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직 어릴 적, 소꿉놀이를 하다가 손바닥을 베인 적이 있었습니다. 빌린 것에, 모조품, 가짜들. 그런 보잘 것 없는 요리도구 가운데서 단 하나 진짜가 섞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멋진 장식이 달린 가느다란 칼을 가지고 놀고 있던 저는, 어느새 그랬는지 손가락 사이가 깊게 베여 있었습니다. 손바닥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저를 꾸짖으면서 울음을 터뜨리셨고 나중에는 다정하게 끌어 안아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팠지, 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이유를 알 수 없는 말 같은 것 보다 끌어 안아준 것이 기뻐서, 어머니와 함께 울었습니다. 후지노, 상처는 나으면 아프지 않단다─── 하얀 붕대를 감으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의 의미도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번도 아프다고 느끼지 않았으니까요. / 통각잔류 -------------------------------------------------------------------------------- (0) 「별난 소개장을 가지고 왔군, 자네」 대학의 연구실. 하얀 옷이 어울리는 초로의 교수는 어딘가 파충류 같은 느낌의 미소를 띠우면서 악수를 청해왔다. 「헤에, 초능력이라. 자네, 그런 것에 흥미가 있나?」 「아뇨,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 것을 흥미라고 하지. 뭐어 상관없지만. 헤에, 명함을 소개장 대용으로 쓰다니, 그녀답군. 그녀는 나의 제자 중에서는 유별났기 때문에 마음에 두고 있다네. 이곳도 쓸만한 녀석이 적어지기만 해서 인재가 없어. 부족한 건 곤란한 일이야」 「저기, 초능력의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아아, 그래그래, 초능력. 하지만 말이야, 초능력에도 종류가 있어. 우리 쪽에선 본격적으로 계측하지도 않는데 참고가 될 수 있을까? 이 업계는 일본에서는 인기가 없어서 연구시설이 셀 수 있을 정도밖에 없지. 그런 것은 거의가 블랙박스가 되어버리니까. 내가 있는 곳까지 자세한 얘기가 오지 않아. 응, 요 3년간 상당히 실용적인 레벨까지 올라갔다고는 하는데, 어떨까. 그건 태어날 때부터 특출 나지 않으면 안 되거든」 「초능력의 구별은 괜찮습니다. 아마도 PK(Psycho Kinesis)라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인간이 초능력을 어떤 식으로 가지게 되어버리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채널이야. 자네, 텔레비전 보나?」 「하아, 당연히 보지요. ───그것에 뭔가 관련이 있습니까?」 「텔레비전이야 텔레비전. 인간의 뇌를 채널로 생각하는 거라네. 자네, 평소에 많이 보는 채널이 뭔가?」 「……글쎄요, 8채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거야. 그건 제일 시청률이 좋은 채널이란 소리겠지? 인간이란 존재의 뇌에는 12개의 채널이 있다고 가정하지. 나와 자네의 뇌에는 이미 그 8채널……제일 시청률이 좋은 방송에 맞춰져있어. 그 이외의 채널도 있지만 우리들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아. 모두가 제일 많이 보는 방송, 즉 상식일까. 그 상식의 안에서 살아가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채널이 8채널. 이해가 가나?」 「───그러니까, 제일 깨끗하게 나오는 방송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까?」 「아냐아냐. 그것이 제일 좋은 거야. 20세기의 상식, 즉 제일 시청률이 좋은 법칙이 8채널. 우리들은 그곳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것이 제일 평화롭지. 상식 안에서 살아가고, 상식이라고 하는 절대법칙에 보호되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거라네」 「과연. 그렇다면 다른 채널은 평화롭지 않다는 말씀이신지요?」 「글쎄, 어떨까. 예를 들자면 3채널은 인간의 말 대신에 식물의 말을 수신해버릴 수 있는 채널이라고 하지. 또, 4채널은 본래 육체를 움직여야할 뇌파가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자신의 몸 밖의 물체를 움직여버리는 채널이라고 하지. 이런 채널이 있다면 굉장할 거야. 하지만 그곳에는 8채널에서 흐르고 있는 상식은 없겠지. 다른 채널에는 그 채널의 독자적인 "방송(룰)"이 흐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시대에 맞춰서 살아가기 위한 채널은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8채널이니까, 4채널을 보고 있는 사람이 사회(8채널)에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다른 채널에는 8채널에서 흐르고 있는 당연한 상식이 없으니까 말야」 「───곧, 8채널이 없다는 것은 정신이상자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만약 3채널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이 있다고 하면, 그 인간은 식물과 말을 할 수 있는 대신에 인간과 말을 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사회에서는 정신이상자로서 정신병원에 감금되겠지. 초능력자란 것은 그런 존재야. 태어날 때부터 모두의 공통채널이 아닌, 다른 채널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 하지만 대개의 초능력자들은 8채널과 4채널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서 구분해서 사용하지. 채널이니까, 보고 싶을 때 방송을 바꿀 수 있잖아? 4채널을 보고 있을 때는 8채널은 볼 수 없어. 8채널을 보고 있을 때는 4채널을 볼 수 없고. 세상에 섞여든 초능력자들은 그런 식으로 능력을 구사하며 살아가지. 그래서 우리들은 좀처럼 그들을 발견할 수 없어」 「과연, 그러니까──4채널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것이 없군요」 「그렇지. 그런 사람을 말야, 세상에서는 살인귀라던가 광인(狂人)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부르지. "존재부적합자(存在不適合者)"라고. 사회에 부적합한 인간은 여기저기 널려있지만 그들은 그 존재자체가 이미 부적합해. 존재하고 있어서는 안 되지. 아니, 시켜서는 안돼. 가정을 해볼까. 지금까지 평소에 쓰던 채널과 4채널을 가지고 있던 인간이 있는데, 어떤 사고로 인해 육체의 기능이 파괴되어서 평소의 채널로 갈 수 없게 되었다면 그 인간은 끝장이야. 지금까지의 생활로 상식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채널로 갈 수 없으면 결국 우리들과 말이 통하지 않게 되지. 전파가 다르니까」 「……그럼, 존재부적합자를 적합자로 되돌릴 방법은 있나요?」 「응, 생명활동이 정지되면 되는 거 아닐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이상한 채널을 파괴하면 돼. 하지만 그것은 뇌를 박살내버린다는 소리니, 결국 죽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지. 육체의 기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그 조직만을 파괴하는 융통성 있는 기술은 아직 없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초능력이겠군. 제일 강력한 12채널정도 될까. 그 채널은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아하하, 하고 교수는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참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그 PK라고 불리는 초능력으로 제일 유명한 것은 스푼 구부리기 인가요?」 「뭐야, 스푼을 구부리는 거야?」 「스푼은 모르겠지만, 인간의 팔정도라면」 「그건 자네정도의 성인의 팔? 그거 대단한데, "왜곡"은 물체의 견고함보다는 물체의 크기가 문제가 돼. 인간의 팔을 구부린다고 해도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그런데 그건 어느 쪽 방향이지?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그것에 의미가 있습니까?」 「있어. 지점의 문제. 지구도 회전방향이 있잖아. 에, 일정치 않아? ……흐─음, 그게 실존하는 능력인가? 그렇다면 관계하지 않는 편이 좋겠네. 채널을 2개 이상 가지고 있어, 그 존재부적합자. 아마도 좌회전과 우회전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거야. 나는 말이지, 채널을 두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케이스는 들은 적이 없어. 001과 002가 합체하면 009라도 이길 수 없지 않겠나?」 「……저기, 시간이 없어서 이쯤해서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나가노현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어서요. 에에, 오늘은 정말 실례 했습니다」 「응, 괜찮아 괜찮아. 그녀의 소개라면 얼마든지 오게나. 그런데말야, 자네. 아오자키군은 잘 있는가?」 / 1 멍한 의식 속에서, 아사가미 후지노(淺上藤乃)는 몸을 일으켰다. 후지노는 방안에 있었다. 주위에 사람의 모습은 없다. 방안에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새까만 어둠만이 그녀의 주위에 남아있었다. 「아─────」 고민하는 듯한 한숨을 내쉬면서, 후지노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만져본다. ……왼쪽어깨에서 가슴 쪽까지 늘어뜨려져 있던 부분이 없어져있었다. 아까까지 자신을 덮쳐누르고 있던 남자가 나이프로 잘랐기 때문이겠지. 그것을 기억해내고서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지하에 만들어진 술집이다. 반년 전에 경영난을 이유로 방치되어, 그 뒤로는 불량소년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린 폐허다. ……방의 구석에는 아무렇게나 쳐 박혀있는 파이프 의자가 남아있다. ……방의 한가운데에는 당구대가 하나 남아있을 뿐이다. ……편의점에서 사온 간이식을 먹고 버린 용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런 여러 가지 나태한 모습이, 추악한 침전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방에 충만한 쉰 냄새에 후지노는 불쾌해진다. 이곳은 폐허. 아니면 어딘가의 먼 나라에 있는 슬럼가의 뒷골목일까. 계단을 올라가면 그 앞에 바로 정상적인 거리가 존재한다니, 상상도 하기 힘들다. 이곳에서 정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알코올램프의 냄새뿐이겠지. 「에에 그러니까────」 두리번두리번하고 조심스런 태도로 주위를 둘러본다. 후지노의 의식은 아직 완전히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일어났었던 일이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주위에 굴러다니고 있는 손목을 집어 들었다. 비틀려 잘린 손목에는 손목시계가 매여 있다. 디지털 표시가 98년의 7월 20일을 표시하고 있었다. 시각은 오후 8시. 그로부터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큿……!」 돌발적인 통증이 덮쳐와, 후지노는 신음했다. 복부에 엄청난 감각이 남는다. 자신의 뱃속이 죄어드는 듯한 답답함에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찰팍하고 바닥을 짚은 손이 소리를 낸다. 바닥을 보니 이 폐허의 바닥은 온통 물에 잠겨있었다. 「……아아, 확실히 오늘은 비가 왔었어요」 누구에게 말하는 것도 아닌 중얼거림과 함께, 후지노는 일어섰다. 흘끗, 자신의 복부를 본다. 그곳에는 피의 흔적이 있었다. 자신이, 아사가미 후지노가 이곳에 흩어져있는 남자들에게 찔린 상처가. … 후지노를 나이프로 찌른 남자는 거리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탈선한 고교생가운데서도 제일 눈에 띄고, 거리를 노다니는 패거리의 리더 같은 존재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서 하고 싶은 짓만 하고 있던 그는, 오락의 일환으로 후지노를 능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그녀가 레이엔(禮園)여학원의 학생인데다 미인이었기 때문이겠지. 약간 야만적이고 뒷일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제멋대로이며 어딘지 모르게 머리가 나쁜 것 같았던 그와, 그의 유사품 같았던 그 패거리들은 한번의 폭행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원래는 자신들이 고소당할 입장이라고 알고 있던 듯 했으나, 후지노가 누구와도 상담하지 않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생각을 바꾸었다. 강한 것은 자신들이라고 깨닫자 그들은 수없이 그녀를 이 폐허로 끌고 들어왔다. 오늘저녁도 그 연장으로, 그들은 안심하다 못해 이 행위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 남자가 나이프를 꺼내든 것도 그런 타성적인 반복을 타파하기 때문이었던 것이겠지. 능욕당하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는 후지노에게, 젊은이들의 리더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있던 것이다. 그는 후지노를 지배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원했다. 그것을 위해 수반되는 폭력으로 나이프를 준비했다. 하지만 소녀는 더욱 차가운 얼굴을 할 뿐이었다. 그는 나이프를 들이밀어도 표정을 바꾸지 않는 소녀에게 격분하여 그녀를 밀어 쓰러뜨렸고, 그리고──── … 「……이래서야,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어」 자신이 피투성이가 된 것을 깨닫고 후지노는 눈을 내리깔았다. 자신이 흘린 피는 복부에 남은 찔린 상처뿐이었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들의 혈액으로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러워지다니───바보 같아」 오늘까지 계속 능욕 당해온 일보다 피에 더러워진 일 쪽을 용서 할 수 없는 것일까. 후지노는 바닥에 흩어진 젊은이들의 육체의 하나를 걷어찼다. 평소의 자신과 너무나 거리가 있는 흉폭함에 놀라면서, 후지노는 생각한다. 밖에는 비가 온다. 앞으로 1시간만 지나면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적어진다. 비라고 해도 계절은 여름이니까 차갑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빗물로 핏자국을 씻으며 공원에 가서, 거기서 어떻게든 더러움을 떨어내버리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그녀는 금방 침착해졌다. 피 웅덩이 속을 걸어서 당구대 위에 앉는다. 거기서 간신히 사체의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넷. ……넷. ……넷? ……아무리 세어도, 넷……! 깜짝 놀랐다. ─────하나, 부족하다. 「한 명, 도망쳐버렸네요────」 허망하게 중얼거린다. 그렇다면 자신은 경찰에게 붙잡혀버리겠지. 그가 경찰서에 뛰어 들어가면 나는 그대로 체포된다. 하지만───정말로 그가 경찰서로 갈까?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사가미 후지노라는 소녀를 여러 명이 납치해서 능욕하고, 그 일을 학교 측에 공표당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굴라고 협박했던 처음부터 설명할까───? 설마. 그런 일은 불가능한데다가 이런 녀석들에는 진실을 숨기면서 잘 둘러댈 능력도 없다. 후지노는 조금 안심하고 당구대에 있는 램프에 불을 붙였다. 후욱, 하는 마른 소리가 나면서 램프의 불이 암흑을 밝힌다. 열여섯 개의 너덜너덜해진 수족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찾아보면 몸뚱이도 머리도 네 개씩 있겠지. 오렌지색의 빛에 비추이는, 미쳐버린 듯한 붉은 빛에 물들여진 방은 여러 가지 의미로 끝이 나있었다. 그 참상을, 후지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한명, 도망쳤다. 그녀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쁘게도,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 「나, 복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아직 남아있는 한 명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에 후지노는 두려움을 느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다며 몸이 떨린다. 하지만 그의 입을 막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하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죽인다니, 그런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이젠 싫다─── 그것은 그녀의 진정한 본심이었다. 피 웅덩이에 비친 그녀의 입은, 살며시 웃고 있었다. 통각잔류 \ 1 7월의 끝에 가까워지면서 내 주위는 갑자기 시끌벅적 해졌다. 2년 동안이나 혼수상태로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친구가 의식을 회복하고, 대학을 관두고 취직한 직장에서 두 번째의 큰 건이 끝나고, 5년 정도 만나지 못했던 여동생이 상경해오는 등, 숨 돌릴 틈도 없다. 나 코쿠토 미키야의 19세의 여름은 그런 어수선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오늘은 오래간만의 휴일이었지만 고교시절의 친구들의 초대로 술자리에 얼굴을 내밀었고, 정신이 들고 보니 막차를 놓쳐버렸다. 술자리에 참가했던 녀석들은 택시를 잡거나 해서 돌아갔지만, 봉급날인 내일을 기다리는 나에게 그런 여분의 돈은 없다. 할 수 없이 걸어서 돌아오기로 했다. 다행히 집은 여기서 두 정거장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아까까지 7월20일이었던 날짜는, 이미 다음 날인 21일로 바뀌어버렸다. 오전 0시가 넘은 밤거리를 홀로 걷는다. 내일이 평일이라는 점도 있어서, 번화가는 잠이 들려고 하고 있다. 오늘 저녁은 비가 심하게 왔다. 늦은 잠에 비는 그쳐주었지만, 아스팔트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젖은 노면이 물소리를 낸다. 여름도 한창. 오늘밤도 기온은 30도를 충분히 넘고 있다. 밤의 열기와 비의 습기가 살갗에 달라붙어서 넌더리를 내며 걷고 있는데, 길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검은 학생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괴로운 듯 배를 누르고 가드레일에 기대어 웅크리고 있다. ……그, 교회의 수녀를 생각나게 하는 그 학생복은 본 기억이 있었다. 수수한 모습이면서도 파티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디자인은, 아가씨학교로 이름 높은 레이엔여학원의 것이다. 가쿠토의 말에 따르면 메이드복 같아서 좋다고 말하던, 그 쪽 계통 사람들에게는 대인기인 교복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내가 그 계통의 사람인 것이 결코 아니라 여동생이 그곳에 입학해서 본 기억이 있던 것이다. 「레이엔은 기숙사제라고 들었는데……」 그런데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 있는 것은 너무 수상하다. 무언가의 트러블에 휘말렸다던가 아니면 교칙을 지키지 않는 불량학생이라던가. 여동생이 다니는 학교이기도 해서 나는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하고 말을 걸자 소녀는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스르륵하고 길게 묶인 흑발이 흐른다. 「─────」 소녀는 희미하게───아주 조용하게, 놀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이 긴 아이였다. 눈동자는 침착해서 아주 어른스러웠다. 균형 잡힌 생김새는 작고 귀여우면서도 가늘고 예각적인 윤곽을 하고 있었다. 그 미묘한 밸런스는 일본인형의 미에 가깝다. 긴 머리를 스트레이트로 뒤로 내리고 귓가에서 머리카락을 약간 묶어서 가슴부근까지 좌우 대칭으로 늘어뜨리고 있다. 그 좌우 대칭으로 늘어진 술의 왼쪽만이, 가위로 잘린 것 같이 없었다. 앞머리는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어서, 한 눈에 양가집의 따님을 연상시킨다. 「예, 왜 그러시나요?」 창백한 얼굴로 소녀는 말했다. 입술이 보랏빛. 치아노제(Zyanose)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명백했다. 「배, 아프니?」 「아뇨, 그───저는, 저기───」 소녀는 평정을 가장하면서 말을 헛돌린다. 소녀는 어딘가 위태로웠다. 마치 시키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너, 레이엔의 학생이지. 전철을 놓친 거야? 여기서 레이엔은 멀어. 택시를 부를까?」 「아뇨, 괜찮아요. 저, 약속이 없으니까요」 「응, 나도 없어」 소녀는 하아, 하고 숨을 내쉬며 눈을 깜빡거렸다. ……나도 정말 엉뚱한 조건반사를 해버렸다. 「그래. 그러면 집이 가까운 거구나. 레이엔은 완전기숙사 제라고 들었는데, 외박도 할 수 있는 건가?」 「아뇨, 집은 더 멀어요」 하아, 하고 머리를 긁었다. 「곧 가출 같은 거야?」 「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곤란해졌다. 척 보니, 소녀는 푹 젖어있다. 방금 전까지 내리던 빗속에서 우산도 쓰지 않았던 것인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 날 이래, 나는 비에 젖은 여자는 싫었다. 그랬기 때문이겠지. 자연스레 이런 말이 나왔다. 「오늘 밤만이라도, 내가 있는 곳에 올래?」 「에엣, 괜찮으신가요……!?」 쭈그린 채, 의탁하는 듯한 눈길로 소녀는 되물었다. 나는 끄덕였다. 「혼자 사니까 문제는 없지만 보증은 못해. 어쨌든 간에 그런 생각은 없지만, 이상한 우연히 일어나서 이쪽이 그런 기분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이래 뵈도 건강한 성인남자니까, 그런 점은 고려해 줘. 그래도 괜찮다면 오도록 해. 때마침 봉급날 전날이라 아무 것도 없지만 진통제정도는 있어」 소녀는 기뻐했다. 그 무방비하고 순수한 미소에 나도 기쁘다. 손을 내밀자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순간. 소녀가 앉아있던 아스팔트에 붉은 얼룩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낯선 여자아이를 데리고,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좀 걸어야하니까 힘들면 얘기해. 여자 한명 정도라면 어떻게든 업고 갈 수 있으니까」 「네. 하지만 상처는 아물어있으니까 아프지 않아요」 그녀는 그렇게 사양했지만 아직도 복부에 한쪽 손을 대고 있다. 어떻게 보아도 어떤 아픔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왠지 모르게 아까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배, 아프니?」 아뇨, 하고 소녀는 부정하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걷는다. 아주 약간의 침묵 뒤에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 아주……아주 아파요. 저, 울어버릴 것 같아서───울어도, 괜찮을까요?」 이쪽이 끄덕이자, 소녀는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소녀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기에 나도 이름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는 편이 어쩐지 로맨틱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소녀는 샤워를 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젖은 교복도 말리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비워주기로 한다. 