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집에 돌아올 때 큰길을 통해서 오기로 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별일이다 싶을 작은 변덕이다. 질리도록 보아온 빌딩가를 멍하니 걷고 있자, 얼마 안 있어 사람이 떨어졌다. 그다지 들을 기회가 없는 퍼걱, 하는 소리. 사람이 빌딩에서 떨어져서 죽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아스팔트 위에는 주홍색이 흘러간다.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긴 흑발과. 가느다란, 백색을 연상시키는 가녀린 팔다리. 그리고 형체 없는, 찌부러진 얼굴. 그 일련의 영상은, 낡은 페이지에 끼워진 뒤에 책 사이에 짓눌려 납작해져버린 꽃잎을 연상시켰다. ───아마도. 머리만을 태아처럼 구부린 그 시체가, 나에게는 부러진 백합처럼 보였기 때문이겠지. / 부감풍경 -------------------------------------------------------------------------------- 막 8월로 접어든 날 밤, 미키야가 사전에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안녕. 변함없이 나른한 얼굴이네, 시키」 갑작스런 방문자는 현관입구에 서서, 웃는 얼굴로 재미없는 인사를 했다. 「실은 말이지, 여기 오기 전에 사고가 난걸 봤어. 여자애가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 최근에 많다고 듣기는 했지만, 실물과 조우할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말야. ───자, 이거. 냉장고」 현관에서 부츠의 끈을 풀면서, 손에 들고 있던 편의점 비닐봉지를 던지듯 넘겨준다. 안에는 하겐다즈의 스트로베리가 두 개. 녹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두란 소리인 것 같다. 내가 완만한 동작으로 그 속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에, 미키야는 신발을 다 벗고서 문지방을 넘어와 있었다. 내 집은 맨션의 한 방이다. 현관에서 1미터도 안되는 복도를 지나면, 곧바로 침실 겸 거실인 방에 다다른다. 거리낌 없이 방으로 걸어가는 미키야를 흘겨보면서 나도 내방으로 이동했다. 「시키, 너 오늘도 학교 빠졌지? 성적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지만 출석일수를 채워두지 않으면 진급 못 한다구. 같이 대학에 가자던 약속, 잊은 거야?」 「학교에 관한 일로 나를 지도할 권리, 너한테 있어? 게다가 그런 약속은 기억나지도 않고, 너는 대학을 때려치웠잖아」 「……우. 권리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런 것은 어떤 것에도 없지만」 미키야는 못마땅한 말투로 이야기하면서 바닥에 앉았다. 이 녀석은 자신이 불리해지면 성격이 나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기억해낸 일이다. 미키야는 방의 한가운데에 앉았다. 나는 미키야의 등 뒤에 있는 침대에 앉고, 그대로 몸을 눕혔다. 미키야는 나에게 등을 보이는 상태 그대로다. 남자치고는 자그마한 그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관찰한다. 코쿠토 미키야(黑桐幹也)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나와는 고교시절부터 친구였던 것 같다. 수많은 유행이 차례차례 나타나서 질주하다가 끝내는 폭주한 채로 소멸한다는 현대의 학생들 속에서, 따분해질 정도로 '학생'이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귀중품이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기르지도 않는다. 살갗을 태우지도 않았거니와 장신구도 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없는데다가, 여자와 어울려 다니지도 않는다. 키는 170이 될까 말까 할 정도. 온화한 얼굴형은 귀여운 편으로, 검은 테의 안경이 그런 분위기를 한층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잘 빼입고 거리를 걷는다면 지나가는 사람 몇 명은 시선을 멈출 정도로, 실은 미남자가 아닐까──── 「시키, 듣고 있어? 네 어머니하고 만나봤어. 한번은 료우기 본가에 얼굴정도는 보여야하지 않겠어? 퇴원한지 두달이 되도록, 연락도 안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몰라. 실감이 안 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만나봤자 더욱 거리가 벌어질 뿐이야. 너한테도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는데, 그런 타인하고 이야기가 될 것 같냐?」 「나 이런, 그러면 언제까지고 해결이 안 되잖아. 시키 쪽에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평생 이 상태라구. 친자식이 근처에 살고 있는데 얼굴도 마주할 수 없다니, 그런 건 좋지 않아」 꾸짖는 듯한 말투에, 나는 눈썹을 찡그린다. 좋지 않다니, 뭐가 좋지 않다는 걸까. 나와 부모 사이에서 법을 어긴 일은 없다. 단지, 자식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이전의 기억을 상실해버린 것뿐이다. 호적상으로도 혈연 상으로도 친자임이 분명하니, 이대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키야는 언제나 사람 본연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며 염려한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데도. ◇ 료우기 시키(兩儀 式)는 고교시절부터의 친구다. 우리 학교는 사립학교로, 유명한 진학교였다. 합격자발표 때, 료우기 시키란 이름이 참 별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 나는 시키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사복을 입는 진학교였기 때문에, 모두 각자의 복장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 중에서도, 학교 안에서의 시키의 모습은 아주 눈에 띄었다. 왜냐하면, 언제나 기모노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간소한 평상복차림으로 서있는 모습은 시키의 부드럽게 쳐진 어깨에 잘 어울려서, 걷고 있는 것만으로 그곳이 무가(武家)저택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복장뿐만이 아니라 행동에도 불필요한 움직임은 일절 없고, 말은 수업 할 때 외엔 거의 하지 않았다. 시키가 어떤 사람이냐하는 것은, 이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시키 본인의 모습은 이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머리카락은 흑단처럼 아름답지만 그것을 귀찮다는 듯 가위로 대충 자르곤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것이 딱 귀를 가릴 정도의 숏커트가 되는데, 이것이 또 묘하게 어울려서 시키의 성별을 헷갈리는 학생도 많았을 정도다. 시키를 보는 사람이 남자라면 여성으로, 여자라면 남성으로 잘못 볼 정도의 미인인데 아름답다기보다는 늠름한 느낌을 주는 생김새다. 하지만 그런 개성들보다도 내가 무엇보다 매료되었던 것은, 시키의 눈이었다. 눈매는 예리한데도, 맑고 고요한 그 눈동자와 가느다란 눈썹. 무언가 우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그 모습이, 나에게 있어서 료우기 시키라는 인물의 전부였다. 그래. 시키가 그렇게 되기 전 까지는. ◇ 「투신」 「에───? 아, 미안, 못 들었어」 「투신자살. 그건 사고가 되는 걸까, 미키야」 의미 없는 중얼거림에, 말없이 있던 미키야는 움찔하며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는 우직하게도, 지금의 의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으음, 그건 사고가 틀림없겠지만……그렇네, 확실히 그건 무엇인걸까. 자살인 이상, 그 사람은 죽어버렸지. 하지만 자신의 의지인 이상, 책임 역시 자신만의 것이야. 단,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사고니까───」 「타살도 아니고 사고사도 아니다. 애매하네, 그런 건. 자살이라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면 좋았을 텐데」 「시키. 죽은 사람을 나쁘게 이야기 하는 것은 좋지 않아」 나무라는 것 같지 않은, 온화한 어조. 그런 미키야의 대사는, 듣기 전부터 지긋지긋한 느낌이 들 정도로 예측 할 수 있었다. 「코쿠토. 나, 너의 일반론이 싫어」 자연스럽게, 반론에는 가시가 돋친다. 하지만 미키야는 기분나빠하는 기색도 없다. 「아아. 정말 오래간만인걸, 그렇게 부르는 건」 「그런가?」 응, 하고 미키야는 예의바른 다람쥐처럼 끄덕였다. 그를 부르는 방법은 미키야와 코쿠토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나는 코쿠토라는 발음의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대화의 공백에 생겨난 그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키야가 기억났다는 듯 손바닥을 쳤다. 「그러고 보니 말야. 별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에 말하자면, 아자카(鮮花)가 봤대」 「……? 봤다니, 뭘?」 「그러니까, 전의 그거라구. 후죠우 빌딩의 여자. 하늘을 날고 있다는 거 있잖아. 시키도 한번 봤다고 말했었지?」 「───────」 아아, 생각났다. 분명 3주정도 전부터 시작한, 꽤 알려진 괴담이다. 오피스가(街)에는 후죠우 빌딩이라는 고급맨션이 있는데, 밤이 되면 그 상공에서 사람처럼 생긴 형체가 보인다고 했다. 나만이 아니라 아자카에게도 보였다는 것은, 아무 래도 그것은 진짜인 것 같다. 교통사고로 2년간 혼수상태였던 이후로, 나는 그런 『원래 있을 수 없는 것』 이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토우코 쪽의 말에 따르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인지 한다', 즉 뇌와 눈의 인식레벨이 상향된 것뿐인 것 같지만 나는 그런 구성 따위에는 흥미가 없다. 「후죠우 빌딩의 그것들이라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봤어. 게다가 최근에는 그 부근에 가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보일지 어떨지는 알 수 없어」 「흐음. 그쪽으로는 자주 다니지만, 나는 본적이 없는 걸」 「너는 안경을 끼고 있어서 안 보이는 거야」 관계없다고 생각해, 라며 토라지는 미키야. 그 행동은 따스해서,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녀석은 그런 것을 보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난다느니, 떨어졌다느니 하는 별 재미없는 현상이 이어진다. 그런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의문을 입 밖에 내었다. 「미키야. 사람이 하늘을 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미키야는 글쎄, 하며 고개를 한번 수그리더니, 「나는 이유도 떨어지는 이유도 모르겠어. 