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나는 그녀를 만났다 / 살인고찰(전) -------------------------------------------------------------------------------- / 1 오늘도 밤에 산보를 하기로 했다. 늦여름치고는 선선해서, 차가운 바람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시키 아가씨, 오늘 밤은 빨리 돌아와 주십시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나에게, 내 시중을 들어주는 아키타카(秋隆)가 그런 당부의 말을 한다. 무뚝뚝하고 억양 없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현관을 나섰다. 저택의 정원을 넘어 문을 지난다. 저택을 나서면 그 앞으로는 전등의 불빛은 없다. 주위는 어둠. 사람의 모습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심야. 날짜가 곧 8월 31일에서 9월 1일로 바뀌려고 하는 오전 0시. 바람이 희미하게 불고 있어서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이 쏴아- 하는 소리를 냈다. ───가슴 속에, 기분 나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 극도의 불안을 불러일으킬 듯한 고요함 속의 산책이, 시키란 이름을 가진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어둠도 더욱 진해져간다.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걷는 것은 자신이 혼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반대로 혼자라고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느 쪽이라 해도 시시한 자문이다. 어찌하더라도 나는 혼자가 될 수 없으니까. ───큰 길을 걷다가, 좁은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올해로 열여섯이 된다. 학력으로 말하면 고교1학년으로,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립고교에 입학했다. 어차피 어느 학교에 가더라도 졸업하면 나는 집안에 붙박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학력은 무의미하겠지. 그럴 거라면 거리적으로 가까운 학교에 들어가서 등교시간을 단축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골목길은 큰길보다 더욱 어둡다. 신경질적으로 점멸하고 있는 가로등이 하나 있을 뿐이다. 갑자기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라버렸다. 뿌득, 하고 나는 어금니를 깨문다. 나는 요즘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렇게 산보를 하는 도중에 까지, 어느 순간 그 남자가 머릿속에 떠올라버리니까. 고교생이 되어도 나의 환경에 변화는 없었다. 동급생이나 상급생이나 나에게는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태도로 잘 드러나는 거겠지. 나는 극도로 사람과의 접촉을 싫어한다. 어릴 적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좋아할 수 없었다. 정말 어쩔수 없는 것은, 나도 그 인간이기에 자신조차도 싫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그다지 친절하게 대할 수 없다. ……특별히 싫어하거나 미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선 그렇게 알아주었다. 나의 그런 성격은 학교 내에 널리 알려져서, 한달 남짓 한 시간만에 나와 관계하려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도 조용한 환경쪽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주위의 반감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로 이상적인 환경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이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동급생 가운데 단 한사람, 나 료우기 시키를 친구로 대하며 다가오는 학생이 있다. 프랑스의 시인 비슷한 성을 가진 그 인물이, 나에게 방해가 되었다. 그래. 정말로 거치적거렸다. ──멀리 가로등 밑에 사람 모습이 보였다. ……실수다. 그 녀석의 무방비한 웃는 얼굴을 떠올려 버렸다. ──사람 모습은, 어딘가 거동이 수상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 때, 어째서. ──어째서인지 나는 사람모습의 뒤를 밟았다. ……나는, 그런 흉폭한 고조감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 골목길에서 더욱 골목안쪽으로 들어간 그곳은, 이미 다른 세상이었다. 막다른 길인 그 곳은, 길이 아닌 밀실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주위가 건물의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그 길은, 한낮에조차 햇빛이 비쳐들지 않는 공간이겠지. 거리의 사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틈새에는 한명의 부랑자가 살고 있어야 했다. 지금은 없다. 빛바랜 좌우의 벽에는 새로운 페인트가 칠해져있었다. 길이라 할 수 없는 좁은 길에 무언가가 질퍽거리고 있었다. 항상 떠돌고 있던 썩은 과일냄새는 더욱 농후한 또 다른 냄새에 오염되어 있었다. ───그 일대는 피바다였다. 붉은 페인트라고 생각되던 것들은 엄청난 양의 혈액이었다. 지금 길바닥에 엎질러져서 줄줄 흐르는 혈액 역시 사람의 체액. 코를 찌르는 냄새는 끈적거리는 주홍빛. 그 중심에 인간의 사체가 있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양팔이 없고 양 다리도 무릎부근에서 잘려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지금은 그저 피를 흩뿌리는 고장난 스프링쿨러가 되어있었다. 이미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이다. 밤의 어둠조차 피의 적색에 패퇴하고 있다. ───시키는 그곳에 꽃피어있다. 엷은 남빛의 기모노 옷자락이, 지금은 붉은 색. 학을 연상시키는 우아함으로 지면에 흐르는 피를 만지곤, 그것을 자신의 입술에 발랐다. 피는 입술에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그 황홀함에 몸이 떨린다. 그것이 그녀가 한, 첫 입술연지였다. / 2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생활에 변화는 없다. 있다고하면 교내의 학생들의 복장이 변했다는 것 정도. 그들의 복장은 여름의 그것에서 가을의 그것으로 조금씩 겹쳐지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기모노 이외의 옷을 입은 적이 없다. 아키타카는 열여섯 소녀다운 옷을 준비해주었었지만 나는 걸쳐보려는 생각한번 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 학교는 사복등교였기 때문에 나는 기모노인 채로 다닐 수 있었다. 사실은 안감이 있는 정식 기모노를 입고싶었지만 그래서는 체육시간이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 끝나버릴 정도다. 타협안으로 유카타처럼 생긴 히토에를 애용하게 되었다. 겨울의 추위는 어찌할까 하고 생각해보았는데, 그것은 어제 해결되었다. ……그것은 쉬는 시간의 일이다.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있는데 느닷없이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춥지않아?, 시키」 「지금은 아직 춥지않지만 얼마 후에는 추워지겠네」 나의 대답에서 겨울에도 기모노로 지낼 것이란 의도를 읽은 것이겠지. 상대는 눈썹을 찡그렸다. 「겨울에도 그런 차림을 할거야, 너는?」 「그럴거야. 하지만 괜찮아, 겉옷을 입을거니까」 얼른 대화를 끝내고싶어서,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상대는 기모노위에 걸치는 겉옷같은게 있구나, 하고 놀라면서 멀어져갔다. 나도 자신의 의견에 놀랐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겉옷을 사러갔다. 제일 따뜻한 겉옷이라고 해서 가죽제 블루종을 구입했다. 겨울이 되면 입게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옷장행이다. ◇ 그의 권유로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장소는 제2교사(校舍)의 옥상으로, 주위에는 우리들 같은 남녀 한쌍은 그런대로 찾아볼 수 있었다. 그것을 찬찬히 관찰하고 있는데 귓가에 뭔가 이야기가 들려왔다. 무시하려고 생각했지만 그 단어가 조금 뒤숭숭한 것이라 흘려버릴 수 없었다. 「───에?」 「그러니까 살인. 여름방학 마지막날에 서쪽의 상가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어. 아직 보도되지 않았지만」 「살인이라니, 평화스런 일은 아니네」 「응. 내용도 상당히 화려해. 양손양발을 칼 같은 걸로 깔끔히 자르고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지. 현장이 피바다가 되어서 말야, 감식을 하기 위해서 길 입구에 함석판으로 문을 만들어 붙여서 감춘 것 같아. 범인은 잡히지 않았어」 「양손양발만? 그것만으로 사람이 죽어?」 「피가 없어지면 산소결핍으로 생명활동이 정지하잖아. 하지만 이 상황에선 쇼크사 쪽이 먼저인 것 같아」 우물우물하면서 입을 움직이면서 중얼거린다. 귀여운 편인 외견과는 반대로 이 녀석은 이런 화제를 달고오는 일이 잦다. 확실치 않지만 친척이 경찰쪽의 인물인 것 같다. ……친척에게 기밀을 흘릴 정도라면, 그다지 높은 지위의 인물일리는 없다. 「아, 미안. 시키에겐 관게없는 이야기였어」 「글쎄. 관계없다고는 할 수 없어. 하지만말야, 코쿠토군」 왜? 라고 되물어오는 동급생에게 나는 눈을 감으며 항의했다. 「그런건, 식사때 할 이야기는 아니잖아?」 그렇구나, 하며 코쿠토는 끄덕인다. ……정말. 덕분에 막 사왔던 토마토 샌드위치를 못먹게 되어버렸잖아. ◇ 나의 고교1학년 여름은, 그런 뒤숭숭한 소문을 듣는 것으로 끝났다. 계절은 완만하게 가을로 바뀌어간다. 료우기 시키에게 있어서 지금까지와 미묘하게 다른 생활은, 곧 추운 겨울을 맞이하려하고 있었다. ◇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빗소리 속에서, 나는 일층을 가로지르는 복도를 걷고 있다. 수업이 모두 끝난 방과후의 학교에는, 학생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코쿠토가 이야기했던 살인사건이 보도되었기 때문에 학교측이 학생들의 부활동을 금지시킨 것이다. 사건은 분명 이번달로 네 번째였다. 오늘 아침 차안에서 아키타카가 이야기해준 것이었으니까 틀림없겠지. 범인의 정체는 아직도 잡지못하고 있고, 그 동기조차 명백치않다. 피해자들에게 동일점은 없고, 모두 한밤중에 밖을 돌아다니다가 살해당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사건이라면 방관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자신이 사는 거리가 된다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학생들은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갔으며 여자 뿐 아니라 남자들도 그룹을 지어서 하교하고 있었다. 밤엔 아홉시를 지날 무렵부터 경찰관이 순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들어서는 밤중의 산책도 만족스럽게 할 수 없었다. 「……네 명……」 중얼거린다. 그 네 번째의 광경을, 나는. 「료우기씨」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불러세웠다. 발을 멈추고 돌아보자 그곳에는 본 적 없는 남자가 서있었다. 청바지에 흰 셔츠의 평범한 복장에, 어른스런 얼굴을 한 인물. 아마 상급생이겠지.