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막심 고리키 장편소설 - 차 례 - 제 1부 제 2부 리얼리즘의 고전적 대가 막심 고리키 제 1부 1 매일 변두리의 노동자 부락에서는 연기와 기름 냄새가 풍기는 공기 속에서 공장의 사이렌이 울린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잠이 덜깬켄 얼굴로 마치 겁을 집어먹은 바퀴벌레처럼 조그만 회색 집에서 거리로 뛰쳐 나온다. 춥고 어두컴컴한 속에서 그들은 포장되지 않은 거리를 따라 높은 돌로 만든 우리와 같은 공장을 향해서 걸어간다. 그 공장은 수십 개의 기름에 전 사각등이 흙탕길을 비추면서 위협적인 모습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흙탕길은 발 밑에서 철벅철벅 하고 소리를 냈다. 졸리운 듯한 목소리의 외침이 울리고, 거친 고함소리가 밉살스러운 듯이 공기를 짓 찢는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향해서 다른 울림이, 기계의 묵직한 소음이나 증기의 쥐어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높고 검은 굴뚝이 굵은 몽둥이처럼 부락 위에 우뚝 솟아 있어서 음침하고 위엄있게 보였다. 저녁때, 해가 지고 그 붉은 빚이 유리창에 희뿌옇게 반사할 무렵 공장은 타다 남아 마치 폐물이 된 쇠부스러기처럼 사람들을 내팽개친다. 사람들은 검댕 투성이가 된 얼굴을 하고, 기름 냄새를 뿌리고 허기진 이빨을 번쩍이면서 다시금 거리를 걸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에는 활기와 기쁨이 울리고 있다. 노동의 고역이 오늘 몫 만큼은 끝나고, 집에서는 저녁 식사와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를 공장에게 빼앗겨 버리고, 기계는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의 힘을 사람들의 근육 속에서 빨아 들여 버렸다. 이렇게 일생 가운데서 하루가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리고, 사람들은 그 무덤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자기 바로 옆에 휴식의 즐거움과 연기가 자욱한 선술집의 기쁨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다. 쉬는 날에는 10시 경까지 잔다. 그리고 건실한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제일 좋은 외출복을 입고 미사에 참여하러 가면서 젊은이들이 교회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욕을 한다. 교회에서 돌아오면 고기 만두를 먹고, 또 다시 드러누워서 저녁때까지 잠을 잔다. 몇 년 동안이나 쌓이고 쌓인 피로 때문에 사람들은 식욕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먹기 위해서 불이 붙는 것 같은 독한 보드카를 벌컥벌컥 들이켜 위장에 자극을 준다. 밤에는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배회한다. 그리고 방수 덧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길이 말라 있어도 그것을 신고, 우산을 가지고 있으면 해가 쨍쨍 나도 그것을 들고 다닌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물건들이었다. 길에서 만나면 공장과 기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공장장의 험담을 한다. 얘기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오로지 일에 관계가 있는 것들 뿐이었다. 이런 따분한 나날의 단조로움 속에서는 어쩌다 중요한 얘기가 될 불꽃도 좀처럼 번뜩이는 일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마누라와 말다툼을 하고 종종 주먹질도 했다. 젊은 사람들은 선술집에 눌러앉든가, 돌아가면서 밤놀이의 모임을 가졌다. 아코디언을 켜고 음탕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상스러운 얘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 노동으로 지쳐 버린 사람들은 금세 술에 취하고, 모두의 가슴 속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병적인 초조감이 솟아을라왔다. 그들에겐 배출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초조한 감정을 털어놓을 계기만 있으면 그것을 꽉 움켜잡고,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야수와 같은 증오를 가지고 맞붙었다. 피를흘홀리는 싸움이 일어났다. 때로는 심한 상해 사건으로 끝나거나 드물게는 살인 사건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생활로 사람들은 원한을 품게 되었다. 그것은 회복하기 힘든 근육의 피로와 마찬가지로 뿌리가 깊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마음의 병을 아버지들로부터 물려받고 태어났다. 그 병은 검은 그림자처럼 무덤까지 그들을 따라다니고, 그 끝도 없는 잔인함으로 혐오를 일으킬 행위를 일생 동안에 몇 차례나 야기시켰다. 쉬는 날 밤이면 젊은이들은 옷을 갈기갈기 찢기우고, 진흙과 오물을 온몸에 묻힌 채 상처 투성이의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동료를 두들겨 팬 뒤 자랑을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두들겨 맞고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비참한 모습이었다. 때로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젊은이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길거리의 울타리 밑이나 선술집에서 정신을 잃고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것을 찾아내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 보드카로 흐물흐물해진 자식의 몸을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그 뒤 신경을 써서 그들을 잠재우지만, 그것은 다음 날 아침 일찍 화가 난 듯한 사이렌 소리가 공중에 흐를 때 전날처럼 일터로 내보내기 위해서였다. 자식들은 지독하게 욕을 먹거나 두들겨맞거나 했지만, 젊은이들의 음주나 싸움은 노인들에게는 당연한 현상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들 역시 젊었을 때는 술을 마시거나 싸움질을 해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얻어 맞곤 했던 것이다. 생활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탁한 흐름이 되어서 어디엔가로 천천히 훌러갔다. 모든 생활은 옛날부터의 흔들리지 않는 습관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누구 한 사람 그 생활을 바꿔 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때때로 이 부락에 어디에선가 타관 사람이 찾아오는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은 타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의를 끌었다. 자신들이 일을 하고 있던 곳 이야기로 가벼운 피상적인 홍미를 불러일으켰으나, 곧 그 신기함도 사라져 버리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노동자의 생활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무슨 이야깃거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따금 그런 사람들 중에 이 부락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을 얘기하는 자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는 마을 사람들이 말다툼은 벌이지 않고 관심있게 들었다. 그러한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분노를,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렴풋한 불안을 일으키게 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엇인가 뚜렷하지 않은 것을 기다리게 만드는 가벼운 희망의 그림자로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방해가 되는 쓸모없는 불안을 떨쳐내 버리려고 한층 더 심하게 술을 마셔댔다. 타관 사람들 속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면 부락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영문모를 경계심을 품었다. 그들은 그 사람이 가슴 답답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생활의 진행을 파괴해 버릴 무엇인가를 던져 넣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생활이 평범하게 지속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좋아지기를 기대하지 않고, 일채의 변화는 오로지 압박을 증가시킬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락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피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어디엔가로 사라져 갔다. 또 공장에 남아 있어도, 그들은 부락민의 단조로운 대중과 하나로 융화하지 못하면 구석에 따로 떨어져서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생활을 50년 가량 보내고 그리고 죽는 것이다. 2 자물쇠공인 미하일 블라소프 역시 이와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몸에 털이 많고 성미가 까다롭고, 조그만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눈은 짙은 눈썹 밑에 냉소적인 엷은 웃음을 띄우고서 수상쩍은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공장 최고의 자물쇠공으로, 부락 전체에서 제일 힘이 센 미하일 블라소프는 상사에게는 버릇없이 행동했기 때문에 수입이 적었다. 쉬는 날마다 누군가를 두들겨패서 사람들은 그를 싫어하고 두려워했다. 그도 또한 얻어맞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블라소프는 상대방이 달려드는 것을 보면, 돌멩이나 판자 조각이나 쇠 조각을 집어들고 양 발을 넓게 벌린 채 잠자코 적을 기다렸다. 눈에서 목까지 검은 구레나룻이 돋은 그의 얼굴과 털 투성이의 양손에 모두들 겁을 집어먹었다. 특히 그의 눈은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조그맣고 날카로운 그 눈은 마치 강철제 송곳처럼 상대방을 꿰뚫어서, 그 시선과 마주치면 누구나 힘껏 두들겨패려고 대기하고 있는 포악한 힘을 느켰다. "썩 비켜나지 못하겠어, 이 개새끼야 !" 미하일 블라소프는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의 짙은 털 사이에서 커다란 누런 이빨이 번뜩였다. 그러면 사람들은 겁먹은 듯이 멀리서 욕설만을 퍼부으면서 흩어져 가버렸다. "이 개새끼들아 !" 그는 그들의 등에다 대고 욕을 퍼붓는다. 그러면 그의 눈에는 송곳과 같은 날카로운 엷은 웃음이 번뜩였다. 그리고서 그는 도전하듯이 목을 똑바로 세운 채 뒤를 쫓아가면서 외쳤다. "자, 죽고 싶은 녀석 없어 ?" 죽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말수가 적었다. 그리고 개새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는 상사도 경찰도 그렇게 부르고, 아내를 향해서도 그 문구를 썼다. "개새끼 ! 당신은 보이지도 않아? 바지가 찢어져 있쟎아 !" 아들인 파벨이 14세 때의 일이었다. 블라소프는 아들의 머리칼을 잡고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망치를 집어들고 말했다. "건드리지 마세요." "뭐라고?" 아버지는 자작나무의 그림자처럼 아들의 훤칠하게 키가 큰 모습에 다가가서 물었다. "그만두라구요 !" 파벨은 말했다. "이제 더이상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망치를 휘둘러댔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털 투성이의 손을 등 뒤로 돌리고는 비웃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다." 그리고는 깊이 한숨을 내쉬고 나서 덧붙였다. "켓, 이 개새끼가..."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미하일 블라소프는 아내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더이상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하지마. 파벨이 당신을 먹여 살려 줄 테니까." "그럼, 당신은 모두 마셔 버릴 생각이우?" 그녀는 큰 맘 먹고 물었다.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야. 개새끼 ! 나는 첩을 둘 생각이야." 그는 첩을 두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거의 2년 동안,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아들에게는 눈길도 보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털 투성이의 커다란 개였다. 개는 매일 그를 공장까지 전송해 가서 저녁때까지 문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쉬는 날마다 블라소프는 선술집 순례를 하러 나갔다. 그는 마치 누군가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처럼, 그 눈으로 사람들의 얘기를 중단시키면서 잠자코 걸어갔다. 그리고 개도 또한 커다란 탐스러운 꼬리를 늘어 뜨리고, 하루 종일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술이 취해서 집에 돌아와 저녁 식탁에 앉아서 자신의 밥을 덜어서 개에게 주었다. 그는 그 개를 때리지도 고함치지도 않았지만, 한 번도 쓰다듬어 주지는 않았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아내가 바로 상을 치우지 않으면, 그는 식탁 위의 식기를 방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보드카 병을 치켜들고 벽에 등을 기대고서는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감은 채, 땅으로 기어들어갈 것만 같은 우울한 목소리로 노래를 웅얼거렸다. 서글프고 혐오스러운 목소리의 울림이 그의 콧수염에 엉킨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면, 자물쇠공 은 굵은 손가락으로 턱 수염과 콧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노래를 했다. 노래의 가사는 무엇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김뼈진 것으로, 가락은 겨울에 늑대가 멀리서 짖어대고 있는 것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병 속의 보드카가 없어질 때까지 노래를 계속했다. 그 뒤에는 의자 위에 드러눕든가, 아니면 식탁에 엎드린 채 사이렌이 울릴 때까지 잠에 끓아떨어졌다. 그러면 개는 그의 옆에서 자곤 했다. 그는 탈장으로 죽었다. 5일 가량 그는 온몸이 새까맣게 되어서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쳤다. 굳게 눈을 감은 채 이빨을 갈며 이따금 아내에게 말했다. "쥐약을 좀 줘, 독약을 먹여 달라구..." 의사는 미하일에게 따뜻한 물로 습포를 하라고 말하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즉시 입원시키라고 말했다. "썩 꺼져 버려! 나는 혼자 죽을 거야. 개새끼 !" 하고 미하일은 쉰 목소리로 악을 썼다. 의사가 돌아간 다음 아내는 수술을 하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설득하기 시작했다. 미하일 블라소프는 주먹을 움켜쥐고 겁을 주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낫는다면 당신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 텐데 !" 그는 다음 날 아침 사이렌이 출근을 독촉할 때 죽었다. 관 속에 누운 그는 입을 벌리고 있었으나 눈썹은 화가 난다는 듯이 찌푸리고 있었다. 아내와 아들과 개와 공장을 쫓겨난 술주정뱅이 노인인 다닐로 베소푸쉬코프와 몇 명의 부락 거지들이 그를 장례지냈다. 아내는 조그만 목소리로 울었다. 파벨은 울지 않았다. 부락 사람들은 거리에서 관을 만나자 멈춰 서서 성호를 그으면서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저 작자가 죽었으니 펠라게야는 더 할 수 없이 기쁘겠군, 그래." 개중에는 그 말을 바로잡아 주는 자도 있었다. "죽은 게 아니라, 뒈진 거라구!" 관이 묻히고 사람들이 떠나간 뒤에도 개는 홀로 남아 파헤쳐진 새 흙 위에 앉아서 오랫동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며칠 지나 개는 누군가에게 살해 당했다. 3 아버지가 죽고 2주일 가량 지난 일요일의 일이었다. 파벨 블라소프는 만취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비틀비틀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오자 아버지가 한 것처럼 식탁을 주먹으로 두드리면서 어머니를 향해 고함쳤다. "밥 줘 !" 어머니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아들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안았다. 아들은 한 손으로 어머니의 어깨를 떠밀면서 소리쳤다. "엄마 ! 빨리 달란 말야 !" "넌 바보로구나 !" 어머니는 거역하는 아들을 제지하면서 서글픈 듯이, 그러나 상냥하게 말했다. "그리고 담배도 피울 거야, 아버지의 파이프를 달란 말야." 돌아가지도 않는 혀를 힘들게 움직이면서 파벨은 중얼거렸다. 파벨은 처음으로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보드카로 몸은 약해졌으나 의식은 없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머리 속에서는 '내가 취한 것일까? 정말 취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쿵쿵 울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머니의 마음씀이 거북스러웠으나 그 눈에 담겨 있는 슬픔에 마음이 아팠다. 울고 심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서 실제 이상으로 취한 척 해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손으로 그의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얘야, 이런 짓은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게다." 파벨은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심한 구토가 가라앉자, 어머니는 그를 침대에 눕히고서 창백해진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 주었다. 술은 어느 정도 깼으나 주위의 것들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입 안에서는 고약하고 쓴맛이 느껴졌다. 파벨은 속 눈썹 너머로 어머니의커다란 얼굴을 바라보며 두서없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군. 다른 녀석들은 술을 마셔도 끄떡도 없는데 나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만 같고..." 어딘가 먼 곳에서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어떻게 이 에미를 먹여 살릴 수 있겠니 ?" 그는 눈을 꽉 감고 말했다. "모두들 마시고 있다구요." 어머니는 괴로운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선술집 밖에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너는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네 몫까지 아버지가 실컷 마셔 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를 충분히 괴롭혔으니까. 이제 너는 이 에미를 불쌍하게 생각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안 그러냐?" 슬픔에 잠긴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파벨은 아버지가 살아 있었을 때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집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았고 입을 다물고 살았으며, 언제나 얻어맞을까 봐 두려움에 떨며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는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는 것을 피하느라고 최근에는 그다지 집에 있지 않았고, 어머니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차츰 술이 깨면서 뚫어질듯이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키가 크고 등이 약간 굽어 있었다. 오랫동안의 노동과 남편의 구타에 시달린 어머니의 몸은 언제나 무엇에 부딪칠까 봐 겁을 냈고,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깊게 주름이 새겨지고 부어오른 것 같은 폭이 넓은 달걀 모양의 얼굴에는 부락의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불안하고 서글퍼 보이는 어두운 눈이 빛나고 있었다. 오른 쪽 눈썹 위에는 깊은 상처 자국이 있기 때문에 눈썹은 약간 위로 치켜을라가 보였다. 오른 쪽 귀는 왼 쪽보다 약간 높아서 항상 귀를 곤두세우고 엿듣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짙은 검은색 머리칼 속에서는 백발이 언뜻언뜻 빚나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부드럽고 슬퍼 보이고, 얌전한 여자였다. 어머니의 뺨 위로 천천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마세요 !" 하고 아들은 작은 목소리로 부탁했다. "물 좀 주세요." "얼음 물을 가져다 줄게." 그러나 그녀가 돌아왔을 때는 아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아들의 베개맡에 서있었다. 그녀의 손에 든 물그릇이 떨리며 얼음이 그릇에 닿아서 소리를 냈다. 그릇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녀는 잠자코 성상 앞에 꿇어 앉았다. 유리창에 술주정뱅이들의 외침이 부딪치고 있었다. 가을 밤의 어둠과 습기 속에서 아코디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누군가가 커다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추잡한 말로 욕을 하고, 여자들의 짜증섞인 피곤한 목소리가 시끌시끌하게 울리고 있었 다. 블라소프 집안의 생활은 이전보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흘러갔다. 그것은 부락 내의 여느 집과는 약간 달랐다. 그들의 집은 부락의 변두리 늪 쪽으로 내려가는,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한 비탈 옆에 있었다. 집의 3분의 l은 부엌과 칸막이로 나누어진 작은 방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작은 방이 어머니의 방이었다. 나머지 3분의 2는 창문이 두 개 있는 4각형 방으로, 그 한구석에는 파벨의 침대가 놓여있고, 정면에는 테이블과 두 개의 걸상이 있었다. 작은 의자 몇 개, 내의를 넣은 옷장, 그 위에 놓인 작은 거울, 옷궤짝, 벽에 걸린 시계, 구석에 있는 두 개의 성상, 그것이 전부였다. 파벨은 젊은이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했다. 아코디언도 샀으며, 풀을 먹인 가슴받이가 달린 와이셔츠도, 화려한 넥타이도, 방수 덧신도 마련했다. 그리고 단장도 사고, 그의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과 어울렸다. 밤의 모임에도 나가서 카드릴이나 폴카를 추는 법도 배웠다. 쉬는 날에는 술이 취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언제나 심하게 시달렸다. 아침이 되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쓰려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기운이 없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물었다. "어땠니? 어젯밤에는 재미있었니?" 파벨은 짜증을 내면서 대답했다.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물고기라도 잡으러 가는 편이 나을 걸 그랬어요. 아니면 엽총을 사든가!" 파벨은 결근도 하지 않았고, 지각을 하여 품삯이 깎이는 일도 없었다. 말수도 적고, 어머니를 닮은 커다란 푸른 눈은 불만스러운 듯이 바라 보고 있었다. 그는 총도 사지 않고, 물고기를 잡으러 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생활과 견주어 볼 때에는 눈에 띄게 빗나가고 있었다. 밤의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일도 점점 드물어지고, 쉬는 날마다 어딘가로 나가기는 했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 맨 정신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들의 거무튀튀한 얼굴이 점점 엄숙해지고 눈은 더욱더 진지한 모습으로 변하고, 업술이 기묘하게 굳게 닫혀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엇인가에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또한 병에 걸려 있는 것 처럼도 생각되었다. 예전에는 그에게도 친구들이 찾아왔으나 지금은 찾아와도 만날 수가 없는 탓으로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로서는 자식이 공장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기뻤다. 그러나 아들이 고집스러워지고, 생활의 어두운 흐름으로부터 어딘가 옆쪽으로 헤엄쳐 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은 그녀의 마음 속에 어렴풋한 불안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파블루샤, 너 혹시 병에 걸린. 게 아니냐?" 그녀는 이따금 그에게 물었다. "아네요, 나는 건강해요." 하고 파벨은 대답했다. "너무 몸이 야위었구나 !" 하고 한숨을 지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그 무렵 파벨은 책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애써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면서 읽은 뒤 어딘가에 감췄다. 때로는 책 속에서 무엇인가를 종이에 베끼고, 그 종이쪽지 역시 숨겼다. 모자는 그다지 말을 주고 받지 않았으며 얼굴을 마주 보는 일도 드물었다. 아침에는 잠자코 차를 마시고 일을 하러 나갔다. 점심에는 식사를 하러 집에 돌아와서, 식사때는 별로 의미도 없는 말을 주고받을 뿐, 또다시 저녁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밤에는 깨끗이 세수를 하고 나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그 뒤 한참 동안 책을 읽었다. 쉬는 날에는 아침부터 외출해서는 밤 늦게야 돌아왔다. 어머니는 아들이 시내에 나가서, 그곳에서 연극을 보러 가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시내에서 아무도 찾아 오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이 점점 더 말수가 적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이따금 아들이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뭔가 새로운 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익은 난폭하고 격렬한 말투는 전혀 입에도 담지 않게 되었다. 아들의 행동에도 차츰 그녀의 주의를 끄는 자질구레한 점이 많이 나타났다. 아들은 멋내는 것을 그만두었지만, 몸과 의복의 청결에 한층 더 신경을 썼다. 그 동작도 훨씬 자유스럽고 민첩해지고, 외모도 소박하고 부드러워져서 어머니의 불안한 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태도에도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있었다. 이따금 방바닥을 쓸거나, 쉬는 날에는 자신의 침대를 정리하거나 그녀의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부락에서는 그런 일을 하는 젊은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언젠가 그는 한 장의 그림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그것을 벽에 걸었다. 세 사람이 얘기를 나누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힘차게 어딘가로 걸어가는 그림이었다. "이것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엠마오로 가는 장면이에요." 