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보는 로봇 아시모프 단편선 #8 옮긴이 김민식 유에스 로봇사는 소송의 피고로써 배심원단없이 비공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온갖 영향력을 다 동원했다. 원고측인 노스이스턴 대학도 그러한 노력을 굳이 막으려 하지는 않았다. 대학 측은 로봇의 과실이 일반 여론에 미칠 영향을알고 있었다. 그리고 로봇에 반대한 시위는 곧장 전체 과학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정부를 대표한 할로위 쉐인 판사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한 신속하고 조용한 결말을 바라는 편이었다. 유에스 로봇과 학계는 둘다 재판하기 껄끄러운 상대였다. 쉐인 판사가 말문을 열었다. "기자도 방청객도 배심원도 없으니 공식 절차는 생략하고 바로 본론에 들어갑시다." 그는 말을 하면서 슬쩍 웃었다. 그리고는 판사복을 약간 들어올리며 편하게 자세를 취했다. 그의 혈색은 붉으스레하니 좋았고턱은 둥글고 부드러웠다. 그의 양미간과 콧마루는 넓었다. 전반적으로 보아 그의 얼굴은 위엄이 없었고, 판사 자신도 그러한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노스이스턴 대학의 바나바스 H. 굳펠로우 물리학 교수가 처음증인석에 섰다. 그는 증인 선서를 하며 자신의 이름을 우물거렸다. 의례적인 증인 심문을 몇 번 던진후 검사가 자신의 호주머니에 손을 깊속이 찔러넣으며 물었다. "교수님, 로봇 EZ-27호의 고용을 처음 생각하신건 언제의 일입니까? 그리고 그 계기는 무엇입니까?" 굿펠로우 교수의 인색해 보이는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는 유에스 로봇사의 연구부장 알프레드 래닝 박사와 약간의 친분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약간 이례적인 제안을 해 온것은 작년 3월 3일의 일입니다." "2033년 말이지요?" "예." "좋습니다. 계속 말씀해주십시오." 교수는 약간 양미간을 찌푸린채 기억을 되짚으며 증언을 계속했다. 굿펠로우 교수는 마주한 덩치 큰 로봇을 불편한 눈으로 살펴보았다. 그 로봇은 지하에 있는 자재 창고로 방금 막 포장된 채운반되었다. 지구상에서는 항상 로봇을 포장해서 운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는 로봇이 오늘 도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미처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로봇을 대하게 되었다. 3월 3일에 래닝 박사가 그에게 전화 통화를 했고, 당시 래닝 박사의끈질긴 제안을 뿌리치지 못해 결국 이렇게 로봇이 이곳까지 오게된 것이다. 눈 앞에 서있는 로봇의 덩치는 무척 컸다. 알프레드 래닝은 운반 도중 흠집은 나지 않았는지 로봇의 외부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런후 그는 교수에게 몸을 돌렸다. "이것은 로봇 EZ-27호입니다. 같은 모델 중 일반 사용자 용으로 특별 제작된 최초의 로봇입니다." 그는 다시 로봇에게 몸을 돌렸다. "이분은 굿펠로우 교수님이시네, 이지" "안녕하십니까,교수님." 이지는 수동적으로 인사를 했으나 워낙 갑작스런 로봇의 반응에 교수는 얼굴을 붉혔다. 이지의 키는 7피트였고 사람의 외형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는 바로 유에스 로봇사의 주요 판매전략이었다. 그 점과 더불어 양자두뇌 분야의 몇가지 특허권 소유 덕분에 유에스 로봇사는자동기계 시장을 거의 독점할수 있게 되었다. 로봇을 창고로 운반한 두 인부는 나가고, 이제 로봇과 두 사람만 남았다. 교수는 로봇과 래닝을 차례로 쳐다본 후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로봇, 별로 위험하지는 않겠지요?" "인간인 저보다 훨씬 덜 위험하지요. 저는 아무 이유없이 교수님을 때릴 수 있지만, 이지는 그럴수가 없습니다. 로봇의 3원칙은 이미 아시겠지요." "그럼요." "그 원칙은 제작 초기에 로봇의 양자두뇌에 입력됩니다. 로봇의 존재 이유를 기술한 제1원칙은 인간의 생명과 안녕을 위해로봇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합니다." 박사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문제는 그 점을 전 지구인에게 이해시키기가 어렵다는 거지요." "상당히 겁나게 생겼는데요."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기보다는 쓸모가 많은 로봇이란걸 곧 아시게 될겁니다." "별로 확신은 가지 않군요. 말씀을 듣고도 어째 좀..." "이제 곧 실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책을 한권 가져오셨습니까?" "예." "한번 볼수 있을까요?" 굿펠러 교수는 여전히 로봇에서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채허리를 굽혔다. 그리고는 발옆에 놓인 가방에서 책을 집어들었다. 래닝이 그 책을 받아들고는 표지를 살펴보았다. "'전해질 용액의 물리화학'이라, 좋군요.분명 교수님이 무작위로 고른 책이지요? 이 책의 선정에 제가 무슨 제안을 한것도아니고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래닝은 그 책을 EZ-27호에게 넘겼다. 교수가 펄쩍 뛰었다. "안돼요. 그건 귀한 책입니다." 래님이 눈을 살작 치켜떴다. "이지가 힘자랑하려고 책을 북 잡아뜯거나 하려는게 아닙니다. 교수님이나 저 못지않게 책을 소중하게 다룰 겁니다. 이지,일을 시작하게." "감사합니다. 박사님." 이지는 다시 굿펠로우 교수 쪽으로 금속 상체를 슬쩍 돌려 말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교수님." 교수는 약간 멍청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해보게." 기계적이고도 일정한 동작으로 이지는 책을 한쪽한쪽 넘기기시작했다. 그러면서 좌우로 시선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렇게몇분이고 작업을 계속했다. "조명이 너무 어두운데요." 굿펠로우가 중얼거렸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금 뭐하는겁니까?" 굿펠로우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잠시만 기다리면 아시게 됩니다."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갔다. 래닝이 물었다. "어떤가,이지?" 로봇이 답했다. "거의 정확하게 쓰인 책이라 제가 지적할게 별로 없습니다. 27쪽의 스물두번째 줄에 있는 '양승반응'은 '양성반응'의 오식입니다. 32쪽 여섯째 줄에는 반점이 하나 더 들어간 반면, 54쪽의13째줄에는 반점이 필요한데 빠져있습니다. XIV-2번 공식의 더하기 부호는 그 이전 공식과 일관성을 이루려먼 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잠깐, 잠깐!" 교수가 이지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지금 이 로봇이 뭐하는 겁니까, 박사님?" "뭘하는게 아니라 이미 끝마친 거지요. 이지는 방금 이 책의교정을 끝마쳤습니다." "교정을 보았다구요?" "예. 책갈피를 넘긴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책의 내용을 모두 읽고, 철자 맞춤법 문장부호에 관한 모든 실수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어순의 잘못된 배열이나 비일관적인 내용 역시 잡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교정 내용을 글자 하나 틀리지않고 언제까지라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교수의 입은 딱 벌어졌다. 그는 래닝의 곁에서 이지 쪽으로걸음을 내딛다가 다시 황급히 돌아왔다. 그는 팔짱을 끼고 둘을꼼꼼히 지켜보았다. 한참후에야 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당신 말은 이게 교정보는 로봇이라는 거요?" "교정말고 다른 일도 하지요." "그런데 이걸 왜 내게 보여주는 거요?" "교수님이 이지의 사용을 학교측에 추천해주십사 해서 보여드린 겁니다." "교정보는 용도로 말입니까?" "교정말고 다른 일도 하지요." 래닝 박사가 끈기있게 답했다. 교수는 완전히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이건 말도 안됩니다!" "왜요?" "우리 대학이 0.5톤이나 나가는 이 교정용 로봇을 구입할 이유가 없고 또 그럴 여유도 없어요." "이지의 용도는 교정만이 아닙니다. 개략적 내용을 적어주면보고서도 작성하고, 각종 양식에 따라 내용을 기입하고, 각종 문서의 데이타베이스 노릇도 하고, 시험 성적도 매겨주고..." "다 하찮은 일들이오." 래닝이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을 내주신다면 교수님 연구실로가서 좀더 차분하게 다른 기능들에 대해서도 설명드릴수 있습니다. 교수님만 괜찮으시다면요." "나야 괜찮지만..." 창고를 나가려던 굿펠로우 교수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런데 이 로봇은 어떡합니까? 이걸 그냥 여기에 둘 수는 없습니다. 다시 포장해서 가져가셔야 할 겁니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이지는 당분간 여기 그냥 둬도 됩니다." "아무도 없는데 말입니까?" "어떻습니까? 그는 자신이 여기 머물러야 한다는 걸 잘 압니다. 굿펠로우 교수님, 로봇은 인간보다 더 믿을만 하답니다.""그러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 점은 제가 보장합니다. 별써 근무시간도 끝나지 않았습니까? 내일 아침 전까지는 아무도여기 오지 않을 겁니다. 혹 무슨 일이 생긴다면 유에스 로봇사가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지에 대한 로봇 신뢰성 테스트 정도로 생각하십시오." 교수는 마지못해 창고를 나섰다. 그러나 5층에 있는 자신의연구실에서도 교수의 얼굴은 계속 불편해 보였다. 그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흰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래닝 박사님도 아시겠지만, 지구에서의 로봇 사용은 법으로제한되어 있습니다." "물론 법적 문제가 항상 걸리긴 합니다. 공공 장소에서의 로봇의 사용은 금지되어있고, 민간부문에서의 사용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은 교육기관으로서 흔히 정부 시책에 있어 우대를 받습니다. 만약 로봇을 제한된 장소에서학문 관련 목적에만 사용하고, 또 명령자가 로봇 사용에 따른 각종 주의사항을 충실히 지키기만 한다면 법적으로 별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사소한 교정 작업을 위해 그런 수고를 한단 말입니까?" "이지의 사용 용도는 무궁무진합니다, 교수님. 그동안 우리는각종단순 육체 노동으로부터 인간의 수고를 덜기 위해 로봇을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단순 지식 노동이란게 있지 않습니까?유용하고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할 교수님들이 철자 확인을 위해 수고스럽게 2주 동안 교정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로봇이 그러한 작업을 30분만에 대신 해 드리게 된 겁니다. 그게과연 사소한 일입니까?" "그러나 가격이..." "가격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대학에서는EZ-27호를 구입할 수 없습니다. 유에스 로봇사는 제품을 판매하지않습니다. 그러나 대학 측에 1년에 1천달라에 이지를 리스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극초단파 분광기 연속 기록장치보다 더싸게먹히는 비용입니다." 