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죠?」 「아하,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코쿠토군을 찾고 있는거야?」 그 남자는 빙긋하고 일부러 지은 듯한 미소를 띠우며 그런 실없는 소리를 했다. 「저는 하교하는 도중이에요. 코쿠토군은 관계없습니다」 「그래? 그게 아닐텐데. 넌 모르고있어. 그래서 초조한거야. 그런 것을 남에게 마구 발산해버리면 안돼. 남을 괴롭히는 것은 재미있어서 버릇이 되거든. 아하하, 네 번은 너무 심하잖아」 「───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고 있었다. 남자는 일부러 지은 듯한──아니, 확실히 거짓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얼굴──나와 닮았다. 「마지막으로 너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보고 싶었어. 그것도 해봤으니까, 그럼, 안녕」 상급생으로 생각되는 남자는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멀어져갔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지도 않고 신발장으로 향했다. 신발을 갈아신고 밖으로 나오자, 내리는 비만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마중나왔을 아키타카의 모습은 없다. 비가 오는 날은 기모노가 젖기 때문에 아키타카가 차로 데리러 와주지만, 오늘은 늦는 것 같다. 다시 신발을 갈아 신는 것도 귀찮아서 승강구의 계단 옆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얇은 베일같은 비가 교정을 흐려지게 하고 있다. 12월의 추위덕에 호흡은 하얗게 얼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옆에는 코쿠토가 와있었다. 「우산 있어」 중국인 같은 발음이었다. 「괜찮아, 데리러 올 사람이 있으니까. 코쿠토군은 얼른 돌아가도록 해」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 그때까지는 여기에 있으려는데, 괜찮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응, 하고 끄덕이며 콘크리트 벽에 기댄다. 나는 지금, 코쿠토의 이야기상대를 해줄 심경이 아니었다.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해도 전부 무시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그가 여기에 있던 없던 관계없다. 나는 그냥 빗속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 빗소리 만이 들린다. 코쿠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벽에 기댄 채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자고 있나하고 어이없어하며 보니, 무언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유행가겠지. 더욱 기가막혔다. 나중에 아키타카에게 물어보니, 그것은 싱잉 인 더 레인이란 유명한 곡이었다. 그래도 유행가이긴 마찬가지다. 코쿠토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나와 그의 거리는 1미터도 되지않겠지. 두 명의 인간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이야기가 없으면 마음이 가라앉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 곤란한 상황은, 하지만 괴롭지 않은 침묵이었다. ───이상하다. 어째서 이 침묵은 따스한 걸까. 하지만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대로라면 '그녀석'이 나와버릴 것이라 직감했으니까. 「───코쿠토군!」 「예!?」 무의식중에 지른 소리에, 그는 깜짝놀라 벽에서 떨어졌다. 「왜 그래, 무슨일이야?」 이쪽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내가 비치고 있다. 아마도 이때. 나는 처음으로 코쿠토 미키야란 인물을 보았다. 그것은 관찰이 아닌. 그의 얼굴은 아직도 소년의 모습이 남아있는 부드러운 생김새였다. 커다란 눈동자는 온화하며, 탁하지 않은 검은색이었다. 그 성격을 드러내듯 머리모양은 자연스럽고, 머리칼을 물들이지도 뭔가를 바르지도 않았다. 쓰고있는 안경은 검은테로, 그런 것은 요즘에는 소학생도 쓰지않는다. 장식없는 옷차림은 위아래 둘다 검은색. 그 색의 통일이 코쿠토 미키야의 유일한 멋이라면 멋이겠지. 곧, 생각해버렸다. ……이 사람 좋은 소년은 어째서 나 같은 것에 신경을 쓰는 걸까, 하고. 「……지금까지……」 고개를 숙이고 나는 그를 보지않으려 한다. 「어디에, 있었어?」 「여기에 오기 전에는 학생회실에 있었어. 아는 선배가 학교를 그만둬 버려서 환송회 비슷한게 있었거든. 시라즈미 리오란 사람인데, 정말 의외였어. 어른스런 사람이었지만 하고싶은 일을 찾았다며 퇴학신청서를 내버렸거든」 시라즈미, 리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런 모임에 불려나가는 코쿠토의 넓은 인간관계는 알고 있다. 그는 동급생에게는 친구로서 밖에 보이지않지만 상급생 여자들에게는 은근히 인기가 있었다. 「시키에게도 어제 이야기했잖아. 환송회라고 말했었는데. 학생회실에 오지않았지. 교실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고」 분명히 어제, 그는 그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모임에 내가 가도 분위기가 깨질 뿐이다. 코쿠토의 초대는 그저 사교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랬어. 그거 진심이었구나」 「당연하잖아.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시키는」 코쿠토는 화를 냈다. 그것은 자신의 언동이 무시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 한심한 생각에 대한 것이겠지. 나는 그것에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까지 체험조차 할 수 없었던 미지(未知)였으니까.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오늘만큼 아키타가가 오는 것이 몹시 기다려지는 날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안있어 교문에 나를 데리러온 차가 도착해서, 나는 코쿠토와 헤어졌다. ◇ 밤이 되어 비가 그쳤다. 시키는 붉게 물들인 가죽 블루종을 걸치고 밖에 나왔다. 머리위의 하늘은 얼룩져있다. 구멍투성이의 구름이 간간히 달을 엿보이게 한다. 거리에는 사복경찰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그것과 마주치는 것이 귀찮아서 오늘은 강가로 발을 옮겼다. 비에 젖은 노면이 가로등 불빛을 반사시킨다.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처럼 반들반들 빛나고 있다. 멀리 전차(電車)의 소리가 들렸다. 쿵쿵하고 울리는 소리로 다리가 가깝다고 알 수 있었다. 강을 횡단하는 다리는 인간이 아닌 전차용의 다리인 것이겠지. ───거기에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흔들흔들, 천천히 시키는 다리로 향했다. 다시 한번, 전철이 달린다. 아마 막차겠지. 아까까지의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굉음이 주위에 울려퍼진다. 마치 좁은 상자속에 솜을 채워넣은 듯한 소리의 중압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전차가 떠나자 다리 아래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가로등도 없고 달빛도 들지 않는 다리 아래의 공간은, 그곳만이 어둠에 파먹힌 듯이 어둡다. 그 덕분이겠지. 지금은, 강가를 적시는 적색 조차도 어둡다. 이곳은 다섯 번째의 살인현장이다. 무질서하게 나있는 잡초에 비하면, 사체는 꽃처럼 변해 있었다. 잘린 머리를 중심으로, 양손 양발이 네 개의 꽃잎처럼 놓여있다. 머리와 같이 잘려진 팔과 다리는 관절이 구부려져서 더욱 꽃다움을 강조하고있었다. ……그렇다고해도 꽃보다는 卍자로 보여버리는 것이 조금 유감이다. 풀밭속에 인공의 꽃이 버려져있다. 흩뿌려진 피에 의해, 꽃의 색은 붉다. ───점점 손에 익어왔다. 그것이, 그녀가 자신에게 품은 감상이었다. 꿀꺽하고 침을 삼키며 아주 목이 마른 것을 깨닫는다. 긴장인가, 아니면 흥분 때문인가───목의 갈증은 이젠 뜨겁기까지 했다. 이곳에는 죽음만이 충만해있다. 시키의 입술이 소리도 없이 미소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그녀는 황홀감을 억누르며 계속 사체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이아말로, 자신이 살아있다고 강하게 실감할 수 있었기에. / 3 월초에 사범대리와 진검으로 시합을 하는 것이 료우기가(家) 계승자의 규칙이다. 아득한 선대에 일부러 타 유파의 검장(劍匠)을 초청하는 것에 싫증이 났던 료우기 가의 당주는, 자신들의 집에 도장을 만들고 자기들 멋대로 새로운 유파를 날조해냈다. 그 전통은 현대까지 이어져버려서 어떤 인과인지 여자의 몸인 나까지 칼을 휘두르는 것이 요구되었다. 아버지의 그것을 상회하는 실력차, 체력차를 뚜렷히 보인 시합이 끝나고 나는 도장을 뒤로했다. 도장에서 본관까지의 거리는 상당해서 학교라고 하면 체육관과 학교본관의 거리정도는 되겠지. 삐걱거리는 소리도 나지않는 재미없는 판자로 만든 복도를 걷는다. 도중에 아키타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용인(使用人)인 아키타카는 나보다 열 살은 위다. 땀으로 더러워진 나의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겠지. 「수고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어떠셨죠?」 「언제나대로. 비켜, 아키타카. 옷은 나 혼자서도 갈아 입을 수 있어. 너도 내 전속은 아니잖아잖아. 형 쪽에 붙는 편이 이득이라구. 어차피 마지막에 대를 잇는 것은 남자니까」 나의 난폭한 말에, 아키타카는 웃음지었다. 「아뇨, 료우기가의 후계자는 아가씨 이외엔 안계십니다. 오라버님은 그 기질을 타고나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것에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거야」 나는 그대로 아키타카의 옆을 지나쳐 본관으로 돌아왔다. 자기 방에 들어가서 한숨을 쉬며 옷을 벗었다. 그대로 거울을 쳐다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여자의 몸이다. 얼굴은 화장을 하고 눈매를 나쁘게 한다면, 뭐어 남자로 보이지 못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몸만은 어찌할 수 없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성장하는 여성의 육체는 시키는 놔두더라고 '시키(織)'를 조금씩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나,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없는데 말을 건다. 아니───이야기상대는 있다. 나의 안에. '시키(織)'라고 하는 이름의 또 하나의 인격이. 료우기가(家)의 아이에겐 같은 발음의 다른 이름이 두 개 준비된다. 양성, 남성으로서의 이름과, 음성, 여성으로서의 이름이. 나는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시키(式). 남자로 태어났다면 '시키(織)'로 이름붙여졌겠지. 어째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료우기가의 아이는 높은 확률로 동일성해리증(同一性解離症)──속칭 이중인격자가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컨대, 지금의 나 같은. 료우기가의 피에는 그러한 초월자의 유전이 있다고 아버지는 이야기했다. 그것이 저주라고 하는 것도. ……분명히 저주다. 내가 보기에는 초월자이기는 커녕, 정신이상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다행히, 요 몇대까지 나 이외에 그 증상을 가진 후계자는 없었다. 