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 사샤의 추방지로는 케쥐마에서 앙가라 쪽으로 8마일이나 떨어진 모즈고 바라는 마을로 결정되어졌다. 그는 그곳에서 어떤 과부의 크고 훌륭한 집 에 방 한 칸을 얻게 되었는데, 그 과부에게는 다 큰 아들 둘이 있었다. 그 녀와 동거하는 남자는 제대군인으로, 앙가라인은 아니지만 그저 그곳에 정 착하게 된 사람이었다. 두 아들은 어머니의 재혼을 반대했는데, 자기들이 차지할 재산을 의붓아버지와 나누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제 그 집 은 콜호즈에 병합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이 노병은 술만 취했다 하면, 오 랫동안 지녀온 모멸감이 되살아나서 얼굴을 벌겋게 해 가지고 두 아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창고에 가두게 되고, 그는 잠에 곯아 떨어지면서 이윽고 그 미친 짓을 그만두게 되었다. 둘째 아들인 바실리는 조각한 듯한 윤곽의 아주 출중한 인물을 가진 사 내였다. 그는 품행이 좋지 못한 그 마을의 모든 처녀들을 유혹해 잠자리를 같이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침이면 일단 그는 집에 돌아왔다. 사샤는 그를 거의 볼 수가 없었는데, 어쩌다 맞닥뜨리게 될 때면 바실리는 그저 조용히 미소짓곤 했었다. 그는 말이 없는 조용한 남자였지만, 사람들에게 는 친절하게 대해 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장남인 티모페이는 여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저녁에 마을 로 나가 여자와 데이트하는 일은 전혀 없었고 늘 집에 박혀 잠만 잤다. 그 는 허락도 없이 사샤의 방에 쑥 들어와서는 그의 물건들을 일일이 살펴보 면서, 이것은 뭐고 저것 어디에 쓰는지를 캐물어 댔다. 티모페이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나 의외로 말수는 적었다. 그의 제멋대로인 성 격이 거슬리긴 했지만, 사샤는 그의 모든 질문에 참을성 있게 대답해 주었 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국민, 인민이 아니겠는가! 무식하고 교육도 못 받았지만 대단하고 힘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러시아의 지식인들처럼 사샤 또한 그들 앞에서 항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은 사샤가 티모페이의 건초 만드는 일을 도와 주러 함께 어떤 섬에 간 적이 있었다. 실상 그는 낫을 사용하는 법도 몰랐지만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티모페이가 키를 잡고 배를 조종하는 동안 사샤는 노 를 저었다. 뱃바닥에는 낫 두 개와 낫 가는 숫돌 하나, 그리고 벌레 방지 용 마스크가 두 개 있었다. 굵게 짜여진 말총망은 티모페이 것이었고, 비 단망으로 된 것은 사샤의 마스크로 솔로베이치크가 일러줘서 칸스크에서 산 것이었다. 티모페이는 사샤의 마스크를 보면서 말했다. 너희 도시 사람들은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지만 우리 같은 농민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지. 우린 어디 다른 곳에 가본 적도 없어. 그런데 너는 여기에 있단 말야. 넌 여기 에서 우리의 짐밖에 되지 않아. 그리고선 티모페이는 다듬어지지 않은 자 신의 잉여가치이론을 늘어 놓기 시작했는데, 곧 농민들이 물질적인 부를 창조하는 반면 사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고 있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샤는 급류 때문에 배가 섬 아래쪽으로 떠밀려 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고 가득 차서 전력으로 노를 젓기만 했다. 그들이 너를 추방시켜서 우리 등에다 얹어놓은 거지. 티모페이는 계속 지껄여 댔다. 너희는 우리 띠와 땀으로 살고 있는 거라구. 사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티모페이가 그런 식으로 만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사샤는 그런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 다. 놀랬지, 너? 속으론 굉장히 화가 나 있겠지? 티모페이는 놀려댔다. 내가 이 낫으로 널 한번 갈기기만 한다면 넌 이 강 속으로 처박혀질 거 구, 그리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물론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구. 마을 사람들에겐 적당하게 말해 버리면 되니까. 넌 적이거든, 트로 츠키스트라구. 누가 널 걱정이라도 하겠어? 어림없지! 해안 쪽으로 노를 저어간 사샤는 물 속에 들어가서 배를 뭍으로 당겼다. 티모페이는 아직도 그를 놀리면서 키에 앉아 있었다. 사샤가 배를 물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밀어놓았을 때에야 그는 밧줄을 내려뜨리고 강둑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런데 왜 날 물에 빠뜨리지 않았지? 사샤는 물었다. 만약 네가 날 성가시게 한다면 진짜로 물에 빠뜨릴 거라구. 티모페이 는 위협하듯이 말했다. 넌 날 물에 빠뜨렸어야 했어. 왜지? 내가 지금 널 죽일 테니까. 사샤는 내뱉었다. 티모페이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 바보 같은 짓은 집어쳐! 그들은 세계의 한구석에 버려진 외딴 섬에 있는 것이다. 모기와 파리떼 만이 떼지어 들끓고 있을 뿐, 강 위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세 상도 없고 인간도 없고, 단지 그들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이윽 고 아벨이 카인의 죄에 대해 보복하려는 순간이었다. 한순간도 사샤에게서 군을 떼지 않으면서 티모페이는 천천히 뒷걸음질치 더니 갑자기 돌아서 배로 들어가 낫을 잡으려 했다. 사샤는 그를 따라잡고 서는 주먹으로 그의 등을 힘껏 갈겼다. 티모페이가 물에 빠졌다가 다시 일 어나려고 했을 때 사샤는 그의 얼굴에다 한 방을 날렸다. 티모페이는 다시 물 속으로 빠졌다. 그리곤 물을 토해 가면서 둑으로 기어 올라갔다. 사샤는 정말 티모페이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하찮은 놈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티모페이는 일어나지도 못한 채 둑에 그냥 누워서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사샤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주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샤는 배로 가서 낫과 숫돌 그리고 티모페이의 마스크를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선 노를 잡고 마을로 향했다. 저녁식사 때 사샤는 다른 집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소? 하며 노병이 물었다. 당신은 티모페이에게 본때를 보여 준 거요. 암, 아주 훌륭한 교훈이지, 놈은 협박꾼일 뿐이라고 비열하고 불쾌한 놈이지, 결코 어떤 것도 용서하는 법이 없으니까. 그런데 당신이야말로 정말 강인한 사람이구먼. 그놈에게 그렇게 해댔으니! 자! 바 스카와 함께 나가 보시오. 그 녀석은 여자란 여자는 모두 갖고 있는 놈이 니까 당신 걸로 하나쯤 배려해 줄 거요. 그 선생이 당신에게 맘이 있는 거 같던데요. 바실리가 웃어대며 말했 다. 티모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길을 피하기만 했다. 이 집은 참으로 훌륭한 집이긴 하지만, 언제 닥쳐올지도 모르는 보복의 위협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섬뜩한 일이었다. 그 다음날 아 침 사샤는 자기의 소지품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번에 얻은 오두막에는 부엌뿐 아니라 거실까지도 딸려 있었다. 새로운 집주인은 늙은 부부였고 지난번 사람들보다는 가난했으나 그에게 주는 식 사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집단농장에 나가 일을 할 때도 있었 지만 대부분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싸우는 법도 없었다. 안주인은 남편을 <나를 속인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노인은 키가 작고 약간 절름발이 였다. 집안은 늘 조용했다. 안주인이 화덕을 쑤시면서 불을 지피고있으면 노인은 마당에서 나무를 쪼개든지, 아니면 이상한 일거리로 시간을 보내곤 하는 것이었다. 방은 금방 물청소한 마루냄새를 풍겼고, 오래 돼서 검게 된 벽면에는 레닌과 칼리닌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 옆으 로는 잡지에서 오린 뚜껑 없는 마차를 탄 왕가의 사진들이 나란히 붙어 있 었다. 가끔 바깥노인은 하루종일 밖에 나가 있곤 했는데, 그가 돌아오면 집단 농장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물어보았다. 그럴 때면 항상 그는 그들이 하라고 시킨 일은 무엇이든 다 하는 거지 라고 말했다. 콜호즈(집단농장)란 말은 근처 지역에서는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집단화 는 다른 지방들보다 더 늦게 시작되었고, 스탈린의 성공의 현기증 이란 연설 이후 - 그리고 잠시간의 집단화 운동의 중지 이후 - 모든 집단농장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그리고 다른 곳보다 1년 반 내지 2년 후에 이곳의 집 단농장들이 다시 조직된 것이다. 도대체 이곳에 집단화될 것이 뭐가 있겠 는가? 짧은 성장기 동안 재배한 곡식으로는 한 가족이 간신히 연명할 수 있는 정도였다. 곡식을 팔아 먹기 위해서는 그것을 썰매길로 8백 마일을 운반하거나, 급류와 물살이 센 여울을 지나면서 앙가라지방으로 내려가야 만 했으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축으로 말하면, 각 세대가 10마리 정도의 소를 소유하고있어서 마을 전체로 봤을 때 2천 마리의 소가 있었고, 말도 1천 마리 가량 있었었다. 그 모든 소들이 한 집단으로 병합되고 새로운 가축장인 쿨락스로 몰아졌는 데, 그들 중 절반 이상이 혹독한 겨울을 지내면서 죽어버렸다. 남은 소들 은 원래의 우리로 되돌려졌지만, 그것은 개인소유재산으로서가 아니라 집 단농장 가축의 자격으로서 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의 가축을 사육하지 않았고 그저 눈앞에서 죽어 가는 꼴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누 가 젖을 짜려 하겠는가? 그 짜낸 우유를 관청사람들에게 바치려고 케쥐마 가지 운반해야만 했는데. 이제 남아 있는 일거리라곤 사냥밖에 없었다. 집단화 이전에 그들은 다 람쥐 가죽을 모피매매 협동조합에다 내다 팔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 값의 반밖에 쳐주지 않는 집단농장에 가져가야 했다. 퉁그스로, 바나라바 로 가는 주요도로가 여기 모즈고바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가죽을 숨겨서 퉁그스로 가져갔는데, 그곳 무역소에서는 제값을 그대로 치 러 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당국에서 낌새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 모피생산이 급격히 저하했 고, 고정적인 유통량이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당국으로부터 위임자가 보 내졌는데 그들은 헛기침을 해대면서 꾸물럭거리더니 이내, 사냥꾼들이 농 사일 때문에 사냥을 열심히 할 수 없다고, 바로 그게 문제라고 결론지었 다. 그리고 또 곡물생산은 이윤이 없는 일로서 국가에 아무런 유익도 가져 오지 못하고 오히려 해롭기까지 한, 치명적이 손실을 초래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 지역은 비농업지역으로 판명되어, 모피전문지역으로 되면서 곡식은 역시 사냥꾼들인 에벤키족들에게처럼 다른 농업지역으로부 터 수입되게 된 것이었다. 이제 집단농장사람들은 곡식을 얻기 위해 모피를 퉁그스에 팔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곡물 재배하는 것이 금지된 이래 아무 것도 수입되어 오 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람쥐들이 북쪽으로 이동했으므로, 그것을 잡으려면 3주가 걸린다고 관청에다 설명했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새로운 장소에서 겨울을 나야 했다. 그러나 퉁그스인들이 그들의 겨울움막 을 몽땅 망가뜨려 버렸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다니며 사냥하는 도리밖에 는 없었다. 실지로 퉁그스인들과 이렇게 좋은 관계를 맺어 본 적이 전에는 결코 없었는데, 그들이 파는 곡식과 보드카 때문에 더욱 친해지게 된 것이 다. 에벤키 사라들은 필요한 모든 물건을 무역소에서 구입할 수 있었으므 로 그들은 함께 하기도 했다. 한때는 한해 십만 마리의 다람쥐 가죽을 나라에 공급하고 자기들의 가축 은 이르크츠크에 몰아 넣어둔 채 빵과 우유, 생선으로 그런대로 자급자족 했던 이 시베리아 오지의 마을들은, 이제 사냥과 곡식 재배가 중단되고 가 축도 이전 규모의 십분의 일 정도로 감소되어, 앙가라지역의 다른 마을들 처럼 간신히 자기들 먹을 양식을 꾸려 나가는 알타이 농민들의 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앙가라는 1930년대 초기의 기조를 겪지는 않고 있었다. 그 것은 그 지역이 워낙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더군다나 당국으로부터 아 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점과, 그 지역의 경제구조가 원시적이고 자연 적이란 점에 덕 입은 때문이었다. 양식은 강에 의존되어졌다. 실로 모든 종류의 고기떼가 이곳에서 많이 잡혔다. 그냥 강에다 모자를 집어넣어 떠 올리기만 해도 도기가 잡혀질 정도였다. 들에서는 딸기류와 버섯류를 얻을 수 있었다. 들의 가축들도, 비록 집단농장 소유로 되어있기는 하나 그들에 게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집단농장은 3년 정에 설립되었다. 거기에는 가금과 돼지, 그리고 털을 제공해 주기 위해 남겨진 양들이 있었는데 합쳐지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 한 사실은, 그것이 헌납을 위한 정책이긴 했지만 모피류를 제외하면 조달 물자를 국가에 바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또 모피조달 의무마저, 이 지 역을 비농업지역으로 판정할까 아니면 비모피구획으로 판정할까 하는 논박 이 계속되는 동안 해마다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마침내 이 지역은 일일무 역지역으로 판명되어 매일 이 지역관할관청에다 신선한 우유를 조달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는데, 이는 케쥐마 집단 농장이 이미 제대로 우유공급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즈고바는 정기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우유를 조달했다. 2천 마리 중 아직 2백 마리의 소가 남아 있었으므로 그들은 10 통의 우유를 마차에 실어 배달할 수 있었다. 사샤가 머물게 된 마을은 그렇게 가난한 곳은 아니었다. 그곳 사람들은 돈 맛을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방세와 식비조로 20루블을 지불했는 데, 때때로 신크림 한 깡통을 집에 가져다 주곤 했다. 또 공동으로 사용하 는 분유기도 수리해 주었다. 이 분유기는 19세기 말엽에 제조된, 소위 라벨 알파-C란 이름의 스웨덴 형으로, 날개가 많아 분해하기도 또 청소하기도 매우 어려운 모델이었다. 사샤는 3년 전에 생산실습시간 동안 기관에서 분리기 작업을 한 적이 있었 으므로 분유기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그 마을에는 재산을 박탈당 한 한 부농이 분유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술자가 그것을 분해하고 청소 한 뒤 다시 조립해 두고는 다른 마을로 파견을 갔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랐었다. 사샤는 순수한 호기심이 발동되어 한번 고쳐 보리라 마음먹고 분유기를 작동시켰다. 그러나 그 기계는 너무 오래 도니 것이라 축을 죄는 나선줄이 다 낡아 버렸고 나사도 간신히 붙어 있는 정도 였다. 그걸 농장 관리자에게 갖다 줘요 라고 사샤는 말해 주었다. 그 사람에 게 케쥐마로 가지고 가서 새 나선줄을 구해 보라고 해봐요. 그렇지 않으면 곧 망가져 버릴 거요. 그런데도 농장사람들이 관리자에게 얘기를 안 했거 나, 아니면 얘기를 했는데 관리자가 해결을 못해 주었거나 해서 성과가 없 었다. 분유기는 결혼한 여자들에게 있어서는 마치 사교클럽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분유기를 중심으로 모여서 차례를 기다리며 한 시간 내지 자기 집에 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시간 동안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것은 잠시 동안이지만 아주 귀중한 휴식이었다. 이곳 여자들은 들일, 채소밭 가꾸기, 강에 나가 고기잡는 일, 가축 돌보기, 가사일 등 모든 일을 해냈다. 진짜 앙가라 남자들은 사냥꾼으로, 일을 싫어하는, 특히 집안일을 싫어하는 유 목인이었다. 여자들이 20세에 노동말이 되고 30세에는 쓸모없는 말이 되어 버린다는 솔로베이치크의 설명은 옳았다. 그들의 최고시기는 결혼 전 13세 에서 16세 되는 기간이었다. 젊은 아가씨들은 물론 콜호즈에서나 또 집에 서 부인네들과 함께 일을 하긴 하나, 그래도 그들은 저녁때가 되면 읍내로 나가는 것이었다. 처녀들이 2열로 노래를 부르면서 선두에 서면 그 뒤로 역시 2열의 사내들이 아코디언 주자를 앞세우고 따른다. 그들은 마을 언저 리까지 행진해 가서는 오던 길을 되돌아오고 그 다음엔 주위를 다시 도는 데, 이 행진은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된다. 그후 그들은 쌍을 지 어 뿔뿔이 흩어져서는 헛간이나 건초다락을 찾아간다. 만약 결혼하여 남편 이 아내를 나무라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아내가 처녀란 사실로 인한 것이 대부분인데, 곧 아내가 젊은 시절 어느 누구에게도 인기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사샤는 티모페이와의 사건, 곧 유배자가 겁도 없이 본토 남자를 혼내 줬 다는 사실로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의 위세가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무 척 놀랐다. 유배자는 황제시대 때에도 도적질, 술주정에 대해 용서받지 못 했고, 싸움을 일으켰다 하면 마을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진짜 죄지은 사람은 드러나지도 않았다. 실상은 일반 범죄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 유배 자들에 의해 가려진 것이라고 페쟈는 종종 말했었다. 협동농장 일꾼인 페 쟈는 바로 모스크바 출신으로 도대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제멋대로 인 놈이었다. 그 얘기를 들려주면서 페쟈는 자신의 지식에 무게를 더할 양 으로 낯선 표현을 사용해 댔다. 사샤가 모즈고바에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바로 페쟈 덕분이었 다. 대부분 잠자고 있는 보구찬스크의 내무인민위원회 관리들과는 달리 케쥐 마의 소장인 알페로프는 활동적이고 깡마른 타입이었다. 그는 사샤를 의심 쩍게 쳐다보면서 쏘아붙였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소? 조합 보트를 타고 모즈고바로 가려고 왔습니다. 배는 떠났소? 그는 물었다. 아니오. 그 배를 타고 모즈고바로 가시오. 알페로프는 사샤가 이곳에서 별 문 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여겼고, 배는 이미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사샤는 만족스러웠다. 그는 지금 케쥐마에서 8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 었으며 모든 일들이 순조로웠고 이미 이곳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날 저녁 페쟈가 사샤한테 거리 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가 보니 한 쪽 길옆 통나무 위에 라리스카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이혼녀로서 매력 도 없고 사팔뜨기에 여드름투성이였다. 또 마루샤도 있었는데 그녀는 페쟈 의 동생으로 남자처럼 떡 벌어진 체격에 넓고 편편한 얼굴을 가진 심성이 착한 아가씨였다. 페쟈는 라리스카 옆의 통나무에 걸터앉으며 사샤에게 말했다. 내 동생 옆에 앉아. 마루샤는 뜨거운 눈빛으로 사샤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이렇게 말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와서 내 곁에 앉아요. 당신의 팔을 내 어깨 위에 놓아 보세요. 얼마나 넓고 보드라운지 아실 거예요. 그리고 내 가슴도. 따뜻한 내 가슴 위에서 당신의 몸을 녹여 보세요. 그런데도 사샤는 좀 떨어져서 앉았다. 보구찬스크에 있을 때 사샤는 루 케쉬카라는 발랄하고 소녀 같은 여자와 친하게 어울려 지냈었다. 그녀는 그에게 카챠를 상기시켜 주곤 했다. 그러나 이 뚱뚱한 얼간이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실상 그녀에게는 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저 건초 더미에 같이 쓰러지는 것밖에는.... 노랫소리와 아코디언 소리가 거리에서 들려왔다. 학교선생이 지나갔다. 그녀는 지다라고 알려져 있었다. 원래 그녀의 이름은 누르지다 가지조이고 타타르인으로, 한 스물다섯 아니면 여섯쯤 되어 보였다. 사람들은 그녀를 지다, 진카라고 불렀지만, 학생들은 지나이다 예고로브나라고 불렀다. 그 녀는 사샤가 새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는 옆길을 여유 있게 지나가면서 그 들을 쳐다보았다. 마루샤는 즐거운 듯이 미소지으면서 사샤에게 말했다. 그녀가 당신을 찾고 있어요. 나를 왜? 당신을 쳐다봤거든요. 내가 소개시켜 줄까요? 사샤는 그녀의 솔직한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나를 원하지 않으면 딴 여 자를 찾아보라는, 아니면 내가 한 사람 마련해 줄까 하는 노골적인 친절,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일로써 그리 비난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필요없어. 라고 그는 말했다. 왜 싫죠? 그녀는 말라깽이야. 페쟈가 그를 대신해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도시옷, 그러니까 원피스나 비단팬츠를 입는데! 라리 스카가 반문했다. 그 비단팬츠 밑에는 앙상한 가죽과 뼈밖에 남은 게 없다구. 페쟈가 응 수했다. 그는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자! 라리스카, 파이가 얼겠어. 파라핀 종이로 잘 포장했는걸. 아직도 따뜻할 거야. 뜰에서 라리스카 가 말했다. 건초다락에 올라가 있어요. 파이를 가져갈 테니까. 그들은 나무 사다리를 타고 다락에 올라갔다. 작년에 둔 건초냄새가 났 다. 달빛이 밝게 비추었고 마루샤의 둥근 얼굴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사샤는 그녀의 기대하는 듯한 표정을 감지하면서 그녀의 가쁜 숨소리를 들 을 수 있었다. 페쟈는 매트 밑에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술병이 빛을 발하 고 있었다. 사샤는 그날 밤의 희미한 기억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라리스카와 마루 샤는 거의 마시지 않고 있었다. 사샤는 페쟈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목을 태우는 듯한 원액을 그대로의 알코올을 반병이나 마시고 나서는, 물을 들이키고 마른 안주를 몇 개 먹었다. 그리고는 자기 의 담력을 과시해 볼 양으로 모스크바에서 술 마시던 일을 자랑하기 시작 했다. 그는 완전히 취해 있었고 아무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제 자기 조절도 할 수 없었고 속쓰림 때문에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보드카 를 더 달라고 졸라댔으나, 페쟈가 술병을 거꾸로 들어 남아 있는 게 없음 을 보여 주었다. 그 다음 그는 구토를 해댔는데 다행히 다락 안이 아니라 오물냄새가 나 는 마루바깥에다 했다. 페쟈와 마루샤는 국자로 그의 입을 벌려 놓고서 머 리와 목 위로 물을 부었다. 그는 일어서서 걸으려고 했으나 곧 통증이 왔 고 오랜 동안 고통스런 경련에 몸부림쳤다. 하늘에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 고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그를 끌고 가려 했지만 말 을 듣지 않았다. 대신에 창문을 통해서 자기 방으로 기어 들어갔다. 집주 인을 방해하거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싶지 않아서였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주인부부가 일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지 만, 그냥 자고 있는 체했다. 그는 다시 잠에 떨어져 버렸고 깨어났을 때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일어나자 그는 평소 축축함과 땅의 냉기가 좋아 즐겨 이용하곤 하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거기서 나무뚜껑으로된 주전자에 신크림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엌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헝겊에 싸인, 아직도 따뜻하고 보드라운 흰 빵 한 덩이를 끄집어내어 신크림에 푹 적셔 먹었다. 훨씬 좋아진 것 같았다. 다시 저녁까지 푹 잠을 잤으며 저녁 식사 직전에야 밖으로 나왔다. 주인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모든 걸 알고 있으리라. 그는 다음날 완전히 회복되긴 했지만 기분은 영 엉망이었다. 외출하고 싶지도 않았다. 혹시나 페쟈와 마루샤, 라리스카와 마주칠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그들이 자기를 비웃고 있을 생각을 하면 부끄러웠다. 그는 자신의 지난 밤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러 번 잔뜩 취한 적은 있었지만 어 제처럼 주정을 부리고 허풍을 떤 적은 여태껏 없었다. 그래도 조합에는 가 봐야 했다. 담배가 떨어졌으니까. 페쟈는 미소로 그에게 인사했다. 머리는 어때? 괜찮다구? 좋아! 그는 담배와 성냥을 팔고서는 기타와 초보자를 위 한 입문서를 사라고 권했다. 이미 3대가 팔렸으나 아무도 기타를 연주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샤는 사지 않았다. 후에 연주법을 배웠더라면 하 는 후회를 하긴 했지만. 그는 거리에서 마루샤를 만났다. 그녀는 지게를 지고 강에서 물을 가져 오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를 보고는 미소 지었 다. 마을사람들은 그의 주정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다. 공연히 자기 혼자 걱 정했을 뿐, 술주정한 것은 아무런 사건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페쟈는 조 합에서 보드카를 몰래 가져왔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말라 고 일러 두었던 것이다. 그 일에 대해서 사샤에게 언급한 사람은 단지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 로 그 역시 모스크바에서 온 유배자였다. 그는 보기에는 나이가 들어 보였 지만 30세 가량의 마르고 기골이 좋은 사내였다. 그는 대머리에다 오똑한 코와 얄팍하고 냉소적인 입술을 가졌으나 웃음만은 좋은 인상을 주었다. 자기가 왜 유배되었는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실로 그런 얘기는 모든 사 람들이 꺼려했다. 동지들은 오는 도중에는 서로들 얘기를 털어놓지만, 일 단 이곳에 이르면 자기들이 언도 받은 형의 조항만을 말할 뿐이다. 그들 중 대부분이 58조 10항에 해당되었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케쥐마에서 그의 유배생활을 시작했으나 이 후 모즈고바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케쥐마의 관할 금융사무소에서 일하 던 한 아가씨와 일을 저질렀는데, 유배자로서 그런 행위는 금지되어 있었 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 굉장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그는 최소 한 75마일은 더 떨어진 더 먼 곳으로 보내질 수도 있었으나 계속해서 케쥐 마에서 일할 수 있게끔 허락되었다. 비록 매일 18마일에 걸친 행진을 감수 해야 했지만, 그러나 그해 봄에 중앙부에서 새로운 부기전문가를 파견하는 바람에 해고당했다. 이제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모즈고바에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 목공일도 좀 하고 건초를 베서 모으는 일, 채소밭을 일 구는 일도 하며, 때로 어망을 가지고 고기 잡으러 나가기도 하는데 짧은 반바지를 입고 나가 마을 사람들을 놀래 주기도 했다. 그들은 강에서 수영 을 할 때에도 그런 옷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또 콜호즈의 회계사 를 도와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전반적으로 여자들에게 휩싸여 있었다. 여자들에 대 해 아주 노골적으로 또 냉소적으로 얘기를 해대는 것이었다. 사샤가 얼굴 을 찡그리는 것을 보고도 그는 별 기분 상함 없이 말했다. 이런 생활을 하는 우리 같은 이들에게 남아 있는 게 뭐겠어? 넌 뭘 할 작정이야? 이곳 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여자라구. 다른 것은 없어. 윗사람이 남겨준 빵부스 러기의 값이나 매기고 있을 수는 없는 거라고. 넌 남자야. 그것은 바로 네 가 아직도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구. 이런 그의 사상은 사샤에게 감동을 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세 볼로드 세르게예비치와는 잘 사귈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뭔가 20년대의 모스크바를 생각케 하는 것이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와 농담, 또 기 분 좋은 바리톤으로 부르는 집시노래들은 사샤가 어린 시절을 지냈던 모스 크바에 대한 향취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내 사랑의 기쁨은 아무도 올라 갈 수 없는 높은 방에 있다오.... 그는 자유롭던 그 시절의 추억을 전해 주는 사람이었는데, 사샤는 그것이 바로 그의 인간적인 모습일고 느꼈다. 그에게는 1930년대의 모스크바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아마도 오래 전부터 그곳을 떠나와 있던 것이 분명하리라. 사샤가 무지무지 마셔 댔다는 얘기를 듣고 그는 찡그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뿐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네들은 너한테 어울리는 친 구가 못돼. 넌 그 선생과 어울려야 된다구. 그녀는 매력적이고 지적인 여 자야. 어떻게 그녀가 앙가라에서 그 좋은 시절을 보내게 되었는지 도대체 상상할 수가 없단 말이야. 나도 놀랐어. 사샤도 털어놓으면서 말했다. 이런 늪 같은 곳에다 자 신을 숨기고 있다니. 아마도 낭만적 비극의 결말이겠지 하고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말 했다. 여자가 서른 살쯤 되면, 게다가 동양여자란 묘한 데가 있지! 사샤도 관찰한 것을 얘기했다. 타타르인같이 보이지는 않던데. 시베리아계 타타르인들은 완전히 러시아화되었다고, 브세볼로드 세르 게예비치의 설명이었다. 토볼스크나 톰스크, 또 루젠츠크의 타타르인들, 그들이야말로 진짜 러시아의 정통성을 발견하기 어려울걸. 근데도 그들은 자기들의 국민성과 정신, 또 외양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구. 특히 여자들 이 그렇지, 여자들은 충실하고 헌신적인 남자들의 노에야. 좀 뻣뻣하긴 하 지만 그 여자는 어딘가 타타르 공주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어 솔직히 얘기 하는데 그녀와는 잘돼 본 적이 없어. 그 이유는 모르겠어. 하지만 넌 달 라. 넌 적시에 온 거라구. 사샤! 아무 것도 지속되는 건 없어. 우리에게 남는 건 여자뿐이라구. 그녀에게 자신을 던져 봐, 즐기라구. 나를 믿어봐. 그녀와 같은 여자는 요즘 시대에 드물어. 암, 모스크바에서도 희귀종이 지. 혹시 그녀에게 곤란한 일을 만들지도 모르는데. 사샤는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 이곳에 올 선생을 또 구하기란 힘들거든. 또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곳에 스파이짓하는 자는 없어. 게다가 아무도 그녀 를 탐내지 않거든. 네가 그 사실을 공포하려고 광고문을 써 붙일 일도 없 을 테고 말이야. 최악의 경우 네가 사비노나 프롤로보로 쫓겨나겠지, 그 아가씨는 그 정도 일은 감수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구. 맨발에 길고 펄럭거리는 치마를 입고 다니는, 땅딸막하고 떡 벌어진 어 깨의 마을 처녀들과 비교해 볼 때, 지다는 뭔가 다르고 방어력도 없는 연 약한 여자로 보였다. 짧고 끼는 옷을 입은 자그마하고 마른 그녀의 모습은 꼭 소녀 같은 데가 있었다. 그녀는 시베리아 침엽수림 지대에 깊숙이 처박 혀 있는 이 작은 마을에, 공부라는 것은 시간낭비고 학교는 짐스러운 것이 라 여기는 이런 마을에 선생으로 온 고독한 이방인이었다. 그녀는 사샤가 있는 상점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의 회색빛 눈동자에는 직선적이면서도 조용한, 약간은 아득한 표정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신선하고도 온화했다. 마치 아는 사람 대하듯 그녀는 사샤에게 말을 걸었다. - 사실 이 마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는 그와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페쟈는 2년 동안이나 비누나 전차, 또 등유도 보내 주지 않고 있다고 불 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작 무명천 약간을 보내 주었지만 그나마 마을 사람들이 맘에 들지 않아 사지도 않는 색깔이라는 것이다. 지다는 페쟈의 불평을 진지하게 들어주면서 별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려는 듯 응 수했다. 사샤는 그들이 보내 준 아마와 면 위에 놓여 있는 팜플렛을 뒤적거렸다. 마나 면 등은 이곳에서는 재배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학교에 책이 좀 있어요. 아마 당신이 빌려 보고 싶은 책들일지도 모르 는데. 지다가 말했다. 그래요? 그거 잘됐군요! 오늘밤에 배 있는 데로 나오세요. 제가 몇 권 갖다 드릴 테니까요. 그녀는 이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했지만, 그러나 페쟈가 뒷쪽 창고에 간 잠시의 틈을 이용해서 말했다. 그들은 배들이 놓여 있는 강기슭에서 만났는데 그곳은 나무 썩는 냄새와 고기 냄새, 그리고 타르칠 냄새가 났다. 그녀는 단추를 꼭 채운 코트를 입 고 있었으나 머리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마치 판화 같은 그녀의 완 만한 얼굴은 달빛 아래서, 매우 젊게, 마치 어린 소녀 같은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한, 성숙한 여인의 그것이 었다. 사샤는 그녀를 끌어안고는 그 보드라운 입술에 키스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은 그녀의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뒤로 약간 몸을 빼내 그의 포옹에서 부드럽게 벗어나면서 짧게 눈을 흘겼다. 그리곤 기다려 요! 하고 속삭였다. 쇼올을 다기 고쳐 두르고 나서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둑을 따라 그를 인도했다. 약간 검게 그을린 탈의실을 지나 그들은 언덕에 이르렀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내가 불을 켜면 들어오세요. 사샤는 탈의실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창문으로 불빛이 보였다. 그는 낮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뜰을 지나갔다. 문은 열려 있었다. 그는 날이 밝기 전에 떠났다. 그리곤 지난밤 그들이 왔던 것과 같은 길 로, 탈의실을 지나고 둑을 따라 마을 반대쪽에서 자기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다음 약속을 하지 않았다. 날은 언제든지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고 만날 기회는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 다. 지다가 케쥐마로 떠나게 될 때까지 그들은 서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늦게 사샤는 거리고 나왔다. 마을은 잠들어 있었으나 지다의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다시 울타리를 뛰어넘어 가서 문 손잡이 를 돌렸다. 문은 약간 삐꺽 소리를 내면서 열려졌다. 왜 문을 잠가 두지 않지? 당신이 올까봐서요. 지다는 전혀 액센트가 없는 순수한 러시아말로 얘기했다. 그러나 그밖에 모든 면에서는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관찰한 대로 순종적이고, 또 사 샤가 손을 대기만 해도 열이 오르는 정열적인 동양여자였다. 내게 뭘 하 려고 해요....?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어떤 동양적인 자제, 그리고 신비로 움이 결합되어 있었다. 그녀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기를 싫어했다. 한 번은 갑자기 그녀의 남편에 대해 언급했는데, 곧바로 전남편이라고 정정했 다. 톰스크의 부모집에는 6세 된 로사라는 딸이 있다고 했다. 지다는 톰스 크에서 사범교육을 받았고 거기서 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게 지루했어요. 그러나 그녀가 왜 이 타 이가지대의 오지로 오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됐어 요. 그들의 관계는 비밀로 지켜져야 한다는 사샤의 말에 그녀 역시 찬성 했다. 사샤는 그녀를 곤란에 빠뜨리길 원치 않았다. 비록 그런 일이 마을 에서 비밀로 지켜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었지만, 그 러나 그녀는 항의도,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눈물이나 다툼, 또는 격렬 한 쾌락의 표현이나 사랑의 고백도 없었다. 단지 밤중에 그가 잠에서 깨어 났을 때 그녀가 자지 않고 팔을 괴고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는 그녀의 뺨을 가볍게 쳤다. 왜 안 자지?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무슨 생각? 그녀는 웃었다. 이런 잘 생긴 멋진 남자들이 도대체 어디서 태어나는 것일까 하고요.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2 하루는 사람들이 사샤에게 뛰어왔다. 분유기가 또 고장났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기계와 트랙터부서로 갖다 주라고 수도 없이 일렀지만 아직도 갖다 주지 않은 것이었다. 여하튼 그는 가보았다. 분유기 주위에는 여자들이 둘러서서 잡담을 나누 고 있었다. 콜호즈의 최고의장인 이반 파르페노비치도 그곳에 있었다. 그 는 완고하고 아주 뚱뚱한 농부였다. 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가 농장 사람들을 주먹으로 부리는 험악한 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사샤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지다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샤를 한번 쳐다보았 다. 안녕들 하세요. 사샤는 즐거운 듯이 인사했다. 무슨 일이에요? 혼자서도 뭐가 어떻게 됐는지를 훤히 알 수 있었다. 분유기다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저 일이 당신 담당이오? 하고 이반 파르페노비치가 물었다. 왜 내 일이겠습니까? 스웨덴사림 일이지. 이 분유기는 스웨덴제거든 요. 스웨덴, 스웨덴이라구. 이반 파르페노비치가 심통스럽게 중얼거렸다. 당신이 망가뜨렸으니 당신이 고쳐야겠지. 내가 고장낸 게 아닙니다. 그 누구도 이 물건을 망가뜨리지 않았어요. 이 기계는 백 년이나 된 겁니다. 축에 달려 있는 실은 다 낡아 빠졌어요. 내가 사람들에게 누차 이것을 기계부서에 갖다 주라고, 거기서 새 실을 재 단해 줄 거라고 얘기를 했는데. 누구에게 얘기했소? 사샤는 여자들 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모두에게 다. 아마 이 말을 못 들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 여자들에게 얘길 하면 어떡허나, 내게 말했어야지. 제기랄! 난 분명히 당신 부하가 아니에요. 어떤 일로도 당신에게 대해선 의무가 없다구요. 이 뱀 같은 놈. 파괴자! 드디어 이반 파르페노비치가 폭발했다. 이 기계를 고장내 놓고는 이제 와서 여자들에게 책임을 떠맡기다니! 그런 식으로 내게 말하지 마십시오. 사샤가 되받아 쏘아붙였다. 뭐야! 네놈한테 말하지 말라구? 망할 놈의 트로츠키스트! 그럼 도대체 누구한테 얘기하라는 거지? 이반 파르페노비치가 주먹을 휘둘러대며 말했 다. 난 지금 바보한테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아시겠소? 사샤는 말하고 나 서 그의 면상에다 대고 웃었다. 잘 기억해요 바보한테 라는 것을. 그는 돌아서서 걸어나갔다. 이반 파르페노비치가 그의 등에다 대고 뭐라 고 떠들어 댔으나 그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 저녁 마차 한 대가 사샤의 집 밖에 도착하더니 처음 보는 농부 한 명이 거기서 뛰어내렸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와서 사샤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 주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정치 망명인 판크라토프 앞. 이 전보를 받는 즉시, 케쥐마 관할 내무인민위원회 청사 앞으로 출두할 것. 알페로프, 케쥐마에서. 그리곤 꾸밈없고 세련된 알페로프의 사인이 있었다. 알페로프는 사샤에게 지적인 인물이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가 이제 더 이상 지구 관리가 아니란 사실은 이상하게 여겨졌다. 사샤가 그를 마지 막 보았을 때 그는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그가 살고 있는 집의 앞쪽 절반이었다. 그는 사무실 아닌 큰 침실이 있는 살림집에서 사샤를 맞아들였다. 세 번째 출입구는 부엌으 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쪽으로 들어온 마당의 찬 공기가 돌고 있었다. 앉으시오, 판크라토프. 알페로프는 탁자 옆 의자를 가리켰다. 그는 반 대편 의자에 앉았다. 그는 친절하고 활달하게 보였으나, 사샤는 그가 아직 도 유임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 이 새로운 장소에는 어떻게 있게 되셨소? 그냥 정착했습니다. 집은 어떤지, 집주인은 마음에 드시오? 네, 모든 게 좋습니다. 됐군요. 아주 좋아요. 알페로프는 일어나서 탁자 위에 달려 있는 램프의 유리관을 치우고선 심 지에 불을 붙이고 불꽃을 조절한 다음 다시 유리관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 다. 거실의 구석은 희미해졌고 탁자만이 환하게 빛을 받고 있었다. 사샤는 탁자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그것이 자기에 대한 진정서라는 걸 대번에 짐작했다. 그래, 알페로프는 의자에 똑바로 앉으면서 말했다. 그래, 모든 것이 좋다구요. 모든 일이 잘되 가고.... 좋아요, 좋아. 그런데 이것은 - 그 종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 이것 말이요. 판크라토프. 이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신에 대해서 사람들이 항의를 하고 있어요. 그들 얘기 로는 당신이 태업을 모의했다는 건데. 그리고 태업의 한 방식으로 마을에 서 유일한 분유기를 망쳐놓았다고 하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는 그 분유기를 망가뜨리지 않았습니다. 사샤는 대답했다. 단지 그 기계를 청소한 적이 서너 번 있었죠.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무척 복 잡한 일이었지만 기계를 분해해야만 했었고요. 처음 그 기계를 분해했을 때, 난 축 끝에 있는 나선줄이 다 낡아 있다는 사실과 나사도 더 이상 지 탱하기 힘들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래서 기계를 기계부서에 가져가서 새 나선줄로 갈아 끼우게 해야 한다는 것도요. 그것은 어떤 기술자나 금속 노 동자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었고 기계 를 수리할 때마다 두 번, 세 번까지 반복해서 얘기했었어요. 이건 내 잘못 이 아닙니다. 잘못은 기계를 제때에 기계부서에 갖다 주지 않은 그 사람들 에게 있어요. 왜냐하면 난 마을을 벗어날 수 있는 권리가 없으므로 기계를 갖다 주지 못하니까요. 알페로프는 의자에서 자세를 바꿔 가면서, 또 때때로 사샤를 유심히 쳐 다보면서 그의 말을 주의깊게 경청했다. 그는 점심식사 때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습관이 있음이 분명했다. 좋습니다. 그가 말했다. 자, 당신이 그 기계를 처음 분해했을 때, 나 선줄이 낡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거죠. 내 말이 맞나요? 맞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잠깐만요. 당신은 어떤 기계공이나 금속 노동자들이라도 그 나선줄이 쓸모없는 상태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는데. 분명합니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겠소, 판크라토프. 지금 이 순간에 말예요. 이 순간에 실이 끊어졌다 면 기계공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처음 기계를 수리했을 때인 한달 전에 이미 나선줄이 나갔다면 누구라도 확인할 수 없었을 거요. 내가 기계공에게 이렇게 묻는 경우를 가정해 보시오. 판크라토프가 나사 를 죄일 때, 너무 세게 조이면 나선줄이 달아나 버리는 일이 가능합니까? 그가 나사를 맞지 않게 끼우고서 조였다면 나선줄은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 다. 라고 어떻소, 말이 안 됩니까? 말이 안 되죠. 사샤가 말했다. 그래요? 알페로프는 정색하면서 말했다. 난 내 말이 논리적이라고 생 각했는데 어째 그렇지 않은가요, 판크라토프? 분유기를 처음 분해했을 때, 나는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그 기계를 기 계부서로 갖고 가서 새 나선줄로 갈아야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누구에게 그걸 얘기했나요? 그곳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그렇다면 누가 그곳에 있었죠? 여자들이었습니다. 콜호즈 여성 근로자들. 약 스무 명 가량 있었습니 다. 알페로프는 그를 보고 싱긋 웃어댔다. 판크라토프. 당신은 명석하고 교육받은 남자요! 물론 그들에게 얘기했 겠죠 그러나 당신 생각에 그 사람들이 시킨 대로 할 것 같았소? 그들은 콜호즈 관리인에게 그것을 보고해야 했습니다. 판크라토프! 그들은 나선줄이나, 나사, 축, 이런 용어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무식한 농부며 여자들이요. 그런 말을 사용해서 뭘 보고할 수 있는 위인들이 아니라구요. 더군다나 관리자에게 뭔가를 감시 얘기할 수도 없 지. 단지 그들이 일을 잘못하고 있을 때 관리자가 그들에게 말할 수 있을 뿐이요. 어쨌든 그들은 그 기계가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고 있어요. 가져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또 기계가 계속 작동되기를 바 라고 있소. 관리자에게 보고했어야 할 사람은 당신이요. 그런데 당신은 얘 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기계는 망가져 버렸소. 자! 내 논리가 어떻소? 썩 좋은 논리는 아니군요. 아니라구? 왜죠? 난 콜호즈에서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돈을 받고 분유기를 청소해 준 것도 아니고, 단지 그 사람들을 도와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문제는 간단 해요. 내가 그 기계를 손상시켰느냐 아니야. 하지만 처음 기계를 분해했을 때 내가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그 물건이 수리될 수 없다는 것을 말했 다는 것은 곧 내가 기계를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 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얘기한 사실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확인될 수 있습 니다. 알페로프는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조용하고 약간 슬픈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줄까요? 왜 안하겠습니까? 그러나 약간은 자신 없이 사샤가 대답했다. 별안간 자기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아, 판크라토프, 판크라토프. 여전히 조용하고도 동정을 띤 어조로 그 가 말했다. 당신은 참으로 순진하군. 모스크바에서는 어디서 살았었소? 아르바트요. 그러면 우리는 이웃이로군. 알페로프는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그러 나 자기가 어디에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좋아요. 판크라 토프, 당신은 순진해요. 그 촌여자들을 법정에 소환한다고 상상해 보시오. 맨 먼저, 당신은 그들의 성과 이름이나 제시할 수 있소? 글쎄, 어려울 것 같지 않소? 둘째로, 그 사람들은 법정에 서는 것을 죽는 것보다 두려워하 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자취를 감출 거라는 것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그들 중 세명 정도 법정에 끌고 올 수 있다고 합시다. 거 기서 그 사람들은 일률적으로 이렇게 말할 거요. 우린 아무 것도 몰라요. 아무 것도 들은 것도 없구요. 아무 것도 못 봤어요. 라고 자, 저울 한쪽 접시 위에는 유배당한 반혁명주의자인 당신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권세가 있고 그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당국자인 콜호즈 의장이 있소. 그네들이 누구 편으로 증언할 것 같소? 그름 위에서 그만 내려오시지, 판크라토프. 그리고 당신의 위치를 현실적으로 평가해 보시오. 당신에겐 단 한 명의 증 인도 없을지 모르오. 콜호즈 의장이 마을 전체를 자기의 증인으로 차지하 고 있는 반면에, 더군다나 검사는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자료를 동원해서 당신이 농기류 파손, 말하자면 태업을 사전 모의하고 있다고 고발할 것이 고. 신문을 읽어 봤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아직 우편물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모스크바에서는 읽었겠지. 보지 않았소? 어디고 태업 투성이요 - 트랙터 태업, 콤바인 태업, 탈곡기 태업, 바인더 태업 - 모든 곳에서 태 업바람이 일고 있소. 근데 그게 사실이겠소? 진짜 그 사람들이 고의로 모 든 기계를 부수고 있을까? 누가 파손을 유발했지? 콜호즈 농민인가? 그들 이 뭐 때문에 그 짓을 하겠소? 거기에 대한 답은 뻔하오. 수백 년 동안 우 리 농민들은 단 한 종류의 기계에 대해서만 알고 지내 왔소. 바로 도끼라 는 거지.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 트랙터와 콤바인을 가지고 농사일을 하라 고 한 거요. 또 그들에게 트럭도 운전하라고 주고. 그들이 그 기계들을 망 가뜨리는 건 기계들에 대해서 무지한 때문이오. 교육을 받지 않아 기술적 으로 완전히 백지고 아무런 감각이나 지식이 없기 때문이란 말이오. 그렇 다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소? 시골 사람들이 기술에 대해 밝아지 고 그 원시적인 낙후성이 극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겠소? 수세기 동안에 걸쳐 농부들을 형성시킨 특징이 변화될 때까지 기다릴 까요? 그리고 그 동 안 기계들을 부숴뜨려 가면서 그 기계에 대해 알게 될 때까지 놔둬야 하겠 소? 우린 우리의 기계들이 파손이나 파괴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소. 그것 을 구입하는 데 엄청난 비용을 지불했으니까. 우리에겐 단 한 가지 방법만 이 있었소. 어려운 방법이지. 그래도 유일한 거요. 바로 <공포>라는 것이 지. 공포를 한 단어로 집약하면 곧 <파괴자>라는 것이오. 당신이 혹 트랙 터를 파손시켰다고 하면 곧 당신은 파괴자가 되는 것이고 십년형을 받게 되오. 벼 베는 기계나 바인더를 파손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십년형이 오. 그러자 이제 농민들은 생각하기 시작했소. 모든 머리를 짜내어서 자기 의 트랙터를 돌보는가 하면, 기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듯이 보이는 사 람에게 술 한 병을 바치고는 날 좀 봐줘. 날 좀 도와달라구. 날 좀 구해 줘 라고 애걸하지요. 바로 며칠 전에 강둑을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는데 한 사내녀석이 모터보트에 앉아서 울고 있는 걸 발견했소. 줄을 당겼더니 뭔 가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모터가 돌아가지 않아요. 이제 오년형은 받을 거 예요. 라고 탄식하면서 말이요. 그건 아주 구식의 단순한 모터였소. 뚜껑 을 열고 봤더니 작은 손잡이 하나가 느슨하게 되어 있더구만. 그래서 그 손잡이를 죄었더니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소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 는 모터 손상, 곧 생선공급을 방해하기 위한 태업 모의 내지는 그 비슷한 죄목으로 선고받게 됐을 거요. 법정이 돌아가는 게 바로 이런 식이요. 다 른 방도가 없으니까. 우리는 기계와, 산업과, 조국의 미래를 구해야 하니 까 말이요. 왜 서방 세계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을까요. 내가 <왜>라고 물 었소 우린 최초의 우리 트랙터를 1930년에 제작했소 그러나 서방에선 최초 의 트랙터가 1830년에 만들어졌지. 우리보다 백년이나 앞선 거요. 따라서 그들은 수세대의 숙달된 경험자들을 보유하고 있소 그 세계에서는 트랙터 도 개인소유재산이고 그 소유자가 기계를 돌보지. 이곳은 모든 재산이 국 가에 속해 있고 따라서 국가의 방식대로 재산이 관리되오. 무지한 농사꾼 에게 파괴자로 십년형의 선고를 내리는 우리가, 유배당한 반혁명주의자며 더군다나 진짜배기 엔지니어인 당신에겐 어떤 형을 내려야 하겠소? 어떤 판사건 망설임 없이, 오히려 깨끗한 양심으로 당신을 유죄로 선고할 거요. 그리고 불쌍한 농민들에게는 그것이 오직 법에 복종해서일 뿐이라고 말하 면서 자기의 양심을 합리화하는 데 당신을 이용할지도 모르오. 판크라토 프! 당신은 당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요. 당신은 유배 중에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줄로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요! 차라리 감옥 속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낫지! 알아요. 그곳은 혹독하고, 또 그곳 사람들은 추위 속에서도 나무를 베어야 한다는 것, 굶주림이 있고 또 그들 뒤에는 철조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모두 잘 알아요. 그러나 거기서는 모두 그들과 똑같은 죄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소 서로 조금도 다르지가 않 지. 그런데 이곳은 어떤가요. 물론 이곳에는 감시병이나 감시탑 같은 건 없소. 당신은 주변에 있는 숲으로, 강으로 자유로이 다닐 수 있고 신선한 공기도 맘껏 들이키지. 그러나 여기서 당신은 국외자요. 이곳에서의 당신 은 적이며 아무런 권리가 없는 자요. 당신의 집주인 여자가 와서 당신이 스탈린 동지를 모욕했다고 말할 수도 있소 그것은 곧 당신이 테러행위를 모의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되오. 그는 사샤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자, 바로 이런 것이요. 판크라토프. 상황이 이렇소. 최소한 십년형은 받게 된다는 거지. 이해하겠소? 네, 알겠군요. 그는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솔로베이치크가 별 해로울 것 없 는 농담 한마디로 유배당하고, 이바쉬킨이 신문에 약간 오타를 냈다고 해 서, 어떤 요리사가 메뉴판에 <게으른 수프>를 적어 놨다 해서 유배시키고, 구두창 한 벌을 훔쳤다고 해서 십년형을 받게 하는 놈들, 또 별것 아닌 시 몇 줄 때문에 자기를 유배시킨 그들이라면, 농기류인 분유기를 손상한 자 기에게 십년형이란 판결을 주리란 것은 자명하리라. 좋소. 알페로프가 말했다. 자, 그러면 이제 두 번째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콜호즈 지도자에 대한 모독죄 라. 당신은 농장사람들이 있는 앞 에서 그 의장을 바보라고 불렀다는데, 그렇소? 네. 그렇지만 그가 내게 욕을 해댔기 때문입니다. 내게 뱀 같은 놈이 니, 파괴자니, 트로츠키주의자니, 반혁명주의자니 해댔고 또 다른 욕도 했 을 겁니다. 물론 그건 좋지 않은 일이요. 알페로프는 동의를 표했다. 그렇지만 당신과 그 사람이 법정에 있다고 가정해 봐요. 판크라토프, 분유기 손상죄 는 이미 성립되어 있소. 그리고 콜호즈 의장, 곧 집단농장의 이익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그 사람이 당신한테 파괴자라고 불렀소. 그가 옳은 거요. 판사들은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를 이해할 것이요. 욕을 했 다고 했는데 이곳에선 아무도 욕을 해댔다고 해서 유죄선고를 받는 일은 없소. 그러나 그 반면 당신은 분유기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공개석상에 서 그에게 바보라고 불렀소. 그는 콜호즈 의장이고 그 권력이 당국에 의해 보장되어 있는 자요. 따라서 당신은 당국을 모독한 것이 됩니다. 당신은 그 일로 십년형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콜호즈 사람들이, 콜호즈 의장을 모욕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게 되는 거죠. 그들은 의장을 떠받들 게 될 거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게 될 거요. 상황이 이렇소, 판크라토프. 이해하겠소? 이해한다고 이미 말했을 텐데요. 아, 나는 당신이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듣고 싶다는 거요. 내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것, 그들은 나를 가지고 자기들이 하고 싶 은 내로 할 수가 있다는 것, 나를 태업모의와 당국에 대한 모독죄로 유죄 판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게 욕하고 내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있다 는 것,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명심하십시오. 그렇게 욕하는 모든 사람에게 욕으로 응수하고 침을 뱉는 얼굴 하나 하나에다 내 가 다시 침을 뱉어 주고야 말거라는 것을. 알페로프는 재미있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알기를 원한다면. 사샤는 계속했다. 당신의 태업에 관한 논리 를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도 얘기해 주겠습니다. 실수가 있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합니다. 내 스스로도 실수를 범했고. 그러나 태업이 국가와 당의 정책이라는 발상, 그것을 난 믿을 수 없어요. 그런 가능성을 인정한 다는 것은 내 믿음을 상실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에게 온갖 일이 다 일어났지만 난 아직 당을 사랑하고 있거든요. 알페로프는 계속 그를 흥미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또 다른 것 은? 얘기한 게 전붑니다. 자, 그러면. 알페로프가 다시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태업이론에 대 해서는 후에 토론해 보기로 합시다. 물론 기회가 닿으면, 그리고 당신은 당을 믿는다고 했는데 아주 훌륭하오. 난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당에 가담 했소. 볼셰비키잔당이지. 판크라토프. 그래서 당의 정책에 관한 한 당신 못치 않게 해석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소. 하지만 그건 현재의 문제 가 아니오. 당신은 나를 마치 당신의 박해자인 양 보고 있군. 물론 나는 당신을 감시할 권리도 있소. 그것이 내 일의 일부니까. 그러나 또한 당신 의 행동, 즉 당신의 안전을 위해 당신을 변호해야 하기도 하오. 보구찬스 크의 지구장인 바라노프를 만나 봤겠죠? 그가 얼마나 바보 같은 놈인지도 봤을 거요. 만일 그가 지금 내 위치에 있다면 당신은 선고가 내려지기 이 미 오랜 전에 감방에 처박혔을 거요. 그러나 당신이 느꼈을지 모르지만 나 는 바라노프가 아니오 난 당신과 문제를 토론하고 있소. 내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하겠소? 지루함에서 벗어나 보려고? 부분적으로는 그렇지. 부인하 지 않겠소. 그러나 단지 부분적이오 그것은. 주된 이유는 바로 내가 결정 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오. 내가 결정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러면 당신에게 훨씬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 어쨌든 내가 먼저 당신을 모즈고바에서 이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요. 당신이 그냥 남아 있다는 사실은 당신이 옳고 콜호즈 관리인이 그르다는 것을 보 여 주는 것처럼 되어서 당신을 새로운 파국으로 빠뜨릴 가능성이 있소. 그 러면 의장은 분유기보다 좀더 확실한 뭔가를 들고서 당신에게 올가미를 씌 우려 할 거요. 어떻게 생각하오?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다니, 이제 막 지다를 만나 그녀와 가까 워지기 시작했고, 또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와 친구가 되려고 하는 마당 에 모든 걸 또 다시 시작해야 하다니. 또 하나의 새로운 주소가 생기겠군. 처음엔 칸스크였고, 그 다음엔 보구차니, 그리고는 케쥐마, 모즈고바, 그 리고 또 어떤 곳. 어머니가 뭐라고 생각하실까? 이건 정말 최악이다.... 그러나 알페로프가 옳기는 옳다. 모즈고바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이반 파르페노비치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알 페로프는 왜 결정을 하지 않는 거지? 왜 자기에게 묻고 있는 것일까? 당신은 내가 최소한 십년형은 받을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사샤가 말을 꺼냈다. 내가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기다린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 습니까? 모즈고바가 가장 나을 것 같은데, 선고 내리는 일이 그리 오래 지 연될 것 같지도 않으니까. 알페로프는 머리를 흔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얘기할 수 없소 내가 칸스크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어떤 판결을 내릴 까 결정하고 있을 거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소. 그러면 구월에 도로 가 차단되고, 회신은 썰매길이 뚫릴 때까지 도착하기 어려워요. 도대체 그는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뭘 궁리하고 있는 건가? 그가 어떤 조사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태업죄로 사샤를 내일 당장 칸스크로 보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의 권한에 달려 있는 일 이 아닌가. 그는 사샤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 걸까? 당신 좋을 대로 하십시오. 어떤 경우든 당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 로 할거니까 하고 사샤는 말했다. 알페로프는 일어나 찬장으로 가서 검은 빛의 술을 한잔 따라 마시고 다 시 사샤에게로 돌아섰다. 한잔 드시겠소? 이건 아주 훌륭한 과일주요. 사양하겠습니다. 술을 안 마십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마시지 않겠다는 겁니다. 매우 좋아요. 술이 당신 머리에 들어가서 혹 말을 잘못 한다거나 해서 는 안될 것에 사인을 할 수도 있으니까. 알페로프는 또 한잔을 마시고 나서 건포도 몇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주 훌륭한 과일주요.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우리 집주인 여자가 산딸기를 우려내서 만든 건데 좋은 건강음료라고, 특히 남자에게 좋다고 호언했지. 당신 같은 젊은 사람에게야 문제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 나이가 돼보면 눈이 번쩍 뜨일 거요. 그는 탁자로 돌아왔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판크라토프? 나를 칸스크로 보내고 그 일을 끝장내는 거죠. 유배자들에게 이런 말이 있어요 내부로 들어올수록 빨리 달아날 수 있다. 는 알페로프는 농담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판크라토프, 난 당신이 분유기를 파손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내 양심상 당신이 십년형을 받기를 원치 않고 있소. 더구나 진정서는 이제 서류철이 되어 있고 언제라도 심사될 수 있으므로 내가 서두를 필요 는 전혀 없소.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일어나 방을 가로질러 가서는 부엌문 을 닫았다. 다시 자리에 앉은 그가 조금은 심각하고 힘있는 어조로 말했 다. 모즈고바로 돌아가시오. 허나 그 의장이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 는 사실을 명심해야 돼요. 행동을 조심하고 당신의 환상을 벗어 버리시오. 그리고 이제 누구와도 싸움을 하지 마시오. 사샤는 그 목소리에서 어떤 인간다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즈고바에 돌아가 그들에게 굴복하거나 치솟는 분노를 억누를 수는 없었 다. 그렇다면 전혀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까? 만약 위험하다면 나가지 말아야죠. 그렇담 뭘 먹고 살아야 합니까? 가족이 당신에게 돈을 보내 주지 않나요? 하고 알페로프가 물었다. 보내 오죠. 하지만 어머니는 겨우 먹을 식량 정도를 벌어들일 뿐입니 다. 어머니는 세탁소에서 일하시는데 아버지와는 삼년 전부터 함께 살지 않고 있습니다. 안됐군요. 그러나 내가 당신을 도와 줄 수 있는 방도가 없소. 유배자들 은 또 자기 스스로를 돌보며 살죠. 일반적으로 이곳에서의 유배란 이제 시 대착오요. 유배자들이 개인 농장에서 일할 수 있던 콜호즈 이전 시대의 유 물인 거지. 아마도 얼마 안 가서 이곳에서 유배제도가 사라질 거고 그렇게 되면 유배자들은 도시로 이송될 겁니다. 그건 그렇고 당신 전공이 뭐요? 체포되던 때, 수송전문학교 졸업반이었습니다. 그렇담 기계와 트랙터 부서에서 일해야 했었구만. 알페로프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그러나 농업공학에 대해선 별로 알지 못해요. 알페로프는 웃음을 터뜨렸다. 농업공학에는 별로 아는 게 없다구? 그런 데도 당신은 분유기를 수리했지 않소? 나보고 엉터리 논리라고 면박하고 말이요! 난 농부철학자로서 공연히 말해 본 거지. 어쨌든 공학에 대해선 얼마나 아시오? 볼트에서 톱니바퀴를 설명할 수는 있고, 또 뭐가 있죠? 이 지역 기계부서 관리자는 금속노동자이고, 또 기능공장장은 트랙터 운전수 요. 당신이 차에 대해서 안다면 트랙터도 알겠군. 당신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난 당신이 뭘 교육받았는지 몰랐소. 만약 알았더라면 당신을 케쥐마에 남겨 두었을 텐데. 이제 당신도 그런 사소한 것들에 당신 운명이 어떻게 좌우되고 있는지를 알 거요. 그때 내가 물어보기만 했더라면, 당신은 지금 쯤 지역 중심부에 살면서 기계부서에 근무하고 있을 텐데. 자, 그건 다음 번에 한번 해보도록 합시다. 우린 지금 이 사건을 끝장내야 하니까. 그는 이반 파르페노비치의 진정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모즈고바로 돌아가시 오. 그러나 반복하겠소만 조심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얘기했듯이 당 신은 감시 받게 될 겁니다. 그들은 어두워진 거리고 나갔다. 마차가 가 버렸군. 알페로프가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혼자 갈 수 있으니까요. 수풀지대를 뚫고? 그것도 이 밤중에? 무섭지 않소? 아뇨. 밤에는 곰들이 자니까요. 원하신다면 이곳에서 주무시오. 알페로프가 제안했다. 주인집 여동생 이 건너편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데 당신을 재워 줄 수 있을 거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3 크리마아에서 돌아온 바랴와 코스챠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집으로 이사했다. 하숙인 하나가 바로 그때 다른 곳으로 가버려 방이 비었기 때문 이었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바랴의 결혼에 대해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 다. 그러나 바랴의 친구들은 그녀가 사샤에게서 등을 돌리자 모두 냉정하 게 대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그녀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조차 도 없었다. 바짐과 레나 부쟈기나도 그랬고, 유리 샤로크는 숫제 그녀에게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이나 이바노바는 처음에는 가끔 그녀의 집에 놀러 오기도 했으나 요즘은 발을 끊고, 심지어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바랴 와 코스챠에게 방을 세줬다고 떠들어대고 다녔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는 솔직히 니나가 주의에 얼씬거리지 않는 게 기뻤다. 처음에 니나는, 사 샤의 체포는 부당한 일이라고 말해 댔으나, 그 뒤 그녀의 대화에서는 예전 과 다른 새로운 말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곧 국내적, 국제적인 어려 움이 있었다느니, 계급투쟁의 소산이니, 반당조직의 활동이니 하는 말을 써가면서, 이전에는 사람의 위치에 대해 특별하게 정확을 기하거나 밝히거 나 하지 않았는데 사샤가 이따금 집단의 관점을 넘어서서 사건에 대한 자 기 나름의 의견을 피력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녀는 사샤가 체포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를 버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바랴였는 데, 이는 곧 그녀가 사샤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간에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바랴는 소포 꾸리는 것을 도와 주었으며, 세탁소의 무례한 손님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있다는 사실로도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외로운 집에 정감 이 돌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이 단순히 그녀에 대한 동정심 에서가 아니라, 계속적인 사샤에 대한 관심과 그의 불행에 대한 일종의 연 민의 정 때문이었다. 바랴가 사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그녀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바랴에게 있어서 어머니 같은 자신을 느끼면서 오직 그 녀가 잘 되기만을 바랬다. 실제로 바랴가 어떤 안정된 상태에 놓이기에는 아직 좀 어린 나이였다. 코스챠는 마음이 후한 남자로 사치스러운 걸 좋아했다. 그는 레스토랑에 서 많은 음식을 그녀에게 갖다 주곤 했는데, 한번은 굉장히 큰 케이크를 갖고 왔었다. 케이크가 워낙 크고 또 망가질지도 몰라서 그녀는 어떻게 그 걸 다뤄야 할지 쩔쩔 매었다. 그러다 여러 조각으로 잘라 가지고서 자기 친척들한테 갖다 준 적이 있었다. 그는 숙녀용 손수건이라든가 스타킹을 넣는 상자와 같은 여러 종류의 잡스런 물건들을 만들어 그녀에게 선물해 댔고 우산을 선물한 적도 있었다. 매번 그녀는 그의 선물을 거절했지만 그 의 좋은 마음씨에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뚜렷한 직장이 없어서 그녀를 편치 못하게 했다. 도대체 요 즘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그는 전구를 싸는 어떤 물질을 발 명해서 특허를 땄고, 세금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오히 려 더 이상하게 들렸다. 마치 그들이 1920년대의 신경제정책시대로 후퇴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에게 신경제정책시대의 사람이라고 하면, 벼락부자라 든가 의심스러운 허영꾼 내지는 악착같이 돈을 긁어 모은 사람 같은 인상 을 주었다. 아제, 그 시대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는 지금에 와서, 어디에서 일하는 곳도 없고, 전화에다 대고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나 해대고, 신경제 정책시대 젊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나치게 옷을 잘 입은 그런 사람 이 갑자기 출현한 것이다. 노동계급 가장 출신인 바랴는 그런 사치스런 환 경에 휩싸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코스챠는 매일 저녁 시간을 레스토랑에서 지냈고 바랴도 매일은 아니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빠짐없이 레스토랑에서 지냈다. 바랴는, 코스챠가 당구를 치고 있었으며 실지로 그의 주 수입원은 바로 거기에 있다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말을 인정했다. 전구와 그것에 끼우는 물질이란 단지 그가, 수입에 대한 합법적 인 근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였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도 박꾼으로, 레스토랑에서 당구쳐 주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밤 12시에서 3시 경에나 귀가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길 쪽으로 난 대문 열쇠를 그에게 주었고, 그는 바랴에게 안쪽 문에 걸려 있는 자물쇠를 따놓 아서 그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해놓으라고 일러뒀다. 그것은, 밤에는 항상 자물쇠를 채워 둬야 한다는 이 집의 오래 된 규칙에 대한 위반이었지만 달 리 방도가 없었다. 만일 자물쇠가 걸려 있게되면 코스챠는 초인종을 울릴 테니까. 한번은 바랴가 자물쇠 풀어 놓는 것을 잊은 적이 있었는데 코스챠는 새 벽 4시에 돌아와서 초인종으로 모든 사람을 깨워 놓은 것이다. 미하일 유 레비치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으나 이웃인 갈랴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 사람은 시간도 가릴 줄 모르나? 잠도 못 자게! 갈랴는 사샤의 방을 노리고 있었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필요치 않 은 방 한 칸을 남에게 세를 주고 사는 반면에, 그녀는 3평 정도의 방 한 칸에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므로 소피야가 거주공간을 가지고 이 윤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갈랴는 말썽을 일으켜서 이 불법적인 상황이 관청의 눈에 띄게 되고, 해서 그 방을 자기 것으로 취할 심산이었 기 때문에 소피야와의 사이는 매우 나빴다. 그러나 그 방에 대한 남편의 권리는 모스크바 소비에트에 등록되어 있는데 그 방에서 바랴가 살고 있는 게 남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바랴는 같은 아파트의 거주자로 등록되 어 있었고, 여동생쯤으로 보이는 그녀가 한 방에서 남자와 동거하리라고 남들은 생각도 못 할 것이었다. 그리고,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 빈 방에 잠시만 머무르라고 그들에게 얘기했다. 그게 누구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지만 그녀가 걱정되는 것은 바로 코스챠였다. 바랴는 그의 거주허가 가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소콜르니키로 되어 있다고 말했지만, 과연 사실 일까? 그의 신분증명서는 한번도 볼 수가 없었는데. 만일 갈랴가 경찰을 부르고 코스챠에게 모스크바 거주허가가 없는 것이 드러난다면 어떻게 되 지? 갈랴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지만 한번 그녀와 얘기를 나눠야겠 다고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마음먹었다. 그날 바랴는 몸이 별로 안 좋았으므로 코스챠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갖 다 주었다. 그는 평소에 그녀가 요리를 하지 못하게 했는데, 그녀에게서 부엌냄새가 나거나 그녀의 손이 거칠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였다. 그는 아주 정교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왔는데, 물론 바랴뿐 아니라 소피야 알렉 산드로브나를 위해서였다. 보통, 음식은 바랴가 데웠지만 이번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그 일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갈랴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보고 있었다. 최고로군. 이런 향기가 당신들 입을 적시겠지! 비꼬는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말했다. 바랴가 아파요. 그래서 코스챠가 식당에서 음식을 갖고 왔어요. 좋지, 부르조아 식사로구만. 갈랴는 계속 능글맞은 웃음을 띠면서 말 했다. 우리는 대구 한 조각으로 식사를 해야 되지. 그런데 그들의 저녁식 사에는 아마 팔 루블은 들 거야. 아니면 십 루블쯤.... 얼마가 드는지 난 몰라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조용한 어조로 말 하고 나서 스토브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서 갖고 오는 걸까? 갈랴는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 사람 밤에 일한댔지? 야간 경비인가? 야간 경비는 수위보 다 덜 받을 텐데, 안 그래? 그만둬요. 갈랴, 제발.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말했다. 당신은 착 하고 친절한 여자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하죠? 요즘 세상엔 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착하고 친절한 사람 등쳐먹고 살고 있잖아. 갈랴는 화가 나서 훈계하듯이 말했다. 착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 들은 밭도 갈고 물도 길어. 착한 사람들은 반나절 줄서서 기다리고도 배급 표하고 뭐 하나 교환해 내지도 못하지. 또 전차 계단에 매달려서 바퀴에 휘말려 들어가지나 않을까 조심해야 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착하지 않은 사람들은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닌 단 말이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아무 말도 않고 방안으로 저녁을 가져갔다. 그 러자 바랴가 그녀의 기분을 눈치챘다. 왜 기분이 나빠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갈랴가 부엌에서 이 음식을 보더니 부르조아 식사로군 하지 않겠어. 또 그 작자들은 레스토랑에나 나다니면서 아무 때고 마구 들어오는 예의 없는 사람들이야 하면서 짜증을 부리지 않겠니. 그게 그 여자와 무슨 상관이죠? 아마 질투가 나는 거겠지.... 못 됐어! 바랴가 말했다. 아마도 사샤의 방을 탐내는 것 같애. 하지만 그 방은 당신이 세를 줬잖아요. 그녀는 내가 그 방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으면 나한 테서 그 방을 뺏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갈랴가 두려워요. 그녀가 두려운 건 아냐. 하지만 요즘 같은 때 말썽이 나면.... 돼지 같은 년! 바랴가 욕을 했다. 내가 한마디 해줘야 되겠어. 입을 닥치게 말이야! 그만둬, 바랴. 그 여자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구. 그 여자가 나한테 일으킬 수 있는 문제가 뭔데요? 너한테가 아니고 콘스탄틴 페드로비치한테라구. 코스챠가 왜요? 그가 도둑이에요. 아님 사기꾼이에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바랴? 그의 위치가 애매모호하다는 건 너도 인정 해야 돼. 그는 일정한 근무처가 없어. 직장에 고용되어 있는 게 아니잖 아.... 아니, 그는 고용되어 있어요. 조합 작업장이에요. 또 당구치는 거 말인 데, 국가관리 당구장에서 치는 거예요. 금지된 게 아니라구요. 바랴, 난 그를 비난할 뜻은 전혀 없어. 그렇지만 그가 이곳에 등록되어 잇지 않다는 사실을 갈랴가 이용하려 들지도 몰라. 나 또한 당신 집에 등록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넌 이 아파트에 등록되어 있어. 그 사람도 다른 아파트에 등록되어 있어요. 뭐가 다르죠? 그가 모스크바 허가증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신해? 물론이에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바랴의 단호한 반응에 오히려 불확실한 무엇을 감지했다. 그렇지만 바랴에게 그의 허가증을 눈으로 봤느냐고까지 물을 수 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너희들 관계도 정당하게 등록되어 있지 않고 있잖아. 바랴는 웃었다. 이 나라에서 내연관계란 법적인 혼인에 상당하는 거예 요. 우리는 공동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그러니 남 편과 아내라구요. 바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얼굴을 찌푸렸 다. 왜, 그게 어때서요? 얼마 전에 동거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법정에 갔었 어요. 법관이 노골적으로 묻더군요. 당신들 공동가정경제를 꾸려 나갑니 까? 즉 한 침대에서 잠을 잡니까? 하고 말이에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또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정직하게 말해 봐요. 우리가 이 집에서 지내는 게 당신은 거북한 거죠? 바랴가 진지하게 물었다. 두려워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도 그녀처럼 진지하게 대답했다. 너희가 너희 자 리를 잡아서 제대로 안주하게 될 때까지는 여기에 있어도 돼. 하지만 곡 알아야 할 것은 이웃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밤중에 소란을 부린다던 가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알겠니? 알겠어요. 명심하겠어요. 바랴, 또 한 가지, 그 방에 총이 하나, 아니 사실은 두 개가 있던데. 그건 사냥총이에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코스챠가 사냥을 하거든 요.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넌 잘 알아야 돼. 아르바트는 군사거리가 됐다구. 난 나의 위치를 위협하는 총이 내 집에 있게 허락할 수가 없어.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요즘 그런 물건들에 대해 아주 엄중해졌어. 만약에 총이 콘스탄틴 페드로비치의 집에 있는 거라면 그가 책임을 져야 하겠지. 그러나 여기, 내 아파트에 있는 한 그건 내 책임이거든. 그녀는 잠시 말을 중단하고 나서 다시 덧붙였다. 난 사샤를 위해 이 방 을 지켜야 돼. 이건 그의 방이야. 모든 위협으로부터, 비록 아주 하찮은 위협일지라도 이 방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좋아요. 바랴가 말했다. 총을 없애도록 하겠어요. 바랴는 여태껏 코스챠의 거주허가증을 눈으로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크리미아에 있었을 때, 호텔에서 그는 자기의 신분증과 그녀의 신 분증을 사용했었고, 명부에는 모스크바의 주소를 기재했다. 그는 간단하게 자기의 신분증에 있는 것을 기입했고, 접수인이 필요로 하는 건 그게 전부 였다. 바랴는 또 그의 신분증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실수한 건가? 그가 모 스크바로 쓰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다른 어떤 도시란 말인가? 그건 그녀에 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를 속여 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코스챠에게 말했다. 소피야가 당신 허가증 때문에 염 려하고 있어요. 내가 어느 곳에 등록되어 있는지 말해 줬는데, 날 믿지 못한다는 거 야? 아뇨, 그녀는 믿어요. 근데 이웃집 여자 갈랴가 문제를 일으키려고 해 요. 이 방을 가로채려 하고 있거든요. 그 여자는 소피야가 남는 방으로 돈 을 벌어 들이고 있다고 주장할 거예요. 만일 당신 거주허가 모스크바로 되 어 있지 않을 경우, 소피야는 일이 어렵게 된다구요. 내 신분증을 그녀에게 보여 줘야 한다는 건가? 그렇게 한다면 그만이죠. 그렇지만 언제? 내가 집에 들어올 때면 그녀는 잠들어 있고, 내가 깨어 날 때면 그녀는 나가고 없는데. 