담배를 사러갔다 온다는 흔한 핑계를 대고 집을 나왔다. 피우지도 않는 물건을 사러 갈 때만큼, 자신이 호인(好人)이라고 실감할 때는 없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다가 돌아와 보니, 소녀는 거실의 소파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자명종을 7시 반에 맞춰놓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 때, 배 쪽 부근이 베어져 있는 소녀의 학생복이 몹시 신경 쓰였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소녀는 할 일이 없었는지 거실에 정좌해있었다. 이쪽이 일어나자, 꾸벅하고 인사를 한다. 「어젯밤은 신세를 졌습니다. 답례는 할 수 없지만, 정말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만, 하고 소녀는 일어서서 나가려고 한다. ……그 답례인사를 하기 위해서 정좌를 하고 기다린건가 하고 생각하니, 차마 이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려. 아침밥정도는 먹고 가」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순순히 따랐다. 남아있는 재료는 파스타와 올리브통조림 뿐이어서 아침식사는 자연스럽게 스파게티가 된다. 두 사람 분을 재빨리 만들어서 식탁으로 나르고 소녀와 함께 먹는다. 분위기가 적적해져서 TV를 켜자 아침부터 굉장한 뉴스가 나왔다. 「───우와아. 이건 정말이지, 딱 토우코씨 취향인데」 본인이 있었다면 슬리퍼라도 날아올 것 같은 소릴 중얼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뉴스의 내용은 엽기적이었던 것이다. 현장에 있는 캐스터가 담담하게 말한다. 반년 전부터 방치되고 있던 지하 술집에서 4명의 청년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네 명은 모두 누군가에게 손발이 뜯어 발겨져, 현장은 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장소는 의외로 가깝다. 어젯밤의 술자리에서 네 정거장정도 떨어진 부근인가. ───손발을 절단 당했다가 아니라 뜯어 발겨졌다는 표현은 어딘가 부적절하다. 그런데도 뉴스에서는 그것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신원을 공표하기 시작했다. 피해자 4명은 모두 고교생 소년으로 현장부근의 거리를 중심으로 놀고 있던 불량학생들인 듯 하다. 약의 판매에도 손대고 있었다는 등, 뉴스캐스터가 마이크를 들이댄 관계자가 피해자들의 생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죽어도 상관없잖아요, 그 자식들" 그런 말이 목소리의 질을 달리해서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다. 죽은 자를 책망하는 듯한 뉴스 내용에 기분이 나빠서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문득 소녀를 보자, 그녀는 괴로운 듯 배를 누르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한입도 먹지 않은 것을 보니 역시 배의 상태가 안 좋은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표정은 알 수 없다. 「───죽어도 괜찮은 사람은 없어요」 거친 호흡을 하는 상태로,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다 나았는데, 이런 일이……!」 소녀는 난폭하게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현관까지 달려간다. 당황해서 쫓아가자 소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한쪽 손을 내밀었다. 가까이 오지마라, 라고 하는 의사표시였다. 「기다려. 진정하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해」 「괜찮아요. 저───역시, 이젠 되돌릴 수 없어요」 괴로움에 일그러지는 얼굴. 아픔에 견디는 그 얼굴은, 아주───시키와 닮아있었다. 소녀는 진정하고 나서, 깊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안녕.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요」 인형처럼 가지런한 얼굴 가운데에서, 눈동자만이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2 낯선 소녀와의 일이 있은 후, 회사로 향했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 정식 이름은 없다. 전문은 인형제작이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건축 관계의 일이다. 소장인 아오자키 토우코씨는 겉보기엔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공사도중에 방치된 폐 빌딩을 사들여서 자신의 사무소로 쓰고 있는 괴상한 사람이다. 결국 그것은 회사가 아니라 토우코씨 본인의 취미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지금은 이것이 코쿠토 미키야의 일상이다. 푸념은 있지만 불평은 없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까지 생각하고 있다. ……문제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아직 참을 수 있는 범위고. ───그런 일을 생각하는 사이에 회사에 다다랐다. 빌딩은 4층 건물로 사무실은 4층에 있다. 공사지대와 주거지의 사이에 있는 이 빌딩은 어딘지 모르게 절의 커다란 건물 같다. 별로 높지도 않은 주제에 올려다보는 사람을 위압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계단으로 4층에 올라갔다. 사무소에 들어가자 평소처럼 흐트러진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하나. 흑색에 가까운 남색 기모노의 소녀가 나른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기모노에는 물고기 같은 모양이 있었다. 「어라? 시키,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이런 곳이라고 하는 것은 실례야. 변변치는 못하다만 어쨌거나 이곳은 네 직장이잖아, 코쿠토」 시키의 반대편, 책상에 앉아있는 토우코씨가 빤히 노려보았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토우코씨는 변함없이 수수한 복장을 하고 있다. 장례식에서나 입을 것 같을 정도의 스마트한 검은 바지에 하얀 셔츠. 한쪽 귀에만 피어스를 하고 있는데, 색은 물론 오렌지다. 이유는 불명이지만 이 사람은 반드시 오렌지색의 장신구를 한 개 한다는 기호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빠른걸. 한동안 일의 수주는 없을 테니까 오늘은 오후에나 얼굴을 내밀라고 했잖아」 「아뇨,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말이죠」 그렇다, 이쪽의 금전상태가 그럴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남은 돈이 전철의 패스와 전화카드뿐이라면 마음이 안 놓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보다, 어째서 시키가 있는건가요?」 「내가 불렀어. 조금 사무적인 일이 생겨서 말야」 시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졸린 듯이 한쪽 눈을 비볐다. 어젯밤에도 밤에 돌아다녔던 것일까. 아직 그녀가 혼수상태에서 회복한지 한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어쩐지 서로에게 말을 걸기 힘든 사이였다. 시키는 말하기 싫은 듯 보여서, 자신의 책상에 앉기로 한다. ……할 일이 없으니 답답해진다. 이런 때에는 잡담이 제일이다. 딱 좋은 화제도 있으니까. 「그런데, 토우코씨, 뉴스 보셨어요?」 「브로드 브리지 말이야? 외국도 아닌데 일본에 그런 큰 다리는 필요 없어」 그런 말에 나는 움찔하고 몸을 빼었다. 토우코씨가 말하고 있는 것은 내년에 완성이 예정되어있는 전장 8백미터의 커다란 다리를 말하고 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는 항구에 가깝다. 차로 20분정도 달리면 투박하게 매립된 인공의 항구에 다다르는데, 이 항구는 지형에 문제가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맞은편에 해안이 있는 것이다. 지도로 보면 초승달 같은 모습의 항구로, 초승달의 맨 위에서 제일 아래까지 가려면 상당히 크게 돌아가야 한다. 거대한 호를 그리는 초승달의 바깥쪽을 둥글게 달려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염려한 시의 개발부는 거물 건설그룹과 협력해서 시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행동을 개시했다. 초승달의 양쪽 끝에 거대한 다리를 만들어 곡선을 직선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 드는 막대한 자금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세금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시민의 불만을 해소한다고 하면서 진짜 불만을 부풀리는 일의 제일 알기 쉬운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문제의 다리는 내부에 수족관과 미술관이 들어서며 천 대 단위의 주차장을 내포한, 다리인지 어뮤즈먼트 파크인지 알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하루 전까지는 베이 브리지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토우코씨의 말로는 브로드 브리지라고 정식명칭이 결정 된 듯 하다. 덧붙이자면, 나도 토우코씨도 이 일에는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토우코씨, 싫어하고 있으면서도 다리내부의 전시스페이스를 확보 하셨네요」 「그건 나의 본의가 아니야. 아는 사람이 보수 대신에 이권을 주고 간 것뿐이라구. 팔아치워도 상관없지만 아사가미(淺上)건설과는 다소의 인연도 있어서 유출시킬 수도 없어. 정말, 돈이 되지 않는 어음은 화장지만도 못해」 악담을 하는 토우코씨는 아무래도 돈에 쪼들리는 듯 하다. ……어쩐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저기, 소장님. 회사에 나오자마자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한데, 월급주세요」 「코쿠토. 그것 말인데, 곤란하게도 돈이 없어. 미안하지만 이번 달 분은 다음달에 받아줘」 토우코씨는 완전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잘라 말했다. 그것도 단언. 마치 이 쪽이 악당이라는 것처럼. 「잠깐만요. 어제, 100만중에서 12만엔을 은행에 불입했잖아요. 어째서 그런데도 돈이 없다고 하시는 거에요!?」 당연히 썼으니까 그렇지, 하고 토우코씨는 의자를 끼이끼이 울리면서 반론해온다. 그런 토우코씨의 행동을 시키는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토우코씨는 척 보기에도 이것을 즐기고 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대체 무엇에 쓰신거에요, 토우코씨?」 「아아, 그거 자체는 보잘 것 없는 물건이야. 빅토리아조(朝) 무렵의 위자보드(Ouija board : 靈應盤)야. 효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지만 백년이상 되었으니까 무가치하다고 할 수 도 없어. 아무리 쓸데없는 물건이라도 그곳에 마술의 흔적과 긴 세월이 있다면 부가가치가 창출되지. 뭐어, 그래도 도움이 안 되는 것에는 변함없나. 분류한다면 취미의 한가지라는 녀석일까」 담담하게 말하는 이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인물은 마술사이기도 하다. 단순한 카드요술쟁이 같은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실로 인정 할 수밖에 없다. 마법사 같은 그녀는 다시 변명을 계속 했다. 「갑작스럽게 나온 물건이라서 앞 뒤 안 가리고 매입해버렸어. 그렇게 화내지마, 나도 이걸로 땡전 한 푼 없다구」 ……화내지 말라니, 그건 무리다. 실제로 토우코씨의 기적을 눈앞에서 보는 이쪽으로서는 이 사람의 이런 생활력 없는 부분은 장난으로 생각 해버리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렇게 관대해질 수 없었다. 「즉, 그건가요. 농담이 아니라 이번 달 월급은 없다, 라는」 「아아. 사원은 각자 알아서 금전을 변통해 줘」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이번 달의 생활비를 조달해 와야 하니 회사를 조퇴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으시겠죠?」 「좋아. 그런데 코쿠토, 그것과는 다른 부탁이 있어」 말투를 바꾸어서 토우코씨가 말한다. 시키가 불려나온 것에 관계가 있는 걸까. 나는 내심 분노를 억제하면서 멈춰 섰다. 「뭐죠? 토우코씨」 「돈 좀 꿔주지 않을래? 보다시피 빈털터리야」 「───전력으로 거절 하겠습니다」 있는 힘껏 문을 닫고, 나는 사무소를 뒤로했다. ◇ 미키야와 토우코의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다가, 시키는 겨우 입을 열었다. 「토우코, 하던 얘기」 「그랬지. 이런 쪽의 의뢰는 거의 받은 적이 없지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 ……정말이지, 연금술사도 아닌데 금전에 궁해지다니. 이런 것도 코쿠토가 돈에 무심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구」 불쾌해, 라며 그녀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눌러 비볐다. 아마도 미키야는 더욱 불쾌하겠지, 하고 시키는 생각한다. 「그럼, 어젯밤의 사건의 이야기인데───」 「그건 이제 됐어. 대충 알았어」 「흐음───그래. 아직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상황밖에 설명하지 않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었나. 눈치가 빠른데, 너는」 토우코가 의미 있는 시선을 보내온다. 그녀는 어젯밤, 저녁 일곱 시부터 여덟시 사이에 벌어진 지하 주점의 살인 사건의 결과밖에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키는 그것만으로 어떤 사건이라는 것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건, 료우기 시키가 토우코 이상의 인간이란 것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뢰주는 범인에게 짚이는 것이 있는 것 같아. 너의 임무는 그 범인을 가능하면 보호하는 것. 하지만 조금이라도 저항하려고 하면───망설이지 말고 죽여줬으면 한다더군」 시키는 그래, 하고 대답할 뿐이다. 내용은 간단. 범인을 찾아서, 죽이는 것 뿐. 「그런데, 그 뒤는?」 「만약 죽였을 경우에는 저쪽 측에서 사고사로 처리할거야. 의뢰주에게 있어서 그녀는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인간이야. 죽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아. 어쩔 거야? 정말 네 취향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거, 대답할 것까지도 없어」 그렇게 말하며 시키는 사무소에서 나가려고 한다. 「성급하네. 그렇게 굶주려 있는 거야? 시키」 시키는 대답하지 않는다. 「자, 상대의 얼굴사진과 경력이야. 얼굴도 모르면서 뭘 어쩌려는 거야, 너는」 어이없어하며 자료를 던지는 토우코에게 시키는 눈빛만으로 답했다. 자료가 든 봉투가 철퍽,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필요 없어. 그 녀석은 틀림없이 나와 동류. ────그러니까 분명히, 만난 순간 서로 죽이려 들겠지」 시키는 사무소를 떠나갔다. 기모노 옷자락의 마찰음과, 냉혹한 눈빛을 남기고. ◇ 열이 올라서 사무실에서 뛰쳐나온 뒤, 할 수 없이 친구에게서 돈을 빌리기로 했다. 6월에 그만둬버린 대학의 식당에서 약속을 잡고 기다리고 있자, 정오를 넘긴 즈음에 가쿠토가 휘적휘적하고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교시절부터 덩치가 컸던 이 녀석은, 그때보다 더욱 박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쪽의 용건을 말하자, 가쿠토는 역시 얼굴을 찡그렸다. 「놀랬는데. 돈을 빌리기 위해서 사람을 불러내다니, 네가 정말 코쿠토 미키야군이야?」 「나라고 해서 궁지에 몰리면 못 할 것 없어. 즉, 지금이 그런 상황이란 소리야」 「그래서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다는 소리가 돈 빌려줘, 냐. 너 답지 않은데, 내가 늘 돈에 쪼들려 사는 건 너도 잘 알잖냐. 무엇보다, 그런 것은 부모님께 빌리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이봐, 부모님하곤 대학을 관뒀을 때에 다투고 헤어진 뒤로 연락을 끊고 있어. 지금 와서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라고 하는 거야? 너는」 「하아, 미키야는 이상한 데에 완고하다니깐. 아버지하고 화끈한 말싸움이라도 한 거야?」 「내 사정은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그래서 빌려 줄 거야, 말거야?」 「뭐야, 기분이 안 좋은가 보구나, 너」 쓸데없는 참견이라며 노려보자, 가쿠토는 간단하게 오케이 해 주었다. 「네 이름을 대면 모금을 하는 것만으로도 5,6만은 모일 테고, 그래도 부족하면 내가 원조해 줄게. 단,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법이지」 ……아무래도 이 녀석에게도 부탁이 있는 것 같다. 가쿠토는 주위에 신경을 쓰더니, 인기척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소곤소곤 말하기 시작했다. 「뭐어,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을 찾는 것뿐이야. 우리 후배 중에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녀석이 한명 있어. 이게, 아무래도 이상한 사건에 발을 들여 놓아버린 것 같아서 말이지」 가쿠토의 말은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행방불명된 후배의 이름은 미나토 케이타(湊 啓太) 어제부터 행방불명이라는 미나토 케이타는 어제저녁의 엽기살인 피해자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어젯밤, 미나토 케이타는 단 한번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 상태가 너무나 이상해서 연락을 받은 친구가 선배인 가쿠토에게 상담을 해왔다는 것이다. 「케이타 녀석이 살해당한다 어쩐다 하고 주절댄 것 같은데, 전화는 그것뿐이었대. 휴대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전화를 받은 녀석의 말로는 상당히 취해있던 것 같다는데」 취해있다. 라는 것은 약을 말하는 건가. 후유증이 남지 않는 초심자 취향의 마약은, 최근에는 가격도 싸져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LSD쪽이라면 고교생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무리해서 구하게 할 필요는 없다. 「……저기말야, 나에게 이런 바이올런스한 세계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뭔 소리하는 거야. 이런 잃어버린 것 찾기가 특기중의 특기인 주제에」 대답하지 않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케이타란 애, 평소에도 약을 하고 있어?」 「아니, 하고 있던 건 죽은 놈들 쪽이지. 케이타라고 기억 못해? 너를 몹시 따르던 녀석 중에 하나라구」 「───아아. 그 애라면, 알고 있어」 고교시절, 어째서인지 나는 그런 쪽의 후배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아마도 가쿠토의 친구란 것이 특별하게 보였던 것이겠지. 「……하아. 중독성 없는 약으로 트립하고 있는 거라면 좋을 테지만. 녀석들이 하고 있던 약은 UP계열과 DOWN계열 중 어느쪽이야?」 마약에는 신경이 고양되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UP계열과, 반대로 음울해져서 기분이 가라앉는 DOWN계가 있다. 가쿠토가 말한 마약의 이름은 DOWN계열이었다. 「무서워져서 약으로 도피하고 있다───라면 큰일인데. 정말로 범인이 그 애를 노리고 있는지도 몰라. ……할 수 없지. 받아들일게. 녀석들의 친구 관계를 알려줘」 가쿠토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주소록을 내민다. 친구들의 숫자만은 많은 것이 그들 그룹의 특징으로, 수십 명이나 되는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그리고 각 그룹이 모이는 장소가 적혀있었다. 「발견하는 즉시 연락할게. 만약의 상황엔 내 쪽에서 보호하게 되겠지만, 상관없겠지?」 이 '보호' 라는 것은 형사인 사촌형, 다이스케 형에게 맡긴다는 의미다.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가쿠토는 응, 하고 끄덕였다. 거래 성립이다. 우선 수사자금으로 2만 정도를 빌린다. 가쿠토와 헤어진 뒤, 살해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할 거라면 진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미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일을 떠맡은 것이 아니다. 사실은 관여할 일이 아닌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그 케이타란 후배가 위험한 입장인 것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 2 전화벨이 울린다. 다섯 번 정도 울리자, 소리는 멎고 자동응답으로 바뀌었다. 삐─ 하는 발진음 뒤에, 지금까지 내가 듣는데 익숙해 있던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흐른다. 「안녕, 시키. 갑작스럽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어? 오늘 정오쯤에 역 앞에 아넨엘베란 찻집에서 아자카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갈 수 없을 것 같아. 너, 한가하지? 가서 나는 오지 못한다고 말 좀 전해줘」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나는 나른한 몸을 움직여서, 침대 곁의 시계를 본다. 7월 22일, 오전 7시 23분. 자신이 돌아 온지 아직 4시간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어제, 토우코의 의뢰를 승낙하고서 밤거리를 새벽 3시경까지 돌아다닌 탓인지 아직 몸이 잠에서 덜 깨어있었다. 나는 시트를 다시 뒤집어쓴다. 한여름 아침의 더위도 나에게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다. 료우기 시키는 어릴 적부터 더위나 추위에는 강한 체질로,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자 다시 한번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는 자동응답으로 바뀌었고, 다음에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다. 뉴스는 봤나? 안 봤군. 안 봐도 괜찮아, 나도 안 봤어」 ……평소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확신했다. 저 여자의 사고 구조는 나하고는 크게 동떨어져있다. 토우코가 하는 말의 본의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 「어제저녁 일어난 사망사건은 세건. 이미 항례가 된 투신자살의 추가와 치정에 얽힌 것이 둘이야. 그 어느 것도 보도되지 않았으니까 어디까지나 사고로 처리되어버린 것이겠지. 하지만 나머지 하나만은 기괴한 케이스야. 자세히 듣고 싶으면 내가 있는 데로 와. 아아, 아니, 역시 안 와도 돼. 생각해보면 이걸로 충분해. 알았어? 잠에 취해있는 너를 위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면 희생자가 한 명 늘었다는 거야」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나도 거기서 끊고 싶어졌다. 희생자가 한둘 늘었다고 해도, 나에게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몸 가까이의 현실조차도 불확실한 나에게 있어서 그런 먼 곳의 사건은 그것이야말로 무가치하다. 