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욕구불만 (Frustration) 지은이 :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년 러시아에서 출생하여 3세때 미국으로 이민.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화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음. 그 뒤 세계적인 SF작가이자 과학저술가로 필명을 떨치다 지난 4월 6일 작고. [파 운데이션]시리즈,[로봇]시리즈 등 350여 종이 넘는 저술을 남김. 헤르만 겔브는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얼핏 보고는 말했다. "이봐, 저 사람 외무장관 아냐?" "그래, 외무부장관 하그로브지. 자네 식사 할 텐가?" "응 그래, 근데 저 사람 여기서뭐 하는 거야?" 피터 존스벡은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겔브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들은 복도를 걸어가서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맛깔스런 향내를 풍기는 음식상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자, 들게. 이건 죄다 컴퓨터가 조리한 거야. 완전한 컴퓨터 음식이지. 사람의 손은 하나도 안 대고 마련한 거라네. 내가 프 로그램을 짰지. 내가 근사한 만찬을 대접하겠다고 했지? 자, 이 제 들라구." 음식들은 정말 맛이 좋았다. 겔브는 매우 만족스런 식사를 즐 겼다. 후식까지 들고 난 뒤, 겔브가 말했다. "그런데 하그로브 장관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존스벡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자문을 받고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말고 또 있나?" "그래? 그런데 왜 대답을 그렇게 어렵게 들려주나? 무슨 비밀 작업이라도 하는거야?" "사실은 대외비이긴 하지만, 뭐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지. 각 부처의 전산실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그 가련한 양반이 지금 뭘 가지고 골치를 썩이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어." "컴퓨터로 뭘 하고 있는데?" "전쟁을 하고 있지." 겔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구하고?" "아무하고도 아냐, 혼자 전쟁을 하는 거야. 컴퓨터 분석으로 전쟁을 하고 있지. 꽤 오래 되었어, 그러니까.....얼마나 되었는 지 나도 잘 모르겠군." "무엇때문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계속 보전해 나가기 위해서지. 고귀하고 정직하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으로 충만한 이 세상을 이대로 살려 나가기 위해서." "그야 나도 바라는 바이지. 나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 가 그럴 걸. 그러니까 말썽을 일으킬만한 사람들은 항상 꽉 쥐어 놓지 않나?" "쥐어 사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누구든지 완전한 사람은 없 는 거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우린 그런 사람들보다는 낫지. 자넨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 안 하나?" 존스벡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보는 관점의 차이겠지. 세상은 어쨌거나 계속 굴러가야 하고, 탐사해야 할 우주는 아직도 넓고, 컴퓨터화 시켜야 할 분 야는 많이 남아있지. 세상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컴퓨터화 시 키면 각 분야간에 유기적이고 능률적인 협조 체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점진적인 발전을 하게 마련이지. 아직까지는 잘 해 나가고 있는 셈이야. 그런데 하그로브 장관은 그런 더딘 발전 을 차분히 두고 보기에는 성미가 급한 모양이네. 강제력에 의한 급속한 발전. 이것이 그가 바라는 것이지. 이를테면 한판 전쟁을 벌여서 세상의 악을 일거에 청소해 버리겠다는 식이야. 하긴 우 리가 그럴 능력은 있을지도 모르지." "도대체 요즘 세상에 전쟁을 일으킨다는 게 말이나 되나?" "그래서 하그로브 장관이 답답한 사람이라는 거야. 전쟁을 일 으키기에는 너무 무리가 많지. 이른바 '전쟁억지력'으로 작용하 는, 세상 사람들의 평화를 향한 갈망이 너무 강력하니까. 내 말 이 무슨 얘기인지 알겠지? 그런데 그 양반은 자기가 효율적인 길 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컴퓨터에다가 일정한 초기 조건을 집어넣고는 수학적인 연산 작용으로 전쟁을 치르게 하는 거지. 그러면 기대하는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야." "전쟁을 하도록 명령하는 방정식을 어떻게 부여한단 말인가?" "그야 간단하잖아. 병력,무기,위협,역습,군함,우주기지,컴퓨 터. 이런 변수들을 지정해주면 되지. 특히 컴퓨터를 빼 먹으면 절대로 안 되지. 변수들만 수 백 개가 넘는데다가 변수들의 강도 가 또 수 천 가지, 그러니까 몇 백만 가지의 조합이 가능하거든. 근데 하그로브 장관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적절한 조 합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그리고는 그 조건을 그대로 발전시키면 이 세상에 최소한의 피해만 입힌 채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일이 마음먹은대 로 되지 않으니까 요즘 계속 저기압이야." "만약에 그가 바라던 결과를 얻게 되면 어떻게 되나?" "으음, 만약에 컴퓨터가 '이것입니다'하고 적절한 해답을 내 놓는다면, 장관은 정부나국회를 설득해서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 겠지. 그래서 예기치못한 변수들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마침내 세 상은 그가 바라는 대로 더 좋아지겠지." "전쟁이 나면 희생자들이 생길 것 아닌가." "물론이지. 그렇지만 컴퓨터는 우리가 얻게 될 궁극적인 이익 과 불가피하게 발생할 희생자들을 냉정하게 저울질할 거야. 예를 들면 경제적이거나 생태적인 차원에서까지. 그래서 얻게 될 이득 이 희생보다도 더 크다고 판단하면 '전쟁을 하십시오'하고 깜박 거리겠지. 결국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전쟁에 지는 나라들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전쟁을 안 하는 것보다 더 이익이 될 거라구. 막강 한 경제력과 막강한 도덕적 관념을 누리게 될 테니까." 겔브는 의혹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우리가 뭐 화산 분화구의 끄트머리에서 위태롭게 살아가 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꼭 그런걸 해야 하나? 참, 그리고 예기 치못한 변수들이 발생한다는 건 뭔가?" "컴퓨터는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변수들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 하려 하지만, 물론 완벽할 수는 없지. 그래서 적어도 지금까지는 '전쟁을 하십시오'라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어. 아마 하그로브 장 관으로 하여금 정부를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컴퓨터 모의 전쟁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거야. 그러니까 그 양반은 그 동안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졌지." "그렇다면 자네한테 와서 뭘 배우는 거야?"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방법이지." "그래서 도와주고 있나?" "물론이지. 이게 얼마나 짭짤한 일인데." 겔브는 고개를 흔들더니 소리쳤다. "이봐 피터! 단순히 돈 때문에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을 도와주고 있단 말이야?"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 전쟁을 일으키도록 모든 변수들을 적 절하게 규정할 수 있는 조합은 현실적으로 얻어질 수 없어. 컴퓨 터는 언제나 인간의 생활을 인간 그 자체보다도 우위에 놓으니 까. 컴퓨터는 하그로브 장관보다, 아니 자네나 나보다도 더 인간 의 행복에 민감하다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 "바로 내가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이니까. 전쟁이나 또는 어떤 형태로든 인간에 대한 박해, 가혹 행위를 실행하게끔 프로그램하 는데 가장 필요한 변수를 컴퓨터 스스로가 갖고 있지 못하다네. 그걸 무시하고는 나도 그런 프로그램을 짤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 근본적인 필요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한, 컴퓨터는 계속 하그 로브 장관을 실망시킬 걸세. 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 문제 해결 을 바라는 자들 모두를 욕구불만에 빠뜨리게 될 거야." "그렇다면 컴퓨터의 그 결정적인 약점이 도대체 뭔가?" "하하, 이봐 겔브. 컴퓨터는 자기 혼자 옳다고 우기는 '아집' 이 전혀 없다네." == 끝 == 제목 : 신성 (원제 : Star Light) 지은이 :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아서 트렌트는 무전기에서 울려나오는 분노에 찬 목소리를 똑똑히 들 을 수 있었다. "트렌트, 너는 도망칠 수 없다! 앞으로 두 시간 안에 너의 진로를 차 단할 것이다. 계속 저항하면 우주선을 통째로 날려 버리겠다!" 트렌트는 싱긋 웃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무기 도 갖고있지 않았으나 사실은 싸울 필요도 없었다. 두 시간이 훨씬 지 나기 전에 그는 초공간 도약을 할 것이고 그러면 추적자들을 영원히 따 돌릴 수 있게 된다. 1킬로그램 가까운 크릴리움을 가지고 우주의 한 구 석으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크릴리움 1킬로그램이면 로봇 수 천 대 분 의 양자두뇌를 만들 수 있으며, 은하계 어디를 가나 1천만 크레딧 정도 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브렌메이어 노인이 꾸민 일이었다. 그가 장장 30년에 걸쳐 준비한 것이었다. 사실상 그는 일생을 걸었던 것이다. "도망갈 길은 있네, 젊은 친구. 난 그래서 자네가 필요한 것이야. 우 주선을 이륙시키려면 자네가 필요해. 난 늙어서 곤란하거든." "우주선으로 도망가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군요, 노인 장. 하루 반나절도 못 가서 잡히고 말 거요." "아냐, 그렇지 않아. 일단 초공간 도약만 하면 돼." 브렌메이어는 간사한 표정으로 웃었다. "1광년 이상만 도약하면 그 다음부터는 걱정할 것 없다구." "도약을 하려면 좌표 계산에만 반나절은 걸려요. 게다가 요행히 시간 을 벌어 도약했다 해도, 경찰의 수배령은 이미 온 우주에 내려진 뒤일 거라구요." "아냐, 그렇지 않아." 브렌메이어는 떨리는 손으로 트렌트의 팔을 잡으면서 열에 들떠 설명 을 계속했다. "온 우주에 수배령이 내려지지는 않아. 그저 이 근방의 여남은 태양 계 정도밖엔 전달되지 않아. 은하계가 얼마나 넓은지 잘 알잖나? 지난 5만년 동안에 각 식민지들은 죄다 연락이 두절되다시피 했다구." 브렌메이어는 목청높여 열심히 얘기했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오 늘날 인류는 은하계 전체에 퍼져 살고 있었으며, 먼 옛날 선사시대에 인류의 원조 행성([지구]라 불렀다고 한다) 표면에 흩어져서 거주할 때 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즉, 모든 대륙의 구석구석까지 사람이 살고 있 었지만, 그들 각자는 바로 이웃한 지역하고만 활발한 연락을 주고받았 던 것이다. "일단 아무데로나 초공간 도약을 하기만 하면 안전하다구. 한 5만 광 년 정도만 날아가면 문제가 없어. 우릴 찾는다는 건 어림없지. 소행성 밭에서 조약돌 찾기지." 트렌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 대신 길을 잃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무턱대고 아무데 로나 도약을 했다간, 가까운 유인 행성을 찾아갈 방법이 없다구요." 브렌메이어는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그들 두 사람의 얘기를 듣는 사 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어쨌든 브렌메이어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듯이 작아졌다. "난 은하계 전체의 모든 유인 행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느라 지난 30년 동안을 바쳤네. 고대부터 내려오는 모든 기록을 조사했지. 직접 여행하고 다닌 거리만도 수 천 광년이 넘어. 웬만한 우주비행사 이상이 지. 지금 은하계 전체의 모든 유인 행성의 위치는 내 컴퓨터에 기억이 되어 있네." 트렌트의 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 "컴퓨터는 내가 직접 설계했지. 성능이 은하계에서 최고야. 내 컴퓨 터엔 또한 은하계 전체의 항성들 좌표가 정확하게 기억되어 있네. 스펙 트럼 등급으로 F,B,A,O 이상의 밝기를 가진 모든 태양들의 위치가 입력 되어 있지. 우리가 일단 아무데로나 초공간 도약을 하기만 하면, 컴퓨 터는 자동으로 주변의 항성 좌표를 기억된 자료와 대조, 검색하기 시작 할 걸세. 그래서 우리가 도약해 나온 곳이 어디인지 찾아내기만 하면, 그 즉시 가장 가까운 유인 행성으로 2차 도약을 하게 되는 거라구." "좀 얘기가 복잡하군요." "이건 아주 확실한 방법이야. 아무렴, 내가 지난 30년 동안을 어떻게 보냈는데. 난 아직 10년은 더 살 수 있으니까 여생은 백만장자의 생활 을 누릴 수 있어. 자네는 나보다 훨씬 젊으니까 앞으로 좋은 세월을 두 고두고 즐길 수 있을걸세." "무턱대고 초공간 도약을 했다가 만일 태양 속에 들어가면 어떡합니 까?" "그럴 가능성은 0이나 마찬가질세. 이 우주의 물질 밀도가 얼마나 희 박한지 잘 모르는 모양이군. 하긴 그렇게 걱정스럽다면야 자네가 겁낼 만한 상황은 여러가지가 발생할 수 있지. 이를테면 태양에서 너무 먼 곳으로 도약을 하면 정보 부족으로 컴퓨터가 항성 좌표를 못 찾을 수도 있겠지. 또 경찰의 추격에서 불과 1광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 로 도약할 수도 있어. 이런 일은 다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구. 발생 가 능성이 사실상 없으니까. 오히려 태양 한복판으로 도약할 확률보다도 더 적지. 그저 이륙할 때 심장 마비나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게. 차라리 그게 더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야." "노인장이야말로 심장 마비를 걱정해야 하지 않소? 그 나이에 우주선 이륙이며 초공간 도약을 감당하려면..." 브렌메이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신경쓰지 않네. 모든 것은 컴퓨터에 맡겨버렸으니까." 트렌트는 그날 브렌메이어에게 들은 얘기를 모두 기억해 두었다. 마침내 어느 날 밤, 빼돌린 크릴리움 1킬로그램을 손가방에 넣어 들 고 브렌메이어가 준비된 우주선으로 왔다. 트렌트는 한 손으로 그 손가 방을 받아들면서, 다른 쪽 손으로도 재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일을 해치 웠다. 단검은 아직도 가장 유용한 도구중의 하나였다. 빠르고 치명적이고 또한 조용했다. 트렌트는 시체 옆에 그의 지문이 묻은 단검을 그냥 둔 채로 재빨리 우주선을 이륙시켰다. 뭐 어떨 것인가? 어차피 경찰은 나 를 잡지 못할텐데. 이제 우주공간 한복판에서 그는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다. 트렌트는 계기를 조작하면서, 초공간 도약을 하기전에 늘 엄습하곤 하는 기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여태까지 이 긴장감에 대해서는 어떤 생리학자도 설 명을 하지 못했지만, 우주비행사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었다. 몸의 안과 밖이 뒤집히는 느낌이 계속되었다. 초공간 도약 순간에 그 의 신체와 우주선은 무공간,무시간을 통과하면서 무물질,무에너지의 상 태로 변환된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은하계의 다른 한쪽에 다시 나타 나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다. 트렌트는 미소를 지었다. 난 아직 살아 있다. 초공간 도약은 무사히 끝난 것이다. 아주 가까이 있는 태양은 하나도 없었지만, 컴퓨터가 위 치를 못 찾을만큼 먼 것도 또한 없었다. 우주선 선창으로 보이는 별들 의 모습이 낯설었으므로 트렌트는 자신이 무척 먼 곳으로 날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몇몇 별들은 스펙트럼 F등급 이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미 컴퓨터가 검색을 시작했으니까 이곳이 은하계 어디쯤인지 알아내 는 것도 잠깐이면 될 것이다. 트렌트는 한가로운 심정으로 조종석에 기대 앉은 채, 천천히 돌고 있 는 우주선을 따라 바뀌는 별들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매우 밝은 별 하 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분명히 몇 광년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의 오랜 우주비행 경험으로 보아, 그 별은 대단히 뜨거운 것이 틀림 없었다. 잘 됐군. 컴퓨터는 저 별을 기준으로 주변 좌표계를 검색하고 있을 것이다. 트렌트는 다시한번 생각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몇 분이 흘러가고, 이윽고 몇 시간이 흘러갔 다. 컴퓨터는 여전히 깜박거리면서 우주선의 실제 위치와 자신의 기억 속에 입력된 좌표의 대조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트렌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왜 못 찾고 있는거지? 분명히 입력이 되 어 있을 것 아냐? 브렌메이어가 30년동안 입력한 자료인데 빠뜨렸을 리 가 있나? 그 노인이 자료를 잘못 입력했거나 빠뜨렸을 리는 만무하다. 항성이란 원래 처음에 태어날 때가 있고, 천천히 우주 공간을 이동하 다가 이윽고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적어도 백만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에 눈에 띠는 변화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브렌메이어는 절대 로... 갑자기 트렌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야!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그건 초공간 도약을 하다가 항성의 한복판으로 떨어지는 것보다 더 확률이 적은 일이야! 트렌트는 아까 보았던 밝은 별이 다시 시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가, 떨리는 손으로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고 배율을 높였다. 그 별의 둘 레에 희미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가스의 테가 보였다. 그것은 신성(nova)이었다! 아마 눈에도 띠지 않을 만큼 어둡고 작은 항성이었을 그 별은, 자체 붕괴가 진행되자 이윽고 폭발하여 신성이 된 것이다.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브렌메이어가 자료를 입력할 당시에는 너무 어두 워서 입력 대상에도 들지 못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여느 항성 못지않게 밝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저 신성은 지금 우주공간에는 존재하지만 컴퓨터의 기억 속에 는 존재하지 않는다. 브렌메이어가 입력을 시키지 않았으므로 당연한 얘기다. 적어도 브렌메이어가 자료를 입력할 당시에는 고려해 볼 여지 도 없는 작은 별이었던 것이다. "저건 무시해! 저걸 빼고 검색하라구!" 트렌트는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컴퓨터가 그 말을 알아들을 리는 만 무했다. 컴퓨터는 지금 저 신성을 기준으로 은하계의 모든 항성 좌표를 대조,검색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검색해도 일치하는 좌표가 나타나 지 않으므로 끝없이 대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선의 에너지는 모두 컴퓨터가 끌어다 쓰고 있었다. 머잖아 우주선 안의 공기 공급 장치는 고갈되고 말 것이다. 트렌트의 목숨도 그와 함께 끝장이 나고 만다. 트렌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자신을 비웃기 라도 하듯이 계속 깜박거리며 검색을 계속하는 컴퓨터를 바라보면서 그 는 속수무책의 심정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검을 가지고 왔더라면. < 끝 > << 잃어버린 즐거움 : The Fun They Had >> - by Isaac Asimov,1951 마기는 그 일을 그날 밤 일기에 쓰기로 했다. 2157년 5월 17일이라 적 힌 페이지 위에. 그녀는 이렇게 썼다. ' 오늘 토미가 진짜 [책]을 찾 아 냈다.' 그것은 매우 낡은 책이었다. 마기의 할아버지는 언젠가 말했다. '내 가 어렸을 때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옛날에는 모든 이 야기가 종이에 인쇄되어 있고 그걸 책이라 부르면서 읽었다고 하시더 구나.' 그들은 누렇게 퇴색되어 부스럭거리는 책장9을 넘겨보았다. 화면에서 처럼 움직이는 글자들만 보다가, 가만히 정지해 있는 단어들을 읽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다. 게다가 아까 보았던 곳으로 다시 책장을 넘겨 보면, 처음에 보았던 단어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에이,'토미가 말했다.'무슨 낭비람. 책을 다 읽게 되면, 아마 던져버 리고 말 거야. 우리 텔리비젼 화면엔 백만 권의 책이 들어 있잖아. 양 (愷)으로 보면 그게 훨씬 더 좋지. 버리지도 않을 거고.' '내 생각도 그래.'마기가 말했다. 그녀는 열 한 살이었으며, 토미만 큼 많은 전송책(傑去劫:telebook)9 읽지는 못했다.그는 열 세 살이 었다. 그녀가 말했다. '어디서 그걸 찾아냈니?' '집에서.'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책읽기에 열 중해 있는 것이다. ' 다락에서.' '무슨 얘기가 있는데?' '학교.' 마기는 경멸조가 되었다.'학교? 학교에 대해 뭐 쓸 게 있나? 난 학교 가 싫어.' 마기는 원래 학교를 싫어했지만, 지금은 전보다 더 싫어하 고 있었다. 로봇 선생에게서 치른 지리학 시험성적이 갈수록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비통하게 그녀의 머리를 잡고 흔들더니, 지역의 장학사에게 데9ø 갔었다. 그는 붉은 얼굴에 키가 작은 통통 한 사람이었는데, 다이얼과 전선(傑去)이 뒤엉킨 연장 상자를 갖고 있 었다. 그는 웃으면서 마기에게 사과를 준 다음, 로봇 선생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마기는 그가 다시 조립하는 방법을 모르기를 바랐지만, 한 시간 쯤 후에 그 크고 검은, 지긋지긋한 화면이 켜지더니, 그동안 배 운 것들과 문제들이 흘러나왔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부분은, 숙제와 시험 친 답안지를 집어넣는 홈(slot) 이었 다. 그녀는 언제나 그것들을 천공 부호(punch code) - 그9녀가 여섯 살 때 배운 - 로 바꿔 써 넣어야 했고, 그러면 로봇 선생은 순식간에 채 점을 끝내고 점수를 매겼다. 장학사는 일을 마치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마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마기의 엄마에게 얘기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닙니다,존즈 부인. 지리학 회로 부분이 좀 어렵게 조절되어 있는 것 같군요.가끔 이런 일 이 생깁니다.열 살짜리 아이의 평균 수준에 맞게 재조정해 놓았습니 다. 사실 이 아이의 전반적인 발전도는 아주 만족스럽습니다.'그리고 그는 다시 마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기는 실망했다. 로9 선생을 아주 가져가 버리기를 바랐는데. 언젠 가 토미의 선생은, 역사학 부분이 완전히 지워져 버리는 바람에 약 한 달간 집을 떠나 있었었다. 그래서 그는 토미에게 물었다. '왜 학교에 대한 얘기를 써 놨을까?' 토미가 거만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 우리들의 학교와는 다른 종류이기 때문이야, 바보. 백년도 더 전의 오래된 학교 얘기야.' 그는 으시대는 듯 의식적으로 말했다. ' 일 [세기]전의.' 