왜냐면, 난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 했다. / 2 8월도 마지막에 접어든 밤, 산책을 하기로 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치고는, 바깥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전철막차는 한참 전에 끊겼고, 거리는 정적에 휩싸여있다. 고요하고, 춥고, 쇠락한, 어딘가의 죽음의 거리 같기도 하다. 오가는 사람들도 따스함도 없는 그 광경은 한 장의 사진같이 인공적이라서, 불치의 병을 연상시켰다. ───질병, 병환, 병적(病的). 불빛 없는 집이건 불빛이 있는 편의점이건 무엇이건 간에, 긴장을 풀면 기침소리 한번에 붕괴할 것 같은 느낌. 그런 가운데, 달빛은 푸르스름하게 밤을 부각시킨다. 모든 것이 마비된 세상, 달만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아주, 눈이 아프다. ───그러니까, 병적이란 얘기는 그것 때문이다. 집을 나올 때, 엷은 남색의 기모노 위에, 검은 가죽점퍼를 걸쳤다. 기모노의 소매가 웃옷에 감겨들어서 몸이 더워진다. 그래도 덥지는 않다. ───아니. 나는, 원래부터 춥지도 않았다. ◇ 그런 한밤중에도 길을 걷다보면 사람과 만난다. 고개를 숙이고 그저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는 누군가. 자판기 앞에서 멍하니 서있는 누군가. 편의점의 불빛에 모인, 몇 명의 누군가. 그곳에 무언가 의미가 있는가 하고 살펴보았지만, 애초에 제3자인 나에게는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나 자신이 이렇게 밤에 산책을 하는 것부터가 의미는 없었다. 나는, 예전부터 내가 좋아했던 이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년전. 고등학교 2학년으로의 진급이 가까웠던 료우기 시키(兩儀 式)란 이름을 가진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곧바로 병원에 실려 갔다. 비가 내리는 날 밤의 사고다. 나는 자동차에게 치인 것 같다. 다행히도 몸 자체에는 큰 상처는 없었고, 출혈도 골절도 없는 깨끗한 사고였다고 한다. 그 반면, 데미지는 머리 쪽에 집중되어 버렸던 것이겠지. 그 뒤로, 혼수상태가 계속되었다. 몸에 상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화가 되었던 걸까. 병원 측에서도 내 생명을 유지시켜서, 의식이 없는 나의 육체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생명을 유지했다. 그리하여 약 두 달 전, 료우기 시키는 회복했다. 의사들은 죽은 자가 되살아 난 것만큼이나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과연. 곧, 나는 그 정도의 회복이 예상되지 않았었다는 이야기겠지. 그리고 나 자신도, 그 정도로 대단치는 않지만 어떤 종류의 충격을 받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나 할까. 자신의 지금까지의 기억이 아무래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기억을 신용할 수 없다. 이것은 과거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기억장해……속칭 기억상실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토우코의 말에 따르면, 기억이란 것은 뇌가 행하는 명기(銘記), 보존, 재생, 재인(再認)의 4대 시스템이라고 한다. 『명기』는 보았던 인상을 정보로서 뇌에 기록하는 일. 『보존』은 그것을 간직해두는 일. 『재생』은 보존한 정보를 불러내는, 곧 기억해내는 일. 『재인』은 재생한 정보가 이전의 것과 동일한지 어떤지를 확인하는 일. 이 네 가지 프로세스중 하나라도 할 수 없다면 기억장해가 된다. 물론, 어디에 문제가 있느냐에 따라 기억장해의 케이스도 달라진다. 하지만 나의 경우, 이것들 모두가 장해 없이 동작하고 있다. 이전의 기억에 실감을 느낄 수는 없지만, 자신의 기억이 이전의 내가 받았던 인상과 완전히 같다. 곧, 『재인』도 동작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예전의 나'라는 존재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료우기 시키라고 불리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보아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일로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틀림없이 료우기 시키인데도. 2년이라는 공백은 료우기 시키를 무(無)로 돌려놓아버렸다. 사회의 평가가 아니라, 나의 내용물을 무(無)로 만든 것이다. 나의 기억과 내가 가지고 있었을 성격. 그 연결이 절망적일 정도로 단절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어 버리고나니 기억은 단순한 영상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그 영상 덕분에 나는 예전의 나처럼 꾸밀 수 있다. 부모에게도, 전부터 알던 사람에게도, '그들이 알고 있던' 료우기 시키로서 접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상관하지 않고.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마치, 연극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조금도 살아 있지 않아. 갓난아기와 마찬가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18년이라는 기억이, 나를 한명의 완성된 인간처럼 만들어놓고 있다. 원래 여러 가지 경험에 의해서 얻어져야할 감정은, 이미 기억으로 습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하려고 해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거기에는 감동도, 살아있는 실감도 없다. ……비밀이 들통나버린 요술이 더 이상 아무도 놀라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지도 못하는 채로, 예전의 나다운 행동을 반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예전의 나 자신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하면 이 밤중의 산책의 의미도 알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아아, 그런걸까. 그렇다고 하면, 나는 예전의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도 있겠다. ◇ 꽤나 걸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오피스가(街)에 와있었다. 같은 높이의 빌딩들이 길의 양쪽에 사이좋게 쭉 늘어서 있다. 빌딩 표면은 전부 유리창으로, 지금은 그저 달빛만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큰길가에 늘어선 빌딩 무리는, 괴인이 배회하는 그림자의 세계가 되어있었다. 그 중에 유달리 높은 형체가 있다. 20층 높이의 사다리처럼 보이는 그 건물은, 달까지 닿으려는 듯 길게 뻗어있는 가늘고 긴 탑처럼 보였다. 탑의 이름은 후죠우(巫條)라고 한다. 맨션인 후죠우 빌딩에 불빛은 없다.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는 것이겠지. 시각은 곧 오전 2시를 지나려고 하고 있다. 그 때───보잘 것 없는 영상이 망막에 비쳐 들어왔다. 사람 모습 같은 실루엣이 시계(視界)에 떠올랐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그 소녀는 떠있었다. 바람은 없다. 밤공기는 여름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차갑다. ───목덜미의 뼈가, 추위에 의해 찡하고 울린다. 물론, 그런 것은 나만의 착각. 「뭐야, 오늘도 있잖아」 불쾌하지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예의 그 소녀는 달에 기대듯이 비행하고 있었다. 부감풍경\ … ───이미지는 잠자리. 바쁘게 날고 있다. 한 마리의 나비가 따라왔지만, 날개의 속도는 늦추지 않는다. 나비는 언젠가부터 따라올 수 없게 되었고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힘없이 떨어져갔다. 호를 그리며 떨어져간다. 고개를 쳐든 뱀 같은 모양의 낙하. 하지만 그것은 부러진 백합과 닮아있었다. 그 모습이 아주 애처롭다. 같이 갈 수는 없더라도, 하다못해 조금만 더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땅에 발이 닿아있지 않는 나는, 서있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 누군가의 이야기소리가 나서, 하는 수 없이 일어나기로 했다. ……눈꺼풀이 상당히 무겁다. 이건 2시간으로는 잠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움직이려하다니 나는 정말 기특한걸, 하며 잠깐 자기도취하고 있다보니, 의식은 졸음을 무찔러버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너무 단순해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 분명 어젯밤은 철야로 도면을 완성시키고, 그대로 토우코씨의 방에서 잤을 텐데. 벌떡, 하고 소리를 내며 몸을 소파에서 일으키자, 역시나 이곳은 사무실이었다. 아직 정오에 다다르지 않은 여름의 햇살 속에서, 시키와 토우코씨가 무언가 이야기에 몰입해있다. 시키는 벽에 기대선 채였고 토우코씨는 파이프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시키는 여전히 기모노를 약식차림으로 산뜻하게 입고 있다. 토우코씨는 어떤가 하면, 겉치장 없는 타이트한 검은색 바지에 새것처럼 빳빳한 흰색 와이셔츠. 머리카락은 짧고 목덜미를 드러내고 있는 토우코씨는 아무리 봐도 어딘가의 사장비서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안경을 벗었을 때의 나쁜 눈매는 필설하기 어려울 정도니, 평생 그런 쪽으론 취직 못 하겠지. 「좋은 아침이야, 코쿠토」 힐끗하고 보는 토우코씨의 곁눈질은, 뭐어 언제나 그렇다. ……안경을 벗고 있는 것을 보면, 시키와는 그쪽 관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죄송합니다, 자버렸던 것 같아요」 「하찮은 일 설명하지 마. 보면 안다구」 내뱉듯이 말하면서, 담배를 입에 문다. 「일어났으면 차 좀 끓여줘. 좋은 리허빌리가 될 거야」 「…………………?」 리허빌리란 건, 역시 갱생운동(rehabilitation)을 이야기하는 걸까. 내가 어째서 그런 소릴 듣지 않으면 안 되는가는 의문이지만, 토우코씨는 언제나 이런 식이니 따지지 않기로 했다. 「시키는 뭔가 마실 거야?」 「난 됐어. 곧 잘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시키는, 분명 잠이 부족해 보였다. 어젯밤에 내가 돌아오고 나서 밤중에 산책이라도 나갔던 걸까. ◇ 사무소 겸 토우코씨의 개인 방으로 쓰이는 방 옆에는 부엌같은 방이 있다. 원래는 어딘가의 실험실이었는지, 수도꼭지는 학교의 식수대처럼 가로로 3개나 늘어서 있다. 안쪽 2개는 철사에 묶여서 사용금지상태가 되어있다. 이유는 불명. 토우코씨는 알기 쉬워서 좋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분위기가 살벌해지기 때문에 별로 고맙지는 않다. 