그렇담 나한테 두고 가요. 내가 보여 주면 되니까. 그는 그녀를 곁눈질로 힐끗 쳐다보았다. 신분증을 집에 둘 수는 없어. 수시로 필요하니까. 아침에 날 깨워. 그러면 직접 그녀에게 보여 줄 테니 까. 그리고 또 하나. 소피야는 이 집에 총이 있는 걸 원치 않아요. 그렇지만 그건 사냥총이야. 불법총이 아니라구. 그렇다고 문제가 달라지는 건 아니에요. 갈랴가 고발해 버릴 수도 있으 니까. 그녀에게 말해. 그 총에 허가증을 가지고 있다고 말야. 그 허가증은 총 하나에 해당한 거지만 당신은 한 자루가 더 있잖아요. 그건 사냥용이야, 아주 합법적인 거라구.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그 냥 조용히 하라구 그래. 그는 귀찮은 듯이 투덜댔다. 이 집엔 단 하나의 법이 있는데, 그 법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법 이에요. 바랴가 말했다. 그녀가 요구하는 대로 하든지, 아니면 이 집에 서 우리가 사라지든지 해야 한다구요. 네 맘대로 해. 그는 퉁명스레 말했다. 아침이 되자, 일찍 일어나는 데 익숙치 않은 그가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대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켓 주머니에서 증명서 몇 개를 꺼내어서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방문을 두드린 후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금세 돌아왔다. 모든 게 잘됐어. 그리곤 다시 침대로 갔다. 코스챠는 바랴에게 신분증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녀 또한 한번 봐야겠 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그것만 곰곰이 생각하고 있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와 살아온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그녀는, 코스챠가 복잡한 배경과 복잡 한 상황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가 말하기 싫어하 는 것을 그에게 물어보는 건 쓸데없는 일이었는데, 물어봤댔자 대답을 하 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모는 그리스계 러시아인들로 아조프 바다에서 어부생활을 하였다 고 했다. 그러다 부농으로 취급되어 마이우폴에서 추방당했다. 그 당시 코 스챠는 상선에서 선원으로 일하면서 외국에 나가 있었고, 그것이 그가 부 모님의 운명과 함께 하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그가 집에 돌아와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들었을 때, 자신이 피라에우스나 또는 이스탄불에 머물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고 바랴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거기서 그냥 즐기면서 살 수도 있었는데 그러나 상선은 더 이상 그가 머무를 장소가 되 지 못했다. 해외로 나다니는 선원들은 그 당시 철저히 조사되고 있었고, 따라서 그의 부모가 부농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면 자기도 추방당할 것 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신분을 없애버리는 일이 더 쉬워 보이는 모스 크바로 떠났다. 그는 직업을 바꾸어서 전기 조립공으로 일했고, 전구 끼우 는 물질을 발명했고, 그 다음 조합에 가입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직업은 당구였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제일 가는 당구가인 베일리스의 눈에 발탁되 었다. 베일리스는 그를 제일 좋은 당구장에 데려가서는 그곳에서 빌붙어 식객노릇하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정부 자금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시 골 관리들의 돈을 긁어 들였다. 그 사람들에 관한 한 코스챠는 인정사정 없었다. 첫 게임에서는 지는 척해 주다가, 그 다음부터는 그들이 가진 마 지막 동전 하나까지 몽땅 빼앗아 내는 것이었다. 료바는 코스챠가 만일 미국에 산다면 벼락부자가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에 이카는 미국에서 백만장자가 되는 사람은 단지 구두닦이뿐 아니라 마피아단들도 있다고 농담을 지껄였다. 바랴는 발끈 화가 나서는 이카에게 입을 닥치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런 얘기가 오간 것을 코스챠 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카가 구두닦이 운운한 것을 그는 절대로 용서하 지 않을 것이니까. 코스챠의 내연의 처라는 사실로 바랴는 예전의 자신과 같은 계급 사람들 을 무시해 왔다. 그녀는 비카 마라세비치나 니나 셰레메티에바, 또 노에미 보다 상류층에 속했다. 바랴는 여자애들이 샀다가 또 서로 교환해서 팔고 사고 하는 외국산 옷을 탐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코스챠가 그녀를 최고급 양장점, 최고급 양화점, 모피상점에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코트는 라비노프가 재단한 것이고 그녀가 입는 모든 옷들은 나데즈나 라마노바, 알렉산드라 랴미나, 바르바라 다닐로바, 심지어는 예피모바가 만든 것도 있었다. 라베네츠는 그녀의 브래지어를 만들었고 아르바트의 코쉬케가 그 녀의 거들을, 타마라 아미로바가 모자를, 바르코프스키와 쿠트마노비치 그 리고 두쉬킨 등이 그녀의 구두를 맞춰 주었던 것이다. 또 그녀가 입는 정 장들은 모스크바에서 최고가는 재단사 주르케비치가 제작한 것들이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밝고 매력적인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바랴는 코스 챠와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는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러나 모든 것이 분명하고 이해가 가능했 던 이전 생활에 많은 원인이 있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분명한 게 없는 것 이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대체 어느 곳으로 떠내려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코스챠는 그녀보다 열 살이 위였지만, 아무 책도 읽지 않 았는데, 심지어 그 유명한 세 명의 머스킷총병 도 읽지 않았다. 그가 아 는 것은 푸쉬킨의 시에서 그것도 네 줄이 고작이었다. 홀로/계산서에 떠 밀려/무딘 큐를 팔에 끼고/이른 아침에 투볼 당구를 친다 라는 그러나 그 는 명석했다. 그가 푸쉬킨을 인용하는 것은 자기가 푸쉬킨과 가까운 체하 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푸쉬킨을 함께 묶어 주는 어떤 것, 그것이 바로 당구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건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일은 얄타의 한 호텔에서 일어났었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아마 소녀시절에 친구 들끼리 야기하던 그 어떤 것을 경험해 보고픈 욕구가 발동했을지도 모르 고, 또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여자가 되고픈 열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정말 가깝다는 친밀한 느낌은 없었고 여 전히 두 사람간에는 거리가 있는 듯했다. 단지 나이 차 때문에 그런 걸까? 해변에 갔을 때 그가 그렇게도 아름답게 수영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녀는 이따금 편안치 못한 무엇을 느꼈다. 그는 좀 뚱뚱하며 체격이 좋고 어깨가 딱 벌어진 체형이었기에 수영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아주 보기 좋았다. 그 의 짧은 다리와 팔, 등은 털로 덮여 있었다. 아니 몸이 온통 털투성이였 고, 가슴엔 독수리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해변에서의 코스챠는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호텔로 돌아오자 그는 방문을 잠그고 그녀를 감싸안고는 목 과 젖가슴에 키스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낮이라 부끄러웠고, 후에 식당 을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갈 때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지금 금방 그 짓을 했대 하고 말할까 걱정스러웠다. 잠자리에 들 때 그녀는 항상 불을 껐는데 그 앞에 옷을 벗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너무 수줍어서 그 에게 애무를 잘할 수도 없었고 안거나 키스도 하지 못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그를 원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새로운 생활은 그녀에게 큰 변동이나 황홀감 같은 것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이전에는 감히 도달할 수 없을 듯이 보이던 것이 갑자기 다 가와서는 마치 그녀가 늘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이나 예사로운 것이 되어 버렸다. 그날 저녁 레스토랑에서 맛보던 그 축제적인 기분만이 여전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예쁜 옷을 좋아했지만, 그래도 옷맞추는 긴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했으며, 공손치 않은 재단사도 성가셨고, 미장 원에서 끝없이 파울을 기다리는 일도 짜증스러웠다. 비록 그곳에서 모스크 바 상류사회는 몽땅 구경할 수 있었지만. 파울의 살롱은 프라그 식당 옆, 아르바트 거리에 있었다. 코스챠가 그 살롱의 미용사를 구해 주었고, 파울의 다른 단골 고객들처럼 바랴도 그의 아파트로 해서 그곳에 들어갔다. 어떤 이유에선지 원래 이름이 파울 미하 일로비치인 파울과 그의 부인, 그리고 매니큐어 바르는 여자 베라 니콜라 예프나는 바랴를 미녀로 뽑았다. 파마웨이브가 막 들어와서 유행하고 있었 지만 파울 미하일로비치는 바랴에게 파마하기를 권하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머리를 망가뜨릴 수 있겠어요? 머리를 파마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여자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당연히 항의 했지만 바랴는 응수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따로 친구모임이 있었는데 코스챠의 옛친구들이었다. 예전처럼 그들은 레스토랑의 한 탁자에 앉아 있었고 그녀만이 그들과 춤을 추었다. 코스챠는 이따금 옆에 있는 당구장에서 잠시 휴식시간에 나와서는 보드카 한 잔과 간단한 음식을 들고, 바랴를 부드럽게 포옹하여 마치 딴 사람들에 게 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자기 부인이고, 여기 이 사람들이 그의 돈으로 먹고 마시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듯 행세했다. 바랴는 료바가 그의 옷을 코스챠의 돈으로 산다는 사실에 의심이 갔다. 왜냐하면 그런 옷은 그 의 재력을 넘어서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료바를 비난할 수는 없 었다. 그는 당구도 치지 않고, 거의 술도 안 마셨으며, 정중하고 신사적이 며 신중한 사람이었다. 직업은 단순한 제도공으로 노동자였다. 코스챠는 고결하고 얌전한 여자를 아내로 맞기를 원한 것처럼, 료바 같은 훌륭한 모 스크바 집안 출신의 교육받은 젊은 사람들을 주변에 필요로 했다. 그것은 최소한 자기 눈에는, 사회에서 자기의 위치를 지탱시켜 주고 명성을 올려 주는 것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 자신은 아무 것도 읽는 법이 없는데도, 다 른 사람들이 읽은 것은 죄다 알고 있었고, 무엇이 유행되고 있고 요즘 누 가 저명인사인지를 훤하게 알고 있었다. 무식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코스 챠는 사람 이름을 기막히게 잘 기억해 내는 그의 기억력과 명석한 머리를 잘 이용하곤 했다. 한번은 레스토랑에서 이카가 수수께끼식으로 질문을 했다. 아주 유망한 영화감독으로 그의 영화 두 편이 자로 시작함, 그의 이름은 뭘까요? 코스챠는 이카에게서 뭔가 알아챘는지, 주위를 돌아보고는 금방 바르네 트 하고 말했다. 코스챠는 영화가 형식적이라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것 은 연극, 오페레타, 발레 등으로 바르네트의 영화는 본 적도 없는데도 불 구하고 이카의 질문에 맨 먼저 답을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린 같이 사냥한 적이 있었지. 그는 무심하게 말을 돌렸다. 그래 그래, 나도 생각나. 이카가 비꼬듯이 말했다. 자네하고 그 남자 가 늑대 한 마리를 어떻게 죽였는지 우리 모두 들은 적이 있잖아. 그 사람은 카찰로우였어 하고 코스챠가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리 고 늑대 한 마리가 아니라 한 가족이었다구. 우린 늑대 굴을 가로질러 가 면서 늑대를 향해 총을 쐈고, 그 다음에 어미늑대, 게다가 새끼 세 마리까 지 해치웠어. 늑대를 본 적 있나? 만약 아직 못 봤다면 동물원에 가서 한 번 구경해 보라구. 물론 쓰다듬어 보라는 충고는 안하겠어. 네 손을 잘라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는 보드카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바랴에게 몸을 구부리더니 조용히 말 했다. 내가 총을 가지고 있다고 야단쳤지, 바랴? 그는 살롱을 둘러보았 다. 사람들은 나하고 같이 사냥가고 싶어서 온갖 짓을 다해. 내일 우리 배우클럽에 가자. 거기서 그놈들이 나한테 얼마나 아첨을 떠는지 한번 보 라구. 그렇지만 그곳은 예술인들만 출입한다던데. 그는 정말로 놀라면서 말했다. 바랴! 나를 믿지 않는구만! 우린 내일 틀림없이 그곳에 갈 거라구. 다음날 그는 바랴가 입을 옷을 결정하는 것을 도와 주기 위해 일찍 귀가 했다. 처음 그녀는 치마와 칼라에 주름잡혀 있는 양장을 입어 보았다. 그 다음엔 공단으로 된 잿빛 코사크 스타일의 코트를 입어 보았는데 그 옷은 금으로 장식된 옷이었다. 그리고는 꼭 끼는 스커트와, 그 다음엔 목이 파 진 드레스를 입어 보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코스챠가 자기에 관계된 모든 일에는 그렇듯 퉁명스러우면서, 자신이 옷을 입는 것을 바라보면서는 그렇 게 오랫동안 찬사를 늘어놓고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에 계속 놀라고 있 었다. 굉장해, 바랴. 아주 우아해. 바랴는 코스챠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거기 모인 모든 유명인사들이 코 스챠에게 굽신거릴 것을 생각하면?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인가? 당구가이 며 사냥꾼일 뿐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자기는 혹시 남편처럼 옷만 번드 르하게 잘 입은 바보로 보이지나 않을까? 그러나 그녀의 염려는 쓸데없는 것이었다. 클럽에는 유명한 사람들, 또 그리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 만, 그들 모두가 서로의 명성을 강조하기나 하듯 모두를 알고 있다는 인상 을 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거기엔 당구대가 두 대 있었지만, 코스챠는 거 의 치지 않았다. 유명한 전문가 자하르 이바노바도 그곳에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었다. 그가 정말로 당구를 치는 것은 돈이 걸려 있을 때로, 자기와 같은 유명한 그의 친구들을 욕먹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 다. 스타로 피메노프에 있는 그는 배우클럽에서 자신의 일로부터 벗어나 그저 즐기면서, 유쾌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고, 바랴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얘기를 나누고 하는 모습이 좋았다. 옛 공작저택의 반 지하에 자리잡고 있는 이 클럽은 품위있는 고가구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벽을 따라서는 8 내지 1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방들이 문이 열려진 채 있었다. 코스챠는 때때로 료바와 리나를 클럽에 데 리고 갔고, 그들은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떨어져 놓여 있는 탁자에 자 리잡았다. 작은 방은 여러 명의 모임에 제공되고 있었다. 코스챠가 일린스 키와 코토로프를 가리켰는데, 바랴는 그들이 삼백만에 대한 재판 이란 영 화에 출연한 배우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또 허미티지에서 열리는 희 극에 자주 나타나는 스미르노프 소콜스키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콧수 염을 기른 대머리 남자 쪽으로 반쯤 문을 돌려 앉아 있었다. 대머리는 입 에다 손을 모아 얘기하고 있었는데 무엇을 주문하고 있지 않으면, 다른 사 람이 듣지 못하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대머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채, 교활해 보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만족한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설립취지를 나타내고 있는 듯한 게시문 하나가 벽에 붙어 있었는데 이렇 게 씌어 있었다. 오직 하나의 진리만을 기억하십시오. 클럽에 오실 때는 부인을 무셔 오십시오. 그리고 부르조아가 되지 마십시오. 어떤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십시오. 그 글의 첫번째 2행은 작가 트레차코프가 쓴 것이고, 나머지 2행은 마야 코프스키가 죽기 직전에 쓴 글이라고 코스챠가 말해 주었다. 리나는 코스챠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사교적인 아 가씨로 누구하고도 잘 지냈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 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줄도 알았다. 바랴는 사실 그녀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오스트로젠카 거리의 <묵상의 수도원> 옆에 있 는 한 조그만 목재가옥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 다는 농담을 하면서, 여태껏 누구도 그 집에 초대한 일이 없다고 했다. 때 때로 그녀는 혼자 이곳에 왔다. 그녀가 누구와 같이 오거나 또 누구와 함 께 떠나는 것이 눈에 띈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11시경에 클럽에 모이기 시작했는데 바로 극장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그리곤 새벽 2, 3시경에 떠나 는 것이 예사였다. 도로변에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댁까지 모셔드릴까요? 코스챠가 리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교태스럽게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말했다. 택시를 잡고 있는 데.... 코스챠는 바랴가 택시 안에 들어가는 것을 도와 주었고 그녀는 좌석에 등을 기대고 편안하게 앉았다. 그들은 스타로 피메노프를 지나 말라야 드 미트로프 쪽으로 가서는 가로수 길을 따라 달렸다. 캄캄하고 텅빈 도시가 바랴에겐 왠지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세상이 불안한 무엇을 숨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따금 클럽에서는 배우들의 모임을 구경하기 위해 위층 공연장에 올라 가기도 했다. 배우들 스스로 풍자극이나 1막 희곡 단편을 쓰기도 했고, 때 로 작가들이 그들에게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모든 것이 재기로 번득 이는 작품들이었다. 집시들과 루슬라노바가 노래를 불렀다. 일반극장에서 는 전혀 들어볼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한번은 세르게이 오브라츠소프가 회색의 눈썹과 콧수염을 한 꼭두각시를 하나 가지고 올라왔다. 청중들은 박수를 터뜨리며 예술협회장이며 그 클럽의 경영자인 펠릭스 콘씨를 쳐다 보았다. 꼭두각시가 그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브라츠소프 는 콘의 목소리로 소비에트 자장가 에 대한 강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콘 이 잘하는 제스처로 방청객에게 타이르는 듯한 손가락질을 하면서 꼭두각 시가 말했다. 소비에트 자장가는 자본주의 자장가와는 다릅니다. 이건 곧 얘기를 깨우기 위해 사용되는 거예요. 투덜댈 여지도 없이 꼭같았다. 그 리고서 그는 꼭두각시 인형을 갖고 나갔다. 이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재주가 있는 것처럼 바랴에게는 보였다. 그런데 코스챠가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클럽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너도 일다시피 거기서 쓸 돈이 충분치 않아. 그는 이 규칙을 단호하게 지켰는데, 바랴를 위해 여성의 역할에 대해 글쓰지 않은 작가들에 대한 재판 이라는 연극을 보기 위해 딱 한번 어겼을 뿐이었다. 판사역에는 나탈 리아 스타스, 피고인에는 카타에프, 올레샤, 그리고 야노브스키, 그리고 검사역을 메예르홀드가 맡았다. 바랴와 코스챠는 알렉세이 톨스토이와 예술가인 데니와 무어가 앉은 줄 에 앉았다. 바랴의 눈에 비카 마라세비치가 띄었는데 그녀를 그곳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카의 오빠인 바짐은 현재는 궤도에 오른 문학과 연극 비평가로 이곳에 정기적으로 나타나서 저명인사들과 환담을 나누곤 했다. 그는 좌석을 찾느라 주변을 곁눈질로 살피며 통로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 다. 그의 손님인 듯한 몇 사람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유리 샤로크 와 레나 부쟈기나였다. 레나가 바랴를 발견하고선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유리와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의 모습을 대 하는 것이 그녀로선 참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곧 신년파티와 그때 벌어진 사샤와 유리의 싸움을 떠올렸다. 그 런데 지금 사샤는 시베리아에 유배중이고, 유리와 바짐과 레나 부쟈기나와 비카 마라세비치는 이런 좋은 클럽에서 즐기고 있는 것이다. 바랴는 생각에 잠겨서 나탈리아 스타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듣지를 못했다. 그녀는 다시 연극에 집중하려고 애썼고 바로 그때 <피고인>이 호 출되고 있었다. 카타에프가 맨 먼저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감기에 걸린 듯한 불편하고 코막힌 소리였다. 청중들은 그의 연기가 별로 뛰어나 지 않는 평범한 연기라고 여겨 마지못해 박수를 보냈고 야노브스키와 그 비슷한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올레샤의 증언에는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키가 크고 매부리코를 한 메예르홀드가 마치 매처럼 올레샤를 덮치자, 작은 올레샤는 온 무대에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번쩍이는 재치로 습격을 받아넘겼다. 바로 그들 앞에 야론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가 알렉 세이 톨스토이에게 몸을 돌려 올레샤의 연기에 대한 평을 하다가 바랴를 멈칫멈칫 쳐다보았다. 재판이 끝나자 그는 바랴에게 얼굴을 돌리고, 주춤 일어섰다. 그는 통로를 막고 서서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뒤의 미녀를 쳐 다보고는 롯의 아내처럼 돌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랴는 그게 재미있어서 웃었다. 영화배우십니까? 야론이 물었다. 어떻게 제가 당신을 보지 못했을까 요? 영화배우가 아니니까 절 모르실 수 밖예요.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녀는 야론이 자기의 웃음을 호감으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다. 이곳의 유명인사들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복잡했다. 코스챠와 리나가 보 이는 열광을 함께 나누기엔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저 배우일 뿐이며 몇 마디 말만 하고는 사라져 버리면 되는 그런 사람들 이다. 그저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을 구경하고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그 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하는 게 더 좋았다. 그런데 왜 그들과 친구가 돼야 한단 말인가? 뭣 때문에? 코스챠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고 그 래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자기가 동행하지 않고는 클 럽이나 다른 공개석상에 가지 못하게 했다. 단 조예나 리나와 영화관에 가 는 것은 허락했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4 배우클럽에서 유리 샤로크를 발견한 후, 비카 마라세비치는 다시는 그곳 에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왜 꼭 봐야 할 일보다 더 자주 그를 보게 되는 거지? 마로세이카에서의 모임들로도 충분한데, 그녀는 그에게 따분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샤로크는 그녀에게 각 사람이 말하는 얘기의 단어 하나까지, 아무런 내용도 없고 해서 전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은 얘기까 지도 그대로 늘어놓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노에미는 아직도 그 일본애인 이랑 산대. 그런데 그녀랑 결혼하기를 원하는 이탈리아 남자가 하나 있는 데 같이 이태리로 가서 살자고 한 대나 봐, ....새로 독일남자 두사람을 어쩌다보게 되었는데 수산나와 카챠라고 하는 메트로폴에서 온 애들과 함 께였어. 그애들은 그 독일사람들이 누군지를 말하지 않더군.... 미녀 넬리 블라지미로바는 집시 폴랴코프와 한 번 마주치게 된 후, 게오르게스라고 하는 불란서의 거상과 결혼했대. 큰 아파트에, 카페트, 고가구들, 자기류 에다 살림살이들을 몽땅 갖추고 산대나 봐.... 비카는 유리와의 만남을 상류사회에 대해 이런저런 잡담을 얘기하는 시 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 잡담이 양복쟁이의 아들을 감동시키리라고 생 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되서 그녀는 그가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에게 별로 무얼 기대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외국인들 얘기를 섞어서 해대면 뭔가 정보를 제공하게 될지도 모르지.... 아니, 그는 그녀로부터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녀는 그가 하는 모든 말과, 자기가 어떤 이름을 내 뱉을 때마다 보이는 그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드디어 짐작되는 게 있었 다. 유지크 리베르만이었다. 그가 관심을 두는 인물은 바로 그 사람인 거 야! 큰 키에 약삭빠른 젊은 남자, 고차원적인 정보자로 여겨지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는 반국가적인 내용의 농담을 거침없이 하고, 자신을 위험 에 빠뜨릴 수도 있는 이야기와 명언을 툭툭 내던지곤 했다. 외국인에 대해 서는 별로 흥미로워 하지 않았으나,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 국가 고위관리 들과는 폭넓은 대인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유리 샤로크는 바로 그 고위관리들과의 관계라는 것 때문에 리베르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고위관리들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있었으므로, 고위관 리가 아닌 사람에 대한 얘기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유지크 리베르만은 굉 장히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테이블 전체의 분위기를 리드하 면서 떠들어대면 모든 사람들이 웃고 거기에 맞장구치고, 결과적으로는 몽 땅 다 말문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녀는 유지크와 더 친밀해지기 시작했고 그 또한 그녀와 즐겁게 어울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이 언제 어디를 갔고 누 구를 만났으며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샤로크가 듣기를 원하는 것이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히 이것이라 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비카가 전하는 것은 당사자인 유지크가 말 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새로운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일은 그녀가 샤 로크에게 유용하다는 것을 보며 주었다. 그녀는 샤로크의 표적이 리베르만이라는 사실을 짐작해 냈다는 것을 그 가 알아차리게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이 사업에 그다지 높은 열정 을 품지 않은 그녀는 그저 샤로크의 눈에 자기가 바보스럽고 지각없는 듯 이 보이는 게 더 좋았다. 그럼으로 해서 그녀에게서 더욱 심각한 어떤 것 을 요구하지 않게끔. 샤로크와의 이 교묘한 게임을 하면서 그녀는 자기의 주요 관심거리를 그 로부터 지켜갔다. 즉 건축가인 옛친구 이반 블라지미로비치가 그녀에게 소 개해 준 일류 건축가 그룹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파이롯트와 하려한 결혼을 하려던 꿈을 오래 전에 포기했다. 파 이롯트는 소련에서 새롭게 떠오른 영웅 중의 하나지만, 도대체 어디서 그 런 파이롯트를 구할 수 있으랴? 그리고 그들과 시골에 사는 하찮은 부인들 까지도 이제 모두 당위원회 요원이거나 지도체제에 속해 버렸다. 스탈린 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또 그녀가 그런 사람과 결혼에 성공했다 치더라 도, 그런 영웅들에겐 미래가 없다. 츄코트카에 파이롯트로 파견될 뿐이니 까. 또 외국인과의 관계 역시 일시적일 뿐이다. 에릭은 어떻지? 물론 아주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특별한 건 전혀 없는 평범한 외국인이지 않은가? 매 일 목욕을 하고 면도를 하고 또 속옷을 갈아입어 그에게서는 항상 좋은 향 기가 났다. 그러나 그에게 또 뭐가 있지? 그는 여자에게 청혼한 적이 여태 껏 없었는데, 아마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리가 없는 사람 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우아한 그의 어머니가 내년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 고, 그리고 그녀의 나이는 벌써 스물 넷에 육박하고 있었지만 비카는 에릭 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비카에겐 강력한 미래가 보장된 남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건축가로 소비에트궁의 왕실 건축가 중 한 사람이어TRh 건설 에 관한 주요 기획가이며 스탈린의 수석 브레인이었다. 그는 나이도 그렇 게 많지 않은 마흔 네 살이었지만 보기엔 더 젊어 보였고 훤칠한 키에 마 른 편이었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기도 한 유럽인인 것이다! 그 사람이라면 상대가 될 수 있겠지! 나는 장화를 신은 파이롯트가 아닌 세계 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와, 유명한 교수의 딸이자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자란 모스크바 토박이인 지적인 여성, 그녀가 그의 아내가 된다. 샤로크도 또 쟈코프도 그런 결합에 대해 감히 뭐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공연히 욕을 먹게 될 테니까. 감히 그랬다가는 남편이 스탈린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이해는 합니다. 요세프 비사리오노비치 씨. 제게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감시받도록 할 수는 있을 겁니다. 허나 아내의 친구들이 나를 감시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 다음 샤로크와 쟈코프는 그 보잘것없는 일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고 아주 나타나지도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건축가에게는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오뎃사 출신으로 그와 함께 이태리에서 살았었는데, 바로 그 이태리에서 그녀는 아주 세련되어져 서 멋쟁이가 되었다. 큰 코에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그녀는 길고 가는 담배를 피웠고, 또 근시라서 눈을 가늘게 EM고 보곤 했다. 그녀는 어디에 고 남편과 동행하는 법이 없었다. 20년을 살아오면서 서로가 지겨워진 것 이다. 그도 하루종일 자기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냈고, 이따금은 바에도 그 곳에서 지냈다. 또 수하노보 근교에 있는 건축가들의 집에서 잠을 자는 적 도 많았고 해외에 나가는 일도 빈번했던 것이다. 그가 부인을 포기하도록 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의 관계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비카에게 푹 빠져 있었다. 가끔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열정적인 시간을 갖곤 했으니까 그녀는 젊고 아름답고 경험이 있고, 그리고 능력있는 여자였으며 그 도한 강렬한 열정 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고, 최소한 그럴 수 없을 때는 항상 전화로라도 사랑을 나누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비밀로 지켰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그녀의 옛 친구이고 한때 불꽃 튀기던 사이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또 그녀 가 그와 함께 노빈스키 보울레바르드 가 플레바코 변호사의 옛저택 안에 있는 건축가의 집에 드나든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곳은 보통 여자들 은 잘 가지 않는 곳이었다. 레스토랑이 있긴 했으나 삼류에 지나지 않아 만나는 장소로는 별로 각광을 받지 못했으니까. 건축에 관계된 전시회가 그곳에서 열리고 했지만 거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지? 따라서 비카가 그 관계를 숨기는 일은 아주 쉬웠다.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 고마웠다. 그녀는 그가 참가한 건 축 기획에 대한 토론회에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와 같이 가서는 거기서 오 가는 쟁점과 이론들을 주의깊게 경청했다. 이런 토론회에는 중년의 여성 건축가들도 참가했는데 그들은 비카의 신 경을 건드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를 신경쓰이게 하는 사람들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참석하는 잘 차려입은 자그마한 여자 도안사들이었다. 그러 나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일류 건축가로서, 특히 건축가협회장으로서 여자 건축가나 여자 보조원은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비카는 그녀의 역할을 완전하게 해냈다. 그 건축가에게 있어 요즘은 건 축의 여러 경향, 학파, 학설, 그리고 전통 사이에서 고민하는 어려운 시기 였다. 이태리에서 수련을 하고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현대 서구건축에 익숙해진 그가 이끌어 간 학파는, 고전적인 전통에 기초하면서 한편으로 현대의 빌딩, 특히 고층빌딩 건축술을 참작하는 그런 학파였다. 바로 그 점으로 인해 공격을 받고 있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가 설계한 건물, 디자 인, 그리고 이론을 놀라운 개혁이라 여겼으므로 그의 이론을 비판하는 사 람들에게도 자기의 소견을 거침없이 피력해 내곤했다. 그녀는 그를 천재라 고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5백 년 후에나 각광받는 그런 천재가 아니라 현존하면서 진가를 인정받는 그런 천재인 것이다. 그의 손을 거친 모든 것 이 바로 천재적인 작품이 되어 있지 않는가! 그녀는 역할을 아주 잘 선택한 것이고 그것을 능란하게 수행해 가고 있 었다. 건축가에게 한번도 반대해 보거나, 다투거나 변덕스럽게 행동한 적 이 없었고, 또 그녀 자신이 비난을 받아 본 적도 없었으니까. 위대한 사람 과 관계하려면 차원 높게 처신해야 하는 거지. 만일 그녀와의 데이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경우, 그는 항상 전화를 걸어 염려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혼자서 뭘 할 거지? 그러면 그녀는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걱정마세요, 좀 쉬죠. 그리 고 책도 좀 읽고, 친구들하고 영화도 보죠. 내일 아침 전화 잊지 말고 해 요. 물론 그녀는 이들 중 어느 하나도 이행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었 으니까. 양장점과 양화점에도 둘러야 하고 유지크 리베르만과 샤로크도 만 나 봐야 한다. 이런 일정한 스케줄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고, 거기엔 한 치 의 오류가 있을 수 없으니까. 그가 그녀를 충실하고 헌신적인 친구로 여기 게 해야 하는 것이다. 코사크 부족의 후손에 속하는 한 교수의 딸이 아닌 가! 딱 한번 그녀가 자기를 자제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은 고급예술박물관에서 벌어졌는데, 그 박물관에서는 소비에트궁의 설계를 위해 여러 기획안들이 경합을 벌이며 전시되어 아침부터 밤까지 사 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관람객의 긴 행렬이 볼혼카 거리에 이를 정도였으 니까. 해외에서 온 사람들을 포함한 그 건축가들은 각기 자기 작품 옆에 서 있었는데, 대부분이 부인과 함께였으며 사람들의 질문에 댑해 주거나 tjfaudg까지 곁들여 해주고 있었다. 비카는 매일 그곳에 갔고 그녀의 건축 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 세계에는 그녀의 친구나 아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혹 누군가가 자기와 그와의 관계를 눈치챌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그녀는 더 욱 깍듯하게 행동했다. 그곳은 떠들썩하고 생기가 넘쳤으며 끊임없이 손님이 드나들었다. 단 한 사람 박물관에 전혀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건축가의 부인 이었다. 그녀를 비난하지 말아요 하고 그가 말했다. 이미 내 작품을 지난 이십 년 동안 충분히 보아왔다구. 이젠 구경하는 게 죽기보다 싫을 정도로 지겨 울 거야. 그렇다 해도 이건 당신의 최고 걸작이에요. 바로 당신 인생의 설계라구 요! 비카는 지지 않았다. 내 설계가 성공해서 상을 받게 될 때, 그때 그 여잔 나타날 거야. 그 가 농담조로 말했다. 네, 고렇군요! 그때서야 나타나서는 당신 옆에 나란히 서서 당신의 승 리를 함께 하겠군요! 그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기만이 그의 옆에 서서 그의 승리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비카는 곧 자기의 말이 유치하다고 느껴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난 어떤 것을 요구한 게 아네요. 당신이 성공을 거둘 때만 당신 옆에 선다는 것, 그건 마치....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죄송해요. 당신 마 음을 몹시 상하게 한 것 같군요. 그 다음날 아침 건축가가 그녀의 잠을 깨웠다. 전화를 걸어 오늘은 폐막 관람날이니 오지 말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곤 다시 후에 전화하겠다고 말했다. 폐막관람이란 스탈린과 여러 정부인사들이 전시회를 보러 온다는 뜻이었 다. 비카는 온종일 전화 옆에서 기다렸다. 저녁이 다 되어 갈 때야 건축가가 전화를 했다. 지금 가고 있어. 그가 말했다. 그는 샴페인 한 병을 가지고 도착했다. 그것은 그의 승리, 그들의 승리 를 뜻하는 것이었다. 스탈린이 그의 설계를 맘에 들어했던 것이다. 그들은 아침이 되자 수하노보에서 2주일간을 보내기 위해 떠났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5 스탈린은 소치에 있는 별장 베란다에 고리버들로 만들어진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태양 쪽으로 얼굴을 향한 채. 그는 소치의 그 집을 사랑했 다. 그 집은 자신의 창작품이었다. 주치의들이 남부에는 가을에 가는 것이 좋다고 권했는데도 그는 남부에서 보내는 여름이 좋았다. 도대체 의사들이 뭘 알아? 어린 시절에도 그는 1년 중 이 시기를 몹시 좋아했고 또 고리스 치헤의 폐허터를 기어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은 비잔틴 황제들에 의 해 산 위에 지어진 고대의 요새였다. 그가 다쳐서 팔을 못쓰게 되어 버린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비록 해변도 없고 초목도 울창하지 않은 곳이지만, 소치는 그에게 고리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탁자 위에는 오래 전에 세 상을 뜬 솔로뵤프 클류체프스키, 또 현대 소비에트의 역사가인 포크로프스 키의 책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또 소련 역사 교과서에 대한 교안 이라는 제목의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즈다노프가 바로 그것의 기획 책임자였다. 그것은 스탈린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그해 스탈린은 고르키에서 근무 하던 즈다노프를 중앙위원회 서기로 임명했다. 그것은 즈다노프가 고르키 자동차 공장의 신축을 비롯해서 그 지역을 성공적으로 다스려 나가고 있었 기 때문이 아니었다. 또 38세인 즈다노프의 나이가 젊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른 서기들도 그와 같은 또래는 많았으니까. 흐루시초프나 바레이키스, 그리고 에이헤는 40세였고 카타에비치는 41세, 카바코프는 43세였던 것이 다. 즈다노프는 지성인이었다. 그는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이었으 나, 루나찰스키처럼 모든 종류의 예술을 다 아는 체하는 그런 타입은 아니 었다. 그는 자기의 박학을 으시대지도 않았고 외래어를 섞어가며 과시한다 든가, 부하린처럼 이론가입네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지성인이 었다. 지도체제에는 바로 그런 지성인이 필요했고 즈다노프가 거기에 적임 자였다. 이제서야 그의 첫 번째 임무수행이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작 가동맹>의 발족, 이건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이번에 열리게 될 전당대회 야말로 당과 지식인을 연결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지식인계층의 원동 력이 되는 작가들은 항상 인민들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주장해 왔다. 결과 적으로 지식인들을 제거하거나 무릎을 꿇려야만, 인민들을 길들일 수 있었 다. 최선의 방법은 지식인층 중 일부는 완전히 제거하고 그 나머지는 무릎 을 꿇리는 것이었다. 레닌은 권력투쟁에서 지식인들에게 의존했다.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지 식인들이란 예로부터 이설을 만들어 내는 표본적 계층이었고, 그들의 독립 적인 사상이야말로 권력투쟁에 유용한 무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권력 에 오르기만 했다하면, 더 이상 지식인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 금의 무기는 독립적인 사상이 아니라 일치된 마음이니까. RAPP(프롤레타리 아 작가동맹)와 그밖에 다른 단체들은 지식인을 분열시켜 그들이 여러 가 지 다양한 방법으로 사고하게끔 만들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민이 똑같 이 생각하도록 하는 합일이고, 그 일을 담당할 만한 것이 바로 작가동맹인 것이다. 막심 고리키는 그 동맹을 이끄는 간판격 인물이 될 것이다. 실지로 그는 쁘띠부르조아의 자유주의에 강한 호감을 갖고 있는 좌파 사회민주주의자였 다. 레닌은 항상 그를 조심스럽게 대했는데 그렇게 한 것은 옳았다. 고리 키는 명성이 있고 또 서방의 주요 작가들과도 관계가 있었다. 소련에서 벌 어지는 일련의 일들에는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망 명자로서의 한때 r의 삶은 해외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진실한 작가는 자신의 모국에서 살다가 죽는 그런 자여야 한다.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기까지 기다릴 수 있었고, 그 후에 프랑스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망명작 가들은 소련 내에서 작품을 출판할 수 없었고 국내에 거주할 수도 없었다. 아르카디 아베르첸코의 사기극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부닌, 그 가 이룩한 것은 또 뭐가 있는가? 63세에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도대체 그 게 그에게 무슨 덕이 된단 말인가? 누가 부닌을 읽기라도 하는가? 그는 사 랑하는 파리에서 쓸쓸하게 죽어갈 것이다. 그들 모두는 죽을 것이고 러시 아 문학에 남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리키는 생존하기를 원했고 자 기의 기념비가 조국에 세워지기를 소망했다. 그는 자기의 기념비를 갖게 될 것이며 또한 전집도 출판될 것이고, 꾸준한 인기 속에서 외국의 특허권 인세도 따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도 그의 작품은 대단한 호평 속에서 팔 리고 있다. 그는 국내 작가들에게서뿐 아니라 서방작가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는 진정한 작가이며 재능과 경험이 풍부하고, 무엇보 다도 사회주의의 태동에 기여한 바 있는 <레라피온의 형제들>인 페딘과 치 호노프가지도 그를 추앙했다. 그러나 RAPP는 <프롤레타리아> 시인들을 가 장 우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그들을 문학의 저 구석에 처박아 버렸다. 그런 글줄이나 쓴다는 엉터리 시인들이 이룰 수 있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스 탈린 시대에 그들이 남겨둘 수 있는 문학적 기념물이 도대체 있을 것인가? 데미얀 베드니는 어떻지? 그가 남긴 것이라곤 세간에서 훌륭하다고 말하는 그의 도서관이 유일한 것이다. 유능한 마야코스프스키는 그의 시 또한 유 용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치에 더 가깝지 않던가. 한때는 스탈린까지도 시를 쓴다고 해댄 적이 있었다. 신학도였던 그는 이베리아 의 편집자인 일랴 차프차바드제에게 그의 시 아침 을 보냈다. 그리고 소셀로라는 예명으로 기입했는데, 본명으로 시를 쓰는 것을 신학교 에서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프차바드제는 그의 시 중에 대여섯 편 을 실어 주었는데, 그 시들에는 고리에 대한 회상, 아버지에 대한 기억, 아테니 거리의 추억,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친구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만 나고 하던 모임에 대한 회상이 주제였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 자기의 운명이 시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의 시 가 어디에 유익하단 말인가? 그는 그 시들을 결코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 다. 그러나 일랴 차프차바드제가 그의 아침 을 극찬한 것은 기억하고 있 었다. 장미가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가만히 제비꽃을 포옹한다. 높이 구름 위에 종달새는 지저귄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후인 1916년, 그 시는 여전히 소셀로라는 가명으 로 야콥 고게바쉬빌리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돌연 나타났다. 어떤 작품이 교과서에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은 그 작품이 그에 필적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인이 되려고 태어난 것은 아 니었다. 시란 영혼을 부드럽게 정화시키는 것이기에 시인은 투쟁가가 될 수 없었다. 산문, 그것이 투쟁에 적합한 형태였고 그의 글은 혁명에 큰 공 헌을 하게 되었다. 그는 꽤 많은 글을 썼는데 그것들은 다비드, 나메라드 제, 치지코프, 이바노비치, 베소쉬빌리, 카토, 코바 등의 여러 가지 익명 으로 발표되었다. 그는 코바를 당의 별명으로 채택했었는데, 그것은 그 발 음이 좋아서였다. 코바는 카즈베기의 소설 아버지를 죽인자 의 주인공이 었다. 그러다 그의 가명이 경찰에 알려지자 더 이상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없어서, 다시금 여러 가지 이름을 총망라해서 쓰게 되었는데, K. 스테핀이 라고도 했고, K. 스탈린, K. 솔린이라고도 했다가 1913년 마침내 K. 스탈 린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온 세상이 그를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시 쓰는 일을 포기했고 따라서 작가가 되지는 않았지만, 독서를 좋 아해서 폭넓게 책을 읽어 댔다. 어린 시절 자기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이 무엇인지는 기억해 낼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그 후 감옥생활과 여러 번에 걸친 유배생활 중에 읽었던 책들과 섞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혁명가란 직 업은 독서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남겨 주었으며, 또한 독서가 필수적인 작 업이었다. 신학교에서의 교육은 고전적인 고등학교 교육과 흡사했다. 거기에서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성서 히브리어, 불어, 영어, 독일어를 가르쳤다. 그러 나 그는 외국어를 잘 해내지 못했고, 또 추방시절에도 다시 한번 공부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외국어 공부란 그에게 시간방비라 느껴졌던 r서이 다. 그러나 러시아어는 아주 잘 습득했다. 신학교에서의 수업은 러시아어 로 행해졌고 그는 5년 동안을 그곳에서 공부했다. 아직도 그는 그루지아 액센트를 쓰고 있으며 그것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액센트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디에다 쉼표를 찍고, 한 단어에 강세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러시아인들을 너무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2류, 즉 2등급 작가의 작품은 읽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에 유익하 단 말인가? 그는 고전을 읽었다. 고전이야말로 러시아 혁명가에게 필요한 게 아닌가. 고골리, 살티코프, 쉬체드린, 체호프, 고리키 - 이들이야말로 투쟁에 이용할 수 있고 토론에도 유용하며, 투쟁에 가담하길 원하는 사람 이라면 읽어두면 좋을 그런 작가들이 아닌가! 그는 즐라토브라츠키나 레비 토프, 카로닌, 심지어 네크라소프나 니키틴, 그리고 수리코프 같은 농민작 가들까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읽지 않았다. 그들은 농민을 동정하지만, 농민은 자신들만 알 뿐 어느 누구도 동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위대한 예술가였으나 체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인간을 이상화하면서, 설교나 훈계만을 늘어놓아 그의 예술에 오점을 남겼다. <러 시아 혁명의 거울> - 러시아 지성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말인 들 못했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철학자가 아니다. 톨스토이처럼 그 또한 사회와 국가 구조의 메커니즘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톨스토이와는 달리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을 이상화하지는 않았다. 그는 인간의 보잘것없음과 그 무의미의 본질을 너무나도 잘 알았고, 또 고통의 원리를 설파했던 것이 다. 그 원리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 는 지루했다. 그의 글은 서투른 데다 예술적인 면이 결여되어 있었다. 모든 러시아 작가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은 푸쉬킨이다. 푸쉬킨은 모든 것 을 이해하는 사람이었고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깊 이 꿰뚫고 있는 표트르 대제의 이미지는 얼마나 훌륭한가! 그는 쇠사슬도 묶인 뒷다리로 딛고 서서 러시아를 올려놓았다. 라고 말하다니! 또 그의 창작품의 극치인 보리스 고두노프 는 어떠한가. 우리의 어리석은 인민은 잘도 속아넘어간다 그들에겐 기적이나 신기한 것을 보고 놀라는 것이 행 복한 일이다. 그러나 사내놈들은 고두노프를 자기들과 동등한 것으로 기억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교활하고도 단호하다면. 그 얼마나 기막힌 묘사 인가! <어리석고 속기를 잘한다.> 그래 이건 바로 인민의 속성이다. <교활 함과 단호함> 그것은 인민이 가진 제도의 속성이다. 그들은 그를 자기들 과 동등하게 기억할 것이다. 이건 바로 그들의 적들의 속성을 일컬은 것 이 아닌가. 그는 젊은 시절에 보리스 고두노프 란 작품에 대해, 그 중에 서도 특히 위선자 오트레피예프의 이미지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성 의를 벗은 수도사, 탈주한 수련사, 그리고 겨우 스무 살밖에 안된.... 작 은 체구에 넓은 가슴, 다른 쪽보다 짧은 팔, 연갈색 머리카락. 스탈린이 푸쉬킨을 읽은 것은 신학교에서 쫓겨난 뒤 통계사로 근무하던 물리관측소 에서였다. 사람들은 그가 마르크스의 운동을 전개하다가 신학교에서 추방 되었다고 말했다. 또 그 자신이 마르크스주의 운동을 펼치다가 티플리스 신학교에서 추방당했다 고 사람들이 의혹스러워하는 부분에 대해 어떤 변 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쫓겨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곧, 그 의 어머니가 이그나타쉬빌리에서 번 돈을 매달 그에게 보내 주었는데도 그 는 전혀 학비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신학수업을 끝내고 싶지 않았으 며, 성직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품지 않았다. 그 당시 그는 이미 마르크스 주의자 단체에 가담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마르크스주의 때문에 쫓겨났 다는 해석은 바람직한 해석이었다. 그것은 곧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 시켜 주면서 자연히 혁명의 동기 제공에도 기여했으니까. 그는 관측소에서 보리스 고두노프 를 재차 읽었다. 성의를 벗은, .... 탈주한 수련사, ....스무 살밖에 ....작은 체구, 넓은 가슴, 다른 쪽보다 짧은 팔, 연갈색 머리카락.... 그 당시 스탈린은 20세로서 수료를 1년 남 겨 놓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의 신학적 경력을 포기해 버렸다. 그 또한 몸집이 작고 가슴이 넓었으며, 그의 머리카락 역시 연갈색이었고, 게다가 한쪽 팔은 불구가 아닌가. 그는 이제 소년도 아니고 부질없는 몽상가도 아 니었다. 물론 자신과 오트레피예프를 비교해 보려 하거나, 그의 실패에 매 혹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외양적인 유사성이 그에게 충격을 준 것이었다. 그는 또한 오트레피예프의 패배를 꿰뚫는 푸쉬킨의 통찰력에도 감동을 받 았다. 경솔하게도 자기의 큰 비밀을 그 믿을 수 없는 폴란드 여자에게 발 설해 버리다니, 별처럼 반짝이는 눈에 또렷한 의식을 가진 그는 모든 정치 가들이 밟아야 하는 그 방법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아름다운 모스 크바에서 나는 나의 적들에게 소중한 그 길을 보여 줄 것이다. 그는 정치 가가 아니라 낭만적인 모험가였다. 그는 의지, 허영심, 저돌성, 모험정신, 승리에 대한 추진력 등 모든 자질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자질을 통 합하는 능력이 없었다. 성공하지 못한 정치가의 운명이 바로 그런 것이었 다.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것을 잡는 것보다 더 힘드는 일이다. 오트레 피예프는 권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만일 드미트리 오트레피예프가, 아버지 라고 주장하는 황제가 이룬 업적의 10분의 1만 해냈더라면 이런 일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스탈린은 그 당시의 자기 생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기억할 수 없었지만, 지금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자기가 그들과 외양이 흡사하다는 것에 큰 인상을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세속적인 권세의 정점에 도달 한 바 있는 탈주 수도사의 운명에 감동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인상도 그의 뇌리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대신 다른 역사적 인물들 이 그의 상상력에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의 정신 어느 후미진 뒷편에는 그 이미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가 소피야 레오느라도브나 페트로브스카야라고 하는 바쿠에 사는 폴란드 귀족을 만났을 때, 인식되지 않는 그 무엇으로 머리에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수염도 깎지 않고 시무룩하며 과묵하고 그러면서 도 강한, 가장자리에 장식이 된 승마바지 같은 걸 입은 프롤레타리아 지하 혁명가인 그를 좋아했다. 한번은 그녀가 나가고 없을 때에 그녀의 집을 방 문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돌아와서 그에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옆집 아가씨가 이렇게 말하던데요. 소피야 레오느라도브나, 무섭게 생긴 어떤 남자가 당신을 만나러 왔었어요 라고 말예요. 그러자 그는 싱긋 웃었다. 내심으로 그녀의 묘사가 기분이 좋았다. 무섭 게 보이고 싶었으니까. 소피야는 온화하고 감수성이 강한 여자였다. 그녀는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인생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었다. 그녀는 사회주의혁 명가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민주주의자인 그와 논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성 당원들이 지닌 강인함을 소유하지도 않았다. 또 자 기의 사상을 그에게 슬쩍이라도 알려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와 반대 로 일체의 정치적인 논쟁은 피했다. 그것은 어떤 불일치도 그의 기분을 상 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를 괴롭히지 않는 유일한 여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그녀가 폐결핵으로 죽으면 서 끝나고 말았다. 물론 그는 오트레피예프가 아니었고 그녀도 마리나 미니스제크가 아니었 다. 그런데도 지금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최초의 충동들이, 무의식 속에 은밀하게 잠자고 있던 몇 개의 이미지에 의해 자극된 것이라고 느끼고 있 었다. 즉 폴란드 귀족이자 성의를 벗은 무명의 수도사, 그리고 분명하지는 않지만 꽤 원대한 계획을 지닌 지하혁명가의 이미지가 그것이었다. 9월, 쉬호보 묘지에서는 테러단에 의해 살해된 석유공장 노동자 한라르 사파랄리예프의 장례식이 있었다. 장례식과 함께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 다. 공장의 경적이 일제히 울리는 동안 그는 샤우미얀과 에누키드제, 아지 즈베코프, 오르드조니키드제, 드자파리드제, 그리고 피올레토프와 함께 행 렬 속에 끼어 행진해 갔다. 그는 연설을 했고 그곳에는 소피야도 함께 있 었다. 그런데 반년 후에 바로 그 묘지에서 그녀를 장사지냈다. 그러나 이 번에는 시위도 없었고 공장의 경적도 울리지 않았다. 그녀의 이웃들과 폴 란드의 친지들만이 따라 걸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관을 무덤 속에 내리고 그 위에 흙을 던지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는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 들, 아무것도 할 말이 없는 그 사람들과 같이 돌아가는게 싫어서 혼자 뒤 에 남았다. 그리곤 새로 올린 무덤 위에 앉았다. 바위투성이인 쉬호보 곶은 바다 쪽까지 뻗쳐 있었고 유정이 수도 없이 많이 들어선 비비-에이바트 위로 높이 솟아 있었다. 노동자들은 전혀 보이 지 않고 채유기만이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기름을 쏟아내고 있었다. 봄은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태양빛은 이미 강렬하게 뜨거움을 발산해 냈다. 그 는 카스피해 해안에 솟은 쉬호보 곶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앉아서, 만과 수없이 많은 유정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가 좋아했던 유일한 여자 소 피야를 묻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의 슬픔이 그렇게 애닯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바탐과 쿠타이시에서 감옥생활을 지냈고 시베리아 동부로 여러번의 유배생활을 지내야 했으며 그 다음 유배지에서 탈출해야 했다. 많은 동지드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케츠호벨리는 옥사했고, 출루키드제도 사망했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 갔고, 인생이란 것이 이런 과정 속에서 한순간에 불과하듯, 모든 인간 또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오직 존재하는 것이라곤 오늘뿐이었으나 그것 또한 순간에 불과하지 않던가. 그러나 혁명 가에게 있어서 오늘은 참된 삶의 순간이었다. 혁명가만이, 그리고 최고권 력자만이 인생의 하찮음과 무의미성을 깨닫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중 권력자만이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란 것은 권력투쟁에서 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생명이란 것은 승 리자의 몫이 되어 버리니까. 그런데 이제 그가 승리자인 것이다. 그는 권 력을 보존할 수 있으며 따라서 생명도 지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혁명가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했고, 그 역시 위험을 무릅쓰고 일했 지만 항상 조심해야만 했다. 바쿠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해안을 따라 유정 옆을 통과하여 걸어서 마을로 들어갔다. 지친 그는 길가에 앉아서, 바로 지금처럼 태양을 향해 얼굴을 쳐들었다가는, 다시 길 저편으로 유정들과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혁명가를 이런 가시밭길로 몰아붙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상인가? 많은 사람들이 사상을 가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혁명가가 되 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류애인가? 인류애란 오히려 열정가들이나 성 직자, 톨스토이계 사람들의 것이 아닌가? 아니다. 사상이란 것은 이제 더 이상 혁명가에게 근본원리가 되지 못한다. 보편적인 행복, 평등 그리고 형 제애, 새로운 사회, 사회주의, 공산주의 - 이 모든 이념들은 결국 투쟁을 향해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선전문구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혁명가가 되는 것은 성격의 문제이다. 압제에 대해 항거하려는 성격, 그것은 인간이 자기의 인간성을 표명 내지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다섯 차례에 걸쳐 체포 되고 유배당했었다. 유배지에서 탈주했고, 숨어 지내면서 굶주린 채 밤을 꼬박꼬박 세웠었다. 이 모든 일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서였는가? 자기들의 똥밖에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농민들을 위해서인가? 아니 면 <프롤레타리아들>, 곧 더럽고 무식하고 멍청한, 눈 먼 사람들을 위해서 인가? 바쿠에서 로츠칠드스가 바일로프에다 지은 노동자 초소에서 여러번 밤을 보냈다. 그때 <노동자계급>에 대해서 충분히 보고 알게 되었다. 그는 바쿠에서 이미 당 활동가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볼셰비키 지도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논박하려는 여러 가지 노력들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가 초기에 입막음질을 다 해버렸으니까. 스탈린은 안락의자에서 일어났다. 벌 한 마리가 귓전에서 윙윙거리고 있 었다. 그가 쫓아 버리려 하자, 벌은 탁자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곤 재떨이 쪽으로 기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클류체프스키의 책으로 벌을 내려쳤다. 하찮은 것! 그는 그루지아 액센트로 말했다. 하찮은 것! 그는 다시 안락의자에 앉아 다시 그 시절에 에누키드제가 쓴 별 볼일없는 하찮은 책 한 권에 생각을 집중했다. 에누키드제는 돌연, 니나 라는 암호로 바쿠에서 만들어지던 지하신문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했었다. 그 신문은 레닌의 지령으로 나오게 되었고 그의 아내인 크루프스카야에 의해 전달되었으며, 신문 자체는 크라신, 에누키드제, 그리고 케츠호벨리 에 의해 제작되었다. 에누키드제에 따르면, 자기 이외엔 아무도 그 신문에 대해 모른다고 했다. 스탈린 또한 그에 대해 모른다고 했다. 그것은 곧 그 들이 자기에게 전혀 알려준 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라신의 처세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로츠칠드스와 만타셰프스에서 일한 바 있는 조용한 성격의 전기 기술자였다. 레닌은 그에게 절대적으로 비밀을 지킬 것을 명령했던 것이다. 스탈린은 크라신한테는 화를 내지 않 았다 어쨌든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 아닌가. 케츠호벨리도 또한 죽었 다. 그리고 혁명의 운명은 그런 사소한 신문 하나에 의해 결정되지는 못했 다. 그 당시 일은 그렇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제 사태는 달라졌다. 스탈린은 바쿠나 티플리스, 또 트랜스코 카서스에서 그가 세운 업적에 대해 어떤 면류관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 에겐 참된 당의 역사, 곧 그의 지도력에 대한 관심과 권위에 봉사할 수 있 는 역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바쿠에 있었을 때, 어떤 지하신문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몰랐 다면 어떻게 그곳에서 당을 이끌고 있었노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 만 약 그곳의 책임자였더라면, 그 신문에 대해 안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 다. 이 사실을 부인한다는 것은 곧 레닌의 직속 부하로서의 그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아벨 에누키드제 동지는 도대체 그런 사실을 이해하 지 못한 것인가? 그가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스탈린 동지는 니나 와 전혀 무관하다고 밝히는 책을 출판했을까? 무엇이 그에게 갑작스레 역사를 쓰도록 만들었을까? 바로 그가 크레믈린의 안전을, 또 자 기의 생명을 위탁한 그 사람이었다니! 크레믈린의 장관실에는 왜 늙은 당 원들만 들끓는 것인가? 그들이 안전경호원을 선택하는 데 도입한 원칙이 바로 그런 것인가? 만약 보안담당관들이 그들의 직무를 정치적이라고 여긴 다면,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게 아닌가. 정치적 견해는 가변적이므로, 개인 의 동정심이라는 것조차도, 단지 반감으로 내딛는 한 단계라 하여 믿을 수 없는 것인데, 경호원이란 모름지기 사냥개처럼 주인에게 헌신해야만 하는 것이다. 진짜 경호원이란 바로 그런 식이어야 한다. 그는 딱 한 가지만 알 아야 하는 것이다. 작은 태만과 사소한 실수로 인해서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특권과 함께 목숨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바로 그런 사람을 경 호원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에누키드제 동지는 한때 트로츠키 의 열차를 담당한 바 있는, 곧 트로츠키계 사람인 페테르손을 지휘관으로 뽑았던 것이다. 그들이 왕실 전복을 모의했던 걸까? 에누키드제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그 작은 책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자기의 책으로 자신을 노출시키다니! 소책자를 만들겠다는 그런 저열한 충동은 분쇄되어야 했다. 당연히 아벨 은 한탄해 하고 후회하면서 부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후회한다는 것은 곧 그의 정치적인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계속 살고 죽는 것은 그의 친척이나 아끼는 사람들을 제외한 누구의 관심거리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친척이나 가깝던 사람들조차도 등을 돌렸던 것이다. 누가 그의 변호를 담당해야 할까? 옛날 바쿠 그룹의 일원이라면 더 바랄 게 없지만,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오르드조니키드제는 한때 바쿠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는 그곳의 발라 흐닌 지역 내 라마노프라 불리는 근교의 한 작은 집에 살면서 샴시 아사둘 라예프 유전의 의료관으로 일했었다. 스탈린은 그 작은 집을 너무도 잘 기 억하고 있었다. 그 집에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세르고가 한 방을 사용했 고 다른 방은 응접실로 쓰여졌다. 그 집은 또한 훌륭한 외관을 하고 있었 는데, 그것은 누구라도 의료관을 보러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세 르고는 그곳에서 5년간 일하면서 바쿠로 왕진을 다녔다. 그야말로 진짜 증 인이며 적합한 증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쁘다는 이유를 대면서 회피하려고 했다. 에누키드제의 친구였던 그는 그 친구에게 불리한 증거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비쉰스키는 어떤가? 그는 철두철미 악당근성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전 생애는 멘셰비키로서의 삶이었다. 1908년 체카에 협력하는 바쿠 연합 조직자들의 비공식재판이 발라흐닌에 있는 <인민의 집>에서 열렸는 데, 그들의 대변자로 나온 사람이 바로 비쉰스키였다. 그는 선동가이며 미 사여구의 대가였다. 1927년 여름, 그는 아르바트 의용군의 수뇌가 되었고 레닌을 찾아 체포하라는 명을 공포했다. 그리곤 그 공고문에다 어리석게도 라고 사인을 했다. 10월 혁명이 끝난 뒤, 스탈린과 회견을 한 그는 울면서 자기의 뜻을 바꿨다. 그러나 한때 그들이 바일로프 감옥에 서 한 방을 쓰면서 차입물품을 나눠 쓴 적이 있었다는 것은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추억거리로 자기가 용서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하찮은 물건들에 대한 비밀을 지킴으로써 그는 그의 생 에 대해 보상하기고 작정한 것이다. 1920년에 스탈린은 그를 당에 합류시 켰고, 1925년 모스크바 대학의 학장이 되도록 도와 주었으며, 1931년에는 러시아 연방의 수석 검찰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지금 바쉰스키는 U.S.S.R.의 부검사장으로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에서 무시를 당하고 있었 기 때문에, 바쿠 시절의 증인으로는 무용한 인물이었다. 이제 키로프가 남아 있었다. 그는 혁명 이전에는 바쿠에 가본 적이 없었 지만, 그후로 5년 동안 아제르바이잔의 장으로 있으면서 문서국을 출입하 곤 했었다. 그는 바쿠의 당조직에 대해 철저한 연구를 했다. 그는 교육을 제대로 받은 데다 지나치리만큼 정확한 인물이었다. 그는 에누키드제의 소 책자에 대해 답변자가 돼야 했다. 그에겐 당에 무용한 역사해석 같은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당의 지도체제의 권위를 보강하는 해석을 지지할 권리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구두로는 스탈린 동지를 극구 찬양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못했다. 그게 바로 키로프를 소치 에 소환한 이유였다. 그를 이곳에서 일하게 해서,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 어 가는지를 보게 해야지. 그들 셋은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세 사람 모두 음악을 좋아했다. 스탈 린은 단순히 듣는 것만을 좋아했고, 즈다노프는 피아노를 칠 줄 알았으며, 키로프는 음악애호가였다. 그는 오페라 구경을 가서도 특별석에 앉지 않고 아래층에 있는 객석에 앉아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민주주의자인가를 과시 했다. 키로프는 항상 지성인으로 보이길 원했다. 젊은 시절에, 기술학교만 다녔던 그는 아마츄어 연극단에 가입하기도 했다. 세르고의 집에서든가, 아니면 키로프의 집에서였든가, 아무튼 어디에선가 젊었을 때의 키로프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키로프의 아내 마리아 르보브나 마르쿠스가 그에 게 보여 준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단추를 채운 제복에, 뺏지가 달린 모자 를 쓴 학생이 있었다. 뺏지에는 망치와 렌치가 서로 교차한 모습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다니던 기술학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그 제복이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제복으로 보였다. 그러나 키로프는 소치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을 핑계로 댔다. 의사가 미네랄네 보디에 있는 온천장에 가서 치료하라 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람? 가슴앓이라니, 누군 속타 본 적이 없나? 그것을 병이 라 해야 하는가? 이리로 오라구. 우리가 자네를 치료해 주겠네. 와서 함께 일도 좀 하고. 제가 뭐 역사에 관해서 아는 게 있어야지요. 나는 뭐 역사에 대해 아는 게 있는가? 자, 그러니까 자네와 내가, 그것 에 대해 함께 일해 보자구. 잠시 동안 그를 머물게 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야지. 사실 그 들은 이전에 함게 있어 본 적이 없었다. 혁명 이전에도 만난 이이 없었고, 내란 동안에 두 번인가 세 번 정도 만났을 뿐이었다. 그들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진 것은 키로프가 아제르바이잔의 당조직 책임을 맡고 전당 대회와 중앙위원회 모임을 위해 직무상 모스크바로 왔을 때였다. 오르드조 니키드제가 그를 아주 좋게 평했던 것처럼 그는 인상이 좋았다. 그는 해외 에 나가 본 적이 없는, 말하자면 망명자가 아니었고, 정통적인 당의 일꾼 이었으며,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그리고 부하린 - 부하린과는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라 주장하지만 - 에 대해 요지부동의 원수관계였 다. 스탈린은 그를 진출시켰다.10차 전당대회 때 그는 중앙위원회의 후보 였거나 투표권이 없는 부류였었는데, 12차 전당대회에서는 정식 위원이 되 었다. 1930년 그는 정치국에 들어갔다. 그를 레닌그라드로 보내, 오랫동안 존속하던 의견의 불일치, 불화 그리고 반대의 근거지를 분쇄하라는 임무를 부여한 것은 스탈린이었다. 키로프는 이런 희망을 충족시키지 않았다. 그 는 그 도시를 때려 부수기는커녕, 그 반대로 그 도시의 지도자가 되어 값 싼 인기를 쟁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소비에트 연방 전체에서부터 인 기를 누리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키로프는 스탈린과는 대조적으로 온화하 고 착하며 친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공산당 정치국에서 류틴 의 사형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또 스미르노프와 탈마체프, 그리고 에이 스몬트의 처형도 반대했었다. 그리고는 정치국의 다른 멤버들을 자기쪽으 로 끌어들였다. 몰로토프와 보로쉴로프까지도 흔들거렸다. 그러나 라자르 카가노비치만은 그들 모두를 총살하자는 데 있어서 흔들리지 않았다. 피정복자에 대한 아량은 위험한 것이다. 적은 그들의 아량을 결코 믿을 리가 없다. 그들은 그것을 어떤 정치적 계략이라 여길 것이고, 기회만 포 착되면 단번에 공격할 것이다. 순진한 사람만이 이와 다르게 생각할 것이 다. 키로프는 위험한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물질적인 이윤 을 주장했는데, 곧 인간이란 물질적인 안정을 누리게 되면, 더 이상 희생 을 감수한다든가, 열광적이 된다든가 하지 않게 되며, 속물이나 하찮은 부 르조아가 되어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인민의 최대 에너지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생성될 수 있다. 고통이란 파괴를 위해서도, 그리고 창조를 위해서도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은 인간을 신에게로 이끈다. 인민은 수세기 동안 기독교의 기본 원리로 양육되었고, 그것이 그들의 살과 뼈를 이루고 있다. 그것을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란 지상낙원은 높이 있는 신비의 천국보다는 훨씬 호소력이 있다. 비록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인민에게는 그들의 고난이 단지 일시적이며, 그들이 그 위대 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또 당국은 인민이 뭣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고 그들을 관료들로부터 보호하며 오히려 더 높 이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야만 된다. 최상의 힘은 <모두 알며, 모두 지혜 로워지고, 모두 강인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그는 지금까지 어떻게 생각해 왔던가? 인민들의 식량에 대 해서였던가? 식량배급제의 폐지에 관해서던가? 그건 벌서 결정이 내려졌고 배금제는 1월 1일부터 폐지될 것이지.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 라? 아 맞다! 그 에스토니아인 정원사, 아르보 이바노비치와 나웠던 대회 에 대해서였지. 아르보 이바노비치는 보로쉴로프 요양소에서 당국의 별장 으로 이송된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시골출신으로서 틀림없이 믿을 만한 사 람이라고 보고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러시아 여자와 결혼하여 일생을 소 치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최고 정원사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스탈린은 금 세기 초엽에 육칠백 명의 에스토니아인들이 발틱지방으로부터 이주해 와서 수후미 지역에 정착했다는 것과, 또한 서너 개 되는 에스토니아인 마을이 발틱해안에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곳 코카서스에서 에스토니 아사람을 만나 본 적은 없었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지방 주민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원예를 하고 소릴 치면서 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기르는 소는 재래종보다 좀 기르기 힘든 품종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에스토니아인들 이 소치에도 정착했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아르보 이바노비치는 50세가량 되어 보였다. 그는 광대뼈가 튀어 나오고, 연갈색의 머리에 옅은 색깔의 눈을 가진 땅딸막한 사람이었다. 모든 에스토이아인들처럼 그 또한 조끼와 자켓을 입고 다녔지만, 넓은 바지는 코카서스 식으로 장화 속에 집 어넣어 입었다 그는 액센트를 섞은 러시아어를 썼고,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발음으로 말하기도 했다. 바로 전날 그는 꽃을 꺾고 있었는데, 꽃을 사랑 하는 스탈린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르보 이바노비치가 뭐라고 투덜대는 소리를 듣고서 스탈린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르보 이바노비 치의 말은, 기계에서 아내가 물건을 사는데 점원이 무게를 속여서 거스름 돈을 사기쳤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당연히 당서기에게 보고하여 엄중히 다스려야만 했다. 러시아 장사꾼들은 예로부터 사기꾼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 제는 국가의 것을 빼앗는 것이 두려우니까 대신 인민의 것을 탈취하고 있 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뻔히 알 수 있었으나 그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스탈린은 그들을 대신해서 뭔가를 하기 로 한 것이다. 가계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인민의 요구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스탈린은 베란다에서 방으로 돌아갔다. 큰 비서책상에 토프스투하가 앉 아 있었다. 스탈린이 소치에 데리고 온 사람이었다. 역사가들이 이곳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의 부소장 인 토프스투하 같은 지식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역사를 아는 사람으 로서 현 시점에서 당이 어떤 종류의 역사를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 었다. 또한 토프스투하는 오랫동안 스탈린의 비서로 일했기 때문에, 현실 에서 주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데리고 온 것은 물 론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결핵으로 고생하는 그에게는 태양 아래서 따 뜻하게 지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유익했기에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는 마 르고 꾸부정했으며 기침을 토할 때면 이마를 찡그리곤 했다. 은사들은 그 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보고했다. 의사들은 그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 고 보고했다. 충성스런 사람인데, 딱한 일이었다. 중앙위원회에 보낼 법령 초안을 준비해. 스탈린이 말했다. 손님에게, 아니 소비자에게 무게를 속여 파는 상술에 대항하는 투쟁에 관해서 말야. 그리고 거스름돈 속이기에 대항하는 투쟁도 더해....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게 낫겠어. 거래시의 소매가격 위반에 대한 사례들을 수집하여, 소비자에 대한 당의 보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밝히도록 해야 해. 이런 사례들을 통 하여 상거래 인민위원이자 소비자단체 연합회장인 미코얀과 무역동맹 중앙 협의회 회장인 셰베르니크는 문책을 받아야 해. 이것은 엄격한 법령이 되 어야 해. 중앙집행위원회는 무게 속이기와 거스름돈 사기 죄과에 대해 십 년형을 선고해야 할 거야. 사례를 모으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토프스투하가 말했다. 그럴 경우라면, 이렇게 간단히 써. 사례가 중앙위원회로 수집되고 있 다.... 