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명인간(상) │ │H.F 세인트 저 │ │ │ └─────────────────────────────┘ ┌────────────────────────────┒ │ 작가 소개 2 ┃ ┕━━━━━━━━━━━━━━━━━━━━━━━━━━━━┛ ┌────────────────────────────┒ │ 1 3 ┃ ┕━━━━━━━━━━━━━━━━━━━━━━━━━━━━┛ ┌────────────────────────────┒ │ 2 25 ┃ ┕━━━━━━━━━━━━━━━━━━━━━━━━━━━━┛ ┌────────────────────────────┒ │ 3 59 ┃ ┕━━━━━━━━━━━━━━━━━━━━━━━━━━━━┛ ┌────────────────────────────┒ │ 4 83 ┃ ┕━━━━━━━━━━━━━━━━━━━━━━━━━━━━┛ ┌────────────────────────────┒ │ 5 110 ┃ ┕━━━━━━━━━━━━━━━━━━━━━━━━━━━━┛ ┌────────────────────────────┒ │ 6 134 ┃ ┕━━━━━━━━━━━━━━━━━━━━━━━━━━━━┛ ┌────────────────────────────┒ │ 7 146 ┃ ┕━━━━━━━━━━━━━━━━━━━━━━━━━━━━┛ ┌────────────────────────────┒ │ 8 154 ┃ ┕━━━━━━━━━━━━━━━━━━━━━━━━━━━━┛ ┌────────────────────────────┐ │ 작가 소개 │ └────────────────────────────┘ - H.F.세인트   작가 H.F.세인트는 현재 미국 뉴욕 시에 살고 있으며 <투명 인간>이 작가의 처녀작이다. 투명인간의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H.F세인트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투명인간>은 전문 출판기획사 바다 저작권 회사 편집부에서 번역했다. 바다 저작권 회사는 그밖에도 많은 번역물을 가지고 있으며, 바르고 정확하게 번역하면서도 원작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 │ 1 │ └────────────────────────────┘ 만약 지금 당신이 나를 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지금 나를 볼 수 없으며 앞으로도 역시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아주 지루한 설명이 되겠지만 어쨌든지 그 결과 전체는 꼭 마술처럼 신기하기만 하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이 방에 들어온다면, 백지들이 놓인 책상 앞에 있는 의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방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의 손에도 잡혀 있지 않은 펜 하나가 그 종이 위에서 춤을 추며 이 문장들을 만들어가다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가끔 공중에 멈추는 것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에 매료되든가 아니면 공포에 질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내가 바로 그 펜을 잡고 있는 사람인데, 만약 당신이 나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인다면 당신은 나를 꽉 붙들어서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것만 빼고는 다른 인간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 바로 이 방에 있다는 감각을 만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 의자를 집어들어서 나를 죽도록 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내게는 슬픈 일이 되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할 수도 없다. 내 상태는 물론 인간적 개성이 전혀 없는 데다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괴기하기 때문이다. 내 상태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호기심이란 아주 잔인한 본능인 것이다. 이렇게 사는 인생은 매우 힘든 일이다. 보통 한 군데에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한다. 사실 이 책은 투명인간의 회고록이라기 보다는 투명인간의 모험담이라고 묘사해야 될 것이다. 내게는 나의 유년 시절이라든가, 분명히 당신의 고민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을 내 특이한 사춘기의 특이한 고민 따위를 늘어 놓을 의도는 전혀 없다. 게다가 우리는 지극히도 정상적이었던 나의 지적, 도덕적 성장 과정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토론해야 할 필요도 없다. 앞에서 말한 내 모든 과거들이 지금 내가 말하려고 하는 정말 신나고도 천박한 이 이야기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인간의 존재 조건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어떤 희망의 불을 밝혀 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속담 그대로, 인간들은 상대의 아픈 점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때문에 이 일의 시초 전에 일어났던 모든 일은 당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34년을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왔었다. 물론 그것이 내게는 아주 근사하고 매력적이었던 세월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신은 유가증권 분석가의 회고록이라고 제목이 붙은 책을 읽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간에 그저 평범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던 내 인생도 정의 바로 그 한가운데에서, 큰 일은 아니었지만 기괴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과학적인 실수 때문에 뉴 저지주의 조그맣고 동그란 땅 조각 하나가 완전히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일이 일어났었다. 그것이 내 운명이었는지 하필이면 나는 문제의 바로 그 시간에 바로 그 땅 위에 있었다. 바로 인접한 주위의 물체들과 함께 나는 그 즉시에 변신하고 말았다. 석화된 화석 속에서 원래의 생물체의 구조가, 다른 광물 분자들에 의해서 다시 재구성되는 원리처럼 내 몸도 에너지의 미세한 단위들의 살아 있는 구조에 의해 정확하게 재구성되었던 것이다. 내 몸은 내가 지금껏 살펴보고 판단한 바에 의하면 아주 소소한 차이말고는 전과 하나도 다를 것 없이 기능을 잘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차이를 전혀 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이 일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점이다. 우리 인간들 각 개인이 이파리나 눈의 결정체처럼 각자가 고유하고 특이하고 어쩌고 하는 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람이 잎들을 수많은 세대에 걸쳐서 땅에 흩어 놓는다면, 어떤 때는 그곳에서 각자의 개성의 형이상학적인 안식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하여간에 내가 그 상황에 말려 들어갔었던 사건은 당신이나 나 같은 보통 인간의 개인적인 특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주의 주사위가 불가능하고도 재수없는 곳으로 던져졌던 모양이었다.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 아마도 하나님의 눈은 스패로 지대공 미사일에 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 눈이 가 있었던 곳은 주로 앤 앱스틴과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실크 블라우스가 황홀하게 미끄러지고 있었던 사랑스러운 젖가슴이었다. 나는 청록색의 무늬가 그려진 그 옷 밑의 젖꼭지들을 볼 수 있었고 그녀가 차 안에서 몸을 바깥으로 돌렸을 때에는 블라우스 단추들 사이로 그 황홀한 살결도 볼 수 있었다. 당신이 운명적인 아침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그때, 우리는 뉴욕을 떠나 프린스턴으로 가는 기차 안에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폭풍을 알리는 시커먼 구름들과 사월의 햇빛이 극적으로 차례를 바꾸면서 계속해서 하늘을 덮고 있었던 그 아침은 이 사건에 적당히 알맞는 불길함을 갖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 내가 본 것은 거의 햇빛뿐이었다. 전날 밤 술을 많이 마셨고 잠을 제대로 못 자기는 했지만, 그 빛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꿈 같은 생기처럼 보였고, 그 기분이 곧 머리를 찌르는 두통과 미치도록 잠을 자고 싶은 욕망으로 자라날 것임을 내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내 마음과 육체는 눈부신 봄날의 아침과 앤의 하얗고 매끈한 살결이 나를 고통스럽게까지 만들고 있던 황홀함에 취한 듯한 기분 외에는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통근하는 사람들의 물결과는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낡아서 덜컹대는 그 차 안에 단둘이 있게 되었다. 차의 좌석은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돌려놓을 수 있는 구식의 의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다리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간을 두고 마주보며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 학교의 방학이 시작될 때마다 집으로 돌아가던 그 길고 멋있었던 기차 여행들 이후로 내가 그렇게 앉아 본 적이 처음이라는 그 기억에 대한 연상과 함께, 내가 직장을 떠나서 좀 바보스럽기는 하지만 정말로 근사한 땡땡이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금지된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앤이 왼쪽 팔을 들어 올려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자 그녀의 젖가슴과 옆구리를 덮고 있는 실크 옷이 팽팽해졌다. 나는 생각 없이 오른손을 뻗쳐서 그녀의 옆구리를 젖가슴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쓸어내렸다. 그녀는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말투에는 약간의 짜증과 쾌감이 반짝 엿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무엇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그녀는 뉴욕 타임즈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무릎에 그 신문을 펼쳐놓고 있었고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어떤 관심사에 대해서 내게 설명하고 있었다. 미국 중부 지역의 어느 곳에서 지방 선거구를 재조정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한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곳에는 두 개의 정당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 어쩌면 둘 다인지도 모르겠다 - 파벌 싸움을 일으켰고 한 파가 그곳의 한 소수 민족 세력에게, 만약 그들이 다른 파로부터 무엇인가를 쟁취하기 위해서 그 소수 민족 세력이 선거 구역 재조정을 주장하고 있는 다른 소수 민족 세력을 저지해 준다면 그 일이 반대 당을 돕게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소수 민족 세력에게 더 많은 특혜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그런 복잡한 얘기였다. 그런 소수 민족 세력들과 정당들과 파벌 싸움의 특이한 복합적 관계는 통상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전체 일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우리의 국가적인 차원의 중요한 문제로 발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앤의 말이었다. 내게는 그 말이 한 떼의 늑대들이 서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들렸으며 그때 내게 정치보다 더 지루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사는 없었다. 반면에 앤에게는 정치만이 인간의 사고와 행위의 진정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오직 단 하나의 차원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눈썹을 모으면서, 창 밖으로 지나가는 검은 구름과 함께, 꿈 같고 이해할 수 없는 생기 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맞추어서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나는 그때마다 적당히 성의에 넘치는 목소리로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뜻도 없는 질문들을 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그녀는 점점 생기에 차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아주 예뻤었는데 정치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얼굴의 선이 더 날카롭고 사나워지긴 했었지만 그럴수록 더 특이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머리칼과 언제나 구김살 하나 없이 반듯한 옷 매무새는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하면서도 제 자리에 빈틈 없이 어울렸고 그녀는 신문사 기자라기보다는 저녁 뉴스에 나오는 앵커우먼처럼 보였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무릎 밑에 좁게 구부리고 있던 맨살의 그 긴 다리를 쭉 펴서 내 바로 옆 자리에 기대놓았다. 그녀는 말을 계속하면서 둘째와 셋째 손가락을 같이 붙여서 움직이는 제스쳐를 썼으며, 말 도중에 강조해야 할 특별한 부분에 이르게 될 때마다 그 갸름하면서도 강해 보이는 손가락으로 신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녀의 입술이 다 안다는 듯 하면서도 비꼬는 듯한 미소를 만들었고 내 동의를 구하면서 내 눈을 들여다 보았다. 비록 그녀가 말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지만 내 심장과 마음은 앤, 그녀에 대한 절대적인 관심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 그녀에게는 유머 감각도 있었는데 가끔은 자신에게도 그 유머를 쓸 줄 알았고, 나는 내가 만약 그 감각을 잘만 통과해 가면 그녀로부터 강렬한 정치적 분위기를 씻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신경을 써야 하고 또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화제를 조금씩 바꾸기로 결심했다. 나는 신문의 경제면에 나오는 기사 중에서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질문을 했다. 나는 그 대답이 나한테도 그날의 정치 뉴스보다는 더 흥미로울 것이며 앤이 그 대답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할 것도 알고 있었다. 왜냐 하면 그녀에게 정치만큼 중요한 것을 들라면 바로 자신의 직업이었고 그녀는 최근에 경제부로 옮겨왔던 것이었다. 그 전에는 체육부에 있었는데 주 임무는 프로 야구에 대한 보도였다. 또 그 전의 4년간 예일대학에서의 학창 생활 동안에도, 내 판단에 의한다면 한번도 야구 게임을 관전한 적이 없었고 비즈니스나 경제 쪽과 관련된 정보라고는 하나도 줏어 들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받았던 학교 교육과 타임즈 신문사의 이해할 수 없는 인사 정책의 차이 때문에 우리가 그때 함께 앉아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2주일 전에 나는 어느 저녁 파티에서 그녀의 바로 곁에 앉아 있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이런저런 모임에서 한두 번쯤 소개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아직도 그녀는 꼭 내가 무엇하는 사람인가고 물어 보아야만 했었는데 그녀의 눈부신 외모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에게서 느꼈던 기본적인 관심이란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으로 나는 그녀에게 곧이 곧대로 내 직업을 말해 주었다. 당신이 상대의 눈이 도망갈 구석이나 다른 말 상대를 찾아 방을 샅샅이 찾아 헤메는 것을 보고 싶다면 몰라도, 보통은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직업이 유가증권 분석가라는 것을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교적 목적에서 그 직업은 마치 화학공학 엔지니어라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앤은 내게 뜨거운 관심을 보여 주었었다. 아마도 그녀에게 발령이 난 타임즈 신문사의 새 부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쓸 만한 정보를 갖고 있는 상대와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녀의 약혼자를 화나게 하려는 의도에서 - 사랑의 시초라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도 신비한 것이다 - 그녀는 손을 내 팔에 얹고 그 화려한 미소로써 내 눈을 직시하며 비즈니스계와 경제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그 질문들의 주제가 아마 당신에게는 별로 낭만적이 아닌 것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가 온 관심을 기울여 황홀하게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을 기억할 수 있다. 그녀는 당신이 자진해서 대답을 하고 싶어하게 만들고 또 그 대답들이 질문자를 매혹시키고 있다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자들의 전형적인 질문 수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아름답기만 했었다. 나는 물론 그런 경우에 정상적으로 생겨나는 감정들과 갈망들에 즉시 사로잡혔고 그 다음 주일에는 그 일 외에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이 없었다. 나는 점심 식사나 술자리나 저녁 식사 - 그녀를 데려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가려고 온갖 힘을 다했다. 그녀는 고통스러우리만치 이리저리 잘 피해다녔고, 시간을 그것밖에 낼 수 없었던지 아니면 더 내려는 의도가 없었는지 몰라도 겨우 몇 시간 외에는 몸을 뺄 수가 없다고 했는데 그것이 그녀가 매몰차고 부지런하게 자신의 야망을 쌓아가고 있는 직장 때문인지 아니면 사생활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 성의는 있지만 결코 간섭은 안될 정도의 관심만을 보여주었다. 그녀에게는 친구인지 약혼자인지 아니면 그녀가 자신에게 끔찍하게도 가까운 사람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지칭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고 그녀는 그와 약간의 괴로운 이해 관계 아니면 오해 관계가 있는 것 같았었다. 하여간에 그 당시에 그녀에게는 한마디로 말해서 사귀기에 골치 아픈 면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그녀의 특별한 미모가 더 돋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다가도 언제나 결정적 순간이 되면 일어나서 작별 인사를 하고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면서 그녀의 압도적인 미소에 의해서 완전히 흐물거리게 된 나를 두고 가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내 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아주 드물게 내가 안전하고 사적이라고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가 대강의 내 쪽 방향을 바라보며 확실치 않게 웃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그녀가 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눈부신 관심을 전부 내게 쏟아 주었었다. 그녀는 나한테 수사관처럼 질문을 퍼붓기를 좋아했고 내 대답이 길면 길수록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에 야구에 대한 그 많은 지식을 습득했었던 것처럼 앤은 이번에도 자신의 손이 닿는 한 경제와 비지니스에 대한 지식, 이론, 견해들을 전부 모으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탐욕스러운 질문들을 좋아 했었다. 누구라도 자신이 그 대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받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몇 가지 우선적인 경제 법칙들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요즘 가장 유행하고 있는 견해들, 이류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이론들, 그리고 오직 장식적 매력만 있는 지식들과 자리가 바뀌어져 있다는 것이 가끔 나를 짜증나게 만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의 고용주가 그 외의 다른 접근 방법을 좋아할 것 같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명석하고 쉴 새 없이 야심 만만했던 만큼 그녀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을 빨리 모으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그녀에게 되풀이해서 계속 말해 주었고 그 칭찬은 언제나 그녀를 기쁘게 만들었다. 나로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재빠르고 탐욕스러운 마음, 그녀의 도도함, 그녀의 긴 팔과 다리, 그리고 내 팔 위에 얹어 오는 그녀의 손에 매혹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생각해 낸 질문들을 했고 그녀의 대답을 고통스럽지만 참을 수 있을 만한 관심을 갖고서 들어 주었었다. 나는 그녀의 직장과 야망과 친구들에 대해서 물어 보았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와 함께 사랑을 나누지 않겠느냐고 물어도 보았었다. 가끔 손가락으로 그녀의 팔을 만지면서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했었다. 그녀의 예쁜 입술과 잘 퍼진 엉덩이를 많이 관찰했었다. 그때 차 안에서 나는 오른쪽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들을 펴 가지고 내 옆자리에 놓여 있었던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에 원을 그리고 있었다. 내 손이 그 긴 장딴지를 타고 올라갔다. 엄지를 벌린 그 손으로 그녀의 무릎을 어루만지며 허벅지 바깥을 따라서 올라가게 만들었다. 엄지는 아직도 벌려진 채로 신문 밑을 지나고 리넨 스커트 밑을 지나서 올라갔다. 그녀는 내 손을 피하려고 앉은 채로 몸을 이리저리 비틀다가 그 다리를 도로 끌어 들이고는 내게는 직각이 되게 다른 다리와 꼬아서 앉았다. 그녀의 입술은 놀랄 만큼 단정한 표정을 띄기 시작했다. 어젯밤 얘긴데, 그녀가 말했다. 잘한 일이 아니었어. 서너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아침 속에서 깨어났긴 했지만 어젯밤은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보냈던 밤이었고 결국은 마지막 밤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그 동안 같이 한 점심 식사, 술자리, 저녁 식사, 아부, 애원, 애무, 미소, 그리고 서로를 확인해 보려 했던 것들이 드디어 이스트 강이 내려다 보이는 그녀의 침대에서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말투는 마치 그 동안 우리가 벌여왔던 것처럼 똑같은 전쟁터에서 똑같은 달콤한 전투를 다시 벌이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좌절과 쾌감이 섞인 기분으로 그 말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했다. 뭐가 잘한 일이 아니라는 거야? 나는 다시 시도해 보았다. 피터한테는 공평치 못한 일이니까. 피터가 바로 그녀의 친구인지 약혼자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었다. 지난 몇 년간 그를 조금 알고 지내왔었고 사람이 괜찮아 보이기는 했지만 약간 지루한 타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를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결국 그녀는 피터와 결혼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게는 아직까지 피터를 내 도덕적인 계산에까지 넣어서 생각할 공평한 기회가 없었어. 이 말이 그녀를 화나게 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굳어졌다. 글쎄. 내게는 그럴 기회가 있었어. 만약 당신이 나나 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 당신이 절대적으로 옳아. 내가 얼른 참견을 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 아마 민망해서 그럴 거야. 수줍기도 하고. 이 늙은 심장에서 미친 듯이 솟아나는 감정과 정열로부터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호해주려고 하는 것일 거야. 그 장면에서 나는 검지로 가슴을 똑똑 두들겼다. 앤이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도 있고. 도저히 말릴 수 없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지. 광대의 친근한 외모 밑에 숨어 있는 그 모든 것들. 나한테는 승자의 미소로 생각되던 그 미소를 그녀에게 보냈다. 외모에 대해서 말해 볼까? 그녀가 약간 심술궂게 말했다. 당신의 외모는 은행가에게 어울리는 것 밖에는 없어. 물론 당신이 은행가와 비슷한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 나는 항의했다. 유가증권 분석가인지 뭔지 아냐? 당신은 언제나 그 머저리 같은 줄무늬 양복에다 보수적으로 보이려고 윙팁 구두를 신고 다니면서 말을 더듬으면서 성의 있게 행동하는 척하고, 낯선 사람들에게는 주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척만 하고 있잖아. 한 번만 보면 그 누구도 당신이 그 양복 밑에 권투 선수가 입는 것 같은 헐렁한 팬티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겉에서 보면 당신은 괜찮아. 완벽하게 유쾌하고 온화한 매너에다가 아주 효율적인 인간은 못 되지만 좋은 사람으로 보여. 좋지 못한 부분은 바로 당신의 내부야. 그 광대의 내부가 더 그래. 그녀는 몸을 돌려서 뉴 저지 주가 제공하는 그 음울한 경치를 열심히 바라보았다. 사실은 내가 은행 투자과에 있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서 이 양복을 입는 거야. 어떤 자리에 가면 이 옷이 아주 화려하게 보이기도 해. 사실 나는 언제나 이런 양복을 입으니까. 이런 차림은 아주 편하고 오래가고 아직까지 당신 외에 그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어. 당신은 사람들과의 교제 범위를 좀 넓혀야 해. 하여간에 당신은 유가증권 분석가와는 다른... 부서의 은행가처럼 보여. 그녀는 중요한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데서 짜증이 났는지 입술을 꼭 다물었다. 어저께 내게 말해준 것 있잖아... 상업적... 당신은 상업 은행가처럼 보여... 글래스-스티걸 법 조항에 의하면... 잘 기억했어. 그녀를 칭찬해 주었다. 그게 몇년도였지? 1938년. 맞았어. 당신은 상업 은행가에 더 가까운 분위기를 갖고 있어. 아니면 할머니들에게 양심 없이 아주 낮은 금리로 돈을 예금하게 만들려고 토스터와 전기 담요의 선물 공세를 하는 신용금고회사의 직원 같아. 글쎄, 나는 화제를 돌리고 싶어. 내게는 당신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이는데? 그녀는 경멸의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돌렸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심각하게 말해서 당신은 피터에게 공평해야 하는 만큼 자신에게도 공평해야 해. 내 말 뜻을 나도 모르겠지만 그 말이 그녀를 즐겁게 한 것은 확실했다. 진짜 문제는 피터가 아니야. 그녀가 두서 없이 말을 시작했다. 믿음 위에서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 물론이지. 나는 그녀에게 우선 동조하면서 내가 차지한 현재의 유리한 상황을 조금 더 세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요새 피터는 뭐하고 지내지? 베씨 오스틴인가 하는 그 여자하고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는 것 아냐? 아마 그럴 거야. 피터는 원래 그런 식이니까.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을 멈추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덧붙였다. 내 인생의 반 동안을 피터를 알고 지내왔어. 당신을 안 지는 2주일밖에 안 됐지. 정말 나는 당신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는 셈이야. 사실은 일주일에 더 가까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말했다. 우리가 실제로 안 지는 2년이나 되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한 것은 겨우 그때 - 그건 그렇고,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나는 그 동안에 당신 외에는 다른 것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었어. 나는 당신한테 완전히 빠진 모양이야. 내가 들어갈 틈을 주지도 않고 이렇게 냉정하고 비합리적으로 나를 대하는 데도 말이야. 그것도 그렇지만, 바로 전에 관찰한 경우를 빼고는 처음으로 그녀가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말했다. 당신은 유태인이 아니잖아. 그건 맞는 얘기야. 나는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서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유태인이 아니라는 것이 더 이상의 약점은 아니야. 물론 유태인이 아니기 때문에 최고 명문 학교에 입학하는 데 지장은 좀 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직종들이 순종 유태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어. 그리고 당신이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업 은행계 쪽에서는 언제라도 나를 받아줄 거야 - 내가 한 말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 하지만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야. 웃음거리로 만들 의도는 없어. 나는 단지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알고 싶을 뿐이야. 당신도 침례교인은 아니잖아? 당신은 침례교인이야? 그녀는 진짜 실망에 빠진 것처럼 물었다. 만약에 비유태인과 짝을 지을 경우를 대비해서 아마 그녀는 영국 성공회 신자라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나는 침례교인도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당신이 같은 교인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글쎄, 그녀는 차가운 도덕적 우월감이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경우에 있어서는 우연하게도 상관하는 편이야.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피터도 유태인이 아니잖아? 내가 물었다. 그건 내 요점이 아니야. 그녀가 대답했는데 내 질문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왜 계속해서 피터에 대해서 얘기를 늘어놓는지 모르겠어. 그에 대한 고정 관념이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 자리에서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그녀의 가슴을 덮고 있던 블라우스가 다시 팽팽해졌다. 그녀는 나를 경멸하는 표정으로 건너다 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토론의 원칙들을 싹 무시해버리고 변덕을 피울 때마다 나는 언제나 황홀해졌다. 내게 고정 관념이란 것은 없어. 하지만 당신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완전히 당신 마음에 달린 거고 - 또 다른 문제가 있어. 여자의 가슴을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은 아주 무례한 일이야. 그래? 내가 쳐다보는 게 그렇게 표시가 나? 그런 경우에는 기분이 좋지 않을까? 보통 인간이라면 자신의 젖가슴보다는 좀더 의미가 있는 것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더 좋아할 거야. 하여간에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반쯤 입을 벌려서 하품을 한 뒤에 나른한 듯이 팔을 앞으로 뻗쳐 올리고 어깨를 뒤로 쭉 벌렸는데 그러는 바람에 젖가슴이 앞으로 나와 블라우스 밑에 찰싹 달라붙었고 젖꼭지는 마치 고통에서의 안식을 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어섰다. 글쎄, 당신의 정신적인 가치들이 아름답긴 하지만 눈으로 보기는 힘들거든. 사실 당신의 젖가슴은 당신이 가진 그 어떤 가치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표현을 내게 대표해 주고 있는 거야 - 우스운 소리 좀 작작해, 닉. 그녀는 좀더 정답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더 경계하는 눈빛이 되어 말을 덧붙였다. 오늘 할 일에 대해서나 얘기해. 그래, 오늘. 나는 그녀의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서 명랑하게 말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프린스턴에서 차를 한 대 빌려가지고 마이크로매그네틱스회사에 왔다는 인사로 얼굴만 빨리 비치고 나서 베이스킹 리지에 가는 거야. 거기에 사는 내 친구가 유럽에 일 년간 가 있는데 그 아름다운 집을 내가 써도 좋다고 했어. 날씨가 좋으면 우리만의 완벽한 봄날을 함께 즐길 수도 있을 거야. 만약에 날씨가 좋지 않으면 - 나는 이 마이크로매그네틱스회사에서 일어날 일을 기대하고 있는 중이야. 보통 일보다 훨씬 더 흥미 있을 것 같아. 마이크로매그네틱스란 지금까지의 내 철저한 조사에서 나온 판단에 의한다면 프린스턴 시 교외에 있는 작은 회사로서 핵 융합 발전에 필요한 자기(磁氣)의 구성분에 대해서 연구하는 곳이었다. 그 회사의 주자산이란 그 회사의 창립자이자 사장의 공로가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버나드 왝스 박사라는 사람의 분자물리학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가 얻은 굉장한 평판 덕분에 정부의 연구 보조 기금을 몇 백만 달러나 따낸 회사였다. 그때까지 그 회사가 이룬 오직 한 가지의 실적은 그 원조금을 여기저기 작은 일에 쓴 것밖에는 없고, 내 견해로는 그 회사가 인간 사회에 처음으로 무엇인가 기여하는 일을 한 것이란 내가 앤을 꼬여내어 그 시골로 데려갈 수 있었던 기회를 만들어 준 것뿐이었다. 마이크로매그네틱스 회사는 그 지난 주에 EMF라는 것의 발견인지 발명인지를 해냈다고 이 냉담한 외부 세계에 공식 발표를 했는데, 마치 레이저 광선이 보통의 정상적인 빛의 파장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듯이 그 발명품 역시 보통의 정상적인 자장에 있어서 아주 새로운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는 물론 EMF의 궁극적인 가치에 달린 것이기는 하지만 실패작일 수도 있었고, 이 EMF가 핵 융합 발전이나 다른 곳에 사용 가치가 있을지는 그 공식 발표의 대략적인 설명 외에는 더 이상의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그 발표란 것은 이러했다. 뉴 저지 주, 프린스턴의 과학자들은 오늘 혁명적인 진보에 대한 발표를 했다... 또한 거기에서는 그것이 중대한 발견, 그리고 근원지라고 EMF의 성격을 설명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그런 식으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감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기자 회견이 있을 예정이었고 일종의 실험도 있다고 해서 나는 그것이야말로 앤이 정말로 다루어야 하는 기사감이라고 설득을 해 놓았고 내 사무실에는 하루 종일 시외에 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여기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니면 하던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유가증권 분석가가 하는 일이란 사업체를 조사해 보고 그 회사의 자산과 사업의 종류에 대해서 알아내며, 다른 경쟁 회사들은 어떻게 해 나가고 있나, 그 사업체가 사업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파는 채권이나 주식에 혹시 이상한 점이라도 있지 않나 하고 샅샅이 들여다 보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그는 사람들이 그 회사의 주식이나 채권을 얼마의 가격으로 사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직업에 대해서 추상적으로나마 좋게 말할 수 있는 점은 바로 그의 분석이, 각 개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기업이 그것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으로 자금 분배를 할당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데 있다. 이 직업에 대한 반대 의견은 물론 앤이 나보다 훨씬 정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설명에 의한다면, 바로 자본주의라는 것은 지루하고 악한 것이며 그 자본주의가 잘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도 역시 지루하고 악하기 마련이라는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실제로 나 역시 어떤 악의 표식을 이 직업에서 본 적은 없지만 약간은 지루한 직업이라고 자주 생각하고 있었다. 유가증권 분석가가 할 수 있는 다른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설명으로 당신을 더 이상 귀찮게 할 마음은 없지만 내 직업은 다른 평균 월급장이보다는 약간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고 화려함에 있어서는 조금 뒤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만 일해도 되고 무엇보다도 아무 것도 팔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라는 점은 꼭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내 파트너들과 만족하게 지내는 한 나는 거의 독립된 자유를 누리고 있었고, 내 전체 업무 시간의 20% 정도를 즐겁게 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아는 어느 직종의 평균보다도 높은 것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느라고 나는 에너지 산업을 담당하는 일을 맡고 있었고 당시에는 꽤 괜찮은 일이었었다. 바로 그때는 에너지 위기와 혼란을 몇 년 동안 겪은 뒤였고 막대한 돈이 그 산업에서 생겨났다 없어졌다 했기 때문에 내 조사와 의견을 계속 필요로 하는 곳이 상당히 많았었다. 약간 장난기가 섞인 일이긴 했지만 나는 대체 에너지라고 알려진 옆길로 새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때 아주 유행이었다. 그 일에는 그다지 시간도 걸리지 않았었다. 왜냐 하면 그 분야에는 도대체 분석을 할 만한 실제적인 유가증권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몇 주마다 한 번씩 누군가가 물을 수소로 전환시킨다거나 빙산을 캔사스 주로 유도해서 내려오게 한다거나 아니면 태양열을 이용해서 물을 언덕 위로 거꾸로 흘러 올라가게 할 방법이 있다고 발표를 하는 것이다. 가끔 가다 그 중 하나는 과학적으로 가능한 것도 있는데 물론 우리는 가장 낙관적인 전제하에서 간단히 숫자들만 늘어놓아 보고서도 그 계획이 경제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아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이 그 당시에는 아주 유행처럼 번졌었기 때문에 나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내 전문가적 의견을 사고 싶다는 전화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 일 중의 하나가 잘 되어 간다면 나 역시 한 몫 잡을 수 있다는 멀긴 하지만 사람을 애태우게 하는 그런 희망이 언제나 있었다. 분명히 확신하지만 그날 나는 마이크로매그네틱스 회사에 대한 어떤 특별한 희망도 갖고 있지 않았었다. 내 희망이란 어떻게 하면 앤과 함께 그 일에서 빨리 벗어나 내 파트너들이 허락해 줄 접대비의 한도 내에서 가장 비싼 포도주와 근사한 점심을 먹고서 전원과 냇물이 보이는 베이스킹 리지의 한 방에서 그녀와 정사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었다. 처음에 이 계획을 구상했을 때 나는 앤과 과연 정사를 나눌 수 있다는 확신은 갖고 있지 않았었지만 어젯밤 이래로 나는 이번 봄, 아니 그 어떤 봄 중에서도 가장 근사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겠다고 거의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어리둥절해져서 그녀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마이크로매그네틱스 회사가 그렇게 흥미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한 가지 이유는 뭔가 하면, 바로 당신이 내게 그럴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야. 맞아. 분명히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을 거야. 분명히 재미있을 거야.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한 주된 이유는 당신을 야외로 끌어내려는 데 있었어. 그녀는 매정하게 몸을 또 돌려서 창 밖을 내다 보았는데 거기로는 뉴 저지 주의 맨 끝에서 또 다른 끝으로 지나가는 기차길 옆에 서 있는 다 썩어가는 공장 건물들의 파노라마가 이어지고 있었고 가끔 보이는 환한 색으로 칠해진 정유 기계들이 모여 있는 모습만이 우리의 눈에 안식을 약간 제공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내 주된 의도는 당신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서 봄날의 대지 냄새도 맡게 하고 뉴 저지의 아케이디아 같은 낙원의 맛도 보게 해 주고 싶었을 뿐이었어. 호강을 시켜주려고. 마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이유 중에는 그곳에는 정치적 차원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야. 분명히 강아지와 망아지 쇼 같을 마이크로매그네틱스 회사의 기자 회견이 정치적 차원을 갖고 있다니까 진심으로 앤을 위해서 기쁘게 생각하긴 했지만 도대체 뭐가 정치적이라는 것인지 몰라서 얼떨떨해지고 말았다. 대체 에너지가 그렇다는 말이야? 최소한의 노력을 시도해 보았다. 화석 연료 등등으로부터의 독립을 얻게 되는 해방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마 정치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겠지... 환경적인 이점과 등등... 나는 분명치 않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덧붙였다. 절대로 대체 에너지가 아니야. 그녀가 약간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그것은 핵 발전이야. 대체란 단어에 반대되는 핵 발전 이란 단어는 아주 나쁜 말이다. 나도 그 정도는 정치로부터 배워서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것이 당신이 뜻하는 발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실제의 핵 융합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거야.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연구한 것들은 핵 융합의 자기 구성분하고만 연관되어 있었고 당신의 환경 보호 운동가 친구들이 반대하는 것처럼 오염이라든가 다른 나쁜 것들은 하나도 없었어. 실제로 당신의 견해에서 본다면 그건 아주 이상적인 에너지원이야. 우선, 아무도 그게 잘 이루어지게 할 수 없다는 한 가지만 봐도... 당신이 지금 이 문제를 들고 나오긴 했지만 공식 발표에 핵 융합에 대해서 실제로 언급한 대목은 없었어... 하여간에 내 생각으로는 그건 단지 자기가 들어 있는 병을 살짝 한 번 더 비튼 것에 불과한 것 같고, 당신은 확실히 그런 데에는 아무런 반대도 - 어쨌거나 전부 핵 문제야.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은 이 지구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상대로 행해지는 범죄야. 만약에 우리가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대신 인간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에 수응해주는 정부를 갖고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중독시키는 대신에 태양으로부터 직접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런 과학 기술이 오늘날 존재하고 있거든. 그녀의 눈은 가느스름하게 좁혀졌고 그 아름다운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서 굳은 도덕적 결의를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내가 또 그녀를 짜증나게 한 모양이었다. 토론의 차원을 과학 기술적인 면에만 제한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존재하는 과학을 갖고서도 당신은 현재 한 시간당 1킬로와트의 동력에 대해 우리가 내고 있는 6센트에서 12센트 사이의 전기료 대신에 아마 50센트에서 1달러 정도는 내야 할 거야. 비결정체 실리콘을 오늘날 존재하는 과학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좀 다르지. 그 경우에는 전환 효율이 실제 생산에 있어서 최소한 7%는 되어야... 만약이 이것들이 당신에게 어울리는 전환 효율이니 실제 생산이니 하는 따위들이 아니라면, 그녀는 비양대는 어조로 내 말을 잘랐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대기업들이 이런 잘못된 결정들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이 정부 밑에서는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당신이 말하는 것의 심각성을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나는 동조하는 어조로 대답을 했는데. 왜냐 하면 어떤 토론이 애매모호한 주제에 대한 것이라면 그 토론 때문에 어떤 순간적인 재미를 얻는다 쳐도, 정치뿐만 아니라 무엇에 대해서라도 토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의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런 토론에서는 배울 것은 극히 적고 상대방을 설복시킨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신 말이 아마 맞을 거야. 나는 말을 계속했다. 물론 진짜 질문은 그들이 이 일에 드는 비용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데 있어. 그건 실제로는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불과하고 _ 진짜 질문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가 이 시장 경제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서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에 맡겨야 하는 것인지에 있다고 생각해. 나는 그녀가 단순히 수사학적으로 화를 내고 있는 정도를 떠나서 정말로 화를 내고 있지 않나 하고 근심이 되었다. 그녀의 분위기는 꼭 날씨처럼 불확실했다. 그건 그렇고, 당신한테 저널지에 난 기사에 대해서 물어 볼 작정이었어. 타임즈 기자들이 분명히 쿠바의 군사 고문관과 함께 잡혔다는 것 같던데? 타임즈 사는 이디오피아에 그런 기자 훈련 캠프들을 갖고 있었던 모양인데, 당신이 내게 말해줄 수 있을 - 놀리지 마! 그녀는 아주 사무적인 어조와 즐거운 미소로 말했다. 내가 알아차린 바에 의하면 우리가 정치적인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가끔 정치에 대해서 거품을 물고서 비난하면 기분이 정말로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그 대체 에너지원에 드는 비용에 대해서 알고 싶어. 나한테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 당신 머리에 들어 있는 숫자들은 정말 놀랍다니까. 그녀는 다른 생각이 떠오른 듯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니, 그 수요와 공급 선에 대한 것을 다시 좀 얘기해 줘. 그게 알고 싶어. 무엇이건 간에 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나는 기뻤다. 인간이 자신의 이기적인 관심사와 인간 전체에 대해서 봉사한다는 기분을 동시에 맛보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아마 나는 타임즈사에서 일하는 그 누구에게 수요와 공급에 대한 기초적인 관념을 심어주어야 하는 인간적인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백지 노트를 내 서류 가방에서 꺼낸 다음 그녀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처음에는 노트를 내 다리에 얹었다가 그녀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다음 종이 위에 그 낯익은 좌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 이 축은 어떤 상품의 가격을 표시하는 것이고 이것은 생산된 상품의 양을 표시하는 거야. 이 둘 다 - 당신이 여기에 그리는 것이 모든 상품이야? 아니면 어떤 특정한 상품을 말하는 거야? 이건 그저 예에 불과한 것인데... 즉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상품이라고 해야겠지. 어떤 특정한 상품이 어떤 특정한 시기에 있을 때 거기에는 특정한 수요의 곡선과 특정한 공급의 곡선이 있게 되어 있어. 당신이 묻는 게 그거야? 무슨 종류의 상품이야? 정확히 말해서 상품이란 게 도대체 뭘 말하는 거지? 당신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줬으면 좋겠어. 어떤 상품이라도 마찬가지야. 용역도 마찬가지이고. 아무거나 최소한 한 사람이 원하기만 한다면 상품인 거야. 그리고 누군가가 그걸 제공할 수 있어야 하겠지. 자동차.밀.신문.발레 레슨.권총.사랑의 시. 내 요점은 어떤 주어진 가격하에서는 몇 가지 관련된 공급의 수준이 있게 된다는 말이야. 사람들이 그 가격에 팔고 싶은 상품이나 용역이 있을 거라는 뜻이야. 끝에 가서는 어떻게 되지? 끝에 가서 어떻게 되다니? 나는 무슨 말인지 얼른 정신을 차려서 생각을 해 보았다.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지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나는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쓸면서 점점 그녀의 파란 리넨 치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손을 모른 척하고서 자기의 무릎 위에 놓인 곡선들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주의를 집중시키고 어려운 질문들을 하지 마.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맨 처음의 곡선 밑에 한 쌍의 다른 좌표와 곡선을 하나 더 그었다. 내가 지금 따로 그리기 시작한 이 수요 곡선은 공급 곡선과 같은 원칙에 입각한 것이지만 다른 쪽으로 구부러지지. 언제나 그래? 한참 생각하게 되면 분명히 그 곡선이 다른 곳으로 구부러지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있지만 그런 경우에 대해서 꼭 설명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하는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경제원론 교과서를 대충 빨리 읽고 여기에 대해서 복습을 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언제나 그렇게 돼. 나는 이 설명들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의 왼손을 그녀의 치마 밑에 집어넣고 손가락을 그녀의 허벅지 몇 센티 위로 올려보냈다. 그녀의 다리는 내 손을 환영하기 위해서 일 인치의 몇 분의 일 가량을 벌렸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더니 더 이상 그쪽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꼭 붙잡았다. 실제로 이 수요 곡선과 함께 이 축도 주어진 가격으로 팔릴 양을 표시하는 거야. 아직도 연필을 잡은 채로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내려온 머리칼을 오른손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로 몸을 수그려서 귀에 키스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무릎 위에 놓인 그 종이를 검토하면서도 약간 몸을 떨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녀는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것처럼 말했던 것 같다. 어떻게 이 곡선을 계속 내려가지 않게 유지시키느냐 하는 거야. 그리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나는 엎드려서 두번째의 곡선을 첫번째의 위에다 커다랗게 겹쳐서 다시 그렸다. 그녀의 목덜미에다도 다시 키스를 했다. 그녀의 어깨가 슬몃 올라왔고 머리는 천천히 비트는 듯한 동작으로써 뒤로 젖혀졌다. 내 손을 꽉 잡고 있었던 그녀의 손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나는 몸을 구부려서 이번에는 입에 키스했다. 그녀가 입을 벌렸고 우리의 혀들은 서로 만났다. 그녀가 내 머리를 잡아서 자기에게로 잡아당겼다. 우리가 의자 위에서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도록 몸을 비튼 바람에 우리의 다리들이 다 엉키고 말았다. 나는 손가락을 쫙 펴서 그녀의 옆구리를 어루만졌다. 엄지로 그녀의 젖가슴을 눌러 보았다. 그녀의 가슴을 안으니까 그녀의 호흡에 맞추어 가슴이 무겁게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것과 심장이 내 손바닥을 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의 입과 목덜미와 눈등에 키스하는 동안 나는 손을 블라우스 안에 집어넣어 단추를 하나 끌렀다. 딱딱해진 젖꼭지가 처음에는 손가락에, 나중에는 손바닥에 느껴져 왔다.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눌러보았다. 블라우스의 나머지 단추들을 풀은 다음에 두 손으로 그녀의 상체를 어루만져 보았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는 그녀의 딱딱한 젖꼭지에 키스했다. 그녀는 등을 활처럼 휘고는 젖가슴을 내게로 밀어 내었다. 우리가 움직이고 있었던 그 공간은 정말로 불편했다. 의자의 길이는 너무 짧았고 사이는 너무 좁았다. 나의 한쪽 다리는 바닥에 대고 다른 하나는 앤 옆의 의자에 올려놓아서 반쯤 선 상태가 될 때까지 몸을 뒤틀었다. 손으로는 그녀의 매끄러운 등을 쓰다듬으면서 그녀와의 입맞춤을 계속했다. 나는 그 차 안에서 그녀의 벗은 젖가슴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었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내 넥타이를 풀려고 했었지만 참을성 없이 마음을 바꾸어 그것을 내버려 두고 맨 윗단추만 빼놓고 셔츠의 나머지 단추들을 다 풀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을 셔츠 밑으로 집어넣어서 내 바지 안에서 셔츠를 빼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가슴과 옆구리와 등의 오목한 부분을 만지고 있었다. 내 손 하나가 그녀의 매끄러운 배를 지나가서 그녀의 팬티에 당도했다. 그녀는 손이 지나갈 수 있도록 숨을 들이쉬었다. 내 손가락에 부드러운 음모가 닿았다. 손이 거기에 닿자 그녀가 하체를 앞으로 밀어내는 것이 느껴져 왔다. 그녀는 자기의 머리가 창문에 기대지도록 몸을 의자 쪽으로 눕힌 다음 옆으로 더 틀었는데 그러는 바람에 그녀의 팬티 속에 있던 내 손이 꺾어질 뻔했다. 이 좁은 자리에서 서로의 위치를 잘 정돈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약간의 어려움과 함께 나는 간신히 손을 빼어 우리가 서로 마주 보면서 의자 사이에 설 수 있도록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그녀를 내 쪽으로 끌어 당기는 동안에 그녀는 내 셔츠를 열어서 가슴이 다 드러나게 한 다음 팔로 내 상체를 안았다. 그녀의 젖가슴이 내 피부에 느껴져 왔다. 우리는 키스했다. 나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내 허벅지를 대면서 몸을 비틀었다. 그녀의 몸을 반쯤 놓아주고 나서 나는 그녀의 치맛단 밑으로 손을 넣어 허벅지 안쪽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때 그녀는 창문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내가 벌린 손가락과 바닥으로 그녀의 다리를 세게 문지르자 그녀의 얇고 촉촉한 팬티의 감촉을 전부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다리가 벌려지고 하체가 내 손 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다른 손의 도움을 받아서 나는 두 엄지 손가락으로 그녀 팬티를 잡고서 그녀의 무릎까지 내리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그 길다란 다리를 하나 팬티에서 빼고는 그 발가락으로 다른 발에 걸린 팬티를 완전히 빼내어 발 밑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부드럽게 내 손가락을 그녀에게 갖다 댔다. 그녀가 내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기대했었던 대로 권투선수용 팬티가 나오자 그것도 역시 벗겨서 내가 발기한 상태에서 완전히 나체로 만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독자인 당신에게 사과 - 아니 경고를 해야 할 의무를 느끼고 있다. 모든 포르노 소설들이 기차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을 하나씩은 꼭 묘사하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기차 안에서의 그 모험 다음에 무엇이 나오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당신이 잘못된 힌트를 받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오지 않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도 있다. 