일단, 커피메이커를 작동시킨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 끓이기라서, 지금은 졸면서도 할 수 있을 만큼 숙달되었다. 나, 코쿠토 미키야가 이곳에 취직한지 곧 반년이 된다. 아니, 취직이라 말하기엔 조금 우습다. 무엇보다 이곳은 회사로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각오하고 들어온 이유는, 그 사람의 작품에 한눈에 푹 빠져 버렸기 때문이겠지. 시키가 혼자서 17세인 상태로 시간을 멈춰버린 후, 나는 목적도 없이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 대학에 들어간 것은 시키와의 약속이었다. 시키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해도 그 약속만은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대학생이 된 나는, 그저 달력의 날짜만을 세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던 무렵, 친구의 초대로 모임에 가기위해 발을 옮기다가 하나의 인형을 발견했다. 그것은 도덕의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육박할 정도로, 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었다. 인간을 그대로 정지시킨 것 같은 그것은, 동시에 결코 움직일 수 없는 인형임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분명히 인간이 아닌, 그와 동시에 인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형체. 지금이라도 숨을 쉴 것 같은 인간. 하지만 처음부터 생명 같은 것은 없는 인형. 생명만을 지니지 못한,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장소. 그 이율배반에, 나는 포로가 되었다. 아마, 그 존재하는 모습이 그 무렵의 시키 그 자체였으니까. 인형의 출전은 불명이었다. 팜플렛에는 그 존재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조사해보니 그것은 비공식적인 출전물로, 제작자는 업계에서는 복잡한 사정을 가진 인물이었다. 제작자의 이름은 아오자키 토우코(蒼崎橙子). 그녀는, 쉽게 말하자면 속세를 떠난 사람이었다. 인형제작이 본업인데도, 건물의 설계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물건을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지만, 일을 떠맡는 일은 전혀 없다. 언제나 스스로 "이런 물건을 만듭니다"하며 상대에게 팔러가고, 보수를 선불로 받고서 제작에 착수한다고 한다. 상당한 수준의 도락가일까, 아니면 그냥 이상한 사람일까. 흥미는 한층 깊어져가서, 나는 그 이상한 사람의 주소를 조사 해 버리고 말았다. 그곳은 도심에서 떨어진, 주택가라고도 공장지대라고도 말할 수 없는, 정말 어중간한 주소였다. 아니. 토우코씨의 거처는, 일반적인 집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 폐허였다. 그것도 어중간한 폐허는 아니다. 수년 전 경기가 좋았을 때에 공사가 시작되었다가 경기가 나빠져서 도중에 방치되어버린, 진짜 폐빌딩. 어쨌든, 건물로서의 모습은 갖추어졌지만 내부 장식은 전혀 없다. 벽도 바닥도, 소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완성했다면 6층 건물이 되었을 테지만, 4층 위로는 없다. ……요즘에는 빌딩을 최상층부터 만들어가는 편이 효율이 좋지만, 이 빌딩에는 옛날 방법을 썼던 것이겠지. 공사가 도중에 방치되었기 때문에, 만들기 시작하던 5층이 옥상처럼 되어버렸다. 빌딩의 부지는 높은 콘크리트의 담이 둘러져 있지만, 침입하기는 용이하겠지. 근처에 사는 꼬마들이 비밀기지로 삼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 할 정도로, 아주 괴이한 건물이다. 하여간 그렇게 구매자가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있던 빌딩을 아오자키 토우코가 구입한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커피를 끓이고 있는 부엌같이 생긴 방은, 그 빌딩의 4층에 위치해있다. 2, 3층은 토우코씨의 작업장이기 때문에, 대개 우리들은 이 4층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었다. ……아차, 이야기를 돌리자. 그 뒤로, 나는 토우코씨와 알게 되었고 갓 입학했던 대학을 관두고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급료도 꼬박꼬박 나온다. 토우코씨의 말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2종류 2속성이 있어서 창조하는 자와 찾는 자, 사용하는 자와 파괴하는 자로 나뉜다고 한다. 토우코씨는 미키야군에게 창조하는 자로서의 재능은 없군, 하고 딱 잘라 말하면서도 어째서인지 나를 고용해주었다. 찾는 자로서의 재능이 있대나 어쨌대나. 「──늦어, 코쿠토」 옆방에서 그런 재촉이 들려온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커피메이커에는 시커먼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 「어제로 여덟 명 째가 되던가. 슬슬 세간에서 관련성을 알아차려도 괜찮은 무렵인데 말이야」 담배꽁초를 비벼 끄면서, 갑자기 토우코씨가 말을 꺼냈다. 최근에 연속 되고 있는 여고생의 투신자살에 대한 이야기겠지. 금년 여름은 단수(斷水)라는 괴로운 체험도 없었으니, 토우코씨가 좋아하는 비참한 이야깃거리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을 테니까. 「여덟 명 째……? 어라, 여섯 명이 아니었었나요?」 「네가 멍하니 있는 사이에 늘어났다구. 6월부터 시작해서 달마다 평균 세 명인가. 앞으로 남은 3일 이내에 추가로 한명이 나올려나」 토우코씨가 불건전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흘끗, 달력에 눈길을 주자, 8월은 앞으로 3일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3일……? 그 사실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의문은 곧 의식의 바닥으로 가라앉아갔다. 「하지만, 관련성은 없다는데요. 자살해버린 여자애들은 모두 학교도 다르고, 친구관계도 아니었다고 해요. 뭐, 경찰이 정보를 은폐하고 있는 것뿐인지도 모르겠지만」 「비뚤어진 소리를 하네. 코쿠토 답지 않은걸」 야유하듯 토우코씨가 입가를 치켜 올렸다. 안경을 벗고 있으면, 이 사람은 마음씨가 한없이 고약해진다. 「하지만 유서가 공개되지 않았잖아요. 여섯 명, 아니 여덟 명인가요? 그만큼이나 되는 숫자라면, 한명쯤은 유서 같은 것을 공개해도 될 텐데, 그것을 계속 숨기기만 하고 있다. 이건 은폐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관련성이야. 아니 공통점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여덟 명중 태반이 사망자 스스로 뛰어내리는 현장을 복수의 사람들이 보았고, 그녀들의 사생활에서 아무런 문제도 찾아볼 수 없었어. 약을 하고 있었다든가 괴상한 종교에 빠져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극히 개인적인, 자기자신에게 불안감을 품고서 행한 돌발적인 자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그러니까 경찰도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거야」 「……유서는 공개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준비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반신반의하면서 그렇게 말해보자 토우코씨는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곳에는 무언가 모순이 있다. 커피 컵을 들고 그 씁쓸함을 음미하며 머리를 굴려본다. 유서가 없는 것은 어째서일까. 유서가 없다면, 사람은 스스로 죽지 않는다. 유서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미련'이다. 죽음을 바라지 않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자살할 때, 그 이유로서 남기는 것. 그것이 유서일 터. 유서가 없는 자살. 유서를 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이 세상에 아무런 의견 없이 순수하게 사라져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자살이다. 완전한 자살이란 것은 유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그 죽음조차 밝혀지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완전한 자살이 아니다. 사람의 눈에 띄는 죽음은 그 자체가 유서가 되어버린다. 남기고 싶은 것, 밝히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한 행동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유언이 준비 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래도 유언다운 흔적조차 없다고 한다면───제3자가 그녀들의 유서를 가지고 갔다던가? 아니, 그렇다면 자살이라고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러면 무엇일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 곧, 문자 그대로 그것은 사고였던 것은 아닐까? 그녀들은 애초부터 죽을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유서를 쓸 필요도 없다. 잠깐 집 근처에 쇼핑을 나왔다가 운 나쁘게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은 일이 아닐까. 어젯밤, 시키가 중얼거렸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잠깐 쇼핑하러 나왔다가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린 이유를 짐작 할 수 없었다. 「미키야, 투신자살은 여덟 명으로 끝이야. 그 뒤로는 한동안 없을 테고」 폭주하기 시작하던 나의 사고(思考)를 제지하듯, 시키가 대화에 끼어들어왔다. 「끝났다니, 알 수 있는 거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물어 버렸다. 시키는 먼 곳을 바라보면서 아아, 하며 끄덕였다. 「보고 왔으니까. 날고 있는 것은 여덟 명이었어」 모양 좋은 작은 입술이 그렇게 속삭였다. 「호오, 그 빌딩에 그만큼 있었던 건가. 시키는 처음부터 사람 수를 알고 있었던 거군」 「응. 그 녀석은 처치했지만, 그 여자애들은 한동안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야. ──저기, 토우코. 아무생각 없이 하늘을 날아버리면, 인간이란 것은 그런 말로를 향하게 되어버리는 존재인 걸까?」 「어떻게 될까. 개인차가 있으니까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과거에 인간의 힘만으로 비행을 시도해서 성공한 자는 없어. 비행이란 말과 추락이란 말은 연결되어있지. 그러나 하늘에 홀려버린 사람일수록 그 사실을 잊어버리게 돼. 