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종 ('The Sing in Bell')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 루이스 페이튼은 지구의 경찰을 상대로 한 지혜와 허세의 허다한 싸 움에서, 언제나 그 열쇠가 되는 심층 심리검사의 의표를 찔러 보기좋게 승리해 버린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솜씨에 대해 결코 남 앞에서 자랑 하는 법이 없었다. 물론 어리석은 짓이 되겠지만, 때로는 그도 자만감 에 빠질 때가 있다. 그가 죽은 뒤 비로소 공개될 유언장 속에다 이 완 벽한 성공이 결코 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재능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공표해 놓고 싶다는 생각을 남몰래 즐긴 적도 있으니까. 유언장에는 이렇게 쓸 것이다.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허위로 상황을 설정해 놓으면, 틀림없이 그 흔적을 어떠한 형태로든 남기게 된다. 그러므로 기존의 상황을 찾아 내어 거기에 자신의 행동을 끼워 맞추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페이튼이 알버트 컨웰을 살해하기로 계획한 것도 이 원리를 염두에 두고서였다. 보잘것없는 장물아비인 컨웰은 페이튼이 그린넬 레스토랑 의 전용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맞은 편에서 다가왔다. 컨웰의 푸른 양 복은 한층 더 빛나보였고, 주름진 얼굴에는 각별한 미소가 어려있으며, 색 바랜 수염도 보기좋게 곤두서 있었다. "페이튼씨." 그는 미래에 자신을 살해할 자에게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고 인사했 다. "뵙게 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실은 찾다가 지쳐서 거의 포기하고 있 었어요." 페이튼은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를 들면서 신문을 읽는 중이었는데, 방 해를 받게 되자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컨웰, 내게 볼 일이 있으면, 그런 일에 걸맞는 장소에서 만나는 게 어떤가?" 페이튼은 사십 고개를 넘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왕년의 검은 윤기를 잃고 있었지만, 등은 아직 곧고 넓었으며 활기 넘치는 동작과 검게 빛 나는 눈은 완전히 틀이 잡힌 협박조의 목소리와 아울러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그런게 아닙니다. 페이튼씨." 컨웰은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런게 아니에요. 난 그게 감춰진 장소를 알아냈다고요. 그 비밀 장 소를 말이에요....알고 계시죠?" 컨웰은 집게 손가락을 들어 무언가를 두들기는 듯한 행동을 하더니, 이어 왼손을 바짝 귀에 대는 시늉을 했다. 페이튼이 인쇄기에서 갓 빼어낸 축축한 신문을 접으면서 말했다. "노래하는 종 말인가?" "목소리가 커요. 페이튼씨." 컨웰은 쥐어 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페이튼이 말했다. "나갑시다." 두 사람은 공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밀을 완전히 지키기 위해서 는 실외에서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게 제일 좋다는 것이 페이튼의 지 론 중의 하나였다. 방에서는 도청 광선에 노출될 염려가 있지만 바깥의 푸른 하늘 아래서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컨웰이 속삭였다. "노래하는 종을 숨겨놓은 곳을 알아냈어요. 거기엔 정말 많이 있답니 다. 광을 내지 않은 것이지만 아무튼 훌륭하답니다요, 페이튼씨." "직접 봤나?" "아뇨, 하지만 봤다는 자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자는 충분히 수긍 이 가는 증거를 갖고 있었어요. 저와 페이튼씨가 충분히 유복한 여생 을 지낼 수 있을 정도는 됩지요." "봤다는 사내는 어떤 자지?" 얼핏 보기에도 교활한 얼굴인 컨웰의 표정은 징그럽고도 으시시한 느 낌을 주었다. "그 놈은 달의 광산 기사로 크레이터에 있는 노래하는 종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어떤 방법인지는 모릅니다.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 녀석은 그것을 왕창 모아서 달에 감춰두고 이 제 처분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겁니다." "그 녀석, 죽었겠군?" "네, 그렇습니다. 소름이 돋는 사건이죠, 페이튼씨. 녀석은 아주 높 은 곳에서 떨어진 셈이죠. 정말 안됐죠. 물론, 그가 달에서 한 일은 비합법입니다. 월세계 자치령에서는 노래하는 종의 무허가 발굴에 대 해서 엄격하죠. 결국 천벌을 받은거죠. 어쨌든 녀석의 지도가 제 손 에 있다는 겁니다." 페이튼은 여전히 무관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쓸데 없는 얘기는 접어두고, 내가 알고 싶은 건 어째서 자네가 내게 왔는가 하는거야." "뭐라고요, 그야 저와 페이튼씨 사이라면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지 요, 페이튼씨. 게다가 서로 해낼 수 있는 소임이 있고요. 