굿펠로우는 할 말을 잃었다. 래닝을 여세를 몰아갔다. "제가 교수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곳의 집행위원회에일단의견을 상정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만약 위원회에서 상세한 사항을 알고싶어한다면 기꺼이 제가 와서 브리핑할 용의가 있습니다." 여전히 의구스런 표정으로 굿펠로우가 말했다. "그럼 다음주 보직 교수 회의때 말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는 미리 확답을 못하갰군요." 래닝이 말했다. "그점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피고측 변호사는 키가 작고 뚱뚱한 편이었다. 약간 위엄을 부리듯 고개를 숙이고 있어 이중턱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편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제 질문할 증인을 한번 쓱 쳐다보고 물었다. "조금 서둘러 동의하신 게 아닙니까?" 굿펠로우 교수가 답했다. "당시에는 래닝 교수에게 더이상 시달리기 싫어서 그런 겁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래닝 씨가 가고 나면 나머지는 내몰라라 하고 말입니까?" "....." "그런데 대학 보직 교수 집행 위원회에 그 안을 상정하기는하셨더군요." "예." "즉 래닝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거지요. 마지못해 따랐기보다는 당시에는 진정으로 이지의 임대를 바라신게 아닙니까?""그냥 공식 절차를 따랐을 뿐입니다." "사실 박사님은 당시에는 지금처럼 로봇에 대해 반감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래닝 박사와 얘기할 때 이미 로봇의 3원칙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말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지를 그냥 그대로 창고에 방치해 두셨지요?" "그건 래닝 박사가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만약 로봇이 약간이라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래닝 박사의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게 아닙니까?" "나는 액면 그대로 믿었을..." 변호사가 갑작스레 말을 잘랐다. "더이상 심문할 게 없습니다." 굳은 표정의 굿펠로우 교수가 자리에 앉았다. 쉐인 판사가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말했다. "사실 나도 로봇 공학에 대해서는 아는게 별로 없소. 래닝 박사, 재판 진행 기록을 위해 로봇 3원칙을 기술해 주시겠소?래닝은 자신의 이름이 갑자기 불리자 적잖이 당황했다. 그는옆자리의 회색 머리를 한 어떤 부인과 한참 얘기를 나누고 있던중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재판장님." 그는 마치 설교를 시작하려는 듯 자세를 가다듬고 설명을 시작했다. "제1법칙, 로봇은 인간을 상해하거나, 인간이 다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제2법칙, 제1법칙에 어긋나지않는 한, 로봇은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제 3법칙, 제1,2법칙에 어긋나지않는 한, 로봇은 항상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좋습니다." 한참 받아적고 있던 판사가 말했다. "이 세가지 법칙은 모든 로봇에게 입력되어 있습니까?" "예, 하나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EZ-27호에도 이 내용은 입력되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어쩌면 방금한 그 말은 증인 선서를 하고 다시 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떤 경우라도 다시 진술할 용의가 있습니다." 래닝 박사는 다시 방청석의 자리에 앉았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회색 머리를 한 중년 부인은 바로 유에스로봇사의 로봇 심리학자인 수잔 캘빈 박사였다. 캘빈 박사는 감정없는 얼굴로 자신의 상사를 쳐다보았다. 사실 캘빈 박사는 모든 인간을 감정없이 대했다. "알프레드, 굿펠로우의 증언이 정확한가요?" "글쎄요, 사실 그는 그당시 로봇에 대해 그렇게까지 불안해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임대조건을 제시했을때 상당히 긍정적인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틀린 부분은 없는것같습니다. 캘빈 박사가 말했다. "차라리 임대료를 1000불 이상으로 불렀으면 더 낳았을텐데요." "어떻게해서든 이지를 대학 측에 빌려주기 위해 가격 면에서는 약간 양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건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적극적이었던것 같습니다. 아마 저들은 우리에게 다른 의도가 있었던 처럼 주장할 겁니다." 래닝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제가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학교 이사회에서했습니다." "그들은 아마 우리에게 이미 인정한 내용말고도 다른 숨겨진의도가 있었던 것처럼 상황을 몰고갈 것입니다." 유에스 로봇사의 창업주의 아들이자 최대주주인 스캇 로버슨씨가 캘빈 박사의 옆좌석에서 몸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왜 이지더러 직접 상황을 설명하도록 하지 않는거요?" "아치가 증언할 입장이 아니라는걸 사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증언하도록 만드시오. 당신은 로봇 심리학자가 아니오? 이지에게 증언하도록 시키시오." "그 결정하도록 하지 않는거요?" "아치가 증언할 입장이 아니라는걸 사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증언하도록 만드시오. 당신은 로봇 심리학자가 아니오? 이지에게 증언하도록 시키시오." "그 결정은 제가 내리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담당한 로봇은자신의 안전을 위험할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가운캘빈 박사의 말에, 로봇슨이 얼굴을 찌푸리며 무어라말하려 했다. 그때 판사가 장내 정숙을 요구하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새로이 증인석에 선 사람은 영어학 학과장이자 대학원장인 프랜시스 J.하트였다. 그는 뚱뚱한 몸집에 보수적인 차림을 하고있었다. 그의 반드르르한 대머리 양옆으로 머리칼이 몇가닥 흘러있었다. 그는 양손을 무릎위에 올려두고 증언석 의자에 편안히자리를 잡고 이따금씩 미소를 흘렸다. 그가 말했다. "로봇 EZ-27호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대학 보직 교수 위원회에서 굿펠로우 교수가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입니다. 그후 작년 4월 10일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특별회의를 소집했고 당시저는 회의 의장이었습니다." "그 특별 회의에 대한 의사진행록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약간 이례적인 모임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공개 회의로 진행하고 의사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 회의에서 다루어진 내용은 무엇입니까?" 하트 원장은 그 회의를 진행하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다른 교수들도 마음이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참석자 중 속이편해 보이는 사람은 래닝 박사뿐이었다. 훌쩍 큰 키에 은발을 한래닝 박사의 모습은 하트로 하여금 앤드류 잭슨의 초상화를 떠올리게 했다. 로봇의 작업 결과가 테이블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고 이지가작성한 도표가 물리화학자 미노트 교수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그 화학자는 이지의 작업물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트가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 로봇이 일상적인 작업을 제대로 수행핼 수 있다는데 의심의 여지는 없는것 같습니다. 나자신 회의전에 이들 서류를 검토해 보았는데 오류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일반 책장보다 3배 정도 긴 프린트 출력물을 들어보였다. 그것은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교정을 보기위해 작성된원고였다. 그 종이의 양쪽 여백에는 교정부호와 내용이 깔끔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원고상의 단어위에 줄이 그어진 경우 그옆에다른 단어가 씌어져 있었는데, 그 필체가 너무나 정교해서프린트 출력한 것과 구분이 안갈 지경이었다. 교정 내용은 두가지 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붉은색 펜으로 쓴 부분은 원저자가실수한 부분을 고친 것이고, 파란색 펜으로 기입한 내용은 프린트 상의 오류였다. 래닝 박사가 말문을 열었다. "사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도 정확한 묘사는 아닙니다. 하트 박사님, 사실 이지의 교정에 틀린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원고의 작성에 관한 한 완벽한 교정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물론 영어 문장이 아닌 원고 내용 자체가 잘못된 경우 그것은 로봇도 잡아내지 못합니다." "그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영어의 다양한 문장 양식과 표현법에 미루어볼때 로봇의 교정이 항상 정확했는지에 대해서는확신할수가 없습니다." "이지의 양자 두뇌에는 그 분야에 관한 모든 규칙이 입력되어있습니다. 교수님도 이지의 잘못은 찾아내지 못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미노트 교수가 이제껏 들여다보던 그래프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래닝 박사님, 문제는 말입니다. 학교의 평판이 나빠질 수도 있는데왜 우리가 굳이 컴퓨터가 아닌 로봇을 고용해야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박사님 회사의 기술로는 충분히 원고 교정을 보는 컴퓨터를 만들어낼수있지 않습니까?" "그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같은 컴퓨터는 입력된 문자를 가지고만 작업할 수 있을 것이고 결과 역시 컴퓨터의 주어진양식으로만 출력될 것입니다. 즉 교정을 보기위해서 문서를 새로 입력하는 작업과 함께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까지 고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나 로봇은 모든 과정을 혼자서 알아서 척척 해내고, 다른 작업들까지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교정용 컴퓨터라면 박사님이 보고계시는 그래프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래닝이 말을 이어갔다. "양자두뇌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것입니다. 