이름도 모르는 녀석들의 죽음 따위는 아침 햇살보다도 인상이 약하다. 몸의 피로가 가실 무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전의 시키가 16년간에 걸쳐서 학습했던 상식대로 아침을 준비하고, 그것을 입으로 옮기고 외출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은 엷은 귤색의 쯔무기를 걸친다. 한낮에 거리를 걸을 것이라면 기모노는 외출복인 쯔무기가 제일 어울리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옷의 선택도, 실은 과거부터의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활을 코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혀 나는 입술을 깨문다. 2년 전. 아직 료우기 시키가 17세였던 무렵은 이렇지 않았다. 2년간에 걸친 혼수상태가 나를 변하게 했을 리도 없다. ……2년간의 공백이 초래한 것은, 좀 다른 것이었다. 그런 것은 놔두더라도, 지금의 나는 나의 의사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없다. 료우기 시키라는 16년간의 끈이 나를 항상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착각이겠지. 아무리 공허하다, 허구다, 소꿉놀이 같다고 매도해도, 나는 결국 자기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있다. 그곳에 나 이외의 의지가 개입할 수는 없을 테니까. 옷을 다 갈아입자, 시각은 거의 11시가 되려하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자동응답의 녹음을 리피트 한다. 과거, 몇 번이나 들었을 목소리가 되풀이되었다. 한번 대기 중으로 날아가 사라졌을 목소리는, 이렇게 녹음되어서 아직 형체로서 남아 있다. ……코쿠토 미키야. 2년전,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인물. 2년전, 내가 단 한번 마음을 허락했던 클래스 메이트. 그와의 여러 가지 과거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최후의 영상만 없다. 아니, 그와 관계하기 시작하고 난 뒤로부터의 1년간, 료우기 시키가 아직 17세였던 무렵의 기억은 구멍투성이다. 여기저기 중요한 부분이 누락되어있는 기분이 든다. 어째서 시키는 사고를 당한 걸까. 어째서 그 순간에 미키야의 얼굴을 보고 있던 걸까. 망각했던 기억이 녹음되어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편리할까. 나는 그 누락이 신경 쓰여서, 아직 미키야와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없었다. ……자동응답의 재생이 멈춘다. 미키야의 목소리를 듣자,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초조함이 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무언가, 확실한 기반이 생긴 것 같은 감각을 얻을 수 있었지만 소리라는 것이 기반이 될 리도 없다. 그것도 착각이겠지. 아마도 분명 착각이다. 지금의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살인을 범할 때의 고양감 뿐이었으니까. ◇ 아넨엘베는 안티크(antique)한 찻집이었다. 독일어로 쓰여 진 가게의 간판을 확인하고 안에 들어간다. 정오를 넘겼는데도 손님의 숫자는 적었다. 어떻게 된 구조인지, 가게 안은 어두컴컴하다. 바깥쪽에 접한 테이블만 밝고, 카운터가 있는 가게의 안쪽은 더욱 어둡다. 벽에는 사각형의 창이 네 개 만들어져 있어서, 조명은 그곳에서 들어오는 햇빛뿐이었다. 창가에 있는 테이블만이 사각형으로 도려내진 것처럼 밝다. 여름의 강한 햇살 탓인지 그 빛과 어둠의 대비는 음울하지 않고 오히려 장엄하게까지 느껴진다. 제일 안쪽 테이블에 코쿠토 아자카가 앉아 있었다. 서양풍의 디자인의 학생복을 입은 소녀가 두 명, 나란히 앉아서 미키야를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 말이 다르다. 미키야의 말로는 아자카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또 한 명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면서 소녀들을 관찰했다. 두 명 다 검은 흑발을 스트레이트하게 등 뒤로 늘어뜨리고 있다. 얼굴 생김새도 비교적 비슷해서 어느 쪽이나 아가씨 학원답게 차분하고 이지적인 미형이다. 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의 인상은 정반대였지만. 아자카의 눈은 다부져서, 무언가에 도전하는 듯한 강함이 있다. 청초한 아가씨인 체하고 있어도, 아자카의 심지가 굳은 것은 숨길 수 없다. 미키야는 그 인덕으로 인해 동급생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지만, 아자카는 그 위엄으로 존경받는 타입이겠지. 그런 아자카의 옆에 있는 소녀는 아주 가냘프다. 자세도 늠름하고 당당하지만, 부러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함이 느껴진다. 「아자카」 그녀들의 테이블에 다가가면서 말을 걸었다. 아자카는 나에게 시선을 옮기자 명백하게 눈살을 찌푸린다. 「료우기───시키」 나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희미한 적의가 존재했다. 더할 나위 없는 미소녀 같던 분위기는, 이 소녀의 장식인 것이다. 「저, 오라버니와 만날 약속이 있거든요. 당신에게 용무 같은 건 없어요」 어디까지나 냉정을 유지하면서, 아자카는 가시 돋친 말투로 말한다. 「그 오라버니로부터의 전언이다. 오늘은 올 수 없대. 바람 맞았어, 넌」 아자카가 숨을 삼킨다. 미키야가 약속을 취소한 것이 상당히 쇼크였던 걸까. 아니면 그것을 이야기하러온 것이 나였기 때문인 걸까. 「시키, 당신 짓이지……!」 부들부들하고 손을 떠는 아자카. 아무래도 내가 왔다는 것이 쇼크였던 것 같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나도 피해자라구. 아자카 하고는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돌려 보내줘, 라고 일방적으로 부탁을 받았다니까」 불같은 눈동자로 아자카가 노려본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컵을 던져올 것이 분명한 아자카를, 옆에 있는 소녀가 말렸다. 「코쿠토, 저기, 다른 사람들이 놀라고 있어요」 선이 가느다란 목소리. 그것에, 나는 한발 물러섰다. 「……그랬지. 오늘의 용건은 너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후지노. 내가 화낼 입장이 아니었어」 미안, 하고 아자카는 후지노라 부른 소녀에게 사과한다. 나는 어른스러운 소녀를 본다. 저쪽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너────아프지 않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대답이 없다. 그저 나를 보고 있다. 마치 풍경이라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무관심함과 곤충처럼 무기질적인 느낌으로. 내 안에서 두 가지의 확신이 떠오른다. 이 녀석이 적이란 직감과 그럴 리가 없다는 실감이. 「……아니, 네가 아냐」 결국, 나는 실감을 믿었다. 이 후지노라는 소녀는 살인을 즐길 수 없다. 왜냐하면 즐길 이유가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소녀의 가느다란 팔로 네 명이나 되는 남자의 사지를 뜯어 발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처럼 인간이라는 정상적인 규격에서 벗어나버린 눈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나는 소녀에게서 관심을 잃고 아자카에게 말을 건다. 「용건은 그것 뿐이야. 뭔가 전할 말이라도 있어?」 「그럼 한마디만 전해주세요. 오라버니, 어서 이런 여자와 손을 끊어 주세요, 라고」 아자카는 진심으로 그런 전언을 남겼다. ◇ 「오라버니, 어서 이런 여자와 손을 끊어 주세요」 시키라는 기모노 차림의 소녀에게, 아자카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단지 서로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도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있어서, 나는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했다. 어쩐지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서 틈이 생기면 단숨에 베어버리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에, 나는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소란스러운 싸움만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그걸로 아무 말도 없었고, 아름다운 귤색의 쯔무기를 걸친 소녀는 반해버릴 정도로 유려한 걸음걸이로 떠나갔다. 나는 그 등을 눈동자로 따라간다. 시키라는 애는 말투가 남자 같았다. 그 탓인지 나이를 가늠해 볼 수 없었지만 혹시, 나와 연배인지도 모른다. 료우기 라는 성은, 아마도 그 료우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저 고급스런 쯔무기도 납득이 간다. 원래부터 쯔무기는 외출복이지만, 저 애가 입었던 것은 이곳저곳의 되접힌 부분에서 요즘 시대의 고안이 엿보였다. 료우기가의 아이라면 자기전속의 직물직인(織物職人)을 두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름다운 사람이네요」 나의 독백에 아자카는 뭐어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상대를 싫어하면서도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는 아자카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과 비슷할 정도로 무서운 사람. ──나, 저런 사람 싫어요」 아자카가 놀라고 있다. 그녀는 정말로 놀라고 있었다. 나도 이 기분에 당황했다. 아마도──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반발심을 가졌으니까. 「의외네. 나, 후지노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애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내 인식력도 아직 멀었는걸」 「미워해────?」 ……싫다는 것은 미워함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렇게까지 심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저 사람과는 상종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뿐인데. 나는 눈을 감아본다. 시키. 너무나 불길한 칠흑의 머리칼. 너무나 불길한 백순(白純)의 살결. 너무나 불길한 무저(無底)의 눈동자. 저 사람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저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뒤에 깔린 바탕을 알아차려 버렸다. 저 사람에게 있는 것은 피 뿐이다. 스스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스스로 누군가를 상처 입히려 한다. ……저 사람은 살인귀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번도, 스스로 하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시계(視界)가 닫힌 현기증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그렇게 외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은 사라져 주지 않는다. 단 한번 말도 나누어 보지 않았는데, 그녀의 모습은 이 안구에 새겨져 버린 것이다. 「미안해, 후지노. 모처럼의 휴일이 엉망이 돼서」 아자카의 말에 눈을 떴다. 나는 연습한대로 미소를 짓는다. 「괜찮아요. 오늘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니까」 「안색이 안좋은걸, 후지노. 원래부터 하얘서 알기 힘들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은 것은 사실은 다른 이유때문이다. 하지만 아자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 상태가 나쁜 것은 몸의 반응이 조금 느린 것으로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나쁘다고는 깨닫지 못했었다. 「할 수 없네. 미키야에게는 내가 부탁해 볼 테니까, 오늘은 돌아갈까?」 아자카는 나를 걱정 해준다. 고마워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오라버니에게 전할 말은 그걸로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 그 전언은 이걸로 몇 번째인지 잊어버릴 정도니까 미키야도 익숙해져있겠지. 실은 말야, 이건 저주야. 끊임없이 반복된 말은 그것으로 인해서 현실을 일그러뜨릴 수 있어. 정말, 소녀다운 순진한 저주야. 바보 같아서, 어쩐지 불쌍해」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런 말을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엉뚱함에는 익숙해져있다. 나는 조용히 아자카의 투명한 미성(美聲)을 듣기로 했다. ……학교 안에서는 항상 수석, 전국모의고사에서도 10내에 들어가는 코쿠토 아자카는 조금 이상한 곳에 신사적인 면이 있다. 아자카는 레이엔 여학원에서의 내 친구 중 한명이다. 나도 그녀도 고교에서 학원으로 편입했다. 소학교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방식인 레이엔에서는, 우리들처럼 고교에서 편입해오는 사람은 드물다. 나와 그녀는 그런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휴일은 가끔씩 둘이서 외출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나의 고집으로 그녀의 오빠를 통해서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나는 집 근처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1학년 시절의 체육대회 때 다른 학교의 선배가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최근 괴로운 일이 일어나서 침울해져있던 나는, 그 선배를 기억해 내는 것으로 기운을 되찾았다. 그것을 아자카에게 이야기하자 그녀는 그렇다면 본인을 찾아내자고 말했다. 그녀의 오빠도 그 근처의 중학교였고 깜짝 놀랄 정도로 교우관계가 넓다고 한다. 아자카의 오라버니는 우리 정도 나이의 사람을 찾는 것은 특기중의 특기인 것 같았다. ……사실은 그 정도로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자카의 기세에 거절하지 못하고, 나는 선배를 찾기로 했다. 오늘은 그것에 대한 상담을 위해서 아자카의 오라버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오지 못하겠다고 한다. ……솔직히 그 일은 그것으로 끝나서 안심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은, 그렇다. 나는 그와 이틀 전에 우연히 만나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 때, 3년 전에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목적은 이미 달성했으니 찾지 않아도 괜찮다. 아자카의 오라버니가 올 수 없게 된 것은,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알아주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갈까. 홍차 두 잔으로 1시간 동안 죽치기는 힘들어」 아자카는 일어선다. 오빠와 만나지 못해서 낙담하고 있을 텐데도 스르륵 자리를 일어나는 자연스러움은 아주 우아해서 반할 정도다. 그녀는 때때로 아주 당차다. 뒤끝이 없는 성격과 말투 때문이겠지. 정중한 말투가 지금처럼 모습을 바꾸며 남자처럼 호쾌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본성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부분도 타고난 그녀의 성격이다. 나는 이 친구를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만나는 것은 이걸로 마지막으로 하자. 「아자카, 먼저 기숙사로 돌아가세요. 나는 오늘 밤도 집에서 자고 갈 테니까」 「그래? 나는 상관없지만, 너무 외박이 잦으면 수녀님들께 미움 받아. 무엇을 하든지 적당히 해야지」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아자카도 떠나갔다. 나는 혼자가 되자, 문득 가게의 간판에 시선을 옮긴다. 아넨엘베. 독일어로 유산(遺産)이란 의미였다. ◇ 아자카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거짓말. 나에게 이미 돌아갈 곳은 없다. 이틀 전의 그날 밤부터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아마도 어젯밤의 무단결석으로 아버지께 연락이 갔겠지. 집에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추궁 당한다. 나는 거짓말하는데 서투르기 때문에, 있는 대로 다 말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아버지는 분명 나를 경멸하겠지. 나는 어머니에게 딸려 온 자식이다. 아버지가 필요로 하고 있던 것은 어머니와 집의 토지뿐이었고, 나는 옛날부터 덤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어머니처럼 정숙한 여자로,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할 우등생으로,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보통 아이로────────옛날부터, 그렇게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그 꿈을 동경하며 지켜왔다. 하지만 끝이다. 그런 마법은 내 주위에는 어디를 찾아봐도 없었다. 나는 점점 해가 저물어 가는 거리를 계속 걸었다.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인파와 무신경하게 점멸하는 몇 개의 신호등 사이를 계속해서 거닐었다. 나보다도 어린 사람들도, 나보다도 나이 많은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 보였다. 욱신, 하고 마음이 수축된다. 문득 생각이 나서 볼을 꼬집어보았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좀더 강하게 꼬집는다. ………………아무 것도. 단념하고 손을 떼자 손가락 끝이 붉었다. 손톱이 살을 파먹을 정도로 꼬집어 버린 것 같다. 그래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살아있다, 같은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후후……」 이상해서 웃음이 나와 버렸다. 나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째서 마음은 아프다고 느끼는 것일까. 대체 마음이란 것은 무엇일까. 상처 입은 것은 심장인 것일까, 아니면 나의 뇌인 것일까. 아사가미 후지노라는 개인을 공격하는 의미를 가진 말을 뇌가 받아들이면,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상처가 나는 것이다. 상처가 나면 그것이 아프다고 알 수 있으니까. 반론도 변호도 매도도, 입은 상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뇌가 만들어내는 약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픔을 모르는 나도, 마음의 상처만은 아픈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아마도 분명히 착각이다. 진짜 아픔은, 결코 말만으로는 씻겨지지 않는다. 마음에 입은 상처는 곧 잊혀져 버린다. 마음에 입은 상처 같은 것은 대단치 않으니까. 하지만 육체에 입은 상처는 상처가 있는 한 아픔이 계속된다. 그것은 얼마나 강하고 확고한 삶의 증거인가. 마음이 뇌에 있다면 뇌가 상처를 입어주면 된다. 그렇게 하면 나도 아픔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나의 지금까지의 나날처럼. 동년배, 아니면 연하였을 소년들에게 능욕당한 기억이 상처가 되어 준다면. ───기억나 버렸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무서운 얼굴들을. 협박당하고 괴롭힘 당하고 농락당하던 나의 시간을. 나의 몸을 덮어 눌렀던 남자가 나이프를 가지고 덤벼들었을 때. 배가 뜨거워졌고, 나의 옷의 복부는 찢겨지고, 피에 젖어있었다. 찔린다고 생각했던 때, 나는 공격적이었다. 그들을 해치운 뒤에, 나는 그 뜨거움이 아픔인 것이라고 실감한 것이다. 다시 한번 마음이 수축했다. 용서 못해, 라는 발음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마음속에서 반복되었다. 「─────큿」 덜컥, 하고 무릎이 저리고 힘이 빠진다. 또 그것이 찾아왔다. 배가 뜨겁다. 보이지 않는 손에 나의 몸속이 움켜쥐어지는 듯한 불쾌감이. 토할 것 같다. ───평소에는 그런 일은 없다. 현기증이 난다. ───평소에는 갑자기 의식을 잃는다. 팔이 저리다.───평소에는 눈으로 보고 확인한다. 아주, 아프다. ───아아, 살아있다. 찔린 상처가 쑤시기 시작했다. 나았을 상처의 아픔이지만 이렇게도 돌발적으로 되살아난다. 아주 오래전, 상처는 나으면 아프지 않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칼에 찔렸던 나의 상처는, 완치된 뒤에도 이렇게 아픔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 저는 이 아픔이 좋아요. 살아있다는 실감이 없었던 저에게 있어서, 이것 이상으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일은 없었으니까요. 잔류하는 이 통각만은, 결코 착각이 아니니까요. 「빨리, 찾아야 해」 거친 호흡을 하며 나는 중얼거렸다.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놓쳐 버린 소년의 숨통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 정말 싫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살인자라고 밝혀져 버린다. 겨우 아픔을 손에 넣었는데 그런 것은 싫다. 좀더 살아 있다는 쾌락을 느끼고 싶다. 나는 걸을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 몸을 이끌고 이전의 그들이 모이던 장소로 걸어갔다. 격통에 눈물을 흘린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부자유함조차 사랑스러웠다. / 3 아자카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일단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날이 저문 뒤에 밖으로 나간다. 오늘까지 살해당한 인간의 수는 다섯. 이틀 전에 지하의 술집에서 네 명, 토우코의 말로는 어젯밤에 공사현장에서 또 한 명. 전의 네 명은 그렇다고 해도 어젯밤의 피해자에는 별로 관련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남이라고도 생각 할 수 없다. 밤거리에 노다니는 패거리들은 '얼굴만 아는 사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관계가 있다고 미키야가 말했던 것도 있다. 어젯밤의 사체도 전의 네 명과 친구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 자식───」 갑자기 나는 아자카와 같이 있던 여자를 떠올렸다. ──모세혈관처럼 몸속에 뿌리내리고 있던, 죽음의 기미. 아직 자신의 눈을 다루는 것에 익숙치않은 나는, 준비도 없이 그것을 보아버렸다. ……그것은 이상하다. 어쩌면, 이 료우기 시키보다 특별하다. 그런데도 그 소녀는 보통이었다. 피 냄새도 났고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서 있는 경계를 알지 못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사냥감은 그 녀석인데도, 나는 그것에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소녀에게는 이유가 없었다. 나처럼 살인을 즐기는 이유, 살인을 즐기게 하는 어둠이. 살인을 즐긴다. 그것을 원하고 있다. 이것을 코쿠토 미키야에게 들려주면 어떻게 생각할까. 