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 비전 아이작 아시모프 옮긴이 김민식 먼저 내 자신에 대해 잠시 소개하자면, 나는 템포랄 그룹의 일원이다. 사람들 중에는 2030년대라는 가혹한 시대를 살아가는데바빠 템포랄 그룹에대해 모르는 사람이 혹 있을지도 모르겠다. 템포랄 그룹은 현대 과학의 거장들로 이루어진 연구 집단이다. 이 조직은 이 시대의 가장 어려운 난제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우주의 지속적인 팽창 속도와는 다른 속도로 시간 사이를 이동하는 것... 쉽게 얘기해서 바로 시간 여행 말이다. 템포랄 그룹에서 내가 하는 역할은... 글쎄, 사실 나는 물리학자는 아니다. 그냥... 에... 그냥, 그저 그런 멤버라 하고 넘어가자. 나는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템포랄 연구자들이 몰두하고 있는 "시간 속의 가상 경로" 라는 개념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아시다시피 시간 여행을 실행하는데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지구의 물리적 위치가 전체 우주를 기준하여 볼때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을 축으로 돌고, 우리은하는 다시 국부 은하군의 중력 중심 주위를 돌고...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얘긴지 알 것이다. 만약 시간여행을 통해 어제나 내일로 간다면 그 하루동안 지구는 태양 주위 공전궤도 상에서 2백 5십만 킬로를 이동하게 된다. 그동안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도 운동을 하고, 다른 것도 다 움직이게 된다. 고로, 시간 여행은 항상 공간 이동을 동반하게 된다. 나는 '문자 그대로의 시간 여행이 아니라, 4차원의 가상 경로를 통한 여행이라면 이같은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4차원에서라면 시간 상의 어느 위치로 이동하건 물리적본 위치는 그대로 유지되는 경로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같은 생각을 템포랄 학자들에게서 얘기했더니 생각보다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과학의 대가들이 벌인 이론적 근거에대한 열띈 논의를 이 자리에서 설명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것이다. 일단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한편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 일련의 논리전개도 내가 한 말에서 촉발된 것이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방정식으로 풀어보았을때, 에너지에 관련한 일부 변수는 무한대를 넘어서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리가 있는 결론이었다. 만약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그 결과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현재를 완전히 바꿔 놓을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아 과거는 고정된 것이다. 고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에 미래로의 여행과 다시 현재로의귀환은 가능할 것이다. 이같은 생각을 해 냈다고 별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템포랄 팀은 나의 이같은 아이디어들이 다 소발에 쥐잡기 식으로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그같은 아이디어에서이론을 확립시킨 것은 그들의 공이었다. 재반 여건을 고려해 볼 때, 나는 그런 처사에 불만이없었다. 다만 그런 생각들을 해냄으로써, 그들이 나를 이 시대 최고의 두뇌집단에 계속 남아있도록 해주었다는 게 기뻤을 뿐이다. 물론 이론 확립후에도 시간 여행 장치를 고안하는 데에는 수 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 글은 그 과정에 대한 과학적인 논문이 아니다. 이 글은 이번 시간여행 프로젝트에서 일어난 어떤 일을 기술하려는 의도로 씌어진 것이다. 이 글은 미래의 지구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한 기록이지, 동시대인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여진 것은 결코 아니다. 시간 여행을 실험하면서 우리는 몇가지 물체를 성공적으로 미래로 보낼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후에도 우리 템포랄 그룹은 만족할 수 없었다. 모든 실험체는 타임머신을 작동하는 순간 사라졌다. 나중엔 살아있는 동물을보내기 시작했다. 미래로의 아주 짧은 시간 여행을 시도해 보았다. 오분이나 닷새씩 말이다. 실험체들은 오분이나 닷새가 지나 다시 나타났다. 실험동물의 생명이나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미래로의 시간여행이 성공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무언가 미래로 보내고 귀환 후 미래에 대한 결과를 보고 받는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2백년 후의 미래로 보내야 할 겁니다. " 라고 한 템포랄 팀 멤버가 말했다. "요점은 미래를 관찰한 후 결과를 우리에게 보고하는 일입니다. 우리가알아내야 할 사항은 인류의 생존여부와 생활 방식입니다.200년이면 충분할겁니다. 어찌보면 불과 200년후라 할지라도 인류의 생존 확률은 미약합니다. 이미 지난 백년간 지구 환경과 생존여건은 심각하게 악화되었지 않습니까?"