저는 감춰 둔 장소를 알 뿐더러 우주선을 손에 넣을 수 있고, 페이튼씨는...." "나는?" "페이튼씨는 우주선 조종이 가능하고 노래하는 종을 돈으로 바꿀 수 가 있고요. 이건 정말 공평한 분담이 아닙니까, 페이튼씨. 그렇게 생 각하지 않습니까?" 페이튼은 자신의 생활 양식- 현재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생활 양식 -을 생각해 봤다. 그것은 이 일에 적합한 것 같았다. "8월 10일에 달로 출발하지." 컨웰은 갑자기 멈춰섰다. "페이튼씨! 이제 겨우 4월이에요." 페이튼이 변함없는 보조로 계속 걷고 있었기 때문에 컨웰은 급하게 따라가야했다. "듣고 계십니까, 페이튼씨?" 페이튼이 말했다. "8월 10일이야. 그때가 되면, 자네에게 연락해서 어디로 우주선을 옮 길 건지 알려 주겠네. 그때까지는 나를 찾지 말게. 알았지? 컨웰?" "분배는 반반씩이죠?" "물론." 페이튼이 말했다. "그럼." 페이튼이 혼자서 걸으며 다시 한번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스물 일 곱 살 때, 그는 로키 산맥 산 속에 있는 땅을 샀다. 몇 대 전의 땅 주 인은 그 땅에 핵전쟁의 피난처를 삼을 집을 설계해서 지었다. 결국 전 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집은 자급자족의 훌륭한 견본으로 남게 되었다. 그 집은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건물로서는 지구상에서는 가장 완벽하 게 외부와 단절된 지점에 세워졌는데, 해면보다도 높은 고도에 사방은 높다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자가 발전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고 급 수는 산 정상에서 끌어들였으며, 소 열 마리 정도는 충분히 저장할 수 가 있는 냉장고에, 굶어서 미친 폭도들을 막기 위한 병기 창고를 갖춘 요새라 할 수 있는 지하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공기 조절 장치는 방 사능이 더 이상 검출되지 않을 때까지 자동으로 공기 정화 작업을 계속 하게끔 되어 있었다. 해마다 8월이면 페이튼은 지난 세기의 유물인 그 집에서 한달동안 완 전한 혼자만의 생활을 보냈다. 그는 거기에 발신기, TV, 신문 전송기 등을 들여놨다. 또한 그 주위에는 자력망을 설치해 꼬불꼬불한 산길에 있는 자력장치망에 감지되는 모든 것이 집으로 직접 송신되는 근거리용 신호 장치까지 갖추었다. 매년 한 달, 여기서 페이튼은 혼자가 되었다. 만나러 오는 자도 없고 누구 한 사람 접근할 수도 없다. 그는 단지 차가운 경멸만이 있을 뿐인 인간 세계에서의 지친 열한 달을 보내고, 이제 휴양 기간을 이토록 완 전한 고독 속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경찰조차(여기서 페이튼은 싱긋 웃는다.) 그가 8월이면 갖는 이 전통 있는 연중행사를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페이튼은 유언장에 한 줄 더 경구를 적어넣고 싶어졌다. '무죄를 위장하려 할 때는 알리바이의 뒷받침만큼 훌륭한 증거는 없 다.' 그해 7월 30일이 되자, 예년의 7월 30일처럼 루이스 페이튼은 뉴욕에 서 오전 9시 15분발 무중력 대기권 제트기를 타 오후 12시 30분에 덴버 에 도착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45분발 함프스 행 반중력 버스를 탔다. 함프스 포인트에 도착하자 샘 라이트맨이 완전 중력형의 구식 지상 차로 산길을 달려 그의 토지 경계까지 태워다줬다. 샘 라이 트맨은 지난 15년간 매년 7월 30일이면 해왔듯이 언제나 받는 10달러의 팁을 조용히 받고 모자에 가볍게 손을 댔다. 7월 31일, 예년의 7월 31일처럼 루이스 페이튼은 자가용 무중력 비행 기로 다시 함프스 포인트로 가서 함프스 포인트 백화점에서 한 달 동안 필요한 일용품을 주문했다. 주문품도 그전과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전의 주문과 똑같았다. 백화점의 지배인 맥킨타이어는 신중히 리스트를 맞춰 보며 덴버의 중 앙 본점에 그것을 보냈다. 모든 품목은 채 1시간도 지나기 전에 물품 운송 빔에 실려 운반되었다. 페이튼은 맥킨타이어를 거들어 물건을 비 행기에 싣고, 언제나처럼 10달러의 팁을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8월 1일, 오전 0시 1분. 페이튼의 땅을 둘러싼 자력장치망의 자력이 최대한도로 높아졌고, 페이튼은 외계로부터 단절되었다. 자, 그러나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의 생활 양식이 변하는 것이다. 그는 일부터 8일간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기간을 이용해 8월 한 달간 쓸 일용품을 조금씩 솜씨 좋게 처분했다.이 집에 있는 소각실을 사용한 것 이다. 소각실에는 금속이나 산염을 포함한 모든 물질을 눈에 보이지 않 는 매우 미세한 분자로 환원해 버리는 설비가 완비되어 있었다. 처리 중에 발생하는 에너지는 그의 땅 안으로 흐르는 시냇물에 방출된다. 그 때문에 일주일동안 수온이 5도씩이나 상승했다. 8월 9일, 페이튼의 비행기는 알버트 켄웰과 우주선이 기다리고 있는 와이어밍의 어떤 지점으로 그를 실어갔다. 우주선 자체는 물론 하나의 약점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을 판 인간과 출발을 위한 정비를 도운 사람 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컨웰과 연결될 뿐, 언젠가는 컨웰과 더불어 선이 끊길 것이다. 페이튼의 입가에 차갑고도 희미한 미 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8월 10일, 우주선은 조종석에 앉은 페이튼과 승객인 컨웰을 태우고 지구 표면에서 떠올랐다. 