하고 파벨은 설명했다. 어머니는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으나, 그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스도를 숭상하면서도 교회는 안 나가다니...." 동료인 목수가 파벨을 위해서 예쁘게 만들어 준 서가에는 차츰 책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방 안은 기분 좋은 모습이 되었다. 파벨은 어머니에게 얘기하는 말도 정중해지고, 그녀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따금 갑자기 다정하게 얘기를 걸었다. "어머니, 제발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늦게 돌아오기는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들의 말 속에서 어머니는 뭔가 진지하고 확고한 것을 느켰다. 그러나 그녀의 불안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뚜렷한 것이 되지 않고, 뭔가 보통 일은 아니라고 하는 예감이 날카롭게 마음을 찔렀다. 이따금 어머니는 아들에게 불만을 느끼고 이렇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인간다운 데도 저 아이는 꼭 성직자 같다니까. 지나치게 딱딱하게 군단 말야.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이따금 그녀는 이런 생각도 했다. '혹시 여자라도 생긴 게 아닐까?' 그러나 여자를 사귀려면 돈이 들 텐데도 아들은 임금을 거의 다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렇게 해서 몇 주일, 몇 개월이 지나고,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점점 심해만 가는 어렴풋한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찬, 기묘한 침묵이 지배하는 생활이었다. 4 어느 날 저녁 식사가 끝났을 때였다. 파벨은 창문에 커튼을 내리고서 방 구석에 앉아 양철제 램프를 자신의 머리 위쪽 벽에 걸어 놓고 독서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나서 부엌에서 나와 살며시 아들 옆 으로 다가갔다. 아들은 머리를 들고 서 무슨 일인가 하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 일도 아니다. 파벨 ! 다만 그냥..." 하고 서둘러 그녀는 말하고, 당혹해서 눈썹을 찌푸리고 나왔다. 그러나 한참 동안 부엌 한가운데에 꼼짝 않고 근심스러운 듯이 생각에 잠겨서 서있었으나, 이윽고 깨끗이 손을 씻고는 또다시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너에게 물어볼 게 있다만!" 하고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매일 무엇을 읽고 있는 거냐?" 아들은 책을 내려놓았다. "어머니, 앉으세요." 어머니는 아들 옆에 엄숙하게 앉아 몸을 꼿꼿이 세웠다. 무엇인가 중대한 것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귀를 곤두세웠다. 파벨은 어머니의 얼굴은 보지 않고 작은 소리로, 그리고 무척 엄숙한 말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판매 금지가 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들 노동자 생활의 진실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인쇄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책이 우리 집에 있는 것이 발각된다면 나는 감옥에 처넣어 질 것입니다. 내가 진실한 것을 알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처넣어 지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녀는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아들을 바라 보았으나, 아들이 타인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들은 목소리도 달라져 있었다. 훨씬 낮고 굵고, 그러면서도 강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은 손가락으로 솜털과 같은 콧수염을 비틀고, 이상하게 눈을 치뜨면서 어딘가 한쪽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무서워지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그런 책을 읽는 거냐, 파벨 ?" 하고 그녀는 물었다. 파벨은 머리를 쳐들어 어머니를 보며 낯은 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진실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요." 그의 목소리의 울림은 조용했으나 힘이 있었으며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자신의 운명을 뭔가 비밀스러운 끔찍한 것에 결부 시켰다는 것을 마음으로 깨달았다. 그녀는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어서, 생각없이 그것에 따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죄어드는 마음 속에서 해야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조용히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울지 마세요 !" 하고 파벨이 다정스럽고 조용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들과 헤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좀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는 40세 입니다. 그러나 살아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두들겨 팼어요. 나는 지금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옆구리에 자신의 울분을 털어 놓았던 것입니다. 자기 생활의 울분을 말입니다. 아버지는 그것에 짓눌려 있었지만, 그것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30년 간이나 계속 일해 왔습니다. 공장 전체가 두개의 동 밖에 없었을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일곱 개 동으로 불어나 있단 말이에요!"' 그녀는 아들의 말을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침착하게 듣고 있었다. 아들의 눈은 아름답고 밝게 불타고 있었다. 아들은 테이블에 가슴을 갖다 대고, 어머니쪽으로 다가갔다. 눈물로 젖은 어머니의 얼굴을 향해서 자신이 이해한 진실에 대해 처음으로 얘기했다. 어린 학생들이 새로운 것을 깨달았을 때처럼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확신에 차서 자신이 알게 된 진실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얘기했다. 이따금 파벨은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을 끊으며 상냥한 눈이 어렴풋이 빚나고 있는 슬퍼 보이는 얼굴을 바라 보았다. 어머니의 눈은 두려움과 망설임의 빚을 띠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불쌍해져서 다시금 어머니의 일, 어머니의 생활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머니는 살아오면서 기뻤던 적이 있었습니까?" 아들이 물었다. "흘러가 버린 과거를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자기가 모르는 새로운 것, 슬프고 기쁜 것을 느끼면서 서글프게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그 새로운 것은, 그녀의 아픈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자신에 대해서, 또 자신의 생활에 대한 이러한 말을 그녀는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마음 속에 까마득한 옛날에 잠들어 버린 몽롱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고, 생활에 대한 희미한 불만이 지워 버린 감정을 조용히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먼 청춘의 생각이나 감정이었다. 그녀는 젊었을 때 여자 친구들과 생활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 얘기들은 모두 푸념일 뿐이었고, 아무도 왜 생활이 이렇게 괴롭고 쓰라린 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아들이 있다. 그리고 아들의 눈, 얼굴, 얘기하는 것은 모두 마음을 때리고,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감정으로 가슴이 가득 찼다. 아들은 자기 어머니의 생활을 을 바로 이해해 주고, 어머니의 괴로움에 대해서 얘기하고,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 주었던 것이다. 어머니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들이 어머니의 생활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쓰라린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아직 한번도 느낀 적이 없는 따뜻한 감정의 덩어리가 조용히 가늘게 떨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게냐?" 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얘기를 가로 막고 물었다.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우리들 노동자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왜 생활이 이처럼 우리들에게 있어서 괴로운 것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어머니는 여느때는 진지하고 엄숙한 아들의 눈이 지금 이 처럼이나 부드럽고 다정하게 불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녀의 양쪽 뺨의 주름살 속에서는 아직도 눈물이 떨고 있었으나, 그 입술 위에는 만족스러운 듯한 조용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가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 속에는 이중의 감정이 동요하고 있었다. 아들은 생활의 슬픔을 이처럼 잘 이해해 주고 있는데, 어머니는 자식의 젊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 모두에게 익숙해진 것 그리고 그녀에게도 익숙해진 이 생활과 단 혼자서 싸우려고 결심한 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졌다. "귀여운 아가야, 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거냐?"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아들을 감탄해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감정에 방해가 될까 봐 두려웠다. 아들은 갑자기 이처럼이나 총명한 면을 보여 준 것이다. 그녀에게는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파벨은 어머니의 입술에 떠오른 미소와 눈에 담겨 있는 애정을 보고, 자신의 진리를 어머니에게 이해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의 말이 힘을 발휠했다는 감정이 그의 자신감을 높여 주었다. 흥분에 사로잡힌 파벨은 엷은 미소를 짓거나 눈씹을 찌푸리면서 얘기했다. 이따금 그의 말에는 증오가 담기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증오가 울려퍼지는 격한 말을 들으면, 겁을 집어먹은 듯이 머리를 흔들고 작은 소리로 아들에게 물었다. "그럴까, 파벨?" "그렇고말고요 !" 하고 아들은 똑똑하고 힘차게 대답했다느 그리고 사람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쳐 주고 진실을 퍼뜨리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투옥되어 고역을 치른 사람들의 일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벌써 만났어요." 하고 그는 열의를 담아서 외쳤다. "그들은 이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 그러한 사람들의 얘기는 그녀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또다시 아들에게 "정말 그럴까?" 하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묻지 못했다. 자기 아들에게 이처럼 위험한 것을 가르쳐 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얘기를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곧 날이 밝는다. 얘야, 얼른 누워서 좀 자거라 !" "네, 곧 잘게요." 하고 그는 동의했다. 그리고 그녀 쪽으로 몸을 내밀고 물었다.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이해하구말구!" 하고 한숨을 지으며 그녀는 대답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한번 흐느껴 운 뒤에 덧붙여서 말했다. "너는 당하게 될 게다 !" 아들은 일어나서 방 안을 걸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으로 어머님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다니고 있는지 아셨겠지요? 나는 모조리 다 얘기했으니까요. 어머님에게 부탁드립니다. 어머님, 나를 사랑한다면 방해하지 마심시오." "얘야!" 하고 어머니는 외쳤다. "차라리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녀는 아들이 열의를 담아서 말한 '어머님'이라는 말과 힘주어 잡은 아들의 손에서 이상한 감동을 느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마." 하고 간헐적인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다만 조심해야만 한다 ! 조심 !"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녀는 슬픈 듯이 덧붙였다. "너는 점점 더 야위어 가는구나." 그리고 아들의 단단하고 균형이 잘 잡힌 몸을 애정이 담긴 따스한 눈 초리로 바라보며 빠른 말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좋을 대로 해라, 좋을 대로 하렴. 나는 너를 방해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 가지 부탁할 것은 세상 사람들과는 분별없이 얘기하지 말아다오 ! 세상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단다. 모두 서로를 미워하고 있으니까. 욕심과 시기심으로 살고 있단다. 모두들 심술사나운 짓 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네가 그 사람들을 폭로하거나 심판하기 시작하면 너는 미움을 사서 혼쫄이 나게 될 게다 !" 아들은 문턱에 서서 이 서글픈 얘기를 듣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을 끝내자 파벨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세상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세상 사람들이 휠씬 좋아지더군요." 아들은 또다시 빙긋이 웃고 말을 계속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요, 어릴 때부터 저는 모두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미워하기 시작했어요, 비열하기 때문에 미워한 사람도 있었고,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냥 이유도 없이 미워한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다른 식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모두가 불쌍하다고나 할까요? 저 자신도 잘 모르지만, 더럽다고 해서 비난받는 것이 모두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까 마음이 휠씬 부드러워지더군요." 파벨은 자기 마음 속의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작은 목소리로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의 생명입니다 !" 어머니는 아들을 흘끗 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로 위태롭게 변했구나." 아들이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자, 어머니는 조용히 자신의 침대에서 일어나 살그머니 아들 옆으로 다가갔다. 파벨은 똑바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흰 베개 위에는 아들의 거무튀튀한, 고집스럽고 엄숙한 얼굴이 있었다. 양손을 가슴에 대고 어머니는 속옷 바람으로 아들의 침대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떨렸고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서로 멀기도 하고, 또 가깝기도 한 관계의 그들 두 모자는 잠자코 생활해 나갔다. 5 언젠가 주 중간의 쉬는 날에 파벨은 집에서 나가면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번 토요일에는 시내에서 손님이 올 거예요." "시내에서 ?" 하고 어머니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니, 무엇 때문에 우는 거예요, 어머님 ?" 하고 파벨은 불만스러운 듯이 외쳤다. 그녀는 앞치마로 얼굴을 닦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자꾸만......" "무서우세요?" "그래, 무섭다 !" 하고 어머니는 고백했다. 파벨은 어머니쪽으로 몸을 구부리고, 화가 난다는 듯이 꼭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했다.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 우리들은 모두 망쳐 버리게 되는 거예요 !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는 놈들은, 우리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이용해서 한층 더 겁을 주는 거라구요." 어머니는 슬픈 듯이 울부짖었다. "제발 화를 내지 말아다오 ! 어떻게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겠니 ? 평생 무서워하면서 살아온 것을, 마음은 완전히 공포로 휩싸여 있단다." 아들은 작은 목소리로 어조를 부드럽게 해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방법이 없어서요." 그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3일 동안이나 그녀의 심장은 와들와들 떨렸다.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이 집으로 찾아 온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들에게 길을 가르쳐준 것은 이 사람들인 것이다. 그 길을 아들이 가고 있다.... 토요일 밤, 파벨은 공장에서 돌아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다시 어디론가 나가려고 하다가 어머니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제발 누가 찾아오면, 제가 금방 돌아을 거라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녀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아들은 미간을 찌푸리고 어머니에게 눈을 돌리고 이렇게 권해 보았다. "아니면, 어머님은 어디 좀 갔다 오시면 어때요?" 그 말은 그녀의 비위를 거슬렸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서 말했다. "싫다. 내가 무엇 때문에 나가니 ?" 11월 말이었다. 낮 동안 얼어붙은 땅에 보슬보슬한 가루눈이 내렸다. 그 눈은 외출하는 아들의 발 밑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적의를 담은 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이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주위에 그녀에게는 이상한 복장을 한 나별 인간들이 몸을 웅크리고, 시선을 보내면서 어둠 속에서 이 집으로 은밀히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벌써 누군가가 집 주위를 돌아다니며 벽을 손으로 더듬고 있는 것 같았다.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구슬프고도 힘찬 가느다란 흐름이 되어서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갑자기 마치 벽 판자에 꽂히기라도 한 듯이 창 밑으로 사라졌다. 현관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부르르 몸을 떨고 단호히 눈을 치켜뜨고서 일어섰다. 문이 열렸다. 커다란 모피 모자를 쓴 머리가 집 안으로 쑥 들어왔다. 허리가 약간 굽고 키가 큰 마른 사람이었다. 그는 천천히 오른손을 쳐들고, 크게 숨을 내쉬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는 잠자코 머리를 숙였다. "파벨은 집에 없습니까?" 사나이는 천천히 모피 상의를 벗고, 한쪽 발을 들어 모자로 장화의 눈을 털어내고, 다른쪽 발도 털었다. 그리고 모자를 방 구석에 던지고는 긴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의자 옆으로 다가가서 앉아도 될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 걸터앉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그의 머리는 동그랑고 납작하게 깎여 있었다. 뺨은 면도가 되어 있고, 길다란 콧수염은 골이 아래를 향해 있었다. 튀어나온 회색 눈으로 방 안을 둘러 보고 나서, 그는 다리를 포개고 몸을 흔들면서 물었다. "이 집은 당신 것입니까, 아니면 세를 들고 있습니까?" 어머니는 그의 맞은쪽에 앉은 채로 대답했다. "세들어 있습니다." "거의가 그렇군요." "파벨은 곧 돌아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작은 소리로 어머니는 부탁했다. "네, 좋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키가 큰 사나이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의 침착한 태도, 부드러운 목소리와 얼굴의 소박함이 어머니의 기분을 진정시켜 주었다. 사나이는 친근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맑은 눈은 쾌활한 성격을 나타내고 있었다. 긴 다리와 등이 굽은 몸매는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였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있었다. 그는 푸른색의 루바시캐 러시아 인이 입는 앞이 터지지 않은 상의에 검은 색의 헐렁헐렁한 바지를 입고는, 그 가랑이를 장화 속에 쑤셔넣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오래 전부터 아들을 알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온몸을 한 번 흔들고 나서 그녀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가 당신의 그 이마에 그런 상처를 냈습니까, 아주머니?" 그는 상냥한 미소를 띄운 채 물었으나, 그녀는 그 질문에 화가 났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한동안 잠자코 있었으나 이윽고 쌀쌀한 말투로 되 물었다. "그게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그는 몸 전체를 그녀쪽으로 돌렸다. "아니, 그렇게 화를 내실 것까지는 없쟎습니까 ! 내가 물은 것은 우리 양 어머니도 당신과 꼭같이 이마에 상처를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 어머니는 남편인 구두장이한테 나무로 얻어맞았습니다. 양 어머니는 세탁부였지요, 양 어머니는 나를 양자로 삼고 나서 어딘가에서 그 주정뱅이를 끌고 들어 왔는데, 엉뚱한 골칫거리를 떠맡은 셈이었지요. 그 사나이는 양 어머니를 마구 두들겨 팼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온몸의 가죽이 찢겨져 나가는 것 같았어요." 어머니는 그의 솔직함에 화가 풀렸다. 그녀는 이 괴짜에게 무뚝뚝한 대답을 했다고 해서, 틀림없이 파벨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듯이 웃는 얼굴을 짓고 그녀는 말했다. "화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갑작스립게.... 물어 보아서요. 이것은 죽은 남편이 만들어 주었답니다. 당신은 역시 타타르(몽고 지방) 사람이지요?" 사나이는 다리를 흔들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서 말했다. "아뇨, 아직은 아닙니다." "웬지 얘기하는 투가 러시아 인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요." 하고 어머니는 그가 말한 농담의 의미를 이해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설명했다. "저는 러시아 인보다는 고급입니다." 하고 유쾌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님이 말했다. "나는 우크라이나 인으로 카네프 시 출신입니다." "이곳에서는 오랫동안 살았나요?" "시내에서는 일 년 가량 살았습니다 만, 한 달 전에 이곳의 공장으로 옮겨 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요. 당신의 아드님이나 다른 사람들을요. 이곳에서 한동안 살 생각입니다 !" 하고 그는 수염을 잡아 당기면서 말했다. 그녀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아들을 칭찬해 준 말에 대해서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녀는 이렇게 제의했다. "어떠세요, 차를 드시겠어요?" "나 혼자서 번거롭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는 눈을 치켜뜨면서 대답했다. "모두 모이고 난 다음에 신세를 지기로 하겠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두려움을 상기시켜 주었다. "모두들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으련만 !" 그녀는 열심히 그렇게 빌었다. 또다시 현관에서 발소리가 울리고, 문이 황급히 열렸다. 어머니는 다시 일어났다. 부엌에 들어온 사람을 본 그녀는 깜짝 놀랐다. 몸집이 작은 아가씨로, 농민의 아낙네 같은 소박한 얼굴을 하고 황갈색 머리칼을 굵게 한데 묶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너무 늦지 않았나요?" "아니, 조금도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대답했다. "걸어왔어 ?" "물론이에요 ! 당신은 파벨 미하일로비치 씨의 어머님이세요? 안녕 하세요? 저는 나타샤라고 합니다." "그럼, 성씨는?"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바실리예브나입니다. 아주머니의 성함은요?" "펠라게야 닐로브나라우." "자아, 이것으로 서로를 알게 되었군요." "그렇군요." 하고 어머니는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고, 미소를 지으면서 처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그녀를 도와서 외투를 벗겨 주고는 다시 물었다. "춥지 ?" "들판은 핑장히 추웠어요. 바람이 불어서요." 그녀의 목소리는 정감이 있고 또렷했으며, 그 입은 작고 도톰했다. 그리고 그 몸 전체는 땅딸막하고 건강했다. 외투를 벗고 나자 그녀는 추위로 빨갛게 된 언 뺨을 조그만 손으로 힘껏 비비며 구두 뒤축으로 소리 높이 마루를 울려 대면서 빠른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덧신도 신지 않고 걸어왔다니..." 하고 어머니의 머리 속에 스쳐지나갔다. "그래요." 하고 처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을 길게 늘였다. "난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어요. 완전히 !" "얼른 사모바르(러시아 특유의 물 끓이는 기구)를 준비할게요 !" 하고 어머니는 서둘러 부엌으로 달려갔다. "금방 될 거예요." 그녀는 벌써 오래 전부터 그 처녀를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이 처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방 안의 얘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나호트카 씨 ?" 하고 처녀가 물었다. "아니, 별것 아니야.!" 하고 작은 목소리로 우크라이나 인은 대답했다. "아주머니의 눈은 아름다운 눈이더군. 나는 틀림없이 우리 어머니도 그런 눈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지.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 자주 생각을 한다구. 