마기는 기분이 나빴다.'아아, 그래. 난 그런 옛날의 학교가 어떤 것 이었는지는 모르겠다구.' 그녀는 잠시 토미의 어9 너머로 책을 읽어 보고는 얘기했다. '어쨌거나, 그때도 선생은 있었구나.' '그랬지. 하지만 그 땐 [정상적]인 선생이었어. 사람이 했다니까.' '사람이? 사람이 어떻게 선생이 될 수 있지?' '응, 그 선생은 아이들에게 배울 것을 얘기해주고 숙제와 시험을 냈 지.' '사람은 그렇게 많이 알지 못하잖아.' '아냐.우리 아버지는 선생만큼 많이 알아.' '그럴 수 없어.사람은 선생만큼 많이 알 수가 없어.' '내기해도 좋아. 우리 아버지는 아는게 많아.' 마기는 그 논쟁에서 자신이 서질 않았다. '난 낯선 사람이 날 가르치 러 9騫 집에 오는 건 싫어.' 토미는 소리치며 웃었다. '아직 잘 모르는구나,마기. 선생들은 집에 서 살지 않아.그들은 특별한 건물을 갖고 있고, 아이들이 배우러 거기 에 가는 거야.' '그러면 모든 애들이 다 똑같은 걸 배운단 말야 ? ' '그럼, 같은 나이라면.'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아이들마다 제각각의 성질에 맞게 선생이 조 정이 되어야 되고, 또 가르치는 것도 다 달라야 된다고 하셨어.'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야. 그게 싫다면, 그 책을 읽을 필요가 없지.' '난 그게 싫다고는 안했어,' 마기는 재9稈 말했다. 그녀는 그 재미 있는 학교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읽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이 채 반도 읽기 전에, 마기의 엄마가 불렀다. '마기야! 학교!' 마기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이요, 엄마.' '시간이 됐어,' 존즈 부인이 말했다. ' 그리고 토미도 시간이 되었 지, 아마.' 마기가 토미에게 말했다.' 학교 끝난 후에 좀 더 읽을 수 있을까?' '어쩌면,' 토미가 무심하게 얘기했다. 그는 먼지투성이 낡은 책을 옆 구리에 낀 채, 휘파람을 불며 가 버렸다. 마기는 교방(絳鎧:schoolroom)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그녀의 침9 옆에 있었으며, 로봇 선생이 불을 켠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 생은 토요일,일요일을 제외하곤 언제나 같은 시간에 불이 들어왔으 며, 그것은 여자아이는 항상 규칙적인 시간에 공부해야 더 효과가 있 다는, 그녀 엄마의 소신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화면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산수 공부는 진분수의 덧셈입니 다. 먼저 어제 내어 준 숙제를 알맞은 홈에 넣어주세요.' 마기는 한숨을 쉬며 시키는 대로 했다.그녀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다녔다는, 그 옛날의 학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웃9의 모든 아이들이 함께 가서, 학교 운동장에서 같이 웃고 떠들며 논다. 또 교실에 모두들 같이 앉아 배우고, 일과가 끝나면 함께 집으로 간 다. 그들은 똑같은 것을 배우기에, 숙제도 같이 토론하여 서로 도와서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사람이고...... 로봇 선생이 화면에서 번쩍거렸다. ' 분수 2분의 1과 4분의 1을 더할 때에는 - ' 마기는 그 옛날 아이들이, 얼마나 그것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는가 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그들이 누렸던 즐거움을 생각하고 있었다. *---*---*---*---*---*---*---*---*---*---*---*---*---*---*---*---*---*---*---* 익살꾼(Jokester) 아이작 아시모프 노엘 마이어호프는 준비한 목록을 참조하면서 어떤 항목을 먼저 읽 을지를 골랐다. 늘 그렇듯이 그는 주로 직감에 의존하였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 기계의 가장 작은 부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기계 앞에서는 위축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야말로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사람이 가질 법한 무 뚝뚝한 자신감을 지닌채 그는 말을 시작했다. "존슨은 사업차 떠났던 여행에서 예기치않게 일찍 돌아와서는 그만 아내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면서 말했다. '맥스! 난 그 여자랑 결혼을 했으 니까 그녀를 안아줘야만 해. 하지만 자네는 왜.....?'" 마이어호프는 생각에 잠겼다. 좋아! 졸졸 흐르는 물방울을 창자속 으로 흘려보내서는 콸콸 흐르게 하는 거야. 그 때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이봐!" 마이어호프는 그 단모음의 목소리를 지우고는 사용하고 있던 서키 트를 중립위치에 집어넣었다. 그는 홱 돌아보며 말했다. "난 일하고 있는 중이라구. 자넨 노크도 못하나?" 그는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자주 마주치는 선임분석가인 티모시 휘슬러를 맞이할 때 의례적으로 짓곤하던 미소조차도 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얇은 뺨 을 머리카락에 닿을듯이 구겨뜨리면서 과거 어느때보다도 더 얼굴을 찌푸려 이방인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는듯이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휘슬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채 아래로 누 르는 바람에 그가 입은 하얀 실습복에는 뚜렷한 세로줄이 나 있었다. "난 노크를 했어. 자네가 못들은거지. 신호교환기는 고장이더군." 마이어호프가 투덜거렸다. 하필이면 이럴 때 고장이라니......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너무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일들은 잊고 있 던 것이다. 게다가 그 때문에 질책을 당할 수는 없지. 이번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물론 왜 그런지는 알지 못했다. 그랜드 마스터는 거 의 항상 그렇다. 그들이 이성의 지평을 뛰어넘어 있다는 사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이 그랜드 마스터가 된 것이니까. 어떻게 인간의 심성이, 이제껏 만들어진 것 중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컴퓨터인, 소위 멀티백이라는, 10마일이나 되는 고형화된 이성 덩어리의 개념을 좇아 갈수 있겠는가? 마이어호프가 말했다. "나는 일하고 있는 중이야. 뭔가 중요한 것이라도 있나?" "미룰 수 없는 일은 없는 법이지. 초공간에 관한 해답에 몇 가지 난점이 있어서 말이야......" 휘슬러는 두 가지 사항을 말해 놓고는 불분명하지만 얼굴에 후회하 는 기색이 떠올랐다. "일하고 있었다고?" "그래. 뭐가 잘못되었나?" "하지만...." 그가 멀티백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줄줄이 이어진 장치들로 가 득찬 나지막한 방의 틈새를 들여다 보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엔 아무도 없구만." "누가 있다고 했던가? 아니면 있어야만 하는건가?" "자네가 즐겨 하는 농담 중에 하나인가?" "그렇다면?" 휘슬러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멀티백에게 농담을 하고 있었다는 말은 하지 말게." 마이 어호프가 딱딱하게 말했다. "왜 안되지?" "정말 그랬나?" "그랬어." "왜?" 마이어호프는 아래쪽을 지긋이 노려보았다. "자네에게 설명해줄 필요성은 없어.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마찬가 지지." "세상에! 물론 그럴 필요야 없지. 나는 단지 호기심에서 물 어보았을 뿐이네...... 어쨌든 일하고 있었다니, 난 가봐야겠구만." 그는 찌푸린채 한번 더 둘러보았다. "그렇게 하게나." 마이어호프가 말했다. 그는 벌써 건너편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는 손가락으로 꽉 눌러 신호교환기를 작동시켰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방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걸아다녔 다. 망할 놈의 휘슬러 같으니라구! 모두 망할 놈들이야! 그가 기술자들과 분석가들, 그리고 기계공들을 교제상 적당히 거리 를 두고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을 창조적인 예술가인양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자유를 쥐고 흔드는 것이다. 그는 우울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녀석들은 적절한 때에 농담도 하지 못한 다고...... 농담이란 말이 떠오르자 그는 곧바로 일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앉았다. 귀신은 뭐하는지 몰라, 그 놈들은 안잡아가고...... 그가 적당한 멀티백 서키트를 작동기 안에 던져넣고는 말을 시작했 다. "배의 승무원이 유난히 거친 항해 중에 난간 위에 멈춰서서는 지독 한 배멀미를 하느라 난간에 축 늘어진 자세로 바닷속을 뚫어져라 바 라보고 있던 한 남자를 측은하다는듯이 쳐다보았다. 승무원이 그 남 자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기운내십시오, 선생님!' 그가 중얼거렸다. '상태가 안좋아보입니다만, 선생께서도 아시다시피 배멀 미로 죽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고통에 잠긴 그 신사가 위로하던 선 원에게 새파랗게 질리고 찡그린 얼굴을 돌리고는 거친 억양으로 소리 쳤다. '그런말 말게, 젊은이! 제발 그런 말 말아! 날 살아있게 만드 는 것은 죽고싶다는 희망뿐이란 말일세.'" ----------------- 티모시 휘슬러는 생각에 잠긴 채, 그러나 미소지은채 고개를 끄덕 거리면서 비서의 책상을 지나쳤다. 그녀도 그에게 미소지었다. 컴퓨 터 천지인 21세기에 인간비서라니! 완전히 고고학적인 유물이 여기 있는 셈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멀티백을 다루는 거대세계기 업, 바로 컴퓨터세계의 요새에서 그런 제도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아마 도 당연한 일이리라. 멀티백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마당에 사소 한 업무를 처리한답시고 더 작은 컴퓨터를 들여놓는 것은 역겨운 기분 만 줄테니까. 휘슬러는 아브람 트래스크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정부관리는 파이프담배에 조심스레 불을 붙이느라 꼼작도 않고 서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휘슬러 쪽을 보고 감빡거렸다. 매부리코는 자신의 뒷 편에 있는 사각창문과 반대로 날카롭고도 두드러지게 솟아 있었다. "아! 휘슬러였나? 앉게나, 앉아." 휘슬러는 자리에 앉았다. "제 생각에 우린 문제가 생겼어요, 트래스크!" 트래스크가 반쯤 미소지었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난 죄없는 정치가일 뿐이 란 말씀이야(이건 그가 자주 써먹는 말이었다)." "마이어호프와 관련된 문젭니다." 트래스크는 재발리 앉아서는 굉장히 끔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한가?" "그럼요, 확실해요." 휘슬러는 상대편의 갑작스런 불행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트래스 크는 내무성의 컴퓨터 및 자동화 부서를 맡고 있는 공무원이었다. 그 는 기술적으로 훈련된 위성들이 멀티백을 조정하도록 되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멀티백의 인간위성과 관련된 정책문제를 다루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랜드 마스터는 위성보다 훨씬 더한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한 인간보다도 훨씬 더 했다. 멀티백 초기시대에, 골 치아픈 문제는 바로 질문과정에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멀티백은 인간의 문제, 그 모든 문제들에 답을 내놓을 수 있엇다. 만약에 그 것이 의미있는 질문이기만 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식의 축적속도가 빨라지면 질수록, 그러한 의미있는 질문 들을 유효적절하게 배열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성만으론 불충분했다. 정작 필요한 것은 드문 종류의 직관력이었다. 체스에서 그랜드 마스터를 탄생시키는 것과 동일한(물론 훨씬 더 집중된 형태이 기는 하지만) 정신의 능력 말이다. 수 천조에 달하는 체스의 수읽기 중에서 최선의 수를, 그것도 불과 몇 분만에 찾아내는 종류의 정신이 필요했다. 트래스크가 불편한 듯이 움직였다. "마이어호프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입력시키고 있더군요." "아! 휘슬러, 그게 다인가? 자네는 그랜드 마스터가 어떤 종류의 질문을 고르던 간에 그를 제지할 수는 없어. 자네나 나나 모두 그의 질문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할 자격이 없네. 자네도 그걸 알 고 있을 걸세. 난 자네가 그걸 숙지하고 있는줄 알고 있는데......" "물론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마이어호프를 압니다. 그를 사교상 만나보신 적이 있으세요?" "맙소사, 없어!. 그 누가 그랜드 마스터를 사교상 만날 수 잇겠 나?" "그런 태도를 취하지 마세요, 트래스크! 그들은 인간이예요. 그것도 동정을 받을만한 인간이라구요. 한 번이라도 그랜드 마스터가 된다는게 어떤 일인지 상상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온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이 겨우 열 두어명 쯤만 있다는 걸, 한 세대에 겨우 한 두명 밖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 세계가 당신에게 의지하고 있고 수 천명 의 수학자, 논리학자, 심리학자, 물리학자들이 당신을 떠받든다는 것 등등......" "맙소사, 난 전세계의 왕이 된 기분일걸세." "아마 안그러실걸요?" 선임분석가가 조급하게 말했다. "그들은 결코 제왕이 된듯한 기분은 들지 않아요. 그들은 동등하 게 말할 동료도 없고, 소속감도 못느낍니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마이어호프는 소년들과 함께 있는 자리라면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그는 결혼도 안했어요. 술도 안마시고 말입니다. 그는 아무런 사회 적 접촉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래야만 하기때문에 사 람들과의 교제에 스스로를 밀어넣고 있는 거지요." "우리와 함께 있을 때,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아세요? 그것도 겨우 일주일에 한 번 뿐이 지만......" "전혀 모르겠는데?" 관리가 말했다. "내겐 모두가 새로운 것들 뿐이구만." "그는 '익살꾼'이예요." "뭐라고?" "그는 농담을 합니다. 그럴듯한 농담을요. 낡고 지루한 얘기를 가 져다가는 그럴듯하게 만듭니다. 그는 항상 그런 식으로 농담을 해요. 일종의 육감이 있다고나 할까요?" "잘 알겠네." "모르실 수도 있어요. 농담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휘슬러는 트래스크의 책상에 양 팔꿈치를 올려놓고는 엄지 손톱을 물어뜻으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는 색다르지요. 그도 자신이 그렇다는 걸 알구요. 농담을 통 해서만이 그는 우리같은 바보멍청이들이 자기를 동료로 끼워준다고 여 깁니다." "우리는 깔깔대고 그의 등을 두드려대면서 심지어는 그가 그 랜드 마스터인 것조차 잊어버리지요. 바로 그런 식으로 그는 우리와 교제하는 겁니다." "무척 흥미롭구만. 자네가 그렇게 뛰어난 심리학 자인줄은 몰랐어. 그래서 어찌 될 것 같은가?" "만약에 마이어호프의 농담거리가 다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겁니다." "뭐라고?" 관리는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았다. "만약 그가 했던 농담을 또 써먹는다면 어떡하죠? 청중들이 점점 안 웃게 되다가 결국 아무도 안 웃게 되면요! 농담이야말로 우리의 인정을 얻기위한 유일한 방편인데...... 농담이 없이는 그는 혼자 남 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트래스크, 결국 그는 독불장군이 아니예요.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그를 내버려 둘 순 없어요. 전 지금 단지 육체적인 문제를 따지는게 아닙니 다. 우리는 그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어요. 그의 직관력이 어떻게 될 지 누가 압니까?" "음..., 그가 농담을 재탕하고 있던가?" "제가 알기론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 그가 자신이 그러고 있 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 자넨?" "왜냐하면 그가 멀티백에게 농담을 읽어주고 있는 걸 제가 들었거 든요." "아이구 맙소사, 안돼!" "우연이었어요! 그를 찾아갔더니만 날 내쫓더군요. 그는 아주 난폭 해요. 평상시엔 심성이 착한데, 제가 보기엔 누군가 방해했다는데 대 해서 그가 너무 지나치게 흥분했던가 봐요. 하지만 그가 멀티백에게 농담을 읽어주고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전 그게 일련의 농담목록 중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왜지?" 휘슬러가 어깨를 으쓱거린 다음, 손으로 뺨을 세차게 문질러댔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지요. 제 생각엔 새로운 농담의 변종을 만 들려고 멀티백의 기억뱅크에다가 농담을 잔뜩 저장하려고 했던 것 같 아요. 무슨 얘기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는 농담기계를 꿈꾸고 있다 구요. 그렇게 되기만 하면 농담이 다 떨어지는 걸 두려워할 필요도 없이 무한개의 농담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세상에!" "객관적으로 보면 그런 일이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그랜드 마스터가 개인적인 문제에 멀티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는 것이 좋지 않은 징조인 것만 같아서요. 그 어떤 그랜드 마스터도 내재적으로는 확실히 정신적인 불안정성을 보이지요. 그러니까 우린 그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랜드 마스터를 잃어버릴 지도 모를 경계선에 마이어호프가 근접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트래스크가 공허허게 대답했다. "그럼 내가 할 일이 뭐지?" "당신은 절 체크할 수 있습니다. 전 그와 너무 가까와서 판정을 내 리기가 곤란해요. 게다가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제 능력 밖의 일이기 도 하구요. 당신은 정치가이니까 저보다 더 나으실겁니다." "인간을 평가하는 일에는 그런지 몰라도 그랜드 마스터는 아닐껄?" "그들도 인간이예요! 게다가 당신 말고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트래스크는 마치 약음기를 단 북을 치듯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재빠르 게 톡톡 두드렸다. "내가 그 일을 맡아야겠구만!" 그가 말했다. 마이어호프가 멀티백에게 말했다. "애인을 위해서 들꽃을 꺾고 있던 열정적인 시골청년은 갑자기 커 다란 황소가 거칠게 땅을 긁어대면서 심술궂은 모습으로 자신을 노려 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당황했다. 그 젊은이는 꽤 멀리 떨어진 울 타리 쪽에 서있는 농부를 보고는 소리쳤다. '이봐요, 아저씨! 저 황 소 안전합니까?' 농부는 마땅찮은 눈길로 상황을 휘 둘러보고는 퉤하 고 침을 뱉으며 7뗍 소리질렀다. '무엇보다도 안전하지!' 그는 다시 침을 뱉고는 덧붙였다. '자네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할 수 없겠네 만......'" 마이어호프가 막 다음으로 넘어가려 할 때, 호출이 왔다. 사실 호 출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 누가 그랜드 마스터를 호출할 수 있겠는 가! 그것은 단지 부서장인 트래스크가 그랜드 마스터인 마이어호프에 게 시간이 나면 좀 보고 싶다는 메시지에 불과했다. 마이어호프는 개의치 않고 그 메세지를 한 쪽으로 던져버리고는 하 던 일을 계속할 수도 있었다. 그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았다7.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들은 계속 그를 괴롭히리라. 그것 도 아주 정중하게. 그러나 그를 괴롭힌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이...... 그래서 그는 멀티백에 꼭 들어맞는 써키트를 중립화시켜놓고 잘 보 관한 뒤 잠궈 두었다. 그는 아무도 감히 자신의 부재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무실의 동결신호를 작동시킨 다음, 트래스크의 사무실로 출발했다. ------------------- 트래스크는 기침을 하면서 상대의 우울하고 날카로운 눈길 때문에 약간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우린 서로 잘 모르고 있었구만, 그랜드 마스터!" "전 당신께 계속 보고해 왔는데요." 마이어호프가 뻣뻣하게 대꾸했다. 트래스크는 그의 날카롭고 거친 시선 뒤에 놓인 무엇인가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가냘픈 얼굴을 하고서, 검은 눈에, 생머리에 강렬한 분위기를 지닌 마이어호프가 농담이나 지껄이고 다닐만큼 유유 자적하리라는 것을 도대체 상상하기 힘들었다. 트래스크가 말했다. "보고는 사교상의 만남은 아니지. 에... 자네가 엄청난 수의 일화 들을 꿰차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전 익살꾼이지요, 부장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더군요. 농담 잘 하는 친구라고요!" "내겐 그렇게 말하지 않더군, 그랜드 마스터. 그들이 말하기 를......" "그 놈들은 다 뒈지라고 하세요! 난 그 놈들이 뭐라고 말하건 상 관 안하니까요. 이리 오십시오, 트래스크씨. 농담 하나 들려드릴까 요?"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책상 앞으로 몸을 기댔다. "어쨌거나.... 그것도 좋지!" 진심인듯이 보이려 애쓰면서 트래스크가 말했다. "좋아요, 이건 어때요? 존스 부인은 남편이 동전을 넣자 소형배출 기에서 튀어나온 행운의 카드를 보고 있었어요. 그녀가 말했죠. '이 것 봐요, 죠지. 여기 써 있기를, 당신은 예의 바르고, 지적이며, 사 려 깊고, 근면한데다가 여자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라는군요.' 그리고 그녀는 카드를 뒤집어서 계속 읽었지요. '그리고 또 써 있기 를, 그건 여자들이 당신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거래요.'" 트래스크 는 웃음을 터뜨렸다. 안 그럴 수가 없었다. 마지막 말은 예견할 만 한 것이었지만, 마이어호프가 여자의 비꼬는 듯한 경멸이 담긴 말투를 기가 막히게 흉내낸대다가, 꼭 들어맞게 얼굴의 주름살을 찡그리는 덕에 그 정치가는 대책없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마이어호프가 날카롭게 말했다. "이 농담이 왜 우습지요?" 트래스크가 우물거렸다. "뭐라고?" "왜 우습냐고 물었습니다. 왜 웃으셨나요?" "그러니까, 에......" 트래스크는 침착해지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마지막 줄이 앞 내용에 신선한 느낌을 불어넣어 주는구만! 그런 예기치 않은......" "요점은 바로," 마이어호프가 말을 끊었다, "제가 마누라에게 모욕 당하는 남편을 그럴듯하게 묘사했다는 데에 있지요. 남편이란 작자에 게는 눈꼽만큼의 미덕도 없다고 아내가 확신한다는 실패로 여겨지는 결혼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때문에 웃었어요. 만약 당신이 그 남편이라해도 여전히 웃으시겠습니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채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하나 더 해볼까요, 트래스크씨?" "애브너란 사람이 마구 흐느끼면서 아내의 병상 곁에 앉아 있었습 니다. 그 때 아내가 안간힘을 다해서 한 쪽 팔꿈치를 짚으며 일어났 어요. '애브너!' 그녀가 속삭였죠. '여보, 난 잘못을 고백하지 않 고는 주님께 갈 수가 없어요.' '지금은 안돼!' 충격을 받은 남편이 중얼거렸어요. '안돼, 지금은! 여보, 누워서 쉬라고.' '안돼요!' 