로봇은 사람과 똑같이 도구와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압니다.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설득도할 수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로봇과 비교해 보더라도 양자 두뇌가 없는 일반 컴퓨터는 덩치 큰 계산기에 불과합니다." 굿펠로우가 고개를 들고 물어보았다. "만약 우리가 로봇과 대화를 하고 설득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명령이 로봇에게 혼란을 일으킬수 있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아무리 양자두뇌라도 데이타를 무한정 입력할수는 없을 것 아닙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통 5년마다 회사에서 기억된 메모리를 삭제해 줍니다." "회사가 말이오?" "예. 대여한 로봇에 대한 모든 아프터서비스는 저희 회사에서책임집니다. 그것이 저희가 로봇을 직접 판매하지 않고 대여만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일상 작업 수행을 위해서는 일반인도누구나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두뇌의 메모리 삭제와 같은 좀더 복잡한 기능을 위해서는 유에스 로봇사의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물론 일반인도 어떤 사실을 기억에서 지우라고로봇에서 명령할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로봇의 논리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억의 소거를 명하다가는 엉뚱한 부분까지 삭제될 수 있고 로봇의 두뇌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름대로 기억 소거 방지 장치를 내장해 두었습니다. 누군가 고의나 실수로 로봇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면, 쉽게 이는 방지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5년까지는 기억용량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트 학장은 양옆으로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최대한 고르게 퍼기위해 얼마 없는 머리결을 매만졌다. "박사는 분명 우리 대학에 로봇을 들여놓는데 상당한 관심을보이고 계시군요. 아무래도 이것은 유에스 로봇사에게 불리한 대여조건아닙니까? 로봇 한대의 대여에 1년에 천불이면 터무니없이싼 값입니다. 이 거래를 시작으로 다른 대학에 더 비싼 가격에로봇을 들여놓는게 이번 거래의 진짜 목적 아닙니가?" "물론 그런 점도 있습니다." 래닝의 답이었다. "하지만 그럿다 하더라도 거래할 수 있는 대학의 수가 제한되어 있을텐데요. 아무리 봐도 수지가 맞을것 같지 않군요." 래닝은 팔꿈치를 앞으로 끌어당기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쓸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의 로봇에 대한 거부감때문에 현행법상 지구에서 로봇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 정거장이나 행성 정착지에 있어서의 저희 회사의 로봇 대여 사업은 아주 성공적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중요한 것은 회사의 이윤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도 로봇의 사용이 허가된다면 인류의 복리증진에 더욱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변화맛굼 아닙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도 로봇의 사용이 허가된다면 인류의 복리증진에 더욱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변화를 일구어 내기 위해서는 초기의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저희의 생각입니다. 회사에로봇을 도입하려면 노동조합이 즉각 반대하고 나섭니다. 그러나대학의 경우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이지는 교수님 여러분의단순 작업에 대한 부담을 덜어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찬성만하신다면 여러분은 현대판 노예를 장만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전혀윤리적 책임을 느길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지의 작업에 만족하신다면 다른 대학과 연구소도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학계에서 로봇을 받아들인다면 일반 대중의 로봇에 대한 인식 역시 점차적으로 호전될 것입니다." 미노트 교수가 중얼거렸다. "오늘 노스이스턴 대학에서 시작하여, 내일은 전세계 시장을공략한다는 거로군." 화난 얼굴로 래닝이 수잔 캘빈에게 속삭였다. "지금 증언한 것만큼 당시 내가 열성적이거나 저들이 망설인것은 아니었는데! 1년에 1천불이라고 얘기했을때는 금방이라도계약을 하자고 덤빌것 같았어요. 미노트 교수도 이지가 작성한도표가 아주 훌륭하다고 몇번이나 칭찬했고... 하트도 이지의 교정에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고 직접 인정했는데..." 캘빈 박사의 수심에 찬 표정은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저들이 지불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지 그랬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저들이 열심히 가격을 깎아보려 했을텐데 말입니다." "글쎄요." 래닝의 풀죽은 답이었다. 하트 교수에 대한 검사측의 질문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래닝 교수가 떠난후 로봇 EZ-27호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표결에 부치셨지요?" "예."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다수결에 의해 로봇을 대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한 결정이 나오게 된 주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이 질문에 대해 변호인 측이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검찰측이 새로 질문을 했다. "교수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교수님도 찬성쪽에 투표하셨겠지요?" "예 분명 찬성했습니다. 제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래닝 박사의 얘기를 듣고 일반 대중의 그릇된 통념을 깨는것도 학자의본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다시 말하자면 래닝 박사의 말에 설득된 것이군요." "그게 그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는 웅변에 상당히 능했습니다." "더이상 질문할 게 없습니다." 피고측 변호사가 증인석에 가서 한동안 하트 교수의 얼굴을바라보았다. "사실 증인은 당시 EZ-27호의 대여에 상당히 적극적이지 않으셨나요?" "당시 저는 로봇이 제대로 작동만 한다면 쓸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작동만 한다면요? 저는 교수님이 EZ-27호의 작업을면밀히 겆토하신 후 작업 결과에 대해 만족했다고 알고있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당시 문제는 영어 교정이었고 영어학 교수인 내가 그 내용을 검토해 본겁니다." "좋습니다. 당시 결과물에 무슨 불만스러운 점이 있었습니까?당시의 교정원고는 여기 있습니다. 이중 혹시 마음에 안든 내용이 있었다면 지금 지적해 주실 수 있습니까?" "글쎄요..." "간단한 질문입니다. 교수님이 보시기에 문제가 있는 교정이있습니까?" 하트 교수가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로봇이 일단 실수했다하면, 그건 아주 중대한 실수였습니다." "제가 드린 질문에만 대답해 주십시오!" 변호사가 목청을 높였다. "이 원고들중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하트 학장이 각 원고를 세심히 살펴보았다. "아니, 없습니다." "오늘 재판의 원인이 된 사건을 제외하고 EZ-27호가 실수를저지른 적이 있습니까?" "그 사건을 제하고는 없습니다." 피고측 변호사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EZ-27호를 고용할 것인가에 대한 투표의 결과가 다수결에 의한 찬성이었다고 증언하셨습니다. 정확한 표차가 어떻게 됩니까?" "제 기억에 13 대 1이었습니다." "13대 1이라! 단순한 과반수가 아니라 압도적인 지지였군요." "과반수는 똑같은 과반수지요." "반대표는 누가 행사한 것입니까?" 하트 학장은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사이몬 닌하이머 교수였습니다." 변호사는 짐짓 놀란 척했다. "사이몬 닌하이머 교수라구요? 이 재판의 원고 말입니까?" "예." 이 대목에서 변호사는 약간 뜸을 들였다. "다시 말하자면, 피고인 유에스 로봇사에 75만불에 달하는 피해보상을 청구한 장본인이 바로 처음부터 로봇의 사용에 반대한인물이었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사이몬 교수를 제외한 교수 위원회 모든 사람은 다 로봇의 사용에 찬성했는데 말입니다." "표결에 반대한 것은 정당한 그의 권리 행사였습니다." "교수님의 증언 중에 회의 중 닌하이머 교수가 한 발언에 대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까?"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한다니요?" "말했습니다." "로봇의 사용에 반대하는 발언이었습니까?" "예." "격렬한 발언이었습니까?" 하트 학장이 잠깐 생각하는 눈치였다. "정열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변호사는 점점 더 자신감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닌하이머 교수를 알게된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12년 정도 됩니다." "잘 아시는 사이입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의 성격을 미루어볼때 표결에서 자신의 의사를관철시키지 못한 후에도 원고가 계속해서 로봇에 대한 반감을 가져왔다고..." 말을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검사가 일어나 격한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사는 증인에게 증인석에서 내려가도 좋다는손짓을 했다. 쉐인 판사는 점심을 위한 휴정을 선언했다. 로벗슨은 자신의 울화를 샌드위치에다 풀고있었다. 75만불을소송에서 잃는다고 유에스 로봇사가 재정상의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소송에서의 패배는 여러가지 면에서 악영향을끼칠 것이 분명하다. 그는 회사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 손상에대해 더 염려하고 있었다. 