그 결과, 죽은 뒤에도 구름 위를 목표로 비행하는 처지가 되어 버리는 거야. 지상으로 떨어지는 일도 없이, 하늘에 빠져가는 것처럼」 시키는 납득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화가 나있다. 하지만, 무엇에? 「죄송하지만, 무슨 말인지 통 못 알아듣겠는데요」 「응? 아니, 그 후죠우 빌딩의 유령얘기야. 어찌 됐던 간에 그것이 실체였었는지 단순한 이미지였었는지는, 실물을 보지 않고서는 뭐라 할 수 없지. 시간이 나면 보러가려고 생각했었는데, 시키가 죽여 버렸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어」 ……아아, 역시 그 쪽 이야기인가. 안경을 벗은 토우코씨와 시키라는 조합은 대개 이런 오컬트 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키가 후죠우 빌딩 옥상에 떠있는 소녀를 봤다는 이야기는 들었겠지? 그 얘기에는 이어지는 것이 있는데 말야, 소녀의 주변에는 사람형체를 한 것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는 거야. 후죠우 빌딩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곳이 그물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이야기하던 중이었어」 이야기의 기발함과 난해함의 농도가 점점 진해지고 있어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런 이쪽의 얼굴빛을 읽었는지 토우코씨는 간단하게 정리해 주었다. 「후죠우 빌딩에는 한 사람의 공중에 떠있는 인간이 있고, 그 주변에는 투신자살해버렸던 소녀들의 모습이 있었어. 그 소녀들은 유령 같은 것이겠지. 이야기하자면 그것뿐인, 간단한 구조야」 아하, 하고 일단 끄덕여본다. 괴담의 요점은 알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나는 사건이 다 끝난 뒤에 관계하고 있는 것 같다. 아까의 시키의 말을 생각하면, 그 유령이란 것들은 시키 본인에게 당해 버린 것 같고. 토우코씨와 시키를 양쪽에게 소개한지 두 달. 나는 이쪽 관련 이야기는 해결 된 뒤의 이야기만 듣는 입장이었다. 두사람과는 달리 지극히 평범한 나로서는, 그쪽의 이야기에는 관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무시당하는 것도 어쩐지 따분한 일이니, 이렇게 어느 쪽도 아닌 입장이 딱 좋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말하길, 이런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던데. ◇ 「어쩐지, 그렇게 들으니 싸구려 소설 같네요」 그렇지? 라며 토우코씨가 동의했다. 시키만이 점점 시선에 노기를 띠우며 곁눈질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 내가 뭔가 시키를 화나게 할 만한 짓을 한 걸까? 「어라? 하지만, 시키가 유령을 처음 봤었던 것은 7월 초였지요? 그러면 그 무렵의 후죠우 빌딩에 있던 것은 네 명이었구나」 확인을 위해서 당연한 것을 물어보자, 시키는 신경질적인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저었다. 「여덟 명. 처음부터 날고 있던 것은 여덟 개였어. 말했잖아, 여덟 명 이상 투신자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녀석들의 경우에는 순서가 반대니까」 「그건 처음부터 여덟 명의 유령이 보였다는 거야? 그 뭐냐, 언젠가의 만났었던 미래시(未來視)의 그 애처럼」 「설마. 나는 정상이야. 그쪽의 공기가 이상한 것뿐이지. 그렇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맞닿아있는 느낌이라서 이상했어. 그래서……」 애매한 시키의 말을, 토우코씨가 곧바로 받아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그곳은 시간이 기울어져 있어. 시간의 경과란 것는 한 종류가 아니야. 소멸해 갈 때까지의 거리는, 그 거리 자체부터 모든 것에 불균등해. 그렇다면 인간이라고 하는 한 고체와 그 한 고체가 가지고 있는 기억에도 소멸해 가는 시간의 차가 있는 것이 도리겠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나? 사라지지 않지? 관측자(기억하고 있는 자)가 남아있는 한, 모든 것은 갑자기 무(無)로 소실되지 않아. 무(無)가 될 때 까지 엷어져 가는 거야. 인간의 기억. 아니, 기록인가. 그 관측자가 인간이 아니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이었을 경우, 그녀들처럼 특이한 인종(人種)은 죽은 뒤에도 환상으로서 거리를 활보하지. 유령이라고 불리는 현상의 일부가 이거야. 이 환상을 보게 되는 사람은 그 기록의 일부를 공유하는 자……죽은 인물의 친구나 육친이 되지. 시키는 예외지만. 뭐어, 그런 『기록뿐인 시간의 경과』가 존재하는데, 그 빌딩의 옥상은 그것이 느려. 그녀들의 생전의 기록이 본래의 그녀들의 시간을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그 결과, 추억만이 아직 살아있는 거야. 그 장소에 환상으로서 보이는 것은, 지극히 느리게 경과되고 있는 소녀들의 행동과 현실인 거라구」 토우코씨는 거기서 몇 번 째 인가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요약하자면 무언가가 없어져도 그 무언가를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한 그것이 없어진 것은 아니며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으로, 살아있는 존재라면 눈에 보여 버린다, 라는 말일까. 그건 완전히 환각이다.──아니, 토우코씨 본인이 『환상』이라고 정정한 것은 그것이 역시 원래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겠지. 「이치설명은 됐어. 그런 것에 해는 없어. 문제는 그 자식이잖아. 타격은 주었지만 본체가 있는 한, 다시 반복해 버린다구. 미키야를 지키는 것, 이제 난 사양 하겠어」 「동감이야. 후죠우 키리에(巫條霧繪)의 뒷 처리는 내가 하겠어. 너는 코쿠토를 바래다주면 돼. 코쿠토의 퇴근시간까지 다섯 시간정도 남아 있어. 잘 거라면 그쪽 바닥에서 자도 좋아」 토우코씨가 가리킨 바닥은 최근 반 년 간 한번도 청소하지 않아서 소각로 속처럼 휴지조각들이 가득차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시키는 그것을 무시한다. 「그래서. 결국, 그 녀석은 무엇이었던 거지?」 담배를 문 마법사는 흐음, 하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싶더니 발소리도 없이 창가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밖을 바라본다. 이 방에는 전등이 없다. 실내는 밖의 햇빛만으로 조명을 대신하기 때문에 낮인지 저녁인지 불분명하다.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창밖의 풍경은 확실한 낮이었다. 토우코씨는 여름 한낮의 길거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에는, 그녀도 비행하는 부류였던 거겠지」 담배연기가 하얀 햇살에 동화되어간다. 창밖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뒷모습. 하얗게 흐려지는 신기루 같다. 「코쿠토.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은 무엇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하지?」 갑작스런 질문에, 멍해져있던 의식이 되돌아왔다. 높은 곳이라면 어렸을 적에 도쿄타워에 올라갔던 것 정도다. 그 때 무엇을 생각했었나 하는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자신의 집을 찾아본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것 정도가 기억날 뿐이다. 「……그, '작다' 인가요?」 「그건 핵심을 꿰뚫고 지나가버린 것 같은데」 ……정나미 떨어지는 반론이 돌아왔다. 정신 차리고 다른 것을 연상해본다. 「……글쎄요. 연상되는 것은 별로 없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에는 압도되어 버리니까요」 아까보다 본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겠지. 토우코씨는 응, 하고 살짝 끄덕였다. 그렇게, 역시 시선은 창 밖을 향한 채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장관이야. 보잘것없는 풍경조차 멋지게 느껴지지. 하지만 자신이 있는 세계를 한눈에 보았을 때에 느끼는 것은 그런 충동이 아니야. 부감(俯瞰)의 시계(視界)에서 얻을 수 있는 충동은 단 하나──」 충동, 이라고 입 밖에 내고서 토우코씨는 잠깐 동안 말을 멈추었다. 충동은 이성이나 지성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다. 충동이란 것은 감상처럼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덮쳐오는 것이다. 설령, 본인이 그것을 거부하려한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덮쳐오는 폭력 같은 인식. 그것을 우리들은 충동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부감의 시계가 초래하는 폭력이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멀다' 라는 거야. 너무나 넓은 시계(視界)는, 역으로 세상과의 격차를 명확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지. 인간은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던 것들이 없으면 마음을 놓지 못해. 매우 정교한 지도가 있어서 자신이 어디어디쯤의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그것은 단순한 지식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잖아? 우리들에게 있어서, 세상이라는 것은 피부로 느껴질 정도의 주위에만 존재하는 거야. 우리들은 뇌가 인식하고 있는 지구의, 나라의, 도시의 연결부 같은 것을 실감 할 수 없어. 그 연결부에 가지 않으면 말야. 그리고 실제로, 그 인식방법에 잘못된 점은 없어. 하지만 너무나 넓은 시계(視界)를 가져버리면, 그것에 어긋남이 생겨버려. 자신이 지금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방 10미터의 공간과 자신이 내려다보고 있는 사방 10킬로미터의 공간. 둘 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지만, 보다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은 전자라는 거지. 봐, 여기서 또 모순이 생기잖아? 원래, 자신이 체감할 수 있는 좁은 세계보다 자신이 보고 있는 넓은 세계 쪽을 『살고 있는 세계』라고 인식하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작은 세계에 자신이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아. 어째서일까? 그것은 실감이 항상 본인의 주위에서 얻어지는 정보보다 우선되는 것이기 때문이야. 여기에 지식으로서의 이성과 경험으로서의 실감이 서로 마찰하고, 곧 어느 한쪽이 닳아져서 의식의 혼란이 시작되지.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굉장히 작네. 저 곳에 내 집이 있다니 상상도 할 수 없어. 