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버2권 추천의 말 이것은 정말로 공평하지가 않다. 우리 공상 과학 소설가들은 우주를 전부 다 소유한 채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다. 버즈처럼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떤 오류가 있는지 정확히 지적할 수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그들은 직접 공상 과학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정말로 질투가 날 정도 로 훌륭한 공상 과학 소설을 말이다. 그렇게 인정을 해야만 하다니 고통스럽다. 하지만 타이버와 같은 소설을 내가 집필했다면 나는 분명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미래의 우주 탐험이 내포하는 가능성에 대해 매우 많은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특히 미세하지만 거대한 유물인 영점 에너지 사용에 흥미를 느꼈다. 지 금은 고인이 된 노벨상 수상자 리처드 페이먼은 1입방 미터의 공간-어떠한 공간 이든 그 어느 곳에서든 말이다-내에는 전 세계 모든 바다를 끓일 수 있을 만한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에너지를 꺼낼 수만 있다면-이미 몇몇 실험실에서 성공을 @p 5 거두었다는 증거들이 있다-행성, 심지어는 운성으로의 여행은 비용이 저렴하 고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것은 학술적인 분야가 아니라, 인간 관계 및 행성 간의 정치에 대한 것이다. 외계인 사회 및 그들의 탐험 성공담과 재난 에 관한 묘사는 그럴듯할 뿐 아니라 때때로 매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 나 혼자 만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 해 방금 받은 편지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저는 지금 타이버를 절반 정도 읽었는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버즈는 자신의 우주 계획들을 매우 흥미있는 이야기로 담아 냈더군요.” 닐이라는 사람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아서 C. 클라크 @p 6 많은 전문가들의 기술적인 지원과 정보가 없었더라면 이 소설의 집필은 불가 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마이크 콜린즈, 칼 세이건 박사, 아서 c.클라크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를 주었다. 데이너 앤드류스 우주선의 역사와 여러 우주인 세대들에 관한 깊은 식견을 제공했다. 그레고리 벤포드 박사 많은 조언, 추측, 그리고 주장을 전달했다. 존 블라하 우주 왕복선 철거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광범위한 조언을 했다. 윈버그 차이 교수 중국의 정치학에 대해 조언했다. 휴버크 데이비스 엔지니어 관련 지식과 그의 이름을 빌려주었다. 마이크 듀크 @p 7 우주 물리학과 행성 과학 주석에 대해 도움을 주었다. 윌리엄 k. 하트먼 박사, 로버트 재스트로 박사 천문학과 관련된 주석과 상식을 알려주었다. 진 맬러브 박사, 그레고리 매트로프 박사 냉 융합과 우주선 추진력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톰 맥도나우 박사 지구외 문명 탐사 계획에 길잡이 역할을 했다. 크리스 맥케이 화성의 표면 상태에 대한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스티브 매리휴 궤도 역학에 대한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존 솔리 외계인 생물학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로버트 스탤 달의 공기에 관련하여 여러 가지 많은 조언을 했다. 로버트 M. 주브린 화성에 관련된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p 9 지구인 우주선 터네시티 호(서기 2069~2081) 클리오 트리고린: 역사학자 사네토모 가와무라: 천문학자 올샤브스키: 선장 타이버인 우주선 와코펨 조모스 호 승무원(기원 전 73세기) 오스폭 타로브: 선장, 팔라스 여성 케콕스: 황제 근위병, 팔라스 남성 포아퍼레시스: 선생님, 슐라스 남성 소이켄: 선생님, 슐라스 여성 메족스: 팔라스 남성 오폭스 킴나벡스: 팔라스 여성 프리캄: 슐라스 여성 자메코시스: 슐라스 남성 타이버인 우주선 이갤리테리언 리퍼블릭 호(기원 전 72세기) 데파리: 우주 항행사, 혼혈 여성 베펨: 우주 항행사보, 혼혈 여성 배제스: 선장, 혼혈 남성 세타키서스: 선장보, 혼혈 남성 아지어: 엔지니어장, 슐라스 남성 크루릭스: 엔지니어보, 팔라스 남성 베레맘: 1등 항해사, 혼혈 여성 티식스: 승무원, 팔라스 남성 @p 14 스트리옙틴: 정치관, 혼혈 암성 레리마식스: 의사, 슐라스 여성 진정한 부족민(세트포스인-원시 지구인, 기원 전 73~72세기) 라: 최초의 전사, 훗날 진정한 부족민의 님 이녹: 라의 후계자 메스라: 라의 손자 셋: 이녹의 사후 라의 후계자 에서: 라의 손녀 진정한 부족민 타이버인 노예 디에렌: 타이버인 노예, 오투즈와 자메코시스의 딸, 혼혈 프리록스: 케콕스와 오스폭의 아들, 팔라스인 위루즈: 메족스와 프리캄의 딸, 혼혈 메노뭄: 혼혈 남성, 위루즈의 아들 지구인(서기 1990~2010) 로리 커스튼: 인데버 호의 지휘관 크리스 터렌스: 인데버 호 제 1탐사 전문가 헨리 자네쉬: 인데버 호 조종사 헨리 자네쉬, 더크 로드리게즈, 샤론 골드만, 해럴드 스퍼이만, J.T.머피: 탐사 전문가 앰버 로마니 터렌스: 크리스의 아내 제이슨 터렌스: 크리스의 아들, 훗날 2033년 화성 탐사 조종사 시그 잘스버그: 사업가이자 세어스페이스 글로벌 경영주 @p 15 앨리슨: 크리스의 여자친구 빈센트 아우리치오: 천문학자 피터 미하일로비치 데니소브: 국제 우주 정거장 우주 비행사 겸 엔지니어 타티아나 할딘: 국제 우주 정거장 우주 비행사 겸 지휘관 프랑수와 레이몽, 지로 가와구치: 국제 우주 정거장 탐사 전문가 샤오베: 중국인 우주 비행사 겸 조종사 지앙: 중국인 우주 비행사 겸 비밀 정치원 타이버인(기원 전 1700년 및 그 이후) 투트레즈: 카레키프 탐사 기상학자 버키서스: 과학자 스테라즈, 바이버레니스: 시험 조정사 구릭스 조와쿠: 장군, 슐라즈 정복자 루마즈: 구릭스의 시녀 와코펨 조모스: 선장, 팔라스 발견자 페레스 요락: 정치인 코로예프 기지의 지구인 과학자 다스 찰라샤제리언, 이바나 보지스, 로버트 프랭, 아리카 야마다, 짐 플랜 지구인(2033년) 윌터 갠더: 화성 코로예프 분화구 탐사 지휘관 올가 트리고린: 화성 코로예프 분화구 탐사 엔지니어 겸 1등 항해사 나리하라 니가와, 일자 비어린, 베실리 체버티긴, 동 더화, 폴 프루언트, 키레이코 마사치, 쩐 초우정: 화성 코로예프 분화구 탐사 전문가 @p 19 새로운 행성을 찾아라 “야, 뽀족귀! 갈 준비됐니?” 내 방문을 두드리며 메족스가 소리질렀다. “너로구나, 이 화석 덩어리야.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여기 앉아서 계속 생각 하고 있었다구...” 나는 문을 열었다. 메족스는 거의 말도 하지 못하던 세 살부터 다섯 살 때까지 가장 좋은 친구였 다. 아테레보프에 있던 그 민간 고아원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우리는 늘 여기, 바람섬의 우주 승무원 훈련소에서 살았다. 메족스도 부모나 집 같은 건 기억 나지 않는다고 했다. 팔라스인인 메족스는 나보다 작고 땅딸막하며, 평평한 코와 둥그런 귀, 그리고 털이 많은 몸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슐라트인인 나는 긴 코와 귀에 키는 크고 말랐으며 털은 거의 없다. 메족스와 프리캄, 오투스, 이 세 명만이 내가 알고 있 는 유일한 아이 @p 20 들이었다. 메족스는 자기의 가방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였다. “나는 옷가지들을 모두 이 가방에 넣었어, 케콕스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넌 어떠니, 자메코시즈?” “거의 비어 있는 가방 하나뿐이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메족스는 언제나 모든 것을 경쟁하려 들었고, 지금 그는 비참한 패자였다. “얘들아! 케콕스 선생님과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빨리 움직이래! 니네들이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우주선 밖으로 나가도록 하겠대.” 오투스가 복도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는 어른들의 재미일지도 모르는 위협에 이미 익숙해 있지만, 어쨌거나 가 방을 쥐고 홀 안으로 달려갔다. 언제나처럼 어른들은 팔라스인 아이들을 위해 창가의 자리를 미리 잡아 두었 고, 오투스와 메족스를 위한 그 자리는 나와 프리캄은 감히 생각해 볼수도 없었 다. 다행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이켄 선생님이 자기 옆자리를 하나 남겨 두었 고, 나와 프리캄은 어떻게든 함꼐 볼 수 있도록 꼭 붙어 앉았다. 바람섬에서 팔라스까지는 긴 여행이었다. 비행선이 계속 서쪽으로 날았기 때 문에, 우리는 창문에 딱 붙어 앉아 있었다. 우리 바로 뒤에는, 우리에게 조금이 라도 위험이 있을 때 우리를 구출할 태세가 되어 있는 경호원들이 열 명도 넘게 있었다. 비행할때는 늘 그랬다. 등 뒤로 태양이 졌고, 곧이어 조이로이도 졌다. “저 별이 저렇게 빛나는 걸 볼 날도 며칠 안 남은 것 같아. 신세계에는 두 번째 별이란 없으니까, 저렇게 밝은 별은 존재하지 않을 거야.” @p 21 지난 며칠 동안 선생님들은 계속 우리에게 모든 걸 유심히 잘 보아두라고 말 했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집에 돌아올 때 이미 우리는 인생의 중년이 되어 있 을 거라고 하면서... “조이로이만큼 밝은 별은 없을지 몰라도 다른 볼 것들은 많을거야. 세트포스 계의 밤 하늘에는 더 많은 행성들이 있고, 어떤것들은 아주 빛나기도 하지. 네가 가장 그리워하게 될 건 소사히의 모습일 거야. 신세계에는 커다란 달이 있어 아 주 밝게 빛나지만, 소사히랑 비슷한 건 아무데도 없지.” 소이켄 선생님은 나를 안아주었다. “달이 뭐예요?” 프리캄이 물었다. 나는 정말로 그애가 몰라서 그렇게 묻는 건지, 아니면 알면 서도 선생님의 주목을 받고 싶어 그러는 건지 알수가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예 쁘고 활발한 그애의 목을 조르는 생각을 했더라도 사람들은 그애 모습에 웃어주 고 말 것이다. 소이켄 선생님은 대답해 주었다. “소사히에 대해서 우리 별은 달이란다. 큰 별 주위를 도는 작은 별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우리가 가는 새 행성의 달은 소사히보다 크지 않을 거야. 아 마 태양보다 크지 않고, 아주 희미한 하늘의 작은 점 같은 것이 되겠지. 얘들아, 이제 곧 경계선을 넘으면 소사히를 보게 될 거야. 놓치지 말고 꼭 보렴.” 한참 후에 거대하고 희미한 달이 수평선에서 떠올라 하늘의 6분의 1쯤을 덮을 만큼 솟아올랐다. 언제나 팔라스 위로 올랐다.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팔라스인 과 슐라스인은 소사히 바로 아래에서 플라스의 중심부에 있는 산 협곡에서 만들 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소사히가 언제나 우리의 영혼을 상기시켜 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 했다. @p 22 예전에 한 늙은 슐라스인이 길거리에서 슐라스인은 바다의 어머니가 창조했 고, 팔라스인은 팔라스에 사는 동물의 후손이라서, 짐승처럼 생겼다고 소리를 질 러 대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데리러 왔기 때문에 더이상 듣지 못했고, 다만 왕실 경호원들이 군중들을 돌려보내는 모습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나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내게 얘기했었다. “미친 사람들이 무어라 지껄이든 우리는 모두 같은 종족이야. 물론 코라든지 생김새가 많이 틀리긴 하지만 우리는 같단다. 자메코시즈, 그걸 잊어서는 안 돼. 너는 슐라스인이됐지만, 착하든 못됐든 팔라스인과는 같단다. 메족스에게는 이런 얘기를 안 했지만-걔는 좀 민감하잖니-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지, 지금은 아주 고상한 팔라스인도 많단다. 그리고 여기 같이 있는 승무원들은 모두가 친구고, 제1차 대폭발 때 그들이 없었으면 우리는 지금까지 지내올 수 없었을 거야.” 나는 모든 걸 다 이해한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메족스는 내겐 제일 좋은 친구 였고 팔라스인이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잠시 우스운 표정을 지었는데, 그 게 뭔지는 석연치 않았다. 세상에는 팔라스인을 미워하는 슐라스인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모든 승무원은 동등하다고 되어 있지만, 프리캄과 나는 팔라스인과 함께 있을 때에는 주의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것은 오래 전에 나와 프리캄이 다른 팔라스 아이들과 다르게 취급되는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슐라스의 고아원에 서 선택되어진 아이들이었다. 분명히 가장 영리하고, 안정적이고(그게 무엇이건 간에), 그리고 가장 능력있는 아이들로 뽑인 것이다. 오투스와 메족스는 팔라스 의 두 왕가로부터 활동적이고, 많은 영향력을 가진 @p 23 부모로부터 선택된 아이들이었다. 우리가 돌아올 때쯤이면 메족스나 오투스는 국왕이나 세습 왕조 중의 한 명으로 선택될 지도 모른다. 최근의 새 국왕은 모 두 루폭스 가문이었고, 메족스는 루폭스 가문의 젊은 세대 중에서 가장 계열이 높았다. 물론 그 전에 무슨 일이 생길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긴 세월을 지나 어른으로 돌아오게 될 테니... 지금 당장 나에게 중요한 것은 우주선 앞에 펼쳐진 바다로 부터 소사히가 솟아오르는 장엄한 광경을 프리캄과 한 창문으로 나누어 보아야 만 한다는 사실이다. 우주선이 고르쥬 전쟁터에 닿았을 때 소사히는 아스라이 멀어졌다. 참을성 없는 프리캄은 불편한 듯이 좀 꿈틀대더니, 창문을 포기하고는 다시 소이켄 선생님에게 주목받으려는 낑낑거림을 시작했다. 창문을 혼자 독차 지하게 된 나는, 머리 위로 짙은색의 물결들이 거대한 행성의 따뜻한 빛 아래로 몰려드는 광경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깨웠을 때는 팔라스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이미 하늘은 온갖 종류의 비행선들로 가득했다. 거대한 여객기가 높은 고도에서 천천히 하늘을 가 로질렀다. 큰 수송기들은 바다 가까이에서 날고 있었으며, 작은 경주용 요트들은 이리저리 작은 점을 만들며 다녔다. 물론 위협적인 검은 경찰기와 푸른 색의 구 조기도 항로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메족스와 오투스는 각자의 집으로 훈장을 가져다 준 경찰기 수를 세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오투스가 월등히 앞서고 있었고, 메족스의 목소리에는 그다지 유쾌 하지 않은 기분이 느껴졌다. 오투스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 아이야말로 메족스에게 정말 당당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오투스는 메족스의 제일 약한 부분을 놀려대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지금은 @p 24 메족스나 오투스 자신의 어머니 모두가 실제로는 왕족이 아닌데, 그저 언젠가 황후가 되어 보려는 기회를 위해 왕족에게 시집을 왔는지도 모르는 노릇이라는 말로 메족스를 놀려 대고 있었다. 오투스의 목소리가 커져 갔고, 메족스의 흥분은 위험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곁에 있던 프리캄이 긴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란스러워질 때마다 그 소 음의 출처가 어디든 간에 우리가 야단을 맞게 마련이었으니까. “조와쿠 가문도 내 쪽으로 넣어야 해. 우리 집안으로 들어왔거든. 그럼 이제 다시 시작하면 공평한 거야.” “말도 안돼, 지금 우리가 조와쿠 가문 영역을 지나고 있는데, 저기 보이는 경 찰기 대부분이 다 그 집안 거야. 니가 말하는 공평함이란 어떻게든 네가 이기게 되는 식을 말하는 거겠지.” 오투스는 크게 말했다. 메족스가 벌떡 일어나 오투스 쪽으로 손을 뻗쳤지만, 오스폭타로브 선장이 그 전에 그이 손을 잡고는 “앉아!” 하고 엄하게 소리쳤다. 타로브 선장은 공식적으로 선생님일 뿐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그녀를 선장으 로 생각했다. 타로브 선장은 메족스를 길들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대 부분은 그를 무시해 버렸다. “조용히 하고도 모두 할 수 있는 일이야. 적어도 몇 십 년 동안은 고향을 볼 수 없게 되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알겠니, 자메코시즈. 프리캄?” “네, 죄송합니다, 선장님.”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우리는 언제나처럼 사과를 했다. “오투스는?” @p 25 "네, 선장님“ “메족스, 너도 알아들었니?” “예, 선장님.” 메족스는 드러내놓고 무례하지는 않았지만, 선장은 그 목소리가 듣고 싶었을 것이다. 팔라스 깊이 안 쪽에 있던 고르쥬 전쟁터에 도착할 때까지는 계속 조용했다. 우주 선착장에 가까이 오면서 선장은 기동 장치를 완전 엔진 상태로 두었다. 나 는 그럴 때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가는 모양을 좋아했다. 그후에 그녀는 상승용 돛을 펴고, 콤프레서를 작동시켜 안전용 탱크를 채우고 선체의 부력을 낮추었다. 우리는 공기 역학 자세로 하강하여 지상에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2주일 전, 소이켄 선생님은 우주선의 작동 원리에 대해 숙제를 낸 사실이 기 억났다. 나는 그것을 기억한다는 사실 자체가 으쓱하게 했다. 우리는 활주로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종사는 다시 콤프레서를 움직이고 안전용 탱크를 빼내어 더 잘 뜨고 바람의 저항에 효과가 있도록 했다. 약간의 진동과 상승, 그 리고 부드럽게 하강한 후에 비행선은 마침내 섰다. 지상에 있던 승무원들이 상 승용 돛을 점검하고, 조종사가 콤프레서를 펴서 압축 공기를 채우며 제대로 착 륙하게끔 조종하는 사이, 비행기 금속 바퀴를 단단히 맸다. 우리가 사용하는 비행장은 오투스 집안의 사유물이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마 중 나오지 않았다. 프리캄은 예전에 한번 오투스 집안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그 들은 너무 고지식해서 언론에 슐라스인과 자주 비치는 오투스와 알고 지내려 하 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프리캄은 극적인 설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p 26 하지만 집에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오투스가 크게 속상해 할 것 같지도 않았다. 다른 팔라스인 왕족들처럼 유모들이 그녀를 키웠고, 집에 있다고 해도 사춘기가 지나고 약혼할 나이가 될 때까지 부모를 제대로 알 기회가 없을 테니까. 대부분 스물여섯 살이 될 때까지 시작되지도 않았다. 많은 왕족들은 서 른이 넘어 아이를 둘이나 가질 때까지는 그들의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비록 그 결혼을 중매한 사람이 부모일 텐데도 말이다. 비행하는 데만 거의 하루가 다 지나서 공식 방문은 내일 하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소이켄 선생님은 고르쥬 전쟁터에서 내일 보게 될 것들에 대해 설명 해 주었고, 케콕스 선생님은 자기가 카레키프에 탐험갔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여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탐험은 지금까지 우 주에서 가장 먼 원정이었다. “거긴 정말 끔찍한 곳이지. 카레키프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다른 위성들이 나쁘다는 거야. 사마쿠이별의 다른 두 위성인 투폭스와 푸목스는 온실 효과 때 문에 두꺼운 유독성 가스층으로 덮인 휴화산으로 된 곳이라 표면에는 납물이 고 여 있고, 철이나 알루미늄이 산화되어 냄새가 심하지.” 나도 그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카레이프가 아무리 위험했어도 선생님은 하나도 무섭지 않으셨죠?” 메족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케콕스 선생님은 그에게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러 자 케콕스 선생님은 웃어 제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좋아했다. 비록 그가 옛날 군인 같고, 또 실제로 왕실 수비병이었지만, 선생님의 눈에는 어딘가 따뜻하고 친절함이 있었다. “난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단다, 메족스. 제 정신인 사람은 누 @p 27 구나 그랬을 거야. 거기서는 누구나 쉽게 죽을 수 있었고, 실제로 우리 승무원 중 네 명이 죽었단다. 그것만도 다행이었어. 한참이 지나 다시 들여다 볼 기회가 있을 때까지 우리는 실제로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조차 깨닫지 못 했거든.“ “거긴 얼마나 멀죠?” 프리캄은 가쁜 숨을 쉬며 물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눈을 크게 떠 귀업게 보 이면서 케콕스 선생님에게 늘 하던 짓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방법은 늘 통 했다. “글쎄...” 선생님의 목소리는 따뜻해졌고, 우리들 모두가 모르는 마냥 그는 설명했다. “조이로이는 71년마다 우리 태양을 한바퀴 도는 작은 별이란다. 소사히가 우 리 태양을 도는 것처럼, 사마쿠이는 조이로이를 도는 행성이고, 투폭스, 푸목스, 카레키프는 모두 사마쿠이를 돌고 있지. 그건 우리가 소사히 주변을 도는 것과 똑같아. 그런데 얼만큼이나 떨어져 있냐는 말이지. 글쎄. 그건 경우에 따라 다른 데, 가장 가깝게 접근했을 때는 거기 갔다 돌아오는 게 수년 밖에 안 걸리기도 하지.” 주제를 바꾸며 도는 어르듯이 얘기하던 말투를 멈추고는 나와 오투스를 보았 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어. 그리고 다음 번 접근은 이번처럼 좋지는 않았고, 그래서 우리가 나가기 전에는 탐사선의 소 식을 받기가 너무 어려웠던 거야. 진짜 데어터들을 되돌려 받기 전에 떠나야 했 고, 빠른 비행체와 탐사선을 보냈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서 주변의 궤도를 제대 로 볼수가 없었어. 궤도 수정을 하기 위한 탄도를 하려면 에너지가 너 @p 28 무 많이 필요해서 우리는 그냥 떠나 다음 번 기회를 갖자고 결정했지.“ “에너지에 대한 건 아무도 몰라요, 선생님. 모험 얘기를 해 주세요.” 메족스가 끼어들었다. “난 이해해. 자메코시즈도 그럴테지만, 얘는 아마 두려워서 그렇게 얘기 못할 걸.” 오투수가 말했다. 케콕스 선생님은 오투스와 내 가운데로 자리를 옮기고, 아주 부드럽게 물었다. “그래, 오투스. 네가 이해한다고? 그럼 거기서 에너지 문제가 뭐였지?” 그녀는 이해한다고 할 때 그 증거를 보이라는 어른들 앞에서 늘 그렇듯 한숨 을 내쉬었다. “우리 세계와 카레키프는 행성 주위를 돌고, 그 행성들은 또 다른 별들 주위 를 돌고, 그 별들은 서로 돌고 돌죠. 움직임이 생기는 거예요. 여기서 카레키프 까지 가려면 우리의 속도, 방향, 위치를 바꿔야 해요. 속도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 아주 먼 거리라서 속도와 위치와 방향을 바꾸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 요하죠.” “음, 좋아.” 케콕스 선생님이 그녀에게 활짝 웃었고, 마침내 두려워하고 있는 나를 보고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에너지와 궤도와는 어떤 관계가 있지?”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한쪽 끝에서 속도를 더 내거나 아니 면 낮추어야 합니다. 뮈, 대충 그런 거예요.” @p 29 나는 거의 중얼대고 있었다. 내가 모른 척한다면, 케콕스 선생님은 나를 괴롭 힐 것이고, 포아퍼레시스 선생님과 소이켄 선생님을 창피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 고 아는 척을 하면 이번에는 메족스가 삐지거나 나중에 때릴 지도 모른다. 하지 만 케콕스 선생님에 대한 나의 신뢰는 메족스에 대한 두려움을 눌렀고, 그래서 나는 제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조이로이와 태양이 서로 가까이 있고, 소사히와 사마쿠이가 그 사이에 있을 때를 근접 상황이라고 부릅니다. 그때는 두개의 거대한 가스 행성들이 서로 가 까이에서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저동력 궤도가 많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궤도에서는 방향과 속도가 많이 다르고 거리도 훨 씬 멉니다.” 케콕스 선생님의 따뜻하고 친절한 눈빛은 사람들 앞에서 메족스보다 잘할 때 느끼던 불편함이 조금은 덜했다. 이번엔 메족스를 보고 선생님이 물었다. “자, 이제 에너지와 궤도에 관한 것이 이번 이야기에 왜 중요한지 이해하겠 지?” “그럼요, 물론이죠.” 땅바닥을 쳐다보며 메족스는 대답했다. 선생님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흠, 내가 아까 얘기했듯이, 우리는 무얼 발견했는지 전혀 몰랐고, 카레키프 가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어. 타원형 궤도란 위험한 법이거든. 심 지어 급속 탐사선이 보내준 최근의 데이터를 보기 전까지는 카레키프가 사마쿠 이에 가려서 돌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 “얼마 전이죠? 한 1년 전쯤인가요?” @p 30 프리캄이 물었다. “한 천만 년쯤 전이지. 천문학과 지질학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선생님은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으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돌고 있는데 착륙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프리캄이 다시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애를 꼬집어주거나 한 대 때려주 고 싶었다. 그 아인, 자기의 행동처럼 바보도 아니면서 그렇게 행동할 때 선생님 들이 보이는 관심을 그저 즐기는 것이었다. “회전은 착륙에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된단다. 궤도에서 내려올 때는 너무 빨 리 움직이기 때문에, 대지 표면이 조금 흔들리는 건 문제가 되지도 않아. 왜냐하 면 세트포스가 움직이고 있거든. 그게 문제가 안 되는 편이 우리에게도 좋은 걸, 프리캄.” 세트포스는 우리가 앞으로 갈 신세계의 이름이었다. 우리 모두는 좀더 잘 들 으려고 가까이 앉았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제일 흥미로운 주제였던 것이다. 눈치채지 못한 선생님은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른 채 카레키프의 적도 근처에 상륙했지. 한때 그곳이 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계곡 같은 자국이 있었고 얼음 진탕으 로 덮인 웅덩이도 있었거든. 카레키프의 표면 바로 아래에는 아직도 먼지로 덮 인 얼음 조각이 무진장 많단다. 양극에는 이산화탄소가 많았는데, 대기는 아주 얇았어. 아마 우리가 숨쉴 만큼 되는 두께에 약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었을 거 야. 게다가 그건 거의 이산화탄소였기 때문에, 두꺼웠더라도 아마 숨은 못 쉬었 을 거야. 음. 카레키프에 대해 제일 이상한 점은-아마 그게 회전체이기 때문이라 고들 하지만-그 @p 31 별 자체가 큰 자석이라는 거야.“ “왜 그럼 우주선이 달라붙지 않아요?” 프리캄이 다시 물었다. “크긴 하지만, 그렇게 센 건 아니거든.” 선생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암시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 정말로 알아야 했던 건 그렇게 대기층이 얇은데도 불구하고 분화구가 없다는 거였어. 무언가가 카레키프의 표면을 계속 다듬고 있다는 의미였는데 말야. 아마 우리가 궤도 탐사선을 보내는 데 성공했더라면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겠지. 어찌되었 건 우리는 그러지 못했고, 마치 하이킹을 가는 것처럼 현무암으로 된 협곡을 오 르고 있었어.“ “협곡이 뭐죠?” 오투스가 물었다. “대지들 사이에서 생기는 길게 곧은 절벽 같은 것이지. 물론 많이 부식되어 있긴 하지만 팔라스에 있는 대장벽 같은 거야. 협곡은 땅이 냉각되며 수축할 때 생기는 건데, 그건 말이지, 꼭 페스트리 빵을 식힐 때 줄이 생기는 것하고 비슷 해. 그 협곡들이 새로 생겼기 때문에 카레키프를 신세계라고 하는 거지. 어쨌든 우리는 그 협곡의 반쯤 올라가 평평한 곳에서 잠시 쉬고 있었어. 카레키프가 사 마쿠이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좀 높은 곳에서 그 광경을 보고 싶었거든. 카레키프가 사마쿠이를 도는 궤도는 너무 타원형이어서, 꼭 혜성이 도는것 같았 단다. 우리 별이 소사히에 다가가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갔다가 그 거리보다 한 @p 32 오십 배쯤 멀어지곤 했지. 그리고 알겠지만, 궤도에서의 속도는 중심체의 질량 에 좌우되기 때문에 카레키프가 사마쿠이를 도는 데는 사마쿠이가 조이로이를 도는 것보다 더 많이 걸리지. 행성이 태양을 도는 데는 2년 걸리지만, 달이 행성 을 도는 데는 2년하고도 10개월이 더 걸리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14년마다 카레키프는 사마쿠이에 제일 근접한 경로로 돌고는 조이로이 쪽을 향해 멀어진 단다. 우리가 몰랐던 건 사마쿠이 끝에서 나오는 전류가 실제로 카레키프에 방 전된다는 거였어. 가장 가까이 갔을 때 카레키프는 반나절 동안 계속해서 번개 를 맞는 거지. 다행히도 카레키프의 자기대가 극을 향해 있을 때라, 우리 우주선 의 궤도에는 아무런 번개도 없었단다. 하지만 거의 근접해 있었어. 첫번째 사건 은 20일이 채 되기 전에 일어났어. 협곡의 반쯤 높이의 바위 위에 캠프를 치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지. 다음날은 꼭대기에서 일식을 볼 계획이었어. 석양이 질 때처럼 북쪽 하늘이 하얗게 밝아지기 시작했어. 그것도 계속 말야. 무선 장치가 멈춰 버렸어. 무선 장치의 아무 것도 떼어낼 수 없었고, 심지어는 헬멧세트까지 딱 붙어 버렸다니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하고 있는데 그때 번 개가 쳤단다. 뭐, 태워 버릴 만큼은 아니었지만 놀라서 자기 다리를 차 버릴 정 도의 충격이었지. 모든 금속들이 갑자기 위험한 물체들로 바뀌어 버렸고, 기압이 빠르게 올라라고 있을 때에도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여전히 이해를 못 하고 있었어. 원정대에 같이 있던 투트레츠라는 기상학자가 생각해 내지 않았더 라면 우리는 모두 죽었을 거야. 그 사람이 깨달은 것은 번개가 만드는 전자파가 극점을 만드는 냉각된 이산화탄소와 물 속의 얼음 알갱이 사이를 지나고 있다는 거였어. 저기압에서는 전자파가 물을 기화할 만큼 데워주게 되지. 전 대기 @p 33 류가 우리 주변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고, 카레키프가 태양을 향해 다음 반 년 동안을 있었으니, 혼실 효과가 급속도로 나타났을 거야. 공기와 액상 물질 이 더 많이 생기고 더욱 따뜻해 졌을 테지. 그는 바람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도 우리에게 캠프를 걷고, 최대한 많은 장비들을 짊어지게 했고, 산소 마스크도 둘러매게 했어. 서로서로 묶어 협곡을 오르기 시작해 그가 그날 일찍이 봐 둔 장소까지 갔단다. 먼지가 너무 많이 일어서 꼭 슐라스의 밤처럼 새까매졌어. 우 리는 절뚝거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끌려가기도 하면서 헬멧 불 빛으로 간신히 올랐지. 정말 하나님 덕에, 그리고 우리를 재촉하는 투트레츠 덕 에 계속 올랐고, 그때 바람은 허리케인만큼이나 세차졌단다. 드디어 그가 정했던 아주아주 위에 있던 작은 장소에 다 왔어. 아마 낮이라도 그렇게 오르기는 힘들 었을 거야. 아주 깊은 웅덩이 같은 곳이었는데, 그런 어둠에서 그렇게 바람이 불 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거길 발견했는지는. 글쎄, 아무 생각이 없지. 어쨌든 우리는 거기에 자릴 잡았지. 라디오 부품들이 다 타 버려서, 우리는 기지나 우주 선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단다. 개인 라디오가 열다섯개나 있었는데도 과연 남아 있는 부품들로 라디오 하나를 작동시킬 수 있을지조차 몰랐어. 아무 희망도 없 이 너무 피곤했던 우리는 움막을 짓자 마자 잠이 들었어. 물론 그곳이 완전히 안전했던 것도 아니고, 잠이 드는 건 원정대의 전통을 깨뜨리는 거긴 했지만, 보 초를 세워두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거든. 무슨 일이 잘못되면 알람이 울릴 것이 고, 무엇보다도 밤새 깨어 있을 사람이 없었어. 그 폭풍이 시작되기 전에 하루 종일 등반을 했으니까. 우리는 밤이 깊어서 그 웅덩이 같은 곳에 도착했어. 밖에 는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우리 시야로는 번개를 몰 수 없을 만큼 어두 @p 34 워졌지. 조금 있다가 일식이 사작되었지. 몇 시간이나 계속되었지. 계속 어둠 과 바람뿐이었어. 침낭 밖을 내다보았던 기억이 나. 우린 비록 움막 안에 있긴 했지만, 움막 벽이 바람에 흔들리던 것과 상류 대기를 넘어서 쳐대는 번개보다 도 훨씬 밝은 빛이 벽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단다. 우리는 바위에서 상당히 떨 어진 곳에 있었고, 땅을 통해 전달되는 전자파는 우리를 건드리지 않았단다. 우 리 모두 반나절을 넘게 잤고 한낮에 동시에 깨었던 것 같애. 아니면 처음 일어 난 사람이 움막 주위에 반짝이는 빛을 보고 법석을 떠는 바람에 모두들 잠이 깨 어버렸던지. 움막이 부서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침낭 밖으로 나와 우주복을 입고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보려고 밖으로 나왔지. 우리는 웅덩이 입구에서 우 리가 있었던 평평한 선반 같은 곳을 보았단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커다란 폭포 가 흘러내리고 있었어. 우리 캠프가 있었던 곳은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가 생겨 나 있었고, 그래, 햇빛이 있었단 말이지. 하늘은 맑았고, 그 협곡 너머로 우리는 호수와 강들을 보았어. 투트레츠가 체크해 보니 우리는 정상 기압의 5퍼센트 수 준에서 정상의 두배, 전날의 사십 배가 넘는 기압선에 와 있었어. 대기는 완전히 이산화탄소와 수증기 온실 효과로 나오는 가스들로 가득해서 우리가 태양 쪽으 로 가는 다음 80일 동안은 온도와 기압이 계속 올라갔겠지. 라디오 네 개를 분 해하여 조립해서 작동시키니까 우주선에 연락하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더군. 전 자품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지만, 뭐 괜찮았어. 베이스는 흔적도 없었고, 거기서 죽은 네 명의 시체는 결국 못 찾았지. 궤도선에 있던 우주선이 무인 착륙기를 내려서 우리를 끌어올릴 때까지 우리는 고원을 탐사해 보았어. 이산화탄소가 갑 자기 퍼지고 나니, 약하게 형성되어 있던 얼음들은 온실 효과 때문에 모두 깨지 고 있었어. 우주선이 차가운 @p 35 진흙 화산에서 젖은 흙더미가 분출되는 광경을 찍어냈단다. 투트레츠는 나중 에 모든걸 알아냈어. 카레키프가 사마쿠이에서 밖으로 멀어질 때, 즉 태양에서 멀어질 때에는 대기를 녹여줄 만큼의 온실 효과가 없지. 그래서 천천히 물과 이 산화탄소가 먼지와 섞여 얼어가는 거야. 그걸 비등성 얼음 진흙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과학자들이라면 모두 알아듣는 그런 용어가 되어 버렸어. 2년 하고 10개 월마다 카레키프가 사마쿠이에 가장 가까워져 번개를 맞게 되면, 땅덩어리는 비 등성 얼음 진흙을 폭발적으로 기체로 만들어 버리지. 하지만 대개 냉동 진흙 화 산은 8일 정도만 분출하고는 다시 얼어버리고, 비등성 얼음 진흙은 고체로 굳어 있게 마련이야. 그런데 말야, 다시 14년마다 궤도의 위치들이 일렬로 되어 카레 키프에 긴 온난기가 찾아들고, 조금 움직이고 나서 다시 온난기가 오고, 그런 식 으로 얼음 조각들은 번개가 치기만 하면 날아갈 태세가 디고, 두터운 대기층은 바로 온실 효과를 갖게 되지. 5년 뒤에 또 다시 추위가 찾아오면 그런 과정이 다시 반복되는 거야. 그런식이니 표면이 그렇게 새 것으로 보였을 수밖에. 14년 마다 늘 새로운 지층이 형성되곤 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원정이 쓸데없었 던 것은 아니야. 우리는 지질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카레키프는 너무도 위험한, 언제라도 위험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곳이 라는 것을 배웠지. 언젠가 누군가 그곳에 정착하려고 애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긴 우리 인류가 살만한 곳은 전혀 못 돼.“ 선생님은 말슴 도중에 한숨을 내쉬었다. “협곡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려다 여기까지 왔구나. 자, 잘 시간이다. 푹 자 도록 해라. 내일은 역사 기행을 시작할 테니까.” @p 36 침입자별의 기습 그날 밤 옷을 걸려고 할 때, 나는 메족스 방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케콕스 선생님이었다. “메족스, 더이상 네가 자메코시즈를 괴롭힌다는 얘기를 어디서도 듣고 싶지 않아. 특히 그 아이가 너보다 무언가를 잘 할 때는 말야. 그 아이는 너한테 과 분할 정도로 충실한 친구야. 알겠니? 네가 그애와 이기는 게임을 하며 만족스 러워하는 것보다 백 배 천배로 좋은 친구란 말이야. 걔가 직접 불평하지 않겠지 만, 내가 알게 되면 너한테 과히 좋지 않을 거야.” 내가 싫어하는 메족스의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난 그냥 공평하자는 거고. …… 걔를 이기고 싶어요.” “사람을 좋아하는 법을 배워야 해. 황제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좋아해야 하는 법이야. 우리 모두가 이 여행에서 죽지 않는다면, 네가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 란 지금 네가 사귀는 그 아이들뿐이 @p 37 야. 게다가 자메코시즈처럼 영리한 아이는 네가 필히 가까이해야 할 아이지. 그 아이를 동등하게 대해 주고 그 친구가 잘되는 건 너한테도 좋은 일이라는 걸 잊지 마라. 그럼, 뭐 할 말 있니?“ 메족스가 뭐라고 했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아이의 목소리는 투덜대고 있었고, 별로 듣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순간 날카롭게 갈라지는 소리와 다문 치아 사이로 나는 비명이 들여왔다. 늙은 왕실 호위병이 메족스를 한 대 갈긴 것이다. 메족스가 우는 소리에 난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자, 들어 봐. 네가 루폭스 집안이라는 것, 그리고 너희 집안이 황실가라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앞으로 24년 동안은 넌 내 책임하에 있고, 훌륭하게 자라 야 해. 메족스, 너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리더가 된다는 것과 네 힘을 이리저리 남용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복종시키기 위해 괴롭히는 것의 차이를 모르 면 배워. 그게 안 된다면 다시 매를 들 거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소 가라앉앗다. “모르겠니, 자메코시즈가 가장 진실한 친구라는 걸? 그애가 행복해지길 바라 지 않니?” 메족스는 울고 있었다.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고 대답을 했 는지,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친구가 되도록 해. 그 아이는 너를 좋아한단다, 매족스. 널 위해 뭐 든 해 줄 거야. 너 때문에 항상 2등만 해야 한다면, 앞으로는 그렇게 안 할지도 모르지. 뭐라 해도 그 아인 슐라스인이긴 하지만 천성적으로 똑똑하고 창조적이 고, 그리고 예술적인 기질도 있어. 물론 약간 어뚱하고 믿지 못할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쪽 사람들 모두가 그런 걸. 하지만 내가 아는 많은 슐라스인들은 멋진 사람들이고, 그중에는 내가 언제나 만나고 @P 38 싶은 좋은 친구들도 있어. 카레키프에서 있을 때도 슐라스인이 세 있있는데, 글쎄…… 좋은 점박에 기억이 안 나는구나. 난 지난 몇년 간이나 슐라스인들을 왕실 호위대에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어. 슐라스인들은 계산적 인 팔라스인이라면 꿈도 못 꿀 충성심으로 일할 테니까. 네가 그 아이를 좋은 친구로 만든다면, 그애는 언제나 뒤에서 너를 받쳐주고, 널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똑똑하고 충성스러운 심복이 되겠지만, 그 아이를 괴롭히고 마음을 다치게 하면 마음의 상처가 곪아터져 버려서 넌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야. 예전에 슐라 스인들이 자치를 했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라. 아주 형편없는 통치였지 만, 그들은 우리가 정복하기 전 수천 년 동안이나 자치를 했었다. 그들이 우리 를 필요로 하는 만큼이나 우리도 그들의 충성심을 얻어내야 해.“ “자메코시즈는 제일 좋은 친구예요.” 메족스가 말했다. 마음이 평온해진 메족스는 계속해서 물었다. “왜 슐라스인들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시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나쁘다면 서.” “나쁜 게 아냐. 그런 생각일랑 애초에 하지도 말아라. 사실 바깥에는 괴짜 같 고 흥분 잘하며 다소 통제하기가 어려운 이상한 녀석들도 많지만, 뛰어난 과학 자와 기술자, 훌륭한 변호사도 많단다. 하지만 리더가 없지. 이번 탐험에도 일류 과학자들인 소이켄 선생님과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있잖니. 그리고 ……. 음, 그 정도는 이해할 나이지. 정치적인 압력도 무시할 수 없어. 네 증조부 삼촌이 슐라스에 법을 만든 그때부터 언제나 정치적 압력이 있었단다. 모든 평등주의 론자들이 우리에게 퍼붓는 압력이지.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함 께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자메코시즈가 좋은 친구라 는 사실 @P 39 을 잊지 말고 늘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야 해. 강제로 내 말을 듣게 할 수 는 없겠지만, 이 말은 들어야 할 거다. 한 번만 더 그대를 괴롭히거나 그애가 잘하는 부분까지 네 앞에서는 지도록 만든다면 또 맞게 될 거다. 아픔을 참아 내는 것도 리더십 교육 중 하나니까. 아직 충분히 교육한 것 같지 않거든……. ” “자메코시즈는 제일 좋은 친구예요. 다른 누구보다도 그애가 좋아요.” “그래, 좋아. 그럼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겠구나. 이제 조ㅓㅁ 자두도록 해 라. 내일은 아주 긴 하루가 될 거야.” 메족스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나는 침대로 미끄러지듯 들어와 편하 게 누웠다. 케콕스 선생님은 내 방에 들어와 내가 이불을 제대로 덮었는지 확인하셨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잘 자라고 그러는 것처럼 선생님은 두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렸다. 왕실 호위병이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어머니의 손가락은 직효였고 나는 곧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선생님들은 우리를 팔라스의 창조의 산 아래에 있는, 골짜기로 된 고르쥬 전쟁터로 데리고 갔다. 골짜기는 평원에서 이어져 알피악스 강으로 뻗어 있었고, 동쪽으로는 마른 광야와 서쪽으로는 언덕과 숲들 사이에 거대한 통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팔라스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천연 침입로는 1백 만 년 넘게 수많은 전쟁으로 뒤덮여 왔다. 어디라도 파보면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뼈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최근 고르쥬는 전쟁터보다 다른 것으로 유명했다. 고대 팔라스 종교에 따르 면, 소사하는 창조주였고 소사히 바로 아래에 있는 고르쥬 전쟁터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살던 곳이라고 한다. 그리 @P 40 고 고르쥬 전쟁터 여기저기서 진흙으로 덮인 동굴 안에 고대인들의 유적을 발 견해 냈는데, 그것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보다 천배 만배 더 오래된 것들이었 다. 차가운 진흙 속에서 밀랍화된 상태로 발견된 화석들은 팔라스인들을 닮진 않 았다. 그래도 우리 슐라스인보다는 팔라스인과 비슷했다. 팔라스인보다 더 땅 딸막하고 털이 많았지만. 또 우리 슐라스인처럼 길고 뾰족한 귀와 얼굴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이들로부터 진화한 거야, 우리 모두가 말이야.” 소이켄 선생님이 말했다. 햇빛이 무척 밝았다. 태양은 중천에 올라 활의 구부러진 쪽을 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소사히 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밝은 빛에 눈 이 부셨다. 나는 그 옛날 동굴에 살았던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슐라스인이나 팔라스 인이 존재하기 이전에 창을 만들고, 불에 고기를 익혀 먹으며 아이들이 뛰어다 니는 그런 사람들……. 만약 그들이 지금의 이 장소를 보게 된다면 과연 알아볼 수나 있을까? 예전과 같은 모습일까, 아니면 완전히 생소한 모습일까? 내 옆에서 메족스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오투스 역시 소이켄 선생님이 해 주는 얘기-어떻게 과학자들이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찾아냈으며, 동굴 바닥에 정교하게 놓여진 돌과 다른 시기에 잡은 다른 종류의 동물들을 계산해 놓은 표 따위-에 푹 빠져 있었다. “왜 여기서 머물렀다고 생각하세요?” 오투스가 물었다. “어디엔가는 있어야 했으니까.” 메족스가 한심하다는 듯 대답했다. @P 41 소이켄 선생님은 메족스의 말에 덧붙여 설명했다. “그냥 단순하게 여기서 시작하고 머물렀던 것 같아. 다른 곳에서 계속 돌아 다니다가 왔다면, 이곳에 동굴이 있으니까 여기를 선택했겠지. 무언가를 지을 필 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이곳이 유명한 전쟁터가 되었던 이유도 같을 테고. 여기 저기서 모이는 곳이라 먹을 것도 많고, 몸을 숨기기에 알맞은 장소라는 이유도 있지. 어쨌거나 이 장소가 그들에게 중요했을 테고, 실제로 여기서 정착 생활을 했는지도 몰라. 아무튼 화석 자료를 보면 우리 조상이거나 사촌이거나 간에 이 주위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어 있으니 그 전설이 사실일지도 모르지. 아마 그래 서 이 산을 창조의 산이라고 부르는 걸 거야.” 선장님은 수학 시간과 과학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스폭 선장님이 갑자기 얘기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배울 게 또 있어. 과학자들은 숲이 탄 재라든가, 지진 붕괴의 흔적, 화산재층 같은 것들을 여기서 발견했지. 우리 조상들이 여기서 시작했을 지는 모르지만, 살아가기엔 힘든 곳이었어. 그래서 강 아래로, 고개너머로, 평원을 넘 어 그렇게 우리는 뻗어 갔지. 그러다가 바다를 넘어 슐라스에, 그리고 지금은 우 주에 있는 거야. 이 우주에 영원히 안전한 곳은 없단다. 우주의 얘기소리가 들리 는 것 같지 않니? ‘뻗어 나가라. 여기서 기다리다 간 멸망할 것이다’ 하고 말 야.” 선장님이 얘기를 한다는 사실에 놀란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고, 웃으며 선 장님이 덧붙였다. “미안하구나. 그 얘기 때문에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할 것 같지은 않은데. 얘 들아, 이걸 봐. 일식이 시작되려고 그래.” @P 42 팔라스의 일식 시간이야말로 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우리 머리 의 바로 위에 걸려 있는 소사히가 너무 밝아 하늘색을 대부분 가리고 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일식 시간에는 소사히가 태양을 가려서 우리는 잠시라도 밤을 즐길 수 있었고, 별이 쏟아져 나왔다. 태양이 소사히에 거의 닿을 것 같은 모습 을 보았다. 소사히는 태양의 마흔다섯 배나 되었고, 태양이 우리 별님이 서쪽 하늘을 가리키며 살며시 얘기했다. “이걸 봐. 우리는 지금 우리 인류가 시작된 곳에 서 있고, 저기에 우리 역사 를 끝나게 하려는 것들이 있어.” 하늘의 하얀 얼룩 자국이 꼭 작은 구름이나 연기처멀 보였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것을 매일 밤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 걸 처음 보았을 때는 새끼손가락 끝보다 더 작았던 것이 이제는 두 손가락을 대 야 가려질 정도다. “침입자별!” 메족스가 내 옆에서 나지막하게 말햇다. 우리 별의 3분의 1 정도되는 까만 공 모양의 침입자별이 나타난 지도 95년쯤 되었다. 처음엔 우리 쌍둥이별에 끌려왔다가 태양 가까이에 머물러, 조수력 때 문에 큰 조각들까지 잘게 나뉘었다. 주먹보다 작은 것부터 산칸큼 큰 것들로 그것 때문에 일어난 재해가 여러 문제를 만들었고, 결국 첫 번째 우주선- 지금 나를 비롯한 세 아이들과 네 선생님이 우리 별 사람들이 살 만한 신세계를 찾아 나선 -와코펨 조모스 호를 만들게 하였다. “우리가 저걸 볼 수 있는 이유는 여기서 태양까지 거리 반만큼이나 쭉 뻗어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정말로 큰 반사물이라고 할 수 있지. 만약에 그게 하나의 조작으로 모두 모여 있다면, @P 43 마침내 우리 머리 위로 오를 때까지는 아마 볼 수조차 없을 거야.“ 소이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번엔 지나갈 수 있을까요?” 프리캄의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였다. 사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다가올 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바람섬 에 잇던 훈련장에서 맑은 날에는, 바다에서 솟아나 큰 도시보다 더 넓게 원을 형성하는 일련의 높은 산들을 볼 수 있었다. 침입자별이 남긴 영향 중 하나였 다. “물론 지나가야지. 그리고 그때쯤 우리는 여기를 떠나 있을 거야. 세트포스로 한 번쯤은 갔겠지.” 소이켄 선생님이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침입자별을 쳐다보았지만, 그건 그저 하늘의 얼룩에 불과했고, 앞 으로 15년 동안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잠시동안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대편의 수평선 바로 위에서 멀리 있는 조이로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 실제로 가 보았던 케콕스 선생님은 하늘에서 그 별을 쳐다보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했다. 우리 태양과 조이로이는 서로를 공전하고 있었고, 침입자별이 다시 충돌할 때 우리는 조이로이의 반댈편 끝에 가 있게 될 것이다. 니수에 충돌할 일은 거의 없고, 아주 소규모의 파편들이 소사히를 칠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우리 별 차례였다. 제2차 대폭격은 더 나쁠 것으로 이미 예상하고 있다. 소사히와 니수는 침입자별이 만들어낸 바위 더미 가운데로 곧 장 통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태양이 소사히 뒤에서 나와 고르쥬 전탱터가 다시 환해질 때까지 거기 머물렀다. 그후에는 다시 발표회에 가야 했다. @P 44 너무 여러 번 해 보아서 이제 그건 상당히 지루한 일이엇다. 대부분 팔라스 인들로 구성된 지도자 그룹이 연설을 했고, 그 연설 내용은 우리가 신세계를 발 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나서 슐라스인 한 명이 일어나 팔라스인과 슐라스인이 함께 작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최대로 품위를 갖추고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 었다. 나는 메족스 약간 뒤에 서 있었다. 그래야 평등 따위의 이야기를 싫어하 는 늙은 팔라스인은 나를 그애의 하나인 것처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슐라스인들은 나를 보고 거의 평등하게 서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프리 캄도 나처럼 오투스 뒤에 서 있었다. 관중들이 박수를 칠 때마다 우리는 마음 을 비우고 그저 미소를 짓는 방법도 배웠었다. 다음날은 동쪽 섬으로 날아갓다.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게 팔라스의 가장 동 쪽이었고, 본국에서는 나흘 동안 항해를 해야 했다. 슐라스인 조상들은 바로 여 기서 카누나 뗏목을 타고 바람섬으로 가게 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그 게 슐라스에서 가장 오래전의 정착민들의 흔적 같은 거였고, 슐라스를 지나 동 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최근의 정착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양 극 사이에 쭉 펼쳐진 길고 얇은 대륙으로 가기까지는 큰 휴지기가 있었다. 땅이 척박했고 높은 해안 지역에 사잇길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거 기에 정착하고 개척해 나가는 데는 수세기가 걸렸다. 게다가 해안 지역의 동쪽 으로는 넓은 사막 때문에 아예 바다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일단 도착한다 해도 배를 만들 만한 재료가 하나도 없는 해안가였다. 하지만 결국에 거대한 무역 왕국이 섬에서 뻗어 나가 대륙에 많은 식민지를 개 @P 45 척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도 건설하고, 대륙 사이로 운하를 몇 개 뚫기 도 하였다. 그때 이미 사람들은 역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동해안에 정착하기 에 시간이 그렇게 걸리지도 않았고, 그 지역의 개척자들의 이름도 모두 알고 있 는 터였다. 시간순으로 역사를 헤집어 간다면 다음으로는 바람섬을 가게 될될 차례였지 만, 우리 훈련원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매일 대양의 어머니가 처 음으로 사람을 보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거대한 새벽의 바위를 보고 지낸 터였 다. 그 대신에 우리는 팔라스로 가서, 중심부에 거의 폐허가 된 도시들과 주변 의 항구들을 구경햇다. 팔라스는 흙투성이의 원처럼 생겻다. 동서로 산맥이 가 로지르고 남북으로는 협곡이 죽 늘어서 4분의 1 조각으로 쪼개어지고 그 가운데 를 깊은 아치형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같은 세계에 속해 있었지만, 두 곳은 판이하게 다른 역사를 갖고 있었다. 오 랫동안 슐라스인들은 해적질과 침략을 해가며 무역과 정복을 주로 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부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법원은 종교나 철학에 대한 분쟁이 나 사업을 위협하는 그런 사건들을 방지하고, 해적질을 진압하는 데만 주로 관 심이 있는, 각 지역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모임에 불과했다. 국회는 무언가 개혁 을 하는데 너무 느렸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데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는 동안 팔라스에는 대왕조가 세워지고, 번성하다가 멸망하고 그러다가 다시 지어지고 또 정복되고 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대제국이 세워져 다 시는 어떤 반역도 불가능하도록 팔라스의 모든 지역을 정복하기까지는 오랜 시 간이 지나야만 했다. 역사 교과서의 표현을 빌면, 그 뒤부터는 팔라스에는 참다 운 평화가 찾아들었다. 길을 닦고, 사원과 기념비, 그리고 동상들을 @P 46 여기저기에 지어 놓고, 낡고 폐허가 된 도시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작업 을 계속하였다. 그후 19대 국왕부터는 팔라스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을 만 큼 강한 정부를 세웠다. 물론 그동안에도 폭동 사태가 있기는 했다. 왕실 호위대들이 정기적으로 그 런 사태를 수습해야 했었다. 많은 팔라스 사람은 농사가 잘 되지 않을 때는 당 연히 세금을 내고 싶지 않았고, 사원을 짓기 위해 사역에 동원되는 걸 싫어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그 책의 정부나 통치권 같은 단어들을 이 해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종종 난 혼자서 내가 고 대 슐라스인이 되어 해적질을 하고 바다를 약탈하는 상상을 하면서 재미있어 하 곤 했다(항상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인데, 모든 부자들이 다 항구에 있었는데, 왜 바다를 약탈했을까?) 팔라스인들이 슐라스를 정복하고 나서는 제대로 된 정부를 세우고 통치를 했 다. 모든 해적들을 다 제거한 건 좋은 일이었던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상상을 해 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하는 건 나도 나쁜 행동 을 하는 것 같은 간접 경험을 주었다. 늘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이라면 누구든 자기도 못 된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는 걸 좋아할 것이 다. 우리는 8일 내내 팔라스를 돌아다니며 유명한 전쟁터와 폐허가 된 유적지들을 보고, 왕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동상이나 전쟁 기념비, 그리 고 팔라스에 있는 페허들에서 언제나 메족스의 사진을 찍어 댔다. 적어도 프리 캄과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오투스도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그애가 언제 나 소리를 지르고 인상을 찌푸르고 나면 포기하곤 했다. @P 47 팔라스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지금은 대도시가 된 칼렙스에 갔다. 관청이나 전시관, 과학관 같은 곳에 가는 것 대신 사진 기자들과 리포터들을 모두 따돌뢰 고는 우리 여덟 명의 승무원만 호수 근처에 있는 작고 조용한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 세상에 가장 신성한 곳을 꼽으라고 하면 거기가 될 것 같다. 그 작은 공 원은 수백 년 동안 그렇게 있이 왔고, 여러 가지 기념비들이 있었다. 옛날에는 팔라스 군인이 고개를 숙인 슐라스인들을 줄에 묶어 끌고 가는 가운데, 구릭스 장군이 와코ㅁ펨 선장의 목을 발로 누르며 서 있는 모습의 동상이었는데, 지금 은 두 사람이 손을 잡은 채로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동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동상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루푹스 가문 루마츠 황제 통치 8년, 92대 대법원이 다스리는 가운데, 48일의 항해 끝에 도착한 와코펨 조모스 선장은 여기에서 구릭스 조와쿠 장군에게 항복 했다. 두 사람의 용기와 거침없는 행봉으로 평화와 법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 다. 그곳은 무섭도록 조용했다. 구릭스 장군은 케콕스 선생님보다 더 단단하고 평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한다거나 행동을 하고 있기보 다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와코펨 선장은 마치 웃는 모습 같았다. 그의 눈에는 50일 동안이나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항해를 하고 돌 아온 사람에게서 풍길 듯 한 그런 그윽함이 있었다. 한참 동안 말 없이 그 동상을 보고 나자 선생님들은 사진 기자와 리포터들을 데리고 왔다. 여러 번이나 꽃과 과일 바구니를 동상 아래에 놓는 모습을 찍어 대더니 나와 매족스에게 그 동상들에 @P 48 올라가 옆에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왜 나까지 사 진을 찍으려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개는 메족스만 찍길 원했던 사람들 이니까. 그날 밤, 케콕스 선생님이 앉아서 아주 조용히 진실을 이야기 해 준다고 했다. 적어도 선생님이 이건 사실이라고 했고, 나도 그 순간만큼은 네 명의 선생님 모 두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메족스와 오투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시 작했다. “내가 직접 이 얘기를 해 줘야겠다고 결심한 게, 난 너희들이 이 얘기가 어 떤 평등론자들의 선전 따위나 슐라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범 을 알았으면 하기 때문이야. 내가 아는 한 이건 실화야. 알겠니?”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캄, 자메코시즈야. 이 얘기의 또 다른 면에서는, 비록 오래 전에 슐라스 인들에게 나쁜 일이 벌어졌지만, 이건 개인적 원한이라든가 종족 우월감에서 나 오는 얘기는 아니란다. 이해할 수 있니?” 우리는 둘 다 그러겠다고 했다. “좋아, 그럼. 너희 모두에게 물어 볼 것이 있다. 오늘 밤, 내일, 그리고 앞으 로 계속 너희는 지금과 똑같을 거라는 걸 알겠니? 너희가 알게 되는 사실이 지 금 너희가 어떤 사람이고 우리의 임무가 무언지에 대해 전혀 변화를 가지고 오 지는 않을 거란 사실을 이해하겠니?” 선생님이 말씀을 시작한 걸로 보아서, 우리들의 표정에 만족하신게 틀림없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늘 재미있게 하셨고, 우리는 곧 잠자리에서 무슨 모험담을 들을 때처럼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와코펨 선장은 슐라스에서 가장 훌륭한 선장이었다. 수년 전에 @P 49 그는 소세계론자들과 대세계론자들의 분쟁을 종식시켜 준 그 항해를 위해, 그 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두 개의 은행에서 원조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 논쟁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태양의 위치와 그림자가 땅바닥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이 시계가 얼마나 크게 회전하고 있는지를 알아낼 수가 있었다. 그 숫자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 래서 바다 건너 이 세상 저쪽에는 수천, 수만 배나 큰 땅덩어리가 있을 것이고, 섬이라든지 대륙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대세계론자들이었다. 그렇지만 연구자들이 수평선의 멀리 있는 정도를 조사하여 이 세상의 구부러 진 정도를 측정해 보았을 때, 그들은 세상 저 편도 슐라스의 크기 정도보다 더 크지는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소세계론자들의 입장이었고, 결국에는 그들이 옳았다. 아니 거의 맞았다고 해야 할까. 그들은 만약 사람들 이 건너편에 실제로 존재한다면 틀림없이 서로를 알아냈을 거라고 주장하면서 그래서 저 건너는 광활한 바다만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지금에 와 서 생각해 보면, 대세계론자들이 측정한 것은 실제로는 소사히를 도는 니수의 궤도 둘레였다. 하지만 소사히는 슐라스 지역 어디에서든 보이지 않았으므로, 슐라스의 천문학자들이 그들이 사실은 가스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누구든 양극 지방에 가서 볼 수 잇었다면 알아냈겠지만, 빙하와 높은 산들 때문에, 그리고 너무나 춥고 빙하가 너무 두꺼워 그 위에서 숨을 쉴 만큼 공기가 차 있질 않아서, 그건 불가능했다. 그 논쟁은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케콕스 선생님은 계속해서 @p 50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려고 애쓴다는 것을 선생님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지 만, 나는 선생님이 슐라스인들이란 쓸데없는 논쟁을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속으로 나는 팔라스 사람들은 이슈가 있 을 때에도 얼마나 신경을 안 쓰고 사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마침내 와코펨 선장은 필요한 돈과 항해 승낙을 모두 받아 냈다. 슐라스의 대법원은 절대 일을 빨리 하는 일이 없고, 모든 걸 일일이 체크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의 이복 여동생이 개발한 새 적분법을 이용하여 더 발전적으로 만든 선시커 호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선시커 호는 전 대양을 건너, 세계 전체를 돌아서 다시 바람섬에 돌아올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런 기회를 얻은 와코펨 선장은 안전성을 고려해서 배를 최대 속력과 최대의 수용 능력, 그리고 가장 적은 승무원들로 최적화시켜 놓았다. 그래야 식량과 물이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항해할 수 있었다. 소세계론자들은 바다 건너에 어떤 생명체라도 있다면 그들이 우리를, 슐라스 를 발견했던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늘 주장했 다. 동쪽으로 밀려간 배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소세계론자들은 동쪽 에서 슐라스로 다시 돌아올 때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고, 대세계론자들은 다른 섬-존재한다면-까지의 거리가 엄청나다는 걸 말해 주는 증 거라고 했다. @p 51 극대륙의 돌출 부위가 슐라스 서쪽에 바다를 만든 사실을 이해 할 만큼의 기 상학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슐라스 자체가 근처의 군도들을 가진 거대한 땅덩어리였기 때문에, 아무도 동쪽으로 항해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 았었다. 동쪽으로라면, 당시의 형편 없는 배로도 충분히 갈 수 있었을 텐데 말 이다. 무엇보다도 1백 년 후에 리워드 섬에서 간 열두 척 정도의 배들이 팔라스의 해안가에서 난파할 거라는 걸 상상도 못했다. 팔라스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구릭스 장군은 팔라스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조와쿠 가문의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그가 통치자로 부여받은 서부 지 역은 세금으로 낼 곡식조차 생산하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었고, 심지어 아무도 폭동을 일으킬 만한 여력도 없는 저주스러운 곳이었다. 장군은 남아도는 시간 에 옛기록들을 살피고 박물관들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서서히 그는 바다 건너편에 육지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의 조상 들은 단순히 접근하는 배들을 잡아 승무원은 모두 노예로 잡아두고, 흥미로운 물건은 보관해 두었다. 이런 미스터리 배가 처음 나타난 게 아님을 아는 사람 들은, 그저 전례에 관청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찾아서 기록하고는 곧 잊어버 리곤 했다. 하지만 구릭스 장군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는 어디가 모자 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밀어 붙이는 사람이었기 때 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대체로 그가 옳았다. 이제 그는 모든 관심을 배가 어디서 왔으며 그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생각 햇다. 그는 찾아낸 자료들을 길게 나열해 보았다. 배에는 무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해 내려오는 그림들과 배의 구조를 살펴보면, 그 배는 전투용으로 만 들어진 것도 아니었 @p 52 다. 결론은 서쪽에 있는 사람들은 전쟁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 다. 아홉 개의 시계가 하는 일과 중앙 박물관에 있던 여섯 개 조각중 네 개의 목 적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10년 동안의 연구 끝에 그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온 배들이 예전에 온 것들보다 훨씬 더 발달된 형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일단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그림들을 더 자세히 보면서 배 자체도 발달된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부에 있던 사람들은 120년도 훨씬 전에 지금 팔라스의 훌륭한 장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을 이미 만들어내고 있 었고, 그 수준이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최근 들어 팔라스는 어떤 뚜렷한 발전 이나 전보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쓸 만한 건 모두 예전 전쟁시대에 만들 어진 거였고, 더 중요한 것은 이제 별로 발견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얻 은 결론은 팔라스가 서부의 사람들보다 뒤쳐져 있다는 거였다. 그는 이 사실을 국왕에게 보고하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의 나쁜 말버릇은 여전했다. 편지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 서쪽 어딘가에 팔라스보다 훨씬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진 생명체가 살고 있는데, 전사들인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을 찾아내 정복할 수 있다면, 많은 재산 과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팔라스보다 훨씬 전보된 문명을 갖고 있는 그들은 우리를 정복할지도 모른다. 배들에 있는 자료 들을 볼 때 그들과 우리의 접촉은 불가피할 것이다. @p 53 구릭스 장군의 거의 1년이나 기다려, 익명의 와족 중 한 명에게서 짧은 답장 을 받았는데, 거기엔 그가 증명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그건 사실이었다- 과 그가 미쳤다는 내용만이 달랑 적혀 있을 뿐이었다. 구릭스는 그 편지를 거의 읽지 않았고, 22년 전 마지막 난파에서 노예로 팔려 간 생존자 두 명을 찾아내었다. 노예들을 사온 뒤 그는 그들과 오랜 동안 대화 를 하고 서서히 그들의 단어를 조각조각 맞추어서 슐라스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얼마 동안은 노예들의 악센트가 달라 혼동되엇다. 슐라스의 무정부 상황에 대해서도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는데, 꼭 나라 전체를 변호사들이 다스리고 있 는 것 같았다. 또 우주라는 개념과 세계의 다른 한쪽에서는 일식 현상이 반나 절이나 지속된다는 점에 대해서 놀랏다. 그러나 그는 미스터리와 퍼즐을 좋아 하는 사람이었고, 점점 더 많이 배워가게 되었다. 그는 많은 것을 배워가면서 그의 주ㅘㄴ청을 가장 좋은 항구인 칼렙스로 옮겼 다. 만약 서쪽에서 신비의 배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관측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엄격한 포고를 내렸다. 4년이 지난 어르 날,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배, 선시커 호가 와코펨 조모스 선장 의 지휘하에 극심한 폭풍을 견디고 칼렙스에 도착했다. 선시커 호를 환영하는 신호가 가고 항구로 인도되엇다. 그 사이 구릭스 장군은 두 명의 슐라스인 노 예를 통역원으로 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슐라스인들은 사태가 끝난 후에야 그곳에서 싸움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구릭스 장군이 그 배 를 점령했다는 것을 알았다. 