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버3권 등장인물 지구인 우주선 테네시티 호(서기 2069 ∼ 2081) 클리오 트리고린: 역사학자 사네토모 가와무라: 천문학자 올샤브시키: 선장 타이버인 우주선 와코펨 조모스 호 승무원(기원 전 73세기) 오스폭 타로브: 선장, 팔라스 여성 케콕스: 황제 근위병, 팔라스 남성 포아페레시스: 선생님, 슐라스 여성 소이켄: 선생님, 슐라스 여성 메족스: 팔라스 남성 오폭스 킴나벡스: 팔라스 여성 프리캄: 슐라스 여성 자메코시스: 슐라스 남성 타이버인 우주선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기원 전72세기) 데파리: 우주 항행사, 혼혈 여성 베펨: 우주 항행사보, 혼혈 여성 배제스: 선장, 혼혈 남성 세타키서스: 선장보, 혼혈 남성 아지어: 엔지니어장, 슐라스 남성 크루릭스: 엔지니어보, 팔라스 남성 베레맘: 1등 항햇, 혼혈 여성 티식스: 승무원, 팔라스 남성 스트리옙틴: 정치관, 혼혈 남성 레리마식스: 의사, 슐라스 여성 진정한 부족민(세트포스인-원시 지구인, 기원 전 73∼72세기) 라: 최초의 전사, 훗날 진정한 부족민의 님 이녹: 라의 후계자 메스라: 라의 손자 셋: 이녹의 사후 라의 후계자 에서: 라의 손녀 진정한 부족민 타이버인 노예 디에렌: 타이버인 노예, 오투즈와 자메코시스의 딸, 혼혈 프리록스: 케콕스와 오스폭의 아들, 팔라스인 위루즈: 메족스와 프리캄의 딸, 혼혈 메노뭄: 혼혈 남성, 위루즈의 아들 지구인(서기 1990∼2010) 로리 커스튼: 인데버 호의 지휘관 크리스 테렌스: 인데버 호 제1탐사 전문가 헨리 자네쉬: 인데버 호 조종사 헨리 자네쉬, 더크 로드리게즈, 샤론 골드만, 해럴드 스리어만, J. T. 머피: 탐사 전문가 앰버 로마니 테렌스: 크리스의 아내 제이슨 테렌스: 크리스의 아들, 훗날 2033년 화성 탐사 조종사 시그 잘스버그: 사업가이자 세어스페이스 글로벌 경영주 앨리슨: 그리스의 여자 친구 빈센트 아우리치오: 천문학자 피터 미하일로비치 데니소브: 국제 우주 정거장 우주 비행사 겸 엔지니어 타티아나 할딘: 국제 우주 정거장 우주 비행사 겸 지휘관 프랑수와 레이몽, 지로 가와구치: 국제 우주 정거장 탐사 전문가 샤오베: 중국인 우주 비행사 겸 조종사 지앙: 중국인 우주 비행사 겸 비밀 정치원 타이버인(기원 전 170년 및 그 이후) 투트레즈: 카레키프 탐사 기상학자 버티서스: 과학자 스테라즈, 바이버레니스: 시험 조정사 구릭스 조와쿠: 장군, 슐라즈 정복자 루마즈: 구릭스의 시녀 와코펨 조모스: 선장, 팔라스 발견자 페레스 요락: 정치인 코로예프 기지의 지구인 과학자 다스 찰라샤제리언, 이바나 보지스, 로버트 프랭, 아리카 야마다, 짐 플랜 지구인(2033년) 월터 갠더: 화성 코로예프 분화구 탐사 지휘관 올가 트리고린: 화성 코로예프 분화구 탐사 엔지니어 겸 1등 향해사 나리하라 니가와, 일자 비어린, 베실리 체버티긴, 동 더화, 폴 플루언트, 키레이코 마사치, 쩐 초우정: 화성 코로예프 분화구 탐사 전문가 제3부 위험한 향해 @p 19 희망의 빛 세트포스 나이로 치면 나는 마흔세 살이었고, 님의 3대 후계자를 양성하고 있 었다. 니수에서 우주선이 도착하지 않은 가운데 니수인 노예 가운데 가장 나이 가 많은 축에 끼게 되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아이들에게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내게 집중하는 시간 은 나비가 네게 집중하는 시간보다도 짧았다. 오늘은 젊은 노예들조차도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다. 나는 노예들의 어머니요, 큰언니요, 이모였다. 노예들 을 애완 동물처럼 다루는 세트포스 어린이들은 왕자요, 공주였다. 그리고 세트포 스인들이 그들의 소유권과 지지를 근거로 왕위 계승을 놓고 다투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들은 아마도 내일 당장 해방의 기회, 혹은 니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거절할 것이다. 그건 우울한 생각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화창한 봄날이 절망을 싹틔우고 있었다. 그러나 소이켄 할머니와 메족스 삼촌은 지난 여름 돌아가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분들과 똑같은 이상한 @p 20 질병으로 앓 아누웠기 때문에 나는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나는 몹시 외로웠다. “디에렌!” 메사라 불렀다. 이 세트포스 아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인데, 보통 사람 들보다 공손하고 조용했기 때문이다. “여기 있어요! 왜 그러세요?” 나는 그가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살피러 달려갔다. 가시덤불 속에서 펄럭이는 그 물건을 보고 오랫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이런 것들은 오래 전에 발굴이 모두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진정한 부족민’들이 쓰던 길다란 투석기가 아직도 남아 있었네요. 아무튼 메사라님, 이 런 것을 발견하다니 사람들은 메사라님을 분명 자랑스럽게 여길 겁니다.” “하지만 이게 뭔데?” “이 비슷한 거 한 번도 못 보셨어요? 신전에 있던 거요.” 세트포스인들의 특성 가운데 이상한 것 하나가 어른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지 기도 전에 육제척으로 성숙한다는 것이었고, 때문에 그들은 몸집이 상당히 자란 뒤에도 어린아이처럼 엉터리 추측이나 감정에 따라 생각했다. 메사라의 친구로 임명된 순진하고 어린 팔라스인 노예 메노뭄이 입을 열었다. “이건… 거기서 나온 물건이에요. 디에렌 아줌마!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걸 서서히 땅에 착륙하게 만드는 물건의 한 귀퉁이에요.” 메노뭄은 그럴 이유도 없었건만 거의 메사라만큼이나 흥분한 상태였다. 사춘 기를 맞으려면 한참 먼 나이인데도 지각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p 21 "맞았어. 이건 낙하산 조각이에요. 여기 이^36^나는 가까스로 단어를 생각해냈 다^36^시라우드선이 아직도 달려 있는 게 보이죠? 탐사기가 와코펨 조모스 호에 서 내려올 때 사용했던 것이지요. 이건 정말 중요한 것이랍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터 이런 게 발견된 적은 없었으니까요. 지금 당장 궁전으로 가지고 돌아가야 해요.“ “하지만 우린 지금 놀러 나왔잖아!” 메사라가 반대했다. 나는 밝은 태양 아래 둥글게 서 있는 어린이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메사라보 다 키가 작은 그 세트포스 어린이들은 화가 나거나 무언가를 요구할 때 보이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랬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눈을 흘기는 그런 표정 말이다. 우리 니수인들은 표정 없는 얼굴로 꼼짝 않고 있었다. 후일 세트포스 아이가 주인님께 불평이라도 늘어놓는다면 곤혹을 치를 사람들은 바로 우리였기 때문이 다. 그러나 인솔자는 나였고, 이건 즉시 님에게 보여야하는 물건이었다. 오락 시 간을 잠시 할애라기만 하면 될 터였다. 지금 이 상황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셋의 친구로 나와 있었고, 그는 다른 세트 포스인들로 하여금 나는 배려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유모나 친구가 필요없을 정도로 장성했고^36^지금은 할아버지의 군대를 이끌고 전당에 나가 있 다^36^나는 그의 다섯 살난 조카의 유모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그녀는 님 라의 자손들 가운데 가장 버릇이 없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린 채 셋이 지금 여기 있었으면, 그의 아버지처럼 그의 아들 ^36^올해 태어났다^36^도 내 손으로 키울 수 있었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바람을 갖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다. @p 22 문제는 내가 생각한 대로 해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아 이들은 지금 놀고 실어 했다. 때문에 이 소중한 낙하산 조각과 함께 이들을 이 끌고 궁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은 화를 낼 것이고, 분명 보복할 것이다. 나이 많은 세트포스 어린이들은 이야기를 꾸며내 나를 회초리로 맞게 할 것이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메노뭄에게 아이들을 잘 관리하고 있으라고 맡긴 채 혼자 낙하산을 가지고 다녀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메노뭄은 메사라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아이였기 때문에 아이 들을 잘 돌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고, 그렇게 되면 나는 또 매를 맞는 것이다. 아이들과 오락 시간을 모두 마친 뒤 낙하산 조각을 들고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이 물건을 발견한 즉시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님 라가 알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니수 물건들을 매우 소중히 다루었기 때 문에 하나라도 소홀히 했다가는 매를 맞을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디에렌!”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반짝이는 태양 아래 갈색 머리털과 부드러운 옷을 휘날리며 셋이 언덕 아래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의 얼굴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전장에서 막 돌아오는 길이야. 포로를 수천 명이나 잡아들였어. 님 라의 112 번 째 대승인데다가 나는 가장 위대한 전사 가운데 한 명으올 지명됐어.” 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이빨이 보였다. 입술이 그런식으로 들려 있 다는 것은 세트포스인의 경우 기쁘다는 뜻이었다.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 주겠어?” @p 23 "그럼요. 주인님.“ 나의 이 대답에는 거짓말이 약간 섞여 있었다. 님의 후손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를 꼽으라면 단연 셋이었다. 그는 너그러운데다 친절했고, 직접 때린 적도 없거니와 나를 맞도록 거짓말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 선대들은 나를 키우면서 우리가 세트포스인의 노예가 된 것은 단순히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셋의 공손하고 친절한 태도는 내가 노예이며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좀더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그는 쓸모가 있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셋 주인님. 게다가 지금 이 순간 그 소식을 듣다니 조짐 이 정말 좋은걸요. 메사라님이 발견한 이 물건 좀 보세요!” 나는 낙하산을 가리켰다. 셋은 두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더니 말했다. “하지만…하지만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불가능한 일이라니요. 주인님. 바로 눈 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는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아, 네가 거짓말하는 걸 아니라는 거 알아. 디에렌. 이 낙하산 조각이 신전 에서 나온 물건이 아니라는 건 알아. 하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일이야. 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진정한 부족민대 뱀 먹는 부족민’ 놀이를 할 때 늘 이 가시덤 불이 뱀 먹는 부족민의 진지였단 말이야. 저기 우리가 놀면서 골키퍼 때문에 땅 이 패인 거 보이지? 몇 년 동안 이 가시덤불에서 놀던 아이들은 열 명도 넘어. 그렇게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주인님. 높다란 나무 어딘가에 달려 있다가 바람에 날려 여기로 온 것은 아 닐까요?” @p 24 메노뭄이 말했다. 내 조카인 메노뭄은 셋을 아주 무서워했는데, 아마도 셋이 왕위 계승자였기 때문인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낡지도 않은데다 먼지 하나 없네. 이건 전혀 낡지 않는 물건인가, 디에렌?” “제가 아는 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이 물건을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을 뿐더러 제가 본 것이라고는 신전에 있던 것들 뿐이었으니까 요.” 나는 ‘케콕스 가죽 옆에 달려 있던 것 말이죠’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셋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신전 벽에 걸려 있는 케콕스의 가죽과 머리를 처음 본 순간 울음을 터트렸고, 나한테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님이 직접 약속할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곳에 있으면서 그다지 낡지 않은 것 같군용. 니수 물건들 가운데는 매우 질겨서 몇 백 년이고 낡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셋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시덤불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손을 뻗어 천을 집어 들었다. “부드러운데. 게다가 반질반질하고. 어떤 재료를 가지고 만든 것인지 몰라도 거미줄보다 휠씬 좋은 것 같아. 그리고….” “디에렌! 셋! 저기 저 나무를봐!” 메사라가 소리쳤다. 우리는 잽싸게 메사라가 흥분한 목소리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늙어서 흰 삼나무 위에 엄청나게 큰 천이 신전보다 높게 드리워져 있었다. 등뼈가 야릇하게 쭈뼛해지면서 작던 볏이 메족스 삼촌만큼이나 켜졌다. “메사라님. 메노뭄과 함께 여기서 어린이들을 지키고 계십시오. 셋님과 제가 가서 먼저 자세히 살펴본 다음 여러분이 가서봐도 될 것인지를 결정할 테니까 요.” @p 25 나이가 많은 아이들에게 이따금씩 보호자나 책임자의 역할을 맡기면 잠시나마 의젓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미심쩍은 목소리로 셋이 물었다. “두 사람에게 맡겨도 될까?” “그럼요.” 나는 걱정없다는 듯이 말했다. 셋과 나는 언덕을 내려가 개울가 늙은 삼나무 위에 있는 낙하산을 향해 갔다. 셋의 말 덕분에 그 둘은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최선을 다해 다른 아이들이 장난치지 못하도록 막았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의 귀에 내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내가 말했다. “무슨 말을, 순찰을 돌 때나 전쟁터에 나갔을 때 유모가 나한테 엄격하게 한 것을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몰라. 저 아이들은 훈련이 필요해. 나이가 드신 님이 부드러워졌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야.” ‘손자나 증손자들한테나 부드러워지셨겠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노예들 에게는 관대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낙하산 전체를 손에 ㄴ넣게 되면 어떻게 하실 작정인가요. 셋주인님? 탐사 기가 높은 나무 위에 걸린 채 착륙하지 못하고 있다가 바람에 느슨해지면서 여 기까지 날아온 것이겠죠?” “여기 이곳은 지난 수십 년간 님 왕국의 일부였던데다 군사들이 순찰을 돌던 지역이었잖아. 병사들이 니수 물건을 가지고 오면 많은 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감해 볼 때 꼭꼭 숨어 있었던 게 분명해. 그렇다 면 어떻게 바람이 닿았을까?” @p 26 우리는 삼나무 그늘 가까이 다가갔고, 톡쏘는 향기와 시원한 공기가 내 가느 다른 털을 간지럽히는 순간 머리 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요 며칠 사이 폭풍도 없었고 이 물건을 흔들 만큼 강한 바람도 없었구요. 게다가 이 근방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리고 탐사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무에 매달린 채 있었을 리가 없어. 안 그래? 즉, 이리저리 움직일 수도 있었을 테고….” 옆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목소리를 속삭임에 가깝게 낮추면서 셋이 덧붙였다. “선장 할머니가 하신 말씀에 의하면 탐사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그분들은 탐사기를 수백 개나 발사했다고 합니다, 주인미. 그런 탐사기 가운데 어떤 건 카 메라보다 작은 크기로 낙하산에 매달려 내려왔다고 해요. 카메라는 멀리 있는 사물을 볼 수 임ㅆ게하는 기구지요. 와코펨 조모스 호에 있는 수신기로 사진을 보내는 것이랍니다.” 애써 기억을 더듬는 그를 위해 니수어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제 생각이 난다.” 셋이 말했다. 우리는 다리 근처까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거대한 삼나무 앞 에 멈춘 채 매달려 있는 거대한 천을 올려보았다. 시라우드 뒤 쪽으로 밝은 태 양이 비치면서 그 하얀빛이 야릇한 무지개 빛을 연출했고, 그 무지개를 바라보 니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나무 아래 쪽은 어둡고 차갑게 보였고, 우리는 삼나무 향이 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우리는 어두침침한 푸른빗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나는 어둠에 적응하 려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셋이 숨을 헉하고 들이쉬었다. 거기 나무 아래에는 금속으로 @p 27 된 열두 개의 다리가 달린 탐사기가 서 있었다. 낙하산을 끊고 나무 아래까지 가는 짧은 비행 도중 생긴 듯한 작은 그을음 자국이 탐사기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는 지푸라기 타는 냄새가 나는 것으로 탐사기가 작동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 렸다. 그때 탐사기는 머리처럼 꼭대기에 얹혀 있던 동그란 공을 회전시켰고, 공 꼭대기에 있던 손바닥 넓이는 크고 깨끗한 검은 동그라미 위로 우리의 모습이 반사되어 비쳤다. 탐사기는 가볍게 흠흠 하는 소리와 찰칵 하는 소리를 내며 여 섯개의 ‘앞다리’ 가운데 세 개를 들어올려 앞으로 뻗치더니, 우리를 향해 느 릿느릿 우아하게 걸어왔다. 꼭대기에 달린 둥근 물체가^36^눈이겠지, 하지만 다 른 용어가 있을 거야^36^비스듬히 우리의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우리 모습을 기 억하려는 듯 앞뒤로 왔다갔다 했다. “카메라예요. 꼭대기에 달려 있는 눈 비슷한 물건은 카메라입니다. 셋님. 우 리 사진을 누구에겐가, 아니면 어디론가 보내고 있는 거죠. 하지만 와코펨 조모 스 호로 보내는 것 같진 않아요.” ▲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 선장보 세타키서스의 보고서 우리는 이갤리터리언 리퍼블릭 호의 엔진을 광속에 가깝게 풀가동시켜 니수를 떠났다. 우리는 우주선을 급가속시켜 비행하긴 했지만, 10중력으로 반나절 이상 을 비행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태양계를 빠져나오기 위해 40일 동안 10중력으로 비행 할 예정이었다. 원심 분리기의 높은 중력을 장기간 동안 견딘 사람들이 자원했고, 국민 우주 탐 사 재단에서는 고통이나 어려움이 @p 28 거의 없다고 확신했다. 사실상 우리는 며칠 간 적응 기간을 거치면 다섯 번의 8일 동안 지속되는 가속은 편안한 휴가가 될 거라는 말에 설득당했던 것이다. 실제로 경험을 하고야 우리는 원심분리기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거나 대화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니수인은 다섯 번의 8일 동안 10중력의 가속을 견딜 수 있는 신체가 아니었 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 같은 혼혈인들의 체력이 얼마나 강한지 온갖 역설을 늘어놓았지만, 그 말은 순수 팔라스인이나 슐라스인들보다 강하다는 뜻일 뿐이 었다. 꼰 실은 일반실보다 질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리를 지탱할 만큼 질기 지는 않다. 우리 혼혈인들도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인간이었고, 우리의 몸도 그 상 황을 견딜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가 보기엔 팔라스인이나 슐라스인 선원들 또한 우리보다 고가속을 더 달 견디거나 더 못 견디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40일 동안 정상 체중의 열 배에 달하는 몸을 특수 액체로 띄우고, 몸 에 있는 모든 구멍들을 똑같은 액체로 채워 압력을 균일하게 만든 채 탱크 안에 잠겨 지냈다. 40일 내내 마스크를 통해 호흡했으며, 청결을 위해 날마다 마스크 를 갈았다. 우리는 마스크에 달린 마이크로폰과 스피커 플러그를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무시무시한 압력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한 안경을 통해 글을 읽거나 영화를 보았다. 카테테르를 통해 배설했으며, 정맥 주사로 먹고 마셨다. 우리는 살아남긴 했지만, 6일째 되던 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행히도 우리가 있던 제1탱크에는 정치관이 있었기 때문 에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의논할수도, 주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만든 계획안을 바꾸자는 말도 할 @p 29 수 없었다. 때문에 우리는 그저 참고 견디면서 관리들이 세운 계획이란 것이 우 리를 이렇게 불편한 곳에 내버려두는 것이었는지, 그 사람들 말처럼 원심 분리 기 실험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는지 궁금해 했다.^36^다른 사람들과 감히 이런 얘 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탱크에서 보낸 40일은 온갖 불편함이 혼합된 생활이었다. 무엇보다도 대화량, 영화 관람량, 독서량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는 며칠 동안 침대에 묶여 지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탱크가 비좁았기 때문에 제1팅 크에서 지내던 우리 네사림이 취할 수 있었던 배치 형태는 세 가지뿐이었다. 다 른 세 사람과 등을 맞대고 있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원으로 앉아 있기, 서 로의 얼굴을 마주본 채 멀리 혼자 떨어져 앉아 있기 등. 사람들은 탱크 안에서 지내는 우리의 우주선 조종 능력을 밑기 보다는 모든 것을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편을 택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섯 번의 8일 동안 무엇 을 하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조작들을 기계로 모두 할 것이었다면 탑승 하지 않는 편이 나았겠다고 배제스 선장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어 쨌든 그당시 우리들은 따분했을 뿐 아니라 별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쑤시는 것이 심한 고통은 아니었지만, 온몸이 편할 날이 없 었다. 엔지니어와 생명 공학자들 덕에 우리의 몸과 주요 기관은 액체 속에 떠 있는 상태로 충격이 완화되어 영구손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변덕스러운 압력과 가속에서 우리 몸 구석구석을 보호해줄 수도 없었고, 또한 그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낯선 하중을 견디다 보니 관절이 피곤했고, 시큰거렸다. 작은 부분들^36^잇몸, 귀, 둔부의 지방질^36^은 끊임없이 다치고 멍드는 @p 30 것 같았다. 존재 여부조차 몰랐던 근육들^36^이를테면 소화관을 통해 음식을 나 르는 근육들^36^이 과로로 아파왔다. 몸 속에 있는 커다란 근육들은 사용하지 않는데다 과도한 하중까지 견뎌야 했 기에 쥐가 나거나 피곤했다. 의학적으로 치료받아야 할 만큼 아픈 곳은 없었지 만 온몸이 쑤셨다. 고가속이 끝나는 날은 축하와 휴식의 날로 계획됐다. 하지만 이틀 동안 휴식 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속을 중력의 10분의 1, 즉 숙소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낮추고 침대에서 뒹굴었다. 애초의 비행 계획을 최초로 뮈하는 순간이었고, 정치관인 스트리옙틴이 불만을 터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 었지만 어쨌든 배제스 선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금 현재 본국으로부터 22광년 떨어져 있었고, 또 광속과 거의 비슷한 속력으로 비 행하고 있기 때문에 계획 변경에대해 어떤 메시지를 수신받는다 하더라도 세트 포스에 도착한 뒤가 될 것이다. 우주선에서는 본국에서보다 정치적으로 느슨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스트리옙틴은 우리가 어떤 반정부적인 발언을 하 더라도 개의치 않으며, 우리를 변절자나 혁명을 꾀하는 사람들로 보지 않으리라 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우주선 선원들이 변절하거나 혁명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30대 이하인 사람 들^36^스무 명의 선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인원^36^은 모두 혼혈이었던 것이다. 혁명이 있기 전인 구시대였다면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었을 것이다. 우주선에 있는 관리들 가운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퇴역 혁명군이었 다. 우리들은 아마도 스트리옙틴이 여지껏 보아온 정치적 프로필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한 프로필을 소지한 사람들이 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 비행을 하 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 @p 31 두 친혁명파이어야만 했다. 혁명은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인 와코펨 조모스 호의 탐사가 실패하고, 왕립 학회가 우리를 다른 별로 인도할 수 있는 탐사가 실패하 고, 왕립 학회가 우리를 다른 별로 인도할 수 있는 영점 에너지 레이저 엔진의 발견을 덮어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발발했다. 따라서 우주 계획을 지지하고 있다 면 혁명을 지지하는 것이 된다, 혁명이 없었더라면 우주선 따위는 없었을 것이 다. 이곳 선원들은 모두 우주선, 특히 최초의 진정한 행성간 임무를 실행하게 될,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에 탑승하기 위해 최소 10년 이상 훈련을 쌓은 사람들 이다. 반혁명적 기질을 띄고 있는 사람이 발견된다면 모두들 그 사람들 당장 정 치관 손에 넘겨 줄 것이다. 며칠 간 휴식을 취하고 난 뒤 선장은 세트포스의 중력과 똑같은 표준 중력 88 퍼센트의 수준으로 가속을 올렸다. 우리는 광속의 98페선트가 넘는 속도로 비 행하던 상태였기에 가속을 중가시켰다해서 절약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속력 에서 가속은 거의 질량에 관계된 문제이다. 즉,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물체의 질 량이 점점 무거워지는데, 고아속에 거의 근접한 상테에서는 속력을 아주 약간만 증가시킨다 하더라도 우주선의 질량은 상당히 무거워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 주선 안에서는 그런 변화를 느낄 수없다. 우주선 내부에 비례한 우리의 질량은 늘 일정하다. 외부에서 우리를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질량이 커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광속에 근접하면서 질량이 증가하자 우주선 내부 시간은 느려졌다. 속력을 조 금만 증가시켜도 광속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됐고, 우주선 내부의 시간은 느려 졌다. 우리는 속력을 계속 증가시키는 상태였고 우리는 여행을 점점 짧게 느꼈 다. @p 32 고가속이 막 끝났을 무렵은 우주선의 하루는 본국의 6일 반에 해당했다. 최고 속력으로 접근하고 있는 현재, 우주선에서의 하루는 본국의 8일에 해당됐다. 그 러나 이상한 것은 이 사실을 직접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계만 그렇게 바뀌 는 것이 아니라 심장의 박동, 눈을 깜빡이는 속도, 사물의 움직임 따위가 모두 바뀌기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체크해 볼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단, 인공적으로 만든 장치가 있다면 가능하기 때문에 조종실에 있는 시계는 본 국의 날짜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시계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지 만, 그외 다른 부분에서 우주선은 일상적인 훈련을 행하고 있던 때와 다름없었 다. 우리는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20분의 7시간에 일어나면 본국은 3일하고도 5 분의 3시간이 지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계 또한 본국의 시간을 정확히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 결과 측정된 시간을 표시하는 것 일 뿐이었 다. 가속 때문에 우리 생활이 편해진 점이 있다면, 가속은 마치 중력처럼 느껴쪘 고, 중력은 편리한 것이었다. 중력은 식탁 위의 음식을 고정시켰고, 서류는 쌓아 놓은 자리에 가만히 있게 했고, 칼슘은 뼈에, 몸은 침대에, 조직액은 있던 자리 에 고정되었다. 우주선의 동력은 영점 에너지 때문에 여분이 많이 생겼다. 특히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와 같이 작은 우주선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따라서 몇 십 년 전, 와코펨 조모스 호가 우주선 자체를 회전시킨 것보다 훨씬 쉽게 엔 진을 중력의 88퍼센트로 가동시킬 수 있었다. 8주가 흘렀다. 우리가 느끼기엔 반 년 정도 지난 것 같았지만, 조종실에 있는 시계를 보면 우리는 몇 년 동안 여행을 한 상황이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 았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지금보다 @p 33 덜 압축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탐사기들을 모두 준비할 수 있을지조차 의 문이었다. 탱크로 다시 들어가기 며칠 전부터 나는 수면과 식사를 모두 포기하 는 상태에까지 도달했다. 재베스 선장은 이 사실을 눈치챘다. “세타키서스, 좀 쉬면서 하시오.” “알겠습니다. 선장님. 탱크 안에서 잠을 푹 자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탐사기 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준비된 탐사기가 얼마나 되지?” 배제스 선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11대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선장님. 하지만 이 11대 가운데 4대는 로버이며 ….” “그럼 두 대의 로버를 작동시키게. 내일 하룻밤 동안 푹 자고 난 다음에 말 이네. 이건 명령이야.” 그 일은 별로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잠자리에 든 뒤 다시 일어나 두 개 의 로버를 작동시켰다. 탱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지난 번보다 휠씬 끔찍했다. 그 이유은 첫째는 우 리들 모두 무엇 때문에 탱크에 들어가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처음 발사 당시보다 더 높은 속력에서 감속을 시작하기 때문에 더 오랬동안 탱크 안 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 오랫동안이라고 해야 하루하고 반 나절이지만, 어쨌든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압력으로 인한 욱 신거림과 기타 통증이 가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몸을 움직였다. 우리 가 탱크 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 우주선은 자동으로 탐사기를 발사했다. 탐사기 는 우리보다 고감 @p 34 속을 잘 견딜 수 있기에 우리보다 먼저 쿠사펙스계로 접근하여 '발사식' 영점 에너지 로켓으로 감속한 뒤 44년 전 와코펨 조모스 호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제 동을 할 것이다. 와코펨 조모스 호 선원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놓고 수많은 억측이 난무했으나 모두 다 그럴 듯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락은 뜸해졌고 그들과의 연락을 담 당하던 황실 관리는 예산을 삭감하고 또 삭감하여 정치 자금으로 점점 더 많은 예산을 돌렸으며, 종종 수신된 8주 분량의 데이터 기록을 잊은 채 방치하는 경 우도 있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그 무렵(사실 세트포스에서 니수로 메시지를 송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년이 걸린다) 데이터에는 엄청난 공백 이 생겼다. 와코펨 조모스 호는 세트포스 궤도 진입에 성공했으며, 어느 지점인가에 착륙 을 시도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사실 이외에도 몇 개의 데이터가 있었 지만, 쓸모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착륙지를 찍은 사진 가운데 단 세 장만이 데이터베이스에 간신히 저장되어 있었다. 문서 목록 디렉토리를 보면 와코펨 조 모스 호의 승무원들이 착륙지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데이터를 송신한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사진은 엉성한 형태의 마을을 아주 멀리서 찍은 것처럼 보였고, 탐험대들이 도착하기 전에 찍은 것으로 시간과 날짜가 분명 잘못 적힌 것 같았다. 어쨌든 그들에겐 보다 적합한 조립식 보금자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재료로 그런 마음을 세웠을 리가 없었다. 마음은 세트포스인들의 세운 마을이고, 그들이 착륙하려던 구릭스를 추락시켰 을 것이라고 추측할 떼, 사진들은 미적 재능이 뛰어난 프리캄이 만들어낸 시뮬 레이션이리라는 설명이 가장 그 @p 35 럴 듯했다. 아마 그녀는 최초의 이주민들이 건설함직한 식민지를 스케치했으리 라. 그리고 그때 구릭스가 폭파됐고, 와코펨 조모스호는 구릭스의 모든 데이터와 함께 이 수수께끼 같은 사진들을 니수로 전송한 것이리라. 이 추측의 문제점은 와코펨 조모스 호가 탐사기로부터 계속해서 데이터를 전 송받았다는 것과 몇몇 탐사기가 몇 년 동안 계속작동 했다는 것이다. 착륙지 근 처에는 탐사기가 단 하나밖에 없었고, 탐사기는 구릭스가 착륙하고자 했던 부근 의 언덕들을 돌면서 사막, 강, 숲 등의 사진만을 찍어 보냈다. 하지만 한 사진은 달랐다. 길다란 막대를 들고 있는 네 사람이 사막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탐사 기로 접근하는 듯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었다. 사진을 컴퓨터로 확대해 보니 ^36^개인적으로 나는 확대 뒤 사진이 더 흐릿하게 됐다는 생각이지만^36^그 사 람들 가운데 한 명은 증기총을 들고 있는 슐라스인임이 밝혀졌다. 이 것이 탐사 기가 보낸 마지막 사진이었고, 조종실에서는 당연히 그 사람과 폭파 뒤 살아남 은 승무원으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게 됐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 지만 증기총을 들고 탐사기로 접근하게 됐다는 것이다. 확대한 사진을 보아도 그 사람들 가운데 니수인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또 하나 이상은 데이터는 와코펨 조모스 호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구릭스는 착륙지에 계속 머물러 있었고, 그 지역에서 거의 1년 동안 여섯 번이나 와코펨 조모스 호로 돌아왔었는데, 누군가가 꾸미기나 한 듯 갑자기 구릭스가 우주 어 디에선가 믿을 수 없을 만한 속력으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시간이나 날짜를 기록하는 기기를 맏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 다. @p 36 우리의 탐사는 서두에 불과했다. 국민 우주 탐사 재단은 탐험 우주선을 아홉 대나 더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우주선 가운데 마지막 우주선이 우리가 니수에 도착할 무렵, 즉 니수 시간으로 치면 10년 뒤, 우주선 시간으로 치면 2년이 못 되는 시간 뒤 발사 될 것이다. 우리는 습격자들의 3차 공격으로 나라가 쑥밭이 되기 전에 이 주지 탐사를 마 쳐야 했다. 황제들이 낭비한 수십년의 시간 때문에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이상 한 이야기지만 와코펨 조모스 호의 탐험이 우리를 살렸다. 그 머나먼 우주 여행 ㄸㅒ문에 중력 탐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적합한 거주지 가 세 군데나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말이다. 탱크 생활을 마쳤을 무렵 우리는 세트포스로부터 8일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 고, 탐사기는 궤도를 그리고 있거나 착륙한 뒤였다. 내게는 영상을 보고 주목할 만한 것이 있나 살피라는 임무가 내려졌다. 나는 화면을 빨리빨리 넘겨 탐사기를 통해 보이는 영상으로 단박에 넘어가버 릴까 하는 충동을 느꼈지만, 마음을 바꾸어 예전에 작성해 놓은 프로토콜, 즉 탐 사기 데이터 가운데 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진들^36^예전 와코펨 조모스 호 탐사 기에서 얻어낸 데이터 분석 결과와 가장 거리가 먼 그림들^36^찾아내는 프로그 램을 시작했다. 첫 번째 사진 때문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높다란 나무에서 가 지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찍은 사진이었던 것이다. 소형 카메라 탐사기가 가 지에 걸려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에 찍힌 사진이 분명했다. 나는 다음 사진으 로 클릭했다. 이것은 광활한 평지 바로 위에서 평지와 멀리 보이는 산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구름층 아래로 내려간 탐사기가 보낸 유일한 사진이었다. 탐 @p 37 사기가 산속 호수로 떨어졌는데 바닥으로 가라앉은 채 지나가는 물고기떼들을 열심히 찌고 있을 테지만 수중에 있기 때문에 전송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을 금새 깨닫을 수 있었다. 사진에 이제 한 장밖에 안 남아 있었지만, 작동 중인 로버가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화면으로 띄웠다. 나는 오랬동안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 사진을 해석 완료된 데이터로 만들어 버렸는지 살폈다. 그럴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는 용기를 내 통보기를 클릭했다. “여기는 세타키서스 선장보, 배제스 선장님과 스트리옙틴 정치관께서는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께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그들은 즉시 도착했다. “선장님, 그리고 정치관님, 이것은 탐사기가 찍은 이상 사진입니다. 실제 사 진임을 제가 확인했구요. 두 분께서 이 사진에 대한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 다.” 화면 위에선 두 사람을 찍은 짧은 영상이 보였다. 로버는 나무밑 짙은 그늘 속에 있는 것이 분명했고 다른 광도를 찾느라 펑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으며 어둡던 두 사람이 갑자기 또렷하게 보였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여자였고, 니수인이었다. 그리고 혼혈인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와코펨 조모 스 호의 선원이기엔 너무 젊었다. 나는 잠시 동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이상한 감정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다가 그녀가 예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왼쪽에 있는 사람은 설명이 불가능했다. 심한 기형 니수인일수도 있고, 이 지 역에 사는 동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목에 가죽끈으로 구형 통보기 를 달고 있었다. 구릭스에 달려 @p 38 있었음직한 것으로, 니수의 박물관에 있는 것과 같았다. 로버를 보며 두 사람이 재잘대는 가운데 몇 마디가 튀어나왔다. 분명 그녀는 ‘탐사기’, ‘카메라’, ‘와코펨 조모스 호’라는 단어를 썼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외 다른 말은 내가 알아들을수 없는 언어였는데, 그 옆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친구도 똑같은 언어로 답했다. “내 생각에는 역사책에 자네 이름이 기록될 게 확실해진 것 같군.” 배제스 선장이 입을 열었다. 스트리옙틴핀도 맞다는 몸짓을 보였다. “자넨 적어도 우리가 돌아갈 때 쯤이면 특별 진급할 거야. 동일 로버가 찍은 다른 사진 없나?” 다른 사진은 없었다. 이전의 와코펨 탐사기가 그랬던 것처럼, 흥미로운 사진 단 한 장을 찍은 뒤로 완전히 송신을 중단했다. “선장님, 다른 로버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밤 늦게까지 작업할 것을 허락해 주십시요.” 으스대는 투로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가 말했다. 선장님은 두말할 나위 없이 승낙했다. @p 39 타이버인을 찾아라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를 세트포스 위로 안착시킬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배기 가스 분출 지점을 맞추는 일이었다. 선장보인 나는 승선한 다른 두 보조 선원보다 계급이 위였기에 이 첫 단계를 책임지게 됐는데, 위험하지 않은 일이었다면 크나 큰 영광이 될 수도 있는 일이 었다. 여전히 태양 속도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비행하면서 중력의 88퍼센트 수준 으로 속력을 낮추어 쿠사페그계로 진입하였고 창고에서 분사기를 꺼내 첫 단계 작업을 시작했다. 분사기가 없이는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를 세트포스에 착륙시킬 수 없었 고, 착륙선으로 궤도 진입과 이탈을 해야 한다면 조작이 매우 복잡할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엔진은 세트포스의 중력에 저항할 때 필요한 것보다 몇 배 더 많 은 추진기를 발사해야 했고 행성의 대기권 밖에서 추진기를 달아 공기 과열로 인한 동요를 @p 40 막기로 했다. 하지만 대기권 밖에서 우주선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 할지라도 과열은 커다 란 문제였다. 우주선 엔진은 영점 에너지 레이저였고, 우주선을 이 상태로 유지 시키는 데 필요한 추진기는 행성 표면을 겨냥한 채 전원을 켰을 경우 바위를 폭 파시켜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결국 우리는 말 그대로 광선 위에 서 있는 셈이니까). 우리가 어디쯤 떠 있든 그 아래가 마른 땅이라면 삽사간에 거대한 화산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분사기는 광선을 널리 퍼지게 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에너지를 없애버릴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분사기를 사용 가능한 상태로 만들기까지는 꼬박 3일이 걸렸다. 고국에 있는 국민 우주 탐사 재단은 완벽한 분사기가 통과할만한 문이나 완벽한 상태로 문을 통과할 수 있는 분사기를 마련 해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우주 안에서 부품들을 점검하여 조립해야만 했다. 이 작업은 물론 아무런 불평없이 진행됐다. 일단 고 국으로 돌아간 뒤 스트리옙틴이 기억을 해낼지 모르는 일이었다. 세트포스에서 시간상으로 5일쯤 떨어져 있는 시점에서 세 부분의 작동이 원할 하고 서로의 접합이 가능하게 되자 선장은 반양자 분무기를 켰다. 그리고 니수 에서 이곳까지 우주선을 끌고와 세트포스계로의 진입을 담당했던 영점 에너지 레이져를 껐다. 갑자기 가속이 0이 되면서 우리의 무게 또한 0이 되었다. 분사기를 정위치시키기 전 보조 승무원 세 사람은 선장을 만났다. 선장은 이 임무를 맡게 된 것은 ‘역사상 가장 빠른 우주 유영의 기록을 수립하게 되는 것 ’이라고 말했다. “자네들은 보호해 주는 기기가 제대로 작동할 줄로 믿네만, 사실여부는 이제 부터 밝혀지겠디. 적어도 현재, 하루의 마지막 10 @p 41 분의 1을 남겨놓은 시점까지 자네들을 다치게 할 만큼 커다란 물질이 우주선에 부택친 적은 없네.” “하지만 감마선이 있습니다.” 베펨과 나도 생각하고 있던 바를 크루릭스가 꼬집어 말했다. “하지만 감마선이 있지. 그렇지만 산산조각으로 폭파되는 것에 비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셈이지.” 지금은 광속에 휠씬 못 미치는 속도로 비행하고 있지만, 우주선의 속도가 매 우 빨랐기 때문에 ^36^현재 증기총이 발사하는 총알속도의 1만 배 정도^36^먼지 덩어리라 할지라도 우리를 두 쪽으로 가라놓을 수 있었고, 지금 새로운 쿠사펙 스계로 진입함에 따라 우주선 밖의 먼지는 점점 두터워졌다. 우주선 안에 있으면 우리는 감속 배기 장치의 보호를 받았다. 영점 에너지에 닿는 먼지는 산산조각이 나거나(어두운 경우)엄청난 속도로 우 리에게서 멀어졌다(반사가 되는 경우). 멀어져 가는 물질들 때문에 시야가 깨끗 이 청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밖에서 레이저를 켠 채로 작업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달려 드는 먼지를 맞아주는 보호 장치가 없었다. 사실상 선장은 우주선의 일부분을 거꾸로 돌려놓아 우리가 다시 가려는 방향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가속의 몇 년이 걸리돈 시절 우주선 보호용으로 사용하던 반 양자 문부기로 우주선을 보호하게 되었다. 반양자 분무기는 자기 코일 안에 있는 길다란 튜브로 우리 앞쪽을 바라보고 있 다. 우주선에 달린 쪽은 거대한 음극으로, 반대쪽은 거대한 양극으로 되어 있다. 튜브 속으로 분무된 음극으로 반대쪽은 거대한 양극으로 되어 있다. 튜브 속으 로 분무된 음극인 반양자는, 빠른 속도로 음극을 띄고 있는 우주선에서 멀어져 자기 장선을 통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양극으로 다가간 뒤 광속 @p 42 에 가까운 속도로 우주를 향해 발사된다. 반양자가 하나라도 먼지 덩어리와 부 딪치면 반물질/물질 작용으로 방출된 에너지 가운데 일부가 먼지 덩어리에 전달 되고(바위 옆에 떨어진 폭탄처럼), 먼지 덩어리는 우리가 있는 쪽의 반대 방향으 로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폭파 방향’은 늘 우리 쪽이 므로). 문제는 에너지 가운데 일부가 먼지 덩어리에 전달되는 반면, 에너지의 대부분이 감마선이 된다 는 것이었다. 외부 작업을 하는 우리들은 우리와 반양자 분무기 사이에 있는 우 주선과 더불어 평균 우주 항해사 조사 적량보다 휠씬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 되는 것이다. “ 때문에 잽싸게 작업을 하라는 것이지, 우주복이 보호를 좀 해주긴 하지만, 우주선 안에 있는 것만큼은 못하지. 그러니까 신속하게 작업을 완료할 것. 돌아 가는 길에 암환자를 돌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그리고 모두 살아 돌아오도 록.” 배제스 선장은 벌써 수십 번째 이 말을 했다. “네, 선장님.” 우주 비생사보인 베펨과 함께 내가 외쳤다. 그리고 엔지니어보인 크루릭스가 덧붙였다. “저희들도 그러고 싶습니다.” 간단한 명령을 하달받을 때만다 꼭 농담을 하는 크루릭스와 선장은 늘 부딪쳐 왔기 때문에 베펨은 ‘사사전건 크루릭스 트집잡기가 또 시작되겠군요’하고 말 하고 싶은 듯 하는 옆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선장은 기분이 좋은 상태였는지 아 니면 이 상황에 유머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우리 모두 의견 일치를 본 것이로군. 그럼 좋다, 임무 완수하도록.” 분사 코일은 울퉁불퉁하게 말려 있는 초전도 전자기에 불과했 @p 43 다. 우리들은 각각 두루마리의 3분의 1씩 가지고 나가 서로 연결시킨 뒤 레이저 의 틈에 설치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반양자 반응으로 인한 감마선이 우주선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 우리 옆 쪽에서 발생할 것이다. 크루릭스는 가끔 짜증나게 하는 타입이었지만, 무중력 상태에 금방 적응하여 작업 속도가 빨랐다. 베펨과 나는 그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예상 시 간보다 빨리 조립을 끝낸 뒤 분사기를 설치했다. 체크리스트를 재빨리 실행시켜 보고는 제대로 작동된다는 신호가 나왔다. “세타키서스, 하늘을 보세요. 우주선 위 쪽 말입니다.” 크루릭스가의 말이 헬멧 라디오를 통해 지직거리며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잠시 동안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별들과 우주선 옆에 서 가장 밝게 빛나는 쿠사펙스 밖에 없었다. 잠깐씩 명멸하는 불빛도 보였는데, 그 순간 우주선 앞 쪽에서 왕관 비숫한 모양으로 춤추는 광선들이 눈에 들어왔 다. 베펨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양자 분무기에 부딪친 먼지 때문에 생긴 것일 겁니다. 반물질 작용 때문 에 먼지 알갱이가 불타오를 정도로 가열되는 것일지도 모르구요.” “그 말이 맞는 것 같군. 불빛이 한쪽 끝은 청백색이고, 다른쪽 끝은 주홍색인 것을 보니 말야. 밝은 빛은 가까이에 있는 것일 테고, 희미한 빛은 더 멀리 있는 것들일 테지, 그리고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 보면, 파란 쪽은 가운데를, 빨간 쪽 은 바깥 쪽을 향해 있는 것일 테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눈이 적응된 상태에서 보니 불빛은 수백 개였다. @p 44 "정말 아름답군요.“ 크루릭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개요. 이런 광경을 보게 돼서 기쁘지만, 불빛 하나하나가 다량의 방사선 을 유출하는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죠…. 이런 작용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다 파란색 끝이 상당수 보이는 것을 보니^36^눈에 보인다는 것은 우리에게 방사선을 쪼일 수있다는 뜻이죠. 먼지끼리 의 충돌만 눈에 보이는 것일 지도 모르구요^36^ 먼지 불꽃 하나마다 원자간 충돌이 수백 개는 될 것이 분명하고 불꽃 하나하나 가 심한 방사선을 방출하겠죠. 아름답긴하지만 어서 빨리 귀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에 취해 있던 우리는 베펨의 말에 귀선을 생각했다. “그러죠.” 약간 실망한 목소리로 크루릭스가 말했다. 비행 가운데 처음으로 나는 그를 동정하게 되었다. 미세한 털이 달린 수천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꽃처럼 가운데는 파랗고 바깥 쪽은 빨간 것이 내가 보기에도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우주선으로 돌아와 모든 도구들을 챙겨 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외부 기갑문을 닫았다. 압력이 돌아오자 우주복을 누르는 힘이 느껴졌고, 안쪽 문이 열렸다. 옷을 벗는 동안 우주선이 움지이며 비틀거렸고, 선장이 우주선을 다시 감속 상태로 돌려놓았다. 보고하러 우리가 조종실로 갈 무렵 그는 이미 분사기 를 실험해 보고 완벽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 세트포스로부터 고작 하루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모두 심한 멀미에 시달렸 다. 궤도 이동은 보통 부드럽게 이루어지지만, 우리는 세트포스 주변 궤도로 진 입한 것이 아니라. 세트포스가 쿠사펙스 주변을 도는 궤도로 합류하고 있었는데, 너무 가까이 다 @p 45 가간 나머지 세트포스의 중력이 우주선의 동작을 심하게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따라서 세트포스(그 달도) 중력과의 상호 작용은 우주선의 가속을 부드럽게 변 화시키지 못했다(우리는 그런 것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는 레이저 배기 관이 어떤 표면을 건드려 폭파시키지 않도록 우주선을 앞뒤로 흔들어댔다. 따라 서 가속도가 0에서 거의 완전 중력까지 급속히 왔다갔다 해서 우주선은 사나운 파도에 휩쓸리는 배처럼 흔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엄추었다. 이갤리ㅌ리언 리퍼 블릭 호가 좌우로 흔들리며 앞으로 돌진했다 뒤집혔다 하는 동안 우리는 이리저 리 내동댕이쳐졌는데, 어느 순간 행성에 착륙이나 한 듯 느껴졌다. 멀리 봉투에 쳐박혀 있던 머리를 들어보니 창문 너머로 세트포스의 넓은 표면이 보였다. 베 펨과 나는 얼른 얼굴을 씻고 주전망실로 달려갔다. 마지막 착륙 단계는 선장, 제 1선장 부관, 엔지니어, 조수 엔지니어 담당이써기 때문에 우리는 할 일이 없었 다. 크루릭스는 엔진실에서 살펴보라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짜증날 일도 없었 다. 주전망실에는 우리 말고 스트리옙틴 정지관이 있었다. 그는 오늘 아주 부드러 운 얼굴이었다. 게다가 우리와 입씨름을 벌일 만한 문제도 없었다. 우리를 보더 니 커다란 화면 옆,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며 아주 우아하게 손짓했다. 그렇게 대지가 많은 세상이 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가장 대지가 많은곳, 가장 큰 대륙인 빅과 후크가 연결되어 있는 지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트리옙틴이 화면 하나를 가리켰다. “자네들이 분사기를 깔끔하게 달아놓은 게 보이지 않나?” 우리는 구릭스가 착륙했음직한 지점(우리에게 있는 단편적인 기록이 정확하다 는 가정하에)인 신비의 마음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 @p 46 가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전망선 라디오를 통해 우주선에서 직접 로버를 조종 하여 착륙선이 착륙하기 전 주변을 철처하게 둘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도 그 지점의 동쪽에 영점 에너지 레이저를 겨냥할 수 있을 만큼 깊고 큰 바다 가 있었다. 이제 넘실대는 커다란 구름떼가 강력한 레이저 때문에 햇빛 속에서 도 밝게 빛나는 모습이 보였다. 깃털처럼 빽빽한 구름떼는 레이저를 벗어나 대 지를 향해 천천히 동쪽으로 이동했다. “며칠 내로 큰 비가 내리겠군요.” 스트리옙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수인들이 살고 있는 강 상류에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우 리가 여기 이렇게 있는 동안 몇몇 호수는 넘칠테고, 산꼭대기에는 눈이 더 쌓이 고, 강은 좀더 빨리 흐르게 될 테니말일세.: 영점 에너지 레이저를 처음 그 지점^36^크기가 본국에 있는 커다란 도시만 했 다^36^에 겨냥했을 ㄸㅒ는 물이 몸길이의 여섯 배 되는 깊이만큼 끊어올랐는데, 빽빽한 구름 때문에 대부분의 열기가 물 표면에 끊임없이 데워지고 있는 거대한 증기 덩어리 덕에 멀리 사라졌다. “우리가 그들의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신만이 아시겠지요.” 베펨이 말했다. 그녀는 정치관 앞에서 구종교를 입에 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 이맛살을 찌푸렸다.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트리옙틴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낮에는 이주지에서 그런게 보일지 모르겠군. 밤이면 당연히 @p 47 보이겠지만…. 글쎄, 아래에선 어떤 사람^36^아니면 어떤 동물^36^살고 있는지 모 르겠지만,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을 걸세. 그게 어떤 일인지는 모르더라도 말이지.“ “세타키서스 선장보, 조종실로 응답하라. 로버를 가능한 한 빨리 작동시키고 자 한다.” 통신기를 통해 배제스 선장이 말했다. “네. 선장님.”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서둘러 조종실로 갔다. 조종실에 도착해 보니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입씨름의 절반 정도가 크루 릭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놀라운 것은 그 엔 지니어장인 아지어와, 선장 앞에서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크루릭스 는 보통 아지어를 숭배했고, 군소리 없이 복종했었는데 말이다. 나는 사람드르이 눈에 띄지 않게 살그머니 조종실로 들어갔다. 조종실에는 좌석이 여덟 개인데, 현재 다섯 사람 밖에 없었기에 나는 유틸리티 콘솔 옆 자리에 앉아 잠자코 있었다. 크루릭스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면 말했다. 사실상 평정 유지는 실패하고 있었지만. “하루나 이틀 정도 우주선을 궤도로 진입시켜 하루 동안 자유낙하하면 철저 한 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다지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우주선이 난파되는 것에 비하면 말이죠.” “반응 그래프의 오차가 허용 범위 내에 있는데도 반응 그래프를 믿을 수 없 다니 그 번거로움을 다 감수하겠다는 말인가.?” 아지어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회의적인 태 @p 48 도가 역력했다. 1등 항해사인 베레맘은 말다툼을 줄기고 있는 누치로 입도 벙긋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내게 보낸 조용한 몸짓으로 미루어볼때 그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크루릭스가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가 바보가 되는 꼴을 가만히 지 켜보겠다는 의사가 역력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늘 그랬듯이 심사가 복잡해졌다. 보조선원장을 맡 고 있는 나로서는 다른 두 보조 선원들이 하는 행동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 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뚱딴지 같은 소리를 고집하는 크루릭스 때문에 몹시 당황했다. 하지만 동시에 크루릭스는 우리 일원이었기에 그가 우주선이 폭 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어떤 엉뚱한 근거에서든지), 그의 생각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때문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까 생각 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행히도 배제스 선장은^36^크루릭스를 좋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지만^36^분별 력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어떻게 하면 크루릭스를 쫓아버릴 수 있을까 하는 내 고민을 덜어주었다. “크루릭스, 이유를 말해 보게. 자네가 걱정하는 이유 말이야.” “그러니까, 기분적인 문제입니다. 영점 에너지는 원자 반경의 스무 배 정도 떨어져 있는 충전판들을 원자 반경의 몇 배 정도로 가까워지게 미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그 공간은 레이저를 쓸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가 모두 레이저 광선 으로 변하면서 우주선을 움직이는 것이지요.” “우주선 설명을 해 주셔서 대단히 감하합니다. 선생. 정말 교육적이었습니다. ” 베레맘이 너무나도 빈정대듯 말했기 때문에 크루릭스는 잠시 @p 49 위축되는 듯했다. 하지만 아지어가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크루릭스는 지금 물리학적인 논리의 근거를 설명하고 있는 것같군요. 조만 간 본론을 이야기하겠지요.” 크루릭스는 침을 꿀꺽 삼킨 다음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동력을 계속 공급받으려면 이 충전판을 매우 빠르게 진동시켜야 합 니다. 빠르게 진동시켜면 시킬수록 충전판은 더욱 가까워지고, 단위 시간 당 더 많은 레이저가 방출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추진력을 증가시키려면 충전판을 더 욱 빠르게 회전시켜야 합니다. 비생선을 움직이는 동안 저는 일상적인 점검을 해 보았는데, 진동의 속도를 변화시켰을 때 변화 형태가 예정과 다른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충전판은 변화 전 속도로 좀 오랫동안 계속 진동을 하다가 갑자기 새로운 속도로 진동을 시작했고, 그 사이엔 1∼2초 정도의 혼란이 있었던 겁니 다. 화면으로 보여드릴까요?” “그러게.” 베제스 선장아 말했다. 크루릭스는 자신의 콘솔로 가더니 몇 번 클릭했다. 공동 화면 위로 두 개의 그래프가 나타났다. “보이시죠? 전형적인 붕괴 양상을 띄고 있는 왼쪽의 완만한 그래프가 어제까 지의 모습입니다. 들쭉날쭉 했다가 조그맣게 ‘윙’하는 소리를 내며 고르게 변 하는 것이 오늘 모습니다.” 1등 항해사인 베레맘은 웃음을 거두고 좀더 앞으로 다가갔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음, 제가 추측한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충전판의 진동은 추나 물결, 스프 링에 맞고 튕겨나오는 분동처럼 단순한 진동자와 비슷합니다. 다른 진동자의 경 우 끈끈함의 정도에 따라 진동 형태가 변합니다. 즉, 추에 달린 추축이 얼마나 끈적끈적한가, 추 @p 50 가 통과하는 물질이 얼마나 두꺼운가, 물이 얼마나 끈끈한가, 스프링의 유연성이 얼마나 되며, 단위 에너지 당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되돌려주는가 등등 말입니다. 따라서 추측해 보면 충전판의 안이나 그 충전판들을 잡고 있는 초전도 자기 부 양물 안의 무엇인가가 변한 것 같습니다. 고가속이 진행되는 몇 년 동안 변화가 없었는데 말입니다^36^만약 변화가 시작됐다면 높은 가속을 오랫동안 견디는 엔 진을 실험해 보지 않았기에 충전판이 한데 뭉치거나, 서로 멀어지거나, 아니면 진동을 멈출 가능성을 베제할 수 없습니다. 그 상태로 고정된다면….“ “아, 그래도 상관없네, 충전판을 분리시키고 진동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비 상 보조 장치가 있으니까. 추락하는 몇 초가 아주 길고 무섭게 느껴지겠지만, 엔 진이 복귀되면 괜찮아.” 아지어가 말했다. 그녀는 확실히 안심하는 눈치였다. 크루릭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그렇죠. 하지만 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 봤습니다. 비상 분리 장치가 가동되려면 시간이 얼마간 소요됩니다. 그 시간이면 우리는 세트포스의 최초 대 기권 안으로 진입한단 말입니다. 일단 진입하고 나면 1중력이 조금 넘는 속도로 가속해야 지상과의 충돌을 막을 수 있는데, 그 정도의 힘으로 엔진을 가동하게 되면….” 그는 콘솔을 다시 한 번 클릭했다. “그 정도의 힘을 대기권으로 발산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나타내는 적외선 그립입니다.” 초가열된 엄청난 부피의 공기가 지상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위로 속구치는 그림이 보였다. 재베스 선장이 동의하는 뜻을 나타냈다. @p 51 "폭파 규모가 얼마나 되지?“ “대형 수소 융합기만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와 상관없이 일어 나죠. 지금 여기, 이렇게 위에서 보면 볼만한 장관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 기권 안으로 진입하고 난 뒤라면 바로 옆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 온도며 압력이며 가속은 이 우주선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휠씬 능가할 겁니다.” “그 때문에 우주선이 산산조각날 수도 있겠군.” 1등 항해사가 길다란 귀를 뒤로 잡아당긴 채 무슨 생각을 하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크루릭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준 것도 잘 한 거야. 그러니까 우주선이 탄도 궤도를 그리도록 만들어 엔진을 모두 끈 다음 분리기와 충전판을 모두 철저히 검사하잔 말이지? 그럼 문제가 해결되리라 는 의견에 나도 동의하네.” 배제스 선장은 크루릭스의 말에 동의하며 의견을 제시했다. “분명 가장 안전한 방법이 될 겁니다.” 아지어도 동의했다. 크루릭스의 어깨에 있는 골판이 긴장을 풀고 볏이 눕는 것이 보였다. 상사들 과 한꺼번에 입씨름을 벌이다니 분명 겁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용기나 지각력이 내게도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좋아할 만한 인 물은 못됐지만 쓸만한 인물은 되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트리옙틴이 들어오며 말했다. “착륙이 연기될 예정인가요? 아래 쪽에 있는 사람들 모두 무슨 일인가 하고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p 52 배제스 선장이 그를 쳐다봤다. “보조 선원 크루릭스가 우주선 내 중대한 결점을 발견하고 수리할 것을 제안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의논 중이죠.” 정치관은 다급하게 손짓을 했다. “폭파되는 건 아니겠죠?”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죠.” 배제스의 목소리는 딱딱했다. “우리에겐 맡겨진 임무가 있습니다. 아직 탐사를 시작하지 않은 겁니까?” 스트리옙틴이 지적했다. “안전이 확실해지면 즉각 시작할 겁니다. 지침에도 나와 있듯이 자기 방어와 무사 귀환이야말로 최우선이니까요. 지금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크루릭스가 했던 말을 휠씬 단순한 용어로 스트리옙틴에게 다시 설명해야만 했다. 설명을 들은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계획을 진행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주장 을 왜 그리 주요시하는지 모르겠군요. 보조 선원 크루릭스, 자네가 끊임없이 생 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변하는 발상이긴 하지만,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 습니다. 국민 우주 탐사 재단은 많은 오차를 두고 왕복 비행을 할 수 있도록 이 우주선을 만들었고, 우리는 지금 이 우주선이 비행할 수 있는 거리의 절반도 안 되는 거리를 비행했습니다. 따라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지요. 게다가 엄청난 거리를 비행해 이곳에 도착했는데, 선장께서 인정한 것처럼 엔진 은 지금 정상 가동되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이상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릴 명령은 분명한 것이지요. 즉시 @p 53 와코펨 조모스 호 선원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했나 조사에 착수하는 겁니다. 조 사가 끝나면, 니수 공화국이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해야 할 것인지 간단히 결정 을 내린 뒤 귀환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는 그걸로 끝입니다. 엔진의 정상 가동 유무를 살피는 것은 분명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할 일이니 선장께서 말 씀하신 검사는 출발하기 직전이나, 아니면 그 전에 시간나면 하는 것이죠. 지침 서를 살펴보면 이 사실이 모두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스트리옙틴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가슴이 무 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느 그가 자신과 관련된 한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 버 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배제스 선장은 한숨을 쉬었다. “자기 방어와 무사 귀한 또한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죠. 우리를 영점 에너지 레이저가 심각하게 ㅗ장났을 때를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레이저는 언젠가 고장이 납니다. 지금 고장이 났다면 쿠루릭스가 말한 것처 럼 우리 모두 죽었을것이라는 게 제 추측입니다.” 스트리옙틴은 의기양양하지만 유쾌하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내가 보기엔 선장이 원래 내려진 지침에 신경을 쓰는 게 근래들어 처음인 것 같군요.” 베제스 선장은 그 위협을 알아차렸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다만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가 본국에 충성하고 있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을 뿐이다. 스트리옙틴은 매우 기뻐하는 눈치였다. “당연하죠.” @p 54 의문 풀린 와코펨 조모스 호 인터폰을 통해 베펨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와코펨 조모스 호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원래 있어야 할 궤도에 있 습니다. 액세스 코드 또한 모두 정상입니다. 와코펨 조모스 호의 메인 컴퓨터에 서 모든 정보를 다운받을 준비가 완료 됐습니다.” 배제스 선장이 입을 열기도 전에 스트리옙틴이 송신기를 집어 들었다. “다운 받으시오. 그리고 착륙에서부터 모든 자료를 검색하여 무슨 일이 발생 했었는지 알아보도록.” 원래 그는 베펨이나 다른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으나, 분쟁이 있고 난 뒤 분명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 필요가 있었으리라. 