이것이 누가 한 말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템포랄 그룹에학자는 수십 명 정도 있는데 일일이 누가 누군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른 학자는 약간 침울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 놓았다. "저는 별로 미래를 알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만약 인류문명이 멸망했다거나 극소수만이 비참한 사태로 생존하고 있다면 어떡합니까? "또 다른 학자가 이것을 제기했다. "어떡하다니요? " " 그런 경우라면, 더 가까운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해서 원인과 대처 방안을 밝혀내야지요. 그리고는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겁니다. 과거와 달리, 미래는 결정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문제는 누구를 보내느냐로 귀착됐다. 수많은 동물 실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템포랄 팀 연구자들 중 선뜻 자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복잡한 인간 두뇌에 시간여행이 혹 무슨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한 탓이다. 혹시라도 지구의 석학들인 그들의 사고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가... 그 중에서 가장 낮은 직급에 있는 멤버는 나였다. 그래서 내가 손을 들어막 자원하려는 순간, 한 사람이 내 표정을 읽고 미리나를 저지했다. " 안돼. 아무리 당신이라도 함부로 모험을 시킬 순 없어."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게 칭찬인가? 욕인가?' 그는 말을 이었다. "해결책은 RG-32호를 보내는 거야." 그거 말 되는군. RG-32호는 구형 로봇이었다. 고로 소모품인 셈이다. 비록 인간에 맞먹는 지능은 없지만, 충분히 주위 현상을 관찰하고 보고할능력은 갖추고 있었다. 로봇이라면 공포를 느끼지 않고, 임무를 착실히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애초에 프로그램 된대로 진실만을 보고하게 될 것이다. 완벽한 선택이야! 그런 생각을 왜 진작에 못하고, 바보같이 자원하려 했을까? 아마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는본능의 발로였겠지. 어찌됐건 RG-32호를 보낸다는 것은 유일한 논리적 결론이었다. 사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아치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보통 로봇의 별명은 제조번호와 비슷한 이름으로 붙여진다.) 아치는 자신이 시간여행을 해야하는 이유나 안전의 보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로봇으로서 이해가능하고 수행가능하다면 어떤 명령이라도 받아 들였다. 시간 여행에 대한 명령을 마치 그는 오른손 치켜들라는 명령에 반응하듯아무런 감정 표시없이 따랐다. 로봇으로써, 이는 당연한일이겠지만. 세부 사항의 전달은 시간이 걸렸다. "일단 미래에 도착하면, 충분히 관찰했다고 느낄 때까지라면 아무리 오래머물러도 좋다." 한 고위 템포랄 학자가 아치에게 일러주었다. "임무를 완수하면, 다시 시간여행 장치로 돌아와 우리가 설명한 방식으로기계를 조작해서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 네가 미래에서 5주를 머무르건, 5년을 지내건 관계없이 우리 눈에 너는 잠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새 다시 나타난 것 처럼 보일 것이야.미래에 도착하면 시간 여행 장치를 안전한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가볍게 제작 되었으니 운반에 별 어려움은 없을것이다. 보관장소를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다른 학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이러한 브리핑은 더복잡하게 되었다. "2백년후에 언어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요?" 물론 이같은 의문에 대한 확실한 답변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미래에서아치의 의사소통 가능 여부를 두고 열띈 논란이 벌어졌다. 결국 과학자 하나가 논란을 매듭지었다. "이것들 봐요. 지난 수세기 동안 영어는 계속해서 세계 공용어로서의 위치를 굳혀왔지요. 앞으로도 그런 추세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지난 2백 년간 영어문법에 있어 의사소통에 지장을 줄만한 커다란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2백년 내에 무슨 큰 변화가 생긴단 말입니까? 설사 생긴다하더라도 언어학자 중에는 '고대 영어'를 구사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그런 이가 없어도 미래 사회를 관찰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습니다. 인류의멸망 여부를 확인하는 데 의사 소통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과학자 한 명이 말했다. "타임머신을 아주 작게 설계해서 옷 속에 숨기는 건 어떨까요? 그렇다면위험한 상황도 쉽게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톡 쏘았다.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런 소형 기계를 만드느라 고생하다 보면 굳이 타임머신을 쓸 필요도 없이 200년이 지나가 버릴 겁니다. 