케콕스 선생님은 구릭스 장군이 한 일을 우리들에게 얘기할 @p 54 때, 눈에 보일 정도로 불편해 하셧고, 세세한 사항은 넘기면서도 구릭스 장군 이 선원들을 어떻게 고문하고 노예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와코펨 조모스 선장이 묵어진 노예가 되어 황제를 만나야 했다는 사항들은 분명히 했다. 그 사건은 그가 옳았다는 게 증명되고, 구릭스 장군은 빠르게 권력을 획득해 갔다. 장군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팔라스의 왕족들과 귀족들에게 지금껏 누려온 것보다 훨씬 큰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중요한 요직은 모두 차지했고, 그가 가는 곳마다 환호하는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팔라스 군중들의 변덕은 악명이 높았다. 구릭스 장군의 무뚝뚝하고 공격적인 성격은 이제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고, 그는 정직함의 표상이 되었다. 1 년도 채 못 되어 그는 왕족의 한 여인과 결혼했고, 루폭스가와 조와쿠가 사이에 동맹이 형성되엇다. 그의 직계 후손들은 세 명의 왕과 네 명의 왕녀들이엇다. 메족스네는 말할 것도 없었다. 구릭스 장군은 어떤 점에서 슐라스인들을 너무 과대평가했었다. 어떤 중앙 기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납득이 안 갔기 때문인지 그는 슐라스인들이 재빨리 반격군을 만들어 심한 전쟁이 일어날 것으 로 생각했다. 와코펨이 가지고 잇었던 지도들에 보이는 수십 개의 도시들을 생각하면 그럴 만했다. 그래서 그는 와코펨의 배를 모델로 수백척의 전선을 만들고, 배에서 발 견한 신식 라이플로 그의 새 군대를 보강해 가며 준비를 했었다. 그렇게 준비 한 어마어마한 군대는 바람섬에 아무 경고도 없이 밀어닥쳤고, 하루도 안 가서 섬 전체를 점령했다. 그 얘기를 후대에 전할 수 있는 어떤 배도 살아 남지 못 햇다. 1년이 못 가 구릭스 장군은 슐라스 전역을 정복 @p 55 했고, 처음으로 그 땅에 황제의 통치가 있게 되었다. 배들은 분주하게 슐라스의 전리품을 실어 나루고 있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명화, 수천 개의 궁전에서 가져온 훌륭한 가구와 노예, 도서관의 장서, 보석같은 것들을 계속 배로 실어 날랏다. 24년 후, 와코펨 조모스 선장은 줄에 묶인 채 궁전 아래 계단에서 죽었다. 그 는 어떤 황제나 황후에게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으며, 왕정에 단 한 번도 충 성을 맹세한 일이 없었다. 그의 항해를 허락햇던 대법원에 대해 죽을 때까지 신념을 가진 채로-비록 그후에는 팔라스의 황제가 대법원 각료들을 뽑긴 햇지만 -살았다고 전해지고 잇었다. "그는 진정한 우리 문명의 건립자이고, 그 용맹함과 충직함은 우리 두 민족에 게 모두 귀감이 되지, 그래서 우리 우주선이 그의 이름을 따른 거란다. 와코펨 조모스 선장이 항해할 기술이나 용기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전체의 문명을 갖지 못했을 거라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새 질서에 동의하거나 승복했을 때, 그는 정 의를 요구했던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또 하나 잊지말아야 될 것은 이런 일이 그가 스스로 뭘 찾으려고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이런 일 이 그가 스스로 뭘 찾으려고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거다. 누구에게나 예상치 않은 일이 생길 수 있지. 만약에 와코펨 선장이 조금만 더 통찰력이 있고 조심스러웠더라면, 자기 스스로에게 더 나은 결과가 왔을지도 모 르고, 슐라스인과 팔라스인이 좀더 평등한 위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아마 아니겠지만. 바람섬이 정복되고 여덟달 뒤에 대법원이 포위되엇을 때도. 대세계론자들과 소세계론자들은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고, 아무도 그들을 그만두 게 해야 한다는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지. 슐라스인들이 좀더 예견력이 있었다 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우리가 분명히 @p 56 알 수 있는 건, 그들은 그럴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 그러니 얘들아, 늘 잊지 말고 자문해 보거. 우리가 잊고 있는 건 없는지?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점은 없는지? 우리가 가고 있는 그곳에 대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당연하게 여 기고 있는 건 없는지? 카레키프 원정이 얼마나 잘못 되었었는지를 기억하렴. 정보를 모으고 또 그것에 관해 심사숙고하는 걸 절대로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 선생님은 한숨 돌리고 계속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일단 우리의 보호 하에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세월 이 흘러 언젠가 너희는 다시 여기 니수 사람들과 부대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슐라스인이 되었건, 옹졸한 팔라스인이 되었건 너희에게 시비를 걸려는 사람들 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너희에게 지나간 역사에 대한 얘기나 종족간의 관계에 대해 계속 조심해 오고 있었단다. 이제 누구는 자기 자신을 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도 싶을 거고, 아니면 무언가 때문에 자기 인생이 좀 잘 못되었구나라고도 느낄 걸로 안다. 그러나 난 이걸 꼭 기억시켜 주고 싶구나. 주위를 둘러보고 네 친구들을 보려무나. 모두가 같은 사람들이야. 언젠가는 모 든 사람들이 너희들처럼 같이 잘 지낼 날이 오겠지. 물론 아직은 아니라는게 서글프지만. 하지만 너희들은 이 탐사 자체의 의미보다도 무엇보다 우리의 희 망이란다. 너희가 돌아올 때쯤에는, 이 세계가 좀더 좋은 곳이 되어 있으면 좋 겠다. 우리가 이루게 될 발전들 때문만이 아니라, 너희들의 본보기로 말야. 전 세계가 너희들을 지켜보고 잇다는 걸, 그리고 우리 민족을 위해서 늘 최선인 행 동들을 해야 한다는 걸 절대로 잊지 말아라. 우리 모두를 위해.” @p 57 꼬마 우주인들의 맹세 우리는 슐라스를 여행하기 전에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다 음날은 일찍 일어나야 할 필요가 없엇다. 그래서 나는 메족스와 그의 방에서 늦게까지 함께 있었다. 어른들은 우리가 가까운 친구로 지내는 것을 원하고 있 었으므로 내가 메족스의 방에서 잠을 잔다고 해서 별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앗 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간 후, 나는 살그머니 침대를 빠져 나와서 문을 열고 복도를 살핀 다음 조용히 방문을 닫앗다. 메족스는 날 반겨주었다. 아이들의 생활, 특히나 행복하게 지내는 아이들의 생활에는 별로 많은 일이 일어나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얘기할 것들은 많은 법이었다. 잠시 동안 우리 는 대열 앞에 서 있어야 했던 이야기를 했다. 메족스 집안, 루폭스 가문은 늘 모든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집중시킬 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잇었기 때문에 몰려 드는 관중들은 늘 똑같았다. 게다가 루폭스 집안은 꽤나 큰 언론에 줄 @p 58 을 대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우리에 대해 좋은 이야기들을 떠들어 대 고 잇었다. “결국 다 똑같아. 신문 기자들이란 지시를 받은 대로 하는 것뿐이라구. 다 음 주에는 그 사람들이 가수나 운동 선수, 사건을 잔뜩 처리한 경찰관이나, 아니 면 기록을 세운 장사꾼한테 똑같은 짓을 할 걸. 그저 박수들을 보내고는 있지 만 실제로 하는 일은 없잖아.” 메족스가 얘기했다. “맞아. 어떤 제복들은 눈요깃거리라도 되지만, 우리가 가만히 서 있어야 하 기 때문에 볼 거리들을 반이나 놓쳐 버린다구.” 메족스가 동의한다는 듯한 몸놀림을 했다. “어떤 때는 나도 그 대열 속에서 빠져나와 그걸 구경할 수 있는 처지면 좋겠 어.” 문을 살짝 두드리는 소리가 들렷다. “얘들아, 문 열워줘. 거기 있는 것 다 알아.” 오투스가 속삭였다. 메족스가 꾸벅 인사하는 듯한 동작으로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숙녀분들. 우리는 잠들 수 없는 밤클럽에 여성 회원들을 받기 로 결정했답니다.” “허, 그러세요? 저희는 아직 자기에는 이른 시간에, 협회에 두분을 초대하려 고 복도를 내려온 건데.” 오투스가 말햇다. 방안에 가구라고는 의자와 침대 하나뿐이었다. 메족스가 의자에 앉는 바람에 나는 침대의 두 여자아이들 사이에 앉게 되엇다. “자, 무슨 일이지?” 메족스가 물엇다. @p 59 "아마 너희가 개어 있는 이유랑 같겠지. 잘 수가 없었어. 케콕스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 말야. 거의 울 뻔했다니까. 와코펨 선장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 었는지 전혀 몰랐었어. 우습지 않니? 그 항해가 있고 나서 갑자기 역사 시간에 그에 대한 얘기가 사라져 버렷다니……. 화가 막 나려고 해.“ 오투스가 대답했다. “옛날에 죽은 사람인 걸.” 내가 말했다. “진작에 선생님께 말하려고 했었는데, 너희 둘은 우리한테서 아무 것도 빼앗 지 않았어. 우리는 친구잖아. 그리고 자메코시스와 나한텐 앞으로 이런 기회가 …….” 프리캄이 나지막이 말했다. 메족스가 한숨을 푹 쉬며 말을 끊었다. “나도 계속 생각해 봤는데, 문제는 내가 루폭스 집안이라는 거야. 구릭스 장 군이 빼앗은 그 세상의 절반은 내가 물려받게 될 유산이라구. 만약, 정말 물려 받는다면 말이지. 사실 의회에서는 계속 우리 가족에게 후보자를 내라고 하고, 그러면 내가 뽑혀야 되고, 또 다른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내 사촌들이 동의를 해 야만 내가 상속받는 거거든. 정말로 사람들이 내가 황제가 될 거라는 얘기를 안 했으면 좋겠어. 아예 그런 이야기를 처음부터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 생각만 하면 나는 우습게도 으스댄단 말야. 나도 그러는 게 싫어, 정말로. 근데 내가 무어라도 갖고 싶을 때는…… 그냥 그렇게 행동하게 되. 내가 진짜로 황 제가 된다면 더 나빠질 거야.” 메족스는 지금껏 내가 들어본 제일 슬픈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p 60 나는 손을 뻗어 메족스의 손을 잡았다. “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못되지 않았어.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착해.” “내 말은, 우리가 정말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게 아냐. 하지만, 주변에 아무 도 없을 때, 사람들이 슐라스인들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것들, 우리가 보고 듣고 했던 것들 모두가 생각이 나. 케콕스 선생님은 빼고.” 메족스가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래, 케콕스 선생님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냐. 하지만 오늘 얘기를 듣기 전에는 그게 얼마나 나쁜건지 깨닫지 못했어. 내 생 각엔, 나는 이 사회가 정복이란 주제를 둘러싸고 어떻게 건설된 건지를 전혀 이 해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도 무언가를 얘기하려고 했지만, 조용히 앉아 잇던 프리캄이 먼저 입을 열 었다. “글쎄, 우리는 개인적 감정 같은 것 없기로 하자, 정말로. 우리가 원하고 또 너희가 노력을 했더라고 보상을 할 수는 없었을 거야. 그리고 그런 건 지금 바 라지도 않고, 그렇지 않니?” “맞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케콕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어른들이 살았던 것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거고, 그곳에서는 모두가 평등 할 거야. 우리 모두가 함께 말야.” 희미한 불빛 아래 오투스가 손을 가운데로 내밀었다. 프리캄이 그 손을 잡았 고,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나도 그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잇었고, 메족스가 우리 모두의 손을 잡았다. 아주 부 @p 61 드럽게 오투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약속하는 거야. 슐라스인들과 팔라스인들이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공 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의 힘을 쓰는 거야.” 우리는 모두 약속했고, 나는 어둠 속에서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평생 함께 할 이 소중한 친구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목청을 한번 가다듬고 내가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모두가 따라했다. “옳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할 것이고, 그게 전통이기 때문에라든가 하는 우스 운 짓은 하지 않는 거야.” 프리캄의 얘기에 모두들 그러기로 햇다. 처음부터 어떤 서약을 할 걸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한 사람 씩 얘기하고 있었다. 메족스가 뒤를 이을 차례였는데, 우리가 모두 쉬운 것부터 맹세한 후였다. 그의 손이 약간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한테는 뭐가 중요한지 아니? 가끔씩 나와 오투스가 다른 왕실 집안 아이 들과 하루 이틀 정도를 지내야 한다는 거 아니?” 프리캄과 나는 고개를 꺼덕였다. “오투스, 넌 돌아올 때 너무 기쁘지 않니? 네가 정말 왕실 사람이라는 걸 느 껴?” “발이 나왔으니까 얘긴데, 난 우리 지안 사람 같지가 않아. 당연히 너희들을 다시 만나는 게 좋고, 그게 가족들을 너무 안 봐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어. 우 리 식구들은 너희 집안에서만큼 내가 가는 걸 원하는 것 같지 않거든. 메족스, 난 그저 그들에게 @p 62 끌리지가 않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 꼭 그래서만이 아닌 것 같아. 그것보다 너희들이 항상 나를 반겨주니까 그런 것 같아. 너희는, 너희 모두는 나에게 집 같은 존재야.“ 오투스의 말을 받아 메족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한 것도 그런 거야. 나도 약속할 게 있어. 지금부터 우리들에게 뭐 가 제일 중요한지를 약속하기로 하자. 우리 그룹은 가족이고 집이고 우리에게 는 모든 것이야. 황제가 되는 것도, 팔라스인이든 슐라스인이든 하는 문제도, 그 어떤 것도 더 ㅜㅇ요하지 않아.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이고 집이고 가족이 되어 주는 것, 언제나, 어떤 일이 있든.” “언제나, 어떤 일이 있든.” 내가 따라하며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오투스와 프리캄도 따라했고, 우리는 지 금 우리를 둘러싼 이 마술과도 같은 분위기를 느끼며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 었다. 창 밖으로 거의 보름달이 된 창가로 가서 한참 동안 창 밖의 하늘을 바 라보았다. 한쪽은 프리캄이 또 다른 쪽은 메족스가 숨소리를 느낄 만큼 가까운 곳엔 오 투스가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친구들은 내 집이야. 이제 는 정말 가족을 갖게 된 거야. 아무 것도 우리를 갈라놓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 도.’ 그리고는 우리들이 세트포스까지 쭉 가게 될 일과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ㅣ우며 서로 늙어갈 것을 생각해 보았다. 슐라스 여행은 새삼 달랐다. 지리적인 것과 역사는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전쟁터나 첫 번째 정착자들에 대한 기념비 같은 것들도 모두 비슷해 보였다. 정작 다른 것은 슐라스 군중들이었다. 팔라스인들은 늘 환호를 질러댔고, 오투 스와 메족스가 무슨 말인 @p 63 가를 해야 할 때마다 박수를 쳐댔다. 그들은 서로서로에게 동의하는 능력이 있었고, 그런 걸 상식의 공유라고 믿는 것 같았다. 반면에 슐라스 사람들에게는 무언가에 동의할 수 있는 면이 있어 보였다. 슐라스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우리를 거부하는 행렬을 만나야 했다. 평등론자 들도 있었고, 종교계도 그리고 대부분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철학 그룹에서도 저항을 했다. 왕실 오휘대가 몇 사람을 체포해 갈 때까지 그들은 소리를 질러대곤 했다. 우리는 조용히 서서 적당할 때에만 동의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과 의견 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선생님들이 반복해 주는 질문에만 대답을 하도 록 신경을 썼다.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이면 곧바로 정치적 효과를 가져와서 법정에 서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다. 우리가 우 주선으로 돌아올 때 케콕스 선생님은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얘들한테 적당치도 않은 말을 하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건 처음 보겠다고 중얼거리던 일이 떠올랐 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되받았다. “그래도 잊지 마세요. 인구 중 27퍼센트가, 그리고 변호사의 98퍼센트가 여 기 있다구요,” 슐라스에서의 마지막 사흘은 다소 달랐다. 드디어 우리는 중요한 탐험과 정 착, 정복에 대한 기념비들을 모두 보았고, 다음은 메바파수스 산으로 갔다. 그 산은 적도 근처에 높게 솟아 있었고, 전망 종합관이 설치되어 있엇다. 컴퓨터와 라디오 망원 장치가 있는 거대한 빌딩에는 수백 명의 천문학자들이 일하고 있었 다. 그들 대부분은 침입자별의 영향을 받은 천체들의 경로를 조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좀 특별한 미팅이 잇어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p 64 우선 우리는 꽉 죄는 우주복을 입고 산소 마스크를 쓰고는 220년이나 된 건 물, 옛 관측대를 향해 긴 돌계단을 올라갔다. 거기 있던 구식 망원경에는 베이 스를 두르고 있는 산소 덮개가 있어 학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일할 수 있 게 되어 있었다. 이미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잘 닦여 있고 윤활유까지 칠해 져 있어 특별한 경우에는 언제든 다시 작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부터 모든 게 시작된 거야. 바로 여기, 이 렌즈를 통해서지. 망원경이 처음 발명되었던 수백 년 전부터 관측대의 얘기가 나왔어. 사람들이 다들 대기 보다 더 높이 가면 더 잘 볼 수 있을 거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거든. 하지만 이 곳에 관측대를 짓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지. 과학적인 의심도 많았고, 또 누가 그 경비를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도 문제였고, 그리고 과학이 계속 발달하 고 있었기 때문에 천체 관측대의 구조 설계가 계속 바뀌어야 했었어.” 산소 덮개 주위로 우리가 모여들자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결국 짓긴 했지. 여기서 세워진 첫 번째 산소 장치 시스템은 전기 분해 시 스템이었어. 얼음을 모두 끌어올린 다음에 녹여서 그것을 다시 이 언덕 아래에 있는 큰 풍차로 동력원들 대어 전기로 재합성하는 것이지.”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이 비행기나 아니면 괜찮은 엔진도 갖기 전에 이걸 지었다는 거야. 물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정확히 1백 년 전에 세 천문학 자가-팔라스인 한 명과 두 명의 슐라스인이-소사히만큼 큰 행성이 다가오는 것 을 발견하고 그것이 조이로이와 아주 근접할 것 같다고 발표한 사실이지.” 역사책들을 읽으며 그 내용을 다 알고 있었던 나는 듣는 둥 마 @p 65 는 둥 하면서, 당시에 이곳이 어땠을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관측대는 거의 패쇄됐고, 그 망원경으로는 어떤 흥미로운 광경-적어도 이 근방에서는-도 볼 수 없었을 텐데. 1백 년이 지난 후에는 조이로이와 그것의 행성인 사마쿠이, 그리 고 위성들인 푸목스, 투폭스와 카레키프들에 대한 모든 조사가 끝나서 이제는 더이상 검토할 것이 남아 있지도 않았다. 그들은 두 번씩이나 큰 혜성들을 관측했고, 가장 가까운 쿠사펙스별이 우리 별과 같이 쌍둥이라는 걸 알아냈다. 물론 그때는 모든 이론들이, 단일한 천체는 생명체를 유지시켜 줄 만한 행성들을 발전시켜 나갈 수 없다는 쪽이 지배적이어 서, 거기엔 어떤 생명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초기에 발견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제 이 관측대에 돈을 그만큼 할애한다는 건 자원 낭 비라는 의견들이 분분하게 되었다. 실제로 대법원에는 관측대로 가는 기금을 다른 용도로 할당해야 한다는 청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대발견이 일어났던 바로 그날밤, 세 천문학자들은 그 괴상하게 생긴 구식 우주복을 입고 는 산소 덮개 아래 모여 있었다. 그곳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을 만큼 기압 수준이 올라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언젠가 우리 쌍둥 이별을 둘러싼 띠 근처로, 떨어져 혜성이 될 지도 모를 얼음체들을 조사하고 있 었다. 그들은 두 개를 발견해 놓고 있었는데, 대법원에서는 그걸 광대한 우주 전 영역을 조사해서 발견한 두 개의 눈송이라는 식으로 비아냥대고 있었다. 학자들 중 한 명은 자신의 일기에, 그런 식의 성공을 두 건만 더 올렸다면 아 마 대관측소는 영원히 폐쇄하게 되었을 거라고 기록해 놓고 있었다. 나는 종종 그들이 그 발표를 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검토를 했 @p 66 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 사진으로는 그들이 물체를 처음 발견했을 때 부터 혜성의 꼬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그걸 발표할 만큼의 배짱이 생기 기까지 얼마나 많이 검토를 해야 했을까? 자기들끼리 그 연구가 무시당하지 않 으면서 별 소란 없이 공식 발표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고 논쟁을 벌이지 않았 을까? 그들은 아무리 검증을 하고, 또 아무리 주의 깊게 모든 단계를 밟아도 분명히 사람들의 거친 반대가 있을 걸 확신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확신은 옳았다. 다가오는 물체가 눈으로 확인될 때까지 대법원에서는 3년 동안이나 맹렬한 토론 이 있었다. 그후에 세 과학자에게는 황제의 명령으로 그들이 두 번째 관측소를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이 지원되엇다. 거기서는 지금 침입자별로 확인된 그 물체가 과연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더 자세한 관측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산 정상까지 갈 수 있는 비행기가 없었기 때문에 전기 모노레 일 만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결국 완성된 건 침입자들이 조이로이와 부딪치게 될 시간을 반 년도 채 남겨 좋지 않은 때였다. 사실 그들이 처음 침입자별을 발견했을 때 떠들썩했던 여론은, 침입자별에 대 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을 발표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결론이라 는 것이 침입자별은 조이로이와 부딪친 후 태양 가까이에 접근해서 이 쌍둥이 시스템의 궤도 선상에서 끝날 거라는 거였다. 게다가 그 별은 소사히에 아주 가까이 접근하는 경로를 거친 후,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 별 주위를 아주 가깝게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떠들썩했고, 지금은 많은 관측과 천문학자들이 그들의 @p 67 발견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침입자별이 태양에 충돌했다가 마침 내 소사히에 꽝 하고 충돌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침입자별이 태양에 근접한 경로를 지날 때의 충격에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그 수학적인 개념은 다시 재건축이 행해진 수 년 후에나 이해가 되었다. 어떤 물체가 태양과 같은 큰 물체에 가까워지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의 조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게 된다. 태양에 근접했을 때, 침입자별은 양극 에서 큰 차이를 내는 조수 효과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침입자별 자체가 별들 사이의 어둡고 추운 곳에서 형성이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지역이 아주 낮은 온 도였고, 원심력조차 제대로 없어 소사히 같은 금속성 핵이 없었다. 군데군데 할 퀸 자국 같은 표면을 둘러서 바위 덩어리와 쇳가루 같은 것들이 물과 암모니아 얼음 조각들로 느슨하게 묶여진 형태였다. 그래서 그 외부층이 날아가 버린다 면, 그것들은 모두 부서져 내릴 태세였다. 태양 가까이에서 침입자별은 모두 다 른 크기로 산산조각이 나서 흩뿌려졌다. 그 운하체의 중심 부위는 우리별을 크 게 벗어났지만, 그 파편 조각들-그 운하의 외부에서 어떤 것은 산만한 크기로, 또 어떤 것은 돌맹이 크기보다 더 작게-이 우리별과 소사히로 쏟아져 내렸고, 그걸 역사책에서는 ‘제1차 대습격’으로 명명하고 잇엇다. 제1차 대습격으로 여덟 명 중 한 명꼴로 사람이 죽었고, 슐라스가 파괴되었다. 제2차 대습격은 아마도 니수 전체를 파괴시킬 것이고 140년쯤 후에는 우리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우주 바깥 어딘가에서 살아남 지 못한다면……. 과거의 과학자들이 그랫던 것처럼, 나는 산소 지붕 아래에서 우주복을 입고 구관측소에 서서 이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 @p 68 다. 그 옛날 세 명의 과학자들은 그들이 세상의 마지막을 발견한 것이라는 그런 암시나, 아니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그런 예측을 하지 않았을까. 학교 수업 시간에 난 그들에 관한 모든 자료를 읽었고, 퇴색한 그들의 사진도 보았다. 아 무도 그들의 예측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고 나 역시도 그랬다. 다음 사흘 동안은 제1차 대습격 때 파괴된 모든 부분들을 돌아보기로 되어 잇 엇다. 크고 중력이 센 소사히가 집중적으로 파괴되었고, 팔라스의 과학자들이 수시간 내에 5천 배나 되는 가스 폭발을 발견한 니수에도 엄청난 피해가 있었 다. 그리고 그 충격의 대부분은 슐라스로 향했다. 1백 개나 넘는 파편들이 슐 라스에 부딪히고, 작은 섬보다도 큰 분화구들이 형성되었다. 슐라스는 정복당한 것보다도 훨씬 더 파괴되었다. 거주 지역의 19개 섬들이 해수면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파편 조각들에 직접 부딪힌 것도 있었고, 그 충돌로 화산이 폭발해서 피해를 입은 지역도 있었다. 그 열아홉 개 지역은 해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1백 개 정도의 섬 은 부분적으로나마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곳에 남아 있는 생명체는 별로 없었 다. 구후에 바람섬의 남쪽에 있는 큰 고리섬을 포함한 일곱 개의 새로운 섬들 이 다시 형성되었다. 제1차 대습격은 앞으로의 사태를 예상하게 하는 하나의 징조가 되었다. 대부 분의 침입자별들이 여전히 밖에서 더 막대한 바위층과 먼지와 얼음공들을 형성 하며 확장되고 잇다. 우리의 예상으로는, 108년의 주기를 형성하며 돌고 있었 다. 제2차 대습격은 아마 우리 별을 정통으로 치게 될 것이다. 궤도상의 태양과 소사히의 위치로 인하여 우리 별은 침입자별의 밀집한 중심부가 통과하는 가운 데의 정방형에 놓이게 될 것이고, @p 69 예상대로라면 우리 별은 지난 번 충돌의 7백 배나 가깝게 침입자별과 충돌하 게 될 것이엇다. 아마 7천 번이나 8천 번쯤 되는 충돌일 것이고, 그중 한 스무 번쯤은 고리섬을 없애 버릴 정도로 큰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공전하고 있는 가스층으로 4만 번의 충돌은 소사히에 막대한 물질들을 뿌리게 되어 새로운 고리성과 위성들이 형성될 것이고, 후에 그것들이 다시 우리 별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제2차 대습격을 넘길 수 있다 해도 216년 후에는 5천 년마다 침입자별은 우리 별을 치게 될 것이다. 문명이란 것이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얼음 구름 아래건, 아니면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인한 유독성 대기이건 간에 어떤 결과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제1차 대습격은 와코펨 선장의 항해 이후 가장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수백만 명의 팔라스인들이 그나마 슐라스에 나아 있는 것들을 복원하기 위해서 자원했 고, 재구조나 재건축 같은 이벤트들이 생겼다. 간접적으로는 제1차 대습격으로 인해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고, 부분적인 평등 개념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사태 를 파악하고 무언가 조치를 위하려는 과학적인 노력으로 인하여 우리는 과학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게 되었다. 조잡한 비행기와 컴퓨터, 라디오, 전자 모노레일 을 다루던 시대에서 우주 탐사나 반물질 에너지의 시대로 발전하게 된 것이었 다. 하지만 그 영향이 얼마나 대단했든 간에 그건 일종의 전조에 지나지 않았다. 제1차 대습격의 엄청난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건 마치 잠들었던 우리를 겨우 침 대 밖으로 나가게 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땅 전체가 바다 아래로 가 라앉았고, 군도들이 형성되었고, 1백 년이 지난 후에도 화산들은 폭발해 대고 있 엇지만, 그건 정면 공격이 아니라 그저 살짝 건드리고 간 것에 불과 @p 70 했다. 어찌되었든 그건 니수별의 문제였지 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제2차 습격이 있기 전에 난 늙어 죽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날 오후 우리가 하게 될 일에 더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메바파수스 산의 새 관측소에 있는 관람실 에서 앞으로 여행하게 될 신세계, 세트포스 근처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볼 수 있 었다. 선생님들도 같은 생각이었던지, 아니면 우리가 지루해 한다는 걸 아셨는지 그 냥 스케줄이 그렇게 잡혀 있었는지, 우리에게 산 아래로 내려가 우주복을 벗고 본관에서 사진을 볼 준비를 하도록 하셧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미지 들을 잡아낸 방법과 사진들의 선명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아무튼 우리가 향 하고 있는 곳의 그림을 보여 주는 것만 빼고는 전부 장황한 설명들 뿐이었다. 나는 최대의 인내력을 발휘해 이리저리 뒤척이기는 했지만 메족스는 어떠한 노 력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선생님들도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둔 걸로 보아서 똑같이 지루해 하시는 것 같 았다. 마침내 준비를 마친 과학자들은 불빛을 줄이고 화면을 보여 주었다. 첫 번째 사진은 몇 년 전 태양계를 빠른 속도로 접근하여 통과할 때 찍어두었던 꽤 낯익 은 모습이었다. 기본적인 모습들이 나타나 있었는데, 여덟 개의 행성과 쌍둥이 혜성, 그리고 태양을 도는 별모양의 띠가 보였다. 태양에서 세 번째, 네 번째에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행성에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이 보였 다. 세트포스라고 이름붙인 세 번째 행성은 우리가 태양에서 떨어진 거리보다 쿠 사펙스의 5분의 1 정도만큼 더 가까웠지만, 태양의 온도 자체가 조금 낮았기 때 문에, 슐라스가 받는 양의 14퍼센트, 팔라스가 받는 양의 2퍼센트 정도 적은 태 양열을 받고 있었다. @P 71 세트포스는 우리 별보다 중력은 작았고, 지표 면적은 상당히 많았다. 처음 보 내진 탐사선은 수증기를 발견했고, 우리 별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기온과 표면 층이 잇음을 밝혀 냈으며, 무엇보다도 질소와 산소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런 기 온에서 물과 같이 있는 질소와 산소는 바위와 토양에 있는 많은 물질들과 반응 하여 대기층을 떠날 수 있다. 몇 번이나 그런 사실을 배웠던 우리 앞에서 그 과학자는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참지 못한 오투스가 그 사람 말을 끊으려 하자, 오스폭 선생님이 그 아이의 어깨에 손을 대고는 그러지 못하 도록 하는 것을 보았다. 그 과학자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래서 우리가 얻은 확실한 결론은 질소와 산소를 움직이는 물질이 있고, 그것은 틀림없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이 별은 우리 별과 마찬가지 로 생명체가 있는 세계입니다. 여러분, 반면 네 번째 별에서는 약간의 물과 이 산화탄소의 얇은 대기층이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그걸 녹여낼 물질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카레키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죠. 위기 상황이라면 우리들 은 거기서 살 수도 있을 겁니다. 가능하면 우리의 산업 공장을 가져가 그곳에 있는 물질들로 문명 세계를 세우고 몇 세대가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건 절박한 경우에 말입니다. 포획된 침입자별의 파편 일부를 우주 전체 의 거주지를 위한 원료로 쓰자는 그런 괴상한 제안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무모 한 내 동료 중의 한 명에 대한 얘기를 꺼내야 겠군요.” “이봐, 관두지.”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던 키가 크고 마른 중년의 슐라스인 한사람이 끼여들었 다. “그건 단순한 내 주장이었어. 우리가 우주 공간에 거주지를 세 @P 72 워야만 한다면, 아마도 공짜의 태양열과 물질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에도 지을 수가 있겠다는 얘기지. 아무도 우주 공간에서 사는 것이 이 행성의 표면에서 사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얘기하지는 않아. 그리고 우리가 세 번째 행성에서 살 수 있다면 조허겠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또 다시 먼지 바람과 우박으로 덮인 행성 표면층으로 이동하는 법석 대신에 움직이는 바위와 금속 물질에 거주 지를 세울 수 있다는 얘기지. 대기를 스스로 만들어서 살아야 한다면, 도대체 우주로 갈 이유가 어디 있나?“ 또 다른 세 명의 슐라스 사람들이 여기에 반박하려고 애썼지만, 그 전에 오스 폭 선생님이 먼저 말을 했다. “당산들 모두가 훌륭한 과학자들이라는 걸 잘 압니다. 근데 말씀 중에 생각 한 건데, 내가 데리고 있는 이 아이들이 듣고 싶어하고 관심있는 건 세 번째 별 이란 말입니다. 지금까지 결과로 봐서 그곳이 살 만한 곳이겠습니까?” 관창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앉았고, 그들은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관장이 방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엇다. “글쎄요…… 아이들을 위해서 네 번째 행성에 대한 얘기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죠. 어차피 그곳은 살 만한 곳은 아니니까. 그리고 세 번째 행성에 관한 결 과는 상당히 흡족스러운 편입니다. 한 1백 여 개 정도의 육안 사진들과 양 극 지방의 레이더 지도, 스무 개의 접촉 탐사선에서 얻은 결과들까지 포함해서 읽 을 거리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베르키수스 선생님이 해 주시겠습니다.” 베르키수스 선생님은 당연히 슐라스인이었고, 아주 교양있는 모습을 하고 계 셨다. 뾰족한 귀 밑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질문으로 시작하셨다. @P 73 "제가 이론들이나 증거에 관한 이야기로 토론하는 것보다 그냥 사진들을 보면 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그게 훨씬 좋겠군요.” 케콕스 선생님이 대답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한테도요. 기압의 변화율이나 대기의 점성 같은 것이 중요하다면, 가는 길에도 배울 수 있겠죠. 지금 당장은 내가 앞으로 평생 을 살아야 할 그곳에 대한 얘기가 듣고 싶군요.” 소이켄 선생님이 거들었다. 베르키수스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로 제가 가르치고 싶어하는 방법인 것 같군요. 그럼 다들 의자를 화면 가까이 당겨서 앉으세요. 제가 얘기하는 중에 나오는 것들을 화면에서 보게 될 겁니다.” 그때부터 저녁 식사 시간까지 우리는 거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베르키수 스 선생님은 타고난 달변가였다. 선생님이 주제에 대해 깊이 얘기할수록 우리 는 마치 저 멀리 있는 4년 반 전에(실제로 라디오 신호가 우리에게 도달하기까 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태양계를 통과하는 작은 탐사선 위에 서 있 는 것 같았다. 비록 탐사선이 그 행성과 달 사이를 하루도 안 걸려서 달 궤도의 직경을 통과 하는 빠르기로 돌긴 했지만, 세트포스에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데에는 아무 런 의심이 없었다. 탐사선의 50년에 걸친 임무 중에서 마지막 임무는 8일 간의 접근과 8일 간의 후퇴, 그리고 하루 동안 세트포스에 가장 근접해 가는 것이었 다. 하지만 그 하루란 것이 너무나 대단한 것이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 세계가 우리의 것과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우리 별은 5분의 1 정도가 건조한 땅이고, 그중 반 이상이 얼 @P 74 음극으로 쌓여 있는 반면에, 세트포스는 3분의 1 가량이 건조한 땅이었고, 바 다 대부분이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처음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얼음을 보고 놀랐는데, 베르키수스 선생님은 재빨리 적도 근처에 따뜻한 지역이 많다는 말씀 으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가장 좋은 증거가 되는 게, 그곳에는 한 3천 년쯤의 주기로 빙하기와 해빙기 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제 막 빙하기를 지난 셈이죠. 그곳의 남극 은 우리와 아주 비슷해요. 극도로 춥긴 하겠지만, 기압차가 크지 않아 숨을 쉴 수 있을 거라는 점만 빼고는. 사실 우리 별에는 우주 공간까지 돌출해 있는 화 산들이 몇 개 있지만, 세트포스에 있는 가장 높은 산들은 대류권까지도 못 미치 지요. 중력은 우리의 9분의 8 정도 되고, 바다는 우리별 전체만 해요. 여전히 우 리가 거주할 수 있는 땅덩어리는 이곳보다 세 배도 더 됩니다.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땅덩어리가 거의 팔라스만 하고, 보다시피 북쪽과 남쪽에 있는 넣은 땅보다는 작지요. 각 대륙에 편의상 이름을 지어 놓았지만, 여러분들 나름대로 이름을 찾으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북반구에 길게 뻗어 있는 저 큰 덩어리는 단순하게 큰 땅이라고 부릅니다. 그 남쪽에 거의 붙어서 비정형 화된 반도 아래에 있는 곳은 생김새 때문에 갈고리라고 부르죠. 갈고리 대륙의 서쪽에 있는 부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한참을 생각해 보았는데, 우리 중 한 명이 그곳은 아주 가느다란 반도들과 섬들이 밖으로 뻗어 있어, 마치 다리가 모 든 방향으로 삐죽이 나온 채 눌려진 벌레같이 생겼다고 해서 그냥 벌레라고 부 른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벌레 대륙 아래에 평평한 땅덩어리가 있고, 남잔구 전역에 걸쳐 있는 건 이것 하나 뿐이라서 이 대륙의 이름은 남쪽 나라입니다. 이런 대륙 @P 75 들의 이름은 나중에 내키는 대로 다시 지어 부르십시오.“ 우리에게 기본적인 지리 개념을 설명하고 나서 그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 열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성인의 체구만한 작은 탐사선이 나중의 융합 추진을 위해 그 무게의 1백 배나 되는 연료를 싣고 세트포스를 향해 발사되었다. 우리는 우주선이 출발하기 전 에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자석 브레이크를 이용 해서 속력을 줄이긴 했지만, 아직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잇었다. 행성 가까이에 접근하면서 수백 개의 긴 케이블에 광센서를 부착시켜 펼쳐놓 았고, 각 센서들이 1초에 스무 개씩의 사지을 찍으며 탐사선은 스스로 정확한 위치와 방향을 기록하고 잇었다. 또 스무 개의 소형 탐사선이 행성 쪽으로 발 사되어 높은 대기층에서 폭발하기 전까지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그 데이터 들은 가능한 정확하고 많은 사진을 조합할 수 있도록 계속 편집되고 잇었다. 그 광경들은 두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한 모습이었다. 벌레 대륙의 평원에서 관측되는 모습은 수천만 마리의 동물들이었고, 큰 땅에는 팔라스만큼이나 넓은 숲이 펼쳐져 잇었다. 우리 별에서의 가장 큰 섬들보다 훨씬 큰 섬들이 한눈에 스무 개나 발견되었다. 반면에 세트포스에는 높은 산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화산 도 거의 없어 보였다. 우리네 화산들이 바다를 가로질러서 곧은 사선으로 뻗어 슐라스 지역에 분포한 반면에 세트포스의 화산들은 거대한 대륙 끝에 마치 주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것은 바다 가운데를 가로질러 점들로 이루어진 열도가 형 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이상한 것들 투성이지요. 물론 23 년이란 긴 세월이고, 지금 진수시키는 탐사선은 여러분들보다 훠씬 빨리 그곳에 도착할 거예요. @P 76 여러분이 그곳에 도착할 때쯤이면 모든 미스터리는 다 밝혀진 후 겠지요. 과 학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그 말은 곧 여러분들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미스터리 들을 연구하게 될 거라는 뜻입니다.“ 베르키수스 선생님이 얘기했다. 소형 탐사선은 갈고리 대륙의 따뜻한 물 위로 등을 드러내고 있는 거대한 바 다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 적외선 사진에서는 우리 별에서는 보이지 않는, 극도로 습하고 조밀한 숲이 보였는데, 적도 주변의 모든 지역-삼각지와 갈 고리 대륙-과 큰 땅의 남쪽 지역에 나타났다. 갈고리 대륙에는 팔라스 동부보다 더 건조해 보이는 큰 사막이 보였고, 땅덩어리 자체는 깊은 골짜기들과 길게 꼬 여서 뻗어 있는 산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르키수스 선생님은 다시 말을 꺼냈다. “갈고리 대륙이 삼각지에 접해 있는 모습을 보면, 그곳의 땅덩이리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별에서는 투폭스에서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죠. 아마도 세트포스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세트포스는 다양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광활한 얼음 평원과 따뜻한 바다, 넓은 사막, 광대한 숲, 평원, 강, 낮지만 수없이 많은 산들-그 모두가 생명과 맞 물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날 밤 나는 너무 흥분되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우리 알피악스 강보다 1백 배나 더 긴 강들이 많은 그곳은 어 떨까, 아니면 그렇게 뜨겁고 축축한 숲속의 큰 나무들 아래에 서 있는 기분은 어떨까, 또 바다를 구르는 파도들의 움직임을 그려가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베르키수스 선생님은 또 이렇게도 말했다. “세트포스의 달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조수를 끌어당기는 힘이 @P 77 여섯 배나 더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선원들이 잇다면, 그들은 파도에 대한 깊 은 이해가 필요할 겁니다. 강 하구의 사진들을 보면, 이 넓은 지역이 왜 녹색으 로 보이는지 알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큰 강들이 막대한 양의 물질들을 하구에 옮겨놓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수가 토양 위를 왔다갔다 하며 생 명체들에게 영양을 공급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지역은 생명체가 떼지어 움직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생명체가 떼지어 움직인다’는 그 구절이 계속 생각이 났다. 나는 얼마나 큰 세계가 펼쳐져 잇으며, 얼마나 다영한 형태의 삶들이 존재할지를 생각해 보 았다. 나는 이상한 숲과 평원들과 수백 가지의 동물들을 머리 속으로 만들어 보았다. 날이 밝앗을 때 나는 아주 피곤했지만 내 눈은 흥분으로 여전히 반짝였다. 전 날 밤에 세트포스란 내게 아주 멀리 있는 어떤 곳 밖에 되지 않았었다. 메족스 의 궁전이나 대법원의 한 자리, 아니면 다른 어린애들이 생각하는 다른 어떤 것 과 다르지 안았다. 그러나 우리가 출발하기까지는 세 달 남짓 남았고, 내가 그곳 에 도착하기 전에 벌써 어른이 되겠지만, 나는 그 신세계가 보고 싶어 몸이 달 았다. 소이켄 선생님은 내가 흥분되어 있는 걸 보고 혹시 열이 있는지 물었다. 내가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우물거렸을 때 케콕스 선생님이 먼저 나를 거들어 주 엇다. “나도 카레키프를 생각하면서 저랫었지.” 선생님의 그 말을 하는 모습이 슬퍼 보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나는 가끔 그때 모든 것이 얼마나 변할 건지 에 대한 어떤 예감이라도 있었는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같은 결론에 이르곤 한다. 내는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했고, 어떤 불길한 예감도 갖지 못했다고. @P 78 세트포스를 찾아라 우리는 네 번이나 우주에 나가보았기 때문에 무중력 상태는 하나도 낯설지 않 았으며, 와코펨 조모스 호에 타는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바로 몇 달 전에 반작용 엔진을 테스트하기 우해 소사히 주위의 궤도에서 24 일 정도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선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고, 거 기서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은 니수의 궤도에서 출발하는 날까지 우리는 식당 에 앉아 토론이나 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우주선 뒤에서 보았으면 좋겠어. 첫 번째 부분은 진수식 전체에서 제일 큰 볼 거리인 걸. 그리고 추진 로켓이 분리될 땐......” 메족스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P 79 “나도 거기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 고향의 마지막 모습을 제 일 잘 볼 수 있는 곳은 어딜까?” 프리캄도 말했다. “주위에 선생님들이 안 계신다고 그렇게 바보스럽게 굴 것 없잖아. 그렇게 놀란 토끼 눈을 누구한테 보이려고 그러니?” 오투스는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들어 그녀는 곧잘 화를 잘 내곤 했었다. 프리캄은 긴장하는 것 같았지만,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오투스, 우리가 출발한 후 6일 동안은 니수가 원반 모양으로 보일 거라는 것. 그리고 소사히는 1년 이상 육안으로도 보일 거라는 것은 나도 알아. 내가 말 한 건 그런 게 아냐. 내 말은 이게 우리가 어른이 되어 니수를 그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중의 하나로 보게 될 때까지 우리가 보게 될 마지막 광경이라는 거 고. 거기에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거야.” 오투스는 다시 프리캄에게 반박하려고 했으나 평화를 유지하고 싶었던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궤도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냐. 우리가 니수를 떠나면 우리 뒤에 언제나 남 아 있는 건 아니야. 우리는 큰 고리 모양으로 회전할 거라서 니수는 일정한 시 간에 언제나 다른 곳에 보이게 될거야. 게다가 우리가 일단 추진 로켓을 분리시 키고 나면 이 우주선은 중력을 얻기 위해 돌아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니 수가 정면으로 우리 앞이나 뒤, 혹은 창문 옆으로 지나갈 때 빼고는 희미하게 밖에 보지 못하게 되는 거지.” 프리캄은 날 보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선생님들이 그 애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마워. 자메코시즈. 내가 알고 싶었던 거였어.” @P 80 “미안해. 프리캄.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지껄여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건 옳지 않은데도 우리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아. 우리가 승선하면 바빠 질 거라고 얘기했던 건 대체 어디 갔나 모르겠네.” 오투스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모두 식당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그 대식당은 일단 우주선이 돌아가고 중력을 얻기만 하면 바로 거기에서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 자유 시간에는 어울 려 다니게 될 곳이었다. 그 곳은 몸길이의 여섯 배나 될 만큼 큰 방이었고, 내부 와 갑판으로 통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갑판 입구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나선형 모양의 계단이 있고 천장은 우리 머리의 두 배만큼이나 높았다. 추측해 보면 이 방은 우리가 고도이상화 현상을 겪지 않도록 고안된 것 같다. 바닥에 의자가 있긴 했지만 추진 로켓과 회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무중력 상태 이기 때문에, 그 위에 앉거나 바닥으로 가는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신 우리 는 갑판 입구 정도의 높이에서 떠다니며 복도를 쳐다보았지만, 모퉁이를 돌아가 야 하기 때문에 별로 멀리 볼 수 없었다. 예정대로라면 우리는 벌써 출발했어야 했지만, 팔라스의 다섯 가문에서 중요 하다는 사람들이 진수식 전에 승무원에게 얘기하는 상황이 기록되어야만 했고, 중요한 사람일수록 맨 마지막으로 해야 했다. 그래서 팔라스 왕가에서는 늦을수 록 자신의 위치를 평가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는 도안, 슐라스 대법원에는 탄원과 원성이 계속 들어 왔다. 어떤 이들은 실제로 와코펨 조모스 호가 이륙하는 것을 방해하려고도 했 지만, 대부분은 자기들의 탄원이 이 우주 @P81 선의 임무에 한마디라도 더 첨가될 수 있도록 일정을 미루는 데에만 몰두했다. 탄원들 중 반 이상은 실제로 받아들여 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 에게 잘 보이려는 몸짓에 불과 했다. 우리는 진수가 시작될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케콕스 선생님과 소이켄 선생 님은 지상 통제반과 연락을 하여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언제 우리가 떠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오스폭 선장님은 조종실에서, 그리고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관제탑에서 컴퓨터와 일반 상황을 살피며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바로 출발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지상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이 우리 임무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거라는 건 너무도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와코펨 조모스 호의 이륙이라 는 역사적인 사건에 한 부분이라도 그들의 말이나 청원이나 아무튼 뭐든지 조금 이라도 역사책에 실렸으면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우리가 어른 승무원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선생님들은 우주선을 날 리는 것 말고도 지상에서의 바보스런 질문과 명령에 답해야 하고, 동시에 자기 네들끼리도 다투어야 하지. 우리한테 신경 쓸 시간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매족스의 말이었다. 우리는 혹시라도 우리가 소란을 피우거나 말썽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녹화기 앞에서 무언가 적당하지 않은 짓이라도 할까봐 아무 곳도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마치 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녹화 장치 앞에 한 번도 서 본 일이 없는 아이들처럼. 따라서 우리는 바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끼 리 놀도록 내버려져 있었다. 차라리 숙제라도 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P 82 “자메코시스, 너는 어떤 창문 쪽이 좋겠니? 지금까지 네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었잖아.” 오투스가 물었다. “그리고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냥 아무 창문 옆에나 앉지 뭐. 난 별로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거든. 그건 내가 정말 로 내 주장을 갖고 있지 않아서 일거야.” 오투스는 종종 내게 호감을 느낄 때 그렇게 하듯이 손을 뻗어서 내 등을 부드 럽게 쓸어 내리며 말했다. “자메코시스, 너는 식탁에 스튜 세 접시와 돌멩이 한 그릇이 있다면 맨 마지 막에 남는 걸 먹겠다고 자청할 것 같아.” 메족스가 항의하듯이 말했다. “그건 자메코시즈가 우리 모두에게 너무 좋은 친구라서 그래.” 오투스는 내 등의 더욱 낮은 곳을 쓸어 내렸고, 거기가 제일 기분 좋은 곳이 었다. “어쨌든 얘는 돌덩어리를 차지할 거야.” “아마 그렇겠지.” 내가 대답했다. 나는 그저 오투스가 내 등을 만지는 걸 멈추지 않게 하려고 그 애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아무렇지 않아. 어느 창문이나 지저분해서 바깥 광경 을.....” 그때 벨이 울리면 케콕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식당에 있는 거냐?” “네, 선생님.” 우리는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좋아, 지상에 있는 똑똑한 양반들께서 이제 우리를 보내주실 @P 83 것 같구나. 방금 선장님이 우리가 이제 언제든 출발할 수 있다고 연락하셨다. 가속 저항 지점으로 가서 몸을 묶고 거기에 있도록 해라. 물을 마시고 싶다든지 하면 지금 하렴. 실시!” “네, 선생님!” 우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인터폰은 꺼졌다. “외부 갑판에 ‘선미 공부방’ 어때?” 메족스가 물었고 프리캄과 함께 둘은 복도로 나갔다. 메족스의 뚱뚱한 팔라스 인 몸매와 프리캄의 키가 크고 가녀린 슐라스인 몸매는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특별히 어디에서 구경하고 싶은 곳이라도 있는 거니? 나는 정말 마음을 정 하지 못했어.” 오투스에게 물었다. “컴퓨터 랩으로 가자.” 나는 웃음을 지었다. “거기도 선미의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잖아. 그러면 그저 메족스를 화 나게 하려고 그런 거니?” “메족스와 싸울 이유가 그런 거밖에 없지? 게다가 메족스의 말에 동의해 줄 사람은 언제나 프리캄이 있잖아. 자, 어서 가서 끈으로 묶기나 하자. 칸막이 벽 을 앞에 두고 판자에 기대어 출발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메족스와 프리캄이 바깥 쪽 갑판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에, 우리는 안 쪽 갑판을 따라 왼쪽으로 갔다. 우리들 개인 방에도 모두 창문이 있었지만 너무 작았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무언중의 동의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첫출발이 될 이 이륙의 순간을 친 구와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오투스와 나는 헤엄치듯 좁은 복도를 지나 컴퓨터 랩으로 갔 @P 84 다. 그 곳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 가속 저항띠와 커다란 선미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있었다. 와코펨 조모스 호는 그루터기 모양의 원기둥이었는데, 길이보다 더 넓었고 4 층짜리 건물만큼 높았다. 넓은 날개는 아랫부분를 감싸는 형태였고, 원통의 4분 의 1 정도 길이로 뻗어나가 있었다. 우리는 고리 모양에 사는 셈이었는데, 우리 가 출발하게 되면 축을 따라 돌게 될 이 우주선 내에서 고리의 바깥 쪽 날개 부 분은 외부 갑판을 이루어 우리가 살던 곳의 중력을 갖게 될 것이었다. 장식 갑 판 부분은 내부 갑판이 되어 니수 중력의 약 5분의 4정도로 우리가 가게 될 세 트포스의 중력을 갖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것보다 선실 안은 무척 좁은 편이었다. 원통 가운데 전체 가 항해실과 동력실, 착륙 창고, 농장 같은 것으로 되어 있었고, 구명 장치, 쓰레 기 처리장, 일반 창고, 그 밖에 다른 것들이 원통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원통의 거의 바깥 부분에 살고 있었으므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 의 눈길을 피할 장소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생활 공간의 대부분이 다른 용도로 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조종실이나 생물 실험실 같은 곳이었다. 우주선의 그 많 은 공간 중에, 내 방은 어린애인 내가 손을 뻗어서 크기를 재 볼 수 있을 정도 였다. 원통 중간 안 쪽에는 동력 장치와, 반작용 엔진, 재활용 장치, 우주선 농장과 구릭스와 루마츠 두 사람의 어두운 동상이 있었다. 실제로 우리가 그걸 사용하 기까지는 24년이 더 걸리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려는 일이 무언가를 계속 인식 시켜 주면서 그렇게 보존되어 있었다. 원통의 앞부분은 돛과, 브레이크, 돛대를 매는 밧줄, 그리고 그것들을 작동시킬 윈치들었다. 우리는 가속 장치 그물망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서로 꽉 묶 @P 85 여져 있는지 확인하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분명히 떠나기 전에 한두 번쯤은 또 연기가 될 것이다. 우주선 여기저기에 가속 그물망이 있었는데, 속도가 붙을 때 자유롭게 왔다갔 다 할 수 있도록 꼭대기 부분에 한쪽 끝을 매어 놓은, 가볍고 끝이 막힌 그물 침대 모양의 강력한 그물망이었다. 먼저 조사된 바에 따르면, 도중에 굉장히 빠 른 속력-한 줌의 모래가 부딪혀도 우주선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 줄 최고의 속 력-에서 경로 수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그물망은 꼭 필요했다. 우리가 가진 레이더망은 우리가 충돌하기 1분 전에야 감지해 내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충돌 경보가 울리기 전에 우리를 빠르고 단단히 묶어 내려줄 수 있는 것이 있어야만 했다. 우리 아이들의 관점에서 이 현상은 우주선의 초기화 추진 단계 중 우리가 안 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 넓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그물망을 향하게 몸을 묶어 놓았다. 그래야 그물망 상이로 우주선의 선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떠 있는 상태로 우리 뒤에 있는 거대한 추진 로켓이 발사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갑판에 기댈 필요 없어. 선생님들은 그저 우리가 발목을 삐거나 아 니면 누군가가 치우지 않은 물체들에 맞지 않으면 하는 거지. 마지만 30분 전까 지는 조금의 가속도 붙지 못할 수도 있어. 이건 보통의 로켓이 아니거든.” 나의 말에 오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난 단지 더 큰 효과를 얻고 싶었던 거라구. 자메코시스, 넌 언제 나 너무 진지해.”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걸, 뭐.” 내 말이 방어적으로 들렸던지, 오투스는 그물망 사이로 손을 @P 86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난 그런 게 좋아. 넌 수업 받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니?” “맞아, 너처럼.” “메족스와 프리캄은?” 오투스는 주저하며 물었다. “나도 알아. 걔들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면 뛸 듯이 기뻐할 걸. 그건 괜찮아. 내가 사람들에 대해서 모른다는 게 아니고, 나는 그저 그런 게 얼 마나 미묘할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내가 설명했다. “그건 공평하지가 않은 것 같아. 단지 내가 공주라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고, 너는 메족스가 왕족이기 때문에 그애 눈치를 살펴야 하고, 또 프리캄은 너와 같은 슐라스인이라서 걔 편을 들어줘야 하고, 그리고......” 오투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건 정말 괜찮아. 어쩌면 난 아직도 고아원에서 기술자나 치과의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지냈을 거야. 그리고 난 정말로 너희 모두를 좋아하기 때문에 좀 친절하게 대하는 거야. 정말 걱정할 것 없어.” “그래도 공평치 못해.” “곧 발사한다.” 선장님의 목소리가 인터폰으로 들렸다. 우리는 큰 전망대 쪽으로 돌았다. 우주선 뒤에는 길고 가느다란 막대기로 연 결되어 우주선의 세 배, 그리고 다섯 배나 긴 거대한 받침대와 연료 탱크, 그리 고 발사기가 달려 있었다. 우주 @P 87 전체가 은빛으로 빛나며 우주선 창의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숨을 길게 두 번 내쉬는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발사 장치 뒤에서 빛이 나면 서 창의 나머지 부분을 채웠다. 공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만 보라색과 희색 의 불빛뿐이었다. 우리는 그물망 속으로 가라앉았고, 그물 침대가 왔다갔다 하는 속에서 우주선이 출발하려는 순간의 광경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몸이 조 금씩 무거워지면서 그물 침대 깊숙이로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의 우주선이라면 니수 표면에서 아무 속력도 없고, 바로 중력에 맞서서 이륙해야 했다. 우주선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려면 30초 동안 중력의 가속보다 두 배에서 세 배 정도로 가속을 해야 했다. 하지만 와코펨 조모스 호는 이미 니 수 주위를 도는 궤도에 있었고, 니수는 소사히를 선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만 한 발사는 넉넉하게 8시간쯤 걸려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그 발사 장치는 추진기의 모든 연료 탱크와 받침대에다가 우주선 자체 의 열세 배나 되는 무게로 와코펨 조모스 호를 밀어냈다. 우주선과 추진 장치는 서서히 속력을 높여갔다. 시간이 갈수록 연료는 소모되면서 엔진을 더욱 세게 밀어냈다. 속도가 증가되었고, 그 압력은 그물망을 우리 얼굴 쪽으로 점점 세게 눌러 댔다. 우리가 보았던 섬광은 수소 혈장이었는데, 그것은 전자와 양자가 공존하는 곳 의 훨씬 아래에서 가열되는 원자 파편의 작은 불빛일 뿐이었다. 추진 장치의 무 게는 거의 액체 수소가 차지하였고, 나머지는 그것들을 단단하게 묶는 탱크와 파이프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한 손으로도 들어서 옮길 수 있는 미세 한 부분이 전체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반물질이다. 절대 온도 0에 @P 88 서 액체 수소와 반물질 무게로 1백만 분의 1을 섞으면 태양 중심부보다 더 뜨 거운 수소 혈장이 되었다. 우리가 숨겨진 전망대가 아니 바깥에서 직접 그 빛을 보았더라면 우리는 아마 장님이 되었을 것이다. 니수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궤도 상에서 우주선이 출발 하는 것을 직접 보지 않도록 경고 되었고, 순식간에 하늘이 밝아 졌기 때문에, 야행성 동물들은 날이 밝은 줄 알고 먹던 것들을 버려둔 채 집으로 돌아가 버렸 다. 우리는 그물망에서 가속될수록 점점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계속 매달 려 있었다. 추진 장치 주위에서 춤을 추던 불빛은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색색 이 물결치고 있었다. 우리가 바깥 궤도 상으로 위치를 옮기면 니수나 소사히가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런 광경은 불꽃놀이처럼 계속되었고, 오투스와 나는 마치 친밀한 친구와 함 께 캠프파이어를 보고 나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듯 대화로 빠져 들었다. “날 불러줘서 고마워. 이런 광경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야.” “음, 그냥 너를 친구도 없는 네 방에 혼자 두고 싶지 않았어.”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무거운 팔에 난 두꺼운 갈색 털을 보았다. “넌 지난 수십 일 동안 잊고 지낸 것 같아. 그리고 메족스와 프리캄이 너무 짝자꿍이 잘 맞으니...... 내말은 네가 네 주장을 하려고 있던 그 때부터.....” 나는 깜짝 놀랐다. “난 내가 내 주장을 하고 있는 줄 몰랐어. 아니면 그 전에 그렇지 않았거 나......” 거대한 폭포 같은 분홍색 장막이 혈장플라즈 마을을 가로질러 @P 89 떨어지다 산산이 부서져서 푸른 점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느라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정말이야? 그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단 말이지? 프리캄과 나는 느낄 수 있었 어. 한10여 일 전에 니수를 마지막으로 여행할 때, 우리가 슐라스를 방문하기 직 전일 거야. 메족스에게 늘 양보하던 앞자리를 너는 갑자기 우리 모두를 위해 잡 아주기 시작했어. 꼭 하루 밤새 그 애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 사람처 럼 말야. 당연히 메족스는 그걸 달가워하진 않았겠지만...... 알다시피 걔는 자기 와 의견이 다르거나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잖아. 물론 메족스는 아주 고상한 면도 있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알지만, 어쨌거나 메족스는 화를 내고 좀 치사해졌지. 그 후로 넌 걱정하는 대신 그저 혼자 삐지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았어. 참 잘한 일인 것 같아.” “난 몰랐어. 아마 내게 자신감 같은 것이 조금 더 생겼나봐. 아무튼 메족스가 아직도 나에게 화가 났을 것 같니? 갠 내 친구고, 난 정말로 우리 사이에 불편 한 감정이 생기는 건 싫어.” “진정한 친구라면 괜찮아지겠지. 아무튼 프리캄이 언제나 메족스 주위에서 맴도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아. 메족스는 언제나 자기한테 달라붙는 사람을 좋 아하고, 프리캄은 달라붙을 사람이 없으면 뭘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아이니까.” “그건 너무한데.” 내가 핀잔을 주었다. 오렌지색의 유광이 잠시 동안 전망대를 가로질러 흔들리 며 움직였고, 꼭 초생달이 된 소사히를 말아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맞는 말이야. 나도 걔들을 좋아하지만, 난 그저 내 친구들이 어떤 얘들인가 에 대해 나나 너한테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는 없 @P 90 다고 생각할 뿐이야.“ 나는 또 다른 녹색 장막이 비틀리며 반짝이는 모습을 쳐다보느라 대답하지 않 았다. 나는 오투스가 지적한 나의 갑작스런 변화가 왜 생겼는지를 알았다. 케콕 스 선생님이 메족스에게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주의를 준 후에, 나는 혹시 메족 스가 나보다 잘하는 것이 있을 때 부당하게 혼날까 봐 늘 두려워한 것 같다. 그 래서 할 수 있으면 언제나 그 애보다 훨씬 잘하는 걸로 보이려고 애썼다. 가끔 은 선생님들 앞에서도 메족스를 이기려고 했다. 그저 안전한 편이 좋을 것 같아 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메족스가 벌받지 않아서 안심할 줄로만 알았지. 내가 그날 일을 안다는 걸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 보았다. 우리가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우리 앞에 남은 수많은 세월 동안 정말 로 그랬으면 했다. 붉은색과 오렌지색, 다른 것들처럼 아주 조용하고 어마어마하 며 산만큼이나 커다란 공들이 추진 로켓의 배기 가스에서 나와 꺼지듯이 순간적 으로 사라졌다. 그때 오투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작별을 하다니......” 우리는 어둠을 바라보며 우리 무게가 늘어나 그물망 속으로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투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메족스가 프리캄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국에 우정이란 계속 커지다가 줄어들다가 하는 것이었 다. 우리는 지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네 살 때부터 늘 함께 있으면서 서로를 발견하고, 이걸로는 싸우다가 또 다른 문제로 같이 붙어 지내곤 했다. 메족스와 내가 친구가 된 것은 약 1년 정도 되었지만, 프리캄은 내 가장 친한 @P 91 친구였다. 그리고 오투스와 난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는 둘 다 다른 애들보다 수업 받는 걸 좋아했다.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이 남아 있고, 우리는 어떠한 형태 로든 오랫동안 친구로 지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그렇 게 기대한 것인지도 몰랐다. 