른 목적이다」 그렇게 말하며 붉은 마술사는 흘낏 시선을 이동했다. 테이블에 놓여진 토우코의 머리가 든 유리병으로. 「약속이 틀리잖아, 아라야. 네 입으로 말했을 텐데. 아오자키를 죽여준다고. 그건 거짓말이냐?」 「기회는 양보했었다. 그러나 너는 실패했다. 내가 아오자키를 처치한 것은 어쩔 도리 없는 일이었다」 「처치했다? 웃기지마. 그 녀석은 아직 살아있어. 너 정도 되는 자가 상대를 살려두다니, 상당히 여려졌는데, 안 그래?」 붉은 마술사의 추궁에 흐음, 하며 아라야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지금의 아오자키 토우코는 완전히는 죽은 것이 아니다. 뇌의 기능은 살아있다. 단지 말하지 못하고, 사고(思考)할 수 없는 상황일 뿐이다. 그것을 살아있다고 본다면, 분명히 살아있는 것이겠지. 「발톱을 거두지마라, 아라야. 아오자키는 상처 입은 적색(傷んだ赤色)이라고 까지 불린 암 여우다. 머리밖에 없다고 해도, 틈이 있으면 반격해와. 확실히 죽여 둬야 해」 「──멍청한 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것을 말했군, 코르넬리우스」 「뭐?」 붉은 마술사는 말이 막힌다. 그것을 무시하고 아라야는 유리병에 손을 뻗었다. 「가져가라. 확실히 이것은 너의 것이다. 어떻게 취급하더라도 뭐라 하지 않겠다」 아라야는 순순히 토우코의 머리를 붉은 마술사에게 넘겼다. 새장크기의 병를 양손에 든 붉은 마술사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씨익, 하고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린다. 「확실히 받았다. 이것으로 이제 나의 것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상관없겠지, 아라야?」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너의 운명은 정해져있다」 조용하게, 그렇지만 무겁게 말하는 아라야의 목소리도 붉은 마술사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유쾌한 듯 웃음을 참으면서 만족스러운 걸음걸이로 이 방에서 떠나갔다. / 13 (모순나선, 6) 짤깍, 짤깍, 짤깍, 짤깍. ……두통이 격해진다. 몸의 아픔도 심해져서, 여기저기에 볼트라도 박혀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픔을 견디면서,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이빨이 따닥따닥하고 떨려서, 의식이 분명해지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라는 단어를 혼자서 반복하면서 의미도 없이 벽을 노려보며 존재하고 있다. ───그로부터 얼마정도의 시간이 지난 걸까. 료우기가 아라야에게 당하고 나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아라야는 선 채로 죽어있었다. 당연하다. 가슴과 목에 나이프를 찔렸고 목의 나이프는 깊숙이 박여있다. 살아있는 편이 이상하다. 그러나, 아라야는 살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목에 찔린 나이프가 조금씩 바깥쪽으로 움직여간다. 근육이 다시 밀어내는 것이라고 깨달을 때까지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프는 땡그랑,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멈춰있던 아라야의 호흡이 재개된다. 나는───그, 떨어진 나이프 소리로 겨우 뭔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닥을 기는 것처럼 떨어진 나이프에 달려들어, 그것을 양손으로 단단히 쥔다. 올려다보자, 막 되살아난 아라야의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나는 비명을 질렀다고 기억한다. 아라야는, 엄청나게 무서웠다. 료우기의 원수인데도 덤벼드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나는 그저 정신없이 도망쳐 나왔다.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달리고, 달려서, 숨이 멎을 정도로 달려서, 나는 맨션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대로 타고 왔던 바이크에 올라타고, 우선 그 탑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하여, 정신이 드니 이런 곳에서 떨고 있다. 아마도, 이미 주인이 돌아올 일이 없는 료우기의 아파트. 살풍경한 이 방에서, 나는 또 무릎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빌어먹을」 이미 몇 천 번째의 말이 흘러나온다. 그런 것밖에, 할 수 없다. 나는, 쓰레기다. 료우기를 두고서 도망쳐 나왔다. 눈앞에서 료우기의 사체를 보았지만 죄의식도 들지 않는다. 자신이 살해당하는 악몽을 현실로서 보고 왔는데도, 아무런 느낌도 떠오르지 않는다. 적어도───그것이 무엇인 정도는 정리할 수 있을 텐데, 머리가 잘 돌아가 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떨림이 멈추지 않아서, 다시 그런 소리를 내뱉는다. 웃음거리다. 나는, 지금까지 뭐든지 혼자서 해왔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료우기를 구하는 일도, 할 수 없다. 「……빌어, 먹을…………!」 외쳐도 머리는 부서진 상태였다. 료우기를 구한다는 것은, 그 남자와 싸운다는 소리다. 나는 아라야의 모습을 기억해내는 것만으로 온 옴이 떨려서, 도저히 료우기를 구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짤깍, 짤깍. ……시계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한, 이상한 소리. 왼쪽 팔꿈치가 아프다. 도망칠 때 부딪힌 거겠지. 뼈가 금이 가있는 것처럼 아픔이 퍼진다. 나는, 몸과 마음 모두가 한계였다. 두통도 멈추지 않고 관절의 아픔도 사라지지 않는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잘 되지 않아서 괴로웠다. 「……………………」 울었다. 울고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 분해서 울고 있었다. 자신이 혼자라서, 불쌍해서, 아파서, 울고 있었다. 이렇게 혼자,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가짜라고 뼈저리게 느꼈다. 역시 나는, 다른 녀석들과 똑같이 꾸물꾸물 남들 따라 살아갈 뿐인 가짜다. 료우기처럼 진짜가 되고 싶었지만, 가지고 태어난 속성은 속일 수 없다. 진짜……? 아아, 그래도 한번, 그런 생각이 든 때가 있었다. 그것은───그래, 바로 최근이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는 것을 멈추고, 침대 위에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언제나 자고 있던 료우기는 없다. 그저 한 자루의 일본도만이 팽개쳐져있다. ……살인자라고 말했던 나를 믿어줬던 여자. ……살인자인 나를 자연스럽게 대했던 여자. ……나를, 구해주었던 여자. ……내가 처음으로,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한 상대. ───어째서 잊고 있었던 걸까. 이 마음만은, 거짓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그 녀석을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무엇을」 지키려고,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라. 「────────」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번도 나는, 자신의 목숨이 제일 소중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것. 뭔가 다른 소중한 것이 있어서, 무언가에게 구해지고 싶어서, 그날, 자신의 집을 뛰쳐나왔던 거다. 「────젠장할, 정말, 계집애 같아」 “날 위해서 죽을 수 있어?” 그렇게 물어오는 료우기에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던가. 두려워할 무엇이 있다는 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정해져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추할 정도의 오기를 부려서라도, 나는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랬었지. 아아, 좋다구 료우기. 엔죠우 토모에는, 너를 위해서 죽어주겠어」 말하며, 나는 료우기가 남긴 나이프를 강하게 쥐었다. 그때, 방의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하는 밝은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린다. 아라야가 쫓아온 건가, 아니면 단순한 손님일까. 료우기의 집이니까 손님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상대는 아라야패거리임이 분명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척 하려고 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쪽은 각오가 되어있다. 문을 연 순간에 덤벼들어서, 료우기가 있는 곳을 불게 만든다. 나는 나이프를 쥔 채로 현관까지 가서 지금 열께요, 하고 침착하게 말한 뒤에 문을 열었다. 「누구세───」 요, 하고 말을 이으며 나는 상태를 힘껏 방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를 복도에 깔아 누르고 뒤꿈치로 현관을 닫는다. 상대는 불의의 기습을 당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나는 그 녀석 위에 올라타서, 후려치려고 했다. 가, 그만두었다. 내가 깔아뭉개고 있는 상대는 한눈에도 인축무해라고 알 수 있는, 료우기의 집에 올 손님도 아라야의 수하로도 생각 할 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너, 누구야」 나의 말에 대답은 없다. 깔려있는 상대는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본다. 그 녀석은 흑발에 검은 테의 안경을 한, 부드러운 눈매의 남자였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위겠지.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었지만 수상한 분위기는 전혀 없다. 「너───시키와 아는 사이냐?」 「그런데, 너는……?」 갑자기 방에 끌려 들어와서, 얻어맞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남자는 의외로 냉정하게 되물어왔다. 「나? 나는────」 생각해보면, 나는 시키의 무엇인걸까. 할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귀찮아 졌다. 「어찌되건 뭔 상관이야, 그런게. 료우기는 부재중이야. 얼른 돌아가 줘」 누르는 것을 멈추고 일어선다. 남자는 복도에 쓰러진 채로, 가만히 나의 손을 보고 있었다. 「뭐야. 밀어서 넘어뜨린 것은 미안하지만, 너를 상대하고 있을 여유는 없어」 「그건 시키의 나이프잖아. 어째서 네가 가지고 있는 거야」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남자는 내가 들고 있던 나이프를 바라보고 있다. 「……이건 맡아둔 거야. 너하곤 상관없어」 눈을 돌리면서 대답하지만, 남자는 관계있어, 라며 중국인 같은 발음으로 대답하면서 일어섰다. 「시키는 말이지, 자신의 칼은 누구에게도 만지게 하지 않아. 그 나이프라면 더더욱. 네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시키가 자신의 신조를 아주 깨끗하게 바꿔 버렸다던가───」 꾸욱, 하고 남자는 나의 옷깃을 거머쥔다. 「───네가, 시키에게서 빼앗았다던가 둘 중 하나야」 남자는 박력은 없지만, 눈을 돌리고 싶어질 정도로 올곧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옷깃을 쥔 남자의 팔을 뿌리친다. 「그 어느 쪽도 아냐. 이것은 시키가 잊어버린 물건이야. 그러니까……빨리, 본인에게 돌려 줄거라구」 그렇게 말하며, 나는 남자에게 등을 돌렸다. 낮 동안에 준비를 마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기다려. ……너는, 그들의 동료야?」 나의 등 뒤에서 남자가 물어온다. 무시할 생각이었지만, 남자의 표현은 어쩐지 신경이 쓰였다. 「그들이라니, 누구 말야」 「코가와 맨션」 짧게, 칼날처럼 예리한 목소리로 남자는 말했다. 나는 딱 멈춰서버린다. 남자는 한번 떠보는 말이었던 것이겠지만, 나는 그것에 걸려들어 버렸다. 남자는 후우, 하고 무거운 숨을 쉰다. 「……그런가. 시키는 정말로 붙잡혔구나」 그렇게 하고, 남자는 현관문에 손을 댄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때, 추월당한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어이」 나도 모르게, 불러 세우고 있었다. 가만 놔두면 될 테지만, 이 남자를 혼자서 가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무엇보다, 이 녀석이 같은 목적을 가진 상대라고 깨닫고 안심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이, 기다려!」 나는 아까까지 와는 다른 의미로, 나타난 남자를 강제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 남자는, 료우기의 고교시절부터의 친구라고 했다. 이 녀석의 자세한 이야기 따위는 지금은 흥미가 없다. 나는 료우기를 구해내는 것뿐이고, 이 녀석은 료우기를 구하고 싶은 것뿐이었으니까. 우리들은 서로에게 이름도 밝히지 않고, 서로의 정보만을 나눠가졌다. 남자의 말로는, 오늘 낮에 아르바라는 붉은 코트의 남자가 찾아와서 료우기를 납치했다고 공언한 것 같다. 나와 료우기가 맨션에 갔던 것은 어젯밤. 시간적으로는 맞고 있다. 문득 시계를 보자, 시각은 딱 오후 7시가 되려 하고 있었다. 이걸로, 그때부터 만 하루가 경과한 것이 된다. 남자는 토우코라고 하는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인물도 당해버린 것 같았다. 홀로 남겨진 남자는, 내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행동을 개시했다고 한다. 나는, 어젯밤에 일어난 모든 이야기를 말했다. 맨션의 동동과 서동의 이야기. 두 개의 나의 집에 대한 이야기. 료우기가, 아라야라는 괴물에게 붙잡힌 것. ……내가, 부모를 죽이고 거리를 헤메이던 때에 료우기와 만난 것. 남자는 진지하게 나의 말을 듣고 있다. 그 괴이(怪異)의 중심에 있던 나조차도, 이렇게 설명하면 거짓말처럼 생각되는데, 이 녀석은 의심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남자는 물어왔다. 「생각할게 뭐가 있냐. 료우기는 지금도 그 맨션의 어딘가에 있어. 구해내는 것 말고 뭐가 있는데?」 「그런 말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너의 부모님에 대해서야. 너는 어느 쪽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것을, 남자는 아주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말한다. 나의 부모───내가 죽였던 엔죠우 토모에를 키운 부모. 「……그런거, 지금은 관계없잖아. 나중에 해」 「관계있어. 토우코씨의 말에 따르면, 그 맨션은 작위적(作爲的)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키기 쉽게 건축되었대. 집단 자살한 가정이 있다면, 그 책임은 가정이 아니라 그 맨션을 만든 사람에게 있겠지.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살해당하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불안해져서 부모를 죽여 버렸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것은 너 본인의 의사였던 걸까? 너는 정말로 부모님을 죽인 걸까? 네가 일을 저질렀을 때,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부모님은 죽어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남자는 무언가에 사무치는 듯한 눈매로 이쪽을 본다. 이 녀석의 시선은, 예리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마음 속 까지 들어올 것 같은 힘이 있다. 료우기와는 전혀 정반대의, 진실의 폭로법이다. ……나도 그 모순은 눈치 채고 있었다. 아니, 이미 마음의 어딘 가에서는 알고 있다. 내가 이 손으로 죽인 부모의 정체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단 한 가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떠올라버린다. 나는, 그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죽였다구. 그것만은 진짜야. 지금도 어머니를 찔렀을 때의 감촉은 손에 남아있어. 분명히 나는, 한 달 전에 부모를 내 손으로 죽였어. 변명할 여지가 없어」 「아버지는 어떻게 된 거야. 아까부터 네 말에는 어머니라는 단어뿐이고 아버지란 단어가 빠져있어. 네가 죽인 것은 어머니 뿐인지도 몰라」 「끈질기네. 아버지도 죽었어. 사체를 봤으니까 틀림 없…………」 말하다가, 깨달았다. 분명히────아버지의 사체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저질렀던 것일까? 어머니를 죽일 때 까지는 기억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어떻게 죽였는지 따위, 나는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미 어머니에 의해서 죽어있었으니까. 반년전의 부모의 유체(遺體). 아마, 오늘밤에도 어머니에 의해서 죽음에 이를 엔죠우가(家)의 인간. 내가 죽인 부모는, 나를 매일 저녁마다 죽인 부모다. 그 꿈은 현실이었다. 나는 꿈에서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오히려 이 손으로── 짤깍, 하고 톱니바퀴 소리가 난다. 「───시끄러. 부모님의 일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나는 료우기를 구하는 것뿐이야. 그 이외의 일은 몰라」 그렇다, 지금은 그것만이 나의 진실이다. 그 이외의 일 따위 생각할 여유도 의미도 없다. 「그래서, 너에게 생각은 있는 거야? 혼자서 구할 생각이었다면, 무언가 생각이 있었던 거 아냐?」 노려보면서 말하자 남자는 아아, 하고 별로 의욕 없는 태도로 끄덕였다. 「생각 만이라면 딱 하나 있어. 그렇지만, 너의 말을 듣고서 생각이 바뀌었어. 그건 우리들의 손에서 끝낼 수 있는 얘기가 아니야. 경찰에게 맡겨야할 일이 아닐까?」 얌전한 얼굴로 남자는 가만히 말한다. ……이 자식,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녀석들이 도움이 되겠냐. 「그거,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남자는 설마, 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진심은 아니지만, 그런 판단도 필요했다는 얘기. 내가 봐도 너는 너무 생각에 빠져있어. 시키는 소중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로서 자신의 목숨은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돼」 「시끄러, 네가 내 기분을 알 리가 있냐……!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구.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고, 아무도 지켜주지 못했어. 하다못해, 하다못해 료우기를 구하는 것 정도밖에,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아. 그 녀석을 위해서 죽어준다고 맹세를 할 정도로, 아무 것도─────!」 거기까지 말하다가, 가슴이 메였다. 알아버렸다. 그날 밤과 마찬가지다. 나는, 료우기를 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료우기를 구하는 일로 죽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이미, 너무나 괴로워서 살고 싶지 않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살아갈 의미조차 없다. 그렇지만 무가치한 죽음은 싫다. 그렇다면───료우기를 위해 목숨을 걸고 죽으면, 그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다. 자기가 반한 여자를 위해서 죽는다니, 나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으니까. ……이 남자는, 나의 본심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저렇게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너는, 몰라」 나로서는, 그렇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조용히 일어선다. 「알았어. 우리들만으로 시키를 구하러가자. 그렇지만, 그 전에 들릴 곳이 있어. 같이 가줘야겠어, 엔죠우 토모에」 아직 알려주지도 않은 나의 이름을 말하며, 남자는 밤의 거리로 걸어 나갔다. 남자의 뒤를 따라 전철에 탔다. 목적인 맨션과는 전혀 방향이 틀린 전철에 타고, 모르는 역에 다다랐다. 그 마을은, 도심의 시끄러움과는 거리가 먼 조용한 주택가였다. 역 앞에 로터리 같은 것은 없고, 작은 편의점이 두 개뿐인 적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쪽이야」 남자는 역 앞의 안내도를 재빠르게 읽고서 걷기 시작했다. 몇 분 정도 걸으니, 주위에는 저녁식사를 끝내고 조용해진 집들밖에 없었다. 길은 어둡고, 가로등의 조명이 못미덥게 앞길을 밝히고 있다. 좁은 길. 좁은 육교. 쓰레기장에는 들개가 노숙자처럼 진을 치고 있어서, 아무리 봐도 세련됨이 없다. 남자는, 이 마을에 처음 온 것 같았다. 처음에는 료우기를 구하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인가하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말없이 걸어가는 남자를 쫓아가면서, 점점 초조함이 커간다. 우리들은 이런 곳에서 산책이나 할 정도의 여유는 없다. 「어이, 적당히 해. 어디에 갈 생각이야, 너」 「얼마 안 남았어. 봐, 저쪽의 공원. 옆에 들판이 있잖아. 그 옆에」 남자의 뒤를 따라, 그 공원을 지나친다. 밤의 공원에 사람은 없다. 아니, 게다가 이런 공원은 한낮이라도 사람은 없겠지. 작고, 그저 땅을 평평하게 만든 것뿐인 볼품없는 놀이터다. 미끄럼틀도 정글짐도 없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철봉은 붉게 녹이 슬어서, 이미 몇 년이나 쓰이지 않은 것 같다. 「────에」 문득, 뇌리에 무언가가 스쳤다. 나는……분명히, 이 공원을 알고 있다. 어렸을 적, 이미 기억하는 것도, 기억 해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어렸을 무렵, 이곳에서 논 기억이 있는 것이다. 멍하니 서서, 공원을 바라보고 있자, 남자는 이미 저편까지 가버렸다. 공원 옆에 있는 들판에서 더욱 떨어진 외딴집 앞에 멈춰서있다. 나는 남자에게로 종종걸음으로 다가간다. 남자는 말없이 그 집을 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대로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아주 슬퍼 보이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동자에 재촉 당하듯 아까까지 남자가 보고 있던 것으로 얼굴을 향했다. ───아찔, 했다. ………집이 있다. 단층건물의, 작은 집이다. 문은 반 이상이 썩어문드러졌고, 정원은 엉망이 되어 있다. 길게 자란 잡초 따위가 집의 벽까지 침식하고 있었다. 벽은 여기저기 칠이 벗겨지고 떨어져나가서, 집이라기보다는 지쳐서 쓰러진 노인 같았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이후로 얼마나 지났던 것일까? 이미 이것은 집이 아니라 단지 폐허에 지나지 않았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집어삼킬 듯이 폐허를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슬프지도 분하지도 않은데, 그저, 눈물이 계속 흘러넘쳤다. 나는 이런 것은 모른다.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혼이 기억하고 있다. 분명 엔죠우 토모에가 잃어버리게 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내가 버리려 해도 토모에는 계속 이 장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집────. 내가 8살 무렵까지 살고 있었던 장소. 아주 옛날에 잊어버렸던 추억의 나날. “엔죠우, 너의 집은 어디야?” 그 질문에 대답하자, 소녀는 신경질적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야. 네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집을 말하는 거야. 모른다면 됐어” ……이걸 말하는 거였나, 료우기.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곳에 무엇이 있다는 건가. 무너지고, 부서져서 형체도 없어진 폐허에 볼일은 없다. 집에는 괴로운 기억뿐이다. 일할 수 없게 되어서 나에게 분풀이를 하는 아버지는, 집안에서는 폭군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말하는 대로 네네 밖에 할 줄 모르는 멍텅구리. 만족스러운 식사도 따뜻한 옷도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부모라는 것은 단지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는 부모님이 죽어있는 일 보다, 료우기가 중요하다. 분명,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나는 이렇게나 울고 있는 걸까. 부모님의 백골을 보았던 때도 그랬다. 무언가가 저려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소중한 것을 잊어버려서 안타까워진다. 「……뭐야, 이건」 중얼거리면서, 나는 폐허의 정원을 헤치고 들어갔다. 정원은 좁다. 일가 3명이 살기에는 딱 알맞았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미 어른이다. 어렸을 적보다 정원은 옹색하게 느껴졌다. ……기억하고 있다, 이 정원을. 행복하게 웃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억센 아버지의 팔을.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던 상냥한 어머니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 그런 꿈같은 행복한 나날이 나에게도 있었던 걸까. 그런 당연한 행복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는 걸까. “───토모에” 목소리가 들렸다. 되돌아보자, 날카롭고 사나운 얼굴을 한 청년이 있었다. “중요한 것을 맡길 테니까, 이쪽으로 와라” 청년의 발치로, 작은 꼬마애가 달려간다. 붉은 곱슬머리를 한, 소녀 같은 애였다. “아빠, 이거, 뭐에요?” “집의 열쇠야. 잊어버리지 말고 잘 가지고 있어. 토모에도 남자니까, 그걸로 엄마를 지키는 거라구” “열쇠로 지키는 거에요?” “그래. 집의 열쇠는 가족을 지키는 소중한 물건이야. 확실히 문단속을 할 수 있고, 아빠나 엄마가 집을 비워도 괜찮잖아? 열쇠는 가족은 증거란다” ……아직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단단히 열쇠를 움켜쥐고, 아이는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다. “응, 알았어요. 잘 가지고 있을게요. 안심해요 아빠. 제가 집을 지킬게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으니까────” 덜컥, 하고 다리가 풀려서, 나는 마당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일어서려고 해도, 잘 일어설 수 가 없다. 과거의 추억이 선명하게 새겨져 버려서, 지금의 육체를 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랬다. 나에게 있어서 집의 열쇠란 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가족의 증거인 보물 같은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 가족은 부서져서, 옛 흔적은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저주했고, 이 현실이 너무나 힘겨워서 옛날의 일 따위는 잊어버렸다. ……옛날. 아직 가족이 평화스러웠던 시절의 기억. 다정한 어머니. 자랑스러운 아버지. 자신의 아이의 성장을 제일로 하고 있었던 부모. 그것은 진짜였다. 세월이 흘러서, 그것을 잃어버린 것 정도로 가짜라고 단정한 자신이 바보였었다. 부모님은, 이렇게도 다정했었는데. 세상(내일)은, 이렇게도 빛나 보이고 있었는데. 나는 현재밖에 보지 못하고, 부모님에게 구제불능이란 평가를 내리고 격리했었다.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그들에게 비수를 꽂았다. 모든 것은───영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아냐. 영원을 바라는 것이 잘못된 일이다. 부모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것을 잊고서───나는 진짜 피해자를 가해자로 생각하고 도망치고 있었다. ……주위에서 박해를 받아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었던 아버지. 아르바이트 직장에서 험담을 들으면서도, 참고 일하고 있던 어머니. 그 두 사람에게 있어서, 나만이 구원이었다. 내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항상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뭔가 말을 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말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듯 계속 등을 돌렸다. 괴로운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데도. 어머니는 나 이상으로 괴로웠을 텐데. 말상대도 없이 아버지에게 얻어맞으며 묵묵히 일하고 있던 어머니. 그녀의 마음이 부서진 것은 당연하다. 내가, 내가 단 한번만이라도 돌아보았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정말───바보야」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나는 얼굴을 감싼다. 부모님을 죽인 것이 꿈 탓이라던가 맨션의 탓이라던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쁜 것은 나다. 피해자는 어머니였는데. 나는 오히려 그것을 비난하면서 돌아보지도 않았다. 부모님을 죽인 것은 나다. 나는 무엇보다 그들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 보상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주저앉은 채로, 마당의 흙을 강하게 움켜쥔다. 눈물은 멎어있었다. 울고 있던 것은, 그렇다. 아까처럼 분해서 울고 있던 것이 아니다. 슬프기 때문에────부모님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처음으로……부모님이 죽고 나서 반년이나 지나고 나서 겨우 흘린, 이별의 의식.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언제까지고, 이런 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바람은 멎었고, 신호도 울렸다. 자아──슬슬 진짜로 달리지 않으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자는 계속 나의 등 뒤에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당에 쭈그리고 있는 나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인정하기는 힘들었지만, 분명 나는 이곳에 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우는 얼굴 따위를 보인 나는, 도무지 솔직해 질 수 없었다. ……아니, 확실히 이 상대에게 나는 마지막까지 억지를 부리겠지. 왜냐하면 나는 연적(戀敵)과 친해질 생각 따위는 없으니까. 「젠장, 만족하냐」 돌아보지 않고 욕설을 내뱉는다. 남자는, 괴로운 듯 끄덕였다. 「……미안해. 나는 너의 불행을 알고 있지만,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아」 아아, 그렇겠지. 나의 아픔을 아는 것은 나뿐이다. 동정해주는 척 하며, 타인에게 아픔을 해설하는 짓거리는 질색이다. 그 점으로 말하면, 이 녀석은 아주 기분 좋은 소리를 한다. 「나는 행복한 집에서 태어나서 행복하게 자란 인간이야.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아아, 이 녀석은 좋은 녀석이다. 지금의 나를 상대로는, 위로의 말조차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사람의 동정은 싫지만, 사람의 동정을 거절한 댓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녀석은 나에게 그런 기분 나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체엣. 알고 있으면 조용히 있으라고, 멍청아」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잖아. 지금까지 몇 번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면──지금의 너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너 자신이야. 그것을 소홀히 하는 행동은 분명 잘못되어있어」 달빛아래, 남자는 그런 말을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 사람을 속이면서까지 지키려는 것은, 엔죠우 토모에라는 이 목숨. ───아아, 아마도 그것이 제일 순수한 진실. 가짜가 아닌, 꾸밈없는, 드러난 본성이다. 그것을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고. 료우기를 위해서 죽어준다고 말했던 그날 밤, 시키가 나를 멸시한 것은 그것 때문이다. ……대단한 일이다. 이렇게도 다른 타입의 인간이, 결국은 같은 것을 나에게 일러주고 있었으니까. 쭈그린 채로, 나는 쿡쿡 웃었다. 그곳에, 남자의 손이 뻗어온다. 「혼자서 일어날 수 없다면, 손을 빌려줄게」 ……나는 그것을 눈부신 듯이 바라보다가, 천천히, 뿌리쳤다. 몸 안의 관절이 지끈지끈 비명을 질렀지만,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지인 것이다. 엔죠우 토모에는 일어났다. 「쓸데없는 참견 마. 언제나 나는 혼자서 해왔으니까」 그것도, 독선적인 결심이었지만. 남자는 아아, 하고 쌀쌀맞게 웃는다. 「응. 너라면 그렇게 대답할거라 생각 했어」 그것은 이상하게도, 이쪽도 같이 웃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 남자가 세운 계획은 단순했다. 료우기는 맨션의 서동 10층의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한다. 정면의 로비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에 탄다 해도, 곧 상대에게 들켜버리겠지. 거기서, 남자는 자신이 미끼가 되겠다며 나에게 료우기를 구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 맨션의 거주자인 내가 돌아다니는 것 보다, 외부인인 남자가 돌아다니는 편이 아라야 패거리들의 주의를 끈다, 라고 남자는 확신 있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말야, 나도 결국은 들켜버리지 않겠어?」 「너는 지하로부터 침입해 줘. 이거, 그 맨션의 약식도야. 지하 주차장이 있잖아. 맨션에서 떨어진 맨홀부터 하수구로 들어가면, 그곳에서 안으로 잠입할 수 있어. 그 맨션, 지하주차장은 안 쓰고 않잖아?」 남자의 말은 하나하나 일리가 있었다. 이 녀석의 말대로 그 맨션의 지하주차장은 개방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도 B버튼이 있기는 하지만, 지하로는 가지 않는다. 「아마도, 그곳이 적의 공방이라고 생각해. 지하주차장이라니, 잘 생각한거지. 그곳이라면 소리도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을 테고, 전혀 수상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하수구로부터 주차장까지 올라갈 때 사용하라며 재키와 드라이버 따위가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를 안겨 주었다. 남자가 운전하는 차는 그렇게 해서 맨션이 있는 매립지구에 도착했다. 우리들은 맨션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도로에 차를 세우고, 내린다. 시각은 오후10시. 인적은 거의 없다. 「자, 저곳이 맨홀. 거기에서 서쪽으로 난 하수구로 가서, 7번째의 맨홀이 주차장이야」 「정말, 간단하게 설명해주네」 투덜대면서, 나는 준비물을 정리한다. 공구가 들어간 가죽주머니에, 료우기가 남긴 나이프. 그것과……만일을 위해서, 료우기의 방에서 일본도를 빌려왔다. 아라야에게 들켰을 때, 무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러면 시계는 맞춰뒀지. 반이 되면 맨션으로 들어갈 테니까, 너도 그 시간에 맞춰서 주차장으로 침입하도록 해」 남자는 익숙한 느낌으로 그런 지시를 한다. 나는, 겸사겸사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나는 이런 것에는 익숙하지만, 너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료우기를 위해서야?」 나의 질문에 남자는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어이. 죽을지도 모른다구. 무섭다던가 하는 생각 들지 않아?」 「당연히 무서워. 원래, 나는 이런 역할이 아니니까 말야」 눈을 감고서 남자는 말한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 있는 듯한, 조용한 말투였다. 「나 자신도 놀라고 있어. 이건 나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모험이야. ……하지만, 얼마 전에 말야, 미래시(未來視)라 하는 얼마 후의 현실을 보는 아이와 알게 되었는데」 「하?」……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그 애의 말로는, 시키와 관계하고 있으면 목숨을 걸어야하는 위험한 일과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구」 남자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나는 대꾸해 주기로 했다. 「아아, 그거라면 지금이야, 분명.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된대?」 남자는 고개를 저으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떻게 되던───죽는 일은 없대」 그것이 무리를 하는 이유야. 라고 남자는 덧붙였다. 정말로 애매한, 그러면서도 이 녀석다운 이유를 듣고, 나는 짐을 등에 메었다. 이렇게 일상 속에 있는 것은 즐거워서 좋지만. ……정말로, 슬슬 달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고맙다는 인사는 해두지. 근데, 맞아. 아직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네. 나는 엔죠우 토모에. 너는?」 ……상대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다시 이야기했다. 남자는 코쿠토 미키야라는 이름이었다. ……언젠가 료우기가 말했던 이름이구나, 하고 납득한다. 「그래. 정말로, 어딘가의 시인 같은 이름인걸, 너는」 그리고, 나는 남자의 손을 잡고서 열쇠를 쥐어주었다. 이미 나에게는 필요 없는, 료우기의 집의 열쇠. ────아주 옛날. 보물이라고 생각했던, 작디작은 금속조각. 「이건?」 「괜찮으니까 가져. 이제부터는, 네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말야」 나는 멋지게 웃으려고 노력했다. 잘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일이 끝나면, 우리들은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아. 찾는 일도 없어. 같은 여자에게 반한 사이니, 깨끗하게 헤어지자구」 어째서? 라고 묻다가, 남자는 얼굴을 찡그려버렸다. ……팟 하고 고개를 돌리며 나를 보는 것을 보니, 둔해 보이는 이 남자는 눈치가 빠른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정말로 순식간에 이해했으니까. 「그런 거야. 나는 너 같은 녀석은 몰라. 그러니까 너도 나에 대한 일 따위는 신경 쓰지 마. 어느 쪽의 책임으로 어느 쪽이 죽어버렸다, 따위는 뒷맛이 나빠지잖아. 그러니까───이젠 만나지 말기로 약속하는 편이 좋아」 그리고, 나는 한발 내딛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안녕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럼, 잘 있어! 전부 끝나면,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야. 료우기는 좋아하지만, 그 녀석에게는 내가 필요 없어. ……나에게는 말야, 료우기에게서 같은 것을 보고 안심하고 있었던 것뿐이었으니까. 나나 그 녀석 같은 인간에게는, 너같이 어이없을 정도로 해가 없는 녀석이 어울려────」 그렇게 말하고, 달렸다. 두 번 다시,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 14 인기척이 없는, 기계가 생활하고 있는 듯한 맨션에, 코쿠토 미키야는 발을 들였다. 풀냄새를 느끼게 하지 않는 정원을 빠져나와, 인공의 빛에 가득 찬 로비로 들어간다. 로비에는 소리조차 없다. 크림색으로 통일된 로비는, 단지 정결할 뿐이었다. 전등의 빛은 반사되지 않고 바닥과 벽에 빨려 들어가, 이곳에는 명암이라는 것이 없다. 낮에 왔었을 때───이 맨션에는 미지근한 오한이 가득차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밤중에 찾아온 지금, 이 이계(異界)에 충만한 것은 숨 막힐 정도의 정적이었다. 발소리는 작게 울리다가 1초도 견디지 못하고 말살되어간다. 차갑다. 공기조차 역할이 딱 정해져있는 것 같아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숨이 막힌다. 코쿠토 미키야는 자신이 이 이계(異界)에 있어서 완전한 이단자라고 통감한다. 그래도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물을 밀어 헤쳐 가듯 미키야는 조용하게 로비를 나아간다. 「우선 3층부터인가」 계단은 사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커다란 기동음이 나며, 5층부터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문이, 소리도 내지 않고 열려간다. 「────에」 그곳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순식간에 이해하지 못하고, 미키야는 숨을 삼키며 약간 뒤로 물러섰다. 「야아, 왔구나. 딱 좋은데, 이제부터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붉은 코트의 청년이,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미키야는 목까지 밀려올라오는 구역질을 한 손으로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두려워하듯, 몇 발짝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며, 울 것 같은 얼굴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보지 않으면 된다고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그것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잘 만들었지? 나도 마음에 들었어, 정말이야」 즐거운 듯 웃으며, 청년은 한 손에 든 그것을 앞으로 내민다. 미키야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던 그것. 붉은 코트의 청년은, 한쪽 손에 아오자키 토우코의 목을 들고 있었다. ◇ 토우코의 목은, 아주 잘 만들어져있었다. 생전과 전혀 바뀐 곳 없는 색깔과 질감. 자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은 얼굴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그녀는, 정말로 그대로였다. 단 한 가지, 머리부터 아래가 없다는 것 뿐. 「아─────」 입을 한 손으로 누르며, 미키야는 구토감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아니, 이미 그런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저 서서, 자신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려는 것들을 막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사부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이겠지? 기특한 마음가짐이야, 아오자키는 좋은 제자를 가지고 있군. 정말 부러워」 붉은 코트의 청년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온다. 청년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어서, 거짓웃음이 붙어있는 것 같았다. 「보는 대로, 너의 사부는 죽어버렸어. 하지만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야. 의식은 있어. 외부의 소리를 듣고,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기능은 남아있지. 자비(慈悲)야, 자비. 그녀에겐 여러 가지로 애를 먹었지만, 죽은 자를 대하는 예절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구. 그녀는 조금 더 살아줬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어」 붉은, 피 같은 진홍을 입고서 청년은 미키야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유혹에 견디며 움직이지 않는 성직자를 계속 꾀면서 접근하는 악마처럼 자연스럽게. 「무엇 때문에, 냐고? 간단해, 이것만으로는 나의 기분이 풀리지 않는 것뿐이야. 그냥 죽이는 것만으로는 내가 오랫동안 받아왔던 굴욕의 보상도 되지 않아. 그녀에게는 좀더, 고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아아, 아니아니, 그래서는 오해해 버릴까. 저기 말야, 고통이라는 것도 보통 말하는 아픔을 느껴줬으면 하는 게 아니야. 왜냐하면. 생각해 봐. 머리만 남은 상대에게 육체의 상처 따위는 대단치 않은 문제잖아?」 말하면서, 청년은 손에 든 머리에 손가락을 뻗는다. 그대로 숨이 끊어져 있는 양 눈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 생생한 피와 함께 안구를 끄집어냈다. 폭포 같은 눈물이, 피가 되어 그녀의 볼을 흘러간다. 피투성이가 된 안구는, 생전의 그녀의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저 둥그런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은, 움직이지 않는 미키야에게 그것을 건넸다. 「봐, 이런 것 가지고 아오자키는 신음소리하나 내지 않아! 하지만 안심해. 통각은 멀쩡하니까. 아오자키는 참을성이 강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이 뽑히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플까 아플까, 울어버릴 정도로 아플까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제자니까, 사부의 기분정도는 알겠지?」 미키야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의 신경은 끊기기 직전까지 가버려서,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붉은 코트의 청년은, 그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하하───하지만 뭐어, 분명 대단치 않은 아픔이겠지. 게다가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아프게 하기보다는 분노를 느끼게 만들고 싶어. 이렇게 머리만 남은 것도, 아오자키로서는 참기 힘든 굴욕이겠지. 하지만 나라면 좀더 한 단계 높은 굴욕을 준비 할 수 있어. 그것 때문에 네가 필요했지. 너. 자신이 돌보며 기른 것을 남이 망가뜨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아? 그것도 눈앞에서,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무력한 자기 자신을 실감하면서 말이야. 후후, 나라면 견딜 수 없을 거야. 망가뜨린 자를 죽이더라도 분이 풀리지 않을 테지. 알겠어? 나를 무시해온 이 여자가 나를 죽이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미워하는 거라고. 훌륭해, 이 이상의 복수가 어디에 있겠어. 직접 죽이는 것은 아라야가 가로채갔지만,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어」 붉은 코트의 청년은,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으며 그녀의 머리에 말을 걸다가───갑자기, 피눈물을 흘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쥐었다. 「아오자키에게 제자가 있다고 알았을 때, 나는 기뻐서 참을 수 없었어. 그때부터, 나는 너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지. 원망할 거라면 내가 아니라 네 사부를 저주 하라구. 아, 안심해, 너만을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짓은 안 하니까. ───이 머리. 이렇게 되었어도 그녀는 살아있다고 말했지? 하지만」 청년은 씨익 웃으면서 바이스를 조이듯 두 손으로 머리를 짓눌러 으깨버렸다. 사과나 무언가처럼 아오자키 토우코였던 것이 부서져서 바닥에 떨어진다. 「자, 이걸로 죽었어」 로비를 가득채워 버릴 기세로 청년은 웃기 시작한다. 미키야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토우코였던 것이 고깃덩어리로 바뀐 광경이, 간신히 남아있던 이성을 끊어지게 만든 것이었다. 미키야는 밖이 아니라 동동의 로비로 달려간다. 그곳이 막다른 곳이란 것도 지금의 그에게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비명을 지르지 않은 만큼, 그는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면, 막이 올랐군. 기다려라, 곧 뒤를 따라가 주지」 청년은 큰 웃음을 멈추고 천천히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피투성이인 양손을 그대로 둔 채로 바닥에 붉은 방울을 떨어뜨리면서. ◇ 지하의 하수도는 미로 같았다. 조명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 오수(汚水)가 흐르는 소리만이 시간의 경과를 느끼게 한다. 그래도 토모에는 미키야가 준비한 하수도의 약도를 한 손에 들고, 목적한 위치에 다다랐다. 천장으로 통하는 작은 구멍. 켜졌던 회중전등을 끄고, 벽에 만들어진 사다리를 올라간다. 몇 미터나 올라가자 천장에 닿았다. 천장이 되는 뚜껑으로 덮인 맨홀 틈새에 드라이버를 끼워 넣고, 커진 틈새에 스패너를 밀어 넣는다. 다음에는 그대로 있는 힘껏 뚜껑을 밀어 올렸다. 땡그렁, 하고 둥근 철의 뚜껑이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난다. 어두워서 지하주차장의 상황은 전혀 알 수 없다. 토모에는 공구를 넣은 주머니를 먼저 주차장으로 던지고, 시키의 나이프와 칼을 쥐고서 사다리를 올라갔다. 「………………」 주차장에는 조명이 없어서, 토모에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본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숨어들었는데도,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전혀 없다. 지하주차장이 어느 정도의 넓이인걸까, 토모에에게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조명도 없고, 그저 증기 소리만이 들릴 뿐이라, 넓은지 좁은지도 알 수 없었다. 「증기, 소리……?」 중얼거리곤, 토모에는 아찔하고 현기증을 느꼈다. 이 어둠. 이 공간의 냄새를 토모에는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던 것이 아니다. 지금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나는…………돌아왔다…………? 부들부들 몸이 떨린다. 짤깍짤짝하는 이상한 소리가, 뇌수 속을 헤집고 다닌다. 엔죠우 토모에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빛이 없어, 방은 어둡다. 이곳은, 뜨겁다. 단지 철판이 가열되는 소리와, 그 마그마 같은 빛만이 유일한 조명이었다. 주위의 벽에 커다란 병이 늘어서있다. 바닥에는 가늘고 긴 튜브가 흩어져있다. 아무도 없다. 그저 증기소리와, 물이 끓는 소리만을…………………………………………………………………………… …………………………………………………………………………………………………………………………………………… …………………………………………………………………………………………………………언제나, 그는 느끼고 있었다. 「──────」 엔죠우 토모에는 소리도 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몸이 무겁다. 한계가 점점 가까워져온다. 방의 중심에 있는 철판은, 불에 의해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철판 위에는 정기적으로 물이 뿌려졌고 물은 증기가 되어 방의 천장으로 사라져간다. 천장에는 몇 개나 되는 관이 있다. 관은 증기를 빨아들여서 벽을 타고 주위에 있는 병으로 공기 같은 것을 보내고 있었다. 「─────하하」 토모에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병 쪽으로 다가간다. 병은 무수히 있었고, 딱 사람의 머리정도의 크기였다.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가 들어있었는데, 꼭 실험실의 포르말린 표본처럼 둥실둥실 떠있다. 아무리 봐도, 인간의 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병 아래로는 튜브가 하나 뻗어있었는데, 그것은 바닥을 타고 벽으로 뻗어나가 천장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맨션의 각 방으로 이어져있겠지, 하며 토모에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생각한다. 「뭐야, 이래선 3류 호러잖아」 웃으면서, 토모에는 벽을 따라 걸어간다. ……생각해봤어야 했다.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인간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반복하고 있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는 이상성(異常性)이 외부로 노출된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사소한 변화가 있는, 그렇지만 커다란 변화가 없는 나선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고(思考)하고, 육체를 움직일 뇌만은 살려두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물체를 살아있다고 가정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뇌의 기능만은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매일 밤, 죽어버린 육체와는 다른 곳에서, 오로지 밤에 죽기 위한 일상(日常)을 보내는 한 개인으로서. 그건, 지옥이 아닌가. 죽고, 살고, 죽고, 살고. 단지, 그것뿐인 닫혀진 고리. 도망칠 수도 멈출 수도, 그것을 의문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혼의 감옥. ……매일 밤 반복되는 종말을, 꿈이라고 생각하며 눈뜨는 하루. 엔죠우 토모에가, 매일 밤 악몽으로서 보고 있던 현실. 「……그런가. 아아. 그런 거구나」 중얼거리면서 토모에는 그중 하나의 병에 손가락을 대었다. ───들리지 않을 소리가 들린다.    있지 않을 의식이, 단지 한마디만을 고해온다. “도와줘” 라고 병은 말했다. 토모에는 웃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도와달라니, 무엇을? 원래의 인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 반복에서 해방 되고 싶은 것뿐일까. 하지만. 어느 쪽이라고 해도 무리한 주문이다. 「───내게는, 죽여주는 것밖에, 할 수 없어」 그래서 웃는다. 슬퍼서, 분해서, 우스꽝스러워서, 웃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나도 그래. 누가 도와주었으면 했어. 계속 도움을 바라고 있었어. ……하지만, 어떤 것을 도와줬으면 하는지, 계속 알 수가 없었지. 알아버리면 안되었어. 왜냐하면, 도와줄 방법 따위는 없었으니까. 아무리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제일 처음 시작한 현상만은 지울 수가 없으니까」 용서를 빌면서 엔죠우는 찾기 시작했다. 분명 있을 것이다. 없으면 이상하다. 의미가 맞지 않는다. ……아라야라는 마술사는, 그 스스로가 맨션의 거주인을 죽이고 뇌수를 모은 것이 아니다. 거주인들이 자신들을 죽인 뒤에, 그 최후의 하루를 반복시키기 위해서 뇌수를 회수한 것이다. 그러니까───있을 것이다. 자신이, 엔죠우 토모에가 그날 밤을 반복하는 원인. 반년 전에 일어나 버린 현실이. 그것은, 곧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없기를 바랬었다. 「하하────」 불쌍히 여기듯, 토모에는 그 병을 만졌다. 겨울로 자신을 보는 것처럼. 그는 육안으로, 지금 사고(思考)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튜브는 2개 있다. 하나는 천장으로, 다른 하나는 도중에 끊어져있었다. 마치 폐기처분 된 것처럼 싹둑 잘려서, 이 맨션(일상)에서 떨어져있다────.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어제부터 아프던 토모에(자신)의 왼쪽 팔꿈치. 그곳부터 팔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툭툭, 혈액 같은 것이 팔꿈치에서 흘러 떨어진다. 떨어진 팔의 단면은, 뼈나 근육 같은 것 외에, 톱니바퀴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짤깍, 짤깍, 짤깍, 짤깍. 그날 밤───자신이 아무 것도 모르고, 멍하니 앉아있던 때부터 나고 있던 소리. 얻어맞고, 자신의 이름을 듣고서───겨우 자신이 엔죠우 토모에라며 기동(起動)했던 때부터 나고 있던 톱니바퀴 소리. 언제나 반복되던 밤, 살해당하는 것이 싫어서──예정대로 진행되기 전에 어머니를 죽이는 일로써 도망쳐 나온 인형(人形)─── 그것이────나다. 「크큭────아하하」 방심한 듯이 무릎을 꿇고, 토모에는 정신없이 웃었다. 「히히, 히히히, 햐하하하하하!」 미친 인간의 목소리가, 주차장에 가득 찬다. ───웃어 버린다.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가짜(僞物)라고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가짜(作り物)일 줄이야. 머리는 텅 비었다. 새하얗게 변해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데도, 그래도 웃음만은 멎지 않았다. 「……히히, 히히, 히……아하하─────하」 정말로 우스운 이야기다. 이 정도의 일이 가능하다면, 어째서───나와 내 가족은 단 한번도 비극을 회피할 수 없었던 걸까. 몇 십번 몇 백번이나 반복되어서───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 한 행동이 어머니를 죽이는 일이었다니, 구원 받을 수 없다. 나는 진짜 엔죠우 토모에가 아니라, 가짜 토모에였기 때문에, 일어나 버린 결말을 바꿀 수 없었던 것일까. 가짜이기 때문에, 아라야의 생각대로 밖에 하지 못했던 것일까. 가짜이기 때문에───그 녀석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알고서, 나를 도망치게 놔둔 것일까. 「───아냐」 그렇게 중얼거리고, 토모에는 걷기 시작했다. 짤깍, 짤깍. 톱니바퀴소리가 난다. 소리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처럼 들리고 있다. 도와줘, 라고 반복되는 음이, 그가 미쳐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쳐서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아니───그게 아니면. 토모에는 철판까지 다가가서, 떨어져 나가버린 왼쪽 팔의 팔꿈치를 뜨거운 철판에 밀어붙였다. 「■■■■■■■────────!!!!!!」 새어나오는 고민의 소리 치익, 하는 고기가 타는 소리. 절단면에서 떨어지는 혈액은, 상처를 지지는 것으로 멎었다. 토모에는 웃으면서, 지혈한 왼쪽 팔을 철판에서 뗀다. ……아니면. 그는, 이미, 미쳐있는지도 모른다. 하아하아, 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토모에는 엘리베이터를 찾는다. 엘리베이터는 방의 구석에 있었다. 1층에서 멎어있는 상태인 그것을, 버튼 하나로 부른다. 토모에는 나이프와 칼을 쥐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한번만 뒤를 돌아본다. 증기 소리와 물소리에 감싸인 지하는 아주 조용했다. 죽은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지금도 일상(日商)이라는 고리를 꿈꾸고 있는 뇌수(腦髓)라는 혼의 안치소(安置所). 토모에는 생각한다. 영원히 바뀌지 않는 나날과, 영원히 끝나지 않는 나날. 그 어느 쪽이 나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맨션은 기괴하면서도, 영원하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죽어도───설령 같은 매일이라고는 해도, 아침이 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단지, 그 고리 속에 있는 한, 나선이 어긋나는 일은 없다. 아주 조금───아주 조금만 이 고리가 비틀려 준다면, 언젠가, 엔죠우 토모에가 어머니에게 죽는 일도, 어머니를 죽이는 일도 없는 일상이 생겨나겠지.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이야기인가. 비틀린 고리는 두 번 다시 원래의 장소를 돌지 않는다. 죽은 자는 죽은 자로서 끝나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 일상은 돌아가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고 토모에는 생각해 버렸다. ───아아. 이 나선이, 모순 되어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것은 있을 수 있을 리 없는 대답, 있을 수 있을 리 없는 소원이다. 자신의 육체의 종말이 가까운 것을 느끼면서, 엔죠우 토모에는 10층의 버튼을 눌렀다. ◇ 숨을 헐떡이며, 코쿠토 미키야는, 계속 달렸다. 뭔가, 의미 없는 말을 외치면서 떼를 쓰는 아기가 되면 얼마나 속이 편할까하는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을 바라면서, 일단, 달릴 수밖에 없었다. 붉은 코트의 청년에게서 도망치려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 밖에 아닌 동동(東棟)의 로비에 다다르자, 어리둥절하고 멈춰 섰다. 「……막다른……길……」 멍하니 로비를 올려다본다. 2층으로의 계단이 있지만, 로비는 완전히 막다른 길이다. 자신이 냉정함을 잃고 있다는 것을 미키야는 겨우 깨달았다. 「────빌어먹을, 어째서, 이런」 각오를 하고 있었을 텐데, 하고 그는 흐트러진 자기 자신에게 푸념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인간의 목을 보았고, 그것이 눈앞에서 으깨져버린 것이다. 그의 행동은 비교적 정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양 무릎을, 미키야는 양손으로 꽉 누른다. 우선, 지금은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 두리번두리번 로비를 둘러보는 미키야. 그곳의────통로에서, 딱딱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 큰일이다, 라고 중얼거리며 미키야는 달리기 시작한다. 우선 계단을 사용해서 2층으로 올라가자. 미키야는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렇지만 그의 발이 계단을 밟는 일은 없었다. 촤악, 하고 기세 좋게 무엇을 자르는 소리가 났다고 생각하자, 자신의 양다리는 힘없이 지면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뻗은 손이, 계단의 난간에 닿는다. 그렇지만 미키야의 손은 그대로 미끄러지고, 그는 계단에 쓰러졌다. 계단에 엎드린 채로 미키야는 자신의 다리를 본다. ……무릎 부근에서, 붉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등 뒤에서 양 무릎을 칼 같은 것으로 베였다고 그는 남의 일처럼 파악했다. 자신이 상처 입었다, 라는 실감은 거의 없다. 어째서냐면, 상처는 아프기보다는 뜨겁고 움직일 수 없게 된 다리는 정말로 다른 사람 것 같이 감촉이 없었기 때문에. 「어이어이, 그 정도로 쓰러져 버리면 곤란해. 지금 것은 위협이었단 말이다. 그 정도의 마력에 부딪힌 것뿐인데, 그걸 튕겨내지 못하면 어쩌려는 거냐, 소년」 붉은 코트의 청년은 연설하는 것처럼 양손을 벌리고 걸어온다. 미키야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계단에 엎드린 채로 자신의 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엎어진 컵에서 흘러가는 물처럼 붉은 피가 흘러간다. 점점 의식이 몽롱해져가는 것은 그 적색이 너무 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생명활동에 필요한 만큼의 혈액이 부족해져가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너도 만드는 것이 전문인 건가. 하지만 자신의 몸 하나 지키지 못해서는 마술사라고는 부를 수 없다구. ……흐음, 어쨌든 아오자키는 사부로서는 별로 우수하지 않은가보군. ───맞아, 애초부터 그녀는 결점 투성이야. 알고 있나? 우리들 협회에서는 말야, 최고위의 술사(術士)에게는 색을 사용한 칭호가 수여돼. 그 중에서도 원색인 3색은 그 시대의 최고라는 증거야. 아오자키는 그 이름대로 블루(靑)의 칭호를 얻고 싶었겠지. 하지만 협회에서는 주지 않았어. 자신의 여동생에게 집의 상속권을 빼앗기고, 그 복수를 위해서 협회에 들어온 여자에게 순수한 색은 어울리지 않아. 얄궂게도, 아오자키에게는 그 이름에 반대되는 적색의 칭호를 받은 거야 자신의 이름처럼 속된 색이지. 오렌지색의 마술사에게 어울리는 색! 원색인 적색이 될 수 없는 상처 입은 붉은 색이지. 크크, 정말로 그 여자에게 딱 맞는 칭호가 아닌가!」 붉은 코트의 청년은, 계단에 도달했다. 피를 흘리며 계단에 엎어져있는 코쿠토 미키야를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운다. 「사부와 같은 장소에서 최후를 맞는 것도 인과겠지. 아오자키의 제자라고 하길래 좋지 않은 무언가라도 걸어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정말, 김이 팍 새버렸어」 웃으면서 청년은 손을 뻗는다. 천천히, 쓰러진 소년의 얼굴을 쥐려고 몸을 수그린다. 그 느릿한 동작과는 정 반대로, 갑자기, 코쿠토 미키야의 몸이 벌떡 일어났다. 「읏────!?」 너무 놀란 나머지, 청년의 사고는 한순간 새하얗게 변했다. 그 틈을 찌르듯, 미키야는 벌떡하고 몸을 용수철처럼 일으키며, 몸 아래에 숨겨둔 은색 나이프를 청년에게 찔러 넣는다. 코쿠토 미키야는, 쓰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준비해 두었던 아오자키 토우코의 페이퍼 나이프를, 있는 힘껏 청년을 향해 찌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한 살의(殺意)적인 행위 때문인지, 소년은 두 눈을 감고, 무언가를 참 듯이 이를 악물었다. 나이프를 쥔 미키야의 두 손에는, 확실히 무언가를 찌른 감촉이 있었다. 방심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던 적색 코트의 청년에게, 이 갑작스런 반격은 피할 수 없었을 터. ……심한 부상을 입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하고 몽롱한 의식으로 미키야는 눈을 뜬다. 하지만. 다리에서의 출혈 때문에 새하얗게 흐려져 가는 그의 의식이 포착한 최후의 영상은, 내찌른 나이프를 손바닥으로 막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뻗어진 팔의 손바닥에 나이프가 깊게 꽂혀있다. 청년은 씨익 하고 악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아주 잠시, 동안. 「너무 심한 짓을 하는군, 너는. 사람을 찌르다니, 위험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청년은 다른 한쪽의 팔을 내민다. 팔은 코쿠토 미키야의 얼굴을 쥐고, 그대로 힘껏 계단에 쳐 박는다. 후두부를, 계단 모서리 부분에 내리찍는다. 한번 쳐 박은 뒤에 약간 들어올려서, 다시 내려찍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태엽으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되풀이한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쿵,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목소리만이 로비에 울려 퍼진다. 한동안 그렇게 하다가 코쿠토 미키야라는 소년의 호흡이 아주 약해진 것을 깨닫고, 청년은 겨우 손을 떼고 일어섰다. 「아아, 아팠어. 얼마나 아팠냐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팠어. 너도 말야, 오래 살고 싶다면 남이 싫어하는 짓을 하면 안 되는거야」 안달하듯 손바닥에 꽂혀있던 나이프를 잡아 빼면서, 붉은 코트의 청년은 자신의 말에 아암 그렇지, 하고 본심으로 감탄하며 끄덕였다. 「그러면───일은 끝났다. 아라야의 연구 성과에는 흥미가 있지만, 역시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해야지. 이 나라의 공기는 정체되어 있어서 참을 수가 없어」 움직이지 않게 된 코쿠토 미키야에게 등을 돌리고, 청년은 걷기 시작한다. 중앙의 로비에 이어진, 단 하나의 좁은 통로로. 그렇지만 그 앞에, 그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을 시계에 포착하고 멈춰섰다. 아니, 멈춰서버렸다. 뚜벅, 뚜벅, 하고 무언가의 발소리가 통로에서 들려온다. 청년───코르넬리우스 아르바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날카로운 발소리를 울리면서 로비에서 나타난 인물은, 어제 이곳을 찾아왔던 인물 그것이었으니까. 믿을 수 없어, 라며 청년은 숨을 삼킨다. 엄청나게 큰 가방을 한 손에 들고서, 죽었을 아오자키 토우코가 그곳에 서있었다─────. / 15 「너는 죽었을 텐데, 라는 당연한 대사만은 피해 줘 코르넬리우스. 네 수준이 들통난다구. 나를 너무 실망시키지 마」 어딘가 다정함이 담긴 조용한 목소리로 아오자키 토우코는 그렇게 말했다. 붉은 코트의 청년───아르바는 말도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그 몸을, 두려움에 희미하게 떨면서. 토우코는 로비까지 오자, 영차, 하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만이 어제와 다르다. 어제의 가방은 007가방 정도의 크기였지만 지금 그녀가 가져온 가방은 훨씬 크다.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 같은, 사람하나는 쑤셔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큰 가방이었다. 「───서두르려고 했는데, 시간에 못 맞췄나. 코쿠토는 내 제자가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 그건 정정 받도록 하겠어. 그리고 알려줄 것 따위는 하나도 없지만, 나의 몸에 있던 일에 변화는 없다는 것만은 말해주지」 「너───너는 분명히 죽었어. 확실히 이 손으로 숨통을 끊었어!」 토우코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아르바는 두 손을 쥐면서 외쳤다. 눈앞의 토우코 따위는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 된 거다, 라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내면의 혼란을 필사적으로 덮어 감추려하는 아르바와는 대조적으로, 토우코는 어디까지나 냉정했다. 핏발선 눈으로 노려보는 붉은 코트의 청년을 완전히 무시하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아르바는, 토우코가 토우코다운 행동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등줄기에 퍼지는 오한을 멈출 수가 없다.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는 외쳤다. 「네가 이곳에 있는 것은 있을 수 없어.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거야. 헤메이고 있는 거냐, 아오자키. 뭐가 현세(現世)에 잔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자는 죽은 자 답게 저 세상으로 가라!」 아르바는 피에 젖은 팔을 횡일문자로 휘두른다. 코쿠토 미키야에게 찔린 손바닥에서 흩뿌려진 피는 대기에 닿자 가솔린처럼 불타올랐다. 마술사 자신의 피와 원념에 의한, 눈에 보이지 않는 저주. 그것은 불의 모습이 되어 있을 수 없는 적을 감싼다. 그러나. 한순간의 화염은, 아오자키 토우코를 에워쌌지만, 그녀에게 다다가지도 못하고 꺼졌다. 토우코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긁어 올리며 입에 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죽은 자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건가. 그렇다면 이 맨션은 통째로 모순에 가득 차 있다구. 나는 살아있다면 사체고 뭐고 없다고 생각하는데. 산 자와 죽은 자의 다른 점이란 것은, 그래. 담배가 맛있냐 어떠냐의 차이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토우코는 아아, 하고 크게 끄덕였다. 「그렇지. 그건 그 나름대로 커다란 차이다. 이 녀석이 맛이 없는 것은 살아있어도 어쩔 수 없지만 말야」 쿡쿡하고 토우코는 웃는다. 그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앞에 두고, 아르바는 겨우 이해했다. 눈앞에 서있는 여자는 틀림없이 살아있고, 이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진짜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같은 의문을 반복한다. 지금, 자신이 앞에 두고 있는 현실을 이해할 수 있더라도, 그 대답이 그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너는, 분명 죽었어」 청년의 말에, 토우코는 불유쾌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그 대사는 이제 듣기 질렸다고, 호박색 눈동자가 이야기 하고 있다. 「아아, 분명히 죽었어. 육체는 완벽할 정도로 파괴당했고, 혼이 담겨있는 핵(核)인 머리도 너의 손에 의해서 박살났지.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르겠어」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너는 뭐냐!」 「당연하잖아. 아오자키 토우코의 대타야」 선뜻,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청년은 상대의 너무나 솔직한 대답에 정신이 아득해져서, 입을 쩍 벌렸다. 「대타……? 네놈, 인형이냐!」 아르바는 자신이 말하고 난 뒤에, 아니야, 라고 중얼거리며 마음을 돌렸다. 그도 인형 만들기에 관해서는 따라올 자 가 없다고 불렸던 제작자다. 인간과 똑같이 움직이는 자동인형이라고 해도, 인간과의 차이는 한눈에 간파할 수 있다. 아무리 겉모습을 정교하게 만들어 인간과 닮게 하려해도, 몸속의 구조는 속일 수 없다. 가짜의 몸은 혈액의 흐름에서 근육의 섬유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비하면 조잡할 뿐이다. 인간이 하는 일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지만, 인간과 같은 것에는 절대 이를 수 없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형은 만들 수 있어도, 결코 인간과 같은 것은 만들어 낼 수 없다────그것이 마술이 제일 힘을 자랑하던 영광의 시대, 중세 때 내려진 절대의 법칙인 것이다. 그러한데도, 눈앞의 아오자키 토우코는 틀림없는 인간이었다. 인형이 인형으로서 기능(機能)하기 위한 기구(機構)는 인형이기 때문에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이 토우코에는 그런 조잡한 부분이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이곳에 서있는 아오자키 토우코는 틀림없는 진짜다. 그렇다면──── 「그런가, 그러면 죽인 쪽이 가짜였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아, 코르넬리우스. 네가 가짜를 상대로 최선을 다할 리는 없어」 「읏───확실히, 그건 진짜였어. 의심할 것도 없이 아오자키, 너 자신이었어. 하지만 그래서는 모순 된다. 이전의 너와 지금의 너, 그 어느 쪽도 진짜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러면, 그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려는 거냐!」 아르바는 소리쳤고, 곧───해답에 다다랐다. 그는 붕붕하고 머리를 흔든다. 믿을 수 없다. 아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외의 설명은 할 수 없고───그것이라면 이 상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르바는 다시 한번 묻는다.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아오자키. 너는 설마────」 「명답. 이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똑같이 가짜야. 아르바, 난 말이지. 나 자신조차, 언제 진짜와 바뀌었는지 모르겠어」 씨익, 하고───그 이상 없을 정도로 사악한 미소를 띄우며 오렌지색의 마술사는 말했다. 「뭐────그거야말로, 그거야말로 있을 수 없어! 그렇다면 너는 뭐냐? 오리지널이 아닌 거냐? 그렇지만 너는 자신을 아오자키 토우코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확고한 자아를 가진 지능(知能)이, 자신을 가짜라고 인식하고도 정상적으로 가동될 리가 없어. 가짜는, 자신을 가짜라고 인식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는 것 때문에, 자기(自己)의 존재를 견디지 못하고, 자아(自我)에 의해서 찌부러져 자멸한다. 그것이 도리다. 그런데도, 너는, 자신을 가짜라고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가짜라고 알면 붕괴한다, 인가. 그런 지능은 2류야. 그리고 말이지, 너의 기우는 나에게는 해당 안돼. 나의 몸은 가짜지만 아오자키 토우코 자신은 유일한 존재야. 흠, 별로 시간이 없지만, 선물이다. 잠시 강의를 해주지」 그녀는 아까 전까지의 온화함에서 일변한 차가운 시선으로 아르바를 보았다. 「알았어? 지금의 나는 공방에 보관되어있던 물건이야. 너에 의해 아오자키 토우코가 완전히 죽은 시점에서 눈을 떴어. 그러니까, 나는 생후 1시간 전이란 소리가 되지. 아오자키 토우코는 인형사다. 나는 몇 년 전에, 어떤 실험 과정에서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인형을 만들어냈어. 자신 이상의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자신 이하도 아닌 완전한 동일성능을 가진 그릇(器)이다. 그것을 보고서 말야, 아오자키 토우코는 생각했어. 이것이 있으면 지금의 자신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하고」 인형사의 고백에, 아르바는 숨을 삼킨다. 뭐야 그건, 하고 그는 귀를 의심한다. 그래서는 완전히 반대다. 자신과 동격(同格)의 인형을 만들어낸 것을 기뻐한다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이 창조한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인형에게 자신의 존재를 넘겨줘도 좋다고 생각하다니. 「바보 같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정(過程)이야. 만약, 너에게 인간과 똑같은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들은 더욱 높은 단계를 지향해야해. 마술사라면, 현재 상황 따위에 만족하지 않아!」 「그러니까 말야. 나와 똑같은 인형이라면 내가 없어진 뒤에도, 나와 마찬가지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잖아. 봐───내가 없어도 결과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청년은 그저 숨을 삼킬 뿐이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끝에, 아니야, 라고 고개를 흔든다. 「그건 핑계야! 자신을───절대의 자아로 생각하는 나는, 그런 구실로는 버릴 수 없어!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를 남기는 거다. 나와 같은 물체가 있고 설령 결과가 동일하다해도, 그런 내가 아닌 것에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라는 존재는 양보할 수 없어! 역사에 이름이 남는 나를 내가 관측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아르바는 자신의 가슴을 끌어안으면서, 눈앞의 인형사에게 반론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부정된다고 그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기(自己)에게 구애되는 자신과, 자기를 잘라낸 존재를 선택한 토우코……그 차이야말로 범인(凡人)과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는 절망적일 정도의 벽이다, 라고 밖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겠지, 아르바. 그것을 비난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나는 네가 부러워. 내가,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나 자신도 모르는 거야. 나는, 활동하고 있던 내가 사망한 시점에 눈을 떴어. 아까의 토우코가 얻은 지식은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물려받으면 이전과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 이 뒤에도 나는 자신과 완벽히 똑같은 인형을 만들고 잠들겠지. 같은 인형을 만든다, 라는 시점에서 난 틀림없는 진짜야. 하지만 말야. 아까 살해당한 나는, 사실 오리지널이었는지도 몰라. 아니, 오리지널은 나조차 모르는 곳에서 지금도 자고 있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모든 것이 같은 그릇(器)이니까, 그것을 보고 구별할 방법은 이미 없어. 일지도 모른다, 뿐이야. 그렇지만 그것이 진실이야. 상자를 열 때까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 없는 고양이와 마찬가지야. 중요한 것은 지금 일어나 있는 현실이잖아? 그렇기 때문에───나는 틀림없는 아오자키 토우코다. 알기 쉽게 말해주자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상, 아까 네가 부쉈던 것은 가짜라는 얘기야」 자아 그러면,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바닥에 두었던 가방에 손을 뻗는다. 아르바는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상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가. 아라야는 너를 살려둔 것이 아니야. 살려두고 있는 한, 너는 다음의 너에게 스위치가 들어가지 않으니까───」 토우코는 대답하지 않는다. 단지 냉염(冷炎)한 시선을 붉은 코트의 청년에게 향하고 있다. 아르바는 이미 계속 멈추지 않는 오한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두 손으로 스스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기는, 더욱 강해지기만 한다. 토우코의 눈은, 기계 같았다. 아무런 감정도 없으면서도, 분명 살의를 담아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그런 눈빛을, 아르바는 알지 못한다. 학원시절에도 본적이 없다. 갑자기───떠올랐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인간은, 정말로 진짜였던 것일까. 이곳에 이렇게 말없이 서있는 모습이야말로, 숨기지 않은 본래의 그녀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감정도 없이 자기(自己)도 없다. 무엇보다도 마술사 같은, 존재의 한 가지 형태.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지금까지의 그가 아오자키 토우코였던 존재를 향해서 품고 있었던 복수의 신념이 부서져갔다. 지금까지, 자신은 대체 무얼 향해 그렇게도 망념(妄念)을 품고 있었던걸까. 지금까지의 자신은, 정말로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인물을 미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적어도, 그가 알고 있던 아오자키 토우코와는 다르다. 이렇게, 마술사라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버릴 수 없는 자기(自己)라는 유일성을 간단하게 내팽개치려는, 이런 괴물은 아니었을 터. 그래, 내가 만나고있던 토우코는 좀더 인간다웠고, 나는 언제나 그런 그녀를 의식하고 있었는데. 「너는────진짜냐?」 아르바는 자신도 모르게───헤어진 연인에게 매달리는 것 같은 눈동자로, 떨면서 말했다. 그녀는 크큭, 하고 웃는다. 「너 말야. 이 나에 대해서, 그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차갑고, 너무나도 영롱한 아름다운 얼굴로. ◇ 토우코는 손가락에 끼운 담배를, 다시 한번 입으로 옮긴다. 쓸데없는 잡담은 여기까지다, 라고 그 눈동자가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갈까. 우리 꼬마의 목숨이 꽤 위험해. 네가 멋대로 날뛰고 난 뒤로 한 시간 정도 경과해버렸으니까」 「뭐───야?」 그로부터 한 시간───? 그러고 보면, 토우코는 머리가 부서지고 나서 눈을 떴다, 고 말했다. 그녀가 자고 있던 것이 자신의 공방이라고 하면, 확실히 이 맨션을 찾아올 때까지 한 시간은 걸린다. 이렇게 빠르게,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도착할 리가 없다. 문득, 아르바는 계단에 쓰러진 소년을 쳐다보았다. ……다리의 상처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자신이 몇 번씩이나 모서리에 쳐 박았던 후두부에서의 출혈은 없다. 이 소년은, 순수하게 다리로부터의 출혈에 의해서 의식을 잃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바보 같은………어떤 마법을 썼나, 아오자키」 힘없이 청년은 물었다. 그는 이미 활력을 잃고 있었다. 마술사로서의 차이를 과시당한 아르바가, 토우코를 공격할 의지 같은 것을 가질 수 있을 턱이 없다. 「마술사가 함부로 마법이란 말을 입에 담으면 안 되지. 내가 이 로비에 온 것은 세 번째 라구. 이곳만은 내가 처음부터 건설한 결계야. 만에 하나의 대비로, 약간의 트릭을 준비해두었지. 예를 들면 네가 코쿠토의 반격에 놀라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을 때, 너의 의식에 살짝 개입해본다던가」 「그때, 인가────」 분하다는 듯 아르바는 신음한다. 분명히 소년의 나이프를 손바닥으로 막았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이상한 공백이 있었다. 그때부터 자신은 꿈이라도 꾸고 있던 것이겠지. 그저 멍하니, 술사(術士)인 토우코가 도착할 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것이 틀림없다. 「하하, 하하하────과연. 처음부터 부처님 손바닥 위였단 말인가. 꽤나 재미있었겠군, 아오자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역시 나는 처음부터 광대였던 것 같아」 「그렇지도 않아. 나도 살해당하는 꼴이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고, 죽은 것에 대한 복수 따위는 생각도 없어. 내가 여기에 다시 한번 온 이유는 다른 거야. 코쿠토에 대한 것은 여기 온 김에 하는 일에 지나지 않아」 토우코는 발치에 둔 가방을, 털퍼덕하고 지면에 쓰러뜨렸다. 너무나 큰 가방은, 쓰러져도 전혀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 거의 완벽한 입방체의 가방을, 아르바는 무언가와 닮았다, 고 생각했다. 「……살해당한 복수가 아니라고 말했지. 그렇다면 무엇을 하러 온 거냐 아오자키. 마술사로서 금단의 실험을 행하려는 아라야를 저지하려고 왔다는 건가」 「그거야말로 설마지. 저건 어떻게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해. 나는 말야, 아르바. 정말로 너에게만 볼일이 있어」 그렇겠지, 하고 붉은 코트의 청년은 끄덕였다. 그렇지만 알 수 없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살해당한 일에 대한 원한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실험을 방해할 의지도 없다, 라고. 그렇다면───대체 어떤 이유로, 이 여자는 자신에게 이렇게도 차가운 살의를 드러내는 걸까? 「……어째서야.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나?」 「별로 특별히는. 살아가는 이상, 미워하고 미움 받는 것은 각오하던 바야. 사실은 말이지, 학원시대부터의 너의 미움도 나쁘지는 않았어. 그것은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내가 우수하다는 증거니까」 「그러면, 어째서」 「간단해. 너는, 나를 그 이름으로 불렀어」 덜컹, 하고 소리가 났다. 토우코의 발치의 가방이 열린 소리다. 커다란 가방의 안은 그곳이야말로 어둠이다. 전등도 빛도 닿지 않는 고체로서의 어둠이, 가방 속에 채워져 있다. 그 안에, 두 개, 있다. 「학원시대부터의 철칙이야. 나를 상처 입은 적색이라고 부른 자는, 예외 없이 죽여 버리고 있어」 가방 속에는, 빛난다 ─────두 개의, 눈이. 과연, 하고 아르바는 끄덕였다. 아까 이 가방을 보고, 자신은 무언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심플하다. 어째서,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걸까. 가방이라기에는 너무 큰 입방체. 그 모습은 신화에 나오는 마물을 봉해 넣은 상자 그것이 아닌가. 이렇게, 상자에서 모습을 나타낸 정체 모를 검은 생물은 가시나무 같은 촉수를 뻗어,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를 붙잡는다. 그대로 상자로 끌려 들어가, 다리부터 몇 천 개나 되는 작은 입에 씹혀간다. 으적으적하고 산채로 먹혀간다. 소멸 직전에, 머리만 남은 그는 초연하게 내려다보는 인형사와 눈길이 마주쳤다. 이, 무서운 죽음을 맞이하는 나를 보며, 그녀의 눈동자는 웃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 그는 대적할 수 있을 리 없었던 것이라며 후회했다. 아라야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가 기억난다. 녀석은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가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뇌수의 마지막 조각이 씹힌다. ……자신은 실패했다. 이런 괴물들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붉은 코트의 마술사의 최후의 사고(思考)였다. / 16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다. 아무도 없는 작은 상자 안에서, 엔죠우 토모에는 벽에 기대어서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토모에의 호흡은 거칠다. 혼자서 떨어져 나가버린 그의 왼팔. 피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 상처를 지진 것에 의해, 신경은 미쳐버릴 정도의 아픔을 고하고. 머릿속은 오랫동안 멀리하고 있던 진실을 눈앞에 두고, 지리멸렬(支離滅裂) 되어버린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애매모호해져있다. 토모에는 몸도 마음도 한계를 돌파하려하고 있는 것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올라가는 승강기 속, 호흡만은 진정시키려고 심호흡을 반복한다. 사용하는데 익숙해졌을 엘리베이터가 오늘만은 느리게 느껴졌다. 감질날 정도로 천천히, 엘리베이터는 10층을 목표로 올라간다. 그러던 도중───토모에는 손에 든 칼을 손에서 놓았다. 떨그렁, 하고 엘리베이터 바닥에 일본도가 드러눕는다. 칼이란 것은 생각보다 무거워서, 몇 분 들고 있는 것만으로 팔이 저려온다. 아직 양팔이 있었던 때라면 휘두를 수 있었겠지만, 한쪽 팔만 남은 지금의 토모에로서는 칼집에서 칼을 빼지도 못한다. 한쪽 팔인 나에게는 나이프만 가지고 있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남은 오른손으로 단단히 나이프를 거머쥐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10층에 도착한 것이다. 양쪽으로 열려가는 문을 빠져나와, 토모에는 로비로 나왔다. 눈앞에는 동동(東棟)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고 사각(死角)인 엘리베이터의 뒤편에는 서동(西棟)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다. 토모에는 불빛이 없는, 진짜 사체가 방치되어있는 서동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의 뒤편으로 돌아, 맨션의 외주(外周)를 빙그르르 둘러싸는 복도로 나간다. 시각은 곧 밤 11시가 되려하고 있었다. 복도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은 고요하고 허전하게 느껴진다. 맨션 주위에 있는 것은 같은 형상을 한 맨션들뿐이다. 맨션과 맨션 사이에는 아스팔트 도로와, 녹색 정원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다. 그 모습은, 야경이라기보다 녹색잔디에 둘러싸인 묘비들을 떠올리게 했다. 후우, 하고 깊게 숨을 토한다. 그의 의식은 눈 아래의 야경에 향해있었지만, 지금 막 그곳에 나타난 인물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크게 호흡을 해서, 흐트러져있던 의식을 하나로 정리한다. 토모에는 나이프를 쥐고, 완만하게 타원을 그리는 복도 쪽으로 돌아보았다. 불빛 없는 어둠, 달빛조차 미약한 복도. 토모에로부터 방 두 개정도 떨어진 그 장소에, 검은 외투의 모습이 있었다. 그림자만으로도 알 수 있는, 떡 벌어진 골격과 신장.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얼굴에 새겨진 고뇌의 빛. 마술사, 아라야 소우렌이 그곳에 있다────. 마술사와 대치한 순간, 엔죠우 토모에는 얼어붙었다. 그 정도로 흐트러져있던 호흡도, 그 정도로 아팠던 육체도, 마치 다 끝나버린 것처럼 조용해졌다. 눈앞에 서있는 상대가 견딜 수 없이 무서워서, 의식조차도 얼어 붙어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여러 가지로 흐트러져있던 마음이, 말끔하게 정리되었으니까. 「아라야」 아라야라는 절대자를 앞에 두고, 토모에는 완전히 자유를 잃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텐데도 그는 말했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대등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의 그는 이전처럼 아라야 소우렌을 두려워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 사실에, 마술사는 표정을 더욱 엄숙하고 어둡게 만든다. 「어째서 돌아왔나」 마술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토모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아라야를 계속 바라볼 뿐이다. 대답할 여유 따위는 없다. 기력을 쥐어짜내지 않으면, 이 마술사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일은 할 수 없으니까. 「이곳에 네가 있을 자리는 없다. 엔죠우 토모에를 대신할 것은 준비되어있어. 너는 이 나선에서 밀려나간 존재다. 다시 돌아올 의미는 없다」 빛이란 것이 없는 눈으로, 마술사는 말하기 시작한다. ……확실히 자신은 이곳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토모에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돌아왔다. 무엇을 위해서? 그래, 한번은 료우기가 데려왔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 「료우기 시키를 구하기 위해서인가. 어리석은. 너의 그 마음은, 엔죠우 토모에의 것이 아니다.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인형이란 소리군. 이 나선에서 벗어나면 정상적으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에……?」 「분명히 너는 이 나선에서 빠져나갔다. 그렇지만 그 뒤, 자해(自害)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족에 의해서 사망하는 자는, 가족이 원인이 되어 죽게 되니까. 너는 자신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자폭하고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뒀다면 이미 죽었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외계(外界)에 너라고 하는 이상(異常)이 새어나간다. 그렇다면───나는, 너에게 다른 역할을 부여해서, 살려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오늘밤에도 사망했을 본래의 엔죠우 토모에와는 다른 엔죠우 토모에로서. 그 역할을───모르는 건가?」 거짓말이야, 라고 토모에는 외쳤다. 그렇지만 그것은 소리가 되지 않았고, 그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마술사는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눈알만이 조소하듯 일그러져 있다. 「그렇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내기 같은 일이었다. 곧 꾀여 들일 생각이었지만, 일은 조용한 상태로 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나를 모르는 너,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엔죠우 토모에가 스스로 료우기 시키를 데리고 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은 없어.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너는 훌륭하게 해냈다. 그 보수로서 도망치게 놔둔 것인데, 다시 한번 돌아올 줄이라고는. 잘난 척도 이만저만이 아니야. 너는 자신의 의지로 료우기 시키에게 빠진 것이 아니다. 내가 도망쳐나간 너에게 덧붙인 사실은 단 하나. 그것은 료우기 시키에게 관심을 가진다, 라는 무의식하의 명령이다」 엔죠우 토모에의 발치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아라야가 말하는 것에, 반론할 방법이 없다. 왜냐면 그 말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타인을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자신이, 어째서 료우기에게 만은 그렇게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언가가 자신에게 명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녀를 관찰하라, 저 소녀와 관계를 가져라, 라고. 「이해한건가. 너는 무엇하나도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한 것이 없다. 단지 나의 의도대로 료우기 시키를 데려온 것뿐이다. 게다가, 너의 육체에 있는 것은 나의 나선(세계)에서 행하고 있던 하루의 기억뿐이다. 이 하루보다 이전의 기억도, 이후의 기억도 존재하지 않아. 너의 의지는 환상에 의해 생겨났고 환상에 의해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아. 이 세계에서 최후를 맞았던 엔죠우 토모에는, 이미 이곳에서 밖에 살아갈 수 없다. 때문에,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료우기를 불러내는 역할로서 풀어두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라면───무엇을 해도 방해가지 되지는 않겠지」 마술사의 발언은, 그야말로 주문이었다. 토모에는 빠르게 기억해낸다. 자신이 만들어진 것, 이 맨션에서 일어난 하루 분의 기억만을 가지고 그것에 의지해서 과거와 미래를 환시(幻視)하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을. 료우기 시키를 향한 마음도, 죽어버린 부모에게 향한 마음도, 전부───지금의 자신이 날조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엔죠우 토모에라고 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를 살아온 인간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흉내를 내고 있었던 하루뿐인 자신이 생각한, 긴 세월이 담기지 않은 너무나도 얇은 마음인 것이다. ……역시, 그것은 진짜였던 것일까. 나는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자였다. 이 나선에서도 벗어난 나에게, 세상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다. 「가짜인 너는, 결국 모조품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거다. 인도해줄 가치도 없다. 어디로든지 가서 사라져 버리도록 해」 해야 할 말을 하고, 마술사는 이 엔죠우 토모에로부터 일절의 관심을 끊었다. 아라야는 토모에에게서 눈을 돌린다. 하지만───모든 것의 의의(意義)를 파괴당했을 그는, 미소까지 띄우면서 마술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너(아라야), 별거 아니잖아」 그것은 허세였겠지만───마술사의 강철의 마음에 금이 가게 할 정도로, 더할 나위 없는 허세였다. 「……너 같은 녀석을 앞에 두고, 겨우 알았어. 나는 지금까지 너같이 약한 부분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잘못되어 있었던 거야. 하지만 말야, 모든 일에 가짜는 없어. 진짜도 가짜도, 결국은 나중에 판단하는 것에 지나지 않잖아. 하루뿐이라고 해도───나는, 엔죠우 토모에인 이상 확실한 과거를 가진 엔죠우 토모에다. 나에게는 과거가 없지만, 이렇게도 강한 마음이 토모에에게는 있어. 그렇다면, 그걸로 된 거야」 뿌득, 하고 어금니를 깨무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그가 강하게 주장하는 힘, 맞서려는 강한 의지. 「……나는, 료우기를 정말로 좋아했었어. 이유 같은 건 몰라. 그 녀석과 지내면서, 아무 것도 남기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 즐거웠어. 그러니까───동기를 주었던 것이 너였다고 하면, 감사정도는 해주지」 지금, 진정한 의미로 마술사와 대치하면서, 토모에는 쳇, 하고 혀를 찼다. ……좋아했었어, 인가. 지금도 분명 빠져 있다. 계속, 계속 이 뒤로도 그 녀석을 생각하면 거칠어진 마음이 진정되겠지.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토모에는 혀를 찼던 것이다. 왜냐하면───그래도, 이렇게도 시키를 생각하고 있는데도, 지금은 그 녀석이 제일이 아니었으니까. 이곳에 온 이유는 시키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코쿠토라는 남자가 데려갔던, 옛날의 집을 봤을 때에 기억이 났던 것이다. 자신이 알 리 없었던 과거, 엔죠우 토모에라는 혼이 잊을 수 없는 나날들을. 이곳에 온 이유는, 보상을 위해서. 엔죠우 토모에가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나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안해, 료우기. 나는, 너를 위해서 죽어줄 수 없어. 난 말야───나를 위해서, 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용서를 빌고. 토모에는, 료우기라는 소녀의 기억을 사고로부터 소거했다. 「나는 가짜냐, 아라야」 강한 의지가 담긴 말에, 마술사는 눈썹을 치켜뜬다. 「───이미, 말할 것까지도 없다」 명백한 모멸을 담아 마술사가 대답한다. 토모에는 그럴지도 모른다며, 솔직히 끄덕인다. 그곳에 망설임은 없다. 그는, 분명히 마술사와 대치하는 존재로서 그곳에 있었다. 「……인형 같은 존재가 깨달은 건가. 그런 것은 마경(魔境)에 지나지 않는다. 명경(明鏡)을 얻으려 해도 지수(止水)에 다다르려 해도 결국 그 몸이 가짜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아. ───그래도, 이 마음은 진짜라구」 조용한 말은, 바람을 타고 밤에 퍼져나갔다. 마술사는 한쪽 손을 올린다. 눈앞에 한쪽 손을 내뻗은 그 자세는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남자가 상대를 섬멸해야만할 존재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토모에는 그것을 보고 따닥따닥하고 울리는 이빨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분명 죽는다, 라고 토모에는 생각했다. 그래도, 저 상대에게 반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엔죠우 토모에는 아라야 소우렌에게 어떻게든 보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부모님을 위해서. 지금도, 이 세계에서 계속 죽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이것은 죽을 각오를 한 자살돌격 같은 것이 아니다. 