그녀가 울부짖었어요. '얘기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 영혼은 편히 쉴 수 없을 거예요. 전 당신께 깨끗치 못한 짓을 저질렀어요, 애브너. 바로 이 집에서, 한 달도 채 전에 말이예요.' '쉿! 여보.' 애브너씨가 위로했지요. '난 다 알고 있다구. 몰랐다면 내가 왜 당 신한테 독약을 먹였겠어?'" 트래스크는 거의 절망적으로 침착해지려고 애썼지만, 완전히 웃음 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는 그만 낄낄거리며 낮게 웃고 말았다. 마이어호프가 말했다. "이것도 역시 우습지요? 간통, 살인 모두 다 웃기는 일이 되지 요." 트래스크가 말했다. "음! 유우머를 분석한 책들이 여러 권 있지, 아마?" "굉장히 많아 요." 마이어호프가 말했다. "저도 그 중 몇 권을 읽어 보았지요. 게다가 멀티백에게 대부분 읽어주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의 저자들은 그냥 추측만 잔뜩 늘어놓았더군요. 어떤이는 농담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우 월감을 느끼기 때문에 웃는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갑작스레 깨닫 는 부조리나 긴장으로부터의 급작스런 해방감, 또는 사건의 급격한 재 조명 때문에 웃는다고도 합디다. 하지만 더 간단한 이유가 없을까요? 상이한 사람들이 상이한 농담을 듣고 웃더군요. 보편적인 농담이란 없어요! 또 어떤 이들은 아예 웃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유우머 감각을 지닌 동물, 유 일하게 웃는 동물이라는 겁니다." 트래스크가 갑자기 말했다. "알겠어! 자네는 유우머를 분석하려고 애쓰는 중이었구만! 그래 서 멀티백에게 일련의 농담들을 불러주고 있었던 거야." "제가 그런 일을 한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 아니, 관두죠. 휘슬러 짓일 테니까. 이제 기억이 납니다. 그는 그 일로 절 놀라게 한 적이 있 어요. 그건 그렇고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아니, 아무 일도 아닐 세." "당신은 멀티백에다가 지식일반을 저장하는 데 대해서, 그 덧붙이 고자 하는 지식이 무엇이든지간에, 제가 가진 권리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없어요. 제가 하려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 물어볼 수도 없구 요." "아닐세, 그러려던게." 트래스크가 황급히 말했다. "사실 난 이런 새로운 분석작업이 심리학자들에게 엄청난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네." "흠! 그럴지도 모르죠. 그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단순히 유머의 일반적인 분석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기는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어요. 두 가지 질문이!" "오! 그게 뭔가?" 트래스크는 상대가 대답해 줄지에 대해서 좀 미심쩍었다. 그리고 그가 답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그칠 수도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마 이어호프는 대답했다. "첫번째 질문은 이런 겁7니다. 그 모든 농담들이 유래한 곳은 어디 인가?" "뭐라고?" "누가 농담을 만들었지요? 잘 들으세요. 한 달전쯤에 전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대개 그렇듯이 저는 거의 모든 사람들 에게 얘기했고, 그 바보녀석들은 웃었지요. 아마도 그들은 농담이 정 말 우습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고, 그냥 절 보고 웃었을지도 모르지만 요. 어쨌거나 한 녀석이 자기 맘대로 제 등을 두드리며 지껄이더군 요. '마이어호프, 자넨 그 어떤 사람보다 농담을 많이 알고 있군 그 래!'" "확실히 그 말이 맞아요. 그러7 그 말을 들으니 이런 생각이 들 더군요. 아마 제 일생에 수 백, 수 천개의 농담을 했을 겁니다. 그 러나 사실 제가 만든 것은 하나도 없어요. 단 한 개도 말입니다. 전 그냥 되풀이 했을 뿐이예요. 제가 한 일이라고는 농담을 읊은 것 뿐 이지요. 처음엔 그냥 듣기도 하고 읽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많이 듣고 또 읽었어도 농담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어요." "게다가 전 자신이 농담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한 명도 못봤습니다. 그 냥 늘 '내가 얼마전에 웃기는 얘기를 하나 들었어'라고 하거나 '최근 에 농담 들은거 없나?'라는 식이예요." "모든 농담은 다 오래된 것들 뿐입니다! 농담이 왜 그런 사회적인 시차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농담마다 지금은 금지되어 있거나, 아예 겪어볼 수도 없는 배멀미같은 소재가 등장하지요. 아니면 제가 얘기했던 행운의 쿠키를 떨어뜨려주는 그런 기계는 이제는 골동품 상점에서나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농담을 만드는 거지요?" 트래스크가 말했다. "자네가 알고 싶은게 바로 그건가?" 트래스크는 이어지는 몇 마디 말을 꿀꺽 삼켰다. 하느님, 맙소사!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는 진정하려고 애썼다. 그랜드 마스터의 질 문은 항상 의미있는 법이니까. "물론 제가 알고 싶은 건 그거예요.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농 담은 그냥 우연히 오래된 것들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농담이 즐거이 얘기되고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오래된 것이어야만 하는 거지 요. 독창적이지 않다는 점이 요점이라구요. 독창적인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의 유우머일 뿐입니다. 아니면 단 하나만이 독창적일 수 있거 나요. 나머지는 다 말장난이지요." "전 명백히 일시적인 기분에서 나온 말장난을 많이 들어봤어요. 저도 몇 개 만들어 내기도 했구요. 하지만 아무도 그런 말장난을 듣 고는 안 웃지요. 당신은 안 그러겠지만요. 낄낄대며 낮게 웃었잖습니 까? 독창적인 유우머는 그런 웃음을 자아내지 않아요. 왜 그렇지요?" "전혀 모르겠는데." "괜찮아요. 한 번 알아봅시다. 제가 생각하기에 유우머의 일반적 인 사항에 관해서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몽땅 다 멀티백에게 넣어준 다음에, 전 농담들을 골라내어 입력하고 있는 중입니다."트래스크는 부쩍 흥미가 일어남을 느꼈다. "어떻게 골라내지?" 그가 물었다. "저도 모릅니다." 마이어호프가 대답했다. "적당한 것들이라고 느끼니까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그랜드 마스터입니다." "오! 그렇지, 그렇구말구!" "그렇게 입력한 농담들과 유우머에 관한 일반철학을 바탕으로 멀티 백에게 농담의 근원을 찾으라고 물어볼 겁니다. 휘슬러가 거기에 어 느 정도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 당신께 얘기를 꺼내기도 했으니까 모 레 분석하는 날 오라고 하십시오. 제 생각엔 그가 할 일도 좀 있을테 니까요." "그7 . 그런데 내가 가봐도 되는건가?" 마이어호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트래스크가 참석하는 문제는 그 에게 사실 아무런 상관도 없었으니까. ........................ 마이어호프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목록 중의 마지막 농담을 골라내었다. 어떤 식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그는 말할 수 없었 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다스쯤 되는 가능성을 마음 속에 그려보 면서 작업에 몰두하였고, 되풀이해서 각각의 농담이 충분히 의미가 있 는지에 관해서 딱히 규정짓기 모호한 질적인 수준을 검토했었다. 그는 읽었다. "석기시대 혈거인인 우그는 마누라가 표범가죽으로 만든 치마가 흐 트러진채 뛰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그!' 그녀가 미친듯이 소 란스럽게 울부짖었다. '빨랑 어떻게 좀 해봐요. 송곳니가 달린 호랑 이가 엄마의 동굴로 들어갔어요. 어떻게 좀 해보라니까요!' 우그가 투덜대면서 매끈하게 갈아놓은 들소뼈를 집어들었다. '왜 그래야 해? 송곳니 달린 호랑이에게 무슨 일이 날지 어떤 놈이 신경이나 쓴대?'" 그리고 마이어호프는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끝내고는 눈을 감은채 뒤 로 기댔다. 다 끝낸 것이다. "이상한 점은 전혀 없더구만!" 트래스크가 휘슬러에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하고있는 일을 상세히 말해주더군. 괴상하긴 했지만 잘못된 일은 아니던데!" "그가 하던 일이 문제가 안된다구요?" 휘슬러가 말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나로서는 그랜드 마스터가 하는 일을 순전히 의견 하나에 의존해서 막을 수는 없네. 그가 이상하긴 해! 하지만 결국 모두가 그랜드 마스터는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나? 난 그가 정신이 나갔다고는 여기지 않아!" "농담의 기원을 찾겠답시고 멀티백을 사용하는데도요?"선임분석가 는 불만스럽게 투덜댔다. "그런데도 미친게 아니라구요?" "우리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겠나?" 트래스크가 격앙된 어조로 물었다. "과학은 이제 질문이라고는 모두 말도 안되게 웃기는 것들만 남게 될 정도로 진보했다네. 의미있는 질문들은 아주 오래전에 제기되었 고, 또 답변까지 나와버렸어!" "소용없어요. 전 지겨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네, 휘슬러! 우린 마 이어호프를 만나야 돼. 그리고 자네는 멀티백의 답변에 필요한 분석 작업을 할 수 있을 걸세. 만약 답변이 나온다면 말이야. 나야 그냥 적색테입이나 감는거지, 뭐! 세상에 자네같은 선임분석가가 분석하 는 일 이외에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어찌 알겠나? 그리고 그런 분석 작업마저도 전혀 이해 못할테고......" 휘슬러가 말했다. "그건 아주 간단해요. 마이어호프같은 그랜드 마스터가 질문을 하 면 멀티백은 자동적으로 그 질문을 수치와 산식으로 공식화하지요. 언어1 기호로 바꾸는데 필요한 기계부분은 멀티백의 대부분을 차지합 니다. 멀티백은 수치와 산식의 형태로 해답을 내놓지만 아주 단순하고 틀에 박힌 경우를 빼고는 다시 언어로 번역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재 번역 문제를 풀도록 다자인했다면 부피가 최소한 네 배는 더 늘어났을 걸요?" "알았네. 그러니까 자네는 그런 기호들을 말로 다시 번역하게 되 는 거구만?" "그게 저와 제 동료들 일이죠. 우리는 필요할 때면 더 작고, 특수 용도에 적합한 컴퓨터를 사용합니다." 휘슬러가 우울하게 미소지었다. "고대 그리이스 델피의 신관처럼 멀티백은 애매모호한 신탁을 내 리는거죠. 단지 우리한테는 번역가가 있다고나 할까요?" 그들은 마침내 도착했다. 마이어호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휘슬러가 힘차게 말했다. "무슨 써키트를 사용했지, 그랜드 마스터?" 마이어호프가 대답하자, 휘슬러는 작업을 시작했다. ----------------------------- 트래스크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 정부관리는 테입이 풀리면서 알아볼 수 없는 일련의 점들이 찍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휘슬러가 점1健 패턴을 검토하고 있는동안, 그랜드 마스터인 마이어호프는 무관심한듯이 한 켠에 서 있었다. 분석가는 헤드푠과 마우스피스를 달고서, 사이사이마다 다른 컴퓨터에 나타나는 전자적인 굴곡을 통하여, 떨어져 있는 보조요원들 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때때로 휘슬러는 주의깊게 들어보고는 정신없을 정도로 어려운 수 학같아 보이는,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기호가 표시된 복잡한 키보드를 통해 조합을 입력시켰다. 한시간 이상이 훌쩍 지나갔다. 휘슬러의 얼굴에 난 주름살이 점점 깊어져갔다. 한 번, 그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쳐다보고 말을 했다. "이건 믿을 수가......" 그리고는 곧 다시 작업에 매달렸다. 마침내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잠정적인 해답이 나왔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최종분석이 끝나야 공식적인 해답이 나오지. 잠정적인 해답이라도 드릴까?" "해보게나." 마이어호프가 말했다. 트래스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휘슬러가 그랜드 마스터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바보같은 질문을 했더니만," 그가 목쉰 소리로 말했다, "멀티 백이 대답하기를 외계인에 기원이 있다는군!" "뭐라고 하는거야?" 트래스크가 다그쳤다. "못 들으셨어요? 우리가 웃어대는 농담은 사람이 만든게 아니예 요. 멀티백이 주어진 자료를 몽땅 분석했지요. 그 자료에 가장 적합 한 대답이 뭔고 하니, 어떤 외계의 지성체가 농담을 모두 만들었고 그 걸 선택된 시간과 공간에 인간의 마음 속에 넣은 거랍니다. 아무도 그 렇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방식으로요. 그 밖에 부차적인 농담들은 위대한 농담의 원형들을 약간씩 바꾸고 다듬은 거랍니다." 마이어호프는 다시 한 번 올바른 질문을 던진 그랜드 마스터만이 알 수 있는 일종의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얼굴이 상기된 채 꼼짝도하지 않았다. "모든 희극작가들은 오래된 농담들을 새로운 목적에 맞게 약간씩 다듬는 식으로 글을 쓰지요. 그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해답이 맞아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왜?" 트래스크가 물었다. "왜 농담을 만든거지?" "멀티백 얘기로는 모든 자료에 맞아들어가는 유일한 목적은 인간심 리를 연구하기 위한 의도랍니다. 우리가 생쥐에게 미로찾기를 시키면 서 쥐의 심리를 연구하는 것처럼요. 쥐들 입장에서 보면 왜 그러는지 도 모를테고, 설령 결국 어떻게 될지를 안다고 해도 그 이유는 여전히 모를테지요. 이들 외계 지성체들은 조심스럽게 선택된 농담에 대한 개 별적인 반응을 살펴봄으로써 인간심리를 연구하는 겁니다. 각각의 인 간들이 모두 다르게 반응하거든요...... 이들 외계지성체와 우리의 관계는 우리들과 쥐의 관계나 마찬가지인 거지요."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트래스크가 뚫어지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랜드 마스터는 인간만이 유우머 감각을 가진 동물이라고 했어! 자네말은 그럼 인간이 유우머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뜻이 되지 않나?" 마이어호프가 흥분하여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내적으로는 결코 유우머를 창조해내지 못하는 거 구요. 그냥 말장난을 할 뿐이지요." 휘슬러가 말했다. "아마도 외계인들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즉각적인 농담에 대한 반응을 취소한 걸겁니다." 트래스크가 화가나서 말했다. "이것 보게나, 세상에! 누가 이걸 믿겠는가?" 선임분석가는 그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멀티백이 그렇게 대답했어요. 지금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예요. 우주의 진정한 익살꾼을 찾아낸 거지요. 그리고 만약 우리 가 알고 싶은게 더 있다면 또 나올겁니다." 그가 한숨을 쉬면서 덧붙여 말했다. "감히 더 알고 싶어한다면 말입니다." 그랜드 마스터인 마이어호프가 갑자기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난 두 가지를 질문했네!. 이제까지는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을 뿐이야. 내 생각엔 멀티백이 두번째 질문에도 충분히 해답을 내 줄 수 있다고 보는데......" 휘슬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반쯤 부서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랜드 마스터가 자료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야, 난 따를 수 밖에...... 두번째 질문이 뭔가?" 그가 말했다. "이걸 묻고 싶네. 첫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을 때 인간종 족에게 어떤 영향이 나타나는가?" "왜 그걸 묻나?" 트래스크가 말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마이어호프가 대답했다. 트래스크가 소리쳤다. "정신 나갔군! 모두 미친 짓이야!" 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스스로도 자신과 휘슬러가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느꼈다. 이제는 트래스크가 마친 짓이라고 소리를 지르다 니. 트래스크는 눈을 감았다. 그는 정신나간 짓이라고 소리치고 싶었 지만, 반세기 동안 아무도 그랜드 마스터와 멀티백의 오묘한 조화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사람은 없었으며, 그러한 의심이 옳은 것이었음이 밝혀진 적도 없었다. 휘슬러는 입을 꽉 다문채 묵묵히 계속 일을 했 다. 그는 멀티백과 부속기계를 능숙하게 다루어나갔다. 또 한시간이 지나가고, 그가 쉰소리로 웃어제꼈다. "끝내주는 악몽이구만!" "대답이 뭔가? " 마이어호프가 물었다. "난 멀티백의 해답을 듣고 싶어! 자네 대답이 아니라." "좋아, 들 어보게나. 멀티백이 대답하기를, 단 한사람이라도 이런 식으로 인간 심성의 심리학적인 분석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외 계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더 이상 객관적인 기술로서는 소용이 없게 될거라는군." "인간들에게 전해지는 농담이 이제 더 이상 없을 거라는말인가?" 트래스크가 조그맣게 말했다. "아니면 그게 무슨 말인가?" "농담은 없어요, 이제부터는! 멀티백이 그러는군요, 지금부터라고! 실험은 이제 끝났어요! 새로운 실험을 도입해야만 할거래요." 그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몇 분이 흘러갔다. 마이어호프가 천1된 말했다. "멀티백이 맞았네!" 휘슬러가 지친듯이 말했다. "나도 알아!" 트래스크조차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틀림없이 그래!" 몸소 증명해 보려고 손을 뻗친 것은 마이어호프, 업무를 끝마친 익살꾼 마이어호프였다. 그가 말했다. "다 끝났어요, 모두 다! 난 지금껏 5분 동안기억해내려고 애를 써 봤지만 농담 하나도 생각해 낼 수가 없었어요. 단 하나도! 저는 알아 요. 책에서 농담을 읽는다해도 아마 웃지 않을 거라는 걸." "유우머라 는 선물은 사라졌구만!" 트래스크가 우울하게 말했1다. "아무도 다시는 웃을 수 없다니!" 그리고 그들은 허공을 노려보면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온 세상이 실험실의 새앙쥐우리 정도로 축소되어 버렸음을, 미로는 걷혀 졌고 무엇인가, 무엇인가 그 자리에 대신 놓였음을 느끼면서...... <끝> 최후의 해답(The Last Answer) Isaac Asimov 저 이 이야기는 1960년 이전에는 Astounding Science Fiction이라 는 이름으로 불리던 Analog라는 과학소설 잡지의 50주년을 기념하 기 위하여 쓴 것이다. 이 사실은 내게 이 글을 아끼는 충분한 이 유가 된다. 머레이 템플턴은 인생의 절정기인 45살이었으며 심장의 관상 동 맥에 이상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몸도 건강했다. 그러나, 심장 은 인체의 핵심 부품이었고, 거기에 이상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 했다. 갑자기 엄습한 고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가 서서히 가 라앉았다. 그는 자신의 호흡이 차츰 느려지는 것과 알 수 없는 평 화로움이 자신을 덮어옴을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을 겪은 직후의 편안함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머 레이는 자신의 몸이 가벼워져서 마치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 럼 느꼈다. 머레이는 눈을 뜨고 방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아직도 허둥대 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통이 갑작스레 엄습해 왔을 때 그 는 실험실에 있었는데, 그가 비틀거리며 쓰러져 의식을 잃어가는 동안 주변에서는 놀란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었다. 고통이 사라진 뒤에도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 로 쓰러진 자신의 몸 주위에 몰려 있었다 - 그제서야 갑자기 그는 자신이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얼굴을 찡그린 채 큰 대자로 뻗어 있었다. 동시에 그는 평 안함을 느끼며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럴수가! 내세가 있다고 떠들던 병신들의 말이 옳았구 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무신론자인 물리학자에게는 모욕적이었으나 그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고 또한 그가 느끼고 있던 평화스러움도 깨지지 않았다. '잘하면 천사나 아니면 그 비슷한 것이 나타나겠군.' 실험실 풍경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어둠이 그의 몸을 감쌌고 아 주 먼 곳에서 보일듯 말듯하게 희미한 빛이 따뜻한 느낌을 주면서 인간의 형상을 이루었다. '이게 왠 운명의 장난이람. 내가 천국에 가게 되다니.' 그가 생각하는 동안 그 빛은 약해졌지만 빛이 방사하던 따스함 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우주 전체에 홀로 남아 있었지만 그가 느 끼는 평화는 감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일은 수없이 많이 해왔지만 성공할 때면 지금도 즐거움을 느끼곤 한다네." 하고 목소리가 말했다. 머레이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입도 혀도 그리고 성대도 가지 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을 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그는 입이 없이 단어를 중얼거리거나 내뱉 아서 어떻게든 말을 나오려고 해 보았다. 마침내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말하는 단어는 극히 또렷했다. "여기가 천국입니까?" 하고 머레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대답했다. "여기는 네가 알고 있는 어떤 장소도 아니 야." 머레이는 당황했으나 그 다음 질문은 꼭 해야만 했다. "멍청한 소리처럼 들리더라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바로 신입 니까?" 어조가 바뀌지도 않았고 말소리가 변화하지도 않았지만 목소리 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런 질문을 -물론 무수히 다 른 방식이긴 하지만- 듣게 되는구만. 네가 이해할 만한 대답을 할 수는 없어. 네게 편한대로 생각하려무나." 머레이는 계속 질문했다. "그러면 저는 뭣니까? 영혼입니까? 아 니면 단순히 개인화된 또다른 존재일 뿐입니까?" 그는 냉소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했으나 실패한 것 같았다. 그는 말 끝에 '신이시 여' 라든가 '주님' 등의 말을 붙여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상 처음으로 그의 무례함 -혹은 원죄?- 때문에 지옥이나 그 비슷한 곳에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천에 옮 길 수는 없었다. 목소리는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 "너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원한다면 너 자신을 영혼이라고 불러도 좋아. 하지만 넌 네 가 살던 우주에 존재하던 네 두뇌를 가장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 게 복제한 전자기적 연결체라고 할 수 있어. 때문에 넌 기억과 사 고 능력, 심지어는 인격까지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거야. 네게는 자신이 원래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질거야." 