무슨 사고가생겨 아치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다시 시도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는 아치 면전에서 한 말이었지만, 아치는신경 쓰지 않았다. 어찌보면아치는 미지의 시간으로 귀양보내지는 것이고, 또 파괴의 위험까지 무릅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한는 제 3원칙보다 더중요한 것은 인간이 내린 명령 복종을 따라야한다는 로봇의 제 2원칙이었다. 온갖 가능성이 제기되고 한참의 논란 끝에,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는 과학자가 없어지자, 마지막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아치는 로봇 특유의 침착성과 정확성을 갖고 자신의 명령을 암송했다. 또한 타임 머신 작동법 역시 로봇다운 침착성과 정확성으로 터득해 냈다. 당시 일반 대중은 시간 여행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론 검토 작업만이 진행되었을 때엔 비용이 많이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기계 제작 및 실험 단계에 들어가자 많은 돈이 투입되어야 했다. 이 연구 자금이 모두 국민의 세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프로젝트가실패하는 날에는 거센 비난 여론을 감수해야 했다. 시간여행이라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계획에 헛돈을 날린 것을 달가와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템포랄 과학자들은 연구의 진행은국가기밀로 하고 성공했을 때만 결과를 외부에 공표하기로 결정했다. 상황이 그런 지라 과학자들은 모두 이번실험의 성공 여부가 갖는 중대성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실험 장소로서 어느 외딴 사막을 선택했다. 이 장소는 우리의 4호프로젝트에 할당된 국유지였다. 우리가 진행하는 연구의 속성을 감추기 위해 프로젝트 명도 암호화 했다. 그러나 외부의 누군가 머리가 잘 돌아가는사람이 있다면 4차원 여행이란 말을 생각해내 이 프로젝트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낼 법도 했다. 그러나 물론 아직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실험준비가 완료되자 우리는 모두 긴장해서 숨을 죽이고 기계를 지켜봤다. 타임버신 안의 아치는 한 손을 들어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순간 기계가 번쩍 했다. 눈 깜짝할 새라고 표현하기에도 너무나 짧은 찰나의 일이었다. 내가 무엇을 봤는 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다른 사람도 그 찰나의 번쩍임을 보았는지 물어보려다 그만 두었다. 그들이 먼저 말하기 전에는 얘기를 꺼내지 않는게 상책이었다. 그들은 다들 고위 과학자이고 나는 그냥... 그냥 그런 멤버니까... 어쨌든 그때 아치에 모두 정신이 팔려 그 빛에 대해서는 말을 꺼낼 여유도 없었다. 어차피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너무나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우리 눈에 아치는 그 자리에 가만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여행에 분명 성공했다는 데에는 의심의여지가 없었다. 기계의 외부에는 녹이약간 슬었고 색도 바래져 있었다. 아치도 마찬가지였다. 기계에서 나오는 아치는 방금 전의 아치가 아니었다. 훨씬 더 낡아 보였고, 금속의 마모로 표면이 반들반들해 보였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는 그의 눈길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아치가 분명 오랜 세월 후에 다시 우리앞에 나타났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치에게 던져진 첫번째 질문은 세월에 관한 것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렀나? " 아치가 답했다. "5년입니다. 선생님, 철저하게 조사하기 위해 제가 받은 명령어 중에서가장 오랜 기간을 선택했습니다." "다행스런 징조로군." 어느 학자가 말했다. "만약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진 후라면, 정보를 수집하는데 5년이나 걸렸을 이유가 없으니 말이야." 그러나 누구 하나 감히 '아치, 인류는 멸망했나?'라고 물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과학자들은 모두 아치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고, 아치는 로봇 특유의 인내심으로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고요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인간이 먼저 묻고 그 다음에 답변해야한다는 것이 로봇의 예의였다. 이 경우 미래를 본 대로 보고해야한다는 것이 아치의원래 임무였다. 그래서 아치는 곧 자발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아치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미래 세상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인류 사회는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안정과 번영이라구?" 과학자 한명이 반문했다. 