역시, 살인은 좋지 않은 일이라며 나를 꾸짖을까. 「바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자신에 대해서인지, 아니면 미키야에 대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코쿠토 미키야는 나는 이전과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에 의해 혼수상태가 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전의 나도 이런 식으로 밤거리를 걷고 있었던 걸까. 뭔가 누군가와 서로 죽이려 들 수 없을까하고 찾아다니는 정신이상자처럼. 「─────」 아냐, 틀리다. 시키에게 그런 기호(嗜好)는 없었다. 있었지만 그것은 거의 우선되지 않았을 터. 그렇다면 이것은 '시키(織)'의 감성이다. 음성, 여성으로서의 료우기 시키에게 있던 양성, 남성으로서의 료우기 '시키'의. 그 사실에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나에게는 그가 있었다. 지금은 없다. 없다는 것은 죽어 버렸단 것이겠지. 그렇다면────살인을 원하는 의지는 틀림없이 지금의 나에게서 끓어오르는 것이 틀림없다. 토우코의 말대로 이번 사건은 정말 내 취향이다. 무조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이 상황을, 나는 확실히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시각은 곧 밤 12시.    지하철을 타고서 낯선 역에 다다랐다.    불야성 같은 소란스러움을 보이는 이 거리로부터    멀리 커다란 항구가 보인다. ◇ 아자카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목적지를 변경했다. 놓쳐버린 나머지 한 명의 행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사할 방법은 있다. 아사가미 후지노와 직접관계를 가지고 있던 것은 해치운 네 명과 도망친 또 한 명뿐이지만, 나는 곧잘 그들이 모여 놀던 곳에 끌려간 일이 있다. 그곳에 가서 그들의 친구에게 물어 보면, 도망쳐 버린 또 한 명이 있는 곳도 알 수 있겠지. 집에 돌아가지도 않고, 학교에도 경찰에도 의지하려 하지 않는 그들이 믿을 것은 자신과 비슷한 동료들뿐일 테니까. 나는 뜨거운 배를 안고 익숙하지 않은 밤거리를 걷는다. 밤중에 혼자서 저속한 그들의 놀이터에 들어가는 것이 꺼려지기는 했지만, 아픔과 능욕의 기억에 시달리는 지금의 나에게는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 가게에서 미나토 케이타의 친구라는 인물과 만났다. 커다란 빌딩을 통째로 가라오케 룸으로 쓰고 있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그는, 어쩐지 기분 나쁜 미소를 띠우면서 나와 만나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점원 일에서 빠져나와서는,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가자며 걷기 시작했다. 이 사람의 동료들이 애용하고 있는 집합 장소에 안내되는 것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약한 인간을 정확하게 판별 해낸다. 붙임성 있는 미소만큼은 보기 좋은 그는, 내가 더럽히기 쉬운 상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분명, 미나토 케이타의 패거리가 나를 농락하던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선뜻 나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나보다 몇 살인가 연상인 그는, 점점 인적이 없는 길로 나아간다. 나는 더욱 아파 오는 배를 누르면서 마음을 굳혔다. ───시각은 곧 밤 12시.    반복되던 능욕을 저주하면서 그의 뒤를 따라간다.    불야성 같은 소란스러움을 보이는 이 거리로부터    멀리 커다란 항구가 보였다. ◇ 청년은 자신의 운이 좋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미나토 케이타의 패거리가 어딘가의 여학교의 학생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케이타 본인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번 불러내서는 하고 싶은 짓을 하고, 그 자랑을 하는 것이 케이타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있어서, 그것은 완전히 딴사람의 일이었다. 케이타가 속한 패거리와는 거의 관계는 없었고 뿌리내리고 있는 구역도 멀었다. 그래서 언제나 허풍 섞인 이야기 삼아 케이타의 자랑을 듣고 있었지만, 그것이 설마 자신에게 굴러 들어올 줄이야. 차려진 밥상을 먹지 않을 리 있겠냐고 하던가, 그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후지노를 데리고 나오기로 했다. 청년은 성관계에 부자유하지도 않았다. 네다섯 명의 여자를 바꿔가며 노는 것은 자기들 가운데에서는 그리 별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청년이 기뻐하며, 동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요는 상대가, 아사가미 건설의 영애(令孃)라는 점이었다. 그녀를 범하고 나서 그 사실 전부를 공표 하겠다고 협박하면 어떻게든 돈을 챙길 수 있겠지. 케이타의 패거리는 그런 일에는 어둡다. 리더 격의 남자가 별로 머리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아니, 아니면───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돈 같은 것은 필요 없었던 걸까. 뭐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쨌든 청년은 기대에 차 있었다. 보수는 한 명인 편이 수입이 좋다. 그래서 청년은 동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미나토 케이타에 대해 물어 보러온 소녀───아사가미 후지노는 말없이 따라 온다. 그녀를 동료들의 집합소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청년은 인적이 없는 항구의 창고가(街) 쪽으로 향했다. 밤도 깊어져서, 곧 0시. 창고가(街)에는 아무도 없다. 가로등도 적고, 창고와 창고의 사이에 들어가면 누구에게 들킬 일도 없다. 신경 쓰이는 거라면 파도소리와, 멀리 바다에 보이는 건설 중인 브로드브리지의 불빛뿐이다. 후지노를 그 어둠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나서야 청년은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이 근처가 좋겠지. 근데, 묻고 싶은 일이 뭐지?」 청년은 우선 당초의 목적───후지노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한다. 갑자기 덮치는 것은 스마트하지 않다, 라는 그 나름대로의 미학의 표현이었다. 「───네. 케이타씨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계시나요?」 후지노는 고개를 숙이고 한쪽 손으로 복부를 누르고 있다. 얼굴은 단정하게 다듬어진 앞머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아니, 케이타는 요즘에 안보여. 그 녀석, 자기 집도 없으니까 남의 아파트를 옮겨 다녀. 휴대전화도 없으니, 연락도 할 수 없다구」 「아뇨───연락은 할 수 있어요」 「하?」 고개를 숙인 소녀의 언동이 이상하다. 있는 곳은 모르는데 연락은 할 수 있다? 설마 이 여자, 너무 당해서 맛이 가 버린 건가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 나름대로 이 뒷일은 쉬워지겠지만, 일이 거칠어질 거라 예상하고 있던 것만큼 맥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어 괜찮겠지, 하고 청년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헤에, 연락을 할 수 있구나. 그렇다면 있는 곳을 물어보면 되잖아」 「그게───케이타씨가 저에게는 숨어있는 장소를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래서 제가 이렇게 케이타씨의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거에요. 알고 있어도 좋고, 몰라도 좋으니까, 대답해 주세요」 「야야야, 잠깐만. 뭐야, 그 숨어있다는 건. 그 자식이 뭔가 큰일 날 짓이라도 했다는 거야?」 점점 수상해지는 소녀의 언동에 그는 초조해졌다. 숨어있다, 라는 것은 후지노를 레이프했던 일을 들킨 걸까. 아니, 그렇다면 이 소녀 자신이 올 리가 없다. 청년은 생각한다. 그러나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뉴스 따위는 보지 않았으니까. 「뭐, 상관없나. 그것보다 말이지, 알고 있어도 좋고, 몰라도 좋으니까 란 건 뭐야. 설마 너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다는 거? 케이타에 대한 것은 표면상의 이유고, 새로운 남자라도 찾으러 왔다던가 말야!」 지금까지의 사근사근한 미소가 아니라, 그는 정말로 유쾌해져서 웃었다. 정말로 자신은 운이 좋다. 이렇게 되면 협박하지 않아도 돈이 생기게 됐다. 게다가───아사가미 후지노는 자신들에게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을 정도의 미인이기도 하다. 고가(高價)의 꽃과 고령(高嶺)의 꽃이 양손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을 운이 좋다고 말하지 않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미안한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내 집에 데리고 가는 건데. 아니아니, 아니면 이런 장소가 좋은 걸까, 아가씨는」 검은 교복을 입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대답해주세요. 케이타씨가 있는 곳, 알고 계신가요」 「바보, 그런 구실은 이제 상관없잖아. 애초부터, 내가 그 녀석이 있는 곳 따위를 알 리가 없다구」 그래요, 하고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청년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정상이 아니다. 나선을 밝히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감정이 없었다. ────제 정신이, 아니다. 「……?」 그 광기를 깨닫지 못한 청년은 이상한 사태와 조우했다. 자신의 팔이 멋대로 움직였다. 관절이 비틀린다. 거의 90도 각도까지 팔꿈치가 구부러지고, 더욱 관절은 꺾여져서───끝내, 부러졌다. 「에에─────!?」 얼빠진 비명. 청년의 운명은 여기서 끝을 맞았다. 확실히 그는 운이 좋았다. 악운도 불운도, 운이라는 것의 동포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달빛도 닿지 않는 골목 안에서 참극이 시작되었다. … 「,,,,,,,,,!」 신음하는 소리는, 그런 짐승 비슷한 발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청년은 양팔은 이미 팔이 아니었다. 마치, 지혜의 고리(智慧の輪). 아니면 종이비행기를 날리기 위해서 비틀린 고무줄. ───어쨌든, 두 번 다시 인간의 팔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다. 「사, 사, 살려, 줘……!」 청년은 눈앞에 서 있을 뿐인 소녀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갑자기 그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오른쪽 다리가 무릎부터 갈갈이 찢겨나간다. 철퍽, 하고 양동이로 물을 끼얹듯 피가 흩뿌려진다. 창고의 콘크리트 벽에 튀긴 그 흔적은 무언가의 예술 같기도 했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것을 빛나는 눈동자로 보고 있다. 「ㅂ, 비트,, 비틀려서,,, 하하, 나사다, 내 발이 나사가 되 버렸다, 히히, 아하하하하……ㅅ!」 그의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없다. 머리가 나쁜 탓이겠지, 하고 후지노는 무시하기로 했다. 「……비틀려라」───하고 중얼거린다. 그것은 몇 번째인가의 같은 발음. 반복하고 반복하는 단어는 저주가 된다고 그녀의 친구는 알려주었다. 청년은 지면에 찰싹 엎드려서 머리만을 움직이고 있다. 양손은 비틀렸고 오른쪽 다리는 없다. 다리에서의 출혈이 지면을 적신다. 붉은 융단 같아, 하고 생각하고 후지노는 그곳에 걸어 들어갔다. 신발이 피에 잠긴다. 여름의 밤은 덥다. 끈적끈적한 대기가 살갗에 달라붙어 답답해졌다. 자욱한 피의 향기는 그것과 닮아 있었다. 「────아아」 애벌레같이 꿈틀대는 청년을 내려다보면서 후지노는 탄식한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자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다. 이 사람이 지하 술집에서의 사건을 모르는 것은 행동으로 알았지만, 그래도 곧 알게 되어버린다. 그 때, 미나토 케이타를 찾고 있던 나를 수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이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간접적이 되겠지만 이것도 아사가미 후지노의 복수인 것이다. 자신을 침범한 자에게로의 반격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이 그들이 타인을 침범하는 능력과 후지노가 타인을 침범하는 능력의 차가 너무 큰 것 뿐이고. 「미안해요────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청년의 남아있던 왼쪽다리가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걸로 간신히 남아있던 그의 의식도 끊겼다. 후지노는 미동하는 청년의 육체를 고개를 숙이고 바라본다. 지금은 그의 기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알 수 없었다. 타인이 고통스러워하는 몸짓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픔을 안 지금의 그녀는, 청년의 아픔을 강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것이 기쁘다.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을 겪어간다는 것이니까. 「이렇게 해서 겨우───나도 보통사람이 될 수 있어」 자신의 아픔. 타인의 아픔.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자신. 저 상처를 준 자신. 아사가미 후지노가 뛰어나다는 것. 이것이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으면 살아가는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잔혹한 나 자신. 「───어머니. 후지노는 이런 일까지 하지 않으면 구제불능인 인간인가요」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초조함을 견디기 힘들다. 심장이 몹시 두근거린다. 지네가 등줄기를 기어 올라오는 듯한 오한─── 「나, 살인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지도 않아, 너는」 갑작스런 목소리에 후지노는 뒤를 돌아본다. 창고와 창고의 사이에 있는 이 골목의 입구에, 기모노 차림의 소녀가 서 있었다. 고요하게 달빛을 반사시키는 항구를 등지고, 료우기 시키가 그곳에 있다───── ◇ 「시키────씨?」 「아사가미 후지노. ……과연, 아사가미(淺神)와 연이 있는 자였나」 딸그락, 하고 발소리를 내며 시키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창고 안에 충만한 피 냄새에 시키는 눈을 가늘게 뜬다. 「언제부터───」 그곳에, 라고 말을 걸다가 후지노는 그만두었다. 그런 것은 물어 볼 것도 없다. 「계속. 네가 저 고깃덩이를 꾀어내던 때부터」 차가운 목소리에 후지노는 오싹해졌다. 시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다. 보고 있었으면서도, 나왔다. 보고 있었으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이렇게 될 것을 알았으면서도, 계속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고깃덩이란 소린 말아 주세요. 이 사람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사체예요」 마음과는 반대로, 후지노는 그런 식의 반론을 하고 있었다. 청년을 고깃덩이라며 인간 이하로 폄하하는 시키의 말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아아, 인간은 사체라도 인간이지. 마음이 없어진 것 정도로는 고깃덩이로 전락하지 않아. 하지만 그건 인간의 죽음이 아니잖아. 인간은 말야, 저런 식으로 죽지는 않는다구」 딸그락, 하고 또 한 발짝 내딛어간다. 「인간다운 죽음을 맞지 못한 녀석은, 이미 인간이 아냐. 머리가 남아있던 상처가 없던 간에, 너에게 살해된 녀석들은 상식으로 취급될 수 없잖아. 경계에서 벗어난 녀석은 의미를 모조리 박탈당한다구. 그러니까 그건 단순한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아」 갑자기───후지노는 이 상대에게 반발심을 느꼈다. 시키는 이 청년의 사체와 그것을 행한 자신이 상식 밖의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참극을 지켜보고 있던 이 소녀와 마찬가지로. 「……아니에요. 저는 정상이에요. 당신과는 달라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어떠한 이유도 없이 후지노는 소리치고 있었다. 시키는 우습다는 듯이 미소 짓는다. 「우리들은 서로 비슷해, 아사가미」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후지노는 시키를 응시한다. 징, 하고 자신의 눈동자에 잡힌 영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녀가 어릴 적에 가지고 있던 "힘"이 행사된다. 하지만, 그것은 갑자기 엷어져 갔다. 「────!?」 그러나 놀라는 것은 후지노와 시키 둘 다였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사용할 수 없게 된 자신의 "힘"에 료우기 시키는 갑자기 변해 버린 아사가미 후지노에게. 「또냐────너,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야!」 시키는 회를 냈다. 일을 망쳐 버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머리를 긁는다. 「아까까지의 너라면 죽였을 텐데. 찻집에 있었을 때도 그랬어. ……이제 됐어, 기분만 잡쳤네. 지금의 너 같은 건 흥미 없어」 그렇게 말하고 시키는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후지노에게서 멀어져간다.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 그러면 두 번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거다」 모습도, 그것으로 멀어졌다. 후지노는 피 웅덩이 속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이전의 나로 돌아가 버렸다.    또,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후지노는 다시 한번, 청년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아까까지의 감각도 없다. 죄의식만이 뇌를 마비시킨다. 남아 있는 것은 시키가 남긴 말뿐이다. 자신들은 똑같은 살인귀다, 라는 고발 같은 대사만이. 「아니야────난, 당신 같은 사람과는 틀려」 우는 것처럼 후지노는 중얼거렸다. 사실, 그녀는 살인을 싫어하고 있다. 이 다음에도 미나토 케이타를 발견하기 위해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자 몸이 떨려온다. 사람을 죽여버린다니, 용서받을 리가 없으니까. 그것은 그녀의 진정한 본심. ……피 웅덩이에 비친 그녀의 입가는, 살며시 웃고 있었다. 통각/잔류 3 7월 23일의 이른 아침, 겨우 나는 미나토 케이타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의 친구들에게 들어서 얻은 정보와 그의 행동범위의 한계, 그리고 미나토 케이타의 사람됨으로 추측한 결과, 거의 하루 걸려서 숨어 있는 집을 좁혀 들어간 것이다. 미나토 케이타는 도심에서 떨어진 주택가의 맨션 중 한 곳의 6층의 빈방에 불법침입해서 머무르고 있었다. 그 방에 벨을 울리고 너무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미나토 케이타. 네 선배에게 부탁을 받고서 도와주러 왔어. 실례할게」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조용히 안에 들어간다. 방안은 전등이 켜져 있지 않아서, 아침인데도 엷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플로어링 복도를 걸어서 거실로 나간다. 아무 것도 없는 거실에서 부엌과 침실이 보였다. 원래부터 아무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일절의 가구도 없다. 텅 비어있는 방에 여름의 아침 햇살만이 눈부셨다. 「안에, 있지? 들어갈게」 침실과는 다른 또 하나의 방이 있다. 그곳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안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창의 덧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 햇살이 열려진 문을 통해 비쳐든다. 빛에 반응한건지 어둠 속에서 힉, 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 역시 방에는 아무 것도 없다. 가구가 없는 방은 상자와 마찬가지다. 생활의 냄새도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밀실에는 16세 정도의 소년과, 먹어 치운 음식물의 용기, 그리고 휴대전화만이 있다. 「미나토 케이타군이지? 이런 곳에 틀어박혀 있으면 몸에 안 좋아. 게다가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해서 멋대로 방을 사용하는 것도 안돼. 이런 것도 빈집 털이 취급을 받는다구」 방에 들어가자 케이타는 깜짝 놀라며 벽에 붙었다. ……그 얼굴은 아주 여위어 있었다. 사건 저녁부터 아직 3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볼은 홀쭉해졌고 안구는 핏발이 서 있다. 한숨도 자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약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소리다. 그는 약의 도움 같은 것이 없더라도 제정신을 잃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참극을 보아 버렸기 때문에. 그는 이 인공적인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으로 간신히 자아를 보호하고 있다. 아주 극단적인 방어 방법이지만 3일 정도라면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누구에요, 당신」 가느다란 목소리에는 희미한 지성이 남아 있다. 나는 발을 멈췄다. 상대는 엽기 사건에 직면해서 정신이 혼란스럽다. 범인을 보고 패닉상태에 빠져 있는 점도 있으니, 경솔하게 가까이 다가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의심은 모든 것을 두려워지게 만드는 법이니, 그것은 나를 범인과 한패로 밖에 인식시키지 않겠지. 하지만 회화가 가능하다면 말이 달라진다. 말을 하고 있으면 이성이 소생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진정시키는 것 보다 멈춰 서서 말을 하기로 했다. 「누구에요, 당신」 반복된 질문에 나는 양손을 들었다. 「가쿠토의 아는 사람이야. 일단 너의 선배이기도 하고. 코쿠토 미키야라고 하는데, 기억하고 있을까?」 「코쿠토───선배?」 그에게 있어서 나는 예상외의 등장인물이었던 것이겠지. 한동안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그는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선배, 선배가 어째서 제가 있는 곳에 온 거에요?」 「가쿠토의 부탁으로 너를 보호하러 왔어. 귀찮은 사건에 휘말려 들었다고 걱정하고 있더라. 가쿠토도, 나도 말야」 가까이 가도 돼? 하고 묻자 케이타는 격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 여기서 나갈 수 없어요. 밖에 나가면 죽을 거에요」 「여기에 있어도 죽을 거야」 케이타가 눈을 크게 뜬다. 적의(敵意)를 노출한 핏발선 시선을 받으며, 나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 대 피워 문다. ……사실은 피우지 않지만, 냉정한 체 해서 상대를 안정시키는 데는 확실히 효과적인 제스처이기 때문이다. 