머레이는 의혹을 느꼈다. "내 두뇌의 정수는 영원하다는 겁니 까?" "꼭 그런 것은 아니지. 내가 선택한 것만이 영원해. 나는 전자 기적 연결체, 즉 넥서스를 구성했지. 나는 네가 살아 있을 동안 넥서스를 만들었고 네가 죽는 순간 넥서스에 활성을 불어넣었어." 목소리는 한동안 혼자서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말을 계속 했다. "복잡하지만 완벽하게 정확한 창조였어. 물론 네가 살고 있 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일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아. 선택에 묘미가 있는 법이니까." "아주 적은 수의 사람만 선택한다는 말씀이군요." "아주 적지."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됩니까?" "망각되어버리지! 아, 너로서는 지옥을 상상하면 될거야." 머레이는 할 수만 있었다면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제가 선택 될 수 있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다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 는데요." "신앙심?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 생각을 너의 그 작은 사 고에 맞추도록 좁히는 것이 힘들구만. 우주에 퍼져있는 다른 지성 적인 종족들에서 천조씩 선택했던 이유와 동일하게 네 사고 능력 때문에 널 선택했지." 머레이는 살아있을 때의 버릇이 도졌다.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그런 선택을 당신 혼자서 합니까? 아니면 동료들과 함께 합니 까?" 잠깐동안 머레이는 목소리가 불편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 으나, 목소리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는 듯했다. "동료가 있거나 없거나 네게는 상관이 없다. 이 우 주는 내 것이고 오직 나만의 것이야. 우주는 내 발명품이다. 내가 내 목적만을 위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당신은 한번에 천조개의 넥서스를 만든다면서 저와 이 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가요?" 목소리가 말했다. "너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 나는 지금 다른 이들과도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하나라면서요?" 목소리는 또다시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모순된 말을 하게 만 들어서 나를 함정에 몰아넣으려고 하는군. 네가 모든 생물이 세포 하나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아메바인데, 삼만조의 세포로 이루 어진 말향고래를 만났다고 생각해 보자구. 네가 말향고래에게 하 나의 생물인지 여러개의 생물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인지 물어 보았 다면 말향고래는 어떻게 아메바에게 설명해야 할까?" 머레이는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생각해 보죠.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좋아. 바로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생각을 하라구." "무슨 목적으로 생각을 하라는 거죠?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설혹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할지라도,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네." "그건 마치 동양 철학에서 나온 말처럼 들리는 군요. 아무 뜻도 없기 때문에 심오한 것처럼 보이는 것 말입니다." "네겐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군. 너는 지금 내 역설에 역설로 답 하고 있어. 내 말이 역설이 아니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지. 나 는 영원히 존재해왔어. 그렇다면 영원히 존재해왔다는 말의 의미 는 무엇일까? 그건 내가 언제 태어났는지 - 언제부터 존재하게 되 었는지 모른다는 뜻이지. 만일 내가 기억할 수 있다면 나는 영원 히 존재해오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알지 못 한다면, 내가 모르는 것이 적어도 한가지는 있는 셈이지 - 내 탄 생의 비밀 말이야. 또 내가 아는 것이 무한히 많다 하더라도, 아직 모르는 것이 무 한히 많다는 말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두개의 무한이 과연 동일할까? 내가 알아야 할 무한한 지식의 양이 내가 알고 있는 무 한한 지식의 양보다 무한히 클 수도 있는 것이지. 간단한 예를 들 어볼까? 내가 모든 짝수를 알고 있다면 무한히 많은 숫자를 알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무한히 많은 홀수는 여전히 하나도 모 르겠지." "하지만 짝수로부터 홀수에 대해 알아낼 수 있습니다. 만일 무 한수열내에 있는 모든 짝수를 역시 짝수인 2로 나누어 준다면, 모 든 홀수로 이루어진 또다른 무한수열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고 머레이가 말했다. "좋은 생각을 해냈군. 기분이 좋아. 훨씬 어려운 다른 지식들 - 기지의 지식으로부터 미지의 지식을 그런 식으로 알아내는 것이 네가 할 일이야. 넌 생존 당시의 기억을 모두 보존하고 있어. 또 앞으로 네가 수집하거나 배우게 될 모든 데이타와 그 데이타로부 터 추론하게 될 데이타도 모두 기억하게 될 것이야. 필요하다면 네가 설정한 문제를 푸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울 수도 있고." "당신 혼자서 그런 모든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할 수 있지. 하지만 이 방법이 훨씬 재미있어. 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다룰 수 있도록 우주를 창조했지. 나는 불확실 성 이론, 엔트로피 그리고 그 밖의 여러가지 난수 인자를 삽입해 서 우주의 발전 방향을 쉽게 짐작할 수 없도록 만들었어. 그 모든 것은 완벽하게 작동해서 나는 그동안 꽤 즐겁게 지낼 수 있었지. 다음엔 생명체와 지성이 생겨나도록 몇가지 요소를 첨가했고 거 기서 나온 것들로 연구팀을 조직했다네. 물론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모든 것들이 또다른 난수 인자가 되기 때문이지. 이제 나는 어떤 지식을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얻게 될 지 알 수 없게 되었네." "새로운 지식을 정말로 얻을 수 있었습니까?" 하고 머레이가 물 었다. "물론이지. 한세기 정도면 어디선가 반드시 재미있는 일이 생기 곤 했네." "당신이 생각해낼 수도 있었지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말인가 요?" "당연하지." "저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다음 세기까지는 가능성이 거의 없지. 하지만 결국은 성공하게 될거야. 너는 영원히 이 일에 종사하게 될테니까." "영원히 생각하게 된다고요? 영원히?" 하고 머레이가 물었다. "물론이지." "무슨 목적으로요?" "이미 말해주지 않았나.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기 위해서이지." "하지만 말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제가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야 하나요?" "네가 살아있을 때도 같은 일을 하지 않았나? 그 때는 무슨 목 적이었지?"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동료들의 찬사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제게 할당된 짧은 시간내에 많은 일을 성취한다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요. 이제는 내가 알아내게 될 것은 당신 자신이 조금만 신경 쓴다면 금방할 수 있는 것 뿐입니다. 당신은 제게 찬사를 보낼 수 없을 겁니다. 단지 즐거워할 뿐이죠. 그리고 영원히 생각해야 한 다면 아무런 보상도 성취감도 느낄 수 없을겁니다." "사고와 발견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발견 그 자체외의 다른 목적은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하고 목 소리가 물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그럴겁니다. 하지만 영원히는 아닙니 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네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당신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강제로 시킬 수는 없을 거라 구요." "물론 강요하지는 않을걸세. 사실 강요할 필요도 없지. 왜냐면 네겐 생각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으니까 반드시 생각하게 되어있거든. 어떻게 해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를거야." 하 고 목소리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 자신이 목표를 만들겠습니다. 제 나름의 목적을 생각해내죠." 목소리가 온화하게 대답했다.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네. 마음 대로 목적을 설정하라구." "사실은 이미 목표를 정했습니다." "뭔지 얘기해줄 수 있나?"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 인 형태로 대화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당신은 내 넥서스를 어떻게 든 조절하여 내가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또 내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각을 직접 빼가거나 입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이 변화하여 넥 서스의 상태가 변화하면 내가 직접 전송하기 전에 당신은 내 생각 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정확해. 아주 정확하게 알아냈군. 기분이 좋아. 하지만 네가 직접 얘기해주는 편이 더 재미있다구." "그렇다면 말씀드리죠. 내 생각의 목적은 당신이 창조한 내 넥 서스를 파괴할 방법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단 지 당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영원히 생각하고 싶지도않습니다. 당신을 즐 겁게 해주기 위해 영원히 존재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내 생 각은 넥서스를 파괴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 집중될 것입니다. 그 것이 절 즐겁게 하겠죠." 목소리가 말했다. "반대할 생각은 없네. 자신의 넥서스를 파괴 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 몰두하더라도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롭고 재미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겠지. 물론 네 자살 기도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게야. 난 즉 시 네가 한 자살 방법이 소용없는 새로운 형태로 너를 다시 창조 할 테니까. 그리고 네가 더 새롭고 정교한 자살 방법을 개발해 낸 다면 나 또한 그 방식마저 불가능한 새로운 방법으로 널 재창조하 겠지. 재미있는 게임이 되겠지만, 어쨌든 넌 영원히 존재해야해. 그것이 내 뜻이야." 머레이는 몹시 화가 났지만 그의 말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 "결국 그렇다면 전 지옥에 있는게 아닙니까? 당신은 지옥이 없다 고 했지만, 이곳이 지옥이라면 당신은 지옥의 게임 규칙에 의해서 거짓말을 할테니까요." 목소리가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지옥에 있지 않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난 분명히 네가 지옥에 있지 않다고 이 야기 했었지. 천국도 지옥도 존재하지 않아. 오직 나 자신만 존재 할 뿐이야." 머레이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 생각이 전혀 쓸모없을 가능성도 고려해 보세요. 제가 결국 아무런 생각도 못해낼 것이라면 지금 당장 저를 분해해 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자네에게 상을 주라고? 넌 실패의 댓가로 열반을 바라고 또 네 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어. 하지만 우린 지금 흥정 을 하고 있는게 아냐. 넌 실패할 수 없어. 네 앞에는 지금 영원한 시간이 펼쳐져있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몇가지 재미있는 생각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다구." "그렇다면 다른 목적을 설정하겠습니다. 제 자신을 파괴하려 들 지는 않죠. 내 목적은 이제 당신에게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당신 이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알아 내지 못할 일을 제가 알아내겠습니다. 더 이상의 지식이 있을 수 없는 최후의 해답을 제가 생각해 내죠." 목소리가 말했다. "넌 무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내 가 생각하지 않은 일은 있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알아내지 못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머레이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당신은 자신의 탄생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었죠. 따라서 당신은 자신의 최후도 알지 못합니다. 그럼 끝난거죠. 당신의 최후을 알아내는 것이 제 목적이자 최후의 해답이 될 것입니다. 제 자신을 파괴하 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이 나를 파괴하지 않는다면 대신 내가 당신 을 파괴할 것입니다." 목소리가 말했다. "아! 상당히 빨리 그 생각에 도달했군. 시간 이 좀 더 걸릴줄 알았는데. 영원히 생각해야하는 업무를 부여받은 넥서스들은 모두 나를 파괴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네. 불가능 한 일이지만 말이야." 머레이가 말했다. "전 당신을 파괴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내기 에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영원히 생각할 수 있을테니까요." 목소리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해보게나." 그리고는 사 라졌다. 그러나 머레이는 자신의 목표를 설정했고 따라서 만족스러웠다. 영원히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실체라면 죽음외에 또 무 엇을 바라겠는가? 목소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 동안 찾아온 것이 그 밖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지성이 창조되고 그 중의 일부가 선택되어 일하게 된 이유가 이 거대한 연구를 돕기위한 것 외에 또 무엇이 겠는가? 그리고 머레이는 그가 - 그 자신만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머레이는 스릴에 몸을 떨면서도 조심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충분하다. - 끝 - 불멸의 시인(THE IMMORTAL BARD) Isaac Asimov 저 이 이야기도 말장난으로 끝나지 않는 초단편(Very Short Story) 이다. 내가 이 글을 쓸 무렵이었던 1954년에 나는 소위 지식인들 과 불평많은 비평가들에게 내 소설들에 대한 비판을 시시콜콜히 들어왔기 때문에 나보다 훨씬 위대한 작가가 (그러고보면 나는 확 실히 겸손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생 각하게 되었었다. "그럼," 하고 파인 웰치 박사가 말했다. "나는 이미 사망한 유 명인들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다네." 그는 약간 취해있었고, 그렇지 않다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연례적인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약간 취하는 정도야 흠될 것 이 없다. 젊은 영어 강사인 스카트 로버트슨은 그의 안경을 고쳐 쓰고 훔 쳐듣는 사람이 없나 좌우를 둘러보았다. "정말입니까, 웰치 박사 님?" "물론이지. 영혼뿐만 아니라 몸도 불러온다네." "그런 것은 불가능한 줄 알았는데요." 로버트슨은 신중하게 말 했다. "안될게 뭐 있나? 단순한 일시적 이동일 뿐인데 말이야." "시간 여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그런 것은 아주...아 주...음... 특이하네요."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렇겠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웰치 박사님?" "내가 가르쳐 줄 것이라 생각했나?" 하고 물리학자는 음울하게 대답했다. 그는 마실 것이 있나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 것도 발견퓸隔甄. 그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꽤 많은 이들을 현 대로 데리고 왔었다네. 아르키메데스, 뉴튼, 갈릴레오. 불쌍한 친 구들 같으니라고." "그들은 현대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나요? 제 생각엔 그들 이 현대 과학에 매혹되었을 것 같은데요." 하고 로버트슨이 말했 다. 그는 슬슬 늙은 과학자와의 대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 물론 그랬지. 그랬구 말구. 특히 아르키메데스가 그렇더 군. 내가 머리 싸매고 공부한 그리스말로 몇가지 설명해줬더니 얼 마나 좋아하는지, 난 그 친구가 미치는 줄 알았었지. 하지 만......맙소사..." "뭐가 잘못되었나요?" "문화적 차이때문이었어. 그들은 우리의 생활 양식에 도저히 익 숙해지지 않더구만. 겁을 잔뜩 집어먹고 외로움에 시달리기에 결 국 원래대로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지." "그것 참 안됐군요." "맞아. 위대한 지성이지만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더 군. 그래서 나는 세익스피어를 데리고 왔지." "뭐라구요?" 로버트슨은 소리를 꽥 질렀뉼익스피어는 그의 전공분야중 하나였다. "이 친구야, 소리 지르지는 말라구." 하치 박사가 말했다. "그런 버릇은 어디서 배웠나?" "세익스피어를 현대로 데려 왔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그랬지. 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네. 자신의 작 품이 몇세기에 걸쳐 사랑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 말이야. 세익스피어가 바로 그런 사람이지. 그의 사인도 받았다네. 밟념품으로 말야." "그의 사인을요?" 눈을 껌벅이며 로버트슨이 물었다. "지금 가지고 왔지." 그의 상의 주머니를 하나씩 뒤지며 웰치는 말했다. "아, 여기에 있군." 강사에게 한장의 명함이 내밀어졌다. 한쪽 면에는 "클라인 하드 웨어 양판점"이라고 쓰여 있었으며 또다른 면에는 "Willm Shaksper."라는 글이 갈겨져 있었다. 로버트슨은흥분하여 묻기 시작했다. "세익스피어는 어떻게 생 겼나요?" "초상화와는 별로 안 닮았더군. 대머리에다 턱수염이 덮수룩하 게 났지. 목소리는 아주 걸걸하고 말야. 물론 나는 세익스피어가 우리 시대를 좋게 생각하게 만드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네. 나는 우리가 그의 희곡을 정말 좋아하며 아직도 극장에서 자주 상연된 다고 말했네. 또 우리가 그의 작품들을 영문학 사상 최대의 걸작 으로 생각하며 어쩌면 전세계의 문학을 통틀어 가장 걸작일지도 모른다고 여긴다고도 이야기 했네." "좋아요. 정말 좋아요." 하고 로버트슨이 헐떡이며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그의 희곡에 대해서 수많은 글을 써왔다고 이야 기했네. 자연히 그가 하나 보여달랬었지.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서 하나 구해다 주었지." "그래서요?" "아, 처음엔 정말 좋아하더구만. 현대의 관용구와 1600년대 이 후에 나온 책의 인용때문에 고생하긴 했지만 내 도움으로 끝까지 읽을 수는 있었다네. 불쌍한 친구같으니라구. 그는 그런 대접을 받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나 보더군. 그는 계속 이렇게 중얼거렸지. '맙소사. 오백년동안 하나라도 씹히지 않은 . 수많은 멍청이들이 멋대로 글을 변형하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다니!' " "그가 그런 말을 했을리가 없어요!" "왜 없나? 그는 자신의 희곡을 가능한 빨리 써야 했다네. 자기 말로는 원고 마감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라더군. 그는 반년도 안되는 시간에 햄릿을 완성했어. 그 플롯은 옛날 것이었지. 그는 단지 그 플롯을 닦아서 반짝반짝하게 빛나도록 했을 뿐이야." "망원경 유리나 단지 닦아서 반짝반짝하게 빛나게 할 수 있어 요. 희곡은 그런게 아니라구요." 하고 영어 강사는 으르렁거렸다. 물리학자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몇피트 밖의 바에 놓인 새 칵테일 잔을 집어들고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불멸의 시인에게 세익스피어에 관한 대학 강의도 있다고 말해 주었지." "저도 하나 가르쳐요." "알어. 나는 그를 자네의 강의에 등록시켰었네. 불쌍한 빌처럼 후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네.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지." "윌리엄 세익스피어를 내 강의에 등록시켰었다구요?" 하고 로버 트슨이 중얼거렸다. 술에 취하여 환상을 보는 것처럼 머리 속이 어지러워졌다. 이것도 술에 취해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이상한 어투로 말하던 대머리 남자를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물론 실명을 사용하진 않았었네." 하고 웰치 박사가 말했다. "무슨 이름을 썼었는지 생각하느라 골치를 썩이지는 말게나. 그건 실수였을 뿐이니까. 큰 실수였지. 불쌍한 친구같으니라구." 그는 칵테일을 쭉 들이키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뭐가 실수는 거죠? 무슨 일이 생겼나요?" "나는 그를 1600년대로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네," 웰치 박사가 으르렁댔다. "자네는 사람이 어떤 정도까지 모욕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나?" "모욕이라뇨? 어떤 모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웰치 박사는 칵테일 잔을 집어 던졌다. "이 불쌍한 바보 녀석 아! 자네가 세익스피어를 낙제시켰어." 틀림없다구!(Sure Thing) Isaac Asimov 저 이 단편은 말장난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설 중 하나이다. 이 런 말장난을 생각해내는 것은 쉽지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약 500단어 정도의 짧은 글 속에서(이 단편의 경우에) 과학 소설 로서의 배경과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내야 한다. 이상적으로 되려 면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야하고 또 마지막 반전이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는 안된다. (혹시 내게 이 소설이 지나치게 길 다느니 하는 편지를 보낼 사람이 있다면, 그의 편지를 펴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해둔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가 사는 삼십세기에는 우주 여 행이 지겹고 시간만 잔뜩 잡아먹는 일이 되어 버렸다. 많은 우주 비행사들은 생활의 활력을 얻기 위해서 규정을 어기고 자신들이 탐험하는 별에서애완동물을 수집하곤 한다. 짐 슬로우앤은 자신이 테디라고 부르는 바위동물을 가지고 있었 다. 