죽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다. ───나는 나(토모에)로서, 달려 나간다고 마음을 정했으니까. ……그래, 그것이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돌아가는 시계처럼. 돌고 도는 계절처럼. 언제까지나 같은 장소에 머물러있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여기에 확실히 있으니까. 그것은 이 몸이 꾸고 있던 꿈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꾸고 있던 꿈이었던 것일까. ……이 몸은 가짜지만. 엔죠우 토모에가 가지고 있던 의지. 엔죠우 토모에에게 깃들어있던 의지는 진짜다. 그것을 위해────── 「나는───아라야, 너를 죽이겠어」 나이프를 거머쥐고,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엔죠우 토모에는 달려나갔다. ◇ 엔죠우 토모에가 노리는 것은 단 하나, 아라야 소우렌의 중심이었다. 이전 시키가 망설임 없이 찔러 넣었던, 마술사의 가슴의 중심. 그곳에 나이프를 찔러 넣을 수 있다면, 혹시나 이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그렇게 믿고서 엔죠우 토모에는 달린다. 마술사까지의 거리는 그때의 시키와 마찬가지로 6미터정도. 이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 나간다. 바닥을 차는 다리에 전 신경을 쏟아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교정(校庭)에서 반복했던 스프린트보다 더욱 빠르게 마술사에게 육박한다. 마술사의 주위에 원형의 선이 떠오른다. 엔죠우 토모에를 얕보고 있는 것일까, 선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시키 때처럼 3중의 선이 아니다. 선은 마술사의 눈앞에서, 1미터정도의 거리에 펼쳐져 있었다. 엔죠우 토모에는, 그것을 피할 방법을 모른다. 정면으로 맞섰다. 몸이 움찔, 하고 멎는다. 지면을 찬 발끝에 힘 자체가 들어가지 않는다. 정말로────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마술사는 고뇌에 찬 얼굴을 한 채로, 한발 짝 앞으로 나왔다. 이 결과는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토모에에게 완만하게 다가간다. 앞으로 내뻗어진 팔이, 천천히, 엔죠우 토모에의 머리를 잡으려 뻗어온다. 역시 안 되나, 하고 엔죠우 토모에는 눈을 감는다. 하지만───눈앞이 어둠이 되었을 때, 기억이 역류했다. 원래라면 엔죠우 토모에가 체험하지 못했을 이 한 달만의 기억, 내가 토모에로서 이곳에 있는 확실한 것이, 작열했다. 「여기에──────」 엔죠우 토모에의 몸이 힘을 모은다. 지면에 붙어있던 다리에 온몸의 기백을 담는다. 그는 다리가 찢겨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끝날 수 없다. 자신은, 무가치하지 않으니까. 「있으니까────!」 튕겼다. 한쪽다리가,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 덕분에────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엔죠우 토모에는 앞으로 나아갔다. 뻗은 마술사의 팔을 잽싸게 빠져나가, 아라야의 무방비한 가슴이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가 된다. 토모에는 외쳤다. 「───그래, 우리 가족은 변변찮은 사람들이 아니었어. 그래도 이런 식으로 죽을 정도로, 나쁜 놈들은 아니야. 이런 식으로 죽어 버릴 정도로, 무거운 죄는 없었단 말이다……!」 소리는 힘이 되어, 그의 팔을 움직이게 했다. 나이프가 휘둘린다. 은색의 궤적을 남기며, 칼날은 깊이 마술사의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인 이야기였다. 「어리석은」 목소리와 함께, 마술사의 억센 팔이 뻗는다. 엔죠우의 머리를, 꽈악 움켜쥐었다. 「───료우기의 마안(魔眼)은 단지 죽음을 보는 것뿐만이 아니다.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네가 나의 죽음을 찌르려하지만, 보지 못하는 자에게 죽음은 찔리지 않아」 우득, 하고 마술사의 팔에 힘이 실린다. 엔죠우 토모에의 팔에서, 나이프가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너를 고른 이유를 아직 이야기해주지 않았군」 엔죠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마술사의 손에 쥐여질 때부터, 살아가는 의지란 것을 근원부터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알았나. 인간에게는 존재의 근원이 된 현상이 있다. 전세(前世)부터의 업(業)이 아닌, 엔죠우 토모에라는 존재가 된 원인. 그 혼돈의 충동을 우리들은 "기원(起源)"이라고 부른다. 네가 모친을 죽이고 스스로 절망했을 때 내가 너를 구한 것은, 너의 기원이 실로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토모에는 말이 없다. 마술사는 그를 높이 들어올리고, 너무나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알려주지. 너는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어. 왜냐하면──너의 기원은 "무가치(無價値)"니까」 마술사의 팔이 휘둘린다. 엔죠우 토모에라는 형상을 한 육체는, 그 한 동작에 의해 완전히 소멸했다. 머리조차 남지 않고 산산조각 나서,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마술사의 말대로 무가치하게 티끌이 되어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 엔죠우 토모에였던 존재를 파괴한 후, 마술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복도에 머물러있었다. 때가 가깝다. 어제까지 사용하고 있던 몸에서 예비인 지금의 몸으로 이동한지 반나절. 겨우 이 육체의 구석구석까지 의식이 통하게 되었다. 아라야 소우렌은, 어딘가의 인형사처럼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준비해두고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아직 죽음이란 것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육체는 오랜 세월 끝에 몇 번이나 썩어문드러졌지만, 그 때에 의식만을 전승(傳乘)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아라야 소우렌은 어디까지나 한사람. 이 육체가 스러지면, 다음이야말로 도망칠 곳은 없다. 일은,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이젠 기다릴 것 까지도 없다.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혼이 가진 의지가, 이 몇 대(代)째인가의 육체를 완전히 지배 하에 두었다. 육체를 움직이는 마술회로의 배선은 손톱 끝까지 달했고, 마술사는 겨우 이 임시의 육체를 진짜 육체로 승화(昇華)한 것이다. 마술사는 본래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행동을 개시하려 했지만, 그 전에 그는 맨션 내에 일어난 이변을 알아차렸다. 「────패배했나, 아르바」 감정 없이 중얼거리고, 마술사는 그 두 눈을 감았다. 빛없는 복도 가운데, 깊은 해저에 가라앉듯이, 아라야는 자신을 혼수(昏睡)시켰다. ◇ 잠든 마술사의 의식은, 몸을 10층에 남긴 채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형체도 없고 모습도 없이, 1층의 로비의 토우코를 내려다본다. ……1층, 동동(東棟)의 로비에 있는 것은 아오자키 토우코와 코쿠토 미키야란 소년이었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쓰러져있는 소년을 간호하고 있고, 그곳에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의 모습은 없다. 역시 이렇게 된 것인가, 하고 마술사는 끄덕였다. 일의 전말을 확인하고, 마술사는 의식을 10층에 있는 육체로 되돌린다. 하지만, 그것을 그녀는 붙잡는다. 「어디 가냐, 아라야. 남을 몰래 엿보는 건 나쁜 취미라구」 아오자키 토우코는 있지도 않은 마술사의 모습을 보듯이 뒤돌아본다. 그녀는 계단아래. 마술사의 형체 없는 의식은 계단의 위. 두 사람은 기묘하게도 이전과 같은 위치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흠. 어떤 수단으로 아르바를 처형했는지는 알고 있지만, 또 하나의 아오자키 토우코가 있다고는. 내가 꿰뚫은 심장은 틀림없는 진짜였다. 그것은 인공물이 아니야. 그렇다면, 너는 가짜인가” 목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아니, 그것도 소리가 되지는 않는다. 오로지 아오자키 토우코에게만 전해지고 있다. 마술사의 말에, 그녀는 한번 숨을 내쉬었다. 「아르바에게 말하고 너에게 말하고.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마. 그런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 처음 태어난 것, 그 뒤에 태어난 것. 요는 그것뿐이야. 하나냐 둘이냐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을, 언제까지고 문제 삼지 말란 말야」 “그 말투, 확실히 너는 진짜인가. 그렇다면───다시 한번 나와 싸우겠나” 「안 해. 이 맨션 안에서는 나에게 승산이 없으니까」 딱 잘라 말하고, 그녀는 마술사의 의식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아라야 소우렌과의 문답보다 소년의 상처의 치료 쪽이 중요하다는 듯, 코트 속에서 꺼낸 붕대를 소년의 양 무릎에 능숙하게 매어간다. “괜찮은가. 거기에 감춘 마물이라면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거절이야. 이 녀석은 끝을 알 수가 없어서, 잘못 풀어놓으면 맨션 그 자체가 사라져버려. 그런 멋진 일을 벌리면, 협회가 가만있지 않아. 이번에는 내가 협회에 쫓기는 입장이 되겠지. 고생고생해서 행방을 감췄는데, 스스로 놈들에게 발견될 짓은 안 할거라구」 마술사의 목소리에 대답하지만, 그녀는 역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나는 내가 죽은 시점에서 이 건에서는 패배했어. 이제 와서 손을 댈 생각은 없어. 시키의 뇌를 끄집어내건, 그 빈껍데기를 뒤집어쓰건, 마음대로 해. ……만약 막아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나는 아니야」 “이렇게 된 마당에, 억지력에 기대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만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그곳에는 부정보다, 오히려 슬픔의 빛이 느껴졌다. 「그렇고 말고, 억지력은 이제 움직이지 않아. 그러니까, 너는 이번에는 정말로 성공할지도 몰라. 인간이란 존재를 미워하는 네가 근원에 닿으면, 어떤 결과가 될지는 모르겠어. 대부분의 마술사라면 근원에 닿은 뒤에는 저쪽 세계로 가서, 우리들이 있는 세계의 일 따위는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너는 달라. 확실히 이쪽에 흔적을 남기고, 결과로서 이 나라 정도는 없애버릴까. 인간을 싫어하는 네가 정말로 인간을 구원하려 한다는 일이라면, 그것은 고통의 끝에 도달하는 죽음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말야 아라야. 너는 인간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너는 네 안에 있는 인간의 이상상(理想像)을 사랑하고 있는 것뿐이야. 그래서 너무나도 추한 고계(苦界)의 인간을 용납할 수 없어. 인간을 구원해? 웃기지마. 너는 사람을 구원하고 싶은 것이 아니야. 너는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자가 환상(幻想)하고 있는 인간이란 형체를 구원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그녀의 말에, 마술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접점은, 이번이야말로, 정말로 일점의 흐려짐도 없이 끊어졌다. “……말할 것까지도 없다. 구제(救濟)란 것은 결국, 하나의 고정(固定)에 지나지 않는다. 잘 있어라 아오자키. 근원에 접촉하면 내가 나로서 남을 확증은 없다. 최후에──나를 막아선 자가 너였던 것은, 의미가 있다고 믿도록 하지” 마술사의 의식이 떠나려한다. 그러자 눈을 돌리고 있는 채로 떠나보내려던 그녀는, 갑자기 어떤 의문에 생각이 미쳤다. 「기다려 아라야. 한 가지 묻지. 이 맨션의 본래 목적은. 태극을 가둬넣기 위한, 태극의 체현(體現)이었지?」 “확실히. 나는 료우기 시키를 외계로부터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서, 이 이계(異界)를 만들어냈다. 다른 여러 가지 기능은 부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태연한 마술사의 대답에, 그녀는───하하하, 하고 힘없이 웃어버렸다. “───뭐냐? ” 그녀의 웃음에 마술사는 목소리를 거칠게 한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가, 이 건물은 하나의 마법이었지! 시키를 붙잡아서, 그 뒤에 협회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세상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닫혀진 세계, 즉 감옥이야. 시키를 너 같은 목적으로 죽이려하는 자가 나타나면, 세계는 분명히 억지력을 움직여. 이 이계(異界)는 시키를 유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거기까지는 좋아. 거기까지는 완벽해. 하지만 불쌍하구나. 아라야, 너는 최후에 터무니없는 실수를 범했어」 마술사의 목소리는 없다. 아라야 소우렌은 여기까지 듣고서도 아직도 그녀의 본의(本意)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술사는 당황한다. ……그녀가 말할 정도로 커다란 실수 따위를, 어째서, 자신은 알아차릴 수 없었나하는 것 때문에. “────실수 따위, 없다” 단언하는 그 목소리에, 망설임이 없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그녀는 웃음을 참으면서 대답한다. 「아아, 너에게는 미스 따위 없어. 마술사인 너에게 있어서, 이것은 최고의 해답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전제(前提) 자체가 잘못되어있다면 어떨까? 시키를 격리했다구? 이 맨션의 어딘가의 방이 아니라, 이 맨션 그 자체에 격리했겠지? 공간차단이라는, 이미 마법의 영역에 달한 결계. 결계의 엑스퍼트인 네가 아니고서는, 너밖에 할 수 없는 신업(神業)이다. 뫼비우스 링(닫혀진 고리)라는 밀폐공간에 갇힌 자는, 안에서부터는 결코 밖으로 나갈 수 없지. 어떤 물리적 충격을 가졌다 해도 파괴할 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는 탈출 불가능한 감옥이야. 그곳에 시키를 쳐넣은 너는, 그걸로 안심해버렸어. 확실히, 그건 완벽해. 그렇지만 그 놈에게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아. 마술이 문명사회에 있어서 만능인 것처럼, 그건 우리들처럼 개념(槪念)으로 살아가는 자들과 상극하지. 우리들은 상식에 대해서 위협이 되지만───시키는 비상식에 대해서 사신(死神)이라고, 너는 이미 체험했을 텐데!」 그녀의 말에, 마술사의 의식은 동결되었다. 확실히 죽음을 본다는 료우기 시키는 상식을 벗어난 존재다. 하지만, 단지 사람을 죽이는 능력만을 소유한 능력자는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생물을 죽이는 것뿐인 일이라면, 문명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근대병기에게 이길 리가 없다. 그래, 료우기 시키가 마술사인 그들에게 있어서조차 이질(異質)인 점은, 그런 것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죽일 수 있을 리 없는 것, 형체 없는 개념조차도 죽여 버리는 궁극의 허무야말로 그것의 본성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그것이 료우기 시키의 능력이다. 출구 없이 무한히 이어진 공간은, 온갖 병기를 가지고 있어도 간섭할 수 없는 밀폐세계다. 형체가 없으니까 형체가 있는 것밖에 충돌할 수 없는 물리병기로는 건드릴 수조차 없다. 하지만───료우기 시키의 힘은 그런 형체 없는 것까지도 대상(對象)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래, 시키를 가둬놓을 거라면 콘크리트에 담가놓는 편이 나았어. 어디까지나 소녀의 완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시키를 가둘 거라면, 단순하게 강철 벽에 둘러싸인 밀실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아라야 소우렌. 너는 마술사지만, 그 때문에 마술을 절대적인 것으로 취급해버렸어. 공간을 닫더라도 의미는 없어. 그런 애매한 것, 그놈은 쉽게 물어 찢고 나온다구………!」 얼굴을 돌리고 있던 그녀가, 마술사에게로 돌아본다. 그 눈동자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기 전에, 마술사의 의식은 갑자기 본래의 육체로 되돌려졌다. ◇ 육체로 돌아온 마술사는, 자신의 육체의 변조(變調)를 감지했다. 몸은 차가워지고, 손끝에는 저림이 있다. 이마에는 발한(發汗). 내장의 일부가, 기능을 정지해서 위험을 고하고 있다. “……잘린, 건가” 믿을 수 없다, 라고 마술사는 나직하게 신음한다. 하지만 진실이다. 지금 막───아라야 소우렌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맨션의 어딘가가 싹둑 잘려진 것이다. 버터라도 자르듯 막힘없이 깔끔하게, 공간 그 자체가 쩌억 하고 잘라졌다. 마술사의 의식이 육체의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맨션이라는 건물의 활동도 그는 자신의 의식과 동조(同調)시키고 있었다. 이 건물은 그의 육체다. 전등의 배선은 신경이고 수도의 배관은 혈맥과 같다. 그 몸을 싹둑 잘린 아픔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아픔에 의해 마술사의 의식의 집중은 두절되어, 그는 1층의 로비에서 육체가 있는 10층 복도로 되돌려졌다. ……거대한 팔에 끌어당겨진 것처럼 저항하지도 못하고 강제적으로. 「………뭐냐, 이것은」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등줄기로 거미가 기어가는 것 같은, 꿈틀꿈틀하고 내장을 괴롭히는 한기(寒氣)가 있다. 그것이 구역질이라는 것이라고, 그는 수백 년 만에 기억해냈다. 「무엇을 두려워하나───아라야 소우렌」 스스로의 나약함을 마술사는 질타한다. 하지만, 육체의 이변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방금 전까지 이 몸의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퍼져있던 힘이, 지금은 없다. 육체를 움직이는 지령을 보내야할 마술회로가, 투둑투둑, 하고 손끝부터 단선 되어간다. ───죽음이, 그곳까지 쫓아와 있다. 우───────────웅.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 끝, 로비에서 들려오는 진동음은 분명히 엘리베이터의 기동음이다. 무언가가 올라온다. 얼마 안 있어 소리는 그치고,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가볍고, 건조한 소리가 로비에 울린다. 그 소리는 나막신 같은 신발로 딱딱한 바닥을 걷는 소리다. 딸그락(華蘭), 하고 발소리가 다가온다. 마술사는 로비로 통하는 방향으로 몸을 향했다. 믿기 힘들지만, 아라야는 인정한 것이다. 머지않아, 이곳에 올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그것은, 곧 나타났다. 로비로부터 비치는 빛을 등에 받아, 그 모습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얀 기모노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가죽점퍼. 젖어있는 것처럼 윤기 있는 흑발과 푸르게 빛나고 있는 순흑(純黑)의 눈빛. 소녀는, 그 손에 한 자루의 칼을 들고 있었다. 밤의 어둠 속, 칼집에 들어가 있던 칼이 스륵 빠져나온다. 아무렇게나 빼어진 칼을 한 손에 든 그 모습은 전장에 서있는 사무라이와 비슷하다. 이 이상 없을 정도의 정적과 죽음의 기운을 이끌고, 료우기 시키가 나타났다. / 17 시키는 맨션의 복도에 발을 들여놓자,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한 손에 든 칼을 바닥으로 향하고, 멀리 떨어진 검은 마술사를 시야에 넣는다. 양자의 거리는 방 3개 정도───숫자로 하면 10미터정도나 떨어져있다. 「이해할 수 없군───어떻게 깨고 나왔나, 료우기 시키」 고민에 찬 표정인 채, 마술사는 말했다. 그것은 그의 안에서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된 의문이다. 검은 마술사, 아라야 소우렌은 그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유폐공간에서 빠져 나왔는가는,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젯밤───마술사의 일격에 의해 뼈가 몇 대나 부러지고, 의식을 잃었던 소녀. 닫혀진 공간. 맨션의 벽과 벽 사이에 만든 공간에서 눈을 떴던 그녀는, 그 팔로 있을 수 없는 공간의 있을 수 없는 벽을 벤 것이다. 무한은 「 」이 아니다. 무한을 무한답게 하기 위해서는 유한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유한이 없으면 무한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사물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무한이라는 것이 관측될 수 있다. 료우기 시키는 갇혀진 무한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유한을 찾아내서 그것을 잘라버렸다. 하지만 물론, 무한 속에 유한 따위는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자를 수 없기 때문에 그 감옥은 탈출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유한이 없다면 무한이 없는 것이다. 유한의 벽이 있든 없든, 료우기 시키 앞에서 그런 끝이 없는 세계 따위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유한이 진짜로 없다면, 그것은 무한 따위는 아닌 「 」이다. 유한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라면 시키는 그것을 찾아내서 베어버린다. ……절대였을 검은 구멍은, 이 상대에게만큼은 그저 좁은 암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마술사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원인은 있을 것이다. 내가 입힌 상처는 아직 낫지 않았다. 그 몸으로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가. 그 상처를 입고서 어떻게 눈을 뜬 거냐. 어째서 앞으로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을 혼수(昏睡)에 빠져있지 않은 것이냐」 고뇌에 가득 찬 표정인 상태로, 마술사는 언성만을 높인다. 그래──이 결계가 무의미한 것이라고 해도, 시키가 혼수상태였다면 문제는 없었다. 단 몇 분. 시키가 단 몇 분만 더 있다가 눈을 떴더라면, 일은 끝났었겠지. 이 여자는, 지금 깨어났다. 그곳에 외적인 요인은 없다. 아마도, 시키는 잠에서 깨어나듯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처럼 눈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유폐되어있다고 깨닫고 망설이지 않고, 벽을 갈라 찢었다. 굳이 말한다면, 운이 나빴다고 밖에 말할 방법이 없다. 아오자키 토우코와의 염화(念話)가 시간을 빼앗은 것인가. 아니, 그 대화는 한순간이었다. 그렇다면───쓸데없는 시간은, 어디에 있었나? 마술사는 회상하다가, 불쾌하게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손바닥을 힐끗 보았다. 그것은 수 분전에 엔죠우 토모에라는 존재를 으스러뜨린 팔. 단 몇 분. 그러나 명암을 가른 몇 분. 그것과 접했던 시간만 없었더라면, 아마도. 「엔죠우────토모에인가」 토해내는 말에는 원망이 어려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료우기 시키는 부정했다. 자신이 깨어난 것과 엔죠우 토모에는 무관계다, 라고. 「나는 나 혼자 멋대로 깨어 난거야.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았어. 엔죠우는 이곳에 올 의미 따윈 없었어」 조용한 목소리로 시키는 말한다. 밤바람이, 살랑살랑하고 그녀의 흑발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너를 파멸시킨 것은 엔죠우다. 그것만은 말해두지」 시키의 말에 마술사는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 아라야 소우렌을 파멸시킨 것은 엔죠우 토모에라고, 시키는 말했다. 그런 일은 결코 없다. 만약 자신을 파멸시킨 요인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료우기 시키나 아오자키 토우코 중 어느 한쪽이다. 그저, 조종당하고 있었을 뿐인 그 인형이 원인이라니, 결코. 「망언을. 그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어. 너를 데려온 것조차, 주어진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허수아비일 뿐이다」 「아아, 그 녀석은 아무 것도 안 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하지만 말야, 너는 처음부터 그 녀석을 써먹을 생각이 아니었잖아」 므, 하고 마술사는 머뭇거렸다. 그렇군, 하고 아라야는 생각한다. 엔죠우 토모에가 일상에서 탈출했을 때, 그는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예상외의 이레귤러를 이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계획이 고장을 일으키지 않게 하면서 속행했던 것이다. 그러나──그것은, 처음부터 아라야 본인이 세운 계획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엔죠우 토모에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생겨난 2차적인 계획이다. 그것은, 무언가 이루었다고 말할 일은 아닌 것일까. 원래대로라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을 계획이었던 그것을 흐트러뜨린, 정말 사소한 사건이었다고 하더라도. 시키는 말한다. 「너는 그 녀석이란 예정의 어긋남을 보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으로 다 잘 처리 된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 시점에서 너는 이미 헛점 투성이가 되어있었던 거다. 그 녀석은───엔죠우 토모에는, 이 나선에서 빠져나간 시점에서,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의미가 있었던 거라구」 그리고, 그녀는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그 발놀림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술사는 한쪽 손을 드는 행동조차 못했다. 뭔가 다르다, 라고 마술사는 하얀 기모노의 소녀를 바라본다. 확실히 지금의 시키는 어젯밤과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있겠지. 엔죠우가 이미 파괴된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아라야 소우렌을 미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대단치 않다. 단순한 감정의 변화 따위로 개인의 역량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데도, 지금, 마술사는 눈앞에 있는 상대가 어젯밤과는 다른 존재라고 느끼고 있었다. 소녀는 더욱 다가온다. 산보하는 것 같은, 결심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발걸음. 그 속에서 시키는 성가시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아아, 너 따위는 어떻게 되던 상관없어. 하지만 나중에 귀찮아지는 것도 사양하고 싶으니, 여기서 죽이겠어」 시키는 졸린 듯, 힘없는 눈매를 한다. 「하지만 처음이야. 나, 전혀 기쁘지 않아. 사냥감이 눈앞에 있는데도 가슴이 뛰질 않아. 너하고 라면 아슬아슬하게 싸울 수 있을 거라 알고 있었는데도, 웃을 수 없어」 착, 하고 시키가 쥔 칼이 울린다. 그것은 지금까지 느슨하게 쥐고 있던 칼자루를 강하게 고쳐 쥐는 소리다. 걸으면서, 시키는 조용히 칼을 앞으로……허리 위치에 까지 가져간다. 마술사는 천천히 한쪽 팔을 든다. 갑자기, 그 주위에 3중의 원이 그려져 간다. 「───좋다. 산채로 잡는다는 것, 처음부터 바라지 않았다. 일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멀쩡하게 소생하지는 않겠지만, 그 머리를 없애버리고 나의 머리로 바꾸도록 하지. 나는 죽겠지만, 근원에 닿을 수 있다면 이 목숨 따위───」 마술사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시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좁아져 간다. 마술사의 3중의 결계는 직경으로 4미터. 시키는 그 외주에서 2미터 정도 되는 곳까지 접근해있었다. 시키가 발하는 살기는, 겨울의 한기를 여름의 열풍으로 바꾸고 있었다. 조용히, 복도 전체로 흘러가는 살기는, 마술사의 피부를 지글지글 태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마술사는, 시키에게 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손에 든 칼이 수백 년이나 되는 세월을 축적한 명도(名刀)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시키의 전투기술은 자신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산채로 잡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라야 소우렌은 시키를 접근시키는 일없이 처치할 자신이 있었다. 시키는 결계 직전까지 걸어가자, 발을 딱 멈췄다. 지금까지 한쪽 손으로 잡고 있던 칼자루에, 다른 하나의 손을 살짝 겹친다. 허리의 중심은 약간 낮다. 목전에 자리한 칼의 자루는, 배 앞에 고정하고, 도신(刀身)은 비스듬히 전방의 적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 자세는 정안(正眼)───수많은 검술 유파에서도 제일 많이 다루어지는, 기본으로서 최강이라고 불리는 전투 자세. 시키는 그대로 마술사와 대치하자, 졸린 듯한 눈동자를 천천히 감고서 과연, 하고 중얼거리며 끄덕였다. 「아아, 알았어. 나는 너를 죽이고 싶은 것이 아니야. 단지 네가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거야」 ……그것은 분명, 토모에를 죽인 상대에게로의 감정. 지금까지 단지 예리하기만 했던 살기가, 명확한 칼날이 되어 마술사의 온몸을 꿰뚫는다. 그것이, 한순간만의 공방(攻防)이 되는 싸움의 신호였다. ◇ 번뜩, 하고 시키는 눈을 뜬다. 마술사는 내민 팔에 힘을 싣는다. 이 때. ───아라야는 전의(戰意)에서가 아니라, 그저 순수한 두려움에서 시키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직감했다. 「───숙(肅)!」 아라야의 노호(怒號)는, 틈을 주지 않고 공간을 으깨버리는 악마의 팔이다. 그는 시키 주위의 공간을 노려보고, 그대로 풍경 채로 쥐어짠다. 그곳에 일절의 타임랙은 없다. 외치면서, 주먹을 쥔 순간에, 시키의 패배는 결정적이다. 하지만. 아라야는 보았다. 자신의 외침보다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던 소녀가 자신의 외침보다 빠르게 활동하는 그 이상한 모습을. 칼을 쥔 양손이 튀어 올라간다. 그것은 섬광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속도. 상단으로 들어올려진 칼은 그 이상의 속도로 내리 휘둘렸다. 숙(肅), 이란 외침이, 참(斬), 이란 칼 소리에 양단 되었다. 시키를 으스러뜨렸을 공간의 일그러짐은, 그녀의 눈앞에서, 그 일그러짐 채로 살해당한 것이다. 마술사는 다시, 주먹에 힘을 모은다. 그저 손바닥을 펴고, 쥔다. 그것뿐인 행동은, 그러나. 료우기 시키의 질주 앞에서는 너무 느렸다. “──────” 아라야는 소리도 없이, 사고조차 제때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료우기 시키는, 문자 그대로 튕겼다. 일그러짐에 일섬(一閃)한 자세로, 마술사를 일격에 끝내려, 달려간다. 내딛기 전에, 료우기 시키는 칼을 횡일문자로 휘둘렀다. 마술사가 의지하고 있던 결계는, 그것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외주(外周)만이었다면, 오히려 일격에 살해되어도 좋다고 아라야는 각오하고 있었다. 만약 접근 당해도 시키가 제2진을 죽이려하는 틈에, 승부를 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그녀는, 그저 단 한번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간격 밖의 결계를 두 개 동시에 소멸시켰다. 그리고 한발 내딛는다. 휘둘렀던 칼이 신속(神速)이라면, 이 보법은 어찌된 속도인가. 료우기는 단 한발 짝으로, 4미터나 되는 거리를 제로로 만들었다. 흐르는 몸. 내딛은 1보는, 동시에 필살의 참격을 이끌어내는 디딤발이 된다. 너무나 빠른 여자의 몸은, 시간을 멈추고 있다기보다 시간을 역행하고 있다고까지 생각되었다. 참격이 휘둘러진다. 마술사는 후방으로 재빨리 물러서서 피한다. 료우기 시키는, 칼을 완전히 휘두른 자세인 채 마술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입술에서 한줄기, 선혈이 흘러 떨어진다. 그녀 자신은 상처를 입지 않았다. 단지, 어젯밤의 상처가 벌어진 것뿐이다. 몇 대의 갈비뼈와 몇 군데의 내장이 파손되어 있는 료우기 시키의 육체는, 걷는 것만으로 혈액을 입으로 역류시켜 버린다. 그 정도로 상처를 입고 있는데도, 이 정도의 참격을 날리는 것이다. 물러섰던 마술사의 오른팔이 떨어진다. 아니, 팔이 아니다. 어깻죽지부터 비스듬하게, 가슴 채로 한쪽 팔이 복도에 떨어졌다. 마술사는───발사된 권총의 탄환조차, 발사된 뒤에 피할 만큼의 운동신경을 가진 아라야 소우렌은, 완전히 잘린 뒤에 뒤로 물러선 것이다. 본인도 베어졌다고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네놈, 무슨」 자신의 상처에는 눈도 주지 않고, 마술사는 전방에 서있는 상대를 노려본다. ……지금의 일격은, 그야말로 치명상이었겠지. 시키가 두 번째의 참격으로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의 결계를 죽였었다면, 아라야의 몸은 몸통부터 2개로 양단되어 있었을 것이다. 마술사의 제일 가까운 주위를 보호하는 제1결계, 불구(不俱). 그 결계 때문에 그녀가 내딛은 디딤발이 조금 얕게 들어가, 마술사는 치명상을 면한 것이었다. 아니, 놀랄만한 것은 그런 일이 아니다. 시키는, 어젯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엔죠우 토모에가 죽은 분노로 본래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는 건가. 아니다, 그것은 결코 불가능할 터. 마술사는 하얀 기모노의 소녀를 응시한다. 료우기 시키는 자세를 바로잡고는, 양손으로 잡고 있던 칼을 한 손으로 다시 고쳐 잡는다. ……그것만으로 소녀는 어제의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쿨럭, 하고 기침한 입가에는 핏방울. 어젯밤의 상처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쉴 틈 없이 마술사에게 베어 들어가, 그 목을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뭣이. 무기에 의한 차이였나” 아라야는 어이가 없었다. 시키가 다른 사람이 된 이유. 그것은 극한까지 단련된 전투의지의 제어법과 다를 것이 없다. 아득한 옛날. 사무라이들은 칼을 뺀 시점에서, 죽이고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것은 무사로서의 마음가짐이기 때문이 아니다. 칼자루를 쥔 순간에, 그들은 각성하는 것이다. 싸우는 것만을 위한 육체, 살아남는 것만을 위한 두뇌로. 시합 전에 정신을 바짝 차린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칼을 빼는 것으로 뇌의 기능을 바꾼다. 육체를 전투용으로 다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근육은 생물이 사용해야 할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활동하고, 혈맥은 혈액의 순환루트를 바꾸어 호흡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 싸움에 필요 없는, 「인간」으로서의 기능은 전부 배제되고, 전투용의 부품으로 전부 바뀌어 버린다. 「───놀랍군. 자기암시에 의한 변체(變體)라니」 괴로운 듯한 마술사의 말에, 기모노의 소녀는 예에, 하고 대답했다. ……시키가 눈을 뜬 순간, 아라야에게 느껴졌던 두려움의 정체가 이것이다. 마술사는 스스로의 몽매함을 저주했다. 설마, 이 업(業)을 현대까지 전하고 있는 일족이 있다고는. 아라야는 알고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고류(古流)의 검객에게 있어서, 약 3간(間) 정도의 거리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마도 좀 전의 시키라면 5간……9미터 정도의 거리조차 한걸음에 내딛어 왔겠지. 모두가, 그녀의 본래의 모습을 몰랐다. 료우기 시키는 직사의 마안과 나이프로 싸우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라고 단정 지어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이것이다. 이 여자는, 본래 검을 사용하는 살인귀인 것이다. 지금의 그녀에게 비하면, 보통의 그녀 정도는 발끝에도 미치지 않는다. 「……속았군. 아사가미 후지노와의 사투는, 진심으로 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마술사의 말에 료우기 시키는 아니요, 라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무기가 무엇이든, 자신은 항상 진심이었다고 차가운 눈동자가 고하고 있다. 그 눈빛을 받으며, 마술사는 깨달았다. 지금───이 여자는 뭐라고 대답했지? 이곳에 있는 그릇(器)은 뭐지? 이 상대는───언제부터 시키가 아니었지? 「그런가……겨우 만났다는 건가……!」 이미 상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상처를 남은 왼쪽 팔로 누르면서, 마술사는 으르렁거린다. 하얀 기모노의 여자───료우기 시키는, 그 이상 없을 정도로, 여성적인 미소를 띄웠다. 그대로 그녀는 마술사에게로 휘두르며 달려든다. 그 참격을 피할 수단을, 아라야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이곳은 그의 체내다. 아라야 소우렌에게, 이 곳에서의 패배는 있을 수 없다. 설령 이 맨션 채로 파괴되어도, 지금의 료우기 시키는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다. 승기(勝機)를 걸고, 마술사는 전진했다. 「───사할(蛇蝎)……!」 마술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는 남은 왼쪽 팔로, 료우기 시키의 칼을 막는다. 불사리(佛舍利)를 채워 넣은 그의 왼팔은, 이 몸에서도 건재한 것이다. 아무리 료우기 시키라고 해도 성인의 가호를 쉽게 벨 수 는 없다. 동시에, 잘려 떨어졌던 오른팔이 혼자서 튀어 오른다. 팔은 뱀처럼 바닥을 기어서 료우기 시키의 목덜미로 날아들었다. 「────읏!」 만력(万力) 같은 팔이, 료우기 시키의 목을 조인다. 그 약간의 틈에, 마술사는 더욱 뒤로 물러나, 왼팔을 내뻗었다. 숙(肅), 하고 손바닥이 공간을 압축한다. 모든 방향에서 전신의 뼈를 부술 기세로, 충격이 료우기 시키의 몸에 쇄도했다. 아, 하는 단말마의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가죽점퍼는 갈가리 찢겨져 하얀 기모노의 소녀가 지면에 무너져 내렸다. 아니, 무너져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료우기 시키는 깨끗이 사라졌다.    시키는, 이 상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확실히 의식이 흐릿해져있는 그 상황에서, 하얀 형체가 튀어 오른다. 그녀는, 오로지 아라야 소우렌의 모습만을 직사(直死)했다. 휘둘러지는 칼. 칼은 마술사의 가슴의 중심에 꽂힌다. 푸욱, 하고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감각을, 마술사는 혐오했다. 「───어리석은!」 동시에, 아라야는 어이없게도 시키를 걷어찼다. 시키의 배를 뒤꿈치로 차는, 창 같은 중단차기. 그것을 시키는 뒤로 뛰어서 회피한다. 칼이 찌익 뽑히고 나서, 아라야는 깨달았다. 이 상대를 멈추려면───── 「───나의 이계(異界) 채로,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마술사의 왼손이 펴진다. 세 번째의 공간 압축. 그것을 한칼에 잘라버리고, 시키는 멍하니 서있었다. ───마술사의 형체가, 검은 외투 채로 사라져간다. 시키는 그것을 멈추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떠한 원리로 마술사가 이 장소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제지할 수 있을까. 그런 사소한 일 따위, 시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도망칠 거라면 좋을 대로하면 된다고 중얼거리면서, 시키는 복도의 난간에 손을 짚는다. 「────그래도, 절대로 놓치지 않아」 그대로, 그녀는 밖으로 뛰었다. ◇ ───아라야는, 맨션 자체를 압축시키기로 했다. 료우기 시키의 육체는 그걸로 으스러지겠지만, 외견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인간으로서 생명활동이 유지될 정도로 육체가 남아있으면 된다. 처음부터 머리는 필요 없었다. 두개골이 깨져, 뇌장(腦漿)이 흩뿌려져도, 그 부분은 자신의 머리로 바꿀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그 육체. 근원으로 이어져있는 육체뿐이다. 한쪽 팔을 잘리고 가슴 중심까지 꿰뚫린 이 몸으로는, 몇 시간 버틸 수 없다. 근원의 소용돌이라는, 모든 것의 시작이 있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면 육체 따위는 불필요하겠지. 중요한 건 그때까지, 자신의 혼과 료우기 시키의 육체가 보전되면 되는 것이다. 이미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결국 해야만 하는 일은 같다. 실패한 상황을 위한 보험이 전혀 없어진 것 뿐. ……어차피, 이 방법으로 이르지 못할 것이라면,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라야는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신의 약함이야말로, 최대의 적이었다, 고. 처음부터 료우기 시키를 죽여 두었다면 이렇게까지 막다른 곳에 몰리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 어쨌든, 이걸로 막은 내린다. 마술사는 자신의 체내인 맨션에서 체외인 정원으로 빠져 나왔다. 녹색 잔디에 둘러싸인 맨션의 정원은, 결계 안에 있지만 맨션이라는 건물의 일부가 아니다. 파괴되어도 이곳만은 영향을 받지 않고 남겠지. 정원에 갑자기 나타난 마술사는, 공간전이 후에 쉴틈 없이 곧바로 한쪽 팔을 뻗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원형의 탑을 찌부러뜨리기 위해 손바닥을 편다. 순간. 그의 몸은 어깻죽지부터 절단되었다. ◇ 순간, 그의 몸은 어깻죽지부터 절단되었다. 「료우기───시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마술사는 신음했다. 「네──────놈」 쿠헉, 마술사는 입에서 붉은 피를 뿌렸다. 가루 같은 혈액은 지면에 방울로 떨어지는 일없이 바람을 타고 흩어져갔다. 「───설마, 이런」 믿을 수 없다, 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것도 당연. 정원에 나타난 마술사가 밤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그곳에 있는 것은 10층에서 뛰어내린 료우기 시키였으니까. 이 상대는────마술사가 맨션에서 정원으로 공간을 연결해서 이동할 것이라고 판단한 찰나, 망설임 없이 10층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거기에 어떤 확신이 있었던 일인지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령 정말로 마술사가 정원에 나타난다고 예지했다고 해도, 10층에서 뛰어내린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그것은 무모(無謀)를 뛰어넘어, 기적이라고 불릴 일이다. 10층에서, 단 한사람의 인간을 노리고 뛰어내린다? 그런 일은 10층에서 한 자루의 바늘을 떨어뜨려서 목표에 맞추는 것과 무엇이 틀린가. 그래도, 이 상대는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아직 마술사의 모습이 10층에 남아있었는데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정원에 선 아라야 소우렌을 향해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리고, 마술사는 나타난 순간에 베어졌다. 맨션을 으스러뜨리기 위해서 내밀어진 왼쪽 팔을 순간적으로 방패로 삼았지만, 그것 채로 어깻죽지부터 허리까지 양단 되었다. 왼쪽 팔에 채워 넣은 불사리(佛舍利)의 가호라고 해도, 10층 분의 낙차의 충격을 담은 참격에는 당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키의 몸은, 지상에 떨어지지 않고 정지해있다. 우습게도───마술사가 가지고 있는 정지의 결계가 아직 하나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것에 걸려있는 것처럼, 시키는 지상으로의 낙하의 충격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높이 40미터 이상에서의 낙하의 압력은 그녀의 상처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겠지. 시키는 계속 고개를 숙인 상태다. 손에 쥔 칼은 마술사의 몸을 파고들어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라야는 역시 고민에 가득 찬 표정을 바꾸지 않고, 화가 치밀어 오른 듯 눈썹을 찡그린다. 「……나를 붙잡을 수 있다면 지상으로의 격돌은 없다고 각오한 건가. 아니, 틀리겠군. 이런 것이 없어도, 너라면 같은 짓을 했겠지. ───이 얼마나 꼴사나운가. 너 같은 미숙자에게, 아라야 소우렌은 부서질 수 없다」 그것은 허세가 아니라, 흐림 없는 그의 본심이었다. 왼쪽 팔은 팔꿈치부터 절단되었고, 오른쪽 팔은 이미 잃었다. 그저 서있을 뿐인 마술사는, 그대로 시키를 걷어찼다. 서있는 상태로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발차기가 시키의 가슴을 강타했다. 시키의 몸은, 그대로 정원으로 튕겨 날아올랐다. 그래도 손을 검에서 떼지 않은 시키와, 깊숙이 마술사의 육체를 파고 들어간 칼. 결과, 칼은 도신에서 두 개로 부러져 400년이나 되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시키는 정원에 쓰러진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마술사는 불유쾌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있으면, 그 또래의 소녀 같아 보이건만」 마술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고뇌에 찬 얼굴이, 한층 그 빛이 진해져간다. 이젠 눈앞에 있는데도, 마술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의 참격은, 어찌하지 못할 정도의 치명타였다. 정말이지──어이없을 정도로 엉터리 같은 일격이었지만, 동시에 더 이상 없을 정도의 일격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것을 맞았으니, 분명히 쓰러질 수밖에 없나───. 「또 서로 동시에 치는 형국이 되다니」 그것이 그들의 인과였던 걸까. 목적을 앞에 두고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과, 뛰어내려온 시키의 몸을 멈춘 자신의 결계를 돌이켜보면서, 아라야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기원을 각성한 자는 기원에 속박된다, 인가. 과연────나의 충동은 "정지(停止)"였다는 건가」 마술사는 짓궂은 듯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 18 달빛만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녹색 잔디에 쓰러져있는 시키와, 양팔을 잃고 서있는 검은 옷의 마술사. 그곳에, 산보에서 돌아오는 듯한 발걸음으로 또 한사람의 마술사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실패로 끝났구나, 아라야」 토우코의 말에, 아라야는 대답하지 않는다. 「참혹한 꼴이군. 사람의 죽음을 수집하고, 지옥을 만들고, 그들의 괴로움을 체험하고. 그런 일은 괴로울 뿐이잖아?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몰아붙이지? 어째서 너는 그렇게까지 근원의 소용돌이 따위를 구하는 거야. 설마 정말로, 타밀(台密)의 승려였던 시절부터 인간의 구제를 꿈꾸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이유 따위, 이미 잊었다」 대답하고, 검은 마술사는 자신의 생각에 몰두했다. 아주 옛날의 이야기다. 인간은 구원할 수 없다. 살아가는 이상, 어떻게 하더라도 보답 받을 수 없는 자가 나오게 되어 버린다. 모든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구원할 수 없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 일생은 무엇으로서 보답 받는 것인가. 대답은 없다. 무한과 유한에 동등한 것이다. 구원 할 수 없는 자가 없다면, 구원 할 수 있는 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구제(救濟)는, 단지 돌고 돌뿐인 재화(財貨)와 마찬가지다. 인간은 구원할 수 없다. 세계에 구원 따위는 없다. 그러니까 죽음을 기록하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의 최후까지 기록해서, 처음부터 끝까지를 검증한다. 그렇게 하면, 대체 무엇이 행복이었는지 판별되겠지. 보답 받을 수 없는 자도 구원할 수 없는 자도, 그 전부를 처음부터 다시 볼 수 있다면───무엇을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세상이 끝난 뒤에, 그것만이 인간의 의미였다는 걸 알 수 있다면──무의미하게 죽어 갔던 자들도, 전부 의미가 부여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세계가 끝나면, 사람은, 인간의 가치라는 것을 검증 할 수 있다. 그것만이───유일한, 공통의 구원이다. ………………. 짤깍, 하고 소리가 났다. 토우코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에, 아라야의 의식은 되돌려졌다. 「이유도 잊은 건가. 너의 바램은 무(無), 그리고 발단조차도 제로. 그러면 대체 너는 무엇인 걸까」 「나는 누구도 아니다. 단지 결론을 원한다. 이 추하고 더러운 무리인 몽매한 인간들. 놈들이 죽음에 이른 뒤, 역사에 그것밖에 남길 수 없다면───추함만이 인간의 가치였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추하고,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야말로 인간이었다고, 나는 안심할 수 있는 거다」 두 사람의 마술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아라야는 서있는 채로. 토우코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채로. 「───그래서 근원의 소용돌이에 접촉하고 싶었던 건가. 그곳에는 모든 기록이 있어. 없었다고 해도, 모든 것을 무(無)로 할 수 가 있어. 너는 너를 위해서, 더러운 인간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은 거야」 「그렇다. 그렇지만 앞으로 열 걸음. 남은 몇 발짝을 앞에 두고, 또 세계(世界)에게 방해를 당했다. 길을 여는 것도 불가능 하고, 원래부터 길을 가진 그릇(器)을 손에 넣는 것조차 저지당한다. 이 무슨───무슨 끈질김인가. 누구도 세계의 위기 따위는 모르지만, 누구나가 무의식 하에서 살아남고 싶다고 바란다. 누구도 부서져 가는 세계를 구하려고도 하지 않고 쾌락에 빠져있는데도, 누구나 무의식 하에서 세계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을 배제하려고 한다. 이 모순을 뭐라고 해야 하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살려고 하는 기도(祈禱)를 더럽히는 거다. 그 사념(邪念)이야말로, 나의 적이다」 목소리에는 깊은 증오가 깃들어 있었다. 토우코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쉰다. 「세계───? 틀렸어, 아라야. 이번에 너를 막은 것은 영장의 억지력이 아니야. 너는 정말로 잘했어. 억지력은 움직이지 않았어. 아라야 소우렌을 파멸시킨 것은 단 하나. 너는 말야, 엔죠우 토모에라는, 단 한사람의 인간의 꼴같잖은 가족애(家族愛)에 진 거야」 아라야는 인정하지 하지 못한다. 전 세계의, 현존하고 있는 인간 전부의 의지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이겨내 보이겠다고 한 자신이, 그런 애송이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누가────. 「만약 그렇다고 해도, 놈을 뒤에서 떠민 것은 영장의 세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유상무상(有像無像)의 무리들이다. 본래의 엔죠우 토모에로서는, 그 행동은 불가능하다. 녀석을 움직이고 있던 것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따위가 아니야. 그런 것은 인간이 아니다. 녀석들에게 있는 것은 자신이 살아남겠다는 원망(願望)뿐이다. 녀석은, 그 추한 본심을 숨기기 위해서, 가족애 같은 장식을 뒤집어쓰고 있던 것에 지나지 않아. 자신이 살아있고 싶으니까, 타인을 보호하는 흉내를 내는 것이다」 아라야의 말에는 미움밖에 없다. 토우코는 인간을 더럽다고 매도하는 이 남자를,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라야 소우렌은 너무 오래 살아서, 이미 하나의 개념화되어있다. 사고의 방향성이 바뀌지 않는 것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소용없다고 알면서도, 그녀는 하다 만 저주를 계속 하기로 했다. 「───하나, 좋은 것을 알려줄까 아라야. 너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말야, 유명한 심리학자가 정의한 집단무의식(集團無意識)이라는 것이 있어. 모든 인간의 의식의 최하층에는 모두 같은 호수(湖)에 다다른다는 생각. 원래부터 불교의 승려인 너에게는 친숙한 사상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지. 이것은 곧, 가이아론(論)적이 아닌 쪽의 억지력───영장의 무의식 하에서의 동일 의견이야. 이걸 말이지, 소우렌. 일.반.에.서.는. 아.라.야.식.(Alaya識)이.라.고. 하.지」 무, 어,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난다. 토우코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한다. 마술사는 이전, 그녀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던 것이다. 자신의 적은 영장의 상념(想念), 구원하기 힘든 인간의 성질이다, 라고. 그 저주가────지금, 그곳에 하나의 형체를 이룬다. 「우습지, 아라야 소우렌. 너는 네가 평생의 적이라고 정한 것과 동일한 성(姓)을 가지고 태어났어. 그런데도 너 자신은 모르고 너의 주위에 있던 인간은 그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았어. 정말로 심술궂은 세계의 계략일까. 알겠어 소우렌? 이번의 모순은 산더미만큼 있었지만───무엇보다 지배자인 너 그 자체가, 최대의 모순이었던 거야」 ……저주는 흉악한 악마의 이미지가 되어, 아라야의 사고(思考)를 침식하고, 침공하여, 그의 존재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마술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그 눈의 초점만이 사라져간다. 그래도 미동도 하지 않고. 그는 고민의 표정을 띄웠다. 그 어두움, 그 무거움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명제를 등에 진 철학자의 그것일까. 부정은 하지 않고, 저주만을 받아들이고서, 마술사는 말했다. 「───이 몸은, 한계다」 「또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건가. 그걸로 몇 번째야. 너는 질리지도 않는 구나」 그것이야말로 나선. 아라야는 최후까지 무뚝뚝한 얼굴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토우코는 명백한 경멸의 시선을 보내며, 손가락에 끼운 담배를 던져버렸다. 결국, 불붙인 담배를 그녀는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경멸은 하지만───그녀는, 이 개념화한 마술사를 증오하고 있지는 않았다. 한 발짝 잘못 디뎠다면. 아니, 한 발짝 잘못 디디지 않았다면, 자신도 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인간도 아니고 생물도 아닌, 그저 현상(現象)이 되어버린 이론의 구현(具現). 지금의 그녀는, 그것을 슬프다고 생각해버렸으니까. 커헉, 하고 아라야는 피를 토한다. 그 몸이, 남아있는 좌반신부터 재가 되어 사라져간다. 「예비의 몸은 만들어두지 않았다. 재회가 있다고 하면 다음 세기인가」 「그 무렵에 마술사 따위는 없어. 재회는 없겠지. 너는 마지막까지 혼자야. 그래도───멈추지 않겠다는 거냐」 「물론. 나는 패배 따위는 인정할 수 없다」 토우코는 그저 눈을 감는다.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수년을 정산하는, 잠깐 동안의 문답은 여기까지다. 마지막으로───그녀는,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마술사로서 아라야 소우렌에게 물었다. 「아라야、무엇을 찾지?」 「────진정한 지혜를」 검은 마술사의 팔이 무너진다. 「아라야、어디에서 찾지?」 「────단지, 내 안에 있다」 외투는 산산이 흩어지고, 반신(半身)이 바람에 흩어져간다. 그것을 계속, 아오자키 토우코는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아라야, 어디를 목표로 하지?」 부서져가는 아라야. 입만이 남아, 말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뻔한 것. 이 모순 된 세상(나선)의 끝을─── 그런 대답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람에 흩어져 가는 재에서 눈을 돌려, 아오자키 토우코는 다시 한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보랏빛 연기는, 있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모순/나선 (19) 어째서인지, 나는 거리에 있었다. 오늘은 아주 좋은 날씨라, 올려다본 하늘은 끝없이 푸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깨끗해서, 태양 빛도 시끄럽지 않다. 꿈같이 하얗고 따스한 햇살 때문이겠지. 거리는 어쩐지 신기루처럼 뿌옇게 되어 있어서, 언제나의 거리는 사막처럼 기분이 좋았다. 11월이 되어 매일이 흐렸지만, 오늘은 한여름으로 돌아간 것처럼 밝은 하루다. 나는 새로 입기 시작한 연지색 쯔무기를 입고 찻집에 들어갔다. 나도 최근에는 찻집정도는 이용한다. 이런 하루 덕분이겠지. 평소에는 음울한 아넨엘베가 붐비고 있었다. 조명은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뿐인 이 찻집은, 오늘처럼 햇살이 강한 날에는 인기가 있다. 장식 없는 하얀 테이블에는 커다란 창문으로 비쳐 들어온 태양의 백(白). 그 밖의 부분은, 가게가 가진 메마른 그림자의 흑(黑). 이 두 가지의 명암이 교회 같은 장엄함을 보여서, 기다리는 곳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오늘은 그중 한 사람이었다. 테이블은 두 개밖에 비어있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는다. 그러자, 나처럼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10대의 남자도 남은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다. 나와 같이 들어온 남자도, 똑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등을 마주하고, 따스한 햇살 속에 있었다. ───이상한 고요함이었다. 나는, 조금 성질이 급한 것 같다. 나 본인에게 자각은 없었지만, 주위에서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 그런 내가, 불만도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째서 이렇게 평온한 걸까하고, 생각하다가, 무심코 이유를 발견했다. 분명, 나에게 등을 보이며 앉아있는 남자가 마냥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탓이겠지.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계속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에 안심하고, 불평도 없이 그 녀석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나는 창가에 손을 흔들고 있는 바보를 발견했다. 달려온 듯, 헐떡이며 손을 흔들어온다. 달려도 괜찮은 걸까하고 나는 조금 걱정했다. 그렇다지만, 이런 기분 좋은 날에도 위아래로 검은색일색, 이라는 저 옷 입는 센스는 곧 바꾸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언뜻 보자───밖에 또 한사람, 손을 흔들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다. 나는 자리를 일어선다. 등 뒤의 남자도, 같은 타이밍에 일어섰다. ……안심했다. 저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이 녀석이 기다리던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어쩐지 한숨 돌린 마음으로, 가게의 출구로 나아간다. 이상하게도, 가게의 출구는 두 개 있었다. 동과 서의 양쪽에, 마치 갈림길처럼. 나는 서쪽으로, 남자는 동쪽의 출구로 걸어간다. 나는 가게에서 나가기 전에, 한번 돌아보았다. 그러자, 저 남자도 같이 돌아보고 있었다. 붉은 머리칼을 한, 여자같이 호리호리한 녀석. 그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쪽을 향해 한쪽 손을 슬쩍 들었다. 모르는 남자지만, 이것도 무언가의 인연이겠지. 나도 한쪽 손을 들어서 답했다. 우리들은 떨어진 출구에 서서, 그런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하고 남자가 말한 듯이 보였지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도 그럼, 하고 대답하며 가게를 나선다. ───밖은 지금가지의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좋은 날씨다. 나는 녹아들어 버릴 것 같은 강한 햇살 속에서, 나를 위해 손을 흔들고 있는 누군가의 곁으로 걸어간다. 어쩐지, 기쁘고, 어딘가, 안타까웠다. 하얀 햇살은 너무 강해서, 손을 흔드는 누군가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저 붉은 머리의 남자에게도 이런 식으로 걸어갈 장소가 있던 것을,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한다. 정말, 얼마나 꼴불견인가. 분명 아넨엘베가 교회 같았기 때문에, 그런 나는 일시적으로 그런 기분이 들어버린 것이다.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교회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있는 것은 사막처럼 평탄한 지평선뿐이다. 자,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각오하던 것이다.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무 것도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인생이다, 라고 말할 것이 틀림없다. 딩동, 하고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이것이 단순한 꿈이라고 깨달아버렸다. 사막처럼 깨끗한 거리에서, 나는 스르르 잠에서 깨어갔다─── ◇ 몇 번인가, 초인종소리가 들려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자, 시각은 아직 오전 9시를 넘어있었다. 어젯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보를 다녀와서 잠든 것이 아침 다섯 시. 그다지 충분한 수면시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초인종이 아직 울리고 있다. 내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저 참을성을 보니, 틀림없는 미키야의 짓이다. 나는 침대 위에서 상반신만을 일으켜서, 멍한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둔다. ……이상한 꿈을 꾼 탓이다. 어쩐지, 나는 미키야를 만날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베개를 난폭하게 안고서,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러자. 초인종은 갑자기 멎었다. 「───뭐야, 저 근성 없는 녀석」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시트를 뒤집어쓴다. 이젠 정말 다시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터무니없는 실력행사를 해왔다. 철커덕, 하고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난다. 놀라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늦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일어나 있잖아, 시키」 멋대로 들어온 코쿠토 미키야는, 편의점의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그런 인사를 해왔다. 태연자약한 그 태도와 어째서 내 방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가하는 의문 탓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키야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욕심쟁이. 이쪽도 아침밥은 거르고 있으니까, 안 줄꺼야」 ……미키야는 비닐봉지를 감싸 듯 등 뒤로 숨긴다. 그런, 너무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그 대사에 나는 더욱 화가 났다. 「뭐야, 이 불법침입자. 그런 레토르트, 부탁한 적이나 있는 줄 알아」 「그거 다행이야. 오늘은 평화로운 아침식사를 할 수 있겠는걸. 너,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의 것을 뺏는 버릇, 고쳤구나」 말하면서 이런저런 먹거리를 바닥에 늘어 놓아가는 미키야. 즐거운 듯한 그 옆얼굴을 보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그로부터 2주일정도 지났을까. 나는 전치 1주일이라는 중상을 입고, 미키야는 다리의 부상으로 가벼운 통원치료를 했다. 나의 부상 쪽이 훨씬 중상이었지만, 역시 나의 몸은 다른 사람보다 튼튼한 듯, 상처는 일주일만으로 완치되었다. ……하지만, 미키야는 아직 병원에 다니고 있다. 걷는 것도 뛰는 것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뛰는 것은 피하라고 의사에게 주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 뿐만이 아니라 완치된 뒤에도 계속되는 주의라고 미키야는 태연하게 말했었다. 그 뒤로 우리들은, 그 맨션에 관한 일을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다만, 미키야는 가끔씩 어두운 얼굴을 한다. 이 녀석에게는 이 녀석 나름의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겠지. 이렇게 말하는 나는────그다지, 상처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슬퍼해야 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딱 한 달 정도 있었던 동거인이 없어져서,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생활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저기 말야」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한 손에 들고 나에게 등을 돌린 채로 미키야는 말을 걸어왔다. 나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뭐야, 라고 대답한다. 「응. 그 맨션 얘기. 토우코씨에게 들었는데, 헐린대」 「──그런가.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 않아? 거주인이라던가, 그런 거」 「그런 문제는, 걱정할 필요 없다더라구. 마술사의 뒷처리는 마술사가 한다, 라는 규칙이 있어서, 협회의 사람들이 와서 전부 처리를 끝마쳤대. 가공의 거주인들도 가공의 거주인으로서 어딘가로 이사 보내고, 지하도 완전히 태워버려서 아무 것도 없던 것처럼 만든 것 같아. 증거은폐란 걸까. 헐리는 것은 오늘 낮부터 시작이래」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 미키야는 이곳에 온 것이겠지. 나는 헐리는 것을 보러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미키야도 있을 리 없다. 그래도───미키야는, 헐리기 전에 그것을 나에게 전하려고 생각했겠지. 「싱겁네」 나는 본심으로 중얼거리자, 미키야는 그렇네 하고 동의한다. 그것만으로, 우리들은 맨션의 이야기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걸로 시키를 둘러싸고 있던 사건은 끝났어. 나는 이번에는 중심에서 빠져있었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귀찮은 일은 이걸로 끝이잖아? 그러면, 시키는 이제부터 빼먹지 말고 학교에 가도록 해. 착실히 진급해서 졸업하지 않으면 아키타카씨가 슬퍼 한다구」 「───그거하고 이거는 다른 문제잖아. 게다가 네가 토우코 따위에게 관계하니까 귀찮은 일이 찾아오는 거잖아. 나를 갱생(更生)시키고 싶거든 먼저 네가 갱생 하라구. 대학을 때려 친 네가, 학교에 관해서 무슨 말을 할 권리가 있냔 말야」 우우, 하고 신음하며 미키야는 입을 다문다. 이 상황에서는, 이 "대학을 관뒀다 공격"이 이 녀석을 잠잠하게 할 비장의 카드다. 「──권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비겁하다고 생각해」 곤란하다는 말투로 이야기하면서 미키야는 한숨을 쉰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나고, 나는 멍하니 오전을 보냈다. 오늘은 휴일인데도, 미키야는 놀러나가지도 않고 내 방에 머물러 있다. 나는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있고, 미키야는 바닥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딱 한 달 전, 이런 풍경이 일상이었다. 나는 예전에 그 자리에 있던 한 명의 남자를 기억해낸다. 지금은 이미 없다. 처음부터, 없었을 터인 동거인. 그가 사라진 것만으로, 약간의 후회가 느껴진다. 가슴의 구멍은 메울 수 없다.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비어버린 구멍은 기분이 나빠져서 싫다. 거기서, 생각해버렸다. 그 남자가 사라진 것만으로 이렇게도 기분이 안 좋다면.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남자를 정말로 잃었을 때,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하고. 6월에 눈을 뜨고서, 얼마 안 되는 5개월뿐인 나의 기억. 옛날의 료우기 시키가 아닌, 지금의 내가 얻어왔던 날들의 조각. 그것은 정말로 시시하고, 가치 없는 것들뿐이다. 그렇지만 버리는 것은 너무나 아까워서, 나는 소중하게 소중하게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나에게는 빠진 부분이 있다. 토우코는, 그것은 메우는 것이라고 잘난 듯이 말했었다. 확실히 그렇다. 빈 구멍은 무언가로 메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혹시. 얼마만큼의 시간과 경험을 겪고서, 지금의 나는, 그것을 이 남자라고 정한 것일까? 「───저기, 코쿠토-」 나는 싫어했을, 그를 옛날에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다. 과거의 자신은 너무나 타인 같아서, 그 흉내를 내는 것은 싫어했지만. 이렇게 하는 것으로, 나는 과거의 나와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미키야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내가 평소답지 않게 깊게 생각하고 있는데도, 멍-하니 문고판 책 따위를 읽고 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짧게 말했다. 「열쇠」 에? 하고 미키야가 돌아본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상처투성이인 손바닥을 내밀었다. 갑자기───나는, 어떤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나, 네 방의 열쇠는 가지고 있지 않아. 불공평하잖아, 그런 건」 ……정말로, 그 이상한 꿈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도 얼굴이 빨개졌다고 알면서도, 그런 하찮은 것을 어린아이처럼 요구하고 있었다. ◇ 나는 이렇게, 그다지 변화 없는 나선 같은 일상을, 이 너무나 평화로운 상대와 보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절은 겨울. 거리는, 이윽고 4년만의 눈에 덮인다. 료우기 시키와 코쿠토 미키야가 처음으로 만났던 때와 마찬가지로, 붉디붉은 눈이 내린다──── /矛盾螺旋 · 了 -------------------------------------------------------------------------------- * 게헤나(Gehenna) : 이스라엘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계곡. ‘힌놈의 계곡’이라고도 한다. 헤브라이어(語)의 ‘힌놈의 아들의 계곡(Gue ben Hinnom)’에서 유래한다. 가나안인과 예루살렘인이 몰로크(Moloch) 신에게 바치기 위하여 여기에서 아이들을 불태워 죽였기 때문에 이 명칭은 지옥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요시아 왕은 우상을 파괴함과 동시에 예루살렘의 오물과 먼지를 이 계곡에 버리도록 명령하였다(열왕하 23:10).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9028&Ad=map#top ] * 그노시스(cognoscentia, gnosis) : 靈知. 이 세계에 대한 완전한 앎. 어원은 그리스어로서 인식(認識), 앎, 지식 또는 깨달음[覺]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그 종교적이고 복합적인 의미 때문에 보통 그노시스, 영지라고 한다. 그노시스는 구원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믿음과 대등한 개념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믿음보다 더 중요하고 앞설 뿐만 아니라 믿음을 능가하는 높은 차원의 단계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많은 논쟁과 이론이 생기게 되었고, 또 온갖 가정과 추리가 속출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노시스는 그 단어가 지닌 복합적 의미 때문에 번역할 수 없는 것이다. 초기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천상적 신비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을 그노시스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반면 이단학파에서는 이를 밀교적 인식으로 이해하여 선택된 소수만의 특권으로 받아들였다. 대표적 그노시스주의자인 발렌티누스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요소, 즉 물질과 정신,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 여기서 영적인 요소는 하느님도 모르게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으로, 이 영적 요소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내적인 힘이며 원동력이다. 구원이란 바로 이것을 통하여 물질로부터의 해방과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에게도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육체적 인간, 정신적 인간, 영적 인간이 그것이다. 육체적 인간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영적 인간만이 구원될 수 있다. 정신적 인간은 어렵지만 그래도 그노시스와 예수를 본받는 실천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노시스 사상의 체계는, 첫째 이원론적 우주관 아래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의 이어질 수 없는 심연의 관계에서 우주를 고찰하고, 둘째 제2급의 신에 의해 창조된 물질은 무질서에 의한 싸움과 타락 등으로 생겨난 결과로서 악이라는 것이며, 셋째 인간은 대부분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졌으나 그 중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영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그것이 바로 구원과 해방의 원동력이라는 것, 그리고 각 차원의 세계에는 모두 중개자가 있어 이 중개자를 통하여 상급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대교에서부터 그 형태를 볼 수 있는 그노시스 사상은 이원론적 우주관 아래 동방의 종교 사상과 이교 철학, 그리스 신화, 점성학 등의 내용이 그리스도교 교리와 무분별하게 혼합된 것으로, 참된 인식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매력을 주는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또한 우리에게 성부를 계시하였다. 이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 그노시스주의는 오랫동안 교회 내부 깊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때로는 진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혼선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는 요한의 복음서의 말이라든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테오필루스 등의 ‘그리스도교인은 참된 지식, 즉 그노시스를 지닌 사람들이다’라는 설명이 단적인 예이다. 따라서 정통적 입장에서의 그노시스와 이단 사상의 거짓 그노시스주의를 뚜렷이 구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교인의 입장에서 그노시스주의가 이단으로 탈선하게 한 것은 이레나이우스 등의 교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세상과 역사, 그리고 물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그노시스주의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가장 근본적 요소인 예수의 강생 그 자체와 의미를 부인하고, 그 역사적 사실과 함께 인성(人性)을 취한 구원의 방법을 송두리째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705121&Ad=Encyber#top ] *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가 사용한 마법의 번역에 관하여 :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만, 영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영어주문 위에 조그맣게 후리가나 형식으로 적힌 일어를 보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자가 아닌 교정자가 번역을 하였으므로 약간 미흡할 수 있으며, 영어주문과는 미묘하게 틀리기도 하지만,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하였음을 밝혀드립니다. 그 외에, 작 중에 가끔 어떤 단어 뒤에 괄호로 적어놓은 것이 한자나 영문자 같은 원어가 아닌 한글인데 다른 단어인 경우, 원작에서 어떤 단어를 적고 그 위에 '실제로 입으로 말 할 땐 이렇게 말했다'라는 의미로 후리가나 형식의 단어가 첨부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표면에, 원래 쓰여 진 큰 글자를 괄호 안에 넣었습니다(가끔 상황에 따라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만). * 아르스 · 마그나(Ars Magna) : 연금술의 기원은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마그마)이 분출하는 천지개벽의 불가해(不可解)로 소급되며,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이른바 '아르스 마그나(Ars Magna)'의 계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말은 '거대한 비법'이라는 뜻이며, 머리로 배워서 익히는 기술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전수(傳授)되는 비의(秘義)라는 뜻이다. 따라서 전수자만이 그 비밀을 안다. 연금술이란 금속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신비로운 어떤 힘을 추구한 것이다. 이 힘은 물리적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그 무엇, 즉 아르스 마그나라 해야 옳을 것이다. 금속을 변화시키는 지혜, 바로 영지(靈知)를 구현해 보려는 것을 생의 목표로 하기에 이 작품의 저자인 나스 키노코씨는 연금술사를 마술사와 같은 부류, 즉 진리로의 도달을 인생의 최종목표로 삼는 신비주의자들로 분류했다. (연금술사에 관한 것은 MELTY BLOOD 참조) * 소웨르(Sowulo) : 고대 아일랜드에서 사용 된 문자로, 태양을 의미한다. 룬에 관해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이하의 페이지를 참조하시길 권장한다. [ 참조 : MapleForest - http://www.maple-forest.com/index.htm → http://www.maple-forest.com/rune.htm#top ] * 아라야식 (Alaya識) : 유식불교의 팔식 중 제8식 아뢰야식. 자세한 것은 팔식(십식까지도 있는 듯)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일단 간단히 아라야식에 관해서만 소개를 하도록 하고, 불교 교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아래의 참조 홈페이지를 찾아가 읽어보길 권장한다. 아뢰야(阿賴耶)는 인도의 아알라야(alaya)란 말을 그대로 음사한 것이다. 아라야란 ‘밑층에 깔려있는, 파묻히다’라는 말을 명사화한 것이며, ‘감추다, 간직하다’라는 뜻이다.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이렇게 모든 업의 산물들을 스스로 저장하는 능장(能藏)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세력들을 소장(所藏)할 장소로서의 처소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아뢰야식은 앞에서와 같이 항상 제7 말나식의 집착과 아집 등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이 경우 제8 아뢰야식은 집장(執藏)의 뜻이 강하다. 왜냐하면 아뢰야식의 본래 의미는 유루법(有漏法)이 현행(現行)하는 사이, 곧 아집 등이 활동하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지 아집 등이 없는 성인위에 오르면 이 식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 참조 : 불교종합 커뮤니티 - 달마넷 - http://www.dharmanet.net/ → http://www.dharmanet.net/content/20020320/200203201016645340.asp (유식불교 - 팔식의 구조) ] 아뢰야식 연기설(Alaya識 緣起說) : 아뢰야는 업의 처소를 말하는데 사람이 선악을 지으면 그것이 하나의 세력이 되어 생명체를 탄생한다는 설. [ 참조 : 인터넷 불교학교 - http://www.gbs.or.kr/ → 12연기 - 연기의 주체 http://www.gbs.or.kr/html/ge10.htm# ] -------------------------------------------------------------------------------- [←|↑|→] -------------------------------------------------------------------------------- 안개가 짙은 날에는 숲 속. 녹색의 냄새와 벌레의 소리. 저 멀리 걸어가서. 저 멀리 걸어가서. 햇님이 없는 들판에서, 어여쁜 꼬마들과 만났어. 슬슬 점심때가 되었으니, 이제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돌아갈 필요는 없어. 여기는 계속 영원해」 아이들은 노래 부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원(永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계속 남아 있어서」 「그것은, 계속 변하지 않아」 요람(搖籃)의 합창. 별빛에 비추이는 풀의 언덕. 우유 같은 안개가 흩어지기 시작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사라져간다. 영원 같은 것은 모르겠어. 빨리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저기 먼 곳이 나의 집. 저기 먼 곳에 나의 집. 녹색의 냄새와 벌레의 소리. 안개가 짙은 날에는 숲 속. 분명, 영원히 돌아갈 수 없어. / 망각녹음 망각녹음\ 1 별로 춥지 않았던 12월이 끝나고, 나는 16살의 신년을 맞이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말로 대표되는 정월의 훈훈함은 몇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정월을 즐길 수가 없었다. 아아, 정말, 내가 정말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젠장! 하고 생각할 정도로 즐길 수가 없다. 오히려 정월에 관계된 기억만을 잘라 내버릴까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편리하게 어찌할 수 없으니까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 방에 있어도 우울한 기분이 해소 될 리 없어서, 나는 베개를 내동댕이치고, 발뒤축으로 찍거나 하는 화풀이를 꾹 참고서, 토우코 사부의 사무소로 외출하기로 한다. 우리 집은 중류층 가정인 주제에, 이런 계절한정의 이벤트는 빼먹지 않고 꼭꼭 대응한다. 나에게도 하쯔모데에 입고가기 위한 나들이옷이 준비되어있었지만, 기모노 따위는 입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입던 평상복 차림으로 외출하기로 했다. 「어머, 아자카쨩, 외출이니?」 「네. 신세지고 있는 분께 인사를 드리러요. 저녁때까지는 돌아오겠습니다」 웃는 얼굴로 말하고, 나는 코쿠토가를 뒤로했다. 1월 1일의 정오 무렵. 올려다본 하늘에는 구름뿐. 그것은 어딘가 지금의 기분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의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 사실, 나도 처음에는 정월을 좋아했었다. 그것을 싫어하게 된 것은, 잊을 수도 없는 3년 전의 1월 1일. 96년을 맞이한 그날, 나는 지방에 있는 친척 댁에서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 코쿠토 아자카(黑桐鮮花)는 몸이 약하다. 학교의 체육수업에서 A이하의 성적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되어있다. 나에게 도회지의 공기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골에 있는 숙부님 댁에 맡겨진 것이 10살 무렵. 그 뒤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의 수일간만은 집에 돌아와 있었지만, 사실은 그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코쿠토 아자카를 양녀로 삼고 싶다는 숙부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본격적으로 지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몸이 약하다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집을 떠난 원인은, 오라버니인 코쿠토 미키야였다. 그래, 고백할거라면. 나는, 어째서인지 그 어딘가 모자란 듯한 오라버니가 좋았다. 곤란하게도 남매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애정이라서 뒷감당이 안 된다. 당시의 나는 아직 초등학교에 중간 정도 학년의 어린애였다. 그렇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정신연령이 남들보다 높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보통사람 이상의 용모나 학력 때문일까,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차가운 성격이기 때문일까는 알 수 없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은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키야에 대한 감정은 진짜였다. 좋아한다던가, 같이 있고 싶다던가, 하는 그런 레벨의 감정이 아니었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할 수 있다면 가둬놓고서 누구의 눈에도 띄게 하고 싶지 않다고까지 골똘히 생각에 잠길 정도로 진심이었다. 아니, 지금도 진심이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어렸을 때처럼 스스럼없이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원래부터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랑도 아니라서, 지금은 얌전하게 반격의 찬스를 엿보고 있다. ……반격. 그래 반격이다. 내가 지방으로 이사한 것은, 오로지 미키야와 떨어지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그 이상 같이 있으면, 분명 나는 여동생으로서 인식되어버린다. 호적상의 사실 따위는 어떻게 되어있든 상관없다. 단지, 미키야가 무의식 하에 나를 여동생이라고 머릿속에 각인 해버리는 곤란했다. 그래서 병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집을 떠났다. 그 뒤에는 미키야가 여동생으로서의 나를 잊었을 무렵, 씩씩하게 돌아와 주면된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나는 더 이상 없을 정도의 숙녀가 되려고 매일 매일을 보냈다. 역시 반하기보다는 반하게 만들고 싶다. 미키야의 취향은 빠삭하게 알고 있으니, 그런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봐, 계획은 역시 완벽해. 그런데, 터무니없는 방해자가 나타나버렸다. ……아니,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3년 전의 정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생이 되어 겨우 사랑을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던 나는, 상황을 살피러 집에 돌아왔다. 그때,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미키야 녀석이 집에 고등학교 친구를 데리고 왔다. 료우기 시키, 라는 이름의 그 여자와 미키야가 사귀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죽 쒀서 개준다는 것은 이런 걸 말하는 걸까. 설마, 이런 표표(飄飄)한 남자와 사귀는 여자가 있다니, 나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잖아? 그런 건 취미가 너무 나쁜거니까! 어쨌든, 그 날은 너무나 심한 쇼크에 눈앞이 새하얘져버려서, 나는 멍한 상태가 되어 지방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그 뒤로 어찌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때, 료우기 시키의 부보(訃報)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교통사고란 불행을 당하여 미키야는 외톨이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때는, 뭐어 조금은 시키를 동정했었어. 한번밖에 만나지 않았었지만, 시키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로 나는 안심했다. 시키 같은 괴짜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겠지. 나는 순조롭게 고교를 졸업하고, 목표로 하던 대학에 들어가면 된다. 그러고 나면, 남은 것은 밀어붙이는 것뿐이다. 8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있으면 여동생도 뭐도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고, 나는 만족스럽게 숙부님 댁의 테라스에서 홍차를 마시며 득의양양하게 미소 지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적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시키 녀석, 작년 봄에 의식을 회복했다. 미키야는 그 사실을 전화로 전해주기까지 해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솔직해 지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행동은 빨랐다. 곧 도심에서 명문, 그것도 기숙사제의 고등학교를 찾아 나섰고, 전입 수속을 밟았던 것이다. 다행히 숙부님은 아버지와는 달리 이름 있는 화가였고, 나는 성적 우수자이면서, 흠잡을 데 없는 양가집 아가씨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입학에 본인의 성적보다 부모의 재산이 중요하다고 하는 레이엔 여학원(禮園女學院)에도 수월하게 전입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반년이 경과하고, 나는 싫어하게 되어버린 정월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도 사실은 미키야와 하쯔모데(初詣)에 갈 예정이었는데, 어젯밤에 시키가 찾아와서 미키야를 낚아 채 가버렸다. ……정말로. 사태는, 일각의 유예도 없는 상황이 되어있던 것이다. … 나의 마술 사부(師)인 아오자키 토우코의 공방은, 공장지대의 한가운데에 있다. 언뜻 보기에는 만들다 말고 방치되어있는 폐 빌딩이지만, 안에는 멀쩡한 사무소 같은 것이 꾸며져 있는 이상한 건물이다. 1층은 차고로 쓰고 있고, 2층과 3층은 불명, 4층에 미키야가 일하러 다니는 사무소가 있다. 오라버니가 다니는 회사의 소장은, 달리 말하면, 나의 사부이기도 한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응, 복 많이 받아라」 사무소에 들어가 인사를 하자, 토우코 사부는 나른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늠름한 타입의 미인이었다. 평소대로의 수트 차림은 남장 여인(麗人) 그 자체로, 안경을 벗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성별이 애매해진다. 「뭐야 아자카. 오늘은 코쿠토와 외출하려던게 아니었어?」 소장석에 앉은 채로 토우코 사부는 뻔한 질문을 던져 왔다. 「시키가 나타나서 데려가 버렸어요. 자기가 강의를 결석하겠다고 말해놓고서는 좀 뭐하지만, 예정을 원래대로 되돌려도 괜찮을까요?」 「마침 잘됐군. 아자카에게 할 말이 생긴 참인데」 ……? 토우코 사부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니, 별일이다. 나는 그녀에게 커피를 타주고, 내 것으로 일본차를 타 와서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하실 말씀은 어떤거죠?」 「아아, 아자카는 코쿠토에게 고백한걸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말야」 정말, 사부는 요만큼도 진심이 없는 질문을 했다. 「안했습니다. 오라버니에게는 눈치 채이지도 않을 생각인데, 그게 무슨 일이라도?」 「───재미없군. 코쿠토라면 눈에 보일 정도로 허둥댈 텐데 너는 눈썹하나 깜짝 안하고 속답 해버려. 남매가 이렇게까지 틀릴 수 있다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라구. 정말로 남매인지 의심해본 적은 없는 거야? 아자카」 「정말로 남매가 아니라면 문제 따윈 없어요」 내심 토라져서 대답하자, 토우코 사부는 가볍게 웃었다. 「이야, 너는 정말로 순진해. 미안, 지금 건 쓰잘떼기 없는 질문이었어. 나도, 1년에 한번정도는 실언을 하는 것 같군. 용서해」 「일년에 한 번하는 실언을 정월에 해버리시다니. 대단한 스타트 대쉬군요. 그래서, 하실 말씀이란 건 무슨 일인가요?」 「너의 학교에 관한 얘기야. 아자카는 사립 레이엔 여학원 1학년생이었지. 1학년 4반의 사건에 대해서, 들은 것 없나?」 1학년 4반? 그건, 혹시──── 「다치바나 카오리(橘佳織)씨가 있던 반이네요. 저는 A클래스라서 D클래스의 일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다.치.바.나, 카.오.리? 뭐야 그건. 그런 이름은 리스트에 없는데」 토우코 사부는 불유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다. 나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나와 토우코 사부 사이에는 서로 어긋난 점이 있는 것 같다. 「……저기, 무슨 말씀이시죠?」 「그래, 아자카는 모르는 건가. 그렇지, 클래스가 달라서는 화제가 되지 않는 건가. 레이엔은 클래스 별로 격리된 시스템인 것 같으니까 말야. 그 이야기는 4반 학생 들 밖에 모른다는 거군」 혼자서 납득하고서, 토우코 사부는 사건을 상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건의 시작은 2주전. 겨울방학을 눈앞에 둔 레이엔 여학원 고등부 1학년 4반 교실에서, 두 명의 학생이 말싸움 끝에 상대를 커터로 찔렀다는 것이다. ……레이엔이라고 하는, 봉쇄된 그 이세계(異世界)에서 칼에 찔리는 사건이 일어나다니, 갑작스러워서 믿겨지지가 않는다. 레이엔은 한번 입학하면 어지간한 특권이 없는 한 밖에 나갈 수 없는, 수용소 같은 학원이다. 그래서 내부의 공기는 거짓말처럼 조용하고, 멈춰있다. 폭력사태 따위가 일어날 리 없는 병적일 정도로 세정(洗淨)된 세계인데. 「───그래서, 부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상처 자체는 대단한게 아냐. 문제는 좀 다른 곳에 있지. 두 학생은 둘 다 상처를 입었다. 이 의미를 알겠나? 아자카」 「……말싸움 끝에 두 사람이 동시에 상대를 찔렀다는 소리네요. 곧 양자의 말싸움에 우열은 없었고 이야기는 평행선인 채로 두 사람이 동시에 결론에 달했다, 고 하는」 「그래. 말싸움의 내용은 조금 이따가 말하지. 문제는 아직 계속되고 있어서 말야. 이 사건은 곧바로 보고 되지 않았어. 겨울방학에 들어가고 나서, 학장이 보건실의 기록을 조사해보던 중에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의 기록이 있었기 때문에 발견한 사고야. 4반의 담임은 그 사고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소리가 되지」 4반───D클래스의 담임은 하야마 히데오(葉山英雄)라고 하는, 레이엔에 두 명 있는 남성교사 중 한 명이다. 그렇지만 그는, 11월의 학생 기숙사 화재 뒤에 책임이 물어져, 담임에서 물러나게 되었어. 그의 대타로는 분명…… 「쿠로기리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토우코 사부는 으응, 하고 끄덕인다. 「마더도 그렇게 말하더군. 1학년 4반의 담임을 맡고 있던 쿠로기리라는 교사는 아주 신뢰가 두터운 거겠지. 마더가 그를 추궁했었을 때, 쿠로기리 사쯔키(玄霧皐月)는 그 사고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아. 마더에게 지적을 받고 갑자기 기억해냈다고 하더군. 어쩐지 수상쩍은 얘기지만, 마더 왈,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쿠로기리 사쯔키는 정말로 잊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2주전의 사건을 깨끗하게 잊어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혹시, 쿠로기리 사쯔키라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을 지도 몰라, 하고 나는 생각해 버렸다. 「말을 다시 돌리겠는데, 학생들의 말싸움의 내용이야. 두 사람의 학생은 방과후에 다른 학생들이 있는 가운데서 말싸움을 시작했어. 그 내용을 다른 학생이 듣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비밀이 알려져 버린 것 같더군. 그것이 또, 특수한 케이스의 비밀이라서 말이지. 본인이 잊고 있던 비밀을 폭로 당했다는 거야」 「───에?」 「그러니까, 본인이 잊고 있어서 기억도 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비밀을, 상대가 밝혀 버렸다는 소리야. 이 두 학생은 소꿉친구라서, 자신이 잊고 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친구인 상대방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에게는 본인조차 잊고 있던 일이 적힌 편지가 한달 가까이 보내져왔다고 하더군. 처음에는 편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어. 그렇지만 읽어 가는 도중에,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기억해내고 섬뜩해졌다는 거지, 어쩐지. 기분이 나빠져서 친구를 추궁해보았는데, 그 친구도 마찬가지로 편지가 보내져오고 있었다고 해. 두 학생은 서로가 범인이라고 믿어버리고 동시에 커터로 서로를 찔렀다는 이야기」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본인조차 잊고 있는 기억이 편지가 되어 보내져온다? 본인조차 모르고 있을 비밀을 어딘가의 누군가가 편지로 보내온다는 소리인가. 「새로운 수법의 협박인가요, 토우코씨」 「아니, 편지에는 잊고 있던 과거의 사건들밖에 적혀져있지 않았다고 하더군. 협박하고 있는 것도 아냐. 스토커처럼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거의, 그것도 본인조차 잊고 있을 만한 사건을 아는 것은 불가능해. 기분 나쁘다고 한다면, 뭐어 기분 나쁜 이야기군」 기분 나쁜 정도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면서 편지를 읽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한 달이나 계속된다고 하면 어떨까. 자신이 모르는 일을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정체불명의 감시자의 편지를 읽을 때, 그녀들의 정신은 막다른 곳에 몰려있었겠지. ……커터로 서로 찌른다는 것은 오히려 가볍게 끝난 결말인지도 모른다. 「토우코씨. 그, 편지의 주인공은 밝혀졌나요?」 「아아. 범인은 요정이라더군」 토우코 사부는 딱 잘라 말했다. 나는 놀라서 에엣, 하는 소리를 내버렸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요정이야. 뭐야, 아자카는 이 이야기도 들은 적 없는 건가? 레이엔에는 영감(靈感)이 강한 여자가 모이는 건지, 목격자도 많다고 하던데. 아자카의 눈은 영체(靈體)에 초점이 안 맞으니까 보이지 않겠지만, 기숙사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것 같더군. 밤에, 머리맡에 요정이 날아온다. 눈을 떠보면 과거 수일간의 기억이 쏙 빠져있다는 거야. 기억을 채집하는 것은 요정의 일 같은 거니까, 아마 틀림없겠지. 1학년 4반의 사건과 요정의 이야기는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 하겠군」 토우코 사부는 담담하게 말한다. 나는, 이 사람 밑에서 마술을 배우고 있으면서도, 그 말을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토우코씨는 요정 이야기를 믿고 계신 건가요?」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레이엔이라면 요정정도는 살고 있겠지. 그곳에는 그런 분위기만큼은 충족되어 있으니까 말야. 그 학교는 세상과는 격리되어서, 부지 내에는 자동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엄숙한 교칙과 정결한 시스터들뿐이고, 소년소녀를 열광시키는 유행들은 침입할 수 없어. 부지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들은 이미 삼림처럼 우거져있어서, 그곳에서 길을 잃으면 반나절동안은 밖으로 나올 수 없겠지. 공기는 어딘가 사탕 같은 달콤함을 머금고 있고, 시계바늘은 노파가 뜨개질을 하듯 느릿느릿 나아가지. ───봐, 그야말로 도심에 자리 잡은 요정의 고향 그 자체잖아」 「잘 아시는군요. 마치 학원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말투에요, 토우코씨」 「당연히 알고 있지. 나는 그곳의 OG인걸」 ───이번에야말로. 나는, 깜짝 놀라는 소리를 냈다. 「뭐야 그 눈은. 마더 리즈바이페가 제3자에게 학원의 치부를 상담해 올 거라고 생각하나? 어젯밤, 학장에게서 원인의 규명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의뢰를 받았어. 내 일터는 탐정사무소는 아니지만, 딴사람도 아니고 마더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 없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학원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눈에 띄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할까 하고 있었는데 말야. ──아자카」 듣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며 나는 고개를 돌린다. 