로벗슨이 툴툴거리는 투로 물었다. "도대체 이지가 대학에 들어가게 된 경위에 대해 심문하는데왜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겁니까? 도대체 저들이 바라는게 뭡니까?" 피고측 변호사가 조용히 답했다. "로벗슨 씨, 재판이란 서양장기와 비슷한 겁니다. 승리는 항상 상대보다 몇 수 더 빨리 읽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법입니다. 이번 검사가 그 점에서 결코 풋내기는 아닙니다. 그들은 이지가저지른 잘못에 대해 재판이 시작하자 마자 따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신에 시간을 끌면서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나올건지를 살핀 겁니다. 그들은 어차피 우리가 결국에는 이지의 변호를 위해서 로봇의 3원칙을 들고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그게 우리의 결정적 무기니까. 그리고 가장 타당한변론이기도 하고..." "로봇 공학자에게는 그럴지몰라도 판사에게도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검찰측에서는 곧 이지가 불량 로봇이라고주장할 것입니다. 사실 이지는 지구에서 상용화된 최초의 로봇입니다. 우리는 이지를 대학에서 시험운용 해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래닝 박사가 이지를 노스이스턴 대학에 납품하는데 그렇게 열성을 보인것 아닙니까? 아마도 검찰측은 대학에서 실험해보려한 이지의 공공 실용성이 이번 사건의 발발과 함께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게 저쪽편의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지는 결코 불량 로봇이 아니잖소? 이지는 동급 모델 중 27번째 로봇으로 모든 결함을 수정한 완전무결한 제품이오." "어떻게 보면 그게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바로이전의 26대의 로봇에 분명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임무에 부적합하다고 판정이 날 정도로 잘못된 로봇은 없었습니다. 단지 처음으로 상용화되는 양자두뇌 로봇이라 회사에서좀더 신중을 기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로봇에 다 로봇3원칙은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로봇이라도 그 3대 원칙은충실히 지켰을 겁니다." "그 점은 래닝 박사로 부터 이미 얘기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판사가 그 말을 믿어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판사는로봇 공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고, 단지 자신의 상식과 법률적지식에 근거해서만 판결을 내리려 할 것입니다. 검찰측이 우리쪽의 논리에서 약간의 헛점이라도 발견한다면 그는 이를 십분 이용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험을 잘 인식하고 있어야합니다." 로벗슨 씨가 투덜거렸다. "이지를 증인으로 채택할 수만 있다면." 변호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로봇은 증인으로 설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지가 왜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수잔 캘빈 박사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표정은 붉게상기되었다. "그러한 동기는 아주 잘 알고 있지요. 바로 누군가 그렇게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누차 말하지만 이지의 이번 동기는 누군가의 명령이었습니다." "누가 그런 명령을 했다는 겁니까?" 로벗슨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아무도 이런 얘기를 내게 해주지 않다니! 이들은 자신들이유에스 로봇사의 주인인 듯 행동하고 있구만!' "원고가 그랬을 겁니다." 캘빈 박사의 답이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단 말입니까?" "이유는 저도 아직 모릅니다. 아마 피해 보상금을 노리고 한짓일지도 모르지요." "왜 그럼 이지가 그 일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겁니까?" "척 보면 모르시겠어요? 그가 이지에게 함구령을 내린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안다는 거요?" 로벗슨이 캘빈 박사에게 물었다. "로봇 심리학은 제 전공입니다. 이지가 그 문제에 대해 직접적 답변을 하려들지 않는다면, 저는 여러가지 유도 질문을 던져봅니다. 함구령이 내려진 문제에 근접할수록 이지가 대답을 망설이는 정도가 커집니다.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아마 로봇 제 1법칙 때문일 겁니다. 그가 대답하는 경우, 인간에게 위해가 가해질것이라고 누군가 그에게 말한겁니다. 아마도 그 피해 대상자는명령을 내린 장본인 즉, 닌하이머 교수일겁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지는 함구령을 따를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지더러 증언을 하지않으면 유에스 로봇사가 피해를 볼것이라고 말해주는게 어떻소?" "유에스 로봇사는 자연인이 아니라 법인입니다. 고로 로봇의제1법칙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미 입력된 명령에 상충하는 명령을 다른 사람으로 부터 받는다면 이지의 두뇌에 손상이가해질수 있습니다. 이지의 두뇌를 손상하는 일 없이 주어진 명령을 번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명령자인 닌하이머 교수입니다. 그외의 방법을 강구하다가는..." 수잔은 갑자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결코 이지가 위험에 빠지도록 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경직된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래닝이 나섰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로봇이 그러한 일을 절대 저지를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물론 여러분은 가능하다고 생각할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이해하고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 즉 피고인 유에스로봇사 직원뿐입니다. 판사가 피고인 여러분의 증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까요?" "우리는 이 방면의 전문가들입니다. 판사도 전문가의 의견은참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아무도 판사의 결정에 왈가왈부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전문가의 의견을 배제하고 소신껏 결정을 내리려할 겁니다.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해가면서까지 돈을 벌려고하는 닌하이머교수같은 작자와는 달리 판사는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기위해 최선을 다 할겁니다. 게다가 판사도 결국에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와 로봇이 잘못하는 경우 중 판사에게는 후자가 더 그럴듯하게 들릴 겁니다. 고로 이 재판에서 우리는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는 겁니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복잡다양한동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가 어떤 짓을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로봇은 분명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행동만 합니다." "그 점을 판사에게 납득시키도록 해야겠지요." 변호사가 약간 기운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로벗슨이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하는 건지는 감이 안잡히는구만." "두고 봐야지요. 분명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미리 낙담할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 계신 캘빈 박사님의 도움으로 이미몇가지 작전을 준비해 뒀습니다." 변호사는 동석한 로봇 심리학자에게 눈길을 보냈다. 래닝은 두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민거야?" 그 순간 법정정리가 입장해서 재판의 속개를 알렸다. 그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이 모든 골칫거리를 가져온 장본인을 쳐다보았다. 증인석에 자리잡은 사이몬 닌하이머 교수는 머리숱이 적은 편으로 매부리 코에 주걱턱 때문에 매서운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얘기를 하다 중요한 대목에 이르러서 반드시 말을 멈추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습관이 있었다. 심지어 그는 일출에대해 말할때에도 '해는, 에... 동쪽에서 뜹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즉, 혹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은 없는지를 반드시 고려해본후 말을 마치는 것이다. 검사가 질문했다. "증인은 유에스 로봇사의 임대계약 건에 대해 교수 회의에서반대한 일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저는 당시 우리가 유에스 로봇사의, 에, 동기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들의 의도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 로봇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리라 생각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 이유를 기술해 주시겠습니까?" 사이몬은 8년째 '우주 여행과 우주 개척에 따른 사회 긴장 문제'라는 제목의 책의 집필에 매달리고 있었다. 닌하이머는 완벽주의자로서 그의 말버릇에 그러한 성격이 배어있었다. 그는 말할때 뿐아니라 글을 쓸때도 늘 완벽한 정확성을 추구했다. 그런 그였기에 몇번이나 원고를 교정하고도 여전히 안심할 수없었다. 아니 오히려 교정을 볼수록 그의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교정부호가 난잡하게 들어찬 원고를 볼때마다 박박 찢어버리고새로 쓰고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사회학과 강사이자, 곧 부교수가 될 짐 베이커가 닌하이머 교수를 찾은 것은 원본이 교정작업을 시작한 후 사흘 뒤의 일이았다. 원래 모두 세 부의 원고가 있었다. 하나는 닌하이머 교수가교정볼 원고였고, 또 하나는 베이커를 위한 원고였고 나머지 하나는 보존용 원본이었다. 두사람은 각자 원고를 가지고 교정을보고 후에 서로 논의를 통해 최종 원고를 작성하기로 했다. 지난3년간 같은 방식으로 별탈없이 여러 논문을 작성해 왔다. 젊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베이커가 자신이 교정을 본 원고를 가지고 와서 말했다. "제 1장을 다 봤는데 타이핑 실수가 몇개 있었습니다." "첫 부분은 늘 그렇지 뭐." 