정말 서글프게 고백하는 바이지만 포르노 소설에서와 같이 점점 많아지는 숫자의 참여자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점점 빈번해지고 점점 체조 선수들의 동작을 닮아가는 성적인 만남들이 연이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금의 서글픈 내 형편 - 그것은 당신이 독자로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주역인 나에게는 더욱 더 슬픈 일일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내 형편으로는 성적인 만남이 상대적으로 너무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보이지 않게 된 그날 이전의 내 생활의 도덕적인 면에 대해서 그릇된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것은 내 일상적인 한 전형적인 장면은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그날 이전에는 절대로 공공 장소에서 아름다운 반나체의 여자와 나 역시 반나체로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광기에 빠져 본 적이 없었다. 만약에 또 다른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쳐도 어차피 그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날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독자 당신은 아마도 내가 지금의 그 사건에 대해 얘기를 늘어놓는 데 대한 설명이나 사과를 해야 한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나는 누구에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사건 자체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얘기를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아주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보통 일상의 보통 기분에서도 나는 앤과 나 같은 성인들이 그때 벌인 행위에 대해서 열심히 도덕적으로 옹호해 주고 싶은 그런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의 그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기분이나 성적인 표현을 공공 장소에서 필요 이상으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나는 절대로 노출증 환자가 아니지만 그때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그것은 정말 헛소리 같은 자랑이 될 것이다. 나는 그날 우리 둘이 무엇에 씌웠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하긴 우리가 무엇에 씌웠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해야 말이 맞겠지만, 그것이 어떤 도덕적인 가책이나 정상적인 자제심이 아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왜 그날 우리가 반나체로 그 기차 안에 서서 성적인 무아경에 빠진 채로 서로의 은밀한 부분들을 잡고서 서로의 입 속에 혀를 집어넣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 차 안에 우리는 확실히 단둘이만 있었고 뉴욕을 떠난 이래로 차장을 딱 한 번 본 것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고 있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도 의외로 강렬했었던 모양이었다. 또한 그 전날 밤 우리가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는 사실도 그 일에 책임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그때까지도 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앤을 의자 바닥으로 밀었다. 그녀가 몸을 펼 수 있는 정도로 넓은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다시 창문에 어깨와 머리를 기대고 반쯤 쭈그리고 앉은 자세로 눕게 되었다. 그녀의 치마는 허리까지 올려져 있었고 다리는 벌려진 상태에서 하나는 의자 밑 바닥에 집어넣고 있었으며 다른 하나는 통로 쪽 팔걸이 위에 올려놓은 형편이었다. 나는 그녀 위에 몸을 수그렸다. 그녀는 내 엉덩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잠시 그 순간 우리가 좀더 프라이버시를 느낄 수 있고 좀 더 편하고 안락하게 즐길 수 있는 화장실로 그녀를 데려갈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마 앤도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도 똑같은 계산을 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차에는 아무도 없었고 누가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는데 있었다. 그리고 누가 들어온다 해도 우리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대수랴 싶었던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고통스럽도록 달콤한 순간을 얼른 더 확고한 환희의 순간 속으로 밀어넣는 일이었다. 하지만 앤의 몸 위로 내 몸을 굽히던 바로 그 순간에 기차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기 시작했고 나는 당황해서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내게 처음으로 떠오른 것은 우리가 프린스턴 역에 도착했다는 생각이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거기는 프린스턴 역이 아니었다. 그곳은 아무 곳도 아니었다. 내 말 뜻은 그 기차가 서야 하는 역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사건 자체는 사실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는데 당신도 그런 기차를 한 번이라도 타 보았으면 알 것이다. 국내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차는 철로의 물질적인 한계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제멋대로 움직이고 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차는 이유도 없이 수수께끼처럼 속력을 갑자기 내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고 역의 위치나 예정된 시간표와는 무관하게 예측할 수 없는 간격을 두고 서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차가 완전히 서게 되면 완전히 제멋대로 오래 멈추는데 어떤 때는 몇 초에서 심하면 몇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철도 종사자들은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있다 하더라도 절대로 승객에게 얘기해 주는 법이 없다. 그러다가 기차는 신비하게 앞으로 다시 전진해 나가는 것이다. 보통 때라면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그 갑작스러운 기차의 정지를 아주 환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에서 그러기가 힘들었던 이유는 우리가 탄 기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다가 낯선 정거장의 바로 한 가운데에서 갑자기 정지했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플랫홈의 바로 바깥쪽 선로에 서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행히도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다음에 오는 지방선 열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그들이 지방선 열차 대신 이 기차를 타게 되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제발 그게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최소한 이 차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기에는 너무도 기막힌 자리에 있었고, 일이 그렇게 되느라고 우리가 탄 차량의 바로 그 유리창이 급격하면서도 완전하게 정지한 곳은 중년을 거의 넘긴 유복해 보이는 세 부인들의 바로 앞이었다. 그 자리는 그 부인들로 하여금 앤이 의자 위에서 벌거벗은 젖가슴을 내보인 채로 네 활개를 벌리고 누워 있는 것과 내가 발기한 채로 그녀의 위에서 떨고 있는 광경이 눈에 아주 잘 들어오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 사이를 막고 있던 유리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손을 내밀어서 우리를 만질 수도 있는 거리였다. 물론 그들이 우리를 만져보고 싶어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나도 그들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었지만 그 사실이 내게 어떤 마음의 위로를 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좀 뚱뚱한 몸집에다 자신들의 나이와 그 시골역에 어울리는 옷차림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거동은 아주 엄숙했다. 그들이 남쪽으로 향하는 플랫폼에 서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우리는 그들이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한 중간쯤에서 살면서 두 도시 중 하나에서 하루를 보내려고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들은 우리를 마주 보면서 나란히 서 있었다. 가운데의 부인은 손에다 뜨개질감을 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위치로 보아 세 사람은 그 뜨개질감 위에 몸을 구부리고 무엇인가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단순하지만 생생한 그림이 그들 앞에 갑자기 끌려 나오게 되자 그들의 눈길이 우리에게 돌려지더니만 커다래지고 말았다. 그들 모두의 입은 즉시 놀람과 견책을 뜻하면서 소리도 나오지 않는 조그만 O자로 벌려졌다. 내 기분은 말할 수 없이 불편해졌다. 물론 불편함의 성격이 매우 틀리겠지만 그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내 입도 그들처럼 놀람의 조그만 O자가 되었든지 아니면 그와 비슷한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음이 분명한 것이 앤이 나를 올려다보더니 그 다음에는 내 엉덩이에서 손을 내려놓고 나서 몸을 앉는 자세로 고친 다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한 순간 그 엄격한 세 명의 안색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머리를 뒤로 기울여서 머리카락이 그녀의 옆 얼굴에 떨어지도록 젖혀서 반쯤 가려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내 쪽을 향해서 몸을 돌렸다. 나는 공포와 혼란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 바지를 얼른 걸치고 단추를 채울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상태보다도 더 우스꽝스럽고 수치스럽게 생각되었다. 나는 내 발기된 욕망이 시들어가는 그 민망한 동안에도 앞으로 닥쳐올 순간에는 더 창피하고 민망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그 일이 생긴 그 즉시에 앤을 손으로 잡고 차의 다른쪽 자리로 끌고 가서 우리의 옷 매무새와 정신 매무새를 챙겼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앤은 나와는 아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오직 어린 소녀만이 지을 수 있는, 그런 장난에 넘치는 위악적인 미소를 띄어 보이면서 그녀는 천천히 입술을 빨더니만 그녀의 자리에서 내게로 기대오면서 달콤하게 나를 키스했다. 그걸 보고 있던 세 숙녀들의 조그만 O자들이 점점 커졌다. 앤은 한 인치가량 물러나더니 다시 한 번 입술을 빨았다. 그리고 내게 다시 키스했다. 그리고는 일부러 그녀의 입을 조그만 O자로 만들어서 내게로 다가왔다. 자비롭게도 그때 금속의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갑작스럽게 차가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왔고 기차는 그 세 명의 음습한 부인들로부터 우리를 떼어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들로부터 멀어져 갔고 가운데 있던 그 부인은 분노에 타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 보았다. 얼굴을 매섭게 찡그린 채로 한 손가락에 실을 걸어 사납게 잡아채면서 뜨게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내 운명이 이 교외에 사는 근엄한 얼굴들에 의해 재판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들이 내게 무슨 벌이 내리도록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의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들이 알았다면 아주 만족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 중의 한 부인이 혹시 나를 아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아니면 몇 주일, 몇 달 후에 디너 파티 같은 데서 그녀가 내 옆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나 아닐까. 그 생각을 하니 속이 다 울렁거려왔다. 하여간에 믿어지지 않을 만큼 멍청하게도 나는 적대적인 관중의 앞에서 라이브 섹스 쇼의 한 부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노출된 것같이 불안하고 창피했다. 하지만 앤의 입과 손이 내 전신을 만져오고 그녀의 입술과 혀가 나를 애무하는 것을 느끼자 새로운 환희가 내 불안과 창피함과 섞인 채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 위로 몸을 굽혀서 도로 의자에 눕혔다. 그녀의 전신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녀에게 다시 키스를 하면서 그녀의 입에 내 혀를 다시 밀어넣었다. 앤은 나를 꼭 잡고 의자 위에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이번의 방해자는 차의 맨 뒤쪽에 있는 문이 쾅하고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바퀴들과 철로의 금속성 소리로써 우리를 덮쳐 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서 의자의 뒤쪽으로 엿보았다. 차장은 115킬로 쯤 되는 뚱뚱한 몸집에다 크고 검은 제복을 입은 사나이로서 천천히 위엄있게 뒤쪽에서부터 통로를 걸어오고 있었다. 이것은 저번의 일보다 더 민망한 일이었던 것이 이번에는 우리를 식물관에 정식으로 진열해 놓은 것처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유리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종의 경고라도 있었고 가릴 만한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미친 듯이 할 수 있는 만큼 우리의 몸을 가리기 시작했다. 옷을 여밀 시간은 없었지만 맨살의 팔다리와 성기와 젖가슴과 피부를 가릴 수 있는 만큼은 가렸다. 그리고 뉴욕 타임즈 신문을 펴서 우리의 무릎에서부터 어깨까지 갓난아기의 커다란 턱받개처럼 덮었다. 나는 몸을 굽혀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노트를 집어서 내 무릎에 균형이 잡히도록 올려 놓았다. 차장이 다가왔을 때 나는 수요와 공급에 대한 강의를 다시 계속하고 있었다. 당신이 이 두 곡선을 겹치게 만들면 그 교차점이 바로 시장이 형성되는 점을 가리키게 되는 거야. 차장은 우리 둘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우리의 머리 위에 있는 짐칸에 실린 짐에서 차표를 두 개 떼어내었다. 나는 좀 불편하게 말했다. 거기서 수요와 공급이 평형을 이루게 되는 거야. 차장은 시선을 낮추어 다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이곳에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가격의 변동은 이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앤이 신문 밑으로 나를 꼬집었다. 내가 고상하지 못한 신음 소리를 냈던 모양인지 차장이 내게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비록 주어진 단기간의 변동에 있어서는... 차장은 우리 쪽으로 기대어 서서는 마치 차 안에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프린스턴 역입니다! 앤과 나는 깜짝 놀랐다. 차장은 계속해서 우리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앤과 나는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서로 교차하고 있는 곡선들이 그려진 종이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더 이상 할 말이나 할 일도 생각해 내지 못한 모양인지 그는 생각에 깊이 잠긴 채로 드디어 우리로부터 등을 돌려서 차의 뒤쪽으로 발을 끌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신문이 우리의 무릎에서 미끄러졌다. 기차는 정지하기 위해서 벌써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앤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난폭하다고도 할 수 있는 애무를 했다. 우리는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옷을 줏어 입고 단추를 채우고 가방에 종이들을 쑤셔넣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좌절감이었다. 플랫폼의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우리는 옷 매무새를 고치고 머리를 제대로 쓸어넘기느라 바빴다. 빌어먹을! 앤이 웃으면서 말했다. ┌────────────────────────────┐ │ 2 │ └────────────────────────────┘ 우리는 한 순간 멍청하게 그 플랫폼에 서서 기차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완전히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차갑고 축축하고 위협적인 바깥 공기에 갑자기 쏘이게 되자 나는 전날 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고 막 일어났을 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곳에서 내린 몇 명 안 되는 승객들이 플랫홈을 건너가 그들을 프린스턴으로 실어나를 연결 기차를 타든가 주차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앤에게 택시를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았고 늦는다 해도 나는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가장 빠른 방법으로 프린스턴에 가서 차를 빌려서 앤과 함께 마이크로 매그네틱스 회사로부터 도망쳐 나올 궁리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동반자가 누군가가 우리를 데리러 오도록 주선해 놓았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정말 실망하고 말았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나는 그 위세당당한 타임즈 신문사가 고용인들이 진실을 찾기 위해서 가야 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운전사가 딸린 차를 보내주는 줄로 상상했었다. 하지만 앤이 내게 말한 것에 의하면 그게 아니라 세계정의학생회라는 모임의 대표자가 우리를 데리러 온다는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세계정의학생회야? 프린스턴의 옐로우 택시 회사들의 기사들이 운전을 더 잘할 텐데. 나는 막 따졌다. 어쩌면 타임즈 신문사는 정말로 이디오피아에 기자 훈련 캠프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그렇지만, 왜 그 모임에서 우리를 위해서 수고를 하겠다고 나선 거지? 물론 더 나은 세상과 모든 것을 위한 투쟁에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 보태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고작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차편을 제공하는 일이 그들의 능력 전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실제로 말하자면 우리는 혁명에 대해서 봉사의 반대가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잖아?. 입 다물어.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저 사람인가봐. 정말로 그 혁명당의 전위대로 보이는 사람이 플랫폼의 맨 끝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아주 눈에 띄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얼굴 모양은 꼭 모델처럼 작고 잘생긴 데다가 긴 금발 머리는 전부 뒤로 빗어 넘기고 너무 자주 빨아서 하얗게 바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아주 어려 보여서 아직도 학부의 학생일 가능성도 많아 보였다. 폴로의 랠프 로렌이 혁명군들을 위해서 이번 가을 패션용으로 내놓은 작품을 입고 있는데?. 그는 불확실한 듯이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분명히 우리는 그가 기대하고 있었던 타입의 사람들이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플랫폼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게 해 줘. 앤이 내게 그렇게 말하더니 환영의 미소를 띄우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다가가자 그는 한 손으로는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다른 손은 악수를 하기 위해서 내밀었다. 나는 심술이 잔뜩 난 채로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그들 쪽을 향해서 걸어갔다. 다 큰 성인들이 아직도 가장을 하고서 카우보이와 인디언 놀이나 혁명 놀이를 하는 것은 물론 내가 상관을 할 바가 아니지만 그가 내 즐거운 아침에 끼어드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동안 앤은 그가 우리를 데리러 나온 데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천만에요. 만약에 당신이 우리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기회를 완전히 놓치고 말았을 거예요. 우리 가운데 아무도 마이크로 매그네틱스라는 회사에 대해서 들은 사람도 없고 이번 일은 우리가 언제나 찾고 있었던 아주 좋은 기회예요. 환경을 핵으로써 오염시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해야 하는 우리의 진정한 관심사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이 우선 관심을 갖게 되면 - 내가 그들과 합류하자 그는 말을 뚝 그쳤고 그들은 둘 다 마치 내 출현이 돌발적이었다거나 아니면 경우에 어긋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 계획과 틀리게 오늘의 일과가 진행되는 것과 그 어린 녀석이 노동자의 옷을 입은 척하는 꼴과 그의 잘생긴 얼굴과 또 내가 마치 이상하고 수상스런 생물체라도 되는 듯이 나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 때문에 좀 바보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충분히 짜증이 나 있었다. 닉 핼러웨이. 그리고 로버트 캐릴런이예요. 앤이 정확한 손짓을 써서 우리를 가리키면서 빠른 말투로 말했다. 그녀는 우리를 소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머리 뒤쪽만 구경하게끔 내버려두고 캐릴런에게 돌아서서는 다시 말을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도 타임즈 사에서 일하나요? 그는 내 존재를 인정해 주겠다는 꾸며낸 듯하면서도 의심이 섞인 태도로써 나를 살피고 있었다. 아이구, 아니예요. 내가 짜낼 수 있는 만큼의 소년처럼 멍청한 말투로 내가 말했다. 나한테 그런 운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거기서 일하고 싶다는 뜻이지요. 거기 사람들은 빽이 좋아요. 도전도 엄청나게 많고. 거기서 일하면 참 재미있을 거예요. 내가 앤에게 일별을 던지자 그녀는 놀라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돌같이 굳어져서 얼굴을 돌려버렸다. 사실 나는 쉽웨이 & 휘트맨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주 괜찮은 곳이지요. 나는 아주 정답고 바보스런 미소를 그에게 환하게 지어 보였다. 캐릴런은 내가 진지하게 말하는 것인지 아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어떤 쪽이든 간에 그의 마음에 드는 쪽은 없는 것이 확실했다. 내가 얘기하는 동안에 그는 마치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내 넥타이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게 참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는 머리를 움직여서 내 셔츠 앞 주머니에 수놓아진 이니셜을 읽고 있다는 표시로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그 눈길을 내 멜빵으로 보냈다. 그리고는 내 양복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는데 앤의 말대로 그날도 나는 회색 줄무늬 양복을 입고 있었다. 마침내는 내 구두에까지 그의 눈길이 와서 멈추었는데 그것이 그를 특별히 신경질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 발에 딱 맞는 영국제 구두였고 일이 잘 되느라고 그날 그것을 신고 있었던 것이 내게는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디에 계시지요? 내가 열성에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세계정의학생회에 있습니다. 오, 맞아요. 물론 그러시겠지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격연맹의 두목인가요? 나 같으면 우리 회를 사격연맹이라고는 부르지 않겠어요. 그는 약간 딱딱하게 말했다. 사격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없애려고 하는 것 중의 하나니까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두목이란 감투는 없어요. 우리는 집합적인 관념으로서 아주 민주적인 원칙에 입각해서 서로를 단합하고 있어요. 당신은 그런 식의 사고에는 아직 제대로 낯을 익히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회장 되시는 분은 맞지요? 나로 말하자면 대변인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가 수줍게 말했다. 야아, 그거 근사한데요. 옛날의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기숙사 대표라든가 비밀 결사 모임들 따위의 회장 정도는 되겠군요. 아니면 먹자 클럽 같은 것 - 지금 당신의 모임도 그런 클럽의 하나지요. 그렇죠? 당신의 부모님들께서 정말로 자랑스러워하시겠어요. 그의 얼굴이 빨개졌고 눈도 가늘어졌다. 글쎄요. 우리 부모님은 당신의 관점으로 나를 보지는 않으시니까요. 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우리 부모님 같은 편이지요. 내 생각으로는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새로운 종류의 핵 에너지로 그 누군가가 이익을 볼 수 있나 없나를 조사하러 온 것 같은데. 맞지요? 바로 그거예요. 나는 쾌활하게 말했다. 언제나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릴 것을 기대하는 거지요. 시인들도 말했듯이 바로 그게 이 세상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이치 아니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손 등등. 매정하고 가차없는 효율적인 시장 경제. 글쎄요. 그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 역시 매정하고 가차없기는 마찬가지니까요 그는 비꼬는 웃음을 띄우면서 대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때는 그런 사람들이 그런 경제보다도 숫자가 더 많아지게 되지요.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들치고는 정말로 친근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보통 때 같으면 이런 이념적인 토론에 대해서 왕성한 식욕을 보였을 앤이 이번에는 웬지 짜증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마 나 때문에 창피했던 모양이었고 그래서 나는 더 화가 났다. 그녀가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기자 회견은 열시 반으로 예정이 되어 있는데 -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내게 떠올라서 그녀의 말을 가로 막았다. 가만 있자. 혹시 당신한테 브래드포드 캐릴런이라는 형제나 사촌 없어요? 모건 회사에서 일하는? 이복 형이요. 그가 쌀쌀맞게 대답했다. 참 좋은 사람인데. 나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당신을 만났다는 말을 그 사람에게 꼭 해줄게요. 그렇게 하세요. 우리가 떠날 시간이예요. 앤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아마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마이크로매그네틱스가 정확하게 얼마나 먼 거리에 있지요? 캐릴런은 그녀의 방해가 반가운 모양이었다. 마이크로매그네틱스까지는 십 분밖에 안 걸린다는데 그것이 마치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인 양 두 사람은 다른 길로 가면 얼마나 더 걸릴 것인가 하는 대체안들에 대해서 의논을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가 내 존재를 무시해버리고 내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아주 열심히 주의를 기울여서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택시를 타고 갈까 하다가 너무 아이들처럼 철없게 구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캐릴런이 먼저 자기의 차에 가겠다고 말했다. 다 함께 같이 가는 게 어때요? 앤이 물었다. 아니, 그냥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요. 다 준비를 해 가지고 올 테니까. 그 혁명의 영웅은 서둘러서 플랫폼을 떠났고 그가 들을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나자 마자 앤은 내 행동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맙소사. 좀더 예의 바르게 행동할 수 없었어? 나는 아주 점잖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왜 그 녀석하고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이해는 안 갔지만 그하고의 대화는 거의 나 혼자 이끌어 가다시피 했었잖아?. 우리는 프린스턴에 가서 차를 빌려서- 그와 얘기를 하는 것이 내 직업상 의무야. 나는 그와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어. 나도 재미있었어. 오늘 몫의 재미있는 일은 벌써 실컷 했잖아. 그 사람을 내버려 둬. 그러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었어.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맨 정신으로 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마이크로매그네틱스 회사를 궁지에 몰아 넣을 생각을 하게 된 건지 나한테 말을 좀 해 봐. 그 질문이 그녀를 즉시로 양순해지게 만들었는데 그녀가 아주 곤란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누구를 궁지에 몰아 넣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알려고 단지 힘들게 쫓아 다닐 뿐이고 세계정의학생회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아주 활발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핵 관련 산업체에 의해 대단히 많이 홍보된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떤 대책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내 직업상 임무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을 따름이야.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언급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특히 타임즈 사에는. 앤. 내 사랑하는 앤 양. 이 일은 결코 대단히 많이 홍보된 사건이 아니야. 어쩌면 귀찮은 것을 참고 이곳에 온 사람들은 우리 둘밖에는 없을지도 몰라. 요즘의 일기 예보는 아주 부정확했었는 데다가 그나마 예보도 반으로 줄어 들었어. 마이크로매그네틱스 회사 사람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자기네들을 핵 관련 산업체들에 포함시켜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놀라면서도 좋아서 날뛸 거야. 하지만 나는 당신의 절대적인 숭배자니까 만약 당신이 타임즈 사의 월급을 받고 있으면서도 이곳 뉴 저지 주 한 가운데에서 무장 혁명을 일으킨대도 상관하지 않겠어. 아무에게도 입도 뻥끗하지 않을 거야. 나는 실제로 당신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고 당신이 그 학생들에게 나에 대해서 좋게 얘기를 해 주기를 바라고 있고 혹시 혁명이 일어난 뒤에 내 말이 나오게 되면 그들에게 핼러웨이도 역시 혁명의 비밀한 동조자였다고 말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어. 나는 내 미소 중에서 가장 매력 있는 것으로 골라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더 이상 매력적인 미소든 다른 미소든지 간에 보여줄 입장이 못 된다. 마치 사람들과 전화로만 얘기를 나누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녀가 깔깔대고 웃었다. 그 사람 형이 정말 모건에서 일하고 있어? 그래. 꼭 지랄 같은 놈이야. 플랫폼에 서서 봄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날릴 때의 그녀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협정을 체결했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로 했다. 앤은 마이크로매그네틱스 회사와 세계정의학생회에 대해서 그녀가 알아내고 싶은 것을 최단시간 내에 알아내도록 노력해서 우리가 그 근처에서 쓸데없이 얼쩡거리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에도 플랫폼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있는 곳에 서 있는 캐릴런이 보였다. 그곳에는 더러운 회색의 미니 밴과 그 뒤로 두 대의 다른 차들이 더 서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지만 한 차는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우아한 벤츠였고 다른 하나는 형편없이 녹슨 미제 세단이었다. 캐릴런은 열려 있는 밴의 창문으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밴의 양쪽 문이 벌컥 열리면서 서너 사람이 차에서 기어나왔다. 혁명군의 반도들은 언제나 떼를 지어 다니게 되어 있고 절대로 혼자서 다니는 법이 없다. 그리고도 몇 명이 더 그 차들로부터 나왔다. 그 중의 서너 명은 여자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들에게 좀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 건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이 학부의 학생들이고 전부 노동자나 이상한 나라에서 온 이상한 문화권의 농부들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들은 주차장에서 몇 분 동안 대담을 나누더니 우리를 한 번쯤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캐릴런만 남기고 모두 세단들에 올라타고 떠나버렸다. 그 전체 광경은 어쩐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내 본능적 직관은 언제나 옳았다. 나는 그들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었다. 밴의 앞자리에는 좌석이 두 개밖에 없길래 나는 예의바르게 앤과 캐릴론에게 내가 뒷자리의 바닥에 앉아가게 되어서 참 기쁘다고 말했지만 그들에게는 자리를 다시 조정해 볼 생각조차 없는 것이 확실했다. 밴의 뒷자리에는 종이 상자들과 건축 자재와 공구 따위들이 수라장을 이루면서 쌓여 있었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가 나동그라져 있는 좌석의 쿠션들을 몇 개 찾아서 내가 앉을 만한 자리로 만들어보려고 애썼다. 드디어 내가 거기에 앉았을 때 그 자세에서는 창문 바깥으로 오직 하늘만이 조금 보일 뿐이었고 그곳을 출발해서 차가 이리저리 회전을 할 때마다 나는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게다가 차 안에서는 이상한 화학성의 냄새가 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자리에서는 앤과 캐릴런이 여러 좌익 그룹들의 연관 관계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는데 그 그룹들의 이름을 정부 산하 기관처럼 전부 이니셜로만 부르고 있었다. 내게는 더 이상 흥미가 없었다. 나는 시간을 때우려고 내 근처의 바닥에 있는 도구들이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를 알아내려고 골몰해 있었다. 몇 개의 전선줄 뭉치와 최소한 두 개는 되는 커다란 건전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아주 불쾌한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여지껏 맡고 있었던 것이 바로 화약 냄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히 폭발 기도 사건에 연루되기 직전에 있었다. 그렇게 되면 투자계에서의 내 신용은 완전히 끝장이 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앤한테는 그토록 찾고 있었던 큰 기사감이 될지도 몰랐다. 그녀의 기사를 제 일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어줄 것이다. '투자 회사가 좌익 테러리스트 그룹과 관련되다!' 그 중의 한 상자를 열고 들여다 보는 동안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또 다른 상자들이 들어 있었다. 캐릴런이 내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나 하고 머리를 돌려서 나를 쳐다 보았다. 그 뒤에 별 일 없지요? 그가 물었다. 앤도 머리를 돌려서 나를 쳐다 보았다. 여기 무슨 공구들이 많은데요? 나는 되도록이면 순수한 대화처럼 들리게 하려고 노력하며 말을 꺼내 보았다. 무슨 취미인가 보지요? 취미라고 부를 수도 있지요. 심심풀이라고 하는 게 더 가까울 겁니다. 그 물건에 손대지 마세요. 나는 정말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공공 장소에 모여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외치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귀찮게 할 때는 물론 해롭지 않지만 만약 제대로 무장을 갖춘 경우에는 그들 자신과 우리들에게 진짜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마이크로매그네틱스 건물이 잿더미로 화하는 장면을 눈앞에 그려볼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이 밴이 그 건물에 도착하기도 전에 잿더미로 화하는 장면이 뒤를 따랐다. 나는 목소리가 떨려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물었다. 올해의 독립기념일에 쓸 화약들을 충분히 미리 사들여 놓은 모양이네요. 그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답했다.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조금 터뜨릴까 해요. 내 방향으로 반쯤 머리를 돌리고 있었던 앤이 갑자기 이 소식에 흥분하는 것 같았는데 절대로 걱정하는 빛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펜과 기자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거 근사하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일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지요. 당신들이 정말 진지하다는 것을 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해요. 펑! 마이크로매그네틱스 건물은 간 곳이 없어지겠지요. 그러면 그 웃기는 광대들이 다음에 비슷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두 번 심사숙고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고, 나를 이 근처에서 미리 내려준다면 - 오늘 우리가 터뜨리려고 하는 것은 작은 모르모트 한 마리에 불과해요. 바로 그겁니다. 마이크로매그네틱스의 광대 같은 그 인간들은 전부 다 모르모트 같은 놈들이니까요. 만약에 이 일만 잘 되면 이 계통으로 계속 나가도록 해요. 내가 모르모트라고 했잖아요. 그가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앉아 있는 바로 거기의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모르모트요. 핵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핵 폭탄과 비슷한 모형을 만들어서 그놈과 함께 터뜨릴 거예요. 아무데에서도 우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스케일의 폭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게다가 이 밴 안에 있는 폭발물들은 겨우 폭죽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서 나는 크나큰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쉽게 겁을 먹은 것에 대해서 약간 바보스러운 기분마저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크로매그네틱스 건물을 통째로 날려보내는 일에 대해서는 아주 열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었던 앤이 갑자기 반대되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새파래졌다. 동물을 죽인다는 거예요? 정확하게 말했어요. 잘 자제되어 있긴 하지만 절대로 숨길 수 없는 승리의 목소리로 그 테러리스트가 말했다. 누구든지 당신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겁니다. 그건 부르조아적인 감수성이 갖고 있는 모순점들 중의 하나인데 방사능 때문에 전인류가 천천히 독살당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주면서 그들의 눈 앞에서 실험용의 작은 동물이 아무런 고통 없이 죽어간다는 사실은 참지를 못한다는 점이 바로 그거예요. 동물을 죽여서요? 앤은 다시 물었는데 이번에는 좀더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가 이 일을 정당한 혁명적 관점에서 보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직업적인 관심만을 갖고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맞아요. 이해가 가요?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인간보다 이익에 더 가치를 두고 있는 핵 관련 산업체의 자본주의자들에 의해서 벌써 실험용 모르모트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만약에 이 한 마리의 동물을 죽임으로써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상황을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 동물의 고통은 가치있는 것이 되는 거예요. 캐릴런은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는 점점 생기를 띠면서 명랑해졌었고 그의 목소리는 마치 군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것처럼 낭랑해졌다. 나는 경험에 의해서 이런 사람들이 변증법이라는 말을 쓸 때는 잘 들어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동물을 폭사시키는 것에 대해서 하나라도 반대 의견을 말하게 되는 경우에는 이 변증법적인 연설을 다시는 멈추게 할 길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서둘러서 그의 말에 찬성했다. 정말 맞는 말이예요. 나는 내 말이 진지하고 신중하게 들리도록 애쓰면서 말했다. 그래요, 그게 돈을 버는 길이예요. 내가 그 이중의 의미를 지닌 숙어를 잘못 썼던 모양인지 그가 나를 다시 수상쩍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운전에만 신경을 써 주기를 바랐다. 대화는 잠시 끊겼고 앤은 내 쪽으로 날카로운 눈길을 주더니 돌아 앉아서 좀 불편한 듯한 태도로 캐릴런과의 인터뷰를 계속했는데 내가 참견하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나는 밴 안에서 그 우리를 찾아냈다. 그것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동물보다 그다지 더 크지도 않았다. 나는 문의 고리를 열어서 쥐를 꺼내서 바닥에 내려 놓았다. 쥐는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아주 통통하게 살쪄 있었고 내성적인 동물이었다. 나는 내 쿠션 사이로 도로 기어 들어 갔는데 밴의 흔들림 때문에 멀미를 하는 듯한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내 몸이 앞 뒤로 심하게 흔들렸다. 차의 방향을 꺾는 횟수는 점점 더 빈번해지는 것 같았고 꺾는 기술도 더 난폭해지는 것 같아서 우리가 틀림없이 뒷골목을 통해서 목적지로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몹시 멀미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바닥에 앉아 있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났고 전날 밤의 과음이 후회스러웠다. 나는 창문 바깥쪽으로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나 가끔 나뭇가지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그런 메스꺼운 경치 말고 다른 것을 좀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눈을 감았다. 더 심했다. 다시 눈을 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드디에 밴이 멈추어 서자 나는 서둘러서 문을 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위엄 있게 비틀거리면서 땅에 내려섰다. 모르모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도망할 기회를 가능한 만큼 많이 주기 위해서 문을 열어놓고 서 있었다. 모르모트들의 자연적인 서식지는 어디일까? 분명히 뉴 저지의 중부 지방은 아닐 것이다. 그놈이 야생에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내기를 걸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의 운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있게 될 것이다. 앤과 캐릴런은 밴의 앞쪽에 서서 아직도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 쪽으로 가자 앤이 나를 올려다 보면서 말했다. 닉. 아직 내 일이 끝나지 않았어. 시간에 신경 쓰지 말아, 앤.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건물 앞에 가서 바람이나 좀 쏘일게. 나는 손을 그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로버트, 차편을 제공해 주어서 고마워요. 당신하고 나눈 얘기들은 참 재미있었고 우리가 다시는 못 만날 경우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오늘 일과 미래의 계획들이 다 성공하기를 빌겠습니다. 그는 짧게 머리를 끄덕이고 내가 내민 손을 무시하고서 앤 쪽으로 돌아섰다. 주차장의 다른 쪽에는 그의 동맹자들이 말 없이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캐릴런이 우리와의 일을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돌아서서 주차장에 난 길자욱을 따라서 주차장에서 건물이 보이지 않도록 무성하게 서 있는 덤불 사이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엄청나게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나무들 밑에 깔려 있는 넓은 잔디밭에 다다랐는데 그 나무들은 적어도 그 자리에 수 세대는 서 있었을 것이다. 한쪽으로는 찻길이 주차장의 끝에서 나와서 30미터 정도 떨어진 큰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잔디밭의 뒤쪽의 사방은 전부 나무들의 숲으로 막혀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그 한가운데에 새로 지어진 길고 하얀 직사각형의 나무 구조 건물로서, 왜 우리들이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에 시멘트로 둘러싸인 산업 공원 같은 곳에나 어울릴 건물이었다. 포장된 길이 주차장에서부터 나와서 그 건물 앞의 중앙 현관에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그곳의 두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문지방 위에는 두 개의 거대한 하얀 나무 기둥이 건물의 정면으로 겨우 1, 2미터 튀어나왔을까 한 지붕의 흔적 같은 것을 받쳐들고 있었다. 건축가가 의도했던 효과는 틀림없이 미국 식민지 시대의 건축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뭉뚝하게 잘려나간 건물의 위에는 마이크로매그네틱스라고 쓰인 삼십 센티 정도 높이의 빨간 글씨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180센티 정도 지름의 동그란 방패 모양이 있었고 두 개의 커다란 M 이라는 글자가 자장을 의미하는 호 무늬들이 그려진 그 한 가운데에 붙어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커다란 M & M 캔디처럼 보였다. 이 이상한 건물은 아마 오래 된 농가를 헐고서 새로 지은 것 같았다. 만약에 그 농가를 도로 가져다 놓을 수만 있다면 이곳은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잔디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서 늙고 거대한 구릿빛 너도밤나무들을 향해서 겉어가면서 기분 전환이 되기를 바라며 그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를 들여마셨다. 한 방울의 커다란 빗방울이 내 머리 위에 떨어졌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비가 내 기분 전환에 더 나을 것 같지는 않았다. 비를 피하는 것이 났겠다 싶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더라? 멍청한 상태에서 나는 그곳의 광경을 살펴보았다. 마이크로매그네틱스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작은 사업체였다. 전체 건물은 만 평방 피트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한쪽에는 또 하나의 더 작은 콘크리트 건물이 있었는데 조그만 도시 하나에 충분히 동력을 공급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전선들이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들은 전력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일인지도 몰랐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나는 숨을 몇 번 더 깊이 들여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나, 나빠졌나 판단을 내려 보려고 애썼다. 내 자신에게 기분이 좋아진 쪽으로 말해주기로 결심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 눈 안에서 두 개의 작은 통증이 자라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 그 통증은 눈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머리를 찌르는 두통으로 발전할 것이다. 정해진 시간보다는 일렀지만 벌써 몇 명의 사람들이 도착해서 건물 안에서 성의 없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학자들 타입같이 보였다. 적어도 그곳에는 나 외의 유가증권 분석가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곳에 더 이상의 기자들이 올 것인가도 의심스러웠다. 물론 타임즈 사가 앤을 이곳에 보낼 정도라면 이 사건은 커다란 홍보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 마이크로매그네틱스가 처음부터 홍보를 원했는지조차 이상했다. 그들이 내놓은 공식 발표라는 것 자체부터가 아주 쓸모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명성과 단시일에 벌어 들일 돈이겠지. 그게 정상이지. 그 혁명당원들은 상자들을 잔디밭에 가지고 나와서 현관 바로 앞에다 그들의 작은 과학 실험을 할 준비중이었다. 그들은 누군가가 그들이 하는 일에 반대할까봐 걱정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참 이상했다. 하지만 그들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 아무도 그들이 하는 일에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학구적인 설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젊은 아이들이 잔디밭에 흩어져서 제멋대로 무슨 일을 하는 것을 언제나 보기 때문이다. 아마 안에 있는 누군가가 아스피린을 좀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커피. 캐릴런의 일행 중 어떤 아이들은 그 콘크리트 건물의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캐릴런과 앤이 덤불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고 곧 잔디밭 위의 일행들과 합류했다. 나는 앤이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내게로 걸어 오는 것을 쳐다 보았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그녀는 유순한 기분에 다시 젖어 있었다. 언제라도 기꺼이 기다리겠어. 바람을 좀 쐬고 싶었어. 괜찮아? 얼굴이 좀 초록색으로 보이는데? 괜찮아질 거야. 나는 말했다. 언제나 변증법적 유물론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돼. 그것은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의 매정한 흔들림과도 같은 거야. 혁명은 잘 돼 가고 있어? 내 은행 구좌에서 돈을 찾을 시간은 있겠어? 모르모트가 없어졌어. 당신이 놓아 줬지? 내가 왜 저항할 수 없는 혁명의 흐름을 막으려고 하겠어? 하여간에 당신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래. 보기만 해도 부르조아적 감상의 성장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 금발 머리의 여자도 역시. 앤은 확실히 좋은 기분에 젖어 있었다. 하여간에 없어졌어. 안됐군. 그래서 어떻게 하겠대? 대신 집어넣을 것을 찾고 있나 봐. 당신이 그럴 의사만 있다면 당신을 대신 쓸 기회를 아주 환영할 거야. 이제는 들어가야 하지 않겠어?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물론이야. 들어가자... 말 좀 해 봐. 당신은 캐릴런의 일행들이 저 콘크리트 발전소같이 생긴 건물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그 전선들이 들어가는 건물의 문은 이제 활짝 열려 있었고 학생들 중의 하나가 그 문간에서 공구 상자같은 것을 들고 서 있었다. 내 생각에는 - 앤이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데모의 일부분으로 저 본관의 전기를 끊으려고 하는 것 같아. 그래야 사람들이 다 나와서 그들을 볼 것 아니겠어? 매스컴에서 나온 사람들이 좀 있는지 봤어? 아니. 본 적이 없어. 무슨 종류의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실 이 실험실의 전기를 그들이 끊으려고 한다는 말이야? 그건 좀 무책임한 짓이 아닐까? 이익 외의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쁜 의도는 없이 그녀가 말했다. 절대로.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는 그들의 자유야. 하지만 - 그리고 당신은 늘 그렇듯이 인간보다는 그들의 사유 재산에 대해서 더 걱정이 되겠지. 바로 이 특별한 사유 재산 안에는 사람들이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더 분명히 말하자면 바로 우리가 들어갈 곳이야. 결국은 우리를 폭사시킬 것이 틀림없어. 나는 테러리즘에 대해서는 하나도 아는 것이 없어. 회견장이 폭발하기 전에 경고 전화를 한 통 정도 해주는 게 어떨까? 아마 우리는 경찰이나 이곳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 우리는 언론인이지 경찰 정보원이 아니야. 앤은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직업이야. 그리고 그것은 제1차로 개정된 헌법에서 규정한 언론의 자유를 - 당신이 나를 우리 언론인들 틈에 끼워준 것은 고맙지만 나는 어떤 특수한 신분이나 특권도 없는 평범한 민간인에 불과해. 나는 그저 걱정이 - 그들이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신도 아주 잘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경찰에 대한 당신의 의견에는 맞는 점도 있어. 그녀는 갑자기 심사숙고하는 어조가 되었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경찰이 있어야겠는데. 나는 이런 핵 반대 데모가 경찰 없이 잘 되어나간 것을 본 적이 없거든. 그녀는 정말로 걱정이 되는지 이마를 찌푸렸다. 이것 봐, 앤. 경찰의 정보원으로 타락하느냐 아니면 잔인한 테러리즘의 죄 없는 희생자로서의 불편함을 택하느냐 하는 두 개의 선택 말고 그저 여기에서 나누어 주는 홍보 책자나 받아 가지고 택시를 부르자. 프린스턴에 가서 차를 빌려서 - 닉, 나는 기자 회견과 그 뒤의 데모를 꼭 볼 작정이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 둘 다 왝스 박사하고의 인터뷰 약속이 있잖아. 그리고 나는 오늘로 뉴욕에 돌아가야 - 이렇게 하자. 우리가 지금 가서 왝스 박사를 먼저 만나는 거야. 그러면 회견이 끝나고 나서 여기에서 머뭇거릴 필요가 없잖아. 기자 회견이 20분만 있으면 시작할 텐데? 그 전에는 절대로 그 사람이 우리를 만나주지 않을 거야. 만나주게 만들면 돼. 나는 단호하게 그녀의 팔을 잡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왝스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 건물로 향했다. 그 순간에 나는 사람들을 다 내 뜻대로 하게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던 대로 그날 하루를 보내게 되리라 믿고 있었다. 비록 뱃속이 아직도 거북하고 물론 그 때는 거의 비치지도 않았던 햇빛이 내 눈을 아프게 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 나는 안도감의 마지막 파도 같은 것이 나를 휩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날 밤 마신 술의 마지막 효과였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에는 내가 그 상황의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정오에는 이곳에서 사라지자. 