그는 의외의 긍정적인 답변에 놀란 듯 했다. "전 세계가 말인가?" "미래 인간들은 제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제가 지구의 전지역을 돌아보고 조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전세계가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이것은 분명 믿기 어려운 보고였다. 2030년현재 현재 거의 모든 과학자들은 인류 문명이 붕괴되고및 지구 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00년후에는 모두 평화와 번영을 누린다니... 과학자들은 다시 차근차근 질문을 던졌다. "나무들과 삼림은 어찌되었나?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데? ""대대적 녹화사업으로 대부분의 열대립이 복원되고 산림은 잘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모든 황무지는 거의 다시 나무로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유전공학덕분에 동물원의 야생동물이나 애완동물의유전자를 토대로 다시 멸종한 생물들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공해도 역시 사라지고 자연이 아름답게 되살아났습니다." "지금 그것 확실한 얘긴가? " 한 과학자가 물었다. "저는 지구의 모든 곳을 가보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청하는 곳은 어디나보여주었습니다." 한명이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아치에게 물었다. "아치, 잘들어. 혹시 인류의 멸망을 보고하면 우리가 충격을 받고 집단히스테리나 자살극이라도 벌일까봐 거짓말을 하는 것 아냐? 인간에게 해를끼쳐선 안된다는 로봇 제1 원칙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그건 잘못 생각한 거야. 너는 우리에게 반드시 진실만을 얘기해야 한다구."아치가 차분히 답했다. "저는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만약 제가 거짓말하고 있다면, 제 양자 두뇌 회로는 혼란을 일으킬것입니다. 회로도를조사해 본다면 제말이 진실이란걸 아실겁니다." "일리있는 얘기군. " 템포랄 학자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아치의 양자 두뇌를 검사해 보았다. 모두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거짓말 탐지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분명, 아치의 양자두뇌는 정상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건 분명 아니었다. 다시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지구의 도시는 어떻게 되었나? "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도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230년대, 도시 인구 집중은 완화되어 도시와 같은 인구 밀도가 높은 촌락의형성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통신 시설이 잘 발달되어 사람들이 굳이 한 곳에 모여살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주는? 우주 탐험은 어떻게 바뀌었나?" "달 개척은 상당히 진척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주식민지의 건설이 한창진행중이었습니다. 지구와 화성 주위 궤도에도 우주 정착지가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소행성대 정착지 개발도 추진되고 있었습니다."아치의 답이었다. "다 들은 얘기 인가? " 한 과학자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 우주 정착지 몇곳은 제가 직접 둘러 보았습니다. 달 기지에서 약 두 달, 그리고 화성 주변 우주기지에서 한 달 정도 지냈습니다. 화성 자체의 식민지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화성에 미개한 생물 종을 이식하고 스스로 진화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소행성지역 식민지에는 가보지못했습니다."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자네의 조사에 협조적이었나?" "제가 받은 인상은 그들이 제가 오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막연한 어떤 전설같은 것을 통해서 말입니다.마치 제가 올것을 기대하고 있던 것 같아 보였습니다." "자네가 과거로 부터 올 줄 알았다고 그들이 직접 말하던가?""그건 아닙니다. 선생님." "그 부분을 물어보았나?" "예, 약간 물어보기 불편했지만, 임무 수행을 위해 궁금한 것은 모두 물어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뚜렷한 답변은 해주지 않았습니다."그때 다른 과학자가 끼어 들었다. "자네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은게 또 있던가?" "좀 있었습니다." 학자 한 명이 이 대목에서 턱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역시 무언가 수상해. 2230년의 인구는 얼마던가? 아치, 그건 얘기해 주던가?" "예, 물어보았더니 지구의 인구는 10억 정도이고 우주 정착민이 1억 5천만명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지구 인구는 안정되어 있고우주 인구는 계속 증가하는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아,그렇군. 하지만 현재의 지구 인구는 거의 100억에 육박하고 그 중 반수는 가난에 찌들어 살고 있지. 