그러면 나에게는 어머니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말했쟎아요?" "그분은 양 어머니라니까.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생모에 대해서야, 나에게는, 어머니가 키예프의 어딘가에서 거지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리고 보드카를 마시고 있고, 그리고는 술에 취해서 경찰관에게 뺨을 얻어맞고..." "아아, 어쩌면 저렇게 마음씨가 고울 수가 있을까 !" 하고 어머니는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나타샤는 무슨 일인가를 빠른 말투로 열의를 담아서 나직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우크라이나 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냐, 넌 아직 어려. 너는 아직 고생을 덜했어 ! 아이를 낳는 것도 힘이 들지만, 아이를 잘 가르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구." "바로 그거야 !" 하고 어머니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인에게 뭔가 다정한 말을 걸어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문이 천천히 열리고, 니콜라이 베소푸쉬코프가 들어왔다. 도둑인 다닐로의 아들로 부락 전체에 널리 알려진 상종하기 어려운 사나이였다. 그는 언제나 음침한 얼굴을 하고서 사람들을 피하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물었다. "자네, 우리 집에 무슨 볼일인가? 니콜라이 ?" 그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광대뼈가 튀어나온 곰보상을 쓸어 내리고는 인사말도 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파벨은 집에 있나요?" "지금은 없다네." 그는 방 안을 들여다보고 이렇게 말하면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 녀석도?" 하고 어머니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타샤가 상냥하게 반가운 듯이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보고는 굉장히 놀랐다. 그 뒤에 아직 어린애 같은 젊은이가 두 사람 더 찾아왔다. 그 중 한 사람은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공장의 늙은 노동자인 시조프의 조카로, 얼굴이 뾰족하고 이마가 튀어나오고 곱슬머리인 표토르였다. 납작하게 머리칼을 붙인 온순해 보이는 다른 한 사람의 젊은이도 어머니가 상상했던 무시무시한 사람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파벨이 두 명의 젊은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두 사람 모두 공장의 노동자로, 어머니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들은 상냥하게 어머니에게 말했다. "사모바르 준비를 해주셨군요. 정말 고마워요 !" "원한다면, 보드카를 사올까?" 하고 어머니는 아직 잘 알 수가 없었지만, 아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서 말을 꺼냈다. "아니에요. 그것은 필요없어요." 하고 파벨은 친근하게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녀에게는 문득 아들이 자신을 놀리느라고 이 모임의 위험성을 일부러 과장해서 말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사람들이 그 위험한 사람들이냐?" 어머니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래요." 하고 파벨은 방으로 들어가면서 대답했다. "어머나, 저 녀석 좀 보게 !" 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정하게 말한 뒤 마음 속으로 '모두 어린애들이로군.' 하고 생각했다. 6 사모바르가 끓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그것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손님들은 테이블을 둘러싸고 빽빽이 원을 그리고 앉아 있고, 나타샤는 책을 손에 든 채 방 구석의 램프 밑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람들의 생활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하고 나타샤가 말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못 사는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끼여들었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활하기 시작했는가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 좀 보세요, 여러분, 좀 보아 주세요." 하고 어머니는 차를 따르면서 중얼거렸다.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님 ?" 하고 파벨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나 말이냐?" 하고 어머니는 돌아다보고,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당혹해서 설명을 했다. "나는 저어.. 혼잣말을 한 거야. 보아 달라고 말한 거란다." 나타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파벨은 쓴 웃음을 짓고, 우크라이나 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차를 대접해 주셔서요." "마시지도 않고 벌써 인사를 하다니 !" 하고 그녀는 대답하고, 아들에게 시선을 보내고 물었다. "내가 방해가 되지 않겠니 ?" 나타샤가 대답했다. "주인인 아주머니가 손님의 방해가 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어린애가 조르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주머니, 저에게도 빨리 차를 좀 주세요. 온몸이 떨리고 발이 얼어 버렸다구요." "네, 지금 당장, 지금 당장 드리지요." 하고 황급히 어머니는 외쳤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자 나타샤는 커다란 소리를 내서 한숨을 지었다. 머리 다발을 어깨 뒤로 넘긴 다음 그림이 들어가 있는 노란색 표지의 책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차를 따르면서, 처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울리는 목소리는 사모바르의 가날프고 상념에 잠긴 듯한 노래와 화합하여 아름다운 리본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동굴에 살면서 돌로 짐승을 사냥하고 있던 미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치 옛날 이야기와 비슷했다. 어머니는 도대체 이 이야기의 어디에 금지당할 만한 것이 있는지 묻고 싶어서 몇 번씩이나 아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얼마 뒤, 어머니는 그 이야기의 뒤를 쫓는 데 지쳐 버려서, 아들이나 손님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면서 손님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파벨은 나타샤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얼굴이 잘생겼다. 나타샤는 책 위에 낮게 몸을 구부리고, 관자놀이에 흘러 내리는 머리칼을 계속 쓸어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고 목소리를 낮춘 뒤 책을 덮은 채 뭔가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면서, 듣는 사람들의 얼굴에 상냥하게 시선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인은 테이블 구석에 넓은 가슴을 기대고, 곁눈을 사용해서 자신의 콧수염의 끊어진 끝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베소푸쉬코프는 양손을 무릎 위에 버티듯이 갖다 대고서 마치 목상처럼 의자에 똑바로 걸터앉아 있었다. 눈썹이 없고 입술이 얇으며 곰보인 그는 가면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가느다란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고 사모바르의 표면애 비친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하고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숨도 쉬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몸집이 작은 표토르는 낭독을 들으면서, 책의 내용을 마음 속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소리없이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는 몸을 구부려서 무릎에 팔 꿈치를 대고, 손으로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겨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파벨과 함께 온 청년 하나는 빨강 털의 곱슬 머리에 쾌활한 녹색 눈을 하고 있었으나, 그는 분명히 무엇인가 말을 할 것이 있는 것처럼 성급하게 몸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황갈색 머리칼을 짧게 깎아 올린 또 한 사람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머리를 만지면서 마루를 바라다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은 웬지 모르지만 엄숙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모르고 있던 특별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젊었을 때를 생각했다. 시끄러운 밤의 모임이나, 언제나 익은 감과 같은 보드카의 냄새를 풍기고 있던 젊은이들의 난폭한 말이나, 그들의 파렴치한 농담이 떠올랐다. 옛날을 돌이켜 보면 볼수록 자신이 불쌍하다는, 가슴 답답한 생각이 조용히 그녀의 가슴을 때렸다. 죽은 남편이 구혼하던 때가 생각났다. 언젠가의 밤의 모임에서, 그는 그녀를 어두운 현관에서 온 몸으로 벽에 밀어 붙이고 탁한 목소리로 화가 난 것처럼 말했다. "내 아내가 되어 주지 않겠어 ?" 그녀는 아프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유방을 아플 정도로 만지면서 그녀의 얼굴에 뜨겁고 거친 숨을 뿜어댔다. 그녀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버둥거리며 옆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어디로 가려는 거야 !" 하고 그는 악을 쓰기 시작했다. "어서 대답해 !" 창피스러움과 노여움으로 헐떡거리면서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현관의 문을 열었다. 그는 천천히 그녀를 놓아 주며 말했다. "일요일에 중매쟁이를 보낼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중매쟁이를 보냈던 것이었다. 어머니는 후유 하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거라구." 베소푸쉬코프의 불만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 말이 맞아 !" 하고 빨강 머리가 일어나서 그를 지지했다. "나는 반대야 !" 하고 표토르가 외쳤다. 논쟁이 불 타오르고, 말은 마치 모닥불 속의 불 혓바닥처럼 번뜩거렸다. 어머니는 모두가 외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의 얼굴은 흥분으로 새빨갛게 불타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고, 그녀가 들어서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거친 말을 입에 담는 사람도 없었다. "아가씨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들이군."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그녀는 나타샤의 진지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나타샤는 이 젊은이들을 마치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두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여러분,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돌연 나타샤가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그녀를 바라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우리들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옳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무지한 사람들이 우리들을 볼 수 있도록 이성의 빚으로 자기 자신을 불 태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모든 것에 대해서 성실하고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진실, 모든 허위를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크라이나 인은 들으면서 나타샤의 말의 리듬에 맞춰서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배소푸쉬코프와 빨강 머리, 그리고 파벨이 데리고 온 공장의 노동자, 이렇게 세 사람만이 모여서 한 덩어리가 되어 서있었다. 어머니는 웬지 그 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타샤가 입을 다물자 파벨이 일어나서 조용히 물었다. "우리들이 과연 배불리 먹는 것만을 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고 파벨은 세 사람 쪽을 똑바로 응시하고서 스스로 자신의 물음에 대답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목 위에 올라타고서 우리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놈들에게, 우리들은 무엇이든 다 보고 있다. 우리들은 바보가 아니고, 짐승이 아니며, 먹는 것만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단 말입니다. 적들은 우리들에게 고역과 같은 노동을 강요하지만 우리들의 지적 수준은 그 놈들과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지적으로 그들보다 앞서가는 것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자랑스러움이 떨고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멋진 말을 할 수가 있을까 ! "배불리 먹고 있는 놈은 적지 않지만, 그 중 성실한 놈은 없다구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우리들은 이 썩은 생활의 시궁창을 뛰어 넘어서 미래의 성실한 선의 왕국에 다리를 놓지 않으면 안 돼. 이것이야말로 여러분, 우리들의 임무란 말야 !" "맞붙어 싸울 때가 왔어. 팔의 치료를 받고 있을 여유 같은 건 없다구 !" 하고 베소푸쉬코프가 굵은 목소리로 반대했다. 그들이 떠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지난 후였다. 베소푸쉬코프와 빨강 머리가 제일 먼저 돌아갔는데, 그것 또한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런, 허둥지둥 돌아가는군 !" 하고 두 사람에게 냉담하게 인사를 하면서 어머니는 생각했다. "나를 좀 데려다 주시겠어요, 나혹트카 씨 ?" 하고 나타샤가 물었다. "물론이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대답했다. 나타샤가 부엌에서 외투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그녀에게 말했다. "요즈음에 이런 얇은 양말을 신다니 ! 괜찮다면 내가 털실로 양말을 짜 줄게." "고맙습니다. 펠라게야 닐로브나 부인 ! 털실로 짠 것은 따끔거려서요." 하고 나타샤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따끔거리지 않도록 짜줄게."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나타샤는 약간 눈을 비스듬히 뜨고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뚫어질 듯이 바라보는 눈초리가 어머니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내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한 거라구!" 하고 작은 소리로 어머니는 덧붙였다. "아주머니는 정말로 좋은 분이시군요." 하고 나타샤는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고 나직이 대답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주머니."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말하고는 나타샤를 쫓아서 현관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았다. 아들은 방의 문턱에 서서 싱글벙글 옷고 있었다. "너는 무엇이 좋아서 그렇게 웃고 있는 거냐?" 하고 어머니는 거북해 하며 물었다. "아네요. 유쾌해서 그래요." "물론 나는 노인이고 바보스러운 여자지. 하지만 좋은 것은 나도 알 수가 있단다."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것 참 잘 됐군요." 하고 아들은 대답했다. "어머님, 그만 주무시는게 어떠세요? 벌써 밤이 깊었으니까요." "이제 곧 자마." 어머니는 식탁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식기를 치웠는데, 꽤나 만족스러 웠는지 기분좋은 흥분으로 땀이 났을 정도였다.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무사히 끝난 것이 그녀로서는 기뻤다. "너는 말을 참 잘하더구나, 파벨."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 우크라이나 인은 무척 좋은 사람이더구나. 게다가 그 아가씨는 아아, 어쩌면 그렇게 영리할까? 어떤 사람이냐?" "교사예요." 하고 파벨이 방 안을 걸어다니면서 대답했다. "그렇구나 ! 불쌍하게도 옷차림이 형편없더라. 오오, 정말로 형편없더구나. 금세 감기가 들겠어. 그 아가씨의 부모님은 어디에 있는데 그러냐?" "모스크바에 있어요." 하고 파벨이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 바로 맞은면에 멈춰 서서 진지한 얼굴이 되어 작은 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그 아가씨의 아버지는 부자이고 철강 상인으로 집을 몇 채씩이나 갖고 있어요. 그녀가 이러한 길에 들어섰다고 해서 의절을 해버렸다구요. 그녀는 아무런 부 자유스러운 것 없이 자라났고,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 대로 손에 넣을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한밤중에 7베르스타(약 7킬로)나 걸어서 혼자 돌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라구요." 그 이야기는 어머니를 감동시켰다.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에 서서 놀라움으로 눈썹을 움직이면서 잠자코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속삭이듯이 물었다. "시내로 돌아가는 거냐?" "네, 시내로요." "어머 ! 무섭지 않을까?" "보시다시피 조금도 무서워하지 안잖아요?" 하고 파벨은 희미하게 웃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럴까? 이곳에서 자고 가면 될 텐데. 나하고 함께 자면 될 텐데 !" "일하는 데 곤란하기 때문이에요. 내일 아침에 여기에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들킬지도 모르니까요. 그것은 우리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거든요." 어머니는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창문에 눈길을 보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로서는 알 수가 없구나, 파벨. 이러한 것에 어떤 위험한 일이나 금지 당할 일이 있다는 거냐? 아무것도 나쁜 게 없지 않느냐, 안그러니 ?" 어머니는 그것에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로부터 분명히 위험한 일이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아들은 침착하게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나쁜 일은 아니에요. 그러나 역시 우리들 모두가 가는 앞길에는 감옥이 기다리고 있지요. 어머님도 이제는 그것을 아셔야만 해요." 어머니의 양손은 마구 떨렸다. 목소리를 떨어뜨리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운이 좋아서 그런 꼴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아요." 하고 아들은 상냥하게 말했다. "나는 어머님을 속일 수가 없어요. 우리는 절대 피하지 않을 거예요." 아들은 빙긋이 웃었다. "어서 주무세요. 피곤하셨지요?" 아들이 잠자리에 들자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그 앞에 서서 거리를 바라 보았다. 창밖은 잔뜩 흐려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잠이 든 조그만 집들의 지붕에서 눈가루가 흩날렸다. 눈가루는 벽에 부딪치며 을씨년스런 소리를 냈고 골목마다 구름처럼 하얗게 몰려다녔다. "예수 그리스도님,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슴에서는 눈물이 치밀어 올라 왔다. 아들이 그 처럼이나 태연히 확신을 가지고 얘기한 불행을 기다리는 마음이, 방의 나방처럼 눈도 보이지 않은 채 처량하게 날개치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평평한 눈의 평원이 떠올랐다. 하얀 구름 같은 바람이 벌판을 휩쓸며 간다. 벌판엔 조그만 처녀가 바람에 옷을 날리며 혼자 걸어간다. 바람은 그녀의 두 다리에 엉켜 스커트를 부풀게 하고, 그녀의 얼굴에 가시 같은 가루 눈을 세차게 던져댄다. 다리는 바람에 휘감겨서 눈 속에 푹푹 빠진다. 춥고 무섭다. 처녀는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마치 가을 바람에 세차게 날리는, 잔뜩 흐린 광야 속의 한 포기의 풀처럼, 오른쪽에 있는 늪 위에는 검은 벽처럼 숲이 서 있지만, 그곳에서도 벌거벗은 자작나무나 사시나무가 처량하게 술렁 거리고 있다. 어딘가 멀리 앞쪽에서 거리의 등불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다.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어머니는 공포로 몸을 떨면서 속삭였다. 7 날은 하루하루 염주알처럼 흘러서 몇 주일이 되고 몇 달이 지나갔다. 토요일마다 파벨의 방에 동료들이 찾아왔는데, 이 모임은 길고 완만한 계단과 같아서 사람들을 어딘가 먼 곳으로 서서히 이끌어 가고 있었다. 차츰 새로운 사람들도 참가했다. 블라소프 가의 방은 좁아서 숨이 답답할 정도였다. 나타샤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었다. 얼어붙고 지쳐 있었으나 언제나 쾌활하고 발랄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양말을 떠서 그 조그만 발에 자기 손으로 직접 신겨 주었다. 나타샤는 처음에는 웃고 있었으나 갑자기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기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에 유모가 있었어요. 무척 좋은 사람이었어요. 아주머니, 정말로 이상한 일이지요, 노동자들은 이처럼 괴롭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데도, 저들보다도 훨씬 더 애정이 있고, 친절하니까 말예요." 그리고 한 손을 잡고 어딘가 먼 곳을 가리켰다. "정말로 아가씨는 힘들겠어."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부모님도,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잃고."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한숨을 쉰 뒤 입을 다물고 나타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무엇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감사의 감정을 느꼈다. 어머니는 그녀 앞의 마루에 앉아 있었다. 나타샤는 머리를 기울이고 깊은 생각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겨 "부모를 잃었다구요?" 하고 나타샤는 어머니의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는 매우 난폭하고, 오빠도 그랬어요. 게다가 술주정뱅이고, 언니는 불행한 여자였어요...... 훨씬 나이 많은 남자와 정약 결혼을 했거든요. 굉장한 부자이고, 따분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어머니가 불쌍해요. 아주머니처럼 꾸밈이 없는 사람입니다. 생쥐처럼 몸집이 작고 항상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사람들을 두려워했어요. 이따금 정말로 견딜 수 없이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져요." "어머나, 불쌍해라 !" 하고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처녀는 갑자기 머리를 들더니 무엇인가를 밀어 내듯이 한 손을 내밀었다. "오오, 그렇지 않아요. 나는 때때로 커다란 기쁨을, 행복을 느낌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푸른 눈은 밝게 불타올랐다. 양손을 어머니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 나타샤는 깊은 밑바닥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목소리로 설득하는 것처럼 말했다. "아주머니가 알아 주신다면..... 이해해 주신다면, 우리들은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뭔가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 어머니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마루 위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슬픈 듯이 말했다. "나는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고 무학에다가..." 파벨은 점점 많은 얘기를 하게 되었고 한층 더 열의를 담아서 논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야위어 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나타샤와 얘기하고 있거나 그녀를 바라볼 때, 아들의 엄숙한 눈이 휠씬 부드럽게 빚나고, 목소리는 상냥하게 울리고, 슬직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발 모든 일이 잘 되게 해주소서 !"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우크라 모임은 언제나 뜨겁고 격렬한 논쟁으로 치달았다. 그러면 즉시 우크라이나 인이 일어나서 마치 종의 추처럼 흔들흔들 몸을 혼들면서 울림이 좋은 목소리로 얘기를 했다. 그러면 모두가 평정해지고 진지해졌다. 베소푸쉬코프는 끊엄없이 음침하게 모두를 어딘가로 다그쳐 갔고, 그와 사모일로프라고 불리우는 빨강 머리의 사나이가 언제나 제일 먼저 논쟁을 시작했다. 그들에게 찬성하는 것은 둥근 머리의, 마치 잿물로 씻은 것처럼 눈썹이 하얀 이반 부킨이었다. 매끈매끈하고 말쑥한 야코프 소모프는 조용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중간 입장을 취했는데 말수는 적었다. 그와 이마가 넓은 페자 마진은 언제나 파벨과 우크라이나 인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따금 나타샤 대신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가 왔다. 그는 안경을 쓰고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어딘가 먼 곳의 태생으로 보였다. 그의 말에는 '오'라는 음에 색다른 사투리가 있었다. 그는 대체적으로 그들과는 어쩐지 좀 다른 존재였다. 그는 단순한 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가정 생활이나 아이들, 장사나 경찰, 빵, 버터의 가격 등 사람들이 매일의 생활에서 접촉하는 모든 일에 관한 얘기였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에서 그는 속임수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나 뭔가 어리석은 것,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것, 사람들에게 불리한 것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는 그가 어딘가 먼 곳에서 온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그에게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며, 그것은 그에게 모든 것을 자기 식으로 다시 만들고 싶어하는 냉정하고 완고한 소망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은 누런 빚이 돌고 눈 주위에는 가느다란 후광 같은 잔주름이 있었다. 