내가 말했다. (그날 정오에 나는 확실히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우리가 잔디밭을 건너오는 동안에 하늘은 거의 시커멓게 변했고 내 웃도리는 빗방울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앤은 혁명 투사들 옆을 지나가면서 즐겁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잔디밭 위에 작은 철제 테이블을 세워놓고 그 뒤로는 두 개의 기둥에 손으로 쓴 현수막을 붙여놓았다. 모르모트를 종말적인 핵 실험으로써 파괴하는 것은 자본주의자들의 압제와 죽음을 부르는 핵 기술의 죄 없는 모든 희생자들을 대표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가 모르모트이다. 괜찮은 구호야. 내가 앤에게 중얼거렸다. 아주 눈길을 끄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 도착하고 있었는데 현관을 향해서 그 옆을 지나오면서도 데모자들에 대해서 조금치의 관심이나 걱정을 표시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이제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지간에 몇 명의 데모자들이 있으려니 하고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캐릴런이 그의 긴 금발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면서 소리쳤다. 앤! 다른 신문사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가 앤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에 화가 치밀어서 앤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나도 소리를 질렀다. 내 생각에는 워싱턴 포스트에서도 누가 온 것 같던데요. 그리고 아마 뉴스위크에서도 왔을 거예요. 하지만 방송국 사람들은 아직도 한 명도 못 봤어요. 그는 처음에는 내 대답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라서 나를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기를 바랍시다. 그가 쌀쌀하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시작하지 않는게 좋을 - 앤이 내 팔을 꽉 잡고서 현관문 앞으로 끌고 갔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외로 조그만 비서실에 들어선 우리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방에는 소파 하나와 테이블 하나, 그리고 우리를 마주보고 있는, 타이프라이터 받침이 달린 커다란 책상 하나밖에 없었다. 그 책상 뒤에는 사십대의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타고난 표정은 원래 아주 불만스럽고 퉁명했는데 거기에 화장품을 조심스럽게 많이 발라서 그 표정이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앤에게 불만스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곧 그 눈길을 내게 고정시켰다. 홍보용 봉투를 하나 갖고 왼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서 그 다음에 복도의 맞은편 끝에 있는 회의실로 가세요. 몇 분 있으면 회견이 시작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 따뜻함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나는 봉투를 하나 집어들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혹시 왝스 박사님께 쉽웨이 & 휘트맨 회사의 닉 핼러웨이가 여기 와 있다고 말 좀 전해주시겠어요? 왝스 교수께서는 지금 방해 받으시면 안됩니다. 왼쪽 문으로 나가서 회의실로 가세요. 이 여자분은 타임즈 사에서 온 앤 양인데요. 나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타임즈 신문사 이름을 들으면 그녀의 정신이 번쩍 들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두 분 다 회의실로 가시면 왝스 교수님께서 그리로 가실 거예요. 그녀는 미간을 잠시 찌푸렸다가 앤을 의심스러워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벌써 이 분은 약속이 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녀는 잠시 책상 위의 노트를 내려다 보았다. 두시군요. 그리고 핼러웨이 씨도 역시... 사실은 우리에게 기자 회견 전에 왝스 박사님과 아주 개인적인 말을 몇 마디 나눌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회견 준비라고나 할까요 ... 내 목소리는 점점 졸아들었다. 나는 그 홍보물을 마치 전혀 색다른 고대 유물이 내 손에 예기치 않게 굴러들어 온 것처럼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 있다가 그것을 뒤집어서 뒷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서류 가방에 들어 있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서 희고 빨간 아트지로 만든 서류철이었는데 그 안에는 공식 발표문의 복사판과 정보 전달에 별로 도움도 되지 않을 사실들을 나열해 놓은 종이 한 장과 버나드 왝스 박사의 이력서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도 아직 열어보지는 않은 채로 나는 서류철을 천천히 돌려서 거꾸로 든 다음 마치 새로운 각도에서는 그 서류의 중요성이 내게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계속 깜박거렸다. 미안합니다. 그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두 분 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회의실로 가셔야겠어요. 나는 내 자리에 선 채로 열심히 그 서류철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왼쪽에 있는 문이예요. 그녀가 무시무시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열어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거꾸로 들었기 때문에 읽을 수 없는 첫 종이를 들여다 보면서 내 이맛살을 약간 찌푸렸다. 나는 종이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거꾸로 돌려서 서류철 안에 도로 집어 넣었다. 그 여자는 그러고 있는 나를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로 점점 쌓여가는 고통 속에서 나를 쳐다 보았다. 거꾸로 되었잖아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히스테리의 기미마저도 보였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 보고 눈을 깜박였다. 뭐가 거꾸로 됐어요? 서류철. 오, 서류철이요? 나는 깜짝 놀라는 척하면서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정말 그렇군요. 내가 거꾸로 들고 있었어요. 나는 그것을 돌려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박사님께서 우리를 만나고 싶어하실지도 모르는데요. 지금은 너무 바쁘세요. 물론 바쁘시겠지요. 그래도 우리를 만나고 싶어하실지도 모르니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 분이 우리를 아마도 만나고 싶어 하실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나는 서류철을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열어서 다시 첫 장을 들여다보고는 정말 모를 일이라는 표정을 다시 지었는데 그 종이는 내가 전에 거꾸로 집어넣은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해서 거꾸로 들어가 있는 건지 확실치가 않아서요. 그녀의 눈은 분노와 경멸 때문에 크게 떠졌다. 그녀는 나한테서 서류철을 잡아 챌 듯이 오른손을 갑작스럽게 들다가 생각을 고쳐 먹었다. 나는 서류철에서 종이를 한 번에 한 장씩 빼서 한참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보다가 잘못된 순서 아니면 잘못된 곳이라고 그녀가 생각하는 곳에 한 장씩 조심스럽게 넣기 시작했다. 그 전체 과정이 그녀를 아주 신경질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박사님이 아직도 사무실에 계실까요? 그녀의 눈이 내 오른쪽에 있는 벽 쪽으로 화살처럼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회의실로 가셔야 해요! 그녀는 거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물론 그래야지요. 내가 서류철을 조심스럽게 그녀 책상 위의 제 자리에 놓자 그녀는 마치 살아 있는 폭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바라보았다. 내 왼쪽에 있는 문이라고 하셨지요? 라고 물으면서 나는 오른쪽 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니... 맞아요... 안돼요! 나는 정신을 놓고 있는 사람처럼 오른쪽에 있는 문으로 가서 그것을 밀어서 열었다. 거기 들어가시면 안돼요! 나는 그 건물의 한 코너를 다 차지하고 있는 커다랗고 카펫이 깔린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가구들에는 별 특징이 없었지만 그 곳의 창문들로부터는 잔디밭과 나무들과 그 뒤로 펼쳐지는 벌판의 정말로 근사한 경치가 보이고 있었다. 방 한 가운데는 커다란 책상이 있었고 그 앞에는 작고 뚱뚱한 데다가 꼭 쥐처럼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양복은 아마 그가 15킬로 정도 더 날씬했을 때 산 것 같았고 허리띠는 툭 튀어나온 배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 있었다. 그는 우리가 문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것처럼 보였는데 짧으나마 내가 그를 관찰한 그 동안에도 그는 계속해서 잘 놀라는 것 같았고 무엇인가를 알아내려는 듯이 언제나 머리를 초조하게 흔드는 동작 때문에 꼭 커다란 다람쥐가 밤을 감추어 놓을 곳을 찾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의 불안해 보이는 눈빛이 우리 사이를 차례로 왔다갔다 했는데 마침내는 앤에게로 특이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의 눈길은 그녀의 가슴으로 계속 되돌아가고 있었고 나도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왝스 박사님 되십니까? 내가 물었다. 맞아요, 그럼요. 안녕하십니까? 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지껄이면서 한쪽 다리에서 다른 쪽 다리로 계속해서 몸 중심을 옮기고 있었다. 쉽웨이 & 휘트맨 회사에서 온 닉 핼러웨이라고 합니다. 투자 회사죠. 내가 꼭 만나고 싶었던 분이군요. 나는 지금 돈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본을 모으자면 - 왝스 교수님, 그 비서가 호전적으로 말했다. 이 사람들이 - 그리고 이 아가씨는 타임즈 사에서 온 앤 양이구요. 나는 말을 계속했다. 당신이 여기까지 오실 수 있어서 정말 좋군요. 타임즈 신문사라... 들어 오세요. 들어 오세요. 여기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보신다면 정말 흥분하실 겁니다. 그는 열심히 앤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라면 뭐든지- 왝스 교수님, 비서가 고집을 피웠다. 늦으셨어요. 가셔야 - 알았어요. 그렇군요. 지금은 시간이 그다지 없겠군요. 잠깐만 들어오세요. 투자 회사에 계시다고 했죠?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가장 시급한 일이거든요. 여기에 어차피 오신 김에 무언가 괜찮은 책을 한 권 추천해 드려야겠는데. 박사님이 필요로 하시는 자본에 대한 얘기는 언제 틈이 나면 찬찬히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 - 왝스 교수님, 그 비서는 아직도 문간에 서서 얼굴을 이지러뜨리고 있었다. 시간이 다 됐어요. 가셔야 - 이곳 설비가 정말 잘 되어 있습니다. 나는 왝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비서의 얼굴 앞에 있는 문을 닫아 버렸다. 정말 인상적이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데요? 그는 그 말에 기뻐하는 것 갈았다. 그럼요. 내가 이 전체 건물을 다 설계했다는 것을 아시나요? 원래 이곳에는 한 채의 낡아빠진 농가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물론 건축 설계는 푸시니 브라더즈 건축 회사와 함께 했지만요. 당신이 뭔가를 짓고 싶다면 그 회사가 정말 쓸 만한 곳이예요. 아주 잘해요. 가장 단순한 건물도 지으려면 그 구조가 얼마나 복잡해지는지 정말 참 신기하죠. 그 사람들이 커비 공원을 다 지었습니다.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말 그 사람들이 지은 겁니까? 내가 대답했다. 나는 커비 공원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대화에서 희박한 손잡이라도 잡아야겠다는 시도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 회사의 마크도 박사님이 고안하신 건가요? 그럼요. 어때요? 그가 심각하게 물어보았다.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찬사를 해 드려야겠던데요. 그게 혹시 M & M 캔디처럼 보이지는 않던가요? 그의 얼굴에 잠시 괴로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M & M이라구요?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투로 물었다. 네. 당신도 아시겠지만 그 조그맣고 동그란 초콜렛 사탕들 있잖아요. 아아, 물론 알지요. M & M 이라... 마크가 그것처럼 생겼냐구요?... 아니오. 원래 그것처럼 만드신 겁니까?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아녜요. 나는 그게 당신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그저 궁금했었어요. 누군가 무슨 말을 한 적이 있어서요. 그는 내 대답에서 다시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었였다. 전체 효과가 정말 기가 막히던데요?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회사의 이름을 빨간 글씨로 쓴 것하고, 마크하고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건물의 정면하고. 그리고 나무들도요. 나는 생각이 나서 덧붙였다. 나무들. 그 나무들이 정말 기막힌 것들이지요. 이곳에 있었던 원래의 나무들을 거의 그대로 놓아둘 수 있었어요. 이 상태에서 그것들을 없애버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잠깐만. 좀 보여 드려야겠어요... 이쪽으로 오시면 내 책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경치를 보여 드리죠. 저 너도밤나무가 보이지요? 그는 흥분해서 그의 책상 근처로 뛰어갔다. 나는 그의 말을 쫓아서 책상 쪽으로 가서 창문 너머의 그 커다란 구릿빛 나무를 바라 보았는데 그는 벌써 다른 화제에 대해서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다. 당신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이 전화기도 디자인했거든요. 시장에 나와 있는 그 어느 것보다도 우수한 것이예요. 당신이 전화한 번호를 마지막 번으로부터 다섯 번이나 자동으로 기억을 할 수 있어요. 스무 자리까지 - 오늘은 박사님이 너무나도 바쁘시다는 것을 알고 왔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이 기자 회견 때문에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시기 전에 우리가 미리 회견에 대한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을까 하는데요? 물론이지요.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짜증스럽게도 앤이 끼어 들었다. 박사님께서는 이 핵 발전의 문제처럼, 환경을 보호하는 것과 에너지원을 더 넓혀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성의 모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하는 거예요. 그 말이 왝스의 끊임 없는 수다를 그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노력을 낭비하기 전에 내가 참견을 했다. 맞아요. 특히 우리는 왜 그 공식 발표문에는 자기의 성분에 대한 언급이 없는지가 궁금하거든요. 박사님께서 지금까지 해 오신 것로 알려진 그 많은 연구 실적들은 그 성분과 관련이 있는 것이 틀림없는데요. 그럼요. 당신 말이 옳아요. 이 일은 성분과는 관계가 없어요. 사실 관계가 있다고도... 만약에 그게... 그는 다시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바깥의 무엇인가가 그의 초조해하는 눈길을 끌었다. 저 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무언가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어리둥절한 표정이 그의 얼굴을 스쳐갔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토론을 해야 할 - 앤이 말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겁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그들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박사님께서 이곳에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도덕적인지 정치적인지 하는 반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데요. 그것 때문에 박사님께서 하시는 일이 뭔지 여쭈어 보아야만 - 오, 학생들이라구요? 그는 마치 그것이 아무 질문에라도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정말 저들이 확실히 학생인가요? 저 애들은 누군가가 정부의 연구 보조금을 받을 때마다 저러지요. 항상 데모를 하니까요. 하지만 그 돈은 정말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내 개인적으로 자본을 좀 유치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당신에게 줄 책 이름을 알아 놓는 것을 꼭 기억해야겠어요. 우리는 은행들을 상대할 때 쓰는 수단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이 건물의 전기를 끊을 계획을 갖고 있어요. 나는 내 말을 계속했다. 전기를 끊어요? 왜 은행에서 전기를 끊지요? 아, 전기 회사 말씀이군요. 나는 그들과 서로 절충을 본 줄 알고 있었는데. 문제는 뭔가 하면요, 말 그대로 일 년에 전기비가 수십만 달러가 드는 거랍니다. 그게 우리가 갖고 있는 단 하나의 큰 문제예요. 이 일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전기가 필요해서요. 가능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자본이 문제지요. 나는 그가 말하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전기적인 것인지 과학적인 것인지 재정적인 것인지 도대체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내 자신도 자본을 모으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아는 것이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라서요. 거의 혁명적인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지금 당신과 말할 수 있는 이 기회를 특히 더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당신이 여기에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쓴 우리라는 말이 아주 넓은 차원에서의 재정적 관심을 그에게 전달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잠깐 들여다 볼 만한 경리 장부는 갖고 계시겠지요? 나는 우리가 바보 멍청이들이나 하는 것 같은 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내가 직업상 물어봐야 할 원칙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이 인터뷰에서 아무 것도 알아낸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엇인가 글씨로 쓰여진 것이라도 얻어 가야만 했다. 그는 책상 위에 많이 쌓여 있는 종이들을 부시럭거리면서 들추어 보았다. 정말 이상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다 낡아빠진 마닐라 봉투를 꺼내더니 그 안을 들여다 보고서 내게 건네 주었다. 아직까지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정말 이상할 지경입니다. 그 계산은 속아 넘어갈 만큼 간단하거든요. 지금 그가 얘기하는 것이 재정에 대한 것일까? 당신이 자력을 올바르게 계산해서 설명만 할 수 있게 되면 그 나머지는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게 되어 있거든요. 아름다울 정도로 간단하지만 그 계산을 쭉 따라가면 골치 아픈 데가 많이 나오긴 합니다. 아직까지 아무도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가 준 서류에는 이 시골의 한 회계사가 정리한, 회계 감사도 받지 않은 장부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몇 분간 그것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가장 놀라운 일은 그가 정부에서 끌어낸 막대한 금액의 돈말고도,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지금 들어와 있는 이 건물을 지을 때 이 회사가 한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가능성에는 한도라는 것이 없어요. 그는 앤의 가슴만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의 책상 위에 있는 구내 전화가 울렸다. 그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알았어요. 그래요. 물론이지요. 지금 거기로 가던 참이예요. 알아요. 시간이 없다구요? 그가 전화기를 도로 놓으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회의실로 가야겠습니다. 시작할 시간이래요. 나중에 얘기를 해야겠지요? 돈이 제일 중요한 열쇠예요. 그가 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는 우리를 그의 사무실을 가로 질러가서 안쪽의 복도로 통하는 문으로 나가게 안내했다. 그 문의 옆에는 살짝 열려 있는 작은 문이 또 있었는데 그것이 화장실 문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게는 정말로 그곳을 써야 할 다급한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 내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지 말자고 결정을 내렸다. 이 사람하고 몇 시간 후에 다시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우리가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동안에 그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볼 시간은 없겠지만 정말로 내 실험실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기자 회견이라는 형식을 통해서는 우리가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을 어떤 의미 있는 방법으로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그저 당신들에게 이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예요. 이런 회견에서는 당신은 앉아 있는 관중들에게 할 말을 미리 다 준비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는 깊은 얘기로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운 좋게도 나는 과학적 교육 배경이 전혀 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가르쳐 본 경험이 많아서요... 과학의 철학과 역사 같은 과목을 가르쳐 봤습니다... 내가 적어도 그 밑에 깔려 있는 관념적인 기초에 대한 감각을 조금이라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 그 말씀을 들으니까 생각이 나는데, 내가 말했다. 박사님께서 혹시 지금 연구하시는 일에 대해서 써 놓으신 것이 있지 않나 하고 아까부터 여쭈어 볼 작정 - 그게 바로 문제예요, 그가 재빨리 말하는 동안에 괴로운 표정이 다시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복도의 거의 중간에 와서 멈춰 섰는데 우리의 앞에는 무거운 철문이 있었고 그는 커다란 열쇠 고리에서 열쇠를 하나 찾아들고 서 있었다. 나 역시 이것을 출판할 수 있는 - 나는 출판했다는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 수준으로 정리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사실은 엄격히 말하자면 나는 이 일에 대해서 공식 발표를 아직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어요. 내 말은 출판 전이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눈이 화살처럼 움직였다. 우리는 자금이 절박하게 필요하거든요. 그게 바로 열쇠예요. 그는 손을 문에 얹고 생각에 잠겨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자물쇠에 꽂은 그 열쇠를 깜짝 놀라면서 살펴보고 있었다. 대강 초안만 잡으신 것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나는 우겨댔다. 우리 모두가 박사님께서 이곳에서 이루시고 있는 업적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거든요. 내 생각으로는 보통 사람들이 박사님께서 지금 하시고 있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나는 내가 과연 중요성은 그만두고라도 대강으로나마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인가가 궁금했다. 내가 하려는 일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그가 흥분된 어조로 내 말끝을 따라서 말했다. 심지어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정말로 이상해요. 그는 그 무거운 문을 밀어서 열었고 우리는 그 실험실 안에 들어섰다. 그곳은 굉장한 곳이었다. 보통의 창고 같은 구조로서 천장은 그 두 배 정도의 높이였고 이 전체 건물의 반은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했는데 오늘의 일을 위해서 굉장히 깨끗하게 치워졌을 것이 분명한데도 전체적으로는 혼돈 그 자체였다. 실험실 전체에 테이블들이 놓여 있었다. 책상용 컴퓨터들이 놓여진 테이블들, 기계 공구들이 놓여진 테이블들, 회로판들, 배선용 도구들이 놓인 테이블들... 방의 가운데에는 지름이 3미터나 되는 커다란 금속의 링이 있었다. 여러 가지의 튜브와 철사들이 그 링을 칭칭 감고 있었는데 그 위로 또 다른 종류의 튜브와 철사들이 방의 나머지 부분으로 튀어나와서 모든 테이블 위에 있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한 다스 정도의 물체들에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컴퓨터를 전기 두뇌라고 불렀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것은 전기 내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굉장하군요. 내가 말했다. 이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왝스가 자신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한 테이블 앞으로 데리고 갔는데 거기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말라빠져서 꼭 고행중인 수도사같이 생긴 사람이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차림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는 숫자들로 꽉 차 있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이 당신에게 분명하게 이해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요. 왝스가 명랑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바로 하나의 자장이 만들어지는 중인데 그것이 바로 강화된 자장 - EMF라고 우리가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EMF란 보통 빛의 파장에 있어서의 레이저 광선 처럼 보통 자장에 비교하면 아주 희한한 것이지요. 물론 그건 하나의 비유법에 불과합니다. 그는 비유법에 대해서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잠깐, 그가 컴퓨터 앞의 남자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이 분들이 정확하게 그것을 이해하실 수 있도록 주 모형을 좀 불러 봐. 그는 왝스에게 회의적인 눈길을 잠시 주더니만 키를 하나 눌렀다. 화면의 숫자들이 즉시로 전부 바뀌었다. 보이죠? 전문가의 용어로 가능한 한 대강 말하자면 지금 바로 미립자들의 운동량이 회전하고 궤도를 그리면서, 계속해서 그 분자들의 내부 구조를 바꾸는 자장을 형성하고 있고 또 그 자장 자체를 유지할 수 있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아주 잘못된 결론으로 우리를 끌고 갈 수도 있어요. 그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이것을 물질이나 에너지라기 보다도 그냥 하나의 방정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간단할 거예요. 왝스는 그 방 한 가운데 있는 그 설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손을 열심히 그쪽으로 휘저었다. 컴퓨터 앞의 남자가 다른 키를 하나 누르자 화면은 퍼센트 부호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할. 그 남자가 말했다. 잠깐만요, 앤이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지금하신 말씀은 이 방에 바로 핵 융합인지 분열인지 하는 바로 그 핵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인가요? 컴퓨터 앞의 남자는 키들을 더 눌러댔고 그러자 화면은 깜깜해져버리고 말았다. 글쎄, 이걸 융합이나 분열이라고 딱 성격을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고 이것은 원자의 방사능 붕괴 - 동력 발전이기는 합니다. 계속되는 변화 때문에 - 그게 무엇이든 간에 바로 이 방에서 일어나는 것이 맞지요? 앤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바로 저 장치에서요? 그녀는 마치 동물의 창자처럼 생긴 튜브 들과 철사들을 엄숙하게 가리켰다. 네, 맞아요. 참 기가 막힌 장치예요. 그렇죠? 바로 저기에서 나오는 겁니다. 글쎄 실제로 말하자면 당신이 보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과는 관계는 없다고 해야 할 거예요. 장치의 어떤 부분은 우리가 자장의 구성분을 연구하는 것과 연관돼 있으니까요. 실제로 저 장치 중의 많은 부분은 떼어내도 괜찮아요. 하지만 그 설비 중에서 어느 한 개를 떼어낸다는 것조차도 실제로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참 신기하네요. 앤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 순진한 왝스는 아마도 그것이 친근한 미소라고 생각했겠지만 앤은 큰 건수를 하나 올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사님께서는 방사능의 누출이나 핵 폭발 사고들을 막기 위해서 어떤 방지책을 쓰고 계신가요? 그녀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그곳의 설비에서는 어떤 보호막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왝스 같은 사람들은 자기가 연구하는 과제나 문제에 대한 지적인 환희에 빠져서 실내의 난방이라든가 치명적인 방사능이라든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곳에는 보통의 라디오 발신기 정도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많은 방사능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가 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했다. 나는 보통의 라디오 발신기가 어떻게 생겼으며 그것이 내 개인적인 위생 관념의 수준에 맞는지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을 내렸다. 왝스와 그의 연구원들은 아주 건강해 보이고도 남았다. 나는 그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이며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알아내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내가 말했다. 이 과정에서 빛과 열이 얼마나 발산되는지와 상대적으로 말해서 - 전기예요. 그가 말했다. 이것은 직류의 전기를 발전시킵니다. 그는 흥분해서 거의 이리저리 춤을 추고 다니고 있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거예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생각이 그를 엄청나게 기쁘게 만들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 설비 하나만 갖고도 우리는 이것이 쓰는 전기와 같은 양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설비는 지금 혼자 가동되고 있어요. 현재 바깥에서 들어오는 단 한 종류의 에너지는 설비의 제어 장치에 쓰이는 동력뿐입니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이것은 영원히 혼자서 가동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대목에서 나는 좀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나는 누군가가 최소한 구식의 아이들 장난 같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 건물의 전기를 끊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그곳에서 어떤 핵 발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동으로 가동될 수 있지만 그 제어 장치는 외부의 동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 정확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단지 친절한 마음이나 시민 정신을 가지고서도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왝스의 주의를 모으도록 할 수도 있었다. 지금도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내 생각이 모자랐었다. 물론 되돌이켜서 생각한다면 말은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전체 상황이 그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낭떠러지 사이로 곤두박치는 것을 본 다음에도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다. 나는 그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을 몰랐었다. 그래도 만약에 내가 왝스가 하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친절을 조금만 더 베풀 수 있었다면. 글쎄, 이제는 소용이 없는 일이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그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도. 물론 그 사람은 광인이었다. 그에게 설비 재료를 납품한 업자들과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그의 동료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이 실험실에서 그가 했던 일을 재구성해 보려고 시도했을 때 그들은 왝스와 이 회사의 전직원이 전기 감전사로 진작에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 아이디어 위에 또 다른 아이디어를 얹듯이 이처럼 기계를 막 쌓아 놓으면 절대로 안된다. 이것은 다 잘 구성된 과정입니다. 왝스가 앤에게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연방 정부의 안전 규칙과 허가증에 대한 질문으로 그를 꽉 졸라매고 있었다. 핵 발전 같은 일이 아니거든요. 만약에 내가 당신에게 그 수학적 계산을 다 보여줄 수만 있다면 당신은 정말 놀랄 겁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전체 과정이 아주 단순해요. 아무도 이것을 진작에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고 비록 어떤 면에서는 맥스웰 회사에서 이걸 잘했을 수도 - 내가 알려고 하는 것은, 내가 끼어들었다. 이 과정이 무엇이든지 간에 문제는 스스로를 움직이는 동력말고도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당신이 쓰는 전기보다 여기에서 나오는 전기가 더 많은가요? 아니면 여기에는 이론적인 한도가 있는 것인지요? 아니지요. 아녜요. 이론적 한도라는 것은 전혀 없어요. 그게 바로 가장 중요한 점이예요. 우리에게 만약에 이것을 풀 가동시킬 수 있는 발전기를 살 돈만 있다면 이론적인 한도는 고사하고 실제적인 한도도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말한다. 보통은 전체 이론이 아예 다 틀려 있다든지 기계 자체를 만드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든지의 경우거나 아니면 둘 다인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렇지만 혹시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하여간에 사람들의 말에 반대해서 얻는 것은 없다. 만약에 박사님의 말씀이 옳다고, 토론할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에게 다짐을 주었다. 돈은 별 문제가 아닐 겁니다. 최소한도 박사님에게는 엄청난 부가 아니더라도 끝도 없이 연구 보조금이 들어올 테니까요. 이 설비에 필요한 연료는 무엇인지 말씀을 좀 해 주시겠어요? 연료요? 이 설비가 계속해서 구조를 바꾸어서 그 무엇인가로 재구성한다는 그 재료 말씀입니다. 왝스 박사님! 아까의 그 비서가 우리를 뒤쫓아 온 것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끝장난 운명을 알리는 것 같았다. 벌써 십오 분이나 늦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노려보았다. 알았어요. 그래요.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막 가려던 중이예요. 그는 앤과 나와 함께 종종걸음으로 실험실을 나왔고 비서가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는 건물의 끝에 있는 좁고 긴 복도로 들어섰다. 커다란 타원형의 테이블이 한쪽 벽으로 밀어 붙여져 있었으며 남은 자리에는 접는 의자들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뒤에는 슬라이드 영사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앤은 맨 앞줄에 앉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중간에 살짝 낮잠을 자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나를 실망하게 만들었는데 내 생각으로는 그녀는 그 음모를 꿈꾸고 있는 핵 범죄자의 근처에 있고 싶었던 것 같았다. 방에는 스물다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몇 명은 보기에 신문 기자들 같았다. 하지만 다들 학계에 있는 사람들일 확률이 더 많았다. 아마 그들은 왝스의 친구들 아니면 동료들이었을 것이다. 하여간에 왝스는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학계에 있지 않은 청중들에게는 그의 연구 중에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고 해서 우리를 안심시켰다. 거기에 대한 학술적인 논문이 준비되고 있으며 곧 적당한 학술 잡지에 곧 발표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는 그런 논문의 출판이 오늘 그가 하고 있는 공식 회견보다는 더 빨리 나왔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의 연구 결과의 중요성과 진행중인 연구에 대한 뒷받침의 필요성 때문에 때 이른 비공식적인 발표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이 꺼졌고 우리는 깜깜한 어둠 속에 앉아 있게 되었다. 한순간에 나는 세계정의학생회가 벌써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우리의 깜짝 놀란 침묵을 뚫고서 왝스의 흥분된 총알같이 빠른 목소리가 높게 울려 나왔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기라는 것을 소입자들의 궤도와 회전을 결정하는 힘으로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고 가끔 우리들은 다른 역사적 시대의 다른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자기라고 부르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서 얼마나 틀린 견해를 갖고 있었나를 종종 발견하고서 깜짝 놀라게 됩니다. B.C.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리이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천연 자석이 다른 자석들이나 쇠에 붙는 그 기이한 능력에 대해서 관찰했습니다. 방의 뒤쪽에서 갑자기 뭔가가 덜커덕하면서 돌아가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바위의 모습이 방 전면에 예기치 않게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을 나타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우리 문외한들에게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려는 왝스의 방식이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문과 대학생들이 듣는 과학의 철학과 역사 개론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이 강의를 계속해서 듣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숙취 때문에 오는 고통은 빨리 강해지고 있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화면에 나오는 눈을 찌르는 듯한 환한 이미지들과 방의 어둠이 이루는 대조가 벌써 지독한 두통으로 발전되고 있었고 슬라이드 기계가 덜커덕 하는 소리를 낼 때마다 나는 일종의 멀미 같은 구토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슬라이드가 나오려고 할 때마다 몸을 움츠렸다. 1785년에 프랑스의 샤를르 콜롱은... 휙휙. 덜커덕 덜커덕. 어떤 역사에서나 교재로 쓸 수 있을, 도대체 알 수 없는 장치가 슬라이드에 나왔다. 총기류일 수도 있었고 피임 용구일 수도 있었다. 무려 15분이나 지난 뒤에도 우리는 아직도 18세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19세기에 가면 더 많은 중요한 업적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잠시 동안만 자리를 비운다면 화장실을 찾아 가든지 바깥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쏘이고도 20세기에 늦지 않을 충분한 시간 안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더듬어서 나갔다. 문을 열자 복도의 조명이 나를 환히 비추었고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문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사람에게 반쯤의 커다란 속삭임으로 사과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조금 속이 언짢아서요. 금세 돌아올 겁니다. 나는 내 뒤로 문을 밀어서 닫고 현관을 향해서 복도를 도로 걸어나갔다.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기분이 좀더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었다. 그 비서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강의를 듣고 있는 것에 틀림없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바깥에서 바람을 쐬고 있거나 잔디밭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문을 열고서 현관 바깥의 포오치에 한 발을 내딛었다. 반갑지 않은 이슬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 날씨에도 좌절하지 않고 내 앞의 잔디밭 바로 거기에서 그들의 정의의 세계의 한 부분을 짓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나를 보고서 손을 흔들었다. 그는 내게 무엇을 묻고 싶었는지 내 쪽으로 다가오려는 몸짓을 했다. 나는 재빨리 그에게 어설프게 손을 흔들어 준 뒤에 재빨리 건물 안으로 도망쳐 들어와서 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문을 잠가 버렸다. 나는 아무하고도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구토증이 나를 덮쳐왔다. 내가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은 화장실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도로 이곳에 와서 비서실의 소파에 드러누워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잠깐만. 나는 왝스의 사무실 문 손잡이를 잡아 돌려보았다. 잠겨 있었다. 나는 복도로 돌아가서 오른쪽으로 처음 있는 문을 열었다. 청소용 도구를 넣어두는 붙박이장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문을 열자 엄청나게 커다랗고, 근사하게 설비가 되어있는 화장실이 나왔는데 거기에는 보통의 화장실 설비 외에도 샤워장과 사우나가 들어 있었다. 깨끗하게 세탁된 타월들이 많이 쌓여 있었고 한쪽 벽에 붙어있는 고리들에는 조깅용 운동복들과 다른 잡다한 옷가지들이 걸려 있었다. 마이크로매그네틱스의 직원들이 이곳을 탈의실로 쓰는 것 같았다. 화장실 변기로 가서 내 몸에서 꺼낼 수 있는 만큼의 더러운 오물을 쏟아내었다. 다 끝내고 난 뒤에야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하지만 두통은 더 심해졌다. 나는 세면대에 머리를 가져다 대고 찬물을 틀었다. 정신도 차릴 겸해서. 물은 너무나도 차가웠고 그 자세는 끔찍하게도 불편했다. 세면기 위에 약장이 있었다. 그 안에서 아스피린 병을 찾아서 세 알을 먹었다. 나는 그 방 안에서 계속해서 앵앵거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정말 그런 소리가 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내 두통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소리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점점 내 명치가 욱신거리는 것과 맞추어서 화장실의 조명이 환해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것 같았다. 머리 속의 통증은 정말 기가 막히게 아팠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히 그곳에서 앵앵대는 소리가 난다고 판단을 내렸지만 그 소리의 높은 피치가 정말 리듬 있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인지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지런하게 다듬은 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그때서야 전신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돌아서서 샤워장을 바라 보았다. 샤워를 빨리 하고 회견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시간은 충분했다. 이처럼 남의 화장실을 쓴다는 것은 내 주제에 넘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들어온다면 정말 민망한 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그 슬라이드 쇼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샤워를 하면 기분이 좀 더 나아질 것 같았었다. 나는 옷을 벗어서 그 옷고리들 중의 하나에 조심스럽게 걸었다. 옷걸이가 거기에 없다는 것이 나를 신경질나게 했다. 과학자들이란 참 잡초 같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짜증스럽게 생각했다. 조금만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엔지니어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같은 사람들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는 드라이클리닝의 수요가 전혀 없게 될 것이다. 나는 누가 드라이클리닝 설비를 제작하며 파산하는지를 알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양말과 속옷을 개어서 구두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았다. 샤워장 안으로 들어가서 처음에는 미지근한 물, 그 다음에는 차가운 물, 그리고는 아주 뜨거운 물과 찬물의 순서로 물을 뒤집어 쓴 다음에 물을 껐다.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샤워장에서 나와서 타올을 하나 집어서 천천히 내 몸을 닦기 시작했다. 건물 안 어디에선가 전기 경보기가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꼭 학교가 파할 때 울리는 것처럼 날카롭고 엄청나게 큰 벨 소리로서 학생들이 전부 노트를 덮고 책들을 집어들고 볼펜들을 찾아서 복도로 뛰어나올 때의 벨 소리처럼 날카롭고 겁날 만큼 큰 소리여서 그 순간에 나는 바보처럼 이제 왝스의 강의가 다 끝난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경보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치 가게에서 한밤중에 울리기 시작해서 주인이나 경찰이 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울리는 도둑 방지용 경보처럼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럴 때 갑자기 그 굉음이 그치면 얼마나 귀가 편안한지 모른다. 나는 이 소리도 그렇게 끝나기를 바랐다. 내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머리가 다 맑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 경보 소리말고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앵앵대는 그 소리는 아직도 들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복도를 뛰어 오면서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 모든 소동이 세계정의학생회와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아마 그들이 건물의 전기를 끊었을 것이다. 아니다, 불은 아직도 켜져 있었다. 아마 실험실의 전기만 끊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화재 경보만 울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말이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오게 해서 그들의 데모를 위한 청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나는 점점 그들에게 그런 만족감을 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여러 사람들의 외침과 건물 내에서 많은 문들이 큰 소리로 닫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복도로 모여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 그 일은 학교에서 하는 비상 화재 훈련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그들의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 아마도 나는 그들이 전부 바깥의 차가운 이슬비 속으로 쫓겨 나가 서 있을 동안 편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화장실로 들어왔던 그 문을 잠갔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옷가지들을 운동복 밑에다 숨겨 놓았다. 그 사람들이 다 나갈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 나는 사우나의 문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곳은 따뜻했는데 아마 누군가가 아침에 사용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온도조절계를 끝까지 올려 놓고 나와서 타월을 넉 장 집어 들었다. 그 중 두 장은 깔개로 쓰려고 사우나장 안쪽 벽에 쭉 둘러있는 향나무 벤치 위에 깔아 놓았고 나머지는 베개로 쓰려고 접었다. 사우나 안의 전구를 돌려서 불이 들어오지 않게 해 놓고서 열기가 내 몸 속으로 젖어 들어오도록 어둠 속에 누웠다. 나는 그곳에 아마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 누워서 의식과 잠 속을 떠다녔던 모양이다. 문을 다 닫았더니 경보 소리는 듣기에 편한 정도로 낮아졌고 건물 내 다른 곳에서의 소동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만 같았다. 그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내가 잠가놓은 문을 열어 젖히고 화장실의 한 가운데로 뛰어 들어왔을 때 그야말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서 사우나 문에 달린 유리로 바깥을 엿보았다. 그는 손에 아무 문이나 다 열 수 있는 매스터 열쇠를 들고 있었으며 무슨 계급장 같은 것이 붙은 하얀 헬멧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아마도 화재 훈련시 복도를 왔다갔다 뛰어다닐 때 꼭 써야만 하는 것이든지 어떤 공습 훈련을 대비해서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아주 권위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누구 있어요? 누구 있어요! 비상시에 정말로 기분 나쁜 일은 주로 그 비상 자체가 아니라, 보통 때는 봐줄 만한 사람들이 제복을 입고서 거역할 수 없는 명령들을 내리면서 다니는 일이다. 나는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자기가 서 있는 방 한 가운데의 위치에서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 것도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돌아서서 방을 가로질러 가더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변기 앞으로 가서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언제나 변기에 물을 흘려 보내는 일을 잊어본 적이 없다. 좋은 집안 배경에서 성장하는 것은 언제나 당신을 좋은 상황에 놓이게 해준다. 그는 방을 다 건너가서 다른 문을 열었는데 아마 왝스의 사무실로 통하는 문 같았다. 여기 누구 있어요? 누구 있냐구요!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 문을 닫고 돌아와 다시 화장실 문을 뒤로 닫고 나가버렸다. 이 방해꾼이 들어와 있는 동안에 나는 처음으로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발각된다면 얼마나 괴롭게도 민망하게 될 것인지를 깨달았다. 누구의 집이나 사무실을 방문해서 변기를 쓴다는 것은 정상이고 물론 세면대에서 어느 정도 내로 손을 씻는 것은 괜찮지만 사람들은 주로 손님이 자기의 화장실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들어 앉아서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거기에 만약 사우나가 있다면) 사우나에서 낮잠을 자리리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겁에 질려서 얼렁뚱땅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굉장히 건방지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벌써 누군가가 아주 심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비상 화재시의 규칙을 벌써 어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더 나쁜 가능성은 그 책임자 같은 헬멧을 쓴 친구가 나를 강제로 내 안전을 위해서라며 나를 이 건물에서 소개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특권이 지나치게 많이 주어진 그 학생 애들이 나의 정치적인 실패에 대해서 훈계를 늘어놓고 있는 동안에 나는 빨가벗고 잔디밭에 서서 손에는 우스꽝스럽게 옷가지를 들고 서 있는 장면을 눈 앞에 그릴 수 있었다. 이 일은 일종의 기자 회견이기 때문에 그 순간을 포착할 사진사도 아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헬멧을 쓴 사나이는 왔다가 가 버렸다. 내가 발각되는 것을 모면했다는 것이 거의 확실했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빗속에서 바보처럼 서 있지 않아도 된다는 바로 그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아늑해졌다. 오직 하나 불쾌한 것은 그치지 않는 경보 소리와 앵앵거리는 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뿐이었다. 복도에서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되자 나는 사우나에서 나와 샤워를 다시 틀었고 이번에는 아주 찬물에서 시작해서 수온을 점점 위쪽으로 조절했다. 나는 내가 샤워를 마칠 무렵에는 그 혁명의 혼란이 무슨 결말을 맺게 되기를 바랐다. 건물에 있었던 사람들이 전부 바깥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가짜 원자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듣게 되지 않나 생각했다. 샤워를 끄고 몸을 말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불이 꺼지더니 경보 소리 역시 자비스럽게도 꺼졌다. 분명히 혁명군 전위대들이 건물의 모든 전기를 끊은 모양이었다. 실망할 것도 없었지만 어둠 때문에 아주 불편하게 왝스의 사무실에까지 더듬어 찾아가서 문을 열었다. 거기서 새어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간신히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경보 소리가 그치자 나는 이제는 더 분명하게 그 불쾌하고 고막을 찌르는 앵앵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옷을 다 입은 뒤에 반쯤의 암흑 속에서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할 수 있는 만큼 머리를 빗으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러다 나는 잠수함이 나오는 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짧고도 강한 클랙션 소리 같은 굉음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마 영화말고 진짜 잠수함에서도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커다랗게 웃고 말았다. 그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저렇게 커다란 소리를 내지르는 기계를 가져왔을까?