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성 (원제 : Star Light) 지은이 :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년 러시아에서 출생하여 3세때 미국으로 이민. 컬럼비아 대학에 서 생화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음. 그 뒤 세계적인 SF작가이자 과 학저술가로 필명을 떨치다 지난 4월 6일 작고. [파운데이션]시리즈, [로봇]시리즈 등 350여 종이 넘는 저술을 남김. 아서 트렌트는 무전기에서 울려나오는 분노에 찬 목소리를 똑똑히 들 을 수 있었다. "트렌트, 너는 도망칠 수 없다! 앞으로 두 시간 안에 너의 진로를 차 단할 것이다. 계속 저항하면 우주선을 통째로 날려 버리겠다!" 트렌트는 싱긋 웃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무기 도 갖고있지 않았으나 사실은 싸울 필요도 없었다. 두 시간이 훨씬 지 나기 전에 그는 초공간 도약을 할 것이고 그러면 추적자들을 영원히 따 돌릴 수 있게 된다. 1킬로그램 가까운 크릴리움을 가지고 우주의 한 구 석으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크릴리움 1킬로그램이면 로봇 수 천 대 분 의 양자두뇌를 만들 수 있으며, 은하계 어디를 가나 1천만 크레딧 정도 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브렌메이어 노인이 꾸민 일이었다. 그가 장장 30년에 걸쳐 준비한 것이었다. 사실상 그는 일생을 걸었던 것이다. "도망갈 길은 있네, 젊은 친구. 난 그래서 자네가 필요한 것이야. 우 주선을 이륙시키려면 자네가 필요해. 난 늙어서 곤란하거든." "우주선으로 도망가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군요, 노인 장. 하루 반나절도 못 가서 잡히고 말 거요." "아냐, 그렇지 않아. 일단 초공간 도약만 하면 돼." 브렌메이어는 간사한 표정으로 웃었다. "1광년 이상만 도약하면 그 다음부터는 걱정할 것 없다구." "도약을 하려면 좌표 계산에만 반나절은 걸려요. 게다가 요행히 시간 을 벌어 도약했다 해도, 경찰의 수배령은 이미 온 우주에 내려진 뒤일 거라구요." "아냐, 그렇지 않아." 브렌메이어는 떨리는 손으로 트렌트의 팔을 잡으면서 열에 들떠 설명 을 계속했다. "온 우주에 수배령이 내려지지는 않아. 그저 이 근방의 여남은 태양 계 정도밖엔 전달되지 않아. 은하계가 얼마나 넓은지 잘 알잖나? 지난 5만년 동안에 각 식민지들은 죄다 연락이 두절되다시피 했다구." 브렌메이어는 목청높여 열심히 얘기했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오 늘날 인류는 은하계 전체에 퍼져 살고 있었으며, 먼 옛날 선사시대에 인류의 원조 행성([지구]라 불렀다고 한다) 표면에 흩어져서 거주할 때 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즉, 모든 대륙의 구석구석까지 사람이 살고 있 었지만, 그들 각자는 바로 이웃한 지역하고만 활발한 연락을 주고받았 던 것이다. "일단 아무데로나 초공간 도약을 하기만 하면 안전하다구. 한 5만 광 년 정도만 날아가면 문제가 없어. 우릴 찾는다는 건 어림없지. 소행성 밭에서 조약돌 찾기지." 트렌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 대신 길을 잃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무턱대고 아무데 로나 도약을 했다간, 가까운 유인 행성을 찾아갈 방법이 없다구요." 브렌메이어는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그들 두 사람의 얘기를 듣는 사 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어쨌든 브렌메이어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듯이 작아졌다. "난 은하계 전체의 모든 유인 행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느라 지난 30년 동안을 바쳤네. 고대부터 내려오는 모든 기록을 조사했지. 직접 여행하고 다닌 거리만도 수 천 광년이 넘어. 웬만한 우주비행사 이상이 지. 지금 은하계 전체의 모든 유인 행성의 위치는 내 컴퓨터에 기억이 되어 있네." 트렌트의 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 "컴퓨터는 내가 직접 설계했지. 성능이 은하계에서 최고야. 내 컴퓨 터엔 또한 은하계 전체의 항성들 좌표가 정확하게 기억되어 있네. 스펙 트럼 등급으로 F,B,A,O 이상의 밝기를 가진 모든 태양들의 위치가 입력 되어 있지. 우리가 일단 아무데로나 초공간 도약을 하기만 하면, 컴퓨 터는 자동으로 주변의 항성 좌표를 기억된 자료와 대조, 검색하기 시작 할 걸세. 그래서 우리가 도약해 나온 곳이 어디인지 찾아내기만 하면, 그 즉시 가장 가까운 유인 행성으로 2차 도약을 하게 되는 거라구." "좀 얘기가 복잡하군요." "이건 아주 확실한 방법이야. 아무렴, 내가 지난 30년 동안을 어떻게 보냈는데. 난 아직 10년은 더 살 수 있으니까 여생은 백만장자의 생활 을 누릴 수 있어. 자네는 나보다 훨씬 젊으니까 앞으로 좋은 세월을 두 고두고 즐길 수 있을걸세." "무턱대고 초공간 도약을 했다가 만일 태양 속에 들어가면 어떡합니 까?" "그럴 가능성은 0이나 마찬가질세. 이 우주의 물질 밀도가 얼마나 희 박한지 잘 모르는 모양이군. 하긴 그렇게 걱정스럽다면야 자네가 겁낼 만한 상황은 여러가지가 발생할 수 있지. 이를테면 태양에서 너무 먼 곳으로 도약을 하면 정보 부족으로 컴퓨터가 항성 좌표를 못 찾을 수도 있겠지. 또 경찰의 추격에서 불과 1광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 로 도약할 수도 있어. 이런 일은 다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구. 발생 가 능성이 사실상 없으니까. 오히려 태양 한복판으로 도약할 확률보다도 더 적지. 그저 이륙할 때 심장 마비나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게. 차라리 그게 더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야." "노인장이야말로 심장 마비를 걱정해야 하지 않소? 그 나이에 우주선 이륙이며 초공간 도약을 감당하려면..." 브렌메이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신경쓰지 않네. 모든 것은 컴퓨터에 맡겨버렸으니까." 