이유는 단순해서, 모두 성인이 되기전에 정신병동에 가게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인격이란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 현실과 현실과의 경계가 불확실해져서 결국에는 자살해버리는 케이스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나는 그중에서도 정신이상의 기미도 없이 자랐다. 나와 '시키(織)'는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무시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육체의 소유권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있다. '시키'는 어디까지나 내 안의 대리인격에 지나지않는다. 지금 같은 때, 검의 수련에는 공격적인 남성인격인 '시키'가 적임이니까 교대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나와 '시키'는 거의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세간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중인격이란 것과는 다르다. 나는 시키이면서 '시키'인 것이다. 단지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것 뿐. 아버지는 기뻐했다. 자신의 대에서 정통적인 료우기의 계승자를 낳을 수 있었다며. 그런 이유로, 나는 오빠를 제치고 여자의 몸이면서 료우기가의 계승자로 취급되고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어두는 거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어딘가 이지러진, 하지만 평온한 생활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활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설령 '시키'가 살인을 즐기는 살인귀라 하더라도 나는 '시키'를 없앨 수 없다. 스스로 '시키'를 기른 나는, 역시 그와 같은 시키에 지나지 않으니까. 살인고찰(전)\ 1 「미키야, 너 료우기하고 사귄다는 거 진짜냐?」 가쿠토(學人)의 말에, 나는 하마터면 커피우유를 내뿜을뻔 했다. 기침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점심시간인 교실은 소란스러워서 다행히 지금의 가쿠토의 폭언을 들은 녀석은 없는 듯 했다. 「가쿠토, 그거 어떤 의미야?」 넌지시 속을 떠보니 가쿠토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너 뭔소리하는거야. 1학년 C반의 코쿠토가 료우기에게 푹 빠졌다는 것은 다 알고있는 사실이라구. 모르는 것은 당사자들 뿐이야」 가쿠토의 악담에, 나는 아마 얼굴을 찡그렸다고 기억한다. 시키와 서로 알게된지 일곱달. 계절은 겨울을 앞둔 11월이 되었다. ……뭐어 확실히,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면 사귀고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가쿠토, 그건 오해야. 나와 시키는 단순한 친구. 그 이상의 관계는 아냐」 「그래~?」 유도부의 기대주인 1학년생은, 그 다부진 얼굴을 심술궂게 일그러뜨렸다. 가쿠토(學人)란 이름과는 정반대인 육체파친구와는 소학교때부터의 오래된 친구다. 그 경험에서 이쪽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차려준 것이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너는 경칭을 안붙이고 부르잖아. 그 료우기가 단순한 클래스메이트에게 그런 것을 허락할 리가 없을텐데」 「저기말야, 시키는 그런 것을 싫어해. 전에 료우기씨라고 불렀더니 아주 기분나쁜 듯이 노려보더라고.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들 하는데, 시키에게는 그 소질이 충분히 있어. 그건그렇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는 성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대. 성으로 부를거라면 "너(おまえ)"라고 불러, 라고 이야기하더라니깐. 그것은 내가 싫어서 타협안으로 "시키씨"가 되었는데, 그것도 싫다고 해서 시키. 어때, 이 재미없는 진상은」 4월의 사건을 기억해내며 계속 이야기하자 가쿠토는 그거 재미없네, 하고 동의해주었다. 「과연. 전혀 색기 없는 이야기잖아」 유감이라는 듯 가쿠토가 중얼거렸다.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이 녀석은. 「그럼 지난주에 승강구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던거야? 젠장, 1-C조 촌구석까지 와서 손해를 보다니. 얌전히 교실에서 밥이나 먹는게 좋았을텐데」 「……잠깐. 어째서 네가 그런걸 알고있는거야?」 「그러니까 유명하다고 말했잖아. 지난주 토요일, 너하고 료우기하고 신발장 옆에서 비를 피하고있었다는 이야기는 오늘 오전에 다 퍼졌어. 상대가 료우기니까,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화제성이 넘쳐난다는 거지」 하아, 하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최소한 이 이야기가 시키의 귀에 들어가지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 진학교였지? 조금 불안해졌어」 「선배말로는 취업률은 좋대」 ……점점 이 사립고교의 존재에 의문이 깊어져 버렸다. 「하지만 대체 뭐야. 어째서 료우기인거냐구. 아무리봐도 이미지가 안맞잖아」 비슷한 이야기를 선배에게도 들은 기억이 있다. 그것은 나에게는 좀더 순한 애가 어울릴것이라는 의견이었는데, 이것도 같은 의미인 거겠지. ……어쩐지 묘하게 불쾌해졌다. 「시키는 그렇게 무서운 애가 아냐」 곧, 기분나쁘다는 듯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가쿠토가 씨익하고 웃는다. ……꼬리를 드러내셨군, 이라고 말하는 듯한 그 노골적인 미소. 「뭐가 친구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야. 걘 무서운 여자라구, 틀림없이.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이미 푹 빠져버렸다는 증거가 아니겠어?」 무섭다는 것은 딱딱하다란 의미겠지. 아마 그것은 그말대로겠지만, 가쿠토의 말에 끄덕이기는 싫었다. 「그런건 알고있어」 「그럼 어디가 좋은거야, 겉모습이야?」 ……가쿠토의 말은 거리낌이 없다. 분명 시키는 미인이다. 하지만 그녀가 내 마음을 끄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시키는 언제나 큰 상처를 입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부상은 커녕 생채기도 나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이 행동하고 있지만, 언제나, 항상 크게 다칠 것 같은 위태로움이 있었다. 그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저 애가 상처 입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다. 「가쿠토는 모르는 것 뿐이야. 시키도 귀여운 면은 있어. ……그렇지, 동물에 비교하면 토끼만큼 귀엽다구」 ……스스로 말해놓고서 조금 후회했다. 「바보같은 소리하지마, 걘 고양이과야. 아니면 맹금류거나. 토끼하곤 거리가 멀지, 너무 멀어. 료우기가 쓸쓸하다고해서 죽기야 하겠냐」 가쿠토는 크게 웃었다. 하지만 시키가 다른 사람과 친숙해지지 않는 점이라던가 멀리서 이쪽을 빤히 보고있는 모습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뭐어, 그것이 나 한사람의 착각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바라는 바다. 「이젠 됐어. 가쿠토하고는 일절 여자얘기는 안할거야」 절연장을 내던지자 가쿠토는 미안미안, 하면서 웃음을 멈추었다. 「그렇지. 의외로 토끼도 어울려」 「가쿠토. 눈에 빤히 보이는 동의는 기분나뻐」 「그런게 아냐. 토끼도 무해하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해냈어. 세상에는 이쪽의 운이 나쁘면 한방에 머리를 잘라버리는 토끼도 있다구」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기에, 조금 콜록거렸다. 「어쩐지 아주 말도안되는 토끼인걸, 그 토끼」 가쿠토는 오우,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엉터리지. 이건 게임이야기니까」 2 2학기의 기말고사가 끝났던 그 날, 나는 믿을 수 없는 물건을 보았다. 자신의 책상 속에 편지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 사건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보낸 사람과 내용이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키로부터의 데이트 신청이었다. 그것은 휴일인 내일, 나를 데리고 놀러가라는 협박장 비슷한 내용으로, 나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집에 돌아왔고 어쩐지 할복을 명 받은 사무라이 같은 마음으로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다. ◇ 「여-, 코쿠토」 나타난 시키의 첫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약속장소인 개의 동상이 있는 역앞에 나타난 시키의 복장……낙엽색깔의 기모노에 새빨간 가죽 점퍼를 걸친 모습에 놀라기도 전에 그 말투를 듣고 나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기다렸냐? 미안해, 아카타카를 떼버리는데 너무 시간을 잡아먹었어」 정말로 당연하다는 듯 그녀는 줄줄 말을 풀어놓는다. 내가 알고 있는 시키가 아닌, 완전히 남자 같은 말투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나는 그저 그녀의 모습을 재확인했다. 시키의 모습에 변화는 없다. 자그마한 신체, 하지만 늠름한 자세와 그녀의 행동 탓인지 형용하기 힘든 박력……우아함이 있다. 약동하는 활인형같은 언밸런스함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활인형이란 것은 『꼭두각시 인형』을 양분하는, 겉모습만을 극히 정교하게 만든 것을 말한다. 「뭐야, 한시간정도 지각한 걸 가지고 화난거야? 의외로 속이 좁구나, 너」 검은 눈동자로, 시키는 이쪽의 눈치를 본다. 난폭하게 잘려진, 숏커트의 아름다운 머리칼.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동자는, 양쪽 다 유려한 윤곽을 하고 있다. 먹을 흘려 넣은 것 같은 새까만 눈동자는 코쿠토 미키야의 모습을 비쳐보이면서도 더욱 먼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던 그 눈 내리는 날부터 나는 이 먼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에 끌리고 있었다. 「에…그러니까, 시키…지? 너는」 으응, 하고 시키는 웃었다. 입가를 끌어올리는, 어딘가 뻔뻔스런 모습으로. 「그게아니면 뭘로 보이는데? 그런 것 보다 시간이 아까워. 자, 재미있는 데로 데려가 줘. 어디에 가는지는 코쿠토에게 맡길께」 그렇게 말하면서, 시키는 강제로 이쪽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걷기 시작했다. ……맡길께, 라고 이야기했지만 결국엔 그녀가 선도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을 패닉상태에 빠진 내가 깨달을 리도 없었다. 어쨌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시키는 물건은 사지 않고 백화점내의 이런저런 가게들에 들어가서 상품들을 돌아보다가 질리면 다음 가게로 이동했다. 영화라던가 찻집에서 한숨돌리자는 의견은 기각되었다. ……분명, 이쪽도 지금의 시키와 그런 곳에 가도 재미있지는 않다. 시키는 잘 떠들어댔다. 