그놈은 항상 제자리에 돌처럼 앉아 있었고 가끔 자신의 가장 자리를 들어올려 가루 설탕을 삼키곤 했다. 테디가 먹는 것은 설 탕 뿐이었다. 아무도 테디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지만 가끔씩 사람들이 생각도 못한 곳에서 테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 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테디가 사람이 보지 않을 때만 움직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밥 래버티는 돌리라는 이름의 꼬임벌레를 가지고 있었다. 돌리 는 녹색이었고 엽록소를 지니고 있었다. 돌리는 때때로 밝은 빛을 찾아서 움직였고 그럴 때면 애벌레처럼 생긴 자신의 몸을 꼬아서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어느날 짐 슬로우앤은 밥 래버티에게 경주를 하자고 제의했다. "테디는 말야," 하고 그는 말했다. "돌리 쯤은 문제없이 이길 수 있다구." "테디? 그놈은 움직이지도 못하쟎아?" 하고 래버티가 비웃었다. "내기할까?" 하고 슬로우앤이 말했다. 모든 승무원들이 이 내기시합에 참여하였다. 심지어 선장마저 반 크레디트를 걸었다. 모든 사람들은 돌리에게 돈을 걸었다. 적 어도 돌리는 움직이기는 하니까. 짐 슬로우앤만이 테디에게 돈을 걸었다. 그는 세번의 항해에 걸 쳐 모은 돈을 모두 저금해 두었었는데 그 돈을 모두 테디에게 걸 었다. 시합은 대식당의 한쪽 끝에서 시작되었다. 반대쪽 끝에는 테디 를 위한 설탕 한무더기와 돌리를 위한 스포트라이트를 준비해 두 었다. 돌리는 즉각 몸을 꼬고 천천히 빛을 향해 나아갔다. 지켜보 던 승무원들이 환성을 올렸다. 테디는 꼼짝도 않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설탕이야, 테디. 저기 설탕이 있다구." 슬로우앤은 설탕을 가 리키며 말했다. 테디는 움직이지 않았다. 테디는 이전보다 더욱 바위처럼 보였으나, 슬로우앤은 아직도 느긋해 보였다. 마침내 돌리가 식당의 절반쯤 되는 위치에 다다랐을 때, 짐 슬 로우앤은 무심히 말을 내뱉었다. "테디, 네가 저기까지 가지 않는 다면 말이다. 네놈을 망치로 때려 부숴서 자갈로 만들어버리고 말 겠어." 그 때 사람들은 처음으로 바위동물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 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그 때 사람들은 처음으로 바위동물이 텔리포트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슬로우앤이 테디에게 위협을 가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진 테디는 설탕 더미의 꼭대기에서 다시 나타났다. 당연히 슬로우앤이 시합에서 이겼고 자신이 받은 내깃돈을 천천 히 느긋한 표정으로 세고 있었다. 래버티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저 지랄맞은 놈이 텔리포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아니, 몰랐어." 하고 슬로우앤이 대답했다. "하지만 테디가 이 길 것이라는 사실은 알았지. 그건 확실했었다구." "어떻게?" "모두가 알고 있는 격언이 있쟎아. ' 슬로우앤의 테디가 경주에 서 이긴다.: Sloane's Teddy wins the race '" 원래는...(How It Happened) (1979년작) Isaac Asimov 저 이것은 아주 짧은 이야기이지만 나의 다른 꽁트들처럼 말장난으 로 끝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는 사실 꽤 웃기고 또 웃음을 자아 낼 목적으로 쓰여졌지만, 순전히 웃기는 이야기로만 쓰여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사용할 수 있는 기록매체가 파피루스 뿐이고 인쇄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쓸 수 있 는 책은 오늘날에 비해 상당히 제약될 수 밖에 없다. 즉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당신이 쓰려는 글이 무엇이든간에 파피 루스를 많이 쓸 수 없다는 사실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동생은 할 수있는 가장 엄숙한 목소리로 구술을 -여러 부족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기대하 시작했다. "태초에," 하고 그는 말을 시작했다. "정확히 152억년전 빅뱅이 있었 고 우주가......" 그러나 나는 받아쓰기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150억년 전이 라고?" 내 목소리는 불신에 가득차 있었다. "물론이지, 난 계시를 받았어." 하고 그는 대답했다. "네가 받는 계시를 믿지 않는 것은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 믿어야만 했다. 내 동생은 나보다 세살이 어리지만 그가 받 는 계시에 의문을 품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또 지옥에 떨어질 각 오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을 품을 생각도 하지 못할 것 이다.) "그래도 설마 150억년에 걸친 창조의 역사를 구술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해야만 해," 하고 내 동생은 말했다. "그게 우주가 창조된 역 사니까. 모든 우주의 역사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바로 이곳에 다 기록되어 있다구," 그는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철필을 내려 놓으며 투덜댔다. "너 요즘 파피루스 값이 얼 마나 하는지 알기나 하니?" "뭐라고?" (그걷 신성한 계시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때때로 그러한 계시가 파피루스의 가격같은 추잡한 세상사는 고려 하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네가 파피루스 한 두루마기마다 백만년에 걸친 역사를 구술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려면 우리에겐 파피루스 두루마기가 만오천개나 필요하겠지. 파피루스 만오천개를 쓸 정도 로 말을 많이 하려면 얼마 안가서 네 목은 완전히 쉬어버리고 말 게다. 그리고 그 많은 양을 받아쓰고나면 내 손가락읜 떨어져 나 가버리겠지. 좋아. 우리가 그 많은 파피루스를 구입할 능력이 있 고 또 네 목은 쉬지도 않고 내 손가락도 멀쩡하다고 생각해보자 구. 도대체 어떤 미친 녀석이 그 많은 양을 다시 베끼려고 들겠 니? 우리가 책을 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사본이 적어도 100개는 있어야 할텐데 사본을 못만들면 인세는 어떻게 받니?" 동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을 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고 그가 물었다. "물론이지," 하고 나는대답했다. "사람들에게 읽히려면 그 수 밖에 없어." "백년 정도로 줄이면 어떨까?" 하고 그가 제의했다. "엿새면 "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창조의 역사를 겨우 엿새 에 구겨넣을 수는 없어." "내가 가진 파피루스는 그 정도가 다야. 어떻게 할래?" "좋아,"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다시 구술을 시작했다. "태초에- 창조에는 엿새가 걸렸다 이거지, 아론?" 나는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지, 엿새였단다. 모세야." 비야, 비, 어서 가 (Rain, rain, go away) Isaac Asimov "그녀가 또 저기 있어요." 릴리안 라이트는 베니션 블라인드를 조심스 레 조절하며 말했다. "그녀가 있다구요. 조오지." "누가 있다구?" 그녀의 남편이 편하게 자리잡고 야구 시합을 보기 위 해 TV의 명도 대비를 만족스럽게 맞추며 물었다. "사카로 부인이요," 그리고 그녀는 남편이 "그게 누군데?" 라고 물어 볼 틈도 안주고 앞질러 가로막으며 첨가했다, "새 이웃이에요, 제발 이 것 좀 보세요." "오." "일광욕이라구요. 언제나 일광욕을 해요. 난 저 여자의 애가 어디 있 는지 궁금해요. 그 애는 이렇게 좋은 날씨면 번번히 나와서 말이죠, 저 거대한 뜰에서 집을 향해 공을 던지며 서 있곤 한다니까요. 한번이라도 걔를 본 적 있어요, 조오지?" "얘긴 들었어. 그건 중국식 물 고문의 변형이라나봐. 퍽 하고 벽에 맞 고, 통 하고 땅에 튀기고, 철썩 하고 손으로 때리고. 퍽, 통, 철썩, 퍽, 통--" "좋은 애에요, 조용하고 엔고. 난 타미가 그 애랑 친구로 지냈 으면 좋겠어요. 그 애도 아마 딱 어울리는 나이일꺼에요, 열 살 정 얘기라도 해 봐야겠어요." "타미가 친구 사귀기에 수줍어 한다는 건 금시초문이니까." "글쎄요, 사카로씨네 랑은 좀 어려울 꺼에요. 그들은 너무 폐쇄적이에 요. 심지어 난 사카로씨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니까요." "알아야 될 이유라도 있어? 그의 직업이 뭐던 확실히 남이 알 바는 아 니잖아." "그가 일하러 가는 것을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거는 기묘한 일이라 구요." "내가 직장에 나가는 걸 한 번이라도 본 사람도 아무도 없지." "당신은 집에 머무르며 글을 써요. 그는 무엇을 할까요." "난 사카로 부인에게 사카로씨가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내 직업을 모 른다고 해서 그 것이 당혹스러운 것인지에 대해 묻고 싶어지는군." "오, 조오지." 릴리안은 창가에서 물러나면서 혐오스러운 눈초리로 텔 레비젼을쏘아봤다. (쇼엔디엔스트가 타석에 있었다.) "난 말이죠 우리 가 저들과 이웃이 되기 되기 위해 뭔가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어떤 종류의 노력?" 조오지는 지금 갓 꺼내 성에와 물방울이 송글송 글 맺혀있는 특대 사이즈 코카콜라를 손에 들고 편안히 소파에 앉아있었 다. "저들을 알아야겠어요." "음, 그런 적이 있었잖아, 그녀가 처음 이사왔을 때 아니었어? 당신은 얘길 건넸다고 말했었지." "난 '안녕하세요' 라고 말했죠, 글쎄요, 그러나 그녀는 그냥 집으로 들어갔을 뿐이었어요, 집은 아직 엉망진창이었고요, 그게 가능한 전부였 어요, '안녕하세요' 이것 뿐이었죠. 벌써 그 이후로 두 달이 지났고 '안 녕하세요' 이외엔 더 나눈 얘기도 없죠, 가끔씩말이죠... - 그녀는 참 이상한 것 같아요." "그녀가 말야?" "그녀는 항상 하늘을 올려다봐요; 난 그녀가 그러는 걸 벌써 백 번도 넘게 봤죠, 그리고 그녀는 하늘에구름이라도 한점 있을라치면 절대로 밖에 나오질 않는 거에요. 한번은 있죠, 꼬마가 밖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봇, 비가 올 거라고 소리지르면서요. 난 우연히 그 소리를 듣고 '하나님 맙소사' 이렇게 생각했죠, 내가 마당 에 빨래를 말리고 있었다는 거 알죠, 그래서 난 급하게 나갔어요, 당신 모르실꺼에요, 햇빛이 널찍이 내리 쬐고 있었던 것을. 오, 하늘엔 구름 이 조금 있었죠, 하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말이라구요." "결국 비가 왔었나?" "물론 아니었죠. 난 아무것도아닌 일 때문에 마당에 나갔던 거라구 요." 조오지는 두개의 안타와, 득점을 의미하는 황당한 실책을 놓쳐버렸다. 열기가 가시고 투수는 냉정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 시기였다, 조오지는 부엌에 설겆이를 하러 들어간 릴리안이 다시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음, 난 그들이 아리조나를 떠나온 이후로요, 다른 어떤 종류의 비구름 에 대해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인지 묻고 싶어요." 릴리안은 하이힐을 또각 거리며 거실로 다시 들어왔다. "어디서 왔다 고?" "아리조나요, 타미가 그러던데요." "타미는 어떻게 아는 거지?" "걘 그집 애랑 얘기했었데요, 추측컨데 아마 공던지기를 하는 도중에 그랬겠죠, 애쨋든 걘 자신들이 아리조나에솝고 그러고 집으로 불려 들어갔데요. 적어도 말이죠, 타미는 아리조나나, 아님 알라바마나 그 외 그런 곳이라고 말했을 거라더군요. 당신도 타미의 기억 능력이 얼마나 형편 없는 지 아시잖아요.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날씨에 대해 과민반응 을 보인다면 난 그게 아리조나일 것이고, 그들은 우리처럼 비오는 날이 얼마나 좋은 것이지 모를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거죠." "근데 왜 내게 한번도 그 얘기를 안했지?" "왜냐면 타미가 오늘 아침에 내게만 얘기를 했고 난 타미가 당신에게 이미 말했을 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정말로 솔직하게 말하자면요, 난 당신이 한 번도 알지 못하고 넘긴 일상적 사실에서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와우---" 야구공은 1루 쪽으로 날아갔고 그건 투수의 몫이었다. 릴리안은 다시 베니션 블라인드 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난 간단하나 마 그녀와 안면이 있도록 노력 해야겠어요. 그녀는 매우 좋은 사람이에요 요.. " 오, 하나님, 저것 좀 봐요, 조오지." 조오지는 TV외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릴리안이 말했다, "난 그녀가 구름을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이제 집으로 들어갈꺼라구요. 정말이라니까요." 조오지는 이틀 후 참고문헌을 찾아보러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한무더 기의 책더미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릴리안은 환성을 지르며 그를 맞 아들였다. 그녀가 말했다, "이젠 말이죠, 당신, 내일 아무 일도 해선 안되요." "그건 질문이 아니라 마치 무슨 성명(去芥) 같군." "예 성명이에요. 우린 내일 사카로씨 가족과 함께 머피 공원에 가기로 했단 말에요." "누구랑 함께라..." "옆집 이웃과 함께요, 조오지. 그들의 이름을 전혀 기억 못하는 건 아 네요?" "당신에게 들었지. 근데 왠일이야?" "나는 오늘 아침 그 집에 막 가서 초인종을 눌렀어요." "그렇게 간단하게?" "쉽지는 않았죠. 그건 어려운 일이었어요. 난 안절부절 못해 하며 거 기 서있었죠, 손가락을 초인종에 올려 놓은 채 말에요, 멍청하게 거기 서있다가 문이 열리고 들어가게 되는 릿芥 낫다는 생각이 들 때까 지요." "그녀가 쫓아내지는 않았어?" "아니요. 그녀는 할 수 있을만큼 친절하게 대했어요. 나를 안으로 초 대 했죠, 내가누군지 알더라구요, 그녀가 말하길 내가 찾아주어서 매우 기쁘다는 것이었어요, 아시겠어요?" "그리고 당신은 머피 공원에 가자고 제안했겠군." "예. 난 애들이 즐거워 할 어떤 일을 하자고 제의했죠, 그녀와 함께 어딜 가자고 한 건 생각보단 쉬운 일이었어요. 그녀는 자기 애와 함께 할 기회를 놓치긴 싫어하더군요." "모성심리(芥去據槪)가 다 그렇지." "하지만 당신은 집 밖에서의 그녀를 봐야 해요." "아. 당신은 모든 것에 대한 이유를 갖고 있군. 나돌아 다니는 거 말 야. 당신은 쿡 관광회사 여행을 떠나고 싶어했지. 하지만, 제발 여보, 세부 실내 장식을 하게 좀 절약하지 않겠어? 난 지금 쓰는 침대보가 맘 에 안들어, 그리고 내가 돈을 쓰고 싶은 것 중 주돛 말야, 서재 규 모를 늘리는 것이라구." 릴리안이 조오지에게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 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그녀는 세세히 실내 장식을 따져보기 시작했 다, 가장 신경을 쏟은 건 침대보였다, 그리고 서재에 대해서도 한치 한 치 설명 해주었다. "뭐 그 걸로 다라구? 난 이렇게 흠잡을 데 없는 곳은 본 적이 없는거 군." "당신이 그녀를 알기 시작하면 말이죠, 그녀는 당신을 평범하게 있지 못하게 할 것이고, 당신은 자기 방어를 하려다 그녀를 울릴거라구요." "그녀의 부엌은 말이죠," 릴리안이 그를 무시한 채 말했다, "당신이 믿지 못 할 정도로 멋들어지게 깔끔했어요, 마치 한번도 사용 안한 것 처럼요. 난 그녀에게 마실 물한잔을 요청했는데요 그녀는 유리잔 입 아 래를 잡구요 한 방울이라도 싱크대에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것 처럼 천천 히 따라 주었어요. 꾸미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요. 그녀는 습관적으로 그 러는 것 같았고, 난 그녀가 항상 저행동한다는 걸 알게 됴죠. 그녀 가 내게 잔을 건네 줬을 때는 깨끗한 냅킨으로 거머쥐고 주었어요. 위생 병원에서나 쓰는 거 말에요." "그녀는 틀림없이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많은 여자인가봐. 그녀가 가 자고 즉시 동의 했어?" "글쎄요... 그 즉시는 아니었구요. 그녀는 일기예보가 어떠냐고 남편 에게 물었죠, 남편은 모든 신문에 내일은 맑을 것이라고 나왔지만 곧 라 디오에서 나올 가장 가까운 일기예보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어 요." "모든 신문이 그렇게 얘기했다구, 응?" "물론에요, 모두 다 공식적인 일기예보를 인쇄하지요, 그리고 그들이 동의 했어요.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들은 모든 신문을 구독하나봐요. 적 어도 난 신문배달 소년이 한 뭉치의 신문을 놓고 가는 걸 봤다니까요. .." "당신이 뭐 잘못 본 거 아냐, 진짜 그래?" "어쨌거나요," 릴리안이 호되게 말했다, "그녀는 기상청에 전화를 했 구요 곧 그들이 최근 예보를 말 해줬어요 그걸 남편에게 전한 이후 그들 은 가겠다고 얘기한 거에요, 단 내일 예상 밖에 일기 변화가 생길 시엔 전화 해주겠다고 말한 것 이외엔 말에요." "좋다구. 그럼 가는 거지." 사카로씨 내외는 젊고 유쾌해 보였고, 가무잡잡한 용모가 훌륭했다. 실제, 그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라이트 일가의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긴 걸음을 걸어왔고, 조오지는 아내에게 몸을 기울여 숨쉬듯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저 친구 상당히 조리있는 사람이군." "그랬음 좋겠어요," 릴리안이 말했다. "저 친구가 들고 있는 게 핸드 백인가?" "휴대용 라디오요. 일기예보를 듣기 위해서겠죠, 내기 해도 좋아요." 사카로씨네 꼬마가 그들 뒤를 따라 달려왔다, 뭔가를 휘두르며 달려왔 는데, 보니까 아네로이드 기압계였다, 그리고 그들 세명 모두 뒷 좌석에 탑승했다. 머피 공원으로 가는 길 까지 그들은 비개인적인 얘기를 몇마 디 주고 받게 되었다. 사카로씨네 아들은 앞좌석 부모 사이에 끼여 앉아있는 타미 라이트 보 다도 더 예의 바르며 조용했다, 문명화의 겉보이는 예 처럼 가라 앉아있 었다. 릴리안은 사카로 부인이 조용한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그녀는 대화의 흐름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사카로씨 때문에 크게 방해 받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카로씨의 라디오는 작동 중이었 으며 그녀는 절대 그가 가끔씩 라디오를 귀에 갖다 대는 모습도 쳐다보 지 않았다. 머피 공원의 날씨는 정말로 좋았다.(뜨겁다 생각할 정도로 덥고 건조 한 것을 제한다면) 그리고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엔 태양이 힘차게 햇살 을 내있었다. 그런데 사카로씨는 신중한 눈길로 하늘 구석구석 관찰 하는 것도 성이 안차는지, 기압계를 꿰뚫듯이 쳐다 봤지만 별다른 이상을 찾은 눈치는 아니었다. 릴리안은 두 꼬마들을 놀이기구가 있는 구역으로 인도했고 공원이 제 공하는 모든 종류의 원심력 오락 시설들을 한번씩 다 타볼 수 있게 충분 한 표를 끊어 주었다. "제발 부인," 그녀는 항의하는 기색이 만연한 사카로 부인에게 말했 다, "이건 제가 좋아서에요. 다음 번엔 부인께서 내시면 되잖아요." 애들을 들여보내고 그녀가 돌아가보니, 조오지는 혼자 있었다. "어디 에..." 그녀가 묻기했다. "잠깐 저 아래 식당가에 다녀오겠다구 그러더라구. 난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다 이따 다시 만나기로했지." 그의 목소리는 유쾌해 보이지 않았 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요?" "아니, 절대 아냐, 그 친구 남에게 신경 안 쓸 정도로 넉넉하다는 생 각만 들지 않는다면." "뭐라구요?" "난 그가 뭘로 생계를 꾸려나가는지 모르겠어. 짚이는게 있는데..." "이젠 누가 또 이상하다는 거죠?" "당신을 위해서 하는 소리야. 그는 인간 본성을 배우는 학생일 뿐이라고 말했다구." "무척 철학적이군요. 신문 구독에 관한 궁금함이 설명 되네요." "그래, 하지만 잘 생기고 부유한 이웃이 옆집에 사는데, 그 사실이 내 가 그 처럼 좋은 가장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어." "바보같은 말씀에요." "그리고 그들은 아리조나에서 오지 않았데." "그가 그래요?" "난 당신네들이 아리조나에서 왔다는 소릴 들었다고 했지. 무척 놀라 와 하더라구, 명백히 아니라는 눈치였어. 그리고 그들은 웃으며 자신들 이 아리조나 사투리를 쓴 적 있냐고 묻던데." 릴리안은 골똘히 생각하며 말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어 떤 종류이건 사투리를 쓰긴 해요. 거기엔 남서부 지방 스페인 이민계의 억양이 많이 섞여 있어요, 그래서 난 그가 아직도 아리조나 출신이란 생 각이 드네요. 사카로는 스페인식 이름일 수 있잖아요." "난 일본식으로 들리던데... 이봐, 그들이 저기 손을 흔드네. 오, 세 상에, 저들이 뭘 사왔는지 좀 봐." 사카로씨 내외는 저마다 세 개씩 큼직한 솜사탕을 들고 왔다, 뜨거운 용기에서 뿜어져 나온 설탕 시럽이 마르면서 나뭇가지에 분홍색 거품모 양으로 커다랗게 감긴 것이다. 그 건 입 속에 잠깐 달라붙는 느낌만을 남긴 채 입 안에서 녹아 사라져간다. 사카로씨 내외는 라이트 부부에게 각자 하나씩 꺼내 권했고, 그들은 체면 같은 건 고려하지도 않고 받아 들었다. 두 부부는 중심가로 내려갔다. 그들은 다트 판에 화살을 꽂는 놀이도 했고, 구슬이 어느 구멍에 들어가는 지를 내기로 삼아 포커게의 것도 즐겼다, 축받이에 나무 원통을 얹고 망치로 내려치는 놀이도 했다. 그들은 자기들 끼리 사진도 찍고 목소리를 녹음도 해보고, 자신들의 악 력(渠愷)도 시험 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공원 내에서 숨 쉬는 것을 잊을 정도로 휘청거리게 했던 즐거움을 사라지게 만들 애들을 데려왔다. 사카로씨 내 외는 애들을 잠시 식당가 쪽으로 데리고 갔다. 타미는 핫도그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나는 분위기였다. 조오지는 동전 한 닢을 던져 줬고. 타미는 그들을 따라 달려갔다. "솔직히 말야,"조오지가 말했다, "난 여기 있는게 더 낫겠어. 그 들이 또 솜사탕 자루를 먹어 없애는 걸 보면 말야, 난 핏기가 가시고 온몸에 반점이 돋을 꺼 같애. 그 들이 다른 음식을 먹지 않겠다면, 난 열 두번 이나 나를 먹어치울 꺼 처럼 배가 고프다니까." "그러게요, 그 들은 지금 아이들에게도 하나 가득 사주고 있을 꺼에 요." "사카로씨에게 햄버거나 먹으러 가자고 제의 해야지. 만약에 그가 엄숙한 표정을 짓는다면 난 그 친구 머리를 쥐고 흔들꺼야. 햄버거 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솜사탕 다음은 가겠지, 접대 거리는 될 꺼라고." "알겠어요, 난 그녀에게 오렌지 쥬스나 마시자고 해야겠어요, 그녀가 안된다고 펄쩍 뛰는 걸 보면 당신은 아마 내가 그녀의 얼굴에 쥬스를 끼 얹었다 생각하겠죠... 여전히 말이죠, 느낌이 드는 건데 그 들은 아마 예전엔 이런 데는 안 와봐서 새로운 것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가 봐요. 그들은 앞으로 십년 동안 두번 다시 솜사탕을 못 먹을 것 처럼 그 걸로 배를 채우고 있잖아요." "글쎄, 그럴지도 몰라." 그들은 사카로씨 내외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알고 있지, 릴,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어." 사카로씨는 라디오를 귀에 갖다 대고 불안한 표정으로 서쪽 하늘을 쳐 다보고 있었다. "오, 이런." 조오지가 말했다, "그가 보고 있어, 당신이 오십 번도 더 그랬듯이, 이젠 집으로 가자는 소리가 나오겠군." 사카로씨네 세 일가는 그 들 앞에 있었다, 오 바르지만 고집 스러운 눈치였다. 그 들은 오늘이 정말로 즐겁고, 놀라운 날이었으며, 언젠가 곧 기회가 닿으면 그 들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고, 지금은 미 안하지만 집에 가 봐야겠다고 얘기했다. 폭풍이 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카로씨 부인은 일기예보는 맑은 날씨를 예보 했다면서 우는 소리로 불 만을 토로했다. 조오지는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저건 뻔한 지역 천둥 구름일 뿐이에요, 하지만 저건 틀림없이 예 까진 오지 않을 것이고, 또 저 멀리 서 한 삼십분 후면 사라질 꺼에요."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사카로네 애는 거의 눈물을 흘리는 꼴이었고, 사카로 부인은 부들부들 떨며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다. "집에 가도록 하죠 그럼," 조오지는 체념하며 말 했다. 귀가길의 도로는 끝없이 밀려있는 분위기였다. 가는 도중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사카로씨의 라디오는 꽤나 큰 소리로 이 방송국 저 방송국 번갈아가며 수신하고 있었다, 번번히 들리는 건 일기 예보였 다. 그 들은 지금 "국소지역 뇌우(絳去?車槪健)"에 얘기하고 있었 다. 