트렌트는 그날 브렌메이어에게 들은 얘기를 모두 기억해 두었다. 마침내 어느 날 밤, 빼돌린 크릴리움 1킬로그램을 손가방에 넣어 들 고 브렌메이어가 준비된 우주선으로 왔다. 트렌트는 한 손으로 그 손가 방을 받아들면서, 다른 쪽 손으로도 재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일을 해치 웠다. 단검은 아직도 가장 유용한 도구중의 하나였다. 빠르고 치명적이고 또한 조용했다. 트렌트는 시체 옆에그의 지문이 묻은 단검을 그냥 둔 채로 재빨리 우주선을 이륙시켰다. 뭐 어떨 것인가? 어차피 경찰은 나 를 잡지 못할텐데. 이제 우주공간 한복판에서 그는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다. 트렌트는 계기를 조작하면서, 초공간 도약을 하기전에 늘 엄습하곤 하는 기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여태까지 이 긴장감에 대해서는 어떤 생리학자도 설 명을 하지 못했지만, 우주비행사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었다. 몸의 안과 밖이 뒤집히는 느낌이 계속되었다. 초공간 도약 순간에 그 의 신체와 우주선은 무공간,무시간을 통과하면서 무물질,무에너지의 상 태로 변환된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은하계의 다른 한쪽에 다시 나타 나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다. 트렌트는 미소를 지었다. 난 아직 살아 있다. 초공간 도약은 무사히 끝난 것이다. 아주 가까이 있는 태양은 하나도 없었지만, 컴퓨터가 위 치를 못 찾을만큼 먼 것도 또한 없었다. 우주선 선창으로 보이는 별들 의 모습이 낯설었으므로 트렌트는 자신이 무척 먼 곳으로 날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몇몇 별들은 스펙트럼 F등급 이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미 컴퓨터가 검색을 시작했으니까 이곳이 은하계 어디쯤인지 알아내 는 것도 잠깐이면 될 것이다. 트렌트는 한가로운 심정으로 조종석에 기대 앉은 채, 천천히 돌고 있 는 우주선을 따라 바뀌는 별들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매우 밝은 별 하 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분명히 몇 광년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의 오랜 우주비행 경험으로 보아, 그 별은 대단히 뜨거운 것이 틀림 없었다. 잘 됐군. 컴퓨터는 저 별을 기준으로 주변 좌표계를 검색하고 있을 것이다. 트렌트는 다시한번 생각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몇 분이 흘러가고, 이윽고 몇 시간이 흘러갔 다. 컴퓨터는 여전히 깜박거리면서 우주선의 실제 위치와 자신의 기억 속에 입력된 좌표의 대조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트렌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왜 못 찾고 있는거지? 분명히 입력이 되 어 있을 것 아냐? 브렌메이어가 30년동안 입력한 자료인데 빠뜨렸을 리 가 있나? 그 노인이 자료를 잘못 입력했거나 빠뜨렸을 리는 만무하다. 항성이란 원래 처음에 태어날 때가 있고, 천천히 우주 공간을 이동하 다가 이윽고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적어도 백만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에 눈에 띠는 변화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브렌메이어는 절대 로... 갑자기 트렌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야!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그건 초공간 도약을 하다가 항성의 한복판으로 떨어지는 것보다 더 확률이 적은 일이야! 트렌트는 아까 보았던 밝은 별이 다시 시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가, 떨리는 손으로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고 배율을 높였다. 그 별의 둘 레에 희미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가스의 테가 보였다. 그것은 신성(nova)이었다! 아마 눈에도 띠지 않을 만큼 어둡고 작은 항성이었을 그 별은, 자체 붕괴가 진행되자 이윽고 폭발하여 신성이 된 것이다.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브렌메이어가 자료를 입력할 당시에는 너무 어두 워서 입력 대상에도 들지 못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여느 항성 못지않게 밝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저 신성은 지금 우주공간에는 존재하지만 컴퓨터의 기억 속에 는 존재하지 않는다. 브렌메이어가 입력을 시키지 않았으므로 당연한 얘기다. 적어도 브렌메이어가 자료를 입력할 당시에는 고려해 볼 여지 도 없는 작은 별이었던 것이다. "저건 무시해! 저걸 빼고 검색하라구!" 트렌트는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컴퓨터가 그 말을 알아들을 리는 만 무했다. 컴퓨터는 지금 저 신성을 기준으로 은하계의 모든 항성 좌표를 대조,검색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검색해도 일치하는 좌표가 나타나 지 않으므로 끝없이 대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선의 에너지는 모두 컴퓨터가 끌어다 쓰고 있었다. 머잖아 우주선 안의 공기 공급 장치는 고갈되고 말 것이다. 트렌트의 목숨도 그와 함께 끝장이 나고 만다. 트렌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자신을 비웃기 라도 하듯이 계속 깜박거리며 검색을 계속하는 컴퓨터를 바라보면서 그 는 속수무책의 심정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검을 가지고 왔더라면. < 끝 > [ 박상준 옮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