시큰둥한 닌하이머 교수의 답이었다. "지금 한번 보시겠습니까?" 닌하이머 교수가 시선을 들어 베이커를 보고 말했다. "난 아직 교정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어. 별로 신경쓰고 싶지않아서..."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면..." 닌하이머가 마른 입술을 적셨다. "나는 그 작업을, 에, 기계에게 맡길까 생각중이야. 그는 원래, 에, 교정용으로 제작된 기계니까 시켜도 괜찮을꺼야. 이미작업 일정도 잡아뒀어." "기계라구요? 이지 말씀이십니까?" "맞아. 그 우스꽝스런 이름을 붙여준 기계말이야." "하지만 교수님은 그 로봇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걸로 아는데요." "교수중에서 나만 그랬지. 하지만 이제는 나도 그 기계를,에, 이용해야 될 때가 온 것같아." "그렇다면 저혼자 괜히 1장을 교정하느라 시간낭비한것 같군요." 부루퉁한 베이커의 말이었다. "낭비한건 절대 아니지. 어차피 그 기계가 한 작업과 자네의교정본을 비교해볼 생각이니 말이야." "그렇다해도..." "그렇다해도?" "어차피 이지가 하는 작업에 실수는 없을 겁니다. 원래 그렇게 제작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건 두고 볼 일이지." 닌하이머 교수의 무뚝뚝한 대답이었다. 나흘뒤 베이커가 새로운 교정본의 1장을 가지고 왔다. 그는그것을 이지와 그 주변기기들이 있는 방에서 가져오는 길이었다. 베이커는 아주 흥분해 있었다. "닌하이머 교수님, 그 로봇은 제가 지적해낸 실수들을 다 찾아냈을 뿐 아니라, 제가 놓친 여나믄개의 오류들을 추가로 찾아냈습니다. 그것도 단 12분안에 말입니다." 닌하이머는 여백에 깔끔한 글씨로 교정이 되어 있는 원고를쓰윽 쳐다봤다. "그래도 자네나 내가 하는 만큼 완벽하지는 못해. 나라면 스즈끼의 '저중력 상태가 신경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을각주에 추가했을걸세." "사회학 학회지에 실린 논문 말씀이십니까?" "음." "그건 로봇이 수행할수 없는 작업입니다. 로봇이 그런 참고문헌까지 알고 있을 수는 없지않습니까?" "그건 자네 말이 맞아. 사실 내가 각주를 여기 작성해 뒀는데, 그 로봇이 각주를 제대로, 에, 처리해 내는지 한번 보고싶군." "잘 해낼겁니다." "그래도 직접 확인하고 싶어." 닌하이머 교수는 어렵사리 이지와의 면담시간을 얻어냈다. 워낙 이지의 작업량이 많아 저녁 늦게 약 15분 정도만을 얻을 수있었다. 그러나 그 15분도 충분했다. 이지는 각주의 처리방식에 대해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닌하이머는 처음으로 로봇을 마주하게 되어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는 이지에게 겨의 무의식적으로 다음 질문을던졌다. "내 논문이 마음에 들던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닌하이머 교수님." 이지가 눈동자의 역할을 하는 광소자를 반짝이며 대답했다. "내이름을 어떻게 아는가?" "추가 내용을 제게 가져다 주셨다는 것과 책에 대한 저의 느낌을 물어왔다는 것은 선생님이 그 원고의 저자임을 뜻합니다. 그리고 저는 원고의 상단에 적힌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흠. 그러니까, 에, 논리적으로 추론해낸 거로군. 좋아. 그럼이 글에 대한 솔직한 평은?" "작업하기 아주 즐거웠습니다." "즐거웠다고? 에, 감정이 없는 기계가 어떻게 그런걸 느끼는가?" "교수님의 글이 저의 논리회로에 잘 들어맞았습니다." 이지가 설명했다. "박사님의 글을 이해하는 것이 저의 두뇌 회로에 별 무리를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상태를 '즐겁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어떻게 내 책이 읽기에 즐거웠다는 건가?" "박사님의 글은 무기 물질이나 수학적 기호가 아니라 인류의문제를 다룹니다. 교수님의 논문은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인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제는 양자두뇌에 입력되어 있는 로봇의 존재이유와 일치하고 그래서 읽기에 '즐거웠다'는 건가?" "예,그렇습니다. 교수님." 약속된 15분이 다 지났다. 닌하이머 교수는 이지와의 면담을마친 즉시 대학 도서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막 폐관하려는 도서관에 들어가 그는 로봇 굣학 입문서를 몇권 대출했다. 그후 가끔 교수가 추가 원고를 이지에게 보내왔다. 이지가 교정을 본 원고는 차례차례 출판사로 넘겨졌다. 처음 한동안은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이지의 교정본을 교수가 검토해 보았으나,시간이 지나자 그럴 필요를 못느낀 교수는 바로 인쇄소로 원고를넘겼다. 하루는 베이커가 이에 대해 약간 볼멘 소리를 했다. "이제 제가 별로 쓸모없어 진것 같군요." "무슨 소린가, 이제야 말로 자네의 개인 연구를 시작할 여유가 생긴거 아닌가." 닌하이머는 읽고있던 사회과학개론 책에서 눈도 들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마음이 안놓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인줄 알지만 여전히 이지가 하는 교정에 대해 불안감이 듭니다." "별쓸데없는 걱정을 다하는군." "며칠전에는 이지가 출판사에 보내려는 원고를 중간에서 가로채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뭐라고?" 닌하이머 교수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의 손에 들여있던 책이 탁 소리나게 닫혔다. "자네가 그 기계의 작업을 방해했단 말인가?" "잠깐 읽어봤을 뿐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 그로봇이 '잔인무도한'이라는 단어를 '무자비한'으로 바꾼걸 보았습니다. 문맥상 그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닌하이머 교수가 이 말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더니 다시 물었다. "자네 생각은?" "이지가 교정한게 괜찮아 보여서 그냥 뒀습니다." 닌하이머 교수는 자신의 조교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몸을 돌렸다. "이것봐. 난 자네에게 두번 다시 그런 행동을 하지말라고 충고하고 싶군. 내가 일단 그 기계를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나는 그 기회를, 에, 최대한 활용하고싶어. 기껏 자네 시간을 벌어주었더니 쓸데없이 기계가 하는 작업을 감독하고 있구만. 그런일에 시간을 허비한다면 애초에 기계를 사용하는 의미가 없어지지 않겠나? 나는 이제 자네가 자신의 일에 더 충실하기를 바래.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닌하이머 교수님." 풀죽은 목소리로 베이커가 답했다. '사회적 긴장'의 초판본은 5월 8일 교수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그는 책을 한번 주욱 훑어보았다. 여기저기 내용을 한번 살펴봤지만 별 문제는 없는 듯 했다. 그는 곧바로 책을 책장에 갖다 꽂았다. 나중에 그가 진술한 바에 따르면, 이지가 교정 작업을 해서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는 동안, 그는 새로운 연구에 착수했다고한다. 그래서 그 책에 대해서는 이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심지어 베이커까지도 닌하이머 교수에게 한번 잔소리를 들은 후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느라 책이 나온 뒤 교수에게 책을 증정본을한권 얻을 생각도 못했다. 사건이 터진 것은 한달이 넘게 지난 6월 16일의 일이었다. 닌하이머 교수가 걸려온 영상 전화를 받고는, 화면을 보고 깜짝놀랐다. "스피델! 이제 웬일인가? 학교로 다시 돌아온건가?" "아니, 아직 클리블랜드에 있네." "그래? 그런데 웬일인가. 그간 연락한번 없더니?" "지금 한참 자네의 새책을 읽고있다네. 그런데 닌하이머, 이게 도대체 무슨 변고인가? 자네 갑자기 머리가 이상해 진거 아닌가?" 닌하이머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뭐, 잘못되었나?" "잘못되었나구? 562페이지에 보니 말이야. 자네가 내 책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인용했더만. 내가 언제 범죄형이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정작범죄의 근원은 법 집행 기관이라고 말했나? 이것봐, 내가 읽어보지..." "잠깐만! 잠깐만!" 놀란 닌하이머가 허둥지둥 그 페이지를 찾으며 소리쳤다. "내가 한번 보지. 어디... 오, 이런 세상에!" "어떤가?" "스피델,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수가 없군. 나는 결코이런 문장을 쓴 일이 없어!" "하지만 그렇게 책에 나와있지 않나. 게다가 의미가 왜곡된 문장은 거기뿐만이 아닐세. 690페이지를 한번 읽어봐. 이파델이자네가 그의 연구결과를이렇게 엉망으로 정리해 놓은걸 보고 뭐라고 하겠나? 이 책에는 이런 엉터리같은 문장들이 수두룩해! 자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라면 당장 이 책을 각서점에서 회수하겠네. 그리고 다음번 학회 총회때 자네는 이번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이네!" "이봐, 스피델. 내 말을 좀..." 그러나 닌하이머 교수가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스피델은 전화를 쾅하고 끊었다. 잔상이 사라져가는 화면을 한동안 멍하니쳐다보던 교수는 책을펼쳐들고 처음부터 붉은 줄을 쳐가며 다시 숙독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지를 찾아갔다. 자신의 울화를 억누르기 위해 그는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안색은 이미 파랗게 질려 있었다.그는 책을 이지에게 넘겨주며 물었다. "562,631,664,690 페이지를 한번 읽어봐." 이지가 네번 책장을 쓱 쳐다봤다. "예. 닌하이머 교수님." "이것은 나의 원본에 있던 내용이 아닌데?" "예, 아닙니다." "자네가 바꾼 것인가?" "예, 이것들은 모두 제가 교정한 내용입니다." "왜 그랬나?" "선생님이 쓰신 원고 내용은 특정 집단의 인간들에게 감정적 피해를 줄수 있는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방향으로 문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왜 감히 그런 짓을 한건가?" "로봇 제1법칙 때문입니다. 저는 인간이 고통 받는 것을 방관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의 학계 내 저명도를 고려해 볼 때 분명많은 사회학들이 이책을 읽고 또 그 내용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교수님이지목하신 특정 부류의 사람들은 교수님의 견해에 의해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네가 내용을 고치는 바람에 이제는 내가 피해를 보게 되었는데?" "다수의 피해자와 소수의 피해자 가운데 저는 소수의 희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밀어오는 분노로 닌하이머 교수는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지경이 되었다. 누군가 이러한 사태에 대해 분명 책임을 져야했고, 그 대상은 바로 유에스 로봇 사였다. 이러한 진술에 대해 피고측의 긴장은 약간 고조되는 듯 했다. 