무중력장은 최고였다. 최대 출력을 내자 우주 선의 총중력은 1온스 이하로 줄었다. 소형 원자로는 소리도 없이 충분 한 에너지를 공급했다. 화염도 발사하지 않고 분사도 없이 대기를 가르 며 비상한 우주선은 미세한 점이 되어 사라졌다. 이 출발 광경을 본 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 로도 그 누구도 본 사람은 없었다. 우주 공간에서 이틀, 달에서 2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페이튼은 계획 당시부터 거의 본능적인 계산 능력으로 2주일 정도가 걸릴 것이라 예상 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추어가 작성한 지도 따위에 전적으로 의존할 생 각은 없었다. 그것은 제작자 자신에게는 기억이라는 보조자료가 있기 때문에 충분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단지 하나의 암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컨웰은 우주선이 출발하자 페이튼에게 처음으로 지도를 보여 주었다. 그는 옅은 웃음을 띠었다. "뭐니뭐니 해도 이게 제가 가진 하나뿐인 마지막 카드죠." "달 표면과 맞추어 보았나?" "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요. 페이튼씨, 당신에게 맡기겠어요." 페이튼은 지도를 돌려주면서 차갑게 그를 바라 보았다. 그 지도에서 유일한 단서는 티코 크레이터, 즉 파묻힌 루나 시의 유적이었다.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천문학은 그들 편이었다. 마침 이 시기에 티 코는 달의 낮 시기였다. 그 사실은 순찰 우주선이 나타날 가능성이 극 히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따라서 그들이 발견될 가능성도 적은 것이 다. 페이튼은 크레이터 안쪽 벽의 안전하고도 차가운 암흑 속에 대담하게 급강하 무중력 착륙을 시도했다.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어서 그림자 가 더 이상 짧아질 수 없을 정도였다. 컨웰은 얼굴을 찌푸렸다. "페이튼씨. 달세계의 낮 동안 찾아다닐 수는 없어요." "달의 낮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게 아냐." 페이튼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백 시간 정도 태양이 나와 있어. 그 동안 새로운 환경에 몸 을 익히고 지도를 연구해야 해." 지도의 해독 결과는 금방 나왔지만 하나가 아니고 복수였다. 페이튼 은 달 표면을 몇 번이나 검사하여 면밀한 측정을 하고, 열쇠가 되는-무 슨 열쇠인지 모르지만- 손으로 만든 지도에 그려진 크레이터의 모양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가까스로 페이튼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찾는 크레이터는 이 세 개 중 하나야. GC-3, GC-5, MT-10 중 에 어떤 것이겠지." "어떻게 하면 되죠, 페이튼씨?" 컨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다 찾아봐야지." 페이튼이 말했다. "제일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지." 명암 경계선을 통과해 그들은 밤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달 표면에서 감도는 영원한 침묵과 암흑 속에 빛나는 별들의 영상과 그 리고 크레이터의 가장자리에서 바라보이는 지구의 섬광 등에도 익숙해 졌다. 그들은 규칙적인 특징이 없는 발자국을 메마른 먼지 위에 남기고 갔다. 페이튼은 둥근 크레이터에서 기어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보았다. 달의 한기는 우주선 밖에 있는 시간을 제한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점 차로 매일매일 그 시간을 늘여갔다. 도착 후 11일째에 GC-5는 노래하는 종의 은폐장소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15일째가 되자 페이튼의 냉정한 마음은 필사적인 염원으로 뜨거워졌 다. 이젠 GC-3가 아니면 안 된다. MT-10은 너무도 멀다. 그곳까지 가서 종을 찾아서 8월 31일 안에 지구에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하지만 그 15일째 되는 날 페이튼의 필사적인 마음을 노래하는 종을 찾아냈다. 그것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고르지 않은 회색의 바위 덩 어리로 크기는 주먹을 두 개 합친 정도이고, 안은 텅 비었으며 달의 중 력에서 새털처럼 가벼웠다. 정확히 두 다스가 있었는데 대충 광을 내면 1개당 적어도 100억 달러는 받을 것이다. 그들은 노래하는 종을 양손에 가득 들고 조심스레 우주선으로 운반한 뒤 다시 가지러 돌라갔다. 이렇게 그들은 세 번 왕복했는데, 지구에서 라면 매우 힘들었을 이 노동도 달의 작은 중력에서는 거의 아무런 힘이 들지 않았다. 컨웰이 마지막 노래하는 종을 페이튼에게 건네주자, 페이튼은 그것을 조심스레 놓았다. "좀 비켜주세요, 페이튼씨." 컨웰은 말했다. 무선기를 통한 그 목소리는 상대의 귀에 거슬는 소리 를 냈다. "올라가야 하니까요." 컨웰은 달의 중력에 대항해 천천히 높게 도약하기 위해 웅크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때 그는 소름끼치는 공포를 느꼈다. 