나의 착각이 아니라면 그녀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양되어있는 것 같았다. 하이(high)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겠지. 보고다니는 가게들의 태반은 옷가게였었는데, 전부 여성전문점이라는 것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네시간만에 백화점 네 곳을 정복하고나니 역시 지쳤는지 시키는 식사가 하고싶다는 말을 꺼냈는데,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패스트푸드점에 다다랐다. 자리에 앉자 시키는 겉옷을 벗었다. 장소를 잘못 찾은 것 같은 기모노 차림의 시키에게 주위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을 굳히고 나는 아까부터 품고있던 의문을 추궁했다. 「시키. 너, 평소에 그런 말투를 쓰고 있어?」 「 '나'일 때는. 하지만 말투에 의미는 없어. 이런 건 코쿠토도 바꿀 수 있잖아」 우물우물하고 맛없다는 표정으로 햄버거를 먹어가는 시키. 「뭐, 이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어. 겉으로 나와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야. 지금까지는 시키와 같은 의견이라서 잠자코 있었지만」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 「그렇지……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이중인격이란 걸까. 내가 '시키(織)'고, 평소에는 시키(式). '시키'는 직물의 직(織)자. 다만 시키와 나는 다른 사람이 아냐. 료우기 시키는 항상 한사람이지. 나와 시키의 차이는 단순히 일의 우선순위가 다른 것 뿐이구. 좋아하는 것의 순위가 어긋나 있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적신 손가락으로 냅킨에 글자를 썼다.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시키(織)'와 시키(式)란 같은 발음의 문자를 만들었다. 「나는 코쿠토하고 이야기해보고 싶었어. 그것 뿐이야. 시키에게 있어서 그것은 제일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대신 해주는 거고. 알았어?」 「뭐어, 말하고 있는 것은 어느정도」 조금 못미덥게 대답한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사실 상당부분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중인격 운운하는 것에 관해서는 실제로 짐작이 가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입학하기 전에 시키와 만났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때는 나를 싫어하고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간다. 아니, 그런 것 보다. 이렇게 반나절을 보내보니 그녀는 역시 시키 이외의 다른 누구도 아니다. 시키……아니 '시키(織)'가 말하는 대로 말투만이 다를 뿐, 그 행동자체는 시키의 그것과 동일했다. 말투에서 느끼고 있던 위화감은 어느사이엔가 느끼지 못하게 될 정도로. 「하지만, 어째서 그걸 나에게 이야기하는 거야?」 「계속 숨기고 있을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새침한 얼굴로 시키는 쥬스를 마신다. 그녀는 스트로에 입을 대었다가, 곧 떼었다. 시키는 차가운 것은 잘 못먹는다. 「자백하자면 말이지, 나는 시키의 파괴충동같은 존재야. 그것이 제일 하고 싶은 감정.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상대가 없었어. 료우기 시키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시키'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 검고 깊고깊은 눈동자가 응시해와서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으응, 하지만 안심하라구.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는 그래도 시키(式)다. 시키의 의견을 내가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 뿐이니까, 난폭하게 굴지는 않아. 말했잖아, 말투가 다를 뿐이라고. ……하지만, 요즘엔 나와 그 녀석은 어긋나있으니까. 이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농담반진담반으로 흘려들어줘」 「……어긋나있다니……그, 너와 시키사이에서 말다툼이라도 하는거야?」 「야, 어떻게 자기 혼자 말싸움을 할 수 있겠냐. 어떤 일을 한다해도 그것은 양쪽 다 원하고 있는 일이야. 그래서 서로 딴소리는 없어.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육체의 사용권은 시키 것이야. 내가 이렇게 코쿠토하고 만나는 것도 시키가 만나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구. ……뭐어, 이런 소리하면 나중에 반성하겠지만 '코쿠토하고 만나도 괜찮아' 같은 얘기는 시키가 입에 담을 대사가 아니잖아?」 그렇네, 하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시키'는 우습다는 듯이 웃었다. 「나, 너의 그런 점이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시키는 그런 것이 싫은거야. 어긋나 있다는 점은 이런 거지」 ……? 그건 무슨 말이지? 시키는 내 생각없는 부분이 싫은걸까. 아니면,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는 시키가 싫은 걸까. 확증은 없지만, 나는 그것이 후자라고 이해했다. 「이걸로 설명은 끝. 오늘은 여기까지」 갑자기 일어서서 '시키'는 겉옷을 걸쳤다. 「나중에 봐.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얼마 안있어서 또 만나게 될거야」 가죽 점퍼 주머니에서 햄버거 값을 테이블에 놓고서 '시키(織)'란 이름을 한 시키(式)는 씩씩하게 자동문 쪽으로 나가버렸다. ◇ '시키'와 헤어지고 자신의 거리로 돌아오니 이미 해가 져있었다. 예의 길거리살인마사건 덕분에 저녁에도 오가는 사람들의 수는 적어져있다. 집에 돌아오자, 사촌인 다이스케 형이 와있었다. '시키'와의 일로 지쳐있던 탓인지, 인사도 대충하고 코다쯔에 다리를 넣고 드러눕는다. 다이스케 형도 코다쯔에 다리를 뻗고 있어서, 좁은 공간에서 다리를 놓는 지배권을 놓고 한동안 말없이 다투었다. 그 결과, 나는 잘 수 가 없어서 일어나 앉게 되었다. 「바쁘지않아? 형?」 테이블위에 있는 귤을 집으면서 말을 걸자 다이스케 형은 뭐어 그렇지, 하며 의욕없이 대답했다. 「요 3개월간 다섯명이야, 당연히 바빠. 집에 돌아갈 시간도 없어서 여기서 쉬고 있는거라구. 1시간만 있다가 나갈거야」 다이스케 형은 경시청 수사1과에서 형사일을 하고 있다. 게으름뱅이를 공언하는데 거리낌없는 이 사람이, 어째서 그런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있는지 의문이었다. 「수사는 잘 되어가?」 「그럭저럭. 지금까지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지만 다섯 번째에서 겨우 단서가 나왔어. 뭐어 상당히 작위적이긴 하지만말이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서, 다이스케 형은 코다쯔위에 엎드리듯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앞에 형의 진지한 얼굴이 있다. 「이제부터 하는 말은 부외비(部外秘)야. 너도 무관계하지는 않으니까 이야기해둘게. 첫 번째 사체의 상황은 알려줬었지?」 그렇게 다이스케 형은 두 번째, 세 번째, 계속해서 사체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형사들이 이렇게 입이 가벼운 사람들이 아니기를 기도하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두 번째는 몸을 세로로, 사타구니에서 정수리까지 완전히 두토막. 흉기는 불명. 반으로 나뉜 사체의 한쪽만이 벽에 찰싹 붙어있었다. 세 번째는 양손 양발을 잘라서 다리에는 손을, 팔에는 발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네 번째는 몸을 조각내어서 뭔가 문자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었고, 다섯 번째는 머리를 중심으로 손발로 卍자 모양을 만들어놓았다는 것 같다. 「진짜 알기 쉬운 정신이상자네」 구역질을 느끼며 감상을 말하자 으응, 하고 다이스케형은 동의했다. 「너무 알기 쉽다는 것도 작위적이지만 말야. 미키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뭐랄까, 어쨌든.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 자체에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 그 외에는 모르겠지만. 다만……」 「다만?」 「익숙해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에는 바깥에서 저지르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 라며 형은 머리를 감싸안았다. 「동기가 없고 법칙성도 없어. 지금은 바깥이지만 이 녀석은 집안으로 밀고 들어올 타입이야. 밤에 나다니는 사냥감이 없어지면 더욱 그 경향이 강해지지. 그런 점을 위쪽 녀석들도 각오해줬으면 좋을텐데」 그래서 말인데, 라며 형이 말을 꺼냈다. 「다섯번째 현장에 이런게 떨어져있었어」 다이스케 형이 코타쯔 위에 놓은 물건은 우리학교의 배지였다. 사복을 입는 고등학교인 탓에 경시되고있지만, 등교시에는 착용이 의무화되어있다. 「현장이 풀밭이었기 때문에 범인이 알아차리지 못한건지, 아니면 일부러 떨어뜨렸는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어느쪽이라고 해도 의미는 있을거야. 얼마안있어 그쪽에 가게될지도 모른다구」 형은 마지막에 형사의 얼굴을 하며 불길한 이야기를 했다. 3 고교1학년의 겨울방학은 앗하는 사이에 끝났다. 그 사이에 있던 일이라고 하면 '시키'와 하쯔모데에 갔던 것 정도로, 그 뒤로는 무사평온한 나날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3학기가 시작하자 시키는 더욱 심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주위에 거부의 의지를 표하고 있었으니까. … 방과후. 모두가 하교한 것을 확인하고 교실에 가면, 항상 '시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부른 것도 아니고, 청한 것도 아니다. 다만, 역시 언제나 상처 입을 것 같은 이 여자애를 가만히 놔둘 수 없어서 의미 없이 그녀와 함께하고 있었다. 겨울의 일몰은 빨라서 교실은 저녁노을로 새빨갛다. 그, 적과 흑의 콘트라스트 뿐인 교실에서 '시키'는 창가에 기대어 있다. 「내가 사람들하고 접촉하는 것을 싫어한다는거, 알고있었어?」 이 날, 별 생각 없이 말하는 분위기로 '시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듣는데. ……그랬어?」 「응. 시키는 낯을 많이 가려. 어릴적부터 그래. ……저기, 어릴적엔 말야, 아무것도 모르잖아. 만나는 사람 전부, 세상의 모든 것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어. 내가 좋아하니까 상대도 당연히 나를 좋아해준다고, 그것이 상식이잖아」 「그렇게 말하면 그렇겠네. 어릴 적에는 의심을 하지 않았어. 분명히 무조건적으로 모두가 좋았었고, 나를 좋아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어. 무서운 것이라고 해봤자 귀신정도니까. 지금 무서운 것은 인간인데도 말야」 정말그래, 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시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야. 무지(無知)한 채로 있는 일은 필요한거야, 코쿠토. 어릴 적에는 자신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타인의 어떤 악의도 알아차리지 못해. 