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겠다는 것일까?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들이 내게 어떤 맹목적으로 이유도 없는 공포를 일으켜서 내가 그 건물에서 겁에 질려 뛰어나가게 만들었을 신호를 보냈었기를 바란다. 나는 거울로 내 모습이 보통 때처럼 제대로 보이는지 들여다 보았는데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내 모습이 되었다. 그 뒤에 나는 창문 밖으로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왝스의 사무실로 갔다. 바깥의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나는 방의 한 가운데에 서서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인 대회를 살펴 보았다. 나는 다시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째지게 들려오고 있는 그 앵앵 소리만 빼고서는. 내 쪽에서는 아무 데에서도 불길이 보이지 않았지만 찻길이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바로 그 앞의 잔디밭에는 불자동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글쎄, 실제로 불이 일어난다면 내가 이곳에서 빠져 나가는 일이 더 쉬워질 것이다. 두 대의 주 경찰차가 거기에 서 있었는데 앤과 세계정의학생회원들은 아마 그들의 출현 때문에 안도감을 더 갖게 되었을 것이다. 하얀 헬멧을 쓴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어떤 종류의 제복이라도 걸친 사람들은 손짓을 하거나 무슨 지시를 외치고 있었는데 그곳의 질서나 권위를 세우는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건물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가엾게도 잔디밭에 서서 우울하게 학생들이나 소방차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슬비는 계속해서 그들 위로 내리고 있었다. 분명히 원자 폭탄은 아직 폭발하지 않은 것 같았다. 건물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데모자들은 그들이 폭발 장소로 정한 것이 틀림없는 철제 테이블을 벌여 놓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60센티 정도 높이의 어떤 장치를 올려놓았는데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플라스틱 덮개로 싸여 있었다. 덮개 밑으로는 9미터 가량의 전선이 나와서 여러 종류의 상자들과 도구 주위에 데모자의 대부분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몇 명이 쭈그리고 앉아서 폭발 뇌관 장치로 보이는 것을 그 전선에 연결시키고 있었다. 두 명의 좀 더 젊은 사람들이 밴에 있었던 그 우리에 고양이를 한 마리 집어 넣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 생각에 그 우리는 모르모트가 들어가기에도 너무 작았었는데 그 고양이는 모르모트보다 훨씬 더 컸다. 우리의 문으로 그놈을 집어 넣으려면 그 고양이의 절대적인 협조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모르모트들은 보기에도 순종적인 동물이지만 고양이들은 그렇지가 않다. 그 특별한 고양이는 모르모트처럼 행동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았고 모르모트만큼 자본주의자들의 압제와 죽음을 부르는 핵 기술의 희생자의 심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놈은 몸을 뒤틀고 발톱으로 할퀴고 막 으르렁거렸다. 점점 그 장면은 잔디밭에 모여 있던 지친 군중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그 동물에 대한 행동에 대해서 아주 끔찍해 하고 있었고 또한 모르모트라고 묘사된 현수막 때문에 아주 어리둥절해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그들은 그 고양이를 우리에 쑤셔넣고 문을 꼭 닫았는데 고양이는 우리에 몸이 꽉 찼으면서도 화가 나서 다리를 사방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들이 철제 테이블 위에 놓인 그 장치에서 플래스틱 덮개를 벗기자 파이프와 양철 깡통과 철사들로 만들어진 정교한 조각품이 모습을 하나 드러냈고 고양이 우리는 그 위에 올라가게 되었다. 캐릴런이 그의 혁명당 무리로부터 걸어 나와 그의 입술에 메가폰을 갖다 대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그는 현수막에 써 있는 그 글을 위엄 있게 소리 높여 읽기 시작했다. 모르모트를 참사를 불러오는 핵으로 파괴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자들의 압제와 죽음을 부르는 핵 기술의 희생자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모르모트에 지나지 않는다 닫혀진 창문 안에서는 그의 확대된 음성을 듣기가 힘들어 창문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나는 아직도 한쪽으로 비켜 서 있었다. 정말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그 폭발이 보고 싶었었다. 그래서 잔디밭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열심히 그를 보고 있었다. 그런 일에 직면하게 된다면 인간들은 어떤 정치 계열에 속했건 간에 모두 폭발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오직 나만이 그 사람들 중에서 폭발에 고양이를 포함시키는 일에 대해서 메스꺼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탐욕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캐릴런이 말을 계속했다. 그 현수막에 쓰인 구호는 그저 교과서를 읽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고 폭죽 놀이를 보려면 그의 강의를 다 들어야 되게 생겼다. 나는 그가 서두르기를 빌었다. 앵앵거리는 소리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건물을 나가야 할 때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이익과 재산보다 값 없이 취급하고 있다. 그 순간 왝스가 그의 통통한 다리들이 그를 빨리 실어나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빨리 잔디밭을 달려와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에게 달려 들었다. 그는 분노에 불타고 있었고 아마 그때쯤에는 미쳐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캐릴런을 머리로 들이받으면서 뛰어 들었는데 분명히 왝스는 그가 이 질서의 파괴와 손해를 끼치고 있는 장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캐릴런은 그 자본주의적 압제자가 다가오고 있었던 동안에 그를 알아보고는 그의 연설을 중지하고 외쳤다. 제로! 잔디밭의 사람들은 폭발이 예상되는 쪽으로부터 본능적으로 머리를 돌렸고 팔을 올려서 그쪽을 막든지 물러서든지 했다. 뇌관 근처에 서 있던 데모자들은 뇌관을 에워싸고 들어가서 그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 거기에서는 아주 커다란 폭죽이 하나 터지는 듯한 근사하고 만족스러운 소리가 났다. 그 위용이 버찌탄보다 더 나은 소리가 나무들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우리의 시선이 전부 고정되어 있었던, 그 고양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던 복잡한 장치는 그대로 가만히 남아 있었다는 점이었다. 결론적으로 고양이를 가두어 두기에는 철저하게 안전한 장소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 대신 뇌관 근처에 있던 상자 중의 하나가 극적으로 폭발했다. 아마 그들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가져온 여분의 폭탄에다가 실수로 전선을 이었던 모양인데 나는 그들의 실수가 무엇이었는지는 영원히 알아내지 못했다. 바로 이런 것이 문과대학 교육의 문제점인 것이다. 이 사람들은 아마 전부 영문학 전공이었을 것이 분명했고 폭발물이나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도 절대로 만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폭발이 일어난 진짜 장소로 움직였다. 터진 상자에서는 시커멓고 근사한 연기가 하늘로 2.5미터 정도 높이 솟아 올랐고 낯익은 버섯 모양의 구름이 되어 옆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양은 비례가 잘 맞지 않아서 기둥은 너무 길고 좁았지만 하여간에 전체 효과는 그야말로 인상적이었다. 누군가가 그것을 만드느라 꽤 애를 썼을 것이고 비록 집행 자체는 좀 지저분하게 되었지만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다. 폭발을 둘러싸고 있던 데모자들은 그 진짜 폭발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신들도 같이 폭사할까봐 그랬겠지만, 누르면 머리가 톡 튀어나오는 장난감 인형들처럼 사방으로 다 튀어 나왔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전체적인 혼란과 그들에게 공통되어 있던 옷차림을 감안한다 해도 한 명의 옷이 옆구리의 한쪽으로 조금 찢어진 것이 보였다. 옷에 피가 묻어 있는 모습이 마치 그의 팔을 흉하게 먹어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폭발이 일어나는 동안에 잠시 서 있었던 왝스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캐릴론에게 뭐라고 외치더니 현수막 밑에 있던 그 장치를 마구 손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는 분노의 손길로 고양이가 든 우리를 집어 들어서 그것으로 폭탄 장치를 세게 때려서 장치의 몇 부분이 부러져 나가게 만들었다. 자신이 채 써 보지도 못한 폭탄에 대한 왝스의 파괴적인 공격에 이번에는 캐릴런이 화를 내면서 왝스에게 덤벼들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잔디밭의 모든 사람들이 넋이 나간 듯한 침묵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동안 좀 수그러진 줄 알았던 그 끔찍한 앵앵 소리가 갑자기 새로운 강도를 더하면서 넘치기 시작했고, 건물 안쪽의 내 위치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잔디밭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왝스가 갑자기 건물을 올려다 보더니만 공포에 서린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아마도 그만이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이해한 - 이해할 수 있었던 오직 한 명의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깨 위로 우리를 들어올리더니 있는 힘을 다해서 외쳤다. 이 나쁜 놈아! 그가 온갖 힘을 짜내어 세게 캐릴런의 머리를 그것으로 내려쳤다. 우리는 왝스의 손에서 제멋대로 날아가서 땅에 떨어져서 부지고 말았다. 고양이가 거기에서 폭발하듯 뛰어나와 건물을 향해서 미친 듯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캐릴런은 맞은 그 힘 때문에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손을 얼굴에 댔는데 우리 때문에 얼굴이 찢어져서 피가 마구 흐르고 있었다. 그는 놀란 공포의 표정으로 왝스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의 입술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정신 나간 미친 놈아! 잠시 두 사람은 점점 끓어오르는 분노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뒤쪽에서 들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이 고막을 뚫는 듯한 소음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져서 나는 드디어 이 건물에서 도망쳐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소음은 약간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가 다시 나를 쓰러뜨릴 것만 같고 정신을 쪼개는 것 같은 새로운 강도로 변해서 넘쳐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아까 보았던 광채가 잔디밭에 다시 나타나서 딴 세상에서 온 듯한 환한 빛으로 모든 것을 비추었다. 그 소음과 빛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시 한번 강해졌을 때 갑자기 캐릴런과 왝스의 얼굴이 끔찍한 마지막의 고통으로 일그러지더니 그것을 보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과 앤의 얼굴에도 마치 메아리처럼 똑같이 공포 어린 표정이 나타났다. 그 현수막과 폭탄과 왝스와 캐릴론의 살덩어리들이 전기의 화염 속에서 환하게 빛나며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것을 본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 │ 3 │ └────────────────────────────┘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이 왔다. 아주 불쾌했다. 맙소사, 햇빛이 찬란했다. 꼭 눈을 찌르는 것 같았다. 두 개의 내 눈 전부를. 아마도 그 빌어먹을 커튼을 열어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몸을 굴려서 머리를 덮을 베개를 찾았다. 바깥에서 무슨 사이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온 몸이 쑤셨다. 그 중에서도 머리와 눈이 더 아팠다. 거기에 베개는 없었다. 침대 위에도 없다니. 나는 카펫 위에 누워 있었고 그제서야 나는 옷을 입고 잤다는 사실을 알고서 속이 상했다. 분명히 전날 밤에 방바닥에 쓰러져서 잠든 모양이었다. 술을 과음하는 것을 삼가야지. 그럴 가치가 없다. 언제나 이렇게 괴로운 아침을 맞게 된다. 전날 밤에 무엇을 했더라? 내 정신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이 왔다. 잔인한 태양. 사이렌 소리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나는 내 아파트의 내부 구조와 현재의 내 위치를 마음 속에서 그려 보려고 노력했다. 아마 거실의 바닥일 것이다. 하지만 태양은 동쪽에서 뜨는데? 내가 어제 밤에 누구와 함께 있었더라? 갑자기 어제의 왝스, 캐릴런, 그리고 세계정의학생회의 환하고 빨간 글씨가 쓰여 있었던 현수막이 끔찍하게도 화염이 되어 타오르던 그 마지막 장면이 내 마음에 가득해져 왔다. 하나님 맙소사. 나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그 순간의 끔찍함을 말로 옮길 수도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나는 커다란 텅 빈 구멍의 15미터 가량 똑바로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마치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자 삼층의 창틀에 매달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과 똑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도대체 어떤 창틀에 몸을 기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 속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무엇이 나를 잡아주고 있는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머리를 조심스럽게 돌려서 주위를 둘러 보았는데도 나를 받쳐주고 있는 것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고 있던 공포는 점점 더 커지고 말았다. 내 심장은 마치 덫에 걸린 토끼의 심장처럼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공포를 진정시키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내 상황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정확하게 생각해야만 했다. 우선 나는 이곳에서 미끄러져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가만히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다음에 공포가 나를 쓸어가 버리지 않도록 하면서 주위의 물체들을 살펴보아야 했다. 머리를 아주 천천히 겨우 몇 도 정도 돌리면서 나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매달려 있는 밑의 그 구멍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파여진 구멍으로서 지름이 30미터 정도에 가장 깊어 보이는 중앙은 14미터 가량 되었고 둘레는 완벽하게 매끄러운 원을 그리고 있는 분지였다. 그 분지의 표면은 타 버린 흙과 돌멩이들의 선이 그어진 것 같았지만 표면이 하도 매끄러워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3미터 정도 너비의 테가 구멍의 둘레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 테 안의 땅과 식물들은 다 타버려서 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그 테의 바로 바깥에는 잔디가 파랗게 자라고 있으며 나무잎들은 무성한 채로 그냥 있으며,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일어났던 사건 때문에 해를 전혀 입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내가 어떻게 해서 구멍 위에 매달려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나는 구멍 둘레의 잔디밭보다 약간 높으며 구멍의 테와 중심 사이의 가운데쯤 되는 위치에 매달려 있었다. 공포와 메스꺼움을 억누르지 못하면서 나는 그 상황의 조각난 그림들을 맞추어 보려고 애썼다. 나는 내가 대강 어디쯤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잔디밭과 나무들과 찻길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마이크로매그네틱스 회사가 있었던 자리였다. 건물이 서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커다란 구멍만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매끄럽게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하여간에 거대하고 매끄러운 분화구를 만든 폭발이 일어났다고 결론을 내렸다. 분명히 그 폭발 때문에 생긴 열이나 방사능이 그 분화구 둘레의 9미터 정도에 있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서 완벽한 원을 그렸던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아마 나는 그 폭발의 힘에 의해서 내동댕이쳐져서 어디엔가 떨어졌을 것이다. 무엇에? 아마 나무인지도 모른다. 신통치 않은 영화를 보면 언제나 어떤 사람이 도저히 구제받을 수 없는 높은 절벽 밑으로 떨어지다가 꼭 몇 미터 바로 밑에 있는 외로운 한 그루의 나무에 살짝 내려앉아 그 밑의 아득한 공중에서 대롱대롱 흔들리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난 둥근 원 안에 있었던 모든 것들은 싹 지워진 것처럼 보였고 거기에는 건물과 그 안에 있었던 물건들의 티끌 만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건물 안에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폭발이 어떻게 유리처럼 매끄럽고 완전한 원 모양의 분화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내려앉은 곳은 도대체 무엇이고 여기서 어떻게 내려가야 하는 것일까? 왜 아무도 나를 구출하러 오지 않는 것일까? 모든 것이 이상하게 정지되어 있었고 얼씬거리는 것도 하나 없이 버려져 있었다. 오직 이 지구상의 것이 아닌 듯한 고양이의 울음 소리만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앤과 다른 사람들은 폭발 현장에서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거기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소방서원들.경찰들.불자동차.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왜 그들은 나를 이곳에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 나는 도와줘요! 라는 외침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거의 공포로 얼어붙은 내 정신 상태에서도 그것이 한심한 시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랴. 만약에 여기에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내가 이 거대한 구멍 위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우선 내가 어디에 매달려 있는 것인지 앉아 있는 것인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나는 전신을 움직이지 않고서도 머리를 몸의 밑으로 숙여서 내 몸과 내가 앉아 있는 그 무언가를 보려고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깊숙히 숙여도 내 몸이나 그 어떤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참 이상했다. 왜냐 하면 나는 내 얼굴이 카펫이 깔린 바닥에 닿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서 가슴에 닿을 때까지 팔 굽혀펴기 같은 동작을 취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윗몸을 일으킨 뒤에 무릎을 앞으로 끌어 모아서 네 발로 서 있는 자세를 만들었다. 내 자세가 안정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멈춘 다음, 내가 어디에 무릎을 꿇고 있는지 보려고 천천히 머리를 밑으로 기울여 보았다. 분화구의 바닥 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고 그 이해되지 않는 시각적 결론은 즉시 메스꺼움의 어지러운 파도를 몰고 왔다. 나는 내 몸이 공중에서 앞쪽으로 물구나무를 서면서 회전을 한다고 느꼈다. 분명히 나는 꽥 비명을 지르며 아무것이라도 잡으려고 본능적으로 팔을 내밀었다고 생각된다. 그 덕분에 나는 꼴불견의 모습으로 넘어지고 말았는데 그 동시에 나는 역시 그 전과 똑같은 밑의 광경을 보았고 그 전과 똑같은 분화구 위의 위치에 내가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카펫 섬유의 촉감을 계속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 몇 초 동안에 나는 끔찍한 배멀미를 느낀 것이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무릎을 꿇고 있는 바닥이 계속 불안정하게 앞 뒤로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면서 내 눈의 초점을 분화구의 한 테두리에 맞추었다. 더욱 공포에 질리기는 했지만 전보다는 덜 조심하면서 다시 팔과 다리로 몸을 세운 다음에 무릎을 다시 꿇어 보았다. 나는 균형을 잘 잡으려고 손을 떼지 않고 계속 바닥에 대고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히 카펫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실험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내 앞에 보이는 테두리의 완만한 원주로부터 시선을 옮겨와서 다리 쪽으로 움직여 도대체 무엇이 내 다리를 받치고 있는지 보았다. 이번에도 내 시야에는 저 멀리 밑에 있는 분화구의 바닥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내가 머리를 발 뒤꿈치에 대고 물구나무 회전을 하는 듯한 느낌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분명히 내 다리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때까지 몸을 똑바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다리가 없었다! 하나님!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제서야 내 다리들이 잘라져 나갔다는 생각이 나를 덮쳐왔다. 맙소사. 나는 분명히 죽어가고 있었다. 여기 좀 도와 줘요! 하나님! 그러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생각도 역시 떠올랐다. 나는 팔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없어진 부분에 대한 감각을 그대로 지니거나, 아니면 지니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살아간다고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내 마음은 공포에 휩쓸리고 있었다. 내 생각들은 완전한 혼동 속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잘 생각해야만 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꼭 감아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눈을 꼭 감아도 아직도 모든 것이 완벽하고 똑똑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 전에 내가 느끼고 있었던 공포를 더 무서운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차라리 내 마음 속에 괴기한 충격이 생기게 만들었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사람들이 끔찍한 사고를 당하면 팔 다리를 잃는 수가 언제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폭발 사고 때문에 눈꺼풀이 날아가 버렸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 왼손을 바닥에 댄 채로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내 얼굴로 가져갔다. 손가락 끝으로 내 눈 근처를 만져 볼 수 있었다. 눈썹은 괜찮았고 다 타버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검지로 부드럽게 오른쪽 눈을 만졌다. 분명히 눈꺼풀이 거기에 있었다. 눈꺼풀이 움직이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속눈썹도 만져볼 수 있었다. 한가지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 손가락을 볼 수가 없었던 점이었다. 손도 역시. 두 손으로 눈을 가려 보았다. 내 시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양은 높이 떠 올랐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 나무들, 잔디밭, 그리고 환하고 푸른 하늘을 그 전과 마찬가지로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더 분명히 보이는지도 몰랐다. 나는 떨기 시작하면서 손을 뻗쳐서 다리를 만져 보았다. 다리들은 맞는 자리에 온전하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무게 중심이 다리로 오도록 윗몸을 일으켜서 전신을 만져 보았다. 전부 제 자리에 있었다. 나는 옷을 입고 있었으며 게다가 평상시와 똑같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아무리 머리를 돌려서 눈의 초점을 맞추어 봐도 나는 내 자신을 볼 수가 없었다. 사실 그 분화구의 동그란 원 안에는 볼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내 자신에게는 아무런 육체적 이상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나는 지금 분명히 의식을 갖고 있으며 양복의 패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잘 들리지 않게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내게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도 희미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서야 나는 내가 더 이상 물질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완전히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상황은 너무도 무섭고 비논리적이었다. 생각을 똑똑하게 해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마치 가슴까지 오는 물 속에서 뛰어 보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끔찍한 직관의 번쩍임 속에서 드디어 나는 모든 사실을 다 포괄해 줄 수 있는 설명을 하나 찾아냈다. 분명히 나는 죽은 것이었다. 이유야 많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후의 생명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유년 시절 이래로는 없었을 것이다. 구름 위에 탄 날개가 달린 천사들과 밑에서 불을 피우고 있는 악마들의 모습이 내 마음 속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모든 희망을 버려라! 왜냐 하면 후광이 둘려진 성자들의 얼굴과 진주문의 적나라한 이미지들이 검고 무한하고 절망적인 우주를 뒤로 하고 잠시 별똥별처럼 빛났다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착하게 살지 못했던 내 인생과 내가 해서는 안되었던 그 모든 일들까지 합쳐진 절망. 내가 꼭 해야만 했었던 일들. 낭비해 버린 오후와 저녁 시간들로 채워진 얄팍한 인생. 분명히 천국에는 어떤 천상의 심판관이 있다고 기억이 되는데 그가 영혼들에게 그들의 마지막 거처를 정해준다고 한다. 만약 거기에 두 가지의 선택이 있다면 내 앞날은 정말 처량해질 것이라고 나는 넋을 잃은 채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느끼고 있는 두통과 구토증과 순전한 공포는 낙원의 이미지와는 잘 들어 맞지도 않았다.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연옥이라는 또 다른 선택이 있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의 연옥이란 잠자는 아기들로 꽉 찬 산부인과 병실들 가운데의 하나로만 자꾸 그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어떤 종류의 종착역에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마이크로매그네틱스 건물에 있었다. 예전의 마이크로매그네틱스. 그 회사에는 더 이상 계산할 만한 재정적 가치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채워왔다. 나는 내 인생이 끝나버린 바로 이곳에 아직도 있었다. 분명히 나는 사람들이 부르는 유령이라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옥과 천국보다도 유령에 대해서는 더 모르는 형편이었다. 영원히 방황하는 네델란드인의 유령이 뉴 저지의 해변 위를 날고 있는 모습이 내 마음 속에서 생겨났다가 녹아버렸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내가 가장 어렸을 적에나 그 언제라도 내가 유령들의 존재를 믿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유령이 있다고 믿거나 믿는 척하는 사람들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유령 얘기들을 왜 그렇게 재미있어 하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나는 그 얘기들의 요점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 유령들은 오랜 세월동안 이 지구상에서 정처없이 쉬지 못하고 방황하도록 저주를 받는데 그것에 대해서 잠깐만 멈추어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수명과 부가 허락하는 한 살아가고 있는 방식과 똑같은 얘기인 것이다. 아니면 유령들은 자기들의 생애에 일어났었던 끔찍한 사건의 장면에 수세기 동안 머무르도록 저주를 받는다. 그 후자의 운명이 지금의 내 상황과 실제로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 동안 이 지루한 뉴 저지의 장소에만 출몰해야 한다는 것은 참 괴상한 운명처럼 보였다. 그래도 그것은 그전까지 내 마음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던 가능성들 중에서 가장 진전을 보인 것이었다. 나를 굉장히 흥분시키는 진전이었다. 그것은 다른 세상이었다. 내 기분은 좀 나아졌다. 내 심장은 아직도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탁탁거리면서 뛰고 있었고 몸은 계속 떨리고 있었지만 나는 내가 빠져 있었던 그 어쩔 수 없는 공포의 바깥으로 간신히 힘들여 올라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령의 가설이 비록 끔찍한 것이기는 했지만 내게 어떤 참고가 되는 아이디어를 주었던 것이다. 만약에 내가 전에는 믿지 않았었던 존재가 될 것이었다면 천사라는 말이 내게는 더 만족스러울 뻔했다. 유령이란 말은 신학적인 위엄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제 천사의 모습은 분명히 희망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쨌든지 간에 전체적인 상황은 보통의 유한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조잡한 천사니 유령이니 하는 말로 묘사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것이었다. 내가 그 정신적인 주제들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은 많은 것 같았다. 거기에는 내가 감히 바랄 수는 없지만 현재의 내 형상에 어떤 종류의 불사성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조차도 있었다. 아니면 최소한 내가 그 전의 내 형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나은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가 그 질문들의 답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것인지 도대체 알 도리가 없었다. 내 주위의 세상이 아직도 그 궁극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나무들과 하늘과 내 시야를 가리는 잡다한 것들로만 보이고 있었고 변덕스러운 내 기분과 단편적인 생각들에 의해 가려져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새로운 존재로서의 조건과 의무들에 대해서 배울 수가 있게 될까? 내가 다른 비물질적인 존재와 만나게 되는 것일까? 게다가 이렇게 괴롭게 느껴지는 갈증은 어떻게 해소시켜야 하나? 나는 갑자기 통증처럼 밀려오는 공포 속에서 그것이 바로 내가 과음 때문에 받게 될 영원한 벌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을 찾아서 그것이 마실 만한 것인지 알아봐야 한다. 내가 움직일 수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만약에 내가 이 분화구의 바닥 위 15미터 위를 떠 다닐 수 있다면 3미터나 30미터 위를 떠 다니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내 기분은 다시 좋아졌다. 나는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 위에서 움직여 다니는 방법은 그 전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그 가설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나는 앞으로 몸을 기울여 손으로 주위를 더듬어 보았다. 아무런 방향 감각도 없이 나는 네 발로 기는 자세에서 조금씩 앞쪽으로 나아갔다. 내 밑에 있는 분화구의 어지러운 표면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멈추어서 손으로 몸을 부축해서 서 있는 자세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나는 몇 초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시선을 분화구 표면에 고정시키고 있었는데 가까운 거리에는 내 균형을 잡기 위해서 초점을 맞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동안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던져지는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토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하나, 둘, 셋, 네 번의 작지만 조심스럽게 발을 끄는 동작으로 앞으로 딛고 나가는 동안에 팔을 뻗쳐서 앞을 더듬어 보았다. 그 기분은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했다. 나는 보통 때와 똑같이 내 몸을 움직이고 있었고 내 자신을 바닥에 끌고 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몇 미터 앞쪽에 있는 테두리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내 왼손에 책상이 닿았다. 나는 손으로 그 언저리를 따라가서 책상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 지를 알아보려고 애썼다. 손가락으로 그 표면을 쓸어 보았다. 거기에는 종이들과 책들이 놓여 있었는데 전부 완벽한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하나도 눈에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왝스의 사무실에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제대로 있었고 전과 똑같은 상태로 있었다. 카펫도 책상도 나도.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전부 투명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사후에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유령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영원한 벌이나 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들은 눈부시게 빛나는 옷을 입고 구름 위에서 떠 다니면서 하프만 켜면서 살 수도 있었다. 그날 아침의 그 무섭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그런 종류의 사치스럽고 불가능한 생각을 즐겼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책상이나 성기게 짜인 카펫들에게 사후 세계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신비하더라도 그것들에게는 신학적인 목적이 없었다. 괴이하지만 지겨울 정도로 논리적인 재난들이 모두 합쳐져서 나와 내 바로 주위의 물건들을 절대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도록 변신을 시켰지만 그것 외에 더 발전된 상태는 하나도 없었다. 이 결론이 아무리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나는 즉시에 그것이 모든 사실들에 부합되는 가장 비환상적인 설명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상상하고 있었던 그 우스꽝스럽고도 끔찍한 가능성들에 비하면 그것은 문제를 드디어 해결했다는 안도감이었으며 내게 일어났었던 일에 비한다면 좀 더 직접적이고 보통 상식에 맞는 이해감이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내가 기쁨을 느껴야 하는지, 절망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 무엇보다도 내가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떠는 것을 멈추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내 왼손을 책상에 댄 채로 나는 조심스럽게 조금씩 옆으로 돌아가서 오른손으로 의자를 찾아서 거기에 앉았다. 그것은 가죽으로 된 회전의자로서 거기에서 나는 보이는 데까지 내 주위를 살펴볼 수 있었다. 나는 공포를 억누르면서 주위를 오랫동안 조심스럽고 이성적인 눈으로 바라 보았다. 태양은 이제 완전히 지평선 위로 떠올라 있었다. 아름답고 환하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아침이었으며 나는 너무나도 똑똑히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의 바깥에 - 실제로 그것은 폭발이 아니었었다 - 무엇인가가 아주 다른 것이 보였다. 경미한 정도로 내 시력이 예민해진 것도 같았다... 내가 얼마나 의식을 잃고 이곳에 누워 있었을까? 아마 그 전날 아침부터일 것이다. 스무 시간은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바라보며 곰곰히 생각하자.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바로 내가 분화구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분화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변하긴 했지만 그 자체는 완전히 딱딱한 고체로 남아있는 동그란 원형이었다. 그것은 마이크로매그네틱스 전체 건물을 포함해서 그 둘레의 꽤 많은 나무들과 잔디밭과 땅을 포함하고 있었다. 몇 시간 후면 나하고 다른 사람들이 곧 알게 될 사실이었지만 내 생각이 옳았었다. 그 원형에는 텅 빈 중심이 있었는데 거기에 왝스의 기계가 놓여 있었으며 그 곳에서 5미터 반경에 있던 모든 것들은 싹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덜덜 떨면서 왝스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나는 그 원 안의 모든 것들이 나와 책상과 의자처럼 전과 하나도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투명하게 변해버린 같은 운명의 고통을 당한 모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최소한 그것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게 된 것이 확실했다. 어쩌면 내 시력에만 그런 변화가 일어나서 나는 내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보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완벽하게 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그것은 내가 궁리해 낼 수 있는 불가능한 설명들 중에서도 가장 비논리적인 것이었다. 사람의 눈이 물체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이고 있는 그 원형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것들은 내가 아무리 자세를 움직여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변한 것은 물체들이 아니라 내 시력이어야만 했다. 아니면 물체들과 내 시력이 다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맨 정신으로 이러한 가능성들에 대해서 옳바르게 생각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것만이 논리적으로 들어맞는 가정이었다. 폭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며 만약에 나처럼 변화된 인간이 또 있다면 그 사람과 나만이 변화된 사물을 볼 수 없다는 가정. 이곳에 또 다른 인간이 있을까? 내 마음은 또 다시 왝스와 캐릴런의 몸이 터져 나가면서 화염으로 변하던 그 장면으로 가득해졌다. 나는 그들 중 아무라도 어떤 형태로서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그 끔찍한 확실성을 알고 있었다. 내 앞쪽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들이 지금은 분화구의 테두리를 만들고 있는 그 타버린 언저리 근처에 서 있었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 언저리에는 오직 재만이 남아 있었고 나무들의 모습조차 없었다. 모든 것이 다 재로 화해 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서 있었던 곳은 아무것도 상한 것이 없이 전과 그대로였다. 물론 아주 똑같은 것은 아니었고 무엇인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아마 그 뒤로 보이는 울타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전에 울타리가 거기에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처럼 건물 안에 남아 있었을 수는 있었다. 그 멍청한 고양이처럼. 그 고양이가 지르고 있는 비명을 그치게만 할 수 있다면 나는 생각을 좀더 분명하게 할 수 있을텐데. 아니다. 건물 안에 남아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건물에서 소개시키는 일을 완벽하게 수행했었던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왜 내가 여기에 남아 있으려고 애를 썼었을까 하고 자꾸 묻기 시작했다. 나 혼자만이. 아니 신경 쓸 것은 없다. 그런 일을 돌이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내 앞의 책상에 놓여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실험을 해 보았다. 책의 페이지들을 휙 넘겨 보았다. 펜으로 책상을 날카롭게 두드려서 그 맑은 소리를 들어 보았다. 스테이플러를 집어들어 종이들을 찍어 보았다.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볼 수 없는 물건들을 만지고 잡고 움직여 보는 기분과 내 몸과 주위의 7미터 주변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이한 기분인지는 당신에게 묘사해 줄 수가 없다. 소리와 촉감만이 내 앞의 희박한 공기 속에서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어디에 눈의 초점을 두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다시 구토증이 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눈을 감을 수만 있다면. 내 머리는 깨지는 것처럼 아팠다. 전신이 쑤시고 있었다. 내가 확실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이 왔다. 하나님이시여. 나는 사람들이 구조하러 올 때 제발 나를 볼 수 있기를 빌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이 내게 응급 조치를 해 준다는 말인가? 나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빌었다. 이 끔찍한 몸을 해 가지고서도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살아남게 되기를 바랐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추측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숙여 다리에서 시작해서 손으로 샅샅이 몸을 더듬어서 만져지는 상처가 있는지 찾아 보았지만 아무 상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방사능에 노출된 곳이 있다면 어떻게 손으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내 옷은 찢어진 곳이 한 군데도 없이 말짱했다. 나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손으로 배를 만지다가 내 방광이 아플 정도로 꽉 차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내 몸이 끔찍하게 불편하게 느껴지게 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즉시로 소변이 보고 싶었다. 이십 시간. 목도 말랐다. 두통과 어지러움증과 구역질이 바로 방사능에 중독된 증상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내게는 몇 시간 정도의 생명밖에는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급한 것은 소변을 보는 일이었다. 문명적인 교육의 힘은 너무나도 큰 것이어서 나한테는 화장실의 변기 외에 다른 곳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변기가 하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거기가 정확히 어디고 어떻게 그리로 내 몸을 끌고 가야할지를 우선 생각해내야 했다. 나는 마음 속에 그 전날 내가 본 것 대로 건물의 내부 구조를 그려보려고 애썼다. 내 앞과 오른쪽에 있는 벽에는 잔디밭이 내다보이는 창문들이 있었는데 비록 거기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쪽으로서 고개를 돌렸다. 내 뒤쪽의 벽에는 책장들과 칠판과 건물을 가로 지르는 복도가 있었었다. 내 오른쪽 벽에는 문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비서실로 나가는 것이었고 뒷쪽 끝으로 붙어 있는 다른 문은 화장실로 통하는 문이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바로 그 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마지막으로나마 방광을 비우고 싶었다. 그 다음에 무슨 소용이 있을지는 비록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갈 작정이었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 두 손으로 책상을 잡은 채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다가, 나는 놀랍게도 내가 이곳에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똑바로 서서 건물의 뒤쪽을 돌아다 보게 되자 내 시계는 덤불들과 주차장 너머의 들판으로까지 넓혀졌는데 그곳에는 최소한 높이가 3미터는 넘는 철조망이 들판을 가르면서 둘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가시철망이 둥그렇게 올려져 있었다. 전에는 분명히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덤불로부터 튀어나와 있는 두 대의 커다란 밴의 지붕과 세단을 한 대 볼 수가 있었는데 그 근처의 모든 것은 깨끗하게 전부 치워진 것 같았고 철조망 안쪽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철조망 바깥의 먼 곳에는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거리가 멀었고 내 시계가 나무들과 덤불들과 철조망에 가려져서 무슨 일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보기는 힘들었지만 나는 군복이나 경찰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제복들은 각각 달랐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종류의 차들은 다 거기에 모여 있었다. 짚차, 트럭, 트랙터, 밴, 세단. 모두가 침침한 단색들로서 회색, 흰색, 아니면 국방색이어서 그 차들이 정부 재산임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기에 임시의 가건물을 짓고 있는 것, 임시 화장실을 쓰려고 줄을 선 것, 무선 전화기 같은 것을 조립하는 것, 종이꽂이 판을 들고서 걸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이 모든 일의 목적은 물론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은 그 벌판에서 주차장의 가장 맨 끝까지 오는 지름길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 그 길과 철조망이 만나는 곳에는 역시 철조망으로 된 큰 문이 달려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사이에 그들이 철조망의 안쪽에 흐린 녹색 천을 두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장비와 사람들로 꽉 찬 그 들판은 빠른 속도로 내 세계에서 차단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곳으로부터 몸을 돌리면서 나를 둘러싼 전체 잔디밭과 주차장과 거기에 맞닿은 들판의 몇 에이커가 되는 구역들이 똑같은 천으로 가려진 철조망에 의해 포위되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알아차렸다. 나는 마이크로매그네틱스 건물의 잔해를 천을 댄 철조망으로 그렇게 둘러싸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고 들여다 볼 수도 없게 누군가가 놀라우리만치 힘들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일은 비밀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그 생각보다는 내가 갇히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왔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철조망 너머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은 내게 다른 인간들과 같이 있고 싶다는 갈망을 불러 일으켰다. 내게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치명상을 입었고 어쩌면 가망이 없을 것이며 내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감히 바라지도 못했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구조해 주기를 절망적으로 원하고 있었다. 그들의 위안이 필요했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도와줘요! 나는 외쳤다. 공포 때문에 목소리는 가늘고 이상하게 잠겨 있었다. 여보세요! 도와줘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철조망의 마지막 부분에 천이 둘러질 것이고 나는 그들을 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왜 저 사람들은 저 벌판에 가건물과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왜 그들은 진짜 재난과 비극이 일어난, 도움이 필요한 바로 이곳에 있지 않고 저 거지 같은 보이스카웃 텐트 같은 것을 짓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들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백 미터는 족히 떨어진 곳에 있었고 내 목소리는 아주 약했었다. 만약에 그들이 무엇을 들었다고 친다면 그것은 저 빌어먹을 고양이의 비명 소리여야만 했다. 그 고양이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 옆방에 있을 것이다. 공포로 깜짝 놀라면서 나는 내가 꼭꼭 닫혀 있는 건물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무도 내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보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곳에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방사능. 그들은 분명히 방사능 때문에 이곳을 외부와 차단하고 있는 중이었다. 몇 달간. 몇 년간.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벌벌 떨면서 손가락을 까닥할 수 없게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저기까지 걸어가기에는 방사능 중독 때문에 너무 약해져 있을 것이다. 희망이 없다. 진정하자. 노력을 해봐야 한다. 진정하자. 먼저 소변부터 봐야 했다. 우선 소변을 보고 나면 건물에서 빠져나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건물의 축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서 손으로 책상의 언저리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 한 손을 책상에 얹은 채로 일어나 진공 속의 화장실을 향해 발을 질질 끌면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책상에서 손을 떼어야만 했다. 끔찍했다. 도로 네 발로 기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만 했다. 30미터 전방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팔을 앞으로 뻗어 깜깜한 집 안을 걸어가는 것처럼 더듬으며 내게 가장 가까운 구멍의 테두리에 초점을 두려고 애썼는데 그곳은 내 왼쪽에 있었다. 그렇게 하니까 내 평형 감각에 좀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내가 마치 줄타기 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생각할수록 걷는 것은 더 어려웠다. 토할 것 같은 몇 발짝을 떼고 난 뒤에 보이지 않는 내 손이 보이지 않는 한 벽에 닿자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안도감을 느꼈다. 그 고양이는 분명히 옆방에 있다고 그때는 확신할 수 있었는데 그놈은 비명의 강도를 더 높여가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 문에 닿을 때까지 그 벽을 손으로 잡고 따라서 걸어갔다. 오른손으로 더듬어서 문 손잡이를 찾은 뒤에 그것을 비틀어서 화장실 문을 열어 젖혔다. 나는 손잡이를 꼭 쥔 채로 방에까지 몇 걸음을 들어가서 왼손을 앞으로 뻗쳐서 세면대가 나올 때까지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세면대를 잡고서 몸을 내밀어 변기를 찾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스무 시간. 나는 양복 윗도리를 벗어서 바닥에 떨어뜨린 뒤 멜빵을 어깨 너머로 젖히고 바지와 속옷을 급하게 내린 다음 몸을 변기로 돌렸는데 그때는 소변을 서서 볼 만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변기의 위에 주저 앉고 말았다. 말할 수 없는 편안함과 안도감으로 나는 내 방광을 비웠다. 보이지 않는 소변 줄기가 보이지 않는 변기 속으로 폭포처럼 떨어지는 그 희한한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정말로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이번에는 무엇을 붙잡으려고 노력하지 않고서 일어나 바지를 추켜 올렸다. 전날 그곳에 아스피린 병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나는 약장의 문을 찾아서 열어 젖히고 오른손을 집어넣어 선반들을 더듬어 보았다. 아주 많은 작은 물건들이 손에 잡혔는데 어떤 것들은 면도용 솔, 치약 튜브, 치솔인 것을 알 수 있었고 어떤 것은 알 수 없었다. 멍청한 칠칠맞음 때문에 몇 개가 시끄럽게 세면대인지 바닥인지에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아스피린 병을 드디어 찾아냈다. 적어도 그것이 그 병이기를 바랐는데 모양이 그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아스피린이라고 치더라도 이상하게 변신된 내 몸에 효과가 있을까?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내 두통은 아주 고약했다. 여러 가지가 다 뒤섞인 통증이었다. 아이들이 열지 못하도록 고안된 장치가 되어 있는 약병이 나를 좀 고생시켰고 분노의 작은 파도가 나를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나는 드디어 그 병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나는 왼손 바닥에 병을 기울여서 약을 조금 쏟은 뒤에 조심스럽게 내 오른손의 검지로 세 개를 세어서 입에 밀어 넣었다. 전부터 약병에는 한 개나 두 개만 먹으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세 개씩 먹고는 했었다. 찬물을 틀은 뒤에 몸을 구부려서 입을 꼭지에 갖다 대고 약을 삼켰다. 나는 게걸스럽게 물을 마셨다. 물은 정말 맛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끔찍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게 열 번 정도를 마시고 나자 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건물은 멀쩡한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모든 것이 타버린 건물의 테두리 때문에 수도관이 끊어졌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곳에는 분명히 온수 탱크가 있을 것이다. 뜨거운 물을 틀자 미지근한 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물로 이를 닦고 얼굴에 끼얹은 다음 오랫동안 그 물을 마셨다. 분명히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면도도 할까 생각했지만 실제적이 아닌 것 같아서 포기했다. 