어떻게 인구가 200년사이에 10분의 1로 줄어버린거지?" "그 부분도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이에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고했습니다." "불행한 시기라고?" "예." "어떤 면에서 말인가?" "그건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고 말하고는 그이상의 답변은 기피했습니다." 다른 흑인 과학자가 냉정하게 물어보았다. "2230년의 사람들의 용모는 어떻던가?" "용모라니요?" "피부색이나 눈매 말이야." "오늘날과 거의 같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 머리칼이 다른 사람들등 지금처럼 아주 다양한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정확히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평균신장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더 젊고, 강하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용모는 다양했지만영양실조나 비만증에 걸린 사람은 없었습니다." "인종 학살도 없고?" "그런 징후는 못 보았습니다. 물론 범죄나 전쟁, 독재 역시 없었습니다."템포랄 과학자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해피엔딩처럼 들리는데?" "해피엔딩이라, 너무 결론이 좋으니 오히려 의심이 가는군. 무슨 동화책에 나오는 꿈나라같아.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해피엔딩이 나오게 된걸까? 나는 아무래도 나는 그 '불행한 시기'가 마음에 걸려.""이렇게 앉아 마냥 고민할 필요가 있나? 아치를다시 100년이나 50년 후로보내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사하면 되지 않나.""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치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들은 제가 역사상 최초의 시간여행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가 도착한 시간보다 이른 시점에 또다른 시간여행이 이루진다면 자신들의 현재, 즉 미래가 급격히 바뀔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또다른 시간여행시도에 대한 심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과학자들은 토론을 하기 위해 아치를 내보냈다. 사실 나역시 과학자는 아니므로 중요한토론이 있을 때는 나가야 생각했는데 다들 그 부분에 대해 말하는 이가 없어 그냥 남았다. "문제는 인류의 미래가 이상향으로 종결지어졌다는 겁니다. 우리가 다시시간여행을 시도한다면 자칫 그러한 해피엔딩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아치가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치가 사실대로 보고해주어, 우리가실험을 중단해주길 바란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냥 아무 일 없던것 처럼 그대로 둔다면 어차피 그들대에가서는 지구상에 인류의 낙원이 실현되겠지요.""어쩌면, 만약 우리가 다시 무슨 행동을 한다면 잘못된 결과가 생길 수도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불행한 시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쩌면우리가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그 비극을 막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역사의 순리를 막아 궁극적인 낙원의 형성을 방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상황에서 현명한 판단은 시간 여행 계획을 중지하고, 우리의 연구가 실패한 것으로 보고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럴수는 없습니다." "그게 현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일겁니다." "잠깐, 만약 그들이 아치의 도착을 알고있었다면 시간 여행이 성공했다는보고가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요? 그렇다면 실패했다고발표할 수는 없지않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풍문을 통해 아치의 도착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했지 않습니까? 무슨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것 말입니다. 내 생각에 우리의 실험 결과가 외부에 누설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공식 발표는 하지 않는게 낫겠습니다." 며칠동안 그들은 토론을 거듭했다. 논의가 거듭될수록 문제의 심각성은더 커지는것처럼 보였다. 나는 처음부터 그 논의의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전혀 그 논의에서 나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고, 과학자들도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유전공학이 처음 개발될때 과학자들은 혹시라도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나 병균이 생겨나 인류에 해악을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 자신들의 연구 활동을 스스로 제한한 적이 있다. 