「사건에 대해서는 들었어. 케이타, 너 범인을 알지?」 보랏빛 연기를 토해내면서 추구하자 케이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잠깐, 혼잣말을 해보기로 할까. 너희들은 20일 밤, 평소에 모이던 곳인 바(Bar) 신기루에 모여 있었어. 그 날 저녁에는 비가 왔었지. 나도 그 무렵에 술자리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가쿠토에게 너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이런저런 얘길 들었어. 사건이 나던 날 밤에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짐작하고 있고. 경찰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녀석들, 경찰아저씨들에겐 협조적이지 않으니까」 곤란한 일이지, 하며 어깨를 늘어뜨린다. 케이타는 아까와는 다른 두려움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가 아닌, 지금까지 해온 일이 폭로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겠지. 「사건이 일어났던 밤, 현장에는 너희들 다섯 명 외에 한 명이 더 있었어. 너희들이 협박하고 있던 여고생.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녀가 술집으로 내려가는 것을 본 애가 있어서말야. 그 여고생은 사건이 일어났어도 경찰에 출두하지도 않았고 발견되지도 않았어. 그렇다고 해서 살해당한 네 명처럼 유체도 없어. 너, 그 애가 어떻게 됐는지 몰라?」 「몰라요───나, 그런 녀석은 몰라요」 「그러면, 그 네 사람을 죽인 것은 너겠구나. 경찰에 연락 하겠어」 「설마! 그 건 제 탓이 아니라구요……! 그런 걸, 그런……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응, 그건 동감이야. 그러면 여자 애는 정말로 있었던 거네?」 한동안 말이 없다가, 케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의문이야. 그 사건은 여자 한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야냐. 너희들. 약이라도 마셨던 거야?」 소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자가 범인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들은 평소대로였다는 의미로. 「남자가 다섯 명이나 있으면서 여자 한 명에게 당하다니, 있을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구요……! 그 자식,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정상이 아니었어요! 괴물, 괴물이었어요!」 자신이 입으로 말한 "그 때"의 일을 기억 해낸 것이겠지. 딱딱하고 이빨을 부딪치면서 소년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 자식, 멀거니 서있을 뿐이었는데, 모두가 비틀려져 버렸어. 빠직빠직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어. 둘이 당했을 때, 나, 정신이 들었어. 역시 후지노는 정상이 아니라고. 이곳에 있으면 죽는다고───!」 케이타 소년의 독백은 확실히 이상했다. 소녀───후지노라는 그 애는 단지 서서 노려보는 것만으로 소년들의 팔과 다리를 비틀어 잘라 버렸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장소에 있던 케이타에게는 피부로 실감했던 것이겠지. 죽이는 쪽과 죽는 쪽의 차이라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보는 것만으로 물건을 구부린다? 스푼을 구부리는 것도 아니고,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것도 있을 수 있겠네, 하고 끄덕여 버렸다. 시키라는 특별한 눈을 소유해 버린 소녀와 마술사인 토우코씨를 알고 있는 자신이 이제 와서 무엇을 부정할 수 있을까. 뭐어 그것은 그렇다고 보류 해 두자. 그런 것보다도 신경 쓰이는 단어가 있었으니까. 「알았어. 그 후지노란 애가 저지른 일은 믿겠어」 「────헤?」 놀란 얼굴을 하는 케이타. 「하지만, 선배, 그런 건 거짓말이에요. 이런 건 아무도 믿지 않잖아요!? 저기, 부탁이니까 거짓말이라고 말해 주세요……!」 「그러면, 트릭이라고 해 두자. 그것보다 최면술이라고 하는게 좋을까. 어쨌든 너무 깊게 생각하면 안돼. 알 수 없는 일은 무리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좋아. 그것보다 말야,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야?」 나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이상한 답변에 케이타는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까까지의 긴장감이 점점 엷어져 간다. 「아……이상하다라……그, 이상했어요. 어쩐지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무슨 짓을 해도 반응이 늦다고 할까. 리더에게 협박당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약을 먹여도 그대로였고, 때려도 태연한 얼굴을 했고」 「……헤에, 그래」 그들이 후지노란 소녀에게 폭행을 일삼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뻔뻔스럽게 술술 말하는 걸 보면 할말이 없다. 반년 간에 걸쳐서 능욕을 당한 후지노란 소녀는, 그 복수로서 그들을 살해했다. 그곳에 정의는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단순히 정의와 법률이 옛날부터 사이가 나쁜 걸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생긴 건 최고였지만, 해도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인형을 안고 있는 기분이라서. 하지만……그래, 그때는 달랐어. 최근에 있던 건데, 애들 중에서 위험한 녀석이 한 명 있었어요. 그 자식, 아무리 때려도 무표정인 아사가미를 재미있어 하다가 나중에는 금속 배트를 가지고 와서 등에다 한방 갈겼어요. 팡 하고, 아사가미는 나가떨어지면서 아픈 듯이 얼굴을 찡그렸구요. 저, 그때에 오히려 한숨 돌렸어요. 아아, 이 녀석도 아파하는구나 하고. 그 날 밤만은 그 녀석, 사람 같아서 좋았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지만」 「……너, 잠깐 입 좀 다물어」 케이타는 입을 다문다. 더 이상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평정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대강의 사정은 이해했어. 경찰 중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보호받도록 하자. 그게 두 번째 정도로 안전해」 주저앉은 소년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다가간다. 그러자 그는 싫어, 라고 외치면서 몸을 움츠렸다. 「안돼, 경찰서 같은 데는 안가. 게다가───나가면 죽어. 그, 그런 식으로 비틀려 버릴 거라면 계속 여기에 있는 편이 나아!」 「밖에 나가면 죽어……?」 그 대사에는 무언가 미묘한 어긋남이 있었다. 나와 소년과의 사이에는 아직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밖에 나가면 발견 당한다, 라고 말하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서 갑자기 죽는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래서는 마치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과─────똑같은 것인가. 거기서 나는 겨우 깨달았다. 케이타의 옆에 있는 휴대전화의 역할을. 「……전화가 걸려오는 거야? 아사가미 후지노에게서」 그 한마디로 케이타는 공황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여기 있는 건, 이미 알고 있는 거야?」 모르겠어, 하고 소년은 떨면서 말한다. 「나, 도망칠 때 리더의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었어. 모두 죽은 뒤에 전화가 걸려 왔어. 나를 찾겠다고. 절대로 발견해 내겠다고. 그러니까 숨지 않으면 나는!」 「어째서 휴대 전화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물어보았다. 「하지만, 버리면 죽이겠다고 했어……! 죽고 싶지 않으면 가지고 있으라고. 가지고 있는 한 못 본 체 해주겠다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아사가미 후지노의 원한은 너무나도 깊다. 「그런데도 그 자식, 매일 저녁에 전화를 걸어와. ……제정신이 아니야. 그저께는 쇼우노, 어제는 코헤이와 만났대. 내가 있는 곳을 몰라서 죽였대. 다행이야, 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친구들이 소중하면 찾아오라고 나불대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짓!」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매일 저녁 걸려오는 전화의 내용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상대로부터의 보고다. 오늘은 너를 죽이지 못했다. 그 대신에 너의 친구가 한 명 죽어 버렸다. 친구를 죽이고 싶지 않으면 찾아 와라. 오지 않아도 좋지만 그때까지 살인은 계속되어, 언젠가 네가 있는 곳에 다다른다────. 「어떻하지, 나. 죽고 싶지 않아. 그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아. 아프다면서 울부짖었다고 걔네들!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말야, 목이……목이 걸레처럼 비틀려졌어!」 「그 전화를 버려. 그러지 않으면 희생자가 늘어나」 「모르겠어? 그런 것 하면 내가 죽는다고 말했잖아!」 그것 때문에 전혀 관계없는 인간이 두 명 죽었다. 그것 때문에 아사가미 후지노는 의미 없는 살인을 두 번이나 했다. 「지금 상태로는 어떻게 되든 살해당할 거야, 너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비비고, 나는 걷기 시작했다. 주저앉아 무릎을 안고서 틀어박혀 있으려는 소년의 팔을 잡아당긴다. 「선배, 좀 봐 주세요. 저, 이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싫어, 아니야, 사실은 무서워. 저, 이젠 혼자 있는 것은 싫어요. 부탁이니까 도와주세요…!」 으응, 하고 나는 끄덕였다. 「도와줄게. 너는 경찰에겐 맡기지 않아. 내가 아는 한 제일 안전한 장소로 데려가겠어」 이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곳은 토우코씨가 있는 곳 밖에 없다. 그것이 누구에게 있어서도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서. 4 토우코씨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케이타를 보호받게 되었다. 사건 당일부터 한숨도 자지 않았던 소년을, 토우코씨는 침실의 소파에 재우고서 나와 시키가 있는 사무소로 돌아왔다. 토우코씨는 자신의 의자에 앉았고 시키는 서있는 채로 벽에 기대어있었다. 케이타를 재우고서 겨우 분위기가 안정 되자, 둘은 입을 모아 「사람 좋은 놈」이란 말을 해주었다. 「예에, 슬슬 그런 식으로 바보 취급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다면 성가신 일에 관계하지는 않아. 코쿠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쪽 놈들에게 선뜻 손을 빌려준단 말이야」 「할 수 없잖아요.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대답하자 토우코씨는 흠, 하고 생각에 잠긴다. 독설을 퍼붓고 있지만 토우코씨 본인은 소년의 보호에 찬성 해주고 있었다. 한편, 벽 쪽에 있는 시키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말없이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것이, 몹시 화가 나있다는 느낌이었다. 「상황이 상황, 인가. 확실히 평범한 케이스가 아니란 건 인정하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사가미 후지노를 찾아서 설득이라도 할 셈이야?」 「───글쎄요. 언제까지고 보호해 줄 수도 없고, 그 사이에도 아사가미 후지노가 다시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르죠.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 얼간아. 그러니까 널 사람 좋은 놈이라고 부르는 거야」 시키의 말은 거칠게 없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한층 더 공격적이다. 그녀는 정말로 화가 나있다. 「그 놈에겐 말이 통하지 않아. 완전히 손쓰기엔 늦었어. 목적을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아. 아니, 달성해도 멈출지 어떨지 몰라.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 버렸으니까」 「시키, 마치 아사가미 후지노를 알고 있는 듯한 말투네」 「알고 있고, 만났어. 어제 아자카와 만났을 때 함께 있었으니까」 나도 모르게 에, 하는 소리를 냈다. 어째서 아자카가 아사가미 후지노와 함께 있는 걸까. 말이 전혀 이어지지 않……는 것은 아닌가. 불량배들에게 협박당하던 것은 여고생이었다는 것 밖에 듣지 않았지만, 아사가미 후지노가 레이엔 여학원의 학생이라면 이야기는 틀리다. 「뭐야, 굼뜨잖아 코쿠토. 아사가미 후지노의 조사는 안한 거야?」 「저기 말이죠, 그 이름을 들은 것은 딱 두 시간 전이에요. 이쪽은 미나토 케이타의 보호만이 목적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신경은 못 썼다구요」 ……하지만 무언가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그것은 아자카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라든가 희생자가 된다던가 하는 불안이 아니다. 좀더 무언가……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부득이 하게 생각해내기 전의 초조감에 가깝다. 「……하지만 그러면 아사가미 후지노는 지금도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건가요?」 「아니. 사건 당일 저녁부터 기숙사에도 집에도 돌아오지 않았고 학교도 무단결석을 계속하고 있어. 완벽한 행방불명이야. 아자카도 어제부터 만나지 못했다고 했고」 「토우코씨, 언제 그런 것을 조사하셨나요?」 「조금 전부터야. 그녀의 부모에게서 수색 의뢰를 받아서 말이지. 어젯밤, 시키에게서 아자카와 아사가미 후지노가 같이 있었다고 듣고서 연락을 해봤는데, 아자카는 친구인 아사가미 후지노의 이상(異常)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어」 ───얼마나 얄궂은 일인가. 아자카와의 약속이 하루만 늦었더라면, 아니 좀더 빨리 케이타를 찾아냈더라면 어젯밤의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는데. 「이런 상황이니, 미나토 케이타의 보호는 우리로서도 쓸데없는 행위는 아니야. 이대로 아사가미 후지노를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면 미끼로서 써먹어 줘야지. 이 뒤로는 거친 일이 될 테니 코쿠토는 케이타와 함께 남도록 해」 그 억양 없는 목소리에, 나는 그제 서야 깨달았다. 시키가 계속 이곳에 있는 이유를. 「거친 일이라니───아사가미 후지노를 어떻게 할 생각이신 건가요? 토우코씨」 「경우에 따라서는 전투도 감수해야지. 어쨌든 의뢰주가 그것을 바라고 있어. 딸이 살인귀로서 보도되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 같아. 적어도 표면으로 드러나기 전에 죽여달래」 「그런, 아사가미 후지노는 무차별로 살인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 텐데요……! 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아아, 그건 무리야. 코쿠토, 너는 중요한 사실을 못 들었어. 아사가미 후지노가 그들을 학살할 때의 결정타를 몰라. 아까 미나토 케이타를 재울 때에 자백 받았어. 그들의 리더는 말이지, 마지막 날 밤에 칼을 들고 후지노에게 달려들었대. 그때, 아무래도 후지노는 찔려 버렸던 것 같아. 복수의 방아쇠는 그거야」 ……칼. 능욕당하고, 거기에 칼로 협박당했다는 건가. 하지만──그것이 어째서 대화가 불가능한 이유가 되는 걸까? 「문제는 여기서부터야. 복부에 칼로 찔렸던 것이 20일 밤. 시키가 만났을 때가 그 2일 후야. 그 때, 아사가미 후지노에게 상처는 없었어. 완치 됐다는 거야」 「배에 찔린 상처……」 잠깐. 그 이상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이성이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20일 밤, 레이엔 여학원의 학생. 복부의 찔린 상처. 「케이타가 말하길 후지노는 전화로 상처가 아프니까 잊을 수 없어, 라고 되풀이해서 이야기했대. 완치되었을 상처가 아프기 시작한다. 아마도 과거의 능욕이 뇌리를 스칠 때 마다 복부를 찔렸을 때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거야. 혐오스런 기억이 혐오스런 상처를 불러일으키는 거지. 아픔은 착각이겠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진짜 아픔일 테고. 이래서는 발작하고 다를 게 없어. 아사가미 후지노는 존재하지도 않은 아픔을 기억 해낼 때 마다 돌발적인 살인을 범하고 있어. 한참 대화하던 도중에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지?」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상처만 아프지 않으면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내가 그것을 말하려 하는 것 보다 빠르게, 침묵하고 있던 시키가 말했다. 「달라, 토우코. 그 녀석은 진짜로 아픔이 있어. 아사가미 후지노의 아픔은 몸속에 아직 남아 있다구」 「그럴 리가 없어. 그렇다면, 시키. 상처가 완치되었다는 것은 너의 착오야?」 「찔린 상처라면 완치되었어. 속에 금속 조각 같은 것도 남아있지 않아. 정말로 그 녀석의 아픔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한다구. 아파하고 있을 때의 아사가미 후지노는 손쓰기엔 늦었어. 반대로 보통의 후지노는 하찮은 존재야. 죽일 가치도 없어서 돌려보냈다고 했잖아」 「……게다가 내부에 금속조각 같은 것이 남아 있다면 이미 죽어 있겠지. 헤에, 완치되어 있는데 아픈 상처인가」 이상하네, 하고 말하는 것처럼 토우코씨는 담배를 집어 들었다. 나도 시키의 말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배를 찔린 상처가 나을 때까지 아픈 것이라면 정상이다. 하지만 완치된 뒤에도 아픔이 돌발적으로 되살아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통각만이 잔류하고 있는 상태 같은 것이 아닌가. 「아」 갑자기 생각났다. 아사가미 후지노의 정체불명의 증상을 해결 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이상하다는 의미를 "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어에서 연상 해낸 것이다. 「뭐야, 코쿠토. 오십음도에 의한 건강법이야?」 ……그런 거, 있다고 해도 아무도 안할 거라 생각한다. 「아녜요. 아사가미 후지노가 이상했다던 이야기 말인데요」 응? 하고 토우코씨는 한쪽 눈썹을 올린다. 아아, 그러고 보면 사건의 개요밖에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이것은 아직 설명하지 않았었다. 「미나토 케이타가 했던 말 속에 있던 건데, 아사가미 후지노는 무슨 짓을 당해도 움직이지 않았대요. 처음에는 굳센 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에요. 그 애는 그렇게 강한 애가 아니었어요」 「───알고 있는 것 같은 말투인데, 미키야」 어째선지 시키가 예리한 시선을 보내 왔다. 지금의 시키의 대사는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능이 명령한다. ……덤불을 헤집어서 뱀을 나오게 하는 결과가 될게 틀림없으니까. 「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혹시……그녀는 무통증(analgesia)이란 게 아닐까 해서」 무통증이란 것은 문자 그대로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특수한 병이다. 희귀한 병이기 때문에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녀의 불가사의한 통각도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런가. 그렇다면 조금은 설명 할 수 있겠지만……그렇다고 해도 원인은 있을 거야. 복부를 칼에 찔렸다 해도 무통증이라면 아픔은 처음부터 느낄 리가 없어. 아사가미 후지노가 태어나면서부터 무통증인가의 확인도 필요하고, 그 감각 마비가 해리증(解離症)인지 아닌지도 확인해야 하지. 뭐어 그녀가 무통증이었다고 가정해도 마찬가지야. 무언가 그녀에게 변화를 일으킬만한 요인은 없는 거야? 등을 강타했다던가, 목덜미에 대량의 부신 피질 호르몬을 주사 했다던가」 등을 강타───그건가. 「정도는 알 수 없지만, 등을 야구 배트로 때린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감정을 억제한 나의 말에 토우코씨는 우습다는 듯 웃었다. 「하하아, 놈들 짓이군. 풀 스윙이었겠네, 그건. 그렇다면 등뼈는 부러진 건가. 그리고 부러진 뒤에도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 감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들에게 농락당했다는 거군. ……정말이지, 처음에 느낀 아픔이 그건가. 그녀는 그 초조함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텐데. 이야, 정말 대단해. 코쿠토. 너, 잘도 미나토 케이타를 보호할 생각을 했구나」 토우코씨는 입가를 치켜 올리며 말한다. 이 사람은 기분이 내키면, 누구든지 말로써 궁지에 몰아넣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이성으로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 피해는 대개 나에게 돌아온다. 평소에는 그것에 대항하지만, 지금은 대답할 수가 없다. ……대답 해낼 만큼의 자신이 없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토우코씨. 등뼈와 무통증이 관계가 있나요?」 「있어. 감각을 관리하는 것은 척수잖아. 통각의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대개 척수에 무언가 이상이 있어. 코쿠토, 척수공동증(脊髓空洞症 : syringomyelia)이라는 걸 알고 있어?」 ……의대생도 아닌 내가, 그런 전문적인 병명을 알 리가 없다. 말없이 고개를 흔들자 그래? 하면서 토우코씨는 유감이라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공동증은 감각마비의 대표적인 것인데 말이지. 알았어? 코쿠토, 감각에는 두 종류가 있어. 감촉이나 통각, 온도 같은 것을 맛보게 하는 표재감각(表在感覺) 육체의 움직임, 위치를 자신에게 보고하는 심부감각(深部感覺) 보통, 감각마비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 완전히 감각이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겠어?」 「말로 하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어요. 만져도 느껴지지 않고 먹어도 맛이 나지 않는 것 말이죠?」 그래그래, 하면서 끄덕이는 토우코씨는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그게 감각을 가지고 있는 자의 당연한 의견이야. 감각이 없더라도 몸이 있고, 분명히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 이외는 자신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감각이 없다는 것은 말이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거야, 코쿠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럴 리 없다. 물건도 집을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다. 무통증이라는 것은 단순히 만지고 있다는 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뿐 아닌가. 