이에 담당검사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그럼 로봇 EZ-27호가 스스로 이번 사건의 원인은 로봇 제1원칙에 있다고 분명히 밝혔단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즉 로봇으로서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말입니까?" "예." "그렇다면 이 로봇의 기능은 문법적 오류 교정이 아니라 인간이 쓴 글을로봇의 관점으로 다시 쓰는 것이로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 변호인은 해당 질문에 대해 증인은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판사는 이러한 질문을 한데 대해 검사에게 형식적인 주의를 주었으나 이미 대세는 원고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변호인은 반대심문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동안의 휴정을 요청했고 이러한요구는 곧 받아들여졌다. 변호사는 수잔 캘빈 박사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방금 닌하이머 교수가 진술한 대로 이지가 로봇 제1원칙에 따라 이런잘못을 저질었을 가능성이 실제로 있다고 보십니까?" 캘빈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아닙니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닌하이머 교수의 마지막 부분 진술은 분명 위증입니다. 이지는 결코 어려운 사회학 논문의 내용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책의 내용으로 인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것인가 이지가독자적으로 판단했을리는 없습니다. 로봇의 양자두뇌는 그러한 추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박사님의 얘기를 로봇의 논리 과정에 대해 잘 모르는일반인들이 과연 믿어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힘들겠지요.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기란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을 그대로 진행시키면 승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닌하이머교수의 위증을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좋습니다. 박사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판사가 의사진행봉을 두들겨 재판의 속개를 알렸다. 닌하이머 교수가 다시 증인석에 앉았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 반대심문을 받게되는 이 시점에도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변호사가 증인석으로 걸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증인은 6월 16일 스피델 교수가 전화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책 내용의변화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로봇 EZ-27호가 교정을 본후 전혀 내용을 확인해 본 일이 없다는 겁니까?" "처음에는 확인해 봤습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시간낭비라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유에스 로봇사의 주장을 곧이곧대로믿었던 겁니다. 그 로봇은 주로 책의 후반부에 가서 내용을 바꿨었습니다. 저는 그때쯤에는 그 기계도 사회학에 대해 어느 정도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증인이 생각한 바에 대해서는 진술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는일어난 사실만 말하십시오. 베이커 씨가 초반부 한가지 내용의 수정을 얘기한 바 있습니다. 그 증언 기억납니까?" "예. 베이커가 지적했듯이 어떤 페이지에서 단어를 하나 수정했었습니다."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증인은 1년이 넘도록 로봇에 대해 불신하고 또 처음에는 혼자서 반대투표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증인은 어느날 갑자기 8년간에 걸친 노작을 이 기계의 손에 완전히 맡겨버렸습니다.이 점 약간 이상하지 않습니까?" "별로 이상할것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그 기계를 십분 활용해보고 싶었을뿐입니다." "그래서 교정 내용을 전혀 검토도 하지 않으셨다는 겁니까?" "내가 말했듯이 나는 유에스 로봇사를, 에, 완전히 신뢰하고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료 베이커 교수가 로봇의 작업을 검토하려 하자 그렇게 질색을 하고 반대하신 겁니까?" "질색을 한건 아닙니다. 단지 나는 그에게 자신의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마라고 충고했을 뿐입니다. 적어도 당시에 나는그러한 확인 작업이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단어 하나 정도 바꾼 것이 크게 중요한문제라고는..." 변호사가 상당히 냉소적인 투로 말했다. "한낱 기계가 감히 교수님 원고의 단어를 수정한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관대한 분이 어떻게 베이커 교수의 행동에는 그토록민감한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결코 민감한 반응을 보인건 아닙니다." "책이 인쇄되어 나왔을때 베이커 교수에게는 증정본 한부 안주셨지요?" "그냥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연구에 신경을 뺏기는 통에 학교도서관에도 책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닌하이머 교수는 슬쩍 미소를 흘렸다. "보통 교수들의 건망증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1년 이상 아무 이상이 없었던 로봇 EZ-27호가 증인의 책을 교정하면서처음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은 약간 이상하지 않습니까? 로봇이 교정을 본그 수많은 책 가운데 딱 한권이 문제가 되고 하필이면그 책의 저자가 로봇에 대해 가장 거세게 반대한 교수님이라는 사실말입니다. 이것이 그냥 우연의 일치입니까?" "그 기계가 작업한 책들 중에 내 책을 빼고는 다 수학이나 자연과학을다룬 것이었습니다. 심오한 사회학을 다루면서 양자두뇌에 입력된 로봇 3원칙이 그 기계의 논리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지요." "그동안 증인은 몇번이나 로봇 공학에 대한 상당히 잘 아는듯한 진술을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 한권 빌려보고 어떻게 그렇게 잘아십니까?" "글쎄요. 제가 로봇공학에 대한 책을 본 이유는, 에, 순전히 호기심 때문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책을 읽은 덕에 로봇이 어떻게 증인의 책내용을 왜곡하게된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된거군요." "그렇습니다." "아주 편리하군요. 하지만 혹 로봇 공학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다른데있었던 것 아닙니까? 이를테면 증인의 어떤 목적을위해 로봇을 조작하려고말입니다." 이 질문에는 짐짓 냉정한 척하던 닌하이머도 얼굴을 붉혔다. "그건 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 이같은 반박에 변호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로봇이 잘못 교정했다는 얘기는 거짓 진술이고 원래 교수의 원고가 그렇게 씌어져 있었던 것 아닙니까?" 닌하이머는 흥분해서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 "그것은 어, 어, 완전히 허튼 소리입니다. 나는 당시 어, 어, 로봇의 교정본을..." 닌하이머 교수가 심하게 말을 더듬자 검사가 일어나 잽싸게 판사에게 말했다. "판사님, 허락만 해 주신다면 당시 닌아히머 교수가 로봇 EZ-27호에게준 원고와 로봇의 교정본을 함께 증거로 제시하겠습니다. 또 필요하다면 변호인이 지금 이 자리에서 두 원고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변호사는 손을 내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 원고는 나중에라도 증거로 채택될수 있을 겁니다. 아마 그 원고들에는 증인이 주장하는 대로 내용의 차이가 나와있을것이라 확신합니다. 문제는 증인이 당시 베이커 교수에게 주었던 원고를 현재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베이커 교수에게 준 원고요?" "예! 증인은 베이커 교수에게도 교정볼 원고를 한부 주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만약 갑작스런 건망증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법정 서기에게그 부분의 진술을 낭독하게 할수도 있습니다. 교수들은 건망증이 심하다고하셨지요?" "아닙니다. 기억 납니다. 하지만 기계가 교정을 본 판국에 베이커 교수의교정원고가 왜 필요합니까?" "그래서 그 원고는 소각해 버리셨나요?" "아닙니다. 그냥 쓰레기 통에 버렸습니다." "소각해 버린거나 쓰레기 통에 버린거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결국 증인은 그 문서를 폐기해 버렸다는 얘기아닙니까?" "그게 뭐 잘못되었습니까?" 자신없는 닌하이머의 말이었다. "뭐 잘못되었냐구요?" 벽력같은 변호사의 말이었다. "잘못된 건 없지요. 다만 이제와서 증인이 로봇에게 준 원고의 내용과베이커 교수에게 준 것을 비교 확인해 볼 길이 없다는것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검사는 벌떡 일어나 이의를 제기했다. 판사는 목을 길게 빼고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짓고 변호사에게 물었다. "변호인이 방금 한 발언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변호사가 조용히 말을 받았다. "물증은 없습니다. 하지만 증인의 진술중에 나온 로봇에 대한 극심한 반감, 갑작스런 로봇 공학에 대한 관심, 타인의 교정작업 확인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 출판 직후 저서에 전혀 무관심했던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변호인." 판사가 약간 화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우리가 이곳에 변호인의 추측을 듣자고 온게 아니오. 변호인은 사실에관한 심문만 하시오. 변호인의 절박한 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증인의 명예를 손상시킬수 있는 발언을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만약 방금한발언을 뒷받침할 물적 증거가 있다면 계속 심문해도 좋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근거없는 인신공격성 발언은 중지하기 바랍니다. 심문할 내용이 또 있습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로벗슨은 자리로 돌아오는 변호사에게 물었다. "아니 왜 그런 쓸데없이 손해볼 소리를 한겁니까? 