목소리는 작고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는 어머니와 인사를 할 때 억센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 전체를 감싸고 악수를 했다. 그러한 악수를 받은 뒤에는 마음이 가벼워지고 좀 편안해졌다. 시내에서 찾아오는 사람은 그 밖에도 또 있었다. 제일 자주 온 사람은 야위고 창백한 얼굴에 커다란 눈을 가진, 키가 크고 날씬한 아가씨였다. 그녀는 사웬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나 동작에는 웬지 모르게 남자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녀는 짙고 검은 눈썹을 화가 난 듯이 찌푸리고, 얘기를 할 때는 오똑한 콧날이 가볍게 떨렸다. 사웬카는 처음에 큰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들 사회주의자는..." 어머니는 이 말을 듣자 섬뜩해서 한참 동안 말도 못하고 아가씨의 얼굴을 응시했다. 어머니는 사회주의자들이 황제를 죽였다는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젊었을 때의 일이었다. 황제가 농노를 해방했기 때문에 지주들이 황제에게 복수하려고 했으며, 황제를 죽일 때 까지는 이발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맹세를 했다. 사회주의자라고 불리 우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도대체 왜 자신의 아들이나 그 동료들이 사회주의자인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돌아간 뒤 어머니는 파벨에게 물었다. "파벨, 정말로 너는 사회주의자냐?" "그렇습니다." 하고 파벨은 어머니 앞에 일어서면서 언제나처럼 솔직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어쨌다는 것입니까?" 어머니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내리깔며 물었다. "그러냐, 파벨? 그 사람들은 황제에게 반대하고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 아니었더냐?" 파벨은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한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엷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우리들에게는 그런 것은 필요없어요." 파벨은 오랫동안 조용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어머니에게 얘기했다. 그녀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는 아무것도 나쁜 짓은 할 수가 없을 거야." 그러나 그 뒤에도 이 끔찍한 말은 점점 더 빈번하게 듣게 되었지만 그 날카로움은 점차 닮아 없어져 갔다. 그것은 다른 수십 개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귀에는 익숙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웬카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모습을 나타내면 어머니는 안절부절 못했고 마음이 편안치 않았다. 언젠가 어머니는 불만스러운 듯이 입을 오므리면서 우크라이나 인에게 말했다. "사렌카는 웬지 매우 메몰찬 데가 있는 사람이더군요. 언제나 명령만하고 있어요. 당신은 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저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우크라이나 인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정말 잘 보셨습니다 ! 아주머니, 정확하게 알아맞히셨어요 ! 어떤가, 파벨 ?" 그리고 어머니를 향해서 눈을 깜빡거려 보이고 나서 눈에는 냉소의 빚을 띠고 말했다. "귀족이니까요." 파벨은 냉랭하게 한마디했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것은 확실하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다만 그녀는, 자신에게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지만, 우리들에게는 '하고 싶다. 그리고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 걸 모르거든." 두 사람은 뭔가 어머니로써는 잘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또한 사웬카가 파벨에 대해서 제일 심하게 대한다는 것, 때로는 아들에게 고함을 치는 일까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벨은 엷은 웃음을 띄고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 나타샤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의 눈초리와 같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아가씨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도 또한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따금 어머니는 모두를 일제히 사로잡는 강렬한 기쁨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외국 노동자들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는 날 밤의 일이었다. 그런 때는 모두의 눈은 기쁨으로 빚나고, 어린애들처럼 행복해져서 웃음 꽃을 피웠다. 그리고 다정하게 서로의 어깨를 두들기기도 했다. "독일의 동지들, 훌륭하다." 하고 누군가가 마치 자신의 유쾌함에 취해 있는 것처럼 소리쳤다. "이탈리아 노동자 만세." 하고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먼 곳의 친구들에게 이 외침을 보내면서, 그들이 이 기쁨을 듣고 이해해 주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눈을 번쩍이면서 모두를 사로잡은 사랑의 감정에 가득 차서 이야기했다. "저쪽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러시아에도 같은 신념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의 승리를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자구." 그리고 모두는 꿈 꾸듯이 얼굴에는 미소를 띄우고 오랫동안 프랑스 인이나 영국 인, 스웨덴 인 등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들이 마치 자신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온 오래된 친구들처럼 얘기를 나누었다. 좁은 방 안에는 전세계의 노동자들의 정신적인 유대의 감정이 생겨났다. 이 감정은 모두를 한마음으로 융합해서 어머니까지도 감동시켰다. 그것은 어머니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희망으로 가득찬 힘으로 어머니를 격려했다. "여러분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군요." 하고 어머니는 언젠가 우크라이나 인에게 말했다. "모두가 당신들에게 있어서는 동지로군요. 아르메니아 인도, 유태인도, 오스트리아 인도. 모두를 위해서 기삐하고 슬퍼하는군요." "모두를 위해서 입니다. 아주머니, 모두를 위해서 입니다."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외쳤다. "우리들에게는 국가라든가 민족이라든가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동지와 적이 있을 뿐입니다. 노동자는 모두 우리들의 동지이고, 부자와 권력자들은 모두 우리들의 적입니다. 올바른 눈으로 지상을 바라보면 우리들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은 커다란 기쁨에 감싸이게 될 것입니다. 저 위대한 '피의 일요일'이 어머니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질 겁니다. 그리고 프랑스 인도, 독일인도 생활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은 같은 것입니다. 이탈리아 인도 같은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같은 한 어머니의 자식인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나라의 노동자의 동포애라고 하는 깨뜨릴 수 없는 사상의 자식인 것입니다. 이 사상이 우리들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정의의 하늘의 태양이고, 이 하늘은 노동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사회주의자는 어떤 사람이든 간에, 어떤 이름을 갖든 간에 언제나 우리들의 정신 상의 형제이며, 그것은 앞으로도 영구히 그런 것입니다." 이 어린애 같은, 그러나 굳은 신앙은 점점 더 크게 그들 사이에 용솟음 쳐오르고, 높아져서 그 강한 힘을 증가시켜 나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무의식적으로 하늘의 태양처럼, 무엇인가 위대하고 밝은 것이 태어난 것이라고 느껴졌다. 이따금 그들은 노래도 불렀다. 모두 다 알고 있는 흔한 노래였지만 때로는 뭔가 특별한 가락과 구슬픈 곡조로 불려졌다. 그러한 노래는 작은 소리로 찬송가처럼 불려졌다. 노래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열정이 넘쳐 흘렀고 그 울림 속에는 커다란 힘이 느껴졌다. 특히 새로운 노래 가운데 하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술렁거리게 하고 흥분시켰다. 이 노래 속에는 능욕을 당한 슬픔으로 어두운 오솔길을 홀로 방황하는 서글픈 시름이 없었다. 또한 가난에 찌들고 공포에 떨면서 그 모습도 빚도 잃어버린 마음의 신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또 그 노래 속에는 희미하게 자유를 구하는 서글픈 한숨이나, 좋은 것과 나쁜 것도 구별하지 않고 파괴하려는 저돌적인 외침도 울리고 있지 않았다. 그 속에는 모든 것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무엇인가를 창조해낼 수는 없는 맹목적인 복수심의 감정도 없고, 노예적인 생활에 대한 것도 전혀 없었다. 이 노래의 격렬한 말과 거친 곡조는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과 곡조의 그늘에는 무엇인가 보다 커다란 것이 있어서, 그 힘으로 울림이나 말을 부인하고, 사상으로는 덮어 숨길 수 없는 어떤 예감을 마음 속에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 힘을 젊은 사람들의 얼굴과 눈 속에서 보았고, 그들의 가슴 속에서 느꼈다. 그리고 가락에 압도되어 다른 노래를 들을 때보다 훨씬 불안에 떨며 그 노래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이 노래는 다른 노래보다 훨씬 작은 소리로 불리워 졌지만, 그것은 어떤 노래보다도 힘차게 울리고, 다가올 3월의 공기처럼 사람들을 감싸는 것이었다. "이제 이것을 길거리에서 불러도 좋을 때야 !" 하고 베소푸쉬코프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아버지가 또다시 물건을 훔쳐서 감옥에 들어갔을 때 니콜라이는 조용히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제는 우리 집에서 집회를 열 수 있어." 일이 끝나면 거의 매일 밤 파벨의 집에는 동료들 중 누군가가 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책을 읽거나 책에서 무엇인가를 베끼느라 얼굴을 씻을 틈도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할 때도, 차를 마실 때도 책을 손에 들고 있었으며, 또 그들의 얘기는 어머니에게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우리들에게도 신문이 필요해!" 하고 종종 파벨이 말했다. 생활은 열에 들뜬 것처럼 분주해졌고, 사람들은 점점 더 꿀 벌이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듯이 하나의 책에서 다른 책으로 뛰어 돌아다녔다. "우리들의 소문이 떠돌고 있어." 하고 언젠가 배소푸쉬코프가 말했다. "우리들은 틀림없이 걸려들고 말 거라구......" "메추라기는 그물에 걸리려고 태어나진 않았겠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대답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크라이나 인은 어머니의 마음에 더욱더 들었다. 그가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를 때, 그 말은 마치 부드러운 어린애의 손으로 어머니의 뺨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파벨이 바쁜 일요일에는 그는 장작을 쪼개 주었다. 어떤 때는 판자 조각을 짊어지고 와서, 도끼를 집어 들고서 입구 계단의 썩은 발판을 솜씨 좋게 고쳐 놓았다. 또 어떤 때는 부서진 울타리를 어느 틈엔가 수리해 주었다. 그는 일을 하면서 휘파람을 불었는데, 그것은 아름답고 슬픈 가락이었다. 언젠가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그 우크라이나 인을 우리 집에서 살게 하면 어떨까? 너희들 모두에게 그쪽이 좋겠지 ? 서로 왔다갔다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구태여 어머니가 불편을 자청할 필요는 없으실 탠데요?" 하고 파벨은 어깨를 쳐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아니다. 그런 정도는 괜찮아, 평생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고 불편하게 살아 온 걸. 좋은 사람을 위해서라면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 "어머님 좋을대로 하세요." 하고 아들은 대답했다. "만일 그 사람이 이사를 와준다면 기쁠 텐데..." 이렇게 해서 우크라이나 인은 그들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8 부락의 변두리에 있는 이 조그만 집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벌써 수십 개의 시선이 이 집의 벽을 탐색하고 있었다. 갖가지 소문의 날개가 이 집 위에서 불안스럽게 날개치고 사람들은 골짜기 위에 있는 이 집 벽의 그늘에 숨어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폭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밤이 되면 창문을 들여다보는 자가 있었으며, 또 때로는 누군가가 유리창을 똑똑 두드려 놓고는 서둘러 도망치기도 했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선술집 주인인 베크초프가 블라소바 부인을 불러 세웠다. 그는 풍채가 좋은 노인으로 붉게 늘어진 목에는 검은 실크 목도리를 두르고, 가슴에는 연보라색 비로드의 두꺼운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 핼죽하고 번들번들 빚나는 콧 등에는 안경을 걸치고 있어서 '뼈 눈알'이라는 별명이 붙여져 있었다. 블라소바 부인을 불러 세운 베크초프 노인은 메마른 말투로,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단숨에 그녀에게 퍼부었다. "펠라게야 닐로브나 부인,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아드님은 잘 있습니까? 새 색시를 얻어 줄 생각은 없으세요? 이제 장가를 갈 나이쟎아요. 자식에게 빨리 새 색시를 얻어 주는 편이 부모도 안심이 된다구요. 인간이란 가정을 갖게 되면 초에 전 버섯과 같아서 몸도 마음도 훨씬 오래 보존을 할 수 있는 법이에요 ! 내가 당신이라면, 그 아이에게 새 색시를 얻어 주겠소. 요즘의 젊은이들은 엄한 감독을 해야 한답니다. 모두들 자신의 머리로 살아나가려고 하니까 생각도 엉망이고, 하고 있는 짓도 돼먹지가 않았다구요. 젊은이들은 교회를 피하고, 공공 장소에는 접근을 안 합니다. 그리고 남몰래 모여서 구석에서 소곤거리고 있어요. 무엇 때문에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는지 한번 알고 싶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서 다닙니까? 사람들이 모인 선술집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비밀입니까? 비밀에는 나름대로 그 장소가 있는 법이지요. 그것은 사도님과 같은 우리의 신성한 교회 뿐입니다. 구석에서 소곤소곤하고 있는 다른 비밀은 모두 머리의 혼란에서 오는 것이라구요 !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 잘 가시오 !" 그는 점잔을 빼며 한 손을 구부려서 챙이 없는 모자를 벗어들어 공중에서 한 바퀴 돌린 뒤 사라졌다. 어머니는 어안이벙벙했다. 어머니의 이웃에 사는 마리야 코르스노바 부인은 남편인 대장장이가 죽은 뒤 공장 문 옆에서 먹을 것을 팔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부인은 시장에서 어머니를 만나자 역시 같은 소리를 했다. "펠라게야 부인, 아들을 조심시켜야 해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소문이 파다하다니까 !" 하고 비밀스럽게 마리야는 말했다. "좋지 않은 소문이야. 편신교(그리스 정교의 한 분파로 신비나 교회나 성직자를 부정하는 일파)와 같은 결사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거야. 그것은 분파라고 하는 것으로, 편신교 신자처럼 서로를 채찍으로 때린다고 하더군." "그만 좀 하라구. 마리야, 쓸데없는 소리를 다 하는군 그래."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그래도 죄가 없다구. 나쁜 것은 이상하게 숨기고 돌아가는 사람이란 말이야." 하고 마리야가 쏘아붙였다. 어머니는 그러한 얘기를 모두 아들에게 전했다. 아들은 잠자코 듣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였으나, 우크라이나 인은 그 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껄껄거리며 웃었다. "처녀들도 너희들에게 굉장히 화를 내고 있단다." 하고 어머니는 얘기했다. "너희들은 어떤 처녀들이나 모두 부러워할 정도의 신랑감이라구. 모두들 부지런히 일하고, 술도 마시지 않고 말야. 그런데도 처녀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으니까 말이야. 시내에서 행실이 좋지 않은 아가씨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수군거리는 있더라니까."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세요." 하고 불쾌하다는 듯이 파벨이 소리쳤다. "흙탕물 위에서는 무엇이든지 썩은 냄새가 나는 법이에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 그 바보 같은 처녀들에게 결혼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주고, 너무 서두르다가는 평생을 후회한다는 것을 잘 타일러 주시지 그랬어요." "그건 그렇지만,"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 처녀들도 서글픈 일이라는 건 알고 있고, 이해도 하고 있다네. 하지만 그 밖에 어디에 갈 곳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어 ?"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하고 파벨이 끼여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엄숙한 얼굴에 시선을 보냈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가르쳐 주면 될 것 아니냐? 영리한 처녀들을 불러 모아서." "그건 곤란해요." 하고 아들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한 번 해보는 게 어떨까?"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물었다. 파벨은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대답했다. "한 쌍이 되어서 산책이 시작되고, 그리고 나서 몇 사람인가가 결혼을 하겠지. 그것 뿐이라구." 어머니는 생각에 잠겼다. 파벨의 수도자 같은 엄격함에 어머니는 당혹감을 느꼈다.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인이나 그보다 연상의 동료들조차 아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모두가 그 엄격함 때문에 아들을 두려워하고, 아무도 아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언젠가 그녀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아들과 우크라이나 인이 독서를 하다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앓은 칸막이 벽 너머로 들려왔다. "이보게, 나는 나타샤를 좋아하는 데 말이야." 하고 갑자기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알고 있네 !" 하고 한참 있다가 파벨이 대답했다. 우크라이나 인이 천천히 일어나서 걷기 시작한 기척이 났다. 그의 맨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용하고 슬픈 휘파람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는 다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 파벨은 잠자코 있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고 목소리를 낮추고서 우크라이나 인이 물었다. "알고 있겠지." 하고 파벨이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거절한 거야." 우크라이나 인은 발을 끌듯이 마루 위에서 옮기고, 또다시 방 가운데서 그의 희미한 휘파람 소리가 떨렸다. 얼마 뒤 그가 물었다. "그럼, 내가 그녀에게 말한다면..." "무엇을?" "내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겠다는 거야?" 파벨이 그의 얘기를 가로막았다.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인이 발을 멈춘 기척을 듣고, 그가 쓴웃음을 짓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나는 말이야, 이렇게 생각해. 만일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야. 그렇지 않다면 완전히 무의미하쟎아." 파벨은 소리를 내서 책을 덮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어띤 의미가 있다고 자네는 생각하나?"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물었다. "안드레이, 자네는 자신이 원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마음 속에 떠올려 보아야 한다구." 하고 파벨은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네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세.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네만, 그러나 우선 그렇다고 치세 ! 그래서 자네들은 결혼을 한다. 흥미있는 결혼이겠지. 인텔리 여성과 노동자니까 말이야! 아이가 태어나겠지. 자네는 혼자서 죽어라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자네들의 생활은 한 조각의 빵을 얻기 위해, 자식을 위해, 집세를 내기 위한 생활이 되겠지. 사업을 위한 자네들은 이미 없네, 두 사람 모두 없는 거야." 조용해졌다. 그리고서 파벨은 말투를 부드럽게 해서 계속했다. "자네는 그것을 완전히 내버리는 편이 좋을 거야. 안드레이, 그리고 그 여자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조용했다. 시계의 추가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마음의 절반은 사랑하고, 절반은 증오하고 있다네, 이것이 정말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일까, 응?"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버스럭버스럭 들려왔다. 틀림없이 파벨이 또다시 독서를 시작한 것이리라. 어머니는 눈을 감고 누운 채 몸을 움직이는 것도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이 날 정도로 우크라이나 인이 불쌍했으나, 그 이상으로 아들이 애처로웠다. 어머니는 파벨의 앞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불쌍한 녀석" 돌연 우크라이나 인이 물었다. "그럼...... 잠자코 있을까?" "그쪽이 성실한 거지." 하고 조용히 파벨이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겠네."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말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서 슬픈 듯이 작은 목소리로 계속했다. "자네도 괴로울 거야. 파벨, 자네 자신이 이런 지경이 된다면.." "나는 지금도 이미 충분히 괴롭다네..." 바람이 집의 벽을 어루만졌다. 시계의 추 움직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것은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구 !" 하고 천천히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어머니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소리를 죽여 울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안드레이가 키가 더 작아진 듯이 느껴졌다. 그러나 얼굴은 밝아 보였다. 그러나 아들은 언제나처럼 야위고 끗끗하고, 말수가 적었다. 지금까지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인을 안드레이 아니 시모비치라고 부르고 있었으나, 오늘은 엉겁결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드류샤, 구두를 수선해야겠어. 그래서는 발이 얼어붙고 말 거야" "그렇지 않아도 월급날에 새 구두를 살 생각입니다" 하고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느닷없이 그녀의 어깨 위에 자신의 긴 손을 올려놓고 물었다. "혹시 어쩌면 어머니는 나를 낳은 어머니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내가 굉장한 추남이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얘기를 못 하시는죠? 그렇죠?" 그녀는 잠자코 안드레이의 손을 두드렸다. 그에게 다정한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말이 입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9 부락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푸른색 잉크로 쓴 전단을 뿌리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전단에는 공장의 근로 조건에 대해서 비난하는 투로 씌어 있었고, 페테르부르그나 남부 러시아 노동자의 파업과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단결과 투쟁을 호소하고 있었다. 공장에서 높은 급료를 받고 있는 나이가 든 사람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선동자 놈들 ! 이런 짓을 하는 놈들은 묵사발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구 !" 그리고 전단을 사무실로 가지고 갔다. 젊은 사람들은 격문을 열심히 읽었다. "맞는 말이야!" 일에 짓눌려서 무슨 일에나 무관심해지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큰둥하게 받아들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다 소용없는 짓이야." 그러나 전단은 사람들을 자극시켰다. 그것이 일 주일 간이나 나오지 않자 사람들은 모여서 수군거렸다. "아무래도 인쇄를 그만둔 것 같아." 그러나 월요일에 다시 전단이 나돌고, 노동자들은 낮은 목소리로 술렁거렸다. 선술집이나 공장에서는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꼬치꼬치 캐묻고, 사방을 살피고,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금세 사람들의 눈에 두드러졌다.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는 자도 있었고, 너무나도 끈질기기 때문에 눈에 띄는 자도 있었다. 어머니는 이 소동이 자기 아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아들 주위에 모여드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파벨의 신상을 걱정하는 우려와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이 융합되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마리야 코르스노바 부인이 창문을 두드렸다. 어머니가 창문을 열자, 그녀는 속삭이는 소리로 말을 꺼냈다. "조심해요, 펠라게야 부인. 아이들이 너무 지나친 짓을 했다구 ! 오늘 밤 당신 집과 마진과 배소푸쉬코프 집을 수색하기로 결정했대요." 