난 메족스가 오랫동안 나에 대해서 화를 내고 있었 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예전처럼 내가 메족스 뒤에 서 있지 않아서 화가 났을까? 하지만 내가 그랬다 면 케콕스 선생님은 분명히 그 애를 또 때렸을 것이다. 아니면 모든 게 그냥 오투스가 상상하는 걸까? 프리캄은 종종 사람들 사이에 서 있지도 않은 일들을 과장해서 말하곤 했었다. 오투스도 그런 거라면, 여자애 들이란 다 그런 걸까? 난 불현듯 메족스와의 우정이 그리웠다. 메족스는 무례하 고 강제적이긴 하지만 이해심이 많았다. 내가 스무 살쯤 되어서 사춘기가 될 때 까지 내가 과연 여자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오투스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나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니야. 괜찮니?” “그냥 생각하고 있었어.” 가속 단계의 마지막 부분이 가장 길게 느껴졌다. 여전히 여러 가지 빛깔들과 재미있는 효과들이 보였지만, 이제는 거의 연료가 소모되어 가속은 점점 심해졌 고, 우리는 점점 그물 속으로 빠져 들었다. 처음에는 그물눈이 넓어서 우리가 볼 수도 숨쉴 수도 있었고, 그렇게 형편없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만큼 편한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모든 중력이 일시에 멈추었다. “그물에 그대로 있거라. 엔진 준비는 완료되었지만, 추진 로켓 @P 92 을 투하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 선장님은 인터콤으로 우리에게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시간은 느리게 갔다. 추진로켓과 우리 우주선을 이어주던 긴 통 위에서 밝은 불빛이 번쩍했다. 폭발 방지 고리가 날아가고,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탱크와 엔 진의 조립체가 우주선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조립체에는 작은 동력 장치를 달아 궤도로 날려 보내어 태양에 부딪혀 부서지도록 되어 있었다. 다음 세기에 는 이런 시도들이 더 많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주 쓰레기를 최소 화할 수 있었다. 쿵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우주선은 선미에서 날개돛도 날 려보냈다. 폭발 장치의 분리와 이탈, 그리고 작은 동력 장치의 추진, 이 모든 것들은 완 전한 침묵 속에서 일어났다. 들을 수 유일한 소리는 오투스가 내 곁에서 쌔근대 는 숨소리뿐이었다. 가속 그물망이 느슨해 졌고, 우리는 줄을 매었던 선까지 자 유로이 날아갔다. 모든 추진 장치들이 우리 뒤로 떨어져 나가고 난 뒤, 그 곳에는 명암 분계선 으로 명암이 나뉜 소사히가 보였다. 그 가스 덩어리는 이상하게 수축되어 있었 고, 우리가 본 것처럼 갑자기 초생달 모양의 소사히에서 쐐기 부분인 밝은 부분 이 하늘에 만들어진 빛의 구부러진 부분에 형성되었다. 작은 곡석은 빠르게 반 원으로 커졌고, 우리가 슬쩍 옆을 보았다면 우리는 구름과 물 사이로 검은 점으 로 보이는, 바람섬이나 고리섬의 일부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멀리서 육안으 로 보아서는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프리캄은 못 견뎌할 거야. 걔가 어디쯤이라고 생각했던 게 맞는 것 같아.“ 오투스가 말했다. @P 93 인터폰에서 다시 지직 소리를 내며 선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모두들 한 번만 더 참아라.” 와코펨 조모스 호 전체에 드르륵 하는 소리가 약하게 났고, 우주선은 진동하 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물망 속에서도 느낄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자 소사히 와 니수가 전망대에서 점점 빨리 굴러가는 것 같았다. 선장님은 항해에 필요한 속도를 내느라 우주선을 회전시키려고 애티듀드 제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가 있던 가속 그물망이 쫙 펼쳐지고, 갑판 쪽을 향해 안정되었다. 잠시 후에 선장님으로부터 안전 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우리 는 그물망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내부 갑판 위에 두 발로 섰다. 전망대 너머에 소사히와 니수가 미친 듯이 서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우주선이 워낙 커서 우리 는 우리가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보다는 저 바깥의 하늘 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는 먼 우주 탐험의 길에 접어든 것이었다. @P 94 미지의 우주 속으로 태양에 접근하기까지 20여 일이나 걸렸다. 우리가 처음으로 보내는 이 20여 일 동안은 앞으로 계속 경험하게 될 일상이 었다. 일상이라는 말의 의미가 생애 거의 대부분 동안 그러하도록 되어져 있는 일들이라고 정의한다면 말이다. 앞으로 70년을 보내는 동안 24년은 우주 항해를 하면서 다섯 번 정도 세트포 스를 탐사하고, 41년은 돌아오는 데 보내야 하는 우리들이었다. 이 우주선에는 우리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경험하게 될 일상의 시작인 것 이었다. 오투스와 나는 메족스나 프리캄보다 쉽게 적응했던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 다. 어차피 우리는 공부하고 책 읽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더 이상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되었고, 하루종일 책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가끔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주제를 가지고 그 분야 선생님과 짧은 대화를 마 치고 나면 남은 하루 동안 실험실에서 조용히 컴 @P 95 퓨터 시뮬레이션을 하거나 자료들을 모아 읽으면서 함께 보냈다. 대개 저녘 늦게 케콕스 선생님은 우리가 체육관에서도 시간을 좀 보내야 하 며, 매일 니수로 전송시켜야 하는 짧은 영상 사진을 위해 정장을 해야 한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와는 달리 메족스와 프리캄은 남은 시간을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면서 보 내거나 게임을 하다가 선생님들 감시 아래 숙제를 하곤 했다. 그들은 재미있다 는 이유만으로는 하루종일 무언가를 연구하며 하루를 못 지낼 것 같았다. 갈수 록 메족스는 케콕스 선생님과 역사 공부하는 시간만 좋아했으며, 과학이나 수학, 예술에는 최소의 사간만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나 역시 과학과 수학 공부를 훨씬 좋아해서 역사는 그저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으로만 유지시키고 있었다. 한번은 케콕스 선생님과 소이켄 선생님이 이런 문제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것 을 엿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들은 언제나 엿듣는 걸 굉장히 싫어했기 때문에 난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우주선과 우리의 세계를 움직이는 네 명의 어른들 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틈만 나면 알고 싶어했다. 우리가 특화되는 것이 왜 그렇게 문제거리가 될까 하고 속으로 궁금해 하는 동안 두 선생님은 몇 분 걱정하다가 이런 시기가 지나면 나중엔 좀더 균형이 잡 힌 상태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동의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배우고만 있다면 순서는 별로 상관없어.” 소이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케콕스 선생님은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은 그렇게 과하게 하나에만 몰두하는 이유 때문에 더 걱정이 돼. 메족 스가 나중에 황제가 되었을 때 필요한 것들이나 세 @P 96 트포스에 도착해서 갖게 될 낭만적인 모험들이 나중에 자기의 백성들에게 어 떻게 비춰 질지 따위는 그만 좀 생각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 고향에는 이런 속담이 있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먼저 축하연을 베풀지 말라고. 메족스 의 경우가 그런 것 같아.” 소이켄 선생님이 웃음으로 답했다. “제가 자란 곳에서는 말이에요. 실험을 하기 전에 상을 먼저 받으라라는 말 이 있어요. 케콕스 선생님. 그 아이는 어려요. 아직 사춘기가 되려면 이십 년도 더 남았다구요. 어른이 되면 당연히 더 나쁜 버릇들을 갖게 될 지도 모르고, 지 금 버릇들이 없어질 지도 모르죠. 애들은 그대로 놔둬야 해요.” 케콕스 선생님이 비아냥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래. 문제가 뭔지 알아요? 최근 몇몇 황제들이 그런 식으로 계속 아이짓하 는 것을 그래도 놔뒀다는 거지. 오투스가 여왕이 되면 얼마나 우스울까? 그 애 는 영리해요. 그리고 자기 일도 잘 알아서 하구요. 모든 결정을 오전 내로 해 버 리고 오후 내내 독서를 즐기죠. 그리고 내리는 결정 모두 올바른 거구요. 어, 어 쨌거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는 벌써 죽어 있을 텐데요. 뭘.” 소이켄 선생님이 지적했다.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나요?” 포아페레시스 선생님이 끼여 들었다. “케콕스 선생님은 문명이 파괴되는 것을 혼자서 막아 보시겠대요.” 소이켄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메족스에 대해 얘기하고 있구만.”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얘기에 모두 웃었다. 그리고 난 후 화 @P 97 제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들과 어른들이 좋아하는 섹스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들을 만한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 문을 지 나 걸어갔다. 그때 케콕스 선생님은 무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이어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글쎄요. 그건 아무도 생각해 보지 않은 변수인 것 같군요. 하지만 그 아이들 이 결혼하려면 아직도 20년이나 남았고, 지금 그렇게 친구로 지내는 건 꼭 나쁘 지 않아요. 게다가 오투스와 자메코시스는 아주 진지한 아이들이니, 다른 두 아 이들을 제쳐놓게 될지도 모르죠.”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벽에 기대섰다. 나는 한 번도 오투스와 내가 메 족스를 제쳐놓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런 경우가 열두 번도 더 있었던 것 같다. 난 그 애들이 별로 관심없어 하는 것 들에 대해 흥미로워했고, 학문적인 것들은 더 빨리 익혔던 것이다. 어쨌든 내가 조정해 볼 여지가 있는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빨리 배울 수 있는 자유 가 있었고, 더 이상 그 아이가 더 똑똑한 것처럼 보이도록 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 애를 위해 시간을 좀 내어 주고 좋은 치구가 되어 줄 수도 있는 문제 였다. 난 뒤로 돌아 반대쪽으로 뛰어가다가 선장님과 거의 부딪힐 뻔 했다. 아주 부드럽게 선장님이 물었다. “저기서 선생님들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셨지?” “메족스요.” 선장님께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고, 또 거짓말하는 게 오히려 더 좋지 않을 것 같았다. @P 98 선장님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랬겠지. 네가 방금 들은 말에 대해서 무슨 행동인가를 한다면 선생 님들이 못 알아차리실 것 같니?”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는 그럴려고 했던 게......” “좋아, 그럴려고 그런 게 아니라면, 메족스는 네 친구지 네 상전이 아니란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게 되도록 혼자 내버려 둬야 해. 넌 아무 것도 잘못한 것 없고, 늘 걔가 너에게 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걔한테 잘해 주 었어. 그렇게 계속 친구로 지내렴. 하지만 네가 걔 앞에서 노예처럼 구는 걸 우 리에게 또 보인다면, 너희 둘 다 후회하게 될 거다.” 그 말에 난 화가 나서 거의 대들 듯이 말했다. “난 아무의 노예도 아니에요.” 그러자 선장님은 내 어깨 위에 손을 부드럽게 올려놓으며 길게 숨을 쉬었다가 한참 있다 덧붙였다. “하지만 네가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학생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 나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선장님이 날 보내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 외에도 걱정할 거리들은 너무 많았다. 지상에서 배웠던 모든 훈련들도 태양을 돌아가는 것에 대한 준비로는 역부족 이었나 보다.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머무를 곳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가속 그물 망이 우리 우주선에 가해지는 그 가속도에 대해 적절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태 @P 99 양에 그렇게 가까이 지나게 되자 우주선 내부 거의 대부분이 너무 뜨거워졌 다. 단지 내부 갑판의 승무원들 거처와 몇몇 정교한 과학 장치들만이 숨을 쉴 수 있을 만한 온도를 유지할 뿐, 나머지 부분은 살을 태워 버릴 만큼 뜨거웠고, 가소성 물질들이 터지지 않도록 불활성 기체로 채워져 있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우리를 묶어놓은 상태로 설명을 계속 했다. “이번이 적어도 다시 돌아오는 항해 전까지는 우리가 겪을 가장 위험한 곳이 다. 그리고......” 선생님은 또 불평을 막 하려던 프리캄 쪽으로 돌아섰다. “우리는 이렇게 태양에 가까이 붙어야만 해. 그리고 조이로이에도 한 번 더. 전 속력의 5분의 1 정도를 이런 식으로 얻게 되지. 또 이런 거대한 추진 속도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우주선의 가벼운 돛이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도 록 아주 가까이 날아가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아주 불편하지만 이렇게 해야 되 는 거고. 만약 냉각 장치나 에너지 분산 장치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우 리는 다 타 죽어버릴 거야. 여긴 언제나 그런 식이야.” 나는 여전히 입을 쭉 내밀고 있을 프리캄을 상상해 보았지만, 내 자리에서는 그 아이를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아늑한 내 가죽 소파에 드러누워 몸을 쭉 뻗었 다. 그 소파는 어떤 특정한 뼈들과 내부 기관들을 받쳐주도록 우리 몸에 꼭 맞 게 고안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저 끔찍하게 불편한 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되었 다. 그것은 내장과 몸 속 공간들에 메스꺼운 젤라틴 성분으로 된 끈적끈적한 물 질로 채워 놓는 일이었다. 소이켄 선생님의 아주 부드럽고 동정어린 말투도 몸 에 바늘이 꽂혀 무거운 액체 한 통이 들 @P 100 어가고, 또 다른 주사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다음 우리는 소파에 다시 앉아 이번엔 이빨과 혀를 보호하게 될 마우스피 스를 입 속에 넣었다. 누군가 불평 같은 걸 하려고 했다면, 이제 기회는 지나간 셈이었다. ‘단단히 물어라.’라는 소이켄 선생님의 말에 나는 그렇게 했다. 그러자 전작 동이 시작되었다. 작은 꺽쇠가 내 이빨을 잡고, 레버가 마우스피스에서 나와 혀 를 입 천장에 평평하게 늘어당겼다. 소이켄 선생님은 나를 완전히 IV상태로 만들기 위해 지시판을 보며 버튼을 눌 렀다. 1분쯤 뒤에 내 갈비뼈 사이로 바늘이 꽂히고 내 등 깊이 혈관 속으로 들 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아.” 포아퍼레시스 선생님과 소이켄 선생님은 지시판의 상환을 지켜보며 받침 장치 를 작동시켰다. 지금부터 내가 다시 설 수 있을 때까지는 내 순환계에 꽂혀 있 는 이 바늘이 산소와 설탕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가지고 가도록 되어 있었 다. 이제는 더 이상 허파로 숨을 쉴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 두 분이 그 문자판을 보며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 동의하는 제스처를 보인 뒤 다음 동 작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경험하기 전에는 허파에 액체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절 대로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공기를 갑작스레 끌어 올리기 위해 호흡하려는 것 을 내 반사 작용이 멈추게 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자 뇌 뒤 쪽에 꽂혀 진 작은 전극 압박기가 뇌를 누르자 질식 반사 작용이 중단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겁에 질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P 101 였지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공기가 서서히 채워지면서 차가운 액체가 관에서 나와 폐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꼭 무서운 폐렴을 앓는 것처럼. 나는 다른 아이들도 겪는 동안 그렇게 누워 있었다. 특이한 흐느낌이나 비명 소리를 내는 아이는 분명히 프리캄이었다. 그녀의 압박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액체가 압박기 없는 체로 그녀의 허 파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 아이는 겁에 질려 기침을 해대는 것 같았다. 아주 빠 른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달래는 목소리와 소이켄 선생 님이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소이켄 선생님의 말이었다. “된 것 같군요.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하여 우리는 모두 침대에 들어갔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마지막 복습이야. 이제 우주선은 자동적으로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움직이게 될 것이다. 처음 12일 정도가 지나면 더 이상 나빠지진 않을 거야. 그 래도 허락을 받을 때까지는 그 소파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지 말아라.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으로도 너희 몸무게보다 여러 배나 더 나가는 것도 들어올릴 순 있 지만, 너희들 몸의 대부분은 그렇게 많은 힘을 받기에는 너무 약해져 있단다. 지 금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놀이가 소파 너머 있는 저 화면들 뿐이어서 미안 하구나. 저 화면으로 바깥 세상을 조금 구경할 수 있을 거야. 아마도 제일 극적 인 장면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모든 게 암흑으로 변해 버릴 테니 @P 102 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상황을 견디기가 가장 편할 테고. 만약 너희가 만일 깨어 있다 해도 가속의 엄청난 힘 때문에 무척 눈이 쓰라릴 것이 다. 안 됐지만 가속이 심하게 붙을 때 너희는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야 한다. 비 록 우리들이 바로 옆에 있긴 하겠지만, 아무도 너희에게 갈 수 없단다. 난 모두 가 용감하게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좀 위로가 될 만한 얘기라면 다음 번 조이로이를 통과할 때는 이번보다는 훨씬 더 나을 거라는 점이다. 니수에 있 는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우리를 보고 있다는 걸 기억해라. 대창조주나 바 다의 어머니에게 드린 모든 기도 역시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것도 기억하거라. 가속이 시작되면 너희들 바로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구나. 자 이제 얘기도 끝났으니 어서 자도록 해라. 마취제 버튼을 누르는 걸 잊지 말고. 자. 그 럼 다음 식사 시간에 보자.” 선생님은 내 가속 소파에서 멀어져 갔다. 꼭 그 받침 액체는 세상에서 제일 독한 변비처럼 느껴졌고,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그걸 몸에 가진 체로 어떻게 걸을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여러 번이나 우리가 통과할 동안 내내 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단지 내 왼쪽 옆에 있는 마취제 버튼을 손가 락 하나만 뻗쳐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1분 정도 안에 무의식 상태로 빠 져들 것이다. 가속이 최고조일 때는 중력의 힘보다 우리를 미는 힘이 스무 배도 넘을 것이 기 때문에 그 때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로 고통을 견디지 못할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리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시 험 발사 때의 승무원 스테라츠와 바이베렌이 그랬던 것처럼 단지 침대에 누워서 항해중의 가장 위험한 순간을 넘겨버리려는 그런 생각에 별로 동의하 @P 103 지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그렇게 얘기했었다. 갑자기 나에게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조작으로 우리 중 누군가가 혼수 상태로 가기를 결심했다고 해도 결국 은 아무도 알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코를 세게 풀었다. 그러자 더 많은 양의 액체가 내 허파로 유입되었고, IV 산소기가 잘 작동하고 있었는데도 가슴은 기어이 경련을 일으켰다. 나는 심장 전체의 박동을 느낄 수 있었고 혈액 혼합기에서도 괴상하게 꿀럭거 리는 소리가 났다. 몸을 흔들어 보았더니 그 꿀럭대는 소리가 옆에서도 났다. 다 른 아이들도 코를 풀고, 꿀꺽대는 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너무 웃겨서 나는 최 대한 크게 킥킥대며 코를 풀고 꿀꺽대기 시작했다. 곧 우리 모두가 우리 몸 속 기관들로 콘서트를 하고 있는데,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다. “알았다. 얘들아. 이제 너희가 어떤 소리들을 낼 수 있는지 다 아니까 그만하 렴.” 우리는 이제 가끔씩만 킥킥대는 것으로 정도를 낮추었다. 한번씩 메족스가 조 용히 코를 풀 때마다 모두들 다함께 웃곤 했다.액체가 허파를 천천히 채워가면 서 그 소리는 점점 톤이 높아졌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너무 바빠서 그러셨 는지, 아니면 그저 우리가 즐거워하도록 내버려 두신 건지는 잘 모르겠다. 마침내 선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좋아요. 내가 여러분에게 원하는 건 그저 잘 견디어 주는 것뿐이라 는 점 다시 말합니다. 하지만 이건 용기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 이건 우 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아 남는 겁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참 @P 104 을성 있게 견딜 거라는 것을 알아요. 고향 니수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여러 분을 믿습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다니시며 시키기 전에 난 지금부터 마우 스피스를 물 거예요. 모두들 행운을 빌어요.“ 선장님이 마이크를 끄기 전에 그 액체가 선장님의 허파로 꿀꺽하며 내려가는 소리에 다시 한 번 킥킥 웃었다. 시간이 한참 흘렀다. 나는 화면을 계속 보고 있었다. 몇 군데가 가려웠고, 나 는 계속해서 화면의 시계를 보며 아직 그 지역으로 다가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재빨리 긁어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손을 우리 몸 아래로 묶은 채 놔둔다 면, 손과 손목의 모든 뼈들을 부러지기 쉽고, 새 살이 돋아난다 해도 깊은 멍이 든다고 했다. 시간은 천천히 가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니수 표면에서 본 소사히처럼 태양이 크게 부풀었다. 카메라 위의 장치가 우리가 실제 광도의 1천만 분의 1을 보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것은 쳐다보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밝았다. 우리가 로켓을 이용해서 세트포스까지 갔다가 위락 살아 있는 동안에 돌아오 는 식으로 항해를 계속 했더라면, 반물질로 만들어진 엄청나게 큰 우주선이 필 요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륙시에 추진 로켓에서 태워냈던 반물질은 니수 전체가 9년에 걸쳐 생산해 낸 것이었고, 그 속도라면 세트포스에 도착할 때까지는 수 천년도 더 걸릴 것이다. 우리는 니수의 1년 생산량보다 더 많은 반물질이 처음부터 필요했다. 그래야 그 빠른 속도로 가능한 많이 날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해결책은 빛으로 된 날 개였다. 약 3백 개 정도의 원자 두께밖에 되지 않는, 베릴륨과 보론을 아주 얇게 꼬아서 만든 거 @P 105 대하고 평평한 낙하산이었다. 빛이 압력을 만들어냈다. 일반적으로 압력이 너 무 작아서 우리가 느낄 순 없었지만, 매우 밝은 빛이 아주 넓은 표면에서 압력 을 만들어낸다면 더욱 증가되었다. 와코펨 조모스 호의 날개는 고리섬 전체보다도 넓었고, 니수 사람 10억 전체 가 눕는다고 해도 그 표면적의 20분의 1도 채 못 덮을 만큼이나 컸다. 하지만 내 손바닥 위에 있는 작은 날개돛 조각은 너무 가벼워서 거의 느낌조차 없었다. 본질적으로 그 날개돛은 한 개의 큰 베릴륨 보론 분자이며 다른 어떤 물질보 다 (우주선에 매달린 다이아몬드 덮개선을 제외한다면) 더 강하고 복잡하게 꼬 여진 원자였다. 무진장 얇기 때문에 그 날개 한 장을 평범한 가정집 천장에서 떨어뜨려도 그 무게보다 공기 저항이 엄청나서 바닥까지 떨어지는 데는 하루종 일이 걸릴 지경이었다. 우리는 이 날개돛으로 우선 현재 속도보다 열 네 배 더 빨리 날아서 태양의 분노를 피해가는 데 이용하고, 그 후엔 조이로이 옆을 지날 때도 그런 속도를 낼 수 있게 해서 우리가 태양계를 떠날 때는 지금 속도보다 스무 배 가까이 더 낼 수 있도록 할 참이었다. 우리가 태양계의 거대한 레이저빔 쪽으로 이동하면, 18년 후에는 빛의 10분의 4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는 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니수 전체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아흔 배나 되는 양- 가 저 짜여진 원자의 얇은 막으로 조절될 수 있는 것이다. 시계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우주선의 바깥 온도는 우리가 체리 빛을 내 기 시작한 그 점 바로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주선 표면의 열을 고온 집합 시스템으로 가져오고 그 에너지를 단파장의 전자기 반사로 바꾸는 재반사 안테 나가 이상한 진 @P 106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에너지가 이제 자외선 빛으로 방열되고 있었다. 우리는 우주선의 가장 시원한 곳에 있었는데도 방 안은 계속 더워지고 있었 다. 내 다리 한쪽이 너무나 가려웠다. 나는 남아 있는 시간을 가리키던, 하루의 1 천 분의 1밖에 해당되지 않을 그 시간 동안 초침이 문자판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앞 쪽 카메라에 잡힌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주선 앞 쪽에서 한 가닥 줄 이 발사되었다. 돛을 펼치게 될 로켓이었다. 그리고 은색으로 길게 꼬여진 실 같 은 것이 곧게 앞으로 뻗쳐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돛이었는데 아직 펼쳐지지 않아 마치 무제한으로 뻗어 있는 철사처럼 보였다. 돛이 묶여 있던 축에서 풀리 는 데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로켓 동력 장치에서 멀리 보이는 빛은 여전했 지만, 돛은 계속 우리 앞으로 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크고 하얀 덩어리-접혀 있던 돛 아래부분에 있던 핵융합 충전기-가 옆 으로 쏟아져 나갔다. 단 몇 초 안에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그 모습은 돛을 밀어 주고 있는 그 로켓이 얼마나 빠른 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충전이 끝난 후. 수백 개의 다이아몬드 줄로 된 돛줄이 같은 식으로 우주 공 간에 펼쳐졌다. 이 돛줄은 투명해서 돛처럼 태양빛에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 돛 줄은 아주 미세했지만 살짝 닿기만 해도 철사를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래서 감겨 있던 원치는 꼬인 다이아몬드 줄이 되어야 했다. 이 모든 작업들은 끝나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렸고, 돛이 펼쳐지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 지 알고 있기만 했어도 아마 다리를 좀 긁는 것쯤은 별 문제가 되 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너 @P 107 무 늦었다. 나는 단 1분이라도 더 이상은 반짝이는 불빛들이 우주로 쏟아져 나가는 모습 을 못 견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반짝거림은 계속되었고, 우주선 그림자를 없 애면서 우주선 앞 쪽 보통 햇빛의 3만 배나 더 되는 곳으로 뻗어나가 우리는 꼭 무한대로 향하는 가느다란 선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갑 자기 별처럼 밝고 흰 불빛이 돛에서 핵융합 충전이 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주었 다. 화면에 나타난 밝은 별이 빠르게 부플어 오르면서 커다란 원형이 되었다. 돛 안 쪽 거울로 핵융합 충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빛의 압력이 엄청난 속 도로 돛을 열어 밀쳤다. 돛은 연달아 펼쳐지며 화면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면에 돛 모습이 채워질 때마다 점점 어두워졌는데, 우리 쪽으로 반 사되어 오는 강한 빛들이 점차 필터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내 의자는 축에서 계속 왔다갔다 움직이다가 내 등이 우주선 뒤 쪽을 가리키 면서 고정되었다. 그 동안 우주선 바깥 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주선 뒷 방향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햇빛이 풀려진 돛을 확 잡아당기고, 돛줄이 우주 선을 태양 쪽으로 더욱 끌어 당겼다. 나는 등에서 전해지는 진동을 느낄 수 있 었다. 마취제 버튼을 눌러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싶은 마음에 참아 보기로 했다. 가속 때문에 몸은 점점 의자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었고, 속도는 점점 증가되 고 있었다. 더 이상 팔을 들어올릴 수도 없었다. 가속은 내 얼굴을 뒤 쪽으로 끌어당기고, 내 입술은 마우스피스를 찢어 버릴 듯이 늘어졌다. 허파 속을 채운 그 액체는 이젠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P 108 않았다. 이 엄청난 압력에 저항해서 내 가슴을 지탱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나는 꼭 바윗덩어리들 사이에 짓눌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필사적 으로 호흡하기 위해 애썼다. 내 허파를 팽창시키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눈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건조해지지 않으려고 눈을 깜박거리는 것조 차 힘이 들었다. 이제 시야 주위가 점점 어두어지고 있었다. 마우스피스는 마치 내 턱을 짓누르는 거대한 납덩어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얼마나 단단히 내 몸이 의자 속으로 짓눌려 들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집중 조차 할 수 없었다. 세상이 회색으로 변했다가 검정색으로 가라앉았다. 처음에 내가 알았던 것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것 뿐이었다. 내가 등을 깔고 누어 있는데, 메족스가 내 허마 위에 바위 덩어리를 올려놓는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숨도 쉴 수 없었다. 메족스에게 멈추라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 아이 얼굴을 쳐다보니 메족스 자신도 괴로워 보였다. 마치 자 기는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 모든 것이 실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희미한 빛이 회색으로 바뀌더니,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씩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눈이 아프고 갑작스런 빛들의 반짝임 때문에 쉽지 는 않았지만(선생님들은 이것이 뇌시야 부분의 스트레스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하셨다.), 조금씩 화면과 화면에 부착된 시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중 16시간 동안 무의식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보통 때보다 아홉 배가 무거웠고, 아직도 움직이는 건 안전하지 못 한 것 같았지만, 그 모든 걸 다 겪었는데도 내 몸은 이상 @P 109 이 없는 것 같았다. 마치 무거운 쇠망치로 흠신 두들겨 맞은 후에 거대한 바 위 및을 구른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말이다. 마침내 계기판의 불빛이 이제 내 허파에서 액체를 제거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 내왔다. 나는 제어 버튼을 눌러 그렇게 하도록 했다. 곧바로 마우스피스를 통해 서 액체가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가슴이 아파왔지만, 액체가 몸 밖으로 빠져 나 간다면 그 고통쯤은 얼마든지 괜찮았다. 그러고 나서는 혀 압박기와 치아 조임 장치도 느슨해졌고, 마우스피스도 비틀리다 떨어져 나갔다. 흡입 장치로 빠져 나간 부양 액체가 전부는 아니었다. 나머지는 뜨겁고 더러 운 공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쌕쌕거림 뒤에 따르는 기침을 통해서 나왔다. 하지 만 이것은 비교적 훌륭했다. 마침내 간헐적인 마른 기침으로 좀 가라앉고, 주위를 좀더 관찰할 수 있게 되 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이제 막 기침 상태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허파의 느낌은 심한 폐병을 좀 겪었거나 아니면 빠져 죽을 뻔하다가 구조가 된,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비록 많이 아프고 쑤셨지만 정말 기분 좋게 구조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이제 숨을 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속도계를 통해 현재 열 배 정도로 속력이 증가되어 있으며, 아직도 여전히 가 속 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뒤로 기대어 생각했다. ‘이제 나쁜 건 지나갔 어.’이제 필요한 것은 인내력뿐인 것 같았다. 그건 정말 많은 인내력을 필요로 했다. 2시간 동안이나 계속 화면에 보여지는 것이라고는 돛과 우리 뒤에 있는 태양의 모습 뿐이었다. 다행히도 태양이 줄어 들고, 돛의 반짝임이 덜해진 것까진 좋았지만, 계속 누워 있는데다가 아직도 안 전하게 움직일 수 없을 정 @P 110 도로 무거운 사람을 즐겁게 해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가속이 정상 속도의 네 배 정도로 떨어졌을 때,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목소 리가 들렸다. “일어나 앉으려고 하지 말아라. 하지만 이제 원한다면 마우스피스를 떼어내 도 좋아.” 정상 무게의 네 배나 되는 팔은 처음에는 들어 올리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 만, 겨우 힘을 들여서 할 수 있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질량과 관성의 관계는 다르다는 거다. 물건들을 들기는 여전히 힘들지만, 그것들 역시 여전히 너희들이 익숙한 것과 똑같은 반동력을 갖고 있다.” 나는 아래로 떨어지는 팔을 그래도 내버려 두고 편안하게 선실공기를 들이 마 셨다. 바깥 공기도 거의 정상 기온으로 떨어져 내부 냉각기가 멈춰 있었고, 화면 상에 보이는 여러 숫자들은 우주선이 별 탈 없이 고비를 넘긴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다시 말했다. “좋아, 이제 모두들 호흡하고 있구나. 다들 어떻습니까?” “여기는 이상 무.” 선장님이 말했다. “좋아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 그리고는 소이켄 선생님의 목소리. “약간 쓰라리지만, 심각한 건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내가 말하자 프리캄도 이어 말했다. “저두요.” 오투스는 우리를 웃겼다. @P 111 "지겨워 죽을 뻔한 것도 다친 거라고 볼 수 있나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웃었다. “그렇다고 치면 우리 모두가 지금 시체겠다.메족스, 너도 괜찮니?” “어,......,네.” 대답이 너무 천천히 나와서 나는 그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났다. “괜찮니, 메족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메족스의 목소리는 긴장되어 있었고 얼마간 슬프게 들렸다. “저는.......어......, 충전이 시작되는 바로 그때, 긁으려고 했나봐요. 다리가 너무 가려워서 그렇게 해도 별 일 없을......” “세상에......하느님. 감사합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 다. 이어서 메족스에게 물었다. “피가 나는 곳이 있니?” “보이는 데엔 없어요. 머리를 들어올려 봐도 되나요?” “아주 천천히, 천천히 들어올려 살펴보고 머리를 다시 의자로 내린 후에 우 리에게 얘기해다오.” 모두가 걱정하는 가운데 한참 시간이 흘렸고, 마침내 메족스가 말했다. “피는 안 나지만, 허벅지에 큰 혹이 아나 생겼고, 손을 들어올릴 때 너무 아 파요. 죄송해요. 선생님. 규칙을 어기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저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한숨을 지었다. “그 규칙에 대해 걱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 네 상태가 더 걱정 @P 112 이야. 무척 아프겠지.” “예......” 메족스가 울먹거리는 것 같았다. “제가 가 보겠습니다.” “안 됩니다. 그렇게 하다간 척추가 부러져요.” 오스폭 선장님의 목소리는 아주 단호했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거 여기선 안 통합니다.” 소이켄 선생님도 끼여들었다. “메족스는 다 큰 아이고, 다쳤지만 죽어가는 건 아니에요. 메족스. 우리가 너 에게 갈 수 있으려면 적어도 2시간은 더 지나야 할 테고, 더구나 너를 치료해 줄 수 있으려면 한 참 더 걸릴 게다. 그렇게 오래 누워 있으려면 많이 아프겠지. 마취 주사를 한대 놓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단추를 누를 수 있겠니?” “예, 다친 건 다른 손이에요.” 한참 침묵하다가 메족스가 다시 얘기를 했을 때도 그 애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규칙을 어기려고 한 건 아니에요.”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단다. 마취제가 좀 효과가 있니?” “조금요, 아직도 많이 아파요.” “마취제를 더 맞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조절 장치가 있어서 적정 수준을 넘 어가지는 않을 거야.” 메족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요. 하지만 전 두려워요. 선생님. 그리고 이렇게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또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게 싫어요. 마우스피스를 @P 113 떼내기 전에는 정말 무서웠어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동정적으로 말했다. “그랬을 거야. 정말로 두 번 정도만 마취 버튼을 더 누르거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계속 얘기하겠다고 약속하마. 네가 일어날 때쯤엔 손은 고정되어 있을 테고, 다리 속의 내부 출혈도 멎고 네 몸 속의 그 불편한 부양액들은 다 몸 밖 으로 빠져나간 뒤일 거야. 두 번만 마취 버튼을 더 누르고, 우리에게 계속 얘기 를 하거라. 그냥 잠에 빠져 드는 것과 똑같을 거야.” “그건, 우리가 네 가슴 위에 바위 덩어리들을 쌓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야.” 오투스가 덧붙였다. 메족스는 웃음 소리같이 들리는 신음 소리를 냈다. “좋아요. 그게 상식적인 거라면....... 지금 그 버튼을 누를게요....... 정말로 아파 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말했다. “물론 아플테지. 손이 꺾인 것이나 내부 출혈 모두 정말 아픈거야. 저는 아주 잘 견디고 있는 거란다.” “네..... 케콕스 선생님. 궁정 호위대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하죠?” “우리는 다리를 톱으로 잘라 내어 그걸로 호나자가 아파 죽을 때까지 흠씬 두들겨 팬단다.” 너무나 예상외의 대답에 우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노병은 덧붙였다. “메족스야, 네가 얼마나 용감한지 우리에게 보이려고 애쓸 것 없다. 꼭 필요 한 때를 대비해서 네 용기를 아껴두렴. 지금은 그저 편하게 있으렴. 네가 깨어날 때까지 우리가 널 완전히 고쳐 @P 114 놓을 게.“ “조이로이에 근접할 때도 이렇게 있는 게 안전한가요?” 메족스가 물었다. “밀랍 기부스가 뼈보다는 단단하니까 그렇겠지.”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대답했다. “게다가 이제 너는 자유로이 걸어다닐 수도 없어.” 오투스가 덧붙였다. 메족스가 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겠지. 이젠 정말 졸려요. 아까 그 암흑에서 나와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 을 때는 정말로 겁이 났거든요. 규칙을 어겨서 정말 죄송해요.” “누구든 겁났을 거야. 규칙 위반에 대해서는 그만 걱정하고, 이젠 자거라.”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그를 안심시켰다. 메족스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의자에 누운 채로 8시간을 더 보내야 만 했다. 케콕스 선생님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고,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노 래도 불러주었다. 그리고 손, 발을 쓸 수 없었던 우리는 마침내 머리를 사용하는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시간은 너무나 지루하게 흘러갔고, 계속 메족스 걱정이 되었다. 마침내 가속이 정상 중력의 두 배 정도 수준으로 떨어지고, 화면에서 보이는 태양도 여전히 크긴 했지만 예전처럼 열기를 마구 뿜어 대지 않게 되자 소이켄 선생님과 케콕스 선생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메족스를 살펴 보 러 갔다. “생각했던 것처럼 팔 골절에 혈종이군요.” 소이켄 선생님이 먼저 얘기했다. @P 115 “그런 것 같군요. 괜찮을까요?” “괜찮아질 거에요. 게다가 메족스는 용감한 아이예요. 아까 우리에게 얘기했 던 것보다 휠씬 더 아팠을 텐데.....” “메족스는 우리가 하지 말라고 했던 걸 한 거에요.” “정말 메족스 답군. 하지만 이번 일로 규칙이나 충고 같은 것에 휠씬 더 주 의를 기울이게 되겠죠.” 가속도가 점점 줄어들자 선생님들은 메족스를 카트에 옮겨 실은 뒤 외부 갑판 으로 데리고 나갔다. 선원 여덟 명이 전부인데다가 아무도 자주 아플 거라고 생 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우주선엔 의무실이나 진료소 같은 것은 없었지만, 비상시엔 방 세 개 정도를 수술실 용도로 쓸 수 있게 해 놓았다. 아직도 중력이 너무 놓아 메족스를 수술하기가 힘들었지만, 선생님들은 수술실을 만들고는 수 술에 들어갔다. 그 사이 나머지 우리들은 메족스를 걱정했다. “모두 일어나 앉아도 좋아.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부상자가 생기면 안 되니까, 그렇게 앉아만 있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휴대용 단말기가 너희들 의자 바로 옆 에 있다.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해도 좋고, 게임도 할 수 있지만, 일어나서 걸어다 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외부 갑판으로 가서 내가 도울 일이 있는지 살펴 봐야 한단다. 메족스에게 뭔가 해 볼 수 있으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가속이 떨어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텐데 걱정이구나. 가속시에 수술하게 되리라는 건 예정 에 없었으니 말이다. 메족스의 출혈이 더 심하지 않아 다행인 것 같다. 어쨌거나 돌아다니면서 다치거나 해서 문제를 만들지는 말거라.”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말이었다. “내가 계속 주의해서 볼께요. 경로 조정이나 돛을 펼칠 때까지 @P 116 는 조종석에 있을 필요가 거의 없어요.“ 선장님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여전히 90 도로 돌려져 있어 그 모습은 기우뚱하게 보였다. “메족스가 정말 괜찮을까요?” 프리캄이 물었다. “글쎄, 소이켄 선생님은 전직이 아니란 건만 빼고는 최고의 의사란다. 그리고 케콕스 선생님도 수술을 많이 해 보셨지. 두 분 다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도 못 쓸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괜찮아질 거다. 너희들 몸 속의 거품이나 모두 빼내렴. 조이로이에 접근해서 통과할 때까지는 이제 더 이상은 필요없을 테니까.” 아마도 놓은 중력 때문이었겠지만, 선장님은 소이켄 선생님만큼 부드럽게 하 시지는 않았다. 바늘과 튜브가 빼내어 질 때 더 아팠지만, 손을 아주 효과적으로 놀려서 그 필터들이 모두 빠져 나가자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것들이 모두 빠지자, 갑작스레 밀려오는 피곤 때문에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프리캄과 나는 거의 9시간이나 걸렸던 메족스의 수술 시간 내내 잠을 잤다. 우리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 후에 한 첫 번째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투스는 깨어 있었는데도 수술하는 걸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아마 내가 괴로울 거라고 하셨어. 내가 메족스 몸에 칼을 들이 대는 걸 보고 괴로워할 사람도 있냐고 물었거든.” “그건 별로 우습지 않는데.” @P 117 내가 말했다. “그 아인 정말로 아파하고 있어.” 우리는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대식당에 앉아 있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 탓에 모두들 식욕이 대단했다. “소이켄 선생님이 말하던 게 바로 그거야. 모두의 유머 감각이 없어진 것 같 아. 하지만 내가 메족스에게 수혈해 주었으니 아마 그 피 속에 농담도 함께 전 해지겠지.” “난 그저 메족스가 괜찮아졌으면 좋겠어.” 프리캄이 말했다. “나도 그래.” 오투스가 대답했다. 문 쪽에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가 와 있다.” 우리는 임시 수술을 마친 메족스의 주위로 재빨리 몰려갔다. “안녕, 얘들아, 너희들 모두 너무 놀랐지? 정말 바보같이 군 것 같아. 정말로 다시 너희를 보게 되어 기뻐. 참, 그리고 수혈해줘서 고마워, 오투스.” 그녀는 그렇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메족스 때문에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혀 버린 것 같았다. “뭘..... 그런 것 가지고.” 5일, 우리는 모두 조종실 입구에 모여서 선장님이 돛을 접어 올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제 우리는 조이로이를 향해 돌진했다. 소사히나 니수에서보다 네 배나 더 태양에서 멀어져 있었다. 가속도도 점점 떨어졌고, 이제는 정상 중력의 1천 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가 작은 별을 통과하려면 돛을 말아 올리고 멀어질 때 다시 돛을 펼쳐 궤도를 따라 또 한 번 큰 가속을 @P 118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지켜보니 돛을 말아 올리는 작업은 우리가 보아 왔던 것들 중에서 제일 별거 아닌 일이었다. 권양기 로봇이 천천히 전선을 감고, 감아들이는 돛의 크기가 슐 라스에 있는 큰 섬이나, 팔라스의 넓은 정원만했기 때문에 시간이 한참 걸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지켜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장님이 다음 번에 이걸 할 때는 수 년 뒤일 것이고, 그 다음에는 우리들끼리 이걸 해야만 한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세 번밖에 볼 수 없단다. 하지만 지금부터 70년이 걸리는 이 임무의 성패가 너희들이 이 과정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 다면, 아마 지금 빼먹지 말고 보는 게 좋을 거야. 그래서 우리는 전선이 판독판에서 읽혀지고, 레이더에서 그 돛이 얼마만큼 접 혀져 가는가를 더 보며 한참동안 지겹게 보냈다. 마침내 우주선은 다시 궤도로 접어들어 조이로이로 접근해 가고 있었다. 오투스는 취침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이렇게 종알거렸다. “메족스 말이야. 눈치챘니?” “무 말이야?” “그렇게 지겨웠는데도 꼼짝않고 앉아 있는 거 봤냐고.” “지금 메족스는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해. 손도 기부스하고 있고. 다리도 아 프잖아.” “무슨 말 하는 건지 알면서. 메족스가 아무 사고도 안 쳤단 말이야.” “그래서 기분이 좋다는 거야 뭐야?” “당연히 기쁘지. 그리고 오늘 아침에 선생님들 얘기를 엿들었 @P 119 는데, 다들 그것에 대해 기뻐하시는 것 같았어. 하지만 이건 메족스 답지 않단 말야. 내 생각에는 다치고, 또 그 상황에 무기력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서 메족스가 깊이 생각했던 것 같아.“ 그 사고 이후로 메족스는 분명히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확실히 더 조용하고 공손해진 것이다. 나는 메족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우리는 평생동안 가장 좋은 친구들이 된 것 같았다. 50일쯤 후 조이로이에 최종 접근할 때,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 는 마취제 주사를 맞았다. 한 여덟 배 정도의 중력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허파 속에 거품을 넣지 않아도 될 정도로 조이로는 태양보다 작았지만, 접근 과정은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 문이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쯤 선장님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 여분의 돛을 버렸고, 우리가 앞으로 수 년 간 타고 가게 될 레이저 빔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단 60일만에 태양에서 조이로이까지 태양계를 질주하듯 지나갔다. 우주선은 어느새 성간 공간으로 향하고 있었다. 케콕스 선생님이 2년 전에 카레키프까지 원정 갈 때는 이 거리를 지나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우리는 우주선을 밀어주는 레이저 덕분에 단 1년만에 태양계의 바깥 경계 부 분을 차지하던 혜성 무리들에 도달했고, 그 경계선을 넘어 앞으로 20년을 더 항 해해 갈 것이었다. 나는 내 나름의 게임을 만들었다. 니수별의 적도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도 긴 길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여행에 여러 날을 보냈다. 그리고 니수가 소사히 주 위를 도는 궤도는 그것의 마흔 배 @P 120 나 더 됐다. 니수에서 태양까지는 그 거리의 1백 배, 그리고 태양에서 조이로 이까지는 또 그 거리의 열세 배나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니수 주위를 돌던 거 리의 5만 2천 배쯤의 거리를 이미 온 것이고, 그것도 단지 60일만에 도달한 것 이었다. 레이저 빔의 추진력으로는 지금 속도의 일곱 배 정도로 움직이게 될 것 이었다. 우주선 진수부터 세트포스 주위 궤도에 도달하기까지는 23과 4분의 1년, 그리 고 75일 10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지, 아직도 남은 거리가 얼마 나 엄청난지를 생각하며, 종종 별들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검고 공허한 공간을 바라보다가 멍해지곤 했고, 아이들 중의 하나가 뒤에 와서 놀래키면 깜짝 놀라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얼마 후에는 창 밖을 바라보지도 않게 되었고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조 차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세계는 상상의 세계를 넘어서는 아무것도 없었으 며, 빈 어둠 속 한가운데에 있는 이 작은 금속 원반이 우리의 세계 전부였다. @P 121 행복한 순간들은 사라지고 지난 일을 회상할 때마다 나는 항해를 시작할 때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생각 나곤 한다. 우리 중 누구도 사춘기에 들지 않았고, 모든 일들이 그저 계획대로 평온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시간들, 물론 그 시간들도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도 했고, 마음이 아팠던 일들과 사과해야 했던 일 들을 기억한다. 한번은 손목을 부러뜨려서 기부스를 하고 다녀야 했고, 오투스는 프리캄에게 너무 화가 나서 그 애를 심하게 두들겨 팬 적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소이켄 선생님과 선장님도 왜 그런지는 몰라도 거의 1년 동안 얘기하지 않은 적 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걸 다 고려하더라도 시간은 평온하게 흘렀다. 자동 기계 장치가 우주선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너무나 믿을 만했기 때문에 처음의 10여 일이 지나자, 선장님은 하루에 한 번 정도만 기계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조종실에 들렀다. 수 년이 그렇게 흘렀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장님 @P 122 은 8일째되는 날마다 지상 훈련용 우주선으로 연습하면서 자기의 실력을 검증 하곤 했다. 가끔씩은 나나 오투스에게 똑같은 훈련용 우주선을 조종해 보게 했 다. 하지만 그 훈련용 우주선을 작동시키는 것은 우리가 매일 다루던 이륙 연습 기계보다 훨씬 쉬웠고, 와코펨 조모스 호를 조종하고 움직이는 일은 보통 비행 기를 다루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그 모든 자동화는 우리에게 상당한 자유 시간을 주었고, 각종 시청각 기구가 갖추어진 넓은 도서관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우리는 문학과 음악, 역 사, 고어, 모든 종류의 과학과 열 두 개도 넘는 게임들과 전략에 대해 배웠다. 종종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기도 했다. 아마 우리 여덟 사람은 무척 박식할 것이 다. 물론 해야 할 연구 과제도 많았다. 열 개도 넘는 무인 탐사선들이 우주를 돌 아다니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원래 프로그램 되어진대로의 자료밖에 전송해줄 수 없었다. 만약 자료들 중에 뭔가 에외적인 것이 포함되었더라도, 그 자료가 니 수까지 도달하는 데는 수 년이 걸렸고, 그 프로그램을 바꾸라는 메시지가 다시 탐사선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판국이었다. 그때는 빛의 절반 속도로 움직이는 그 탐사선이 그 예외적인 현상에서 멀어졌 기 때문에 새 탐사선을 배치해야만 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이 탐사선이 똑같은 장소를 찾아 내고, 그 현상이 1 백 년이 넘더라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진 채로 말이다. 하지 만 우리 같은 경우는 도구를 가진 상태로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우리 가 매 초 받는 수천 가지의 자료들 중에서 무언가가 신기한 부분이 보이는 즉시 추가적인 관찰에 들어갔다. 레이저나 레이더로 실험해 보고, 지금까지의 모든 자 료들과 비교하기도 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P 123 정말로 과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향에서는 할 수 없는, 우리를 둘러싼 세 계와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혜택외에도 우리에게 시간이 엄 청나게 남아돌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역사상 가장 생산적인 연구 조사원이 되었 다. 전통적으로, 아주 뛰어난 학생들은 사춘기에 접어 들기 2∼3년전에 마지막으 로 한 몇몇 과학적인 업적들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오투스와 나는 열 살도 되기 전에 그런 인정을 받았고,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1백 개도 넘는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이해할수록, 고향에서 오는 소식들은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공공 방송도 들었고, 우리가 원하는 자료나 책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어쨌든 니수와 우리 우주선은 서로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리상으로 점점 멀어져서 생기는 시차 때문이라는 부분적인 이유도 있었다. 우리가 항해를 시작한 지 4년 반이 지나자 니수에 메시지를 보내고 되돌려 받기 까지는 거의 1년이 걸렸다. 12년 반 동안 여행을 하자 우리는 고왕이 서거한 지 2년 반 후에야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메족스가 막 있을 줄 알았던 간택의 시기를 3개월 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동안 새로운 여왕이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여왕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2 년 반 후였다. 한번은 메족스가 마칠 것 같은 심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내 뒤에 어딘가에서 내가 알고 싶어했던 것들이 천천히 오고 있는 거야. 이 미 모든 게 다 결정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 다는 건 이상해.” 아마 그 소식이 아예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메족스는 여전히 기 @P 124 뻐하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여왕은 루폭스 가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에 게는 이미 아이가 있었다. 따라서 메족스가 완전히 제외된 것은 아니었지만, 지 금 통치하고 있는 가문의 각료들이 그들의 계열 중에서 원하는 사람을 뽑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더이상 예전만큼 왕위 후보자 서열이 높지 않았다. 우리가 절정 속도에 도달한 18년째에는 세트포스 경로의 90퍼센트를 간 것이 었지만, 나머지 10퍼센트를 완성하는 데는 총시간의 4분의 1이 걸릴 예정이엇다. 지금은 광속의 5분의 2로 움직였는데 안전하게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한참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들도 이제는 감속 조절을 하는데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장했 다.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오투스는 조종석의 이등석에 앉았고, 프리캄은 포아퍼 레시스 선생님과 관측망으로 기구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는 컴퓨 터 랩에서 컴퓨터 조작으로 돛이 똑바로 탈없이 달려 있는지를 확인했다. 작동 연습 첫 부분을 하는데만 거의 하루를 다 보내야 했다. 천천히 돛을 말 아서 다이아몬드 전선으로 가져오고, 그게 꼬이거나 구부러지거나 하는 최악의 경우에 돛이나 우주선의 다른 부분을 친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그 길을 재확 인 해야 했다. 아주 미세하고 꼬인 다이아몬드가 다른 물질과 부딪치면 깍여 버리기 때문이 었다. 그건 재미있긴 했지만, 우리가 지난 수백 일동안 매일 해 오던 다른 실험 들과 거의 같았다. 마침내 스크린에 수년 동안 소사히만큼이나 거대한 원모습의 돛이 하늘을 완 전히 덮어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가끔씩 어둠 속에서 그 거대한 시트에 불빛을 반짝이며 떨어졌던 눈송이만큼이나 큰 조각이 순간적으로 기체화되는 모습을 보 여 주었다. 그러 @P 125 자 아주 천천히 그 거대한 원은 으스러지며 우리 쪽으로 접혔다. 전선의 나머 지 부분이 감김대 쪽으로 말려들었다. 돛 자체는 모두가 안심되도록 천천히 돌면서 감겼다. 우리는 며칠 동안 모든 것들을 다시 검토하고 완벽하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18년만에 처음으로 사용된 기계는 우리가 아무리 주의깊게 다루었다 해도 편안한 상태는 아니었다. 가끔씩 우리 모두가 이마를 찡그릴 만큼 긴장된 순간들이 있었다. 비록 우리 가 출발을 하고 난 후 붕괴 경보음이 여섯 번밖에 울리지 않았지만-그것도 최근 5년 안에는 전혀 없었다-우리가 엄지 손가락보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피하려고 살짝만 옆으로 피해도 우리는 다시 돛을 펴 처음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돛도 아주 부드럽게 내려왔고, 이제 우리는 반응 작동 연습을 할 준비가 되었다. 우주선을 착지시키고 와코펨 조모 스 호를 작동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소형 로켓은 우리를 니수 궤도에서 밀어주었 던 추진 로켓과 같은 액상 수소 반물질이었다. 그 제트 엔진이 우주선에서 조용 히 떨어져 나가면서 깜박이며 또 다른 오로라를 연출했지만, 그것을 보고 있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4시간 안에 우리는 레이저 광선 밖을 벗어났다. 선장님의 목소리가 인터콤을 타고 들려왔다. “좋아, 모두들 준비하자. 아주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주선에서 몇 십 년 동안 생활로 우리는 이 원형체의 바깥 쪽 가장자리가 아 래를 향하고 있을 때, 우주선 중심을 향하는 실린더 모양의 안 쪽 부분은 위로 세워진다는 개념에는 익숙했다. 레이저에서 돛으로 작동하는 가속은 회전에서 생기는 중력의 작은 떨림에 불과해서 우리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P 126 그러자 작은 자세 조정 제트가 몇 초 동안 날았고, 우주선 전체가 반대 쪽을 향하여 다시 뒤집혔다. 우리는 모두 비틀거리다 균형을 잡았다. 우주선의 원심력 에 너무나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회전체를 탄 기분은 자연스럽게 느꼈 지만, 갑자기 아래 방향으로 세워지는 느낌은 꼭 최악의 지진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제트기가 짧게 폭발하며 다시 분출했고, 우주선은 다시 위치를 찾 아 안정되었다. “위치로.” 선장님의 소리가 다시 들렸다. 1분 후에 프리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 정상입니다. 위치도 정확하고 우리는 이제 궤도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선장님.” “오투스에게 감사하렴. 나는 그저 여기 앉아서 그 아이가 작동하는 걸 보기 만 했단다.” 우리 모두가 약간 놀랐다. 오투스가 인터콤으로 말했다. “자극 형성으로 돛을 전개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관측소 준비 완료.”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대답했다. “컴퓨터 랩도 완료.” 케콕스 선생님이 얘기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말야, 우리 실험이 허가된다면 아마 8시간은 족히 걸릴 텐데, 그 전 에 뭘 좀 먹고 쉬는 게 어떨까?” 오투스가 말했다. “좋아요. 선장님 허락에 달렸지만 말예요.” 우리는 선장님의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P 127 “그대로 두고, 이게 진짜 우주선이라고 생각하세요. 좋아요. 자 좀 먹고 쉬도 록 합시다.” 휴식 후에 우리는 자석 브레이크를 전개했다. 다이아몬드 돛위에 늘어진 채로 있던 이 꼬여진 실을 다 펼치는 데는 3시간쯤 걸렸다. 이런 과정을 마친 후 우 리가 18년 동안 모아둔 반물질-손가락 하나 정도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 양-은 이제는 남은 여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었다.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은 생명 유지 장치나 전자 장치만이 아니었다. 우주선 내부 모든 것의 위치를 바꾸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했다. 신체 사이즈 정도의 우 주 공간에는 5만 개 정도의 수소 원자가 들어 있었고, 회전체 내부에서 우주선 만큼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을 때에는 약간의 움직임에도 이 수소 원자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쉽게 분리되었다. 이렇게 전자와 중성자로 나뉘어 지는데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이것들이 자기장대에서 다시 모일 때 역시 에너지가 필요했다. “자, 이제는 정상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스크린에 볼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인터콤으로 말했다. 우리 뒤 쪽으로 거대한 보라빛 반지 모양을 한 것이 빛을 내고 있었다. “뭐가...?” 제대로 질문도 못 만들며 내가 물었다. “광입자를 분해하는 것이야.” 소이켄 선생님이 대답해 주셨다. “우리가 사이클로톤에서 보는 것과 같은 현상이지. 충전된 입자를 가속할 때, 그 입자는 광입자를 분출하지. 코일에 감긴 전 @P 128 류가 자기장을 형성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광입자는 자기파를 옮기는 물질이 거든. 네가 보고 있는 이 경우는 전자와 중성자가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방 향과 속도를 바꾸는 과정이고, 상당히 가속되어 빛과 자기장으로 나타날 만큼의 고에너지를 가진 광입자들을 분출하는 것이지.”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스크린을 조정해서 앞 부분만 보이게 해 놓고 나니 이 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우주선이 고에너지 중성자나 전자와 충돌하며 성간 수소층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속 중 인 동안은 돛이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돛은 이제 우리 뒤에 매달려 있 었는데,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옥수수 모양의 두 개의 돛 조각을 하나는 우주 선 앞에, 하나는 뒤에 두고 양극 충전을 하고 계셨다. 그것들은 전자를 끌어 당 기고 우주선 주위의 중성자 위치도 잡아 줄 것이었다. 그것들도 우리의 시야를 가리긴 했지만 어쨌든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는 노 릇이었다. 긴 막대 위에 설치된 카메라로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곤 비록 보호대 안의 어둠뿐이긴 했지만, 스크린을 통해서 계속 볼 수는 있었다. 우주선 뒤 쪽으 로는 그저 희미한 푸른 빛으로 빛나는 고리 사이로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만을 볼수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니수에서 오는 소식 들은 점점 더 이상하게 들렸고, 우리와 관계없는 것처럼 느끼게 될수록 새로운 것들이 우리의 관심을 차지했다. 우리는 이행복한 시간들이 다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도 모르고 있 었다. @P 129 종족을 초월한 우주인의 사랑 2년 후, 우리 우주선은 광속의 6분의 1 정도의 속력으로 날고 있었다. 육안으 로 볼 때는 쿠사펙스 별은 여전히 별 하나에 불과했지만, 망원경으로 본 세트포 스는 거의 원반형이었다. 이제 본부에 요청하고 회신을 받는 데 거의 6년 반의 시간이 걸렸는데, 우리 가 받는 소식들은 3년이 지난 것들이었다. 우리와 관련된 니수의 가장 빅뉴스는 황제의 희망호, 즉 세트포스로 수백만 명을 이동시키게 될 그 우주선의 건조가 1백 년 뒤로 연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5년 전에 일어난 침입자별의 접근은 천문학자들의 예견처럼 니수를 지나치긴 했지만, 니수의 모든 사람들은 그 침입자별이 태양보다 1백 배 이상으로 더 넓 게 퍼져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지각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1백 년이라는 시 간은 그 일을 완성하기에 너무 짧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황제의 희망호가 연기된 이유는 와코펨 조모스 호에 있던 아이 @P 130 들을 화나게 하고 어른들로 하여금 치를 떨게 했다. 이 프로젝트는 고왕이 죽 기 바로 직전에 시작되었다. 사실 우리가 그의 부음을 접하기 전에 들었던 마지 막 메시지는 그가 보낸 축하와 새로운 태양계를 찾으라는 소망이 담긴 것이었 다. 