공화국민으로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정치관과 말다툼을 하지 말라는 것이 다. @p 55 “알겠습니다.정치관님.” 갑자기 고분구분해진 목솔로 베펨이 말했다. “그리고 베펨의 보고를 기다리는 동안 말입니다. 선장님. 보조선원을 시켜 로 버를 착륙시킨 뒤 작동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엔 풀어야할 수수께끼가 있는데다 우릴 보낸 사람들은 수수께끼를 좋아하지 않지요.” 배제스 선장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으므로 나는 자리에 앉은 채 몸 을 돌려 유틸리티 콘솔의 전원을 켠 뒤 로버를 조종하도록 만들었다. “크루릭스, 엔지니어장께 더이상 자네의 도음이 필요없다면 날 좀 도와줬으 면 하는데, 이리로 건너올 수 있나?” “지금 당장은 크루릭스의 도움이 필요 없네. 일상적인 엔젠 점검을 하고 싶 으니까.” “엔진이 정상적인지 살펴 보도록.” 스트리옙틴이 말했다. “네, 정치관님.” 그녀는 그 자리를 뜨게 돼 기쁘다는 듯 잽싸게 사라졌다. 크루릭스는 유틸리 티 콘솔 앞 내 옆자리로 털썩 앉더니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스트리옙틴과 선장은 의논을 하기 위해 스트리옙틴의 방으로 건너갔다. 그 방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을 만큼 바쁜 것이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 다.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고 나니 베헤미 당직 조타수인 티식스와 우리 두 사 람을 지휘할 수 있는 조종실 지휘관 역할을 맡게 되었다. 크루릭스와 나는 둘이서 함께 원격 조종기로 로봇 탐사기를 조종해 본 경험이 많은데다 내가 일을 빨리 하기만 하면 그는 내게 말을 걸며 귀찮게 하지 않았 다.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탐사기를 @p 56 점검하고 준비하는 일에 전력했다. 이 탐사기는 보통보다 더 강력한 발전기-가 열 가스 로켓이 달린 반물질 주머니-를 장착시켰기에 필요시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그 결과 낙하산으로 착륙시킬 필요가 없었다. 지상까지 날아갈 수 있었 으니까. 크루릭스는 내 정신이 산란해지거나 내가 요청했을 때 내 임무를 떠맡을 수 있도록 뒤에 앉아 있었다. 지금과 같은 순간에 귀찮게 굴면 안 된다는 것 정도 는 그도 알고 있었다. “발사 시작할까요?” “발사 준비.3.2.1.발사.” 말단 캐터펄트가 로버를 행성 쪽으로 발사하자 발 밑으로 희미한 진동이 느껴 졌고, 로버가 멀어지자 나는 조종 장치를 점검해 보았다. 우리가 탑승한 것처럼 반응이 완벽했다. 이 임무는 궈도로부터 착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는 레이저 배기 가스에 의해 세트포스의 표면보다 안정적인 대기권에, 그러나 지구 정지 궈도보다는 낮은 곳에 머물러 있었기에- 티식슨느 위치 조정 분출구를 이용해 빅과 후크 사이의 바다 위 일정한 곳에 머 무를 수 있을 만한 속도로 우주선을 움직이고 있었다-엄청나게 높은 건물을 떨 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탐사기가 세트포스로 다가가는 속도가 빨라질 때마다 폭파물을 발사시켜 탐사기가 멈추게 만들었다. 때문에 탐사기 카메라를 통해 보면 이따끔씩 움찔거 리며 대지로 접근하는 것처럼 보였고, 탐사기 표면을 그다지 많이 가열시키지 않을 만한 속도로 대류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는 것 같군. 마을 북쪽에 있는 사막에 착륙시키실래 요? 제가 한 군데 정해 놓은 곳이 있는데.” @p 57 “어딘지 보여 줘.” 작은 탐사기를 현재의 위치인 표면과 대기권 사이에 머물러 있게 한 뒤 내가 말했다. 순간 아래 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카메라 한쪽 구석으로 녹색 점이 나타 났다. “좋았어. 저공 비행을 하면 세트포스의 눈에 띌 가능성이 있으니까 직하강하 도록 하지.” 나는 추진기의 방향을 아주 약간 바꾸고 조절판을 약간 연 뒤 아래 쪽으로 펼 쳐지는 경치를 돌려 추진기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한 뒤 멈추게 해 다시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만들었다. 눈금 상으로 볼 때 녹색 점은 바로 아래 쪽에 있었다. “정말 운전 잘하셨네요.” “단 한 번에 성공하시다니.”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크루릭스가 덧붙였다. “게다가 절 그 상황에서 빼내주셔서 감사 드리구요. 그 정치관이 왜 임무에 훼방놓느냐며 제게 정면 공격을 퍼부을까봐 겁이 났었거든요.” “그 사람은 자넬 칭찬했잖아.” 크추칙스는 발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럴 때가 위험한 때라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잖습니까.” 그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있었다. “아무튼 난 자네를 구하려고 한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감돌던 열기를 식 히려고 한 거야.” “준비되셨다면 탐사기를 착륙시키고 다음 작업에 착수하죠.” “그러지.” 이렇게 말하며 나는 조절판을 원래대로 조금 닫았다. 탐사기는 @p 58 아주 약간 속력을 내며 아래 쪽으로 움직였고, 내가 조절판을 조금 열자 사막 에서 손가락 두께만큼 떨어진 자리에 멈추었다. 나는 조절판을 잽싸게 0으로 만 들었고, 탐사기는 세트포스 표면에 내려앉았다. 재빨리 카메라를 돌려 살펴보니 주위는 대부분 낮은 언덕과 모래로 뒤덮여 있었고, 동쪽으로 높고 험난하고 숲 이 울창한 산맥이 뻗어 있었다. “됐어요.” 옆자리에 앉은 크루릭스가 말했다. “전 착륙선과 마은 위치는 이미 알고 있고, 그 중간 지역의 형태는 레이더 로 꽤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거예요. 언덕들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면 낮은 산 등성이가 나올테고, 산등성이 사이로 밭이나 그 사이를 흐르는 개울 같은 것들 도 나올 겁니다. 그러다보면 일하는 세트포스인들도 볼 수 있을 테니까 세트포 스인들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을 정도로 낮게 산등성이를 따라 이 쪽 저 쪽으로 움직이다 보면 강을 넘어 마을로 이어진 산등성이를 만날 수 있을 겁니 다.” “좋은 생각이야. 불필요한 카메라나 도구들을 움직여준다면 더 가깝고 낮게 낮 수 있겠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재배치했다. 나는 사막 표면에서 몸 하나정도 떨어지게 탐 사기를 들어올리고, 분사물 때문에 불이 나지 않도록 한 뒤 산등성이 선을 향해 움직였고, 크루릭스는 탐사 결과를 불렀다. “기온, 기압, 중력, 습도, 이 모든 게 다른 탐사기가 측정한 것과 동일합니다. 생물체 샘플은 꽃가루, 박테리아, 그리고 곤충을 두세 개 채집 중이구. 이 또한 다른 탐사기에서 얻은 결론과 마찬가지입니다. 특수복을 입지 않고서도 걸을 수 있을 듯합니 @p 59 다. 이 사실을 알면 상관들께서 기뻐하시겠군요. 다음 단계에 곧장 착수할 수 있 으니까요.” “그분들은 나름대로 임무가 있어. 그 임무를 완수해야 귀환하고 나서 좀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겠지.” 내가 새삼스레 일깨워줬다. “두 사람이 여기서 뭘 속삭이고 있는 거지?” 베레맘이 물었다. 그녀는 우리가 한 말을 이미 듣고, 해선 안될 소리라 여겼는 지-적어도 난동을 부리고 있는 정치관이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아니면 보조 선 원들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으니 의심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흙으로 뒤엎인 곳을 날 고 있는데다 잡다하게 해야할 일도 많고, 게다가 고도 비행을 하면 보다 적합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첫 번째 산등성이를 샅샅이 뒤졌고, 그 과정에서 만난 두 개의 발자국 을 무시했다. 대지는 더 울퉁불퉁했고, 숲은 더 빽빽했기 때문에 나는 더 높이 비행해야 했지만, 크루릭스는 세트포스인이 없다고, 적어도 카메라를 통해 보시 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잠시 위로 날아올랐는데, 원경 렌즈를 통해 밭 에서 괭이질하는 세트포스인 두 명이 보인다는 크루릭스의 말에 우리는 다시 고 도를 낮추어 미끄러지듯 나아가다, 잘린 무들이 있는 좁은 땅과 세트포스인의 손이 닿지 않은 듯한 지역과 마주쳤다. 우리는 나무 사이에 숨은 채, 우리는 산등성이와 그 안에 있던 작은 골짜기를 넘은 뒤 원하는 곳을 찾아 게속 뒤를 살금살금 기어가는 것을 반복했다. 족히 하루의 16분의 ㅂ시간을 들여 산등성이들을 몇 개 둘러보 @p 60 고 나자, 크루릭스는 다음 산등성이 너머에 마을이 있는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글쎄, 몰래 살펴보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걸.” 내가 말했다.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낙심한 채 눈에 띄지 않길 바라며 계곡 한 편에 앉아 있었는데, 발자국 세 개가 계곡을 향해 나있는 것으로 볼 때 조만 간 눈에 띌 것 같았다. “아무튼 한번만 제대로 둘러보자구. 산등성이 위로 날아오를테니까 해상도가 높은 사진을 신속하게 몇 장 찍을 수 있도록 카메라며 도구들을 준비하고 있도 록. 사진을 찍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르니까. 이 작업을 마치자마 자 즉각 비행을 시작해야 한다구.” 나는 땅에서 4분의 1몸길이 만큼 떨어진 채 살금살금 움직이도록 탐사기를 조 종했는데, 거의 산등성이 끝까지 뻗어있는 숲을 만났다. 그러자 나는 하늘을 덮 고 있는 나무들 사이 틈으로 날아 올라 산등성이를 건넌 뒤 다른 편에서 몸길이 두 배만큼 떠오른 채 재빨리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내 옆 다른 콘솔에서는 크루 릭스가 끙끙하는 소리를 내며 실제 훈련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사진을 찍 을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한번 그냥 둘러보고 났을 때 갑작스런 동작이 나타나 내 시선을 끌었다. 세트포스인이 탐사기를 향해 창을 던지고 있었다. 나 는 측면 분사기를 작동시켜 살짝 피했다. 세트포스인은 몸을 돌려 달아났다. “뒤를 쫓아요. 발각이 된데다 필요하면 꺼내 쓸 수 있는 에너지도 많잖아요. 그리고 저 사람이 누구에게 보고하는가를 보고나면 꽤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 을지도 모르구요.” 크루릭스가 말했다. @p 61 그럴듯하게 들렸다. 나는 추진기 위치를 바꿔 언덕 아래로 심하게 패인 길을 따라 달아난 세트포스인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옆눈으로 보았더니 크루릭스는 마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돌담으로 둘러싸여 안 쪽에 있는 커다란 건물과 탑, 그리고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바깥 쪽에 있는 오두막집들을 말이다. 수수께끼 같은 단 한 장의 사진에 있던 그 마을은 40년 전 모습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 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마울 정중앙, 가장 큰 건물 옆에는 와코펨 조모스 호의 착륙선 가운데 하나가 전소되어 있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계속해서 언덕 아래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 뒤 를 쫓으면서 다른 사람이 나타나 그를 도울지도 모르는 경우에 대비하여 옆 쪽 과 뒤 쪽에 달려 있는 카메라를 주시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옷을 많이 입고 있 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천은 달리는 동안 미친 듯이 펄럭였다. 지금 그는 최고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그를 비난할 수가 없었다.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세타키서스 보조선원장님. 이 마을은 놀라울 만큼 정리가 잘 돼 있습니다. 니수에서 20년 전 사람들이 최 초의 왕조인 크라레니를 발견했을 때처럼 완전한 석기시대 도시입니다.” 이젠 외로운 창잡이를 비교적 평탄한 밭 위에서 쫓고 있는데다 몇 초 동안 충 돌을 피할 수 있었기에 나는 크루릭스의 화면을 넘겨보았다. 화면에 비친 사진 은 본국에서 보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세트포스인 의 추적을 계속했다. 그는 길을 따라 작은 나무 울타리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울타리 안 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탐사기의 내부 오디오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 리가 들렸다. 나는 수정을 위해 @p 62 클릭한 뒤 카메라를 탐사기 외부로 돌렸다. 외부 오디오 장치 하나에 장식 달린 막대기가 꽂혀 있었다. 나는 순간 세트포스인의 무기에서 발사된 물건임을 알았 다. 막대가 두 개 더 날아왔다. 앞 쪽에는 뾰족한 돌이 달려 있고, 윗 쪽에는 균형 을 잡아 날아가도록 어떤 물건이 달려 있는 소형창이었다. 나는 재빨리 움직여 피했다. 이제 다른 세트포스인들이, 어떤 식으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창을 발사할 수 있는 장치임에 분명한, 구부러진 막대에 창을 꽂으며 우리가 방금 건너온 들 판을 가로질러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우리들 앞에 있는 작은 성채에서 스무 명이 더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창을 들고 있었다. “추락하기 전에 탐사기를 빼내는 게 좋겠어요.” 크루릭스가 말했다. 나는 미리 프로그램 되어 있던 명령어를 쳤고, 탐사기는 4 중력으로 날아올랐다. 아래 쪽을 비추고 있는 마케라를 통해 크고 작은 창들이 탐사기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들 호의적인 것 같지는 않군요. 그렇죠? 저들에게 접근할 때 꽤나 조심해야겠어요. 게다가 저 성채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세트포스인이라는 사 실이 마음에 안 드는군요. 저곳을 차지한 사람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거든요. 와코펨 사람들이 저곳을 점령했다면 니수인 관리가 나왔을텐데.” 나는 탐사기에서 손을 뗀 뒤 탐사기 스스로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로 돌아 오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가 조종하지 않아도 쉽게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자유 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자 나는 다른 보조 선원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로봇 탐사기에 벌어졌던 일들을 우리가 제대로 처리했다고 생 @p 63 각하나?″ 크루릭스는 그렇다는 몸짓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잖습니까? 그렇게 마주쳤던 순간 아시다시피 그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런 행동를 보인 것 같진 않았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탐사기를 에워쌌는지 보셨죠? 로봇은 자신을 향해 커다란 물체가 움직이면 피하 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엔 우리 친구들이 탐사기의 프로그램을 혼란시켜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손을 쓴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보고서에 기입하고는 말했다. “그렇군. 조만간 다시 한 번 시도해 봐야 할 거야. 보초병 뒤를 쫓는다고 해 서 제대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크루릭스는 한쪽 귀를 긁다가 볏을 열심히 문질러댔다. “우선 밤에 정찰을 떠나야겠죠. 모든 카메라에 적외선을 달고 불빛을 보이지 말아야 하며, 불꽃을 별로 내지 않게 아주 낮은 동력으로 이동하고, 오디오 장치 를 많이 사용해야 할 겁니다. 사람이 잠입할 때처럼 말입니다. 보초병을 거치지 않도록 직하강해 안으로 들어가고, 달이 없을 때 시도해야겠죠.” 우리가 현재 초승달이 가까워오고 있으니 가장 적기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 을 때 베레맘이 다가와 우리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하나씩 얹으며 말했다. “선장님께서 장교들더러 모두 주회의실로 모이라고 하셨네.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 따라서 일반 비행사들의 손에 우주선을 맡기게 됐어. 티식스. 우주선을 폭파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지?” “우주선이 촉차하면 제 월급을 깎아도 좋습니다.” 티식스 조타수가 말했다. @p 64 “아무튼 지금 현행 규칙과 규정을 얼마나 많이 어기는가를 감안해 볼 때 뭔 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해. 자네들 친구인 베펨의 보고를 듣게 될 것 은 분명하고. 선장님과 정치관님은 자네들도 뭔가 발표거리를 준비한다면 매우 기뻐하실 거야. 선장님은 잘 정리된 발표를 할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를 물어봤 을 때 자네들이 깜짝 놀라는 일은 없었으면 하신다네. 나는 자네들에게 주회의 실로 가기 전에 사진들을 몇 장 준비하는 게 좋을 거라는 말을 비공식적으로 하 고 싶군.” 주회의실은 식당으로 쓰이기도 했고, 오락실과 정치 교육 강의실 역할도 했다. 그곳에는 모든 선원들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가닝 있었는데, 선원의 절반 정 도가 장교였기에 그 말은 모두가 약간씩 떨어져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우리는 앞의 두 줄에 몰려앉아 선장과 스트리옙틴 정치관이 베펨에게서 어떤 말을 들었길래 이런 기습 회의를 준비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은 엔지니어 보조인 프로예린과 항해사인 드패리로, 둘은 잠을 자다 일어났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배제스 선장은 회의를 시작했다. “오늘 이후로 나는 억측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 리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와코펨 조모스 호 탐사단에게 닥친 일을 놓고 벌 인 추측 가운데 가장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들렸던 추측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졌 습니다. 조금 전 까지 그들이 영리한 세트포스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 근처에 락 륙했으며, 그들의 후손 가운데 몇몇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 지만 항해사보인 베펨이 밝혀낸 사실은 놀라운 정도가 아닙니다. 충격적인 사실 로, 나는 지금 이 단어를 가볍게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대부분도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p 65 나는 여러분들 모두가 베펨의 보고를 중간에 자르는 일 없이 자세히 들어주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울지 모릅니다. 보고를 모두 들은 다음 에 토론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나는 선장의 권리로 여러분 모두에게 베펨이 놀 라운 작업을 해냈다는것, 적절한 자료를 신속히 발견하여 지금 여러분이 듣게 될 이상하고 끔찍한 이야기로 엮어냈다는 것 등. 이 작업은 진정 칭송을 받을 만한 일이라는 것을 아리고 싶습니다. 자 이제 그녀의 보고를 듣기 바랍니다. 베 펨?“ 보조 선원이 우주선의 장교들을 모두 모아놓고 발표를 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장교들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는 항해 중이 아니라 항해 전이 나 후에 열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회의가 열린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이 일 저 일로 뛰어아니느라 거의 얼굴을 보일 수도 없었다. 따라서 베펨이 약 간 겁먹은 얼굴로 등장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와 크루릭스 쪽을 바라보았고, 우리는 몰래 응원의 몸짓을 보여 주었다. 그 때문에 긴장을 풀 었는지 그녀는 발표를 시작해싸ㄷ. 선장의 서론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끔찍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도덕 적으로 순수했던 선원. 유일하게 세트포스인과 동등하게 지낼 것을 주장했고, 유 일하게 다른 민족과의 결혼에 대해 인종 차별적인 사상을 춤지 않았던 선원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분명 세트포스에 노예 왕국을 건설하는 데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베펨은 이 점에 대해 아직도 정확한 증거를 찾고 있었다. 니수에 전달됐던 ‘폭파’ 메세지-혁명을 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했던 바로 그 메시지-는 다른 사람이 찬아와 사건을 조사 @p 66 하지 못하도록 꾸민 조작이었다. 혁명의 자손인 우리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가장 최악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구릭스의 컴퓨터에서 전송 도된 기록에 따르면 니수인들은 정말 노예왕국을 건설하여 이웃에 있던 스무 개 정도의 마을을 다스렸었다. 마침내 우리는 그들 사이에 번졌던 질병에 대한 이 야기를 들었다. 메족스가 의약품을 가지러 마지막으로 다녀간 뒤 갑자기 기록이 끊겼고, 거의 3년 뒤 구릭스는 갑자기 최고 속력으로 태양계를 떠나 송신 범위 를 벗어난 뒤 마침내 연료가 다 떨어졌음직한 거리에서 엔진이 폭파했다. “구릭스는 일정한 방향으로 이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찾아떠났음직 한 가장 가까운 별은 적색 왜성이었지. 20년광년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었죠. 구 릭스로는 몇 십 년이 걸려도 20광년 떨어진 곳에 도착할 수가 없었거든요. 약 7 중력으로 약 8일 간 움직여서는 광속의 13퍼센트 정도밖에 속력을 높일 수가 없 습니다. 게다가 구릭스에는 가속 장치도 없었구요. 그 여행이 계획적인 것이었다 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베재스 선장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 사실을 놓고 자네가 세운 가설을 들려줘야지. 베펨. 스트리옙틴 정치관과 나는 그 가설이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베펨은 긴장한 얼굴이었다. “음, 그러니까 문제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와코펨 조모스 호 와 세트포스 표면을 오가던 여행이 중단된 것은 왕국을 다스릴 때 필요한 물건 들을 우주선에서 가지고 올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들이 처음 시작 했을 당시의 계획과 목록을 살펴보면, 구릭스는 예정보다 한 번 더 여행을 했는 데, 바로 의약품을 가지러 올 때였죠. 따라서 저는 그들이 작은 왕국 @p 67 을 우주선으로부터 독립시킬 계획이었던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질병이 발생하 지 않았던들 메족스 루폭스는 마지막 여행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3 년 뒤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저는 소이켄일 가능성이 높아고 생각하 는데요. 종종 의견의 차이를 보였던 포아퍼레시스와 가까이 지냈던데다 자신의 아이가-선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몹시 아팠거나 아마도 죽게 되니 까 자살하기 위해. 그리고 사트포스에 건설된 니수 왕국의 기초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랬다고 말입니다. 사태가 그렇게 진전되는 것을 보고 나자 그녀는 자신 과 함께 와코펨 조모스 호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없애버릴 결심을 한 겁니다. 그 방법에 대해 신중했더라면, 그녀는 착륙 즉시 숨을 거둬 그다지 많은 고통을 겪 지는 않았을 겁니다.“ 길다란 침묵이 흘렀다. 그때 스트리옙틴이 말했다. “탐사기에서 얻은 보고 사항을 듣고 싶군요.” 크루릭스와 나는 우리가 목격한 사항을 모두 설명하고, 그곳을 다스리고 있는 듯한 니수인은 한 명도 안 보였다는 사실을 강조해가며 가능한 한 간단하게 보 고했다. 스트리옙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질문 있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너무 어리둥절했던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여러분들께 혁명전 정권의 본성과 그 정권이 양성했던 의식 에 주목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그들은 지식을 갖춘 새로운 세상에 도 착하자마자 구시대의 악습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예 제도, 군주 제도, 인 종 차별주의, 제국주의, 정복 전쟁 등등 말입니다. 여러분 @p 68 들 모두 그 교훈을 간과하지 않았으리라 나는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저 아래에 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적어도 약간의 지식을 갖게 됐습니다. 세트포스인들이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이 사실은 크루릭스와 세타키서스가 좀더 여러 번 조사 를 하면, 그들이 말한 것처럼 좀더 은밀하게 날아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을 겁니 다-어째ㄲ든 노예 왕국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두 가 지입니다. 하나는 노예가 됐건 주인이 됐건 저곳에 살고 있는 니수인들을 재교 육시키는 것, 또 하나는 현재의 정권을 전복시켜 세트포스인들로 하여금 자유롭 고 평등한 공화국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성공을 한다면 우리는 우주상에 새롭고 충직한 친구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실패를 한다면, 글쎄요, 예 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되새기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는 배제스 선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대로 임무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 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한 뒤 우리의 소중한 보조 선원 들에게 임무를 맡겨야지요. 그리고 내 생각엔 여기 있는 장교들이 모두 이 세 보조 선원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군요.” 장교들은 우리에게 박수를 친 뒤 방을 빠져나와 근무지로, 혹은 침실로 돌아 갔다. 앞으로 바빠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가던 길에 스트르옙틴은 크루릭 스에게 바싹 다가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자넨 만회했군.” 그리고는 크루릭스가 대꾸를 하기도 전에 방을 빠져나갔다. 크루릭스의 얼굴 은 두려움으로 눈 주위가 창백했다. @p 69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후예 차가운 장막처럼 님 왕국을 10일째 뒤덮고 있는 비의 어둠 때문에 독립된 거 주지에 살고 있는 모든 니수 노예들에게 불이 지급됐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 께 쓰고 있는 방 하나짜리 오두막 앞 쪽에 불을 피워놓고 눈 앞에서 이글대는 불꽃을 바라보게 했다. 가벼운 안개에 휩싸인 채 쉿쉿 내리는 비가 그 주위에서 흩어지는 모습을 처마 밑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에서를 재운 뒤-아이가 하루 종일 바깥 진흙탕에서 뒹구느라 지쳤기 때 문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아버지,어머니와 함께 이곳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터무니없이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던 전날 밤 서쪽에서 수직으로 이글거리던 이상한 구름, 모든 이들이 불기둥이라 부르던 그 구름에 대해 아버지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p 70 밤이면 몰래 마을을 염탐하고 낮이면 주변을 돌아다니는 니수탐사기는 이제 수십 명의 눈에 목격됐고, ‘진정한 부족민’마을을 긴장과 공포로 몰아갔다. 어 두운 날들이 계속되다가 구름 사이로 공간이 생길 때면 불기둥이 보였다. 복수 를 하려는 니수인들이 돌아온 것이라고, 이녹이 하늘에서 찾아와 자신을 그런 식으로 추방시킨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라고, 탐사기 자체는 살아 있고 누구나 기억할 수 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떠돌자 ‘진정한 부족민’의 품위는 완전히 추락해 버렸다. 내가 주인마님께 허락을 구하자 그녀는 문을 가리키며 손짓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도 어머니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도 하루에 한두 번 씩만 정신을 차릴 뿐 그 외에는 잠을 자거나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근육은 몹시 힘이 없었다. 점점 쇠약해지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아직까지 기침은 하지 않았다. 소이켄 할머니와 메족스 삼촌을 죽게 만든 것은 폐렴으로,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침대에 누워지내야 하는 질병이란 것뿐이었다. 우리는 어 머니를 돌아눕히고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 짚을 간 다음 편안해 보이는 자세로 누워 있게 내버려둔 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좇아 탐사단을 보낸 것이 맞는 듯 하구나, 불쌍 한 메족스. 이 순간을 보고 싶어 했을텐데. 아, 어쨌든 님에게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난 기쁘다. 그리고 선장 할머니도 분명 좋아할거야. 그리고 그 사람들 은 네 어머니를 위해 뭔가 해줄 수가 있겠지.” 아버지는 니수어로 말했다. @p 71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니수에거 온 사람들이라는게 확실한가요? ” 아버지는나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려다 참았다. “넌 이곳에서 자란데다 대부분의 교육을 몰래 받았으니 이해하기가 힘들겠 지. 하지만 세트포스엔 이런 일을 할 만큼 발달된 문명이 없는데다 가까이에는 다른 문명이 없기 때문에 이곳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지. 저들은 니수에 서 온 사람들이 분명해. 또 다른 증거가 되는 것은 저 사람들이 행성 표면에 머 물기 위해 영점 에너지 레이저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지.” “그게 바로 불기둥인가요?” “이름을 알고 나면 도움이 되니?” “그럴지도 모르죠. 적어도 야만적인 주인들과 저는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되 거든요. 하지만 아버지는 저게 무엇인지 어떻게 아세요?” “너도 알다시피 이곳으로 오는 길에 네 어머니와 나, 그리고 소이켄 할머니, 네가 한 번도 얼굴을 본 젓이 없는 포아퍼레시스는 과학에 관련된 일들을 많이 했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많이 읽었단다.” “전 그 말을 들으면 아버진 오는 길에 내내 그런 일만 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지. 아무튼 니수에서 날아온 보고서 가운데 영점 에 너지라는 에너지원에 대한 글이 있었단다. 근본적으로 그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우주에 존재했다 사라졌다 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인데, 에너지를 존재의 상태에서 붙잡아두는 기구인 것이지. 육안으로 볼 때 그 기구는 두 개의 판이 매우 가까이에 붙어 진동을 하는 형태인데, 판이 떨어져 있는 동안 에 @p 72 너지가 생성될 만큼의 시간이 생기는 것이고, 서로 붙게 되면 에너지가 소멸하 기 전에 붙잡아버리는 것이란다.“ “전 이해가 잘 안 돼요.” “나도 예전처럼 수학적인 지식이 없어서 말이다. 나도 이해를 잘 못 한단다. 하지만 원자 크기로 접근하면 말이지-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크기-일상 생활 에서처럼 사물을 구체화할 순 없는 거란다. 그러니까 수학을 차근차근 짚어보면 서 조금씩 납득을 해나가야지. 내 말은 수학을 생각해야지, 상식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란다. 아무튼 그건 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원인데다가, 그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도착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것이 레이저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거야. 즉, 와코펨 조모스 호가 이곳으로 비행해 올 때 사용했던 레이 저 광선과 비슷한 종류지만 훨씬 더 강력한 광선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 그 당 시 우리는 그걸 받으면 귀환 레이저에 더 많은 힘을 가할 수 있고,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짧아지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 과학이나 연구, 탐 사에 들일 예산이 이미 바닥났다는 사실이 분명했단다. 초강력 레이저-와코펨 조모스 호가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레이저-를 사용하고 있는데다 우주선 안에 장착한 것을 보면 지난 40년이 지나면서 샘물이 다시 흐르게 됐나 보다. 어쨌든 이곳에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니수인인데다가, 저 사람들 은 니수인이 사용하는 기술까지 지니고 있다. 내 말 알아 듣겠니?” “거의요.” 반 정도 밖에 알아듣지 못했으면서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내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인데도 얼마나 조 금밖에 가르치지 못했나 하는 것을 다시 생각나게 @p 73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아버지는 늘 슬퍼하셨다. “아무튼 불기둥 꼭대기에는 니수 우주선이 있어. 우주선이 탐사기를 보내는 거지. 사람들을 파견하기 전에 이 지역을 탐사하고 있는건데, 우리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훨씬 현명한 처사지. 새로운 탐사기를 잡기가 어려운 이유 는 탐사기가 몇가지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우주선에서 원 격 조종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두려워 말아라. 내가 보기엔 가까운 시 일 내로 공격이 있을 것이다.” “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궁전에 틀어박힌 채 어느 누구하고도 말하려 하지 않고, 난데없이 명령을 내렸다가 반나절 뒤면 취소한다고 하더군요.”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느끼고 있는게지. 그가 우릴 처음 봤을 땐 신이라 여기며 상당히 숭배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겠지? 우리가 앓아누워 있는 사이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그가 똑똑했던 것과 그 사실을 바탕으로 행동을 옮길 만큼 용기가 있었던 것은 우리의 불운이라 말할 수 있어. 그가 매우 거칠고 위험한 적이라는 사실은 주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 하지만 그는 갖가지 뾰족한 막대를 가지고 있는 2천명의 세트포 스인들의 군주에 불과해. 그는 실제 발사되는 증기총을 직접 목격한 몇 안되는 ‘진정한 부족민’들 가운데 한 명이고, 그가 목욕하는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원래 있던 ‘진정한 부족민’마을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 란다. 때문에 그는 두려워하면서 다시 한 번 이겨볼 궁리를 하고 있지만, 승산은 없지.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다보면 누구나 정신이 없는 거야.” @p 74 “그러니까 그도 아버지만큼이나 저 사람들이 니수인이라는 것, 조만간 착륙 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단 말씀이죠?” “디에렌, 네 아버지가 그렇게 확신하고 있니?”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프리캄 아줌마가 어두운 안개 속을 뚫고 불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는데, 흉칙한 세트포스인과 닮은 모습이었다. 지난 몇년 동안 계속 춥다고 투덜대더니 세트포스인들처럼 쇼올이며 치마를 입게 됐 던 것이다. “그래, 일리가 있잖아.” 아버지가 말했다. “자메코시스, 여지껏 인공 지능 로봇 작전 비슷한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 았잖아. 그리고 우리를 본국으로 데려가 줄 만한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의 생존 사실을 확인해 주기까지는 앞으로도 몇 년 더 기다려야 할 거야. 이런 일에 희 망을 가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두 사람의 말투로 보아 이는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즐기게 된 끝도 없는 입 씨름의 시작이라는 것을 난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화젯거리로 할 말이 많을 터였기에 두 사람은 밤새도록 입씨름을 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허리 를 자르며 물었다. “음, 만약 우주선에 사람들이 타고 있다면 어떤 일을 할 것 같으세요?” 프리캄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글쎄,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싸움을 좋아하는 종족이라는 사실이란다. 디에렌.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눈으로 목격한 사실을 인 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야. 무엇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왜 그러겠느냐는 것은 의문이지만,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먼저 ‘손본’ @p 75 다음 나중에 질문을 던질 것이라는 점이지. 저 사람들이 정말 니수인들이라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아버지가 맞다는 몸짓을 보였다. “씁쓸한 농담이긴 하지만, 맞는 말이야. 서로 조화롭게 살던 종족이라면 자신 들의 생각을 고집할 필요가 없을 테고 다른 별들로 손을 뻗치기 않겠지. 그리고 생각을 먼저 하는 종족이라면 그런 일들까지 생각할 시간이 없을 테니까 다른 별을 찾아 나서지도 않을테고. 그러니까 우주는 결국 사나운 싸움꾼의 손에 정 복당하게 되겠지.” 프리캄 아주머니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논리를 너무 엄격히 따르다 보면 그런 결론이 나오지.” 우리를 지켜보는 세트포스인들이 없는 상황에서 두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너무나도 좋았다. 어디론가 떠날 만한 곳이 있다면……. 내가 알기로는 쉽 게 달아날 수 있는 최초의 기회인 것 같았다. “디에렌?” 작은 오두막 안데서 어머니가 부드럽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의식을 군간적으로 회복하는 것은 매우 드물었기 때 문에 우리는 그 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오두막은 좁고 어 두웠다. “저 여기 있어요, 어머니.” “새로운 우주선 도착했지?” 매우 부드러웠고 가냘픈 목소리로 어머니가 물었다. “아직 위에 있긴 한데, 내려오지는 않았어요.” 다가가 앉아 손을 잡아드리며 말했다. 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으론 어머니의 모습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p 76 “어떻게 아셨…….” “내가 정신을 차릴 때마다 아버지가 계속 이야기를 해줬거든. 아주 흥분하면 서 그 사람들이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한 게 틀림없다고 했어.” 말을 할 때마다 목구멍에 걸려 쉬익쉬익 하는 숨소리가 났다. 나는 말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어머니의 입 가까이 몸을 가져갔다. “시간을 더해 보더니 분명히 그랬을 거라고……. 내가 보기엔 아버지는 낙관 하는 것 같던데……. 오늘밤 네 얼굴이 보고 싶었던 이유는……. 아, 저것 좀 보 렴, 물이 다시 분홍색으로 변했구나.” 그녀는 의식이 회복되면 늘 그렇듯이 이따금씩 말을 내뱉으며 낮고 단조로운 신음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에다 내 얼굴을 한 번 꼭 대고는 아버지와 프리캄 아주머니가 있는 곳으로 나왔다. “여전하세요. 잠시 동안 또렷하고 가냘퍼지시다가 다시 정신을 못 차리세요. ” 두 사람이 묻기 전에 내가 말했다. “소이켄 선생님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아니면 내가 좀더 의학 공부를 해뒀더라면…….” 아버지는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단백질 처리 과장을 변화시키고 나니까 독소가 생겨 천천히 뇌손상과 근육 쇠퇴를 유발하는 걸 거야. 저들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처리 과정을 변화시켰 기 때문에 얻은 부산물이라 할 수 있겠지. 소이켄 선생님이 첫 환자가 아니었다 면, 폐렴이 그렇게 빨리 생기지만 않았더라면. 하지만 소이켄 선생님이 방법을 생각 @p 77 해냈다 하더라도…….“ 프리캄 아줌마는 와코펨 조모스 호나 구릭스에 있는 장비가 없이는 소이켄 할 머니의 지식 또한 소용이 없었을 거라는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소이켄 할머니가 1년 반 전, 숨을 거둔 이후부터 두 사람은 이와 똑같은 문제 를 가지고 똑같은 방식으로 여러 번 논쟁을 벌였었다. 일단 논쟁이 시작되면 어 머니와 메족스 삼촌은 그 일부가 됐기 때문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가끔씩 나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프리루스나 위루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특히 프리루스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세트포스인들은 몇 달 에 한 번씩 나에게 그와 함께 잠자리를 하도록 종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뒤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모 양이었다). 우리들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세트포스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라고 말이다. 선장 할머니가 우리 어머니나 메족스 삼촌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세트포스에서 오랫동안 살아서 생기는 질 병일 가능성이 높았고, 그 말은 우리들 모두 그 병에 걸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뿐 아니라 니수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상당히 빨리 숨을 거두었다. 2년도 안 되는 사이 세 명이 죽었다. 물론 가끔씩 도망을 치다 잔인한 주인이나 사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서른다섯 명 이 넘는 우리들 가운데 니수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열 명도 안 되었고, 니수어 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스무 명이 못되었다. 와코펨 조모스 호를 타고 있던 사람들만이 간신히 자신의 아이들에게 니수 문화를 전달해줄 수 있었다. @p 78 지금 살아 있는 네 명의 내 아이들도 니수어를 할 줄 모른다. 하늘에서 나타 난 새로운 희망은 접어둔 채 이런저런 우울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비 명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귀를 세우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짐작해 보았다. 순간 구릭 스가 착륙하면서 태워버렸던 궁전 앞쪽임을 알았다. 땅이 구워져 돌이 되어버렸 기 때문에 기초 공사를 할 수도 없고, 나무를 심을 수도 없어 벌거숭이 땅아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왕궁 광장에서 나는 소리라는 데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내 옆에는 프리캄 아주머니와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잘 있 는지 살펴본 뒤 서둘러 그곳으로 가보았다. 비명 소리가 들렸던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파란 불이었는 데, 천둥처럼 우르릉 하는 소리가 나더니 점점 커지고 밝아졌다. 빛은 여러 개의 빛으로 나뉘었다. 아래 쪽에 있는 커다란 파란 빛과 그 위를 맴돌고 있는 다른 많은 빛으로 말이다. 천둥소리는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커졌다. 착륙선-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착륙선이 분명할 것이다-은 점점 가까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주 선 옆쪽이 우주선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회백색으로 빛나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 였다. 우주선은 커다란 원뿔 모양으로 아랫부분을 단단히 버티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오자 옆쪽에 씌어 있는 글씨가 보였다. 우리는 세트포스인들에게 니수어를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니수 어를 배운 우리들도 연습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탓에 나의 읽고 쓰기 능력은 형 편없었다. 내가 글씨를 짚는 동안, 아버지가 큰소리로 읽었다. “국민 우주 탐사 재단의 첫 번ㅉㅒ 비행선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에서 발 사된 우주선, 그러니까 착륙선 가운데 하나로군. 놀 @p 79 라워. 와코펨 조모스 호 전체를 합친 것보다 크게 보이는데, 비행선은 정말 어마 어마하겠군.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이라는 이름을 딴 것을 보니…….” “본국에선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말이지. 이제 곧 어떤 변화인지 알게 될 걸. 좋은 변화도 몇 개 있었겠지.” 프리캄 아주머니가 말했다. 착륙선 아래 쪽에서 나오는 창백한 차란색 불꽃이 40년 전 구릭스가 태워서 딱딱해진 지점의 정중앙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갑자기 착륙선 아래 쪽에서 환한 흰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울부짖는 엔진에서 웅웅 하는 섬뜩한 소리가 나 더니 파란 불꽃이 사라졌다. 착륙선은 여전히 시끄럽게 웅웅 하는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분사기를 항상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보니, 내부용 경비행기의 일종인 가 보지?” 프리캄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마도 ……. 몸집이 얼마나 거대한지 한번 봐. 저걸 비행선안에 실을 수 있 다니…… 정말 많은 게 변했군.”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프리캄 아주머니가 다시 말했다. “글쎄, 직선 코스를 선택했다면-우리하곤 다르게 말이지-광속으로 달렸을 때 최소 4년 정도가 걸려. 현대 물리학이 광속의 한계를 뛰어넘었을 것 같지는 않 고, 하지만 우린 보통 사용하는 레이저의 1천 분의 1에도 못 미피는 레이저를 가지고 광속의 40퍼센트에 달하는 속력을 냈었잖아. 저 사람들은 아마 광속 비 슷한 속도로 이곳으로 날아왔을 거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자메코시스. 저 사람들한테 가서 @p 80 물어보자.“ 프리캄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버지와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이론을 가지고 끊임 없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아버지가 가장 유능해지는 순 간이었다. “좋았어, 가보자구. 운이 좋으면 선장님이 이미 저쪽에 도착해서 공식적인 보 고를 할지도 모르고, 그럼 우린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되니까.” 왕궁광장으로 다가가는 우리들 곁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자유인의 신분으로 태어난 ‘진정한 부족민’사람들이다. 보통 때면 우리를 옆으로 밀어내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우리에 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무슨 일이가 싶어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가까이 다 가갈 마음은 별로 없는 듯했다. 착륙선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이미 변하고 있었 던 것이다. 프리캄 아주머니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저 사람들 더이상 우리를 화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눈치인걸. 이 얼마나 상 쾌한 변화야. 하지만 아직은 지나친 기대를 갖지 않는 게 좋겠어. 혁명이 일어나 서 니수는 이제 공화국이 된 것 같거든. 평등주의자들이 승리를 거둔 것 같고, 어느 쪽으로 생각 해 보면 우리는 예전의 사악한 정권에 의해 고용된 사람들이 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진정한 부족민’의 노예에서 국가의 적으로 탈바꿈하 는 것에 불과할지 몰라.” “디에렌, 네 아버지가 비관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해봤니?” “늘 했었죠.” 우리는 오른쪽으로 궁전이 있고, 왼쪽으로 신전이 있는 왕궁 @p 81 광장에 도착했다. 내가 알기로 궁전은 우리 부모님과 다른 니수인들이 손수 지 은 곳으로, 케콕스 할아버지를 죽인 뒤 님이 빼앗아버린 집이었다. 오늘날 세트포스 아이들은 라가 강력한 마술로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은 뒤, 그의 마술에 사로잡힌 채 니수인들이 하룻밤 사이 그 건물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하루에도 수십 번 씩 건물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가 빼앗긴 상 속권에 분개를 금치 못하곤 했다. 지금은 니수인들이 우리를 위해 이곳으로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저 궁전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착륙선의 실제 크기를 보게 되자 농담은 사라졌다. 신전은 2층 건물로 높다란 지붕까지 합치면 3층과 맞먹었고, 그 위로 루마스의 전소된 본체가 1층 높이로 솟아 있었 다. 이 착륙선은 적어도 루마스보다 세 배는 컸다. 그 거대한 다리는 딱딱한 땅 위로 매우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본체 전체가 전혀 무게가 없는 것처럼 착 륙선은 가벼운 저녁 미풍에 잠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웅웅 하는 소리와 끽끽하 는 소리가 갑자기 멈추더니 커다랗게 쉿쉿 하는 소리가 들렸고, 찰륙선은 다리 를 짓누르며 땅 위에 내려앉았다. 왕궁 광장은 거의 텅 빈 상태였다. 가장자리로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는 세트포스인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리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한가운데에는 니수인들이 몇 명 모여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그들 곁 으로 다가갔다. “프리루스!” 그를 발견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디에렌, 세상의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됐어?” “응, 됐어. 좀더 나은 쪽으로 변했으면 좋겠는데.” @p 82 선장 할머니도 그 가운데 있었고, 위루스도 다른 나이 많은 니수인들과 함께 있었다. 우리들 가운데 절반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다. “나머지 니수인들은 아이들 방에 있거나 그들을 소유하고 있는 진정한 부족 민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못 나가게 붙잡고 있는 거예요. 한두 사람 정도는 세트 포스인들처럼 겁에 질려 있을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니수어를 할 줄 아는 사람 들은 모두 여기 모인것 같군요.” 위루스가 설명했다. “하, 저기 궁전 좀 봐. 어서 빨리 작업에 착수하라는 뜻으로 보이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약 스물다섯 명 정도의 세트포스인들이 궁전 뒤를 빠져나와 죽을 기세로 달리 고 있었다. 님의 개인 경호원들로 리더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셋!” 약간 충격을 받은 내가 외쳤다. 프리캄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늙은 님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수없게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겠지.” 내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는지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며 단호히 말했다. “이제 감상 따윈 필요없어. 라는 착륙선의 문이 열리자마자 공격을 퍼부을 거야. 현대 무기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의 유일한 희망은 기습 공격뿐이겠지. 멍청한 인간은 아니니까. 지금 그는 근래 들어 어느 때보다 도 두려움에 떨고 있 @p 83 을 거야. 하지만 기회는 있을 테고,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겠지. 창으로 증기총 을 무찌르는 방법은-저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무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증기총 을 사용할 기회를 주지 않는 거지. 그러니까 저들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일을 끝내려할 걸. 바다의 어머니는 그게 한 번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알거든.“ “하지만 셋은…….” “저 위에서 저들이 그를 죽이거나 그가 승리를 거둘 때까지 미친 개처럼 싸 울 준비를 하고 있겠지. 네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아일 그곳에서 빼낼 순 없을 것이야. 네사 지나친 감상에 젖기전에 한 가지 사실만 명심해 둬. 님 하와 셋이 승리하게 되면 우리는 노예로 남게 된다는 것을. 네가 좋아하는 세트포스인이 전선에 있어서 유감이다만, 자유를 찾을 수만 있다면 난 내 손으로 기꺼이 그를 죽이고 말겠어.” 프리캄 아주머니는 적의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더이상 듣고 싶지 않던 나는 착륙선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 속은 너무나도 어지러웠고,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마음 속엔 내가 아는 감정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땅 위쪽 높은 곳-신전 지붕만큼이나 높은 곳-에서 문이 열리더니, 길다란 계 단이 땅으로 내려왔다. 니수인 한 명이 계단을 밟고 섰는데-그의 얼굴은 커다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셋이 호위병들 가운데서 뛰어나오면서 들고 있던 창을 온 힘을 다해 그 사람 에게 던졌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소리질렀고, 그들은 모두 착륙선 에 닿아 있는 계단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셋보다 위에 있던 그 니수인은 창이 날아오는 것을 볼만한 시간적 여 유가 충분했다. 그는 옆으로 살짝 비키면서 창을 @p 84 세게 내리쳤고, 창은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착륙선 벽에 부딪쳐 땅에 떨어졌다. 셋이 앞장을 서고 있는 왕궁 호위병들이 층계 밑으로 거의 다가왔을 때쯤, 거 대한 마스크를 쓴 니수인은 안에 있는 사람에게 몸을 돌리더니 땅딸막한 막대가 두 개 솟아 있는 원통 비슷한 무거운 물건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뛰어 오르고 있는 셋을 향해 원통을 겨누었다. 원통에서 윙윙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났 다. 셋의 몸뚱아리는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산산조각이 난 채 뒤에 있던 사람들 위로 흩날렸다. 남아 있던 부분은 계단 옆으로 떨어졌다. 나는 딱 한 번 ‘안 돼’하고 숨을 내쉬었을 뿐이다. 그때 그 조그만 사람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더니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린 듯한 왕궁 호위병들을 내려 다보았다. 그는 다시 원통을 겨누었는데, 이번엔 한쪽으로 겨누었다. 원통에서 다시 윙윙 하는 소리가 났고, 이번엔 더 오랫동안 계속됐다. 니수인은 원통을 앞 뒤로 흔들었다. 호위병을은 모두 비명을 지르면서 얼굴이나 가슴, 배 등을 움켜쥐며 동시에 쓰러졌다. 그리고 잠잠히 누워 있었다. 아직도 움직이는 이들이 몇명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을 향해 니수인은 또 원통을 겨누었다. 잠깐 윙 하는 소리가 나면 몸이 땅 위에서 펄럭펄럭 춤을 추며 사방으로 피를 뿜어댔다. 몇 초 사이 그들 은 모두 숨을 거두었다. 이 모두가 신 숨을 두세 번 몰아쉴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조금 뒤, 숨을 한 번 더 몰아쉴 만한 시간이 지난 뒤 세트포스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왕궁 광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손을 들며 아버지와 프리캄 아주머니는 천천히 착륙선을 향해 걸어 갔다. 잠시 후 그들은 엄청난 나이인데도 꼿꼿하 @p 85 게 걷는 오투스 할머니와 만났다. 싸움이 모두 끝나자 니수인들은 모두 커다란 마스크를 쓴 채 계단을 사뿐사뿐 내려오고 있었다. 원통을 들고 있던 사람은 마스크를 벗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모습에는 뭔가 서늘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이 있었다. 주인 을 모셔본 적이 없는 사람일 거라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순간 나는 그가 혼혈 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자본을 이유로 처형당할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의 근 심은 적어도 해소된 것 같았다. 또한 그는 숨이 멎을 만큼 잘 생긴 얼굴이었는 데, 이 사실은 그때 느낀 것인지, 나중에 느낀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그는 우리 쪽을 향해 손짓하며 니수어로 크게 말했다. “좀더 가까이 오시오.” 우리는 모두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니수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따뜻하고 친절한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앞장을 섰던 사람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그는 잠시 동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앞서 세트포스 제국 탐사단을 이끌던 오스폭 타로브 선장님이시군요.”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 없어요.” 오투스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자 양쪽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네, 맞아요. 이제 같은 탐사단에 있었던 자메코시스와 프리캄을 소개할게요. 생존인 가운데 한 사람인 오투스 킴나벡스는 몸이 아파서 이렇게 나와 여러분들 을 맞이할 수 없었던 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쪽은…….”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의 선장보인 세타키서스 제레그입니 @p 86 다. 이 주변을 안전하게 만들자마자 저희 선장님과 정치관님을 소개시켜 드리도 록 하죠. 하지만 사전 발표는 해야죠.“ 작고 검은 정육면체를 입으로 가져가자 그의 목소리는 원래 목소리보다도 훨 씬 크게 광장 너머로 울려퍼졌다. “스트리옙틴 정치관께서는 여러분에게 인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니수의 피가 흐르는 모든 분들에게는 부지불식간에 고유의 법을 어긴 범죄는 물론이거니와 현재까지 실행되고 있는 공화국법을 어긴 모든 행동에 대해 사면 조치가 취해짐 을 알려드립니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세타키서스가 입을 열었다. “통상적으로 사면을 받아들인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우리의 새로운 친구들은 이성적일 테니까 사면을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하 지. 저들이 철회를 원하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위쪽에 있는 문에서 들려온 이 목소리는 차갑고 딱딱했으며, 약간 재미있어 하는 기색도 있었다. 호리호리하지만 단단한 근육질을 같춘 슐라스인 남자가 문에서 나와 우리를 향하여 계단을 내려왔다. “게다가 노예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언어를 전달할 기회도 별로 없었을 테 니 자네가 한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거의 없을 걸세. 따라서 외교 의례에 따라 저들이 모두 사면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긴 아직 이 른 것 같군.” 그의 말은 호의적으로 들리게끔 면밀히 선정된 듯했지만, 그 뒤에는 아무런 감정도 깔려 있지 않았다. 세타키서스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다. “스트리옙틴 정치관님, 소개를…….” 그가 모든 이름을 정확히 외우고 있다니 놀라운 사실이었다. @p 87 “전 스트리옙틴입니다. 프리캄이나 자메코시스처럼 고아이니 성은 없지요. 여 러분들 시대에는 정치관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 금하실 겁니다. 좀 더 편안한 자리로 모신 뒤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오 스폭 선장님, 저를 위해 이 지역 언어로 통역을 해 주시겠습니까? 니수인과 세 트포스인 모두에게 가능한 한 빨리 전달해야 할 사항이 있어서요.” “그러지요. 하지만 디에렌이야말로 우리 가운데 최고의 학자인데다 니수 억 양없이 ‘진정한 부족민’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선장 할머니는 나더러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했고, 나는 쭈뼛쭈뻣 정치관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 직함이 적어도 님만큼이나 무서운 것이리라 이미 결정을 내 렸던 것이다. 아버지가 덧붙였다. “저와 오투스의 여식이지요.” 스트리옙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디에렌이라는 이름은 여러분이 남긴 기록의 마지막 부분에 거론됐던데다 그 기록은 와코펨 조모스 호의 메인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으니까 요.” “그렇다면, 알고 계신 사실이…….” “상당히 많지요. 때문에 착륙하자마자 사면 조치를 취한 겁니다. 과거의 행동 을 감추는 어리석은 행동은 원치 않을 뿐더러 그 때문에 여러분들을 체포하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아버지는 갑자기 안심한 눈치였다. 스트리옙틴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를 한번 훑어봤는데,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래의 기록을 위해 내 생김새를 기억하고 싶어 그러는 것이었 다. @p 88 “그러니까 당신은 역사적 인물이로군요. 외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니수인이니 까요. 게다가 혼혈이라니 정말 다행입니다! 본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 을 알면 기뻐할 겁니다. 이걸 크게 읽어주겠어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나는 잠자코 있었고 그는 내게 메시지를 내밀었다. “글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지만, 해 볼께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그에게서 종이를 받아들었다. 착륙선에서 나오는 불빛에 비추어보았더니 매우 간단했다. 그 사실을 안 나는 안심했다. “니수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착륙선으로 오십시오. 해를 끼 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니수인들은 즉시 착륙선으로 오십시오.” 나는 니수어로 읽었다. “아, 진정한 부족민어에는 ‘착륙선’이라는 단어가 없는데요. 착륙선이 있는 ‘왕궁광장’이라고 바꿔 말해도 될까요?” “그럼요. 세타키서스. 이분께 확성기를 달아드리고, 다른 보조 선원들과 일반 비행사들을 볼러 모아 다들 무장한 다음 마을을 돌면서 발표하게. 사람들이 말 썽을 부릴 때만 사살하되, 일단 말썽을 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표본으로 삼아 저 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도록. 세트포스인들에게 우리가 내린 지시 사항 은 실시하게 하고, 우리가 승인하지 않는 사항은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납득시 키고 싶군.” “네, 정치관님.” 세타키서스가 말했다. 그는 몸을 돌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즉시 네 사람이 계단을 내려와 합류했다. 그는 @p 89 매우 격식을 갖추어 그들에게 말했다. “디에렌을 소개할게요. 오늘밤 통역을 담당하실 겁니다. 디에렌, 이 쪽은 베 펨이예요.” 항해사보인 그녀는 다정한 미소를 지닌 키가 큰 여자였다. “이쪽은 크루릭스.” 엔지니어보인 그는 작달마한 근육질의 남자였지만, 베펨만큼이나 다정한 미소 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은 이텐과 세레터시스, 둘다 일반 비행사들이죠. 적어도 계급 상 그렇다는 말이죠.” 두 사람은 그 말에 미소지었다. 나이가 많은 이텐은, 회식 털이 드문드문 보이 며 볏이 큰 팔라스인이었다. 세레터시스는 피가 섞인 남자로(스트리옙틴은 뭐라 고 말했더라? 혼혈,맞아 그런 말을 썼었지) 내 또래였다. 나는 그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달리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실수를 해쓴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어쨌든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착륙선이 있는 곳을 떠나 왕궁 광장을 가로질러 비가 내리는 어둠 속 으로 걸어갔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목격했던 학살의 충격과 함께 뜨거운 기쁨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더이상 주인은 없어. 그런데도 나는 학살당한 왕궁 호위병들의 곁을 지나갈 때 눈살을 찌푸렸다. 어둑어둑했던데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내 엄지손가락 관절 하 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절도로 몸에 숭숭 뚫린 구멍들과 땅 위로 흩뿌려진 핏자국 은 보이지 않았다. “산탄이 만든 구멍이 재밌군. 산탄은 아주 작고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어딜 뚫는지조차 보이지 않지. 상처는 산탄이 반대편을 @p 90 뚫고 나오면서 생긴 거야. 그리고…….“ “크루릭스, 우리는 상황을 잘 알지 못하잖아요. 죽은 사람들 가운데 디에겐의 친구가 한 명, 아니면 여러 병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크루릭스의 말을 베펨이 막았다. “하지만…….” “베펨은 공손하게 ‘입닥쳐’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거야, 크루 릭스. 공손하게 말하려고 애를 썼던 것 자체가 잘못이었을지 모르지.” 세타키서스가 설명했다. 크루릭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지도 몰라요. 미안해요, 디에렌.