토우코 사부는 감정 없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그럼. 요정이란 걸 듣고서 아자카는 무엇을 연상했지?」 「──요정, 말인가요. 그, 작은 여자 애의 등에 날개가 달렸다던가」 자신 없이 대답하자 토우코 사부는 꿈이 있으니 충분해, 라고 말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요정이라고 해도 종류는 가지가지니까, 그런 것도 있을지도 몰라. 단, 그것은 마술사가 만들어낸 사용마(使い魔)로서의 요정이지. 요정은 악마 따위와는 달리, 어떤 상념이 모여서 형체를 이룬 실상환상(實像幻想)이 아니라, 버젓하게 생물의 계통트리에 포함되어있는 존재야.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신체구조를 하고 있지는 않아. 고블린(Goblin)이라던가 레드캡(Red Cap)이라던가가 어떤 의미로는 순수한 요정이란 소리가 되지. 요정과 용(龍)으로 대표되는 환상종(幻想種). 일본에서는 순수한 오니(鬼)가 이것에 해당되겠는데, 그들은 때때로 우리들과 접촉을 해왔어. 그들은 악마들처럼 인간의 소원에 의해 생겨나고 소원에 의해 불려나오는 수동적인 것들이 아니야. 어디까지나 능동적인 존재지. 스코틀랜드부근에는 요정의 장난이 지금가지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장난 중에는 인간에게 무언가를 잊게 만든다, 라는 것이 있어. 그밖에는 어린아이를 숲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일주일정도 돌려보내지 않거나, 갓 태어난 아이를 요정의 아이와 바꿔치기 하거나, 집의 현관에 토끼의 사체를 흩뿌려놓거나 하는, 실로 어린애장난의 레벨에서 벗어나지 않는 웃음 짓게 만드는 장난뿐이지. 정말로 통일성 없는 녀석들의 장난에는, 그렇지만 공통점이 딱 한 가지 있어. 요정들에게는 말야, 손득(損得)감정이란 것이 없어. 그들은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에 하고 있을 뿐이지, 그 뒤에 무엇을 원하는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렇지만 레이엔의 케이스는 달라. 빼앗은 기억을 편지로 써 보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악의가 느껴지잖아? 한마디 더하자면, 레이엔에 나타나는 요정이란 것은 아자카가 말한 대로의 귀여운 외견을 하고 있는 것 같더군」 ……과연. 역시 토우코 사부, 이런 식으로 돌려서 말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분한걸. 나는, 나의 프라이드를 위해서 그 뒤를 스스로 말해버린다. 「곧, 레이엔 여학원에 나타난 요정이란 것은 만들어진 것, 사용마. 악의가 있는 이상, 그것을 조종하는 마술사도 존재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래그래, 하고 토우코 사부는 기쁜 듯이 끄덕인다. 「사용마에 관해서는 이전에 설명했었지? 마술사가 스스로의 육체의 일부를 제공해서 만들어낸 분신으로서의 사용마와, 다른 생물을 전신(前身)으로서 개조한 수족으로서의 사용마. 이번에는 수족으로서 사역시키는 사용마임이 틀림없어. 사람의 기억을 훔치는 것뿐인 단일성능이야. 하는 짓이 어린애들 같아서 한심해」 ……그 한심한 일의 처리를 떠맡게 되는 내 마음도 생각치 않고, 사부는 말을 계속한다. 「뭐어, 그것도 할 수 없나. 요정의 사용법은 어려워. 술자(術者)는 어느 사이엔가 그것에게 요망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요망을 들어주고 있는 경우가 많아. 녀석들은 제멋대로의 요구만 하니까 말야. 때문에, 옛날부터 요정을 사용마로 하려는 마술사는 적었어. 있다면 그 녀석은 일류의 실력자야.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라. 요정과 비슷한 사용마를 사용하고 있는 것뿐인 미숙자일테니까 수업에는 딱 좋아. 그래서 말인데, 아자카. 사부로서 명령한다. 목적은 진상의 규명. 기간은 겨울방학이 끝날 때까지. 원인의 배제(排除)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할 수 있다면 처리해버려」 ……역시 이런 결과가 되는구나. 나는 거의 자포자기했지만, 애써 냉정하게 끄덕였다. 「───수업의 일환이라면 할 수 없지요」 그러면 자세한 자료를 주지, 하며 토우코 사부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렇지만 그 전에, 나는 단 한가지의 불안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토우코씨. 저는 요정 따위는 볼 수 없어요. 토우코씨처럼 마안(魔眼)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구요」 나의 질문에, 토우코 사부는 씨익 웃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느꼈던 적 없는, 킥을 날려주고 싶어질 정도로 불길한 웃음이었다. 「아아, 그거라면 괜찮아. 눈의 대용품은 잊지 않고 준비해뒀어」 사부는 킥킥하고 소리 죽여 웃으면서 그 내용을 말해주지 않았다. 망각녹음\ 2 나와 그녀는, 레이엔 여학원 고등부 직원실을 뒤로했다. ◇ 「나, 전부터 생각했는데 말야. 토우코는 사실 머리가 나쁜게 아닌가 하고」 1월 4일, 월요일, 흐린 날씨의 정오 무렵. 내 옆에, 나의 "눈의 대용품"이 밉살맞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이 녀석이 적이라는 것을 접어두고, 거짓 없는 본심으로 동의한다. 「맞아. 하필이면 너를 학원 내에 들여보내다니, 제정신으로 벌이는 사태라고 생각할 수 없어」 「너무한데. 이번의 희생자는 틀림없이 분명히 나라구. 전학할 예정 같은 건 있지도 않은데, 3학기부터 전학해오는 척 연극까지 하라고 했단 말야」 우리들은 고등부 교사(校舍)의 복도를 걸으며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서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이름의 소녀다. 레이엔 여학원의 교복은, 그대로 미사에 나갈 수 있을 만큼 수녀복에 가까운 디자인이다. 검은 예복에 학생다운 기능성을 혼합시킨 것으로, 일본인에게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교복이다. 그런데도, 료우기 시키는 입고 있어도 평상복처럼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흑발은 교복의 색 보다 짙어서, 신체를 덮는 흑색에 녹아들지 않는다. 가느다란 어깨와 목덜미가 더욱 하얗게 보여서, 내가 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시키는 연상인 주제에, 어쩐지 어려 보인다. 키도 나와 별 차이 없지만 단정한 그 모습은, 차분한 크리스천 소녀를 멋지게 의태(擬態)하고 있었다. ……어쩐지, 아주 재미없다. 「아자카. 저쪽에 두 사람, 이쪽을 보고 있어」 지금 막 지나쳐간 상급생을 쳐다보는 시키. 이쪽을 관찰하고 있는 학생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는지, 나는 간단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레이엔은 여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향에 있어서 남성이라는 요소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그녀들은 남성상(男性像)이란 것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에, 중성적인 미인은 학년을 불문하고 인기가 있다. 레이엔에는 그런 타입의 사람은 적어서, 시키 같은 사람이 정말로 들어온다면 틀림없이 아이돌이 되겠지. 스쳐지나간 학생들은 어딘가 남성적으로 늠름한 시키의 옆모습을 보고, 그런 기대에 재잘거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전학생이 흔치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뿐이야. 이번 사건에는 관계없겠지」 「흐음. 겨울방학인데도 학생이 있군」 「우리는 전원 기숙사 입사제도(全寮制)라서, 기숙사에 남고 싶어 하는 학생은 의외로 많아. 교사는 도서실이 있는 1층과 4층만 개방하고 있지만, 기숙사에 있는 도서실로 대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까지 오는 사람은 별로 없어. 교칙위반으로 시스터에게 불려오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 시스터의 호출도 3번이면 퇴학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몇 번에 걸쳐 시스터의 호출을 받았다.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 학원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부모님과 만나러 간다는 이유조차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레이엔에 입학한다는 것은 그런 것으로, 보호자들은 그 철저한 관리체제를 기대하고 입학시킨다. 나나, 친구인 후지노가 몇 번이나 외출해도 퇴학당하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후지노는, 아버지가 이 학원 기부금의 3할을 대고 있는 부자이기 때문에 퇴학당하지는 않는다. 라기 보다, 시켜주지 않는 것 같다. 나는……뭐어, 화가인 숙부님의 네임밸류도 있겠지만, 일단 레이엔의 진학률을 올리기 위해 고용된 용병 같은 존재라서, 외출을 너그럽게 봐주고 있었다. 레이엔도 학교임에는 틀림이 없는지라, 졸업생 가운데에 유명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있다면 그보다 더할 나위가 없다. 나는 처음부터 T대학에 지원하고, 합격한다는 것을 전제로 입학을 허가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분명, 공부만은 하나님께 기도해서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레이엔의 경영진의 생각은 속물적이지만, 나에게 별로 불만은 없었다. 그 덕분에 예외적으로 외출을 허가 받고 있었고. 그렇게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자, 옆에 있는 시키는 흥미 없는 나른한 눈동자로 학교건물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것에도 곧 질렸는지, 그녀는 가슴에 늘어뜨려진 십자가 장식을 만지작거린다. 「이상한 학교야. 교사가 시스터인건지, 시스터가 교사인건지. 그러고 보니 아까 예배당이 보였는데, 거기서 미사라던가 하는 것을 하는 건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던가 뭔가 하는, 그거」 시키는 소박한 질문을 해온다. 그렇지만, 그런 것 따위가 뭐 어쨌다는 거야, 바보 시키. 「───예배는 아침저녁에 있어요. 미사는 일요일에 한번 있지만 학생의 참가가 의무화된 것은 예배뿐이고 미사는 자유참가. 나처럼 고등학교에서 레이엔으로 전학해온 사람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니까, 미사에 나가는 일은 없어. 시스터들에게 주는 인상은 변하지만, 신앙은 자유니까 어쨌든 강제적인 것은 아니에요. 레이엔은 오래전부터 미션스쿨이었지만, 수년 전부터 양가의 아가씨육성학교가 되고 나서부터는 기독교에 흥미가 없는 애들도 많은걸. 아무리 품행이 불량한 애라도 레이엔을 졸업하면 구혼자가 줄을 서게 되니까. 그것이 목적이라서 딸을 입학시키려는 부모가 태반이겠지. 결국, 정말로 신을 믿어서 입학하는 애들은 줄어들고 있어요. 지금의 일본에서는 학생들의 부모도 기독교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 입학시키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학교 안에는 진짜 크리스천도 있는 듯 하지만」 「하나님, 인가. 있을 곳에는 있을지도 모르겠구만 그런거」 ……어쩐지, 엄청난 위화감이 든다. 시키의 남자 같은 어조에는 익숙해져있었지만, 가련한 수도녀로 밖에 보이지 않는 지금 모습으로 이야기하면 당황하게 되어버린다. 「하나님은 모르겠지만, 다른 것은 어때? 찾았어?」 걸으면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며 물어본다. 시키는 아니, 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전혀. 밤까지 기다려볼 수밖에 없겠군, 이렇게 되면」 시키는 졸린 듯한 눈빛으로, 그런 말을 한다. ……이 여자는 보통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있다. 유령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물체의 부서지기 쉬운 부분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운동신경은 발군이고, 성격은 흉폭 하기까지 하다. 확실히 말해, 미키야와는 너무나 정 반대인 "특별"한 인간이다. 나는 다른 어떤 상대보다, 시키가 미키야와 함께 있는 것이 싫다. 그래, 내가 토우코 사부를 사부로 삼게 된 것은, 원인을 말하자면 이 녀석이 원인인 것이다. 미키야의 상대가 평범한 여자였다면 하루 만에 재기불능으로 만들어버렸을 테지만, 료우기 시키는 보통 내기가 아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맞설 수 없다, 고 판단한 나는 자신의 상식을 전당포에 맡기고, 마술사인 아오자키 토우코밑에 제자로 들어갔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실력으로는 시키에게 대적할 수 없어서, 지금은 이렇게 수업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조금 복잡한 기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밤은 아자카의 방에서 보내는 건가? …………뭐어, 네가 있는 곳이라면 참기로 할까」 시키는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미키야의 말에 의하면, 시키는 자신이 잠자리로 삼은 장소 외에는 앉으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시키는 아직 보지도 않은 내 방에 묵는 것을 참겠다고 한다. 복잡한 이유는 이것으로, 즉 시키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시키가 싫은데도, 이래서는 어딘가 짝이 안 맞아서 실천에 옮기기 힘들다. 나도──미키야에 관한 것이 없었다면, 료우기 시키의 사람됨은 내가 좋아하는 부류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말야. 이번에는 내가 한숨을 흘린다. 그러자, 시키는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아자카. 어디로 가는 거야. 기숙사에 가는 거 아니었냐?」 「기숙사에 볼일은 없잖아. 우선 4반의 담임에게 이번 일에 대해 물어볼 테니까, 따라와. 당신은 내 눈이니까 만나는 사람들 전부를 식별해줘야겠어」 「───담임이라면, 하야마란 놈인가」 「틀려요. 하야마 선생님은 11월에 이 학교를 떠났어. 지금은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사람이 담임을 맡고 있고. 두 사람 다 우리학교에서는 거의 없는 남자교원이야」 「여학교에 남자 교사인가. 다른 곳이라면 별일 아니겠지만 이 학교에서 남자란 것은 이상(異常)인걸」 시키의 말은 당연한 이야기다. 졸업 할 때까지 학생을 흠잡을 데 없는 여성으로 만들어내는 레이엔에 있어서, 남자 교원이란 것은 방해자 밖에 되지 않는다. 불순이성교제를 막기 위해서 일부러 외출을 금지했어도, 적이 안쪽에 있어서는 트로이 목마라고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네. 그렇지만, 그것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어. 하야마 히데오라는 사람은 학원에서도 싫어하는 사람이었어. 교원면허를 가지고 있는지 조차 의문인 사람으로, 실제로 학생들에게 손을 뻗은 일도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시스터는 고사하고 마더조차 강하게 주의를 주지 못했어. 어째서냐면 우리 이사장은 지금은 오우지(黃路)라는 성이지만, 사위로 들어오기 전에는 하야마라는 성이었거든」 「이사장의 품행 불량한 동생이란 소린가. 그래서 그 녀석은 어째서 그만둔 거야」 「11월에, 내가 토우코씨의 사무소에 있었던 거, 기억나? 그때에도 말했지만, 고등부 기숙사에 화재가 있었어. 1학년과 2학년 C클래스 이하의 기숙사인 동관이 전소되어서 말야. 레이엔의 기숙사는 학년별로 나뉘어 있거든. 거기서 세부적으로 클래스별로 나뉘어서 관리되고 있는데, 불이 난 곳은 1학년 4반의 블록이었어. 하야마 히데오 선생이 말야, 무슨 생각이었는데, 불을 지른 거야. 이사장은 당연히 그를 잘라 버렸지만, 그 무렵에 하야마는 이미 학교에서 사라진 뒤였어」 도망친 거겠지, 라고 나는 덧붙인다. 그 화재의 정보는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불을 끄러온 소방사의 입도, 레이엔에 재학하는 학생의 아버지들이 협력해서 입을 막았다고 한다. ……소중한 딸이 있는 학교에서 불상사가 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겠지. ……사람이. 한 사람, 죽어버렸는데도. 「그래서, 쿠로기리라는 사람은 어떤데?」 「쿠로기리 선생님은, 문제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하야마와는 정 반대. 레이엔의 학생 중에서 그 사람을 싫어하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해. 쿠로기리선생님은 올해 여름부터 근무하고 있는데, 하야마처럼 백은 없다는 얘기야. 단지 마더의 보증이 있는 것뿐이야. 우리학교, 뿌리를 찾는다면 영국에 있던 어딘가의 명문교의 자매교라고 하더라구. 영국의 본교는 없어져 버렸지만, 자매교인 레이엔은 아직 남아있어. 마더로서는 교사는 전원 영국인으로 하고 싶겠지만,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순수한 영국인 교사 따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 그 점에서, 쿠로기리 선생님은 외국태생에다가 발음도 완벽. 지저분한 미국 발음이 없다고 시스터들도 기뻐하고 있어」 「그럼, 쿠로기리라는 사람은 영어 교사인가?」 으음, 하고 시키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린다. ……혹시. 유독 전통적인 것만을 고집하는 이 녀석은, 영어란 것이 전혀 안되는지도 모른다. 「영어뿐만이 아니야. 분명 독일어라던가 프랑스어 교원면허도 가지고 있다고 해. 중국어도 어느 정도는 마스터한 듯 하고, 남미의 어떤 부족의 말까지 알고 있다고 하고……뭐어, 사람들이 언어 오타쿠라고 수근대는 이상한 사람이야. ……코쿠토 아자카와 료우기 시키 에게 있어서는, 다른 의미로 특별한 사람. 나는 그 선생님을 대하는 게 아주 거북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멈춰 선다. 1층의 가장자리에 있는 영어교사의 준비실. 레이엔에는 직원실은 사무를 보는 장소이고, 각 교과의 준비실은 교사마다 한 개의 방이 마련되어있다. 쿠로기리 선생님이 사용하고 있는 곳은, 하야마 히데오가 사용하고 있던 준비실이다. 나는 시키에게 들키지 않도록 작게 심호흡을 하고서, 준비실의 문을 노크했다. ◇ 쿠로기리 사쯔키는 우리들에게 등을 보이면서 책상을 향해 앉아있었다. 그의 책상은 창가에 있어서, 잿빛 햇살이 방을 비추고 있다. 준비실은 그 이름과는 달리, 연구실처럼 어질러져있었다. 「쿠로기리 선생님. 1-A의 코쿠토 아자카입니다. 마더에게서 말씀은 들으셨나요?」 내 목소리에 네, 하고 끄덕이며 그는 돌아본다. 의자가 빙글 회전하며, 쿠로기리 사쯔키는 우리들과 마주보았다. 「───────」 시키가 숨을 삼키는 기미가 느껴진다. 나도 처음 이 사람과 마주했을 때에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아아, 네가 코쿠토군인가. 응, 들은 대로의 애 같구나. 우선 앉도록 해. 얘기가 길어지겠지?」 부드럽게 말하며, 쿠로기리 선생님은 미소 짓는다. 나이는 25세정도로 레이엔의 교사 중에서 제일 젊다. 아무리 봐도 문과계열 같은 가냘픈 몸매와 검은 뿔테의 안경이, 이 사람을 무해한 인물이라고 알려준다. 「1학년 4반의 일 일까?」 「……네. 커터로 찌른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나의 대답에, 쿠로기리 선생님은 미안하다는 듯이 눈을 약간 찡그렸다. 그것은 보고 있는 이쪽이 슬퍼질 것 같은,쓸쓸한 표정이었다. 「힘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나 자신도 그 사건에 관해서는 기억이 애매해. 자세한 기억이 없는데다가, 그 애들을 말릴 수도 없었어. 분명 쿠로기리 사쯔키란 사람은 현장에 있었는데도 말이야.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자신의 무력함보다, 상처 입은 학생들을 생각하며 쿠로기리 사쯔키는 눈을 감는다. ……이 사람은, 똑같다. 누군가의 비극을 깊이 생각하면서, 떠맡을 필요 없는 짐을 지고 있다. 결코 타인을 상처 입히지 않는, 해 없는 너무나 다정한 인간────. 「선생님은, 그 두 학생들이 말싸움을 한 원인을 알고 계신가요?」 나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물어본다. 쿠로기리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다른 학생들의 말로는 내가 두 사람을 말렸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그 날의 기억이 없어. 응, 덜렁대면서 뭔가를 잘 잊어버린다는 소리는 자주 듣지만, 정말로 기억이 사라져버린 것은 처음이야. 무언가 중요한 일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면 돌이킬 수가 없어. 아니, 그 이전에 원인은 나인지도 몰라. 나는 그날, 그 애들과 같은 교실에 있었어. 그것만으로도, 나는 책임을 추궁당해야 하지」 생각에 잠겨있는 표정으로 선생님은 말한다. 거기서, 나는 겨우 깨달았다. 잊은 비밀을 편지로 받고 있다는 D클래스의 학생들의 초조함은 혹독한 것이겠지.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불안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은 그녀들뿐만이 아니다. 문제가 일어나고, 그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쿠로기리 선생님의 정신상태도 위태롭게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의 입장이라도 분명 같은 불안을 안고 있었겠지. 기억이 없다, 라는 것은 그것만으로 불안해 지게 된다. 그 사이에 무엇을 손에 넣었는가, 무엇을 잃었는가. 분명히 무슨 일인가를 했던 자신의 행동을 알 수 없다, 는 것은 바닥없는 구멍이나 마찬가지다. 나쁘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구멍은 깊고 어두워져간다. 그런 일은 없다고 부정하는 구실조차 잊어 가는 것이다. 선생님이, 자신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 1학년 D클래스의 학생들은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시종 지켜보고 있었어요. 선생님은 말리러 들어갔던 것뿐이라고 하는데요」 「아니야, 코쿠토군. 생각해 보렴, 자신의 기억을 확인할 때에는 타인의 기억은 도움이 안돼. 과거를 결정하는 것은 역시 기억이라는 자신의 저울뿐이야. ……그래서 나는, 역시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가능성을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해. ───아냐, 미안. 이런 말은 무의미하지. 이런 상태의 나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질문을 계속해주지 않겠나」 무리해서 미소 짓는 그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다. 「……알았습니다. 그러면, D클래스 자체에 어떤 이상한 일은 없었나요? 예를 들면 학생전원이 숙제를 잊는다, 던가」 「그런 일은 없었어. 단지, 분명 우리 교실은 긴장되어 있다며 시스터들이 이야기 하던걸 들은 적이 있어. ……나 자신은 예전의 그 애들을 모르니까 단언은 할 수 없지만 확실히 4반 교실은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해」 「그건, 무언가에 겁먹어있는 것 같은 분위기인가요?」 예상대로의 전개에 나는 확인 해본다. 커터로 서로를 찔렀다는 두 학생. 그녀들의 주위에 있던 다른 학생들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과열된 말싸움을 말리지 않았을까. 흥미가 없어서? 아니, 그렇다면 대화의 내용 따위를 듣고 있을 리 없다. 지극히 당연한 흐름지만, 요컨대 망각한 기억을 적은 편지는 1학년 4반 학생 전체에게 보내지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말다툼을 하는 두 사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두면, 적어도 둘 중 어느 쪽이 편지를 보낸 사람인지 확실해 지니까. ……그렇지만, 쿠로기리 선생님의 대답은 나의 추리를 뒷받침해 주지 않았다. 「……글쎄. 겁먹어있는 모습과는 다르다고 생각해」 「───겁먹고 있지 않았었나요, 모두?」 「아아. 겁먹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서로 감시하고 있다는 편이 적절해.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감시하고 있다────는 건가. 뉘앙스가 어긋나버렸지만 발상자체에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그녀들은 적이 밖이 아니라 안쪽, 곧 교실의 누군가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선생님. D클래스의 학생들과 연락은 할 수 있나요?」 어쨌든, 사건을 잊지 않은 당사자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요정에 대한 이야기도, 소문이 돌고 있는 본인들에게 물어 보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테고. 「연락을 취할 필요는 없어. 우리 클래스의 학생들은 전원이 기숙사에 남아있으니까, 곧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야」 쿠로기리 선생님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하는 것 들 뿐이다. 1학년 4반의 학생들이 전원 학교에 남아있다? 그런 우연은, 이미 필연이나 마찬가지다. 「실례했습니다. 또 무언가 여쭈어보러 찾아뵙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 때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시키, 가자」 나는 옆에 말없이 앉아있던 시키를 재촉하며 일어선다. 그때────쿠로기리 사쯔키는 멀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기……선생님, 무슨 일이라도?」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시키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시키는 저에요, 선생님」 시키는 여성의 어조로 그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아아, 하고 밝은 목소리를 낸다. 「그런가, 아까부터 네가 있었지. 못 보던 얼굴인데, 신입생인가?」 「글쎄요. 학교를 좀 둘러보고, 재미있으면 정말로 전입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쿠로기리 사쯔키는, 그래, 하고 말하면서 기쁜 듯 끄덕이곤 시키를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동경하던 모델을 앞에 두고 있는 화가처럼 세세한 특징을 관찰한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때. 준비실의 문 쪽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실례합니다」 하는, 맑은 목소리가 난다. 준비실에 들어온 사람은, 긴 머리의 상급생이었다. 당당해 보이는 째진 눈과 등 뒤까지 기른 검은머리. 미인이 많은 레이엔 안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그 미인을, 나는 알고 있다. 라기 보다, 작년까지 학생회의 회장을 맡고 있던 상급생을 모를 리가 없다.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눈동자와 가늘고 긴 눈썹은 미안(美顔)이라고 하기 전에, 어쨌든 박력이 있다. 어쩐지 성에 사는 왕비님 같은 상급생은, 분명──── 「어라, 오우지군(君). 벌써 그런 시간이 된 건가?」 쿠로기리 선생님이 들어온 오우지 미사야(黃路美沙夜)에게 말을 건다. 오우지 선배는 예에, 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사쯔키 선생님, 약속시간을 넘기고 계십니다. 오후 1시에 학생회 실에 와 계시지 않으시다니요.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유효하게 쓰지 않으시면 곤란합니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오우지 선배는 쿠로기리 선생님을 비난한다. 그 경지에 이른 위엄은 진짜로, 그녀는 학생회시절부터 폭군으로 통하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전학해 온 무렵에 학생회의 인계가 있었기 때문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후지노의 말로는 시스터들조차 오우지 선배에게는 이견(異見)을 달지 못한다고 한다.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의 이사장조차 그녀에게는 딴소리를 못하는 듯 하다. 그도 당연한 것이, 데릴사위인 현 이사장과, 정통한 오우지가의 차녀인 오우지 미사야는 발언력이 다르다. ……오우지 가문의 아이들은 모두 양자라고 하는데, 그것을 약점으로 느낄 정도의 정신력으로는 오우지재단의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양자여도 누구보다 오우지가의 사람처럼 행동 할 수 있는 강한 마음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우지가는 후계자로 장래가 유망한 아이를 양자로 들인다고 한다. ……요컨대, 오우지 선배는 그런 철의 여인이란 소리다. 다만 다행인 것은, 오우지 미사야는 정의로운 사람인 듯 하다. 교칙을 어기는 학생에게는 용서가 없지만, 교칙을 지키는 학생에게는 자상하게 신경을 써주는 선배라고 한다. 본인도 경건한 크리스천으로, 일요일 낮 미사에는 매번 참가하고 있다고 하고. 「오우지군은 엄격하네요. 영원이라니, 정말, 어려운 이야기를」 쿠로기리 선생님은 빙긋 미소 지으면서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그것을 오우지 미사야는 답답하단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그녀처럼 규율에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쿠로기리 선생님처럼 느긋한 사람은 걸리적 거리겠지. 오우지 선배는 시선만으로, 그녀는 ? 하는 적의를 드러내온다. 어쩐지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뭔가 귀찮아질 것 같아서, 얼른 자리를 떠나려고 시키의 팔을 잡아끈다. 「자, 가자, 시키」 우리들은 준비실의 출구로 걸어간다. 그러자, 그 문을 쿠로기리 선생님이 열어주었다. 그것은 손님을 보내는 집사처럼 자연스러워서, 나는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해버렸다. 「아뇨, 내 쪽이야말로 도움이 못되어서 미안해요. 둘 다, 좋은 휴일 보내길」 역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선생님은 작별을 고한다. 어딘가 쓸쓸한, 공기 같은 웃음이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슬픈 표정으로 웃으시네요」 갑자기, 시키가 그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의외인 듯 눈을 크게 뜨면서, 그런가요, 하고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웃은 적이 없단다. ───한번도」 엷은 미소를 띄우면서, 쿠로기리 선생님은 그렇게 대답했다. ◇ 준비실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우선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1층 복도를 빠져나와서, 안뜰로 향한다. 레이엔 여학원의 부지는 대학만큼 넓다. 그 넓이를 활용하기 위해서일까. 소등부에서 고등부까지의 교사(校舍)와 체육관, 학생 기숙사는 전부다 서로 떨어져 있다. 예를 들자면, 유원지에서 각각의 어트랙션처럼 건물들이 떨어져있다……라고 하는 것이 제일 비슷한 표현일까. 응. 어쩐지 꿈이 느껴지는 이 표현, 언젠가 미키야에게 말해줘야지. 고등부의 교사에서 학생 기숙사까지의 길은 길다. 도중에, 마라톤 코스인 숲 속을 지나가야 하는데, 실내화를 신은 채로 기숙사까지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통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나와 시키는 끼익끼익 소리가 나는 나무판으로 만든 길을 걸어간다. 시키의 기색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것도 그렇겠지. 그렇게까지 비슷한 인간을 보게 되면 동요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쿠로기리 선생님이 미키야와 닮아서 놀란거지, 시키?」 내 물음에, 시키는 아아, 하고 솔직하게 끄덕였다. 「그렇지? 미키야보다 선생님 쪽이 핸섬하지만 말야」 「그렇군, 쿠로기리 쪽이 얼굴의 조형에 빈틈이 없어」 대사는 다르지만, 우리들의 의견은 동일했다. 그렇다,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청년은 코쿠토 미키야를 쏙 빼닮은 것이다. 외견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아니, 나이를 먹은 탓인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락하는 자연스러움은 쿠로기리 선생님 쪽이 강하게 느껴진다. 나나 시키처럼 주위와 마찰밖에 일으키지 않는 인간으로서 보자면, 저런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는" 보통 사람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쇼크다. 사실, 나도─────미키야와 내가 다른 인간이라고 깨달았을 때,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것은 언제쯤이었을까. 이제는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어렸을 때, 무언가의 계기로 나는 코쿠토 미키야가 그러한 사람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한 지붕 아래서 남매로 살아가면서, 나는 어느 사이엔가 미키야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매이면서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 후회되는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를 소중한 존재라고 인식했던, 그 첫 계기가 기억나지 않는 것뿐─── 「───하지만 그 사람은 쿠로기리 사쯔키란 사람이야. 아무리 비슷해도, 코쿠토 미키야가 아니니까」 말해봤자 소용없는 일을 나는 입에 담고 말았다. 그것은 옆에서 걷고 있는 시키도 마찬가지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끄덕이리라 생각했던 시키는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비슷하다고 하기보다────그건, 오히려」 거기서 시키는 발을 멈추고, 숲을 노려보듯이 나무들 사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자카. 저 속에 뭔가가 있지? 목조 건물 같은데」 「아아, 저건 구교사. 사용하지 않게 된 초등부 건물이야. 겨울방학 중에 헐릴 예정인데, 그게 뭐?」 「잠깐 보고 오지. 아자카는 먼저 돌아가 있어」 검은 예복의 스커트를 펄럭이며, 시키는 빠른 걸음으로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잠깐, 시키! 기다려요, 혼자서 멋대로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약속했잖아!」 소리치며 시키의 뒤를 쫓는다. 「코쿠토, 아자카씨」 그 전에,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 1 ◇ 『시키, 새로운 일이다』 라고, 토우코는 전화너머로 말했다. 1월 2일 밤, 토우코는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일을 나에게 떠맡겼다. 아자카가 다니는 레이엔 여학원에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가서 조사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나는 그리 설레이지 않았다. 나───료우기 시키가 아오자키 토우코에게 협력하고 있는 것은 살인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번 일은 단지 원인의 규명을 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래서는 나의 공허한 마음은 말라 있을 뿐, 채워지지 않는다. 애초에, 토우코의 일로 무언가를 죽인 적은 있어도, 인간이란 존재를 죽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대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의 처치였다. 여름에는 한번 그럴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나는 『물체를 보는 것만으로 구부리는』상대를 죽이는데 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일의 한복판에서 시키가 어째서 살인 행위에 집착하는지를 알아 버려서, 나는 서로 죽이려들며 싸우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타협을 맺어 버리고 있다. 그건 일단 배는 부르지만, 맛에 만족할 수 없다는 상황이다. 그런 생활에 불만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사건의 주모자를 발견하는 것만으로 좋다는 애매한 일이 찾아왔다. 나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할 일도 없다. 그냥 내 방에서 자는가, 레이엔 여학원에 가서 자는가의 차이라면, 거절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상세한 사정을 듣고서, 요정이 보이지 않는 아자카의 눈으로서 레이엔 여학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3학기부터 편입 예정이라 위장하고, 겨울방학 동안만의 전학생으로서. ◇ 숲 속을 걷는다. 아자카는 따라오지 않는다. 나는 나무들의 커튼 속으로 보이는 목조건물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흐린 날씨 탓인지, 숲 속은 안개가 낀 것처럼 잿빛이었다. 레이엔 여학원의 부지는 넓어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심어진 나무들은 이미 학교가 소유하고 있는 숲의 영역을 일탈하고 있다. 레이엔의 부지의 태반은 나무들로 빽빽하게 메워진 삼림이었다. 학원 안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숲 속에 학교가 있다. 부엽토의 지면을 걸으면서, 나는 멍하니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콸콸 흘러나오는 물처럼, 공기에는 향기가 있고 빛깔이 있다. 나뭇잎의 냄새와 벌레의 소리가 섞여서, 마음이 안개에 취해 버린다. 익은 과실 같은 달착지근한 공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들. 수채물감으로 그려진 풍경화 속을 걷는 듯한, 둥실둥실 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 ───확실히. 외계(外界)와 단절된 이 학원은 하나의 이계(異界)였다. 문득 깨달아 버렸다. 이전, 한 맨션에 아무도 개입시키지 않는 것으로 이계를 만들어 낸 남자가 있었다. 그 녀석은 얼마나 번거로운 짓을 한 것일까. 이 학교나 료우기가의 부지처럼, 부지의 주위를 벽으로 둘러쳐서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한다면, 그것만으로 그 세계는 세상과 떨어져 버릴 텐데. 이윽고 숲을 빠져나왔다. 초등부 교사라던 건물은 4층짜리 낡은 목조건물이었다. 숲 속의, 나무들을 원형으로 베어 낸 광장에, 그 건물은 호흡조차 하지 않고 서 있다. 광장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서, 어쩐지 초원 같았다. 그 건물은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임종 직전의 노인처럼 보였다. 풀을 밟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안은 외관처럼 낡아 있지는 않았다. 초등부 것이라서 그런지, 교사는 어딘가 모르게 작은 느낌이 든다.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복도는 걸을 때마다 끼이끼이하고 소리가 났다. 끼이, 끼이. 끼이, 끼이. ……벌레 소리는 건물 안에 있어도 들려온다. 나는 아무도 없는 복도 한가운데에서 걷는 것을 멈췄다. 「쿠로기리, 사쯔키」 아까의 교사에 대해 생각한다. 아자카는 그것이 코쿠토 미키야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닮았다고 말하자면 닮았다. 인간은 모두 비슷한 얼굴이니까 누구나 똑같다. 하지만, 그것은 외견만이 비슷한 것이 아니다. 몸을 감싸고 있는 공기조차 같은 것이다. 「……비슷한게 아니야. 그것은 그 자체야」 하지만,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무엇이?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목까지 올라와 있는데도, 남은 한 걸음을 앞에 두고 기억해낼 수가 없다. 알고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없다니, 나도 퍽이나 인간다워 졌나보다. 반년 전────눈을 막 떴을 무렵에는, 알 수 없는 일 따위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일은 료우기 시키가 모르는 일이기에, 생각할 필요 따위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료우기 시키가 알지 못했던 일을, 나는 지식으로서 경험하고 있다. 사고 전의 료우기 시키와 사고로부터 회복한 나 사이에 있는 절망적일 정도의 단절의 벽은, 점점 엷어져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분명. 나로서의 감정을 가지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미지의 사건과 조우하는 것에 의해서 『나의 기억』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나는───가슴에 뚫려있는 구멍을, 보잘것없는 현실이나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 약간의 감정으로 채워 간다. 의연하게 살아간다는 확실한 실감은 없지만, 막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무렵 정도의 허무감은 사라져 있다. 그렇다면────언젠가. 이 가슴의 구멍이 없어지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꿈이란 것을 꿀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덧없는 희망이야, '시키'」 나는 나에게 말했다. 대답이 없을 것은 알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변변찮은 희망이에요』 ────그런데도,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끼이. 끼이. 끼이. 벌레 소리가 난다. 목 뒤에, 찰싹하고 무언가가 닿았다. 「────아」 의식이 멀어져가며, 이곳에 있다는 기억이 새하얗게 변해간다.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 지우개로 지워지듯이 스윽스윽 없어져 간다. ……정말, 꼴사납다. 이곳이 벌레들의 둥지라고 알고서 찾아왔는데, 나는─── 「이 자식」 불쾌해져서 팔을 움직인다. 자신의 목덜미 쪽에 손을 뻗어서, 나는 확실히 무언가를 붙잡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인형(人形)을 하고 있는 것을 쥐고 있다는 감촉이 느껴진다. 손에 쥐어진 그것을, 나는 그대로 쥐어 찌부러뜨린다. 끼이, 하는 한층 날카로운 소리. 그러는 것으로 멀어져가던 의식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목뒤에 뻗었던 손을 눈앞으로 가져와 지긋이 바라본다. 손바닥에는 하얀 액체밖에 없었다. 끈적한 점액성의 액체가 바닥에 뚝뚝 떨어져간다. 찌부러뜨린 순간, 그것은 이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나는 요정 따위는 본적이 없다. 그래서 이것이 아자카가 말했던 요정의 모습과 같은지는 전혀 판단 할 수 없었다. 「……기분 나빠」 붕, 하고 손을 휘둘러 액체를 떨어낸다. 점착성이면서도 살갗에 달라붙지 않는 이상한 액체는 깨끗이 떨어졌다. 벌레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너무 불쾌한 나머지, 움켜쥔 김에 요정을 찌부러뜨려 버렸는데, 그것은 역시 실수였던 것 같다. 그 정도로 무리 지어 있던, 요정같이 보이던 기미는 이제 한 마리도 없다. 동료가 죽어서 도망친 걸까, 내가 요정을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을 보고 요정의 주인이 퇴각한 걸까. 어느 쪽이라고 해도, 이 건물에서 단서는 없어진 듯 하다. 나는 온 길을 더듬어서, 기숙사로 이어진 통로로 돌아가기로 했다. 숲 속의 길에 돌아오자, 의리 있게도 아자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코쿠토 아자카는 나보다도 좀더 몸집이 작고 머리가 길다. 아까 오우지인가 하는 여자는 성의 왕비 같은 녀석이었지만, 아자카는 성의 공주님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다만, 그 전에 『억척스런』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져야겠지만. 나는 말없이 아자카 곁으로 걸어간다. 「어라? 시키, 안 가는 거야?」 ……갑자기, 아자카는 묘한 소리를 했다. 「안 가다니, 어디에?」 「그러니까───저기 말야」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아자카 역시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와, 숲 속을 번갈아 보고 있다. ────과연, 하고 나는 이해했다. 「아자카. 지금 몇 시냐?」 「오후2시를 조금 넘었었는데────」 깜짝 놀라며 아자카는 말을 멈췄다. 시각은 이미 3시를 지나있다. 「한 시간이나 서서 기다리다니, 꽤나 한가한가 보구만.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아자카는 말없이, 희미하게 팔을 떨면서 스스로의 입술에 손을 대었다. 그녀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아자카는 나를 부를 때부터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없는 것이다. 「시키, 나, 설마」 믿을 수 없어, 라고 하며 아자카는 몸을 떨면서 중얼거린다. 그것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분노에서 오는 것이겠지. 자존심 덩어리 같은 아자카에게 있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했다는 것은 굴욕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닐테니까. 「말할 것 까지도 없잖아. 너, 요정에게 당했구만」 갑자기, 아자카는 화악하고 얼굴을 붉힌다. 그것은 스스로의 미숙함과 굴욕이 섞여 있는 것이었는데, 부끄러운 것인지 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자카는 언제나 냉정하면서도 이렇게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버린다. 그것은 아주 언밸런스해서, 주위에서 보기에는 귀엽게 보일 것이 틀림없다. 「───기숙사에 돌아가겠어요. 방침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기분이 상한 듯 말하면서, 아자카는 성큼성큼 걷기 시작한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실은 나도, 그 소녀다운 순수함에 감탄했다고 이야기하면 아자카는 어떻게 반응할까. ……뭐어, 그런 일은 생각할 것까지도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 2 기숙사에 돌아와서 1학년 4반 학생들 몇 명과 이야기를 끝마쳤을 무렵,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학교가 방학이라고 해도 기숙사 안의 규율은 유지되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자카의 방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오후 6시 이후부터는 기숙사내의 왕래조차 금지되어 버린다. 화장실은 다른 문제지만, 1층에 있는 학습실을 이용하는 시간에만 방에서 나오는 것이 허가된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입학한 학생들은 이런 부자유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때때로 친구의 방에 놀러 갔다가 순찰하는 시스터에게 발견된다고 한다. 초등부부터 지내오는 학생들은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무턱대고 바깥에 나가지 않고, 나가더라도 시스터의 순찰루트를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발견되는 일은 없는 듯 하다. ……그런 이야기를, 아자카는 진지하게 들려주었다. 이번 사건에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니, 아마도 불평이겠지. 아자카는 자신의 의자에 앉아있다. 1학년생의 방은 2인실로, 아자카의 룸메이트는 집에 돌아가서 없는 상태였다. 방에는 벽과 일체화된 책상 2개와, 2층 침대가 하나. 개인의 물품인 듯한 책장과 칼라 박스 따위가 벽 쪽을 점령하고 있어서, 방은 가늘고 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건물 자체가 오래되어서 방도 낡았지만, 그것은 역사가 쌓인 모습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다. 아자카는 방에 돌아오자 교복을 벗고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나도 답답한 교복을 벗고 싶었지만, 갈아입을 옷 따위는 가져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교복인 채로 침대에 앉아서 아자카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기숙사내에서의 행동은 할 수 없으니 오늘은 이만 쉬는 거에요. 기상은 5시지만, 겨울방학 중에는 아침 예배가 없으니까 6시정도 까지 자도 괜찮아요. 알겠어 시키? 다른 학생과 시스터들은 우리들이 1학년 4반의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까 눈에 띄는 행동은 극력 피할 것. 너와 달리, 나는 이 뒤로도 2년 동안이나 이곳에서 살아야 하니까, 소동만은 일으키지 말아 주기 바래」 아자카는 어제 말했던 소리를 오늘밤도 반복한다. 그런 건, 정말로 필요 없는 걱정이다. 나는 잠자리를 이곳으로 바꾼 것뿐이지 뭔가 할 생각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안심해. 내 역할은 보는 것뿐이라서 날붙이는 안가지고 왔어. 또 요정사(妖精使い)란 놈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사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평화로울 거라구. 감정에 휩싸여 멋대로 행동하는 거라면, 네 쪽이 걱정이구만」 「나는 냉정해요. 목적은 진상의 해명에 있지, 원인의 배제가 아니니까요. 조사하는 것만 조사되면, 얼른 토우코씨에게 바톤터치 할 테니까」 부드럽게 받아 넘기지만, 아자카의 눈은 조금도 얌전해 보이지 않았다. 낮의 요정의 일건(一件)의 효력이겠지. 기본적으로, 아자카는 당하면 되갚아주는 성격이다. 「그래. 그렇게 되면 아주 좋겠구나, 아자카」 아자카는 힐끗 시선을 던져온다. 「……당신, 사람을 바보취급 하는 거 아니에요?」 「오해야, 그건」 곤란하게도 비난해오는 눈빛은 미키야의 그것을 쏙 빼닮아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다. 「───괜찮아요. 나는 실수해도 문제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시키가 걱정해줄 상황은 아니에요. 그럼, 말을 돌리겠는데. 오늘 만난 사람들 중에서 이상한 사람은 있었어? 시키」 짤깍, 하고 아자카는 화제를 전환했다. 「이상한 녀석이라고 하면 만난 녀석들 전부. 1학년 4반 녀석들은 모두 목덜미에 그게 묻어 있었고」 「그거란 건, 시키가 으깨버렸다고 한 요정의 혈액?」 아자카는 눈살을 찌푸린다. 분명, 나를 잔인무도한 녀석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니까 부정은 하지 않는다. 「피와는 달라. 나비 같은 것의 날개에 묻어있는 비늘가루 같은 거야. 체액이었다면 그네들도 알아차렸겠지. 게다가, 쿠로기리란 교사한테도 있었다구. 그 때는 뭐였는지 몰랐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목덜미에 남아 있었어」 「───그런가. 저기, 시키. 기억을 빼앗아 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몰라. 내가 하는 것도 아니니까」 「네에, 네에, 그러시겠죠. 너에게 의견을 구하다니, 나도 꽤나 약해졌나 봐」 멋대로 화를 내면서, 아자카는 혼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11월부터 D클래스의 학생들에게 보내진 편지. 편지의 내용은 『본인도 잊고있는 비밀』이었다. 같은 시기에, 학원 내에 요정의 소문이 퍼졌다. 이 요정은 머리맡에 찾아와서 기억을 빼앗아 가는 듯 하다. 겨울 방학 전의 D클래스의 교실에서, 두 명의 학생이 말싸움 끝에 커터로 서로를 찔렀다. 다툼의 원인은 역시 편지. 한 달이나 되는 기간 동안 본인도 모르는 자신의 기억을 계속 배달 받고 있던 D클래스의 학생들은, 클래스메이트의 언쟁을 방관해 버릴 정도로, 정신적으로 마비되어 있었다. 자살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는 것은, 4반의 학생들에게 물어 보고 실감할 수 있었다」 중얼중얼 아자카는 지금까지의 줄거리를 정리하고 있다. 「시키는 실제로 요정과 조우했고, 나도 1시간의 기억에 공백이 있다.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 1시간이나 있다면, 웬만한 일은 할 수 있는데」 기억의 공백은 아자카로서도 신경이 쓰여 버리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어떨까. 3년 전……내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의 기억은 구멍투성이라, 기분이 언짢다. 그 무렵, 거리는 무차별로 사람을 죽이고 돌아다니는 길거리 살인마 사건으로 겁에 질려있었다. 나는, 그 사건에 관계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때에 행동하고 있던 것은 '시키' 쪽으로, 그가 없어진 지금은 그 기억은 영원히 잃어버렸다. 「───어라」 문득, 깨달았다. 어째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것일까. 3년 전의 살인귀에 관련된 기억이 없다는 것은 '시키'가 그것에 관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내가 사고를 당하기 직전의 기억이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때, 나는 '시키(織)'가 아닌 시키(式)였었을텐데. 만약 이번의 요정사란 녀석이 망각하고 있는 기억을 아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과거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아무래도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아자카가 요정 따위를 믿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도무지 그 존재가 납득이 안 가는 것이다. 뭔가. 나와 아자카는 근본적인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다. 「저기 아자카. 본인조차 잊고 있는 기억은, 어떻게 조사할 수 있을까」 「글쎄……최면상태에서 뇌의 심부(深部)로부터 끄집어 내는게 아닐까? 기억의 4대 기능은 알고 있지, 시키?」 「명기, 보존, 재생, 재인이잖아. 비디오 테이프와 마찬가지. 녹화한 영상에 라벨을 붙여서 명기한다. 그것을 소중히 정리해서 보존한다. 볼 때에는 데크에 넣어서 재생한다. 재생한 내용이 이전과 같은지 재인한다. 어느 하나라도 고장 났다면, 뇌는 정상적으로 움직여 주지 않지」 「그래. 본인이 잊고 있어도, 뇌 자체가 고장 나지 않다면 기억은 어딘가에 남아 있는 거야. 뇌는 명기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으니까. 요정은 그것을 빼앗아 간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 ……무언가를 잊은 것을 수집하는 요정, 인가. 토우코는 악의가 있다고 말한 것 같은데, 나에게는 도무지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인이 잊고 있는 기억이다. 그런 것은 빼앗아도 본인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것을 편지로서 보내준다는 것은 오히려 선의에서 나온 행동은 아닐까. 당신은 이런 일을 잊고 있어요, 다음부터는 잊지 마세요, 라고. 「기억을 빼앗는 것은 무언가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잊고 있던 기억을 보여준다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진 걸까」 의문은 말이 되어 흘러나왔다. 아자카는 글쎄 라고 말하며 의자에 기댄다. 「역시 죄의 고발이 아닐까? 당신은 옛날에 이런 죄를 범하고 있다, 라고 알리기 위한」 「한 달 동안이나, 다른 죄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건가. 그건 고발이 아니라 단순한 괴롭힘이지. 애들 같구만」 그렇지만 요정은 아이들 같다는 일반적인 통념이 있으니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으로 생각을 멈췄다. 어차피 눈에 지나지 않는 내가 이래저래 생각에 빠져있어 봤자,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아자카 본인이다. 나는 앉아 있던 침대에 그대로 드러눕는다. 「저기, 시키. 한 가지 알려줬으면 하는게 있는데」 의자에 앉은 채로, 아자카는 어딘가 부끄러운 듯이 무언가를 물어 왔다. 「그, 요정을 발견하는 방법 말인데, 어떻게 하는 거야?」 ……어지간히도 요정에게 기억을 빼앗긴 일이 분한가보다. 하지만, 나도 발견하는 방법 따위는 모른다. 「그런걸 알리가 없잖아. 굳이 말한다 해도 나도 보지는 못했고, 아자카로서는 무리겠지. 어떻게 해서라도 알고 싶다면, 그렇지.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곳을 적당히 찾아봐. 감이 좋다면 잡을 수 있다구」 「공기가 따뜻한 곳, 말이지」 과연, 하고 아자카는 납득한다. 정말 엉터리였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요정도 살아 있는 것이라면 열을 발할 터. 그렇다면 그곳만은 다른 곳 보다 온도가 높을 테니까, 운이 좋다면 건드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여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나는 아자카의 조금 큰 잠옷을 빌려서, 2층 침대의 윗층에서 자기로 했다. 망각녹음\ 3 1월 5일, 화요일. 언제까지고 일어나지 않는 시키를 내버려두고, 나는 1층의 학습실로 향했다. 시각은 아침 7시를 막 지난 시간. 학습실에서 공부를 하려고 하는 기특한 학생은 없을 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밀회에는 딱 좋은 장소가 된다. 학습실은 기숙사생을 위해서 설치된 도서실이다. 각자의 목적은 다르지만, 저녁부터 소등시간까지 기숙사생들은 이곳에 모여 잡담을 하거나 정말로 교과서를 펴고 있거나 한다. 그렇지만, 저녁부터는 악명 높은 사감 시스터 아인바하가 직접 지도를 하러 오기 때문에, 그녀의 눈을 피해서 잡담을 나누거나 딴 짓을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뭐어, 저녁부터는 무서울 정도로 활기찬 학습실도, 이런 아침에는 인기척은 두절되어있다. 나는 이곳으로 D클래스의 반장을 불러냈다. 어제, 기숙사에 돌아와서 몇 명의 4반 학생들에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지만, 모두 똑같은 이야기뿐이라 요령부득이다. 처음부터, 제3자인 나에게 그녀들이 마음을 열어줄 리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쪽으로서는 본심을 털어놓고 정면으로 맞붙을 수밖에 없게 된다. 싸우는 거라면 1대 1은 기본중의 기본. 그리하여, 나는 제일 말이 통할 것 같은 D클래스의 반장인 콘노 후미오(紺野文緖)를 선택한 것이다. 학습실에 들어가자, 역시 사람 모습은 없다. 스토브가 켜져 있지 않은 탓이겠지. 널찍한 학습실은 몹시 추웠다. 「코쿠토, 이쪽」 늠름한 목소리가, 학습실 구석에서 들려온다. 도서실이기도 한 이곳은, 방 안쪽에 책장이 들어차 있다. 그 책장과 책상사이에 숨어있는 듯한 모습으로, 콘노 후미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닫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콘노 후미오는, 한마디로 하면 선머슴 같은 여자다. 나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에서 레이엔으로 전학한 아이로, 키가 아주 크다. 170센티미터는 훨씬 넘어서, 박력이 있다. 본인도 자신이 소녀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머리카락은 짧다. 게다가 얼굴생김새는 매우 어른스러워서, 대학생이라고 해도 통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죄송해요, 이른 아침부터 나오라고 해서」 일단 첫 대면이라,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해본다. 콘노는 핫, 하고 시선을 피하면서 빈정대듯 팔짱을 낀다. 「괜찮아, 어차피 나도 다른 애들하고 마찬가지로 제대로 못자고 있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쪽이 마음이 편해져. 그래서 할 얘기란 건 뭐야? 하야마에 대한 거야?」 콘노 후미오는, 뭐라고 할까, 아주 딱 부러지는 성격인 듯 하다. 내가 무언가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하야마라는 건, 하야마 선생님 말씀이신가요?」 「그렇잖아. 어제부터 낯선 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 클래스 애들과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던데. A클래스의 수석이 우리들에게 용무가 있다고 한다면, 그 자식밖에 없잖아」 그녀는 나를 흘끗 노려본다. ……과연, 이야기가 통하는 것 같다. 나는 콘노의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보았다. 「하야마 선생님에 대한 것은 정직히 말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제 인식부족이었던 것 같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마더에게서 당신 클래스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부탁 받았어요. 콘노씨, 당신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나요?」 내 질문에, 키 큰 그녀는 난처한 듯이 이맛살을 찌푸린다. 「……큰일이네. 학장이 직접 나섰나. 과연 우등생은 달라. 나보고는 사고에 대한 일은 잊고 열심히 공부나 하라며 쫓아내더니만. 곤란해졌어, 정말」 「───콘노씨도, 이 사건을?」 「당연하잖아. 이래 뵈도 한 클래스의 반장이고. 나도 말야, 쿠로기리 선생님하고 똑같아.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말릴 수 없었고, 그날의 일은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아. 기억해보면, 아아,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는 정도밖에는 모르겠어. 그 사고를 일으킨 두 사람……가시마(嘉島)와 루리도(瑠璃堂)라고 하는데, 병원에 실려 가더니만 도통 소식이 없어. 병문안을 가는 김에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보려고 학장에게 두 사람이 있는 병원을 물어보러 갔다가 쫒겨났었는 걸 나는」 윤기 있는 머리칼을 긁으면서, 콘노는 멋쩍은 듯이 말한다. 그 몸짓만으로, 나는 이 상대가 마음에 들어 버렸다. 「그러면, 그───당신에게도 편지가 배달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아, 그거. 기분 나쁜 일이라면 그만한 일도 없지. 나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지만, 많이 오는 애는 매일 왔었대. 가시마와 루리도도 매일이었다고 했으니, 상당히 심각한 상태였던 것이 아닐까」 편지의 내용은, 정말로 해가 없는 과거의 일들이 대부분 이라고 한다. 소학생시절에 좋아하던 남자아이와 함께 귀가하던 일이라던가, 없어져버린 기르던 고양이의 일이라던가. 「처음에는 말야, 보잘 것 없는 일이 쓰여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다시 잘 생각해보니, 그것은 자신의 일이야. 나는 깜짝 놀라기보다는 감탄한 쪽일까. 아아, 그런 일도 있었지, 하는. 그 중에는 엄청 겁을 먹고서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게 되어버린 애도 있지만」 「그것은, 마음에 찔리는 일이 있다는 걸까요?」 그렇겠지, 하고 콘노는 끄덕인다. 「우선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 편지를 누가 보냈는지 짐작 가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는 없지만, 이건 이미 비상식적인 일이잖아? 유령이라던가 요정이 있다면 짐작 가는 것은 있어」 하지만, 콘노 후미오는 그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라고 그녀는 대답을 거절했다. 나는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러면, 콘노씨는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 이상하다면 이상하겠지만, 우리 반은 예전부터 망가져 있었으니까. 뭐랄까, 모습을 바꾼 천벌일지도 몰라. 코쿠토는 몰랐겠지만, D클래스란 것은 거의 대부분이 고등학교에서 레이엔으로 전입 해온 애들이란 소리야. 문제아가 많았어, 정말로」 나도 그중 한 명이지만, 하고 그녀는 덧붙인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인데, 콘노 후미오는 중학시절에는 유명한 농구선수였던 것 같다. 중견기업 회장의 외동딸인 그녀는, 본인의 의사와는 반대로 레이엔에 입학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아먀 선생님이 기숙사에 방화했다는 이야기는, 어때요?」 여기가 승부처란 각오를 하고, 나는 말을 꺼낸다. 콘노는 눈에 보일 정도로 괴로운 얼굴을 하며, 나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 자식이 무슨 생각으로 기숙사에 불을 질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어. 하야마 히데오란 남자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어. 그 자식의 입버릇이 뭐였는 줄 알아? 형님은 어째서 나에게 학장을 시켜주지 않는 거지, 였다구! 믿겨지지 않지? 그런 말이 고등학교도 제대로 안나온 녀석이 할 소리야!? 그런 야쿠자 같은 남자에게는 학장은 커녕, 교사 같은 걸 시키는 게 아니었어. 카오리가 죽은 것은 그 자식하고, 육친이라고 백수인 그 자식에게 교사를 시킨 이사장 탓이야. 우리들은 관계없어. 그래, 우리들의 책임이 아냐……!」 ……굳센 듯 보였지만, 그녀도 신경이 한계에 다다라 있던 거겠지. 나를 보지도 않고, 지금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그녀는 미워죽겠다는 투로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단념하기로 했다. 「고마워요. 참고가 되었어요, 콘노씨」 나는 콘노 후미오에게 등을 돌린다 「아아,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될까요? 당신은 요정을 믿고 있나요?」 떠날 때, 나는 아무래도 좋은 앙케이트처럼 가볍게 물어보았다. 「믿지는 않지만, 있다고는 생각해. 다른 녀석들도 나도, 거짓말처럼 기억이 애매하니까」 그래요, 라고 대답하고 나는 학습실을 뒤로했다. ◇ 그 후, 4반 학생들에게 사건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누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모두가 의심에 사로잡힌 채, 각자의 방에 틀어 박혀있다. 그렇게 두문불출하는 모습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는데, 그러면서도 입을 모아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누구나가 입을 다물어 버린다. ……역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콘노씨 뿐으로, 다른 학생들과는 대화조차 성립되지 않았다. 종합결과로서, 그녀들은 모두가 요정을 믿고 있었다. 즉, 모두 편지와 기억의 누락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외에 확신한 일도 하나 있다. 그녀들───1학년 4반의 학생들은, 클래스 전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담임이었던 하야마 히데오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 그리하여, 나는 직원실로 발을 옮겼다. 하야마 히데오 본인은 11월의 학생기숙사 방화사건을 기해서 학원에서 사라졌지만, 어떤 단서가 자료로서 남아있지 않을까 기대하고서. 「실례 합니다」 하고, 직원실의 문을 연다. 의외로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시 당초 직원실은 아침의 직원회의 때 밖에 쓰지 않는 사무실 같은 곳으로, 시스터들은 거의 오지 않는데다가 사무원들은 겨울방학중이라 있을 리가 없다. 「아아───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씨익), 하고 웃고서 나는 사무 자료함을 뒤지기 시작했다. 일단, 작년 11월 무렵의 파일을 한쪽 끝부터 체크해간다. 한 시간정도 정신없이 그러고 있었을까. 그래도 눈에 띄는 정보는 발견할 수 없었다. 「……큰일났네, 이래서는 정말로 시키를 데리고 학교를 샅샅이 찾아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런, 도베르만을 데리고 마을을 걷는 거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미 그것 이외의 방법은 사라져버렸다. 할 수 없이 흩어놓은 파일들을 정리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의 서류를 발견했다. 「……하야마 히데오, 97년 2월 부임, 98년 12월 퇴직」 언뜻 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12월에 퇴직? 그런 바보 같은 일이. 하야마 히데오는 11월에 기숙사에 불을 지른 뒤에 그대로 학원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런데 어째서 12월까지 직원으로서 등록되어 있는 것일까. 게다가……퇴직의 이유는 거주지 불명. 말하자면 그것은 행방불명이란 이야기───!? 나는 혼란스러워진 머리를 끌어안았다가, 일단 자료를 원래대로 되돌려놓고 직원실에서 복도로 나왔다. 그러자, 거기서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과 만나버렸다. 「어라, 직원실에 무슨 일인가요, 코쿠토군」 「……안녕하세요, 쿠로기리 선생님. 좋은 아침이죠?」 선생님은 꾸벅 인사를 한 나에게, 이미 점심때지만, 하고 상냥하게 대답해 주었다. 어제는 시키와 둘이어서 괜찮았지만, 나는 이 사람과 1대 1로 마주하는 것은 싫었다. 어쨌든, 대하기 어렵다. 불안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것이 미키야와 닮은 이 사람에게의 감정인지, 단순히 내가 불안한 것뿐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으니까. 「선생님은 직원실에 무슨 일이신가요?」 어떻게든 그 자리를 피하고자 그런 질문을 던진다. 그런 마음 없는 질문에도 쿠로기리 선생님은 진지하게 대응해주었다. 「아아, 마더에게 부탁 받은 일이 있어서 말야. 학생들의 명부를 불어로 바꿔야 되거든. 저쪽에서는 레이엔에 연이 있는 대학이 몇 군데 있으니까」 「헤에, 저희들의 명부를 보내는 건가요?」 「그렇겠지. 코쿠토 군에게는 남 얘기가 아닐지도 몰라. 유학생 후보는 너와 오우지군이 쌍벽이니까」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 나는 웃는 얼굴로 적당히 대답하며, 쿠로기리 선생님의 옆을 스쳐지나가려다가 발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한 가지 남아있다. 「쿠로기리 선생님.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소문이 뭔지 아세요?」 「아아, 요정얘기 말이구나. 들은 적 있어요」 「선생님은 그거, 믿고 계시나요? 물론 저는 믿지 않지만」 요정을 믿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쓸데없는 소리를 입에 담아버렸다. 그는, 그런 나를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보았다. 「요정은 일본에서는 드문 이야기겠지만, 저쪽에서는 유명해요. 스코틀랜드에서는 캣시(Cait Sith : 고양이 요정)라던가 카시(Cu Sith : 개 요정)라는 귀여운 일화도 있어서, 비교적 좋아하는 편입니다」 아아, 그렇지. 쿠로기리 선생님은 원래 외국사람이다. 저쪽의 대학에는 민속학 중에 요정분야란 것까지 있는 듯 하니까, 꼭 어린애 같은 질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캣시란 건, 장화를 신은 고양이 말이군요?」 「어라, 잘 알고 있네요. 말하는 고양이 이야기는 일본에도 있으니까, 그리 독창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봐, 어딘지 모르게 지성의 향기가 나잖아. 나는 분위기를 타고, 조금 더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그러면, 저쪽에서는 요정의 장난이란 것이 실제로 일어나나요? 어디까지나 자연현상을 받아들이는 토착풍습의 일환으로서」 「최근에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아이가 바꿔치기 당하는 일은 가끔씩 일어나는 것 같아요. 농사를 도와주는 타지인(余所者)은 없어진 듯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잠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브라우니(Brownie)나 노커(Knocker)라고 불리는, 집과 광산에 찾아와서 일을 도와주는 요정은, 곧 마을 안에 살지 못하는 타지에서 온 인간이 변화되어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마을사회는, 그것만으로 독립된 딱 맞추어진 시스템이다. 그래서 다른 마을에서 흘러 들어온 자를 간단하게 동료로 받아들여주지는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산이나 숲에 살게 되었고, 작물을 수확하는 계절에 찾아와서 일을 도와주며 친분을 두텁게 해 간다고 한다. 한편, 아이 바꿔치기란 것은 그런 사건이 나쁜 쪽으로 이루어진 패턴이다. 부잣집의 집의 갓난아기를, 어디에 버려져 있던 아기와 바꿔치기 한다. 당시에는 부유한 집안일수록 신에게 축복 받은 자들이란 생각이 있어서,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은 축복 받은 아기가 가지고 싶어서 자신들의 아이와 바꿔치기 했다고 한다. 「……그, 바뀌어 진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쩐지 궁금해져서 물어보자,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안심해요. 대개는 곧 원상복귀 되니까. 무엇보다 부잣집이니까, 찾는 것은 간단해. 당시에는 출산은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졌어. 교회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되는 거지. 시민권이 없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가난한 가정이라도 교회에 가서 돈을 내고 세례를 받아. ……뭐어, 받지 않으면 고문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는 없지만. 그러니까 교회에 가면, 어디서 누가 출산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아이 바꿔치기는, 정말로 요정밖에 해낼 수 없는 이상한 일이에요」 「헤에, 선생님은 정말로 있다고 믿으시는 건가요?」 「있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아요. 진짜 요정이 행하는 장난은 조금은 도가 지나치니까. 지금 말하는 아이 바꿔치기도 그래요. 요정은 몇 년이 지나고 나서 갑자기 아이를 부모 곁으로 돌려보내 버리지. 돌아온 아이는 백치(白痴)가 되어있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라, 부모는 싫어했으면 싫어했지, 기뻐하지는 않았다고 하니까」 확실히, 그것은 장난치고는 너무 심하다. 요정은 천진난만하다는 이미지를, 나는 떨쳐내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앗차, 미안해요. 얘기가 길어져버렸네」 「아뇨, 즐거웠어요. 그러면 실례했습니다, 선생님」 나는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하고, 빠른 걸음으로 쿠로기리 선생님 앞에서 떠나기로 했다. ◇ 정오가 지나, 나는 11월에 불타버렸던 동관(東館) 학생기숙사에 가보기로 했다. 특별히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하야마 히데오가 불태웠다는 학생 기숙사를 한번정도는 봐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었다. 동관의 주위에는 새끼줄이 둘러쳐져 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걸려있다. 나는, 그것을 타 넘고서 동관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동관은 그 대부분이 불에 타버려서, 방들이 늘어서 있는 동쪽 편의 벽이 몽땅 없어져있었다. 어쩐지, 거대한 괴물이 발톱으로 후려친 것처럼 벽이 없다. 방이 있던 구획은 전부 불타고 무너져서, 누르면 부슬부슬 재가 되어갈 것 같을 정도다.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복도가 있는, 서쪽 편은 멀쩡하게 남아있다. 복도만 걷고 있으면, 화재가 있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불타서 무너진 방문을 열면, 그 앞에 있는 것은 바깥 풍경과, 토대가 약간 남아있는 폐허뿐이다. 그런 기괴한 모습을 한, 전위적인 아트 같은 건물 안을 걸어간다. ……이곳에 불을 지른 하야마 히데오란 교사를, 나는 한번 밖에 본적이 없다. 그는 주로 3반에서 5반까지의 수업을 맡고 있어서, A클래스에 온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아침 예배 의식 때에 따분한 표정으로 성서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던 하야마 히데오 밖에 모른다. 30대 정도의 남성으로, 얼굴은 그럭저럭이었다고 기억한다. 「한번밖에 보지 못한 상대를 조사하다니, 바보 같아」 혼잣말을 하고서, 나는 이곳에서 떠나기로 했다. 1층까지 내려가서, 현관을 향하여 복도를 가로질러간다. 그러자, 그때. 현관에서 본 적 있는 사람의 모습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긴 흑발과 당당한 미안을 겸비한 인물은, 레이엔에는 한 명밖에 없다. 학교의 어둠의 실력자. 오우지 미사야는 어째서인지 나에게 다가와서는, 2미터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 빙긋 미소 짓는다. 「좀 어때요? 그 뒤로 뭔가 진전이 있었나요, 코쿠토씨?」 부드럽게, 오우지 미사야는 그렇게 말했다. 순간, 등줄기에 오한이 퍼졌다. 확실한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는, 이 녀석이 어제 인사를 해온 장본인이라고 직감했다. ────끼이, 끼이, 끼이. 벌레 같은 울음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이대로라면 어제의 전철을 밟게 된다. 또다시, 어느 사이엔가 기억을 빼앗기고 몇 시간이고 멍하니 서있게 되어버린다. 장갑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뼈아프지만, 이렇게 된다면 한번 해볼 수밖에 없다. 나는 똑바로 눈앞의 미사야를 노려보면서 공기가 부자연스럽게 따뜻한 장소를 감지한다. ……시키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열에 관한 탐지와 가속(加速)이라면, 나는 이미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대기 속의 부자연스럽게 따뜻한 부분정도는 눈을 감고서도 알아차릴 수 있다─── 「───거기!」 나는 이미 가슴 부근까지 다가와 있던 『무언가』를, 맨손으로 붙잡는다. 손바닥에는, 분명히 무언가를 쥐고 있는 감각이 있다. 끼이끼이 하고 우는 그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나는 오우지 미사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머. 당신, 요정이 안 보인다고 알려줬으면서, 벌써 볼 수 있게 된 거에요?」 여유만만하게 미사야는 말을 걸어온다. 그 잘난 체하는 태도에, 나는 이 상대를 완벽하게 적으로 인식하기로 했다. 「……그랬구나. 어제의 그 한 시간 동안, 저는 선배와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예에. 덕분에,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됐어요. 한 시간이나 있었는걸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은, 이 애들에게 부탁하면 간단하게 손에 들어와요」 오우지 미사야는 한 손으로 자신의 어깨부근을 쓰다듬는다. 끼이, 하는 울음소리. 아마도 그곳에도 요정이 있는 것이겠지. 아니, 그녀 주위에는 그녀 이외의 열이 느껴진다. 세어보니 그것은 50마리를 넘고 있었다. ……그것은, 요정이 보이지 않는 나에게 있어서 절망적일 정도의 전력 차다. 「냉정하군요, 코쿠토씨. 놀라지 않다니, 재미없어요.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서 놀랐었는데. 그렇잖아요? 설마 이 학교에서 나 이외에 마술을 배우고있는 사람이 있다니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놀라지 않아요. 처음부터 요정사가 있다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놀란 선배는 당황해서, 방해자인 나를 없애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군요. 그 행동자체는 바르다고 생각하지만……스스로 정체를 밝히다니, 수준이 낮아요, 오우지 선배」 우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서, 나는 어떻게 도망칠까 하고 생각한다. 원래부터 내 역할은 원인의 규명을 하는 것이다. 평범한 싸움이라면 바라던 바지만, 생사에 직결되는 다른 마술사와의 싸움 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다. 「코쿠토씨, 저, 당신을 없애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당신은 얼마 안 되는 저의 동류(同類)인걸요. 서로 으르렁대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갑자기 요정을 덤벼들게 해놓아서, 서로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에요. 그 애는 효율적인 대화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했어요. 당신에게는 무의미하게 끝나버려서, 아쉽네요」 어디까지가 진심인 것일까, 오우지 미사야는 시원스레 말한다. 나는──등 뒤의 도망갈 길을 곁눈질로 확인하면도, 잠깐 동안만 이 녀석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기로 했다. 「대화라면 저와 선배, 말인가요」 「맞아요. 코쿠토씨, 당신은 이곳에 와주었어요. 그것만으로 저는 당신에게 호감을 가졌어요. 왜냐하면 이곳은───」 「다치바나 카오리가 죽은 장소이기 때문인가요」 예에, 하고 그녀는 만족스럽게 끄덕인다. 그렇지만 그 눈은, 무자비한 여왕처럼 차가운 증오에 흐려져 있었다. 「11월의 화재 때,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1학년 4반의 학생 말이군요. 그 애와 아는 사이였던 건가요, 선배는」 뻔한 나의 질문에, 오우지 미사야는 예에, 하고 우아하게 끄덕이며 답했다. 「카오리는 나의 후배였어요. 초등부부터 귀여운 여동생 같은 존재였죠. 요령이 없어서 손해 보는 일만 하는 아이였지만, 누구보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상냥한 아이였어요. 그렇지만 이곳에서 죽어버렸어요. 죽어야만 할 정도의 죄 같은 것은 없는, 예쁜 아이였는데. 신앙심 깊은 그 애는, 그랬기 때문에 더욱 괴로운 선택을 해버렸어요」 괴로운 듯, 미사야는 정말로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비로운 마음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회개하지도 않아요. 카오리가 목숨까지 내던졌는데도, 이전과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어요. 그런 건, 이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요. 1학년 4반의 학생들은 모두 죄인이에요. 그 같은 것들은 나의 학교에 들일 수 없어요. 쓰레기는 태워서 없애버려야 해요」 「1학년 4반 학생들이, 다치바나 카오리를 죽였다는 말인가요?」 「───그렇다고 하면───아니, 그러는 편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요, 코쿠토씨. 카오리는 자살한거에요. 이 의미는,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오우지 미사야는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은 불명확한 부분이 너무 많다. 아무래도 1학년 4반이 다치바나 카오리가 불타 죽은 원인인 듯 하다. 그렇지만……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해할 수 없어도 상관없지만요. 결국 다치바나 카오리의 복수인가요, 이 소동의 원인은?」 「예에. 그녀들에게는 지옥의 밑바닥이 어울려요. 이 학교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게 할 수 는 없어요」 「정말로, 죽일 생각인가요」 나는, 짧게 물어보았다. 대답은 뻔히 알고 있다. 오우지 미사야는 4반 학생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거리낌 없이 살인……아니, 소거(消去)를 행하겠지. 그렇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설마요. 죽여버리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거에요. 그렇지만 그것을 나무라지는 않겠어요. ……손을 떼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코쿠토씨. 저, 당신과는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시 한번 어깨에 태우고 있는 요정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보이지 않겠지만, 이 아이는 당신의 기억을 품고 있어요. 예쁘죠? 당신의 기억은 차갑고, 매끄러워요. 대리석처럼 아름다워요. 그런데도 그 중심에서는 강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어요. 나는 그 속을 볼 수 없지만, 감촉만으로 아주 순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당신───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오우지 미사야라는 이름의 선배는, 그렇게 말하면서 킥, 하고 웃었다. 나는 오래간만에────그래, 3년 전에 료우기 시키가 미키야와 함께 나타났을 때 이후로, 이 여자를 떡으로 만들어버리지 않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게 되었다. … 오랫동안, 우리들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이미, 도망친다는 단어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끓어오르고 있다. 미사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할 수 없네요. 당신과는 마음이 맞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 안 드나요, 코쿠토씨?」 「예에, 전혀 안 들어요」 나는 속답한다. 미사야는 후후, 하고 웃었다. 「그럴까요? 저, 당신과 비슷해요. 예를 들면, 그렇지───친오빠를 사랑하고 있는 점이라던가」 「……에?」 정말로 생각치도 못한 말을 듣고, 나는 말이 막혀버렸다. 화악, 하고 자신의 뺨이 빨갛게 물드는 것을 느낀다. 「무, 무, 무」 슨 소리에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우지 미사야는 기쁜 듯 눈을 감는다. 「당신에 대해서는 어제, 당신 자신의 입으로 들었다고 말했죠? 당신의 오라버니에 대한 것도, 당신의 마술사에 대한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 점까지 우리들은 서로 통하고 있어요. 코쿠토씨는 반 년 전부터라고 말했지만, 저는 조금 뒤부터일까요. 마술이란 것을 몸에 익히게 된 것은」 마술. 그 단어가, 나의 사고를 급속하게 냉각시켰다. 미사야는───마술을 몸에 익혔다, 라고 말했다. 「그래요. 카오리가 죽어서, 나는 그 보복을 위해서 요정을 조종하여 사람에게서 기억을 빼앗는 마술을 몸에 익혔어요.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 마술을 습득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마술을 익혔어요. 카오리를 위해서──그녀와 관계했던 자들의 기억을 채집하는 것이 나의 목적. 그녀의 치욕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싶어요. 그것 이외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문제에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그것 뿐. 형체 있는 것을 부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에요. 어때요, 코쿠토씨. 이건 나쁜 일인가요」 「그런 건, 제 알 바 아니에요. 그렇지만 4반의 학생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당신이라는 것은 알았어요. 그 원인이 다치바나 카오리에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쿠로기리 선생님은 어떻게 된 건가요?」 움찔, 하고 미사야의 눈썹이 동요에 일그러진다. 그래, 오우지 미사야가 갖가지 구실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 해도, 그것만은 분명히 나쁘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일이다. 쿠로기리 선생님이 담임이 된 것은 다치바나 카오리가 죽고, 하야마 히데오가 실종된 뒤다. 그는 사건에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런데도, 요정에 의해서 기억을 빼앗겼으니까. 「쿠로기리 선생님의 기억을 빼앗은 건, 필요이상의 행동이에요」 나는 또렷하게 말해주었다. 여기가 이 여자의 이론무장을 파탄시킬 최대의 호기라고 간파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 반대로 그녀의 동요는 한순간에 끝나버렸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강한 의지로 나를 노려보아 오기까지 한다. 「아니요.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 사람은 그런 사건 따위에 관계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에요. 알아버린 사실은, 제가 전부 빼앗지 않으면 안돼요」 ……뭘까, 이 내던지는 듯한 강한 단정은. 스스로도 그 기세에 눌리고 있다고 느끼며, 나는 이유를 묻는다. 「───어째서지요?」 오우지 미사야는, 그 긴 머리를 촤악 하고 흔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하잖아요. 그 사람이, 피를 나눈 나의 오라버니니까요」, 라고. 「……친오빠? 선생님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나는 어쩐지 납득하고 있기도 했다. 엄청난 우연이지만, 확실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우지 미사야, 아니 오우지가의 아이는 모두 양자니까, 그녀의 옛 이름이 쿠로기리 미사야라는 이야기도, 뭐어 거짓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쪽의 쇼크도 개의치 않고, 오우지 미사야는 계속해서 말한다. 「……예에, 저도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어요. 카오리의 죽음을 안 뒤에, 당신과 마찬가지로 1학년 4반에 의혹을 품고 나는 하야마 히데오를 추궁했어요. 카오리가 어째서 그런 일을 당해버렸는지를 안 나는, 4반의 담임인 쿠로기리 사쯔키에게 상담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어요. ……이미 나 한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쿠로기리 선생님은 너무나도 상냥했어요. 그런 사람에게서 기억을 빼앗는 것은 가슴 아팠지만, 나는 그를 알기 위해서 기억을 빼앗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야말로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기억은 확실하게 나의 오라버니임을 증명해주었으니까요. 오라버니는 카오리의 죽음의 진상을 전부 알고 있었어요. 고발하는 것은 용이했고, 하지 않으면 자책감에 괴로워 할 텐데도, 오라버니는 그녀들을 위해서 입을 다물고 있기로 결심한거에요. ……제가 따지고 들자, 오라버니는 죽은 자보다는 산 자를 존중해야한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나는 인정할 수 없어요. 사람 한 명을 자살까지 몰아넣고서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은 용서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이런 더러운 일에 가슴 아파하는 오라버니의 모습을 보는 일이,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러니까, 사쯔키에게서 기억을 빼앗은 거에요. 내가 여동생이었다는 기억도, 그 사건에 관계된 기억도, 전부. 사쯔키는 아무 것도 고민하지않고 평화로이 살면서, 단지 나만을 사랑해주기만 하면 돼요. 뒤돌아볼 것은───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나는, 말을 잃었다. 비슷하다.  비슷하다? 누구와,   누가? 그렇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비슷할 뿐. 우리들은 비슷할 뿐이다. 바라는 모습, 원하는 것, 그것을 위한 노력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용하고 있잖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 담임으로서, 선생님에게 1학년 4반의 비밀을 지키게 하고 있어요. 그것을 당신은 보고도 못 본 체하며 좋아한다는 소리만 하고 있어요」 「그것도, 이제 곧 끝나요. 말했잖아요, 코쿠토씨. 우리들은 비슷해요. 그러니까 당신의 갈등도 이해할 수 있어요. 저라면───당신의 바램을 이루어 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동료가 되라며, 오우지 미사야는 손을 내밀어왔다. 코쿠토 아자카는, 그 손을 바라본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원수처럼. 「───조건에 맞는다면, 못 본 체 해줄 수도 있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만약. 만약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나는 오우지 미사야를─── 「당신이, 나의 잃어버린 기억을 끌어 낼 수 있다면」                                   ───죽여서라도, 그 힘을 빼앗아온다. 「잃어버린, 기억?」 「그래요. 저에게는, 오라버니(미키야)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의 기억이 없어요. 갑자기 생각하고 보니 좋아하고 있었죠. 그러니까, 당신이 그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다면──」 「그건 무리에요. 본인이 모르는 과거는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에요. 요정이 빼앗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기억 뿐」 ……그런가. 다행이다, 라고 나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면───교섭은 결렬이네요」 그럼, 남은 것은 부딪쳐서 깨부수는 것뿐이다 이대로 미사야에게로 달려가, 필살의 내려 차기를 작렬시킨다. 조용히 몸의 중심을 앞으로 기울였을 때, 오우지 미사야는 또 무언가를 말했다. 나는 이미 대화 할 생각도 없어서, 그것을 가볍게 흘려 넘긴다. 「저기 코쿠토씨. 사용마를 만드는 데는 전신이 되는 물체가 필요하다는 거, 알고 있겠죠?」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순식간에 그녀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이때만큼, 자신의 탁월한 사고능력을 원망스럽게 생각한 적은, 없다. 「그렇다면───당신이 방금 전부터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뭘로 만든 것일까요?」 미사야는 웃는다. 나는 손에 쥔 그것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또렷하게 보인다. 요정은, 내가 이미지하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것은, 한번밖에 보지 못했던, 하야마 히데오처럼 생긴 난장이(小人)였다. 나는 당황하며 손을 뗀다. 그 틈을 노리고───미사야의 손이, 나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나의 의식은 번지점프를 하듯, 곤두박질치며 추락해갔다. / 3 … 그 녀석은 말했다. 「기억을 영상처럼 기록할 수 있는데, 어째서 잊는 일이 가능한 걸까?」 나는 대답한다. 「기억은 모두, 멋대로 잊어버려」 그 녀석은 말했다. 「그것은 기억하지 못할 뿐이라는 소리. 너는 분명 기억하고 있어. 기록할 수 없는 나와 달리, 사람들의 기억은 잊혀지는 일은 없어」 나는 대답한다. 「기억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잊혀졌다는 소리야」 그 녀석은 말한다. 「잊는다는 것은 열화(劣化) 된다는 것입니다. 기억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빛바래져 가는 폐기물.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모두, 영원한 것을 녹슬게 만들어 버려. 영원한 것을, 자신들의 손으로, 침전되기만 하는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거지」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 그 녀석은 말했다. 「영원은 되돌려보내지 않으면 안돼. 그 슬픔을 재생하지. 설령 네가 망각했다 해도. 기록은 분명히 너에게 녹음 되어 있으니까」 나는 말했다. 「영원 따위, 누가 결정하는데」 그 녀석은 대답했다. 「알 수 없어. 그러니까, 그것을 계속 찾고 있어」 ───거기서 생각했다. 생각하는 것조차 할 수 없는 그 녀석에게 있어서, 해답이란 것은 도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 똑똑 하는 노크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창밖은 잿빛 하늘이라, 지금이 아침인지 점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시계를 보자, 시각은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코쿠토씨, 계신가요」 방 밖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자서 생긴 두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계속 노크소리가 들리는 방문을 열었다. 복도에 서있는 사람은 시스터 한 사람으로, 그녀는 나를 보고서 당황하는 빛을 띄운다. 낯선 학생인 나를 보고 곤혹스러워 하는 듯 했다. 「료우기 시키입니다. 3학기부터 전입할 예정입니다만」 그렇게 말하자 시스터는 아아, 하고 끄덕이며 용건을 말했다. 코쿠토가에서 전화가 걸려와, 아자카를 부르러 왔다고 한다. 오늘에 한해서 아자카의 가족에게 전화가 왔다면, 상대는 단 한사람 밖에 없다. 「뭐하다면 제가 대신 전화를 받아도 될까요. 코쿠토씨의 가족과는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까요」 「아아, 료우기씨와 코쿠토씨는 친척이었죠. 그렇다면 문제는 없겠네요. 전화는 로비의 전화기로 돌려져있으니, 얼른 가서 받아보세요」 그럼, 하며 인사를 하고 시스터는 떠나갔다. 나는 아자카의 잠옷에서 레이엔의 교복으로 갈아입고 방을 뒤로했다. 기숙사의 로비란, 곧 현관문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이 기숙사에 왔을 때에 다이얼이 없는 전화기가 로비의 소파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아자카의 말에 의하면, 밖에서 걸려온 전화는 시스터들이 대기하고 있는 사감실로 연결되고, 전화 상대가 학생에게 관계있는 친족이 아니면 끊어버리는 구조라고 한다. 시스터가 전화의 상대를 "해가 없다"라고 판단한 상황에서만 전화가 로비로 돌려지고, 학생은 일단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으며 통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인 듯 하다. 인기척이 나지 않는 로비까지 걸어가서, 나는 수화기를 손에 들었다. 「여보세요, 아자카?」 이미 듣기 익숙해져버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화 상대는 역시 코쿠토 미키야였다. 「아자카는 지금 부재중이다. 새해 벽두부터 전화하다니, 꽤나 여동생을 아끼시는구만, 너란 놈은」 어째서인지, 나는 일부러 차가운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전화 저편의 미키야는, 웃, 하고 말을 삼키고 있다. 「……시키, 어째서 네가 전화를 받고 있는 거야?」 「아자카가 없어서라고 말했잖아. 그 녀석, 아침부터 힘이 넘쳐보였으니까 말야. 얼른 처리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것 같은 걸」 「……그런걸까. 아자카는 집에 있어도 별로 즐거운 것 같지 않아 보이던데. 기숙사에 있는 쪽이 마음 편하다고 말하고있고」 「마음 편하다는 소리지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 녀석의 경우에는」 내 말의 의미도 모르고, 미키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 하다. ……뭐어, 모른다면 됐다. 「그래서 용건은 뭐야, 미키야」 「별거 아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해서」 「몰라. 내일쯤 다시 전화를 해서 아자카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그럼-」 「그럼, 이라니 잠깐만 기다려, 아직 1분도 통화 안했잖아, 시키!」 당황하는 미키야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귀에 울려 퍼진다. 문득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나는 수화기를 손에 든 채로 희미하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어쩐지, 아주 화나있는 듯한 표정이다. 「이건 아자카에게 한 전화잖아. 나랑 이야기 할 것도 없잖냐」 「할 말은 있습니다. 사실은 시키가 뭐하고 있나 걱정되어서 걸어본 거니까, 조금만 더 얘기하자. 애초부터 말이지, 레이엔에 전화를 거는 것은 아자카 앞으로 걸 수밖에 없어. 그 쪽에 대한 얘기, 아자카에게 못 들었어?」 ……듣긴 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됐어. 나, 전화로 얘기해봤자 잘 모르니까, 이야기하는 것은 싫어」 「……그런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네. 그러면 할 수 없지, 오늘은 이걸로 안녕이야. 레이엔은 하루에 한번밖에 전화를 바꿔주지 않으니까」 아쉬운 듯 미키야는 말한다. ……그런가. 오늘은 안녕인가. 「잠깐 미키야. 시간이 난다면 한 가지, 부탁을 해주지. 여기서는 알 수 없으니까, 밖에서 조사 해주지 않겠냐? 하야마 히데오라는 예전에 있던 레이엔의 교사와,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교사에 대해서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의 경력 같은 것, 찾아볼 수 있겠냐?」 「───글쎄 어떨까.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없지」 이것은 미키야 나름대로의 승낙의 표현이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몰라도 괜찮아. 말해두지만, 무리는 하지마. 그럼, 혼자서 나돌아 다니고 있는 아자카를 찾지 않으면 안 되니까, 끊는다」 「아아, 기다려. 이쪽에서도 한 가지 부탁할게 있어. 레이엔의 학생 중에서 다치바나 카오리란 애가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그 애의 성적을 조사해주지 않겠어? 