우리는 한동안 뉴스나 언론에서 우리나 오코펨 조모스 호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보통 사람들에 게는 재미있을 만한 것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중요했지만, 대부분의 니수인들이 그런 걸 이해해 주길 기대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그래도 적오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황제의 희망호에서 진행되고 있 는 상황에 대한 리포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거대한 우주선이 수백만 명의 승객을 날라야 했고, 침입자 별은 레이저 추 진 로켓과 그걸 집중시키는 데 필요한 병렬 렌즈들을 아무 때나 파괴시킬 수 있 었기 때문에, 그 우주선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태양과 조이로이를 아주 가까이 지나게 될 것인데, 바 위와 얼음 덩어리의 비가 레이저 추진 스테이션을 폭파하기까지는 수 년 동안 작동할 레이저 추진 장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정도 크기의 우주선은 우리의 작은 우주선에 미쳤던 조수 효과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태양에 그렇게 가까 이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런 엄청난 질량 덩어리로는 우리가 도달했던 빛의 5분의 2에 달하는 절정 속력을 낼 만큼 레이저가 받쳐주지 못 할 것이다. 결국 황제의 희망호가 세트포 스를 건너기까지는 수백 년도 더 걸릴 것이고, 그동안 그 우주선은 우리만 아는 한 세계가 되고 말 것이었다. @P 131 황제가 죽었을 때, 그의 후계자는 슐라스의 새 대법원을 임명할 권한이 있었 다. 전통적으로 새로운 황제나 여왕은 슐라스에서 임명할 인물들에 대한 선거를 했고, 팔라스인들에게 남겨진 법원 좌석 대부분은 인기도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 문에 니수의 양 쪽 모두가 공개 토론을 했다. 정치가들은 시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했다. 마지막 선거 이래로 27년 동안 공약들은 많이 변했다. 제1차 대폭격을 기억하는 구세대들은 그들의 젊음을 재건축에 바친 다음 세대들과 함께 이미 죽고 없었다. 이제는 모두들 황제의 희망호의 건조를 늦추는 데 동의하는 것 같았다. 그 논 란의 저변에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제2차 대폭격이 일어나기 전에 죽을 것이고, 그 우주선은 수십 억의 니수 사람들 중에서 수백만 명만을 옮길 수 있을 것이므로 자기들의 후손이 정말로 세트포스에 가게 될 것 같지 않다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니수에서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그 케이스에 대해서 정말 로 나쁘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부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황제의 희망호가 건조되길 원했고, 이주 프로젝트가 진행되길 원했다. 하지만 그 이슈를 균형이나 절충된 저속화라는 식으로 얘기하게 되면 이주 프로젝트가 날아가 버 릴 형편이었다. 니수 사람들은 지금 당장 자신들을 위한 것만 요구하고 있었다. 균형을 지키 는 것, 새로운 대법관의 표현처럼 미래의 요구와 현재의 요구 사이를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것 없었고, 새 여왕은 그 요구에 분명히 동의했다. 게다가 만약 그들이 기다린다면 황제의 희망호는 더 발달된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 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어차피 완성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일을 좀 천천 히 하면서 진보된 기술의 혜택과 안전성,그리고 @P 132 예산을 조금 줄이는 게 뭐가 잘못이겠는가. “이제는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은 전혀 믿을 수 없으니 웬일이지?” 3년 반이나 지난 대법원 논쟁 장면을 보면서 선장님이 말했다. “우리들을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래. ” 케콕스 선생님의 말이었다. “특히 새로운 여왕이 우리를 보낸 게 아니라는 거지. 비록 우리가 여기 있긴 하지만, 우리 역시 거기서 수백 가지 논쟁을 벌일 수도 있어. 내 말은 상식적으 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으르렁댔다. “그래, 우리가 거기에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우린 지금 거기 있지 않고, 그 들이 받을 수 있는 소식들은 우리가 수년 전에 보낸 것들이야. 우리가 가끔씩 해야 할 것들만 간단히 신경 쓰며 별 걸 하고 있지 않던 때란 말이야. 우리가 여기서 지금 무엇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 쪽 얘기를 들으려면 몇 년 이 지나가 버린 후야.” “아직도 우리 편 정치인들도 많아.” 케콕스 선생님이 지적하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새 여왕이 썩 괜찮은 편은 아니지만, 그녀도 그 프로젝트가 계속 진 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걸. 아직도 시간이 많이 있잖아. 물론 그 사람들이 쓸데 없는 짓거리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본부장의 스케 줄 대로라면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는 그 계획이 다 정리되어 우주선 건조에 들 어갈 거야. 자, 그런 일이 있기 전에 나는 벌써 죽어 있을 테고, 이 아이들은 돌 아가는 길일 거야. ” “쉿.” @P 133 이번엔 소이켄 선생님이었다. “이건 중요한 것 같아.” 우리는 모두 자세히 듣기 위해 몸을 앞으로 바싹 댔다. 말하는 사람은 페레그 요락 씨였는데, 그는 대법원의 열 명의 팔라스인중의 한 명이었다. 해방기에는 대법원에 열 개의 좌석이 팔라스인 몫으로 마련되어 있었고, 슐라 스인 열 명에게 궁정 관료직이 주어져 있었다. 지금도 이론적으로는 황제자리를 제외한 모든 좌석이 어느 종족에게든 열려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 지 않았다. “요록가는 기억나는 일이 없는데....” 선장님이 우물거렸다. “그렇게 중요한 가문이 아니거나, 아니면 그런 자리가 아닌가 보지. 아무튼 우리 중 하나가 대법원에 얘기해야 하는 것 자체가 별로 좋지 않은 일이야. 대 체 뭐라는 거야?” 케콕스 선생님이 덧붙였다. 소이켄 선생님은 다시 우리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사회자가 마침내 페레 그 씨에 대한 모든 약력을, 기껏해야 지방 관청의 하찮은 자리가 대부분이었던 그의 약력을 다 읽어내려 갔다. “내 형제들, 그리고 평등한 이들이여.” 그가 말을 시작하자, 케콕스 선생님이 뭘라고 중얼거렸다. 그건 평등론자들이 연설을 시작하는 말투였던 것이다. 소이켄 선생님이 그를 다시 조용히 하라고 시키는 동안 페레그 씨는 말을 이어 갔다. “재건축 사업과 이주 프로젝트에 쏟은 노력이 영웅적이고 최고의 지식과 협 조 아래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니수는 그들 의 노력으로 인해 더 나은 세계가 되 @P 134 어 가고 있고, 우리 전 인류는 더 풍족해졌을 뿐만 아니라, 150년 전보다 훨씬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문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존경스런 조상에게 대한 우리의 의무나 후손들에게 해 주어야 할 것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을 위 해서도 무언가를 고려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만 들어 온 과학과 기계 문명의 전례 없는 진보, 조악한 비행기와 증기선에서부터 단 1백 년만에 우주선에 이르는 발전을 해온, 그 진보는 그 자체로 풍부한 유산 이며 여전히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기여해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 말...계속 말 뿐이군. 이봐, 그만하고 우리에게 바라는 것 말해 봐.”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말했다. 스크린 속에서 페레그 씨의 웃는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계속 말이 이어졌 다. “지난 반 년 동안 계획과 예산안을 면밀히 조사해 본 결과, 지금 여기 살아 있는 세대, 니수에서의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여유분이 충분하다는 것 알게 되었습니다. 난 이것을 행성 진보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내 가 제안하는 것은...” 긴 목록들이 이어졌다. 모두에게 무료로 오픈되는 국립공원과 해안가, 매년 8 일 동안의 유급 휴가 두 번, 2년 조기 퇴직, 왕실 경호대를 현대식 전투기와 군 함으로 완전 재무장하는 것, 슐라스 지역에서 왕실 호위대 두 부대를 육상할 것 등등. “모두를 위한 무언가라...좋아, 그러면 그 경비는 어디서 대는 거지?” 선장님은 중얼거렸다. 그의 공약이 너무 많아서 거기까지 얘기가 진행되기까지 한참 @P 135 걸렸다. 결국 그는 그 계획에 대해 어떻게 경비를 충당할 것인지 세 단계로 나누어 말했다. 제1단계는 황제의 희망호에 대한 계획 진행과 디자인 연구를 11년으로 늘려 기술적 발전의 혜택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무엇보다도 행성 진보 프로그램에 들어갈 초기 시점의 대량 경비와 그 건축을 위한 경비가 상충되지 않도록 할 것 이었다. “좋았어. 더 확장하면 경비가 더 들 테니 궁시렁거리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 겠지.” 케콕스 선생님의 말이었다. 제2단계는 거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다섯 개의 다른 태양계로 가는 임무를 보류하자는 것이었다. 세트포스가 너무나 확실하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 문이기도 했고, 만약 세트포스가 부적합하다고 판명된다고 해도 와코펨 조모스 호를 다시 고쳐서 다음 번보다 희망적인 태양계로 보낼 시간은 있을 것이었다. 소이켄 선생님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좋아, 전 미래를 이 우주선에 걸자는 거지.” 제3단계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차세데 추진 로켓 레이저의 동력 추진을 12년 연기시켜 태양열 위성을 니수 별의 에너지 경비를 낮추는 데 사용하고, 그래서 소홀했던 개인 사업 부분의 전망을 밝게 해 주자는 것이었다. “뭐라고?” 선장님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우리들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 계획이 레이저에 달려 있었고, 지금 우주선을 밀어주는 것보다 두 배 정도 더 강력할 뿐이지만, 앞으로 41년 동안을 우주선을 밀어줄 수 있는 그런 레이저였다. @P 136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고 명확했다. 세트포스에서는 그 세께의 태양격인 쿠사 펙스 별로 우리 우주선을 낙하할 수 있게 하는 반물질, 액화 수소 추진 로켓이 없는 것이다. 우리 우주선을 쿠사펙스의 적당한 위치 가까이로 이끌어가 줄 긴 타원 궤도로 가는 데만도 1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 위치에서는 우리 여행을 다시 시작하게 할 태양열 추진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힘 역시 부족할 것이다. 쿠사펙스는 우리의 태양에 비해서 75퍼센 트 정도의 밝기 밖에 되지 않았고, 제2의 추진을 이끌어 줄 다른 행성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우리는 우리 별 세계를 떠날 때의 20분의 1의 광속에 비해 광속 의 3분의 1정도로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출발은 연기되고 이동 또한 느려질 것이다. 하지만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우리는 레이 저 빔을 타고 역귀류를 해야 했다. 우리 우주선을 세트포스로 이끌 광선-돛 지름의 다섯 배나 되고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을 받은 후에는 광대한 빛의 무게가 나가는 거울이 우주선 뒤를 이어 광선을 보내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가 세트로스에서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 아가는 길에는 그 거울에서 비추는 빛은 우주선을 지나쳐 계속 우주로 뻗어 갈 것이다. 돛 중에서 우리가 마주 대하는 면은 벨리움으로 되어 있었고, 우주 쪽을 향하는 바깥 면은 보론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밝은 벨리움은 빛을 반사했고 어 두운 보론은 그 빛을 흡수했다. 반사되는 빛은 흡수되는 빛에 두 배의 추진력을 가져왔다. 따라서 레이저에서 직접 오는 빛이 보론에 닿게 됨으로써 거울에서 반사되는 빛은 벨리움 면에서의 두 배 정도의 추진력을 갖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거 울과 돛이 완벽하다면 우리는 그것에서 멀어질 만큼의 가속의 반만으로고도 레 이저 쪽으로 이동하 @P 137 게 될 것이다. 돛과 마찬가지로 거울은 비춰지는 양의 10분의 9밖에 반사하지 못했다. 게다 가 어두운 외부 보론면은 거기에 떨어지는 빛의 약 20분의 1밖에 반사해 내지 못했다. 따라서 이 모든 힘들이 소명되고 나면 귀향길에 사용될 추진력은 우주 선을 처음으로 보내던 힘의 20분의 9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귀향길의 자동 조절이 가져다 둘 속도면의 유일한 이점은 성간 양성자를 사용 하는 정전학 속도 제어 장치 대신에 우주선을 간단하게 되집을 수 있도록 이 레 이저 자체를 브레이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느리기는 했지만 이것 때 문에 집으로 오는 깃 전체에 걸쳐 가속도를 낼 수 있었다. 비록 그렇다라도 지 금 세트포스로 향해 가는 것보다도 두 배나 강한 새로운 레이저 동력이 있다고 해도 귀향길은 41년이나 걸릴 터였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새 동력 시스템을 스케줄대로 가져다 놓지 않겠다는 이야 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돌아가는 처음부터 훨씬 낮은 속력으 로 가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연기하겠다는 거야?” 케콕스 선생님이 물었다. “계산해 보지.” 소이켄 선생님이 벽에 부착된 단말기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포아퍼레시스 선 생님은 휴대용 단말기를 꺼냈고, 우리는 한참 동안 두 명의 슐라스인 과학자들 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우리가 듣게 될 그 대답과 다른 대답이 제발 나 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여긴 69년이 나오는데.” 소이켄 선생님이 말했다. @P 138 “여기도 마찬가지야. 이런, 제기랄, 너희들이 늙어 죽을 때쯤 에야 집에 도착 하겠구나. ”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말했다. “쉿, 저기에서도 누군가 계산을 한 모양이야. 지금 페레그 씨가 설명하고 있 어.” 선장님이 말씀하셨다. 페레그 씨는 뉴스 기자의 고함 섞인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내가 말하는 바는 다른 우주선 임무들을 취소시 켜서 와코펨 조모스 호의 임무에 더 추가적인 동력 시스템을 공급하게 될 거라 는 점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여행이 막바지로 갈수록 더 많은 가속을 얻을 수 있죠. 우리 연구원이 그들이 어떻게, 계획된 것보다 20퍼센트 정도 더 늦게 돌아 오게 되는 것인지 설명해줄 겁니다. 그것은 추가 어떤 경비도...” “20퍼샌트라고? 그러니까 그의 계획대로라도 여전히 52년이군. 그 사람들이 그후에 동력 공급을 취소하거나 변경시킬 다른 이유를 더이상 찾아내지 못한다 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근데 과연 그렇게 될까?” 선장님이 외쳤다. “두령운 건 그들이 이 계획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고, 우리 우주선 돛이 어느 순간 갑자기 더이상 빛나지 않는 거에요. 몇 년 전에 그 레이저 추진을 꺼 버린 다고 해도 남은 부분이 우리 돛을 띄워서 우리 우주선은 공허한 우주 어딘가를 헤매게 되는 거죠.” 오투스가 말했다. 그러자 소이켄 선생님은 어깨를 들썩했다. “우리가 아주 질리도록 겁을 주는구나. 자, 보자. 우리 모두 걱정하고 있고 화도 나지만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정치가들 @P 139 이란 네가 올바르게 이야기하기만 한다면 대체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란 다. 이제 곧 누군가가 황제의 희망호가 제대로 빨리 건조되지 않고 있다고 법석 을 떨면서 이 이주 계획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고소하려 들 것이다. 그러 면 조화를 맞추기 위해 표를 던졌던 바로 그 사람들이 페레그나 그의 무리들을 쓰러뜨리는 ‘미래를 살리자’같은 슬로건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뉴스는 슐라스 지역에서 점점 더 많은 집회가 열리고 있고, 팔라스 지역에서조차도 긴 행렬이 줄지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행성 진보 프로그램은 꽤나 인기가 있어 보이는 것 같았다. 정치가들은 균형을 잃는 것이나 1백 년 동안 이루어 온 진보를 잃게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이 증증손자들까지 살려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늙은 팔라스인 한 명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1백 년 동안의 진보의 역사를 무시하자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들 이 있다 해도 아무도 그걸 사용하지 못하고 있죠. 게다가 이 모든 직업들고 ㅏ 돈들이 다 어디로 가는 지 알고 있어요? 슐라스로 가고 있다구요. 슐라스인들은 세트포스로 가는 그 망할 놈의 계획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지고 있고, 일단 이 귀만 긴 족속들은 돈을 가지게 되자 무엇인가 특별한 것처럼 해동하며 날뛰고 있어요. 그들이 원래 어떤 신분인가 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꺼버려.” 케콕스 선생님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꼭 봐야 할 사람은 어제든 녹화시킨 걸 틀어 보면 되리 테니까 @P 140 ...” 그러고 나서도 몇 주 동안은 계속 나쁜 소식들 뿐이었다. 행성 진보 프로그램 은 대법원에서 쉽게 통과되었고, 여왕은 마치 자기가 제안한 것처럼 그 계획을 수용했다. “문제는 우리 쪽 선거구 사람들은 죽었거나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거야. ” 우리들이 스터디 후에 늦은 간식을 먹고 있을 때 오투스가 말을 꺼냈다. 종종 우리는 조사한 것과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관해 얘기하기 위해 저녁 모임을 만들 곤 했다. “역사책이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슐라스 지역의 투표는 막지 못할 걸.” 메족스가 얘기했다. 프리캄은 눈을 크게 뜨고 우리들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글쎄... 그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건 아니지만, 난 그들이 이해가 돼. 물론 여 기에서 진공 상태로 수 광년을 가며 이렇게 매달려 있는 우리에게는 그 일들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일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봐. ” “난 다르게 생각해. 내 말은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치워버리고 지금 현재 의 이익에만 생경쓰겠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동시에 우리 역시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단 이야기야. 아무도 우리에게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고향에서 세 금을 내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많은 걸 희생하고 있어. 우리 모두가 자기의 일생 을 여기서 희생하고 있단 말야. 선생님들은 세트포스에서 죽게 될 테고, 우리가 고향을 다시 볼 때쯤엔 늙어 있겠지. 한 몇 년 동안은 세트포스의 거대하고 아 름다운 자연을 탐사하며 보내겠지만 다시 이 금속 상자에 몸을 싣고 52년 동안 귀향 여행을 해 @P 141 야 해. 페레그 모록 씨와 여왕이 그만큼의 신용을 가진 사람들이 라고 가정한 다면 말이야.”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하지 말자.” 프리캄이 어깨를 으쓱하며 메족스에게 기댔다. “물론 네 말이 맞아. 제메코시스.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면 좋겠어.” 메족스가 말했다. 최근 들어 메족스에게 생간 이상한 태도 중 하나는 프리캄을 감싸는 태도였 다. 프리캄을 화나게 할 만한 얘기들은 못 견디겠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었다. 더 욱 이상한 건 프리캄이 그런 걸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 기까지 한다는 점 이었다. 다음날, 프리캄이 선장님과 수학 보충 수업을 하고 있는 시간을 노려서 메족 스가 실험실에서 작업하고 있던 나와 오투스에게 들른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 니었다. 메족스가 말했다.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우리가 세트포스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거기를 떠 나야 한다는 바보 같은 생각 때문이야.” 오투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모두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지만, 특히 메족스 네가 제일 심하겠 구나. 넌 거의 그곳에 살가 있는 것 같구나.” 머리가 좋았어도 평소에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던 메족스가 놀랄 만한 열정으 로 탐사선이 보내는 자료들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다. 기술력의 진보로 탐사선들은 추진 로켓에 더욱 강력한 힘으로 @P 142 빠르고 정확하게 세트포스에 관한 자료들을 연속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게다 가 세트포스로 다가갈수록 주파수 시차도 짧아져서 고향에 있는 과학자들이 신 호를 받기 몇 년 전에 우리들은 탐사선에서 오는 신호들을 받을 수 있었다. 아주 작은 탐사선 몇 대가 세트포스 표면에 하강해서 우리들에게 사진을 몇 장 보내왔는데, 메족스의 방은 말 그대로 이런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 있는 터였 다. 특히 거대한 동물들의 사진이 많았다. 사진 속의 동물들이 진짜라면 얼마나 좋을까. 메족스가 말을 이었다. “이건 너무나 아름다워. 이런 것들을 대충이라도 볼 만한 시간 이나 있을지 모르겠어. 강 하구에 있는 신기하게 생긴 늪들, 저 넓은 평원, 축축한 열대림... 신기한 것들이 너무 많아. 난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서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하지만 5년만 지나면 우리는 다시 올라가야 해. 그리고는 다시 바깥 공기 를 마실 때쯤이면 우린 벌써 늙어 있겠지!” 메족스는 갑자기 숨이 가빠진 듯했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물어 보려고 하자 갑자기 몸을 돌려 복도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1분 뒤에 그의 방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왜 저러지? 내가 뭐 속상하게라도 했니?” 오투스가 물었다. “모르겠어.” 우리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메족스는 우리를 화나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다가 도중어 울어버 렸다. 우리가 달래려고 하자, 다시 몸을 돌려 방문을 닫아 버렸다. 우리는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실에 계시던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을 찾아갔다. @P 143 “이게 나쁜 버릇인가요, 아니면 무슨 병 같은 건가요?” “비슷하지만 정받은 아니야. 메족스는 지금 사춘기에 들어가고 있는 거란다. 너희들보다는 조금 빠른 편이긴 하지만, 너희들도 곧 그렇게 될 거야.”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도 저러셨나요?” 내가 물었다. “오, 그럼. 나는 더 심했지.” 케콕스 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덧붙이셨다. “너희 모두 메족스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할 게다. 그 아이가 아주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굴 땐 그러기가 쉽지 않겠지만, 너희들 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오면 너 희도 마찬가지로 나빠질 테니까.” 다음으로 오투스가 나이가 많았지만, 그 다음 사춘기에 들어선 것은 프리캄이 었다. 그녀는 메족스보다 훨씬 심했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주 무례하게 굴거 나, 서로의 팔에 기대어 흐느끼기도 하고, 또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대기도 하고, 껴안고 아기들처럼 얘기를 하는 등 이상한 관계를 만들어 갔다. 오투스와 나는 그 아이들이 하는 말을 참을 수가 없어서, 우리끼리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의 우정은 갈수록 무르익어 한 사람이 말을 시작하면, 다 른 사람이 그 말을 이어서 끝낼 수 있을 정도였다. 선생님들이 메족스와 프리캄 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긴 했지만, 우리 역시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어른 들이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이켄 선생님은 마침내 프리캄을 컴퓨터 랩으로 따로 불러 얘기를 했다. 그 때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스터디룸에 있었다. 우리는 소이켄 선생님이 저렇게 조용히, 하지만 급박하게 프리캄에 @P 144 게 하려는 이야기가 무언지 들어보려고 문으로 살금살금 기어가서 귀를 대었 다. “넌 아직 어른이 아니야. 그리고 아직 선생님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고, 이 제 네가 누구인지, 그리고 메족스는 어떤 사람인지 네가 잊고 있다는 사실을 이 야기해야 할 것 같구나. 너는 슐라스인이야, 프리캄. 너는 그 아이와 결혼할 수 없단다. 그리고 만약에 그가 너를 배우자로 삼겠다고 하면 그건 그의 장래를 망 치는 거야. 그리고 팔라스 남자들이 여자를 다루는 방식은... ” “메족스는 그렇지 않아요.” “나도 편협한 사람은 아니란다. 일생 동안 많은 팔라스인들과 일하면서 좋아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야만스럽다는 옛말씀에도 일리는 있단 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걸 얻게 될거야. 너를 자기의 창녀 정도로 생각한다면, 어제든 원할 때마다 너를 섹스 파트너로 가지고 놀려고 그럴 거다. 우리는 그런 것에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해야...” “선생님이 그런 것처럼요?” 나는 지금까지 프리캄이 그렇게 화내거나 공격적인 어투로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우리들 중에서 가장 순하고 부드러운 아이였던 것이다. 나 는 그녀의 음성을 더 자세히 들으려고 더욱 귀를 기울였다. 소이켄 선생님이 노여움으로 침을 삼키며 숨을 들이마셨다. “누가 너에게 그런 얘기를 했니?” “메족스가 선생님을 한 번 봤대요. 그리고 선장님이 말하는 걸 들었다고.” “그만하렴.” 소이켄 선생님의 목소리가 노여움으로 아주 냉정하고 딱딱해졌 @P 145 지만, 여전히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가 되겠구나, 프리캄. 나와 포아퍼레 시스 선생님은 오랫동안 대학 친구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단다. 케콕스 선생님은 나와 선장님에게도 똑같이 대해 주었고 말랴. 그게 잘못된 것 같지 않았고, 그건 분명히 상당한 위안이 되었지. 하지만 처음부터 케콕스 선생님은 나에게 거짓말 을 했던 거야. 그리고 비록 나를 속인 건 케콕스 선생님이었지만, 선장이 화가 난 건 나에게였어. 그리고 그때부터는... 글쎄,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곤란하구나. 그래, 그때부터 내가 말호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을 케콕스 선생님이 진심으 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는 팔라스 남자들이 최대한 점잖은 경우의 사람이야. 거의 대부분은 훨씬 더 나쁘단다. 적어도 그는 다른 사 람들의 기분에 신경을 쓰거든. 아니면, 나를 제외한 모두의 기분이거나, 어쨌거 나 그는 너희들 앞에서는 한마디 말도 안 했잖니. 하지만 그게 네게 메족스에게 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이란다. 자기가 다 가지고 난 후엔 너를 예전에 갖고 놀던 인형 다루듯이 취급할 거야. 그게 네게 바라는 거니?” 찰싹 하는 소리가 나더니 약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프리캄이 소이켄 선생님 을 때렸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1분이나 걸렸다. 프리캄이 내부 갑판 쪽으로 뛰어 가더니 자기 방문을 쾅 닫는 소리를 들었다. 한참 후에 소이켄 선생님은 한숨을 지었다.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선생님 뒤 로 닫히는 소리를 드고서야 우리는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절대로, 절대로 안 돼.” 오투스는 말했다. @P 146 “절대로? 뭐?” “절대로 메족스와 결혼시키지 못하게 할 거라구. 그 아인 언제나 욕심꾸러기 인데다가 거칠고, 난 프리캄처럼 고분고분하면서 멍청하지 않으니까., 선생님들 이 걔 마음을 내 쪽으로 돌리지 못할 거야.” “하지만, 그럼. 내 말은, 우리도 이제 곧 사춘기에 들어가게 될 텐데...” 내가 머뭇거렸다. “자메코시스, 넌 내 가장 좋은 친구야. 니수에게는 대개 그런 사람들이 결혼 을 하고, 만약 선생님들이 우리가 그렇게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우 리 둘을 이렇게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게 해서는 안 되지.” “우주선에서는 달리 선택할 수 없잖아. 그리고 그런 생각 자체가 날 겁나게 하는 걸. 나는 메족스가 얼마나 미친 것처럼 행동 하는지 보고 있고, 그런 걸 전 혀 기대하지 않는단 말야. 그리고 걔가 비록 욕심도 많고, 고집이 세지만 그래도 내 친구인 걸.” 속에서 이상하게 열띤 감정이 나를 덮쳐 왔고,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앗다. 오투스를 한 대 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아이를 껴안고도 싶었다. 그애가 입을 다물었으면 싶기도 했고, 얘기를 계속하기를 원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애는 내 친구라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애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 겠지만, 고향에서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 때문에 슐라스 남자들을 죽이기도 한다구!” @P 147 숨이 너무 가빠져서 누군가 발로 목구멍을 막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 게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버렸다. 나는 오투스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것을 들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계속 달렸 다. 내 방이 그렇게 편안하고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진 적은 없었다. 방에 뛰어들 어 문을 닫고는 안도감과 함께 무기력해지는 걸 느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한 참 동안 엉엉 울었다. 잠시 후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노크를 하시더니 밖에서 나를 불렀다. “자메코시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롤 부르셨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문을 열 고 들어와서는 침대에 걸터 앉았다. “선생님께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는데요.” “나도 너에게 사춘기에 들어가라고 말하지 않았는 걸. 너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네.” 나는 침대 속에 얼굴을 파묻으며 좀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한 2년 정도. 아마 넌 그보다는 빨리 나오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음 소리를 냈다. “음... 선생님이 읽으라고 했던 책들은 모두 읽었으니 다 이해할 수 있을 거 예요.” 나는 선생님이 제발 좀 가버렸으면 했다. “흠, 말하기 어려워지는군. 우리들 어른들 모두는 말이야, 쭉 이걸 얘기해 왔 었는데... 생각하면...” “오투스가 말했죠.” “그 아인 약간 질투하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걔가 두 번째로 @P 148 나이가 많잖니. 하지만 사춘기는 제일로 늦는구나.”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킥킥댔다. “제일 나쁜 게 뭔지 아니? 그래도 여전히 넌 유머 감각을 갖고 있다는 거지. 네가 우스꽝스럽게 행동할 때 너도 그걸 잘 알거든. 그리고 신께 맹세하마. 너를 보고 웃지 않으마. 내가 사춘기를 겪고 있었을 때, 남들이 나를 보고 웃어댔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하니까. 여하튼, 무슨 얘기를 하려고 왔냐 하면 말이야. 오투스는 너희가 나눈 대화에 대해 자기가 기억하는 만틈은다 이야기하더구나. 그리고 내 생각엔 몇 가지는 설명되어야 할 것 같구. 괜찮니?” “듣고 있어요.” “좋아. 처음부터 시작하자면, 여기 있는 우리는 니수의 법률 아래 있지 않아. 우리가 돌아가면 어떻게 될 지. 지금보다 니을지 아니면 더 나빠질 지를 창조주 만이 아는 거지. 계획했던 대로 너희들을 짝을 지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테지만, 지금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구나. 너희들이 그걸 다 넘기길 바 라는 것 밖에는.” “물론이죠. 하지만, 우리가 돌아가면...” “더이상 사형은 없다는 걸 알고 있지?” 내 망을 못 들은 것처럼 선생님이 물었다. “예. 하지만...” “너에게 생물학자들은 다 알지만 아무도 공식적으로 말하지는 않는 사실 하 나를 이야기해 주마. 슐라스인들은 수백 년 동안 노예였지. 피가 섞인 모든 후손 들은 다 유산시키거나 생후에 죽여 버렸다고 가정하지. 맞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도 나만큼이나 화가 나 있다는 @P 149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지만, 대체 왜 그러는지, 또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음, 네 생각엔 모든 아기들이 1백 퍼센트 순종이란 꼬리표를 달고 나왔을 것 같니? 물론 두 인종의 생김새가 서로 다르긴 하지만, 우리는 서로 서로 섞여 있는 거야. 케콕스 선생님이 자기 형님이 가족들 사이에서 길다란 귀로 불리고, 자기 어머니와 가정 교사 사이에 소문거리가 있었다고 얘기하던 거 기억나니? 물론 그 형님이 혼혈이 아닐 수도 있고, 케콕스 선생님은 절대로 아니겠지만, 그 집 가족들 중에는 섞인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어. 그리고 사실 거의 모든 가족 들이 그렇고, 특히 오랫동안 수많은 노예를 가졌던 고대 팔라스 귀족들은 더하 지. 국왕 중 한명은 씨를 받아 온 아이일 거라는 이야기는 많이 퍼져 있단다.” “저도 씨받이라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그게 뭔지는 몰라요.” 선생님은 끙끙대는 것 같았다. “간단해. 옛날에 팔라스 가문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상속자를 생산하지 못하 면, 남자가 여자 노예를 임신을 시키는 거지. 가급적이면 혼혈인 아가씨로 말이 야. 그러고 나면, 그 여자는 어딘가에 틀어박힌 채 아파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고 하지. 애기가 태어 나면 그 집안에서는 자기들의 아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거지.” “그 여자 노예는 어떻게 되었나요?” 선생님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선생님의 얼굴은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었 다.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어깨를 떨었다. “아주 겁이 나는데요.” @P 150 “그럴 테지. 케콕스 선생님이나 선장이 네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 주 친절하고 교양 있고 충직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든 팔라스인들이 그럴 거라 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음, 지금은 문제가 안 되는 얘기로 구나. 말하려는 건, 네 자신을 언제나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너의 위치를 늘 인 식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네가 돌아가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한참 필요해.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지. 그리고 돌아가는 항로에 들어설 때 쯤이 되어야 아이를 생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어른들 사이에서 상당히 솔 직한 의견들이 오고 갔고, 선장님의 강한 제안도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 걱정 은 접어두고, 너희들이 최선으로 생각하는 대로 하도록 놔두기로 했다. 우리가 바랐던 대로 모든 게 제대로 정착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감추지도 않을 거고, 나 중에라도 제대로 되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니수에 돌아가면 더이상 언급하 지 않을 게다. 하지만 만약에 글쎄, 내 생각에 너희들에게 최선으로 보이는 걸 하도록 놔두는 게 가장 좋을 것 같구나.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지낼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선생님은 내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는 선생님을 보려고 돌아 누웠다. 선생님의 가라앉은 어깨가 선생님을 더욱 늙어 보이게 했다. “괜찮니?” 앞으로 2년 동안이나 미친 것처럼 지내야 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목 매달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물론 괜찮았다. 나는 다시 돌 아누워 얼굴을 침대에 파 묻었다.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 때문에 선생님이 가신 것을 알았다. @P 151 아름다운 별, 세트포스 오투스는 한 달 반 정도 뒤에 사춘기에 들어섰다. 그것은 나에게는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 가끔씩 같이 시간을 보낼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고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갖고 있던 감정 이상의 것을 느끼는 것처 럼 보였다. 오투스와 내가 서로를 성적으로 만지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케콕스 선생님이 날 미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해 나는 세상 전부에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걸 약간 즐기는 편이 었다. 하지만 나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경고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노군 인 앞에서는 오투스와 심한 육체적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선실에서 누군 가 다른 사람을 해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슐라스인을 공격하게 될 사람은 바로 케콕스 선생님이었다. 그는 훈련도 받은 사람이었고, 자기가 그럴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P 152 반면에 오투스는 케콕스 선생님의 눈앞에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했다. 얼마 후 선장님은 그애를 따로 불러서 오투스가 날 죽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 고, 우리 둘은 그 일로 선장님을 미워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 둘 다 각각의 여자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기는 했지만, 메족스와 나는 다시 좋은 친구가 되었 다. 마침내 우리는 세트포스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한 것이다. 우린 컴퓨터 랩 에서 우리보다 앞선 탐사선들에게 줄기차게 보내오는 데이터들로부터 이미지를 끌어내면서 작업 시간을 하께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착륙 지점을 고르는 일 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남극 아래 얼음 밑에 있는 대륙을 빼도 이 세계는 니수 보다 더 많은 대륙을 갖고 있었다. 모든 대륙들이 슐라스보다는 더 컸지만 가장 큰 대륙도 팔라스보다는 작았다. 갈고리 대륙이 두 번째로 컸고, 벌레섬도 그렇게 작지는 않았다. 그리고 굉장 히 많은 종류의 섬들이 있었는데,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니수의 두 가지 대륙 형성 과정 외에도 열두 가지 정도는 더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바다나 강으로 떨어져 잇는 지역들이 많았고, 넓은 사막 지역과 가파른 산지형(비록 어 떤 것도 우리 기준으로는 높은 것이 아니었지만) 이 많아서, 광장히 다양한 지역 생태학이 발달해 있었고, 훨씬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이런 상황 에서 일이 더 복잡해졌다. 탐사선들은 단 여덟 개의 지역에 착륙했을 뿐이고, 불 행히도 이 지역들은 동물들이 자주 지나가지 않는 곳이었다. 두 개는 적도 부근 열대 우림 지역에 떨어져 낙하산 줄에 매달려 있었는데, 무언가 그 탐사선 근처로 기어오르거나 날짐승이 그 위에 앉으려고 할 때를 빼 고는 아무 생명체도 찍어 내지 못했다. @P 153 사막과 산 속에 착륙한 탐사선은 동물들이 좋아할 만한 어떤 조건과는 너무 멀었다. 벌레 대륙의 가운데에 있는 강둑 근처 평원에 착륙한 탐사선만이 예외였는데, 하루 두 번 물을 마시러 오는 갈색과 검은색 바탕의 동물이 그 주위의 유일한 생명체라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아주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아직도 탐사선이 다섯 개 정도 남아 있어. 우리가 착륙하기 전에 좀더 다양 하고 다른 모습들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아직도 감속하며 연습할 시간이 1년 도 더 있잖니. 상당한 시간이지.” 소이켄 선생님이 말했다. “아, 그래요. 하지만 지금 당장 털 달린 저 동물 중 하나만이 라도 볼 수 있다 면 좋겠어요.” 메족스가 말했다. “그럼 넌 꼭 고향에 간 것 같겠다. 이 화석 덩어리야.” 내가 말했다. 우리의 우정이 다시 시작되면서 농담도 더욱 짓궂어갔다. “행성 저 어딘가에는 길다란 귀를 가진 동물이 있지. 아마도 지저분한 습관 과 긴 귀를 가진 냄새나는 동물일 거야. 그리고 한가지라도 먼저 찾는 건 우선 권을 쥐게 되는 일이야. 내가 대화에서 밀릴 일이 없지.” 메족스의 반격이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소이켄 선생님은 한숨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너희가 니수로 돌아가는 길로 접어들게 되면, 남은 10년 동안은 그렇게 얘 기하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하거라. 너희들에게는 이게 다 장난이겠지. 똑같이 자 라오고 서로가 아주 편안하게 생활 했으니까.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우리는 죽 어버릴 수도 있다.” @P 154 우리는 동시에 대답했다. 그녀는 웃으며 우리들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그 말을 너무 자주 한 것 같구나. 미안하다. 어쨌거나 우리가 연구해야 할 사진이 1백 장도 더 있는 것 같은데. 피곤하지 않다면 말이야.” “절대로 미쳤지만 지치지는 않아요. 그게 우리들이에요.” 메족스가 말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시진들을 검토했다. 또 다시 사막과 바위 덩어리, 얼음 조각들, 그리고 높은 나무등걸 말고는 없었다. 나무에 서 찍은 사진에서 작은 동물이 길다랗고 가늘고 발 없는 무언가에 의해서 잡아 먹히고 있었다. “저렇게 발 없는 짐승을 본 적이 없어. 기어다니고 있는 걸. 우리를 잡아 먹 을 정도로 큰 놈은 없으면 좋겠다.” 메족스가 말했다. “호, 만약 있다고 해도 여기 시식용으로 보낼 수 있는 늙은 이들이 있잖아.” 소이켄 선생님의 말이었다. 메족스는 코웃음을 쳤다. “선장님은 씹기는 너무 질겨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별로 먹을 만한 게 없고, 케콕스 선생님은 쓸 것 같고, 그리고 선생님은 제가 좋아해서요. 자, 마지 막 사진 현상이나 합시다.” 소이켄 선생님과 메족스는 사진을 현상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훨씬 더 참을성 이 있었다. 나는 무언가 한 가지 이미지를 형성하는 게 있으면, 거기 하나에만 매달렸다. 그 사진은 갈고리 대륙의 북쪽 부분에 있는 사막에 착륙한 탐사선에서 보내진 것이었다. 모래와 바람과 하늘뿐인 사진을 가지고 며칠 동안 작업하던 중에 갑 자기 거대한 동물, 거의 어른 몸 @P 155 크기에 어깨도 몸 길이의 반 정도로 벌어졌으며, 네 발 짐승 중에서 가장 못 생기고 흉악스러워 보이는 동물이 나타났다. 등 부위가 심하게 굽어 있고 이상한 방식으로 목을 흔들리면서 두꺼운 입술을 가진 길다란 머리에, 가늘고 긴 다리 밑으로 우스꽝스럽게 큰 발을 갖고 있었다. 아주 긴 젖은 갈색털로 뒤덮인 모습이었고, 우리 우주선을 쳐다보는 모습이 하 도 멍청해 보여서 우리 모두가 한바탕 웃을 정도였다. “운이 좋은데, 자메코시스. 이 놈도 귀가 짧은 걸.” 메족스가 말했다. 점점 더 많은 탐사선이 세트포스에 착륙하고 있었다. 아직도 우리가 도착하려 면 반 년 더 남아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쿠스펙스를 둘러싼 혜성 운하의 안 쪽 부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망원경과 레이더를 통해서 세트포스를 바라보았지만, 아직은 다른 행 성과 똑같이 바위와 철 덩어리로 덮인 부드러운 눈송이일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에 탐사선 중 하나가 벌레 대륙의 동쪽 부분 시냇가 옆에 있는 숲의 중간 풀밭에 내려 앉았다.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수십 마리 동물들 의 목록을 만들 수 있었다. 메족스는 뒷다리로 뛰어 다니는 작은 동물 하나가 길다란 귀를 가진 사실을 알아내고는 낄낄댔다. 곧바로 나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메족스는 그 녀석을 자메 코시스라고 불렀다. 며칠 후 적도 부근 삼각지에 떨어져 낙하산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탐사 선이 털로 덮이고 평평한 얼굴을 한 동물 사진을 보내왔는데, 나뭇가지에 긴 꼬 리로 매달려 있는 점만 빼고는 팔라스인의 모습과 똑같았다. 나는 답례로 그 놈 을 메족스라고 이름지었다. @P 156 여자아이들은 우리가 자기들 이름을 따서 동물들을 부르는 날에는 후회하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이제 사춘기의 가장 심한 부분은 거의 넘긴 상태였 다. 이제는 가끔 짜증이 나고 우울해지는 정도로 그쳤다. 메족스와 오투스는 검 은 성인털이 나오고 있었고, 메족스는 정말로 멋진 볏을 갖게 되었다. 나도 성인 근육(대부분의 슐라스인에게 비하면 아주 작은 편이었지만)을 갖게 되었고, 프리캄의 엉덩이가 더 커졌다. 우리가 도착할 때 쯤이면 임신이 가능할 정도가 될 것이다. 프리캄과 메족스는 시끄러운 소리까지 내가며 한참씩 그에 대한 연습을 하고 있었고, 오투스와 나도 아주 조용히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의 팔라스 어른들은 자기들의 원칙상으로는 얼마나 평등의식을 믿고 있 었든 간에 나와 오투스에겐 자주 화를 냈지만, 프리캄과 메족스에 대해서는 즐 거워했다. 프리캄이 기꺼이 메족스의 첩이 되겠다고 하면, 그건 결국 선장님이 일부러 소이켄 선생님이 들으라고 얘기하던 것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 얘기란 이런 것이었다. 슐라스 여자들의 특성 중 하나는 최대한 섹스를 즐 기기 위해서 자기 종족인 슐라스 남자들이 못 따라오자 팔라스 남자들과 즐긴다 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록 메족스가 좀더 진지해지고 오투스와 결합하게 되길 바라면서도 지급의 상황을 전형적인 젊은 팔라스인 남성이 정착하기 전에 으레 히 치르는 재미보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이지만 그것이 프리캄 에게 의미하는 바를 선생님들은 도저히 알지 못할 것 같았다. 당연히 포아퍼레 시스 선생님과 소이켄 선생님은 그것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계셨다. 그들의 관 점에서 보면 프리캄은 전형적인 케이스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메족스와 프리캄은 @P 157 자신들의 애정 행위에 대해 전혀 남의 의식을 개의치 않고 숨김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투스와 나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누구 누구 편을 들고 어떤 논쟁들 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른들 모두는 슐라스 남자가 팔라스 여자와 관 계를 갖는다는 생각에 불편해 하는 것은 분명했다. 케콕스 선생님은 거의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선장님은 오투스에게 여 전히 가깝게 대하고 나에게도 아주 격식을 차려 대하고는 있었지만, 나는 선장 님이 화가 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소이켄 선생님은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려고 애썼고, 자기가 우리 네 명을 불 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우리가 커플로 있지 않고 따로따로 있을 때나 남자들 아니면 여자들끼리 있을 때는 우리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우 리가 커플로 있을 때는 다른 선생님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대했다. 그녀는 오투스나 메족스에게는 종족 간의 결합에 대해 한 번도 예기한 적이 없었다. 그건 그녀가 팔라스 친구들을 신임하지 않고 있다는 걸 드러내주는 것 이었다. 더 나쁜 것은 소이켄 선생님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종족 사이의 결 합에 대해 자신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면서도, 그녀가 신경이 쓰이는 것 은 우리가 돌아갔을 때 니수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지-마치 앞으 로 50년 이후의 일만 가치있다는 듯이-에 대한 것이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니수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 거야...’라고 시작하는 말은 ‘내가 생각하기엔...’처럼 들렸다. 그 이유는 선생님 스스로가 프리캄을 창녀처 럼 여기고 있었고, 첩이 된다면 @P 158 모든 슐라스 사람들을 실망시킬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나에게는 니수에 돌아갔 을 때 성난 팔라스 폭도들에게 죽음을 당하게 될 거라는 얘기를 너무나 자주, 끊임없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선장님의 반응보다는 나았다. 그녀는 가끔씩 나와 오투스 가 실험실에서 애정 행위를 하는 것을 목격을 하면서도 마치 아무것도 보고 듣 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것처럼만 보여도 우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을 테지만, 선장님에게선 어떠한 인정도 받을 수 없었다. 케콕스 선생님은 수십 일 동안 우리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조용히 화난 상태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얼마 후에는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말을 한 적이 있 었다는 사실 자체까지 거의 잊어 버리게 되었다. 그는 우리가 선실에 들어갈 때 마다 그 장소를 피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개인 선실에서 보내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째 작업 교대 시간이었다. 그는 프리캄이 혼자 운동하고 있던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프리캄은 그의 모습을 보고 아주 놀랐는데, 더구나 그가 말을 걸어와서 너무나 놀랐다고 말했다. 처음에 그녀는 그가 사과 하며 친구로 지내자고 말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벽으로 몰아 세우더니 ‘메족스가 너에게서 보는 재미를 나도 좀 볼까’하며 다리 사이에 손을 넣었다. “멈춰요.” “네가 이걸 좋아한다는 걸 알아. 네가 매일 메족스와 내는 소리를 들었거든. 나도 내 몫을 조금 즐기려는 것뿐이야.” “메족스이기 때문에 좋은 거지, 당신은 아니야. 그만 해요!” “그애가 첫 남자여서 네가 좋아하는 게 이 짓이 아니고 그 사 @P 159 람이라고 낭만적으로 착각하는 것뿐이야.” 나중에 프리캄은 그가 자기 손을 머리 위로 고정시키고 사타구니 안 쪽을 더 듬을 때도 케콕스 선생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건하고 따뜻했다고 말했다. “너와 나 둘다 네가 이걸 좋아한다는 걸 알아. 그저 마음 편하게 먹고...” 프리캄이 비명을 지르며 케콕스 선생님의 어깨를 치고는 한 손을 빼 얼굴을 한 대 갈겼다. 그는 맞은 어깨를 감싸면서 뒤로 쓰러졌다. “제기랄, 난 그저 즐기려고 했을 뿐이라구...” 소이켄 선생님이 뛰어들어와 단번에 일어난 상황을 짐작하고는 둘 사이에 끼 여 들었다. “그녀를 놔 둬!” 선생님의 고함 소리는 프리캄의 비명보다 더 컸고, 그 바람에 우리 모두가 모 이게 되었다. 케콕스 선생님이 너무도 가쁘게 숨을 몰아 쉬며 화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처 음에 그가 소이켄 선생님에게 굉장히 화가 난 줄 알았다. “난 메족스가 늘상 차지하는 걸 조금 나눠가지려는 것뿐이야. 그게 너한테 그렇게 상관이 있다면 소이켄 네가 내 욕구를 계속 충족시켜주면...” 소이켄 선생님이 바로 되받았다. “당신에게는 우리가 그걸로 전부인가요? 노예들? 기르는 짐승들처럼?” 그녀는 우리들 쪽으로 돌아섰다. “음, 이제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거라고 생각해요. 방 @P 160 금 케콕스 선생님이 프리캄을 강간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슐라스 여자들 이 언제든지 그에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케콕스 선생님이 무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그의 팔 목을 붇잡고 말했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걸.” 그의 목소리에는 도전이나 노여움 같은 건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단호함이 있었고, 케콕스 선생님은 싸움을 단념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함께 나갔다. 그들은 3시간 동안이나 포아퍼레시스 선생님 방에 있었고, 가끔씩 케콕스 선 생님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리는 걸 제외하면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합리적인 지리한 설명만 계속되었다. 선생님은 평화롭게 일을 마무리하고 싶을 때 늘 그 런 식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나중이었다. 남은 우리들이 데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보려는 동안 소이켄 선생님은 프리캄을 자기 침실로, 선장님은 메족스를 조 종실 위로 각각 데리고 갔다. 프리캄이 소이켄 선생님은 너무나 익숙한 강의-프리캄이 메족스와 가까이 지 내는 것이 어떻게 이런 사태를 불러 왔는지, 그리고 팔라스 남자들이 짐승 같다 는 걸 메족스를 보고 못 느꼈다면 이번 일이 그걸 증명한다는 얘기 등등-를 계 속 늘어 놓았다고 나중에 얘기했다. 그녀는 옛날 슐라스의 문구들, ‘우리 자유에 맞추어’라든가 ‘불평등한 세 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등을 늘어놓고는 ‘아마 1백 년 후에는’이 란 말을 뒤에 덧붙였다고 한다. 얼마 후 그녀가 기력이 다한 듯 했을 때 프리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P 161 “전 지금부터 자유롭게 살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있구요. 내 삶 에 장애가 되는 건 어른들 네 명뿐이에요. 그게 다라구요. 선생님이 믿는다는 그 방식으로 내가 살도록 좀 놔두면 안 돼요?” 소이켄 선생님의 목소리가 둔탁해졌다. “지금 네 자리는 과거 수 세대 동안 조상들의 어깨 위에 세워진 것이야. 정 복 당하고 노예 생활을 하다 자유를, 평등을 위해 싸운 우리 슐라스 조상들 말 이다. 너는 너희 민족에게 이 모든 걸 다 빚지고...” “그러면 선생님은 케콕스 선생님이 그렇게 한 게 자기네 민족이 물려준 것이 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소이켄 선생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프리캄, 이걸 잘못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걸 알고 있지. 하지만 비슷하다는 것과 평등하다는 건 다른 문제야. 그들은 우리와 같지 않아. 그리고 그들이 다른 것 중의 하나가 섹스에 관해선 그들은 동물적이 라는 거야. 네가 방금 본 것은 팔라스 남자들의 전형적인 행동...” “그게 케콕스 선생님이 당신에게 한 행동인가요?” 프리캄이 물었다. 소이켄 선생님의 손이 그녀에게로 날아왔지만, 프리캄이 먼저 그 손을 잡아 제 자리로 돌려놓은 다음 말했다. “더이상은 매질도 안 되요. 제가 어른이 되엇다는 데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 겠어요. 만약 선생님이 케콕스 선생님을 그렇게 존경도 하지 않고 늘 위험한 동 물로만 생각했다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그와 관계를 가지셨나요?” 소이켄 선생님이 잠잠해졌다. 프리캄은 그때 비로소 자기가 이 @P 162 졌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이제 절 좀 이해해 주세요. 우리가 니수에 돌아가면-정말로 돌아가게 된다 면-모든 것이 어떻게든 변해 있을 거에요 그리고 우리는 늙겠죠. 우리 삶이 거 의 끝났을 때, 우리가 살오온 방식에 대해서 누구에게 평가받는 데 신경쓰며 살 고 싶지는 않아요. 특히 선생님들의 그 낡고 어리석은 생각들-인종 차이가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은 절대로 물려받지 않을 거에요.” “때리려고 해서 미안하다.” 소이켄 선생님이 말했다. 프리캄은 그녀가 실제로는 한마디도 듣고 있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화를 누 르며 계속 말했다. “선생님, 이렇게 말하는 거 죄송해요. 하지만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우리 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는 건 더는 못 참겠어요. 선생님들은 우리가 더 나은 사 람들이 되기를 원하셨죠. 그게 지금의 내 모습이에요. 그게 내 친구들의 모습이 라구요. 케콕스 선생님의 반응이 차라리 더 정직해요. 적어도 그는 우리를 미워 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했으니까요. 그 말은 우리를 인정했다는 얘기죠. 하지만 우리는 선생님들이 바라는 대로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존재할 뿐이지요. 우리는 우리 자신일 뿐이라고요. 선생님들은 우리가 편견 없는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애쓰셨는데, 이제 선생님 자신의 편견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될 거에요. 제 말 아시겠어요?” 소이켄 선생님은 동의하는 몸짓을 했다. 그녀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고, 프리캄은 자리를 떴다. 이 이야기를 나중에 우리에게 할 때, 오투스는 왜 선생님이 울었냐고 물었고, 프리캄은 어깨짓을 한 번 하면서 이렇게 대답 @P 163 했다. “아마 모든 것에 대해서이겠지. 너도 알잖아. 사람들은 세상이 뒤집힌다고 느 낄 때 운다는 걸.” 나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때 포아퍼레시스 선생님과 케콕스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주고 받았는지 몰랐다. 오투스와 나는 실험실에서 작업을 계속하면 서 대화는 자제하고 있었다. 메족스는 조종실에서 조종 드릴 다루는 법을 배우 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선장님은 내가 우주선 컴퓨터에 있는 모든 종류의 드릴을 다 만져보라고 하 면서 오차가 완전 제로까지 가도록 해 주었어. 하지만 내가 실수를 해도 ‘다음 번에 잘 해라’라든가 ‘괜찮아, 나중에 큰 도약을 하기 위해선 잠깐 움츠릴 수 도 있는 거지’이런 말씀을 하는 거야.” 연습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식사 시간 조금 전에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했 다. “많은 경우에 말이야, 네가 어떤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그 상태를 참을 수 없을 때에는 너 스스로의 내부에서 요구 하고, 할 수 잇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익히거나 배우려고 하는 게 도움 이 된단다. 그러면 집중을 하는 동안에 나쁜 시간들이 지나가곤 하지.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오온 방식이야.” 메족스가 이 부분을 이야기해 줄 땐 목소리에 일종의 경외심마저 담겨 있었 다. “선장님은 터치 다운을 제로 포인트로 줄이면서 완벽한 착륙 시뮬레이션을 했다고 해.” 메족스가 말을 이었다. @p 164 “그러고 말씀하셨어. ‘불행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걸 해낼 수 있게 해 주는 지 잘 봐라. 물론 네가 이런 기술을 너무 많이 발달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 다. 아마 내 생각엔 케콕스 선생님과 소이켄 선생님이 관계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런 완벽함에 대한 연습을 해 오신 것 같아. 선장님은 아마도 이 우주에서 완 벽하게 착륙할 수 있는 유일한 조종사일 거야.” 우리는 메족스의 침실-좁긴 했어도 문을 닫을 수 있었다-에 모여 앉아 노트를 비교하면서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의논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사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렸고, 우리는 서로를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투스가 열어 보니 포아퍼레시스 선생님 이 서 있었다. 선생님은 물어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는 서두 없이 말을 시작했다. “나는 이번이 이런 종류의 사건으론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분위기 는 많이 팽팽해졌지만. 네가 옳았고, 소이켄 선생님이 완전히 잘못했다는 걸 안 다. 프리캄,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에게서 사과듣기가 힘들 것 같구나. 어른들 모두가 저녁 식사때 제대로 행동하기로 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우리도 소동은 피우지 않을 거에요. 케콕스 선생님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걸 모두가 인정하기만 한다면요.” 내가 말했다. “나와 선장님은 어쨌든 이해한다. 그리고 아마 케콕스 선생님도 그걸 이해하 는 것 같고, 나와 지금 그것에 대해 얘기 중이란다.” 우리는 그가 소이켄 선생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걸 @p 165 눈치챘지만,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계속 얘기했다. “그리고 모두가 거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너희들도 같은 생각 이라면 좋겠구나.” “벌써 자메코시스가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메족스의 말이었다. 선생님이 동의하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랬지, ...좋아, 그럼, 고맙다, 얘들아.” 저녁 식사에서 어른들은 모두 아주 차분해 보였고, 우리 모두는 아주 긴장했 지만 그럭저럭 얘기했다. 그날 밤, 케콕스 선생님이 내가 일하던 작은 컴퓨터실로 들어왔다. 나는 원거 리 별 중량 측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앉더니 나를 쳐다보고는 말을 꺼내려 했다. 나는 일을 계속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그가 말할 것이 있다면 그가 말하도록 놔 두긴 해야 했지만, 들을 만한 가치가 있을 말을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말했다. “그저 뭘 좀 물어보고 싶군. 내가 물어볼 이유도 없고, 또 물어보면 너를 화 내게 할 것이라고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말했지만, 그렇지만 정말 내가 알고 싶은 건 말이야.”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조용하고 이성적으로 들렸다. 그는 아마도 매우 당황했 던 것 같다. 컴퓨터실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거라곤 스크린에 나타 난 별 사이의 공간을 우주선이 왔다갔다 할 때 멀리 있는 별의 중력의 고저를 나타내는 옅은 푸른색 곡선뿐이었다. 곡선은 이론에 의해 예측된 바대로 모두 매우 부드러웠다. @p 166 그가 의자를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그가 아예 말을 꺼내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가 마침내 말을 꺼낸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는데 나는 놀라서 거의 펄 쩍 뛰었다. “나는 그냥, 알고 싶어서 말야. 너와 오투스의 관계말이야. 심각한 관계니? 내 말은 메족스가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순결’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매우 보호하는 태도를 보여서 말야. 이것이 네가 네 종족과 정상적으로 성관계 를 갖지 못하고 오투스와 관계하는 이유니? 아니면 너는 나나 메족스에 대해 의 도적으로 무례한 행동을 하는 거니? 아니면, 말하자면 뭔가에 이끌리는.... 그냥 궁금해서 말야.” 나는 니수에서 기록한, 아마 그가 보고 싶어 할 것 같은 자료를 보여 주었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항상 서로를 좋아했어요. 우리는 같은 것에 관심을 가졌고, 같은 일을 하고, 사춘기가 되기 전에도 10년 이상 가까운 사이였지요. 다른 식으론 생각할 수 없으시겠죠. 물론 우리 젊은 세대들은 모두 친구지만, 다 똑같지는 않아요. 그냥 저한테는 자연스 러운 것 같아요. 저는 프리캄보다는 오투스에게 더 매력을 느끼고....” “그녀도 너에 대해 같은 식으로 느끼고, 그렇지?” 케콕스 선생님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톤이 없었고 매우 단조로웠다. “그애와는 이미 얘기해 봤지.” 그는 끙 하는 신음 소리를 내고는 그의 바삭바삭하고 솔 같은, 이제는 희끗희 끗해져 가는 머리 볏을 만졌다. @p 167 “왜 여기에 섹스가 들어가야 하는지, 그것을 빼고는 다 이해할 수 있어.” “그건, 오투스 말고 여기 이 우주선에 탄 모든 여자하고 섹스를 한 선생님이 저한테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의 뒷머리가 뻣뻣이 섰기 때문에 한대 맞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부드럽 게 말했다. “나도 알았으면 좋겠구나. 우리 아버지는 내가 약간은 슐라스인의 피를 가지 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지. 섹스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 고, 미션이 없을 때면 늘 생각하는 것이 그것인 것 같구나. 특히 내가 생각하던 것은 다음에는 누구랑 섹스할까 하는 것이었어. 설명하기는 어려워. 우리는 이 여행을 거의 20년 동안이나 해 오고 있는데,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어쨌든 문제가 생겼고 너나 메족스가 섹스에 관심 있어 하는 것은 탓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자랄때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던 짓은 싸움으로 까지 번질 수 있는 지저분한 농담이었다. 내가 그걸로...” 그는 말꼬리를 자르고 한동안 어색하게 꿈틀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내가 바보같이 보이겠지?” “바보는 아니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든 게 제 문제와 똑같은 것은 아니 죠. 우리는 우주선에 올라 있고, 우주선에서는 모든이가 평등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사 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왜 사랑해선 안 된다는 거죠?” 케콕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상한 것은 나 역시 네 말에 완전히 찬성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야. 나는 내 생각을 이용해서 싸우고 싶은 사람에게 싸움을 @p 168 걸곤 했지.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세운 원칙대로 살지도 못해. 우습지?” 그는 내 어깨 너머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재밌는 거니?” 나는 그의 화해 제스처를 받아들였다. “아, 아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더 많은 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 고 대부분의 별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많은 행성들을 갖고 있고요. 