아냐, 중앙위원회는 위반사례들을 소지하고 있다.... 그렇게 말 야. 스탈린은 베란다로 다시 나가서 안락의자에 앉았다. 태양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는 다시 키로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를 후계자라 고 부른다고? 그렇지만, 자기, 스탈린은 키로프보다 불과 7년 연장이지 않 던가. 어떻게 감히 후계자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먼저 죽을지도 모 르지 않는가? 더군다나 코카서스 사람들은 장수한다던데. 결국, 그들이 생 각하는 것은 죽은 후의 계승이 아니라, 사망 이전의 계승이다. 말하자면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거다. 로베스페에르를 단두대로 보냈던 식의 전통은 필요치 않았다. 로베스피에르의 치명적인 실수는 그런 전통을 고수 한 데 있었다. 나폴레옹이 만든 그 전통은 어디까지나 옳은 것이었다. 그 는 위대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그의 모든 결단에도 불구하고 허풍쟁이 변호사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일전에 키로프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었을 때, 그들은 모두 오르드조니키 드제의 집에 모였다. 스탈린도 그곳에 왔고, 세르고와 키로프, 보로쉴로 프, 그리고 미코얀도 있었다. 꼴 보기 싫어서 세르고가 일부러 초대하지 않은 카가노비치도 그곳에 있었다. 자, 라자르, 세르고가 우리 모두를 식 사에 초대했네. 하고 스탈린이 그에게 얘기했던 것이다. 그는 스탈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키로프는 저녁시간 내내 자기가 얼마나 수학과 물리학, 화학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기술학 교를 졸업하면서 상장을 받았고, 그런 다음에 엔지니어가 되려고 톰스크 기술연구소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우연히도 그는 그곳에서 이 반 부쟈긴을 만났다. 부쟈긴 또한 그와 동일한 경로를 밟은 사람이었다. 그들 두 사람의 우정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시절부터 싹튼 것이었다. 변변찮긴 하나 그래도 기술교육을 받은, 또한 기술에 관한 일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키로프야말로 산업계통을 운영하기에 적임자였 다. 스탈린은 만일 그가 원한다면 산업을 기계설비, 화학, 건축 등 여러 분야로 나누게 할 생각이었다. 복합된 경제체제는 계속적으로 분산되어야 하며, 인력의 배치상황도 거듭 새로워져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정치국원이 자 중앙위원회 서기인 키로프 동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에 대해 수치스러워 할 것은 전혀 없었다. 국가경제의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산업을 이끌어 가는 게 어찌 불명예가 되겠는가. 더욱이 오늘날과 같은 산업화시 대에 말이다. 그런데도 키로프 동지가 동의를 거부한 채 모스크바에 오려 고 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혼자 남아 자기만의 독자적인 노 선을 지키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6 사샤는 부티르키 감옥에 있을 때나 이곳으로 유배되는 도중에도 이렇게 절망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부티르키 감옥에서는 재심을 받아 석방되리라 는 기대 속에서 살았다. 유배될 때도 어떤 목표가 있었다. 곧 유배지에 도 착하여 그곳에 정착한 뒤, 형기가 끝나기를 끈기있게 기다린다는 것이었 다. 희망은 그의 인간성을 지켜 주었고, 목표는 그를 살아갈 수 있도록 지 탱하는 힘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는 희망도 목표도 다 사라지고 없 었다. 그는 그저 마을사람들이 분유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 을 뿐이었는데, 태업죄로 고발당한 것이었다. 알페로프는 그 모든 사태를 냉혹한 논리로써 설명해 주었다. 알페로프 역시, 이반 파르페노비치가 한 말을 폭로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어느 순간에라도 그를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참으로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모스크바 에서 오고 있는 불어, 정치학, 경제학, 철한 서적들이 도대체 뭣에 소용이 있단 말인가? 누구에게 그 학문을 설파하며 누구와 더불어 불어로 얘기하 랴? 수풀 속에 있는 곰들과 하겠는가? 알페로프가 그를 혼자 있게 하는 것 으로 사건을 끝낸다 하더라도, 이런 곳에서 과연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 갈 것인가? 펠트부츠에 밑창 다는 것을 배울 수도 있겠지. 그것이 그의 운 명일 수도 있으니까. 그는 여지껏 자기가 알고 있던 것을 몽땅 잊어버렸 다. 성장하면서 가졌던 꿈들이 바울린에 의해, 로즈가체프에 의해, 그리고 쟈코프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인민들을 조롱하고 짓밟아 뭉개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생존 하려면 강한 손과 굽히지 않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파멸 한다고 그는 믿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언제라도 인간은 파멸될 수 있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의지는 결국 더 강력한 의지에 의해 박살 나 버리고, 나의 손은 권력을 잡고 있는 더 강한 손에 의해 움켜잡히게 되 고 만다는 것을, 생존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강한 의지와 힘에 복종해야 하 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고 환경에 순응해야 하며, 마치 산토끼처럼 수풀 너머로 코를 삐죽이 내밀기를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그는 육체적으로 자신을 보존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삶이 과연 살만 한 가치가 있는 건가? 사샤는 그의 방에 앉아 책을 읽으려 했다. 마당에는 노인이 도끼질을 해 대면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가 입은 제복과 단조로운 도끼질 소리는 사샤의 권태감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었다. 잠시 후 노인이 마당을 떠났는 데도, 사샤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책을 던져 버렸다. 앞으로 이 런 생활을 견뎌나갈 수 없을 것 같았고, 또 지금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는 침대에 누워 잠속에 빠지려했으나 꿈속에서도 비참감은 그를 떠나려 하 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심장 박동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도대체 알페로프는 그에게서 뭘 원하는 것인가? 그가 베푼 자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슨 이유가 있어 그를 그곳에 남겨두고자 한 것이다. 논 리적으로 따지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사샤에게 불리 한 논거를 작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를 모즈고바로 되돌아 가게 해주었고 어쩌면 케쥐마로 이동해서 그곳의 기계부서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기까지 했다. 그리곤 보상으로 어떤 것을 요 구하지도 않았다. 사샤를 이겨 보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그를 파 멸시키려는 음모인가? 아마 그는 사샤로 하여금 자기에 관한 투서가 들어 와 있고, 또 소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이제부터 어떤 평화로운 생활도 꾸려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그를 무지 속에, 또 정신적인 억압 속에, 그리고 지속적인 공포 속에 빠뜨림으로써 그를 허 무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려고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절망 적인 사태인가. 노부인이 창문으로 그를 불렀다. 밥 먹으러 갈 거유? 지금 막 양치질을 했어요. 그래서 안 가려구요. 그는 대답했다. 그는 이틀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고 뜰에 앉아서 노인을 도와주기도 했 다. 지다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모욕당하는 것을 목격한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를 위로하려 할 것이고, 그것은 그의 모욕감을 더 부채질할 뿐일 테니까. 어쨌든 그는 모 든 것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무관심했다. 모든 걸 끝장내 버려야 해! 이 사악한 무리에게서 결코 도망치지는 못할 것이니까. 그렇지만 어머니가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어머닌 아마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청천벽력과 같은 일을 어떻게 견디시겠는가. 그는 계속 살아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들이 살아 있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음을 알게 해야 하는 것이다. 3일째 되는 날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그를 보러 왔다. 무슨 일이야? 통 안 보이던데, 어디 아픈가? 괜찮아. 알페로프가 뭐라고 했지? 내가 콜호즈의 권위를 전복시키려 한 파괴자임을 증명해 보이더군. 그 것도 아주 논리적이고도 확신에 차서 말이야. 브세볼로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놀랄 게 없어. 그는 훈련된 철학 가야. 그의 위치 때문에 바보같이 되지는 말라고, 그는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야. 그의 어깨엔 아마도 세 개인가 네 개인가의 훈장이 있을 거야. 칸스크의 수뇌들보다 더 많은 수지. 그가 제복을 입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 그는 해외로 나간 적도 없이 그냥 여기서 끝내고 있지. 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자면 미래에 우리의 동지나 동료가 되는 건 아닌 지 두렵다구. 아니면 자기의 자리에 정착할 수도 있지. 모든 건 너와 나,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고도의환경에 의해 좌우되겠지. 어쟀거나 그는 너 에게, 자기가 콜호즈 의장의 진술을 갖고 너를 먼지로 갈아버릴 수도 있다 는 자기의 힘을 과시한 거라구. 넌 분유기를 망가뜨렸고 콜호즈 의장을 바 보라고 불렀어. 그가 고소한 내용이 바로 그것 아냐? 맞아. 자 이것 봐, 난 널 안심시켜 주고 싶다구. 바로 일이 있던 그날, 그들 은 분유기를 케쥐마로 갖고 갔어. 너가 일러준 그대로 했다구. 다시 분유 기는 돌아왔고 아주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어. 가서 네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어. 그럴 마음은 전혀 없어. 그렇담 좋아.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말야. 사샤, 다시는 그 일로 인 해 상처받지 말라는 거야. 아마 그 사람들 태업고소를 기각했을 걸. 걱정 말라구. 걱정하는 게 아냐. 그저 넌덜머리가 났을 뿐이지. 이해해. 그런데, 내가 좀 더 솔직해지길 원한다면 한 가지 더 말해 줄 게 있는데. 그럴까? 그래. 사샤, 자네는 의심할 것도 없는 인간이야. 참다운 인간이지. 자네에게 의례적인 찬사를 하고 있는 게 아냐. 난 사실을 말하고 있어. 진실되고, 사상이 고결한, 소비에트 인간이 되는 건 아주 훌륭한 일이지. 그런데 자 넨 지금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하고 있어. 소비에트 인간이 행동하는 식대로 처신하려고 한단 말이야. 그렇지만 사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이곳 사람들은 자네를 소비에트 사람으로 보지 않아. 오히려 반소 비에트인으로 보고 있다구. 자네가 거리를 걷고 있다가 분유기가 고장난 걸 알게 됐다고 해봐. 자넨 그 기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곧장 가서 그걸 수리하지. 그런데 콜호즈 의장과 이 지역 관리들은 그 문제를 다르게 보지. 왜 그는 분유기를 갖고 야단이지. 자기 일도 아니면서. 분명히 그 기계를 파괴시킬 음모일 거야. 적이란 언제라도 기회만 틈타면 뭔가 파괴 시키고 더러운 속임수를 부리니까 라고 생각할 거야. 난 자네가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알기를 바래. 알고 있어. 사샤가 대답했다. 자넨 이 사회의 추방자가 되길 원치 않지. 그러나 자네의 위치를 유념 해야 하네. 자넨 콜호즈 의장을 바보라고 불렀는데, 그건 대실수였어. 만 약 그를 속으로만 저주했다면, 그것 때문에 일어날 일은 없네. 그러나 바 보라는 말은 모욕이고 수치야. 그건 우월감에서 나오는 거구. 그 말은, 거 는 영리하고 그는 바보라는 거야. 알페로프가 자네를 다른 마을로 보낸다 는 암시를 하지는 않던가? 맞아, 그랬어. 그래서? 거절했나? 누르지다 가지조브나 때문인가? 난 받아들이지도, 거절하지도 않았어. 그에게 혼자 결정하라고 말했지. 난 그에게 대해서 어떤 복종상태에 있기를 원하지 않아. 그의 빚을 지기는 싫다구.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아마도 자네 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네. 자네에게 어디 다른 곳이 더 편안할 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여기서 자네는 이미 집주인의 아들과도 한판 벌였 고, 또 그 의장과의 사건도 있으니까 자네 평판이 그리 좋진 않지. 그러나 그 모든게 지나가 버릴 거라고 믿어보세. 지금 자네는 신경과민으로 고통 받고 있어. 사샤, 자네의 신경은 팽팽히 긴장되어 서 있다구. 마치 용수철 처럼 말이야. 자넨 체포, 감옥, 이송, 유배, 그 다음 모즈고바, 그 방, 그 리고 이번의 말썽. 이 모든 걸 겪었어. 일이 돌아가는 게 마치 용수철이 나사를 한번 더 돌렸을 때 딱 끊어져 버리는 것과 같아. 지금 우리 모두가 그런 걸 겪으며 살고 있네. 중요한 것은, 그게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네. 그러나 자넨 강인해. 자넨 나름대로의 소신도 있구. 이 모든 일들 로부터 배우게나.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 다시 말하자면, 그들과 싸 우지 말고 그리고 선생하고의 관계에 있어서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거야. 그들은 지금부터 자넬 감시할 걸세. 단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야. 그 일 로 또 자네를 집어넣을 수 있지. 그는 사샤의 침대로 가 기대더니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자! 이젠 그만하면 됐어! 일어나게! 우리 나가서 카드놀이나 한 판 하 자구. 난 잘 못치는데. 뭐라구? 카드는 우리의 위안물이야. 일반 죄수들은 블랙 잭을 치고 우 린 프레페렌즈를 치지. 면도를 하게, 온통 수염투성이군. 그리고 옷을 갈 아입고 가는 거야. 지금이 자네가 이 지방 지식인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구. 사샤는 가고 싶지 않았으나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강권했다. 문든 사샤는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서 그들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마슬로프는 54세 가량으로 우울하고 삶에 찌든 얼 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작년에 솔로브키 섬에서 이곳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태도로 보아 해직관리였음이 분명했다. 우린 자네가 안 오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 가 사샤와 함께 그곳에 도착하자 그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직도 당신에겐 우리를 이길 충분한 시간이 있는 거예요.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기분좋게 맞장구쳤다. 게임을 하는 동안 마하일 마하일로비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게임을 재촉해 대면서, 모두에게 움직임이 서투르고 늦 다는 비난을 가했다. 사샤만을 제외하고서. 사샤는 다른 곳, 적대적인 세 상에서 온 사람이었고, 그는 사샤를 무시했던 것이다. 사샤는 미하일 마하 일로비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변덕스럽고 남의 허물을 들추 는 그런 사람들을 싫어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에게 아버지를 생각나 게 했다. 이건 성격문제이지, 환경탓이 아니야 라고 그는 스스로를 다독 거렸다. 네 번째 게임주자는 표트르 쿠즈미치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보르네즈 지 방에 있는 올드 오스콜이란 마을에서 온 전직 상인이었다. 그는 나림에서 형기를 시작하여 이곳 앙가라에서 끝내 가고 있었다. 60세 가량 되어 보였 고, 땅딸막한 체구에 넓은 어깨와 볼록한 가슴을 하였으며, 회색이 희끗희 끗 섞인 짧은 검은색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의 바지 끝은 구두 속에 들어가 있었고, 오래 되고 낡은 자켓을 입고 있었는데 팔꿈치 있는 부분과 접힌 소매 부분이 닳아서 윤이 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자기의 불행을 기꺼이 얘기해 댔다. 그들이 거래를 금지해서, 장사를 집어치워 버렸다구. 그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해제시켰을 때, 난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팔았지. 큰 낫, 작은 낫, 쇠스랑, 모든 종류의 쇠붙이 철제기구, 모두 내가 어렸을 때 다뤄 봤던 연장들이었어. 마을에 조합이 하나 있었는데도 농민들은 모 두 나한테 몰려왔다구. 창고에는 모든 물건이 가득했었어. 농민들이 무엇 을 필요로 하는지를 난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사태가 어떻게 변해 버렸는 지 아나? 세금조사관이 나타나더라구. 그 다음에 또 다른 조사단이 오더 군. 그리곤 세금을 내라는 거야. 또 하나 새로운 과세가 생겼고, 그 다음 이 자진납세제도였어. 감옥에 있을 때는 내게 금을 요구하더군. 도대체 내 가 어디서 금을 찾아낸다고 생각했을까? 내 금은 철물 속에 있었다구. 철 막대기, 등급으로 나누어진 철, 끈으로 된 철, 지붕에 쓰이는 철 등, 내가 본 금이란 십 루블짜리와 오 루블짜리 황제얼굴이 들어 있는 동전이 고작 이었다구. 표트르 쿠즈미치는 슬픈 기색도 없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날 심문하는 검사단까지도 금을 요구하는 거였어. 뭐 좋아. 난 장사꾼에 불과 하니까. 나야 빼앗기고 박탈당해도 괜찮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뭣 때문 에 그런 일을 당해야만 하냔 말야? 걔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선택이나 했 어? 그런데 아이들은 살아가기를 원했다는 거야. 자기 또래들과 샅이 소년 단이나 콤소몰에도 입단하고 싶어했지. 그런데 어디서고 쫓겨나는 거야. 막내 알료쉬카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인데 모스크바로 훌쩍 떠나버리더 니 어떤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지. 그리곤 편지에다 이렇게 쓴 거 야. 나는 이렇고 이래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 버리겠습니다. 이제 당 신과는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라고. 그것 참 마음 아프더군. 키워서 교육 시키고 먹이고 했는데, 이거 날벼락도 유분수지. 당신과의 관계를 끊겠습 니다 라니, 그렇지만 그애가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겠나? 아무것도 없지. 그리고 어쨌든 그놈은, 장사는 해롭고 이기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었 으니까. 그놈이 말하더군. 사람은 노동에 의해 살아야 한다고.... 노동이 라. 그래 네가 한번 기름 몇 통이랑 보습, 아니면 십 갤론들이 못통을 이 고 가게 주위에서 왔다갔다. 해봐.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 테니.... 좋아! 알료쉬카는 초급대학에 들어갔지. 농경학자가 되려고 결심 을 한 거야. 땅을 파는 일꾼 말야. 모스크바에 있는 어떤 호스텔에서 그 녀석이 묵고 있었는데, 지 에미는 아들이 굶고 있다고 밤에 잠을 못자는 거였어. 난 그녀석에게 삼십 루블을 보내 줬지 그런데 그 녀석이 그걸 되 돌려 보내면서 그건 이데올로기의 문제라고 말하더군. 그래 좋다구. 이데 올로기의 문제라면, 그래 앉아서 굶어 죽어라 죽어! 근데 그 말이 에미 마 음을 찍어 놓았고, 해서 에미가 이웃사람들한테 시켜서 그 녀석에게 음식 을 좀 갖다 주게 했다네. 뭐 돼지비계 한 덩어리랑 집에서 만든 파이 몇 조각이었지. 이웃사람들이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알료쉬카는 마침 그곳에 없었다는 거야. 해서 그녀석 의자에다 꾸러미를 놓고 왔다는구먼. 거긴 모 든 사람들이 침대 옆에 자기 의자를 갖고 있대나 봐. 알료쉬카가 와서 그 꾸러미를 봤지 이거 누가 가져온 거야? 하고 동료들한테 물었겠지. 네 고향에서 온 사람들이 가져왔다 고 그들이 설명해 줬어. 그런데 그는 이렇 게 말한 거야. 아냐, 이 꾸러미는 우리 보모가 보낸 거야. 다시 돌려보내 야겠어 라고. 그랬더니 다른 녀석들이 그러더래. 왜 그걸 돌려 보내, 부 농의 비계덩어리 좀 같이 먹어치우자구. 그애들은 젊고 건강하고, 게다가 굶주리고 있었으니까. 고기덩어리와 파이를 늑대처럼 해치웠어. 그랬는데, 그들 중에 한 놈이, 글세 파이를 함께 먹은 그놈이 당에다 밀고를 한 걸 세. 알료쉬카가 보모한테서 온 음식을 받아 먹었으므로 그가 부모와 관계 를 끊었다고 한 말은 거짓이라고 말야. 그래서 결국 알료쉬카는 콤소몰에 서 추방당했고 물론 다니던 학교에서도 쫓겨나서는 예전에 다니던 공장으 로 돌아가고야 말았다구. 그녀석 자기의 가족을 버리더니만, 자기가 합세 하려던 바로 그 사람들한테 버림을 당한 거지..... 그 얘긴 우리 모두 백번은 들었네. 미하일 미하일로비치가 말을 중지 시켰다. 왜 그래? 이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건데. 표트르 쿠즈미치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아마 이 사람에겐 재미있을 걸세. 그런데 부모님은 살아 계시 오? 네, 살아 계십니다. 사샤는 대답했다. 적잖이 외로우시겠는데? 그분들을 무엇 때문에 괴롭혀 드려야 하지? 그분들이 남아 있고 싶으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아들은 유 배중이고, 시베리아까지 따라와 봤자 고생만 되지 않겠어? 쓸데없는 걱정을 해 주고 있구만. 미하일 미하일로비치가 비난하듯 중 얼거렸다. 자네가 그녀석에게 짐꾸러미를 보내 줘서 그의 인생을 파멸시 킨 거라구. 그는 자네 양식 안 받아도 죽지 않아. 다른 학생들도 다 잘 지 내고 있잖은가. 그리고 그가 자네와 절연한 것은 잘한 짓이었어. 우리 시 대는 끝났다구.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다 라는 말 모르나? 우린 모두 기관 차 바퀴 밑에 깔려 죽은거야. 이 사상에나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걸세! 그러면 아들이 아들이 아니고 애비가 애비가 아니란 말이군. 분명하지, 미하일 미하일로비치는 여전히 성가시다는 듯이 말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 이건 하나님 말씀이지. 그런데 이제 아무도 신을 필요로 하지 않아. 사람들의 종교는 평등이라구. 그리고 그 종교는 어디에고 뻗쳐 나가고 있어. 그들은 세계를 혁명으로 들끓게 만들 거구,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되는 거야. 당신한테서 세계혁명 이야기는 이력이 나도록 들었고. 브세볼로드 세 르게예비치가 대화에 끼어들면서 말했다. 볼셰비키 그들 스스로가 그걸 포기해 버렸지요. 국가, 그게 바로 러시아인들의 종교라구요. 심지어 군주 를 하나님처럼 섬기기까지 하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복종하며 어떤 종류의 자유도 원치 않아요. 자유란 인류의 대학살이란 형태를 취하니까. 인민은 통제를 원하죠. 난 스테판 라진이나 에멜리얀 푸가체프를 원치 않아요. 차 라리 레닌이나 스탈린이 낫지. 우리가 여기 있는 게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맞아요. 만약 우리가 라진이나 푸카체프 쪽이었다면, 포플라나무에 매 달려 있겠죠.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계속했다. 볼셰비키가 러시아 를 구원했어요. 그들은 대단한 권력으로 러시아를 지켜왔죠. 만약 우리가 소위 말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면 러시아는 산산조각나고 말 거예요. 새 독 재자는 러시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러시아, 그 위에 모든 찬양과 공경, 그밖에 무엇이라도 신이 부여하지 않은 게 없다구요! "국가란 국민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어. 그런데 자네의 국가는 국민에 대 항하여 싸우는구만. 미하일 미하일로비치가 말했다. 국가는 나하고도 싸 우고, 자네하고도, 또 표트르 쿠즈미치와도 싸우지. 또 국가는 자기가 의 존하고 있는 농민과도 싸워, 심지어는 그 자신과도 싸우고 있어. 나 또한 러시아인이야. 전적으로 러시아편인 사람이지. 그러나 이런 식의 러시아를 찬성하는 건 아니라구. 앞으로 되야 할 그런 러시아인 거죠.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웃었 다. 마하일 마하일로비치와의 만남은 사샤에게 그 어떤 뚜렷한 희망이나 도 움을 던져 주지 못했다. 그는 그런 식의 토론, 어떤 방향변화에 대한 찬반론 논쟁에 너무나 익숙 해 있었고, 이제는 신물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표트르 쿠즈미치의 이야기 만이 어떤 인간적인 감동으로 다가왔다. 신경제정책은 정말로 그런 말할 수 없는 혹독함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던가? 친구들이, 엄마가 만들어 준 파이 몇 조각을 먹도록 설득한 것 때문에 한 소년의 인생을 파멸시켜야만 했던 것인가?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 다.... 권태로움에 한몫 더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의 관심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어머니로부터 단 한 통의 편지도 받아 보지 못한 것이다. 수요일이 되면 유배자들은 앙가라 강둑에 모여들어 우편배가 오기를 기 다린다. 그들의 단조로운 삶에 가장 큰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강에서는 농부의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수영을 한 어린아이들은 물 밖의 냉기에 몸 을 부르르 떨면서 기어 나오고, 그리고 유배자들은 강 저편 안개 낀 곳을 응시하며 둑 위를 어슬렁대며 걷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아주 작은 점 하 나가 강 하류 쪽으로부터 발견되면 흥분이 일기 시작하는 것이다. 과연 우 편배인가 아니면 다른 배인가? 등까지 내려오는 후드가 달린 천막천으로 된 레인코트를 입은 우편배달부가 <모즈고바>라는 딱지가 붙은 자루 하나 를 밖으로 던지고 나서 편지를 나누어주고 또 부칠 우편물을 접수한다. 사샤 역시 강으로 내려가 그들과 함께 우편물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가 받은 것이라곤 보리스 솔로베이치크가 보낸 편지 한 통이 전부였다. 망명 중인 나폴레옹에게 이것이 봉투에 적힌 주소였다. 가엾은 보리스, 아직도 낙관주의에 가득 차서 농담을 하고 있구나, 그는 자기를 프레다 있는 데로 이송시켜 주거나 아니면 프레다를 자기에게로 이송해 줄 것을 탄원해 두었 던 것이다. 그러나 사샤는 모스크바에 계신 어머니로부터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5월에 칸스크에서 어머니에게 전보 한 장을 보냈고, 그때 첫 번째 편지도 띄워 보냈었다. 칸스크에서 답장을 받는 데 1주일 걸린다고 하고, 보구차니로 가는 우편물이 떠났을 때 편지가 칸스크에 도착한다고 가정한 다면, 칸스크에서 또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 된다. 그 다음엔 보 구차니에서 캐쥐마로 주소가 수정될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하겠지. 그러면 모두 합쳐서 3주일이면 되지 않은가. 그런데 그는 이미 한달 이상을 이곳 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그를 안심시키려 했다. 원래 첫 편지는 항 상 굉장한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어. 자넨 자네 나름대로의 계산법이 있고 우체국은 그들 식의 계산법이 있는 거야. 모스크바에서 편지가 오려면, 아 무도 그 이유는 모르지만 2, 3주가 걸릴 수도 있다네. 편지들이 다른 가방 속에 던져질 수도 있고, 우편마차가 고장날 수도 있지. 또 우편물이 어떤 마을조합에 떨어져서 그중 절반이 유실될 가능성도 있고 말야. 그리고 만 일 우편배달부가 가방을 앙가라에다 떨어뜨려 버렸다면, 자넨 평생을 기다 려야 할 걸세. 그 다음은 어떤가. 우리의 친애하는, 지겨워서 죽을 지경인 알페로프 동지도 있지. 우리 편지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지도 모 로는 일이거든, 만약에 어떤 편지가 특별히 그에게 재미있다면 말야. 그 문학적 매력 때문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그렇다면 그 사람 한달 동안 그 편지로 시간을 보내거나 영원히 가져 버릴지도 몰라. 너의 시간 계산은 잘 못돼 있어. 자네 전보가 오전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어머니께 보낸 자네 의 첫 편지가 무슨 이유로 그곳에 도착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그래서 어머니는 자네의 두 번째 편지만 받은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넨 답장을 한달 내지는 육 주 정도 더 기다려야 될지도 몰라. 이 친구야. 참을성이 있어야 하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의 말은 옳았다. 그런데도 자신은 아무 우편물 도 받지 못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이 편지와 신문, 소포를 받는 것을 보 면 사샤는 초조해졌다. 그는 매번 우편 때마다 어머니께 두세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잘 정착했으며, 훌륭한 숙소를 얻었고, 또 이곳 사람들은 좋다고, 해서 필요한 것은 다 가지고 있으니 아무것도 보내지 마시라고 편 지에다 썼다. 기가 꺾인 채 그는 강으로부터 마을의 거리를 따라 집으로 걸어왔다. 사 람들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가 태업죄로 고소되어 케쥐마에 소환된 일도 없었던 듯이 그렇게 자기에게 인사를 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 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곳에 보내어진 것처럼 또 다른 곳으로 보내 질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그와 똑같은 수백만의 사람들을 보아왔다. 죽 음, 살인, 그리고 종말 같은 것들에 너무도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특수 거주자들의 자녀에게는 오두막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콜호즈 의장인 이반 파르페노비치까지도 사샤를 거들떠보지 않았고 무관 심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관계당국에다 보고를 했을 뿐, 그것을 처리 하는 일은 당국에게 달려 있었고, 지금은 그 자신의 생활에 푹 빠져 있었 던 것이다. 그는 몇 차례 지다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뭔가 궁금하다는 듯 그를 쳐 다보았고 그는 그저 고개짓으로 인사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를 끝내 지는 않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저녁에 그녀의 창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서도 그녀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무척 미안함을 느꼈지만, 그러나 그로서는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누구와도 또 어떤 것과도 관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가게에 갔을 때 페쟈를 보았을 뿐이 었다. 페쟈는 전과 다름없이 친절했고, 자기를 위해 자전거를 고쳐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안 돼! 사샤는 그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고칠 수가 없어. 혼자서 한 번 수리해 봐! 분유기 때문인가? 페쟈가 물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젠 모든 게 잘 해결될 것 같은데. 페쟈는 별 확신이 없는 투로 말했 다. 사샤는 몸서리쳤다. 마을에서는 그 사건을 아직 끝난 것으로 여기지 않 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게 잘 해결될 것 같다구. 그렇다면, 제대로 잘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들은, 그가 파괴자란 딱지를 달고 다니는 한은, 거기에서 도망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생각엔 잘 해결될 것 같아. 페쟈는 이전보다 좀더 단호하게 되풀이 했다. 그 일을 회상하면서. 분유기는 잘 돌아가. - 사람들이 그것을 기계 부서에 가져가서 나선줄이 없다고 얘기했지. 자네가 얘기해 준 대로, 그리 고 그사람 그렇게 나쁜 사람 아냐. 누가 나쁘지 않다는 건가? 이반 파르페노비치 씨. 콜호즈 의장 말야.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가 보스라는 사실은 자네도 깨달아야 해. 다람쥐들은 사라지고 없고, 소 몇마리만 있는데, 그들은 곡식을 보내 주지도 않지. 그래서 농민들이 건설 현장에 투입되고 있어. 농민 아낙네들처럼 모든 일을 해보려는 거야. 그런 데 그 분유기 때문에 여자들은 아우성치잖아. 그들에게는 그 기계가 꼭 필 요하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자기가 해야 할 말을 하게 된 건데. 그냥 얘 기하도록 내버려뒀어야 했다구. 그런데도 자네는 자네의 자존심을 지키려 고 한 거야. 됐어. 사샤는 그의 말을 막았다. 담배 몇 개피랑 성냥 좀 주고, 이 깡통에다 등유를 채워 줘. 자, 가겠네! 사샤, 자, 남자답게 처신해! 체인이 자전거에서 떨어져 나갔는데 다시 끼워 넣질 못하겠어. 우리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자구. 훈제한 살코기가 좀 있으니까. 내가 뭐 잘못했어? 난 이반 파르페노비치에게 이렇게 말하기 도 했어. 그만 두세요. 이반 페르페노비치 씨. 그는 모스크바 출신의 도 시태생남자라서인지 그저 도와주고 싶어서 여자들에게 할 일을 얘기해 준 것 뿐이라구요. 그런데 그 여자들이 얼간이지! 라고 말야. 이제 잘 될 거 야, 사샤. 좋아. 사샤는 말했다. 그 자전거나 한 번 보자. 페쟈는 마당을 지나 자전거가 있는 오두막 바깥으로 그를 데려갔다. 베 어링과 기어, 체인, 그리고 나사의 상태를 모두 시험해 보면서, 자전거를 다 점검한 사샤는 문득 어린 시절 그가 타고 다녔던 자전거가 생각났다. 그 자전거는 어떤 독신 할머니의 것으로 여러 가지 모형의 부품들로 조 립되어 있었다. 그 시절 그는 자전거를 썩 잘 탔었다. 안장에 선 채로 자 전거를 탈수도 있었고, 핸들에다 등을 대고 타기도 하였고, 뒤쪽으로 풀쩍 뛰어내리면서 자전거가 자기 밑으로 지나가게 할 수도 있었다. 막스 코스 틴이 그의 자전거를 따라 마당을 돌고 거리를 뛰어오기도 했고, 사샤가 그 에게 자전거를 타도록 해주기도 했다. 때때로 그 둘은 함께 타기도 하였는 데. 막스를 안장에 앉히고 사샤는 페달을 서서 밟으면서 탄 것이다. 그건 어차피 할머니의 자전거였고 또 횡측이 없었으니까. 자전거는 또한 클라즈마에 있는 별장을 생각나게 했다. 많은 소년, 소녀 들이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애들은 자기처럼 싸구려 자전거가 아 니라 두케스나 엔페엘즈였다. 그 자전거들은 값이 비쌌다. 부모들이 모두 전문가나 의사 또는 변호사들이었으니까.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클라즈 마까지 내려가서 수영을 하거나 심지어는 우차까지 내려가기도 하였는데 그 강이 더 넓었기 때문이었다. 도로는 철로를 따라 꾸불꾸불 이어져서는 산골짜기를 따라갔고 그 다음 다시 철로로 이어졌다. 그곳을 지날 때면 자 전거 바퀴 밑으로 자갈이 튀어 올랐고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기분 좋게 불 어 댔다. 저녁 무렵이 되면 휴양지들은 역 플랫폼에 모여들어, 플랫폼 위아래로 왔다갔다 하면서 모스크바로부터 오는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가벼 운 여름옷에 긴 목걸이로 잘 치장한 여자들이 남편들, 곧 생사로 짠 양복 을 입고 무거운 서류가방을 든 남자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사샤가 자전거를 타고서 플랫폼에 다다르면, 검은머리에 윗통을 벗은, 햇볕에 그을려 암갈색이 다 된 딱 벌어진 어깨의 그를 쳐다보곤 여자들이 미소를 띠며 묻는 것이었다. 저 새까맣게 탄 아이가 누구네 아들이죠? 그 말은 그에게 기분 좋고 달콤한 긴장감을 주었다. 단, 아이라는 말이 그 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저녁이 되면 그들은 숲 속의 한 개간지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g나 소녀 - 이름은 잘 기억할 수 없지만, 크고 빼빼 마르고 다리가 길다고 생 각되는 - 가 그와 함께 숨었는데, 무서웠던지 그에게 바짝 붙은 것이었다. 사샤는 그 아이의 따뜻한 몸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고, 그녀를 더 가까이 당기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저 무뚝뚝하게 이렇게 말하고 만 것이다. 밀지 마, 너 자리 충분하잖아? 육체적 욕망은 그에게 일찍부터 일어났지만, 남자다운 남자에겐 무가치 한 것이라 여겨 억제해 버렸다. 그는 13세가 되도록 그렇게 생각했다. 뜰 에서 사내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을 놀리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허풍을 떨며 자랑삼아 얘기하곤 했지만, 사샤에게는 그들의 말이 비위에 거슬렸다. 그 는 키스게임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유치하고 천한 놀이로 보였기 때문이 었다. 모름지기 남자란 뭔가 다른, 더 차원 높은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 생각했다. 그는 자부심이 강한 소년이어서 연약하거나 겁쟁이처럼 보이 기를 싫어했다. 학교운동장에 있을 때의 그는 아주 강하고 대담한 아이로 보였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 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리가 긴 그 소녀는 야샤 라쉬코브스키라는 아이를 좋아했다. 사샤는 그날 그 애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는데 그는 모스크바의 유명한 무용단에 서 온 키 큰 소년이었다. 그는 또 볼쇼이에서도 수학한 바가 있었으며 사 샤보다 한 살인가 두 살 더 먹었고, 두케 자전거 fp이스에서 몹시 잘난 척 하는 그는 사실 사이클 모임에서 아주 뛰어난 존재였다. 한번은 그가 우차 말고 클라즈마 강으로 수영하려 가자고 제안했는데, 자기가 그곳에서 다이 빙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클라즈마에 이르러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리곤 옷을 벗기 시작했 다. 남자아이들은 수영팬츠를,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원피스형 수영복을 이 미 안에다 입고 있었다. 정말 그곳은 다이빙하기에 아주 훌륭한 장소였다. 강비탈은 아주 가팔랐고 물이 위에까지 철썩거렸다. 그리고 다이빙하는 곳 에서 수면까지의 거리는 약 25피트 정도가 되었는데 여자애들은 무서운 나 머지 둑 가장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그들은 배를 깔고 엎드려서 기슭 위 로 솟구치는 강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아이들까지도 이런 높은 지점에 서는 다이빙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야사 혼자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 다. 그는 먼저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수면에 떠올라서는 큰 몸짓으로 강둑까지 헤엄쳐 왔다. 그리고는 가파른 기슭을 따라 꼭대기까지 기어올라 온 것이다. 소녀들이 넋나간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물론 다리가 긴 그 아 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야사 라쉬코브스키는 아주 괜찮은 아이였다. 그는 자기의 다이빙 실력을 과시하지도 않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다이빙하라고 부추기지도 않았다. 그저 등을 하늘 쪽으로 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있을 뿐 이었다. 사샤는 다리 위에서나 보트에서 물 속으로 뛰어들어 본 일은 있어도, 다 이빙 보드에서나 그렇게 높은 둑 위에서 뛰어내려 본 적은 여지껏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야샤가 그걸 해냈다면, 자기라고 못할 게 뭐 있는가? 그는 뛰어내려야만 했고,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했다. 수영을 잘하니까 다이빙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것은 똑바로 섰다가, 몸을 완전 히 펼친 후, 배와 등으로 물을 치지 않고 완만하게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 이다. 그는 경쟁심에서 다이빙을 하려고 한 게 결코 아니었다. 자기 자신 의 소심함을 극복하고픈 욕구, 그것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 것이었 다. 지금 그걸 하지 못한다면 자신에 대해 몹시 화가 날 것이다. 조만간 다시 와서 해봐야겠어. 그런데 왜 지금은 못한단 말이지? 그는 일어서서 몸을 뻗었다. 난 바로 지금 해내야만 해. 그는 둑의 모퉁이로 뛰어가서는 뛰어들었다. 물 속 깊이 들어간 그는 재 빨리 헤엄쳐서 수면에 이르렀고, 등을 돌리고는 숨을 쉬었다. 저 둑 위, 다리 위에서 야사가 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가 긴 소녀도....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이런 기억들이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왜 그렇게 의 지력을 키워야 했고, 성격을 강인하게 만들어야만 했던가? 누군가가 그를 불렀는데, 그는 그것이 지다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그는 돌아서서 계단에 서 있는 그녀를 보았다. 페쟈의 어머니를 뵈러 왔어요. 그분께 약을 좀 가져다 드리려구요. 사샤는 지다가 케쥐마로부터 의약품을 가지고 와서 마을사람들에게 자기 가 할 수 있는 치료를 하며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 녀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거나, 아니면 몽땅 다 학교를 그만두 어 비렸으며, 학교 또한 교과서나 공책, 심지어는 연필까지도 부족한 상태 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다는 케쥐마에서 갖고 올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 오려고 애썼고, 만일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을 때엔 있는 것만을 가지고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또 부모들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 달라고 설득했다. 어떤 때는 성공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 도 있었다. 그녀는 성실하게 불평할 줄 모르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인가? 왜 자발적으로 이런 후미진 벽지에서 자기를 썩이고 있는 것일까? 왜 제게 오지 않으세요?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요즘은, 기분이 엉망이오. 와서 절 좀 만나 주세요, 사샤. 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알면 당신한테 위험할지도 몰라. 당신이 누구를 기다리느라 밤에 등불을 켜놓고 있는지 사람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오? 그러면 불을 밝혀 두지 않겠어요. 어두워지면 오세요. 싱싱한 생선도 튀겨 놓고 파이도 구워 놓을께요. 그녀의 친근함과 그녀의 목소리, 값싼 향수지만 그녀가 바르는 그 친밀 한 향기가 그를 자극시켰다. 페쟈하고 술 마시러 가려고 하는데, 술 취해서 한번 갈까? 오세요. 그래도 당신이니까. 그리고 이젠 그런 바보 같은 일에 대해서 는 그만 생각해요.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구요. 하면서 지다가 말했다. 알 페로프가 기계부서에 가서 분유기를 고치라고 말했대요. 그래서 그날로 고 쳤다는데요. 그 사람 그것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기를 원치 않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기계부서 담당장이 직접 내게 말해 줬어요. 그의 부인과 친하거든요. 사샤는 그녀가 자기를 안심시켜 주려고 이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알페로프가 그곳에 가보긴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분유기 에 관심이 있으니까. 하지만 담당관에게 빨리 그 기계를 수리해 달라고 부 탁한 건 그녀였을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이 무용담이 사라지면, 사람들 은 또 다른 사건을 추적하겠지. 또 어떤 일을 찾아낼 거라구. 이건 당신한테 일어난 사건,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전에는 그 런 식의 사건이 전혀 없었다구요. 자, 들어봐. 사샤가 갑자기 말했다. 당신 친구라는 그 담당관한테 내 가 그 부서에서 일하도록 해볼 수 없을까? 틀림없이 사람이 필요할 텐데 말야. 그녀는 팔꿈치를 괴고서 바로 옆에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작은 창문으 로 들어온 달빛에 싸인 그녀는 신비하리만큼 희게 보였다. 케쥐마로 가기를 원하고 있군요? 사랑하는 지다, 그는 말했다. 난 무엇인가를 해야 해. 어떻게든 삶을 꾸려가야 한다구. 그녀는 베개 위로 얼굴을 묻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케쥐마로 옮기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를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염려 스러웠다. 이 어리석은 아가씨는 자기가 언젠가는 그를 잃게 된다는 사실 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그가 형기를 채우고, 그리고 자유로운 몸이 된다 고 하더라도, 누구에게 자기의 미래를 함께 하자고 청할 권리가 그에겐 없 을 것이다. 그가 받은 선고는 늘 그를 따라다닐 것이고 그는 항상 쟈코프 의 감시 속에서 살게 될 거니까. 그가 다른 사람의 인생, 다른 사람의 운 명을 책임질 수가 있을까? 지다에게 고난과 방랑의 삶을 살도록 운명지을 수 있겠는가? 그는 자기를 잃게 될지도, 분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될지도 모른다. 그는 혼자 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을까에 대 해서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리란 사실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농담이야. 그가 말했다. 날 위해 부탁할 필요는 없어. 내게 그곳의 일자리를 줄 리가 없지. 그리고 또 케쥐마에 가서도 또 다른 말썽에 휘말 릴 것 같애, 그곳 사람들도 날 괴롭힐 테니까. 지다는 어둠 속에서 손을 뻗쳐 그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기운을 내세요. 당신은 아직 젊어요. 당신의 인생은 아직 당신 앞에 많 이 놓여 있구요. 얼마를 더 받았었죠? 2년? 2년하고도 4개월이야.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금방 지나갈 거예요. 사샤, 곧 자유의 몸이 될 거고 그리고는 이곳을 떠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어디로 가게 되지? 모스크바로 돌아가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 건 또 다시 방랑이 시작된다는 뜻이지. 그리고 제 58조가 아직도 내 모가 지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고. 어쩌면 톰스크 지방에서 우리만의 장소가 될 만한 곳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죠. 그는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지 않은 채 남겨두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거지? 그곳에선 아무도 당신을 몰라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금 그 는 그녀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자 봐, 내 이름은 신분증명서에 똑똑히 나와 있을 테고, 거기에는 전과 까지 함께 기록될 거야. 바로 이런 식이야. 통행증에는 기본적으로 기록해 야 될 사항이 몇가지 있어. 몇 월 몇 일 정부칙령 2호, 그게 바로 통행증 발급 및 제한규정이지. 따라서 내가 톰스크에 가든 옴스크에 가든 그건 중 요하지 않아. 전과를 계속 짊어지고 다니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알겠어요. 하지만 여권을 읽어버릴 수도 있죠. 그는 웃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형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오래 전에 여권과 거기에 적혀 있는 자기의 전과를 제거해 버릴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아직껏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없었어. 그 사람들 새 여권을 발행할 때는 필요한 모든 조사를 하게 되고 그러면 모든 게 드러나고 마니까. 그 계통에 친구가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난 불법적인 위조여권을 가지고 살아갈 생각은 없어. 그건 합법적인 일이에요. 당신 이름만 바꾸면 되니까. 정말이야? 그거 재미있겠는데. 그녀는 일어나 앉더니 그에게 가까이 기대었다. 만일, 당신 형기가 끝나서 우리가 이곳을 떠나고, 그리고 거기에 가서 결혼을 하게 되면, 당신은 법률적으로 내 이름을 취할 수가 있게 되죠. 그 러면 당신은 새 여권을 발급받게 돼요. 그리고 아까 당신이 말했던 그 난 에는 이렇게 기록될 거예요. 결혼증명서와 함께 발급됨 이라구요. 이제 당신은 더 이상 판크라토프가 아닌 거예요. 그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니겠지 요? 그리고 난 머슬림인이 되는 거겠지. 그는 웃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내게 그렇게 해줄까? 난 지금 심각해요. 그곳에는 내가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있어요. 당신이 이 모든 일을 꾸며댔단 말이요? 난 일생을 시베리아에서 살아왔어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나도 잘 알죠. 당신에게 날 맡기려고 강요하려는 게 안예요. 그저 어떻게 하면 당신을 그 곤경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 것뿐이에요. 그리 고 후에, 당신이 원한다면 우린 이혼할 수 있고, 그래도 당신은 깨끗한 여 권을 가지고 내 이름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구요. 날 탈라크로 만들면 되니 까요. 탈라크가 뭔데? 이혼한 타타르인이란 뜻이죠. 남편이 아내를 쫓아내고 싶으면, 탈라크 란 말을 세 번 소리내면 되요. 불쌍한 지다. 그녀는 자기 앞에 어떤 행복이 기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나 또 그에게나 아무것도 있을 게 없었 다. 그녀는 그에게, 위조된 이름과 위조여권을 가지고 밀항자의 삶 같은 걸 살아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그를 알고 있는 사람 을 우연히 만나게 될 경우 그는 그 사람에게 자기는 더 이상 판크라토프가 아닌데, 아시다시피 결혼을 해서 그렇게 됐다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또 만약 쟈코프나 그 부류 사람들이 그를 잡게 되면, 기쁨과 승리감에 싸여서 환성을 지르겠지. 그래, 마누라 뒤에 숨어서 살려고 했다는 거지? 아니, 이 친구야. 넌 우리한테서 도망칠 수가 없어. 그리고 네놈이 위조여권 덕 택으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야. 정직한 소비에트 국민이 라면 결코 위조여권이 필요할 리도 없거니와 어떤 정직한 소비에트 시민도 자기 이름을 바꾸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이런 것을 지다에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상 하게 하길 원하지 않았으므로. 봐, 지다. 그가 말했다. 당신이 만일 일자리를 얻으려고 하면 신청용 지를 기입해야 해. 이력서를 써야 하는 거야. 어디서 출생하고, 어디에서 학교를 다녔고, 보모가 누구이며, 할아버지 할머님은 누구인가, 하는 것들 말야. 내가 판크라토프란 이름을 감출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어. 질 문을 몇 가지만 더 받아도 금방 드러나고 말 테니까. 그녀는 계속 고집했다. 우린 아주 먼 어떤 지역으로 가는 거예요. 당신 은 그곳에서 운전수나 기계공으로 일하면 되구요. 그런 일자리를 구하는 데는 신청서류가 필요없으니까 조사도 하지 않을 거예요. 자! 이제 그만. 사샤가 말했다. 이 대화는 전혀 무의미해. 난 이 이 름으로 태어났고 이 이름을 가지고 죽을 거야.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7 세금검사관은 코스챠가 소득을 숨겼다고 고소하여 엄청난 세금을 부과시 켰다. 세금은 납부하지 않는다면 감옥신세를 져야 했다. 한편 소콜르니키 의 주소지에 있는 그의 재산도 압수 당했다. 그는 그 재산이 아내인 클라 브쟈 루키야노브나의 소유라고 주장했다. 그가 이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을 바랴가 안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것을 애초에 말했더라 면, 그녀는 그것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바랴에게 자기의 여권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이는 창피스런 일로서 그녀가 몰랐던 코스챠 삶의 이면을 보여 주는 첫 번째 증표였다. 바랴, 별 도리가 없었어. 모스크바에서 거주허가를 얻으려고 클라브쟈 와 결혼 신고만 한 거야. 그렇게 해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어. 난 당신이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었지. 이건 수많은 사람들이 늘 하는 일일 뿐이야.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모스크바에 거주등 록을 할 수가 없어. 클라브쟈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난 어딘가에 거주등 록을 해야만 했어. 그렇지만 어디에? 누구의 조소에? 누가 나를 받아주겠 어?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그녀가 그렇게 하도록 해줄 것 같아? 니나 의 주소에? 니나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항상 내 존재를 인 정하려 들지 않았으니까. 그는 애원하듯 말했다. 해결방법이 뭐죠? 바랴가 물었다. 클라브쟈 루키야노브나는 당신의 법적인 아내로, 나는 당신의 내연의 처로 남아 있는 건가요? 그는 위엄을 지키면서 대답했다. 난 요즘 과학 아카데미에 속해 있는 연구소에서 복잡한 전기 시스템을 하나 만들고 있어. 거기서 직원들을 위 해 주택을 짓고 있는데, 나에게 방 하나를 주겠다고 약속했어.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아주 그럴싸하게 연구소니, 과학 아카데미니, 복 잡한 기술이니 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울 것 같아 보이지 않았 다. 만약 그들이 당신에게 방을 주고 싶다면, 그들은 당신을 직원으로 삼아 야 할거예요. 코스챠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좋아, 당신에게 얘기하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은 말해야겠어. 내가 아 름다운 눈 때문에 직업을 얻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니, 바 랴! 나는 내게 직업을 알선해 주는 사람들에게 내 월급의 반을 건네줘. 그 들은 자기네들 몫을 챙기려고 내게 계약을, 아주 까다로운 계약을 강요하 지. 나는 그들 몫으로 절반을 줘. 그렇지만 봉급 전체에 대한 세금을 물고 나면 내게 몇 푼이나 남겠어? 콩 한 쪼가리도 안 남지! 아무 것도! 하지만 우리도 뭔가를 먹고살아야 되잖아. 그래서 병원에서 일한 두서너 개의 잡 일에 대해 돌아와 보고하지 않았는데, 그것에 세금쟁이가 벼락같이 달려든 거야. 날 좀 믿어. 이 일을 오래 전에 그만둬야 했었는데, 연구소 때문에 그냥 매달려 있었던 거여. 나는 이 방 얻기를 바라고 있어. 우리가 등록을 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등록을 했었다면 그들은 내 재산을 몰수하려고 여기로 왔을 거야. 클라브쟈는 어떻게 해요? 클라브쟈? 이 일 때문에 그녀의 재산이 몰수됐나요? 그녀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 그녀는 개의치 않을 거야. 그녀는 이 보다도 더한 곤경에 처해 본 적이 있어. 누구에 대해서도, 어느 것도 걱정 마. 모든 일이 다 잘될 거야. 만사가 잘될 거라고. 만일 내가 당신한테 모 든 걸 다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을 위해서여. 당신 마음이 편한 게 내겐 제일 중요하니까. 그는 무슨 일에 대해 누군가를 확신시키고자 할 때는 몇 시간이고 말할 수 있었다. 그의 말솜씨는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바랴는 그를 믿었는가? 그녀는 믿고 싶어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와 계속해서 살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나 코스챠 모두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다는 씁쓸한 결론에 이르렀다. 어쩌면 코스챠는 남들보다 더욱 무기력할지도 몰랐다. 료바에게는 비록 좋지는 않지만, 의지할 만한 직업이 있었다. 그 직업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 료바는 적으나마 거기에서 나오는 봉급으로 떳떳이 살아갈 수 있었다. 코스챠는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수백 가지 상황에 의지하고 있었고 발을 내디디는 곳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오늘의 그는 부유하지만 내일은 누구보다도 더 가난해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 그는 높이 올라가지만 내일 그는 저 밑바 닥으로 내동댕이쳐질지도 몰랐다. 바랴는 코스챠가 그 곤경에서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의심스러웠다. 하지 만 분명히 그는 해냈다. 거의 두 주 동안 그는 집에 있지도 않았으며 레스 토랑이나 당구장에도 가지 않았다. 두 주 동안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침내 그는 빚을 모두 갚았다고 그녀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그 작업장과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의 장래 계획이 무 엇인지 그녀는 몰랐다. 왜냐하면 그가 그녀에게 말해 주지 않았고 그녀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녀에게 말한 것이라곤 헤르첸 가에 있는 또 다른 작업장에서 일 을 하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곳은 타자기를 수리하는 곳이었다. 그는 타자기에 대해 잘 알았다. 그는 통화가 힘들 거라는 얘기와 함께 작업장 전화번호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아침 10시면 타자기를 고치러 여러 기관 으로 떠나야 하고, 때때로 그 전날 주문을 받은 경우에는 아침부터 고객한 테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바랴는 아무래도 수상쩍어 적당 한 통로를 통해 코스챠가 다만 서류상으로 채용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냈 다. 다른 기술자들은 각자의 일을 하고 임금을 받으며 보다 실질적으로 채 용이 됐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 직업은 그에게 타자기 수선 가게의 종업원 이라는 공식적인 지위를 마련해 주긴 했지만 그의 유일한 취직자리와 유일 한 수입원은 아직 당구뿐이었다. 바로 그 당시 바랴는 자기가 이제까지 코스챠에게서 얻은 것은 충분했다 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녀가 직업을 얻어야 할 때였다. 료바와 리나는 그녀를 도와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들은 조예가 일하고 있는 모스크바 호텔 디자인실에 고용되었다. 사실 바랴는 누구의 도움 없 이도 직업을 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제도공이 매우 귀한 때였 고, 구인광고가 어디든 붙어 있어 당장이라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아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었다. 료바 외 리나는, 수도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인 모스크바 호텔이 모스 크바 시 소비에트의 관할로 들어갔으므로 거기 임금이 더 높고 매점도 훌 륭하다고 말했다. 그 새로운 건물은 그랜드호텔과 연결되고 있는 중이었 다. 구 건물과 합쳐져 유럽에서 가장 큰 호텔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가 장 훌륭한 건축가와 화가의 기사와 기술자들이 그 계획에 합류했다. 특히, 료바와 리나는 그들의 사장을 이고르라 불렀는데, 마치 그가 프랑스인인 것처럼 <고>부분에 강세를 주어 불렀다. 그들은 그 사장에 대해 칭찬을 했 다. 그는 재능있는 젊은 건축가이고, 그 계획을 맡은 디자이너 중의 한 사 람으로 주의깊고 친절하며 이해가 빠른 남자라며, 만일 바랴가 맡은 일을 잘 해낸다면 이고르는 그녀를 승진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미 기술자 수준에까지 다다른 료바를 승진시킨 것처럼, 리나도 비슷한 전망을 갖고 있었다. 그 사무실은 아르바트 가의 아파트로부터 일곱 정거장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오호트니 로우에 있는 그랜드호텔 5층에 자리잡고 있 었는데 거기는 14번과 17번, 두 대의 전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같은 사무 실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조예는 그것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곤 했 다. 바랴는 약속된 날 그랜드호텔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오호트니 로우에 있는 창고들과 작은 교회, 그리고 그랜드호텔과 마네게 사이에 있는 다른 건물들은 파괴되어 울타리로 둘려 있었다. 바랴는 보스 크레센스키 광장에서 호텔로 들어갔다. 제복을 입은 현관 안내인은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를 5층까지 태워 준 엘리 베이터 승무원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승강기에서 나와 료바가 일러준 대로 왼쪽으로 돌아 긴 복도를 걸어갔다. 바랴는 5층이 아직도 호텔의 일부였을 때에 있었던 것 같은 호 실 번호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526호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방문을 열 었다. 그 방은 그녀와 코스챠가 묵었던 얄타에 있는 오리안다 호텔과 아주 흡 사한 것으로, 천장은 높았고 좁은 창문이 있었다. 호텔 가구를 대신한 것 들 외에 그 방에는 단지 비스듬한 버팀대로 지탱되는 세 개의 평범한 책상 만이 있었다. 그 책상이 제도판 구실을 하고 있었다. 료바는 창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가자 그는 굽은 이를 드러 내면서 환영의 미소를 지으며 제도펜을 내려놓았다. 왔구나! 아름다운 아가씨! 리나는 어딨지? 방금 나갔어. 곧 돌아오겠지. 졸업증명서도 가지고 왔니? 그는 바랴의 증명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됐어, 가자. 그는 옆사무실 문을 열었다. 들어가도 좋습니까,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 씨?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랴를 데리고 들어갔다. 바랴는 그 이름 을 듣자마자 상황을 알아차렸다. 좀더 일찍 알아차릴 수는 없었던가? 이 사람은 바로 비카가 내셔널 에서 소개시켜 줬던 남자였다.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녀는 오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 버렸 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금방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는 놀라서 눈썹 을 치켜 뜨고 일어나더니 미소를 띠며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그는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 씨, 이 사람이 바로 제가 당신께 말씀드렸던 이 바노바 부인입니다. 하고 료바는 말했다. 바랴는 가방에서 증명서를 꺼내어 책상 위에 두었다. 앉으시죠.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앉으면서 말했다. 저는 나갈가요? 하고 료바는 말했다. 아, 예, 고마워요.... 료바는 방에서 나갔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바랴의 증명서를 들여다보았다. 직장에 다녀 본 적이 있습니까? 아뇨. 아니라, 물론 없겠죠. 당신은 삼개월 전에 갓 학교를 졸업했으니까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료바는 당신에 대해 서 줄곧 내게 얘기를 하며 추천했지만, 난 그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몰랐 죠. 저도 당신을 만나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바랴가 말했다. 처음의 당황은 지나갔지만, 이제는 그녀는 어떤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3개월인가 4개월 전에 그를 단 한번 만났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영원처 럼 느껴졌다. 알렉산드르 공원에서의 산책, 보베에 대한 대화, 공원지기로 부터의 도피, 그리고 그녀의 찢어진 스타킹 -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아득하 게 느껴지는지! 당신은 조금 변했군요. 하고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말했다. 아니 오히려 성숙했다고 해야겠군. 저는 결혼했어요. 그녀는 설명했다. 그녀는 이 말이 그들의 관계를 완 전히 평범한 것으로 만드리라고 생각했다. 나도 들었고. 그는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비카에게서 들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럼 이제, 그는 활발히 말했다. 사업 얘기로 돌아갑시다. 당신은 일 을 해본 경험이 없으니, 복사 일부터 시작해야만 돼요. 네, 압니다. 도안을 좋아합니까? 네, 무척 좋아해요. 좋아요. 그러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일반 도안실에서 일하든가, 아 니면 료바와 리나가 있는 내 쪽에서 일하든가, 어느 쪽이 당신이 일하기에 적합할 것 같소? 바랴는 아는 사람이라곤 조예밖에 없는 일반 사무실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료바와 리나가 있는 이곳에서 있고 싶었지만, 그것은 곧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와 함께 일을 하고, 그의 감독하에 있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에게 있어서 그는 아무런 의미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고(그녀는 그의 당황해 하는 모 습을 보고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와 함께 일한다는 것이 어색해질는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르겠어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네요 라고 대답했다. 그럼 여기서 우리와 함께 시작합시다. 라고 그는 제안했다. 친구들 사 이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쉬워요. 나중에 당신이 이곳 일에 익숙해지면 그 때 다시 결정해도 돼요. 어때요? 그녀는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를 그녀 앞으로 내밀어 그 일을 시작하는 데 관한 것들을 받아쓰게 했다. 그것을 쭉 읽고 난 그는, 바랴의 졸업증명서 와 함께 그것에 클립을 끼우고는 일어나 옆 사무실 문을 열고 그녀를 앞세 워 나갔다. 료바가 리나와 같이 거기에 있었는데 바랴에게 격려의 윙크를 보냈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료바, 난 금방 돌아오겠소. 그 동안 바랴에게 이곳 구경 좀 시켜 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가 떠나자 리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네게 얼마나 정중하게 대하는지 알겠니? 그는 인사과 직원이 겁을 줄까봐 염려하고 있는 거야. 료바는 농담을 했다. 모든 일이 잘될 거야. 리나는 기술자급으로 승진이 되었으니 너는 내 절대권한 아래서 리나가 하던 일을 하게 될 거야. 그러나 리나는 내셔널 에서 그녀가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었다. 그녀가 어떤 말을 퍼뜨리지는 않을까? 그가 내게 일반 도안실에 있을 것을 제안했어. 하고 그녀는 리나가 말 할지도 모르는 뭔가를 앞질러 가로채기 위해서 말했다. 그거 이상하네. 료바가 말했다. 우리는 네가 여기서 우리와 같이 일 할 걸로 합의를 봤었는데. 나는 코스챠에게 약속까지 했는걸. "코스챠에게 뭘 약속했지? 날 감시하겠다는 걸 말이니? 바랴! 제발! 나는 그저 네가 처음 만날 장애물 넘는 것을 도와주겠노라 고 약속했을 뿐이야.... 자! 여기에 네 책상, 네 제도판, 티자가 있어. 네 도안용품은 보급품 가운데서 고르도록 해. 네 걸로 한 세트 가지게 될 때까지 라고 리나는 덧붙였다. 그건 돈을 많이 벌고 난 나중의 일이야. 료바는 또렷이 쳐다보았다. 넌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낼 수 있을 거야. 리나는 계속해서 설명을 늘어놓는 동안 그는 그녀에게 어디에 도안들과 보급품들이 보관되어 있는지 보여 주기 위해 벽장을 열었다. 리나의 설명 은 듣기 좋은 농담을 섞은 것으로 기분 좋은 환영사와 같았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돌아왔을 때 그들은 한창 잡담중이었다. 이젠 좀 일에 대해 알겠나요? 네. 바랴, 잠깐 내 방으로 들어와요. 그녀는 그의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는 앉으면서 그녀보고 앉으라고 했다. 당신의 지원은 이제 수락되었어요. 내일 아침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됐소. 여기에 당신의 졸업증명서가 있고, 또 이런 것도 있소.... 그는 그녀의 졸업증명서와 함께, 큰 종이 네 장의 질문지를 건네주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집에 가서 여기에 내용을 채워서, 인사부로 넘겨줄 수 있도록 내일 가 지고 와요. 여기가 당신이 처음 일하는 곳일 테니 전에 이와 같은 것을 본 적은 없을거요. 이것은 좀 어리석은 일같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피할 수 없는 형식이지. 당신의 부모님들은 살아 계신가요? 아뇨. 아, 알겠소. 그럼, 그들의 사망일자만 적고 그들에 관한 더 자세한 사 항은 적지 마시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가 있는데.... 행여 나를 오해 하지 마세요. 이건 아주 공식적인 것으로 입사절차에 꼭 필요한 것인데, 당신은 결혼신고가 되어 있나요? 아뇨. 그 서류에는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와 조부모에 대한 질문이 많이 있기 때문에 묻는 것인데, 그 모두를 다 채워 넣기는 매우 힘들 거요. 아마 그 대부분은 당신은 물론 당신 남편도 모를 거고, 당신은 그걸 알아내기 위해 어딘가에 편지를 쓰기도 해야 할 것이오. 그러나 만약 신고가 되어 있지 않고, 자녀가 없다면 굳이 그 관계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고 또 다른 모 든 귀찮은 질문들을 생략해 버려도 되지요. 바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암시하고 있는 것을 금세 알 아차리지 못했다. 만일 그가 직접적으로 얘기를 한 거라면 그의 말이 애매 모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자 그녀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비카가 아마 이런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녀는 노름쟁이와 놀아나고 있어요. 그 남 자는 진짜 기술자도 아니고, 뚜렷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 남자는 좀 수상해요. 그래서 지금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이러한 일 이 그녀가 이 일을 지원하는 데 번잡스럽게 할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둬 버릴까. 그녀는 그런 복잡한 서식을 메우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 다 른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그녀가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를 정확하 게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데로 해 요. 아무튼 우리는 당신에게 일자리를 주겠소. 나는 단지 당신이 이 기분 나쁘고 괴로우며 지저분한 일을 해치우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을 뿐이오. 알겠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당신은 우선 다른 종이에 해당 내용을 적어 그 대답들을 잘 점검한 후 에 서식에다 써넣는 게 좋을 게요. 왜냐하면 어디에도 가위표를 하거나 수 정을 하면 안 되기 때문이요. 만약 그렇게 해놓는다면 당신은 그걸 전부 다시 새로 한 번 더 써넣어야 해요.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겠어요. 좋소! 그럼, 내일 다시 봅시다. 일은 아홉 시에 시작해서 네 시에 끝나 요. 여기서 일하는 것이 당신 맘에 들길 바랍니다. 바랴는 대학교를 지나서 보즈젠카 가와 아르바트 가를 따라 걸어서 집에 왔다. 그 서식에 대한 대화로 인해 갖게 된 약간 기분 나쁜 뒷맛은, 그러나 그 녀가 현실 세계에 참여한다는 사실로 인해 느끼게 되는 크나큰 기쁨을 감 소시킬 수는 없었다. 료바와 리나는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레스토랑과 허 미티지 가든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단지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모스크바의 한가운데에서 이 거대한 계획에 참여한다 는 사실이었다. 제도판과 티자, 운형자, 펜과 잉크냄새와 끝이 뾰족하게 잘 깎인 연필, 이 모든 것들이 그녀로 하여금 학교와, 그녀가 한번도 빼먹 지 않았던 제도시간을 생각나게 했다. 이것이 그녀에게는 새롭고 흥미로운 삶의 징조가 되었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에 대해서는 전혀 어색하게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 편에서 카나티 크에 그와 비카와 함께 가는 것을 거절했던 것이다. 그 당시까지도 그는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가 아니라, 추악한 현실 생활에서 온 사람처럼 보였 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앞장서서 인도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 당시의 그는 너무 늙어 보였다. 사실 그는 코스챠보다 약간 나이가 많 았을 뿐이지만. 그는 그녀에게 남편에 관한 말을 꺼내지 말라고 충고했다. 왜냐하면 그 녀가 서식 때문에 공경에 빠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유명한 건축가이면서도 그는 바랴를 어려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도 어려워하 지 않았다. 코스챠가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그를 숨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 도 없었다. 그녀의 남편과, 남편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 그들 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의 부모가 직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녀가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질문지를 펴고 쭉 훑어보았다. 그 질문지는 실은 4장이 아니라 8장이나 되었다. 질문들은 퍽이나 당혹 스러운 것이었고, 나중에는 화가 나게 만들었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제안했던 대로, 그녀는 먼저 대답들을 연습장 에다 써 보았다. 1. 성, 이름, 가문의 이름(만일 변경되었으면 이전의 이름을 적으시오): 쉬운 문제다. 이바노바 바랴 세르게예브나. 그녀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었 다. 2. 생년월일, 출생지: 역시 쉽다. 1917년 4월 5일, 모스크바. 3. 국적과 시민권(다른 시민권을 갖고 있다면 기입하시오): 마찬가지로 쉬워. 러시아인, 시민권 소유했음. 4. 혁명이전의 계급 또는 사회적 성분(농부, 중하급, 상인, 상류계급, 명예시민, 성직자, 군인 등등): 그녀의 부모는 교사였다. 그건 어떤 계급 이지? 이건 니나에게 물어 봐야 했다. 하지만 성직자 부모나 군인 부모를 가진 - 목사의 자녀, 장교의 자녀 - 불행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인가? 5. 교육 정도: 그것은 간단하지. 설계 전공으로 중등학교를 마쳤으니까. 6. 구사가 가능한 외국어는?: 독일어 약간. 7. 당 가입과 가입한 날짜: 어떤 당에도 가입하지 않았음. 8. 콤소몰에 가입한 날짜: 가입하지 않았음. 9. 이전에 공산당이나 콤소몰에 가입한 적이 있다면 언제이며 탈당한 이 유를 기입하시오. 다른 당에 가입한 적이 있습니까?: 공산당이나 콤소몰이 나 다른 어떤 당에도 가입한 적이 없음. 10. 당신은 그 당이나 콤소몰의 회원일 당시 벌금이 부과된 적이 있습니 까?(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무엇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승진이 됐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누구에 의해서): 당 에 가입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벌금도 물지 않았음. 또한 누구로부 터도 그것이 부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승진이 되지 않았음. 11. 단 노선을 실행하는 데 망설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반당단체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까?(언제, 어디서, 어떤)?: 당에 가입한 적이 없으므 로, 그 노선을 어는 곳에서도 수행한 적이 없고, 그러므로 망설인 적도 없 고 어떤 반당단체에 참여한 적도 없음. 12. 당신이나 당신의 친척 중의 누구라도 고발이나 조사, 체포, 또는 법 정에서와 행정절차에 의한 형벌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선거권을 상실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현재 소송중에 있든지 조사를 받고 있든지, 형을 받고 있습니까?: 그녀가 알기로는 감옥에 있거나 소송을 받거나 조사를 받 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코즈로프에 사는 아줌마를 제외하고는 다 른 친척이 없었다. 아마 코즈로픙에 있는 아줌마에게 감옥에 있거나, 선거 권을 뺏긴 사람이 있을까? 물론 그녀는 <아니오>하고 쓸 것이지만, 그것은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줌으로 인사부 사람들은 그녀가 까마득하 게 모르는 친척 가운데 체포된 사람을 알아낼지도 모른다. 분명히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직장을 구할 때 이런 서식을 채워 넣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사샤에 대해 적어야만 했을까? 13. 당신은 외국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까? 어느 나라들을, 거기서 무엇 을 하였습니까?: 외국에 가 본 적이 없음. 14. 당신이나 현재의 당신 부인(남편)이나 과거에 친척들이 외국에 나간 적이 있습니까(누가, 어디를)? 당신은 현재나 과거에 그들과 연락을 취했 습니까? 외국 시민권을 가진 친척은 누구든지 기입하시오: 학교에서는, 푸 쉬킨과 톨스토이의 많은 후손들이 해외에서 살고 있던 것처럼, 외국에 친 척을 둔, 아르바트 가 옆 거리에 사는 옛날 귀족자녀들이 있었다. 그 불쌍 한 애들이 어떻게 이 질문에 대답을 하는가를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일 것 이다. 결국 어디라고 말을 해야겠지만, 모든 이들은 편지를 쓰는 것과 외 국에서 오는 편지를 받기를 두려워했다. 15. 당신이나 당신 친척 중 제국주의 시대나 시민전쟁시기에 전쟁포로나 교환된 포로가 있었습니까?: 이제 그들은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질문 16, 17, 18, 19, 20, 21번은 적군에서의 복무, 빨치산, 혁명, 지하 온동, 부상이나 폭탄충격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 모두에다 아무것에 도 해당되지 않음 이라고 적어 넣었다. 22. 당신의 친척 중(27항에 나열된 대로) 누가 다른 당에 가입한 적이 있고, 혁명 전에 경찰이나, 헌병, 법조계에나, 감옥당국이나 국경선 경호 원이나 망명 수행소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까?: 자 누가 27항에 열거되어 있나 볼까? 아내, 남편, 자녀,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남편은 자기 친척뿐만 아니라 아내 쪽 친척들도 적어야 하며, 아내도 마찬가집니다. 이 럴 수가! 그녀는 그녀의 모든 친척들뿐만 아니라 코스챠의 친척들까지도 적어야만 했고, 그들 중 누구라도 국경선 경호원이나 망명 수행소에서 혁 명 전에 일했었던가를 적어내야만 했다. 코스챠가 도대체 그걸 알 것인가? 뭐 때문에 그녀의 배우자의 친척까지 적어야만 하는가? 23. 가족 상황(기혼, 미혼, 미망인), 가족들 나이와 함께 열거하시오. 만약 결혼을 했거나, 이혼을 했다거나 배우자와 사별을 했을 경우에는, 당 신의 첫 부인(남편)의 이름과 성을 대시오: 글쎄, 20년 전에 죽은 아내가 디자인실에 무슨 영향을 끼친단 말인가? 그것이 호텔을 계획하는 데 무슨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지? 24. 현주소: 좋아. 25. 출생 이후 살았던 이전의 집 주소들 모두: 그것은 그녀에겐 문제 없 었다. 그녀는 아르바트 가에 있는 집을 떠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러나 만약 중년인 사람이 그것을 채워 넣는다고 가정해 보라. 주소를 몇 개나 욀 수 있겠는가? 더구나 출생 이후라니! 만약 부모들이 죽었다면, 어 떻게 어린시절에 살았던 곳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질문 26번은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그녀에게 충고한 내용이었다. 당 신의 가까운 친척들(당신의 아내(남편), 자녀,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 매들에 대해 자세히 기입하시오)에 대한 정보, 성, 이름, 가문의 이름, 관 계, 생년월일과 출생장소, 국적, 당가입 여부, 직장과 지위를 맡은 곳의 이름과 장소, 배우자의 친척들에 관해서도 똑같은 내용을 기입할 것: 그것 은 그녀가 니나와 그녀의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뿐만 아니라 코스챠의 모든 친척에 대해서도 이 모든 정보를 적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에 게는 다섯 명의 형제와 자매들이 있었지만 모두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 었고 그의 부모들은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이제야 그녀는 이고르 블라지므로비치의 충고가 그의 진심어린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했다. 