체육의 출석률이라던가, 그 쪽으로. 레이엔은 자료를 서류만으로 정리해놓기 때문에 밖에서는 입수할 방법이 없어서 곤란해」 ……? 미키야는 생각치도 못했던 소리를 한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의미가 있는 거겠지. 「알았어. 여유가 있다면 해두도록 하지」 그렇게 대답하고서, 나는 철컥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망각녹음\ 4 잠드세요 아자카씨. 덧없는 잠 속에서, 당신의 슬픔을 재생시켜 줄 테니까───. 그렇게, 오우지 미사야가 귓가에 속삭인다. 나는 꿈인지 잠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애매한 졸음 속에서, 그저 눈을 감은 채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꿈같은 꿈속에서, 나는 계속 영원을 바라보고 있다───────. … “그런 건 싫어. 나는 특별하고 싶어” ……어렸을 적에, 나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언제였을까. 아주 오래되어서 이젠 아버지의 얼굴도 자신의 모습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아득히 오래된 일. 철이 들었을 때부터, 코쿠토 아자카는 단 하나란 단어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것은 주박(呪縛)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나 자신은 그렇게 존재하는 모습밖에 사랑할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주위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싫었다. 당연하게 깨어나고, 당연하게 살아가고, 당연하게 잠드는 것을 경멸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나일뿐이다. 그러니까 누구와도 다른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만을 막연하게 품고 있던 어린아이는, 무엇이 특별한 것인지도 잘 모르면서, 단지 주변보다 뛰어난 것만이 "다른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빨리 어른이 되려고, 천진난만함이 용서되는 얼마 안 되는 유년기를 미련 없이 내버렸다. 억지로 성장시킨 지식을 자신만의 비밀로 하고, 주위에는 평범한 아이로 생각하도록 속여 왔다. 그러는 것으로, 나는 동년배의 아이들보다 특별해졌다. 천재라며 유명해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우등생이라고 생각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최고가 아니어도 좋다. 제일 약한 인간이라도 상관없다. 나는, 단지, 특별한 것이 되고 싶었던 것 뿐. 그렇게 여러 가지를 잘라내 버리면서 나는 조금씩 주위와 어긋나기 시작했다. 손에 넣은 지식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멀리하고,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기뻐서, 나는 좀더 쓸데없는 것들을 잘라내 간다.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물론이고 부모님조차 나를 경원시하기 시작해서, 나는 겨우 차분해 질 수 있는 나 자신을 손에 넣었다. 그 때, 나, 코쿠토 아자카를 지배하고 있던 감각은 무(無)였다. 아직 원래대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나는 태어나기 전의 원래의 위치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그런 감각. 그것이 잘못되어있다는 사실은 어린애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저 기분 좋은 일일 뿐이라, 그것에 선악이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나아가고 있었다면, 확실히 나는 다른 것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와는 다른 것. 누군가와는 살아갈 수 없는 것.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만 하는 것으로. 하지만, 그것이 아주 손해를 보고 있는 짓이라고 깨달았다. 정의의 우군이라던가 백마를 탄 왕자가 극적으로 나타나서 나를 타이른 것이 아니다. 어쩐지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더욱 즐거운 것을 잃어왔구나, 하고 후회할 수 있었다. “……뭐하고 있어, 아자카. 혼자서 놀아봤자 재미없잖아.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언제나 나를 데리러오는 소년이 있었다. 항상, 나는 혼자였다. 그 편이 즐거웠기 때문에, 나는 데리러오는 소년을 싫어하고 있었다. 더욱 심하게도, 그 나이 또래의 소년다움밖에 없는 그 인간을 경멸하기조차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소년은 데리러 와 주었다. 부모조차 말을 걸어오지 않는 나에게, 정말로 자연스럽게 웃어주었다. 그곳에 이해타산은 없었다. 소년은 득실을 따지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때에는 머리가 나쁘구나, 하고 내심 경멸했지만, 소년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손을 쥐고, 나를 집까지 데리고 간다. 그것은 오빠로서의 입장이니까 취한 행동이겠지만, 분명 소년은 내가 다른 집 아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특별하게 존재하기를 바랬다. 그는, 단지 그곳에 있는 것뿐이었다. 조금 가슴이 아팠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변하지 않은 채, 매일 매일을 낭비한다. 그것이 변한 것은, 어째서였을까.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그 소년을 항시 눈여겨보게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덤벼드는 개에게 물릴 뻔한 상황에서 구해줬다거나, 부모님에게 야단맞을 때 감싸주었다거나,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상황에 손을 내밀어 주었다거나, 그런 일은 일절 없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는 오라버니를 사랑하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하지만, 주위에 벽을 만들고 있던 내가, 애초부터 사람을 좋아하게 될 리가 없다. 정말로 이유도 없이,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보니, 나는 오라버니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오라버니인 소년을 증오했다. 특별하게 존재하려하는 내가, 어째서 저런 평범한 상대에게 연애감정을 품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하고 그 불합리함에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나는 소년을 계속 관찰하고 있다. 혼자서 놀러나가서 저녁때까지 기다리다가, 데리러 나오게 만든 일이 수없이 많다. 경멸하고 있던 웃음은, 역시 경멸할 정도로 생각이 없는 어린애의 웃음이었지만, 그 반면에 나는 슬프고 외로웠다. ────당연히 깨어나고. ────당연히 살아가고. ────당연히 잠들고. 나는 그런 생활을 혐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몇 번, 나는 오라버니에게 용서를 빌려고 했었겠지. 코쿠토 아자카는 오랫동안 오라버니를 박대하고 있었으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말로 할 수 없다. 나는, 그런 생활이 계속 두려웠던 것뿐이에요. 그것을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요, 오빠. ……그런 대사, 천진했던 유년기를 내버린 나는 입에 담을 수 없다. ……그렇지만, 하고 생각한다. 대체, 오라버니는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던 것일까. 미키야가 나를 완전히 굴복시켰을 리도 없다. 미키야가 나에게 설교를 했던 것도 아니다. 애시 당초 만약 그랬다면, 나는 그것을 논파(論破)하고 오히려 꼼짝 못하게 눌러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이유 없는 심경의 변화와, 발단이 없는 애정. 깨닫고 보니 강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있었다. ────아니. 분명, 이유는 있을 것이다. 내가 잊고 있는 것 뿐, 무언가 아주 소중한 것을 잃고 있다. 그렇다면, 기억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사랑(戀幕)이 확실한 것이라고 맹세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면, 분명───아자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주 서투른 말투가 되겠지만, 그래도 정말로 솔직한 마음으로, 오빠에게 사과할 수 있을테니까─── … 「일어나라 아자카, 감기 든다」 익숙한 목소리가, 남성 같은 억양으로 들려와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누군가 나를 안아 일으켜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허리에는 차갑고, 딱딱한 감각. 복도에 누워 잠들어 버린 나를, 누군가가 깨워주고 있는 거라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미키───」 이름을 부르던 도중, 상대가 흑발의 여자라고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나와 그 여자……료우기 시키는, 서로를 말없이 쳐다본다. 「……………」 시키는, 갑자기 손을 놓았다. 그녀에게 안겨있던 나의 상반신은, 그걸로 쿵, 하고 바닥에 부딪친다. 「가, 갑자기 무슨 짓이야, 이 바보!」 정통으로 등을 바닥에 부딪쳐서, 나는 참지 못하고 일어선다. 시키는 감정 없는 눈으로 이쪽을 힐끗 보더니, 잠 깼잖냐, 라는 성의 없는 핑계를 댄다. 「에에, 깼어. 깼고말고. 덕분에 어떤 꿈을 꿨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상쾌하게 깼다구!」 「뭐야, 또 당한거냐, 너」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기억해냈다. 오우지 미사야와의 대화. 그 뒤의 사건. 요정을 붙잡았고, 그 뒤에 허를 찔려 간단히 잠들어버려서 이렇게 시키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상황. 「어라, 이상하네.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빼앗기지 않은 것 같아. 나, 기억은 선명한 걸」 「그러면 요정사는 봤겠군」 으응, 하고 나는 끄덕였다. 김이 샜다고 하자면 김이 샜지만, 이번 사건의 주모자는 확실해졌다. 문득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그 뒤로 몇 분 지나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나를 여기서 어떻게든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 전에 시키가 찾아왔기 때문에 물러난 거겠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료우기 시키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건가. 「……고마워, 시키」 시키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나서, 나는 이번 사건의 주범이 오우지 미사야라는 것을 말했다. 「오우지 미사야라면, 어제 그 키 큰 여자?」 「그래. 방금 전까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시키가 와서 도망간 것 같아」 그런가, 하고 시키는 끄덕인다. 그렇지만 그녀는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어쩐지 납득이 안 간다는 눈치였다. 「왜 그래, 시키. 뭔가 미심쩍은 점이라도 있는 거야?」 「하지만, 그 녀석 자신도 잊고 있는데」 시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무언가, 아주 의미 있는 단어다. 미사야 자신도 잊고 있다. 그것은, 즉…… 「뭐, 상관없나. 인간이라면 무언가 잊고 있는 것 한두 가지는 있기 마련이지. 그것보다 아자카. 미키야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여하튼, 다치바나 카오리라는 여자의 성적을 조사해보라던데」 「────에?」 시키의 대사는, 나의 어중간한 사고를 멈춰버릴 정도로 의외였다. 나는, 미키야가 이런 종류의 사건에 관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는 여름에 이상한 유령사건에 관여했다가, 3주 동안 계속 자고 있던 적이 있다. 다행히 미키야는 혼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육체의 관리를 토우코 사부가 해주어서 다행이었지, 토우코 사부가 없었다면 3일 정도 만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미키야가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눈에 불을 켜고 있다. ……곤란한 점은, 그 남자는 이런 일에 대해서만은 엄청나게 신경이 예민해서, 작년 11월에도 기숙사의 화재사건으로 여러 가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미키야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토우코 사부에게도 비밀엄수를 약속 받았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런 절묘한 타이밍에 연락을 해오고, 거기에 다치바나 카오리의 성적을 조사하라는 말을 해오는 걸까? 대체 미키야는 누구에게서 이번 일에 대한 얘기를─── 「……그렇지. 생각할 것도 없어. 원흉은 언제나 너였으니까 말야, 시키」 「뭐야. 없었던 네가 잘못한거라고. 그 눈치로 보아하니, 내일도 걸려올 테니까 오후에는 자기 방에서 기다리면 되겠지」 그런 것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니 미키야의 전화도 가로채갔다는 것을 깨닫고서, 시키를 노려보는 눈이 더욱 험악해져버렸다. 시키는 나의 시선을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계속한다. 「미키야가 말하기로는, 체육 출석률이 중요한 것 같더만. 어떻게 생각해냐? 아자카. 나는 녀석의 생각 같은 건 전혀 모르겠다」 「체육의 출석률?」 뭘까, 그건. 새로운 암호인걸까, 하며 얼이 빠져있던 순간, 무언가가 뇌리를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오우지 미사야는 말했다. 다치바나 카오리는 화재에 휘말려 죽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살한거다, 라고. 나는 중요한 것을 빼먹고 묻지 않았고, 오우지 미사야는 핵심이 되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치바나 카오리의─── 「……자살의, 이유」 중얼거리면서, 나는 뛰어나갔다. 화재로 반파되어있는 구교사를 뛰쳐나가, 숲 속을 전력으로 달려간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달렸다. 가야할 곳은 정해져있다. 학생의 건강상태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카르테(karte)가 보관되어있는 양호실에 갈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다치바나 카오리의 건강진단서와, 양호실의 사용기록을 발견했다. 9월부터 체육은 전부 견학. 10월부터는 결석이 두드러지고, 그 화재가 일어나기 1주일 전부터는 한번도 등교하지 않았다. 확실히 하기 위해 보건담당 시스터에게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어떤 상담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걸로 엎어져있던 카드는 전부 뒤집어졌구나, 하고 나는 어두운 마음으로 확신했다. / 4 해가 지고, 교내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학생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다. 레이엔의 기숙사가 문을 잠그는 시간은 오후 6시로, 그 이후에는 학생들에게 자유라는 것이 없다. 나와 아자카는 식당에서 기숙사생들과의 합동 식사를 마치고 자신들의 방에 되돌아 왔다. 창 밖은 이미 어두운 밤의 어둠에 감싸여있다.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소리뿐이고, 기숙사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쓸쓸한 분위기다. 나는 그런 점만은 마음에 들었고, 기숙사제가 아니라면 정말로 전학해도 좋을 것 같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도심의 고교는 어쨌든 너무 시끄럽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침대에 앉는다. 아자카는 착실히 문의 열쇠를 잠그고는, 긴 머리를 나부끼며 이쪽을 빙글 돌아본다. 「시키. 숨기고 있는 거 있지?」 검지손가락을 세우면서, 아자카는 이쪽을 바라본다. 「숨기고 있는 것 따윈 없어. 너야말로 나한테 말 안 한게 있잖아」 「내가 말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에요. 됐으니까 이러쿵저러쿵 말 돌리지 말고, 얼른 식당에서 슬쩍한 나이프를 내놓으라는 거야!」 아자카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한 시비조로 말했다. ……놀랐다. 아자카가 말하는 대로, 나는 아까 식당에서 나왔던 빵을 써는 나이프를 슬쩍 옷소매에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녀석이 있다니, 나의 암기술(暗器術)도 녹슬어 버린 것 같다. 최근에는 당당하게 칼을 가지고 다니고 있었으니까 무기를 숨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풋내기인 아자카에게 간파되다니 심각한 타락이다. 「그런 거, 기껏해야 식사용 나이프잖아. 아자카가 신경 쓸 정도의 일이 아냐」 간파되었다는 것 때문일까, 나는 뚱한 어조로 대답하고 있었다. 아자카는 나의 말 같은 것은 듣지 않고 거리를 좁혀온다. 「안 돼. 설령 날이 없는 나이프라도, 네가 가지면 덤덤탄(dumdum bullet)급의 흉기가 되니까. 레이엔에서 사람이 죽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참을 수 없어」 「이제 와서 무슨 소릴. 이미 두 명이나 죽었다구, 신경 쓸만한 체면 따위는 옛날에 사라져버렸잖아」 「아니, 살인사건과 사망사고는 다른 거야. 자, 얼른 나이프를 내놓으라구. 우리들의 역할은 원인의 규명이지 해결이 아니니까」 「……거짓말. 완전히 끝장을 볼 생각이면서」 단호하게 나이프를 손에서 놓을 생각이 없는 나는, 바짝 다가오는 아자카를 마주본다. ……나도 장난삼아 나이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자카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눈을 뜨기 전에 나에게도 뭔가 이상한 감각이 있었다. 잠들어있는 나의 의식과 동화해온 그것이 요정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다면 도망칠 수 없다. 그것을 위한 무기로서의 나이프였고, 레이엔의 식기 디자인은 모두 정교해서 마음에 들기도 했다. 돌아간다면 이 나이프는 관상용으로 소중하게 보관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내가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사이에, 아자카는 이미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어떻게 해도 넘기지 않을 생각구나, 시키」 「거참 시끄럽네, 너 꽤 끈질기구만. 그러니까 미키야에게 바람이나 맞는 거라구」 나는 며칠 전, 정월의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자카의 감정을 거칠게 만들뿐인 것 같다. ……뭔가, 위험하다. 눈앞에 있는 아자카의 눈은, 쏴아, 하고 빠져나가는 파도처럼 감정이 사라져간다. 「───알겠습니다. 나, 실력행사로 들어가겠어요」 무서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나를 덮쳐눌렀다. 침대에 앉아있던 나는 덮어 눌러오는 아자카를 피할 수 없다. 나와 아자카는 그대로 침대에 뒤엉키면서 쓰러진다. ……결국, 나이프는 아자카에게 빼앗겨 버렸다. 겉보기에는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자카는 상당히 감정이 격하다. 그런 그녀가 정말로 화가 나면 엄청나게 난폭해져서, 상처 입은 곰을 연상시킨다. 야수를 얌전하게 만드는 데는 대화나 반격은 무의미한가, 라고 판단한 나는 할 수 없이 숨기고 있던 나이프를 하나 내밀고 해 없는 승부를 끝마쳤다. 아자카는 나이프를 들고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간다. 나는 어떤 상태냐면, 침대 위에 널부러 진 채였다. 「……이 무식한 힘. 봐라, 팔에 멍 자국까지 나버렸어. 너, 평소에 뭘 먹고 사는 거냐」 「실례네요, 자그마한 빵과 신선한 야채뿐이에요」 아자카는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책상에 나이프를 넣는다. 그리고 그대로 열쇠를 걸어 잠가버렸다. 나는 침대에 고쳐 앉고서 그녀의 등을 바라본다. 가만히 있으면 될 테지만, 자신도 모르게 생각한 것이 입으로 나왔다. 「하지만 의외구만. 정말 넌 운동신경이 좋구나. 이 정도라면 충분히 미키야를 덮칠 수 있잖냐, 아자카」 갑자기 아자카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뒷모습을 보고도 그렇다고 알 수 있는 것은,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었기 때문이다. 무, 무, 무, 하고 말을 더듬으면서 아자카는 뒤를 돌아본다. 역시 그녀의 얼굴을 새빨개져있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에요, 당신은」 「별로. 딴 생각은 없어. 그냥 그렇게 생각한 것 뿐」 ……문제는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 있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것을 깊이 따지고 드는 것은 그만두었다. 아자카는 새빨간 얼굴을 한 채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어쩐지 무관심한 눈동자로 그 모습을 마주본다. 시계의 초침소리가 백 번 정도 반복되었을 무렵, 아자카는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역시, 아는 거야?」 「글쎄, 어떨까나. 알고 있던 것은 내가 아니니까. 적어도 당사자는 눈치 못 채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냐?」 그래, 하고 아자카는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녀가 코쿠토 미키야에게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던 건, 내가 아니다. 옛날, 아자카와 처음 만났을 때 있던 '시키'가 한눈에 간파한 것뿐이다. 시키는 '시키' 덕에 그것을 알고 있던 것 뿐. 그 지식이 없다면,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그녀가 미키야에 대해서만 엄격하게 대응 하는 이유도, 그가 없는 곳에서는 자신에게 들려주려는 듯 오라버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자카는 원래대로의 냉정함을 되찾고 나자, 이번에는 역으로 나를 흘끗 노려보아 왔다. 「하지만 좀 열 받는걸. 그건 여유야? 시키」 아자카는 엉뚱한 것에서 트집을 잡는다. 나는 이해불능의 질문에, 혼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에게 빼앗겨도 괜찮냐고 묻는 거야. 정말, 열 받네-」 안달 난 것처럼 아자카는 같은 대사를 반복한다. 그렇지만 빼앗기다니 누구를 말인가. 말의 흐름으로 보면 미키야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건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렇다. 분하지만 시키라고 하는 나의 것이 아니라───── 안 돼. 그 다음은,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갑자기 등줄기에 두려움이 퍼져서, 나는 생각을 멈췄다. 「……아자카는 말야, 어째서 그런 녀석이 좋은 거냐. 남매잖아, 니들은」 자신을 얼버무리기 위해, 나는 지겨운 질문을 한다. 아자카는 그렇네, 하고 시선을 공중에 띄우면서 대답한다. 「솔직히 말하는데 말야, 시키. 나는 특별한 것이 좋아. 그렇다기보다는 금기(禁忌)라고 불리는 것에 매혹되는 성질인 것 같아. 그래서 미키야가 오빠인 것에 문제는 없는 거야. 문제가 있는 것은 저쪽뿐이고, 나로서는 오히려 기뻐할 만한 일이라구. 좋아하는 상대가 근친이라니,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어디까지나 냉정한 모습으로 아자카는 당치도 않은 소리를 한다. ……절실히 느낀다. 그 남자는, 이상한 녀석들이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변태」 「뭐야, 정신이상자」 거의 동시에, 나와 아자카는 서로를 매도한다. 그것은 혐오나 경멸이 담기지 않은 정말로 순수한 의견을 서로 말한 것이었다. … 아자카는 내일 일찍부터 조사할 일이 있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나는 어떠냐면, 평소 야행성이었기에 간단하게 잠들 수가 없다. 시계 바늘이 2시를 넘어가도 잠이 오지 않아서, 그저 멍하니 창 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는 불빛도 없고, 깊은 나무들의 어둠만이 있다. 숲 속에는 달빛조차 닿지 않고, 이 기숙사는 심해에 있는 것처럼 고요하다. 나는 식당에서 손에 넣었던 나이프를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숲과 어둠을 바라본다. 식당에서 손에 넣은 나이프는 두 자루. 한 자루는 여기서 사용하기 위해서, 한 자루는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서 입수한 것인데, 관상용 쪽은 아자카에게 빼앗겨 버렸다. 이렇게 되면 남은 한 자루가 사용되지 않게 되기를 빌 수밖에 없지만, 역시 그 바램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오늘밤은 상당히 바쁘구나, 너희들」 창 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나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어두운 레이엔의 밤 중, 반딧불처럼 빛나는 것이 무수히 날아다니고 있다. 그 숫자는 1,20마리가 아니다. 어젯밤은 한두 마리 정도였었는데, 오늘밤만은 요정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아자카와 내가 사건을 휘젓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겠지. 요정사는 예정을 급속하게 서두른 것 같다. 「이래서는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을 것 같은데」 희미한 달빛을 반사시키는 나이프를 바라보며, 나는 그런 말을 흘린다. 레이엔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오늘까지다. 어떤 결과가 되더라도, 내일 결판이 나는 것은 명백했으니까. 망각녹음 5 \ ◇ 나는 말했다. 「이젠,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대답한다. 「아직 방법은 있지 않습니까. 부서져버린 것은 고치면 됩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고칠 수 없어요」 그는 대답한다. 「고쳐서 다시 만드는 것은 제가 맡도록 하지요. 당신에게 죄는 없어요.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에 닿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대로 있는 편이 좋아요」 나는 말했다. 「……저는 깨끗한가요. 그런 것처럼 살아왔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어요」 그는 대답한다. 「당신은 더러워져있지 않아. 자신에게 싹튼 어두운 감정을 억제할 수 없다고 해도, 그 손은 아직 하얀 그대로입니다」 그는 끄덕이면서───다정하게 웃었다. 「자신의 손은 깨끗한 상태로 있지 않으면 안 돼. 이 세계에, 그와 같은 더러움은 있어서는 안 돼요. 더러움은 더러움 스스로 없어지게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더러움을 없애려고 하면 그 더러움을 이어받게 되어버리죠. 이 부정(不淨)한 순환을, 우리들은 저주라고 부릅니다」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 이외의 무언가를 사용하면 된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래도 결과로서는───── 그는 대답한다. 「영원은 되돌아가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슬픔을 재생하지요. 설령 당신이 망각했다고 해도. 기록은, 확실히 당신에게 녹음되어 있으니까」 나는 말했다. 「저에게, 잊고 있는 일 같은 건 없어요」 그는 대답한다. 「망각은 의식할 수 없는 누락입니다. 사람에게는 잊지 않은 일 따위는 없어요」 ───그렇다면, 나의 기억의 단절은 무엇일까. 「모르겠어요. 저의 빠진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는 대답한다. 「그것은 오라버니에게로의 환상입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 누락을 재생시켜 주도록 하지요」 나는 그것에 예스라고 답했다. ◇ 1월 6일 수요일. 하늘은 변함없이 재색의 구름에 뒤덮여있어서, 날씨는 흐린 채였다. 「……일곱 시, 반」 잠에서 깨어나 시간을 확인한다. ……믿을 수 없게도, 내가 1시간이나 늦잠을 자버리고 있었다. 당황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잠옷에서 교복으로 갈아입는다. 2층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시키에게 말을 걸어 봤지만, 그녀는 전혀 눈을 뜨지 않는다. 아마도 어젯밤 늦게까지 깨어 있었던 듯, 시키는 잠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교복을 입은 채로 자고 있었다. 추운 것도 더운 것도 괜찮다는 시키는 모포 한 장만으로 쿨쿨 자고 있다. 그 모습은 조각처럼 조용해서, 나는 깨우는 것을 포기했다. 원래부터 우리들의 역할은 원인의 규명이다. 어젯밤, 오우지 미사야와 맞붙은 뒤에 그녀를 찾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범인을 알아냈어도, 나와 시키는 그 범인을 붙잡을 필요 따위는 없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나도 오우지 미사야가 가만히 기숙사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녀는 어제부터 집에 돌아가기 위해 외출계를 마더에게 제출했었다. 즉, 서류상으로는 어제 아침부터 오우지 미사야는 레이엔의 부지 내에는 없다고 되어있다. 그 사실로 보더라도, 그녀는 이미 나와 접촉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머리가 좋으면서도 어딘가 격정적인 듯 보이는 미사야는, 나의 회유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엊그제와 어제 낮, 두 번에 걸쳐서 이쪽에 접촉해온 미사야는 결국 어느 쪽이고 시키에게 방해를 받아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오늘, 정체가 밝혀진 상황에서 덤벼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3번째의 정직이란 말도 있다. 만일을 대비해서 도마뱀가죽으로 만들어진 장갑을 주머니에 넣고, 나는 방을 뒤로했다. 냉동고처럼 차가운 기숙사의 복도를 걸어서, 1학년 4반의 학생들의 방을 몇 개인가 방문했다. 그렇지만 태반의 학생은 방에 없었고, 간혹 자기 방에 남아있는 학생들도 대화 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녀들은 호흡도 거칠고, 눈의 초점도 확실치 않아서, 마약 중독자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마치 원수를 쳐다보는 듯한 눈초리로 노려보는데,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할거라 생각할 수 없다. 시키라면 같이 쏘아보면서라도 물어보겠지만, 나는 그런 비효율적인 행동은 선택하지 않았다. 1학년 4반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포기한다. 이야기를 들을 상대는 학생들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는 기숙사에서 나와서 교사로 이동했다. 소비한 시간을 되 재빨리 시스터들에게서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다시 한번 기숙사로 돌아온다. 손에 넣은 정보를 정리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에 돌아오자, 시키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조금 언짢았지만, 『눈』에게 생각을 기대하는 이쪽이 어리석은 거야. 으응 그럼, 하고 단념하고서, 나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면. 어제 양호실에서 조사한 자료에서, 다치바나 카오리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예상할 수 있다. 체육수업을 견학한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생리일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시스터들도 인정해주므로, 레이엔에서 체육을 견학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한 부류에 들어간다. 중요시해야하는 것은 체육의 견학이 많다는 점이 아니라, 그녀의 건강진단과 견학하던 날을 대조해보는 일이다. 다른 학교에서는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엔에서는 학생의 생리 간격도 꼼꼼히 리스트 되어 있다. 그것에 의하면, 다치바나 카오리는 본래 있을 수 없는 날에 생리라며 체육을 견학하고 있었다. 이 부자연스러움은 그녀의 주장과는 반대의 사실을 연상시킨다. 시스터에게 캐물어보자, 그녀는 분명히 11월 부근에 생리가 늦어지고 있다며 상담을 해왔던 듯 하다. 시스터는 스트레스에 의한 일시적인 몸의 변조일거라며 안심시켜주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사정을 모르는 시스터가 말한 당연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억측의 영역을 넘지 않지만, 다치바나 카오리는 생리가 늦어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생리가 오지 않게 되어있던 것이 아닐까. ……뭐어, 곧, 뭐라고 말해야하나, 그게, 그, 임신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자살의 이유가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생리가 오지 않는 것뿐인 불안이지만, 뱃속의 태아는 나날이 자라나서 그 존재감을 늘려간다. 9월에서 석달 가까이 지난 11월에는, 그녀의 정신은 어찌할 수 없는 곳까지 몰려있었던 것이 아닐까. ……레이엔에서 임신하다니, 그것은 누군가를 죽이는 일보다 훨씬 부도덕한 행위다. 밖에 나갈 수 없을 학생이, 교칙을 깨고 거리에 나가서 성행위 끝에 아이를 뱄다는 것은, 마더나 시스터가 듣고 졸도하는 것 정도로 끝날 얘기가 아니다. 다치바나 카오리 본인에게로의 경멸은 물론, 그녀의 부모도 그런 딸을 용서하지 않겠지. 일의 발각을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다치바나 카오리에게는 해결책이란 것이 없다. 낙태하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시내에 나가는 것 만이라면 그렇다고 쳐도, 의사에게 보인다면 분명 학교에 연락이 취해져버린다. 초등부부터 레이엔의 학생이었던 그녀가 의사 자격증이 없는 무면허의사 따위를 알 리도 없고, 그녀는 점점 불러오는 배를 겁내면서, 사형수같은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다치바나 카오리와 만난 적이 없으니까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은 자업자득인걸까. ……아니, 오우지 미사야의 말투에서 볼 때, 다치바나 카오리는 교칙을 깰만한 애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교내에서 당한 거겠지. ……상대는 하야마인가, 역시」 그거라면, 어쩐지 맞아 들어간다. 다치바나 카오리와 성관계를 가지고 그녀를 임신시켜버렸던 하아먀 히데오는, 임신 3개월이 된 카오리란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기숙사에 불을 질렀다, 라던가. ……너무나 조잡한 생각이지만,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충 그런 것일까, 하고 나는 혼자서 끄덕여보았다. 하지만, 한 가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다치바나 카오리의 상담을 받은 시스터는 스트레스 탓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의미 없는 설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시스터들은, 다치바나 카오리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법한 환경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도, 교사인 그녀들에게도 느껴지는 동시에, 입 밖에 낼 수 없는 스트레스. 1학년 4반 학생들이 모두 감추고 있는 무언가. 「───이지메, 인가」 중얼거려 보니,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부터, 1학년 4반의 학생은 고등학교부터 입학한 학생들뿐이라고 한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다치바나 카오리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던 거겠지. 그렇지만 4반의 위원장은 콘노 후미오다. 그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녀가, 그런 한심한 작태를 방관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다치바나 카오리가 클래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필요할 터. 예를 들면, 그렇지. 「클래스에, 임신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던가」 이거라면 이야기가 부합된다. 임신할 행위를 한 다치바나 카오리를 박해하는 4반의 학생들. 이유가 이유인 만큼 시스터들에게도 상담할 수 없는 카오리와, 역시 자업자득이라고 방관하는 콘노 후미오. 그 결과, 자살해버린 카오리에게 책임이 있으니 클래스 공통의 비밀로서 그녀들은 그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그래서는 이야기가 안 맞는데」 혼자서 끄덕여보지만, 어디가 맞지 않는지 나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단편적인 정보와 직감만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것을 진실로서 단정하는데 필요한 근거를 찾아내는 작업은 서툴다. 이런 것은, 어쨌든 미키야가 발군이다. 굳이 말한다면, 나는 기발한 발상으로 트릭을 알아 맞추는 탐정이고, 미키야는 견실한 조사로 확실하게 범인을 체포하는 형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흔히 있는 탐정소설의, 머리 나쁜 형사들을 조소하면서 멋지게 범인을 알아 맞추는 탐정이란 녀석을 매우 싫어한다. 어차피 추측에 지나지 않는 것을 단지 "가능하니까"란 이유만으로 추리라고 칭하며, 보통사람을 초월한 우수한 두뇌를 과시하면서 범인을 알아 맞춘다. 탐정은 당연한 조사밖에 하지 못하고 범인을 붙잡지 못하는 형사들을 무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능한 것은 탐정 쪽이라고 생각한다. 형사의 작업이라는 것은, 사막 속에서 한 알의 보석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 괴롭고 힘든 작업을 거쳐서, 만인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과거라는 불확실한 사건을 형체로 만든다. 그런데도 탐정은 다 보았다는 말투로 자기 한사람만의 공상을 이야기하며, 범인을 집어낸다. 사막 속에서 보석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고, 자기만의 범위에서 사건을 납득시킨다. 있을 법한 상황을 상정하고, 그 모든 것을 평등하게 평가하면서 하나의 해답을 풀어내가는 범인(凡人)과. 섬광 같은 발상을 진실이라 생각하고 그것만이 옳다고 단정 지으며 해답을 내놓는 천재. 분명, 진실의 대부분은 탐정밖에 다다를 수 없는 발상에 있겠지. 그렇지만 발상이 빈곤한 것은, 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념에 갇혀 있는 것은 후자 쪽이니까. 천재라고 불리는 존재는, 결국, 자신밖에 상대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하다고 불린다. ……그래, 계속 고독. 「어라, 논점이 어긋나버렸네」 스스로도 어이없어하며, 나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벽에 부딪친 건가, 하고 내심 한숨을 내쉬면서 시계를 본다. 시각은 정오가 되려하고 있었다. 창 밖의 하늘은 구름 낀 상태 그대로다. 얼마 안 있어 비라도 내리는 걸까, 하고 생각했을 때,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코쿠토씨, 계신가요」 익숙한 시스터의 목소리. 「네. 방에 있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대답하면서 문을 연다. 노크를 한 사람은 역시 시스터로, 그녀는 나에게 전화가 걸려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미키야에게서 온 것임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로비로 향했다. 한산한 로비까지 걸어와서, 나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시키?」 어릴 적부터 들어와서 낯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화를 건 사람은 역시 코쿠토 미키야였다. 「시키는 아직 수면 중입니다. 일부러 레이엔까지 전화를 걸어오다니, 연인을 지극히도 아끼시나 보군요, 오라버니는」 일부러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전화 저편의 미키야는, 웃, 하며 말을 삼키고 있다. 「특별히 그래서 전화한 건 아니라구.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나 하고 걱정되어서 연락한 거야」 「그런 건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제가, 전에도 이야기 했었죠? 오라버니는 이런 종류의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거야, 당연히 이쪽도 관여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할 수 없잖아. 너와 시키가 고개를 들이밀고 있으니까,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로서는 무시해주면 아주 고맙겠지만, 어쩐지 지금 대사에서 찡-하고 온게 있어서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를 환멸 한다. 나는 정말, 애매한 곳에서 타산적이다. 「그래서 용건은 뭔가요? 시키 쪽인가요, 아니면 제 쪽인가요?」 「의뢰는 시키로부터지만, 보고하는 것이라면 아자카 쪽이 적임일까. 하야마 히데오와 쿠로기리 사쯔키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인데, 들어 볼래?」 에, 하고 나는 숨을 삼킨다. 미키야에게서 다치바나 카오리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시키 쪽에서도 그런 조사를 맡겼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정말이지, 시키의 생각 없는 행동에 아주 불쾌해진다. 「───헤에, 시키가 그런 것을 부탁 했었나요. 오라버니에게는 위험한 짓을 시키지 말라고 그렇게나 말했었는데, 질리지도 않나 보네요. 분명 그 사람은 오라버니의 몸을 걱정하지 않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위험한 조사를 떠맡기는 거죠. 오라버니도, 이제 그만 그런 여자와는 손을 끊어야 해요」 초연한 나의 대사도, 미키야에게는 통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아하하, 하는 웃음으로 답한다. 「그렇구나. 시키가 걱정해주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는 많이 틀리니까」 ……정말이지, 뭐가 즐거운지 전화의 목소리는 기쁜 듯 하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미키야가 조사했다는 하아먀 히데오의 정보를 재촉했다. 수화기 저편에서는 파라락하고 파일의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난다. 아무래도 상당한 양이라 자료를 파일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겠지. ……그렇다는 건, 어딘가의 공중전화나 휴대전화로 걸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라? 오라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에요?」 「회사의 사무소. 토우코씨는 아키미 형사와 함께 외출 중」 뚱한 목소리로 미키야는 말한다. 나도, 그 사실에는 조금 동요했다. 「아키미 형사라니───그, 다이스케 삼촌을 말하는 거?」 으응, 하고 토라진 듯 한 느낌으로 미키야는 끄덕였다. 아키미 다이스케란 사람은, 우리 아버지의 동생으로 경시청의 형사를 하고 있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동생 중의 막내로,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큰 오빠와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다이스케 삼촌은 미키야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어서 이 두 사람은 정말로 형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사이가 좋다. 「하여간 말야, 토우코씨가 아는 형사가 다이스케 형이었대. 정월에 형에게 회사의 소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건 아오자키 토우코잖아, 하고 외치더라니까. 그래서 오늘은 조카를 구실로 토우코씨와 데이트란 소리지. 코쿠토의 삼촌인 사람의 초대를 거절할 수는 없지, 하면서 외출한 소장도 소장이지만」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어쨌든 미키야는 불만인 듯 혼잣말을 되풀이한다. ……토우코 사부의 정보원 중 한사람이 우리 집안의 다이스케 씨였다는 것은, 뭐어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다이스케씨는 1과에서도 비주류니까, 토우코씨 같은 사람과 정보교환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뭐어, 됐어. 말을 돌릴께. 그래서 하야마 히데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자카는 얼마나 알고 있어?」 미키야의 말에는 이쪽의 심정을 살피는 기미가 느껴졌다. ……그런 식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 씀씀이를 잘 알고 있는 나는, 그가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지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걱정은 필요 없어요. 저,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아요. 하야마 히데오라는 교사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구나, 하고 수화기 저편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키야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럼, 하고 말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하야마 히데오는 레이엔의 학생들에게 원조교제를 시키고 있었던 것 같아. 그가 담임으로 있던 클래스의 학생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런 일을 시키고 있었던 듯 해」 「────에?」 너무나 엉뚱한 말에, 나는 그런 리액션 밖에 취할 수 없었다. 미키야는 나의 동요를 일부러 무시하고, 단숨에 진실을 보고해온다. 「실제로 무엇을 시키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 단지, 레이엔의 학생이라는 희소가치를 활용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리 복잡한 일은 시키지 않았겠지. 가치를 올리려면, 아쉬운 맛을 느끼게 해야 하니까. 학생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몇 명씩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았던 것 같아. 대범한 건지 신중한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하야마 히데오는 잘 해나가고 있었던 거겠지. 원래부터 그는 번화가에서는 유명해서 말야, 멋들어진 유흥객을 자처하고 있었대. 그 놀이도 매일매일 도를 넘어가서 많은 빚을 지고 있어. 그쪽 계통의 술집에는 대개 스폰서가 붙어있거든. 뭐어, 즉 폭력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인데, 하야마는 그런 녀석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는 소리가 되지. 변제를 강요당해, 궁지에 몰린 하야마 히데오는 소원(疎遠)한 사이였던 형을 의지해서 레이엔에 교사로 채용되었어. 착실하게 일해서 빚을 갚겠다는 명목으로 형을 설득했겠지만, 아무래도 하야마 히데오는 처음부터 레이엔의 학생을 데리고 나가서 놀게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아. ……알고있지? 레이엔의 학생이란 것은 명문여학교란 것 이외에도 가치가 있어. 대개가 자산가의 외동딸이니까, 하야마 히데오를 독촉해대던 녀석들도 뭔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아니면, 처음부터 목적인 학생은 한 명뿐이었는지도 몰라. 그건 아직 불명이지만, 어쨌든 하야마도 폭력단도 맛을 들여 버려서, 9월 무렵까지는 1학년 4반 학생 거의 전원이 밖에 끌려 나갔어. 일단, 대략적인 커다란 줄거리는 이 정도」 그리고 나서, 미키야는 하야마 히데오가 데리고 나갔던 학생들의 이름과 그 순번, 날짜 귀가시간까지 하나하나 보고해 주었다. 물론, 하야마가 관계하고 있던 폭력단에 대한 것도 세부적인 것까지 꼼꼼하게 조사하고 있다.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게, 분하지만 말야」 하며, 미키야는 힘없이 투덜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미키야가 조사한 자료만으로는 경찰은 움직여 주지 않는데다가, 혹시나 학생의 부모가 멈추게 해버릴 지도 모른다. 이런 건, 다치바나 카오리가 임신한 사실이 스캔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학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대사건이다. 「───미안해, 아자카」 하야마에 관한 정보를 전부 이야기한 뒤에, 미키야는 가만히 그런 말을 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던 나는 그래도 응, 하고 한번 깊이 끄덕였다. 하지만, 이걸로 이야기는 전부 이어졌다. 1학년 4반 전체가 숨기고 있던 비밀이란 것은 다치바나 카오리의 자살 따위가 아니라, 이 원조교제 그룹에 대한 일이었다. 그녀들은, 처음에는 하야마 히데오에게 무언가의 협박을 받아서 밖으로 끌려 나간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반년동안이나 그 비밀이 지켜진 것은 하야마만의 힘이 아니다. 미키야의 말로는, 억지로 끌려 나간 학생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는 스스로 자원해서 밖으로 나간 애도 있다고 한다. 그녀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자신의 오락을 위해서 모두가 비밀을 지켰고 하야마 히데오가 하는 말에 따르게 되었다. 원래 중학교까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던 자들에게 이곳의 금욕적인 생활은 그렇게 언제까지나 참아낼 수 없다.그녀들에게 있어서, 하야마의 협박은 그것이야말로 뱀의 유혹이었던 것이다. 나쁜 것은 하야마 히데오라고 말한다면, 그녀들 자신에게 책임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반년동안이나 비밀이 지켜졌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나쁘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 학원에 있다. 주위를 벽으로 에워싸고, 병적일 정도로 외계와 단절된 다른 세계. 바람도 불지 않고, 밖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느릿느릿 흐르는 공기는, 분명히 속세의 부정(不淨)에서 격리되어있는 증거다. 하지만──이곳에는 공기의 출구조차 없다. 흐르지 않는 공기는 정체되고 침전(沈澱)된다. 이곳은 외계에서 단절된 이계(異界)같은 것이 아니다. 이계를 만들기 위해 벽을 준비해서는 안 된다. 벽에 둘러싸인 세계는 이세계(異世界)따위가 아니라, 단순한 감옥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면, 다치바나 카오리는? 어째서 오라버니는 그 애의 이름을 알고 있고, 성적을 조사하란 이야기를 한 건가요?」 나는 마지막 의문을 말했다. 「아아, 11월에 불타죽은 애 말이구나. 그 무렵에, 아자카는 기숙사가 불탔다고 해서 잠시 동안 토우코씨의 사무소에 있었지? 그 때, 조금. 업무 이외의 조사를 하고 있을 때, 하는 김에 조사해뒀어. 다이스케 형에게 무리한 부탁을 해서 불타죽은 애의 감식 결과를 보여 달라고 했거든. 다치바나 카오리의 사인은, 아무래도 확실치 않아. 타죽었는지도 모르고, 그 전에 이미 죽어있었는지도 몰라. 그녀의 검사결과는 약물에 의한 중독사인지 화재에 의한 소사(燒死)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끝났어. 그렇지만, 이상한 기록이 남아있었어. 그녀는 임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던 것 같아. 유체는 불타버렸기 때문에 결국 진위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아,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화재를 틈타서 그녀를 죽였을리는 없다고 생각해. 사인이 소사든 약물에 의한 중독사든 간에 다치바나 카오리가 타살되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아. 그녀는 말야, 클래스 안에서도 제일 마지막에 밖으로 끌려 나갔어. 그 사실에서 볼 때, 그녀는 마지막까지 하야마 히데오에게 저항한 것이 명백해. 본인이 바라지 않는 결과로서 성행위를 강요당해서, 거기에 임신까지 해버렸다고 하면, 그것은 어쩔 도리가 없어. 자신이 더럽혀진거야. 열여섯 살짜리 여자애가, 주위에서 아무런 도움도 없는 상황에서 견뎌낼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이것은 억측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화재가 났을 때, 기숙사생이 전부 피신한 상황인데도 그녀는 방에 틀어박혀 있던 것이 아닐까? 죽음은, 그녀자신의 의지였는지도 몰라」 조심스러운 미키야의 말에, 나는 예에, 하고 강하게 긍정한다. 「그것이 그녀의 자살의 이유겠죠. 하지만──그럼 어째서 낙태하지 않았던 걸까요. 하야마에게 말하면, 그 정도조치는 해주었을 텐데」 「여자아이니까. 아이를 떼는 짓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어쩐지 편견 같아 보이는 미키야의 대답에 나는 아아, 하고 다른 의미로 납득했다. 1학년 4반 녀석들이 그녀를 박해하고 있었던 것은 그것이었다. 언제까지고 낙태를 하려하지 않는 다치바나 카오리. 그녀가 낙태하지 않는 한, 곧 클래스의 비밀이 밝혀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녀들은 파멸이다. 하야마 히데오가 지시를 내릴 것까지도 없이, 그녀들은 다치바나 카오리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강한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다. 도가 지나친 폭력을 휘두르면 시스터들에게 그것을 들켜버리고, 무엇보다 다치바나 카오리 자신이 견뎌낼 수 없어서, 시스터에게 자신의 죄까지 참회해버릴 테니까. ……그런 가시 방석 같은 상황에서 석 달 간을, 다치바나 카오리는 견뎌왔다. 주위의 박해와, 자신이 안아버린 지울 수 없는 상처. 그래도 사람이 좋았다던 그녀는 클래스메이트들을 고발하지 못하고, 그 둘 사이에 끼어서 자살해버린 것인가. 이 얼마나──── 「───약한 사람. 죽을 각오가 있었다면,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도 견뎌낼 수 있을 텐데.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을 내팽개쳐 버리다니, 완전한 패배자야. 어렸을 적부터 레이엔에서 살고 있었는데도, 밖에서 들어온 녀석들에게 지다니」 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다치바나 카오리의 사람 좋은 미소를 연상하면서, 어금니를 뿌득, 깨물었다. 죽는 것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무의미함에, 동정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전화너머의 오라버니의 목소리는 그것을 부정했다. 「아냐. ───정말 괴로운 결단이야. 나도, 지금의 아자카의 말에 겨우 깨달았어. ……전에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었는데, 다치바나 카오리라는 아이에게 있어서, 세상의 통념은 들어맞지 않아」 마치 어딘가 아픈 것처럼, 미키야는 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나로서는, 그가 그렇게까지 단정하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 오라버니, 어째서 다치바나 카오리에게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자살이 들어맞지 않는 거죠? 인간은 괴롭기 때문에 자살하는 거잖아요? 다치바나 카오리도, 현실에서 해결책이 없어졌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도피를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자살하지 않는 인간이란 것은, 다른 말로, 아무 것도 없는 인간───곧 자살할 이유조차 없는 인간뿐인 걸요」 나의 반론에, 그러니까 너는 이해할 수 없어, 라고 미키야는 말한다. 그것은, 오우지 미사야와 똑같은 대사였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으응. 지금 다치바나 카오리는 초등부부터 레이엔에 있다고 말했지? 그렇다면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단 소리야. 잘 들어, 아자카. 크리스천은 자살하지 않아. 기독교에 있어서 자살은 커다란 죄야. 기독교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축복을 받는 것이 교의인거야. 그러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자살은 살인과 마찬가지, 혹은 그 이상의 큰 죄가 되지. 다치바나 카오리는 자신을 위해서 자살한 것이 아니야. 자신을 위해서라면 자살 따위는 할 수 없어. 그녀는」 미키야는 정말로 괴롭다는 듯 말한다.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을 삼키고 있었다. ───분명, 그 교의를 잊고 있었다. 윤회전생을 부정하는 기독교는, 불교와는 달리 사후세계에 구원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결국 고등학교부터 아침예배에 참가하고 있던 나에게 있어서, 그런 교의는 영어 단어 하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상의 상식으로서 사고의 끄트머리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다치바나 카오리라면 그것은 자신의 순결과 동등한, 지켜야만 하는 형률이 되어있었겠지. 아마도 태어날 때부터 크리스천이었던 그녀에게 있어서, 자살이란 것은 죽음보다 무서운 일인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어째서 자살했다는 건가요」 생각이 미치지 않아서, 나는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분명 그 대답은, 나에게는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다. 차가운 인간인 나는, 그녀가 다다른 경지 같은 것은 예상도 할 수 없다. 미키야는 말했다. 「속죄할 생각이었을 거야, 아마도. 다치바나 카오리는 스스로의 죄와 친구들의 죄를 생각하고 괴로워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그녀들을 대신해서, 혼자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으로 친구들의 죄를 속죄하려고 한 거겠지」 「……그래서」 나는 그 뒤의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그래서 오우지 미사야는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 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녀의 분노는 진짜였다. 다치바나 카오리의 죽음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있던 그녀는, 그래서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1학년 4반 학생들을 용서 할 수 없었다.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다, 타인의 손에 의한 죽음으로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다치바나 카오리가 떨어진 장소에 그녀들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살인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오우지 미사야는, 그녀들이 스스로 죽도록 조금씩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솜으로 목을 조르듯이, 조금씩 조금씩. 죄에 따른 참회 같은 것이 아니라, 주위의 눈에서 도망치기 위한 비참한 죽음을 선택하라고. 5 \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추위도 더위도 거의 느끼지 않는 시키가, 춥다고 느끼고 있다. 빗속. 아주 춥고 괴로운 빗속. 나는 작은 칼을 손에 들고, 의지 없는 눈동자로 누군가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 ─────────────────────────────────────────────────순간, 나는 눈을 떴다. 눈앞의 공간에 『요정』이 날고 있다. 눈을 뜸과 동시에 옷소매에서 나이프를 꺼내, 그것을 찔렀다. 텅, 하는 소리를 내며 나이프는 벽에 꽂혔다. 나이프와 벽 사이에는, 꼬치가 되어버린 요정 같은 것이 끼이끼이 소리를 내고 있다. 아자카의 말대로, 소녀의 모습을 하고, 벌레의 날개를 달고 있는 생물은, 작은 손으로 나이프의 칼날을 빼려고 하던 도중에, 힘이 다해 녹아갔다. 「……이런.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중얼거리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가. 내가───료우기 시키가 잊고있는 3년 전의 그날의 사건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고? 내가 2년이나 되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원인인 교통사고. 나 본인의 기억이 전혀 없는 그 사건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고───? 「이젠 진짜,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고」 짧게 푸념을 내뱉고, 나는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작게, 바닥이 삐걱이는 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온다. 그것은 아까 전 까지 이방의 입구에 서서 안의 상황을 살피고 있던 누군가가 도망치는 소리였다. 나는 나이프를 옷소매에 다시 집어넣고, 방에서 나온다. 복도는 동서로 뻗어있다. 달려가는 모습은 동쪽으로 사라져갔다. 그 뒷모습은 틀림없이─── 「……오우지 미사야인가. 나와 아자카를 착각했……을 리가 없겠지」 그렇다면, 피해를 입은 것은 나다. 아자카에게 얌전하게 있으란 소리는 들었지만, 보복정도는 해줘야겠지. 노쇠화한 나무 바닥 복도를 달려서, 그녀의 뒤를 쫓는다. 오우지 미사야의 발은 예상외로 빨라서,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미사야는 망설임 없이 기숙사를 나가서 교사쪽으로 향해 달려간다. 아자카와 같이 걸었던 숲 속의 통로를 지나 고등부 교사에 다다르자, 미사야는 교사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건물───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게 함정이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달려왔다가 방으로 돌아가는 것도 바보 같다. 나는 한번 한숨을 쉬고, 아무렇게나 예배당의 문을 열어젖혔다. 무거운 문은 소리하나 없이 열린다. 어두운 예배당 안에 사람의 모습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문을 닫고, 그 인물과 마주한다. 거리로는 10미터정도 떨어진 장소에 서있는 인물은, 말없이 안경을 고쳐 쓰며 조각을 관찰하는 듯한 눈매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라. 이런 시간에 예배당에는 무슨 일입니까, 료우기군」 남자는 엷은 미소를 띄운다. 그것은 부드럽고, 거북함 없는 어린아이의 미소였다. 그렇지만 빛깔이 없어서, 알맹이란 것이 없는 공허한 감정이기도 하다. 쿠로기리 사쯔키만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주 메마른 웃음을 띄우고서 그곳에 서있었다. 망각녹음 / 5 「그럼, 다음에는 쿠로기리 사쯔키에 대한 건데」 수화기 저편에서, 새로운 파일을 꺼내는 소리가 난다. 미키야는 쿠로기리 선생님에 대해서도 조사한 듯 하지만, 나에게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하야마 히데오가 저질렀던 짓과 1학년 4반의 비밀이 밝혀진 지금, 이제 더 이상 할 일은 없다. 오우지 미사야가 하려고 하는 일도 안 이상, 토우코 사부에게 맡기면 더 이상의 희생자를 내지 않고 사건은 해결되겠지. 「괜찮아요, 오라버니. 저와 시키도 곧 외출계를 내고 돌아갈 테니까, 사무소에서 기다리고 있으세요」 「그래? 하지만, 그래도 들어볼 만큼 들어봐도 헛수고는 아니라고 생각해. 절대 관계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관계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가요?」 응, 하고 미키야는 끄덕인다. 거기에 감정의 기복은 없다. ……오라버니가 이런 말투를 쓰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것만으로, 하야마 히데오에 대한 것보다 쿠로기리 선생님에 관한 일 쪽이 중요하다고 직감했다. 「설마, 쿠로기리 선생님도 원조교제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에요?」 「아니, 그쪽 이야기와는 전혀 별개의 얘기야. 쿠로기리 사쯔키는 1학년 4반의 사건과는 관련되어 있지 않아.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는데, 아자카는 쿠로기리 사쯔키가 어디서 태어났다고 생각해」 그런 말을 듣고서,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이름으로 보면 일본이지만, 그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유학하고 있었다고 한다. 혹시 부모님이 일본인인 것뿐이지, 태어난 것은 외국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영국에 오래 있었다고 했으니, 혹시 그쪽에 집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아, 쿠로기리 사쯔키는 웨일즈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것 같아. 다만 그는 10살 무렵에 양자로 내보내져서 말야,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이름은 양자로 데려간 부모가 붙여준 이름이라고 해 쿠로기리의 성에 대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름까지 바꾸는 것은 이상한 얘기잖아」 그건───이상하다고 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양자로 받아들인 부모가 쿠로기리 선생님을 진짜 자식처럼 하고 싶다고 바란다면, 옛 부모가 붙인 이름을 바꾸는 일 정도는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성의 변경은 그렇다 쳐도 이름의 변경 따위는 들은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말야, 당시의 일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쿠로기리 사쯔키는 신동 취급을 받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고, 흠 잡을 곳 없는 아이였던 것 같아. 그런데도 그의 부모는 사쯔키를 싫어해서 양자로 내보냈어. 그렇지만 양자로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없었어. 그런 상태가 한동안 계속된 끝에, 소문을 듣고서 멀리서 일본인이 그를 양자로 삼았단 얘기야. 그 뒤부터는 저쪽의 학교에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의 경력은 확실히 찾아볼 수 있었지만, 양자로 내보내지기 전의 일은 도저히 알 수 가 없어」 부모에게 미움을 받아서 양자로 내쫓겼다……인가. 그 선생님에게 그런 어두운 과거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그건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 이야기의 내용보다 당시의 웨일즈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낸 오라버니의 수완 쪽에 신경이 쓰였다. 대체 어떤 정보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남자는. 「하지만, 신동이라고까지 불렸던 아이를 양자로 내보내다니, 그렇게까지 부모가 아이를 싫어했던 건가요? 그, 사실은 돈이 궁했다던가, 그런 이유가 아니라」 「문제는 거기야. 바르게 말하자면 쿠로기리 사쯔키가 신동이었던 것은 열 살 무렵까지고, 그 뒤로는 반대로 보통 사람 이하가 되어 버렸어. 뇌의 장애인지 어떤지는 불명이지만, 그는 10살 무렵부터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고 해. 눈으로 본 영상을 기록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한때는 백치와 다름없는 상태였던 것 같아. 그의 부모는 그런 자식을 싫어해서 양자로 내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기억을────할 수 없다?」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나는 머릿속이 기우뚱하고 흔들리는 듯한 감각을 맛보았다. 쿠로기리 선생님의 증상은, 이번 사건과 너무나도 의미가 비슷하니까. 「그렇지만, 선생님은 정상이에요. 이런 저런 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고, 지식도 풍부하고. 그런 증상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그건 그렇겠지. 낫지 않았다면 교원 면허 같은 건 딸 수 없어. 단지, 그런 옛날이 있었다는 것. 그렇게 양자로 내보내진 쿠로기리 사쯔키는 원래대로의 신동다운 모습을 되찾고 14살에 대학에 입학, 언어학 박사까지 취득했어. 장래가 너무나 유망한 그는, 그렇지만 그대로 일개 교원으로서 저쪽의 학교를 전전하고 있었어. 이번처럼 레이엔에 온 것은 그로서 보자면 그렇게 특이한 일도 아니야. 그의 근무한 학교에서 자살자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있는 거군요. 쿠로기리 선생님이 근무한 뒤에 자살한 학생이」 「요즘의 학교라면, 자살자가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야. 그렇지만 쿠로기리 사쯔키가 근무하고, 그가 또 다른 학교로 이동한 뒤에는 반드시 자살자가 나와. 인과관계는 증명할 수 없지만, 우연은 마냥 계속되지는 않잖아」 미키야의 말에, 나의 사고는 빙글빙글 춤추기 시작했다. ……근무했던 학교에서 떠난 뒤, 반드시 자살자가 나오는 교사. 쿠로기리 선생님도, 이번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선생님은 오우지 미사야에게 적당히 이용되고 있던 것뿐이다. 선생님 자신도 기억을 빼앗겨서, 1학년 4반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고 믿고 있게 되었다. 조종하고 있는 것은 오우지 미사야 쪽이다. 그 해가 없는, 미키야와 닮은 사람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뭐어,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정도일까. 뒤는 아자카 차례인데, 무모한 짓은 하지마. 아무쪼록 시키에게서 떨어지지 말도록 해. ……아, 또 하나가 남았던가. 단순한 얘깃거리인데, 쿠로기리 사쯔키의 사쯔키(皐月)란 이름. 그건 메데(メ-デ-)의 언어유희 같은데, 뭘까, 메데란 건」 ……그것은 메데가 아니라 메이데이(メイデ- : 5월1일, 노동절)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메이데이(Mayday)는 5월 1일을 말하는 것으로, 태양의 회귀를 축하하는 날이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사쯔키란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 사쯔키는 음력 5월을 뜻하니까── 「아아, 그런가」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로, 나는 혼자서 납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쯔키인가. 일본인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축제일이라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날은 틀림없이── 「오라버니, 쿠로기리 선생님이 신동에서 백치로 전락 해버린 이유는 있겠죠?」 「응? 아아, 소문 정도라면 있었던가. 잘 모르겠지만, 바꿔치기 당했다던가 뭐라던가. 실제로는 3일정도 집에 돌아오지 않은 때가 있었고, 그 뒤로 머리가 극단적으로 나빠졌다고 하던데」 「그렇겠죠. 선생님은 바꿔치기 당했던 거에요. 메이데이는 할로윈(Halloween)과 하지제(夏至際)의 밤과 마찬가지로, 요정들과 만나기 쉬운 날인걸요. 분명───쿠로기리 선생님은, 거기에서 멈춰 있는 상태인거에요」 전화 상대에게 이야기하고서, 나는 수화기를 철컥 내려놓았다. 토우코 사부의 말을 기억해 낸다. ───요정의 사용법은 어려워. 술자는 어느 사이엔가 그것에게 요망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요망을 이루어 주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알았나 아자카. 스스로 만들어 낸 것 이외의 사용마에게는 주의해. 사역하는 쪽이 사역 당하는 결과가 될지 몰라─── 사역하는 쪽이, 사역 당한다. 사역하고 있는 쪽이, 실제로는 사역 당하고 있다는 사실. 나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애초에, 어째서 다치바나 카오리는 자살까지 몰렸던 것일까. 미사야는 요정은 기억밖에 빼앗지 않는다고 말했다. 본인조차 잊고 있던 과거는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라고. 그러면 누가 망각되었을 기록을 편지로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런 것보다 더욱 생각해야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어째서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이번 사건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의문. 그것은──── 오우지 미사야는, 대체 누구에게서 마술을 배웠는가. ◇ 「분명──쿠로기리 선생님은, 거기에서 멈춰 있는 상태인거에요」 조용하게, 약간의 슬픔과 확실한 적의를 담은 한마디를 남기고, 전화는 갑자기 끊어졌다. 「아자카────?」 전화 상대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없다. 끊긴 수화기를 들고서, 코쿠토 미키야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는데……그렇게 생각하면서, 미키야는 의자에 고쳐 앉는다. 1월 6일, 정오 무렵. 아오자키 토우코의 사무소에는 그의 모습밖에 없다. 소장인 토우코는 외출해 있지만, 원래 오늘은 휴일이기 때문에 직장에 있는 미키야 쪽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여동생인 코쿠토 아자카와 친구인 료우기 시키 두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의미로 걱정인 이 두 사람은, 새해 벽두부터 이상한 사건의 조사를 하고 있는 듯 하다. 미키야는 사건 자체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조차 전혀 분간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그런 사건을 조사한다는 이야기도 누구에게서 들은 것도 아니다. 단지 1월 2일에 시키가 의미불명의 엉뚱한 화풀이를 해오길래, 그녀 본인에게 눈치 채이지 않도록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어 보아서 알아낸 것뿐이었다. 코쿠토 미카야가 시키에게서 알아낸 정보는, 그녀가 전학생으로 위장하여 레이엔에 침입한다, 라는 것뿐이었다. 그 뒤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연락을 해 봤더니, 시키 본인에게서 하야마 히데오와 쿠로기리 사쯔키에 대한조사를 부탁 받아버렸다. 작년 11월에 레이엔 기숙사 화재사건을 언뜻 들었던 미키야는 그 때부터 조사를 개시, 대강의 자료가 만들어 졌던 것이 바로 1시간 전. 물론, 전화를 했던 어제부터 한숨도 자지 못했다. 「……뭐어, 시키가 있는 한, 만의 하나란 것도 없겠지만」 여동생의 안전을 걱정하면서, 미키야는 우-응, 하고 기지개를 켰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하고 책상을 향해 고쳐 앉고, 미키야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상당히, 졸립다. 잠을 잘 상황이 아닐지도, 하는 생각을 하면서 코쿠토 미키야는 천천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고 보니, 하고, 어렴풋한 졸음 속에서 생각했다. 레이엔에 갔다는 것은 시키가 교복을 입었다는 소리로, 그런 엄청난 미스매치의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조금 기대 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시키는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원인은 간단해서, 레이엔의 교복으로 갈아입은 시키를 보고, 토우코씨가 한마디, 「───훌륭해」 라는 감상을 흘려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가 훌륭한 것인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시키는 레이엔의 교복을 정리해 집어넣어 버렸다. 「책상에서 자면 감기 든다, 코쿠토」 「───네, 일어나겠습니다」 반사적으로 얼굴을 들고, 코쿠토 미키야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각은 오후 3시경. 장소는 사무소의 자신의 책상.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이나 자 버렸던 같고, 몸은 당연히 차가워져 있었다. 겨울도 한창인 이 계절에, 온방도 없이 자면 몸이 차가워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소장님, 언제 돌아오신 거에요?」 미키야는 등뒤에 서 있는 아오자키 토우코를 돌아본다. 코트를 입은 여성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지금 막, 이라고 대답했다. 토우코는 따분하다는 눈매를 하고 있어서, 아무리 봐도 오락에 굶주려 있는 기색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오늘의 데이트는 다이스케 삼촌의 자폭으로 끝났구나, 하고 미키야는 혼자서 납득했다. 「하하아. 그 모습을 보니, 지루했었나 보네요, 소장님」 평소에 당하기만 했으니 이럴 때 정도는 놀려줘야지 하며 미키야는 씨익 웃는다. 그렇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토우코는 아니, 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렇지도 않아. 시시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어」 말하면서, 그녀는 코트의 주머니에서 캔 커피를 꺼내서는 미키야의 책상에 놓았다. 「선물이야. 코쿠토에게 주지」 ……상당히 값싼 선물이지만, 차가워진 몸에는 고마운 물건이다. 미키야는 잘 먹겠습니다, 하며 캔커피의 뚜껑을 딴다. 토우코는 의연하고 따분한 듯 한 시선인 채, 미키야의 책상 위에 방치된 파일을 바라보고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든다. 「아, 그거 말인가요? 시키의 부탁으로 레이엔의 교원에 대해 조사한 거에요. 토우코씨에게는 재미없을 거라 생각하지만요」 그렇겠지, 하고 그녀는 끄덕이고서는 그래도 파일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미키야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 선 채로 파일의 내용을 훑어가며 읽어나간다. 관심 없는 태도로 페이지를 넘기던 손은, 쿠로기리 사쯔키의 사진에서 딱 멈췄다. 「───갓 워드(僞神の書)」 입술에 물린 담배가 떨어진다. 유령이라도 만난 것처럼 눈을 크게 뜨며 그녀는 믿을 수 없어, 라고 중얼거렸다. 「거짓말이겠지, 협회가 혈안이 되어서 찾고 있는 마술사가 이런 곳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다는 거야……? 뭐 이런 농담이 다 있어, 으응? 마스터 · 오브 · 바벨(統一言語師)」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소리도 없이 웃었다. 그것은 경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율을 억누르기 위해서 흘린 힘없는 마른 웃음이었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마술사인가요?」 미키야의 질문에, 토우코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일그러진 웃음을 띄운 채로 자신의 의자에 앉는다. 고개를 숙이고 눈앞의 공간을 노려보는 그 모습은, 목걸이가 풀린 검은 표범처럼 광기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 정도로───그녀에게 있어서,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사람은 이상한 존재인 것이겠지. 「……마더가 보낸 자료에는 사진은 없었으니까 말야. 처음부터 아자카에게 맡길 생각이었던 것이 어리석었나. 나 자신이 확인해 봤으면 좋았을걸. 아니──확인하자마자 나도 기억을 빼앗겨 있었을까」 토우코씨의 독백에, 미키야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사건의 내용을 모르는 그에게 있어서, 기억을 빼앗는다, 란 말은 어떤 비유로 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르고 있는 나름대로, 미키야는 의문을 이야기했다. 「토우코씨. 아자카와 시키는 쿠로기리 사쯔키를 조사하고 있어요. 쿠로기리 사쯔키는 두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인물 인가요?」 「설마. 갓 워드는 아무 짓도 안 해. 소문이 진실이라면, 그는 결코 타인을 상처 입힐 수 없어. 애초부터 그는 마술사가 아니야. 그에게는 마술의 재능은 전혀 없어. 선조나 부모가 마술사였던 것이 아니라, 아자카처럼 변이적(變異的)인 유전체질자(遺傳體質者)야. 아자카가 불태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는 언어를 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어. 하지만───이런 종류의 유전체질자는 한정된 능력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들처럼 축적된 혈통에게는 없는 영역에까지 내딛을 수 있지. 갓 워드는, 그 영역까지 단 십 년 만에 다다른 괴물이야. 당시───20대에 마스터 클래스에 올라간 나는, 자신이 최연소 마술사임을 의심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실제로는 태어나서 15년 만에 마스터가 된 아이가 있어서 말야. 중동 방면의 학원에 있던 그 아이와 만날 기회는 한번도 없었지만, 그 이름만은 학원에 널리 퍼져있었어. 마스터 · 오브 · 바벨(통일언어사), 갓 워드 · 메이데이(ゴド-ワ-ド · メイデイ). 신화의 시대를 유일하게 재현할 수 있는, 마법사에 가장 가까운 마술사지」 크크, 하고 웃음을 억누르면서 토우코씨는 말을 계속한다. 그녀는 미키야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의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이야기를 자아내는 듯 보였다. 「갓 워드의 본명이나 성장내역은 불명이야. 그가 소속되어 있던 아틀라스 학원에서도 아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겠지. 본인을 본 사람도 그리 흔치않아. 단지 그 모습과 능력만이 전해져 오는 마술사로, 런던의 마술사(협회최대의 학원생)는 그가 실존하지 않는 유령이라고 의심하고 있었어. 갓 워드의 마술은, 문자 그대로 그 말에 있어. 그는 현존하는 모든 인종, 부족의 말을 파악하고 있어. 말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 언어가 태어난 배경과 신앙, 원리부터 사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어.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언어는 없고, 그가 모르는 인종은 존재하지 않아. 그렇지만, 이것은 그가 각국을 돌아다니며 배운 지식이 아니야. 갓 워드는, 단 한 종류의 언어를 공부하고, 그 결과로서 모든 인종의 언어를 이해한 것에 지나지 않아. 코쿠토. 바벨탑 정도는 알고 있겠지? 바빌로니아에 전해지는 신의 문(門)에 대한 신화야」 「───하아. 브뤼겔이 그린, 나선 모양의 커다란 탑 말씀이군요. 분명……인간은 높은 탑을 만들어서, 그 꼭대기에 신전을 지어서 하느님이 쉽게 내려올 수 있도록 하려고 생각했었지만, 하나님이 보기엔 사람이 하늘에 가까이 오는 것은 오만한 짓이어서, 탑을 부수고, 인간이 하나로 모여서 이런 일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말을 혼란시켜서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버렸다는」 「호오, 잘 알고 있는데. 맞아, 그것이 인류 최고(最古)의 신화로 전해지는 바벨탑의 전설이지. 이 신화가 보여주는 사실은 다수 있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말을 혼란시켰다』는 점에 있어. 신은 인류라는 종(種)이 갈라지도록 사람들을 나누었어. 피부색이나 체질로서가 아니라 제일 나누기 쉬운 근본적인 부분, 즉 언어야. 일본인과 외국인의 최대의 차이는 머리색이나 눈동자의 색이 아니라, 그 언어의 차이잖아? 그거야 말로 제일 거대한 단절의 벽이야.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바벨탑 같은 거대 건조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하느님은 예상한 거겠지. 그러나, 결국 인간은 지구상에서 제일 명예로운 영장이 되어, 언어의 벽조차 허물어 버렸어. 그럼, 여기서 말을 되돌리지. 사람들은 신에 의해 말이 혼란스러워져 버렸어. 그것은 신이란 존재가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던 시대, 곧 신대(神代)의 사건이야. 신대 무렵은 신비(神秘)가 신비가 아니고, 그것이 상식으로서 취급되고 있다고 하지. 보통 말하는 검과 마법의 세계겠지. 현대에서는 불가능이 된 신비는, 신대라면 그렇게 곤란한 기술도 아니야. 그것은 어째서일까. 각각의 마술사는 당시의 자전(自轉)과 달과의 위치 관계, 별의 움직임에 따른 상극(相剋)이 세계에 에텔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지. 하지만───그것을 뒤집어엎은 것이 갓 워드. 그는, 신대에는 세계가 뛰어났었던 것만이 아니라, 언어 자체도 우수했었다, 라고 증명했던 거야. 신은 말을 혼란시켰다고 해. 그럼───그것은 이전에는 어땠던 걸까. 그래, 인간은 모두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만물에 공통되는 『의미의 설명』이 정말로 가능했을까?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형체 없는 언어, 사람이 사람에게 말을 하는 언어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 자체에 말을 걸어서 의미를 결정하게 하는 언어가 되지. 신은 말을 혼란시켰어. 그 언어를 두려워해서, 사람들에게 형체가 있는 말을 내려주었어. 우리들은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진실을 빼앗겨 있던 거야. ……즉, 갓 워드(God Word)란 것은 그런 거야. 신이 혼란시키기 전에, 세계에 공통되고 있던 하나의 언어. 이것을 우리들은 통일언어라고 이름 붙었고, 갓 워드는 그것을 유일하게 재현할 수 있는 마술사지. 마스터 · 오브 · 바벨(Master of Babel). 모든 생물에 공통되는 의사소통이란 것은, 즉 신(근원)에게 이어지는 문과 다를 바 없어. 바벨이란 것은 신의 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 ……갓 워드 본인에게는 마술사로서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문을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 할 것 같지만」 밉살스럽게 입가를 끌어올리는 토우코와는 대조적으로, 미키야는 어렵다는 표정으로 무언가 생각에 빠져있다. 토우코의 이야기의 몇 할 밖에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결론으로서 이런 의문을 이야기했다. 「……즉, 쿠로기리 사쯔키는 어떤 것과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가요?」 「아아. 다만 이것은 일방통행의 대화지. 신대에는 모두가 통일언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가 성립되었지만, 지금은 갓 워드 한사람밖에 말할 수 없는 언어니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은 그 본인뿐이야. 바위나 짐승에게 말을 들려줄 수 있어도, 바위나 짐승은 갓 워드 본인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할 수 없어. 인간이라면 각자의 언어로 의사를 밝히겠지만」 「하아. ……그건 의미가 있는 걸까요? 대답이 없다면, 그런 것은 단순한 혼잣말이잖아요」 「단순한 언어라면 그렇지. 하지만 그는 달라. 그는 바위나 짐승에게 자신의 의사를 들려줄 수 있어. 그렇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상은 바위나 짐승이 아니라, 이 세계 자체인거야. 존재론적인 계층조직으로서, 나 개인이란 것 위에, 세계에 존재 하는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것이 있어. 이쪽에 말을 걸게 되면, 나 개인의 의사로는 어떻게 하더라도 저항할 수 없어.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언어절대(言語絶代). 그의 말은 그대로 진실이 되어 버려. 갓 워드라는 녀석은, 만물에게 공통하는 최고의 최면술사인 셈이지. 기억에는 인간 그 자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세계 자체가 기록하고 있는 것이 있어. 아카식 레코드의 개념에 가까운데, 그것보다는 하위의 파동현상이겠지.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통일언어야. 갓 워드……쿠로기리 사쯔키가 망각한 기억을 채집할 수 있는 것은 그거야. 녀석은 본인의 뇌가 잊고 있는 기억에서가 아니라, 세계가 기록하고 있는 과거를 끌어내지. 세계가 성실하게 녹음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과거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은, 현대에서는 그 남자뿐이겠지. 과연 봉인지정을 받은 마술사란 건가」 실컷 이야기해서 진정이 되었는지, 토우코는 의자에 깊이 등을 기대며 심호흡을 한다. ……봉인 지정. 마술협회가 전무후무 할 거라고 판단한 희소능력을 가진 마술사는, 협회 자신의 손에 의해서 봉인된다. 그 기적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 봉인지정은 마술사로서는 최고급의 명예이기도 하고, 동시에 성가신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봉인 당하면 연구를 계속할 수 없다. 마술사인 이상, 다음 단계를 지향할 수 없다는 것은 마술사로서의 의미가 없는데도, 협회는 마술사의 샘플로서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굴욕을 견딜 수 있을리 없기에, 봉인지정을 받은 마술사들은 협회에서 몸을 숨기게 된다. 갓 워드도 협회에서 빠져나간 마술사 중 한 명이다. 때문에, 그가 이곳에 있다고 협회에게 알리면 갓 워드는 곧바로 붙잡히게 되겠지. ……하지만, 아오자키 토우코는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 아니, 쓸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까지 발견 되버리니까, 젠장할」 욕하듯이 중얼거리곤, 그녀는 천정을 올려다본다. 갓 워드가 레이엔에 있는 이상, 아자카와 시키에게 승산이란 것은 만의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 본인이 나서서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마술사와 대결할 정도의 인과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방관인가. 뭐어, 별일 없겠지」 간단하게 그렇게 결론짓고, 토우코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을, 미키야는 못미덥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별일 없을 거라니……들은 것만으로도,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사람은 위험한 인물이잖아요. 두 사람을 도우러 가지 않는 거에요, 소장은」 「갓 워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게다가 그에게는 공격수단이란 것이 없어. 마술사로서의 능력은 3류 이하야. 아자카와 시키가 아무리 덤벼들더라도, 그는 타인을 파괴하지 않아. 그건, 어디까지나 타인의 바램을 구현화 시킬 뿐인 마술사야. 본래 갓 워드는 마술사라고 불릴 만큼의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런 그가, 마술사로서 불리는 이유는 말이지, 이젠 사상이 변화되지 않는, 어떤 일만을 추구하는 개념화되어 버렸기 때문이야」 「……? 어떤 일을 추구하는 개념이라니, 뭐가 목적인 건가요, 그 사람?」 미키야의 소박한 질문에, 토우코는 아아, 하고 끄덕인다. ───생각해 보면. 이번의 망각을 기록하는 행위 그 자체가 갓 워드의 성질인 것이다. 그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은 뭐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설마 마술세계에 있어서 인간국보로 까지 불리는 남자가, 이런 촌구석의 작은 학교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목적은 말이지, 간단한 거야. 그는 우리들로서 보자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를 추구하고 있어. 뭐라고 해야 할까───그래, 영원이야. 갓 워드는 영원을 찾고 있는 거야.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환상을 쫓고 있어. 아니, 반대일지도 모르겠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밖에 쫓아갈 수 없어. ──신기루는,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켜 마지않는 꿈(환상)이니까」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라고 덧붙이고서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깊고, 천천히 호흡을 한다. 토우코는 천정을 감정없이 바라보다가, 이렇게, 노래했다. 「보답 받지 못하는구나. 영원 따위, 어디에나 있다고 하는데도 말야」 담배는, 하늘하늘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 5 잿빛 햇살이 비쳐 드는 예배당 안에서, 쿠로기리 사쯔키라고 하는 교사가 서 있다. 그 표정은 상냥한 미소를 나타내고 있으면서, 적의도 호의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라. 이런 시간에 예배당에는 무슨 일인가요, 료우기군」 뛰어 들어온 나를 나무라지도 않고,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 모습이 코쿠토 미키야와 겹쳐져 버려서, 정말 찰나의 순간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나 버렸다. 그렇지만 쿠로기리 사쯔키는 쿠로기리 사쯔키에 지나지 않아서, 나는 옷소매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수술용 메스 같은 작은 날붙이를 보고, 쿠로기리 사쯔키는 얼굴을 찌푸린다. 「위험해. 그런 것을 꺼내 들면, 누군가가 다치게 돼」 그의 말은 학생을 타이르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예배당을 둘러본다. 사람 모습은 고사하고, 인기척조차 없다. 이곳에 뛰어들었던 여학생의 모습도 이미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면───처음부터 이곳에는 쿠로기리 사쯔키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우지 미사야는 어디 있나요, 선생님」 예배당을 둘러보는 것을 그만두고, 나는 제단 앞에 서있는 교사를 바라본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살짝 끄덕인다. 「여기에 오우지군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네가 찾고 있는 것은 나라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망각의 채집을 하고 있던 사람은 오우지 미사야가 아니라, 쿠로기리 사쯔키니까」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채로, 쿠로기리 사쯔키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거짓은 없어서, 나는 이 상대가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상함이나 놀라움도 없다. 갑자기 고해진 진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처럼 나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잘 걸린 최면술. 「어떤 의미인가요, 그건」 알고 있으면서, 나는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 어조는 자연스레 공격적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나이에 걸 맞는 여성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날카롭게 상대를 노려본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나의 시선을 받고서, 뒤가 켕기는 듯 한 표정으로 살짝 쓴웃음을 짓는다. 「말 한대로의 의미야. 네가 찾고 있는 상대는 나다. 아까의 요정은 내가 한 일이 아니지만 말야. ……아아, 오우지 군은 너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이야. 의사체(擬似體) 요정 한 마리로 너를 어찌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너에게 보내 버렸어. 만들어 낸 존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떤 생명 활동의 연장으로서 분할된 생물이라서 말야. 살해당하기 위해서 사역 당하다니, 불쌍하지」 정말로 슬픈 듯 쿠로기리 사쯔키는 눈을 감는다. 내가 죽였던 요정을 위한 묵도겠지.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동안 생각했다. 료우기 시키의 역할은 원인의 규명하는 아자카를 돕는 것이다. 그렇지만, 적이 눈앞에 있다면, 해야 할 일은 한가지다. 나는, 이 녀석을───── 「아니야, 료우기군. 나는 요정사가 아냐. 요정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오우지군뿐이야. 나는 그렇게 많은 사용마를 동시에 조종하는 사고의 분할이 불가능해. 그것은 틀림없이 오우지군만의 재능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어를 기록하는 일 뿐이야. 요정사건에 관련해서는 나는 한없는 무관계에 가까워. 너는, 그 이유로 나를 적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뭣───」 「그렇다고 해서, 너와 내가 관계가 없다는 것도 아니야. 그 인과 때문에, 나는 이번에 한해서는 오우지군을 실패에서 구해주지 않으면 안돼」 쿠로기리 사쯔키가 눈을 떴다. 떠진 눈동자는, 역시 이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평범한 교사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이 일에는 관여해서는 안 돼. 하지만, 원래부터 너는 이 사건과는 무관계한 팩터입니다. 당신과 적지 않은 관계를 가진 제가, 당신을 맡는 것은 당연한 일. 오우지 미사야를 저지하는 역할이 있는 것은 코쿠토군 뿐이니까, 뒷일은 그녀들의 능력의 문제겠지요. 그러니까───네가 상대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저 정도란 겁니다」 곤란하게 됐다는 듯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쿠로기리 사쯔키가 덧붙인다. 「……어째서? 레이엔의 사건 이외에, 내가 너의 상대를 할 이유 따위는 없잖아」 「그럴까. 너는, 잊은 기억을 기억해 내는 것이 싫었던 거지? 그래서 어제도 나를 거부했어. 원래부터 어떤 기억을 약탈하는 것은 오우지군의 짓이었지만, 망각의 채집은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말야. 지금 네가 이곳까지 오우지군을 쫓아온 것은, 기억을 빼앗은 댓가로 죽이러 온 거잖아? 봐, 그렇다면 그 상대는 내가 되는 거야」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쿠로기리 사쯔키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것에 끄덕일 수조차 없다. 쿠로기리 사쯔키의 말대로, 나는 자신의 기억이 건드려지는 것을 혐오하고 있었다. 요정이란 것을 반사적으로 찌부러뜨려 온 것도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요정사인 오우지 미사야를 죽이기 위해서 여기까지 쫓아왔다. 그 표적이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인물로 바뀌었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임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다. 아까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나는──── 기분 나쁜 오한도, 아무런 위험도, 이 상대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것은, 처음이다. 『적』을 목전에 두고, 나는 아무래도 무감동인 듯 하다.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심경이라고 깨닫고, 겨우 나는 오한이라는 것을 등줄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아직도, 도무지 죽일 마음이 들지를 않는다. 「그런게, 있을 것 같냐────」 오한이란 증오를 바탕으로 하여, 나는 부드럽게 웃는 쿠로기리 사쯔키를 진지하게 관찰했다. 검은, 죽음의 선을 직시한다. ……쿠로기리 사쯔키의 몸에 있는 죽음의 선은, 거미집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어디를 통해서도 죽기 쉬운 몸이라는 이야기다. 이렇게까지 죽기 쉬운 인간을, 나는 본적이 없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침울한 빛의 눈동자까지 엷게 웃고 있었다. 「과연, 그것이 직사의 마안이란 것입니까. 나는 이미 지나간 뒤의 길밖에 알 수 없지만, 너는 지나가는 길을 볼 수 있는 거군. ……흠. 과거를 기록할 수 있는 나와, 미래를 보는 것이 가능한 너. 