고 향에서 더이상 우리가 살 수 있는 세계를 찾는 데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거의 적어도 3백 개 정도의 후보지를 찾을 수 있을 거에요. 몇몇 발빠른 조사로 문제 가 해결됐을 테고, 모든 걸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황제의 희망호에 거는 대신 우주로 뿔뿔히 흩어질 수도 있었을 거예요.” 나는 비교 그래프를 가리켰다. “보이죠? 우리는 8일마다 돌아오는 네 번째 날에 미중력을 측정해요. 그리고 원동력을 보기 위해 수학적으로 그걸 분해하죠. 그 미량의 노이즈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발견했고, 그것들로 질량과 위치를 알 수 있어요. 중력파는 빛보다 훨씬 약한 신호긴 하지만 쉽게 약화되거나 차단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저 멀 리 있는 적당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이런 종류의 천문학에서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조각조각을 측정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예요.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그것을 해온 거죠.” 케콕스 선생님은 기초 해답을 내는 방식을 보여달라고 했고, 그와 나는 잠자 리에 들 때까지 조요ㅕㅇ히 3시간 가량을 더 일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거는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때때로 그가 나와 오투스를 쳐다보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러한 그의 행동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p 169 그가 다시 그런 짓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프리캄은 그가 죽는 날까지 그 를 두려워했다. 그후 3년간, 우리는 쿠사펙스 태양계로 감속하여 들어갔다. 케콕스 선생님은 예의바른 사람이었으나 서먹서먹했고, 소이켄 선생님은 쌜룩해서 말을 하지 않 다가는 곧 거짓으로 따뜻한 척을 하는 사람이었다. 조종실에 들어갈 때가 아니 면 자기 방에서 머무르면서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거나 책을 읽곤 했다. 우리 젊은 세대들이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은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었 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짝짓는 방법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말하는 유일한 사 람이었다. 그는 메족스가 프리캄의 좋은 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는 소이켄 선생님이 염려한 것처럼 그녀를 중간에 탈락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가 짝을 이룬 방 식이 우리 개성에 맞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항상 결혼과 사랑은 별개의 것이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왜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때 때로 메족스와 프리캄이 서로 팔짱을 끼거나, 나랑 오투스가 손을 잡거나 서로 속살일 때면 선생님이 주춤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좋아했고 믿었다. 그리고 또 다 른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그를 따르도록 했다. 그는 우주선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을 했다. 우리는 세트포스에 대해서 많은 조사를 했는데, 포아퍼레시스 선생님 은 모든 그림과 자료를 분석해서 한 가지 결론을 유출하려 했다. 즉 우리가 어 디에 착륙해서 기지를 건설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말이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5년(세트포스력으 로는 5년 반, 우리는 새 달력 체계에 익숙해져야 했다)은 살 것이다. 그리고 어 른들은 황제의 희망호에 있을 수백만 @p 170 의 정착민들에게 필요한 장기 연구를 계속하면서 그곳에서 그들의 삶을 마칠 것이었다. “항상 황제의 희망호를 건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라.”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말했다. 계획 기간이 길어질 것이고 게다가 11년이 아 니라 17년이나 더 길어질 것이라는 새로운 뉴스를 받기 이틀 전이었다. “종종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발전적인 점이 그 미래가 얼마나 멀리 있 는지 알기 때문에 없어지는 걸 본다. 우리는 아직 행동할 시간이 있다는 것과 언제가는 미래가 현재가 된다는 사실 사이의 균형을 맞출 줄 모르는 것 같아.” “오늘 다소 철학적이시네요. 또 다시 뉴스를 봤군요.” 프리캄이 놀렸다. “네가 철학적이 되든지, 아니면 심지어 자살까지 기도할지는 네가 그것을 얼 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냐에 달린 거야. 검토해 보지 않았니? 17년은 더 기다려 야 한다는 걸? 적어도 우리는 예정대로 새로운 발전소를 갖게 될 테고.” “이런, 얘들아. 이 그림 좀 봐. 이 동물들 크기 좀 봐!” 우리는 모두 오투스가 스크린에 꺼내놓은 사진을 보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그녀는 그림을 확대하고는 측량자를 대보았다. “적어도 우리 몸 크기의 두 배는 될 것 같은데.” 메족스가 말했다. “이 코 좀 봐. 이게 코 맞지?”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척추가 접혀 있고, 이게 꼬리 같은데.” 선생님은 말했다. “이 동영상 자료를 동쪽 후크로 가져가서 재 볼 때까지는 정확 @p 171 히 알수 없겠는 걸. 큰 육식 동물이라 물도 충분치 않고, 적당한 수송 시설도 없는데” “아, 물론 알아.” 오투스가 말했다. “두 개의 샘플로만 미루어 생각하면 정말로 멋있는 행성이야.” 선생님이 말했다.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선생님. 훨씬 더 많은 걸 탐험할 시간이 있을 거에요. ” 메족스가 말했다. “내 결정은 여기 남는 거다. 너희들을 꼭 돌려보내야 하는 이유가 있거든.” 그가 조용히 말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우리가 엿듣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 조차도, 어른 중 누구도 개인적으로라도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놓은 적은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잘못 말한 것 같구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매우 반감을 갖고 있는 것 같군. 그러나 너희 모두가 되돌아 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너희들이 이주 계획을 전진시킬 수 있는 살아있는 보기가 되야 하기 때문이야. 우리 모두 가 메족스와 오투스는 이제 왕 후보로 출마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 황제에 겐 우리가 아는 자식만 넷이야. 그리고 내 생각에는 두 명이 더 있는 것 같고. 너희들은 유명 인사로 큰 영향력을 미치겠지만, 너희들이 여기 머문다면 탐험을 하고 마치는데는 몇 십 년이 더 걸릴 거고 과학자들은 데이터가 몹시 필요할 거 야. 아마도 여기서 시간과 돈, 또 너희들의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나서, 되돌 아가 @p 172 서는 악수하고 퍼레이드나 벌이는 건 미친 짓이야.” 그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내가 너희들 사기를 떨어뜨리는 거냐?” 메족스가 대답했다. “이미 사기는 저하될 대로 됐어요. 내가 어렸을 때 퍼레이드, 행사 등등이 인 생에서 가장 멋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조차 하기 힘들어 요. 그것들이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고 힘과 바라는 것을 얻는 것과 관련이 있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내가 그곳을 떠나기 전에, 그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거의 죄수 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있어야 할 자리에서 걷는 거라구요.” 나는 메족스가 자기를 비하할 때마다 그를 놀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 는 말했다. “물론 과학적인 조사를 위해서, 죄수들을 위해 퍼레이드를 벌이고 유명 인사 들을 몇 명쯤 감금해서 맞는지 한 번 알아봐야겠는데.” 메족스는 불쾌한 얼굴이었다. “알았어. 내가 과장한 거야. 나는 아직도 퍼레이드에 대해선 기분이 좋지는 않아.” “봐!” 갑자기 프리캄이 마치 뭔가에 맞은 것처럼 소리질렀다. 그녀의 손가락은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 부분을 다시 보여 줄께. 이건 로빙 조사하는 부분이야.” “세트포스의 어느 부분이지?” “그 큰 섬의 남서부 쪽에 있는 큰 반도야. 여긴 날씨도 좋고 숲과 산이 있고, 1백여 개의 기지가 될 수 있는 후보지 중 하나 @p 173 야.” 그녀는 내부 스크린을 열고 붉게 빛나는 부분을 보여 주고는 그녀를 흥분시킨 동영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기, 여기 봐.” 우리는 세트포스에 있는 기본적인 동물들은 잘 알고 있었고, 우리처럼 생긴 종도 한 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물건을 잡을 수 있는 꼬리를 갖고 있는, 작은 팔라스인처럼 생긴 것을 미니 메족스라고 이름붙였다. 큰 것과 작은 것들이 있었고, 일부는 나무에 일부는 초원에 살았다. 우리가 잡 은 동영상 중 몇 가지는 그들이 동물 치고는 특이하게 지능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있었다. 카메라 앞을 지나가는 이 무리들은 미니 메족스보다는 우리와 더 비슷했다. 그들은 슐라스인보다 작았지만 털이 더 없었다. 그들은 팔라스인처럼 작은 곡선 이 진 귀와 평평한 얼굴을 이었고, 슐라스인보다는 어깨가 넓었지만 팔라스인 같은 두껍고 육중한 근육은 없었고, 건축에 능숙했다. “직립 보행하는군.” 나는 멍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림을 확대해 볼께.” 프리캄이 말했다. 오투스는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동영상의 한 부분이 확대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구부 리는 동시에 프리캄은 더 큰 소리를 질렀다. 그 무리들 대부분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돌칼이었다. 즉, 낫이었다. 그들은 잘 짜여진 옷 위에 동물 가죽 조끼를 입고 있었다. @p 174 길게 늘어서 있는 목초지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은 우리가 고향에서 빵과 포리 지를 만드는 레트라페시스 같이 생긴, 얇은 줄기에 씨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 이었다. 다른 어른들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소리지르는지 알아보려고 뛰어왔다. 케콕 스 선생님이 제일 먼저 왔다. 모두 재잘거리는 것을 중단하고 그것에 대해 좀더 지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48일이 지나서였다. 포아퍼레시스 선 생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우리의 임무가 다시 니수의 뉴스 기관으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 된 일이지만, 우리 모두 와코펨 조모스 호가 회항길에 오를 때까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송되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케콕스 선생님이 말했다. “멋지군. 이건 꼭 와코펨 선장이 리워드 섬을 발견하고 찍은 옛날 사진 같은 데.” 우리는 모두 동영상의 짧은 부분이 반복해서 재생될 때 스크린 앞에 모여 있 었다. “우리한테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생각해봐. 얼마나 그들이 다른지, 이 세계가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이번에는 소이켄 선생님이었다. 그들을 쳐다보며 평생 그렇게 못 생긴 돌물은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 에 본 곱사들이 동물은 이 넝마 조각을 걸친 무시무시하게 생긴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은 팔라스인보다 더 평평했다. 머리 위에 자란 더러운 털뭉치 밑 에 있는 얼굴은 거의 원통 모양이었다. 그들의 몸통은 팔라스인에게서 보이는 자신감 있는 힘이라든가 @p 175 슐라스인의 우아함 같은 건 전혀 없었고, 메스껍고 꼴사나운 것 같았다. 그들 은 의학 실험의 재수 없는 결과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오투스도 비위가 상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컴퓨터실에서 항상 그랬듯이 내게 기댔고, 우리는 이 불쌍한 생물들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잡았다. 케콕스 선생님이 계속해서 말했다. “믿을 수 없군. 이렇게 가까운 데 있는 살아 있는 세계가 있다니 거의 기적 이군. 그러나 이 생물들은 정말 ‘사람’이야. 그들에게도 시, 종교, 음악이 있을 테고.” 그는 오투스와 내가 손을 잡고 서로 만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돌아서서 나를 때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애써 화를 억누르고는 나를 노려보는 것으로 끝냈 다. 이 갑작스런 방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소이켄 선 생님과 선장님이 우리를 외면하는 것과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한숨짓는 것을 보았다. 오투스는 더 가깝게 기대왔고 나는 팔로 그녀를 꼭 감싸안았다. 메족스 도 마침내 보고 말았다. 그는 우리 중 누구보다도 관심을 가지고 스크린을 지켜 보고 있었다. 그는 케콕스 선생님을 다시 쳐다보았다. 프리캄은 그의 팔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며 우리에게 희미한 미소를 보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갑지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놀랍지 않아? 우리는 이번 탐험에서 가장 큰 고비가 외로움일거라 생각했는 데, 사실은 친구가 너무 많다는 걸 이제 알겠군. 우리가 그들과 얘기하기 시작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생각해봐!” 케콕스는 다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놀랍군.” @p 176 그는 말했다. 그는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스크린에 있는 일에 집중하 려고 노력하며 마음을 편안히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건 중 가장 멋지군.” 메족스는 화면을 조정하여 결국 그 생물체 중 하나에 접근하여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것은 개별적으로 보면 더 끔찍했다. 우리 모두는 그 그림을 보며 한동안 있었지만, 우리 젊은아이들은 빠져나올 방법을 찾아내려다가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른들은 그 그림에 열중하고 있었는 데 우리가 나가는 걸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마지막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이미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앞에 있는 따뜻한 음료에는 손도 안 대고 있었고, 한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하니? 자메코시스?” 프리캄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어른들은 가장 좋은 식민지 중 하나에서 위험한 기생충 같은 걸 발견하고 거의 미쳐버린 것 같아.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기다리기조차 힘든가봐. 그 렇지만 그들과 관련된 혼혈아이를 봤다면, 아마도 뻔뻔스럽게 그 아이를 죽여버 릴 듯이 짓밟았는지도 몰라.” 메족스가는 말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들이 다른 고등 생물을 발견하고, 그 냄새나는 야 만인들 같은 생명체는 좋아하면서도 슐라스인과 팔라스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 은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참으로 우습지 않니?” 나는 앉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p 177 “글쎄, 소이켄 선생님과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과학자들이셔. 그들은 그저 놀라운 것을 발견했을 뿐이야. 그들은 아직 이것이 함축하는 바에 대해서는 생 각해 보지도 못했고, 누군가가 말할때까지는 생각 못할 거야.” 메족스는 신음했다. “그래, 저 아랜 아름다운 행성이 있지. 거기 살면서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얘기할 기회도 없어.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그것들처럼 크고 똑똑하고 위험한 것들을 조심하며 자라도록 원하지 않는 한 말야. 내 생각에는 위험한 동물 대부 분이 오래 전에 댜 죽임을 당한 곳에서 우리가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운인지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세트포스에는 단 한 곳이라도 안전한 곳이 있기나 하니?” 오투스는 냉소적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네 탐험 정신은 어디로 갔니? 넌 아주 야생적인 세계를 돌아다니길 원했잖아?” 메족스가 애처롭게 웃었다. “그랬지. 멋지고 안전하며 길들여지고 길들여지지 않은 세계.” 나는 마침내 쓸 만한 생각 하나를 해냈다. “니수에서 했던 우리의 맹세를 기억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했다. “흠, 잘 들어봐. 우리는 협동하기로 약속했지. 우리는 서로가 같은 부류야. 그 다음이 니수 출신이고, 각각의 인종은 결코 아냐. 이제 친구로서, 니수인으로서 생각해야 할 때가 온 듯싶다. 우리 고향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뭐지? 말장난 같은 대답은 하지마. 그냥 케콕스 선생님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또 불쌍한 늙 @p 178 은 바보가 고집쟁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걸 생각해봐. 왜 그렇게 편견 이 깊지? 인종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야. 맞지? 그렇지만 우리는 그 행성에 사 는 그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몰라. 확실히 그들은 야만적이고 멍청해. 그들이 사는 방식을 봐. 내 추측은 이래. 그들을 진짜 알게 될 때쯤이면, 우리는 그들을 죽도록 미워할 지도 몰라. 그리고 어른들도 그러겠지. 세크포스 인들은 확실히 매력적으로 생기지 않았고, 우리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인종 증오가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는 거야. 그들도 우릴 좋아하지 않겠지. 그래서 만약 우리든 그들이든, 증오가 싹트게 되면 우리가 주도권을 잡 아야 하는 거야.” 오투스는 동의한다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이것도 생각해봐. ‘정복’이전에 슐라스의 모든 공국들은 대체로 같은 대법원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서로서로 끊임없이 싸웠지. 모든 다른 섬과 도시, 부서들 사이의 미움은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었어. 그렇지만 ‘정복’이후에, 이 모든 것들이 사라졌지. 키가 크고 볏이 없고 귀가 긴 모든 이들은 미워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적이 단 하나라는 걸 알았어. 바로 그들을 정 복한 이들이지. 90년 정도가 지나자, 모든 슐라스인들은 형제가 됐어. 이제는 그 나라들 중 어느 나라 후손인지 아무도 모르지.” 그녀는 우리 모두를 모았다. “세트포스의 고등 동물들과 추리의 차이를 비교하면, 우리는 거의 일란성 쌍 둥이야.” 프리캄이 동의의 표시를 했다. “네가 맞아.” @p 179 그녀가 말했다. “두 가지 이유로 말야. 첫 번째 이유는 우리 문화 안에서 진짜 외계인을 가 려내기 위해 생겼을 수 있는 차이이고, 두 번째는 아까 그 동물들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오두막을 짓고, 정원을 갈도록 훈련시킬 수 있는 동 물들이 니수에도 있잖니. 그들이 동물 이상의 똑똑한 어떤 것이라는 걸 알 때까 지 우리는 그들을 사람이라고 부르면 안 돼.” “설마 우리 어른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들어오며 말했다. “여기 모두 있구나. 그래, 너희들이 짐작했겠지만 갑작스럽게 해야 할 긴급 연구 계획이 있다. 필요하면 간식 좀 먹고, 반나절후에 우주선 뒤쪽 컴퓨터실에 서 좀 보자. 너희들이 해야 할 과제가 많다. 우리는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무엇 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회의를 해야 해. 그때까지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정보를 보아야 한다.” 그는 돌아서서 나갔다. 나는 그때까지도 화가 났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아이들 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흠, 이것 좀 봐. 뭔가 중요한 일이 생기면, 어른들은 우리랑 동등하게 토론하 는 척한단 말야.” 내 말소리가 너무 비꼬는 듯이 들려서 내 자신도 듣기 싫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아이들 모두가 동의의 뜻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런 투로 말했던 것이다. “우리끼리 회의를 하면 어때?” 메족스가 말했다. “오늘밤 저녁 식사 후에 만나도록 하지.” @p 180 고독과의 전쟁 8일째 되던 날 밤에 와코펨 조모스 호 승무원들은 식당에서 모임을 가졌다. “먼저 사실을 직시합시다. 결정은 전적으로 우리가 내려야 합니다. 우리가 어 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대부분의 니수 사람들은 찬성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요?” 선장님은 말했다. 우리는 모두 맞다는 몸짓을 보였다. “그렇다면, 제가 보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정을 내리고, 무엇을 할 것인 가 계획을 세운 뒤에 소식과 함께 그 계획을 무선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니수에 있는 사람들이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더러 이러쿵저러쿵하진 않겠지요. 적어도 그 사람들이 따돌림당했다며 화를 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시 한 번 모두가 동의를 표했다. 그녀가 계속 이야기했다. @p 181 “이 정도면 간단한 사항은 해결된 것 같군요.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요? 이곳을 탐사하는 데 사용한 두 대의 탐사기를 조종했던 메족스에게 이 문제 를 넘기겠습니다.” 메족스가 자리에서 이렁나 불빛을 낮추었다. “여길 보십시오. 이주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으로 쏘아 보냈던 제1탐사기 가 찍은 영상 중에서 몇 개를 뽑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화면을 보고 나니 모든 일들이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희망은 산산조각났다. 마을은 나무 울타리로 둘려 있는데 울타리 아랫 쪽에는 돌이 잔 뜩 깔려 있었고, 그 주변 들판에는 곡식과 다른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죠. 여길 보시면 조악한 관개 시설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을 확대해 보면 장치 하나가 보입니다. 긴 막대에 짐승 가죽으로 만든 자루를 매달아 강물을 가득 채운 뒤 물통에 쏟아 붓습니다. 자루에서 쏟아 져나온 물은 물통을 거쳐 도랑을 지나고, 다시 들판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메족스가 말했다. 포아퍼레시스가 끙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럼 저건 연기인가요?” 메족스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불을 사용합니다. 이들이 쓰는 도구는 돌로 되 어 있지만, 목이나 손목에 두른 장신구는 금이나 구리같이 셀룰로즈 불에 녹이 기 쉬운 금속으로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셀룰로즈라구요?” “네, 놀라운 사실이지요? 우리가 합성물이라고만 알고 있던 물질이 여기선 생활 필수품이니 말입니다.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 @p 182 그들의 습성 덕분에 분광기로 불꽃을 찍을 수가 있습니다. 세트포스 나무들은 바로 이 셀루로즈로 만들어집니다. 이 때문에 세트포스 나무들이 우리 것보다 훨씬 잘 자라고, 크기 유지에 필요한 수압의 제한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 무의 가운데 부분은 퇴적 셀룰로즈로 이루어져 있는데, 심지어는 죽어버린 상태 인지도 모릅니다. 이러니 목재로 쓸 때 나무를 구울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어쨌 든 이 마을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제1탐사기가 사 라진 뒤에 보낸 제2탐사기가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사라졌다니요? 전송이 중단됐다는 말씀인가요?” 선장님이 물었다. “아니오, 사라졌습니다. 하늘에 떠 있던 위성이 그 탐사기를 한 지점에서 관 찰했습니다만, 다음 지점에서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마을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이 일과 어떤 관련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탐사기는 좀더 멀리 떨어진 언덕에서 사진을 찍도록 했습니다. 임무가 끝 나면 곧바로 사막으로 비행하도록 하고요. 그 바람에 제2탐사기는 마지막 동력 까지 다 써버려 이틀 내내 사막의 햇빛을 받은 뒤라야 다시 작동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설명을 드리죠. 이전 그림을 보면 거대한 건물이 있습니다.” 그는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처음엔 곡식 창고나 마을의 우두머리격인 남자가 사는 집이라 생각했죠. 하 지만 여길 보십시오.” 건물 한쪽 면을 확대해 보았다. 건물 안에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여인의 석상이 있었다. 바로 앞에는 탐사기의 잔해가 있 @p 183 었는데 태양 전지판은 찢기고 날개 부품은 없어졌으며 추진기는 날아가고 계 기함은 찢겨 열린 채로 버려져 있었다. 나는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저 진흙에 뒤덮인 채로....” 메족스가 말했다. “저건 진흙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그림을 바꾸었다. 긴 옷에 이상한 마스크를 쓴 한 사람이 발버둥치는 작은 동 물-같은 종족이 아닌, 두터운 털이 나 있는 동물이다-을 머리 위로 치켜들더니 탐사기 우측 날개의 편편한 곳에 억지로 내려 놓았다. 그런 다음 번쩍이는 돌칼 로 동물의 목을 따고선 탐사기에 피를 흘리도록 그대로 놓아 두었다. “으윽, 이런. 점점 더 나빠지고 있군요.” 포아퍼레시스가 말했다. “맞아요. 저것이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면 오히려 이상하죠. 저건 종교 의식 이죠. 와코펨이 그들의 땅을 찾았을 때 산 제물을 바쳤던 것과 똑같습니다. 저들 의 표현이 정확했다면 말이죠. 저들은 탐사기가 신이거나 아니면 신이 내린 것 이라 생각하기에 제물을 바치는 겁니다.” 선장님이 말했다. “제 생각에 저들은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동물들이군요. 하지만 다시 본래의 화제로 돌아가죠.” 메족스가 말했다. 다음은 느리게 찍은 사진이었다. 통나무와 진흙으로 조잡하게 만들어진 집들 의 절반 정도가 태양 전지판의 부품이나 조각을 문위에 걸어 놓았다. 사람들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을 보니 그들은 추진기나 계기들을 끈으로 묶어 목에 걸고 있었다. @p 184 “지금까지의 사진을 보면 저들은 저곳을 먼저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보 다 머리가 훨씬 좋은 것 같은데요.” 케콕스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오투스가 다음 문제인 이 물건들의 배분에 관련해서 설명하겠습니다. ” 메족스가 말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저도 메족스처럼 드라마틱하게 주제를 이끌어 나가는 재능이 있다면 좋겠지 만, 그렇지 못하네요. 그래서 모든 것을 서류로 준비했지요. 증거를 더 원하신다 면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 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요점을 말하자 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 동물을 찍은 사진들을 총동원하여 각 위성에서 실행 할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탐사기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이들이 행성의 모든 곳에서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결국엔 이들이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는 기생충 같은 종류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얼음이 뒤덮인 곳을 제외한 사막, 초원, 산, 늪지 같은 넓은 지역이면 어디든지 살고 있습니다. 삼림 지대에도 거 의 틀림없이 살고 있겠지만, 나무가 무성히 뒤덮여 있어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가 없었지요.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이 살지 않은 곳 중 가장 넓은 곳 은 여기와 저기입니다. 섬들 중에도 아주 괜찮은 곳이 몇 개가 있습니다. 사우스 랜드의 동남 쪽에 있는 이 두 섬과 후크섬 근처의 이곳인데, 바다 한가운데 있 는 작은 열도들로 모두 기후가 온난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백 년 뒤 이민자 들이 도착할 부렵이면 이곳들 역시 그들로 바글거리게 될 것입니다.” 나쁜 소실을 들려줄 때마다 늘 그랬듯이 그녀는 귀를 세게 긁어댔다. @p 185 “그들이 바다를 통해 이동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빙하가 많고 수위 가 낮았던 수 만 년 전에 대륙과 대륙을 이은 육교로 걸어서 이동했을지도 모르 죠. 하지만 위성에서 찍은 이 사진을 보면 확실치는 않지만 여기 해협을 건너는 뗏목이 보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실을 알아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로는 빙하 지대를 제외한 어느 곳도 이들의 손아귀에서 안전하다고 말하 수는 없을 듯합니다.” “충돌이 불가피하겠순요.” 메족스가 말했다. “그럼, 우리가 저 곳에 정착하려면 충돌은 분명 불가피하다는 것이군요.” 소이켄 선생님은 강조해가며 맞장구를 치더니 이야기했다. “그들은 이미 도시에 살면서 금속 제품을 만들거나 농사를 짓는 일 같은 것 을 하고 있으며, 슐라스인이나 팔라스인들과 비교해 볼 때 외견상 별다른 차이 가 없는 것을 미루어 보아 그들의 인구 확산은 최근 들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듯합니다. 색소의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 아직도 한 종족을 이루고 있는 것 같 구요.” 오투스가 강한 동의의 표시를 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동물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좋든 싫든 우린 그들의 방식에 동화될 테죠.”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동물들’-여러분이 말한 대로 호칭을 붙이자면 말이죠-은 어느 모로 보나 우리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나요?” 메족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만든 우주선이 보여야 하잖습니까?” @p 186 소이켄이 대꾸했다. “1백 년 전엔 우리가 만든 우주선이 보였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그들이 사는 곳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망망대해에 있는 섬 같은 곳 말입니다-그 들 눈에 띄지 않게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방대 한 과학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행성의 다양한 생태계뿐만 아니라 이 현명한 종족의 발전과 전개 상황에 해서도 말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전혀 아 무런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일단 그 작업이 끝나면 우리가 사용했던 진지를 흔적 없도록 모두 없애야 합니다. 진지를 해변가에 만들었다가 떠날 땐 보조탄두 융합물로 폭파시키는 겁니다. 폭파되지 않거나 불에 타지 않 은 것들이 바다에 씻겨버릴 수 있게 말이죠. 약간의 잔여 반사능은 2~30년 지나 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나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우리 여덟 명은 다시 니수로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 늙은이들은 도중에 목숨을 잃을 것입 니다. 별들 가운데 춥고 어두운 곳에 묻힌다고 생각하니 소름돋긴 하지만 그래 도 사체나 진지를 남겨 저들 눈에 띄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들 나름대로 문명 화의 길을 모색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저들도 그 럴 권리가 있으며, 그 동안 우리는 저들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니수로 보고서를 보내면 니수 사람들은 분명 영구 이주민을 보내 저들의 발전상을 관찰케 할 것입니다. 이 행성의 달이나 저들과 접촉하지 않아도 될 땅 에 진지를 만들겠지요. 그러면 몇 천 년 안에 우리는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 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국에 있는 멍청한 인간들이 우쭐대는 자세를 수그리고 다른 정찰 임무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p 187 희귀한 게 아닙니다. 거주 공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보다 알맞은 곳을 찾아야 합니다. 더 운이 좋으면 커다란 비행선이 왕래할 수 있을 만큼 딱 맞은 곳도 여럿 발견할 수 있겠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여러분? 우리가 만약 그 사 람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무엇인가를 배우면서 그들을 연구한다면 말이죠. 앞으 로 2만 년쯤 뒤에는 니수의 비행선이 서로 다른 열 개의 행성을 오가면서 그 사 람들을 우리 동반자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미래의 새로운 문명에 대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 뒤 선장님이 입을 열었다. “모국에 있는 사람들이 해낼 일을 제대로 할 지 의심스럽습니다. 페레그 요 락은 8일이 두 번 지나기 전, 2백 퍼센트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일이라면 잘 하려들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한두 대의 정찰선을 더 보내거나, 미래에 대해 조금은 더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죠. 그리고 우리는 올바른 행동을 계속 해나갈 수 있겠지요. 모국에 있;는 사람들과 다음 세대가 우리 뒤를 따르길 바라 면서 말이죠.” 그녀 목소리는 생각할수록 점점 용기를 얻는 것처럼 들렸다. “게다가 사람들이 장차 할 일까지 우리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녀는 소이켄을 보며 살며시 웃었다. “근사한 해결책이에요.” 소이켄 선생님은 마음을 놓은 듯이 보였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다시 내쉬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글쎄요, 제 생각엔 그것이 최선은 아닐 것 같은데요.” 나는 가슴 깊이 안도감을 느꼈다. 오투스 또한 마음 놓는 것을 @p 188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모든 어른들의 이성이 마비된 것은 아니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 제 생각엔 말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우리와 똑같은 전철을 밟도록 할 이유 가 없다고 봅니다. 가장 흔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조만간 그들 가운데 어느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군사로 능가하게 될 것이고, 다른 이들을 모두 정복하여 노예로 삼을 겁니다. 우리가 슐라스와 팔라스 사람 사이에서 겪었던 것처럼 종 족들끼리 끔찍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죠. 제 말은, 우리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뜨거운 난로를 만져보게 하거나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놀라고 하지는 않는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물리나 화학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모든 실험 들, 특히 독성이나 폭발성이 있는 실험들을 되풀이하라고 시키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젊은 종족들로 하여금 우리가 했던 것과 똑같은 실수를, 우리 역시 아직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실수를 치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저는 그 들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과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리고 착륙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따스한 웃음을 지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 보았다. 자신의 입장이 절충적이거나 가장 훌륭한 가능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주장을 제일 먼저 들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나는 이 생각 을 몇 년 뒤 자주 해 보았다. 아니, 그렇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가끔 따스하고 부드러운 말을 꺼냈지만, 다른 어른들의 행동 때문에 침묵하곤 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말을 덧붙였다. @p 189 “그런데 우리 늙은이들이 대화를 독차지하고 있군요. 어디 젊은 사람들의 의 견을 들어 봅시다.” 우리는 이 순간을 조심스레 준비해 왔다. 오투스, 프리캄, 나, 우리 셋은 일제 히 메족스를 바라보며 우리들을 대변하여 이야기 해 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메족스는 느릿느릿 깊은 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제가 될 수 있으면 단순 명료하게 이야기하죠. 니수에 있는 사람들이 이주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시켰더라면 이 행성을 탐구 대상으로 남겨두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곳에 탐사기를 보내 더욱 살기 좋은 곳 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많은 니수인들, 특히 과학자들이 이런 발상을 분명히 대환영할 것입니다. 여기 사는 동물들도 우리가 그냥 자취를 감추어 주길 바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니는 니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임무가 바로 그것이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트 포스에 사는 동물들을 발견한 것은 장애가 아니라 큰 이점이라 생각합니다. 가 장 발달한 동물들이 사는 곳에 착륙해서 그들의 문명을 공격하고 정복하여 살아 남은 자들을 길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종족의 이익에 맞춰 이 동물들을 최 대한 착취할 수 있는 식민지 건설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하 고 싶습니다. 그런 뒤에 니수로 신호를 보내 우리의 성과를 설명하고 오라고 부 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임 조치를 풀고 정착하여 농장을 관리하면 우리 증손 들은 식민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방대한 경제 적 기반을 갖춘 식민지말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해서도 더 나은 길입니다. 일 생 동안 이 금속 상자안에 갇혀 지내지 않아도 되니 말이죠. 미래의 이주민들을 위해서 @p 190 도 단연코 더 나은 길입니다. 그들을 먹여 살릴 준비가 되어 있는 행성에 도 착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더 나은 길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빈정대는 말투로 끼여들었다. “어떤 사람들 말입니까?” “세트포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 메족스가 단호히 말했다. “거긴 아직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으로 똑똑한 동물들이 있을 따름 이죠. 그리고 바로 그것이 제가 말하려던 부분입니다. 니수 역사상 가장 큰 재앙 이 무엇이었습니까? 팔라스인과 슐라스인 사이의 분열, 니수인이 하나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엔 원시적인 종교와 정부를 갖추었으며 모든 일을 해낼 만큼 똑똑하지만, 우리 먼 조상들이 물려 주었던 것과 같은 생활 양식을 물려 받을 만큼 똑똑하지 않은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니수인이 아니며, 니수인이 되려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은 그들 때문에 우리 모두가 니수인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들의 차이점은 우리와 그 동물들과의 차이점과 비교하면 아주 미미한 것입니다. ” “그들을 동물이라 여긴다면 말이지.”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투스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동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들과 우리 조상이 같을 가능성도 없지요. 우리는 세트포스를 차지하고자 이곳에 왔으며, 세 트포스는 우리 것입니다. 그리고 몇몇 동물들이 불을 지피고 날카로운 막대를 사용한다고 해서....” @p 191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자제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 내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슐라스인을 평등하게 해 주기 위해 현명한 다른 종족 모두를 노예 로 만들겠다는 건가? 한 가지....” “집에서 기르는 가축은 노예가 아니지요.” 프리캄이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어른들 사이에 눈짓이 오갔다.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 뒤 선장님이 말했다. “자네들 모두가 어떤 일을 모의한 뒤 우리에겐 단지 통보하는 것처럼 들리는 군.”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메코시스, 자네도 여기에 동의하나?”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 저희들은 이미 의논을 마쳤습니다. 어른들 대부분이 저희들에게 더이상 의견을 묻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시죠? 그러니 저희들끼리 어떤 합의를 본 것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죠.” 그들은 모두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다. 특히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격분한 것처럼 보였다. “슐라스인이라도 노예화에는 반대할 걸세.”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계획을 세우기는 커녕.” 나는 당연히 그 말을 무시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 동물들을 이용한다면....” “사람들이라니까.” 소이켄이 말했다. 내가 단호히 말했다. @p 192 “동물들입니다. 어른들은 모두 우리가 다른 종족과 결혼하면 죄인 취급하면 서 권리니 뭐니 떠들어대고 그들을 사람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건 이 젠 신물납니다.” 케콕스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순간 그가 나에 게 몸을 날려 공격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방을 가로질러 가더니 나머지 사 람들에겐 등을 보인 채 메족스에게만 큰소리로 퍼부었다. “무슨 꿍꿍이 속인지 알겠다. 무슨 결과가 나올 지 네가 코흘리개 애숭이일 적부터 짐작했어야 했는데. 물론 너는 아직도 그런 녀석이지만. 메족스 황제 폐 하! 니수의 메족스 황제가 아니라면 세트포스의 메족스 황제라도 되겠지. 옳거 니, 세트포스의 메족스 황제가 훨씬 낫겠다. 네 노예들에겐 1백 년이 넘을 동안 최초의 황제가 될테니. 미신을 믿는 불쌍한 인간들더러 너를 신이라 떠받들게 할 수도 있겠지. 슐라스 창녀가 당연히 황후가 될테고, 이주선이 도착할 때쯤이 면 피가 섞인 잡종들이 관료입네하고, 수백만 명의 노예들, 그럼 품위 있는 사람 들은....” “그만 하십시오.” 메족스가 말했다. 이상했다. 나는 그가 고함을 내지르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메족스는 어느 때보다도 화가 나 있었다. 그가 내 편이라는 것 을 알고 있었는데도 그 목소리를 들으니 등골이 오싹했다. 케콕스 선생님은 실눈을 떴다. “그래, 세 명의 애송이를 거느린 황제께서 반박하시는군. 하지만 내 말 잘 듣 지. 앞으로 이 말을 되풀이하는 일은 결코 없을테니. 역사적으로 볼 때 오랜 기 간 동안 우리 역시 날카로운 막 @p 193 대와 불을 사용했어. 저들이 우리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무능력하다는 증 거는 어디에도 없어. 사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저들이 너희 젊은 사람들보 다 훨씬 똑똑해. 이 사실을 생각해 보자. 넌 훨씬 더 발달한 문명 속에서 태어났 을 지는 모르지만, 싸움의 경험은 전혀 없어, 전혀말이야. 증기 총 세 자루를 지 급받긴 했지만, 우주선 어디에서도 연습할 만한 곳은 없어. 넌 그곳에서 처음으 로 총을 사용해야겠지. 그들은 평생 동안 돌이 달린 창을 사용했던 사람들이야. 게다가 그 시기의 문명이라면 분명히 여름마다 전쟁이 있었을 거야. 부족 전체 가 전사들일지도 모르지. 그들은 옆에서 죽어가는 친구를 바라보는 것이 어떤 것이지 알고 있어. 부상을 입었을 때 어떤 식으로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지도 알 고 있지. 그들은 무기 다루는 것에 너무나 능숙하기 때문에 무기가 몸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기도 하지. 너는 그들보다 2만 년 앞선 기술을 알고 있을 지는 모르 지만, 정작 중요한 기술과 경험을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야. 그러니 네 제안이 구역질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전에, 또 너 자신에 대해서도 구역질난다는 사 실을 이야기하기 전에, 당나귀 귀가 달린 창녀의 남편, 메족스 황제 폐하라는 그 것이 먹혀들지 않는 발상이라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자구. 세트포스 사람들이 모 든 면에서 유리해. 내 말 알겠나?”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메족스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에족스는 노려보며 케콕스 선생님의 손을 쳐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끼여들어 둘 사이를 갈라 놓았다. “그만 두세요!” “아하, 그래? 아빠 뒤에 숨으시겠다.” 케콕스 선생님이 손을 내밀어 포아퍼레시스 뒤에 있는 메족스 @p 194 의 인중을 톡톡 치며 말했다. “당장 그만두라니까요. 여기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거 잘 알잖습니까. 우리는 다만, 지금 어느 지점에 착륙할 것인가와 세트포스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 차이를 보일 뿐입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논쟁할 이유가 없어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말했다. “자리에 앉으세요, 케콕스. 부디 자리에 앉으세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눕시다. 부탁입니다.” 선장님이 말했다. 케콕스 선생님이 한 발자국 물러셨고, 메족스도 물러섰다. 포아퍼레시스 선생 님이 가운데에서 비키려는 순간, 칼을 꺼낸 케콕스 선생님은 메족스에게 강하고 날카로운 일격을 밑에서부터 날렸다. 그러나 메족스는 20년 동안 우리들 가운데 서 가장 열심히 전투 경기로 훈련을 쌓은데다 그 훈련은 거의 케콕스 선생님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케콕스 선생님의 손목을 빠르고 강하게 내 리쳤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늙은 군인의 손목이 부러졌고, 칼은 갑판 위로 떨어졌다. 메족스는 잽싸게 칼을 집어든 뒤 이글거리는 눈으로 케콕스를 바라보며 칼을 위로 휘둘렀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몸을 돌려 싸움에 끼여들었다. 메족스를 말리려고 했거나, 칼을 못 쓰게 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발을 헛디딘 것 인지, 넘어진 것인지, 아니면 거리를 잘못잰 것인지 비수는 그의 흉곽을 찌르며 혈액 혼합 기관으로 파고 들었다. 검붉은 피가 메족스의 팔 위로 뿜어져 나왔다. 메족스와 케콕스 선생님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갑판 위로 쓰러지며 숨을 거두셨다. @p 195 케콕스 선생님은 양 손목을 움켜쥔 채로 오랫동안 내려다보더니 메족스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아라.”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메족스가 그의 몸을 뒤집어 보았지만, 출혈 양만 보 아도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혈액 혼합 기관은 흉곽의 바로 윗 부분에 있다. 평소에는 안전하게 보호되지만, 인체의 모든 혈액이 심장으로 가하 는 곳이기에 칼에 찔리면 혈압 하강만으로도 치명타가 된다. 아마도 갑판으로 쓰러지기도 전에 순신간에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넓고 두터운 검붉은 피웅덩이가 생겼다. 메족스는 팔이 피로 흠뻑 젖었고 온 몸엔 피가 묻은 채 한가운데 서 있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아라.” 케콕스 선생님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는 케콕스 선생님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슬픔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우리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테이블 위로 시신을 옮깁시다.” 핼쓱한 얼굴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복부에서 칼을 빼내더니 쓰레기 넣는 구멍으로 던졌다. “그건 증거품인데.” 선장님이 느릿느릿 말했다. “상관 없습니다. 제가 자백하니까요. 게다가 여러분 모두가 증인이 아닙니까. 저와 함께 이 분을 테이블로 옮겨 시신을 수습합시다.” 메족스의 음성은 매우 부드럽고 공손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진정한 살해범은 케콕스 선생님이 분명한데도 메족스는 모든 비난을 감 수하며 평정을 유지하려는 것이 분 @p 196 명했다. 나는 일어섰다. 선장님과 둘이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육중한 시신을 테이 블로 옮겼다. 우리는 그의 팔을 가슴 위에다 가지런히 모아주었고, 반듯이 누울 수 있도록 다리를 펴주었다. 그리고 나서-나 자신도 놀란 일이었지만-그의 눈을 감기고 입을 다물게 해 주었다.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고 난 뒤라 속이 울렁거렸 다. 그의 얼굴은 어렸을 적부터 보아온 온화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길다란 귀를 잘 가다듬어 테이블 위로 가지런히 놓았다. 갑자기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몸을 돌려 흐느껴 울기 시작한 선장님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오랫동안 서로를 꼭 붙들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메족스와 프리캄이 손을 잡은 채 나란히 서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시신을 여전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이켄은 그때까지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케콕스 선생님은 손목 아래가 부러져서 힘 없이 손을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어느 누구도 오투스가 나가는 소리를 못 들었으나 어느새 그녀는 의료 기구함을 들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 녀가 케콕스 선생님에게 뭐라 중얼거렸다. 케콕스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그녀에 게 손목을 맡겼다. 어느 정도 소독을 한 뒤 그들은 접이식 방으로 꾸며놓은 병 실로 옮겨갔다. 그 다음 케콕스 선생님의 손목에 부목을 대고 진정제를 투여했 다. 메족스와 프리캄은 소리 없이 재빠르게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곳으로 사 라졌다. 선장님과 나는 또 다시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 다. “혼자 있고 싶구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겁고 나른한 기분을 느끼며 내가 말했다. 나는 울음을 떠트 @p 197 리거나 자리에 앉아 있거나 몇 시간이고 벽을 쳐다보거나 그렇게 하고 싶었 다. 어느 쪽이든 별 상관없었다. “소이켄, 소이켄 선생님.” 그녀는 고개초자 들지 않았다. “소이켄 선생님.” 내가 다시 한 번 불렀다. 그녀는 마치 돌로 조각된 것처럼 보였다. “내버려 뒤. 생각할 게 많을 테니까. 소이켄 선생님. 그냥 혼자 있고 싶은가 요?” 선장님이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두세 번 입을 움직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 “좋아요, 그럼.” 선장님이 말했다. 그녀는 사물함에서 담요를 꺼냈고 나는 그녀를 거들어 소이 켄 선생님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 주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 은 채 복도를 걸어 각자의 방으로 갔다. 식당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담요를 두르고도 몹시 추운듯 몸을 떨면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시신을 쳐다보던 소이켄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하루의 5분의 1정도 되는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 보다가 이따금씩 깜빡깜빡 잠이 들곤 했다. 세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끊임없이 어지럽혔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살아 돌아왔으면 하고 바라는 한편으론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또 그 일이 내 노력이나 결정과 전혀 상관 없는 @p 198 일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대분의 시간 동안, 오래 전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나를 꽉 끌어안아주셨던 느낌과 이마에 닿았던 그의 손가락이 지닌 느낌을 더음어 보았다. 메족스는 감정적으로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그에게 말을 걸 수 있 는 사람을 프리캄밖에 없었다. 선장은 늘 외따로 지냈으니 뭐라 할 말이나 있을 지 의심스러웠다. 케콕스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잠들었지만, 일어나자마자 메족 스를 비난하기에 바쁠 것이다. 너무 화가 나서 우리와 말조차 하지 않을 공산이 컸다. 선장이나 소이켄 선생님이 그를 달래야 할 것이다. 소이켄, 우리가 어떤 식으로 그녀를 내버려두었는지 생각이 들자 나는 죄책감 부터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선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 펴보러 식당으로 갔다. 시신을 다시 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포아퍼레시스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받 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신, 피가 엉켜붙은 얼굴을 보자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소이켄 선생님은 가까이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을 볼 수 있도록 의자를 약간 잡아당긴 상태였다. 그녀는 내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 다. 흐느껴 울거나, 울음을 터트리지도 않았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을 앞에 놓고 통곡하지 않고 있는 것이 더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를 깨울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마냥 가만히 쳐다 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다시 몸을 떨었고, 나는 다가가 어깨 위로 담요를 잡아당겨 주었다. “고맙구나.” @p 199 그녀가 속삭였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세요.” 뼈만 앙상하게 남아 가느다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고, 그녀의 등 뒤 딱딱하 게 뭉쳐있는 근육들을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주며 내가 말했다. “내가 도와드릴 일 있나요?” “여기 있어줘.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할 지도 모르니까.” 그녀가 말했다. 이상했다. 그녀가 아이가되고, 내가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얼음 조각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는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시신에는 난잡하게 핏자국이 엉켜 있었다. 나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 렇게 지저분하게 보이다니 그가 얼마나 상심할까 하고 생각했다. 마침내 소이켄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포아퍼레시스는 우리와 달랐지. 선장은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해서 사람들한 테 지시내린 곳까지 혼자 우주산을 조종하고 혼자서 일을 해나가는 것에 만족했 지. 난 서류 작성과 실험을 좋아했고. 그리고 케콕스는... 글쎄, 너도 눈치채고 있 겠지, 그렇지? 그가 하류층 출신이라는 것을. 팔라스인의 서열로 볼 때 그의 집 안은 그리 좋지 못하단다. 그래서 그는 자기 조카들이 출세할 수 있도록 어렵고 따분한 일들을 줄곧 처리해 왔어. 하지만 포아퍼레시스는 무언가 찾아가 보고 싶었던 거야. 다른 세상을 직접 가보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결과가 얼마나 야릇 하게 꼬였는지! 우리 모두가 한 뜻이라고 느꼈던 것이 있었다면 우리가 종족 간 의 뿌리 깊은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 니수 역사 상 가장 공명정대한 사 회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어. 예전에 시도했던 @p 200 사람이 별로 없었거나, 시도했던 이들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 지도 모르 겠다. 여덟 명의 사람이 수백 년 역사를 단 20년만에 파기할 수는 없지. 우리들 내부에서조차 불가능한 걸. 다른 종족과의 결혼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그렇게 애 를 썼건만 나를 바보로 만든 꼴이 되버렸어. 케콕스는 자신의 감정보다는 원리 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 그리고 포아퍼레시스는..., 글쎄, 그 점 에 있어서도 그 사람은 약간 달랐던 것 같아.” “그분 곁에 있으면 늘 환영받는 느낌이었어요.” 나는 소이켄 선생님의 귀 뒤에 뭉쳐져 있는 근육을 눌렀다. 그녀는 분명 스스 로에게 두통을 느끼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너희들 모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며 우리들과 입씨름을 벌이 곤 했지. 너희들 모두가 환영받고 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가아, 내 생각엔, 아무튼 우리보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 지.” 그녀는 신음 소리를 냈다. 이제 그녀가 울음을 터트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울 음을 터트리는 대신 계속 이야기 했다. “잠을 좀 자야 할 것 같구나.” 나는 방까지 그녀를 바래다 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줄 곧 갑판을 내려다 보았다. 그뒤 나 역시도 몹시 피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을 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순간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시신을 깨끗이 닦아야겠다고 생각 했다. 나는 도구들을 챙겨 색당으로 돌아갔다. 들어가보니 오투스가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신을 깨끗이 닦고 선장이 허둥지둥했을 때 보다 더욱 가지런히 시신을 수습했 다. 그런 뒤 바닥을 닦았다. 일을 @p 201 다 마치고 나면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식탁 위헤서 잠을 자기 위해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게 말이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오투스와 나는 손을 맞잡고 내 방으로 왔다. 두 명이 눕기에 침대는 너무 비좁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꼭 부둥켜 안았다. 하룻밤 내내 감히 한 침대를 써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p 202 사랑과 가족에 대하여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죽은 뒤 우리는 장례식을 치를 때에야 비로소 처음으 로 한자리에 모였다. 상주는 소이켄 선생님이었는데 그녀는 시신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장례식 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몸을 떨었다. 첫 번째로 추도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자 그녀는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신 뒤에 서서 자신의 두 손으로 그의 손 을 잡은 뒤, 더듬더듬 우리는 그를 사랑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하리라는 말을 했다. 선장은 침착하게 꼿꼿이 서 있었다. 간결하고 딱딱한 군대식 문장인 그녀의 추도사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공적 을 간단하게 나열하는 것이었지만, 추도사를 낭독하면서 그녀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손을 꼭 쥐었다. 장례식 제비뽑기를 하면 현명하게 순서가 정해질 지는 모르지만 결코 세심하 게 배려되어진 것은 아니다. 상주와 선장의 추도 @p 203 사가 끝나면 다음으로 추도사를 할 사람들의 순서는 제비뽑기에 의해 정해지 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관례를 꼭 따라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바꿔야 할 이유도 없었다. 제비뽑기 결과 순서는 다른 세 젊은이, 다음으로 나, 그 다음으로 케콕스 선생 님으로 결정됐다. 메족스, 프리캄, 그리고 오투스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같았다. 우리는 언제나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을 의지했고 존경했으며, 그가 몹시 보고 싶 을 것이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난 며칠 동안 무슨 말을 할까 하는 생각으로 몇 시간을 보냈다. 그러 나 막상 지금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차가운 손을 잡고 보니 정말 형편없는 추도사가 될 것이라는 느낌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다 른 말을 생각해 내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의 손은 몹시 차가웠고, 숨을 거둔 그의 얼굴은 몹시 공허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서는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제 처음으로 사람을 떠나 보냅니다. 우리를 파견했던 사람들은 우 리가 혈연 관계에 직접 얽매어 있지 않아서 혈연 때문에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여기 모여 포아퍼레시 스 선생님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운을 띄우면서 진정으로 하고 싶던 말을 꺼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다시 한 데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비록 어떤 문제에 대해 누군가와 양 보해야 한다는 뜻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메족스와 케콕스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모든 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애썼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우리가 싸우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 @p 204 라는 말로 추도사를 끝냈다. 그러고 나서 그의 무거운 팔을 내려 놓으며 얼굴 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어렸을 때와 학교에 다닐 때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케콕스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추도사를 낭 송하기 위해 시신 뒷자리에 가서 섰다. 그는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손을 집어들었다. 부목을 대고 있는 다른 한 손을 보니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들 어 입을 열었다. “뭔가 할 말이 있었습니다. 서너 가지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군요.” 케콕스 선생님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자메코시스가 한 말이 구구절절 옳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린 한 가족입니다. 팔라스나 슐라스의 그 어느 가족보다도 우린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고, 또 있을 수도 없습니다. 니수 를 떠나오면서부터 그 곳은 더이상 고향이 아니며, 이제 그곳은 우리가 떠나온 곳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파견한 사람들에게 더이상 애정을 느끼지 않습 니다. 포아퍼레시스는 우리의 모행성 전체보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세대 전체 보다도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는 숨을 흑 하고 들이마시고 마른 기침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손에 들려진 차가운 손을 들여다보며 추도사를 마칠 수 있도록 냉정을 되찾으려 애썼 다. 잠시 후 오투스가 일어나 케콕스 선생님 옆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팔꿈치를 잡아 주었다. 그는 두세 번 숨을 기핑 들이쉬더니 마침내 다시 이야기를 이 @p 205 어갔다. “나는 현실을 외면하려 애썼고, 황제의 근위병으로서 여러분들보다는 조국에 더 강한 충성심을 지니고 있다고 자신을 속여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과 마찬 가지로 이곳은 내 집이 되었고, 니수 전체가 폭발해 버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참는 것보다 쉬울 것 같습니다.” 그는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가장 절친한 친구를 잃었고, 그가 어떤 의미를 지닌 사람인지 그에게 말조차 해 주지 못했습니다. 