그의 얼굴은 헬 멧이라는 딱딱하고 완곡한 얼굴 가리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을 만큼 심 한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페이튼씨. 그만둬요!" 열선총을 든 페이튼의 손이 일순간 딱딱해졌다. 총이 불을 뿜었다. 눈이 감길 정도의 하얀 빛이 번쩍하더니, 컨웰의 육체는 산산히 분해되 어, 우주복의 잔해와 함께 굴러다니다가 곧 얼어버린 핏덩이로 변했다. 페이튼은 죽은 남자를 음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나 그것도 아주 잠 깐이었다. 그는 마지막 노래하는 종을 미리 준비한 컨테이너로 옮기고 나서 우주복을 벗었다. 그리고 우선 무중력장을 활동시키고 소형 원자 로를 점화시켰다. 페이튼은 2주 전에 비하면 백만 배 아니 이백만 배가 될지도 모르는 재산가가 되어 지구를 향한 귀로에 올랐다. 8월 29일, 페이튼의 우주선은 8월 10일에 출발했던 와이오밍의 어떤 지점에 조용히 착륙했다. 페이튼이 그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의 비행기는 그 근방의 바위로 적당히 가려진 천연의 요새에서 주인 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노래하는 종을 컨테이너에 넣은 채 옮겨와 바위 사이의 가장 깊 은 곳에 넣고는 흙으로 가볍게 덮었다. 그리고 다시 우주선으로 돌아가 조정장치로 마지막 조정을 했다. 그가 우주선에서 나오자 2분 후 우주 선의 장동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소리도 없는 빠른 속도로 우주선은 위로 날아가 지구의 자전에 맞추 어 서서히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페이튼은 가늘게 뜬 눈 위에 손 을 대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시야를 벗어난 멀고 먼 푸른 하늘에서 순간적으로 미세한 빛의 섬광과 하얀 점이 번쩍했다. 페이튼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의 계획이 마침내 성공한 것이 다. 카드뮴의 안전핀이 빠져 무력화되면 소형 원자로의 장치를 유지하 는 안전수준은 급격히 위협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주선은 다음에 일어 날 핵폭팔의 고열에 녹아 없어지는 것이었다. 20분 후 그는 집에 돌아왔다. 너무나 피곤했다. 온몸의 근육이 달과 는 다른 지구의 중력 때문에 묵직하게 아파왔다. 그는 잠에 푹 빠졌다. 12시간 후 새벽이 뿌옇게 밝아올 때쯤 경찰이 찾아왔다. 문으로 들어선 남자는 맞잡은 양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미소를 띤 얼굴로 머리를 두어 번 숙였다. 지구 연방검찰국의 H. 세튼 더벤포드는 들어서자마자 주위를 살폈다. 그가 들어선 방은 꽤 넓었는데, 안락의자와 책상을 비추는 조명 외에 는 전체적으로 어스름했다. 필름 책이 벽에 죽 나열되어 있다. 은하계 의 별지도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 구석의 대 위에는 은하 렌즈가 놓여 있었다. "당신이 웬델 아스 박사님이십니까?" 더벤포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더벤포드는 깍아낸 듯이 높은 코에 머리가 검으며 땅딸막한 남자였다. 한쪽 뺨에 있는 별 모양 의 흉터는 가까운 거리에서 중성자 회초리에 맞았다는 사실을 훈장처럼 표시하고 있었다. "그렇소." 아스 박사는 가느다란 중음으로 말했다. "그럼, 당신이 더벤포트 경감이오?" 경감은 신분 증명서를 제시했다. "대학에서 외계환경학자로서 당신을 추천해서요." "30분 전의 전화로도 그렇게 말씀하셨지." 아스는 유쾌한 듯 말했다. 통통한 얼굴에, 코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 르겠고, 약간 튀어나온 눈에는 두꺼운 렌즈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아스 박사님. 그런데 당신은 아마 달에 가신 적이...." 아스 박사는 흩어져 있는 필름 책의 무더기 뒤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유리잔 두 개와 붉은 액체가 든 병을 꺼내다가 갑자기 쌀쌀한 말투로 말했다. "난 달에 가 본 적이 없, 경감. 가려고 생각한 적도 없소! 우주여행 은 바보같은 짓이오. 믿을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부드러운 어조가 되었다. "자, 앉으시오. 자, 자. 한 잔 하시지." 더벤포드 경감은 권하는 대로 앉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당신은 분명히....." "외계환경학자죠. 나는 외계에 흥미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가야만 한다는 원칙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역사가가 되기 위 해 반드시 시간 여행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니겠소?" 그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자, 대체 어떤 용무로 오신 건지를 들려 주시죠." "박사님을 방문하게 된 것은....." 경감은 미간을 모으면서 말했다. "살인 사건에 대한 상담입니다." "살인? 살인 사건이라?" "아스 박사님, 이 살인 사건은 달에서 일어났습니다." "놀랍군요." "놀랍기만 한 게 아닙니다.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아스 박사님. 실 은 월세계 자치령이 건설된 이래 50년간 우주선이 폭파되거나 우주복 이 찢어져 죽은 사람이 생긴 일은 있습니다. 