저 공원은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던가? 저런 곳에 저런 건물이 있었던 것은 몰랐어. 이것은 마치 처음 보는 거리 같아. 어쩐지, 아주 먼 곳까지 와버린 것 같다──너무 높은 시점은 그런 실감이 솟아나게 만들어버려. 먼 곳이건 아니건, 지금도 그 본인은 거리의 일부로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높은 곳은 먼 곳이다. 그것은 거리로 생각해봐도 뻔히 알 수 있다. 하지만 토우코씨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겠지. 「곧, 높은 곳에서 무언가를 계속 보는 것은 좋지 않은 건가요?」 「비약이 지나친데. 옛부터 하늘은 다른 세계라고 인식되고 있었어. 난다는 것은 곧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것이고. 문명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다른 의식에 물들어버리지. 문자 그대로 정상적인 의식이 고장나버리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된 인식의 프로텍트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악영향은 받지 않겠지. 확실한 기반이 있으면 문제는 없어. 지상으로 돌아오면 정상으로 되돌아오니까」 ……고백하자면, 학교 옥상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봤을 때 갑자기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떠오른 적이 있다. 물론 그건 장난이다. 실행할 생각 같은 것은 요만큼도 없지만 명백히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런 생각이 떠올라버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토우코씨는 개인차가 있다고 말했지만, 높은 곳에 있다가 떨어지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일시적이지만, 사고(思考)가 고장나버린다는 건가요?」 떠오른 감상을 이야기하자 토우코씨는 아하하, 하며 마른 웃음을 흘렸다. 「터부(taboo)를 몽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야, 코쿠토.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며 즐기는, 대단한 자위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만, 그렇지…… 지금 것은 조금 가깝겠군. 중요한 것은, 그 장소밖에 그 장소에 관련된 금기로의 유혹이 오지 않는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말야. 지금의 너의 예는 의식(意識)이 고장나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마비되어있는 거라고 생각해」 「토우코, 말이 길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시키가 끼어든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본론에서 어긋나버린 것 같다. 「길지는 않아. 아직 기승전결로 하자면 두 번째야」 「나는 '결'만 듣고 싶다구. 너하고 미키야의 잡담을 듣고 있기는 싫어」 「시키……」 좀 심하지만, 정당한 의견이었다. 한마디도 없는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시키의 불평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의 풍경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보통의 시점은 뭐야. 걷고 있을 때도 우리들은 지면보다 높은 시점을 가지고 있잖아」 트집을 잡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시키의 태도와는 반대로, 지금의 발언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인간의 눈은 분명히 지상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풍경은 대체로 내려다보는 상태가 되어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런 시키의 말에 토우코씨는 좋은 말이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네가 수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면도 불확실한 각도를 이루고 있어. 그리고 그것들을 포함해도 통상의 시계(視界)는 부감(俯瞰)이라고 부르지 않아. 시계(視界)라는 것은 안구가 받아들이는 영상이 아니라 뇌가 이해하는 영상이야. 우리들의 시계(視界)는 우리들의 상식에 의해서 보호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키만큼의 높이로는 높다고는 느끼지 않고, 그것이 상식이기까지 하지. 그것에 높다고 하는 개념은 없어. 하지만 그 반면에, 인간은 누구나 부감의 시계에서 살고 있지. 신체적인 관측으로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관측으로서. 그 개인차는 제각각이야. 팽대한 정신만큼 보다 높은 것을 목표로 하겠지. 허나, 그래도 자신의 상자(箱)를 이탈하는 일은 없어. 사람은 상자 속에서 생활하는 존재고, 상자 속에서 밖에 생활 할 수 없는 존재야. 신의 시점을 가져서는 안돼. 그 선을 넘으면 저런 괴물이 되지. 환시(幻視)가 현사(現死)로 바뀌고, 어느 것이 어느 쪽인지 애매하게 되어서 결과판별을 할 수 없게 돼」 그렇게 말을 잇는 토우코씨 본인도, 지금은 하계(下界)를 내려다보고 있다. 땅에 발을 딛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것은 아주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문득, 꿈에서 보았던 것을 생각해냈다. ──나비는 최후에는 추락해버렸다. 그녀는, 나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았다면 좀더 우아하게 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 부유하는 것처럼 날개 짓을 했다면 좀더 오래 날 수 있었을 테지. 하지만 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비는, 부유하는 자신의 가벼움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날았다. 부유하는 것을 그만두고. 거기까지 생각하고, 자신이 이런 시적인 인간이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가의 토우코씨가 담배꽁초를 밖으로 던졌다. 「후죠우 빌딩의 흔들림은 그녀가 보고 있던 세계인지도 몰라. 시키가 느꼈던 다른 느낌의 공기는, 상자 안과 밖을 구별하는 벽이 아니었나 하고 추측할 수 있어. 그것은 사람의 의식만이 관측할 수 있는 불연속면이야」 토우코씨의 말이 끝나고, 시키는 겨우 기분 나쁜 듯한 태도를 풀었다. 흥, 하고 숨을 내쉬고서 시선을 허공에 띄우고 있다. 「불연속면이라. 어느 쪽이 난류고 어느 쪽이 한류였던 걸까, 그 녀석에게 있어서」 심각해 보이는 대사와는 반대로, 시키는 결과야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토우코씨는 똑같이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물론, 너에게 있어서의 반대겠지」 라고 대답했다. →/3 ───목덜미의 뼈가 찡, 하고 울린다. 떨림은 바깥공기의 차가움에서 오는 것일까, 기분에 따른 것일까. 판별되지 않는 그 의문을 내버려두고, 시키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죠우 빌딩에 인기척은 없다. 오전 2시, 하얀빛의 전등만이 맨션의 통로를 비추고 있다. 크림색의 벽은 전등 빛에 비추여져 통로의 안쪽까지 이어짐이 보였다. 어둠을 완벽하게 불식시킨 인공의 빛은 인간미가 없어서, 불식시켜야할 어둠보다 기분이 나쁘다. 카드체크식의 현관을 그대로 지나서 엘리베이터에 탄다. 안은 아무도 없다. 안에는 거울이 붙어있어서 이용자의 모습을 비춰 보이고 있었다. 그곳에, 엷은 남색의 기모노 위에 검은 가죽점퍼를 걸친 나른한 눈매를 한 인물이 보인다.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멍한 그 눈동자. 시키는 거울에 비친 자신과 마주한 채로 옥상으로 통하는 버튼을 눌렀다. 조용한 기동음과 함께 시키의 주위의 세계가 올라간다. 기계장치의 상자는 유유히 옥상에 다다르겠지. 잠깐뿐인 밀실. 지금 이 밖에서 무엇이 일어나있어도 시키에게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관여할 수 도 없다. 그 실감이, 공허했어야 할 마음에 조금 스며들었다. 이 작은 상자만이, 지금은 자신이 실감해야할 세계.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린다. 그 앞은 일변하여, 불빛이 없는 공간이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만 있는 작은 방에 나오자, 엘리베이터는 시키를 남겨두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전등도 없고 주위는 숨 막힐 정도로 어둡다. 발소리를 내며 작은 방을 횡단하여,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새까만 어둠이, 혼탁한 어둠으로 바뀐다. 눈앞 가득히 거리의 야경이 날아든다. 후죠우 빌딩의 옥상은 특징 없는 모습이었다. 드러난 콘크리트가 평평하게 펼쳐진 바닥과, 그 주위를 둘러싼 그물망 펜스. 지금까지 시키가 있던 작은 방 위에는 급수탱크가 있을 뿐, 그밖에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들어 진 모습 자체는 아무런 특이점도 없는 옥상이다. 단지, 그 풍경만이 이질적이었다. 주위의 건물보다 10층은 높은 옥상에서 보는 야경은, 아름답다고 하기보다 어쩐지 불안하다. 가느다란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어두운, 빛이 닿지 않는 심해 같은 밤거리는 분명 아름답다. 거리의 이곳저곳에 빛나는 불빛은 심해어의 반짝임과 비슷하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한다면. 분명 지금, 세상은 잠이 들어있다. 어쩌면 영원히, 하지만 아쉽게도 일시적인. 그 고요함은 어떤 추위보다 심장을 조여들게 해서 아픔을 느낄 정도다─── 눈 아래의 거리의 모습에 응하듯, 맑게 개인 밤하늘도 뛰어난 모습이었다. 거리가 심해라고 한다면 이쪽은 그저 순수한 어둠. 그 어둠 속에 보석을 흩뿌린 것처럼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달은 구멍. 밤하늘이란 검은 도화지에 뚫려있는, 유난히 큰 구멍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실 저것은, 태양의 거울 같은 것이 아니라 저쪽편의 풍경이 보이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시키는 료우기가(家)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달은 다른 세상의 문이라고 한다. 그, 신대(神代)이래로 마술과 여자와 죽음을 내포하고 있는 달을 등지고, 하나의 사람의 형체가 부유하고 있었다. 그 주위에 여덟 명의 소녀를 날게 하면서. ◇ 밤하늘에 떠오른 하얀 형체는 여자의 것이다. 