맞아, 그 다음은 무엇이지? 신체적 특성: 신장, 머리와 눈동자 색깔, 다른 두드러진 점: 돼지 같은 놈들! 그들이 묻지 않는 것이라곤 감옥에서 하는 짓거리인 지 문에 대한 것뿐이군. 지문도 그들에게는 충분치 못할 거야! 아냐, 이건 정 말 너무하는군, 빌어먹을! 그녀는 그토록 치사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으 려 했다. 그녀는 그런 양식을 채우라고 요구하지 않는 평범한 사무실에서 하는 직업을 찾고 싶었다. 만약 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취직을 하지 않고, 준비를 좀 해서 그 다음해 건축연구소에 지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만약 그 녀가 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그녀는 코스챠에게 더 이상 자기를 위해 비싼 옷을 사지 말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돈을 교육을 위해 투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그녀에게 사준 쇼올은 아마도 학교에서의 이삼년 교육비와 맞먹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녀가 학생이어서 공부를 하고 있다면, 그들은 이런 식으로 그녀를 점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격을 갖춘 건축가가 된다면, 그들은 감히 그녀에게 그토록 어리석은 서 식을 내놓지는 못할 것이다. 바랴는 질문지를 덮어 식탁 위에다 내동댕이쳐 버렸다. 내일 그것을 코 스챠에게 보여 준다면 그는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어댈 것이다. 그녀는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외출복을 옷장 안에 걸었다. 그런데 옷장 문을 닫을 때, 그녀는 갑자기 뭔가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주 최 근에 코스챠가 그녀에게 준 모피 쇼올이 없어진 것이다. 그것은 거금이 들 었음에 틀림이 없었는데 적어도 그것은 6~7마리의 은빛 여우 가죽으로 만 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것을 코스챠와 스타로-피메노프 거리에 갔을 때 딱 한번 걸쳤을 뿐이었다. 그녀는 옷장에 있는 옷이란 옷은 몽땅 다 꺼내였다. 그렇게 온통 뒤져 봤지만 모피 쇼올은 없었다. 다른 아무것에도 손을 대지 않고 오직 그 쇼 올만 없어진 것이다. 그녀는 문득 이웃 갈랴 생각이 났다. 그리고 15세 난 건달인 그녀의 아들 페트카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벌써 직장에서 돌아와 있었다. 바랴는 문을 두 드리고 들어가, 그녀 등 뒤로 문을 굳게 닫았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내 은빛 여우 목도리가 없어졌어요. 무슨 소리야, 없어졌다구?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당황했다. 오늘 아침까지도 옷장 안에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잘 살펴봤니? 모조리 다 꺼내 봤어요. 그것만 도둑맞았어요. 도둑이라니! 누가 그것을 훔쳐 갔겠니? 모르겠어요. 어쩌면 갈랴, 아니면 페트카가. 그러나 그들은 네 방 열쇠를 갖고 있지 않은걸.... 난 여러 해 동안을 그들과 살았지만, 전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구. 그땐 페트카는 단지 어린애였죠. 이제 그는 더 커서, 도둑질을 시작하 게 된 게 틀림없어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구요. 경찰을 불러야겠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말했다. 바랴는 코스챠에게 얘기도 하지 않은 채 경찰을 부르고 싶지 않았다. 애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에게 먼저 얘기를 한 후에 경찰을 불러 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다. 코스챠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바랴? 콘스탄틴 페드로비치는 저녁 늦게까지 돌 아오지 않을 텐데. 우린 지금 즉시 경찰에게 알려야만 돼. 그렇지 않으면 경찰은 왜 곧장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느냐고 물을 거야. 그들이 제가 언제 벽장문을 열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내일 그들한테 가서 옷장을 열어 보니 없어졌다고 말하겠어요. 그들이 내일 찾기 시작한다면 더 힘들 거야 라고 소피야 알렉산드로브 나는 고집을 피웠다. 흔적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을 때 수색을 해야만 해. 매우 불쾌할 것이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야. 그 쇼올은 상당한 값이 나가는 거잖아. 그리고 만약 그것을 훔쳐간 사람이 페트카라면, 더더욱 그가 그것을 없애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여. 그렇지 않으면 그는 또다시 우리 물건을 털어갈 거야. 그러면 여기 생활이 어떻게 되겠어? 빨리 코스챠를 찾아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봐야겠어요.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레인코트를 걸친 후, 집을 떠났다. 그녀로 하여금 경찰을 부르지 않게 한 것은 무엇인가? 왜 그녀가 그렇게 조심성있게 굴며, 지금 코스챠에게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세금검사관 때 문인가? 그들은 이미 코스챠의 재산 목록을 다 만들었을 것이다. 경찰은 그녀에게 어디서 그렇게 값비싼 쇼올을 얻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 면 그녀는 그것을 코스챠가 주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것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 가 확실하게 아는 것이라곤 코스챠의 명령 없이 경찰에게 가서는 안 된다 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그 쇼올이 어디서 생긴 것이지조차도 몰랐다. 그는 그것을 집으로 갖고 와서는 이것 좀 둘러봐! 라고 말했었다. 그 쇼올은 그녀에게 썩 잘 어울렸다. 내 선물이야. 고마워요. 얼마나 들었지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돈이야 들었지. 싸지는 않아. 그 쇼올은 아마 누군가로부터 산, 아니면 아마 어떤 암시장 모피상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수입상품가게에서 산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훔쳐 온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코스챠는 그녀가 배우 극장 에 그것을 두르고 나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쇼올 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말한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얇은 얼음장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사람같이 불안해 보였다. 그는 메트로폴 당구장에 있었다. 그녀는 당구장을 싫어했는데 그곳은 여 자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다 남자들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제정신이고, 어떤 사람은 술에 만취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절반 가량 취해 있었고, 어떤 사람은 그녀를 흥미롭게 쳐다보았고, 어떤 사람은 그녀가 남편을 집으로 끌고 가려고 찾아온 귀찮은 여편네인 것처럼 경멸하 는 투로 쳐다보았다. 그곳은 담배연기로 가득하여 숨이 탁 막히는 곳이었 다. 그들의 얼굴들은 홀쭉하고 창백해 보였다. 코스챠는 바랴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당구공과 포켓과 그의 큐만 보 았다. 그는 상대방의 겨냥을 따르고 슬레이트 위에 노트하더니 하고 다시 돌아가, 시합에 집중했다. 바랴는 누가 이겼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코스챠는 점수를 기록하는 사 람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그 점수를 기록하는 사람은 즉각 새로운 시합을 위해서 공을 흐트러 놓았다. 큐에 쵸크를 바르며 긴장해 있던 코스 챠는 당구장을 쭉 훑어보다가 문간에 서 있는 바랴를 보게 되었다. 그는 마치 바랴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는 험악 하게 얼굴을 찌푸리고는 큐를 가지고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밖으로 나가지. 그들은 당구장 밖 작은 복도로 나왔다. 거기는 작은 소파 두 개와 안락 의자 하나가 있었다. 바랴는 거기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나 보다고 추측 했다. 그녀는 갑자기 더욱더 침착해졌다. 왜냐하면 그의 표정에서 경찰을 부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 쇼올이 없어졌어요. 무슨 쇼올? 그 은빛 여우.... 그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 버렸다. 그녀는 전혀 모르는 낯 선 한 남자가 옆에 서 있는 것처럼 그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그는 말했다. 내가 또 다른 것을 사줄게. 더 좋은 걸로, 난 졌 어. 근데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 쇼올을 팔아서 빚을 갚았어. 그러지 않았 더라면 그들은 나를 죽여버렸을 거야. 집에 돌아가, 나도 곧장 갈 테니 까. 바랴는 집으로 돌아왔다. 잘됐어?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물었다. 콘스탄틴 페드로비치가 어딘가에 쓸려고 그 쇼올을 모피상인에게 갖다 줬대요. 경찰을 부르지 않길 잘했어요. 바랴는 방으로 들어가서 레인코트 와 신발을 벗고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는 쇼올을 노름으로 날려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아직도 그가 어디서 그것을 얻었는지 몰랐다. 아마도 그와 함께 노름을 한 다른 노름꾼 에게서 딴 것인지 모른다. 그녀는 그 쇼올을 자체에 대해서는 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노 름 밑천이 그녀의 쇼올이었지만, 내일은 그녀의 코트가 될 수 있고, 그 다 음날에는 그녀의 구두일 수가 있다. 술주정뱅이는 자기 아내의 것들을 먹 어 치우고, 노름쟁이는 자기 아내의 물건으로 노름을 한다. 비카, 노에미, 혹은 니나 세레메티에바는 창녀일지는 모르지만, 자기들의 옷이 남의 몸에 걸쳐지는 것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그는 그녀의 옷을 노름으로 날려 버렸고, 내일은 아마 그녀를 노름판에 끌어들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얼마 나 어리석었던가! 그녀는 그의 허울좋은 독립에 대해 자신을 속이고 있었 던 것이다. 지금 그녀가 그가 그러한 독립을 하기 위해 치른 대가가 무엇 이었던가를 알았다. 그리고 이제까지 그녀가 당구대 위의 당구공이 굴러가 는 대로 자신을 그대로 맡겨두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바랴는 그러한 살에 환멸을 느꼈다. 더 이상 그에게 기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제 그가 노름으로 따다 준 선물을 원치 않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도움에 의지하여 자신의 교육을 끝 마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하기로 했 다. 그놈의 서류! 서류들뿐, 어디든지 똑같은 빌어먹을 놈의 절차들뿐, 그러 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보다는 아는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편이 훨씬 나 을 것이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의 말이 옳았다 - 그래서 그녀는 서류에 코스챠를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왜 코스챠에 대해 어쩌구저쩌구 말을 하겠는가?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을 명 확하게 파악했다. 그녀는 항상 코스챠와의 관계가 우연적이며 일시적인 것 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자신에 대해서 쓰는 것은 쉬웠다. 그녀는 모든 어려운 질문들에 대해 아님 이라는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녀의 돌아가신 부모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니나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분명히, 니나는 코스챠 때 문에 그녀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화도 하지 않았고 찾아오지도 않았 다. 그들이 건물 안에서 서로 마주칠 때에도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저 무심한 고개짓만 할 따름이었다. 마치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는 듯이! 하지만 그녀는 바랴에게 그녀의 엄마와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그들은 바랴의 보모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니나가 받았다. 나 바랴야. 언니한테 갈게. 상의할 게 있어. 좋아. 내게 뭐 할 말이 있다면 하고 니나는 별 생각없이 대답했다. 전화를 걸지 말 걸 그랬다. 꼭 가겠다는 허락을 받은 꼴이 돼버렸던 것 이다. 그냥 갔어야 했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8 바랴가 단지 결혼을 잘못한 것이었다면. 니나는 자기 여동생의 운명을 같이 나누며 돕고 위로했을 것이다. 하지만 벌어진 일은 결혼의 실패만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가 그들에게 심어준 점잖고 나무랄 데 없는 모든 것에 해한 배신이었던 것이다. 한 번은 뜰에서 니나를 만난 유리 샤로크가 이렇게 말했다. 네 동생은 도둑놈하고 붙어살고 있어. 니나는 샤로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레 나 부쟈기나가 그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니나는 말싸움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유리의 말을 들은 척도 안했다. 그래, 왜 도둑이 잡히지 않고 있지? 곧 잡힐 거야 하고 샤로크는 약속했었다. 유리의 얘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바랴의 남편이라고 하는 작자는 확실히 의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꼭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같았다. 레스토랑과 노름꾼들과 투기꾼과 부랑자들의 세계, 그것은 니나가 아주 싫 어하는 것이었다. 그녀와 바랴는 지금 바리케이드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었다. 소피야는 사샤의 추방으로 소비에트 정권을 용서할 수 없는, 바 리케이드의 다른 쪽에 있었기 때문에,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그녀에게 안식처를 제공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비록 사샤가 유배 된 것이 실수였었다 할지라도 소비에트 정권이 전적으로 잘못한 것은 아니 었다. 세상에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정부는 하나도 없으니까. 격렬한 계급 투쟁이 계속되어 갈 때, 당은 적대적인 당들과 야당의 잔재들을 일소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간혹 실수도 빚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샤에게도 실수를 범했단 말인가? 유리가 레나 부쟈기나 에게 한 말을 따르자면, 사샤의 학교에는 반소비에트 조직이 있었는데, 사 샤는 그들을 지켜 주었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가 주 모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에게 단 3년을 선고했지만, 유리의 말에 의하면 그는 조사를 받을 때 오만하고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책임 을 져야만 했다는 것이다. 사샤는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그 의 힘있는 삼촌, 랴자노프의 도움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랴자노프의 개입 도 이반 그리고리예비치 부쟈긴의 개입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그녀 는 증오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녀의 부당이득화 함께 친구들도 등을 돌린 바랴를 받아들임으로써, 니나 는 물론 사샤의 모든 친구들에게 도전장을 보냈던 것이다. 아무튼, 바랴는 학교에 다닐 때에도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의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갔다. 그녀는 여러 명의 남자애들과 나돌아다녔고, 립스틱을 발랐으며, 가진 돈을 전부 옷에다 써 버렸다. 그때에도 니나는 그녀를 조종할 수 없었고 그것은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렇 게 되서는 안 되었다. 이제 뭐가 잘못 되었든 간에, 바랴는 스스로 거기에 서 헤쳐 나와야만 할 것이다. 바랴는 그 남자를 니나의 집에 등록할 수 있 다는 기대를 걸지 않은 게 좋을 것이다. 그곳의 생활공간은 단 두 사람에 게 충분한 크기였고, 니나는 도둑놈이나 투기꾼, 노름꾼에게 한 치의공간 도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들은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이며 자기네들이 살고 싶은 곳 어디에서든 살 수 있을 것이다. 바랴는 분명히 자기의 거치 에 대해 불평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바랴는 니나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를 가지고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취직 지원 서류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고 있었으니까. 바랴가 직업을 구한다고? 그녀는 그걸 예상하진 못했다. 이상한 노릇이다. 바랴의 새로운 생활이 맘에 들지 않는단 말인가? 만약 비밀이 아니라면, 너 어디에서 일을 하게 되는지 알려주겠니? 비밀 아냐. 모스크바 호텔의 디자인실에서야. 니나는 그 모두를 알아차렸다. 그동안 바랴의 생활은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으며, 그 남편 또한 그녀에게 잘 대해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녀 는 바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가 마음이 내키면 말하도록 그대로 두었다. 뭐가 필요하지? 바랴는 그 서류를 꺼내서 가까운 친척에 대한 정보라는 항목 27을 가리 켰다. 다른 종이에다가 적어 주면 나중에 내가 그걸 다시 적어 넣을께 하고 말한 바랴는 앉아서 방을 한바퀴 돌러보았다. 새로운 것이라고는 칼라에 금장을 단 군복을 입은 막스 코스틴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 것뿐이었다. 그는 선량하고 친절하며 천진난만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바랴가 오기 전 에, 니나는 막스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바랴는 니나와 그가 결혼을 해 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 너무나 잘 맞으니까. 결국에는 사령관의 아내로서, 그녀는 엄마가 될 것이며, 그것도 그녀에게 어울릴 것이다. 방에 있는 그밖의 모든 것은 이전에 있던 것과 똑같이 그대로였다. 책장 위의 어린이 백과사전 옆에는, 젊었을 때 찍은 어머니와 아버지 사진이 있 었다. 그 사진 앞에는 낡아빠진 기름종이로 덮여진 식탁과. 니나의 침대와 자기의 침대, 그 아래에는 닳아빠진 실내화가 있었다. 베개 옆에는 밝은 색 스카프가 있었으며, 그 옆에는 근육이 튀어나온 손에 등을 들고 있는 청동빛 살결의 육상선수 그림이 있었다. 예전에 학교 증명서를 가져가기 위해, 그 아파트에 한번 갔었는데 니나 는 그때 없었다. 그 때문에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방을 둘러보고 모든 낯익은 물건들과 익히 아는 냄새들을 맡으면서, 그녀는 자기가 다시 학생시절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 은 그녀를 슬프게 만들었고, 그녀는 니나의 그 지겨운 잔소리에도 불구하 고, 이곳이 바로 그녀 자신의 가정,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다른 집이 없었다. 아니 조금 지나면 정말로 집이 없게 되는 것이다. 니나는 그녀에게 그 질문에 대해 답변한 종이를 건네 주었다. 바랴는 그것들이 서식에 위배되는가를 점검하고서 니나가 모든 질문에 빠짐없이 잘 응답했다고 생각했다. 이젠 됐어, 고마워. 그 다음은 다 잘 될 거야, 안녕. 잘 지내라. 그녀가 돌아간 후 니나는 바랴에게 자기가 잘 대해 주었는지 곰곰이 생 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이상 어떻게 한단 말인가? 바랴가 직업을 구한다 고 해서 펄쩍펄쩍 뛰어야 된단 말인가? 모든 사람이 일을 하고 있다. 그것 은 기본적인 일인 것이다. 바랴는 니나를 기쁘게 해주지 못해Te. 그녀는 더 교육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복사수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긴 누구나 다 각자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자의 존엄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남자가 나타나게 되면 그것에 대해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바랴, 그래, 바랴는 순진하게 자란 아이였다. 그러나 레나 부쟈기나는 그렇지 않았다. 니나는, 유리가 레나에게 불법적인 낙태수술을 받게 해서 하마터면 죽일 뻔했었으며, 그녀가 병원에 있을 동안 그 호색꾼은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6개월 후 그는 모습을 나타냈 고 레나는 다시금 그와 애정을 나누었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 는 것일까? 내무인민위원회에는 모두 진짜 체키스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기회주의자들도 있었다. 유리는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레나 는 그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들 사이에는 또 다른 비극이 있었는데, 이젠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그것은 유리가 다른 여자와도 관계 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레나는 그러한 유리와 헤어짐으로써 그 문 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여전히 그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혼자만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니나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기대어 사는 것을 경멸 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을 그녀는 자기동생에게서 본 것이다. 바랴가 이 제 직업을 구하고 있다고 해서, 그녀의 근본 본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직은 환영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레나가 절망에 빠졌을 때 그녀는 니나에게 유리가 바람을 피운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고 그저 그는 부정한 사람이야 라 고만 말했다. 중요한 것은 동침했다는 사실이었다. 레나와 비카는 스타로사드 거리에 있는 마로세이카의 층계참에서 우연히 부딪치게 됐다. 레나가 엘리베이터 에서 내렸을 때 비카는 레나가 들어가려던 방 문을 막 닫고 있었다. 그들 은 멍한 채 몇 초 동안 서로를 쳐다보았고,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비카가 안녕 하고 말을 했었다. 레나는 그저 중얼거렸다. 그러자 비카는 재빨리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레나는 우선 도망치고 싶은 충동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잠시 후 숨 을 돌리기 위해 바로 밑층에서 멈추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쾅하고 닫히는 순간 그녀는 비카가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 신년파티에서 일어났었던 일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던 일이었 다. 남들은 모두다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니 나가 유리와 한바탕 붙고 난 다음에, 사샤가 유리가 보는 앞에서 레나에게 말했었다. 넌 제 자신이 더 큰 똥덩어리라는 사실을 모르니? 유리는 인정사정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낙태 생각을 하면 아직까지도 진절머리가 났다.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겁쟁이같이 행동했다. 그는 숨어버렸고 한번도 병원에 찾아오 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은 비카가 막 나간 바로 그 침대에서 그녀를 기 다리고 있는 것이다. 레나만이 그 침대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비카와 관계한 똑같은 날, 바로 그 시간에 그녀와 만나려 하는 것을 부끄 럽게 여기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때서야 레나는 자기가 한 시간 일찍 온 것을 깨달았다. 유리는 다섯 시에 오라고 했었다. 그녀는 그 말을 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늘 만나 던 시간에 맞추어 왔던 것이다. 더러운 놈, 섹스광! 얼마 안 가서 그는 그 들 둘과 동시에 동침하자고 제의할 것이다. 레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 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무런 설명도 바라지 않았다. 그의 거짓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저녁 유리는 그녀에게 전화를 해 그날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일이 너무 바빴어. 화요일날은 시간낼 수 있겠니? 아니. 그러면, 언제? 모르겠어. 만약 할 수 있다면, 네가 전화할게, 이젠 내게 더 이상 전화 걸지마. 안녕, 유리. 레나가 갑자기 왜 저럴까? 샤로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만사가 잘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자기 일 때문에 그렇게 자주는 만나지 않고 있었지만, 그들은 종종 극장이나 영화관, 배우클럽, 전시회에도 갔었다. 무엇 때문에 그녀가 화가 났을까?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샤로크는 너무나 빨리 원인을 알아냈다. 레나와 부딪힌 후, 비카는 잠시 동안 당황했었다. 바짐이 그녀에게 유리 와 레나의 사이가 다시 좋아졌다고 얘기해 주었기 때문에, 자기와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레나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비밀의 방에서 레나 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비카를 버릴 것이다. 레나는 분명히 그에 게 설명을 요구할 것이고, 샤로크는 그 방이 관계를 위한 목적이 아닌 다 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설명해야만 될 것이다. 비밀 정보제보자들 은 결코 발각되지 않지만, 그는 비카가 왜 거기에 있게 되었는가를 설명해 야만 할 것이다. 이 생각은 즉시 비카를 재확신시켰다. 그녀는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 던 일인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즉 유리는 이제 그녀가 가게 내버려둘 것 이다. 비카는 그날 특히 더 치사하고 저급했던 그 짧은 대화에 대한 대가 를 치를 것이다. 유리, 난 결혼했어. 하고 비카는 말했었다. 그래? 그는 힘차게 말했다. 누구와 했는지 알고 싶은데. 그녀는 그녀의 건축가 이름을 대었다. 샤로크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지 만 특별히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축하해! 그는 유명한 사람이지. 스탈린이 그의 디자인을 좋아했어. 전시회에서 본 적이 있어. 하고 샤로크는 마치 스탈린에게 직접 승인 을 받았다는 디자인에 대해 토론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방어적인 태도 로 말을 했다. 유리, 난 너와 헤어져야만 될 것 같아. 그는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왜? 이제 난 결혼을 한 몸이고, 넌 내가 누구의 아내가 되었다는 걸 알잖 아. 난 내 생의 형태를 바꿨어. 요즘 나는 더 이상 레스토랑에 가서 내 옛 친구들을 만나지 않아. 넌 이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겠군. 아니, 내 남편은 아주 조용한 생활을 해. 그는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열한시까지 그의 작업실에 가 있어. 난 집에서 앉아서 그를 기다리지 혼 자.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야. 말하자면 난 그에게 아무것도 감출 수 가 없다는 거야. 그럼 감추지 말아야지. 샤로크는 침착하게 말했다. 유리, 우리가 만나는 것에 대해서 그에게 얘기하라는 거니? 네가 생각하기에 말해야 된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가족화합을 위해서라면, 네게 우리의 조그만 비밀을 폭로할 권한을 주 지. 샤로크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그는 즉시 날 버릴 거야. 샤로크는 어깨를 움찔해 보였다. 왜? 네 의무를 행한 것 때문에?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가 아무에게도 결코 말 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자기 손아귀 에서 빠져나가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가 자기 남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 원했고, 또한 자신이 그녀에게 그렇게 시키고 있 다고는 조금도 의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부담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좋아, 그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겠어 하고 말했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 그래 그에게 말해 버려, 그러면 우린 정 보를 약간 더 보태지. 우리는 너의 모든 외국 친구들을 덤으로 곁들이겠 어. 그러면 너는 그들, 외국인들과 어떠했었는지도 그에게 말해야 할거야. 그 친구들과 잠자리에 들 때 기분이 어땠니? 유리,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테이블 위에 주먹을 내리치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릴하고 있는지 알아! 이 창녀야, 너는 그놈들과 잤어. 너는 호텔 방을 전전했잖아. 너는 외국 스파이들에게 손발이 꽁꽁 묶여 있다구. 너는 똥통 에 눈까지 빠져 있단 말야. 그래, 네 훌륭하신 새 남편에게 그들의 어디가 좋았었는지 말해 봐. 직접 들려주라구! 유리, 너 어떻게 그럴 수가? 나는 그 사람들을 레스토랑에서만 만났었 다구. 그건 거짓말이야. 너는 그놈들과 함께 잤어. 마지막은 그 스웨덴놈이었 지. 우리는 그에 대해 알고 있어. 우리는 그 사람 전의 다른 모든 사람들, 처음부터 맨 끝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알고 있다구. 외국이이 그렇 게 좋았어? 러시아인도 충분히 있잖아? 러시아인들에겐 어디 잘못 된 데라 도 있니? 대답해 봐! 유리는 조금이라도 그녀를 이해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결국, 그 와도 잔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녀는 그가 그렇게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데에 아연실색해 버렸다. 그녀를 증오에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는 계속 말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친구들,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었지. ....크라메르 교수, 로솔리 니.... 그의 음성에는 야멸찬 데가 있었다. <재능있는 바이올리니스트들 >, 아, 그래, 프리츠, 한스, 미첼.... 그 가족의 모든 사람들, 수코양이 들! 그런데 이 모든 수코양이들은 나찌당의 활동적인 당원들이며, 그들은 모두 파시스트에다 스파이들이야! 네가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낸 그 일본 사 람들, 그들 중 하찮은 스파이들, 거물급 스파이들도 마찬가지고, 그들 중 어떤 녀석은 육군대령 계급을 달기도 했지. 너는 왜 그들이 여기에 왔고, 우리를 그토록 좋아하는지 모르니? 너는 그들에게 걸려들었고, 이제 와서 너는 그 갈고리에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넌 남 편에게 모든 것을 고백해야 될 테니까. 안 돼, 내 사랑스러운 비카. 우리 가 네 대신 그렇게 해줄게. 그런데도 그가 여전히 널 원하는가를 우리가 직접 관찰할 것이기 때문에 넌 그에게 아무것도 얘기할 수 없을 거야. 그녀는 이토록 무력하게 자기의 운명이 결정된 것을 느끼면서 가만히 앉 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마로세이카를 따라 걷는 동안, 그녀는 기분이 달라졌다. 이 재단사 아들, 그는 오산했던 것이다! 그녀가 노출되어 버린 것은 그의 실수였다. 그녀의 남편에 관한 그녀의 의견은 조금도 그를 설득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는 이제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처리해야만 할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유리, 너 두고 보자. 그녀는 일요일에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 유리. 비카야. 급히 얘기할 게 있어. 무슨 일인데? 전화로는 안 돼. 내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거리에서 만나 같이 좀 걷 자. 그는 비카가 다시 한번 자기 남편에 대한 일에 지연술책을 쓰려고 한다 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아무 서두를 이유가 없음을 안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억지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데가 있었다. 뭐가 그리 급해? 늘 만나는 때에 만나서 얘기하자구. 이 일은 기다릴 수 없어. 하고 비카는 고집했다. 늦어서 너에게 좋을 게 없다구. 좀 기다려. 좋아. 하고 비카는 냉담하게 말했다. 난 이미 너에게 경고했어. 네가 나중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이거 겁주는 거야? 좋도록 생각해. 마지막으로 말하겠어. 지금 곧 아르바트 가로 나올 수 있어? 좋아. 소바치 광장에서 한 시간 후에 만나. 어쨌든 나는 그쪽으로 갈 일이 있으니까. 앉아. 비카는 광장의 빈 벤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유리는 말했다. 나는 브로브스키 보울레바르드에 가야 하니까. 이 거리를 쭉 걷자구. 그들은 트루프니코프 거리까지 걸어 내려왔다. 그래,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지? 하고 그녀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그 물음을 따라했 다. 무슨 일이냐 하면 우리가 밀회를 나눌 방을 만들지 말라는 거야. 그는 즉시 거기에서 그녀가 레나와 마주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아차 렸다. 시간을 잠시 벌기 위해 그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라 고 물었다. 나, 계단에서 레나 뷰쟈기나를 만났어. 레나와 난 오랜 학교동창이어서 인사까지 나눴는 걸. 분명히 개는 왜 내가 너에게 왔었는지를 짐작했을 거 야 - 네가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단 말야. 그것은 내 정체가 드 러났다는 것을 뜻하잖아. 그러니 난 정보제공자로서 네게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유리, 친구로서 헤어지기로 해. 그는 그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아무말 없이 걸었다. 이제야 그는 그때 레나가 너무 일찍 왔으며, 그 바보 같은 여자가 시간을 혼동했 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비카와 맞닥뜨렸을 테고 기분이 상해서 그를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년! 골치덩어리 같은 년! 유리는 속으로 비카에게 욕을 해댔다. 하지만 비카의 어리석은 술수는 통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바보가 자기에게 공갈치려는 것이다. 비카는 갑자기 그이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눈을 부드럽게 들여다보았다. 유리, 화내지 마! 네가 실수하긴 했지만 영리하니까 아무 도 모르게 다 처리할 수 있을 거야. 내 형편은 더 좋지 않아. 이제 난 어 디에든 얼굴을 내밀 수가 없게 됐으니까. 모두 나를 피할 테고 나는 집에 만 틀어박혀 있어야 될 거야. 그는 그의 팔을 빼지 않았다. 그는 영악한 창녀야, 내키는 대로 말해 보렴. 아주 차갑고 무자비한 것 같으니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 실, 그는 레나처럼 젖은 암탉 같은 여자가 아니라 비카와 같은 여자가 필 요했다. 그는 비카와 더 오래 사귈 수도 있다. 레나는 부쟈긴의 딸이라서 까딱 잘못하면 부티르키 감방에 그를 곧바로 잡아넣어 버릴 것이다. 그런 데 비카는 중립적인 교수 가정 출신이지....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레나가 널 나의 정부라고 생각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니? 라고 그는 물었다. 비카는 멈춰 섰다.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고 회색빛의 냉정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나를 바보 취급하지 마. 난 냉정을 잃었기 때문에 쟈코프가 내 앞에 내 민 종이에 서명을 해버려 그에게 굴복하고 말았어. 하지만 너는 쟈코프가 아니야. 우리는 어려서부터 서로 알고 지냈잖아. 너는 내 오빠의 친구였 고, 가끔 우리 집을 방문했어. 중요한 건 너와 내가 함께 잤다는 거야. 그 런데도 넌 내게 친절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지금 나도 너에게 예의를 차리 지 않겠어. 이걸 기억해 둬, 난 야고다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을 썼어. 거 기에는 네가 스타로사트 거리에 매춘굴을 세웠고, 그리고 나서는 인민위원 의 딸이자 어릴 때부터 내 친구인, 네 정부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날 폭로 했다고 썼어. 이 편지는 이미 씌어 있고 단지 보내기만 하면 돼. 만약 나 를 체포하거나 끌고 가면, 그 편지는 그 앞으로 보내질거야. 그걸 명심 해. 널 체포해서 끌고 간다구? 샤로크는 경멸하는 투로 말했다. 누가 널 필요로 한데? 그리고 나서 그는 앞장서 걸어갔다. 그녀는 그와 나란히 걸었지만 그의 팔을 잡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필요치 않으면, 더욱더 잘됐군. 헤어지기로 해. 그렇지 않다 면 난 끝까지 그것을 갖고 있을 것이며, 없애거나 되물리지 않겠어. 약속 할게. 맙소사 끔찍해라, 끔찍해!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그녀는 계속 말했다. 난 솔직하게 널 대했어. 난 널 위해서 그 리베르만처럼 지겨운 사람들도 만났어. 하지만 넌 너의 애정 모험 가운데 하나로 인해 나를 내팽개쳤어. 어디 네 상관이 그것을 좋아하 나 두고보기로 할까. 날 협박하려 들지 마.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서 좋을 건 없어. 오히려 너한테 손해만 더 갈 뿐이라구. 그럼 너도 날 협박하지 마. 나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으니까. 난 결혼했 고 나의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고 또 그것을 지킬 거라구. 내가 파 멸해 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내 경력도 마찬가지가 될 거야. 그들은 이 일에 대해서 결코 너를 용서해 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만약 네가 점잖게 행동하면,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일로만 남아 있게 될 거야. 나를 믿어. 이제는 그가 멈춰 섰다. 이봐, 레나는 너를 보고 그 일에 대해서 상상을 했던 거야. 난 그녀에 게 유리의 로맨스를 즐기고 있다고 고백했어. 아무튼 한번은 그랬었잖아. 안 그래? 난 다시는 너를 만나지 않겠노라고 그녀에게 약속했어. 그러니 레나가 아무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히 믿어도 될 거야. 그렇게 보면, 너에게는 아무런 위험도 생기지 않아. 네 편지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야. 레나는 실제적인 관계로서 나 의 아내야. 네가 그녀와 마주쳤고, 그녀는 잘못된 추측을 했어. 그런 일이 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우리가 그냥 그녀가 발설하지 않겠다는 확답만 받아 두면 그 문제는 없어지는 거야. 네 편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전부는 그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로 너를 넘길 것이라는 것뿐이야. 난 그게 너를 위해 더 좋은 방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의 말을 꼼꼼히 듣고 난 비카는 크고 부끄럼을 모르는 회색빛 눈으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단호하고 결정적이며 악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모두 각자 길을 가야만 하겠군. 잘 있어. 그러자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기다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될 게 있어. 네가 협조해 주었던 일로부 터 벗어나고 싶다고 요구했던 그때, 보고서를 쓴 바로 그날에 난 이 요청 을 상관에게 보고해야만 했어.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어. 참고 기다려야 돼. 얼마나 기다려야 되지? 그녀는 물었다. 그가 그 순간에 그 일을 생각 해 내었다는 사실과, 비록 보고서를 보내고 싶었더라도 보내지 않았을 거 라는 사실은 그가 그녀를 두려워한다는 걸 의미했다. 다음번 만날 때 회답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열흘을 기다려야 된다! 또다시 그 방을 맴돌아야 된다! 좋아. 열흘만 기다릴게.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9 비카는 굽히려 하지 않았다. 건축가의 아내가 된 후로, 그녀는 자기가 모든 수단을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했다. 진짜 힘은 물론 그 반대편 에 있었다. 그러나 비카는 여전히 뻔뻔스럽고 단호하며, 어떤 일도 감행할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은 인정되어야 된다. 그가 그녀를 최상으로 대 우하고 있다는 사실. 샤로크는 그 사실을 쟈코프에게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 다. 마라세비치가 그 건축가와 결혼했다고 직접 밝혔고, 그리고 그녀는 남편에게 착하고 귀여운 소녀처럼 보이길 원하고 있어요. 그녀가 귀찮은 존재로 되고 있다는 건가? 리베르만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그만 만나기로 한 거죠. 옛친구들도 만 나지 않고 레스토랑에도 가지 않아요. 그냥 집에 앉아 있기만 하죠. 그리 고 아직까지 새로 사람을 사귀려고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당분간 그녀를 혼자 내버려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새 생활에 안주할 수 있고, 그리고 새로운 집단에도 속하고 새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시간을 주 는 거죠. 건축가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중에 아주 재미있는 사 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게 괜찮을 것 같구만. 쟈코프가 동의를 나타냈다. 얼마 간 그녀 혼자 지내게 하도록 하지. 그리고 우린 이게 있어. 샤로크.... 쟈코프는 그의 책상 위에 있는 몇 장의 서류를 들추었다. 그건 그가 할 말 을 준비하느라 생각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 그래. 그는 계속했다. 지금 하는 대화는 기밀이야. 그는 샤로크 에게 뭔가를 말할 표정을 지었다. 자포르제츠 동지가 레닌그라드에서 도 착했는데 중앙조직위에서 한 서 너명 믿을 만한 사람을 데려가길 원하고 있어. 물론 그건 대단한 책임과 아울러 높은 보상이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 하지. 그런데 후보자 가운데 자네 이름이 언급됐다네. 어떻게 생각하나? 샤로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구요? 저야 보내지는 곳으로 가야죠. 모스크바에 제 아파트를 계속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면 요. 그래, 물론, 자네 부모님이 거기에 살고 계시지 않나. 한 몇 년 동안 외곽에서 한번 일하면서 지내보는 거야. 뭐 제 2수도를 외곽지대라고야 말 할 수 없지만 말야. 자넨 이곳에 더 높은 지위로 돌아오게 될 걸세. 한번 생각해 보게나. 이건 자네가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는 제안이 야, 명령이 아니라구. 많은 사람들이 자포르제츠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지. 그는 마음 좋고 명랑한 타입이고, 부하직원을 잘 보살피는 사람이야. 이건 뭐 그저 쓸데없는 얘기고, 어쨌든 그는 자네와 직접 얘기하기를 원할 거 야. 또 어쩌면 어디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한번 잘 생각해 보라구. 내 생각엔 이것이 자네에게 아주 좋은 기회인 것 같네. 그 제안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나 흥미가 갔다. 아무도 그의 경력 전부 를 모스크바에서 지낸 사람은 아직 없었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던 것 이다. 그래서 얼마의 기간을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경험을 쌓아서 모스크바 로 돌아오게끔 되어 있었다. 레닌그라드라면 최선의 선택지가 될만한 곳이 다. 그곳은 어떤 시골구석이 아니라. 모스크바로부터 벗어나 하룻밤 여행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또한 자포로제츠는 분명히 늙은이가 된 메드베드로부터 얼마 안 있어 직무를 인계 받을 것이었고, 그것은 샤로크 도 그와 더불어 승진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어떤 기반 을 다져놓아야 한다. 베레진은 어떨까? 그라면 힘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는 야고다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극동지역으로 전출될 가능성이 크다. 극 동에 간다, 사양하지. 레닌그라드가 백배 나은 곳이니까. 샤로크는 그 제안이 전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되면 레나하고도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될 것이다. 또 형하고도, 형의 형집행기간이 거의 끝 나가고 있었다. 그가 이제 집으로 돌아오겠지. 그는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을 거야. 샤로크가 형의 부모는 아니었던 것이다. 샤로크는 마로세이카에서 비카를 만났을 때 기분이 좋아 있었다. 자, 내 사랑, 이제 너는 신나게 지내도 돼. 네 문제에서 완전히 손떼기 로 했다구. 그건 레나 때문이 아니야. 네가 남편과 충돌해서 이제 그 문제 는 조심해야 할 거라고 내가 보고했어. 우린 그저, 내 윗사람들이 나의 설 명을 설득력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만나는 걸 중지하고 있을 뿐이야. 그런 데 착하고 얌전한 아내처럼 방에만 앉아 있는다면, 우리가 네 문제에서 손 뗀 의미가 없잖아? 네 신혼을 즐기라구! 고마워. 비카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내 계약서 원본은 어떻게 되지? 계약서? 그건 문서국에 있어. 그걸 돌려받고 싶니? 응. 자, 네가 그걸 그렇게 몹시 원하는 건 아닐 거야, 그래! 도대체 누가 서류철에서 서류 한 장을 뎅그러니 가져가 버릴 거라고 생각하니? 이제 그 서류는 번호가 매겨져서 문서국으로 보내졌다구. 아마 쥐들이 읽고 있을 걸. 비카는 그들이 그 서류를 가지고 있는 한, 자기 목덜미를 채고 있는 거 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그녀가 자유로운 몸 으로 지낼 수 있는 동안만은.... 나중에 누군가가 알게 될 테니까. 고마워, 유리.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다시는 우리 그 런 환경에서 만나지 않게 되기를 바래. 그녀는 팔을 휘저으며 방 주변을 돌았다. 또 그런 목적을 위해서도.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약속했다. 그것은 진실한 대답이었다. 이제 다시는 비카 마라세비치와 관계하는 일 이 결코 없을 거니까. 만약 그런 욕구가 다시 솟구치면, 분명 그러겠지만, 그땐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녀의 역할을 대신하면 되는 것이다. 그는 벌써부터 레닌그라드로 출발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그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의 동창생들 중 많은 친구들은 휴가 동안 그 곳을 방문했었다. 레닌그라드는 휴양지로서는 굉장히 매혹적인 곳이라고 평이 나 있었다. 그 친구들은 그곳에 친척이나 친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겐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었다. 그런 점 때문에 물론 그밖에 다른 이 유도 많지만, 그는 아르바트의 지적인 집안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이 제 그도 레닌그라드에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친척과 더불어 편안 히 쉬러 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맨처 음엔 호텔에서 묵게 되겠지, 그리고 좀 있으면 아파트가 주어질 것이다. 그날 샤로크는 사인을 받기 위해 서류 몇장을 들고 베레진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인을 하고 나서 베레진이 말했다. 내무인민위원회 간부 양성을 위한 새 클래스가 선출될 거네. 어디 공부하고 싶은 생각 없나? 샤로크는 깜짝 놀랐다. 간부양성 또한 마음이 끌리는 것이 아닌가. 고급 관리 인재를 준비시키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레닌그라드는 어떡허구?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멈칫거리며 말했다. 사실은, 저, 자포르제츠 동지께서 저를 레닌그라드로 데려가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베레진은 그를 무섭게 노려보더니, 머리를 낮춰 눈길을 감추려고 했다. 그리곤 말했다. 그건 다른 문제로군, 그러면 간부양성 문제는 그만두기로 하지. 그의 얼굴이 뭔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샤로크가 방을 나가자 베레진은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열쇠 꾸러미에서 사무실 한쪽 구석에 서 있는 금고 열쇠를 찾아내었다. 그는 금고문을 따고 그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금고에서 치워 버릴 서류철들을 하나씩하나씩 조사하면서 쌓아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자기가 찾던 서류를 찾아내었고 그것을 옆에다 따로 두고 나서, 다른 서류철들은 그가 살펴본 순서대로 다시 꽂아 두었다. 그는 지 금 뺀 서류철이 있던 자리를 표시해 두기 위해 그 자리에다 종이 한 장을 끼워 두었다. 그는 그 서류철을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곤 어떤 한 페이지에 서 눈길을 멈추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샤로크가 무심코 그에게 준 정보는 지금, 레닌그라드에서 일련의 작업이 준비되고 있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확신시켜 주었다. 그의 의심은 맨 먼저 알페로프가 동부시베리아로 급파된 데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키로프는 알페로프가 자기 이치에 임명될 것을 요청했지만, 알 페로프는 레닌그라드로 파송되지 않고 앙가라의 지구장으로 파견된 것이 다. 그 이유는 그가 시베리아에 있는 동안에 중국에서 자기의 초기 행적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여지껏 모스크바로 돌 아오라는 허락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칸스크에 남아 있으라는 명령 을 받았고, 그후 거기서 지구장으로 급파된 것이다. 알페로프를 대신하여 이반 자로로제츠가 레닌그라드로 갔다. 큰 키에 넓 은 어깨를 한 그는 영락없이 <출중한 용모의 남자>로 게다가 위트를 부릴 줄 아는 농담가였고, 고급 포도주와 여자를 좋아하며 노래도 잘 불렀다. 그는 팔리크에서 살았는데 그곳에 목욕탕이 없다고, 그래서 마누라가 자기 에게 바가지를 긁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에겐 로사 프로스쿠로스크 바라고 불리는 미모의 부인이 있었다. 베레진은 그의 책상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자로프제츠의 서류철을 다시 정독했다. 그는 전직 좌익 사회주의혁명가였는데도, 비밀경찰의 중앙조직 위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물론 그는 야고다의 보호를 받은 것이다. 그들 은 항상 함께였으니까. 그가 개입한 공작 중에서 서류상 가장 중요한 일은 그가 무정부주의자 마흐노 본부로 급파된 것이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어 떤 모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자포로제츠 부하 중에 있는 베레진 측근 자가 니콜라예프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가로챈 편지의 복사본을 그에게 갖다 주었다. 그것은 이상한 편지였고 누구를 어떤 사람의 경호원으로 삼 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레오니드 니콜라예프는 16세의 나이로 전방에서 전투하던 1920년에 입당 했다. 그는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그 자신 또한 노동자가 되었다. 1934년 까지 그는 <노동자와 농민 검열소>의 레닌그라드 지부에서 가격 검열원으 로 일했다. 그에 따르면, 그는 지구당 위원회에 잠식한 트로츠키파의 응모 에 의해 그 일에서 밀려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 공장에 있는 당조직 비서 - 그 역시 트로츠키파였다 - 가 그를 당원을 조직하는 이송부 원에 임명했다. 그는 당이 자기를 파견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기꺼이 일 을 해나갔다. 그러나 그를 레닌그라드에서 제거하기를 원한 것은 당이 아 니라 트로츠키파였다. 그는 가기를 거절했다. 그는 당에서 추방당했다는 사실로 인하여 3월이래 어디에서도 고용되지 못했다. 그는 키로프 동지에 게 자기의 소송을 재고해 달라는 것과 더불어 레닌그라드 조직이 트로츠키 파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사실을 조사해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20통이나 보냈다. 그러나 그의 편지 중 한 통도 답장을 받아내지 못했다. 키로프 동 지가 그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불필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편지들 이 그에게 보내지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 일에 대한 비난은, 키로프 동 지가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트로츠키 측근들에게 있다. 니콜라예프는 30년 이란 그의 생애 중에서 14년에 해당하는 시간을 당에서 봉사했다. 그는 이 제 인내의 한계에 처해 있고 무엇인가를 할 채비가 되어 있었다. 무엇인가를 할 채비가 되어 있다.... 이건 무슨 뜻인가? 자살? 당에서 14년을 지내 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기가 그러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리란 점을 알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테러행위? 그런 것은 원래 편지에다 쓰지 않는 법이다. 테러음모에 대한 경고를 발설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런 협박을 했다간 먼저 총살될 수도 있으니까. 그 러나 이 사람은 그걸 쓰고 있다. 협박을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적으 로 불안정한 사람인가? 그의 협박 대상은 누구인가? 그리고 현재 가장 주요한 것은, 자포르제츠 가 이 사람과 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그는 이 사람을 원하는가? 자포르제츠가 새 사람들을 레닌그라드로 데려가려는 목적이 무엇일까? 그들은 누구를 대신하게 된다는 건가? 무슨 이유로? 그것이 왜 기밀이지? 평의회위원으로 있는 베레진 자신조차도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뿐 이 아닌가. 스탈린은 레닌그라드의 상황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키로프가 소위 말하는 지노 비예프파, 반대당 가담자들을 진압할 것을 명하고 있다. 곧 그는 레닌그라 드에 공포감을 확산시키질 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인가? 나라 도처에 공포감을 조장시키기 위한 뇌관으로서일까. 키로프는 그 일을 거절 하고 있고, 그렇다면 키로프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히 자포로제츠의 직무인 것이다. 그러나 자포로제츠가 하게 될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 일에 대한 조사는 레닌그라드에서 진행될 것이다. 키로프는 결코 그 일이 어떤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에 굴복할 위인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일 을 정치국에 가져갈 것이다. 그것은 곧, 자포로제츠가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들 어떤 일, 키로 프조차도 굴복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 그럼 그건 어떤 사태가 될까? 태업인가? 폭발사건? 철도참사? 그런 따위의 사건으로 키로프가 속을 리는 없지! 그의 부관들 중 한 사람 을 살해하는 것일까? 츄도프, 코다츠키, 포제른 중 누가 될 것인가? 그것 이 니콜라예프의 역할인가?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큰 소란이 야기될 것이 다. 하지만 키로프를 그 조사에서 손떼게 할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또 무엇이 있는가? 베레진은 1918년 차리친에서 스탈린이 자기에게 했던 말을 정확하게 기 억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상당수의 군대 고급장교들, 곧 전 짜르파 장교들 을 화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했다. 그 당시 한 특수부대를 책임지고 있던 베레진은 그 임무가 전혀 근거가 없음을 증명하면서, 그런 집행은 오히려 혼란과 문제를 야기시킬거라고 말했다. 스탈린은 훈계하듯이 대답했다.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사람이 없 으면 문제도 없을 게 아닌가. 그리고 스탈린의 말은 옳았다. 집행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전보가 도착되 었으나 그때 이미 그 사람들은 모두 총살당한 후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철학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철학을 다시 적용 하려는 것일까? 맞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베레진이 지금 당장 밖으로 나 가서 이 사실을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서 나온 비밀보 장이안 된 한마디의 말, 그것으로 그는 제거되어 버릴 테니까. 그러나 경 고 정도의 소리는 낼 수 있으리라. 그날 저녁, 그는 부쟈긴을 방문했다. 그들은 소비에트의 제 5주택의 막 다른 위치에서 살고 있었고, 비록 서로를 잘 모르고 가끔씩 만났을 뿐이지 만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 둘 다 구볼셰비키의 철의 동지에 속해 있으면서 인생의 동일한 길을 여행해 왔다는 것과, 그들 두 사람 모두가 헛된 야망이 결핍된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베레진은 부쟈긴에게 자기의 의혹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베레진이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부쟈긴의 아파트에 왔다는 사실로서 충분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어느 도서관에서고 구할 수 있는 극동 경제에 관한 책 한 권 을 빌린다는 명목으로. 부쟈긴은 베레진이 거의 알아채지 못하도록 얘기한 사실들, 곧 이반 자포르제츠가 레닌그라드에 데리고 갈 일단의 인물들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은 철저히 엄호되는 기밀이라는 점에 대해 충분 히 생각해 보았다. 베레진이 나가는 것을 지켜본 후, 부쟈긴은 부엌으로 가서 진한 차 한 잔을 만들었다. 베레진의 정보, 그것도 매우 우려되는 정보에 대해 상의해 보고 싶은 이런 때, 그의 아내가 없다는 사실이 그에겐 유감스러웠다. 다음날 아침, 부쟈긴은 자기의 사무실을 지나 세무쉬킨의 사무실로 갔 다. 그는 오르드조니키드제의 문 쪽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안에 계신가? 예. 세무쉬킨이 대답했다. 부쟈긴은, 자포르제츠가 레닌그라드에 데리고 갈 새 인물들을 임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르드조니키드제에게 얘기하면서 베레진의 이름은 언급하 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정보의 출처는 절대 밝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르드조니키드제는 곧 수심에 잠겼다. 이 새 임명이라는 것이 단순히 내무인민위원회가 조작하는 예사로운 관료정치적 음모의 결과라 한다면, 메드베드가 키로프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당원들은 정치국위원이자 키로프와 개인적으로 친구인 오르드조니키드제에 게 정보를 알리는데 있어 부쟈긴을 이용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정 보는 내부의 행정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정보인 것이다. 자넨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오르드조니키드제가 물었다. 어떤 일이 레닌그라드에서 꾸며지고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 목적은 키 로프를 위태롭게 하는 데 있어. 어떻게? 그건 말하기가 어렵네. 그들은 그에게 체포를 감행하라고 강요하고 싶 은 거겠지. 그리고 그가 그 일을 안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들려고 해. 여전히 그가 거부한다면, 그는 레닌그라드에서 제거될 것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오르드조니키드제가 동의를 나타냈다. 그런 생각은 이전에 결코 그에게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었다. 즉시에 그 생각을 떠오르게 한 것은 그가 베레진처럼 직업적인 체키스트인 덕택이었 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0 스탈린은 치통을 앓고 있었다. 한동안 이 하나가 흔들거려서, 의치로 고 정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런데 전날 밤, 의치를 빼면서 몹시 통증을 느 낀 것이다. 그가 의치를 제자리에 끼우자 그 이는 다시 단단하게 고정된 것 같았다. 그러나 혀로 그것을 건드리면 다시 흔들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잇몸도 아픈 것 같았다. 스탈린은 의치를 빼지 않고 잠자리에 들어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잤다. 그 러나 다음날 아침, 얼른 의치를 빼고서 혀로, 그 다음에 손가락을가지고 그 이를 만져 보았다. 그것은 또 흔들거렸다. 그는 이 이를 빼고 싶었다. 혀를 가지고 그것을 입 밖으로 밀어내고 싶었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서 그의 주치의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그날 저녁, 그는 닥터 리프만과 그의 조수가 비행기로 도착했고 제 3번 별장에 투숙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에게 짐을 푸는 즉시 오라고 해. 스탈린은 지시했다. 30분 후 의사가 나타났다. 그는 잘생기고 성품이 좋은, 마흔 살이 채 안 된 유태인이었다. 그는 전에 스탈린을 치료한 적이 있었는데 스탈린은 그 의 치료가 마음에 들었었다. 그는 이런 말을 하기까지 했다. 당신은 샤피 로보다 손놀림이 더 부드럽군. 샤피로는 리프만 이전의 주치의였다. 그 또한 훌륭한 치과의사였지만, 스탈린은 그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 게 싫었다. 괜찮으시냐, 처방해 드린 약은 드셨느랴라고 묻지만 그 어떤 것도 설명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 이었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어디가 아프냐라든지 처방을 어떻게 할까요라 고 묻는 일이 결코 없다. 그들은 무지무지하게 거만한 태도를 취하면서, 그들의 직무가 마치 불가사의한 신비인 것처럼 구는 것이다. 이런 성질이 불쾌하게도 그 자그마하고 조용한 샤피로에게 있었다. 그 반면 리프만은 그가 하는 일은 설명해 주며, 그의 이가 어떤 상태이 고 의치를 어떻게 끼워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다. 또 그가 처 음으로 스탈린의 이 중 하나를 뽑았을 때도, 그는 샤피로처럼 뺀 이를 대 야에다 그냥 던져 버리지 않았다. 그는 그 이를 스탈린에게 보여 주면서 치근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또 왜 그 이를 빼야만 하는지에 대해 가르 쳐 주었던 것이다. 그는 서두르지 않으며 붙임성 있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스탈린은 그에 대해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그 친구는 마력으 로 이빨을 뽑는다구! 그는 리프만이 자기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는 뭐 특별할 게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를 두려워하니까. 그러 나 만일 치과의사가 손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뭔 가 치료가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리프만을 친절하게 맞아 들였다. 평상시처럼 그는 물었다. 안녕하셨소. 또 댁네는 무고하고요? 모 든 일이 잘 돼 가시는지? 그는 리프만의 가정이나 그의 식구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네, 좋습니다. 요세프 바사리오노비치. 리프만은 거의 여행용 가방만큼이나 큰 그의 완진가방을 열고 기구와 머 리받이를 꺼낸 뒤, 머리받이를 안락의자에다 부착시켰다. 스탈린은 그가 맨 먼저 머리받이부터 설치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샤피로 는 항상 스탈린이 의자에 앉으면 그때서야 머리받이를 끼우는 것이었다. 스탈린은 살마들이 자기의 등 뒤에서 법석을 부리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머리받이를 부착시키고 그것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리프만은 스탈린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리프만은 그의 목에다 수건을 대고 나서 그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그의 머리를 머리받이 쪽으로 낮추어 주었 다. 편안하십니까? 예. 어디가 문제인가요? 흔들거리는 이가 하나 있는데 특히 의치를 빼면 더 심하고. 한번 잘 살펴보기로 하죠. 그는 스탈린에게 물 한 컵을 주었다. 헹구 십시오.... 네, 좋습니다.... 자 다시 머리를 뒤로 하시구요.... 네 좋습 니다.... 리프만은 조심스럽게 의치를 뺀 뒤, 그 이빨을 건드려 보았다. 그의 촉 감은 부드러웠고, 그의 손에서는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그 다음, 기구들 중에서 그는 검사경을 들고서 이를 다시 살펴보았다. 이 치아를 빼야 되겠습니다. 다른 방도가 없겠는데요. 그냥 두면 고통 만 더 심해지게 됩니다. 의치도 그 치아를 지탱해 낼 수 없구요. 이미 거 의 빠져 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겠소? 글쎄요. 먼저 잇몸치료를 이틀 정도 해야 할 것이고, 의치는 하루만에 해 넣을 수 있습니다. 모두 합쳐서 오 일 가량 걸릴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은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닷새 동안 이 하나 없이 돌아다니라는 거요? 스탈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 치아가 하나도 없습니까? 리프만이 미소를 지었다. 윗쪽 어금니만 없이 지내게 되실 거예요. 물론 이 의치를 일시적으로 끼워드릴 수도 있습 니다. 그는 쓰던 의치를 손위에서 뒤집어 보았다. 그렇게 되면 이 하나 만 없게 되는 거죠. 그러나 문제는, 의치가 잘 맞지 않아 다른 치아를 누 르게 될 경우, 건강한 치아를 또 하나 손상케 된다는 점입니다. 무엇 때문 에 위험을 자초하십니까? 그 며칠간을 기다릴 수 없으시겠어요? 좋소. 스탈린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언제 빼시겠소? 편리하실 때 언제라도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떨까요? 아니, 내일 오전은 어때요? 스탈린은 물었다. 내일 오전이 좋겠군요. 오늘은 손님들이 오기로 되어 있소. 이도 없이 손님들과 인사한다는 건 어째 꼴사납지 않겠소? 손님들이 음식을 드시길 원할 경우, 리프만이 웃으면서 말했다. 중요 한 것은 자기 치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스탈린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리프만은 서둘러 그의 목에 있던 수건을 치 워 주었다. 잘 지내시오. 내일 오전 아침식사 후에 당신을 모시러 갈 거요. 그날 키로프가 도착했다. 스탈린은 즈다노프에게 역사교과서에 관해 그 들이 하려고 하는 작업을 보여 줄 것과, 그날 저녁식사에 초대할 것을 말 했던 것이다. 그들 세 사람은 만찬을 함께 했다. 스탈린은 주인으로서 식탁 중앙에 앉 았다. 와 주셔서 기쁘오. 세르게이 미로노비치. 여기 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 치. 그는 즈다노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시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인 양 식탁에 앉아서 날 굶어죽게 만들려고 하고 있소. 하지만 난 체호프의 이런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 모든 질병은 의사들 에 의해 꾸며진 창작이다 라는 것을 말이오. 물론 사람은 절제해 가면서 모든 음식들 중 조금씩만을 먹어야 하지. 여기 음식들에는 고수라든가 사 철쑥 같은 아주 좋은 향료를 썼다오. 또 이 과일도 아주 좋은 것이고, 이 달지 않은 포도주는 그루지아 포도주인데 아주 고급이오. 자, 드십시다. 사람에게 다 좋은 거니까. 식탁 위에 뭐가 있는지 다 알 수 있겠지 - 자넨 코카서스 출신이니까. 아니면 레닌그라드에 살게 된 이후로 치즈빵이니 로 비오 콩, 스튜한 차가운 칠면조 같은 걸 다 잊어버린 거 아니오?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키로프는 접시에서 음식을 덜면서, 웃으며 말 했다. 이 음식을 다 기억하고 있고 다 좋아합니다. 요즘 레닌그라드에서는 어떤 종류의 요리가 유행하는지 모르겠군. 스 탈린은 생각에 잠긴 듯이 말했다. 이전엔, 신사들은 불란서식 요리를 좋 아하고 인민들은 소시지나 살라미 같은 독일식 요리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어떻소? 요즘 유행하는 음식은 프롤레타리아식 요리입니다. 키로프는 말했다. 배춧국과 당근즙, 굵게 썰은 고깃점 그리고 마카로니 등이죠. 우리가 배 급표에 내는 건, 모두 인민들이 먹죠. 아, 배급표. 갑자기 스탈린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배급표를 폐지시키려고 하고 있소. 키로프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배급표 폐지를 1월 1일부터 시행한다는 것은 이미 결정된 사실이었던 것이다. 올해는 풍년이 예상된다더군, 스탈린은 계속해서 말했다. 곡물이 아 주 풍성할 거요. 카자흐스탄 말로는 이번 추수가 전례가 없다는군. 몇십 년 동안 이런 풍작은 처음이라니까. 에이커당 천 파운드 이상 되는 곡물을 수확하게 될 거라나. 미르조얀 동지가 그 풍작을 잘 처리할 수 있을지 염 려스럽소. 미르조얀은 아주 정렬적인 사람이라 우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 다. 키로프의 답변을 못 들은 듯, 스탈린은 계속 심각하게 말했다. 풍작은 단연코 좋은 일이오. 허나 그건 또한 위험하기도 해. 왜나면 그건 사람들 에게 불시에 찾아와서는 만족감이나 행복감, 또 안정감에 빠져들게 하거 든, 풍작은 곡물이 일단 다 거둬들여지고 나누어질 때만 좋은 거요. 여기 저기 흩어져서 마음대로 소비하게 되면 좋지 않은 거지. 스탈린이 어떤 화제를 꺼낼 때는 분명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을 키로프는 잘 알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관한 대화도 결코 우연히 시작한 것은 아닌 것이다. 스탈린은 대개 식탁에서는 공무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데, 이건 예외인 것이다. 그는 거리가 먼 어떤 화제를 꺼내는 것으로 얘기 를 시작하여, 평범한 논평을 하는 것으로, 전혀 예상 못했던 자기의 결정 사항들을 끌어내곤 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농업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달 전, 중앙위원회 회의석상에서, 키로프는 곡물과 육류 할당량 이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은 축소된 것이 아니라, 여러 부분에 걸쳐 조정된 것이었다. 어떤 것은 증가했고, 또 어떤 종류는 감소했다. 스탈린은 그런 상황을 이 해하짐 ht했다. 농업에 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었으니까. 수확이 늦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 6월이란 레닌그라드 지역에서 배급이 끝나는 달이었 다. 그러나 키로프는 그런 비판에 항변하지 않았다. 당은 그 때 이미 식량 배급카드 제도를 폐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곡물 확보에 전력을 집중시키는 게 급선무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 일에 동원되었어야 했던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비판받게 되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당지도조직 에 있어서 모범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오히려 잘된 길이었다. 그건 예사로 운 일이었고, 키로프는 그 뒤에 개인적인 어떤 요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다. 비록 더 모범이 되기 위해서는 수도인 모스크바 조직위로부 터 표본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모스크바조직은 카가노비 치가 이끌고 있었고 스탈린은 그를 비난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은 비난하고, 다른 사람은 키워 줌으로써, 그들을 서로 다투게 만드는 것은 스탈린 특유의 방식이었다. 한번은 스페판 샤우미얀이 스탈린 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코바는 뱀의 정신과 윤리를 가진 사람 이야. 그러나 키로프는 거기에 초연했다. 당의 문제가 결정될 때는, 거기 에 개인적인 감정이 있을 여지가 없으므로. 더욱이 키로프는 카가노비치를 살인자, 아첨꾼, 겁쟁이로 여겨 몹시 싫어했다. 어쨌든 키로프는 레닌그라 드의 곡물수확이 지연됐다는 중앙위원회의 판결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카자흐스탄의 추수에 대한 대화였다. 역사교과서 집 필을 도와 달라는 그의 생각은 꾸며낸 것임에 분명하다.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니까! 스탈린은 또한 자신을 역사가라고 곳 생각한다지만 분명 역사학 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기를 이곳에 오게 한 것일까? 좋아, 스탈린이 갑자기 말했다. 왜 우리가 추수와 카자흐스탄과 미르 조얀 얘기를 하고 있지? 우리가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은 딱 한 가지요, 곧 역사에 관한 문제이지. 그는 즈다노프에게 몸을 돌렸다. 세르게이 미 로노비치, 준비는 다 되었소? 네, 준비되어 있습니다. 즈다노프가 대답했다. 우린 역사를 우리 손으로 써야만 하오. 스탈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다른 사람 손에 떨어지고 말지. 부르조아 역사가들 손에 말이야. 그렇다고 우리 역사가들이 훨씬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네. 그 리고 또 포크로브스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 - 그도 역시 부르 조아 역사가이니까. 포크로브스키는 실수한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레닌이 그의 작업을 다 른 각도로 평가한 거죠. 키로프는 그에 맞섰다. 스탈린은 뭔가 알아내려는 듯한 표정으로 키로프를 응시했다. 그렇다면 레닌이 그를 어떻게 평가했지? 당신도 <러시아역사 개요>에 대해 그가 포크로브스키에게 써보낸 편지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포크로브스키에게 뭐라고 썼나? 그는 레닌이 무슨 내용의 편지를 썼는지 훤하게 알고 있었지만 키로프의 실수를 포착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점을 한마디로 기억해 내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레닌은 그 책에 대해 그에게 축하를 보내면서,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야 된다고 말했죠. 맞아. 레닌이 그에게 그런 찬사를 퍼부었소. 그런데 말야, 동시에 그는 추상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그 책에 연대표를 첨가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 점이 바로 그 책에 대한 레닌의 평가의 본질 이야.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키로프가 말을 했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 습니다. 일반적인 평가는 명확하고 분명하며 긍정적이었습니다. 연대표를 첨가해야 한다는 시사는 사소한 사항일 뿐이며, 그것이 전반적으로 긍정적 인 그의 평가를 격감시키지는 않았습니다. 포크로브스키는 1920년에 그 책 을 집필했고, 그 결과 그 책은 러시아역사를 마르크스-레닌의 관점에서 조 명한 최초의 시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레닌의 명령에 따라 대중을 위한 책으로 집필했구요. 그 책이 가진 다른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 고 그 작품은 상당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책을 배웠 으니까요. 역사학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해서 새로운 교재가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포크로브스 키의 업적을 현재 어떤 역사들처럼 비판한다는 것은 부당하며, 또 최근 몇 년 동안 그가 탄압을 받고 있는데, 그렇게 그에게 박해를 가한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코프로브스키는 정말 한치의 의심도 없이 정직한 사람이니까요. 그래요? 스탈린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네는 역사에는 영 자신 없다고 그러더니만 아주 훌륭하게 설명하는구만! 그리고 자네 말은 아주 옳은 말이네. 우리가 새 역사교과서를 필요로 한다는 것 말이네. 그 것이 바로 내가 자네를 이곳에 오게 한 이유일세. 자네는 오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필요하다는 것이 이렇게 판명되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 의 문제는 포크로브스키가 아니네. 난 당의 어떤 멤버들에 대해 얘기하는 걸세. 말하자면 당의 구멤버들 몇 사람 말이네. 예를 들어 크루프스카야 동지도 역시 역사를 쓰고 있지. 그녀가 쓴 레닌 회고록도 읽어 봤나? 네, 다 읽어 봤습니다. 키로프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포스펠로프가 그 회고록에 대해 프라우다 에 기고한 기사는? 예, 그것도 읽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기사지. 요점이 있어. 스탈린은 몸을 돌려 탁자에서 어떤 서류철을 꺼내서 펼치고는 잡지에서 오려낸 부분을 찾아내고, 그가 빨간 볼펜으로 표시해 둔 페이지들을 살펴보았다. 아, 여기로군.... 포스펠로 프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더군. 크루프스카야는 우리 당의 역사에 대한 플 레하노프의 역할을 무비판적으로 과장했다. 또한 그녀는 레닌을 플레하노 프의 존경하는 제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옳아. 왜 그가 옳다고 하는가? 그것은 플레하노프가 이 인물들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고 있는 반면에 크루프스카야는 그들을 먼 과거의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지. 그리고 현재의 우리가 경험한 바로서는, 우리가 플레하노프는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아버지>라고 존경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의 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 이 두 인물을 같은 차 원에 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이네. 키로프는 다시 스탈린의 말을 주의깊게 경청했다. 그는 포스펠로프의 기 사를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사의 초점은 물론 플레하노프에게 있 지 않았다. 거슬리는 문구는 크루프스카야가 한 다음의 논평 중에 있었다. 10월 이후, 이전 지하활동이란 상황으로 인해 일찍이 스스로를 나타낼 기 회를 갖지 못했던 인민들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스 탈린 동지였다. 키로프는 이 문구가 스탈린을 얼마나 화나게 만들었을 것 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고, 또 그에 대한 대응이 돌아오는 데는 그리 시간 이 걸리지 않을 것이란 점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태는 이렇게 진전되어 갔다. 답변은 포스펠로프가 프라우다 에 기고 한 긴 논설로 나타났는데, 그 논설에서 그는 회고록이 가지고 있는 여러 양상들을 비판함으로써 다음 의 관점을 표명하려고 했다. 