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욕구불만 (Frustration) 지은이 :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년 러시아에서 출생하여 3세때 미국으로 이민.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화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음. 그 뒤 세계적인 SF작가이자 과학저술가로 필명을 떨치다 지난 4월 6일 작고. [파 운데이션]시리즈,[로봇]시리즈 등 350여 종이 넘는 저술을 남김. 헤르만 겔브는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얼핏 보고는 말했다. "이봐, 저 사람 외무장관 아냐?" "그래, 외무부장관 하그로브지. 자네 식사 할 텐가?" "응 그래, 근데 저 사람 여기서뭐 하는 거야?" 피터 존스벡은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겔브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들은 복도를 걸어가서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맛깔스런 향내를 풍기는 음식상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자, 들게. 이건 죄다 컴퓨터가 조리한 거야. 완전한 컴퓨터 음식이지. 사람의 손은 하나도 안 대고 마련한 거라네. 내가 프 로그램을 짰지. 내가 근사한 만찬을 대접하겠다고 했지? 자, 이 제 들라구." 음식들은 정말 맛이 좋았다. 겔브는 매우 만족스런 식사를 즐 겼다. 후식까지 들고 난 뒤, 겔브가 말했다. "그런데 하그로브 장관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존스벡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자문을 받고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말고 또 있나?" "그래? 그런데 왜 대답을 그렇게 어렵게 들려주나? 무슨 비밀 작업이라도 하는거야?" "사실은 대외비이긴 하지만, 뭐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지. 각 부처의 전산실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그 가련한 양반이 지금 뭘 가지고 골치를 썩이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어." "컴퓨터로 뭘 하고 있는데?" "전쟁을 하고 있지." 겔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구하고?" "아무하고도 아냐, 혼자 전쟁을 하는 거야. 컴퓨터 분석으로 전쟁을 하고 있지. 꽤 오래 되었어, 그러니까.....얼마나 되었는 지 나도 잘 모르겠군." "무엇때문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계속 보전해 나가기 위해서지. 고귀하고 정직하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으로 충만한 이 세상을 이대로 살려 나가기 위해서." "그야 나도 바라는 바이지. 나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 가 그럴 걸. 그러니까 말썽을 일으킬만한 사람들은 항상 꽉 쥐어 놓지 않나?" "쥐어 사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누구든지 완전한 사람은 없 는 거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우린 그런 사람들보다는 낫지. 자넨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 안 하나?" 존스벡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보는 관점의 차이겠지. 세상은 어쨌거나 계속 굴러가야 하고, 탐사해야 할 우주는 아직도 넓고, 컴퓨터화 시켜야 할 분 야는 많이 남아있지. 세상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컴퓨터화 시 키면 각 분야간에 유기적이고 능률적인 협조 체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점진적인 발전을 하게 마련이지. 아직까지는 잘 해 나가고 있는 셈이야. 그런데 하그로브 장관은 그런 더딘 발전 을 차분히 두고 보기에는 성미가 급한 모양이네. 강제력에 의한 급속한 발전. 이것이 그가 바라는 것이지. 이를테면 한판 전쟁을 벌여서 세상의 악을 일거에 청소해 버리겠다는 식이야. 하긴 우 리가 그럴 능력은 있을지도 모르지." "도대체 요즘 세상에 전쟁을 일으킨다는 게 말이나 되나?" "그래서 하그로브 장관이 답답한 사람이라는 거야. 전쟁을 일 으키기에는 너무 무리가 많지. 이른바 '전쟁억지력'으로 작용하 는, 세상 사람들의 평화를 향한 갈망이 너무 강력하니까. 내 말 이 무슨 얘기인지 알겠지? 그런데 그 양반은 자기가 효율적인 길 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컴퓨터에다가 일정한 초기 조건을 집어넣고는 수학적인 연산 작용으로 전쟁을 치르게 하는 거지. 그러면 기대하는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야." "전쟁을 하도록 명령하는 방정식을 어떻게 부여한단 말인가?" "그야 간단하잖아. 병력,무기,위협,역습,군함,우주기지,컴퓨 터. 이런 변수들을 지정해주면 되지. 특히 컴퓨터를 빼 먹으면 절대로 안 되지. 변수들만 수 백 개가 넘는데다가 변수들의 강도 가 또 수 천 가지, 그러니까 몇 백만 가지의 조합이 가능하거든. 근데 하그로브 장관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적절한 조 합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그리고는 그 조건을 그대로 발전시키면 이 세상에 최소한의 피해만 입힌 채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일이 마음먹은대 로 되지 않으니까 요즘 계속 저기압이야." "만약에 그가 바라던 결과를 얻게 되면 어떻게 되나?" "으음, 만약에 컴퓨터가 '이것입니다'하고 적절한 해답을 내 놓는다면, 장관은 정부나국회를 설득해서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 겠지. 그래서 예기치못한 변수들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마침내 세 상은 그가 바라는 대로 더 좋아지겠지." "전쟁이 나면 희생자들이 생길 것 아닌가." "물론이지. 그렇지만 컴퓨터는 우리가 얻게 될 궁극적인 이익 과 불가피하게 발생할 희생자들을 냉정하게 저울질할 거야. 예를 들면 경제적이거나 생태적인 차원에서까지. 그래서 얻게 될 이득 이 희생보다도 더 크다고 판단하면 '전쟁을 하십시오'하고 깜박 거리겠지. 결국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전쟁에 지는 나라들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전쟁을 안 하는 것보다 더 이익이 될 거라구. 막강 한 경제력과 막강한 도덕적 관념을 누리게 될 테니까." 겔브는 의혹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우리가 뭐 화산 분화구의 끄트머리에서 위태롭게 살아가 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꼭 그런걸 해야 하나? 참, 그리고 예기 치못한 변수들이 발생한다는 건 뭔가?" "컴퓨터는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변수들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 하려 하지만, 물론 완벽할 수는 없지. 그래서 적어도 지금까지는 '전쟁을 하십시오'라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어. 아마 하그로브 장 관으로 하여금 정부를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컴퓨터 모의 전쟁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거야. 그러니까 그 양반은 그 동안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졌지." "그렇다면 자네한테 와서 뭘 배우는 거야?"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방법이지." "그래서 도와주고 있나?" "물론이지. 이게 얼마나 짭짤한 일인데." 겔브는 고개를 흔들더니 소리쳤다. "이봐 피터! 단순히 돈 때문에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을 도와주고 있단 말이야?"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 전쟁을 일으키도록 모든 변수들을 적 절하게 규정할 수 있는 조합은 현실적으로 얻어질 수 없어. 컴퓨 터는 언제나 인간의 생활을 인간 그 자체보다도 우위에 놓으니 까. 컴퓨터는 하그로브 장관보다, 아니 자네나 나보다도 더 인간 의 행복에 민감하다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 "바로 내가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이니까. 전쟁이나 또는 어떤 형태로든 인간에 대한 박해, 가혹 행위를 실행하게끔 프로그램하 는데 가장 필요한 변수를 컴퓨터 스스로가 갖고 있지 못하다네. 그걸 무시하고는 나도 그런 프로그램을 짤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 근본적인 필요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한, 컴퓨터는 계속 하그 로브 장관을 실망시킬 걸세. 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 문제 해결 을 바라는 자들 모두를 욕구불만에 빠뜨리게 될 거야." "그렇다면 컴퓨터의 그 결정적인 약점이 도대체 뭔가?" "하하, 이봐 겔브. 컴퓨터는 자기 혼자 옳다고 우기는 '아집' 이 전혀 없다네." == 끝 == <박상준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