그것이 어째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일까. 몸이 없는 것도 아닌데. 몸의 일부가 없어서 괴로워하는 사람에 비하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 거기서, 깨달았다. ………몸이, 없다. 만져도 그것을 만지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눈으로 보고서 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뿐인 현실. 그런 것은 책을 읽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빨간 거짓말, 가공의 이야기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걷고 있어도 몸이 움직이는 것 뿐. 지면의 반동도 느끼지 못하고 단지 다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밖에 없다. 아니, 그 인식이란 것도 눈으로 보고서 겨우 믿을 수 있을 정도의 희박한 인식이겠지. 감각이 없다. 그것은 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유령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들에게 있어서 모든 현실은 단지 보고 있는 것들일 뿐. 그런 것은, 만지고 있다 하더라도 만져지지 않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그것이 무통증인가요」 「그래. 아사가미 후지노의 무통증은 등을 강타 당한 것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나았다고 가정하도록 할까. 그러면 그녀도 아프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겠지. 지금까지의 체험으로 얻지 못했던 그 감각이 그녀의 살인 충동의 하나 일거야」 아픔을 알게 된 소녀는, 그것에 적의(敵意)를 표했다는 것일까? 그랬을 리가 없다. ……유령 같은 후지노. 아픔을 알았을 때 그녀는 얼마나 기뻤을까. 그, 기쁘다는 감정조차도 몰랐을 테지만. 「……무통증이 일시적으로 나아서 아픔을 느끼게 되고, 밉다고 하는 감정을 알았던 것일까. 겨우 손에 넣은 통각이 복수의 방아쇠가 되어버리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 점이야. 아사가미 후지노는 상처가 아파서 복수한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어찌된 것일까. 정확히 말해서, 상처가 아픈 것 때문에 과거의 능욕이 기억 나 버려서 복수한다. 이게 동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확실히 모르겠어. 일단 시키의 말로는 그녀는 무통증으로 돌아간 거지? 그렇다면 이미 복수의 의미 따위는 없는 거잖아. 상처는 나으면 안 아프다구」 「그게 아니에요. 토우코씨, 감각이 없다는 것은 성감(性感)도 없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능욕 당해도 그 아픔도 감각도 없어요. 아사가미 후지노라는 아이로서는, 그것은 능욕 당했었다는 것 뿐인 사실이에요. 하지만 싫었기 때문에, 몸이 아프지 않은 대신 마음만이 상처가 나버린 거죠. 그녀의 상처는 육체에 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난 게 아닐까요. 그래서 기억과 함께 통각이 되살아나는 거죠. 마음이 아프니까」 토우코씨는 대답하지 않았고, 대신 시키가 웃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있겠냐. 마음은 존재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아프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확고한 반론 같은 것은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라고하는 시적이고 감상적인 것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의외로 토우코씨가 아니야,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음은 부서지기 쉬워. 형체가 없다고 해서 상처 입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좀 그런데. 사실, 정신이 병든 것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있어. 그것이 어떤 착각이나 망상의 종류라 하더라도 그런 사실이 있는 한, 그 계측 불가능한 현상은 "아프다"라고 표현 되는 거야」 토우코씨로서는 애매한 반론.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의지가 되는 아군이다. 시키는 부루퉁해져서 팔짱을 낀다. 「뭐야, 토우코. 너까지 아사가미 후지노를 두둔하는 거야? 그 자식은 그렇게 예쁘장한 녀석이 아니라구」 「아아, 그것에 관해서는 시키와 동감이야. 아사가미 후지노에게 그런 감상(感想)은 없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복수한다고? 설마. 왜냐하면 코쿠토. 무통증은 그 마음조차 아프지 않아」 아군은 순식간에 최대의 적이 되었다. 「알겠어? 인격이란 것은 의학적으로 "개인이 외부에서의 자극에 반응하여 그것에 대응하는 현상"이라고 표현돼. 사람의 정신……다정함과 미움은, 결코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발생하지 못해. 마음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없으면 작동해 주지 않아. 그것을 위해 아픔이 있지. 아프지 않다는 것은 차가워져 있다는 거야. 선천적인 무통증 환자는 인격에 문제가 있어. 아니, 만들기가 어려워. 성장과정에서 인격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자는, 오랫동안 무감동적인 자신과 마주 하게 되지. 그런 병을 가진 사람은 말야, 코쿠토처럼 당연한 사고(思考)도 기호(嗜好)도 없어. 그들에게는 상식이 거의 통용되지 않아. 그리고, 지금 현재 그 증세의 절정에 달한 아사가미 후지노에게는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거야」 잊고 있었던 대화의 결론을, 토우코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했다. 그 극도의 자연스러움은, 역으로 최후통지 같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말씀 말아주세요」 참지 못하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것은 처음부터 무통증이라는 가정 하에서의 소리겠죠.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요」 「무통증이라고 말을 꺼낸 것은 너인데 말이지, 코쿠토」 토우코씨는 냉담하게 말했다. ……이 사람은 정말이지 어떤 일이든 제3자 같은 언행을 한다. 여자인데도 어째서 이렇게까지 아사가미 후지노를 차갑게 대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게 아니면. 여자이기 때문에 한없이 차가워질 수 있는 것일까. 「뭐어 나에게도 신경 쓰이는 점은 있어. 아사가미 후지노는 단순한 피해자일지도 몰라. 문제는 대체 어.느.쪽.이.먼.저.였.냐. 라는 점이야」 ……어느 쪽이 먼저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토우코씨는 중얼중얼하며 생각에 잠겨버려서 그 이상은 설명해 주지 않았다. 「시키는 어떻게 생각해? 등 뒤의 그녀에게, 돌아보지 않고서 묻는다. 시키는 예상대로의 대답을 했다. 「토우코와 같은 의견. 단, 나는 토우코의 사정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아사가미 후지노를 용서할 수 없어. 그 자식이 또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나」 「근친증오(近親憎惡)인가. 역시 이쪽 인간들은 뭉치지 못하지」 시키의 말을 토우코씨가 받았다. 나는 시키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시키 본인은 어느 사이엔가 깨달은 거겠지. 살인을 기호(嗜好)하는 그녀는, 사실은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사가미 후지노와 료우기 시키. 이 두 사람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결정적인 그 차이를 용납할 수 없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싸우는 상황이 된다면───시키는 자신 속의 진실을 깨달아 줄까. 아니……두 사람이 싸운다니, 그런 사태가 일어나 버려서는 안 된다. 「──알았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아사가미 후지노를 조사 해보겠어요. 그녀의 자료가 있다면 빌려 주세요」 토우코씨는 간단히 자료를 넘겨주었다. 시키는 네 멋대로 해, 라면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자료를 보니, 아사가미 후지노는 소학교 때 까지 나가노현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성은 아사가미(淺上)가 아니라 아사가미(淺神). 지금의 그녀의 부친은 진짜 아버지가 아니고, 후지노는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떠맡겨진 아이란 소리다. 조사하려고 한다면 이 무렵부터겠지. 「조금 멀리 갔다 올께요.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아, 그리고 토우코씨. 초능력이란 진짜로 있는 걸까요?」 「코쿠토는 미나토 케이타의 말을 믿지 않는 거야? 아사가미 후지노는 틀림없이 그런 류의 능력자라구. '초능력'이란 조잡하고 유치한 명칭은 적절치 않지만,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전문가를 소개하지」 그렇게 말하고, 토우코씨는 자신의 명함 뒤쪽에 슥슥하고 초능력의 전문가라는 사람의 주소를 적어간다. 「어라, 토우코씨는 조사하지 않는 거에요?」 「당연하지. 마술은 학문이라구. 그런 이론도 역사도 없는 선천적인 반칙 따위에게 관계할 것 같아? 난 말이죠, 그런 식의 선택받은 자들만의 힘이란 것이 제일 싫다구요」 맨 마지막에는 안경을 썼을 때의 어조가 된 것으로 봐서, 정말로 싫은 거겠지. 나는 명함을 받아들고, 마지막까지 위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던 시키에게 말을 건다. 「시키. 그러면 갔다 올 건데, 터무니없는 짓은 하지 말도록 해」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 것은 너야. 바보는 죽을 때까지 낫지 않는다는데, 진짠가 봐」 그렇게 시키는 그렇게 독설을 내뱉었지만 그 뒤에, 노력해볼게라고 작게 중얼거려 주었다. / 4 7월 24일. 코쿠토 미키야가 아사가미 후지노를 시작한지 하루가 경과했다. 그 사이에 일어난 사건 중에 특별히 눈에 뜨일 만한 것은 없다. 예를 들면 오늘 저녁부터 내일 새벽에 걸쳐 대규모의 태풍이 상륙한다는 것이라던가, 승용차를 무면허로 운전하고 있던 열일곱 살의 소년이 길을 벗어나는 사고를 일으켰다는 정도다.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료우기 시키는 전등 없는 아오자키 토우코의 사무실에서 그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름의 하늘은 한번 보는 것만으로 싫증이 날 정도로 넓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요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있을 뿐이다. 이 푸른 그림물감으로 그린 듯한 넓은 하늘이, 오늘 밤부터 휘몰아칠 암운(暗雲)에 먹혀버린다니, 그것이야말로 나쁜 꿈같다. 카─앙, 카─앙, 하는 소리가 귀 울림처럼 울린다. 사무소는 제철공장 옆에 있다. 창가에 있는 시키에게 그 소리가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었다. 시키는 말없이 토우코를 힐끗 본다. 그녀는 안경을 쓴 채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예에, 그렇습니다. 그 사건에 대한 일입니다. ……아아, 역시 접촉사고를 일으키기 전에 사망해 있었다고요. 사인은 교살입니까? 틀림없겠지요. 목이 비틀려 잘려있다면 그건 교살이에요. 강도의 가감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쪽의 견해는 어떠신가요? 역시 접촉사고로 취급하시나요. 그렇겠죠, 차안에는 피해자 밖에 없었으니까. 달리는 밀실이라니, 어떤 명탐정이라도 해결할 수 없을 거에요. 아뇨, 이 정도만 알려주시면 충분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일의 답례는 반드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키미 형사님」 토우코의 대화는 정중하고 더없이 상냥한 여성의 것이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 듣는다면 등골이 오싹해질게 틀림없다. 전화가 끝나자 토우코는 안경을 살며시 콧등에 걸쳤다. 따스한 감정이 완전히 단절된 눈빛이 그곳에 있다. 「시키, 일곱 번째가 나왔다. 이건 2년 전의 살인귀에 대한 것이 아니야」 시키는 아쉬운 듯이 창가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이 하늘이 암운에 침식되는 순간을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 봐. 이번이야말로 무관계한 살인이지?」 「그런 것 같네. 미나토 케이타도 사건을 일으킨 다카기 쇼우이치란 이름은 모른대. 이것은 그녀의 복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필요 이상의 살인이야」 하얀 쯔무기를 입은 시키는 뿌득, 하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분노. 그녀는 붉은 가죽 상의를 기모노 위에 거칠게 겹쳐 입는다. 「그래. 그렇다면, 이젠 기다릴 수 없어. 토우코, 그 녀석이 있는 곳을 알아?」 「글쎄. 숨어있는 곳이라면 두 세군데 짐작이 가는 곳은 있지만, 찾으려면 닥치는 대로 뒤져 볼 수밖에 없어」 토우코는 책상에서 몇 장의 카드를 꺼내더니, 시키에게 던졌다. 「……뭐야 이건, 아사가미 그룹의 신분증명서? 누구야, 아라야 소우렌(荒耶宗蓮)은?」 세 장의 카드는 모두 아사가미 건설이 관여하고 있는 공사 중인 시설로의 입장허가증이었다. 전자식 잠금장치가 설치 되어있는 건지, 카드 가장자리에는 자기 판별 슬릿이 있다. 「그 가명은 나의 지인이야. 적당한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말이지. 의뢰인에게 신분증명서를 만들게 할 때에 사용했어. 뭐어,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아. 아사가미 후지노가 숨어있다면 그 중 어딘가 일거야. 귀찮으니까 코쿠토가 돌아오기 전에 처리해버려」 시키는 토우코를 노려본다. 평소에는 공허한 시키의 눈은, 이렇게 되면 나이프처럼 예리해진다. 시키는 몇 초 동안 토우코에게 무언의 항의를 보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결국은 그녀도 토우코와 같은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시키는 그리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평소대로의 유려한 걸음걸이로 사무소에서 사라져갔다. 혼자가 된 토우코는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코쿠토는 시간을 맞추지 못 한건가. 자 그럼. 폭풍이 오는 게 먼저일까, 폭풍이 일어나는 게 먼저일까. 시키 혼자서는 오히려 역습을 당할 모른다구, 료우기」 마술사는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은 말을 중얼거렸다. ◇ 정오를 넘긴 무렵부터 날씨는 점점 변해갔다. 그만큼이나 맑았던 하늘은, 지금은 이미 납 같은 잿빛으로 덮여 있다. 바람도 불어왔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저마다 태풍이 온다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다. 「큿────」 나는 뜨거워진 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배를 누르면서 걷는다. 태풍의 이야기 따위, 나는 몰랐다. 계속 사람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는 어수선하긴 했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적어져간다. 이래서는 오늘밤에는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이나 걸려서 도보로 항구에 도착했다. 하늘은 이미 어둡다. 아직 여름밤의 7시일뿐인데. 폭풍의 도래는 계절이 가진 본래의 시간조차도 고장 나게 한다. 날마다 반응이 느려지는 몸을 움직여서, 나는 다리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 다리는 아버지가 제일 정성을 쏟고 있는 건물이다. 이쪽의 항구와 맞은편 해안의 항구를 잇는 커다랗고 훌륭한 다리. 차도는 4차선이나 되며, 다리 아래에는 고래에 달라붙은 빨판상어 같은 통로가 만들어져있다. 지하는 쇼핑몰이 되어있다. 바다 위에 떠있는지만 도로 아래에 있으니, 지하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지상의 다리에는 경비원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렇지만 지하의 쇼핑몰의 입구는 무인이라 카드만 있으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집에서 가지고 나온 몇 장의 카드에서 한 장을 꺼내, 그 입구를 열었다. ……안은 어둡다. 이미 대강의 내장은 끝나있었지만, 전기가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인의 쇼핑몰은 열차가 끊기기 직전의 역 같다. 끝없이 사각형으로 뻗어있는 통로. 통로의 좌우에는 여러 가지 가게가 있다. 500미터정도 걷자, 쇼핑몰은 거칠고 무딘 철근이 숲처럼 늘어선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아직 공사 중이라서, 아직 어질러져 있었다. 벽도 아직 미완성으로, 비를 막기 위해 벽에 붙여진 비닐이 펄럭펄럭 소리를 내고 있었다. ──슬슬 8시가 되는 것일까. 바람이 강해진다. 휘이휘이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해면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귀를 막고 싶어진다. 벽을 때리는 빗소리는 영화에서 보았던 기관총보다 격한 불꽃을 튀기고 있다. 「비───」 그날도 비가 왔었다. 첫 살인 뒤, 따뜻한 비로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렸다. 그 후에, 그 사람과 만났다. 중학시절에 딱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었던 소원(疎遠)한 사람과. ……아아, 기억하고 있다. 멀리 지평선이 불타는 것 같던 해질녘. 축제였던 체육대회가 끝난 뒤, 혼자서 운동장에 남아있던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다른 학교의 선배를. 나는 발을 삐어버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 무통증인 나는, 사실은 움직일 수 있었다. 움직여도 마음에 아무런 지장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부어오른 복사뼈는, 더 이상 움직이면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저녁노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부르고 싶지 않았다. 부르면 분명히, 모두 말한다. 잘도 여기까지 참았구나. 아프지 않니? 괴롭지 않니?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니? 라고. 그런 것은 싫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다. 누구에게 들키겠냐며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겠다. 적어도 주변사람들에게 후지노는 보통 아이라고 생각하게 하지 않으면, 나는 분명 부서져버린다. 그때, 툭하고 누가 어깨에 손을 짚었다. 감각은 없었지만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 사람이 서있었다. 내 기분도 모르면서 다정한 눈길을 보내고 있던 그 사람에게 느꼈던 첫 인상은, 얄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아프니?」 그 사람은, 믿을 수 없는 말로 인사를 해왔다. 절대 알 수 있을 리 없는 발의 상처를, 어떻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들킬까보냐, 하고 오기를 부렸다. 그 사람은 체육복에 붙은 나의 명찰을 보고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나의 삔 발을 만지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아아, 분명히 신물 나게 들었던 그 말을 하려는 거야, 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아프니, 라던가 아프지 않니, 라던가. 그런 평범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무신경하게 입에 담는 걱정의 말 따위, 나는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다른 말이 들려왔다. 「바보구나, 너는. 알겠어? 상처는 견디는 것이 아니야. 아픔은 알리는 거야, 후지노쨩」 ……그것이 중학시절, 내가 선배에게 들었던 말. 그 선배는 나를 안고 양호실까지 가서 나를 내려놓았고,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다. 어쩐지, 어렴풋한 꿈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를 좋아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나의 아픔을 염려해 주었던 그 웃는 얼굴이──── 「읏…………!」 욱신, 하고 배가 쑤신다. 그것으로 꿈은 깨었다. 피에 더러워진 내가, 추억에 잠기는 것이 허락 될 리가 없다. 하지만─────, 비는 부정(不淨)을 씻어내려 줄지도 모른다. 나는 다리 위에 올라가고 싶어졌다. 태풍은 본격적으로 다가와 있다. 다리 위는 그야말로 남국의 스콜이 되어있겠지. 어째서인지 가슴이 설렜다. 이젠 아픔이 사라져 주지 않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는 주차장의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다리 위로. 그리운 여름의 비를 맞기 위해서. ◇ 대교는 얕은 호수처럼 변해있었다. 4차선이나 되는 넓은 아스팔트는 온통 빗물에 잠겨, 걸을 때마다, 발목까지 젖어버린다. 퍼붓는 비는 비스듬하게 쏟아지고, 바람은 버들가지 같은 가로등을 부러뜨리려는 것처럼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하늘은 어둠. 이곳은 이미 아득한 해상. 항구에 보이는 거리의 불빛은 마치 지상에서 달을 보는 것처럼 멀고멀어서 닿지 않는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그 폭풍 속을 찾아왔다. 검은 학생복은 까마귀같이 밤에 녹아든다. 그녀는 비에 젖으면서 자주 빛으로 변한 입술로 숨을 내쉬며 걷는다. 가로등 아래까지 다다랐을 때, 사신(死神)과 만났다. 「겨우 만났어, 아사가미」 폭풍의 바다에 하얀 옷차림을 한 료우기 시키가 있었다. 붉은 가죽 상의가 탁탁, 하고 비를 튕겨내고 있다. 그녀도 비에 젖어서 유령처럼 보였다. 시키와 후지노는 둘 다 가로등아래 서있다. 두 사람의 거리는, 그래. 딱 10미터 정도겠지. 이 호우와 광풍 속에서도 서로의 모습은 잘 보였고, 서로의 목소리도 잘 들리는 것이 신기했다. 「료우기────시키」 「얌전하게 집에 돌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피 맛을 알아버린 짐승이야. 살인을 즐기고 있어」 「───그건 당신이겠죠. 나는 즐긴 적 따윈 없어요」 후지노는 거친 호흡을 계속하며 시키를 응시한다. 그곳에 있는 것은 적의(敵意)와 살의(殺意). 그녀는 조용히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의 틈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두 눈이 엿보인다. 대답하듯이, 시키는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쥐었다. 이것으로 두 사람의 대면은 세 번째. 이 나라에서는 세 번째의 정직이란 속담이 있었지, 하며 시키는 시시한 듯 웃었다. 지금의 아사가미 후지노는 충분한 살인대상이다. 「……실감했어. 우리들은 서로 비슷하다고. 