이제는 나가서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 윗도리를 입고 싶었지만 지겹게도 또 네 발로 바닥에 엎드려서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나한테 다시 필요할지도 모르는 물건을 평상시처럼 바닥에 내려놓지 않을 것을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다시 일어섰을 때 나는 주차장에서 까만 세단 한 대가 새 길로 나가면서 내 쪽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 철조망 안에도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떠나고 있다! 철조망은 이제 완전히 가려졌고 그 세단이 오직 한 군데 열려 있는 문을 통과해서 나가자 문이 그 뒤로 다시 닫히고 전구역은 완전히 폐쇄되었다. 주차장에 있는 두 대의 밴만 제외하고는 철조망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철거되었고 바깥은 천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다는 어떤 표시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 차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치 배에서 내린 사람이 그 배가 수평선을 향해서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느낄 것 같은 그런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다가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한 대가, 나중에는 두번째의 밴이 덤불 뒤로 움직여 주차장을 나와서 아주 천천히 잔디밭 위를 가로질러 건너서 건물 정면과 평행이 되게 다가오고 있었다. 둘 다 진회색의 차였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유리창에는 색칠이 되어 있어서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는 없었다. 첫째 밴은 보통 배달용 밴 만한 크기였고 두번째 것은 거의 처음 밴의 두 배나 되는 크기로서 지붕에 있는 창문으로는 아주 복잡하게 생긴 안테나가 튀어나와 있었고 뒤로는 땅에 거대한 달팽이의 족적처럼 묵직한 전선이 풀리면서 끌려오고 있었다. 작은 밴은 테두리에서 30미터 정도 되는, 거의 바로 내 앞쪽에 와서 멈추었다. 두번째의 밴은 그 뒤에 와서 섰다. 몇 분 동안 거기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효과는 거의 음산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고 버림을 받지 않았다고 즐거워하는 대신에 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작은 밴의 앞문이 열렸다. 근육질의 흑인이 웃지도 않고 표정도 없는 얼굴로 운전석에서 내려와 군대식의 빳빳한 동작으로 다른 밴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가 입은 야한 하와이 스타일의 셔츠는 그가 보통은 제복을 입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더 강하게 해 주었다. 몸집이 하도 커서 뚱뚱하다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큰 밴에서 내려와 그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사람 역시 정교하게 무늬가 새겨진 가죽 부츠을 신고 작은 진주 단추가 앞에 잔뜩 달린 카우보이 식의 셔츠를 입기는 했지만 경찰이나 군인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 것 같았다. 그는 얘기를 하면서 계속해서 호인 같은 웃음 소리를 냈지만 그의 작고 찡그린 눈은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그 흑인은 냉정하고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난 다음에 셋째번 사람이 밴의 다른 쪽 문에서 내려서 거기로 걸어왔다. 다른 사람들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사십대 중반의 남자로서 진회색 양복을 입었는데 기성복인 것이 분명하고 그의 체구 위에 헐렁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의 머리는 아주 짧게 깎여 있었는데 그의 밀어버린 것 같은 머리의 피부는 운동가 같은 그의 몸가짐에도 불구하고 창백하고 주름이 져 있어서 그의 머리는 혐오감을 줄 정도로 홀랑 벗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거의 딱딱하다고 말할 수 있는 단호한 걸음걸이로 밴의 가운데 문으로 가서 멈추었다. 문이 갑자기 활짝 열리고 키가 작은 라틴계 남자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문을 열어놓은 채로 안으로 도로 사라져 버렸다. 양복을 입은 사나이는 흑인과 카우보이가 서 있는 곳으로 가서 꽤 많은 말을 했는데 그들은 그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뒤로 돌아섰다. 그가 지휘자인 것 같았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밴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는 상관하지 않는 듯이 그 자리에 서서 냉정하게 앞을, 바로 내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다. 그의 눈길은 전의 건물 자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건물을 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처럼 볼 수 없는 것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구조하게 되면 물론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 살아 있는 인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도와줘요! 내가 외쳤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흑인과 카우보이가 작은 밴의 뒷문을 열고서 두껍고 하얀 옷에 싸인 한 사람이 힘들게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것은 심해 잠수부들이 입는 것 같은 종류의 옷이었다. 아니면 우주인들이. 저녁 뉴스에서 고장난 핵 리액터를 조사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옷 종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게 나를 덮쳐왔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이곳에는 방사능이 있은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채워오자 나는 더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들은 것 같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너무 많은 벽들이 있었다. 남은 힘을 소리 지르는 데 쓸 필요가 없었다. 조금 있으면 저 우주복을 입은 남자가 건물에 들어올 것이다. 나는 변기의 뚜껑을 내리고 거기에 앉아서 힘 없이 구조를 기다렸다. 나의 희망적인 구세주는 그가 입은 우주복에 익숙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실험적으로 그의 팔들을 움직여보고 있었고 앞뒤로 신중하게 짧은 걸음을 내딛어 보고 있었다. 멀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색칠된 마스크 뒤에 있는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한 손에 일 미터 가량 되는 금속 막대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전선으로 그의 보호복 허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분명히 그것이 가이거 탐지기인지 뭔지하는 방사능 측정기임에 틀림 없었다. 라틴계 남자가 다시 큰 밴의 뒷문에 나타났고 세 사람은 전부 축구 코치나 TV 뉴스맨들이 쓰는 것 같은 이어폰과 입 앞에 마이크가 달린 것을 머리에 썼다. 사람들이 갑자기 다 조용해졌다. 분명히 그 장치를 시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그 양복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우주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정확히 바로 내쪽을 향해 그가 달의 표면에 있는 것처럼 천천하고 신중한 걸음을 떼어놓으면서 마치 우주 시대에 걸맞는 진공 청소기라도 되는 양 그 가이거 탐지기로 앞을 쓸어 보면서 걸어왔다. 나는 절망과 기다림이 섞인 기분으로 그의 도착을 기다렸다. 나는 정말 구조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분명히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상태가 하도 희한한 것이라서 아주 가망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기도 했고 만약에 무슨 희망이 있다면 바로 저 사람들이 내게 그것을 주게 될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서두르기를 바랐다. 다른 세 명의 남자들은 잔디밭 위에 모여 서서 커다란 종이 두루마리를 펴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 종이를 가리키고는 내 쪽을 올려다 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다가 다시 종이를 들여다보는 일을 되풀이했다. 건물의 평면도. 그들은 평면도를 갖고 있었으며 흰 옷을 입은 그 사람에게 어떻게 가라고 무선으로 말해 줄 작정이었다. 그가 내 소리가 들리는 건물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나는 다시 외치기로 했다. 그는 테두리의 타버린 언저리에 도착했다. 그가 멈추어 뒷쪽의 세 사람을 바라 보았다. 그 가운데의 뚱뚱한 사람이 혼자서 밴으로 들어갔다. 몇 분 후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일까? 그 우주인은 로보트처럼 힘들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팔을 기본적인 거수 경례라도 하는 것처럼 들어 올리고는 내 쪽에서 돌아서서 타버린 언저리의 끝쪽으로 향했다. 그는 가이거 탐지기로 재를 찔러 보면서 갔다. 여기요! 나는 외쳤다. 왜 내 쪽으로부터 멀어져 간단 말인가? 도와줘요!" 그는 언저리 쪽으로 계속 전진했다. 내게 가장 가까운 쪽의 언저리에서 20미터 정도 되는 곳에 다다랐을 때 그는 멈추어서 다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의논을 하는 모양이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손에 연필을 들고서 배치도에 뭐라고 표시를 하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결정이 난 모양이었다. 우주인은 뒤로 돌아서서 분화구를 마주 보고는 타버린 흙을 조심스럽게 밟고서 그 끝으로 갔다. 그는 한참 동안 그 분화구를 내려다 보면서 서 있었다. 그가 천천히 그 끝에 대고 탐지기를 흔들었다. 이제 나는 그들에게도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곧 이 희한한 발견을 하게 될 것을 쳐다 보느라고 너무 정신이 팔려 있어서 내 처지까지도 잠시 잊어버릴 뻔했다. 그 사람은 조심스럽게 그 탐지기를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 밑으로 내렸다. 그가 살짝 그것으로 작은 원을 그리면서 바닥을 톡톡 쳤다. 그리고 그의 무게 중심을 기울여서 그것을 다시 밀어 보았다. 위태하게 한 발을 공중에 든 채로 균형을 잡고 있는 그는 광대로 분장한 곡예사가 아주 어려우면서도 실없는 재주를 피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둔한 보호복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그는 머리를 밑으로 기울여서 다음의 발이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멈추고는 자신의 발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얼음의 표면을 마지막으로 시험해 보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공중으로 껑충 뛰는 시늉을 해 보았는데 보호복 때문에 그다지 잘 되지 않았다. 아직도 밑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채로 그는 분화구 쪽으로 몇 발짝을 더 걸어 간 뒤에 멈추어 섰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서 뒤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그 공중에 기적처럼 서 있었다. 나까지도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물론 내 처지가 더 희한한 지경에 있었지만 내 경우는 그것처럼 시각적인 충격을 주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양복을 입은 그 사나이가 입의 마이크에 대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분화구 쪽으로 손짓을 조금 해 가면서 평면도를 들여다 보았다. 그 우주인은 서툴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돌아섰다. 그는 탐지기가 보이지 않는 건물의 벽에 부딪칠 때까지 그것을 휘두르면서 분화구의 중심을 향해서 몇 걸음을 더 내려갔다. 그는 벽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손이 미치는 벽의 위쪽과 양 옆을 탐지기로 쓸어보았다. 그리고 힘들게 허리를 구부려서 보이지 않는 땅도 검사해 보았다. 그는 마치 벽이 분화구의 바닥으로 다 무너져 내릴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물러서서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벽을 밀고 시험한 다음에야 벽을 엄청나게 커다란 장갑을 낀 손으로 만져보기 시작했다. 곧 그가 무엇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는 몇 번 손을 움직이더니 사각형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창문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이 많이 지체되었고 나는 잔디밭에 있는 세 사람이 그 발견에 대해서 별로 만족해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평면도를 들여다 보면서 뭔가 열띤 의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우주인은 그들의 지시에 따르는 것처럼 몸을 건물에 밀어 붙이더니 거기에 얼굴을 대고 팔을 쫙 벌려서 몸을 마치 인간 계시판처럼 벽에다 갖다 대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문제는 풀린 것 같았다. 양복을 입은 사람은 연필로 보이지 않는 분화구의 두 점을 가리키더니 그 사이에 상상의 선을 그었다. 분명히 그들은 처음에 건물의 위치를 잘못 잡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배치도가 부정확하든지 주차장으로부터의 각도를 틀리게 계산했을 것이다. 세 사람은 이 새로운 발견에 의해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자신들 몸의 각도를 몇 도씩 돌려서 드디어 보이지 않는 건물과 90도로 마주 보게 되었다. 우주인은 탐지기를 다시 집어들고 내 쪽을 향해서 벽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왼손을 벽에서 떼지 않고 있었고 다음 창문에 이르렀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손으로 창문의 윤곽을 다시 그려 보였는데 이번에는 모두들 그 결과에 만족해 하는 것 같았다. 몇 걸음만 더 걸어오면 그는 건물의 현관에 다다르게 될 예정이었지만 욕지기가 날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그의 느린 속도로는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에 그는 건물의 안으로 들어와서 내게로 와야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참을 수 없어서 미칠 지경이 되어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나는 일어나서 그를 만나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현관으로 조심해서 걸어갈 작정이었는데 실제로는 뛰어나갔던 모양이었다. 손을 앞으로 뻗쳐서 앞에 있는 벽과 문을 만져볼 셈이었는데 바닥에 있던 타올 아니면 옷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의 타일 바닥에 거꾸러지고 말았다. 정신이 멍해질 정도의 고통을 전신에 느꼈고 떨어지면서 부딪친 팔꿈치는 끊어질 것처럼 아파왔다. 빌어먹을! 천천히 가야 한다. 나는 무릎을 일으키려다가 이번에는 문짝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빌어먹을! 네 발로 기는 자세에서 나는 정말 가련한 모습으로 왝스의 사무실로 기어들어가 비서실로 통하는 문이 있는 벽 쪽을 따라갔다.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손을 뻗쳐서 손잡이를 찾았다. 그것을 돌려서 잡아당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것을 돌리면서 밀어 보았다. 그래도 문은 까딱하지 않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진정하자. 별 일은 아니다. 그들이 열어 줄 것이다. 보호복을 입은 사나이는 현관에 당도했고 나한테서 겨우 3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있었다. 비록 우리 사이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지만 나는 색칠된 마스크 뒤에 있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몸의 반쯤은 앞으로 구부리고 반쯤은 주저앉은 상태에서 그는 문지방 앞에 있는 두 개의 계단을 찾아내어 다시 거기에 탐지기를 가져다 댔다. 그는 문에다 대고 그의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이 그가 찾던 것을 발견했는지 그는 다른 손으로 젓는 시늉을 했다. 그것이 손잡이었을 것이다. 그는 너무 커서 손을 잘 움직일 수 없는 장갑 때문에 손잡이를 돌리느라고 애를 먹고 있었다. 고양이가 이제는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울어대고 있었다. 그 고양이가 지금의 이 광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놈도 나처럼 그를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불쑥 그의 손이 앞으로 몇 인치 가량 튀어 나왔다. 그가 문을 연 것이다! 그가 문을 조금만 열었을 텐데도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빌어먹을 놈의 고양이야! 하나님한테 맹세하지만 정말 고양이라니깐! 들려? 죽일 놈의 고양이! 그럴 만한 다른 것은 여기에 아무 것도 없어! 오 하나님! 보이지 않는 빌어먹을 투명 고양이야! 그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그의 헤드폰을 통해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네, 대령님. 그가 말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령님. 아닙니다. 그 고양이는 절대로 아무 데로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문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정말 확실합니다... 아닙니다, 대령님.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이 고양이는 절대로 어디로도 도망가지 못합니다. 나는 바로 그의 눈을 직시하고 서 있었다. 나는 내가 왜 그 순간 그에게 소리치지 않았는지 말할 수 없다. 아침 내내 나는 아무 소용도 없이 도와 달라고 외쳐댔었다. 지금은 도와줄 사람이 여기에 있었다. 그저 말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아직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마 내가 원할 때면 언제나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그들 없이도 조금 더 버틸 수 있다는 자신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 탐험가의 극적인 도착 과정에 정신을 다 빼앗기고 있었고 그가 그 고양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보고 싶었었다. 그때 그를 방해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아마 나는 확실치는 않지만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처음으로 가련하지만은 아이들 같은 천진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로 거기에 있었는데도 그들은 나를 볼 수 없었다. 왜 그 비밀을 벌써 포기한단 말인가? 그 사람은 아직도 문을 5, 6센티 정도만 열어 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탐지기를 집어서 열린 문 틈에 밀어넣더니 비서실 안으로 비틀면서 집어 넣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동작은 고양이의 비명 소리를 단번에 그치게 만들었다. 그 대신 나는 고양이들이 절망적이거나 화났을 때 내는 사나운 쉭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탐지기에 뭐 읽히는 것 좀 있어?... 아직도 없다고? 이 곳은 내 팔꿈치만큼이나 안전해. 이 옷을 벗어야겠어... 네, 대령님.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가 여기에 방사능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하마터면 그에게 말을 걸 뻔했다. 그는 탐지기를 도로 거둬들여서 옆에 내려 놓았다. 그는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분명히 문과 문틀 사이의 틈새인 곳을 잡았다.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그는 주문이라도 외우는 것같이 말했다. 이리온. 나비야. 그 고양이는 끊임없이 쉭쉭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팔이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나비야, 나비야. 손잡이를 잡고 있었던 손이 갑자기 앞으로 튀어 나오면서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서 손바닥이 납작해진 고양이의 두께만큼 떨어진 상태에서 서로 마주 보게 만들었다. 정말 사나운 으르렁 소리가 났다. 잡았다! 내가 잡고 있어! 괜찮아, 나비야! 가만 있어! 조용해! 그는 이제 완전히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위험스럽게 몸을 굽히고 있었다. 그는 그 꿈틀거리는 고양이를 꽉 잡으려는 의도에서 손을 난폭하게 자신의 가슴으로 끌고 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몸을 확 제치면서 일어났다. 그의 오른손이 그 순간 뒤틀리고 있었던 그의 배로 다가갔다. 가만 있어, 이 죽일 놈아! 그의 왼손이 자신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그는 자기의 오른쪽 다리를 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전신을 왼쪽으로 확 난폭하게 제치면서 문을 향해서 자빠지고 말았다. 그가 문인지 문틀인지 아니면 둘 다에 부딪친 것인지 구분하기가 힘들게 되었지만 하여간에 그는 보기 흉한 모습으로 나가 떨어졌다. 제기랄! 되게 아프네... 그 죽일 놈이 도망갔어. 빌어먹을... 문으로 나갔어. 미안하다. 맙소사. 아마 자네들 쪽으로 갔을 거야. 잡도록 해 봐! 잔디밭에 있는 사람들은 그 말이 분명히 자신들을 향한 것이었는데도 추적이 그다지 성과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카우보이 셔츠를 입은 그 큰 사나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나한테까지도 들려오는 커다란 목소리로 읊어대기 시작했는데 그다지 자신감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리 온, 나비야. 나비야. 다른 두 사람은 우울한 모습으로 앞을 똑바로 향하여 제자리에 서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인간 하나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비야, 이리 온. 이리 이리. 나는 그 나비가 보통 때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는 물론이고 그 전의 성격도 모르지만 지난 스물네 시간이 그놈에게는 정말 괴로운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나비가 금세 인간의 동반자를 그리워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 카우보이는 한번 더 나비야, 이리 온. 이라고 말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우울하게 동료들 속의 제 자리로 돌아갔다. 우주복을 입은 사나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계속해서 사과를 늘어놓고 있었다. 네, 대령님... 네, 알아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대령님. 옳은 말씀입니다. 물론 고양이가 건물의 밖으로 나갔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대령님... 네, 지금 닫겠습니다. 바로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이 건물을 떠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몇 초가 걸렸고 그러자 나는 순간적으로 다시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기다려! 어린 시절 이래로 내가 외쳐본 중에서 가장 째지는 소리로 고함을 쳤다. 도와 줘! 나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여기 도움이 필요해! 흰 우주복의 사람은 얼어붙은 듯이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색 마스크를 통해서 멍청하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무서워하면서 내 몸을 뚫고 지나가서 내 뒤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정신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문을 밀어서 열고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음을 옮겨 놓은 다음에 조심스럽게 그 뒤로 문을 닫았는데 마치 내가 문 소리를 들을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내 쪽을 향해서 외쳤다. 어이, 어디에 있지? 당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 이쪽이야, 나도 소리를 질렀다. 이 문의 안쪽! 나는 그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두 주먹으로 문을 두들겼다. 물론 그는 그 머저리 같은 보호복 속에 갇혀 있었는 데다가 그의 동료들이 쉬지 않고 지껄이는 바람에 잘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움직이는 일을 멈추고 바보같이 대강의 내 쪽을 쳐다 보았다. 맙소사, 이봐, 나 좀 여기에서 꺼내줘! 이 문을 열어야 해! 문이 잠겨 있어! 꼼짝 않고 아직도 지친 듯한 눈길로 내 쪽을 바라보면서 그는 아주 조그맣게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내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내 말을 잘 들을 수 없으니까 나도 자기 말을 잘 듣지 못하는 줄 알고 있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 조용히 좀 할 수 없어? 여기 뭐가 있는지 알아? 하나님 맙소사. 여기에 웬 끔찍한 인간이 하나 있단 말이야!... 아니, 나에게는 보이지가 않아! 자네들에게는 보여? 그 마지막 문장은 공포와 야유가 섞인 것이었다. 아마 다른 방에 있는 것 같아. 방 안에 갇혀 있다는데? 이게 도대체 웬일이지! 그 사람 말 소리가 잘 안 들려. 나오고 싶대. 말이 잠시 그쳤다. 그러더니 그가 내게 다시 외쳤다. 내 말 소리가 들려? 간신히 들려. 내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그다지 크게 말하지 않았고 힘 있게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가 동료들과 대화하는 소리를 그가 모르게 듣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구조자와 나 사이에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그는 낯설고 기분 나쁜 영역에 있었다. 하긴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육신이 없는 내 목소리도 정말 기괴했을 것이다. 게다가 도망간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그들 마음 속에 남아 있을 때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중 아무도 나를 도와주려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도우러 뛰어 들어오는 대신에 그들은 자비라고는 전혀 없는 경계심을 가지고 뒤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 우주인은 이제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로 잔디밭에서 무언가 의논에 열중해 있는 세 사람을 보면서 서 있었다. 갑자기 그들이 말을 멈추고 우리 쪽을 바라다 보았다. 분명히 무슨 결정이 난 모양이었다. 우주인이 내 쪽으로 돌아서서 외쳤다. 어이, 내가 보이나? 좋은 질문이었다. 누군가가 정말 좋은 질문을 생각해 낸 모양이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우주의 법칙에 대해서 알리가 없었다. 아마 보이지 않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 물체들을 전처럼 완벽하게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 보이지 않는 벽이 투명인간에게는 벽답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자면 아마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투명인간들은 전부 눈이 멀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보여? 안 보여. 내가 대답했다. 나는 이 안에 있어. 그들의 마음처럼 내 마음 속에도 도망간 고양이의 생각이 들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곧 나는 내 상황에 대해서 그들에게 정확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게 필요한 의학적 도움을 그들로부터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먼저 나설 필요는 없었고 그들 역시 당장 나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모두가 신중했다. 또 다른 침묵이 흘렀다. 잔디밭에 있는 사람들이 흰 옷을 입은 내 구세주에게 얘기하는 중이었다. 그가 내게 다시 외쳤다. 잘 들어, 친구. 나 혼자서는 그 문을 열 수가 없어. 내가 다른 사람들을 데려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겠어? 정말 빨리 구출해 줄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문을 열려고 시도를 해보기 전에는 문을 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까지 그 문에 손도 대 보지 않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서 나는 문에 손을 갖다 대고 그것을 내 손으로 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손잡이의 몇 센티 위에서 나는 열쇠 구멍이 있는 자물쇠 장치를 발견했다. 참. 당신 몸은 괜찮은 거야? 그가 생각난 듯이 덧붙였다. 그 질문이 갑자기 내 기를 죽였다. 나는 어떤 말이 그 질문에 적당한 대답인지 생각하려고 애썼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오고 있었다. 대답이 즉시 없자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말 좀 해 봐. 그 안에서는 물건들이 다 어떻게 보이나? 나는 그 감상적인 화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내가 대답했다. 금세 나올 수 있을 거야. 그가 외쳤다. 지금 좀 꺼내줘! 제발 부탁이야!" 일 분만 여기를 떠나서 사람들을 데려올게. 당신은 괜찮을 거야. 금세 오지. 잘 버티고 있어, 이 친구야.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치 내가 자기를 공격할 동물이나 되는 것처럼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쳐서 건물을 나갔다. 그는 문을 닫고 돌아서서 분화구의 타버린 테두리가 보이는 곳으로 걸어 갔는데 거기에서 멈추어서 참을성 있게 서 있었다. 우리는 거의 십 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잔디밭에 있는 사람들은 내 쪽 뱡향을 응시하면서 서 있었고 가끔 서로에게 말을 건네다가 다시 침묵에 빠지고는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생각은 나를 구조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일까? 그들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화도 나면서 겁도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수동적으로 기다리고만 있었다. 즉시로 문을 열고 나를 꺼내주지 않는 그 어떤 이유가,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아주 끔찍한 이유가. 아마 방사능과 관계되어 있어서 그들이 경계해야 할 이유가 있든지 그들이 나를 도와주는 데 필요한 어떤 이유가. 그러다가 나는 저 멀리에서 철조망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지붕 위에서 번쩍거리는 사이렌을 울리는 하얀 밴 한 대가 문을 통과해서 들어와 천천히 주차장을 향해서 오고 있었다. 흑인이 그 차를 향해 걸어가서 다른 두 대의 밴 쪽으로 인도했다. 나는 그 앞에 써 있는 글자가, 거울에 비치는 반대 영상으로 쓰여진 앰블런스라는 것을 알아볼 때까지 그것을 읽느라고 한참 애를 썼다. 물론이다! 그들은 나를 옮기기 전에 의료 구조팀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록 내 처지가 끔찍하기는 했지만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화내고 의심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했었다.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을 막아야 했다. 어쩌면 나는 벌써 미쳤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아직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게 가장 잘 맞는 설명이었을 것이다. 문제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들이 곧 해결해 줄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밴이 잔디밭에서 마지막 회전을 해서 멈추었을 때 나는 차 옆에 써 있는 이동 의무대라는 글씨를 알아 보았다. 그 글씨 옆에는 잡다한 숫자들과 글씨들이 써 있었다. 몇 분만 기다리면 되었다. 이제까지 혼자서 고통을 겪은 뒤에 다른 사람들과 말을 나누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 흑인이 밴의 앞문으로 다가갔고 흰 웃도리를 입은 운전사가 나와서 그와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흰 가운을 입은 두 사람들이 밴의 뒷문에서 더 내려와서 그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무엇에 대해서 다투는 것 같았다. 그 흑인이 머리를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중의 한 사람이 도로 밴으로 들어가더니 빈 들것을 가지고 나왔다. 흑인이 그것을 받아 들어서 무선 장치가 되어있는 밴에 기대어 세워 놓았다. 그들의 대화는 거의 끝나가는 것 같았다. 의무 대원들은 초조한 듯이 분화구 쪽을 기웃거리며 바라보았고 우주복을 입은 사나이는 아직도 그 테두리 끝에 부동 자세로 서 있었다. 내가 조금 전에 느꼈었던 기쁨은 초조함 때문에 깨져가고 있었다. 잔디밭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듯한 시선을 가끔 철조망의 문 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또 다른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오 분이 더 지났다. 그리고는 철조망의 문이 다시 활짝 열리더니 까만 세단이 그곳으로 들어와서 밴들이 있는 곳으로 곧장 오고 있었다. 운전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불안한 시선으로 분화구를 바라다 보았다. 그는 차 뒤로 돌아가서 트렁크를 열더니 커다란 광목 자루를 두 개 꺼냈다. 흑인이 그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는 잔디밭 위에 그것을 내려놓고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세 명의 의무 대원들이 조금 망설이다가 세단에 올라탔다. 왜 그들이 떠나는 것일까? 내게는 그들이 필요한데. 그 중의 한 명이 차로 가다가 멈추어 앰뷸런스를 손짓으로 가리키면서 무어라고 말했다. 흑인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 세단은 잔디밭에서 회전을 해서 철조망의 문 쪽을 향해서 달려갔다. 잔디밭의 사람들은 모두 문이 열리고 차가 나가고 다시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문이 닫히자마자 그들은 분화구 쪽을 향해서 돌아섰다. 운전기사의 옷을 입은 사람은 즉시 보이지 않는 표면을 향해 걸어와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 보이지 않는 현관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들은 바깥 세상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는 순간부터 어떻게 이 일을 비밀로 계속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 의무 대원들이 문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몸이 떨리도록 싫었다. 잔디밭의 세 사람은 그 자루들을 열고 있었다. 한 자루에서 우주복이 하나 나왔고 흑인이 그것을 입기 시작했는데 어쩐지 내켜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동안 카우보이 옷을 입은 사람은 다른 자루를 열고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커다란 그물 같은 것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펴기 시작했다. 그물? 이런 젠장! 이 사람들은 그 의무 대원처럼 보이던 사람들을 보내 버리고 나를 들것과 그물로 잡으려 하고 있었다. 처음의 우주인이 내가 있는 방의 옆까지 왔다. 그는 내게 소리치고 있었다. 도로 왔어, 친구! 내 소리가 들리나? 여기에 의무대를 데려왔어. 이제 빨리 꺼내줄게. 몸은 괜찮아? 아주 좋아. 나는 두 방 사이에 있는 벽을 더듬어 가고 있었다. 건물의 앞벽과 만나는 구석에 닿게 되자 그 벽을 끼고 돌았다. 나는 거기에 두세 개의 창문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첫번째 창문에 다가가서 문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미끄럽게 올라갔다. 나는 한 다리를 먼저 들어 올리고 나서 다른 다리를 창틀에 올려 놓아 그 위에 올라 앉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 배가 거기에 걸쳐지도록 하고는 내 다리가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잔디에 닿을 때까지 조심스럽게 몸을 창문에서 내렸다. ┌────────────────────────────┐ │ 4 │ └────────────────────────────┘ 나는 분화구의 끝으로 걸어가서 눈에 보이는 그 테두리를 밟아 보았다. 그 표면은 새까맣게 탔고 숯처럼 딱딱했다. 그것이 내 발 밑에서 약간씩 부스러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금세 걷기가 수월해졌다. 비록 내 발을 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발 밑의 땅을 볼 수는 있었다. 타버린 테두리를 지나서 부드러운 초록색의 잔디를 밟았을 때 나는 내 발을 내려 놓으면 잔디가 눌리고 발을 떼면 도로 튕겨 올라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나를 실망하고 짜증나게 했다. 나는 내가 도로 눈에 보이게 되지 않을 바에야 아예 완전히 보이게 되지 않는 것이 내게 좋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간에 있게 되면 양쪽의 단점들을 다 갖게 되기 때문에 아주 불만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잔디의 풀물이 내 신발 바닥에 묻지 않는 것을 보고는 좀 용기가 생겼다. 내가 그들의 구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어떤 이성적인 판단을 진짜로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분노와 공포 때문에 순간적인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주된 이유는 그 그물이었다. 그물의 모습이 죽음과 병 때문에 몸이 저려올 것 같은 공포를 잊고 내가 창문을 넘어 잔디밭을 건너게 만들었다. 내가 일종의 도망자라는 것을 잘 깨닫지는 못했지만 당분간 그들로부터 떨어져서 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하면서 그들이 내게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아내야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선택권은 나한테 있었다. 나는 양복을 입은 사람과 카우보이 옷을 입은 그의 부하 옆으로 큰 원을 그리면서 돌아가 그들의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들은 건물의 실제 건축 평면도를 자세히 연구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 그들 중 하나가 갑작스러운 몸짓을 하다가 내게 부딪칠 경우를 대비해서 그들로부터 50센티 정도는 넉넉히 떨어져서 그들과 함께 그 평면도를 들여다 보았다. 나는 갑자기 내 호흡에 신경이 쓰여졌는데 그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희한했다. 나는 갑작스럽게 침을 삼키고 목청을 가다듬고 싶은 충동에 휘말렸는데 내가 침을 삼키자 그 소리는 마치 폭발 소리만큼 크게 들렸다. 하지만 그들은 내 존재를 모르는 채로 계속 서 있었다. 그들은 일층의 평면도가 그려진 두루마리 종이를 갖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하나씩 자세히 외우기 시작했다. 이층의 평면도 역시 보고 싶었지만 한번 흘낏 본 것 외에는 영원히 볼 기회가 없었다. 카우보이 셔츠를 입은 사람이 그 평면도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보호복을 입은 두 사람들과 해드폰 세트로 끊임없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잘했어, 타일러. 지금 자네는 현관 앞에 서 있는 거야. 계단을 두 개 올라가야 하고 문 앞의 문지방 같은 것에 올라서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해. 모리씨, 자네는 그 문을 타일러가 들어올 수 있게 열어둔다. 알았지? 그는 남부 지방의 액센트로 말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군대나 항공사의 파일럿들, CB 무선 라디오라는 말에서 연상할 수 있는 그 모든 복합적인 매너를 보이고 있었다. 커다란 몸집은 섬세하게 장식된 셔츠 안에 꽉 들어차 있었으며 그의 얼굴에 꼭 돼지 같은 표정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가 쉬지 않고 명랑하게 행동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작은 눈은 경계심에 차 있고 거의 잔인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은 분명히 지휘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말을 하는 것은 조용하고 전혀 감정이 없는 짧은 명령들을 내릴 때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직사각형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잘 생겼다고 말할 것이다. 털도 없고 주름진 그의 머리와 얼굴의 피부는 어쩐지 파충류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가 싫었었다. 그는 부하들 쪽에서 돌아서서 지평선을 바라보았는데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작은 경련이 그의 왼쪽 턱에서 일고 있었다. 아마도 화가 나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계산된 단호함을 가지고 해드폰 세트를 빼서 양복 윗도리의 주머니에 넣으면서 그가 천천히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서더니 부드럽지만 불쾌하게도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클렐란, 자네는 나보다 타일러와 모리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자네가 건물 안의 그 사람을 찾아내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 내었으면 좋겠네. 나한테 중요한 일이고 미국 정부에게도 중요한 일이고 건물 안에 있는 그 사람에게도 중요한 일이고 또한 모리씨와 타일러에게도 중요한 일이야. 나는 자네를 믿고 있어, 클렐란. 그는 돌아서서 무선 장치가 되어 있는 밴으로 걸어가서 옆문으로 들어갔다. 그 말씀 들었어? 대령님이 하신 말씀 들었어? 클렐란이 약간 불편해하면서 말했다. 이 일을 망치면 안돼. 모리씨, 자네는 고양이 사건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도록 해. 하지만 자네가 나를 한 방 먹일 일이 생겼을 땐 그 고양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돼. 그가 아직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있어?... 계속 그에게 말을 시켜. 그는 분명히 그 안에 있어야만 해. 움직이거나 그런 소리가 들리나?... 내 말 잘 들어. 그 친구는 아주 괴로운 상태에 있을지도 몰라. 젠장. 그는 괴로운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겠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 눈에 그가 보일 것 아니겠어? 하나님 맙소사... 그는 기절한 건지도 몰라. 타일러, 문을 열고 나서 모리씨가 그 사람을 찾을 때까지 이쪽에서 기다리도록 해. 그런 다음에 그물을 가지고 다가가는 거야. 그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즉시로 그에게 그물을 씌워야 해, 들었나?... 그 친구의 정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니까. 그가 미쳐서 방황하게 되면 그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도 좋을 일은 없어. 그렇게 되면 나는 자네들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바랄거야. 그때에 그들은 이미 비서실에 들어가 있었고 타일러는 왝스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문에 몸을 굽히고 서 있었다. 그는 열쇠들이 많이 달린 고리를 들고서, 보이지 않는 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열쇠 구멍을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주 힘든 일이었는 데다가 그 커다란 장갑을 끼고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손잡이에서 찾아보는 것을 잊지 마. 클렐란이 말하고 있었다. 웬만한 경우에는 열쇠 구멍이 손잡이에 있어... 찾았어?... 손잡이 위야?... 몇 센티 위지? 아마 잠긴 문들이 더 있을 거야... 열쇠를 둘 다 써 봐. 하나는 앞문을 여는 거고 다른 것은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거야. 실험실 열쇠만 우리에게 없을 거야. 실험실 책임자가 그 열쇠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 보안 때문이었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그 말이 너무도 우습다고 생각했는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밴에서 돌아와 다시 거기에 서 있었던 대령이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는 잠잠해졌다. 열었어?... 잘했어. 문을 아주 천천히 열도록 해. 문 바로 뒤에 누워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타일러, 그물을 잘 접어서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것을 잊지 마. 요점은 그를 화나지 않게 하는 데 있어. 타일러는 간신히 모리씨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만 문을 열어 놓았다. 내가 그 고양이처럼 문 사이로 빠져 나갈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모리씨가 안에 들어가자 타일러는 문을 닫고서 보이지 않는 그 손잡이를 꼭 잡고 있었는데 그러고 있는 그의 팔은 마치 누구하고 악수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 허공에 뻗어나와 있었다. 모리씨는 탐지기로 진저리를 치면서 문 근처의 바닥을 전부 찔러보고 있었다. 이봐, 모리씨. 그가 분명히 그 안 어디에 있을 거야. 클렐란이 말하고 있었다. 계속 찾아봐. 그리고 조심해. 그 불쌍한 녀석을 밟으면 안돼. 방사능 오염?... 없어. 하지만 탐지기로 계속 쓸어 보도록 해. 방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 사람이 어디에선가 오염되어 왔을지도 몰라. 그래, 타일러 자네도 들어가 보는 것이 좋겠다. 살살 들어가서 문을 뒤로 잠그도록 해. 타일러가 그렇게 하는데만 몇 분이 걸렸다. 모리씨는 그 동안 방의 앞쪽 벽을 따라가서 탐지기를 앞 뒤로 흔들어 보면서 칠칠맞게 가구들에 부딪치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탐지기가 바닥에 있는 어떤 부드러운 것에 부딪쳤는데 그는 나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살살 들어가! 그물을 갖고. 타일러! 클렐란은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의자로 판명이 났다. 시간이 갈수록 클렐란의 기분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 새끼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모리씨, 확실하게 누군가의 소리를 들었어?... 타일러, 자네는 동쪽의 벽을 따라서 북쪽으로 가도록 해. 그 구석에 가면 북쪽 벽에 다른 문이 또 하나 있어. 그 문으로 가서 그것들이 잠겨 있는지 내게 말해. 들었어? 타일러는 동쪽 벽에서 왔던 길을 도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모리씨는 탐지기를 앞뒤로 흔들면서 마치 잔디를 깎는 것처럼 방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책상에 이르자 그는 탐지기를 내려놓고 손으로 책상 위 전체를 두드려 보았다. 그 뒤에 그는 힘들게 주저앉은 다음 네 발로 기어서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을 뒤지면서 그는 많은 물건을 찾아냈는데 어떤 것은 무엇인지 몰라서 묘사하느라고 고생을 했다. ( 아마 쓰레기통이겠지. 클렐란이 말하곤 했다. 바닥이 있나 만져 봐. ) 하지만 그는 어디에서도 인간의 형체를 찾아내지 못했다. 방을 다 뒤지고 난 뒤 그는 탐지기를 내려놓고서 타일러를 바라보았다. 타일러는 문들을 찾아냈는데 둘 다 잠겨 있지 않았고 문 하나는 조금 열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우리 쪽으로 돌아서서 무엇을 기대하는 듯이 쳐다보았다. 공중에 하얀 우주복을 입고 서 있는 두 사람은 꼭 다른 행성에서 온 탄원자들처럼 보였다. 환장하겠군! 클렐란이 꽥 고함을 쳤다. 실망인데. 거의 동시에 대령이 사람 같지 않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선기로 전해진 이 말은 두 사람이 공중에서 똑같이 진저리를 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대령과 클렐란은 서로를 마주 보더니 둘 다 수신이 끊긴 것이 분명한 그들의 해드폰 세트를 조절했다. 클렐란이 먼저 말했다. 대령님,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 생각을 해보면 그럴 확률이 아주 적어요. 우리는 모리씨의 말만 증거로 갖고 있잖습니까. 저기는 이상한 곳입니다. 어쩌면 모리씨의 머리가 저 안에서 조금 이상해진 것인지도 모르지요. 대령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가능성이지.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모리씨의 보고를 믿고 싶어... 물론 자네가 그를 잘 알고 그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잘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말일세. 그는 자네 부하야. 그는 열심히 말을 하면 자기의 정신도 같이 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처럼 열의 없게 천천히 말했다. 그건 그렇고, 모리씨와 타일러에 대한 모든 인사 자료들을 다 보고 싶네. 그리고 저 무선 차량에 있는 친구가 고메즈 맞지? 그는 다시 잠잠해지면서 눈을 가늘게 좁히고 창백한 얼굴에 주름을 잡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야. 분명히 저 안에 고양이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았어. 아무리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인간도 고양이와 논리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어. 클렐란, 어떤 경우에도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 우리가 가정해서 손해 볼 일은 없어.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그 잠재된 이점은 그야말로 계산할 수도 없을 정도일세. 그는 마치 그것을 정말 계산하려는 것처럼 또 말을 멈추었다. 계산이 안돼. 과학적인 의미는 놔 두고라도... 지금 우리가 여기에 서서 완전히 투명하고 완전히 살아 있는 인간의 신체가 과학과 의학에 얼마나 소용이 될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생각이 되지 않네. 그저 결과가 뻔한 실험만 해 봐도 전에는 도저히 얻어낼 수 없었던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거야. 아마 그런 정보들을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더 힘들거야. 바로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평면도를 샅샅이 다 보았기 때문에 새로 사귄 내 친구들로부터 떠나가려고 했었는데 그 대화가 갑자기 내 관심을 사로잡는 바람에 나는 그들이 말을 멈추는 순간에는 숨도 쉬지 않으면서 꼼짝않고 그들과 함께 계속해서 서 있었다. 물론 우리는 그가 그런 상태에서 오래 살지는 못하리라고 가정을 해야 할 거야. 하지만 아무리 짧은 동안이라도 그에게는 엄청난 가치가 있네. 그를 현지에 파견하는 요원으로 만들면 기가 막히겠는데요? 클렐란이 자기 제안을 말했다. 그가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다닐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아무데나 갈 수가 있잖아요! 정말 아무데나요! 우리는 세계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요. 하나님 맙소사. 그가 얼마를 원하든 간에 자기 예산은 자기가 짜도 될 겁니다. 누가 감히 뭐라겠어요? 맙소사. 우리는 정부의 반을 넘는 힘을 갖게 될 겁니다. 클렐란은 내 존재가 갑자기 가져다 줄 그 기회들에 대해서 똑똑히 이해하기조차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가 계산을 해보는 동안에도 그 기회들은 그의 상상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거기에는 한도라는 게 없을 겁니다 - 됐어, 클렐란. 대령이 아주 조용하게 말했다. 그는 생각에 잠겨서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관심사는 그 사람을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찾아내는 거야. 하지만 그가 할 일을 좀 생각해 보십시오! 클렐란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말을 계속했다. 문제는 우리가 그에게 무엇을 하도록 설득할 수 있으며,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할까 하는 것이네. 언제나 똑같은 질문이지. 그의 협조를 구하려면 항상 생기는 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거고... 물론 항상 생기지 않는 복잡한 문제들도 생길 거고... 어쩌면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많은 이점들이 주어지긴 하겠지만... 그 사람을 정말 과학자들에게 넘겨주실 겁니까? 클렐란이 물었다. 대령이 대답하기 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하지만 어쨌든지 결국에는 우리가 그에 대한 권한을 갖게 될 거야. 문제는 우리가 이 일을 비밀로 할 수 있느냐에 달렸지. 아직까지 아무도 이곳의 땅에 구멍이 하나 생겼다는 것 외에 더 흥미로운 일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대령님 말씀은 과학자들이 자기들의 볼 일을 다 본 뒤에는 우리가 그 사람을 계속해서 데리고 있을 수 있다는 거지요? 클렐란이 희망에 차서 물었다. 그들이 그 사람을 샅샅이 조사하고 나면 그한테 뭐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은데요. 그가 덧붙였다. 어쨌건 간에 우리는 그의 정신 상태나 신체 조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는 모리씨와 타일러에게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신을 잃고서 쓰러져 있을지도 몰라. 그는 육체적으로는 말짱하지만 정신은 이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는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결정을 내리거나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정신이 나갔을지도 몰라. 상황에 비추어보면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아. 글쎄, 그래도 과학자들은 그로부터 많은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겁니다. 클렐란이 엄숙하게 말했다. 아니면 그는 적대적일지도 모르지. 대령이 말을 계속했다. 그는 데모대 중의 한 사람이기가 쉬우니까. 건물이 소개된 뒤에 아무런 허가도 없이 그 안에 들어 갔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 곳에 자신의 의사로 남아 있었으니까. 그 데모대들은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더군. 최소한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동안에는. 그가 우리의 반대편을 위해서 일하게 될 가능성도 똑같이 생각해봐야 할 거야. 클렐란의 작은 눈이 커졌고 입은 쫙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분명히 그 생각이 그를 괴롭게 만든 모양이었다. 대령은 힘을 주어 입술을 모으고는 좁혀진 눈으로 멀리를 응시했다.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우리 모두 - 타일러, 모리씨, 클렐란 그리고 나는 대령이 오늘의 이 사건을 어떤 방향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만 기다렸다. 