아라야가 나를 불러낸 이유는 너의 소거에 있었던 것 같아, 시키군」 슬픈 듯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쿠로기리 사쯔키는 이쪽을 보았다. ……나는 상대의 그런 태도보다, 단 한번 말한 단어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겨우 오한과는 다른 적의가, 이 몸에 채워져 간다. 아라야. 쿠로기리 사쯔키는, 틀림없이 그 이름을 말했으니까. 「그런가. 너는 마술사인가, 쿠로기리 사쯔키───」 그렇다면 적이다, 나는 나이프를 고쳐 쥔다. 지금까지의 이상한 심경은, 이 마술사의 손에 의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하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상대는 죽여도 괜찮은 존재. 이 상대는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들려준 순간. 나에게 보이지 않는 내가, 쿡하고 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이제부터 죽여야 할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자 두근, 하고 심장이 크게 고동친다. 미키야와 닮았다고 해서, 못 본체 하지는 않는다. 상대가 마술사라면, 나와 마찬가지로 경계밖에 있는 존재다. 그렇다면───그것은 살인이 아니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무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니까. 나는 지금도 튀어 나갈 듯한 료우기 시키의 몸을 냉정하게 제어하면서, 일격으로 쿠로기리 사쯔키를 절명시킬 방법을 뇌리에 그린다. ……빈틈투성이의 그 몸으로 질주하여, 목덜미를 향해 수직으로 나이프를 찔러 넣는다. 꽂아 넣은 칼날 그대로, 몸 아래까지 나이프를 단숨에 끌어내리면 끝난다. 그것은 실행하기 쉬운 일이라, 나는 3초 뒤의 결과를 명확하게 그릴 수 있다. ……그런데도. 마음속의 영상은, 사지가 너덜너덜하게 절단된 소년의 사체였다. 두근, 하고 심장 소리가 커진다. 긴장되어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상대가 미키야와 닮아있는 남자기 때문에, 나는 당황해서 호흡을 흐트러뜨리고 있는 것 같다. 「시키군, 그건 아니야」 갑자기, 가만히 있기만 하던 마술사가 말했다. 몸은 그 말에 반응하여 달려 나가려고 해서──────나는, 그것을 강하게, 전에 없을 정도로, 필사적이 되어, 억눌렀다. ……왜냐면, 안되니까.   그것만은 절대 할 수 없으니까──── 이유를 알고서, 나의 호흡은 더욱 흐트러진다. 아직───이 상대에게 살의를 품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상대에게는 덤벼들 수 가 없다. 미키야와 닮은 이 남자. ……그것을 죽인다는 행위가, 나의 심장에 이렇게나 부담을 가한다. 그것이 하기 싫은 일이라서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만으로, 나는. 목이 마르고, 혀가 저려서, 참을 수 가 없다. 그것이 오히려 두려워서, 나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다리를 억눌렀다. 그렇지만, 몸은 지금이라도 저 남자를 죽이고 싶어 하고 있다. 시키의 슬픔과 괴로움을 해결하고 싶어 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편해질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나는. ───이번에도, 어느 사이엔가. 코쿠토 미키야라는 친구를, 2년 전처럼 죽이려고 하고 있는 걸까? 「……그런 건, 싫어」 중얼거리고, 나는 나의 몸을 멈추었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혼자서 나를 지켜보듯이 끄덕이고 있었다. 「응, 잘 참았네. 만약 네가 그대로 나를 죽이면, 일은 끝나 버렸겠지. 옛날에, 너는 일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살인충동을 가진 '시키'군을 죽여 왔어. 그렇지만 지금은 시키라는 네가 스스로의 살인충동을 죽이지 않으면 안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너는 시키라고 하는 인격조차 잃어버리고 텅 빈 상태로 돌아가 버리겠지. ……흠. 아라야의 말로는 시키군은 격정적이라고 했었지만, 그건 그의 오판이었던 것 같군. 내가 보기에는, 너는 조금 겁쟁이로 보여」 부드럽게 말하면서, 쿠로리기 사쯔키는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너에 대해서는 아라야에게 들었어. 원래부터 나는 그것을 위해서 이 거리에 불려 온 사람이야. 말했잖아, 너와 나는 무관계하지 않다고. 아라야는 나를 너에게 맞닥뜨리게 할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그 전에 본인이 패배해 버리다니, 웃음거리도 되지 않아. 유감인걸. 그의 목적의 달성에는, 나름대로의 흥미가 있었는데」 그것만 말하고서, 쿠로기리 사쯔키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서있는 것 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마술사는 도망치려고도, 싸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은 움직이지 않는 거울이라는 것처럼. 나는 나이프를 손에 쥔 채────그 공기 같은 상대와, 언제까지고 마주보고 있었다. 침묵은, 무거워져서 예배당에 가득 채워져 간다. 아직도 흐트러져 있는 심장소리 만이 두근, 두근, 하고 나의 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있을 수 없는 종소리 같이 울림이 멈추지 않는다. 덤벼들지도 못하고, 크게 울리는 심장의 고동을 진정시키지도 못하던 나는, 말하고 싶지도 않는 말을 했다. 「───어째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거냐, 쿠로기리 사쯔키」 「나로서 말해야 할 것 것은 전부 말했기 때문이야. 만약 이 이상 대화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네가 던지는 질문에 내가 답하는 형태 밖에 없어. 당신이 나를 무관계하다고 생각하면, 나도 당신을 무관계한 자로 생각하고 물러가겠어요. 당신이 나와 싸운다고 한다면, 나도 자위수단을 취하겠지요. 오우지 군을 돕는 것은 한번 뿐입니다. 그것도, 이미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결정하는 것은 당신입니다. 나 스스로는, 아무 것도」 ……이상한 대답에,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마술사는 결정하는 것은 나라고 말한다. 그것은 곧, 이 상대에게는 의지가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그것은 모순 되어 있다. 「이쪽이 바라면 바라는 모습으로 응해 준다는 거냐, 너는. 그렇지만 나는 잊은 기억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 따윈 안했어」 크게 고동치는 가슴을 한 손으로 누르면서, 마술사를 노려본다. 마술사는 동정하듯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당신 자신이 망각하고 있던 기억을 구하고 있었지. 나는 그것에 응하는 것뿐입니다」 구하고 있었다────? 아아,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원한 것은 잃어버린 '시키'의 기록이다. 내가, 료우기 시키가 보냈던 3년 전의 기억만. 괴로웠던, 그러나 따뜻했던 클래스메이트와의 기록이다. 그 때의 기억 따위, 필요 없다. 차가운 비에 얼어붙어 있는 기억은, 오히려──── 「그건 틀렸어, 쿠로기리 사쯔키. 나는 기억을 되찾고 싶은 것이 아니야. 분명, 기억을 완전히 망각하고 싶은 거야」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시키는 그 날의 기억을 잊어 버렸다. '시키'의 기억은, 그가 죽은 것에 의해 기록으로 전락해서 망가져 버렸다. 분명,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손실의 댓가로 지금의 내가 이곳에 있다. 「그러니까───너 따위는 부르지 않았어」 「……과연, 나의 착각이었나 보군요. 분명 시키군이 바랬던 것은 그 쪽이었죠. 그러면 그 쪽도 돌려보내 주지요. 그것이 나의 역할이니까」 마술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곳에는 적의도 악의도, 선의도 호의도 없다. 토우코는 말했다. 요정의 장난에는 선악이 없다고. 그들은 결과를 구하지 않고 행동한다. 거기에 개인의 의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기억을 채집하는 이 마술사는, 그야말로 요정 그 자체다. 하지만……그렇다면, 어째서 이 남자는 웃는 얼굴로 있을 수 있는 걸까?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표정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이상해, 너. 내가 바란 모습밖에 응할 수 없는 주제에, 어째서 너는 웃고 있는 거야. 난 너의 웃는 얼굴 따위는 구하지 않았어. 거울이라면, 스스로 웃는 짓 따위는 할 수 없어」 「예에, 그 말대로입니다. 하지만 나는 웃고 있지 않아요. 말했지요? 나는 웃은 적이 없다고」 그렇게 대답하는 마술사는, 그래도 웃는 얼굴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그렇게 보이는 듯 하더군요. 나 본인은 무표정하게 있으려고 하지만, 어찌해도 쿠로기리 사쯔키는 웃고 있어. 나는 자신이 웃고 있다고 실감한 적이 없어요, 시키군. 웃으려고 생각해서 웃은 적이 없어. 미소를 띄운 이유도, 웃는 얼굴을 해야 할 가치도 몰라. 잘 모르겠어요, 그런 것은. 즐겁다니, 느낀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 건 삶의 실감이 없는 당신과 많이 닮아 있군요. ……뭐어, 당신 쪽은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요. 료우기 시키는 미래가 있으니까. 하지만───나에게는 과거밖에 없어요. 쿠로기리 사쯔키는, 누군가의 과거를 보는 일밖에 할 수 없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무언가를 빼앗는 것처럼, 나는 살아 있기 위해서 쿠로기리 사쯔키 이외의 과거를 채취하지요. 그 뒤의 일은 몰라. 과거를 끄집어낸 뒤에, 그 결과를 어떻게 취급하는가는 과거를 가진 본인의 의지에 따르지요. 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나는, 그것을 어떻게 다룰 수는 없으니까」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웃는 얼굴을 한 채로 마술사는 말한다. 거짓 없는 진심으로 웃고 있는 그 얼굴은,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다루려고 하는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아, 라고. 「───과거 밖에, 없어?」 「그래요. 과거가 없다는 것은, 자신(自身)이 없다는 것에 연결되지요. 슬픈 일이지만, 나에게는 자신이란 것이 희박해. "스스로 생각 한다"라는 행위를 할 수 없는 이상, 쿠로기리 사쯔키에게는 꿈이라던가 목적이라던가 하는 것이 없는 거야. 그런 것은 책이나 마찬가지겠네. 지식은 있는데,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책으로 존재하는 나 본인이 아냐. ……나에게는,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으로서 기능하는 의미가 없어. 그렇지만 자살할 용기도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이상, 나는 쿠로기리 사쯔키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자신이 없는 이상, 자신을 확실한 존재로 할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겠지요. ───타인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 쿠로기리 사쯔키는 그것 말고는 자신이라는 표현이 불가능해. 거기에 선악의 개념은 없어요. 나는 너희들의 소망을 돌려보내 주고 있어. 잊은 시간을 기억나게 해주고 있어요. 어쩌면, 이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닐까, 시키군? 너희들이 잊어 버렸던 소중한 기록을, 소유주인 너희들 자신에게 돌려주는 것뿐이니까」 「그건, 주제 넘는 짓이야」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마술사를 노려본다. 이 남자의 말은 무언가 이상하다. 의미가, 뇌가 아니라 몸에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우선 자기 자신에게, 남자의 말에 마음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들려주었다. 「잊은 기억을 돌려준다고? 그런 건 사절이다. 시키는 편지로 보내오는 사실 따위는 필요 없어. 잊은 기억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 네가 하는 말 따위, 나는 한마디도 믿을 수 없어」 크게 고동치는 가슴의 소리를 한 손으로 누르면서, 나는 쿠로기리 사쯔키를 직시한다. 마술사는 처음으로 나에게 똑바로 시선을 보내왔다. 서로 노려보는 것과는 조금 먼, 이별의 의식같이 허무한 시선이 뒤엉킨다. 「───그런가. 너조차도 스스로의 기억을 포기한다는 거군요. ……너희들의 생각은 알 수 없어. 어째서 그렇게, 영원하게 존재하는 것을 멈춰 버리려고 하는 걸까」 「영원? 망각한 기억을 떠올려서 기록하는 것이 영원이라는 거냐? 웃기지마, 그런 거라면 지천에 깔려있어. 네가 일부러 끼어들 문제가 아니야」 그래, 추억을 남겨 두고 싶다면, 사진이나 비디오로 촬영해 두면 된다. 그거라면 자신이 망각해버린 뒤에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마술사는 그것을 부정했다. 처음으로──그 표정이 웃는 얼굴 이외의 형태를 만든다. 「그건 영원이 아니야. 외계에 남은 것은, 영원히 남지는 않아. 분명, 현대의 기술이라면 어떤 사고를 당해도 파손되지 않는 "물체"를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물체 자체가 변하지 않는 것이지 우리들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야. 물체는 관측자가 있어야 처음으로 의미란 것이 부여되지. 때문에, 설령 물체 자체가 불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관측하는 자의 인상이 불변이 아니면 "영원"……이 아닌 거야. 너는, 어제 봤던 것을 어제 봤던 때와 완전히 동일한 마음으로 관측할 수 있을까? 그래, 불가능하지. 관측자의 마음은, 항상 변할 수밖에 없으니까. 새로운 물체는 낡게 되고, 멋진 것은 빛이 바래 가지. 물체 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우리들 자신의 마음이 물체의 가치를 바꿔 버리는 거야. 봐───개체가 불변하든 하지 않든, 영원하지는 않지? 어째서일까? 간단해, 우리들은 외계의 물체와는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야. 알겠나, 시키군. 영원하다는 것은, 형체가 없다는 소리야. 관측자의 인상에 좌우되지 않는, 관측자 자체를 지배하는 일. 그것이 유일하게 영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현상, 즉 기록이라는 것이야」 「───그 기록이란 건, 나중에는 변하는 것이잖아. 그 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사건도, 되돌아보면 나쁜 일이 되는 경우가 많지. 네가 말하는 영원 따위는, 어디를 뒤져도 찾아 볼 수 없어」 「아니. 그것은 기록이 아닌 기억이겠지. 기억이란 것은 곧, 그 인물의 성격일 뿐이야. 성격은 그때그때 변하는 것. 외계에 순응하기 위해 변하는 성격은 드레스 같은 것이지. 너라면 알고 있을 거야. 말투나 성격, 육체 따위는 결국, 자기를 알기 쉽게 표현하기 위한 복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 발짝. 마술사는 나를 향해 내딛어 왔다. 「관측자 자신이, 관측되는 대상이 되는 것. 자기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축적해온 시간 그 자체가 자기라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인격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것. 기록이란 것은 즉, 자신의 생각조차 영향을 받지 않는 혼의 핵입니다. 그것만이 영원히 보관되는 것이야. 스스로의 내부에 가둬 넣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상처이기 때문에. 그것이라면, 설령 세계가 없어지더라도 자신에게 남고, 자신이라는 세계가 끝날 때까지 함께 있게 된다. 그것은, 계속 남아 있어서. 그것은, 계속 변하지 않아」 ……성격 따위는 필요 없다. 자기가 쌓아온 역사만이 자기를 나타내는 증거라면, 그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된다. 관측자 자체가 관측 당하는 대상이 되면, 관측하는 자도 불변이고 관측 되는 대상도 불변. 그것이 영원이라고 마술사는 말했다. 「……네가 말하는 것은, 모르겠어」 「그렇겠지. 간단하게 어떤 일을 망각할 수 있는 너희들로서는 알 수 없어. 이 세계에서 영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기록뿐이야. 너희들은 인생 뒤에 추억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 사실은 추억 뒤에 인생이 만들어지고 있는데도. 사람에게는, 망각해도 되는 기억 따위는 없어. 인격이 잘라 내버린 기억을, 그 개인 자체는 버리고 싶어 하지 않아. 그래서 너희들의 소원은, 언제든 망각의 녹음인거야. 나는 그녀들의 거울에 비친 상(鏡像),으로서, 그 소원을 돌려주고 있던 것뿐이고」 다시 한발 짝. 마술사는 웃는 얼굴을 되찾고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나이프를 쥔 손에서 평소대로의 미열을 느끼고, 깨달았다. ……가슴의 두근거림도 손끝의 저림도, 목의 갈증도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있다. 길고, 그러면서도 정말로 의미 따위는 없었던 대화 끝에, 나는 이 상대의 정체가 보이고 있었다. 두근거림은 이미 멎어 있다. ……분명히, 이 녀석은 미키야와 닮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르다. 비슷한 것뿐이지, 다른 과정을 밟은 존재다. 그 차이를 확실히 깨닫고, 나는 이것을 단순한 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었다. 「……선악의 개념이 없다, 인가. 분명히 네가 나쁜 것이 아니야. 너는 그저 누군가의 소원을 듣고 있던 것뿐이니까」 그렇지만, 틀리다. 선악의 개념은 분명히 존재한다. 확실히 쿠로기리 사쯔키 자신에게 의지는 없다. 그렇지만 이 녀석에게는 어떤 것의 선악을 정확히 분간할 수 있는 지성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선도 악도 동등한 가치로 취급하는 시점에서, 이 녀석은 스스로를 무해하다고 말할 자격 따위는 없다. 「겨우 알았어. 넌 말야, 거울인 체 하고 있는 것뿐이야. 그렇게 해서 무해한 척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구.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고, 마치 어린애 같잖아」 나의 말에, 마술사는 기쁜 듯이 눈을 반짝였다. 어딘가 삐에로와 닮았다───── 「나와 싸운다, 고 말하고 있는 거군요, 시키군」                                  ─────광기를 머금은 일그러진 웃음. 「좋지요. 그렇다면 나도 아라야와의 계약을 완수하기로 하겠습니다. 서로 무시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마술사가 안경에 손을 댄다. 싸움 전에 안경을 벗어 두려는 것이겠지만, 나의 몸은 그것을 기다릴 정도로 참을성이 좋지 않다. 한걸음에, 쿠로기리 사쯔키를 벨 수 있을 정도까지 거리를 좁혔다. 【너」「에게는」「보이지 않아】 마술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뇌 자체에 직접 울려오는 그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쿠로기리 사쯔키의 모습을 잃어버렸고, 휘두른 나이프는 허공을 갈랐다. 「뭣───」 주위를 둘러본다. 예배당에 사람 모습은 없다. 단지 나 이외의 또 한사람의 기척만이 이 피부에 전해지고 있었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분명히, 내 앞에 있다. 그런데 나는 마술사의 모습을 찾아볼 수 가 없었다. 「……위험한데. 소리보다 빠르게 행동할 수 있다니, 너무 얕보고 있었는걸. 덕분에 한쪽 팔을 잃었어. 아라야가 진 것도 납득이 가는군. 너는 확실히, 죽이는 일에 뛰어난 것 같군」 목소리는 눈앞에서 들려온다. 나는 덤벼들고 싶은 충동을 견디면서, 눈앞으로 의식을 집중시켰다. ──쿠로기리 사쯔키를 볼 수 없다면.   녀석의, 죽음의 선만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이길 수 없어」 목소리는 나의 사고에 직접 들려오고 있다. 그것보다 빠르게, 나는 마술사의 죽음의 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찾았다」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마술사에게로 육박한다. 하지만───그것조차도 놓쳐버렸다. 【이곳」「에서는」「보이지 않아】 목소리가 예배당에 울려 퍼진다. 예배당은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겼다. 마술사의 한마디에 한줄기 빛도 없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세계가 되어 버렸다. 「……흠. 역시 너 개인에게는 효과가 약했던 걸까. 근원에 통해 있는 너의 몸과 나의 말은 같은 계급이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그것도 이렇게 하기만 하면 돼. 이곳에서는, 설령 료우기 시키로 있더라 해도 죽음을 볼 수 없어. ……뭐어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이래서는 나 본인도 무엇 하나 볼 수가 없지만 말야」 귓가에서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면서 나이프를 휘둘러도, 베어지는 것은 바람뿐이다. 「소용없어. 너는 나에게 이길 수 없다고 말했을 텐데. 그렇게───모든 것을 살해할 수 있는 너라도, 말(言葉)만은 죽일 수 없으니까」 ……그런 건 생각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말만은 죽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너를 죽일 수 있냐고 하면 그것도 불가능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야. 조금이라도 너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간단히 당해버리겠지. 그래서 생명을 건 싸움은 안 해. 원래부터, 나는 싸움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하는 것은, 너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뿐이니까」 그 말에, 나의 몸은 희미하게 떨렸다. 나의 소망───망각하고 싶은 나의 진실. 「그만 둬. 나는 그런 것, 원하지 않아!」 외침은 어둠 속에 사라졌다. 「자아───너의 슬픔을 재생시키자. 안심해. 설령 네가 잊어버리려 했다고 해도───기록은 분명히 너에게 녹음되어 있으니까」 그것은 감정이 없는, 메트로놈같이 규칙적인 소리. 마술사의 목소리가 시키라고 하는 나의 안에 침투해 가는 것을, 나는 멈추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망각녹음\ 6 미키야에게서 온 전화를 끊고, 나는 고등부 건물로 서둘러 움직였다. 시각은 오후 1시를 막 지났을 무렵. 하늘은 지금이라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할 것 같은 잿빛으로, 머리 위에는 두꺼운 구름이 덮여 있다. 「……이래서는, 오늘은 비가 오겠는 걸」 겨울의 차가운 공기로 폐를 물들이면서, 나는 어두운 숲을 빠져나와 고등부 건물에 다다랐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서, 1층 구석에 있는 영어교사의 준비실로 간다.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열자,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의자에 앉아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웃는 얼굴을 한 채로 이쪽의 전체상을 관찰한다. 그 왼팔은 축 늘어져 있어서, 마치 몸의 그 부분만이 죽어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일까. 나는, 그것이 누구의 짓인지 한눈에 알아차려 버렸다. 「그것은 시키에게 당한 상처군요, 선생님」 예, 하고 쿠로기리 선생님은 끄덕였다. 「이 팔과 바꿔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아아, 시키군은 무사해요. 앞으로 한 시간 정도 있으면 깨어나겠지요. 그렇다 해도, 나의 팔은 일생 동안 치료할 수는 없겠지만」 잿빛 햇살이 비쳐 드는 창을 등지고, 쿠로기리 사쯔키는 엷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무런 동요도 감추는 것도 없는, 너무나 평온하게 존재하는 그 모습. 나는 숨을 멈추면서, 무언가에 매료되듯 그 의문을 이야기한다. 「다치바나 카오리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당신이죠, 선생님?」 예, 하고 쿠로기리 사쯔키는 끄덕였다. 「하야마 히데오를 행방불명으로 만든 것도」 예, 하고 선생님은 끄덕였다. 「오우지 선배에게 마술을 몸에 익히게 한 것도」 예, 하고 마술사는 끄덕였다. 「우리들의 망각을 채집하고 있던 것도」 예, 하고 그는 끄덕였다. 「그리고, 요정에게 바꿔치기 당했던 것도, 정말이었군요」 예, 하고 그것은 웃으며 끄덕였다. ◇ 「────어째서」 그것밖에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선생님이?」 꼴사납게도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는 안경 안쪽의 눈동자를 흐리지 않으며 대답한다. 「특별히 목적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치바나군도, 오우지군도, 하야마 선생도, 나는 그들의 바램을 이루어 준 것 뿐입니다.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그들 본인에게 물어 보세요. 나는 대답할 수 없어요」 미소를 띄운 채로 쿠로기리 선생님은 말한다. 그것은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정말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치바나 카오리가 자신의 죄를 쿠로기리 선생님에게 상담한다. 그는 다치바나 카오리에게, 그녀 본인밖에 생각해낼 수 없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 뿐. 자살에 의한 구제는, 그녀 본인의 의지이니까. 예를 들면, 오우지 미사야가 다치바나 카오리의 죽음에 보복하고 싶다고 상담한다. 그는 오우지 미사야에게 그녀 본인 밖에 생각해낼 수 없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 뿐. 1학년 4반 전원을 스스로 자살로 몰아넣는 수단을, 마술로서 오우지 미사야에게 제공한다. 거기에, 쿠로기리 사쯔키 자신의 의지는 전혀 없다. 「───하지만, 망각을 채집하는 것은 별개에요. 누구도 잊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바라지는 않아요」 「그럴까. 어째서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코쿠토군」 「────에?」 어디까지나 부드럽게, 쿠로기리 선생님은 되물어 왔다. 거기에 적의도 악의도 없다. ……어딘가, 이 상황은 이상했다. 나는 사건의 흑막과 대결할 각오로 이 방에 찾아와서, 이렇게 1대 1로 대치하고 있다. 그런데도 쿠로기리 사쯔키는 평소대로고, 나도 교사에게 질문하는 학생처럼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나의 참을 수 없는 마음이,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적에게 반영하고 있는 듯한 감각─── 「왜냐면, 나 자신이 바란 것이 아니에요」 「그렇겠지. 기억하고 있지 않으니까,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것이 나의 이유란다, 코쿠토군. 혼잣말처럼, 쿠로기리 선생님은 그렇게 덧붙였다. 기억하고 있지 않으니까,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이 망각을 채집하는 이유라고, 이 인물은 말한 것이다. 「그것은 무슨 말씀인가요, 선생님」 「간단해. 나는 그러는 것으로밖에, 너희들을 알 수 없어. 내가 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희들의 기록을 더듬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는 거야. 쿠로기리 사쯔키가 기록을 채집하는 이유는, 분명 그것이었겠지」 오래된 사건처럼 이야기하고, 그는 생각에 잠기듯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아무런 감정도 품지 않은 눈동자를, 나는 정면으로 마주본다. 묻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은 그런 애매한 말이 아니었으니까. 「제가 묻고 있는 것은 좀더 명확한 이유에요. 대체 어째서, 선생님은 망각의 채집 같은 일을 시작하신 건가요? 선생님이 되찾아야 할 과거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것뿐인데」 미키야에게서 들은 정보를 기억해낸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열 살 무렵, 요정에게 유괴되었다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을 따지고 들자, 그는 호오, 하고 감탄의 소리를 냈다. 「───놀랐습니다. 그런 옛날 일까지 잘도 조사했군요.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분명히 어릴 적에 요정과 만난 적이 있어요. 그 뒤로, 기억장해를 일으키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마술을 배운 원인은, 그 장해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아아, 틀림없습니다. 분명히 나는 자신의 과거를 되찾기 위해서 마술을 배우고, 망각의 채집을 할 수 있는 수단에 도달했어요. 원래대로라면, 나는 타인의 기억 따위에 간섭해야 할 리는 없었겠지요」 어딘가 후회하듯이 그는 말했다. 나는, 타인에 간섭해서는 안 되었다며.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코쿠토군.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가봤지만, 나는 자기 자신의 과거를 더듬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뇌는, 기억을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뇌에 이상이 없을 경우에만 가능해요. 나의 기억은 망각이 아니라, 파손되어 버렸던 것이었어요. 그렇게 되자 수단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나 개인이 기억하는 과거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가 기록하고 있는 현상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지. 다행히, 나에게는 그것이 가능할 정도의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었지. 관측자는, 자기 자신이 관측되는 대상이 될 수 없어. 자기 자신과 악수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인간이란 것은. 그래서────나는, 타인 속에 있는 나를 끄집어 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기억, 의식은 그 심층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술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근원의 소용돌이라고 불리는 『위치(位置)』에 대한 것을. 예전의 나는, 당신들의 기억의 바닥에서, 나에게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기억을 찾고 있었어요」 「───아카식 레코드, 인가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작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것, 도통 믿을 수가 없다. 토우코 사부조차 도달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모든 것의 근원. 이 인물은 그곳에 도달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토우코 사부는, 사람들의 의지는 독립되어 있지만, "영장의 의지"라고 하는 커다란 묶음 속에서 독립하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커다란 묶음을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한다면, 독립하고 있으면서 고독(孤獨)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지나 기억에 녹아드는 것이 가능하다고도. 하지만, 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그것이 설령 진실이라고 해도───그렇게까지 했어도 이 사람은 바라던 것을 손에 넣지 못하고 있다. 「그곳에도……쿠로기리 사쯔키의 과거는 없었던 거군요, 선생님」 가냘픈 목소리로, 나는 이 인물의 결말을 대변한다. 그렇지만 의외로. 그는 다정한 미소를 띄운 채 나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요. 답은 있었어요. 이상하죠?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나는 기억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단지, 내가 그렇다고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뿐.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미 많은 타인들의 과거를 채집하고 있었어요. 코쿠토군. 사람이 기억을 망각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갑자기 질문을 받아, 나는 머뭇거렸다. 우리들이 무언가를 잊는 이유. 그것은 분명─── 「……뇌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필요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되죠.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면 축적될수록, 그 망각은 많아지겠지요. 우리들은 매일 매일을 혼란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불필요한 기억을 소거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예에. 그것이 평범한 과정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망각이 아니라 정리라고 하는 겁니다. 시간에 의해 소거된 기억과, 개인의 의지에 의해 소거된 기억은 달라요. 내가 묻고 있는 것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소거한 기억에 대한 겁니다. 당신은,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군요, 코쿠토군」 부드러운, 햇살에 스러져 갈 듯이 다정하게 웃으면서, 쿠로기리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숨을 삼킬 수밖에 없다. ……그래, 이 사람이 말하는 대로. 지금은 우등생 같은, 누구나 알고 있는 대답에 지나지 않는다. 「……망각은. 우리들이 의도적으로 추억을 잊는 것은, 그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대답하면 되는 건가요, 선생님」 힘없이 대답하는 나에게, 쿠로기리 선생님은 말없이 끄덕였다. ……물론, 나도 알고는 있었다. 사람이 스스로 기억을 잊는 것은, 그것이 불필요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하고 있어서는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과거에 범한 여러 가지 잘못. 그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자아를 붕괴시킬지 모르는 기억을, 우리들은 의도적으로 잊어버린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지금의 자신은, 건전하고 죄가 없는 자신이라는 환상을 지키고 있는 것이니까. 「그래요, 그것이 망각된 기억의 정체입니다. 죄, 금기, 후회라고 하는 것을 당신들은 의도적으로 잊어버리지. 그것은 심층의식에 깊이 뿌리내려서 당신 자신에게서 제거 할 수 없게 된 당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잊을 수밖에 없는 거겠지요. 알겠나요. 사람의 의식의 심층부를 찾는다는 일은, 망각된 기록을 끄집어내는 일이 되는 겁니다. 나는, 그것을 너무 반복 했어.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서 많은 인간의 망각을 돌아보아서, 나는 아마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던 거겠지요. 대개의 인간은, 스스로의 죄를 망각하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더러움, 추함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살아가고 있는 거죠. 그것은 나쁜 일이 아냐. 오히려 생태적으로는 우수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두려워요. 그 더러움을 내버려둘 수가 없어. 당신들의 세계는 아주 불안정해서 분쟁이 너무나 많아. 이대로는 영원히 남는 것 따위는 없어져 버리겠지요. 그래서, 없어지지 않도록 너희들의 소망을 형체로 만들어 주고 있던 것뿐입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되돌려 받은 뒤에 어떻게 취급하느냐는 그 개인의 자유잖아요? 그곳에 나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만약 이것에 선악이라는 것이 정해진다고 하면, 그것을 결정하는 것 역시 개인의 의지입니다」 어렴풋한 미소를 띄우면서 쿠로기리 사쯔키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사람의 망각을 채집하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간의 망각을 보아왔던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더러움을 참을 수 없게 되어서 그 청소를 시작했다는 소리일까. 자기의 편력을 찾아본다는 그의 목적은, 어느 사이엔가 인간의 편력을 형체로 만든다는 것으로 바뀌어져 버렸다. 다만, 그는 그 청소를 자신의 손이 아니라 더러워진 부분을 가진 그 본인의 손에 맡겼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은 선악에 대해 추궁 당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것은 단순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럴까요. 당신은 망각을 제시하는 일이 죄의 고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자신에게 선악이 없다고요?」 예, 하고 그는 끄덕인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 단지, 해결할 수단을 원해」 당연한 듯이 쿠로기리 사쯔키가 대답한다. 나는, 여기서 겨우, 이 인물에 대해 반감 같은 것을 품었다. 분명 잊혀진 기억의 몇 개인가는 스스로 잊으려고 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대부분은 잊으려고 해서 묻어버린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일들인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 시절에 보았던 어슴푸레한 착각. 사실은 단순한 구름인데도 무언가 특별한 생물처럼 생각되었던 그 때, 공장의 연기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하늘을 만들고 있다고 믿고 있던 시선. ……저녁놀을 향해서 끝없이 걸어가면, 모르는 나라에 도착해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렇지만 마음은 두근거려서, 계속 지평선 너머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지금으로서 보면 단순한 착각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잊어도 기억해내서도 안되는 소중한 것이다.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되어 가는 우리들에게는 기억해 내서는 안 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함부로 까발리는 것은, 분명,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쓸데없는, 당신만의 생각이에요. 사람을 알기 위해서 망각을 채집하는 것이라면. 그런 짓보다 먼저, 당신은 잊어버리고 있는 자신의 기억을 수집해야만 해요. 쿠로기리 선생님」 시선에 힘을 모아, 나는 쿠로기리 사쯔키를 바라보았다. 그는 온화한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빙긋 미소 지었다. 「그건 불가능해요, 코쿠토 군. 쿠로기리 사쯔키의 기억은 망각된 것이 아니라, 요정에게 빼앗긴 겁니다. 나의 기억은 말이죠,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던 것뿐입니다」 「기억이, 알 수 없어?」 앵무새처럼 따라 중얼거리며,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억을 잊은 것이 아니라,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은 무슨 소리일까. 그러고 보면, 이 사람의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자신의 일을, 언제나 타인의 일처럼 말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즉…… 「요정에게 유괴된 뒤에도, 기억은 원래대로였다?」 그는 끄덕인다. 「그래요. 쿠로기리 사쯔키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어. 그러니───나는, 타인의 망각을 돌아볼 필요 따위는 없었어. 그런 짓을 해도, 이미 돌아갈 집 따위는 없었는데 말야」 그렇게 말하고, 그의 표정은 변해 갔다. 웃는 얼굴은 웃는 얼굴인 상태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해 간다. ……마치, 서커스의 크라운의 화장처럼. 「확실히, 나는 어릴 적에 요정들에게 유괴되었습니다. 그것이 요정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혹시, 단지 동료를 원했던 것뿐인 망령이었을지도 몰라. 영원히 있자, 라고 그들은 말했어. 나는,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었어. 요정들에게 붙잡힌 아이는 두 번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미신만은 알고 있던 나는, 정신없이 그들에게서 도망쳐 나왔어. 들판을 넘고, 숲을 지나서. 자신의 집이 보였을 때, 문득 뒤를 돌아보았더랬지. 거기에 있던 것은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요정의 사체와, 피로 새빨갛게 물든 나의 양손이었어. 그때, 그들이 말했던 것이 진짜였구나, 하고 안겁니다. 하지만 그렇잖아요? 어린애였던 나는, 두 번 다시 원래의 집에는 돌아갈 수 없었으니까」 웃는 얼굴인 채로 광대의 얼굴은 말한다. ───머릿속에 그려 버리고 말았다. 행방불명이 된 자식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피에 물들어 돌아왔을 때의 부모의 차가운 반응을. ……그런 것이다. 설령 자신의 집에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그곳에는 이미 이전의 그것과는 달라져 있다. 그 집은, 이미 그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보금자리가 아니다. 그가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따스한 집이지, 자신을 백안시하는 부모가 있는 집이 아니었으니까. 「──선생님은, 요정들에게 유괴된 것이 아니라──」 「예에.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것이 잘못이었지. 대신 쿠로기리 사쯔키는 그들에게서 저주를 받아 버렸던 겁니다. 나는, 기억을 잊어 버렸던 것이 아니야. 쿠로기리 사쯔키는 말이지, 그 때부터 자신의 기억이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던 것뿐입니다. 이상하게도, 그 뒤로 나는 본 것의 『재인』을 할 수 없어. 그 후에 얻었던 지식은, 기억이 아니라 정보에 지나지 않아요. 세계는 영상이 아니라, 말로 모습이 바뀌어 진 정보로 변해 버렸지. 나(私)의───아니, 나(ボク)의 바깥 세계는, 열 살 무렵에서 멈춰진 그대로입니다. 요정들의 저주겠지만,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무슨 수를 써도 풀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해」 쿡쿡하고 그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기억이───언어에 지나지 않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 버렸다. ……나는,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인물의 마음이 아직 요정에게 빼앗겨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지만, 10살 무렵부터 성장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하는 예상만은 맞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지금의 말은, 너무나 이상하다. 본 영상을 재인 할 수 없다?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눈으로 본 영상을 "재인" 할 수 없다, 라는 것은 과거가 없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그것을 기억 해내서 "자신이 가진 기억"이라 인식할 수 없다면, 그런 것은 책에 씌여 있는 정보와 마찬가지다. 나는, 쿠로기리 사쯔키를 어제 보았다. 그 과거를 기준으로, 지금 쿠로기리 사쯔키와 만났고 그가 어제 만났던 사람이라고 "재인"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이 있다. 재인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은 기억이 확실해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즉 어제 있었던 일도, 쿠로기리 사쯔키는 기억해 낼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사건은 몇 번 반복한다 해도 처음으로 체험하는 일이 된다. 「───거짓말이에요. 선생님은 제가 코쿠토 아자카라고 알고 있잖아요. 재인 할 수 없다면, 내가 누구인지 알 턱이 없어요」 눈을 부릅뜨고, 나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나의 부정의 말을 부드럽게 받는다. 「그럴까요. 나는 코쿠토 아자카라는 인간의 특징을 단어로서 기록하고 있어요. 당신을 보고서, 기록되어 있는 코쿠토 아자카의 특징과 맞아떨어지니까, 너를 코쿠토 아자카라고 인식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에 당신보다 코쿠토 아자카의 특징에 들어맞는 제3자가 나타난다면, 나에게 있어서 코쿠토 아자카는 그 제3자가 되겠지요. 당신자신이 누구인가는 관계없습니다. 내 안에는, 영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단어로서 기록되어 있지요. 인간의 경우에는 신장, 체중, 골격, 피부색, 머리모양, 언동, 나이뿐입니다. 나는 당신을 보고 코쿠토 아자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당신이라는 인간의 특징에 맞아 떨어지는 것이, 코쿠토 아자카라는 것에 제일 가까운 것뿐. 명기도, 기록도, 보존도 할 수 있어. 나는 단지 재인만 할 수 없는 거야. 물론, 이 방법으로는 끊이지 않고 문제가 생겨 버리지요. 영상으로 확인 할 수 없는 나는, 말로 물체를 구별하니까. 그러니까 머리모양 하나 바뀌는 것만으로, 그 상대를 착각하는 경우도 있어. 뭔가를 잘 잊는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듣지요. 이 학원에서도, 쿠로기리 선생님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다고 소문이 나 있잖아요?」 그러고서, 쿠로기리 사쯔키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몸이 진정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람은, 아무도 보고있지 않다. ……알아 버렸다. 쿠로기리 사쯔키가 코쿠토 미키야와 닮은 이유와, 어디가 결정적으로 다른가 하는 이유를. 어제라고 하는 일이 기억이 아니라 기록,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 이 인물에게는, 자기(自己)라는 것이 없다. 왜냐면, 자신의 추억이 없으니까. 그에게 있어서, 기억은 자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외계에 대응하기만 하는 정보로 전락해 있다. 그곳에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인간의 의지는 희박하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말을 걸지 못하며, 모든 일을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한 점만이 아주 비슷하면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 뿐. 미키야처럼 거기서 되돌려주는 것이 없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언제나 갓 태어난 아기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웃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생각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 그는 기억해낼 수 없으니까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이 인물은, 타인의 기억을 채집하는 것으로밖에 타인을 알 수 없다. ……어찌된 일일까. 이래서는 마치, 주위의 일에만 반응하는 기계나 똑같다. 이 애매한 세계를 확실한 것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자신의 의지가 필요한데도. 「당신의 현실은 언제나 불확실한 거군요, 선생님」 무언가 불쌍한 것을 보는 것처럼, 나는 말했다. 그는 끄덕인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걸로 충분해요. 자신이 웃고 있는 실감도 없어. 이 신체도, 손가락이 다섯 개 있고 생각대로 움직이니까 나의 팔 일거야, 하고 가정할 수밖에 없지. 자신의 신체조차, 말로 변환할 수 있는 사실로밖에 인식할 수 없어. 하지만, 인간은 육체가 필요 없는 생물이잖아요? 우리들은 뇌만 있으면 족해. 결국은 뇌 내의 전기반응만이 우리들의 세계입니다. 외계는 항상 애매한 것, 그것을 확실한 것으로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머릿속이지. 성격도 육체도, 결국은 자기를 알기 쉽게 보여주는 장식밖에 되지 않아. 형체가 남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 머릿속에 있는 것뿐이지. 물질은 소비되고 마모 되어가는 것. 지구라고 하는 세계가 부서져 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최후에는 죽어 버리는 것이 바른 존재방식이니까, 누구도 그것을 해결할 필요 따위는 없어. 우리들에게 있어서 진짜 세계는, 각자의 뇌수 속뿐이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더러워져 있어. 그래서 나는 망각을 채집하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는, 인간으로서의 조건이니까. 나에게는 자기(自己)가 없어. 그렇지만 자기가 없다고 하는 나이기도 해. 확실한 육체도 확실한 현실도,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겠지요. 정신은 육체에 깃들지 않고, 현실에 의미 따위는 없어. 영원은 이곳에는 없어. 밖의 세계는 너무나 더러워져 있으니까」 평탄한, 아주 시시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정말 한순간, 이 인물의 의지에 접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일이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단지 사람의 망각을 채집하는 책이 있을 뿐. ……옛날, 쿠로기리 사쯔키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마술을 배워서, 사람들의 기억을 보고 다녔다. 그렇지만 그것은 무의미했다. 결국, 기억을 되찾아 봤자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그의 행동은 헛수고였다. 그렇게 목적은 바뀌어져 버렸다. 우리들의 망각을 돌아보던 사이에, 이 인물은 여러 가지 어둠을 보아 왔다. 열 살인 채 멈춰 있는 아이에게 있어서, 그것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그는 사람들의 더러움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세계의 더러움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무섭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는, 생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자신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게 된 뒤에도, 계속 찾고 있었던 거군요. 당신에게는 그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예, 하고 위신의 서(僞神の書)는 끄덕였다. 「……어떤 마술사는 인간이 없어지는 것이 해결법이라고 결론지었지만, 나는 인간이 마음대로 지내면서, 여전히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결론을 원했어. 그렇지만 나의 사고는 뿔뿔이 흩어져서 형체가 없어. 온힘을 다해 무언가를 생각해도, 잡음투성이라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어. 계속, 모두가 평화로워지는 방법을 찾아서 고민하고 있어. 하지만, 쿠로기리 사쯔키는 그것을 도출해낼 수가 없어. 자기(自己)가 없는 그는, 이미 어떤 사실밖에 말로 할 수 없는 겁니다. 때문에, 나는 그 해답을 사람들의 기억의 바닥에서 찾았어. 지금까지 몇 천 년이라는 역사를 쌓아 온 인류입니다. 오랜 역사 속이라면, 한사람 정도는 그 해답을 발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과거에 그런 방법은 없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생각 한다는 미래가 없는 나에게 있어서는, 기억해낸다고 하는, 과거에서 그 방법을 찾아내는 방법밖에 대답을 찾을 수단이 없었지」 그것이 지금, 망각을 채집하고 있는 목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잊고 있다. 모든 것에 공통하는 해답을. 그래서 우리들은 이렇게도 불완전하다고, 쿠로기리 사쯔키는 믿은 것이다. 아니, 그런 목적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람이 망각한 것 속에, 일찍이 누구도 기억해 낼 수 없는 망각에, 그가 구하는 대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쿠로기리 사쯔키에게 있어서는 그 이외에 희망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대답은──어디에 있었다는 소리일까. 「……한가지,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뭔가요, 라고 하며 변하지 않는 미소로 그는 말을 받는다. 「당신은 어째서 망각의 채집만으로 멈추지 않았던 건가요. 그것을 녹음할 필요는 없었고, 우리들의 바램을 이루어 줄 필요 따위는 없던 것 아닌가요」 과연, 하고 변하지 않는 웃음 띈 얼굴로 그는 끄덕였다. 「간단해요. 나는 인간으로 있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느끼고 있고 싶었지. 인간으로서 내 마음대로 인간만을 소중하게 취급하면, 나는 너희들의 동료가 될 수 있어.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자기의 의지입니다. 나는, 그것을 나타낼 필요가 있었지. 예전의 나는, 집요하게 타인의 과거만을 구했어. 그것만을 반복해 왔어. 그것은 틀림없는 나만의 의지입니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하는 목적을 잃은 뒤에도, 그것을 잃고 싶지 않았어. 그래───유일한 인간성. 취미라고 하는 오락을 그것으로 정한 것이지」 「목적이───목적이군요」 숨을 삼키는 나에게 그는 만족스러운 듯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코쿠토 아자카. 마술사란 것은 누구나 그런거야」 그것이 당신이 알고 싶어 하던 말입니다, 라고 하며 사람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마술사는 끄덕였다. ◇ 길고, 의미 없었던 문답은 끝났다. 나는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이 인물에게 묻고 싶은 것을 말한다. 그것은 이 사건의 조사를 명령받은 코쿠토 아자카로서가 아니라, 나로서의 코쿠토 아자카가 확실히 하고 싶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알려주세요. 당신에게 있어서, 오우지 미사야는 무엇인가요」 나는, 이젠 이 인물에게 관심도 흥미도 없다. 단지 그 대답만이 듣고 싶었다. 혹시, 그것만이 이 누구도 아닌 인물을 개인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며. 그리고,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오우지군은 오우지군입니다. 그게, 어때서?」 다정한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소망을 반영하는 거울로서의 그가 아니라, 쿠로기리 사쯔키라는 인물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녀에 대한 그의 진실이, 이거였다. 「오우지 미사야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예에.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환상입니다」 「오우지 미사야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글쎄. ───그건, 그녀가 결정할 일입니다」 간결한 대답. 인간다움이 티끌만큼도 없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대답. 「당신의 의지는, 그것뿐이군요」 「예에. 그녀도 다른 학생들과 다르지 않아요. ……단지 이 학교 안에서 그녀는 뛰어난 학생이었고 아름다웠다는 것은 인정하지」 자료를 뒤지는 것처럼 말하는 그 목소리에, 나는 한 걸음 물러서 버렸다. 「───당신은, 설마」 「맞아요. 내가 망각을 채집한 것은, 1학년 4반뿐만이 아닙니다. 이 학교의 인간 모두의 망각을 채집했어요. 코쿠토군. 이 학원의 문제는 1학년 4반의 사건만이 아니에요. 단지, 당신이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지」 그럼───레이엔의 학생은 모두, 이 인물에게 자신을 되돌려 받고 있었던 것이다. 800명 가까운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그것을 여러 가지 소망대로 돌려준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줄타기가 아닐까. 그만큼의 숫자가 있다면, 오우지 미사야처럼 오라버니를 향한 환상을 품은 자도 있을 수 있거니와 쿠로기리 사쯔키 자신을 미워하는 학생도 나와 버릴 수 있다. ……아니, 그 정도로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해 왔던 이 인물은, 아주 옛날에 누군가가 살의를 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은 말할 필요 없어요, 코쿠토군. 당신이 걱정 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소망이 나를 살해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 선악은 나에게는 관계없으니까. 어떠한 소망, 어떠한 결과더라도 책임은 그 학생에게 있습니다. 그래──나로서는, 아무것도」 자신이 죽는 것조차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은 죽음을 각오한 말이 아니다. 나라는 것이 없는, 자신을 무시한 인간의 말이다. 「저는 착각하고 있었어요」 이전에, 나는 이 사람을 해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이것은 해가 없는 인간이 아니다. 있든 없든 상관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당신은───결코, 미키야와 같은게 아냐」 쿠로기리 사쯔키는,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나는 준비실을 뒤로한다. 이 인물에 대해 할 일 따위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오랜 질문이었어. 지금까지, 이렇게나 나를 대답하게 만든 사람은 없었는데」 「아니에요, 선생님. 지금은 코쿠토 미키야의 의지가 아닙니다. 나는 사부에게 명령받은 조사를 위해서───그리고 오우지 선배를 대신해서 당신을 알려고 한 것뿐이니까요」 그것은, 차가운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쿠로기리 사쯔키는 정말로 기쁜 듯 쿡, 하고 작은 미소를 흘렸다 ……지금까지의 웃는 얼굴과는 다른, 어딘가 만들어 낸 듯한 어색한 웃음을. 「오우지군은 구교사에 있어. 너와 료우기군이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 계획을 앞당긴 거겠지. 1학년 4반 학생들을 구교사에 모아 놓고 불을 지를 거라고 말했어. ────그렇지. 멈추게 할 거라면 서두르는 편이 좋아」 그 말을 듣고, 나는 뛰쳐나갔다. ……마지막으로. 그 말만은, 그가 스스로 자아낸 것이었다고 깨닫지도 못한 채. / 6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숲에 둘러싸인 이 교사는, 뚝뚝 빗소리를 내면서, 누구에게도 접촉 받지 않으며 우두커니 서있다. 절반이 불타버린 그 초등부 건물은, 이제 곧 남은 반신마저도 불타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목적인 그녀들은 4층의 교실에 모여서, 그대로 잠들었다. 나는 직접 손을 대지 않는다. 이제는, 그녀들 중 누군가가 스스로 불을 붙이는 것을 기다리자. 부서진, 아무도 없는 구교사에서 비를 기다린다. 2층 복도에서 어두운 숲을 바라보고 있는데, 코쿠토 아자카라는 학생이 나타났다. 나는 우울한 한숨을 흘리며, 그녀를 맞이하러 가기로 했다. ◇ 가랑비가 검은 제복을 적신다. 겨울비는, 눈처럼 차가웠다. 토하는 입김은 하얗고, 목덜미가 찡하고 울린다. 그런 얼어붙은 공기 속을 지나서, 코쿠토 아자카는 구교사에 도착했다. 어제 찾아왔을 때처럼, 승강구로 안에 들어간다. 절반이 불에 타 문드러진 초등부 건물은, 이미 몇 십 년이나 방치된 폐가처럼 적적했다. 학생인 아이들의 목소리도, 학교로서의 숨결도 끊어져 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끼이끼이하는 작은 벌레 소리와, 코를 찌르는 마른 냄새뿐. 그녀는 킁, 하고 코로 냄새를 맡고서 그것이 가솔린 냄새라고 알아차렸다. 코쿠토 아자카는 화약이나 연료의 냄새에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민감하다. 「──아아, 귀찮아」 양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아자카는 그런 한숨을 쉬었다. 「한번밖에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상대를 위해서 몸을 던지다니, 정말, 바보 같아」 복도를 걸어가면서, 아자카는 오른손에 장갑을 낀다. 차(茶)색을 띈 가죽장갑은, 그녀의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물건이었다. 불도마뱀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그 장갑은, 발화시키는 것뿐인 그녀의 능력에 잘 견디며, 동시에 그것을 폭발시켜 준다. 전투준비를 하고, 아자카는 2층으로 이어진 계단 앞에 멈춰 섰다. 2측으로 이어진 계단의 층계참에, 오우지 미사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질리지도 않는가보군요, 코쿠토씨」 마음에 든 하급생을 나무라는 듯한 우아한 말투로 오우지 미사야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계단의 층계참에 진을 친 상태로, 복도에 있는 아자카를 내려다보고 있다. 미사야의 주위에는 무수한 소리가 반향 되고 있었다. 그것은 아자카에게는 보이지 않는, 요정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벌레들은 날개 소리를 내며, 이제나저제나 여왕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저 사냥감에게 덤벼들어라, 라고 하는 단 한마디의 명령을. 이전과 다르지 않은 압도적인 전력차로 볼 때, 지금의 아자카의 위치는 확실히 불리했다. 계단 위에 있는 미사야와 아래 있는 그녀와는, 거리가 너무나 벌어져 있다. 그 상황을 무시하고, 아자카는 미사야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는 거짓말쟁이네요. 1학년 4반 학생들은 자살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당연합니다. 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이곳에 모여서, 스스로 타 죽는 것에 변함은 없어요. 사실은 각자 회개하게 만들어야겠지만, 예정을 앞당겼어요. 아직 죽고 싶어 하고 있는 학생은 반수 정도지만, 곧 모두 그렇게 될 거에요. 여기서 전원이 불타 죽어도 결과에 큰 차이는 없겠죠」 「흐응───자살 지원자가 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요. 하지만 죽기 쉬운 상황과 죽어도 좋을 것 같은 분위기를 준비하면, 분명 몇 명의 죽음에 대한 갈망은 모여 있는 클래스메이트들을 길동무로 만들어 버리겠죠」 참혹한 얘기네요, 하고 아자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 몸짓에 긴장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오우지 미사야는 의심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린다. 「코쿠토씨. 당신, 그녀들을 구하러 온 것 아니에요?」 「설마. 저,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걸요. 그래서 죄라던가 벌이라던 가에 신경 쓰지 않아요. 저 애들은 자살하고 싶어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것을 말리는 짓은 쓸데없는 참견이잖아요」 빙긋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님처럼 순진한 미소를 띄우며, 코쿠토 아자카는 오우지 미사야에게 시선을 주었다. 거기에 거짓의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코쿠토 아자카는, 정말로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미사야의 표정은 점점 험악해져 간다. 그렇다면───그녀는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온 것일까? 「그렇다면, 나에 대한 보복인가요?」 「의미적으로는 가까울까요. 내가 이곳까지 온 것은, 오우지 미사야가 불쌍해서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아자카는 오우지 미사야의 모습을 똑똑히 응시했다. 초등부 건물이기 때문에, 계단은 그렇게 단차도 높지 않고 단수도 많지 않다. 리듬 좋게 뛰어 올라가면, 미사야에게 다다르는데 2초도 걸리지 않겠지. 「───내가, 불쌍하다구요?」 오우지 미사야의 눈동자에, 불같은 적의가 이글거린다. 지금이라도 막 요정들을 풀어버릴지도 모르는 그녀를 앞에 두고, 아자카는 미동도 하지 않고 물었다. 「선배. 당신은 어째서 쿠로기리 선생님에게 상담했나요?」 오우지 미사야는 그가 나의 오라버니이기 때문에, 라고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럼, 그 힘은 누구에게서 얻었나요?」 그것도 오라버니에게서, 라고 그녀는 대답한다. 「그렇다면───당신은, 언제 쿠로기리 선생님을 오라버니라고 알았나요?」 그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다가, 그녀는 그 지극히 간단한 모순점을 깨달았다. ……어떻게. 지금까지 이런 단순한 모순을 깨닫지 못했던 걸까, 하고 놀라면서. 「──────」 미사야는 작은 목소리를 흘린다. 그래서는, 순서가 이상하니까. 「그런거에요, 선배. 당신은 그가 오라버니이기 때문에 상담했던 것이 아니었죠? 당신은, 단순히 쿠로기리 선생님이 담임이었기 때문에 상담했던 것뿐이에요. 그것도, 분명 다치바나 카오리에 대한 것이 아니에요. 당신은 이 학원에서 최고의 권력자인걸요. 쿠로기리 선생님과 상담 같은 걸 하지 않아도, 하야마 히데오 본인을 직접 추궁할 수 있었죠. 그 결과───하야마 히데오는 죽어 버렸어요. 총명한 당신이었으니, 그것은 정말로 불행한 사고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쨌든 하야마는 죽어 버렸어요. 당신이 상담했던 것은 그 일 때문이 아닌가요, 오우지 선배」 오우지 미사야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지도 않은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미사야는 자신을 바라보는 하급생조차 잊고서, 그저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언제부터 그것을 알았던 것일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오라버니의 얼굴 따위는 털끝만치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알 방법은 한가지뿐이다. 요정을 부릴 수 있게 되어서, 쿠로기리 사쯔키의 기억을 빼앗았다. 그 조각에, 최면술처럼 쿠로기리 사쯔키가 자신의 오라버니라고 쓰여져 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것 이외에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 「나, 나는─────」 「알 수 없겠죠. 오우지씨, 당신은 자신의 기억으로 쿠로기리 선생님을 오라버니라고 인식했던 것이 아닌걸요. 당신은, 쿠로기리 선생님에게서 빼앗은 기억으로 밖에 그것을 알지 못했어요. 타인의 기억은 어차피 타인의 것이잖아요? 그곳에 오우지 미사야로서의 진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은, 단지, 거울을 보고 있던 것뿐이었어요. 쿠로기리 사쯔키는, 당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준 것이 아니에요. 그에게 있어서, 당신은 거기에 있는 요정과 다를 바 없어요. ──오우지 미사야는 요정을 사역하는 듯 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이 사역 당하고 있는 요정이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아자카는 시키의 말을 생각해 냈다. 미사야 자신이 잊고 있다고 말한 그녀는,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짓말」 신음하듯, 오우지 미사야는 말했다. 「그런 건, 거짓말이야────!」 격앙과 함께, 요정들은 탄환으로 바뀌었다. 공중에 정체되어 있던 날개 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코쿠토 아자카에게 달려든다. 그것은, 기관총의 소사(掃射) 같은 폭력의 폭풍. 그렇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그녀는 달려 나가고 있었다. 양 주먹을 눈앞으로 가져온 채로 앞으로 수그리고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자신의 몸을 꿰뚫으려는 요정들을, 그녀는 몸을 옆으로 슬라이드 시키는 것만으로 멋지게 회피했다. ……요정들의 무리가 표적으로 향해 발사된 탄환이라면. 그녀는 사냥감을 덮쳐드는 육식동물 그것이었다. 단 세 발짝만으로 계단을 주파한 그녀는, 앞으로 수그린 채 오우지 미사야 앞에 발을 멈춘다. 탕하고 발을 내딛으며, 휘이 하고 휘파람처럼 토해진 호흡. 퍼 올리는 듯한 보디블로는 곡선을 그리며 오우지 미사야의 복부를 스치고, 그 등 뒤로 내찔러졌다. 화륵, 하고 아무 것도 없을 공간에서 소리가 난다. 「AzoLto────!」 주먹의 착탄(着彈)을 확인하면서, 아자카는 그런 단어를 발음했다. 마술을 발동시키는 주문은, 그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한다. 그, 마술의 발동에 필요한 의식을 극단적으로 요약한 영창이, 코쿠토 아자카에게 있어서의 주문이었다. 대기가 한순간에 불타오른다. 미사야의 등 뒤에 있던 무언가는, 고민의 소리 같은 것을 지르면서 불타 간다. 목제 인형에 가솔린을 끼얹고 불을 지른 것처럼 화염은 명확히 무언가의 형체로 불타올랐고, 이윽고 화염과 함께 사라져갔다. 후우, 하고 화탄(火彈)의 사수(射手)는 숨을 토한다. 「……이것이 당신이 몸에 익히고 있던 마술의 정체. 마술은 몸에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몸에 새기는 거에요. 선배처럼 한두 달 만에 마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쿠로기리 선생님은 당신 자신에게 요정을 붙이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어요」 발화에 의해 여전히 불이 붙어있는 오른손의 장갑을 움켜쥐면서, 코쿠토 아자카는 그렇게 말했다. 오우지 미사야는 멍하니───홀리고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멍한 눈동자를 한 채로 털썩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그래. 그런, 거군요」 그렇게 중얼거리고, 오우지 미사야는 소리도 없이 웃었다. 좀더 빨리 깨달았어야 했다고, 자기 자신을 비웃으면서. … 그녀는 회상한다. ……그 때. 하야마 히데오를 추궁했을 때, 말싸움이 되어 하야마 히데오에게 폭력을 행사 당했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거역당한 일이 없었던 나는, 이성을 잃고 정신없이 하야마 히데오를 떠밀었다. 단지 그것뿐인데, 그 운 나쁜 남자는 죽어버렸다. “이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쿠로기리 사쯔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학장에게도 상담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전부터 계속 사모하고 있던 쿠로기리 선생님에게만,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그 사람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영광이나 결과에 집착하는 인간밖에 알지 못하는 나는, 그 무엇도 집착하지 않는 쿠로기리 사쯔키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선생님이라면 도와줄 것이라 꿈꿨던 것이다. 그리고 바램대로, 그는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오라버니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던 나. 그것을 형체로 만들어준 사쯔키. 카오리의 죽음에 보복하고 싶었던 나.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힘을 알려준 사쯔키. 그는,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에 접촉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어째서, 그때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나와 그녀들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 이외의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고. 그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설령 나 자신이 그녀들을 죽이지 않더라도. 나 자신이, 그녀들의 죽음을 바라는 거라면. “하지만. 그래도, 결과로서는───똑같은 일이 아닐까요, 선생님?” ……그때의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 「말하지 않는게, 좋았었어」 오우지 미사야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옆에 서 있는 나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 말은 그녀 자신에게도, 나에게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어. 사쯔키는, 자연스러웠으니까. 자연스럽던 사쯔키를 사랑한 나는, 그런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되었어. 그렇지만 그렇게 자신만의 무언가로 만들지 않으면 불안했던 거야. 나는, 사쯔키가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면, 자신의 것도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소리야. 나는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 좋았어. 설령───그가, 나를 그 무엇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 좋았었는데」 무언가, 이미 먼 옛날의 일처럼 그녀는 말했다. ……닮았어요, 선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역시 나와 오우지 미사야는 닮았다. 자신보다 소중하게 생각할 정도의 상대인데도, 그것을 말한 순간 소중해지지 않게 되어 버리는 관계. 나도 알고 있다. 나의───우리들의 마음은 결코 형체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랑이란 것을. 「그래도────구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것이 제일 무거운 죄라고 말하듯, 그녀는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선배. 다치바나 카오리를 자살로 몰아넣은 것은 쿠로기리 선생님이에요. 그 사람에게 있어서, 특별한 것 따위는 존재 하지 않아요. 당신의 복수는 처음부터 의미가 없던 것이었어요」 「바보군요, 코쿠토씨.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런 말만을 남기고, 오우지 미사야는 바닥에 엎드렸다. 참회하는 것처럼 얼굴을 바닥에 대고, 그녀는 웃고 있다. 쿡쿡하고 흘러나오는 웃음은, 어쩐지 우는 것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 나는 그녀를 남기고, 아이들의 교사를 떠난다. 숲에 내리는 비는 이윽고 안개가 되어, 돌아오는 길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망각녹음\ 7 어렸을 적의 꿈을 꾸었다. 아직 내가 코쿠토가에 살고 있던 무렵의, 아주 오래된 추억을. 달이 밝은 밤의 일이다. 그 날 낮에, 이웃집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가 타계했다. 그 사람은 평범한 이웃으로, 젊을 때 가족을 잃고 혼자 사는 쓸쓸한 노인이었다. 치매를 앓고 있어서 어제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아주 상냥하고, 따스한 할아버지였다. 나는 멀리했고, 오라버니는 그 노인과 친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노인은 자신의 고독을 메우듯이 이웃집 소년과 이야기했고, 오라버니는 순수한 친애(親愛)에서 이웃집 할아버지와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 노인은 바닥에 엎드린 채 눈을 뜨지 않았다. 그것을 나와 오라버니는 저녁때 부모님에게서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던 식탁의 공기는 긴장되었고, 나도 그 불쌍한 노인을 위해서 눈물지었다. 그 사람은, 가족을 잃고서 몇 십 년이라는 모진 시련을 견디다가, 역시 보답 받지도 못하고 죽어 버렸다. 그때의 차갑던 나도, 그것은 슬픈 일이라고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나조차 그랬으니, 오라버니는 울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아주 슬픈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울지 않았다. 허세를 부리는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오라버니의 괴로워 보이는 눈이 말하고 있었다. ……슬프다면 울면 될텐데. 미키야는 그런 모습인 채로, 눈물 흘리는 일은 없었다. 며칠 후. 나는, 할아버지가 임종을 맞은 것을 발견한 사람이 놀러 갔던 오라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달이 밝게 빛나던 밤, 나는 툇마루에 나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툇마루에는 오라버니라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으니까. “어째서 울지 않는 거야?” “응, 글쎄” 곤란한 듯한 얼굴로, 오라버니는 나를 내려다본다. 눈동자는 아직도 몹시 슬퍼 보였고, 그리고 아주 상냥했다. “남자는, 울면 안 되니까?” 아버지의 말을 기억해서 물어 보아도, 오라버니는 고개를 가로 저을 뿐이었다. “저기, 어째서 울지 않는 거야?” “응.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어” ───그것은, 특별한 일이니까. 그것만 말하고, 오라버니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옆모습은 지금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지만, 그래도 결코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이때, 나는 알아 버렸다. 남보다 몇 배는 누군가를 동정하고, 남보다 몇 배는 울어 버릴 것 같은데도, 이 사람은 절대 울 수 없다고. 무언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린다는 일은 아주 특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주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슬픔의 표현이기도 하며, 마음의 동요를 감염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운다는 행동은 특별하다. 그것만으로 주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이 사람은 울 수 없는 것이다. 한없이 평범하고, 누구보다도 사람을 상처 입힐 수 없는 기원을 가진 이 사람은, 설령 자신이 아무리 슬프더라도 무언가를 위해 눈물 흘리는 일조차 할 수 없다. 울어 버리면, 누군가가 특별해져 버리니까. ───그것은 누구와도 사귈 수 있는 대신에 얻은,    누구에게도 눈치 채게 하지 않는 텅 빈 고독. ……이 때. 나에게 있어서, 코쿠토 미키야는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이런 나 따위보다 훨씬 소중한,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달이 밝게 빛나는 밤. 남매 둘이서 별을 올려다본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의 원풍경(原風景). 계속 잊고 있었고, 계속 기억해 내서는 안 되는, 머나먼 날의 꿈이었다. ◇ 1월 11일, 월요일. 학교가 시작하고, 나는 평소대로의 학교생활로 돌아와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온다. 기숙사에 돌아와서 준비를 마치고, 시스터에게 외출계를 제출한다. 시스터는 떨떠름한 표정을 보여주었지만, 오케이를 받아내고 기숙사를 나오다가 그곳에서 후지노와 마주쳤다. 「나가는 거에요? 아자카」 「잠깐 동안만. 혹시 통금(門限)시간까지 못 올지도 모르니까, 세오(瀨尾)에게 잘 말해 줘」 아름다운 긴 머리를 가진 동급생에게, 룸메이트에게로의 전언을 부탁하고 나는 서두른다. 빠른 걸음으로 숲을 빠져 나와서 레이엔의 교문에 다다른다. 수위 아저씨가 개인용 문을 열어줘서 밖으로 나오자, 그곳에는 아는 인물이 멍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인물은 검은 색 일색의 옷에, 밝은 차색을 한 코트를 걸치고 있다. 이 겨울 날씨 속에서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안경이 걸린 코끝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달려온 나는 호흡을 깨끗이 고르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기다렸어요? 오라버니」 「으음, 글쎄.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웃는 얼굴로도, 불평으로도 보이는 애매한 얼굴을 하고, 코쿠토 미키야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갈까. 기숙사 통금시간까지 앞으로 두 시간 밖에 없으니까, 서두르자」 그렇게 말하며 미키야는 걷기 시작한다. 그의 옆에 서서, 나는 설레이는 마음을 나름대로 자제하고 있었다. 레이엔의 높은 벽을 끼고, 우리들은 역으로 향해 걸어간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렸냐 하면, 시작은 어제의 미키야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 정월에 약속을 어겼던 일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은 미키야는, 그 보충을 하자고 말해 온 것이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세뱃돈 필요하지 않아?” 라고 하는 오라버니의 말에 한발 양보해서, 나는 정월의 사건을 용서해 주었던 것이다. ……정말, 애매하게 타산적인 나 자신이 싫어지지만, 그것은 그것으로 좋을까 하고 인정하기로 한다. 왜냐면, 처음으로 선물 받을 것을 고민하는 사이에 날이 밝았고, 이렇게 걷고 있는 지금까지도 고민하다니, 귀엽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아자카는 어느 쪽이 좋아?」 갑자기 그런 말을 듣고, 나는 네?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저녁 말야. 일식이야 양식이야. 밥 사준다고 말했잖아」 「─────예?」 다시 한번, 나는 작은 새처럼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통, 의미를 알 수 가 없다. 지.금, 이.녀.석.이. 무.슨.소.리.를. 하.는.걸.까? 「……저기 말야, 어젯밤, 뭐가 갖고 싶냐고 물으니까 정하지 못하겠다고 말해서, 그러면 식사로 하자고 결정했잖아」 나는 깜짝 놀라며 미키야를 올려다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대답하니까 그러면 식사로 할테니까 밖으로 나와, 라고 말하고서 그대로 전화가 끊어지지 않았던가……!? 「……할 수 없지. 정하지 못했다면, 어딘가 적당히 맛있을 것 같은 집에 들어가 볼까. 괜찮아, 오늘은 큰돈을 찾아왔으니까 엄청난 가격의 가게라도 무섭지 않다구」 그러니까 안심해, 라면서 미키야는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지. 이 사람, 밥 한 끼 사주면 여자가 기뻐할 거라고 진짜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생각한거겠지, 역시」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미키야는 뭐? 하고 되물어 왔지만, 나는 무시하기로 했다. ……왜냐면, 불평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나는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서 좋아하게 되었는걸. 이쪽의 이상을 억지로 밀어붙여 버렸다가는, 나의 사랑은 길을 잃어버리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그렇지. 실패 사례도 예상 했던거고」 자중자중, 하면서 주문처럼 마음속으로 반복한다. 「뭐야. 아까부터 혼잣말이 많아, 아자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렇게 물어오자, 나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세상일이란 별 것 없으니, 큰일도 아니다. 「아무 것도 없어요. 단지, 나는 선배처럼 실패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뿐이에요」 힘주어 대답하고, 나는 미키야의 팔을 끌어안았다. ……응, 분명 이 정도는 남매로서도 허용되는 범위겠지. 미키야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평소대로 걸어간다. 나도 그것에 따라 평소대로 걸었고, 이윽고 눈부신 장식이 넘쳐나는 거리가 보였다. 조금 늦은 나의 새해는,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에 맞게, 저녁식사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일식이 되었다는 얘기다. / 망각녹음 그 날의 수업을 마치고, 쿠로기리 사쯔키는 준비실에 돌아왔다. 하늘은 며칠 동안 계속되는 흐린 날씨로, 복도는 모노크롬 사진처럼 아주 조용했다. 준비실의 문을 열고, 안의 상황을 천천히 바라본다. 물건이 넘쳐나는 그의 방은, 그렇지만 생활감이라는 것이 배제되어 있었다. 잿빛 햇살에 비춰진, 시간이 멈춘 준비실. 그 풍경이 쿠로기리 사쯔키의 기록되어 있는 정보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고서 그는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탕, 하고 문을 닫았다. 「──────」 동시에, 그는 날카로운 아픔을 느꼈다. 시선을 내린다. 그녀는 나이프를 쥐고, 깊숙히 쿠로기리 사쯔키의 복부를 찌르고 있었다. 「────누구니」 조용하게, 그는 말했다. 학생은 대답이 없다. 그저 나이프를 쥔 손을 떨면서, 얼굴을 들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런 그녀의 몸을 관찰했다. 신장, 체중, 머리색, 머리모양, 피부색, 골격. 쿠로기리 사쯔키가 기록하고 있는 한, 그 학생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학생은 한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인가. 나를 죽이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구나?」 학생은 대답이 없다. 그는 한번 어깨를 늘어뜨리더니, 자신의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 다정하게, 그녀의 공포를 진정시키는 것처럼. 「그러면 이제 가 보도록 해. 너의 용건은 끝났어」 학생은, 그 말에 꿈틀하고 몸을 떨었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에게조차 상냥했다. 살인을 하는 것 보다, 그 사실 쪽이 두려워진 걸까, 그녀는 나이프에서 손을 떼고 방에서 뛰쳐나갔다. 그 등을 최후까지 바라보아도, 그는 알 수 없었다. 저 학생은, 대체 누구였을까. 여러 가지 특징은 어느 한 명의 학생을 특정 시키고 있었지만, 단지 그 학생과는 머리 모양이 달랐다. 그것만으로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모르는 타인이었다. 머리 모양을 바꾼 것뿐인지도 모른다고 해도, 단 한 부분이 기록되어 있던 정보와 다르다면─────쿠로기리 사쯔키에게 있어서 저 학생은 처음 보는 타인이니까. 그는 스스로 준비실의 문을 닫고,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피를 흘리면서, 방의 모든 문을 조심스레 닫아 갔다. 이윽고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되어,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주저앉았다.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언제나, 나는 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관찰했다. 피를 흘려서 빨갛게 물든 그것은, 지금까지 기록하고 있던 쿠로기리 사쯔키의 몸과는 달랐다. 그래서일까. 이제부터 죽는 것인가 하는 공포는, 자기(自己)라는 것과 비슷하게 아주 희박했다. 그───아니, 나는 지금의 쿠로기리 사쯔키를 채집한다. ……출혈은 심하다. 아마도 살아날 수 없겠지.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시간은, 앞으로 10분 정도겠지. 그럼, 하고 숨을 쉰다. 하다못해 죽을 때까지의 그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 하지만 10분은 너무 짧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 답할 수 있을까? 아니, 시간의 길이는 문제가 아니겠지. 그는 지금 태어나서, 그리고 10분 후에 사망한다. 말하자면 이 시간은 그의 인생이다. 이 정도로 긴 시간도 없다. 자아, 무언가 생각하자. 무언가를 사색해 보자. 지금까지의 자신이라면 무엇을 생각해야만 하는가 하고 그 모든 것을 사용해 버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깨끗해진 이 인생 속에서, 그는 놀랄 정도로 스무스하게 의제(議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호흡은 거칠다. ───십분은 길다. ───출혈은 심하다. ───인생은 짧다. 공백에 씻겨 가는 두뇌가, 의미도 없이 그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렇지. 우선은 태어나기 전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마지막에, 그는 해답에 다다랐다. 궁극의 망각이란 건, 즉 생전의 기억이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의 기록만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세계. 그것은 아주 무의미하고, 평화롭다. 아아, 고민은 너무나 간단한 것. 「결국, 나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계는 이렇게나 평화로웠어」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쿠로기리 사쯔키는 웃었다. 그런 것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 한 가지. 이 오랜 시간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웃고 있는 거라 실감할 수 있었다. / 7 … ───마술사는 말했다. 나라도, 말(言葉)만은 죽일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죽어버리겠지. 모든 것은 전부 사라지고, 없어지고, 죽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와 미래의 경계가 애매해져 버린다. 모든 것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다. ……애초에, 어째서 없어지는 것 정도로 그것을 영원하지 않다고 말하는 걸까. 사라져 버리더라도, 잊혀져 버리더라도, 물체의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 자신의 마음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말해 주었어야 했다. 그러니까───망각에서 영원을 구하는 일 따위는 의미가 없다고.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듯이 잊혀지고, 이제 더 이상 변형되는 일없이 잠든다. 봐라───망각한다는 행위 그 자체가, 영원을 정의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예전의 내 안에 있던 '시키'라는 소년이, 그 날들을 나에게서 망각시킨 이유를, 지금은 알 수 있다. 그는 정말로 소중한 추억을, 지금을 살아가는 나 자신의 마음에 의해 바꿔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잠들게 해준 것이다. 설령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있었던 것만은 변하지 않으니까. ……저 마술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것을 답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자기(自己)가 없는 그는,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에, 말(言葉)이라는 죽지 않는 것으로 영원을 원했던 걸까. ────정말이지, 보답 받을 수 없다. 말로 할 수 있는 영원 따위는, 그것이야말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데도. … ◇ 1월 7일이 되어, 나는 답답한 레이엔의 교복에서 해방되었다. 아자카를 아직 학원내에 남겨둔 채로, 나 료우기 시키는 레이엔 여학원의 교문을 빠져나와 있었다. 예정되어 있던 전입수속을 취소하는데 하루가 걸려 버렸지만, 사건 자체는 해결했기에 학원 측에도 딴소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키타카가 보내준 남색의 쯔무기를 입고, 그 위에 가죽점퍼를 걸치고서 나는 유유히 이 숲과 교사의 세계에서 밖으로 나온다. 그러자, 그곳에는 아는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한가한 놈. 뭐하고 있는 거야, 이런데서」 「저기 말야. 나도 항상 한가한게 아니라구. ……응, 한가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우연히 한가 했어」 그러니까 할 수 없잖아, 하며 미키야는 어깨를 늘어뜨린다. 그 몸짓에 안도하며, 나는 쭈뼛쭈뼛 오한을 느끼면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실은, 한동안 미키야와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기억해 내버린 기억의 조각이, 내 안의 불안을 조금씩 키워 가고 있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그런 두려움 보다, 이 녀석의 멍한 모습 쪽을 원했던 것 같다. 「……그래. 그러면 시간이라도 때울 겸 같이 놀아줄까. 마침 시시한 이야기를 들은 참인데, 너한테도 얘기해 주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걷기 시작한다. 미키야는 솔직하지 않은걸, 하는 폭언을 토하면서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쿠로기리 사쯔키와 오우지 미사야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나와 미키야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거리를 지나쳐 있었다.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아무 생각 없이 서로의 집을 지나쳐 버렸던 것이다. 우리들은 암묵적인 양해아래, 토우코씨의 사무소를 향하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말야. 어째서 1학년 4반의 사건만이 겉으로 드러난 걸까. 아자카의 말로는 쿠로기리 사쯔키는 학생 전원의 기억을 채집했다고 했잖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의문을 이야기하자, 미키야는 까다롭다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건 오우지 미사야의 소원이 1학년 4반의 학생에게 향한 보복이었기 때문이겠지. 망각한 기억을 편지로 보내고 있었던 것은, 미사야가 그것을 바랬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다른 학생은 망각을 채집 당하는 것만으로 끝났던 거지」 「바보 취급하지 마,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요는, 어째서 오우지 미사야의 소원만이 사건을 일으켰냐는 점이잖아」 「그렇네. ……분명, 오우지 미사야만은 특별했어. 다른 학생들은 말야, 그 소원 자체를 쿠로기리 사쯔키가 형체로 만들어 주고 있었잖아. 그렇지만, 오우지 미사야는 다르지? 그녀의 소원은, 그녀 자신의 손에 의해서 실행되게 되어있었어 ……이 차이는, 크다고 생각해」 ……그런가. 들어보니 그 말 대로다. 쿠로기리 사쯔키는, 스스로를 거울이라고 말하고 있면서 오우지 미사야에게 대해서만은 거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 미키야는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한동안 말없이, 겨울의 추운 공기 속을 걷고 있었다. 긴 침묵과 생각 뒤에. 미키야는, 슬퍼하듯이 나를 보았다. 「시키. 쿠로기리 사쯔키는 말야, 실제로 여동생이 있었어」 그는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의 진짜 여동생이더라도, 반대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는, 진실을 아는 사람은 쿠로기리 사쯔키 뿐이겠지. ……그리고 사쯔키 자신조차,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진실은 영원한 어둠 속이다. ───얼마나 우스운가. 이런 곳에도 영원이 있다. 「……웃기는 얘기야. 불쌍하구나, 쿠로기리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말했다. 자기(自己)가 없는 그 마술사는, 정말로 몇 개월 전의 나와 아주 비슷했으니까. ……그렇지만. 나의 그 감상에, 미키야는 의외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놀랬어. 시키는 그에게 당했으면서도 그의 편을 드는 거야?」 「편드는 것이 아냐. 단지 미워하지 않을 뿐이지」 그래,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할 리가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그 녀석, 미키야와 비슷했으니까」 「에?」 「미키야의 성은 검은 오동나무(黑い桐)잖아. 그 녀석은 검은 안개(黑い霞)야」 나는 그런 시시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미키야는 옆에서 쓴웃음을 짓는다. 「과연. 돈지(頓智)가 있는데, 그건」 나의 말을 전부 농담으로 알아들은 것이겠지, 미키야는 천진스레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돈지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사어(死語)잖아, 미키야」 곁눈질로 미키야를 바라보며, 나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그렇게 말한다. 「────아」 거기서 어떤 것을 깨닫고, 나는 살짝 웃어 버렸다. 「어라, 왜 그래?」 「아니. 내가 죽일 수 없었던 것을, 너는 지금 죽였구나 해서」 나의 대답에 미키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생각에 잠겨 버렸다. 그것도 당연할까. 이런 독백, 미키야에게 있어서 뜬금없는 이야기일 테니까. 「아무것도 아냐. 의미 없는 혼잣말이니까 잊어 버려. 이런 건, 당연한거니까」 ……그래. 현대에는 말조차 죽여 버린다. 보편성을 잃은 말은, 그 의미가 박탈되고 단순한 발음으로 전락해 버린다. ……마치, 유년기에 남진 채 성장해 버렸던 저 마술사처럼. 「뭐야 그건. 미안하지만 나는 시키처럼 위험한 성격이 아니라구. 누군가를 때려본 적도 없으니, 죽이거나 할 리가 없잖아. ……아아, 없겠지. 응, 분명 없다고 생각하지만───」 재주도 좋게, 미키야는 자기 자신의 대사로 더욱 깊이 생각에 빠져 들어가 버렸다. 이 녀석이 하는 생각이니,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상처 입힌 짓 따위를 반성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런 점은, 정말로 바보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 녀석을 보고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이유를 따져보는 것은 제쳐두고, 입가에 웃음을 띄운 채, 료우기 시키는 계속 걷기로 했다. 저녁노을이 사라지고,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차가운 달을 머리 위에 둘 무렵. 정신이 들고 보니, 우리들은 토우코의 사무소까지 지나치고서 낯선 길을 걷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의 부주의함에 한숨을 내쉰다. 바보 같다고 미키야는 말했지만, 나는 의외로 기뻤다. 이유는, 뭐어, 웬지모르게 알 것 같다. 왜냐면,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한 밤의 산책이었기 때문이니까───── 忘却錄音 / 了 -------------------------------------------------------------------------------- * 어투와 호칭, 어휘의 번역에 관하여 : 사실, 이제까지 제대로 신경 쓰지 못 하고 작업을 해왔던게 사실이나, 이번 6장 망각녹음에서는, 아자카와 시키, 사츠키의 말투가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역자는 그냥 한가지 어체로 통일시키는 방법을 선택하였으나, 그럴 경우 원본에서 느낄 수 있는 어감이 확 죽어버리기에, 약간 어색함을 감수하고라도, 원본의 어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어투를 바꾸었습니다. 특히, 시키와 토우코에 관해서는, '원본을 읽어보니, 번역본을 읽을 때와는 너무 다른 강한 어투라서 놀랐다' 라는 지적이 들어온 만큼, 6장에서는 최대한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어투를 바꾸어보았습니다. 원래 역자의 어투가 약한 편이기 때문에, 역자의 성향이 많이 반영 되는 번역에도 어쩔 수 없이 강한 어투도 조금 그 느낌이 죽어 있었습니다. 별 수 없이, 교정을 보면서 그것들을 살리기 위해서, 교정자의 어투가 많이 반영되었습니다. 혹여나, 사투리가 끼지 않았을까 걱정도 해봅니다만, 읽으시는데는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 됩니다. 