설령 잘못을 하게 되더라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되어 누군가를 다정하게 대해줄 수 있게 되지.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밖에 드러낼 수 없으니까」 저녁노을의 붉은 빛이 시키의 옆얼굴을 물들인다. 이때───그녀가 어느쪽의 시키인지, 자신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의미없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료우기 시키의 독백이니까. 「하지만 나는 달라. 태어날 때 부터 타인을 알고 있었어. 시키는 자신 안에 '시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타인을 알아버렸어. 자기 이외의 인간이 있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서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던 거야. 어릴적에 타인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안 시키는 그들을 사랑할 수 가 없었어. 언젠가부터 관심도 가지지 않게 되었지. 시키가 가진 감정은 거절뿐이야」 ───그래서,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시키'가 눈빛으로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러면 쓸쓸하지않아? 넌」 「어째서? 시키에겐 내가 있어. 외톨이라면 분명 고독하지만 시키는 혼자가 아냐. 고립되어있지만 고독하진 않았던거야」 의연한 얼굴로 '시키'는 말한다. 그것은 강한 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그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지만, 정말로? 「하지만 최근의 시키는 이상해. 스스로 나라는 정신이상자를 품고있으면서도, 그것을 부정하려하고 있어. 부정은 내 역할이야. 시키는 긍정밖에 할 수 없을 텐데」 어째서일까, 하고 '시키'는 웃는다. 아주 살벌한──살의(殺意)까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코쿠토.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어?」 그 때. 지는 석양이 새빨갛게 보여서, 가슴이 덜컥했다. 「지금은 없어. 때려주고싶다, 정도가 고작이지」 「그래. 하지만 나에겐 그것 밖에 없어」 교실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에?」 「말했잖아. 인간이란 것은 자신이 체험한 감정밖에 드러낼 수 없다고. 나는 시키의 안에서의 터부를 떠맡고 있어. 시키의 우선순위의 하위가 나에게 있어서의 상위야. 그것에 불만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고 알고있어. 나는 시키의 억압된 지향을 담당하는 인격이야. 그래서 항상 의지를 죽여왔어. '시키'라고 하는 어둠을 죽여왔어. 자신이 자신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죽여 왔어. ……봐, 내가 체험한 적이 있는 감정은 살인뿐이지?」 그리고 그녀는 창가에서 떨어졌다. 발소리도 없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녀를──어째서 무섭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러니까 말야, 코쿠토. 시키의 살인의 정의는 말이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 「'시키'를 죽이는 것이야. '시키'라는 녀석을 밖으로 꺼내려는 것을 죽이는거야. 시키는 말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시키의 봉인을 열려고 하는 자를 모두 죽여버리고 싶은거야」 쿠쿡, 하고 웃으며 '시키'는 교실을 뒤로 했다. 그것은 장난을 치고난 뒤처럼 천진난만한 작은 웃음이었다. ◇ 다음날 점심시간. 점심을 같이 먹자고 시키에게 말을 걸자 그녀는 정말로 놀란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이 때 그녀는 나와 알게된 후 처음으로 나에게 놀란 얼굴을 보였다. 「……무슨, 짓을」 그렇게 말끝을 흐리면서도 시키는 이쪽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다. 장소는 그녀의 희망대로 옥상이 되었고 시키는 말없이 나의 뒤를 따라온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시키의 시선이 등뒤에 꽂힌다. 설마 화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테지. ……당연히, 나도 어제의 '시키'가 남긴 말의 의미정도는 안다. 그것은 이제 자신에게 관여하지 마라, 그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라는 시키로부터의 최후통첩다. 하지만 시키는 모르고있다. 그런 것은 항상 시키가 무의식적으로 보이던 것이었고, 이쪽은 그런 것에는 이미 익숙해 져버려있다는 것을. 옥상에 나가자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1월의 겨울 하늘 아래서 점심을 먹으려 하는 사람은 우리들 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역시 추운걸. 장소를 바꿀까?」 「나는 여기가 좋아. 바꿀거라면 코쿠토군만 가도록해」 은근한 시키의 말에 고개를 수그린다. 우리들은 겨울 바람을 피하기 위해 벽 가까이에 붙어 앉았다. 시키는 사왔던 빵의 포장을 뜯지도 않고 앉아있다. 그런 시키와는 반대로 나는 이미 두 번째의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있었다. 「어째서 나에게 말을 건거야?」 시키의 속삭임은 갑작스러웠고 잘 들리지 않았다. 「지금 뭔가 말했어? 시키?」 「……어째서 코쿠토군은 그렇게 경박한걸까, 라고 말했어」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시키는 심한 말을 한다. 「너무한걸. 확실히, 우직하다란 소리는 들었지만 경박하단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구」 「주위에서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를 꺼린 것 뿐 일거야, 분명히」 과연, 하고 멋대로 납득한 시키는 토마토 샌드위치의 포장을 뜯었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는 추운 옥상에 어울렸다. 시키는 그뒤로 입을 다물고 쓸데없는 움직임 없이 토마토 샌드위치를 씹기 시작한다. 서로 교대하듯, 막 식사를 끝마친 이쪽으로서는 할 일이 없다. 식사에는 역시 활기있는 대화가 필요하겠지. 「시키. 너, 역시 조금 화났지?」 「……조금?」 힐끗 노려본다. ……말을 걸려고 할 때에도 화제에 주의했어야했다고 반성한다.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코쿠토군이 있으면 초조해져. 어째서 네가 나에게 관여해오는지. 어째서 '시키'에게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게 했는데 어제와 태도가 바뀌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는걸」 「이유같은 것은 나도 몰라. 시키하고 있으면 즐겁지만 어째서 즐거운지는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으니까. 뭐어……어제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분명히 낙천가인지도 모르지만」 「코쿠토군. 나는 정신이상자란거, 이해하고있지?」 그 말에 나는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시키의 이중인격(같은 것)은 진짜고, 그것은 분명히 상식에서 벗어나있다. 「응, 상당히 보통은 아니지」 「그렇지? 그러면 그것을 인식해야해. 나는 정상적으로 관계할 인종이 아니니까」 「사귀는 것은 정상도 이상도 관계없는거야」 시키는 딱 멈춰버렸다. 호흡조차도 잊어버린 것처럼 시간을 멈춰버렸다. 「하지만, 나는 너처럼 될 수 없어」 그렇게 말하고 시키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팔락, 하고 기모노의 소매가 흔들린다. 그 아래에 있는 가느다란 팔에 붕대가 둘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팔의 팔꿈치 부근에 감겨진 붕대는 새것이었다. 「시키, 그 상처───」 신경이 쓰여서 말을 거는 것보다 먼저, 시키가 일어섰다. 「'시키'의 말로 전해지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이야기해줄게」 시키는 이쪽을 보지 않고 어딘가 먼 곳을 지켜보면서 말했다. 「이대로라면, 분명 나는 너를 죽이게 될거야」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했어야할까. 그 뒤에 시키는 점심식사 뒤에 남은 쓰레기도 정리하지 않고 교실로 돌아갔다. 혼자 남겨지고 난 뒤, 우선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큰일인데, 이러면 가쿠토의 말 대로잖아」 언젠가 가쿠토와의 이야기를 기억해낸다. 가쿠토의 말대로 나는 바보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지금 눈앞에서 더 이상 없을 정도의 거절의 말을 들었는데도, 나는 시키가 전혀 싫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졌을 정도다. 시키의 함께 있으면 즐거운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지않은가. 「이미 푹 빠져버린거야, 나는」 ……아아, 좀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걸.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것 정도는 웃으며 날려버릴 정도로, 코쿠토 미키야는 료우기 시키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4 2월이 된 후, 첫 번째 일요일. 눈을 뜨고 식탁에 가자 다이스케 형이 지금 막 외출하려던 참이었다. 「어라, 있었어?」 「으응. 막차를 놓쳐버려서 하룻밤 자러왔지. 이제부터 출근이야. 학생은 좋은걸, 휴일이란 약속이 확실히 지켜지니까」 형은 '정말 잠이 부족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예의 길거리살인마 사건에 진전이 있어서 바쁜 것이겠지. 「그러고보니 우리학교에 온다던가 하는 말을 했었는데, 그건 어찌됐어?」 「아아, 다시 한번 가게 될 것 같아. 사실은 말이지, 3일전에 여섯 명 째가 나왔거든. 그 피해자가 범인에게 최후까지 저항을 한건지, 손톱에서 피부가 검출되었어. 여자의 손톱은 기니까, 있는 힘껏 범인의 팔을 할퀸 것이겠지. 죽는 순간까지 저항했었는지 상당히 깊게 할퀸 것 같아. 검출된 피부가 3센티나 되었거든」 형의 정보는 아직 어떤 신문에도 TV에도 나오지 않은 최신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 보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 때문에 아찔해졌다. ……그것은 아마도 요 며칠간의 시키의 언동에 '죽인다'라는 불길한 단어가 섞여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째서 난, 한순만이나마 시키와 길거리살인마의 모습을 겹쳐보았던 것일까. 「……할퀸 상처란, 곧 범인이 긁힌 거?」 「당연하지. 피해자가 자신의 팔을 할퀴겠냐. 검출된 피부는 팔꿈치 부근의 피부라는 감식도 나와있어. 혈액감정도 끝나있으니까, 곧 체크메이트다」 그럼 갈께, 하며 다이스케 형은 집에서 나갔다. 다리의 힘이 풀려 나는 의자에 무너져내렸다. 3일 전은 저녁놀 속에서 '시키'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이다. 그 다음날에 봤던 그녀의 붕대는, 분명히 팔의 팔꿈치 언저리에 매여져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렇게. 정오를 넘긴 무렵, 생각만하고 있어봤자 소용없다고 깨달았다. 고민할 정도라면 시키 본인에게 그 상처에 대해 물어보면 된다. 그것이 별것 아닌 상처라고 듣게되면 이런 우울한 기분도 사라질테니까. ◇ 학교의 주소록을 의지해서 시키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녀의 자택은 이웃 거리의 교외에 있어서, 찾았을 무렵엔 이미 저녁 때가 되어버렸다. 