이제 판사는 완전히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변호사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닌하이머 교수가 적쟎이 당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헛점을 보였다는 것은 내일 우리의 작전이 성공할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옆에 앉아 있던 수잔 캘빈 박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검찰측의 나머지 증인 심문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베이커 박사가증인으로 채택되어 닌하이머 교수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스피델 교수와 이파티에프 교수 역시 증인석에 서 자신들이 이지의 잘못된 교정으로 입게된 피해에 대해 진술했다. 그들은 또한 이번 사건으로 닌하이머교수의 학자로서의 명예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증언했다. 원고가 제출한 교정 전후의 원고와 출판본이 증거로 채택되었다. 변호인 측은 그날 더 이상 반대 심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판사는 다음날꺄지 휴정을 선포했다. 이틀째 재판이 시작되자 변호인 측은 바로 판사에게 청원을 내었다. 내용인 즉슨 사건 당사자인 로봇 EZ-27호가 재판절차를참관할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검찰측은 즉각 이의를 제기ㅎ고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를 함께 가까이로불렀다. 검사가 흥분해서 말했다. "이것은 명백히 불법적인 요청입니다. 로봇은 어떤 상황에라도 공공 건물에 입장할수 없습니다." "재판에 관련있는 모든 당사자에게 있어 이 법정은 분명 열린 공간입니다." "이미 사고를 저지른 바 있는 커다란 기계가 법정에 등장한다면 원고는엄청난 불안감을 느낄 것입니다." 판사는 이같은 검사의 주장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는 변호인에게 몸을돌려 약간 딱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요청을 하게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로봇 EZ-27호가 단독으로는 절대 그런 행위를 할수 없다고 저희들은믿습니다. 고로 로봇에게 몇가지 시범을 시켜보일 작정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판사님. 유에스 로봇사가 피고인 상황에서 유에스 로봇 측이 보여주는 시범에 우리는 법적신빙성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판사님, 법적 신빙성의 여부는 판사님 재량에 달린 것이지 원고측이 가타부타 할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권위를 새삼 의식한 쉐인 판사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도 그렇소. 하나 로봇이 법정에 등장한다는 것은 법적 문제발생 소지의 여부가 있소."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본 법정에서 만큼은 판사님의 결정이 모든 법률에 우선해서 적용됩니다. 그리고 그 로봇없이는 저희의 입장을 제대로 변호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로봇을 이곳까지 실어나르는 것도 큰 문제일텐데..." "판사님,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해당 로봇은 현재법원 외부에 주차된 트럭에 안전하게 실려 있습니다. 로봇 EZ-27호는 포장된 상태로 있고, 두사람의 경비원이현재 지키고 있는 중입니다. 트럭의 문은 안전장치가 완벽하게 되어있습니다. 저희는 로봇 운반 및 보관에 대한연방 정부의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습니다." 판사는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변호인이 재판부의 결정을 미리 지레짐작하고 사전에 준비를 마친 것같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그냥 돌려보내면 됩니다. 판사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시더라도 바로 따르기위해 만전의 준비를기울인것 뿐입니다."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 법정은 변호인의 요구를 수락합니다." 곧 커다란 상자가 법정으로 운반되어 왔고 두사람의 인부가 포장을 풀었다. 법정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 졌다. 수잔 캘빈은 두꺼운 포장재가 하나하나 풀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손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 "이리 나와, 이지." 로봇은 그녀를 보고 커다란 금속 팔을 내밀었다. 캘빈 박사보다 키가 훨씬 더 큰 로봇이 박사를 따라가는 모습은 마치 엄마를 따라가는 아이같았다. 어떤 사람이 나즈막이 킬킬거렸으나 수잔 캘빈 박사의 매서운 눈길에곧 잠잠해 졌다. 이지는 법정 정리가 가져온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의자는 이지의 무게에 불평하듯 삐걱거렸으나 제대로 버텨나갔다. 변호사가 말했다. "재판부의 요청이 있으면 이 로봇이 바로 사건의 원인 제공자인 로봇EZ-27호라는 것을 언제든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좋습니다." 판사의 흔쾌한 답이었다. "이제 저는 첫 번째 증인으로 사이몬 닌하이머 교수를 다시 부르고 싶습니다." 변호사의 엉뚱한 요청에 법정 정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판사를 보았다. 판사 역시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지금 피고측 증인으로 원고를 부르겠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판사님." "변호인은 증인에 대한 반대 심문을 마쳤지않습니가? 또다시 증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심문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단지 사실을 좀더 알아보고 싶어 그러는 겁니다. 간단한 질문몇가지면 됩니다." "좋소. 그렇다면 변호인의 요청을 받아들이겠소. 증인을 부르시오." 닌하이머는 다시한번 증인석에 앉았다. 법정 정리는그에게 어제 한 선서가 오늘도 유효하다는 말을 일러주었다. 변호사는 사람좋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증인은 피고측에 손해배상금을 75만불 요청했습니다." "에, 예... 그렇습니다." "상당히 많은 금액이군요." "상당히 큰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그렇게 큰 피해는 아니지 않습니까? 문제가 되는 문장은 책의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출판되는모든 책이 다 완벽한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닌하이머를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저는 이번 저서에 학자로서의 명예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학계의 인정을 얻기는커녕 사람들의 조롱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간 쌓아올린 학자로서의 명성은 이제 온데간데없어지고, 나는 로봇에게 저서 감수를 맡긴 얼간이가 된 겁니다. 이번 재판의 결과에 상관없이 나의 학자로서의 경력은 끝장났습니다." 변호사는 교수가 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동안 묵묵히 자신의 손끝만 보고 있었다. 변호사가 달래듯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닌하이머 교수님, 앞으로 교수님이 남은 평생 교수로 봉직하면서 받게될 급료의 총액은 기껏해야 15만불 정도입니다. 75만불이면 좀 지나친 요구아닌가요?" 닌하이머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양 ㅎ분된 어조로 답했다. "내가 보상받고자 하는 것은 남은 내 일생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는 길이길이 어리석은 사회학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내가 평생 이룩한 성과는 뒷전에 처지고, 나의 우매함만이 역사에 남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내가 죽고 난 후에도 후세사람들중에는 바로 지금 당신처럼 내가 돈을바라고 이런 짓을 했을거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거요. 나는 이제 영원히사기꾼이라는..." 로봇 EZ-27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바로 이순간이었다. 옆에 앉아있던 수잔 캘빈 박사는 마치 이같은 일을 기대했던양 이지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녀는 담담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고,변호사가 나즈막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지는 기계치고 듣기좋은 음성을 갖고 있었다. "지금 본 법정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을 삽입한 것은 바로..." 7피트나 되는 로봇이 뿜어내는 금속성 위엄에 법정안의 모든사람은 기가 질려 있었다. 심지어 검사마저도... 그는 로봇이 법정 내 발언권이 없다는사실을 제기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곧 검사가 사태를 수습하려고 나섰을 즈음, 때는 이미 늦었다. 왜냐하면닌하이머 교수가 얼굴이 시뻘개져서 이지에게 고함을치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닥쳐! 이 문제에 대해 너는 입닥치고 있으라고..." 교수는 황급히 말을 삼켰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검사가 잽싸게 재판의 무효를 요구하고 나섰다. 판사는 의사진행봉을 두들겼다. "조용하시오. 물론 분명 무효 심리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법적 정의를 위해 닌하이머 교수가 방금 자신의 발언을해명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오. 분명 증인은 로봇에게 어떤 사안에 대한 함구령을 내린 것 같은데, 그 내용을 사실대로 진술하시오. 도대체 어떤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키라는 것이오, 증인?" 닌하이머 교수는 할말을 잃은채 판사를 묵묵히 바라봤다. 쉐인 판사가 다시 무게를 실어 말했다. "로봇 EZ-27호에게 한 명령의 내용을 진술하시오." "판사님..." 닌하이머는 목이 콱 잠겨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판사의 언성이 날카로와졌다. "당신 자신이 로봇에게 문장의 수정을 명하고 그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라고 한 것이오?" 감사가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나왔다. 이떼 증인석에서 갑자기 닌하이머 교수가 외쳤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구요!" 