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그렇게 정중한 대접을 받자 나는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주목받는 것이 잘못된 일처럼 느껴졌다. “저 사람들 사운데에는 제가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몇 있어요.” 셋을 떠올리며 내가 입을 열었다. 바로 전날 탐사기를 발견했을 때 우리가 함 께 작업했던 것이며, 몇 년 동안 그가 내 바람막이 역할을 해 주었던 일이 떠올 랐다. 광장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날은 더 어두워졌고, 계속 내린 차가운 비 때문에 발 밑의 진흙은 더 미끄러웠다. 셋의 죽음이 그 정도 밖에 안 슬펐기 때문에 기 분이 나빴던 거로구나 하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종종 그의 덕을 입었는데, 내가 그의 노예였기 때문에 보호를 받았던 것 이다. 세트포스인들이 내게 가할지도 모르는 일들 때문에 내가 몹시 두려워할 때면 그가 나서서 막아주었던 적도 @p 91 있었다. 하지만 나는 셋에게 사소한 즐거움이나 쓸데없는 장난감을 안겨 주기 위해 기진맥진하면서 일했고, 고통과 질병을 참았으며, 더위에 땀 흘렸고, 추위 에 떨었었다. 나는 그가 내린 명령대로 일했다. 불가능한 일인데도 악독한 주인 의 손에 넘어갈까 두려워, 그에게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셋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최상의 주인과 보 낸 20년을 떠올려보니-이제 더 악독한 주인의 손에 넘어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기에-셋을 위해 할 수 있는 말은 반쪽으로 찌ㅅ긴 모습을 보며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으로서 노예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이정도 밖에 없겠지.하고 나는 생각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세트포스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원한은 내가 셋에 대해 가지고 있는 원한보다 더 클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새로 도착한 니수인들 이 우리 손에 살인 원통을 들려줄까 궁금해졌다. 그랬으면……. 어떤 세트포스인 을 죽여야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인데,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어둠을 뚫고 왕궁 광장의 끝으로 걸어갔다. 착륙선에서 멀어지고 나니 완전한 밤이었고,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기 때 문에 나는 발끝을 바라보며 걸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지 만, 내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게 옳았다. 또 가장 크게는 부모님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던 인물들과 ‘진정한 부족민’거리를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p 92 노예로부터의 해방 왕궁 광장을 빠져나와 석담에 둘러싸인 마을로 가는 문까지 이어져 있는 길을 마주하고 서자 내 어깨 위로 세타키서스의 손이 얹어졌다. 부드럽게 그가 말했 다. “확성기에 적응을 잘하셨으면 좋겠군요. 글씨를 읽을 수 있도록 불을 비춰 드리겠습니다.” 그는 어떤 물질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고리를 꺼내더니 내 이마에다 꼭 맞지만 너무 꽉 조이지는 않게 들러주었다. 그리고 그가 고리 위에 있던 무언가를 누르 자 내 이마 한가운데서 빛이 나오면서 내가 바라보는 것을 모두 비추게 되었다. “자, 이제 앞을 볼 수 있죠. 이제 발표를 할 수 있도록 장비를 갖춰 드리겠습 니다.” 그는 사면 발표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를 할 때 사용했던 작은 정육면체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 표면을 보세요. 가느다란 틈이 있는 이 옆에 대고 말을 하 @p 93 면 됩니다. 더 큰 소리로 말하고 싶으면 여기, 위로 튀어나와 있는 물건을 누 르세요. 그럼 다른 쪽에 있는 동그란 구멍을 통해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 번 시 험해 보세요. 그는 내게서 잠시 기계를 가지고 가더니 튀어나와 있는 곳을 누르며 가느다란 틈으로 말을 했다. “이렇게요?” 이렇게 묻는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놀란 나머지 나는 기계를 떨어뜨릴 뻔했 다. 나는 크루릭스와 베펨이 웃을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자 부끄러웠다. 세타 키서스의 얼굴은 다정했다. 그가 말했다. “확성기가 소리를 크게 만들도록 내버려두면 되요. 기계에다 대고 소리를 지 를 필요는 없어요. 다시 한 번 해보세요.” “이렇게요?” 나는 조심조심 물었다. 이번에도 내 목소리는 크기는 했지만, 깜짝 놀랄 정도 는 아니었다. “그렇게요. 좋습니다. 이제 확성기에다 대고 스트리옙틴과 약속했던 것처럼 그 글을 반복해서 읽어주세요. 우리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보호해 드릴테 고, 그럼 피난민을 몇 명 더 모으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날 밤 있었던 일은 그 뒤로 몇 년 동안이나 내 꿈에 나타났다. 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에 빨리 적응했고, 메시지를 몇 번 읽은 뒤 진정한 부족민어로 외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종이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되자 나 는 마음껏 주변 @p 94 을 돌아볼 수 있었다. ‘진정한 부족민’ 마을은 전부가 다 혼란과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단 한 가 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니수인들은 모두 왕궁 광장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이었 기 때문에 많은 니수 어린이들과 노예들이 거리를 메워ㅅ고, 모두 그들을 따뜻 이 환영했다. 이따금씩 노예로 쓰도록 라한테서 받은 니수 젖먹이를 안고 달려 나오는 세트포스인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 한 명은 내게 소리쳤다. “부탁인데, 디에렌. 저 사람들한테 이아이를 가능한 한 빨리 광장으로 데리고 가겟다고. 이 아이를 잘 돌보고 있었다고 말해줄래요?” 그들이 한 말을 니수어로 옮겨주자 베펨이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 사람이나 저 사람의 가족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을 거라고 전해 주세요.” 나는 그 말을 여자에게 전달했다. 세트포스 여자는 두려움으로 거의 기절 직 전인 듯한 얼굴이었지만, ‘진정한 부족민’ 마을 너머로 우뚝 솟은 채 밝게 빛 나고 있는 착륙선을 향해 달려갔다. “놀란 것 같았어요. 저 여자가 말을 걸었을 때 말이죠. 왜 놀란 거예요?” 세타키서스가 눈치채고는 말했다. 나는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글쎄요. 누군가가 내게 부탁을 하는 게 익숙치 않아서 그래요. 게다가 저 여 자는 ‘부탁인데’라고, 니수어로 정중히 부탁을 할 때 쓰는 말을 썼는데, 이건 동등한 사람끼리 쓰는 말이잖아요. 예전엔 내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세트포 스인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한테 하 는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거죠.” @p 95 니수인들끼리 나누던 눈짓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내 말 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 말을 듣고 좋아하는 것 같 지도 않았다. “자, 둘러봐야 할 곳이 좀더 남아 잇는에, 해치워야겟어요. 스트리옙틴은 니 수인들을 해치거나 인질로 잡는 멍청한 인간들이 나타나기 전에 이 메시지를 다 전하라고 했거든요.” 우리는 먼저 안쪽에 있는 거리를 돌고 다음으로 바깥쪽에 있는 거리를 돌아 광장을 이미 한 바퀴 돈 상태였기에 돌담에 둘러싸여 있는 지역은 모두 둘러본 상태였다. 내가 세타기서스에게 설명했다시피, 이 말은 진정한 부족민 마을 내에 있는 거의 모든 니수인들과 그 주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뜻이다. 돌담 건너 편, 더 넓은 도시 바깥 쪽에 사는 사람들을 가난해서 니수 노예들을 쓸 수 없었 다. “하지만 바깥 쪽에도 몇 명은 있어요. 모두 돌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요. 그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으로 찾아가는 게 더 빠를거예요.” 님은 지나치게 매정한 사람도, 비실용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니수 노예들 가운 데에는 이런저런 상처로 쓸모 없게 된 사람들도 있었고, 선장 할머니나 우리 아 버지처럼 일을 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끊임없이 아이를 낳거나 길러내야 하는 가임기 여성들, 즉 ‘씨받이’도 꽤 있었다. 바깥 마을에는 젖을 떼기 전 아기 두명까지 합쳐봐야 열명도 안 되었고, 대부분 돌달문 쪽에 살고 있었다. 오두막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은 단 몇분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갔던 사람들 대부분은 거동을 하지 못하는 사 람들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p 96 얼마 안 있어 우리들은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잔인한 주인들 때문에 절름발 이가 된 두 니수인들은 크루릭스에게 기댔다. 결핵에 걸려 앓고 있는 내 여동생 제렘은 내게 기댔다. 이텐이 아기둘을 안았고, 아기를 두 명 더 안은 엄마들이 뒤를 따랐다. 비틀 비틀 걸을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부축하지는 못하는 몇몇 니수인들이 뒤를 따라왔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오두막에 이르렀을 때 프리캄 아주머니와 함께 어머니를 이미 왕궁 광장으로 옮겼다는 아버지의 메모를 보고 나는 안심했다. 병자들을 이끌고 길을 지나 반짝이는 착륙선을 향해 돌아가면서 나는 낙오자 나 아직도 말을 듣지 않거나 숨어 있는 사람들이 혹 있을까 하여 확성기를 통해 메시지를 몇 번 더 반복했다. 왕궁 광장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무엇인가가 휙 하며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갔 다. 너무나 가까이 지나갔기 때문에 화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 였다. 세타키서스와 세레터시스는 나보다 생각이 더 빨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지만, 그들이 쓰고 있던 커다란 마스크는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도 무엇이든 다 가능할 것 같았 다. 두 사람이 늑대로 변해 집 벽을 뚫고 들어간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도구 주머니에서 손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원통을 꺼내더니 자신의 얼굴을 한 번 건드리고는 몸을 돌려 엄지손가락으로 원통을 찰 깍 눌렀다. 이 모든 동작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곧이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두 니수인은 함께 어둠속으로 뛰어들었다. 비명 소리가 더 들렸고, 세트포스인 두세 명이 살 려달라고 비는 소리, 아이들만 @p 97 은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다시 비명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한 집에서 불 길이 솟았다. 그리고 불빛을 비춰 집 안에서 시체들을 끌로 나와 도로에 한 줄 로 늘어놓는 세타키서스와 세레터시스가 보였다. 그들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세타키서스가 말했다. “다시 한 번 통역을 해 주셔야겠어요. 불쾌한 일이 되겠지만, 정말 필요한 일 입니다.” 그는 베펨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광장으로 돌아가다 공격당하면 받은 훈련대로 따라 하도록. 공격자들과 주변 인물, 그들이 나왔거나 달아나던 건물에 있는 모든 사 람들을 사살할 것. 그들과 연관있는 건물을 모두 불태우고, 시체를 전시할 것.” 마스크 아래로 보이는 크루릭스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세타키서스는 그에 게 뭐 잘못된 것이 있느냐고 날카롭게 물었다. “아닙니다. 선장보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제렘을 일으켜 세 엄마들에게 기대도록 했다. 그들은 왕궁 광장을 향해 떠났고, 나는 두 남자와 함께 활활타고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들어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핸드 메이저라는 거죠. 눈에 보이지 않는 빔을 발사해 고기를 한 순간 에 익히고, 나무와 섬유에 불을 지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며 세타키서스가 말했다. 그는 지붕 가운데 불이 붙지 않은 부분을 겨냥하더니 또 다시 찰깍하면서 핸 드 메이저를 눌렀다. 후쉬 하며 부드러운 소리가 나더니 겨누었던 곳에서 불길 이 솟았다. 모여 있던 세트포스인들 @p 98 이 두려움에 신음 소리를 냈다. “이제 확성기를 통해 제가 하는 말을 전해 주세요.” 나는 확성기를 입에 대고 우리를 공격했기에 ‘쓰레기 주머니’와 옆에 있던 네 사람-화살통을 지닌 채 누워있는 시체-을, 그리고 이들을 집에 숨겨주엇던 다른 사람들을 세타키서스가 사살했다고 전했다. “우리에게 반항하는 사람들, 혹은 의도적이었건 비의도적이었건 간에 그들을 아주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세타키서스가 말했고, 나는 세트포스어로 옮겻다. “뿐만 아니라 이 쓰레기 주머니들을 위해서는 어떤 모임이나 애도 행사를 가 져서는 안 된다. 저들을 무덤에 묻어서도, 장례식을 치러서도 안 되며, 이들의 죽음과 관련된 어떠한 모임도 불허한다. 지금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이 명령에 반 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은혜를 베풀어 이번엔 몇 명만 처단한 것이다. 처단되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명령을 전달하라.”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채 어안이 벙벙하여 서 있었다. 세레터 시스가 사람 사이로 걸어들어가 세 사람을 잡아서 불타고 있는 집 앞으로 끌고 나왔다. 나는 무엇인가를 보았고, 군중들 사이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세타키서스가 놀 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설명조차 하지 않은채 내가 돌보았던 다섯 살짜리 꼬마 에서의 머리카락을 낚아챘다. 이 작은 짐승의 변덕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없이 매를 맞아야만 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이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선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는 아리를 다른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끌 @p 99 고 갔다. 가만히 있게 만들기 위해 나는 아이를 바닥 위로 세차게 밀어 앉히 고는 머리를 발로 내리쳤다. 아이는 두려움과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 아이도요.” 세타크서스는 알았다는 몸짓을 했다. 마스크 아래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당황 한 표정이었다. 그는 나를 통해 처형의 현장에 사람들을 모이게 만든 벌을 내려 다른 이들의 본보기로 삼겠다고 말한 뒤 세레터시스와 함께 원통을 머리에 겨누 어 찰깍 눌렀다. 드들은 고기가 익는 냄새를 풍기며 삽시간에 목숨을 잃었다. 세타키서스는 메이저를 거두고는 확성기를 통해 다섯을 셀 동안 남아 있는 사 람들에게 이 무기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에 뿔뿔이 흩어졌 다. 그는 나를 돌아보고 에서이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왜 그랬죠?” “내가 가장 최근에 시중들던 주인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님의 가족이기도 했 구요. 이 아이를 처형하면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으며, 복종해야 만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줄수 있잖아요.” 나는 조그만 시체를 발로 한 번 찼다. 리퍼블릭 호로 돌아온 지 이 지역 시간으로 7일이 지나고 나서야 나와 베펨은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으며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처음으로 생각할 수가 있었 다. 우리는 아무 거나 먹기로 결정을 내렸다. “일이 정말 많군.” 둘이서 잠시 동안 꾸역꾸역 입 안을 채우다 내가 말했다. “여기 온 뒤로 하루에 8분의 1도 푹 자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p 100 “이 일이 끝나고 나면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바로 이거예요. 오랫동안 낮잠 자는 거. 누가 이런 일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7일 동안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진정한 부족민 마을에 살던 니수 인들은 모두 수십년 동안의 노예 생활에 대한 보복을 환영했다는 것과 진정한 부족민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처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음식 을 받아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신이 도착하고 나면 책임질 일이 더이상 없게 되는 것이다. 몇년 동안 농삿일 을 꽤 많이 했던 프리루스 사람들을 시켜 도랑을 청소하고, 물을 나르고, 잡초를 뽑고, 괭이질을 하는 등 필요한 일들을 모두 하게 했다. 그리고 곡식 창고 관리 도 해야 하고, 불도 꺼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오기 전 그들이 해왔던 일들을 다시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착륙선으로 가 휴식을 취하고 정상적인 음식을 먹기 전 어떤 세트포스인들은 찾아와 토지 분쟁을 해결해 달라고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마을들 이 진정한 부족민에게 ‘빚지고 있는’ 세금을 안 낸다면 불평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행한 일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적어도 우리가 구출해 준 니 수인들 사이에서-님 라와 그의 후계자들을 모두 처형한 일이었다. 모든 일을 깔 끔히 처리하기 위해 우리는 석탑을 날려버렸고, 담에 구멍을 뚫었다. 제국의 수 도였던 진정한 부족민 마을은 이제 끝이 났다. 공포에 떨던 세트포스인들을 생 각하면 이따금씩 미안해지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디에렌이나 그녀의 아 버지와 대화를 나누던 가운데 얻었던 교훈을 떠올렸다. “현지 공주님을 함께 데리고 갈 생각이세요?” @p 101 눈을 야릇하게 반짝이며 베펨이 물었다. “뭐라구?” 입 안 가득 음식을 담은 채 내가 말했다. “디에렌을 그렇게 하실 생각 아니에요?” 나는 깜짝 놀랐다. “글쎄, 그럴 생각은 아닌데...” 베펨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겠조. 그 여자는 상사님 주위를 애완 동물처럼 맴돌고, 상사님은 몇 시 간이고 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그 여자한테서 진정한 부족민어를 배우기도 하고..., 그 여자는 몸매가 훌륭할 뿐 아니라 얼굴도 예쁘고..., 이 모든 게 우연이겠죠.” 베펨이 질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와 나는 어떤 식으로든 연루된 적이 없었던데다 이런 이야기를 우아하게 나눌 만한 방법도 없었기 때문 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 헛소리하지 말라구. 그년는 훌륭한 통역가 가운데 한사람에 불과하니 까. 맞아, 예쁘기도 하지. 하지만 그녀나 나나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 “그리고 어쩌다보니 투석을 하러 바로 이 착륙선으로 오게 된거구요?” “글쎄, 어머니가 의식을 되찾으셨거든. 어머니 얼굴을 볼 때가 된 거지. 줄곧 걱정하고 있었는데...” 몇 십 년 전 소이켄이 이루어놓은 업적 덕에 래리마식스 박사는 2-3일 만에 도처에 존재할 뿐더러 흡수가 되지 않는 세트포스 단백질을 니수 면역계가 처리 하는 과정에서 독소가 차츰 쌓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때문에 신장과 폐 장 애, 조기 불임과 진정한 부족민 마을에 살고 있던 니수인들이 존재 여부조차 몰 랐 @p 102 던 다른 합병증의 절반 가량이 유발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일단 문제가 해결되고 나자 레리마식스 박사는 독소 제거를 위한 투석기와 재 생 유도 약품을 만들었다. 그는 와코펨 조모스 호를 타고 왔던 니수인들로부터 시작했다. 그들은 도착 첫날부터 세트포스 음식을 어른 분량만큼 섭취했으니 그 만큼 더 많은 독소가 축적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몇 년만 더 늦게 도착했더라면 니수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도 있었데. 레리마식스 박사님의 말에 따르면 나이가 많은 ‘순수’ 세 대는 거의 위험 수위였다고 하더군.” “사람들에게 노예가 되기 이전 기억이 없었더라면, 어른들한테서 들은 이야 기가 없었더라면, 복수심이 덜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베펨이 물었다. “내 생각엔 어디서부터 시작하건 노예 생활은 노예 생활인 것 같아. 그들이 얼마나 세트포스인들을 증오하는지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겠지. 나 또한 이 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내 말을 들으며 베펨은 음식을 한 입 크게 베어물고는 열심히 씹기 시작했다. “저두요. 하지만 심각하게 말씀드리는 건데요, 상사님. 상사님은 디에렌에 대 해 아무 감정이 없을지 몰라도, 디에렌은 분명 상사님에게 반했어요.” 그 말 때문에 마음이 더 불편해졌던 것은 사실 꿈을 꿀 때마다 그녀가 나타났 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오래 잘 수는 없었지만 잠을 잘 때마다 꿈에 나타났다. 그녀의 잔인함에 나는 충격받았고, 그녀의 경험에 나는 놀랐다. 사춘기가 지나 고 나서부터 그녀는 성교를 하도록 명령을 받 @p 103 은 사람과 성교를 해야 했는데, 그 일이 그나마 가장 덜 힘든 일 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 멋진 구석이 있었다. 그녀의 생존 방식에 감명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새로운 것이라면 뭐든지 그 자리에서 알고 싶어하는 강렬 한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었다. 베펨의 말처럼 디에렌이 단순히 예뻤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베펨의 눈빛을 보니 디에렌이 화제에 오르자마자 내 눈빛이 멍해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멍청하게도 어떻게 상황을 호전시 킬까 궁리하던 찰나 거대한 식사의 마무리 과정인 듯한 패스트리를 들고 크루릭 스가 들어 왔다. “저랑 얘기 나눌 시간들 있으세요?” 베펨은 분명 안심한 기색이었다. 그녀 또한 말다툼을 벌이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쪽이 얘기하는 동안 우리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편이 훨씬 좋겠네 요.” 크루릭스는 자리에 앉아 들고 온 패스트리를 한 입 배어물고는 우물우물하며 말을 꺼냈다. “음, 난처한 부분부터 시작을 하자면, 다시 영점 에너지 레이저와 충전판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곳으로 돌아와 기록된 그래프를 봤더니 레이 저를 조정할 때마다-착륙선이 이착륙할 때나, 탐사기를 쏘아 올릴 때마다 현상 을 유지할 수 있도록 레이저를 조금씩 조정해 주어야 하죠. 충전판의 반응이 점 차 이상해졌단 말씀입니다. 혼란을 일으키는 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고, 완만한 곡선이 점점 더 적어지고 있어요. 고장이 날까 정말 걱정입니다.” “음, 그때 아지어와 이야기 나누던 그 문제 아닌가?” 내가 물었다. 그가 언급하는 사항은 귀기울여 들여야 할 내용이 @p 104 기는 했지만,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네, 바로 그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아지어는 무서워서 스트리옙틴에게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 하지도 않아요. 스케줄이 약간 늦춰지게 되거든요. 탄 도 궤도 내에서 철저한 검사를 하려면 열흘 정도 걸릴테고. 엘리베이터처럼 왔 다갔다 하는 게 아니라 랑데부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착륙기는 지금처럼 하 뤄에 두 번 왕복할 수 없고 이틀에 한 번 정도 비행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스트리옙틴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는 거지요. 하지만 제 생각에 스트리옙틴이 이런 위급한 상황을 알게 된다면 그렇게 막무가내로 굴진 않을 겁니다. 그분도 임무를 완성하고 본국에 귀환하길 바랄 테니까요. 따라서 그분도 상황이 위급하 다는 것을, 왜 위급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분에게 접근할 수 있는 지 두 분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는 거죠.” 그는 패스트리를 한 입 베어물고 열심히 씹어대며 덧붙였다. “사실 우주선만 안전하다면 그분이 제게 화를 내도 상관은 없지만, 제가 워 낙 귀찮게 구는 인물이라 상황을 설명할 기회가 그렇게 쉽게 얻어지지 않다는 거죠. 제가 얘기를 꺼내면 귀찮아 할까봐 겁이 나는 거구요. 제 생각엔...” “실례” 안으로 들어오며 스트리옙틴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얼어붙었다. 그는 둘러보 더니 한숩을 내쉬었다. “아니, 자네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지는 말게. 크루릭스. 일부러 듣고 있었던 게 아니라 지나가는데 자네가 이야기했던 거야. 그러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메인 드라이브가 고장날 것 같단 말인가?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그게 고장나면 우주선이 폭파할 수도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p 105 “공중에 떠 있을 때 고장이 나면 그렇습니다. 정치관님.” 크루릭스가 말했다. “궤도를 그리고 있거나 비행 중이라면 고칠 시간이 충분한데다 고치는 것은 어렵지도 않습니다. 우주선이 대기권으로 진입하려는 순간에 충전판이 아래 쪽 에서 엉키게 되면 폭팔하는 것이지요. 비상 재가동이 되긴 합니다만, 그런 일이 발생하면... 글쎄요, 그땐 우주선이 아마 상당히 망가질 겁니다. 때문에 제가 궤 도를 돌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럼 철저한 검사를 할 수가 있으니가요.” 스트리옙틴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글쎄, 우리가 협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네만, 우리 네 사람 모두에게 나쁜 소식이 될 것 같군.” 스트리옙틴은 우리가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게. 님의 출산 정책 때문에 우리들은 난처한 입장에 처 하게 됐다는 것, 다들 생각해 봤겠지. 원래의 탐사단이 아이들을 두세 명 정도 낳았을 경우에 대비해 우리는 니수인들을 열 명 정도 데리고 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마련했지. 불편함을 감수하며 억지로 끼워 넣는다면 열두 명이 한계야. 하지만 지금 상황은 현재 니수인들의 3분의 1도 안 돼. 이 사실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 이 상황에 대해 니수로 메시지를 송신하긴 했지만, 지금부터 4년 뒤 본 국 사람들이 메시지를 받을 테고 그러면 2년 정도 구조단을 모을 테지. 그리고 다시 4년 반 뒤에야 구조단이 여기 도착하겠지. 그러니까 적어도 10년 뒤에 도 움을 받게 되는 거야.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지. 자네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테지만, 이곳에 있는 니수인들은 예전에 노예였기 때문에 세트포스인들을 무서우리 만치 증 @p 106 오하지. 그들에게 무기를 주고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라고 말한다면 니수인 으로 구성된 님 제국을 다시 만드는 꼴밖에 안 돼. 평등은 누구에게나 적용돼야 해. 석가시대의 세트포스인들에게도.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 정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하고, 예전에 노예였 던 주인이었던 간에 그들에게 적어도 니수처럼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줘 야 하지. 그리고 나는 정치관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해야만 하네. “그러니까, 이곳에서 10년 이상 계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크루릭스가 물었다. “자신에게 어떤 임무가 주어질지 늘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이 결정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어. 무엇보다도 구조선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10년은 걸릴 테고, 니수로 돌아가기까지 다시 4년반이 걸릴 테지. 그럼 거의 15년이 지난 후 에야 난 본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다는 얘기야. 하지만 이곳엔 연구팀이 있게 될 테니까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가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지지. 필요한 장 비만 지상으로 옮기고 나면 우주선은 출발할 수 있어. 우주선에 승선할 사람들 에겐 임무가 거의 1년 정도 단축되는 셈이지.” “그 사람들은 좋겠군요.” 발을 내려다보며 크루릭스가 말했다. “한 팀이 정치관님과 함께 남게 될 거라고 하셨죠?” “글쎄, 내게 필요한 사람들은 이것저것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하급 장교들 몇 명이지. 난 단순한 사회 계획가에다 정치인에 불과하니까. 이 임무에 적합하긴 하지만 혼자서 해낼 수는 없어. 기술적인 지식을 갖추고 이곳에 기능적인 사회 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가진 장교가 필요해. 상급 장교들은 우주선을 조종 @p 107 해야 하고, 일반 항해사들은 교육을 별로 받지 못했으니까.“ 나는 스트리옙틴의 말을 들은 후 내가 해야 할 말을 했다. “제가 남겠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게 명백할 때 뒤로 물러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게다 가 정치관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어떻게든 이곳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자원을 하면 적어도 신용은 얻게 되니까. 게다가 이 때문에 선 장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주요 과학 프로젝트 실행에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주를 시작하면서 어떤 사람에게 행정직을 맡길 것인가를 결정 할 때 실전 경험을 가장 많이 쌓은 사람 가운데 하나로 내가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스트리옙틴에게 커다란 호의를 베풀고 나면 정계 인물들과 연결이 될지도 모른다. 권력 피라미드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 니었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디에렌도 있잖아.’ 베펨 에게 자원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녀 또한 나와 거의 비 슷한 이유에서였으리라. 베펨과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 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와 똑같은 식으로 상황을 살펴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 었다. 서로 덮어두는 편이 나은 일들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을 떨면서 크루릭스가 자원했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우 리는 하룻밤 사이에 예전 노예와 예전 주인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 트포스에 10년 정도 더 거주해야 할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 면서 오랫동안 푹 자리라고 다짐했다. 그럴 기회가 앞으로 오랫동안 없을 것 같 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p 108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의 폭발 8일이 두 번이 지난 아침 크루릭스와 나는 본부-예전에 궁전이었던 곳-에 들 여놓을 실험실 자재 상자 가운데 네 번째 상자와 씨름하고 있었다. “번호 좀 불러봐.” 내가 그에게 말했다. 크루릭스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들어올렸다. 내가 상자의 다른 한쪽을 힘차 게 들어올리자 상자는 있어야 할 자리인 탁자 위로 올라갔다. 그가 한숨을 내쉬 며 말했다. 됐어요. 이제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로 열일곱 번만 왔다 갔다 하면 됩니 다. 지난 번 세 번 왔다갔다 한 뒤 투석기를 옮겨 놓을 수 있었죠. 베펨은 의사 역할을 맡기 위해 의학 지식을 머리 속에 쑤셔넣느라 바쁘기 때문에 상사님과 제가 짐부리는 작업을 도맡았구요. 마지막으로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를 찾 는 날은 작별 저녁 식사를 하고 오투스, 프리캄, 자메코시스를 그곳으 @p 109 로 옮기는 날이겠죠. 하루에 한 차례씩 두 착륙선이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까 열여덟 번 왕복하면 9일이 걸린다는 뜻이지만, 착륙선이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 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제 생각으론 우주선이 떠나기 전에 휴가가 세 번 더 있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음식 세 가지와 좋아하는 샤워 방식 세가지를 생각해 두시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번과 똑같잖나.” “다시 한 번 체크해 볼 가치가 있죠. 이번에 현관에다 부려놓았던 짐들은 이 걸로 끝입니다. 다음 착륙선이 내려올 때까진 반나절이 남아 있고 베펨은 자신 이 설치하는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니까, 음식이나 좀 먹으면서 쉴까요?” “그거 좋지.” 나는 머리에 둘러쓰고 있던, 이 지역에서 나는 천으로 얼굴을 훔쳤다. 우리는 세트포스인들이나 이곳에서 태어난 니수인들과 똑같은 머릿수건을 쓰는 게 버릇 이 되었다. 이 때문에 베펨은 우리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오늘 아침 일찍 염소를 몇 마리 굽는 걸 봤는데, 요리가 다 됐는지 가서 보 자구.” 우리는 예전에 진정한 부족민 마을이었던 캠프를 가로질러 가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과 인사했다. 그 사람들 대부부은 니수인들이었지만,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세트포스인들도 몇 있었다. 인사나눌 때를 제외하고는 세트포스인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그건 친근하고 다정한 침묵이었다. 나는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크루릭스는 확실히 좋은 방 @p 110 향으로 변했다. 우주선에서 44번의 8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도 서로 친구가 되 지 못했었는데, 세트포스에서 함께 일한 짧은 시간 동안 친구가 되었다. 그는 좀더 소속감을 느꼈는지 농담을 줄였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좀더 편한 상대가 되었다. 크루릭스는 영리했으며, 자신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 게 신의가 두터웠다. 게다가 당시 베펨은 내게 대단히 화가 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크루릭스와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내가 크루릭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베펨의 시각을 통해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정하기 힘든 부분이긴 하지만, 베펨이나 스트리옙틴과는 달리 우 리는 이곳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가 좋아하던 음식, 샤워, 오락물, 편안한 잠자리 등을 잃어버리는 것도 상관없을 만큼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서둘러 일을 마친 뒤 대기 상태가 될 때마다 세트포스 음식을 먹거나 언덕꼭대기에 올 라 경치를 감상하는 등 함께 마을이나 마을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스트리옙틴은 꽤 걱정을 하는 눈치예요.” 구운 염소와 양파를 꽂은 꼬챙이를 들고 자리에 앉으며 크루릭스가 말했다.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 같진 않아요. 젊은 니수인 들과 만나는 정치 모임이 생각대로 잘 안 되나봐요. 그가 진정한 부족민어를 잘 못하거나 그 사람들이 아직 니수어를 잘 못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 나는 음식을 한 입 베어물고는 잠시 씹었다. 글쎄, 우리도 그분의 원칙은 원칙이라는 식의 접근 방식을 취하긴 하지만, 기 본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시 @p 111 간이 좀 걸렸잖아. 언어 장벽이 존재하면-게다가 세트포스인들과 친밀한 관계 를 쌓는 등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바를 하도록 이야기를 하니-자네 말처럼 충돌 이 생기게 마련이지. 니수인들과의 문제에 있어 자네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 각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크루릭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다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요. 아시겠지만, 그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만 해도 석기 시대에서 살았을지는 모르지만,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영리 한 동물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다른 영리한 동물들에게, 특히 권력을 잡고 있는 동물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말만 골라서 한다는 겁니다.” 나는 염소 고기가 목에 걸릴 뻔했다. “지당하신 말씀. 그런데 언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정치 교육을 시작할 거라 하시던가? 마지막 왕복 비행 때 이곳에 도착하기로 돼 있는데 말이지. 그 분이 보낸 쪽지에 언제 돌아오실 건지 적혀 있었나?” “이텐이 대리 정치관 일을 맡을 수 있도록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를 정리 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리는데다, 그 일이 문서를 작성하거나 보고를 전송 하는 시간을 빼앗고 있으니까요. 스트리옙틴은 이곳에 있는 송신기가 고장이 나 거나 작동이 잘 안돼서 니수로 보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어떡하나. 본국 에 있는 사람들이 이곳 상황의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하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 고 있어요. 그분이 여기 없으니 사실 불편하긴 합니다. 어쨌거나 그분이야말로 권위가 있는 분인데 말이죠.” 처음에 나는 낮게 우르렁우르렁 하는 소리가 천둥 소리인 줄 알았지만, 천둥 소리치곤 너무 큰데다 너무 오랫동안 계속됐다. @p 112 구름 사이로 거대한 빛이 비쳤다. 점심을 내동댕이치면서 크루릭스가 벌떡 일어났고, 나도 그의 뒤를 따라 궁전 으로 달려갔다. 천둥 소리는 점점 커졌고, 머리위에서 비치는 불빛은 점점 밝아 졌으며, 달리는 동안 발 밑으로 우르렁우르렁 하는 낮은 떨림이 감지됐다. 갑자 기 우리는 강렬하고 뜨거운 바람 때문에 쓰러졌다. 땅바닥을 뒹굴다 일어나 다 시 달렸지만, 더 큰 충격으로 두 번 더 쓰러졌다. 본부에 도착해 보니 베펨이 이 미 도착해서, 라디오에 대고 미친 듯 소리 치고 있었다. “연락 승인 바람.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 연락 승인 바람!” 그녀는 절망감에 신음 소리를 냈다. 조절판을 계속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통신 연결 장치를 재생하세요. 크루릭스. 메시지를 놓치면 안도니까...” 크루릭스는 재빨리 다른 책상으로 달려갔고, 그의 손가락은 키위를 날아다녔 다. “짧은 메시지가 하나 있어요.” 재생된 메시지가 스피커를 통해 지지직하는 소리를 냈다. 목소리는 단조로웠 고,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배제스,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에서 보고함. 영점 에너지판이 우주선 메 인 드라이브 레이저 내에서 움직이지 않음. 우주선은 세트포스를 향해 자유 낙 하 중. 비상 충전판 부리기 작동 불능. 따라서 엔진이 복귀된다 하더라도 치명적 인 결과를 낳을것 같음. 우리는...” 메시지가 뚝 끊겼다. @p 113 발 밑에서 느껴지던 흔들림이 멈추었고, 문 밖을 쳐다보았더니 구름 사이로 비쳤던 거대한 불빛도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밤과 같이 어두워지면서 바람이 급격히 솟아오르면서 먼지를 삼키고 지붕을 벗겨내고 있었다. 나는 베펨과 크루 릭스가 내 옆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기 보다는 느꼈다. 베펨이 크루릭스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쪽 말이 정말 맞았다구요.”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잖아요. 우린 이제 어떡하죠?” “글쎄,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밖으로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아보는 것이겠지. 그 방법을 모색한 다음 계획을 짜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계획에 따라줄 것인지 살펴봐야 할 거야.” “원론으로 다시 돌아가는군요. 그러니까 먼저 거대한 레이저가 중단됐고, 그 다음엔 어떻게 된 거죠?” “바다가 더이상 끓지 않고, 바다 위에 있던 증기가 더이상 가열되지 않게 됐 죠.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감안해 볼 때 급속히 냉각됐을 겁니다. 눈깜짝할 사이 중앙에 꽤 커다란 진공이 생겼구요. 번개가 친 뒤 공기가 한꺼번에 잽싸게 돌아 왔기 때문에 쾅하는 소리가 들린 겁니다. 그리고 비상 분리기가 작동되면서 레 이저가 재가동됐고...” “잠깐만, 그 중간에 시간적으로 간격이 있었을 테고-레이저가 작동하지 않는 동안 말이지-그 사이 세트포스는 자전을 하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레이저가 재 가동되기 시작했을 때 우주선은 상당히 추락했을 뿐 아니라 서쪽으로 약간 이동 한 상태가 되지.” 내말을 들은 베펨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p 114 “그러니까 이미 형성돼 있던 구름을 향해서가 아니라 맑은 하늘에서 바다를 향해 레이저가 갑자기 발사된다는 말이잖아요. 그렇게 추락한 상태라면...” “행성 표면 쪽으로 반 이상 추락했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표면에 전달 되는 에너지의 강도는 네 배가 됩니다. 바닷물이 대거 증기화하면서 과열된 공 기 기둥이 우주선을 날려버렸구요. 그러니까 지금 한 지점에는 커다란 진공이 형성돼 있고, 거기서 약간 서쪽으로는 엄청난 양의 고압 과열 증기가 있는 겁니 다.” 크루릭스가 말했다. “허리케인이군. 하루의 8분의 1시간 이내로 밖에선 거대한 폭풍이 형성될 거 야. 거친 바람이 생기고, 정말 엄청난 비가 내리겠지. 다수의 고지대에 둘러쌓인 채 계곡마다 강이 넘쳐흐를 테고,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살고 있는 부실한 집들 은 바람이 불면 무너져버릴 거야. 지금 당장 단단한 피난처나 고지대로 대피해 야만 해.” 내가 말했다. “여기서 좀 떨어져 있는 산 속에 물기가 없는 동굴이 있긴 해요. 무슨 일이 죠? 커다란 천둥 소리는 우주선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인가요? 그리고 ‘허리 케인’이라는 게 무슨 뜻이죠?” 비를 뚫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며 디에렌이 말했다. “거대한 폭풍을 말합니다. 이곳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어느 폭풍보다도 거 대할 겁니다.” 나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시간이 하루의 8분의 1정도밖에 없어요.” 크루릭스가 덧붙였다. “그 동굴에 사람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나요?” @p 115 니수인들은 모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밖에 이동하지 않을 겁 니다. 우주선이 더이상 지원해 줄 수 없다면, 세트포스인들을 더이상 돌볼 여유 가 없잖아요. 게다가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잘 상황을 헤쳐나가겠죠. 그 사 람들은 이곳 붙박이들이고, 우린 그렇지 않아요. 가뜩이나 정치관이 여기 없는 상황이니 세트포스 ‘형제들’에게 우리가 ‘빛’을 지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말기로 해요. 디에렌이 말했다. 논쟁을 벌여봤자 무의미한 일이었으므로 내가 입을 열었다. “가능한 한 빨리 이곳으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 다.” 이렇게 말하며 디에렌은 빗속으로 다시 뛰어갔다. 우리는 가방을 움켜쥐고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쑤셔넣었다. 그 일을 끝마칠 때 쯤 첫 번째 니수인이 도착했다. 여분의 가방에는 비상 식량을 담았다. 도착하 는 사람들이 들고온 짐 속의 공간에 중요한 물건이나 먹을 것들을 담았다. 그것 밖엔 달리 꾸릴 방법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바깥에서는 비가 점점 억세게 내리 기 시작했고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어서 빨리 떠나야지 안 그러면 움직이지 못할 거예요.” 프리루스와 함께 도착한 디에렌을 보며 크루릭스가 말했다. 걸을 수 있거나 함께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모였어요. 프리루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동굴은 님의 자식들이 놀던 동굴이야. 좀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 길은 강을 두 개 건너야 하니까 오늘은 그 길로 가는 게 불가능할 것 같 @p 116 고, 직선으로 언덕을 오르는 길을 택해야 할 거야. “맞아.” 프리루스가 말했다. “준비 다 됐습니까?”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준비가 된 것이었다. 디에렌과 프리루스를 앞장서게 하고, 우리 보조 선원 세 사람은 무기를 들고 뒤따랐다. 건물 밖으로 나와보니 바람이 윙윙대고 있었고, 차가운 비가 심하게 퍼붓고 있었다. 다행히도 고지대는 바람의 반대 쪽에 있었기 때문에 250명 정도 되는 피난민들은 바람을 등진 채 걸을 수 있었다. 앞을 호위하고 있는 우리들은 불행히도 거꾸로 걸어야 했기에 시야를 맑게 하느라 애써야 했다. 핸드 메이저는 비가 내리면 쓸모가 없기 때문에-팽팽한 빔속에 담겨 있는 극 초단파가 흩어져 물방울에 흡수되고 만다-우리는 초소형 산탄총을 휴대했다. 본부에서 40발자국도 채 걷기 전,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세트포스인들이 보였 다. 물론 마을에 있는 모든 니수인들에게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면 세트 포스인들에게도 대피하라는 사실을 알리는 결과가 된다. 모국어를 아는 사람이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디에렌은 진정한 부족민어로 이 사실을 알려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세트포스인들도 언덕이 있는 곳으로 대 피하리라는 말이 되고, 또 몇몇은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제 우리가 대피를 하고 있으니 약탈할 물건이 있나 살펴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떠나면서 문을 잠그기는 했지만, 폭도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버티지는 못할 것 이다. 그들은 맨손으로 문을 여는 데 상당한 재주가 있었다. 이 폭풍 속에서 살 아남게 된다면 필요한 장비들이 그 @p 117 안에 들어 있었으므로 그들이 약탈을 한 뒤 불을 지르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 었다. 바람이나 홍수 때문에 건물이 파괴될 가능성도 있었지만-우리로서도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적어도 미래의 약탈자들의 손에 파괴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할 수는 있었다. 우리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짧게 총을 발사했다. 첫 번째 줄이 비틀거리더니 무너지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목표물을 거의 볼 수가 없었지만, 움직이는 동작은 보였 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총알을 날렸다. 크루릭스는 핸드 메이 저를 한 번 발사했다. 빗속을 뚫고 날아가지는 못했지만, 우르릉쾅 하는 강력한 소리를 냈고, 빔과 부딪쳤던 빗방울은 증기로 폭발했다가 다시 응결했다. “괜찮은 속임순데! 저 사람들이 무서워했을 거야!” 빗속에서 내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매니저를 몇 방 쏘다가 빗속에서 본부가 차츰 희미해지자 잠시 멈추어서서 피난민들이 우리와 조금 멀리 떨어져가게 만든 뒤 초소형 산탄총으 로 일대를 쏘아댔다. 비명 소리들은 만족스러웠다.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고 있을 거야. 게다가 적어도 이런 날씨 속에선 화살이 별 소용 없지.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한 것 같으니까 사 람들을 따라잡는게 좋겠어.” 마을 바깥에 있는 첫번째 산등성이에 다다르자 비바람은 더욱 세찼다. 우리는 뒤를 돌아봤다. 진정한 부족민 마을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몇몇 물건은 약탈당한 것 같아요.” 베펨이 소리질렀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네요!” @p 118 “동굴까진 얼마나 남았지?” 크루릭스에게 소리질러 물었다. “산등성이를 하나만 더 넘으면 산기슭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가 나를 향해 외쳤다. “다음 계곡만 넘으면 홍수 수위는 벗어날 것 같아요.” 얼마 뒤 우리는 두 산등성이 사이를 지나게 되었느데, 그때 이미 물은 발등을 덮으며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조심 걸어야만 했다. 졸졸 흐르던 물은 곧 사 나운 강으로 탈바꿈할 조짐이 보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쳤고 추위에 몸을 떨긴 했지만, 우리는 별다른 사고 없 이 두 번째 산등성이 정상까지 올라갔다. 거기서부터는 산등성이를 따라가야 했 기에 더 많은 바람을 맞아야 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렸기 때문에 나는 산등 성이가 낮은 산과 연결되는 지점에 도착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위로, 위로, 더 위로 올라가는 듯하더니 마침내 비틀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나는 비가 내리지 않는 어두운 곳과 마주쳤다. “다 왔어요.” 바로 옆에서 디에렌이 말했지만, 너무나 어두웠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보이 지 않았다. “모두들 무사히 도착한 것 같아요.” 나는 몸을 돌려 내다봤다. 바람에 날리는 비의 장막 사이로 희미한 회색빛이 동국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동굴에서는 진흙과 사람 냄새가 났다. “삐죽 튀어나온 곳 아래에다 불을 피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연료가 있다면 말입니다.” 크루릭스가 말했다. 이곳에서 놀기를 좋아하던 님의 자식이나 손자들을 따라다니던 @p 119 프루릭스와 디에렌이 남겨놓은 장작이 쌓여 있었고, 장작들은 재빨리 크루릭 스의 손으로 넘겨졌다. 그는 나무 토막들을 깔끔히 쌓은 뒤 멀찌감치 떨어져 핸드 메이저를 몇 발 쏘 았다. 그가 겨냥한 곳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연기 가운데 일부는 동굴 안으로 들어 왔는데, 매운 연기였기 때문에 바람이 불 때마다 사람들은 기침을 했다. 그 래도 우리는 장작불에 둘러앉아 온기와-대분의 온기는 옆에 않은 사람한테서 솟 는 것이었지만-불빛과 다가올 위험을 모면했다는 느낌을 나누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바람이 점점 강해지자 우리는 장작을 더 쌓았고, 옹기 종기 모여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했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점점 더 크고 세게 불었으며 비는 점점 심하게 내렸다. 허리케인이 다가온 것이었다. 피곤한 하루였다. 나는 자리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이 행성에서 영원히 살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대지위에서 잠을 자는 것만큼 도움되는 일은 없었다. 250명의 사람이 스무 개의 공동 대열을 이루어 잠을 자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뜨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가지 예로, 계속 잠을 청하려 해도 ‘담요’가 걸어 나가고 밑에서 ‘베개’가 꿈틀거리며 빠져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날 아침에는 모든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아침 햇살에 진흙으로 새단장한 산허리가 보였고, 아래 쪽으로는 깨끗이 씻긴 경치가 부분적 으로 진흙에 묻혀 있었다. 인공적인 허리케인은 사납기는 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정상적인 계 절에 닥쳤더라면 피해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p 120 러나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가 만든 증기 덩어리 때문에 내린 4일 동안의 비는 대지를 흠뻑 적셨다. 산허리까지 잠긴 물에 뿌리는 약해지고 썩었으며 부 족한 햇빛과 사나운 바람으로 껍질이 벗겨진 나무들은 견뎌내질 못했다. 물, 진흙, 나무, 산등성이 사이에서 강으로 씻겨 내려간 모든 것들이 한데 모 여 여기저기서 일시적인 암석댐을 이루고 있었다. 이 댐 뒤쪽에 있던 호수들은 넘쳐서 이전에 밭이던 곳에 거대한 파도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얼마나 많은 세트포스인들이 살아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이 일로 누구 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주선이 사라져 버렸으니 우리의 힘도 사라져버렸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앞 과 뒤를 호위한 채 천천히 돌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세 사람밖에 못 보았고, 그 들은 우리 일행을 보자마자 흩어져 달아났다. 디에렌은 그들이 진정한 부족민이 아니라 해방된 노예들인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가 아직도 진정한 부족민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달아 났는지도 모른다. 진흙과 홍수를 만난데다 노약자들은 많지만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는 탓에 우 리는 예정보다 늦게, 정오쯤 진정한 부족민 마을에 도착했다. 기술 때문이 아니 라 운이 좋았던 탓에 세트포스의 니수인들을 모두 대피시켰고 다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사망자도, 심각한 부상자도 없었다. 내가 그 사실을 크루 릭스에게 알리자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글쎄요. 제가 만약 상벌위원회라면, 우리 모두에게 메달을 선사하겠는데, 불 행하게도 메달은 받으나마나 한 것 같고, 받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네 요.” @p 121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루릭스의 유머 감각에 적응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금 당장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네.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은 얼마 없거든.” 우리는 강을 가로질러 바위에서 부러진 나무까지 줄을 이었다. 이제 우리는 줄을 잡은 채-줄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 옆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섰다 -강을 건넜다. 물은 어른 허리 정도 높이였으므로 조심하기만 하면 별문제 없었 다. 프루릭스와 위루스가 이끄는 마지막 사람들이 강둑으로 이동하고나자 우리는 조심조심 진정한 부족민 마을을 향했다. 홍수가 마을을 관통하고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지만,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산등성이에서 보 면 건물들은 많이 서 있었지만, 그곳에는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이 살고 있다 는 흔적은 없었다. 앞문으로 향하는 도로는 예전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생긴 웅 덩이 때문에 끊기거나 바윗돌에 묻혀 있었다. 대부분은 진흙을 드러낸 상태였고, 깊게 패인 곳은 흙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물에 빠진 염소와 나뭇더미를 지나 조심조심 걸어갔다. 마침내 나무 울타리의 잔해가 남아 있는 곳에 도착했다. 우리가 예전에 뚫어놓았던 커다란 구멍 때문에 홍수를 견딜 수 있었던지, 울타리는 놀라울 만큼 형태가 잘 보존되 어 있었다. 마을에서 쏟아져나온 잔해들이 그 앞에 쌓여 있었다. 통나무, 초가, 장신구 조각등. 그 가운데에는 죽은 세트포스 아이도 있었다. “우리한테 쓸모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데다 위생상 큰 문제가 있겠는데요. 이 지역을 다 돌아보고 난 다음 높이 쌓여 있는 물건들을 태워버려야겠어요.” @p 122 베펨이 말했다. “누군가가 선수를 친 것 같은데요. 남아 있는 오두막들 벽에 화재의 흔적이 있잖아요.” 크루릭스가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폐허 속으로 좀더 들어가보니 불로 피해를 입은 집들이 많 이 보였다. 아주 어린 세트포스인들과 아주 나이가 많은 세트포스인들의 시체도 많았고, 심하게 두들겨맞은 흔적이 보이는 젊은 여자의 시체도 보였다. 다른 세 트포스인들의 손에 그렇게 된 것인지, 홍수와 바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불을 피울 수 있을 만큼 번개가 강했던 것도 아닌데-적어도 산 위에서는 말 이지-빗속에서 어떻게 불이 번져나갔는지 알 수가 없군. 게다가 대부분 많이 타 지도 않았어. 내 생각엔 가능한한 모든 건물을 태웠던 것 같아. 적어도 노인들 시체 가운데 한명은 물에 빠져 죽은 게 아니라 칼에 찔려 죽은 것 같던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 걸?” 내 말을 듣고 디에렌은 어깨를 들썩였다. 이곳에 사는 니수인들이 세트포스인 들한테서 배운 몸짓이었다. 그 의미는 다양했다.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도 되었 고, 전혀 모르겠다는 뜻도 되었고, 상대방을 무시하며 쫓아내는 뜻도 되었고, 어 떤 경우 무슨 의미일까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뻔한 뜻을 담고 있 기도 했다. 우리들 가운데 진정한 부족민어를 가장 잘 하는 베펨도 그 동작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아무 대답이 없자 내가 마침 내 입을 열었다. 어, 난 심각하게 질문한 건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 @p 123 나? “제 생각엔 사람들이 겁에 질렸던 것 같아요. 신만이 아는 뭔가 나쁜 일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아마도 디에렌과 프리루스가 사람들을 궁전으로 불러모으 는 것을 보고 우리들에게 닥칠 일이 자신들에게도 닥치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 죠. 그래서...” 베펨이 대답했다. “하지만 겁에 질렸는데 왜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불을 지르죠?” 크루릭스가 물었다. 야만인들이니까요. 여기 살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노예들로, 정복당했던 원 래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었고, 아는 거라곤 님의 군대가 쳐들어 와서 자신들이 이곳으로 끌려왔다는 것 뿐이죠. 때문에 도망칠 기회가 생기니까 많은 사람들이 발자국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른 거예요. 게다가 진정한 부족민 들 상당수가 전쟁 포로로 붙잡혀 온 여자들이 낳은 아이들이니까 그 사람들 또 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몰랐던 거예요. 우리가 이곳을 점령하고 난 뒤에도 그 사람들이 머물러 있었던 것은, 우리가 먹을 것을 제공했던데다 집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줬고, 또 달리 갈데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자 이곳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사라 졌고, 그들 자신들보다 훨씬 큰 무엇인가로부터 분노가 솟구쳤던 거예요. 그리고 이 도시가 신의 분노를 산 것이라 여기고, 이 지역의 모든 종교들이 그렇듯이 태워버림으로써 정화시키려 했던 거죠. 사악한 마을을 없애버려야 했으니까. 똑 똑한 사람들은 언 @p 124 덕 위로 내달았고, 아마 지금도 계속 달리고 있을 거예요. 멍청한 사람들은 마 냥 달리기만 하다가 홍수에 휩쓸렸을 거구요. 그게 진정한 부족민의 끝이고, 만 약 제게 의견을 물으신다면 잘된 일이라 답하겠어요. 디에렌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우리는 도시 안쪽에 있던 낡은 돌문의 잔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돌문은 조 잡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아치 모양을 그리고 있다기 보다는 돌을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형상이었다. 님의 구세력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문을 석탑과 함께 폭파시켜 버렸었다. 이제 그 문은 막혀 있었다. 자신들이 흘러가는 것을 막아줄 만한 단단한 물체를 발견한 바위들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 람들이 도왔는데도 돌무더기들을 다 치우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마을 내의 석조 건물들도 화재로 인한 피해를 드러내긴 마찬가지인데, 특히 건물 내부가 그랬다. 아마도 다른 곳보다 약간 놓았기 때문에 물이 늦게서야 닿 았을 것이다. 홍수는 벽을 몸길이 높이만큼 채웠던 것 같았다. 우리 본부는 불에 타 있었고, 가구들은 대부분 파괴되어 있었다. 작은 물건들 은 많이 사라졌는데, 화재 때문인지 홍수 때문인지 약탈 때문인지는 가늠할 수 가 없었다. 널빤지로 된 낡은 지붕은 두 군데가 무너져 있었다. 모든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찾아 보더니 나무 상자는 깨끗하게 보존돼 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많은 물건들은 흙이나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 을 뿐이었다. 약탈자들의 약탕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몹시 서둘렀던 것 같았다. 게다가 모든 게 불에 타버리기 전에 비와 홍수가 불길을 잡았던 것 같다. @p 125 “건질 수 있는 게 많은 걸. 내가 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캠프를 세우고, 이 안에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꺼낸 다음 떠나는 거 야. 어디론가 말이지, 아니면 이곳에 남아 정착을 하든지, 아니면 또 뭐...” 내가 말했다. “입안 부서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크루릭스가 말했다. 베펨이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물론 그렇죠. 그쪽은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나 보죠? 두 세대가 지나고 나 면 우리들도 이 근처 야만인들처럼 석기 시대로 돌아가게 될 텐데...” “주책없는 농담이었어요. 자, 우린 어제 오후부터 내내 걷기만 했어요. 짐들 을 살펴보면 이틀분 식량은 있을 겁니다. 홍수 때문에 증류기나 그 비슷한 걸 만들어야 이 근방 물을 마실 꿈이라도 꿀 수 있을 거예요. 모두들 지친데다 할 일은 많습니다. 우린 세타키서스 상사님이 이끌어주신 덕에 이 끔찍한 재난을 이겨낼 수 있었고, 지금은 죽은 사람 하나 없이 모두들 안전하게 됐는데도 상사 님은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신을 책망하시니 상사님을 놀리려던 거였 어요. 친구로서 농담을 한 거라구요. 베펨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 나는 크루릭스를 감싸주기보다는 그에게 사과를 하게 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하자 기뻤다. 베펨은 통나무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저도 미안해요. 그리고 피곤하기도 하구요. 다른 생각있으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p 126 “오늘 밤엔 보초를 세우고, 불을 몇 개 만든 다음 밖에서 자야 할 거야. 왕궁 광장이 좀 말라 있는 것 같으니까 거기에서 자야겠지. 여름이라 다행이야. 떠다 니는 통나무로 바닥을 만들어 진흙에 닿지 않게 하는 건 시간이 얼마 안 걸리겠 고, 그 일이 끝나면 식사를 하고 좀 쉰 다음 내일 아침 일어나 쓸 만한 건물에 서 진흙을 치워내는 일을 시작해야겠지. 계획이랄 건 없지만 당분간은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모든 이들에게 할 일이 배당됐다. 우리는 작은 캠프를 만들고, 젊은 남자들에게 보초 임무를 맡기면서 핸드 메이저와 초소형 산탄총 사용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들의 책임감이 강하거나 무서워서 세트포스인들이 접근하지 않기를 빌었다. 나는 곧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디에렌이 깨우는 소 리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둘 가운데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침은 배당식과 물이었는데 몇 년 전 훈련을 받을 때 먹었던 것보다 형편없지는 않았고, 사람들이 염소나 사슴, 돼지 등의 사냥을 떠났기 때문에 적 어도 밤이면 더 나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자, 진흙이나 쓰레기가 별로 없는 석조 건물들을 골라 일을 시작합시다. 2-3 일만 열심히 일하면 우리 모두 지붕달린 집에서 잘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 서는...” 갑자기 내가 여지껏 살아오면서 들었던 소리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 다. 뚜우뚜우 하는 소리가 2중주로 들려왔던 것이다. 순간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끼손가락 끝만큼 작았다가 점점 커다랗게 다가오는 것은 이갤 리테리언 리퍼블릭 호의 두 착륙선이었다. @p 127 세트포스가 내린 증오의 불길 우리를 제외한 모든 승무원들이 착륙선 안에 있으리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였 으므로 우리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함께 듣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들은 우리 쪽에서 응답하지 않았으니 우리에게 송신기가 없다는 걸 알고 있겠 지. “착륙선이 왜 저렇게 높이 떠 있는 걸까요?” 