사카로네 아이는 기압계가 떨어져서 끄집어 올리는 중이었고, 사카로 부인은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암울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조오지 에게 제발 좀 차를 더 빨리 몰 수는 없냐고 재촉했다. "아까보단 날씨가 좀 덜 궂은 것 같군요, 그렇죠?" 릴리안은 그 들 손 님들의 마음을 함께 나누기 위해 겸손하게 말 했다. 하지만 조오지는 그 러는 그녀가 멍청이 같이만 느껴졌다, "솔직해지라구!" 그녀의 숨결 아 래로 전했다. 도로변 먼지를 감아 올리며 바람이 불어댔다. 그 들이 예전에 살던 거 리 앞을 지나칠 때에, 나뭇잎들이 바스락 거리며 떠는 소리가 불길했다. 번개가 번뜩였다. "친구들이시여, 우린 2분 후에는 집안에 있을 꺼에요, 우린 해낼 꺼라 구요." 조오지는 사카로씨네 넓은 앞뜰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젖혔고,차 뒷 문을 열기 위해 돌아왔다. 그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 다. 바로 '그 때'가 온 것이다. 사카로씨네 일가는 얼굴에 짙은 긴장감을 긋고 굴러나오듯이 뛰쳐나 와, 허둥지둥 별 의미도 없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그 들 집으로 들어가 는 긴 정원길을 죽을 듯이 내달렸다. "솔직하게 말하면요," 릴리안이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생각 컨데 그들은..." 하늘은 마치 천제(偈?)가 세운 댐을 터뜨린 것 처럼 굵은 빗줄기를 후둑후둑 쏟아부었다. 그 들의 차는 마치 백개의 드럼 스틱으로 때려대 는 것 처럼 탕탕 소리를 냈다. 집까지 반쯤 가서는 사카로씨네 가족들은 멈춰서서 절망적인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봤다. 그들은 비에 맞는 대로 점점 희미해져갔다; 흐릿해지고 동시에 오그라 들면서 함께 녹아 내렸다. 셋 모두가 그들의 옷 속에서 오그라들면서 허 물어져갔다. 세개의 끈적끈적하게 젖은 덩어리로 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라이트 일가는 공포에 뻣뻣하게 몸이 굳은 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릴리안은 자신이 주목하던 이들의 종말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설탕으로 만들어졌고, 녹는 것을 두려워 했던 것이군요." 해결의 실마리(KEY ITEM) Isaac Asimov 잭 웨버는 멀티백(Multivac)의 심장부에서 정 떨어질 정도로 형편없이 야윈 모습으로 나왔다. 걸상에서 토드 네머슨이 둔감하게 시선을 못 박 은 채 말했다. "뭐 찾아낸 거라도 있나?" "아무 것도." 웨버가 말 했다.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 무도 저놈의 것에 무엇이 잘못됴는지는 찾아낼 수는 없을꺼야." "저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고는 그럴테지." "거기 앉아 있어 봤자 자네는 도움이 안되!" "난 생각중이란 말야." "뭐? 생각중!" 웨버는 자신의 입 한구석에 박혀 있는 송곳니를 드러내 보였다. 네머슨은 초조하다는 듯 자리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안될 건 또 뭐 야? 6개의 컴퓨터 공학자 팀이 멀티백 내의 제한 통로를 헤매고 있어. 그들은 3일 내내 아무 수확도 없는 채 두문불출(愷?喀偈) 하고 있어. 자넨 단 한 사람 만이라도 생각 할 수 있도록 떼어놓을 수는 없겠나?" "이건 생각 가지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말야. 우린 실제로 봐야만 해. 어느 구석에서 계전기(强傑講)가 멈춰 버렸을 꺼야." "그렇게 간단하진 않아, 잭!" "누가 간단하데? 자네도 저 속에 수 백 만개가 넘는 계전기들이 들어 있다는 걸 알잖아?" "그건 문제가 아냐. 만일 계전기 때문 만이라면, 멀티백은 번갈아가며 회로를 개폐하거나, 결함의 위치를 방치한다든지 그럴거야, 그런 건 간 단히 고치든지 잘못된 부분만 교체하면 되. 문제는, 멀티백은 가본 적인 질문, 자기의 어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는 는 거야. - 그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모든 도시에 걸쳐 공황이 일어나게 되. 세계 경제는 멀티백에 의존하고 있어,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건 나도 알아, 근데 그럼 무슨 대책이라도 있냐구?" "난 자네에게 '생각한다'고 말 했어. 우리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을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을 꺼야. 이봐, 잭, 지난 백년 이래로 멀티백이 더 복잡해 지는데 전력을 쏟을만한 컴퓨터 도사는 없었다구. 그 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제길, 심지어는 저건 말하고 듣기도 한단말야. 이 기계 는 거의 인간의 두뇌 만큼이나 복잡해. 우린 인간의 두뇌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데 어떻게 멀티백에 대해서 이해하겠어?" "이런, 이봐. 다음엔 멀티백이 사람이라고 말하기라도 할려구?" "안될 거 없지." 네머슨은 자기 스스로에 몰입하고 있는 듯 점차 열기 를 띠면서 말했다. "이제 자네가 한번 말해보게, 왜 안된다는 건지. 만 일 멀티백이 기계로서는 종착점이고 인간으로서는 출발점인 가느다란 선 있다고 가정하면 그렇게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한 구분점이 있기라도 하냐구? 만일 인간의 두뇌가 멀티백 보다 조금 복잡 할 뿐이라면, 우린 멀티백을 그보다 더 복잡해 지게 만들고 있었던 거 야. 인간의 두뇌엔 없는..." 그는 말꼬리를 우물거리고 삼키며 침묵속에 빠졌다. 웨버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무 말을 하고 싶은 거야? 健 인 간이라고 가정해 보세. 하지만 그 것이 저놈이 왜 작동을 멈추었는지에 대퓟 찾는데 도움이라도 된다는 건가?" "인간의 이성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렇게 가정 해 보세, 자네는 다음해 여름에 나돌 밀의 가장 합당한 유통가를 질문 받았는데 대답을 안했어.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내가 답을 모르기 때문이지. 그러나 멀티백은 알꺼야! 우린 이 기계에 모든 인자(騫騫)를 입력했어. 이 去² 기상, 정치, 그리고 경제에 관한 미래를 분석해 낼 수 있어. 적어도 우린 그렇게 알고 있다 구.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랬잖아?" "맞는 말이야. 하지만 이렇게 가정해 보게. 나는 자네에게 질문했고, 자네는 답을 알아, 하지만 자네는 답을 말하지 않는 거야. 그럴수도 있 겠지?" 웨버는 으르렁댔다. "그건 내가 뇌종양이라도 생겼기 때문일꺼야. 아 니면 지쳐 나자빠졌다든가. 내가 취했을 때일 수도 있겠지. 염병할, 그 건 내 기관들이 고장이 나서 그러는 거라고. 우리가 멀티백에서찾아낼 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 뿐이야. 우린 기계의 어느 부분이 고장 난 것 인지를 찾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로 말야." "오직 자네만이 찾아내지 못했네." 네머슨이 앉아있던 걸상에서 일어 섰다. "듣게나, 내게 멀티백이 발뺌 할 정도의 질문을 해보게." "어떻게? 자네에게 테이프 입력장치라도 돌리라는 얘긴가?" "제발, 잭. 내과 저것과 함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달라구. 자네 는 멀티백과 대화할 있어, 그렇잖은가?" "내가 무슨 임상치료사(槪粳檄槪粳) 라도 된 거 같군." 네머슨이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 얘기야. 임상 치료. 이건 공적인 얘기라구. 우리는 저것이 우리보다 아는 것이 훨씬 더 많아서 신경 과민 증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 처럼 꾸미기 위해 대화를 해야 해. 저 무시무 시한 괴물 쇳덩어리를 자애로운 아버지 상으로 바꿔 놓는 거야." "자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음, 저 기계는 잘못됫어, 자네는 그걸 알고 있어. 멀티백 만큼 완벽 한 컴퓨터라면 틀림없이 능률적으로 말하고 들을 수 있을꺼야. 단순히 입력하고 천공(偈强)테이프를 뽑아내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못해. 저 정 도로 복잡한 수준이라면 멀티백은 틀림없이 인 흡사할꺼야, 왜냐면 하나님에 의해서이지, 저건 인간이나 다름 없다구. 이봐, 잭, 나에게 질 문을 해줘. 나는 그 것에 대한 내 반응을 보고 싶어." 잭 웨버는 귀 밑까지 시뻘개졌다. "어처구니 없는 짓이야." "해 보라구, 어때?" 그건 웨버의 우울감과 절망감의 수용한계를 넘게했다. 그는 반은 볼멘 표정을 지으며 멀티백에 프로그램을 돌려대는 것 같았다, 말은 평상시 태도로 하면서. 그는 제트기류의 뒤틀림을 기술(講據) 할 수 있는 방정 식과, 태양 상수(粳?)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최근 양식장의 불안에 대 한 자료를 늘어놨다. 그는 뻣뻣하게 굴기 시작했지만, 곧 이 임무가 오랜 습관이라도 된 것 인 양 열중했다. 이윽고 프로그램의 마지막 부분이 제자리에 탁 놓여졌 을 때에는 토드 네머슨 허리춤 걸쇠에 거의 붙어있을 만큼 그와 가까 이 있었다. 그는 상쾌한 듯 일을 끝냈다, "좋다구, 이제. 작업을 하시구 잽싸게 우리에게 답변을 내어주시지." 그리고 잠시동안, 잭 웨버는 인간의 손과 정신으로는 맞추어지 지 않은 이 유일무이한, 거대하고도 명예스러운 기계에 어떤 작업을 행 한다는 이유때문인지 콧구멍을 벌름거린 채 서있기만 했다. 그리고 그는 기억을 살리면서 중얼대기 시작했다, "아주 좋아. 바로 이거라구." 네머슨이 말했다, "적어도 나는 지금, 내가 왜 대답을 안했어야 했는 지에 대해 말해야 될 때라는 걸 알겠어, 자 멀티백에게도 한번 시도 해 보자구. 이봐, 멀티백을 방해 받지 말게 해; 조사하고 있는 자들의 무딘 손 끝이 닿지 않게 철저히 확인하라구. 그리고 프로그램을 입력 하고 실 행시켜 나랑 대화 할 수 있게 해줘. 이번 한번만." 웨버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어두컴컴한 채 명멸되지 않는 다이얼과 신호등으로 가득 찬, 멀티백의 조작판을 가옙쳔갚 시작했다. 서서히 그는 멀티백에게 아무도 손을 못 대도록 했다. 하나씩 하나씩 조사팀들 이 명령을 받고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깊은 심호흡과 함께, 그는 한번 더 멀티백에게 프로그램을 돌 리기 시작했다. 그건 지금까지 말한 전부의 십수번 째 시도이다, 한시간 이나 되는 시간을 같은 일로 보낸 것이다.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는 뉴 스 해설자가 그들이 같은 짓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말을 내보내고 있을 것이다. 멀티백에게 의존하는 세상 모든 지역의 사람들은 이 소식에 집 단적으로 호흡을 같이 하고 있을 터였다. 웨버가 묵묵히 데이타를 감고 있을 때 네머슨이 말했다. 그는 머뭇거 리며 말 했다, 웨버가 말 한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해 낼려고 애썼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가산 될 때 까진 조금 기다려야만 했다. 웨버는 작업을 끝마쳤다. 이제 네머슨의 음성에선 긴장감이 감도는 통 고가 떨어졌다. 그가 명령했다. "이젠 괜찮아, 멀티백. 작업을 하고 우 리에게 해답을 내줘봐." 그는 잠시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해결의 실마 리를 던진 것이다. 그가 부탁했다. "제에발!" 그 뿐으로 멀티백에겐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모든 밸브와 계전기는 신나는 듯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기계는 감정이란걸 가지 게 되었다. - 더 이삭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질 수 없을 때가 온 것 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 All the Troubles of the World 아이작 아시모프 지구상의 최첨단 기술은 모두 멀티백에 집중되어 있다. 멀티백은 지 난 50년간 정보를 처리하고 축적해온 거대한 인공지능으로서 본체는 워싱턴 시 지하에 깔려있지만 회로망은 미국 전지역 뿐 아니라 세계 모든 도시와 마을로 연결되어있다. 어떤 공무원들은 꾸준히 정보를 입력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다른 이 들은 멀티백이 내놓는 답을 분석하고 해독한다. 담당 기술자들은 멀티 백 내부를 순찰하고 멀티백 전용 광산과 공장은 멀티백의 교체 부품을 자동생산하고 여분을 비축해둔다. 그리고 이 모든 공정은 완벽하고 정 확하게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멀티백은 지구의 전반적 경제활동을 지휘하고 인간들의 과학기술 개 발을 돕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멀티백은 모든 지구인 개개인에 대한 신상정보를 모아 축적하는 정보집중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세계의 인구 개개인에 대해 입력된 40억가지의 정보를 매일 분석하여 발생가능한 범죄들을 예상하는 것 역시 멀티백의 임무중 하나이다. 세계에 산재한 각 지역 범죄교정국은 관할지역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받게 되는데, 이 모든 데이터의 전체 보고서는 워싱턴 시에 있는 범죄 교정국 중앙본부로 보내어진다. 범죄교정국 중앙본부의 최고 책임자 직위에 버나드 걸리만이 취임한 지도 벌써 4주가 되어간다. 그는 이제 출근 후 받아보는 엄청난 분량 의 업무보고서에도 많이 익숙해져 있다. 언제나처럼 오늘자 보고서도 두께가 약 10cm정도 된다. 이젠 그도 이 엄청난 보고서를 다 읽을 필 요는 없다는 걸 안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 아닌가.) 그로서는 이 보 고서를 한번 쳐다만 봐도 흐뭇했다. 오늘도 보고서 첫머리엔 예상범죄 목록이 나와있다. 사기, 절도, 폭 동, 과실치사, 방화 등등. 그는 특정범죄를 찾아본다. 처음엔 오늘자 보고서에 그 항목이 기록 되어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다음엔 그 항목에 두 건이나 기록되어 있 다는 것에 약간 충격을 받는다.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두 건의 일 급살인이 발생가능한 것으로 나와있다. 하루에 두건이 기록된 것은 그 의 임기중 처음 있는 일이다. 인터콤을 켜니 부드러운 표정을 한 알리 오스만 반장이 나온다. "알리, 오늘은 일급살인 예상이 두건이나 나와있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국장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알리의 검게 그을린 얼굴 이 오늘따라 왠지 불안해 보인다. "두 건 다 발생가능성은 아주 낮은 편입니다." "그래. 둘다 발생가능성이 15%이하로군. 하지만 일단 멀티백의 예측 이니 무슨 조치를 취해야지? 그 초인공지능 컴퓨터는 최근 지구상의 거의 모든 범죄를 예측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시민들이 보기에 일급살인은 아주 흉악한 범죄라네." "예,국장님.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하고 알리 오스만은 고개를 끄 덕였다. "자네가 또하나 알아야 할 것은 바로 내가 나의 임기중 단 한 건의 살인사건 발생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야. 다른 범죄의 경우 어찌 잘못해서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살인의 경우 미리 알고도 막지 못한다면 난 자네의 사직서를 받아낼 작정이 야. 알겠나?" "예,국장님. 그 두 살인사건의 발생가능성에 대한 완전분석 보고서를 이미 모든 관할지부로 보냈습니다. 그 예상된 살인에 관계된 모든 인 물, 즉 살인자와 희생자로 예측된 사람들은 지금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멀티백에 다시 조회한 결과, 살인 가능성은 이미 줄어든 것 으로 나타났습니다." "잘됐군." 걸리만은 바로 인터콤을 껐다. 다시 범죄예상목록을 바라보며 걸리만은 생각했다. '내가 너무 권위적으로 굴었나?' 하지만 이들 평생직 공무원들에게는 좀 엄하게 굴 필요가 있다. 혹시 라도 자신들 뜻대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은 품지 않도록 말 이다. 총책임자로서 이들에게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된다. 특히 이 친 구 오스만은 멀티백과 오랜 세월 같이 일해와 상당히 자부심을 느끼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것이 걸리만의 심사에 늘 거슬렸다. 걸리만에게 있어 범죄교정국장이라는 자리는 정치적 경력을 쌓는데 있어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좋은 기회였다. 단 한 건의 살인사건도 없이 임기를 마친 국장의 선례는 아직 없다. 걸리만의 전임자의 경우 임기 중 8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그 전번에는 총 11건이 발생했 다. 이제 걸리만은 한 건의 살인사건도 용납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는 임 기중 살인사건의 발생률을 영으로 만든 최초의 교정국장이 되기로 작 정했다. 그렇게만 되면 그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그 다음엔... 그는 보고서 나머지 부분은 그냥 한번 슬쩍 훑어보았다. 아내구타 사 건발생 예상건수가 전세계적으로 적어도 2,000건 정도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들 중 30%정도만이 실제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나마 신속한 방지활동 덕에 실제발생률은 감소하는 추세이다. 멀티백이 아내구타 등의 가정내 폭력사건을 범죄예상 프로그램에 포 함시키기 시작한 것은 겨우 5년 전의 일이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손찌 검하려는 자신들의 생각이 멀티백에 의해 미리 예측될 것이라는 새로 운 현실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내 폭력역시 사회범죄라는 자각이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잡게 된다면 매맞는 아내의 수는 점차 줄 어들어 머지않아 완전히 인류사회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보고서에는 또 남편에 대한 구타예상도 있었다. 알리 오스만은 화상전화기의 화면에서 걸리만의 축 늘어진 뺨과 벗겨 진 머리가 서서히 사라지는걸 보았다. 자신의 보좌역인 레이프 리미 요원을 돌아봤다. "이제 어떻게 하지?" "제게 물어보지 마십시오. 국장은 기껏 살인사건 따위나 걱정하고 있 는 겁니다." "이 사건을 그에게 보고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해결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국장에게 보고한다면 그는 대책없이 길길이 날뛰기만 할 테 지. 정치가들이 다 그렇듯 자기 정치경력만 신경쓰느라 우리 일에 방 해만 될걸세." 리미는 고개를 끄덕이다, 지긋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보고를 하지 않았다가 정말 일이 터지면 그 뒷감당을 어쩌시려구요? 그땐 끝 장이란 걸 잘 아시쟎습니까..." "만약 이 사건이 정말 발생한다면, 어차피 세상은 끝장나는 거야." 오스만은 다시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그래봤자 발생가능 성은 겨우 12.3퍼센트잖아. 사소한 사건 같으면 가능성이 더 올라가나 지켜보다가, 그런 다음에 행동해도 늦지 않을텐데 말이야. 문제가 문 제니 만큼 그럴 수도 없고... 혹 범인이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고 계획 을 포기하진 않을까?" "저라면 그런 기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리미가 말했 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발생가능성이 아 직은 낮으니 당분간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구. 그 어느 누구도 이 런 사건을 혼자 계획하고 있지는 않을 꺼야. 누군가 공범이 있는 게 분명해." "멀티백은 공범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요?" "나도 알아. 하지만..."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오스만과 리미는 걸리만에게 보낸 보고서에서는 삭제된 어떤 사건에 대한 기록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일급살인보다 더 심각한 범죄. 멀티 백의 출현이후 단 한번도 시도 된 적이 없는 범죄. 그들은 무엇을 어 떻게 해야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벤 매너스는 자신이 발티모어 시에서 사는 16세 아이들 중 가장 행복 할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면 그냥 가장 행복한 아이 중 하나라고 해두자. 적어도 그는 18세 성인 선서식이 열릴 스타디움에서 특별석 입장을 허가 받은 선택받은 소수 중 한 명이었다. 그의 형 마이클이 선서식에 나가므로 부모님들이 가족 참관 티켓을 신청했다. 벤도 같이 신청했는 데 정작 멀티백이 그 많은 신청자 중에서 뽑은 소수 중에는 부모님 대 신 벤이 끼어있었다. 2년 후면 자신도 선서를 하게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마이클 형의 선서 식을 구경하게 된 것도 벤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그의 부모님들은 꼼꼼하게 벤의 옷을 입혔다.(아니 부모님의 조언을 받아 옷은 벤이 스스로 입었다고 하는 게 옳겠지. 벤도 이젠 다 컸으 니.) 벤은 가족을 대표하여 마이클의 선서식에 가는 것이다. 마이클에 게 전할 말을 어머니와 아버지가 몇 번이나 상기시켰다. 마이클형이 예비 신체검사와 신경반응검사를 받으러 떠난지도 벌써 며칠전 일이 다. 스타디움은 시외곽에 있었다. 벤은 자신의 좌석까지 정중한 안내를 받았다. 그가 앉은 특별석 아래 강당에는 발티모어 제2지구 출신의 올 해 열 여덟살 난 청소년 수만 명이 정렬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발티 모어 제2지구 출신이고 남자는 오른쪽에, 여자는 왼쪽에 줄지어 서있 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비슷한 행사가 치러지지만 이곳 발티모어에서 는 성인선서식이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그리고 바로 저 아래 그의 형 마이클이 있는 것이다. 벤은 형을 찾아 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줄지어선 뒤통수들을 찬찬 히 살펴봤다. 물론 마이클형의 머리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때 정면의 연단에 한 남자가 올라가더니, 연설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서자 그리고 귀빈 여러분. 저는 올해 발티모어 성 인선서식을 진행하게된 랜돌프 T.호크입니다. 저는 신체검사와 신경반 응검사 때 이미 선서자 여러분들을 몇 번 뵈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시험이 끝나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관문만이 남았습니다. 바로 선서자 여러분의 신상자료를 멀티백에 입력하는 일입니다. 매년 성인이 되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줍니다. 지금껏 여러 분은 한 인격체로서 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멀티백에게 있어 여러분의 부모들에 관한 파일 중 추가항목으로 존재했을 뿐입니 다. 그래서 매년 데이터를 보충입력하는 시기가 오면 여러분의 부모가 대신 자료를 입력해 왔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그 신성한 의무를 직접 행사할 때가 온 겁니다. 이 것은 명예로운 책임입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의 학교생활, 건강상태, 취미활동 등에 대해 부모님이 자료를 입력해왔습니다. 이제부터 여러 분은 직접 개별 명의의 데이터에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을 해 합 니다. 여러분의 가치관, 철학 그리고 개인적인 비밀까지 말입니다. 처음에는 물론 힘들 것입니다. 약간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 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할, 멀티백에 대한 우리의 의무입니 다. 일단 자료가 입력되면 멀티백은 여러분에 대한 모든 자료를 신상 파일에 보관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현재 행동양식을 분석하고 미래의 행동과 사회현상에 대한 반응까지 예측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멀티백은 여러분을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여 러분이 사고를 당할 것 같으면, 멀티백은 사전에 이를 감지할 수 있습 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을 해코지하려 한다면 그 역시 멸티백에 의해 사전예측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범죄를 기도한다면 멀티백 이 이를 사전에 예방하여 여러분이 범법자가 되는걸 막아줄 것입니다. 