주위는 대나무숲에 둘러싸인 료우기가의 저택은, 무가저택의 그것대로 만들어져있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저택의 넓이는, 걷고 있는 것 만으로는 알 수 없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지않으면, 그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겠지. 산길처럼 느껴지는 대나무숲 길을 걸어서 커다란 문에 도착했다. 에도시대부터 남겨진 것 같은 이 저택에도 요즘 같은 인터폰이 설치되어있어서 조금은 안심한다. 벨을 눌러서 용건을 말하자 검은 수트 차림의 남성이 나왔다. 삼십대 전반의 망령같은 어둠을 가진 그는, 시키의 시중을 드는 일을 맡고있다고 했다. 아키타카라고 하는 그 사람은 나 같은 학생에게도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대응해주었다. 애석하게도 시키는 외출중이란 것을 알게되었고 아키타카씨는 들어오셔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말해주었지만, 그건 사양했다. 솔직히 이런 저택에 혼자 들어갈만한 담력은 없다. 날도 저물어서 오늘은 돌아가기로 했다. 한시간 정도 걸어서 역 앞에 왔는데 우연히 선배와 만났다. 선배의 청으로 저녁식사를 가까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먹게되었고, 이야기에 빠져있는 사이에 시계는 10시를 가리켜 버렸다. 선배와 다르게 이쪽은 아직 학생의 신분. 슬슬 돌아가지않으면 안된다. 선배와 작별인사를 한 뒤에 이번에야말로 역의 개찰구에서 표를 샀다. 시각은 곧 오후 11시가 되려하고 있다. 언뜻, 시키는 이미 돌아와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뭘하고 있는 걸까, 나는」 한밤중의 주택가를 걸으며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심야. 낯설은 거리 속에서, 시키의 집을 항해서 발을 옮기는 자신이 조금 이해되지않았다. 지금 가도 그녀와 만날 수 없는 것은 알고있다. 그래도 어째서인지 시키의 집에 불이 켜져있는 것이 보고 싶어서 역에서 되돌아 와버렸다. 얼어붙을 것 같은 밤의 한기에 어깨를 움츠리며 걷는다. 곧 주택가를 빠져나와 숲에 다다랐다. 그 한가운데, 깨끗하게 포장된 외길을 나아간다. 오늘밤은 바람이 없어서 대나무숲은 아주 고요하다. 가로등은 없고 달빛만을 의지해서 걸었다. 이런 곳에서 누군가에게 습격당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농담반 진담반 생각해보았더니, 그것이 점점 마음속에 침투해왔다. 스스로도 떨쳐내고 싶은 망상은 마음과는 반대로 이미지가 선명하게 강해진다. 어릴적엔 괴물이 무서웠다. 대나무숲의 그림자가 요괴로 보여서 겁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 무섭다. 무서운 것은 누군가가 대나무숲 사이에 숨어있지 않은가하는 착각 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들은 정체불명의 존재가 단지 모르는 타인일 뿐이라고 인식해버렸던 걸까. ……정말이지, 기분나쁜 예감이란 것은 좀처럼 사라져주지 않는다. 아아, 그러고보면 언젠가 시키가 같은 이야기를 했었던가. 그건 분명히──── 그것을 기억해내려고 했을 때, 앞에 무언가가 보였다. 「─────」 딱 발이 멎었다. 나의 의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때. 코쿠토 미키야의 의식은, 텅 비어버렸으니까. 수미터 앞에 하얀 사람의 형체가 서있었다. 빛나는 것처럼 보일정도로 새하얀 순백의 기모노는, 하지만 붉은 얼룩무늬에 더럽혀져있다. 기모노의 얼룩무늬가 점점 퍼져가고 있다. 그녀의 바로 앞에 있는 물건이 붉은 액체를 뿜어올리고 있는 탓이다. 그, 하얀 기모노의 소녀는 시키. 액체를 뿜어내는 물건은, 분수가 아닌 인간의 사체였다. 「──────────」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이 에감만은 어딘가에 있었다. 그녀가 사체를 앞에 두고 서있다는 이미지 만은. 그래서 나는 놀라지 않는다. 당황하지도 않는다. 의식이 아주 깨끗하게 새하얘져서. 사체는 지금 막 숨이 끊어진 것이겠지.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맥을 잘리지 않으면 저렇게 힘차게 혈액을 뿜어내지 않으니까. 치사상은 목덜미와, 몸에 비스듬히 일문자를 그린 절상. ──이 무가저택의 문에 어울리는, 가사로 벤 것일까. 시키는 미동도 하지않고 사체를 바라보고 있다. 사체는 죽음 그 자체다. 흩뿌려진 피의 색깔 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인데다가, 내장이 배에서 모조리 흘러내려 그것은 이미 전혀 다른 생물체로 전락해있었다. 나에게는 흐물흐물해진 무언가가 인간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흉내 조차 서툴러서, 도저히 똑바로 쳐다볼 수 가 없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시키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사체를 바라보고 있다. 유령같은 그녀의 기모노에 튀긴 피가 묻는다. 얼룩무늬는 붉은 나비처럼 보였다. 나비는 힘차게, 시키의 얼굴에도 날아앉는다. 피에 젖은 시키의 입가가 일그러져있었다. 무서움인가─────기쁨인가. 그녀는 시키인가────아니면 '시키'인가. 「────────」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지면에 쓰러졌다. 토했다. 위에 있던 것도, 위액도, 할 수 있다면 이 기억도. 눈물이 날때까지 구토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다. 그런 것 따위는 기분전환도 되지않았다. 압도적인 피의 양은 그 향기만으로 뇌수를 혼란스럽게할 정도로 너무나 진했다. 이윽고 시키가 이쪽을 알아차렸다. 얼굴만을 이쪽으로 돌린다. 무표정한 얼굴이 미소를 띄웠다. 시원스럽고, 아주 침착한, 모성을 느끼게 하는 미소를. 그것은 이 참상에는 너무도 맞지 않아서 나는 오히려, ────등골이, 오싹해졌다 의식이 멀어진다. 그녀가 다가온다. 최후에 잊고 있었던 그녀의 말을 기억해냈다. ──조심해 코쿠토 군. 기분나쁜 예감은 기분나쁜 현실을 이끌어내니까─── ……역시 나는 경박하다. 생각하지 않으려던 나쁜현실을, 맞닥뜨려버린 이 순간까지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5 다음날, 학교를 쉬게 되었다. 살인현장에서 멍하니 있던 것을 경관이 발견해서, 그대로 사정 청취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보호된지 수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텅 비어버린 의식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거의 4시간정도. ……나의 뇌의 현실로의 복귀기능은 별로 우수하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저런 것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서 해방되었을 무렵엔, 이미 학교에 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사체의 피해상태로 봐서 뿜어져 나올 피를 뒤집어쓰지 않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이쪽의 옷에는 한방울의 혈액도 없었고, 내가 다이스케 형과 친척관계라는 점도 있어서 취조실에서의 청취없이 비교적 부드럽게 일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돌아가는 길은 형이 차로 바래다준다고 해서 사양않고 형의 차에 탔다. 「그래서, 정말로 아무것도 못봤다는 거지, 미키야」 「끈질기네, 못봤다니깐」 운전을 하는 다이스케 형을 노려보면서 나는 차의 조수석에 깊게 몸을 맡겼다. 「그래. 젠장, 네가 봤다면 일이 빨라졌을텐데. ……생각해보면 범인이 목격자를 내버려둘 리가 없겠군. 뭐, 네가 죽었더라면 형님을 뵐 면목이 없지. 나에게 있어서는 네가 아무것도 못봐서 다행이야」 「형사실격이네, 다이스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형의 말에 맞장구 치는 자신이 싫어졌다. 거짓말쟁이, 하고 마음 속으로 자신을 매도한다. ……나 자신도, 이렇게 당당하게 주위에 거짓말을 해버리는 것을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형사사건이다. 본 것을 정직히 말하지 않으면 사태는 나쁜 쪽으로 흘러가버린다. 그런데도 나는 시키가 그 현장에 있다는 것을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뭐어, 뭐가 어찌됐든간에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처음으로 시체를 본 감상은 어땠어?」 심술궂은 이 사람은 이 상황에서도 그런 얘기를 꺼내온다. 「최악. 두 번다시 보고싶지 않아」 「이번 것은 특수한 녀석이였어. 보통, 쪼끔 더 나으니까 안심해」 ……하아. 정말이지, 뭘 안심하라는 걸까. 「하지만 미키야가 료우기가의 딸하고 아는 사이인 줄은 짐작도 못했어. 그러고보면 세상 참 좁은데」 형에게 있어서는 의외였기에 재미있었을 그 사실은, 반대로 나를 어둡게 했다. ……료우기가의 저택 앞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지금까지의 길거리 살인마와 동일범이라고 판단되었지만 수사는 딱 멈춰서있었다. 경찰도 필요한 현장검증을 마쳤지만 료우기가의 저택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형이 말하길, 료우기가에서 압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의 사건은 2월 3일(토요일)의 오후 11시반부터 12시에 걸쳐서 범인에 의한 살해가 이루어졌고, 유일한 목격자는 코쿠토 미키야 뿐이라고 기록되었다. 그 목격자인 나도, 사건이 끝난 뒤에 현장을 목격하고 사체를 본 쇼크로 의식이 혼탁해져있는 것을 순찰중인 경관에게 보호되었다고 되어있다. 료우기가쪽도 나도, 시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형, 료우기가의 사람들은 조사해봤겠죠?」 넌지시 떠보는 질문을 하자 아니, 하고 다이스케형은 고개를 저었다. 「딸인 시키는 네가 다니는 고교에 다니고있어서 한번 이야기를 듣고싶었는데 거절당했어. 저택안의 일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밖에서 일어난 일은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척 보니까, 걘 결백해. 사건에는 관계없어」 「에?」 나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흘린다. 나는 이래뵈도 형을 신뢰하고 있다. 서내에서도 이 사람이 면직당하지 않는 것은 그 유능함 때문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분명, 형은 시키를 의심하고 있을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근거는 있어?」 「으음- 뭐어. 너, 그렇게 예쁜 애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거라 생각할 수 있어? 상상도 못하겠지? 나도 상상 못하겠어. 이런 것은 남자로서의 당연한 결론이야」 ……그러니까 어째서 이 사람이 형사따위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 그 전에 나보다 더 태평한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과연. 형은 평생 결혼 못할거야」 「얌마, 너 다시 쳐넣는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니깐. ……하지만 형의 의견에는 나도 찬성이다. 형같은 직감은 없다고 해도 일련의 사건은 시키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게 코쿠토 미키야의 의견이다. 설령 그녀 본인이 그것을 인정한다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한가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생겨버렸다. … 사건은 해결에 가까워졌다. 