베펨이 물었다. “교묘하게 착륙을 하려는 거지. 들판에 착륙해야 하니까.” “흐으음.” 크루릭스가 착륙하고 있는 비행선을 쳐다보았다. “추락하기 시작할 때 비행 도중이 아니었겠군요. 우주선에서 서둘러 탈출해 야 했다면 다른 물건을 실을 여유도 없이 추진 연료를 많이 소모했을 거예요. 정말 아슬아슬하게 탈출했다면 대기중에서 일어난 폭발로 약간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구요.” “그럼 우리처럼 아무 장비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요?” @p 128 베펨이 물었다. “그렇진 않아요. 반물질 충전은 늘 돼 있는 법이니까. 추진 연료는 단순한 구 식 액화 수소에 불과한데다 여기 물로도 만들 수 있어요. 장비가 장착돼 있죠. 그러니까 24시간 이내에 새 것과 다름없이 될 수 있단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동할 장소만 있으면 되는데...” 크루릭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공식적인 리더는 없었기 때문에 착륙선이 내려앉는 순간을 보고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들 첫 번째 착륙선을 보기 위해 무너진 나무 울타리 앞 들판으로 달려갔다. “자네 생각이 맞았던 것 같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달리며 내가 크루릭스를 보고 말했다. “위치 조절 분사기를 얼마나 아껴 쓰고 있는지 봐. 바위나 나무, 커다란 진흙 탕을 피할 수 있을 정도만 쓰고 있잖아. 분명히 추진 연료를 아끼려는 거라구.” 우리는 진흙 속에서 멈추어 섰다. 베펨이 물었다. “누가?” “배제스 선장님이.” 내가 말했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흐르면서 두 친구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부드럽게 크루릭스가 말했다. 세타키서스 상사님. 우주선을 가장 마지막으로 탈출하신 분이 선장님입니다. 선장님까지 탈출하셨을 시간을 있었을까요. 누구 @p 129 였든 간에... 착륙선은 천천히 내려앉으며 가벼운 바람에 옆으로 천천히 움직이다 질퍽한 땅 위에 발을 딛었다. 땅이 무르기 때문에 다리가 잠기면서 착륙선이 전복될지 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는데, 착륙선은 진흙을 약간 튀기며 거의 똑바 로 섰다. 밸러스트 탱크가 압축 공기로 채워지면서 커다랗게 쉬잇쉬잇 하는 소 리를 냈고 마침내 착륙했다. 곧장 다음 착륙선이 도착했다. 착륙선이 도착하는 모습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번뜩 깨달았다. “저 안엔 아무도 없어. 누가 원격 조종하고 있는 거야.‘ 착륙선은 진흙을 잔뜩 튀기며 쿵 하고 착륙 지점에 내려앉았다. 쉬잇쉬잇 하 는 소리를 내며 공기가 압축될 때도 똑바로 선 채 움직이지 않고 단단히 섰다. 첫 번째 착륙선의 계단이 내려지면서 1등 장교인 베레맘이 나왔다. 그녀의 얼 굴을 보니 반갑기는 했지만, 베제스 선장님이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뜻이었으므 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다가갔다. 이텐이 계단으로 내려왔고, 그 뒤로 티식스와 다른 착륙선을 조종할 때 쓰던 원격 조종기를 아직도 손에 들고 있는 프로예린이 내 려왔다.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갔고, 다른 두 보조 선원들이 뒤를 따랐다. 베레맘은 참담한 표정이었다. “목숨을 구한 사람은 우리들 뿐이야.” 안에서 수리를 하고 있을 때 우주선이 갑자기 추락하기 시작했어. 선장님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문을 봉한 다음 투하기를 눌렀고, 우리는 그분이 뭘하고 계신지도 모르는 채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됐지. 그런 다음 빈 착륙선을 투하하셨 는데 그 안에 있는 @p 130 로봇 조종사가 우리보고 신호를 보내 달라고 하더라구. 살아계신 마지막 순간 에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신게 분명해. 난... 그녀는 흐느끼면서 베레맘 앞으로 쓰러졌다. 나는 그녀를 붙잡았다. “저 분은...줄곧...상태가 안좋으셨어요.” 프로예린이 우리에게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사람과 함께 그녀 를 부축한 채 계단을 올라 착륙선 안으로 들어간 뒤 임시 침대에 눕혔다. 우리들 가운데 베펨이 의료 훈련을 가장 많이 받았으므로 그녀에게 베레맘의 간호를 하게 했다. 크루릭스와 프로예린은 착륙선이 어떤 상태이며, 어느 정도 수리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나가면서 들은 소리에 따르면 그다지 수리를 많이 할 필요는 없는 듯했다. 나는 일반 항해사이자 가장 뛰어난 선원인 이텐과 티식스에게 물었다. “음, 자네들한테서 보고를 들어야겠군. 1등 항해사께서 건강이 안 좋으시다 면, 프로예린이 1등 상관이 되고 내가 그 다음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거지?” 이텐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주선이 추락하고 난 뒤 내내 똑같은 질문을 자신 에게 던져왔던 듯 피곤한 기색이었다. “베레맘께서 말씀하신 그대롭니다. 마지막 여행을 끝내고 진공기로 쓰레기를 치우고, 닦고 기름칠하고 조이는 등 기계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프로예린께서는 뒤쪽에 계셨구요. 그분은 액화수소 탱크를 비운 다음 5퍼센트 정도 채웠을 때였 어요. 베레맘께서는 착륙선의 우주 여행 시스템의 체크리스트를 점검하고 계셨 구요. 그때 갑자기 무중력 상태가 된 거예요. 갑자기 말이죠.” @p 131 티식스가 뒤를 이었다. “그때 무엇인가가 저와 베레맘 1등 항해사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어요. 크루릭스가 우주선이 고장날 수 있다고. 충전판이 서로 붙어버릴 수 있다고 말 을 했을 때 우리 둘다 조종실에 있었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들었거든요. 우리는 문을 닫기는 했지만 봉하지는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지 만-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다리 쪽으로 가려고 했을 거예요-갑자기 무중 력 상태가 됐기 때문에 별도리가 없었죠. 발을 디딜수도 없었고, 근처에 잡을 만 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쿵 하고 쉬 잇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누가 밖에서 문을 봉한 거죠. 그러다 착륙선이 붕하고 떴고, 우리는 격벽에 부딪쳤는데, 격벽에 엉켜 있던 몸들을 풀 때쯤 전망창으로 우주며 하늘, 세트포스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겁니다. 전 격벽을 발로 단단히 딛 고선 조종 장치를 향해 몸을 날린 다음 한 손으로는 전원 버튼을 켜고, 한 손으 로는 비상 자동 조종 버튼을 눌렸죠. 곧 고도가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꼬리 부분 이 아래를 향하고 측면 분사기가 작동하면서 자동 조종이 제대로 시작된 거죠. 그때 자동 조종사가 코스를 물어 왔어요. 발 아래쪽 멀리로 이미 주황색으로 변 한 리퍼블릭 호가 추락하고 있는게 보였고, 착륙선이 떨리고 흔들리는 게 느껴 졌죠. 몇 초 내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끝장이겠다는 생각에 메뉴 제일 첫 번 째에 있는 ‘지탄두 궤도’를 눌렀더니 메인 엔진이 너무 강하게 불을 뿜는 바 람에 우린 모두 완전히 내동댕이쳐지면서 기절할 뻔했습니다. 속력이 갑자기 5 중력까지 올라갔는데, 아무도 그 준비를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 덕에 안전한 곳 까지 상승할 수 있었지만, 남아 있던 연료의 절반 이상을 써버리게 됐어요.” @p 132 이텐이 덧붙였다.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그런 일을 해낸 티식스는 정말 현명했어요. 우리의 목숭가 다른 착륙선은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선장님도 마찬가지였구요. 그 착륙선 안에도 다른 선원들이 타고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아마 다들 휴식 시간이었나봐요. 카메라가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의 마지막을 잡았는데, 정말 끔찍했어요. 성층권까지 추락을 했는데, 비상 분리기가 작동되기도 전에 우주선 의 일부가 불에 탔고-운이 좋았다면 그 안에 있던 분들 모두 온도 때문에 숨을 거뒀겠죠-우주선 컴퓨터가 본체와 함께 엔진을 폭파시켰죠. 우주선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고, 몸길이의 1백 배 정도 되는 파도가 솟아오르는 게 육안으로 보 일 정도였어요. 아주 뜨거운 공기와 증기가 전리층까지 퍼져나갔구요. 티식스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우린 대기권 밖으로 벗어났더라도 그 아주 뜨거운 충격을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티식스가 맞다는 몸짓을 보였다. “프로예린 보조선원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아요. 리퍼블릭 호의 종말을 담은 영화를 보시면서 분사기가 이미 전소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아시다시피 그 우주선에는 대기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장비가 없었던데다, 그렇게 얇으면 작은 버팀목이나 포드, 아테나처럼 곧장 타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영점 에너지 에 리저가 작동되기 시작하면서 분사빔이 아니라 대조빔을 전속력으로 내보냈을 거 예요. 그 빔은 그 즉시 바다를 뚫고 해저에 있는 바위를 증발시켰을 거예요. 크 루릭스님께서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더 심했을 겁니다. 아무튼 우리는 궤도에 진입했고, 하루의 14분의 1마다 뭐든 조사를 했습니다. 사실상 추진 연료가 하나 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죠. 프로예린님은 거의 미칠 지경이 된 채로 @p 133 -절반만 가동되고 있는 엔진이 견디기가 힘든 상황이었거든요-이곳저곳을 돌 아다니시고 단언하고 중얼거리다가 원격 조종해야 할 또 다른 착륙선이 있다는 것과 그 착륙선이 돌고 있는 궤도가 높고 타원형인데 우리와 거의 직각으로 있 다는 것을 발견하셨어요. 그리고 베레맘님은... 베레맘님은...” “앉아서 울고 계셨죠.” 이텐이 대신해서 문장을 마무리했다. “그분이 잘못하셨다는 게 아니에요.” 그녀가 변호하려는 듯 덧붙였다. “선장님과 그분이 연인 사이였다는 거 아시죠?” “난 선장보야. 그분이 어디 계신지 항상 알고 있어야 하지/” 내가 말했다. “그래. 그렇게 갑작스레 일어난데다, 무중력 상태까지 되니... 그분은 분명 자 신이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야.” 티식스가 맞다는 몸짓을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간신히 생각한 뒤에도 전 무력감을 느꼈으니까요. 전 사실 어느 순간에 폭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잠시 동안 재 진입할 수 있을 만한 추진 연료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영원히 거기 갇혀 지내 야하거나 다른 착륙선과 랑데부해 도킹해야 재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좋은 아이디어가 두 개 떠올랐기 때문에 간신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예요. ‘에어로 브레이킹’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으세요?” “대기권에 닿으면 튕겨가면서 속도를 줄이는 거? 장교 훈련을 받을 때 공부 한 적 있지. 몇 세기 전 우주 탐사 초창기 시절에 재진입할 때 쓰던 방법이잖 아? 이론적으로 그렇게 하면 추진연료도 절약할 수 있고, 정말 그 방법을 썼단 말이야? 착륙선 컴 @p 134 퓨터에 있는 자료실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내가 말했다. “시뮬레이션으로 반나절 동안 연습 비행을 했어요. 연습도 하지 않은 상태에 서 처음 그 방법을 쓸 생각을 하지도 않았어요. 프로예린님이 그런 방법이 있다 는 사실을 떠올렸고. 함께 컴퓨터를 찾아봤더니 있더라구요. 하지만 그분께서 좋 은 아이디어를 내지 않으셨더라면 쓸모가 없었을 거예요. 그분께서 착륙선의 정 화기에 있는 식수를 추진 연료 제조기로 처리하면 수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 을 하신 거예요. 여기서 연료 탱크를 채울 때처럼 말이죠. 안전한 속도로 감속하 려면 19단위 물에서 얻은 수소가 있으면 되는데, 14단위가 있었죠.” “그러니까 탱크 안에 14단위가 있으니까 식수가 5단위만 있으면 됐다고?” 티식스가 씩 웃었고, 이텐도 마찬가지였다. “이 얘기는 프로예린님한테서 직접 듣게 숨겨놨어야 했는데...” 이텐이 말했다. “니수로 돌아가게 되면. 프로예린님은 아마 같이 일하는 친구분들한테 평생 동안 이 일을 자랑하실 거예요. 14단위의 물이 있었죠.” 티식스가 말했다. “식수에 8, 리필이 안 된 상태였거든요. 사고가 있던 순간 청소를 하느라 사 용했던 물 1단위, 하수기에서 5단위. 5단위가 더 있어야 했어요. 순간 프로예린 님은 처리기에 어떤 액체를 넣어도 물과 기타 수소 화합물을 분리해 수소로 만 들어낸다는 사실을 떠올렸죠. 그래서...” @p 135 그는 자랑스럽게 팔을 들어올리며 반창고를 보여 주었다. 이텐도 마찬가지였 다. “ 그럭저럭 괜찮은 비행이었어요. 정말로요. 비상시라 에어로 브레이킹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우주선에다 피를 1단위 이상 뽑았으니... 예전엔 겪어보지 못했 던 일들이었잖아요. 자동으로 조종하고 잇는 착륙선에 제 피가 필요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뻤답니다. 그 착륙선에는 처음부터 연료가 더 많이 남아 있었고, 하 수 탱크가 가들 차 있어서 처리 명령을 내릴 수 있었죠.” 나는 입이 떡 벌어졌고, 정말 잘했다는 말을 더듬더듬 내뱉었다. 달리 또 무슨 말을 할까 고민을 하기전에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작은 방으로 베펨이 들어 왔다. “ 베레맘님은 피로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리고 너무나 큰 슬픔에 잠겨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고. 조만간 우리도 이런 슬픔을 느끼게 되겠지만, 증상의 직접 적인 원인은 착륙선이 튀어나올 때 벽에 부딪치면서 입은 뇌진탕 때문이야. 뇌 스캔을 해봤더니 한동안 정신을 못차리고 멍해질 만큼 세게 부딪치셨던데다가 뇌진탕 초기 단계에서 중력 5의 강속을 겪었으니, 그 정도면 어느 누구라도 정 신이 멍해지고 기운이 없을 거야. 하지만 내가 보기에 최악의 요인은 수치심인 것 같아. 완벽한 기록의 소유자였던데다 예전에도 수천 번의 비상 사태를 경험 했는데, 자신이 중요한 순간에 장애를 일으킬 그런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 셨던 거지.” “저희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분이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그리고 저희들도 머 리를 그렇게 세게 부딪쳤다면 그분과 별다를 바 없었을 거예요.” 티식스가 말했다. “진정제를 드리고, 혈달량을 높이기 위해 정맥 주사를 놓아 드 @p 136 렸어. 반나절 이내로 항우울제를 투여하겠지만, 적어도 꼬박 하루 이상 치료해 서 깊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해. 만약 그렇게 되면 치료할 방법이 없 어지거든. 하지만 투여하면-착륙선 컴퓨터에 내에 있는 의료 자문 프로그램에 따르면-완전 회복될 가능성이 높데.“ 프로예린과 크루릭스도 몸을 앞으로 기울여 진단을 듣다가 프로예린이 입을 열었다. “지금 현재 1등 상관으로서 그분께 임무를 다시 돌려드릴 수 있다면 좋겠군. 자네가 말한 대로 하지. 그러는 동안 인적, 물적 자원 조사를 하고, 기계들을 모 두 고쳐보자구.” “엔지니어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웃으며 크루릭스가 말했다. “당연하지. 물건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내가 자신 있는 분야 인데다 난 내가 자신 있는 일을 하고 싶거든.” 프로예린이 동의했다. 착륙선의 송신기는 작동이 되었으므로 우리가 보낸 신호가 니수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니수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알리라- 아니, 4년 정도 후에 알게 될것이라-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커다란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원히 미아로 남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나았다. 물건을 모으고 베레맘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보낸 이틀 동안 프로예린은 거의 뜬 눈으로 궁전에서 물건을 파내고 고칠 수 있는지 살폈다. 크루릭스가 거의 그 일을 도왔다. 찾아내고 검사하고 고칠 물건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두 사람 은 같은 상황에 놓인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행복했다. 베펨이 진정제 투여를 중단하고 난 이틀 뒤 베레맘은 회복됐 @p 137 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 무인도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매우 우울해 했고, 기운을 회복하면서 몹시 배고파했다. 베레맘은 모든 의학 검사를 실시하는 3일동안, 착륙선의 기술 자료실을 뒤적이던 베펨에 게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걸로 충분해. 이걸로 정말 충분하다구. 지금 건강 상태가 안 좋은지 모르 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자네가 원인을 밝혀 낼 수는 없는 거잖아. 게다가 베펨, 마지막으로 한 세 가지 검사는 어쨌든 자네가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 잖아. 이제 일을 시작하자구.” 우리는 담이 있었던 곳을 알려주는 돌무더기를 지나 진정한 부족민이 남긴 잔 해-불에 타거나 우리가 써버린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가운데 가장 나은 돌집 하나로 들어갔다. 우리는 세트포스에서 태어난 니수인 들이 모두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 가운데 대표 네 명을 뽑으라 고 했고, 이에 따라 디에렌, 프리루스, 오스폭 선장, 그리고 자메코시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수어를 할 줄 아는 대표를 뽑아야 했거든요.” 얼굴 가득 재미있다는 웃음을 머금은 오스폭 선장이 설명했다. “위루스는 낯을 너무 가리고, 오투스는 의식을 회복한 지 얼마 안되죠. 게다 가 여러분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정말 우연이지만.” 그 웃음에 답하며 베레맘이 말했다. “제가 군주였다면 대표로 지목하고 싶은 바로 그분들이 오셨군요. 이제 모두 들 모였으니 조목조목 따져 봅시다.” 우리는 잠시 사용 가능한 자원들을 전부 훑어보았다. 착륙선은 @p 138 꽤 양호한 상태로, 연료 재충전과 준비를 마친 뒤였다. 착륙선을 이용하면 한 번에 여섯 명씩 세트포스 어디로든 이동이 가능했으므로 세트포스인들의 손이 아직미치지 못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후크에서 좀 떨어져 있는 커다란 섬이나, 아니면 사우스랜드 남쪽과 동쪽에 있는 섬들로 이동을 하면, 두 군데 다 세트포스인들이 장기 항해술을 체득하지 않는 한 몇 천년동안이고 그들의 손길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섬들도 많이 있는데, 개중 몇개는 기후 조건이 아주 뛰어납니다. 이들 가운 데 커다란 짐승이나 맹수가 사는 곳은 없습니다. 착륙선으로 네번 왔다갔다하면 모두 이동할 수 있고, 한 번만 더 왔다갔다하면 여기 있는 물건들을 모두 옮길 수 있습니다. 착륙선에 있는 초소형 용해기를 이용하면 철 등 기타 필요한 금속 들을 일정양 만들수 있습니다.” 내가 요약했다. “제가 보기엔 용해기를 약간만 변경시키면 유리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 다. 그리고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화학 재료들도 있구요. 적어도 잠시 동안은 공업 시설을 갖출수 있는 거죠.” 크루릭스가 말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베레맘이 물었다. “글쎄요. 그건 또 생각해 봐야 할 문제죠.” 크루릭스가 말했다. “각 착륙선에는 반물질이 거의 가득 차 있는데- 이착륙시 반물질은 거의 쓰 지 않습니다-그걸 사용하면 5년 동안 최대 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점에 있어 우리는 더 많은 반물질을 만 @p 139 들 수는 있지만-착륙선에 그런 기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그 과정이 끔찍할 정도로 복잡합니다. 물론 이 갤리테리언 리퍼블릭호에 있는 전력기가 있으면 간 단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태양 전지판이 손상되지 않았으니까, 모든 일에 전기를 사용하겠다 는 생각만 버리면 이주지에서 쓸 전기는 충분히 생산해 낼 수 있잖아요. 대신 그 전력을 써서 더 많은 반물질을 만들면 왜 안 되는 건가요?” 내가 지적했다. “왜냐면 반물질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조차 내지 못하니까요.” 크루릭스가 말했다. “하지만 어째든 해결할 방법이 있겠지. 난 문제가 무엇인지 확실히 짚고 넘 어갔으면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에너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죠. 우리 를 구조하려는 노력이 이곳에 올 때까지 착륙선을 유지시키려면 융합 원자로나 수력 전기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군요. 거대한 에너지원이 정말 필요하군요. 그런 에너지원이 없으면 몇 년 뒤에도 현대 산업 기술을 갖출 수 없게 되고, 생각보다 오래 이곳에 갇혀 지 내야 할 경우-아니면 기다리는 동안 비상 사태가 발발할 경우-정말 심각한 문제 가 되겠습니다. 베펨, 베펨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의논거리를 가지고 있는 줄로 아는데, 그 이야기를 지금 나눌 수 있을까요?” 베펨은 한숨을 내쉬었다. “레리마식스 박사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지만 제 생각을 밝혀야 할 것 같군요. 이곳에서 오랫동안 지냈던 니수인들에게 발생했던 끔찍한 단백질 반응 관련 질병이 조만간 @p 140 이곳에서 태어난 많은 니수인들에게도 찾아올 것 같습니다. 위루스는 그 질병 에 걸렸다고 봐야 할 것 같구요. 프리루스와 디에렌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계 속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재 모두들 투석을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안전하고, 이 지역 시간으로 20-30년 동안은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예 를 들어 이 지역 시간으로 44년 째가 됐을 때 그 질병이 발생한다고 하면, 구조 우주선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잡는다 하더라도 서른 명 이상의 니수인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현재 나이가 서른네 살 이상인 사람 들의 숫자와 똑같은 거죠. 하지만 이곳에서 태어난 2세대들이라 하더라도 어머 니의 태내에서 노출이 됐기 때문에 독성을 더욱 빨리 형성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 사람들은 그 정도의 기간을 견디지 못합니다. 견딘다 하더라도 2세대들은 숫 자가 더 많기 때문에 구조 작업이 몇년만 지연된다면 오십명, 아니 1백명... 아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서른명 정도 되 는 연장자들은 분명히 목숨을 잃게 됩니다. 사망자는 이들의 세배가 넘을 가능 성이 높습니다.” “250명이 채 못 되는 사람들 중에서 말이지.” 베레맘이 말했다.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를 타고 있었던 사람들은 분명히 살아남게 되겠 지. 앞으로 44년 동안 사고가 없으면 말이야. 하지만 이곳에서 영원히 갇혀 지내 게 된다면, 최대 수명은 세트포스 나이로 44세 정도가 될 것이란 말이가. 우리 나이로 치면 40정도이고. 우리 여자들은 가임 기간이 3분의 1도 채 못되게 줄어 든 채 죽게 된다는 말이군. 믿을 수가 없어.” “특히 독소 때문에 불임을 빨리 겪게 됩니다.” @p 141 베펨이 말했다. “님조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죠. 사춘기 이후 10년이 지나면 대부분의 니 수들이 불임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린 님이 사람들에게 강요했던 방식을 답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춘기가 찾아오자마자 아이를 낳고 또 낳고 하는 방식말입니다. 그다지 훌륭한 생활 방식이라 할 수 없죠.” 베레맘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뾰족한 수가 없나, 크루릭스?” 그녀가 물었다. 내가 잽싸게 대답했다. “저, 자메코시스에게 한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을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말을 듣고 나면 베레맘은 우리가 정신이 나갔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니수 음식원이 있긴 합니다.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높죠. 문제는 세트포스 단백질을 아주 소량이나마 섭취했을 경우 발생합니다. 따라서 투석을 할 수 없 는 이 상태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니수 음식만을 먹는 것 입니다. 때문에 제 의견은...”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고, 늙은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아직 궤도를 그리고 있는 와코펨 조모스로 가자는 겁니다.” “우주선에 있는 농장! 그걸 이용하면 문제가 해결되겠군요. 그렇죠?” 베레맘이 말했다. “그렇진 않습니다.” 자메코시스가 말했다. “니수 식물, 동물, 조직 등은 분명 우리와 마찬가지로 면역 반 @p 142 응 때문에 천천히 독성을 띄게 됩니다. 게다가 여기서 그들을 기르게 되면, 그 들도 세트포스 단백질을 섭취하게 됩니다. 따라서 질병의 속도를 늦출 뿐이지 완전히 예방하는 것은 아니며, 이곳에서 장기간 니수 음식을 재배할 수 있을지 는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우주선의 농장보다 더 크고 완전히 격리된 무균 환 경의 농장이 필요합니다.“ “점점 더 문제가 악화되는군요.” “더 나아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크루릭스가 말했다. “이런 측면이 있단 말씀입니다. 제가 아까 융합 원자로같이 거대한 에너지원 이 필요하다고 했던 말씀 기억하시죠? 프로예린과 저는 뒹굴뒹굴 지내다 조잡하 게나마 그런 에너지원을 말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행히도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중수소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헬륨 3으로 작동되 는 것이긴 하지만요.” “그럼 세트포스에서 헬륨 3의 원료를 얻을 수 있단 말이지?” “사실 세트포스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씨익 웃으며 프로예린이 말했다. 베레맘은 방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야릇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배제스 선장님께서 지휘관이야말로 항상 일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이제서야 알 것 같군요. 좋아요. 여러분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방법을 생각해 냈으면서 내가 너무 터무니 없는 발상이라고 하거나 너무 위험하다고 말할까봐 겁을 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p 143 그 방법을 꼭 알고 싶다고 고백할 테니 어떤 꿍꿍잇속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 까?” “그러니까, 다량의 헬륨 3을 담고 있는 무균 환경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완벽한 장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저공 스캐닝 위성이 달을 찍은 핵자기 공명 지도가 떠올랐던 겁니다. 달은 태양풍에서 나오는 마그마를 통해 냉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헬륨 3이 풍부합니다. 표면 바로 위에 말 그대 로 널려있지요. 태양 전지판을 이용하면 추출기와 동위 원소 분리기를 작동시키 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그 뒤 융합 원자로를 이용하면 착륙 선을 무한정 재충전시키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도 남은 전력으로...” 나는 씨익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달의 토지에는 알루미늄이 매우 적고, 실리카가 많기 때문에 그것으로 유리 를 말들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극 깊은 분화구 얼음 속에 다량 의 물, 암모니아, 이산화탄소가 축적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달 위에다 농 장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거주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베레맘이 조용히 물었다. “융합 원자로를 만드는 데 8일이 두 번 지나면 되고, 와코펨조모스 호를 정 상 가동시키는 데도 똑같은 시간이 걸립니다.” 베펨이 말했다. “투석을 받지 않고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여섯명을 와코펨 조모스 호로 이동시키면, 그곳에서 오투스와 자메코시스가 그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겁니다. 원자로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몇 번의 8일이내 달위에 최초로 고압격리 환경을 만들 @p 144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곳에 씨를 뿌리고 이주민 가운데 첫번째 그룹을 와 코펨 조모스 호를 이용해 달로 옮기고, 다음 그룹을 또 와코펨 조모스 호로 옮 기면 되는 것이죠. 스무 명을 한 그룹으로 만들고... 병목 현상을 일으킬 곳은 와 코펨 조모스 호밖에 없죠. 반년이 채 안되어 달에는 숙달된 농부와 일꾼, 다른 모든 이들이 지내기에 충분한 공간이 생기는 겁니다. 착륙선 두대는 나룻배 역 할을 합니다. 세 번만 빠르게 왔다갔다하면 나머지 180명을 운반할 수 있죠. 그 시점에 이 르면 와코펨 조모스 호에 있는 자료실과 설비, 착륙선에 있는 컴퓨터와 초소형 물품을 이용하면 행성을 뺀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시 수십 세기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진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행성과 행성 안 독성 물질과도 완전히 절연할 수 있구요.“ “그게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베레맘이 갑자기 물었다. “뭐가 다 떨어지면 말씀입니까?”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남극엔 얼음이 얼마나 있나?” “1년에 1퍼센트씩 세어나간다고 했을 때 수세기 동안, 아니 그 이상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프로예린이 말했다. “우리가 구조되기까지 넉넉한 시간이죠.” “그런가?” 베레맘이 물었다. “알다시피 지휘관으로서 나 또한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베펨이 내게 온갖 테스트를 해보는 동안 착륙선에 앉아 많은 자료들 @p 145 을 읽어보았지. 자네들과 꽤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몇 가지 재미있는 차이 점들이 있군. 내 생각은 이래. 본국의 상황을 생각해 보게. 우리가 발견한 외부 단백질 면역성 질병은 세트포스에서만 발생하는게 아니야. 우리 자신을 유전적 으로 변경하지 않는 한 외부 생태계와 마주치면 어디에서든지 발병하지. 게다가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 원인을 밝혀내는데 수십년이 걸릴테고, 니수 생물권을 벗 어나 생활할 수 있는 니수인을 만들어내려면 아마 수세기는 걸릴거야. 아마 끝 내 성공 못할지도 모르지. 다른 생물권에서 살아가려면 의학적인 치료를 끊임없 이 받아야 할지도 몰라. 이곳보다 질병이 더빨리 발전하는 것도 있겠고, 더 더디 게 발전하는 곳도 있겠지만, 어쨌든 질병은 겪게 되어 있지. 그러니까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뭐겠나? 두번째 충격들은 니수 시간으로 약 6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장기적으로 살아가기에 적합한 공간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지. 무슨 뜻인지 알겠나? 거의 1세기 동안 우리는 이 주하기에 부적합한 행성들만을 탐사해 왔던 거야. 더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지 난 4년 동아 발사됐던 우주선들, 영점 에너지 레이저로 움직이는 고속 우주선들 모두 부적합한 곳으로 떠났다는 것이지. 우리가 보낸 메시지를 받게 되면 사람 들은 한데 모여 적합한 장소를 찾아야 하겠지.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니수 의 모습을 띄고 있는’ 행성들, 즉 생명체가 살지 않으면서 니수의 생명체들이 살기에 적합한 모습으로 변경시킬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런 행성을 발견하면 그 곳에다 니수 생명체의 씨를 뿌리고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점차 바꾸어 나가겠 지. 그 과정이 몇백년 걸릴지는 모르지만, 수세기 동안 수백만 명의 승무원들을 탑승시킬 수 있도록 고안된 대형 이주 우주선이 있으니까. 작업 @p 146 을 하는 동안 새로운 세계의 궤도를 그리고만 있으면 되겠지. 하지만 우리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하게 되면 그들은 니수의 모습을 띄고 있는 세계를 즉시 찾 아 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야. 사용 가능한 탐사선들은 모두 그 목 적으로 전환하게 될 테고, 현재 다른 행성을 향하고 있는 탐사선들도 다수 전환 하겠지. 그리고 우리들은 탐사선 하나로 움직이기엔 숫자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 해야지. 특수 구조선을 제작하거나 개조된 탐사선을 예닐곱개 정도 보내야할 테 지. 그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어. 니수의 모습을 띄고 있지 않을까 찾아보는 행성 들 가운데는 20광년 이상 떨어져 있는 곳도 있겠지. 그 말은 곧 탐사선이 그 행 성에 도착하는데 20년이 걸리고, 그 장소가 적합하다고 판명됐을 때 본국으로 메시지가 송신되는 데 또 2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야. 즉 우주 내에 도시를 건설 하고 생활을 시작하는데 겨우 20년 밖에 할애할 수 없다는 이야기잖나. 본국에 있는 사람들에겐 이곳으로 와서 우리를 데리고갈 만한 여유 자원이 없어. 위험 이 닥치는 그날까지 모든 것을 탐사선과 이주선에 최대한 집중시켜야만 해. 우 리는 이곳에 영원히 남게 되겠지.” 그 의미가 완전히 전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크루릭스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그 말씀엔 일리가 있군요. 달에 정착한 뒤 얼음이 다 떨어지기 전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하겠습니다. 재활용할 방법을 생각해 내거나, 아니면 세트포스에서 대체 물질을 충분히 확보한다거나...” 베레맘은 애매한 미소-우리 얼굴에 떠올랐었던 그런 미소-를 지으며 우리모두 를 둘러보더니 말을 꺼냈다. “하지만 자네들은 너무 일찍 포기하는군. 나도 그렇고, 자네들 @p 147 은 그곳에서 절반 정도 문제를 해결했어-우리 민족들이 1세기 정도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단 말이지. 그리고 나도 절반 정도 문제를 해결했지- 쿠사펙스의 네번째 행성, 바로 다음에 있는 행성을 생각해 냈단 말이지.” “전쟁의 별이요?” 디에렌이 진정한 부족민어로 물었다. “그렇지요.” 베레맘이 말했다. “생물체에 필요한 모든 물질이 풍부하게 있을 뿐만 아니라 탐사기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생명체가 전혀 살고 있지 않아요. 작은 달 두 개에는 수많은 원료 들이 있구요. 1세기 정도 작업을 한다면 그곳에 상당히 괜찮은 주거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헬멧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숨을 쉴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 고, 호수를 만들어 헤엄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살 수 있지요. 이주 계 획선이 도착해 니수의 모습으로 변형시키는 작업을 할때까지 3백년 정도는 살 수 있을 겁니다. 전 그곳에 주거지를 만드는 데 걸리는 1세기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모르고 있었지요. 와코펨 조모스 호가 아직도 이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농장에서 곡식이나 동물을 기 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고 초라한 착륙 선으로는 전쟁의 별까지 이동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 이름이 마음에 드 는군요. 무슨 뜻이죠?” 내가 그 뜻을 말해 주자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흠, 그렇다면 진정한 부족민들에게 ‘평화의 별’은 무엇이죠?” “평화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어요.” @p 148 디에렌이 말했다. “우리는 이 행성을 반드시 떠나야만 합니다. 네번째 행성을 그 이름으로 부 르되 의미는 잊어버리도록 하지요.” 베레맘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우리들을 한명씩 차례대로 바라보았고, 우리는 차츰 미소를 짓기 시작 했다. “두번이나 탐사단은 이곳 세트포스에서 조난당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곳 은 재수가 없는 행성인 것 같고, 전 이곳을 영원히 떠나버리자는 말을 하고 싶 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번이나 재난을 딛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우리를 쏘아보 낸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끔찍한 일들을 이겨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이제 움직이죠. 죽기 전에 정복해야 할 세계가 두 곳이나 있으니.” 수신인: 니수 최고위원회 발신인: 디에렌 자투스 남편인 세타키서스와 그의 친구 크루릭스가 들려준 니수에 대한 이야기를 모 두 듣고 난 뒤에도 저는 니수에서 메시지가 전파를 통해 발사되는 것을 보고 깜 짝 놀랐습니다. 지구 시간으로 10년전, 불기둥이 진정한 부족민 마을 하늘에서 번쩍였던 그날부터 저는 주위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 아버지인 자메코시스와 어머니인 오투스가 들려주는 니수 이야기를 듣고 자랐 지만, 니수에서 전송된 메시지를 직접 받아보니-수많은 메시지 가운데 첫번째로 도착한 것-경외감에 휩싸였습니다. @p 149 메시지에서 요청하셨던 것처럼 저는 애초에 어떤방식으로 결정이 내려졌는지 에 대한 저와 남편인 세타키서스의 설명을 보냅니다. 이것이 두번째 충돌이 시 작돼 니수 자체가 폐허가 되기전에 도착할 마지막 메시지라는 것을 압니다. 아홉개 세계로 떠나는 이주 계획선에게 보내는 ‘방대한 지식’복사본 안에 이 메시지를 보관할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열개의 세계라니 참 많게 들 립니다. 저는 셋까지 세며 살아왔거든요. 하지만 석기 시대 국가에서 인생의 반 을 보낸 사람에게는 셋이라는 숫자 또한 많은 것이기에 전 아무런 불만도 없습 니다. 제가 놀란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을 들려드릴 수 있을까요? 니수에서 살아 온 여러분들, 이제 다른 별을 향해 떠나는 여러분들에게도 그것들은 놀랍게 느 껴질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던 마을 하늘 위로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호가 최초로 불기둥 을 내뿜던 그때 저는 간신히 읽고 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는 지금 달 위에 있는 융합 원자로의 보조기사가 되었습니다. 4년 정도가 지난 뒤에야 융합원자로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됐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만, 제 게는 능력이 있었고, 그 원자로를 다루었습니다. 10년 뒤 저는 와코펨 조모스호 를 전쟁의 별까지 운전하는 것을 도왔고, 그 별의 달에 우리들은 이 진지를 만 들었습니다. 지금 저는 그 진지안에서 1세기전 니수인의 고급 기술로 만들어졌 으며, 현재 달로의 비행을 기다리는 충직하고 낡은 우주선을 바라보며 이글을 쓴답니다. 우주선 너머로는 우리가 뿌린 지의류 식물 때문에 군데군데 파란 얼 룩이 생긴 전쟁의 별의 붉은 얼굴이 보입니다. 유전학팀의 말에 따르면 지의류 식물들은 처음 얼굴을 내민 이래 차츰 자취를 감춘 채 죽어가고 있으며, 이 시도는 실패작이라 @p 150 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끈기 있고 강인합니다. 우리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전쟁의 별 남극을 덮고 있는 먼지를 가지고 작 업을 할 생각입니다. 그 먼지는 아주 곱고, 색깔이 짙기 때문에 흔들면 얼음을 어둡게 만들어 대기중 으로 냉동 이산화탄소를 방출합니다. 그 이산화탄소로 행성의 나머지 부분들은 따뜻하게 덥히면, 지의류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강이 흐르며 호수가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실패했을 때에도 다른 길은 있습니다. 어 떤 방법을 쓰든 조만간 우리는 전쟁의 별의 온도를 높이고 공기층을 두텁게 만 들것입니다. 달은 생각보다 얼음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체들이 자랄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서둘러 이주시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작동 가능한 다 한대의 착륙선과 와코펨 조모스호에 더이상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우주선을 만 들자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 문제는 가장 두려운 문제입니다. 지금 현재 이갤 리테리언 리퍼블릭 호의 착륙선 가운데한대는 달의 남극 근처에 세운 진지의 생 명 유지 장치에 전력을 공급하고 컴퓨터로 통제를 해야하기 때문에 우주선으로 서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또 다른 착륙선은 세트포스에서 전쟁의 별까지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 안 작동하지 못하고, 와코펨 조모스호의 엔진으로는 착륙선을 두 행성의 궤도 밖으로 빼내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둘은 공동으로 작업해야 합니다. 게다가 스타 십은 전쟁의 별이나 세트포스의 달 표면에 착륙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남아 있는 착륙선이 추진력과 착륙 기능을 제공해야 하며, 와코펨 조모스호는 선원들 의 생명을 유지시켜주어야 합니다. 만약 달의 남극 기지에 있는 착륙선이나 가동 중이 착륙선, 스 @p 151 타십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우리의 앞날은 어두운 것입니다. 하 지만 지금껏 몇년이 흘렀지만, 우리들은 아직 살아 있답니다. 착륙선이나 스타십 은 모두 계속작동되어야 하며, 계속 작동될 것입니다. 우주선에서 스타십으로의 이동은 거대한 계획 속에서 생각할 때 작은 발전이지요. 30광년 이내에 적합한 장소가 있다면,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든 1~2세기 안으로 우리는 여러분들을 찾 아갈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많은 잠재력을 담고 있는 얼음으로 가득한 분화구로 이동할 것이므로, 그곳을 ‘방대한 지식’을 보내는 것이 휠씬 낫습니다. 우리 가운데 몇몇 사람 은 세트포스의 달에 남아 있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거나 여건상 그럴 수밖에 없을 경우를 대비하여 그곳에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우리의 운명에 대하 설교를 하려는 것도, 먼 훗날 이글을 읽게 될 사람에게 설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방대한 지식’ 을 보낼 수 있도록 하려는 여러분의 계획이 지나치게 소심한 것이라 비난하는 것도 아닙니다. ‘방대한 지식’을 복사하려는 계획과 카페예프에 등대를 세우려는 계획이 쓸 모없다 하더라도 추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앞으로 어디로 이동할지도 모르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는 우주란 매우 위험한 장소라는 것입니 다. 지금도 저는 세트포스의 달에 전력을 공급하는 착륙선의 반물질 장치가 고 장나면 몇시간 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고, 그들을 살릴 방도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곳으로 도착할 무력이면 그들은 분명 모두 죽 고 없겠지요. 그리고 여기 전쟁의 별에 있는 착륙선이나 와코펨 조모스 호에 @p 152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린 세트포스의 달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고, 두 이주지 가 서서히 죽게 되겠죠. 이런 생각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 뇌리를 스치고 지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위험 요소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입니 다.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반면, 노후와는 교환 불가능한 기계 들을 필요없을 때까지 계속 작동시키는 것만이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우리는 그 기회를 잡았고, 여지껏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주변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다른 방법들은 부적격한 것입니다. 오, 저는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나이 어린 세대들은 언제나 우리가 성공할 가능성과 실패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살아온 방식인걸요. 전세계의 모든 생물들에게 문제는 똑같다고 생각 합니다. 가자 단순한 박테리아에서부터 니수인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힘 이 닿는 곳까지 계속해야 하고, 그 때문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쿠사펙스계로부터 온정을 담아- 오투스와 자메코시스의 딸 디에렌 @p 153 터네시티 호-클리오 트리고린의 기록 2077년 10월 5년전, 여행이 3년째 접어들던 해였다. 그들은 항해하고 있는 곳에서 옆쪽으로 벗어나 프록시마를 향하도록 탐사기 캐리어, 즉 ZPE 레이저 덩어리를 추진 장치 로 사용했다. 그리고 탐사기를 몇개 달고 있는 작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 이후 터네시티 호와 탐사기 캐리어는 줄곧 두 갈래 길을 달리는 두대의 자동차들처럼 나란히 경주를 벌였다. 탐사기 캐리어는 엔진의 추진력에 비례하면 터네시티보 다 훨씬 가벼웠기 때문에 가속이 더 빨랐지만, 불량 ZPE 레이저를 제거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자주 고장을 일으키더니 결국에는 완전히 탄도 궤도를 그 리게 되었다. 켄타우르스 좌 프록시마 성에 가까워지자 탐사기 캐리어는 와코펨 조모스 호에 있던 캐리어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루프를 펼쳤고 속력은 눈에 뛸 만큼 떨어졌다. 적색 왜성에 좀더 가까워지자 캐리어는 각각 돛을 달고 있는 탐사기들을 발사 시켰다. 발사된 탐사기들은 작고 차가운 태양의 @p 154 희미한 빛으로 제동을 걸면서 속력을 줄였다 (별들의 기준에서 볼때 작고 차 갑다는 것이며, 그래도 거대한 금성보다 훨씬 더 크고, 철을 녹일 수 있을 만큼 뜨겁다). 이제 그 탐사기들은 터네시티호에서 몇 광일 떨어진 곳에서 무리를 지 어 켄타우르스 좌 프록시마 성 주위를 돌았다. 환하게 빛나는 빨간 올빼미를 공 격하는 푸른 금속의 어치떼처럼 적색 왜성을 휙 지나쳤다가 왜성의 양극을 맴돌 기도 하고, 그 뜨거운 심장 속으로 뛰어들어서 엄청난 양의 자료를 보내고 있었 다. 터네시티 호의 선원들은 역사적인 근접 비행의 하일라이트를 관람하기 위해 모였다. 태양 이외의 다른 별에서 인간에게 보낸 최초의 데이터를 보고 있는 중 이었다. 터네시티 호 자체도 켄타우르스 좌 알파 성계에 진입하고 있었지만, 별들 간 의 사이가 방대하다고 하지만, 태양계 자체도 방대하다. 그들은 현재 21분당 1천 문 단위를 이동하고 있었지만 앞으로도 1광년 반을 더 가야했고, 10만 천문 단 위가 남아 있었다. 켄타우르스 좌 알파 성계로 더욱 깊숙이 진입한 뒤라야 감속 할 수 있고, 일단 자기 루프를 장착해 감속을 시작하고 나면-아직도 주노와 타 이버로부터 35천문 단위 떨어져 있는데, 이는 해왕성에서 지구보다 더 먼 거리 이다-2년 이상의 긴 시간이 흐른 뒤라야 타이버 궤도에 도착하게 된다. 그녀는 와인을 홀짝거리며 서서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고 미루는게 무슨 의미 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젠 정말 ‘달에서 별까지’의 마지막 부분을 써야 할 시 간이었다.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에선 탐사기가 가까이 다가가자 주황색 유령처럼 부푸는 켄타우르스 좌 프록시마 성이 보였다. 적색 왜성의 표면은 거대 @p 155 한 검은색 소용돌이로 어두워졌는데, 이는 태양의 흑점보다 훨씬 큰 강력한 허리케인이 나타났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와인을 다시 한 모금 홀짝이며 ‘달에서 별까지’ 작업을 다시 시작하 는 게 왜 그리 힘든지 자문해 보았다. 아마도 제이슨 삼촌과 올가 아주머니가 그 글을 읽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적어도 3년전 얘기겠지만, 두분은 화성에서 여전히 건강하게 살고 계셨다. 몇 주전만 하더라도 두 분한테서 긴 비 디오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에 따르면 나이드신 두 분이 화성의 험한 변경지 대로 돌아가기 위해 허가를 받으려다 심한 말다툼과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마 침내 가서 보니 그 모든 말다툼과 싸움을 벌일 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알게 되셨 다고 한다. 더욱 가벼워진 중력과 낯익은 얼굴들 때문에 두 분은 몇년은 젊어진 것 같았다. 그녀는 제이슨 삼촌이 그곳에서 자신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하신말씀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 그녀는 잠시 손발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두분이 살면서 겪 은 위대한 사건들을 기록한 그녀의 글 속에서 두분이 올바르게 평가되지 못한다 면 어떻게 하지? 제이슨 삼촌께서 테입을 통해 들려주신 얘기 가운데 몇몇 중요 한 일들을 잘못 이해했다면 어떻게 하지? 그녀가 잘못을 알아차릴 즈음에는 책 은 이미 5판 인쇄에 들어갈 것이다. 현재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속도에서는 모래 한 알이라도 편향기를 관통하면 1통의 TNT와 같은 힘으로 부딪쳐 오게 된다. 그 점에서 그들이 완전히 혼자라 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는 것과 비교해볼 때 역사책 하나 완성하는 것이 무엇이 두렵겠는가? 공룡을 멸망시켰을 때처럼 소행성이 갑자기 지구와 부딪친다고 상상해 보다. 4년뒤 신호가 툭 끊겨서야 그들은 이 사실을 @p 156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4년 이내로 지구의 전파 수신기에서 그들이 사리지게 되는 것이다. 자메코시스가 일 원이었던 타이버 최초의 탐사 때처럼 말이다. 자신들이 커리지라 명명한 행성에서 단백질 문제를 알게 된 타이버인들은 쉽 게 변형이 되는 곳으로 이주했을 것이고, 또 그런 장소에다 적어도 자립 생태계 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 곳에 사는 것이 당연하다. 용기와 강인함과 지 성을 갖추었는데도 개개인의 타이버인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타이버인들은 문화적으로 무언가를 물려줄 방법, 자신이 물려받은 우주적인 망각을 지켜갈 방법을 적어도 한 가지는 발견해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 종족 전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우리는 아직도 모른 다. 방문한 행성들에 보낸 전파 방송에 대한 대답이 있을 때까지 적어도 몇십년 은 기다려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탐사선이 모든 행성들을 둘러볼 때까지 한 세 기 이상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실패라고? 얼마나 어리석은 시각인가. 현명한 종족들은 모두 죽고, 대부분은 새로운 사실을 전혀 배우지 못한 채 죽지만, 모든 세대들은 무지를 조금씩 멀리 밀어낸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다가 제이슨 삼촌과 상상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삼촌 은 그녀에게 그냥 이야기를 쓰라고, 기록으로 남기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인류의 일부분으로 만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에 담긴 무엇인가 때문에 그녀는 마침내 빨리 작업을 시작해 제이슨 삼촌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 게 됐다. 그녀는 와인잔을 내려놓고는 사네모토와 함께 쓰는 쪽으로 몸을 돌렸 다. 그러나 그녀가 문을 나서기도 전에 커다란 환호성 @p 157 이 들렸다. 몸을 돌려 보니 저고도 고속 탐사기가 프록시마 성의 빛나는 얼굴 바로 위로 지나갔던 것이다. 그녀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구보다 더 큰 검은 허리케인이 뚜렷하게 보 이는 짙은 적색 왜성이 이따금씩 커다란 적색 산봉우리가 되어 솟아 오르기도 하고, 가끔 주황색 종이처럼 끓어 오르기도 하며 소용돌이치는 모습이 보였다. 탐사기가 작고 희미한 적색 태양을 향해 다가가다가 거대한 궤도 속으로 합류되 었다. 영원의 별들이 시야로 들어 왔고, 30분도 채 되지 않아 임무를 완성한 탐 사기는 앞으로 몇십억년을 지내게 될 지도 모를 영원한 어둠과 추위속으로 멀어 져 갔다. 탐사기는 180도로 회전하며 최대한 뒤를 돌아봤지만, 그 엄청난 속도 때문에 눈 깜짝할 사이에 화면엔 어둠만이 남았고, 전파 신호는 사라졌다. ‘저건 지성을 갖춘 종족만이 만들 수 있는 기계야.’ 클리오는 혼잣말을 했 다. 그녀는 제이슨 삼촌의 테잎을 다시 한번 들어보기 위해 책상 쪽으로 갔다. @p 159 제4부 비밀의 문 @p 161 하달된 명령 나는 평생동안 로리 커스튼과 알고 지냈다. 어머니와 시그는 나에게 그녀를 ‘로리 아줌마’라고 부르게 했다. 나와 함께 애매한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했 던 그녀는, 운명의 장남인지 내가 우주 비행사 훈련 허가를 받은지 불과 3일 뒤 우주 비행사 부대장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그 허가를 받을 때 그녀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가장 친한 친구인데다가 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나와 그녀가 동시에 들어간 것은 소문으로만 돌던 내 ‘연줄’과 ‘위세’의 증거가 되었다.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들이 들려 왔지만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처했다. 아주 훌륭하게 비행하여 내가 이 훈련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모든 사람이 인 정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 효과가 없었다. 단 한 번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우주 비행 사가 되고, 로리 아줌마가 부대장이 되던 때 나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어떤 식으 로 대처해야 하는 지 그제서야 이 @p 162 해를 하게 되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아 빠처럼 외향적인 천재가 아니라, 우주 비행을 좋아하고 또 잘하는 평범한 남자 로 말이다. 나는 공구 사관학교에서 비행 훈련을 받거나 임무를 수행하면서 친구들을 잘 사귀었다. 내 이름이 제이슨 테렌스였고, 유명한 이야기의 한 부분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힘들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로리 아줌마와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부 대 내에는 우주 비행사가 무려 3천3백 명이나 있었는데, 일개 로켓 조종사가 상 관과 점심을 함께 한다면 의혹의 눈길이 쏟아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체로 우 리는 어머니와 시그가 함께 사는 곳, 즉 ‘우연히’ 마주쳐 밀린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에서 만났다. 몇년 동안 그런 자리에서만, 아니면 아주 가끔 그녀가 우리 중대를 방문할 때 로리 아줌마의 얼굴을 보았다. 내 나이 서른넷인 지금 로리 아줌마는 공식적으 로는 내 상관이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집안의 오랜 친구였다. 나는 내게 주어진 임무를 열심히 했다. 대부분 시간은 과학자들을 글렌이나 세퍼드 등의우주 정거장으로 데리고 갔다 데리고 오는 일이었다. 가끔은 오래된 스타 클러스터에 있는 서식지나 트러스를 모아놓은 곳, 아니면 양키 클리퍼에 있는 캐너버럴이나 에드워즈로 가기도 했다. 로리 커스튼을 개인적으로 만날 때 에는 로리 아줌마였지만, 우주 비행사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커스튼 대장님이라 고 생각했다. 그래서 2032년 9월, 휴스턴 외곽에 있는 존슨 우주선 센터의 그분 사무실로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그녀가 클리 퍼 비행에 나를 추천했는데, 여전히 나사에는 능력 있는 클리퍼 조정사가 보족 했던 때 @p 163 였기 때문이었다. 중대장인 빌 에먼드슨도 나만큼이나 어리둥절해 했다. 비행장까지 마중나온 그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동안 다시 한번 물었다. “무슨 일로 이러는지 알고 있나?” “전혀 모릅니다. 만약 제게 알려주실 생각이었다면 미리 전화를 거셨을 겁니 다. 어떤 분인지 잘 아시잖습니까. 일상적이 지휘체계가 있는 그런 큰 조직에 몸 담고 있는 게 ;아직도 익숙치 않은 분이죠.” “물론 그렇지.” 거의 낄낄대는 얼굴로 그가 말했다. “자네한테는 전화하지 않으셨지만, 나한테는 전화를 하셨네. 내가 아무런 반 대도 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야.” “무엇에 반대하신단 말씀이죠?” “무엇보다도 앞으로 있을 비행에서 자네를 빼내는 일. 자네 말이 맞아. 그분 은 요즘 우주 비행이 얼마나 많은지 가끔 잊고 계신다니까. 만약 자네가 일찍 돌아오게 되면 또 우주 비행을 나서야 할 거야. 올해 들어 여덟 번째인가? 임부 가 한번 취소되고 나면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몇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을 그분도 알고 계시지.” 그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프롤리다의 밝은 태양 빛을 받으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수송기를 바라보았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무엇보다도’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럼 또 다른 반대도 있다는 말 씀인가요?” @p 164 “흐으음, 이 말은 안들은 거로 하게. 제이슨, 협조하면 교체 멤버를 재량껏 뽑을 수 있게 해 주겠노라고 말씀하셨어.” 그는 매우 부드럽게 말했다. 뒷덜미의 머리카락이 쭈뼛해졌다. 그분이 품고 있는 생각 가운데에는 나를 제1우주 중대에서 전출시키려는 계획 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이곳이 좋았다. 이곳에서 비행을 한지 벌써 거의 4년 이 되었고, 궤도까지 비행하는 것 이외에도 우주 정거장 사이를 많이 여행했으 며-대부분은 사자자리에 있느 세퍼드와 글렌을 왕복하는 것이었지만, 가끔은 L1 에 있는 암스트롱에 가기도 했다-. 궤도 운영을 위한 작업용 우주선 피존 호에 대한 내 평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달로도 많이 여행했다. 나는 일을 많이 했고, 한 번도 임무를 거절한 적이 없었으므로 자주 기용되었 다. 나는 그 사실이 좋았다. 게다가 제1중대에 있는 다른 비행사들은 내가 잘 알 고 좋아하는 사람들인데다가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로리 아줌마 가 이렇게 낮은 서열의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중대에서 나를 쓸일이 있다면 빌과 해당 중대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말이다. “글쎄요. 최악의 경우엔 짐을 싸러 돌아오게 되겠군요. 떠나기 전에 함께 맥 주나 한 잔 마실 수 있겠죠. 한 가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게 있는데요. 어떤 제안이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만약 제가 그 제안을 거절하고 여기 남기로 작정한단면 중대장님은 괜찮으시겠어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 매년 더 많은 시간 동안 비행을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 보다도 평가 점수가 높아. 자네를 여기 붙잡아 두고 싶지. 하지만 @p 165 커스튼 부대장님께서 내게 파문을일으키지 말라고 하시면 그 말에 따를 수밖 에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원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건지 알고 싶었던 거니까요. 그분 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면 말입니다.” 수송기가 이륙한다는 방송이 들리자 나는 빌과 악수를 나눈 뒤 승선했다. 지 루한 여행이어서 나는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책장을 덮고 그분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건지 곰곰이 생 각해 보았다. ‘내 기록이 아주 좋긴하지’ 거짓 겸손을 부리지 않으며 스스로를 인정했다. ‘그러니까 승진되거나 특수 임무르 맡도록 이동 배치될 지도 모르지’ 나사에서는 지구에서 궤도까지 왕복 비행하는 임무르 맡은 우주중대가 세 개 있었고, 피존으로 우주 정거장, 달기지, 궤도 내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궤도 중대가 두 개 있었다. 나는 페레그린, 스타버드2, 양키 클리퍼, 피존 모두를 조종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논리적으론 이 다섯 중대 가운데 어디에서든 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중대가 두 개 있는 곳으로 이동 배치시킬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제1우주 중대를 떠나 이동하게 된다면 제2우주 중대가 있는 밴덴버그-캘리포 니아 사막에서 양키 클리퍼를 조종한다-로 배치되거나, 제6우주 중대- 이 중대 는 낡은 페레그린을조종하는데, 이 우주선은 예전에는 아주 훌륭했지만 지금은 매우 낡았다-가 있는 맴스트롬-몬타나의 그레이트 폴스에 있다-으로 배치되거 나, 제4궤도 중대-피존 재 사용 가능한 착륙선, 온갖 기묘한 비행 설비등으로 궤 도를 운용한다-가 있는 암스트롱 @p 166 -나사가 달과 관계된 다른 활동들을 지원하기 위해 L1에 건설한, 거대한 깡통 처럼 생긴 우주 정거장이다-으로 배치되거나, 달의 뉴 트랜퀼리티에 있는 제8궤 도 중대로 배치될 것이다. 어느 곳으로 이동을 한다 하더라도 플로리다 같은 기후를 맛볼수 없게 될 것 이다. 그리고 가족들과도 아주 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휴스턴에 내려 게이트를 행해 활주할 때 비행기 안에서 다 읽은 책의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려 했지만 제 목이 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방을 잊지 않고 챙긴 나 는 셔틀 항공기를 타고 , 줄여서 JBC라 부르는 본슨 우수선 센터로 향했다. 약 2분 동안 상쾌할 정도로 서늘하고 맑은 말씨를 감상하고 났더니-휴스턴의 날씨는 겨울에만 견딜 만하다-모든 사람들이 파란피라미드라 부르는 곳, 고작 몇 년 전에 건설된 새로운 본부 건물에 도착했다. 새로 건설됐다 해서 JSC가 더 가까워진 것도 아니었고-휴스턴에서 족히 25마일은 떨어져 있다- 더 아름다워진 것도 아니었지만, 찾기는 더 쉬워진 것 같았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로리 아줌마의 사무실에 도착했는데도 즉시 안으로 안내됐다. 이 때문에 모든 일이 더 수상하게 느껴졌다.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는 웃으며 나를 껴안았다. 물론 그 때문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는 사실을 인정한 다.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나를 쳐다보았는데, 나 역시 그 눈길을 가 만히 바라보았다. 짧게 자른 머리는 이제 잿빛이 되어 있었고, 눈과 입가에도 주 름살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절반 정도의 나이 밖에 안되는 일반인세 명과 맞 붙더라도 여전히 때려눕힐 수 있을 정도로 보였고, 파란 운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났다. @p 167 “좋아 보이는구나.” “아줌마도요.” “자리에 앉거라.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좀 하자. 그러고 나서 어떤 컴퓨터 프 로그램에 나와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마.” 나는 책상 앞에 있느 두 개의 의자 가운데 하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다른 의 자를 내 쪽 가까이로 끌고 왔다. “어머니와 시그는 어떻게 지내시니?” “엄마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잘 지내시죠.” “항상 진행중인 프로젝트는 열개정도 되고, 밥 잘 먹느냐고 전 세계 각지에 서 전화를 하시죠. 저를 도와 당신을 할머니로 만들 참한 아가씨는 구했느냐고 물으시구요. 어머니는 아마존에 계시고 저는 궤도 중에 있을 때 나누는 대화치 고는 좀 이상하지만, 그게 바로 엄마니까요. 그리고 시그는... 음, 그분도 마찬가 지예요.” 로리 아줌마는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똑같은 제안을 하시고?” “똑같은 제안을 하시죠. 그분이 새로 만든 스타 라이너를 조종해 주면 월급 을 네 배로 지불하겠다구요.” “그 돈이면 가족을 부양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조종하고 있는 대부분의 우주선보다 스타 라이너를 조종해 주면 월급을 네 배로 지불하겠다구 요.” “그 돈이면 가족을 부양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조종하고 있는 대부분의 우주선보다 스타 라이너가 더 안전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최신 기술을 사용한데다 모든 이들의 경험까지 축적된 우주선이니까, 그 유혹에 흔들리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줌마. 전혀요. 그건 경주용차 운전을 그만두고 시내 버스 운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열살 난 어린애라도 어느 쪽이 재미있는 지는 알거라 구요.” @p 168 나는 약간 과장 하긴 했지만, 전혀 거짓말은 아니었다. 스타 라이너는 양키 클 리퍼를 상업용으로 개조한 것으로, 주운송 대상이 승무원이나 보급품이 아닌 일 반인들이었다. 우주선을 더 얌전하게, 더 부드럽게, 더 안전하게 조종하기만 하 면 임무는 끝이었다. 클리퍼처럼 곡예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기특하기도 하지. 내가 널 바로 본 것 같구나. 제1우주 중대생활은 만족하 니? 기록을 봤더니 완벽에 가깝던데, 빌 애먼드슨은 너를 아주 칭찬하더구나.” “아주 마음에 들어요. 지금 있는 곳에 아주 오랫동안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 요.” “그래 착하기도 하구나. 지금 네게 제안하려는 일은 누가 맡든지 간에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회피하기 위해서 난 따분한 곳에서 달아나기 위해 떠 맡는 것은 바라지 않거든.” 더욱 크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자, 아까 컴퓨터에 어떤 이야기가 나와 있다고 말했지? 우리는 지금 아주 중요한 임무르 시작하려고 해. 우주 비행사 부대에서 가장 적합한 조종사가 누 구일까 생각하다가 네 이름을 떠올리게 됐단다.” 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나 보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게 손가락을 들어올 리며 그녀가 말을 꺼낸 것을보면 말이다. “그렇게 놀라지 마라. 넌 자격도 뛰어나고 이곳에서 쌓은 경력도 우수하다는 것을 너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게다. 