그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내 자신의 노력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지를 열에 들뜬 사람처럼 결정해 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제 이들의 손에 자신을 맡긴다는 생각 때문에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내가 과학에 기여할지도 모른다는 그 끔찍한 사실 때문에 나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완전히 보이지 않고 완전히 살아 있는 인간의 신체에 행해질 수 있는 유용한 실험들에 대해서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내 생체 기관에서 환한 색깔의 액체들이 강제로 추출되는 장면들이 몇 가지 마음에 떠올랐지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흉칙한 내 몰골 때문에 또 다른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는 꼭 의학적 도움을 받고 싶었다. 내 인간성을 존중해 줄, 자격 있는 의사들의 도움. 그리고 내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오래 지체할수록 결국에는 의학적으로 더 나쁘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령 말이 옳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가 책임질 만한 결정을 도저히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내게는 좀 더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만약에 지금 이들이 나를 잡는다면 나는 그나마 결정도 스스로 내리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인간 사회에 대한 내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들은 내 의견과 모든 인간들의 의견을 자기들의 의견보다 먼저 생각해 줄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알 것이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우선 도망치는 일이었다. 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한 빨리 건물의 나머지도 뒤지도록 하게. 대령이 갑자기 말했다. 사람들이 더 있으면 더 빨리 해치울 수 있을 텐데요. 클렐란이 제안했다. 우리에게 있는 인력으로만 하겠어.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이상의 사람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네. 우리가 이 상황의 주도권을 계속 잡고 있어야 해. 우선 그 사람을 찾아낸 다음에 이곳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조사를 해야겠어. 클렐란은 해드폰 세트를 도로 끼우고 모리씨와 타일러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대령은 갑자기 몸을 홱 돌리면서 내 쪽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나는 얼른 어설프게 그의 앞길에서 비켜 서느라고 발을 헛 딛어 땅에 주저 앉으면서 잔디를 눌러서 쑥 들어가게 만들었다. 내 심장은 공포로 인해 막 뛰었다. 하지만 만약에 대령이 무언가를 보았다면 그것은 그의 시야의 한 구석에서 살짝 움직이는 무슨 그림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나를 지나쳐 큰 밴으로 다가가는 동안에도 그의 눈은 아직도 먼 지평선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철조망의 문으로 곧장 나갈 것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갈 것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우선 대령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몇 분이 지난 뒤에 그가 무선 전화기를 들고 밴에서 내렸다. 그는 계속 철조망 쪽을 바라보면서 전화기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 내가 말한 그대로야. 전체 철조망 둘레에 십 미터 간격으로 보초를 세우도록.... 즉시. 보초들을 배치하는 즉시 경보 장치를 설치하고... 필요한 만큼 인력을 쓰도록 해... 맞아.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말아. 철조망의 양쪽으로 다람쥐 한 마리도 드나들지 못하게 하라는 것 외에는... 맞았어. 방사능에 오염된 짐승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 만약에 철조망 안쪽에서 무엇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면 무엇인지 보이지 않더라도 즉각 총을 쏘도록 말해... 아니. 그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리개를 내리는 것은 원치 않아. 참, 우리가 이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해줄 필요가 있겠군. 사격을 할 때는 물론 각도를 잘 맞추어야 하겠지만 어떤 움직임만 봐도 쏘도록 명령해... 그래, 나도 위험을 각오하고 있어... 내가 직접 내리는 명령이 아닌 경우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문을 열어서는 안돼. 새 방법을 쓰도록 할 거야... 그가 말하는 동안에 우리들 뒤에서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시끄러운 폭발 소리가 확대되어 들려왔다. 내가 돌아섰더니 그 밴의 지붕 위로 스피커들이 여러 개 사방을 향해서 기적처럼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가 스피커 시스템을 시험해 보는 중인지 마이크를 두드리는 소리가 총 소리처럼 세 번 메아리쳐서 들려나왔다. 전요원은 들을 것! 그 말은 스페인어 억양이 약간 섞인 단조로운 목소리였는데 엄청나게 큰 볼륨을 가지고 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잘 들을 것. 절대로 철조망 근처에 가지 말 것. 철조망은 거기로 다가가는 사람이나 어떤 움직임만 보여도 사격 명령을 받고 있는 무장 보초들에 의해서 계속 감시되고 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이 안에 있는 요원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즉시로 우리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서 우리가 도와줄 수 있도록 할 것. 다시 말하겠다. 요원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즉시로 우리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서 우리가 도와 줄 수 있도록 할 것. 이 메시지는 계속해서 되풀이 되었다. 대령은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려서 계속해서 뭐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스피커의 소음 때문에 그가 하는 얘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 스피커가 세 번 메시지를 되풀이한 다음 마지막으로 그 시끄러운 폭발 소리가 끝나자 대령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가 클렐란을 올려다 보았다. 클렐란, 어제 이 건물에 있었던 사람들의 명단을 복사한 것을 누가 갖고 있지? 밴에 한 장이 있습니다, 대령님. 철조망 바깥에 있는 사람 중에서는 누가 갖고 있지? 시몬즈가 하나 갖고 있습니다. 대령은 전화로 다시 말했다. 시몬즈로부터 명단을 받도록 해. 데모자들부터 시작하도록. 어쩌면 이름들이 좀 빠져있을지도 몰라. 우리와 얘기를 했던 사람들은 온통 겁에 질려 있었거든. 두 사람이 죽었고 건물이 파괴되었는데 그들은 그런 식의 책임을 져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거든.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그들 중에 캐릴런 외에 실종된 사람이 있나 알아 봐. 그 다음에는 여기 직원들과 동료들, 친구들, 학생들, 친구들,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건물에서 소개되었는데도 건물에 남아 있었을 만큼 이곳에 대해서 잘 알 만한 가족들을 조사해. 그 다음에는 명단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샅샅이 조사해. 누군가가 이 건물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가 알게 되었는데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어... 아니.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못 봤어. 아마 성인 남자인 것 같은데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확실한 증거는 없어. 그 사이에 클렐란은 타일러와 모리씨가 공중을 기어가 보이지 않는 화장실을 뒤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을 평면도에 얹은 채로 그는 모리씨가 변기에서 샤워장으로 가는 길을 따라서 선을 그었고 무선기에 대고 그가 떼는 걸음 마다 단조로운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그곳을 떠나 두텁고 부드러운 잔디밭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자유가 기가 막히게 좋았던 그날의 날씨 덕분을 많이 보았다고 생각한다.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봄날의 신록은 맑고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싱싱한 초록색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공포로 인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날이야말로 그해 중 가장 아름다운 날씨였을 것이다. 나는 급경사의 암벽을 타고 오르려는 등산가 같았었다. 내 마음은 매 분마다 내가 직면하게 되는 잠재적인 위험과 잠재적인 돌파구를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집중해야 했기때문에, 비록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경치 때문에 절벽을 올라 계속 나가게 되긴 했지만 머리를 돌려서 그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만약 그날의 날씨가 흐리고 우울한 것이었다면 암벽에서의 내 균형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체념한 뒤에 구조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느라고 몸이 떨려오는 그 조마조마한 공포 속에서도 내가 잔디밭을 건너가는데 어떤 환희가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한 판의 좋은 승부였다. 그 위험은 생각하기조차 불쾌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중하게만 한다면, 내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자유 외에도 덤으로 이들을 이겼다는 기쁨을 만끽하게 될 수 있었다. 그때에는 그런 철없는 생각도 내 계산의 일부였었다. 그리고 이 게임이 길어지면 길수록 게임의 조건은 더욱 나빠지겠지만 나는 언제라도 그 조건에 승복할 수 있었다. 중요한 일은 살아있는 일이고 자유롭게 남아서 내 결정은 내가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중요한 일은 도망치는 일이었다. 나는 문을 통과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면서 문을 향해서 잔디밭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럴 줄은 알고 있었지만, 문으로 통과해 나가는 것이 정 가망이 없는 일인 줄 알게 된다면 나는 철조망에 있는 구멍이나 보초가 서 있지 않는 곳을 찾기 위해서 철조망 전체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둘 다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가 지체하면 할수록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것 같았다. 승률이 어떻든 간에 나는 철조망을 지금 공격해야만 했다. 하지만 내 발자국들이 잔디밭 위에 춤 스텝을 그려놓은 그림처럼 기적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나는 새로운 명확성을 가지고 내 처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을 마치 벌려진 상처처럼 내게 다가왔다. 만약에 당신이 어렸을 때 한 번이라도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고 상상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아마 그것이 무제한의 자유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당신은 아무데나 갈 수도 있고 아무 것이나 다 가져올 수도 있다. 당신은 들어서는 안되는 대화를 엿들을 수도 있고 알고 싶은 것을 다 알아 낼 수도 있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도 당신을 멈출 수 없다. 아무도 당신에게 이래래 저래라 할 수 없다. 글쎄다. 잔디밭에 생생하게 펼쳐진 내 폭스 트로트 발자욱의 기록을 살펴보면서 나는 벌써 어떤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거의 반 시간 동안 나는 두 명의 인간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이 내게 부딪칠 수 있는 동작을 할까봐 그 전체 시간 동안에 그들을 지켜 봐야만 했었다. 그 동안 나는 침을 꿀꺽 삼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재채기를 한다거나 코를 훌쩍 들여마시는 일을 하지 않도록 고통스럽게 계속해서 신경을 쓰고 있어야만 했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일은 힘든 일이 될 것 같았다. 마술처럼 근사한 자유가 아니라 그것은 지루하고 실제적이고 곤란한 문제들의 연속이 될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 보면 다른 제한들이 많은 삶이었다. 내가 그래도 자유를 원한다면 나는 절대로 소리를 내어서도 안되고 절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엇을 들거나 옷을 입거나 해서도 안되었다. 물론 내가 이미 몸에 지니고 걸치고 있는 것들도 역시 보이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예외였다. 내가 건물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 역시 괜찮았다. 맞았다. 마이크로매그네틱스 건물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 중에서 보이지 않는 물체들이 있는 오직 단 하나의 창고였고 앞으로의 내 일생에 있어서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서 내가 지니고 입을 수 있는 물건들은 그 곳 밖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꼭 그것들을 지금 가지고 나와야만 했다. 내게는 다른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의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얼마나 가능할지 몰랐다. 나는 잔디밭에서 돌아서서 건물을 향해 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내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오직 하루뿐인 특별한 기회였다. 나는 내 여생을 위한 물건들을 여기에서 찾아야만 했다. 아주 긴 생애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 계획들을 가장 낙관적인 가정하에서 실행하는 것이 신중한 일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건물의 현관에 가까이 다가가자 내가 클렐란의 앞쪽 시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대령과 클렐란이 내 발자국을 볼 경우에 내가 즉시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들을 주시하면서 걸어갔다. 그날은 그들이 어떤 흔적을 찾아야 할지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 발자국들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내가 불에 탄 언저리를 밟아야 하게 되자 나는 그들이 알아볼 만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발을 약간씩 끌면서 걸었다. 나는 이번에도 내 신발 바닥에 풀물이나 재가 묻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서 좀 안심이 되었다. 그와 반대로 모리씨와 타일러의 발바닥에는 꽤 많은 흙과 재가 묻어 있어서 내가 문지방과 계단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건물의 현관에 발자국들을 남겨 놓았다. 두 사람은 도로 비서실로 와 있었다. 모리씨는 빨간 촉이 달린 표시용 펜으로 벽에 줄을 긋고 있었다. 그는 두꺼운 장갑 때문에 펜을 잡고 있는 것만 가지고도 쩔쩔 매고 있었고 펜의 잉크도 벽에 잘 먹히지 않았다. 마치 그가 유리창에 펜으로 무엇을 쓰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번 펜이 그어질 때마다 벽이 있는 그 공중에서 신비하게 빛나는 점들이 몇 개 남겨졌을 뿐이었고 손으로 그 점을 만지기만 하면 잉크는 장갑에 도로 묻고 말았다. 타일러는 네 발로 카펫에 엎드려서 모리씨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결과도 역시 똑같았다. 나는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웃기는 일을 하고 있나 하고 궁금해했다. 그들은 꼭 유아원에서 노는 아이들만 같았다. 나는 그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앞쪽을 더듬어서 어떤 벽이나 가구들과도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두꺼운 보호복을 입고 있는 데다 클렐란이 해드폰에 대고 계속해서 귀청이 뚫릴 정도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형편이어서 나는 절대로 그들이 내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나는 왝스의 사무실로 가는 문을 찾아서 열고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그 문을 내 뒤로 닫았다. 문의 자물쇠 고리가 제자리에 딱 들어가자 타일러가 갑자기 위를 올려다 보았다. 우리는 둘 다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후에 그는 보이지 않는 카펫에 표시를 하는 그의 작업으로 돌아갔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화장실로 걸어갔다. 나는 그때는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대강 방들과 벽들과 가구들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고 있었고 걸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내 발이 보이지 않는 마루를 차는 그 감각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나는 언제나 내 손을 앞으로 내밀어서 더듬어야 했고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무게 중심을 발로 옮기기 전에 그 발이 확실히 바닥에 닿도록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약장에서 아스피린 병을 다시 찾았다. 내 기분이 훨씬 좋아지기는 했지만 그 약병을 내 윗도리 주머니에 넣기 전에 약을 몇 개 꺼내어 물도 없이 삼켰다. 그 다음에 나는 약장을 뒤져서 물건들을 꺼내어 주머니 속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면도기 한 개, 치아용 플로스 실, 면도용 비누, 두 개의 플래스틱 빗, 면도날들이 든 갑, 머리솔, 전기 면도기, 손톱깎기, 면도용 솔, 작은 가위 한 개, 핀셋, 반창고가 든 작은 금속 통, 테이프 한 통. 여러 가지 향내가 나는 대여섯 개의 병도 손에 만져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제자리에 내버려 두었다. 나는 세면대 위에서 비누를 한 개 찾았고 그 위의 벽에 파인 홈에서 두 개의 칫솔과 플래스틱 컵을 하나 찾아서 다른 것들이 들어있는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내게는 물건을 더 잘 운반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제 겨우 방 하나도 제대로 뒤지지 못했는데 내 주머니들은 너무 무거워져서 내 일생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진짜 양복을 찢어뜨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샤워장으로 더듬어 가서 고리에 달린 샤워 커튼을 어렵게 뺀 뒤에 마루에 편편하게 깔아 놓았다. 커튼 위에 나는 우선 방에서 찾을 수 있는 타월을 전부 가져다 올려 놓았고 그 다음에는 사우나 옆 벽의 고리에 걸려 있던 운동복들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내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들을 올려 놓았다. 고리 위에 있는 선반에서 털모자와 목도리와 철제 상자를 하나 찾았는데 상자가 아주 무거웠기 때문에 그것이 가져갈 가치가 있나 보려고 열어 보았다. 가제, 솜, 모직 붕대, 반창고 - 응급 처치 상자였다. 물론 그것도 갖다 놓았다. 나는 그 방의 벽을 다 따라 다니면서 또 다른 선반들을 찾아 다녔다. 나는 분명히 그곳에서 운동화를 보았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때까지 네 발로 기어 다니면서 바닥을 더듬었다. 두 켤레의 운동화와 고무 샌들이 나왔다. 나는 다른 것들이 또 있나 하고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짐을 싸서 가야만 했다. 비서실 안에서 타일러와 모리씨는 표시용 펜을 쓰는 것을 단념하고 이제는 환한 색의 절연용 테이프로 해보려는 중이었다. 같이 일하면서도 그들은 테이프를 조그만 조각으로 자르는데 아주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일단 자른 테이프는 벽에 붙어 주지 않았다. 벽 대신에 모리씨의 장갑에는 기꺼이 붙어 주었다. 타일러도 시도해 보았지만 겨우 모리씨로부터 그 테이프들을 떼어내는 반쪽의 성공 밖에는 거두지 못했고 그의 장갑에도 조각들이 붙어서 손가락들이 서로 다 붙고 말았다. 벽을 통해서 나는 그들이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클렐란에게 투덜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에는 그들이 내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곧 건물 전체를 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내가 물건들을 꺼내가는 동안에 그들이 나에 대해서 알아차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평면도를 잘 살펴보았기 때문에 나는 별 어려움 없이 화장실 옆에 붙어 있는 청소부의 붙박이장 창고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거기에서 셔츠 두 장, 바지 한 벌과 아주 낡아빠진 테니스 화를 하나 찾아냈다. 그리고 역시 이 번에는 좀 더 커다란 철제 상자를 찾았다. 그것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손으로 전체를 더듬어 본 뒤에야 나는 두 개의 고리를 찾을 수 있었고 한참 후에 그것을 열 수 있었다. 당신이 눈으로 보지 못하면 이런 물건들은 열기가 아주 힘들다. 뚜껑이 뒤로 젖혀지면 위로 올라오게 되어 있는 그 안의 조그만 선반들 위에서 나는 즉시로 집게 하나와 몇 개의 스크루드라이버와 소켓을 여는 렌치들을 더듬어 알아 볼 수 있었다. 연장 상자! 나는 그 발견이 아주 기뻤다. 하지만 내가 그 도구들을 만져 보다가 어질러 놓은 탓인지 뚜껑이 도로 닫혀지지 않았다. 내가 재빨리 연장들을 제대로 정리하려고 노력할수록 일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결국에는 연장들을 반쯤은 꺼내 놓고서 하나씩 제 자리에 도로 집어넣은 다음에야 뚜껑을 닫고 고리를 채울 수 있었다. 그 일을 하는 동안에 나는 아주 불편하게 붙박이장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내가 낭비하고 있는 시간에 대해서 점점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내 셔츠가 땀에 젖은 것을 느끼고 윗도리를 벗어서 그 연장 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넥타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에 와서 넥타이가 내게 무슨 소용일까? 그곳에서는 타일러와 모리씨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목소리 밖에는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리씨는 아직도 테이프 뭉치를 들고 있었다. 타일러가 자기의 연장상자를 열었는데 그것을 책상위에 올려놓았던 모양인지 그의 허리 높이쯤의 공중에 떠 있었다. 서들러서 그곳을 다시 뒤지면서 이번에는 양동이 하나와 걸레와 쓰레기를 담는 비닐 봉지들이 든 상자를 하나 꺼냈다. 긴 막대 걸레에서는 그 자루를 빼냈다. 나는 이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는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가져가기로 정했으며 내가 맞는 것을 가져가는 것인지 초조하게 궁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고 판단할 만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찾을 수 있는 옷가지들과 옷을 만들 수 있는 천들은 모두 가져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외로는 아무 것이나 들기에 편하고 무기나 연장으로 쓸 수 있는 것과 그때 그때 마음에 드는 것들을 택했다. 창고의 맨 뒤에서 1. 5미터 정도 되는 발판들이 달린 조그만 사다리를 찾아냈다. 철조망을 넘어가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거기에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는 창고에서 찾아낸 물건들을 전부 화장실로 가져와서 커튼 위에 쌓여 있는 물건들 위에 올려 놓았다. 연장 상자는 너무 무거웠고 걸레 자루는 너무 길었다. 나는 다른 것들을 찾기 위해서 바닥에 엎드렸다.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한군데에 모아놓아야 했다. 당신이 물건을 볼 수 없을 때는 그것을 찾는 데 영원한 시간이 걸린다. 아마 나 같은 존재는 하루 종일 걸려야 콘택트 렌즈를 한 개 찾아낼 것이다. 타일러와 모리씨는 이제는 테이프로 표시하는 작업을 단념하고 커다란 전선 뭉치를 가지고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루와 벽이 만나는 모든 부분에 전선을 깔아놓을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문을 만나게 되면 커다란 철사용 가위로 줄을 잘라서 문의 자리만은 비워 놓았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꼼꼼하게 비서실과 거기에 잇닿은 두 개의 작은 방들의 윤곽을 표시해 놓았다. 아마 창고나 붙박이장인 것 같았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건물 안에 보이는 평면도를 엄청나게 커다랗게 그리고 있는 셈이었다. 분명히 그 다음에는 그들이 왝스의 사무실로 갈 것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어 그들이 가기 전에 그곳을 조사하고 싶었다. 사실 처음에 나는 그곳부터 뒤졌어야 했다. 나는 정말 서둘러야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일하자. 나는 커튼의 네 귀퉁이를 잡아서 왝스 사무실의 한 가운데까지 끌고 갔다. 책상 앞에 앉아서 그 위에 있는 것들을 더듬어 보았는데 거기에서는 편지를 여는 나이프와 자와 스테이플러가 하나 나왔다. 이제는 필요 없게 된 서류들은 무시해 버리고 서랍을 열어 거기에서 종이 클립들, 고무줄들, 가위들, 스위스 군용 나이프, 여러 종류의 열쇠들이 달린 무거운 고리 하나, 초미니 카세트 녹음기, 신용카드와 스카치 테이프를 찾아냈다. 오른쪽 제일 밑에 있는 서랍의 맨 구석에는 총이 하나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총의 사용에 대해서 찬성이라든지 반대라든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총의 발견은 나를 흥분시켰다. 분명히 이것 때문에 내 입장은 아주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 힘이 더 강해진 것처럼 느껴졌고 잔디밭에 서 있는 클렐란과 대령을 건너다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주 작은 피스톨이었다. 급히 서두르던 와중에서도 나는 그 총을 잘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어떤 총을 가졌으며 그것을 어떻게 쏘는 것인지 알아두고 싶었다. 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내가 그 탄창을 빼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탄창을 비워서 여섯 개의 총알을 손가락으로 세어본 다음에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것와 안전 장치를 풀었다 끼웠다 하는 동작을 몇 번 연습해 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총알의 숫자를 다시 세어 탄창에 도로 집어넣은 다음 그것을 윗도리 주머니에 넣었다. 어딘가에 총알이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상 서랍에는 없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총이란 보이지 않는 총알 없이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점이었는데 나는 겨우 여섯 개를 갖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히 이 방 어딘가에 총알이 더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는데 시간을 좀 할애하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이십 분 가량이 지난 후에 나는 그 방을 다 뒤져서 노끈 뭉치, 두 개의 전기 연결 코드, 전화기, 우산, 레인코트, 한 켤레의 장화를 내 노획품에 보탤 수 있었지만 결국 총알은 찾지 못했다. 총알을 찾는 데 거의 신들린 것처럼 정신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루어 놓았던 것을 다 잃게 될 직전에서야 찾는 일을 간신히 단념할 수 있었다. 내가 모아 놓은 물건들은 너무나도 많아졌고 그것들을 운반하는 것이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 만약에 타일러와 모리씨가 언제라도 이 방에 걸어 들어와 거기에 걸려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나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수색을 피해서 이것들을 건물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했다. 한쪽의 벽을 손으로 더듬어 따라가서 나는 창문을 하나 찾은 뒤 유리문을 밀어 올렸다. 그 소리는 내게 아주 크게 들렸기 때문에 나는 어깨 너머로 - 물론 어깨를 꿰뚫어서 - 모리씨와 타일러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쳐다보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작업에 열중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비서실에 그야말로 꼼꼼한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전선을 작게 짤라서 창문들의 틀을 전부 둘러 놓았고 책상, 테이블, 의자들의 다리에도 전선을 둘러 놓아서 우리는 이제 그 방 전체 윤곽이 어떻게 생겼으며 가구들이 어디에 놓였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내 물건들로 돌아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커튼의 네 귀퉁이를 찾아서 한 손에 모아 쥐었다. 그것을 반쯤은 들고 반쯤은 끌어다 창문앞에 가져다 놓았다. 거기로 가는 동안에 물건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무 많이 담은 모양이었다. 나는 더 조심해야 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실수할 여유가 없었다. 그것을 들어서 창턱에 올려 놓자 내게는 아주 크게 들리는 쨍그랑 소리가 났지만 우선 창문 바깥으로 짐을 내려뜨렸다. 그리고 네 발로 기면서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열쇠 고리와 운동 양말이었다. 내가 마루에 몸을 구부린 채로 그것들을 줍는 동안에 타일러와 모리씨가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일을 아주 잘해 나가고 있었다. 전선을 작게 잘라서 방의 둘레에 붙이고 짧은 철사를 꼬아서 가구들의 윤곽을 싸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들은 사무실을 비서실과 화장실 사이로 갈라놓고 있는 그 벽에서부터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그 벽을 다 표시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든지 그 방을 떠나서 창문으로 내려갔어야만 옳았지만 걸레 자루와 연장 상자가 아직도 화장실 바닥에 있었고 그들이 그 연장 상자를 갖게 되는 위험을 초래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열중해 있는 듯했고 전에도 내가 그들이 일하고 있었던 비서실에 들어갔을 때에도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서 천천히 한 번에 한 걸음씩 내딛으며 그들 사이를 지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 문은 왜 그랬는지 내가 빠져 나갈 수 있을 만큼 넉넉히 열려 있지 않았고 내가 그 문을 열자 끔찍하게도 커다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말았다. 내가 화장실의 타일 바닥에 발바닥을 대자 신발의 가죽창에서도 소리가 났다. 타일러가 단조로운 낮은 목소리로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지금 그가 이 방에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이 근처에서 돌아다니고 있어요... 네, 대령님. 정말 확실합니다. 모리씨도 동작을 그쳤다. 나는 몸을 굽혀서 조심스럽게 바닥을 더듬어서 연장 상자와 걸레 자루를 찾아서 하나씩 천천히 집어 들었다. 내 손이 닿자 자루에서 약간 긁히는 소리가 났다. 우리 세 사람은 몇 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발꿈치를 먼저 조심스럽게 바닥에 힘주어 갖다 댄 다음에 발바닥 전체에 몸무게를 천천히 옮겨주는 식의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그들을 향해서 방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다른 문으로 화장실을 나가서 복도를 따라 건물의 다른 쪽으로 나갔어야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길로 가 보지 못했었고 내가 어디에 걸려서 넘어지거나 잠긴 문 사이에 갇히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빠질까봐 두려웠었다. 이제 나는 사무실 안의 길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일단 카펫이 깔린 바닥을 밟게 되면 소리를 전혀 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모리씨의 바로 옆에 다가섰을 때 그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네 말이 맞아. 바로 여기에 있어. 그 새끼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마루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 그는 즉시로 내게 덮쳐 들었다. 그것은 물론 대충 어림잡은 시도에 불과했겠지만 아주 정확했다. 나는 그가 덮쳐드는 순간 걸레 자루로 그의 배를 있는 힘을 다해서 세게 찔렀다. 그가 입고 있던 보호복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찌른 것이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그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왝왝거리는 신음 소리와 함께 주저앉아 버렸다. 타일러는 처음에는 나를 쫓아가야 할 것인지 모리씨를 도와줘야 할 것인지 몰라서 가만히 있다가, 주위를 둘러보아도 무엇을 쫓아야 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모리씨 쪽으로 몸을 숙였다. 처음부터 모리씨와 나는 친구가 될 운명이 아니었다. 나는 비서실을 통과해서 현관문으로 나간 다음 건물의 코너를 끼고 돌아가 내 짐이 떨어져 있는 곳에 당도했다. 물건들이 삐져나와 그 옆에 떨어져 있는 것을 만져보고 알 수 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운반해 가려면 보따리를 좀 더 단단히 쌌어야 했었다. 나는 우선 두 귀퉁이를 대각선으로 먼저 묶은 다음에 나머지를 묶었다. 나는 그때 쯤에는 내 손이나 손놀림을 보지도 않고서 하는 일에 꽤 익숙해져 있었지만 아직도 그것은 깜깜한 집 안을 더듬고 다니는 일이나 마찬가지였고 매듭을 묶는 일은 왜 그런지 더욱 더 어렵게 느껴졌다. 드디어 그 일을 마치고 나서 나는 거기에 지렛대처럼 걸레자루를 끼워서 보따리를 들어올린 다음에 어깨 위로 들어 올렸는데 무지하게도 아팠다. 다른 손으로 연장 상자를 집어든 뒤 나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잔디밭을 뒤질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는 누군가라도 실수로 짐을 걷어차게 만들 위험이 없는 곳에 놓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커다란 너도밤나무 밑에 놓아두었는데 옆으로 낮게 퍼진 나뭇가지들 때문에 누구라도 몸을 굽히지 않고서는 나무 밑을 걸을 수 없는 곳이었다. 총은 내 몸에 계속 지니고 있었다. 나는 건물로 돌아와서 비서실부터 시작해서 다른 방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책상 서랍들과 붙박이장들을 더듬어서 내게 쓸모가 있을 것만한 것은 꺼내어 방 가운데에 한데 모아서 내가 일을 마치면 갖고 나갈 수 있게 해 놓았다. 비서실에 작은 소파를 - 모리씨는 아까 정말로 소파를 발견했었던 것이다 - 찾아서 내 노획품을 넣을 자루로 쓰기 위해서 방석과 쿠션 커버를 여섯 개 빼냈다. 나무 밑에 놓아둔 내 짐은 점점 커지고 있었는데 너무 커져서 내가 그것을 어떻게 다 가지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좀 골라가면서 옷가지와 천 종류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몇몇의 방에는 커튼이 있어서 그것들을 전부 뜯어냈다. 운동화도 한 켤레 더 찾아냈는데 지금까지 가죽창을 댄 구두가 카펫이 깔리지 않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소리가 나서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그 운동화를 신기로 했다. 신발은 반 사이즈 정도 작았지만 내가 신고 있었던 얇은 양말 덕분에 신을 만해서 나는 운동화 끈을 맨 다음에 구두를 짐 위에 올려 놓았다. 나는 레인코트를 두 벌 찾아낼 수 있었다. 다행히도 어제 비가 왔던 것이다. 아니다. 다행이 아니었다. 비가 오지 않았었다면 내가 건물 안에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일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움직여야 했다. 곧 나는 짐을 들고서 철조망을 빠져나가야 하는 문제에 부딪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짐을 들고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구상도 없었다. 나는 우선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계속해서 물건들을 찾은 다음에 그때가 닥치면 철조망의 문제에 대해서 궁리해야 되었다. 아마 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문제 때문에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사람들더러 총을 쏘라고 명령을 내린 대령의 문제 때문에. 두 번이나 고메즈가 작은 밴을 운전해서 문을 나갔다가 몇 분쯤 뒤에 돌아왔다. 그가 문을 통과해서 출입할 때마다 나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차 옆이 긁힐 정도로 문이 좁게 열리는 바람에 밴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었다. 철조망의 뒤로는 또 다른 철조망과 문으로 둘러져 있는 것 같았다. 희망이 없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야 했다. 고메즈는 처음에는 타일러와 모리씨가 쓸 전선과 끈을 가지고 돌아왔다. 하지만 두번째에는 밴의 뒷문에서 그가 개끈을 두 개 들고 내렸다. 거기에는 두 마리의 개가 묶여 있었다. 영화에서 황야나 습지에서 탈옥수를 쫓아다니는 개들과 똑같이 생긴 놈들이었다. 고메즈는 개끈을 밴의 범퍼에 묶어놓고 또 다른 밴 안으로 들어갔다. 그 개들의 출현이 얼마나 나를 공포와 좌절로 떨게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말을 꺼낼 수도 없다. 일단 그 개들이 나를 뒤쫓기 시작하면 나한테 무슨 기회가 있겠는가? 나는 상대적으로 좁고 완전히 포위된 구역 안에 있는 셈이었다. 어떻게 되었거나 철조망을 뚫고 나가는 일이 불가능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나를 쫓는 개들 때문에 더욱 더 불가능해졌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라도 철조망을 즉시로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떤 물건이라도 갖고 나갈 생각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실 내게는 시간이 좀더 있었는지도 모른다. 클렐란과 대령은 큰 밴의 앞에 서서 건물 안에 있는 모리씨와 타일러에 눈을 못박고 있었다. 고메즈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개들을 향해서 걸어가면서 총을 꺼내어 안전 장치를 풀었다. 개들은 잔디밭에 앉아서 천천히 숨을 깊게 쉬고 있었다. 내가 그들 근처 몇 미터 안으로 접근하자 한 마리가 몸을 갑자기 움직이더니 어설프게 일어설 듯한 시늉을 했다. 나는 팔을 들어 올려서 총을 그놈의 머리에 겨누었다. 나는 내 조준이 상당히 가상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왜냐 하면 나는 내 팔이나 총을 볼 수가 없었고 또한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엉망진창이 된 데다가 불쾌하게 된 이 상황을 더 끔찍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세 걸음을 더 걸어간 뒤에 총을 그놈의 머리 가까이에 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거리를 잘못 계산한 나머지 대신에 그 개의 코를 찌르고 말았다. 그 개는 아픈 비명을 지르더니 몸을 뒤로 젖히고 길고 낮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움츠렸다. 내가 권총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면 분명히 그놈을 그 즉시에 쏘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멍청히 선 채로 다른 개도 일어나서 같이 짖기 시작하는 것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다음 몇 분간 그놈들은 짖고 으르렁거리고 냄새를 맡는 소동을 피웠다. 하지만 개들의 그런 행동이 내 쪽을 향하지 않은 것을 보고 공포는 안도감으로 갑자기 변하게 되었다. 개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것이었다! 개들은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듣을 수 있는 것 같았지만 분명히 내 냄새는 맡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좀 더 좋아져서 다시 내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건물로 도로 들어갔다. 이제 모리씨와 타일러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일하고 있었다. 왝스의 사무실과 화장실을 전선과 철사로 윤곽을 만들어 놓았고 건물을 가로지르는 복도도 다 마쳤으며 다른 사무실들에서 작업을 하면서 내 쪽으로 움직여오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안 있어 전선을 다 쓰게 되자 그들은 하얀 끈으로 벽을 표시하기 시작했는데 그 흰 줄들은 우리 바로 밑에 있는 새까만 분화구를 배경으로 정말 아름답게 나타나고 있었다. 다음의 몇 시간 동안 건물은 파이프로 지어진 집의 거대한 모델 같은 형체를 우리 주위로 드러냈다. 먼저 타일러가 탐지기를 앞으로 휘두르면서 새로운 방에 들어가는데 공식적으로는 방사능을 탐지해 보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책상들과 의자들과 벽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 그와 함께 모리씨가 어설픈 몸짓으로 그들이 입고 있는 보호복의 디자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네 발로 기어서 끈을 늘어 놓았다. 모리씨는 방의 윤곽을 맡고 타일러는 가구를 표시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클렐란과 얘기하고 있었다. 이 방의 한 가운데는 커다란 책상이 있어요. 회전의자도. 아니면 동쪽 벽에는 문이 두 개 있는데요. 어떤 문이 다음 방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평면도에 붙박이장이 나와 있나요? 아니면 그 새끼가 다음 방에 있어요. 우리보다 앞서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요. 하나님에게 맹세하겠어요. 그 방에 뭔가를 떨어뜨렸어요... 건물을 우리 보다 앞서서 뒤지고 있나 봅니다. 나는 정말 그들보다 한 걸음 앞서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들이 언제나 나를 따라잡게 되었기 때문에 아예 그들의 뒤로 돌아가서 뒤쪽의 방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하면 이미 윤곽이 그려진 전선과 끈 때문에 가구나 벽에 부딪칠 걱 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반면에 나는 벌써 표시가 된 가구들을 움직여서 나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몇 배나 더 조심해서 움직여야 했고 책상을 뒤질 때 그 앞의 의자에 앉을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모리씨와 타일러는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특히 그들이 입어야 하는 장갑과 보호복 때문에 그들의 작업이 얼마나 피곤하고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기분은 아주 엉망진창인 것이 틀림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투명인간을 놓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고양이를 놓친 사건도 계속 상기시켰고 모리씨는 분명히 걸레 자루가 자기의 배를 강타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 존재를 느끼고 있었으며 아마 그것 때문에 더욱 짜증스럽고 초조한 기분, 특히 무서운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같은 건물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도 역시 초조하고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서랍을 연다든지 물건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길 때 소리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서랍을 너무 끝까지 뺀 탓으로 그곳에 들은 것이 죄다 방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서 있어야만 했다. 모리씨와 타일러가 즉시로 그들의 보호복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빨리 달려왔다. 그들이 정확하게 그 책상을 찾아서 바닥에 엎질러진 서랍을 더듬어 찾았을 때 나는 이미 그곳을 벗어나서 다른 방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책상 서랍들을 뒤지고 다니는데요. 모리씨가 보고했다. 뭔가를 찾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면 좋을까요?... 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음산합니다. 그 새끼를 꼭 내 손으로 잡고야 말겠습니다. 이 옷을 벗을 수만 있다면... 네, 대령님. 그리고 몇 분이 지난 후에 나는 의자를 하나 넘어뜨렸는데 그들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들은 얼굴을 들고 조금 소리를 듣다가 실쭉한 표정으로 도로 자기들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나는 정말로 탈출을 더 일찍 시도해야 했었다. 철조망의 문제도 진작 직면해야 했었다. 하지만 나는 모리씨와 타일러가 실험실의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곳에서 무엇을 찾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나도 정확하게 몰랐지만 내 스스로의 논리에 의하면 그곳에는 쓸모 있는 연장들이 많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곳이 이 재난의 근원지인 만큼 어쩌면 이 우스꽝스러운 일이 왜 내게 일어났는지,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나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었던 같다. 이른 오후에 우리는 건물의 앞쪽에 있는 방들을 전부 뒤졌다. 나는 노획물을 건졌고 타일러와 모리씨는 끈으로 모든 방을 표시해 놓았다. 내가 마지막 짐을 나무 밑에 갖다두고 돌아오는데 타일러와 모리씨가 보호복을 입은 채로 건물에서 나와서 힘들게 분화구의 언저리 쪽으로 가고 있었다. 클렐란이 그곳까지 개들을 데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았다. 인간 사냥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개들이 내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더 이상 무섭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내 소리를 들을까봐 그 근처로 가까이 갈수가 없어서 나는 클렐란과 함께 잔디밭에 남아서 그 사냥을 구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클렐란이 타일러와 모리씨에게 개들을 넘겨 주는 동안에 그로부터 3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기다렸다. 그 개들은 아마도 모리씨와 타일러의 복장 때문인지 그들에 대해 즉각적인 친근감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근감이 전혀 없는 태도가 계속해서 되풀이되었다. 결국에는 그들 사이에 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토론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중에는 모리씨는 아예 물러나고 말았는데 아마도 그는 자신이 정말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최소한의 냉정한 인내심을 갖고서 좀 더 선선히 인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클렐란의 도움을 받아서 타일러는 개끈을 둘 다 그의 커다란 장갑을 낀 손에 돌려서 묶었다. 몇 번이나 끈을 잡아 당기고 툭툭 쳐 보는 연습 끝에 그는 개들조차도 그것이 크고 깊은 구멍인지 알아볼 수 있는 그 곳으로 데리고 갈 수 있었다. 타일러는 개들보다 앞장서서 보이지 않는 표면으로 걸어갔는데 개들은 공중에 떠오를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대해서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끈을 더 끌어 잡아당긴 다음에야 그는 개들의 앞발이 눈에 보이는 테두리를 지나가게 만들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 개들은 완강하게 멈춰서고 말았다. 그들은 그 끝까지 가서 억지로 진공 속으로 끌려들어갈 망정 공중으로 떠오르는 일은 거절했다. 개들은 발로 몸을 감싼 다음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짖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타일러는 개들 쪽으로 돌아서서 두 손으로 끈을 잡아당겼다. 모리씨가 개들의 뒤로 다가가서 어렵게 몸을 굽힌 다음에 개들을 달래면서 손으로 그들을 밀었다. 한 마리가 길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더니 겨우 모리씨의 잘 보호된 팔을 갑자기 사납게 물어뜯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말았다. 클렐란은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려고 지껄였다. 그래. 잘 달래 봐. 개들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그들이 괜찮아질 것 같은 징조는 아무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타일러가 그 때쯤에는 개들을 질질 끌고 보이지 않는 표면 위로 3-4미터 데리고 들어갔지만 그 놈들은 계속 저항하면서 악독한 소리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타일러는 문간에 서 있으면서도 개들을 계단 위로 끌어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잘했어. 클렐란이 말했다. 일 분만 기다려. 개들이 익숙해지게 해 봐. 타일러는 거기에 한참 서서 개들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개들은 이제 더 이상 끈이 앞으로 당겨지지 않으니까 뒤로 몸을 잡아당기는 것을 멈추었고 개끈은 밑으로 느슨하게 늘어져 있었다. 두 짐승들은 진공 앞에서 몸을 수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동정할 수 있는 처지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눈이라도 감을 수 있었다. 갑자기 한 마리의 개가 펄쩍 뛰어오르더니 반대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화가 난 체념의 자세로 서 있었던 타일러는 그 일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끈에 질질 끌려가서 문지방을 지나 다른 개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타일러가 한 말은 젠장!"이라는 단 한 마디였지만 개들은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냈고 특히 타일러 밑에 깔린 개는 더 심했다. 클렐란은 계속해서, 살살 해. 천천히. 개들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진정을 시켜. 라고 말했다. 그 격려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에는 안절부절하는 기미가 엿보였다. 모리씨는 이 기회를 틈타서 그의 징징대는 어조로 자신과 타일러가 억지로 입게 된 보호복만 벗는다면 자기네들은 더 능률적으로 덜 불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을 했다. 그는 아주 자세하게 우리가 이 지랄 같은 옷만 벗으면 저 안의 지랄 같은 새끼를 잡을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클렐란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모리씨, 자네는 벗어도 좋다는 명령이 내릴 때까지 그 지랄 같은 옷을 입고 있어야 해. 그리고 자네가 한번만 더 그 지랄 같은 옷에 대해서 말한다면 자네는 그 옷을 입지 않았을 때의 기분이 어땠었는지 잊어버릴 때까지 그 지랄 같은 옷을 입고 살게 될 거야. 내년 여름까지 그걸 입은 채로 먹고, 자고, 오줌을 누고, 똥을 누게 될거야. 모리씨, 알아들었어? 모리씨의 대답은 내게 들리지 않았지만 클렐란의 말을 알아 들은 것 같았다. 그는 조용히 거기에 서 있었다. 사람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클렐란은 다시 타일러에게 말을 건넸다. 저 개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건물 안을 끌고 다녀 봐, 들리나? 타일러는 개줄을 사납게 몇 번 잡아채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개들의 목을 조이게 되어 있는 훈련용 목걸이가 그들의 목을 난폭하게 눌러오는 것을 느끼자 그 놈들은 놀람에 찬 비명을 올렸다. 타일러는 돌같이 무표정한 자세를 계속 취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화가 나 있었다. 이 개들은 지금부터 산책을 하게 된다. 그가 선언했다. 그는 손이 개들의 턱에 닿을 때까지 개끈들을 장갑 낀 손 둘레에 몇 번이나 돌려 감고 계단을 올라가서 건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반쯤은 질식한 개들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코는 절망적으로 하늘을 향하고 앞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다리는 단호하게 땅에 갖다 대었지만 타일러는 결심한 대로 개들을 끌고 앞으로 나갔다. 맞았어, 이 개새끼들아. 너희하고 나하고 산책을 가는 거다. 타일러는 개들을 비서실로 끌고 들어가 보이지 않는 책상을 한 바퀴 돌았다. 그가 거의 미쳐버린 개들을 마루 위로 끌고 가는 동안, 그의 잘 제어된 분노 안에는 거의 광기 같은 것이 보이고 있었다. 아무 냄새도 안 나? 괜찮아. 다음 방을 조사하자고. 그는 왝스의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개들을 그의 뒤로 사납게 잡아당기더니 분노에 찬 원을 한 바퀴 또 돌았다. 됐어. 으시시했는지 클렐란이 말했다. 천천히 해, 타일러. 됐어. 타일러는 몸부림치는 개들을 복도로 끌고 가고 있었다. 됐어, 타일러. 잠깐만 서! 타일러는 멈추어서 천천히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타일러, 그 개들을 그 근처 어디에 묶어 놓도록 해. 조금 있으면 개들이 거기에 익숙해지겠지. 어쩌면 안 그럴지도 모르고. 그렇게 만들면 되겠지. 지금은 실험실을 열 때야. 타일러는 그 동물들을 한 사무실로 끌고 들어가서 개끈으로 고리를 묶어서 보이지 않는 책상 다리에 걸었다. 그 개들이 불행하다는 것을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개들에게는 책상 다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것을 돌아보려고 하다가 한 마리 아니면 둘 다 거기에 아프게 부딪친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새 환경 - 아니, 환경이 아예 없다는 사실에 빨리 적응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음산한 울음 소리가 터져나왔는데 그 비명이 그 중의 한 마리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까지, 나는 그 공포의 시간 동안에 내가 사실은 죽어서 그 지옥에 던져졌으며 그 끔찍한 소리는 바로 영원한 징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머지 개도 함께 소리를 질렀다. 몇 분 동안 한참 우리는 거기에 서서 마치 그 소리 때문에 목이 잘려나간 사람들처럼 서 있었는데 마침내 대령이 신호를 보냈고 타일러는 개들을 잔디밭으로 끌고 나왔다. 십 분쯤 있다가 고메즈가 전선이 뒤로 끌리는 무거운 쇠바퀴를 끌고 테두리에 도착했다. 모리씨와 타일러는 그 바퀴를 받아들어 그 전선을 보이지 않는 창문 안으로 던져 넣더니 한 방을 거쳐서 중앙의 복도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전선의 끝에 전기 드릴을 꽂았고 모리씨는 그 드릴을 공중에 대고 힘들게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실험실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복도로 걸어 들어가서 거의 그 옆에 바싹 붙어서 그가 나를 위해서 문을 열어 주기만 기다렸다. 나는 모리씨가 아주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드릴은 무거웠고 장갑을 낀 손으로는 한 곳에 대고 있기가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가끔 가다 그는 드릴을 멈추고 작은 전기톱을 문에 대고 밀었다. 