어머니에게는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리야의 두터운 입술이 분주하게 맞부딪치는 것과 콧소리만 들려 올 뿐이었다. 눈을 깜빡거리며 거리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을까 봐 곁눈질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오늘은 당신을 만나지도 않았다구요, 알겠지요?" 그녀는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창문을 닫고 천천히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러나 아들에게 위험이 닥쳐오고 있다는 의식이 그녀를 재빨리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녀는 빠른 동작으로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몽땅 솔로 감싸고서 페자 마진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손을 다쳐 공장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집에 찾아 갔을 때는, 마진은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서 엄지 손가락을 세운 왼쪽 손으로 오른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듣자 마진은 벌떡 일어났다. 마진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이거 참 큰일났네요." 하고 마진은 중얼거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떨리는 손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면서 블라소바 부인이 물었다. "잠깐 기다리세요. 아주머니는 두려워할 것 없어요!" 페자 마진은 성한 손으로 곱슬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하지만 자네도 무서워하고 있쟎은가?" 하고 그녀가 외쳤다. "제가 말입니까?" 하고 그의 뺨이 갑자기 빨개졌다. 그리고 계면쩍은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빌어먹을 ! 파벨에게 빨리 알려야 되겠네요. 당장 심부름꾼을 보내겠습니다. 아주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세요. 걱정없습니다. 어차피 때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집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책자를 전부 긁어모아 그것을 가슴에 끌어 안고 아궁이 속이나 난로 밑이나 물통 속까지 들여다 보면서 집 안을 돌아 다녔다. 그녀는 파벨이 당장이라도 일을 내땡개치고 집으로 돌아을 것 같았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는 제풀에 지쳐서 부엌에 있는 의자에 책을 내려놓고 그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일어서는 것이 무서워서 파벨과 우크라이나 인이 공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알고 있니 ?" 하고 어머니는 일어서지도 않은 채 소리쳤다. "알고 있어요 !" 하고 파벨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무서우세요?" "너무나 무서워서, 무서워서..."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이번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사모바르도 준비하지 않았군요?" 하고 파벨이 끼여들었다. 어머니는 일어나서 책을 가리키며 미안한 듯이 설명했다. "무서워서 줄곧 이 책들을 갖고...." 아들과 우크라이나 인은 웃음을 터뜨렸으나, 그것이 그녀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파벨은 몇 권의 책을 골라내서 그것을 감추려고 안뜰로 가져가고, 우크라이나 인은 사모바르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무서워할 것 없어요, 어머니. 다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어른인 주제에 허리에 긴 칼을 차고 다니거나, 장화에 박차를 달고서는 남의 집 안을 온통 뒤지고 돌아다니거든요. 침대 밑이나 난로 밑을 들여다보고, 구멍이 있으면 그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지붕 밑으로도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거미 줄이 얼굴에 걸린다고 씨근덕거리기도 하죠. 그 녀석들도 재미도 없고 창피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녀석들은 자기네들이 굉장한 악한인 것 같은 시늉을 하고,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일이라는 것은 그 녀석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내 방을 마구 뒤지고, 난처해하며 그냥 물러갔는데, 두 번째는 나를 끌고 가더군요. 감옥에서 약 4개월 동안 있었지요. 꼼짝않고 얌전히 들어가 있었는데, 불러내더군요. 군인을 붙여서 길거리를 끌고 돌아다닌 뒤에 무엇인가 물어보더군요. 그 녀석들은 조금 모자라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늘어놓고, 한참 동안 그런 말을 하고 나서 다시 군인에게 명령해서 감옥으로 데리고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여기 저기로 끌려 다녔지요. 그 녀석들은 봉급을 받고 있으니까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결국 그렇게 하다가 석방이 되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자네가 언제나 얘기한 대로구먼, 안드류샤 !" 하고 어머니는 외쳤다. 사모바르 옆에 무릎을 꿇고서 안드레이는 열심히 입김을 불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붉어진 얼굴을 쳐들고 양손으로 콧수염을 가다듬으면서 물었다. "내가 얘기한 대로라니요?" "자네는 항상 누구에게도 능욕 같은 것을 당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우크라이나 인은 일어나서 고개를 흔들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지상의 어디에 능욕을 당하지 않은 인간이 있겠습니까? 나는 너무나 많이 능욕을 당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에 화를 낼 기운도 없어졌답니다. 인간이 그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쩔수가 없지 않습니까? 화를 내고 있으면 일의 방해가 되고, 그런 기분으로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다는 것은 시간 낭비거든요. 생활이라는 것은 그런 거라구요. 나도 이전에는 사람들을 보고 화를 냈었습니다만, 생각해 보니까 화를 낼 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구나 다 이웃 사람에게 얻어맞지나 않을까 하고 겁을 집어먹고, 게다가 자기가 먼저 뺨을 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활이라는 것은 그런 거라구요, 어머니 !" 그의 얘기는 조용히 흐르고, 가택 수색의 불안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밀어냈다. 튀어나온 눈은 밝게 미소를 짓고, 그의 온몸은 휘어지긴 해도 부러지지는 않는 갈대처럼 유연했다. 어머니는 한숨을 짓고 나서 다정스럽게 그를 위해 기원했다. "하느님이 자네에게 행복을 내려 주시기를, 안드류샤." 우크라이나 인은 성큼 사모바르 쪽으로 한 걸음 내딛더니, 또다시 사모바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행복을 주겠다면 사양은 하지 않겠지만요, 이쪽에서 부탁하는 일은 하지 않겠어요 !" 파벨이 안뜰에서 돌아와 자신있게 말했다. "절대로 들키지 않을 거야 !" 그리고 손을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꼼꼼게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 "어머님, 만일 어머니가 겁먹고 있는 모습을 그 녀석들에게 보이면, 그 녀석들은 '저 여자가 저렇게 떨고 있는 것을 보니까 이 집안에는 무엇인가가 있을 거다'라고 생각한다구요. 어머니는 알고 있지요? 우리들은 나쁜 것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니라구요. 진실은 우리들 편에 있어요. 한평생 우리들은 진실을 위해서 일을 할 거예요. 이것이 우리들의 죄라구요. 그러니까 두려워할 게 뭐가 있느냐구요?" "나는 태연스럽게 행동하마." 하고 어머니는 약속했다. 그 뒤에 곧 어머니는 안타까운 듯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예 빨리 찾아와 주는 편이 좋겠구나 !" 그러나 그들은 그날 밤에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어머니는 자기가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을 놀려대지나 않을까 해서 자기 쪽에서 먼저 자신을 놀려댔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서 말이야 !" 10 그들이 찾아온 것은 그 불안한 밤으로부터 거의 한 달이나 지나고 나서였다. 파벨의 방에는 니콜라이 베소푸쉬코프가 찾아와서 안드레이와 셋이서 자신들의 신문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밤중 무렵이어서 어머니는 벌써 잠자리에 들어 비몽사몽 간에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때 안드레이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부엌을 빠져나가서 살며시 문을 닫았다. 바로 그때 현관 쪽에서 쇠양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더니 우크라이나 인이 부엌으로 발을 들여놓고 소리쳤다. "박차 소리가 난다 !"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옷을 움켜 쥐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방으로 통하고 있는 문턱에 파벨이 얼굴을 내밀고서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님은 그냥 누워 계세요. 몸이 아프다고 할 테니까요 !" 토방에서는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났다. 파벨이 문으로 다가가서 한 손으로 그것을 밀면서 물었다. "누구세요?" 그러자 키가 큰 회색 옷을 입은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들이닥쳤다. 두 명의 헌병이 파벨을 밀어내고, 그의 양쪽에 섰다. 그리고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서 섭섭한가, 응?" 검은 콧수염을 기른, 키가 크고 깡마른 장교가 말했다. 어머니의 침대 옆으로 마을의 경찰관인 페자킨이 다가왔다. 그는 손을 모자에 갖다 대고, 다른 한 손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노려보고 있었다. "이쪽이 이 사나이의 모친입니다. 장교님 !" 그리고 한 손을 파벨을 향해서 흔들며 덧붙였다. "바로 이자입니다 !" "파벨 블라소프인가?" 하고 장교는 눈을 비스듬히 뜨고 물었다. 파벨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자네의 집을 수색해야겠어. 할망구, 일어나 ! 그곳에 있는 것은 누구냐?" 하고 그는 방 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그리고 재빨리 문 쪽으로 걸어갔다. "너희들의 이름은?" 하는 장교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현관에서 두 명이 더 나타났다. 늙은 주물공 트베랴코프와 그 집에 하숙하는 보일러공 루이빈이었다. 그는 단단한 몸매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내였는데 큰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시우, 닐로브나 부인 !" 어머니는 옷을 입으며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요? 한밤중에 남의 집에 찾아오고. 모두들 잠자리에 들은 시간에..." 방 안은 비좁고 구두약 냄새가 심하게 났다. 두 명의 헌병과 마을의 경찰관인 패자킨이 발소리를 내면서 책장의 책을 꺼내 장교 앞의 테이블 위에 쌓아 올리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은 벽을 주먹으로 두들기거나 의자 밑을 들여다 보다가 그 중 하나가 위태로운 모습으로 난로 위로 기어 올라갔다. 우크라이나 인과 베소푸쉬코프는 찰싹 몸을 붙이고 구석에 서 있었다. 니콜라이의 곰보 얼굴은 뚫어질 듯이 장교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콧수염을 비틀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 오자 빙긋이 웃고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머니는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서 평상시에 옆으로 걷던 걸음을 고쳐 가슴을 내밀고 똑바로 걸었다. 그 모습은 우스쾅스러워 보였지만 위엄을 더해 주었다. 그녀는 힘주어 발소리를 내고 있었으나 눈썹은 떨리고 있었다. 장교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책을 재빨리 집어들고, 그것을 획획 넘기고 흔들었다. 그리고 손목을 능숙하게 움직여서 옆으로 내던져 버렸다. 이따금 책은 바닥에 부딪쳐서 풀썩 하는 소리를 냈다. 모두들 잠자코 있었다. 땀에 젖은 헌병들의 가슴답답한 숨소리가 들리고, 박차가 울리고, 이따금 작은 소리로 묻는 것이 들려왔다. "이것도 살펴보았나?" 어머니는 파벨과 나란히 벽에 서서, 아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양 손을 가슴 위에 끼고서 똑같이 장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 밑이 덜덜 떨리고 눈앞에는 뿌연 안개가 뒤덮여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때 침묵을 깨고 니콜라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왜 책을 바닥에 내던지는 겁니까?" 어머니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트베랴코프는 뒷머리를 맞은 것처럼 머리를 혼들고, 루이빈은 헛기침을 하고서 니콜라이를 쏘아보았다. 장교는 눈을 비스듬히 뜨더니 니콜라이의 곰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그의 손가락은 한층 더 빨리 책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이따금 그는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곤 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아픔에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려고 하는 환자의 모습과 같았다. "경관나리 !" 하고 또다시 니콜라이 배소푸쉬코프는 말했다. "책을 주우시오 !" 헌병들은 모두 니콜라이 쪽을 돌아다 보고 나서 장교를 바라보았다. 장교는 다시 한번 머리를 들고, 탐색하는 듯한 눈을 니콜라이에게 던진 뒤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책을 주워라.." 한 명의 헌병이 몸을 구부렸다. 그리고 곁눈질로 베소푸쉬코프를 보면서 마구 흩어진 책을 줍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말이다. 잠자코 있었으면 좋으련만 !" 하고 어머니가 파벨에게 속삭였다. 파벨은 어깨를 들어 보였다. 우크라이나 인은 머리를 떨어뜨렸다. "이 성서는 누가 읽고 있는 건가?" "나요 !" 하고 파벨이 말했다. "그럼, 이 책은 모두 누구의 것인가?" "내 책이오 !" 하고 파벨이 대답했다. "그런가?" 하고 장교는 의자의 등에 몸을 기대면서 말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꺾어서 '뚜둑'하는 소리를 울리며 탁자 밑에 양다리를 뻗었다. 그리고 콧수염을 비틀며 니콜라이에게 물었다. "안드레이 나혹트카가 자네군?" "나요." 하고 니콜라이가 앞으로 걸어 나와서 대답했다. 우크라이나 인은 한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고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내가 안드레이요." 장교는 한 손을 들고, 손가락으로 베소푸쉬코프를 겁주면서 말했다. "너, 어떤 꼴을 당하는지 두고 봐라 !" 장교는 가져 온 서류를 바쁘게 들췄다. 밝은 달이 쌀쌀한 눈으로 창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천천히 창 밖을 걷고 있어서 눈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혹트카, 너는 정치범으로 취조를 받은 일이 있지 ?" 하고 장교가 물었다. "로스토프에서 받았소. 그리고 사라토프에서도, 그런데 그쪽에서는 헌병이 나에게 '당신'이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장교는 오른쪽 눈을 깜빡이더니 손으로 두어 번 비비고 나서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혹트카, 당신은 내 말 잘 들으시오. 공장에 불온 전단을 뿌리고 있는 것이 어디 사는 어떤 쌍놈들인지 잘 아시겠지, 응?" 우크라이나 인은 선 채로 몸을 한 번 추스르고, 희죽이 웃으면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다시 니콜라이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들은 그 쌍놈이라는 소리를 지금 처음으로 듣는 걸....." 다시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 이마의 상처 자국은 핏기를 잃고, 오른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루이빈의 검은 턱수염이 기묘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내리 깔고 턱수염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빗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를 끌고 갓 !" 하고 장교가 명령했다. 두 명의 헌병이 니콜라이의 팔을 잡고 거칠게 부엌으로 골고 나갔다. 그곳에서 니콜라이는 양발을 바닥에 힘껏 버티고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기다렷...... 외투를 입어야지." 안뜰에서 경찰관이 들어와서 말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샅샅이 다 뒤져 보았습니다만 !" "흥, 물론 그럴 테지 " 하고 장교는 엷은 웃음을 짓고 소리쳤다. "이자들은 경험을 쌓은 놈들이니까..." 어머니는 그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고, 오싹 소름이 끼쳐서 그의 누런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인간은 인정도 없고 지주처럼 모든 사람들을 깔보는 감정으로 가득 찬 마음의 소유자라고 느꼈다. 어머니는 전에는 이런 인간을 종종 보아왔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인간들 때문에 전단이 필요한 거야.'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사생아, 안드레이 아니시모비치 나호트카 씨, 나는 당신을 체포합니다." "무슨 이유로?" 하고 냉정하게 우크라이나 인이 물었다. "그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고 장교는 심술굿게 일부러 정중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블라소바 부인을 향해서 물었다. "읽고 쓰기를 할 줄 아시오?" "아니, 할 줄 모르십니다." 하고 파벨이 대답했다. "너에게 묻고 있는 게 아니다!" 하고 장교는 표독스럽게 말하고 다시 물었다. "할망구, 대답을 해라 !" 어머니는 무의식중에 그 사나이에 대한 증오심에 사로잡혔다. 갑자기 차거운 물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가슴을 쭉 폈다. 어머니의 상처 자국은 검붉게 변하고, 한쪽 눈썹은 낮게 처졌다. "여보세요, 그렇게 고함을 치지 좀 말아요." 하고 어머니는 장교 쪽으로 한 손을 내뻗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아직 젊어서 슬픔이라는 것을 모르는군요." "어머님, 제발 침착하세요." 하고 파벨이 어머니를 제지했다. "파벨, 잠깐 기다려라 !" 하고 어머니는 테이블 쪽으로 몸을 내밀고 외쳤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당신은 사람을 잡아가는 거요?" "그것은 할멈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다. 입닥쳐 !" 하고 장교는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검거한 베소푸쉬코프를 데려와라 !" 그리고 서류를 얼굴 가까이 들어 올리고서 읽기 시작했다. 니콜라이가 끌려 들어왔다. "모자를 벗어라 !" 하고 장교는 낭독을 중단하고 소리쳤다. 루이빈은 블라소바 부인 옆으로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속삭였다. "그렇게 흥분하면 안 돼요, 아주머니." "양쪽 팔을 모두 잡고 있는데, 어떻게 모자를 벗으라는 거야?" 하고 니콜라이는 조서의 낭독이 들리지 않게 될 정도로 악을 썼다. 장교는 데이블 위에 서류를 내던졌다. "서명해라 !" 어머니는 모두가 조서에 서명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흥분은 조금 가라앉았고 눈에는 원통함과 무력함의 눈물이 스며나와 있었다. 어머니가 20여 년 간의 결혼 생활 동안 흘린 눈물과도 같은 설움에 복받친 눈물이었다. 최근에는 거의 잊고 있었던 가슴 아픈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장교는 그녀를 흘끗 바라보고 혐오스러운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 "아주머니, 악을 쓰는 것은 아직 이르다구 ! 조심해야지. 나중에 눈물이 모자라게 될 테니까 !" 어머니는 또다시 증오에 사로잡혀서 말했다. "어머니의 눈물은 메마르는 법이 없다오. 당신에게도 어머니가 있다면 당신 어머니도 그것을 알고 있을 거요. 암, 그렇고말고요 !" 장교는 번쩍번쩍 빚나는 자물쇠 장식이 붙은 새 가방에 황급히 서류를 챙겨 넣었다. "출발 !" 하고 장교는 명령을 내렸다. "잘 가게, 안드레이. 잘 가게, 니콜라이 ! 다시 만나세." 하고 파벨은 동료들의 손을 꽉 움켜 잡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자네 말대로 다시 만나세 !" 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띄운 채 장교가 말했다. 베소푸쉬코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굵은 목은 빨갛게 열이 올라 있고 눈은 강렬한 증오로 번뜩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또한 그에게 성호를 그어주며 말했다. "하느님은 정당한 자를 보고 계실 거야." 마침내 회색 외투를 입은 사람들의 무리는 현관 쪽으로 쿵쿵거리며 나갔다. 맨 마지막에 나가는 루이빈은 검은 눈으로 파벨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서 말했다. "그럼, 이것으로 작별일세 !" 그리고 턱수염 속으로 기침을 하면서 천천히 현관으로 나갔다. 양손을 등에서 깍지끼고 파벨은 마루 위에 굴러 다니고 있는 책이나 내복을 타넘으며 느릿느릿 방 안을 걸어다니면서 우울하게 말했다. "보셨지요... 어떤 짓들을 하는지 ?" 어머니는 난장판이 된 방 안을 납득이 안 되는 듯한 모습으로 바라 보면서 슬픔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 때문에 니콜라이는 그놈들에게 난폭한 말을 퍼부었을까?" "틀림없이 너무 놀라서였겠지요." 하고 작은 목소리로 파벨이 말했다. "들이닥쳐 끌고 가버렸구나." 하고 어머니는 양손을 벌리고 중얼거렸다. 아들은 집에 남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은 조금 나았지만 방금 목격한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누런 녀석, 사람을 업신여기고 겁을 주고..." "됐어요, 엄마!" 하고 갑자기 파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자아, 이것들을 모두 치웁시다." 파벨은 어머니를 보고 종종 '엄마'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어머니에게 한층 더 가까운 느낌이 되었을 때만 사용하는 호칭이었다. 그녀는 아들 쪽으로 다가가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조용히 물었다. "너도 화가 났었겠지 ?" "그럼요 !" 하고 아들이 대답했다. "이것은 더 할 수 없이 괴로워요 ! 차라리 함께 끌려가는 편이 더 낫다구요." 어머니는 아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어렴풋이 아들의 괴로움을 느끼고, 위로해 주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다려라, 너도 곧 끌려갈 테니까 말이다." "끌려가겠지요 !" 하고 아들이 대답했다. 어머니는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슬픈 얼굴로 말했다. "파벨, 너는 참으로 지독한 아이로구나. 한번쯤은 나를 위로해 줘도 괜찮을 텐데 ! 내가 무섭다고 말하면, 너는 한층 더 무서운 얘기를 하는구나." 파벨은 어머니에게 시선을 보내고 옆으로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어머님 ! 어머니는 이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돼요."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두려움을 억누르면서 말을 꺼냈다. "하지만 보나마나 놈들은 고문 같은 것을 할 테지 ? 몸을 찌르고 찢거나 뼈를 부러뜨리거나 하겠지 ? 나는 그것을 생각하면, 얘야, 파벨, 너무나 무서워서..." "그놈들은 영혼을 부러뜨린다구요. 그쪽이 휠씬 더 아파요." "더러운 손으로 영혼을 마구 부러뜨리는 것이...." 11 이튿날 부킨, 사모일로프, 소모프 그리고 또 다섯 명이 검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밤에는 페자 마진이 달려왔는데, 그의 집에서도 가택 수색을 당했다. 그리고 페자는 마치 영웅이 된 듯 들떠 있었다. "무서웠지, 페자?"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그러자 페자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코끝이 떨렸다. "장교에게 얻어 맞을까 봐 무서웠어요. 그놈은 수염이 검고, 살이 뚱뚱하게 쩐 데다가 손가락은 털 투성이고, 게다가 코에는 검은 안경을 걸치고 있어서 완전히 눈이 없는 것 같았어요. 발을 쾅쾅 구르며 고함을 질러 대더라구요. 감옥에서 썩게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나는 말이에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단 한 번도 손찌검을 당한 적이 없어요, 나는 외 아들이라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니까.." 페자 마진은 한순간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더니 양손을 재빨리 움직여서 머리칼을 긁어 올렸다. 그리고 핏발이 선 눈으로 파벨을 보면서 말했다. "언젠가 나를 때리기만 하면 나는 몸 전체를 나이프처럼 만들어서 그 새끼를 찔러 죽이고 말겠어. 이빨로 물어 죽이고 말겠어. 단숨에 죽여 버리고 말 거라구 !" "너는 몸이 호리호리하고 깡 말랐는데." 하고 어머니는 외쳤다. "너 같은 아이는 싸움을 할 수가 없어." "할 수 있단 말예요." 하고 작은 소리로 페자가 대답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니가 파벨에게 말했다. "저 아이가 제일 먼저 굴복할 게다." 파벨은 잠자코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 때, 부엌문이 천천히 열리고 루이빈이 들어왔다. "안녕하시오?" 하고 그는 엷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자아, 다시 찾아왔소이다. 어제는 끌려 왔지만, 오늘은 내 발로 찾아왔어요." 루이빈은 파벨의 손을 세게 잡아 혼들고 어머니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차 한잔 주겠소?" 파벨은 잠자코 그의 짙은 수염에 감싸인 검붉은 얼굴과 검은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한 눈은 맑게 빚나고 있었다. 어머니는 차를 준비하러 나갔다. 루이빈은 의자에 앉아서 턱수염을 만지고 테이블에 양쪽 팔꿈치를 대고는 검은 눈을 파벨에게 돌렸다. "그런데 말이야," 하고 보일러공 루이빈이 중단된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자네와 속을 털어놓고 얘기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되겠네. 나는 자네를 오랫동안 보아 왔지. 우리들은 마치 이옷 친척처럼 살고 있지 않나. 자네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도 술을 마시거나 난장판을 벌이는 일은 찾아볼 수가 없네. 이것이 첫번째 문제점일세,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난장판을 벌이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하고 주목을 하게 되거든. 