그 때문에 내가 너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한 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게다가 그 임무를 지휘할 지휘관도 다섯 명 정 도의 이름을 거론했는데 네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 @p 169 그녀는 완전히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를 놀릴 때나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내 얼굴을 보러 들렀을 때 나를 보며 짓던 미소와 똑같았다. “저, 이 임무의 지휘관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그럼, 월터 갠더야.” 그것은 전기 충격과도 같았다. 월터 갠더는 제7행성 간 중대장으로, 화성의 달 인 포보스에 처음으로 착륙한 최초의 미국인이기도 했다. 나는 제7중대에 합류 될 가능성은 생각치도 못했다. 화성으로 유인 임무를 떠나며, 화성 궤도 내에서 작업하는 소규모 엘리트 중대였던 것이다. “그분이 직접 가신다구요?” “다른 중대장들도 다들 그렇지. 게다가 그 사람은 예전에도 그곳에 가본 적 이 있고 무엇보다도 이건 아주 중요한 임무니까. 게다가 네가 훈련받고 있었을 때 널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더구나.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일을 하면서도 두려 워하지 않던 네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어. 그리고 그 사람은 네가 이 임무 에 필요한 자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훌륭한 조정사라는 사실말고도 말이다- 을 가지고 있다고 했단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강조하듯이 말했다. “분별력을 말하는 거야. 넌 입이 무거우니까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이야기 가 잘못 전달될 걱정 없이 네게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가 있지. 이 임무가 참가 하는 미국인은 단 두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실은 아주 중요하단다/” 이제 그녀의 얼굴은 정말 빛이 나고 있었다. “제이슨, 난 네가 아닌데도 흥분될 뿐만 아니라 네가 부럽기까지 하구나. 그 일을 맡을 수만 있다면 내가 해 보겠는데 말야. @p 170 다음 번 화성 표면 햅을 운반할 조종사는 네가 된다는 뜻이잖니. 지금부터 하 는 얘기를 비밀로 지킬 수 있겠지?“ “그럼요.” 나느 약간 어지러웠다. 표면 햅을 운반하는 것은 화성에 있는 코로레프 분화 구로 떠나는 기본 임무였다. 내가 맡을 일은 갠더, 엔지니어, 과학자들을 화성 북극에 있는 분화구이자 수 십 미터 얼음 밑에 냉동되어 있는 대규모 타이버인 정착지로-발견됐다면 인사이 크러피디어의 두번째 복사본도-공사하는 것이 될 것이다. “미국인이 저희들밖에 없는 이유가 뭔가요? 전...” “물론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지. 우리는 항상 미국 장비의 운행은 미국인들의 손에 맡겨왔어. 즉, 임무 지휘관과 수석 조종사는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지. 게다가 이 임무에서는 아무도 양보하려 하지 않아. 국제 화성 컨소시엄의 다 른 네 회원국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햅에는 자리가 열 개니 까 각 회원국마다 자리가 두 개씩 돌아가지.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우주국에 말이다.” “하지만 엔지니어도 고급 장교 아닌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서 가장 큰 협상이 이루어졌지. 이 임무를 맡은 엔지니어는-물론 1급 장교니까 너보다 계급이 위야-올가 트리고린인데 수많은 비행을 지휘한 경 험이 있는 우주 조종사야. 그녀는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그곳에 남아 있을 예정 이니 2년 뒤 올드린에서 귀환 비행할 때 탐사에서 돌아올 사람은 너와 월터 밖 에 없을 거다. 그녀는 이 임무에서 온갖 일을 맡아 처리해야하고, 많은 양의 특 수 정보를 습득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1년 @p 171 넘게 훈련받았어. 지금까지 이 임무의 보안을 유지해야 했기에 그녀에게 모든 기술과 지식을 익히게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단다. 사실 과학자들도 오늘에서야 연락을 받았을 거야. 올가와 월터만이 이런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 “어떤 일인지 알고 있었다면...” 나는 질문을 하려다 모든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월터 갠더가 스스로 조종 하는 우주선. 아주 강한 정치적 압력, 나사가 화성 임무를 러이사인 1급 장교에 게 맡길 정도로 강한 함력, 이런 상황을 가져올 만한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세상에, 사람들이 인사이크러피디어를 발견하고 파헤치기 시작했군요.” 나는 놀라 소리쳤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한번에 맞췄구나, 제이슨. 코로예프에 영구거주하는 선원들이 지진과 수로 측량을 마친 뒤 거주지 안 어디에 대상물이 있는지, 또 어떤 모양인지 알게 됐 지. 처음 발견된 곳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 얼음 속에서 2미터 정도 더 높은 곳에 똑같은 크기와 똑같은 형태의 물건이 있다는 것이 우연히 발견됐 어. 거주지가 물에 잠겼다는 우리의 추측이 맞다면, 거주지가 물에 잠긴 뒤 그 물건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지. 무인 수하물 운반선이 특수 공구들 을 운반하면 얼음을 깎기전에 고고학자팀만 구성하면 돼.” “그러니까 우리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영구거주하는 선원들이 그 물건을 있는 그대로 놔둔다는 말이에요?” 어깨를 으쓱하며 로리는 대답했다. “그래, 그 사람들한테는 지루하고 실망스런 일이겠지. 하지만 @p 172 고고학이란 원래 그렇잖니. 발견한 그 순간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위험이 없 다면 말이다. 파헤치기 전에 계획을 세우고, 나오는 물건을 보존할 준비를 하고, 파손되기라도 하면 원래 형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뭔가 중요한 것은 없었는지 기억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늘 대동한단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것 이 지구 고고학의 기본 원칙이었어.” 시선을 약간 멀리 옮기며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만약 우리가 그 원칙을 고수했더라면 넌 네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겠지. 이건 인사이크러피디어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다, 제이슨. 그 러니까 위험을 무릅쓸 수 밖에 없어. 과학자들 가운데에는 화성 전문가도 있고, 달 남극을 팔 때 다년 간의 경험을 쌓았던 사람들도 있어서 네가 어린애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넌 1급 조종사이고, 월터가 널 추천했다. 그리고 난 널 정말로 믿는단다. 일단 이 일을 맡아 화성에 도착하게 되면, 다음 번 보충이 있을 때 귀환할 수 있는 권리는 있지만, 나사는 네가 귀환하지 않기를 바랄 거 야.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는데는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화성에 경험을 쌓게 되면 그곳에는 너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네가 그곳에 머물러 주었으면 하겠지. 어때 이 일을 맡겠니?” 그녀가 짖궂게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한 번 정도라면 아무 상관 없었다. “네, 아줌마. 맡을 게요. 어디로 언제 보고를 해야 하나요?” “먼저 이동부터 해야 애.” “제 7중대 본부는 바로 여기 JSC에 있고, 내가 비서에게 지시하기만 하면 이 동 명령은 금새 발부된다. 네가 이 일을 맡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소 베이 에 아파트를 미리 구해놨어. 필요 @p 173 한 물건이 있다면 이틀 정도 짐을 꾸리러 같다올 수 있다. 1주일 뒤부턴 올가, 그리고 월터와 함께 훈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번 보충이 있기 5개월 전에 지구를 떠나게 되는데, 즉 2033년 3월 중순에 지구 궤도를 떠나는 거지. 지금은 제이슨, 화성을 향해 떠나기 144일 전이란다.“ 그녀는 인터뷰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며 일어서더니 씨익하고 웃었다. “제이슨, 지금부터 커스틴 부대장과의 대화가 아니라 로리 아줌마와 대화다. 넌 운이 좋은 녀석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될 거야. 이런 말은 하기 싫다만, 네가 그 명단을 뽑혔다는 걸 알면 이 임무를 맡고 있는 공무 담당자는 좋아할 것이다.” “짐작하나 바에요. 상관없어요. 제가 크리스 테렌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신 경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줌마께서 훌륭한 조상을 둔 멍청이에게 이런 일을 맡겼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기자들은 이 일을 약간 부풀려 보도 하겠죠.” ‘그래서 또 네가 운이 좋은 녀석이라는 거랴. 144일 뒤면 언론과 멀리 떨어 져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는 말이니까.“ 미리 구해 놓은 아파트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함께 살 사람도 없었고, 애완 동 물도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깨끗하고 괜찮은 가구가 있는 집을 선택했다. 이제부터 여기에 월세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직장에서 꽤 가까웠다. 나는 워 싱턴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동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며 새 주소 는 조만간 알려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제이슨, 너 점점 네 아버지를 닮아가는구나. 이곳에서 저곳으 @p 174 로 갑자기 전근됐다고 불평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 즐거워하는 것 같으니 말이 다.“ “경치가 변하는 것이 좋거든요.” 나는 애매하게 말했다. 내가 이동 배치될 때마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글쎄, 넌 누군가를 만나거나 뿌리내릴 만큼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질 않으 니. 네게 안 좋은 일인 것 같아.” 뒤에서 시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앰버, 불쌍한 아일 그냥 내버려둬. 그 아이도 성인이라구.‘ 나는 웃음을 참으며 창턱에 앉아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나와 그렇게 다른 사 람이 내가 언하는 바를 어떻게 늘 이해할 수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그가 곁에 있어준 사실에 대해 점점 더 고마워하게 되었다. “아무튼 실내 장식도 꽤 괜찮고, 우범 지역도 아닌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구나. ” “황갈색 톤이구요. JSC는 도시와 가깝지 않아요. 가까이 있다하더라도 우범 지역 같은 곳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도 그 근처에서 살면 안 돼.” 그녀는 딱 잘라 말했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 대해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시그는 다 음 달에 로리를 만나, 내 얼굴을 볼 핑계도 생긴셈이라는 둥, 시그의 조카가 의 대를 졸업했는데 초소중량 의학전문의를 딸까 생각 중이라는 둥, 워싱턴에는 여 느 때보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는 둥. 작별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자 나는 집안을 어슬렁어슬렁 돌아 다니며 창 밖 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처럼 나이드신 분들은 @p 175 대도시마다 해 떨어진 뒤에는 출입을 삼가야 할 거대한 지역이 있던 시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지역들이 있긴 하지만,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감옥은 점점 비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더 괜찮아진 것 은 아니다. 바보 같은 인간들은 여전히 있지만, 이제는 직업, 그것도 대부분은 좋은 직업을 가진 바보들로 집, 차 등 뭔가 잃어버릴 수 있는 물건들을 소유했 기 때문에 처신을 잘하고 있을 뿐이었다. 달에서 커다란 재난이 있은 뒤 두번째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까지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다. 나는 어둑어둑해지는 거실에 앉아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가득 찬 고속도로를 내려다보며 무엇 때문에 그런 변화가 생긴 걸까 생각해 보았다.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고, 인류 역사상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됐는데도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삶의 일반적인 변화들, 자라고 나이를 먹고 있었다. 세어스페이스 여행에서 돌아와 아버지의 죽음에서 벗어나기까지는 1년 정도가 걸렸다. 그동안 나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정치인들과 학자들이 연설을 했고, 수없이 삿대질을 했었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더러 어떤 일을 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단 두가지였다. 하나는 이젠 전혀 쓸모없는 금속과 실리콘으로 변해 버린 달 위에 흩뿌린 방대한 자료의 손실에 대해 무슨 조치를 취하려면 우 주선이 필수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존재 사실을 알아낸 만큼 그 자 료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달 남극에 있던 타이버 기지에서 발견된 재 료들을 보면 그들이 재료 과학에서 우리보다 몇 세기는 앞서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p 175 높이가 4층은 되는 착륙선에서부터 망치며 드라이버까지 그들이 쓰던 물건 거의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강하고 가벼웠으며 내구성이 강 한 물질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작은 병원에 있던 기구들은 우리가 실험실 에서나 간신히 만들 수 있었던 것들보다 더 작고 효율적인 모습이었다. 착륙선에 있던 광학 컴퓨터^36^불행하게도 작동을 하지 않았다^36^와 인사이 크러피디어에 있던 광학 정보 저장 기구는 우리가 일상적인 엔지니어링의 일부 분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한 지^36^해결은 커녕^36^얼마 안 되었지만 그들은 분 명히 해결하였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크리스와 샤오베가 인사이크러피디어를 고작 몇 십 년 사이^36^메시지가 믿을 만한 것이었다면^36^이곳으로 운반한 추 진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쓰레이통의 절반 크기밖에 안 되었고, 연료 원도 전혀 없었다. 만약 우리가 똑같은 크기의 물질을 1천 년 내에 켄타우르스 좌의 알파 성까지 운반하려면 가장 큰 로켓인 에너지에 10만 개의 추진력을 모 아야 했다. 한마디로 승부는 뻔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기 때문에^36^또는 그 들이 방문을 중단했던 그 당시에 이미 휠씬 앞서 있었기 때문에^36^우리는 그들 의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거나 그들의 기술이 가진 힘과 잠재력을 깨달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이 앞서 있는 것은 아니었 다. 그 인사이크러피디어만 손에 놓을 수 있다면 말이다.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 를 몇 세기 앞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 인간의 예술, 종교, 역사 등 모든 것을 다른 종족과 비교하여 무엇이 우 리에게 독특한 것인지, 무엇이 지능이 있는 모든 종족들에게 일반적인 것인지 알아낼 수 있는 최초의 기회였다. @p 176 아니, 그럴 기회가 있었다는 편이 옳다. 달에 있던 인사이크러피디어가 산산조 가 나버린 지금, 이젠 단 한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았다. 화성에 있는 또 하나의 인사이크러피디어를 이번엔 잘 발굴해내야만 했다. 다섯 개의 대규모 우주 프로 그램 때문에 갑자기 많은 자원들이 쏟아졌으나,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려면 어쨌 든 그 자원들이 모두 필요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포보스와 코 로예프 분하구로 그곳에 남아 있는 것들을 복구해야 했고, 타이버인들이 달에 세웠던 기지, 진공 상태인 데다 몇 십억 년 동안 태양이 비추지 않았던 그곳으 로 돌아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고고학 발굴을 시작해야 했다. 또 엔지니어 들이 관련 서적을 통해 꾸어왔던 꿈들은 현실로 만들어야 했고,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교육시켜 그곳으로 보내야 했다. 마지막 부분이 열쇠였다. 이렇게 거대한 일들 하나하나마다 똑똑하고 훈련이 잘 돼 있는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수없이 필요 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짧 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했던 것이다. 최상으로 훈련받은 똑 똑한 사람들이 모두 갖춰지기 전까진 이 일은 시작할 수조차 없었다. 사고가 난 지 2년 뒤,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내가 다니던 9학년 학급에 서 수학 시험 문제를 낼 때 나는 이 사실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수학 시험 성적이 좋으면 바로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선생님인 영재 학 교의 장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내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이 판명됐을 때 시그는 실망했지만, 나는 안심이 되었었다. 자본과 기술이 모든 학교, 모든 학생들에게 쏟아졌기 때문에 어쨌든 별 상관이 없었다. 짧은 기간 내에 훌륭한 교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에 많은 선생님들이 하루에 열두 시간 @p 177 일하고 회사의 중간 관리들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았다. 자원 프로그램이 진행 되었고, 수많은 엔지니어와 교수들은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 공립 학교 교사 로 ‘은퇴’했다. 내가 대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교육의 가속화가 기회의 엄청난 팽창을 의미했 다. 2010년보다 네 배나 많은 엔지니어와 과학자가 배출되었어도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부족했다. 과학 과목 몇 개만 합격해도 회사 신입 사원 모집 담당자가 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2학년 학생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적어도 민간 학교에 다닌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공군 사관학교를 선택했다. 변한 것은 직업 시장뿐만이 아니었다. 몇 십 년 동안 더 많은 시간과 자본이 소요되는 거대한 계획들이 생겨나자 갑자 기 예정보다 빨리, 계획보다 적은 예산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끝마쳐지게 되었 다. 내가 1학년이었을 때 비궤도 정기 여객기 이야기가 나왔는데, 2학년 크리스마 스 때에는 그 여객기를 타고 집으로 갔다. 로스엔젤레스와 산 호세를 잇는 고속 철도선이 최초로 등장한 지 6년 뒤 미국에서만 1만 5천 마일의 고속 철도선이 생겼다. 탱크 속에서 나무를 미리 결정한 형태로 키우는 실험이 일본에서 있는 지 1년 뒤 같은 방법으로 미츠이가 조립식 집을 전 세계에 공급했다. 해양 농장 으로 기근이 사라졌고, 의사들은 에이즈와 치매를 정복했으며, 인간의 수명을 150년까지 연장시키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은 오로지 과잉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이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1 천 명의 뛰어난 사람들을 선발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1백만 명을 선발해 교육 시킨 뒤 상위 10페센트를 고르는 것이다. 따라서 최상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대학 우주 리서치 @p 178 협회는 ‘보통으로’ 뛰어난 사람들을 필요량의 몇 배로 양산해낼수밖에 없었 고,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인재들이 온 새계로 흩어져 우주 산업 이외의 일들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 세계의 지식과 생산이 르네상스 이후 최대 규모로 도약하며 승리의 소식이 잇따라 들렸지만, 달 남극에서 있었던 고고학 발굴 사건으로 빛을 발하지는 못 했다. 그건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우리 아버지와 샤오베가 달에 발을 딛은 열일 곱 번째와 열여덟 번째가 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2033년 현재, 달의 남극 정 거장은 준영구 거주민이 2백 명도 넘는 소도시가 됐다. 몇몇 고고학자들과 기지 관리인들이 5년째 계속 살고 있었다. 작년에는 고곳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나기 도 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다이어트 코크를 꺼내 병째 마시며 어둠과 생명을 얻고 있는 전기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고가 있었을 때 나는 7학년이었다. 그 지역을 연구하려면 인간의 시간으 로는 몇 백 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상과 계획을 신 속히 수정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은 달에서 우주인이 생활하던 몇 주째 되던 때였고, 무인 탐사기와 보급선이 지난 몇 주 동안 화성을 향해 떠나 면서 물자가 꾸준히 보급되고 탐사가들이 연구해야 할 데이터가 꾸준히 전송되 어 왔다. 콜로라도 스프링에서 3학년을 마친 뒤 여름 훈련을 받던 도중 우리는 갑자기 버스에 올라타 거대한 화면의 TV를 보게 되었다. TV에서 월터 갠더^36^이제 내 지휘관이 될 사람인데 나는 아직도 이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36^가 피존을 약간 수정해 만든 포보스 랑데부선에서 내려 흙으 로 뒤덮힌 표면에 조심조심 발자국을 @P 179 남기고 있었다. 머리 위로 보이는 불그스름한 화성을 올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우리는 당당히 여기까지 왔고, 여기에 머무르게 됐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엄숙한 공식 발표가 아닌, 자신이 정말로 이 야기하고 싶은 것을 전달했다. “다음 번에는 50년이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닐, 버즈, 마이크 등 모든 이 들에게 도움을 준 프랭크 보먼, 짐 로벨, 그리고 빌 앤더스에게 감사의 말을 전 합니다.” 나사는 착륙일을 조심스레 선정할 것이다. 아폴로 8호가 달에 착륙한 지 꼭 50년이 되는 2018년 12월 25일이었으니 말이다. 타이버인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 또한 급격히 발전했는데, 2^36^3년마다 빠르게 그 내용들이 수정되었다. 공군 사관학교 마지막 학년을 다니던 때는 달 발굴을 마치고 막 돌아온 역사 교수가 가르치던 학점 없는 수업이 있었다. 그 당시엔 발견한 거주지와 장비를 바탕으로 타이버인들이 포보스에 메인 기지를 세운 뒤 달에 2차 기지를 세웠으리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갠더 탐사단이 포보스 전 역에서 발견한 수많은 파편들은 이 추측을 입증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 있던 기 지가 폭파하자 달로 먼저 떠났던 팀들이 오도가도 못하게 됐었다고. 그렇다면 포보스에 있는 동굴 거주지 근처에는 왜 폭파나 유성 충돌의 흔적은 없는 것일까? 동굴 안에는 왜 아무도 없었던 것일까? 폭파 당시 모든 사람들은 포보스 다른 쪽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잔해 가운데 사체나 인 체 파편이 없는 것일까? 코로예프 분하구에 도움을 청할 수 있던 사람은 왜 없 었으며, 코로예프에서 달려와 도와줄 사람은 왜 없었던 것일까? @P 180 보포스 타이버 기지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달 기지를 구할 수 없었는 지는 모르지만, 고고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포보스 기지가 외부 도움 없이 건축 을 절반쯤 마친 상태인 것을 보니 그런 일은 초기에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했 다. 그들의 탐사는 그곳 달의 남극에서 치욕스런 종말을 보았다. 기체 정역학과 공기 역학, 로켓을 기묘히 결합시켜 놓은 듯한 그들의 착륙선은 분명 지구에 착 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메시지에 따르면 지구까지 온 것 같았는데 그냥 떠나버렸다. 최소한 숨 쉴 수 있는 그런 세계로 그들은 왜 돌아오지 않았던 것 일까? 게다가 기지 내 침대 수가 시체 수의 두 배인 것으로 보아 기지에서는 단 한 번도 사람들로 가득 찼던 적은 없었던 듯했다. 그들의 사망 이유 또한 수수계끼였다. 소형 자동 농장이 타이버인의 기지들 가운데 끝까지 작업하고 있던 몇 안 되는 기지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굶주렸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둘은 왜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왔 던 것일까? 그것도 그렇게나 많은 숫자들, 그들은 지구를 식민지로 만들 계획이 었던 것일까? 교수는 화려한 단어로 입을 열었다. “커다란 수수께끼는, 그들이 작동되는 우주선을 가지고 있고 지구에서 겨우 한 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도 이곳에 와서 음식을 좀더 많이 가지고 가지 않았느냐는 것이지, 아니면 왜 우리 행성으로 이주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야, 그들 은 우리보다 기술적으로 우위였고 거주지 표면이 있던 흙이나 메시지로 확인된 바는 기원전 7천 년 경이었는데, 그때라면 우리를 통치하고 주인이 될 수 있었 을텐데 말이지. 그들이 왜 그러지 않았는지, 아니면 왜 그럴 수 없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코로예프 분화구 @P 181 를 살펴볼 때까지, 아니면 특수 수화물선이 포보스의 잔해를 가지고 돌아오면 그 잔해 분석 결과가 나올 때까지 궁금하더라도 기다려야겠지.“ 두 번째 탐사단이 착륙하고 포보스 기지를 세운 2021년 1월, 나는 비행 훈련 을 받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시내에 있는 24시간 커피숍에 늦게까지 않은 채 착륙 광경을 시청하려 했지만, 전송 문제로 많은 부분을 볼 수가 없었다. 이야말 로 중요한 일이라며 온갖 직업의 사람들과 나눈 인터뷰로 만족해야 했다. 달에 갔던 고고학자들은 포보스로 향한 고고학자들의 숫자가 부족하다며 불평 을 늘어놓기 시작했던 것을 우리는 모두 알 수 있었다. 임무 전문가들의 불평에 대처하는 조종사 훈련의 초반부처럼 보였다. 그런 가운데 내가 2년 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이 질문으로 나왔다. 외계 생물학자들은^36^꼭 4년 전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분야였는데, 이제는 4개 의 월간 저널지를 발행하게 됐다^36^사망한 타이버인들의 조직이 지구 단백질에 장기 노출된 결과 면역계가 일으킨 반응 때문에 다양한 손상을 입었으며, 따라 서 그들은 지구를 방문했을 뿐 아니라 이곳 음식을 먹으며 몇 년 동안 살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달이 피난처였거나, 지구 식민지에서 구출된 병자 타이버인들 을 위한 격리소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일 을 끝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우주사업을 벌이던 종족들이 어떻게 모든 이들을 지구에서 태워 선상에 격리시킬 만큼 큰 우주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일까? 대답의 일부가 월터 갠더한테서 나왔다. 당시에도 그를 공룡이 @P 182 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해에 그는 신참 우주 비행사였다. 그는 구식 학교에서 궤도 역학 박사학위를 땄고, 군대 시험 조종사 로 몇 년 동안 근무했다. 그가 사령관으로 선택된 것은 50년 전 나사의 전성기 를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의도가 약간은 있었다는 추측도 있었다. 돌아오는 6개월의 긴 여행 동안 선원들이 할 일이라고는 주로 코스 수정을 하 거나 생명 유지 장치를 유지시키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갠더는 궤도 역학 상 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나중에 한 말에 따르면 처음 그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포보스 궤도 산정 이었다고 했다. L1과 L2점은 달의 표면에서 1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여 가 시간과 컴퓨터 다루는 시간의 대부분을 궤도 산정에 쏟았던 그눈 그들이 발 견한 물질이 보포스상에서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를 모두 기록해 놓았다. 그눈 궤도 역학상의 유전 알고리듬을 사용하면 포보스 전역에 흩어진 수천 개 의 타이버 물질들이 각각 어디서 나온 것인지, 원래 있었던 장소의 숫자를 최소 한으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답은 하나였고^36^달 표면 위로 가장 가까 이 다가갔을 경우 있었다는 것이다^36^사람들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던 가설은 타이버인들이 조그만 달 위로 스타십이 궤도를 그리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보포스 주위를 도는 꿰도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우주 선은 달 표면과 부딪치며 커다란 조각으로 부서졌다. 커다란 조각들은 대부분 포보스 주위의 불규칙한 궤도로 튀어올라 화성까지 끌린 뒤 대기권으로 떨어져 불타버렸다. 몇 조각은 보포스와 부딧쳐 더더욱 잘게 부수어지다가 마침내 우리 에 @P 183 게 발견된 것처럼 일정한 형태를 갖춘 채 이러저리 흩어져 있는 파편으로 남게 되었다. 2^36^3년 뒤 중위가 된 나는 위싱턴에 임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말은 곧 어 머니와 시그를 자주 만나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말은 또 스타 라이너가 시험 단 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가 셰어스페이스 조종을 하고 싶어할 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사는 내 지원서를 영원히 보류해 놓을지 모르지만 나 자신은 나를 고용할 수 있다는 시그의 말을 끊임없이 무시하기 위해 애써야 한 다는 뜻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 타이버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고 있진 못했지만, 코로예프 분화구에 도착하는 순간 던져야 할 질문들을 적어 도 고고학자들운 준비해 놓은 상태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사실상 우리는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해답을 기다리고 있는 수수께끼들을 안고 있었다. 나리하라 니가와가 자신의 논문인 「타이버 기술 매트릭스 상의 이례성」에서 해결했던 문제들을 다시 제기하며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논쟁이 불꽃 처럼 일어났다. 니가와의 주장에 따르면 달에 있는 타이버 기지에는 복제기가 여러 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버전이 더욱 높은 것처럼 보 인다는 것이다. 그는 ‘솝위드 카멜과 스타버드를 함계 발견한 것이나 L자형 전 화기나 핸드폰을 발명한 것과 맞먹는 발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메시지 서 식의 오른쪽 윗편에 있는 작은 표시를 날짜로 보면 첫 번째 타이버 우주선이 도 착하고 난 뒤 몇 십 년 뒤 두 번째 우주선이 도착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해, 내가 급속히 팽창하던 우주 프로그램의 우주 비행사 훈련 허가를 받 았을 때 과학자들은 마침내 타이버 태양 전지판의 작동 원리를 밝혀냈다. 따라 서 몇 달 뒤 지구의 전력값은 반으로 @P 184 떨어졌다. 몇몇 선원들은 달 남극에 1년 내내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우주 비행을 시작한 지 1년째 되던 해에는 일자 비어린, 베실리 체버티 킨, 동 더화로 이루어진 유명한 리서치팀^36^언론에서는 줄여서 ‘BCD팀’이라 고 했다^36^이 타이버의 문자 체계를 그럴 듯하게 해석하게 됐고, 아코디언처럼 조종석 아래 구겨져 처박혀 있던 섬유가 문자로 적혀진 착륙선 작동 설명서라는 확신을 마침내 내리게 되었다. 나는 그 생각을 하자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느껴 졌지만^36^우주 비행하랴, 고급 훈련을 받으랴, 바빴지만 결코 실속은 없었던 연 애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36^벌써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고, BCD 팀이 이룬 업적보다 학자들은 위대한 결과가 탄생하리라는 말을 해왔지만, 문제 는 BCD팀이 연구 결과를 출판하던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작동 설명서에 많이 씌어진 단어들 가운데서는 30퍼센트가 아직도 해독 불가 능한 상태였고, 설명서에 사용된 어휘 가운데 약 10퍼센트 정도가 독특하게 쓰 이는 단어들, 즉 용례가 단 하나밖에 없는 단어들이었던 것이다. 착륙선 자체에 적혀 있는 문장들도 대부분 해독했지만, 그 문장들은 ‘반드시 체크할 것!^36^모 르는 단어^36^의 전원을 껐는가? 문이 닫혀 있는가?’, ‘왼쪽으로 돌린 뒤 들어 올리면 열림’ 그리고 ‘스위치를 열기 전 배전판에 파란 불이 들어 왔는지 확 인할 것’등 정보를 알려주는 문장들이었다. 2025년, 1990년대에 그 일을 고안한 사람의 이름을 딴 주브린 계획 때문에 인 류는 켄타우르스 좌 알파 성에서 나온 메시지를 @p 185 처음 들은 지 거의 20년만에 마침내 화성의 표면과 코로예프 분화구의 가장자 리에 발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착륙은 닐과 버즈가 트랜퀼리티 기지에 이글 호 를 착륙시킨 지 55년 뒤인 2025년 1월 20일에 예정대로 이루어졌다. 나는 재사용 가능한 착륙기를 남극 기지에서 암스트롱 정거장으로 조정하다가 그 뉴스를 들었다. 코로예프 분화구는 원형에 가까웠고, 반경이 50킬로미터로 중 서부에 있는 마을 크기와 비슷했으며, 3백 미터나 되는 얼음들로 가득 차 있었 다. 표면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탐사단이 가장자리를 따라 둘러보았는데도 아무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메시지가 일러준 곳으로 갔는데, 거기 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서 약간 실망스러웠다. 2027년에 있었던 탐사는 좀 더 성공적이었다. 포보스에서 전파를 통해 화성 표면 위로 로봇을 작동시키기 전, 부분적으로나 마 그 탐사가 진행되던 가운데 조사자들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코로예프 분화구를 비롯해 북극 등 화성을 덮고 있는 많은 얼음 중에 ‘불연 속’, 즉 얼음의 성질과 구성이 달라지는 깊은 틈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이 최초 로 밝혀졌던 것이다. 임시로 시간을 측정해 보았더니 타이버인들이 화성에서 활 동하던 기간 중에 생긴 것이었다. 화성에 있던 물 대부분이 매우 급속하게 용해 되었다가 빠른 시간 내에 재응결한 뒤 분화구 속과 양극에 점차적으로 다시 축 적된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2029년, 코로예프 탐사단은 화성에 영구 기지를 세 우고 선원들을 머무르게 하는 것 이외에도 매우 특수한 임무를 실행하게 되었 다. 로봇과 트랙터를 이용해 깊이 얼어 있는 호수를 전역에 탐지기구망을 구축했 던 것이다. 그리고 음파 발생기로 깊이가 5미터 @p 186 에서 7미터에 달하는 모든 불연속면을 탐사했다. 진척 속도는 느렸고, 분석하기 도 어려웠지만 시간은 충분했다. 화성에 머물러 있었으니 말이다. 2031년, 팀이 보충되자 일의 속도가 빨라졌고, 마침내 보고가 있었다. 코로예 프 중앙을 덮고 있는 얼음 표면 아래로 몇 미터 떨어진 곳, 불연속면 바로 위에 이물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물질은 달에 남아 있는 타이버 착륙선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불과 몇 달 뒤 상관들은 나에 대한 온갖 칭찬들을 보고서에 늘어놓고, 내 존재가 임무 계획자의 눈에 띄이도록 만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코 로예프 기지에 있던 선원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얼음을 뚫을 수 있도록 고안된 마이크로 탐침기와 에너지가 매우 낮은 초음파를 이용해 그 물질이 두 번째 타 이버 착륙선임을 밝혀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딱딱한 얼음 아래에 있지만, 아무런 이상은 없는 듯하며, 옆으로 비스듬하게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그 가까이에는 약 20여명의 타이버인들이 딱딱하고 차갑게 냉동되어 있는 무덤이 있다고 했다. 과학자들이 최초로 말라 비틀어진 채 진공 속에 있지않은 타이버인을 최초로 연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꽤 조잡 하게 만들어진 석조 건물도 여덟 개가 있다고 했으며, 그 내부의 각 건물 안에 도 냉동된 타이버인들이 몇 명 더 있다고 했다. 30년 전, 이 메시지가 처음 도착한 이래 우리들이 알고 싶어 했던 모든 일들 이 잠재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이었다. 그곳에 없는 것 한 가지는 인사이크러피 디어였다. 달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지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착륙했을 것이다. 이제 그 지역이 발견됐고, 거기서 손상 없이 물건을 빼올 수 있을 만큼 화성 북극의 조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 지역에 @p 187 서 5킬로미터 이내에 우리의 거주지가 세워질 것이다. 또다른 테렌스가 타이버인의 하드웨어를 찾아 떠날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어디에 계시든 내가 당신의 업적을 뛰어넘는 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시라고 생 각한다. 이제 마침내 시간이 되었다. 나는 거의 일평생 동안 이 순간을 준비해 왔는데 막상 내가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첫 날,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점 점 따뜻해지고 별 맛이 없어지는 다이어트 콜라를 홀짝이다 옷을 입은 채 그대 로 소파 위에서 잠이 들었다. @p 188 화성으로의 여행 “오케이. 제이슨, 준비됐지.” 갠더 선장은 지시를 내릴 때마다 이렇게 부드럽고 길게 늘어뜨리며 말했기 때 문에 이제 내가 다음 단계의 일을 하면 우리가 움직이게 된다는 것과 몇 천만 마일 떨어진 곳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 전혀 의식되지 않 았다. 나는 옆에 있던 냉각 주머니를 들고 철제 램프를 건너 대기실로, 그리고 작업 탑 옆 발사대에 놓여 있는 양키 클리퍼 옆 쪽으로 들어갔다. 먼 거리였기 때문 에^36^도시의 한 블럭만큼 되었다^36^나는 인간을 우주로 쏘아올리는 물건이 얼 마나 거대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가늠해 볼 기회가 있었다. 냉각 주 머니는 웅웅 소리를 크게 내며 플로리다의 밝은 태양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앞으로 2년 내에 지구의 천연 공기를 들여 마시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구나 하 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내음을 품고 있는 공기 @p 189 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오랫동안 바다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손 흔드는 것 잊지 말게.” 내 뒤에서 갠더 선장이 말했다. “공무 담당자가 자네한테 화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상기시켜 주다니 고마웠다. 요즘은 우주선들이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궤도를 그렸기 때문에 TV뉴스는 물론 조종사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는 양키 클리퍼를 한 해에도 예닐곱 번씩 3년 동안 조종했는데, 나를 배웅하 러 나온 적이 있는 사람은 엄마와 시그뿐이었고, 그나마도 제일 처음에만 그랬 을뿐이다. 하지만 이번엔 분명 달랐다. 우리는 지금 인사이크러피디어를 가지러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것은 2019년에 있었던 최초의 포보스 탐사나 25년에 있었던 최초의 화성 탐사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 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문 위로 솟아 있는 작은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지 시 받은 대로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잠시 옆으로 고개를 돌려 녹색 나뭇잎과 잿빛 바다를 기억 속에 각인시킨 뒤 양키 클리퍼가 내는 차갑고 희미 한 인공빛 속으로 들어갔다. 최초올 승선한 사람은 나였는데, 양키 클리퍼의 승무원실은 장기 체류용으로 디자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갈 공간이 없었고, 옆에서 승선하게 되어 있었다. 조종사는 앞쪽 오른편에 앉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올라타기 전에 내가 먼저 승선해야 했던 것이다. 나는 모든 기구들이 제 자리에 있는 것 이외 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복도를 따라 가서 선장의 자리를 지나 내 자리로 갔 다. 내 여압복 헬멧은 정위치에 묶여 있었다. @P 190 계기판을 보니 우리는 예정대로 작업 탑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고 있었다. 나 는 작업 탑의 도움을 끊기 위해 전력 증강 과정에 착수했다. 압축 공기가 들어 오자 나는 여압복을 그곳에다 걸었고, 왼쪽 아래 쪽에 있는 좌석 상자 4에다가 조심스럽게 냉각주머니를 넣었다. 그 상자는 우리가 가기고 가지 않을 물건들을 놓는 곳이었다.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져 잡아 당겨보았더니 내사물함이 거기 들어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끄고 어머니가 들었으면 난리칠 단어를 몇 개 지껄 인 뒤 몸을 숙여 상자를 꺼냈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 내 옆자리에 앉으며 갠더 선장이 말했다. “짐을 챙기는 선원이 제 사물함을 지구로 환송될 상자에 넣었더라구요/” 선장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이거야 원.” 그는 몸을 뒤로 빼더니 지금 막 승선하는 올가를 향해 소리질렀다. “올가, 가지고 갈 물건들이 제 상자 안에 들어 있는지 확인해봐요. 사람들이 제이슨의 상자를 엉망으로 해놨어요.” 나는 몸을 돌리다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짐 챙기는 선원들이라니.” 그녀는 역겹다는 듯이 말을 했다. “우린 언제면 의복 상자를 재발명하게 될까요?” 그녀는 자신의 자리로 올르더니 상자를 열어 보았다. “제 물건은 제대로 정리한 것 같군요.” 나는 올가와 훈련 임무를 두 번 정도 같이 해 보았지만, 그녀를 잘 알지는 못 했다. @P 191 어떤 똑똑한 심리학자는 생성간 유인 임무는 몇 년 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떠 나기 전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항해 도중 시간을 내 친구가 되고 관계를 형성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그러면 뭔가 할 일이 생겨 지루함을 달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훈련받으면서도 다른 선원과 떨어 져 시간을 보내도록 유도됐고, 개인적인 학습과 연습은 제각각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함께 있는 것이 편하긴 했지만 아주 익숙한 느낌은 없었다. 어쨌든 나는 올가가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나와 마찬가지로 로맨틱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던 터였다. 그녀는 1급 장교이므로 내 상관이었다. ‘아니, 아닐지도 모그지’. 이 결정을 내리기까진 어쨌든 몇 달 간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점검을 시작했다. 대형 화면 정보 판독기가 있으면 눈으 로 모든 지표들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모든 조종사들이 동의했 지만, 그래도 모든 조종사들은 다시 점검을 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기 때문에 나는 문서 상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두 번째 단계로 옮겨 헤드폰을 딸깍 하고 켜서 채널을 연결했다. ^36^통제실, 여기는 양키 클리퍼에 정위치한 제이슨 테렌스, 들립니까, 실장님? 귀에서 목소리가 지직거렸다. ^36^잘 들린다. 제이슨, 그쪽 체크 아웃이 정상이라는 것이 보인다. ^36^저도 똑같이 보입니다. 지금까지는 훈련용 영화 같은데요. ^36^앞으로도 내내 그런 기분이었으면 좋겠네.“ 실장님은 공군 사관학교 시절부터 알아오던 오랜 친구로, 사관 @P 192 학교를 우주 조종사 부대로 만들고, 원상태로 돌아가려면 몇 년이나 걸릴 사소 한 의학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었다. 우주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보면 딕 슬레이 튼 같은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늘 행복한 일이 었다. 모든 지표를 읽는 데는 약 30분 정도 걸렸다. 예전에는 더 오래 걸렸다고 한 다. 스위치가 화면에서 밝은 부분으로 나타나 커서로 건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 이 아니라 구식 전기 스위치처럼 작은 토글이었다고 한다. 나는 잠시 아버지를 떠올렸다. 120년 동안의 비행과 70년 동안의 우주 비행 때문에 아버지는 규격화된 조종 실에 있는 거의 모든 기기들을 알아볼 수 있으실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기기 들의 조절 방식과 조정 방법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더라도 말이다. 몇 주 전 대통령 주최 만찬에 참석하러 위싱턴을 방문했을 때, 알링턴에 있는 그분의 묘지를 방문하려던 내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 계획에서 맡은 임무와 우리가 인사이크러피디어를 발굴하러 떠 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기자들은 항상 내 뒤를 쫓아 다녔다. 내가 만약 아버지 무덤을 찾아갔더라면 언론에서는 하루 종일 사진을 찍고 질문을 퍼부었을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 계시든 아버지는 날 분명 용서해 주시리라. 시간도 없고 언론 에 쫓겨다니는 것은 아버지도 이해할 만한 사항일 테니까. 나는 한 번 더 점검한 뒤 달리 할 일이 없어 비행 계획을 다시 보고 있었는데 그때 갠더 선장이 말했다. ^36^좋아, 임무 전문가들을 승선시키자구. 예정 시각대로였다. 지난 몇 달 간 그와 함께 비행하며 한 가 @P 193 @p 194 “모두 승선 완료했습니다. 선장님.” 귀환 조종사인 마크 벤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그다지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몇 년 동안 제 1 우주 중 대에 함께 있었다. 그가 문을 닫았다. “좋습니다. 여러분. 생각할 수 있게 목소리를 낮춥시다.” 갠더가 말했다. 과학자들은 소근소근대며 그들의 상자를 살폈고-잘못 정리된 것을 많이 발견 했지만 잃어 버린 것은 없었다-직원들이 실수로 놓친 것이 있는지 우주선의 정 보 판독 사항을 보며 다신 한 번 점검했다. 점검을 모두 마친 나는 과학팀을 쳐다보았다. 가속 의자에 등을 댄 채 누워서 아홉 줄로 늘어서 있는 침대 옆쪽을 내려다보는 모양이어서 약간 이상한 식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첫 번째 인물은-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듯 했다-나리하라 니가와였는데, 우리는 그를 보통 나리라 불렀다. 잘 생긴 인물과 이 임무의 최고한계 신장에 0.5밀리미터 못 미치는 키였고 근육질이었으며 날렵 했다. 그는 와세다 대학 농구부에선 가드로, 야구부에선 3루수로 활약했는데도 스물다섯 살이 되기 전에 비행을 배우고 박사 학위를 땄다. 그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티베르 기술의 혼합성에 대해 의문을 제 기했던 사람이다. 본국에서 누군가와 약혼한 상태라고 했지만, 우리 가운데 그의 약혼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세 번 함께 맥주를 마시러 나갔을 때도 정착할 사람처 럼 보이지는 않았다. @p 196 지금 그는 흥분감에 혼자 미소를 지으면서 판독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잇었다. 그는 달에서 1년 이상 살았고, 최초의 화성 착륙의 일원이었다. 포보스 를 잠깐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확실한 증거를 잡은 것이 분명했다-포보스에 있 던 금속, 플라스틱, 유리들은 그가 말한 타이버 기술의 ‘초창기’산물처럼 보였 다. 달, 포보스, 화성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은(회원은 10명이 채 못된 다)‘3세계 클럽’의 회원 가운데 한 명일 뿐 아니라 지구의 외계 엔지니어링 고고학의 선두 주자이기도 했다-달에서 발견된 타이버 기술이 어떤 것인지를 밝 혀줄 전문가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복도 건너편에 있 는 폴 플루언트엑게 무슨 이야기인가를 건넸다. 폴 플루언트는 애스트로 F 전문가이자 컴퓨터의 귀재로 어느 누구보다도 인공 지능과 유전 알고리듬에 해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사람들로 하여금 잊어 버리게 하는 법이 없었다. 폴은 2023년 탐사 때 포브스로 갔다가 2025년 탐사 때 돌아왔으며, 화성에 발 을 들여놓은 적은 없었지만 화성의 역사에서 그의 입지는 이미 확고했다. 화성 표면에 있는 로봇들과 포보스에 있던 네트워크 컴퓨터가 불연속을 발견 하게 된 것도 그가 개발한 프로그램 덕택이었다. 그는 나리가 하는 말을 듣기 위해 몸을 앞으로 숙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폴의 두꺼운 눈썹이 올라갔고, 그가 무슨 말인가를 건네자 나리는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 앞쪽에 앉아 있던 키레이코가 얼굴을 붉히며 이미 완벽하게 작동되고 있 는 것들을 다시 열심히 점검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가벼운 음담패설이었나 보 다. @p 197 키레이코는 수줍음이 많아 보였으며,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 가 분자 생물학자로 타이버 생화학 전문가이며, 기혼이고 어린아이가 둘 있다는 것뿐이다. 이 임무를 위해 그녀가 ‘아이들을 버렸다’며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적이 있 었다. 몇 달 동안 증오심을 담은 편지가 쏟아졌는데도 그녀가 남편 둘 다 이 주 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녀는 매우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키레이코를 불편하게 만든 농담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키레이코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의사이며 타이버인 해부 전문가인 쩐 초우정의 마음에는 들었나 보 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무슨 말인가를 했고, 그 말에 폴은 자신의 허벅지를 쳤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갠더 선장이 헤드폰을 벗으며 단호히 말했다. “통제실장 덕분에 우리가 여기서 하는 말 거의 전부가 언론에 개방되어 있다 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경우도 있으니 부적합한 농 담들은 부디….” “죄송합니다.” 폴이 중얼거렸고 모두들 마지막 재점검에 착수했다. 엔지니어 자리에만 깊숙이 앉아 있던 올가가 몸을 내밀며 마크벤에게 무슨 말 인가를 했다. 앞서 있었던 대화에 대한 이야기같이 보였다. 내 추측이 맞는다는 듯 올가는 내 눈을 바라보고는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나도 의 견을 같이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몇 사람 가운데에는 폴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팀 전체를 둘러 보았다. 화성에서 살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에 약간 흥분 이 되는 것은-특히 조종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 다. 폴과 나리는 화면에 집중하 @p 198 기 위해 적어도 노력은 하고 있었다. 쩐은 키레이코와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 다 부드러운 목소 리이긴 했지만 아주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음악, 어학, 궤도 역학 등 세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인 베 실리는 체격이 좋고 수염이 있었는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침묵하고 있 었다. 그가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몇 번 못 들었지만, 타이버 문장 분석상의 번 역 문제에 대해 쓴 그의 보고서는 환상적이었다. 그의 지능이 대단하다는 사실 은 이미 오래 전에 인정한 사실이지만, 인정했다고 해서 대단함이 줄어드는 것 은 아니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선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지만 체격이 가장 왜소한 동 더화는 다시 한 번 재점검하는 척했던 걸 중단하고는 두 손을 모은 채 조용 히 앉아 있었다. 그와 베실리는 친하게 지냈는데, 그의 전문 분야가 인류학이어 서 베실리와 가장 밀접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두 사람 모두 이야기를 별로 좋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 세 장교가 몇 달 동안 몇 미터 아래의 얼음 속에서 타이버 착륙선을 꺼내는 계획을 완전히 이 해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을 때 기술상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며, 어떤 물건을 찾아야 하는 지에 대해 가장 자주 설명해 주던 사람이었다. 전문가들이 하는 작업을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 설명이 내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로리 커스튼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지금 화성으로 운송 하고 있는 이 팀은 맨하탄 프로젝트 이래 개인당 두뇌 집중량이 가장 많은 팀이 었다. 우리 아버지와 샤오베의 목숨을 앗아간 그 난파 사건 이래, 인 @p 199 류는 이 임무를 24년 동안이나 준비해 왔던 것이다. 예전에는 존재하지도 않 았던 방면의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겐 장기 우주 임무를 견딜 능력과 매우 위험한 화성 북극의 황무지를 개척할 능력이 있어야 했다. 지금까 지 코로예프에서 사망한 사람은 표면 탐사가 두 사람에 불과했지만, 화성에 가 본 사람은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실장님의 목소리가 귀에서 지직됐다. -어떤가, 양키 클리퍼? -준비가 다 됐습니다. 실장님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흐음. 우리는 지금 개인 채널로 이야기를 하고 있네만, 제이슨. 진실을 알고 싶나? -그럼요. 실장님의 목소리에는 자주 그랬던 것처럼 신랄한 풍자의 기운이 깃들여 있었 다. 그는 세상이 자신의 기대와 부합되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러시아 대통령이 아직 욕실에 계시다네. 사람들은 여섯 명의 대통령 모두가 우리의 출발을 지켜보는 모습을 찍고 싶어서 그분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나야 여섯 대통령 가운데 다섯 명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네만. 나는 피시식 웃음을 터트렸다. -시간과 궤도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죠. 빨리 나오시지 않으면 그분은 이 장면 을 놓칠 수 밖에 없겠는데요. 제게 상황을 계속 알려주십시오, 실장님. 우리는 이륙한 뒤 지구의 저궤도에서 햅과 만날 예정이었다. 위성이 낮게 떠 있을수록 지구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적고, 주어진 시간당 하늘과 만나는 각도가 컸다. @p 200 햅은 지구에서 고작 3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평선에서 지평선까 지 가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고 하늘의 작은 부분 한 곳에서만 궤도 속도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되면 우리는 이륙해야 했다. “다음 번엔 소변을 더 빨리 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 딘이 말했다. “카운트 시작하네.” 그가 채널을 ‘공개’로 전환하는 딸깍 소리가 들렸고, 이젠 우주선 안에 있 는 사람이나 언론 모두 그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양키 클리퍼. 여기는 통제실. 1분 뒤 이륙한다. -알았음. 통제실 나는 앞에 있는 화면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양호했다. 그리고 지구를 가까이서 마지막으로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 는 점을 활용했다. 멀리 보이는 파란 바다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그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로 켓과 선실 잔해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곳에서 우주선을 이륙시키는 게 벌써 몇 십 년째이니 말이다. 실장님이 말했다. -양키 클리퍼. 30초를 남겨두고 카운트를 멈췄다. 준비됐나? -준비됐음. 월터가 말했다. -출발합시다. 실장님. 카운트 다운. 1960년 이후에 태어난 미국인이라면 모두 다 외우고 있는 ‘점 화 과정 시작… 점화’로 끝나는 숫자 거꾸로 세 @p 201 기가 시작됐다. 발 밑에선 천둥이 일었다. 거대한 로켓 엔진이 최고 동력을 향 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유사시에 대비해 수동 계기판에 손을 올려 놓은 채 컴퓨터가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착륙할 만한 추진력에 다다랐고, 외부 카메라를 통해 작업팀이 멀어지는 모습 이 보였다. 화면의 왼편 위 쪽에서 우리가 하얗고 뜨거운 불기둥을 만들며 위풍 당당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고 가속 때문에 내 몸이 의자 쪽으로 밀리는 것 이 느껴졌다. 외견상 양키 클리퍼는 날개로 선채를 들어올리는 타입이었다. 앞쪽에 있는 날개는 프랑스 문처럼 접혀 있는데 첫번째가 안정 장치이고 옆쪽 과 마주보며 납작하게 가운데 있는 것이 이륙과 재진입에 사용되는 조인트이고, 그 다음이 이륙 장치이다. 기수 가까이 있는 짧은 날개도 선체와 마주보며 납작 하게 누워 있는데 필요시 가위 역할을 했으며 두 개의 초소형 제트는 이륙시 클 리퍼를 더욱 잘 다룰 수 있게 한다. 선체는 모양이 흐트러져 앞쪽이 뾰족하고 길게 뻗어 있는 피라미드 같았고 두 껍기 보다 넓은 편이었다. 뒤 쪽으로 네 개의 거대한 엔진 노즐이 보일듯 말듯 삐죽 나와 있었다. 외부 TV카메라를 통해 보았더니 클리퍼는 거대하게 날름대 는 불꽃 위로 좁다란 화살촉을 붙들고 있었다. 가속은 이제 3.2 중력에서 유지되 었고, 우리는 아직도 곧장 위로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앞에 있는 방풍 유리를 통해 머리가 위로 향해 있는 디스플레이를 지켜 보았다. 화면에서 보는 것과 똑같았다. 착륙할 때 창밖을 내다보는 조종사는 나 이 든 조종사들밖에 없었지만-화면은 매우 보기 쉬우니 말이다-나는 하늘색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보고 싶었다. @p 202 멀리 북쪽에서 보이는 7월 플로리다의 창백한 파란색 하늘이 맑은 겨울 낮에 나 볼 수 있는 짙은 파란색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고도 18킬로미터로 경계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속도는 재빨리 상승하고 있었다. 수동으로 조종할 때보다 궤도선에 더 가까워졌다. 제대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나는 수동 장치를 사용할 때보다 할 일이 더 많았다. 화면을 계속 주시하며, 증 가된 가속 때문에 의자 속으로 잠기는 몸을 그대로 놔둔 채 손을 계기판 위에 올려놓았고-팔이 마치 납덩이처럼 느껴졌다.-. 머리는 위를 향해 있는 디스플레 이를 통해 하늘을 쳐다보았다. 색깔 있는 그래프와 그림 뒤 푸른 색이 재빨리 짙어졌다. 우리는 여전히 3중력 이상으로 위를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고도 40킬로미 터가 되자 하늘은 완전히 캄캄해졌다. 나는 최초 궤도를 향해 날 수 있도록 컴퓨터가 우주선을 조종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외부 TV 카메라 화면이 사라졌다. 화면에서는 밝은 광선밖에 보이지 않았고, 레이더 영상을 통해 더 쓸모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지표가 상승하고 행로를 나타내는 그래프 세 개가 녹색 범위 안에 잘 머물러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다. 최초로 수동 조작을 하게 되자 나는 경치를 볼 수 있도록 우주선을 뒤집었다. ‘몇 년 동안 지구를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니 그럴만한 자격이 있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속은 아직도 맹렬히 진행 중이었지만,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는 별로 느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방풍 유리와 앞에 달린 카메 라를 통해 지구가 시야로 들어 왔는데 가속 상태에서 ‘밑’이란 엔진을 썼기에 지구는 머리 위로 떠 @p 203 있는 형상이었다. 이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감동한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파란색 거대한 그림자, 흰색과 갈색으로 띠를 두른 모습. 유럽과 아프리카 가 방풍 유리 너머로 펼쳐졌다. -통제실. 모든 상태가 양호함. 컷아웃 2분 14초전. 우리는 하늘을 향해 굉음을 내며 달렸다. 인도를 가로질러 멀리 시베리아까지 뻗어 있는 일몰선이 보였다. 컴퓨터가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자 갑자기 진동이 멈추면서 가속이 사라질 때가 다가왔고, 무중력 상태에 익숙해지기 전 몸이 추 락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다가왔다. 모든 지표들이 우리가 올바른 코스로 날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통제실. 내가 말했다. -여기는 양키 클리퍼. 지정된 궤도에 진입했음. 햅과 만나기전 모든 기기 점검 바람. -아무 이상 없어 보인다. 양키 클리퍼. 점검을 마친 뒤 다시 연락할 것. 조종 사에게 특별 메시지가 있다. 무슨 메시지일까 궁금해 하는데 로리 커스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이슨, 로리 아줌마다. 너희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거기서 몸조심하고 편지 쓰라는구나. 내 뒤 족 갑판에서 마음껏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일흔 살이 되도 로 리 아줌마는-그때면 1백 살 정도 될 것이다-날 여전히 놀릴 것 같은 생각이 들 었다. -알았음. 로리 아줌마. 엄마와 시그에게도 안부 전해 주시길. 가속 때문에 근 육 경직에서 벗어나자 갠더 선장이 말했다. “로리를 상사이자 식구로 삼는게 쉬운 일은 아니겠군.” @p 204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관계이지요. 하지만 다른 일보다 쉬울 때도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젊었던 시절, 그분이 지휘관이셨던 적이 두 번 있었지. 그때 나는 조종 사에게 조종을 맡기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네.” 그가 내 손목을 톡톡 치며 계속 말했다. “잘 하고 있어. 불필요한 행동은 삼가면서 모든 기기를 제대로 작동시키게. 부드럽게 비행하도록 하고.” 그는 벨트를 풀고 몸을 일으키더니 과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뒤편으 로 사라졌다. 마트 벤이 앞으로 나와 보조 좌석에 앉았다. 우리는 잡담에 신경쓰지 않고 꼬 리 쪽에 있는 올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헤드폰을 썼다. 그 뒤 1시간 30분 동안 올가, 마크, 그리고 나 세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양키 클리퍼가 내보낼 수 있는 모든 아웃 풋을 일고 또 읽었다. 현재 지구 저궤도 상에 있었으므로 햅과 만나 도킹하기 전에 우주선의 모든 것이 양 호한가 확인해야 할 시간이었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비행을 취소하기에 가장 용이한 시간이기도 했다. 인류는 이 탐사를 위해 일곱 명의 천재를 애써 양산했다. 엉터리 3달러짜리 부품 때문에 그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런 부품이 달려 있다면 말이다. 그런 부품은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정상이었다. 점검을 마친 뒤 올가 쪽으로 돌아보았더니 그녀도 내 쪽을 바라보며 엄지 손가락을 세운 채 씨익 웃고 있었다. 그녀는 짧고 @p 205 검은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쓸어 올렸다. “자, 분명히 우린 지금 완벽해.” 갠더가 나를 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역사상 가장 철저한 검사를 마쳤는데 버그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선장님. ” 내가 말했다. 나는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간에 가능한 한 가장 안전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모 두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쉽게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 앞으로 우리가 하게 될 일은 위험한 것 이상이었다. 불 필요한 위험은 감수하지 말 것. 이것이 우리의 모토일 것이다. 성공하기 어려울 지는 몰라도 그것이 화성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우리 모두는 지금 화성에 가기를 몹시 바라고 있었다. 안전 점검을 통과해야만 화성으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점검을 통과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린 당당히 통과했다. 갠더는 헤드폰을 쓰더니 다시 켰다. -휴스터. 여기는 양키 클리퍼 화성 탐사단. 우리는 현재 지시서상에 나와 있는 내용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으며 지정된 궤도상에 있음. 랑데부와 이동 허가 바 람. -알았다. 화성 탐사단. 허락한다. 행운을 빈다. 우리는 말없이 안전 벨트를 단단히 매고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둘러본 뒤 엔 진을 다시 점화시킬 준비를 했다. 파란 색 위로 흰 색이 얼룩진 지구의 거대한 둥근 곡선이 창문 꼭대기의 절반 을 차지했고-꼭대기를 머리가 가리키는 곳으로 @p 206 정의했을 경우에 말이다-. 그 아래로 별들이 보였다. 나는 혼자서 지구에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 번 점화로는 아주 조금 위로 올라가겠지만 앞으로 펼쳐 질 먼 길이 항상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고, 나는 그 길로 빨리 나아가고 싶었다. 