아아─────지금의 너라면 죽여주겠어」 그 말에, 두 사람의 족쇄는 완전히 풀렸다. / 5 시키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물에 젖은 바닥, 휘몰아치는 호우 속에서, 그 스피드는 홀려버릴 만큼 빠르다. 10미터의 거리를 좁혀드는 것에 아마 3초도 걸리지 않겠지. 후지노의 가느다란 몸을 지면에 내동댕이치고 심장에 나이프를 꽂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 경이적인 속도도 시력에는 비할 수 없다. 접근해서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키와. 그저 그 두 눈으로 목표를 포착하기만하면 되는 후지노의 차이는 3초로는 너무 늦다. 「────」 후지노의 두 눈이 빛난다. 왼쪽 눈은 좌회전을, 오른쪽 눈은 우회전을. 시키의 머리와 왼쪽다리에 지점을 고정시키고 단숨에 비틀어 찢는다. 이변은 곧 바로 나타났다. 시키는 자신의 몸에 걸리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낀 순간 바로 옆으로 뛰었다. 튀는 듯한 옆쪽으로의 도약. 하지만 시키의 몸에 걸리는 힘은 여전히 느슨해지지 않았다. 후지노의 능력은 날리는 도구가 아니다. 그 장소에서 떨어져 있다고 해도 그녀의 시야에 들어와 있는 한, 피하는 것은 불가능인 것이다. ───이 자식───! 시키는 내심 혀를 찼다. 후지노의 힘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력하다고 실감하면서. 시키는 더욱 달렸다. 후지노의 시계(視界)에서 달아나려는 것처럼, 그녀를 중심으로 둥글게 달린다. 「그런 짓을 한다고 해서───」 놓칠 것 같아요, 라고 후지노는 중얼거리다가 말을 잃었다. 놓쳤다. 믿을 수 없게도, 시키는 다리 위에서 바다를 향해 뛰어내린 것이다. 쨍그랑, 하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난다. 어떻게 된 운동신경인가. 료우기 시키는 이 대교에서 떨어져서, 그 바로 아래 펼쳐진 주차장으로 옮겨간 것이다. 「정말───터무니없는 사람이네요」 중얼거리는 그 입은 웃고 있다. 확실히, 놓치긴 했다. 하지만 후지노의 시계(視界)는 시키의 왼손을 마지막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시키의 가죽 상의가 비틀리는 광경을 확실히 지켜본 것이다. 우선, 한쪽 팔을 망가뜨렸다. 후지노는 실감한다. 「내 쪽이────강해」 복부의 통증은 점점 강해져간다. 그것을 참으면서, 후지노는 지하로의 내리막을 내려간다. 료우기 시키와는 여기서 결판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주차장 안은 온통 어둠이었다. 시계가 나빠서 걷기 힘들다. 어쩐지 미니어처의 도시에 있는 것 같아, 하며 후지노는 얼굴을 찡그린다. 확실히, 곳곳에 서있는 철근과 지면에 쌓아 올려져있는 자재의 산은 빌딩처럼 늘어서있다. 시키를 쫓기를 몇 분. 후지노는 이곳을 싸움터로 삼은 것을 후회했다. 그녀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대상이 시계(視界)에 들어오지 않으면 회전의 축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철근의 그늘에 숨어있다고 알고 있어도, 시키를 안구로 포착하지 않으면 회전축은 철근에 생겨버리는 것이다. 저, 다리 위에서의 얼마 안되는 일순간의 교차로, 시키는 후지노의 능력을 간파했다. 그래서 도망쳤다. 자신에게 승산이 있는 이 장소로. 후지노는 전사(戰士)로서의 능력이 명백히 열세인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 내 쪽이 강하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벗겨내 버리면 된다. 후지노는 방해가 될만한 철근을 닥치는 대로 구부려 쓰러뜨린다. 하나, 또 하나 파괴할 수 록 복부의 통증은 깊어지고 주차장의 흔들림은 격해져갔다. 「엉망진창이구나, 너」 시키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진다. 그 장소를 후지노는 순간적으로 돌아보았다. 시키가 숨어있던 자재의 산이 분쇄된다. 찰나──그 그림자 속에서 하얀 옷자락이 튀어나왔다. 「───거기!」 후지노의 두 눈이 시키를 포착한다. 하얀 옷과 붉은 상의의 소녀는 피에 물든 왼팔을 앞으로 내밀고서 달려온다. 「───큿……!」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후지노는 비틀었다. 빠직하고 소리를 내며 시키의 왼팔이 부러진다. 다음은 목. 그곳에 시선을 옮겼을 때────시키는 이미 후지노를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었다. 휘둘리는 나이프가 그리는 한 가닥 선은 그야말로 섬광. 어둠 속에 언제까지나 궤적이 남을 듯한 은백색 곡선이었다. 주저 없이 일격을 날린 시키의 나이프는, 그러나 후지노에게 맞지 않았다. 확실하게 목의 경동맥을 향해 휘두른 시키의 일격을, 후지노는 몸을 웅크려 피했으니까. 아니, 다르다. 지금 것은 단순한 우연이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왼팔이 부서지면서도 즐겁다는 얼굴로 달려오는 료우기 시키가 무서워서 얼굴을 고개를 돌린 것뿐이었으니까. 「치잇────」 혀를 차면서 시키는 헛손질한 오른손의 자세를 바로 잡는다. 후지노는 정신없이 시키의 동체를 응시했다. 「───사라져───!」 후지노의 외침보다 시키의 행동이 빠르다. 시키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어둠 속으로 섞여든다. 놀라운 것이라면 그 운동신경보다 곧바로 이탈을 선택한 사고(思考)의 신속함이겠지. 「───대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하고 후지노가 중얼거린다. 그녀의 호흡이 거친 것은 결코 복부의 상처 때문은 아니다. 후지노는 신경질적이 되어 주위의 어둠에 바짝 긴장한다. 언제 그 속에서 시키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후지노는 목덜미에 손을 가져갔다. ……지금 일로, 자신의 목에 비스듬하게 상처가 나있었다. 4밀리 정도의 상처. 하지만 출혈이 없다. ……피는 나지 않지만 호흡이 힘들었다. 「팔을 망가뜨렸는데, 어째서───」 멈추지 않는 거야, 하고. 그 의문에서 오는 공포에 견디지 못하고 후지노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방금 전의 한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왼쪽 팔이 부서지면서도 더욱 맹렬히 달려드는 시키의 눈이. 즐기고 있었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자신조차 긴장해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상황을, 그 사람은 즐기고 있었다. 설마───료우기 시키에게 있어서 팔이 못쓰게 된 것은 괴로움이 아닌 기쁨인지도 모른다. 후지노는 지금까지 살인행위를 즐긴 일은 없다. 살인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다르다. 그 사람은 서로 죽이려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 상황이 극한이면 극한일수록, 료우기 시키는 환희한다. 후지노는 생각한다. 료우기 시키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다는 감각이 부족한 인간이라면, 그 대상행위(代償行爲)를 무엇에서 구하고 있을까. 후지노는 살인이었다. 자신과 같은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형용하기 힘든 초조함이 가슴 속에 샘솟았다. 아픔이라는 것을 안 후지노는 누군가에게 그 아픔을 가하는 것에 의해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타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자신이 이 곳에 존재하고 있다고 실감케 했다. 일방적인 살인이야말로 후지노의 대상행위. 본인이 지금도 깨닫지 못하는 그것은 살인쾌락증(殺人快樂症). 그러면, 료우기 시키는 대체 무엇에────? 「───지금 건 안 좋은데」 자재의 그늘에 숨어서, 시키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다리 위에서 비틀렸던 왼쪽 팔은 이미 악력(握力)이 없었다. 어차피 사용할 수 없다면 방패로 하자고 생각하고 방금 전의 일격에 걸었지만, 그것은 아사가미 후지노가 생각보다 겁쟁이였다는 사실 앞에서 실패해버렸다. 시키는 겉옷를 벗어서 팔 부분을 잘라냈다. 그대로 한쪽 팔로 재치 있게 왼팔의 지혈을 한다. 상완 부분을 칭칭 동여매는 것뿐인 난폭한 지혈이다. 후지노에게 비틀린 왼팔의 감각은 없다. 아마, 일생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않겠지. 그 사실에, 시키는 등줄기가 떨렸다. 「좋아 아사가미. 너는 최고야───」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자신의 혈액. 정신이 점점 멀어져가는 감각. ──원래부터 혈기는 왕성했다. 불필요한 여분이 빠져나가면 머릿속이 깨끗해져주겠지── 시키는 신경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아마 이 뒤로도 만나볼 수 없을 정도의 강적일 테지. 한 발짝 실수하면 자신은 순식간에 죽게 된다. 그것이 즐겁다. 살아있다고 실감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에 갇혀 있는 시키에게 있어서, 그 순간만이 현실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에 의해 얻어지는 감각. 단 하나 지금의 자신의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 작은 생명. 서로 죽이려들고, 죽이기 위해 싸운다. 일상조차 모호하게 느끼던 시키는 그런 가장 단순하고,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생명을 실감할 수 없다. 아사가미 후지노가 살인에서 쾌락을 구한다고 한다면. 료우기 시키는 살인을 기호(嗜好)하는 것으로 실감을 구한다. 양자의 차이는 이 부분에서 결정적이었다. ……후지노의 호흡음이 어둠 속에 울린다. ……거칠고, 강하게. 괴로운 듯, 겁먹은 듯. 아직 상처를 입지 않은 그녀의 호흡은, 하지만 지금의 시키와 같을 정도로 격하다. 어둠 속, 두 사람의 호흡이 겹쳐진다. 고동도 사고(思考)도, 생명조차도 같은 것일까. 폭풍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다리는, 요람의 리듬과 비슷하다. 시키는 처음으로 후지노가 사랑스러워졌다. 그 목숨을, 이 손으로 빼앗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쓸데없는 짓이라는 거, 알고 있다구」 찻집에서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사가미 후지노의 내부가 이미 붕괴 직전이란 것은. 여기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녀를 처치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쓸데없는 짓에 쓸데없는 짓을 겹쳐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인간은 쓸데없는 짓을 행하는 생물이다, 라고 하던 토우코의 말을 기억 해냈다. 시키도 지금은 그 말에 동감이었다. 이 다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쓸데없는 짓은 어리석다고 업신여기고, 어떤 쓸데없는 짓은 예술이라 찬양한다. 대체 그 경계는 어디에 있다고 하는 걸까. 경계는 불확실하다. 정하는 것은 자신인데도 결정하는 것은 외부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계 따위는 없다. 세계는 모두, 텅 빈 경계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이상(異常)과 정상을 가르는 벽 따위는 사회에는 없다. ───벽을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이다. 내가 세상에서 멀어지려 하는 것처럼. 미키야가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아사가미 후지노가 확실히 죽음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시키와 후지노는 융화되어있다. 그녀들은 비슷한 존재. 이 좁은 공간에 같은 존재가 둘이나 있을 필요는 없다. 「───갈까. 네 재주의 비밀은 이미 알았어」 출혈에 의해서 새하얗게───클리어 되어 가는 머리를 흔들며, 시키는 일어섰다. 강하게 오른손의 나이프를 쥔다. 후지노가 스스로 경계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 뿐이다. 시키가 천천히 나타났다. 후지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이렇게 정면으로. 거리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데, 하고. 후지노 본인은 깨닫지 못한 그녀의 열은, 이미 39도를 넘고 있다. 복부의 아픔이 『어떤 병』 때문이라는 것도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했다. 「……역시. 당신, 제정신이 아니네요」 후지노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시키를 바라보며 비틀었다. 시계(視界)가 일그러진다. 시키의 머리와 다리에 만들어진 축이 제각기 역 방향으로 회전하여───시키의 육체를 천 조각처럼 비틀었다. 비틀렸어야 했다. 시키는 피를 흘리는 왼팔은 그대로 놔둔 채, 오른손에 든 나이프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후지노의 "왜곡"을 무력화 시켰다. 아니, 죽였다. 「……형체 없는 것은 보이기 힘들지만 말이지. 너, 너무 활발해. 덕분에 겨우 볼 수 있었어. 너의 능력은 녹색과 적색의 나선(螺旋)이라서 말야, 정말로─────아주, 아름다워」 후지노로서는 시키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시키에게 살해당할 것이란 사실뿐. 후지노는 반복해서 비틀었다. 비틀려라, 비틀려라, 비틀려라, 비틀려라. 그렇게 노려보자 시키는 나이프를 휘둘러서 그것을 없애버렸다. 후지노의 복부의 아픔은 한계를 넘으려 하고 있었다. 「당신───대체 뭐야?」 후지노의 경외(敬畏)에, 시키는 무저(無底)의 눈동자로 답했다. 「만물에는 모두 이음매가 있어. 인간은 말할 것 도 없고, 대기(大氣)에도 의지(意志)에도 시간에도 말이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도 당연. 나의 눈은 '존재의 죽음'이 보인다구. 너와 마찬가지로 특제거든」 언젠가 후지노가 불길하다고 느꼈던 검은 눈동자로, 시키는 후지노를 보았다. 「그러니까───살아있는 것이라면, 신이라도 죽여 보이겠어」 시키는 달렸다. 걷는 것 처럼 우아했다. 후지노에게 접근하여 그녀를 밀어 쓰러뜨린다. 덮치듯이 그 위에 올라탄다. 만져질 정도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후지노는 목을 떨었다. 「나를───죽일 거야?」 시키는 대답이 없다. 「왜 죽이는 거야? 나는 단지 상처가 아파서 죽이고 있던 것뿐인데」 시키는 웃었다. 「그건 거짓말이야. 그렇다면 어째서───너는 웃고 있는 거야. 그때도, 지금도. 어째서 그렇게 즐거워 보이는 거지?」 그럴 리가, 하며 후지노는 말을 잇지 못한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입가에 손을 대었다. ───그것은.    변명할 여지없이, 휘어져 있었다. 「────────」 감각이 없는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분명히 웃고 있다. 첫 번째의 살인. 피 웅덩이에 비쳤던 나의 얼굴은 어땠을까. 두 번째의 살인. 피 웅덩이에 비쳤던 나의 얼굴은 어땠을까.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 초조함이 있었다. 사람을 죽일 때, 언제나 초조해 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기쁨이었던 걸까. 능욕 당해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살인으로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너는 즐거워하고 있었던 거야.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좋은 거지. 그래서 그 아픔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사라져 버린다면 사람을 죽일 이유가 없어지니까. 상처는 영원히 계속된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것이────대답?」 후지노는 중얼거린다. 그런 것,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런 것,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당신과는 다르니까──── 「말했잖아. 나와 너는 닮았다고」 시키의 나이프가 휘둘린다. 후지노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모두 비틀려 버려, 라고. 주자창이 크게 흔들렸다. 후지노의 뇌리에서 폭풍의 밤에 떠오른 해협의 전경이 떠오른다. 뇌가 녹아내릴 듯한 작열(灼熱)을 견디면서, 후지노는 다리의 입구와 출구에 회전축을 만들어──── ────그것을, 비틀었다. ◇ 쿠궁. 낙뢰가 떨어진 것 같은 굉음이 들린다. 철근이 찌그러진다. 비명을 지른다. 지면은 비스듬하게 기울어지고 이곳저곳의 천장이 무너져간다. 하나의 건물이 와르르 붕괴해가는 모습을, 아사가미 후지노는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덮쳐누르고 있던 소녀는 갑작스런 세상의 기울어짐에 휘말려 떨어졌다. 바깥은 폭풍. 아래는 바다. ……무언가를 붙잡지 못하고 떨어진다면 살아날 수 없다. 후지노는 너무 괴로워서 숨도 쉴 수 없는 몸에게 명령한다. 이곳에 있으면 떨어져 버려. 벗어나지 않으면 안돼, 라고. 불타는 듯한 몸을 질질 끌며 주차장에서 탈출한다. 쇼핑몰은 비교적 무사했다. 사각형의 통로가 지금은 마름모꼴이 되어있다. 후지노는 걸었고, 걸으려다 쓰러졌다. 호흡을 할 수 없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있는 것은. 그렇다───몸 안의 격한 아픔뿐이었다. 죽는구나, 하고 처음으로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너무나 아프다. 이런 것에는 견뎌낼 수 없다. 이 고통을 안고서 살아가느니 죽는 편이 낫다. 「───콜록」 엎드리듯 쓰러진 채로, 후지노는 피를 토했다. 지면에 드러누워 멍하니 있는다. 하얗게 변한 시계(視界)속에서 바닥에 흐르는 자신의 피만이 선명했다. 붉은 피───붉은 경치 저녁놀이 불타는 것 같아서───언제나 힘차게 불타오르는 것 같아서. 「싫어……죽고 싶지, 않아」 후지노는 팔을 뻗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팔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기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저 사신(死神)이, 자신을 분명 쫓아온다. 후지노는 열심히 나아갔다. 감각은 모두 통각.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이젠 그런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겨우 손에 넣은 통각인데도, 지금은 이렇게도 증오스럽다. 하지만───사실이다. 아프니까──아주 아프니까 죽고 싶지 않다고 갈망한다. 이대로 사라지는 것은 싫어. 좀더 살아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돼. 왜냐하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어. 그런 것은 너무 비참해. 그런 것은 너무 허무해. ……그런 것은, 너무나 슬퍼. 하지만 아파. 살아가려는 마음이 마비될 정도로 아파서, 져버릴 것 같아.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하지만. ……후지노는 피를 토하면서 팔을 움직인다. 반복되는 것은 같은 단어. 그녀는 처음으로 아주 강한 의지로 빌었다. ───좀더 살고 싶어. ───좀더 대화하고 싶어. ───좀더 생각하고 싶어. ───좀더 이곳에 있고 싶어─── 하지만 이젠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픔만이 반복된다. 이것이───자신이 즐기고 있던 것의 정체. 그 사실이 아사가미 후지노에게는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다. 자신이 범한 죄, 자신이 흘린 피의 의미를 지금은 알 수 있다. 그 의미가 너무 무거워서──용서를 빌 수조차 없었다. 지금은 그저, 상냥한 미소를 떠올릴 뿐이다. 그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그는 이런 나를 다시 안아 줄까. 꿈틀하고 자신의 몸이 경련했다. 목구멍에서 역류하는 혈액이 마지막 아픔의 도래를 고한다. 그 충격으로 빛마저 잃었다. 이미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것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것조차도 엷어져 가려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후지노는 말했다. 지금까지 계속 고집부리며 지켜 왔던 그녀의 진실한 마음……어렸을 적부터 꿈꾸고 있던 작고 보잘 것 없는 소원을. 「───아파. 아파요, 선배. 너무 아파서……이렇게나 아프면, 저, 울어, 버려요───. ……어머니───후지노는, 울어도, 괜찮은, 가요?」 ……이 마음을, 나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다. 3년 전 저녁놀이 비치던 날에 내가 나를 전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얼마나───. 눈물이 흘렀다. 아프고 슬퍼서, 너무나 외로워서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런 일 만으로 아픔은 엷어져갔다. 아픔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사랑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라고, 그 사람은 알려주었다. 만나서 다행이다. ──이렇게 되기 전에 만나서, 정말로 다행이다. 「괴롭냐」 괴로움의 끝에 시키가 서있었다. 그 손에는 나이프가 있다. 후지노는 스스로 몸을 바로 뉘여서 시키와 마주본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면 됐던 거야, 너는」 시키는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했다. ……후지노의 추억과 같은 말. 정말 그래, 하고 그녀는 생각한다. 만약 지금부터라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면───난 이런 잘못된 길에서 헤매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그 부자유한,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죄를 너무 많이 지었다. 나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많은 사람을 죽여 버렸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평온하게 스스로 호흡을 멈췄다. 그녀의 통각은 급속히 사라져간다. 지금, 가슴에 꽂힌 나이프의 아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통각잔류/ 5 태풍이 한창 도심에 직격하고 있을 때, 나는 사무소로 돌아왔다. 비에 젖어 사무실에 들어오자, 토우코씨는 툭하고 입에 물은 담배를 떨어뜨리며 맞아주었다. 「빠른걸. 아직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다구」 「태풍이 온다고 해서 교통기관이 마비되기 전에 돌아 왔어요」 그런가, 하고 대답하며 토우코씨는 찡그린 얼굴로 끄덕인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냐, 지금은 그런 것 보다─── 「토우코씨. 아사가미 후지노에 관한 건데요, 그녀는 후천적인 무통증이에요. 여섯 살 때까지는 보통체질이었어요」 「뭔 소리야 그건. 그런 바보 같은 얘기가 어딨어. 잘 들어, 아사가미 후지노는 통각마비를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마비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아. 후천적이라면 역시 척수공동증이 유력하지만, 그 병은 운동능력에 지장을 일으켜. 그렇게 감각만 없다는 특수한 케이스는 선천적인 것 이외엔 있을 수 없어」 「예에, 그녀의 주치의도 그런 말을 했었어요」 나가노의 산 속에서의 일을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나는 구(舊)아사가미(淺上)……아니 아사가미(淺神)가에서의 후지노의 이야기를 간단히 설명한다. 「아사가미(淺神)가는 나가노의 명가였지만 후지노가 12살이 될 무렵에 파산했어요. 그 시기에 모친에게 떠맡겨 져서 지금의 아사가미(淺上)가에 왔구요. 아사가미(淺上)는 아사가미(淺神)가의 분가(分家)같은 곳이라서, 토지의 이권을 원해서 빚을 떠맡았다고 해요. 그리고 말이죠. 