바로 이것일세, 나도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살고 있어 남의 이목을 끌었던 거라구." 그의 말투는 무겁고 답답했으나 막힘 없이 흘러나왔다. 루이빈은 검은 손으로 턱수염을 만지면서 파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네에 관해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고 있다네. 우리 집 주인은 자네가 교회에 다니지 않으니까 심지어 이교도라고 말하고 있다네. 나도 다니지는 않지만. 그리고 나서 그 전단이 나왔네. 그것은 자네가 생각해낸 것이겠지 ?" "그래요." 하고 파벨이 대답했다. "하지만," 하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얼굴을 내밀고 불안한 듯이 소리쳤다. "너 혼자는 아니었쟎아." 파벨은 씁쓸하게 웃었다. 루이빈도 따라 웃었다. "그렇구나." 하고 루이빈이 말했다. 어머니는 두 사람이 자기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자 나갔다. "전단은 좋은 아이디어일세. 그래서 모두 떠들어대고 있네. 열아홉 차례 나왔지 ?" "그래요." 하고 파벨은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는 전부 읽은 셈이로군. 그렇구나.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있고, 쓸모없는 것도 있더군. 그야 사람들은 많이 얘기를 하면 몇 마디 정도는 쓸데없는 소리도 지껄이게 되는 법이니까." 루이빈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의 이빨이 하얗게 빛났다. "그리고 그 가택 수색 말일세. 그것이 나를 가장 매료시켰다네. 자네도, 우크라이나 인과 니콜라이도 모두들 떳떳하게 정체를 밝혔으니까 말이야."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루이빈은 입을 다물고 창문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자네들의 의지를 나는 잘 알지. '너희들, 해볼 테면 해봐라. 우리는 우리의 일을 의연히 해나가겠다.' 이것 일세. 우크라이나 인도 좋은 젊은이지. 언젠가 나는 그 친구가 공장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을 들은 적이있네. 이건 틀림없네만,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네. 근성이 있는 인물이더군. 파벨, 자네는 내가 말하는 걸 믿나?" "믿구 말구요." 하고 파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보라구. 나는 곧 마흔이 되네. 자네보다 두 배나 연상이고, 훨씬 많은 경험을 해온 사람이네. 군대에는 3년 이상이나 가 있었고, 마누라도 두 번이나 얻었지. 하나는 죽었고, 두 번째 마누라는 발로 걷어차 버렸네. 카프카스에도 갔었고, 도호포르스이(성령의 존재를부정하는 종파의 신자)도 알고 있단 말일세, 그놈들로서는 이 세상을 어쩔 수도 없다구. 암, 그렇고말고." 어머니는 루이빈의 정확한 어조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찾아와서 참회라도 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파벨이 그에게 지나치게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루이빈에게 물었다. "미하일로 이바노비치, 뭘 좀 들지 않겠어요?"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하고 왔는 걸요. 그런데 파벨, 자네는 우리의 생활이 법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단 말이지 ?" 파벨은 일어나서 두 손을 뒷짐지고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생활은 제대로 움직이고 있어요." 하고 파벨이 말했다. "자아, 보시다시피 그 생활이 아저씨를 허심탄회한 마음을 가지고 나를 찾아오게 만들었쟎아요? 한 평생 일만 해 온 우리들을, 이 생활은 조금씩 단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모두를 단결시킬 때가 찾아올 거예요. 그 생활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부당하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 생활 자체가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그 괴로운 의미를 깨닫게 하고, 또 어떻게 그 움직임을 빨리하면 좋은지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건 옳아." 하고 루이빈이 파벨의 말을 가로막았다.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야 해. 만일 옴에 걸리면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깨끗이 씻고 깨끗한 옷을 입혀 주면 낫는다구 ! 안 그런가? 하지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내부로부터 깨끗이 만들 수 있느냐? 바로 이것일세." 파벨은 열의를 담아서 격렬한 어조로 상사와 공장의 일, 외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루이빈은 때때로 데이불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몇 번씩이나 그는 소리쳤다. "그렇지." 그리고 한번은 웃음을 터뜨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아직 젊어 ! 사람들을 잘 모른다구." 그러자 파벨은 그의 정면에 멈춰 서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나이를 먹었다거나 젊다는 말은 그만두자구요. 누구의 생각이 진실인지 그것이 중요한 거지요." "그렇다면, 자네의 생각은 우리들은 하느님에게서도 속아 왔다는 것인가? 하긴 나도 종교는 속임수를 쓴다고 믿기는 하지만 말일세." 그때 어머니가 끼여들었다. 어머니에게는 신이란 자애롭고 신성한 존재였다. 그러한 신과 신앙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을 때는 언제나 아들과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신앙을 비판하는 말을 하여 그녀의 마음을 뒤집어 놓지 않도록 잠자코 아들에게 부탁하고 싫은 심정에서 였다. 그러나 신을 부정하는 아들의 말 이면에서 믿음을 느낄 수 있었고,그것이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나로써는 이 아이의 생각을 알 수가 없어.'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든 루이빈은 파벨의 말을 듣는 것이 역시 불 유쾌하고 화가 나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루이빈이 침착하게 파벨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그녀는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단호하게 말했다. "하느님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좀더 조심해서 얘기해 주기를 바래요." 하고 어머니는 숨을 들이 쉬어 한층 더 커다란 힘을 담아서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나 같은 늙은이는 당신들에게 하느님을 빼앗기고 나면 슬플 때 의지할 게 없어져 버리고 말쟎소."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 흘렀다. 그릇을 닦고 있는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어머님은 아직 우리들을 이해하지 못하시쟎아요." 하고 작은 소리로 상냥하게 파벨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아주머니" 하고 굵은 목소리로 루이빈이 덧붙여 말하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파벨을 보았다. "나는 깜빡 잊고 있었군요. 당신이 사마귀를 잘라낼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내가 말한 것은," 하고 파벨이 말을 계속했다. "어머니가 믿고 있는 자상하고 인정많은 하느님 얘기가 아니에요. 성직자들이 지팡이처럼 휘둘러대면서 우리들을 겁주고 있는 신과 그 이름을 이용해서 몇몇 사악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을 이끌려고 하는 신을 말하는 거라구요" "그래, 그 말이 맞네." 하고 루이빈은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치고 소리쳤다. "그놈들은 우리들에게서 하느님을 바꿔치기 한 거예요. 그놈들의 손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들과 맞서게 만들고 있다구요. 아시겠죠? 아주머니! 하느님은 인간을 자기 모습과 닮게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하느님을 닮았다면, 하느님도 인간을 닮은 셈이라구요 ! 그런데 우리들은 하느님을 닮지 않고 짐승을 닮아 있거든요, 교회에서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은, 허수아비입니다. 하느님을 찾아야 해요. 아주머니, 신을 바로잡아야 한다구요 ! 우리들의 마음을 죽여 버리기 위해서 신에게 거짓과 험담의 옷을 입히고, 얼굴은 왜곡되어 있단 말예요." 루이빈은 작은 소리로 얘기했으나, 그 말 하나하나는 어머니의 머리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묵직한 타격이 되어서 떨어져 내려왔다. 게다가 검은 수염에 데가 둘러쳐진, 상중의 표시와 같은 그의 커다란 얼굴도 어머니를 겁먹게 만들었다. 눈의 어두운 광채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마음에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아니에요, 나는 나가 있는 편이 낫겠어요." 하고 어머니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서 말했다. "그런 얘기는, 나로서는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군요." 그리고 루이빈의 말을 뒤에 남겨두고 빠르게 부엌으로 피했다. "바로 그거야, 파벨, 근본적인 것은 머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것일세. 마음은 인간의 영혼 속에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게 하는 장소일세." "오로지 이성만이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지요." 하고 단호하게 파벨이 말했다. "이성은 힘을 부여하지 못하네." 하고 루이빈은 큰소리로 완고하게 반대했다. "힘을 부여해 주는 것은 마음일세. 머리가 아니란 말일세." 어머니는 옷을 벗고 기도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춥고 불쾌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녀에게 있어서 그처럼 견실해 보이고 현명하게 생각되었던 루이빈도 지금은 그녀에게 적의를 불러 일으켰다. "이단자야 ! 모반꾼이라구." 하고 그녀는 루이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파벨을 만나러 온 걸까?' 그러나 루이빈은 자신 있는 듯이 침착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신성한 장소는 비어 있어서는 안 되네. 하느님이 살고 있는 곳은 가장 아프고 괴로운 장소일세. 영혼 속에서 하느님이 빠져나가 보게. 영혼에는 상처가 남게 되지. 그렇네 ! 파벨, 새로운 신을 생각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진정한 신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네. 인간의 친구가 될 신을 말일세." "그리스도가 있쟎습니까?" 하고 파벨이 외쳤다. "그리스도는 정신이 강하지 않았었네. '나를 빼놓고 쓴 잔을 돌리라.'고 말했쟎나? 또 시저를 인정했네. 어떻게 자신의 권력으로 인간을 지배한 자를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이야말로 전능의 권력이야! 하느님은 이것은 하느님의 것, 이것은 인간의 것이라고. 자신의 영혼을 나누지는 않네. 게다가 하느님은 장사도 인정했고, 결혼도 인정했다네. 게다가 자신의 의지로 만물을 창조하면서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부당하게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었지. 영혼도 마찬가지지. 자신의 의지로 악한이 되는 사람은 없네. 자신의 영혼에 스스로 악의 씨를 뿌리는 바보가 있단 말인가? 생각해 보게. 절대 그런 일은 없네, 암!"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의 흥분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격렬한 운동이라도 하듯이 불규칙하게 뒤섞여서 울리고 있었다. 파벨이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어서 마루가 삐걱거렸다. 아들이 얘기하고 있을 때에는 큰 목소리 때문에 잡음이 들리지 않았지만 루이빈의 묵직한 목소리가 조용하게 느릿느릿 흘러나오면 시계의 추 소리와 한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담 벼락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일러 공인 내식으로 말하자면 하느님은 불과 같은 것일세. 그래! 하느님은 마음 속에 살고 있네. 하느님은 말씀이고, 말씀은 영이니라는 말이 있으니까." "이성입니다 !" 하고 파벨이 끈질기게 말했다. "그렇네 ! 그러니까 하느님은 마음 속에, 그리고 이성 속에 있고 교회에는 없네. 교회는 하느님의 무덤이란 말일세." 어머니는 잠이 들어서 루이빈이 돌아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루이빈은 그 후 종종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파벨의 방에 누군가 그의 동료가 와있으면, 그는 방 한구석에 앉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이따금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거야, 그 말이 맞아." 그리고 어떤 때는 방 구석에서 어두운 눈초리로 모두를 바라보면서 음침하게 말했다. "이런 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이야. 우리들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니까. 사람들이 해방되고 나면 어떻게 하는 쪽이 좋은지 스스로 알 수 있을 걸세. 사람들은 전혀 원하지도 않는 것을 머리 속에 잔뜩 주입당하고 있으니까 말일세.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게 좋네. 그러면 모든 생활을, 학문을, 모두 뒤집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또 예를들면 왜곡된 교회의 신처럼, 자신들의 진정한 적이누군지 판단할 걸세. 그러니 자네들은 그들의 손에 책을 건네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스스로 대답을 구할 걸세." 그러나 사람들이 돌아가면 두 사람은 당장 끝이 없는 얘기로 조용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 어머니에게는, 어깨죽지가 넓고 턱수염이 검은 농사꾼과 체격이 단단한 자기 아들이 모두 장님이 된 것처럼 생각되었다. 두 사람은 출구를 찾아 헤매면서 우왕좌왕하고, 힘차지만 보이지 않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움켜잡고서 흔들어 보고 마루 위에 떨어뜨리거나 떨어진 것을 발로 짓밟거나 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에 정면으로 부딪쳤다가 때로는 그것을 멀리 밀어내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아직 신앙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솔직하고 대담한 말을 듣는 것을 어머니에게 철저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은, 어머니는 차츰 그러한 말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때로는 신을 부정하는 말을 들으면 말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앙을 감지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때에는 어머니는 모든 것을 용서하는 조용한 미소를 띄게 되었다. 그리고 루이빈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더이상 적의는 갖지 않게 되었다. 일 주일에 한 번 어머니는 감옥으로 우크라이나 인을 위해서 속옷과 책을 가지고 찾아갔다. 처음으로 면회가 허용되었을 때는 집에 돌아오자 감탄한 모습으로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그곳에 있어도 우리 집에 있는 것과 같더구나, 모두에게 상냥하고, 모두들 그 사람에게 농담을 하고 말이야. 그 사람도 쓰라리고 괴롭겠지만 그것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더구나." "그래야만 합니다." 하고 루이빈이 끼여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피부에 감싸여 있는 것처럼 슬픔에 감싸여 있습니다. 슬픔으로 호흡을 하고, 슬픔을 입고 있는 거지요. 구태여 잘난 체할 것 없다구요. 모두가 전부 장님이 된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구요. 바로 그거예요 ! 바보가 되어 있으면 견딜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12 블라소프의 조그만 회색 집은 점점 더 주의를 끌게 되었다] 그 주의 속에는 의심 깊은 경계심과 무의식적인 적의도 많았으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호기심도 차츰 생겨났다. 이따금 누군가가 찾아와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면서 파벨에게 말했다. "이보게, 자네가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 법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어떤가? 한 가지 설명을 좀 해주지 않겠나....." 그리고 파벨에게 경찰이나 또는 공장 관리자의 어떤 부정에 대해서 얘기했다. 복잡한 문제인 경우에는 파벨은 시내의 안면이 있는 변호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 사람에게 건네주고, 자기가 설명할 수 있는 문제라면 설명을 해주었다. 차츰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청년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났다. 파벨은 어떤 일에 대해서나 솔직하고 대담하게 얘기하고, 만사에 주의깊게 신경을 쓰고 귀를 기울였다. 그는 언제나 사건의 뒤엉킨 복잡한 상태를 가차없이 꿰뚫어보고, 그리고 수천 개의 굳은 매듭으로 사람들을 속박하고 있던 한없이 긴 고통에서 실마리를 찾아내 주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의 눈에 파벨이 크게 비쳐지게 된 것은 '늪을 메우기 위한 기금' 사건 이후부터의 일이었다. 공장 뒤쪽에는 전나무와 자작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넓은 늪이 썩은 고리처럼 거의 공장을 둘러싸듯이 펼쳐져 있었다. 여름이 되면 이 늪은 짙은 황색 수증기를 발산하고, 모기가 구름처럼 날아 올라 온 마을에 전염병을 퍼뜨렸다. 이 늪은 공장의 소유였기 때문에 신임 공장장은 그것을 간척하고, 내친김에 토탄을 캐내려고 생각했다. 그는 이 늪을 메우면 사람들의 건강도 좋아질 것이고 생활 조건도 개선될 것이라는 것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하고, 공장은 늪의 간척비로서,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1루블 당 1코페이카씩 공제한다는 조치를 취했다. 노동자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 새로운 세금 공제에 사무원들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었다. 파벨은 기금을 징수하겠다는 공장장의 고시가 나붙은 토요일에는 병이 나서 출근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튿날, 미사가 끝난 뒤였다. 주물공인 시조프와 키가 크고 심술 사나운 대장공인 마혹친이 그를 찾아와서 공장장의 결정에 대한 얘기를 들려 주었다. "우리들 나이가 든 사람들끼리 모여서 말일세." 하고 시조프가 엄숙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이번 일을 의논한 끌에, 이렇게 우리들은 동료들의 부탁을 받고 자네를 찾아온 것일세. 자네는 우리들의 공장에서는 제일 유식하니까. 그런데 공장장이 우리들의 돈을 거두어서 모기 퇴치를 한다는 따위의 법률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생각 좀 해보라구." 하고 마호친이 가느다란 눈을 번득거리면서 말했다. "몇 개월 전에 그 사기꾼 놈들은 목욕탕을 만드는 돈을 거둬갔네. 3천8백 루블이나 모았다구, 그 돈이 어디에 가 있느난 말야? 목욕탕 같은 것은 있지도 않고." 파벨은 그 세금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은 공장 측에는 명백한 이익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들 두 사람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두 사람을 전송하고 난 뒤, 어머니는 엷은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파벨, 저런 노인들까지 너에게 지혜를 빌리러 오게 되었구나." 파벨은 그것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분주한 듯이 탁자에 앉아서 무엇인가 쓰기 시작했다. 5, 6분 지나서 파벨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부탁이 있어요.. 시내로 가서 이 편지를 좀 전해 주세요." "위험한 일이겠지 ?"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네. 그곳에서 우리들의 신문을 인쇄하고 있어요. 이 기금 사건은 이번 호에 꼭 실리도록 해야 하니까요." "알았다. 알았어."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지금 당장에 달려갔다 오마."' 그것은 어머니가 아들에게서 받은 최초의 부탁이었다. 어머니는 일의 내용을 솔직히 알려 준 것이 더 할 수 없이 기뺐다. "이번 일은 나도 알 수가 있단다. 파벨." 하고 어머니는 외투를 입으면서 말했다. "그놈들은 이제 강도나 다름없구나 ! 그 사람은 이름이 뭐였더라. 이고르 이바노비치였던가?" 어머니는 밤늦게 지쳐 보였으나 만족해서 돌아왔다. "사웬카를 만났단다." 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너에게 안부 전해 달라고 말하더라. 그리고 그 에고르 이바노비치라는 사람은 전혀 꾸밈이 없는 재미있는 사람이더구나 ! 웃기는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그 사람들이 어머니의 마음에 들어서 나도 기뼈요." 하고 파벨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꾸밈이 없는 사람들이더구나, 파벨. 나는 꾸밈없는 사람들이 좋더라 ! 게다가 모두들 너를 존경하고 있더구나." 월요일에도 파벨은 공장에 출근할 수가 없었다. 계속 두통이 났던 것이다. 그런데 점심 시간에 페자 마진이 즐거운 듯이 달려와서는 숨을 헐떡이면서 이렇게 알려 주었다. "가세 ! 공장 전체가 들고 일어났네. 자네를 불러 오라고 해서 달려 온 거야 ! 시조프와 마혹친은 자네가 제일 잘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더군. 큰일이 벌어지게 되었다네 !" 파벨은 말없이 외투를 입기 시작했다. "여자들도 달려와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네 !" "나도 가겠다 !" 하고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그 사람들은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까? 나도 가봐야겠다 !" "같이 가요 !" 하고 파벨은 말했다. 세 사람은 거리를 빠른 발걸음으로 말없이 걸어갔다. 어머니는 흥분으로 숨을 헐떡거리면서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공장 문 앞에는 여자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서서 새된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악을 쓰고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안뜰을 빠져 나가 금세 빽빽하게 몰려서서 고함을 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들이 주물 공장의 벽 쪽을 바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붉은 벽돌 위에 쌓아둔 고철더미 위에 시조프, 마호친, 브야로프 외에 나이가 든 노동자들 대여섯 명이 양손을 흔들면서 서있었다. "블라소프가 왔다 !" 하고 누군가가 외쳤다. "블라소프라고? 이리로 오게 하라구." "조용히 해라 !" 하고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어딘가이서 루이빈의 믿음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코페이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지켜야만 합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코페이카가 아닙니다. 그 돈이 다른 돈보다 더 둥글지는 않지만, 그것은 훨씬 무겁습니다. 그 속에는 공장장의 루블보다 훨씬 더 많은 인간의 피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코페이카를 소중히 하는 것이 아니고 피를, 진리를 소중히하는 것입니다 !" 그의 목소리는 군중들의 열광적인 외침을 폭발시켰다. "옳소, 루이빈 !" "잘 한다. 보일러공 !" "블라소프가 왔다 !" 기계의 묵직한 소음과 증기의 괴로운 듯한 한숨, 도관의 술렁거림조차도 사람들의 외침에 압도되었다.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손을 흔들어대고, 격렬하고 신랄한 말을 던지면서 서로가 상대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잠자고 있던 분노가 잠에서 깨어나 배출구를 찾아 검은 날개를 쭉쭉 펼치고 자랑스러운 듯이 하늘을 날아 다녔다. 그 분노는 점점 더 단단히 사람들을 사로잡고 서로를 부딪치게 하여서 불꽃 같은 증오로 변모했다. 군중의 머리 위에는 매연과 먼지의 구름이 피어올랐다. 상기된 얼굴 위로 땀방울이 훌러내렸다. 거무튀튀한 얼굴에서는 눈이 번뜩이고 이빨이 빚났다. 시조프와 마혹친이 서있는 곳에 파벨이 다가갔다. "동지 여러분 !"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고 입술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어디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거야?" 사람들이 어머니를 책망했다. 어머니는 뒤로 떠밀려났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에 굴하지 않고, 어깨와 팔꿈치로 사람들을 밀어 젖히면서 아들과 나란히 서고 싶은 일념으로 천천히 아들 가까이로 파고 들어갔다. 파벨은 그가 평소부터 깊고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던 이 '동지 여러분'이라는 말을 가슴 속으로부터 외치고 투쟁의 기쁨으로 목청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진리를 동경하는 불꽃으로 불타는 자신의 심장을 사람들에게 던져 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동지 여러분 !" 하고 파벨은 그 말 속에서 환희와 힘을 퍼 올리면서 되풀이 해서 말했다." 우리들은 교회와 공장을 세우고, 쇠사슬과 금전을 만들어낸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우리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두를 먹여 살리고 기생을 주는 그 살아 있는 힘입니다." "옳소 !" 하고 루이빈이 소리쳤다.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나 일할 때는 제일 먼저지만, 생활상으로는 제일 꼴찌입니다. 우리들의 일을 걱정해 주는 자가 있습니까? 우리들의 행복을 기원해 주는 자가 있습니까? 우리들을 사람으로 생각해 주는 자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 "아무도 없소!" 하고 마치 산울림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응했다. 파벨은 차분하고 알기 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군중은 수천 개의 머리가 있는 하나가 되어서 차츰 파벨 쪽으로 몰려들었다. 군중들은 수백 개의 주의 깊은 눈으로 그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들은 서로가 동지라고 느끼지 않는 한 우리들의 소망을 이룰 수 가 없습니다. 즉 우리들이 한 가족처럼 뭉쳐야만 보다 나은 운명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라." 하고 어딘가 어머니의 근처에서 거칠게 외치는 소리가 났다. "방해하지 마라."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외침이 울렸다. 검댕이 투성이의 얼굴들이 불쾌한 듯 일그러졌다. 수십 개의 눈은 진지하게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파벨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자군. 