낮지대에서 타 죽거나 밤지대에서 동사하거나, 또는 양 지대에서 질식사를 한 경우도 있습 니다. 그리고 추락사도 있습니다. 뭐 이건 달의 중력을 생각한다면, 대단한 일이긴 합니다만..... 하지만 이 50년간, 달세계에서 고의적 폭력에 의해 살해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아스 박사가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 살해됐죠?" "열선총입니다. 다행히도 경찰당국은 범행후 1시간도 지나기 전에 현 장에 도착했습니다. 순찰 우주선이 우연히 달 표면에서의 섬광을 봤 던 거죠. 아시겠지만, 밤지대에서는 섬광이 꽤 멀리까지 보이니까요. 순찰자는 곧 본부에 보고하고 착륙했습니다. 또한 그 사이에 우주선 같은 것이 이륙하는 광경을 지구의 빛으로 확실히 봤다고도 순찰자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착륙 후, 곧 분해된 시체와 발자국을 발견했습니 다." "그 섬광이....." 아스 박사가 말했다. "열선총 발사광이었다 그거죠?" "그건 확실합니다. 시체는 죽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분해된 시체 의 내부는 아직 얼지 않았었거든요. 발자국은 두 사람의 것이었습니 다. 면밀한 측정 결과, 파인 발자국이 서로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습 니다. 발자국은 대부분 GC-3와 GC-5 크레이터에서.... 어쨌든 GC-3에 남겨진 발자국은 크레이터 벽 틈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틈 안에서 딱 딱한 경석의 파편이 발견댔습니다. X선 회절 패턴에 의하면 그것은.. ..." "노래하는 종." 외계환경학자는 흥분한 듯이 입을 열었다. "설마 당신은 그 살인에 노래하는 종이 얽혀있다고 하는 건 아니겠죠 ?" "그렇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더벤포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도 실은 하나 갖고 있어요. 대학 탐험대가 찾아와서 어떤 사건의 해결에 대한 보답으로 준 거죠. 아, 경감! 당신에게 보여드리죠." 아스 박사는 성큼 일어나 발소리를 내면서 방을 나가며 경감에게 따 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더벤포드가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두 번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앞 방보다 더 넓고 조명도 어두 워 방은 온통 어수선했다. 더벤포드는 경이의 눈으로, 정돈하려는 노력 이 조금도 보이지 않고 널려 있기만 한 잡다한 더미들을 막연하게 바라 보았다. 거기에는 화성의 가공품으로 추측되는 물질, 소원석, 초기의 우주선 모형, '화성의 바닷물'이라 쓰여진 표가 붙은 병 등이 있었다. 아스 박사는 흡족해 하며 입을 열었다. "집안을 다 박물관화한 거요. 이건 독신생활의 이점 중 하납니다. 물 론 처계적으로 정리한 건 아니지만 말이오. 언제 일주일 정도 여유가 나면...." 한동안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찾는 것 같더니, 이윽고 은하계 지도의 아르크톨스(황소자리의 주성) 위 바다에 사는 무척추동물의 고등 동물 로의 진화 형태를 나타내는 도표를 젖히면서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금이 가긴 했지만." 노래하는 종은 가는 철사에 걸려 있었다. 금이 간 것은 확실했다. 중 간에 잘록하게 선이 들어가 있어서, 마치 딱딱하고 그러면서도 불완전 하게 찌그러진 두 개의 작은 공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름답게 연마되어 있었고 빌로드처럼 부드러운 감촉에 엷고 둔한 회색 의 광택을 내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곰보자국 같은 게 있었다. 그 종은 연구소에서 노래하는 종을 합성하기 위해서 치른 무익한 노력의 결과로 복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명했을 때 생긴 흔적이었다. 아스 박사가 말했다. "종을 두드리기에 적당한 것을 찾고자 이것저것 시험해 봤지만 금이 간 종은 어려워요. 하지만 뼈 세공품이라면 괜찮아. 여기에 하나 있 는데." 그는 회백색의 물질로 만든 짧고 두거운 스푼 같은 것을 꺼냈다. "소의 뼈로 만든 거요....들어 봐요." 놀랄 정도로 섬세하게 그의 통통한 손가락이 종을 어루만지더니 여기 다 싶은 곳을 찾았다. 그는 종을 가만히 붙잡고 흔들더니 스푼의 두꺼 운 부분으로 살짝 두드렸다. 마치 1마일 먼 곳으로부터 수많은 하프가 연주되는 듯한 울림이었다. 울림은 더욱 멀리 퍼져 가는 듯하더니 다시 되돌아왔다. 그 투명한 소 리들의 합창은 어느 한 방향에서 들리는 게 아니라 뭐라 형언할 수 없 는 달콤하고 애수에 잠긴 트레몰로(동일음의 급속한 반복에 의한 장식 적인 소리:옮긴이)가 되어 한꺼번에 가슴으로 몰려들었다. 여운이 잦아들면서 이윽고, 소리가 그칠 때까지도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에 빠져 있었다. 아스 박사가 말했다. "나쁘진 않죠?" 그리고 철사에 매단 종을 손 끝으로 퉁겨 흔들리게 했다. 더벤포드는 불안한 듯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위험해요....깨지겠어요." 노래하는 종이 깨지기 쉽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지잘학자들에 따르면 노래하는 종은 단지 압력에 의해 굳어진 경석 으로서, 안에 빈 공간이 있어 그 속에서 작은 바위조각이 쨍그랑쨍그 랑 소리를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그 정도죠.