드레스로 착각할 만큼 화려한 흰색 의상과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 옷자락에서 엿보이는 가느다란 수족은 이 여자를 한층 우아하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가는 눈썹과 냉담하게 그늘진 눈동자는, 미인 가운데서도 빼어난 미인의 부류에 들어가겠지. 연령은 20세전반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유령 비슷한 상대에게 생명으로서의 연령이 적용될 것인가는 의문이지만. 그렇지만 하얀 여자는 유령이라 할 정도로 불확실하지는 않다. 실제로 그곳에 존재한다. 유령이라면 그것은 그녀를 중심으로 밤하늘을 배회하고 있는 소녀들 쪽이겠지. 둥실둥실 끊임없이 허공을 방황하고 있는 소녀들은 날고 있다기보다는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그 모습도 불확실해서, 때때로 모습 자체가 투명해진다. 지금, 시키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은 하얀 여자와 그것을 지키려는 듯 밤하늘을 헤엄치는 소녀들이다. 그 일련의 광경은 기분 나쁜 느낌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흠───분명히, 이 녀석은 마적(魔的)이다」 시키는 조소하듯 중얼거린다. 이 여자의 아름다움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다. 검은 머리카락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 비단실을 한 올 한 올 빗은 것처럼 윤기가 흐른다. 바람이 강했더라면 흑발이 휘날리는 모습은 유현의 미를 이루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겠지」 시키의 중얼거림을 알아차렸는지, 그녀는 시선을 아래세상으로 내렸다. 이, 지상 40미터를 넘는 후죠우 빌딩의 옥상보다 4미터나 높은 곳에 있는 그녀와 그녀를 올려다보는 시키의 시선이 교차한다. 오가는 말 같은 것도 없고, 서로 통할 언어조차 없다. 시키는 겉옷 안쪽에 손을 넣어서 단도를 꺼냈다. 날 길이가 6치정도 되는, 칼이라기보다는 칼날 그 자체인 흉기를. 상공으로부터의 시선에 살의가 어린다. 곧, 하얀 옷자락이 흔들렸다. 그녀의 손이 흐르듯 움직이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시키에게 향한다. 그 가녀린 수족이 연상시키는 것은 백색이 아니다. 「────뼈인가, 백합이군」 바람 없는 밤, 목소리는 허공에 오랫동안 향기를 남기었다.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살의(殺意)가 어린다. 하얀 손가락은 정확히 시키의 모습을 향했다. 비틀, 하고 시키의 머리가 흔들린다. 가느다란 몸이 쓰러질 듯이 발을 헛딛는다. 미약하게, 단 한번. 「───────」 머리 위의 여자는 그것에 약간 놀랐다. 너는 날 수 있다, 라는 암시가 이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상대의 의식 그 자체에게『날고 있었다』라는 인상을 새겨 넣는 그것은, 암시의 영역을 넘어서 세뇌의 영역에 이르러 있다. 저항은 할 수 없다. 암시를 받은 사람은 결과적으로 정말 그것을 실천해버리던가, 그것을 믿지 못하지만 날 수 있다고 하는 확고한 실감에 두려움을 느껴 서둘러 옥상에서 도망치게 하는 피할 수 없는 암시. 그러한 암시를, 시키는 가벼운 현기증만 느끼고서 이겨냈다. 「──────」 그녀는 접촉이 얕았던 것일까, 하고 의심하며 다시 한번 암시를 걸기로 했다. 이번에는 보다 강하게. "날 수 있다"라는 얕은 인상이 아닌, "날아라"라는 확고한 인상으로서.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시키는 그녀를 보았다. 양다리에 두 개, 등에 한 개. 중심에서 약간 왼쪽의 흉부에 점 한 개. ───죽음이라는 이름의 절단면이 확연히 보인다. 노릴 거라면 그중에서도 가슴부근이 낫지. 그곳이라면 즉사다. 이 여자가 환상이건 무엇이던 간에, 살아 있는 상대라면 신이라 하더라도 죽여 보이겠어. 시키는 오른손으로 단도를 들었다. 자루를 역수로 쥐고, 상공의 상대에게 초점 맞춘다. 순간, 다시 한번 시키의 마음속에 충동이 일어났다. ……날 수 있어. 나는 날 수 있어. 예전부터 하늘이 좋았어. 어제도 날고 있었어. 아마도 오늘은 더욱 높이 날 수 있을 거야. 그것은 자유롭고. 편안하고. 웃는 얼굴 같고. 빨리 가지 않으면 안돼. 어디로? 하늘로? 자유롭게? ────그것은 현실에서의 도피. 드넓은 하늘로의 동경. 중력의 역작용.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어. 무의식하의 비행.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라! 「장난이야」 그렇게 중얼거리곤, 시키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왼손을 들어올렸다. 유혹은 시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미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그런 동경심은 내 안에 없어. 살아 있다는 느낌이 없으니까 삶의 괴로움 따위는 몰라. 아아, 사실 너 따위 어찌되든 상관없어」 ────그것은 노래하는 듯 한 중얼거림. 삶에 들러붙는 희비교차와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속박을, 시키는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같은 것에 매력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녀석을 데려간 상태로는 곤란하지. 의지할 곳으로 삼은 것은 이쪽이 먼저니까, 되돌려 받으마」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은 왼손이 허공을 움켜쥔다. 그대로 뒤쪽으로 잡아당긴 그 왼손에 끌려오듯 여자와 소녀들의 형체가 쭈욱, 하고 시키를 향해 끌려들어간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떼가 바닷물 채로 육지로 끌어올려지는 것처럼. 「─────!」 여자 형상이 변한다. 그녀는 더욱 힘을 모아서 의지를 시키에게로 내던졌다. 말이 통했다면 그녀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겠지. 떨어져, 라고. 그 원망을 깨끗이 무시하며 시키는 무서운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네.가. 떨.어.져.라」 급속하게 낙하해온 여자의 가슴에 단도가 꽂힌다. 과일을 나이프로 찌르듯 간단히, 찔린 자가 황홀할 정도로 예리하게. 출혈은 없다. 여자는 가슴에서 등까지 꿰뚫은 날붙이의 쇼크로 인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꿈틀하고 한번 경련할 뿐이다. 그 유체(遺體)를, 시키는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펜스의 바깥───밤거리의 한가운데로. 여자의 몸은 펜스를 통과해서 소리 없이 낙하해갔다. 떨어질 때조차, 흑발은 휘날리지 않고 하얀 의상만이 바람에 부풀면서 어둠 속에 녹아간다. 그것은 심해의 바닥에 가라앉아가는 하얀 꽃 같았다. ◇ 그렇게 하고 시키는 옥상을 떠났다. 머리위에는 아직도, 허공을 떠도는 소녀들의 모습이 남아있다. / 4 … 가슴에 칼날이 꽂혀서 눈을 떴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람의 가슴을 손쉽게 꿰뚫다니, 그 아이는 대단한 힘을 가졌던 거겠지. 하지만, 그것은 광폭한 힘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움직임 없이 뼈와 뼈의 사이, 살과 살의 틈을 정확하게 관통한 것이다. 그, 두려울 정도의 일체감.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죽음의 실감. 심장이 찔려 터져나가는 소리와 소리와 소리. 나에게는 아픔보다 그 감각이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공포이면서,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열락(悅樂)이었으니까. 등골에 퍼지는 오한은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라,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울음을 터뜨리고 싶어질 정도의 불안과 고독, 그리고 삶에 대한 집착이 그곳에 있기에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무섭기 때문도 아프기 때문도 아니다. 매일 밤, 내일 아침에 일어나도록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잠드는 나조차도 느낀 적 없는 죽음의 체험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아마도 나는 영원히 이 오한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 오히려 나 자신이 이 감각을 사랑해버린 이상은───. … 철컥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오후. 닫힌 창문에서 해님의 빛이 비쳐 들어오는 것 같은 기미가 느껴진다. 진찰시간이 아니니, 면회 온 사람일까. 나의 병실은 독실이라 다른 사람은 없다. 있는 것은 넘칠 듯이 비쳐 들어온 햇빛과 바람에 흔들린 적 없는 크림색 커튼, 그리고 이 침대뿐이다. 「실례. 후죠우 키리에란 사람이 당신인가?」 들어온 사람은 여성인 것 같다. 아주 허스키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서 의자에도 앉지 않고 내 쪽까지 다가왔다. 멈춰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선은 차가운 느낌이 난다. ……이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분명 나를 파멸시킨다. 그래도 나는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면회 온 사람은 수년만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나의 숨통을 끊으러 온 사신이라 하더라도 쫓아낼 수 는 없다. 「당신은 나의 적이지?」 으응, 하고 여성은 끄덕였다. 나는 의식을 집중해서 어떻게든 이 방문객의 모습을 보려고 노력한다. ───강한 햇빛 탓일까, 커다란 실루엣밖에 알 수 없다. 겉옷은 입지 않았지만 주름하나 없는 수트 차림이 학교선생님 같아서 조금 안심한다. 단지 그 하얀 셔츠에 진한 오렌지색 넥타이는 너무 튀는 것이 옥 의 티였다. 「그 애와 아는 사람? 아니면 본인?」 「아니, 당신이 덮친 사람과, 당신을 덮친 사람의 지인이야. 공교롭게도 이상한 사람들과 관계했군. 당신도──아니, 서로 운이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여성은 가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곧 도로 집어넣었다. 「병실에선 금연이었던가. 특히 당신은 폐를 앓고 있는 것 같아. 흡연은 독이 되겠지」 아쉬운 듯 이야기한다. 지금 것은 담배 갑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담배는 건드려본 적도 없지만, 어쩐지 이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아니, 분명히 리저드 펌프스와 백을 멋지게 차려입은 마네킹처럼 어울리겠지. 「나쁜 것은 폐만이 아니지? 그것이 원인이기는 하지만 신체의 여기저기에 종양이 보여. 말단에는 육종이 시작됐고 속은 더욱 심해. 멀쩡한 건 그 머리카락정도인가. 그런데도 잘도 체력을 유지하고 있군.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까지 병마에 먹히기 전에 사망했을 텐데 말이야. ───몇 년이나 됐지, 후죠우 키리에?」 