우리는 카운트 다운을 한 뒤 엔진을 점화시켰다. 가속 때문에 양키 클러퍼가 땅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중역을 금새 느낄 수 있었다. 바닥으로 진동이 느껴졌지만, 소리를 전달해 줄 공기가 없었기 때문에 이륙시 들렸던 우르릉 하는 소리는 없었다. 더 높은 궤도를 향해 가면서 나는 궤도 지표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정확히 모든 지표의 한 가운데로 우주선을 고정시켰다. 직관을 거스르는 까다로운 과정이었 지만 나는 도와줄 전자공학도들이 많은 상태에서 시도했다는 사실이 분명 기뻤 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시 정상적이 되었다. 몇 분 뒤 여전히 제 코스를 향하며 점화를 멈추었고 햅을 만나게 될 원지점을 향해 올라갔다. @p 207 멀어지는 지구 우리는 한 시간 뒤 햅과 만났다. 언뜻 보기에 햅은 한쪽 끝에는 가늘고 길다 란 원통이 달려 있었고 다른 쪽 끝에는 크고 반짝이는 원통이 달린 납작하고 두 꺼운 원통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가운데 있는 두꺼운 원통은 빅 캔이었다. 화성 계획이 가속화된 이래 수많은 우주 계획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대담한 선택과 매우 보수적인 엔지니어링을 결합시킨 덕이었다. 즉, 가장 안전한 방법으 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 말은 필요 이상의 투자 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의미하기도 했다. 최초의 빅 캔 거주지는 ISS를 살렸 고, 심지어는 확장시키기까지 했다. 따라서 스타 클러스터에 부품을 더할 필요가 있거나 LEO와 L1에 우주 정거장을 추가해야 할 경우에는 공들여 만든 빅 캔을 이용했고 그 결과 글렌, 셰퍼드, 암스트롱은 덜거덕거림 없이 날아올랐다. 더욱 개선되고 좀더 공을 들인 빅 캔은 이제 달의 트랜퀼리티, 남극 정거장, 찌올코브 @p 208 스키, 포보스 그리고 화성의 코로예프 분화구 등에서 거주지 역할을 하고 있 었다. 아주 많이 개선된 빅 캔은 최초로 달에 착륙한 두 조종사(달 착륙선과 지 휘선을 조종했던 조종사 두 명)의 이름으로 불리는 순환선인 올드린과 콜린즈, 두 MERC(가장 기본적인 장거리 우주선인 화성, 지구 순환선이라는 뜻으로, 화 성과 지구를 왕복한다)에 사용됐다. 우주 정거장은 도킹항을 갖춘 빅 캔이고, MERC는 연료 탱크와 엔진을 갖춘 빅 캔이며, 거주지는 일단 착륙을 하고 나면 다리가 달린 빅 캔이었다. 뉴 올리언즈에 있는 빅 캔 조립 공장은 끊임없이 가동되면서 8개월에 하나 꼴 로 새로운 빅 캔을 만들어냈다. 피존을 조립하는 남 캘리포니아나 스터 부스터 를 만드는 시애틀(나중엔 스타 리프터를 만들기도 했다). 양키 클리퍼를 만드는 뉴욕처럼 필요한 변화와 수정만 해가며 서두르지도 늑장을 부리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1990년대 사람들은 궤도 상에서 ISS에 필요한 방대한 양의 조립을 계속하기로 결정을 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나중에 세워진 계획에서도 계속 사용되었지만, 땅에서 조립한 뒤 조립품을 발 사하는 것이 더 싸고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햅은 주브린이나 화성에 있는 다른 두 햅과 마찬가지로 방열판, 부스터, 단일 탱크 조립품 위에 있는 모든 부품 들이 화성의 HLV-SL(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매체-스타리프 터)조합 장치에 의해 완성품으로 발사되었다. 거주지로 다가가자 나는 공구함에서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공구를 발견했을 때 와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이 임무에 사용되는 추진기는 로켓 엔진과 탱크를 결 합한 것으로, 노즐 밑으로 착륙기가 튀어나와 있어 화성의 대지위에 꼿꼿이 설 수 있도록 되어 @p 209 있었다. 가장 간단한 우주선이라 할 수 있었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햅에 맞추어 조종 제트로 속도를 죽였고, 몇 미터 떨어진 곳까지 다가가자 왼쪽 몸체 부분에서 기갑이 빅 캔의 도킹항을 향해 천 천히 움직였다. 이따금씩 추진기를 발사하며 똑바로 섰고, 갑작스레 짧은 가속을 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침내 1미터 이내가 거리가 되자 우리는 1초 당 몇 미터 꼴로 움직였고 나는 커플링에 있는 전자석에 전력을 공급했다. 조금씩 움 직이자 마침내 부드러운 충격이 전해지면서 기갑이 커플리에 꼭 들어맞았다. “홀딩 압력이 괜찮군.” 갠더가 말했다. “좋아요, 이제 진행합시다.” 베실리와 쩐이 문을 열기 위해 두 개의 똑같은 다이얼을 돌리고 릴리스 바를 잡아당겼다. 우리 쪽 공기에 햅의 야릇한 금속 냄새가 섞였다. 쩐, 베실리, 키레 이코, 동 그리고 갠더는 돌아가며 소지품들을 햅으로 옮겼는데 열려 있는 기갑 을 통해 하나씩 건넨 뒤 지정된 사물함이나 상자에 넣는 식이었다. 그들은 개인 선실을 정리하러 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소지품 을 정리했다. 금새 개인 소지품을 놓아두었던 선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지구로 돌아갈 물건을 담는 선실만 남게 되었다. 선장과 함께 갔던 사람들은 햅 의 생명 유지기가 허용 오차 내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했다. 마크와 나는 상자들을 다시 한 번 살피며 클리펴 내에 남아 있는 물건이 없는 지 확인 한 뒤 마침내 기갑으로 갔다. 나는 제일 마지막으로 햅으로 건너간 뒤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했다. “이젠 자네 우주선이야.” @p 210 "감사합니다. 그리고 행운을 빕니다.“ “고맙네. 비행 잘 하게.” 우리는 각각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우리쪽 문을 닫고 다이얼을 돌려 점검했 다. 햅 안쪽으로 반 걸음 들어간 뒤 기갑의 안 쪽 문을 닫고 다이얼을 돌려 점 검했다. 기압등은 녹색이었다. 새는 문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기갑을 돌려 진공 으로 만들었다. 작은 펌프가 공기를 빨아들여 선실로 보냈다. 여전히 기압은 유 지됐다. 나는 헤드폰을 통해 마크에게 말했다. -됐네. 정확한 기압 아래 있음. 아무 이상 없음. 마음대로 떠나도 좋다. -알았음. 햅, 떠난다. 선체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양키 클리퍼가 멀어져 갔다. 나는 헤드폰을 낀 채 조종석으로 가 화면을 점검하고는 다시 마크와 통화했다. -좋았어. 마크, 이제 가도 좋네. 돌아가면 내 대신 맥주와 피자를 즐기길. -제이슨, 몇 년 뒤에 보자. 나는 카메라를 돌려 그의 엔진이 불꽃을 일으키며 되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정거장에서 보면 그는 맹렬한 기세로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땅에서 보면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로 로켓 엔진을 점화해 지금 까지 해온 것처럼 햅과 똑같은 속도로 궤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속력을 낮추 면서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저 아래 쪽 성층권 윗편에 닿으면 그는 양키 클리펴 아래 쪽에 @p 211 있는 방열판을 작동시켜 마하 15궤도에서 마하 12로 속도를 늦출 것이다. 그 러면 날개가 작동될 것이고 그의 엄청난 속도를 감안해 볼 때 공기층이 얇은 곳 에서 원하기만 하면 세계를 절반 가량 글라이딩 한 뒤 대류권으로 진입하여 착 륙지에 도착할 것이다. 이것은 예전보다 진보된 양키 클리퍼의 장점이기도 했다. 어느 곳에서나 재진 입할 수 있고 어느 곳에서나 착륙할 수 있다. 재진입할 곳을 선정한 뒤, 몇 초 이내로 진입지와 착륙지 사이의 길을 알아내야 하지만 땅 위에 있는 전세계 위 치 선정 컴퓨터를 이용하면 10초 이내에 알 수 있다. 시간 당 1백만 마일 이하의 속도로 난다 하더라도 곧 지구에서 30마일 떨어진 곳까지 글라이딩 될 것이고 그가 어디서 저녁을 먹을까 생각하며 캐너버럴로 돌 아가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약간 질투가 나기도 했다. 지구로 돌아가기가 아직 쉬울 때, 우리는 이 궤도 상에서 3시간 동안 마지막 점검을 하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지 살펴볼 것이다. 일단 부스터를 발 사하게 되면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화성으로 가게 되고 살든 죽든 간에 화 성에 도착하게 된다(우리가 죽게 된다면 착륙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나는 조종석에서 모든 것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점검했다. 정신이 산만해질 때마다 이상 없다고 확인한 지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거기서 부터 점검을 계속해 나갔다. 추진기는 이상 없었고, 올가도 이에 동의했다. 항해 기도 이상 없었고, 제대로 점화됐으며, 원하는 방향으로 추진이 이루어졌다. 나는 조종가능한 작은 로봇인 카메라 장치를 밖으로 보내 서리 낀 곳은 없는 지-내부에서 공기가 새고 있다는 증거이다-, 방 @p 212 열판에 균열은 없는지 살펴 보았다. 아무 문제점도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장 치는 제자리로 돌아왔고, 나는 그 장치가 제자리에 고정됐는지 확인했다. 착륙 로켓은 아무 이상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은 수없이 많은 작은 단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신이 없을 정 도로 복잡했기에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연습을 많이 해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3시간 동안엔 고작 스무 번 연습할 수 있었는데 연습을 1백 번쯤 하고 난 뒤에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번에 내 기록을 갱신하지는 못했지만 (무중력 상태에 적응이 안 됐던 것이다-무중력 상태에선 한 번 밖에 훈련한 적 이 없었으니까). 20분은 족히 남아 있었다. 올가와 나는 우리 자리로 가서 재빨 리 샌드위치를 먹으며 창문 너머 육안으로는 마지막으로 보게 될 지구의 아름다 움을 감상했다. 우리는 조용한 우주 속을 떠다니며-전문가들과 선장님은 복도 저편에 있는 공 동실에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조용했다-눈앞에 보이 는 거대한 지구 너머로 밝은 달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 분들은 멋진 광경을 놓치고 있는 거예요.” 자기들이 해야 할 점검을 다 마쳤으면서도 창밖을 내다 보지 않는 복도 저편 으리 사람들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어떤 사람에겐 이 광경이 일상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슬프지 않 아?” 창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동의했다. “성공의 대가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려니 생각하게 되니까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이 광경이 좀 더 의미 심장하겠지요.” @p 213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 할지라도 너무 자주 보게 되면 전혀 들여다보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달의 한 쪽 끝에 있는 치올코프스키 관측소에 가 본 적 있나?” “트랜퀼리티 너머로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상사님 나라에서는 그곳에다 정규 선원을 여러 명 두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 다만, 외국인을 정규 선원으로 두고 계실 것 같진 않은데요.” “그렇긴 하지만, 자네 나라 피존으로부터 보급품을 공급받을 때도 자주 있고. 조종사가 식사하러 올 때도 있지. 그러니까 미국인 조종사들도 이따금씩 그곳에 들를 수 있어. 그곳에서 몇 달 동안 고정 엔지니어로 일한 적이 있었어.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는 지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발 아래 딛고 있는 달이 지구를 영원히 가리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치올코프스키는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는 거주지이지만 가지고 온 소지품에서밖에 고향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던 곳이지. 나는 몇시간씩 창밖을 내다보곤 했고 밖으로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시간 있을 때마다 멈추어서서 산을 둘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다른 조종사들은 시간 이 나면 체스를 두거나 고국에서 가지고 온 비디오를 보곤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겠습니다. 8개월 동안 별보다 큰 것이라고는 태양밖에 보이지 않는 여행을 하다가 하늘에서 화성이 가까이 보이면 정말 반갑겠군요.” “당연하지. 변화야말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p 214 니까.“ 그녀가 말했다. 함께 지구가 지나쳐 가는 것을 좀더 지켜보다 나는 입을 열었다. “화성에 잠시 동안 머무르게 되셨다면서요.” 그녀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필요하니까요. 일반 엔지니어는 별로 없는데다 우주에는 더욱 없고. 게 다가 나처럼 실력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지.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괜찮겠지요?” “그럼요.” “그리고 나는 한 장소를 철저하게 둘러보는 것을 좋아해요. 달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달이 어떤 곳인지 살펴볼 때도 정말 즐거웠지. 그리고... 글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보통 우주 비행을 하는 사람의 머리는 짧았는데-머리가 길면 온갖 종류의 벌레, 기생충, 병 원균 등을 우주선 안으로 끌어들이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그녀의 머 리는 규칙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만한 수준으로, 이마에서 칼라 부분까지 흘러 내려 귀 뒤에서 달랑거리고 있었다. 새까만 머리로 머리카락은 굵고 깨끗하게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도 거의 비슷한 정도로 까맸다. 그녀의 피부는 창백하면서 주근깨가 있었고, 턱은 작지만 정교했다. 대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완전히 잊은 채 그녀의 매력에 대한 평가 점수를 높 이는 데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점점 풍요로워지면서 지구는 더 좋아지고 있지만 살기는 점점 더 지루해지 고 있지. 풍요롭게 되면서 지역 간의 차이점에서 @p 215 모두 없어지고 있지. 예전에 있었던 대규모의 기근이나 유행병이 사라진 것이 나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존재했던 수많은 독특함이 사라진 건 아쉬워. 요즘 색 다른 곳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면....“ 그녀는 궤도 때문에 선회하게 되면서 전망창 너머로 보이게 된 달을 가리켰 다. “저 너머로 가야 해.” 뭔가 그럴 듯한 말을 떠올리려 애를 쓰고 있을 때 우리 뒤로 조용히 다가와 있던 갠더 선장이 말했다. “그래, 나도 그말이 맞다고 생각하네. 두 사람 다 결정 사항을 확인할 준비가 됐나?” “그럼요.” 나와 올가는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는 미소지었다. “좋아, 책에 나와있는 마지막 일을 하자구.” 그는 자신의 의자에서 헤드폰을 꺼내 들었다. 올가가 예비 헤드폰을 들었고, 나도 헤드폰을 꺼냈다. “나리, 들립니까?” 갠더가 물었다. “네.” “좋아요, 그럼.” 그는 딸깍하며 땅을 향해 채널을 열더니 말했다. -휴스턴. 여기는 화성 탐사단 햅. 지지직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p 216 -말하라,햅.-휴스턴,여기는 월터 갠더.선장으로서 나는 TMI 준비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TMI는 화성간 궤도진입을 말한다. 부스터를 점화시켜 화성을 향해 나가는 것 이다.러시아인들의 부주의로 심각한 사고가 몇 번 발생하자-조종사가 밖에서 EVA하는 동안 부스터를 점화시킨 끔찍한 사고도 있었다.-우주 개발국들은 우주 내에서 주요 점화가 있을 때마다 장교들이 우주선의 준비가 완료됐다는 사실을 좀 더 책임감 있게 증명하도록 일련의 과정을 채택했다. TMI는 분명 주요 점화 였다. -햅,1급과 2급 장교의 동의와 과학팀장의 동의가 필요하다. -1급 장교 동의함. 올가가 말했다. -2급 장교 동의함. 내가 덧붙였다. -과학팀장 동의함. 나리가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휴스턴에서 말했다. -모두 검증 완료. TMI를 허가한다. 햅. 계획에 있던 점화는 모두 자신의 권한 으로 실행해도 좋다. “알았다,휴스턴.다음 예정 점화를 진행시키겠다.이상 끝.” 갠더는 헤드폰을 끄고 화면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됐습니다,여러분. 이제 18분 43초빠ㄲ에 남지 않았습니다.모두들 선실로 돌 아가 용무를 보십시오. 아무튼 심신을 편하게 만드시고, 장교들을 제외한 모든 분들은 침대에 오르시길 바랍니다. 이제 가야할 곳이 있으니까요.올가,의자에서 일어나게.” @p 217 “네,선장님.”이렇게 말하는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행동은 매우 빨랐다. “잠 시 뒤 돌아오겠습니다.” 나도 의장에서 벌떡 일어나 내 선실로 갔다. 개인 보고 나함에 소지품을 쑤셔넣을 때만 잠깐 그곳을 보았다.나는 문을 닥고 한바퀴 둘 러보았다. 우주 비행을 많이 해 보았지만,개인 선실은 처음이었다. 개인 선실은 우주 여행의 스트레스를 덜러주기 위해 나사의 정신분석의가 제 안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침실이나 커다란 사물함 만큼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방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침대가 방의 절반을 차지할 지라도. 방의 나머지 절반은 개인 물품 보관함으로, 세면도구,입지않은 유니폼,지구에서 가지고 온 물건 등을 넣을 수있었다. 높이가 딱 침대 정도였기 때문에 협탁으로 쓸 수 도 있었고,패드를 깔아 침대를 좀더 넓게 만들 수도 있었다. 선실은 높이와 넓이 가 1과 3분의 2미터에 불과했으며,길이는 2미터였다. 별로 크지는 않았지만,전등 스위치도 따로 있고,문도 따로 있는 바로 내 선실인 것이다. 0중력 상에서 배설할 때 사용하는 풀라스틱 주머니를 쓰는 장소도 있었다. 우 주여행을 하면서 화장실을 사용할 때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이 없어 보기는 처음 이라는 사실을 까달은 나는 혼자 재미있어 했다. 전반적으로 더 쾌적해진 것 같았다. 어떤 디다인 천재가 주머니를 투명하게 만들었기에-잠시 뒤면 용변을 본 모든 사람들이 주머니를 들고 복도를 나오겠지 만-우리는 일부러 다른사람들의 주머니를 보지 않으려 애 쓰면서 주머니를 재생 기에 넣었다. @p 218 과학자들은 선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선장이 안전하다는 선언을 내릴 때까 지 그들의 얼굴을 당분간 보지 못할 것이다. 선실은 지금 ‘아래 쪽’이 부스터 를 향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가속시에는 침대는 소파 역할을 할 수있을 것이 다. 나는 조종실의 내 의자로 돌아가 앉으면서 말했다. “준비됐습니다,선장님.” 시계를 보았더니 출발 6분 전이었다. 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그럼 이제 출발하지. 올가는 조종실 뒤 편에 있는데, 모든 것이완벽하다고 하더군. 계기판 을 다시 한 번 점검할 시간이 있겠지?” 나는 다시 점검했고,그날 들어 몇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였다. 나는 계기판에 손을 오려놓으며 긴장을 풀었다.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을 컴퓨터가 처리하겠지만, 만약 수동 조작을 할 상황이 생긴다면 그런 상황은 아주 급작스레 찾아올 것이다. 뒤편에 있는 부스터는 12분 30초 동안 점화되면서 우리를 1중력 조금 넘는 속 도로 가속시켜 올바른 궤도로 진리입시킬 것이다. 1중력은 물론 지구 중력이다. 과학자들을 선실에 머무르게 한 이유는 가속이 시작될 때 그들이 갑자기 떨어 지지 않도록, 위치가 바뀌어 있거나 느슨해진 물건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통제실에 있는 선장님과 나, 우주선 기기와 농장이 있는 뒤편의 올가는 자신 의 몸쯤은 돌볼 수 있으리라고 판명되었다. 우리는 카운트다운을 하며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이는 10분의 1초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일로 계기판을 그럭저럭 다룰 수있는 시 @p 219 간보다 더 빠른 시간이었고, 우리가 할 수있는 일은 뭔가 계획에서 크게 벗어 나는 일이 발생하면 더이상 끔직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비행을 취소하는 것 뿐 이었다. 궤도를 보며 우리가 그 궤도상에 제대로 머루러 있는지 살피는 것이 내 1차 임무였다. 올가는 부스터를 보며 열이나 압력 혹은 진동 때문에 고장난 부품이 없나 살피는 것이 임무였고,선장님은 우리둘을 지휘하는 것이 임무였다. 갠더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카운트 다운을 했다. ‘제로’라고 하자 우주선에 서 깊고 낮게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자 속으로 빠졌다. 중력이 같기 때문에 갑자기 지구로 돌아온 듯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모든 게 완벽하게 정상이었다. 궤도는 범위내에 머물렀고, 잠시 뒤 올가는 가까운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알렸다. 시간이 흘러갔고, 내가 해야할 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 지 않아도 정신을 바짝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예정대로 엔진이 꺼졌다. 나는 카메라를 재빨리 쳐다보았다. 지구의 모습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우리의 표면에서 몇 배 떨어진 곳으로 가며 지구와의 간격을 넓혀갔는데, 초당 약 15킬 로미터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7시간내로 달의 궤도를 지나치게 되겠지 만-1969년,탄도 궤도로 달을 향해 갈 때 3일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훨씬 빠른 속도였다-화성에 도착하려면 6개월이 걸릴 터였다. “올가, 제이슨.” 갠더 선장이 우리를 불렀다. “내 생각엔 방향 고정과 회전 작업이 끝나면 모두들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어. 그럴려면 앞으로도 3시간 더 작업해야 해. 모두들 9시간째 일하고 있긴 하지만. 어떤가, 내 생각 @p 220 이?” “전 아직 그렇게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친뒤 편안하게 휴 식을 즐기자는 생각은 아주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올가가 덧붙였다. “좋아, 그럼. 지도급 사이에선 만장일치를 본거네.” 갠더가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이어 말했다.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이런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지.” 앞으로 3시간 동안 가장 먼저 할 일은 개인 선실 전체를 뒤집는 일이었다. 중 력이 0인 상태에선 사물은 무게가 없지만 질량은 여전히 있다. 이 말은 그들에 게 관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바닥에서 1톤짜리 물건을 쉽게 들어올릴 수는 있지만, 일단 움직이게 되면 그 것을 멈추게 하기는 정말 어렵다. 게다가 중력이 0인 상태에서는 걸음도 그다지 안정적이지는 못했다. 두 표면이 서로 달라붙는 힘 때문에 마찰이 생기는 것인 데, 중력이 0이면 이 힘이 자동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 0 중력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 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두 번 정도 훈련을 받아본 게 다였다. 올가와 나리는 불가능할 정도로 우아하고 효율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신속하게 처리한 뒤 다른 사람의 일까지 떠맡아 처리해 주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개인 선실을 180도 회전시켜 앞으로 계속 바라보게 될 방 향으로 돌려 ‘아래 쪽’이 방열판이 되게 만드는 일이었다. 선실은 아주 두껍 고 긴 관에 불과해 무거울 까닭이 없 @p 221 었지만, 작업 속도가 늦어지고 심각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 일이 아주 엉뚱한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두 선반 가장 끝에 있는 선실부터 옮겨야 했다(잠시 공동실과 실험실 에 놓아두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선반 내에 있는 선실들을 옆쪽 선반으로 뒤집 어 선반의 두 끝 부분이 비어 있도록 정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끝 쪽 에 있던 선실들을 뒤집어 복귀시켰다. 일을 다 마치고 난 뒤 점검해 보았더니 조그만 관들은 모두 올바른 방향으로 마주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다른 몇 몇 사람들에게는 시퍼런 멍이 몇개씩 생겼다. 지속 비행 준비를 하는 것은 훨씬 단순했다. 기계가 모든 작업을 다했기 때문 이다. 먼저 부스터 스테이지를 떼어 3킬로미터짜리 케이블 위에 놓는다(지금까지 타이버 기술을 연구하면서 얻은 결실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의 천과 섬유를 연 구한 결과, 우리는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던 비냉동 초전도 케이블을 비 롯하여 더 가볍고 질기며 간편한 로프와 케이블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됐다). 여 행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우리에게 전력을 공급해줄 발전기는 부스터 꼭대기에 있 는 정형기 안에 있었고, 그 때문에 질량이 더해졌다. 작은 제트를 이용해 속도를 조금씩 높이자 우리와 부스터는 손을 맞잡은 두 명의 스케이팅 선수처럼 케이블 의 양쪽 끝에서 빙빙 돌았는데, 햅이 1초 당 30미터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으므 로 우리는 210초 당 한 번 꼴로 회전했다. 우리에겐 햅, 착륙 로켓, 방열판 등이 있어 거의 텅 비어 있는 부스터와 발전 기를 더한 것보다 질량이 두 배였기 때문에 이 모든 질량의 중심은 케이블에서 우리로부터 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 @p 222 에 있었다. 질량 중심지를 회전 속도로 돌면서 우리에겐 10분의 1 중력의 구 심력이 생겼는데, 비행선 끝 쪽에 있는 방열판은 구심력이 이보다 조금 컸고, 케 이블 끝 쪽은 이보다 조금 작았다. 우리는 태양을 마주보고 있는 비행선에 케이블이 감기도록 회전했다. 이제 부 스터에 신호를 보내자 부스터는 발전소 주변에 있는 정형기를 내던졌다. 카메라 를 통해 보았더니 팔이 자동으로 뻗어나와 얇은 반사 필름을 펴서 커다란 포물 선 모양의 반사기를 만들었다. 포물선 모양의 반사기는 부스터 꼭대기 안에 차곡차곡 접히면서 자리를 잡았 다. 반사기는 종이보다 얇은 물질로 만든 긴 물건으로, 클리퍼의 수소 탱크에도 사용된 타이버 진공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탱력이 매우 강했다. 일단 설치하 고 나면 반사기는 태양을 마주하여 지름이 50미터인 포물선 모양의 거울을 만드 는데, 이는 우주 안에서만 존재하는 거미줄 모양의 구조였다. 또 다른 팔을 통해 두 번째 포물선이 첫 번째 포물선 안에서 마주보며 생겨났다. 이포물선의 반지 름은 1미터가 조금 넘었다. 포물선 반사경의 용도는 평행하게 들어오는 광선을 초점에 맞춘 뒤 평행한 빔 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TV 위성에 달린 접시가 포물선 반사경이라 할 수 있 는데, 사물이 아주 멀리 있다 보면 그 사물에서 나오는 광선은 평행선에 가까워 져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TV 신호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위성에서 전파의 형태로 들어온다. 이 전파 는 평행에 가깝기 때문에 접시가 전파들을 수신기가 달린 접시 중앙의 작은 지 점에 모으는 것이다. 똑같은 원리를 이용하면 우리에게는 아주 강력한 태양 발전기가 생긴다. 두 개의 포물선 반사경은 초점이 일치하게끔 놓여 있 @p 223 다. 평행한 태양빛이 첫 번째 반사경과 만나 초점이 모아지면 그 초점에서 두 번째 반사경과 만나 반사되면서 평행한 빔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커다란 반사경의 초점이 1963 제곱미터라면, 빔은 넓이가 1미터이면서 강도는 2500배가 된다. 태양빛은 1제곱미터 당 1300와트의 힘이 있다. 즉, 그 좁다란 빔 안에는 250만 와트 이상의 힘이 실리게 된다는 뜻이다. 빔은 다시 프레스널 렌즈에 의해 초점이 모아져 보일러로 향했다. 보일러 안 에는 액화 네온이 들어 있다. 네온은 끓으면서 흰색의 뜨거운 가스가 되고 몇 개의 터빈을 거쳐 비행선 옆에서 이제는 태양을 등지고 있는 부스터 본체를 관 통하는 방열기 파이프들을 통과하게 되었다. 공허한 우주를 마주보고 있는 방열 기는 네온에 남아 있는 열기를 빼앗아 엄청난 양의 적외선을 방출했다. 네온은 파이프 끝 부분에 다다를 때면 캄캄한 우주 속에 너무 많은 열을 빼앗긴 나머지 다시 액체가 되었다. 열 엔진-터빈이나 내부 연소 엔진-의 효율성은 무엇보다도 얼마나 높은 열을 빼앗느냐, 열을 빼앗은 물질의 온도를 얼마나 낮추느냐, 해당 액체의 다양한 분 출 과정 가운데 언제 뺏기느냐에 달려 있다. ‘끈적끈적’하거나 점성이 있는 액체는 많은 에너지를 흡수하지만, ‘묽은’ 액체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뜨거운 쪽에는 매우 강렬한 태양 에너지를, 차가운 쪽에는 절대 온도 0에 거의 가까운 가장 묽은 액체 가운데 하나를 사용했다. 당 연히 들어오는 에너지의 거의 절반 가량을 흡수했는데, 이는 1메가와트가 넘는 전력이었다. 즉, 케이블을 넘어 공급되는 전력이 엔진실에서 배출된 물을 수소와 산소로 재분리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으로써 연료가 다시 가득 채워져 비행선의 모든 장비를 넉넉하게 작동시킬 수 @p 224 있다는 뜻이었다. 또 이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기도 했다. 약간의 중력 (물을 배수구로 내보낼 만큼의 중력)과 풍부한 전력이 있으니 우 주선 내에서 샤워와 세탁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타이버인들한테서 배운 또 하나의 기술인 ‘농장’에서 신선한 야채를 기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선장님과 내가 첫 번째 보초를 자청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었 다. 시끌벅적했던 하루를 지냈는데 몇 분 지나자 멀리서 윙 하는 기계 소리만 들릴 뿐 아주 조용했다. 시계의 초침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별들이 유리창을 지나쳤지만, 나는 발이 향하고 있는 방향만을 ‘느낄’수 있었기 때문에 별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0중력 상태에서는 고체 음식만 먹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커피를 만들었다. 우리는 오랫 동안 조종실에 앉아 이따금씩 카메라를 통해 천천히 멀어져 가는 지구와 달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며칠만 지나면 그 둘은 서로를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두 개의 밝은 별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행성 간 비행선을 타고 있다는 점이 아니었 다. 아직도 거대하게 보이는 파란 지구가 이상하게 보였다. 햅이라는 독립 공간 의 침입자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는 이미 이 새로운 삶이 오랫동안 정상이라고 느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커피를 두 잔째 마시고 있을 때 갠더 선장이 뒤로 약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여긴 나와 자네밖에 없으니 의논하기에 적당한 시간인 것 같군.” @p 225 양키 클리퍼에 숨겨진 정치적 음모 나는 숨을 한 번 길게 쉰 뒤에 입을 열었다. “말씀하십시오, 선장님.” “아, 긴장할 건 없네, 제이슨. 자넬 나무라거나 꾸짖으려는 게 아니니까. 자네 머리 속에 담아둬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어서 말이지.” 그는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했다. “이런 25년 간의 우주 임무 끝에 자넬 만나게 되다니. 자, 먼저.....” 그는 중얼거림에 가까울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로리가 자네에게 이곳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라 생각하네. 승선한 사람들 가운데 자네와 나만이 미국인일 뿐 아니라, 비 과학자라는 사실은 눈치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p226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사람들은 누가 고급 선원을 맡게 될지 촉각 을 곤두세우라는 것 같던데요.” “그게 우리가 바라던 바지. 자넨 과학자들 가운데 러시아인은 단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러시아인은 너무나 뛰어난 전문가이기 때문에 지구에 남겨둘 수가 없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해.”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있겠군요. 하지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갠더는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잘 모르고 있다면, 우리가 은밀히 해왔던 은막 작전이 효과가 있었 다고 봐야지. 우리측 외교관들은 외국인 선원이 승선하게 될까봐 매우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애썼어. 러시아인들도 우리와 보조를 맞췄기 때문에 마지 못해 올가에게 엔지니어 일을 맡긴 것처럼 보이게 했지. 하지만 사실은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야. 정말로 중요한 것은,지금까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누가 인사이크러피디어를 손에 넣느냐 하는 것이지. 우리는 인사이크러피디어를 발굴해 읽게 될 팀 중에 미국인이 없는 것을 걱정해야 했어. 협정에 뭐라 씌어 있든 간에 저들은 우리를 인사이크러피디어에 접근하게 할 수도 있고, 못하게 할 수도 있거든. 이건 특히나 중국인의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지. 장기적으로 볼 때 냉전 시대만큼 사정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완전히 믿을 수 있다고 말할 순 없어. 그리고 NASDA 및 ESA도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지.”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p 227 갠더는 이제 활짝 웃고 있었다. “저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놀라운 일을 준비했지. 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 동안 인사이크러피디어를 발굴할 생각인지 알고 있나?” “두세 달 정도 아닙니까? 먼저 화성 얼음에 특이 사항이 있는지 살펴봐야 할 테니까 거주지의 일정 부분까지 굴을 뚫겠지요. 그 말은 곧 아주 작은 잔해들이 어디 있는지 알안내기 위해 얼음을 일정한 블록으로 잘라낸다는 뜻이지요. 어떤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칫솔과 핀셋 고고학’에 관련된 일들을 하겠죠.”“그 렇지.그리고 일을 마치기 전에 두 번째 과학자 팀이 도착할 텐데-우리가 지금 수송하고 있는 팀만큼이나 훌륭한 사람들이야, 정말 근사하지-미국인이 네 명이 고, 러시아인이 네 명이야.” 나는 얼른 대꾸했다. “어떻게 화성으로 온다는 겁니까? 이번에 발사된 유인 우주선은 바로 이 우 주선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고 있지. 그 사람 들은 올드린 호를 타고 올 거야.” 나는 입을 딱 벌리고 잠시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커다랗게 웃음을 터 트릴 뻔했다. “아, 그렇죠. 언제든지 그 일을 착수할 수 있죠.” “다음 주나 그 다음 주에 착수할 걸세. 진행을 약간 빨리한 것뿐이지. 몇 주 내로 여느 때와 같이 올드린 호가 지구 근처를 지나게 되면, 화성에서 돌아온 선원들은 피존에 옮겨타고 지구로 착륙을 할 거야. 그러면 올드린 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화성으로 갈 수 있을 만한 중력으로 지구 주위를 돌겠지. 모든 게 정상적으로 보일 걸세. 미국인 다섯 명과 러시아인 다섯 명이 두 @p 228 대의 피존에 나눠 타고선 쌍곡선 궤도로 진입해 올드린 호와 만난 뒤 그 우주 선을 타고 화성으로 오기 전까지는 말이지. 그 사람들은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5주 후에 도착할 거야. 그러니까 여기 있는 발굴팀은 얼음 밑 몇 겹밖에 들어가 지 못하는 거지.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에도 따돌림당하지 않게 되고, 그건 러시 아인들도 마찬가지야.” “교묘하군요.” 내가 말했다. “글쎄, 중국인이나 일본인,ESA가 이 발굴 작업을 공정하게 진행시켜 나가리 라는 걸 믿을 수가 없어. 만약 그들이 이 작업을 완전히 우리와 함께 진행하려 고 한다면, 그 일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겠지. 만약 그런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면, 우리를 따돌릴 수 없어 불만일 테고, 그들이 뭔가 정직하지 못한 일을 계획 중 이라면 이 우주선 안에 있는 그쪽 사람들이 합세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 어찌됐건 간에 유감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테고,적어도 감정의 상처는 입게 될 걸세. 자네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놀라지 않았으면 하고는 바라네. 그리고 내가 다른 말을 하지 않는 한, 올가와 베실리는 믿어도 좋아. 올 가가 내일 정도면 베실리에게 간략하게 설명할 거야, 질문 있나?” “아니오.”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문제가 몇 가지 발생하겠지만, 운전 기사로 남아 있지 않아도 된다니 그건 좋습니다.” “바로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거지.” 자신의 화면을 내려다보며 그가 계속 말했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항로를 좀 수정해 @p 229 야 하는 법이지. 이미 회전하기 시작한 물체를 정확한 궤도로 옮겨놓기란 쉬 운 일이 아니거든.” 그는 키를 몇 개 쳐서 우주선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회로를 맞추었다. 나는 어깨 너머로 그 동작을 바라보며 어쩌면 저렇 게 빨리 처리할 수 있을까 감탄했다. “이게 처음 시작이지.” 그가 말했다. 그가 회로를 유전 알고리듬으로 바꾸고, 변수 몇 개를 정의하고 최적화시켰다.나는 막 ‘실행시킬까요’라고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그때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너무나도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어쩌 다 인간은 유전 최적기처럼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그럴 가능성 은 희박해.나는 기계가 나보다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저도 우주선을 조종할 때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선장님.” 나는 뒤로 물러서며 아웃풋을 기다렸다.유전 최적기는 1세기전에는 전혀 손도 못댔을 일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계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것이 더 좋은 해결 방법인지는 쉽게 꼬집어낼 수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 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고 치자.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시간이 많 을 경우 해결책을 마음대로 1백 개 선정한 뒤 그 가운데 가장나은 해결책을 열 개 뽑는다. 그 다음, 이 열 개를 아홉 개씩 복사해 임의대로 변형히켜 다시 1백 개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거나 해결책에 더이상 진전되지 않을 때 이 과정을 중단한다. @p 230 진화가 일어나는 과정으로, 각각의 훌륭한 해결책이 다른 세대를 탄생시키고, 그 세대 가운데 일부는 ‘돌연변이’가 된다.훌륭한 돌연변이는 모체를 대신하 고, 그러다 보면 아주 훌륭한 대답이 나오는 것이다.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 면, 임의로 선정한 많은 해결책들을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크고 빠른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주 여행을 하는 우주선에조차 2천 년 지구 전체에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계산 능 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그것은 더이상 장벽이 될 수 없었다. 15초가 흘러 갔고, 해답이 나왔다. 그건 갠더 선장이 처음 입력했던 것과 놀랄만치 비슷하다는 것 을 알아차렸다. “그렇지.어떤 경우엔 그렇지 않지만. 자.이제 입력한 뒤 실행시 키자구.”다시 한 번 내 임무는 컴퓨터를 바라보며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지켜 보는 일이 되었다. 상식과 직감은 기계에 설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기계가 발달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지켜보아야만 했다. 내가 사소한 부분을 서투르게 손질하긴 했지만,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순조롭 게 진행되었고, 조금 후 우리는 궤도에 좀더 가까워지면서도 발전기와 태양이 이루는 각도는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었다. 갠더 선장님은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만약 이 임무의 지휘관이 나였더라도 대체할 수 없는 인적 자원들을 이 렇게 많이 태우고, 같이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조종사와 비행해야 한다면, 나 또 한 유심히 쳐다보았을 것이다. @p 231 내가 시퀀스를 마치자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 아버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네도 알고 있겠지,”- -“네, 선장님. 그 당시엔 우주 조종사 부대가 상당히 작았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지.”- 그는 수정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부스터에 있는 소형 로켓 모터 가운데 하나 가 과열되기 시작하자 조절판 레버를 두 번 당긴게 전부였다. 우리는 정상 궤도 에 있었다. -“자네 아버지는 지금 자네가 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할 만한 인내심이나 자제 력이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네. 다른 사람들한테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테지.”- -“가끔요. 저보다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 니다.”- 우리는 그날 함께 불침번을 섰지만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말 실수를 한것이 아니길 바랬다. 사실 나는 균형이 잘 잡혀 있었고, 수학이나 과학 을 하는 데 머리가 좋긴 하지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었다. 만약 아버지가 배관공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우주 조종사가 되었을 것이다. 사 람들은 내가 어떤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는지 늘 궁금해 했고, 아니면 무언가 를 증명해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며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친절한 태도이 긴 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아니었다. 처음 몇 주가 흘러갔다. 불침번 할 때에는 대체로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다. 지구 궤도에서 떠나 화성을 향해 에어로 브레이킹을 하고 있는 선원 열 명은 별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공부할 거리를 몇 개씩 들고 왔다. @p 232 나는 베실리 체버티킨의 도움을 받아 가며 타이버어를 꽤 열심히 공부했고, 나리와 동한테서 발굴의 기본 방법에 대해 배웠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키레이 코와 쩐에게 시뮬레이션 비행을 가르쳐주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음 악을 듣거나 잠을 잤다. 이따금씩 올가와 나란히 앉아 조종실 창문 너머로 지나 가는 별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우리는 올드린 호를 타고 뒤따라올 선원들에 대한 이야기나 그일이 다른 선원 들과 우리 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선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 지만, 지나가는 말로 슬쩍 암시하곤 했다. 우리는 함께 식사하며 내가 그랫듯이 유명하고 부유한 집에서 자란다는 게 어떤 건지 이야기를 했고, 그녀가 그랫듯 이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 엔지니어가 된다는 게 어떤건지 이야 기했다. 우리는 스키나 수수께끼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녀는 내가 왜 미국 컨트리 음악을 종아하는지 이해 하지 못했고, 나는 그녀가 12음 같은 것을 왜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둘 사이는 다른 우정과 마찬가지로 서로에 대해 알게 되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점점 확신하게 되기까지 발전해 나갔다. 과학자들 가운데 몇몇은 실력 있는 조종사들이었기 때문에 갠더 선장은 1주일 에 한 번씩 나리나 베실리에게 지휘관 자리를 맡기고 폴이나 일자에게 조종사 자리를 맡긴 채, 올가와 나와 함께 공동실에서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구에서 선원들이 올드린에 승선하기 약 4일 전, 함께 식사를 마친 뒤 그가 몸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자,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어. 이 우주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 @p 233 이 ‘만세! 지원군이 도착했다!’라고 외쳐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군. 심한 말들이 몇 마디 오간 다음 무사히 가라앉아 주기만 해도 그걸로 만족하겠어.”- 올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인들이 이미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베실리가 이야기하더군요. 동이 예전처럼 얼굴을 자주 내비치지 않는 데다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대 요. 개인 전자 메일을 보내니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이상 알 수 가 없지요.”- 선장님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조만간 알게 되겠지. 최초의 포보스 탐사 때도 지금과 똑같았어. 각 각의 우주 단체 회원으로 구성된 선원이 다섯 명이었는데, 각기 자신이 포보스 에 처음 발을 올려놓아야 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지.”- 올가가 입을 다문 채 조그맣게 미소지었다. -“그 탐사단에 있었던 러시아인은 제 친구였어요.”- 이 말이 어떤 힌트가 될 수 있었지만, 갠더는 신경쓰지 않는듯했다. -“드미티리는 예리한 인물로, 두 사람이 타고 있던 착륙선에서 남아 있는 자 리를 차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 만약 그 사람을 주목하지 않았더라면 내 등 뒤에서 스르르 문이 열리면서 우리가 포보스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러시아어로발 표됐을 거야.”- -“그 사람이 선장님을 속였다고 생각하세요?”- 올가가 물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네. 그 사람은 항상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 으니까. 나는 적으로서 그를 아주 존경했어. 그리고 만약 그가 문을 열었다면 자 신의 경력에도 커다란 업적으로 @p 234 남았을거야, 분명히. 그리고 그런 내 업적을 뭉개버리는 일이 되었겠지. 그 때 문에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내가 조치를 취한 거지.”- 갠더의 목소리가 다시 낮아졌다. -“그 일은 게임에 아주 가까워. 불행히도 그 게임은 너무나 현실적이지. 나는 이런 계획을 세운 자들이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보네. 모든 이들이 친구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결국엔 우리들 모두가 포보스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처 럼 말이지. 하지만 나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올가는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며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드미트리 토마소비치는 선장님은 늘 칭찬했지요. 그 사람도 이런 일을 게임으로 생각했으니, 두 사람이 어떻게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는디 이해할 수 있을것 같네요. 제가 보기엔 이런 임무를 놓고 국가의 자존심이니 어쩌니 하며 치사한 일들을 벌이는 게 더 우습게 보이거든요. 우리는 지금 수백 만 킬로미터를 가는 동안 살아야 할 유일한 장송인 작은 금속 깡통 안에 있는데 말이죠. 이 안에서 목숨 을 걸고 싸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니죠.“- 갠더가 동의했다. -“자넨 그렇게 생각하겠지. 문제는 그게 사실일까 아닐까 하는 점이지. 내 말 은 그들이 그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으리라는 추측이야.”- -“그 추측이 틀린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되는 밥법이 있겠죠.”- 올가가 지적했다. -“그렇지. 자, 어쨌든 우리가 어떤 일을 준비해야 하는 건지 모 @p 235 르겠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일로 인해 이 우주선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조 치를 취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 저 사람들은 우리에게 화를 낼 지도 모르지 만, 여행은 아직도 20주나 남아 있으니 말일세. 그 정도면 저들도 마음을 가라앉 힐 수 있겠지.”-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올가, 원칙상 자네 말이 맞네.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 다면 바로 포보스지. 지평선이 아주 가까이에 있고, 궤도 안으로 돌을 집어 던질 수도 있지. 조금만 더 힘껏 던지면 화성까지 던질 수도 있고, 높이 점프하면 몇 초 동안 세상 위에 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세 번만 뛰면 좁은 지역을 한 바퀴 돌 수도 있어.... 그리고 언제나 하늘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머리 위에 떠 올라 있는 것은 거대한 적색 행성이고... 그 안에서 자신은 미미한 존재에 불과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자신을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 여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고. 그리고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다섯 나라는 그 느낌을 공유하는 방법을 깨닫게 됐지.”- 올가가 말했다. -“그건 쉬운 일이에요. 지금 전망창을 통해 보이는 지구는 빛나는 작은 점 같은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 시절보다 공유에 대해 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사람은 모든 이들과 세상을 공유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칭호를 얻게 된 거잖아요.”- 내가 지적했다. -“다른 사랍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속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이 본국으로부터 어떤 압력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압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고 있는지, 심지어는 그런 압력이 @p 236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약간 놀랍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작은 모임을 가질 때 나는 대체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고, 올가와 선장님은 철학적 인 이야기를 즐겨 나누었던 것이다. 올가가 말했다. -“제 생각엔, 자료가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들이 먼저 이론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발언인 것 같군요.”- 갠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지금 그러고 있군. 좋았어, 때가 되면 흘러나오는 대로 내버려 두자구.- 4일 뒤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조종실 로 향하는 문을 열어둔 채 공동실에 앉아 있었다. 우주선은 우주 시간으로 달리 기 때문에 우리들은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중계되는 BBC 여섯 시 뉴스를 듣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 사건은 헤드라인 뉴스였다. 뉴스가 시작되 자 모두들 쥐죽은 듯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우리를 뒤따라 오는 과학자팀들은 정말로 유명한 사람들이었고, BBC는 순환선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MERC의 C가 순환선을 의미하는데도 멍청하게 자꾸 - ‘MERC 순환선’-이라고 했다. 그들이 궤도 역학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약간 놀랐는 데, 잠깐 생각해 보니 의사들은 뉴스에서 사람들에게 간질환약에 대해 왜 그렇 게 자세히 설명하는지 늘 놀라워할 것이고, 변호사들은 아마 언론이 왜 늘 인신 보호 영장에 대해 설명하는지 의아해 할 것이었다. @p 237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공동실은 잠잠했다. BBC 아나운서는 지구에서 화성으로 가려면 화성이 궤도를 들어 왔을 때 그 궤도와 교차하는 궤도로 진입 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었다. 지구에서 이륙하면 지구의 궤도 속도로 움직이게 되는데, 화성으로 가려면 궤 도를 수정하여 태양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순간―원일점에 다다른 순간―화 성일 그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화성이 태양을 회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지구의 거의 두 배이다. 두 개의 평행한 원형 트랙을 두 사람이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안 쪽 트랙을 달리는 사람이 바깥 쪽 트랙을 달리는 사람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다 고 생각해 보라. 그럼 안 쪽에 있는 사람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깥 쪽 사람과 `겹치`거나 지나치게 된다. 지구가 화성을 지나칠 때를 `충`이라 부른다. 안 쪽에 있는 사람인 바깥 쪽에 있는 사람에게 공을 던지기 가장 쉬운 때는 언제이겠는가? 바깥 사람을 지니치기 바로 직전이다. 그렇게 하면 그 공 때문에 안 쪽 사람의 속도는 증가되고, 공은 가장 짧은 거리를 날아 바깥 사람에게 전 달되는 것이다. 바깥 쪽에 있는 사람이 안 쪽에 있는 사람에게 공을 던지기 가장 쉬운 때는 언제이겠는가? 안 쪽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지나치기 바로 직전이다. 자신의 속 도를 이용해 트랙의 중심을 향해 공을 던지면 더 빨리 달리고 있는 안 쪽 사람 이 그 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구-화성 간 임무는 지구에서 화성을 가는 것이든, 화성에서 지구 를 가는 것이든, 충이 있기 얼마 전에 떠나 충이 있은 뒤 얼마 후에 도착하게 된다. 충은 평균적으로 280일 @p 238 마다 한 번씩 있다(궤도가 완벽한 원형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다). 2010 년 3월 이래 충이 있을 때마다 화성으로(그리고 그 달인 포보스로) 탐사기를 띄 웠다. 2014년 충부터는 코로예프 분화구와 포보스에 있는 기지에 계속 기기와 보급품을 보냈다. 그리고 2018년 12월 충에는 월터 갠더와 올드린 호 승무원들 이 2018년 10월에 떠나 2019년 7월에 포보스에 도착했다. 나사는 영원히 우중 속에 머무르게 된 빅 캔에 초창기 우주 조종사 이름들을 붙였다. 화성 순환선이 될 두 빅 캔의 이름을 정할 때에 `암스트롱`은 이미 L1에 있는 우주 정거장 이름으로 쓰였으므로, 아폴로 2호의 다른 두 조종사인 `올드린 `과 `콜린즈`의 이름으로 쉽게 붙일 수 있었다. 최초로 여행하게 될 빅 캔의 이 름을 올드린으로 붙인게 적절했던 이유는 1980년 대 초반이 순환선의 기본 원리 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 바로 올드린이었기 때문이다. 그 연구의 요점은 개념적 으로는 간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려웠다.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기만 하면, 긴 궤도를 그리며 화성에서 돌아오는 우주선은 충이 있기 바로 직전에 지구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선은 이미 지구 탈출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상태이 므로 지구 주위로 궤도를 그리지 않게 된다. 지구의 중력으로 그 궤도가 커다란 포물선이 될 뿐이다. 하지만 이러는 가운 데 우주선은 지구의 운동량을 일부 얻게 되는데, 이는 `중력 원조` 현상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외부 행성으로 보이저 호 임무가 시작된 이래 계속 사용 된 용어이다. 이 때문에 우주선은 날아오르며 태양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데 타 이밍만 정확하다면 조종에 필요한 연료만 조금 쓰일 뿐 거의 연료 소모 없이 화 성으로 다시 날아가게 된다. 방열판을 이용하면 우주선은 `에어로 캡처`하게 된다. 즉, 화 @p 239 성 대기권을 지나가면서 속도가 늦춰지고 화성 주위를 돌게 되는 것이다. 이 는 `반순환 시스템`이라 불렸는데, 이론적으로 `완전한 순환선`이 되려면 우주선 이 26개월울 주기로 지구와 화성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갔다 해야 하기 때문이 다. 우주선은 반순환 시스템이서 언제나 화성 궤도 내에서 연료를 공급받아 귀 환 선원들을 싣고 화성 궤도를 빠져 나와 지구로 돌아갔고, 우주선에 실려 있던 피존으로 선원들을 지구에 착륙시킨 뒤 중력 원조를 받아 에어로 캡처를 하면 연료 탱크가 고갈된 상태로 다시 한 번 화성의 궤도를 그렸다. 이 때문에 화성 프로그램의 예산이 업청나게 절약됐는데, 선원들은 우리가 그 랬던 것처럼 햅을 타고 화성 표면으로 날아가 코로예프 분화구에 있는 작은 거 주지로 향하면 됐기 떼문이었다. 귀환 선원들은 미래에 사용할 장소에다 햅을 놔둔 채 올드린이나 콜린즈를 타고 돌아갔다. 이론상으론 화성-지구간 순환선을 타고 언제든지 화성으로 갈 수 있었다. 지 구 주변을 돌고 있는 순환선을 잡아 타기만 하면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잡아 타기만 하면 된다`는 말 안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순환선은 매우 빠르게 왔다갔다 했다. 부착식 부스터가 달린 피존으로는 휙 지나칠 때에만 간신히 순환선을 잡아챌 수 있었고, 그때를 놓치면 탈출 속도보 다 훨씬 빠르게 날고 있는 피존은 기껏해야 1주일 정도 버틸 수 있는 공기와 전 력만으로 태양 궤도로 날아가 버리게 되었다. 초기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L1으로 돌아갈 수 있는 아주 높은 궤도로 비행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올드린 호에 도착한 뒤에는 그 순환선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p 240 원격 측정법을 통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확신했고, 다른 선원들도 얼마 전 그 순환선을 이용했을 테지만, 사실 무인 순환선이 어떤 결함을 안고 화성으로 돌 아오더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화성에 도착하자마자 포보스나 코로 예프에 있는 선원들이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사람들이 승선한 뒤에는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죽든 살 든 5개월 이상 화성을 향해 줄곧 날아야만 했다. 대체로 위험 부담이 높은 작전 이었고, 우리 나라와 러시아는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다섯 명씩이나 걸고 최초 로 그 일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침묵이 증설된 피존에 타고 있던 러시아와 미국인 선원들이 올드린 호를 따라 잡고 도팅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보내는 축하라는 것은 예상했었다. 우주는 어떤 의미에서 진정 범국가적인 곳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위험한 일을 했다면,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이건 간에 가장 처음 묻게 되는 말은 `그 사람이 무사하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나라가 환호성을 지르거나 폴이 `브라보!` 하며 외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계속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어야 했기에 전반부는 놓쳐 버렸지만, 올가가 나를 대신하러 와주었을 때 분위기는 왁자지껄한 파티로 변해 있었다. 이 일을 알고 있었던 네 명―나, 갠더 선장님, 올가, 베실리―이 잊 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면 과학이 얼마나 오랫동안 범국가적인 학문이었는가 하 는 것이었다. 여기 햅에 있는 과학자들은 올드린에 올라탄 과학자 모두를 알고 있었다. 그 들에게 그 사람들은 친구요, 동료이며, 다시 볼 수 있게 된 이름이요, 얼굴이었 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p 241 팀 과학자들은 그런 걱정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 일곱 명으로 구성된 팀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닥치게 될 수수께끼의 깊이 나 넓이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 고 있었던 것이다. 어쨋든 팀의 숫자가 두 배 이상 되었으므로 이는 성공할 가 능성이 더 커진다는 말이었다. 흥분된 탄성과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갠더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우리 모두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정말 놀랍지 않나? 궁금해서 하는 말인 데, 제이슨... 올드린 호로 전파를 보낼 방법이 있겠나?”- - "글쎄요, 아시다시피 뻔하지 않습니까. 안테나가 그쪽으로 향할 수 있게 위 치와 코스를 바꾸어야 하지요. 하루나 이틀 정도면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지가 문제인데요, 제 생각엔....”- 폴이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성공이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를 도와주던 동과 일자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 세 사람은 터미널 둘레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10분의 1중력으로 가볍게 날아가 화면 위에 떠 있는 전자 메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올드린 호 화성 퇴적학자 로버트 프랭 보냄'.- -“어떻게....”- 폴은 어깨를 으쓱했디. -“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생각한 거죠. 하지만 방법은 간단해요. 우리는 압축된 데이터 형식으로 지구 궤도에 있는 @p 242 송신국으로 15분마다 전파를 보내잖아요. 그 안에는 우주선 안에 있는 다른 기계에서 보내는 원격 측정 내용도 많이 있고,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우리가 만 든 비디오 자료도 있고, 상당수는 인터넷 정보죠. 전자 메일을 통해서 동료들과 연락하고 있으니까요. 화성 콘소시업에서 우리 주소를 공개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메일이 홍수같이 쏟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죠. 올드린 호에 타 고 있는 동료 중 한 사람의 개인 주소만 알고 있다면, 그쪽 통신 장치도 우리와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더니 보시다시피 이렇게 된 거죠.”- 다음날까지 과학자들은 모두 즐겁게 서신을 교환했다.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나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 뒤 저녁 시간이었다. 동과 쩐은 인사이크러피디어를 일부라도 몰래 빼돌릴 수 있다면 중국이 유리한 점을 안게 될 것이라는 식의 명령을 중국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담담히 털어 놓았다. -“정보를 얻는 것이 언제난 최우선 과제였죠. 설령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것 을 의미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쩐이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젠....”- 그녀는 곁눈으로 동을 바라봤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우린 그 명령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아시겠지만, 과학을 한다는 사 람들은 다 그렇죠. 우리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글로 발표하고 싶어 하니까요. 그 래서... 이제 어떤 부분도 몰래 빼낼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애를 쓸 필요도 없 게 됐네요.”- 올가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p 243 “그럼 곤경에 처하지....” 동이 미소지었다. “글쎄요,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죠. 여러분께 이런 발표를 하는 것은 정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니까요. 중국 비밀 경찰이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에 서 우릴 체포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코로예프 분화구에 가면 몇 십 년 동안 작 업하게 될 텐데 말입니다.” -“그럼 화성이 첫 번째 피난처가 되는 겁니까?”- 갠더가 물었다. -“결국 새로운 세계는 언제나 그렇지요.”- 쩐이 말했다. -“새로운 세계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p 244 코로예프에 착륙하다 별로 특기할 만한 사건 없이 몇 주가 행복하게 흘러갔다. 내겐 아주 좋은 현 상이었다. 비행 도중 뭔가 떠들썩한 일이 벌어지길 바라는 우주 조종사는 영화 에서나 가능하다. 우주선 내의 일상적인 생활은 부드럽게 흘러갔고, 우리는 그런 생활을 대부분 고맙게 받아들였다. 올드린 호의 비밀 임무를 감싸고 돌던 긴장감이 사라지자 햅은 미우 즐거운 곳이 되었다. 