이렇게 다음 날부터 3년후의 그 날까지, 거리를 활보하던 살인귀의 모습은 완전히 두절되게 된다. 이 때의 나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완전한 제3자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나와 시키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자신들에게 관한 사건이기도 했다. 殺人考察(前) · 了 / 4 저택 앞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그 날, 밤에 산책을 나갔던 뒤로의 기억이 애매했다. 하지만 불선명한 기억을 서로 이어맞춰보면 무엇을 했는지는 명백해진다. '시키'도 그렇지만, 나도 피냄새에는 약한 체질이다. 보고있는 것 만으로 의식이 멍해진다. 이번 사체의 피의 흐름은 특히 아름다웠다. 저택으로 통하는 납작한 돌로 덮인 길. 돌과 돌사이의 틈은 미로같아서 그 미로를 달려가는 주홍빛 선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우아함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정신이 들어보니 누군가가 등뒤에서 구토를 하고 있었고, 돌아보니 그것은 코쿠토 미키야였다. 어째서 그가 그 장소에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때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생각한다. 그 뒤에 나는 저택으로 돌아왔는데, 사건의 발견은 훨씬 뒤가 된 것 같았다. 내가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때에 보았던 그는 꿈이겠지. 그 정직한 동급생이 살인귀를 감싸줄리는 없으니까. 그렇지만───하필이면 집 앞이라니. 「'시키', 너야……?」 물어보아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와 '시키'는 어긋나있다. 그 감각은 날로날로 강해지고 있다. '시키'에게 몸을 넘겨도 결정권은 나의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기억이 애매한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설마. 자신만이 깨닫고 있지 않을 뿐, 나도 료우기의 혈통을 이은 자들처럼 미쳐버린 것일까. '시키'라면 "자각이 있는 정신이상자 따위는 가짜야"라고 말했겠지. 정신이상자가 본다면 주위가 이상한 것이니까,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는다. 적어도 나도 그랬다. 그렇다는 것은, 나는 16년에 걸쳐서 겨우 주위와 자신의 차이를 깨닫게된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 의해서 였던 것일까. 「아가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을 노크하고 아키타카가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뭐죠?」 들어오세요, 라는 의미의 말에 아키타카가 따른다. 잠이들기 직전의 시간대이기 때무에, 그는 문만 열고 안으로 들어오려고는 하지않는다. 「집 주위에 잠복하고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찰이라면 아버지가 쫓아냈다고 들었어요」 예, 하고 아키타카가 끄덕인다. 「경찰의 감시는 어젯밤부터 철수 시켰습니다. 오늘밤은 다른 것이 아닌가해서」 「좋을대로 하세요. 저는 관계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감시하고있는 사람은 아가씨의 학우분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저택의 문이 멀리 바라다보이는 창문에 다가가서 커튼을 살짝 젖히고 밖의 풍경을 본다. 문의 주위의 대나무숲 가운데, 아주 조금이라도 몸을 숨겨줬으면하고 생각할 정도로 눈에 띄는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지시를 내려주시면 돌아가도록 부탁해보겠습니만」 「저런 사람, 가만내버려둬도 괜찮아요」 나는 침대까지 종종걸음으로 돌아와서는 그대로 누웠다. 아키타카는 편히 쉬십시오, 란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방의 불을 끄고 눈을 감아도 전혀 잠이 오지 않는다. 할 일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나는 다시한번 밖의 동태를 확인했다. 갈색 더플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미키야는 추운 듯 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하얀 입김을 토하면서 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발밑에 보온병과 커피컵을 지참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때의 미키야가 꿈이라고 했던 것은 취소다. 그는 그때에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에 이렇게 나를 감시하고 있다. 그 의도는 짐작이 가지 않지만 아마 살인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겠지. ……어쨌든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 그런 일이 있던 다음날도, 미키야는 언제나대로였다. 「시키, 점심 같이 먹지 않을래?」 이런 소릴 하며 말을 걸어와서 옥상에 같이 가게 되어 버렸다. 식사의 제안만은 매번 받고있기 때문인지, 나는 미끼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와는 관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미키야가 그 날 밤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흥미가 있다. 아마 오늘 쯤에 추궁해오겠지, 하고 예측하고서 나는 옥상에 올라갔다. 하지만 미키야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시키네 집은 무의미하게 큰거 아냐? 찾아갔었을 때 하인이 상대하게 하다니, 너무 거만해진다구」 하인이란 단어의 뜻을 알고있는 이상, 미키야가 그런 소릴 할 자격은 없다. 「아키타카는 아버지의 비서야. 그리고 지금은 하인이 아니라 관리인이라고 부른다고, 코쿠토군」 「뭐야, 결국 그런 사람이 있는 거잖아」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것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감시하는 것을 이쪽에서 알아차렸다는 것을 알지 못할테지만, 그렇다해도 너무 이상하다. 그 때, 피를 뒤집어쓴 나를 보았었을텐데 어째서 미키야는 지금까지와 변함없이 웃고있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스스로 말을 꺼냈다. 「코쿠토군. 2월 3일날 밤, 너는───」 「그 이야기는 됐어」 나의 질문을, 그는 그런 말만으로 받아넘겨버렸다. 「뭔소리를 하는거야, 코쿠토」 ……믿을 수 없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키'의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분명히 시키인 나에게 코쿠토라고 불려서, 미키야는 조금 당황했다. 「분명히 해줘. 어째서 경찰에게 말하지 않고 있는지」 「───하지만, 나는 보지 않았어」 거짓말이다. 그럴리는 없다. 왜냐하면 그 때, '시키'는 구토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서─── 「시키는 단지 그곳에 있었던 것 뿐이잖아. 적어도 나는 그것밖에 보지 않았어. 그러니까 믿기로 한거야」 거짓말이다. 그러면 어째서 집앞을 엿보는 것인가. ───그에게, 다가가서─── 「뭐,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은 괴로워. 그래서 지금은 노력하고 있어.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지게 된다면 시키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그 말은 접어두자」 어딘가 토라진 것 같은 그 표정에, 나는 도망치고 싶어졌다. ───다가가서, '시키'는 틀림없이 코쿠토 미키야를 죽이려고 했다─── 나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는데. 미키야는 믿는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었다면, 여지껏 겪어보지 못했던 이런 괴로움을 맛보는 일은 없었을텐데. … 그날 이후, 나는 미키야를 완전히 무시하기로 했다. 이틀정도 지나자 저쪽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은 없어졌지만 심야의 감시는 계속되고 있었다. 겨울의 추운 날씨 속에서, 새벽 3시무렵까지 미키야는 대나무 숲 속에 있다. 덕분에 나는 밤의 산책도 못하고 있었다. 감시는 이미 2주정도 계속되고 있다. 그 정도로 살인귀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 걸까, 하고 나는 창으로 그의 상태를 몰래 지켜보았다. ……엄청나게 잘 견디고 있다. 슬슬 오전 3시가 되려하고 있는데, 미키야는 계속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귀기가 느껴지기는 커녕, 오히려──떠날즈음 해서는 미소까지 지었다. 「──────」 애가 타서 입술을 깨물었다. 아아, 겨우 알았다. 저것은 살인귀의 정체를 폭로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녀석에게 있어서, 나를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의심 따위는 없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밤에 산책을 나가지 않는 것을 확신하고 저곳에 있다. 나의 결백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저곳에 있다. 그렇기에 아무일도 없이 날이 밝아서, 행복하게 웃는 것이다. 진짜 살인자를 정말로 결백하다고 굳게 믿으면서. 「───정말이지, 행복한 남자야」 중얼거리며 생각한다. 미키야와 같이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안정돼. 미키야와 같이 있으면, 그와 함께라고 착각하게 돼. 미키야와 같이 있으면, 그쪽으로 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게 돼. 하지만, 그래도, 절대로. 저 밝은 세계는 내가 있어서는 안되는 세계다. 자신이 있을 수 없는 세계, 자신이 있을 곳이 없는 세계다. ──미키야는 당연하다는 듯한 웃는 얼굴로 나를 끌어들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미키야에게 초조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키'라고 하는 실인귀를 키운 나. 정신이상자인 나를 정신이상자라고 인식시켜버린 저 소년─── 「나는 외톨이로 만족하고 있어. 그런데도 너는 나를 방해하고 있네, 코쿠토」 시키는 미치고 싶지 않다. '시키'는 부서지고 싶지 않다. 될 수 있으면 이대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환상따위는 가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3월이 되어, 밖의 추위는 어느정도 누그러졌다. 나는 몇 주간만에 방과 후의 교실에서 밖을 보고 있었다. 창에서 내려다본 부감의 시계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안도를 느끼게 한다. 다다를 수 없는 곳의 풍경은 다다를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희망을 품게하지 않으니까. 석양에 새빨갛게 물든 교실에, 언제나처럼 미키야가 찾아왔다. 이렇게 둘이서 교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키'는 좋아했었다. ……나도, 결코 싫지는 않았다. 「시키쪽에서 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무시하는 것은 그만두는거야?」 「그럴 수가 없어서 부른거야」 미키야는 눈썹을 찡그린다. 