소설을 끝까지 다 올린 다음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퇴고를 할 예정이긴 합니다만, 이제부터라도, 라는 느낌으로 최대한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호칭은 정확히 말하면 이제까지 잘 써온 '오라버니'라는 호칭에 관해서인데, 사실 역자는 모두 '오빠'라고 표기했습니다만, 왠지 캐릭터의 성격이나 분위기상, '오라버니'가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이제까지 아자카가 미키야 앞에서 부를 때는 호칭을 모두 '오라버니'로 통일하였습니다. 그 외에 이번에 자주 나온 오라버니라는 단어는, 상황에 적합하게 오빠와 혼합하여 사용하였으나, 분위기상 오라버니가 많을겁니다. '오빠'라는 어휘 자체가 좀 저연령적이 느낌도 들어서, 'お兄ちゃん' 이외에는 그다지 '오빠'라는 번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정자 성격이라고 생각해주십시요.) (사실, 아키하나 아자카 같은 'お孃樣'는 아무래도 '兄さん'이라고 하면 그런 느낌입니다. 다카포의 네무가 주인공에게 '兄さん'이라고 하는건 그다지 감흥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사용마(使い魔)'에 관하여인데, 저는 그냥 무심결에 저렇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발음상으로도 가장 무난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서인데, 역자는 처음에 사역을 당하는 입장이니까 수하에 있는 마물이라 하여 '수하마(手下魔)'로 번역하였습니다. 저는 그냥 제 취향대로 싹 바꿔버렸는데, 작가인 나스 키노코씨가 생각하는 使い魔와 가장 비슷한 개념이 서펜트(Serpent)입니다. (신작 Fate / stay night의 정보 공개에서 使い魔 위에 서펜트라고 써놨더군요) 확실히, 츠키히메(정확히는 카케츠토야)에서 나오는 렌을 알퀘이드는 使い魔라고 합니다. 그녀가 '夢魔'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Serpent와 확실히 매치가 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여담입니다만, MELTY BLOOD를 번역한 친구 준영이는, '시종마(侍從魔)'로 번역하고 있다더군요. 저건, 나름대로 괜찮은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나의 여신님(원제 : ああっ 女神さまっ)이란 만화책에서 보니 25권(국내 라이센스판)에 시종마라는 단어가 나오던데 그게 원문이 使い魔인지는 모르겠군요. 마지막으로, 끝 부분에 '검은 오동나무(黑い桐)'와 '검은 안개(黑い霞)'는 둘 다 '쿠로이키리'로 발음 됩니다. 동음이어의 언어유희. * 덤덤탄(dumdum bullet) : 인체나 동물의 몸에 명중하면 보통탄보다 상처가 크게 나도록 만들어진 특수 소총탄. 19세기 영국이 식민지 인도의 내란 진압용으로 인도의 공업도시 덤덤에 있는 무기공장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탄두 끝에 구멍을 뚫고, 탄알의 외피에 홈을 길게 파서 쉽게 찢어지도록 만들었다. 성능은 약간 떨어지나, 탄알이 명중하면 보통탄처럼 관통하지 않고 탄체(彈體) 내의 부드러운 납이 흘러나와 인체 내에 퍼지므로 상처 부위를 복잡하게 만들어 골절시키거나 근육 또는 내장에 손상을 주어 사망률을 높이며 회복을 지연시킨다.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서 사용이 금지되었으나, 미국과 영국은 이를 비준하지 않았다. 보어 전쟁에서 영국군이, 러 · 일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사용하였다고 하나 오늘날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46770&Ad=Encyber ] * 돈지(頓智) : 원문은 'どんち'라고 되어 있는데, 기지, 재치가 있다. 라는 뜻입니다. 단지, 본문에서 사어(死語)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려고 하다보니, 죽은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이란 조건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윤리시간에, 국내 불교쪽에서 돈오(頓悟)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순간적으로 깨우치다'라는 뜻이었던가요, 비슷하다면 비슷한 어휘군요. -------------------------------------------------------------------------------- [←|↑|→] -------------------------------------------------------------------------------- (0) 어쨌든, 누군가를 때려보자. 상대는 누구라도 상관없다. 될 수 있으면 별로 죄악감이 들지 않는 녀석이 좋겠지. 장소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 내신에 반영되는 것은 피하고 싶고, 나는 남의 이목을 끄는 짓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일주일정도 궁리한 끝에, 상대와 장소를 결정했다. 상대는 같은 학교의 하급생. 이전에 한번 복도에서 나를 노려본 적이 있었던 금발의 남학생이다. 장소는 그가 드나들고 있는 게임센터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그 녀석은 일주일에 한번 꼴로, 얼굴 모르는 손님을 붙잡고 폭력을 휘두른다. 게임의 승패에 화가 나서, 자신을 지게 만든 녀석을 때리는 것이다. 물론 게임센터 안에서 그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교활한 그 녀석은 손님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에 말을 걸고, 억지로 골목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굴욕을 해소했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폭력이기 때문에, 그는 죄가 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쪽으로서도 안성맞춤인 조건이었다. ◇ 『───약한 사람은 싫어요』 용기를 내서 고백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떠나갔다. 분명히,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싸움이란 것을 한 적이 없다. 흥미가 없었던 것뿐이라고 하면 거기서 끝이지만, 실제로 어떤 문제로 누군가와 치고 박게 될 정도로 싸울 용기나 주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약한 사람인 거겠지. 그 약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때려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제일 손쉽고 빠른 강함의 증명이고, 무엇보다 『사람을 때린다』라는 행위에 흥미도 있었다. 17년 동안 살아오면서, 해보지 않은 일은 이제 그것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 그렇게, 나는 그를 유인해 냈다. 밤에 게임센터에 가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게임으로 그를 지게 만들었다. 자리를 뜨자, 그는 이쪽을 노려보면서 골목길로 잡아끌고 갔다. 지금까지는 해가 없는 대화를 해서 유인해내는 패턴이었는데, 이번에는 대화가 없다. 상당히 화가 나있는 것 같다. ……안심한다. 그가 평소에 누군가를 때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죄악감은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것도 이것으로 사라졌다. 그가 나를 때릴 생각이라면, 이쪽이 때리더라도 거기에 죄라던가 벌이라던가 어느 쪽이 나쁜가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될 테니까. 그는 나의 팔을 잡아끄는 채로 성큼성큼 골목 안으로 나아간다. 「어이」, 하고 부르자 그는 뒤를 돌아본다. 그전에, 나는 그의 머리를 때리고 있었다. 털썩, 하는 소리가 나고, 그는 지면에 쓰러졌다. 힘없이, 그대로 풀썩 쓰러지는 모습은 인형처럼 보였다. 쓰러진 그는,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에?」 믿을 수 없다. 단 한번, 손바닥에 쥐어질 정도의 각목으로 때린 것만으로 그는 어이없이 죽어버렸다. 「────뭐야, 이건」 나도 모르게, 그런 불평을 토해내 버렸다. 하지만 그렇잖아? 이건 정말 사고다. 악의도 살의도 존재하지 않는 살인사건. 나는 그런 일을 저지를 생각이 없었는데. 「────몰랐어」 그래, 몰랐다. 인간이란 것이, 이렇게나 약해서 간단하게 죽어버리는 것이었다니. 그렇지만 이것은 그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던 짓이었는데, 어째서 나만이 사람을 죽여 버렸던 걸까? 언제나 무차별로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과, 이번에만 폭력을 휘두른 나. 그런데도, 사람을 죽인 것은 나뿐이라는 건가. 모르겠다. 내가 불운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언제나 행운인 것일까. 때린 상대가 죽은 것은, 단순히 어느 쪽의 운이 나빴기 때문인 것일까.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 차이도, 이 뒤에 기다리고 있는 나의 장래도, 그를 죽여 버렸던 죄의 유무도,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는 단순한 일 조차도. 하지만, 사실은 이해하고 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살인자로서 경찰에 붙잡힌다는 상식 정도는. 그래. 나 자신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하더라도. 「───안돼. 난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으니까 경찰에 붙잡히는 건 잘못된 일이야」 아아, 그 이론에 틀린 점은 없다. 그러니 그것을 위해, 이 살인을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 목격자는 없다. 이 사체를 숨기면 그것만으로 나의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와 주겠지. 하지만, 어떻게? 파묻을 장소 따위는 없고, 소각해도 곧 꼬리가 잡힌다. 이 현대사회에 있어서, 완전한 사체의 처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젠장, 하다못해 여기가 숲이나 산이었다면, 동물들이 마구 뜯어먹어 줄 텐데───── 그냥, 자연스럽게 다 먹어치운다…………? 「아, 그렇지. 먹어버리면 되잖아」 너무나 단순한 해답을 떠올리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오늘밤은 왜 이리 머리가 잘 돌아갈까. 그렇다. 그 방법이라면 사체 자체의 소거 같은 것은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떻게? 결국, 고기로서는 너무 크다. 내일아침까지 이 만큼의 고기를 혼자서 먹어치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피를 마셔보자. 머리의 상처에 입을 대고, 흐르는 피를 마셔보았다. 끈적이는 액체가 목구멍에 달라붙는다. 한동안 그렇게 하고 있다가, 심하게 기침을 했다. ……안되겠다. 도저히 마실 수 있는 게 아니다. 혈액이란 것은 목에 달라붙어서 물처럼 계속 삼켜지지가 않는다. 섣불리 계속하면 호흡할 수가 없어져서 이쪽이 죽어버릴 것 같다. 어쩌지, 어쩌지? 고기도 먹을 수 없고 피조차 마실 수 없다니……! 머리를 감싸 쥐고 따닥따닥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이제 나는 떨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을 죽여 버렸다. ……나는 그것을 숨길 수조차 없다. ……나는 사람을 죽여 버렸다. ……나의 인생은 이 시점에서 끝나버렸다. 혼란스러워서, 이젠 출구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끝까지 계속 마시지 않는가」 그런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니, 검은 망토 같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있었다. 장신에 떡 벌어진 체격을 하고 있다. 무언가 고민하는 것이 있는 걸까, 표정은 엄숙하게 찌푸려져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도덕에 속박되었나, 소년」 남자는 사체를 보고 있지 않다. 나만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도덕?」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나는 어째서 먹는다는 걸 생각했던 걸까. 피를 마실 때도 혐오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흐물흐물하게 문드러진 상처에 입술을 대면서도 불쾌함을 느끼지 못했다니,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나는. 사람을 먹는다. 그것은 살인보다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흉악한 살인범이라도, 먹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 무서운 짓,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왜냐면. 사람을 먹는 것은, 분명히 이상한 행동이었으니까. 「하지만……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생각했어」 「그런가. 그것은 네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살인이라는 극한상태에서 고른 선택에는 불필요한 것이 없다. 대부분의 인격은 그 시점에서 스스로의 죄로부터 도망친다. 그렇지만 너는, 너밖에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것에 맞섰다. 설령 그것이 상식이라는 범위에서 “부서져있는” 방법이라고 해도,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검은 남자는 한발 짝 나에게 다가왔다. 어째서일까. 나는 살인현장을 들켰다는 공포보다, 무언가 특별한 것으로서 선택되어있는 듯한 고양감(高揚感)을 느끼고 있다. 「───나는, 특별하다고?」 「그렇다. 너는 이미 상식에 부재(不在)하고 있다. 상식이란 세계에 있어서, 이상자(異常者)는 죄에는 사로잡히지 않는다. 이상자가 이상(異常)을 행하는 것은 당연하고, 거기에 상식이라고 하는 선악의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더욱 다가와서, 나의 얼굴에 손을 대었다. 이상자(異常者). 광인(狂人). 변질자(變質者). 부재(不在). 나는 그런 놈들이 아니다. 그런 빗나가버린 자들이 아니다. 하지만───확실히 미쳐있다면. 사람을 죽여 버렸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 것일까? 「나는 이상, 해……정상이, 아냐」 남자는 말없이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너는 정상이 아니다. 부서져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완전히, 부서져버려라. 남자의 목소리는 기분 좋게 몸속으로 침투해간다. 아아, 그 말 대로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몸의 떨림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모든 것이 기분 좋은 상쾌함으로 변해버렸다. 눈앞이 새하얘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목은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신음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몸 안쪽부터 불에 타가는 듯한 고통은, 지금까지 시험해봤던 약들보다도 짜릿한 쾌감이었다. 그렇다, 이런 쾌감은 분명히 온몸의 정맥에 레몬스카치를 흘려 넣어도 다다를 수 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에게 얼굴을 붙잡히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뜨거워서, 기뻐서,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감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부서지기로 했다. ◇ 한 시간에 걸쳐서, 소년은 인간의 사체를 먹었다. 도구는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이빨과 턱만으로, 자기보다 큰 생물을 통 채로 다 먹었다. 인간의 고기는 맛있다고도, 맛없다고도 느끼지 않았다. 단지 씹어 으깨는 것에 체력을 사용했다는 것 뿐. 「───1시간인가. 우수하다」 검은 외투의 남자는, 소년의 식사를 지켜보며 말한다. 뒤돌아본 소년의 입은 붉은 피에 물들어있었다. 인간을 먹은 것 때문이 아니다. 고기를, 뼈를, 상관하지 않고 씹어 으깨려고 한 소년 자신의 턱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겨져버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소년은, 사체를 먹어 가는 것을 1초도 멈추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골목에서 사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기원을 자각한 것만으로는 그 정도다. 기원은, 각성시키지 않으면 형체를 이루지 못 한다」 남자의 목소리를 소년은 공허한 눈동자로 듣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라면 곧 상식에 얽매여 버리겠지. 너는 단순히 사람을 먹은 정신이상자로 취급되어, 그 인생을 끝마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건 네가 바라는 바가 아닐 터.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초월자로서의 능력, 상궤(常軌)을 벗어난 생명으로서의 특별성────가지고 싶지는 않은가」 남자의 목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문자 같았다. 그것은 소년의 마비된 사고에 직접 새겨지는 듯한, 강한 암시가 담긴 저주의 말. 스스로의 피로 목을 적신 소년은, 구원의 신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끄덕하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승낙했다. 네가, 첫 번째다」 남자는 끄덕인다. 그 오른손이 올라간다. 그렇지만, 그 전에───그는 딱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당신, 누구야」, 라고. 검은 외투의 남자는, 눈썹하나 찡그리지 않고 대답한다. 「마술사───아라야 소우렌」 말은 신탁(信託)처럼, 짓누르듯 무겁게 골목 안에 울려 퍼졌다. ◇ 마지막에, 마술사는 소년의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마술사는 엄숙한 표정을 유지한 채, 희미하게 웃었다. 「리오───아깝군. 한글자만 바꾸면 너는 사자(獅子)였을 텐데」 그것은 진실로 아쉬운 듯한, 음울함을 담은 웃음이었다. -------------------------------------------------------------------------------- * 사자(獅子) : 말 그대로, 동물의 왕. 영어로 Lion이라고도 한다. 리오의 영어발음을 Lio로 해석한 듯. (키노코씨는 Rio라고 썼지만(...)) 다른 해석으로는, 레오(レオ, leo : 사자자리. 일반적으로 사자를 뜻한다)일지도 모른다. 이쪽이 더 의미에 부합되나? (한글자만 바꾸면, 이란 말에. リオ니까-_-;) -------------------------------------------------------------------------------- [←|↑|→] -------------------------------------------------------------------------------- 얼어붙은 숨결만이 열기를 띄고 서로간의 끊어질 듯한 고동을 보았다 그렇게 너무도 소중한 추억은 이제 곧 사라져버리는 미련뿐 예를 들면 비. 안개처럼 내리퍼붓는 방과후. 예를 들면 저녁노을. 불타는 듯 한 교실의 모습. 예를 들면 눈. 처음으로 만났던 새하얀 밤과, 검은 우산. 네가 있어서, 웃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안심할 수 있어서, 불안한데도. 네가 있어서, 걷고 있는 것만으로, 기뻤다. 같이 있을 수 있어서, 함께가 아닌데도. 정말로 짧은 한때. 그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따스할 것 같아 걸음을 멈춰 섰을 뿐인데. 하지만, 언젠가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다며 너는 웃었다. ……그 말을, 전부터 계속,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건 정말로    꿈같은 나날의 자취. / 허공의 경계 / 序 1999년, 2월 1일. 연호는 이미 2000년을 코앞에 두게 되어버려서, 누구나 유명한 예언자의 이름을 신경 쓰기 시작하던 무렵. 나 코쿠토 미키야는 전에 없이 추운 겨울이 닥친 거리를, 시키와 함께 걷고 있었다. 겨울도 한창, 오후 5시가 되면 해가 지고,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진다. 하얀 입김을 토하며 귀로에 접어드는 우리들의 모습은, 역시 변함없이 변화가 결핍되어있었다. 나는 알기 쉬운 검은색 바지와 터틀넥 스웨터에, 진녹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고. 시키는 남색 기모노 위에 붉게 물들인 가죽점퍼를 걸쳤고, 아래는 런던부츠같이 긴 장화를 신고 있었다. 춥지 않은 걸까,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그녀는 3년 전부터 이 스타일이다. 더위에도 추위에도 내성이 있는 것이 시키의 특징 중 하나다. 어쨌든,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고 있는 참이고, 시키는 같이 와주고 있는 듯 하다. ……확실히 말하자면, 무언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웬일이야, 오늘은. 사무소까지 오다니 별일이잖아. 볼일이 있다면 방에서 기다리면 될텐데」 「별로. 최근에는 시끄러우니까, 바래다주려고 생각한 것뿐이야」 기분 나쁜 듯한 표정인 채, 그녀는 이쪽을 보지 않고 대답한다. 어쩐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언제나 기모노가 평상복이라는 괴짜인 그녀는, 풀 네임은 료우기 시키라고 한다. 나와는 고교시절부터의 친구로, 여러 가지 사건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시키의 키는 딱 160센티이고, 분위기는 중성적. 매우 깔끔한 생김새를 하고 있어서, 더욱 그 느낌은 강해진다. 게다가, 말투도 남성의 그것이라서 모양새가 안 좋다. 도자기처럼 하얀 살결과, 깊이 있는 검은 눈동자. 어깻죽지부근에서 난잡하게 잘려진 흑발이, 그녀를 일본풍인지 서양풍인지 알 수 없는 인물로 만들고 있다. 시키는 등을 늠름하게 편 채로, 어두워져버린 풍경을 관찰하듯이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의연하다기보다는, 긴장하고 있는 육식동물을 연상시킨다. 「……시키. 너, 요즘에 이상해」 「그래? 특별히 미키야를 웃긴 기억은 없는데」 마음이 딴 데 가있다, 라는 걸 보여주는 그녀의 대답. 대화가 이어질 리가 없다. 할 수 없이, 우리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말없이 계속 걸었다. 휘황찬란한 역 앞을 향해서, 주택가의 길을 나아간다. 가로등 불빛은 평소대로였지만, 거리는 오전 0시처럼 아주 조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이 부근의 길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은 우리 두 사람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벌써 열흘 전부터. 이 거리에는 야간에 혼자서 걸어 다니려 하는 사람은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사실은, 시키가 일부러 사무소까지 마중 나와 준 이유는 알고 있었다. 지금, 거리는 3년 전의 겨울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아직 내가 고교1학년이었을 무렵, 거리는 어떤 살인마(通り魔) 사건에 공포에 떨고 있었다. 길거리살인마는 밤중에 출현하여, 길을 가는 사람을 이유도 없이 살해하고 있었다. 그 피해자의 수는 다섯 명도 넘어서, 경찰의 필사적인 조사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사건은 막을 내렸다. 길거리 살인마는 4년 전의 여름부터 사건을 일으켜, 3년 전의 겨울에 소식을 완전히 두절시켰다. 나와 시키가 고교 2학년으로의 진급을 눈앞에 둔, 추운 2월의 일이었다. 그 뒤, 시키는 교통사고에 의해 의식을 잃었고, 긴 혼수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결국 한 달 만에 자퇴해 버렸다. 그 뒤에 토우코씨의 사무소에 취직했고, 혼수상태였던 시키가 눈을 떴던 것이 작년 여름. ……그렇다. 나로서 보자면, 그 길거리살인마 사건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있다. 그렇지만 시키로서 보자면, 그것은 반년 전에 일어났었던 사건이다. 텔레비전에 대대적으로 길거리 살인마 사건의 재래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부터, 시키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긴장되어갔다. 그 모습은 딱 3년 전의, 사고를 당하기 전의 그녀의 불안정함과 비슷하고 생각한다. ……자신은 살인자라고 했던, '시키(織)'라고 하는 또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던 그 무렵의 료우기 시키와. 역 앞에 나가자, 그래도 거리는 평소 대로였다. 사람이 없는 주택가와는 다르게, 활기찬 일루미네이션과 많은 교통량 앞에서는 살인마도 나올 수 없다. 사람들은 서로를 보호하듯이 달라붙으며, 거리를 더욱 번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밤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라, 사람들의 흐름은 끊임없이 흘러넘치고 있다. 도중, 가게에 진열된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제는 역시 길거리 살인마 사건의 경위로, 시키는 발을 멈추고 그것에 몰입해 버렸다. 「살인귀라네, 미키야」 킥, 하고 시키는 웃으며 말한다. 보아하니, 뉴스의 텔롭에는 길거리 살인마라는 단어 위에 가위표가 되어있었고, 대신 살인귀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있었다. 「……응. 그건 피해자가 통산 10명 이상이니까. 확실히 길거리의 살인마로는 이미지가 안 맞는 걸까. 그렇지만 살인귀라는 것은 오버야. 단순히 살인범이라고 명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잖아. 장난스럽게 제멋대로 장식해대는 것은 뭐하다고 생각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감상이었지만, 시키는 바보 취급하는 듯한 눈매로 이쪽을 흘낏 보더니, 코쿠토다운 일반론이네, 라고 악담을 내뱉는다. 「이거, 바른 사용법이야. 살인(殺人)과 살육(殺戮)은 별개야. 이 사건의 범인이 있다고 하면, 그 자식은 살인귀 이외의 누구도 아냐. 분명히, 범인이란 녀석도 이렇게 불려서 기뻐하고 있을 거라구. 살인귀에게는 이유 따위는 필요 없어. 희생자는 단순히 왼쪽 길로 갔냐 오른쪽 길로 갔냐하는 차이로 당한 것뿐이야. 그러니까, 이 녀석은 사람을 죽이지 않은 거야」 텔레비전의 화면을 노려보면서 시키는 말한다. 브라운관은 시키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어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니, 살인범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에게, 시키는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살인과 살육은 달라. 기억해, 코쿠토? 사람은, 일생동안 한사람밖에 인간을 죽일 수 없다고」 텔레비전에서 눈을 돌려, 시키는 정면에서 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시키는 평소대로의 표정이다. 어떤 것에도 무관심한 듯한, 계속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눈빛. ……그렇지만 지금은, 그 검은 눈동자는 어딘가 괴로운 듯 가라앉아 있었다. 「……한 사람 밖에, 죽일 수 없어……?」 뭐랄까. 분명히 옛날에,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그녀자신의 입으로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기억해낼 수 없었다. ───나중이 되어서야 후회한다. 이 때, 이 순간에 그것을 기억해냈었더라면, 나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됐어, 별 것 아니니까. 그것보다 빨리 돌아가자구. 막 일어난 참이라서, 우선 뭔가 먹지 않으면 진정이 안 돼」 「막 일어난 참이라니……시키, 학교는 어떻게 된 거야. 오늘은 월요일이라구, 하루 종일 자고 있어도 되는 날이 아니야」 「안심해, 오전 중에는 착실히 교실에 있었다구. 11월부터 이쪽은, 결석은 한자리수의 우등생이야. 놀랐지?」 ……정직히, 그것에는 놀랬다. 응, 하고 당황하며 끄덕이자, 시키는 만족스러운 듯이 웃으면서 코트 소매를 움켜쥔다. 「좋았어, 그럼 그에 대한 상 정도는 내놓으라구. 들었어, 아자카 녀석을 아카사카(赤坂)의 요정(料亭)에 데려갔다고 하던데. 신기하게도 말야, 그 요정은 전부터 내가 가고 싶었던 데거든. 나, 처음으로 아자카에게 살의를 품어 버렸었다구」 어쩐지 위험한 이야기를 활기차게 말 하면서, 시키는 나의 손을 잡아끌면서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분명 한 끼에 월급의 절반은 날아가 버릴 요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럴 생각인 시키를 내게는 멈출 수단이 없었다. ……할 수 없지. 정월의 비밀을 누설한 아자카를 원망하면서, 단념하고 나도 즐기기로 하자. 뭐어, 정직히 말하자면. 이 때의 시키는, 어쩐지 옛날의 그녀와 닮아있었다. '시키(織)'라고 하는 소년을 품고 있었던 시절의, 어딘가 위태롭게 느껴지는 명랑함이 있었던 그녀와. 그것이 어쩐지 기뻐서, 나는 그 언밸런스함을 추궁하지는 않았다. 내가 안고 있던 여러 가지 불안 이상으로, 이 날의 시키와의 이야기는 아주 즐거웠으니까. 이렇게 2월의 첫 날. 나와 시키는 함께 밤거리를 걸으며 귀로에 접어들었다. 그것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어느 일상의 풍경. ……하지만, 나중이 되어 되돌아보면, 이것이 코쿠토 미키야에게 있어서 료우기 시키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최후의 날이기도 했던 것이다. 살인고찰 / 1 ◇ ────1995년, 4월.     나는 그녀를 만났다. ◇ 길거리 살인마에게 살인귀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여지고 나서부터 일주일 뒤. 아파트에 밀고 들어온 아키미 다이스케 형사는, 조카인 코쿠토 미키야를 오전 5시에 문을 두들겨 깨워, 프렌치(French)한 아침식사를 만들게 하고서, 토스트를 씹으며 아침 신문을 훑어보고 있었다. 신문의 날짜는 99년 2월 8일. 뉴스에서 살인귀라 명명된 범인이, 그 다음날부터 하루에 한 명을 살해하게 되고 난 뒤로 딱 일주일이 경과했다. 「……정말이지, 이 자식, 살인귀라는 네이밍이 마음에 들어버린 것 같은데. 설마 이렇게 의기왕성하게 일을 벌려나가다니 생각도 하지 못 했어」 경시청 수사1과의 불량형사인 다이스케씨는, 마치 남 얘기처럼 웃고 있다. 말해두자면, 이 사람은 이 사건에 관해서는 타인이기는커녕 육친에 가까운 관계다. 어쨌든 3년 전의 길거리 살인마사건도, 이번 살인귀 사건도, 둘 다 범인체포를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으니까. 「형, 이런 곳에서 농땡이 피우고 있어도 돼요? 그 신문의 1면, 어젯밤의 피해자잖아요」 차린 김에 같이 아침을 먹고 있는 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다이스케 형과 마주 보고 있다. 바빠야 할 다이스케 형은 신문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아 그래, 하고 빤히 보일 정도로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게 말이지, 뭐라고 할까. 요 일주일 사이에 사정이 꽤 변했어. 까딱 잘못하면 자위대의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구, 이게」 신문의 커튼 저편에서, 테이블에 있는 커피 컵을 집으며 다이스케 형이 푸념을 한다. ……뭐어, 이 사람이 내가 있는 곳에 온다는 것은 대개는 저런 이유다. 평소부터 신세를 지고 있는 이쪽으로서는, 싫어도 그 푸념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위대라니, 전쟁이라고 하려한다는 건가요, 윗사람들은」 「그 안건이 올라가 있는 것뿐이야. ……이 다음 얘기는 오프더레코드(off the record)다. 기밀이니까, 육친에게도 말하지 마」 응, 하고 끄덕이자, 신문지의 저편에서 좋아, 하는 응답이 들려왔다. 이 사람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를 모르는 것이 틀림없다. 「잘 들어 미키야, 3년 전 사건도 그랬지만 이번 사건은 말야, 증거라고 할 증거, 동기라고 할 동기가 전혀 없었어. 증거 같은 건 너희 학교 뱃지가 있었던 정도일까. 범인의 피부도 감식을 의뢰해봤지만, 해당자는 지금으로서는 없어. 그렇게까지 관련성이 없는, 사고 같은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요 일주일동안 모습을 바꿨어. 하루에 한사람을 죽이다니, 여지껏 없었던 일이라구」 ……과연, 그것은 확실히 그 말 대로다. 3년 전의 사건도, 여름부터 시작되어 겨울까지 이어졌지만 그 동안의 희생자는 다섯 명뿐이다. 그렇지만 요 일주일 동안의 페이스는 너무 이상하다. 다이스케 형의 말에 따르면, 이번 살인귀는 작년 가을부터 조금씩 범행을 거듭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고, 경찰에서는 그저 행방불명자로 처리하고 있었지만, 금년이 되어 결국에 행방불명자의 친족으로부터 매스미디어에 정보가 새어나가서, 경사스럽게도 살인마 사건의 재래라는 뉴스가 방송되어버린 것이다. 「알겠냐, 미키야. 모습을 바꿨다는 의미를」 「……즉, 증거를 너무 남기고 있다는 건가요?」 뭐어 그렇지, 하고 삼촌은 재미없다는 투로 말했다. 「믿어지냐? 잘 들어, 햇수로 4년이라구? 그 사이에 일절의 목격자도 나오지 않게 하던 놈이, 이 일주일간에 실수를 연발해대고 있어. 완전히 딴사람이야. 이렇게까지 가면 단순한 편승범행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져」 「하지만, 살해현장은 완전히 같은 케이스였군요.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 살해되어있었는가 하는 정보는 아직 밝히지 않았으니까, 이 소동에 편승하려고 한 다른 인물은 흉내 낼 수 없어요」 「아아, 그 말대로야. 하지만……뭐랄까. 4년 전의 사건은, 어느 쪽이냐고 하자면 취미적인 살인이었어. 사체를 놀이도구로 본, 정신이상자라는 알기 쉬운 범인상을 표현하고 있었지.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라서 말야. 사체의 대부분이 남아있지 않아. 남아있는 것은 절단된 손발뿐이야. 이 차이로 볼 때, 4년 전의 사건과 이번 사건은 정말로 다른 범인에 의한 것일지도 몰라. 원래 말야, 도시 속에서의 범행에 있어서 사체의 은폐는 불가능에 가까워. 그런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사체를 숨겼으면서, 손발만 까먹었어. 모순 되잖아? 그렇지만 감식반 영감의 말을 들어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하더라구. 알았어? 웃지 마. 놀랍게도 말이지, 이번 범행은 대형 육식동물의 소행이래. 미키야, 너 어딘가의 호사가가 기르고 있는 악어가 도망쳤다는 얘기, 들은 적 있냐?」 「……글쎄, 그런 소문은 들은 적 없는데」 대답하고, 나는 커피 컵을 들었다. 악어의 이야기는 제쳐놓더라도, 지금 이야기는 기분 나쁜 이야기였다. 형은 4년 전의 사건과 이번 사건은 다른 범인의 짓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다는 건가. 4년 전───자신을 살인자라고 말했던 시키. 그건 거짓말이다. 그녀는 결코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다. 나는, 계속 그렇게 믿어오지 않았던가. 그것이, 어째서───지금에 와서, 이렇게도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걸까……? 「형. 아까 목격자라고 했는데」 머릿속의 불안을 부정하듯, 그런 이야기를 묻고 있었다. 삼촌은 오우, 하고 대답해준다. 「1주일 전부터의 범행은 꼭 번화가에서만 일어났어. 골목 안에서 저질러졌으니까, 살해현장 주변에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있었던 거지. ……뭐어, 확증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재미있는 사실이 두 가지 있어. 하나는, 살해시각 전후에 기모노 차림의 인물이 목격 됐다」 ……애써. 냉정하게, 나는 그 다음을 재촉했다. 「성별은 분명치 않았지만, 너무 수상하지? 중요참고인으로서 지명수배하고 있으니까, 이쪽은 곧 처리되겠지. 용의자일 가능성은 3할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말야. 위쪽 녀석들은 그 놈이 살인귀라고 단정 짓고 있어. 그리고, 또 하나는 피해자에 관해서야. ……실은 이쪽 방면으로는 네가 좀 도와줬으면 한다, 동생아」 「별일이네, 대놓고 협력해달라니」 ……살인현장에서 목격된 기모노 차림의 인물. 밤중에 그런 차림으로 돌아다닐 인물이라니, 시키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손가락이 저려서, 지금이라도 커피 컵을 떨어뜨릴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냉정해지려고 노력했다. 「뭐어 그렇게 말하지 마. 미키야, 너 약 쪽에 대해서는 잘 알잖냐. 종류라던가 판매상의 세력이라던가」 「글쎄, 보통사람보다 조금 더 잘 아는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런 일이라면 나 같은 사람 보다 그 쪽(경찰)이 잘 알겠죠. 전문가가 있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다른 시점으로부터의 의견이 듣고 싶은 거야. 아무래도 머리가 굳은 꼰대들이라서 말이지, 젊은 놈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에는 어두워. 나도 포함해서 말야」 그리고, 다이스케 형은 한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과 휘갈겨 쓴 듯한 레포트 용지를 테이블에 던졌다. 사진에는 두 개의 유리병이 찍혀있다. 우표 같은 것이 들어있는 병과, 어떤 풀잎 같은 것이 들어있는 병. 레포트 용지에는 THC나 메스칼린이라는 단어 뒤에 그램(g)단위가 쓰여 있다. ……명백하게, 그, 불법적인 약의 자료였다. 「페이퍼는 LSD군요. 순도도 최근에 나돌고 있는 표준이지만……잎사귀 쪽은 판별 못하겠어요. 칸나비노이드가 검출되었다면, 대마(大麻)가 틀림없지 않나요?」 「그게 말이지, 감식 쪽 이야기로는 그런 대마는 본적이 없다더라구. 처음부터, 뭐냐 그, 칸나비노이드 던가? THC던가 CBC던가 하는 것이 함유되어있지 않다는군」 하아, 하고 나는 얼굴을 찌푸린다. 대마……마리화나라고 불리는 마약은, 칸나비노이드란 향정신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야 마약이 된다. THC가 함유되어있지 않은 대마 같은 건, 타이어 없는 자동차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뭐야, 그런 건 마리화나가 아니에요. 토치기시로잖아요」 「……뭐야, 그 토치기시로란건」 「응, 향정신성 물질을 함유하지 않은 대마. 일본산 대마에도 THC는 퍼센트 이하로 함유되어있어요. 최양질의 외국산 마리화나가 1 ~ 1.8퍼센트니까, 무시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겠죠. 그렇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토치기시로라고 부르는 대마. 놀랍게도 재래종의 30분의 1밖에 THC가 없어요」 호오, 하고 감탄하는 소리가 신문지 저편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 토치기시로는 섬유를 목적으로 한 마(麻)로, 실제로 새의 먹이로 사용되고 있는 건 외국에서 수입되고 있는, 역시 위험한 마(麻)다. 「그래서, 이 사진이 어쨌길래요?」 「아아. 요 1주일 동안의 피해자중 절반이상이, 그걸 가지고 있었어. ……뭐, 기본적으로 밤중에 노다니고 있던 애들이 희생자였으니까, 필연적으로 약에 취해 놀고 있던 패거리였겠지만」 「형, 그건 편견이에요」 그 말을 듣자, 음, 하고 형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런가. 그래서 최근의 유행을 듣고 싶다는 거군요. ……글쎄. 나도 요 1년간은, 그쪽 사람들하고는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 혹시 애시드와 칵테일한 새로운 스터프가 나돌고 있는 지도 몰라」 나의 말에, 곧바로 다이스케 형이 질문을 던져왔다. 애시드라는 것은 요컨대 LSD를 부르는 말이다. 다른 것으로는 엘(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표사이즈의 종이에 스며들게 해서, 혀끝으로 즐기는 대표적인 환각제다. 칵테일은 두 개의 약을 함께 사용하는 행위를 뜻한다. 물론 효력은 배가되지만, 어설프게 새로운 칵테일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유명하다는 스피드 볼이란 물건은, 코카인과 헤로인을 조합한 것이다. 「……하아. 너, 아주 자세히 아는데. 뭔가 위험한 녀석들과 어울리고 있는 것 아냐?」 질문 받은 대로 설명했는데도, 다이스케 형은 그런 소리를 한다. 물론 그것은 오해다. 「그건 아냐. 이 정도는 흥미가 있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고. 말해두겠는데, 나는 약에는 흥미 없다구. 약에 관련된 지식은, 고등학교 때 선배로부터 배운 것들이에요. 약사의 아들이라, 약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었어」 「그런거냐. 이 형은 안심했다」 말하면서, 다이스케 삼촌은 일어섰다. 「그럼, 슬슬 일 해볼까. 앗차, 하나 물어본다는 것을 깜빡했군. 결국, 대마란 것은 어떤 마약이지? 마약의 종류에는 UP계열과 DOWN계열이 있잖냐?」 질문을 받고, 나는 한숨을 쉰다. ……어째서 그런 초보적인 것을, 벌써 몇 년이나 형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형, 그러고도 잘도 형사를 하고 있네요. 마리화나는 말이죠, 그 어느 쪽이기도 하면서, 그 어느 쪽도 아니야. UP계열이 되기도 하고 DOWN계열이 되기도 하는 편리한 약. 다른 약이 뇌의 어떤 화학반응에 작용하는지는 해명되어 있지만, 마(麻)가 함유하는 THC만은 그게 확실치 않아. 그래서 여러 가지, 현존하는 모든 마약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 THC가 인체에 작용하는 효과는 너무 복잡해서, 아직 인간의 손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래서 어쩌면,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터무니없는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지」 과연, 하고 끄덕이며, 다이스케 삼촌은 현관으로 향했다. 「뭐야. 비잖아 이런」 그런 말을 내뱉으며, 형은 빠른 걸음으로 출근했다.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투덜대고 가네, 저 사람」 그래도, 이 음울한 마음이 밝아진 것은 사실이다. 나는 재빨리 아침식사를 마치고, 토우코 씨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쉬겠습니다, 하는 용건을 말하자, 소장님은 「적당히 해둬」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간파 당했구나, 하고 어깨를 늘어뜨리며 담록색 코트를 걸친다. ……시키가 없어진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살인귀가 매일 밤 산 제물을 구하기 시작하고부터, 그녀는 자신의 집에도 료우기 본가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연락도 없는데다가,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도 없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이유에 의한 것인지는 이미 생각할 것까지도 없다. 재래한 살인귀가 4년 전의 길거리 살인마사건과 같은 자라면, 시키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이 사건에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시가지를 위협하는 살인귀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 4년 전, 스스로를 살인귀라고 말한 시키조차 그 무렵의 기억을 잃어서, 진실은 확실치 않다. ……그 정체를 아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도 이제 지쳤다.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는 진상에 다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면,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4년 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멈춰있던 코쿠토 미키야와 료우기 시키의 사건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조사를 개시했다. 밖에 나오자, 거리는 온통 잿빛이었다. 검은 우산을 쓰고, 우선 범행이 있던 현장을 향한다. 어젯밤의 범행현장은 경찰들에 의해서 봉쇄되어있었지만, 어젯밤이전의 현장은 용이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세 군데나 돌고 나자, 시각은 오후가 되어있었다. 이래서는 모든 범행현장을 돌았을 무렵에는 밤이 되겠지. 완벽한 헛수고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이 행위는 역시 헛수고다. 그렇지만 단서가 일절 없는 나는, 이런 기본적인 조사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다음 단계의 조사로 넘어가기 전에, 지금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은 길에 굴러다니는 돌 조각의 숫자조차도 놓칠 수 없으니까. ……정말이지, 내 안에 이런 병적으로 깊은 집념이 있다니, 미처 몰랐었다 빗속에서, 코쿠토 미키야는 살인이 일어난 골목길을 둘러보아 간다. 겨울비는, 아주 차가워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이 계절의 비는 3년 전에 싫어졌다. 그 날. 내가 그녀를 눈앞에서 잃었던 순간이 기억나 버리니까. … ────나는, 너를 죽이고(범하고) 싶어. 붉은 히토에의 소녀는 그렇게, 코쿠토 미키야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비에 젖은 소녀의 이름은 료우기 시키라고 했다. 지면에 쓰러지고, 말에 올라타 듯 내리 눌린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확실하게 육박해오는 죽음을 보고 있었다. 단두대의 칼날 같은 무자비한 일격. 하지만 그것은, 이 목을 찌르지 않고, 그 직전에 멈추었다. ────어째서 중얼거림은, 시키 자신의 것. 나이프를 쥔 소녀는, 나를 죽일 수 없었다. 이 얼마나, 슬픈가. 죽인다는 의미밖에 가지지 않은 자가, 죽이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서로를 죽이려 드는 존재. 그 모순이 너무나 애처로워서, 나는 호흡조차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건 한순간만의, 정말로 사소한 행운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료우기 시키에게는 거역할 수 없으니까. 소녀는 멈춰버린 자신의 팔을 바라보고, 그것을 미워했다. 이 얼마나 추한 팔, 이 얼마나 추한───자신인가, 하고. 분노가 용솟음치며, 나이프를 내리 찌른다. 이번이야말로, 코쿠토 미키야를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 하지만 그때, 무언가가 우리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검은, 가사(袈裟)같은 외투를 걸치고 있던 남자였다. 남자는 나를 깔아 누르고 있는 시키를 옆에서 걷어찼다. ──어리석은 것. 그런 붕괴를 바란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 순간───걷어차인 시키는 그것보다 격한 기세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시키의 나이프가 남자의 관자놀이를 베어간다. 일문자로 새겨진 상처에서, 가루 같은 혈액이 떨어져갔다. 시키는 그대로 빠져나가며, 남자를 노려본다. 남자는 호오, 하고 웃었다. ──내가 상대여도 죽일 수 없는 건가.   녀석은, 완전한 헛수고는 아니었던 것 같군. 그리고, 남자는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키는 쫓아온다. 하지만, 남자의 다리는 아주 빨라서, 마치 날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남자는 료우기 저택의 부지에서 나오자, 나의 손을 놓았다. 이대로 돌아가면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 알려준다. ──아직 저것을 파괴하기에는 이르다.   상극하는 나선이야말로, 저것에 상응하는 종말이다. 그런 말을 남기고, 남자는 사라져갔다. 나에게는 눈앞에 펼쳐진 귀로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시키의 발소리뿐이었다. ……그 때. 나는 혼자서 가는 귀로보다, 그녀와 있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옳은 것이었는지, 정직히 말해, 지금도 모르겠다. 시키는, 마지막까지 나를 죽일 수가 없었다. 「너를 없앨 수 없다면─── 비를 맞으며, 단 한번. 허무하게 웃으며.                                     ───내가, 사라질 수밖에 없어」 소녀는 내 앞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몸을 내밀었다. 빗속. 요란한 브레이크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이미 늦었다. 젖은 아스팔트에 쓰러진 그녀의 모습은, 체온이 없는, 망가진 인형 같았다. ……그렇게 괴로웠던 시간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그 때 이상의 슬픔을 느끼는 일은 없겠지. 눈동자는, 확실히 눈물에 젖어있었다. 그런데도. 그때조차 코쿠토 미키야는, 만족스럽게 울 수 없었다. … 밤이 되어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오늘밤은 특히 춥다. 이렇게 검은 우산을 쓰고 있으면, 그녀와 처음으로 만났던 눈 내리던 날로 돌아간 것 같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당연히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다. 멍해진 머리로, 이 하늘 아래서 시키가 추위에 떨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 1 ◇ 5월. 코쿠토 미키야란 인물과 알게 되었다. 한눈에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런 나도 차별하지 않고 대해준다. 아무런 타산도 없는 그의 웃는 얼굴이, 순수해서 좋았다. ◇ 「쳇, 비냐」 원망스럽게 중얼거리며, 나는 마침 지나치던 편의점의 우산대에서 한 자루, 비닐제 우산을 빌렸다. 그대로 걸어보았지만, 이미 목적은 잃어버린 것 같다. 피 냄새는 비에 씻겨 내려가, 뒤쫓을 수 없게 되어 버렸으니까. 2월 8일의, 막 아침이 된 시간. 거리는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서, 걷고 있는 사람은 자신뿐인 것 같은 착각까지 느껴진다. 나는 목적도 없이 걸다가, 역시 아무런 목적도 없이 멈춰서보았다. 그대로 타인을 관찰하듯,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싸구려 우산을 쓰고, 지저분한게 눈에 띄는 점퍼를 걸치고, 기모노의 옷자락에는 진흙이 달라붙어 있다. 1주일 정도 골목길 안에서 잔 것만으로, 겉모습이란 것은 더러워져버린다. 특별히 외견이 어떤지는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체취가 역겨운 것은 견딜 수 없다. 「좋아. 오늘 노숙은 관두자」 입밖에 내어보니, 그 제안은 의외로 기쁘게 들려서, 나는 일주일 만에 웃고 있었다. … 료우기 시키, 라는 것이 나의 이름. 태극을 양분한 의미를 가진 료우기(兩儀)란 성과, 시키(式)라는 그 의미대로의 이름을 가진 나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자리에 위치한 인간이었다. 예전에, 나의 안에는 살인을 기호하는 억제된 인격인 '시키(織)'가 있었다. 시키라는 동일한 발음을 가진 그는, 내 안에서의 악(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살해(殺害)』라는 의지는, 관계하는 모든 것에 품는 첫 감정이었다. 어쨌든, 알게 된 자는 분별없이 죽이고 싶어 한다. 나는 그런 그를 몇 번이나 마음속에서 억눌러 죽여 왔다. 한 명의 인간이 하나의 인격 속에서 자기의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나는 나와 같은 나를 죽여 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살인이라고 하는 행위를 혐오했기 때문이 아니다. 료우기 시키가 상식 속에서 간신히 존재할 수 있도록, 그런 '시키'의 비도덕적 행위를 규제하고 있던 것 뿐. 『살인』이라고 하는 행위 자체가────시키인 나에게 있어서도 저항하기 힘든 유혹이며, 언제나 나를 위협하고 있는 그림자였다. 그런 나를 구속하고 있던 건, 분명, 할아버지의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는, 료우기의 핏줄이면서도 이중인격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라고 하는 혈통자의 탄생을 기뻐하며, 평범하게 태어난 오빠를 후계자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특별했던 것이다. 언제나 혼자 있고, 외토리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그것도 쓸쓸하지는 않았다. 내 안에는 '시키 '라고 하는 또 한 명의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어릴 적의 료우기 시키는, 어떤 의미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하고 싶은 일 만을 했고, 살인에 대한 죄악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가 여섯 살이 되어, 도구만 있으면 무언가를 죽여 버릴 수 있는 몸이 되었을 무렵, 할아버지가 타계했다. 할아버지는 나와 같은 이상자(異常者)였다. 자기 안에 다른 인격을 가진 할아버지는, 그 때문에 스스로를 꾸짖고, 짓누르고, 부정해서 자기(自己)가 애매해져 버린 인물이었다. 오랫동안. 이미, 20년 가까이 별채에 유폐되어있던 할아버지는, 임종 직전 나를 불러서, 유언을 고했다. 몇 십 년이나 제정신이 아니었던 노인은, 마지막 한 순간만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말을 남긴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시키인 나에게 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살인은 소중한 것이라 알고서 성장했다. ……내가 열여섯 살까지 사람을 죽이지 않고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의 유언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키와 '시키'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악수를 하고, 상식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저, 코쿠토 미키야란 인물과 만나기 전 까지는. 미키야와 알게 되고서, 나는 이상해져버렸다. 나는 상식에 녹아들어가 있던 것뿐이고, 상식대로 살지 않았다고 뼈저리게 느끼게 되어버렸으니까.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손에 넣을 수 없는 따스함이 있었다니, 알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그걸 가지고 싶었지만, 그것을 원한다는 것은 나의 파멸이기도 하기에. 나는, 아무리 그럴 듯 하게 둘러댄다 해도 내 안에 살인귀를 키우고 있는 시키이니까. 그렇게 나는, 자신이 분명히 망가져 있다는 사실과 맞닥뜨리게 되어버렸다. 그것을 부정하는 원래의 자신, 아무런 괴로움도 품지 않았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시키'와 어긋나기 시작해버렸다. 그때까지는 '시키'의 행동은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 그의 행동을 잘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4년 전. 고교 1학년 때에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의 기억은 '시키'의 것으로, 나는 모른다. 사건에 관해서 시키는 어디까지나 제3자였다. 다만, 망막이 기억하고 있다. 언제나 나는 그 살해현장에 서있었고, 피에 젖은 사체를 보고서 웃고 있었다고. 그렇게 해서 나는 그 현장을 미키야에게 목격 당했고, 그래도 내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는 미키야를 알고, 결심했다. 나는 더 이상 부서져서는 안 된다고. 다다를 수 없는 행복 따위, 이루어지지 않는 꿈 따위는 필요 없다. 나는, 저 행복한 남자를 처참하게 죽여 버리고, 나 자신을 잔혹한 녀석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 후에 나는 사고를 당했고, 2년 동안이나 잠들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나는, 예전의 시키가 아니었다. 사고로 '시키'를 잃고, 시키였던 시절의 기억조차 타인의 것으로밖에 실감할 수 없는 나는, 텅 빈 인형이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시키'가 사라진 만큼의 가슴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상대가 나를 파괴시킨 상대였다는 것은, 어쩐지 아주 얄궂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텅 빈 인형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과거의 죄의 단편이, 나를 괴롭힌다. ……혼수상태에서 회복한 나는 중요한 기억을 잊고 있었다. 그것은 '시키'의 기억처럼, '시키' 본인이 죽어버려서 잃어버렸던 기억과는 다르다. 시키인 내가 체험했던 기억은,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시키는, 단순히 기억해내면 좋지 않은 사건을, 의도적으로 잊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쓸데없이 끼어든 마술사의 손에 의해 그것을 강제로 기억해내게 되었다. ……그래, 나는 기억하고 있다. 3년 전. 코쿠토 미키야를 죽이려고 했던 자신을, 살인현장에서 언제까지나 우두커니 서있던 배덕적인 자신을. 그렇게 밤을 헤메이다가, 어느 누군가와 서로 죽이려들 수 없을까 하고 사냥감을 찾아다니고 있던 자기 자신을. ……정직히 말해서, 나는 살인귀가 누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나 자신인가하고 묻는다면, 역시 긍정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나 자신은, 예전에 그 존재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나는 일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살인귀를 질투하면서, 그 녀석을 찾고 있다. 만약 살인귀가 있다면, 그것은 달리 말하면 4년 전 사건의 범인이 '시키'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되고───무엇보다, 나는 그런 상대와 맞붙어보고 싶다. 깨달아 버렸다. 4년 전의 나는, '시키'가 있었기 때문에 살인을 기호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시키'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목숨을 건 싸움을 바라고 있다. 정말이지, 어째서 더 빨리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정말이지, 어째서 이렇게 빨리 깨달아 버렸던 것일까. '시키'는 살인하는 것밖에 몰랐었던 것뿐이고. 살인을 기호하고 있던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간단한 방정식을. … 숙박하는 호텔은 러브호텔이라는, 접수처가 기계장치로 되어있는 곳을 이용했다. 전에, 몸을 숨길 때는 이런 호텔 쪽이 좋다고 미키야가 말했던 것을 기억해내고 한 일이다. 확실히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시스템은, 여러 가지로 수고가 필요치 않아서 좋다. 샤워를 하고 몸을 씻은 뒤에,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잘 생각은 없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새벽 2시를 넘겨버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온 것이 저녁이었으니, 6시간이상이나 자고 있었던 셈이다. 잠에서 깨어나도, 아무도 없다. 그것은 지금까지 아주 당연했던 눈을 뜬 뒤의 모습. 그런데도 나는 아주 기분이 나빠져서, 화풀이를 하듯이 난폭하게 옷을 입었다. 단 일주일동안 혼자 있었던 것뿐인데, 나는 무엇을 애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이 일주일은 짧은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길었던 것일까. 「……그런 일, 있을 수 없어」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중얼거리곤, 나는 호텔을 뒤로했다. 오전 2시를 넘긴 시각. 초목도 잠든 한밤중의 골목길을 걸어간다. 연일 계속되는 살인사건 때문에, 대개의 길에는 경찰관이 반드시 순찰하고 있어서 큰길은 쓸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건 살인귀도 같은 상황으로, 나는 놈과 마찬가지로 거미줄처럼 좁게 얽혀있는 빌딩의 틈새를 비집고 지나간다. 목적은 없다. 나는, 그저 우연성에 걸고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던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성가신 것을 끌어들여 버린 거겠지. 「약에 취해 놀거면 딴사람을 알아봐라」 멈춰 서서 말해보지만, 대답은 없다. 골목과 골목이 교차하는 십자로. 그곳에서 나를 둘러싸듯 네 명의 사람형체가 서있었다. 어느 쪽 길의 출구에도 그들이 서있었고, 그 눈빛에 이성은 없다. 불법인 약으로 한창 정신개혁을 행하고 있던 중이었겠지만, 녀석들의 경우엔 개혁이 시시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말해도 안 들리려나」 그림자는 미리 짠 것처럼 다가온다. 나는 가죽점퍼의 가슴 주머니에 있는 나이프에 몰래 손을 뻗고, 한번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뭐어, 따분하긴 했어. 자극을 원하는 거지? ……좋아, 소원대로 기분 좋게 해주마」 그림자는 여기저기서 다가온다. 그들의 목적은, 단지 의미 없는 폭력뿐이다. 나는 그것을 거절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갈 곳 없는 나의 초조함은, 이 가슴속에서 계속 진흙처럼 어둡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래서. 이쪽도, 오늘밤은 나를 잃을 정도로 짜릿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살인고찰 / 2 ◇ 5월.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지금도,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얼이 빠져버린다. 한눈에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저려서,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그저 보고 있는 것 만인데도, 나는 완전히 그녀에게 푹 빠져 있었다. 이대로 라면 그러고 있는 사이에 산소결핍으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나의 일상은 침식되어가고 있다. 같은 학교의, 기적 같은 여학생. 아마도,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거니와,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는 그녀. 그 마음은 날마다 비중을 더해가서, 무서울 정도다. ◇ ───다음날, 2월 9일. 어젯밤의 비는 밤중에 그쳐서, 거리는 흐린 날씨인 채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살해현장을 둘러보고 있던 나는, 그대로 친구의 아파트에 기어 들어가서, 날이 밝아 가는 모습을 필사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우, 빨리 일어났는데 미키야. 아침밥이라도 지어주는 거야?」 눈앞의 침대에서 일어난 가쿠토가 눈을 비비면서 그런 말을 해온다. 물론,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불평을 투덜거리기로 했다. 「가쿠토. 냉장고에 맥주밖에 안 넣어 두는 녀석은, 착각을 하더라도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구」 「하하, 그건 그렇군. 으음, 그럼 옆집에서 음식이라도 얻어먹을까」 머리를 긁으면서 덩치 큰 친구가 대답한다.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괴물이라도 본 것 같은 눈을 하고 이쪽을 보았다. 「어이, 너 얼굴이 새파래. 몸이 안 좋은 거 아냐?」 그런 말을 듣고서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과연, 확실히 납인형(蠟人形)처럼 얼굴색이 흙빛이 되어있었다. 「괜찮아,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했으니까. 복용하고 나서 10분 전후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속효성(速效性), 지속시간은 네 시간 전후. 환각성(幻覺性)보다는 공감각(共感覺) 쪽이 강했어」 「……별난 자식이네. 예의, 요즘에 돌아다니는 약을 테스트한거냐?」 테이블 위에 있는 우표크기의 종이조각과 담배를 흘끗 보는 가쿠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 담배, 처리 해줘. 애시드 쪽은 해가 없으니까, 오락에 굶주려있다면 해보는게 어때? 어딘가의 유원지보다는 틀림없이 즐거울 거야」 바닥에 벗어 던졌던 코트를 주워들어, 소매에 팔을 집어넣는다. 시각은 아침 일곱 시. 슬슬 거리도 되살아나기 시작할 무렵이다. 지금의 나에게 이 이상 느긋하게 있을 여유는 없다. 「뭐야, 벌써 나가는 거야? 쪼-끔 더 쉬다 가라구. 다리도 후들거리잖아, 너」 「응, 그렇긴 하지만. 그러고 있을 수 없게 됐으니까」 뭐가? 하며 가쿠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전원이 꺼져있는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뉴스의 내용을 복창했다. 「오늘───이 아니라, 어젯밤의 희생자. 저기, 비싸기로 유명한 파빌리온이란 호텔이 있잖아? 그 근처의 골목에서 말야, 살인귀가 나온 것 같아. 잘은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한번에 네명이래」 호오, 하고 감탄하고 가쿠토는 텔레비전의 전원을 넣었다. 이 시간대, 방송은 모두 뉴스계통으로, 어느 채널을 틀어도 살인귀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내용은 내가 말했던 대로. 다만 추가된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어이. 범인은 기모노 차림의 인물이라니, 뭐야 이건」 가쿠토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현관 쪽으로 걸어 나갔다. 약 기운 탓에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평형감각에 당황하면서 신발을 신는다. 그러자, 가쿠토는 현관에 있는 나를 엿보듯 얼굴을 내밀고서, 테이블에 내버려두었던 두 개의 약을 내밀었다. 「어-이, 미키야. 묻는 것을 깜빡했는데, 이거 양쪽을 같이 하면 어떻게 되냐?」 「별로 권하지는 않겠어. 헨젤과 그레텔의 기분을 체험할 수 있는 것뿐이니까」 그런 대답을 해주고, 나는 친구의 아파트를 뒤로했다. ……그렇다. 나의 얼굴빛이 병자 같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그 기분 탓이다. 어쨌든 가쿠토의 방 전부가 먹을 것으로 생각되어 버려서, 밤새도록 식욕을 참느라 필사적이었으니까. … 오늘 아침 뉴스에 보도된 살인현장은, 가쿠토의 아파트에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장소였다. 물론 현장에는 경관들이 나와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구경꾼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현장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현장은 골목길의 중계지점 같은 십자로로, 내가 있는 큰길에서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너무 오래 있다가 경관의 눈총을 받는 것도 시간낭비라 생각하고, 큰길을 걸어간다. 근처의 파빌리온이라는 호텔에 가보려고도 생각했지만, 그건 관뒀다. 거기는 접수처에서 숙박자를 체크하는 사람이 없고, 비디오카메라의 기록을 나 같은 일반인에게 보여줄 리도 없다. 게다가 시키가 그 호텔에 묵었다고 해도, 지금은 이미 없을 테니까 의미 따위는 없다. 살인현장을 벗어난 뒤, 이 부근에 살고 있는 지인의 아파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 지인은 이 근처에서 불법적인 약을 취급하는, 속칭 드럭의 판매상을 하고 있었다. 전화로밖에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상대지만, 과거에 한번 상담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소한 트러블을 해결한 일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최근의 일에 대해 묻고 싶다고 연락했더니,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는 전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아파트에 도착했다. 거리의 소음에서 떨어난 곳에 있는, 2층짜리 낡은 아파트에 인기척은 없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헐리기 직전인 그 건물의 거주자는 지인뿐이라고 했다. 캉캉하고 못미더운 발소리를 울리는 계단을 올라가서, 2층 끝에 있는 방문을 노크한다. 문의 저편에서 부스럭부스럭하고 무언가가 움직이는 기미가 있은 지 몇 분 뒤. 나무로 된 문이 열리고, 안에서 긴 갈색머리를 한 여자가 얼굴을 내밀어왔다. 연령으로서 이쪽보다 조금 위. 추운 계절에 어울리는, 빨간 한텐을 입고 있는 것이 특징적인 그녀는, 뚫어져라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오늘 아침, 연락했던 사람입니다만」 「알고 있다니깐. 뭐, 일단, 들어와. 근처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선전해서 말야, 나」 흘끗 노려보고서 그녀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망설이면서 그 뒤를 따른다. 방안은 어질러져있어서, 다이스케 형의 방 같았다. 옷가지나 잡지 따위가 바닥을 점령하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 태좌(台座) 같은 것이 있다. 그녀가 총총히 태좌에 붙어 앉는 것을 보니, 그것은 코타쯔 인 듯 했다. 뭐하고 있는 거야? 하고 묻는 시선으로 올려다봐서, 조심조심 코타쯔에 들어간다. 어째서인지, 전원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헤에, 당신은 그런 얼굴이었구나. 의외로……, 이렇게……」 그녀는 코타쯔의 테이블에 턱을 얹더니, 뒹굴, 하고 얼굴을 가로누인다. ……나로서는 이 인물이 여성이었다는 점이 의외였다. 하지만 약장사를 하고 있는 이상, 성별을 속이는 것 정도는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럴까. 단지 남장이 좋았던 것뿐인데」 「───에?」 입 밖에도 내지 않은 질문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킬킬하고 웃기 시작한다. 「아하하, 알기 쉬운데, 당신. 전화하고 이미지가 틀려. 나 말야, 뭐랄까, 좀더 파충류 같은 녀석을 상상했었어. 쬐끄만 안경을 끼고, 사람보다 정보 쪽이 소중합니다, 하는 느낌의 인텔리. 뭐,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지만. ───그래서, 듣고 싶은 것이란 게 뭐야?」 갑자기 그녀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머릿속에 스위치가 있는 것처럼 감정의 전환이 딱 떨어진다. 거기에 눌려서, 나는 질문을 개시했다. 「우선 어젯밤의 일입니다. 예의 살인귀의 목격자가 있다는 말, 들으셨나요?」 「아아, 기모노에 가죽점퍼를 입은 정신 나간 여자 말야? 들은 거고 뭐고, 그건 진짜야. 왜냐면 본 사람이 나인걸」 그녀의 말에, 나는 맞장구를 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기모노의 인물, 이라고 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미 성별까지 확정하고 있다니. 「그러니까, 분명 어젯밤 새벽 3시쯤이었을까. 비가 그쳐서 밖에 나갔어. 요즘에 장사가 망해서, 집안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저 호텔에 모여 있는 패거리는 나의 고객이었던 셈이지. 최근에는 거의 가보지 않았지만, 오늘쯤은 어떨까하고 얼굴을 내밀었더니 그거야. 큰 남자가 네 명이서 여자 하나에게 기를 쓰고 달려들고 있었으니, 꼴불견도 그만한 것이 없지」 그녀는 어젯밤의 사건을 기억해내 듯 말한다. 나는 자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나게 이를 갈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기모노의 여자라니, 뉴스에서는 성별은 불명이었잖아요? 그런 어둠 속에서 잘도 여자라고 알았네요」 「응? 그건 당연히 알 수 있지. 멀리서 보고 있었으니까 형체 정도밖에 보지 못했지만, 몸의 라인이 예뻤으니깐. 하지만 뭐어, 확실히 딱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 ……근데, 왜? 당신, 그 녀석과 아는 사이야?」 그녀는 코타쯔에 얼굴을 누인 채로, 수상하다는 듯 이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나는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뭐, 나하고는 관계없나. 서로 캐묻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깐. 그렇지만 말야, 그 애는 포기하는 편이 낫지 않아? 정상이 아닌걸. 나도 맛탱이가 가버린 패거리들하고 경쟁하고 있으니까 위험한 녀석은 알아차릴 수 있어. ……뭐, 스터프로 즐기자는 녀석은 위험이고 뭐고 없어. 약으로 마비되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인간은 평소에는 멀쩡한 인간이니까.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원래부터 날고 있는 패거리들이야. ……그 여자, 네 명의 남자에게 둘러 싸였으면서도 손어림을 하고 있었어. 달려드는 녀석을 나이프로 싹둑 베었지만, 베인 녀석은 전혀 피를 흘리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건 죽이지 않기 위해서 적당히 한 것이 아니야. 알겠어? 그건 말이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칼로 베고 싶으니까, 일부러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던 것 뿐이라구. 남자들도 그것을 깨달은 건지, 아니면 아픔에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자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등을 보이고 달리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그 등을 향해 마지막 한방이 쾅, 이야. 도망치려고 한 사냥감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버린 거겠지. ……마지막에 남았던 한 명은 정말 비참했어. 울면서 애원한 것 같았는데, 결국 엄청 혼이 나다가 싹둑, 이었지. 그 뒤의 일은 몰라. 그 여자, 네 명을 처리해 버린 뒤에, 도망치지도 않고서 멍하니 서있었어. 그래서 말야, 뭘 하고 있는 걸까 하고 그늘 속에서 몸을 내밀다가 눈이 서로 마주쳐버렸어. ……응, 그건 위험했지. 어둠 속에서 말야, 형체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상대의 눈만이 퍼렇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잊고 도망쳐 나왔는데, 생각해보면 그것이 다행이었는지도. 소리를 질렀다면 틀림없이 쫓아오지 않았을까, 그 애」 손짓도 몸짓도 없이, 담담하게 그녀는 어젯밤의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분하지만, 그곳에 거짓이나 장식이란 것은 있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네요. 상대방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엿보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출혈도 확인하지 않았고, 사체를 확인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네. 증거로서는 약할까. 그래서 경찰에는 말하지 않았어. 뭐, 무슨 일이 있어도 녀석들하고는 손을 잡지 않겠지만. 기모노를 입은 인물을 보았다고 말한 사람은 나 말고 다른 녀석이 아닐까. 그곳, 비슷한 놈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엿보던 다른 녀석이 있던 거 아냐?」 「……과연. 그러면 그 녀석은 기모노 차림의 인물의 성별은 알 수 없었다는 건가」 「그렇겠지. ……하지만, 이상해. 그 어둠 속에서 무엇을 입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성별도 저절로 나올 텐데. 대개는 말야, 그 형체를 보면 타이트한 스커트 같은 것을 생각해. 걔, 기모노 위에 점퍼를 걸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기모노의 소매 부분이 없었거든. 그래서, 그게 기모노구나, 하고 아는 것은 나 정도다, 하고 혼자서 자만하고 있었는데, 나 말고 상당한 감식안을 가진 녀석이 있었어. 하지만, 그래서는 앞뒤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확실히, 그건 이상하네요. 타이트한 스커트였다면 틀림없이 여성이라고 단정되죠. 그런데도 성별은 판단할 수 없고, 입고 있던 것만 알 수 있다니, 이상해」 ……어딘가, 잘 꾸며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애초에 이 사건 자체가 현실감을 띄고 있지 않은 사건인데, 사건 그 자체의 진전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서, 더더욱 현실감을 잃고 있다. 조금씩 밝혀져 가는 살인의 기록. 조금씩 화려해져 가는 살인귀의 행동. 카드를 하나씩 펼쳐 가는 것처럼, 순서를 따라서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 이래서는, 마치 「그래, 유치한 게임 같아」 간들거리는 얼굴로,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또, 말하기도 전에 대답을 들어버렸다. 당황하듯 시선을 내리자, 그녀는 고양이처럼 히쭉히쭉 웃음을 띄운 채로, 전과같이 코타쯔에 엎드려 있었다. 「할 얘기는 그것 뿐? 그럼 난 이제 얘깃거리가 없어」 그녀의 말에, 곧바로 대답할 수 없다. ……오늘 아침, 뉴스를 봤을 때에 결정적인 사실과 맞닥뜨리게 되어, 숨을 쉴 수 없었다. 살인 현장에서 목격된 기모노차림의 인물. 그것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것이 시키가 아니라고 반론하고 싶어서, 나는 이런 곳까지 찾아왔다. 그런데도, 결과는 나에게 있어서 최악에 가까운 회답이 돌아왔을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이런 일은 3년 전과 같은 상황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아직 자신의 눈으로 무엇 하나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군요, 어젯밤 이야기는 이젠 됐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생각을 전환한다. 물어봐야 할 것은 아직 두가지정도 남아있었다. 「이건 소박한 의문입니다만. 살인귀의 목격자는 이번이 처음인 것일까요? 요 일주일간은 특히 그랬고, 지금까지도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에요. 3년 전의 사건과는 다르게, 살인이 일어난 곳은 모두 시내 안이잖습니까? 살해 장면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 전후에 수상한 인물을 본 사람이 없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가. 응, 들어보니 그렇네. 하지만, 그건 힘들어. 살인귀의 살인현장이란 거의가 우리들 구역이잖아. 약장수는 경찰 따위와 관계하고 싶지 않고, 약을 사가는 녀석들도 일부러 경찰에게 밀고하지 않는걸. 수상한 인물이라고 하면 자기들도 포함되어버리니까, 우리들에게 있어서 수상한 인물이란 일반인인 셈이지. 그 중에서도 기모노를 입은 여자는 눈에 확 띄는 이단자겠지? 기모노 따위는, 요즘에는 부잣집 할머니밖에 입지 않는걸. 부잣집 할머니가 약을 사러온다는 건, 무지무지 수상하잖아」 그녀는 테이블에 뺨을 갖다 붙인 채로, 띄여띄여, 하는 암호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그런가. 요컨대 평소부터 수상하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거군요. 예를 들어서, 당신이라면 약장수니까, 살해현장을 방황하고 있어도 수상하지 않아요. 목격자들로서 보자면, 오히려 그쪽이 일상적이니까」 음, 하고 그녀는 얼굴을 찡그린다. 하지만 뭐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녀 자신도 그것에는 납득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말야, 아까도 말했잖아? 약을 사는 녀석들은 평소에는 정상이야. 일이 이만큼 화려해지면, 녀석들도 우리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겠죠. 하지만 목격담은 어젯밤이 처음이었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범행을 전후해서 목격된 약장수 또는 구매자가 없었다던가───아니면, 본 사람이 그 상대를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물이었던가, 의 어느 한 쪽이겠지요. 이 만큼이나 거리 속의 살인이 계속되고 있어요. 목격자가 없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에요」 「그런 거야?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목격자는 없는 것뿐 아닌가?」 「그건 보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의 얘기에요. ……저기, 밀실살인이란 것은 자주 무언가의 제재(題材)가 되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 에요. 전혀 의미가 없죠. 숨기는 것 자체가 죄를 고발하고 있으니까, 범인 자신이 손을 들고 있는 것과 똑같아요」 「───하냐아? ……저기 말야, 난 머리가 나빠서 잘 모르겠어. 밀실살인이란건 범인이 경찰에게 체포되지 않기 위해 쓰는 방법이잖아? 어째서 그것이 안 되는 거야?」 「왜냐면, 살인이잖습니까. 사체가 있는 방이 밀실이란 건, 그것이 외부의 인간에 의한 범행이 아니라는 증명이에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도록 그 장소를 폐쇄한다. 그것이 밀실의 의미입니다. 즉 밀실이란 상황인 이상, 그것은 자살이 아니면 안 되죠. 밀실을 열어보니 누군가가 죽어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대체 범인은 어떻게 이 사람을 살해한 걸까───하는 범행의 은폐법은 애초부터 잘못되어있어요. 알겠습니까. 밀실이라면, 그것은 자살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요. 밀실을 연출할거라면, 살해를 행한 범인이 있다는 것 따위를 생각하게 만들면 안 되는 겁니다. 밀실을 살인현장으로 만들면, 밀실로 만든 의미자체가 사라져버리니까. ……역설이 되지만, 그러니까 목격자가 있다고 가정되는 상황에서는 목격자 없으면 이상해요. 시내 안에서의 살인이고 사건전후에 전혀 목격자가 없다는 것은, 상황으로 볼 때 그쪽이 부자연스러우니까」 하아, 하고 그녀는 누이고 있던 머리를 일으키며 대답한다. 「그래도, 목격자는 나왔잖아. 나라던가, 다른 녀석이라던가」 「네. 그래서 이상한해요. 목격자가 나왔다면, 이전에도 목격자는 있었을 겁니다」 난폭한 추리였지만, 틀림없다. 이로써 이전에 목격자가 없었다고 하면, 반대로 어젯밤의 사건만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의 증명도 된다. 「……그런가. 목격자가 없다는 건, 발견되지 않도록 죽였다는 소린걸. 이제 와서 누군가에게 발견될 듯한 사건 따위, 살인귀는 저지르지 않아」 과연, 하고 팔짱을 끼고 그녀는 얼굴을 흐린다. ……어쩐지, 또 이쪽의 생각을 읽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 좋네, 당신. 안경을 낀 인텔리란 이미지를 선행시켜야겠어. ───그래서 말인데. 당신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어젯밤의 사건은 다른 사건인걸까, 아니면 전부터 목격자는 있었던 걸까」 「그런 건, 당연 하잖아요」 화난 것처럼 단정하면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 양쪽을 지지한다는 것 따위는, 자신의 이론을 모순 되게 만드는 대답이니까. 토라진 듯 시선을 돌리는 나를 보고, 그녀는 다시 깔깔 웃었다. 「그런가- 남자네, 당신.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그녀의 무혐의를 증명하려는 거야?」 「그전에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사실은 그게 목적이라서 연락한 건데요, 알려주실 수 있나요? 최근에 돌고 있는, 새로운 칵테일의 판매상을」 「───하하아. 그것 때문에 온 건가 인텔리」 고양이 같았던 웃는 얼굴을 뻔뻔스런 웃음으로 바꾸고, 그녀는 이쪽을 곁눈질로 본다. 느슨했던 방안의 분위기는 어쩐지 찡- 하고 긴장된 공기로 변해버렸다. 「칵테일이라고 하면, 애시드와 대마의 새로운 물건 말인가. 이 조합은 무드라라고 하는데, 새로운 칵테일은 지금까지의 물건들과는 비교가 안 돼. 의존성이 너무 높아서 한번 빠지면 빠져 나올 수 없고, 효과도 너무 강해서 상용하는 것만으로 몸을 망가뜨리지. 목숨에 관계된 쾌락 같은 건, 오락이 아니겠지? 레크리에이션 · 스터프란 것이 약의 바른 존재방식이잖아. 그런 의미로 말하면 말야, 그건 위법정도의 얘기가 아냐」 「그런가요? 시험해봤는데, 구역질이 난 정도고 그 뒤로는 표준적인 레벨이었다고 생각 했습니다만」 「나돌고 있는 건. 약은 말야, 내성과 의존성이 있잖아? 내성이라는 건 할 때마다 몸이 약의 효과에 익숙해져버리는 거지. 내성이 생기기 쉬운 약은, 할 때마다 양이 늘어나서 돈이 많이 들어. 의존성이란 건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나뉘어져있는데, 뭐어, 까놓고 얘기하자면 약을 끊는 게 쉬운가 어려운가의 기준일까. 생활에 있어서의 사용회수의 빈도로, 의존성이 높은 약일수록 하는 횟수가 많아져. 뭐,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이지만.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이 담배를 끊겠다고 결의하는 것보다는 쉬운 의지야. 약이 몸을 망가뜨린다는 것은 미신에 지나지 않아. 요는, 본인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가 전부인걸. 내가 생각하기엔 술이나 담배, 커피 쪽이 훨씬 위험한 약이야. 어째서 저쪽이 합법이고 이쪽이 불법인지, 관리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꾸욱 하고 주먹을 움켜쥐며 그녀는 열변 한다. ……뭐어, 나는 그것에 찬성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입장이라, 몸을 움츠리며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성도 생기기 쉽고, 신체적 의존성도 높은 악마 같은 약도 분명히 있어. 이건 정말로 몸을 망가뜨려. 그런 약, 나는 싫어. 그래서 블러드 칩의 판매상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것도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만난 적도 없어」 그녀는 들은 적도 없는 약의 이름을 말했다. 「───블러드 칩?」 의심하듯 질문하는 나를, 그녀는 응, 하는 매우 귀여운 몸짓을 하며 바라보았다. 「예의, 새로운 칵테일. 그 물건은 상당히 파격적이야. 페이퍼 두 장과 건조대마 10그램, 세트로 요거뿐이거든」 핏, 하고 그녀는 손가락을 펴서 가격을 표시한다. 확실히, 그것은 파격적정도가 아니었다. 외국에 비해서 일본의 가격은 몇 배나 높다고 하지만, 그녀가 표시한 값은 외국의 가격보다도 더욱 낮은, 사실대로 말하면 고교생의 용돈으로도 충분히 사버릴 수 있는 가격이었다. 「어쩐지 무리해서 화제를 만들고 있는 패스트푸드 같네요, 그건」 「응. 그래도 꽤 오랫동안 이 가격이 유지되고 있어. 몸에 내성이 생기게 만들고, 의존성이 높아질 즈음에 단숨에 가격을 끌어올린다, 하는 짓거리는 야쿠자도 안 해. 그 뿐만 아니라 그것에 만족할 수 없게 된 녀석들에게는 더욱 윗 단계의 칵테일이 퍼져있어. 그게 블러드 칩이라고 하는 페이퍼지. 순도가 높은 LSD인지도 모르지만, 평가는 대단해. 페이퍼는 구강섭취잖아? 그런데도 효과는 정맥주사보다 확실히 날아간다는 거야. 나는 시험해보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는, 유명한가요?」 「당근, 업계에서는 나름대로야. 당신이 몰랐다는 게 나로서는 놀라운 걸. 블러드 칩의 판매상은 애들밖에 상대하지 않으니까, 큰손의 유통에는 알려져 있지 않아. 조직말단의 약장수들은 알고 있지만, 위쪽은 상대해주지 않는 것 같아. 어차피 애들 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건. 그런 이유로, 경찰아저씨들도 블러드 칩에 대한 것은 몰라. 그 사람들, 야쿠자밖에 타겟으로 삼지 않으니깐. 나같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약장수의 내부사정 따위는 조사하지 않는 거야」 아하하, 하고 그녀는 쾌활하게 웃는다. 하지만, 반대로 이쪽의 기분은 음울해졌다. ……그런 이야기, 나는 들은 적도 없었다. 예의 칵테일을 넘겨준 약장수는 그것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나에게만 그런 정보를 흘리지 않았던 걸까. 「고마워요. 참고가 됐어요」 인사를 하고, 일어선다. 묻고 싶은 것은 전부 물어봐서, 남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너무 무턱대고 행동하면 안돼. 블러드 칩을 하는 녀석들에게 있어서, 그 약장수는 카리스마니까. ……저기, 아까 장사가 망했다고 말했었지? 이 부근에서 블러드 칩에 관여하지 않은 장사꾼은 나뿐이야. 싫어하니까, 그런 약. 하지만, 그렇게 하니까 지금까지의 고객들은 딴 쪽에 가버렸어. 어쩐지 말야, 새로운 신흥 종교 같은 흐름을 타고 있어」 기분 나쁜 듯, 그녀는 코타쯔에 들어간 채로 그런 말을 했다. 어질러진 방을 횡단해서, 현관의 노브에 손을 댄다. 그대로 돌아보지 않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대답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맞다. 그 판매상의 이름은, 아시나요?」 「어라. 몰랐어?」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그 이름을 알려주었다.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하지만 그걸로, 지금까지의 애매하던 일은 전부 이어져버렸다. 나는 애써 냉정한 태도로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하고, 잿빛 거리로 나갔다. / 2 ◇ 6월. 최근의 생활은 전에 없을 정도로 충실해져 있다. 누군가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렇게도 즐거운 것인 줄은 몰랐다. 방과후나 쉬는 시간. 깨닫고 보면, 나는 그가 찾아오는 것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깨닫고 보면, 그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는 심장이 두근두근 크게 고동쳐서, 아팠다. 언제고 떨어지지 않는 가슴의 불안은, 그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만, 그 아픔으로 바뀌어준다. 아아, 인정하자. 나의 세계는 양분되어있다. 그 중의 절반은 코쿠토 미키야라고 하는 인물에 의한 것이라는 현실을. ◇ 눈을 뜨자, 태양은 이미 저문 뒤였다. 나는 자기 위해서 숨어든 빌딩 옥상에서, 이웃 빌딩 옥상으로 뛰어넘는다. 내가 잠자리로 사용한 빌딩의 옥상은, 관계자 외에는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이웃하고 있는 임대 빌딩의 옥상에 올라가서, 아무도 오지 않겠지 하며 출입금지인 빌딩으로 뛰어 넘어가서 잔 것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생활을, 나는 거의, 일주일 이상 반복하고 있다. 빌딩에서 골목으로 나와, 조용한 위화감을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단련되어있던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나의 피부가, 위험함을 느끼게 한다. 조심스럽게 골목 안을 이동하다 보니, 때마침 오늘 신문이 떨어져있었다. 날짜는 2월 9일. 1면의 헤드라인은 살인귀의 화제와, 그 범인의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살인귀, 네 명을 살해. 떠오르는 기모노의 인물상……」 소리 내어 읽어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려보았다. 뭐지, 이건. 네 명을 살해? 네 명이란 건, 어젯밤의 녀석들인 건가. 그들은 죽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는 건, 나는 그들을 죽여 버렸던 걸까. 지금까지 참고 있던 것뿐이지만, 어젯밤은 확실히 흉폭한 기분이었고. ……어쨌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살인귀를 찾아서 밤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3년 전처럼, 내 의지에 반(反)하는 그런 기분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신문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이런 건 모르는 일이야」 그렇게 말하고, 걷기 시작한다. 피부가 민감하게 위험을 살피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이상으로 뒷골목을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지저분한 장소에 숨어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인간성이란 것을 내팽개치고. 그런 짓은, 힘들고 재미없으며 의미 따윈 없는, 쓸데없는 작업이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멈출 수 없다니, 점점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정말이지. 어째서 나는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만족스러운 식사도 못하고, 근육의 피로도 풀 수 없는 얕은 수면을 반복하며. 목적도 없이,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위해서 이런 짓을 시작한 것일까, 시키는. 이렇게 짐승처럼 숨죽이고 사냥감을 뒤쫓고 있으면, 어쩐지 자신이 살인귀가 되기 위해서 살인귀를 뒤쫓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아니. 혹시나. 정말로, 나의 목적은 그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살인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야, 시키 ……그런 말을, 기억해내 버렸다. 가만있어도 불유쾌한 기분이, 더욱 헤어날 수 없는 구멍으로 떨어져간다.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하려고, 밤의 어둠 속을 걸어간다. 이런 일,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 ……아아, 정말 그 말 대로다. 이런 일은 얼른 끝내버리고, 나는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 심야 2시를 지나서, 거리는 시체처럼 조용해져있었다. 길가는 사람은 없고, 귀를 찌르는 자동차의 굉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건물은 빛을 가두고, 달빛도 별들의 반짝임도 어두운 구름에 뒤덮인 밤. 아무도 없는, 아무 것도 없을 길거리. 그렇지만, 이상(異常)은 분명히 있었다. 큰길. ───멀리 가로등 아래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료우기 시키는 발을 멈춘다. ───사람 모습은, 어딘가 거동이 수상했다. 그녀는 옛날, 이것과 똑같은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어쩐지, 나는 그 인물의 뒤를 밟았다. 목구멍까지 밀려 올라오는 오한을 참으면서, 시키는 유혹 당하듯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 골목길에서 더욱 안쪽 골목으로 들어간 그곳은, 이미 이세계(異世界)였다. 막다른 골목이 되어있는 그곳은, 길이 아닌 밀실로서 기능하고 있다. 주위를 건물의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은, 한낮조차 햇빛이 들지 않는 공간이겠지. 거리의 사각(死角)이라고 불러야할 그 틈새에는, 언제나 한 명의 부랑자가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빛바랜 좌우의 벽에는 새로운 페인트가 칠해져있었다. 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좁은 공간은 무언가에 질퍽거리고 있었다. 언제나 떠돌고 있던 썩은 과일 냄새는, 더욱 농후한 다른 냄새에 오염되어있었다. 그 주변은, 피바다였다. 붉은 페인트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엄청난 양의 혈액이었다. 지금도 길바닥에 줄줄 흐르는 액체는 사람의 체액. 코를 찌르는 냄새는 끈적이는 주홍빛. 그 중심에, 인간의 사체가 있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양팔이 없고, 양다리도 무릎 부근에서 잘려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지금은 피를 흩뿌리는 스프링쿨러가 되어있었다. 절단된 사지는 없다. 처음부터 사체의 사지는 절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두대보다 날카로운 짐승의 턱에 의해, 무참하게 뜯어 먹혔으니까. 으적, 하고 위를 떨리게 하는 저작음(詛嚼音)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고기를 먹는, 원시적인 소리. 이미 그곳은 이세계(異世界)다. 피의 적색조차, 따뜻한 짐승냄새에 패퇴하고 있다. ───누군가가, 그곳에서 웃음 짓고 있었다. 검고, 뱀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가느다란 하반신의 윤곽. 몸에는 그녀와 같은 핏빛 점퍼. 축 늘어뜨려진 오른손에는 한 자루의 나이프. 어깻죽지까지 기른 머리카락은 마구잡이로 잘려져 있어서,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실루엣만으로 본다면, 완전히 그녀와 동일했다. 다른 부분은 한곳 뿐. 서있는 인물의 머리카락은, 흑색이 아닌 금색이었다. 골목길의 부패한 바람에 흩날리는 금발은, 어느 육식동물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원의 세계에 있어서 백수(百獸)의 왕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사자라는 이름의 맹수를. … 「─────」 그 광경을, 시키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상실되었을 터인 기억이 머릿속에서 점멸을 반복한다. ……그렇다, 그것은 4년 전 여름이 끝날 무렵의 일. 분명히, 그녀는 이와 같은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오늘처럼 죽어있는 밤의 거리에서 수상한 사람모습을 발견하고, 그 뒤를 밟다가────정신이 들고 보면, 그녀는 사체를 눈앞에 두고 서있었다. 그 사이의, 뒤를 밟고 나서 사체를 눈앞에 둘 때까지의 기억을, 그녀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시키(式)가 아니라 '시키(織)'라고 하는 그녀가 담당한 행동이니까. 「뭐야, 넌」 골목입구에서, 시키는 사체와 『자신』을 바라본다. 금발의 시키의 양어깨는 작게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기쁨에 의해서. 「료우기───시키」 금빛 앞머리를 휘날리며, 사람 형체는 스르륵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형조차, 료우기 시키와 비슷하다. 색이 들어간 거울을 보는 듯한 감각으로, 시키는 금색의 자신을 응시한다. 금색의 시키의 눈동자는 흉측할 정도로 붉었고, 귀에는 은색 피어스가 달려있었다. 어디까지나 무색(無色)인 시키를 도발하듯이 그것은 여러 가지 색채를 띄고 있다. 발치까지 내려오는 검은 가죽제 스커트.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새빨간 점퍼. 그렇지만, 그것은 여성이 아니다. 금발의 시키는 시키가 아닌, 그저 살인귀라고 이름 붙여진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알고있어, 너는────」 시키는 중얼거리고, 살인귀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나이프를 한 손에 들고, 지면을 기는 듯한 낮은 자세로 골목의 좁은 길을 질주한다. 일직선. 그저 순수하게, 가만히 서있는 시키를 노리고. 시키는 곧바로 나이프를 쥐고, 놀라움에 눈살을 찌푸렸다. 육박해오는 형체는, 인간의 움직임을 하고 있지 않았다. 형체는 뱀처럼 갈지(之)자로 움직인다. 좁은 뒷골목 안은, 살인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넓은 사냥터였다. 시키가 눈과 피부로 느끼는 경계망을, 그 형체는 짐승처럼 재빠르게 비집고 들어온다. 그렇게───보고 있는데도, 그 움직임이 눈에 잡히지 않는다. 시키에게 있어서는 아직 멀고, 그에게 있어서는 필사의 간격까지 거리가 좁혀졌을 때. 뱀은, 그 움직임을 맹수의 것으로 변화시켰다. 폭발하는 불꽃같은. 후림불. 짐승은 시키의 머리위로 도약하여, 그 머리를 향해 나이프를 내찌른다. 키잉-하고 나이프와 나이프가 충돌했다. 시키의 정수리를 노렸던 나이프와, 그것을 막으러 들어온 시키의 나이프가 맞부딪친다. 순간───각자의 나이프와 서로 통하듯, 두 사람은 시선을 교차시켰다. 적의에 가득 찬 시키의 눈동자와, 기쁨에 가득 찬 살인귀의 눈동자. 히쭉 웃고서, 살인귀는 크게 뛰었다. 시키에게서 떨어지듯이 뒤쪽으로 뛰어서, 거미 같은 동작으로 착지한다. 한번의 도약으로 6미터나 거리를 벌린 그것은, 손발을 지면에 붙이고, 짐승처럼 숨을 토했다. 명백하게,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일탈해있었다. 「어째서」, 하고 그는 말했다. 「어째서, 진짜로 하지 않는 거야」 사체를 등 뒤에 두고, 흐르는 혈액에 젖으면서, 살인귀는 항의의 목소리를 낸다. 시키라고 하는 소녀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자신과 닮은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4년 전과는 딴사람이잖아. 지금도 나를 죽이려고 생각했다면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그 마지막 선을 넘어 주지 않아. 동료를 원하고 있으면서 말야. 료우기 시키가 그래서는 곤란해」 거친, 심장 그 자체에서 토해져 나오는 듯한 숨소리가 울려 퍼진다. 의외로───살인귀다운 그것은,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살인귀의 호흡은, 지금이라도 호흡곤란으로 쓰러질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거칠다. 흥분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괴로워서일까. 시키는 어느 쪽일까 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곧바로 싫증을 냈다. 그런 건 어느 쪽이라도 그녀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된, 건가. 귀여운 이름이라서, 틀림없이 여자일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건 그 때가 마지막이라고 말했는데 말야, 선배」 차가운 시키의 목소리에, 살인귀는 글쎄, 하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랬던가. 공교롭게도, 그런 옛날 일은 잊었어」 살인귀는 웃음을 억누르며 대답한다. 어조와는 정반대로, 그는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즐거운 것 같았다. 물론, 시키는 즐겁지도 어떻지도 않다. 상대가 누구더라도, 살인귀를 찾아내서 처치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목적이니까. 「───몇명 죽였냐, 너」 눈을 가늘게 뜨며 시키는 물었다. 살인귀는 웃으면서 기억하고 있지 않아, 라고 대답했다. 「……저기 말야, 광인(狂人)이 자신의 행위를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리 없잖아. 