이따금씩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개인 선설로 돌아가 문을 닫아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것 같았다, 코로예프 기지와 올드린 호 승무원들 양쪽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사치’-를 놀리는 전자 메일이 날아들었고, 나사는 오래지않아 무인 수하물 운반선으로 -‘가능한 한 빨리’- 개인 선실을 화성으로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폴과 나리가 그 발표를 들으며 재미있다고 하길래 나는 이유를 물었다. @p 245 -“왜냐하면 온갖 용도로 쓰이는 커다란 공동실이 하나만 있던 초기 우주 여 행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가능성을 높이고 작업 공간을 넓히기 위한 바닥만 있 었을 뿐 아무것도 없었죠.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생활 을 즐기고 싶어했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걸요, -‘우주 조종사의 설사’-라는 농 담이 끊이질 않았는데,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 화장실밖에 없었기 때문에 생긴 농담이죠. 나도 그 안에서 한 시간씩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한 적이 있죠.”- 슬프다는 듯 나리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같은 선진국 사람들은 우주 임무에 잘 적응하질 못해요. 하루 종일 공개 장소에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한 방에서 열 명 씩 잠을 잔다는 것에 익숙치 않으니까요, 개인 선실이라는 발상을 하기까지 그 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게 재미있는 거죠.”- 폴이 덧붙였다. -“하지만 일단 개인 선실을 쓰기 시작했으니 모든 사람들도 요구하게 될 걸 요. 화성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에 비하면 이 작은 사람 상자는 호화스러운 콘도니까요.”- 임무 시간이 끝난 올가가 들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아직도 우리의 관 계를 로맨스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지 여부도 알 수 없었다. 머리 속 한 구석에 그녀는 화성에 남아 있을 계획이지만, 나는 다음 충이 있기 전, 올드린에 연로 재공급과 수선이 끝나면 화성을 떠날 계획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그녀와 연애를 시작할 경우, 심각하게 될 것 같았는데, 적어도 지난 10년 간 내 연애 생활에서 심각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방법 @p 246 을 잘 몰랐던 것이다. 우리 네 사람은 오랫동안 휴식을 즐기고 있었는데, 폴이 입을 열었다. -“나리, 내가 또 한 가지 생각해 낸 게 있는데 말이죠. 타이버인들이 죽거나 거주지를 떠나 버린 뒤 새로운 표면이 생겨난 것이라면 말입니다, 착륙선이 호 수 속에 빠져 얼음 바닥 위에 옆으로 누워 있다가 그 위로 차곡차곡 얼음이 쌓 인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그럼 무덤들은요?”- -“시체들은 진흙창에 더 깊숙히 묻혀 있다가....”- -“중장비 조작들과 함께 있는 마그네슘-티타늄 선체는요? 게다가 모두들 가 지런히 놓인 상태로 가라앉아 있는데....” -“얼어서 딱딱하게 굳은 거죠.”- -“그렇다면....”- 올가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가 말했다. -“이거 개인적인 말다툼인가요? 아니면 아무나 끼여들어도 되는건가요?”- -“이건 말다툼이 아니죠.”- 나리가 말했다. -“이 정신 나간 프랑스 사람에게 오캄의 면도칼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는 거 죠. 여기 훌륭한 플루언트 박사가 발견한 불연속면 바로 밑에 타이버 착륙선이 있어요. 그렇죠? 그 불연속면 바로 아래-겨우 2~3미터 아래-는 타이버인들의 시 체가 다수 얼어 있으며, 초음파와 엑스레이로 찍은 영상이 맞다면 그들은 가슴 위에 손을 얹은 채 똑바로 누워 있습니다. 달에 있던 묘지에 @p 247 서 발견된 것과 똑같은 자세로 말이죠. 따라서 타이버인들이 죽은 뒤 착륙선 이 넘어지던 그 시점에서 불연속면이 생긴 것이라는게 제 의견입니다. 얼음 구 조가 그 지점에서 차가운 호수가 얼었을 경우 발생하는 구조와 동일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스물 두명의 타이버인들이 이미 숨을 거둔 채 묻혀 있던 캠프지 위로 갑자기 홍수가 덮쳤을 겁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집 안이나 침대위에서 익 사했겠지요. 화성 전체를 덮고 있는 얼음 가운데 그런 불연속면이 발견된 곳은 단 한 군데뿐입니다. 그리고 타이버인들이 그 위에 앉아 있구요. 그들이 그 사건 의 원인을 제공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폴이 손을 불쑥 내밀었다. 손바닥을 위로 뒤집은 채 말이다. 이건 어깨를 으쓱하는 동작의 공격적인 형태였다. -“나더러 오캄의 면도칼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사람이 적어도 두 군데에서나 논리의 비약을 보이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캠프를 만들 당시 코로예프 분화 구의 얼음 위에 있다가 옴짝달싹 못한 채 죽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천 년이 흐 르고, 적도 근처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는 화산 폭발 때문에 엄청난 양의 물 이 분출됐습니다. 간헐천이었을 수도있겠고, 사화산이 지하수로부터 크라카토와 타입의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죠. 그물은 잠시 동안 모든 곳에 머 물러 있었는데-그린 하우스 가스 때문에 화성의 온도가 약간 상승하면서 오늘날 보이는 것처럼 물로 새겨진 모습들이 생긴 거죠. 그러다가 물은 점점 얼기 시작 하고, 저압 때문에 순화되면서 수증기가 북쪽으로 이동함에 따하 쓸려 갔다가 북쪽의 겨울 동안 축적된 거죠. 이 과정은 4천 년정도 걸렸을 겁니다. 그동안 크 로예프 분화구에 있는 호수는 여름 내내 지속적으로 햇빛을 받았기 때문에-북위 73도니 말입니 @p 248 다-그곳에 있던 얼음이 해빙과 결빙을 반복해 지금 나리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거지요. 서기 1200년에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망원경과 분광기가 있었더라면, 마지막 물이 증발하 면서 지금처럼 얼어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됐을 텐데 말입니다. ”- 나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폴처럼 재능 있는 사람이 어쩌다 그렇게 많은 증거를 간과하는 버릇을 가 지게 됐는지, 저로서도 모를 일이군요. 폴, 화성 내 그 어느 곳에도 당신이 예측 하는 것처럼 물이 아래에서부터 위로가 아닌, 위로부터 아래로 얼었기 때문에 발생한 전도의 흔적이 없잖아요. 그 말은 물이 갑자기 쏟아져 쌓이기 시작했을 때 빙점정도로 매우 기온이 낮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현상과는 달리 아래에서부 터 위로 얼게 됐다는 겁니다. 지금 어떤 모양을 하고 있습니까? 화성의 얇은 대 기권은 가스와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온에 민감한 기체들이지요. 때 문에 행성 전체에 어떤 현상이 갑작스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압은 매 봄과 가을마다 급작스레 변하고, 예를 들어 수분도 공기 중으로 들어갔다 또 갑자기 나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난파된 우주선과 다수의 타이버 시체가 있는데, 이 들은 자고 있든 아니면 병으로 누워 있든 간에 어떤 현상인가가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집 안에서 죽어 있습니다. 행성에서 갑작스런 홍수가 발생했는데, 이 행 성은 홍수를 일으키는 솜씨가 아주 좋아 보입니다. 그 홍수 밑바닥에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화성이 존재해 온 그 무구한 시간 동안 이 홍수는 타이버인들이 그곳에서 살았던 것과 거대한 홍수 사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단 말씁입니까?”- @p 249 플루언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가끔씩만 발생하는 ‘불연속면을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면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이 가장 극심했던 것으로, 이전에 있던 불연속면을 모두 지 워버릴 정도였다면요. 하룻밤 사이 해빙과 결빙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었는지도 모르죠. 그 당시 타이버 캠프가 그곳에 있었던 겁니다. 2천 년이나 4천 년 전에 원인 모르는 병으로 죽어 얼어 있는 체로 말이죠. 그리고 캠프 전체가 가라앉았 고....”- -“모든 시체들이 똑바로 누워 있고, 모든 건물들이 똑바로 서 있는 곳에 말 이죠.”- 나리가 말허리를 잘랐다. -“적어도 처음에 말씀하신 어이없는 생각은 외견상 그럴 듯했어요. 반면 지 금의 발상 속에는 세 가지 수수께끼 같은 일들-타이버인들이 모두 죽은 것, 캠 프가 얼어 버린 것, 불연속면이 형성된 것-한꺼번에 발생했군요. 이 얼마나 가능 성이 없는 일입니까? 반면에 그 세가지 일이 한 가지 공통적인 원인 때문에 빠 르게 진행됐다면 문제는 간단하죠. 우리가 할 일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 내는 겁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올가와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창가로 다가가 지구에서보다 몇 배로 많이 보이는 별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요즘들어 함 께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화성에 도착하기까지 2주일 남았다. 화성은 주황색 반점, 아니 점이 아니라 둥 근 모양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화 @p 250 성은 꾸준히 터졌다. 그리고 태양은 하얀색의 밝은 원반으로 점점 작아지면서 지구에서 보이는 크기의 3분의 1이 되었다. 올가와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함께 식사를 했는데, 주로 화성 관람 시간을 활용했다. 북반구의 초여름에 해당되었기 때문에-춘분이 2034년 4월 9일이었다- 코로예프에 도착할 무렵이면 태양도 비치고, 낮도 점점 길어질 터였다. 화성의 1 년은 지구의 2년에서 40일 정도가 빠지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각 계절이 지구의 반 년 정도나 되었다, 최악이라는 화성의 북극 날씨를 맞보기 전까지 거의 1년 동안 봄과 여름을 지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먼지 폭풍이 행성을 감도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북극두건(북극을 덮고 있는 구름층)이 봄빛에 사라지면서 남극 두건이 형성되는 것을 바라보았다. -“코로예프에서 온 보고에 따르면 기압이 이미 약간씩 떨어지고 있어. 그리 고 요즘 기온은 대체로 이산화탄소 결빙점보다 높다고 하구.”- 올가가 말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여름 옷을 좀더 가지고 오는 건데 말이죠.”- 내가 말했다, 올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아 한마디 덧붙였다. -“실없는 농담이었죠?”- 그녀는 뭔가 기록하고 있던 키패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제이슨. 난 저곳에서 오랫동안 살 거야. 계절의 변화도 몇 번 보겠지. 화성년의 리듬을 생각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 지구에서 사람들이 그러는 것 처럼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습관이 들도록 말야. 화성의 북극에선 기압과 기온 이 봄을 알리는 신호니까, 그렇다면 지구에서 제비를 떠오리는 것처럼 생각해야 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도착 후 1년 정도만 올가와 함께 @p 251 지내다 올드린을 타고 지구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을 애써 밀어냈다. 아직은 감 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았지만-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그렇지만 다시.... 화성은 작은 행성이었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행성간 여행은 빠르게 움직였다.화성에 도착하기 10시간 전이 되자 창 밖으로 보이는 화성은 태양보다 커졌다. 아니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 올가와 나는 너무 바빠서 창 밖을 제대로 내다볼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다. 햅을 화성 표면에 착륙시키는 일 자체는 복잡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할 일은 컴퓨터가 말썽을 일으키거나 소프트웨어에 심각한 손상이 생기면-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임무를 넘겨받은 사람이 확실히 지키고 있는 것밖에 없 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기계로 최적화했을 때보다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보게 되는 수도 이따금씩 있기는 했다. 주로 내가 하는 일은 기계들이 지시대로 작동 하는지 살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피가 마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화성의 탈출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화성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선체를 돌리고 역추 진 로켓을 발사할 만한 여료를 탑재했더라면 현재 케이블 끝 쪽에 매달려 있는 텅빈 부스터만한 크기의 로켓에 연료를 가득 채워 가지고 왔어야 했을것이다.- 그리고 연료가 가득 담긴 부스터와 우주선을 이곳까지 끌고 오려면 물론 더 큰 부스터가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에어로 캡처를 할 생각이었다-화성 의 대기권과 상호 작용하여 화성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낮추는 것이다. -‘상호 작용’이란 작업의 내용으로 볼 때 상당히 부드러운 표현이다. 특히 인공 유성의 형태가 되어 각도가 너무 좁지도 않고(각도가 너무 좁으면 호수 위 를 튀기는 돌처럼 되어 속도를 조금 @p 252 도 늦추지 못한 채 튕겨나가 음식과 공기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태양의 긴 궤 도를 돌아야 한다). 너무 넓지도 않게(넓은 각도로 공기가 두터운 하층 대기권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게 되면 불이 나거나 땅에 부딪치게 된다) 대기권 안으로 진 입해야 할 때면 말이다. 이 양 극단 사이에 우주선의 에너지를 대기 중의 열기 로 전환시켜줄각도가 존재했다. 외부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상당한 속도를 잃으 면 끊임없이 계속 비행하는 대신에 궤도를 그리게 된다. 다행히도 화성의 대기권은 이 작업에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첫째로 얇았다. 지 구의 표면 기압은 약 1천 밀리바인데, 화성은 6밀리바였다, 둘째로 중력이 낮고 (지구의 3분의 1정도이다), 대기권의 분자 무게가 무거운 덕에(44대 지구의 14.4) 화성은 기준 높이가 10.8로, 지구의 7.9보다 꽤 높았다, 이 사실을 로가 리듬 함 수로 돌려 보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지구에서는 5,500미터를 올라갈 때마다 공기가 반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포포 카테페틀 산 높이 정도인 5.5킬로미터를 올라가면 공기가 반이 되고, 예전에 비 행기들이 날았던 높이인 11.1킬로미터를 올라가면 공기가 4분의 1인 되는것 등 등이다. 화성에서는 그 숫자가 5,500미터가 아니라 7,468미터이다. 화성의 대기권은 얇기는 하지만, 지구보다 공 기가 훨씬 느리게 얇아지는 것이다. 에어로 캡처를 하려면 공기층이 어느 정도 두터워야 하고, 고도-그리고 행성에서 더 멀리 변하지 않을 정도의 높이가 확보 되어야 바위를 피해 시야를 넓힐 수 있다. 나는 준비가 되었을 때 이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첫 단 계는 길다란 케이블에 매달린 채 여행했던 몇 달동안 흔들거리던 부스터를 내던 져 인공 중력을 확보해야 했다. @p 253 매우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나는 여느 때보다도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다. 정확한 시각에 햅은 케이블을 끊어야 했던 것이다. 이는 오래 전 물리학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이다. 끈에다 돌을 묶고 빙빙 돌리 다 끈이 끊어지면 돌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회전하던 원의 직선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접선 바향으로 날아간다는 것 말이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돌을 날렸을 때 그는 돌이 골리앗을 향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있 을 때 끈을 놓았다. 돌이 땅과 수평으로 날아가도록 말이다. 제대로 하려면 타이 밍이 아주 중요했고, 타이밍을 잘못 맞춘다면, 우리에게 닥칠 결과는 적어도 다 윗에게 닥쳤을 결과만큼이나 끔직한 것이 될 터였다. 반면 이는 우리에게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장교들을 제외한 전원은 다시 침대를 누웠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준비 를 마치고 편안하게 누웠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부스터와 햅에 있던 작은 제트 를 이용해 회전속도를 예전처럼 편안한 3분 30초 당 한 번 꼴이 아니라 30초 당 한 번 꼴로 높였다. 이렇게 하면 구심력에 많은 차이가 생긴다. 지금까지 우리는 10분의 1 중력으로 매우 안락하게 여행해 왔는데, 이제는 4중력으로, 서 있을 경 우에는 발목을 부러뜨릴 위험이 있었고, 햅 안으로 어쩌다 물건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케이블 끝에서 움직이는 우리의 속도에 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지금은 초 당 2백 미터씩 회전하고 있었는데. 부스터 는 우리보다 두 배 긴 케이블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초당 4백 미터로 회전하 게 되었다. 선장님이 말했다. @p 254 -“좋았어. 준비된 것 같다, 제이슨. 컴퓨터에게 부스터 투하를 승인하도록.”- -“네. 선장님.”- 나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몸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저항기 안 에서 작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보다 네 배나 큰 중력 상태에서는 팔 을 돌어올리는 데도 힘이 들었다. 나는 명력을 입력했다. 컴퓨터는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케이블 이쪽 끝에서 우리는 6과 3분의 1킬로미터 회전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투하 시간에 10분의 1초의 오차가 있어도 360도 이상 코스를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거리가 점점 더해지는 우주 상에서는 이 지점에서 1도 어긋난 것이 화성과 이만큼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 전해지면 2만 킬로미터 떨어진 것으로 쉽 게 해석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1백 분의 1초까지도 측정한 상태였다. 어떤 인간에게도 그런 반응 시간은 없으므로 이번엔 컴퓨터를 믿은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화면 위에서 카운트가 0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약하게 쨍그랑 하는 소 리가 들리더니 갑지기 지구를 떠난 이래 최초로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 나는 벨 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너무 긴장되어 있었던 근육을 풀었다. 갠더는 화면에서 얼굴을 들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웠어.”- 그가 말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슬슬 코스 수정과 조정을 하고 바깥으로 로봇을 보내 이 제 화성을 향하고 있는 방열판을 검사하기만 하면 되었다. 모든 것이 양호했고, 목표 지점에 정확히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자 창 너머로 보이는 화성 @p 255 의 팽창 속도는 점점 더 커졌다. 마침내 지구에서 보는 달 크기의 두 배만큼 화성이 부풀어오르자 우리는 벨트를 메고 에어로 캡처를 하라고 최종 명령을 컴퓨터에 내렸다. 첫 번째로 통화할 때 대부분의 에너지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 우리는 12분도 안 되는 사이에 화성을 절반 가량을 뚫고 들어갔고, 몇 중력이나 되는 감속 때문에 소파에 납작하게 눌렸다. 나는 기기들을 바라보았지만, 그 정 도의 속도에 지구 정상 무게의 몇 배 이상을 느끼는 이런 상태라면 기기 이상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햅이 고궤도로 다시 올라오고 바깥 쪽에서 이글거리던 방열판이 우주 밖으로 열기를 내보내며 다시 차가워지자 우리는 모두 물을 마시고, 기지개를 펴고, 긴장을 풀면서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에너지를 다 쏟아버리고 제궤도로 진입하는 데에는 전부 다해서 약 20분 정도 가 걸렸다. 이제 우리는 선 내에 있는 귀중한 연료를 조금 태워 우리의 궤도를 원형으로 만들어 화성의 양 극을 약 220킬로미터의 높이로 지날 것이다. -“여전히 휴식이 필요없나, 제이슨?”- -“땅에 도착한 뒤 쉬고 싶습니다, 선장님. 게다가 여지껏 전 조종 장치를 만 지지도 않았는 걸요. 납세자들에게는 이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사실 전 여기 있 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네. 과학자들에게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알리는 것외엔 하는 일이 없으니. 코로예프 하강하는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일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나? 화장실 다녀오고 사람들에게 우리 계획을 알려줄 시간은 있 는 건가?”- -“컴퓨터는 우리를 그런 위치로 좀 일찍 데려다줄 모양입니다. 우리는 현재 1시간 49분 짜리 궤도에 있으니 19분 뒤 창문 끝으 @p 256 로 살짝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2시간 10분 뒤 좋은 기회가 나타나고, 4시간 뒤에는 그저 그런 기회가 나타납니다. 그 뒤론 기다려야 하거나 재진입하는 동 안 많이 위치 조종을 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은 하고 싶지 않군. 좋아, 제대로 접근하기로 하지, 코로예프에 연락해 식사를 좀더 준비해 놓으라고 해야겠군.”- 하강은 아마도 내가 수동으로 조종할 수 있었던 부분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 다. 예전에 기어와 방향간을 쓰던 초기 시절 조종사들은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 다. 하지만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유리 가가린과 근본적으로 같은 디자인 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 그리고 필요하지 않은 경우라면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 여덟 명을 내 조종 기술에다 거는 그런 모험은 하지 않을 터였다. 따라서 여지껏 해왔던 대로 기계에 맏기고는 자 리에 앉아 지겨보면서 내가 움직일 필요가 전혀 없기를 바랐다. 피존으로 지구를 향해 갈 때보다 하강 경사가 완만했는데, 몇가지 이유 때문 이었다. 화성의 중력이 더 작다는 것은 궤도 속도가 훨씬 더 느리다는 뜻이었으 며, 기준 높이가 높다는 것은 더 높은 곳에서 감속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었 기 때문이다. 또 대기권이 더 얇다는 것은 열이 많이 나지 않기 때문에 위험 부담을 높이지 않고서도 재진입에 더 오랜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 문입니다. 그럽 북극 위를 거의 직접 통과하면서 마침내 코로예프에 착륙할 것 이다. 컴퓨터가 카운트 다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밸리스 마리너리스 왼쪽 옆 으로 지나갔다. 화성 표면에 깊고 크게 나 있는 흉터로 깊이가 수십 킬로미터나 되었고 넓이도 미국보다 길었다. @p 257 그 흉터가 뒤로 지나가자 정시에 역추진 로켓이 발사되었다. 우리는 마가리티 퍼 대지 동쪽에 있는 부서진 땅인 이아니 케오스를 향해 떨어졌다. 나는 컴퓨터 신호기에 180을 실행시켜 우리가 움직이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방열판과 함께 우리를 회전시키도록 했다. 몇 분 뒤 재진입 감속이라는 거대한 주먹이 우리를 의자 안으로 밀어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동안 방열판에 서 나오는 하얀색 뜨거운 플라즈마가 유리창을 지나 날아가는 사이 아라비아 대 지의 곰보 얼굴을 보았다. 그러다 화염에 휩싸인 채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 갔고, 시야, 전파 등 외부 세계와의 연결 고리가 모두 끊겼다, 우리는 소파 안으 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박히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잘못될 수 있는가에 대한 생 각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우리는 속도와 고도를 꾸준히 잃었고, 오래지 않아 극을 지나게 되었다. 증기 처럼 스쳐가던 공기는 더잉상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내 다시 맑아졌고, 나는 컴퓨터 모니터링에 다시 초점을 맞추기 전 극을 덮고 있는 얼음 모자를 잠 시 내려다보았다. 방열판이 떨어져 나가면서 짧고 둔탁하게 쿵 하게 소리가 들렸고, 착륙 로켓 이 발사되면서 뒤편에서 세게 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여전히 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표면 위에서 고작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컴푸터는 작은 로켓을 이용해 속도를 알맞게 낮춘 뒤 조종해서 작은 화염이 보 이는 곳을 뛰어넘어 예정된 착류지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나는 모든 곡선의 중앙에 얌전히 머물러 있는 그래픽들을 바라보았다. 조종 장치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코로예프 분화구는 거의 원형으로, 지름이 50킬로미 터였다. 주변에는 부풀고 터진 땅이 많이 있었는데 유성과 충돌했을 떼 토지가 물에 잠겼음을 보 @p 258 여 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부푼 땅은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입구까지 솟아 있 었고, 그 안에는 거대한 얼음 호수가 있었다. 우리는 그 표면을 돌다가 각도를 약간 바꾸어 부드러운 얼음 위 1킬로미터 지점에서 나란히 움직였다. 몇 분 후 면 유적지에서 몇 킬로미터 덜어진 기지까지 다가갈 것이다. 눈앞에 우리와 똑같은 모양의 햅이 다섯 개 뭉쳐 있는 게 보였다. 강철 트러 스 안에 원통이 들어 있고, 다리가 트러스를 향해 솟아 있는 모양이었다. 각 햅 은 가늘고 긴 네 다리로 버티고 서 있었다. 세 배의 중력을 견뎌야 하는 지구의 기준으로 본다면 가늘고 긴 디자인이 비논리적이겠지만, 이곳에선는 아주 단단 했다. 각 햅의 주변 얼음 위에는 이상한 스타 버스트 모양이 하나 찍혀 있었는 데, 유적지가 정확히 밝혀지고 난 뒤 이곳에 거주하는 서원들이 착륙 로켓에 연 료를 다시 채워넣거나 햅을 이쪽으로 옮겨 왔던 자국이었다. 인류 최초의 화성 거주지는 당분간은 완전한 이동이 가능했다. 우리는 천천히 내려앉았다. 아래 쪽 카메라를 통해 호수 표면의 마른 얼음 뭉 치가 날릴 만큼의 충분한 공기가 얼음 표면을 따라 더욱 커다란 동심을 그리며 밖으로 빠르게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동심 가장자리에서 마른 얼음이 깨지면서 착륙지 주위에 하얀 -‘연결 고리’-로 부글부글 솟아올랐다. 우리가 점점 더 가까이 내려앉자 수천 년 간 그 자리에 놓여 있던 검고 반짝반 짝한 얼음에서 증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계속 점점 더 가까이 내려앉다가 마침내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우리는 바닥에 닿았다. 모든 사람들은 일어나며 한 꺼번에 이야기하기시작했지만, 갠더 선장이 손을 들며 말했다. -“자, 모두 여압복을 입어주세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p 259 합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어, 선장님.”- 그의 뒤에서 나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지금 당장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한 잔용 삼페인 병을 꺼내 마개를 따고는 아직도 어리둥절해 하는 갠더 월터의 머리 위에다 뿌렸다. -“선장님은 달에도 물론 다녀오셨고, 포보스에도 다녀오셨으니.... 3세계 클럽 회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선장님이 머리를 닦아내는 동안 일정이 잠시 늦춰졌다. 하지만 그는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난 뒤 우리는 매주 연습하긴 했지만 밖에서는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여압복을 입고, 예상 대로 작동되는지 확인한 뒤 기 갑을 통해 한 번에 두 사람씩 밖으로 나갔다. 올가와 나는 함께 가늘고 긴 사다 리를 타고 내린 뒤 마지막 몇 미터를 점프하여 저중력 위로 내려왔다. 내 부츠는 쿵 하는 소리를 내더니 미끄러져 나갔다. 반질반질한 얼음 위인데 다 중력이 작으니 마찰도 적었다. 헬멧에는 머리를 보호해 주는 패드가 있었다. 나는 똑바로 일어서려 애를 썼 고-아무방향으로나 나가는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것처럼-, 올가도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댄 채 일어섰고, 다른 몇몇 사랍들도 똑같은 방법으로 애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압복의 라디오가 지직거렸다. -“우주선에서 멀리 떨어지면 얼음이 그렇게 미끄럽지는 않을 겁니다.”- @p 260 몸을 돌려 보았더니 여압복을 입은 한 남자가 전 세계 어느 사람 눈으로 보나 구식 썰매같이 보이는 물건을 끌며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여기, 여러분 모두 여기 앉으세요. 윈치로 식당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화성식 운송 수단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뜩이나 부피가 큰 여압복까지 입고 있는 열 사람은 꼭 끼여 앉았지만, 여기 저기서 떨어졌다. 나는 어두운 얼음 저편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서쪽으로 크로예 프 분화구의 얼룩덜룩하게 붉은 가장자리를 막 건드리려는 찰나였다. 지평선 근 처에 짙은 보라색 빛이 있을 뿐 하늘은 거의 어두웠고, 별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었다. 태양계 내의 여행이기에 고정된 별들의 위치가 바뀔 만큼 멀리 나와 있 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육안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가 지구에서 볼 때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얼음 위로 썰매가 부드럽게 미끄러졌으며, 공기가 희박해서 외부 마이크로폰 을 통해서도 털커덩 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재빨리 어둠이 찾아와 식 당 역할을 하게 될 햅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분화구에 가장자리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다른 사랍들과 함께 썰매에서 내려 미러 위로 이리 저리 흩어져 있는 별 들과 희미하게 빛나는 분화구 벽과 별빛에 희미하게 비치는 거대한 얼음 장막을 보았다. 지구 체중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내가 얼마나 가벼운지 느끼면서 마 침내 정말로 화성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믿어졌다. @p 261 거대한 타이버의 유적지 화성에 있던 다섯 명의 사람들은 우리를 너무나 반겼다. 26개월 전 이곳에 체 재할 선원 열 명이 도착했는데, 그 가운데 다섯사람은 8개월 전에 지구로 떠나 버리고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때문에 무척 당황했다. 그들 가운데 세 사람은 우리더러 아무 얘기나 끊임없이 해 보라고 했고, 두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음식은 일반 햅 음식이었다. 여지껏 타이버 연구 결과로 얻어 낸 두 가지 아 이템 가운데 하나인, 작은 채소와 인조 단백질을 키우는 기계인 -‘농장’-에서 나온 음식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볼 떼 그것은 여러 나라의 우주 기관에서 1980년대 이래 어리 석게 투자를 계속해 온 -‘샐러드 기계’-, -‘요거트 상자’-, -‘초밥 제조기 ’- 등이 여러 차례 진화를 거쳐 탄생한 기계라 볼 수도 있었고, 또 어떤 의미 에서 볼 때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계라 볼 수도 있었다.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쪽에다가 소독한 인간의 배 @p 262 설물, 이산화탄소, 물을 넣으면, 다른 쪽으로 브로콜리, 당근 , 두부 등 다양한 음식이 나오고, 보조 혜택으로 햅 산소의 절반정도를 공급하며 형성된 이산화탄 소의 절반 정도를 없애준다(나머지는 화학적으로 재활용해야 했다)는 사실 이외 에는 그 기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농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산할 수 있는 음식이 열다섯 가지 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몇 주만 지내면 메뉴에 오르는 음식 모두를 다 알게 되는 것 이다. 그들 햅의 음식은 우리 햅의 음식과는 양념이 약간 달랐다. 그들 햅의 심토 전문가인 찰라샤제리안 박사가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을 양념에 할애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따금씩 카레를 먹을 수도 있었다. 그는 또 농장에서 나는 콩에서 기름 을 추출하는 방법을 고안해냈기 때문에 간장도 있었고, 빵에 발라먹어도 맛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뭔가도 있었다. 불행하게도 우리 쪽 선원 가운데에는 진정 한 주방장이 없었기 때문에 그와 아이디어를 나눌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가 말했다. -“아, 그래요. 올드린 선원들을 기다리며 희망을 품고 있어야겠네요.”- 그는 피부색이 검었고, 몸은 근육질이었으며, 가볍고 유쾌한 인도 억양이 섞인 영어를 했다. 그는 자주 웃음을 터트렸고, 입을 다물지 못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거의 아홉 달 동안 우주선 안에서 지내면서 이미 오래전에 다른 사람 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거리를 모두 파악하고 난 뒤에 들은 비록 샐러드 드레싱 요리법에 대한 독백에 불과했지만 뭔가 색다른 이야기여서 기분이 상쾌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다. @p 263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코로예프의 -‘시장’- 역할을 하던 이바나 보지스와 갠더 선장 사이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것 같았다. 물론 정부는 필요가 없 었다. 하지만 어쨌든 전화를 받거나 콘소시엄의 요청에 답하거나 전파를 통해 작은 이주지의 상황을 보고해야 할 사람은 있어야 했다. 그 임무는 이제 갠더에게로 넘어갔고-그는 기껏해야 하루에 10분 정도밖에 걸 리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바나는 본래의 전문 분야인 굴절 영사 엑스 레이기, 즉 타이버 기지의 위치를 알아내고 얼음 밑에 무엇이 있는지 감을 잡게 만들어준 그 기계로 돌아갈 터였다. 그녀는 그 사실이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는 데, 갠더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각해 내는 것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피터 존슨은 미국인으로 피부가 매우 검은 흑인이었으나, 수염은 규정 길이를 훨씬 넘어 있었다. 또한 우주 여행 을 하는 사람치고는 특이할 정도로 키가 컸으며, 자주 미소를 지으며 우리 모두 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그는 생물학자이자 원래 있었던 체재 그룹의 내과 의 사였다. 여지껏 타이버인에 대한 연구는 할 수 없었지만, 화성에 체류하며 선원 들에 대해서 많은 조사를 해서 과학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따금씩 그는 쩐 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는데, 두사람 다 아주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조종사인 내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그들이 나를 땅 위에다 붙잡아놓을 새로운 구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아리카 야마다는 화성 기상학자였다. 그는 가만히 앉아 모든 사람들을, 특히 나리를 쳐다보았다. 첫날밤에 본 그에 대한 인상은 남아 있지 않다. 모래 빛 머 리카락을 하 텍사스인이며, 몹시 @P 264 호리호리하고 체구가 작은 짐 플린도 그다지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에 대히 이야기한 것이 없어 그날 저녁 중간참에 그가 조종사이자 엔지니어라는 말 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저는 이곳에 체재하는 분들은 모두 과학자들인 줄 알았어요.” 내가 말했다. “그 사람들을 돌볼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가 말했다. “피티는 세균을 죽이고, C 박사님은 음식을 재배하고, 저는 기계를 작동시키 고 여러 가지 것들을 조종해서 자신들이 걸어가는 방향이 아니라 산을 쳐다보는 과학자들이 계곡 속으로 떨어지지 않게 해야조. 포보스로 몇 번 다녀온 적도 있 어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휘발물을 재공급ㅎ래 주기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지금 저 위는, 저기는 이상해요. 스물 몇 명이 살고 있는데, 조만간 서른 명이 될 거예요. 거의 작은 도시게 가깝다니까요. 심지어는 그곳에 있는 동안 결혼한 커플도 있어요.”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거죠?‘ 올가가 물었다. “아, 아니에요. 제 생각넨 그런 일을 하면서 결혼을 한다는 게 이상하다는 말 이지만, 사람들 모두가 좀 그래요. 저곳을 또 다른 남극 정거장으로 만들고 있다 니까요. 앞으로 충이 열 번 있기도 전에 저곳에는 영화관이며 상점, 그리고 아마 감옥이나 술집까지 생길 게 확실합니다. 여러분의 선장님께서 착륙하셨던 그런 암석이 아니라니까요. 지금 이곳은 미개척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조. 그것도 변 하겠지만요.” “미개척지에 가까운 것이 좋은가요?” 올가가 물었다. @p 265 “네. 제 소원이 성취되기만 한다면 전 아마 트리통이나 샤론, 뭐 이런 곳에 묻힐 겁니다. 그런 곳이 얼마나 쾌적하고 조용한지 몰라요. 그리고 몇 주가 지나 고 나면 선원들 모두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 할 일만 하면 되지요. 저는 그런 생활을 좋아하지요.” 나중에 햅으로 돌아온 뒤 올가가 말했다. “짐은 나보다도 더 극단적인 것 같아. 난 새로운 장소를 눈으로 확인하고 그 곳에서 생활해 보고 싶을 뿐인데. 그 사람은 절대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니엘 분, 로얼드 애먼드슨, 데이비드 리빙스턴, 짐 브리저라는 이름 들어 본 적 있어요? 지난 1백년 동안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별로 없었지요. 정 말 혼자 있고 싶을 때, 아니 자기 자신과 똑같은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을 때 갈 만한 곳이 없었죠. 이제 그런 공간이 다시 생기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많다 고 생각치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이 갈 만한 공간이 있다니 기쁜 걸요.” 올가가 말했다. “그건 다르지. 그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떠났잖아. 지금은 소수의 사람을 보 내기 위해 많은 돈을 써야 해. 나는 모든 사람들이 소수가 제공하는 혜택을 누 리며 살고 있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짐 같이 자원하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니 기 쁘군.” 체재자들은 우리가 언제 도착할 지 정확한 날짜까지 알고 있었으므로 일을 시 작할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그리고 우리는 정리할 짐도 없었다. 우주에서와 마찬가지로 햅이 우리 집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이곳으로 오는 동안 먹었던 아침 과 똑같은 식사를 하고 난 뒤 우리는 세 대의 무개 트택터에 올라타고 유적지로 향했다. 나는 이 기구의 운전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짐 옆자리에 올라탔다. 이 트랙 터는 토착 추진 연료로만 달렸다. 물고 이산화탄소로 만든 메탄올, 물을 전기 합 성해 만든 과산화수소로 말이다. 트랙터 운전은 아주 간단했다. 지구에서 남극 여행을 할 때 중추 역할을 하는 스노-캣을 가볍게 만든 것에 불과했다. 짐이 내게 말했다. “정말 어려운 것운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사람들이 조심하도록 만드는 거죠, 특히나 간밤에 생긴 냉동 이산화탄소가 아직 표면을 덮고 있을 때 말입니다.” 이산화탄소는 막 승화하려는지, 발 밑에서 작은 방울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면 서 마찰을 감소시켰다. “천천히 움직이도록, 이 행성 위에선 아무도 급하게 뛰어다니지 않도록 주의 를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는 내게 충고했다. 나는 트렉터 다루는 방법을 꽤 빨리 익혔다. 내가 10대일 적에 돌아다니던 수동 기어 자동차보다는 못해 보였다. 유적지는 몇 개의 대형 ‘텐트’였다. 천으로 된 아치 모양의 덮게 아래 여러 가지 물건을 보관하도록 되어 있었고, 다양한 실험실과 몇 개의 작은 침대 모듈이 안에 있었다. “여기서 밤울 새 본 사람을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발굴이 시작되면 그럴 필 요가 생길 때도 있겠군요.” 피터가 말했다. “그럴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이곳으로 옮겨와도 상관은 없지만, 여긴 먹을 게 없단 말씀입니다.” 짐이 말했다. @p 267 “바쁜 도심지 생활에 지쳤다 이거죠?” 씨익 웃으며 피티가 말했다. “이곳을 휴양지 정도로 남겨두게 될 것 같은데요. 똑같은 장소에 싫증이 났 을 때 휴가를 오는 그런 곳말에요.” 가까이 다가가자 얼음 속에 박힌 기둥들이 많이 보여서 나는 저기가 유적지냐 고 물었다. 짐이 말했다. "네, 그렇죠. 타이버 착륙선, 무덤, 오두막, 인사이크러피디어라고 추측되는 물 건이 모두 저 밑 4~6미터 아래 있지요.“ 세 대의 작은 트랙터는 숙소 앞에서 멈추엇고, 우리는 내렸다. 우리들 남쪽에 있는 분화구의 가장자리에는 아직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지만, 이제 태양은 높 이 솟아올라 바로 앞에 있는 얼음이 하늘의 빨간 빛을 받아 분홍색이 감도는 하 얀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사물의 가장자리는 이상하게 날카로웠는데, 태양의 크기가 더 작고 공기 가 더 희박해서 빛이 덜 퍼지고 덜 흘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림자는 더 어두웠고, 그 가장자리는 더 날카로웠다. 아직도 냉동 이산화탄소 로 덮여 있는 얼음 평야의 일부는 하얗게 빛났다. 부츠와 트랙터 발자국, 아니면 바람 때문에 마른 얼음이 모두 쓸려버린 그곳은 물로 만들어진 얼음이 남색을 띄며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찰라샤제리안이 말했다. “자, 시간에 맞춰서 왔군요. 모두들 북쪽으로 보세요.” 우리는 말대로 했다. 처음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는데, 그때 시야로 들 어오는 것이 있었따. 희미한 수증기 구름이 지평 @p 268 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은 우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는데, 투명하고 거대한 몸집으로, 하얀색 마른 얼음을 지우 고 그 뒤로 검은 물 얼음을 남기고 있었다. “화성의 봄, 적어도 코로예프의 봄에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 가운데 하나 죠.” 우리른 향해 다가오는 서리줄을 보며 그가 설명했다. “이제 발을 보세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이 아니라 발을 쳐다보라는 말입니다.” 나는 그의 말대로 했다. 몇 초 뒤 내 발 가까이 있던 하얀색 이산화탄소가 얇 고 하얀 구름으로 번쩍이더니 내 얼굴 쪽으로 부글부글 솟아올랐다. 다 지나가 고 나자 내 앞으로 검은 물 얼음이 보였다. 내 그림자가 있던 곳, 잠시 동안 하 얗게 변하던 곳을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뒤로 물러났고, 내 하얀 그림자는 작은 수증기 구름으로 폭발해 사랴져 버렸다. 피터가 설명했다. “이산화탄소의 증발은 아주 예민하죠, 게다가 코로예프의 벽은 높기 때문에 아침 늦게까지 검은 얼음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진답니다. 그 그림자가 물러가고 나면 표면이 따뜻해지기 시작하죠. 그림자가 먼저 없어진 곳에서 승화하기 시작 합니다.” 나에 관한 한 그것은 그날 아침의 하일라이트였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아 버지 세대가 달 남극에 있는 타이버 기지에서 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 하는 것인 지도 몰랐다. 그곳에 도착했던 그들으 아직 기술적으로 미숙했기에 인사이크러 피디어를 찾으려 하다가 사실상 유적지를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몇 년 동안이 나 고고학자들은 무엇이 타이버인들이 한 일이며, 무엇이 최근에 인류 @p 269 가 한 일인지를 구분해야 했다. 달에서 한 인류의 실수는 유익한 정보를 모두 꺼내기 전까진 유적지를 흩어놓 지 말라는 고고학의 제1법칙을 어긴 것뿐만이 아니었다. 1900년 이전부터 고고 학자들에게 알려져 있던 또다른 법칙을 어긴 것이다. 슐리만이 미케네인의 얼굴에 씌워져 있던 매장 가면을 들어올리던 순간부터- 그 매장 가면은 사진을 쩍거나 스케치를 하기도 전에 무너져 버렸다-하나하나 발굴할 때마다, 아니면 고대 문서를 펼칠 때마다, 전문가가 현장에 참석해 어떤 물건이라도 갑자기 파괴되기 시작하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비전문가의 눈 으로는 놓치기 쉬운 중요한 사항은 없었는지 기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문제에 있어 어쨌든 물건이나 문서를 검사하기에 가장 안전한 장소는 현장이 었다. 덜 옮겨다닐수록 노출과 파괴의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달에 있던 인사이크러피디어가 파괴되고 난 뒤 이 모든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해졌다. 아버지는 단지 우주 비행사였고 샤오베는 조종사였으니, 훗날 조사가들을 위 해 흥미로운 관찰을 하지도 않았고, 단서조차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들은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로 그곳에 가서 보물을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 었다. 2010년 당시에는 달 작전을 위해 고고학자, 컴퓨터 과학자, 암호 연구가로 구 성된 팀을 훈련시키고, 인사이크러피디어를 현장에서 읽을 수 있는 기계를 고안 하려면 전 세계 국가들이 힘을 합해도 2년을 족히 걸렸을 것이다. 그당시 사람 들은 그만한 대가를 치를 생각이 없었고, 이제 1백 배에 달하는 비용과 열 배에 달하는 시간을 들여 이곳에 도착해서(훨씬 뒤이다) 인사이크러피디어를 찾아내 갠 했지만(타이버인 거주지로부터 0.5킬로미터 떨어져 있 @p 270 는 곳에 있는 물건이 그것이라면) 그 소중한 데이터를 영원히 읽어버리게 될 지 어떨지 아직도 모르는 것이다. 문제는 화성의 북극에 대해서 쓸 만한 지식이 겅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복잡 해졌다. 유물을 발굴할 실제 조건에 대해선 c 박사나 이바나가 몇 달 동안 확인 하고 측정하고 연구해서 완전히 이해해야 했고, 겨울이 지난 다음이라야 다음 단계를 위해 타이버 고고학 전문가들을 파견할 만한 시점에 다다를 것이다. 지금은 얼어붙은 화성 호수 속에서 해야 하는 발굴 작업에 대해서 필요한 사 항들을 거의 다 알고 있었고,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지켜볼 전문가의 눈이 있었다. 몇 달 동안 진정으로 준비될 때를 기다린 텨였으므로 그날 아침 우리는 완벽 한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작업하러 나섰다. 우리는 레이저로 유적지 주변에 0.5 미터 크기의 모눈을 그렸다. 그리고 얼마나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지 모니터할 수 있는 깊이 측정레이저로 각 모눈을 0.5미터 깊이로 잘라냈다. 마침내 우리는 ‘잠망경’-꼭대기 안 쪽에 거울이 달려 굴삭 레이저의 광선을 수직으로 반사시 키는 막대-을 만들어진 홈으로 넣어 블록의 아래 쪽을 잘라냈다. 마찰 그립으로 그것을 들어내 무균 절연 상자에 넣은 뒤 다른 팀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했 다. 블록들은 크고 이상하게 생겼는데 질량은 125킬로그램이었고, 무게는 이곳 중 력으로 따졌을 때 91파운드 밖에 되지 않았다(지구였으면 275파운드나 나갔을 것이다). 이 작업은 블록을 옮기고 상자에 라벨을 붙일 때 정확성을 요하는 고된 육체 노 동이었다. 태양이 정오를 1시간쯤 지나 있을 때 점심 휴식 시간을 가졌는데, 올가와 나는 블록을 열아홉 개 잘라 상자 안에 넣어 어느 팀보다도 작업량이 많았다. 피티와 짐 @p 271 이 열일곱 개로 두 변째였다. 갠더는 내 등을 두드리며 우리가 선원의 명예를 살렸다고 했다. 그와 플루언트는 겨우 여덟 개로 일자, 쩐과 같았다. 숙소 가운데 가장 큰 곳에서 점심을 먹는데 분석원들이 합세했다. 자리가 비 좁았지만,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어떤 사항들이 발견됐나 듣고 싶었다. 그들이 블록 하나에 대해 기본적인 처리를 하는 속도는 선원 한 사람이 블록 하나를 잘라내는 것보다 빨랐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일 이었다. 따라서 우리들보다 그쪽의 숫자가 훨씬 적었던 것이다. 키레이코는 수줍 을을 많이 타며 말이 별로 없었는데, 모든 이들에게 결과 보고를 하도록 뽑힌 게 분명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음, 여러분들은 뭔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생기길 바라겠지요. 지금껏 우리 는 각 블록에 대해 CT 스캔과 NMR 스캔 했어요. 각 블록에는 평균적으로 유기 물질로 인한 얼룩이 약 2백 개 정도 있었어요. 유기 물질은 죽은 타이버인들이 나 화성 생물의 미세한 잔해 또는 다양한 콘드라이트 물질이겠죠. 그 얼룩들의 크기가 거의 같은 것으로 보아 생식 세포인 것으로 보여요. 그렇다면 그건 타이 버인이거나 화성 생물일 텐데, 그건 DNA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타이 버인으로 밝혀진다면 좋겠죠. 그러나 지구의 물질이나 타이버인이 아 니라면, 화성에서 생명체를 발견한 것이 되는 거구요. 그런데 콘드라이트 먼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나리를 흥분시킬 만한 또 다른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그 안에는 극소 방울이 아주 많았고, 사전 탐사를 해본 결과 그 안의 압력이 주 변보다 높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p 272 우리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과학자라 할 수 있는 나리하라 니가와 박사는 전 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 식사하던 구석 자리의 낮은 천정에 머리를 부딪쳤고, 그 위로 온통 물이 쏟아졌다. 잠시 후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위엄을 회복한 뒤 입을 열었다. “정말 놀랄 만한 얘기를 하는군요, 키레이코, 만약 샌드위치가 내 목에 걸렸 다면 본국으로 돌아가 해명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을 거란 말입니다. 극소 방울 내의 압력이 얼마나 높았나요? 구성은 어떻게 되죠?” 나는 키레이코의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예전에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대 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사람은 유머 감각이 없 으리라고 지레짐작하는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사가 구성에 대한 질문을 하리라고 짐작했죠. 박사를 놀라게 해 주려고 그 부분을 남겨 두고 있었어요. 압력에 대한 놀라움의 뒤를 잇는 그런 식으로... ” “제발 말씀해 주실래요?” 나리가 말했다. “그러시는 게 좋겠는데요.” 씨익 웃으며 갠더가 말했다. “안 그러면 전 뒷일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키레이코의 미소는 점점 켜졌다. “음, 그렇다면, 정말 알고 싶으시다면...,압력은 약 35밀리바 정도인 것 같았고, 화학 성분은 1.5퍼센트 정도의 자유 산소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말에 펄쩍 뛰었다. 오늘 화성의 주변 압력은 @p 273 5 밀리바가 약간 넘었다. 산소는 1300ppm 또는 키레이코가 방금 말한 것의 1 백 분의 1이었다. 하지만 아리카는 꼿꼿이 앉으며 말했다. “일본인끼리 공모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니가와 박사의 아이 디어가 점점 더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기상학자의 관점에서 보 면 말입니다.” 플루언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사실은 인정해야 겠군요.” 올가가 말했다. “이 방면에 문외한인 저희들을 위해 무슨 이야기인지 알려주실수 있겠습니 까?” “그럼요.” 나리가 말했다. “지구에서는 단백질 대립이 너무나 큰 문제였기 때문에 이곳으로 이주했을 때 가능하면 타이버 식물을 재배하는 편이 더 간단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 습니다. 그들은 화성을 타이버와 비슷한 형태로 바꾸려 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 니다. 그러다 그 과정이 중단된 거죠. 그들이 사망했거나 아니면 그 과정이 그들 의 목숨을어떤 식으로든 빼앗아 갔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들의 간섭이 없어지자 화성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냉동된 축적물과 영구 동결층 내의 불연 속면은 그 깊이까지 녹았다가 다시 얼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죠.” “그 말에 이의가 없다는 것도 덧붙여야겠군요.” 플루언트가 말했다. “타이버인들이 포보스에서 화성으로 이주했다고 죽은 뒤로 중대한 해빙 및 재결빙이 있었다면 모든 것을 더 간단히 설명할 수 @p 274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말이죠. 박사는 재결빙 동안 압력이 좀더 높았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방울의 압력은 제 논리에선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죠. 하지만 자유 산소는 다른 문젭니다. 해빙기 동안 대기 중에서 양이 급격히 변하는 것은 수증 기 밖에 없으니까요. 자유 산소라니.. 그들은 대기중에서 무언가를 키우고 있었 고, 이산화탄소를 약간 전환 시켰던 것 같군요. 나리의 주장이 나한테조차도 신 빙성 있게 들리는데요.“ 키레이코와 쩐이 얼음 블록에서 작은 펠리트를 충분히 뽑아내 실질적인 연구 를 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우리는 블록 자르기를 계속했 다. 두 명씩 짝을 이룬 다섯 팀의 선원들은 충분한 연습을 거친 완벽한 기술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제는 하루에 3백 블록을 자를 수 있었다. 문제는 타이버 유적지의 넓이가 약 50미터였고, 타이버 유물의 꼭대기는 표면 에서 약 4미터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한 달이 다 지나가도 우리는 오두막 지방, 착륙선 옆 쪽, 그리고 우리의 목표 지점인 인사이크러피디어가 있는 곳까지 평 균 1미터 이상이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저녁, C 박사가 부엌 비슷한 것을 만들어 모두들‘식당’이라고 부르 는, 거의 항상 비어 있는 햅에서 저녁을 함께 먹는데 나리가 말했다. “제가 만약 임무 본부에다가 내일 하루 동안 제이슨, 올가, 이바나를 빌려 달 라는 청을 하면 과학팀장의 지위를 남용하는 게 될까요? 꼭 조사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거든요. 딱 하루 동안, 트랙터 한 대와 탐사 도구 몇 개만 있으면 되는 데 말이죠.” 갠더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거장의 지휘관으로서 그런 일의 최종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었지만, 과학에 관련된 일이라면 대 @p 275 부분 나리와 의논을 했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저도 데리고 가주신다는 허락을 내리시면 말입니다. 이 건 거래입니다. 얼음 블록 자르는 일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까요. 올드린 호 승무원들이 여기 도착하기 전에 주요 유물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 블록들의 표면에서 초기에 발견한 사항 이후로 재 미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생활에 변화를 좀 주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려던 참이었거든요. 지금부터 휴일을 만들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이건 전통적인 방식 이니까 매 일곱 번째 날로 할까요? 그리고 남은 일손들을 생산저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머미 속에 품고 있는 생 각에 팀 전체를 사용해도 좋습니다.” 나리는 키득거리며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었다. “글쎄요, 그거 재미있는 질문이신 것 같군요. 일손을 많이 쓸 수 있습니다. 현장 조사를 하는 일이거든요. 좋습니다, 도움 요청 대상에 모든 분들을 넣죠. 제 생각엔 인사이크러피디어가 있는 곳에서 반경 20킬로미터 이내에서 또 다른 타이버 유적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제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면 제 주장이 꽤 입증될 것 같아요. 하나 더 실험해 보아야 할 과정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여러분들 모두와 함께 떠나 이바나에게 부탁한 굴절 엑스레이를 가리키면서 위풍당당하게‘보세요, 이럴줄 알았다니까요’라고 말하는 것도 재 미있을 듯하군요. 만약 제 생각이 틀렸다는게 증명되면 여러분들은 모두 폴 플 루언트가 껑충껑충 뛰며‘내 그럴 줄 알았조’라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자가 뒤로 기대며 말했다. “나리, 우리들 모두 궁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셨죠? @p 276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그렇게 속 들여다 보였던가요?”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다면...제가 달에서 했던 상당 양의 초기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요. 제가 늘 가졌던 의문 사항은 이 사람들이‘무얼 하려고 했을까?’라는 것 이었죠. 그래서 기본 사실들은 끌어 모아 단백질 대립설을 만들게 됐어요. 그들 처럼 수 백만 개의 이상한 신드롬에 시달릴 때 그대로 내버려 두려는 사람은 아 마 없을 겁니다. 온몸에서 세포들이 손상되고, 과절 이상에 뇌 손상, 심하게 수 축되거나 비대해진 몇몇 기관들...그런 일들이 벌어지길 바라진 않았을 겁니다. 그 외계인들도 우리와 비슷하리라 추측할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그들은 완전히 자발적으로 지구에서 살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고는 마침내 떠났습니다. 어떤 변 화가 생겨 지구를 떠나는 일이 가능해졌을 수도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 상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기술의 혼재를 보세요. 제가 보기에 이건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을 일정한 날, 경계선 내에서 있을 전쟁을 준비시킬 때 나타나는 현상처럼 보입니다. 어떤 것은 상당히 고급 기술을 이용해 만든 것이고, 어떤 것은 매우 조잡하고, 돌을 쌓아 만든 건물은 높이가 낮은 것에서부터 높은 것까지 있죠. 제 추측은 지구 이주지에서 실패했는데, 어떤 이유였든 간에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죠. 착륙선은 갈 수 있는 범위가 있었고, 이 때문에 저는 포보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난파 조각들이 본체의 잔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죠. 그들은 지구에서 살 수 없다면 태양계 내에서 살아야 했던 것 같아요. 하이 테 크 도구들이 많기는 했지만, 고 @p 277 칠 능력은 제한되어 있었고 더이상 만들 능력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장기 적으로 볼 때 지구가 치명적이라면 다른 곳은 어느곳이나 다 단기적으로도 해로 운 겁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장기적으 로 거주할 만한 장소를 만들겠지요.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고 말입니다. 그 리고 그들이 우리와 아주 비슷하다면 가장 쉽게 전환시킬 수 있는 곳이 어디였 겠습니까? 자, 이제 그들의 왜 화성으로 오게 됐는지는 아셨겠지요. 그럼 왜 코 로예프였을까요? 이 부분에서 바로 제 추측이 아주 맞아 떨어집니다. 전 세 가 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영구 동결층에서 추출할 필요가 없는 물 이나 얼음이 정말 필요했습니다. 우주 안에서 몇 십 년 동안 살다 보니 기계가 고장이 났을 수도 있조. 그들은 저급 기술로 때우는 한이 있더라도 후손들이 살 아 남을 수 있는 곳에 자리잡길 원했던 겁니다. 화성의 적도 부근에는 물이 거 의 없고, 남극에도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북극의 얼음 모자 가 있는 곳까지 죽 올라오게 되면, 첫째, 이곳의 얼음 대부분이 녹기 때문에 기 지의 위치를 제대로 선정하지 않았다간‘졸’이 됩니다. 둘째, 혹독한 북극 조건 과 맞서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구 시간으로 거의 일년 동안 햇빛이 비치다가 지구 시간으로 거의 1년 동안 밤이 계속되는 것 말입니다. 따라서 물이, 그것도 데워졌을 때 다른 곳으로 너무 빨리 날아가 버리지 않는 그런 물이 있음직한 곳 을 찾아 북극의 동남쪽을 뒤진 것이죠. 그래서 바로 여기 도착한 겁니다. 남쪽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화성 내에서 물이 고일 수 있는, 최상의 조화를 이룬 곳.” “지금까지는 적어도 그들이 자네만큼은 똑똑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 같 군요, 나리.” @p 278 플루언트가 짖궂게 말했다. “그리고 그 증거는 반박의 여지가 없지요.” 쩐이 덧붙였다. “나리와 타이버인들이 두 쪽 다 결국 코로예프까지 이르렀으니까요.” 나리는 그들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항은 또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미 만들 어진 안식처도 없었죠. 추측하면 달에 있떤 두 진공 안식처가 그들이 가진 전부 인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각 착륙선 당 하나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물 과 콘드라이트가 아주 조금만 있다면, 격리시킬 수 있는 한 그들은 적합한 생태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달에 있는 화산암 관을 이용해 포보스 에 구멍을 뚫은 뒤 용해 암석과 스타십에 있는 기계 공장에서 만들었으리라 추 측되는 조잡한 기계 문으로 이 공간을 격리시켰을 겁니다. 이제 화성을 보십시 오. 이곳은 달이나 포보스와 마찬가지로 기압이 낮고 복사 에너지가 많습니다. 다른 질문을 하나 해 보죠. 적당한 수준까지 온도를 높일 생각을 하며 행성에서 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왜 얼어붙은 호수를 선택했을까요? 이 얼음 위에서 영 원히 머물러 있을 생각이 아니었다는 게 제 추측입니다. 근처에 좀더 적합한 곳 이 있었던 겁니다. 따라서 저는 이곳의 지질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요, 어떤 사 실이 발견됐는지 아십니까?” “그들이 영구 기지로 어디를 계획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는거죠? 그래서 그 곳에 어떤 건설의 흔적이 있나 살펴보려는 거구요.” 키레이코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코로예프는 영구 동결층에 가해진 충격을 @p 279 보여 주는 거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거죠. 유성이 토양을 녹여 거대한 주름을 만들면서 밖으로 흘러나가도록 했는데, 그 주름은 힘을 잃고 그 자리에 서‘얼어’버렸으며, 토양 속의 수분이 스스로 재분배하며 재결빙되자 분화구 주변 지대는 부드러워지면서 울퉁불퉁하게 됐죠. 충분한 수분이 남아 있지 않던 곳은 무너지거나 매몰됐고, 분화구 자체는 물로, 나중에는 얼음으로 가득 차게 됐죠. 그런 구조물들은 분화구 벽 속에서 별 효과가 없는데...“ “동굴, 분화구 벽에 타이버인들이 뚫으려 했던 동굴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군 요.” 플루언트가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리카와 전 몇 가지 계산을 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을 발 견했습니다. 약 9천년 전에-달에서 발결된 지구의 나무와 양모 조각 몇 개를 증 거로 본다면 말이죠-화성의 황도 경사는 지금보다 상당히 낮았습니다. 기후 모 형에서도 한결같이 동의하는 사항이지만 화성의 황도 경사가 낮다면 얇고 맑은 대기권이 형성되고, 양극이 물을 붙잡아 두는 차가운 덫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 요. 화성의 황도 경사가 높다면, 두텁고 흐릿한 대기권이 형성되며, 액체 형태의 물이 존재하게 되지요. 따라서 토양 성질 변화의 관점에서 볼 때...” 쩐이 손을 들었다. “전 의사이자 생물학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황도 경사가 무엇인지 모르겠네 요?” “태양에 대한 기울기이지요.” 나리가 말했다. “황도 경사가 낮다는 것은 양극이 똑바로 위 아래를 향해 있으 @p 280 며 궤도에 대해 직각이라는 뜻이지요. 화성의 대기권은 양극에서 얼고, 기후는 주로 기온 변화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황도 경사가 낮으면 계졀의 변화가 거 의 없고, 양극으로 갔던 물질들이 모두 그곳에 머무르기 때문에 기압이 낮아지 고, 기온의 변화가 안정돼 먼지를 일으킬 만한 이유가 없고, 먼지가 생긴다 해도 그것을 붙잡아 둘 공기가 거의 없게 되죠. 황도 경사가 높으면 양극이 많이 기 울어지기 때문에 이 가운데 어느 한쪽이 태양에 가까워지면 뜨거워지고, 그‘여 름 극’의 이산화탄소가 증발하면서 물을 붙잡아 두는 차가운 덫 역할을 멈추게 되죠. 그러는 동안 겨울 극은 차가워지는데, 그 말은 기온차가 커지기 때문에 두 터운 대기권 내에서 바람이 더 많이 발생하고, 더 많은 먼지가 태양빛을 흡수하 며 얼음을 어둡게 만드는 등등의 현상이 일어나는거죠. 그리고 여름 극과 겨울 극이 반 년을 주기로 역할을 바꾸기 때문에 다량의 공기가 왔다갔다 하고, 차가 운 덫이 많이 줄어들고, 커다란 먼지 폭풍이 일어나는 등등의 현상이 생기죠. 제 가 하고 싶은 말은, 화성의 토양이 성질 변화를 하려면-아니면 타이버 형태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황도 경사가 높을 때 이곳에 도착을 하고 싶으리란 거죠. 타이버인들은 이곳에 도착한 타이밍이 비교적 좋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무슨 일 이 일어났다면 자연계의 균형이 결빙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겁니다. 뿐만 아 니라 화성은 극을 향해 물이 이동하는 곳입니다. 물은 영구 결빙 퇴적물의 일부 가 되려는 경향이 있었고, 위도가 높을수록 해빙의 기회가 적기 때문에 오랜 시 간 동안 북극과 남극에는 항상 물이 많았죠. 행성 다른 곳에선 얼음을 녹인다 하더라도 그 물은 재빨리 도망가버립니다. 그래서 전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 다. 