템포랄 과학자들이 내린 결론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미래에 어떤 불행한 영향이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시간여행 연구를 아예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한 과학자가 이 모든 논의를 결정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인류가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미래를 탐구할 수 있는방법을 개발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도아직 요원한 미래의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단계에서 그러한 숙제의 해결을 좀더 책임있는 후손들의 손에 맡기기로 합시다." 과학자 일동은 모두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로서는 약간 께름직한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아마 내가 이들학자들과는 달리 생각이 깊지 못해서 단순한 호기심을통제하지 못한 탓일까? 한 분야에서 너무 오래 일을 하거나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조심스러워지는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이들과 다르다. 나는 호기심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몰아낼수 없었다. 며칠뒤 여가 시간이 생겨 나는 아치를 찾아갔다. 아치는 인간의 신분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리서 그는 나에게도 다른 이곳의 과학자들처럼 깍듯이 주인 대접을 해줬다. 어차피 그에게는 나도 다른 이들과 같이 복종해야할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래의 인간들은 그들의 선조를 어떻게 생각하던가? 어리석은 원시인으로생각지는 않던가?" 아치가 공손히 답했다. "전혀 그런 기색은 없었습니다. 저를 보더니 무척 흥미로와 했습니다. 저를 볼 때마다 그들은 늘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사실미래에는 로봇이 없기에 그들에게 제가 신기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미래에는 로봇이 없다고?" "예, 그들은 자기들의 시대에는 저같은 로봇이 없다고 말했습니다.""로봇을 전혀 보지도 못했고?" "예, 단 한 대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참 생각 끝에 다시 물었다. "그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던가?" "제 생각에 여러가지 면에서 과거의 인류 문명을 존경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들은 제게 '고속성장의 시대'라는 이름의 박물관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의 도시 전체가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200년 후의 세계에는 도시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곳은 도시가 아니라 박물관입니다. 맨하탄 섬 전체가 유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그곳을 구경시켜 주며여러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제게서 역사적 고증을 받고 싶어 했는데, 저도 맨하탄에는 가보지 못해서 별 도움은 못 되었습니다.그 맨하탄 박물관의 보존 상태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는 눈치였습니다. 다른 몇몇 도시들도 잘 보존되어 있었고과거의 공장이나, 종이로 만든 책이 들어있는 도서관, 과거의 의복과 패션,가구 등이 유물로써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 인류의문명은 크게진보되지는 않았으나, 밝은 미래를 위한 기초를 제공했다고 말했습니다.""어린아이나 아기는 보았나?" "아니요." "아이에 대해 얘기한 적도 없고?" "없었습니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켯다. "내 말 잘들어, 아치..." 내가 만약 템포랄 과학자들보다 확실히 더 잘 아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바로 로봇이었다. 이곳의 과학자들은 로봇을 그냥 단순한 사고를 하는 고철덩어리 정도로 취급했다. 그래서 특별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로봇에게말을 거는 일이 없었다. 특히로봇에게 뭔가 물어본다는 것은 학자의 위신을실추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또 나는 로봇의양자 두뇌의 작동 논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이 전혀눈치채지 못할 방법으로 아치의 사고를 조종할수 있었다. 나는 템포랄 과학자들이 아치를 다시 심문할 일은 없으리라 보았다. 아니있다하더라도, 아치는 이제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치는 자신이 자신의 주인들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할것이다. 한동안 곰곰이 궁리해 보았다. 나는 다음 200년간 생길 일을 어느 정도 추측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내가 도출해낸 결론에 대한 믿음은 커져갔다. 사실 아치를 미래로 보낸 것은 실수였다. 왜냐하면 그는 사고의 폭이 좁은 원시 로봇이기때문이다. 그에게 사람은 그냥 사람이었다. 그는 차이를 구분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인간이 그토록 발달한 문명을 누리고 인간적인 삶을 누릴수 있다는 데 대해 전혀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그에게 인간은 자신의 전지전능한 창조주였으므로. 