닌하이머는 쏜살같이 증인석을 내려와 출구족으로 빠져나가려다 경비에게 팔을 잡혔다. 그는 옆의 빈 의자에 푹 주저앉아 얼굴을 감쌌다. 쉐인 판사가 말했다. "로봇 EZ-27호를 법정으로 데려온 것은 변호사의 어떤 의도였던 것 같군요. 비록 그 속임수로 인해 진실은 밝혀졌지만 변호인의 행동은 법정모독죄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아두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고는 분명 자신의 명예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이에대한 피해보상을 피고측에 청구했습니다. 이는중대한 사기죄에 해당하므로..." 물론 그 재판의 승리는 피고측에 돌아갔다. 수잔 캘빈 박사는 대학 연구동에 있는 닌하이머 교수의 연구실에 직접방문하겠노라 했다. 함께온 회사 연구원들은 박사가 닌하이머 교수를 만나는 동안 같이 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 박사는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이 내게 해꼬지라도 할까봐? 걱정말고 여기서 기다려요." 닌하이머는 누구에게 시비조차 걸 수 없을 정도로 풀이죽어 있었다. 그는 재판의 내용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떠나기위해, 허위허위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가 캘빈 박사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당신네 회사가 나를 상대로 소송을 걸 예정이라면 꿈깨라고 말해주고싶소. 당신네 들이 손해보상을 청구해봤자 내게는 지급할 돈이 한푼도 없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일자리도 없고, 학자로서의 명예도 없소. 소송비용을치를 돈조차 내겐 없소..." "누굴 탓하고 누굴 원망하겠어요? 이 모든 게 당신이 시작한 일인데... 어쨌든 나는 당신에게 소송을 걸 겠다고 온게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유에스 로봇사는 위증죄로 당신을 기소할 의지가 없다는것을 재판부에 확실히밝혀두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속좁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아, 그래요? 덕분에 내가 자유롭게 지내고있는거군요. 대단한 수수께끼가 하나 풀렸습니다, 그려." 다시 교수가 씁쓸한 표정으로 발했다. "이제 당신들이 원하던 대로 되었으니 승자의 아량을 보여주겠다는 겁니까?" "물론 우리가 원하던 대로 된 것도 있지요. 먼저 이 대학이 이지를 계속고용하기 위해 더 비싼 임대료도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다른 연구기관에서도 이지를 임대하려고 섭외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번 일이 알려지면서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날 염려도 그만큼 줄었지요." "그럼 날 찾아온 이유가 뭐요?" "아직 내가 원하는 모든 답을 얻은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당신이 그토록 로봇을 혐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싶어요. 비록 당신이 이번 소송에서 이겼더라도 당신은 학자로서의 명예를 잃게 되는데 왜 그런 무모한 짓을벌였는지 아직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단순히 로봇에 대한 증오로 이런 일을 벌인겁니까?" "캘빈 박사, 별안간 사람의 심리로 전공을 바꾼거요?" 닌하이머 교수가 조롱하듯 물었다. "로봇의 미래에 관련된 일이라면 사람의 심리라도 내 관심의 대상이 되지요. 그리고 나는 어느정도 인간 심리학도 배웠습니다." "나를 속여 넘길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요." 박사는 가시돋힌 말을 애써 무시했다.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캘빈 박사가 담담히 말했다. "정작 어려운 것은 로봇의 안전을 보장할수 있는 해결 방법을 찾는 일이었지요." "참 그렇지요, 당신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의 안녕이 아니라 로봇의 안전이었지요." 교수는 박사를 차가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박사는 상대의 적개심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로봇에 대해 좀더 잘알았더라면 로봇에 대한 개선 노력이 곧 인류의 번영과복지에 직결된다는 점을이해할겁니다." "나도 로봇에 대해서는 알만큼 압니다!" "교수님의 지식은 책 한 권에 한정된 것입니다. 당신은 로봇의 약점을찾는데 주력했습니다. 당신은 그 얄팍한 지식을 통해로봇의 기억을 삭재할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냈지요. 하지만 대신 로봇에게 함구령을 내릴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무덤을 파는 격이었지만 말입니다." "로봇이 침묵을 지키는 바람에 오히려 사실을 추측해 내기가 쉬웠다는거요?" "그것은 추측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흔적을 숨기는데 서툴렀지요. 그 흔적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을 법정에서 증명하는일어었습니다. 당신의 로봇 공학에 대한 무지는 궁극적으로 우릴 돕는 셈이되었습니다." "왜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거요?" "교수님이 로봇을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잘못된교정문제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면 당신이 실직하게된다고 로봇을 협박했습니다. 이지는 명령자인 인간에게 해를 끼칠수 없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했습니다. 만약 유에스 로봇사가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이지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면 자칫 그의 양자 두뇌 회로를 파괴시킬수 있었습니다. 하지만당신은 증인석에서 자신이 처한 더 큰 위험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바로 당신의 명예가 대대에 걸쳐 실추될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지는 당신이 맞게된 실직 이상의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서 자신에게 내려진 함구령까지어겨가며 당신을 변호하려 했지요." "맙소사..." "이지가 말문을 연 이유를 이재 알겠습니까? 이지가 나선 이유는 당신을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변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은 이지가말문을 열었을 때 로봇이 스스로 변호하려고 사실을 밝히리라 생각했지요?하지만 이지는 로봇 제 1원칙을지키기위해 거짓말까지 하려 했습니다. 이지는 거짓말이 로봇의 두뇌회로에 손상을 가할수도 있는 행위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에게 어머니와 같은 유에스 로봇사가 입게될손해를 무릅쓰고라도 당신을 도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로봇의 의도를 오해하고 외려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당신은 로봇을 증오하기만 했지, 로봇의 사고를 이해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당신의 함정은 바로 로봇에대한 당신의 무지였습니다." 닌하이머 교수가 차갑게 말했다. "당신의 그 잘난 로봇이 언젠가는 당신에게 덤벼들 날이 올거요." "쓸데없는 걱정을 다하시는군요. 이제 내가 알고싶은 것은 당신이 왜 이런 일을 꾸몄는가 하는 것입니다." 닌하이머가 씁쓸하게 말했다. "위증죄에서 나를 풀어준 댓가로 나의 범행동기를 밝히라는 거요?" "그건 마음대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나중에 나같은 사람이 또 나타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그러는 거요?더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그럴수도 있지요." "좋소... 하지만 내 말이 당신네에게 별 도움은 안될것이오. 왜냐하면 당신들은 인간의 심리를 완전히 이해할수 없기 때문이오. 당신들에게는 차라리 기계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오. 왜냐하면, 당신들 자신이 바로 기계니까... 인간의 탈을 쓴 기계말이오." 교수는 가만히 숨을 가다듬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이제는 조심해서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난 250년간 로봇은 각 분야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치해왔소. 이제 사람의 손에서 창조되던 모든 제품은 자동기계에 의해생산되고 있고... 당신네는 그것을 진보라고 부르겠지. 이제 기계는 도예공의 일까지 대신 하고있소. 사람이 영감을 떠올리고이를 입력하면 기걔가 나머지 작업을 알아서하지요.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영감을 떠올리는 과정 못지않게 중요한것은 흙을손으로 어루만지며 다듬는 과정 아닌가요? 우리의 사고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육체노동아닌가요?" "로봇이 교수님같은 사회학자의 역할까지 대신 할수는 없습니다." "아니, 나역시 노동자요.바로 책을 쓰고 논문을 발표하는 지식 노동자 말이오. 이제껏 책을 쓰는 모든 과정은 작가의 손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작가가초고를 쓰고, 다시 교정을 보고,각고의 노력 끝에 퇴고를 마치는 겁니다. 한권의 책이 나오는 과정에 작가는 자신의 글을 백번은 대하게 되는 법이오. 이러한 교정 작업이 괴롭고 단순한 과정이기는 하나 그것 역시 작가에게는 가치있는 노동이오. 하지만 이제 당신네 로봇은 단순작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교정작업을 대신하겠다합니다. 우리의 손에서 노동을 앗아가는겁니다." "그럼 타자기나 금속활자는 어떡합니까? 인간의 수고를 덜어준 모든 기계문명을 이제 버리고 다시 중세로 돌아가자는 겁니까?" "사무기기가 인간에게서 노동의 수고를 덜어준 것도 사실이오. 하지만이제 당신네 로봇은 인간에게서 사고의 즐거움까지앗아가게 될 것이오. 지금은 당신네 로봇이 교정을 보지만 나중에는 직접 저술활동까지 하려고 들것이오. 골치아픈 각종 연구활동이나 철학적 고찰의 수고까지 로봇이 대신하게 된다면 우리네 학자들은 어떻게 되겠소? 우리가 하는 결정은 로봇에게어떤 명령을 내릴 것인가에 국한 될것이오. 생각해보시오. 그것이 과연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인가를... 나는 미래 인류를 위해, 나의학자적 명예를 희생해서라도, 당신네 계획을 막아야 했소." "당신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달리 방안이 없었소." 캘빈 박사는 교수의 연구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든 것을 잃게된 닌하이머 교수에게 박사는 어떤 감정도 느낄수 없었다. 하지만 돌아서는 그녀의 마음은 처음보다 더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