타이버인들은 토양 성질 변화를 절반쯤 진행시켰는데, 어떤 일이 생겨 @p 281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후를 온화하고 두터운 공기층으로 만들 수가 없게 되자 모든 일이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 거죠. 그리고 그들이 해방시켜 놓았던 물 들이 북쪽으로 향하면서 단 몇 년 사이에 분화구를 가득 채우고 그들의 거주지 가운데 남아 있던 부분을 덮은 뒤 모든 것을 얼음이라는 이불 속에 보관하게 된 거죠. 불연속면 아래에 누워 있는 타이버인들은 이주지가 실패로 돌아가기 전 사망하여 묻힌 사람들일 테고-그리고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있겠죠-, 오두 막 속에 있던 사람들은 그날 밤이든 10년 뒤든 아니면 1세기 뒤든, 북극 두건에 서 흘러나온 물이 덮칠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제게 또 한 가지 생각을 가지게 했죠. 불연속면이 있는 높이에서 동 굴을 찾아보자는 생각 말입니다. 게다가 전 딱 그 높이에서 우스꽝스럽게 들리 는 메아리를 몇 개 들었습니다. 착륙지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살펴보고 싶은 겁니다.” 플루언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을 살펴봐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냈군요, 나리. 게다가 그 이야기가 심지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겠군 요. 또 하루 동안 소풍을 나가면 우리에게도 이로울 테구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살짝 미소지으며 나리가 말했다. 3시간 뒤 불침번이 시작되자 갠더가 말을 했다. “박사의 요청 대로 지구로부터 임무를 변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박사의 보고서를 읽고선 오케이했죠. 불행하게도.” @p 282 갠더가 말했다. “이런 사항을 지적해야 하다니 내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집니다만, 우리는 트 랙터로 1시간당 10킬로미터씩만 움직여야 합니다. 따라서 유적지까지 10킬로미 터, 그 너머로 20킬로미터니까 3시간 걸리죠. 지금은 햇빛이 13시간 동안 비치니 까 새벽 정각에 떠난다면 유적지에서 7시간 동안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기 지 전체와 트랙터 모두를 이 소풍에 거는 겁니다. 따라서 이제 질문하고 싶은 것은 박사는 지구로부터 허락을 받았는데 내가 그 계획에 반대를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거죠.” 나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원래 네 사람에 대해서만 건의했던 거구요. 폴도 함께 갔으면 좋겠는데, 그럼 트랙터 한 대 정원이 딱 되죠. 이번에는 이것 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도 만약 유적지가 있다면 나중에 더 열심 히 작업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생각난건데, 우리 아마 이곳으로 되돌 아 오지 않고 주 유적지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럼 유적지에서 1시간을 보낼 수 있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기지개를 폈다. “자 그래도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는 뜻이니 행운의 주인공들께서 잠을 좀 자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그러려는 참이거든요.” @p 283 화성에서 느끼는 사랑의 예감 다음 날 여정은 아주 길었다. 아무도 나나 올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폴, 이 바나, 나리는 뒷자리에 앉아 어디에 엑스 레이기와 초음파기를 설치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그 때문에 올가와 나는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경치를 감 상했다. 오늘은 도처에 있는 얼음 블록과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는 즐거운 사실 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가까스로 우리는 새벽이 오기 전에 출발할 수 있었다. 서쪽으로 향하던 우리 는 북쪽에서부터 동이 터오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태양 은 우리들 뒷편에서 솟았는데, 화성은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서서히 솟는 일 은 없었다. 하늘은 몇 분 사이에 검은색에서 파란색, 분홍색, 붉은색으로 변했고, 별들은 재빨리 사라졌다. 아침 태양 때문에 갑자기 형태와 정의를 부여받은 듯 우리들 앞으로 검은 형태의 분화구가 불쑥 솟았다. 우리는 운전하며 아침을 먹었는데, 보통 잊기 쉬운 녹말과 단 @p 284 백질을 씹었다. 유적지를 지날 때 쯤 태양은 아직도 낮았고, 그림자도 아직 길 었다. 그곳은 발굴을 편하게 진행하기 위해 넓게 3층까지 진행시켜 놓은 상태였 다. 1시간 뒤 승화하는 이산화탄소의 하얀색 선이 우리를 향해 남쪽에서 달려오더 니 우리 앞을 지나쳤다. “정말 멋있어요, 그렇죠?” 내가 올가에게 말했다. “저 뭉게구름은 높이가 5미터는 될 거에요.” “결국엔 저런 것들을 보러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되는 거지.” 그녀가 말했다. 대지는 하늘로 솟아 있었고, 그 가장자리는 날카로운 입모양을 하고는 앞으로 다가올 파도처럼 우리를 향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은 더 높게 보였다. 마침내 분화구가 얼어붙은 호수 바깥으로 솟아오른 곳에서 0.5킬로미터 떨어 진 지점에 도착했고, 나리는 트랙터로 기초 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잠 시 멈추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옹색한 변명 거리를 늘어놓았다. 그런 다음 조심 스럽게 도구들을 날랐다. 나는 아직도 우주선에 있을 때보다 세 배나 되지만 내 가 자라오던 곳보다는 3분의 1밖에 안되는 중력에 적은 중이었다. 나는 주로 너 무 많은 무게가 나가는 것을 옮기려 하다가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더 많은 것을 들어올릴 수는 있지만, 관성은 동일한 반면 내 발에는 정상 마찰의 3 분의 1밖에 가해지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훨씬 어려웠다. 마침내 우리는 장치를 모두 마쳤다. 이제 올가와 나는 무엇을 하러 그곳에 왔 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무거운 물건을 몇 번 들어올려야 하겠지만, 그 일을 둘러싸고 재미있는 일이 상 @p 285 당히 많을 터였다. 엑스레이 분사 기술이란 각도를 이룬 채 얼음속으로 강한 빔을 발사해 그들이 어디로 튀어오르는 지를 보는 것이다. 수시 안테나는 직경 이 2미터인 덮개로, 작은 센서로 덮여 있었다. 우리는 근원지를 찾아 덮개를 놓 고 빔을 쏘고, 덮개를 움직이면서 또 빔을 쏘면서 최대의 힘이 돌아오는 각도를 찾았다. 그리고 우리는 근원을 옮겨가며 다시 시작하곤 했다. 그러는 동안 과학 자들은 컴퓨터에 결과를 입력하며 맹렬히 손짓했다. 점심 시간은 늦었고, 우리는 배가 고팠다. 미끄러운 표면 위를 그렇게 옮겨다 니는 것만 해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근육에 힘을 줘야 했기에 상당한 운동이었 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일을 서둘러 진척시키고 싶어하는 표정이 역력했으므로 음식을 재빨리 우걱우걱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일단 알아내기만 하면 우리에게 흥분할 만한 사실들을 알려줄 것이다. 태양이 분화구 가장자리를 향해 살금살금 기어오기 시작했고, 우리 그림자가 동쪽으로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리는 짐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하라는 갠더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가 반박할 것이라 생각하며 나같이 지위가 낮은 사람이 그같이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해야 할 말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는 순순히 응했다. 이바낙 덮개 접는 것을 도왔고, 그들은 모든 많은 도구들을 다시 트랙터로 옮겨야 했다. “이런 물건 위에선 부츠가 소용 없는 것 같아요.” 세 번째로 넘어지면서 내가 말했다. “하키 스케이트나 크로스 컨트리 스키를 신는 편이 낫겠어요.” 나리도 몸을 돌리다다 갑자기 균형을 잃었다. 그런 환경 속에선 넘어지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는 도구를 쌓아 놓은 더미 위로 넘어졌고, 나는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는 그가 일어설 수 @p 286 있도록 도와주었다. “다치지 않으셨어요?” “위험하군요. 좀 삐었을 뿐 괜찮아요, 제이슨. 그것 참 좋은 생각이에요. 그쪽 이름을 걸고 건의해 볼 참입니다.” “건의라구요?” “스키나 스케이트 말이에요.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작업하는데 그것만큼 적 합한 신발이 있겠어요? 아리카는 부츠 밑창에 댈 그리퍼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어떤 기능 면에서 보면 그의 생각이 맞지요. 하지만 잽싸게 돌아다니려면 정말 필요한 건 발에 바퀴를 다는 거에요. 스키나 스케이트 말이죠. 정말 좋은 생각이 네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전 사실 ㅂㄹ평을 늘어놓은 것이었는데 말이에요.” 우리는 마지막 짐을 트랙터에 실었고, 나는 트랙터를 돌려 유적지로 향했다. 5 분 뒤 월터 갠더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직도 출발하지 않았다면 해질 무렵까지 주 유적지로 가는 건 상당히 어려울 거라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떠들어댔고, 나는 올가와 함께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외따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내가 말했다. “음, 정말 하루다운 하루였죠. 적어도 색달랐으니까요.” “맞아요. 오늘은 어찌 됐던 색다른 날이였어요.” 올가가 말했다. “기억 안 나?” “뭘요?” @p 287 그녀는 못 참겠다는 얼굴이었다. “오늘 우리가 하늘을 봐야 하는 이유가 뭐지?” “아아, 왜냐면... 아, 맞다. 올드린 호가 에어로 캡처하는군요. 1시간 내로 하겠 네요. 태양이 떠 있을 때도 보일까요?” “글쎄, 내 추측이 맞다면 보이든 안 보이든 간에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하 게 될 거야. 물론 아주 높은 곳에서 말이지. 태양이 아주 낮아져 있을테니 보일 지도 모르겠군.” “뭐가 보일 지도 모른다는거죠?” 뒷좌석에 있던 이바나가 물었다. “올드린 호요.” 그녀가 말했다. “첫 번째 에어로 브레이킹이 1시간쯤 뒤면 있을 예정이고, 일부 볼 수 있을 것도 같거든요.” 이바나가 말했다. “물론 낮에도 보여요. 여러분들이 올 때도 그랬거든요. 저한테 물어보지 그러 셨어요?”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두 남자와 함께 시끄러운 입씨름을 하기 시작 했다. 나는 갠더 선장이 정거장을 인수했을 때 그녀 쪽 선원들이 외 그렇게 안 도하는 얼굴이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우리는 30분 정도 되는 길을 달렸고, 우리 앞으로 그림자가 꽤 길게 펼쳐질 무렵 이어폰을 통해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를-그러나 이상하게도 귀에 익은 듯이 들리는-목소리가 들렸다. -제2유적지 탐사단, 내 말 들리나?“ 내가 말했다. -똑똑하고 깨끗하게 들린다. 본인이 누구인지 밝혀달라. @p 288 -스카티 존스턴이다, 제이슨. 현재 첫 번째 에어로 브레이킹을 위해 올드린 호 를 조종중이다. 역추진 로켓을 발사하기까지 10분 남았다.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갠더 선장과 이야기하다 우연히 너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연결시켜줬어. 어떻게 지냈니? 뉴스를 보면 이곳에서 늘 즐거워하고 임무에 충 실한 모습이던데. -아, 내 모습을 새로 녹화한 테입이 한동안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불편한 행성은 아니야, 스카티. 하지만 마가리타는 없을 거다. 스카티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절부터 알고 있는 오랜 친구였다. 우리는 테니 스팀 복식 파트너였고, 여학생 클럽 멤버들로 우글대고 달짝지근한 음료를 파는 그런 술집에 자주 갔었다. 그의 가족은 속칭 내프에프였다. ‘신흥 아프리카인’ 이라는 말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인데 2012뇬애소 2025년 사이 경제 붐이 일었을 때 상승 기류를 타고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20세기에는 0114부자들의 붐-사업은 잘 되지만 고용에는 별 변화가 없는 시대 -이 많았지만, 21세기는 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방대한 신기술과 거대한 프 로젝트들 때문에 언제든지 일자리가 있었을 뿐 아니라 더 나은 직업을 위해 언 제든지 훈련받을 수 있었다. 비즈니스계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찾기 위 해 소리질렀고,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갈 수만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 다. 내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었을 때에는‘내프에프’가 신종 속어었다. 하지 만 5년 전 이 말도 사라졌는데, 이젠 더이상 특이하게 보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많은 단어들이 자취 @p 289 를 감췄는데-빈민가, 스페인어권 지역, 홍등가 등의 단어 들이다-그들이 지칭 하는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드린 호. 선원 명단에서 네 이름을 못 본 것 같은데. -마지막 순간에 교체됐어. 캘빈 호가 입을 이만큼 내밀었지. -제가 거기 있는 걸 알았더라면 너한테 편지 편지 보냈을 텐데. 스카티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한테서 온 편지를 받아봤을 텐데가 맞는 말 아닐까? 그나저나 너희 어머니 께서는 네가 편지를 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신께서 최근에 보내신 편지도 열 통이나 네가 읽어본지 않았다고 하시던데. 늘 자동 수신되도록 편지를 보내 신다는데, 아마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러실거다. 갠더 선장님께 편지를 써서 널 한방 먹이라고 할까 하다가 놀라게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 아서 말이지. 아므튼 이제 역추진 로켓 발사까지 6분 남았군. 끊어야겠다. 하지 만 마가리타가 없다니 실망스런 해변 여행이 되겠어. -좀 있다 보자. 스카티. 트랙터를 계속 움직이면서 오른편을 보았더니 태양이 분화구 저 멀리 남쪽 벽 에 드리워져 있었다. “정말 지미있겠는데.” 올가가 말했다. “그 사람은 분명 올드린 호를 타고 귀환할 테니까 친구와 함께 본국으로 돌 아가게 되겠군. 게다가 함께 지낼 사람도 생기고.” 이건 그다지 애매모호하지 않은 암시였는데, 올가는 에매모호한 사람도 못됐 다.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사람들이 예전에 가지고 있는 솜씨를 잃을 만한 멍 청한 짓을 할 때마다 직선적으로 말 @p 290 한다. 내가 말했다. “아, 괜찮은 친구죠. 하지만 여기 요령을 잘 모를 겁니다. 정말 일을 처리하 려면 상사님과 함께 해야죠. 그리고 말도 너무 많거든요. 학교 때 알았던 친구일 뿐이에요.” “그렇군. 그래도 아는 얼굴을 만나면 좋지.” 우리는 먼 북쪽 지평선을 바라보며 아무 말 않고 앉아 있었는데, 이젠 짙은 빨간색이 된 하늘에서 갑자지 밝은 섬광이 솟아올랐다. “지금 분명 정전됐을 거에요.” 내가 말했다. “와, 저렇게 큰 우주선이 빨리 달리니 구름이 생기는군요.” “그렇다고 말했잖아요.” 이바나가 잘난 체하며 말했다. 번쩍이는 커다란 불공은 1분 사이에 이쪽 지평선에서 저쪽 지평선으로 휙 달 려갔다. 우리는 밤을 보내게 될 침대가 있는 주 유적지로 다가가고 있었는데, 잠 시 뒤 내 귀에서 스카티의 목소리가 지직거렸다. -헤이, 제2유적지 탐사단. 내기에 건 돈을 내시지. 에어로캡처에 성공했어. 2~3 일 동안 원궤도를 그리겠지만, 곧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야. -네가 내 주위에 있다니 반갑구나, 스카티. 그는 나보다도 더 거친 방법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순환선인 올드린 호는 착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도 않으며, 부스터를 투하 할 수도 없었다. 대신 부스터를 감아들였고, 표면까지 에어로 캡처링하는 대신 일련의 에어로 브리이킹과 추진력 @p 291 을 계속 조종해 화성 주위의 극궤도 안에 안착했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자동 공장에서 연료를 싣고 궤도로 가서 부스터에 연료를 다시 채워넣을 것이다. 그날 저녁, 유적지 숙소 가운데 가장 큰 4번에서 차가운 저녁식사를 하고 있 을 때 올가가 말했다. “오늘 여러분께서 발견하신 게 어떤 건지 저나 제이슨도 알고 싶은데요.” 아바나가 말했다. “글쎄요, 이미지를 짜맞추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그리고 세부묘사를 깨꿋이 하기 위해 그림도 몇 개 더 필요하고, 컴퓨터로 좀더 확대시킬 필요도 있지만... 글쎄요. 제가 아는 한 니가와 박사 말이 맞다고 입증됐어요.” 본능적으로 우리는 폴 플루언트를 보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폈다. 그 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큰 동굴이에요. 후방 굴절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곳에 제법 큰 시설 을 건설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작은 무덤에 20여 명 남짓한 타이버인 시체도 있었고, 어느 우리주선에선가 가지고 온 듯한 보조 농장이 있는 것 같은데, 나리를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던 초기 기술에 관련된 물건 가운데 하나일지도 몰라요. 말씀드렸다시피 사진이 흐 릿하긴 하지만, 환영할 만큼 흐릿하진 않아요. 자 다음엔 뭘 할 건가요, 나리? 이게 성공을 거두면 할 일이 또 하나 있다고 한 것 같은데.“ 나리는 씨익 웃으며 마지막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교, 맛을 본 순간 얼굴 을 찡그렸다. “이 빨산색 토양의 성질을 변화시키려는 최상의 이유는 성질을 @p 292 변화시키고 나면 여기서 커피와 차를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벼도 요. 전 지금 쌀밥이 먹고 싶어 죽겠어요.‘ “나리...” “알았어요, 말씀드리죠. 남극을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토양 성질 변화 계획 이 결국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세요. 모두 이산화탄소가 있는 곳에서 이루 어졌는데, 남쪽에 봄이 찾아오기 직전에 그곳의 얼음을 어둡게 만들면 기압이 30 밀리바 정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게 되는 거죠. 9천 년 전이라 하더라고 지금과 상황이 꽤 비스했을 것 같아요. 조건이 우리보다는 그들에게 더 불리했다는 사실만 빼면요. 따라서 그들이 취한 행위의 흔적이 반 드시 있을 거라는 말이죠.” “후보지가 있나요?” “글쎄요. 남극에는 토양이 별로 없지만, 허튼, 레이리, 버라우스, 리에이스 분 화구 등 경도 240~260사이에 있는 네 곳을 둘러보년, 흙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 는데다 재미있게도 안 쪽에 작은 분화구들을 하나씩 담고 있습니다. 1990년대로 거슬러올라가보면, 주브린 같은 사람은 이곳의 물질을 더 많이 사용하면서 화성 임무를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몰이라는 사람은 핵폭탄을 이용하면 고운 먼지를 커다란 구름으로 만들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요. 봄이 오기 직전 남극 가까운곳에서 그런 일을 한다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먼 지는 비가 되어 내리면서 얼음을 까맣게 만둘고, 이 말은 다시 빨리 증발되면서 남아 있던 얼음 모자를 대기권으로 더 많이 되돌려 보낸다는 뜻이 되죠. 그 시 점이 되면 온난화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이 떼문에 온난화가 더 가속 되는 순환 고리가 시작되면서 따뜻하고 촉촉한 화성이 되는 거죠. 몰이 이런 주 장을 했던 1990년 @P 293 대 당시 아무도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에요. 그랬으면 타이버 물 건들이 모두 코로예프 호수의 진흙 아래 묻히게 됐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비 용도 저렴하고 또 쉽게 토양의 성질을 변형시키는 방법이었고, 타이버인들은 바 로 그런 일을 하려고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분화구들을 자세히 살펴보고-9천 년 전, 아마도 먼지가 있었을 작은 분화구등 말입니다-잔여 방사 선이 있는지도 알아보고 싶은 겁니다.“ -잔여 방사선이 있는지도 알아보고 싶은 겁니다. “전 언제라도 여행에 따라 나서겠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폴이 말했다. “박사가 예상했던 결과대로 일이 진행되는 저도 기분이 좋군요, 나리. 인사이 크러피디어에 그 사실을 입증하는 내용이 들어 있으면 더 기분좋을 것 같은데 요.” 올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폈다. “자 모두들 고맙습니다. 박사님이 뭘 찾아냈는지 알게 돼서 기쁘고 또 성공 하셔서 기분이 좋네요. 하지만 이제 물러날게요. 하루 종일 얼음 위를 뛰어다녀 서 그런지 졸린 것 같아요.” “여기 도착해서 저녁을 준비하던 사이 제가 잠을 잠을 잘 만한 곳이 마련돼 있나 살펴봤는데, 모두 마련돼 있더군요.” 폴이 말했다. “이곳엔 임시 침대가 다섯 개 마련돼 있습니다. 나리와 전 이 터널을 통해 1 숙소로 가고, 2숙소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으니 이바나가 쓰도록 하고, 당신과 제 이슨은 3숙소로 가면 되요.” 나는 약간 당황해 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 3숙소로 갔다. 남자 셋, 여자 둘에 숙소가 셋이면 뻔하지 않은가? 숙소로 들어갔더니 침대 두개가 붙어 있었다. 나는 올가를 곁눈질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지만 웃고 있었다. @p 294 "폴을 보면 우리 러시아 사람들이 왜 프랑스인들과 친한 지 알 수 있지.” 그녀가 말했다. “따로 떨어지게 옮겨놓을 수도 있지만, 아, 그러지는 말아요. 사생활을 즐길 커다란 기회이니 만큼....” “옮기지 않을 겁니다.” 내가 말하며 그녀를 안았다. “우리 둘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한 게 다행 이군요. 폴에게 아주 큰 신세를 지는 것 같아요.” 다음날 아침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눈치챌 수는 없었지만, 이바나가 무슨 일 때문인지 잔뜩 화가 나 있었고, 폴과 나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하고 있다는 인상을 분명히 받았다. 나머지 선원들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각에 도 착했다. 그날은 올드린 호에서 착륙선이 출발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반나 절만 일을 했다. 근무 시간이 끝나갈 무렵 갠더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음, 제이슨.” “네, 선장님?” “개인 전파 채널로 전환하게. 17번 채널을 쓸까?” 나는 전환했다. 잠시 뒤 그의 목소리가 귀에서 달그락거렸다. “자네들 제 2유적지 탐사단과 관련된 모종의 음모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네. 난 내 부하들이 뒤에서 몰래 이야기하길 바라지 않아. 그래서... 지금부터 자네와 올가가 상대바의 선실에서 함께 지낼 일이 생긴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숨길 생각 말게. 내가 그렇게 하도록 명령을 내리겠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구 @p 295 까지 걸어가야 할 거야.” “네, 선장님.” 나는 안도감에 기분이 약간 들떴다. 한동안 선장님이 하는 말씀이 정말 무서 웠기 때문이다. “공식 채널로 돌아가겠네.” 나는 다시 되돌렸고, 마침 갠더 선장님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헤이, 폴, 그쪽이 내기에서 졌어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기절하지 않던 걸요.” 그 전파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내가 생각한만큼 폴에게 크게 신세진 것은 아닌 듯했다. 그날 오후 늦게 햅으로 돌아오면서 올드린 호의 착륙선 두 대가 내려오는 것 을 보았다. 연료 탱크와 착륙 장치를 달고 있는 다른 피존들과 비슷하게 보였다. 연료가 이미 채워져 있고 떠날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착륙선 다섯 대가 서 있 는 곳 근처로 그들은 내려 왔고, 우리는 밖으로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스카티의 다리가 ‘얼음다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날 저녁은 무척 즐겁고 재미있었다. 다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 에 갠더 선장님은 그 다음날을 공식적인 첫 휴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올드린 호 선원들을 위해 네 번째 탐사선이 놔두고 간 낡은 햅을 설치했다. 그 들은 규칙적으로 햅이 참 근사하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물론 화성의 햅이 어떤 모양인지 잘 알고 있으며, 그런 햅을 준비해 놓았다고 우리에게 화를 내지 않겠 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비디오를 보거나 잡담을 나누며 휴일을 보냈다. 스카티는 그 와중에 짬을 내어 올가가 ‘귀엽기 하지만 너한텐 너무 과 @p 296 분해. 이 운좋은 녀석아’라는 말까지 나에게 건넸다.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 다. 그 다음 몇 주는 흐릿하게 지나갔다. 보통 연료 발전소는 최대 능력의 10분의 1 정도로 가동되면서 이산화탄소와 물을 액화수소와 액화 메탄올로 만들었다. 하지만 올드린 호의 귀환 여행에 쓸 연료도 만들어야 했으므로 발전소를 전격 가동시켰는데, 출발 하기 전 9개월 동안 필요한 연료를 만들 뿐 아니라 올드린 호에 공급할 연료를 싣고 갈 유조선에도 충분한 연료를 공급해 주어야 했던 것 이다. 유조선의 로봇은 똑똑해서 혼자 올드린과 랑데부한 뒤 코로예프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누군가가 그 유조선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나 지켜봐야 했는데, 늘 나나 스카티, 올가가 지켜보았다. 선원 수가 늘어나자 귀중한 유물들이 놓여있는 곳까지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얼음 속에서는 수상한 점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우리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냉동 기록속에 필요한 정보가 들어있다 면, 다음 세대에 찾을 수 있는 그 무엇이라도 들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보존 해야 하는 것이다. 2개월 뒤 키레이코가 작은 발표를 했다. “보여 드리는 편이 훨씬 더 쉽겠네요. 유적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여 드려야 해요.” 그녀는 검은색의 투명한 플라스틱 천막을 쳤고 그 중간에 우리가 부엌에서 쓰 는 것과 똑같은 절반쯤 물이 담겨 있는 플라스틱 통을 넣었다. “저 안에 넣기 전에 완전 살균을 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두꺼운 녹색 거품이 그 표면에 떠 있었다. “저게 도대체...?” @p 297 갠더 선장이 물었다. “살균한 다음 화성 표토를 2-3리터 물 안에 넣고 한 달 동안 방치해 두었습 니다.” 키레이코가 말했다. “진흙만 생길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염분과 텐트의 온기 때문에 흙 은 얼지 않았죠.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얼음 표본에서 얻 은 생식 세포를 물 속에 넣은 거죠. 5일 경과된 모습입니다.” “화성 생물이 아니라는 게 확실합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화성에 살게 되면 환경에 적응하는가에 달려 있죠.” 키레이코가 말했다. “이곳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타이버 DNA입니다. 그리고 이걸 보세요. 여러 분, 이산화탄소를 섭취하며 산소와 양분을 방출합니다. 철 산화물을 분쇄할 수 있는 효소를 분비하기도 합니다. 토양 성질 변화를 위해 변경된 조류가 아니라 면 무엇일까요?” 축하를 보내야 할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이었다. 분명 인터넷 상에서는 나리의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곳 화성에서는 한 가지 의견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나라를 지지했던 것이다. 축하 인사가 오가는 와중에 갠더 선장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자네에게 들려줄 소식이 하나 있네. 제이슨. 자네가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지 만, 화성 컨소시엄이 나더러 이 기지의 관리자로 무한정 남아 있어 달라고 부탁 했네. 궤도선과 햅을 두 배 이륙시키는 데 찬성했고, 이제 우리는 유적지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데다 또 다른 유적지까지 있으니 엄청난 기회가 된 거지. 알 다 @p 298 시피 올드린 호에 탑승했던 사람들 가운데 조종사 겸 우주 비행사는 존스턴밖 에 없지. 선장이며 엔지니어는 이곳에서 과학자로 남게 될 다목적성 인사들이니 까. 따라서... 올드린 호에는 자네와 스카티, 그리고 아리카나 C 박사 등 건강이 나 일신상의 이유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만 탑승하게 되는데 고작해야 두 세명을 넘지 않을 것 같네. 따라서 자네가 원하기만 하면 순환 임무의 지휘관을 맡을 수도 있는거지. 장교가 부족해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큰 승진 인데다 자네 기록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걸세. 나사도 우주 조종사 부대에 새로운 테렌스 선장을 두는 것을 개의치 않을테고 로리 커스튼도 분명 좋아할 거야. 물 론....“ 이제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건 전적으로 자네 결정에 따를 거야. 알겠나? 내가 아는 한 스카티는 여 기 남거나 아니면 혼자 돌아간다 해도 별로 개의치 않을 걸세. 따라서 자넨 이 제안을 거절해도 돼. 전적으로 자네한테 달린 문제니까.” “며칠 이내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까?” “열흘쯤. 친구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게. 곰곰이 생각해 보라구. 지금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어.” 파티는 좀더 계속됐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곳을 떠나 있었다. 현재 기준으로 선 아주 젊은 나이에 임무 지휘관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우주 프로그램은 계급이 높은 수준에서 많은 임무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지위까지 올라가려면 더 많은 자격이 필요했고 요즘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10 년 이상 거리는 게 보통이었다(조종사 혼자 승선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조종사 자신이 지휘관이 @p 299 될 수 밖에 없는 궤도 수화물 운반선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고 갠더가 이곳 에 영구 거주하게 된다면, 제7행성간 중대 내에는 지휘관 자리가 적어도 하나는 공석이 되고 내가 나이는 많지 않지만 다른 후보자들보다 경력이 훨씬 더 많으 니까.... 그리고 엄마와 로리 아줌마가 그 일을 놓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도 볼 만 할 것 같았다. 반면 현재의 작업 스케줄 대로라면 올드린 호의 착륙 이전까지는 인사이크러 피디어에 손을 댈 수도 없었고, 그들은 내가 떠나고 한참 뒤에야 인사이크러피 디어를 꺼내거나 아니면 꺼내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정 말로 내가 필요하긴 했다. 지구에선 임무 틈틈이 그저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람이 늘 필요했다. 지구에선 허가가 내려지지 않은 일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 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면, 전파를 통해 이야기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일 을 하면 되는 것이다. 아리카가 가수 축적 실험을 하고 잇었던데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빠서 나는 혼자 착륙선을 타고 북극으로 가 아리카의 기상대를 다시 작동시킨 적이 있었 다. 그 임무를 마쳤을 때 나는 눈을 감고도 기상대를 조립할 수 있을 것 같았 다. 그리고 난 아리카가 아닌데도 꽤 괜찮은 화성 기상학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 지역 가상대를 측정하여 다른 기상대에서 나온 결과와 비교해야 하는데 아리 카가 너무 바빠서 그 일을 할 수 없을 때면 말이다. 그리고 이곳엔 올가가 있다. 우습게도 나는 그다지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올가도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와 그런 식 @p 300 으로 오랫동안 친한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올 가의 얼굴이 무척 보고 싶을 것이다. 반면 지구에는 로리 아줌마네 집 뒷현관에 앉아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 난 우주 비행사가 될 거야. 난 저 곳으로 갈거야. 난 끊임없이 날 거야’라고 혼 자 다짐했던 그때부터 추구해온 경력이 있었다. 그날 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그 주 내내 얼음 자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일단 나는 올드린 호로 날아가 이제 몇 달 뒤 지구로 귀환 여행할 때 손봐야 할 부분들을 기록해야 했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아리카, 나리, 폴, 갠더, 찰라샤 제리안 그리고 올가를 태우고 남극으로 착륙선을 조종해 가야 했다. 마침내 임무 본부는 나리의 가설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단계를 거친 뒤 타이 버 유적지를 발굴해 내려가기로 했고 따라서 우리는 ‘과거 타이버인들의 침범 ’에 대한 증거-물론 9천 년 전 토양 성질 변화를 위해 핵폭탄을 투하한 증거를 일컫는 말이었다-를 모으기 위해 변형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 레이리 분화 구로 떠나야 했다. 수락하게 되면 지휘해야 할 우주선으로 떠나는 임무와 중요한 탐사를 위해 남 극으로 떠나는 임무, 모두가 그 주에 있었다. 그날 밤도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p 301 정체를 드러낸 비밀의 문 나는 예전에 화성에서 이륙해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지구에서 양키 클리퍼가 이륙할 때의 우르릉 하는 소리와 비교하면 이 곳에서의 이륙은 너무 부드러워 항상 약간 놀라곤 했다. 동이 트기 몇 시간 전, 나는 카운트 다운을 하며 피존에 혼자 앉아 있었다. 여 기선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에 올가, 갠더, 스코티, 그리고 나는 어디든 비행할 때마다 전날 미리 탱크 안에 연료가 있는지 확인하며 시험 작동을 했고 이륙 직 전 다시 한 번 작동해 보고 컴퓨터에게 코스를 정하도록 한 뒤에 이륙했다. 도 로에서 자동차를 빼내는 것보다 조금 더 복잡했지만 뉴욕에서 웨스트체스터 카 운티까지 향하는 고속 열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거쳐야 하는 과정보다는 훨씬 간 단했다. 카운트 다운이 0이 됐고 나는 1과 4분의 1 중력으로 꾸준히 올라갔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이자 나는 긴장을 풀고 경치를 감상했다. 명암계선이 코로예프 를 향해 흔들리고 있었다. 궤도에서 @p 302 돌아올 때 거주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거대한 캐즈마 보릴의 거의 정 반대편에 있는 극 얼음 모자 바로 아래 있는 깔끔한 흰색 동그라미만 찾으면 되었다. 화성을 이륙할 때 속도를 많이 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준 높이가 높았 기 때문에 많이 날아야 했다. 따라서 각도를 맞추고 궤도로 진입해 올드린 호와 만나기 전까지는 여유가 좀 있었다. 이 시간 동안에도 잠깐 생각할 수는 있었지 만 결론을 얻지는 못했다. 잠시 후 나는 창 밖을 내다봤다. 바깥 쪽으로 향하는 궤도를 그리며 극에서 멸어져 지구에 있는 에베레스트 산보다 한 배 반이 조금 넘는 높이의 거대한 화 산인 엘시엄 몬스-물론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 있는 태양계에서 가장 큰 산인 올림푸스에 비하면 보잘 것 없겠지만-를 향해 가고 있었다. 조금씩 높이 올라가 자 레이더에 올드린 호가 먼저 보였고(새로 개발된 방향 디스플레이는 이런 면 에서 좋았다. 대상을 창문에 작고 반짝이는 동그라미로 표시해 육안으로 확인하 려면 어느 쪽을 봐야 하는 지까지 알려주니 말이다). 잠시 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올드린 호의 모습은 우리가 화성으로 타고 왔던 주브린 햅과 비슷했고 그 중 심부는 HT를 개조한 것이었지만, 우리를 우주로 실어다주는 모든 빅 캔이 그렇 듯이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차이점들이 나타났다. 부스터가 더 짧고 납작했는 데, 이는 더 넓고 편편한 방열판 뒤에 숨어야 한다는 사실에 도움이 되었다. 중앙 거실 모듈을 감싸고 있는 프레임에는 아직도 선반받이들이 많아 보였지 만, 지금 뼈대에 붙어 있는 연료와 산소 탱크가 아홉 개였기 때문에 유조선이 더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유조선이 작업을 다 마치기 전에 스무 개가 될 것이었다. 올 @p 303 드린 호가 마침내 궤도를 떠나면 탱크에 있는 연료가 부스터 엔진에 공급되 고, 일단 올드린 호가 자리잡고 나면 탱크는 화성 궤도에서 사용될 때를 대비해 비축된다. 그러면 부스터가 길다란 케이블을 꺼냈고, 우주선은 인공 중력을 내기 위해 회전하기 때문에 선원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면 되었다. 오늘날에는 우주 탐사기의 값은 매우 저렴했고 효율적으로 간소화돼서 몇몇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 우주 깊숙한 곳 순환선에 서 실험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공 중력 때문에 안정적이지 못할 뿐 아 니라, 선원들이 제대로 실험하리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도킹항에 가까워지자 컴퓨터가 도킹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완벽했다. 조그맣게 짤깍하는 소리를 내며 올드린에 도킹됐다. 양쪽 다 기압이 양호했기에 나는 문을 열고 이제 내가 지휘를 하게 될 우주선으로 들 어갔다. 햅처럼 근사한 선실을 갖추진 않았지만, 이곳에는 기껏해야 네 명 정도 승선 할 것이다. 나는 조종실을 향해 걸어갔다. 주브린의 조종실은 이미 오래전 분해 돼 지금은 작은 병원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 조종실은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 었다. 스카티는 언제나 완벽주의자적인 경향이 있었으니까.... 나는 무중력 상태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지휘관 의자에 앉아서 벨트를 매고는 최초의 포보스 탐사를 떠났을 때 월터 갠더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지켜 보았다. 나는 인류가 만든 위대한 우주선에 앉아 있는 것이다. 70년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영예로운 이름들인 보스톡 1, 프렌드 쉽 1, 콜롬비 아, 이글, 아쿠아리스, 다시 콜롬비아..., 그리고 아버지의 우주선이 @p 304 었던 아폴로 2-15가운데 하나. 올드린 호가 화성 궤도로 여행을 한 것은 이 번이 네 번째였다. 명예로운 은 퇴를 하기전에 다섯 번 정도는 기회가 더 있을 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은퇴 를 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구로 갈 수 없기 때문에 화성 극궤도의 우주 정거장이 되어 지금과 비슷한 역할과 커가는 화성 거주지의 요구에 부합되 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지휘관이 되어 우주선 안에 서 있을 나를 상상해 보았다. 어렸을 때라면 온몸에 전율을 느꼈겠 지만 우습게도 지금은 행성간을 비행하는 조종사보다 실제로 하는 일이 더 없는 사람이 바로 그 임무의 지휘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앉아 스카티에게 언제 실행해야 할 지 그도 잘 알고 있는 일들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내릴 테고, 그러고 나서 휴스턴에 실행했다고 보고할 테지. 나는 가늠해 보았다. 아래 쪽으로 가서...글쎄, 책을 읽거나 타이버어 공부를 하 겠지... 하지만 이젠 타이버러를 공부해야 할 의미도 별로 없잖아? 그리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더더욱 의미가 없었다. 과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전문 분야들에 대해 지식을 충분히 쌓고, 전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 내 자신이 박차를 가할 수는 있겠지만, 무엇에 쓸 수 있겠는가? 선장 유니폼을 입고 있으 면 썩 괜찮아 보여서 몇 번 데이트를 할 수도 있겠지. 주말마다 올가에게 편지 쓰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우주선을 둘러보다 부스터 끝에서 방열판 끝까지 걸어갔다. 아무리 깎아 내려도 올드린 호는 자랑스런 역사를 지닌 위대한 우주선이었다. 그 안에서 그 다지 재미있는 일을 하며 지낼 것 같지는 않았고, 코로예프에선 어떤 일이 벌어 지고 있을까 늘 궁 @p 305 금해 하며 지내리라는 것을 머리 속 깊이 알고 있었다. 나는 우주선은 완벽한 상태라고 적고-조심스럽게 조종했던게 분명했다-, 2-3 시간 동안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점검했다. 스카티는 자신이 직접 점검 하길 바랄 테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도 몇 사람 승선해 그가 지휘관이 될 수 있 었으면 하고 바랐다. 혼자 귀환하게 된다면 조종사밖에 될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리고 나는 진심으로 그가 지휘관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경력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인터넷을 통해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그가 레이리 분화구의 임무에 대해 어떤 예감을 느낀 적이 있었느냐고 질문하면, 나는 아니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그는 왜 모든 사람들이 남아있었느냐는 질문을 할 것 이다. 그럼 나는 난 교과서대로 사는 조종사고, 갠더 선장님은 정말 교과서대로 사는 타입이며 어느 누구도 거길 떠나서는 잘 살 수 없었으리라고 말을 할 것이 다. 그럼 우린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계속 나눌 테고, 그는 내가 장난을 치고 있으며 그를 짜증나게 만들려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몇 년 동 안 설명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 실행하는 연습만 하며 살아왔다. 게다가 나사는 똑똑하게도 전세계 공유 우주선 조종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특수 조종이나 메뉴 옵션이 있는 우주선을 조종하더라도 똑같은 방식이었다. 나사와 나는 똑같은 원칙에 따라 일을 했는데 그건 무술인, 훈련 하사관, 준의료 종사 자, 유격수, 발레리나들에게도 잘 알려진 원칙이다. 즉,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법 으로 아주 오래, 아주 자주 연습하면 생각할 여유가 없더라도 올바른 일을 올바 르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하강하다가 착륙선 위 쪽이나 옆 쪽에서 무엇인가가 강하게 내리친다 하더라도, 모든 사 @P 306 람들은 안전벨트를 매고, 모든 물건들도 다 묶여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떨어지 거나 실험실 물건들이 쏟아질까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시간적인 여유 가 없기 때문에 걱정하지도 않았다. 나는 즉각 손을 앞으로 뻗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통제 소프트웨어에게 착륙선을 다시 궤도로 돌리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 이다. 캡슐이 휭휭 돌아가며 하늘을 향해 올라가자 4중력의 가속이 우리를 밀쳤다. 분화구 속에서 타이버의 비밀을 지키는 유령이 우리를 밀어내는 것처럼 무엇인 가가 우리의 엉덩이를 찼다. 하지만 우리는 상승했고 나는 프로그램을 다시 궤 도 속도에 다다르기 전 코로예프로 향하게 했다. “저게 뭐지?” 모든 이들의 수다를 중단시킬 만큼 위엄을 담은 목소리로 갠더가 물었다. “내기를 건다면 말입니다. 선장님. 꽤 두꺼운 이산화탄소 얼음에 부딪힌 것 같습니다. 코로예프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고 북극에도 거의 없지만, 남극은 이 산화탄소가 많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그렇죠, 아키라?” 내가 말했다. “맞아요.” 그가 말했다. “원일점일 때 겨울이 되는게 극이기 때문에 그곳 겨울은 더 길고 더 춥죠. 그리고 여긴 늦가을이라 화성 대기권의 4분의 1 정도가 남극에서 얼게 되어 있 습니다. 그 분화구 안으로는 깊이가 0.5 미터 이상이 될 정도로 밀려갔을 겁니 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전 착륙 지점을 찾느라 선회하며 옆 쪽으로 날고 있었 @p 307 죠. 고도가 아주 낮았기 때문에 불꽃이 땅에 닿은 거죠.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데워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거죠. 죄송합니다. 선장님, 미리 계획했더라면 이런 거친 비행은 없었을 텐데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이 어떻게 잘못될 지 사전에 미리 다 알 순 없지. 이제 하루나 이틀 뒤 다시 올 때는 건조하고 메마른 곳을 선정해 그곳으로 가야겠지. 올드린에 있는 카메라로 정확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알아보자구. 그런데 정말 잘했네. 만약 일반적인 방법으로 비행 취소를 했다면 땅 쪽으로 취소되면서 또 다른 폭파가 일어나고 고도가 더 낮아졌을지 몰라. 그런식으로 계속 폭파하면서 연료가 모자 라 아주 불안한 착륙을 하거나 뒤집히면서 부딪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 “전혀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습니다, 선장님. 땅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지, 우주선이나 우주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었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해야 해. 시간이 나면 제이슨, 표준 화성 항해 프로그램에 다 서브 루틴을 몇 개를 추가해 착륙선 뒤에서 이산화탄소 압력으로 인한 폭파 가 발생했을 시에는 궤도를 향한 비행이 취소되도록 만들어야겠네. 모든 조종사 들이 자네처럼 훌륭한 기지를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음 있었던 비행은 육체적인 위험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 도 아니었지만, 아주 재미있는 비행이었다. 우리는 나리가 폭탄 투하 지점이라고 예상하는 장소의 가장자리에 있는 아주 넓직한 바위를 골랐고 나는 직하강 하는 방법을 선택해 착륙하는 동안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물건이 없도록 했다. 그래 도 내 @p 308 려 앉을 때 커서는 비행 취소 시퀀스 위에 놓여 있었고, 내 손은 버튼 위에 얹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완벽한 정상 착륙으 로 바위 위에 내려앉았고, 내가 엔진을 끄자 선장님은 어서 일을 시작하라고 신 호를 나리에게 보냈다. 신호를 받은 나리는 모든 선원들에게 신속히 처리해야 할 일들을 신속하게 배당했다. 그를 위해 일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일이었다-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지만, 할 일은 늘 많았고 또 언 제나 복잡하고 급한 일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부분도 들어 있었다. 화성의 남극은 겨울이었고, 레이리와 남극간의 거리는 코로예프와 북극 간의 거리보다 가까웠 다. 긴 밤은 이미 시작되었고 달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커다란 분화구 안에 자리잡은 작은 분화구 안은 아주 어두웠다. 처음 할당된 시간은 이 부근을 둘러보기 위한 작은 불을 설치하느라 다 지나갔다. 우리는 토양 샘플을 채취하고 방사선을 측정하고 토양 위에서 작은 화학 검사 를 해 보며 약 10시간 동안 어두운 경사길을 올라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원하는 데이터를 모두 얻어 분석을 마칠 때까지 나리는 진행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C 박사와 폴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제대로 잘 진행되고 있 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착륙선 안에서 나리와 아리카에게 이번 일에 관한 이야 기를 꺼냈는데 호의적이지만 애매한 대답을 얻었다. 돌아오니 마침 함께 저녁 식사할 시간이었다. 나리는 3시간 정도만 경과하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올가와 나는 그 시간동안 산책하기로 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리가 어디 있 는지 다들 알 수 @p 309 있도록 트랜시버를 가지고 다녔는데 이것은 완벽한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 선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속삭이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방 해햐진 않았다. 우리는 최소한 적게 넘어지기 위해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오랫동안 걸었다. 여압복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손을 잡았어도 별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편안 했다. 올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정말 대단한 탐사였어. 겨울 동안 주브린 햅 안에 머물면서 분석을 하게끔 계획이 세워졌다니 다행이지 뭐야. 예전엔 그렇게 어두운 곳에 가본 적 이 없는 것 같아. 겨울을 여기서 보내지 않아도 되어 정말 다행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가 그녀가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곤 우물거렸다. “어, 으... 음.” 뭔가 중요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지구에서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음, 나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요. 스카티는 올드린 호를 타고 귀환하게 될 테고 난 이곳에 영구 체재하겠다고 자원할 겁니다. 만약, 당신이 괜 찮다면... 내 말은, 만약 당신이 만약 나와 헤어질 생각이라면 여기 있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과 건물 다섯 개는 당황스러워 하겠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나와 헤어지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아니고, 그러니까 내 말은... 이런, 젠장, 올가, 당신이 원한다면 머물러 있을 생각이에요. 어쨌든 난 여기 머무르게 되겠 지만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머무르는 겁니다.” @p 310 여압복을 입고 포옹을 하는 것 또한 서로에게 별 느낌이 없었지만, 중요한 건 생각이었다. 우리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리는 결과를 뽑아 냈고, 모두들 끊임없 이 재잘대고 있었다. 레이리 내부 분화구는 핵폭탄에 의해 생긴 것임이 증명되었고, 핵분열 물질의 붕괴 상태로 추측한 폭파시기는 지구 기원전 7000년으로, ‘가설과 완벽하게 맞 아 떨어지는군’이라고 플루언트는 말했다. 파티 도중 나는 갠더와 단 둘이 대화를 나누며, 머물러 있을 결심을 말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그는 매우 기뻐했다. 그 일이 해결되자 화성 극의 긴 여름-지구 시간으론 6개우러이다-은 매우 즐 겁게 지나갔다. 육체 노동은 힘들었지만 일손은 충분했다. 나는 좀더 깊이 공부 할 시간이 충분했고, 점점 더 단순한 일손에서 벗어나 진정한 조사 보조자가 되 어갔다. 인사이크러피디어가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예정 시일을 약 2주 가량 남겨놓던 날, 올가와 나는 커다란 주브린 햅-물론 모든 사람들이 끼여 앉아 있어 별로 커 보이지 않는 햅-안에서 월터 갠더 앞에 섰다. 그는 이 일에 대해 지구와 수 차 례 의논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각계 각층의 정치인, 관료, 법관 등이 다 끼여 들어 자신들이 이 일을 성사시키기까지 조금이나마 기여한 부분이 있게끔 만들 려고 애썼다는 뜻이다. “스무개가 넘는 정부 기관과 이사회의 상충되는 명령들 속에 우리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건 아니다. 어쨌든 그는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으며, 아 @p 311 직도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서, 그리고 코로예프 분화구가 화 성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하나가 될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아니, 비단 화성만이 아니죠. 태양계 여러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바꿔야겠습 니다.” 그는 계속해서 인사이크러피디어와 실패로 돌아간 타이버 이주지에 대한 이야 기를 하더니 마침내 이런 말을 했다. “생명과 지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타이버인들처럼 실패를 한다면-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 뒤를 잇는 누군가가 있을 테고, 얼마 나 오랜 시간이 걸릴 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우리 은하계는-그리고 그 너머는- 지식을 갖춘 생명체들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치르는 이 행사가 너 무나도 소중한 까닭은 바로 이렇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적 삶이 존재해야만 어떤 장소든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화성에 사는 사람 들을 모아놓고 사회적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을 치르고 있습니다. 올가와 제 이슨이 하게 될 선서가 중요한 것은 비단 이 두 사람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화성에도 인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또 하 나의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올가와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나머지 예식은 여느 군대식 결혼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스카티가 신량 들러리 역할을 했고 지구로 돌아 가면 하루 빨리 반지를 보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가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애. ” 올드린을 타고 온 몇몇 선원들은 나사가 늘 보내오는 이상한 @p 312 오렌지 혼합 주스를 발효시켜 갠스(GANTH)라는 음료수를 만들어 냈다 ‘몸 에 유해하지는 않으나 기술적으로 조잡한’이라는 뜻의 말이었다. 올가와 나는 의식 진행상 필요한 정도만 마시고 다시는 입도 대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 음료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고, 파티는 점점 활기를 더해갔다. C 박사는 농장에서 다량을 생산되는 양파에서 설탕을 추출해 그것과 함께 유 상 콩기름, 말린 감자로 만든 밀가루, 아무도 모르는 다른 원료들을 섞어 케이크 비슷한 것을 만들어 냈고, 그 위에다 생물 실험실에서 쓰이는 독성이 없는 파란 염색약으로 ‘제이슨과 올가의 앞날에 축복을’이라는 문구까지 적었다. 그후 일주일 동안 사람들의 혓바닥은 계속 파랬지만 병에 걸린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독성이 없다는 말은 사실인 듯 했다. 케이크는 달짝지근한 베지마이트 맛이었다. 올가와 나는 한 조각씩 간신히 다 먹고선 자부심에 빛나는 얼굴을 하며 서 있는 찰라샤제리언에게 진심으로 고맙 다는 말을 해야 했다. 그 이상한 케이크 덕분에 갠스는 더 이상 화성에서 생산 된 식품 가운데 가장 이상한 식품 취급을 받지 않게 됐다. 그날 저녁, 나는 동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했다. “이제 3주만 지나면 인사이크러피디어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얼음 자르는 기구말고 다른 것으로 작업을 할 수 있겠군요. 지난 몇 달 동안 좌절감도 많이 느꼈지요.” 동은 입을 꼭 다문 채 비밀스런 미소를 지었다. “당신한테는 이 말을 해도 될 것 같군요. 사람들은 인류학자가 타이버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들 생각하고 물론 제 노력의 대부분은 그 방면으로 쏟 아지겠죠. 하지만 이번엔 @p 313 예상치 않은 기회가 생겼어요. 새로운 사회가 탄생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거 죠. 바로 코로예프 분화구 거주지 문화말입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도 있나요?” 올가가 내 옆에서 물었다. “여지껏 범죄로 인한 문제도 없는 듯하고, 우범 지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 이들을 키우기에 아주 알맞은 곳이 되겠지만 지구에는 2-3년 전에 미리 알려서 적합한 거주자들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나는 그가 갠스를 꽤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어요, 제이슨. 앞으로도 결혼식이 많이 있 을 테고, 당신과 올가가 치른 방식이 모델이 되겠죠.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편의 상 치른 예식이 이제부터 화성에서 거행되는 결혼식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요. 지금으로부터 20년 동안에는 바꾸기 힘든 전통이 되겠죠.” 그때 나는 그의 말을 믿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20년이 흐르는 동안, 올가와 나는 화성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결혼식에 참석했다. C 박사의 이상한 케이크도 항상 등장했다. 이곳에서는 혓바닥이 파랗게되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 는 것이다. 그것은 전통이 되었고 그것이 없으면 화성의 결혼식은 끝난 것이 아 니다. 적어도 갠스는 썩 그럴 듯한 당근 맥주로 대체되었지만 말이다. 결혼을 한 지 한 달 뒤, 우리는 두 대의 강화 크레인이(한 대는 예비용으로)얼 음 무덤에서 인사이크러피디어를 들어 올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날 늦게 수 분이 모두 빠지고 난 뒤, 나리와 배실리는 그 위에 레이저 광선을 쪼였다. 잠시 후 자신이 꽂아놓은 수신기-30년 전, 메시지를 통해 들 @p 314 렸던 타이버어 설명대로 조심스럽게 만들었다-쪽에서 최초로 정보가 흘러나오 기 시작하자 폴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인사이크러피디어는 10메가보드로 일정하게 작동되며 며칠 동안 정보를 내보 냈고, 우리는 그 내용을 포보스, 지구, 그리고 타이버 기지로 전송했다. 동시에 그 내용은 두 개로 분리 구분된 컴퓨터에 기록됐고, 만약을 대비해 광학 보존도 했다. 그렇게 노력해서 손에 넣게 됐는데 실수로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 왔는데.... @p 315 테네시티 호-클리오 크리고린의 기록 2082년 타이버인들은 한 명도 없었는데 우리 역시 그들을 발견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폐허를 보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인사이크러피디어에 나와 있는 그래로였다. 자신들의 세계를 보존하기 위해 타이버인들은 ZPE를 작 고 빠른 스타 쉽에 넣은 뒤 그들이 침략자라 부르던 하늘 위 바위 덩어리들 사 이로 내보냈다. 10년 동안 폭파가 계속되자 1초 당 스무 개 정도의 바위가 때려 그 대단한 열기로 잘게 부숴져 버렸고 작게 부수어진 암석들은 언제라도 추락하 기 쉽게 되었다. 그 때문에 타이버 인들이 살던 곳은 지구에 있는 집 크기 정도 밖에 안 되는 수 십 억 개의 조각들로 쪼개졌고 그 보다 더 잘게 쪼개진 것들도 무척 많았다.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세상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난파되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다. 240년마다 한 번씩, 타이버의 대기권 위로 몇 달씩 자잘한 돌이며 쇳조각들이 무수히 쏟아져 상층 대기권에 곱고 어두운 먼지층 @p 316 을 형성했기에 기온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낮아졌다. 생물들은 파괴되었으며, 타이버인들의 세계는 핵 겨울보다도 천 배는 더 끔찍 한 지경으로 폐허가 됐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덕에 다시 한 번 그들은 폐허 속 에서, 그들이 떠났을 때와 비슷한 모습을 지닌 세계 속에서 살게 되었다. 터네시티는 이곳에 남아 타이버 계를 운항하는 순환선으로 강등될 처지가 되 었다. 급속히 발달하는 기술 때문에 이미 낡은 우주선이 돼 버린데다, 낡은 우주 선을 타고 돌아가는 것보다는 더 빠른 우주선을 기다리는 편이 더 쉬웠다. 그들의 도착은 아주 재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착륙선은 급속히 터네시티에 서 멀어져 타이버 대기권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팔라스의 넓은 평원을 지나 대 양을 향해 서쪽으로 아주 빠르게 달렸고,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우주선은 꼬 리를 아래로 한 채 거대한 도시인 캘렙스 외곽에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빌딩들은 대부분 무너져 있었는데, 240년마다 한 번씩 검은 먼지로 타이버가 덮힐 때마다 반복되는 추위로 생긴 미세한 틈 때문에 일어난 붕괴일 것이다. 타 이버에 도착한 첫 날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상징을 위한 것이었다. ‘그럴 만하지, 사네모토는 투덜대겠지만 우리는 상징으로 살아 나가잖아’라고 클리어는 생각 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걸었다. 타이버가 우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던 그 때, 캘렙 스는 중요한 대도시였기 때문에 반경이 몇 킬로미터는 되었다. 곱고 검은 먼지 가 그들 주위로 스쳐 불었는데 클리오는 마스크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들 위로는 창백한 띠를 두르고 있는, 가장 최근의 습격 때(1세기 전이었다) 발생한 듯한 검은 허리케인에 휘감겨 있는 주노의 거대한 몸체(그녀는 혼자 생 각했다. ‘이제 이곳에 왔으니 소사 @p 317 히라고 부르고 싶은걸’)가 밝은 빛을 내며 지구에 보름달이 비칠 때의 밝기 보다 2천 배나 밝게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밝은 빛이 있는데도 생기는 이상하고 쭈글쭈글한 그림자, 타이 버의 두터운 공기 속에서 아주 멀리까지 흘러가는 먼지, 빌딩마다 지적인 느낌 이 가득 풍겨남에도 불구하고 생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워하 며 걸어갔다. 마침내 그들이 바닷가에 있는 공원에 다다랐을 때 밝은 점인 켄타 우루스 좌의 알파 성 B가 주노의 아래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앞에 있는 바다 너머, 주노와 지평선 사이에는 똑같은 자리에 영원히 걸 려있는 밝은 구름이 있었다. 빛은 이상했다. 형광등처럼 그림자를 거의 남기지 않으면서 머리 위에 달려 있는 거대한 물질로부터 뻗어나왔다. 마지막 습격이 아주 최근인 1세기 전에 있었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지의 습격을 계속 받 은 타이버는 빙하 시대 정도로 추웠다. 여름이었는데도 바다는 얼어있었고 물가 에서도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들은 슐라스인과 팔라스인, 두 동상 아래까 지 계속해서 걸었다. ‘자메코시스의 기록’에서 보면 인간이 최초로 알게 된 신성한 유물이었다. 위대한 창설자이자 정복자인 구릭스도 작달만하지만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를 마주보고 있는 것은 키고 크고 호리호리한 와코펨이었다. 둘 다 팔을 밖으로 내 민 상태였다. 9천 년이라는 시간과 그렇게 많은 결빙을 거쳤는데도 그들이 인사이크러피디 어의 재료로 썼던 금속으로 만든 동상은 손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메코시스 가 무표정이라 표현하던 그 이상하고 야릇한 표정 또한 부드러워지거나 변하지 않았다. 클리오는 자신도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받침돌 주변에 있는 자갈 을 밟으며 앞으로 나가 와코펨의 다리를 잡았다. @p 318 그녀는 자메코시스와 메족스가 한 때 그랬던 것처럼 둘 사이에 꼿꼿이 서 보 았다. 그녀는 고급 상아처럼 아름다운 빛을 내는 작은 상자를 보았다. 상자 뚜껑 은 현재 타이버 어디서나 보이는 검은 먼지, 잘게 부서진 침략자나 이 행성의 침식된 표피에서 나온 먼지로 덮혀 있었다. 그녀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 서도, 또 65년 전에 달에 있던 타이버 기지를 날려 버린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 을 했다고 비난받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선 상자를 들 어 올려 뚜껑에 쌓여 있는 먼지를 털었다. 이제 그녀는 몇 년간의 연습 끝에 타이버어를 자신의 글씨 만큼이나 뚜렷이 알아볼 수 있었다. 죽은 형제, 자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국민들은 첫번째 습격이 잇고 난 뒤 6891번째 해에 우리의 새로운 희망인 이곳을 찾았으며, 우리 조상들의 지식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죽은 과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우리는 새 로운 희망국으로 돌아가야 하며 우리가 타고온 스타십으로 스무 개 이상의 세계 를 곧 방문할 것이다. 숨을 거둔 우리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도 우리와 함께 한다면 좋을 것을. 그는 하늘의 동쪽으로 뻗어 있으면서 지평선에 걸쳐 있는 듯, 천정까지 뻗어 있는 듯 걸려 있는 주노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표면을 넘어 서북쪽에서 슬금슬 금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동쪽으로 보이는 밝은 하늘 아래로 지구의 태양만 큼이나 크고, 그 태양과 똑같은 호박색 그림자가 있는 켄타우루스 좌의 알파 성 A가 뒤 쪽에 있는 고대 캘렙스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 작하면, 그녀는 수십 년 동안 연구했던 행성을 처 @p 319 음으로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이 탑위로 솟아오르는 외계 태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그 온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앞으로 더 먼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 죠.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그녀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새벽이었다. 먼지들은 새벽을 짙은 붉은 색으로 채색했고 캘렙스의 탑들은 새벽을 바탕삼아 또렷이 그 모습을 나타냈다. 빛이 검은 먼지를 건드리자마자 생긴 열기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기까지 했다. 그녀는 언제쯤이면 이 먼지를 털고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벌써 긍금해졌다. 저 우주 밖에는 그들이 따라잡고 어울려야 할 종족이 있었다. 만나고 난 뒤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