템포랄 과학자들이 처음 미래 인류가 그토록 고고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아치와달리 그들은 인류의속성을 아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인간이라는 약점 때문에 아치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인류의 희망찬 미래를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치보다, 또 과학자들보다 더 냉철하고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 편이다. 먼저 인구의 문제가 내게는 약간 이상하게 들렸다. 만약 100억의 인구가10억으로 줄만큼 큰 재앙이 있었다면 어떻게 일부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인구분포 얘기를 들어보면 전세계적으로 고르게 생존자가 남았는데 어떤 재앙이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었을까? 살아남은 10억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다른 90억보다 생리적으로 강한종족인가? 더 혹독한 조건을 견뎌낼수 있는 선택받은 인류인가? 게다가 미래의 인류는 평화롭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분명 전쟁을 통해 다른90억을 멸망시킨 사람들이 아니었다. 과연 그러한 사람들이 인류였을까? 그들은 아치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시대에는 아치와 같은 로봇이없다고 했다. 만약 금속형의 로봇이 아닌 안드로이드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만약 미래에가서 인간과 동일한 신체구조와 동일한 화학적 유기성분으로 이루어진 안드로이드의 개발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고철 덩어리 금속형 로봇이 아닌 인간과 똑같이 생긴 유기체 로봇이 미래에 생긴다면, 아치가 그것을 인간과 구분할 수 있었을까? 만약 미래의 어떤 불치병이 만연하여 인류는 소멸하고 인간형로봇만이 남게 된다면? 미래에는 아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인구의 수도 고정적이었다. 아치가 두달동안 달 우주정착지에 가 있는 동안, 아기는 전혀 보지 못했는데 달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다고 했다. 어쩌면 아치가 본 미래 지구의 주인은 인간을 꼭 닮은 로봇일지 모른다. 그러한 섬찝한 추측이 희망을 던져주기도 한다. 환경을 파괴하고 서로를살륙해 온 인류 대신 지구는 로봇이라는 평화롭고 이성적인 주인을 얻게 될것이다. 만약 이러한 인간형 로봇들이 자신들의 소명에 충실하고 과거의 인간들이 저지른 과오를 다시 범하지만 않는다면, 이들은 현존 인류보다 더 나은 문명을 일구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우주의 지적 생명체들이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갔는가? 아마 지구의 주인으로 가장 합리적인 인류의 후손은 로봇일지 모른다. 어찌보면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럼 이러한 사실을 나는 현재의 인류에게 알려야 하는가? 아니면 템포랄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가? 선뜻 결정을 내릴수 없었다. 먼저 그들이 내 말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혹시 믿는다 하더라도 분노에 지구상의 모든 로봇을 파괴해 버릴지 모른다. 그러면 아치가 본 그런 이상향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로봇을 파괴한다고 해서 인류의 멸망을막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인류 멸망 후의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뿐이다. 인류의 꿈을 계승할 새로운 지구의 주인을 없애는 결과가 될 것이다. 나는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치가 본 미래의 낙원이 현실화되기를 바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 글은 200년 동안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가 아치의 도착 시점 약간 전에 미래 지구의 주인들에의해 개봉될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의 인간형 로봇들은 아치가 템포랄 과학자들에게 낙원이 된 지구의 미래를 보고하도록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미래의 시간은 과거에 의해 방해 받지 않고 그대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내 생각을 확신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같은 결론을 도출해낼 수있는 입장에 있다. 나는 템포랄 과학자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고 글머리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나는 또 로봇에 대해서는 그들보다 내가 더 잘안다고 적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로봇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치가 착각할 정도로 인간을 꼭 닮은 최초의 로봇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와 같은 조직에서 배양된 로봇이 계속 개발될 것이고, 이들은 언젠가함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로봇 비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