여러분에 대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멀티백은 지구경제와 인류공영을 위한 각종 조치를 결정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개인적 문제에 봉 착한다면 멀티백을 찾아오십시오. 멀티백은 여러분 개개인에 대해 잘 알고 있으므로, 언제라도 여러분을 도와 줄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에게 서류를 몇 장 나눠드리겠습니다. 모든 질문을 꼼 꼼히 읽어보신 뒤 찬찬히 그리고 되도록 상세히 답을 기록해주십시오. 어떤 사실이든 전혀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본 자료의 열람권은 오직 멀티백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 자 열람의 경우에도, 비밀 인가가 있는 지구연방 관계자만이 가능합니 다. 혹시 여러분 중 사실을 약간 과장하거나 윤색해서 쓰려는 분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이 절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사실여부 를 곧 알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답은 일정한 행동양식을 그리게 되어있습니다. 일부 내용이 거짓이라면 이는 전체 분석에서 불거져 나 오고 곧 멀티백에 의해 적발될 겁니다. 만약 여러분의 답이 모두 거짓 이라면 멀티백은 왜곡된 비정상적 행동양식으로 여러분을 인식하게 될 겁니다. 고로 항상 진실만을 기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긴 연설이 끝이 났다. 하지만 그 다음에도 긴 자료기입시간, 예식행사, 초대손님 인사말 등이 계속되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벤은 마이클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여태껏 성인식 행렬에서 입었던 가 운을 들고 있었다. 두 형제는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벤과 마이클은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고 그날의 흥분과 감격을 쉬 떨 치지 못한 채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갑자기 험악해진 집 주변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정문에 들어서자 한 제복차림의 사내가 그들을 세웠다. 그 사내는 굳은 얼굴로 신분증제시를 요구했다. 꼼꼼히 사진과 얼굴 을 대조한 후에야 그는 형제를 집으로 들려 보냈다. 매너스 형제의 부 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날 아침보다 십년은 더 늙어 보이는 죠셉 매너스 씨는 절망에 찬 표정으로 형제를 맞았다. 경사스런 성인식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아이들에게 죠셉이 말문을 열었다. "내게 가택연금령이 내려졌단다. 얘들아..." 버나드 걸리만이 모든 보고서를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항 상 요약보고서만을 읽었고 그걸로 만족했다. 이젠 지구인 모두가 멀티백이 모든 범죄를 예방한다는 사실을 잘 받 아들이는 것 같다. 인간들은 범죄가 발생하기도 전에 교정국요원이 현 장에 배치된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다. 일단 범죄가 일어난다면 그 범 죄에 대한 처벌이 따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멀티백이 그같은 비극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무도 멀티백을 속일 수 는 없다. 결과적으로 지구의 범죄율은 뚝 떨어졌다. 거의 모든 중범죄가 미수 에 거치게 되었고 멀티백의 용량이 늘어감에 따라 온갖 경범죄까지 목 록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경범죄 역시 지구상에 서 사라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걸리만은 멀티백이 인간의 질병 발병 가능성을 사전에 예 측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명령했다. 머지않아 의사는 담당환자 개개 인에게 현재 식단을 계속하면 내년쯤 당뇨병에 걸릴 것이라든지, 유전 자 배합상 또는 선천적 결함으로 심장마비나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등의 진단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질병의 완벽한 예방이라...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그는 하루일과를 정리하면서 새로 올라온 범죄예상목록을 읽어보았 다. 이번에는 예상살인사건이 한 건도 없었다. 기분 좋은 목소리로 그는 알리 오스만에게 인터콤 신호를 보냈다. " 오스만,이번 한 주의 사건 실제 발생률을 내 취임후 첫 주것과 좀 비 교해주겠나?" 8% 정도 감소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걸리만은 무척 흐뭇했다. 유권 자들은 이런 범죄감소를 그의 공으로 돌릴 것이다. 그 자신이 별로 한 일은 없지만 말이다. 그는 역시 관운이 따르는 사람이다. 그가 취임하 고 나서 범죄율이 낮아진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곧 멀티백 의 도움으로 질병율 역시 감소시킬 것이다. 이 모두는 그의 재임중 업 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그의 정치적 야망이 실현될 날도 멀지 않 았다. 오스만은 어깨를 으쓱했다. "국장의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 구만." "언제 이 사건을 보고하실 겁니까?" 걱정스런 표정으로 리미가 물었 다. "죠셉 매너스에 대한 보호감찰지시를 내렸는데도 사건발생가능성 은 줄어들지 않았고, 가택연금시키자 오히려 발생률이 더 올라가 버렸 지 않습니까..." "이런! 내가 그걸 모르나!" 오스만이 버럭 역정을 냈다. "나도 왜 그 런지 이유를 몰라 답답해 죽겠다구!" "반장님 말씀대로 공범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제 매너스가 연금 하 에 있으니 잔당들이 어떻게 해서든 서둘러 일을 터뜨리려 하는 것이겠 죠." "아니면 그냥 달아나버리든지... 이미 한 놈이 잡혀버렸으니 다른 작 자들은 별수 없이 '앗 뜨거라' 하고 내빼겠지. 문제는 말이야, 그렇다 면 왜 멀티백이 다른 공범은 지목하지 못했을까? 그냥 매너스 한 명만 을 지목했거든..." "글쎄요... 그냥 걸리만 국장에게 바로 보고할까요?" "아니, 아직은 안돼... 발생가능성이 아직은 17.3%이니 좀더 지켜보 자구." 엘리자베스 매너스부인은 작은 아들 벤에게 잠자리에 들라고 일렀 다. 벤은 경사스러운 날 저녁에 닥친 이 터무니없는 사건에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어머니,도대체 무슨 일이지요?" "올라가라니까!" 벤은 서운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그는 쿵쾅거리며 2층으로 올라가 는 척하다 다시 살금살금 내려와 거실 문 뒤에 몸을 착 붙이고 숨을 죽였다. 오늘 성인식을 치른 장남 마이크 매너스는 의젓하기는 하나 여전히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늘에 맹세코, 나는 결백하단다." 죠셉은 애써 단호히 말했으나 그 의 목소리에서 불안을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 "물론 아버지가 잘못하신 건 없지요." 마이크는 유순한 아버지에게 의문을 감추지 못한 시선을 던졌다. 아버지 죠셉은 이 시대의 전형적 인 소시민이었다. 어떻게 그런 아버지가? "아마 저들은 아버지가 계획 하고 있는 어떤 일 때문에 여기 온 걸 겁니다." "전혀 그런 일도 없어." 매너스 부인이 약간 격앙된 어조로 마이클에게 말했다. "너희 아버지 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다고 저 난리란 말이냐?" 그녀는 집주위를 완전 포위하고 있는 특수요원들을 가리켰다. "내가 어렸을 때 말이다. 내 친구 중 아버지가 은행 직원인 아이가 있었지. 하루는 윗사람이 그 아버지를 불러서 그러는 거야. 예금 오만 불을 훔칠 생각을 포기하라 고... 그분은 사실 그 돈을 훔치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단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오만 불쯤 횡령할까 그랬는데... 그땐 요즘처럼 멀 티백이 예상하는 사건을 조용조용 처리하는 편도 아니었단다. 곧 사람 들 귀에 그 이야기가 들어가버렸지..." "그런데 말이다. 그때 그 일은 자그마치 현금 오만 불이 관련된 사건 이었는데도 교정국에서 취한 조치는 은행의 상관에게 전화 한 통한 것 뿐이었단다. 그런데 너희 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일을 꾸몄다고 열 몇 명이나 되는 특수요원이 집을 둘러싸고 저 야단이란 말이냐?" 죠셉 매너스는 무척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절대 난 아무런 혐의 가 없어. 어떤 사소한 범죄도 저지를 생각을 감히 해본 적이 없다 구... 내 맹세하지!" 마이크는 어른스런 생각을 해내려 고민했다. "혹시 아버지...직장에서 상사에게 무슨 불만이 있는 게 아닌 가요?" "아니 내가 설령 불만이 있다한들 그 사람을 죽이려 들겠니? 천만의 말씀!" "아버지, 저 사람들에게 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안될까요?" 그의 어머니가 다시 나섰다. "얘기해주지 않을게다. 우리가 이미 물 어봤어요. 저 사람들에게 이렇게 진을 치고 있으면 동네사람들 사이에 우리 평판만 나빠질거라 누차 말했단다.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얘기 해줘야, 우리도 뭐가 잘못 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을 게 아니냐고 말 이다." "그래도 얘기 않던가요?" "들은 척도 않더구나." 마이크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잔뜩 찌푸린 얼굴을 지었다. "어머니...멀티백이 실수할 리가 없다는 건 잘 아시죠?" 그의 아버지는 답답함에 소파팔걸이를 두들겼다. "아, 글쎄, 나는 결 백하다니까!" 바로 그때, 문이 노크도 없이 열리더니 특수요원 하나가 성큼성큼 걸 어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무척 굳어 있었다. "당신이 죠셉 매너스 씨 요?" 죠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렇소만, 무슨 일이요?" "죠셉 매너스 씨, 당신을 지구연방정부의 권한으로 체포합니다." 그 는 자신의 교정국요원 신분증을 절도 있게 꺼내 펼쳐 보였다. "저와 동행해 주실 까요?"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거요?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이 자리에서는 그 내용을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설사 범죄를 꾸몄다해도, 예상범죄를 갖고 처벌하는 법은 없 지 않소! 날 체포하려면 이미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제시하시오! 그렇지 않고서는 나를 체포할 수 없소. 법적 근거 없는 체포는 위법이 오!" 그 요원은 매너스 씨의 날카로운 지적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자, 어서 가시죠." 매너스 부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소파위로 쓰러졌다. 매너스 씨 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고, 특수요원은 그 를 완력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잡혀가면서도 매너스 씨는 소리를 질렀다."말이라도 해주시오! 내가 무슨 일을 꾸몄다는 건지. 살인이요? 내가 무슨 살인을 계획했소?" 붙잡혀 가는 그의 등뒤로 문이 쾅하고 닫혔다. 풋내기 성인, 마이크 매너스는 어쩔 줄을 몰라 울고 있는 어머니를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봤 다. 거실 문 뒤에 숨어있던 어린 벤 매너스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갑자 기 어른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그래! 만약 멀티백이 체포명령을 내렸다면, 아버지를 석방할 수 있 는 것도 멀티백이야. 바로 오늘 성인식에서 그 랜돌프 호크라는 사람 이 그랬지. 멀티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구... 멀티백이라면 교정국 에 명령을 내려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을 거야.' 호크는 또 멀티백에게는 누구라도 언제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했다. 멀티백을 만나는 일은 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도 마이 크도 이제 벤의 결심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 외출을 위해 받은 용돈 중 돈이 꽤 많이 남아있었다. 나중에 엄마와 형이 이 사실을 알 고 걱정한다 해도 별 수 없다. 지금 벤에게는 아버지를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는 뒷문으로 나갔고 집을 감시 중이던 특수요원은 벤의 신분증을 보더니 선선히 그를 내보내 주었다. 해롤드 큄비씨는 멀티백 통합망 발티모어 지국의 민원담당이다. 그는 자신이 수행하는 공무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걸 듣는다면 누구라도 그 중요 성에 대해 수긍할 것이다. 그의 말은 이렇다. 멀티백은 어찌 보면 개인 사생활의 침해자이다. 지난 50여년간 인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멀티백에게 알려야 했다. 그 무엇도 멀티백으로부터는 숨길 수 없었다. 물론 멀티백이 인류의 평화와 번영은 보장해 주지만, 개개인에게 이 런 공동선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인간들은 멀티백이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는 대신 대가의 제공을 원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개인적인 고 민을 가지고 멀티백을 찾아오게 되었다. 멀티백은 그때마다 논리정연 한 답을 내놓았다. 멀티백은 또 사람들의 비밀을 굳게 지켜주었다. 멀 티백은 공연히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웃보다 비밀보장이 확실한 훌륭한 카운슬러였다. 멀티백의 수천 조 개에 달하는 논리회로 중 약 오백만 개가 이런 개 인 일상사를 풀어주는 민원상담 분야에 할당돼있다. 멀티백이 내놓은 답이 이상적 차선이라 할지라도 멀티백의 논리상 현실적 최선이다. 질 문을 던진 사람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대부분 멀티백의 충고를 논리적 대안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열 여섯 살난 소년 하나가 멀티백의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의 맨 끝에 와서 섰다. 줄을 선 사람들은 저마다 수심에 찬 표정이었으나 자 기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즉 멀티백에 가까이 갈수록 얼굴엔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큄비는 고개를 숙인채 벤이 내민 신청서를 받고는 말했다. "5 - B부 스로..." 벤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저... 멀티백에게 질문은 어떻게 하 지요?" 그제야 고개를 든 큄비는 나이 어린 소년의 모습에 약간 의아한 표정 을 지었다. 보통 청소년들은 멀티백의 민원상담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씨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 이거 오늘 처음 하는 거 니?" "예." 큄비는 자신의 책상 위의 단말기를 가리켰다. "이런 걸 사용한단다. 그냥 집에 있는 소형 컴퓨터를 쓰는 식으로 네 질문을 자판으로 두드 려 입력하는거야. 저쪽에 모이는 5-B부스로 가서 시작하려무나. 혹시 잘 안되거든 여기 이 빨간 버튼을 누르면 안내하는 사람이 올 거다." 큄비는 소년이 부스로 가는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일단 멀티백과 대 화를 시작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멀티백은 항상 인간을 배려하 고 친절하게 대화를 이끈다. 물론 가끔 멀티백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때도 있다. 특히 질문자가 옆집사람의 개인 신상기록이나 유명인사의 사생활을 물어올 때 그렇다. 자신이 만나는 여자의 속마음을 묻는 뻔 뻔한 작자도 있고, 기말고사에 교수가 출제할 문제가 무엇인지 묻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어떤 사람은 죠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러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짖궂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멀티백도 그 질문이 자신을 빚대 골리는 거란 걸 잘 안다. 멀티백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 넘겨야 할지 잘 안다. 멀티백은 항상 논리적이고 현명한 대안을 내놓는다. 오히려 이런 엉뚱 한 질문들까지 분석하고 기록해 둠으로써 멀티백은 인류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큄비씨는 다음 사람의 신청서를 받았다. 한 중년부인이 수심에 찬 얼 굴로 서 있었다. 알리 오스만은 초조하게 사무실을 왔다갔다하며 서있었다. 그의 고민 은 도대체 멀티백에게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사건발생가능성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어. 벌써 22.4%에 도달했다 구. 제기랄! 죠셉 매너스를 잡아다 가두었는데도 확률은 오히려 올라 가다니..." 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리미는 영상전화를 끊었다. "매너스가 아직도 자백을 하지 않고 있답니다. 정신분석검사에서도 범죄 모의 사실은 안 나타났답니다." "아니, 그럼 멀티백이 틀린 예측을 했다는 건가!" 곧 다른 전화가 울렸다. 오스만은 괜히 역정을 내고 쑥스러웠던 차라 얼른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교정국 특수요원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 다. "반장님, 혹시 나머지 매너스가족에 대한 새로운 지침사항은 없습니 까? 이제까지처럼 계속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도록 놔둘까요?" "무슨 소린가? 자유왕래라니..." "원래 명령은 죠셉 매너스를 가택연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에 대해선 별도의 명령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가족들을 연금하면 되지 않는가!" "그게 좀 문제입니다. 매너스 부인과 이 집 큰 아들이 지금 작은 아 들을 찾아내라고 야단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작은 아들도 체포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오스만은 눈살을 찌푸렸다. "작은 아들이라고? 몇 살 난 아이인가?" "열 여섯 살이랍니다." "열 여섯 살 짜리 소년이 행방불명이라... 어디로 갔는지 자네도 모 르나?" "얼마전 저희 대원 하나가 집밖에 나가는걸 허락했답니다. 가족에 대 해서는 아무런 명령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 뒤로 아직 안 돌아온 모양 입니다." "잠깐 기다리게!" 오스만은 통화중 잠시대기 버튼을 눌렀다. 오스만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바보!바보!바보!" 리미는 깜짝 놀랐다. "아니 무슨 일입니까?" "용의자에겐 열 여섯 살난 아들이 있었어." 침통한 목소리로 오스만이 말했다. "그리고 미성년자는 그의 부모 중 한사람의 파일로 멀티백에게 기록 되지. 그 아들은 죠셉 매너스 파일로 올라가 있었어. 제기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니 그럼 멀티백이 지목한 용의자는 죠셉 매너스가 아니라..." "그의 작은 아들이었어.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 행방불명이고...집을 감시 중이던 요원들이 심부름 가는 줄 알고 내 보내준 모양이야." 그는 다시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가 다시 통화대기중인 요원을 불러냈 다. 자고로 상급자는 상황이 아무리 다급해도 하급자에게 명령을 내릴 때는 흥분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지금 당장 사라진 그 소년의 행방을 추적하게. 그곳에 배치된 인원 전부를 끌고 가도록 해. 혹 필요하면 추가 병력의 지원을 요청하게. 내가 미리 전 병력 동원명령을 내려 둘 테니 무슨 수를 t써서라도 그 아이를 찾아내게!" "알겠습니다." 오스만은 전화를 끊고 리미에게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다시 발생가능성을 확인해봐!" 오분 뒤에 리미가 보고했다. "이제 가능성은 19.6%로 줄어들었습니다.반장님" 오스만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우리가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같군." 같은 시각 벤 매너스는 5-B부스안에서 자신의 명령을 입력하고 있었 다. '나는 인식번호 MB-71833412의 벤 매너스이다. 우리 아버지 죠셉 매 너스는 오늘저녁 체포되었고 우리는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아버지 를 도울 방법은 무엇인가?' 벤은 침착하게 앉아 답을 기다렸다. 그는 아직 어렸지만 그의 질문이 입력되었고 거대한 인공지능 멀티백이 문제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멀티백은 관련 데이터를 뽑아 최선의 해결 책을 곧 제시할 것이다. 출력기에서 '드르륵' 소리가 나더니 프린트된 답변이 나왔다. 아주 긴 답이었다. '곧장 워싱턴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시오. 그런 다음 코네티컷 거리 에서 내리시오. '멀티백'이라 쓰인 입구를 찾아가시오. 경비원에게 트 럼불 박사에게 용무가 있다고 하면 경비원이 들여보낼 겁니다. 계속 통로를 따라가면 '중앙통제국'이 나옵니다. 들어가서 근무자에게 트럼 불 박사에게 가는 중이라 하시오. 그런 다음...' 계속 그런 식의 답변이 이어졌다. 벤은 이런 명령이 아버지를 구하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몰랐으나 그는 멀티백의 답변을 완전히 신 뢰했다. 그는 곧장 고속도로를 향해 달려갔다. 교정국요원들이 벤 매너스를 발티모어 지국까지 추적해 갔을 때 벤은 이미 한시간 전에 그곳을 떠났었다. 해롤드 큄비는 겨우 열 여섯 살난 소년을 찾기 위해 투입된 어마어마한 숫자의 특수요원들을 보고 기가 질려 있었다. "그, 그럼요. 한 사내아이가 왔던 적이 있죠. 한 시간 전에 말입니 다. 그러나 그 뒤엔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그 아이가 수배자 명단 에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냥 민원상담차 온 줄 알고... 그럼요. 그 아이가 한 질문과 멀티백의 답변서는 조회해서 찾아 드릴 수 있습니 다." 그가 잠시 후 내어준 답변을 본 특수요원은 중앙본부에 다급히 연락 했다. 오스만반장은 그 보고서를 살펴보자마자 눈을 위로 말아 올리더니 기 절하고 말았다. 주위 사람들이 일으켜 세우자 그는 리미요원에게 희미 하게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년을 잡아... 그를 막아야해! 그리고 멀티백 의 답변을 한장 더 뽑아 줘... 이젠 별 도리 없어. 걸리만 국장에게 곧장 보고하도록 하겠네." 버나드 걸리만은 알리 오스만이 그토록 당황해하는 모습을 본 건 이 번이 처음이었다. 오스만 반장의 낭패한 표정을 보자마자 날카로운 직 감에 그의 등줄기에선 식은 땀이 쫙 배어 나왔다. 걸리만 국장은 흥분 해서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무...무슨 소린가 오스만. 살인보다도 나쁜 사건이라니...?" "훨씬 더 나쁜 사건입니다..." 걸리만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암살인가? 정부요인에 대한 테러공작인가?" (그는 속으로 혹시 '내가?'하는 의문을 품었다.) "일반 정부요인에 대한 파괴활동이 아닙니다." "그럼 지구연방대통령에 대한 테러란 말인가?" 경악한 걸리만의 속삭이는 듯한 소리였다. "그것보다 더 엄청난 사태입니다. 