어렸을 적의 후지노에게는 분명한 통각이 있었어요. 다만 그 대신에 이상한 능력이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손을 대지 않고서 물체를 구부릴 수가 있었다고」 「───그래서?」 「마을에서는 귀신 붙은 아이라며 몹시 싫어했다고 해요. 심한 박해를 받았죠. 그렇지만 후지노가 여섯 살이 될 무렵부터 그 능력은 사라졌어요. 그녀의 통각과 함께」 「……」 토우코씨의 눈매가 변한다. 짓궂게 치켜 올라간 입가에서 흥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무렵부터 그녀에게 주치의가 붙여졌는데, 아사가미(淺神)가에 그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어요. 이미 그곳은 폐허였으니까요」 「뭐야 그건. 그 다음이 중요한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인가!」 「설마요. 그 주치의를 찾아내서 이야기를 들었죠」 「음───상당히 솜씨가 좋은걸. 코쿠토」 「네, 기록을 더듬어서 아키타(秋田)까지 갔어요. 의사면허가 없는 무면허의사(暗醫)라서 이야기를 듣는 데까지 하루가 걸려버렸지만요」 「……끝내주는데. 여기를 때려 친다면 탐정을 하도록 해, 코쿠토. 내 전속으로 삼아줄 테니까」 생각해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말을 잇는다. 「이 주치의 자체는 약품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뿐인 것 같아요. 어째서 후지노가 무통증이 되어 버렸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후지노의 아버지가 혼자서 했다는 말을 하면서」 「혼자서 했다───? 치료 말야, 아니면 약물투여 말야?」 그 미묘한 어감의 차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약물투여죠. 주치의의 말로는 후지노의 아버지는 무통증을 치료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어요. 주치의가 빼돌린 약품의 대부분은 아스피린이랑 인도메타신(indomethacin), 스테로이드였죠. 주치의 자신의 진찰로는 후지노는 시신경척추염의 가능성이 높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시신경척추염(視神經脊髓炎)───데빅증(症)인가」 데빅증(neuromyelitis optica[Devic]). 척추염의 한가지로 이것도 감각의 마비를 일으키는 병이다. 주요 증상으로는 양다리의 운동 · 감각마비. 그리고 양쪽 눈의 시력저하. 실명할 위험까지 있다고 한다. 이 질병에는 조속한 스테로이드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스테로이드라는 것은 전에 토우코씨가 말했던 부신피질호르몬인 듯 하다. 「그런데도 통각을 마비시키기 위해 인도메타신 따위를 사용한거야. 하하아, 과연. 확실히 그렇게 하면 그런 인간이 되지. 선천적이지도 후천적이지도 않아. 아사가미 후지노는 인공적으로 감각을 잃었어. 완전히 시키의 반대란 소리지!」 아하하하, 하고 토우코씨는 웃기 시작한다. 어쩐지 어제 방문했던 교수 같아서 조금 무섭다. 「토우코씨, 인도메타신이란 건 뭐죠?」 「아픔을 완화시키는 물질이야. 말초성(末梢性)이든, 관련통(關連痛)이던, 아픔이란 것은 외부에서의 "생명활동에 이상을 일으키는 자극"에 반응해서 일어나. 발통물질(發痛物質)이 체내에서 생성되어 통증을 담당하는 신경말단을 자극, 뇌에 아픔의 신호를 보내지. 이대로라면 죽어버린다구, 하고 말야. 발통물질은 알고있겠지. 키닌(kinins)과 아민(amine)외에 이 두 가지를 강화하는 아라키돈산(酸)대사산물(代謝産物)이 있어. 아스피린과 인도메타신이라고 하는데, 이 아라키돈(arachidon)에 함유된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을 억제하지. 키닌과 아민 단체(單體)에 의한 아픔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으니까, 인도메타신의 대랑 투여로 아픔은 거의 소실되는 거야」 상당히 즐거운지, 토우코씨는 상당히 고양된 상태다. 정직히 말해서 아라키돈이라던가 키니돈이라던가 하는 얘기를 들어도, 괴수의 이름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즉 아픔을 없애버리는 약 인가요?」 「직접적인 것은 아니야. 그냥 아픔을 없애는 거라면 오피오이드(opioids)란 마약이 좋아. 유명한 것으로는 엔돌핀이 있지? 뇌내마약이라고 불리는, 뇌가 멋대로 아픔을 마비시키기 위해서 분비하는 것이지. 그것과 마찬가지로 오피오이드는 중추신경을 진통시키지만───아아,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나. 과연, 대단해. 아사가미 후지노의 부친은 감각을 단절시켜서 능력을 봉하기로 했어. 필사적으로 능력자를 발현시키려고 하는 료우기와는 딱 반대의 순수혈통가야. 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짓에 의해서 후지노의 능력은 더욱 강해졌어. 이집트 쪽의 마술사는 말이지, 마력을 몸속에 잡아두기 위해서 눈을 봉했다구. 아사가미 후지노와 어디가 틀리겠어」 ……토우코씨의 말은 각오하고 있었는데도 쇼크였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아사가미(淺神)혈족에게는 후지노 같은 초능력자───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채널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 그들은 그것을 귀신들린 아이 라며 싫어했고 그 힘을 어떻게든 봉하려고 했다. 그 결과가───무통증. 초능력이란 채널을 막기 위해서 감각이란 기능도 막은 것이다. 그래서 아사가미 후지노는 아픔이 되살아나면 초능력을 발현해버린다. ……단절되어있던 감각이 연결되어서. 「……잔혹하네요, 그런 건. 비정상적 상태가 이 유일하게 정상으로 있을 수 있는 조건이라니」 그렇다. 아사가미 후지노는 무통증이란 이상(異常)이 아니면 우리들과 같은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무통증인 이상, 그녀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단지 세상에서 사는 것을 허가받았을 뿐인 유령에 지나지 않았다. 「아픔만 없었다면───그녀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이봐이봐, 아픔을 나쁜 것처럼 취급하지 마. 아픔은 좋은 거야. 나쁜 것은 어디까지나 상처. 앞뒤를 틀려서는 안돼. 우리들에게는 아픔이 필요해.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말이지. 인간은 아픔이 있기 때문에 위험을 알 수 있어. 불길에 손이 닿았을 때, 손을 빼는 것은 손이 불타기 때문이야? 아니야. 손이 뜨겁다, 곧 아프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손이 불타버릴 때까지 불이란 존재의 위험성을 알 수 없어. 상처는 아픈 것이 바른 거야, 코쿠토. 그것이 없는 자는 인간의 아픔을 알 수 없어. 아사가미 후지노는 등뼈를 강타 당해서 일시적으로 통각을 되찾았어. 그 뒤에 받은 아픔으로, 처음으로 방위를 했던 거지. 지금까지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젊은이들을, 아픔에 의해서 위험한 존재로 이해할 수 있었어. ───뭐어, 그렇다고 해서 죽이는 것은 너무 심했지만 말야」 ……하지만 그 후지노에게는 통각이 없다. 그녀의 방위에 의해서 젊은이들은 죽어버렸지만, 그 책임의 일부는 그녀를 습격한 녀석들에게도 있지 않은가. 그녀 한 사람만을 악인 취급을 할 수는 없다. 「───토우코씨. 그녀는 나을까요?」 「치료할 수 없는 상처는 없어. 낫지 않는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 죽음이라고 불러야겠지」 돌려 말해서, 그녀는 아사가미 후지노의 상처를 죽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원인은 복부의 자상(刺傷)이다. 그 아픔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니까, 그 원인만 알면─── 「코쿠토. 그녀의 아픔은 낫지 않아. 단지 계속 아플 뿐이야」 「에?」 「그러니까 말이지. 원래부터 상처 따위는 없었던 거라구, 그 여자애는」 ──그건, 예상도 하지 못했던 한마디였다. 「저기…그건, 어떤 의미죠…?」 「생각해봐. 복부를 나이프로 찔렸다고 하면, 상처는 저절로 나을까? 그것도 하루 이틀로」 ……그건───그렇지만. 뿌리부터 통째로 기반을 무너뜨리는 토우코씨의 지적에, 나는 어물어물하며 당황했다. 쿡쿡쿡, 하고 토우코씨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네가 아사가미 후지노의 과거를 조사하러 간 것처럼, 나도 아사가미 후지노의 현재를 조사해봤어. 후지노는 20일부터 도심내의 어떤 병원에도 들리지 않았어. 그녀가 비밀리에 다니고 있던 전속의사가 있는 곳에도 오지 않았던 것 같아」 「전속의사라니, 에에───!?」 토우코씨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눈썹을 찡그린다. 「……너는 뭔가를 찾는 것은 일류지만, 통찰력이 결여되어있어. 잘 들어, 무통증 환자에게 있어서 제일 두려운 것은 몸의 이상이야. 아픔이 없는 그들은, 스스로는 어떤 병에 걸려있는지 알 수 없어. 결과적으로 정기적으로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지」 그런가. 정말 그 말 대로다. 하지만 그렇다면───아사가미 후지노의 지금의 부모는, 후지노의 무통증을 모르는 것일까. 「동기는 사소한 착각이야 코쿠토. 후지노는 나이프를 든 젊은이에게 깔리면서 찔렸다고 생각했어. 아니, 사실 찔리기 직전까지 갔겠지. 그 때에 그녀의 통각은 이미 돌아와 있었기 때문에 그 능력도 발현할 수 있었고. 베.이.느.냐.비.트.느.냐.는, 후.지.노.쪽.이.먼.저. 였.다. 는거야. 그 결과, 젊은이들의 목이 비틀려 잘렸고 그 피가 깔려있던 후지노의 몸에 튀겼어. 후지노는 생각했겠지. 배를 찔려버렸다, 하고」 그 때의 영상이 극명하게 이미지 되어버려서, 나는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그건 이상해요. 통각이 돌아와 있었다면, 그런 착각은 안했겠죠. 찔리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아요」 「처음부터 아팠던 거야, 후지노는」 ………에? 「지금의 후지노의 주치의에게 카르테를 보여 달라고 했어. 그녀는 만성 충수염(蟲垂炎)……속칭 맹장염(盲腸炎)이야. 무엇보다, 그것 때문에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 애의 복부의 아픔은 말야, 나이프에 찔린 아픔이 아니라 내장의 아픔이라구. 그녀의 통각은 회복과 마비를 반복하고 있었어. 나이프에 찔리기 직전에 통각이 회복되었다면───틀림없이 찔렸다고 착각하겠지. 아픔을 모르는 채 자라났다면, 상처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지도 않아. 후지노는 찔린 자신의 복부를 보고서, 그 상처가 없어도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어. 아아, 상처가 아물어주었다, 하고 말야」 「착각───인가요」 「상처의 종류 자체는. 하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아. 실제로 그녀는 궁지에 몰려있었어. 나이프가 있건 없건, 그녀는 그들을 살해하는 것 이외의 달아날 방법은 없었던 거야. 죽이지 않으면 죽어.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말이지. 하지만 운 나쁘게도 미나토 케이타가 도망쳐버렸어. 복수가 그 장소에서 끝났었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시키의 말대로야. 어느 쪽이라고 해도 아사가미 후지노는 손쓰기에 늦었어」 그러고 보니, 시키는 그 소리를 반복 하고 있었다. 어째서───손쓰기엔 늦은 것일까. 후지노가 살인을 범해 버렸다는 것 때문일까? 그래도 그렇다면 네 명을 죽여 버렸던 때에 이미 손을 쓰기엔 늦어 버렸을 텐데. 나에게는 그 부분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늦었다니, 어째서」 「시키가 말하고 있던 것은 정신적인 면의 이야기야. 그녀의 살인은 말이지, 다섯 명까지가 살인이야. 그 이외의 행위는 살인이 아니라 살륙(殺戮). 시키는 그것에는 대의명분 이 없다고 화를 냈던 거야. ……그 애는 자신이 살인기호증인 주제에 죽음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어. 그래서 아사가미 후지노처럼 무차별적인 살인행위는 하지 않아. 그런 그녀로서 본다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인을 범하고 있는 후지노는 용서할 수 없겠지」 마음 내키는 대로───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인가, 아사가미 후지노는. 나에게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내가 말하는 때가 늦었다는 것은 육체에 대한 얘기야. 충수염을 그냥 놔두면 천공(穿孔)되어서 망막염(網膜炎)이 돼. 망막의 염증은 충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격통을 수반하지. 나이프로 찔린 정도에는 뭐어, 필적할까. 이렇게 되면 고열을 발하거나 치아노제를 일으키거나 하다가, 결국에는 혈압저하에 의해 쇼크를 일으켜. 십이지장부근까지 번져버리면 최악, 반나절 만에 사망하지. 20일부터 오늘까지 5일. 슬슬 천공되어 있을 무렵이겠군. 불쌍하지만───틀림없이 치사상이야」 어째서 이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런 사실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아직 늦지는 않았겠죠. 서둘러서 아사가미 후지노를 보호하지 않으면……!」 「코쿠토. 이번의 의뢰주는 아사가미 후지노의 부친이야. 그는 어릴 적의 후지노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거겠지. 그러니까 사건의 참상을 듣고서 그것이 후지노의 소행이라고 짐작한거야. 그 부친은 그 괴물을 죽여줘, 라고 말했어. 그녀를 유일하게 보호할 수 있는 부친이 그녀의 죽음을 바라고 있어. 봐, 코쿠토. 여러 가지 의미로 그녀는 살아날 방도가 없어. 게다가, 이미 시키가 가버렸어」 「────바보 녀석……………!」 그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은 말을, 나는 그렇게 외쳤다. 6 브로드 브리지는 거인의 손으로 쥐어짜진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폭풍 속을 토우코씨의 버기로 달려서 도착한 뒤 경비원과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한쪽 팔을 피에 물들인 시키가 다리의 지하에서 불쑥 나타났다. 경비원은 시키에게 달려갔지만, 시키는 경비에게 몸통박치기를 먹여서 기절시켰다. 「여어, 있을 거라 생각했었어, 왠지 모르게」 시키는 창백한 얼굴로 자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산더미 같았지만, 그녀의 그런 가냘픈 모습을 보고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가가서 몸에 손을 대려고 하자, 시키는 아주 싫어하면서 부축도 하게 해주지 않았다. 「한쪽 팔로 끝난 거야? 시키」 토우코씨는 의외인 것 같았다. 시키는 불만스럽게 노려본다. 「토우코. 그 자식, 마지막엔 투시능력까지 발현해댔다구. 가만 놔뒀다면 엄청난 능력자가 되겠지」 「투시능력───클레어보이언스(Clairvoyance)인가. 확실히 그녀의 능력에 천리안이 더해지면, 그건 무적이야. 물체의 그늘에 숨어도 회전축이 만들어져버리지. 엥───가만 놔뒀다면, 이라고?」 「……마지막에 그 자식, 무통증으로 돌아가 버렸어. 진짜 비겁하지. 하지만 그런 아사가미 후지노는 대상이 안돼. 할 수 없이 뱃속의 병만 죽여 뒀어. 서두르면 아직 가망이 있을지도 몰라」 시키는 아사가미 후지노를 죽이지 않았다. 그것을 이해하자, 서둘러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이 태풍 속에서도 와줄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면 이쪽이 데리고 가면 된다. 다행히 그녀의 주치의였던 의사는 한마디로 승낙해주었다. 행방불명인 아사가미 후지노를 걱정하고 있던 그 의사는, 전화너머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적지만, 그녀에게도 우군이 있다. 감동하고 있는 나의 뒤에서는, 두 사람이 뭔가 뒤숭숭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팔은 지혈 한거야? 피가 안 나는데」 「아아. 쓸 것이 못 되서 죽여 버렸어. 토우코, 의수(義手)정도는 만들 수 있지? 인형사(人形師)를 자칭하고 있으니까」 「좋아, 이번 보수는 그걸로 하지. 너는 직사의 마안(直死の魔眼)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육체적인 면으로는 너무 보통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했었어. 그 왼손, 영체(靈體) 정도는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어째, 그런 건 그만두어줬으면 좋겠는데. 「구급차가 와 줄 것 같아요. 이곳에 있으면 뭔가 귀찮아 질 테니까,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시겠어요?」 하긴 그래, 하면서 토우코씨는 끄덕여주었고 시키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아사가미 후지노가 무사하게 실려 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겠지. 「연락을 한 저는 마지막까지 있겠어요. 결과는 보고 할 테니까, 토우코씨는 돌아도 괜찮아요」 「이 호우 속인데, 코쿠토도 괴짜구만. 시키, 돌아가자」 토우코씨의 제안을 시키는 사양하겠어, 라며 거절했다. 하하아, 하고 기분 나쁜 미소를 띠운 토우코씨는 차량위반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오프로드용의 버기에 올라탄다. 「시키. 아사가지 후지노를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코쿠토를 죽이지는 마」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한 토우코씨는 아하하하, 하고 웃으면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여름비 속에서 나와 시키는 가까운 창고 아래서 비를 피하게 되었다. 얼마 안 있어 구급차가 왔고, 아사가미 후지노를 운반해갔다. 이 폭풍 속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 날 밤의 소녀였는지 확증은 얻을 수 없었지만, 그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시키는 멍하니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에 젖어서 추울 듯 한 모습으로 서있다. 그녀는 계속, 아사가미 후지노를 노려보고 있었다. 빗소리에 섞여들 듯이 그녀의 마음에 묻는다. 「시키, 지금도 아사가미 후지노를 용서할 수 없어?」 「───한번 죽인 녀석의 일 따위, 흥미 없어」 시키는 딱 잘라 말했다. 그곳에는 미움도 아무것도 없다. 시키에게 있어서 후지노는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겠지. ……슬프지만, 그것은 그녀들에게 있어서 제일 모양 좋은 결말인지도 모른다. 시키는 힐끗하고 눈동자를 이쪽으로 돌려왔다. 「너는 어때. 어떤 이유라 해도 살인은 해서는 안 될 일이겠지?」 그녀는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해서 물어오는 것 같았다. 「……응. 하지만 나는 그녀를 동정하고 있어. 정직히 말해서, 그녀를 습격한 녀석들이 죽은 일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아」 「의외인걸. 나, 너의 일반론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책망해 주었으면 하는 거야? 시키. 하지만 너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잖아. 나는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는다. 「그런가? 하지만 이것이 나의 감상. 왜냐하면 말야, 시키. 제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아사가미 후지노는 보통 애야. 자신이 저질러버린 일을 얼버무리려고 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여버렸잖아? 설령 자수했다고 해도 그 애가 한 일은 입증할 수 없고, 사회적인 죄는 물을 수 없어. 그것이 더욱 괴롭지」 「어째서?」 「……벌(罰)이란 것은, 그 사람이 멋대로 등에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 사람이 저지른 죄만큼, 그 사람의 가치관이 스스로에게 지우는 무거운 짐. 그것이 벌이야. 양식(良識)이 있다면 있을수록 자신에게 가해지는 벌은 무거워져. 상식 속에서 살아가면 살아가는 만큼, 그 죄는 무거워지지. 아사가미 후지노의 벌은 말야,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무겁고 괴로워지게 돼」 사람 좋은 자식, 이라고 시키가 중얼거린다. 「그러면, 양식(良識)이 없는 녀석은 죄의식도 벌의 무거움도 없다는 거야?」 「없지는 않겠지.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가벼울 뿐이지만 역시 존재하는 거야. 아주 엷은 양식 속에서 생겨난 더욱 엷은 죄의식. 우리들로 보자면 그런 것은 길가에 널려있을 정도로 흔한 감정이겠지만, 그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족쇄가 돼. 우리들이라면 웃으며 날려버릴 감각도, 엷은 양식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기분이 나빠지는 감상이 되는 거야. 크기는 달라도 벌이라는 의미는 같으니까」 ……그렇다. 예를 들면,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나토 케이타가 발광 직전까지 겁을 먹었던 것도 그 나름대로의 죄의식이 빚어낸 벌이라고 생각한다. 후회도 죄악감도. 경외도 공포도 초조도. 그것을 갚지 못하지만, 갚으려고 노력해 갈 수밖에 없다. 「확실히, 사회적으로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은 편하겠지만. 누군가가 판가름 해주지 않는다면, 벌은 스스로 가할 수밖에 없어. 책임은 계속 사라져주지 않잖아? 사소한 일로도 그것을 떠올릴 수 있어. 아무도 용서해주지 않았으니까, 자신조차도 용서할 수 없지. 마음의 상처는 완치되지 못한 채로 계속 아픈 거야. 그 애의 통각이 잔류하고 있던 것처럼 영원히 상처가 아무는 일은 없어. 시키가 말한 것처럼 형체가 없으니까────입어버린 상처의 치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시키는 말없이 듣고 있다. 아사가미 후지노의 과거를 조사했던 탓일까, 나는 격에 맞지도 않게 시적(詩的)이었다. 시키는 갑자기 창고의 지붕에서 나와 비를 맞는다. 「미키야는 이렇게 말하는 구나. 상식이 있으면 있을수록 죄의 의식을 느낀다고. 그래서 악인(惡人)은 없다고. 하지만 말야, 나에게는 그런 훌륭한 것은 없어. 그런 녀석을 풀어둬도 되는 거야?」 듣고 보니 말 그대로다. 시키는 선인이라든가 악인을 따지기 전에 상식이란 것이 희박한 애였다.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시키의 벌은 내가 대신 짊어져 줄게」 그것은 진정한 본심이었다. 시키는 허를 찔린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고 빗속에 멍하니 서있었다. 한동안 비를 맞다가, 시키는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겨우 기억해냈어. 너, 옛날부터 그런 농담을 진지한 얼굴로 했었지. 솔직히 말하겠는데, 그런 거, 시키는 아주 거북해 했어」 「───하아, 그러신가요. 여자 한 명 정도는 안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저는」 힘없이 항의하자, 시키는 즐거운 듯 웃었다. 「또 하나 고백하면 말야. ……나도, 이번 일로 죄를 짊어졌다고 생각해. 하지만 대신에 한 가지 알았어. 내가 살아가는 법,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아주 애매하고 염려되는 것이지만, 지금은 그것에 의지해 갈 수밖에 없어. 그렇게 의지해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혹독한 것이 아니었거든. 그것이 조금은 기뻐. 아주 조금──아주 조금뿐인, 너에 의한 살인충동───」 ……마지막 단어에서는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빗속에서 웃는 시키는 아주 아름다웠다. 폭풍은 약해지고 아침에는 비도 그치겠지. 여름의 비를 맞는 시키를, 나는 그저 계속 바라본다. 생각하면 그것이───그녀가 깨어난 뒤로 처음으로 내게 보여준, 진짜 웃는 얼굴이었다. 痛覺殘留 / 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