쓸데없는 걸 묻지 말라구. 광인이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그래서 이 3년간, 나는 누구에게도 살인자라고 지적당하는 일은 없었어. ……난 말야, 죽여도 죄를 추궁당하지 않는 인간이라구. 오히려 매일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지도 모를 정도야. 아아아, 그런데도, 알기 쉬운 증거를 남겨준 것은, 전부 너를 위해서였어. 일부러 알기 쉽게 사체를 남겨주면, 4년 전을 기억해 낼 거라고 생각했어. 너는 계속 무시해 와서 효과가 없었지만, 다른 곳에서 효과가 있었지. 그래, 살인귀야. 이름이 없었던 나에게 세상이 준 이 이름──정말로 딱 들어맞잖아……! 너무나 기뻐서, 요 일주일간은 그 기대에 부응해주었던 거야. 살인귀는 모두의 예상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걸. 그렇잖아? 너는 알고 있을 거야 료우기 시키. 그래서 내가 부러워서 찾고 있던 거야. 빨리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나라고하는 동류(同類)를 찾고 싶었던 거야. ……아아, 알고 있어. 알고 있다구. 알고 있고말고. 왜냐면 내가 제일, 너를 잘 알아줄 수 있으니까…………!」 ……뒷골목에 울리는 호흡은 점점 커져서, 위험한 것이 되어간다. 살인귀의 혀가, 피에 젖은 입술을 매끄럽게 핥아간다. 광인처럼 핏발선 눈동자를 한, 자신과 닮은 자. 그것을 앞에 두고, 시키는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않는다. 격한 혐오가 그녀의 말을 막고 있다. 이 상대와 이야기하는 것조차, 더러워질 것 같아서 시키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살인귀의 말에 저항하기 힘든 진실이 포함되어있어서,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다고 하더라도. ───살인귀가, 되고 싶어 하고 있다. 그 말에, 그녀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모든 짐승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살인귀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씨익, 하고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끌어올린다. 「……거봐, 너는 무리하고 있어. 그런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겠지……? 네가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너 자신의 기원에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야. 참을 필요 따위는 없어.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돼」 시키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는 해충이라도 보는 듯한 눈매로 바닥을 기고 있는 짐승을 바라본다. 살인귀는 마지막 제안을 말했다. 「……그런가. 그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원인을 죽일 수밖에 없겠군. 지금의 료우기 시키를 유지시키고 있는 녀석을 죽이면 돼. 그렇게 하면 전부 해결돼. 설마 할 수 없다는 소리 따위는 안 하겠지, 너도 사실은 죽이고 싶어서 근질근질 하고 있으니까 말야……!」 아하하하하, 하고 살인귀는 웃었다.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고 말한 그는, 동시에 한순간에 눈앞에 나타난 료우기 시키에 의해서 한쪽 팔을 잘리고 있었다. 「누가────」 「────에?」 눈으로 인식할 수가, 없다. 무표정으로, 그저 눈동자만을 퍼렇게 빛내는 료우기 시키의 행위가, 살인귀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사냥감을 덮치는 육식동물의 동작은, 너무 빨라서 인간의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 그것과 동격의 살인귀의 동체시력을 가지고서도, 역시, 료우기 시키의 움직임은 눈에 잡히지 않았다. 살인귀의 한쪽 팔을 잘라 떨어뜨린 나이프는, 용서 없이 적의 목을 노리고 번뜩인다. 「────누구를, 죽인다고」 「히이─────!」 비명을 지르며 살인귀는 뛰었다. 뒤쪽으로 뛰면 분명 시키에게 따라잡힌다. 도망칠 거라면, 그녀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장소로 달아날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그렇게 생각하고, 그는 골목 안을 둘러싸고 있는 벽으로 뛰어서 달라붙었다가, 더욱 위쪽을 향해 뛰어오른다. 날다람쥐 같은 그 행동은, 손쉽게 그를 안전한 위치로 피신시켰다. 지상 20미터정도의 빌딩 벽면에, 살인귀는 거미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조심조심 눈 아래의 광경을 바라본다. ───푸른 눈동자를 한 사신(死神)이, 지상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퍼져 나오는 살기는 칼날이 되어, 그의 전신을 꿰뚫는다. 처음으로 느낀 것은 공포. 그 뒤에는, 그저 환희만이 그를 지배했다. 「……아아. 역시, 너는 진짜잖아」 그렇다, 그녀는 진짜다. 틀림없이 자신과 같은 세계에 살아야할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본성을 드러나게 한 원인은 확실해졌다. 어느 인물을 죽인다고 떠본 것만으로, 료우기 시키가, 자신보다도 훨씬 더 엄청난 살인귀가 된 것을, 그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간단한 얘기야. 방해자는 죽이면 돼」 그는 벽을 뛰어올라가며, 골목에서 떠나간다. 시키가 뒤쫓아오는 기미는 있었지만, 도망친다는 행위라면 아무도 그를 따라올 수는 없다. 나무 한 그루 없다고 해도, 이 거리는 그에게 있어서의 밀림이었다. 모습을 감추고, 사냥감을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할 수 있다. 달이 없는 밤, 살인귀는 기쁨에 울부짖었다. 긴, 4년을 넘은 사랑이 겨우 이루어지는 거라고 예감하면서. 살인고찰 / 3 ◇ 7월. 약한 사람은 싫어요 그녀는 태연히 그렇게 말했다. 약한 사람은 싫어요 료우기 시키는 나를 그렇게 거절했다. 약한 사람은 싫어요 그 의미를,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사람을 때렸다. 그날 밤, 사람으로 사람을 죽였다. ◇ ……2월 10일, 흐림, 곳에 따라서는 맑음. 카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일기예보는, 어제보다 별로 나아 보이지 않는 날씨를 말해주고 있었다. 핸들을 쥐면서 손목시계를 보니, 시각은 이제 막 정오가 되어있었다. 평소대로라면, 토우코 씨를 상대로 사무의 하나로서 사용처불명의 돈을 어디에 썼는지를 묻고 있을 시간인데도, 나는 오늘도 일을 쉬고, 공장지대의 휑하니 넓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다리가 아니라 자동차로 달리고 있다. “적당히 하라구, 코쿠토” 라고 말한 토우코씨의 충고는, 미안하게도 아직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않다. 어젯밤도 살인귀의 피해자가 나와 버렸다. ……잊을 수가 없다. 어젯밤의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는, 4년 전에 제일 첫 번째의 희생자가 나왔던 골목길이기도 하다. 그저 단순한 우연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실은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 같은 증거로 생각되었다. 사건은, 이제 일각의 여유도 없다. 어제, 판매상의 아파트에서 조사를 시작한지 만 하루. 블러드 칩이라고 하는 신종마약을 취급하고 있는 판매상의 거주지가 항구부근의 아파트에 있다고 알아내고, 코쿠토 미키야는 그 은신처로 향하고 있었다. 항구에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스쳐 지나가는 차는 대부분 트럭으로 바뀌어간다 잿빛 하늘 아래, 역시 잿빛으로 탁해진 바다를 크게 우회해서 공업지대를 달려간다. ……작년 여름, 브로드 브리지라고 명명된 다리가 있었다. 건조도중에, 태풍에 의해 거의 전파(全破)된 대교. 건설재개의 전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판매상의 아파트는, 그 브로드 브리지가 바라다 보이는 해변에 있었다. 차에서 내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을 맞는다. 겨울 바다는 차가워서, 바람도 얼음처럼 피부를 차갑게 식혔다. 인기척 없는 항구는 거리보다 몇 십 배나 으스스 했다. 무수히 세워져 있는 창고를 곁눈으로 보며, 목적인 아파트를 향한다. 아파트는 소금기에 손상되었는지, 외견은 낡아빠져 있었다. 이미, 폐허로밖에 보이지 않는 2층 목조 아파트. 판매상은 그 아파트를 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자체가 그의 소유물 인 듯 하다. 4년 전까지는 아라야라는 인물이 소유주였던 물건. ……그런 의미에서는, 판매상의 거주지를 발견하는 것은 간단했다. 6호실까지 밖에 없는 아파트의 문을 전부 노크해서 비어있는 지를 확인한다. 조금 고민하다가, 2층 끝의 방에 숨어들기로 했다. 약 30년을 넘은 아파트의 자물쇠는, 드라이버 하나로 간단하게 파괴할 수 있었다. ……정말, 스스로도 엄청나게 폭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에 대한 체면에 신경 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빙고, 인가」 현관을 통해 부엌으로 들어가서,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방의 구조는 좁아서, 현관과 부엌이 이어져있다. 그 안에 다다미 여섯 장 자리 방 한 칸이 있을 뿐인, 70년대를 상징하는 듯한 싸구려 아파트. ……방안의 상태는 어제의 그 판매상의 집과 별 차이가 없다. 부엌에서 엿보이는 안쪽의 모습은 태풍과 사보텐이 뛰어든 뒤 같아서, 그야말로 폐허 같았다. 커튼을 달지 않은 창문으로부터는 전면에 바다가 바라다 보인다. 쓰레기가 어지러이 흩어져있는 방안에서, 그 창문만이 벽에 걸린 미술품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쏴아아, 하는 파도소리까지 들려올 것 같은, 납빛의 바다로 통하고 있는 창문. 그것에 끌려 들어가듯 방안으로 들어간다. 「─────」 섬뜩, 했다. 후두부에 혈액이 몰려서, 그대로 뒤로 쓰러져버릴 것 같은 감각. 그걸 견뎌내면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특별히,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다. 이 은신처에 예의 약의 제조법이 있다고 해도, 그런 것에는 흥미도 없다. 나는 그저 막연히, 어떤 단서 같은 것을 원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이미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키」 중얼거리고, 방안에 흩어져있는 사진을 집어 들어 본다. 그건 내가 아직 고교생이었던 시절의 료우기 시키의 사진이었다. 방안에 흩어져있는 것은 사진뿐만이 아니라,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 초상화 같은 것까지 있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이 방에는 시키를 모티브로 한 것들이 흩어져있다. 연대는 4년 전인 1995년부터 지금까지. 올해 1월, 레이엔 여학원에 위장 전입했을 때의 사진까지 갖춰져 있다. 방에는 그 이외의 일용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인물의 잔해로 가득 채워진, 바다가 보이는 작은 방. ……이것은, 그의 체내다. 자신의 방이라는 것은 그 개인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그 장식이 자신이라는 껍질에서 흘러 넘쳐 버렸을 때, 방은 세상이 아니라 그 인물의 몸속이 되는 것이다. 오싹, 하고 등줄기에 오한이 퍼진다. 이 방을 형성한 인물과는 대화가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나는 그가 돌아오기 전에 철수해야만 하겠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 방의 주인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니……분명,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방안에 머물러 있다가, 창가의 책상 위에 책이 놓여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녹색 뒷 표지의, 아마도 일기겠지. 이것 보라는 듯 준비되어있는 그것은, 읽히는 것을 바라고 놓여져 있는 물건이었다. 「……이게 이 방의 심장인가요, 선배」 일기를 손에 든다. 쓴 사람의 의도대로, 나는 그 금단의 상자를 열고 있었다. …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걸까. 나는 온통 시키의 사진으로 뒤덮인 방에 멈춰선 채, 그의 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었다. 이 일기는, 어느 살인의 기록이었다. 4년 전에 일어난, 사고 같은 살인사건. 사건의 발단은 전부 그곳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번 심호흡을 하고,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일기는 봄부터 시작되어있었다. 제일 첫 페이지, 제일 첫 구절을, 나는 완전히 암기해버리고 있었다. 이 일기의 장본인이 한사람의 소녀를 처음 보았던 때의 기록, 그의 이야기의 발단. 그것은──── 「───1995년, 4월. 나는 그녀를 만났다」 갑자기. 현관 쪽에서, 그런 말이 던져졌다. 삐걱, 삐걱, 발소리가 가까워져온다. 그는 천천히, 이전처럼 친밀한 웃는 얼굴을 한 채로, 여어, 하고 손을 들며 돌아왔다. 「오래간만이야. 3년 만이려나, 코쿠토군」 「─────」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나타난 그는, 완전히 시키 그 자체였다. 여성의 스커트와, 붉은 가죽제 점퍼. 어깻죽지 부근에서 자른 너덜너덜한 머리칼과 중성적인 생김새. 다만 머리색은 금색이고, 눈동자는 컬러 콘택트렌즈라도 끼고 있는 것인지 토끼처럼 새빨갰다. 「생각한 것 보다 빨랐네. 솔직히, 네가 이곳에 찾아오는 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감이라는 듯 고개를 숙이며 그는 말한다. 나는 그렇군요, 하고 동의했다. 「흠. 내가 뭔가 실수라도 한 걸까. 너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패밀리 레스토랑 이래로, 흔적은 전부 없앴을 텐데」 「……그렇죠. 당신 자신에게 미스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힌트는 있었어요. 11월에 어떤 맨션이 헐린 것은 알고 있겠죠? 그 직전에 맨션의 거주자를 조사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때 당신의 성을 발견했어요. 나는 그것이 계속 신경 쓰였어요. 왜냐면 그 맨션은 보통 건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곳에 있었던 이상, 당신은 어떤 형태로든 시키와 관련 하고 있는 것이 되는 거에요. 그렇죠?────시라즈미(白純), 리오(里緖)선배」 금색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아아, 하고 선배는 끄덕였다. 「과연, 맨션의 명부이라니. 아라야씨도 시시한 잔꾀를 부렸군. 덕분에 나는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와,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어 버렸다는 건가」 곤란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선배는 방안에 들어왔다. ……그때, 겨우 알아차렸다. 시라즈미 선배의 왼팔이, 깨끗하게 사라져있다는 것을. 「그 눈치를 보니, 전부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래, 3년 전의 이 계절 일이야. 네가 료우기 시키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에 나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야. 나는 너에게 그녀의 살해현장을 보여주고 싶어서, 너를 불러 세웠어. 뭐어, 그것이 쓸데없는 짓이라서, 결과적으로 나는 아라야씨에게 실패작 취급을 받아버렸지만. ……하지만, 지금도 그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해. 그 상태로, 네가 그녀의 본성을 모르고 희생되는 것은 참을 수 없었으니까」 창가의 책상에 앉아서, 시라즈미 선배는 그립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선배와 무엇 하나 바뀐 점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일기를 읽고, 블러드 칩의 판매상이란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선배가 변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옛날 그대로다. 옛날 그대로의, 사람 좋은 선배다. 일기에 씌여 있던 사건에 대해서는, 이 사람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발단은 불행한 사고와, 아라야라고 하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에 의한 것이었다는 일을, 코쿠토 미키야는 알아버렸다. 그래도. 나는, 이 사람의 죄를 고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벌써, 4년이나 전부터. 선배는 죄를 쌓아오고 있어요」 정면에서 그를 응시하며, 나는 말했다. 시라즈미 선배는 약간 시선을 돌리며, 그래도 조용하게 끄덕인다. 「그 말대로야. 그렇지만 4년 전의 길거리 살인마 사건의 범인은 내가 아니야. 그건 료우기 시키의 손에 의한 것이야. 나는 너를 보호하고 싶어서, 그녀를 앞질러 움직였던 것에 지나지 않아」 「그건 거짓말이에요, 선배」 단언하며, 나는 주머니에서 블러드 칩이라고 불리는 종이조각을 꺼내들고 손에서 떨어뜨렸다. 빨간 우표는 하늘하늘하고 어질러진 방에 떨어져간다. 시라즈미 리오는, 그것을 괴로워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선배. 당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란 것이, 이런 일이었나요」 내가 아직 고교생이었을 무렵.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학교를 자퇴했던 선배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확실히, 방향성은 어긋나버렸어. 어릴 적부터 어설픈 약물들에 대해 잘 알고 있던 탓일까, 나는 자신의 기량을 과신하고 있었던 거겠지. 나는 단순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약을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로.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억누르며, 시라즈미 선배는 한쪽 팔로 자신의 몸을 끌어안았다. 떨리는 몸을 떠받치려는 듯한 몸짓이었다. 나의 시선을 깨달은 걸까, 선배는 없어져있는 왼팔에 시선을 보낸다. 「이거 말야? 네 상상대로, 료우기 시키에게 당했어. 한쪽 팔 정도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그리 간단하게 고쳐지지 않아. 죽인다는 것은 그런 거잖아. 상처는 치료할 수 있어도, 죽은 부분은 치료할 수 없지. 소생의 업은 마법사의 영역이라고 아라야 씨는 말했어」 마법사. 그 단어를 이 사람에게서 듣는 상황이 되다니, 그 무렵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필연이다. 4년 전. 사고로 사람을 죽여 버렸던 시라즈미 리오를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마술사가 구했을 때, 시키에게 눌려있던 나를 그 마술사가 구했을 때. 그 때부터, 이렇게 되는 것은 정해져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사람을 죽여 버린 당신은, 그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돼요. 「선배. 어째서, 당신은 몇 번씩이나 사람을 죽인건가요」 따지고 드는 목소리에, 시라즈미 리오는 눈을 감고서 대답했다. 「……나도,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게 아냐」 괴로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그는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에 댔다. 꾹, 하고 가슴을 쥐어뜯는 것처럼, 손바닥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한번도, 자신의 의지로 사람을 죽인 적이 없어」 「그럼, 어째서」 「……코쿠토군. 너는 기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 아오자키 토우코의 곁에 있다면 들은 적 정도는 있을 테지. 그것의 본질, 존재의 근원이 된 사실. 나아가서는, 그것 자체의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방향성. 나는 말야, 그 녀석을 각성 당한 거야. 아라야 소우렌이라고 하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에게」 유감스럽게도, 나는 기원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다. 기원을 각성 당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종잡을 수 없다.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원인이라는 건가요, 당신은」 「아아. 기원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자세히는 몰라. 혹은 아오자키 토우코라면 해결책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마도 나는 이미 손쓰기에는 늦었어. 기원이라는 것은 말야, 알기 쉽게 말하면 본능이라고 생각해. 나나 네가 가지고 있는 본능. 이 녀석은 사람마다 제각각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전혀 해가 없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나처럼 특별한 본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도 있어. 나의 그 본능은, 운 나쁘게도 아라야의 목적에 적합한 것이었어」 하아, 하고 크게 호흡을 하고 선배는 말을 잇는다. 그의 이마에는, 이 추운 날씨 속에서도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무언가, 절망적일 정도까지의 위험한 공기가 긴장되어간다. ……이대로 라면 아주 위험한 상황을 만나겠구나하는 예감에 초조해하면서도, 나는 이 장소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선배, 괜찮으세요? 몸이 안 좋아 보여요」 「걱정할 필요 없어. 이런 건 언제나 있는 일이니까」 실을 토해낼 것 같은 가늘고 긴 호흡을 하며, 선배는 끄덕였다. 그런 것 보다 이야기를 하자며 띄엄띄엄 말 한다. 「……알겠어? 코쿠토군. 인격으로서 표층의식에 구현된 본능은, 이성을 구축(驅逐)해. 나라고하는, 시라즈미 리오라고하는 인격을 능가해 버리는 거야. 어쨌든 상대는 나의 기원이야. 겨우 20년 정도 길러진 시라즈미 리오라고 하는 형체는, 언제까지나 기원을 억누를 수 없었어. ……아라야씨는 말했어. 기원을 각성한 자는 기원에 속박당한다고. 너는 알아들을 수 없겠지, 코쿠토군. 나의 기원은 말야 "먹는다" 라는 행동이야」 크크크, 하고 웃으면서 선배는 말한다. 호흡은, 이미 눈뜨고 못 볼 정도로 거칠어져있었다. 선배는 구역질을 견디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팔에 힘을 넣고 있다. 몸의 떨림도 격해져서, 따닥따닥하고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있었다. 「선배, 기분이───」 「……괜찮으니까, 남은걸 설명하게 해줘. 제대로 된 대화 같은 것은,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표층의식에 구현화 된 본능은, 육체 그 자체를 미묘하게 변화시켜. 물론, 겉모습이 변하는 것이 아냐. 내부구조가 재구성되는 것뿐이야. 격세유전(隔世遺傳)이라는 것 같아. 그래서 말야, 바뀌어 가는 본인조차, 그때까지 깨닫지 못해」 가슴에 대고 있던 손을 얼굴에 대면서 선배는 웃음을 억눌러 참는다. 그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둥글게 구부린 등은 웃을 때마다 위아래로 들썩거려서, 천식환자처럼 위태롭다. 시라즈미 리오의 억누른 웃음은 독버섯을 먹어버린 사람처럼 병적이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하하, 곧 그렇다는 소리야. 나는, 어느 사이엔가 그런 것이 되어있었어. 기원은 충동이야. 그 녀석이 깨어났을 때────나는, 내가, 아니게, 돼. 당연하다는 듯, 무언가를, 먹을 수밖에 없어. 젠장, 알겠어? 미키야. 뭐야, 먹는 일이 기원이라니! 어째서 그런 것이 나의───대원(大元)이라는 거야……! 나는 그런 하찮은 것에 의해 나 자신이 소거되어 버린다는 거야! ───아아, 그런 건, 인정할 수 없어. 그런 걸로, 나는 사라지고 싶지 않아. 나는───나인 채로, 죽고 싶어」 뿌득, 하고 이빨소리를 내며, 시라즈미 리오는 책상으로부터 떨어졌다.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이고, 양어깨를 격하게 들썩거리면서, 온힘을 다해 무언가 흉폭한 감정을 억누르려고 싸우고 있다. 「……선배, 토우코씨가 있는 곳에 가죠.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선배는 다다미에 무릎을 꿇은 채, 붕붕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나는, 특별하니까」 그런 말을 하며, 선배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경련은 점점 격해져간다. 그래도 그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 「……아아, 너는 상냥하구나. ……그랬어. 언제나, 너만은 시라즈미 리오의 편이었어.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네 덕분이겠지. ……응. 나도 너를 죽이는 일 따윈, 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선배는 나의 발치에 매달려왔다. 실리는 팔의 힘은 아주 강해서, 다리가 부러져버릴 것 같다. 그래도 무섭지는 않다. 왜냐면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은 시라즈미 리오가 안고 있는 절망의 크기인 것이다. 그것을 거부하는 일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시라즈미───선배」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는 나의 코트에 매달린 채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경련은 점점 격해져서, 지금이라도 몸이 둘로 갈라져 버릴 것 같았다. 갑자기───그는, 작은 소리를 냈다. 「나는, 살인자야」 짜내는 듯한, 작은 참회. 「───예에, 그래요」 창 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정상이 아냐」 토해 내버리는 듯한, 작은 자책.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창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어찌할 수 없어」 울기 시작해 버릴 듯한, 작은 고백. 「───살아있는 한, 그런 일은 없어요」 대답해도. 창 밖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우는 것 같은 말. 두서없는 대답. 거기에, 어떠한 구원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최후에. 시라즈미 선배는, 목구멍에서 짜내는 것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구해줘, 코쿠토」 ……그 말의 대답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나는 자신의 무력함을, 이번에야말로 저주하고 싶어질 정도로 뼈저리게 느꼈다. 「쿨────럭」 시라즈미 선배의 소리가 높아진다. 그는 한층 커다란 신음소리를 내고서, 한쪽 팔로 나를 벽 쪽으로 떠밀었다. 쿵, 하고 세게 등을 벽에 부딪친 뒤에, 선배에게 시선을 되돌린다. ───시라즈미 리오는 충혈 된 눈동자를 하고, 그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나를 찾지 마. 다음번에는 죽이게 될 거야」 흐려진 목소리로 말하고서, 그는 책상위로 몸을 내민다. 쨍그랑, 하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선배! 토우코씨가 있는 곳에 가요. 그렇게 하면 분명───」 「분명, 어떻게 된다는 거야? 낫는다는 보증 같은 것도 없고, 돌아간다고 해도 내게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아. 무턱대고 살인의 죄 값을 치를 바에야, 이대로 갈 데까지 가보는 거야. 게다가 나는 료우기 시키가 노리고 있어. 빨리, 그 녀석에게서 도망치지 않으면 안돼서 말야……!」 그는 웃으며 말하고서는, 금색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서둘러 창가 쪽으로 달려갔지만, 눈 아래의 항구에는 선배의 뒷모습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무슨, 바보 같은」 겨우 진정하고,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일로, 무엇이 해결될 리 없다. 시라즈미 리오에게 출구가 없는 것처럼, 코쿠토 미키야에게도 출구 같은 것이 준비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견딜 수 없는 무력감에 입술을 깨물면서, 시키의 잔해에 파묻혀 있는 방을 뒤로했다. 아무런 타개책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해도, 해야만 하는 일은 남아있다. 시키를 찾아내야 하고, 선배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그렇다, 어디에도 구할 방법이 없다고 해도. 시라즈미 리오 자신을 위해서, 이 이상 그가 살인을 범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 살인고찰 / 4 ◇ 8월. 그날부터 한숨도 잘 수 없다. 너무나 무서워서, 밖을 걸어 다니지도 못한다. 태평스레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싫어서, 거울을 보지도 못한다. 나는, 최저의 인간이다. 아무 것도 할 생각이 들지 않고, 아무 것도 먹을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나는 어디하나 상처 입지 않았는데도 엉망진창이 되어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다. 7일째에 깨달았다. 그때에 죽은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정말, 어째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거지.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자신도 함께 죽이는 거라는 단순한 현실을. ◇ 항구에서 자신의 방에 돌아올 무렵,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져있었다. 이틀 만에 돌아온 방에는, 당연히 누구의 모습도 있을 수 없다. 테이블 위에 휑하니 펼쳐져 있는 시내의 지도와, 마시다 만 커피가 남아있는 머그 컵. ……쓸쓸함만이 지배하고 있는 이 공간은, 시키의 모습도 그 흔적도 희박해져 있었다. 「…………」 나도 모르게, 한숨을 흘리고 있다. 그래,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방에 돌아가면, 시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의 침대에서 멋대로 자고 있다, 라는 평범한 일상을. ……작년 11월부터, 시키는 가끔씩, 정말로 갑자기 내 방에 얼굴을 내밀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고 가는 기행(奇行)을 반복하고 있었다. 혹시나 불평을 돌려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진 나는 아키타카씨에게 상담 한 적도 있다. 시키의 해석불능의 행동을 이야기하자, 아키타카씨는 아무 말 없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하는, 역시 돌려 말하는 듯한 대답을 남겨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따스한 나날이었다. 나는, 그것이 쭉 계속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화가 울렸다. 토우코씨에게서 일까. 3일이나 회사를 쉰 것을 심심풀이 삼아, 나를 괴롭히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예, 코쿠토입니다」 마지못해 수화기를 들고 말한다. 그러자, 수화기의 저편에서 숨을 삼키는 듯한 기척이 전해졌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는, 그것이 그녀라고 깨닫고 있었다. 「…………시키?」 「───이, 등신」 긴장된 목소리로, 시키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매도를 퍼부어왔다. 정말로 화가 나서 떨고 있는 듯, 수화기 너머에서도 시키의 감정이 전해져온다. 「어제부터 어디에 가있었어 너는! 밖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잖아, 뉴스를 안 보고──」 있었던 거야, 하고 말을 걸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뉴스 같은 것은 당연히 보고 있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됐어. 무사하다면, 그걸로. 한동안 토우코가 있는 곳에서 묵도록 해. 용건은 그것뿐이야」 ……그걸 전하고 싶어서 시키는 어젯밤부터 이 방에 전화를 걸고 있었던 것 같다. 이쪽의 신변을 걱정해주는 것은 기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역으로 나를 불안하게 한다. 살인귀의 정체는 알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시키가 돌아오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시키. 너,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미키야하고는 관계없어」 「관계있어. 살인귀를 쫓고 있는 거잖아, 시키는」 짧은 침묵 뒤에, 그래, 하고 시키는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차가워서, 수화기 너머에서조차 나는 몸을 떨어버렸다. 살의밖에 없는, 무서운 목소리. 시키는 살인귀를───선배를, 죽일 생각인 것이다. 「안 돼, 시키. 돌아와. 너는───그 사람을 죽여서는 안돼」 「헤에, 시라즈미와 만났구나, 미키야. 흐음, 어떻게 할까. 더욱더 녀석을 용서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걸」 차가웠던 목소리가 일변하며. 그녀는 킥, 하고 웃고 있었다. 「시키!」 「거절이야. 이젠 정말, 이쪽도 참는 것의 한계야. 모처럼의 사냥감을 놓칠 생각은 없어. 그 녀석은 오래간만의 벗어난 상대니까 말야」 벗어난 상대. 작년 여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인을 범했던 아사가미 후지노와,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살인을 범해버린 시라즈미 선배는 똑같다는 건가. ……아아, 똑같다. 이유는 어떻든 간에, 그들은 자신에게서 태어난 충동만으로, 사람을 죽여 버리고 있다. 세상은 그것을 살인귀라고 말하니까. 「……하지만, 그렇지만. 설령 상대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은 인간이라도, 살인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너의 일반론은 신물이 나, 코쿠토. 시라즈미 리오는 이미 정상이 아냐. 그 자식은 너무 죽였어. 그러니까 죽여도 되는 상대라구」 「죽여도 좋은 인간 같은 건 없어」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그 녀석은 이미 손쓰기엔 늦었어. 인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시키는 단호히 말한다. 그녀의 말대로, 시라즈미 리오는 이미 인간이라고 불리는 존재에서 변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그 사람은, 인간인 채로 있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배는 아직 우리들과 똑같잖아. 어쨌든 돌아와. 선배를 죽이면,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대답은 없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뒤에, 짧은, 거절의 말을 남겼다. 「안 돼, 그럴 수 없어」 어째서냐고 되묻는다. 그녀는 아주 잠깐의 망설임 뒤에, 메마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 자식과 같은 살인귀니까」, 라고.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정도로, 그녀의 고백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너는, 아냐. 아무도 죽이지, 않았잖아!」 「우연히, 지금까지는. 하지만 변하지 않았어. 깨달았어, 미키야. 4년 전의 나는 살인이라는 행위에 가까웠어. '시키'가 살인 밖에 모르는 인격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뿐이야. '시키'는 살인밖에 몰랐던 것뿐이고, 살인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어. 잠에서 깨어난 뒤에 금방 깨달았던 거야. '시키'가 없어져서, 시키만 남아버린 나는, '시키'가 없는 데도 살인이라는 행위를 동경하고 있어. 봐, 얼마나 간단해. 결국 말이지, 살인을 하고 싶어 하고 있던 것은 '시키'가 아니라 살아남은 시키 쪽인 거야」 수화기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자기 자신을 저주하는 듯한, 침울한 목소리. 평소대로의 시키의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렇게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안돼. 나는 그쪽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미키야는 기다리지 않아도 돼」 수줍게 웃으며, 시키는 그런 말을 했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잠자코 듣다가, 솔직히, 머리끝까지 화가 나 버렸다. 「저기 말야. 그건 너의 착각이야 시키」 대답은 없다. 나는 상관없이 계속 말했다. 「언젠가 네가 말했잖아. 사람은 일생에 한 사람 분의 죽음밖에 떠맡을 수 없다고. 너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고, 무엇보다………살인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시키'라는 자신을 죽여 왔던 너. '시키'라는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시키라는 가해자이기도 한 너는──그것이 무엇보다 슬픈 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믿고 있었다. 계속, 상처투성이의 애처로운 시키를. 「……너는 아무도 죽이지 않아. 우연히 아무도 죽이고 있지 않은 것뿐이라고? 웃기지마, 그런 우연이 지금까지 계속될 수 있겠어? 너는 자신의 의지로, 항상 참고 있었어. 인간의 기호는 제각각 이잖아. 시키는 단순히 그것이 살인이었던 것뿐이야. 그렇지만, 계속 참아왔어. 그렇다면 이제부터도 참아낼 수 있어. 절대로」 뿌득, 하고 이을 악무는 소리가 났다. 시키는 조용히, 내팽개치는 듯한 과격함을 담아 말했다. 「절대라는 게 뭔데. 내가 알 수 없는 것을, 어째서 네가 알 수 있는 거야」 그런 것,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 「────왜냐면, 너는 상냥하니까」 3년 전에 나를 죽일 수 없었던 너를. ……시키는 아무 것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수화기 너머인 탓에, 나는 그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들의 대화는. 그저 목소리가 들릴 뿐. ────그것도, 이별의 말로 끝나버린다. 「……너는 변하지 않는구나, 코쿠토. 말했지? 난 말야, 너의 그런 점이 정말 싫다고」 그리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는 정기적인 전자음 밖에 발하지 않는다. 마지막 말. 그것은 작년 여름이 끝날 무렵에, 둘이서 비를 맞았을 때와 같은 의미의 말이었다. ◇ 시계는 2월 10일의 오후를 표시하고 있다. 거북해했던 것이, 정말 싫어하는 것으로 격상되어버린 것이 원동력이 된 걸까, 나는 이틀간 제대로 자지 않았다는 것을 잊고서 방을 뒤로했다. / 3 ◇ 8월. 나는, 점점 미쳐가기 시작한다. ◇ ───왜냐면, 너는 상냥하니까. 시시한 말을 기억해내고,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끓어오르는 것은 흉폭한 감정뿐이라, 정말 짜증이 난다. 「…………뭐 저런, 행복한 남자가 다 있지」 뿌득, 하고 이를 깨물며, 나는 그 녀석의 멍청한 얼굴을 머릿속에서 후려갈겼다. 변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 녀석은 4년 전과 변하지 않았다. 료우기 시키라는 살인귀를 믿고, 나에게 바보 같은 웃는 얼굴을 보인다.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고 살해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환상을 품게 만든다. ……그래.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이상자(異常者)가, 양지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환상을. 4년 전, 시키는 그것이 아주 거북했다. 그 기분을, 나는 지금이 되어 겨우 이해했다. ……나는, 미키야를 죽여 버린다. 그러니까 그에게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료우기 시키라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괴로움도 품지 않도록. ……하지만, 그래서는 나도 옛날 그대로다. 미키야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없다. 왜냐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키는 코쿠토 미키야를 이렇게나 방해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코쿠토 미키야와의 전화 이후로 두 시간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시라즈미 리오의 거처에 도착해있었다. 녀석을 추적하는 것은 간단해서,. 단순하게 녀석의 몸에 배어있던 마(麻)의 냄새를 더듬어 왔더니, 그 근원에 다다른 것뿐이었다. 항구에 있는, 배에서 옮겨진 화물을 보관하는 창고. 그 것이 살인귀의 본거지 인 듯 하다. 항구에 인기척은 없다. 밤 9시를 넘긴 창고가(倉庫街)에 접근할 괴짜는 없을 테고, 이곳에 살고 있는 인간도 없으니까. 항구에 있는 것은 어두운 바다의 반짝임과, 키 큰 가로등의 불빛 뿐. ────확실히 이곳이라면.     무엇을 해도, 방해받을 염려는 없다. 나는 나이프를 왼손에, 투척용 단도를 오른손에 들고 목적인 창고로 걸어간다. 학교의 체육관 정도나 되는 그것은, 창고라고 하기보다는 무언가의 공장 같다. 높이는 8미터 정도로, 의외로 창문이 벽 전체에 나있었다. 창은 7미터 정도의 높이에 있어서 안의 상황은 엿볼 수 없지만, 저렇다면 해가 떠있을 동안은 틀림없이 밝겠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철의 벽에 둘러싸인 비닐하우스라고나 할까. 창문으로 들어갈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창고의 입구, 커다랗고 붉게 녹슨 철문은, 약간 열려 있었다. 함정치고는, 별 생각 없이 만들어진 구조. 어처구니가 없어서 문틈으로 창고 안에 들어간다. ────그러자. 그곳은, 살풍경한 항구의 경치에서 일변한, 아주 이상한 풍경이었다. 천창(天窓) 같은 창문으로부터, 달빛이 비쳐들고 있다. ……이곳은, 마치 밀림 같았다. 5미터정도 되는 풀이 창고 안에 가득히 심어져있다. 지면의 대부분은 흙으로, 길 같은 부분만 콘크리트로 포장되어있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열대림. 그것이 이 창고의 정체였다. 「────」 꿈틀하고 오른손의 단도가 반응한다. 녀석은 그 밀림 속에 숨어서, 내 모습을 엿보고 있었다. ……이쪽도 그런 식으로 같이 엿보아 줄까하고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코쿠토 미키야와의 대화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나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느긋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대로, 무성한 풀을 헤치며 사냥감에게로 달려들었다. 「───!」 깜짝 놀라며 녀석은 도망친다. 하지만 늦다. 도망치는 등 뒤를 따라잡아서, 왼손의 나이프를 내리 휘두른다. 직전에, 녀석은 뛰어올랐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벽을 향한 도약. ……분명, 사람인 나는 새나 거미처럼 입체적인 움직임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재주는 이미 보기 질렸다. 오른손의 단도를 벽에 달라 붙어있던 적에게로 던져서, 바닥에 떨어뜨린다. 나는 바닥에 쳐 박힌 녀석의 몸에 달려들어 말을 타 듯 걸터앉았다. 「───뭣」 녀석───시라즈미 리오는, 나를 올려다본다. 어젯밤의 일전으로 전력은 호각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지금의 일방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말조차 잃고 있었다. 나처럼 꾸민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이프를 내리치려는, 나를 바라본다. 그것은 어젯밤의 살인귀가 아니라, 미키야의 말대로 정말로 해 없는 단순한 "인간"이었다. 「기, 기다려, 줘」 사냥감은 자신도 의미를 모르면서, 그런 목숨의 구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말에 흥미는 없다. 나는 그대로 나이프를 내리 찌른다. 언젠가와, 뭔가, 비슷했다. 「────에?」 놀라는 목소리는 나와, 녀석의 것이었다. 나는───녀석의 목덜미까지 육박한 나이프를 딱 멈춰버리고 있었다. 「뭣…………」 영문도 모르고, 나는 왼손에 힘을 넣는다. 놓치지 않는다. 나는 이 녀석을 죽이고, 실인귀가 되는 거다. 그렇게 하면────분명, 나는 혼자서도 해나갈 수 있다. 돌아갈 수 없게 되어도, 아무 것도 아파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는 데도. 나의 왼손은 아무리 애를 써도, 시라즈미 리오를 죽여주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겠어” 그런 말이, 뇌리에 울려 퍼진다. 사냥감은 뱀처럼, 나에게서 도망쳐 버렸다. 하지만 그 등은 허점투성이였다. 녀석의 몸에 있는 죽음의 선도 확실히 보이고 있다. 남은 것은 언제나처럼, 이 왼손을 휘두를 뿐. “───너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렸다. 마치 광대 같다. 계속 갈망하고 있던 살인인데도, 나는 최후의 선을 넘을 수 없다. 그 남자의, 아무 것도 아닌 말 때문에. 「그건, 별 것도 아닌데……!」 그렇다, 그런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일이다. 누구에게 용서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세계 속의 인간 전부에게 용서받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 자식, 탓이야」 아픔과도 닮은 증오가, 그런 말을 하게 한다. 도망친 사냥감이 비웃는다. 아까 까지 죽음을 겁내고 있던 사냥감은, 나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어젯밤의 살인귀로 돌아가 있는 듯 했다. 어떻게 됐든, 시라즈미 리오를 죽일 수 없는 나는, 살인귀로 돌아온 그것을 쓰러뜨리지도, 그것에게서 도망치지도 못했다. / 4 ◇ 8월. 아라야씨가 말한 대로다. 나는 옳다. 미쳐있다면, 사람을 죽여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 ……비가, 내리고 있다. 쏴아쏴아하고 멈추지 않는 빗소리가 시끄러워서, 나는 감겨있던 눈을 떴다. 「……뭐야, 아직 살아있어」 잠에서 깨어나서,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는 채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풀이 우거져있다. 나보다 두 배 이상, 키가 큰 식물. 높은 창에서 비쳐 들어온 햇빛은, 비 때문에 잿빛이었다. 그래도 벽 전체에 둘러쳐져 있는 창문으로부터의 빛은 강해서, 이곳이 건물 안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밝다. 어느 사이엔가, 바깥은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잿빛으로 그을린 식물원. 그곳에 나는 쓰러져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시라즈미 리오에게 당한 듯 하다.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고, 온몸이 멍해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의식도 몽롱해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수갑이 채워진 채로, 딱딱한 콘크리트 위에 자고 있다. 눈은 떠져있지만, 나는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이곳은, 춥다. 들려오는 것은 빗소리뿐. 창유리를 적셔가는 차가운 겨울비를, 나는 의미도 없이 바라보고 있다. 맞은 약 때문일까. 나의 의식은 현재가 아니라, 3년 전의, 먼 옛날을 바라보고 있었다. …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날 밤은 추워서, 뼈까지 부서져버릴 것 같았고. 시키는 우산도 쓰지 않고, 코쿠토 미키야를 뒤쫓았다. 쏟아지는 폭우 속을, 가로등만을 의지해서 달려간다. 젖은 아스팔트는 빛을 반사시켜서, 그 녀석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시키는 곧 따라잡았다. 아까는 정체 모를 남자가 방해했지만, 이번에는 도와줄 사람 따위는 없다. 시키는 멈춰서있는 미키야에게 나이프를 휘둘렀다. 빗물을 강처럼 흘러가게 하는 노면에, 소년의 피가 섞여간다. ……하지만, 나이프는 스친 것뿐이었다. 어째서, 하고 숨을 삼키는 시키와, 달려나가는 미키야. 시키는 곧 그것을 따라잡아서,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런 술래잡기가 반복되었다. 이상하게도. 소년은 한동안 달리는 것을 멈추고, 계속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빗속에서, 시키는 도무지 미키야를 죽일 수 없다. 「어째서────!」 울부짖으며, 나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저 녀석은 또 멀리서 발을 멈추고, 비를 맞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가슴이 아파온다. 「……코쿠토와 있으면 괴로운데. 나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보여주니까, 나는 이렇게나 불안정해져버려. 그래서───죽이지 않으면 안돼. 없애버리면, 더 이상 꿈꾸는 일도 없어. 이런 아프기만 한 꿈도 없애버리고, 이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린애가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소리치지만, 울고 싶어질 정도의 슬픈 기분은, 더욱 강해져갈 뿐이었다. 내리 퍼붓는 빗속, 시키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키야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그녀와 마주본다. ……아무 말도 걸지 않는 미키야. 서투른 미키야. 하지만, 멈춰 서서 나를 기다려주는 소년. 그곳에서, 시키는 '시키'의 의지를 알아버렸다. ……확실히 미키야를 죽이면 그런 괴로움에 사로잡히는 일도 없어져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그 대신에, 이젠 그런 꿈조차 꿀 수 없게 되어버린다, 라고. 꿈을 꾸는 것은 괴롭지만. 꿈을 꾸지 않는다, 라는 건 얼마나 감정이 없는 일일까?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미키야를 죽이는 걸 저지한 것은 그 검은 남자도 시키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꿈을 꾸는 것을 좋아했던, 그것밖에 할 수 없었던 '시키'가, 미키야라는 꿈의 형상을 부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설령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아무리 아프고 괴로운 것이라도. 꿈이라는 것은 그것만으로 소중한, 살아가는 목적이니까. ────그러니까, 없앨 수 없다. 저 녀석을 없애면, 나는 더욱 괴로워진다. 하지만 이런 감정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다. 그렇다면──── 시키는 걸어서 미키야를 향해 다가간다. 소녀는 소년에게서 조금 떨어진 횡단보도 위에서, 발을 멈추었다. 시계(視界)를 가린 빗 속. 멀리서 자동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최후에, 시키는 웃었다. ……그래, 대답은 간단하다. 「널 없앨 수 없다면───내가, 사라질 수밖에 없어」 시키는, 미소지으며 그런 말을 남겼다. 부드러운, 행복한 듯한, 허무한 미소였다. 다음 순간, 다가온 차는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를 울리며, 그녀의 몸을 날려버렸다. … 그것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3년 전 그날의 기억이었다. 그때. 진짜로 죽어버린 건, 내 쪽이었다. 이렇게 눈을 떠서 료우기 시키로 존재하는 건, 자고 있던 '시키'쪽이었다. 하지만 '시키'는 날 대신해서, 그때 죽어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그 자신의 꿈을 지킬 수 없었으니까. '시키' 만이 이 몸에 남아버리면, 그는 무차별로 살인을 반복하겠지. ……그 자신이 꿈꾸고 있었던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시키'가 아니라 시키였으니까. ───시키의 이면이라는 위치에 있는 '시키'는, 언제나 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근원의 인격에서 나뉘어 진 우리들. 그렇지만 육체의 주도권을 가진, 료우기 시키라 이름 붙여진 인격은 시키인 나뿐이었다. 시키로서 내가 있는 이상, 그 동안의 '시키'는 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언제나 자고 있던 그. 시키의 억압된 원망(願望)을 품은 그는, 타인을 부정하고, 상처 입히고, 죽이려고 하는 방향성에 속박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가 태어난 이유이니까, '시키'는 살인귀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 '시키'가 인격으로서 료우기 시키의 육체에 나타난다는 것은, 그때 관계하고 있는 상대에게 살의를 가지고 있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시키'에게도 지금의 나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함께 성장해온 우리들은, 동경하는 것조차 같았으니까. 시키……긍정의 마음인 나는, 그 흉내정도는 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키'는 그런 일 조차 할 수 없다. 그래도, 아무리 타인이 싫어도, 언젠가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시키'는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겐 이룰 수 없는 소망이다. 그래서───그가 꾸는 꿈은 시키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꿈이었다. 꿈꾸는 것을 좋아했던 '시키'. 꿈속에서밖에 소망을 이룰 수 없었던 '시키'.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시키의 소원이기도 했고. 우리들은, 현실에서 그 꿈과 만나버렸다.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그의 꿈.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소망. '시키'가 좋아했던 그 클래스메이트. 시키는 그 클래스메이트와 있으면, 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지만 '시키'가 있는 한, 언젠가 나는 클래스메이트를 죽여 버리게 되겠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꿈을 부숴 버린다. '시키'는 그것이 싫어서, 코쿠토 미키야라는 꿈의 형상을 부수고 싶지 않아서, 시키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단 한가지의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겨우 손에 넣은 그의 행복. 그것을, 계속 꿈꾸고 있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그러니까 하다못해, 그 녀석은 '시키'를 기억하게 하고 싶어. ……지금의 나는, '시키'가 꾸는 꿈이니까」 그래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키'의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고 있는 나를, 주위의 모두가 '시키'로 보게 하도록. ……비는 그치지 않는다. 나의 의식은 아직 몽롱하다. 흔들 하고 눈앞이 흔들리며, 저항할 수 없는 졸음이 덮쳐온다. 그 전에, 조금만. 나는 '시키'라고 하는 또 한 명의 자신의, 마지막 마음을 기억해내고, 잊기로 했다. ───고마워. 너를 죽이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어. ……조금, 슬프다. 죽이는 것으로밖에 누군가와 관계할 수 없었던 '시키'는, 그 말을 전하고 싶은 상대에게 전할 수조차 없었다. 살인고찰 / 5 ◇ ……그래도, 나는 안심 할 수 없다. 혼자는 너무 불안하다. 나는, 나와 같은 광인(狂人) 동료가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 2월 11일, 목요일.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속, 나는 토우코씨의 사무소에 얼굴을 내밀었다. 사무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항구에 가기 전에 토우코씨에게 상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시라즈미 리오에 대해 이야기하자, 토우코씨는 시시하다는 듯한 얼굴로 흐응, 하고 맞장구를 칠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장님?」 시키도 선배도 자신은 관계없다, 라는 태도에 발끈해서 노려보자, 토우코씨는 안경을 벗으면서 이쪽을 노려본다.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기원을 깨운 지 4년이나 되었다면, 시라즈미 리오는 방법이 없어. 이미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어있겠지」 말하면서, 토우코씨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대로 한쪽 손으로 뺨을 누르면서, 흠,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기원각성자(起源覺醒者)라니. 아라야 자식도 귀찮은 선물을 남겨줬군. 보통사람에게 그걸 행하면 반드시 인격이 붕괴해. 시라즈미 리오의 양면성(兩面性)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겠지」 「소장님, 그, 기원이라는 건 뭔가요? 선배는 본능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것이 인간의 의지를 엷어지게 한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겸사겸사 그 의문을 말하자, 토우코씨는 그렇지, 하며 끄덕이면서 담배를 손가락으로 옮겼다. 「어차피 한 개인의 심층의식이 육체 그 자체를 변혁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어. 아오자키 토우코든, 코쿠토 미키야든, 고작 20년 정도의 세월동안 길러진 의식은 말야, 육체라고 하는, 보다 강고한 자신에게는 대항할 수 없는 거야. 인격을 담당하는 것이 뇌수(腦髓)라면, 개인을 표현하는 것은 육체야. 인간은 뇌만 있으면 육체는 필요 없다고 하는, 최근에 유행하는 이야기는 말이지, 결국 스스로 인격이라는 것을 업신여기고 있는 거야. 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나」 ……아무래도, 지금 얘기는 탈선했던 것 같다. 토우코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고 나서, 또 이상한 것을 물어왔다. 「코쿠토. 너는 전세(前世)라는 것을 믿냐?」 「……전세란, 그,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는 동물이었다던가, 하는 얘기 말인가요? ……글쎄요, 저는 애매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부정은 하지 않지만, 긍정도 하지 않아요」 「코쿠토다운 대답이군, 정말로. 하지만 뭐어, 여기서는 있다고 가정해. ……과학적으로 봐도 전생론(轉生論)은 있어. 모든 분자는 유전되잖아? 정신이나 혼, 생명이라고 하는 관념을 제거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있어. ……기원이라는 것은, 그 무질서한 법칙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술이야. 마술사 중에는 말이지, 전세의 인격을 자신에게 빙의 시켜서 그 능력을 행사하는 놈도 있어.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자신의 능력을, 시대를 초월해서 계승하려는 실험이야. 기원이라는 것은, 그것보다 더욱더 위의 것을 지향해. 전세가 있다면, 그 전세의 전세가 있는 것이 도리잖아? 전세가 인간이 아니고, 그 전세의 전세는 물체도 아닌데, 면면히 이어지는 존재의 끈. 너라고 하는 혼의 원점. 너라고 하는 존재가 시작한(만들어진) 장소는 분명히 있어. 하지만 그 장소에는 생명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존재하는 건 어떠한 시작의 원인, 그 일을 결정짓는 어떠한 방향성뿐이야. 모든 것의 근원인 소용돌이 속에서, 번쩍이는 섬광처럼 발생하는 무언가의 방향성. "……을 한다" 라는 의미가 부여된 것이 흘러나와서, 그 흐름에 맞는 물질을 본떠 만들고, 시간이 흘러 그것은 인간이 돼. 시작의 원인으로 발생한 어떤 존재의 방향성이라고나 할까. 근원의 소용돌이라고 하는 혼돈에서 발생한 "……을 한다" , "……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충동. 결국, 모든 형체 있는 것이 그렇게 존재하도록 구성되어있는 절대명령. 이 혼돈충동을, 마술사들은 기원이라고 불러. 뭐어, 단순하게 말하면 본능이라고 하게 되겠네. 봐, 예를 들면 어린아이에게밖에 욕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있잖아? 원인은 유아체험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릴 적에 체험한 것 정도로 성인의 의식에 변혁은 일어나지 않아. 그건 말야,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거야. 혼에는 기원이라고 하는 주형(鑄型)이 있어. 우리들은 알고 있어도, 존재의 원인이 되는 방향성에 거스르는 것만은 불가능 하다구」 뭔가 마지막에 엄청난 폭론을 말하고, 토우코씨는 말을 끊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행동도, 욕망에 견디지 못하고 해버리고 만다. 인간에도, 식물에도, 광물에도, 그 방향성이란 것이 정해져있어서, 결국 그것에 묶여서 살아가고 있다고 토우코씨는 말했다. 「뭐어 보통은 결코 자각할 수 없는 거야. 다만 그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기원에 가까운 인간도 있어. 초능력자하고 마찬가지라서 말야, 그런 녀석들일수록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똑같이 사회에서 벗어나기 쉬워. 덧붙여 말하면, 죽음을 구하는 시키의 기원은 허무(虛無)고, 규율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아자카는 금기(禁忌)라고나 할까. 시키는 너무 가까워서 그 충동에 끌려가고 있지만, 아자카는 언제나 정상이잖아? 기원은 어디까지나 원인이고, 개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어떤 사고로 인해서 그것을 자각하지 않는 한은」 토우코씨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이쪽을 응시한다. 그녀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즉, 자각하면 그 방향에 져버린다는 거군요?」 「그거야. 존재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기원이라는 방향성에, 시라즈미 리오라는 17년도 안 되는 방향성은 대항할 수 없어. 그는 스스로의 충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어. 먹는다, 라는 건 아주 특이한 방향성(충동)이지만 말야. 아라야가 눈여겨 본 것도 납득이 가는군. 알겠어? 미키야. 먹는다는 기원을 가졌다면, 시라즈미 리오의 전세는 모조리 포식 하는 쪽의 생물이었던 것일 거야. 기원을 각성한 자는 축적해온 전세를 손에 넣을 수 있어. 시라즈미 리오는, 한 인간이 아닌 여러 마리의 짐승으로 보는 편이 좋아. 시라즈미 리오라고 하는 인격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괜찮겠지만, 그것이 사라져버리면 정말로 "야수의 군체(群體)"로 변모 한다구」 그건 그것대로 흥미가 깊지만, 하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토우코씨는 비꼬듯 웃었다. 이 사람의 냉혹함은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의 나는 그걸 잠자코 보고 있을 수 없다. 「───원인은 그렇게 해버린 마술사겠죠. 선배가 혼자였다면, 이런 일은───」 「과연 그럴까. 기원을 각성시키는 술법은 말야, 술자(術者)만으로는 불가능해. 기원을 가진 자가 자각해야, 비로소 그것을 불러 깨울 수 있어. 술자와 피험자가 합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비술이라구, 기원각성은. 시라즈미 리오는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선택한거야. 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짐승이 되어서, 스스로의 의지로 사람을 죽이고 있어. 빼앗아버린 생명은 되돌릴 수 없어. 설령 시라즈미 리오를 되돌렸다고 해도 손쓰기에는 늦었어. 시라즈미 리오 본인은 자기가 자신을 억누를 수 없다고 말했지만 말야, 그런 일은 없어. ……아무래도 너는 시라즈미 리오 편을 들고 있는 것 같으니까 충고해 두지. 알겠어? 기원각성자는 분명히 자신의 인격을 잃어버려. 그러나 그것이 둘로 나뉘어 지는 일은 없어. 시라즈미 리오라고 하는 의지가 남아있다면, 남아있는 동안에는 충동을 억누를 수 있어. 인격은 이중인격처럼 스위치 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의지로 사람을 먹고 있는 거라구, 코쿠토. 때문에, 그것을 네가 알고있는 시라즈미 리오라고 동일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야. 시라즈미 리오는 널 속여서, 동정을 사고 있을 뿐이야」 목숨이 위험한 장난을 한 학생을 꾸짖는 것처럼, 토우코씨는 엄한 눈동자를 한다. 좀처럼 다른 사람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만큼, 나는 마술사……토우코씨에 대한 독기가 조금 빠져버렸다.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을 하는 나를 보고, 토우코씨는 의외라는 듯 얼굴을 찡그린다. 「……놀라지 않는 거냐 코쿠토? 시라즈미 리오는 충동에 져서 사람을 먹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 거야, 나는」 「에……? 아뇨, 쇼크에요, 네」 담담한 어조로 대답하자, 토우코씨는 재미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토우코씨도 시라즈미 선배를 구할 수 없는 거군요?」 「그런 거지 뭐. 그건 혼이라는 형체를 추구해서 근원에 다다르려고 했던 남자가 얻은, 극한의 기술이야. 나의 전문은 육체 쪽이라, 혼에 관해서는 두 손 들었어」 「……그런가요. 그렇지만 선배의 인격이 남아있는 지금이라면, 뭔가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뭐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정도라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런 일에 의미는 없다구. 지금까지 시라즈미 리오로 있을 수 있다는 것 쪽이 기적이야. 내일이라도 바뀌어버릴지도 모르는데다가……이미 옛날에, 그건 인간인 것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런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은 구해달라고 말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라즈미 리오가 아닌 인격이 되어있어도, 도와달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니까──. 「……정말이지. 너는 알기 쉽구나, 코쿠토. 뭐어, 말리지는 않겠지만 말야 상대는 살인귀라구. 그런 건 시키에게 맡겨두면 될텐데. 4년 전 사건의 결판을 내기 위해서 살인귀를 쫓고 있는 거잖아, 시키는」 그런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4년 전 사건의 결판을 낸다. 그렇게 말하면 듣기는 좋지만, 그녀의 상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한번, 시키를 눈앞에서 잃었다. 그 때의 시키와 어젯밤 전화해온 시키가 비슷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4년 전과 다르지 않다. 살인귀가 나타나고, 시키는 자신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정말로 그쪽으로 기울어지려 한다. ……대체 그녀는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까? 「토우코씨,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참지 못하고, 그런 질문을 했다. 토우코씨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면서, 한 가지 대답을 했다. 「상대에게 품은 감정이, 자기의 용량을 넘어버렸을 때겠지. 자신이 감당해낼 수 있는 감정의 양은 정해져있어. 들어가는 그릇이 큰 인간이 있는가하면, 극단적으로 작은 인간도 있지. 연애든 증오든, 그 감정이 자기의 그릇에서 흘러 넘쳐 버리면, 그 만큼이 고통으로 바뀌는 거야. 그렇게 되면 상대의 존재 자체를 견딜 수 없게 되지. 견딜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떤 수단으로 없애버릴 수밖에 없어. 그것을 망각하거나, 그것에서 떨어지거나, 어쨌든 자신의 안에서 멀리하지. 그 수단이 극단적이 되면 살인이라는 행위가 되는 거야. 자신을 지기키 위해서니까, 도덕은 사라지고 임시방편의 정당성도 손에 넣을 수 있어」 ……자신으로서는 어찌 할 수 없게 된 미움. 그것을 위한 복수가 아니라, 그 감정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위가 살인……? 즉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살의(殺意)로 모습을 바꾸었다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살인이 아냐. 살육(殺戮)이야. 사람이 서로의 존엄과 과거를 저울에 달아서 어느 쪽인가를 소거한 상황에 한해서, 그건 살인이 돼. 사람을 죽였다는 의미도 죄도 떠맡는 거야. 하지만 살육은 달라. 살해된 쪽은 사람이지만, 죽인 쪽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없어. 남아있는 의미도 죄도 없어. 사고는, 죄 그 자체를 떠맡지 않으면 안 되잖아?」 ……사람을 죽인 다는 것은. 자기 자신도 죽인다는 것. 「그럼, 살인귀란 뭔가요」 「글자 그대로잖아. 사람을 죽이는 귀신이니까, 그런 건 자연재해와 마찬가지야. 말려들은 쪽이 재수가 없는 거지」 ……그것과 같은 의미의 대사를, 시키는 분명히 말했었다. 시키와 헤어지게 된 열흘전의 밤. 뉴스를 보고서, 시키는 살인귀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인간은 일생이 한사람밖에 죽일 수 없다고. 나는 말했다. 사람은 일생에 한 명분의 죽음밖에 등에 질 수 없지 않느냐고. 「기억───났다」 ……그래, 두 말의 의미는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예전에 그녀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시키의 할아버지의 유언이니까. 시키는 그것을 계속 지키며 소중히 해왔으면서도,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다. 나와 살인귀가, 그녀를 그곳에 몰아 넣어버린 것이다. 시키가 나에게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괴롭혀서, 시키는 나를 죽일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살인의 아픔을 알고 있는 시키는 아무도 죽일 수 없다. 그렇다면───아무런 아픔도 의미도 떠맡지 않는 "살인귀"가 되어버리면 된다고, 그녀는 생각한 것일까. 그리고, 그녀의 주위에는 그 살인귀가 설쳐대고 있었다. 살인귀는 살인귀로서───료우기 시키를 동료로 만들고 싶었으니까. 「───실례 했습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토우코씨는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린다. 「뭐야, 벌써 끝이냐. 밖에는 비가 오고 있다구. 좀 더 천천히 쉬다가 가도 괜찮아」 「네. 하지만, 가야해요」 인사를 하고 걷기 시작한다. 서둘러 움직이는 등이, 내일 또 봐, 하는 작별인사를 듣고 있었다. / 5 … 그리운, 꿈을 꿨다. “사람은, 일생에 반드시 한번은 사람을 죽인단다” 그런, 거야? “그렇단다. 자기 자신을 최후에 죽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단 한번, 그 권리가 있단다” 자신을, 위해? “그렇고 말고. 사람은, 한 명 몫밖에 인생의 가치를 감당할 수 없단다. 그래서 모두, 최후까지 다다르지 못한 인생을 용서해줄 수 있도록, 죽음을 존중하는 거란다. 생명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니까. 자신의 목숨이라고 해서, 자신의 것은 아니란다” 그럼,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안 되겠지. 벌써 몇 명이나 죽여 버렸어. 죽여 버렸던 그들의 죽음을 떠맡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은 떠맡을 수 없어. 할아버지의 죽음은, 아무도 맡아주지 않은 채로, 텅 비어버린 곳으로 간단다. 그건, 아주 슬픈 일이야” 한번밖에, 안되는 거야? “아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한번 뿐이란다. 그 다음부터는 이미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린단다. 누군가를 죽여서 그걸 다 써버린 사람은, 영원히, 자신을 죽여줄 수가 없어. 인간으로서 죽을 수가 없는 거야” ……할아버지, 아파? “오냐, 이걸로 이별이다. 잘 있거라, 시키. 하다못해 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할아, 버지? 저기, 할아버지, 왜 그래?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죽은 거야? 저기, 할아버지───. … 찰팍, 하는 소리가 났다. 밖에 내리퍼붓는 빗소리와는 다른,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기분 나쁜 소리. 나는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뜬다. 그곳은 풀이 우거진 창고 안으로, 나는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콘크리트 위에 내팽개쳐져있다. ……상황은, 아까와 조금밖에 달라져있지 않다. 몸의 나른함은 엷어지기 시작했고, 눈앞에는 나처럼 꾸민 남자가 있었다. 시라즈미───리오. 드러누운 채로, 나는 그 상대를 확인한다. 그것은, 입가에 추악한 웃음을 띄우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눈을 뜨다니, 성질 급한 공주님인걸」 그렇게 말하며 시라즈미는 쭈그려 앉는다. 그 손에는 주사기가 있었다. 「네게는 약으로는 약했던 것 같아. 처음부터, 이걸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을」 시라즈미 리오는 나의 팔을 잡아당기고, 주사침을 찔렀다. 약으로 마비되어있는 나에게는, 그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전신에 힘이 안 들어가고, 양팔이 묶여있는 나는, 그저 이 남자를 노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좋은데, 그 눈빛. 역시 료우기 시키는 그러지 않으면 안돼. 뭐, 지금 것은 단순한 근육이완제란 거야. 조금만 더, 네가 얌전하게 있어줬으면 해서」 시라즈미 리오는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나의 몸을 핥듯이 관찰한다. 나는 그저, 창 밖의 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길었어, 이 3년간. 계속 기다렸던 나의 마음을, 네가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것이 무언가 말했다. 그런데도 나는, 시라즈미 리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상대도 그것을 알고서 혼잣말 같은 것을 계속해 간다. 「……아라야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실패작이었던 것 같아. 너무 정 반대다, 하는 엉뚱한 소리를 지껄였어. 나와 네가, 어째서 정반대라는 거야. 안 그래? 료우기. 우리들은 이렇게나 서로 닮았어. 자신이 세상에서 벗어나 버렸다는 것은 알고 있지? 그렇다면 우린 둘 다 미쳐있는 사람들이야.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 돼」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정말로. 무시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료우기 시키는 완전히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하잘 것 없는 독백을 계속한다. 「……네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부터, 나는 사용보류 상태였어. 너를 부수는 것은 예정되어있던 두 사람에게 시킬 테니까, 나는 방해되지 않도록 얌전히 있으라고 하더라구……사람을 이용해먹고서, 못쓰게 되니까 내팽겨 쳐버려. 화가 나잖아? 하지만 나는 아라야한테는 맞설 수 없어. 말하는 대로 너에게서 멀리 떨어져있을 수밖에 없었지. 저기, 그러니까 그렇게 삐져 있지 마. 일부러 잊고 있던 것이 아니라구. ……하지만 말야, 나는 알고 있었어. 아라야는 료우기 시키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없어. 너를 완성시킬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광인인 나뿐이야. ……아아, 나는 분명 이 날이 올 거라고, 알고 있었어」 그것이 나에게 다가온다. 개처럼 손발을 바닥에 짚고서, 그것을 료우기 시키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할짝, 하는 소리가 났다. 끈적이는 소리, 축축한 감각. 까슬까슬한 혀가, 복사뼈에서 기어 올라오는───감각에, 몸이 떨리려고 한다. 「───」 소리 같은 건, 낼 수 없다. 잿빛 창고에 울리는 것은 그것의 격한 숨결뿐이었다. 내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감각만이 예민해져있다. 열대야 속에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땀을 흘렸다. 몸은 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전신이 땀에 녹아간다. 「───」 발치의, 기모노 옷깃이 갈가리 찢겨진다. 시라즈미 리오라고 하는 그것은, 뜨거운 숨을 토하며, 그저 이 행위에 빠져있다. 타액 투성이의 혀가, 무릎부터 천천히 올라온다. 넓적다리에서 안쪽으로 미끄러지며, 열심히 구석구석 핥아간다. 끈적이는 소리는 집요하게 반복되었다. 물엿 같은 땀이, 피부에 달라붙어서 기분 나쁘다. 「───」 ……소리를, 죽인다. 나의 피부를 핥아 가는 악당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둔한 움직임으로, 다리부터 허리까지 올라온다. 혀는 기모노의 옷깃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천 위로 기어갔다. 스르륵, 할짝. 끈적이는 소리는, 그저, 불쾌하다. 끝없이 흘러 떨어지는 타액은, 옷 위에서도 피부를 적셔간다. ……수갑에 묶인 양손이 아프다. 짐승의 혀는 나의 가슴의 형태를 열심히 더듬다가, 목덜미까지 도달했다. 뺨에서 눈까지를, 살짝 핥는다. 하아하아 하는 숨결이, 눈앞에서 반복된다. 타액 투성이가 된 내 몸과, 짐승 같은 그것의 숨결이 코를 찔러서, 구역질이 나려고 한다. 「───미친 개」 그저, 그렇게 매도했다. 그것은 기쁜 듯이 웃고는, 나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아───」 약에 의해 예민해진 감각은, 격했다. 뇌수에 칼날이 침입한 것 같은 예리함에 신음소리를 흘린다. 그걸로 만족한 걸까, 시라즈미 리오는 입을 떼었다. 목덜미에는 짐승의 이빨자국. 매끄럽게 목덜미에서 흘러내리는 피의 감각조차, 음란했다. 「……아직이야. 아직, 먹어서는 안돼. 너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것은 일어선다. 「시라즈미 리오는,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소중히 다루는 거야. ……먹는 것이 나의 기원이었어. 그 충동이 일어나면, 나는 닥치는 대로 주위의 인간을 먹었지. 히지만 그걸로 사라졌어야 할 시라즈미 리오는 여기에 있어. 나는 충동 따위에 지지 않아. 너라고 하는 동료가 있으니까, 나는 시라즈미 리오를 인정할 수 있었어」 스스로의 욕망에서 도망치듯이, 시라즈미 리오는 나에게서 떨어져간다. 「……그런데도! 너는 어젯밤에 나를 죽일 수 없었어. 결국 말야, 아직 한 명도 만족스럽게 죽일 수 없어. 아라야같이 인간이 아닌 상대를 죽여도 소용없어. 너는 나 이상의 살인귀이면서, 어째서───단 한번도, 인간을 죽이지 않은 거야!」 격한 호흡도 그대로인 채, 시라즈미 리오는 누워있는 나를 바라본다. 「그래선 곤란해……나는 동료가 없으면 안돼. 안심할 수 없어. 언제나, 불안했어! 네가……너만이 나의 동료라고 생각 했었는데, 지독한 배신이야. 이대로 라면, 시라즈미 리오는 기원에 먹혀버리잖아!」 ……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인가. 시라즈미 리오라고 자칭하는 그것은,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풀숲 속으로 사라져간다. 「……기다려줘. 곧───너를 얽어매고 있는 원인을 없애줄 테니까」 그런 중얼거림만이 들렸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리해도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생각할 수 없었다. ……분명, 이건 약 때문이다. 내 머리는 멍하니, 종잡을 수 없는 생각만 하고 있다. 창유리에 튀는 빗방울의 횟수라던가, 내일 자신이 어떻게 되어있을까 하는, 의미 없는 것을. 대체, 나는 어째서 살인귀를 찾으려고 했던 걸까? 많은 일이 있어서, 제일 첫 번째 이유를 잊어버렸다. 나는───분명히. 분명히, 안심하고 싶어서, 밖으로 뛰쳐나갔었던가. 재래한 살인사건. 4년 전의 기억이 애매한 나. ……다시, 그 녀석을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런가. 살인귀가 정말로 있다면, 나는 살인귀가 아닌 걸」 그렇게 중얼거리자, 눈물이 나오려 했다. 나는, 돌아가고 싶어서. 눈을 뜨고 나서 반 년 간, 그 녀석과 지냈던 생활 속에 있고 싶어서. 나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어서, 살인귀라는 상대와 결판을 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놓쳐버렸다. 계속 뒷골목 안에 숨어서, 살인귀를 쫓던 중, 자신 안에 있는 살인충동을 인정해버렸던 거다. 그렇게 해서 자신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시라즈미 리오를 쫓다가, 이렇게 묶여있다. 이전의 나라면───3년 전의 시키라면, 살인귀가 재래했다 해도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 …………나는, 약해졌다. 혼자 드러누워서, 시라즈미 리오의 타액 투성이가 된 몸을 혐오한다. 밖에는 비. 나는 아주 어리석고 추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말로 용서할 수 없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애가 타서, 이 원인이 있다면 뭐라고 한마디 내뱉어주고 싶었다. 왜냐면, 나는 별로 잘못한 것이 없다. 나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그 녀석에게 있으니까. ……그래. 전부 그 녀석 탓이다. 그 녀석 때문에 이렇게 됐다. 그 녀석이 있어서 약해졌다. 그 녀석이 없었으면 나는 이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없으면, 나는, 살아갈 수가 없다───. 「……정말로, 바보 같아」 약의 효과로, 머리는 계속 멍한 상태. 숨 막힐 정도로 더워서, 땀은 눈물처럼 흐르고 있다. 이런 모습, 누군가가 본다면 부끄러워서 죽어 버릴 거다. ……그러니까, 빨리 가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이런 곳에 이런 짓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곳은, 내가 있고 싶었던 장소가 아니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자신의 집, 내가 돌아가야만 하는 그 장소로.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각한 내가 마음속에 그린 것은 료우기가의 저택이 아닌, 코쿠토 미키야가 기다리는 이렇다 할 것 없이 평범한 아파트였다───. 살인고찰 / 6 ───최후에. 나는, 그 창고에 다다랐다. 토우코씨의 사무소를 나오고 나서 두 시간 후, 항구에 있는 무인 창고에. 그곳이 시라즈미 선배의 진짜 은신처이며, 약을 숨기고 있는 장소라는 것은, 토우코씨의 사무소에 가기 전에 조사가 끝나있었다. 빗속, 창고 중에서도 제일 커다란 그곳으로 다가간다. 창고의 정면에 있는 문은, 닫혀있어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자기보다 몇 배나 커다란 철문을 드라이버로 열 수 있을 리도 없어서, 나는 창고의 뒤편으로 빙 돌아가 보았다. ……창고의 벽은, 빈틈없이 유리창이 설치되어있다.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공교롭게도 창문이 있는 곳은 지상에서 5미터 정도의 위치다. 사다리가 없으면 손도 댈 수 없다. 창고는 보기보다 커서, 학교의 체육관정도나 되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뒷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걸어가다가, 금방 그것을 찾게 되었다. 벽에, 평범한 방문같이 생긴 입구가 있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서 노브를 돌린다. 잠겨있지 않아서, 그대로 안으로 살짝 들어간다. ……그곳은 헛간처럼, 좁은 공간이었다. 바로 앞에 창고 안으로 이어지는 문이 보인다. 그곳으로 다가갔을 때, 깡, 하는 소리가 났다. 「───아얏」 머리를 감싼다. 그것이 자신이 뒤쪽으로부터 얻어맞은 소리라고 깨닫기도 전에, 몸이 지면에 처박히고 있었다. … 꿀꺽, 하고 목이 무언가를 삼켰다. 새까맸던 시계(視界)가 조금씩 보이게 되어, 나는 처박힌 머리를 들었다. ……장소는 그대로. 시간도 수분밖에 경과하지 않았겠지. 다만, 추워서 몸이 찔끔찔끔 떨리고 있다. 일어나려고 하니, 한쪽 팔이 지끈하고 아팠다. 왼팔의 팔꿈치부분이 이상한 방향으로 굽어져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양다리의 무릎안쪽도 날붙이에 베어져있었다. ……그곳은 이전에, 큰 상처를 입어버려서, 지금도 달리면 아픈 부분. 그곳이 베어져 있어서, 일어나려고 하면 정신을 잃을 것 같을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이대로 누워 있으면 아픔은 없다. 상처는 아물어있어서 출혈도 없고. 게다가 부러져 있는 팔뼈의 아픔도 없어서, 지금은 아직 괴롭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하면, 몸이 부풀어있는 것 같은 감각뿐이다. …………아까 삼킨 것은 약일까. 그렇다, 예를 들면 모르핀 같은. 그렇지만 삼키자마자 바로 효과를 발휘하는 진통제 따윈,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 편리한, 마술 같은 약이라니. 「………………」 방을 둘러보자, 벽 쪽에 누군가가 있었다. 쌓여있는 잡동사니들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다. 「미안해. 남자를 묶는 취미는 없지만, 그런 방법밖에 취할 수 없었어」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이쪽의 머릿속은 약 때문에 새하얘져있다. 뜨거워서, 보고 있는 광경조차 온통 새하얗게 칠해져 있다. 그래도, 그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시라즈미───선배」 「끈질긴 녀석이구나, 코쿠토. 날 찾지 말라고 이야기했잖아. 그래서 이렇게 된거야. ……그렇지만 뭐어, 한편으로는 기뻐. 그래도 너는 나를 찾아주었어. 역시 너는 시라즈미 리오의 편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아아, 맞아. 료우기에게 주기에는 아까워. 어째서 깨닫지 못했던 걸까. 네가, 나의 동료가 되어주면 된다고」 선배의 어조는, 이전의 그의 것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 같은 어조로,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연극 같은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동료는, 만들 수 없어요」 입을 연 순간, 심한 아픔에 혀가 둔해졌다. 아무래도 아픔이 없을 뿐, 나의 몸에는 큰 문제가 생겨있는 것 같다. 소리를 낼 때마다 머리가 타버리는 듯한 감각을 견디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선배의 약은, 한번도 성공하지 못 했잖아요」 방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시라즈미 리오는 뿌득, 하고 이빨소리를 내면서 나를 보았다. 「……설마. 거기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어, 코쿠토. 아아, 그 말대로고 말고. 난 말야, 바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약을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 아냐. 확실히, 무의식중에 그 자리의 기분 때문에 먹어버렸을 때의 입막음은 됐어. 바보들에게 있어서, 나는 그냥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약을 파는 히어로니까 말야. 대개의 수상한 행동도 눈감아 주었어. 뭐, 그런 것은 2차 적인 일에 지나지 않지만」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그는 말을 흐렸다. 「……당신이 팔고 있던 건, 약이 아니에요」 시라즈미 리오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아, 네가 말하는 대로야. ───나는 말야, 나와 같은 녀석을 원했어. 그렇지만 그런 녀석은 료우기 외에는 존재하지 않아. 그렇다면 인공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잖아? 이 창고에 심은 대마는 아라야에게서 받은 건데, 다른 대마와는 성질이 조금 틀려. 의존성이 없고 내성도 생기지 않지만, 이 녀석은 체내에서 분해 되지 않는 독이야. 몇 십 번하면, 이성을 깨끗하게 파괴해주는 끝내주게 하이 한 약이지」 「……그렇게 몇 십 번, 복용시킨 상대에게, 블러드 칩을 하게 한 건가요」 「가망 있는 녀석들에게, 를 잘못 말한 거겠지. 그건 말야, 나의 피로 키운 특별제라구. 기원을 각성한 자는 기원에 속박 돼. 그렇다면……그런 녀석의 피는, 이미 보통 혈액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결과는 어중간했지. 단순한 약에 지나지 않는 녀석도 있는가 하면,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린 녀석도 있었어. 아깝지. 그것에 견뎌냈더라면, 분명 나와 동류가 되었을 텐데. 덕분에 나는, 먹고 싶지도 않은 사체를 처리하는 꼴이 됐어」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게 아니라고 했으면서」 타버릴 듯한 목구멍으로, 나는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하며 시라즈미 리오는 얼굴을 흐린다. 「약으로 죽은 것은 내 탓이 아냐. 원했던 것은 녀석들이고, 견뎌내지 못한 것도 놈들의 책임이야. ……뭐어, 동정은 하고 있어. 나처럼 특별했다면, 죽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아까 먹여진 약이, 의식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가는 것 같다. 「하지만 말야, 3년 동안이나 계속했는데도, 성공한 녀석은 없었어. 나는 포기하려했지. 그때였어, 료우기가 눈을 뜬 건. 너도 기뻐했었겠지만 말야, 나도 즐거웠어. 안 그래, 친구? 그런 의미로는, 시라즈미 리오와 코쿠토 미키야는 동료였어, 왜냐면───」 시라즈미 리오는 히쭉 웃었다. 나는, 그를 응시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맞아. 3년 전, 그녀를 망가뜨린 것은 너와 나야. 네가 시키의 내면을, 내가 주위를 흔들었어」 ……아아, 역시, 그런 거였구나. 나와 시라즈미 리오, 어느 쪽인가가 빠졌었다면, 시키는 그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가 말하는 대로. 그런 의미라면, 그와 나는 최고의 콤비네이션을 보였던 거겠지. 「그건 간단했어, 코쿠토. 밤에 나다니는 료우기의 습관은 정말 안성맞춤이었지. 나는 그 녀석을 꾀어내서, 그 앞길에 사람을 죽여두기만 하면 됐었으니까! 처음에는 모습을 보여 버렸지만, 몇 번 거듭하다보니 익숙해졌어. 그날 너와 헤어진 뒤에, 서둘러서 료우기 저택까지 먼저 돌아가서 해놨던 건 완벽했잖아? 그건 말야, 너에게 보여주려고 전력을 다했던 것이었거든」 시라즈미 리오의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없다. 호흡이 잘 되지 않아서, 심장에 불이 붙은 것 같다. ……몰랐다. 숨을 쉰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려웠다. 「……월요일의 네 명을 죽인 살인자도, 당신이군요」 그런데도, 나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아아, 하고 끄덕였다. 「답답했다구, 그건. 일부러 손을 써서 덮쳐들게 했는데, 료우기는 녀석들을 움직이지 못하게만 만들뿐, 어찌해도 마지막 선을 넘지 않았어. 덕분에 뒤처리가 나에게 돌아와 버렸지만……그건,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 갑자기 시라즈미 리오는 벽 쪽으로 돌아갔다. 「슬슬 시간이야. 힘들었지, 미키야. 괜찮아 곧 편해질 거야, 너라면」 잡동사니들 위에 있는 물건……나이프와, 뭔가, 막대 같은 물건을 손에 든다. ……그 나이프는, 시키의 것이다. 「……설마, 시키를」 「아니, 그녀에게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내게 필요한 것은 네 쪽이란 걸 알았으니까. 아아, 그녀는 이제 됐어. 옆의 창고에 재워두었는데, 내일이라도 돌아가 달라고 해야지」 그는 한 팔로 능숙하게 그 두 가지를 잡고, 다시 한번 이쪽까지 다가왔다. 「자아, 시작해볼까. 괜찮아, 걱정할 건 없어. 지금까지 실패했던 이유는, 그냥 약을 주기만 했기 때문이니까. 아라야도 말했었어. 기원을 깨우는 일에는, 서로의 동의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맞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성공해. 네가 바라면, 모든 것이 손에 들어와. 절대 실패 따위는 없어. 특별해지는 거야, 미키야」 ……시라즈미 리오는 어딘가 막다른 곳에 몰린 것처럼 말한다. 나는, 그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특별이라니, 자신이 사라져버리는데도……? 당신은, 그것을 싫어하지 않았나요?」 「바보구나, 그런 말을 믿은 거야. 싫어할 리 없잖아? 나는 기원을 각성한 덕분에 특별해질 수 있었어. 힘도 강해졌고, 보통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어.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약하다는 소리 따위는 듣지 않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어. 이렇게 즐거운 건───4년 전의 시라즈미 리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어」 ……특별하고 싶다. 남보다 뛰어나고 싶다. 그것이 그의 소망인가. 그렇지만 그것은 누구나 안고 있는 바램이겠지. 이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물론 자신이 사라지는 일 따위도 없어. 나는 시라즈미 리오인 채야. 충동은 억누를 수 있어, 미키야. 두려워 할 것 따위는 없어.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먹고 싶으니까 먹고 있던 것뿐이야. 기원 따위의 의지가 아냐. 나는 나의 의지로, 사람을 먹는 것을 바란거라구」 “……시라즈미 리오는 동정을 사기 위해, 널 속이고 있을 뿐이야” 토우코씨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건───. 「……뭐야, 놀라지 않는 거냐. 너의 얼빠진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네. 어째서 놀라지 않는 거야, 미키야」 시라즈미 리오는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왜냐면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에?」 얼이 빠진 건, 시라즈미 리오 쪽이었다. ……그래. 그런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 일기를 읽었을 때부터, 전부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이 아주 옛날에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도, 시라즈미 리오라고 하는 인간이 없어져버린 것도. 하지만. 구해줬으면 한다는 말은, 4년 전의 시라즈미 리오가 남긴 말이었으니까. 하다못해 나만은, 그를 구해주고 싶었는데. 「……살인을 범하고. 그 죄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당신은 자기 자신을 버렸어요. 옛날에, 료우기 시키를 사랑하고 있던 시라즈미 리오는, 오로지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시키를 원했구요. 거기에 이미 애정은 없어요. 당신은───」 「시끄러!」 큰 소리를 지르며, 시라즈미 리오는 나의 몸을 걷어찼다. 다행히, 아픔은 이미 마비되어서 느껴지지 않는다. 「나에 대한 것은 아무래도 좋아. 지금은, 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애가 타는 듯 말하며, 시라즈미 리오는 나이프를 휘두른다. 그는 시키의 나이프로 막대의 끝을 새끼 손가락정도의 크기로 잘라내어, 그것을 자신의 입에 넣었다. 「연속투여는 몸에 나쁘지만,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어. 너는 조금 고집이 센 것 같으니까」 난폭하게 머리카락이 잡아당겨지며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대로 시라즈미 리오는 입술을 포개왔다. 거부하는 혀를 누르고, 씹은 것을 입으로 옮겨서 삼키게 한다. ……저항하지 못하고, 나는 그것을 삼켜버렸다. 「이걸로, 모두 잘 될 거야」 입을 떼고, 시라즈미 리오는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 것으로 10회 이상의 투여량이 돼. ……신체는 견뎌낼 수 없겠지만, 그 전에 이걸 삼켜. 자신의 의지로, 지금까지의 자신을 버리는 거야, 미키야」 그는 빨간 종이조각을 꺼낸다. ……눈앞이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뭘 하고 있는 거야. 특별해지는 거라구? 흔한,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생활에서 해방되는 거야! 이렇게나 즐거운데, 어째서 말을 안 듣는 거야. 삼키는 거야, 미키야. 나는 네가 아니면 싫어!」 부러지지 않은 팔에, 그는 블러드 칩을 쥐어준다. 반응 없는 코쿠토 미키야에게, 시라즈미 리오는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삼켜, 미키야! 어떻게 하든 간에, 너의 몸은 지금 삼킨 약의 효과를 견뎌내지 못해. 알았어? 삼키지 않으면 죽는다구! 평범한 채로 죽는 것하고, 특별한 상태로 사는 것하고, 어느 쪽이 멋진지는 생각할 것도 없잖아!」 분명히, 그건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째서」 쥐어 짜내는 듯 한 목소리. 게다가, 가만히 있으면 될 텐데, 나는 대답하고 있었다. 「뭔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 라고. 시라즈미 리오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빠직 하고 공기에 금이 간 것 같았다. ……정말로. 오래 못 살겠는 걸, 나는. 「……응. 선배를 보고있는 한, 별로 즐거울 것 같지 않아요. 게다가 나는 선배가 말하는 평범이라는 것 쪽이 좋습니다. 특별한 존재 따위, 싫어요」 나를 보는 시라즈미 리오의 눈동자에 인간성은 없다. ……이 사람은, 지금의 대화로 나를 적으로 인식했다. 「……뭐야 그건. 무슨 소리야, 그건……! 알겠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구? 그 이외의 선택은 없어! 그 때의 시라즈미 리오도 그랬어! 누구나 특별하고 싶다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다고 바라는데……!」 믿을 수 없다며 그는 격앙했다. 그는 웃으며 나를 본다. 그것은 공포로도, 초조함으로도 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어째서? 믿을 수 없어, 코쿠토. 너는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알아. 너는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도, 누군가에게 부담을 느끼게 하려는 것도 아니야. 너는───너는 진심으로 그런 것을 바라고 있는 거야. 이대로 라면 죽는다구? 뭘 그렇게 폼 잡고 있는 거야! 젠장, 망가져 있어. 넌 정상이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넌 이상해!」 「──이상한 건 그쪽이겠죠, 선배」 나는 위 속에서, 밀려 올라오는 구역질을 억누르듯 말했다. ……좀더 약삭빠르게 굴었다면, 아마도. 나는 좀더 오래 살 수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당신은 이상하게 존재하기를 바라며 살아왔어요. 사람을 죽여 버린 당신은, 그 죄에서 눈을 돌리고 도망쳤어요. 나는 미쳐있다. 미쳐있다면 사람을 죽여도 어쩔 수 없다고. 이상한 인간이라면, 이상한 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얼버무리고, 핑계를 대며……! ……그래도, 그런 건 울컥 화가 나서 사람을 때렸다는 변명이나 마찬가지에요. 거기엔 어떠한 정당성도 없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미친 척 하며, 지금도, 계속 도망치고 있어요」 ……그렇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인물의 유혹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시라즈미 리오는 사라져있었다. 광인(狂人)으로서 라면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무장을 한 그는, 같은 살인귀인 료우기 시키를 원했다. 자신과 같은 살인귀가 있다면, 자신이 정당화 되니까. 이상한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고 안심할 수 있으니까. 「…………시끄, 러워」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시라즈미 리오가 이쪽을 응시한다. 하지만 끝까지 말하지 않으면 이곳에 온 의미가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유도 없이 살인을 기호(嗜好)해버린 시키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살인을 기호하고 있다며 굳게 믿어버린 시라즈미 리오」 ……천연물과 인공물. ……타고난 것과, 만들어낸 것. 그 차이를, 입으로 말하지 않는 한 당신이 깨달아주지 않는다면. 「……살인귀라는 호칭은 잘못된 거였어. 시키가 안고 있는 괴로움을, 당신은 가지고 있지 않아.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감정, 그 차이가 당신에게는 없으니까」 「…………시끄러워, 코쿠토」 「그러니까───당신은 시키와 같은 존재가 아니야. 완전히 정 반대의 인간이지. 사람을 죽이고, 그 죄를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요. 