나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문이 철문인 데다가 꽤 두껍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거의 반 시간 동안이나 그 일을 했지만 보호복 안에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고 그 연장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는데다가 지금까지 얼마나 일이 진전되었는지 만져 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는 말하는 것을 멈추었고 가끔 클렐란이 일의 진척상황에 대해서 물어보면 아주 냉정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 전체 시간 동안 끈기 있게 모리씨의 옆에 서서 기다렸다. 나는 그 문을 어떻게 공격하면 좋을지 제안을 좀 하고도 싶었지만 우리가 그 문에 대해 함께 보이고 있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와 내가 성공적인 협력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연장 상자에서 커다란 스크루드라이버를 꺼내서 그의 앞에 대고 난폭하게 비틀었다. 그는 몸 중심을 전부 기울여서 자물쇠 장치를 비틀어 떼어내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오직 그와 스크루드라이버만이 눈에 보였기 때문에 그 모습은 정말 기괴한 판토마임만 같았다. 스크루드라이버가 갑자기 그의 손 안에서 비틀리고 어깨가 손을 몇 번 밀더니 그가 선언했다. 됐다. 열었어. 그는 무선기로 클렐란이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 잠시 멈추었다가 탐지기를 집어들기 위해서 몸을 굽혔다. 몸을 다시 펴더니 그가 뒤로 돌아서서 나를 바로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나도 뒤를 돌아 본 뒤에야 그가 실험실이 열렸기 때문에 우리와 합류하기 위해서 복도를 걸어오고 있는 타일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리씨는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탐지기를 들고 왼손을 써서 문을 밀었다. 그 오랜 기다림 때문에 실험실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내 비이성적인 충동이 고조되어 나는 타일러가 오기 전에 모리씨를 따라서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리씨가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밀어서 연 그 손을 옆구리로 내리는 순간 무엇이 난폭하게 내 몸을 쳤다. 나는 그게 특히 이마, 코, 왼쪽 뺨과 왼쪽의 발가락들을 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비록 내가 그날 하루 동안 내 주위의 투명함에 대해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 충격은 예고 없이 왔고 그것에 대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겁내게 만들었다. 나는 그 철문이 자동적으로 닫히는 스프링에 의해 밀리면서 나를 때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몇 초 동안 멍청하게 서 있었다. 멍한 상태에서 코와 뺨을 만져 보았는데 통증 때문에 미칠 것같이 아팠다. 맞은 부분은 물렁해졌지만 아무 것도 부러진 것은 없었다. 피도 흐르지 않았다. 그 동안 모리씨의 뒷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고, 문이 나를 치는 소리를 듣고 그가 얼어 붙어서 서 있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그가 무선기에 대고 거의 속삭이는 소리로 날카롭게 말하기 전까지 그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 버리고 있었다. 바로 내 뒤에 있어! 문간이다! 몇 발자국 뒤에 있었던 타일러가 복도를 달려와 모리씨를 향해 문으로 뛰어들었다. 보호복 때문에 아주 어려웠지만 그는 나를 잡기 위해서 심사숙고하며 팔을 쫙 펴고 뛰어왔다. 동시에 모리씨가 몸을 돌리며 탐지기를 내려놓고 내게 덮쳐들었다. 그들은 둘 다 내 몸에 손을 댔는데 만약에 그들이 그 옷을 입지 않았었고 그 멍청한 장갑을 끼지 않았었다면 두 사람은 나를 쉽게 잡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완전히 공포에 빠져서 몸을 빼내려고 그들을 되는 대로 때리며 밀어제쳤다. 내 머리도 그 와중에 얻어 맞게 되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비틀거리며 떨어져 나와 벽 쪽을 향해서 걸어갔다. 내 심장이 덫에 걸린 토끼처럼 뛰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 다친 곳이 없나 하고 뺨을 만져 보는데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쳐다보았다. 나를 놓치고 나서 그들은 자기들의 몸도 쭉 펴서 일으켰다. 타일러가 한쪽으로 물러났는데 그의 옆에 있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가 뒤로 물러서서 문을 몸으로 막았다. 잡았어요. 타일러가 그의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실험실 안에 있습니다... 아니오, 이 안에 있긴 하지만 내가 문을 막고 있어요. 문이 하나밖에 없지요? 여기에서 못 나갑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잠깐만, 방사능 계수가 어떻게 됩니까?... 아무 것도 없다구요? 대령님, 모리씨의 말이 일리가 있어요. 이 옷을 벗는 게 좋겠어요... 네, 대령님... 알았습니다. 타일러는 방의 가운데 쪽을 올려다 보면서 스스로를 의식하고 있는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그가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몰랐었다. 이봐, 잘 들어. 우리는 당신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는 잠시 멈추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을 들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말해 줘. 이번에는 더 긴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다들 더 할 말이 없었다. 타일러는 닫힌 문에 등을 바싹 붙이고 서서 내 자취를 찾기 위해서 열심히 둘러 보았다. 하지만 모리씨는 몸을 굽혀서 탐지기를 집어 들고서 그것을 천천히 앞뒤로 흔들면서 방의 중앙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열심히 그를 바라 보았다. 그는 이 괴상망칙한 상황을 연출해 낸 왝스의 그 희한한 장치 쪽으로 곧바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앞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아무런 가구나 연장에도 부딪치지 않았고 그 동안 보이지 않는 표면 위를 걷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갑자기 진공의 구멍에 쑥 빠졌을 때는 꽤 자신 있게 걸어가고 있었던 중이었다. 진공의 구멍에 빠지기 전에까지 모리씨는 최소한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나하고 타일러가 서 있는 바닥에서 3미터 정도 깊이의 구덩이에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놀이터에라도 있는 것처럼 그는 천천히 미끄러져 1.5미터 정도 더 깊이 중간으로 빠져들어갔다. 떨어지면서 놓친 탐지기도 그와 함께 미끄러져 내려갔다. 삼십 초 정도 그는 거기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팔다리를 움직여 보더니 천천히 등이 바닥에 완전히 닿도록 몸을 폈는데 타일러와 내가 서 있는 곳과 이제는 분화구의 바닥이 분명해진 그 곳의 한가운데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네. 괜찮습니다. 모르겠는데요... 여기에 구멍이 있어요. 그는 아주 피상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일어서려고 해 보았다. 다리 하나를 잘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발목인가 봐. 아이구 아파! 한쪽 발에 몸을 기대면서 그는 조심스럽게 우리 쪽으로 오려고 발을 내딛었다. 몇 발자국을 걸은 뒤에 그는 아주 미끄러운 경사에 다다랐다. 발이 미끄러지면서 그는 앞으로 고꾸라져 다리가 꺾여서 머리를 밑으로 하고는 그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도로 떨어지고 말았다. 옘병할! 그는 천천히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워서 이번에는 반대쪽을 향해서 걸어가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는 또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바닥에 원을 그리면서 몇 번 돌아보았다. 그가 몸을 구부리더니 바닥을 만져 보았다. 몸을 펴고 일어서더니 우리를 올려다 보았다. 구멍 속에 아직도 있습니다. 그가 다시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우는 어조와 함께 짜증에 차 있었다. 둥그런 것 같습니다. 표면은 매끄러운 데요. 자꾸만 미끄러집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나갈 수가 없겠어요. 누군가가 나를 꺼내줘야 되겠어요. 나는 처음에는 실험실의 한 가운데에 무슨 폭발이나 화재가 일어나서 마루에 구멍이 뚫린 바람에 모리씨가 그 밑의 지하실에 빠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평면도에서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나는 네 발로 천천히 기면서 손으로 조심스럽게 더듬어 내가 모리씨와 함께 있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 언저리로 걸어갔다. 언저리에 당도해서 나는 그 구멍의 표면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것은 완벽하게 매끄러웠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거기를 쓸면서 손톱으로 긁어 보았다. 그것은 완전히 매끄러운 마루바닥의 네모난 모자이크 조각이었고 그 밑에는 콘크리트, 더 밑에는 단단하게 다져진 흙이 있었다. 모양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분화구처럼 흠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원형이었다. 나는 구멍의 돌레를 삼 분의 일 정도 돌아가며 만져보아 내 가정을 확인해 보았다. 그 테두리는 틀림없이 완전한 원이었다. 우리가 발견한 보이지 않는 이 구멍에는 텅 빈 중심이 있었고 지름이 십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어떤 기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폭발했든지 쭈그러들었든지 아니면 스스로 분해되어 모리씨가 빠진 구멍 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 놓지 않았다. 나는 일어서서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험실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나가고 싶었다. 내가 보았더니 타일러는 그 문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모리씨를 도와 준다거나 내가 이 방을 나가기 쉽게 해 줄 의사는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 그는 팔을 들어 올려서 마치 그가 공격이라도 받고 있는 것처럼 앞에 들고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방어하고 있는 공격자가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모리씨가 구멍에 빠져 있기 때문에 내가 공격한다면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적수를 상대로 그가 그 문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를 공격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나는 의자나 몽둥이 같은 것을 먼저 찾아야 했고 또 그가 두꺼운 보호복을 입고 있어서 그를 다치게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그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나도 구멍에 빠지게 될 것이 두려웠다. 나는 클렐란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우리를 향해서 뛰어오는 것을 절망과 함께 바라보았다. 이곳에는 방사능이 있다는 증거가 없었고 그는 타일러를 돕기 위해서 건물 안으로 금세 들어올 것이었다. 나는 기회가 나를 빨리 좁혀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른 결정을 내려서 실행에 옮겨야만 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총을 꼭 움켜 쥐었다. 타일러? 내 목소리를 듣고서 그는 경직해 버렸다. 물론 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그도 충분히 알고는 있었지만 육체가 없는 내 목소리는 정말 음산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타일러? 내 말이 들리지? 듣고 있어. 어떻게 도와줄까? 타일러, 그 문에서 비켜나. 그렇게는 할 수 없어. 내 말 좀 들어봐, 우리는 그저 - 타일러, 내 손에는 총이 있어. 당신이 볼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알아. 그러니까 당신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한 번만 쏘겠어. 나는 그 옆에 있는 벽에 대고 총을 쏘았다. 타일러는 본능적으로 그 소리에 몸을 움츠리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내 말 좀 - 타일러, 지금 당신이 그 문에서 비키지 않는다면 죽여 버리겠어. 내가 총에 대해서 언급하자마자 모리씨는 급히 옷을 벗기 시작했고 클렐란은 건물을 향해서 뛰어오기 시작했다. 클렐란은 그의 오른손에 총을 들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보이지 않는 표면에서 움직이는 처음의 시도였고 그는 전속력으로 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닫힌 문에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왼손을 앞으로 뻗치고 끈과 철사로 표시된 벽과 가구를 잘 살펴보면서 제법 빨리 오고 있었다. 그는 현관을 지나서 비서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복도로 들어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은 거의 없어져가고 있었다. 나는 총을 타일러의 다리에 겨냥했는데 내가 어디를 겨누고 있는 것인지 정말 확실하게 알기가 힘들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총을 쏘고 나자 한순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다가 타일러가 입고 있는 보호복의 허리쯤에서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끔찍했다. 나는 그의 허벅지를 쏘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더 끔찍한 일은 그가 멍청하게 앞만 바라보면서 그냥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비켜! 내가 소리쳤다. 아마 그는 총에 맞은 것 때문에 정신이 나갔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는 자기가 총에 맞은 것조차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클렐란은 이미 복도에 와 있었다. 나는 총을 낮게 겨누고 다시 방아쇠를 당기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그가 비명을 지르더니 왼쪽 무릎을 잡고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총을 주머니에 도로 떨어뜨린 다음 얼른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몸을 펴기 전에 나는 그의 뒤로 가서 문에다 내 등을 대고서 손으로 있는 힘껏 그의 등을 세게 밀었다. 그는 얼굴을 앞으로 하고서 고꾸라졌다. 나는 내 팔을 그의 정강이 사이에 넣어서 그의 몸을 반쯤 들어올려 앞으로 밀고 가서 그가 머리를 거꾸로 하고 구멍 속으로 떨어지면서 바닥에 있는 모리씨를 나가 떨어지게 하도록 던졌다. 그의 뒤로는 핏빛의 작은 호가 공중에 그려지고 있었다. ┌────────────────────────────┐ │ 5 │ └────────────────────────────┘ 내가 돌아서자 클렐란이 막 실험실의 문에 도착해서 그의 얼굴과 마주보게 되었다. 나는 손을 뻗쳐서 모리씨가 뚫어놓은 문의 구멍을 잡고서 클렐란이 문이 열렸는지 보려고 그의 왼손으로 더듬으려는 순간에 문을 안으로 열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아직도 총이 들려 있었다. 문이 없는 것을 알고 그가 머뭇거리며 들어와서 내 자취를 찾아보려고 희망도 없는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는 내가 아직도 그를 위해서 잡고 있는 문을 지나와서 마지못한 발걸음을 떼었다. 타일러는 밑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 잠시 일어섰다가 다리가 꺾이는 바람에 도로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클렐란을 바라 보았다. 도로 나가요! 그가 목쉰 소리로 외쳤다. 너무 늦었다. 나는 왼쪽 다리를 클렐란 앞에 갖다 대고 오른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잡아서 앞으로 그를 쑤셔 박아서 그가 내 다리에 걸려서 넘어지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구멍에 빠지도록 만들어버렸다. 그가 구멍에 떨어지는 순간 그의 총이 발사되었다. 바닥에 닿았을 때 그의 몸이 모리씨를 먼저 때리고 그 다음에 타일러에게 가서 쿵하고 부딪쳤다. 세 사람은 모두 한덩어리가 되어 굴렀다. 건물을 나오려고 돌아서면서 나는 내가 공포와 안도감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신체적 손상을 입히거나 총을 쏘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 잔디밭을 건너에서 대령이 꼼짝도 하지 않고 표정이 없는 그 눈길로 내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저 철조망의 문을 지나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또 다른 대안은 어떻게 해서라도 혼자서 철조망에 덤벼보는 것인데 총알들이 박혀서 갈기갈기 찢어진 내 잔해가 그 가시철망에 걸려있는 모습이 눈앞에 갑자기 떠 올랐다. 물론 모습은 부정확한 묘사일 것이고 그들이 만져보아야만 내 시체인 줄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불쑥 났던 것이다. 모든 이에게 불쾌한 일이 될 것이다. 대령과 얘기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약간의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나는 지금 막 타일러를 쏘았고 세 사람 모두를 그 구멍 속에 집어 넣었지 않은가. 타일러의 옆구리에 피가 배어나오던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그런 식으로 그를 쏘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내게는 총알이 겨우 세 개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내보내 주도록 대령을 설득하지 못하게 되면 그를 쏘겠다고 아주 설득력있는 협박을 할 수 있게는 된 것이다. 내가 그에게 다가갔을 때 대령은 건물에 있는 사람들과 무선기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들을 돌아다 보았더니 그들은 일종의 인간 사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클렐란은 타일러의 어깨 위에 서고 모리씨는 클렐란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 모리씨는 자기의 머리 윗쪽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언저리 위로 몸을 끌어 올리려고 하고 있었고 타일러는 바닥에서 자신의 위에 있는 사람들의 몸무게가 그를 밀어 젖혀서 반대쪽으로 나가 동그라지지 않으려고 몸을 꼭 도사리고 서 있었다. 구멍의 바닥으로 보이는 곳에 놓인 타일러의 다리 사이에는 작은 피 웅덩이가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주위의 공중에는 선명한 빨간 페인트가 묻은 것 같이 보였다. 그 구멍의 표면에 있는 세 사람의 옷과 얼굴에는 얼룩들이 묻어 있었다. 세 사람이 일렬로 올라서서 배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고공의 줄에 매달려서 그네를 타다가 얼어붙은 모양으로 서 있는 것처럼 공중에 인간들의 호를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나왔나? 대령이 말하고 있었다. 잘 했어. 자네들 힘으로만 타일러를 데리고 나올 수 있겠어?... 내가 필요하다면 가겠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우리가 분산하는 편을 택하고 싶어... 타일러는 좀 어때? 나는 말하기가 좀 불편해서 망서렸다. 내가 얼른 이 일을 해결하지 않고 지체하면 할수록 기회는 더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아무리 좋은 때일지라도 타인에게 갑자기 말을 시킨다는 것은 언제나 어색한 일이었고 현재의 상황은 더할 수 없이 괴로운 것이었다. 나는 타일러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었다. 그들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를 빌었다. 돌아서면서 나는 모리씨가 구멍에서 간신히 올라왔으며 타일러가 바닥에 쓰러져서 클렐란이 그에게 몸을 굽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됐어. 대령이 계속했다. 내가 의무대에 벌써 알렸어. 타일러를 앰뷸런스에 태우고 빨리 갈 수 있는 대로 문을 통과해 나가서 곧장 돌아오도록. 고메즈는 밴의 문을 안에서 잠그고 그 안에 있도록 해. 만약에 나한테나 밴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분산한 다음 최선을 다해서 문을 나가도록 한다. 그자를 생포하고 싶지만 만약 자네들이 공격을 받게 되면 필요한 수단을 취하도록. 그리고 모리씨?... 타일러를 데리고 문을 나갈 때 조심해.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인 것은 그자가 우리에게 붙들려서 나가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대령은 그의 해드폰 세트를 빼어 윗도리 옆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무선 전화기를 집어들어 다이얼을 돌리려고 하다가 모리씨가 그 구멍으로 검은 전선을 풀어넣는 것을 지켜 보았다. 내가 말하기에는 가장 좋은 순간인것 같았다. 하긴 그때 내게 좋은 순간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하여간에 내가 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처럼 보였다. 헬로? 내가 용기를 냈다. 그는 깜짝 놀라면서 얼굴에 경련을 크게 일으켰다. 내가 처음으로 그를 놀라게 한 것이었다. 안녕하시오? 그가 주도권을 잡으려고 노력하면서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나도 인사를 되돌려 주었다. 그가 내민 손은 정말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내 손을 그가 잡도록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내 이름은 데이빗 젱킨스예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말을 계속했다. 뭐 급히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우리는 여기에 당신을 도와주러 왔어요. 그의 부드럽고 무엇을 암시하는 것 같고 언제나 성의있게 들리는 그의 말투가 이제 제자리를 되찾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거두어 들였다. 그가 말하고 있는 동안에 그의 눈은 내 자취가 보이지 않나 하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잔디밭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서 완전히 납작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내 위치는 그의 앞에서 약간 옆으로 비껴서서 1.5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무 것도 없어요. 정말입니다. 나는 그저 잠시 동안 당신과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고요. 그건 그렇고, 내가 일으킨 소동 때문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일으킨 문제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특히 타일러를 쏜 것에 대해서요. 나는 계속했다. 나는 그럴 뜻이 - 당신의 잘못만큼 우리의 잘못도 똑같이 있지요. 우리가 이 상황을 아주 잘못 다루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필요한 의학적 조치를 얼른 취하는 것이지요. 그는 다이얼을 돌릴 듯이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잠깐! 내가 급히 말했다. 나는 어떤 조치도 필요하지 않아요. 거기에 대해서 당신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일에 다른 사람들을 끼워 들이지 맙시다. 다이얼을 돌리려던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의 눈은 정확한 내 위치를 알려줄 단서를 찾아서 계속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냥 의무대원들을 부르려던 것이었어요. 우리는 당신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제일 먼저 이곳으로 데려왔어야 했지요. 이런 때는 우리가 지나치게 보안만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우리가 어차피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당신을 의사에게 보이는 일이지요. 그게 진짜 문제일까요? 의사에게 나를 보이는 것이요? 그런다고 뭐가 좋아질 것 같지도 않은데요? 하여간에 내 몸은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말이죠. 그리고 나는 절대로 - 권위있는 내과의사에게 당신을 즉시로 보여야만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그의 손은 아직도 전화기 위에 머물러 있었다. 내과의사는 커녕 물리학자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건강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내가 아주 잘 아는 의사가 있는데- 우리는 전문가들에게 당신을 보이고 싶은데요? 내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을 양성할 시간이 있었나요? 물론 내가 내 주치의에게 가면 그 사람이 내 상태에 대한 전문가가 되겠지요. 그렇지요? 나는 이 대화가 이상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을 그칠 수가 없었다. 물론 우리의 의학팀에 당신의 주치의를 넣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만 우리에게 주면 당장 이리로 데려올 수 있으니까요. 나는 당신이 방어적으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동안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본다면 만약에 당신이 그렇지 않다고 하면 오히려 놀랄 일이 되겠지요. 하지만 나는 우리가 단지 당신을 도와주러 이곳에 왔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만 바랍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가능한 한도내에서 당신을 도울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겁니다. 그는 온화하고 자신감을 주려는 미소 모양으로 자기의 얼굴을 찌그려뜨렸다. 그 미소는 어느 쪽으로 보내야 할지, 거기에서 어떤 반응이 올지 기약이 없는 것이었는데 외기에 노출되자 마자 재빨리 시들어버렸다. 그것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는 좀 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벌써 결심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 그건 그렇고,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이름이 뭐지요? 내 이름은 데이빗 젱킨스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사람에게 호소하는 듯한 기미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하마트면 경계를 풀 뻔 했다. 대답의 함정에 걸릴 뻔 한 것을 간신히 이겨내고서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을 갖다 댔다. 하비라고 부르세요. 나는 지미 스튜어트의 영화에 나오는 거대하고 투명한 토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후회했다. 그가 나를 적대시하게 만들거나 나를 못믿게 만들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주 지적으로 보이는 젱킨스는 언제나 말 그대로를 믿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요. 하비 씨. 지난 24시간이 당신에게는 정말로 고통스럽고 어지러운 시간이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고 당신이 느낄지도 모르는 어떤 의혹이나,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보일른지 몰라도 당신이 느낄지도 모르는 불쾌감에 대해서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하비 씨, 그것을 떠나서 나는 당신이 특히 우리에 대해서 아주 겁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데 그것도 역시 이해가 가는 일이고 만약에 당신에게 우리가 누구고 여기에서 무슨 책임을 맡고 있나에 대해서 조금만 말해준다면 아주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는 정보의 수집, 분석과 종합을 잘 조절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외에도 아마 이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 정보들을 정부와 정부에 준하는 기관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보 기관을 말하는 건가요? 내가 그의 장황한 설명에 도움을 주려고 해 보았다. 그가 대답하기 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비 씨. 글쎄, 정보 기관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좀 망설여지는데요. 왜냐하면 그 말만 들으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중 간첩이나 마이크로 필름, 암살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정보 수집을 하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의 일의 99%는 신문과 잡지들을 힘들게 분석한 결과에서 온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클렐란이 능숙한 솜씨로 타일러 몸을 전선으로 묶어서 매듭을 짓는 것을 보고서 그와 타일러와 모리씨가 책상 앞에 앉아서 러시아의 과학 잡지를 열심히 숙독하는 장면을 그려보려고 애썼다. 모든 사회가 전부, 자유로운 사회는 특히 더 그 자체의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보호하고 수집할 기관을 필요로 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가장 관심사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 교육 배경도 주로 과학 전공이 되었고 그 결과로 내 전생애가 과학적인 정보와 보안에 바쳐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일과 정치적인 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을 꼭 당신에게 이해시키고 싶어요. 물론 우리는 당신이 이곳에 정치적인 데모를 하러 왔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당신이 불편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도와주러 여기에 온 것이고 당신의 정치적 신념이 어떤 것이든 간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비 씨.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의외로 당신과 나는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공무원이 되는 사람들은 그들이 정보 요원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갖가지의 정치적 신념들을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경제적인 이득이라든가 탐욕스러운 개인적 욕심에서 공무원이 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을 겁니다. 어떤 특별한 국가 정책에 반대하든 찬성하든지 간에 공무원들은 국가를 위해서, 전체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관심사를 초월하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과연 그렇군요. 내 마음은 철조망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는가 하는 개인적인 관심사에 쏠려 있었지만 나는 동의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나도 절대적으로 당신 의견에 찬성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면에서요. 하여간에 그건 그렇고, 내 정치적인 견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마 더 신중할 겁니다. 그 관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는 지나치게 신중해서 - 하지만 당신은 세계정의학생회원들과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건 그렇지요. 나는 그가 잘못된 방향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가 나를 덜 신뢰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데모대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이곳을 탈출하게 되는 경우에 나를 찾아내는 데 시간이 더 걸리게 될 것이다. 국민에게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느낌이니까요. 이 사람들은 정확히 어떤 신념들을 갖고 있는 것일까? 각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각 개인의 필요에 따라서요. 나는 그렇게 한 번 시도해 보았다. 사유 재산권이란 도둑질이나 마찬가지다 라는 말은 지나치게 과격한 것 같았고 나는 아이젠하워를 좋아해요 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지나치게 지루하게 배어들어 있는 말 같았다. 하지만 그런 관념 속에서, 정치 구조 안에서 책임 있게 점진적인 변화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당신은 공무가 개인적인 관심사를 능가하는 일종의 헌신이라고 말한 점에 아주 흥미를 느꼈습니다. 맞았어요. 그는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낸 것에 대해서 아주 기뻐하면서 계속해서 그것을 더 쌓아 올리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대중이 있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에서 얻는 진정한 상이란 바로 우리 사회에 진부하게 배어 있는 보잘 것 없는 탐욕과 이기심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고 싶군요. 그리고 나는 당신이 이곳에 당신 자신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이 존경하는 그 무엇 - 좀 더 나은 세상을 가져올 수 있는 그 무엇을 위해서 헌신하기 위해 왔다는 점을 정말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헌신의 대가로 아주 몹쓸 보답을 받은 셈이 되었지요. 정말 끔찍한 보답을. 나는 그가 그 감상적인 말을 했을 때 내 눈을 열심히 들여다 보면서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어디를 보고 말해야 하는지도 확실히 몰랐고 더군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더욱 더 알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즉시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는 내가 거기에 아직 있는지 없는지조차 궁금해해야 할 판이었다. 그 점이 그가 대화를 하기에 아주 힘들게 만들었다. 당신 말대로입니다. 나는 말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든지 간에 나는 내가 이곳에서 옳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싶군요. 나는 이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중입니다. 내가 갑자기 이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가 오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하비 씨, 바로 그겁니다. 당신에게 이 일이 아무리 끔찍스러울지라도 당신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과학적 공헌을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 물론 그렇습니다. 과학 등등의 것에 공헌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너무 이것저것에 관여한 나머지 모든 일을 다 망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나로서는 당신이 자유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보 기관이 중요하다고 한 점에 관심이 더 있는데요. 당신과 나는 우리가 현재 처한 이 상황을 잘 수습해서 서로의 특수한 능력이나 자격을 이용하려 들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당신과 나는 어떻게 하면 가장 성공적으로 일을 같이 해 나갈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맞대어 해결해 나가야겠지요. 나는 당신과 함께 일종의 정보 요원으로 일해야 하는 겁니다. 맞지요? 그는 눈썹을 모으고 입술을 꼭 다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 문제가 더 명백하게 보이는군요. 내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이곳에서 일어난 이 엄청난 광경에 대한 비밀을 기가 막히게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부하들 외에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고 그들조차도 미래의 우리 관계에 대해서는 아마 모르게 되겠지요. 물론 나는 당신의 지시에만 의지해야 되겠지요. 당신이 없다면 나는 무슨 일을 누구를 위해서 해야 될지도 모를 겁니다. 아마 살아남지도 못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방향을 정해준다면 우리는 실제로 아무 곳에나 갈 수 있고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있게 되겠지요. 나는 정보 기관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가능성들은 거의 무제한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 자신들의 개인적 관심사를 초월한 어떤 것에 대해서 헌신한다고 말한 것은 정말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어요. 바로 이것이 내가 헌신할 수 있는 기회고 내가 절대로 이 기회를 지나쳐 버리면 안되는 거겠지요? 그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우리가 즉각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 중의 하나지요. 데이빗 씨. 당신 같은 사람이 이 일의 지휘자로 있게 되어 나에게는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 왜냐 하면 이 일의 열쇠는 바로 당신이 내 존재를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점이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아주 쉽게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해서 당신은 정보를 아주 희한하고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당신들의 세계에서는 정보의 근원이 누구인지 밝힐 것을 거부하는 것이 상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상황은 당신에게 아주 무거운 책임을 지게 만들겠지만요. 당신은 정보 단체 내에서 아주 특수하고 어떤 면에서는 괴로울 정도의 위치에 있게 될 겁니다... (나는 신문 어디에선가 정보 단체라고 쓴 것을 본 것 같았지만 그 기관이 단체로서의 보편적인 성격들을 많이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신이 내 감독관으로 일하는 한 - 감독이라는 말이 당신들이 쓰는 용어 맞지요? -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 데나 갈 수 있게 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더 흥분이 되는군요. 게다가 당신이 말한 대로 보답도 받을 수 있고요. 무엇인가 말할 것처럼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다시 오무려졌다. 그의 눈이 좁아지면서 자기의 부하들이 있는 곳을 생각에 잠긴 듯이 바라보았다. 클렐란이 밑에서 타일러를 받치고 있는 동안 모리씨가 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구멍 위로 그를 끌어 올렸다. 그는 옆으로 몸을 굴린 다음에 다리를 오무렸다. 나는 그의 상태가 어떤지 정말로 알고 싶었다. 젱킨스가 말을 다시 시작했을 때 그는 새로운 강도가 더해진 부드러운 목소리를 쓰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나는 그의 심장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만약에 무언가가 들어있다고 친다면. 하비 씨. 당신 말이 옳아요. 당신 말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나는 만약에 저 건물에 누군가가 있어야 할 운명이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 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하비 씨. 그리고 우리는 정말 서로 일을 잘해 나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그는 우리가 우연히 어떤 세부적인 일에 대해서 평상시처럼 얘기하는 것처럼 홀가분하게 말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의학적 치료를 받고서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데이빗 씨, 그건 아주 끔찍한 실수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같이 일하려면 내 모든 가치는 아무도 나에 대해 모른다는 점에 달려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막을 수 있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들의 입장이 어떤 곳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요. 가장 중요한 점은 당신 외에는 아무도, 당신의 부하들마저도 몰라야 한다는 일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의사들과 과학자들을 부른다면 우리는 그 모든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과 나는 이 일의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하지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가 갈 곳을 결정하고 내가 할 일을 결정하게 되겠지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도 모르게 내가 저 철조망을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이 조처를 취하는 일입니다. 하비 씨, 당신은 우리가 이 일을 얼마나 비밀로 지킬 수 있는지 알면 정말 놀랄 겁니다. 또한 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통제하고 있는 - 데이빗 씨,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어떤 가능한 수단을 다 쓴다 해도 충분한 보안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그런 수단을 쓰고 싶지도 않거니와 내가 당신을 믿는 점에 아무런 의심도 없기 때문에 내가 만약에 자유롭게 내 발로 이곳을 걸어나갈 수 있다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이루는 데 아주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의 손에 나를 맡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는지 세부적인 일만 해결하면 될 겁니다. 수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철조망의 한 부분을 철거시킬 수도 있을 거예요. 당신이 내가 나갈 수 있게 해 줄 때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협상에 찍는 도장, 좋은 신뢰감을 보여주는 것이 되겠지요. 우리가 같이 일하려면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비 씨. 나는 당신이 이 상황을 좀 이해해줬으면 해요. 당신에게는 정말 시급한 의료적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내게는 당신이 도움을 받는 것을 꼭 봐야 할 책임이 있어요. 당신은 너무도 힘든 일을 겪었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 이런 결정을 내릴 만한 상태가 아닌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지 모른다 해도 내가 결정해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게다가 하비 씨, 당신 혼자서 이곳을 떠날 수 있게 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는 것도 이해해줘야만 해요. 만약에 무슨 일이 일어나서, 누군가가 당신을 본다거나 당신이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생긴다면 내게 그 책임이 있게 되니까요. 당신은 갑자기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당신과 같은 국민들, 나아가서는 전인류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된 거예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이고 누가 당신과 접촉을 해야 하며 당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져야 하는데 그것은 당신과 모든 사람들의 이익에 가장 좋다는 것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 일의 주도권을 잡아야 합니다. 당신도 그 점을 이해하리라고 믿어요. 내가 얘기를 좀 하겠는데, 나는 짜증이 목소리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당분간이라도 그런 결정들은 내가 내릴 작정입니다. 사실 그건 나한테는 습관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습관에 익숙해 있거든요. 그리고 벌써 확실하게 결정을 내린 일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나는 절대로 실험용 동물은 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벌써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 내가 할 일이 못 된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거기에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나한테는 맞지 않는 일이기도 하구요. 어떤 사람들은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금세 싫증을 낼 것 같군요. 또한 나는 괴기 인간 쇼에 나오는 인물이 되는 것에도 흥미가 없습니다. 나는 사진을 잘 받질 않으니까요. 하비 씨, 당신이 느끼고 있는 기분에 정말 나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열심히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있는 주된 이유는 당신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글쎄, 당신이 나를 돕고 싶다면 내가 저 철조망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에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저것은 좀 심했다 싶지 않은가요? 저 가시 철망과 기관총들과 등등. 굳이 말하자면 굉장히 적대적이라고나 할까요? 하비 씨, 저것들은 당신이나 그 어느 누구에게도 겨누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저 보통의 관행이라니까요. 아니, 언제부터 이런 사건에 대한 관행이 있었나요? 당신의 안전을 위한 겁니다. 만약에 내 안전을 그렇게 걱정한다면, 나는 고집을 피웠다. 당신은 보초들에게 명령만 한 마디 하면 될 것이고 나는 내 길을 가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당신들과 함께 정말 일하고 싶고 그렇게 하면 당신과 우리 국민들과 내 동족 인류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리라고 믿습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오직 저 보초들과 가시 철망과 당신이 저기에 내 안전을 위해서 설치해 놓은 것들을 전부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 뿐이지요. 하비 씨, 이번에 겪은 일로 정말 충격이 컸겠지만 당신은 보호자 없이는 여기를 혼자 걸어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래요. 왜 안된다는 겁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로 보이는데요. 게다가 그건 내 권리가 아닌가요? 어떻게 생각하지요? 꼭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점점 위협적이 되어가는 말과는 달리 그의 말투는 더욱 참을성이 있고 이성적으로 변해갔다. 국가의 안전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를 떠나서라도 사적이고 또한 공적인 재산이라는 문제가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이곳에서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과격한 정치적 집단에 의한 파괴적인 데모와 그와 관련된 폭발물의 불법적 소유와 사용이라는 데서 이 사건이 일어났으니까요. 오늘 한 사람이 또 총에 맞았고 우리는 그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곳 지방 정부와 연방 정부는 당신을 연행해서 질문을 할 분명한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하비 씨. 당신은 그 점을 알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 이외의 일에 대해서 형사 기소가 이루어질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내가 그 점에서는 당신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던 것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르고, 어제와 오늘 일어났던 일들이 무엇이었던지 간에 당신이 이미 받은 고통과 그리고 나와 나눈 대화에서 보여준 아주 긍정적인 태도를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당신의 행위에 약간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고려해서 일이 합리적으로 풀리게 되리라 믿어요. 하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이 일을 잘 다루어야 전체 일이 올바른 조명 밑에서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지위를 걸고 당신에게 장담하겠는데 - 내가 타일러를 쏜 데 언급이 미쳤기 때문에 나는 그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다 보았다. 세 사람은 모두 구멍에서 기어 나와 있었다. 클렐란과 모리씨는 타일러를 들것에 태워서 앰뷸런스가 있는 곳을 향해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오는 중이었다. 타일러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대령은 머뭇거리지 않고 해드폰 세트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머리에 썼다. 클렐란, 타일러의 상태에 대해서 보고할 수 있겠나? 나는 그를 쏜 사람과 지금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야... 맞다니까. 그는 여기에 나와 함께 있어... 아니. 그는 단지 타일러의 상태에 대해서 몹시 걱정하고 있을 뿐이야. 두 사람은 잔디밭의 가운데에 멈춰서서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들 사이의 들것에 누워 있던 타일러 역시 고개를 돌렸다. 세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클렐란이 그의 마이크에 대고 몇 마디를 하니까 대령이 해드폰 세트를 빼고 다시 내게 말했다. 이 시점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군요. 그들이 아는 바로는 당신이 그의 무릎 바로 위 허벅지에 한 발을 쏘았고 두번째는 그의 배에 쏘았다고 합니다. 총알은 척추를 건드리지 않고 몸을 관통했지만 창자나 다른 기관들을 뚫고 나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는군요. 타일러와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가 해드폰 세트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대령이 그것을 입에다 대고 말했다. 모리씨, 자네가 타일러를 문까지 운전해서 데려다 줘. 그리고 돌아와서 클렐란이 건물에서 일하는 것을 돕게. 그는 주머니에 그것을 집어 넣었다. 아직도 거기에 있습니까? 여기에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도움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나는 갈 겁니다. 마음 먹기는 당신에게 달렸어요. 하지만 나는 지금 정확하게 당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어요. 만약에 당신이 문을 열도록 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쏠 거요. 타일러를 쏜 것처럼. 젱킨스는 공포로 몸을 움츠리거나 다른 감정을 내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해 봐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당신이 철조망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아 두도록 해요. 실제로 그렇게 되면 통과하기가 더 어려워질 텐데요. 게다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당신 일은 더 힘들게 풀리게 될 것이 확실하니까요. 쓸데없는 일이었다. 이짓은 처음부터 부질없는 일이었다. 젱킨스 대령. 물론 나는 당신을 쏘지 않습니다. 이 일은 당신이 정말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내가 제안한 조건으로 당신이 나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면 내 힘으로 나가야겠어요. 당신이 저 철조망에 무엇을 더 보태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가야겠습니다. 하비 씨. 나는 당신이 하려는 일을 못하게 막을 수는 없어요. 그는 끈기 있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저 철조망을 넘어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당신은 어떤 수를 써도 저곳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진짜 비극이 일어날 거예요. 제발 시도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건 우리 둘 다 당해 봐야 하는 위험이겠지요. 하지만 나를 아무 이유도 없이 없애버리면 당신의 인사 기록에 꽤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는 특이한 인간의 표본이니까요. 물론 성공으로 기록되지는 않겠지요.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당신이 혼자서 나가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물론 나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의 시체 역시 인류에게 어떤 가치는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혼자서 떠돌아 다니다가 이곳에서 백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영원히 시체를 찾을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그건 좀 슬픈 일이겠군요.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저 철조망을 나간다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봤습니까? 이런 상태로 당신이 혼자서 살 수 있을 것 같나요? 어디에서 살고 무엇을 먹을 거지요? 당신은 그런 상태로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그리고 안다 해도 어떻게 할 건가요? 당신이 버스나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이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군요. 당신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기 전에 거기에 관해서 좀 생각해 봅시다. 내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당신에게 연락하겠습니다. 하비 씨. 내가 당신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요. 나는 우리가 이곳에서 해야 할 임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오늘 밤 안으로 우리는 이 건물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대충은 살펴볼 수 있고 그 다음에는 이곳을 폐쇄할 작정입니다. 그때쯤 우리는 당신과 개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정신을 잃게끔 개스를 이곳 전체에 살포할 예정이예요. 우리는 이 철조망 안을 일 센티씩 전부 빗자루로 쓸어 볼 겁니다. 이 모든 일이 당신의 안전 하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만 강조하겠어요. 하비 씨, 그때쯤이면 당신은 자수를 하든지 잡히든지 둘 중의 하나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해서든지 저 철조망을 넘어 갔다고 쳐도 물론 우리는 당신을 물론 뒤쫓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나가면 당신들이 어떻게 나를 뒤쫓겠어요? 지금 나는 바로 당신 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지만 당신은 나를 잡지도 못하고 있는데. 하비 씨. 최악의 경우에 우리는 공식 발표를 해야겠지요. 그러면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아이들까지도, 아마 전 세계 사람들이 당신을 지켜보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도 없으리라 믿습니다. 