나는 '시키'와 섞여있는 감각에 휩싸이면서 말을 이었다. 「너는 내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저녁해가 새빨개서,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유감이네. 나, 살인자야. 너도 현장을 봤으면서. 어째서 나를 못 본체 하는거야?」 미키야는 멍한 얼굴을 한다. 「못 본체 한 것이 아니야. 시키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 「내가 그렇다고 이야기하는데도?」 아아, 하고 끄덕이는 미키야. 「자신이 하는 말은 농담반진담반으로 들으라고 한 것은 시키 쪽이잖아. 게다가 너는 그런 짓을 할 수 없어. 절대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단정짓는 미키야에게 나는 분노를 느꼈다. 「───절대라는 것이 뭔데? 네가 나의 무엇을 이해할 수 있어? 네가 나의 무엇을 믿을 수 있어?」 분노는 말이 되어 내던져졌다. 미키야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쓸쓸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근거는 없어. 하지만 나는 시키를 계속 믿고있어. ……응, 너를 좋아하니까 계속 믿고 싶어」 「──────」 그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순수한 힘. 순수한 말은,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그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이 말은 시키라는 나에게 있어서 자그마한 행복이었으며, 막을 수 없는 파괴였다. 그래, 파괴다. 나는 이 행복한 사람을 통해서 이룰 수 없는 시간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누군가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세계는 즐거운 세상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모른다. 분명,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가지면 '시키'가 그 사람을 죽여버린다. '시키'의 존재이유는 부정이니까. 그리고 긍정으로 존재하는 나는, 부정없이는 존재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무언가에 빠져있었던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 모순을 멀리 할 수 있었다. 알아버린 지금은, 바라면 바랄수록 그것이 절망적인 소원이란 것을 깨달아버린다. 그것은 아주 괴롭고, 밉다. 처음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 녀석이 밉다고 느꼈다. ───미키야는 당연하다는 듯이 웃는다.    나는, 그곳에 있을 수 없다는데도. 그런 존재에게는 당해낼 수 없다. 나는 확신했다. 미키야는, 나를 파멸시킨다──── 「───너는, 바보야」 마음 속에서의 진심으로 고했다. 「응, 자주 들어」 석양만이 빨갛다. 나는 교실을 나간다. 떠나기 전에, 돌아보지 않고 말을 걸었다. 「저기, 오늘도 나를 감시하러올거야?」 「에……?」 놀란 목소리. 역시 나를 감시하러 오는 것을 들킨 상태라고는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미키야는 당황하면서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제지했다. 「대답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내키면 갈께」 그래, 하고 대답하고 나는 교실을 뒤로했다. 주홍빛 하늘에는 잿빛 우산이 있다. 갑작스럽게 뛰쳐나온 구름의 움직임을 보고, 오늘밤은 비가오겠다고 생각했다. / 5 ───그 날 밤. 밤이 되자, 하늘을 뒤덮은 비구름은 얼마 안있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밤의 어둠을 소란스러움으로 중화시킨다. 비의 강함은 폭우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랑비라고 할 정도도 아니었다. 3월초라고 하지만, 밤의 비는 차갑고 아프다. 조릿대 잎과 함께 비에 젖으면서, 코쿠토 미키야는 멍하니 료우기 저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산을 쓴 손이 추위에 빨갛게 되어있다. 후우, 하고 간 한숨을 토했다. 미키야로서도 언제까지고 이런 변태 같은 짓을 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이러는 사이에 경찰이 살인범을 잡아준다면 감지덕지였고, 앞으로 1주일간 아무 일도 없다면 그만두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빗속에서 감시하는 것은 힘들다. 겨울의 추위와 물방울의 이중고는 익숙해지기 시작한 미키야에게 있어서도 괴로운 것이었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것은 비가 내리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시키의 행동이었다. 자신의 무엇을 믿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 그녀에게 무엇을 전했던 것일까. 그때의 시키는 너무나도 약했다. 울고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비는 그치지 않는다. 바닥돌을 검게 반짝이게하는 물웅덩이가 작디작은 파문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빗소리. 그걸 멍하게 듣고 있던 미키야의 귀에 한번,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찰팍, 하고 큰 물소리가 났다. 미키야가 그쪽에 시선을 향하자 그곳에는 붉은 히토에가 서있었다. 히토에를 입은 소녀는 비에 젖어있다. 우산도 쓰지않고 내리쏟아지는 비에 젖은 소녀는 바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것처럼, 비에 젖어있었다. 짧은 흑발이 뺨에 달라붙어있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동자는 어딘가 공허했다. 「───시키」 당황해서 미키야가 달려간다. 갑자기 나타난 소녀는 얼마동안 비를 맞고있고 있었던 것일까. 붉은 기모노는 피부에 달라붙어 그 몸은 얼음보다 차가워져있었다. 미키야는 우산을 받쳐들고서 가방에서 배스타올을 꺼냈다. 「자, 몸좀 닦아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자기 집이 저기에 있는데」 핀잔을 주면서 앞으로 내민 팔. 그 무방비 함을, 그녀는 비웃었다. 슈웅, 하고.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에?」 깨닫는 것 보다 훨씬 빠르다. 내민 팔에 뜨거운 감각이 느껴져서, 미키야는 갑자기 물러섰다. 주륵하고 무언가 따스한 것이 팔을 타고 이동한다. 베였다? 팔을? 어째서? 움직이지 않아? 너무나도 예리한 아픔이기 때문에, 그것이 보통 느끼는 아픔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없다. 너무나 강한 아픔에 통각조차 마비되었다. 미키야에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시키라고 생각하고있던 붉은 히토에의 소녀가 움직인다. 이전의 장소에서 참극을 본 것 때문인지 미키야의 의식은 아직 또렷했다. 극히 냉정하게 뒤로 물러서서, 이곳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니.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키야가 뒤로 물러선 순간, 그녀는 그의 품에 달려든다. 그 속도는 사람과 짐승의 차이였다. 미키야는 자신의 다리 쪽에서 팍, 하는 소리를 들었다. 빗물에 붉은 것이 섞인다. 그것은 돌 바닥에 흘러가는 자신의 피──그것을 인식하고, 서있을 수 없게된 미키야는 위를 보며 쓰러졌다. 「아────」 바닥돌에 등을 부딪혀 신음한다. 쓰러진 미키야의 위에, 붉은 히토에의 소녀가 덮쳐누른다. 거기에 망설임은 없다. 소녀는 손에 든 나이프를 미키야의 목언저리에 들이밀었다. 미키야는 그 광경을 올려다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어둠과───그녀다. 검은 눈동자에 감정은 없다. 그저, 진심이었다. 나이프의 날끝이 미키야의 목에 닿는다. 소녀는 비에 젖어있는 탓인지, 울고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표정은 없다. 가면같아 보이는 우는 얼굴은 무서웠고, 동시에 가련했다. 「코쿠토, 뭔가 말좀 해봐」 시키가 말했다. 유언을 들어줄게, 라고. 미키야는 떨면서, 시키에게 눈을 떼지 않으면서 말한다. 「나는……죽고……싶지, 않아───」 그것은 시키에게 향한 말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는 시키가 아닌, 지금 덮쳐오는 죽음 그 자체에게 말한 것이다. 시키는 미소짓는다. 「나는, 널 죽이고 싶어」 그것은, 아주 상냥한 웃음이었다. 空の境界/序 1998년 6월. 토우코씨의 사무실에 취직하고, 나는 첫 일을 무사히 끝마쳤다. 그렇다는 하지만 하는 일은 토우코씨의 비서같은 일로, 계약상의 절차를 변호사와 상담하고 처리한 것 뿐이다. 한 사람의 어른으로써 취급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은 남아있지만, 대학을 도중에 그만둬버린 자신의 취급은 반쪽어른이라는 것을 자신이 제일 잘 알고있었다. 「미키야군,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 아니었어요?」 「예에, 일이 끝나면 갈께요」 「빨리 퇴근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할 일도 이젠 없으니까」 안경을 낀 토우코씨는 아주 친절한 사람으로 변모한다. 오늘은 그런 럭키데이로, 본인도 막 한 건을 끝냈다며 애차(愛車)의 핸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러면 잠깐 다녀올께요. 두시간 정도있다가 돌아오겠습니다」 「선물 부탁해요~」 팔랑팔랑 손을 흔드는 토우코씨를 뒤로하고, 나는 사무실을 나왔다.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오후에 나는 그녀의 병문안을 간다. 그날 밤 이래, 이야기도 할 수 없게된 료우기 시키의 곁에. 그녀가 어떤 괴로움을 안고서, 어떤 일을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째서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키가 마지막에 보였던 공허한 미소만으로 충분했다. 가쿠토가 말한대로 어차피 코쿠토 미키야는 옛날부터 료우기 시키에게 푹 빠져있었다. 한번 죽을 뻔한 것 정도로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다. 병실에서 계속 잠을 자는 시키는, 그때 그대로다. 마지막 방과후, 저녁놀 속에서 서있던 시키를 떠올린다. 불타는 것 같던 황혼 속에서 시키는 자신의 무엇을 믿을 수 있느냐며 물었다. 그때의 대답을 반복한다. ……근거는 없어. 하지만 나는 시키를 계속 믿고있어. 너를 좋아하니까, 계속 믿고있고 싶어─── 그것은, 얼마나 미숙한 대답이었던가. 근거는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그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키는 살인의 아픔을 알고 있다.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가해자이기도 한 너는───누구보다 그것이 슬픈 일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믿었다. 상처입지 않는 시키와, 상처밖에 없는 '시키'를. ───언제나 상처를 입을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던, 단 한번도 본심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애처로운 너를. 0 준비된 말은 세개. 죽음에 빙의하여 부유하는 이중신체자. 죽음에 접촉하여 쾌락하는 존재부적합자. 죽음에 도피하여 자아하는 기원각성자. 서로 뒤얽히면서, 상극하는 나선에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