입원 생활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답할 수 없다. 「그런 것 몰라. 세는 것은 포기 했어」 왜냐하면 의미가 없는걸. 나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나갈 수 없으니까. 여인은 그런가, 하고 짧게 중얼거렸다. 동정도 혐오도 없는 그 울림이 싫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은혜는 누군가로부터의 동정밖에 없다. 이 사람은 그것조차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키에게 절단당한 곳은 괜찮은 건가? 이야기를 듣기론 심장의 좌심실에서 대동맥 중간까지라고 하니까, 이첨판 부근을 찔린 걸까」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굉장한 소리를 한다. 나는 그 말의 기묘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려버렸다. 「이상한 사람이네. 심장을 잘리면 이렇게 이야기 같은 것은 할 수 없잖아」 「맞는 말이야. 지금 것은 확인이야」 아아, 그런가. 내가 그 일본풍도 서양풍도 아닌 옷차림의 인물에게 당했던 존재인지 아닌지, 이 사람은 대화로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영향이 있을 거야. 시키의 눈은 강력해. 그것이 이중존재였다고 하더라도 붕괴는 곧 당신 본체에 다다르겠지. 그 전에 두세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발걸음을 했단 얘기야」 이중존재……또 하나의 나를 말하는 것일까. 「나는 공중에 떠있다던 당신을 본적이 없어. 정체를 알려주지 않겠어?」 「나로서도 알 수 없어. 내가 볼 수 있는 풍경은 이 창에서 보이는 풍경 뿐 인걸.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몰라. 계속 이곳에서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사계절을 채색하는 나무들이나 차례차례 입원해가는 사람들을. 목소리를 내보아도 들어주지 않고, 손을 내밀어보아도 닿지 않아. 이 병실 안에서, 나는 계속 괴로워 해왔어. 오랫동안 바깥 풍경을 미워해 왔어. 그런 행동은 저주라고 하잖아?」 「……흠, 후죠우의 피인가. 당신의 가문은 유서 깊은 순수혈통이야. 기도가 전문이었던 것 같은데, 과연. 실제로는 저주가 생업이었다고 도 볼 수 있겠군. 후죠우(巫條)란 성도, 부정(不淨 : ふじょう)의 말 바꿈인지도 모르지」 가문. 나의 집. 그것도 이제는 나를 끝으로 끊겨버린다. 내가 입원하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부모님과 동생은 사고로 죽었으니까. 그 뒤로 나의 의료비는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사람이 맡아주고 있다. 스님 같은 어려운 이름이라서, 어떤 사람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하지만 저주는 무의식 하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당신은 대체 뭘 바란 거지?」 ……그런 거, 나로서는 알 수 없어. 분명 이 사람이라고 해서 알 수 는 없겠지. 「당신, 계속 밖을 바라보고 있었던 적이 있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의식이 두절되어 버릴 때까지 계속 바라보기만 했던 일이. ……나는 바깥이 싫고, 밉고, 무서웠어. 계속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했었어. 그러고 있으니까 말야, 언젠가부터 눈이 이상해졌어. 딱 저기쯤에 있는 뜰의 공중에 떠서, 밑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졌어. 몸과 마음은 여기에 있고, 눈만이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감각. 하지만 나는 여기서 움직일 수 없어서, 결국에는 이 부근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 주위의 풍경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건가. 그렇다면 어떤 각도에서라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시력을 잃은 것은 그 무렵이었군?」 놀랐다. 이 사람은, 내 시력이 이젠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점점 세상이 하얗게 되어가다가 곧 모든 것이 사라졌어. 처음에는 새까맣게 되었나 하고 생각했었지만, 아니었어. 모든 것이 사라진 거야, 눈에 보이는 것은 말야. 하지만 그것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 왜냐하면, 나의 눈은 이미 하늘에 떠있는걸. 병원주위의 풍경밖에 보이지 않지만, 원래부터 나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아무것도──」 거기서, 나는 기침을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던 것은 오래간만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쩐지 눈꺼풀이 뜨겁다. 「과연. 그래서 당신의 의식은 하늘에 있었다고 이야기 하는 건가. 하지만───그러면 당신은 어째서 살아있는 거지? 후죠우 빌딩의 유령이 당신의 의식이었다면 당신은 시키에게 죽었어야했어」 그래, 나도 그것에는 의문을 품고 있다. 그 애……시키라고 불리는 것 같은데, 그 아이는 어떻게 나를 찌를 수 있었던 걸까. 그 곳의 나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대신에 어떤 것에도 상처를 입을 수 없는데. 마치 그곳의 내가 진짜로 몸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간단하게 살해 당해버렸다. 「대답해. 후죠우 빌딩의 당신은, 진짜 후죠우 키리에였던거야?」 「후죠우 빌딩의 나는 내가 아니야. 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나와 하늘에 있던 나. 그곳의 나는, 나를 버리고 날아가 버렸어. 나는 나 자신에게 조차 버림 받았어」 여인이 숨을 들이쉰다. 처음으로, 이 사람이 감정다운 것을 보였다. 「인격이 두 개로 나뉘었다───는 것 은 아니겠군. 원래부터 하나였던 당신에게 두 개의 그릇을 준 사람이 있어. ……하나의 인격으로 두 개의 몸을 조종하고 있던 것인가. 확실히, 이런 경우는 유래를 찾을 수 없어」 고백하자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 있는 나를 내버려두고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의 나도 절대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그냥 공중에 떠있는 것뿐이었다. 창밖의 세계와 완전히 떨어져있는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벽을 돌파할 수는 없었다. 따로따로 떨어져도, 결국 우리들은 연결되어 있었다는 소리겠지. 「───납득이 갔어. 하지만, 어째서 당신은 바깥세계를 환시(幻視)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 한거지? 그녀들을 떨어뜨려버릴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들───아아, 그 부러운 여자애들. 그 애들에게는 가여운 짓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애들이 멋대로 뛰어내린 것뿐이니까. 「후죠우 빌딩의 당신은 의식체에 가까웠어. 그것을 이용했었군? 그 소녀들은 처음부터 날고 있었던 거지? 그것이 그녀들 꿈속의 이미지라고 하던, 실제로 비행능력이 있었다고 하건 간에 말이야. 몽유병자가 아닌 몽유비행자는 의외로 많지만 그렇게 문제는 되지 않아. 어째서일까? 그것은, 그들은 언제나 무의식 하가 아니면 절대 증상이 드러나지 않고, 무의식 하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악의 없이 비행하며, 평소에는 날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기 때문이야. 그녀들은 그 가운데서도 더욱 특별했어. 피터팬은 아니지만, 유년기라는 것은 자칫하면 뜨기 쉬워. 한두 명은 실제로 비행하고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의식만이 비행하고 그런 꿈을 꾸었다는 감각밖에 없었을 테지. 당신은 그것을 의식시켰어. 그녀들의 그런 무의식 하에서의 인상을 현실로 끌어내서. 그 결과, 그녀들은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지. 아아, 물론 날 수 있고말고. 하지만 그것은 무의식 하에서의 이야기지. 사람 한 개체의 비행은 어려워. 나도 빗자루가 없으면 날 수 없어. 의식하고서 비행할 성공률은 3할 정도. 소녀들은 당연한 듯이 날려고 하고, 당연하다는 듯 떨어 졌어」 그래. 그 아이들은 내 주위를 날고 있었다.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나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저 물고기처럼 떠돌 뿐이었다. 의식이 없다, 라고 깨닫게 되자 행동은 빨랐다. 그 아이들에게 의식하게 해주면 나를 인식해 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뿐인데, 어째서────. 「추운가, 떨고 있어」 여인의 목소리는 변함없다. 플라스틱처럼 아무런 풍미가 없다. 나는 오한이 멈추지 않는 몸을 끌어안았다. 「또 한 가지 물어보지. 당신은 어째서 하늘을 동경했지? 바깥세상을 미워하고 있었으면서」 그것은, 아마도─── 「하늘에는, 끝이 없으니까.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날아갈 수 있다면 내가 싫어하지 않는 세상이 있을 거라 생각 했어」 그것은 찾았나,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오한은 멈추지 않는다. 몸은 누군가가 흔드는 것처럼 떨리고 눈꺼풀은 한층 뜨거워져있다. 나는 끄덕였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아침이 되면 눈을 뜰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어. 내일은 살아있을까 하고 겁을 먹었고. 잠이 들면, 이제 일어날 체력은 없다고 알고 있었어. 얽혀오는 그물을 빠져나가는 것 같은 나의 일상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밖에 없었어.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지. 나의 허무한 하루하루는 죽음의 냄새밖에 없었어. 하지만 그 죽음의 냄새만이 삶의 의지가 되었어. ……평상시의 나는 이미 빈 껍데기였으니까. 죽음과 직면한 순간밖에는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없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삶보다 죽음을 연모하고 있다. 어디까지라도 난다. 어디라도 간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꼬마를 데려간 것은, 길동무인가」 「아니. 그 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어. 나는 삶에 집착하고 있어서 살아있는 채로 날고 싶었어. 그와 함께라면 그것이 가능했을 테니까」 「……시키와 너는 비슷하군. 코쿠토를 선택한 점에서는 아직 구제할 방법이 있어. 