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 합성이 되지 않는 걸까요. 금이 가지 않았다면 이런 소리를 아이들의 하모니카처럼 낼 수가 있어요." "물론입니다." 더벤포드가 말했다. "금이 가지 않은 종을 가진 사람은 이 지구에 한 다스도 안 됩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도 그것을 구입할 인간이나 연구소는 얼마던지 있 습니다. 종을 손에 넣기 위해 살인이라도 불사할 정도죠." 외계환경학자는 더벤포드를 돌아보더니 집게손가락을 들어 안경을 납 작한 코 위로 밀어올렸다. "당신의 살인사건을 잊고 있었군요, 경감. 자, 계속하시죠." "말하자면 간단한 겁니다. 범인의 정체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서재의 의자로 되돌아갔다. 아스 박사는 양손을 맞잡아 불룩 튀어나온 배 위에 얹었다. "그럼 아무 문제가 없지 않소, 경감." "알고 있는 것과 증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아스 박사님. 불행 히도 그에게는 알리바이가 없습니다." "아니, 불해히도 알리바이가 있는 게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알리바이가 있으면 어떻게든 깰 수 있지요. 어차피 거 짓이니까요. 살인이 행해진 그 시간에 그를 지구상에서 봤다는 증인 이 있으면 그들의 얘기를 뒤집는 건 쉽죠. 뭔가 증거가 되는 서류라 도 그가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위조인지 아닌지를 간단히 알 수 있습 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자에겐 그런게 일체 없습니다." "그럼 대체 뭐가 있죠?" 더벤포드 경감은 콜로라도에 있는 페이튼의 저택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자는 거기서 매년 8월,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합니 다. TBI(지구연방검찰국)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가 달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한, 배심원도 그자가 8월 한 달은 저택에 파묻혀 사는 걸로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가 달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죠? 어쩌면 죄가 없는지도 모르는데." "그럴 리가 없어요!" 더벤포드는 격분했다. "15년간 나는 그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이번에야말로 페이튼의 범죄를 파헤쳐 낼 수 있습니다. 페이튼을 빼고 이 지구상에서 그토록 대담하 고 또한 완전한 방법으로, 반입한 노래하는 종을 처분할 능력이 있는 자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게다가 그는 우주선 조종사로서도 노련합 니다. 그리고 그가 피해자와 관계를 갖고 있던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접촉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불행히도 그 어떤 것도 증거가 안됩니다." 아스 박사는 말했다. "심층심리검사를 하면 간단하잖소? 이제는 사용이 합법화되었으니까 요." 더벤포드는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다. 얼굴의 상처자국이 핑크빛으로 바뀌었다. "콘스키 피아카워 법을 읽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스 박사님?" "아니오." "읽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 책에서는 심적 프라이버시의 권 리야 말로 기본적인 것이라고 정부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건 좋지만 그뒤에 오는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심층심리검사를 받은 후에 범죄 사실에 대해서 무죄가 증명된 사람에게는 법이 인정하는 한도 내의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주어집니다. 최근의 경우로 은행 출납계원이 절도죄로 심층심리검사를 당했다는 보상으로 2만 6천 달러를 받은 적 이 있습니다. 절도로 보인 상황 증거는 실은 간통이었습니다. 그의 요구는 실업자가 된 것과 상대한 여자 남편의 협박으로 육체적 공포 를 느낀 것, 그리고 매스컴이 법정에 보관된 검사 결과를 캐냈기 때 문에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 등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그 남자 쪽도 이해가 가는군요." "저희도 압니다. 그게 고민거리죠. 또 하나 있어서는 안 되는 게 있 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한 번 심층심리검사를 받은 자는 그후 어 떤 경우에도 다시는 강제로 검사를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한 개인이 일생 동안 두 번이나 심리적 위협을 받으면 안된다고 법규 에 정해져 있으니까요." "까다롭군요." "글쎄 말입니다. 심층심리검사가 합법화된 이래 2년 동안 일부러 검 사를 받아두고 나중에 완전하게 커다른 사기를 치려고 했던 사기꾼이 나 범죄꾼의 수는 이루 셀 수가 없을 정도 입니다. 