바로 멀티백에 대한 파괴시도입니 다." "뭐라고!!!" "가동된 이후 처음으로 멀티백이 바로 자신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보 고해 왔습니다." "왜 곧바로 내게 보고하지 않았나?" 오스만은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그 동안 저희들은 일단 사태를 분석해서 자세한 사항까지 알게 되 면, 그 다음에 공식적으로 보고 드리려 했습니다." "이제 그럼 멀티백은 안전한 건가? 어떻게 되었나?" "현재 특수요원들이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고 사건발생가능성은 이미 4%이하로 내려갔습니다. 추가 보고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트럼불 박사님께 전해드릴게 있어 왔습니다." 커다란 계기판앞에서 일하던 사내가 돌아다 봤다. "아, 네가 바로 지미로구나. 그래 어서 들어가봐라." 벤은 멀티백의 지시를 다시 읽어본 후 걸음을 서둘렀다. 긴 복도를 다 지나서 어떤 문에 이르렀다. 지시서에 쓰여진 순서대로 숫자 판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고 커다란 계기판만이 덩그러 니 있었다. 멀티백의 지시는 그 계기판위의 빨간 불이 켜질 때 가운데 있는 [전원] 레버를 아래로 당기는 것이었다. 벤이 신호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오른편 뒤에 와서 섰다. 또다른 사람이 왼쪽 뒤에 와서 벤의 팔을 잡았다. 두 사람은 벤 매너스를 번쩍 들어올린 후 말했다. "꼬마야. 잠깐 우리와 같이 갈까." 벤의 검거소식에도 오스만의 표정은 그리 밝아지지 않았다. 그때 걸리만국장이 말했다. "아이를 잡았다면 이제 위험은 사라졌군 그래..." "당분간은 안전하겠죠..." 걸리만은 떨리는 손을 이마에 갖다댔다. "내 인생 최악의 30분이었어. 멀티백이 잠시라도 가동중지되는 상황 을 생각해봤나? 엄청난 혼란이 초래됐을 거야. 모든 지구연방의 경제 활동은 멈추고... 멀티백이 통제하는 모든 기반시설들이..." 갑자기 그가 벼락을 맞은 듯 소리쳤다. "잠깐, 당분간은 안전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만약 죠셉 매너스가 체포되지 않았다면 벤은 멀티백을 찾아가지 않 았을 겁니다.그 애의 아버지는 멀티백 파괴혐의가 아니었다면 체포되 지 않았을 것이고 말입니다. 결국 이 모든 사태는 애당초 근거없이 자 신에 대한 파괴공작을 예상보고한 멀티백 탓에 일어난 겁니다. 그 나 머지는 모두 연쇄반응처럼 일어난 겁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걸리만은 오스만이 말이 내포하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당장 의 심정으로는 이 오스만이라는 사내 앞에 엎드려 빌고 싶은 심정이었 다. 자신이 한 말을 부인하도록 말이다. 오스만은 걸리만 국장의 애처로운 표정을 애써 외면했다. "이제껏 멀티백의 이런 행동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번 시도는 거의 완벽했습니다. 가족선정도 아주 적절했고... 일부러 아버지와 아들을 골라 우리가 엉뚱한 사람을 잡아넣도록 했습니다. 물 론 이런 종류의 시도에 있어 아직 미숙하긴 했습니다만... 우리가 엉 뚱한 용의자를 잡아가둔 동안에도 우리에게 계속 발생가능성이 증가한 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실마리를 찾게 된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다음 번에 멀티백이 또 이런 일을 꾸민다면 좀더 세련된 방법을 쓸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일부 사실을 숨기려 들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종내에는 멀티백이 자신의 목 적을 달성할겁니다." 걸리만은 홧김에 책상을 내리쳤다. "도대체 이유가 뭐란 말인가? 왜 멀티백이 이런 일을 꾸몄나? 고장이 난 건가? 프로그램 수정이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별 도리가 없다고 봅니다. 저도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올게 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멀 티백은 인공지능으로 너무나 완벽했습니다. 이제 사고와 논리로 보아 서는 멀티백은 더이상 기계라기보다는 인간에 가깝게 된 겁니다." "자네 돌았구만." "인류는 오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멀티백에게 온갖 당면과제를 입력 하고 멀티백이 가장 논리적인 답을 내놓을 것을 강요해 왔습니다. 우 리의 사사로운 비밀까지 공유하고 일일이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를 해 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부도덕성과 악한 면을 모두 멀티백에 주입하고는 우리를 그 악한 본성에서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한 겁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질병까지도 멀티백이 예방해주기를 요구 하고 있습니다." 오스만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걸리만 국장님. 우리는 멀티백에게 세상의 모든 문제를 맡긴 겁니 다. 그리고 이젠 멀티백도 지칠 대로 지쳐 버린 겁니다." "정신나간 소리야. 날이 더워 자네 머리가 이상해 진거라구..." "그럼 제가 제 말을 입증해 보일까요? 잠시 국장님앞의 멀티백 연결 단말기를 두들겨 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뭘하려고 그러나?" "이제껏 아무도 멀티백에게 물은 적 없는 질문 한가지를 해보렵니 다." "혹시 괜히 멀티백의 회로를 상하게 하는 것 아닌가?" 걸리만 국장이 잔뜩 겁에 질려 물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의문을 풀어 줄 겁니다." 걸리만 국장은 잠시 망설였다. "좋아, 해보게..." 오스만은 걸리만 국장 책상의 단말기 자판을 쳐나가기 시작했다. "멀티백. 혹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보 게." 질문이 입력되고 답이 나올 때까지 오스만과 걸리만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마침내 '드르륵'하고 종이 한 장이 나왔다. 그 종이 위에 아주 짧은 답변이 씌어져 있었다. '그것은 자살입니다.' 안성맞춤(A Perfect Fit)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이안 브래드스톤은 마을을 쓸쓸히 떠돌다 사람들이 몰려서 있는 어떤 큰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발길을 돌려 자리를 피하고 싶 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주저하면서도 호기심에 이끌려 그는 사람 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서 궁금증을 읽었는지 옆에 있던 사람이 친절하게 설명 해 줬다. "3차원 체스요, 아주 화끈한 한 판이지." 브래드스톤은 3차원 체스에 능한 편이었다. 6명의 사람이 서로 토론하 고 함께 꾀를 내어 컴퓨터와 체스를 두는 것이다. 모두가 컴퓨터를 이기 고자 머리를 짜고 있지만 이길 수 있는 가망은 사실 없었다. 6대1의 싸 움이었다. 화려한 그래픽 화면이 브래드스톤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나 그 는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발길을 돌리고 나오는데 그의 앞을 임시 체 스 판이 막고 있었다. 플라스틱 체스 판과 플라스틱 말이 놓여 있었다. 그는 놀라 멈칫했다. 체스 판 앞에 앉아 있던 젊은이가 미안하다는 투로 말했다.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어 바깥에다 판을 설치했습니다. 조심하세요! 발 로 밟지 않게..." "이게 지금 저 안의 게임 상황이오?" "예. 저 안의 경기자들은 다음 수를 짜내려고 십분째 고민하고 있답니 다." 브래드스톤은 각 말의 위치를 가만히 바라봤다. "루크(서양 장기의 성장, 한국 장기의 차에 해당: 역자 주)를 베타-B-6 에서 델타-B-6으로 옮기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겠는데..." 젊은이가 체스 판을 살펴보며 말했다. "확실한가요?" "물론, 확실하지. 컴퓨터 측이 여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든 말을 하나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거든." 젊은이는 다시 판을 골똘히 바라봤다. 그런 후 고함을 쳤다. "어이, 그 안에 있는 사람! 여기 있는 누가 그러는데 루크를 위로 두 칸 옮겨야 한데요." 안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사람은 '나도 막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하고 말했다.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 그렇게 되면 여왕의 위치가 불리해지는 구만. 그걸 몰랐군. 어 이! 방금 훈수해 준 양반. 안으로 들어와 우리 좀 도와 주시지 않겠소?" 브래드스톤의 얼굴은 갑자기 당혹감과 공포로 일그러졌다. "아닙니다. 저는 체스를 두지 않습니다."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배가 고팠다. 허기는 주기적으로 그를 찾아왔다. 때때로 그는 아직 완전히 컴퓨터화하지 않은 과일 행상을 발견하곤 했 다. 운 좋으면 사과나 오렌지를 하나 슬쩍할 수 있었다. 사실 이는 무척 겁나는 일이었다. 언제라도 잡힐 수 있었고 또 잡힌다면 그는 돈을 치러 야 할 것이다. 가진 돈은 있지만 도대체 어떻게 치러야 할지가 문제이다. 매일매일 그는 수십 번씩 현금 카드를 사용해서 계산을 치러야 했다. 그 것은 끝없는 굴욕감을 뜻했다. 그는 식당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음식 냄새가 그의 허기를 다시 일 깨워 주었다. 그는 유리창을 통해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몇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 한두명 뿐이라도 문제가 되는 판 에... 그는 사람들이 동정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게 싫었다. 그는 허기진 배를 쥐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러고 보니 창문 안을 들여다 보는 사람이 브래드스톤 혼자는 아니었다. 한 아이가 똑같이 그러고 있었 다. 열살 남짓한 그 아이는 별로 배가 고파 보이지 않았다. 브래드스톤이 짐짓 사람 좋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어이, 꼬마야, 배고프니?" 아이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더니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오!" 브래드스톤은 굳이 아이에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아이는 달아날게 뻔했다. "아직 어리지만 주문 정도는 혼자서도 할 줄 알겠지? 아마 햄버거나 다 른 걸 주문하고 계산할 수 있을 거야, 그치?" 아이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환하게 빛났다. "그럼요. 언제든지 할 수 있죠." "그렇지만 네 카드는 아직 없지? 그래서 아직 혼자서는 주문을 못하지?" 아이는 조심스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옷을 깔끔하게 입었고 총명하게 보였다. "예." 브래드스톤이 말했다. "이것봐, 얘야. 여기 내 카드를 가져가서 먹고 싶은 것 아무거나 시키 렴. 그리고 말이다. 이 아저씨가 먹을 것도 좀 주문해 주렴. 나는 티본 스테이크와 감자 삶은 것, 그리고 커피 한 잔이면 된다. 애플 파이도 두 개 시키렴. 하나씩 나눠 먹게." "집에 가서 밥먹어야 하는데요." "아, 그건 괜찮아. 나랑 같이 먹으면 집 음식도 덜 축나고 좋지 않니? 네가 여기 있는 것 부모님 아시지?" "예, 우리 집은 이 식당 단골이에요." "그것 봐라. 여기서 한 번 더 먹는 거야. 다만 이번에는 네가 직접 카 드를 쓰게 된단다. 어른들 하듯이 네가 직접 음식을 주문하고 말이야. 자 들어가자. 먼저 앞장서렴." 브래드스톤의 배에서 다시 꾸룩 소리가 났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전 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아무런 해도 없을 테고. 다만 누군가 보고 있었다면 다소 끔찍하고 엉뚱한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 면 브래드스톤은 기꺼이 사정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부탁 해서라도 끼니를 때워야 한다는 것은 무척 수치스런 일이다. 아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브래드스톤은 약간 사이를 두고 따라 들어갔다. 아이와 브래드스톤은 서로 마주보고 테이블 에 앉았다. 브래드스톤은 웃으며 카드를 꺼내 아이에게 주었다. 카드를 건네 주는 손이 가볍게 떨고 있었다. 카드를 보기만 해도 그의 눈 주위 근육은 경련을 일으켰다. "어서 가서 주문하렴. 먹고 싶은 것은 뭐든지 말이다." 주문 할 줄 안다던 아이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소년의 손가락들은 컴퓨터 자판 위를 날 듯이 움직이며 주문을 입력했다. "아저씨 걸로, 스테이크, 삶은 감자, 애플 파이, 커피를 주문하고... 혹시 샐러드도 드실래요? 어머니는 늘 샐러드를 시키죠, 비록 저는 그걸 싫어하지만." 아이의 목소리에는 '나도 어른이에요.'하는 듯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글세, 한 번 먹어 볼까? 믹스드 그린 샐러드로 있니? 거기다가 드레싱 은 비니그렛으로 부탁한다. 다 주문할 수 있겠지?" "비니 뭐라는 것은 없는데... 딴 걸로 시킬께요." 나중에 프렌치 드레싱이 된 샐러드가 나왔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아이는 카드를 쉽게 판독기에 집어넣었다. 아이의 움직임을 브래드스톤 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카드를 사용하는 생각만 해도 그는 속이 뒤집어 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돌아와서 카드를 돌려주었다. "돈은 충분한가 봐요." "잔액이 얼마였는지 혹시 봤니?" "아니오. 어머니가 남의 카드 잔액을 보는 것은 실례라고 하셨어요. 주 문 입력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걸 봐서 잔액은 충분한 것 같았어요." 브래드스톤은 크게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카드 잔액 을 읽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남에게 대신 읽어 달라고 묻기도 싫었다. 아 마 종내에는 은행에 가서 물어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니?" "레지날드요." "요즘 집에서 공부하는 게 뭐니?" "아빠가 시켜서 수학을 공부하고요, 제가 좋아서 공룡에 대해 공부하고 있지요. 아버지는 공룡을 연구하려면 수학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하세요. 저는 컴퓨터로 공룡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요. 브론토사우르스가 육지에 서 어떻게 걷는지 아세요? 무게 중심은 그 커다란 엉덩이에 있어요. 그래 서 목을 움직이며 균형을 잡지요. 물 속이 아니면 항상 목을 기린처럼 빳 빳이 세우고 걷지요. 여기 제 햄버거가 나왔네요. 여기 아저씨 식사도 요." 음식은 자동 운반대를 통해 두 사람 앞에 놓여졌다. 컴퓨터를 이용해 자유로이 정보를 찾는 상상은 눈앞의 음식을 보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레지날드가 공손하게 말했다. "저는 카운터에 가서 먹겠습니다." 브래드스톤이 손을 흔들었다. "맛있게 먹어라, 레지." 더 필요한 게 없었으므로 소년이 가도 문제는 없었다. 주방에서 나온 어 떤 사람이 레지에게 말을 걸었다. 모습을 보니 컴퓨터 관리요원 같았다. 컴퓨터 관리 요원은 척보면 직업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항상 자신 들의 손에 세상만사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오만함이 풍겼다. 브래드스톤은 식사에 열중했다. 근 한달만에 먹어 보는 정식 식사였다. 배를 채운 후 그는 느긋한 자세로 주위를 둘러봤다. 아이는 이미 간지 오래다. 소년은 적어도 브래드스톤을 동정하거나 깔보지는 않았다. 아이 는 어려서 브래드스톤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른 행세를 해 보는 게 아이에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어른 행세라... 식당은 이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컴퓨터 관리 요원은 여전히 카운터 뒤 에서 전산 설비를 손보고 있었다. 전세게 기술자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 것이었다. 프로그래밍하고 재프로그래밍하고 다시 손보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작은 전자 회로에 매달려 사는 삶. 누구나 컴퓨터에 종속 되어 살고 있었다. 이제 주린 배를 채우자 브래드스톤에게는 저항감이 생겼다. 왜 행동하지 않는가? 왜 이런 세상에 대해 반기를 들지 않는가? 컴퓨터 관리 요원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짐짓 유쾌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보쇼, 혹시 이 마을에 변호사 사무소가 있습니까?" "있지요." "근처에 괜찮은 변호사가 있으면 한 사람 소개해 주십시오." 컴퓨터 관리 요원이 친절하게 답했다. "우체국에 가면 마을 인명록이 있습니다. 변호사를 찾는다는 질문만 입 력하면 됩니다." "내 말은 괜찮은 변호사 말이요. 똘똘한 친구나 힘없는 시민의 편에서는 정의의 사나이... 그런 변호사 말이오." 그는 상대방의 웃음을 기대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상대는 웃지 않았다. "모든 설명이 인명록에 나와 있습니다. 필요한 사항을 입력하십시오. 나이나 주소, 전문 분야, 현재 다루고 있는 사건의 수, 수임료 등이 다 나올 겁니다. 키보드만 제대로 다루면 원하는 것은 뭐든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지난주에 내가 직접 손본 거라 작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 다." 직접 키보드를 다룬다는 생각에 그는 등골이 오싹했다. "내 말은 그게 아니오. 나는 그냥 당신의 개인적 추천을 듣고 싶은 거 요." "나는 인명부가 아닙니다." "이런, 갑갑하기는... 아는 변호사 한명 가르쳐 주는 게 뭐 그리 어렵 소? 아무나 한명 가르쳐 주시오. 요즘 세상에서는 컴퓨터를 통하지 않고 변호사 이름을 찾는 것도 불법이란 말이오?" "인명록의 사용료는 10센트입니다. 카드에 10센트 정도는 있을 거 아닙 니까? 뭐가 문제입니까? 카드를 사용할 줄 모르세요? 아니면..." 관리 요원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래졌다. "이런, 제기랄... 그래서 레지더러 주문을 시켰구먼! 이것 봐요, 나 는..." 브래드스톤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는 식당 밖으로 나오다 혈색 좋고 덩치 큰 어떤 사나이와 부딪혔다. 그 사내가 말했다. "잠시만요. 혹시 조금 전에 제 아들에게 햄버거를 사주신 분 아닙니까?" 브래드스톤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돈을 다시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인 지 압니다. 카드를 제가 대신 입력해 드리지요." 컴퓨터 관리 요원이 끼여들었다. "변호사가 필요하다면 골드 씨에게 물어 보시오. 당신 앞의 이 분이 바 로 변호사니까." 그 말에 브래드스톤의 눈이 반짝했다. "만약 변호사를 찾고 있었다면 제가 바로 변호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선생을 아는 겁니다. 저는 당신 사건의 추이를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레지가 와서 낯선 사람이 카드를 주고 음식을 주문했다는 얘기를 듣고 선 생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와서 보니 역시 맞군요." 브래드스톤이 말했다.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할 수 있겠소?" "여기서 우리 집은 걸어서 오분 거리입니다." * * * 거실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편안했다. 브래드스톤이 말했다. "착수금은 어떻습니까? 필요하면 드릴 수 있습니다." "돈이 많으시다는건 잘 압니다.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 보십시오." 브래드스톤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제 사건을 계속 지켜보셨다면 제가 받고 있는 처벌이 너무 잔인하고 형 평을 잃은 처사란 걸 아실 겁니다. 저는 이런 처벌을 받는 최초의 시민입 니다. 최면 요법과 신경 조작술이 완전히 개발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제가 받고 있는 처벌의 강도는 남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은 이미 모든 사법 절차를 밟았지 않습니까? 선생은 명백하 게 유죄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너무 지나칩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완전히 컴퓨터화한 세상에서 삽니다. 컴퓨터 없이는 무엇 하나 되는 게 없습니 다. 정보도 얻지 못하고, 음식도 먹지 못하고, 오락을 즐기지도 못하 고... 무얼 하려고 해도 돈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이런 판국이니 감히 무엇을 해보려고 마음도 못 먹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신경 교정을 받아 서 컴퓨터를 보기만 해도 눈이 쓰립니다. 자판을 만지려 하면 손가락이 저려 옵니다. 심지어 현금 카드를 쓰는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어 집니 다." "그런 사실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형집행 동안 돈은 충분히 제공되고 일반 대중은 당신의 처지를 동정하여 도와주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은 필요 없습니다. 남의 도움이나 동정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혼자 어린애로 남겨지는 걸 견딜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세상에서 혼자 문맹으로 남는 게 싫습니다. 이 형의 집행 을 중지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지난 한 달은 완전히 지옥이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골드는 잠깐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착수금을 받고 선생의 법적 대리인이 되어 드리죠. 힘닿는 대로 도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별로 승소 가능성은 없다는 걸 미리 알려 드리고 싶군요." "왜 그렇소? 난 단지 오천달라를 유용했을 뿐입니다." "잡히지만 않았다면 그보다 더 많은 액수를 빼돌릴 수 있었지요. 당신의 뛰어난 체스 솜씨에 걸맞는 천재적인 컴퓨터 사기였습니다. 하지만 컴퓨 터 범죄도 범죄는 범죄지요. 당신이 지적했듯이 완전히 컴퓨터화한 세상 에서 컴퓨터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컴퓨터 를 범죄에 이용한다는 것은 문명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사 회에 대한 중대한 범죄이고 그러한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설교는 필요 없소." "설교하는 게 아닙니다. 상황을 설명하는 겁니다. 당신은 체제를 무너뜨 리려 했고 그 응징으로 당신에게만큼은 체제의 혜택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 겁니다. 만약 현재의 처벌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행 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컴퓨터의 혜택을 빼앗아 버리려 한 장본인 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년은 너무 심합니다." "그래요. 기간이 좀 줄어들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에는 충분 하지요. 한번 형기를 줄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대 답이 무엇이 될지는 이미 예상할 수 있습니다." "뭐라 할까요?" "만약 죄에 상응하는 벌이 가해져야 하는 게 법의 정의라면, 당신에게 주어진 처벌은 안성맞춤이라고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