지하시기 동안에서도 스탈린이나 스베르들로 프와 같은 권위 있는 조직원들 - 당 지도자들 - 의 주도적인 역할은, 해외 에서가 아니라 바로 러시아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볼셰비키의 근원적인 행동가들에게 아주 명백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사실이 아니 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미 혁명 이전에 자신의 당이 제 2인자라는 주 장, 곧 스탈린이 내부에서 러시아를 다스리는 반면 레닌은 대외에서 당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주장을 변경시키려는 가장 미미한 시도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기사는 사실과는 맞지 않았으나, 당을 새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집합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인 방편으로 인정 하는 것과, 역사로서 받아들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스탈린은 싱긋이 웃었다. 모든 사람들이 회고록을 써 왔어. 심지어는 아벨 에누키드제도 그걸 쓰고 있다는군. 아까 탁자에 놓아두었던 바로 그 서류철에서 스탈린은 에누키드제의 소 책자를 꺼내서 키로프에게 보여 주었다. 이 책 읽어보았나? 키로프는 에누키드제의 책을 읽었고, 그 책에서 스탈린이 무엇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잠시 동안, 그 대화 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읽지 않았노라고 말해 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스탈린이 그가 그 책을 읽었다고 짐작하고 있다면 결국 그것에 대한 토론 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네.... 그저 대충 읽어 봤습니다.... 한번 훑어본 거죠.... 스탈린은 그의 회피하려는 심정을 파악해 버렸다. 그저 대충 봤다 , 훑어봤다 이거지. 이 책에 따르면, 딱 세 사람만이 니나 라고 알려진 불법 신문에 대해 알고 있는데, 크라신과 에누키드제, 그리고 케츠호벨리 라는 거야. 아벨 에누키드제는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지? 그는 그 신문을 발간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키로프가 대답했다. 분명히 그는 그들 중 한 사람이야. 그러나 그들 중에는 또한 크라신과 케츠호벨리도 있어. 그리고 케츠호벨리는 그 간행물의 존재를 내게 숨기지 않았어. 그러나 크라신이나 또 케츠호벨리나 다 지금 살아 있지 않아. 아 벨 에누키드제만 아직 생존하고 있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간행 물의 역사를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묘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것 은 아니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혀야 하는 거니까. 분명히 에누키드제는 지금의 사정을 당신이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겁니다. 키로프는 말했다. 그는 틀림없이 레닌의 지령이 엄밀히 실 행되고 있는 것으로만 믿고 있을 겁니다. 무슨 지령? 스탈린이 그의 귀를 쫑긋 세웠다. 크라신과 에누키드제, 케츠호벨리 그리고 식자공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 간행물에 대해서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자네는 그 지령을 어떻게 알았나? 상식입니다. 상식 ? 문제는 에누키드제가 창작해 낸 걸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믿고 있다는 거야. 그 간행물은 실상 해외에 있는 본부의 지시하에 있다 구. 그런데 왜 내가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믿고 있지? 물론 레닌 은 그 간행물을 개인적으로 움직였어. 그러나 그건 에누키드제가 쓴 것처 럼 그들 셋을 제외한 다른 사람 누구도 그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걸 의미 하지는 않아. 만일 에누키드제 동지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왜 맨 먼 저 그 당시 바쿠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나? 그리고 왜 그가 지 금 그걸 출판했느냔 말이야? 또 유독 그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뭐지? 왜 그 사실이 필요한가? 그건 바로, 지도체제의 승계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기 위해서, 또 중앙위원회의 현 지도자가 레닌에 직속 계승자가 아니라는 사 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곧 혁명 전에 레닌은 현 지도자들을 신임해 온 것 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신뢰해 왔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야. 더욱이 그가 현 당중진들을 신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들 을 신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란 말이지. 도대체 에누키드제가 벌이고 있는 게임이 뭔가? 그가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키로프는 단언했다.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기록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 다. 그는 분명히 케츠호벨리가 그 일을 당신께 알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 을 겁니다. 확신합니다. 그런 확신에 대한 근거를 찾지 못하겠어. 스탈린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런 단언에 대한 근거가 뭔지 모르겠단 말이야. 에누키드제 동지는 과거 에 당에 가입하지 않았던 사람이야. 에누키드제는 중앙위원회 위원이야. 그는 행동에 대한 정치적 결과를 충분히 생각해 낼 수 없는 인물이 <아니 야>. 에누키드제 동지는 그의 팜플렛이 어떤 사람의 이해에 기여하고 있는 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구. 만약 평범한 역사가가 그걸 기록했다면, 그건 무시될 수 있지. 역사가들이란 실수가 잦으니까.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역 사적 사실에 대한 죄인이고, 대체로 별볼일 없는 논법가에 지나지 않는 사 람들이지. 그러면서 정치가들을 나쁘게 만들고 말야. 그러나 이 팜플렛은 평범한 역사학자에 의해 씌어진 게 아니라구. 당과 국가 지도자들 중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되어졌다는 거지. 그가 왜 이걸 썼을까? 무슨 이유로 자 기의 회고록을 쓰고자 한 거지? 그러기엔 좀 이르지 않나? 에누키드제 동 지는 아직 젊은 사람이야. 우린 사실 동년배라구. 그러나 난 아직 내가 회 고록 집필을 서서히 준비해야 할만큼 늙은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단 말세. 이 책은 회고록이 아니야. 정치적 행위일세. 우리 당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목적으로 자행된 행위이며, 현 당지도자들의 명예를 더럽히려는 의도가 스 민 행위라구. 그것이 바로 에누키드제가 이루려고 하는 목적이야. 저는 당신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습니다. 키로프는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팜플렛을 쓰는 일은 에누키드제의 일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역사학자도, 작가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가 현 지도체제에 대해 명예를 떨어뜨리려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믿지 않습니 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며 당신을 사랑합니다. 스탈린은 눈을 내리깔면서 키로프를 쏘아보았다. 그의 눈은 호랑이눈같 이 노란빛이었다. 더욱 화가 난다는 듯, 말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가 말했 다. 정직, 성실, 사랑 - 그런 것은 정치적인 범주에 속하는 게 아니지. 정치에는 단 한 가지만 있을 뿐이네. 곧 정치적인 계산이지. 대화가 점점 껄끄러워졌다. 최근에 와서 스탈린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 힘들어졌다. 특히 그의 기분이 상해 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에누키드제 동지는 시정될 수 있습니다. 키로프는 달래 볼 양으로 그 렇게 말했다.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자기가 부적합하며 무자격하다는 것을 지적해 줘야 되겠지요. 맞아. 스탈린이 얼른 응수했다. 만일 역사가가 그걸 기록했다면, 다 른 역사가들이 그를 시정해 줄 수 있겠지. 그러나 이건, 이 나라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인 중앙위원회 위원에 의해 기록된 거야. 그는 자기와 같은 위치의 사람에 의해서만 자기의 잘못을 지적 받을 수 있다는 거네. 그는 키로프를 빤히 응시했다. 자넨 오 년 동안 바쿠 지구당조직 을 지휘해 왔네. 자네로부터 나온 진술이라면 가장 무게가 있을 것이야. 키로프는 깜짝 놀랐다. 이런 일은 전에는 전혀 없던 일이었다. 정치국원 인 그가, 스탈린이 니나 라고 하는 간행물을 운영해 왔다는 것을 공식적 으로 증명해야 하다니. 사실은 자기도 모르고 있는 간행물이 아닌가 - 에 누키드제는 옳았던 것이다. 왜 이런 임무를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인가? 그 의 충성을 시험하기 위해서인가? 이미 충분히 시험되었지 않은가. 그러나 만약 또다시 그의 충성심을 시험해 봐야 한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로서는 아니어야 한다. 전 역사에 관해서는 일해 본 적이 없습니다. 키로프는 말했다. 그리 고 이 특수한 문제에 대해서도 별 지식이 없구요. 또, 그 문제의 기간 동 안 전 바쿠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아, 그래. 스탈린이 조용히 말했다. 아무도 자네를 비난할 수는 없 네. 난 아벨 에누키드제에게 응수할 수 있는 동지가 당에 있기를 바라고 있어. 그는 즈다노프에게로 몸을 돌렸다. 당 중앙위원회가 이 문제를 다 뤄서는 안 돼. 이것은 당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당의 여러 조직 중 하나 가 해결할 문제일세. 트랜스코카서스 조직에다 그들 자신의 역사를 다뤄 보라고 하는 거야. 베리아 동지를 소환해서 그에게 중앙위원회의 견해를 알려주게나. 그는 트랜스코카서스 지역위원회 서기니까. 이건 그의 영역에 서 해결해야 할 문제야.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1 다음날 아침식사 후, 스탈린은 치과의사를 불러오라고 했다. 리프만이 손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기구들을 내려놓고, 대야를 준 비한 다음, 스탈린을 안락의자에 앉히고 목에다 수건을 둘렀다. 어떻게 주무셨소? 스탈린이 물었다. 아주 잘 잤습니다. 리프만이 주사기를 준비하면서 대답했다. 더할 나 위 없이 좋았습니다 - 여기는 매우 조용하고 평화롭고 그리고.... 그는 세련된 손놀림으로 스탈린의 머리를 머리받이에 기대게 한 다음 입을 벌리 게 하였다. 파도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지만, 저에겐 언제나 아주 편안하고 좋게만 들린답니다. 스탈린은 잇몸에서 약간의 통증을 느꼈지만, 그것은 단지 생각뿐일 거라 고 여겼다. 리프만의 얼굴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스탈린의 입속을 들여다보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몸을 뒤로 젖히 면서, 그의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마취될 때까지 약간 기다 리셔야 합니다. 입을 다물어도 되고, 말을 해도 되고, 움직여도 되죠. 하 지만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겠습니다. 잇몸이 점점 무감각해졌고, 무엇인가로 꽉 채워져 있는 것처럼 무거운 느낌을 받았다. 스탈린은 이전에 국부마취로 이를 뽑은 적이 있었으나, 마 취약이 효과를 나타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를 정확히 기억 해 낼 수는 없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지? 그가 물었다. 십분 정도 걸립니다. 다시 한번 입을 벌려 주십시오. 그는 금속으로 된 기구를 들고 스탈린의 잇몸을 다시 살펴보았다. 곧 마취가 될 것입니다. 잠시만 더 참으십시오. 그는 스탈린을 바라보았다. 침착하고 자상하게. 어떤 고통도 주지 않으 면서 그는 주사를 잘 놓았었다. 스탈린은 틀림없이 그에게 만족해했을 것 이다. 사실 스탈린은 자기의 직업에 능통한 사람들을 잘 알아봤고, 그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이 의사는 아마 백 살까지 살게 되겠지. 그는 그의 직업과 생활, 그리고 그의 지위에 만족해했다. 크레믈린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정치국의 일원으로 대우받고 있었다. 그는 좋은 대접과 함께 많은 부 러움을 받았다. 언제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는 그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는 이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야망이 없 는 인간이었다. 스탈린은 아주 젊은 나이에 인민들을 위한 투쟁의 길에 나섰다. 당시 그 는 다른 사람들이나, 투쟁의 진정한 동기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제, 그는 인민들을 지배하고 있고, 인민들은 그를 신인 양 떠받들고 있었 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성적 사고 없이 맹목적으로만 신을 믿을 수 있다. 그들은 스탈린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인민들은 엄격하나, 강인하고 믿음 직한 손을 가진 아버지만을 존경한다. 그리고 이 사나이는 신체적인 접촉 만을 위해 스탈린에게 바쳐진 사람이었다. 물론 측근들 중에도 그런 사람 도 필요했다. 즉 심복이라든가 야심만만한 조언자들뿐만 아니라, 그를 헌 신적으로 사랑하는 온순한 사람들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의 뒤에 앉아 있던 리프만은 시계를 쳐다보고는 스탈린에게 웃음을 지 어보였다. 가끔씩 그는 스탈린에게 입을 벌리도록 한 다음 기구를 집어넣 어 검사를 했다. 잠시 후 그는 스탈린에게 방금 집게로 뽑아낸 이를 보여 주었다. 언제 뽑아 냈지? 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마취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또 이 이는 거의 다 빠진 상태라서, 말하고 있을 때 손으로 뽑아낼 수도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소? 그러면 당신은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스탈린은 피가 섞여 있는 침을 대야에 뱉아 내고는 입을 헹군 다음 다시 침을 뱉아 냈다. 두 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리프만이 깨끗한 수건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스탈린은 입술을 닦아 내었다. 그리고 오늘은 뜨거운 것도 절대 안 됩니다. 그는 테이블에서 의치형틀을 집어들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것은 아주 좋은 형틀이죠, 금과 백금 그리고 팔라듐의 혼합물로 아주 잘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이것이 필요치 않을 겁니 다. 당신에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드릴 테니까요.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 피, 요세프 비사리오노비치, 더 간단한 것으로 만드는 게 가장 좋다고 하 더군요. 간단한 것이라니, 무슨 뜻이오? 자, 이건 금속형틀로 만들어진 의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 모두를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지? 요세프 비사리오노비치, 금속형틀은 이 작은 두 개의 갈고리에 의해 치 아에 고정되는 데, 차이점이 있죠. 형틀이 가벼우면, 치아를 압박하지 않 는답니다. 그러나 이미 당신은 이 형틀에 일곱 개의 의치를 해넣었기 때문 에 너무나 무겁답니다. 게다가 지금 또 하나의 다른 이를 거기에 박아 넣 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무게가 더 늘어나 더욱 무거워질 겁니다. 플라 스틱은 형틀에 꽉 달라붙기 때문에 몇 개라도 더 붙일 수 있죠. 그러면 늙은이처럼 틀니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왜 늙은이처림입니까? 노인들은 이가 하나도 없지만 당신은 자신의 이 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몇 년 전, 스탈린이 어금니를 뽑고 의치를 하도록 권유받았을 때, 그는 매우 당황했었다. 노인들처럼 틀리라니! 그는 늙은이가 밤에 틀니를 배 물 속에 담가두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이것은 당시에는 늙은이가 아니었던 솔츠와 페테르베이그에서 함께 숨어 있을 때, 그가 하던 짓이었다. 스탈린 은 그때 의치를 처음 보았다. 그는 솔츠가 말할 때마다 그의 입 모양을 관 찰하곤 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빠져나가려는 틀니를 혀로 받쳐 줘야 했기 때문에 혀가 잘 돌지 않게 되어 그의 발음은 언제나 엉망이었다. 결국 보 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치과의사들은 스탈린에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완전한 의 치가 아니라, 어금니 의치를 지탱해 줄 금속형틀이며, 그것으로 음식을 씹 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는 그들이 준 형틀에 곧 익숙해져 이 가 없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였다. 후에, 이가 두 개나 더 빠지자 의사들은 지금 리프만이 얘기하고 있는 종류의 얇은 형틀을 똑같은 이유로 권했었 다. 그러나 그가 거절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금속형틀을 만들어 준 것이 다. 그리고 사실 이 금속형틀은 그에게 잘 맞았다. 그런데 리프만은 늙은이들의 틀니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리프만 은 몹시 우둔한 사람이었다. 스탈린은 낡아빠진 의치를 하고 대중 앞에 설 수 없었으며, 이 속에 잡채를 가득 넣은 것처럼 혀가 잘 돌아가지 않은 채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금으로 하나 더 만들지. 스탈린이 말했다. 리프만은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일 상 처가 아프시다면, 이 약들 중 하나를 드십시오. 그리고 필요하시다면 저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내일 상태를 확인하러 다시 오겠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당신을 데리러 갈 거요. 리프만이 나가자 스탈린은 거울 앞에 가서 입을 벌려 보았다. 위에는 단 지 다섯 개의 누렇고, 담배에 찌든 이만이 남아 있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괜찮다. 조다노프도 며칠 동안 다섯 개의 이로 버텨야 한다. 키로프도 역시 마찬가지다. 키로프 생각이 그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키로프는 투쟁에 가 담하려 들지 않았고, 정당의 지도력을 증대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그날 그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취기운은 점점 줄어들었고 상처는 아물어 갔다. 리프만의 처방에 따라 그는 두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점심때는 차가운 사탕무우 스프와 미지근한 미트볼을 먹었 다. 그에게는 씹을 필요가 전혀 없는 음식만이 제공되었다. 상처는 별로 아프지 않았고 잇몸도 괜찮았기 때문에 진통제는 필요없었다. 리프만이 아침에 와서 그의 입을 조사해 보고는 만족한 듯이 말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습니다. 이틀 후에 새로운 형틀을 시작하도록 하 죠. 휴식을 어떻게 취했소? 스탈린이 물었다. 지루하지 않았소. 요세프 바사리오노비치, 사람들이 이런 바닷가에서 어떻게 무료할 수 있 을까요. 저는 편지지와 연필을 찾아 쓰기를 시작했죠. 무엇을 쓰고 있지? 의치술 장비에 관한 것입니다. 건투를 비네. 스탈린은 오후 내내 혼자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이가 없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을 해야만 했다. 저녁때에 즈다노프와 키로프가 그를 만나러 왔다. 그들은 베란다에 앉아서 신문을 읽었다. 히틀러는 남은 생애 동안 독일대중의 총통이자 독일제국의 수상이 되겠 군. 스탈린이 논평했다. 당신도 아다시피, 그 자신이 황제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키로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걸. 즈다노프가 언급했다. 그래. 스탈린이 동의했다. 그건 의미가 없어. 많은 황제들이 있어 왔 지만, 그들은 단지 한 생애의 총통이었지. 그리고 그는 애가 없으니 왕국 을 건설할 수도 없어. 그의 눈은 신문의 행간으로 미끄러져 갔다. 지노 비예프가 갑자기 뭔가 다시 시작했군. 매일 그는 무엇인가 쓰고 있지. 아 무 신문이나 펼쳐 봐. 그러면 지노비예프나 카메네프, 그리고 라데크가 쓴 것을 보게 될 거야. 형편없어, 아주.... 달리 할 일이 없는 거겠죠. 그러니까 그렇게 쓰지요. 즈다노프가 말했 다. 스탈린이 계속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모든 기사가 스탈린을 찬양 한다는 것이지. 그는 현재이고 과거이며, 위대하며 또한 총명하다. 스탈린 은 마르크스나 엥겔스, 그리고 레닌보다도 더 고귀하다. 왜 모든 그런 칭 찬을 하는 거지? 어떻게 지노비예프가 스탈린을 진정으로 칭찬할 수가 있 지? 그는 절대 그럴 수 없어! 그는 스탈린을 아주 미워하지. 그래서 거짓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을 쓰고 있다구. 왜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지? 나는 나를 싫어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날 믿 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어. 그는 누구를 두려워하는 거지? 결국, 아 무도 그를 괴롭히지 않는데 말이야. 그는 자기가 해롭지 않고, 무기도 없으며, 야망 또한 없다는 것을 증명 하고 싶은 거겠죠. 키로프가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 스탈린이 동의했다. 그런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둬.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있는 거야. 사람은 누 구나 그들 자신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이지. 모욕이나 마 음의 상처 그리고 부정 모든 종류의 일은 잊을 수 있지만, 그 자신의 가치 가 떨어지는 것만큼은 잊지 못해. 이것은 단순한 인간의 본성이야. 동물들 은 서로를 사냥하고, 서로 물어뜯고 싸우며 잡아먹지만, 서로의 가치를 떨 어뜨리지는 않아. 단지 인간만이 그럴 뿐이지. 따라서 어떤 인간도 자신의 품위가 손상되는 것을 잊지 못하며, 또한 이전에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그 랬다면 그는 결코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 그는 언제나 그 사람을 증오 하게 되지. 따라서 지노비예프가 스탈린을 찬양하면 할수록, 그는 스탈린 앞에서 더욱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고, 더욱더 스탈린을 미워하게 될 거야. 라데크 또한 스탈린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찬양하고 있지만, 그는 허풍쟁이야. 진실한 사람은 아니지. 어저께 그는 트로츠키를 칭찬하더니만 오늘은 스탈린을 찬양하고 있거든. 어쩌면 그는 내일쯤 히틀러를 찬양하게 될지도 몰라. 그에게 겨자 샌드위치를 주면 허튼소리를 할 것이며, 그러면 서도 입술을 핥으면서 감사하다고 말하겠지. 그러나 지노비예프와 카메네 프는 그렇지 않을 거야. 그들에게는 야망이 있거든. 그들의 목표는 지도자 가 되는 것이지. 또한 그들은 부하린과 리코프와 그의 동료들이 그들 집단 에 합세했을 때도 여전히 그러했지. 키로프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노비예프와 부하린이라고요? 어떤 관계지 요? 세르게이 미로노비치. 즈다노프가 온화하게 말했다. 부하린이 은밀하 게 카메네프에게 달려가서 그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어. 키로프는 즈다노프를 좋아했으나, 즈다노프는 정치국원이 아니었기 때문 에 함께 토론할 수 없게 돼 있었다. 스탈린은 고의로 즈다노프 앞에서 이 논쟁을 시작했다. 그것은 즈다노프와 키로프를 조금도 차별하지 않음을 보 여 주기 위해서 였다. 스탈린이 무뚝뚝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즈다노프 동지, 팔 년 전 당의 지도력이 정착되지 않았을 때, 그리고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려 하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을 알고 있겠지.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사실과 자신들의 지위가 만족한 것이라는 걸 완전히 깨달았지. 또한 그들은 패배했어. 그들이 공개적으로 참회하고 화 해했더라면,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은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을 텐데 말이 야. 즈다노프가 대답하려 하였으나 스탈린이 손짓으로 중지시켰다. 그들은 정치가들이지, 따라서 언제나 권력을 원하고 있거든, 또한 그들 은 창피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더 보복하려 든단 말이야. 그들은 모욕을 준 사람은 절대로 용서하려 하지 않거든. 지노비예프는 레닌그라드를 세습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단 말이야. 14차 전당대회 전야에 레닌그라드 조직은 지노비예프에게 찬성하고 당에는 반대를 했었지. 그리고 지금은 팔 년 동 안 키로프 동지가 레닌그라드 조직을 이끌고 있고 조직이 키로프 동지를 따르고 있어. 레닌그라드 조직은 더 이상 지노비예프를 인정하지 않고 단 지 키로프 동지만을 인정하고 있지. 지노비예프가 이런 일로 자네를 용서 할까? 아니야, 그는 용서하지 않을거야. 기회가 오면 그는 첫 번째로 자네 에게 복수할 거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키로프가 어깨를 움츠렸다. 저는 그들이 어떻게 저를 공격할는지 상상할 수도 없고 짐작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방법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 스탈린이 대답했다. 그런 일을 함에 있어 길이란 어디에나 있는 거야. 특히 아직도 지노비예프 일당들이 많이 남아 있는 레닌그라드에서는, 사람들이 자네를 없애는 데 반대하겠지. 왜 냐하면 자네는 소위 그들의 주장의 철회와 무장해제를 믿기 때문이야. 스탈린은 키로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마마자국 이 있는 것을 알았다. 마마자국이 그의 얼굴을 얽어 놓았던 것이다. 그를 쳐다본다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왜 마마자국을 갖게 되 었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키 로프의 마마자국은 그에게 그 자신의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스탈린 동지. 키로프가 침착하게 말했다. 레닌그라드 조직은 1925년 에 지노비예프에 대해 찬성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도부가 사람들로 하여 금 밤낮 할 것 없이 압력을 넣었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에게 명령을 한 것 이지요. 그 사람들은 정당의 일반당원들이었습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 는 것은 규율을 어기는 것이니까요. 불행하게도 이것은 민주적 중앙집권주 의의 대가입니다. 따라서 어느 정당조직이라도 지도부의 잘못된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당의 일반당원들은 비난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런 일로 그들을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1926년에 그들은 우리 중앙 위원회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스탈린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만일 지구당 서기들이 그들로 하 여금 당이나 중앙집행위원회에 대해여 반란을 일으키도록 할 수 있을 정도 라면, 일반당원들도 좋지 못한 당원들이야 레닌그라드의 공산주의자들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 지금도 그들은 레닌그라 드를 혁명의 요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스스로를 러시아 노동계급의 선봉 장으로 여기고 있다구. 또한 레닌그라드에는 아직도 당 규약이 가리키는 대로 투표를 할뿐만 아니라, 그 참회가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의 그것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하지. 그들은 때를 기다리고 있어. 그리 고 당이나 국가조직이 조금만 혼란스러워도 그때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 어. 이런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서는 나나 자네, 아니면 두세 명의 다른 정 치국 당원들을 제거하면 충분해. 그리고 나서 즉시 자기들은 아주 노련한 정치가들이라고 떠벌리겠지. 자네나 나는 그들로부터는 조금의 자비도 받 지 못할 거야. 만일 그들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의 삼대까지 모조리 말살해 버릴 걸. 그런데도 자네는 그들을 믿고 있고, 그들을 자유 당원으로 취급하고 있지. 그러면 그들이 자네에게 감사할 줄 아는가? 천만 의 말씀! 자네는 거리를 걷기 좋아하고 극장의 발코니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지. 자네는 조심성이 없어, 너무나 부주의해. 이해할 수 없겠지? 정 치국이 자네의 안전에 관한 특별법령이라도 선언해야만 하는가. 저는 어떤 특별한 법령도 필요치 않습니다. 키로프가 성급히 말했다. 저에게는 충분한 경호원들이 있고 그들은 믿을 만합니다. 그것은 자네 생각이지. 스탈린이 반대했다. 정치국원들은 다른 경해 를 가져야 해. 정치국 당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허락된 절차를 깨뜨린 유일 한 사람이 바로 자네일세. 저는 레닌그라드에 팔 년 동안이나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 습니다. 키로프가 말했다. 그런 기미조차 없었습니다. 어제 아무 일 없었고 오늘 역시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 일은 내일 일 어날 수도 있어. 스탈린이 반대했다. 아무 것도 영원하지 않고 어떤 것 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구. 히틀러 권력의 등장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 화시켰어. 우리 국가의 반대세력들은 독일인의 군국주의적 야망에서 위안 을 얻지. 독일인들은 첫 번째로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서구세계를 목표로 하게 될 테지만, 서구세계는 우리들을 견제하려고 할거야. 그런 사태의 변 화는 이곳에서의 위기를 일으키게 될 거고, 그럼 누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겠는가? 반대세력들이지. 그럼, 우리나라에는 어떤 반대세력이 있지? 멘 셰비키들? 아니야, 그들은 이미 축출되었어. 재생할 능력이 없거든. 그놈 들은 영원히 소비에트체제에 속박받게 될 거야. 따라서 유일한 위험요소는 소비에트체제 자체 내에, 즉 당내에 있어. 그러면 그들은 누구지? 트로츠 키 일당, 지노비예프 일당 그리고 부하린 일당들이야. 그들 스스로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물론 그들은 알고 있지. 그들은 매우 전략적이야 그 들의 주도니 임무는 자기 자신들과 지지자들을 보호하는 것이지. 그들은 수적으로 열세라고? 몇천 명뿐이라고? 그러나 1917년에 우리들 중에는 얼 마나 많은 볼셰비키 당원이 있었지? 그때도 단지 몇천 명뿐이었어. 그러나 우리는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했기 때문에 결국 승리하게 되었지. 무슨 이 유 때문에. 우리는 지노비예프나 카메네프 그리고 부하린과 같은 사람들이 몇천 명이 아니라 몇만 명이나 되는 지지자들과 함께 상황을 적절히 이용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이전의 멘셰비키 일당 모두가 지노비 예프를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아? 그렇지 않으면 부하린이 농토가 모두 집단화된 모든 부농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들은 지노비예프와 부하린을 과도기적인 인물로 보겠지만, 어떤 위기가 닥치면 그들을 유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대중들도 그들을 알고 있고 당도 알고 있어. 아무도 그들이 자신들의 잘 못을 철회하고 인정했다는 사실을 기억 못하게 될 거야. 지노비예프와 카 메네프가 1917년에 저질렀던 잘못을 생각해 봐. 그러나 그것은 지금 모두 용서되고 잊혀져 버렸어. 십오 년 동안 트로츠키는 레닌에 대항하여 싸웠 지만, 볼셰비키로 전향했을 때는 모든 것이 용서되고 잊혀졌지. 대중들은 정치가의 과거에는 관심이 없어. 단지 그의 지금 상태, 즉 현재에만 관심 이 있을 뿐이야.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부하린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어. 그게 바로 그들의 기본적인 책략이야. 그들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과 때를 기다리는 거라구. 이런 점에 있어 그들은 트로츠키보다 더 교활해. 토로츠키는 형편없는 정치가야. 성미가 아주 급하지. 그의 지지자들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우리 는 그들 모두를 알고 있고 그들을 감시했지. 지노비예프와 부하린은 더 교 활해. 그들은 적절한 시간에 항복을 해서 그들의 지지자들을 노출시키지 않았거든. 그들의 지지자들은 얼른 몸을 숨길 수 있었고 언제라도 다시 나 설 준비를 하고 있어. 그들의 수는 아주 많지. 그들은 국가에서 학대받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당내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포섭하 고 있어. 그것은 아주 크고 위험천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구. 그러나 그들을 보호하고 있고 키우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란 말야. 그런데 아 직도 우리는 그들을 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단 말이야. 레닌그라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까? 키로프가 물었다. 그래. 스탈린이 거칠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 레닌그라드에 대해 얘기 하는 거야. 레닌그라드는 반대자들의 파괴되지 않은 요새야. 나는 지금 키 로프 동지가 그 요새를 파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키로프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당의 역사는 우 리에게 다른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당내에는 전술과 전략에 대한 의견대림이 있었고 논쟁과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당이 결 정을 하게 되면 논쟁은 끝나게 되고 어떤 대립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이전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당으로부터 제거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레닌은 우리들에게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 해 열정적이고 동지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저는 확신을 가 지고, 레닌그라드 조직에는 어떤 트로츠키 일당도, 지노비예프 일당도, 부 하린 일당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시로 일어나는 반당 움직임과 반소비에트 움직임을 철저히 진압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대 부분은 부르조아 출신들이지만, 이전의 반대자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 다. 1925년에 지노비예프에게 찬성표를 던졌던 레닌그라드 노동자공산주의자 들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그와 관계를 끊었고 그 에 대한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의 규약에 따라 그들이 당의 지도부에 찬성표 던진 것을 팔 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처벌할 수도 없 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저의 정책에 잘못된 점을 발견하신다면, 언제든지 저를 레닌그라드로부터 소환하십시오. 그러나 제 가 거기에 있는 한, 이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려는 정책입니다. 잔뜩 긴장했던 스탈린은 점차 흥분을 가라앉히고 얘기했다. 당은 시마다 각각 다른 정책을 가질 수 없어. 이것은 모든 지방과 지구 당 비서들이 복종해야만 하는 통일된 정책이야. 우리는 정치국에서 이전의 지노비예프 일당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돼. 그러나 우리가 그 것에 대해 논의할 때까지 자네는 몸조심해야 하며 나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네. 지노비예프 일당들이 활동하기 시작했거든. 나는 자네보 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구. 자네는 너무 안심하고 있어. 세르게이 미 로노비치, 자네의 방심하는 성격이 자네를 눈멀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무슨 뜻입니까? 자네는 단지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회의석상에서만 보아 왔지만, 나 는 그들과 수년을 같이 보냈어. 심지어 나는 카메네프와 작은 방을 함게 쓰기도 했지.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이고 사기꾼이며 위선자들이야. 지지자 들도 마찬가지고. 그들을 믿지 마. 그들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거든. 그들 은 자네를 미워하고 있어. 이것이 자네가 모스크바로 옮겨야만 하는 이유 중에 하나야. 만일 다른 어떤 사람이 자네의 자리를 차지하고 레닌그라드 문제를 수습한다면, 성공은 단지 키로프 동지의 문제가 아니라 당의 문제 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게 될 거야. 레닌그라드 공산주의자들은 키로프 동 지를 따르려 하지 않고 당을 따르려고 할거야. 그리고 그들은 자네의 성공 에 대해 악의를 갖지 않게 될 거야. 자네는 중앙위원회의 비서니까 이제는 모스크바로 옮겨 올 차례야. 레닌그라드에서 일고 있는 식량배급카드의 철 폐 움직임을 조사해 본 다음, 그 레닌그라드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곧 모스크바로 떠나도록!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키로프는 시선을 떨구었다. 그가 인기를 추구했다는 추측은, 스탈린의 추측이 대개 그렇듯이 억측이었다. 모든 것 이 분명했다. 스탈린은 그를 레닌그라드에서 데려와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모스크바에 두고 싶었던 것이다. 스탈린은 그에게 단지 하찮은 일만 시키고 중요한 일은 몰로토프나 카가노비치, 그리고 보로쉴로프와 같은 아 첨꾼들에게 줄 것이다. 스탈린 동지. 키로프가 말했다. 저는 당신이 그 도시의 재건사업이 끝날 때까지 저를 레닌그라드로부터 소환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그것을 시작했으니 제가 그것을 끝내고 싶습니다. 키로프의 이 말은 어떤 논박이라도 참아내겠다는 어조였다. 스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착하게 물었다. 언제 그 재건이 끝나게 되 지? 오개년 계획이 끝날 때까지입니다. 오, 좋아. 스탈린이 농담했다. 그럼 우리는 사년 만에 그 계획을 끝 내면 되겠군. 그리고 곧 자네를 모스크바로 데려오면 되겠지.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2 바랴는 9시에 작업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자기가 인쇄해야 될 도면을 내 려놓았다. 그것은 엷은 푸른색 린네르 종이로 덮여져 있었고 양쪽 끝을 핀 으로 고정해 놓은 것이었다. 그녀는 료바가 가르쳐 준 대로 표면을 기계유 의 엷은 막으로 문질렀다. 이렇게 하면, 잉크가 번지지 않게 되고 도면을 깨끗이 인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도면은 이미 기술자가 되어 있는 료 바가 그린 것이다. 그가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될 때는 이미 <연필 도화> 과 정을 졸업한 후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진 않았으나 매우 솜씨가 좋은 그 는 디자인 전문가라는 새 지위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스케치하고, 료바가 제도를 하고 그리고 바랴가 인쇄를 한다. 이렇게 한 린네르는 복사사진소로 보내져 청사진이 만들어지는데, 바로 이 청사진이 건설현장으로 배포되는 현장도면이 되는 것이다. 호텔은 다음 문까지 똑바로 올라가고 있었다. 정확하고 뛰어난 수준의 료바의 제 도로 일하는 것은 쉬웠다. 료바는 그의 제도를 바랴에게 건네줄 때 창문이 며, 문이며, 현관과 로비 그리고 식당의 연회장까지 각 부분의 특징을 설 명하곤 했다. 그리고 나면,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그것을 더 정교하게 다듬게 된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와 바랴 뒤에 서서 이 선은 이런 것이고 또 이 선은 저런 것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물어보기 바라네. 그는 이렇 게 말하곤 했다. 료바와 리나가 바랴에게,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그들이 인쇄공으로 출발했을 때도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에게 이 계획을 설명해 주었었다 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이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 문이었다. 그는 그들이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길 바랬다. 다른 평범한 상 관은 다가와서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그것을 치우고 다시 하도록 해. 이런 것은 이고르 블라지미 로비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상관인 동시에 선생이기도 했다. 그는 바랴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그가 그녀를 선발한 것 같지 않지만, 바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 서 그녀는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료바나 리나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곤 했다. 그녀는 어떤 걱정이나 두려움 그리고 불안감 없이 이 일에 매우 빨리 익 숙해졌다. 그녀는 학교시절부터 이미 모든 제도 기구들을 알고 있었고, 린 네르를 펼치고, 잉크가 도면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료바와 리나는 잉크가 엎질러지게 되면 그것을 면도날로 흔적 없이 제거해 버리는 그녀의 솜씨에 매우 감탄하고 있었다. 또한, 놀랍게도 그녀는 뾰족 한 펜으로 자재곡선을 그릴 수도 있었다. 낮 12시, 그들 모두는 트베르스카야와 벨린스키 거리 모퉁이에 있는 군 인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시끄러운 군중들 틈을 빠져 나왔다. 점심 은 샐러드와 양배추 스프 그리고 몇 점의 고기와 미트볼이 있는 카샤와 물 기 많은 스튜 과일이었다. 단지 40코페이카 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은 쿠폰을 끊지 않았다. 군인휴게소에서는 배급카드를 사용하지 않고도 몇 개의 이탈리아제 소시지와 치즈, 그리고 청어 샌드위치를 살 수 있었다. 이 접대소에는 약 40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반은 어여쁜 처녀들이었고, 또 몇몇은 바랴가 허미티지 가든이나 메트로폴에서 본 사람 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부터 군인휴게소에 가 기도 한다. 그들 모두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유쾌하고 친절해 보였다. 그들 의 상관인, 건축가, 공학자, 기술자들도 마찬가지로 흥겹고 허물없게 보였 다. 그들은 점심을 먹은 후 둘이나 셋씩 무리를 지어 돌아오곤 했다. 조예가 호텔건축에 관해 얘기를 꺼냈다. 이 호텔 주위에는 높은 담장이 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기초를 세우고 있었고 모든 다른 지하장비를 설치 하고 있었다. 조예는 그녀의 눈을 굴리면서 말했다. 작년에 사람들은 오 호트니 로우를 헐어버렸지. 그래서 고기와 생선을 팔던 이 작은 상점들과 창고들은 쥐로 가득 찼어. 그 모든 쥐들이 그랜드호텔로 달려 들어와 각 층마다 기어오르고 방안에까지 들어오고 난리였어. 고양이만큼 살이 찌고 거대해진 쥐를 한번 생각해 봐, 아주 끔찍했지! 우리는 놀라 까무라쳤고, 처녀들은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갔었지. 할 수 없이 특별 임무를 띤 사람들 이 와서 그들을 전멸시키고 말았어. 따라서 호텔은 당분간 문을 닫아야만 했다구? 조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흥분하기 잘하 고, 거추장스럽고, 수다스러운 여자였다. 사무실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녀 와 친구가 되지 않았으며 그녀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바랴도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녀의 오랜 친구를 푸대접하기 싫어서 그녀의 지루 하게 계속되는 수다를 참아가며 듣고 있었다. 호텔계획은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와 다른 건축가의 소관이야. 조예가 설명했다. 그들 둘은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회원 스추세프가 공 동 설계자로 임명되었지. 그뿐만 아니라 스추세프가 총괄 책임자가 되었 어. 그는 브류소프 가에 살고 있지 카찰로프와 다른 배우들이 살고 있는 것과 똑같은 지 말야. 너도 알지? 바랴는 그가 사무실로 올 때마다 그를 보았었다. 이것은 거의 매일 있는 일이었다. 그는 한 60세쯤 된 활달한 노인이었다. 한번은 그가 방으로 들 어왔었다. 그때 료바는 고위층을 위한 호텔의 조감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 일은 시간이 촉박한 것이어서 그는 밤낮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스추세프는 도면을 살펴본 다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매우 훌륭하군. 하 지만 창문이 좀더 작아야겠어. 그리고 나서 그는 떠났다. 료바는 절망감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무슨 일이지? 리나가 물었다. 창문 사이의 공간은 벽돌로 쌓게 되어 있단 말이야. 창문을 더 작게 만 들려면 벽돌 한 장 한 장을 다 다시 제도해야만 돼. 계속해서 밤일을 해야 된다구. 네가 좋다면, 내가 도와줄게. 리나가 제의했다. 무심코 듣고 있던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끼여들었다. 손대지 말고 그대로 놔둬요. 그리고 내일 그가 오면 다 끝냈다고 하고. 다음날 스추세프가 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다 끝마쳤겠지? 예. 자, 봐,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났잖아! 그들은 오랫동안 그 일에 대해 웃었다. 사실 스추세프는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그는 간막이를 지탱하여 주는 기둥을 설계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식당이 될 것이었다. 사무실에서, 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것을 트 렁크라고 불렀다. 그들 모두는 그 계획에 열성적이었고, 변경이 요구되면 매우 당황해 했다. 그들은 성공을 기뻐하였다. 그들 모두는 화목한 작은 팀이었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스추세프를 비난하지도 않았고, 그 앞에서 그 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스추세프의 지시에 전혀 논박하지 않았 으나 창문의 경우처럼, 모든 일을 자신의 방식으로 처리했다. 바랴는 이런 점을 좋아했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역설적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한 다면, 그는 결국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고르 블라지므 로비치는 자신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아fot사람의 스케치와 초벌그림을 살펴볼 때, 그는 숯으로 몇 개의 필을 가하곤 하는데, 그들은 이것을 양념 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그의 지시였다. 이 지시를 그들은 의심없이 수행하 곤 했다. 그는 정확하고, 말이 없고, 우아한 사람이었다. 많은 처녀들이 그와 사람에 빠졌지만, 아무도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언젠가 그들이 점심식사 후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바랴와 이고르 블라지 미로비치가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걷고 있었고, 리나와 료바가 약산 앞서 서걷고 있을 때였다. 내셔널 의 창문을 바라보면서 그가 말했다. 뭔가 생각나는 거 없어요? 바랴는 군인휴게소에 갈 때와 올 때마다 두 번이나 내셔널을 지나치기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거기에 비카와 한번 늦은 봄에 가본 적이 있으나, 거기를 방문했던 기억은 코스챠와 함께 가 봤던 다른 식당의 인상으로 대체된 지 오래였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녀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비카 마라셰비치와 함 께 있을 때 우리는 거기서 만났었죠. 알렉산드르 공원도 기억나죠? 벤치로 차단된 출입문과 경비원의 호루라 기 소리, 그리고 우리들이 도망갔던 일이며 당신의 찢어진 스타킹, 그 모 든 것들이 다 생각나죠? 분명히, 이런 것들이 그가 그리워하는 추억들이었다. 그녀 또한 그 추억 들이 강렬하게 밀려왔다. 그것은 다른 시간, 다른 삶이었고, 다른 희망을 갖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에서 감탄에 찬 어조를 느꼈다. 그 러나 왜?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는데도!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여 전히.... 네. 그녀가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기억하고 있어요.... 물론 그녀는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단 지 한 인간으로, 그리고 직장동료로서였다. 내셔널에서도, 그녀는 그가 비 카와 그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그녀는 작업 장에서 비범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그를 보고 있다. 스추세프와 유명한 예술가 란제레가 왔다. 그는 카잔 역의 홀을 장식했 었고 지금은 호텔의 주요한 식당이 될 지하를 장식하고 있었다. 거기엔 냉 장고를 비롯한 다른 현대적 주방기구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미국인 고문 과, 설계의 세부를 마감할 건축가들과 기술자들이 이 계획에 참여하고 있 었다 료바는 그녀에게 그들이 다 간 다음에야 그들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 었다. 그들 모두는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바랴는 밤이라 할지라도 일을 남겨놓은 채 퇴근하는 게 싫었다. 그녀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코스챠와 함께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단지 동정할 뿐이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 다. 내 곁에 당신이 있으면, 나는 참인간이 될 수 있소. 하지만 그건 다 공허한 말이었다. 그는 참인간이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모피쇼올 사건이 있은 후에도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행동했다. 오 늘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내일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이것이 도박꾼 들의 삶이었다 또한 인내심을 갖고 일시적인 실패를 극복해 내야 한다. 바 랴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는 그녀가 자기의 이런 생각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왜 그녀가 자기에게서 멀어졌는지, 그리고 애 저렇게 주변만 맴돌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여 전히 그녀를 자신의 생활방식 속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어느날엔 가, 그는 금팔찌를 가져와 그녀에게 주면서 껴봐 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그녀의 팔에다 끼워 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풀러서 테이블 위에다 놓았다. 끼지 않을래요. 왜? 나는 금팔찌를 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끼지 않을 거예요. 그는 매우 화가 났으나, 가까스로 자신을 억제했다. 네가 이것을 끼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든 이건 네 거시야. 그는 금팔찌를 장자 속에 넣어서 조심스럽게 포장한 다음 언제나 잠가 놓는 테이블 서랍에 넣어 두었다. 그 리고는 그가 농담을 했다. 한 숙녀가 보석상자를 갖게 되겠지. 그러나 당 신은 아직 이것을 갖지 않았으니 이 보석상자는 여기 있을 수밖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팔찌는 곧 없어지게 될 것이 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바로 그 날 그는 얼마간의 돈을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바랴는 그것을 손대지 않았고 거기에 얼마나 있는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왜 당신은 돈을 가져가지 앟는 것이지? 어느날 그가 물었다. 어디에다 쓰죠? 당신은 집에서 식사하지 않고 나도 직장에서 밥을 먹는 데. 그래도 당신은 식비를 지불해야 하잖아. 그가 말했다. 내 월급으로도 충분해요. 곧 그 돈이 없어졌고 같이 있던 금팔찌도 없어졌다. 그녀는 돈이나 팔찌 도 필요없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그에게 없어진 것을 알렸다. 바랴. 그가 부드럽게 불렀다. 이번에도 역시 나를 용서해 줘. 내가 이번에 한 판 따서 그것을 도로 가져다 놓겠소 기분 나빠하지 말기 바라 오. 기분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은 아무 것도 돌려놓지 않아도 돼요. 나는 돈도 팔찌도 필요없으니까. 다만 그것들이 없어졌고, 당신이 가져간 것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가져간 것을 알았다면 왜 나한테 얘기해서 사람을 괴롭히는 거지?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기분 나빠요? 그럼 여기에 있는 값비싼 것이나 돈을 더 이상 가져가지 말아요. 아예 다른 곳에다 치워 버리든지요. 그게 무슨 말이지? 여기는 전당포도 은행도 아니에요. 당신의 물건은 여기보다 그런 곳이 더 안전해요. 만일 그것에 무슨 일이 생기면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와 내 가 책임을 쳐다 한단 말이에요. 당신은 나의 생활방식을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군, 그렇지! 그래요! 나는 당신의 생활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구요. 아주 낯선 사람 대하는 듯이 얘기하는군.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래요, 어차피 우리는 남남이잖 아요. 그러니까 서로 헤어지는 것이 최선책이겠어요. 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는 입을 이죽거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이긴다면은 괜찮아, 그러나 내가 잃기 시작하면 더 이상 볼일이 없 어. 당신은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나는 당신에게 크리미아에 가자고 그러지도 않았고, 여우 모피와 금팔찌를 요구하지도 않 았어요. 단지 우리가 공통점이 없다는 것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 을 뿐이에요. 그는 이를 악물면서 경멸하듯이 말했다. 당신, 그 건축가와 무슨 관계 를 맺고 있는 거지? 바보! 그녀가 그에게 경멸적으로 내뱉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군가가 자기에 대해 험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누구지? 리나? 료바? 아, 그래, 그렇구말구. 나는 바보지. 그는 화를 참으면서 자기의 말을 질질 끌었다. 너는 레스토랑을 싫어하지, 그렇지 않아? 그러나 레스토랑 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너를 만날 수 있었겠어? 당신은 나를 레스토랑에서 알게 되었다는 투로 얘기하는데, 그럼 내가 레스토랑의 매춘부였단 말이에요? 그는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레스토랑에 서 만났다는 것뿐이야. 그러니 사실을 얼버무리지 마. 나는 아무 거도 왜곡하지 않아요. 당신하고 더 이상 다툴 필요도 없어 요. 우리는 헤어져야만 해요. 바로 지금! 오늘 당장 이 방에서 떠나야 해 요! 그는 깜짝 놀라 눈썹을 치켜올렸다. 오늘이라고? 재미있는데.... 그러 면 우린 어디로 가지? 나는 집으로 갈 거예요. 당신은 등록되어 있는 아파트가 있잖아요. 그가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이미 당신에게 등록이라는 것은 형식 적이라는 것을 설명했었어. 나는 거기서 살 수 없어.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나는 여기가 좋아. 그는 이것이 바랴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크게 웃었 다. 그는 그녀의 고통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괴로웠다. 그녀는 그를 떠날 수가 없었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도 그를 싫어했지만 그를 내보내게 됨으로써 자신이 민병에게 끌려가게 되는 것을 겁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소피야 알 렉산드로브나를 그러한 곤경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 이 인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이 방을 나에게 빌려 주었어요. 그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당신에게 빌려 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빌려준 거야, 우리에게. 또한 나는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어. 내가 당신에게 그 돈을 돌려주겠어요. 내 말을 잘 들어. 그가 강압적으로 말했다. 사보이에서 돌아와 우리 가 만났을 때, 당신은 나한테 이 방에 대해 얘기하고는 당신이 안주인에게 말하겠다고 약속했었어. 다시 말해 당신은 나에게 이 방을 주겠다고 했던 거야. 그런데 지금 나는 그것을 잃게 되었단 말이야. 그럼 나는 어디로 가 지? 거리로 나앉아? 나는 여기서 살 거야. 좋은 데 있으면 당신이나 나가 도록 해. 바랴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 외에 어느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할 수 없이 그녀는 참 고 지내야 했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만을 남겨놓고 떠날 수가 없기 때 문이다. 코스챠는 그녀의 이런 굴욕감과 무기력함을 즐기고 있었다. 당신이 나와 살기 싫으면, 당신 마음대로 해. 우리는 혼인신고도 되어 있지 않으니까,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어. 나는 당신에게 강요하진 않겠 어. 그의 목소리에는 조소와 자만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소피야 알 렉산드로브나를 포함한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아. 그래, 여기 를 떠나겠어. 이 방을 포기하겠다구. 그러나 시내 중심지에 전화도 있고 다른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있는 방을 찾을 때까지 여기 있겠어. 그건 아무 두세 달쯤 걸릴 거야. 나 혼자 있거나, 아니면 당신이 여기 같이 있어도 상관없어. 방이 빨리 구해진다면, 그만큼 더 빨리 옮겨가게 될 거야. 그 가 다시 이를 드러내 놓고 싱긋이 웃었다. 당신이 아주 절망적으로 걱정 하고 있으니, 내가 다른 곳을 찾는 것을 당신이 좀 도와주는 게 어때? 나는 당신이 다른 방을 찾는 것을 도울 수 없어요. 그렇지만 두 달 정 도 기다리는 데는 동의하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가 끼여들었다. 나는 두세 달이라고 말했어. 좋아요. 두세 달이요. 그러나 당신은 두세 달 후면, 틀림없이 여기서 나갈 거라는 것을 제게 약속해 주세요. 그는 그녀에게 그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어 보여 주었다. 좋아, 동의했 어. 그런데 우린 왜 다투고 상대방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지? 평화롭게 지냅시다! 휴우! 우리 기분을 바꾸게 어디 외출하는 것이 어때? 난 당신과 더 이상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 나를 위해 여기 있을 거예요. 나머지 일은 잊어버려요! 나는 소파에서 자 겠어요. 이 소파에서? 그가 웃었다. 방이 많이 있잖아? 걱정 말아요. 그래, 그건 당신 일이니까. 그녀는 어떻게 그녀 자신을 그토록 완벽하게 속일 수 있었을까? 그녀는 그가 뽐내는 자비심과 독립심,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할 수도 없었 고 추측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그녀는, 그가 오래 전부터 자신을 혼자라 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나는 참인간이 될 수 있다오 라는 그 값싼 말에 굴복할 수 있었는가? 그녀는 자신의 학급에 서 가장 아름답고 능력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뛰어났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어려움에 처하지는 않았 었다. 어떤 당구선수도 그런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알랑거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느껴지는 모든 감정들을 정리해야만 했다. 바랴는 자신의 필체에 드러난 주예프 인사로프의 성격분석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녀는 그것을 그녀에게 배달되어 왔을 때와 똑같은 봉투 속에 넣 어 두었다. 봉투의 우표에는, 천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는 노동자의 옆 모습과 뾰족한 부조노브카 헬멧을 쓰고 있는 붉은 군대 병사, 그리고 챙 모자를 쓰고 있는 수염 많은 농부의 옆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당신은 아주 유능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비판적인 사고와 강인한 의지력 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매우 충동적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 의 조언이나 도움 없이 결정하는 독립성이 있습니다. 당신은 총명하고, 또 과학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당신은 과학적인 창조력 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징은 당신이 의도하고 있지 않기 때 문에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성실하여 큰 희생을 할 수 있으나, 어떤 논쟁을 한 다음 근본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성미가 급하여 곧잘 화를 내고, 또 한번 결심한 것을 쉽사리 바꾸 려 들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혈질이고 신랄한 비판을 잘 합니다. 당신은 대담하여서 당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 주의하지 않고 있습 니다. 당신은 규모가 큰 일을 하기 좋아합니다. 따라서 당신은 자신의 즐 거움을 탐닉하고있다는 것을 부정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만만한 사람 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줏대가 없는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하려 들지 않습 니다. 당신은 종종 자신이 손해가 되더라도, 돈 문제에 있어서 아주 깨끗 합니다. 당신은 용서를 잘 안하지만 그렇다고 앙심을 품지는 않습니다. 당 신은 당신의 적들을 경멸하면서 박살내 버립니다. 당신에게는 고상한 감성 이 있습니다. 당신의 성격은 삶의 기쁨이 우울한 감성에 의해 대체되기도 하는 등, 양면적이고 가변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친한 사이에서도 당신은 허물없는 것과 단조로운 것을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 에, 당신은 말다툼으로도 사람들간의 관계를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성격판단가 주예프 인사로프 드림 그는 틀림없이 모든 사람에게 이와 똑같은 찬사를 보낼 테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알지 못한다. 반면에 그는 조예에게는 이렇게 쓰지 를 않았었다. 성격에 관한 이 설명은 그녀의 결혼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암시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고, 스스 로 모든 것을 결정했으며 반박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녀는 조심성이 없었 고, 자신의 즐거움을 부정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제대로 들어맞았다. 긍정적인 묘사였기 때문에, 그녀는 이것을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다. 자신의 성격에 관한 설명 중에 가장 정확한 점은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가 슴 깊이 감추어 놓고 혼자서 괴로워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녀는 혼자 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녀는 요며칠 동안 코스챠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는 대개 집에 늦게 들어왔고, 그때는 이미 그녀가 소파에서 잠들어 있을 때였다. 그녀가 아침 에 일하러 나갈 때도 그는 여전히 잠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으나, 마치 여자들만의 변덕을 참고 있는 양 친절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돈이 다시 테이블 서랍 속에 들어 있었고, 어느날 그녀는 벽장 속에 가죽부츠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되었다. 코스챠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녀의 생활은 어려웠지만 그녀는 그것에 전혀 손대지 않 았다. 다른 모든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그 사무실에서는 교대로 휴일을 가 지면서 일주일 내내 일을 해야 했다. 그곳에서는 할 일이 매우 많았으며, 관리자들은 직원들 중에 누가 일을 똑바로 하기만 하면 매우 기뻐하였다. 공휴일을 갖지 않으면 그것은 휴가에 보태지곤 했다. 그녀는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코스챠에게서 독립하려고 집에서 가욋일을 하였다. 따라서 그녀는 조예와 영화 보러 거의 갈 수 없었다. 바랴는 일이 없는 밤이면, 미하일 유레비치의 방이 있는 홀로 내려가 시 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곳은 책장과 책꽂이, 그리고 책과 앨범과 서류철들 이 가득 차 있는 상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작은 침대가 책장 옆의 후 미진 곳에 놓여 있었다. 다른 편에는 병과, 아교와 페인트가 담겨 있는 통 들 그리고 페인트솔, 펜, 연필, 가위, 면도날 그리고 그의 일에 필요한 물 건이 들어 있는 도구통이 놓여진 책상이 자라잡고 있었다. 테이블 뒤에는 등받이가 커다란 안락의자가 놓여 있었다. 바랴는 책상다리를 한 채 거기 에 앉아 있었다. 페인트와 아교 냄새가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미하일 유레비치는 구식 기사와 같은 편안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어느 곳에선가 일을 하였 고 아침 일찍 나가 대략 저녁 6시경에 돌아오곤 하였는데, 그가 늦을 때는 새로 얻은 책을 뒤적여 본다거나, 조각을 하는 경우였다. 이것이 그의 생 활 전부였다. 그는 책 페이지마다 아교칠을 하거나 책을 다시 제본하거나 책장에 꽂혀 있는 많은 책들을 찾기 위한 목록을 만들곤 하였다. 바랴가 책을 내릴 때면 그는 그녀가 책을 어떻게 들고 있는지, 또 책장을 어떻게 넘기는지를 그리고 그녀가 자기가 뽑았던 곳에 정확히 그것을 꽂아 놓는지 를 흥미있고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곤 하였다. 미하일 유레비치는 그가 받는 작은 봉급을 오직 책 사는 데만 썼었다. 여름과 겨울, 그래서 그는 팔꿈치가 다 닳은 똑같은 옷을 입고 지냈다. 반은 닳아버린 낡은 페이지에, 아교로 얇고 투명한 종이를 부치면서 그 가 말했다. 인간의 모든 발명품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책이지. 그리 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작가들이 가장 비범한 사람들이야. 우리는 단지 니콜라스 1세와 벤켄도르프 백작만을 알고 있지. 왜냐하면 그 들은 알렉산드로 세르게예비치 푸쉬킨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영광을 누렸 기 때문이야. 만일 성경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알 수 있 지? 또한 발자크나 스탕달 그리고 모파상이 없었다면 어떻게 프랑스에 대 해 알 수 있지? 영원히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바로 글이야. 피라미드와 대성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랴가 반대했다. 르네상스시대의 건축물과 위대한 미술작품들은요? 미켈란젤로나 라파엘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루브르나 허미티지를 방문해야만 되지만, 단테나 괴테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선 아무데도 갈 필요가 없어. 나는 그것들을 언제나 내 옆에 놓아두거든. 그가 자기의 책 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도서관은 당신의 요새예요. 당신은 이곳에 은신하고 있구요. 바랴 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필른야크의 책을 샀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좋은 작가라고 말하더군. 미하일 유레비치가 신중하게 말했 다. 요새 흥미있는 작가가 몇 명 있더군. 조쉬첸코, 바벨, 틴야노프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지. 그러나 바랴, 우리 시대엔 사람들이 옛날 작가들을 더 좋아했지.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은 마치 많은 시련을 겪은 내 친구들 같은 느낌이 들어, 도한 그들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되면 나는 곧잘 내 젊은 시절이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하지. 결국 난 내 삶 전부를 여행할 수 있 는 거야. 때때로 침대 밑에서나 책장 뒤에서, 그는 부대자루로 덮여져 있는 바구 니를 끌어내곤 하였다. 바랴는 뚜껑을 열고 잡지 묶음들을 꺼내곤 하였다. 예술의 세계 , 천칭궁 , 아폴로 , 황금양털 등이 이런 것들이었는데, 이것들은 아주 질이 좋은 종이로 인쇄되어 있었고, 삽화와 뛰어난 예술가 들의 일루미네이션이 들어 있었다. 이런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야. 그가 슬픈 묵상에 잠겼다. 상 징주의의 전성기, 러시아 예술의 전성기.... 그리고 베노이스, 소모프, 도 부진스키, 그리고 바크스트.... 이런 시대 말야. 저는 방랑 예술가들인 페레드비즈니크스들을 좋아해요. 그들은 훌륭한 예술가들이죠. 그들의 예술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누가 예술의 세계 에 대해서 더 알고 있겠어요? 미하일 유레비치가 코안경 너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지금 인 정받고 있지 못하고 더 이상 알려지지 않겠지만, 그들은 의심할 바 없이 높은 수준의 인쇄예술과 우아한 장식, 정교함 등 뛰어난 특색을 지녔었 지. 그녀는 어느 누구도 예술의 세계 를 더 이상 알고 있지 않다고 말해서 는 안되었다. 그는 상처를 받은 것이다. 미하일 유레비치, 나는 몇 시간 동안이고 계속 여기 앉아 있고 싶어요. 저 때문에 피곤하세요? 아니야, 바랴. 절대로 그렇지 않아! 난 네가 올 때마다 언제나 행복한 걸. 그는 종종 사샤에 대해 언급했다. 사샤는 예술가적인 기질이 있었지. 그는 마음이 넓었고 사색적이고, 매 우 예민하지.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한 해석은 그가 아주 뛰어난 감상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지. 그러나 시대가 그의 그런 기질의 활동적 인 측면을 자극했어. 그래서 그는 자신의 원래 성격에 맞는 행로를 찾지 못하게 된 거야. 어쨌든 그는 내 도서관을 아주 많이 이용했지.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그는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했지요? 그는 러시아의 고전소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지. 그중에서도 특히 푸쉬킨을 아주 좋아했어. 그는 푸쉬킨의 책을 페이지마다 다 암송할 수 있 을 정도였어. 그는 또한 톨스토이, 고골리, 체호프, 살티코프 쉬췌드린도 잘 알고 있었지.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싫어했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바랴가 말했다. 아마, 너희들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 거야.... 그래, 사샤는 불란서 작가들도 좋아했는데, 특히 발자크와 스탕달을 좋아했어. 결국 그는 불어 를 읽을 수 있게 되었지. 정말이에요? 바랴는 놀랐다. 학교다닐 때 우린 독어를 배웠는데요. 사샤는 너보다 오 년이나 빨리 학교를 졸업했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당시에는 불어와 독어 다 배웠을 거야. 지금은 독어만 배우지만 말야. 나 는 불란서 책을 아주 많이 모아 놨었지. 사샤는 그것을 원본으로 읽었어. 그가 어학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안됐지만, 그는 조국은 기술자를 필요 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사실, 지금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은 그의 삶을 바꿔 버리고 있어. 고통스런 삶은 사샤의 관찰력을 예민하게 만들고 예술 가적인 자질을 발달하게 하지. 어떤 경우일지라도, 그는 유배생활 후에 다 시 공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아마 그들은 그의 사건을 재심할 것이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할지 몰라 요. 결국 그는 아무짓도 안했으니까요. 미하일 유레비치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그의 머리를 흔들었다. 그를 석 방한다고? 그런 경우를 난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의 형기가 끝났을 때 그 를 풀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이지. 무슨 뜻이죠? 그녀가 놀라서 물었다. 나도 확실하게는 몰라. 그렇지만 그들이 절대로 그를 풀어주지 않을 가 능성도 있어. 나는 정치적인 유배의 경우에 형기를 더 연장하는 경우를 몇 번 보와 왔거든. 너도 알지, 우리 구역에 사는 트라브키나? 아, 그 여자, 본 적 있어요. 그 딸도 알고 있어요. 바랴가 대답했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은 어린 딸이겠지. 내가 알기로는 큰 딸은 1922년부 터 유배생활을 하고 있어. 처음에 그녀는 솔로브키에 있다가 나중에는 나 림으로 옮겨졌지. 그녀는 사회주의혁명가야. 자신의 생각을 단념하지 않으 려 하지. 아마 그래서 그랬을 거야. 이것은 사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테 고. 그는 코안경 사이로 바랴를 쳐다보았다. 이 모든 얘기를 소피야 알 렉산드로브나에게는 해서는 안돼. 우리, 사샤를 위해 희망을 갖도록 하 자. 물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이런 말은 그녀를 죽게 만드는 것 이니까요. 그녀는 단지 한 가지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어요. 그것은 사샤를 다시 보는 것이죠. 그것이 정부예요. 좋아. 우리 역시 그를 기다리고 있어. 사샤는 꼭 돌아올 거야. 그리고 그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개발하게 될 거구 말야. 그는 정치에 관여 하기에는 너무나 정직해. 정치에 있어서는 다른 자질이 필요해. 그가 학교 로부터 쫓겨났을 때 나는 그에게 그의 아버지나 삼촌에게로 도망가라고 충 고했었지. 그렇게 했으면 그는 안전했을 것이고, 그들은 그를 곧 잊어버렸 을 텐데. 그러나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 그는 정의를 믿고 있었지. 그 것은 그가 얼마나 안심하고 있었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지. 사샤가 석방되지 않는다구? 그 말은 바랴에게 몹시 충격적이었다. 그녀 는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녀는 그의 어머니 옆방에 있는, 그의 물건들이 에워싸고 있는 그의 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거기에 없다는 것은 일시적이고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가 결코 돌아올 수 없다고? 그건 말도 안 돼! 이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이고,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일이야!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는 무슨 일이 생길까? 그녀는 그가 돌아올 날 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은 그의 편지가 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바랴에게 읽어 주었다. 편지들은 모두 간결 했고, 위트가 넘치며, 그의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그녀를 위로하려는 노력 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종종 편지를 썼으나 그의 편지는 불규칙하게 도착하였다. 그 는 편지에다 번호를 매겨 놓았는데, 어떤 때는 나중에 쓴 편지가 먼저 쓴 편지보다 더 일찍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 편지 속에 뭔가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어서 도착하지 않는다고 걱정을 했 다. 그때마다 바랴는 시베리아로부터 편지가 도착하는 데 생기는 어려움을 가르쳐 주며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마침내 편지가 도착해야만 그 녀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곤 하였다. 바랴는, 우편수송이 육로로는 불가능해지기 전에 사샤에게 보낼 겨울 옷 가지를 준비하고 있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를 도왔다. 그는 자기의 오버 코드와 방한용 귀덮개가 달려 있는 모자를 갖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유배 당했을 때부터 입고 있었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에게 펠트로 된 부츠와 울로 만든 속옷 두 벌, 울 양말, 스카프 그리고 스웨터를 부쳤다. 바랴는 이것들을 합판으로 만든 상자 속에 넣고, 촘촘히 바느질하고 지워 지지 않는 연필로 주소를 써놓은 부대자루로 포장했다. 그녀가 이것을 부 치려고 들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와 함께 그를 찾 으려고 헤맬 때가 생각났다. 교도소의 긴 줄에서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처참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르바트의 지하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생각해 냈다. 그때 사 샤는 매춘부들을 비난했으나, 그녀 자신은 같은 여자로서 옹호해 주었다. 사샤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또 신년파티에서 그는 유리 샤로크 녀석이 함부로 구는 것에 맞는 대접을 해주었다. 사샤는 그가 니나를 비웃지 못하 도록 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조용히 앉아 있는데 그는 그렇지 못했 던 것이었다. 사샤만이 유일하게 시베리아에 있는데, 그 이유는 그는 깡패 같이 행동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이 신문에 났으나, 비난 받은 유일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가 언제 그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당당 하게 걸어 본 적이 있는가? 그는 달리 할 방법이 없었는가? 그는 혼자였고 무기도 없었으며, 그들 중 세 명은 라이플총을 갖고 있었다. 그때 그는 매우 측은하게 보였었다. 그녀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샤가 짊어져야 했 던 십자가는 그를 낮추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더욱더 고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야 그녀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샤의 교과서와 연필, 펜 그리고 그의 자전거로부터 빠졌을 많은 볼트 와 너트들이 그의 책상 서랍에 들어 있었다. 그의 부모의 것이기도 한 그 의 운동기구는 테이블 밑에 있었고, 책들은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이것 은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일종의 도서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바랴는 사 샤의 책도 찾아내었다. 유레스 베르네, 페니모레 쿠페르의 작품이 바로 그 런 것들이었다. 