자신이 할 수 없는 삶의 실감을 타인에게서 구하는 것은, 뭐어 그리 나쁜 짓은 아니지만」 코쿠토. 그랬던가, 그 시키라는 아이는 그를 되찾기 위해서 온 것이었나. 구세주는 나에게 결정적인 사신이기도 했었구나. 하지만 그것에 후회는 없다. 「그 사람, 어린애야. 언제나 하늘을 보고 있어. 언제나 올바르게 살고 있어.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어디에라도 날아갈 수 있어. 그래───나는, 그가 데려다줬으면 했었어」 눈꺼풀이 뜨겁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는 울고 있다.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정말로 그와 어딘가에 갈 수 있었다면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을까.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이루면 안 되는 꿈이기에 그것은 이렇게도 아름다워서, 나의 눈동자를 적시는 것이다──. ──그것은 이 수년간 내가 꾸었던 단 하나의 꿈(幻想)이었다. 「하지만 코쿠토는 하늘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어. ……하늘을 동경하는 자일수록 하늘에는 가까이 갈 수 없다, 라는 건가. 얄궂은 일이군」 「맞아. 인간은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한가득 가지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 나는 떠있을 뿐이었어. 날지도 못하고 떠있는 것 밖에 하지 못 했어」 눈꺼풀의 뜨거움은 사라졌다. 아마, 이 뒤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겠지. 지금 나를 지배하는 것은, 등골에 퍼지는 이 한기뿐이니까. 「시간을 뺐었군. 이게 마지막인데, 당신은 이 뒤로 어떻게 할 거지? 시키에게 입은 상처라면 내가 치료 해줄 수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 여인은 약간 눈썹을 찡그린 것 같다. 「……그런가. 도주에는 두 종류가 있어. 목적 없는 도주와 목적이 있는 도주. 일반적으로 전자를 부유라고 부르고, 후자를 비행이라고 부르지. 당신의 부감풍경이 어느 쪽일지는 당신 자신이 결정할 일이야. 하지만 만약, 당신이 죄를 의식해서 어느 쪽인가를 고른다면 그것은 잘못된 거라구. 우리들은 등에 진 죄에 의해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길로써 죄를 등에 져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녀는 떠나갔다. 끝까지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내가 택할 결말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는 날 수 없었다. 단지 떠있을 뿐이었으니까. 나는 약하기 때문에 그 사람 말대로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유혹에도 이길 수 없다. 그 때───심장을 꿰뚫리던 순간에 느낀 섬광. 압도적일 정도의 죽음의 격류와 삶의 고동.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아직 그런 단순하고 소중한 것이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것은 죽음.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이 공포. 가지고 있는 온 죽음을 던져서, 삶의 기쁨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지금까지 멸시해왔던 나의 생명이었던 모든 것을 위해서. 하지만 그 날 밤 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이겠지. 그 정도로 선명하며 강렬한 최후는, 아마 더 이상은 바랄 수 없다. 바늘처럼, 검처럼, 벼락처럼 나를 꿰뚫었던 그 죽음은.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그것에 근접하려고 생각한다. 생각은 떠오르지 않지만 나에게는 앞으로 며칠의 기한이 남아있으니까 괜찮다. 게다가 방법만은 이미 정해져있다. 말할 것도 없지만. 나의 최후는 역시 부감에서의 추락사가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감풍경\ 해가 지고, 우리들은 토우코씨의 폐빌딩을 뒤로했다. 시키의 아파트는 이 근처지만 내가 사는 집은 20분 가까이 전철에서 흔들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잠이 부족한지 시키는 위태로운 발걸음을 하고 있지만, 내게 바싹 붙어서 걷고 있다. 「자살은 옳은 것일까, 미키야」 갑자기, 시키는 그런 것을 물어왔다. 「……응, 어떨까. 예를 들면 내가 엄청난 레트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살아있기만 해도 도쿄의 모든 시민들이 죽어버린다고 하자. 내가 죽어서 모두를 구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아마 자살할거야」 「뭐야, 그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예가 될 수 없어」 「괜찮으니까 계속 들어봐.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도쿄 시민 전부를 적으로 돌리고서 살아가겠다는 배짱이 없으니까 자살하는 거야. 그쪽이 편하니까. 일시적인 용기와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면 안 되는 용기. 어느 쪽이 힘든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딴 얘기지만, 죽음은 어리광이라고 생각해. 그것이 어떤 결단 하에 있더라도 말야.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겠지. 그것은 부정할 수 없고, 반론도 할 수 없어. 왜냐하면 나도 약한 인간이니까」 ……하지만 아마 지금 말한 것 같은 상황에서의 자기희생은 옳은 것이니, 그 행위는 영웅으로 평가받겠지. 하지만, 틀리다. 아무리 바르고 훌륭하더라도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들은 아마, 아무리 보기 흉하고 잘못되었더라도 그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꿋꿋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행한 결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아주 용기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어쩐지 대단한 일 같이 느껴져서, 입에 담는 것은 접어두었다. 「……에∼그러니까, 어쨌든 사람 나름이라는 것 아닐까」 정말 어중간한 말로 결론을 내리자, 시키는 의심스럽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하지만, 너는 달라」 마음속의 중얼거림을 들여다본 것처럼 시키는 말했다. 그것은 차가웠지만, 어딘가 열기가 있는 말이었다. 어쩐지 멋 적어져서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큰 거리의 시끄러운 소리가 다가온다. 화려한 불빛과 혼잡함. 북적이는 자동차 라이트와 엔진소리. 넘쳐날 듯 한 인파와 잡다한 소리들. 큰길의 백화점군을 빠져나오면 역은 바로 앞이다. 그때, 시키는 딱 멈춰 섰다. 「미키야, 오늘은 자고가」 「하아? 왜, 갑자기」 괜찮으니까, 라며 시키는 손을 잡아끈다. ……물론 시키의 아파트는 가까우니까 편하긴 하지만 역시 도덕상 자는 것은 꺼려진다. 「괜찮다니까. 시키의 방엔 아무것도 없잖아. 언제나 따분하고. 아니면 뭔가 용무라도 있어?」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말하는 것이니 시키에게 반격의 기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키는 이쪽에 찬스가 있다는 듯, 비난 섞인 눈초리로 반론해왔다. 「스트로베리」 「하아?」 「하겐다즈의 스트로베리 두 개. 네가 전에 사와서 그대로 남아있어. 해치워버려」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네」 맞아맞아. 시키의 집에 가던 도중, 너무나 더워서 사갔던 선물이다. 하지만, 어째서 나는 그런 물건을 사갔던 것일까. 이미 달력의 날짜는 9월이 되려하고 있는데. 뭐어, 그런 사소한 일은 아무래도 좋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시키에게 따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어쩐지 아니꼬운 일이기도 하니 약간만 반격하기로 하자. 시키에겐 그 말을 들으면 짜증을 내면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약점이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코쿠토 미키야의 진심에서 우러난 바람이기도 하지만, 시키는 아직 들어주지 않는다. 「할 수 없지, 오늘은 자고 갈게. 하지만 말야, 시키」 응? 하고 시선을 돌린 시키에게, 나는 진지한 얼굴로 제안했다. 「해치워버려, 는 아니겠지. 그 말투만은 어떻게 좀 해줘. 넌 여자애니까 말이야」 「──────」 여자아이, 란 단어에 반응하는 시키. 시키는 화가 난 듯이 고개를 픽 돌리며 시끄러, 내 맘이잖아, 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俯瞰風景/了 ◇ 그 날은 집에 돌아올 때 큰길을 통해서 오기로 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별일이다 싶을, 작은 변덕이다. 질리도록 보아온 빌딩가를 멍하니 걷고 있자, 얼마 안 있어 사람이 떨어졌다. 그다지 들을 기회가 없는 퍼걱, 하는 소리. 사람이 빌딩에서 떨어져서 죽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아스팔트 위에는 주홍색이 흘러간다. 그 속에서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긴 흑발과. 가느다란, 백색을 연상시키는 가녀린 팔다리. 그리고 형체 없는, 찌부러진 얼굴. 그 일련의 영상은, 낡은 페이지에 끼워진 뒤에, 책 사이에 짓눌려 납작해져버린 꽃잎을 연상시켰다. 그것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졸음은, 역시 현실로 되돌아온 것이겠지. 몰려드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걷고 있자, 탁탁하고 발소리를 내며 아자카가 따라왔다. 「토우코씨, 지금 거, 투신자살이었죠?」 「으응, 그런 것 같은데」……애매하게 대답한다. 정직히 말해,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사자의 결의가 어떤 것이었다고 해도, 자살은 역시 자살로 취급된다. 그녀의 최후의 의지는 비행도 아니고 부유도 아닌, 추락이라는 단어로 매듭지어져 버린다. 그곳에 있는 것은 허무함뿐이다. 흥미가 생길 리 없다. 「작년에는 많았다고 들었지만,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는 걸까요. 하지만 저는 스스로 죽어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르겠어요. 토우코씨는 알겠어요?」 아아, 하고 또 애매하게 끄덕인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본래 있을 수 없는 환상을 바라보듯이 대답했다. 「자살에 이유는 없어. 그저, 오늘은 날지 못했던 것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