나는 몇 년 동안 사람들에게 규칙에 따라 행동할 것을 강요해 왔습니다. 그 규칙이라는 것이 이제 나에게조차 별 의미가 없는 것 이 되어 버렸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나는 부끄러운 행동을 보였습니다. 자, 이제 너무 늦어 버리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가 내게 원했던 바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용서하고, 잊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것말입니다. 난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보내는 미문입니 다.” 그는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손을 가볍게 내려놓고는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부드럽게 눌렀다. 그 동작은 어린 아이를 재울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고개를 들었다. “나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여러분들이 내 가족입니다.” 여지껏 우리는 내부 규칙에서 비유로 명시한 것처럼 수자의 관례를 따라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색다른 장례식을 했다. 둥그렇게 모여 서서 소형 화물 엘리 베이터가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을 중앙 업무실로 옮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뒤 손을 맞잡은 채 조용히 서 있는 우리들 사이로 우주선 전체가 울릴만 큼 둔탁하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쿵 하고 들렸다. @p 206 탐사기 캐터필트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 어두운 우주 공간 속으로 포아퍼레시 스 선생님을 쏘아 보냈다. 우리는 여전히 새 태양의 중력장을 빠져나올 수 있는 탈출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고 있었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시신은 쌍곡선을 그리며 새 태양의 주위를 돌다 계속하여 우주 깊숙이 날아갈 것이다. 장례식 후 이틀 동안 우리는 ‘와병 수칙’을 따랐다. 선원 전원이 갑자기 병 에 걸렸을 때 따르는 조항이었는데, 모두들 일하거나 사소한 일이라도 하고 싶 은 기분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 날 우리는 선원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었는데, 적어도 내가 느끼기 에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은 시각적으로만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그야말로 그 자 리에서 가장 커다랗게 느껴지는 존재였다. 제일 먼저 대두된 문제는 니수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고를 할 것인가였 다. 규칙인데도 우리는 몇 년 동안 날마다 보고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회답이 오기까지 걸린 시간을 비교해 본 결과 우리가 보낸 메시지가 차곡차곡 쌓이거나 어떤 경우에는 8일이 몇 번 지날 때까지 방치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 다. 게다가 전송 의무일까지는 적어도 8일이 남아 있었다. 오투스가 말했다. “사람들이 이 일을 어떻게 둔갑시킬지 잘 아시잖아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가 될 거에요. 돌아가는 멍청한 짓을 하기로 결정내려 돌아가게 되면, 우린 전시 회에나 내보일 희귀한 동물들, ‘역사상 자장 유명한 살인극’의 생존자 취급을 받게 될 게에요. 게다가 어쨌든 우린 사람들에게서 어떤 메시지를 받기 훨씬 이 전부터 모든 일을 정리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에 @p 207 게 보고해야 하죠?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요?”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표정으로 그녀는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 보았는데 우 리 모두는 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영원히 돌아가지 않고 그들과의 인연을 끊을 생각이라면-적어도 이것이야말 로 제가 지지하는 입장입니다만-그들 앞에서 모욕당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들은 결코 이해하지 않을 사람들이고, 따라서 결코 이해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 잖습니까. 니수인들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절차를 밟겠지요. 야단법석 을 떨며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겠죠. 화내며 우리가 자신들과 의논했어야 했다 고. 이건 끔찍한 사태라고 결론내리겠지요. 아마도 레이저를 꺼버리고 모든 프로 젝트를 취소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까지 흥청망청 지내는 구실을 제공할 지 도 몰라요.” 잠시 후 소이켄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나도 여기서 있었던 일을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 기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사라졌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 하면서 엉뚱한 추측들을 하겠지요.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우린 충격적인 뉴스를 제공한 셈이 되겠지요. 우리가 무슨 수를 쓴다 한들 그들에게 종족 보존 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줄 수는 없다는 건 명백합니다. 니수는 우리를 파견한 뒤 우리 생각을 접어버렸으니까요. 그러니까 오투스, 네 생각은 전송도 중단하자는 거지?” 오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일단 착륙한 뒤 착륙 과정에서 폭발한 것처럼 갑자기 송신을 중단하 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죠. 사람들로 하여금 그곳을 떠나 사회를 살 릴 생각을 하게는 못하더라도, 뉴스 회사에서 탐사단을 보내 우리에게 어떤 일 이 벌어졌는지 조사할 @p 208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그 사람들이 이곳에 도착할 무렵이면, 우리 후손들이 떳떳하게 살고 있을 겁니다.” 메족스가 말했다. “다른 이점들도 있죠. 이 똑똑한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면 니수에선 분명히 의견이 분분할 겁니다.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생각해 보십시오. 따 라서 우리가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든 간에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 지는 불 을 보듯 뻔합니다. 저는 니수인들보다는 우리들, 우리 후손들을 더욱 믿습니다. 그뿐 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냥 사라져버린다면 그들은 우주선을 두 개 더 만들 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대상이 다시 세트포스에서 방해물이 될 가능성 에 대비하여 예비 행선지를 만들게 되는 셈이고, 살아 남을 가능성도 두 개가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예산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또 다른 우주선 을 여기까지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아시겠지요. 이제 거대 레이저가 건설되었으니 대형쇼 하나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 정도밖에 안 됩니다.” 프리캄이 지적했다. 케콕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존재를 드러내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더 나은 길일지도 모른다 는 얘기군요.” 나는 생각에 잠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보기에 우리들 은 니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특히 지난 2년가 탐사기가 전해 준 자 료가 니수의 여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09 우리가 아는 바로는 니수인들이 페레그 요락과 행성 개선 프로그램을 거부했 으며, 황후는 출산 도중 숨을 거두었고, 새 황제는 이주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 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우리 뒤로 지금까지 넉 대의 우주선이 발사되 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우주선들은 모두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이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면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그 우주선들은 우주 여행에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가며 니수인들 에게 진실을 감추었고, 많은 비난의 화살이 우리에게 오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 비난을 받는 것은 우리의 비공식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임무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훗날 그 때 그 말을 했더라면 상황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으나, 막상 말했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으리라고 결론지었다. 사실 우리는 투표도 하지 않았 다. 모두들 감속을 시작할 때까지 스무 번의 8일 동안 일상적인 보고만 하자는 생각에 동의했던 것이다. 아무도 일상 보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탐사기가 보낸 자료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새 태양인 쿠사펙스에 가까이 접근했다는 보고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일 뿐이 었고, 세트포스 궤도 진입에 애를 쓰고 있다는 보고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 평 상시와 다름없는 방법으로 착륙한 뒤, 시기적절한 때에 필요한 채널을 꺼버리기 만 하면 되는 것이다. 와코펨 조모스 호에 있는 자동 회로가 이 역할을 맡을 것 이다. 거의 아무런 토론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린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네 명의 여자가 즉시 임신한다 하더라도 몸이 불편해지기 전에 착륙 하고 정착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 @p 210 기에 소이켄 선생님은 모든 이들의 불임 조치를 해제했다. 태양의 주위를 돌기 훨씬 이전에 오투스와 프리캄 둘다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 혀진 것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약간 놀라웠던 사실은 선장 또한 임 신했다는 것인데, 이 사실 때문에 메족스와 나는 케콕스 선생님을 놀릴 수 있었 다. 빅의 남서쪽 모퉁이 부근에 있는 작은 지역에 더 많은 탐사기를 보낼수록 우 리의 잔류와 거주 계획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그 지역 정보를 많이 수집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똑똑한 동물들인지 아니면 아둔한 인간들인지 여전히 갈피를 잡 을 수 없었기에 우린 두 경우 모두에 대비하여 계획을 세웠다. 두 가지 모두 간단하기 그지없어 계획이 틀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리 고 우리가 니수로 돌아가지 않은 채 거주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다른 데 있다 하더라도, 그 결정이 니수에 미치는 영향은 나쁜 쪽보다는 좋은 쪽에 가까울 것이다. 새로운 태양계로 진입하면서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에게 마지막 선물 같은 것을 바쳤다. 전송을 중단하기 전, 구사펙스계의 8행성에 대한 관찰 결과와 측정 결과 를 그의 이름으로 열심히 전송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상하면서 그가 우리 곁 을 떠나고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은폐했지만,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의 학문 적인 업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다만 은폐 목적 때문 에 그렇게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기억에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메족스와 프리캄도 세트포스 탐사기를 관리하면서 종종 자신들이 한 일 에 그의 이름을 기입하곤 했다. 쿠사펙스로 다가감에 따라 우린 쿠사펙스계에 대한 지식을 다방면으로 배가시 켰다. 우리는 더이상 쓸모없는 자기 드래그 루프 @p 211 를 우주 속에 내던졌다. 루프가 쿠사펙스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면 파괴되리라 는 점은 거의 틀림없었지만, 아주 얇은 물건이었기에 우리 도구가 아무리 발달 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먼 곳에서는 파괴 사실을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우 리는 돛을 꺼내 환하게 빛나고 있는 새 별을 마주해서 활짝 펼쳤다. 제동 장치로 태양 돛을 사용하면서 쿠사펙스 근처를 지나가게 되자 하룻동안 끔찍할 정도로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자 23년 전, 포아퍼레시스 선생님이 우리를 돌보아주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부상자가 없었고, 우리들 모두가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 뒤 하루나 이틀은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 우리는 타원형으로 역궤도를 그리며 새 별이 뿜어내는 눈부신 빛에서 빠져 나 왔고, 쿠사펙스계 두 번째 행성의 중력을 이용하여 더욱 강력한 제동을 걸면서 그 행성의 옆을 가까이 지나쳤다. 겉으로 보기에 그 행성은 쿠사펙스계에서 가장 매력없는 행성이었다. 특징 엇 는 구름층과 두터운 이산화탄소 대기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반짝이는 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행성 곁을 지나갈 땐 전망창으로 나가 관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23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낸 뒤에도 여전히 볼품 없는 행성을 보니 기 분이 묘했다. 행성 옆을 가까이 지나치게 되자 행성의 중력이 우리를 잡아 끌었 다. 이제 우리는 쿠사펙스의 중력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세트포스와 맞닥뜨리게 되면 올바른 궤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오차는 좀 있겠지만 말이다. 아직도 사소하게 수정해야 할 사항이 많이 쌓여 있었다. @P 212 세트포스로 다가가는 동안 8일이 몇 번이나 지났다. 일단 속력을 올리면 태양 계를 만 하루와 4분의 1만에 통과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열 번의 8일 동안 세트포스와 가장 가까이 있는 두 행성 사이로 접근하려는 계획이었다. 와 코펨 조모스 호가 세트포스의 행성 반경 1백 이내로 들어가자 우리는 다시 사용 할 것을 대비해서 하루종일 돛을 접었다. 돛을 접은 지 6일 뒤,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궤도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탐사기 엔진을 발사했고,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우리 손으로 처리하라는 다짐 을 받은 선장님은 그날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 니 그녀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편안한 침대 위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 될 것 이기에 그저 음악만 듣고 있었던 것이다. 케콕스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전망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고, 소이켄 선생님 은 그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둘다 동상처럼 아무말 없이 작은 움직임조차 없이 앉아서 작은 점으로 보이다 마침내 전망창에 가득 차 보이는 세트포스를 바라보 았다. 오투스는 키를 잡고 프리캄은 엔진을 감시했으며, 메족스와 나는 계기를 읽고 행로를 점검해 가면서 새로운 궤도를 진입했다. 그날 저녁, 하루의 마지막 식사 를 할 때 세 명의 원로들은 우리가 깔끔하게 일처리했다며 축하해 주었다. 다음 해야 할 일은 약간의 논의가 필요했다. 우주선 중심부의 3분의 1 가량 차지하고 있는 것이 접어놓은 돛이었는데, 이론상으로 이 돛이 더이상 쓸모가 없었다. 우리는 지금 피임을 해제한 상태였기에 니수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아이 들을 모두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태까지 단숨에 가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사 고로 가장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p 213 우리는 이제 이 세계에서 살기로 결정을 내린 마당이었고 돛은 니수로 다시 돌아갈 때 이외엔 쓸모가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주 스테이션으로 우주선을 개조해야 했고, 그 기술적인 바탕을 제공해야 할 와코펨 조모스 호의 면적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돛이었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돛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망설였다. 이곳에 서의 생활을 잘 이룰 수 없을 때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돛을 버리게 되면, 와코펨 조모스 호의 조종 엔진에 공급되는 동력이 급격히 떨어져 세트포스의 궤도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엔진의 역할은 위치 고정이었다. 메족스가 말했다. “하지만 착륙선 가운데 하나를 뒤 쪽에 결합시키면 그걸 이용해 날아오르면 서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탄도 비행을 해야 하고, 그 러려면 몇 년이 걸리겠지만, 그런들 어떻습니까? 우리는 모두 이 안에서 지내는 일에 익숙해져 있고, 이 태양계 내에서는 달리 갈 만한 곳도 없는 걸요. 전 버리 자는 쪽에 표를 던지겠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이상의 발언은 없었다. 우리는 어떤 예감과 징조를 가까스 로 극복했다. 다음날 돛을 버릴 수 있도록 우주선을 직각으로 세우고 방출 버튼 을 눌렀다. 돛과 거기 연결된 케이블들은 무게만도 수 톤에 달했지만, 사실상 단일 분자 로 이루어진 물질이었기 때문에 접으면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색과 은색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천이 퀘도 내에 서 햇빛을 받으며 펼쳐지기 시작했고, 이 행성 둘 @P 214 레의 18분의 1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케이블이 돛 바깥으로 삐져 나왔다. 그리 고 훨씬 아래 쪽으로 실다이아몬드 케이블이 대기중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밝은 빨간색 줄이 뿜어 나왔다. 드래그를 달아 던졌기 때문에 돛은 확짝 펼쳐지면서 순식간에 하늘을 덮었고, 드래그의 힘이 점점 강해지면서 돛은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접혀 무서운 속도로 세트포스의 상층권에 떨어졌다. 원자 3백 개 정도의 두께 밖에 되지 않는 돛은 굴뚝 속에 떨어진 화장지 조각 처럼 갑자기 커다란 불꽃을 일으키며 산화했다. 밑에서 보았더라면 분명 근사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소이켄 선생님과 선장님은 세트포스와 그 달을 가까이서 찍은 사진들을 광적 으로 모았다. 케콕스 성생님과 젊은 사람들은 행성 표면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착륙선인 구릭스를 점검했다. 우리가 그 착륙선을 선택한 것은 그 이름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세계를 정복 한 사람은 구릭스 장군이었고, 다른 착륙선의 이름이 된 루마스 황후는 그녀를 위해 세계를 정복한 그 장군 덕에 왕좌에 앉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수십 년 묵은 파워 시스템이며 데이터 시스템을 켜고 작동시켜 보면서 초조하고 절망적인 긴 하루를 보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지 않으려 애를 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착륙선이 작동 하지 않아서 전망창으로 가득 보이던 세상을 만져볼 수도 없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루종일 애쓰고 났더니 전력이 제 위치에 배치됐고, 반물질 혼합은 2시간 내 내 억제할 수 있었으며, 센서들은 모두 제대로 작동했다. 수면을 취하는 동안에 는 자가 판단하도록 세팅한 뒤 우리는 좁은 터널을 비틀비틀 걸어 화코펨 조모 스 호 본체로 돌 @P 215 아와 각자의 침대 위로 쓰러졌다. 내일은 마지막 점검을 한 뒤 루마스에게 알맞은 채비를 시킬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펀안하게 식사한 다음, 점검을 위해 중앙부로 다시 갔다. 착륙 기 내부에 있는 공기가 거의 다 새어 나갔기 때문에 공기가 우주 속으로 모두 방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컴퓨터가 공기 공급을 중단한 상태였다. 구릭스는 봉합부와 개스킷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게 초저온이나 진공 때문인 지, 아니면 행성간 방사능 유출이나 노화 때문이지 알 길이 없었다. 플라스틱으 로 부품을 새로 만들어 정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컴퓨터 안에 장착 방법이 들 어 있었지만 장착 하느라고 여러 날을 보냈다. 첫날에 한 일을 다시 해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을 다 끝마치고 나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루마스에도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했다. 마침내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착륙선을 두 개 갖추게 되었 다. “착륙선 부품을 모두 만들 수 있는 공구며 재료들을 가지고 왔기에 망정이지 큰일날 뻔했어.” 그날 밤 저녁을 먹으며 메족스가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지. 만약 우리가 니수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와코펨 조모스 호의 모든 부품들이 과연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거야.” 프리캄이 말했다. “결국 사람들이 계획했던 여행의 3분의 1정도를 우리는 이미 한 셈이잖아. 페레그 요락이 변경한 스케줄을 기준으로 한다면 5분의 1정도를 한 거고. 그런 데 구릭스가 그렇게 많이 손상되어 있었는데, 와코펨 조모스 호의 부품들은 어 떻게 될 지 누가 알 @p 216 겠어?” 나는 소름이 끼쳤지만 한 가지는 지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쎄, 우리는 줄곧 주선을 작동시키고 모니터링하면서 이따금씩 부품을 교 체해 왔잖아. 여기 있는 재료 조립기와 기계 공구만 있다면 돛이나 돛대 밧줄, 발전기에 쓰이는 반물질을 제외하면 무었이든 만들 수 있을 거야. 비행 내내 창 고에만 보관되어 있던 착륙기와는 얘기가 다르지.” 케콕스가 말했다. “창고! 언제 어떤 물건들을 옮길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군 그래. 착륙선에다 어떤 물건들을 실어야 할 것 같나?” 이 말이 떨어지자 우리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보고서들을 앞다투어 뒤져 보며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증기 총과 세트포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 은 종족인 것 같이 보이는 데 쓰일 화염 방사기를 제외하고 말이다-입씨름을 벌 이게 됐다. 이제 모든 계획이 변경되었으며, 천천히 탐사를 한 뒤 행성을 뜨겠다 는 계획은 자취를 감추었다. 리스트를 차례로 작성한 뒤로도 며칠이 흘렀다. 여행 도중 편리하게 사용했던 도구들이 대거 적재되었고, 기록도 하지 않은 채 옮겨진 물건도 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20년 동안 보관했던 물건들 중에는 고장나거나 부서져 수 리해야 할 것들도 있었고,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게다가 이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낸 사람은 없었지만, 영원히 조국을 등져야 한다는 생각에 일하면 서도 우리의 동작들은 조금 무거웠다. @P 217 하늘에서 온 신들의 잔치 최종 점검을 세 차례나 했는데도 구릭스가 와코펨 조모스 호와 멀어지면서 한 쪽으로 기우는 순간 우리는 모두 속이 약간 울렁거렸다. 한 개의 착륙선으로 내려가느냐 두 개로 내려가느냐를 놓고 우리는 여러 차례 의논했다. 결국 케콕스의 군사적 감각이 소이켄이나 내가 주장한 기술적인 문제 보다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인원을 분산시키지 않기로 했다(이 말은 곧 이 첫 번째 비행에서 장비상 단 하나의 결함이라도 있으면 끝장이라는 의미 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 가운데에 두 착륙선을 정기적으로 조종할 터였다. 여전히 최고 조종사인데다 시험 조종에서 한 번도 추락한 적이 없는 오투스가 조종간을 잡았다. 내가 운항 컴퓨터에 나타난 숫자들을 불러 주었고, 다른 사람 들은 자리에 앉은 채 걱정을 하고 있었다. @P 218 반물질은 압축 연료로, 강한 추진력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사용해도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우리는 구릭스의 속도를 늦추고 대기권으로 진입하기 위해 메인 탐사기를 발사했는데도 연료 계기판에는 겨우 1퍼센트의 연료가 소모 되었다고 나와 있었다. 플라즈마 광성이 눈 앞에서 번쩍이며 날아다니더니 행성 의 자기장으로 뒤틀렸다. 우리는 발 아래로 중력을 느끼며 목적지를 향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에 했던 우주 비행과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동력이 남아돌 았기 때문에 공기를 이용해서 속도를 늦추기보다 대부분 엔진을 이용했다. 대기 권의 제일 바깥 쪽 얇은 층을 건드리자 착륙선의 속력이 공기에 비해 매우 빨라 서, 노출된 구릭스의 일부가 잠깐 흐릿하고 빨간 불꽃을 일으켰으나 금방 식으 면서 어두워졌다. 하늘이 짙은 파란색으로 변하고 별들이 사라질 무렵 착륙선 외부는 차가워졌 다. 아래 대지를 덮고 있던 공기가 얇은 막에서 두터운 반점이 되더니 세상과 하나가 되었다. 착륙 지점 주위의 땅들은 행성 위의 얼룩에서 지도 위의 반점으로 보이더니 이제 아주 또렷하고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하얗고 폭신한 구 름이 덮인 대지 위를 날개 되었다. 왼쪽 전망창으로 보이던 커다란 내해가 자취를 감추었고, 북쪽에 있던 염호도 사라졌다. 두터은 삼림이 이제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공중을 선회하는 동안 오투스는 남쪽으로 멀리, 동쪽으로 약간 위치를 변경했 다. 가장 큰 마을이 보이는 곳에 착륙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만일 이곳 사람들 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똑똑하다면 불기둥을 내며 착륙하는 우리를 보 고 경외감을 느낄 @P 219 테고, 그 경외감을 바탕으로 그들을 정복할 수 있을 터였다. 마을에 있는 집들이 하나하나 또렷이 보였고, 울타리 안에서 뛰어다니거나 한 데 뒤엉켜 있는 가축들의 모습도 보였다. 가스를 내뿜는 구릭스는 균형을 유지 해 가며 천천히 들판 위로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옆 사람에게 미친 듯이 손짓하 고 허겁지겁, 껑충껑충 뛰어서 우리에게 오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엔진에서 분출된 가스는 비에 촉촉이 젖었던 들판을 커다란 원형으로 까맣게 태웠다. 오투스는 속력을 더 낮추어 나비가 꽃 위에 내려앉듯 구릭스를 까맣게 탄 들판에 사뿐히 착륙시켰다. “자, 괜찮아요?” 그녀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훌륭했어. 자네도 느꼈겠지만. 자, 여러분, 준비하세요. 작은 쇼를 보여줄 시 간입니다.” 케콕스가 말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착륙선 밖으로 나갈지에 대해 약간 의논했다. 문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동물들(사유 능력을 갖춘 존재일지도 모르지만)과 맞닥뜨려 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기를 들이대며 위협한다면 그들은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까? 우리가 그들을 몇 명 살해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 을 먹여 살리거나 보살필 생각은 추호도 없기에-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먹여 살 리고 보살피게끔 만든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그들이 모두 주저앉아 우리 교시 만 기다리는 상황이 초래한다면 어떻게 할까? 우리에게 지급된 증기총은 사냥용으로, 신선한 사냥감을 죽이거나 커다란 짐 승을 살해할 수 있게 고안한 것이지 군사용은 아니었다. @P 220 이 총의 탄창은 총알 서른두 발을 한꺼번에 장전할 수 있는데, 한 발만 쏘아 도 우리의 네 배 이상 되는 것도 넘어뜨릴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구릭스 의 발전소 내에 있는 것으로, 전기로 사용하는 작은 기구를 쓰면, 탄창을 재장전 할 수 있었다. 필요한 재료는 모래뿐이다. 증기총은 훌륭한 무기이기는 했지만, 세 대밖에 없어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이곳의 야생 생활을 살펴본 결과 우리의 증기총은 세트포스의 넓은 지역에서 사용하기엔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이켄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짐승들의 몸집이 대부분 클 것이고, 짐승 가운데에는 증기총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몸집이 큰 포식 동물도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똑똑한 동물들의 몸집이 우리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정 기적으로 잡아먹는 짐승들이 주변에 많을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이 맞기만을 바 랄 따름이었다. 오투스, 케콕스, 메족스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증기총을 제법 다루어 보았기 때 문에 필요하면 능수능란하게 총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세웠던 계획들은-하나는 그들이 똑똑한 동물이라는 결론이 나왔을 때 를 대비한 것이었다-초보적인 것이므로 우발 상황과 즉흥적인 대비가 상당수 뒤 따라야 했다. 첫단계는 완벽했다. 전망창으로 보니 마을에서 나온 동물들이 뿔뿔이 흩어진 채 모두 구릭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가지 추측은 맞았군요. 저들에겐 지휘 체계나 지도자 같은 것은 없네요. ” 만족스럽다는 듯 메족스가 말했다. @P 221 “속단하기엔 아직 일러. 저들이 모두 천재들이라 할 지라도 지금은 놀란 상 태니 말이야.” 케콕스가 말했다. 우리는 대열을 갖춘 뒤 문을 마주하고 섰다. 케콕스가 증기총을 들고 제일 앞 에 섰다. 케콕스 뒤로 내가 급하게 만든 화염 방사기를 들고 섰다. 화염 방사기 의 막혀 있는 쪽에는 산화 수소 켑슐이 달린 튜브가 있고, 뚫려 있는 쪽에는 메 탄올이 가득 들어 있는 얇은 플라스틱 캔이 있었다. 옆 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캡슐이 폭파하면서 끝이 뚫려 있는 튜브 밖 으로 캔을 밀어내는 것이다. 폭파되면서 캔이 있는 심지에 불이 붙게 된다. 우 리의 지식에 의하면 이렇게 만든 캔은 어떤 대상에 부딪치면 깨지는 순간 심지 에 불이 붙어, 원하는 건 간단히 불길에 휩싸이게 만들 수 있다. 프리캄도 내 옆에서 화염 방사기를 들고 섰다. 그리고 우리 뒤로는 오스폭과 소이캔이 세트포스의 동물들과 처음 마주치는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녹음 장치 와 카메라를 들고 섰다-만약 저들이 초보적인 수준의 언어나마 구사한다면 배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끝에 메족스와 오투스가 증기총을 들고 섰 다. 최악의 경우 저들이 우리를 보자마자 공격하더라도 현재 장전되어 있는 탄 창 이외에 이 동물들에게 세 발씩 쏠 수 있는 정도의 탄창이 준비되었다. 이에 대응해 저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뾰족한 막대들이었다. 상대를 찌르는 데 쓰는 듯한 크고 두꺼운 것과 흰 막대로 날리는 데 쓰는 작고 얇은 것인데, 후자는 그림을 보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돌을 던 지거나 막대기로 우리를 내려칠 수도 있었다. @P 222 우리는 모든 일을 계획할 때 다음 단계들도 착착 진행되리라 확신했다. 때문 에 그들과의 첫만남보다는 구릭스의 봉합 부분이 잘 견디어낼지, 비행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해 더 많은 걱정을 했다. 구릭스는 제대로 착륙했고 앞으 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었다. “관중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가죠.” 메족스가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케콕스가 버튼을 눌렀고, 문이 스르르 열렸다. 문 위에서 계단이 내려와 젖은 땅 위로 펼쳐졌다. 그들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계단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공포에 질 린 얼굴이 되었다. 위험 요소가 있는지 주위를 잽싸게 둘러보며 케콕스가 천천 히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우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흩어질 수 있도록 조심하면서 가능한 한 잽싸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 계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대충 삼각 대열로 섰는데, 오 스폭과 소이켄이 중앙에, 메족스와 오투스가 뒤 쪽 구석에 위치한 형태였다. 케 콕스의 지휘하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케콕스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흉악한 몰골을 하고 있는 족속들로, 얼굴은 팔라스인보다 납작 했고, 슐라스인보다도 털이 없었다. 머리털은 이리 삐죽 저리 삐죽 솟아 있었는 데, 팔라스인의 볏처럼 깔끔히 정돈된 것이 아니라 머리 꼭대기에만 솟아 있는 형태였다(남자들의 경우 온 얼굴이 그런 식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므로 전체 적인 인상은 털복숭이 뒤로 눈 달린 벽이 보이는 형상이었다. 그들의 키는 슐라스인보다 작고 팔라스인보다 컸으며, 어깨는 팔라스인보다 좁고 슐라스인보다는 넓었다. 그리고 그들의 귀는 팔라스인처럼 작고 둥글지만, 슐라스인처럼 머리 위에 볏은 @P 223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우리 종족의 중간쯤인 것 같지만, 생물 교과서나 박물관 전시품에서 보았던 혼혈 니수인들과는 달랐다. 혼혈 니수인들은 묘한 매 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은 소름끼치는 인상이었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키다리는 우리들 가운데 가장 키가 큰 나보다 머리 반 정도 작았다. 그는 길다란 튜닉을 입고 있었는데-사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셔츠 라고 보는 편이 낫다-튜닉에는 바삭거리는 부드러운 물체가 수백 개 달려 있었 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새의 깃털’-탐사기가 찍은 사진 중 날아다 니던 동물의 부드러운 비늘-이었다.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눈이 이상했다-수정체를 둘러싸고 있는 작 은 부분만 착색되어 우리처럼 눈이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길고 부드럽게 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얀 바탕에 조그맣고 동그랗게 착색되어 있었다. 그가 공 포에 질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흰자위가 그렇게 크게 보였다는 사실은 그당시 몰랐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 지가 없었다.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 있나요?” 프리캄이 말했다. “사전을 가지고 온다는 걸 깜빡했는데.” 내가 말했다. 이 말이 끝나자 그들은 서로에게 왁자지껄 이야기를 꺼냈고, 그러자 키다리가 뒤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무엇인가를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매우 이상했다. 오투스와 내가 나중에 깨달은 바에 의하면, 이들은 일반적으로 @P 224 말을 할 때 우리처럼 단 하나의 톤으로 깨끗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톤으로 한꺼번에 말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몰랐지만 그들은 우리를 ‘노 래하는 사람들’이라고 이름붙일 참이었다. “사람일까, 동물일까?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케콕스가 물었다. “사람이에요. 똑똑한지는 모르겠지만요.” 내가 말했다. “사람이에요.” 오투스와 프리캄이 내 말에 동의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네.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케콕스가 말했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곡식이 타는 냄새, 공기의 따스함, 저 멀리서 흐릿하게 풍겨오는 삼림 의 향기, 수많은 집들, 수많은 향기들, 수많은 생물들이 제각기 내는 소리들. 나 는 일순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 우린 신이 되는 겁니다. 두 번째 계획을 밀고 나가는 거지요. 한데 뭉 친 채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누구든지 우리를 뚫고 지나려는 자 가 있으면 사살하는 겁니다. 한데 모여 이동해야 합니다.” 케콕스는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곧바로 지시했다. 우리가 마을을 향해 움직이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가까이 다가 왔다.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나이먹은 사람들의 수만 따진다면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150명이 넘는 게 분명했다. 엄마들이 안고 있는 아이들까 지 따진다면 그 숫 @P 225 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슬쩍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뾰족한 돌인데요. 갈거나 다듬은 것처럼 보여요. 무 겁지만 저들이 원하는 용도로 쓸 수는 있을 겁니다. 구리로 만든 장식품도 있는 데, 주석이나 은으로 만든 것도 있을지 모르죠. 그리고 탐사기에서 떼어낸 물건 들도요.” 내가 관찰한 그들의 무기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설명했다. 뒤를 이어 프리캄은 그들의 옷입은 모양새에 대해 말했다. “직조 기술도 있는데요. 아주 엉성하기는 하지만. 아마 손으로 실을 엮은 다 음 십자로 교차시켜 천을 만든 것 같아요. 비의 독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 는데, 성인 남자의 생식기가 우리 청소년들의 생식기만큼 튀어나온 것을 보면 편의를 위해 입는 것일 수도 있겠죠.” “아직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저들이 두르고 있는 장식품은 모두 다 일정 한 패턴이 있는 것 같아요. 아주 복잡한 계급 관계나 인척 관계를 나타내는 것 일지도 모르겠군요.” 오투스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는 마을로 계속 걸어갔다. 짧은 길이었지만, 사람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 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들 사이로 끼여드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에 안심했다. 우리들 사이로 끼여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어린애 일 것이 분명한 데, 케콕스의 지시야 어떻든 간에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어린애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열려 있던 울타리 문으로 들어가면서 입구 옆 쪽의 통나무를 한데 묶은 문짝과 벽 옆으로 세워져 있는 통나무 두 개를 @P 226 보았다. “밤에는 저걸로 입구를 막나봐요. 커다란 짐승이나 전쟁이 있다는 뜻이지요. ” 프리캄이 말했다. “어느 쪽이든 나쁜 뜻이군.” 소이켄이 말했다. “저 사람들이 얼마나 말이 많고 말다툼이 잦은지 눈치채셨나요? 저 사람들을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노예로 만들 수 있을지 의심스럽군요.” “계획을 변경하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이 사람들 앞에서 투표를 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케콕스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물론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투표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나중에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탐사기가 찍은 사진을 통해 수 없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표정,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역력한 그들의 표정이었다. 나는 생각할 여유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우리에겐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케콕스가 말했던 것처럼 바로 그 먼지 낀 광장에서 입씨름을 벌일 생각이라면 모를까. 저들이 그런 우리 의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는 신만이 아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마음 속에서 조그만 음성이 들렸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행동을 보고 저들이 무어라 생각할 지는 신만이 아는 거잖아.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됐 으면 좋겠어.’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케콕스가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고, 우 리는 뒤를 따라 마을 중앙에 있는 신전을 향해 갔다. @P 227 2층 건물인 신전은 통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수직으로 솟은 벽은 진흙벽돌로 되어 있었다. 1층은 낮았고, 창문이나 문이 따로 없었다. 진흙벽돌로 만든 넓직 한 계단은 2층에서 삐죽이 나와 있는 베란다 처럼 보이는 곳으로 향해 있었고, 그곳의 문은 열려 있었다. 베란다에는 산짐승으로 의식을 지내는 곳으로 사진을 통해 보았던 진흙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쏘아보냈 던 제1탐사기의 잔해가 있었다. 그 뒤로는 가부좌를 하고 있는 세트포스 여인의 거대한 점토상이 있었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와 신전 사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프리캄과 내가 눈짓을 교환하고는 화염 방사기를 들어올리는 순간 갑자기 세트포스인 하나가 신전에서 뛰어나왔다. 머리를 감싸고 있는 두꺼운 털은 짙은 회색이었고, 얼굴은 갈색으로 주름이 가득했다. 얼굴 색깔의 변화 때문인지-동물들은 나이 먹으면서 피부색이 바랜다 -다리를 끌며 느릿느릿 걷는 그의 걸음걸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가 노인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머리 위로 손을 들어올리더니 우리를 향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인사인지, 주문인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 가 없었다. “저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있습니까?” 케콕스가 물었다. “신을 모시는 제사장일 겁니다. 우리가 처치해야 할 존재입니다. ” 메족스가 물었다. “그러니까 그를 이용하자는 겁니까, 사형시키자는 겁니까?” 오투스가 말했다. “이러다가 말다툼이 되겠네.” @P 228 케콕스가 말했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종의 도 전인 것이 분명했다. 아니, 적어도 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켜보려는 것이 었다. 숨을 쉬는 사람도 없었고, 멀리서 윙윙거리는 벌레의 소리 외에는 아무 소 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트포스인조차 꼼짝 하지 않았다. “저 사람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 지 전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제 생각에 저 사람은 우리를 향해 단순히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만약 저 사람이 제사장이라면, 당연히 순교자가 되어야 하지요.” 내가 지적했다. “말이 되는군.” 케콕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증기총을 들어 쏘았다. 증기총은 조그맣게 ‘푸쉬!’하는 소리를 냈다. 늙은 세트포스인의 등에서는 우리처럼 붉은 피가 뿜어졌고, 얼굴을 땅에 박듯이 쓰러졌다. 원래 몸집이 크고 빠른 짐승의 저지를 목적으로 팽창성 탄환을 장전했기 때문에 탄환이 세트포스 인의 가슴에 맞자 내장이 모두 젤리처럼 터져버렸다.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는 화염 방사기를 들어 불꽃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캔을 신전 문에 쏘았다. 다행히도 캔은 점토 여인상에 명중했고, 거기서부터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세트포스인들 은 비명을 지르면서 납작 엎드렸다. 프리캄이 쏜 캔은 더 높이 날아 육중한 초 가 지붕 위로 떨어지면서 지붕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불꽃이 너울거리면서 키만한 높이의 건물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 소리와 울음 소리 @P 229 가 나왔다. 그러자 좀더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몸을 돌려 달아났다. “착륙선에서 내릴 때 우리와 마주했던 키다리들이 저기 있습니다. 저 사람들 이 읊조리는 가락을 다른 사람들이 따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사람들을 가리키며 프리캄이 말했다. “구신앙으로 인한 순교자들을 더 만들어야겠군.” 오투스는 말과 동시에 세 명의 리더와 그들 주변에 있던 세트포스인을 쏘았 다. “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노리게.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살 려두도록.” 케콕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와 메족스는 증기총을 들어 창이나 도끼를 들고 있던 세트포스인들을 향해 일정한 리듬으로 방아쇠를 당겼는데, 한 번에 한명 정도 처치했다. 이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 는 바로 열 사람이 죽기도 전에, 나머지 사람들이 창이며 도끼를 버리더니 땅 위에 엎드렸다는 사실이다. 재장전을 끝낸 프리캄과 나는 이번엔 신전 외벽의 아래 쪽을 향해 발사했고, 불꽃은 위 쪽을 향해 날름날름 번져갔다. “저를 엄호해 주십시오. 마저 끝내게 말입니다.” 케콕스를 향해 이런 말을 한 뒤 나는 화염 방사기를 내려놓았다. 가방에서 건 물 폭파기를 꺼낸 뒤 하루의 128분의 1시간에 타이머를 맞추고는 신전을 향해 돌진했다. 세트포스인들이 구부러진 막대를 이용해 던진 소형 창가운데 하나가 ‘쉭’ 하는 소리를 내며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갔고, 등 뒤로 증기총 소리 가 몇 @P 230 번 들렸다. 나는 불꽃 때문에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신전 가까이 다가갔다. 폭파기가 안 으로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폭파기를 손에 든 채 어 디로 던질까 찾다가 베란다 바로 뒤 쪽과 사다리로 연결된 문 안으로 폭파기를 살짝 던졌다. 비밀 의식을 행하는 곳의 정중앙에 폭파기를 던진 것 같았는데, 우 리가 의도하는 바를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할 나위가 없었다. 나는 몸을 돌려 지그재그로 뛰어 일행 쪽으로 달려갔는데, 이번엔 아무런 위 험도 없었다. 임무를 다한 나는 작은 창에서 나던 ‘쉭’ 하는 끔찍한 소리와 잘못했으면 몸에 애꿎은 구멍이 생길 뻔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을 구부리고 있던 사이 그 창이 척추 옆에 있는 약한 늑골을 뚫고 혈액 혼합 기관을 찔렀더 라면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나는 화염 방사기를 집어들었다. 프리캄이 재장 전해 놓은 상태였다. “마을 다른 편도 손써야 하지 않겠니?” 프리캄은 화염 방사기를 높이 조준하며 말했다. 나도 따라서 조준했고, 동시에 발사된 캔은 신전을 넘어 마을 뒤편으로 날아갔다. 그쪽에서 들여오는 비명 소 리로 판단컨데, 적어도 한 명이상이 불붙은 메탄올 세례를 받았고, 연기며 불꽃 이 솟아오르는 모양으로 보건데 그들의 울타리나 집에는 소화 장치가 없는 듯했 다. “자, 이만하면 된 것 같군요. 구릭스로 돌아갑시다. 천천히 우아하게 움직이 되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폭파기가 작동하기 전까지 256분의 1밖에 안 남아 있으니까요.” 케콕스가 말했다. @P 231 우리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천천히 발을 옮겼다. “소형 창 발사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느 집에선가 갑자기 뛰쳐나왔지 뭐 야. 두 번째 소형 창을 발사하려는 순간 메족스가 사살했지. 그리고 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두 명 더 튀어나왔고. 저 사람들은 꽤 용감한 것 같아. 적어도 몇 명은 말이야.” 프리캄이 떠벌리듯 큰 소리로 말했다. 3분의 1 정도 갔을 때, 내가 신전 안에 던졌던 폭파기가 폭파했다. 불길에 휩 싸인 초가며 나무가 그 작은 마을 담벼락 너머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고, 몇 마리의 개가 바깥으로 떨어졌다. 삽시간에 발에 충격이 느껴지면서 ‘꽝’ 하는 폭파음이 들렸다. 처음보다 많 은 세트포스인들이 밖으로 나와 우리 반대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들판을 가로질 러 도망쳤다. 메족스가 증기총을 들어 세 방을 쐈다. 여자 두 명과 꼬마아이가 쓰러졌다. “왜!” 케콕스가 이유를 물으려는 찰나였다. “변덕스러운 신이 더 많은 존경을 받거든요.” 메족스가 말했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뭔가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런 일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이상 할 일이 없다는 확신이 서자 오투스가 앞장을 서고 메족스와 케콕스가 뒤를 살피는 가운데 우리는 구릭스를 향해 더 빠르게 걸어갔다. “그래, 결국에는 이렇게 됐군. 자네 때문에 우리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 졌어. 저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에 들떠 있었는지, 얼마나 우리를 만나고 싶어했는지, 자넨 보지도 못했나? 그리고 자네가 일을 끝마쳤을 때 저 사람들이 얼 @P 232 마나 두려움에 가득 찬 모습이었는지? 우린 적이 되겠다는 선택을 한 거야.” “어휴, 그런 소린 집어치우시죠. 우리 손자 때나 되어야 도덕성을 놓고 논쟁 을 벌일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실리를 따져야 할 때란 말입니다. 이곳에 커 다랗고 근사한 도시를 만들고, 수백명의 니수인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꾸미고 난 뒤에는 그런 불평 못 하시겠죠. 그렇죠? 우린 지금 해야할 일들이 많은 데다 바로 이런 식으로 일을 해야 진행이 된다 이겁니다.” 프리캄은 다소 흥분하며 말했다. “거기 두 사람 모두 구릭스에 도착할 때까지 그만들 해요. 저 세트포스인들 중 몇 명은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게다가 프리캄, 아까 네가 말 했던 것처럼 저 사람들은 똑똑한 데다가 용감하다고.” 오투스는 짜증나는 입씨름을 중단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꺼낸 것이 분명했다. 우리들 뒤편에서 들여오는 비명 소리며 고함 소리로 짐작컨데, 세트포스인들은 지금 그럴 겨를이 없을 테니 말이다. 마침내 우리는 구릭스에 도착했고, 메족스 와 케콕스를 마지작으로 모두 승선했다. 문이 닫히고, 공기가 필터 위에서 한바 퀴 돌 때 우리는 밖의 이물질이 묻어오지는 않았나 검색했다. “장거리 망원경으로 살펴봐.” 메족스의 말에 나는 망원경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음, 약 오십 명 정도의 사람이 아직도 불길에 휩싸인 마을 안에 엎드린 채 로 있는 걸. 여기서 내가 말하는 오십 명 정도라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 는 뜻이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들판으로 도망가고 없어. 대부분 숲이나 언덕 쪽 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P 233 소이켄 선생님이 해설을 달았다.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살아남으려고 도망치는 것이니까, 정면대결보다 효과 적으로 우리를 공략하는 방법이 무얼까 궁리를 할 지도 모르지.” 케콕스가 ‘흐음’ 하며 동의를 표했다. “자신들을 위해 일할 만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뽑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마지막으로 베푸는 호의가 되겠군요.지금은 저들 이 우리를 신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몇 십 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얼마나 비우호적인가를 알게 될 겁니다. 우리는 애초부터 뒤를 살피는 습관을 들여야할 겁니다. 이제 출발하죠.” 메족스가 엔진을 가동시켰다. 동그랗게 타버린 들판 위로 불꽃을 뿜으면서 우 리는 사뿐히 이륙했다. 그는 조절판을 더 활짝 열었고, 착륙선 꼬리에서 나오는 불꽃은 대지 위 높은 곳에 다다를 때까지 뿜어졌으며, 착륙선은 상승하자 빙빙 돌면서 옆 쪽 제트엔진을 약간 발사했다. 착륙선은 걸어가는 속도로 느리게 벌 판을 지나 불길에 휩싸인 마을을 향해 옆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세트포스인들이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면 신전이 있던 자리에 구릭스를 착륙시켜 그 마을을 차지하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다. 더이상 할 일이 없던 오투스와 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높이 떠 있으니 더 잘 보였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벌판으로 나와 구릭스가 있는 쪽을 향해 엎드려 있었다. 불길에 휩싸인 마을 주위를 미친 듯이 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길에 휩싸인 집들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사람들이나 작은 시체를 운반하는 사람들 도 있었다. @P 234 “집을 태우면서 아이들을 많이 죽였나봐. 가축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면 잘 못된 작전이었어.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겁에 질렸을 거야.” 오투스가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원래 그렇게 만들 생각으로 한 작전 아니야?” 나는 흘깃 그녀를 보며 대꾸했다. “그렇지. 작전을 잘못 썼다는 뜻도 아니고, 또 달리 방법도 없었잖아. 난 그 냥 저 사람들이 무서웠겠다는 말을 한 것 뿐이야.” 구릭스는 담벼락 안으로 입성했는데, 불길로 쑥대밭이 된 곳에 엎드려 있는 불쌍한 인간들이 보기엔 아직 하늘 높이 떠 있는 것이었다. 구릭스 바로 아래에 있는 신전은 아직도 불길이 남은 채 나무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착륙선에 아무 문제 없겠지만-저 아래의 불보다 놓은 온도에도 끄덕 없게 설계되어 있으니까-불길이 남아 있는 나무나 뭐 그런 것들을 밟았다가 애 꿎은 혹을 달게 될 지도 몰라. 조심하는 것이 좋겠어. 저 아래에 착륙하기 전에 일대를 청소해 볼게.” 메족스는 신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마을 안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있는 걸.” 오투스가 말했다. “그거야 그 사람들 운이 나쁜 거지. 원래 계획이 저 사람들에게 불복종은 꿈 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죽음과 공포의 맛을 보여주자는 것 아니었어? 그렇잖아? ” 프리캄의 말에 메족스는 몸짓으로 맞다는 뜻을 표하며 덧붙여 말했다. “게다가 굉음을 내면서 착륙을 하면 적어도 남아 있던 사람들 @P 235 가운데 몇 명은 도망칠 거야.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귀중한 자산이 될 테 니까 가능한 한 많이 살려두는 게 좋지.“ 메족스가 조절판을 세 번 움직이자 구릭스는 아래 쪽으로 곤두박질 치더리 천 천히 멈추었다가 다시 솟아 올랐다.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지만, 그가 의도했 던 결과가 나타났다. 마비 상태로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움직임과 굉음, 커다란 불꽃에 화들짝 놀 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불길에 휩싸인 마을을 뒤로 하고 달아났다. 너무 멍청 한 것인지, 겁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신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겠다고 작정한 것인지 엎드린 채 남아 있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소 이켄 선생님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자신의 망원경을 얼른 꺼냈다. 그 사람은 불길에 휩싸인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어린아이를 쫓는 여자였 다. 그 여자는 아이와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여자의 손이 닿기 전에 아이는 불길 에 휩싸인 집 근처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갑니다.” 메족스가 말했다. 그는 고도를 갑자기 낮추더니 부스터를 3지로 올려 착륙했 다. 덕분에 우리는 심하게 요동쳤지만, 다들 무언가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착륙 선은 이제 땅에 가까워졌고 타다 남은 신전 위로 불길을 뿜어내자, 마을 전체가 하얗고 뜨거운 불길에 싸여 남아 있던 집이며 담벼락 대부분을 태웠다. 화염 쥐위는 회색빛 재와 먼지가 까맣게 휘날렸다. 불길에 휩싸인 그 아이는 종이 인형처럼 바닥을 굴렀고, 아이을 쫓던 엄마도 거꾸로 뒤집히더니 역시 불 길에 휩싸였다. 바로 그때 먼지와 @P 236 연기의 검은 장막이 그들을 뒤덮었고, 그들은 하얀 돌풍 사이로 사라졌다. 불길에 쌓인 집이며 담장은 돌풍을 만난 장난감들처럼 주변의 벌판 위를 데굴 데굴 굴렀다. 메족스가 조절판을 다시 1지가 될까말까 하게 돌리자 착륙선은 땅 을 향해 움직였고, 마을을 집어삼키던 화염은 쏙 들어갔다. 나는 불길에 휩싸인 아이에게 달려가던 엄마가 재로 변한 곳에 있는 검은 점을 보며 몸을 떨었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겠지만, 하지만…. 나는 생각을 끝낼 여유가 없었다. 불에 타 새까많게 청소를 마친 지점 한가운 데, 바로 신전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착륙선이 ‘쿵’ 하며 멈추었다. 발 아래서 몰아치던 천둥이 멈추었다. 50몸길이쯤 떨어진 곳에 불에 그을린 암석 조각이 동그마니 있었는데, 세트포스 마을의 유일한 유물이었다. 외부 온도계를 보니 우리가 착륙한 곳의 공기는 물을 끓일 수 있을 정도로 뜨 겁다고 되어 있었지만, 구릭스의 냉각 시스템에 액화 납이 가득 고인 상태에서 이착륙을 했기 때문에 안에서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 “자,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 때문에 경외감은 배가 되겠지요. 우리는 하늘에 서 날아와 그들의 신전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멀리서도 그들을 사살했고, 게다 가 불 속에서 걸어 나오기까지 했으니까요. 우리의 신성 확립은 성공한 것 같으 니 이젠 음식을 먹고 수면을 취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는 작은 신들로 바쁘게 지내야 할테니까요.” @P 237 세트포스의 동물, 그들도 인간일까? 구릭스는 착륙 후 1년 정도는 집으로 쓸 수 있게 고안되었기에 침실이 작기는 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20년 동안 와코펨 조모스 호의 방이 아닌 다른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은 처음이 었다. 나는 내 침대가 주던 느낌, 정상 자동 항해 우주선의 소리, 전망창으로 보 이던 별무리들이 그리웠다. 포아퍼레시스 선생님도 몹시 그리웠고, 이곳의 침대 가 넉넉해서 오투스와 둘이 웅크리고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 다. 결국 난 얕은 잠에 들어 푹 잘 수 없었다. 이리 저리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숙면을 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눈을 뜨자마자 크로노미터를 보니 이 지방의 일출 시각이 가까웠고, 나는 자 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챙기기 시작했다. 프리캄과 오투스가 전망창을 보며 않아 있었다. 둘 다 1시간 일찍 일어났 @P 238 던 것이다. “사람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몇 명은 돌아올 줄 알았는데…. 적외선 스 캐너로 숲속을 살펴봤는데, 언덕 위에 캠프파이어가 몇 개 있었어. 캠프파이어마 다 세트포스인들이 몇 명씩 둘러앉아 있더라. 대부분은 덤불 속에 숨어 있고 말 이야.” “우리가 정말 이 종족을 개화시킬 생각이었다면 캠프파이어도 폭파시겼겠지. 밤에 불빛을 보이지 않을 만큼 똑똑한 사람들만 남게 말이야.” 오투스의 썰렁한 농담이었다. 프리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었 지만, 나는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유일한 세상에서 포근하게 지내고 있 었는데, 이제 적들이 우글거리는 행성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만 하니 예전의 세상이 몹시 그리웠다. 이는 세트포스인들과도 별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공포에 질린 채 춥고 어둡 고 눅눅한 곳에 숨어 있어야 하면 나라도 위험하건 말건 불을 피웠으리라. 겁에 질린 짐승들과 나를 동일시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진심이었다. 프리캄이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나한테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어떨지 모르겠어. 하지만 털어놓고 싶어. 그러니까 계획을 잘못 세운 거라면서 여기서 그만두는 거야. 만약 지금 이 러는 게 싫으면 말이지. 내 말은, 그냥 여길 떠나서 와코펨 조모스 호로 돌아가 는 거야. 그러면 이곳 사람들은 자기들이 탐사기를 부수어서 신이 화를 낸 것이 라고 생각하든가, 아니면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신이 화가 난 것이라고 생각할 테지. 20년 정도 지나면 우리는 단순한 전설이 되고 여기 사람들과 영원히 작별 하게 되는 거지. 그동안 준비를 @P 239 다시 해서 전에 우리가 말했던 커다란 섬들 가운데 한 곳으로 가는 거야. 경 치가 아름다운 섬들 가운데 생태학적으로 평화로운, 그런 섬들이 있을 지도 모 르잖아. 몸집이 크거나 공격적이거나 해로운 동물들이 전혀 살지 않는 그런 섬 들 말야. 사실 우리가 그런 섬으로 이동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니?” “하지만 우리 자손들이 여기 이 야만인들의 생활을 찾던 우리처럼 살게 되겠 지.” 침실에서 걸어 나오며 케콕스 선생님이 말했다. “물론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더 크고, 더 시설 좋은 도서관을 갖추고 살겠지 만, 그게 그거야. 호프 황제가 오실 때쯤이면 여섯번째 왕조인 크라타레니와 얼 추 비슷한 모습으로 살긴 하겠지. 넓직한 보도에, 안락한 태양열 빌딩에, 수도 시설에, 공동 하수구에, 전기 시설까지 갖추고. 하지만 2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은 꿈이나 꿀 수 있겠니? 그리고 두 그룹의 니수인들이 얼마나 모 습을 달리하게 될까? 사람들이 이곳에 도착해서 피가 섞인 우리들을 보면 커다 란 문제가 생길 게 확실해. 예전엔 내가 그들을 노예로 만들자는 생각에 반대했었지만, 그들이 사는 모습 -그들의 마을에서 나는 냄새며, 얼마나 흉측한 짐승들인가-보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젠 그들을 동물이라 생각하신단 말씀이신가요? 전 그들이 인간임을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을 생각하고 있었는걸요.” 내 말에 케콕스 선생님은 얼른 손짓을 했다. “오, 그들은 인간이야. 자메코시스. 그렇게 지저분한 둥우리 속에서 사는 동 물은 없어. 제물을 바치는 행위며, 훨씬 더 좋은 방식이 있는데도 조잡한 방식으 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알 @P 240 수 있지. 진화에 실패한 것이나, 주위 환경을 돌아보지 않는 것 등은 바로 현 실 세계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 아닌 사고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보이는 행태지. 좋은 옷을 입혀 놓으면 본국에 있는 정치인들과 비슷한 모습이 되리나는 건 인 정하지만. 사실 세트포스인들을 통해 나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에 대해 깨닫게 됐는 데, 동물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며 살아가는 반면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야. 세트포스인들에게는 배울 수 있는 과학이며 수학, 개발할 수 있는 기술도 많을 텐데, 이곳에서는 왜 여섯 번째 왕조인 크라타레니와 같은 생활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지능을 갖추고 있는 인간들이라면 쾌적한 생활 공간, 아니 적어도 자신의 배설물이나 쓰레기들을 치워가며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어?” 나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한 후 동의의 뜻을 표했다. “그러니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결국엔 우리가 저들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야. 2년 내로 이 마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어느 종족 보다 깨끗하고 건강한 종족이 될거야. 이 행성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왕국의 귀 족이 되겠지. 20년 내로 세트포스에는 제법 길다운 길을 갖춘 실제 도시가 열 개이상 생길테고, 호프 황제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곳은 부유하고 평화롭고 문명 화된 행성이 될 거야. 이곳을 찾은 니수인들은 모두 아름다운 토지를 마주하게 되겠지. 그리고 몇 천 년 이내로 세트포스인들과 니수인들은 한자리에 않아 같 은 언어를 구사하면서 개화가 필요한 몇 백 종족들을 다스리게 되겠지. 이 조잡 하고 작은 마을과 불결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생각이나 일을 약간만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는데 글쎄, 포아퍼레시스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 게 됐네. 우리는 문명을 독차지할 수 @P 241 는 없어. 이 사람들의 수준을 높여줘야 해. 그리고 슬쩍 한번 둘러부기만 해도 -아니, 한번 냄새를 맡기만 해도-이 사람들이 개화를 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금발 알 수 있지. 그러니까 앞으로 몇 십 년 동안은 우리가 두뇌와 교육, 노하우 를 주고 그들은 피와 땀을 제공해야 할 거야. 그럼 우린 함께 발전해 나가겠지. ” 오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씀이 모두 일리가 있어요. 그 사람들을 보고 가엾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물론 그렇긴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네. 몇 십 년 동안 조금만 수고 하면 훗날 빛나는 미래를 맛볼 수 있겠지. 