또 그가 어린시절에 읽던 책도 찾아냈는데 1912년 데브리 엔에서 출판된 푸쉬킨 전집 6권고, 한권의 고골리 책, 레르몬토프의 작 품, 그리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 못된 장난 , 칼레발라 , 히아와 타의 노래 그리고 블라스코 이바네즈의 피와 모래 , 파나이트 이스트라 티의 키라키랄리나 그리고 일프와 페트로프, 조쉬첸코, 바벨, 솔로호프 의 책들, 그리고 10권으로 된 소 소비에트백과사전 등이 그런 것들이었 다. 그녀는 아르바트의 지하실 에서 그리고 또 신년파티에서 그와 춤추면서 그를 세게 껴안은 것을 생각해 냈다. 지금 그 일을 생각해 보는 것은 그녀 에게는 매우 흥미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아마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졌을 테지만 그것을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녀는 그를 어른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같이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기 원했고 또 그의 팔에 안겨.... 사샤는 매 편지마다 그녀에게 인사를 보냈다. 언제나 편지 끝에는 바랴 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 라고 씌어 있었다. 아마 이것은 단순히 예의바른 태도를 표시하기 위한 것 아니면,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와 그녀가 계속 관계를 맺기 바라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인사말을 꼭 그녀에게만 했 었다.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안부 전하며 인사드립니다 라고 어느 누구에게도 쓰지 않았다. 바랴는 여기에는 뚜렷이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 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슨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답례로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그에게 자신의 인사를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네가 직접 몇 자라도 적어 보지 그러니? 어느날 소피야 알렉산드로브 나가 제안했었다. 그러나 바랴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공허한 말을 쓴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양 어서 집으로 돌아오세요 라고 쓰는 것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녀 스스로가 그에게 자신을 전달할 수 없 었고, 다만 자기가 그를 생각하고 있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도 록 할 뿐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뭐에 대해 쓰죠? 마치 그에게는 재미있는 일인 것 처럼 사무실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쓸까요?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3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마슬로프의 부인, 올가 스테파노브가 그를 만나러 왔다. 칼리닌에서부터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는 열차로 갔고 거기서 다시 예니세이까지는 증기선으로, 그리고 여울과 급류를 지나 보트를 타고 갔 다. 3일 동안 그녀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감내했 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 몸놀림과 좋은 인상을 지닌 명랑한 여자였다. 그 들은 7년 동안이나 서로를 보지 못했다. 그들에겐 아이가 둘 있었다. 언 제, 어디서, 또 어떤 환경에서 그들은 결혼했을까? 전에 그는 관리였고, 그녀는 회계원이었다. 무심코 그들을 바라다보던 사샤의 눈엔 갑자기 미하일 미하일로비치가 젊고 잘생긴 사람으로,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올가 스테파노브나는 아름답 고 기쁨과 희망에 가득 차 있는 여자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둘 다 키 가 컸으며, 그들의 얼굴은 행복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아주 작은 부분까 지, 그는 끔찍했던 7년을 압축해 놓은 그들의 실생활을 똑똑히 볼 수 있었 다. 올가 스테파노브나는 아침에 우편선으로 도착했다. 저녁에 미하일 미하 일로비치는 모든 사람들을 카드놀이에 초대했다. 미하일 미하일로비치와 올가 스테파노브나는 3일 내내 그들 둘이서만 보내기를 원할 것이라고 생 각했는데, 의외여서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다. 물론 새로 도착한 사람, 특 히 자유로운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곳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렇지 만 그래도....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보지 못했었고, 앞으로도 또 몇 년 을 서로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카드놀이라니.... 사샤는 미하일 미하일로비치가 그의 부인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그의 평소의 난폭함이 아니라 아주 계획적인 무례함이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점점 더 싸늘해졌다. 그녀는 그 게임을 알고 있었는데도 게임에 참가하지 않고, 남편 뒤에 앉 아서 그의 카드만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하일 미하일로비 치가 아주 형편없이 게임을 했을 때에야 그녀는 겨우 한마디 했다. 당신은 트럼프 카드로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아주 고맙군! 하지만 참견하지 마. 이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알 고 있으니까. 당신 기분을 상하게 하려던 건 아니에요. 게임은 이미 끝났어요. 그녀 가 부드럽게 웃으며 남편을 용서한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녀는 유배생활에 의해 일그러져 버린 그의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용서하기를 바랬다. 모든 사람들이 어색해 했다. 표트르 쿠즈미치는 씩씩거렸고, 브레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화제를 바꾸려고 애썼다. 잔뜩 화가 난 사샤만이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는 그의 카드를 던지고 나와 버리고 말았 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도 그와 함께 나와 버렸다. 길가로 나오자, 사 샤가 말했다. 마슬로프, 나쁜 놈 같으니라구! 부인은 자기를 위해서 아주 힘든 여행을 했잖아. 그리고 그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는데, 그가 그녀를 취급하는 꼴 좀 봐! 그래, 그녀는 매우 헌신적이야. 브레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동의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 그에게 충실한지 어떤지는 알 수 없잖아. 사람들은 대개 나름대로의 편견을 갖고 있지.... 나 말인가?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래. 자네는 날 몰라.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부인했다. 나는 올가 스 테파노브나가 여기에 온 것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어. 그러나 칼리닌에 서의 그녀의 생활을 생각해 봐. 젊고, 아름다우며 또 혼자이고.... 허튼소리 하지 마. 너는 낭만주의자야, 사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웃으면서 말했 다. 난 너의 그런 점이 좋아. 너의 순진함에는 이전 세대의 이타심 그 무 엇인가가 있어. 올가 스테파노브나는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아주 고 귀한 여성이야. 하지만 그녀는 두 아이들의 어미니고, 일을 해야만 해. 그 런데 우리의 고용주들은 반혁명주의자들이나 그들의 부인, 애들에게는 동 정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두게. 이제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 렴, 이 귀여운 놈아! 특히 애들은 하루에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먹어 야 한다는 것을 말야. 너는 아직도 현실생활을 모르고 있어. 너는 너의 머 리를 구름 속에 처박아두고 살고 있다구. 상황이 어떻든 간에,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법이야. 사샤가 말했다. 올가 스테파노브나가 어떤 나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일이야. 그녀가 그랬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나는 단지 가능성만을 제시하고 있 는 것 뿐이란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근거 없는 거야. 우리 모두는, 그녀가 마슬로 프를 버리지 않을 것과 또 그와 인연을 끊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로 가 버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지. 그녀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그를 만 나러 오고, 그는 무식한 촌놈같이 행동하고 있다구. 그래.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매너가 없 는 놈같이 행동하공 lTdj. 하지만 난 그가 왜 그런지를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뭘 이해한단 말야. 사샤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촌놈이야, 너는 마 치 우리의 유배생활이 여자를 부도덕하게 만든다는 듯이 얘기하고 있어. 그러나 어떤 처지가 마슬로프를 시골뜨기처럼 행동하게 하는지 자세히 말 해 줄 수 없겠나? 그것 모두를 소비에트 정권에다 돌려 비난하지 말게. 그 것은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구. 마슬로프는 자기 부인의 연약함을 이용 하고 있지. 그녀는 촌놈이나 시골뜨기와 마주쳐 있는 예민한 사람과 같아, 어쩌면 그놈보다 더 약해. 흥미롭군, 사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말했다. 너는 너와 같은 세대들과는 다른 어떤 생각들을 지니고 있어. 그것은 네가 왜 이런 곳에 와 있는지에 대한 의심 아니야? 너는 언제나 그랬었지? 나는 내 세대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사샤가 반대했다. 단지 네가 우리들을 모를 뿐이야. 레닌은 영구적인 진리를 부정하지 않았어. 그 자신 또한 그 속에서 성장했지. 특정계급의 도덕성에 관해 그가 말한 것은 혁명 은 전쟁이며, 참혹한 전쟁은 혁명에 있다는 계기의 필요에 의해 조장된 것 이야.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인간적이고 인도적인 것 이야. 레닌은 순간적이고, 참혹한 것에 자극을 받았지만, 스탈린은 지속적 이고 영구적인 것을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았어. 그는 그것을 교리로 끌어 올렸지. 너는 스탈린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나는 너로부터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웃으면서 말했다. 마슬로프에 관해서, 너는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어. 인생이란 복잡한 것이지. 그리고 특히, 마슬로프와 같은 사람의 인생은 어떤 유형으로 고정시킬 수 가 없는 거야. 너의 고결함에도 불구하고, 사샤, 너는 한 가지 약점이 있 어. 너는 네 믿음의 깨어진 조각들로 새로운 그릇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구.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그 조각들은 그 원래의 형태에서만 서로 들어맞기 때문이지. 너는 네 믿음으로 돌아가든 지, 아니면 그것을 영원히 포기하든지 해야 해. 그들은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의 집 밖에서 작별을 했다. 사샤는 지다 의 집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매일같이 걷던 길을 따라 강으로 내려갔다. 그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사랑은 즐거움을 가져오고 삶의 권태를 이기게 해주지만, 삶이 없다면 사랑도 삶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 그는 잠깐 동안 강둑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오겠지. 그는 종 종 보트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 위에 달빛이 반사되어 생긴 은빛 물길을 바라보곤 하였다. 지다가 그에게 제의한 것은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 는 아주 작은 것에 만족해 했다. 이것이 그녀의 미덕이었지만, 왜 그녀는 이런 오지에서 살고 있을까?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있고 또 그에게 바퀴벌레와 같이 외진 곳에 자신을 숨기기 를 바라고 있지? 아니야, 그는 바퀴벌레처럼 살아갈 생각은 없었어. 그들 은 그를 바퀴벌레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어! 그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지다일까? 달빛이, 낮게 깔려 있는 구름 사이로 간신히 비치고 있었다. 사샤는 단 지 강둑을 따라 걸어오고 있는 사람의 형체만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이 그에게 매우 가까워졌을 때야 그는 그들이 마슬로프와 올가 스테파 노브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버팀대에 걸려 있는 그물가로 걸어 왔을 때에도 그들은 그를 보지 못했다. 올가, 제발 내 말 좀 들어.... 사샤는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마슬로프와 그 부인이 걷고 있다 고 생각하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거기에 앉아 있었 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여기서 자신을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그리고 그가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꼴사나운 일이 될 것이다. 제발 나를 이해해 줘. 미하일 미하일로비치가 계속했다. 그렇지 않으 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내 곁을 떠나 줘. 당신의 인생에서 나를 지워 버려 줘. 아이들과 당신 자신을 위해 제발 나를 단념해 달라구. 다시 결혼해서 당신의 이름과 아이들의 이름을 바꾸도록 해. 왜 당신까지 나와 함께 파멸해 버려야 하지? 나는 당신과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그들이 당 신을 해고해 버리고 또한 유배시킬 것 같은 두려움에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어. 당신이 나의 이런 고통을 끝내 줄 수 있다구. 나는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어. 제발 당신과 아이들이 위험에서 벗어난 것을 알게 되어 행복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줘. 오, 맙소사. 어쩌면 당신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어요. 나는 무슨 소리라도 할 수 있어. 내게는 이제 삶이란 없어. 당신은 여 기 왜 왔지? 돌아가서 그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거야. 내가 이혼합의서를 써줄게, 당신은 여기에 이것을 얻으려고 왔다고 말하면 돼. 당신은 이혼판 결에 남편이 없어도 되잖아. 단지 당신은 그것을 몰랐다고 말하면 되고, 이혼합의서가 필요해서 여기에 왔다고 하기만 하면 돼. 내가 당신을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그 녀가 말했다. 가요, 추워요. 마침내, 집에서 편지가 왔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예언한 대로, 그것은 꾸러미로 왔다. 사샤의 어머니는 매일 편지를 썼으며, 보구차니의 모든 일을 알려주었다. 그는 날짜 순서에 따라 편지를 뜯어서 읽었다. 그의 어머니는 실제로 자신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단다. 난 요즘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일 역시 잘 되어 가 고 있단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쓰지 않았는데, 이 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녀를 버렸음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에 대해 서도 아무 언급이 없었는데, 이것은 아마 마르크가 모스크바에 없음을 뜻 하는 것이리라. 어머니는 니나나 그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역시 한마디도 쓰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그녀를 보러 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여동생에 썼는데,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편지는 대개가 질문으로 되어 있었다. 어떻게 지내느냐? 정착은 하였느냐? 무얼 먹고 지내니? 뭐 필요한 것 없니? 주저하지 말고 요청해 라. 우리는 너를 위해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고, 무엇이라도 너에게 보내 줄 수 있단다. 분명히 그의 어머니는 그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의 귀환을 갈망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하지 않고 참아내고 있다. 그녀는 그의 목숨을 위해 살고 있다. 따라서 그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살아야만 한다. 그가 살아 있는 한 그녀도 살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더 이상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매 편지마다 그의 어 머니는 바랴에 대해 썼다. 나는 바랴와 함께 너를 만나러 갔었다. 라는 것은 그들이 그가 있는 감옥을 찾으려고 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바 랴와 내가 줄에 서 있었을 때.... 사샤는 그녀가 뜻하는 줄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모든 그의 동지들이 그를 버렸고 어린 바랴만이 그의 어머니에게 충실했 다. 사샤는 그녀의 섬세하고 투명한 얼굴과 동양적인 눈, 그리고 높은 이 마 위에 드리워져 있는 깔끔한 앞머리를 회상해 보았다. 그는 학교시절에 자습노트를 받치고 쓰던 그녀의 맨 무릎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모든 소년 들을 당황하게 만들던 십대 소녀의 용모를 그려보았다. 그녀는 작고, 상냥 하고 우아한 소녀였다. 그는 칼라를 간편하게 접어 올린 검정색 코트를 입 고 아파트 출입문에서 다른 십대들과 함께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 고 있었다. 그는 <아르바트의 지하실>에서 그녀가 기뻐하던 모습과 같이 춤추던 일도 역시 기억났다. 꽃이 만발한 봄날에 방랑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과 같이 있는 아주 멋진 꿈을 꾸었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유혹하기 위해 얼마나 세게 그를 끌어안았던지.... 바랴만이 그의 어머니가 가장 어려웠을 때 그녀를 돌보아주었다. 그녀는 그의 어머니가 필요로 하는 착실하고 겁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 녀는 어떻게 그런 힘을 길렀을까? 그에게는 이 용감한 소녀에 대한 근심어 린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니나의 눈을 통해 그녀를 관찰하면서 그 녀를 꾸짖었었다. 그는 얼마나 소심했던가! 트라브키나라는 이름의 늙은 여자가 어린 딸과 같은 구역 내에 살고 있 었다. 사회혁명당 아니면 멘셰비키 일단인 큰딸은 솔로브키에 있었다. 아 무도 트라브키나 가족들과 사귀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검정 코트와 구식 이 되어 버린 검정 모자를 쓰고 정원을 가로질러 가곤 했다. 어린 딸 또한 조용히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녀는 사람을 유혹하는 묘한 눈길로 남자 들을 쳐다보곤 했는데, 그 보답으로 받게 되는 것은 단지 무관심과 악의에 찬 즐거움뿐이었다. 사샤 역시 그녀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적의 가족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어머니가 적군의 어머니와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저 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불 행을 함께 할 바랴가 있었다. 바랴만이 그녀의 고통을 덜어 주었다. 우편은 매주 도착했다. 사샤는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고, 때때로 갈색 왁스로 얼룩져 있는 하얀 캔버스에 싸여진 소포를 받았다. 때로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는 포장지에 말라빠진 아교가 단단하게 붙어 있는 둥근 소포도 있었다. 물론 이 소포는 깔끔하고, 장인적인 솜씨를 발휘하여 바랴가 부친 것이었다. 거기에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써 놓았다. 칸스크 지방, 케쥐마 구역, 모즈고바야 마을 똑같은 주소가 어머니의 편지에도 써 있었다. 사 샤는 모즈고바야가 아니라, 모즈고바라고 썼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모즈고 바야라고 썼다. 그녀가 생각한 것이 분명 더 옳은 것이었다.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사샤는 천천히 편지를 훑어 나가기도 했고, 흥미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해 신문을 이리저리 넘기기도 했다. 그리곤 k서 그는 그것들을 옆에 치워 놓고 소포를 끌렀다. 거기에는 케이크와 단맛이 나는 과자, 그리고 건조되거나 설탕에 절인 과일들이 들어 있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은 매우 비싼 것이었다.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음식을 보내지 말라고 했건만, 그녀의 어머니는 기어이 음식을 보내곤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살펴본 다음 우편물에 깃들어 있는 즐거움을 다 맛보았 을 때, 그는 주일 내내 기다리고 있던 의식을 시작했다. 다시, 그러나 이 번에는 천천히 그리고 주의깊게 편지를 읽어 내리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 는 매일 편지를 썼다. 어떤 때는 매칠 동안이나 똑같은 편지를 받기도 했 다. 그녀는 언제나 날짜를 써놓았고 편지에 번호를 매겨 놓았다. 그러나 그 편지 모두가 도착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편지에는 바랴의 인사가 들 어 있었으나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결코 그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 역시 그녀에게 보답의 인사만을 보낼 뿐이었다. 딱 한 번, 그 가 그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추신을 덧붙인 적이 있을 뿐이다. 친 애하는 바랴, 정말 고맙다. 아마 그후에 그녀는 그에게 편지를 썼을 것이 다. 편지를 읽은 후에 그는 이틀 동안의 즐거움을 상상하면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또한 잡지라도 있다면, 그는 그 기쁨을 일주일 내내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은 이미 읽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르바트와 플로트니 코프 가의 구석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아침에 제일 먼저 나온 신문인쇄의 그 신선한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어떤 때는 하루판이 빠진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짜증내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비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데서 오는 짜 증이 어떠하든 간에 그는 참아야만 했다. 그의 어머니의 정신없음은 지금 그에게 그의 가정과 어린시절을 기억나게 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그에 게는 빠져버린 신문보다 더욱더 고귀했다. 사람들이 아르바트에서 전차를 없애 버리고 아스팔트로 길을 포장해 버 렸단다. 그는 전차가 없는 아르바트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또 지하철 역이 아르바트 광장에 세워졌단다. 그는 이것을 그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기를 바랬다. 벌써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지 두 해가 지났다. 자동차와 트랙터들 이 컨베이어 벨트에 의해 생산되어 있었고, 용광로는 쇠를 만들고 내고, 평로는 강철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열성적인 노동자들의 전형적 인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 무수한 시도가 있었고 억 압을 위한 조직이 증대되었다. 국외로 도망을 시도한 자의 처벌은 사형이 었고, 그 도망자의 가족들은, 비록 그들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해도 10년 동안 도망자의 가족들을 위한 감옥에 투옥되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오 로지 한 인간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인간은 새로 운 생활의 상징이었으며 사람들의 믿음과 투쟁, 그리고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었다. 이것은 그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것들이 정 당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왔다. 좀더 일찍 편지를 쓰지 못한 것을 용 서하기 바란다. 네 주소를 알지 못했단다. 이것은 그의 어머니의 냉정함 에 대한 전형적인 조롱이었다. 그녀는 자기 아들의 주소조차 가르쳐 주지 않을 만큼 냉정했다. 그는 그녀가 사샤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그것을 자신과 아들과의 접촉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 각했다. 사샤가 그에 대해 들은 수많은 비난 중에 하나는 그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편지에다 사샤에게 일어난 불행은 이해하지만, 사샤는 아 직 젊고 남은 인생이 많으므로 모든 것이 잘 되어갈 테니, 자신을 포기하 지 말라고 써놓았다. 가족들간의 관계야 어떠하든, 그는 아버지일 뿐만 아 니라 그에게는 충실한 친구였다. 사샤는 틀림없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사샤는 편지를 치워 버렸다. 그는 아버지 생각을 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고통에 사로잡혔다. 그의 아버지는 사샤에게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었 다. 그는 단지 자기 자신의 삶에만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만일 그가 사샤 에게 일어난 불행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생활에 어느 정도의 불편 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그의 일상적인 질서가 엉망이 되고 말았을 테니까. 질서는 그의 삶의 본질적인 것이었고, 그의 철학이었다. 사샤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그의 방에 와서는 불을 켜고 그에게 다가 가, 왼쪽으로 누워 자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인 양 그를 오른쪽으로 돌려 눕 히곤 했었다. 사샤는 단정하게 누워 자는 법을 배워야만 했었다. 그는 사 샤에게 자기의 책상에다 책을 가지런히 정돈하게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 에 있어야만 했다. 또한 저녁 때에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아침에 그것을 준비하려 한다면 매우 서둘러야 하기 때 문이다. 이러한 것은 어린시절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사샤는 그의 아 버지가 어서 방을 나갔으면 하는 바램에, 잠을 자기 위해서라도 그에게 아 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왜냐 하면, 그의 아버지는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파벨 니콜라에비치 는 사샤에게 그가 말한 것을 반복시키곤 하였는데, 그는 사샤가 일부러 조 그마한 소리로 외우고 있다면서 짜증을 내곤 하였다. 질서, 질서, 질서! 그는 스스로 질서에 순종했고, 모든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행동하기를 바랬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그는 화 잘 내고 공격적 인 공론가였다. 생산감소에 대한 투쟁 이 그의 일의 주도니 목표였다. 그 는 식품기술자였는데, 성공적인 생산의 징표는 청결함이었다. 청결함은 신 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의 징표였고, 이것은 질서정연함과 장수에 이르는 비결이었다. 게으른 사람들은 결코 질서정연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질서, 청결함, 위생! 과일은 야채와 같이 여러번 다른 물에다 깨끗이 씻어야 하 며, 비록 껍질에 유용한 영양분이 많다고 해도 껍질을 벗겨야만 한다는 것 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사과껍질을 아주 얇게 층층이 벗겨서, 천천히 먹었다. 또한 그는 아주 집중을 하면서 음식을 오래오래 씹었고,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먹어치웠다. 어린 사샤에게도 그의 음식을 전부 다 먹게 하 였다. 따라서 낭비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접시는 언제나 깨끗이 비 워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의 옷과 구두는 몇십 년이나 된 것이었다. 매일 밤, 그는 자 기의 구두를 창턱에 내놓아 바람을 쏘였고, 현관에서 그것을 닦곤 했다. 좁은 현관에 구두와 구두솔, 구두약통 그리고 신문들이 펼쳐져 있어서 다 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곤 했다. 물론 그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가 뭐라 해도 결코 그만두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고 그와 무슨 일을 같이 하려들지 않았다. 한편, 그는 어떤 사람이 화 장실에 불을 켜놓고 나온다던가, 욕실에서 수도꼭지를 완전히 잠그지 않고 나왔다면, 매우 심하게 화를 내곤 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방에서 조 용히 참고 있었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참을성을 잃고 복도로 달려나와 대 체 누구에게 말하는 거냐고 따지고 들면, 그때부턴 서로 비난하고 고소하 는 아주 저속한 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집에서는 우습기만 하고 참을 수 없는 그의 호전적인 공명심도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아주 확실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성실한 노동자였고, 자신 의 일을 사랑하는 아주 수준높은 전문가인 동시에, 일에 대한 놀라울 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용주나 동료 일꾼들과의 사이는 별로 좋지 못했다. 그는 그들을 게으름뱅이에다 건달이며 깡패들의 집단으 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일은 자원을 절약하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다른 어 떤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었다. 사샤는 그에게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얘기를 나눠 보려 고 했으나 허사였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일 터에서 생긴 자신의 문제들에 대해 사샤에게 얘기했을 때, 그는 사샤가 자 기편을 들어주며 그의 적들을 함께 미워해 주길 바랬었다. 사샤의 머리는 그가 알지도 못하는 무수한 이름들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종종 그가 누구죠? 라고 묻곤 했는데, 그러면 그의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면서 작년에 그 사람에 대해서 너에게 얘기했었잖아. 너는 네 아버지의 일에 대해 통 관심이 없구나! 라고 말했었다. 사샤는 식품산업에 대한 용어를 몰랐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계획서 의 문체를 바꾸라고 지시했었다. 그것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고, 그의 아버 지는 불평을 하곤 했다. 그런 기본적인 것을 기억하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말야. 사샤는 그의 아버지 일을 돕는 것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 이 그를 화나게 했고 그들 사이를 멀어지게 할 뿐이었다. 공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의 독특한 출입방식을 갖고 있 었다. 갈랴는 문을 쾅 닫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고, 미하일 미하일로비치는 아주 조용하고 조심성있게 들어왔다. 사샤의 아버지는 자물쇠를 열기 위해 열쇠를 신경질적으로 덜컥덜컥거렸다. 언제나 무엇인가가 그를 불쾌하게 하였다. 안쪽 문이 꽉 닫히지 않아서 온기가 계단으로 빠져 나오거나, 현 관매트가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 어떤 놈의 짓이지? 어 떤 놈이야! 매일 저녁마다 그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는 인사도 없이 방으로 들어서곤 했다. 그들은 아침에야 서로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 면서, 무언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방안을 둘러보았으나 아무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사샤의 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잘 치워놓았기 때문이었다. 조 용히 그는 코트를 벗어서 옷장 옷걸이에 건 다음 자켓을 벗고 다른 것을 입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욕실로 가서 손을 씻곤 했는데, 사샤와 그의 어 머니는 거기서 흘러나오는 그의 불만에 가득 찬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 다. 끝으로 그는 식탁에 앉아, 그의 부인의 움직임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더니 자기 접시며 포크, tm푼 등을 검사한 다음, 냅킨 으로 그것들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냈다. 그런 다음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아무 것도 음식을 먹을 때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면, 이 시간 이 그가 불평을 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가 그의 부인보다 먼저 접시를 비우게 되면 그는 골난 듯이 말하곤 했다. 먹는 데 더 도와줄 것 은 없소? 아, 있군. 고맙소! 그러나 파벨 니콜라예비치는 여전히 그의 아버지였다. 그가 좋은 사람이 었든 나쁜 사람이었든 간에, 그는 여전히 아버지였고 그의 삶의 일부였으 며, 그의 어린시절과 사샤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의 일부였다. 그 는 그의 아버지를 무정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무정한 것은 그의 이기심이 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일과 건강 그리고 편안함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 다. 이런 이유로 그는 외로움이라는 벌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 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러한 것을 다른 사람의 악의로 몰아붙였다. 따라서 그는 더욱더 외토리가 되고 말았다. 사샤는 그 자신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을 때 그가 더 측은하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8월이 지나고 짧은 가을과 침엽수림지대의 황색계절이 시작되었다. 낮에 는 바람 한 점 없이 따뜻했고 밤에는 서늘하다 못해 냉기가 감돌았다. 땅 은 건조해졌고 딱딱하게 말라 버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빨갛게 변해 버린 곳도 있었다. 모즈고바 강 기슭을 따라서는 지면이 약간 얼어 있어서 길을 걸으면 발밑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산토끼들이 밤마다 강둑을 따라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암내가 난 엘크 사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타이가로부터 들려왔다. 거대한 쐐기 모양의 기러기 무리들이 호 수 위로 울부짖으면서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햇빛은 잠깐 비치었고 밤이 점점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앙가라가 얇은 가을 얼음으로 뒤덮이게 되자, 썰매 길이 생기는 겨울까 지는 더 이상의 우편물도 도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가족과 어머니, 그 리고 여전히 그에게 한 통의 편지도 쓰지 않았지만 매 편지마다 느낄 수 있었던 바랴 등의 외부세계와의 유일한 연결이 단절되었다. 편지나 신문 없는, 그리고 신문뭉치에 써 있는 바랴의 아름다운 필체를 보지 못하는 생 활은 더욱더 지루해졌다. 지다가 그에게 케쥐마 도서관으로부터 빌어 온 읽을 것을 주었으나, 대개는 그가 이미 읽었던 오래 되고 하찮은 것들이었 다. 그러나 때때로 새로 나온 것도 있었다. 바카렌코의 교육시 나 브루노 야센스키의 인간은 자신의 피부를 바꾼다 그리고 글라드코프의 에너지 가 그런 것들이었다. 지다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 책들을 수레에 실어서 보내 줬으나 종종 그녀 자신이 걸어서 그것을 운반해 오곤 했다. 사샤는 화가 났다. 왜 그녀 자신이 이것을 가져오지? 그녀는 웃으면서 누군가에게 도와 달라고 했겠지. 어쨌든 두세 권의 책은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 그는 낮에는 책을 읽으면서 소일하곤 했는데, 이것은 그가 조심성을 버 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관계를 비밀로 하고 있었으 나 그들의 우정에 대해서는 공개적이었다. 그는 낮 동안에는 그리고 때때 로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도 함께 있을 때는 친구처럼 행동했고, 밤에는 그녀와 함께 앉아 있곤 했었다. 그러다 지다와 함께 밤을 지새게 되면 새 벽에 그녀의 집을 나와 강둑을 따라 걸어서 마을 반대편에 있는 그의 집으 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에게 점점 거리감과 차가움을 느끼게 된 지다는 언젠가 그에게 말했었 다. 내가 당신과 결혼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아마 모 스크바에 누군가가 있을 테니까요. 난 단지 이곳 생활이 싫증나고 짜증나 이러는 것뿐이에요. 나는 내 인생에서의 즐거움을 갖고 싶어요. 그는 그녀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으나 그녀는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녀 가 이해하기만을 바랬다. 그에게 모스크바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바랴를 마음속에서 지워 버릴 수 없었다. 사샤는 편지 없이 겨울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또 한 겨울이나, 여름이냐에 상관없이 그가 꾸려 가는 모든 것을 해나갈 자신 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에 곧 익숙해졌으나, 왜 그만 그렇지 못하 는가?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운명이었다. 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 신의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가? 왜 그는 그들처럼 참지를 못하는가? 그는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 었다. 자신을 포기하고 참는다는 것은 언제나 그에게는 조화되지 않고 약 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때 그는, 그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 보고, 자신을 그들의 일부라고 간주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강인함을 지닐 수 있 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가 경멸했던 사 람들이 그보다 더 강인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통을 참 을 수 있는 능력과 인내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강인한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는 강인했으나, 그가 살고 있던 환경에서 박탈당한 지금의 일상적인 환경에서는 견딜 수가 없었고,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다는 거 슬 알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의 기지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평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불행을 견뎌내고 있었고 희망 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사샤는 자신에 대해 이러한 무정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여전히 그는 그의 감상적 연약함의 증표인 절망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 신의 절망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마을 소식, 학교 수업 등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흥미없고, 지루하고, 낯선 것들이었다. 그는 무엇 을 걱정하고 있는 것인가? 아침 일찍, 그는 주인집의 낡은 엽총과 에스키모 개, 주초크를 데리고 새를 쫓아 숲속으로 가곤 했었다. 그는 정오쯤 돌아와서는 일몰 두세 시간 전에 다시 나가곤 하였다. 사냥하기 좋은 때라서 나간 것이 아니라, 걸어 다님으로써 자신을 녹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지긋지긋한 생 각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랬다. 그 엽총은 낡았으나, 6m 정도 되는 착탄거리는 아주 적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늑대와 같은 색 털을 지닌 주초크는 아주 훌륭한 개였다. 이 개는 날카로운 코와, 어둠 속에서 도 빨갛게 빛을 발하는 눈, 뾰족하게 서 있는 귀, 근육이 잘 발달되어있는 목과, 등쪽으로 휘어져 있는 털이 무성한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개는 아주 민첩해서 새들을 재빨리 몰아내곤 했다. 새들은 나무로 날아가서는 줄기 가까이에 머물러 있곤 했기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끼가 무성히 자라나 있는 전나무일 때는 더 심했었다. 주초크는 새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짖어 대고, 그러면 사샤는 열두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총 을 쏘았다. 새는 땅에 떨어졌고, 그 개는 재빨리 달려가서는 그것을 입에 물고 사샤에게 가져왔다. 사샤는 매 사냥마다 대여섯 마리의 새를 지다에 게 가져다 주곤 하였다. 그녀는 그것들을 신크림으로 요리하였는데 매우 맛이 좋았다. 사샤는 그것을 즐겨 먹었는데, 특히 몇 마리의 새를 준 보답 으로 페쟈로부터 약간의 술을 얻게 되면 더욱더 그랬다. 어느날 페쟈가 사샤에게 말했다. 너는 새를 아주 많이 잡고 있지만, 숲 속 너무 깊이 들어가고 있어. 곰이 너를 해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 사샤는 그의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한번도 곰을 만나지 않았지. 그놈 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마 잊어버렸을 거야. 곰이 기억하고 있다면 거기에 있겠지. 페쟈가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 러나 사샤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귀양생 활의 대가로 농담을 하기 좋아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사냥꾼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 다음날 사샤는 다시 숲속으로 갔다. 주초크는 정원에도 없었고 거리 에도 없었다. 그 개는 일찍 그와 외출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에 대개는 그를 기다리면서 펄쩍펄쩍 뛰어다니곤 했었다. 사샤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응답으로 들려오는 어떤 개짖는 소리도 없었다. 아마 안주인이 주 초크를 데리고 농장으로 갔거나, 아니면 그 집주인이 개와 함께 케쥐마에 갔겠지. 사샤는 혼자 가기로 했다. 사냥은 성공적일 수는 없겠으나 그는 좋은 눈을 갖고 있었고 놀란 새들이 어디로 날아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새들이 많이 있는 숲속 개간지로 갔다. 말라버린 노란 낙엽들이 발 밑에서 바스락거렸고 마른 가지들이 삐걱삐걱거렸다. 새 한 마리가 조용히 나무에 내려앉았다. 사샤는 근처에서 다른 새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으 나, 똑똑하게 보이는 나무 위 기러기를 놓칠까봐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그는 새 뒤에서 조심스럽게 엽총을 들어서 목표를 겨누고 총을 쏘았다. 곧 이어 다른 총소리가 나고 총탄이 그의 곁을 가까스로 피해서 날아갔다. 그 는 얼른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것은 사슴사냥용 산탄이 아니라 소총탄 이었다. 그가 다른 기러기 소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사람의 발자국 소 리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자, 그는 나무에 기대어 숨을 죽인 채 숲 속 에 귀를 기울였다.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사샤는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총을 쏘고 싶었지만 총알을 한 방만 장전했기 때문에 지금은 빈 총 상태였 다. 그는 통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 있던 6개의 파열탄 중 하나를 장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자 마자 두 번째 총성이 울리고 총 알이 나무를 스쳤다. 그는 재빨리 탄환집을 꽂고 격침을 당겼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살랑거리는 소리와 나뭇가지들의 바스락거리는 소 리를 들었고 마침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그를 쏘았던 사람이 도망치고 있었다. 다시 조용해졌다. 사샤는 여전히 그의 몸을 숨기면서 좀더 오래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 몸 을 낮게 굽혀서 그 사람이 도망갔던 쪽과 반대 방향으로 갔다. 그는 길로 가지 않고 드러나 있는 나뭇가지들을 밀어젖히면서 나무들 사이를 빠져 나 와 앙가라에 도착했다. 그는 강둑을 따라 내려가지 않고 숲 기슭을 따라 마을로 돌아왔다. 누가 그에게 총을 쏘았을까? 그의 총을 탐냈던 부랑자였을까? 그럴 리 없다. 그 사람은 이미 자기의 총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중 하나였 다. 티모페이, 바로 그야! 그에게 경고했던 페쟈는 농담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얘기한 것은 곰에 대해서였다. 티모페이는 사샤에게 보복할 것이라고 떠벌렸었다. 이럴 때 보통 그들은 곰을 사냥할 때 사용하던 소총탄이나 산 탄으로 앙갚음을 한 것이었다. 페쟈는 티모페이가 그를 처치하려고 나갔다 는 것을 경고해 줄 수도 있었으나, 그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그렇게 하 지 않았다. 그는, 만일 사샤가 티모페이의 협박에 대해 듣게 된다면, 그가 관청으로 달려가 자기를 증인으로 내세울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만일 티모페이가 사샤를 죽였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아무 말 못할 것이다. 그러 면 사샤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는 오늘 여기에 왔고 내일이면 갈 것이다. 반면에 이곳은 티모페이와 그의 가족의 고향이었다. 페쟈는 아무 것도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른 어느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 다. 그들은 그를 죽은 사람으로 기록해 놓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세상의 구석진 곳에서 조사가 행해질 수 있을 것인가? 자기의 방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을 때, 사샤는 자신이 깊은 바다의 가 장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한하게만 생각되었던 삶이 총알과 뒤집혀진 배,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여행, 일상적인 고통 등에 의해 순식 간에 절단되고 말았다. 아무도 그를 도우러 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죽음 은 아무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아무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아 무도 그를 변호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호소해 볼 사람이 아무도 없 었다. 알페로프? 사샤는 자기가 왜 특별히 티모페이를 의심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 그래, 한때 하는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었던 적이 있지? 나는 이 지역 주민들과 다투지 말아야 했어. 그들 또한 인간이고, 자신의 위엄을 갖고 있고 내가 고려해야만 되는 자기들 나름의 도덕이 있 어.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지.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부터 멀리까 지 갈 권리가 있나? 총기류를 사용할 수 있는 허가가 있어? 고소해 봤자 어떤 조사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더욱 무방비상태로 되겠지. 그러면 내 적들은 자신들을 어떤 처벌이라도 내릴 수 있는 저승사자라고 생각하겠 지. 이러한 것을 공개한다고 해도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자신 이 자신을 돌보아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숲에는 가지도 못한단 말인가? 티모페이는 앙가라의 둑에 앉아서 그를 기다릴 수도 있고 도는 창문으로 총을 쏴서 간단히 죽일 수도 있다. 자신의 등에 날아올 총알의 공포를 안 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것은 내 자신의 잘 못이야! 왜 나는 티모페이를 알게 되었지? 왜 나는 그와 풀을 베러 갔었 지? 일정한 거리를 두었어야 했는데 긴장을 풀었었고, 또 나는 우리들이 동등한 양 행동했었다. 티모페이는 내가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나를 조롱하기 를 결심했었다. 그는 지는 것을 싫어했기에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던 것이 었다. 나는 무례하게 굴지 말았어야 했으며, 사람들에게 늠름하게 행동하 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니까. 저녁때 사샤는 페쟈의 가게에 가서는 손님이 다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숲속에 곰이 있어. 페쟈가 자신의 눈을 굴리면서 말했다. 그래, 이제 너도 알았지.... 그 는 사샤가 뜻하는 곰이 무엇인지를 묻지도 않았으나, 이미 알고 있었다. 사샤는 가게를 나왔다. 티모페이의 집을 지날 때 걸음을 늦추었다. 그가 들어와서 자신을 돌보고 있을까? 아니야, 그는 자신을 꼭 붙잡아야 했다. 성급해서는 안 된다. 그는 단지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에게만 그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그 리고 이 일에 대해 지다에게는 아무 말 말라고 당부했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눈쌀을 찌푸렸다. 이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 다 더 심각한 일이야. 나도 알고 있어. 또한 만일 그가 나를 처치해 버렸다면, 그는 일을 아 주 훌륭히 해낸 것이 되지. 너는 조심해야만 돼.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충고했다. 다신 혼 자 숲속에 가서는 안 돼. 너만 좋다면, 내가 함께 가겠어. 글쎄, 곧 알게 되겠지. 사샤가 알 수 없게 중얼거렸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아침에 주초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물어 보았 다. 그들은 그 개가 어디에 있었는지 몰랐었고 아무도 그 개를 데리고 나 가지 않았었다고 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요. 안주인이 말했다. 티모페이의 짓이 분명했다. 그가 주초크를 어딘가에다 묶어 놓았을 것이 다. 한편 주초크는 문간에 앉아 있었다. 그 개는 그들이 자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안주인과 사샤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사 샤가 그의 주둥이를 어루만졌다. 우리 내일 나가서 곰을 잡아오자, 이 꼬 마야, 준비하고 있어. 사샤는 그가 산탄을 절단했던 주인집의 창고에서 납총대를 찾아내 한 통 은 새총에다 장전시키고 나머지는 납총에다 장전시켰다. 이젠 티모페이에 게 또 한번의 기회만 주면 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사샤는 숲속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 다. 아침 일찍이, 그가 아직 잠자리에 있을 때 소비에트 마을에서부터 한 농 부가 짤막한 편지를 가지고 온 것이다. 이 편지를 받은 후, 유배자 판크라토프, A. S는 케쥐마 마을에 있는 케 쥐마 내무인민위원회 알페로프 앞으로 출두할 것을 요구함. 그 편지에는 낯익은 알페로프의 사인이 서명되어 있었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4 료바는 바랴에게 노조에 가입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순전히 형식적인 것이라 생각했으나 또한 필요한 것이었으므로 바랴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다. 가입여부는 정기회의에서 결정되었는데, 거기서 그들은 그녀에게 처음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종류의 질문을 했다. 바랴는 결혼은 했습니까? 라는 질문에 다시 화가 났다. 그 녀는 예, 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신청서에는 다르게 써놓았기 때문에, 할수없이 아뇨, 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조예와 다른 여자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아무도 그녀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 다. 그들은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국가위원회 위원장은 누구고 평의회의 의장은 누구죠?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는 것과 사회주의사회의 기초를 건 설하는 것과의 차이점은? 정확히 우리가 건설한 것은 무엇이죠? 바랴는 깜 짝 놀랐다. 매일 얼굴을 마주보며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지내던 이들이 마 치 중요한 국가대사라도 수행하는 것처럼 갑자기 의심이 많아져서, 자기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나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건 오직 신만이 알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리나와 료바도, 심지어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 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든 그녀를 노조에 등록시키려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들어올 때 동의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이것은 단지 토론의 모습을 띤, 그리 고 그들 모두가 익숙해져 있는 일을 실행하는 것뿐이었다. 질문이 모두 끝났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일어나서, 이바노바는 자 신의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고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조합원이 되는 것이 전적으로 온당하다고 말했다. 그가 그런 공식적인 언어를 사용 하는 것을 듣고는 매우 놀랐다. 투표의 결과는 만장일치로 찬성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식적인 일은 다 끝나게 되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얼굴 표정이 풀어졌고 딱딱했던 말투도 부드러워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바랴에게 축하인사를 한 다음 서둘러 집으로 떠났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2층 식당으로 내려가 바랴의 조합가입을 축하 하자고 제의했다. 리나는 그랜드 호텔에 갈 만큼 정장을 하지 않았으니 대 신 카나티크로 가자고 했다. 그곳은 분위기는 좀 없었지만 서비스는 더 좋 았다. 료바도 찬성했다. 왜냐하면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내는 것인데, 너무 많은 요금이 나오면 그를 난처하게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랴는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회의에서 리나와 료바의 행 동을 이해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일 자리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힘없 는 고용원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그와 같이 유명한 건축가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 말들이 얼마나 케케묵은 것인지, 그리고 그 전 과 정이 얼마나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말을 해 댄 것이다. 갑자기 그녀는 사샤 판크라토프가 생각났다. 그는 비록 이런 모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그 자신의 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아 마 그는 벌떡 일어나, 이미 질문지에 답해 놓은 것을 시간을 낭비하면서 다시 물어 본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 말하겠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그의 특성이었다. 그러나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그렇게 하지 않았 다. 따라서 그녀는 어디에도 가고 싶지가 않았으나 자신을 축하해주려는 자리였으므로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카나티크는 인쇄술의 개척자 이반 페도로프 기념관 반대편에 있는 스퀘 어 극장과 로츠데스트벤스키 거리 구석에 있었다. 그곳은 지하였다. 바랴 는 한번도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당구장이 없었기 때문에 코스챠는 좀처럼 거기에 가지 않았다. 그녀는 비카가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와 함게 그곳에 한번 가보자고 한적이 있었으나 그녀가 거절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 다. 그녀는 료바의동료들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지금 이 고르 블라지미로비치와 함게 있는 것이다. 레스토랑 안에는 그녀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리나는, 금요일에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구운 닭을 먹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한 < 모든 사람>은 이곳의 단골손님을 뜻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낮고 둥근 천 장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여기는 도시의 중심지라서 많은 사람들이 일과 후에 찾아온답니다. 료 바가 설명했다. 사무 노동자들은 일이 끝나면, 바로 매춘굴을 찾아가죠. 리나가 이고 르 블라지미로비치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덧붙였다. 그는 여기에서는 상관이 아니었다. 단지 파티석상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줄곧 들락날락했다. 세 명의 여자들이 들어와서는 그들의 테이 블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앉았다. 바랴는 리나와 료바 사이에 오가는 갑작 스런 경계의표정을 알아차리고는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리나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바로 지금부터 자신들의 일이 시작 되는 소위 <레스토랑의 여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사업>이 시작되기 전 에 아무도 없이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그 들은 자신의 돈을 조금 가지고 있고, 자기들의 관심사에 대해 얘기하며 웨 이터에게 팁을 줄 수도 있어, 보통 여자들과 별 다를 게 없었다. 그 여자들 중 한 명은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그녀에게 뭐라고 얘기하자, 그녀는 바랴의 테이블로 몸 을 돌려 리나와 료바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 여자는 바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그녀의 친구에게로 몸을 돌 려 무슨 말인가 했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몹시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말라빠진 금발의 여자로, 나이는 25세 가량 되었으 며, 창백한 데다 화장도 엉망이었다. 그녀는 화려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 도 않은 점잖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바랴는 다시 료바와 리나 사이에 스쳐 가는 근심스런 모습을 보았다. 리 나는 몹시 난처했다. 그 여자가 완고하게 그리고 아주 경멸한다는 듯이 바 랴를 쳐다보았던 것이었다. 저 여자 누구지? 바랴가 물었다. 잘 모르겠는걸.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 꾸며대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리나는 되는대로 말했다. 저 여자는 료바도 역시 알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었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 또한 그 순간의 어색함을 느끼고, 더 이상 오래 머물지 못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잔을 들었다. 축하합니다. 바랴. 당신은 이제 완전한 월급을 받는 노동자가 되었군 요. 당신의 건투를 빕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 여자들은 금발머리가 무엇인가 얘기하자 또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다시 그의 시계를 보았다. 바쁜가요? 리나도 그만 갔으면 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예, 그래요. 료바가 맞장구쳤다. 금발머리의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료부쉬카! 그녀가 소리쳤다. 료바는 그녀의 테이블로 가서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금발머리의 어 깨를 가볍게 쳤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돌아왔다. 잠시 후 다시 저쪽 편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기의 테이블로 돌아온 료바는 스코모로프스키 밴드에 대하여 달콤한 목소리로 얘기하였다. 이 밴드는 지금 막 모스크바로 순회공연을 시작한 댄스밴드였다. 리나는 그의 수다를 듣고 있었지만, 바랴는 그녀가 지금 무 엇인가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발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손에 담배를 들고 그들의 테이블 로 다가왔다. 처음에 그 여자는 바랴를 쏘아보다가 곧 이고를 블라지미로 비치를 바라보았다. 불 가진 사람 있어요? 그녀의 행동은 일부러 꾸며낸 것 같았고 숨겨져 있으나 도전적인 태도였 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그 여자에게 성냥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성 냥을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갑자기 그 여자가 바랴에게 화살을 돌렸 다. 요새 코스챠와 재미가 좋은가 보지? 클라브쟈, 클라브쟈.... 료바가 그녀의 팔꿈치를 쳤다. 왜 그래? 난 재미있는데. 저 여자는 그의 새 부인이고 나는 예전의 부 인이라 이 말이지. 나는 이백 번이고, 저 여자는 이백 일 번이란 말야. 재 미가 좋은 모양이야? 그에게 화대는 좀 받았어? 바랴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여자가 무언 가 암시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브쟈, 조용히 하지 못해! 리나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래? 금발의 여자가 무례하게 응수했다. 아가리 닥쳐! 저 여자는 자 기가 그의 유일한 부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금발의 여자가 악다 구니를 썼다. 그 남자는 아주 많은 여편네가 있고 그들 중 반은 저 모양 이란 말야. 또 그들 모두는 임질이 걸렸어. 그렇지 리나? 너도 역시 걸렸 었지, 그렇지 않아? 이제는 아주 어린 것들을 찾는구나. 너희들 모두 더러 운 계집애들이야! 바랴는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야, 이 화냥년아, 말조심해. 그들 모두는 깜짝 놀라 어서 이 폭풍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면서 긴장하 고 있었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험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테이블에서 당 장 사라져! 빨리 꺼지라구!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오늘 밤 당장 경찰에 끌 려가게 될 줄 알아. 그 정도는 아주 쉽게 할 수 있어! 아, 그래요 끔찍하군요! 금발머리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자리에서 뛰어와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울부짖으면서 소리쳤다. 나는 교양 있는 여자처럼 얘기했는데, 저년은 나 를 갈보라고 불렀어!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게 욕부터 배워 가지고!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웨이터를 불러 계산을 했다. 마침내 그들은 그 레스토랑을 빠져 나오게 되었다. 나는 이쪽으로 가야 돼. 료바가 말했다. 그는 스렌텐카 가에 살고 있 었다. 잊어버려, 그 여자는 미친 여자야. 내일 봐! 바랴와 리나, 그리고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수퀘어 극장 쪽으로 걸어 갔다. 불쾌한 여자야! 악담이나 하고 있고! 그 여자는 지금 또다른 거짓말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리나가 분개했다. 다시는 그런 곳에 가서는 안 되겠어.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말했 다. 그런 정신병자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어요. 리나가 응수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오. 그가 바랴에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말라 구. 아무 일도 아니니까. 아무렇지도 않아요. 바랴가 눈쌀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랴는 늦게까지 일 을 했으므로 이제는 자야 할 시간이었다.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카나 티크에서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난 그 다음날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었었 다. 리나와 료바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리나는 분명히 친구 이상의 그 무엇이었지만, 그들은 코스챠의 친구들이었다. 그러한 것은 코스챠의 세계에 있는 도덕이었다.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는 그런 식으로 그녀의 결 혼생활에 대해 알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반대로 그녀는 조합모 임에서의 그의 행동과 카나티크에서의 그의 거친 목소리에 놀랐었다. 만일 그들이 길거리에서 불량배를 만나게 된다면, 틀림없이 그들은 그와 똑같은 거친 목소리로 도움을 청할 것이다. 게다가 양같이 순한 계장이들! 사샤라 면, 다르게 방어했을 것이다. 지금, 그녀는 자기와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 는 동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유로웠다. 그녀는 그 매춘부가 자 기를 그들 중의 하나인 것처럼 얘기했을 때 매우 부끄러웠다. 금발의 여자 는 과거에 코스챠의 접대부였고, 이제는 바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이었다. 바랴는 한번도 이런 종류의 굴욕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녀 가 어떻게 다음날 직장에 나갈 수 있고, 또 어떻게 그런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볼 수 있겠는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신이시여.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도 망갈 수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녀는 거기서 떠나 니나의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불쌍한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를 실망시킬 수 없었다. 그녀에게 는 그런 권리가 없었다. 코스챠가 그녀의 삶을 몽땅 망쳐 버렸다. 부랑자 를 집안으로 데려다 놓고는 도망쳐 버리는 꼴이지. 그녀는 자신을 결코 용 서할 수 없었다. 그와 싸움을 시작하면 어떨까? 아파트에서 시끄러운 소리 가 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 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를 더욱 괴롭히는 것일 테니까.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였다. 안녕, 바랴. 안녕,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거기 앉으세요. 잘 지내셨어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앉으면서 바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너, 무 슨 일이 있구나. 피곤해서 그래요. 모임이 있었거든요. 노조에 가입했어요. 그건 단지 형식적인 것이지. 그래도 그것을 잘 살펴보아야만 해. 소피 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말했다. 그녀는 다시 바랴를 쳐다보았다. 바랴, 내가 왜 여기에 왔냐 하면.... 콘스탄틴 페드로비치가 오늘 여기 에 몇 사람을 데리고 왔었어. 그는 바로 자기 뒤에 있는 문도 열지 못하더 군. 그들은 여기에 총을 분해해 가지고 왔는데, 노리쇠가 덜컹거리더라 구.... 바랴, 무슨 일일까? 바랴는 벽장문을 열고 옷으로 가리워진 채 벽에 기대어 있는 두 자루의 라이플 총을 보았다. 그녀는 침대에 쓰러지면서 팔을 축 늘어뜨렸다. 당신에게 매우 나쁜 짓 을 했군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나는 그를 당신의 집에 있게 할 아무 자격도 없어요. 그렇지만, 결국 너는 그의 부인이야. 부인이라구요? 나는 그에게 어떤 부인이죠? 그리고 그는 나에게 어떤 남편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이젠 꼴도 보기 싫어 요. 우리는 결코 부부가 될 수 없어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잠자코 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나는 덫에 갇혔어요. 바랴가 절망적으로 말 했다. 덫에 갇혔다고?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의아해 했다. 이해할 수가 없는 데. 어떤 덫이지? 너희들은 아직 혼인신고도 안했잖아. 그러니까 너 는 자유롭게 네 생활을 가질 수 있어. 그래요, 하지만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없어요. 무슨 말이지? 그가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떠날 수 있어도 나는 여기가 좋아 라고 말하겠죠. 아, 그래요. 그는 스스로 다른 곳을 찾 겠다고 약속했었죠.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에요. 아무 곳도 찾아보지 않았 다구요. 그리고 나는 그를 여기에 남겨둘 수 없어요. 당신과 그가 사이좋 게 지낼 수 없잖아요. 그는 내가 여기에 있는데도 총을 가지고 왔어요. 만 약 내가 없다면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어떻게 알아요? 그는 심지어 당 신까지도 방안에 못 들어오게 할거예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미소를 지으며 바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 다. 바랴는 갑자기 그녀의 미소가 사샤의 그것과 똑같다고 느껴졌다. 그들 은 아주 똑같은 눈을 갖고 있었다. 바랴, 사랑하는 바랴,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넌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넌 참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 그러나 너는 너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야 해. 만일 그가 떠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나는 아주 오래 전에 그에게서 떠났어요! 사라들은 언제나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되지. 젊은 사람들은 모든 것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아. 그래서 서로 헤어지고 다시 만나게 되지.... 말다툼.... 바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내 물건을 가지고 도박을 하고 있어요. 당신도 기억하고 있죠. 내 쇼올을? 당신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어요. 그것을 당구경기에서 잃었대요. 필요하다면 그는 나를 걸고 라도 도박을 하려들 거예요.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수상한 것뿐이에요. 램 프와 전기기구, 이것이 그가 하는 사업이죠. 하지만 그는 협잡꾼이에요. 그의 재산은 모두 차압되어 있다구요. 나는 그들이 여기에 찾아올까봐 두 려워요.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신에게 감사해야겠죠. 그의 여자들이 나를 모욕했어요. 이젠 그를 쳐다보는 것조차 참을 수 없어요. 그런데 그게 말다툼이라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다기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자, 자, 진 정해. 절망할 필요 없어. 단지 혼란스러울 뿐이야. 나를 믿어. 그런데 왜 좀더 일찍 내게 얘기해 주지 그랬니? 부끄러웠어요. 바랴가 눈물을 삼키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바보같이 난 경험이 있는 늙은 여자야. 우리 둘은 오래 전에 탈출구를 쉽게 찾아냈잖아.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니, 아니면 여기 서 나와 함께 있고 싶니? 물론, 여기서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그러나 그건 불가능해요. 소피 야 알렉산드로브나, 내가 여기 있으면 그는 분명히 떠나지 않을 거예요. 만약에 그가 떠난다면 물론 저는 여기 남을 거구요. 하지만 그는 계속 전 화를 하면서 말썽을 일으킬 거예요. 또한 그는 당신의 인생도 망쳐버릴 거 예요. 내가 그를 당신의 삶에서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에요. 걱정 마.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침착했다. 내 스스로 그를 없애 버릴게, 네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괜찮아.... 너는 지금 짐을 챙겨서 니나에게 돌아가도록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바랴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의 강인함과 침착함에 매우 놀랐다. 꼭 사 샤 같았다. 그녀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예전에 전혀 몰랐었다. 그가 사준 것은 아무 것도 가져 가지 않겠어요. 바랴가 말했다. 마음대로 해, 그러나 짐을 빨리 챙겨, 그가 곧 올 테니. 코스챠는 집에 일찍 오지 않았다. 그러나 바랴는 료바와 리나가 카나티 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그에게 얘기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 면 그는 일찍 집에 올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기의 가방을 챙기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갈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내 제도판과 T 자는 꼭 가지고 가야 해. 몇 가지 물건을 당신 방에 놔 두었다가 나중에 가져가도 되겠지요?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 바랴는 코트를 입었다. 한 손에는 손가방을 다른 손에는 제도판과 T자를 들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는 것 같으면 뒷 계단으로 가. 걱정 마세요. 오히려 당신이 걱정돼요. 네 걱정일랑 하지 말라고 말했잖아.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단호하 게 말했다. 어쨌든 뒷문으로 가. 계단에서 싸우고 싶지는 않잖아? 좋아요. 바랴가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정말 너무 고마워요. 저를 용서해 주세 요. 이 귀여운 아가씨. 용서할 게 뭐가 있어? 오히려 나를 저버리지 않은데 대해 너에게 감사해야지. 모든 것이 정리되었을 때 다시 돌아오도록 해. 그러면 나는 행복할 거야. 바랴는 아파트 문을 열었다. 방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니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연습문제 책을 고치고 있었다. 니나는 바랴의 손가방과 제도판 그리고 T자르 보았다. 이젠 즐거운 일이 없나 보지? 바랴는 손가방을 내려놓고 제도판을 그녀의 침대에 올려놓았다. 모든 것이 끝났어.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5 바랴는, 집에 일찍 도착한 코스챠가 자기에게 전화를 걸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화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평소와 같이 늦게 돌아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일이 끝나기 2시간 전, 작업장에서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가 전화를 받으라고 료바를 불렀다. 그가 전화를 받으라고 사람을 부르는 일 은 좀처럼 없던 일이었다. 료바가 몇분 후에 나오더니 바랴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코스챠지? 그래. 그 사람이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지? 그녀가 물었다. 료바는 대답 대신 어깨를 움찔해 보였다. 우리는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 외에는 개인 전화를 가질 수가 없어. 사 무실 전화로 하라고 해. 코스챠가 번호를 알고 있을 거야. 료바가 다시 어깨를 움찔했다. 매우 급한 일이니까 곧장 너를 바꿔 달 라고 하더군. 그래서 이고르 블라지미로비치에게 괜찮겠냐고 말했더니, 그 렇게 하래. 가서 다른 번호로 전화하라고 해. 네가 가서 해. 나는 전달자가 아니야. 전달자가 아니라고? 나는 카나티크에서 일어난 일을 그에게 알린 사람 이 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단지 넘겨짚어 본 것 뿐이었으나,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료바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돌아와서는 부루퉁하게 말했 다. 오늘 다섯 시에 <문화와 휴식의 공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대. 그가 혹시 스윙춤 추러 가자고 하지는 않니? 그녀가 조롱하듯이 물어 보았다. 나는 그가 말한 것만을 너에게 전해 주고 있을 뿐이야. 너희들 지금 싸우고 있는 거니? 리나가 자기의 제도판으로부터 눈을 때지도 않고 말했다. 네가 알 바 아니야. 바랴가 쏘아붙였다. 그냥 물어 보기만 했는데.... 참견하지 마! 바랴가 집으로 돌아와서 첫 번째 한 일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전 화를 건 것이었다. 바랴는 그녀가 걱정되었다. 괜찮아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아무 일 없단다. 그는 떠났어요? 그래. 자기 물건을 가지고 갔나요? 응. 당신은 어떻게 생활을 꾸려 나가죠? 가까스로.... 이리 와라. 얘기해 줄 테니. 그녀는 전화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바랴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그가 나간 다음 어떻게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는지를 듣기 위해 기다릴 수 가 없었다. 