그래서 당국에서 는 유죄의 확증을 손에 넣기 전까지 그자에게 심층심리검사를 시도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아스 박사님, 심층심리 검사 보고를 갖지 않고 법정에 나갈 경우 우리의 승산이 없다는 겁니 다. 살인 같은 중대사건의 경우, 심층심리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둔한 배심원에게는 기소의 근거가 희박하다고 할 충분한 이 유가 되니까요." "그래, 내게 원하는 것은 뭐죠?" "그가 8월 며칠인가에 달레 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살인 용의 로 오래 구류해 둘 수는 없으니까요. 만일 이 살인 사건 뉴스가 흘러 나가게 되면 세계의 신문은 목성의 대기에 충돌한 소행성 사건 때처 럼 소란을 떨 겁니다. 매우 매력적인 뉴스거리니까요. 달세계의 첫번 째 살인이니 말입니다." "살인이 일어난 건 언제죠?" 아스는 갑자기 또박또박 반대신문의 어조가 되어 물었다. "8월 27일입니다." "그를 체포한 건 언제였죠?" "어제, 8월 30일입니다." "그러면 페이튼이 범인이라면 지구로 돌아올 시간은 있었던 거군요." 더벤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하루만 빨랐다면....그래서 그자의 집이 비어있는 걸 발견했다 면...." "그런데 그 두 사람, 즉 살인자와 피해자는 며칠 정도 달에 있었다고 생각되나요?" "발자국의 상태로 판단해 볼 때 꽤 오랜 기간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 다. 최소한 일주일은 되리라 봅니다." "그들이 사용한 우주선은 발견됐습니까?" "아뇨, 아마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겁니다. 덴버 대학에서 10시간쯤 전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즉 어제 오후 6시에 대기중에 방사능 이 증가했는데 그 상태가 수시간 동안 계속됐다고 합니다. 극히 간 단한 겁니다, 아스 박사님. 조정 장치를 잘 조절해서 승무원 없이 우 주선을 발사시켜 50마일 상공에서 소형 원자로를 폭파시키는 거죠." "만약 내가 페이튼이라면...." 아스 박사는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남자를 우주선에서 죽여, 우주선과 같이 폭파시켰을 텐데." "당신은 페이튼을 잘 모르십니다." 더벤포드는 신중하게 말했다. "그는 법에 대한 싸움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중요합니 다. 달에 시체를 남겨두고 온 것은 우리들에 대한 도전입니다." "흠." 아스 박사는 손을 돌려 배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래도 승산은 있어요." "그 말씀은 그가 달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겁니까?" "내 생각을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요?" "빠를수록 좋겟죠. 물론 내가 페이튼씨를 만날 수 있는 경우에 얘깁 니다만." "그건 가능합니다. 무중력 제트기를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20분이면 워싱턴에 갈 수가 있어요." 그 순간, 공포에 질린 표정이 비대한 외계환경학자의 얼굴을 스쳐 갔 다. 그는 벌덕 일어나더니 TBI 국원 옆에서 도망치듯 물러나 지저분한 방의 가장 어두운 한구석으로 갔다. "안 돼요!" "왜 그러시죠, 아스 박사님?" "무중력 제트기 따위에는 타지 않아요. 신용할 수 없으니까." 더벤포드는 당황한 듯 아스 박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말문이 막 혔다. "철도 쪽이 좋으십니까?" 아스 박사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난 어떤 종류의 운송 기계도 믿지 않아요. 그런 건 믿을 수 없소. 걷는 것외에는 신용할 수 없어요. 걷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좋습니다 만." 그는 갑자기 빠른 어조로 말했다. "페이튼씨를 이 시에 데려오면 안 될가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습니다. 시청은 어때요? 시청이라면 자주 걸어서 가는데." 더벤포드는 황당해서 방안을 둘러봤다. 그리고 외계에 대해 연구한 수많은 학술서를 바라다봤다. 열려진 문 저쪽에는 우주 저편에 있는 광 활한 세계들의 상징을 쌓아둔 방이 보였다. 그리고 무중력 제트기람 말 을 듣자마자 창백해진 아스 박사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고, 어깨는 으쓱 했다. "페이튼을 이리로 데리고 오죠. 이 방까지요. 그러면 되겠습니까?" 아스 박사는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좋습니다." "아무튼 잘 부탁합니다, 아스 박사님." "최선을 다하겠소, 더벤포드씨." 루이스 페이튼은 험악한 표정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경멸에 찬 시선으로 살찐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내준 의자에 시선을 주더니 앉기 전에 손으로 먼지를 털었다. 더벤포드는 그의 옆에 앉아 열선총 케이스를 손 가까운 곳에 놓았다. 뚱뚱한 남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앉더니, 마치 세상에 자기 위의 충족 상태를 알리고 싶다는 듯, 불룩한 배를 두드렸다. 그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페이튼씨. 