그 사람들이 노예처럼 지내려하지 않 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들을 지금 이대로 둘 수는 없잖아? ” 케콕스 선생님은 우리의 얼굴에서 동의하는 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프리캄은 애매한 동작을 취했다. “글쎄요. 이젠 그렇게 할 순 없죠. 어쨌든 우리 때문에 겪은 일들로 인해 그 들은 아주 달라질 테니까요. 만약 우리가 지금 떠나버린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 은 예전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멀리 내다볼 때 그들 에게 어떻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인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결정내린 뒤 곧바로 실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요. 자메코시스, 아침은 준비됐어?” “언제든지 먹기만 하면 돼.” 팬을 들여다보며 내가 대답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는 게 좋겠다. 그리고 @P 242 …." "난 일어났어. 그리고 메족스는 옷을 갈아입는 중이고, 오스폭 선장님은 방에 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조금만 있으면 오겠지.” 비틀비틀 걸어 들어오며 소이켄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 주변을 완전히 살펴볼 수 있도록 대형 화면 두 개 를 설치했다. 밤 사이 마을의 불길은 꺼졌고, 지금은 온통 잿더미만 남아 있었다. 담장은 모 두 불에 탄 채 그을린 통나무 몇 개만이 잿더미 사이에서 삐죽 솟아있을 뿐이었 다. 담장과 연결되어 있던 집터에도 새까만 나무 토막만이 덩그렇게 남아 있었 다. “멍청하긴.” 케콕스 선생님이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담장 가까이에 집을 짓다니 멍청하단 말이지. 뿐만 아니라 풀이나 나뭇가지 로 지붕을 만들다니 그건 더 멍청한 짓이야. 그렇게 만든 초가 지붕 위에다 적 어도 납작한 돌이나 장작을 쌓았어야지. 저들과 똑같은 인간들이 창을 들고 공 격했더라도 이 마을은 쉽게 무너졌을 거야. 횃불을 던져 지붕에 불을 놓던지, 담 장을 일부 무너뜨리기만 해도 곧장 집으로 쳐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전쟁을 하지 않나 보죠.” 내가 말했다. “저들은 인간이잖아, 안 그래?” @P 243 “글쎄요. 와코펨이 리워드 섬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묘사한 바에 따르면-우 리가 알고 있는 한 문화인이 최후로 야만인들을 만났던 때의 기록-그들에게 전 쟁이란 의식의 일종이 될 수도 있는 거지요. 전장으로 나가-해마다 여름에 똑같 은 장소로 말입니다-서로를 향해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다가 언덕 아래에서 맞붙 어 상대방을 창으로 몇 번 찔러본 뒤 마을로 돌아와 허풍을 늘어놓는 식으로 말 입니다. 아마 사상자도 거의 없었을 테고, 건물이나 곡식이 불에 타는 일도 없었 을 겁니다.” 오투스가 또렷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케콕스 선생님은 음식을 한 입 베어 물고선 한참 동안 씹다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일리가 있군. 심각한 전쟁 따윈 없었겠지. 만약 그런 전쟁이 있었다 면, 야간 기습 공격이나 대량 학살 따위로 어떤 마을이나 사라졌을 테니까요. 우 리도 알다시피 이곳의 강이나 호숫가에는 작은 마을들이 늘어서 있어요. 진정한 의미의 전쟁이 있었더라면 사람들은 진지를 만들었을 테고, 또 아니면 이 지방 이 어느 왕국의 일부로 귀속됐을 거야. 또 어느 왕국의 일부로 귀속됐다 하더라 도 진지가 구축되어 있으리라는 건 전략적으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 그렇다면 일이 더 쉬어지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전쟁 기술을 가르친 뒤 우리를 대신하여 이웃 주민들을 노예로 만들게 하는 거야. 그럼 내부에 봉토가 생기고 그 봉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동원해 밖으로 세력을 넓혀나가고…. 그런 식으 로 진행시키는 거지. 우리의 얼굴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세트포스 전체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지 몰라. 피라미드 판매처럼 말이야.” 케콕스 선생님은 입 안 가득 음식을 집어넣고 말했다. @P 244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피라미드 판매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에 가장 좋은 시 점은 처음 시작할 때겠지요. 제일 처음 뛰어든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일하니까 요.” 케콕스 선생님도 덩달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불법 판매망처럼 이런 식으로 조직망을 넓혀 나간다이거지. 자, 그 럼 일을 진행시켜 나갈까? 마을로 돌아온 세트포스인이 있나?” “아직은 없어요.” 오투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아 원격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그런데…. 있다고 말대도 될 것 같아요.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마을을 향해 중간쯤 돌아온 사람들을 봤거든요. 전부 여덟명인데, 몸집으로 봐서 모두 성인이 고, 뭔가 체온이 따뜻한 존재도 감지되는 것을 보니 어린이나 가축을 데리고 돌 아오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하루의 30초 안에 이 곳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잠시 동안은 모두 휴식을 취해도 될 것 같은데요.” 휴식을 취하기란 쉽지 않았다. 세트포스인을 무서워할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그들이 돌아오는 이유가 악마를 처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신들에게 자 비를 구하기 위해서이길 빌어야 했다. 만약 그들이 악마를 처치하기 위해 돌아 는 것이라면 구닥다리 마법 따윈 우리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여야 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세트포스인들이 정착과 복종에 힘써야할 이 시기에 쓸데없 이 더 많은 학살과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이 사실을 깨달을 만 한 눈치가 있기를 빌었다. @P 245 시간은 느릿느릿 지나갔다. 달리 할 말이 없었던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벽 을, 전망창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확대 전망창을 수백 번쯤 들여다보던 오투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 이젠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그녀는 그들의 모습을 클릭하여 주화면 위에 띄웠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세트포스인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고, 목에다 밧줄을 건 작은 동물 한 마리를 몰면서-아니, ‘끌면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걸어 오고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 털이 드문드문 나 있는 동물로, 작고 단단한 다리가 네 개 달 려 있었다. 머리 꼭대기에는 짧은 뿔이 있고, 목에는 화환이 몇 개 걸려 있었다. 그 작은 동물은 몸을 앞으로 숙였는데, 꽃을 따먹으려는 것 같았다. 세트포스 인들이 머리를 잡아챘지만, 동물은 걸음을 멈추고 버텼다. 네 사람이 달려들어 발로 차고 잡아 끌자 다시 움직였지만, 그런 와중에도 꽃이 몇 송이 떨어져 동 물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저 동물을 죽여줬으면 좋겠군. 그냥 살 려둔다면 샘플로 죽이기가 너무 아까울 텐데. 여기서 저 동물과 함께 지내고 싶 은 마음은 없단 말이야.” 케콕스 선생님이 말했다. 하루의 예순네 번째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모두 타버린 마을로 들어왔다. 그 동물은 무엇을 감지했는지-잿더미와 죽음의 냄새, 아니면 세트포스인들이 느끼 는 공포심이었는지도 모른다-저항하며 발길질하기 시작했고, 끝내 밧줄에 끌려 절반쯤 목이 졸린 채 구릭스의 문 앞, 깨끗한 지점에 도착했다. @P 246 "저들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지. 문이 어디에 있었는 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봐. 겉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을 뿐더러, 저들은 이런 착 륙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데 말이야. 하지만 이찌됐든 지금은 그런 증거가 별 필요 없을듯 하군요.” 소이켄 선생님이 착륙선 밖의 세트포스인들을 보며 말했다. “필요가 없다니요? 당분간은 세트포스인들을 노예로 부려먹어야 하지만, 저 들이 인간이라는 것과 우리가 취하는 조치들은 우리들 뿐만 아니라 저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조치들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저들이 얼마나 똑똑한 존재인가를 잊지 않고 있으면, 우리의 증손자들은 저들을 동등한 파트너 로 대우하게 될 테니까요.” 오투스의 말에 케콕스 선생님이 말했다.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그런 대우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들 이 얼마나 똑똑한 존재인가를 염두해 두고 있으면 저들을 과소 평가하는 일은 없겠지. 그게 더 중요한 거야.” 다시 전망창을 바라보던 오투스가 입을 열었다. “음, 저들이 그 동물을 죽이려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세트포스인들은 동물의 다리를 한데 묶은 뒤 배가 보이게 뒤집었다. 동물은 완전히 겁에 질린 채 등을 구부리고 고개를 저으며 울부짖었다. 오투스가 외부 오디오를 켜자 우리들 귀에 끔찍한 비명과 섬뜩하고 단조로운 울음 소리가 번갈 아 들렸다. 그 소리에 섞여 세트포스인들이 웅얼웅얼 노래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그들은 반항하며 울부짖는 동물 가까이 원으로 좁혀가더니 리듬에 맞춰 발을 움 직이고 몸을 흔들어가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P 247 “저 사람들 도대체 무얼 하는 걸까?” 케콕스가 물었다. 프리캄이 한쪽 귀 뒤를 긁었다. “저 사람들조차 저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할 수 없을 거야. 아니, 어떤 종교 의식도 설명할 수 없을 걸.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1만 년 이상 뒤져 있으 니까 별별 괴상한 것들을 다 믿고 있을 거야. 진심으로 믿고 있을 걸.” “적어도 니수에서는 그런 식이었지.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기술 수준은 낮고, 종교는 더 복잡하고, 사람들은 그 종교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지 않 게 되지.” 선장님이 덧붙여 설명했다. 세트포스인들은 더 빨리 원을 돌며 손뼉치고 발을 굴렀다. 그 소리가 점점 커 지더니 갑자기 뚝 끊겼다. 세트포스인들은 원을 이룬 채 동물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모두 무릎을 꿇더니 얼굴을 땅 위로 뭍어 동물 주위에 웅크린 현상을 만 들었다. 그러다가 구릭스의 문을 보며 엎드려 있던, 단단한 근육질과 얼굴이 두 꺼운 털로 뒤덮힌 남자가 일어서더니 칼로 우리 문 쪽을 가리켰다. “돌을 갈아 만든 것입니다. 니수에서 가장 오래 전에 쓰던 도구, 아니 도구라 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물건 가운데 가장 오래전에 쓰던 것과 똑같이 생겼군 요. 팔라스 박물관의 전시품과 똑같이 생겼는데, 다만 손잡이가 더 길군요. 아마 도 저들이 우리보다 손가락이 한 개 더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만.” 선장님은 그 남자가 들고 있는 물건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 세트포스인은 머리 위로 칼을 치켜든 채 큰 소리리 노래불렀는데, 어찌나 소 리가 큰지 외부 오디오를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구 @P 248 릭스의 벽을 통해서도 희미하게나마 직접 들릴 정도였다. 잠시 뒤 그가 노래를 멈추자 나머지 사람들이 노래를 시작했고, 몇 개의 음 이 반복되면서 점점 비명 소리가 됐다. 그때 근육질의 세트포스인의 온몸의 힘 을 실어 잔인하게 칼을 내리꽂았고, 작은 동물의 목이 거의 날아갔다. 그는 다시 한 번 칼을 내리꽂아 창자를 들어냈다. 피와 내장이 땅 위로 쏟아지자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내장들을 듬성듬성 땅 위에 늘어놓았다. “무엇을 하는 걸까요?” 오투스가 물었다. 선장님은 애매한 몸짓을 보였다. “저런 식으로 신에게 생살을 바치는 건지도 모르지. 아니면 저런 식으로 미 래를 점치는 건지도 모르고, 정령이 화가 난 것인지 알아보는 건지도 모르고, 아 니면 ‘부디 저희들을 살려주소서’ 내지는 ‘사탄아 물러가거라’ 라는 종교적 인 신호인지도 몰라. 저들의 언어를 배운 뒤에라야 저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 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거야.” 조촐한 제사가 막을 내렸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가서 저 제물을 거두어야 할까요?” “그러는 게 좋겠지.” 이렇게 말하며 케콕스 선생님은 내게 1회용 외투를 건넸고, 내가 낑낑대며 입 는 사이 자신도 옷을 입었다. “신들이 보기에 제물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나가서 살펴보자구.” 동물의 시체는 보기보다 무거웠다. 게다가 목이 거의 잘린 상태여서 돌어올리 기가 불편했을 뿐 아니라 땅바닥이 피며 내장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미끄러 웠다. 고맙게도 소이켄 선생님은 @P 249 내장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했으니. 우리는 외투에 피는 물론이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물질을 묻혀가며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동물의 복부에 내장을 다시 채운뒤 다리를 잡고선 생물 샘플실 문까지 끌고 갔다. 생물 샘플 캡슐은 그나마 공간이 넉넉했기에 안으로 동물을 던져넣고 봉한 뒤 버튼을 눌러 구릭스 안으로 보냈다. 그런 다음 소독실로 가서 2~3분 동안 외투 위로 과열 증기를 쐤다. 다량의 피가 흉칙하게 엉켜 외투가 끈 적끈적해지는 바람에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열기 때문에 마스크로 숨쉬기가 어 려웠다. 기밀실의 감응 장치에는 공기 안에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떴 고, 우리는 잽싸게 외투의 팔을 떼어내고 앞에 매달려 있던 장갑을 낀 뒤, 용해 하여 다시 만들 수 있도록 나머지 외투를 벗어 호퍼기 안으로 던졌다. 구릭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소이켄 선생님은 이미 다용도실에서 오투스와 함께 해부하 고 있었다. 나와 함께 축축한 땀을 닦아내며 케콕스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나는 이곳의 새로운 신으로서 첫 번째 교시로 제물을 깔끔하게 바치라고 내 리겠네.”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적어도 전 지금 점심을 먹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 니까요.” 나는 그의 말에 동조했다. 다용도실에서는 감탄하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그러나 그곳은 모든 사람들 이 들어가 소이켄 선생님과 오투스가 하는 작업을 지켜볼 수 있을 만큼 넓지 않 았기에, 우리는 장거리 스캐너를 살피며 시간을 때웠다. 마을 사람들은 언덕 위 거대한 개간지 안에 모여 있는 듯했다. @P 250 “반격을 가하기 위해 모인 것일 지도 몰라.” 케콕스 선생님이 말했다. “아니면 동물을 난자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러 모인 것인지도 모르죠. 저 들이 이 길로 무기를 들고 쳐들어온다 해도 우리는 사전에 충분히 감지할 수 있 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보고를 듣기 위해서 모인 것 같아요. 새로운 신들이 제물을 기꺼이 받아들여다는 보고 말입니다. 아직까지는 그 보고가 사실이지요. ” 점심 때쯤 소이켄 선생님은 보고 준비를 마쳤고, 우리의 식욕은 다시 돌아왔 다. 이곳의 하루는 니수보다 5분의 1만큼 더 길었다. 따라서 깨어 있는 시간도 자연히 길었기 때문에 이 작은 금속 상자 속에 앉아 뭔가 할 일을 기다리는 것 은 지루한 일이었다. “자, 사진이나 확대 그림은 보여 드리지 않겠습니다. 먼저, 그들은 우리와 기 본 구조가 같습니다. 근육과 뼈가 소화계를 둘러싸고 있어 소화계는 음식을 섭 취하고 근육에 양분이 공급되는 것이죠. 뇌의 주위에는 이를 보호해 주는 두개 골이 있고, 각각의 감각 기관이 뇌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우리와 가장 큰 차 이를 보이는 곳은 심장과 순환계입니다. 우리는 폐가 작고 수백 개인데 반해 저 들은 폐가 크고 두 개이며, 우리는 심장이 작고 열한개인데 반해 저들은 심장이 거대하고 한 개밖에 없습니다. 혈액 혼합 기관은 없으며, 심장 내부에 방이 네 개 있는데 폐로 출입하는 곳, 전신으로 출입하는 곳입니다. 전신의 혈액이 모이 는 곳은 우리의 혈액 혼합 기관과 다소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심장의 일부이며 한 번에 소량의 혈액만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트포스인과 우리가 비슷한 구조이지만, 자세히 봤을 때 전쟁시 우리보다 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이군요.” 소이켄 선생님의 긴 설명을 들은 후 케콕스 선생님이 말했다. 소이켄 선생님을 애매한 몸짓을 했다. “그렇게 말할 순 없습니다. 우리의 혈액 혼합 기관처럼 손쉬운 타깃은 없지 만, 기관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쉽지요. 우리는 심장을 세 개 잃 거나 폐 스무 개에 구멍이 뚫려도 살수 있지만, 저들은 폐가 하나만 없어도-그 커다란 심장은 말할 나위도 없겠죠-목숨을 잃으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흉부 정도면 증기총으로 겨냥하기에 아주 큰 표적이죠.” “그거 굉장한 정보로군요.” 케콕스 선생님이 툴툴댔다. “더 굉장한 정보가 있어요. 이 동물은 우리의 아미노산 구조와 96퍼센트나 일치합니다. 이 동물은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2시간 내로 독물 시뮬레이터가 작업을 마칠 테고, 세포 배열 검사도 끝납니다. 두 실험 결과 그 동물이 아무 이상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오늘 밤 구워먹을 수 있을 겁니다.” 오투스가 제물로 들여온 동물에 대해 설명했다. 저녁에 나온 것은 스튜였고-완전히 익혀먹는 것이 좋을 듯했다-맛은 정말 기 가 막혔다. 우리는 그 음식을 깨끗이 비운 뒤 신들이 그 제물에 기꺼워했다고 인정했다. “아무 이상 없겠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소이켄 선생님에게 끊임없이 되물었다. “우리 가운데 세 사람이 임산부야. 게다가 보고서를 완전히 숙지한 상태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 음식은 아무 이상 없어.” 선장님이 말했다. @P 252 “우리 몸에 있는 단백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긴 고리 단백질이 세 상엔 많아. 그 가운데 대부분을 열이 가해졌을 때 우리가 소화시킬 수 있는 물 질로 변하지. 그리고 나머지는 아마 그냥 배설될 거야.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풍토병에 감염되지 않는 건데-대부분의 세균이 우리 몸에 침투할 만한 구석을 찾지 못하거든-우리 몸의 단백질이 너무나도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세균들이 기 를 못 펴게 되고, 또 세균들도 우리랑 너무 다르기 때문에 면역계가 금방 알아 차리게 되지. 몇 십 년이 지나고 난 뒤라야 질병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될 걸.” 다음날 아침 우리에게 동물을 바쳤던 바로 그 남자가 땅 위에 얼굴을 묻은 채 무릎 꿇고 앉아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P 253 세트포스인의 신이되다 선장님은 밖으로 나가 세트포스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계획을 진행시키고 싶어 했지만, 잠시 기다려야 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모두 실험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 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부검이라도 해볼 작정입니까? 내 혈액이며 점액, 소변까지 드렸잖아요. 더이상 뭘 바라는 겁니까?” 선장님이 투덜댔다. “여러분들 모두 얌전하게 협조해 주세요. 저 세트포스인과 얼마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모르니 지금 당장 샘플을 채취해야 한단 말입니다. 자, 여러분들 몸은 어떤가요?” 소이켄이 침착하게 말했다. “최고입니다. 이제 밖으로 나가도 될까요?” 오투스는 큰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혈액을 채취하기 전에 안 되요. 분석가가 여지껏 최선을 다한 결과 여러분들은 정상의 컨디션을 유지했잖아요.” @p 254 소이켄이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러면 안 되죠." 메족스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약간 어리둥 절했던 것 같다. 모든 검사 결과 우리와 저들의 단백질은 이상적으로 일치했다. 이 지역에 사는 동물들을 섭취할 수 있으면서도(장시간 요리를 하면-이 지역의 세균이 침투할 수 있을 정도로 일치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앞으로 새로 운 음식들을 모두 검사해 보면 우리들에게 해로운 것들이 몇 개 발견되지만, 이 지역이 우리의 거주지가 될 수 있을 듯했기에 일을 진행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 다시 한 번 검사하고, 여자들의 몸 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의 소리까지 들어본 뒤에야 소이켄 선생님은 검사가 끝났다고 선포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세요. 이제 우리를 찾아온 사람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았으니 욕구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밖으로 나가서 저 사람이 신에게 말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알아봅시다 "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걱정했었다. 신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달리 특별한 묘책이 없는데다 - 언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부딪치 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끔찍한 억양으로 문법에 맞지도 않는 말을 하는 신이라 면 신용도가 떨어질 테고, 노예들을 대할 때 신비감을 갖을 수 있도록 우리 언 어는 내부적으로 최대한 보존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이 열리자 세트포스인은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납작 엎드린 자세로 바꿨다. 우리는 한무더기로 그에게 다가 @p 255 갔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메족스가 말했다. "매우 공손한 자세라는 것은 알겠지만. 대화를 나누기엔 불편한 자세구나." 메족스는 몸을 구부렸고. 세트포스인의 긴 머리카락을 낚아채더니 홱 잡아당 겨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세트포스인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헉' 하는 소리를 내 며 옆으로 벌렁 쓰러졌다 "죽은 게 아닐까요? 메족스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글쎄, 적어도 심장이며 폐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걷. 그러니까 괜찮다고 말 할 수 잇겠지. 격한 감정을 느낀 나머지 기절한 것 같아. 진화의 관점으로밖엔 설명할 수 없는데. 심장이 하나밖에 없으면 혈압이 급하강할 수 있거든." "그 설명이 맞는것 같군요.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깨울수 있죠?” 선장님은 소이켄 선생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글쎄요, 혈압 하강 때문이라면 뇌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혈액을 순환시켜줘야 해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 메족스는 세트포스인을 뒤집고는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머리 가 아래로 향하게 들어올린 뒤 세게 흔들었다. "어디 효과가 있는지 ……." 그 세트포스인은 숨을 헐떡이며 섬뜩한 울음 소리를 냈고, 깜짝 놀란 메족스 가 그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의 얼굴은 땅 바닥에 부딪쳤다. 세트포스인은 몸 을 추스리며 처음과 마찬가지로 공손하게 엎드렸다. @p 256 "자, 이제 처음으로 돌아왔네요. 이젠 어떻게 하죠?” 선장님이 우리를 향해 물었다. "글쎄요, 좀더 정중하게 대할까요? 이렇게 말하고 나는 세트포스인 옆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그의 겨드랑이에 손 을 넣고 일으켜 세웠다. 그는 일어섰다. 세트포스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 은 처음이었다. 친근한 태도를 보여도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나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메코시스. 자메코시스. 자메코시스. 자. 메. 코. 시. 즈." 그러고 나서 세트포스인의 입을 가리켰다. 그는 계속 쳐다보고 만 있었다. "자. " 그의 입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그는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샤. " "자메코시스." "샤메코씨슈." "비슷해." “비슷해." 모두 웃음을 터트렸고, 그는 다시 엎드렸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의 웃음 소리가 그의 귀에는 투덜 거림과 비명이 섞인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그들의 웃음 소리는 기묘하게 짖는 소리나 애매하고 우는 소리로 들렸다) 우리가 모두 그런 소리를 내자 그는 신들만이 사용하는 언어를 자신이 사용한 것이라 여기고는 불손함에 응당하게 벌받을 준비를 했던 것이다. @p 257 당시에 나는 물론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일이 원점으로 돌아가려 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기에 ‘자메코시스’를 몇 번 되풀이시켰다. 다음 ‘메 족쓰’며 ‘오쓰폭’ 등을 거쳤고, 마침내 그는 우리의 이름을 모두 부를 수 있 게 되었다. 끝으로 나는 그를 가리켰고, 그의 이름이 ‘라’라는 것을 들었다. 그때쯤 점심을 먹어야할 시간이 디었기에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저 사람에게 음식을 줘야 할까요?” 프리캄이 물었다. “저 사람들이 마법이라는 게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기 전까진 신을 위한 음식은 우리들끼리 먹는 게 나을것 같아. 어떤 면에서 보면 저 사람들은 리워드 섬에 사는 사람들이랑 비슷해. 물론 어떤 면에선 아주 다르지만 원시 문화 속에 서 세력을 가진 자들이 먹는 음식은 커다란 힘을 가지게끔 되어 있지 안전한 상 태에서, 저 사람에게 음식도 주지 않고 그걸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지 살펴보는 게 났다고 생각해.” 선장님이 말했다. 나는 막대를 하나 들어 땅에 꽂았다. 세트포스인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좀더 작은 막대를 하나 집어 아까 막대의 그림자 끝부분에 꽂았다. 그리고 다른 막대로 처음의 막대와 약간 각도를 이루면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방향인 동 쪽으로 꽂았다.(그를 내일 아침 이전에 반드시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 라’라고 말하고 땅을 가리켰고, 하루의 20분의 1시간 뒤면 그림자가 닿게 될 막대를 가리켰다. 나는 각각의 짧은 막대를 가리키며 ‘라 여기에’라고 말했고, 그 각도를 가리키며 둘 사이의 공간을 지적했다. @p 258 그는 알겠다는 몸짓을 보이며 바닥에 엎드려 우리 이름을 중얼거리더니 슬금 슬금 뒤로 기어갔다. 담장이 있었던 잿더미에 도달하자 그는 몸을 돌려 언덕 쪽 으로 뛰어갔다. "저 사람이 알아들은 것 같아?” 오투스가 물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그런 것 같아. 가서 식사한 다음 그림자가 두 번째 막대에 드리워질 무렵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날지는 지켜봐야지. 하지만 난 그 사람이 다 시 나타나리라 믿어. 알아듣는 눈치였거든." 나는 실제보다 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글쎄, 나는 적어도 전후 상황을 살펴 이해하는 능력은 있는 것 같군. 우리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알겠다는 몸짓을 보이니 말야. 우리를 지켜보면서 터득 한 게 분명해." 선장님은 내 말을 듣고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정각에 다시 돌아와 엉성한 해시계 옆에 엎드려 있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날의 오후부터 8일동안 우리는 몇 백 개쯤 되는 그 의 단어와 그가 구사하는 언어의 초보적인 문법을 익혔다. 문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웠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도중 선장님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예요. 기술적으로 발달한 사람들처럼 다양한 사물에 대 해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원시 시대 사람들의 언어는 더 복잡하기 마련이지 요. 즉. 문장을 만들어 사용하는 게 아니라 특정 사물마다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 니까요. 그러니까 배우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고. 매우 한정되어 있는 사물을 가 지고 이야기해야 하니 @p 259 매우 딱딱하고 형식적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일단 왕국을 건 설하고 나면 그들의 문법은 금새 단순해질 테고 어휘는 보다 일반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수십 년이 흘러야 되겠죠." 그녀는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뒤 케콕스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선장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선장님은 이런 일들, 음, 그러니까 원시시대 사 람들에 대해 매우 박식하신데, 우리들로선 그런 사람이 한 사람 있다는 게 다행 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배우셨는지 궁금하군요." 그녀의 얼굴은 슬퍼보였다. "그러니까 포아퍼레시스가 죽은 뒤 난 그를 몹시 그리워했습니다. 그 사람과 내가 그러니까, 서로의 방에서 보낸 시간들이 많았다는 건 아시겠지요." 그 사실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갑자기 난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게다가 그런 속담도 있 지만 죽은 사람을 영원히 그리워할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처음엔 좋아하는 음악이나 옛날 영화를 보면서 소일했지만, 알다시피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음 악회나 영화에서 별다른 자극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합니 다만, 한동안 어느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치거나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래서 자연스럽게 공부에 흥미를 가지거나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 만한 것, 혼자 서 할 수 있을 만한 쓸모 있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우주선을 파견했던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 비교 문화 부분인데, 전문가가 함께 파 견됐다 하더라도 글쎄요, 결국 우리가 문화를 비교해 본 것은 오래 전 이야기일 뿐더러 실질적으로 경험해 본 사 @p 260 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어쨌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원시인들은 와 코펨 시대에 발견됐고, 팔라스에게 정복되면서 대부분의 원시인들은 노예로 끌 려갔으니까요. 그러니까 몇 세기 동안 소위 말하는 ‘현장 실습' 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겁니다. 저는 그들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원시 시대 사람들을 연구하는 것이 쓸모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꽤 되더군요. 공부하면서 초기 근대 슐라스어를 완전히 습득하게 됐고, 스무 개가 좀 넘는 사어들을 조금씩 익히게 됐습니다. 그 공부는 쓸모가 있었어요. 기분 전 환도 됐고, 지금 유용하게 파용하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우주 여행이나 해저학보 다는 쓸모가 있잖아요." 그 뒤로 며칠 간 주변 상황 이해에 급속한 진전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선장님이 새로 습득한 지식들이 얼마나 유용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지배 계급과 사제층을 완전히 일소했다. 별달리 의 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우리는 새로운 제사장 겸 왕을 탄생시켰는데, 우리와 이 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라밖에 없었기에 그가 최고 지위에 오르게 됐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사냥꾼 겸 농부였는데, 우리가 도착한 뒤 보름쯤 지난 지금 그는 부인이 네 명 생겼다( ‘과부 셋에 처녀 하나' 라고 그는 우쭐대며 말했다). 자신의 그룹 내에서 충성 스런 신하들을 한 무더기 뽑아 '진정한 부족민'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 사람을 막강한 대표로 만들 생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은 정말 일 을 잘하고 있네요." @p 261 오투스가 말했다. 우리는 '진정한 부족민'이 들판을 갈고, 잡초를 뽑고, 물을 대는 것을 지켜보 고 있었다. 곡식이 죽어가는 것을 본 우리들은 라를 통해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신을 잘못 섬긴 것에 대해 우리는 노여움을 거두었고, 곡식을 거둘 수 있게 하 며, 만약 계속해서 우리들을 기쁘게 하고 그룻된 신들을 멀리 하면 마을을 재건 설하는 방법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전했 다. 하지만 믿음을 버리고 복종하지 않으면 모조리 없애버리겠다고도 한다. 세트포스인들은 당연히 이 흥정을 받아들였다. 열심히 일했고. 아주 가끔씩 우 리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들에게 풍작을 내리겠다고 약속했고. 약속 을 지키고 있었다. 소이켄 선생님은 들판에서 자라는 ‘필' 이라는 곡식의 신진 대사를 연구했고, 이 지방의 토양을 연구한 결과 산성이 약간 강하고 질소가 약 간 부족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는 이에 적합한 보충물을 만들어 주며 들판에 고루 뿌리도록 했다. 근래 들어 나는 오투스와 단둘이 있을 기회가 없었다. 라를 포함하여 1백 쌍 의 눈들이 에워싸고 있었으니 말이다. 임신을 했다 하더라도 배가 그다지 부르 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흔자 있고 싶 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그러나 단둘이 언덕에 서서 니수 어로 과거 일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케콕스 선생님 말이 맞는 것 같아. 다음 봄이 지난 뒤 정복을 해야 한다고 했 던 말. 모든 건 시기가 있는 법이고. 어쩌고 저쩌고 했던 거." 오투스는 약간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p 262 "그게 바로 케콕스 선생님의 원칙이지 ." 내가 말했다. 그녀가 내 팔을 찰싹 때렸다. "선장님과 소이켄 선생님이 둘다 만족을 표시하고 있는 지금, 누가 그들을 비 난할 수 있겠어? 게다가 선장님이 먼저 케콕스의 아이를 가졌잖아. 그 늙은이를 존경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그녀는 고개를 돌려 들룐을 바라보며 말했다. 머리 위쪽 멀리서 천둥 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구릭스가 돌아오고 있었다. 메족스가 조종간을 잡고 있는 구릭스는, 동력 기구로 만든 커다랗고 아 늑한 통나무 옆 착륙장에 신속하고 사뿐히 내려앉았다. “어떤 소식이 있는지 가서 들어볼까7” “그래.” 우리는 손잡고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등 뒤로 황갈색 태양 쿠사펙스의 온기를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 가 지켜보는 가운데 곡식을 손질하고 있는 노예들이 보였다. 시선이 우리 집으 로 옮겨졌다. “구릭스랑 루마스가 한 번씩만 더 왕복하면 보급품 운반은 끝나겠지. 그러고 나면 우주로 비행할 일은 없어. 비행한다 하더라도 재미삼아 하는 것이 되겠지. ” 곡식을 주시한 채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재미삼아 한다해서 탄 될 건 없잖아. 우리가죽을 때까지 매 8일마다 여행을 해도 될 만큼 탱크에 반물질이 가득한 걸. 하지만 맞아,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 는 것 같아. 우린 이제 전능한 신으로 만족해야겠지.” “그리고 부모로서도…….부모가 되고 나면 아주 달라진다고 들었거든.” @p 263 집에 도착했더니 프리캄파 소이켄 선생님만 구릭스 안에 남겨둔 채 메족스, 선장님, 케콕스는 밖에 나와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모두들 보급품을 하선하고 있었을 것이다. 메족스의 설명은 이렇다. “프리캄의 임신에 문제가 생겨서 소이켄 선생님이 와코펨에 있는 더 나은 기 구들로 진단하고 싶대.” 보급품을 모두 내리고, 현판에 앉아 언덕 너머로 지는 해를 감상할 때 무선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구릭스에 있는 화면을 켜고 소이켄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모였다. “음. 복잡하긴 하지만 해결할 수는 있겠어요. 단백질이 약간 일치하지 않는 게 좋으면서도 나쁜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우리가 준비하는 단백질은 몇 가지 안 되는데. 저와 프리캄의 혈액에는 이질 단백질이 우글거리더군요. 그 단백질들 은 기능적으로 불활성 단백질이라 생각했는데, 프리캄이 가진 아이에게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어뇨.” 소이켄 선생님은 우리가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했다. “혈관에서 그 단백질을 제거할 방법이 있나요?” 메족스가 물었다, “음, 두 가지가 있어요. 단기적으로 투석하면 8일 내로 우리뿐 아니라 태아의 혈액까지도 깨끗하게 할 수 있죠. 지금 이미 실험실에서 시험해 보고 있는데. 투 석하려는 물질이 워낙 다른 물질이기 때문에 복잡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영구 해결책은 아니죠. 땅 위에서 쓸 수 있는 투석 장치를 만들 수 없을 뿐더러.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평생 동안 그 장치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p 264 “어떤 겁니까?” 케콕스 선생님이 재촉하듯 물었다.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이지요. 8일이 네 번 정도 지날 때마다 투석을 하면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1년뒤면 그 바이러스 때문에 신장 조직이 충분히 재생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질 단백질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죠. 물론 아이들에게도 유전이 되고요.” “목소리가 별로 안 좋은데 뭐가 문제죠?” 선장님이 심상찮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물었다. “그 바이러스라는 게 잠재적으로 병원균이죠? 그렇죠? 오투스가 물었다. 소이켄 선생님은 그렇다는 몸짓을 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그 바이러스는 혈관 내에 있는 동안 일종의 유전 정보 해독기 역할을 합니 다. 이 지역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잡아챌 수도 있어요. DNA를 쉽게 전달하 는 유기체처럼 말입니다. 사실상 이 지역의 병원균에게 우리가 가진.수용기를 조 정하는 방법이나 면역계 눈에 덜 이상하게 보이는 방법 같은 것을 알려줄 수 있 다는 거죠. 우리가 여기 도착한 이래로 죽 보유하고 있던 완벽한 면역 기능을 상실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지막 투석기가 부서지면 몇 년 뒤 모두 죽게 되는 겁니까?” 케콕스 선생님이 물었다. “글쎄요, 니수 음식만 먹으면 그 현상은 막을 수 있지만-유전자 처리를 거칠 때까지 니수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말씀 드리려던 참이었어요-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고 해야겠네요. 유전자를 변형시 @p 265 키지,않으면, 투석을 중단하거나 니수 음식 이외의 음식을 먹는 즉시 몇 년 이내 로 우리는 아마 신장 질환으로 죽게 될 겁니다. 어쨌든 구릭스라는 농장을 계속 운영할 방법이나 3백 년 동안 쓸 수 있는 투석기를 만들 방법은 모르겠네요. 유 전자 변형을 단행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저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신 듯하군요. 사실 우리들 모두가 설득에 넘어간 것 같군요. 여러분 가운데 누가 유 전자 변형을 피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주었으면 했거든요. 우린 세트포스가 낙원이리라 생각했었죠. 지금도 좋은 곳이긴 하지만,.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제가 희망했던 것보다 불완전한 것이 될까 걱정이에요. 우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입니다.” 약간 슬픈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해 가을 우리는 충성스런 신민을 돌보기 위해 신들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흙과 돌을 이용해 담 쌓는 법을 가르쳐주었지 만, 그들은 곡식을 수확해야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곡창과 정찰대로 동시에 쓸 수 있도록 석탑을 쌓는 이유를 들려주었지만, 그들은 비가 오기 전에 지어야 할 건물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 때 문에 생긴 곡식이 유실로 기근이 덮칠 위험이 있었다. 봄철 정복을 위한 건강한 군대를 만들려면 그들에게 먼저 도움을 주어야 했다. 우리는 발로 돌리는 소형 트랙터로 하루만에 기초 공사를 했다. 그들이 했다 면 8일이 몇 번이나 걸렸을 일이다. 트랙터에다 통나무로 썰매를 달아 돌을 운 반했는데, 라를 비롯해 몇 명이 도왔을 뿐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 전부가 하루에 나른 양의 스무 배쯤 되었다. 그리고 폭파기 몇 개를 사용하여 그 지역에 있던 절벽을 폭파했더니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찾거나 자른 것보다 더 많은 돌을 쓸 수 있었다. @p 266 돌담은 우리가 사는 집과 착륙선이 있는 들판을 포함해 넓은 지역을 둘러쌌 다. 기계를 사용한데다 이제는 제법 우리가 내리는 지시를 잘 알아듣는 라 덕분에 첫 비가 내리기 훨씬 전에, 작은 마을은 안전한 담으로 둘러싸이게 됐고. 곡식은 탑에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케콕스 선생님과 메족스는 라와 몇몇 짐꾼을 데리고 며칠 동안 밖에 나가, 이 젠 세트포스인만큼이나 우리에게도 낯익은 야생 염소며 사슴, 돼지, 들소들을 대 량 사냥했다. 그들에게 고기를 훈제하고 소금에 절이는 기본적인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첫 비가 내리자 세트포스인들은 '추수 감사제'를 지내면서 우리에게 꽤 많은 음식을 바쳤다(음식들을 우리는 집 안에 설치한 냉각기에 보관했다). 그 보답으 로 우리는 구운 벽돌과 동력 기구로 만든 널빤지를 다량 하사했다. 보기에는 작 은 선물 같았지만, 이틀 동안 이것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그들은 모두 불에 훨 씬 덜 타는 지붕이 덮인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집이 모두 완성되자 그들은 춤을 추었고(산 제물을 바칠 때 보았던 것처럼 리 듬에 맞춰 기묘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 이 지역에서 나는 과일을 으깬 뒤 발효 시켜 만든 술에 모두 취했다. 가벼운 싸움도 있었지만 라가 충직스런 부관들과 함께 말렸고, 진정이 된 뒤 사람들은 집을 좀더 아늑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소이켄 선낑님은 바이러스 배양과 테스트를 마친 뒤 매우 불안해 하며 케콕스 선생님에게 건넸다. 8일이 두 번 지난 뒤에도 그의 상태가 괜찮고 신장이 이질 단백질을 다룰 만한 능력을 회복하자 그녀는 @p 267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1회분씩을 주었다. 비가 계속 내리자 들판은 진흙투성이로 변했고, 강이 범람했다. 꽤 높은 지대 에 있어서 우리와 세트포스인들은 집 안에서 편안히 지냈지만, 뭔가 참을 수 없 을 만치 섬뜩한 기분이 느껴졌다. 우리는 유리창을 아직 만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셔터 뒤에서 인공으로 만든 빛을 쬐며 지냈다. 우리는 식사했고, 연구했고, 정기적으로 라를 만났다. 그에게 봄이 되면 어떤 전쟁을 치러야 하고, 지금은 우리 노예인 '진정한 부족민' 이 전쟁을 치르고 나 면 주변 종족들을 노예로 거느리게 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 일은 매우 힘들 었다, 처음에 그는 왜 다른 마을을 불질러야 하는지, 왜 밤에 공격해야 하는지, 왜 다른 사람들의 신전에 있는 우상들을 파괴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했다. 케콕스 선생님이 싸을 수 있는 나이의 남자들에게 새로운 전쟁 기술을 가르치 기 시작하자 라는 매우 소중한 존재가 됐다. 그해 가을이 안겨준 기쁜 소식이 또 하나 있다면, 오투스와 내가 내기에 이겼 다는 것이다. 우리 딸인 디에렌이 메족스와 프리캄의 딸인 위루스보다 1주일 먼 저 태어났던 것이다, 2세대 가운데 첫 번째 아들이자 유일한 비혼혈인은 선장이 8일이 두 번 지난 뒤 프리루스를 낳던 순간에 탄생했다. 출산은 순조로웠지만, 만전을 기하기 위해 소이켄 선생님은 산일이 가까워질 때마다 산모들을 와코펨 조모스 호로 데띠고 갔다. 아이들은 건강했고, 세트포스 단백질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체중이 점점 늘어났고, 힘이 강해졌다, 겨을 날씨는 온화했고, 니수보다 아주 약간 건조했다. 온화하다 하더라도 밖으 로 나가기가 싫을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다. 아이들과 놀 @p 268 고(이때 느끼는 재미는 한계가 있었다. 이 행성은 니수보다 궤도가 더 빠른데도, 행성 시간에 따르면 겨울이 다섯 번이 아니라 여섯 번이 지나야 아이들의 사고 가 완전히 정립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봄에 있을 전쟁을 준비하는 것 (사실 이 일은 그다지 준비할 게 없었다. 결국엔 도끼나 횃불, 창을 든 마혼 명 의 세르포스 남자들을 위한 계획이었으니까)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가느다란 햇빛이 구름 사이로 비칠 때마다 나는 종종 케콕스 선생님이나 메족 스와 밖으로 나와 아이들 이야기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일하곤 했다. 소이켄 선생님도 오스캄을 낳자 양육에 거의 온 관심을 쏟았다. 아이들이 많 은 관심을 쏟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여성들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눈에 띄게 화창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추운 어느 날 케콕스 선생님, 메족스, 그 리고 나는 자리에 앉아 군대를 혼련시키는 라를 지켜보고 있었다. 국지전은 1대 1대결의 양상을 띄고 있어 가장 용감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히기에는 좋은 방 법이지만, 승리를 거두기에는 형편없는 방법이다. 우리는 집단으로 창을 써서 혼 자 싸우는 상대편을 압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오늘도 그들은 끝이 뭉툭 한 창을 들고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매우 열심히하고 있었다. "내가 본 가운데 최상의 군대라 할 수는 없지만, 주변 마을을 꽤 빨리 점령할 수는 있을 거야. 운이 좋으면 두 번째 밀을 심기 전에 첫 정복을 맛보게 될지도 모르지. 게다가 나한테 생각이 하나 있는데, 염소나 돼지를 지금처럼 비정기적으 로 넣지 말고 정기적으로 넣으면 분명히 더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가축들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드는 거지." @p 269 케콕스 선생님의 제안을 듣고 메족스가 하품을 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할 일들은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더이상 예전처럼 위압적인 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저 사람들은 우릴 자주 봐온데다 우린 정말 공정하고 친절했잖아요. 이제 더이상 저 사람들은 예전과 같은 느낌은 없을 거예요. 어, 그러니까……” “공포심? 난 지금 이런 방식이 더 좋아.” 내 말에 메족스는 뭔가 대꾸를 하려다 여지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섬뜩하고 불쾌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다 점액 방울을 내 뱉었다. 그 가운데 일부가 나한테 튈 뻔했다. 사과의 말조차 않은 채 그는 그런 짓을 두 번 더 했다. 자리로 돌아와 앉는 그의 눈은 겁에 가득 질려 있었다. “소이켄의 말이 맞았군. 메족스, 지금 넌 ……” 그러더니 케콕스 선생님 또한 똑같이 섬뜩한 소리를 내면서 똑같은 소란을 피 웠다. “읔, 대단하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건 기침이라는 것이네. 면균 상태에서 자란 젊은 친구. 예언컨데, 우리 모두 금새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게 될 걸세. 침대에 누워야겠네. 우리들 모두 감염됐을지 모르지만, 전염을 막기 위해 얼굴 위로 천을 묶고 말이지.” 케콕스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신기한 생각에 어떤 기분인지 물어보려는 순간, 위쪽 가슴에서 갑자기 끔찍한 통증이 생기면서 혈액 혼합 기관 주위로 날카로운 경련이 느껴지더니. 내게서도 똑같은 소리와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p 270 “발에다 그렇게 해서 미안해.” 내가 메족스에게 말했다. 8일이 두 번 지난 뒤 우리들 모두, 특히 아이들은 더욱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모두들 두통과 열이 있었다. 점액으로 얼굴이 항상 젖어 있던 소이켄 선생님은 신종 바이러스를 죽이는 물질을 미친 듯이 찾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진통제 와 해열제로 거의 멍하게 취해 있던 메록스가 루마스를 끌고 와코펨 조모스 호 에 가서 아이들을 낫게 할 만한 약을 가져 왔지만,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꼬박 이틀 동안 누워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가슴에 통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콜록콜록 기침을 했고, 모두들 이따금씩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케콕프 선생님이 일어나 물을 가지러 갔다. 이 지역 물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루마스의 멸균기 에 넣어 물을 마셨다. 질병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오투스와 나는 루마스에 서 집까지 호스를 통해 물이 운반되도록 연결 기구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2-3 일에 한 번 정도만 주전자에 물을 가져가 루마스의 멸균기에 넣으면 된다는 뜻 이다. 케콕스 선생님은 주전자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밤새 떨어진 물로 가득 차 있 어야할 주전자가 그 전날 놓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었다. 몹시 허약해 진 그는 비틀거리더니 테이블을 부여 잡았다. 내가 나가서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너무 어지러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 뒤로 벌어진 일은 볼 수 있었다. 케콕스 선생님은 급수선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피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순간 문이 활짝 열리면서 라가 들어오더니 케콕스 선생님을 밀치며 작은 도 @p 271 끼를 쳐들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습격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죽을 수 도 있었지만, 케콕스 선생님은 늙었음에도 여전히 황제 근위병이었다. 그는 도끼 를 휘두르는 라의 팔을 살짝 피하고 그의 다리를 낚아채더니 문 밖으로 집어 던 지고는 어깨로 문을 쾅 닫고 빗장을 걸었다. 세트포스인들은 문을 두드리리 시 작했다. 메족스와 프리캄이 침대에서 기어나와 문 옆에 있는 증기총을 가지러 갔다. 도끼가 문을 내려찍기 시작하는 순간 메족스, 프리캄, 케콕스 선생님은 문을 향 해 총을 쐈다. 문 저편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쥐죽은 듯 잠잠해졌다. 창문이 없었기 때문에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없었지만, 쾅 쾅 하며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루마스로 시선을 돌린 게 분명했다. 무거운 물건을 다룰 때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고, 길고 사납게 부 서지는 소리로 보아 그들이 루마스를 뒤집은 듯했다. 이어서 더 많은 나무도끼 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충격을 견디지 못할 텐데.” 내 말에 선장님도 한마디 했다. “저렇게 놓여 있는 상태에서 문을 부수면 반물질 안전 장치가 해제되고, 그 러면……” 사납게 우르르하는 소리가 났다. 벽이 흔들리고 곳곳에 금이가 곧 파괴되리라 는 것을 감지한 루마스의 컴퓨터가 반물질 억제물을 담고 있던 작은 상자를 선 체 밖 멀리 떨어진 곳으로 쏘아보낸 것이다. 반물질 컨테이너에 금이 가는 것을 막는 조치였다. 우리들 뒤쪽 높은 곳 어디에선가 장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졌을 것이다. 그 상 자가 쏘아 올려졌으니 이 집은 화염에 휩싸이고 밖에선 @p 272 많은 세트포스인들이 죽거나 심한 파상을 입었으리라. 쩍쩍 쪼개지는 소리와 점 점 심해지는 연기로 볼 때 우리 또한 1∼2초내로 이곳을 떠나야 했다. 우리는 기침하며 기절 직전인 몸으로 아이들을 안고 최선을 다해 대형을 이뤘 다. 케콕스 선생님이 발로 문을 열자마자 현관을 거쳐 구릭스로 달려가려 했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향해 증기총을 쏘아가며 몇 발자국 나가기도 전에 날아온 도끼에 케콕스 선생님은 쓰러졌다. 그러자 그들이 우리를 향해 몰려왔다. 나는 무언가 소리를 질렀고, 차가운 바깥 공기에 기침을 시작했다. 결국, 기침 때문이 었는지 아니면 누가 날린 주먹 때문이었는지 의식을 잃었다. 쓰러지면서도 가까 스로 디에렌을 품속에 꼭 안았다. @p 273 세트포스인의 노예가 되다 “정신이 돌아오네요. 기운 내, 자메코시스. 일어나봐.” 오투스의 목소리였다. 나는 힘겹게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살펴보려다 어두컴컴하다는 것을 느끼고 눈을 더 크게 떴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 잠시 뒤 - 얼마 뒤였는지는 모른다 - 나는 다시 깜빡이며 조심스레 눈을 떠보려 애썼다. 소이켄 선생님의 손이 내 팔 위에 얹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자메코시스? 자메코시스, 내 말 들리니?” “저…… 물 좀……” 심한 갈증을 느낀 나는 쉰 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지금은 물이 없어. 미안하다. 저 사람들이 우리 물건을 모두 가져가버린 다 음 여지껏 음식이나 물을 안 주고 있거든.” 소이켄 선생님이 속삭였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고통이 되살아났다.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p 274 “케콕스 선생님은요?” “죽었어.” “아, 그럴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정신을 집중하기도, 생각하기도 어려웠으며, 뭔가 할 말이 생각난 뒤에는 입술 이나 목으로 소리내기가 어려웠다. “사람들과 뒤엉길 때 메족스의 발이 부러졌어. 복합 골절인데 상태가 아주 안 좋단다. 오투스와 나는 멍만 좀 들었고 충격을 좀 받았어. 그리고 다른 사람 들은……” 고통 속에서도 나는 소이젠 선생님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프리캄은 열이 너무 많아서 뇌손상을 입지 않았을까 걱정이야. 그리고 선장 은 육체적인 상처는 입은 것 같지 않지만, 여기가 어딘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일시적인 쇼크 상태일지도 모르고. 기억 상실일지도 몰라. 자페코시스. 자리에 앉은 채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대꾸하지 않았는데, 딱 한 번 정기적인 선상 임무 얘길 꺼내면서 우리더러 그 일을 다 했느냐고 묻 더군.” “제 머리는……” “뒤에서 세게 얻어맞았어. 어떤 놈이 방망이로 내리친 거지. 그것 말고는 없 는 것 같은데……. 어디 다른 곳 아픈 데 없니?” “아니요. 하지만 머리가 아파요.”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 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위가 심하게 빙빙 돌 지는 않았다. 처음에 느낀 것은 내가 누운 자리에서 구토와 배설을 했다는 사실 이었다. 나를 씻겨줄 물도, 사람도 없었으리라. 두 번째로 느낀 것은 불이 있다 는 것이었는데, 그 불빛이 아직 또렷 @p 275 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어두컴컴한 공간 가운데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불빛이 몇 줄 늘어서 있었는데, 이따금씩 왔다갔다 하는 그림자로 가려졌다. 마 지막으로 나는 이상한 사실 한 가지를 느꼈다. 열도 없었고, 숨을 쉴 수도 있었 던 것이다. 내가 쉰 소리를 내자-지독히 목이 말랐다-오투스가 다가왔다. “라메코시스? 정신들어? ” “그런 것 같아." "어떤 게 기억나니? ” “전부 다 기억나는 것 같은데, 나 얼마나 오랫동안 잠들었었지?” “하룻밤 동안. 지금은 아침이야. 사람들이 구릭스 외문에서 물과 음식을 좀 가져다 주었어. 그런 식으로 우릴 속였던 거지. 그 사람들이 루마스에 있는 호스를 잘라 버렸거든. 하지만 우리가 여기 물을 마실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더라. 물 마실래? ” “응. ” 그녀는 내게 물을 조금씩 조심조심 마시게 했다. 물은 아무 맛도 없었지만 따 스했다.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나는 한 모금에 삼켰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 잠시 뒤 내가 물었다. “소이켄 선생님은 잠들었어. 우리 둘이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거든. 프 리캄은 열이 내렸어. 소이켄 선생님은…… 몸이 안 좋아. 자테코시스, 사실은 소 이켄 선생님의 아이가 죽었어. 오늘 아침 일찍. 기침이나 질병 때문이었겠지. 디 에렌과 위루스는 나아가고 있고, 프 @p 276 리루스는 나빠지지는 않는 것 같고. 우리는 메족스에게 할 수 있는 치료-본국에 서 보면 엉터리지만-는 다 했어. 상처 속으로 뼈를 밀어넣은 다음 최대한 잘 맞 춰놓았어. 불쑥 튀어나오긴 했지만. 이상 물질에 감염된 조짐이 보이질 않는 걸 로 보아 상처를 감염시키는 세트포스 박테리아는 아직 우리 몸을 공격하는 방법 을 모르나봐. 소이켄 선생님이 선장님 얘기는 했어? ” “응. ” “음, 정신을 좀 차린 것 같고, 입을 꼭 다물고는 있지만 있었던 일들이 다 생 각난데. 프리루스를 돌보고 안아주는 것을 보면 케콕스 선생님이 죽은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아. ” “그리고 디에렌은 나아가고 있는 거야? ” “상태가 아주 괜찮아. 정말로. 사실 기침은 멈춘 것 같고 완쾌중이야. ” “나도 그런 것 같아. ” 오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좀더 일찍 상태가 좋아졌더라면……. 휴, 그만하자. 저들이 우리를 어떻게 다룰지 두고 봐야겠지. 불행히도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줬잖아. 노 예로 만드는 것이며. 공포를 이용해 지배하는 것이며……. ” 나는 한숨을 내쉬다가 다른 방식으로 숨을 쉬었더니 머리가 아파 얼굴을 찡그 렸다. “뇌진탕이 있는 것 같은데. ” “당연히 그럴 거야. 어젯밤엔 네 몰골이 말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좀 나아보 인다, 점점 괜찮아지는 것 같아서 기뻐, ” “저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할까? ” @p 277 “아직은 모르겠어. 하지만 알게 되겠지. 참. 라는 이제 ‘님라’라는 칭호로 불려. 내 생각에 님은 무슨 직위 같아. 왕이나 제사장과 비슷한 것 같긴 하지만, 그보다 좀더 높은 직위일 것 같기도 해. 조금 있다 이야기 나누게 되면 그가 어 떻게 할 작정인지 알려주겠지. 그때까지 우릴 살려둔다면 말야. ” “우리를 당장 처형하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릴 죽일 생각은 없는 지도 몰라. 안 그렇겠어? ” 내가 말했다. 머리는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았다. “적어도 우리 모두를 죽일 생각은 없는 거지. 지금 당장은. 문틈으로 계속 엿 보고 있었는데. 자메코시스. 지금은 앞이 보여? ” “차츰 보이기 시작했어. ” 몇 줄의 밝은 빛이 통나무 사이로 비치던 햇살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오투쓰라는 것은 알지만, 감옥에 햇빛이 충분 한데도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신전을 다시 세우고 있어. 타버린 루마스 껍질을 가지고 와서 두 다리로 세워놓은 다음 나머지 다리 하나가 있어야할 자리에 통 나무를 하나 세워놓았어. 그 통나무가 뒷벽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그 앞에는 통 나무랑 돌로 2층 비슷한 것을 만들고선 안에 모신상을 놓았는데. 우리가 도착했 을 때 있었던 것과 거의 비슷해. 그러니까 전통 사상을 회복하기 위한 보수 운 동이라 말할 수 있겠지. 아무튼 내 추측을 말하자면, 우린 잘하면 노예가 되고. 나쁘게 되면 제물이 될 것 같아.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봤자 무슨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들이 알아서 생각해 내겠지. 그런데 메족스는…… .음. 지금 도 정신을 잃은 상태거든. 건강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오래 @p 278 걸릴 거야. 그가 얼마나 빨리 건강을 회복하느냐,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 리느냐에 따라 메족스의 운명이 결정되지. ” 그 뒤로는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오투스는 내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었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늦은 오후 무렵. 다시 깨어났을 때는 몸이 휠씬 더 좋아져 있었다. 그들은 물 을 좀더 가져왔고, 나는 조금이나마 음식을 먹어보려 애를 썼다. 곡식을 삶아 으 깬 것으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먹이던 것과 비슷한 음식이었다. 맛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오투스와 소이켄 선생님, 살아남은 세 아이가 그 음식을 먹고도 괜찮은 것으로 보아 먹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님 라가 잠시 들여다보았다. 예전엔 볼 수 없었던 거들먹거림이 풍겼고. 내 턱 을 들고 눈을 들여다보고 배를 찌르는 그의 태도는 내가 어떤 감정을 품든 상관 없다는 그의 생각을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으로 전달했다. 그는 자신이 보기에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될 만한 일을 할 것이다. 그는 획 하고 자리를 떴다. “저 사람의 달력은 약속들로 가득하겠군 ” 나는 오투스에게 말했다. “몸이 나아가고 있으니까. 일어설 수 있겠어? ” 나는 일어서 보았다. 기운이 없긴 했지만 어지럽지는 않았다. “괜찮은 것 같아. ” “잘 됐네. 메족스의 다리를 한 번 봐줄래? 소이켄 선생님은 아직도 불쌍한 오스캄 생각에 자신이 하는 일에 온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 소이켄 선생님 생각을 하자 매족스의 다리를 살펴봐야겠다는 것이 @p 279 아니라 바로 질문이 튀어나왔다. “우리 의료 기구도 가져갔어? ” “전부 다 가져갔다니까. 게다가 제 상태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은 목에다 지상 비행 기기들의 가운 데다 줄을 꿰어서 걸고 있어. 아마 우리 발신기도 이리저리 분해해서 장신구로 쓰고 있을 거야. ” “나쁜 소식이군. 메족스나 살펴보자. 지금 의식은 있어? ” “이따금씩 뭔가 중얼거리기만 해. 대부분 소이켄 선생님이나 프리캄을 부르 는 소리야. 둘다 여기 있는데도 말이지. 가끔 케콕스 선생님을 부를 때도 있는 데, 정말 견디기 힘들어. 지금 자신이 어디 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 같아. ” 나는 이제 초점이 맞아가고 있고, 이빨이 몇 개 흔들리고 한쪽 귀가 뭉개져 피가 약간 흐르는 것 같긴 했지만 그럭저럭 남을 봐줄 만한 상태인 듯했다. “그래. 그럼 어디 보자. ” 주위를 둘러보니 구석에 앉아 있는 선장님과 바닥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소이켄 선생님이 보였다. 메족스는 똑바로 누워 있었다 아직도 잔기침을 하는 프리캄은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튀루스를 안은 채. 메족스는 얕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심장의 박동이 빨랐다. 피부는 차가웠고. 코는 말라 있었으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가슴 한쪽이 으스러졌다는 사실이었다. “머리를 한두 대 얻어맞은 것 같아. 흉부가 충격을 견뎌냈으면 좋겠는데.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거든. 피를 많이 홀리긴 했지만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 그랬을 거라면 지금쯤 숨이 붙어 있지도 않았을 테니 까. ” @p 280 나는 숨을 깊이 들어마신 뒤 천천히 내뱉었다. 기억이 물밀듯 되살아나고 있었다. 압상과 복합 골절에 대한 지식을 꽤 많이 지니고 있던 나였다. 문제는 그 지식이 별반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뇌 스캔이 나 수혈, 아래 턱과 흥부 사이에 약한 전기 충격을 가해 의식을 되찾게 해야 하 는 이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그의 다리에 부목 을 댈 막대조차 없었다. 나는 몸을 숙여 다리를 살펴보았다. “잘 했는데. ” 적어도 뼈가 공기 중에 노출되지 않았고, 뼈 아래에 새 살이 돋게 하는 유도 막도 정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정상’ 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맞 다면 말이다. 오투스가 말했던 것처럼 감염의 징조는 없었다. 주변의 정황으로 볼 패 저들의 부패균이 아직 우리를 침범하지 못했다는 것은 좋은 징조였다. 나 는 골절된 부위에 손을 얹었다. “손으로 상처를 만져도 괜찮은 거야? ” 오투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보통은 괜찮아. 유도막이 감싸고 있으니까. 영구 기질이 재생되기 전에 다리 가 제대로 놓여 있는지 살펴봐야 해. 제대로 놓여 있으면 좋을 텐데……. 임시 기질을 파열시켜 고치는 것은 힘들고 위험하거든. ” 나는 메족스의 발바닥 밑으로 다른 손을 넣으며 말했다, “메족스야, 깨어 있었다면 정말 아팠을 텐데 의식이 없는 게 다행이다. ” 아주 부드럽게 유도막으로 덮힌 골절 부위를 손으로 눌렀다. 그리고 압력으로 뼈가 부러지면 얼른 손을 놓을 수 있게 준비하고 그의 발을 위로 단단히 밀었 다. 뼈는 압력을 견뎠다. 나는 더 세게 밀었고, @p 281 뼈는 휘지도 않았다. “아주 빠른 속도로 임시 기질이 형성되는 중이야. 2-3일만 지나면 단단해질 것이고 의식을 회복하면 그다지 튼튼하지는 않아도 걸을 수는 있을 거야. 소이 켄 선생님이 접합을 아주 잘 했는데. 뼈 속에 금이 가서 재흡수가 될 때까지 몇 년 동안은 다리를 절테고 다시는 힘껏 달릴 수 없겠지만. 전시 상황에서 이 정 도면 훌릉해. ” 나는 그의 바깥쪽 눈꺼풀을 뒤집고는 귀에 대고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었다. 안쪽 눈꺼풀이 위 아래로 떨리는 테라보시스 반응을 보였다. “괜찮은 거야? ” “현재까지는. 메족스는 뇌 기능이 좀더 강하거든. 다른 쪽도 체크해 보자. ” 다른 쪽도 테라보시스 반응을 보였다. 나는 흥부를 가만가만 살펴보았다. 분명 따끔거렸을 것이다. 팔라스인은 성장하면 볏이되는 두껍고 숱이 많은 터럭뭉치 가 있는데 그것은 빽빽한 그물로 된 혈관이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혈관은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는 얼드복 조직이라는 두꺼운 삐를 통해 두개골을 왔다갔 다 하며 체온을 조절한다. 얼드복 조직이 심하게 부서질 경우, 두개골이 파열되 지 않더라도 조직 내 출혈 때문에 혈전이 생기며 이 혈전이 뇌로 침투하면 끔찍 한 결과를 낳는다. 