우선 그녀는 니나에게 말해 그들이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타협 해야만 했다. 바랴는 짐을 풀어서 자기의 옷가지를, 그것이 원래 있던 벽장 속에 걸어 두었다. 그녀는 자기의 책상서랍을 열어서 살펴보았다. 마치 그녀가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나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손대지 않은 채 똑같은 위 치에 놓여 있었다. 니나는 그녀의 언니였고 결국 이곳은 그녀의 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제도판을 테이블에 부착하고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니나가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바랴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사무실에서 가져온 샌드위치를 가리키면서 먹겠냐고 물어 보았다. 니나도 호의적이었다. 그녀는 바랴가 일하는 것을 쳐다보며 무엇을 제도하고 있느냐고 하며 그녀의 대답을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그 들의 생활비에 대해 니나는 자신들 모두가 직장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때문 에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랴는 집세와 전화요금, 가스, 전기요금, 그리고 아침과 저녁식비도 있어야 한다고 반대했다. 그녀는 이 런 모든 비요의 절반을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결국 그들은 이런 요금 전 부를 기억하고 있다가 매달 말에 그 금액을 둘로 나누어 부담하자는 데 동 의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바랴가 가져온 샌드위치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얘기 를 나누었다. 바랴는 니나에게 호텔건축에 관한 얘기며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니나는 바랴가 자기의 일에 얼마나 열심인 지를 알게 되어 기뻤다. 그러나 바랴는 코스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니나도 물어 보지 않았다. 바랴는 니나에게 자신의 좋았던 시절에 대해서만 얘기하였다. 10시쯤 되었을 때 복도에 있는 전화벨 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니 나가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왔어, 바랴. 니나가 근심스런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봤다. 바랴는 코스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코스챠였다. 료바가 내 말을 전해 주었지? 그래요. 그런데 왜 오지 않았지? 더 이상 스윙춤 추기 싫어요. 나는 이제 어른이에요. 할 얘기가 있어. 듣고 있어요. 전화로 얘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야. 만나야만 돼. 우리는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고 만날 필요도 없어요. 나를 위해서나 당신을 위해서나 매우 중요한 일이야. 그리고 소피야 알 렉산드로브나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야. 그는 물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협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좋아요. 내일 네 시에 그랜드 호텔로 오세요. 그때 얘기해요. 안 돼. 바로 지금 얘기해야 돼. 당신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상상도 못할 거야. 내일이면 너무 늦어. 지금 빨리 아르바트로 와.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곧 가겠어요. 그녀는 방으로 들어와 급히 우비를 입었다. 곧 돌아올게. 그 사람이지? 니나가 물었다. 그래. 내가 함께 갈가? 왜? 무슨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해서....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바랴가 웃었다. 걱정하지 마. 코스챠는 밖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칼라를 세워 올린 코트와 눈 위로 챙이 내려져 있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헐 리우드의 갱과 탐정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습 같았다. 그녀는 그의 이런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것은 바보같이 아주 우스꽝스러운 옷차림 이었다. 그들은 아르바트를 따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구지? 그가 물었다. 언니예요. 언니가 나를 만나러 나온 걸 알아? 물론이죠. 그들은 플로트니코프 가로 방향을 바꾼 다음, 다시 크리보아르바트로 향 했다. 그들은 학교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이를 때까지 걸었다. 거기서 그들은 벤치에 앉았다. 날이 매우 어두웠다. 희미한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집 창문들마다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당신은 그렇게 남편 없이 바깥을 싸돌아 다녀선 안 돼. 코스챠가 말을 거냈다. 굉장히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알아. 내가 있으면 아무 도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거야. 그런데 당신은 나를 버리고 가버렸어. 그 러니까 일이 일어난 거야. 당신을 알기 전에. 그녀가 말했다. 내가 남편이 없었을 때, 어느 누 구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또 모욕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나 그 이상한 여 자가 내가 당신의 아내이기 때문에 나를 매춘부로 취급하고 모욕을 주었어 요. 그 여자는 정신병자야, 아프다구? 코스챠가 부인했다. 그 여자가 어떻다고요? 그 여자는 정신병이 있다고 그랬잖아. 누구나 정신병에 걸리면 아무 말 이나 막 하게 되지. 시간이 없어요, 코스챠. 그녀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우리 언니가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그 여자의 정신병이나 카나티크에서 일어난 일 모 두 관심없어요. 그건 우리 둘 사이에 일이 아니니까요.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손 을 잡으려고 했다. 기다려, 바랴. 일을 만들려고 하지 마. 나는 당신이 화난 것을 이해할 수 있어. 그러나 우리가 같이 있을 때는 아주 나쁘지 않았잖아. 당신은 일 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직장을 구했잖아. 당신이 더 높은 직책을 원한다면 내가 도와주겠어. 나는 지금 당신이 내 뒤에 서 있는 돌벽처럼 느껴져. 제 발 손을 잡아 줘.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어리석은 소리 말아요, 코스챠. 다 끝났어 요. 그가 악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당신은 내가 다른 방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나는 지금 길거리에 나앉았으니, 어디서 밤을 보내란 말이야. 그건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우리 언니 집이나,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집이나, 내가 살고 있는 어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어요. 당신이 내게 사준 물건들을 모두 남겨 놓고 왔어요.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노름을 하든지, 당신의 여자들에게 줘 버리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면 서로 공 평해지는 거예요. 아니야. 그가 소리질렀다. 그런 것으로 우리는 절대 공평해질 수 없 어. 당신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지? 내가? 아무 말도 안했어요.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 거짓말이 아니에요. 나는 단지 그녀에게 모피쇼올에 대한 얘기만 했을 뿐이에요. 그 얘기는 꼭 해야만 했어요.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경찰을 불 렀을 테고, 그것은 당신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어쨌든, 그 녀에게 모든 것을 다 얘기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녀는 모든 일을 스스로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총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는 어저께 그 약속을 깨뜨렸어요. 나는 그런 모든 일에 싫증이 났어 요. 그래서 떠난 거예요. 당신이 한 짓은 당신 자신의 일이에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그가 음울하게 중얼 거렸다. 그 늙은이에게 복수를 하고 말 거야. 그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받게 되지. 그리곤 피를 토하겠지.... 당신 지금 누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바랴가 혹시 하며 물었 다. 늙은 욕심쟁이, 당신의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 나는 그녀에게 한 가지나 두 가지쯤 상기시켜 줄 거야. 지금 세상은 법이 란 없고 무정부상태라는 것을. 그녀는 그것에 대해 셈을 치러야 해. 그녀 가 스탈린 동지에 대해 얘기한 것은.... 그들이 그녀의 아들을 유배시켰기 때문이지. 결국 그녀는 정부에 대하여 욕을 한 거야.... 이것은 바랴가 예상한 최악의 것이었다. 코스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정신 차려요! 나는 내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어. 당신은 내가 사준 옷들 을 나에게 돌려줌으로써, 나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렇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어! 돼지 같은 놈! 그녀가 화를 참으면서 소리쳤다. 당신은 밀고자에요. 당신은 그런 인간이에요. 해볼테면 해봐요. 당신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에게 아무 짓도 할 수 없어요. 이 사실을 명심해요. 만일 당신이 그녀에 대해 한마디라도 한다면 나는 그렇게 말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증언하겠어요. 아시겠어요? 내가 유일한 목격자이니까 그들은 당신이 아니 라 나를 믿으려 들 거예요. 나는 당신이 그녀에게 복수하려고 그랬다고 말 할 거예요. 그녀가 당신에게 집으로 총을 가져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당 신이 앙심을 품었다고요. 그러면 당신은 비밀구역 내에서 총을 소지한 셈 이 되겠지요. 만일 당신이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를 해치기 위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는 날이면, 나는 당신을 산산조각 내 버릴 거예요. 아무도 당신을 도우려고 하지 않을 걸요. 리나의 모든 친구들과 료바의 친구들만 이 당신을 배신하지 않겠지요. 그녀는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터질 듯한 분노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계속해 봐. 자, 계속 하라구.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을 쏴 버리깆 js에 지금이 마지막 기회니까! 이 말을 듣자마다 그녀는 냉정해졌다. 그의 손은 벌써 스미스 앤드 웨슨 연발 권총이 들어 있는 주머니 속에 있었다. 그는 언젠가 그것을 그녀에게 보여 주면서, 그것은 유명한 그의 친구의 것인데 지금 수리하는 중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 나 그녀는 그가 무섭지 않았다. 총을 쏘기에는 너무나 겁이 많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르 frhqkf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역시 겁이 너무 많았다. 반면에 그녀 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그를 두려워하진 않았다. 어디, 할테면 해보라지! 오, 그래? 그녀가 경멸조로 말했다. 이제 나를 총으로 쏘려고 하고 있군, 그렇지? 그래서 당신은 내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우리 언니가 알 고 있냐고 물어 봤군. 그녀는 내가 당신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암, 알고 있고말고. 그러니 나를 쏴 봐. 그러면 총을 쏜 것은 바로 당신이 라는 사실이 곧 알려질테고 사람들이 그것을 확신하게 될 테지. 야, 이 겁 쟁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쏴, 이 겁쟁이야, 어서 쏴 봐! 커튼이 젖혀지고 사람들이 이 어둠 속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랴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쏴 봐, 왜 못 쏘니, 이 겁쟁이야, 이 빌어먹을 놈아! 이떤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거기 무슨 일 있어요?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조용히 못해. 이 미친년아. 그가 바랴에게 쏘아붙였다. 넌 나한테서 한발짝도 도망칠 수 없어. 두고 봐. 그는 재빨리 옆길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 막 너를 찾아 나서려던 참이야. 바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니나 가 말했다. 무슨 일이야, 비밀이야? 바랴는 웃음을 터뜨렸다. 별일 아니야, 그가 단지 나를 총으로 쏘겠다 고 위협했을 뿐이야. 뭐라구! 니나가 말했다. 지금 자기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잊어버렸 대? 그는 돌았어, 완전히 돌아 버렸다구. 그 다음날 일이 끝나자마자, 바랴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를 보러 갔 다.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분명히 사샤에게 쓰고 있을 것이다. 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에게 말해 주세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 나.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는 펜을 내려놓고 안경을 벗었다. 나는 그에게 떠나라고 했지. 처음에는 싫다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떠나더구나. 아니에요. 제발 좀더 자세하게 얘기해 주세요. 그에게 집안에 총을 들여놓지 말라고 했는데 또 총을 들여놨다고 말했 었지. 그리고 내가 너를 아주 호되게 꾸짖었다고 했어. 그래서 네가 네 언 니에게 돌아가 버렸으니, 당신도 역시 떠나라고 했었지. 특히 이웃주민들 이, 그가 아파트 문을 항상 잠그지 않는 것을 불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는 욕을 하기 시작했고 나를 협박하고는 내 방 밖에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온갖 허튼소리를 다 하는 거야. 돼지 같은 놈! 나는 그에게 오늘부터 문을 걸어 잠글 것이고 아무도 당신에게 문을 열 어 주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만일 당신이 문을 부수려고 한다면 우리는 경찰을 불러서, 그는 총을 갖고 있고, 또 아주 수상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고발해 버리겠다고 했어. 또 나는 그에게 모든 이웃주민들이 당신을 싫어 하고, 집주인과 경찰들이 당신에 대해 자꾸 물어 보고 있다고 했어. 그랬 더니 그가 또 나를 위협하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이랬지. 내 아 들은 체포되어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지. 그래서 나는 검사, 형사 그리고 판사들과 줄이 닿아 있어. 그러니 당신이 나를 고발할 수는 없을 거야. 당 신은 당신 자신의 입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아. 당신이 만일 내 일 아침까지 나가지 않는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비난하게 될 걸. 나는 무 슨 일이라도 할거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버렸지. 그러니까 자기 물건을 챙겨서 아침에 가버리더라. 그의 물건이라구요? 그가 내게 준 것은 어떻게 되었어요? 그것들은 두고 갔어. 그건 그가 돌아롤 구실을 만들기 위한 것이에요.... 아마 그는 너와 화해하기를 바라는 모양이지? 그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말했다. 그가 열쇠를 남겨 놓았다는 점이야. 그래서 우리가 틀림없이 새로운 자물쇠를 만들어야 할거야. 별 걸 다 생각하는군요. 바랴가 웃음을 터뜨렸다. 만일 아파트에 침 입자가 있다면, 사람들이 첫 번째로 의심하게 될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에 요. 그래서 열쇠를 놓고 갔을 거예요. 그럴 것도 같구나.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동의했다. 그가 두고 간 물건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들을 내가 있는 곳에 가지 고 갈께요. 만일 그가 오거나, 그 물건에 대해 전화를 하면, 당신은 제가 그 물건을 가지고 갔다고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 그는 그 물건에 대해 나 한테 물어 보게 될 테니까요. 그래, 맞아. 그것들은 네 것이니 네가 가져가야지. 예, 바랴는 그 물건들을 내일 료바를 통해 그에게 줘 버리기로 마음먹 으면서 낮게 대답했다. 그녀는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를 가볍게 껴안았다. 죄스러워요. 당신은 저를 위해 아주 많은 것을 해주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생각일랑은 잊어버려. 그리고 그를 조심해라. 그런 인간은 약한 사람들 앞에서만 강해지는 법이니까. 네가 만일 겁을 먹 는다면 더 극성을 부리게 된다구? 알고 있어요. 바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젯밤 그가 나를 길 거리로 불러내어 죽이겠다고 위협했거든요. 정말? 그래요, 그래서 실컷 비웃어 주고는 돌아와 버렸죠. 아주 대단한 여자야, 바로 그거야! 바랴는 그 일을 정말 아주 잘 처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마침내 그녀의 독립심이 발휘된 것이다. 더 이상 다른 사 람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뒤에 있던 이 모든 불결한 것에서부터 떠날 수 있었다. 그녀 스스로가 이런 불행 속 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사람들은 실수를 통해 서만 배우게 되는 법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빵조각 하나와 햇빛이 드는 조그마한 공간을 얻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사람 들은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결국 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한 일이 며, 어느 누구도 타인의 존엄성을 짓밟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녀는 이런 것을 배웠고, 그런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사샤에게 편지 쓰지 않을래? 예, 쓰겠어요. 내일 부치겠어요. 길이 폐쇄되기 전에 편지가 도착해야 할텐데요. 시월과 십일월에는 앙가라가 얼어붙을 때까지 교통수단을 이용 할 수 없어요. 그가 마지막 배달로, 이 편지를 읽을 수 있었으면 정말 좋 겠네요. 바랴는 머나먼 시베리아의 강둑 위에 혼자 서 있는 사샤 모습을 그려보 았다. 그녀는 그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몇 마디의 말을 써 보내고 싶었 다. 이런 일을 겪고 난 후, 그리고 그것에 용감히 대항한 후인 지금, 그녀 는 기분이 좋아서 이 세상 최고의 남자인 사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한결 수월했다. 정말 그에게 뭔가를 써 보내도 될까요? 물론이지, 바랴.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가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한다면 걔가 몹시 기뻐할 거다.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도 그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니까 말이야. 바랴는 편지지 한 장을 꺼내서, 잠시 생각한 다음 펜에다 잉크를 묻히고 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사샤. 저는 지금 당신 어머니 댁에 있답니다. 우리는 당신 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어머님께서도 무고하세요. 저는 요즘 모스크바 계획에 관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본 다음 덧붙였다. 당신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제가 얼마나 알고 싶어하는지 모르실 거예요.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6 소치에 있다는 것이 키로프에게는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교재 작업은 하나의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적혀 있는 대로 읽고, 스탈린이 이미 승인한 것을 그대로 승인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스탈린이 스스로를 미화하 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자기의 난폭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역사를 재구성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반대할 수 없었다.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스탈린은 지시하는 대로 모든 것을 입증 해 내는 수많은 역사학자들과 이론가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장악하고 있었 기 때문에 논리적 차원에서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었다. 키로 프는 그러한 논쟁에 휘말려들고 싶지 않았으며, 또한 코카서스에서 스탈린 이 한 역할에 대해서는 논문을 써야 할 의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5년 동안 키로프는 아제르바이잔의 당 조직을 이끌어 왔으며 그 역사에 대해서도 완전하리만큼 알고 있었다. 바쿠에서의 스탈린은 일반적인 직업 혁명가였다. 스탈린이 어떤 특별한 일을 했다는 것은 최근에야 비로소, 다 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지어낸 바였다. 키로프 자신도 이 과정에서 공 헌하였으나 그것은 역사의 일반적 문제에 관한 것들이었다. 스탈린이 레닌 의 후계자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그 한 예였다. 이는 당의 목적을 위해 필 요한 것이었으며, 키로프도 어느 정도 진실에서 벗어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성취되었다. 스 탈린이 그 지도자였으며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왜 그는 이 제 니나 라는 지하신문의 대표자였다고까지 믿어주기를 바라는가? 그는 키로프가 자기를 위해 에누키드제에 대한 빚을 청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인 가? 키로프는 그것에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바쿠에 있는 모든 길거리, 모든 집과 공장 그리고 유정을 알았다. 지난날, 그는 이들 중 어는 것들도 스탈린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바쿠에 있는 모든 것들은 살아 있는 스탈린을 위한 하나의 거 대한 기념지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거리와 동네, 정유시설물, 공공시설물 그리고 학교들은 모두 그의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스탈린이 어느 감방에 서 지냈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바일로프 감옥소에는 박물관까지 개관되었 다. 그들은, 자기들의 질문이 그런 사실을 사소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 을 줄까봐, 어느 감방이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스탈린은 바쿠 동지들이 그러한 기념물의 진정한 필요성을 확신하고 있지 않다고 의심할지도 모르 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결정했다. 관람할 수 있는 감방을 하나 선정했다. 박물관이 건립되고 관광객들이 거기로 안내되 었지만, 스탈린은 이것이 순전한 조작임을 알고 있었다. 사실 키로프는 스 탈린이 과거의 사실과 신화 사이의 경계선을 수차에 걸쳐 없애 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며, 오르드조니키드제에게 이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키로프에게는 여전히 그 경계선이 존재했으며 새로운 신화를 창 조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그가 소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스탈린의 요 구는 엄청난 시간의 낭비였다. 식량배급은 곧 중단될 예정이었으며 그의 거주지는 레닌그라드에 있었다. 넉달 후, 소련 시민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 큼의 빵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록 수많은 손실과 희생과 고통의 대 가로 탄생된 것이기는 하나 집단농장체제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새로운 조치가 잘못 시행되게 놔두어서는 안 되었다. 레닌그라드와 같은 자체의 식량을 가지지 않은 지역에서는 특히 조심스럽게 이 새로운 조치들 이 준비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여기 소치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키로프는 해변에서 교재 개요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읽는다기보다는 대 충 훑어본 다음 날아가지 않도록 돌을 얹어 두었다. 굵은 철망으로 된 담장에 의해 격리된 해변은 황량했다. 철망 너머 양옆 해변은 금지구역이었다. 출입구에 전화기가 있는 경비초소에는 보초 한 명 이 서 있었으며, 담장 저 너머에는 또다른 보초 한 명이 포장된 길을 따라 아래위로 걷고 있었다. 스탈린은 물에 들어가거나 해변을 거니는 일이 결 코 없었기 때문에 해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방문객들뿐이었다. 내국 의 다른 간부와 보안요원들은 다른 곳에서 해수욕을 했다. 키로프가 거기서 만난 유일한 사람은 모스크바에서 온 치과의사였다. 그 는 예의 바르고 상냥했으나 그렇다고 비굴하지는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수영 솜씨도 뛰어났지만 과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주위의 모든 것 - 바다, 태양, 모래사장 - 을 즐기고 있었고, 키로프는 사람들이 즐겁 게 노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물론 사람들은 수천 년 전부터 즐기며 살 아왔으며, 이 지구 위에 생명이 있는 한 역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 나 키로프는 소비에트 인민들에게서 발견하던 즐거움을, 그가 확신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확신할 정치구조를 그가 건설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로부터 도저히 분리시킬 수 없었다. 그가 보았던 미소와 그가 들었던 웃음소리는 그와 당에 대한 보답으로서, 그들이 내려야만 했던 어렵고 때로는 가혹한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키로프는 긴 안목으로 생각했으나, 항상 수천 수백만 뒤에 존재하는 개개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 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청중일지라도 결코 무형의 존재가 아니었다. 연단 에 섰을 때 그는 항상 강당 내의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와 일체감을 가지려 고 노력했다. 아마도 이것이 그가 연설가로 성공한 비결이었을 것이다. 그는 결코 개인에게 선심을 베풀지는 않았지만, 누구와도 기꺼이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그는 치과의사에게 역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일 상적인 것들, 이를테면 바닷물의 온도, 해저로부터 솟아 나오는 유황온천 그리고 마체스타 해수가 신체기관에 미치는 효과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키로프는 리프만이 마치 전문가인 양 말하지 않고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것같이 얘기해서 좋았다. 전공분야인 치아에 대해 얘기할 때도 큰 칫솔과 작은 칫솔 어느 것으로 이를 닦는 것이 더 좋은가 하는 따위의 아주 평범 한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리프만은 한번도 누구를 치료하고 있는 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스탈린이라는 이름은 입밖에도 나오지 않았다. 마체스타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리프만이 말했다. 우리 이웃에 있는 한 사람은 전혀 걷지도 못하는 폐인이었지요. 그런데 마체스타에서 며칠 지내고 와서는 마치 열여덟 젊은이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닌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좋습니까? 글쎄요.... 공동소유 아파트에 있는 훌륭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습니 다. 사방 십오 피트인데 메쉬찬스키 가 이 번지입니다. 도심에서 그리 멀 지 않죠. 방에 우리 전화가 있는데 이웃에서 아주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어요. 전화기를 복도에 옮겨줬으면 좋겠다는 거죠. 나는 상관없어요. 왜 다른 사람들이 그 전화기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크레믈 린 의료국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나에게 연락해 환자를 진료하게 하려고 놓아준 것입니다. 키로프는 크레믈린 의사들이 중요한 환자를 진료하게 될 때는 전화로 연 락하지 않고 직접 와서 데려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치료할 환자의 이름을 결코 들어볼 수가 없다. 오르드조니키드제가 이를 두고 농 담한 적이 있었다. 그들이 의사를 내게 데려올 때는 그 의사한테 내 이름 을 말해 주지 않지. 하지만 그 의사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더라구. 이바노 프가 와서 그를 데려가면서 의사는 나를 진료하러 오는 것이고, 페트로프 가 데려가면 쿠이비셰프를 진료하기 위해서지.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게임들이라구. 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바다에는 흰 물결이 나타났다. 물가에 해파리가 많군요. 이것은 폭풍을 예고하는 것이죠. 라고 키로프가 말했다. 이것이 둘이 모래밭에 앉아 있거나 수영을 하거나 몸의 물기를 타올로 닦거나 할 때 서로 주고받는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치과의사는 키로프가 가져온 글들 을 발견하고서는 그의 주의를 흩트리지 않게 하려고 거의 말을 걸지 않는 사려 깊음을 보였다. 키로프는 여러 논평들을, 그저 대충 읽었다. 역사에 대한 수정이 지향하 는 바는 명백한 것이었으므로 세부사항들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었 다. 그는 스탈린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 들어 부쩍 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레닌그라드에서는 일 때문에 뒷전에 머물러 있었으나, 여기 서는 아무런 할 일이 없으니 생각할 거리라고는 스탈린밖에 없었다. 키로 프는 매일 그를 만나고 있었으며 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요 몇 년 동안 스탈린을 지지해 왔다. 그의 노선에 찬동하고 그의 적과 싸웠으며 그의 권위를 옹호했다. 비록 스탈린의 개인적 특성은 대체 로 맘에 들지 않았으나 그는 진지하게 확신을 가지고 행동했다. 개인적 성 격과 정치적 성격은 엄격히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키로프는 스탈린이 자신에 대한 레닌의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한 약 속을 믿지 않았다. 키로프는 오히려 다른 것, 즉 스탈린의 성격상 어두운 면이 당내에서의 권력투쟁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 다. 일단 권력투쟁이 끝나자 더 이상 극단적 조처를 취할 이유가 사라졌 다. 이 시점에서 스탈린의 성격상의 부정적 측면은 긍정적인 측면, 즉 거 대한 국가의 지도자가 미래 세대로부터 고마워하는 기억을 획득하기 위해 서 갖추어야 할 특성으로 전환되어야만 했었다. 스탈린도 분명히 이를 원 했기에 분노는 관용으로, 의심은 신뢰로 바뀌어야 했었다. 그러나 키로프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스탈린은 지위가 강화 됨에 따라 더욱 까다로워졌고 더욱 변덕스럽고 사악해졌다. 더 많은 음모 를 꾸미고 다른 당 지도자들과 나쁜 관계를 가지게 되었으며, 비밀 기관을 정부의 으뜸 가는 무기로 삼게 되었다. 레닌그라드에서 키로프 휘하에 있 는 내무인민위원회 의장 필리프 메드베드는 지구당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었 다. 그러나 다른 지구당위원회 서기들은 체카가 지구당 지도력에 따르지 않고 명령을 종앙으로부터만 받고 있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부 의 구석구석에 관여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된 무기는 정보수집이었으며, 심지어 공산주의자들도 서로를 감시하게끔 만들었다. 마리아는 키로프가 걱정되어 그에게 요즘 감시를 받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여러번 일러주었다. 물론 마리아는 그의 아내로서 당연히 걱정할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1911 년부터 온건하고 노련한 당원으로 일해 온 그녀의 동생인 소피야도 그런 얘기를 했다. 키로프는 이들의 경고를 무시했다. 이러한 일들은 그의 개인 경호 책임자인 보리소프가 수시로 자기 부하들을 풀어놓았기 때문에 레닌 그라드에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 점은 또 한편 이 여인들이 키로프가 미행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게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그곳에서는 그의 모든 움직임이 정치국 의 다른 모든 멤버와 마찬가지로 감시되었다. 누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의 집을 방문하는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이것은 역겨운 일이었다. 전에는 당 내에서 결코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이것이 현실이었고 어 느 누구도 이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스탈린의 의심은 점점 심해졌 다. 그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에게 솔직히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였는데, 진실로써 행하는 사람은 바로 그 점 때문에 도리아 불이익을 당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은 불안과 조심, 더 심하면 무력감으 로 가득 찬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노선은 올바른 것이었으나 그의 방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는 러시아를 막대한 산업강국으로 바꾸어 놓았다. 스탈린에게 대항하는 것은 곧 국가와 당에 대항함을 의미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무도 지지해 주지 않았다. 또 만약 지지한다 하더라도 스탈린을 대신할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키로프가 서기장직을 맡길 바랬지만 그는 원하지 않았으 며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는 이론가가 아니라 러시아 혁명의 실제 조직 가였다. 혁명에 몸바친 젊은 시절 중 그의 기억에 가장 자랑스럽게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직접 만든 등사기일 것이다. 학생들은 이를 이용하여 유 인물을 인쇄했다. 이념에 대한 첫 번째 물질적 공헌으로서 자신의 등사기 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당 지도부는 종종 그를 칭송했으며, 그와 그 가 이끌었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룩해낸 무게 있고 멋진 결실에 대해 늘 만족해했다. 그로서는 자신이 공산주의자이고 당원이며 당이 신뢰해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스탈린은 레닌 사후에 탄생한 당 지도부를, 비록 이것이 트 로츠키와 지노비예프에 대항하여 레닌의 유산을 지켜 주기는 했다 하더라 도, 무시하고 있었다. 당은 더 이상 집단적이라 불리어지지 않았으며 실제 로도 그랬다. 오직 하나의 지도자가 있을 뿐이었으며 그는 바로 스탈린이 었다. 그러나 그 핵심부는 남아 있었다. 레닌 역시 당과 정부의 지도자였 으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핵심부를 늘 고려했었다. 성격상의 차이는 있었 으나 핵심부는 여전히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정치국을 무시하 고 있었다. 즈다노프, 말렌코프, 베리아, 예조프, 메흘리스, 포스크레비셰 프, 스키랴토프, 그리고 비쉰스키 같은 사람들이 이제는 정치국원들보다 더 큰 비중을 가졌다. 이전의 지노비예프 일당을 제거해야 한다고 스탈린 이 주장한 의도가 무엇인지 키로프는 완전히 파악했다. 공포 분위기를 - 어떤 때는 전혀 그 근거가 없었는데도 - 조성하려는 것이다. 스탈린은 오 로지 공포에 의해서만 통치하고자 했으며, 이는 그의 1인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이것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키로프는 레닌의 충고를 따라 당이 스탈린을 서기장직에서 밀어내지 않 은 중대한 과오를 범했음을 통감했다. 그렇게 했어야만 되었다. 트로츠키 는 당으로부터 국외자로 간주되었으므로 우세를 점할 수 없었을 것이며,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역시 당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으므로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당은 진정한 볼셰비키 핵심부인 지금의 정치국 ㅇ, 그리고 이와 함께 단지 동등한 멤버로서 스탈린도 포함된 부하린, 리 코프에 의해 이끌어졌을 것이다. 이제 그 과오를 바로잡기는 불가능했으며 스탈린은 요지부동이었다. 스탈린에게 무엇을 납득시키기란 불가능했다. 그는 다만 작전상 동의하 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장기적으로 계산했 다. 키로프에게 에누키드제에 불리한 글을 쓰게 하고 모스크바로 옮겨가도 록 한 스탈린의 외견상의 순수한 제안 뒤에는, 한 차원 높은 정치적 목적 이 있었다. 레닌은 스탈린이 변덕스럽다고 기술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인내심이 있었고 고집스러웠으며, 의도한 바는 언제나 끝까지 밀고 나갔 다. 스탈린은 권력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인민들은 그의 단순화된 그의 논 리와 도그마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때론 감동 받기도 했다. 그는 인민들에 게 자기의 전지전능함을 믿도록 교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사람들은 그의 장대한 위엄을 좋아했고, 내전과 당 내부의 갈등이라는 수년 동안의 혼란 이후에 질서가 회복된 것에 기뻐했다. 이 질서가 곧 스탈린이라고 생 각했다. 이러한 신의와 우상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 키로프 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는 절망감에 빠졌다. 1926년, 레닌그라드로 처음으로 옮겨갔을 때 키로프는 자신의 일이 얼마 나 어려운가를 알고 있었다. 그곳의 공산주의자들은 지노비예프를 지지했 다. 그런데 중앙위원회는 이들에게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모든 조직과 선 전수단을 동원하여 지노비예프에게 반대표를 던지도록 설득하였는데, 이는 제 14차 전당대회에서 통과된 결정과 중앙위원회의정책에 따르는 것이었 다. 수만 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그 전날 견해를 부정하고 자신들 이 저주했던 자들에게 찬성표를 던진 것은 당 역사상 처음이었다. 키로프 는 이 변화를 불러일으킨 일단의 책임이 있었다. 그것은 쓰라린 승리였는 데, 레닌그라드 공산주의자들이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이들에게 가해진 심 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키로프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 다. 물론 당의 엄격한 규율에 대해서는 찬동했지만, 당에는 무묵히 말 잘 듣 는 투표기에 지나지 않는 조직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키로프는 그러 한 조직을 이끌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혁명의 도시는 10월혁명의 요람으로 남아 있어야 하며, 그 노동자들은 러시아 노동계급의 선봉이어야 한다. 레닌그라드는 진보한 유럽의 과학, 예술, 문화 도시로 존속되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과학원을 모스크바로 이전시키는 데 키로프가 반대한 이유였다. 정치국은 그의 생각에 찬동하지 않았다. 과학이란 사회주의 건 설에 봉사하는 것이므로, 이 사회주의 건설을 지도하는 중앙에 인접해 있 어해 위원회 등 다른 기관과 함께 모여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 다. 키로프는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키로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키로프가 이젠 나이든 아카데미 회원도 붙잡아 놓으려 한다고 비웃었다. 스탈린 역시 그랬다. 그러나 스탈린은 키로프가 레닌그라드의 명예를 해지 는 어떠한 것에도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튼 키로프의 정책은 결실을 이루어 냈다. 수년 동안 그는 레닌그라 드 공산주의자들에게 제 14차 전당대회에서의 그들의 투표는 별다른 영향 력 없는 일과적인 이야기거리로 생각되고 있으며, 스탈린에 대한 그들의 불신은 근거가 없고 스탈린의 정책이 정당한 것이라고 집요하고도, 요령 있게 설득했다.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을 납득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부농의 재산을 강제 로 몰수하고 <성공이야기로 현란한> 연설로 예증되는 스탈린의 설득력 없 는 책략과 함께 진단화가 시행된 것도 바로 그 기간 동안이었다. 이 동안 전국에서는 기근과 식료 및 생필품 품귀현상을 경험했다. 레닌그라드 사람 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모스크바에 있는 위원회와도 종종 갈등을 겪으면서 까지 키로프는 모든 일을 다했다. 레닌그라드는 당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 기계와 트랙터 공장, 국영 농장 그리고 수송사업과 5개년 계획의 주요 작업장 등에서 일할 수만 명의 공산 주의자들을 파견했다. 이들은 도시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 이러한 희생들을 요구하고 수용하는 가운데, 당은 붉은 페트로그라드에 대한 이전 의 역할을 회복시켜 놓았다. 그리고 제 14차 전당대회에서의 반대 투표와 그와 관련된 지역적 불신은 완전하게, 그리고 영원히 잊혀졌다. 이제 상처가 치유되자 스탈린은 이 상처를 다시 건드리기로 작정했다. 8 년 만에 스탈린은 레닌그라드 사람들에게 오래 된 옛이야기를 상기시켜 처 벌하고 복수하려고 하고 있었다. 아직 숨어 있는, 무장해제되지 않은 자 들을 일소하라 는 그의 명령 뒤에는 레닌그라드 당 조직의 중추를 파괴하 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키로프는 그런 사태가 발생하게 놔둘 수 는 없었다. 그리고 정치국은 그를 지지할 것이다. 스탈린은 중앙위원회와 정치국까지 말 잘 듣는 친구들로 바꾸어 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 은 스탈린이 결코 당 위에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보증서가 될 것이다. 스탈린은 국가의 재건을 위해 많은 일을 했으며, 모든 위대한 역사적 인 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시대의 인물로 부각시켜 놓았다. 아마 레닌이라 면 좀더 납득할 만한 방법으로 그런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은 이 미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스탈린이 그곳에 있었다. 레닌은 항상 구두를 신 었었는데 스탈린은 부츠를 신었다. 러시아가 앞선 학문과 강력한 기술력 그리고 고도의 문화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업국가 가운데 하나 가 되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공포에 의해 통치돼야 하는 국가는 아니었다. 학문과 문화, 기술지식은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필요 로 한다. 탄압은 국가 발전의 길목에 장애물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객관적 법칙이 개체보다 더 고귀하고 강력하다고 가르쳤다. 역사 전개의 논리는 엄격하며 스탈린은 이 논리에 따라야만 했다. 역사는 스스 로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만 한다. 너무 오랫동안 모래밭에 누워 있어 지겨워지자 키로프는 몸을 일으키면 서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당 조직의 핵심부를 보하는 것이라고, 볼셰비키 의 주요 핵심부가 온존하여 힘을 가진 한 당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햇빛에 그을리신 것 같군요. 리프만이 말했다. 셔츠를 입으시든지 아 니면.... 그때 보초초소에 있는 전화가 울렸다. 두 사람 모두 그쪽으로 얼굴을 돌 렸으므로 리프만은 방금 말하려던 것을 끝맺지 못했다. 보초가 다가와서 첫 번째 초소에 전화가 와 있다고 리프만에게 말했다. 그는 서둘러 옷을 입으면서 키로프에게 말했다. 살갗에 화상을 입을지 도 모르니까 로션을 바랄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7 리프만은 스탈린의 입 안을 검진하고는 치료가 잘돼 가고 있으며 이틀 후에는 의치형틀을 뜰 수 있게 되리라 말했다. 내일이면 안 되겠소? 스탈린이 물었다.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만, 미소 지으며 리프만이 말했다. 그러나 모레까지 기다리시는 게 더 좋겠습니다. 그렇다면야, 스탈린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작업은 어떻게 돼 가고 있소? 틀을 만들고 난 후에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당신의 책이요. 스탈린은 짜증스럽게 되받았다. 죄송합니다. 말씀을 못 알아들어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탈린은 일어섰다. 가 보시오. 스탈린을 화나게 만든 것은 치과의사가 아니라 키로프였다. 그들은 더 이상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키로프는 말 한마디 없이 모든 것에 동의하 며, 교재를 위한 계획을 토의하는 데에 언제나 시간을 지켰다. 그러나 그 는 마치 재미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은 일을 마지못해 하는 듯한 사람처럼 생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회합은 점점 지리해져 갔다. 스탈린은 키로프를 머릴 떠나 보낼 수도 있었으나 그와의 공개적인 분열은 피하려고 했다. 분 명히 그는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점점 더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지 만, 그는 평온하고 침착하며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는 혼자 있을 때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 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화를 냈다면 그것은 그가 짜증낸 대 상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경우는 그 원인이 치과의사에 있 었다. 리파만은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서 밀랍 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이 절차를 싫어했으며, 치과의사가 그의 입 속에서 밀랍을 끄집어낼 때 마 치 자신의 나머지 치아들도 함께 딸려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입속 에 남아 있는 밀랍 찌꺼기의 감촉 또한 싫었다. 모든 게 잘 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프만이 말했다. 틀이 아주 잘 떠졌습니다. 하지만 재질을 좀 다른 것으로 해야 되지 않을까 모르겠습 니다만, 요세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은 자기 의자에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나는 금으로 만든 것을 원한다고 알아듣기 쉬운 러시아말로 하지 않았소! 예, 예, 물론입니다. 리프만은 허둥대며 중얼거렸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다 되어 있을 겁니다. 스탈린은 리프만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이 쓰는 도구를 챙기는 것을 말없 이 지켜봤다. 꽉 막힌 놈은 할 수 없어! 머저리 같으니라구! 리프만은 손을 씻어내다 말고 갑자기 멈추고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세프 비사리오노비치, 치아 색깔을 맞춰 봐야 되겠습니다. 잠시만 더 앉아 주시겠습니까? 스탈린은 머리받이에 머리를 대고 입을 벌렸다. 리프만은 여러 가지 샘 플들을 견주어 보았다. 그의 손놀림은 부자연스러웠으며 겁먹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스탈린은 그처럼 오랫동안 입을 벌 린 채 앉아 있기가 지루했다. 곧 끝날 것 같소? 이제 다 되었습니다. 또 한 모델을 견주어 보면서 리프만이 말했다. 마침내 하나로 결정짓고는 말했다. 됐습니다. 요세프 비사리오노비치, 내 일 아침까지는 모든 걸 다 끝마쳐 놓겠습니다. 그는 상자를 닫으면서 근 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아침 스탈린은 치과의사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는 아직 일을 끝내 놓지 못했습니다. 스탈린 동지. 토프스투하가 보 고해 왔다. 내일쯤 돼야 끝날 거라고 했습니다. 스탈린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를 데리고 와. 몇 분 후 리프만이 숨을 헐떡이면서 나타났다. 오늘이라고 약속했지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요?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요세프 비사리오노비치. 그 이유가 뭐요? 스탈린은 험악한 표정으로 치과의사를 노려보았다. 리프만은 무기력하게 손을 폈다. 사실대로 말해 보시오. 스탈린이 말했다. 사실, 리프만은 겁먹은 듯이 말을 꺼냈다. 제가 가지고 온 의치 중에 는 하나도 본치에 꼭 어울리는 게 없었습니다. 왜 올바로 된 것들을 가져오지 않았소? 저는 당신을 위해 전에 사용했던 것을 포함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 든 것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요? 사람들은 치아 색깔이 바뀝니다. 특히 담배를 피울 때 그렇습니다. 제 가 가지고 온 치아들은 당신 치아와 정말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색조가 조금 차이가 났습니다.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요? 스탈린이 물었다. 아닙니다. 별로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라면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가 뭐라 생각하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 않소? 제가 잘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싫었습니다. 리프만이 대답했 다. 스탈린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당신의 전문가적 무능으로 인 해 내가 이빨도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군. 얼마나 더 계속되어야 하겠소? 모스크바에 전화해서 치아를 더 보내 주기를 요청했었습니다. 제가 목 록 번호들을 주었거든요. 스탈린은 리프만을 주의깊게 응시했다. 하지만 당신은 모스크바에서 가 지고 있던 모든 것을 가져왔다고 방금 말했지요. 그 사람들이 구해 주겠다고.... 어디서 구해 오겠다는 거요? 리프만은 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중얼거렸다. 베를린. 베를린? 독일에서 나온 목록을 보고 구입했습니다. 왜 그 사실을 곧바로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소? 리프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누가 시켰소? 스탈린은 다시 음흉한 미소를 지 었다. 리프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프스투하였소? 리프만은 겨우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머리를 끄덕였다. 명심하시오. 스탈린은 훈계조로 말했다. 당신은 스탈린 동지에게 모 든 것을 말할 수 있소, 또 당신은 스탈린 동지에게 모든 것을 말해야 하 오. 그리고 당신은 스탈린 동지에게 어떤 것도 숨겨서는 안 되오. 또 하나 스탈린 동지에게 어떻게 무엇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오. 스탈린 동지는 조만간 모든 사실을 알아낼 테니까.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지겨웠지만 결국에는 모두 잘 해결될 터였다. 스탈린은 화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치과의사로 하여금 거짓말하 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측근 누구에게도 한마디의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작은 거짓말은 항상 그 여파로 더 큰 거짓말을 몰 고 온다. 만약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것 이 아무리 사소한 일에 대한 것일지라도 이들을 절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 들이 아니다. 정치국원으로부터 아래로는 식당의 요리사까지 모두, 전적인 진실 그리고 오로지 진실만을 스탈린 동지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는 치과의사를 보내고 토프스투하를 불렀다. 왜 치과의사가 나를 속이게끔 했나? 사실은 이렇습니다. 토프스투하는 말했다. 그 치과의사가 어제 말하 기를 적당한 색조의 치아들을 갖고 있지 않은데 베를린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제가 리트비노프에게 전화해서 목록에 나온 모든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리트비노프는 한추크에게 전화하고..... 한추크는 아직 베를린에 있나? 예, 수리츠가 오늘 베를린으로 출발했습니다. 좋아, 그래서? 리트비노프가, 모든 것이 마련되어 오늘 모스크바로 배달될 거라고 알 려 왔습니다. 내가 예상하기로는 배편이 오늘 저녁에 닿을 것이고, 치과의 사는 밤새 작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밤에는 잠을 자야 해. 밤새도록 일한다면 그 일은 엉망진창으로 끝맺어 질 게 분명하다구. 그런데 내가 묻는 것은, 왜 자네가 그 치과의사에게 나 를 속이게 만들었냐는 거야? 대답은 의외였다. 베를린 물품을 구입하는 것을 금지시킬까 두려웠습니 다. 토프스투하는 스탈린의 조심성을 두려워했다. 이는 그에 대한 은근한 아부의 일종이었다. 다른 한편 그는 실제로 이를 고려하고 스스로의 위험 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책임을 지려고 결심할 수도 있었다. 그는 믿을 만한 충성스런 인간이었다. 아무튼, 그는 거짓말로 자신을 구하려고는 할 수 없 었다. 자네는 어제 나도 모르게 이 모든 일을 했네. 스탈린이 말했다. 그건 기정 사실이야. 그리고 내가 그것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지금 무엇을 변화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왜 치과의사가 거짓말을 하게 했나? 그가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 당신이 금지시킬까 두려웠습니다. 스탈린은 베란다에서 앞뒤로 왔다갔다하다가 갑자기 브로마이드를 조금 먹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멈춰 섰다. 에누키드제의 기분 나쁜 글을 본 이후로 스탈린은 잠을 제대로 못잤었다. 키로프는 에누키드제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의무를 거부함으로써 그를 실망시켰고, 그런 키로프가 소치에 있다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일과 사소한 일 을 구분해야만 했다. 별 것 아닌 걸로 일을 망쳐서는 안 되었다. 베를린에 서부터 치아를 주문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었다. 토프스투하는 진지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말했었다. 그러나 거짓말은 그 싹부터 완전히 뿌리 뽑 아야 했다. 스탈린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는 토프스투하의 얼굴 옆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서 바라보았다. 토프스투하는 얼굴을 붉히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난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에 둘러싸여 있고 싶지 않네. 내 주위의 사라 들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어야 하거든!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거짓말해 서는 안되며 그런 생각조차 품어서는 절대 안 된다구. 토프스투하는 마지막 단어들은 좀더 부드러운 어조로 스탈린이 말했다고 느꼈다. 용서해 주십시오. 생각이 모자라 저지른 짓입니다. 그러나 토프스투하의 판단은 빗나갔으며 스탈린은 다시 그를 위협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가장 작은 거짓말도 엄히 처벌할 것이다. 또한 봉사요원들에게 거짓말 하도록 시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특히 엄히 대할 것이다. 알아듣겠나? 예, 스탈린 동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날 점심식사 후, 토프스투하는 치과의사가 모든 일을 끝마쳐 놓았다 고 보고해 왔다. 들어오게 해. 스탈린이 지시했다. 리프만이 미안해하는 미소를 나타나 스탈린에게 인사하고는 가방을 열었 다. 방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치과의사의 행동을 주시하며 스탈린은 어제 우리가 한 대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소? 라고 말했다. 예, 물론입니다. 요세프 비사리오노비치. 내가 토프스투하 동지와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그 사 림이 당신을 거짓말하게 만들었음이 드러났소. 리프만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다. 스탈린 동지, 우리들은 당신 께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토프스투하가 당신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내게 부탁했습니다. 그런 사소한 일로 당신을 신경 쓰게 만 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폐를 끼친다>, <신경 쓰인다>.... 이것들은 애들이 쓰는 말이오. 우리 는 모두 성인들이잖소. 스탈린은 안락의자에 앉아 머리받이에 머리를 뉘였다. 리프만은 새 틀을 물컵에 담구었다가 물을 털어내고 조심스런 동작으로 스탈린의 입안에 맞 추어 넣었다. 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 다음 연필과 푸른 종이로 흔히 하는 절차가 이어졌다. 이를 꽉 무 십시오. 됐습니다. 특이 멋지게 꼭 맞았기 때문에 이 작업은 금방 끝마쳐 졌다. 괜찮은 것 같군. 스탈린이 말했다. 리프만은 방을 나오기 전에 스탈린에게 다음날 아침까지는 틀을 손대지 말고 만일 불편한 점이 있으면 불러달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으며 스탈린은 매우 만족해 했 다. 리프만이 이틀 후 나타났을 대, 스탈린은 무척 편안하군. 어디를 짓 누르거나 불편한 곳이 전혀 업소. 벌써 아주 오랫동안 부착시켜 온 것 같 은 느낌이 드오. 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프만은 스탈린에게 잠시 앉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리고 형틀을 꺼내 잇몸을 살펴보고는 다시 입 속에 넣어 주었다. 예, 그는 확인하듯이 이야기했다. 잘된 것 같습니다. 리프만은 잠시 말이 없다가 조금 망설인 끝에 말했다. 스탈린 동지, 제 가 해준 데 대해 만족해 하시는 것 같아 작은 부탁을 하나 할까 합니다. 뭐라구? 스탈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무엇을 청해 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에는 적당한 절차가 있었다. 그 럴 때는 어떻게 질문에 대비하고, 어떤 요청은 허용시키며 어떤 요청은 금 지시킬 것인가를 알고 있는 참모들을 거느리고 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직 접 그에게 요청한다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었다. 리프만의 요청은 의외였다. 그는 가방에서 포장된 뭉치를 꺼냈다. 종이를 풀자 플라스틱 의치형틀이 나타났다. 부탁드리건대, 스탈린 동지. 단 하루 동안만 이걸 써 보십시오. 그리고 어느 것이 편한지 스스로 선택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탈린은 놀라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는 금으로 된 것이 더 좋다고 분명 히 말했었으며,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의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쳐 치과 의사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지경으로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이 치과의사는 자기 소신을 계속 주장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기어이 자기자신의 생각을 펴야만 했다. 좋소. 그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리프만은 치아틀을 바꾸어 주었다. 갈아 끼우는 데는 전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게 훌륭했다. 내일 저에게 전화를 주시고 어느 게 더 좋은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 다. 리프만이 말했다. 어는 것이든 좋은 걸로 하겠습니다. 다음날 점심식사 전에 스탈린은 리프만을 불러들였다. 자아비판으로서 당신이 옳았음을 인정해야겠소. 이 의치가 훨씬 더 가 볍고 편안하오. 하지만 만일에 부서질지도 모르니까 여분으로 하나 더 만 들어 주시기 바라오. 리프만은 기쁨으로 인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원하시면 열 개라도 만들 어 드리겠습니다! 점심은 드셨소? 예, 물론입니다. 좋소. 그러시더라도 나와 함께 좀더 드시지요. 그는 와인과 다과가 준비되어 있는 옆방으로 리프만을 데리고 갔다. 나 는 보드카나 브랜디는 가지고 있지 않소. 이런 것들은 마시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도 않소. 그런데 와인 이놈은 전혀 문제가 다르오. 어느 것을 좋아하오? 전 와인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리프만은 당황하며 말했 다. 그것 참 안됐군. 와인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어야지. 나는 절대로 커피 는 마시지 않소. 드물기는 하지만 차는 가끔 마시지. 그렇지만 와인은 정 말로 좋아하오. 두세 잔의 와인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고 마음에 부담도 없으니까. 스탈린이 말했다. 그는 거의 리큐르잔 크기의 작은 잔에 와인을 조금씩 따랐다. 당신이 내게 만들어 준 의치가 오래 가기를 기원합시다. 뭣 좀 드시 오. 리프만은 파이 샌드위치를 들었다. 소치에서 좀더 휴식을 취하겠소? 스탈린이 물었다. 이곳은 정말 좋은 곳입니다. 그렇지만 모스크바에 있는 제 일터로 다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물론 이것은 당신이 제가 여기에 더 이상 머물러 있기 를 바라지 않을 경우에 한합니다. 당신 상관에게 내가 당신을 여기에 붙잡아 두고 있다고 이야기해 두겠 소. 여기선 수영도 하고 책도 쓰고 휴식을 취할 수 있오. 제가 돌보는 환자들이 제가 다시 모스크바에 돌아오길 바라고 있습니 다. 벌써 몇 명은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가공의치를 떼내고 치아도 뽑아 놓았습니다. 그들은 입을 벌린 채 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진료의자에 앉아 있을 겁니다. 제가 어떻게 그들을 그대로 놔둘 수 있겠습니까? 옳은 말씀이오. 스탈린이 동의했다. 언제 돌아가고 싶소? 빠를수록 좋습니다. 내일이 좋겠습니다. 스탈린은 사무실 쪽의 문을 열고 토프스투하를 불렀다. 이 치과의사분께서 내일 모스크바로 돌아갈 수 있도록 비행기편을 봐두 도록 그리고 부족한 게 없도록 잘 살펴 드리고. 그는 병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어 저 와인 같은 것도 조금. 그는 잠시 사라졌다가 포도가 가득 든 커다란 여과기를 가지고 와서는 리프만에게 건네주었다. 이것들을 당신이 집에까지 가져갈 수 있겠소? 불가능하다면 사람을 지 켜 도와 드리도록 하겠소. 그는 토프스투하에게 몸을 돌렸다. 모스크바 에서 이 의사분을 만나 집까지 바래다 드리도록 손을 써 놓도록 하게. 의 사선생. 안녕히 가시오!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치과의사가 떠난 후 스탈린은 즈다노프와 키로프를 불러달라고 했다. 즈다노프는 교재 다음 장에 대한 논평을 보고했다. 스탈린은 방안을 거 닐면서 듣고 있었다. 키로프는 잡지가 비치되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종지 쪽지 위에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스탈린에게는, 비록 자신도 보고서를 들 으면서 낙서하는 똑같은 버릇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몹시 비위에 거슬렸다. 자신의 경우는 이 버릇이 정신을 집중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지만, 키로프의 경우 그것은 긴장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 지금 무엇이 진행되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불쾌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즈다노프가 보 고를 마치자 그는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것들은 온당한 판단인 것 같네. 채택해야 하리라 생각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키로프가 스케치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스탈린이 양곡조달에 관한 요약문을 집어들어 키로프에게 내밀었다. 이 걸 보게나! 카자흐스탄에 붉게 밑줄이 쳐져 있었는데, 수집된 양곡의 평균 수량이 총 계획의 70퍼센트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미르조얀은 더 심하네. 스탈린은 말했다. 우리가 우려했던 것이 옳았 어. 그처럼 심한 것은 아닙니다. 키로프가 되받았다. 칠십 퍼센트라.... 그렇지만 상황은 개선되어야 하겠지요. 평균적 수치만을 보면, 특정 지역에서의 중대한 차질을 알 수가 없네. 탁자에서 종이를 한 정 더 집으면서 스탈린이 이의를 제기했다. 예를 들 어, 동부 카자흐스탄에서는 겨우 계획의 삼십 팔 퍼센트가 달성되었어. 그 리고 이것은 훌륭한 작물수확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나온 결과야. 그 러나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지방 당국은 이 놀라운 수확을 기대치 않게 거 두게 되자 의기양양해졌어. 카자흐스탄으로부터의 보고서에는 기계사용 미 숙, 기계 전문가에 대한 반감, 정부 재산의 낭비와 도둑질, 외부인의 토지 취급기관 침투, 범죄조직과 사기꾼의 당증 소지 등의 내용이 있어. 이 상 황은 긴급히 시정되어야 해. 그렇지 않고서는 기회를 놓여 버릴 거야. 카 자흐스탄에서 식량조절에 실패한다면, 이제 막 식량배급제를 폐지하려는 이때 전국의 식량공급이 큰 영향을 입을 거야. 우리들은 미르조얀 동지를 도와 줄 누군가를 파견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가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키로프가 물었다. 마치 우리가 그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에게 당원들을 분발시키라고 제의하고 여분의 노동자와 수송수단을 제공하겠다고 편지해야 되지 않겠습 니까? 왜 그가 모욕감을 느끼겠나? 스탈린은 의문스러웠다. 당에 의해 모욕 받는 일이란 결코 있을 수 없네. 만일 우리가 당에 의해 모욕을 받는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되겠나? 물론 우리들은 신중해야 하겠지. 지도관을 파견 하지 않고 중앙위원회 비서를 파견할 거야. 잘 들어보게, 세르게이 미로노 비치, 아마 자네가 직접 가서 그를 만나 보아야 할거야. 자넨 그 친구와 사이가 좋고 그 친구도 만약 정치국 사람이 오게 되면 영광으로 생각할 테 니까. 이것은 키로프가 예상하고 있지 않았던 사건이었다. 카자흐스탄에 가는 것은 적어도 한달간은 레닌그라드에서부터 그를 떼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스탈린은 마음만 먹으면 그를 9월 내내 여기 소치에 머물게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관 계는 이미 긴장상태에 돌입해 있었기에 의심의 여지없이 스탈린은 키로프 가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마도 스탈린은 카자흐스 탄을 그를 떠나 보내는 구실로 삼고 있을 것이다. 그냥 레닌그라드로 되돌 아가는 것은 그들이 함께 하고자 했던 일이 잘 풀려 가지 않았음을 드러내 는 것일 터였다. 이제 번듯한 구실이 생겨난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긴급한 도움이 필요했으며 키로프는 미르조얀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만이 아니라, 그곳에 파견할 가장 적당한 사람이라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이 경우 그 가 잡자기 소치를 떠나는 것은 어떤 이상한 소문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 이다. 키로프가 한 가지 의심스러웠던 점은 그가 소치에 도착한 바로 그 날, 스탈린이 카자흐스탄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왜? 그는 그들이 같이 잘 일해 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미리 예견했던 것일까? 오래 전부터 그는 키로프의 출발을 준비해 온 것일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스탈린은 긴 안 목을 가진 사람이다. 경우야 어떻든지 키로프는 이 제안으로 보다 빨리 떠 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 또다른 구실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민보디에서 치료받도록 그를 보내는 것이 더 간단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의사가 지시한 바였으므로 아무런 다른 이유가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에누키드제에 대해 저술하거나 모스크바에 돌아가기를 거절했는데, 이번에는 세 번째 거절한다는 것은 그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겨로가가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가겠습니다. 키로프가 말했다. 자네도 잘 아다시피 필요한 일이야, 그리고.... 자네는 이 작업에 별로 열성적인 것 같지 않고. 내 말이 맞나? 스탈린은 역사교재계획에 관한 노 트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키로프는 부정하지 않았다. 저는 역사학자 도 아니고.... 좋아, 바로 그 점이야! 카자흐스탄에서는 당면한 문제에 관한 일을 하 게 될 거야.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고, 또 이 일은 카자흐스탄을 혼란에서 벗어나게 하여 우리들에게 충분한 빵을 공급해 주게 될 거야. 카 자흐스탄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첫째는 중앙에서 멀 리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네. 둘째는 주민들이 다양하게 뒤 섞여 있어 농사에는 거의 생소한 사람들이라는 점이고, 이전에 부농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다시 정착해 있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선량하 고 근면한 노동자들이야. 그는 즈다노프에게로 얼굴을 향했다. 가능하다 면, 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치, 한번 살펴보기 바라네. 나는 이미 지난 사 오 년간 새로운 정착지에서 열심히 살아온 이전의 부농들에게 권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라는 법령을 제시한 바가 있어. 그런데 이들 가운데에는 열심 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앙심을 품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 반면에 우리들은 바로 우리들의 대중들에게, 바로 일반 대중노 동자들 그리고 서민근로자들에게 노동의 기본적 윤리를 주입시켜 주지 못 했네. 즉,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맡은 일을 한다는 거야. 그 들이 하는 작업의 성격에 대한 긍지나 자부심, 또는 노동자로서 가지는 스 스로의 명예에 대한 개인적 만족감 등을 우리는 미처 그들 내부에 개발시 켜 주지 못했다구. 예를 들어, 나는 조금 전에 모스크바에서 온 치과의사 를 보았네. 그는 내가 거부한 것도 기어이 자기 스스로의 방법으로 하려고 했어. 그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나는 목소리를 높여야 했지만, 결국 그 는 실행에 옮겼어. 재미있는 점은 그는 내가 바라던 것과 그가 제안한 것 둘 다를 만들어 왔다는 점이야. 그는 나에게, 먼저 나의 생각에 따라 만든 것을, 그리고는 나중에 자신의 생각대로 만든 것을 껴 보라고 했지. 그의 말대로 했어. 그리고 그의 생각이 옳았음을 알았지. 나는 그에게 이 2점을 인정했어. 바꿔 말하자면 그가 자신의 해결방법을 고집한 것이 옳았던 것 이야. 그가 왜 이렇게 했겠어? 내가 하자는 대로 하고 쉽게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어.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켰으며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았어. 그의 신념이 스스로를 이겨 낸 거야. 바꿔 말 하면 그는 직업에 대한 보다 높은 차원의 긍지를 가진, 우리가 모든 이들 에게 깨우쳐 주어야 할 진정한 노동자란 말이야. 그리고 이들이 이런 느낌 을 가졌을 때, 비로소 강압적 수단의 필요성이 사라질 거야. 지금까지 우 리들으 이념에의 헌신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그 의무를 받아들이고 맹세 했어. 하지만 오직 하나의 의무가 있을 따름이네. 그것은 다름아닌, 예를 들어 그루지아의 와인 제조업자나 이 치과의사처럼, 직업에 대한 스스로의 긍지와 자각의 의무지. 그 치과의사는 무척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키로프가 미소 지으며 이야 기했다. 스탈린은 말을 가로막았다. 자네도 치료받았었나? 아닙니다. 해변에서 보았습니다. 수영을 잘하더군요. 스탈린은 묵묵히 왔다갔다 하다가 잠시 후 말했다. 그래도 자네는 싫증 나지는 않았군. 나는 이 논평들 때문에 우리의 가련한 세르게이 미로노비 치가 몸이 뻣뻣해지도록 싫증이 나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는데. 키로프는 스탈린의 목소리에서 시기와 의심의 어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 다. 해변은 황량했습니다. 치과의사와 나 이외에는 수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요. 나는 그를 두 번 만나 보았는데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 사람은 말이 많은 편이야. 스탈린은 무관심하다는 듯이 덧붙 였다. 스탈린의 이러한 무관심한 듯한 태도 역시 키로프에게는 익숙한 것 이었다. 스탈린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방안을 서성거렸으며 한 순간 키로프 앞에 멈추어 서서 말했다. 내일 알마아타로 날아갈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아, 그럼. 그날 저녁 스탈린은 서류들에 사인하면서 토프스투하에게 말했다. 치과 의사를 리프만 대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도록. 잠시 후 그는 덧붙였다. 그를 크레믈린 병원에서 해고시켜. 하지만 그 에겐 절대 손대지 말고.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8 이전과 마찬가지로 알페로프는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응접실에 서 사샤를 맞이하고는 그에게 식탁의자를 권해 주었다. 식탁은 널빤지로 만든 단순한 것이었으나, 의자는 시내에서 사온 듯한 푹신한 방석으로 된 것이었다. 앉으시오, 판크라토프. 차를 좀 들겠소? 이러한 친절한 인사말도 별로 좋은 징조를 예상케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이미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사샤가 대답했다. 먼 길을 오셨는데 차 한 잔만 마시지요. 그래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 소? 걸어왔습니다. 그래요.... 알페로프는 부엌 쪽으로 난 문을 열었다. 안피사 스테파노브나, 차주전 자를 준비해 주세요. 식탁 쪽으로 돌아온 그는 아주 친근한 표정을 지으 며 사샤를 쳐다보았다. 좋소. 그것이.... 판크라토프. 절단기는 잘 작동 되고 있소? 모릅니다. 관심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여하튼 절단기는 자 돌아갈 거요. 거기에 대해선 나에게 감사해야 할 거요. 내가 트랙터 기계 수리점에 빨리 손봐 달라고 부탁하니까 그날로 수리해 놓았소. 지다가 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알페로프는 비스듬히 옆으로 서 있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내가 그렇게 한 것은 다른 사라들을 위해서가 아니 오, 그것을 파손한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에 수리 역시 우리들이 해야 한다 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것을 파손시킨 것은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여하튼간 수리도 해놓았고 문제 도 잘 처리되었소.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젠 모두 그 일에 대해서 잊어버렸다고 할까요. 당신에 대한 비난은 나에게도 함께 따라오죠. 그는 자신의 책상 서랍을 가리켰다. 그 때문에 당신을 협박하려는 의도는 없 소. 물론 콜호즈 책임자가 다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오.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참, 차 드십시다! 긴 치마에 짧은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약간 뚱뚱한 중년부인이 차주전 자를 들고 왔다. 그리고는 다시, 생선파이와 달걀을 입혀 구운 생선요리 쟁반, 월귤나무 열매와 블루베리 한 접시를 가져왔다. 내가 직접 차를 끓이지요. 알페로프가 차종지에 차를 넣으면서 말했 다. 아시다시피 이건 위대한 예술이오. 중국에서 배웠죠. 그는 차종지를 주전자의 윗부분에 올려놓고 겹으로 된 차헝겊을 위에 덮 었다. 차가 끓는 동안 뭣 좀 드시죠. 음식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차나 좀 들겠습니다. 아침을 먹고 와서 다른 건 별로 생각 이 없습니다. 사샤가 대답했다. 그러면 우선 한번 먹어 보고 마음이 생기면 드십시오. 먹다 보면 식욕 이 새로 생기기도 하죠. 모즈고바에서는 어떻게 지냈소. 지겹지요? 별로 재미없습니다. 좋은 생활은 분명히 아니죠 알페로프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주 재미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지 않았소? 철학자 브세볼로드 세르게예 비치 질린스키 같은 사람 말이오. 그는 한때 베르쟈에프의 제자였소. 해외 로 나갈 기회도 있었소만, 뭐 자기 말로는 러시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거 절했다나요. 지금이라도 떠날 수도 있지만 너무 늦었죠. 러시아를 사랑한 다면 러시아를 위해 일을 해야지 러시아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되겠죠, 그렇 지 않소? 사샤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가 러시아에 어떤 해를 끼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질린스키와 그 잔당들은 당신에게 자신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말했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은 내 말을 곧이들어야 해요. 여기에 아무 이유 없이 보내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사샤는 씽긋 미소 지었으며 알페로프는 순간적인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 았다. 당신은 자신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오만 당신은 전혀 별개의 문제요. 당신이 유배된 것은 우리 당 내부의 문제와 관련이 있소. 그것은 푸쉬킨 말대로 고전적인 형제간의 싸움 이오. 당신은 아주 특수한 상황에 빠져들었고 그리고 조심스럽게 처신하지 못했소. 당신은 내가 이런 수렁에 서 허우적대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오? 보구차니에서 지방관을 만나 보았을 꺼요. 그런 사람은 여기서 잘 살아갈 테죠. 하지만 나는 좀 다릅니다. 그 건 당신도 알 것이오. 아직 나는 내 인생의 결정기에 이른 것도 아니고 여 기서 끝난 것도 아니요. 그래서 말이요? 나는 공산주의자고 내 임무를 수 행하고 있소. 그렇소, 질린스키에 대한 임무죠. 그 사람은 똑똑하고 박식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경계심을 늦추지 마시오. 나는 그 사람과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단지 서로 눈인사 정도 주고받 는 사이일 뿐입니다. 좋든 싫든 그와 관계를 맺어햐 될 거요. 알페로프가 부정했다. 삼 년 동안 말하지 않고 생활하겠다는 명세는 불가능할 것이고, 결국엔 분명히 그와 사귀게 될 것이오. 