그저 도망치며, 살인자도 살인귀도 될 수 없는 도망자. ───그것이 당신의 정체입니다, 선배」 그래도, 구해달라고 말했으니까. 미쳐버리면, 하는 선택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그릇된 당신을, 이쪽 편으로 다시 데려오고 싶었다. 「…………시끄럽다고, 말했는데!」 미움에 가득 찬, 저주 같은 노성. 그가 나이프를 치켜드는 것을, 나는 멈추지도 못하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 그는, 나이프를 쳐들었다. 기세는 멈추지 않고, 감정에 북받친 일격으로, 코쿠토 미키야의 머리부터 내리친다. 이마부터 뻐끔히 파고든 나이프는, 코쿠토 미키야의 세계를, 간단히 두절시켰다. / 6 털썩, 하고 미키야는 바닥에 쓰러졌다. 엎드리듯 땅바닥에 처박힌 채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머리부분에서 붉은 피가 흘러서, 콘크리트 바닥을 적셔간다. 나는 멍하니 손안의 나이프를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미키야의 사체는 무서워서, 다가가지 조차 못하겠다. 왜냐면, 미키야는 죽어있다. 「미안……이럴 생각은, 없었어」 그렇게 말해도, 대답하는 소리는 빗소리밖에 없다. 나는, 울고 있었다. 먼 옛날. 시라즈미 리오가 학생이었던 시절부터 계속 남아있던 애정이, 엷어져간다. 예를 들면 그때. 시라즈미 리오가 학교를 그만둘 때, 누구나 마음속으로 나를 바보취급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며 비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코쿠토 미키야만은 달랐다. 그는 열심히 하라며 진심으로 격려해 주었다.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때의 기쁨은, 지금도 시라즈미 리오 안에 살아있다. 그런데도, 그걸 준 본인은 죽어버렸다. 내가, 발끈해서 죽여 버렸다. 알고 있었는데. 인간은, 사소한 일로 죽어버린다. 시라즈미 리오는 그것을 회피하는 운이 절망적으로 낮다는 것을,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도……! 하지만, 나쁜 건 내가 아니다. 「……어째서 반항한 거야, 코쿠토. 너는 언제나 내 편이었잖아. 너는 언제나 나를 알아주었잖아. 그러니까───너만은, 내게 반항해서는 안 됐는데……!」 그래.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그가 인정해준다면, 그걸로 좋았다. 네가 있어준다면 그것만으로 좋았었는데……! ……코쿠토 미키야의 말 대로다, 하고 리오는 납득한다. 시라즈미 리오는, 료우기 시키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료우기 시키를 원하고 있는 것은 살인귀로서의 나다. 그녀가 나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이제 볼일은 없다. 특별한 존재는 한 명 뿐이라서 특별하다. 그래서, 그녀는 원래대로 돌아온 뒤에 빨리 죽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잃고 나서, 깨달았다. 살인귀인 나에게 필요한 것이 동료고, 시라즈미 리오인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 그였다. 시라즈미 리오라는 존재가 아직 남아있던 것은, 코쿠토 미키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코쿠토 미키야 앞에서라면, 시라즈미 리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젠 없다. 절반은 없어져버렸다. 옛날, 나의, 시라즈미 리오의 세계의 절반을 점하고 있던 인물과 함께. 미안, 미키야. 네가 믿어주었던 나는, 아무래도 여기서 사라져버릴 것 같아. 「───남은, 절반」 하지만 괜찮다. 난 살아있다. 아직 시라즈미 리오에게는 료우기 시키가 남아있다. 그녀가 돌아와 준다면, 나는 계속 안심하고 있을 수 있다. ……아아, 그래. 코쿠토 미키야 따위는 필요 없다.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가. 스스로의 안에서 고동치는 충동에게 소거되어버리지 않도록, 자신과 같은 살인귀라는 인종이 있다며 안심하고 싶다. 나는, 방을 뒤로했다. 창고 안에 돌아와서 대마(大麻)의 정원으로 걸어간다. 시키───옛날에, 동경했었던 여자. 누구보다도 특별하게 보였던, 피에 굶주린 살인귀. 그것이, 내 것이 된다. 큭, 하고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 녀석의, 땀과 타액에 더러워진 모습이 뇌리에 되살아나서, 참을 수가 없다. 빨리───하고 싶다. 코쿠토를 죽였다고 말하면, 그녀는 틀림없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겠지. 진짜 살인귀가 덮쳐든다. 그것은 매우 고혹적(蠱惑的)인 시츄에이션이다. 더구나 그녀는 아직 약에 취해있다. 일어설 수 도 없는 살인귀를, 손톱 끝부터 씹어간다───이 이상의 무대를 대체 누가 준비할 수 있을까? 그렇다, 아무도 할 수 없다. 나 외에는 아무도. 혀가 매끄럽게 움직인다. 이 녀석도 그녀의 땀을 듬뿍 핥아서, 빨리 고기 맛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땀?」 나는 대마의 초원에 멈춰 섰다. 땀? 땀이란 뭐지? 확실히 약을 할 때는 발한(發汗)을 한다. 하지만───그 양은 보통이상이다. 더구나 놓은 것은 단순한 근육이완제. 땀을 흘릴 리는 없다. 대량의 땀. 마치 체내의 독소를 체외로 토해내려는 듯한, 비정상적인 발한. 「───농담이겠지, 설마」 나는 달렸다. 료우기를 방치하고 있는 블록으로 서두른다. 풀을 헤치며, 무작정 달렸다. 목적지에는 10초도 걸리지 않아 도착했고, 나는 예상대로의 광경을 목격했다. 「────」 감동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창고 안에서 유일하게, 대마를 심지 않은 콘크리트의 광장. 일어서지도 못해야 할 료우기 시키가, 악귀 같은 시선으로, 유유히 그곳에 서있었으니까─── / 7 ◇ 료우기 시키의 모습은, 처절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시라즈미 리오는 호흡조차 잊고, 그 모습에 빠져있다. 그녀를 묶고 있던 수갑은 이미 그 효력을 잃고 있었다. 푼 게 아니다. 그녀는, 자른 것이다. 수갑은 커다란 액세서리처럼 시키의 오른쪽 손목에 늘어뜨려져 있다. 수갑의 고리에는 상처하나 없다. 상처가 있는 건 그녀의 왼손뿐이다. 시키는───수갑을 빼기 위해, 왼손의 엄지손가락과 그 뿌리까지 자신의 입으로 깨물어서 잘라낸 것이었다. ◇ 「───하, 하하, 하」 시라즈미 리오는 웃었다. 「───너는, 최고야」 ……웃음소리조차, 신경에 거슬린다. 「───완벽한, 살인귀야」 목을 떨면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 나는 이제 정말, 이 미친개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질려버렸다. ……내겐, 이런 짓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으니까. 「자아───시작하자 료우기. 너만이, 나를 유지시킬 수 있어」 유아등(誘蛾燈)에 모여드는 벌레처럼, 그것은 나에게 걸어온다. 나는, 그를 보지도 않았다. 「딴 델 알아봐. 난 안 해」 할 수 없이 입으로 말해준다. 그것은 나의 말의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멈춰 서서,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뭐, 라고」 「너랑 놀아주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 살인귀 같은 칭호도 필요 없다. 그런 건 이 녀석에게 줘버리지 뭐. 필요한 것을, 난 아주 옛날에 손에 넣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가슴의 구멍. 텅 비어있던 구멍은 메워져있다. 나의 살인충동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분명 그것에 견뎌나갈 수 있다. '시키'의 살인의 이유와, 시키의 살인의 이유는 달랐다. 여름에 그 사건으로 깨닫지 않았던가. 나는 삶의 실감을 얻고 싶어서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도 희미해져 있었다. 목숨을 건 싸움으로 삶의 실감을 얻지 않더라도, 나는 조금씩이긴 해도, 채워지고 있으니까. 지금의 나는, 예전의 시키가 아니니까. 나는 저쪽으로 돌아가서, 계속 료우기 시키와 싸워나가면 된다. 져버리면 거기까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인귀라고 하는 때마침 적당한 구실을 대고 도망칠 수는 없다. 가슴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그 녀석과,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사라진 또 한 명의 '시키'를 위해서도. 「거짓말이지, 료우기?」 「그럼 잘 있어, 살인귀」 그렇게 말하고, 나는 걸어 나갔다. 약에 마비됐던 몸, 물어뜯은 왼손도 그대로인 채, 낯선 타인과 스쳐지나가듯, 시라즈미 리오의 옆을 지나쳐간다. 그것은 가만히 멈춰선 채로, 내뿜는 숨결만을 거칠게 하며, 나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까지, 날 배신한다는 거냐」 중얼거림은, 빗소리에 사라져간다. 나는 그저,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런 건, 용서하지 않아. 너를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너를 위해서 여기까지 해왔던 나를 내버리는 거야? 그럼, 시라즈미 리오는 어디에도 없어. 지금은 이제 너만이, 시라즈미 리오를 유지시켜줄 존재였는데!」 나는 되돌아보지 않고, 이 초원을 떠나기로 했다. ────다음의, 말을 들어버릴 때까지는. 「……그런가. 미키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거냐, 료우기」 작게. 목이 쉰 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것은 그렇게 말했다. ────다리가, 멎는다. 「그럼 갈 필요 없어. 그 녀석은 확실히 여기에 있으니까」 구역질이, 났다. 눈앞이 흔들려서, 쓰러질 것 같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나는 그런 대사만으로, 모든 게 이해 되 버렸던 걸까…………? 「너, 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도, 나는 뒤돌아보고 있었다. 이제 아무도───죽이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도록, 살아가자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네가 잘못한 거야, 료우기. 언제까지고 꾸물대고 있으니까, 내.가. 대.신. 처.리.해.버.렸.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 귀는 어떻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맞아, 이건 네 나이프였지. 돌려주지. 더럽혀버려서 미안하지만 말야」 챙그랑, 하고 나의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진다. 은색의 예리한 날붙이는, 새빨간 피에 더럽혀져있었다. 나의 나이프와, 누군가의 혈액. 그것이 누구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틀릴 리가 있겠는가. 그 녀석의 피 냄새는, 전부터 잊지 않고 있었으니까. 「……아아. 죽은 거냐, 너」 중얼거리며,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콘크리트 위에 뒹굴고 있는 나이프를 집어야 했으니까. 「그래, 내가 죽였어, 네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코쿠토는 말이지, 마지막까지 착한 사람인체 하며 설교를 늘어놓았어. 뭐라더라, 나와 너는 정반대래! 웃기잖아, 우리들은 이렇게도 서로 닮았는데 말이야……!」 ……빗소리가, 시끄럽다. 나는 나이프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콘크리트에 무릎을 꿇었다. 날에 묻어있는 혈액은 아직 생생하다. ……이 흉기가 피를 머금은 것은, 시간으로 겨우 수분전의 것이겠지. ───아아. 이렇게 가까운 장소에서, 이렇게 가까운 시간에. 나는, 그 녀석을 잃었다. 「……바보. 그러니까 토우코가 있는 곳에 가있으라고 말했잖아. 죽을 때까지 멍청하다니, 정말로 너다워」 “선배를 죽이면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시키──” 그렇게 날 속박했던 남자는, 자신이 감싼 동물에게, 살해당했다. ……어째서일까. 그건 내 것이었는데. 그 녀석을 죽여도 되는 건, 나뿐이었을 텐데. 「───절대로」 나이프를 손에 쥔다. 양손으로 쥐고서, 나는 일어섰다. 고개를 숙인 채, 칼을 가슴에 안고서 멈춰선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상태로, 나는 입을 열었다. 「───좋아, 하자」 상대를 보지 않고서, 고개를 숙인 채로. 얼굴을 들어도 어쩔 방법이 없다. 왜냐면, 나에게는 아까부터 저 짐승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날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었지. 우리들은 확실히 그 한 점만은 닮았어, 시라즈미」 짐승이, 달려온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것을 무시했다. 생사를 건 싸움의 상대 따위는,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아직───음미하고 싶었다. 이 나이프(가슴)에, 그의 따스함이 잔류하고 있는 짧은 시간 동안은. ◇ 시라즈미 리오의 몸이 튄다. 일직선으로 덮쳐오는 적을 앞에 하고, 그래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걱, 하고 짐승의 손톱이 팔의 살을 도려낸다. 피가 흐르고, 적이 바로 옆을 스쳐지나가도, 시키는 고개를 숙인 채였다. 그녀의 양손은, 다정하게 나이프를 끌어안고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처럼, 소중하게,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던 열이 옅어져 같다. 자신의 체온이라던가, 서로 스칠 때의 살결의 따스함이라던가. 이런 나에게도 조금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마음이라던가, 그 녀석이 믿고 있던 나의 마음 같은 것이. 피가 흐르고, 상처를 입어서, 몸은 점점 차가워진다. 하지만, 아픔은 거의 없었다. 아픔이라면, 더욱 괴로운 아픔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차가운 비를 맞으며, 우리들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지. ───그래. 얼어붙은 입김만이 열기를 띄고.    서로 끊어질 듯한 호흡을 보였다. 쩡, 하고 또 살이 베여나갔다. 적은 사냥을 즐기듯이 움직이지 않는 나를 괴롭히고 있다. 눈에도 잡히지 않는 스피드로 달려와서, 지나치는 순간 살을 도려내 가고 있다. ……밖의 비는, 그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나에게 있어서는 즐거운 일이었다. ───예를 들면 비. 안개처럼 내리퍼붓는 방과후, 너의 휘파람을 듣고 있었다. 세 번째, 다리를 베였다. 촤악, 하고 소리를 내며 콘크리트가 젖어간다. 뼈까지 파먹어 들어간 손톱은, 다리와 바닥을 피로 물들이며, 서 있기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렇다, 서있는 것만으로, 숨이 답답했다. 하지만 가끔씩은 같이 웃을 때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시키'는, 네가 좋았으니까. ───예를 들면 저녁놀. 불타오르는 듯 한 모습의 교실에서, 너와 나는 서로 이야기했다. 적의 능력은, 이전보다 비교가 되지 않는다. 스피드도, 정확함도, 진짜 짐승 이상이다. 그에 비해,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마음도 얼어 붙어있는 상태, 몸도 곧 움직이지 않게 되겠지. 그러한데도, 나는 그 사실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아직 팔은 움직이니까. 다음에 달려올 때에, 확실하게 숨통을 끊자. ──네가 있어서, 웃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네 번째, 달려온다. 적이 노리는 것은 왼팔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면 살인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네가 있어서, 걷고 있는 것만으로, 기뻤다. 피를 너무 흘려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몸은 지금이라도 쓰러져 버리겠지. 그런데도, 나는 그 녀석의 말을 지키고 있다. ……시라즈미 리오를 죽일 수 없다. 설령 죽어버렸어도, 내 안에서 그의 말은 살아있으니까. ……그 따스함을, 계속 지키고 있고 싶으니까. ──정말 짧은 한때.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따스할 것 같아, 걸음을 멈춰 섰을 뿐인데. 그래도, 기뻤다. 나를 평범하게 대해준 네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돼, 라고 진지하게 말해준 것이 기뻤다. 말로 해주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엔, 네 쪽이 예전부터 기적처럼 아름다웠다. ──언젠가,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다며 너는 웃었다. 다섯 번째 손톱이 덮쳐온다. 그것이 분명, 나의 최후다. 적은 목덜미를 베려고 하겠지. 이젠 그냥 놔둬도 출혈로 죽을 내 숨통을 끊는데, 경동맥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 말을, 계속,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죽음이 육박해 온다. 되돌아보면, 나의 지금까지는 즐거웠던 일 뿐이라, 나도 모르게 얼굴이 미소를 띄워버린다. 단 일년간의 옛날과, 단 반년동안의 지금까지. 달려가는 시간은 빨라서, 붙잡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감사하고 있다. 거짓말처럼 행복했다. 변화 없이 지루한 고교생활. 다툼 없는 평온한 나날의 자취. ────그건 정말로.     꿈같은, 나날이었어요. 고마워. 하지만, 미안해요. ……나는 얼굴을 들고 놈의 죽음을 보았다. 없어져버리는 건 알고 있다. 네가 믿어주었던 것이나, 네가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던 나를. 알고 있어도, 나는 녀석을 죽이기로 했다. 그걸로 지금까지의 나 자신이 전부 사라져버린다 해도. 분명 아무도 곁에 있어주지 않게 되겠지만. 그래도───그래도 나는, 너를 죽인 이 녀석을 용서할 수 없다───. ───그녀는 달려오는 적을 바라본다.    그렇게 돼 버리면 간단하다.    수면을 날아오르는 하얀 새처럼 화려하게.    결말까지는, 정말 한순간이었으니까. ◇ 마지막은, 아주 싱거웠다. 그녀는 목덜미로 뻗어온 시라즈미 리오의 팔을 잘라버렸다. 그대로 적의 양다리를 단숨에 절단한다. 풍선처럼 공중에 떠있는 시라즈미 리오의 몸에 나이프를 꽂아 넣고, 사정없이 지면에 내동댕이친다. 나이프는, 묘비처럼 심장을 꿰뚫고 있다. 커헉, 하고 그는 한번 숨을 토하고, 끝났다. 시라즈미 리오의 얼굴은, 놀란 모습으로 멈춰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자신이 죽은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시라즈미 리오는 생명활동을 정지했다. ◇ 나이프는 묘비처럼 시라즈미 리오의 가슴에 꽂혀있다. 양손으로 나이프를 쥔 그녀는, 계속 무릎을 꿇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비스듬히 비쳐드는 햇살. 잿빛 조명에 비춰진 모습은, 죽은 자를 송별하는 신부처럼, 빛깔이라는 것이 없었다. 시라즈미 리오의 시체에 출혈은 없다. 창고에 흩뿌려져있는 선명한 주홍빛은, 모두 그녀 자신의 육체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팔을, 다리를, 몸을 찢어진 그녀의 생명은, 아마 수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아니, 료우기 시키라면 몇 분의 생명을 몇 배나 보전하고, 치료를 받는 것으로 회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 나이프에서 양손을 떼고 등부터 바닥에 쓰러진다. 아아, 하고 입술이 한숨을 흘렸다. 좀더 호흡의 간격을 길게 하고, 베인 상처의 신경을 차단한다. 그대로 몸을 쉬고 있으면, 도움을 청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은 회복된다. 「…………하지만, 됐어」 중얼거리고, 시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창 너머에서 보이는 풍경, 언제나 비. 겨울이라는 계절은, 언제나 이런 하늘 아래서, 자신의 손을 더럽혀 버린다. ……이런 모습으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진흙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가면, 야단맞아버리니까. 「그래도, 기다려 줬는데」 ……함께, 걸어 주었는데. ……더러워진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었는데. ……그런, 꿈같은 나날이, 있었는데. 「정말, 꿈같구나」 숨이 답답해진다. 의식이,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끊어질 것 같은 생명은, 아지랑이 같아서, 아주 아름다웠다. 그녀는 호흡을 고른다.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들기 위해서. 하늘을 보는 눈동자는 울고 있었다. ……결심했었다. 만약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다면, 그건, 그녀석이 죽었을 때라고. 눈꺼풀을 닫고, 호흡이 평온해져간다. 후회는 별로 없었다. 그저 조용히 생각할 뿐. ……미키야가 없다면, 이미 살아가는 의미 따위는 사라져 버렸다. 불의 따스함을 안 짐승이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나는, 텅 비어있는 나로는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살인고찰 / 7 ……세계가, 단절된다. 처음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쿨럭, 하고 또 목구멍에서 위 속의 것들을 토해낸다. 크래쉬 되어 이성을 잃고 있던 의식을 되찾은 것은, 그런 육체의 살려고 하는 기능이었다. 한쪽 팔로, 어떻게든 상반신을 일으켰다. 양다리에는 거의 힘이 들어가 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벽 쪽까지 기어가서, 벽에 손을 짚고 일어선다. 시계(視界)가, 겨우 돌아온다. 하지만 보이는 건 윤곽뿐이다. 세계는 희뿌옇게 되어서, 모든 것이 애매하다. 「……아파」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프다. 나는 왼쪽 눈에 손을 댄다. ……피는, 이젠 정말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다. 시라즈미 리오가 먹였던 약은, 특별한 대사촉진기능이라도 있었던 걸까. 상처의 대부분은 피로 굳어있어서, 일단 출혈량으로 죽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상처 그 자체는 낫지 않았다. ……당연한가. 나이프로 이마부터 뺨까지, 왼쪽 눈 통째로 베였다. 살아있는 건 엄청난 행운이고, 왼쪽 눈에 연동해서 오른쪽 눈의 기능이 정지하지 않은 것도 행운. 여기서, 왼쪽 눈이 무사하기를 기대했다간 천벌 받겠지. 어떻게든, 벽을 짚어가며 창고로 걸어갔다. ……창고는 풀이 우거져있어서,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아픔과 출혈, 거기에 약의 효과로, 나는 한가지 일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시, 키」 걸어 나간다. 창고는 넓고, 풀이 방해가 되어, 찾을 수가 없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아픔에 의식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잃고, 그렇지만 곧 정신을 되찾고, 또 한 발짝. 그런 반복을 하면서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스스로도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분간이 안가는, 이런 피투성이의 몸을 질질 끌면서. 「………………」 덜컥, 하고 다리가 풀려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풀을 심은 지면은 흙이라서, 상처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무릎은 못쓰게 되었으니, 기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창고는 너무 넓어서 찾을 수가 없다. 왼쪽 눈은 뜨겁고. 오른쪽 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어쩔 방법이 없다. ……잠깐 쉬자. 이곳에 시키가 있다는 보증 같은 것은 없고, 나는 헛수고를 하면서, 스스로 죽을지도 모르는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했으면서도,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어째서, 일까」 ……당연히, 시키를 보고 싶으니까. 하지만, 만약 시키를 찾았는데, 그녀와 시라즈미 리오가 싸우고 난 뒤라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선배를 죽인다면,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시키. 분명히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용서하지 않는다. 네가, 사람을 죽이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다른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여도, 상관없다. 나는 단지, 시키 만은 사람을 죽이지 않기를 원했다. 네가 좋으니까. 너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네가, 행복해졌으면 하니까. 더 이상, 상처입지 않기를 원했던 것 뿐. ……이 얼마나 굉장한 억지인가. 나는 설령 시키라도, 살인이라는 행위를 범한 인간을 미워해 버린다. 시키를 믿고 있다, 같은 말은 둘러대기 좋은 말이었다. 나는 믿고 있고 싶었던 것뿐이다. 사람을 죽여 버리면, 나는 시키를 용서할 수 없게 되어 버릴 테니까. 「……선배를 죽이면, 널, 용서하지 않아」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풀을 헤치고,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나왔다. 콘크리트의 바닥, 온통 햇살이 비쳐드는 광장. 그곳에 시키가 있었다. 곁에는 시라즈미 리오의 몸. 쓰러져있는 두 사람은, 살아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 선배를 죽인건가, 시키. 후회가 가슴을 메운다. 하지만, 그건 다른 것이다. 나는───시키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어서 시키 곁까지 갔다. ……그녀는,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은 상처투성이로, 피에 더러워져있다. 얼굴빛은 창백하고, 전혀 열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호흡은 멈추지 않았다. ───아아, 살아있다. 나는 안도하고, 시라즈미 리오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는 정말로 죽어있다. 어떤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죽여 버린 것은 시키다. 이 결과는, 당신만의 종말이다. 피해자는 당신이고, 슬퍼할 수 있는 권리는 당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나는 시키가 살아있는 쪽이 기쁩니다, 선배. 당신을,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원망하기까지 하니까. 왜냐면, 이걸로 시키는 이제───. 그때, 하얀 손가락이 뺨에 닿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뺨을 쓰다듬는다. 스치듯이 뺨을 더듬는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이었다. 「울고 있는 거냐, 코쿠토」 너무나 약해진 눈동자로, 시키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멍한 의식인 채로, 한쪽 눈이 없는 코쿠토 미키야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흐르는 피가, 그녀에게는 눈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시키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다. 나는 그녀를 안아주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얼어붙은 입김만이 열기를 띄고, 우리들은, 서로, 끊어질 듯한 호흡을 보였다───. 「시라즈미를, 죽였어」 시키는 말했다. 「응, 알고 있어」 나는 끄덕였다. 시키는 한번 시라즈미 리오의 시체를 보고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걸로, 여러 가지를 잃어버렸어」 그것은 공허하고 슬픈 목소리였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라던가,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이라던가. 혹시, 나에 대한 것까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이걸로, 시키는 자신을 죽일 수 없게 되었다. 그 죄를, 등에 질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녀의 조부가 말했던 것처럼. 그것을 지켜온 그녀는, 조부와 마찬가지로 외토리로 죽음을 맞이한다. 쓸쓸하고, 텅빈 장렬(葬列)을. 「……하지만 상관없어. 말했잖아, 너 대신 짊어져 주겠다고」 붉은 피가 시키의 뺨에 흘러 떨어진다. 왼쪽 눈에서 흐른 물방울은, 분명히 눈물처럼 보였다. ……그래, 여름이 끝날 무렵에, 처음으로 웃어주었던 너에게 맹세했다. 너 대신에 죄를 짊어지겠다고. 그러니─── ─────내가, 널 죽이겠어. 네가 죽을 때까지, 네가 죽는 그 때까지, 결코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살인자인데」 멍해진, 마음 없는 목소리로 시키는 말한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자신을 책망하면서, 울기 시작할 것 같은 아이처럼. 그녀는 알고 있다. 그것이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이고, 아무리 빌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슬픔이라고. ……나도, 그것을 용서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도, 그것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살인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고 말했잖아. 그런데도 지키지 않다니, 넌 멍청이야. 이번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어. 화났으니까, 울어도 소용없어」 「……뭐야. 울어도 용서해주지 않는구나」 「아아. 절대로 적당히 안 넘어 갈거야」 나는 시시껄렁한 소리를 한다. 그래도, 그걸로 시키가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욕설을 들어주겠다. 시키는 살며시, 정말로 살며시 미소 짓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것은, 이제부터 잠들려고 하는 듯한 평온함. ……주홍색 눈물이 그녀의 뺨에 떨어져 흐른다. 나는 감각이 두절된 팔로, 상처투성이의 그녀의 몸을 안아 일으켰다.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하고, 너 자신도 용서할 수 없는 상처라면, 하다못해 네 곁에 있으려 해. 강하게, 이대로 서로가 죽어버릴 것 같을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의식까지 두절되기 전에, 마지막 맹세를 말했다. 「시키. 너를───일생, 놓아주지(용서하지) 않겠어」 내뱉은 말은 퍼붓는 빗소리에 지워진다. 확실히 남아있는 것은, 그저 서로를 끌어안으려고 하는 가녀린 손끝뿐이었다. / 8 … 2월이 끝나도, 아직 거리에는 겨울의 정취가 남아있었다. 기온이 낮아서, 뉴스에서는 내일쯤에 4년 만에 눈이 내린다는 소리까지 있다. 3월은 아직 막 시작한 참이라, 겨울의 자취가 피부에 달라붙겠지. 아무래도, 봄은 아직 나중 이야기인 것 같다. … 항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귀는, 약물에 의한 중독사라는 모습으로 매듭지어졌다. 시라즈미 리오의 유체는 경찰에게 회수되고, 료우기 시키와 코쿠토 미키야는 어디까지나 피해자로서 보호되어, 이렇게 어떻게든 살아있다. ……미키야는 정식 병원에 입원했지만, 나는 그렇게는 못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물어 뜯어내 버린 왼손은 토우코가 만든 의수(義手)다. 그런 상태로 병원에 갈 수도 없어서, 나는 료우기 가문의 힘으로 개인병원으로 실려 갔고, 그 뒤에 토우코의 신세를 져 버렸다. 나는 2월중에 회복했지만, 미키야는 오늘까지 병원의 침대 위에 있다. 몸의 상처와 투여된 약물의 제거는, 그 녀석한테 부득이한 2주간의 입원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뭐어, 그것도 오늘까지. 사실은 좀더 입원 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지만, 병원은 재미없다는 이유로, 미키야는 오늘 퇴원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겨울하늘 아래 서있었다. 국립병원의 커다란 현관. 로터리를 이루고 있는 광장에서 떨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아래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힐끗힐끗 감시한다. 그런 짓을 두 시간 정도하고 있다보니, 새까만 사람의 모습이 병원에서 나왔다. 바지도 윗도리도 검은색. 한쪽 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어서, 그곳만이 하얗다. 검은색 일색의 남자는 현관을 나와서 간호사와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말을 걸지 않고, 그냥 서있었다. 「……정말. 결국 한번도 병문안을 안 왔구나, 넌」 불만스럽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코쿠토 미키야는 그렇게 말했다. 「아자카에게 혼났단 말야. 병실에 얼굴을 내밀었다간 죽여 버린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면, 갈 생각도 사라진다구」 이쪽도 기분이 언짢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미키야는 그럼 할 수 없지, 하고 역시 불만스럽게 끄덕였다. 「그럼, 갈까. 택시라도 탈래?」 「역까지 별로 멀지도 않잖아. 걸어가자」 「……뭐, 그것도 괜찮을까나」 막 퇴원한 사람에겐 힘들지만, 하고 덧붙이며 미키야는 걸어 나간다. 나는 거기에 나란하게 걸어 나갔다. 그 뒤는 언제나처럼.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역으로 향하는 완만한 언덕길을 내려갔다. 흘끗, 미키야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그는,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라고 해도, 왼쪽 앞머리만으로, 장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딱 왼쪽 눈이 가려질 정도로 기른 머리카락 탓에, 더욱 새까만 인물이 되어있다. 「왼쪽 눈」 가만히 중얼거리자, 아아, 하고 미키야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소용없었어, 하고 대답했다. 「시즈네(靜音)쨩이 말한 대로가 되어버렸네. 저기, 기억해? 여름에 말야, 한 시간정도 찻집에서 이야기했던 여자애 말인데」 「미래시(未來視)의 능력을 가진 여자 말이지. 기억하고 있어」 「응. 그 애가 말했었어. 시키와 관계하면 최후에는 두 눈으로 세상을 못 볼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예언적중. 정말 두 눈으로 세상을 못 보게 됐어」 대체 어떤 신경을 가지고 있는 건지, 미키야는 즐거운 듯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 ……나는, 조금 화가 났다. 이럴 때, 대체 나보고 어떤 얼굴을 하라는 거야, 바보. 「하지만 오른쪽 눈에 지장은 없대. 그러니까 대단한 일은 아냐. 원근감이 조금 어긋나는 것 뿐. ……그러니까, 왼쪽에 와주지 않겠어? 익숙하지 않아서 말야, 아직 그쪽이 불안해」 말하는 것 보다 빠르게, 미키야는 나를 왼편으로 오게 했다. 게다가 그 뿐만 아니라, 찰싹 달라붙기까지 했다. 「뭐하는 거야, 갑자기」 조금 놀라며, 그래도 냉정하게 말한다. 미키야는 불만스러운 듯한 얼굴로 돌아와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냐니, 지팡이 대용이야. 익숙해질 때까지 일주일정도는 시키에게 맡길 테니까, 잘 부탁해」 뭐가 잘 부탁해 인지, 미키야는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나는 발끈하며 노려보았다. 「뭐야 그건. 어째서 내가 그런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해줬으면 하니까. 시키가 싫다고 하면, 괜찮지만」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전에 없이 미키야는 이쪽의 등골이 오싹해질 듯한 소리를 한다. 빤히,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탁함이라는 것이 없다. 나는 붉어진 뺨을 감추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별로. 싫은 건 아니지만」 소근소근 대답하자, 미키야는 기쁜 듯이 웃었다. ……변함없이 행복한 녀석. 정말, 어쩐지 나까지 그런 기분이 되어버리잖아. 「하지만 나, 내일부터 학교에 가야하는데」 「그런 건 땡땡이쳐버려. 어차피 이제 곧 봄방학이니까, 선생님도 봐 줄거야」 「───너 말야」 평소부터 성실하게 학교에 가라고 설교하던 주제에, 미키야는 무책임한 소리를 지껄인다. ……정말, 이 억지는 병원에서 뭔가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중에 캐물어 주지, 하고 생각하고서, 나는 킥하고 웃어버렸다. 「왜 그래, 시키?」 「아아. 너는 제멋대로인 녀석이구나, 해서」 미키야는 멀뚱해져 있다가, 씨익 하고 미소를 띄웠다. 「그렇지. 벌써 몇 년이나 전부터, 난 멋대로 널 좋아했어. 지금도 그래. 시키가 싫어해도, 멋대로 신세를 지기로 마음 먹었어」 그렇게, 염치도 없이 이런 아니꼬운 대사를 입에 담는다. 나는 항상 하던 불평을 해주려했지만, 뭐, 괜찮나. 정직히 말하면, 옛날의 시키도, 사실은───. 「어라? 왜 그러는거야, 시키. 이런 대사는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지금까진 매번 거북했다고 말했었잖아」 김 샌 걸까, 미키야는 스스로 무덤을 판다. 나는 말없이 가만히 있으려 생각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응, 뭐어 한번 정도는, 진심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렇지도, 않아」 에? 하고 놀라는 미키야. 그의 얼굴을 보지 않도록 저쪽 편을 향하고서, 나는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미키야. 지금의 시키는, 그런 걸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한 거야」 ……쳇, 역시 창피하다. 이런 소리 두 번 다시 할까보냐. 슬쩍, 미키야의 눈치를 엿본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데미지는 저쪽이 큰 듯, 미키야는 하늘을 날아가는 고래라도 본 것처럼 멍해져있다. 그게 우스워서, 나는 미키야의 손을 잡는다. 천천히 걷고 있는 그를 잡아끌 듯이, 발길을 재촉하며 언덕길을 내려간다. 자아, 역은 바로 이 앞이다. 나는 빨리 돌아가고 싶어서, 미키야의 손을 잡아끈다. 잡아 챈 손바닥은, 어느 사이엔가 나보다 확실한 힘으로 쥐여지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일이, 어쩐지 기쁘다. 나는 뺨에 나타나려하는 미소를 냉정하게 억누르면서, 언덕길을 내려간다. 이윽고 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들은 낯익은, 우리들의 거리로 돌아갔다. 구불구불한 귀로. 멀고,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험난한 길이라도, 누군가에게 손이 쥐어져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나이프 따위가 아니라, 그저 그 손바닥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이 손을 놓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으로 나의 이야기는 끝이다. 나는 지금의 나도 옛날의 시키도 받아들이고 일상을 보내간다. 이후엔, 딱 이 계절처럼. 추웠던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봄이 찾아오는 때를, 조용히 기대하자고 생각했다───. / 殺人考察(後) · 了 -------------------------------------------------------------------------------- * 길거리 살인마(通り魔) : 그냥, 원문을 보고 느낌이 오는 건, '지나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강도'라는 느낌. 츠키히메에서나 여기에서나, 범인의 정체가 후에는 그것이 아니라고 밝혀지지만, 처음 시작은 저렇게 알려지고, 세간에 알려질 때는 딱 저런 느낌이니까. 어떻게 느낌을 살릴까, 하다가 그냥 문득 꺼내버린 단어가 길거리 살인마(역자가 꺼낸 단어임). 츠키히메 번역하신 분들께선 어떻게 하셨는지는 몰라도(일단 단어는 똑같으니까), 이쪽은 일단 가볍게, 그리고 뜻은 확실히 전달 되도록 이걸로 선택. 좀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은 제보를(...) * 애시드(LSD) : Lysergic Acid Diethylamide 미국에서 60년대 흑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싸구려 마약. 1943년 스위스 화학자 호프만이 맥각알칼로이드를 연구하던 중 발견한 물질로 무색, 무미, 무취한 백색분말이다. lsd는 주로 강하고 기묘한 정신적 반응을 일으키고 시각, 촉각, 청각 등 감각을 왜곡시키는 가장 강력한 물질이다. 극소량인 25㎍(마이크로그램 · 먼지 1입자 크기)만 투약해도 30분 뒤부터 4∼12시간 동안 환각증상을 보이며 염색체 이상까지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 약물이다. 여성들은 염색체 이상으로 기형아 출산, 유산 등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 마약은 주로 남미에서 제조돼 미국에서 쓰이며 남용한 결과 마약보다 더 심한 해를 끼쳤으므로 법률에 의해 엄격히 규제하게 되었다. 국내에는 90년대 초 본격 상륙했다. [ 출처 : YAHOO! Korea 시사상식 - http://kr.search.yahoo.com/search?p=LSD ] * 대마초 :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의 일종으로 대마의 잎과 꽃에서 얻어지는 물질. 마리화나라고도 한다. 대마는 중앙아시아 원산의 삼과 식물로 한해살이풀이다. 대마초는 대마의 잎과 꽃에서 얻어지는 물질로서, 400여 종 이상의 화학물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마초에만 존재하는 60여 종의 카나비노이드를 함유하고 있다. 이들 화학물질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델타나인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delta-9 tetrahydrocannabinol)로, 약칭해서 THC라 한다. 이 THC는 1g/10,000만으로도 환각상태를 일으킬 수 있어, THC를 많이 함유한 대마초일수록 인체에 미치는 해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대마초의 성분은 강력한 진경제 · 환각제의 작용을 한다. 습관성이기 때문에 재배와 사용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대마초는 고대 중국으로부터 인도와 북아프리카를 거쳐 중남미에 전파되었다. 대마는 고대부터 많은 나라에서 사용되었으나 그 약리효과가 불확실하고, 환각작용을 나타내며,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여 현재는 의학적인 목적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마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삼베옷의 원료로 이용해왔던 식물이다. 대마초가 환각 목적의 흡연물질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시기는 1960년대 중반으로 미군들을 통해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에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번져나가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각제로 알려져 있다. 마약의 종류에는 중추신경억제제 · 환각제 · 중추신경흥분제 · 일반의약품 등이 있는데, 대마초는 환각제에 속한다. 지각 · 감각 · 사고 · 자기인식 · 감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로, 감각의 변화 · 망상 · 환상 등을 유발한다. 대마초에 의한 신체적 · 정신적 증세는 다음과 같다. ① 신체적 증세 : 평형감각이 없어져서 술 취한 사람처럼 걷게 되고, 식욕이 지나치게 많이 생기며, 머리가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 또한 장기간 사용하면 눈꺼풀이 아래로 처지고 눈물이 돌아 눈에서 광채가 나며 손이 떨리고 말을 더듬는다. ② 정신적 증세 : 청각능력이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며 기분이 좋아지다가 나빠질 수 있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웃음이 나고 돌아다니고 싶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대마초는 담배보다 훨씬 많은 자극제와 두 배나 많은 타르를 함유하고 있어 흡연할 때 가끔 뇌와 인두의 염증 및 목젖이 붓는 현상을 초래한다. 계속적인 대마초 흡연은 폐의 질환이나 만성 기관지염, 축농증 등을 유발한다. 대마초는 뇌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10~20대까지 대마초를 상습적으로 흡연했던 사람의 경우 70~90세의 노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뇌기능 장애 현상이 발견된다. 대마초를 피우는 여성들은 가끔 월경주기에 문제가 발생하고 난소에서 난자가 생산되지 않거나 미성숙한 난자를 생산하게 된다. 임신 중에 대마초를 사용했을 경우, 유독한 카나비노이드가 혈류를 타고 태반으로 흘러 들어가 탯줄을 거쳐 태아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알코올 증상의 유아와 비슷한 미숙아가 태어날 수 있다. 대마초는 남성의 생식기관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THC는 뇌하수체가 충분한 남성호르몬을 생산하는 것을 억제하여 정자의 수를 줄어들게 하고, 단백질을 파괴시켜 정자의 활동을 약화시킨다. THC는 염색체를 깨뜨리고 손상시킬 수 있다. 생식세포에서도 이런 파괴행위가 일어나 불임이나 비정상적인 아이를 낳게 될 수도 있다.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44563&Ad=photorental#top ] 그 외, 대마로 검색 해서 삼(hemp)과 대마관리법 등에 대해서도 참고하도록 하자.(하시시에 관한 정보도 있다) [ 참고 : 대마가 뇌에 미치는 영향 - http://nopain365.com/marihuana_brain.html ] * 마리화나(marihuana) : 인도 · 아라비아 지방의 야생삼인 인도대마초(Cannabis sativa var. indica )의 암그루 꽃이삭과 상부의 잎에서 분리한 호박색 수지(樹脂)를 가루로 만든 마약. 브항(bhang)이라고도 한다. 재배삼의 암그루 꽃이삭과 잎에서 얻어지는 것을 간자(ganja)라고 한다. 마취 성분은 테트라히드로카비놀(THC)을 함유하며, 이것을 사용하면 감각을 잃고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해지며 유쾌해져서 자기를 상실하고 헛소리를 하며 환각(幻覺) · 환상(幻想) 등의 정신적 이상을 나타낸다. 몰핀(아편)과는 달라 금단현상(禁斷現象)은 없다. 한국에서는 1976년 대마관리법(1976.4.7, 법률 제2895호)이 공포되어 대마초 및 그 제품을 대마(大麻)라고 하여 그 소지 · 재배 · 양수 · 양도 · 수입 · 수출 · 시용(施用) · 교부를 금하고 있다. 인도대마초는 중앙아시아에서 옛날부터 이슬람교도가 사용한 마취약으로 13세기 중국 원(元)나라 때 유욱(劉郁)이 지은 바그다드 여행기인 《서사기(西使記)》(1263)나 M.폴로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도 인도대마초를 사용해서 젊은이들이 도취하는 이야기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58488&Ad=Encyber ] * 칸나비노이드(cannabinoid) : 인도대마초인 마리화나의 주성분이다. 이것을 피우면 감각을 잃고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해져서 환상이 보이고 기분이 들떠 헛소리를 한다. 인간의 대뇌에는 이 칸나비노이드 수용체 1이 있으며 그 유전자(CNR1)가 6q14에 있다. [ 출처 : 다윗정보통신 게놈과학 - http://genomescience.co.kr/home.html → 염색체와 유전자 - 6번 염색체 - http://genomescience.co.kr/6.html ] * 일본에서의 대마 : 일본산 산업용(주로 섬유생산) 대마는, 마약이라기 보기엔, THC등의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의 함유량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는 대마인데, 일본산 대마는 보통 대부분 이런 듯 하다. [ 참고 : 大麻の絆 - http://www.headrok.co.jp/taimalink/ → 일본원산 대마 - http://www.headrok.co.jp/taimalink/gensanshu.html ] → 대마의 분류 - http://www.headrok.co.jp/taimalink/bunrui.html ] 다이스케가 THC인가 CBC인가 횡설수설 하는 부분. 원래는 CDBA인 듯 하다. 자세한건 아래에. (번역하기 귀찮다기 보다 난해) [ 참고 : 日本産業用大麻クラブ - http://www.kansai-cc.co.jp/hemp/ → ヘンプフォ-ラム@命の祭り2000 - 3/6 page- http://www.kansai-cc.co.jp/hemp/inochi03.html ] 토치기시로 : 일본 도치기현(사이타마현과 카나가와현 사이에 있는 행정구역. 한자는 Korean non-Unicode에선 표기 불가)에서 나는 무독성 대마. '아사(あさ)'는 이 지역의 전통적인 지역특산물이었다. 아사의 무독품종이 토치기시로. [ 참고 : 도치기의 농수산물 - http://www.pref.tochigi.jp/seisan/index/index.html → 특산물 - http://www.pref.tochigi.jp/seisan/kajukaki/tokusan/tokusan.html ] 자세한 정보는 있는데, 링크가 날아가서, 구글(google)에서 임시로 보존하고 있는 페이지를 긁었습니다. 이건 일단 제 계정에 올려놓겠지만, 자료가 일본어이므로 링크를 건너가셔서 글자가 깨져 나오시는 분들께서는 Encoding 설정을 Japanese (Shift-JIS)로 하셔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참고 : 토치기시로 ] * 스터프(stuff) : 작품 내에서는, 합성 물질(synthetic stuff)이나 위스키 등의 의미로 쓰인 듯. [ 참고 : empas 영어사전 - http://engdic.empas.com/show.tsp/?s=&f=&z=I&q=stuff ] * 한텐 : 왠만한 사람들은 다 한번쯤은 어느 매체를 통해서든 봤으리라 생각한다. 참고사진을 아래에. [ 참고 : 宮田織物 - http://www.e-miyata.com/ → http://www.e-miyata.com/winter2000/hanten/h718.html ] * 후림불(とばっちり) : 《속》(「とばしり」의 음편) ①물방울이 튀어서 날아 떨어짐. ②옆에 있다가 억울하게 화를 당함. 남의 일에 휩쓸려 듦. [ 출처 : 한글2002SE - 한컴사전 - 일한사전 ] 〈俗〉(뜻밖에 뒤집어쓴) 언걸. 후림불. とばしり로도 읽음. [ 출처 : 民衆書林 - 民衆엣센스 日本語 漢字 읽기 辭典 ] 한자가 있긴 한데, Korean non-Unicode에선 표기 불가. * 시즈네의 예언 : 원래는, 시키와 관련 되면 위험한 일을 당한다(ひどい目にあう)인데, 위에서 미키야가 이걸 언어유희로 응용을 해서, 자신의 한쪽 눈이 없어진 걸 ひどい目로 표현 한 것임. 원문은 이렇다는 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ひどい目にあう는 위험한 일을 당하다, 험한 꼴을 당하다, 혼쭐이 나다 등등이 있는데, 단순히 ひどい目라고 해도, 위험한 일, 험한 꼴 등의 의미가 있지만, 미키야는 ひどい와 目을 구분하여, 참혹한(?) 눈이 되었다고 표현한 언어유희. 번역에 대해서 친구 준영이의 다른 의견은 '눈앞이 캄캄해지다'를 제시해주었지만, 일단 한쪽 눈이라도 멀쩡하니, 캄캄할 것까지야(...) -------------------------------------------------------------------------------- [←|↑|→] -------------------------------------------------------------------------------- 空の境界\ ◇ 거리는 4년만의 큰 눈에 휩쓸리고 있었다. 3월에 내리는 눈은, 계절을 얼어붙게 하려는 듯 차갑다. 밤이 되어도 하얀 결정은 그치지 않고 내리고, 거리는 빙하기처럼 죽어버렸다. 심야 0시. 길에는 사람의 모습은 없고, 그저 가로등의 불빛만이 눈의 베일에 저항하고 있다. 어두워야할 텐데, 하얗게 물든 그 어둠 속에서, 그는 산보를 나가기로 했다. 특별히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어떤 예감이 들어서, 그 장소로 걸어가 보았다. 검은 우산을 쓰고, 쌓이는 눈 속을 걸어간다. 예상했던 대로, 그 곳에 그녀가 서있었다. 4년 전 그날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는 하얀 눈 속에서, 기모노 차림의 소녀는 멍하니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어 하고 선뜻 말을 걸었다. 기모노 차림의 소녀는 돌아보고서, 빙긋 미소짓는다. 「───오랜만이네, 코쿠토군」 낯선 소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를 알고 있던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 「───오랜만이네, 코쿠토군」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소녀는, 그에게 익숙치 않은 어조를 쓰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가 알고 있는 시키도, 더구나 '시키'도 아닌 알 수 없는 누군가. 「역시 너인가. ……아아, 어쩐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시키는 자고 있는 거야?」 「그렇네. 지금은 나와 당신뿐이야」 빙긋 미소 짓는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형체를 이룬 듯 한, 완벽한 미소였다. 그는 묻는다. 「너는, 누구니」 「나는 나야. 어느 쪽의 시키도 아닌, 그저 텅 빈 마음속에 있는 나. 아니면 텅 빈 마음이 나인 것일까」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눈을 감는다. ……그녀는 말했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상처는 입지 않아.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도, 자신이 싫어하는 것도,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것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버리면, 상처는 입지 않아.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 무엇이든 거부한다면 상처밖에 입지 않아. 자신에게 맞는 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것도, 동의하지 않고 거부해버리면, 상처밖에 입지 않아. ……그것은, 예전부터 그녀 자신이었던, 시키와 '시키'라는 인격의 존재방식이었다. 「긍정과 부정밖에 없는 마음은 완전하기 때문에, 고립해버려. 그렇잖아? 더러움 없는 완전한 단색은, 섞여들 수 없는 대신에 변색되지도 못하고 계속 같은 색이야. 그것이 그녀들. 시키라는 인격은 한 개의 토대의 양 끝단에 있는 극점 같은 것일까. 그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 그래서 그 안에 내가 있는 거야」 「그런가. 한가운데 있는 것이 너구나. 그러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그, 역시 시키라고 하면 될까?」 글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몸짓이 우스워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린다. 「아니, 료우기 시키가 나의 명칭이야. 하지만 시키라고 불러준다면 기쁠거야. 그것만으로 기다리고 있던 의미가 충족되는 걸」 미소 짓는 그녀는, 어린아이 같기도, 어른 같이도 보였다. … 그와 그녀는 두서없는,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평소대로 이야기하고, 그녀는 즐거운 듯 듣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평소대로의 관계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지, 그녀만이 달랐다. 그녀는 그와의 차이를 깨달아 간다. 그, 결코 섞여들 수 없는 절망만을. 「저기. 4년 전의 일을, 시키는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갑자기, 그는 그런 것을 물었다. 그렇다, 아직 그가 고교생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는 그녀와 이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는데도, 시키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에에, 나와 그녀들은 다르니까. '시키'와 시키는 이웃해있는 자들이니까, 서로의 일은 잘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녀들이 지각할 수 없는 나이니까, 오늘 일도 시키는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런가, 하고 그는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4년 전 1995년 3월.    그는, 그녀를 만났다. 계기는, 정말로 사소한 일. 눈이 내린 중학생 최후의 밤, 그는 이 길을 통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한 명의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이 길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돌아가서, 자려고 했을 때에 문득 소녀를 기억해냈다. 그렇게 해서 산보를 겸해, 밖에 나와 봤던 것이다. 그랬더니 소녀는 계속 그곳에 선 채였고, 그는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하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소탈하게. 분명, 너무나도 예쁜 눈이었으니까. 낯선 누군가라고 해도, 같이 어울려 놀고 싶어진 거겠지. … 「코쿠토 군. 나도 말야,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조금 유감이지만, 이야기는 그걸로 끝내기로 해. 나는 그걸 위해서 나왔으니까」 그녀는 보기보다 몇 배나 어른스러운 눈동자로 그를 바라본다.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 질문은 너무나 막연해서,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감정 없는 기계 같은 표정. 「소원을 말해, 코쿠토군. 나는 사람의 소원이라면 대개의 소원은 다 이루어 줄 수 있어. 시키는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나의 권리는 당신 것인걸. ───자아, 당신은 무엇을 바라지?」 손을 내민 그녀의 눈동자는 투명하고, 끝없이 깊다. 극한까지 바라보아 버릴 같은 눈동자에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어서 어쩐지 신(神)을 상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글쎄, 하고 잠시 생각하고서 그는 그녀의 눈빛에 응한다. 무욕(無慾)이란 것도 아니고,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필요 없어, 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래, 하고 한숨을 흘린다. 그것은 아주 유감스럽게 보였고, 그렇지만 안도하는 듯한 자비를 띈 그늘. 「……그래, 뻔히 알고 있던 거였어」 그렇게 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하얀 어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는, 시키가 아니구나」 그는 슬픈 듯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으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코쿠토군, 인격이란 어디에 있는 걸까?」 내일의 날씨를 묻는 것처럼, 소박한 질문. 그것은 대답 따위에는 요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공허한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입가에 손을 대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글세, 어떨까. 인격이란 것은 지성을 말하는 거니까, 역시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머릿속, 곧 뇌에 지성이 깃든다.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 그녀는 아니, 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혼은 뇌에 깃들어. 뇌수만 생존시킬 수 있다면, 사람은 육체 따위는 필요 없어. 그저 외부에서 전기를 흘려주면 계속 뇌만 가지고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다──그렇게, 시키에게 말한 마술사가 있었어. 당신도 마찬가지네. 인격은 머릿속에 있다는 대답. 하지만 그건 틀린 거야. 예를 들면 말야, 코쿠토군. 당신이라는 인간, 당신이라는 인격, 당신이라는 혼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편력을 축적한 지성과, 그 껍질인 육체야. 지성을 만들어내는 뇌만으로는 사람됨을 표현하는 인격은 만들 수 없어. ……그래, 뇌만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들은 육체가 있어서 처음으로 자기(自己)를 인식할 수 있어. 육체가 있고, 그것과 같이 자랐으니까 지금의 인격이 있는 거야. 자신의 육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교적인 인격을 가지게 될테고, 싫어하는 사람은 내향적인 그늘을 가져버려. 인격은 지성만으로 자랄 수 있지만, 지성만으로 자란 인격은 자기(自己)를 돌보지 않는, 인간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성장해 버려. 그래서는 인격이 아니라, 단순한 계산기와 다를 바 없어져 버리잖아? 뇌만 있게 된다고 하면, 그 인간은 "뇌밖에 없는 자신"이라는 새로운 인격을 만들지 않으면 안돼. 육체라고 하는 대아(大我)를 버리고, 지성이라고 하는 소아(小我)를 근원으로 삼지 않으면 안돼. 지성이 있어서 육체가 있다, 는 것이 아냐. 육체를 토대로, 지성이 태어나지. 하지만 지성의 근원이 된 육체에는, 역시 지성 같은 건 없어. 육체는 그저 있는 것뿐이니까. 그렇지만 육체도 인격은 있어. 왜냐면 같이 자라고, 지성을 낳은 나니까」 아아, 하고 그는 소리를 냈다.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은 세 가지로 만들어진 생물이라고. 정신과 혼, 거기에 육체라는 것. 정신은 뇌에, 혼은 육체에 깃든다고 한다면, 그녀는 시키의 본질인 것이다. 시키라고 하는 마음이 없는, 육체라고 하는 이름의 인격. 그녀, 료우기 시키는 천천히 끄덕였다. 「즉 그렇다는 얘기야. 나는 지성이 만들어낸 인격이 아니라, 육체 그 자체의 인격인 거야. 시키와 '시키'는 결국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근원의 성격 속에서 행해지는 인격교환. 그것들을 전부 관리하는 건 『료우기 시키』야. 그녀들이 양의(兩儀)로 존재한다면, 태극(太極)이 있는 게 도리겠지? 태극을 나타내는 것, 원이라는 윤곽이 나인거야. 나는, 나와 동격의 나를 만들었어. 아니, 의지라고 하는 방향성이 있는 이상, 그녀들은 나보다 고위의 나일지도 몰라. 그 둘이 다른 인격으로 존재해도 사고회로가 동일했던 것은, 그녀들이 결국 『료우기 시키 안의 선과 악』이었기 때문이니까. 발단은 나고, 또, 그 결론도 나에게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방향성의 그녀들이 양립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걸」 쿡, 하고 료우기 시키는 웃었다. 그를 곁눈질로 보는 시선은, 지금까지의 어떤 때보다──차갑고, 살의에 차있다. 「……잘 모르겠지만. 즉, 너는 두 사람의 시키의 원형이구나」 「그래. 료우기 시키의 본질이야. 그리고 결코 겉으로 나오지 않는 본질. 육체에 지나지 않는 나는 생각할 수가 없으니까, 그대로 죽었어야 했어. 「 」인 나는, 「 」이기 때문에 지성도 의미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료우기가의 사람들은, 그런 텅 빈 나에게 지성을 주었어. 그들은 료우기 시키를 만능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인격을 짜넣으려 했어. 그렇게 해서 지성의 원형인 내가 깨어났고, 그 뒤에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서, 나는 시키와 '시키'를 만들었어」 아아, 하고 그는 숨을 흘린다. 시키와 '시키', 음과 양, 선과 악. 그것은 상반되기 때문에 나뉘어 진 게 아니다.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마술사는 말했다. 그렇게 나뉘어 진 것은, 그것이 더욱 많은 속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라고. 「우습지? 사실은 미숙아로서 사라져 버려야할 나는, 그렇게 해서 나 자신이란 것을 얻어버렸어. 갓 태어난 동물은, 아기의 몸과 그것에 알맞은 지성의 싹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나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난 것은, 그대로 죽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야. 애초부터 「 」에 가까운 존재는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는 안 돼. 토우코씨에게 들었겠지? 세계는, 세계 스스로 파멸의 원인이 되는 사건을 막고 있다고. 그래서 평소대로 라면 나는 발생(發生)하더라도 태어나는 일 조차 없었어. 나처럼 「 」에서 곧바로 흘러나가 생물은 모친의 태반 내에서 죽을 뿐이야. ───하지만, 료우기 혈족은 그것을 생존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거겠지. 그렇게 해서 태어난 나는, 하지만 지성의 싹조차 없어. 「 」는 무(無)이니까, 지성도 무(無)였는걸. 나는 그대로, 외계(外界)를 인식하는 일없이 살아갔어야 했어. 하지만 그들은 나를 깨웠어. 이미 만들어져있는 인격을 나에게 이식한 것이 아니라, 「 」이라는 나의 기원을 깨워버렸어. 억지로 밖의 세계를 보게 되어버린 나는, 귀찮아져서 그 뒤의 일은 시키에게 떠맡기기로 했어. ───당연하잖아? 하지만, 바깥 세계의 일 따위는, 너무나 뻔한 일들뿐이라서 재미없었는걸」 천진난만한 눈동자가 웃음 짓는다. 그것은 냉혹한, 어딘가 비웃음을 머금은 몸짓이었다. … 「───그래도, 네게는 의지가 있어」 그에게는 그녀가 애처로워보여서,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끄덕인다. 「그래. 어떤 사람이라도 육체 자체에 인격은 있지만, 그것 자체가 자기(自己)를 인식하는 일 따위는 없어. 왜냐면 그 전에 뇌가 지성을 만들어내는 걸. 뇌의 움직임에 의해서 태어난 지성은 인격이 되어, 육체 그 자체를 총괄하지. 그 시점에서 육체에 깃들어 있던 인격 따위는 무의미해져버려. 뇌도 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지성이란 것은 자신을 낳은 뇌만을 육체와 분리해서 생각하며, 특별한 걸로 취급하잖아?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가 아니면 형체를 이룰 수 없어. 하지만 하드웨어 자신은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움직여 주지 않아. 인격이라고 하는 지성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낸 육체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성(인격)이 자신(육체)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그 순서가 남들과 다를 뿐. 그래도 말야,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도, 시키라고 하는 인격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 할 수 있어. 시키가 없다면, 나는 말조차 이해할 수 없어. 왜냐하면 단순한 육체에 지나지 않는걸」 「……그런가. 시키라고 하는 인격이 없으면 너는 밖의 세계를 알 수 없었어. 왜냐면───」 「맞아. 난 전원이 켜지지 않은 하드웨어라서, 시키라는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단순한 빈껍데기야. 그저 내면만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죽음으로 통하고 있을 뿐인 그릇. 마술사들은 근원으로 통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있어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어」 그녀는 살짝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그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하얀 손가락이 스륵, 하고 그의 앞머리를 흔든다. 머리카락 아래에는 한줄기 상처자국. 「……하지만, 지금은 조금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 나라면 이런 상처정도는 낫게 해줄 수 있으니까하고. 누군가의 힘이 되어서, 밖의 세계와 관계할 수 있다고. ……그런데도, 당신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구나」 「응, 시키는 부수는 게 전문이니까. 무리해서 더욱 심한 꼴을 당하는 건, 무서워」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그는 온화한 얼굴로 웃는다. 그녀는 햇살에서 도망치는 나비처럼 눈을 돌리고, 내리는 눈보다 부드럽게 손가락을 내렸다. 「……그래. 시키는, 부수는 것밖에 못하는걸. 당신에게 있어서는, 역시 나는 시키인 거야」 「───시키?」 「……나의 기원은 허무니까, 그 육체를 가진 시키는 죽음이 보여. 2년간───혼수상태에서 외계(外界)를 보지도 못하고 그저 료우기 시키라는 허무를 계속 보아온 시키는, 죽음의 감촉을 알아버렸으니까. 시키는 말야, 계속 근원의 소용돌이라고 불리는 바다에 떠있었던 거야. 그저 혼자서, 「 」안에서 시키라고 하는 형체를 가져서」 ……분명히 허무라는 것이 기원이라면, 그녀는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예외 없이, 시키는 모든 것을 죽였다. 시키라고 하는 인격이 부정하려해도, 그것이 그녀의 혼의 원형이기 때문에. 허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의 죽음을 바라는 방향성───. 「그래, 그것이 시키의 능력이야. 아사가미 후지노와 마찬가지로, 남들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특수한 채널. 근원의 소용돌이라고 하는 세계의 축약도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눈. 하지만, 나는 더욱 깊은 곳까지 숨어들 수 있어. 아니───나 자신이 그 소용돌이 인지도 몰라」 그녀는 그를 응시하는 채로, 불안정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쓸쓸한 감정을 토로하듯이. 「……근원의 소용돌이. 모든 것의 원인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장소. 그것이 나의 정체. 그저 이어져있기만 할뿐이지만, 나는 그것의 일부인걸. 그건 같은 존재라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렇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물질의 법칙을 재구성하거나, 거슬러 올라가서 생물 그 자체의 계통 트리를 바꿔버리는 것도 가능해. 지금의 세계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것도 간단해. 이 세계를 다시 만드는 게 아냐. 새로운 세계로 낡은 세계를 깔아뭉개는 거야」 그렇게 말하곤, 그녀는 작게 웃었다. 자신을 경멸하듯, 바보 같다며 입가를 일그러뜨리면서. 「……하지만, 그런 것에 의미는 없어. 피곤할 뿐이지. 그런 건, 꿈을 꾸는 것과 다를 바 없는걸. 그래서 나는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꿈조차 꾸지 않는다는 꿈을 꿔. ……그런데도 나와 시키가 꾸는 꿈은 다른 것 같아. 시키는 혼자 있는 것은 싫대. 한심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 이 얼마나 한심한 시키. 이 얼마나 한심한 현실. 이 얼마나 한심한──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먼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소중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물건처럼.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네. 나는 몸에 지나지 않으니까. 어차피 같은 존재니까, 그녀의 꿈에 함께 해줘야 해. 시키는 밖을, 나는 안을 바라보고 있어. 료우기 시키의 몸은 말야, 근원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통해 있잖아? 내면 밖에 볼 수 없는 나는, 그래서 모든 일들을 알아버렸어. 그것이 고통스럽고, 지루하고, 무의미해서, 나는 눈을 감고 있었어. ……그게 다시 계속될 뿐이니까, 결국 이전과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계속, 자고 있으면 돼. 꿈도 꾸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계속. 언젠가 이 몸이 죽어서 사라져버릴 때에도, 꿈의 끝을 깨닫지 못하도록」 이야기는, 내려쌓이는 눈에 매장되듯, 조용히 어둠 속에 녹아간다. 그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그녀는 그것을 나무라듯이, 작고,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네. 이런 것에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응. 기쁘니까 하나만 더 상을 줄까. 시키는 말야, 살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야. 그녀는 착각하고 있어. 왜냐면 그녀의 살인충동은 내게서 생겨난 것이니까, 그건 그녀 본인의 기호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안심해 줘, 코쿠토군. 살인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를 말하는 거니까.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하던 건, 다른 게 아니라 나였다는 이야기야」 시키에게는 비밀로 해줘, 라며 그녀는 장난스럽게 미소 짓는다. 그는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릇밖에 되지 않는 육체. 하지만 자기(自己)를 형성하고, 성장시킨 근원의 존재. 시키라고 하는 여러가지 지성을 총괄하는 무의식하의 지성. 그런 이야기, 말 해봤자 분명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라는 껍질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니, 그런 것은 당연한 얘기인데도. … 「……슬슬 갈게. 저기, 코쿠토군. 당신은 정말로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어. 시라즈미 리오와 대치했을 때도, 죽음과 맞닿아 있었는데도 중립을 선택했어. 나는, 그게 신기해서 참을 수 가 없었어. 당신은 오늘보다도 더욱 즐거운 내일을 원하지 않는 거야?」 「……아아, 지금도 즐거우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 그래, 하고 그녀는 중얼거린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그를, 부러움과 닮은 눈길로 바라보면서. ……그녀는 생각한다. 아무런 특징도 없이, 특별해지려는 희망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간 따위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복수(複數)의 생각, 대립하는 의견, 상반하는 의견을 안고서 살고 있다. 그것의 화신이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그는 그것이 극히 엷은 인물───.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는 대신에, 자신도 상처입지 않는다. 아무 것도 빼앗지 않는 대신에,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시간에 완전히 녹아들 듯 사람들의 평균으로서 살아가며, 조용히 숨을 거두어간다. 평범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인생. 하지만 사회 속에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당연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다. 무엇과도 싸우지 않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따위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다. 특별해지려고 하고, 그걸 이루지 못했던 결과가 평범한 인생이라는 모습인 거다. 그러니까───처음부터 그렇게 있으려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렵다.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특별" 한 일. 결국, 특별하지 않은 인간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한사람 한사람이 전혀 다른 의미의 생물. 단지 종(種)이 같을 뿐이라는 것을 믿고서 서로 바싹 달라붙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간격을 텅 빈 경계로 만들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런 날이 오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꿈꾸며 살아간다. 분명 그것이야말로 누구 하나 예외도 없는, 단 하나의 노멀리티(당연함). ……긴, 정적 뒤에. 그녀는 천천히, 하얗게 펼쳐진 밤의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도 이해 줄 수 없는 특별성과, 누구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보편성. 누가 봐도 평범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깊게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대신에, 아무도 매혹시킬 수 없는 누군가. 행복한 나날의 결정 같은 그 사람. 그렇다면 외토리인 것은, 정말로 어느 쪽인 걸까……? ───그런 건, 분명 아무도 알 수 없다. 흔들리는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 파도처럼 짙은 슬픔이 있다.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은, 폭로가 흐른다. 「당연하다는 듯이 살고, 당연하다는 듯이 죽는 거구나」 아아, 그것은───. 「얼마나, 고독───」 끝이 없는, 시작조차 없는 어둠을 바라보며. 이별을 고하듯, 료우기 시키는 그렇게 말했다. ◇ 그렇게, 그는 그녀를 배웅했다.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눈은 그치지 않고, 하얀 파편은 어둠을 메운다. 하늘하늘, 깃털처럼 떨어져간다. ───안녕, 코쿠토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다. ───바보네. 내일 또 만날텐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젠가의 그녀처럼, 그저 눈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이 밝을 때까지 그녀 대신 계속 바라본다. 눈은 그치지 않고, 세계가 잿빛에 감싸였을 무렵, 그는 혼자서 귀로에 접어들었다. 검은 우산은 천천히, 오가는 사람의 모습조차 없는 길을 흘러간다. 하얀 어둠 속. 새벽에 사라져 가는 어둠은 이 밤의 자취처럼. 하늘하늘, 혼자서 엷어져 간다. 하지만 쓸쓸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그는 멈춰서는 일없이 귀로를 더듬어 갔다. 4년 전, 처음으로 그녀와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조용히, 그저 눈의 날을 노래하면서. 空の境界 · 了 -------------------------------------------------------------------------------- * 2002년 8월 11일 번역 시작 - 2003년 4월  7일 초벌 번역 종료. 2002년 9월 20일 교정 시작 - 2003년 6월 28일 1기 교정 종료. -------------------------------------------------------------------------------- [←|↑] -------------------------------------------------------------------------------- あとかき -------------------------------------------------------------------------------- # 번역 후기 에에…후기를 쓰라는 독촉을 받아서 몇 자 적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한번 적어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적으려니 당황스럽군요. 그나저나,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흠흠. 생각해보면 참 오래 걸렸습니다. 처음에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제대하기 전에는 끝낼 수 있다' 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고서 마냥 즐겁게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만, 역시 양이 만만치 않더군요. 덕분에 주말이나 휴일에는 거의 모든 자유시간을 -여기저기 눈치 보면서- 작업에 쏟아 붓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게 진짜 폐인일지도) 그렇게 하다보니 다행히 거의 예상대로 진행되어 번역이 끝이 나긴 났는데, 그걸 받아서 작업하던 영훈이에게 과부하가 걸려버리더군요. 바깥에 있는 사람은 작업 말고도 할 게 많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거죠. 누군가와 공동 작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시행착오가 많기는 했습니다만, 여러 가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업을 누군가와 같이 해봤으면- 하고 전부터 바랬었습니다. 예전부터 즐겨오던 취미였습니다만, 누군가와 함께 작업하게 되어서 더욱 열심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작업자체는 매우 즐겁게(!) 했었습니다. 8개월 가까운 기간동안 '오로지 그것만' 붙들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다만, 거의 모든 뒷처리를 떠맡은 영훈이 녀석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한 것을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작업에 치이고, 저에게 도발(...) 당해오며 투덜투덜하면서도 성실하게 끝을 맺어준 녀석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또다시 절감한 부족한 실력. 작업을 할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여지껏 무언가를 끝마칠 때마다 ‘아, 내 레벨로는 이게 한계야’ 하고 생각하며 마무리를 짓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는 그 부족한 부분을 다른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의 텍스트에도 부족함이 있겠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정진할 생각이니, 다음번에는 지금보다 더 나아진 것을 만들 수 있……겠죠? ^^; …그리고 여러분께서 읽으셨던 텍스트들은 저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 홈페이지의 주인장이자 교정자인 영훈이가 없었더라면 저는 번역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테고, 번역했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낮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왔을 테니까요. 말하는 순간 의미를 상실하는 말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런저런 뒷이야기가 있습니다만, 후기에 쓰지 못한 그것들은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사실, 이 작업에 희생된(?) 된 사람은 저와 영훈이 뿐만이 아니거든요(...)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서… 교정보고 html化 하느라 제일(이라고 쓰고 죽도록 이라고 읽는다) 고생한 영훈이, (오래 전부터 그래왔지만) 이번 작업기간 내내 나에게 괴롭힘 당해온 재호형, 작업이 수월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신 홍웅기님, 이것저것 신경써준 태욱이와 준영이. 그리고 그 동안 응원해 주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여간… 두근두근~ 2003. 6. 29. 역자 현정수 # 교정 후기 길었…습니다. 장장 1년에 걸친 작업으로, 역자는 물론이고 교정자도 지쳐버렸지만, 끝을 냈다는 기쁨이 있으니, 일단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 간, 공개방식에 따른 일부적인 트러블도 있어서, 나름대로 고생을 했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알리기 위함이 이런 결과를 낳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정을 거듭하여, 더욱 더 번역본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역자와 교정자는 노력할 것입니다. 시작은, 어땠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질 않는군요. 원인은 역시 본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月姬』는 정수형이 제게 소개를 해주었지만, 『空の境界』는 제가 정수형에게 소개를 했었고, 총알(원본)을 지원한 것도 본인이니, 어찌 보면 제가 이제껏 고생한 원인은, 제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笑) 많이 힘들었습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역자와 교정자 둘 다, 작품을 끝까지 완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보자 라는 생각만 가지고 무턱대고 뛰어든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역자는 군인의 몸으로, 작업을 하기엔 상당히 불편한 환경이었습니다. 바깥에 있는 교정자와 의견교환이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이 작업의 난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작년에 상권 분량을 작업할 때는, 역자가 뽑아간 원본 프린트 물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올해 들어서, 하권 분량의 원본 프린트 물은 오류가 많이 나서, 깨진 한자가 역자를 상당히 괴롭혔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그 오역을 모조리 수정한다고 교정자도 죽어나는 줄 알았죠. 그리고 역자가 보고 한 것이 WEB 공개버전이라서, 교정자가 가진 제3판 제책본과는 문장 배열이 많이 틀렸다는 것도, 작업량이 불어나는 원인 중에 하나였습니다. 교정자가 최종적으로 공개를 위해 HTML化를 할 때 사용한 프로그램이 Notepad였다는 건, 확실히 자살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笑) 덤으로, 주석도 나름대로 고생이었죠. 물론, 대부분의 자료는 역자가 제공해 준 거였지만, 그걸 원래 링크 복구해서 자료를 더 찾아 편집 · 정리를 해서 달아 놓는 작업도, 보통 일은 아니었습니다. 모순나선이나 살인고찰(후)편은 특히 심했지요. 원작자의 지식의 범위가 새삼 감탄스럽기도 했지만, 이건 원작 소설에는 전-혀 주석이 달려 있지 않았던 터라, 따로 자료를 찾아다니기도 힘들었는데, 잘 찾아서 건내 준 역자에게도 감사를. 여담이지만, 이 일련의 주석 정리 작업을 하면서, 저도 괜히 이상한 지식만 잔뜩 얻어낸 느낌입니다. 척수공동증이나, 마약관련의 의약학 관련 지식이라던가, 모순나선에서 장황하게 나오는 각종 종교에 관한 교리(?)는 확실히 압박. 한국 사람이, 태극 때문에 고생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심오합니다. 확실히. 아시아의 종교, 불교와 유교(성리학), 그리고 일본의 음양도. 과연, 원작자의 상식에 끝은……. 한 가지 분명히 할 점은, 이 번역본의 메인 작업자는 역자인 정수형이고, 저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작업자입니다. 일본어 실력 자체도 천양지차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저는 아직도 일본어 능력 평가 2급도 딸 수 없는 실력입니다) 교정이 확실히 되었다고는, 저로서도 장담하기 힘듭니다. 아무쪼록, 이 점은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자가 군인이었기 때문에(이 글을 쓰는 현 시점에서는 전역하였음), 작업의 결과물에 대한 권한이 제게 있었기 때문에, 제가 관리 · 공개를 담당했었고, 덕분에 지금, 제 개인 홈페이지에 올라 와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이거 때문에 홈 관리한다고 애로사항에 꽃이 만발했습니다.) 앞으로도, 공동 작업의 결과물로서, 공동으로 관리를 하겠지만, 이제 역자가 전역을 하여 완연한 사회인이 되었으니, 역자에게도 수고와 감사의 한마디를 건내 주시면, 기뻐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후기는 절대 역자의 후기를 받기 전에 쓴 것이며, 역자도 이 후기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역자만의 후기를 써서 올릴 겁니다. 역자는 후기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최근에는 여느 작품을 접하고 나면 꼭, 후기를 읽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후기도, 읽어보면 다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저도 이 작업을 하면서, 끝나고 나면 후기를 한번 써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애초에, 각 편마다 단편적인 후기를 쓰고, 다 끝낸 다음에 종합적으로 다시 후기를 쓰는 게 연재물(?)의 올바른 후기 기재 방식입니다만, 정말 끝나기 직전에(아마 망각녹음 작업 할 때쯤이었던 듯) 생각이 났던 거라서, 이렇게나마 마지막에라도 횡설수설이지만, 끄적여 보는 겁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하로는, 교정자가 하는 일종의 잡담입니다. 약간 장황할지도 모르겠으나, 끝까지 읽어보시고 공감하시는 분들이 계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데도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문득 생각이 나는 게, 교정 작업을 끝내기 직전에 읽은 Phantom of Inferno의 소설문고판 1권 작가(虛淵 玄) 후기입니다. 이쪽 세계(18금 게임 업계)에 신참자를 환영하는 케이스는, 첫째, 18세 이상의 연령에 도달하고(우리나라는 만 19세?), 둘째, 그 18세의 연령에 걸 맞는 사리분별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셋째, 자신의 의지로 발을 들여 놓는 사람…에 한해서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확실히, 지금 생각해보면 납득이 가는 말입니다. 저도, 이쪽 세계를 처음 접해본 건, 중 · 고등학교 시절에 단편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당시에 아이들에게 유명하고, 한글 패치가 된(제가 일본어를 익힌 건, 수능을 마친, 졸업시즌이었습니다.) 단순한 성적 호기심으로 접하게 된,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라고 해봐야 남들에 비하면 적게 접해본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역시, 제대로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건, 일본어를 익히기 시작한 뒤였습니다. 번역본에 의지 하지 않을 수 있게 된 뒤부터 스스로 많은 작품을(역시 남들에 비해선 적은 편이지만) 접해보게 되더군요. 이 때는 이미, 대학을 다니면서, 수험생 시절보다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덕에, 여러 가지로 즐겨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고, 주변에서의 제재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통신을 처음 시작한 중학교 때나, 전용선의 보급으로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열린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멋모르는 어린 아이였고, 주변 사람들과, 통신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 덕분에, 저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요즘 세태가 많이 꼴불견이 됐다는 점, 때문일까요. 저 자신도, 어렸을 때는 어느 정도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던 경험이 있기에, 감히 지적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제재나 지도를 받지 않고 마구잡이로 인터넷을 휘젓고 다니는 요즘 아이들은, 정말 무섭기 그지없습니다. 최근, 우리말을 망가뜨리는 통신어는, 끔찍하기 이루어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제 위에 있는 사람들 보다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아이들, 대략 82년생, 즉 저와 동갑인 연대 이하. 84년생 이하는 꽤 심각하고, 85년생 이하는 상당히 처참한 수준이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하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아무래도, 교육수준이 하향 되고, 질이 저하됨에 따라, 아이들의 정신적 수준도 같이 하향 된 느낌입니다. 여기까지는, 학교와 교육관계기관의 탓으로 돌려도 되는데, 최근 유아(초등학생 이하)들은, 가정교육 그 자체를 문제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당 작품, 『空の境界』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쪽 세계(그러니까 성인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단순히, 여러분들께 더 잘 알려진 『月姬』와의 연관성을 떠나서라도, 『空の境界』만 놓고 보더라도, 이 작품의 심오함이나 일부의 폭력성은, 확실한 사리분별능력을 구축하고 있는, 성인이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읽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이쪽 세계를 위험하게 할 내용까지는 아니지만, 작품을 바르게 받아들이기에는 역시 제대로 확립된 정신세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이너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고, 소개를 하고 역자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이렇게 공개를 하게 된 이유는, 수준 높은 독자들과 작품에 대한 토론을 즐겁게 기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번역」이라는 행위는, 보수를 받고 하는 행위가 아닌 이상, 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역자의 봉사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보수로 번역을 하는 역자들은 보통, 자기만족과 성취감을 위해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 원작에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수준으로 번역을 해야, 그것이 진정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직업인, 즉 프로들도 질이 떨어지는 번역을 많이 찍어내는 형편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범람하는 아마추어들의 마구잡이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저희들의 번역본도,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요즘 번역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는 것도 많았습니다. 저 자신이 많은 작품을 접하지 않고, 번역본 자체를 읽기 귀찮아해서 잘 안 보는 편입니다만, 주변에서 말하는 걸 들어보면 이미 포기할 수준까지 갔다고들 하더군요.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저보다 일어를 더 잘 하기 때문에, 달리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자막만 해도,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 되는 건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유일하게 보는 애니인 『犬夜叉』의 자막도, 초기의 JH님 번역이 참 괜찮았는데, 중도하차하신 이후로, 중반부터인가, hitomi라는 어느 일본인이 만든 자막을 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일본인이 번역하는 만큼, 오역은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 외에, 『RAhXephon』 같은 애니는 번역이 참 마음에 안 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애니메이션 자막은, 성우의 목소리가 있는 만큼, 애매한 의역보다는, 확실한 직역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일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게 더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요즘은 게임 번역도 꽤나 범람하는 듯 합니다만, 게중에는 정말로 꼴사나운 것들도 꽤 있어서, 눈쌀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번역이란 작업을 쉽게 생각하시고, 무턱대고 달려들어서 만들어낸 결과물인 듯 합니다만, 번역기보다 질이 떨어지는 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더군요. 최소한, 사전은 찾아가면서 해야하지 않나, 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流石に를 유석은, 이라고 번역한 어느 번역본은, 지인들 사이에서 화제꺼리가 되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입니다. 제가 직접 그 번역본을 읽어 본 건 아니지만, 저런 것들이 범람하고 있다는 건, 역시 곱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군요. 다시 이야기가 샜는데, 말하고 싶은 요지는 이겁니다. 역자는, 일본어를 전혀 못 하시는 독자들에게는, 절대적인 사람으로 비춰질지도 모릅니다. 일본어를 모르는 자신들을 위해 봉사를 해주시는 고마우신 분, 이라고 생각하시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로 착각입니다. 물론, 역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가져주시는 게 역자로서도 기쁘겠지만, 한 가지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될 점은, 역자가 위대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건 좋으나, 신성시 한다고 해서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 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역자도 사람이고, 역자 마다 수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잘 살펴보면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실수가 실수라기보다는 실력 그 자체의 한계이고, 그게 두드러지게 보여 질 때는 그건 번역본이 아니게 됩니다. 특히, 원본을 파괴하다시피 하는 의역만 난무하는 번역본은, 그 개인에 의한 2차 창작품(소위 말해 소설)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선) 역자는 신성한 존재이니까, 역자에게 딴지를 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라는 건 분명히 잘못 된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 번역본의 버그(오탈자 및 오역, 그리고 자잘한 HTML Tag化에서의 실수)는 여러분들께서 철저하게 집어 내셔서, 역자와 교정자에게 제보를 해주시면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독자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불평불만만 늘어나고, 제대로 된 토론과 비평은 보기 힘들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제대로 된 토론과 비평이, 그 단체의 전체적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여러분들께서 명심하시고 살아가셨으면 하는 게, 제 마지막 당부입니다. 그 간에, 이 『空の境界』만 작업 한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번역 작업을 하고 있는 『永遠の樂園』도 질질 끌고 있지만, 조금씩 작업을 해나가고 있었고, 친구 준영이와 함께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MELTY BLOOD』)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空の境界』가 일단 최우선시 되다보니, 자연적으로 전체적인 작업의 진행이 늦어졌고, (『MELTY BLOOD』는 작업 시작도 늦었지만) 결국 본인이 입대를 하게 되서, 제대로 된 결말을 짓고 가지 못하게 되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永遠の樂園』 같은 경우에는, 군 안에서 시간이 나면 짬짬이 해볼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환경이 그렇게 여유로울 것 같지는 않더군요. 그저, 『空の境界』라도 끝내고 가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역자인 정수형이 전역한 6월 25일은, 제 운명이 갈리는 날이었습니다.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은 해병대 합격 소식. 그것도 7월 1일 입대. 여유기간은 단 1주일. 쉴 틈도 없었습니다. 미리미리 해뒀으면 되는데, 역시 천성이 게으르다 보니, 별 수 없었나 봅니다. 이제, 하나라도 끝냈으니, 어느 정도는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군요. 여기까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까지 작업을 하는데 보내주신 여러분들의 성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교정자는 이만 후기를 마치려 합니다. 2003. 6. 28. 교정자 김영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