그러나 바보는 아니군." 하고 누군가가 끼여 들었다. "허허 ! 꽤나 대담한 소리를 하고 있군 그래 " 키가 큰 애꾸눈의 노동자가 어머니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동지 여러분, 우리들 자신밖에는 우리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노동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권력가들을 향해 일어설 때 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해서,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해서, 우리들이 적을 때려 눕히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우리들의 율법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진실입니다." 하고 마혹친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는 한 손을 크게 흔들어대면서 공중에서 주먹을 휘둘러 보였다. "공장장을 불러와야 합니다." 하고 파벨은 연설을 계속했다. 군중은 마치 회오리 바람에 휩쓸린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하고 수십 개의 목소리가 일제히 외쳤다. "공장장을 데려와라." "대표를 보내서 불러와라." 어머니는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서, 밑에서 아들을 올려다 보았다. 어머니는 파벨이 나이 많은 노동자들과 나란히 서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파벨의 얘기를 듣고 찬성하고 있어서 가슴 뿌듯한 긍지를 느꼈다. 어머니는 파벨이 다른 사람들처럼 신경질을 부리거나 고함을 치거나 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양철판에 떨어지는 싸락눈처럼 단편적인 외침이나 욕설, 상스러운 말이 뿌려졌다. 파벨은 위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크게 벌어진 눈으로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대표자를 뽑아라." "시조프 !" "블라소프" "루이빈 그 녀석은 무시무시한 이빨을 가지고 있다구." 돌연 군중 속에서 낮은 외침이 울렸다. "제 발로 찾아왔다." "공장장이다 !" 군중은 좌우로 갈라져서, 염소 수염을 기른 길다란 얼굴의 키가 큰 사나이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실례 !" 하고 그는 한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길에 있는 노동자들을 물러서게 했으나 사람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 공장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련한 지배자의 눈초리로 탐색하듯이 노동자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서 모자를 벗거나 절을 하는 자도 있었다. 그는 그 인사에는 답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러자 군중들은 조용해지고, 당혹스러워하고, 어색한 미소를 띄우고 조그맣게 소리쳤다. 그곳에서는 이미 장난이 지나쳤다는 것을 자각한 어린애들의 후회와도 같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공장장은 어머니 옆을 빠져나가면서 비난하는 눈초리로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고철더미 앞에 멈춰 셨다. 누군가가 위에서 그에게 한 손을 내밀었으나 그는 그 손을 잡지 않고, 몸을 가볍게 날려서 위로 올라가 파벨과 시조프 앞에 서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왜 일을 중단했느난 말일세 ?" 몇 초 동안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머리는 마치 밀대처럼 흔들렸다. 시조프는 공중에 챙이 없는 모자를 한 번 휘두르고는 어깨를 흔들고 목을 떨어뜨렸다.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원하네 !" 하고 공장장이 외쳤다. 파벨은 그와 나란히 서서 시조프와 루이빈을 가리키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들 세 사람은 동료들로부터 일임받고 1코페이카씩 공제한다는 당신의 명령을 취소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하고 공장장은 파벨에게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이런 세금을 우리들에게 부과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 하고 큰소리로 파벨이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들은 늪을 간척하려는 나의 계획을 노동자를 착취하려고 하는 것만으로 보고, 그 생활력을 개선하려고 하는 배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 "그렇습니다 !" 하고 파벨은 대답했다. "자네도 그런가?" 하고 공장장은 루이빈에게 물었다. "모두 마찬가지라구요 !" 하고 루이빈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고 공장장은 시조프를 향해서 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1코패이카는 우리들에게 남겨 주십시오." 그리고 시조프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미안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공장장은 천천히 군중을 둘러보며 어깨를 쳐들어 보였다. 그리고 탐색하는 듯한 눈초리로 파벨을 바라보고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상당히 교양이 있는 사람 같은데, 정말로 자네는 이번 조치의 이익을 이해할 수가 없나?" 파벨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공장 돈을 들여서 늪을 간척하려고 한다면 누구나 다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공장은 자선 사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 하고 공장장은 냉담하게 말했다. "나는 전원에게 즉각 작업에 착수하도록 명령하네 !" 그리고 공장장은 조심스러운 발결음으로 고철을 밟으면서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밑으로 내려갔다. 군중 속에서는 불만의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뭐야?" 하고 공장장은 발을 멈추고 물었다. 모두는 입을 다물었다. 다만 어딘가 멀리서 단하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나 일해라." "만일 15분이 지나도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나는 전원에게 벌금을 과하도록 명령하겠다 !" 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똑똑하게 공장장은 대답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군중들 사이를 지나서 갔다. 그의 뒤에서 낮은 불평의 중얼거림이 일어나고, 그의 모습이 멀어져감에 따라서 점점 더 술렁거림은 높아져 갔다. "저 녀석과 대화를 해라." "이것이 권리란 말인가 ! 형편없군, 그래." 파벨을 향해서 고함을 치는 자도 나왔다. "이봐, 법률가 이번에는 어떻게 할 건가?" "당신, 잘도 떠들어댔지만, 그놈이 오니까 모두 도루아미타불이 되었군, 그래." "자아, 블라소프, 어떻게 할까요?" 술렁거림이 점점 더 집요하게 되었을 때, 파벨은 이렇게 선언했다. "동지 여러분, 나는 제안합니다. 그 작자가 1코페이카를 철회할 때까지 작업을 포기합시다." 그러자 소란스러워지고 고함소리가 난무했다. "별 병신 같은 녀석이 다 있었군, 그래 !" "파업이라고?" "단 1코페이카 때문에 파업을 하자고?" "그것이 어쨌다는 건가? 스트라이크도 좋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모두 해고야." "일하는 녀석이 있을까?" "있겠지 !" "배신자들이 말인가?" 13 파벨은 밑으로 내려가서 어머니와 나란히 섰다. 주위 사람들은 서로 말다툼을 벌이고, 흥분해서 고함을 치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파업으로 이끌 수는 없을 걸세." 하고 루이빈이 파벨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겠지만 겁쟁이들일세. 3백 명 정도는 자네 쪽에 붙겠지만, 그 이상은 아닐 거야. 퇴비도 이 정도로 많으면, 갈퀴로는 들어올릴 수가 없다네." 파벨은 잠자코 있었다. 그의 앞에서 군중의 커다란 검은 얼굴이 흔들리며 움직이면서 무엇을 구하듯이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은 불안스러운 듯이 쿵쿵 울리고 있었다. 블라소프 파벨은 자신의 말이 오랫동안의 가뭄에 바짝 말라 버린 땅바닥에 떨어진 얼마 안 되는 빗방울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벨은 우울하고 피로에 지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뒤에서 어머니와 시조프가 걸어오고, 옆에 나란히 서서 걷던 루이빈이 그의 귓가에서 투덜투덜 말하고 있었다. "자네, 얘기는 잘 하네. 그러나 마음에 호소하지를 않아. 바로 이거야 ! 마음 속에, 가장 깊은 곳에 불꽃을 던져 넣어야 해. 머리로는 인간을 사로잡을 수가 없네. 발에 구두가 맞지를 않는 거야. 비좁고, 답답한 거지 !" 시조프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우리들 노인들은 이제 무덤에 기어들어가야 할 때요, 닐로브나 부인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어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며 일년 내내 땅바닥에 앉아서 머리를 조아려 왔지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제정신이 들었다고나 할까, 좀더 지독한 착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잘 보세요. 저 젊은 친구는 공장장과 대등하게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 잘 가게, 파벨 미하일로프. 자네가 모두를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일세 ! 잘 되기를 비네. 아마 길이, 출구가 나타날 것일세. 잘 되기를 빌겠네." 그는 멀어져 갔다. "그래, 죽는 것이 낫겠지 !" 하고 루이빈이 증얼거렸다. "파벨! 자네는 이전의 자네가 아니야. 이젠 떡밥 같은 거라구. 틈새를 틀어막는 데 쓰는 거야. 파벨, 자네를 대표로 뽑으라고 악을 쓴 것이 누구였는지 잘 보았나? 자네를 사회주의자, 모반인이라고 떠들어 댄 친구들이라구. 그 녀석들이야, 그 녀석들은 쫓겨날 거야. 그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녀석들은 떠들어대고 있다네." "그 친구들도 자신의 생각으로는 옳은 거라구요." 하고 파벨은 말했다. "늑대가 동료를 잡아 먹어도 옳단 말이지....." 루이빈의 얼굴은 음울하고, 목소리는 이상하게 떨리고 있었다. "인간은 노골적인 말은 신용하지 않네.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되지. 피 속에서 말을 씻지 않으면 안 되네." 하루종일 파벨은 우울하고 지쳐 있었고, 이상하게 안절부절 못하고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의 눈은 불타고, 마치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살며시 물어보았다. "파벨, 너 어디 아프니 ?" "머리가 아파서 그래요." 하고 파벨은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좀 누우면 어떻겠니 ? 의사를 불러 을 테니까?" 아들은 어머니를 힐끔 보고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럴 것까지는 없어요." 그리고 갑자기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젊어요, 힘이 없어요. 바로 이것이 문제예요.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믿으려고 하지를 않았어요. 나의 진실 뒤를 따라와 주지 않았어요. 즉, 나는 그 진리를 설명할 힘이 없는 거라구요 ! 나는 죽고 싶은 마음이에요. 나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위로해 주고 싶어져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좀더 기다려 보거라 ! 오늘은 이해해 주지 않더라도, 내일은 이해해 줄 게다."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구요." 하고 파벨은 외쳤다. "나도, 너의 진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파벨은 어머니 옆으로 다가왔다. "어머님, 어머니는 좋은 분이에요."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어머니는 그 조용한 말에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아들의 말을 소중하게 가슴에 간직하려는 듯 한 손을 가슴에 갖다 대고 방을 나갔다. 밤이 되어서 그녀가 잠들고, 파벨이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헌병들이 찾아와서 화가 난 듯이 집안과 안뜰과 지붕 밑을 수색하고 돌아 다녔다. 얼굴이 누런 장교는 지난 번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놀려대는 것이 취미라는 듯 약을 오르게 하려고 완전히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태도였다. 어머니는 방 구석에 걸터앉아서 아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아들은 애써 자신의 흥분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도록 하고 있었으나, 장교가 껄껄거리고 웃었을 때는 그의 손가락이 기묘하게 떨렸다. 그래서 어머니는 헌병에게 쏘아 붙이지 못하는 아들의 쓰라린 마음, 그 농담을 견디고 있는 괴로운 마음을 느꼈다. 어머니는 지난 번의 가택 수색 때 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그녀는 발에 박차를 단, 이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에 대해서 오히려 증오를 느끼고, 그 증오가 불안을 쓸어내 버렸다. 파벨은 틈을 봐서 어머니에게 속삭였다. "나를 연행해 갈 거예요." 어머니는 목을 떨구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있단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아들은 오늘 노동자들을 선동했기 때문에 투옥 당할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얘기한 것에 모두 찬성했으니까 사람들은 아들을 지켜줄 것이다. 그러니까 아들은 오랫동안 구속되어 있을 리가 없다. 어머니는 아들을 끌어안고 울고 싶었으나 바로 옆에 장교가 서서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떨리고 콧수염이 실룩 실룩 움직이고 있었다. 블라소바 부인은 이 사나이가 그녀의 눈물과 탄식의 애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있는 힘을 모두 짜내서 될 수 있는 대로 말수를 적게 하려고,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숨을 죽이고 천천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잘 가거라, 파벨. 필요한 것은 모두 챙겼니 ?" "모두 챙겼어요.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그럼, 건강해라." 아들이 연행되어 나가자, 어머니는 걸상 위에 걸터앉아서 눈을 감고 목소리를 죽인 채 흐느껴 울었다. 남편이 자주 한 것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 안타까움과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자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는 목을 뒤로 젖히고 한참 동안 같은 가락으로 흐느껴 울면서, 그 울음 소리 속에 상처입은 마음의 아픔을 흘려 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는 듬성듬성 콧수염이 난 누런 얼굴이 움직이지 않는 반점처럼 떠오르고, 비스듬히 치뜬 눈이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 보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아들이 진리를 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아들을 어머니로부터 빼앗아 가는 인간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시커멓게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 추운 날씨였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들기고 있었다. 한밤중이 되자 회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발소리를 죽이고 집 주위를 돌아 다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희미하게 박차 소리도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나도 붙잡아 가주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출근을 재촉하는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 사이렌 소리가 음침하고 낯고, 그리고 불확실한 가락으로 울렸다. 문이 열리고 루이빈이 들어왔다. 그는 그녀 앞에 서서 턱수염에 묻은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물었다. "데려갔습니까?" "데려갔어요, 죽일 놈들이." 하고 한숨을 짓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렇게 되었군요." 하고 루이빈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 집도 수색을 당해서 엉망진창이 되었답니다. 그래요, 고함을 쳤지요. 그러나 무례한 짓은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파벨을 연행해 갔군요 !" 공장장이 눈짓을 한 번 하면, 헌병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 다음에 한 사람이 없어진다는 얘기로군요 ! 그 녀석들은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요. 한쪽 녀석이 젖을 짜면, 다른 녀석들은 웃으며 뿔을 잡아 주고 있는 거라구요." "당신들은 파벨을 지켜 줘야 해요." 하고 어머니는 일어서면서 외쳤다. "그 아이는 모두를 위해서 한 일이니까요." "누가 지킨다는 거예요?" 하고 루이빈이 물었다. "모두가 말이에요." "뭐라구요? 아니,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쓴 웃음을 지으면서 루이빈은 묵직한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가고, 그 미덥지 못한 각박한 말로 어머니의 슬픔을 한층 더 깊게 해주었다. "혹시 두들겨맞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한다면 ?" 어머니는 두들겨맞고 짓찢겨서 피투성이가 된 아들의 몸을 떠올렸다. 그러자 공포가 차거운 덩어리가 되어서 가슴을 짓누르고 그녀를 밀어 붙였다. 눈이 아팠다. 어머니는 페치카도 피우지 않고, 요리도 하지 않고, 차도 마시지 않았다. 다만 밤 늦게서야 빵 한 조각을 먹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그녀는 자신의 생활이 이처럼 고독하고, 공허하게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 간은, 그녀는 뭔가 중대한 좋은 일을 끊임없이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있었다. 그녀 주위에는 젊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힘차게 뛰어다니고, 언제나 그녀 앞에는 그런 분주하지만 좋은 생활을 만들어내는 아들의 진지한 얼굴이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들이 없으며,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14 하루가 느릿느릿하게 지나갔다. 간밥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날은 더 느리게 지나갔다. 그녀는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한밤중이 되자 차거운 비가 벽에 후두둑 소리를 내더니 이내 굴뚝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마루 밑에서는 무엇인가가 바스락바스락 움직였다. 지붕에서는 물이 뚝뚝 흘러 떨어지고, 그 쓸쓸한 소리가 기묘하게 시계소리와 뒤엉켰다. 집 전채가 조용하게 흔들리고, 주위의 모든 것은 슬픔 속에서 죽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창문을 살며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 번, 두 번... 그녀는 그 소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대신 기뻤고 가슴을 찔리우는 듯한 반가움으로 몸을 떨었다. 희미한 희망이 재빨리 그녀를 일어서게 만들었다. 등에 숄을 걸치고서 그녀는 문을 열었다. 빨강 머리 사모일로프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뒤에 얼굴을 외투 깃으로 가리고 모자를 깊이 눌러 쓴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주무시는 것을 깨웠군요." 인사 대신 다른 때와는 달리 근심스러운 얼굴로 사모일로프가 물었다. "나는 자고 있지 않았다네." 하고 그녀는 대답하고, 기대하는 듯한 눈초리로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사모일로프가 데리고 온 사나이는 괴로운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굵은 커다란 손을 어머니에게 내밀고, 옛날 친구에게 얘기를 걸듯이 친근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 모르시겠습니까?" "어머, 당신이였군요?" 하고 블라소바 부인은 기뻐서 외쳤다. "이고르 이바노비치 씨 ?" "접니다." 하고 그는 대답하고, 머리칼을 길게 기른 머리를 갸웃했다. 그의 동그란 얼굴은 호인다운 미소를 띄우고, 작은 회색 눈은 어머니의 얼굴을 상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사모바르처럼 둥글고, 키가 작고, 목이 굵고, 손이 짧았다. 얼굴은 번들번들 빚나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는 뭔가가 그르렁그르렁 울리고, 퀵퀵 소리를 내며 힘들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방으로들 들어 가세요. 나는 곧 옷을 갈아입을 테니까요." 하고 어머니는 권했다. "우리들은 아주머님께 볼 일이 있습니다." 하고 사모일로프는 눈을 치 뜨면서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이고르 이바노비치는 방으로 들어가서 밖을 향해 말했다. "아주머니, 오늘 아침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가 출옥했습니다." "그 사람도 들어가 있었나요?"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2개월 하고 11일입니다. 그곳에서 우크라이나 인을 만났는데요, 아주머니깨 안부를 전해 달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리고 파벨과도 만났는데, 역시 안부 전해 달라고 하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답니다. 자신이 가는 길에는 감옥은 항상 휴식의 장소로 도움이 되고 우리들의 시중들기를 좋아하는 관청은 그런 식으로 장소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도 아주머니께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더군요. 그리고 아주머니, 용건을 말씀드리지요. 아주머니는 어제 이곳에서 몇 사람이나 붙잡혔는지 알고 계십니까?" "모르겠어요. 파벨 외에 또 붙잡혀 갔나요?" 하고 어머니가 소리쳤다. "파벨은 49번째입니다." 하고 이고르 이바노비치가 침착하게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헌병들은 아직도 10명 정도는 더 잡아 갈 겁니다. 이 사람도 그 중 하나지만요." "그래요, 나도 잡혀갈 겁니다." 하고 사모일로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블라소바 부인은 자신의 호흡이 편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 들어가 있는 것은 우리 아이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옷을 갈아 입고,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서 힘을 내서 손님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처럼 많이 잡아 갔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오랫동안은 잡아 두지 않겠군요." "그렇습니다." 하고 이고르 이바노비치는 말했다. "그런데 만일 우리들이 잘난 놈들의 허를 찌른다면, 놈들은 완전히 손을 들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이런 뜻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공장에 전단을 배포하는 것을 중단한다면, 저 헌병 놈들은 이것을 미끼로 파벨이나 그와 함께 감옥에 투옥된 동료들에게 불리한 재료로 삼을 것입니다." '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하고 불안한 듯이 어머니는 소리쳤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하고 이고르 이바노비치는 알기 쉽게 설명했다. "헌병들도 때로는 올바른 판단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파벨이 있었을 때에는, 팜플렛이나 전단이 나돌고 있었는데, 파벨이 잡혀오자 팜플렛도 전단도 나오지 않는다 ! 그렇게 되면 '팜플렛을 찍은 것은 아하, 저 녀석이로군' 하게 됩니다. 그러면 놈들은 온갖 고문으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 기억나는 건 무엇이든 죄다 털어놓게 되는 거랍니다." "알아, 알 것 같네." 하고 슬픈 얼굴로 어머니는 말했다. "오오, 하느님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부엌에서 사모일로프의 목소리가 났다. "거의 전부를 붙잡아 갔습니다. 빌어먹을 ! 이번에는 우리들이 이전처럼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말예요." "그런데, 그 일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하고 이고르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덧붙였다. "우리들의 전단은 훌륭한 것입니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공장에 가지고 들어가야 할지 이것을 알 수가 없군요." "정문에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몸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구요." 하고 사모일로프는 말했다. 어머니는 두 사람이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원하고,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서둘러 물었다. "그러니까,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가?" 사모일로프는 입구에 서서 말했다. "아주머니, 행상을 하는 코르스노바 부인을 알고 있지요?" "알고 있네만..." "그 사람에게 운반해 주지 않겠느냐고 부탁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완강하게 양손을 흔들었다. "어림도 없네. 절대로 안 된다구. 그 여자는 어찌나 입이 가벼운지 나를 통해서 이 집에서 나왔다는 것이 금방 들통날 결세." 그리고 돌연 생각났다는 듯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건네 주게.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네, 나 혼자서 방법을 찾아 보겠네. 마리야에게 부탁해서 보조로 일하게 해달라고 하겠어.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을 해야만 한다고 부탁하지. 그래서 내가 그곳으로 점심을 가지고 가는 거야.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네." 가슴에 양손을 갖다 대고 어머니는 만사를 능숙하게 들키지 않도록 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그놈들은 보게 될 걸세, 파벨이 없는 데도, 그 손이 감옥 안에서조차도 뻗는다는 것을... 그놈들은 보게 될 걸세." 세 사람은 모두 활기가 넘쳤다. 이고르는 양손을 힘껏 비벼대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훌륭합니다. 