나는 이미 형성되어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조직들을 흩어놓 을 마음은 없었다. 다만 메족스의 얼드복 조직이 부서졌는지, 손상 부위는 볏 아 랫부분인 뻣뻣하고 짧은 털에 불과한지가 알고 싶었다. 따라서 처음엔 매우 신 중하게 살펴보다가 체계적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허약한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아주 단단한 사람이야. ” @p 282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잖아. ” “흐으으음. 출혈과 충격으로 인한 심한 뇌진탕으로 보이는데. 만약 메족스와 내가 똑같은 힘으로 강타당하면. 메족스의 상태가 더 심하게 되지. 그게 바로 슬 라스인과 팔라스인의 중요한 차이점이야. 혈전이 생기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얼 드복이 압박당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뇌에서 압력파가 발생했을 거야. 지금 다리와 머리의 상태를 생각해 본다면 어떤 면에선 의식이 없는 게 다행이지. 메 족스에게 물 먹여봤어? ” “좀 힘들긴 했지만, 먹였어. 입이 촉촉해질 때까지 물로 문질러줬더니 반사적 으로 입을 빨더라구 그런 식으로 두 모금 정도 먹이는 데 아마 하루의 8분의 1 이상은 걸렸을 거야. ” “잘했어. 그 때문에 살아 있는 거니까. 저 사람들이 더이상의 상처를 가하지 않는다면, 메족스는 아마 건강을 회복할 거야. ” “완전히 회복될까? ” “글쎄. 지금보다는 휠씬 좋아지겠지만. 뒷일은 신밖에 몰라. ” 그때 소이켄 선생님이 눈을 떴고. 함께 메족스를 살펴봤다. ‘뇌진탕 증세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니’ 하며 그녀는 씩씩댔지만. 어 쨌든 좋은 일이었기에 - 메족스가 건강을 회복하리라는 것과 나 또한 그러리라 는 것 - 대화가 비참해지지는 않았다. 메족스와 나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마 치고 나자 오랜 만에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그때 보초가 삶은 곡식을 또 가지고 왔는데, 이번엔 고기를 넣어 만든 끈끈한 죽 비슷한 음식이었다. 어떻게 이런 기묘한 맛이 나는지 - 고기 때문인지 양념 때문인지 - 는 알 수 없었지만. 배가 고팠기 때문에 맛이 좀 이상했지만 먹었다. “어쨌든 음식이 점점 나아지고 있네. 아니면 저녁 식사가 늘 이런 @p 283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말라서 죽는 일은 없겠다. ” 식사를 마친 뒤 오투스가 말하자 프리캄도 한숨을 내쉬며 거들었다. “예전과 비교해 보면 상황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 멀리서 쿵쿵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더니 점점 커졌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가 있는 작은 감옥은 새 신전의 한 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신전을 다시 만들었는데, 아주 간단한 공사였을 뿐 아니라 우리 에게서 건물 공사에 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한 뒤니 그럴 법도 했다. 진흙으로 만든 모신상은 예전에 있던 것보다 더 흥측했다. 예전에 탐사기를 모셔놓았던 신전의 제단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새로 만든 벽을 등진 채 사람들이 길게 한 줄로 ‘앞 쪽 현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세트포스인들이 길게 앉아 있는 앞 쪽, 그러니까 신전 벽과 아무 것도 없는 새로운 제단 사이에는 높다란 의자가 있었는데, 그 의자에는 님 라가 앉아 있었 다. 그는 길다란 깃털 모자를 쓰고 온갖 장신구를 달고 있었는데, 장신구 대부분 은 탐사기나 우리의 개인 도구에서 나온 것이었다. 모자는 착륙선 모양으로 루 마스의 전소된 본체를 본뜬 것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도끼를 쥐고 있었다. 소이켄 선생님은 한참을 바라보다 몸을 부르르 떨더니 우리를 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저 도끼가 바로 케콕스를 죽인 도끼일 거야. ” 쿵쿵 하는 육중한 소리가 점점 커졌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현관 앞에 높다랗게 쌓은 장작더미가 희미하게 보였다. 규칙적으로 @p 284 쿵쿵 하는 소리는 세트포스인들이 치는 북소리였는데, 그들은 그 소리에 맞춰 행진하더니 현관 주위로 몰려들었다. 횃불을 들고 뒤를 따라 오던 사람들은 횃 불을 북치는 사람들 주위에 꽃았다. 횃불을 들고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사람이 장작더미에 블을 질렀다. 장작은 순식간에 타올랐고, 매캐한 냄새가 우리 코를 찔렀다. 불꽃이 빛나는 가운데 북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님 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어깨에 무언가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것을 활짝 펴보였다. 오투스가 옆에서 토악질을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님 라가 입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케콕스 선생님의 가죽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머리가 달려 있는 소이켄 선생님은 내 옆에서 울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프리캄은 ‘아닐 거야’ 라는 말만 계속 중얼거렸다. 선장님은 이 광경이 보이지 않는 멀찍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뒤 세트포스 인들이 케콕스 선생님의 시신을 들고왔는데. 사냥감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충격과 분노로 몸이 얼어붙은 나머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쿵쿵 거리는 소 리는 점텀 빨라졌고, 케콕스의 가죽을 걸친 채 님 라가 시신을 잘랐다. 그의 부 관들이 시신을 구웠고. 모여 있던 ‘진정한 부족민’ 이 모두 먹었다. 이는 모두 하루의 8분의 1이 걸렸다. 평생을 같이했던 친구의 몸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자 나는 마침내 토악질을 했고. 울면서 집안 쪽으로 기어들어가 히미해져 가는 의 식을 내버려 두었다. 시신을 다 먹어치운 뒤 뼈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케콕 스 선생님의 가죽은 그 섬뜩한 신전에 몇 년 동안 걸려 있었다. “일어나. 자메코시스, 세트포스인들이 오는 것 같아. ” 내 귀에 대고 오투스가 속삭였다. 나는 즉각 의식이 돌아왔고, 전 @p 285 날 밤의 무시무시한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바깥에서는 세트포스인의 말소 리가 들렸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재잘댔다. 우리를 지키고 있는 보초들이 그 사람들과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이젠 선생님은 신음 소리를 냈다. “메족스를 한 번 깨워보자. 프리캄과 오투스가 부축하고, 나와 자메코시스는 아이들을 안도록 하자. ” 소이켄 선생님이 제안했다. 그리고 소이켄 선생님과 프리캄이 메족스의 어깨 에 손을 넣어 일으키자 그는 심하게 몇 번 기침하더니 나를 올려다 보았다. “자메코시스? ” “나 여기 있어. 메족스, 움직일 수 있겠니? ” 아주 천천히 그는 일어섰다. 아니. 당시로선 최선을 다해 그 비슷한 동작을 취 했다는 편이 옳겠다. “나 계속 여기 있었나봐. 정강이가 불에 덴 듯 화끈거려. ” “복합 골절상을 입었거든. 지금 좋아지고 있어. 세트포스인들이 우릴 가뒀어. 우린 죄수들이지. ” 메족스의 다리를 보며 내가 말했다. “위루스는? ” “아인 괜찮아. 메족스, 네가 정신차린 것을 보니 나도 정신이 든다. 케콕스 선생님이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나? ” 프리캄이 메족스에게 물었다. “저들 손에 죽었지. 사실 기억나진 않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이런 꼴은 아닐 테니까 또 죽은 사람 있어? ” “오스캄. ” 소이켄 선생님이 말힌다. 아이가 죽은 후 그녀가 딸의 이름을 부른 @p 286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무도 모르던 그 순간 호위병 대여섯 명을 거느리고 님 라가 들어왔다. 그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흠, 자네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군. ” 순간 나는 그가 니수어를 매우 또렸이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심 할 여지없이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며 익혔던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출시켰을까? 그는 얼마나 많 은 방면에서 우리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까?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으 리라.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고 싶겠지. 난 자네들의 그 왕국이라는 개념이 아주 마음에 들어. 게다가 그 놀라운 기구들까지. 단 한 가지 잘못됐던 것이 있다면 자네들이 그걸 가지고 있었다는 거지. 이제 그걸 수정했으니 내가 명랑하고 협 조적인 노예였던 것처럼 자네들도 그런 노예가 되어야만 해. 자네들은 내 가족 을 전부 만난 적이 없지? 내게는 자네들이 처음 오던 날 산 채로 태워버렸던 여 자가 낳은 아들이 있지. 아인 운좋게 살아남았거든. 자네들이 이제 더이상 그 아 일 해칠 수 없을테니 이제 아일 소개시켜 주도록 하지. ” 그는 당당하고 분명하게 세트포스어로 말하며 손빽을 쳤다. “이녹? ”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젊지만 나이에 비해 근육이 잘 발달된 생식 가능 연령 에 도달한 세트포스인이었다. ‘라가 후계자를 기르기 시작하는구나. ’ 나는 흔자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처럼 수명이 짧으면 - 이 마을에 @p 287 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그들 식으로 치면 마흔, 우리 식으로 하면 서른 여 섯이 안 됐다 - 가능한 한 빨리 후계자를 키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에게 니수어를 가르치도록 해. 아이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란 말이다. 이 아인 내 뒤를 이어 님이 돼서 수많은 노예를 거느린 위대한 왕국을 다스릴 것이다. 자네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이 아이도 모두 알고 있어야 말이 되겠지. ”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뒤 님 라는 아이를 남겨둔 채 떠났다. 이녹은 아버지처럼 언어적 소질을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가르칠수록 억양이 좋아졌고 알아들을 만하게 됐다. 8일이 여러 번 지날수록 나는 이녹의 선생님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님 라의 위 대한 궁전 옆 감방에서 옛날부터 지내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었다. 궁전은 우 리가 예전에 지내던 집으로. 불에 타지 않았던 것이다. 검댕으로 안 쪽 벽이 까 맣게 변하긴 했지만, 그 집은 이제 하늘의 신에게서 빼앗은 구릭스와 함께 이제 님 라의 소유가 되어 있었다. 그해 늦은 봄, 나는 ‘진정한 부족민’이 인접해 있던 ‘쥐 부족민’ , ‘뱀 먹는 부족민’ , ‘못난이 여자부족민’ 등을 정복하여 노예로 만들었다는 소식 을 들었다. “편협이라는 불쾌한 태도를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의 문화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군 그래. ” 이녹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오투스는 내개 중얼거렸다. 그해 여름 디에렌이 처음으로 내뱉은 단어는 ‘엄마’ 였다. 니수 어가 아닌 ‘진정한 부족민’ 의 언어로. 어쨌든 우리는 기분이 짜릿했다. @p 288 영원히 사라진 착륙선 구릭스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녹을 가리치는 일에 전력을 쏟 았다. 그는 꽤 총명했고, 우리와 매우 잘 어울려 지냈다. 다만 한 가지. 그는 우 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하나도 믿지 않았다. 세상은 분명히 평평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태양이 세트포스 주변을 돌고, 하늘 너머에는 다른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별들은 다 조그맣다고 믿었다. 때문에 구릭스가 그 별에서 날아왔을 리 없다는 식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통찰력을 물려받아 우리의 몸이 피와 살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을 눈치챘다. 또한 라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진정한 부족민’ 들의 손에 정복 당한 신이나 악마로 알고 있으며 더더욱 쓸모가 있다는 사실 또한 눈치챘다. 이녹은 이야깃꾼들로부터 어느 정도 교육받은 상태였다. 그는 남서쪽에 있는 큰 강가에 살던 사람들의 전설을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 @p 289 는 ‘뱀 먹는 부족민’ 에게서 들은 것으로. ‘뱀 먹는 부족민’ 은 다시 이웃 인 ‘개 부족민’ 에게서, 그 ‘개 부족민’ 은 다시 이웃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쪽과 북쪽에서 드문드문 찾아왔다는 ‘물을 건너는 사람들’ 에 관한 애매모호한 이야기도, 일정한 거처 없이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살았다는 ‘ 여행하는 사람들’ 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이러한 교육 때문에 - ‘진정한 부족민’ 에게는 최상의 교육이었 다 - 이녹은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믿질 않았다. 이 녹이 생각하는 한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우리도 그 가운데 한 사람들에 불과한 것이다. 조만간 우리는 거짓말을 그만 두고 우리가 어디서 왔 는지 알려줄 테고, 그렇게 되면 그는 아버지와 함께 구릭스를 타고 신기한 물건 들이 많은 니수를 정복하러 갈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는 우리가 어디서 왔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지만. 우리의 역사이야기는 아주 좋 아했다. 밤마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해 주는 시간이 인기 있는 것을 보면 다른 ‘진정한 부족민‘ 들도 그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 았다. 이녹에게 니수어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세 가지 주요 고대 슬라스어는 가르쳐주지 않고 밤이면 상대방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그 언어 를 사용했다. 한 해가 또 지났다. 메족스는 몸이 더 튼튼해졌고, 살아남은 세 아이는 잘 자 랐으며, 프리캄과 오투스는 다시 아이를 가졌다. 님 라는 소이켄 선생님과 선장 님 또한 조만간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못을 박았지만, 메족스나 나는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녹에게 그 두 사람이 어머니라고 말을 했지만 그 말은 @p 290 곧(닮은 대로 짝을 지어) 선장님이 내 아이를 가져야 하고, 소이켄 선생님은 메 족스의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을 뿐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주 오랫동안 보살펴 주어야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진정한 우정이라는 것이 존재한 것인지, 이녹과 메족스는 아주 가까워졌다. 내가 우려했던 것처럼 결국 메족스는 영원히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는 하나도 아프지 않으니까 걱정할 필 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와코펨 조모스 호로 돌아가 수술 도구로 다리를 부러뜨린 뒤 다시 만들지 않는 한 그는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는 있겠지만 달리 거나 뛸 수 없었다. 이녹이 님 라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고. 우리들 대부분이 인 질로 남아 있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허락은 떨어지지 않았다. 보초가 그다지 가까이 있지 않은 밤이면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누워 리워드 섬 슬라스어로 서로에게 말했다. 살아남은 우리 어른 여섯 명에게 있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 명의 아이를 데리고 구릭스에 오를 수만 있다면 다시 안전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트토스인들이 문조차 건드리지 못한 구릭 스는 언제든지 출발할 준비를 갖춘 채 그 자리에 있었다 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구릭스야말로 우리가 빠져나갈 유일한 방도라는 것 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한꺼번에 두 사람 이상이 구금에서 풀려나는 경우도 없었다. “저한테 아이디어가 하나 있어요. 다들 이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메족스가 먼저 말했다. “똑똑한 아이지. ” 소이켄 선생님이 말했다. @p 291 “다른 상황에서 만났더라면 그 아일 좋아했을텐데. ” 오투스도 거들고 나섰다. 프리캄도 맞장구쳤다. “속이 깊은데다가 또 정말 똑똑하지. 위루스나 디에렌이랑 얼마나 잘 노는지 봤어? 내 말은, 아이들이 곧 이녹을 따르게 될 테고, 아이들이 다 자랄 때까지 이곳에 머물게 된다면, 가장 충성스런 노예가 되리라는 거지. 교활한 아이라니 까. ” 나도 한마디 덧붙였다. “글쎄. 내가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녹은 라보다 훨씬 더 호기심이 많고. 대부분 ‘진정한 부족민’ 사람들보다 넓은 세상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아. 그는 모든 것을 배을 수 있는 아이야. ” 메족스는 볏을 긁었다. 뇌진탕이 있은 뒤 볏이 비뚤게 자랐기 때문에 절름거 리는 다리까지 더하면 늘 오른쪽으로 넘어질 듯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그 아이가 과연 우주 여행을 하고 싶어할 까? ” 우리는 입을 떡 벌린 채 메족스를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세요. 그 아이와 함께라면 우린 어디든지 갈 수 있잖습니까. 게다 가 그 아인 구릭스 조정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 “사람들이 우릴 한꺼번에 태을 것 같아? 이 사람들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얼마나 멍청하지 않은 사람들인지 우린 이미 알고 있잖아. ” 오투스가 지적했다. “그럼요. 그렇죠. 하지만, 말하자면 렛슨 비슷한 것을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 세요. 전원을 켜고, 비행 준비를 완료하는 방법들 말입니다. @p 292 우리 가운데 세 사람은 여기 남아 있고 말이죠. 그리고 전원이 켜지고 나면…… 내가 조종간을 잡을 수 있다면, 여기 이 감옥까지 단숨에 날아을 수 있다면……. 어쨌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 문을 딸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지만……. ” 메족스는 신이 난 듯 설명에 열중했다. “이녹은 납치된다거나 자기한테서 착륙선을 빼았는다거나 하면 심하게 반항할 걸. ” 프리캄이 지적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아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눴던 그 아이의 성격이 거론되는 거지. 만약 그 아이더러 우리와 같이 니수로 가자면 그 아인 찬성할까? ” “그럼 우린 찬성할까? 피가 섞인 딸과 니수로 돌아가자고? 미쳤어? 그 아이 한테는 와코펨 조모스 호를 보러 가자고 해야지, 그리고 우린 전에 얘기했던 섬 들 가운데 하나를 식민지로 만들고, 이녹이 원한다면 함께 가도 좋고. 소이젠 선 생님이 말했던 그 섬들 말야. 애초부터 그곳으로 갔어야 했는데. 아이에게 그 정 도의 선택권을 줄 수는 있지만, 받아들일지는 의심스러워. 아무튼 그 아이에게 와코펨 조모스 호를 보여 주고 난 다음. 한밤중에 이 근처 어디다 내려줄 수도 있겠지. 아이가 우릴 도와준다면 - 이왕이면 정직하게 털어놓는 편이 좋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 우주를 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 오투스는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를 설득해 보자는 말이지? ” “그 길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아. 설득에 실패하면 일시로 납치할 수는 있겠지만 - 하지만 친구를 배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싫어. ” @p 293 “달아나기 위해 아일 죽여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 내 질문에 메족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죽여야겠지 , 당연히. ” “좋아, 그럼 그렇게 계획을 세운 거다. 아니 그렇게 계획을 시작하는 거다. ” 그날 이후 우리는 이녹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어느 때보다도 애썼다. 그 일 은 생각보다 쉬웠다. 최근 이녹은 님의 아들로서 상당히 존경받고 있었지만. 많은 친구와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는 그것을 분개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당연한 것 같아.” 족스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고 있는 이녹을 기다리던 어느 날 아침 오투스에 게 말했다, “라는 이 마을에서 평범한 존재였다가 앞장서는 태도와 용기 덕에 - 우리가 등장했기 때문에 드러난 것이지만 - 님이 된 거잖아. 이녹은 몇 년 동안 평범한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게다가 존경받을 만한 방법도 없었지. 이곳에서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무기를 잘 다루어야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는데, 이녹은 그 또래 아이치곤 덩치도 크지 않고. 운동 신경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잖아. 이제 우리를 잡은 덕에 아버지가 님이 됐고, 그 아인 존경을 받게 됐지만 모두 다 아 버지의 후광을 업은 것이지. 그러니 그 아인 친구들 가운데 자신을 진정으로 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거지. ” 이녹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메족스 만큼은 특별한 친구로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오투스와 그 아이를 기다리다 보니 그는 메족스 를 데리고 님 라에게 다가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p 294 메족스는 통증 때문에 발을 잘 펼 수 없을 뿐더러 한쪽 다리가 짧았기 때문에 걸음걸이가 이상하고 불안했다. 게다가 조금만 걸어도 쉽게 지쳤다. 언젠가는 내 게 사실은 와코펨 조모스 호로 돌아가서 다리를 다시 짜맞추었으면 좋겠다고 말 한 적도 있다. 어쨌든 조만간 우리는 어떤 조처를 취할 것이었다. 메족르와 이녹은 예전과 달리 오랫동안 님 라와 이야기를 나눴고, 그들이 우 리가 있는 쪽으로 을 때 님 라도 따라왔다. 우리는 님이 지나갈 때마다 절했고. 그는 니수어로 말했다. “일어나도 좋다. 전망 언덕으로 나를 따라오너라. 할 이야기가 많으니. ” 언덕까지는 먼 길이었고. 메족스는 아주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었지만, 라는 자주 멈추어 서서 쉬는 것을 개의치 않는 듯했다. 가는 도중 그는 우리가 이녹 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니수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그곳 황제는 어 떤 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지, 그리고 우리 억사애 데해서도. 그의 억양은 약간 이상했지만 알아들을 만했고, 문법상의 문제는 거의 없었다. 이따금씩 우리는 ‘ 진정한 부족민’ 어로 바꾸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에게 더 큰 야망을 불러일으켰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너희 황제가 얼마나 똑똑해 보이는지……. 이제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은고 하니……. ” 그는 우리가 간단히, 그러나 중요한 사항을 짚어 들려준 이야기에 감탄을 연 발했고. 덕분에 두려움은 어느 정도 가셨다. 언덕 꼭대기에서 둘러보니 주변 국가들이 페허가 되었기 때문에 멀리 있는 다 른 언덕의 꼭대기까지 보였다. 파헤쳐진 돌이 상당히 많았고, 참나무숲은 엉망인 채 들쑥날쑥했다. @p 295 “전설에 따르면 한때 이 지역은 참나무에 덮혀 있었다고 하지. 이젠 심어도 자라질 않아. 늙은 나무들은 뿌리가 깊어 살아남을 수 있지만, 계곡을 제외한 나 머지 땅에선 물이 부족해 어린 나무가 살 수 없어. 언젠가 이곳에선 아무 것도 자라나지 않는 그런 날이 올 것 같구나. 한때는 강이 범람하면 절벽까지 물이 넘쳤다고 하던데, 아무리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도 물이 그렇게 높이 출렁이는 것을 본 사람이 없으니. 옛날 제사장의 말에 따르면 신들이 노여운 나머지 세상 의 대부분을 수몰시켰다고 하던데, 이젠 예전보다 물이 적어진 것 같아.” 오투스가 거들 듯 말했다. “그 추측이 맞는 듯 합니다. 3천 년 전에는……. ” “천이 뭐지? ” 이녹이 물었다. 오투스는 오랫동안 생각을 파다 입을 열었다. “이곳 단어 가운데 천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것 같습니다만, 천은 백의 열 배 입니다. ” 이녹과 라는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그렇게 큰 숫자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어. 우리가 측정하는 대상은 그것보다 다들 작으니까. ” “어쨌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3천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대염해 북 쪽에 있던 땅들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얼음 위를 지나가던 바람이 수 분을 머금은 뒤 이곳 언덕에 부딪치면 그 수분이 비로 내리면서 강을 채우고 나 무를 적시고 물을 그러니까…… 대수층까지 스며들게 했던 것이지요. 대수층이 라 함은 땅 아래로 흐르면서 우물을 채우는 강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나무나 대수층이 보유하고 있는 수분이 강이나 공기를 통해 달아나버리는 수분보다 양 이 적 @p 296 기 때문에, 이제 아주 천천히 이 지역은 수분이 적어지는 겁니다. 따라서 예전보 다 물의 양이 적어졌다는 님 라의 말씀이 맞는 것이지요. ” 자리에 앉는 라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보니 오투스가 한 말이 바로 그가 듣 고 싶어하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아들은 다만 이야깃거리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알 수가 있지? ” “저 높은 곳에서 보면 대지 위로 얼음이 남긴 흔적과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 는 얼음이 보인답니다. 그리고 다른 세상을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해서 얼음에 의해 생긴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구요. 또 흔적이 얼마나 사라졌나를 통해 얼마나 오래 전에 얼음이 녹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지요. ” 이녹도 이젠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헌 사실들을 알게 되다니 즐겁군. ” 라가 그렇다는 듯이 흠 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잡담은 이것으로 그만하지. 우리가 이 언덕에 온 것은 다 이유가 있 으니까. 내 생각엔 여름이 몇 번만 지나면 너회 황제처럼 사해부터 대염해까지, 북의 산에서 남의 사막까지 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있으면 주변의 땅들은 물론이고 저 멀리 지평선까지 볼 수가 있는데, 내 가장 소중한 노예들인 너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통치해야 할 것인지 묻고 싶 다. ” “음, 그렬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 언덕처럼 주위를 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 메족스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던지며 내가 입을 열었다. 메족스도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끼여들었다. @p 297 “저도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 내 생각에 그는 필요 이상으로 충성스런 노예 행세를 하는 것 같았다. “구릭스를 이용하면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찰할 수 있고, 적들을 기습할 수도 있습니다. 그 착륙선을 이용해 적들을 놀라 달아나게 만들 수도 있고, 아니 면 배기 가스로 적지에 불을 지를 수도 있고……. ” “나는 적지에 불을 지르로 싶진 않아. 그들의 재산과 아름다운 여자들을 모 두 손에 넣고 싶단 말이다. 너희 케콕스는 너무 피에 굶주린 자였어. 너는 전술 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겠구나. 너희 황제가 그렇게 많은 나라들을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그 멍청한 제안만 제외한다면 나머진 아 주 쓸만하구나. 그걸 이용하면 적들을 이런 언덕으로 몰아놓은 다음 반항하는 자들을 산 채로 태워버릴 수도 있겠군. 그럼 나중에 그들을 처형하는 수고도 덜 수 있을 테고. 게다가 살아남은 자들은 우리를 위해 일을 하도록 만들 수도 있 을 테니. ” “아버지, 그건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특히 적들의 위치를 빨리 파악할 수 있 게 되면. 그들이 오랜 여행으로 지친 반면 우리들은 쉬면서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예전처럼 전장에서 마주치는 대신에 그들이 이동하는 길 을 급습한다면 많은 적들을 사살할 수 있을 겁니다. ” 라는 손으로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세트포스인들에겐 그러한 동작이 따스 한 동의를 뜻한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깨달았다. “정말 좋은 생각이구나. 자, 그렇다면 난 명령을 내려야 하니 구릭스를 운전 할 사람은 내 아들이 되겠군. 너희들은 모두 내 아들에게 비행 방법을 가르치도 록. 하지만 제정신인 노예라면 기회가 있을 때 @p 298 마다 도망치려 할 것이 뻔하니까 내 아들이 비행 강습을 받는 동안 그 강습과 상관없는 사람들은 감옥에 있거나 인질로 삼아 내가 직접 감시할 것이다. ”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이 소식을 전하자 모두들 환호했다. 아직 탈출한 것 은 아니었지만, 이제 정기적으로 착륙선의 조종간을 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착 륙선 내에른 지상에서 궤도까지 수천 번 이착륙을 거듭할 수 있을 만큼 반물질 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비행 횟수가 잦을 수록 감시는 소흘해질 것이고, 그런 순간이 다가을 때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우리는 와코펨 조모스 호로 돌아갈 것이다. 그날 밤 잠들기 직전 이녹은 나를 찾아와 언덕 위로 데려가더니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했다. 잠시 뒤 지평선 위로 밝은 별이 하나 떠오르더니 천체를 가 로질러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에 새로운 별이 나타나 움직이기 시작하면 분명 약간 신경이 쓰일 겁니 다. ” “저게 무언지 아니? ” “저희들이 니수에서 타고 온 우주선입니다. 뱃속에다 착륙선을 넣을 정도로 크지요. 하루 동안 세상을 여럴 번 돌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보 이는 겁니다. 그리고 빛을 발하는 이유는 아주 높이 떠 있어서 세트포스의 그늘 로 가려지지 않기 때문에 태양빛을 받게 돼서 그럴 것이구요.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예들은 이야기도 잘 지어내지. ” 이녹은 이렇게 말했지만, 내가 돛을 가득 펼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강조해가면서(돛을 버렸다는 말은 하지 않고) 와코펨 조모스 호를 아주 자세히 묘사했다. 그리고 그걸로 여행하면 얼마나 재미 @p 299 있는지,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설명을 하는 동안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마침내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그는 내 옆에 조용히 앉은 채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는 와코펨 조모스 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마음 속에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길 빌었다. 비행 연습은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우리가 준비한 속임수는 이녹으로 하여금 세세한 사항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다. 그는 물론이거니와‘진정한 부족민’ 가 운데 어느 누구도 비행 기술을 익히는 데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지 모르기 에 오랜 시간 동안 질질 끌 수 있었다. 나는 거의 하루 동안 그가 문에 달린 숫자 조합 자물쇠의 사용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 우리는 자물쇠 사용법을 나중 에 알려주어야 할까 생각했지만, 자물쇠 그 자체는 비행과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 . 오투스는 그에게 상당한 길이의 컴퓨터 정보 판독물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판독물 가운데 어느 것도 ‘운행 중’ 이외의 정보를 알려주 는 것은 없었다. 소이켄 선생님은 착륙 장치를 꺼냈다 들여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물론 땅 위에 떠 있는 동안에는 실행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가 르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불공평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 는지, 장차 님이 되면 어떨 것인지를 알아 보고, ‘진정한 부족민’ 들에게서 마 음을 돌려 우리에게 향할 수 있게 만들 만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는 니수와 와코펨 조모스 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다. 그는 모 든 이야기에 흠뻑 취해 있는 듯했다. 어떤 이야기는 아버지가 자신의 왕국을 건 설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군사적 , 과학적 지식을 담고 있었고, 어떤 이야기는 자신들과는 다른 풍습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신기하게 들렸다. @p 300 하지만 이녹은 우주선에서의 삶과 니수에서의 삶에 관한 장황한 이야기들을 가장 좋아하는 듯했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우리의 갈망이 이야기 속에 담겼기 때문에 더욱 그럴듯하게 들렸으리라. 복잡한 기계 위에 너무나도 많은 조종간들이 있었지만 이녹은 이해 속도가 빨 랐다. 때문에 구릭스를 실제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야 할 시간이 속속 다 가오고 있었다. 그 말은 곧 그에게 엔진을 켜는 법, 비행 조종간을 작동하는 법, 착륙선 컴퓨터에 임무를 입력하는 법 가운데 하나를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그가 이 세 가지를 모두 익히기 전까지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비행 조종간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녹은 눈에 띄게 초조해 하 며 아버지를 감동시키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성공을 맛 보게 해 주어야 할 시점이었다. 운이 좋으면 그 성공으로 우리에게 더 강한 유 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메족스가 옆에서 엔진을 조종해 주면서 이녹이 처음으로 비행할 날이 왔다. 그날의 ‘임무’는 배가 가스가 미치지 않을 만큼 높이 이륙한 뒤 마을을 한 바 퀴 돌고, 같은 지점에 다시 착륙하는 것이었다. 정복지 족장들이 모두 구릭스를 조종하고 있는 이녹을 볼 수 있도록 몬을 열어둔 채 말이다. 우리들은 님 라와 함께 안전한 곳에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메족스가 이번에 일을 벌이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녹을 믿을 수 있을 만큼 우리 편으로 만들지 못한데다 님의 호위병들 손에서 우리를 구출해 내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 이다. 때문에 이번 비행은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p 301 우리들 뒤로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들었다. 급속히 뻗어나가고 있는 ‘진정한 부족민’ 왕국에 속해 있는 부족장들과 부족민들과 그 시간에 도찰할 수 있었던 이웃 부족민들까지 말이다. 그 가득한 열기는 우리도 느낄 수 있었다. 이녹은 몸을 거의 덜덜 떨고 있는 지경이었다. “모두들 첫 비행에선 겁을 먹지요. 걱정 마십시요.” 나는 그의 긴장을 풀어주고 싶어 한마디 던졌다. “걱정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 그때 님 라가 이녹과 메족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함께 광장을 가로질러 갔다. 메족스는 여느 때보다도 심하게 절룩거렸다. 그는 아침에 다리가 몹시 아프다는 말을 했었다. 몇 걸음 뒤 착륙선을 향해 걸어가던 메족스가 젊은 세트포스인ㅇ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눈에 그 광경은 기묘하게 느껴졌다.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지 팡이를 짚고, 가죽으로 된 엉성한 옷을 입은 젊은 야만인에게 몸을 일부 맡긴 채 마을에서 가장 큰 광장을 가로질러 반짝이는 착륙선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 그들은 구릭스에 올라탄 뒤 점검을 했고-우리가 보통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랫 동안 했지만, 이녹은 그 사실을 몰랐다-이녹이 조종간으로 자리를 옮겨 바치 오 래 전부터 그랬다는 듯 두 개짜리 스틱을 쥐었다. 우리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이녹이 있는 조종사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강조했다. 이녹은 고개를 돌려 메족스에게 엔진을 켜라고 짤막하게 명령 을 내렸고, 그 명령은 니수어였기 때문에 우리와 님 라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알 아듣지 못했는데도, 관중들로부터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이녹의 말투에 따라 반응 @p 302 한 것이리라. 메족스는 정석대로, 아주 느릿느릿 전원을 켰다. 순식간의 이륙으로 님 라와 그 호위병들에게 기습할 때를 대비하여, 착륙 시간이 실제보다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게 만들려 했던 것이다. 땅 위로 그렁그렁하는 아주 낮은 소리가 퍼졌고, 메인 노즐 밑으로 희미한 빛 이 새어나왔다. 착륙선이 착륙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 보였다. 바로 그때 아무 런 예고 없이 이녹이 몸을 돌려 메족스의 목덜미를 잡아 문 밖으로 내동댕이쳤 다. 메족스는 몸길이 보다 네 배나 높은 곳에서 떨어쪄 데굴데굴 구르며 손으로 일어나려 애를 썼다. 그러는 동안 사다리는 접히기 시작했고, 문을 쾅 닫는 모습 을 마지막으로 이녹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하는 짓이야?”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관중들 사이로 오투스가 외쳤다. 메족스는 심한 충격을 받은 것이 역력한 모습으로 일어서더니 지팡이가 없는 상태에서 최대한으로 빨리 우리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저 아인 메족스가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도록 기다릴 거야. 우리는 너희 들이 가르치는 모습을 죽 지켜봤다. 너희들이 필요없는 과정까지 넣어가면서 일 을 천천히 진행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내 아들 이녹은 똑똑하다. 엔진 조종 간이 세 개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 세 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비행 조종간도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인 구릭스를 움직여 보 일 것이다. 남쪽 지평선에 빛나는 별, 너희들이 와코펨 조모스 호라고 하는 그곳 으로 가서 내가 족장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근사한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너희 노예들은 영리해. 하지만 님과 그 아들보다 영리하지 않다는 사실 을 알 @p 303 아야지.” 님 라의 말에 우리는 공포에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한꺼번에 그 많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시간도 없는데다 그 설명을 들어야 할 사람이 없는 마당에. 이제 착륙선이나 이녹을 구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한 나는 고개를 돌려 메족스가 제대로 걷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광장을 가로질러 오 고 있었다. 등 뒤로 화살이 꽂힐 것이라는 생각은 잊은 채 그를 부축하여 사람 들이 있는 안전한 곳으로 최대한 빨리 돌아왔다. 메족스를 등에 걸머진 채 고개 를 돌려보니 니수인들은 모두 아이들을 품에 감ㅆ나 채 엎드려 있었다. 성미가 급한 이녹은 배기 가스가 얼마나 멀리 퍼져나갈지 몰랐던 것 같다. 물 론 그는 조절판을 그냥 활짝 열어버릴 수 없다는 것-컴퓨터가 켜져 있었더라면,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게 컴퓨터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컴퓨터가 없으면 구릭스를 운전할 수 없다 고 생각했다-과 조절판 없이는 착륙선을 원하는 곳으로 운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등 뒤로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구릭스는 이륙했다. 엔진이 낼 수 있는 최대 힘인 7중력으로 이륙한 것이 분명했다. 이녹은 조종간을 놓친 채 바닥 위로 넘 어졌을 것이다. 나는 바닥이 올라와 그를 으스러놓을 때, 두개골 파열이나 기타 여러 손상으로 곱게 죽을 수 있기를 빌었다. 한편 나는 이녹 걱정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메족스와 나는 폭파 지점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등의 털이 온통 그을기 시작했고, 충격으로 바 닥을 뒹굴었다. 통증은 끔찍했고,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p 304 기억나는 것은 오투스가 타고 있는 내 몸의 털을 자기 손으로 미친 듯이 두둘 겼다는 것과 세트포스인들이 불길을 잡기 위해 내몸 위로 흙을 뿌린 것이다. 메 족스는 그것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다. 팔을 잃게 만들었던 끔찍한 화상이나 소이 켄 선생님과 선장님이 불길을 죽이기 위해 도랑 속으로 던져졌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 다. 잠시 틈이 나자 그들은 하늘 너머로 사라져 버린 구릭스를 올려다 보았다. 추축해 보면, 이녹이 바닥 위로 쓰러진 채 조종간을 바꾸지 못했다면 남아 있 던 반물질로 엔진은 며칠 동안 최고 속력으로 움직였을 것이고, 생명 유지 장치 는 무한정 끊임없이 작동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바닥에 엎드린 채 급가속을 견 디어냈다면 구릭스 내에 있는 식량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릭 스는 태양계의 이탈 속도보다 훨씬 빨리 우주 속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부상으 로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주 어디 쯤에서 언젠가는 굶어죽게 되어 있었다. 태 양이나 다른 행성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구릭스는 별들 사이를 떠돌며, 우주로 뛰어들었던 최초의 세트포스인의 잠든 관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생각들은 나중에야 한 것이다. 나는 며칠동안 의식을 잃은 채 지냈으 며,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화상으로 인한 심한 통증이었다. 그 다음 은 메족스가 살아 있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녹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노예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많으니까. @p 305 터네시티 호-클리오 트리고린의 기록 2075년 5월-2076 12월 클리오는 사네토모와 약 한 달 동안을 날마다 함께 지냈는데 그가 청혼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청혼의 순간을 보다 극적으로 만들고 싶어서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사실 결혼에 대해서 지구에서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했지만 지구에 서처럼 야단법석을 떨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메코시스가 남긴 개인 기록 가운데 조잡한 비인칭이 생각났다. 조잡 한 동사형과 비인칭 명사를 섞어 썼다는 사실은 타이버어의 관점에서 볼 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즉, 자메코시스가 모국인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배려 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거나, 자신이 모국인들보다 지위가 약간 낮다 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그가 남긴 기록으 읽은 사람들은 누가 윗사람이고 누가 아랫사 @p 306 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에서는 그런 구분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네모토는 일본어에서 는 어떤 사람이 자기보다 윗사람이고 또 어떤 사람이 아랫사람인지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리오는 그 말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선 조그만 생선 튀김을 집어 소스에 찍은 뒤 밥그릇 위에 얹었다. 그날 저녁, 그들은 1주일마다 한 번씩 그랬듯이 사 네모토의 숙소에서 단 둘이 식사하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글쎄요. 타이버어를 아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건 애매한 문제네요. 하 지만 어쨌든 우리 문명을 이루고 있는 기본 언어조차 배우지 않으려는 바보 같 은 미국 대학생들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옮겨놓아야겠지요. 이제서야 몇 년 전 알고 지냈던 심술궂고 늙은 라틴어 학자가 쏟아놓던 불평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어를 이해하려면 자신이 아는 언어로 번역되길 바라지 말고, 그 언어 를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세네카의 지론이었죠.”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냈나요?” “그 선생님하고는 안 그랬죠. 진정한 사학자도, 진정한 고고학자도 아니었으 니까요. 몇 년 전 다른 과에서 옮겨온 선생님이었는데, 뚱뚱하고 머리가 벗겨진 원숭이 같았어요.” “글쎄요. 타이버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들이 모두 머리가 벗겨진 원숭이처럼 보이진 않나요?” 사네모토가 부드럽게 말했다. “부시시한 사람들은 그렇죠. 글을 좀더 짧게 만들 수 있도록 자메코시스가 자신을 낮춘 상태에서 약간의 조소를 섞으려 했다 @p 307 는 가정 하에 ‘자메코시스의 기록’을 번역해야겠어요. 그는 상당히 자부심 이 강한 데다가 기록 상 어떤 부분에서는 으스대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고국에 있는 타이버인들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정 말 말도 안 되는 가정이긴 하지만 말예요.“ 사네모토가 정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옆 쪽에서 무언가 우스꽝스러운 것이 삐 죽 솟아올랐다. “레이저 배기판이에요. 지금 내 근무 시간이 아니니 다행이군요. 1시간은 걸 려야 ZPE교체가 가능할 텐데. 타이버인들처럼 ZPE 만드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 겠다니까요.” “전 안 그래요. 전 지금 이 상태가 좋은 걸요. 가속 탱크 안에서 시간을 보내 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지난 몇 년 간 생각할 시간이 무한정 많았죠. 게다가 무 슨무슨 위원회 활동 같은 것도 없이 말이죠! 그건 사학자에게 있어 천국이나 다 름없죠.” 클리오가 말했다. “우주 비행사에게도 마찬가지에요. 아니 모든 지성인에게 그렇겠죠. 그것이 바로 우주 비행이 앞으로 인간의 삶에 미치게 될 지대한 영향이라고 할 수도 있 겠구요. 생선 더 드실래요? 아니면 냉동시킬께요.” 사네모토가 덧붙였다. “배가 불러요. 게다가 생선이 더이상 넘어가지 않으니 문화 적응에 실패한 것 같아요.” “그럼 앞으로 7년 동안 뭘 먹고 지내려구요?” “생선을 먹어야겠죠. 하지만 다른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어요.” 클리오는 인정했다. 우주선에 있는 생선은 태래어, 잉어, 농어 등 우주선 선수 제 @p 308 일 앞부분에 있는 탱크에서 살 수 있는 담수어들이었다. 탱크에는 엄청난 양 의 물이 담겨 있어서 우주선의 농장이나 그 아래 있는 숙도들이 방사선에 노출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광속의 3분의 1이 넘는 속력으로 비행하면서 우주선 앞부분과 부딪치는 행성 간 원자들은 방사능을 분출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는 30피트의 물과 조그마한 흙두렁까지 합하면 16피트의 흙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날 밤 사랑을 나눈 뒤 사네모토는 곧 잠이 들었고, 클리오는 그의 옆에 누 워 행복해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번역에 대해 이것저것을 생각했다. 이 거대하고 외로운 진공의 바다를 가로질렀던 타이버인들의 최초의 여행과 우리들의 최초의 여행은 뭔가 달랐다.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둘 다 엄 청난 계획을 동반한 여행이었고, 둘 다 스스로 재밋거리를 찾아갈 만큼 똑똑한 사람들을 파견한 여행이었고.... 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막 잠들려는 순간 그녀의 귓가에 자메코시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그 차이점을 알게 되는 날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몇 주가 흐르고 또 몇 달이 지나갔다. 클리오와 사네모토는 함께 보내는 시간 은 더 많아졌다. 그녀는 테네시티 호의 사람들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20세기 미국에 있었던 가장 우스꽝스러운 제도, 즉 고등학교제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 에 대해 묘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서는 일을 처리할 시간들도 넉넉했다. 그리고 스스로 생 @p 309 활비를 벌어야 할 필요도 없었기에 은밀한 호기심과 관계를 즐길 시간이 많았 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당시 고등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미치게 만들 고, 결국 남는 시간 모두를 광기를 달래는 데 쏟아붓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인공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 시 멈추어 트리 꼭대기에 별을 달까 천사를 달까 고민했는데, 그녀의 숙소에는 트리를 놓을 만한 곳이 딱 한 군데밖에 없었다. 해마다 집에서 만든 장식품을 모두 꺼내 장식하곤 했기에, 그 고민이야말로 유일한 고민이었다. 2075년의 크리스마스도, 2069년이나 2070년, 아니 여행이 시 작된 뒤 해마다 찾아오던 크리스마스와 별반 다른 점이 없다.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사네모토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돌 아보지도 않은 채 들어오라고 말했다. 등 뒤에서 조그맣게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것 가운데 제일 못 생긴 나무인것 같은데요.” 그가 말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봐요, 전 마트 출신이잖아요. 제 고향에는 이런 나무 밖에 없었다구요. 게 다가 이 나무는 적어도 더이상 자라지 못하게끔 고문을 할 필요도 없는 나무니 까요. 들어오세요. 스토브 위에 스프가 있는데, 간좀 다시 봐 줘야 할 것 같은데 요.” 그녀가 별을 트리 꼭대기에 달고 있을 때 그는 스프를 두세 번 마셨다. @p 310 “소금만 좀더 넣으면 되겠어요. 다른 건 다 괜찮구요. 솜씨가 점점 좋아지고 있네요. 자, 오늘 새로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말이죠. 제타 투카네의 다섯 번째 행성 대기권 내에서 자유산소가 발견됐답니다. 그 사람들은 아홉 개 행성 에 대지 생성을 시도한 결과 두 곳에서만 실패한 것 같아요.” “열 군데 실험한 결과 세 군데에서 실패했죠.” 클리오가 짚고 넘어갔다. “화성에서 대지 생성을 시도했던 것도 포함시켜야죠.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 고, 대지 생성에 알맞은 도구도 없는 상태였지만 말예요. 어쨌든 새로 발견한 곳 을 살펴보도록 하죠.”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디스플레이 화면을 켜고 이주지 목록을 살펴보았다. “음, 제타 투카네에 도착했던 사람들은 그 행성에다 프레카 레타카라는 이름 을 붙였는데, ‘새로운 희망’,‘다시 한 번의 기회’,‘더 나은 시도’라는 뜻 이에요. 적어도 그 사람들의 시도는 좋았던 것 같군요.” “그 사람들 자신한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한테는 하나의 희망을 준 셈이죠. 어쨌든 이 발견 때문에 목록이 점점 더 길어지겠군요. 그런데 두 행 성에서는 왜 실패했는지 모르겠네요?” 사네모토가 말했다. 클리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닌지도 몰라요. 충돌 방지 장치가 고장나면서 바위에 부딪쳐 하늘 위에서 산산조각나 버렸는지도 모르죠. ZPE가 영원히 고장나 버리 면서 그들의 후손이 아직도 빠른 속도로 움지경 다니며 몇 천 광년 떨어진 곳에 서 헤매고 있는지 @p 311 도 모르구요. 재수가 없는 경우도 있잖아요.” “고대 타이버어를 번역하고 있는 사람다운 말이군요. 일은 얼마나 진척됐어 요?” “아, 세트포스에 도착한 곳까지 됐어요. 그러니까 지구에 도착한 부분까지요. 타이버식 이름을 사용해서 대학생들에게 타이버어의 맛은 보게 해줘야겠다고 생 각하고 있거든요.” 그녀는 그에게서 와인과 잔을 건네 받아 따뜻한 빵과 수프가 있는 쪽 옆에 놓 았다. “저녁 식사 준비 끝. 참, 그런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떻게 해서 이곳 사람들은 누구는 누구랑 자고, 누구는 가장 친한 친구고, 누구는 또 그렇지 않고 이런 식의 파벌이 생기지 않는거죠? 여긴 고전적인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 잖아요. 소일할 시간도 많은 데다 각 물질의 상태에 대해서는 만반의 조치가 되 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고, 그런데 어떻게 어른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마냥 이러저리 얽혀 있지 않은 걸까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심리 검사 때문이겠죠? 아마도?” “그 말도 안 되는 작은 테스트 대문이라구요? 그것 때문이라니....” “아니, 내 말은 스스로 검사한다는 뜻이에요. 몇 년 동안 매달려 있을 만큼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전까진 우주선 승무원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거 아시 죠? 게다가 사람들은 프로젝트의 질을 매우 중시하죠.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 들은 다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보다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죠. 보통은 그래요. 하지만 난 저녁 식사 뒤 최소한 10분 동안은 당신을 멍하니 바라볼 생 각입니다. 당신은 정말 멍하니 바라볼 만한 사람이죠. @p 312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멍하니 보고싶은 사람이에요. 당신은.“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데까지 가기 전에 그만 두도록 해요. 당신이 하는 유머는 예측 가능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내 유머를 좋아하죠?” “어느 정도까지는요. 당신이 내 요리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녁 준비가 됐으니 먹을까요?” 수프를 먹으며 그가 말했다. “이건 심각하게 하는 말인데, 이런 식으로 탐사하니까 초기보다 발견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식이 어떤 식인데요?” “충분한 여유와 함께 똑똑한 사람들을 파견하는 식이요.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거나 독창적이지 않은 사람들한테나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게 고통이죠. 훌륭한 사람들은 늘 시간을 잘 활용해 왔잖아요. 여긴 온통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다른 행성계를 탐험하고 우리보다 더 위대했던 고대 유적들을 둘 러보는 임무를 실행하고 있죠. 광속이 제한되어 있는 데다가 엄청나게 먼 곳으 로 가는 여행이기 때문에 그 행성계에 도착하려면 10년 이상이 걸릴 겁니다. 현 재 이 우주선의 속력이라면 지구에서 달까지 4초 정도 밖에 안 거리는 데다가 속력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도 지금 몇 년째 여행을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몇년은 더 해야 하죠. 게다가 물리학의 온갖 이론에 따르면, 광속은 절대적인 것 으로 광속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행 성까지 가려면 언제나 몇 년이라는 @p 313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죠. 그 시간 동안 우린 자신을 계발할 수 있고,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한층 성장하게 되는 겁니다. 즉, 다른 행성에 도착할 때쯤이면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잦추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콜롬부스나 마젤란, 아니 면 켑틴 쿡과 함께 여행했던 선원들보다, 심지어는 대부분의 우주 비행사보다 잘 준비되어 있으리란 말입니다. 다른 행성으로 여행하는 데 드는 시간은 인간 의 수명으로 따지면 극히 일부분에 해당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예전엔 정신적으 로나 육체적으로 그 여행의 혹독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면 아무리 나이가 많 은 사람이라도 파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성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야만 해요.” 그녀는 미소지었다. “그래요, 맞아요.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전과 똑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서로 더욱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되었고, 지식도 더 많아졌어요. 그리고 지적 능력도 풍부해졌고.” 그가 말했다. “더 현명해졌다는 게 가장 적합한 말일 것 같네요. 사실 이 여행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이를 기르는 일이었어요.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 면 부모가 되면서 성숙해 지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 성장하는 아이는 분명 시작 부터 세상을 앞서가게 될 테니까요, 안 그래요?” 클리오는 뭔가 대답할 말이 있었지만, 사네모토가 청혼하려는 것이라 생각했 기 때문에 다음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사네모토는 자신의 쓸데없는 생각에 대꾸해 주길 바랐던 것뿐이었고, 기회는 지나가 버렸다. @p 314 그날 밤, 이리저리 뒤척이다 자신이 만약 고등학생 수준이었다면, 자신의 예상 과는 달리 사네모토가 청혼하지 않았을 때 실망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대화에 진전이 없자 실망하긴 했었지만, 그다지 크게 실망한 것은 아니 었다. ‘휴일이 끝난 뒤, 아니 ‘자메코시스의 기록’을 몇 장 더 끝낸 뒤에도 그가 청혼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지.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으면 말야’하 며 꿈나라로 떠날 자세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무슨 좋은 방법이요?” 웅얼거리는 소리로 그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옆으로 더 바짝 다가가며 그녀가 말했다. 2076년 헬로윈에 사네모토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가 문을 열자 마자 말했다. “과자 줄래요, 골탕 먹을래요? 나와 결혼해 주세요.” “그럼 과자를 주는 게 되는 건가요, 아님 골탕을 먹게 되는 건가요?”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물었다. 그때쯤 그녀는 그의 유머에 익숙해졌을 뿐 아니라 휴내내기까지 할 수 있었 다. 사네모토는 그녀의 대답이 ‘좋아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다같이 저녁 먹는 자리에서 결혼 소식을 발표하자 사람들은 모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 약혼한 사이 아니었어요?’라고들 반문해 서 약간 실망하기까지 했다. “안 떨려요?” 사네모토가 물었다. @p 315 “음, 식전에 신랑이 신부 얼굴을 보면 재수없다는 말이 있긴하지만, 그것 말 고는뭐.” 클리오는 머리에 얹은 장식을 다시 한 번 고쳤다. “그건 서양인 신랑한테나 해당되는 말이죠.” 사네모토가 딱 잘라 말했다. “당신은 이제 일본인과 결혼하는 거니까 일본 미신에만 신경쓰면 되요. 그런 데 무슨 신부가 결혼식 전날에도 드레스 완성할 생각은 안 하고 늦도록 책 끝낼 생각만 해요?” “드레스는 완성됐지만,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렇죠. 그런데 무슨 신랑 이 그런 것까지 다 알아요?” “5분 남았어요.” 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며 올사브스키 선장이 말했다. “둘 가운데 어느 사람이 울음을 터트리면서 무효라고 할건가?” “식장을 잘못 찾아오셨나 보네요.” 활짝 웃으며 사네모토가 말했다. “클리오, 정말 예쁘구만. 내가 언제 그런 말 한 적 있던가?” “별로 안 하셨죠. 선장님 예복도 근사한데요.” 선장이 말했다. “이제 시작합니다. 준비 다 되면 식당으로 내려와요.” “어젯밤 정말 ‘자메코시스의 기록’을 다 끝낸 건가요?” 사네모토가 물었다. “그럼요. 그럼 내가 놀려고 밤 늦게까지 안 자고 있었겠어요? 아무튼 신혼 여행 갔다 와선 ‘디에렌의 기록’을 시작할 거에요. 그러면서 다시 역사 속으로 파묻혀 들어가는 거죠. 하지만 신혼 여행을 떠나 기 전에 슬슬 결혼식을 시작해야겠죠?” 결혼식은 간단했다. 하객이라고 해야 우주선 안에 있는 사람들 @p 316 이 전부였다. 신혼 부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신혼 여행실’-사네모토가 살던 방을 친구 가 꾸며 주었다-을 찾아갔다. 파티는 어느 정도 계속됐고-오랜만에 열리는 파티 였다-사네모토와 클리오는 당연히 조금 일찍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그들은 이제 크기가 두 배로 된 방에 꼭 껴안은 채 누워 있었다. 사 네모토 옆 방에 살고 있던 사람이 클리오가 살던 곳으로 이사했다. 그들은 그 전날 벽을 허무느라 오랫동안 애를 썼다. 사네모토가 말했다. “자, 마침내 신혼 여행지에 도착했습니다. 올사브스키 선장이 하는 말이 오늘 아침까지 우린 142,160 천문 단위를 여행했다고 하더군요. 최초 1백 천문 단위를 여행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렸는데, 이젠 하루에 거의 1백 단위를 여행한다니까 요. 이젠 토성의 궤도를 한바퀴 도는 데 다섯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데도 목 적지까지는 앞으로 5년이 남아 있다니....” 사네모토의 목소리는 이미 잦아들었고, 클리오를 감싸안으며 중얼거렸다. “다른 부부들도 결혼식날 밤에 너무나도 공허한 공간에서 지내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보통 그런 얘기는 나중에들 하지요.” 클리오가 말했다. “아무튼 이제 절반을 가까스로 넘긴 것 같아요. 선장의 말에 따르면 132,000 천문 단위만 더 가면 된다고 하니. 목적지에 도착하면 날 깨워줘요.”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꿈나라로 떠났다. @p 317 클리오는 누운 채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오랜 연애 기간과 짧은 약혼 기간, 비좁은 공간, 이런 작은 사회 속에서 살다 보면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함께 살겠다는 결심을 내리기까지 심사숙 고해야 하지만, 일단 결심을 내리고 나면 실행에 옮기기는 매우 쉬웠다. 그 기간 동안 그녀는 ‘자메코시스의 기록’번역을 끝내기 위해 ‘달에서 별 까지’작업을 미뤘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있는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테네시티 호는 현재 광 속의 55퍼센트, 1초에 지구의 적도를 네 바퀴 돌수 있을 만한 속력으로 우주를 비행하고 있지만, 그런 엄청난 속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도 켄타우르스 좌 알파 성까지는 이제야 절반 남짓 다가갔다. 그리고 광속의 거의 75퍼센트에 달하는 속력으로 움직이게 될 2년 한 달 뒤에야 제동을 시작할 것이다. 그때서야 그들 은 타이버인들의 자기 루프 브레이크를 본떠 만든 브레이크의 성능을 실험하게 되리라. 이전에도 무인 탐사기로 오십 개 이상의 브레이크를 실험해 보기는 했지만, 직접 사용해 보기 전까지는 자기 루프의 효과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 없었다. 10개월 반 이내에 그들은 켄타우르스 좌 알파 성계의 가장자리라고 말할 수 있는 곳, 으르트 성운의 가장자리와 켄타우르스 좌 프록시마 성 궤도를 지나치 게 될 것이다. 프록시마 성은 알파 성 A와 B가 서로를 영원히 선회하고 있는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채 일정한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는 희미한 친구라 할 수 있는데, 물론 알파 성 A, B와는 결코 가깝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제동을 시작하게 되면 켄카 우르스 좌 알파성계로 진입한 뒤로도 2년이 지난 뒤라야 알파 성계의 나머지 부 @p 318 분들을 거쳐 타이버인들과 만날 수 있다. 따라서 도착까지는 아직 5년이 남아 있었다. 사네모토와 클리오는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메시지를 지구로 송신한 상태였다. 그 말은 타이버에 도착한 뒤 1년이 지나야 허락이든 아니든 그 지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모든 일을 본국에 보고 하고 승낙받는 관행은 곧 사라질 것 같아.’ 잠들기 위해 이리저리 뒤척이며 클 리오는 생각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주변 및 몇 광년 안에 생물이라고는 전혀 없는 컴컴한 진공 속을 상상하기조차 힘든 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작은 금속 점, 터네시티 호 를 그려보았다. 금속 점 안, 어느 작은 방에서 그녀와 사네모토는 함께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신념이 필요한 일을. ‘디에렌이 취했던 행동만큼 엄청난 신념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게다가 틀어져버린 계획하과 본국 에서 지시받을 수 없는 상황까지 생각한다면 그녀는 새로운 일을 어서 빨리 시 작하고 싶었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그녀는 ‘디에렌의 기록’을 뒤로 미루어 놓고 있었는데, 좀더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석기 시대에 노예로 태어나 화성의 태통령이 되었고.... 그녀는 화성의 박물관 에 냉동 보존된 채 전시되어 있던 디에렌의 시신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 의 얼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클리오는 그 혼혈 여 자아이가 자기 눈앞에 서서 무슨 부탁인가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졌 다. 자기한데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것인지, 자기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것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