이전에 참모본부의 연대장이었던 미하일 미하일로 비치 마슬로프도 역시 마찬가지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사샤는 비로소 알페 로프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보기 시작하면서 말했다. 물론이오. 그는 세대도 다른 세대이고 생각하는 것도 전혀 다른 사람이 지요. 지금까지 당신이 언급한 사람들은 적어도 나이는 당신과 비슷했소. 예를 들어 크바차드제 말이오. 그와 편지를 주고받고 있소? 아닙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 옛 친구들을 모두 떠나 보냈소? 알페로프가 놀라서 물었다. 하지 만 이해는 할 수 있소. 크바차드제는 트로츠키파고 사상이 철저히 물든 사 람이기도 했소. 그리고 솔로베이치크도 있었는데.... 그와는 조금 연락을 가졌습니다. 물론 그는 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왜 자신이 소환되었는지 물 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심문하려고?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리 지 말고 직접 얘기를 꺼내야 할 것이다. 이런 잡담이 사샤는 싫었다. 그러 나 사샤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 알페로프는 그를 해하지 않았으며, 만약 알페로프가 누군가와 단지 이야기하고 싶어했다면 사샤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편지를 가장 최근에 받은 것이 얼마쯤 되었소? 그걸 모르십니까? 사샤가 되물었다. 당신은 내 모든 편지에 대해 상 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렇소, 때때로 우리들은 유배자들의 편지를 점검해야 하는데 그건 곧 우리 임무의 일부요. 알페로프가 시인했다. 그러나 나는 불규칙적으로 아무렇게나 골라서 점검했소. 내게 온 편지는 언제나 개봉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봉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알페로프가 웃었다. 물론 편지 가 개봉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내가 말했다시피 나는 임 의로 점검했기 때문에 솔로베이치크의 최근 편지를 지나쳤을 수도 있소.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사샤가 물었다. 특별한 것은 없소. 그는 골챠비노로 옮겨지기를 원하고 있소. 거기에 자신의 약혼녀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오? 예, 사샤가 분명히 말했다. 그의 약혼녀가 거기 있습니다. 우리들이 골챠비노를 통과할 때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의 약혼녀가 골챠비노에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사실로 그가 자 기 마음대로 지정된 정착지를 떠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 오. 그런데 그는 허가도 받지 않고 골챠비노로 갔소. 나로서는 젊은이들, 진실된 사랑, 뭐 그런 것들을 눈감아 줄 수도 있소. 그렇지만 골챠비노는 드보레츠 사령관 관할 구역에 들어 있고 그들은 결코 눈감아 줄 사람들이 아니오.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샤가 말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습니 다. 만약 우연히 여기서 인생을 마감하게 될 사람이 있다면 그를 바로 솔 로베이치크일 겁니다. 그는 결코 정치적인 인문이 아니에요. 태평스럽고 친구도 쉽게 사귀지만, 그로서는 이곳에 묶여 있다는 것을 견뎌내기란 매 우 힘든 일입니다. 물론, 그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만, 사랑 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당신은 감상적으로 말하지만, 판크라토프, 그건 공식적 언어로 도주라 부르는 것이오! 또한 법은 단지 도주한 사람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를 도와 준 모든 사람들을 처벌하게 되어 있소. 로즈코보에는 다른 유배자 들도 있는데 그는 모든 이들을 그 일에 연루시켜 놓았소. 그럼 어떤 사람이 모즈고바에서 도주하면 나도 책임을 지는 겁니까? 그렇소, 그 점을 염두에 두시오. 한 사람이 도망가면 다른 모든 사람들 도 함께 책임을 지는 거요. 그래서 무고한 사람들도,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 때문에 피해입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하오. 도주하려는 계획 을 알아차리면 반드시 당국에 보고해야 하오. 그게 바로 이곳의 구조요. 그리고 당신은 이 일에 협조해야 할 것이오. 당신은 스스로 충실한 소비에 트 시민이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도와 주시오. 그렇군요. 그것이 바로 당신들이 내게 요구하는 것이로군요!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도전하면 가장 가혹한 벌을 받게 되어 있소. 당신들이 나누었던 대화나 분위기에 대해 보고해 달 라는 말이 아니오. 다만 도주를 방지하고, 도망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과 도망자들을 도와 준 사람들을 구해 주고자 할 뿐이오. 그래서 우리들은 당 신을 트랙터 기계 공장의 순회 기술자로 케쥐마에 전근시키려 하고 있소. 당신은 그 구역 내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다른 유배자들을 만나고 그 들 가운데 누가 도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를 알아내서 그들에게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설득할 수도 있소. 아니면 적어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 는 것을 우리가 방비할 수 있도록 당신이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소. 이제 곧 당신은 도심에서 살며 생계를 꾸려갈 것이고 사람들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을 구해 줄 것이오. 당신은 지금 시간낭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샤는 말했다. 나는 당신 제안대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럼 내 일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오? 알페로프가 물었다. 당신이 직책을 가지고 당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듯이, 나 역시 유배자 로서의 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임무가 무엇이오? 내 형기를 채우는 것입니다. 알페로프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알렉산드르 파 블로비치, 당신은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군.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라고 말했소 당신이 옳다고 칩시다. 하 지만 당신 부인은 교사요. 당신이라면 정치적으로 불온한 사람의 아내에게 새로운 세대를 교육시키도록 맡겨놓을 수 있겠소? 내겐 아내가 없습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까? 교사? 가끔 책을 구하러 그녀에게 가곤 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우리는 어른이요.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있 소. 다른 대답을 기대했다는 말이 아니오. 하지만 그 교사는 누가 뭐라 해 도 당신의 부인이오. 만일 당신이 지각있게 행동하면 우리들은 당신 둘을 여기 케쥐마로 데리고 올 수도 있소. 여기서도 교사 한 명이 필요하니까. 내겐 아내가 없습니다. 사샤는 인상을 찌푸리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 다. 아마 당신은 모즈고바에 있는 어떤 여인보고도 내 아내라고 할 것입 니다. 만일 당신이 그 여선생을 건드린다면 당신은 가장 큰 죄를 짓게 되 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는 외부의 압력으로 부터 그녀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소. 이 점이 바로 우리가 당신을 다른 곳 으로 데리고 간다고 할 때 말하고자 했던 것이오. 당신이 책임지십시오. 사샤는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그들에게 저주가 있기를! 그들은 지다를 홀로 내버려두는 동안은 그를 다른 마을로 이주시 킬 수 있었다. 알페로프는 일어서서 방 안을 서성거렸다. 판크라토프, 장차 뭘 할 생각이오? 유형이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재심을 청구할 것입니다. 다시는 모스크바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오. 그곳은 당신의 영역 밖이 오. 모스크바 말고 다른 곳도 있습니다. 재심을 청구한다고? 알페로프는 계속 말을 이었다. 거의 가능성이 없 을 것이오. 당신에 대한 판결은 계속 유효할 것이오. 가끔 유죄판결을 번복하기도 합니다. 그렇소, 가끔은. 알페로프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건 정부에 대한 봉사의 대가로서요. 그 부분에 관한 한 당신은 어떤 일도 할 수가 없 소. 결국은 모욕감만 느낄 것이오.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끌려올 때 복도에서 어머니가 몸부림치시 던 모습은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조사관들이 내 사건을 일방적으로 처리 하던 모습들도 결코. 좋소. 알페로프는 그의 정면에 앉았다.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솔로베 이치크가 도주했소. 그는 사샤의 반응을 주시했다. 사샤는 깜짝 놀라 오히려 그를 쳐다보았 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솔로베이치크는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 닙니다. 숨을 곳이라곤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그가 더 잘 압니다. 하지만 그는 도주했소. 당신에게 편지한 것이라도 있소? 사샤는 얼굴을 찌푸렸다. 도주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지만, 그걸 편지에 쓰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습니다. 물론. 알페로프는 맞장구쳤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의 유일한 동지이 고 이곳에서의 유일한 친구요. 지금 내가 그의 도주를 공모했다고 논죄하는 것이니까? 판크라토프, 알페로프는 꾸짖듯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소. 당신에게 논죄할 사람은 아무 도 없소. 그러나 솔로베이치크는 자신의 도주로를 무척 오랫동안 생각해 낸 것이 틀림없소 거기엔 두 개의 분명한 경로가 있는데 하나는 앙가라 아 래쪽 예니세이로 빠져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칸스크로 가는 침엽수림 지대를 통하는 것이오. 어는 길로 가든 멀리는 가지 못했을 것이고 첫 번 째 마을에서 체포될 것이오. 마을을 피해 가려면 많은 식량이 필요하므로 그건 불가능하오. 또 세 번째의 가능성도 있소. 앙가라 위쪽으로 이르크츠 크로 가는 길이오. 그 길은 좀 멀기는 하지만 당신이 살고 있는 모즈고바 를 지나가고, 좀더 가면 그의 약혼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두 마을이 더 있소. 그는 그 길을 택했을지도 모르오. 그건 당신이 있는 곳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얘기요. 모든 마을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있는 곳에 그가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알 수 없죠.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아만 분명히 들를 것이오. 그 럴 경우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생각해야 할 것이오. 그를 붙들어 놓으란 말입니까? 사샤는 웃었다. 만약 내가 그를 잘 다 루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말인가요? 그를 붙잡아 둘 필요는 없소. 우리가 붙잡을 테니까. 최선의 방법은 그 에게 돌아가도록 설득하는 일이오. 그러면 도주의 죄목은 삭제되고 행적적 방법으로 취급될 수 있는 자발적 부재로 될 것요. 진정으로 하는 말입니다 만 판크라토프, 나는 도주자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소. 엉뚱한 사고를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오. 사샤가 느끼기에 알페로프의 말은 진실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보리 스가 도주했다고는 믿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삼림 속에서 사냥을 하다가 길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니 말이오, 판크라토프. 당신이 할 수 있는 제일 손쉬운 일은 그를 설득시켜 돌려 보내는 것이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마을 소비에트나 콜호츠 당국에 이야기하시오.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할 일을 잘 알고 있을 테니. 알페로프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덧붙였다. 이 일은 신중히 받아들여야 하오. 도주자를 은닉하거나 도와주는 것은 매우 중대한 결과를 낳게 되오. 경고해 둡니다! 보리스가 도망자라니! 사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오히려 보리스가 목을 매달았다든가 물 속에 투신했다는 것은 믿을 수 있었다. 그의 인생은 파멸되어 있었으니까. 차라리 자살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주라니! 현 실적으로 합리적인 보리스는 그런 시도가 얼마나 무모한지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었을 것이다. 도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그들이 칸스크에 있 을 때였다. 기차 화물칸에 실려 떠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여기에 남아 있을 때 그는 프레다와 함께 살고 싶어했다. 일단 그가 떠나면 그 희 망은 사라질 것이다. 지금 그들은 프레다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고, 그렇다 면 보리스는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알페로프가 그에게 놓은 덫은 무엇인가? 당신의 동지가 유배지 에서 도주했고 그 책임은 당신이 우리들의 광활한 뒤뜰에 숨는다면 면제될 수 있다! 당신은 여교사와 살고 있는데 그녀는 이 때문에 고통받을 수 있 다. 그러니 우리가 당신을 숨겨 주었으니 내 말을 들어라! 당신은 모즈고 바에서는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없으며, 또 누가 당신을 삼 년 동안 먹여살 리겠는가?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 일자리를 줄 것이며 그러면 당신은 가족 에게 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 사실을 잊지 마라. 절단기 문제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그 서류가 여기 내 책상 서랍에 들어 있다. 모두가 이처럼 원시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샤는 알페로프에게서 뭔가 다른, 특별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쟈코프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알페로프는 중 국에 있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쟈코프를 중국에 보내지는 않았었다. 쟈코 프는 그저 모스크바에 있었으며 중앙위원회에서 일했고, 알페로프는 지금 이곳 촌구석에 있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알페로프에 대한 벌이었다. 그 의 눈에 나타나는 의심에 찬 표정은 자신의 불안정한 상황을 나타내는 표 시였다. 또한 그는 쟈코프의 거친 압력동원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왜 가혹하게 다루지 않은 것일까? 사샤는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에게서 지다 때문에 호출되었음을 말했 다. 그러나 도주에 대해서는 자신이 믿고 있지 않았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의 반응은 평온했다. 최수의 수단으로 자네는 사비노나 프롤로보에 가게 될 거야. 두 달 동 안의 행복에 대한 대가로서는 작은 것이지. 그리고 누르지다 가지조브나에 게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여기서는 그녀가 알페로프보다 더 소중하니까. 다른 지방관은 찾을 수 있지만 교사는 사람이 없거든. 사샤는 지다에게 그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믿지 않으리라 생각하면 서 보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믿었다. 그들은 고통과 지루함 때문에 도망쳐요. 가장 합리적인 사람일지라도, 그게 정상이에요. 이상스럽게도, 알페로프와의 대화는 사샤에게 평온함을 가져다 주었고, 그의 고통에 종말을 지어 주었다. 알페로프는 그가 생각했던 바를 확인해 주었다. 다시는 모스크바에 갈 수 없으며, 자신의 재판이 재심될 희망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샤는 이제 잊혀진 인물인 것이다. 그는 마침내 자 신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다스릴 수 있다고 느꼈다. 더 이상의 환상은 없었다. 그의 소송사건도 특별한 것이 아니고 단지 수많 은 사건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내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내야 했다. 어느 날 그는 거리에서 티모페이를 만났다. 티모페이는 그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는 지나치려고 했다. 그러나 사샤가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총 좀 잘 쏘지 그랬어. 티모페이. 아니면 썩은 총을 갖고 다니는 거 야? 무슨 말 하는 거야? 지난번 사샤가 치려고 하자 겁을 먹고 그랬던 것 처럼 그는 풀밭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면서 중얼거렸다. 겁먹지 마. 사샤는 웃었다. 여기서는 손대지 않겠어. 하지만 만약 숲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개처럼 쏘아버릴 거야. 네 건 새총이지만 내 총은 강력해 또 총탄이 가득 장전되어 있고, 그러니까 조심해! 또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그럴 거야. 우리들은 우리들 방식의 처벌규약이 있지. 잘 기억해 둬, 이 찌꺼기 같은 놈아! 그는 뒷걸음질치며 도망갔다. 그런 인간들은 이렇게 다루어야 했다. 그 것은 앙가라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칸스크의 유배자들을 살해한 녀석들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티모페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겁쟁 이 녀석은 이제부터는 찍 소리 못하고 지낼 것이다! 그후 사샤가 숲 속에 들어갈 때는 총을 장전시키고 한 움큼의 총탄을 주머니에 채워 넣게 되었 다. 주초크 없이는 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공활지대에서는 그저 가만히 서 잇지도 않았고 매번 다른 길로 다녔다. 티모페이를 만난 지 이틀인지 사흘 후에 사샤가 숲속에 갔을 때, 갑자기 주초크가 걸음을 멈추고 킁킁거리더니 풀숲 속으로 달려갔다. 짖는 소리가 사샤에게 와서 무엇인가 보라는 것 같았다. 그것이 사람인지 곰인지 모르 지만 그 개는 목이 터져라고 맹렬히 짖어댔다. 사샤는 나무 뒤에 몸을 숨 기고 총탄을 장전했다. 개는 더욱더 거세게 짖어대면서 목표물을 향해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오 곤 했는데, 분명 피모페이는 아니었다. 그 개는 마을 사람 모두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놈이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거나 곰일 것이다. 사샤는 나무 뒤에 사람이 있다고 느꼈으며, 바람이 스치는 것인지 아니 면 나뭇가지가 튀는 것인지 모르지만 뭔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초크는 뛰어나가서 낯선 물체에 덤벼들었는데 기다란 막대기에 맞고 쫓 겨 나왔다. 사샤는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단추 있는 반바지와 솜 넣은 윗도리, 귀마개가 달린 털모자와 장화를 신은 솔로베이치크였다. 그는 턱 수염이 조금 나 있었으며 야위어 보였다. 사샤는 개에게 신호하고 솔로베이치크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서로 포옹했다. 숲속으로 들어가자. 사샤가 말했다. 그들은 수풀 쪽으로 가서 비교적 가지가 많이 처지지 않은 나무 아래에 앉았다. 보리스는 자신의 배낭을 벗어 그의 옆에 나란히 놓고 나무에 머리 를 기대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저놈은 네가 기르는 성가신 개로군. 처음 보는 사람을 발견하면 저러지. 뭘 좀 먹겠나? 괜찮아. 방금 먹었거든. 그는 자신의 배낭을 향해 고개짓했다. 내 소 식을 들었나? 알페로프가 불러서 네 이야기를 묻더군. 보리스는 반쯤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왜 그랬어? 사샤가 물었다. 보리스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주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마른 기침 을 해댔다. 날 프레다에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어. 아니면 그녀를 내게 데려다 주든지. 그런데 그들은 거절했어. 그래서 그녀를 만나 보러 갔을 뿐이야 도중에 붙들렸지. 하지만 다시 탈출했어. 나는 로즈코보에 다시 돌 아갈 수 없어. 감옥에 집어넣고 도주한 죄로 유죄를 선고할 거야. 그래서 이쪽에 왔지. 아마 그들은 좀더 아래쪽이나 칸스크 길목에서 나를 찾고 있 을 거야. 난 이 길로 해서 브라츠크로 갈 거야. 알페로프는 네가 이 길로 올지 모른다고 했어. 그가 그렇게 말했어? 응. 보리스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브라츠크까지 한달 동안은 고달픈 길을 가야 해. 곧 겨울이 시작될 텐 데. 넌 숲 속에서 얼어죽을 거야. 사샤가 말했다. 별다른 수가 없어. 보리스가 기진맥진해 하며 말했다. 만약 내가 그 곳에 도착한다면,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프레다는 어때? 아무 일도 없었어. 그녀는 그 사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더군. 우리가 이곳으로 온 후로는 그녀를 보지 못했어. 내가 그녀에게 편지를 썼었나? 그렇지도 않잖아.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편지했지. 일이 그처럼 단순하지가 않아. 사샤가 부정했다. 너는 그녀가 너의 약혼녀라고 했고, 또 그녀는 너와 매우 가까운 사람이잖아. 그들은 틀림없 이 그녀를 끌어들일 거야. 그들은 너도 불러갔어. 하지만 네가 그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건 뭐지? 마찬가지야. 그녀도 그들에게 말해 줄 아무 것도 없어. 잘 들어. 아마 케쥐마에 가서 알페로프에게 가보는 것이 가장 좋을 거 야. 너를 프레다에게 또는 프레다를 너에게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면 돼. 그러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질 거야. 넌 지역 밖으로 나 간 것이 아니고 케쥐마에 나타난 것이니까. 믿을 수 없어. 보리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케쥐마에 왔어. 하지 만 그들은 나를 케쥐마로 오는 도중에가 아니라, 강 아래 저쪽에서 붙잡았 어. 절대로 알페로프에게는 갈 수 없어. 그는 나를 칸스크로 보낼 거야. 칸스크로 가는 길은 없어. 사샤가 말했다. 또한 한달 안으로는 길이 없을 거야. 케쥐마에는 형무소도 없는데 널 어디에다 붙잡아 두겠어? 알페 로프로서도 네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편할 거야. 즉 넌 너와 프레다를 위해 탄원하려고 온 거야. 그도 말하더라구. 나는 엉뚱한 사고 를 원하지 않는다 고 말야. 저 아래쪽에서 붙들렸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문 제가 안 돼. 로즈코보에는 보트가 없어서 코다나 파쉬노에서 혹시나 보트 를 빌릴 수 있을까 싶었다고 말하면 되잖아. 알페로프는 이미 내 도주를 공표했어. 보리스는 부인했다. 결국 그가 너를 소환한 것은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해. 하지만 그것이 너에게는 유일한 기회야. 사샤가 고집했다. 결코 브라 츠크에는 도착할 수 없을 거야. 넌 분명히 첫 번째 마을에서 발각되어 도 주죄로 유죄를 선고받게 될 거라구. 마을로는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럼 먹을 건? 그래서.... 먹을 것 좀 부탁해야겠어. 돼지기름과 설탕, 말린 빵조각, 구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물론, 하지만 얼마나 오래 갈까? 얼마나 많이 가지고 갈 수 있겠어? 숲 속에서는 먹을 수 있는 게 없어. 벌써 겨울이니까. 총도 가지고 있지 않 군. 틀림없이 배고픔 때문에 마을이 나타나자마자 들르게 될 거야. 한번 생각해 봐. 네 생명이 달린 문제야, 만일 알페로프에게 가면 생명은 구할 수 있다구. 또한 지금의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구 말야. 계속 길 을 간다면 숲속에서 죽거나 붙잡히게 되고, 그러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 는 거야. 눈을 감고 반쯤 누워 있는 보리스는 사샤의 말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깜빡 졸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내 숙소에서 오늘밤 자고 갈래? 사샤가 물었다. 눈도 뜨지 ㅇ낳고 보리스는 머리를 저었다. 내가 체포되면 너도 연루될 거야. 내 걱정은 하지 마. 사샤가 말했다. 보리스는 눈을 뜨고 갑자기 힘이 난 듯이 말했다. 만일 사람들이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알페로프가 추적하게 될 거야. 내가 도움 을 받을 수 있는 곳까지 가려면 사십 오 마일은 더 가야 해. 너를 현장에 있게 하고 싶지는 않아. 넌 내가 도주자인지 몰랐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 알페로프가 아미 너에게 말했으니까. 넌 나를 못 봤고 나도 널 보지 않은 걸로 하자구.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 년 안이든, 이 년 안이든 아니면 십 년 안이든 나는 널 보지 않았고 너는 나를 보지 않은 것으로 하자구. 나는 아직도 네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사샤가 말했다. 몇 시간 이면 케쥐마에 갈 수 있어. 알페로프가 몇 시간 동안은 못살게 굴 테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거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 그처럼 일이 전개될 거야. 다시 말하지만 이게 너의 마지막 기회야. 이미 마음을 굳혔어. 보리스는 단호히 말했다. 돼지기름하고 말린 빵, 설탕 좀 줄 수 있겠어? 돼지기름은 구할 수 있고 설탕은 한번 구해 볼께, 빵은 말려야 하니까 만일 기다릴 수 있으면 말린 빵도 가져갈 수 있을 거야. 기다릴 수는 없어. 그냥 빵을 그대로 줘. 보리스! 사샤가 말했다. 제발 좀 생각해 봐! 네가 뭘 믿고 있는지 이 해가 안 가. 만약에 네가 브라츠크에 간다 하더라도 - 갈 수도 없겠지만, 만일 가더라도 -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거야? 브라츠크엔 이르크츠크로 갈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이르크츠크에서 모스크바행 열차를 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야? 진실을 찾아볼 거야. 그는 이미 미쳐 버린 것 같았다. 무슨 진실을 찾는다는 것인가? 아직 무 언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일까? 길 도중에는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 들이 정말 있는 것인가? 프레다의 친구들? 만일 그가 45마일 더 가야 한다 면, 그곳은 프롤로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모두 섬이 아닌가. 어떻게 앙가라를 건너겠다는 것일까? 강은 아직 얼지 않았고 얼마 동안은 더 얼지 않을 것인데. 물살도 여전히 거셀 것이다. 그렇지만 보리스는 분명히 뭔가 를 믿고 있었다. 분명히 그는 여기 유배지에서도 사샤가 모르는 어떤 접촉 을 가지고 기회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사샤에게 정부는 너무나 전지전 능하고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신도 정부를 피할 수 있다고 지다가 그에게 다른 길을 제공했었다. 솔로 베이치크도 의심할 바 없이 자신 스스로의 길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것이 어떠한 것들인지를 사샤는 모른다는 것이다. 마을까지 되돌아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보리스가 물었다. 그것은 사샤에게 빨리 갔다와 달라는 암시였다. 그는 일어셨다. 세 시간 후면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기다릴게. 보리스는 다시 나무에 기대어 몸을 웅크리고는 눈을 감았다. 이전에 있었던 모든 일들 - 그의 체포, 형무소, 유배 - 은 지금 일어나 고 있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때 그는 절대로 결백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처음으로 법을 어기고 있었다. 경고를 받았음에도 그는 탈주자 를 도와 주고 있는 것이다. 보리스는 결코 그를 폭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주에 연루된> 죄목은 여전히 그에게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또 한 배로 무거워질 것이다. 보리스의 도주는 어리석은 짓으로 분명히 도중 에 죽게 되든지 붙잡힐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친구를 도와 주어야만 했다. 중요한 것은 마을사람 누구에게도 의심받을 짓을 하지 않도록 분명히 해두는 것이다. 주인에게 돼지기름과 설탕을 달라고 할 것인가? 누구에게 갖다 주려고? 너무나 명백 한 단서가 도니다. 그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지다뿐이다. 만일 그 녀가 아무것도 없다면 그녀는 이웃에 가서 구할 것이다. 그녀는 항상 이웃 에서 음식을 구입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을 것이다. 돼지기름 약간과 빵이나 눌린 과자, 삶은 달걀 한 꾸러미, 설탕은 아마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녀 어머니가 모스크바에서 보내 준 감미료도 있다. 그리고 소 금.... 지다에게 말해 볼 것이다. 이런 것들을 좀 구해 줘. 쓸 데가 있어. 왜 냐고 묻지 말고 내가 부탁했다는 것도 잊어 버려. 지다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아웃에 가서 돼지기름과 건조시킨 고깃 덩어리, 눌린 과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녀는 달걀을 삶았고 감미료를 꺼 내 왔다. 그녀는 이것들 모두를 싸서 그곳 사냥꾼들이 숲속에 사냥갈 때 가지고 가는 굵은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가 그런 주머니에 물건들을 넣은 사실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샤는 나올 때 문간에서 돌아서서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은 것이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어떻게 일이 풀려나가든, 지다는 아무런 관련이 없 는 것이다. 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사샤의 목소리를 들은 보리스는 눈을 뜨고 몸을 바로 일으켜 세웠다. 마 치 머리를 맑게 하려는 듯이 그는 머리를 흔들고는 음식들을 자신의 배낭 에 넣었다. 소금은 가져가지 않았다. 이건 있어. 그는 일어섰고, 사샤는 그가 배낭을 짊어지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 친구, 이젠 이별일세! 보리스가 말했다. 등에 짊어진 짐 때문에 그는 어설프게 사샤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서로 뺨을 부비며 작별을 고했다. 내일 아침부터 내내 그 장소에 있을께, 마음이 바뀌면 돌아와. 사샤가 말했다. 글세, 안 변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이 식량들 구할 때 조심했겠지? 염려 말아.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19 오르드조니키드제는 퍄타고프가 보낸 위원회를 랴자노프가 사실상 공장 에서 쫓아 보낸 사건으로 여전히 화를 내고 있었다. 또 랴자노프 때문에 스탈린으로부터 받은 핀잔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랴자노 프가 제안한 것에 동의해 주는 문서라고는 한 장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이 말뿐이었고 말은 쉽사리 잊혀졌다. 랴자노프는 무방비상태였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랴자노프도, 건설계획과 국가의 철금속산업이 직면 한 문제들에 관한 논설을 써 달라는 볼셰비크 지의 청탁을 기꺼이 수락 했다. 볼셰비키 는 당의 중심언론지이고, 공급자들과 하청업자들이 그것 을 지침으로 볼 것이기 때문에 그 논설은 건설계획을 지지하게 되어 있었 다. 더욱이,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논설로 말미암아 랴자노프는, 그가 시작 한 추가 건축사업을 대중에게 알리고 그것을 합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 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마르크 알렉산드로비치는 이틀 저녁에 걸쳐 논설을 썼다. 그는 미국인들 이 그 계획을 지나치게 서둘러 개발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많은 조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주요 내용들을 열거하였다. 동시에 그는 소비에트 야금학자들이 미국의 산업수행에 있어서의 모범적 모델들을 숙지하여야만 한다고 촉구하고, 소비에트식 방법들이 아직도 시행되고 있 는 지역들을 상세히 예시하였다. 동구에 있어서 철강공업이 직면한 주요과 제는, 어느 정도의 기술 수준에 오른 안정된 작업인력을 유지하고 규합하 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대규모의 공공위락시설뿐만 아니라 주 거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는 수행된 성과들을 열거하 였고(이것들이 퍄타코프가 위원회의 파견을 재촉한 이유였다), 중앙위원회 의 인가를 획득한(이는 곧 스탈린의 인가를 의미한다) 사업들을 열거하였 다. 또 이 사업들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하였다. 그는 잘못된 공급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논설을 끝맺었다. 그 논 설은 11월 중순에 기관지에 실렸으며, 그 달 말경에 마르크 알렉산드로비 치는 중앙위원회의 정기총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모스크바고 갔다. 회의에서는 단 한 가지의 의제, 즉 1935년 1월 1일부터 빵과 다른 음식 물의 배급카드를 폐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토의하였다. 모든 발표자들은 자신들의 관심사에만 목청을 돋우었다. 그 체제는 1928년부터 존족하게 되 었었고 부적절하게나마 고정된 수준의 공급이 보장되었다. 이제 식량의 판 매도 자유화되고 시장도 다시 회생하겠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관리 하는지를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스탈린은 연설을 하지 않고 의장단석에 침묵한 채 앉아 있었다. 회기 이틀째 날 휴식시간 중에 키로프를 대동한 오르드조니키드제가 웃 으며 휴게실에 있는 랴자노프에게로 다가왔다. 세르게이 미로노비치가 자네를 만나고 싶다네. 자네 논설이 마음에 든 모양이오. 오르드조니키드제가 말했다. 키로프는 마르크 알렉산드로비치 와 악수를 교환하며 말을 건넸다. 알겠지만, 신규지역에 관하여 자네가 한 말은 개발이 끝난 지역들에고 적용되오, 수준높은 노동력을 보유한 사 람들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문제는 어디에서나 주된 선결문제가 되어 버 렸소. 미국인들에게서라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는 데엔 나도 동감이오. 레 닌그라드 사업에 관하여 당신이 비판한 것에 관해서라면 내가 처리할 것을 약속하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희에겐 최고의 보상이 될 것입니다. 마르크 알렉산드로비치가 대답했다. 오르드조니키드제는 농을 썩어 말했다. 자네는 정말 외교관이야, 자네 의 논설은 자기가 초래한 불법 비용들을 공식적으로 합법화하고 있잖아. 아, 잠깐, 그리고리 콘스찬티노비치, 제가 한 일은 단지 지금껏 행해지 고 승인된 것들을 알리는 것뿐입니다. 랴자노프는 지지 않고 대꾸했다. 오르드조니키드제는 미처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그들 뒤에 스탈린이 와 서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가 언제 왔는지도 모르고 떠들고 있었 던 것이다. 무엇에 관하여 논의중인가? 스탈린이 물었다. 볼셰비키 지의 가장 최근 이슈에 관한 겁니다. 키로프가 대답했다. 난 아직 그것을 읽지 못했어. 스탈린은 키로프를 보지도 않은 채 내뱉 고는 걸어가 버렸다. 마르크 알렉산드로비치는 그가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스탈린의 좁 은 등과, 거의 갈색빛 도는 카키색 상의의 약간 둥근 어깨를 보면서 그의 가슴은 자부심으로 가득 찼다. 불과 몇 초 전에 그는 키로프와 오르드조니 키드제와 함께 <스탈린>의 옆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 회의에 참가한 모 든 이들이 그들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았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키로프가 그 글을 읽고 칭찬해 준 것만으로도 그 에겐 충분하였다. 그리고 오르도조니키드제의 친밀감있는 행동은 더 이상 스탈린이 그에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그의 행동 은 정당화되어 있었고, 논설은 목적을 위하여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낸 셈이 다. 만사가 잘 풀리고 그는 더 이상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스탈린의 현명한 사고와 많은 돈이 모든 것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위대한 성취의 시기에 참되고 값진 것은 필연적으로 승리하게 마련인 것이다. 스탈린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휴게실 쪽으로 걷고 있었다. 아무도 길을 양보하거나 옆으로 비켜서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의 주위는 길이 트여 있었다. 부드 러운 가죽부츠를 신은 그는 조용히 서두르지 않고 가볍게 걷고 있었다. 아 무도 그를 쳐다보거나 그가 있는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으나, 그들은 모 두 스탈린이 거기에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상임간부회의를 위하여 마련해 둔 방으로 통하는 문 뒤로 사라졌다. 오르드조니키드제가 벽에 기 댄 채 떨리는 손으로 약병에서 니트로글리셀린 알약을 꺼내 입에 넣는 것 을 랴자노프가 목격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왜 그러나? 키로프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무것도 아닐세. 오르드조니키드제는 잔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마르 크 알렉산드로비치가 그의 팔을 부축하였으나 오르드조니키드제는 점잖게 그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리 콘스탄티노비치, 구급실로 가셔야 됩니다. 아닐세, 됐네. 이젠 괜찮아. 아냐. 집으로 가야 돼. 어서. 내가 바래다 주겠네. 키로프가 단호하게 말했다. 스탈린의 냉담한 태도는 키로프에게 전혀 놀라운 것이 못되었다 그들 사 이의 관계는 소치에서부터 나빠졌는데, 스탈린은 거기에서 그를 카자흐스 탄으로 보내 발을 묶어 두었었다. 키로프는 그곳에 9월 6일부터 29일까지 있었는데, 그가 레닌그라드로 돌아왔을 때 내무인민위원회 의장인 매드베 드는, 그의 부관인 이반 자포로제츠가 그의 동의도 없이 모스크바의 중앙 기구에서 사람들을 데려와서 비밀정치부서의 요소에 배치시켰다고 보고하 였다. 이반 자포로제츠는 자신이 키로프에게 예속되지 않고 독립적이며 단 지 중앙기구에만 종속되어 있음을 일반에게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 한 상황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내무인민위원회가 지구당서기를 보좌하 는 간부와 중앙기구에 소속된 간부 두 명을 의장으로 가질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따라서 매드베드는 자포로제츠의 소환과 함께 그가 지역구의 동의 도 없이 임명한 사람들의 소환도 동시에 요청하였다. 이것 또한 문제였다. 이러한 일련의 임명은 의심할 바 없이 이미 승인된 것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조치는 반대파를 제거하라 는 스탈린의 교시에 의하여, 키로프에게 보복하기 위하여 행해졌으리라. 즉, 키로프 네 자신이 하려들지 않으니 우리가 대신해 주겠다는 식으로. 이렇게 보면 자포로제츠 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자치성을 선포해 대고 있는 이유 가 설명되었다. 그의 소환요구는 스탈린과의, 더구기 그가 어느 누구의 간 섭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인사이동의 미묘한 문제에서의 직접적인 갈등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구당위원회에 예속되지 않은 세력이 레닌그라드에 존속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모든 권한의 상실을 의미하였다. 키로프는 자기 관할의 사무국 직원들만을 소집하였다. 거기엔 서기진이 나 전문가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매드베드에게 자기에게 한 말을 반복하라고 말한 다음 사무국 요원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이구동성으로 그들은 자포로제츠와 그가 데려온 사람 들의 즉각적인 소환을 요구하였다. 키로프는 수화기를 들어 모스크바를 바 꿔 달라고 했다.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포스크레비셰프가 말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키로프의 사무실엔 정적이 흘렀다. 스탈 린이 결코 전화로 답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마침내 그가 수화기를 들었다. 예. 스탈린 동지 라는 말로 키로프는 말을 시작했다. 자포로제츠는 여기서 자기 멋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내무위민위원회 의장인 매드베드에게조차 복종하지 않습니다. 당위원회 사무국은 자포로제츠를 레 닌그라드로부터 소환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스탈린은 말이 없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가 실제적으로 자기 직권하에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지? 그가 최근에 한 일은 야고다 사람들 다섯 명을 영입해서는 매드베드도 모르게 내무인민위원회의 비밀정치부서 요처에 배치시킨 것입니다. 키로 프가 말했다. 이봐! 그 사람들은 내무인민위원들이고 그것은 내무인민위원회 내의 이 동이야. 스탈린이 답변했다. 그렇다면 전 지구당위원회의 서기장입니까, 아닙니까? 키로프는 화가 나서 이렇게 내뱉고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후려쳤다. 이 무슨 어린아이 같은 질문이오? 내무인민위원회는 신설부서이고 다른 어떤 부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사이동이 있게 마련이오. 임명을 할 때마다 모든 지방기구들에게까지 그것을 알려 회의를 소집한단 말이오? 스탈린이 지지 않고 맞섰다. 저희 사무국과 저는 개인적으로 자포로제츠의 소환을 요청합니다. 키 로프는 단언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당신에게 설명했소. 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소. 스탈린은 차갑게 내뱉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들은 모두 묵묵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키로프가 매드베드를 바라보 았다. 필리프, 당신은 당신이 관장하는 기구의 장이오. 사무국은 오직 당신만 을 인정하오. 당신은 자포로제츠의 독자적 운용은 어떤 것이든 뿌리째 근 절시켜야 하오. 우리가 뒤를 밀어 드리겠소. 키로프는 세르고를 그의 아파트로 데려다 준 후에 회의장으로 돌아왔다. 벨이 울리고 회의는 끝났다. 그러자 참석자들은 모두 홀 뒤로 모였다. 마 르크 알렉산드로비치는 키로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실례합니다, 세르게이 미로노비치. 콘스탄티노비치는 좀 어떻습니까? 당분간 괜찮을 것 같소. 자리에 뉘였으니까. 지나이다 가브릴로브나가 의사를 부를 거요. 그러나 오르드조니키드제는 아내가 의사를 부르는 것을 만류했다. 그는 좀 괜찮아진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만 아직 회의에 돌아갈지 여부를 결정하진 못했다. 그는 이미 그 법률초안을 잘 알고 있었고, 자기 없이도 그들은 그것을 통과시킬 것이었다. 그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휴게실에서 있었던 단 2분 동안의 대화를 통해 그는 스탈 린의 키로프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그리고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는 스탈린을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스탈린이 누군가와 쳐다보지도 않고 이 야기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역시 알고 있었다. 날은 점점 어 두워졌고 아파트에는 불이 켜졌다. 지나이다 가브릴로브나가 안을 들여다 보면서 상태를 물었다. 좀 어떠세요? 난 괜찮아. 불을 켜지 마. 잠시 동안 혼자 앉아 있고 싶으니까. 그는 앉아서 생각했다. 부쟈긴으로부터 레닌그라드 내무인민위원회의 이 상한 발령조치에 관한 보고를 들은 후, 그는 키로프에 관해 스탈린에게 수 차 말을 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언제나 화제를 돌렸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먼저 그 문제를 꺼낸 것이다. 당 정치국에선 곡식조달의 진정에 관한 카자흐스탄에 있던 키로프로부터 의 보고서가 논의되고 있었다. 그때, 토의중인 문제와는 무관하게 한마디 던지듯이 스탈린이 말했었다. 난 중앙위원회의 서기장으로서 키로프에게 모스크바로 자리를 옮기라고 권했었지. 그런데 그가 거절했었어. 한 지방에서 얼마 동안이나 머물 수 있겠나? 팔 년이 지났거든. 그것으로 족하지. 키로프는 국가적 차원의 일 꾼이야. 당 전체가 그를 필요로 해. 그는 거기서 말을 끊고 업무에 관계된 다음 사항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 회의가 끝난 뒤, 몰로토프, 카가노비치 그리고 쿠이비셰프를 빼고 모두 돌아간 다음에 스탈린은 오르드조니키드제에게 말했다. 키로프에게 말하게. 결국 자네들은 친구지 않나. 그는 모스크바로 와야 해. 중앙지도부에는 러시아인이 필요하거든. 자네와 나는 그루지아 사람이 고 카가노비치는 유태인, 루즈타크는 라트비아인, 미코얀은 미국인일세. 러시아사람이 어디 있나? 몰로토프, 보로쉴로프, 쿠이비셰프, 그리고 칼리 닌뿐이지. 이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아. 키로프가 카자흐스탄에서 레닌그라드로 돌아왔을 때, 오르드조니키드제 는 그를 만나 스탈린의 제안을 전달하였다. 키로프는 재차 거절했다. 그는 오르드조니키드제에게 소치에서의 스탈린과의 마찰, 게다가 자포로제츠에 얽힌 새로운 알력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조용히, 그리고 확고하 게 말하였다. 우리도 결코 자포로제츠가 여기서 경거망동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걸세. 부쟈긴과 키로프는 너무도 순진했었다, 너무도. 키로프가 자포로제츠에 관한 문제에서 결코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점을 스탈린이 모 르고 있는 것처럼 일을 진행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원로들을 제거하는 것 은 또 다른 것을 위한 은폐물, 즉 기만전술에 불과했다. 자포로제츠는 누구도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테 니까. 그렇다면 결과는....? 이제 남은 일은 단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키로프 는 최소한 며칠이나 일주일 정도 모스크바에 남아 있어야만 한다. 오르드 조니키드제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 그들이 키로프로 하 여금 모스크바로 오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의 주안점은, 만 일 키로프가 예기치 않게 모스크바에 머문다면 스탈린으로서도 냄새를 맡 고 마음을 고쳐먹고 자포로제츠를 소환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키로프는 11시 직전에 정기총회에 돌아왔다. 오르드조니키드제가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좀 나아졌나? 어떤가? 키로프는 아파트로 들어서면서 부드럽게 물었다. 오르드조니키드제는 자 리에 앉아서 다시 기침을 쿨룩거렸다. 좋지 않아. 전혀 좋아지지 않아. 나와 함께 여기서 며칠간만 묵게나. 자기의 서류가방을 챙기고 있던 키로프가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소린가? 내일 모레면 십이월 일일이야. 당 실무자들에게 보고서를 전달해야지.... 회의에 관한 보고서 말일세. 도대체 그게 뭐 그리 대단하나? 단지 보고서잖나? 오르드조니키드제는 호흡에 곤란을 느끼며 말했다. 추도프나 코다츠키에게 대신 전달하라고 하면 안 되겠나? 잠시만 여기 에 나와 함께 머물러 주게. 세료자. 이번이 우리가 함께 있을 마지막 시간 이 될지도 모르잖나.... 키로프는 그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런 생각일랑 그만하게. 어서 자리에 들어. 그리고 의사를 불러. 그런 종류의 흉부통증은 언제나 최악의 사태를 걱정하게 만드는 법이라네. 어서 원기를 회복해야지 않겠나? 그런데 차를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내가 부르겠네. 오드르조니키드제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나서 옆방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건물 내부의 전화로 차고를 불러서 자신의 운전사인 바라바쉬킨을 찾았다. 바실리 드미트리예비치, 키로프를 정거장으로 모시고 갈 차를 대 주 게. 그리고 손으로 수화기를 감싸쥐더니 나직이 덧붙였다. 절대로 그분이 기차를 타게 해선 안 되네. 알아들었나? 오르드조니키드제는 다시 거실로 되돌아왔다. 그곳에선 이미 자기 짐들 을 다 꾸려 든 키로프가 코트까지 걸치고 선 채로 지나이다 가브릴로브나 와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여기서 나와 함께 며칠만 더 묵었으면 하는데.... 음, 그렇게 안하겠 나? 그럴 수 없네. 이미 말했지 않나. 십이월 일일은...., 행동대원들에 게.... 그때, 아래층 입구에서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짧게 울렸다. 키로프는 먼 저 오르드조니키드제와, 그리고 그의 아내와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였다. 이 친구 말을 들으면 안 돼요. 진료를 받로고 해야 합니다. 그는 마치 친구게게처럼 오르드조니키드제의 아내에게 충고를 하였다. 그리고 서류가방을 챙겨서 서둘러 떠났다. 그때가 11시 반이었다. 차가 출발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바라바쉬킨은 차를 세우고 뛰어내리더 니 자동차 후드를 열었다. 무슨 일인가? 키로프가 물었다. 엔진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세르게이 미노로비치. 곧 고치겠습니다. 기다릴 시간이 없네. 바라바쉬킨이 차를 전차정거장에 너무 가까이 세운 것이 실수였다. 전차 한 대가 정거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4번 전차로 철도역으로 가 는 것이었다. 키로프는 가까스로 전차에 뛰어올랐다. 역무원이 그를 레닌 그라드행 레드애로우 호의 객실로 인도한 것은 기차출발을 불과 1분 남겨 놓은 시각이었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 제 3 부 20 사샤가 집을 나서서 그 전날 보리스와 헤어졌던 장소에 다다랐을 때에도 날은 아직 밝지 않았다. 그는 휘파람을 몇 번 불어 개를 부르며 보리스에 게 자기가 도착한 것을 알렸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는 새벽 부터 하루종일 숲을 뒤지느라 기진맥진하였으나 보리스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떠났음을 의미했다. 그 다음 며칠 동안도 사 샤는 꽤 먼 곳까지 찾아보았다. 눈은 이미 희고 두툼한 베개처럼 가문비나 무 가지 위를 덮고 있었고, 땅과 부러진 나무 위를 마치 흰 밀가루 같은 모양으로 뒤덮고 있었다. 늪지는 이미 얼어붙었다. 사샤는 그 짓을 계속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찾다가 간혹 멈추어 서서 인기 척이 없나 귀를 기울여 보기도 했으나 숲은 고요하기만 하였다. 간혹 그는 큰 나무가 얼어붙으며 내는 소리와 이쪽 가지에서 저쪽 가지로 옮겨 다니 는 잣새의 지저귀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잣새가 흔들어 놓은 가지에 선 흰서리와 잣나무 잎새들, 그리고 솔방울들이 눈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한번은 긴 귀를 등에 찰싹 붙이고 나무 사이를 달려 도망가는 흰 산토끼 를 잡았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작은 다람쥐들을 지나쳤는 데, 그놈들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던지 탁 트인 가지 위에 나와 앉아 앞발 로는 연신 도토리를 굴리며 사샤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껍질을 벗겼다.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가볍게 걷다간, 눈 속의 새앙쥐나 들쥐의 울음소리를 들으려는 듯 가끔씩 멈춰 서곤 하는 여우도 볼 수 있었다. 그놈은 일단 소 리가 들리면 잽싸게 달려가서 마치 개처럼 눈을 헤집어 대곤 하였다. 한번 은 모이를 쪼고 있던 뇌조를 보았다. 그놈은 새로 내린 눈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노간주나무 가지의 잎새나, 아직 채 눈이 덮이지 않은 월귤나무의 새순, 어린 소나무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싹을 쪼아내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사샤는 숲을 헤매었지만, 솔로베이치크는 나타나지 않 았다. 아주 멀리 가버리지 않았다면, 그는 동상에 걸리거나 병이 났을 것 이다. 그렇지 않으면 얼음구덩이에 빠지거나 길을 잃고 굶어 죽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잡히지는 않았다. 만일 잡혔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가 알려졌을 것이다. 탈출도 사건이지만 탈주자의 체포는 훨씬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이 있으면 그 소식은 앙가라 전역에 퍼졌을 테고 사람 들은 도망자를 도와주었거나 숨겨 준 사람, 그리고 그에게 음식을 준 사람 을 조사했을 것이다. 모즈고바로 유배돼 있는 사람들도 솔로베이치크의 탈주에 관하여 이야기 를 해댔지만, 사샤를 제외하고는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사샤 역시 친 분을 넓히지 않았던 관계로 이야기는 일반적 것에 머물렀다. 공통된 생각 은 그는 희망이 없고 아마 죽었으리라는 것이었다. 비록 천신만고 끝에 시 베리아를 벗어났다고 해도, 법적인 신분보장이 없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솔로베이치크의 탈출사건이 그런 식으로 마무리되지는 않 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한 사건이 조사되지 않고 지나간다 면, 그것은 또 다른 탈주를 조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탈주자를 처벌 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처벌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정착한 곳으로부터 모든 생계수단을 빼앗긴 채 추방 당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탈주사건에 대하여 증언을 해야 하고, 스스로가 유사한 사건의 발생을 방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로즈코보의 보리스가 살던 마을의 유배자들은 모두 얼마 안 있어 다른 마을들로 분산되어 버렸다. 모즈고바로 두 사람이 보내졌다. 한 사람은 카유로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1905년 이래로 당원이었다고 전해지는 여자였 다. 그녀는 즈뱌구로라는 별난 이름을 가졌는데, 리쟈 그리고리예브나라고 불렸다. 촌스럽고 뻐드렁니까지 있는 매력없는 그녀에겐 타라시크라는 여 섯 살 먹은 어린 소년이 있었다. 썰매를 타고 온 그녀는 마부를 밖에 세워 두고 사샤가 살고 있는 오두막 으로 들어왔다. 솔로베이치크에게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어디 방을 구할 데가 없을까 요? 생각해 봐야겠군요. 좀 들어와 앉으시죠. 사샤가 대꾸했다. 마부를 보내야겠어요. 그녀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썰매에는 쇼올에 싸인 채 타라시크가 앉아 있었다. 리쟈 그리고리예브나가 아이를 안아내렸다. 사샤는 끈으로 얽어맨 두 개의 쭈그러진 옷가방을 썰매에서 내리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썰 매가 출발하자 말등 위로 떨어지는 채찍소리가 들려왔다. 리쟈 그리고리예브나는 타라시크의 쇼올을 벗기고, 그 안에 모피코트 같 은 외투와 모피모자를 벗겨 주고는 긴의자에 가서 앉으라고 말했다 타라시 크는 의자에 앉자 사샤를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사샤는 부엌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주인집 여자를 들어오게 하였다. 주 인집 내외 둘이 모두 거실로 들어왔다. 그 늙은 여자는 꼬마를 쳐다보았 다. 손자인가 보죠, 얘는? 그래요. 리쟈 그리고리예브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이가 있으면 방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워낙 장난이 심해 놔서, 애들 은.... 그 아인 장난을 치지 않아요. 리쟈 그리고리예브나가 말했다. 누가 알겠어요. 그 늙은 여자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전에 아이들이 딸린 유배자들도 여기 분명히 있었잖아요? 사샤 가 물었다. 늙은 여자는 대답은 않고 그 꼬마만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불러요? 그 아이 이름은 타라스예요. 브류하노프네 집에서 아마 세를 놓는지 몰라요. 영감이 말했다. 그 집 딸이 머리가 약간 이상하긴 하지만, ....꼬마를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 리쟈 그리고리예브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브류하노프네 집 말고 다른 곳은 없나요? 늙은 여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자기 영감에게 물었다. 시지흐스 찌 집은 어떨까요? 그 사람, 목구멍에다 짜릿한 걸 들어붓는 것을 좋아하지, 됐어. 영감 이 됐다는 듯이 말했다. 안 돼요. 안 돼. 마음에 안 드는군요. 타라시크는 술 취한 사람을 무서 워해요. 너무 따지는 게 많군요. 늙은 여자는 안 되겠다는 듯이 내뱉곤 사샤 쪽을 보고 말했다. 베르호투로프네 집에 한번 가보세요. 선생이 살고 있 는 집 바로 다음집 말예요. 가는 도중에 리쟈 그리고리예비치가 말했다. 애를 데리고 방을 구한다 는 것이 쉽지 않군요. 애가 성가시게 구는 것도 아인데 말이에요. 내가 떠 나버리면 자기들 손에 아이가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나 봐요. 당국에서 이 아이를 어린이 집 에 보내기까지 일이 년쯤 걸리겠죠. 그러면 신청서 도 내고 편지도 써야 할텐데...., 그치들은 쓸 줄도 몰라요. 베르호투로프의 집에서는 한달에 30루블을 요구했다. 리쟈 그리고리예브 나의 표정에서 사샤는 그녀가 즉각 거절하리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는 얼른 그녀의 팔꿈치를 잡아끌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오늘 내로 짐을 옮기죠. 리쟈 그리고리예브나는 흡족하지가 않았다. 내 대신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나로서는 그만한 돈을 지불할 능력도 없고 또 그럴 마음도 없어 요. 제가 동의했다고 해서 당신이 거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언제든 지 마음을 바꿀 수 있잖아요. 제가 묵고 있는 곳에서 몇 시간 머물면서 휴 식도 취하고 뭘 좀 드세요. 더 싼 곳을 찾으면 직접 보시고 마음에 드시는 지 여부를 결정하세요. 그리고 그런 곳이 없으면 우리가 찾아보는 동안만 이라도 베르호투로프네 댁에서 머물면 되지 않겠어요? 베르호투로프네 집은 안 되겠어. 그녀가 대답했다. 저한테는 지금 이 십오루블밖에 없어요. 어쩜 그런 값을 부를 수가 있을까요? 로즈코보에 있 을 때는 십오 루블밖에 물지 않았었는데. 여기가 조금 비싸긴 해요. 그도 맞장구를 쳤다. 로즈코보는 파손된 도로 저 너머에 있지요. 하지만 모즈고바는 중심지 인 케쥐마 바로 옆이거든요. 그래서 여긴 생활비가 더 비쌉니다. 저도 이 십 루블을 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꼬마 몫으로 십 루블을 더한 거예 요. 제가 돈을 좀 빌려 드리겠어요. 나중에 갚으시면 됩니다. 당신 돈을 빌지 않겠어요. 그녀는 고집을 부렸다. 야로슬라블에 있는 내 사촌이 돈을 보내 줍니다. 하지만 요새는 우편배달이 엉망이잖아요. 내 가 다니는 건 어떻구요. 편지에 주소가 다시 씌어져 있을 때에만 편지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 수 있어요. 반송이 됐건, 답장이 됐건 육개월 안에 받아 볼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죠. 로즈코보에서는 바느질을 해서 생활 비를 마련했었는데, ....거기 집주인한테 재봉틀이 있었거든요. 여기에도 그런 걸 구할 수 있을까요? 여긴 옷 잘 차려 입은 여자들이 수두룩하답니다. 사샤가 다정다감하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지방 지식층과 경쟁을 벌이고 있죠. 그리고 많은 고 객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재봉틀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별 수 없을 거예요. 로즈코보와 비슷하겠죠. 거기선 품 삵으로 계란이나 신크림, 아니면 생선을 줬었죠. 내 사촌이 매달 이십 루 블씩을 보내 오는데 그게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전부예요. 사샤는 리쟈 그리고리예브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집주인 여자에 게 그녀와 타라시크에게 차를 좀 대접해 주라고 부탁했다. 그동안에 그는 지다와 이야기를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마을사람들 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무언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몰랐다. 지다가 사는 오두막의 문은 열려 있었으나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난로 안에서 장작이 연기를 내면서 타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교재와 문제집들 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방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학생들이 교재를 집으로 가져가도록 허용하지 않고 숙 제를 학교에서 하도록 시켰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집에선 절대로 숙제나 공부 따위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로는 우유사발을 덮는가 하면 문제집은 찢어서 담배를 말아 피우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린아이들이 갈겨쓴 글씨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시선이 천으 로 제본된 두꺼운 공책에로 이끌렸다. 그것은 그가 모스크바에서 대학 다 닐 때 가지고 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공책이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것 을 펼쳤다. 그는 읽지 않았지만 8월, 9월, 10월, 11월 등등, 표시된 날짜와 사샤를 의미하는 이니셜 S'와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를 뜻하는 'V.S.' 등의 글 자들, 그리고 언뜻언뜻 눈에 들어오는 ,어제 그가 말했다.... , 그는 용 감하고도 고상하다.... 등의 문구를 봐서 사샤는 그것이 지다의 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는 깜짝 놀라 공책을 덮었다 - 그는 다른 사 람의 일기를 훔쳐보고 싶지 않았다. 아직 그가 모즈고바에 있었다면, 그가 옛날 시절이었다면...., 결코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지 않았으리라. 하지 만 여기, 현재의 상황으로는.... 결국 그녀가 그에 대해서 쓰고 있었다는 사실은....! 무엇에 관하여 쓴 글일까? 왜 그런 글을 종이에 옮겨야 했을 가? 그는 거기에 무슨 내용이 씌어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가 한 말, 그가 한 일거수일투족이 잘못 해석됐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디서든 터져 나올 수 있는 법이었다. 심지어 그가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도, 그는 과연 그녀 에 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녀는 왜 여기 있는 것일가? 그녀는 도대 체 이 수렁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방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용감하고 고상하다 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가 솔로베이치크 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그 탈주자를 알페로프에게 넘겨주지 않았다는 사6 실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그 단 두 마디만으로도 모즈고바에 있는 모든 유배자들을 다른 곳으로 걷어차 보내 버리기에 충분하리라. 그가 그녀를 신뢰할 수 있는 까닭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 론 누구를 해꼬지하려고 마음먹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렇다면 왜 그런 글 들을 썼을까? 도대체 현재의 상황을 이해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애 일기를 탁자 위에 놓아 두었을까? 우연일까? 그것을 치운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던 것일까? 단지 부주의한 탓일까? 그는 다시 방안을 거닐다가 통 나무에서 나무껍질을 뜯어내어 난로 안으로 던져 넣었다. 나무껍질은 불꽃 을 내며 오그라들더니 이내 재가 되어 사그라들었다. 그는 그 일기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녀가 그에 관하여 쓴 글을 읽고 그녀의 진면목들을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는 고상 함과 불명예 사이의 경계를 넘어버리는 셈이 될 것이다. 어쨌든 너무 시간 을 많이 끌었다. 그가 너무 오래 머뭇거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가 마 당을 가로질러 와 현관 앞에서 부츠를 문질러 흙을 터는 소리를 듣게 되었 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와서 그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대답은 제쳐놓고 그는 일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뭐요? 그녀는 그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고기를 느꼈고 그제야 그가 공책을 펼 쳐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잠시 당혹해 하더니 이윽고 맑고 시 원스런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 일기장이에요. 왜 일기를 쓰고 있소? 그녀는 천천히 대답했다. 제가 쓴 내용 중에서 언짢은 것이라도 있었나 요? 난 다른 사람들의 일기장을 엿보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은 분명히 나에 관한 일들을 썼지? 예, 그랬어요. 그는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 있는 목적이 무엇이지, 지 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묻고 있지 않소?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소? 당신께 결코 말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긴, 그건 당신 문제요. 하지만 난 당신이 나에 대해 쓴 내용을 알아 야겠소. 그녀가 일기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당신이 직접 읽어보세요. 난 남의 일기장을 읽지는 않겠소. 하지만 나에 관해서 쓴 페이지들을 찢어서 여기 이 난로에다 태워 주시오. 그리고 다신 나에 관한 말들을 쓰 지 마시오. 언젠가 당신께 상황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소. 당신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 유감스럽소. 그녀는 시무룩해져서 일기장을 몇 페이지를 접어서 사샤에게 건네주었 다. 그게 제가 당신에 관해서 쓴 것이에요. 읽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걸 찢어서 태워 버리기만 하면 돼요. 그도 자신이 무례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달리 할 방도가 없었다. 솔로베이치크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이미 충분히 고통 을 받고 있던 사람들이 비싼 대가를 치렀다. 사샤는 더 이상 그 누구라도 지다의 지각없는 행동으로 인하여 고통받게 할 수는 없었다. 지다는 난로께로 가서 철제뚜껑을 열었다. 그녀는 일기장에서 한 페이지 를 찢어내어 그것을 읽고는 구겨서 불 속으로 던져 넣었다. 두 번재 페이 지도, 그리고 셋째, 넷째 페이지도.... 사샤 쪽으로 등을 돌리고 끓어앉은 채, 그녀는 일기장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찢어 내어 불 속으로 던져 넣는 행위를 계속하였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씌어진 내용을 읽지는 않았다. 일기의 마지막 부분은 사사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은 무감각해져 있었고 일기장의 끝까지 끊임없이 찢어 넣었다. 아이, 더워.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그제서야 그는 그녀가 겉옷을 없을 겨를도 없었다는 사실, 그래서 여전 히 모피코트에 펠트부츠 그리고 쇼올까지, 그녀가 방안에 들어설 때 걸치 고 있던 것을 고스란히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그는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꼈고 자신을 책망했다. 그건 분명 혐오스럽고 지독한 일이었다. 그는 더 이상 그가 벌여 놓은 일기장 찢기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지다는 일어서서 남은 일기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으로 애써 웃음을 지었다. 이게 다예요. 사샤는 그녀를 남겨두고 나왔다. 방금 그 장면은 지독했다. 그건 혐오스 럽고 구역질나는 일이었지만 그로서는 달리 어쩔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는 새로운 법에 저촉을 받으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지다도 그 를 이해하고 그래서 그들이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페쟈의 가게로 가서 방이 있나 물어 보았다. 그는 투숙자가 여섯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있으며 바느질을 아주 잘하고 집주인이 재봉틀을 가 지고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사람은 라리스카에게 보내면 어떨까. 그 여잔 혼자인데다 재봉틀도 가지고 있어. 그녀는 애 옷을 즐겨 입는데 바느질할 줄을 몰라. 그래서 그 집엔 언제나 웃 짓는 사람이 있지. 그 여인은 이십 루블밖에는 낼 수 없는데. 라리스카라면 십오 루블로 충분해. 페쟈는 손바닥으로 물결을 어루만지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특히 그 여자가 라리스카의 옷을 지어 준다면 말야. 게다가 잘하면 마 루샤의 일거리도 맡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라리스카가 응할까? 내가 말한다면 응할 걸. 일은 매듭지어졌고 사샤는 리쟈 그리고리예비치의 짐을 라리스카의 집으 로 옮겨 주었다. 그리고 거기 있는 재봉틀을 점검해 보고 기름칠을 했다. 그것은 구형이었지만 쓸만한 것이었다 - 싱어 사 제품이었으니까. 행운을 빕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를 부르세요. 사샤가 말했다. 그는 솔로베이치크가 탈주한 경위에 대하여 상세히 알고 싶었으나 리쟈 그리고리예브나는 거기에 대하여 일절 말이 없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다는 것이 분별없는 짓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사샤가 라리스카 집에다 리쟈 그리고리예브나가 지낼 거처를 마련해 주 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늘상 그렇듯이 씩 웃으며 말했다. 늙은 여자의 원조자에 매춘부라 - 그 여자는 애를 데리고 갈 만한 곳이 없었군. 어찌 되었건 타라시크가 누군지 알아? 자기 손자라고 그러던데? 가족같이 닮은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지만. 걘 이미 죽은 정착자 중의 어떤 작자의 아들이지. 부농 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사샤는 깜짝 놀랐다. 그럼 그 여자가 여기서, 그 애를 여기서 기르기로 했단 말야? 정말 대단한 일이군.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무언가에 매달려 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르지.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건 고상하고 인간적인 일이야. 그리고 개인 적으론 내게 하나의 희망이 되기도 하구. 이런 곳에서조차 사람들이 가장 인간적 가치를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 말야. 그런 가치들 중의 하나가 바로 자비심이지. 그건 지금의 현실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생각나게 하는구만. 브세볼로 드 세르게예비치가 말했다. 분명히 리쟈 그리고리예브나는 자기가 당의 직원이었던 시절에 부농인 타라시크의 부모의 재산을 몰수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보낸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그녀 자신이 시베리아에 있으면서 그때 그 일로 인한 고통과 수탈을 감내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건 속죄의식을 강 화시키는 효과를 가지는 건 아닐까? 난 기독교적 신학에 관해서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사샤가 대꾸했다. 내 생각에는 리쟈 그리고리예브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종교나 사상을 넘어선 어떤 것이 있다고 봐. 이를테면 타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심성 같은 것 말야.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그러한 일이 바로 여기 와 같은 곳에서조차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희망을 주는군. 이런 사 람들 속에도 아직 인간적 정서가 말살되지 않았고,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사샤가 리쟈 그리고리예브나에게 돈을 빌려 줄 당시 그에게는 30루블이 있었다. 그는 담배와 등유를 살 몫으로 몇 루블을 남겨 놓고도 싶었다. 그 리고 빡빡한 생활비의 수지를 맞춰 보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최소한 그녀를 도와야 했다. 어떻게 됐든 간에 집주인에게 11월이나 12월 말경까 지는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빨라야 그때쯤에야 썰매길을 따라 우편배달이 재개될 테니까. 그가 예상했던 대로 12월 초순경에 우편물이 왔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거기엔 기다리던 것이 잔뜩 들어 있었다. 돈도 있었고 바랴의 필체로 적힌 주소가 붙어 있는 겨울옷 꾸러미와 어머니가 보낸 편지다발, 그리고 신문 묶음도 있었다. 거기에 찍혀진 우체국 소인은 8월과 9월, 그리고 간혹 가 다가 11월로 찍혀 있기도 했는데, 그것은 곧 도로가 파손되기 전에 일부가 반송되었다가 나중에 부친것들과 함께 보내졌음을 의미했다. 앞으로 더 올 것이 남아 있는게 틀림없었다. 그는 1주일이나 2주일 정도는 즐겁게 보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만했 다. 12월은 즐거운 시간이 될 듯했다. 언제나처럼 그는 편지들을 우체국 소인에 있는 날짜별로 늘어놓고 차례 대로 읽었다. 어머니는 이렇다 하게 새로운 소식을 적어 보내진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수집할 만한 뉴스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어머니 는 이모와 바랴의 안부인사도 전해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나 마르크, 혹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는 매번 봉투를 뜯을 때마다 바랴 가 쓴 단 몇마디의 글이라도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희망으로 마음 을 졸였었다. 이미 그녀에게 안부를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지를 읽을 때마다 보이는 것은 바랴가 안부 전하더라 라는 어귀뿐이었 다. 그리고 짐꾸러미와 신문말이 위에 적힌 그녀의 깔끔하고도 시원시원한 글씨가 고작이었다. 결국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이제 맨 마지막 남은 편지의 겉봉을 뜯고 내 용을 훑어 내려갔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사샤. 저는 지금 당신 어머니 댁에 있답니다. 우리는 당신 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어머님께서는 무고하세요. 저는 요즘 모스크바 계획에 관한 일을 하고 있어요. 당신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제가 얼마나 알고 싶어하는지 모르실 거예요. 바랴 그는 마지막 줄을 다시 읽었다. 당신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제가 얼마나 알고 싶어하는지 모르실 거예요.... 오 하나님! 그야말로 얼마나 그녀의 소식을 학수고대했던가? 그가 얼마나 그녀를 보고 싶어하는지, 그녀의 목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토닥거려 주고, 그녀를 어 루만져 주고 싶어하는지.... 제가 얼마나 당신을.... 이라니! 그는 찡하 게 번져 오는 사랑의 아픔과 함께, 왈칵 그녀에게로 기울러지는 마음을 달 랠 길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쿵쿵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안을 서 성거리며 자신을 억제하려고 하였다. 그는 신문을 집어들고는 8월달과 9월 달에 있었던 사건들을 읽어보려고 하였지만, 불과 몇십 초가 채 지나기 전 에 다시 바랴의 편지를 집어들고는 제가 얼마나 당신을.... 라고 씌어 있 는 구절을 읽고 또 읽고 하였다. 아! 모든 것이 여전히 내 앞에 남아 있다니! 바랴는 여전히 자기의 사랑 이었고 그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바랴, 어머니, 그를 감싸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사고와 사상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작고 네모진 창을 통하여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 다. 그의 오두막은 불을 잘 때어 따뜻하고 아늑하였다. 걱정은 이제 그만! 어차피 사람은 살게 되어 있으니까!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고통이란 더욱 비참하지 않은가. 그때 누군가 현관에 들어서서 발을 탁탁 구르며 나뭇가지로 만든 비로 펠트부츠의 눈을 떨어내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 가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와, 옷을 좀 벗지. 사샤는 그를 보자 반색을 하며 말했다. 우편물을 훑어보고 있는 중인가? 응, 많이 받았어. 자네도 역시 많이 받았겠지? 그래, 뭐 좀 색다른 가라도 있나?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질문엔 대답을 않고 역시 질문을 던져 왔다. 특별한 건 없고.... , 그저 어머니와 친구들로부터의 편지야. 이것들을 받아보니 뿌듯하군. 그럼, 그럼, 그럴 테지.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뭔가 걱정거리가 생긴 모양인데. 일이 고약해졌어. 사샤. 아주 고약해. 그는 끊임없이 손바닥을 비벼대면서 방안을 서성대고 있었다. 사샤의 머리를 제일 처음 스치는 생각은 솔로베이치크였다 - 그가 체포 된 것이 틀림없나? 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는 그의 바로 앞에 와서 멈추어 서서 말했다. 키로프가 12월 1일에 레닌그라드에서 피살당했네. 키로프라구? 누가 그를 살해했대? 사샤는 알 수 없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나도 자세한 것은 몰라. 정부발표는 이렇더군. 12월 1일 16시 30분, 레닌그라드 시의 스몰리 연구소에서 키로프는 노동자계급의 적대적인 사람 들이 사주한 암살자의 손에 의해 피살됐다. 살해자는 체포되었고 그의 신 원은 곧 밝혀질 것이다. 신문을 봤나? 사샤가 물었다. 신문은 보지 못했어. 하지만 이건 정부측의 설명이야. 그 다음엔 이런 말이 있었지 그 살인자는 니콜라예프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 다음엔 또 이런 말이 있더군. 테러의 사례에 있어서는 처리기간이 10일이 지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피고인은 할 말이 없는 거야. 다시 말해서, 변론이나 항소나 용서 같은 건 아예 없단 말이야. 그 사람들은 판결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총살을 당한다는 거지. 그래, 그렇다구. 사샤! 그 암살자는 노동 자계급의 적대적인 사람들의 사주를 받았다 라고 했겠다. 나쁘지 않군, 안 그래? 그런 말들이 뭔가 그리 중대하나? 그것들이 문제의 핵심은 아닌 것 같 은데. 그게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구? 브세볼로드 세르게예비치가 대꾸했다. 그 살인자는 노동자계급의 적대적인 사람들에 의해 사주되었다 고 했겠 다. 그런데도 그 살인자의 신원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라고 했 단 말씀이야. 그게 말이 되나? 그 사람의 신원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그런데도 누가 그를 사주했는지 안다고? 이건 말도 안 돼. 암, 납득이 가 질 않구말구. 하지만 뒤집어보면 명쾌하게 납득이 될 수도 있지. 사람들은 키로프가 훌륭한 사람이고 훌륭한 연설자에다 당이 아끼는 인 물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도대체 누가 감히 그를 해치려고 손을 뻗친 걸 까? 브세볼로드 세르게에비치는 긴 의자에 앉아 머리를 뒤로 젖혀 벅에 기대 었다. 누구든 하긴 한 거지. 사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암울한 시절이 바로 목전에 와 있다는 것이야. 1966-1983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