당신에 대해서 누구도 모르는 것이 우리에게 결국은 이롭다는 당신의 생각은 아주 옳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람들을 찾아 본 경험이 꽤 있거든요. 그리고 이번의 경우에는 찾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꽤 쓸 만한 자료들을 갖게 될 테니까요.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는 않을 거요. 그리고 누가 내 존재를 믿겠어요? 당신과 나는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꽤 스스럼없게 되었지만 보통의 상식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은 투명인간을 찾는 데다가 자금을 댄다든지 당신을 격려해 준다든지 아니면 하루라도 그를 찾는 데 소비하는 등의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하비 씨. 저 건물을 좀 봐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히지요? 나는 그것을 쳐다보았다. 클렐란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내어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마법의 계단이라도 오르는 것처럼 거기를 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기가 막힌 광경이었다. 이 건물을 관리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무제한의 예산으로 이곳을 관리했어요. 내가 내일 워싱턴에서 세 사람만 데려다가 이 건물을 보여주면 당신 같은 사람을 백 명이라도 찾아낼 수 있는 돈을 타낼 수 있게 되죠.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의 말에는 신빙성이 있었다. 건물은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나는 클렐란이 이층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마치 뚱뚱하고 흉포한 천사처럼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악의에 찬 그의 눈길이 내가 점점 늘어나는 위험 속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내게는 할 일이 많았는데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처음부터 구제 받을 수 없었던 충동에 불과했었다. 우리 둘 중의 하나만이라도 아무 것에 대해서 서로를 설득시킬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데이빗 씨. 이것 좀 봐요. 당신이 말하는 것에는 다 일리가 있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거기에 대해 수긍하고 있어요. 아마 나 혼자서 저 철조망을 넘어간다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일 겁니다. 당신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생각을 곰곰이 해보기 위해서 한두 시간만 갖고 싶군요. 나한테는 정말로 힘든 하루였어요. 당신은 계속 이곳에 있을 겁니까? 당신이 원할 때는 언제나 이곳에 있을 거요. 시간을 충분히 갖고서 자유롭게 결정을 내리도록 해요. 하지만 하비 씨? 왜요? 당신이 가기 전에 그것이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군요. 뭐가요? 점점 당신의 몸이 눈에 보이지 않게 변해가고 있었을 때의 상태 말이오. 당신은 정말로 공포에 질렸었겠지요? 그 동안 의식이 있었나요? 거의 의식을 잃고 있었지요. 당신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정신이 들었을 때 도대체 무엇을 생각했지요? 그는 진짜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지만 거의가 다 웃기는 생각들이었지요.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이 일보다 더 웃기지는 않았어요. 나는 내가 죽어서 벌을 받거나 뭐 그런 따위의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아마 그가 마지막 사람이 될지도 몰랐다. 그걸 생각하는 동안에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내가 뭘 했냐고요? 나는 멍청해져서 물었다. 그래요. 기도를 했습니까? 아니면 신의 계시라든지 어떤 징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적어도 그 동안에 모든 것이 틀리게 보였을 텐데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데이빗 씨, 우리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얘기를 좀더 나눠야 하겠지만 나는 논리적으로 엉망진창인 사람이라서요. 다 서투르거든요. 하여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생각은 혼자서 쉬고 싶다는 겁니다. 금세 돌아와서 그 얘기를 나누기로 하지요. 물론이죠. 그가 순순히 말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은 다시 땅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내 발이 딛고 있었던 바로 그 부분을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옆에 다른 발을 살며시 갖다 놓았다. 그 발이 있었던 곳의 잔디가 천천히 펴지면서 올라오고 발을 내려놓은 곳의 잔디는 천천히 눌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젱킨스의 시선은 바로 그 자리에 못박혀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밑으로 웅크렸다. 갑자기 그의 손이 나를 향해서 튀어 나왔는데 오른손은 마치 나하고 악수를 하려는 듯이 들려져 있었고 왼손은 내 어깨를 정답게 두드리려고 하는 것처럼 바로 직전에 내 상체가 있었던 곳을 감싸 안았다. 아무 것도 만지지 못한 그는 정말 바보스럽게 보였지만 잠시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려는 동작처럼 왼팔을 다시 뻗어 보고 있었다. 쭈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나는 뒤의 옆쪽으로 뻗을 수 있는 만큼 발을 떼어 놓았다. 무게 중심을 조심스럽게 그 발로 가져간 뒤 다시 한번 크게 다른 발을 떼었다. 실망과 혼동에도 불구하고 젱킨스는 새로운 내 위치를 찾아서 땅을 살피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을 도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해요. 그는 성의 있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서 몇 발짝을 더 조심해서 물러났다. 내가 돌아서서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는 그 앞의 땅을 조사해 보고 있었다. 이제는 철조망의 문제에 도전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넘어 가든지, 그 밑으로 기어가든지 아니면 뚫고 나가야만 했다. 하루 종일 내 마음 구석에서 그 철조망을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문을 빠져나간다든지 짐승처럼 철조망 밑에 파인 곳을 기어나가는 식의 희미한 상상 외에는 어떻게 나갈 것인지 어떤 실제적인 계획이나 아이디어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정말로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고 전체의 상황은 점점 내가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고 감옥보다도 더 냉혹하고 빈틈 없이 보초들에 의해 감시되고 있었다. 내게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총에 맞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잡혀서 우리에 넣어질 것이었다. 나는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처음에 할 일은 우선 철조망 전체를 샅샅이 살펴보는 일이었고 그 다음에 무슨 시도를 해 볼 것인지 결정하기로 했다. 아니면 시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무엇인가를 보면 거기서 해답이 저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건물로 다시 돌아갔다. 클렐란과 모리씨는 이층의 바닥 윤곽을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이제는 보호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굉장히 빨리 움직이고 있었고 꼭 마술사처럼 3미터나 되는 줄을 능숙하게 기적처럼 공중으로 빳빳하게 올려 세우고 있었다. 나는 비서실로 해서 청소부의 창고에 가서 발판이 달린 계단 사다리를 가지고 잔디밭으로 나왔다. 그것을 펴니까 1.5미터 가량 되었는데 거기에 올라서서 전구를 갈아 끼우기에는 딱 알맞는 것이었지만 3미터가 넘는 철조망을 넘는 일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도로 접어서 내 어깨에 둘러메고서 문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것을 철조망으로부터 15센티 정도 되는 문의 앞쪽에 펴 놓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발판에 올라서면서 앞뒤로 사다리를 살짝 흔들어서 다리들이 땅으로 깊숙히 박히도록 만들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계단 사다리는 언제나 불안정했었다. 철조망의 꼭대기를 보기 위해서 나는 그 사다리의 맨 꼭대기 발판에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그렇게 하자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내 몸이 메스꺼울 정도로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댄다기보다도 균형을 잡기 위해서 나는 돌돌 말린 가시 철망의 한 가닥을 엄지와 둘째 손가락으로 꼭 잡아서 그것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여 밑에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했다. 문의 바로 밑에 있는 가로 10미터 세로 3미터 정도의 땅에는 또 다른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모래가 그 위에 덮여 있었다. 모래는 축축히 젖어 있었고 사람들이 갈퀴로 그곳을 평평하게 고르고 있었다. 갈퀴에 스칠 때마다 거기에 아주 고른 직선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발을 딛을 때마다 아름다운 발자욱들이 떠올랐다. 양쪽 옆의 언저리에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관총으로 보이는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나는 토할 것만 같았다. 내가 내려다 보고 있는 곳이 곡선으로 구부러져 있었기 때문에 멀리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내 양쪽으로 보이는 곳의 땅은 철조망을 따라서 3미터 폭 정도까지 모든 것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모래가 그 위에 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도대체 어디까지 그 작업을 했으며 전체를 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체인 톱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나를 포위해 오고 있었다. 내 기회들은 줄어들고 있었다. 철조망 옆으로는 작은 발판들이 놓여 있었고 거기에 보초들이 한 사람씩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내 균형 감각이 갑자기 증발해 버리는 것만 같았고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잔디밭에 거꾸러지며 다리가 철조망을 밀어서 총알 사격을 받게 되는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철망의 가닥을 잡은 채로 다리 하나를 맨 윗 발판에서 내리고 다음 발판에 내려놓을 때까지 불안한 자세로 천천히 몸을 숙였다.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한 발판을 더 내려온 다음에 몸을 숙여서 맨 꼭대기에 있는 발판을 양 손으로 잡았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땅으로 내려왔다. 그 안도감은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나는 거의 크게 웃을 뻔했다. 내가 나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고서는. 나는 사다리를 접어서 들고 위험하더라도 어떤 기회를 제공할 만한 빈 틈을 찾아 보려고 철조망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특히 땅에 어디 파진 데라도 있어서 내가 철조망 밑으로 기어 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 만한 곳이 있나 유심히 살펴 보았다. 쓸데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혹시 철조망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있나 찾아 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철조망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땅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들이 그곳을 얼마나 꼼꼼하게 천으로 가려 놓았는지 바깥을 내다볼 틈새기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문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왔을 때 바로 반대쪽 바깥에서 체인 톱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의 작업의 진척 과정을 보기 위해서 사다리를 오르는 것을 다시 한번 감수해야 했다. 맨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한순간 동안에 다리를 하나 치켜 든 다음 즉시 다른 다리를 내려놓았다. 바깥을 순간적으로 내다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의 일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철조망은 들판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거기에서 잘라낼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동쪽으로 있는 철조망은 나무들에 잇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작업이 느려질 것 같았다. 가장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곳은 거기였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서 철조망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20분 후에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나는 그곳의 전체 조망을 보기 위해 잠깐 사다리에 조심스럽게 올라가 보았다. 내 앞에 보이는 광경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위험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을 내렸다. 사람들의 재수 없는 표현 말마따나 총을 맞아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철조망 기둥의 바로 앞에다 사다리를 갖다 놓아서 내가 그곳을 다시 쉽게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물건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아무리 그것이 커다란 것이라 할지라도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정말 희한하면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젱킨스 대령에게 한번 물어보라. 나는 클렐란과 모리씨와 대령이 힘들게 일하고 있는 건물로 도로갔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의 보이지 않는 책상 앞에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클렐란과 모리씨는 이층에 있었고 대령은 일층에 있었는데 상상의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 사무원들을 흉내내는 판토마임을 공중에서 하고 있는 서커스 단원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방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분류해서 목록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이 희한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왜 하필이면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대령이 지적한 대로 그들은 모두 공무를 집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어떤 관료주의적인 기본적인 필요에 의해서 나온 생각일 것이다. 나는 테이블을 찾기 위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하에서 내가 아주 일하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모든 의자, 테이블과 책상 다리들에는 작은 철사 테가 꼼꼼하게 끼워져 있어서 그 윤곽을 보고서 나는 방마다 살펴볼 만한 것들을 즉시로 찾을 수 있었고 이제는 벽이나 가구에 부딪치지 않고서도 필요한 것을 가지고 나올 수가 있었다. 나는 이제는 자신감을 갖고 움직였으며 거의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사람이 있는 방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찾은 것들은 대부분 쓸모가 없었다. 책상은 운반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웠고 타이프라이터 받침대들은 너무 불안정했다. 실험실에 가면 쓸 만한 것들이 많겠지만 나는 그곳이나 이층에서 코너에 몰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기가 싫었다. 일층의 사무실에서는 그들이 내 소리를 듣고서 문을 막는다 해도 언제나 창문을 통해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세 개의 사무실에서 나는 작은 테이블들을 찾았는데 하나는 1.2미터 정도의 길이에 60센티 정도 넓이 보다 약간 큰 것이었다. 다른 두 개는 더 작았지만 최소한 그 세 테이블의 높이는 똑같았다. 비서실의 소파 앞에서는 2미터 길이의 근사한 커피 테이블을 찾아냈다. 거기에 놓여 있던 잡지들, 컴퓨터 관계 잡지들, 커피 컵들, 종이들, 전화기를 조심스럽게 그 밑의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철사로부터 하나씩 조심스럽게 다리를 들어올려서 원래의 단정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다리의 윤곽이 남아 있도록 만들었다. 그 다음에 나는 그 테이블들을 가장 가까운 창문으로 가져가 밑으로 내린 다음에 사다리를 놓아두었던 그 철조망 앞으로 가져갔다. 더 이상 쓸 만한 테이블을 찾을 수가 없어 나는 회의실에 가서 나무로 된 두 개의 접는 의자를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왝스의 사무실에 가서 무릎을 꿇고는 손칼의 도움을 빌려 카펫 밑을 파내어 그 밑에 깔린 것을 조사해 보기 위해서 카펫을 떠들어 보았다. 그것은 3mm 정도 두께의 고무판이었다. 바로 내가 찾던 것이었다. 손칼로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내고는 카펫을 가능한 한 원래 있었던 것처럼 도로 덮어 놓았지만 그들이 내가 한 일을 발견하든지 말든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짐작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무판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숨겨둔 짐 보따리가 있는 곳에 가서 자루를 뒤져서 노끈이 감긴 공을 찾아 가지고 왔다. 사실은 진짜 로프가 좀 있었으면 했었다. 철조망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나는 내가 가져다 놓은 가구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들을 해 보았는데 내가 처음에 테이블을 두 개 가지런히 놓자 거기에서는 마치 경매장에서 망치 두드리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소리가 생생하게 났다. 나는 혹시 내가 보초들의 관심을 끌지 않았나 하고 몇 분 동안 가만히 기다렸다. 나는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여유가 없었고 일을 제대로 하자니 너무나도 어려웠다. 실망에 찬 기분으로 나는 힘들게 네 개의 테이블을 내가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철조망에서 6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모두 날랐다. 십오 분 뒤에야 나는 그것들을 도로 철조망 가까이로 가져갈 수 있었다. 테이블 두 개는 서로 끝이 마주 닿게 철조망에서 한 20센티 떨어진 곳에 평행이 되게 놓아서 옆 길이가 모두 합쳐서 2미터가 되는 발판이 되도록 만들었다. 나는 노끈을 짧게 잘라서 테이블이 마주 닿고 있는 곳의 다리들을 함께 묶고 다시 대여섯 번을 감아 주었다. 그 다음에는 접는 의자들을 펴서 그 테이블 위에 올라가는 계단으로 썼다. 나는 발을 그 두 테이블이 만나는 곳에 올려놓은 다음에 그 위에서 몸을 움직여서 테이블의 다리들이 땅에 꼭 박히도록 만들었는데 정말 진저리가 쳐지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테이블들의 양 끝 쪽에 가서도 똑같은 일을 해야 했다. 그 다리들이 땅 속으로 쏙 파고 들어가 있는 자리들이 보였다. 그것만이 내가 방금 한 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나는 제일 큰 고무판을 그 테이블들의 위에 탁상보처럼 넓게 펴서 다음에 그 위에 올려놓을 물건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 놓았다. 그 다음에는 좀더 커다란 테이블을 들어올려서 그 발판의 한쪽 끝에다 올려 놓았다. 남는 발판 위에는 접는 의자들 가운데 하나를 올려놓아서 일이층의 테이블을 잇는 계단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남은 의자를 그 전체 구조물 옆의 땅에 가지런히 놓았더니 일종의 의자, 테이블, 테이블 위의 의자, 테이블 위의 테이블로 구성된 일종의 계단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나는 노끈이나 가구들이나 내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는 그 악조건 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서 노끈으로 그 조각품을 칭칭 동여매었다. 도대체 이 작품이 과연 쓸모가 있을지, 내가 무엇을 제대로 만들기나 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무엇인가 구체적인 일을 신들린 듯이 한다는 점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 마음 속으로는 대강 그 구조물의 모습을 그려볼 수는 있었지만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고 무엇을 어디에다 동여매면 좋을까 하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의자와 테이블의 만나는 부분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전부 같이 묶어 놓은 다음에 그렇게 해 놓은 것 때문에 전체 물건이 참혹하게 다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기만을 빌었다. 내가 해 놓은 일을 점검해 보았더니 묶어 놓은 끈들이 벌써 느슨해져 있었다. 끔찍했다. 나는 다시 끈을 묶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고무판을 들고 첫번째의 테이블 계단 위에 올라가 그 위에 있는 테이블 위에 깔았다. 더 위로 올라가서 구조물의 안전도 시험해 보고 철조망 바깥도 쳐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장 높은 테이블의 위는 땅으로부터 2미터가 넘지 않았지만 거기에 서 보니까 20미터도 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몸이나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 구조물은 꽤 튼튼하게 쌓아졌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 밑의 물렁한 땅을 느낄 수 있었다. 균형 감각이 없어져서 나는 내가 서 있는 것인지 떨어지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나는 얼른 네 발로 엎드렸다. 절대로 내 몸의 균형을 잃으면 안된다. 나는 계속해서 일해야만 했다. 일어날 것. 보초들을 살펴 볼 것. 체인 톱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내려갈 것. 절대로 뱃속의 메스꺼움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계속 움직일 것. 나는 계단 사다리를 들고 끝까지 올라갔다. 내가 처한 상황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제일 밑에 있는 테이블로 내려와 사다리를 집어서 가장 높은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끈을 잘라서 사다리의 다리들을 그 테이블의 다리들과 함께 묶었다. 작은 고무판 조각을 잘라서 사다리의 맨 윗 발판에 깔았다. 내 사닥다리는 이제 다 세워졌다. 제일 위에 있는 테이블을 시험해 보려고 거기에 올라가 보자 그 발판의 꼭대기가 철조망 위에 칭칭 감겨 있는 가시 철망보다 십여 센티가 높은 것을 보고서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내려와서 이번에는 커피 테이블을 끌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든 채로 다시 꼭대기 테이블까지 기어 올라갔다. 커피 테이블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계단 사다리 옆자리에 올려 놓았다. 전체 구조물은 아주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고 그 다음의 몇 분간은 정말로 몸서리쳐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계단 사다리의 이층 발판에까지 올라가 몸을 숙여서 천천히 커피 테이블을 내 가슴께까지 들어올린 다음 몸을 비틀어 철조망 위로 넘긴 다음 건너편에 있는 단풍나무 가지에 걸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 테이블을 철조망 너머로 넘기려고 팔을 뻗칠 때 그 테이블의 다리는 내게 보이지도 않았고 나는 그것이 철망에 걸릴까봐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테이블이 나뭇가지에 닿을지 안 닿을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것을 천천히 밑으로 내려뜨렸다. 그 각도에서 그것을 들고 있자니 그 무게가 팔에 못 견디게 전해져 와서 만약에 테이블이 가지에 닿지 않게 되면 도저히 그것을 도로 끌어 올리지 못하고 땅에 떨어뜨리는 불상사가 생길까봐 너무도 겁이 났다. 드디어 그 끝이 가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근사한 안도감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 잠깐 멈추었다가 사다리 발판에 걸쳐 놓았었던 테이블 끝을 살살 천천히 낮추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는 사다리의 발판보다 분명히 높아 보였고 거기에는 분명히 충분한 공간이 있었겠지만 나는 가시 철망을 조심스럽게 지켜 보았다. 테이블 끝이 대롱대롱 발판에 매달렸다. 나는 손을 뻗쳐서 테이블과 철조망 사이에 분명히 몇 센티의 간격이 뜨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멈추었다. 이번에는 테이블 끝을 비틀어서 끝 쪽의 다리들이 분명히 나뭇가지에 고리처럼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테이블을 내 쪽으로 잡아당기고 그것을 한쪽으로 기울인 뒤 다시 도로 가지 쪽으로 밀어 다리 하나를 가지의 Y자처럼 생긴 곳에 걸었다. 손을 내밀어서 철조망과 테이블 사이의 간격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최소한 20센티는 되었다. 테이블은 간신히 연결될 정도의 길이였다. 그 끝과 발판이 겹쳐진 부분은 겨우 10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만약에 저쪽의 나뭇가지에 힘이 가해질 경우에는 그 때문에 이쪽 끝이 발판에서 미끄러지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테이블과 사다리를 묶는 데 다시 10분을 소비했다. 나는 특히 그 부분을 잘 고정해 놓고 싶었다. 마음 속에 내가 철조망 위의 가시 철망 위로 떨어져 갑자기 극적으로 철망이 쏙 들어가게 만드는 장면이 떠올랐다. 보초들은 분명히 거기에 호기심을 보일 것이고 그들이 사격 동작을 취하는 데 필요한 이유를 만들어 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철망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총을 계속 쏠 것이다. 나는 그 구조물을 마지막으로 시험해보기 시작했다. 사다리의 두번째 발판까지 올라가서 몸을 돌려서 테이블 끝을 잡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로 올라간 뒤에 천천히 네 발로 그 가운데를 향해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쾌한 광경이 아니었다. 나는 공중에 쭈그리고 앉아서 내 바로 밑의 가시 철망과 앞뒤쪽의 몇 미터를 내려다 보았는데 내가 만약에 실수를 하면 나를 즉시 쏘는 것이 임무인 두 사람의 보초가 총을 들고 그곳에 서 있었다. 구조물은 이제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서 더 안정되어 있었지만 가지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면서 휘고 있었다. 나는 내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 받쳐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 일종의 가상적인 힘을 갖게 해 주었다. 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나을 때가 더 많은 법이다. 나는 내 손을 테이블 바로 밑, 철사망의 바로 위에 넣어서 내 모든 몸무게가 가운데로 옮겨지더라도 아직도 철망에 닿지 않을 공간이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테이블을 약간 흔들어 보았다. 10센티 정도의 여유가 더 있었다. 내 오른쪽에 있는 보초가 분명히 이파리들이 바삭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가 위쪽을 올려다 보았지만 특별히 내 쪽을 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조금 기다렸다가 테이블을 지나서 나뭇가지 위로 기어 옮겨왔다. 자유였다. 나는 그냥 그렇게 가 버리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혔다. 가지 위에서 밑이 내려다 보였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라져 버릴 수 있었다. 체인 톱을 가진 사람들이 내 근처 50미터까지 다가온 것을 보았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이 나무를 베러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장비들과 필수품들을 전부 모아 놓았고 힘든 일은 다 끝났다. 그것들이 없으면 어차피 나도 끝장인 것이다. 테이블을 지나 계단 사다리로 내려서기 위해서 나는 뒷걸음질을 해서 다리를 먼저 보내고 나서 건너와야 했다. 땅에 내려서게 되자 내가 만든 피라미드에서 뭔가 옆으로 삐져나올 만한 것이 없나 하고 모든 것을 다시 점검했다. 그리고 난 뒤에 나는 우습지도 않게 한 발짝 물러나서 마치 그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초조한 만족감을 갖고서 쳐다보았다. 그때는 벌써 늦은 오후가 넘어 있었다. 나는 굉장히 힘든 일을 해냈던 것이고 만약에 그것을 볼 수만 있었다면 정말 긍지를 가지고 그것을 둘러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단호한 결단과 창조성의 업적 같은 기념비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자존심에 더 가까웠다. 하여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것을 짓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던 것이다. 나는 피곤했고 땀에 젖어 있었고 초조했고 겁에 질려 있었다. 체인 톱 소리는 점점 가까와지고 있었다. 대령이 언제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알아낼지 몰랐다. 나는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너도밤나무까지 세 번인가 네 번을 왕복해서 잡동사니가 든 일곱 개의 보따리와 연장 상자와 걸레 자루를 끌고 와서 내 피라미드 밑에 쌓아 놓았다. 나는 그 동안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철조망 주위를 조사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달아날 수 있도록 그들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모든 것들을 다 모아 놓은 다음에 나는 가장 작은 보따리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 커피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 뒤를 따라가 조심스럽게 내 앞쪽으로 그것을 밀어서 한구석에 치운 다음에 나도 가지를 따라 내려가 먼저 보따리를 받아 내리고 그 다음에는 내가 땅에 내려갔다. 나는 숲 안의 20미터 정도 되는 곳에 있는, 내가 나중에 알아 볼 수 있다고 자신할 만큼 이상한 모양으로 자란 소나무 밑에 그 보따리를 갖다 놓았다. 더 먼 곳이나 머리를 굴려서 숨길 장소를 찾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나는 걸어가는 동안 내 앞을 잘 살펴서 보초들이 경계하게 만들 만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신경을 쓰긴 했지만 체인 톱의 소리가 너무도 크게 들리고 있었다. 나는 내 모든 짐을 숲 속에 커다랗게 한 무더기로 쌓아놓을 때까지 그런 식으로 일곱 번을 왕복했다. 그렇게 하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고 가장 가까운 체인 톱는 20미터 전방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긴장으로 떨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너무도 기뻤다. 나는 이곳에서 할 일을 다 끝마친 것이다. 나는 철조망을 도로 건너가서 건물을 향해 급히 가기 시작했다. 시간은 없었고 내게는 아직도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대령과 그의 부하들은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중에 기적처럼 앉아서 보이지 않는 책상 앞에서 일하고 진공 속을 걸어다니며 무엇인지는 오직 상상밖에 할 수 없는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내려 놓았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손에 이 작은 마술의 왕국에 관한 정보들이 쓰여 있는 종이들을 끼운 서류판들을 들고 있었다. 대령의 말이 옳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은 일종의 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내 앞에 벌어진 장관은 그야말로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갖는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이 희한한 파노라마를 연구하기 위해서 엄청난 예산과 엄청난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어떤 누구도 설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투명인간을 잡아야 한다는 것도. 나는 먼저 왝스의 사무실로 가서 문을 전부 닫았다. 나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 찾을 수 있는 낱장의 종이들을 전부 찾아서 한번에 서너 장씩 구겨서 책상 밑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책장에서 책들을 꺼내어 페이지들을 벌려서 그 종이들 위에 던졌다. 그 밑으로 구부리고 기어들어간 다음에 나는 라이터를 꺼내어 불길의 열기가 그 종이 더미의 언저리로 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거기에 대고 있었다. 나는 돌아가서 다른 쪽에도 라이터를 갖다 댔다.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열기가 부풀어 올라서 내 얼굴을 밀어낼 때까지 기다렸고 그때서야 그 위의 공기가 흔들리며 내 시계를 뒤틀려 보이게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서둘러서 그 사무실을 나와 내 뒤로 문을 닫은 뒤 복도를 가로질러 대령이 앉아 있는 사무실과 실험실을 지나서 건물의 반대쪽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번에 나는 불을 지르기 전에 책상을 벽에 대어 놓아서 불이 확실히 건물로 붙어가도록 해 놓았다. 나는 소리를 많이 내고 있었고 세 사람 모두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건물을 나오면서 나는 비서실에도 불을 질렀다. 나는 갖고 나올 수 있는 것만큼 종이를 많이 가져왔다. 철조망에 당도했을 때 체인 톱의 소리는 벌써 그 근처에까지 와 있었다. 나는 종이를 구겨서 구조물의 밑에 집어 넣느라고 오 분에서 십 분 가량을 소비했고 탈출의 계단을 마지막으로 올라가면서 거기에 불을 질렀다. 접는 의자를 하나 들고 나는 그곳을 올라가 나무로 건너갔다. 내 바로 밑에서 그 나무의 밑으로 늘어진 가지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의자를 먼저 내려놓은 다음에 도로 테이블로 건너가서 테이블과 계단 사다리를 묶어 놓았던 끈을 자른 다음 그것을 나무 쪽으로 잡아 당겼다. 나는 사다리와 테이블들이 타고 있는 그 탑에서 나오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건물을 마지막으로 바라 보았다. 세 사람은 거기에서 막 달려 나오고 있었는데 그들이 거의 공포에 가까운 다급함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공중에서 떠다니는 그들의 몸짓은 거의 우스울 지경으로 과장되어 보였다. 모리씨가 아직도 이층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혹시 어느 방에 갇힌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건물 위의 공기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체인 톱을 든 두 사람이 나무에서 약간 떨어져서 선 채로 건물 위쪽의 공기를 의심쩍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 짐을 놓아둔 곳으로 갔는데 짐을 발견될 확률이 더 적은 숲 속으로 옮길까 말까 망서렸다. 다시 20미터 가량 더 숲 안쪽으로 옮기고 나서 나는 멈추어 서서 몇 분 동안 쉬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확실하게 탈출했다는 자신이 들었다. 최소한 그때만은 확률이 내 편을 들어주었다. 사이렌 소리들이 들리고 있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그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철조망 안에서 무엇인가가 폭발하는 듯이 깊고 울리는 소리가 났으며 마이크로매그네틱스 건물 위의 하늘이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드디어 보이지 않는 건물을 지나서 보이는 나무들로 퍼져나온 불길을 볼 수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전부 퍼져서 내가 탈출한 흔적들을 전부 없애주기를 바랐다. 나는 내가 하던 작업으로 돌아가서 길 건너 반대쪽에서 3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다 짐을 깨끗하게 다 가져다 놓았다. 내 뒤쪽의 하늘은 체인 톱 소리와 사이렌 소리로 가득찼으며 불타는 나무들과 황혼 때문에 환한 오렌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혼자 그 숲 속에 서 있으면서 내 심장은 마구 뛰었고 전신은 공포와 피곤으로 떨고 있었다. 내가 보았던, 그리고 내가 보지 못했던 모든 신기한 것들과 마이크로매그네틱스 건물은 이미 사라져가는 꿈처럼 멀고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아직도 내가 투명인간이라는, 말도 되지 않고 거기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그 무서운 사실이 남아 있었다. ┌────────────────────────────┐ │ 6 │ └────────────────────────────┘ 거의 반 시간 동안 나는 보이지 않는 내 짐 보따리의 옆에 앉아 쉬면서 떨고 있었다. 나는 가운데에 하얀 페인트로 중앙선을 칠해 놓아 그게 길임을 알려놓았을 정도로 별로 보잘 것 없는 길가에 앉아 있었다. 길의 양쪽으로는 숲이 있었다. 오른쪽은 마이크로매그네틱스의 입구로 들어가는 길인 것 같았다. 왼쪽은 도대체 그것이 어느 특별한 방향으로 가는 길이라고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앉아 있는 동안 내가 본 오직 한 대의 차 끔찍합니다. 당신은 어떤 수를 써도 저곳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진짜 비극이 일어날 거예요. 제발 시도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건 우리 둘 다 당해 봐야 하는 위험이겠지요. 하지만 나를 아무 이유도 없이 없애버리면 당신의 인사 기록에 꽤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는 특이한 인간의 표본이니까요. 물론 성공으로 기록되지는 않겠지요.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당신이 혼자서 나가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물론 나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의 시체 역시 인류에게 어떤 가치는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혼자서 떠돌아 다니다가 이곳에서 백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영원히 시체를 찾을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그건 좀 슬픈 일이겠군요.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저 철조망을 나간다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봤습니까? 이런 상태로 당신이 혼자서 살 수 있을 것 같나요? 어디에서 살고 무엇을 먹을 거지요? 당신은 그런 상태로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그리고 안다 해도 어떻게 할 건가요? 당신이 버스나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이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군요. 당신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기 전에 거기에 관해서 좀 생각해 봅시다. 내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당신에게 연락하겠습니다. 하비 씨. 내가 당신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요. 나는 우리가 이곳에서 해야 할 임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오늘 밤 안으로 우리는 이 건물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대충은 살펴볼 수 있고 그 다음에는 이곳을 폐쇄할 작정입니다. 그때쯤 우리는 당신과 개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정신을 잃게끔 개스를 이곳 전체에 살포할 예정이예요. 우리는 이 철조망 안을 일 센티씩 전부 빗자루로 쓸어 볼 겁니다. 이 모든 일이 당신의 안전 하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만 강조하겠어요. 하비 씨, 그때쯤이면 당신은 자수를 하든지 잡히든지 둘 중의 하나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해서든지 저 철조망을 넘어 갔다고 쳐도 물론 우리는 당신을 물론 뒤쫓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나가면 당신들이 어떻게 나를 뒤쫓겠어요? 지금 나는 바로 당신 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지만 당신은 나를 잡지도 못하고 있는데. 하비 씨. 최악의 경우에 우리는 공식 발표를 해야겠지요. 그러면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아이들까지도, 아마 전 세계 사람들이 당신을 지켜보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도 없으리라 믿습니다. 당신에 대해서 누구도 모르는 것이 우리에게 결국은 이롭다는 당신의 생각은 아주 옳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람들을 찾아 본 경험이 꽤 있거든요. 그리고 이번의 경우에는 찾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꽤 쓸 만한 자료들을 갖게 될 테니까요.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는 않을 거요. 그리고 누가 내 존재를 믿겠어요? 당신과 나는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꽤 스스럼없게 되었지만 보통의 상식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은 투명인간을 찾는 데다가 자금을 댄다든지 당신을 격려해 준다든지 아니면 하루라도 그를 찾는 데 소비하는 등의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하비 씨. 저 건물을 좀 봐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히지요? 나는 그것을 쳐다보았다. 클렐란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내어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마법의 계단이라도 오르는 것처럼 거기를 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기가 막힌 광경이었다. 이 건물을 관리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무제한의 예산으로 이곳을 관리했어요. 내가 내일 워싱턴에서 세 사람만 데려다가 이 건물을 보여주면 당신 같은 사람을 백 명이라도 찾아낼 수 있는 돈을 타낼 수 있게 되죠.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의 말에는 신빙성이 있었다. 건물은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나는 클렐란이 이층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마치 뚱뚱하고 흉포한 천사처럼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악의에 찬 그의 눈길이 내가 점점 늘어나는 위험 속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내게는 할 일이 많았는데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처음부터 구제 받을 수 없었던 충동에 불과했었다. 우리 둘 중의 하나만이라도 아무 것에 대해서 서로를 설득시킬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데이빗 씨. 이것 좀 봐요. 당신이 말하는 것에는 다 일리가 있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거기에 대해 수긍하고 있어요. 아마 나 혼자서 저 철조망을 넘어간다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일 겁니다. 당신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생각을 곰곰이 해보기 위해서 한두 시간만 갖고 싶군요. 나한테는 정말로 힘든 하루였어요. 당신은 계속 이곳에 있을 겁니까? 당신이 원할 때는 언제나 이곳에 있을 거요. 시간을 충분히 갖고서 자유롭게 결정을 내리도록 해요. 하지만 하비 씨? 왜요? 당신이 가기 전에 그것이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군요. 뭐가요? 점점 당신의 몸이 눈에 보이지 않게 변해가고 있었을 때의 상태 말이오. 당신은 정말로 공포에 질렸었겠지요? 그 동안 의식이 있었나요? 거의 의식을 잃고 있었지요. 당신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정신이 들었을 때 도대체 무엇을 생각했지요? 그는 진짜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지만 거의가 다 웃기는 생각들이었지요.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이 일보다 더 웃기지는 않았어요. 나는 내가 죽어서 벌을 받거나 뭐 그런 따위의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아마 그가 마지막 사람이 될지도 몰랐다. 그걸 생각하는 동안에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내가 뭘 했냐고요? 나는 멍청해져서 물었다. 그래요. 기도를 했습니까? 아니면 신의 계시라든지 어떤 징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적어도 그 동안에 모든 것이 틀리게 보였을 텐데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데이빗 씨, 우리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얘기를 좀더 나눠야 하겠지만 나는 논리적으로 엉망진창인 사람이라서요. 다 서투르거든요. 하여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생각은 혼자서 쉬고 싶다는 겁니다. 금세 돌아와서 그 얘기를 나누기로 하지요. 물론이죠. 그가 순순히 말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은 다시 땅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내 발이 딛고 있었던 바로 그 부분을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옆에 다른 발을 살며시 갖다 놓았다. 그 발이 있었던 곳의 잔디가 천천히 펴지면서 올라오고 발을 내려놓은 곳의 잔디는 천천히 눌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젱킨스의 시선은 바로 그 자리에 못박혀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밑으로 웅크렸다. 갑자기 그의 손이 나를 향해서 튀어 나왔는데 오른손은 마치 나하고 악수를 하려는 듯이 들려져 있었고 왼손은 내 어깨를 정답게 두드리려고 하는 것처럼 바로 직전에 내 상체가 있었던 곳을 감싸 안았다. 아무 것도 만지지 못한 그는 정말 바보스럽게 보였지만 잠시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려는 동작처럼 왼팔을 다시 뻗어 보고 있었다. 쭈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나는 뒤의 옆쪽으로 뻗을 수 있는 만큼 발을 떼어 놓았다. 무게 중심을 조심스럽게 그 발로 가져간 뒤 다시 한번 크게 다른 발을 떼었다. 실망과 혼동에도 불구하고 젱킨스는 새로운 내 위치를 찾아서 땅을 살피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을 도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해요. 그는 성의 있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서 몇 발짝을 더 조심해서 물러났다. 내가 돌아서서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는 그 앞의 땅을 조사해 보고 있었다. 이제는 철조망의 문제에 도전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넘어 가든지, 그 밑으로 기어가든지 아니면 뚫고 나가야만 했다. 하루 종일 내 마음 구석에서 그 철조망을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문을 빠져나간다든지 짐승처럼 철조망 밑에 파인 곳을 기어나가는 식의 희미한 상상 외에는 어떻게 나갈 것인지 어떤 실제적인 계획이나 아이디어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정말로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고 전체의 상황은 점점 내가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고 감옥보다도 더 냉혹하고 빈틈 없이 보초들에 의해 감시되고 있었다. 내게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총에 맞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잡혀서 우리에 넣어질 것이었다. 나는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처음에 할 일은 우선 철조망 전체를 샅샅이 살펴보는 일이었고 그 다음에 무슨 시도를 해 볼 것인지 결정하기로 했다. 아니면 시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무엇인가를 보면 거기서 해답이 저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건물로 다시 돌아갔다. 클렐란과 모리씨는 이층의 바닥 윤곽을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이제는 보호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굉장히 빨리 움직이고 있었고 꼭 마술사처럼 3미터나 되는 줄을 능숙하게 기적처럼 공중으로 빳빳하게 올려 세우고 있었다. 나는 비서실로 해서 청소부의 창고에 가서 발판이 달린 계단 사다리를 가지고 잔디밭으로 나왔다. 그것을 펴니까 1.5미터 가량 되었는데 거기에 올라서서 전구를 갈아 끼우기에는 딱 알맞는 것이었지만 3미터가 넘는 철조망을 넘는 일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도로 접어서 내 어깨에 둘러메고서 문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것을 철조망으로부터 15센티 정도 되는 문의 앞쪽에 펴 놓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발판에 올라서면서 앞뒤로 사다리를 살짝 흔들어서 다리들이 땅으로 깊숙히 박히도록 만들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계단 사다리는 언제나 불안정했었다. 철조망의 꼭대기를 보기 위해서 나는 그 사다리의 맨 꼭대기 발판에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그렇게 하자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내 몸이 메스꺼울 정도로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댄다기보다도 균형을 잡기 위해서 나는 돌돌 말린 가시 철망의 한 가닥을 엄지와 둘째 손가락으로 꼭 잡아서 그것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여 밑에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했다. 문의 바로 밑에 있는 가로 10미터 세로 3미터 정도의 땅에는 또 다른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모래가 그 위에 덮여 있었다. 모래는 축축히 젖어 있었고 사람들이 갈퀴로 그곳을 평평하게 고르고 있었다. 갈퀴에 스칠 때마다 거기에 아주 고른 직선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발을 딛을 때마다 아름다운 발자욱들이 떠올랐다. 양쪽 옆의 언저리에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관총으로 보이는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나는 토할 것만 같았다. 내가 내려다 보고 있는 곳이 곡선으로 구부러져 있었기 때문에 멀리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내 양쪽으로 보이는 곳의 땅은 철조망을 따라서 3미터 폭 정도까지 모든 것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모래가 그 위에 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도대체 어디까지 그 작업을 했으며 전체를 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체인 톱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나를 포위해 오고 있었다. 내 기회들은 줄어들고 있었다. 철조망 옆으로는 작은 발판들이 놓여 있었고 거기에 보초들이 한 사람씩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내 균형 감각이 갑자기 증발해 버리는 것만 같았고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잔디밭에 거꾸러지며 다리가 철조망을 밀어서 총알 사격을 받게 되는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철망의 가닥을 잡은 채로 다리 하나를 맨 윗 발판에서 내리고 다음 발판에 내려놓을 때까지 불안한 자세로 천천히 몸을 숙였다.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한 발판을 더 내려온 다음에 몸을 숙여서 맨 꼭대기에 있는 발판을 양 손으로 잡았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땅으로 내려왔다. 그 안도감은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나는 거의 크게 웃을 뻔했다. 내가 나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고서는. 나는 사다리를 접어서 들고 위험하더라도 어떤 기회를 제공할 만한 빈 틈을 찾아 보려고 철조망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특히 땅에 어디 파진 데라도 있어서 내가 철조망 밑으로 기어 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 만한 곳이 있나 유심히 살펴 보았다. 쓸데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혹시 철조망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있나 찾아 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철조망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땅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들이 그곳을 얼마나 꼼꼼하게 천으로 가려 놓았는지 바깥을 내다볼 틈새기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문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왔을 때 바로 반대쪽 바깥에서 체인 톱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의 작업의 진척 과정을 보기 위해서 사다리를 오르는 것을 다시 한번 감수해야 했다. 맨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한순간 동안에 다리를 하나 치켜 든 다음 즉시 다른 다리를 내려놓았다. 바깥을 순간적으로 내다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의 일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철조망은 들판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거기에서 잘라낼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동쪽으로 있는 철조망은 나무들에 잇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작업이 느려질 것 같았다. 가장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곳은 거기였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서 철조망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20분 후에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나는 그곳의 전체 조망을 보기 위해 잠깐 사다리에 조심스럽게 올라가 보았다. 내 앞에 보이는 광경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