나는 외계환경학자인 웬델 아스 박사요." 페이튼은 그를 다시 바라봤다. "그래, 내겐 무슨 용건이오?" "8월 중에 당신이 달에 간 적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요." "안 갔소." "하지만 8월 1일부터 30일까지 지구상에서 당신을 본 사람은 없는데 요." "월에는 보통 때처럼 생활했소. 8월이 되면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 요. 이 사람에게 물어보시오." 이렇게 말한 그는 더벤포드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스 박사는 엷은 웃음을 띠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테스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달과 지구의 차 이를 인정하는 물리적 방법이 있기만 하면....만약에 말입니다, 당신 의 머리에 묻은 먼지를 분석해서 아, '달의 먼지다'라고 말할 수 있 으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게 안 됩니다. 달의 먼지는 지구의 먼 지와 거의 같으니까요. 설사 다르다 해도 당신이 우주복을 입지 않고 달 표면에 나가지 않는 한 머리에 먼지가 앉을 리는 없고....게다가 그런 일은 무리죠." 페이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앉아 있었다. 아스 박사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띤 채로 한 손을 들어 콘잔등에 위험스레 붙어있는 안경을 밀어올렸다. "우주, 또는 달을 여행하는 인간은 지구의 공기를 마시고 지구의 음 식을 가져가죠. 우주선 속에서든 우주목 속에서든 간에 지구 환경을 피부에 직접 닿게 하고 다니죠. 우리들은 달에 가는 도중에 우주공간 을 이틀간, 달에 도착해서 적어도 일주일, 그리고 달에서 돌아오는 길인 우주공간에서 이틀을 지낸 남자를 찾고 있어요. 그런데 이 남자 는 그 동안에도 지구의 물건을 몸에 직접 가지고 다녀서 찾아내기가 꽤 힘들어요." "그러실려면." 페이튼이 말했다. "나를 풀어주고 진범을 찾아보는 게 현명할 거요." "그럴지도 모르죠." 아스 박사가 말했다. "이런 걸 본 적이 있나요?" 그는 손을 의자 한 쪽으로 쓰윽 뻗치더니 부드러운 광채를 띤 회색의 공 같은 것을 들어 올렸다. 페이튼은 웃었다. "노래하는 종 같군요." "노래하는 종입니다. 살인은 노래하는 종 때문에 일어났겠죠....이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금이 제법 많이 갔군요." "네, 하지만 잘 조사해 보세요." 아스 박사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을 재발리 움직여 그것을 6피트 공중 에 던졌다. 더벤포드가 비명을 지르며 반쯤 일어섰다. 페이튼은 팔을 뻗는 것이 의외로 재빨라서 간신히 종을 잡을 수 있었다. 페이튼이 말했다. "무신 짓이요. 종을 이렇게 던져대다니." "당신은 노래하는 종을 숭배하는 쪽이군요?" "깨뜨리면 큰일이지요. 죄가 되지는 않지만." 페이튼은 종을 살짝 두드려 본 뒤 귓가에 대고 천천히 흔들면서, 루 노리스, 즉 경석의 작은 분자가 빈 공간 속에서 부딪치며 내는 감미로 운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종에 달려 있는 철사를 들고 엄지손가락의 손톱으로 교묘하게 튕겨 종의 표면을 건드렸다.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음색은 너무도 부드럽고 달콤했으며, 지상의 모든 악기들이 미묘한 비브라토로 세상 을 울리고 있는듯 했다. 그 퍼져나가는 음색은 창공을 물들이는 여름의 석양을 방불케 했다. 세 명의 남자들은 한동안 넋을 잃고 그 음색에 빠져 있었다. 갑자기 아스 박사가 말했다. "던져주시오, 페이튼 씨. 자, 던져요!" 그리고 받을 듯이 손을 내밀었다. 무의식적으로 루이스 페이튼은 종을 던졌다. 그러자 종은 아스 박사 의 손이 대기하는 곳까지의 거리의 삼분의 일도 못미치는 지점에서 타 원을 그리면서 밑으로 떨어지더니, 바닥에서 불협화흠을 내며 깨졌다. 더벤포드와 페이튼은 둘 모두 할 말을 잃고 그 회색의 파편을 응시했 다. 아스 박사의 조용한 목소리도 한동안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천연의 종을 숨긴 곳을 찾으면, 이번 일의 대가 및 수수료로 금이 가지 않고 제대로 닦은 걸 하나 받기로 할까요?" "수수료라고요? 무슨?" 더벤포드는 초조한 듯이 물었다. "모든 것이 명백해졌어요. 아까 내가 한 작은 연설에도 불구하고, 어 떤 우주 여행자도 가지고 갈 수 없는 지구의 환경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지구상의 중력입니다. 페이튼씨가 귀하게 숭배하는 깨지기 쉬 운 물건을 던지면서 저렇게 거리계산을 착오했다는 사실은 바로 그의 근육이 아직 지구의 중력에 재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내 직업상의 의견입니다만, 더벤포드씨. 당신의 범인은 최근 수일 동안 지구를 떠나 있었습니다. 우주공간 내지는, 지구보다 작은 행성 위, 예컨대 달에 있었던 게 확실합니다." 더벤포드는 승자의 얼굴이 되어 일어섰다. "당신의 의견을 문서로 써 주십시오." 그는 열선총을 손에 들면서 말했다. "그것이면 심층심리검사 허가를 받기에 충분할 겁니다." 루이스 페이튼은 반항하지도 않고 단지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머 릿속에는 유언장의 마지막 장에 실패를 써 넣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만 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