아주머니 정말 멋집니다 !" "이것이 잘만 되면, 나는 감옥에 투옥되더라도 안락의자에 앉는 것이나 같을 겁니다." 하고 양손을 비벼대면서 사모일로프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아름다운 분입니다." 하고 목쉰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똑똑히 알 수가 있었다. 만일 지금 공장에 전단이 나돈다면, 관리들은 그것을 뿌리는 것은 파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자 온몸은 기쁨으로 마구 떨렸다. "파벨이 있는 곳으로 면회를 가거든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다고 말해 주게나." 이고르가 사모일로프를 향해 말했다. "나는 그보다 먼저 파벨을 만나게 될 결세." 하고 사모일로프는 쓴 웃음을 지으며 알려 주었다. "우리 아이를 만나거든 이렇게 말해 주게나, 이 에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고. 그 아이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만일 이 사람이 투옥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고 이고르는 사모일로프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나."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작은 소리로 당혹해하며 쾌활하게 웃기 시작했다. "내 일이 앞서서 남의 일은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네." 하고 어머니는 눈을 내리 깔고 말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하고 이고르가 말했다. "그러나 파벨의 일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슬퍼하실 것 없어요. 파벨은 더욱 훌륭해져서 감옥에서 돌아올 것입니다. 그곳에서 휴식하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면, 우리 동지들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나도 세 차례나 투옥되었지요. 그때마다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으나 머리와 마음을 위해서는 의심할 바 없이 이익을 얻었거든요." "그런데 자네는 숨쉬기가 곤란한 것 같군?" 하고 그녀는 그의 소박한 얼굴을 친근한 듯이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럴 만한 원인이 있답니다." 하고 이고르는 손가락을 한 개 위로 올리고 대답했다. "그럼, 아주머니, 결정하신 거지요? 내일 아주머니에게 인쇄물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면 또다시 영원한 어둠을 찢는 톱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언론 만세 ! 어머니의 마음 만세 !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안녕히 계세요." 하고 사모일로프도 그녀의 손을 힘껏 잡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어머니에게는 이러한 일은 입도 뻥끗하지 못한답니다. 그렇구말구요." "시간이 흐르면 이해하실 거네." 하고 블라소바 부인은 그의 마음을 달래 주려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돌아가자 그녀는 문을 잠갔다. 방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오로지 파벨이 그녀의 생활 속에 끌어들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말없이 기도했다. 마치 그 사람들이 그녀와 성상 사이를 빠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소박하고 격의없이 친하지만 고독한 사람들이었다. 아침 일찍 그녀는 마리야 코르스노바 부인 집으로 갔다. 언제나 기름 냄새를 풍기며 수다스러운 마리야는 그녀를 맞이하여 주었다. "쓸쓸하겠군요?" 하고 마리야는 기름이 묻은 손으로 어머니의 어깨를 탁 치면서 물었다. "그렇지만 슬퍼하지는 마세요. 붙잡아서 끌고 가보았자, 별 대단한 불행은 아니에요. 그다지 나쁠 것도 없으니까요 ! 옛날에는 감옥에 투옥당하는 것은 도둑질을 했기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정의를 지킨다고 해서 집어넣기 시작했어요, 파벨이 말한 것에 혹시 잘못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 아이는 모두를 위해서 일어난 거예요. 따라서 모두가 알고 있다구요. 걱정할 것 없어요. 모두가 입 밖에 내서 말은 하지 않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 다 알고 있어요. 언제나 당신 집에 들러 보아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말이에요. 나는 이렇게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팔지만, 죽을 때는 틀림없이 거지가 되어 있을 거라구요. 제비족들에게 모두 털리고 있으니까. 그 빌어먹을 녀석 ! 마치 빵에 달려드는 바퀴벌레 새끼들 같다구요 ! 10루블 정도만 저축해도, 어디선가 냄새를 맡고 찾아와서 그 돈을 굴꺽 삼켜 버린다니까요. 여자란 참 곤란한 동물이에요 !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이 여자라구요. 혼자 살아가기는 어렵고, 둘이서 살면 남아나는 것이 없고." "그런데 마리야, 나는 자네를 도울 조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왔는데." 하고 블라소바 부인은 그녀의 끝없는 넋두리를 가로막고 말했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요?" 하고 마리야는 물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얘기를 모두 듣고 나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좋구말구요 !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은 나를 남편의 손에서 자주 숨겨 주었쟎우.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가난에서 지켜 줄게요. 모두가 힘을 합쳐서 당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돼요. 왜냐하면 당신의 아들은 모든 사람들 때문에 당했으니까요. 그 아이는 좋은 젊은이예요. 그것은 모두가 한결같이 칭찬하는 말로, 모두가 그 아이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다구요. 나는 말해 두지만 그런 검거 같은 것을 해보았자, 윗놈들에게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구요. 이제 두고 보라구요. 공장이 어떤 꼴인지 ? 좋지 않다는 얘기예요. 윗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뒤 꿈치를 물어 버리면 멀리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라구요 ! 열 명을때려서, 몇백 명을 화가 나게 만든 꼴이 되었다구요."' 이야기가 잘 되어서 그 이튿날 점심 시간에는 블라소바 부인이 마리야가 만든 음식을 두 통 짊어지고 공장으로 가고, 마리야는 시장으로 장사를 나가게 되었다. 15 노동자들은 즉시 새로운 여자 행상인을 알아차렸다. 개중에는 그녀 옆으로 다가와서 이렇게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일을 시작했군요, 닐로브나 부인 ?" 그리고 파벨은 곧 석방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위로해 주는 사람도 있고, 또 동정의 말로 그녀의 슬픈 마음을 흐리게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또 증오를 담아서 공장장이나 경찰들을 욕해서, 그녀의 가슴 속에 그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꼴 좋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출근 기록원인 이사이 고르보프는 입을 우물우물 거리면서 말했다. "내가 통치자라면 당신과 그 아들을 교수형에 처해 버릴 텐데 !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짓은 하지 말라구." 그녀에 대한 이런 심술 사나운 협박조의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시체와 같은 한기를 느꼈다. 그녀는 이사이에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만 그의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을 흘끗 보았을 한숨을 짓고 땅바닥으로 눈을 떨어 뜨렸다. 공장 안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여기저기 무리지어 무엇인가 작은 소리로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관리자들은 근심스러운 듯이 사방으로 뛰어 다니고 있었다. 이따금 욕지거리나 짜증스러운 웃음소리가 울려왔다. 두 명의 경찰이 그녀 옆을 지나 사모일로프를 연행해 갔다. 그는 한 손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다른 한 손으로 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걸어갔다. 백 명 가량 되는 노동자의 무리가 경찰에게 욕설과 조소를 퍼부으면서 사모일로프를 전송하고 있었다. "그리샤, 산책이나 갔다 오게." 하고 누군가가 그에게 소리쳤다. "우리들의 형제에게 경례 !" 하고 다른 한 사람이 그것을 응원했다. "호위병을 데리고 산책가는 거야?" 그리고 경찰을 향해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도둑놈을 잡는 것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 모양이로군." 하고 키가 큰 애꾸눈의 노동자가 독살스럽게 큰소리로 말했다. "성실한 사람을 잡아가는 것을 보니깐." "하다 못해 한밤중에 끌고 가는 것이 나을 텐데" 하고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대낮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개새끼들." 경찰관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하고, 또 자신들을 쫓아서 날아 오는 외침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종종 걸음으로 걸어갔다. 맞은편에서 노동자 세 명이 커다란 철봉을 운반해 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경찰관들 쪽으로 향하고서 소리쳤다. "조심해라, 이 고기잡이 녀석들 !" 블라소바 부인 옆을 지나갈 때, 사모일로프는 엷은 미소를 띄우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지금 잡혀가는 길이에요?" 그녀는 잠자코 그에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녀는 정직하고 성실한 젊은이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에 감동했다. 그녀의 마음에는 이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다운 연민이 담긴 애정이 솟구쳐 올랐다. 공장에서 돌아오자 그녀는 하루종일 마리야의 집에서 보내면서 일을 도와 주거나 넋두리를 들어 주거나 했다. 그리고 밤 늦게 자기 집으로 돌아 오자 집안은 춥고 을씨년 스러웠다. 그녀는 웬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가 없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도 알 수가 없어서 한참 동안 방의 이쪽 구석에서 저쪽 구석으로 왔다 갔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밤증이 되도록 이고르 이바노비치가 약속한 전단을 가지고 오지 않는 것이 걱정되었다. 창밖에는 봄 눈이 날리고 있었다. 그 눈발은 부드럽게 유리창에 달라 붙어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떨어지고, 젖은 자국을 남기며 녹아내렸다. 그녀는 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재빨리 달려가서 문을 열자 사웬카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처녀의 부자연스럽도록 뚱뚱해진 몸매였다. "어서 들어와." 하고 어머니는 밤의 몇 시간을 외톨이로 보내지 않게 된 것을 기뻐하며 말했다. "오랫동안 만나지를 못했구먼. 어디 갔다 온 건가?" "아니에요. 감옥에 들어가 있었어요." 하고 아가씨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와 함께요. 그 사람을 기억하고 계세요?" "물론 기억하고말고 !" 하고 어머니는 외쳤다. "어제 이고르 이바노비치에게서 그 사람이 석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우, 하지만 아가씨 일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우... 아가씨가 그곳에 있다는 것은 아무도 얘기해 주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얘기할 만한 값어치도 없어요. 저는 이고르 이바노비치가 오기 전에 옷을 갈아입어야겠어요 !" 하고 아가씨는 주위를 둘러 보면서 말했다. "어머, 흠뻑 젖었네..." "제가 유인물을 가져왔어요." "자, 이쪽으로 줘요, 어서 줘요." 하고 어머니는 독촉했다. 아가씨는 재빨리 외투의 단추를 풀고 몸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마치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지듯이 그녀의 몸에서 종이 뭉치가 바삭바삭 소리를 내면서 마루 위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것을 마루 위에서 주워 올리며 말했다. "나는 또 아가씨가 이상하게 살이 찐 것을 보고 벌써 시집을 가서 아기가 생긴 줄 알았지 뭐야. 어머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 정말로 걸어서 온 거야?" "그럼요." 하고 사웬카가 말했다. 그녀는 다시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모습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뺨이 움푹 들어가고 눈이 커지고, 그 밑에 기미가 낀 것을 보았다. "갓 출옥해서 휴식을 취해야만 할 탠데." 하고 한숨을 짓고 머리를 흔들면서 어머니는 말했다. "그렇게 한가하게 있을 수가 없어요." 하고 아가씨는 몸을 떨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파벨 미하일로비치는 어땠나요? 태연했지요? 별로 흥분도 하지 않았죠?" 사웬카는 물으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를 기울인 채 머리 칼을 어루만지고 있었는데, 그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태연하구말구 !"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 아이는 정채가 드러 날 것 같은 짓은 하지 않으니까." "그 사람, 몸은 건강하지요?" 하고 작은 소리로 아가씨가 물었다. "한 번도 병에 걸린 적이 없다우."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아가씨는 너무 몸을 떠는구먼. 내 곧 딸기잼이 들어간 차를 만들어 줄게." "고맙습니다만 너무 시간이 늦어서요. 가만히 계세요. 그럼, 제 손으로 끓일게."' "그렇게 지쳐 있으면서 ?" 하고 어머니는 나무라듯이 대답하고, 사모바르 주위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사웬카도 부엌으로 나와서 의자에 걸터앉아 양손을 머리 위에 대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역시 감옥은 몸을 쇠약하게 만들어요. 지겨울 정도로 할 일이 없어서 말이에요 ! 이것보다 더 쓰라린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짐승처럼 우리 속에 갇혀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게까지 지쳐 있는 데도 도대체 누가 아가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겠어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그리고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에게 대답했다.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지 않을 거야. 그러나 아가씨도 하느님을 믿지 않겠지 ?" "그럼요." 사웬카는 고개를 흔들면서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자네들을 믿을 수가 없어." 하고 갑자기 흥분해서 어머니는 말했다. 그리고 석탄으로 더러워진 손을 앞치마로 닦으면서, 어머니는 깊은 확신을 담아서 말을 계속했다. "자네들은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구 ! 하느님을 믿지 않고 어떻게 이런 생활을 할 수가 있겠어 ?" 현관에서 누군가가 커다란 발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몸을 떨었다. 사웬카는 재빨리 일어나서 빠른 말로 속삭였다. "문을 열지 마세요. 만일 저놈들이 경찰이라면, 아주머니는 나를 모르는 것으로 해야 해요. 나는 집을 잘못 알고 우연히 이곳에 들어와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아주머니가 외투를 벗겼더니 이 유인물이 나왔다고 하세요. 아시겠어요?" "어머, 어떻게 그린 짓을..." "잠깐 기다리세요." 하고 귀를 기울이면서 사쳰카가 말했다. "이고르 같아요." 예상대로 이고르였다. 눈에 함빡 젖어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허허! 사모바르군요." 하고 이고르는 외쳤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최고죠, 아주머니 ! 사웬카, 당신도 와있었군요 !" 비좁은 부엌 안이 떠들썩하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는 외투를 천천히 벗으면서 얘기했다. "이 아가씨는 관리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불쾌한 아가씨랍니다. 감옥의 교도관이 모욕했다고 해서, 이 아가씨는 그놈이 사과하지 않는다면 단식 투쟁을 해서 죽어 보이겠다고 선언했답니다. 그리고 8일 간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 때문에 다리도 뻗을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대단하지요? 그런데, 나의 이 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는 떠들어대면서 꼴 사납게 축 늘어진 배를 양손으로 꼴어안듯이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뒷손으로 문을 닫은 뒤에도 계속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정말로 8일 간이나 아무것도 안 먹었단 말이야?" 하고 놀라서 어머니는 물었다. "그놈에게 사과를 받아 내야만 했으니까요 !" 하고 사웬카는 추운 듯이 어깨를 추스르면서 대답했다. 그녀의 냉정함과 강렬한 외고집은, 어머니의 마음에 뭔가 비난과 같은 것으로 반응했다. "어머, 저런." 하고 어머니는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하지만, 만일 죽어 버린다면 ?" "할 수 없죠, 뭐." 하고 사웬카는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놈은 결국 사과를 했어요. 인간은 모욕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구요." "글쎄..." 하고 천천히 어머니는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들 같은 여자는 평생 모욕만 당하고 살아왔거든."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왔답니다." 하고 이고르는 문을 열면서 말했다. "사모바르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그럼, 내가 이걸 가져가겠습니다." 그는 사모바르를 들어 올려 그것을 옮기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하루에 스무 잔 이상의 차를 마셨지요. 그 때문에 큰 병없이 73년이나 사셨지요, 체중은 130킬로나 나갔고, 보스크레스크 마을의 집사셨거든요." "아버님이 이반이시죠?" 하고 어머니가 외쳤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주머니는 그런 것을 다 알고 게세요 ?" "나도 보스크레스크 마을 출신이니까요." "우리 고향 분이셨군요. 어느 집이었죠?" "댁의 이웃이지. 세레긴 집이라우." "다리를 절던 닐 씨의 따님이십니까? 어쩐지 낯이 익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몇 번씩이나 내 귀를 잡아당기곤 했으니까요." 사람은 마주보고 서서 서로에게 질문을 퍼부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사웬카는 빙글빙글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차를 타기 시작했다. 찻잔 소리에 어머니는 현재로 되돌아왔다. "어머, 미안해요. 정신없이 얘기를 하느라고 !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도 기쁜 일이라서..." "나야말로 이렇게 공연히 폐만 끼쳐드려서 용서를 빌어야겠어요. 그러나 벌써 10시가 지났군요. 나는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어디로 갈 작정인데 ? 시내로 말인가?" 하고 놀라서 어머니는 물었다. "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렇게 어둡고 눈이 내리는데 아가씨는 지금 너무 지쳐 있단 말야 ! 여기서 자고 가도록 해요. 이고르 이바노비치는 부엌에서 자고, 아가씨와 나는 여기서..." "아네요. 저는 가야 해요." 하고 아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요, 아주머니, 아가씨는 모습을 감추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이 아가씨는 이곳에서는 얼굴이 잘 알려져 있거든요, 만일 내일 길거리에 나타 났다가는 낭패를 당할 거예요." 하고 이고르가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몸으로? 혼자서 가겠다는 거야?" "갈 수 있어요 !" 하고 이고르는 엷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르고 빵을 한 조각 집어서 소금을 뿌린 다음, 깊은 생각에 잠겨 어머니를 보면서 먹기 시작했다. "자네들은 참 대단해. 아가씨도 나타샤도. 나 같으면 무서워서 도저히 갈 수 없을 거라구 !" 하고 블라소바 부인이 말했다. "이 아가씨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일 거예요!" 하고 이고르가 끼여 들었다. "무섭지요, 사웬카?" "그야 물론이죠." 하고 사웬카가 대답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그리고 이고르에게 힐끗 시선을 보내고는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로 자네들은... 지독하군, 그래." 차를 마시고 나자 사웬카는 잠자코 이고르와 악수를 하고는 부엌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그녀를 전송하려고 그 뒤를 따라나갔다. 부엌에서 사웬카가 말했다. "파벨 미하일로비치를 만나시면 안부 전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 그리고는 문의 손잡이를 잡고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주머니께 키스를 해도 괜찮겠어요?" 어머니는 말없이 그녀를 끌어 안고 뜨거운 키스를 했다. "고맙습니다." 하고 사첸카는 작은 소리로 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방으로 돌아와 불안스러운 듯이 창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으로 함박눈이 묵직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프로조로프 씨를 기억하고 계세요?" 하고 이고르가 물었다. 그는 양발을 넓게 벌리고 걸터앉은 채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찻잔에다 후후 숨을 내뿜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빨갛고 땀에 젖어 있었는데 만족스러워 보였다. "기억하지. 기억하구말구." 어머니는 옆 걸음으로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의자에 앉아서 슬퍼 보이는 눈으로 이고르를 바라보고 나서 천천히 말끝을 끌면서 말했다. "이런, 이런 ! 사웬카는 어떻게 집에 돌아가려는 걸까?" "지쳐 있을 거예요." 하고 이고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옥에서 그 아가씨는 굉장히 쇠약해서 나왔으니까요. 전에는 아주 건강했었거든요. 게다가 그 아가씨는 가정 환경이 좋아서 곱게 자랐거든요." "아무래도 결핵에 걸린 것 같더군요." "그 아가씨의 집안은 어땠었나?" 하고 작은 소리로 어머니는 물었다. "사웬카는 지주의 딸 입니다. 그 아가씨의 얘기로는, 부친이 비열한 인간이더군요. 아주머니,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계세요 ?" "누가 말이우?" "그 아가씨와 파벨이 말입니다. 하지만 좀처럼 잘 되지를 않네요. 파벨이 밖에 나와 있을 때는 그녀가 감옥에 있고, 이번에는 그 반대니까요 !" "나는 전혀 그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하고 어머니는 잠시 입을 다물고 나서 대답했다. "파벨은 개인적인 일은 나에게 전혀 말하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는 한층 더 사홴카가 에처로워졌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원망하는 눈으로 손님을 힐끗 바라보고 나서 말을 꺼냈다. "자네가 함께 따라가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수가 없답니다." 하고 조용히 이고르는 대답했다. "산더미처럼 할 일이 밀려 있어서요. 나는 아침부터 하루 온 종일 걷고 또 걷고, 계속 걷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천식병 환자에게는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지만요." "사웬카는 좋은 아가씨로구먼." 하고 어머니는 이고르에게서 들은 얘기를 생각하면서 말했다. 어머니는 이런 중요한 얘기를 아들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들은 것이 언잖았다. 그래서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쪽 어깨를 떨어뜨렸다. "좋은 사람이지요." 하고 이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아주머니는 그 처녀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공연한 일입니다. 우리들 모반인들을 모두 불쌍하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아주머니의 심장은 몇 개가 있어도 부족할 데니까요. 솔직히 말한다면, 모두들 그다지 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바로 얼마 전에도 내 동료 중 하나가 유형지에서 돌아왔습니다. 친구가 니즈니 노브고로드로 떠날 때 부인과 갓난애는 스몰렌스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스몰렌스크에 도착했을 때는 부인과 갓난애는 이미 모스크바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부인이 시베리아로 갈 차례였지요. 나에게도 역시 아내가 있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이런 생활을 5년이나 한 끌에 무덤으로 끌려 가버렸어요." 그는 한 잔 가득히 따른 차를 단숨에 마셔 버리고는 얘기를 계속했다. 투옥 중이나 유형 중의 세월을 헤아리고, 갖가지 불행을 만났던 일, 감옥에서 두들겨맞았던 일, 시베리아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던 일을 얘기해 들려 주었다.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난이나 박해나 사람들에 대한 모욕으로 가득 찬 이와 같은 생활에 대해서, 그가 숨김없이 냉정하게 얘기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젠 우리들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요." 그의 목소리는 변하고 얼굴은 진지해졌다. 이고르는 그녀가 어떻게 공장 안으로 유인물을 운반하려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가 여러가지로 자질구레한 일을 잘 알고 있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얘기가 끝나자, 두 사람은 또다시 자신들의 고향 마을의 추억담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고르는 농담을 하고, 어머니는 수심에 잠긴 듯이 자신의 과거 세계를 헤매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과거의 세계는 그녀에게는 단조롭게 조그만 언덕이 흩어져 있는 늪과 기묘하게 닮아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늪에는 가늘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시나무와 키가 큰 전나무와 그리고 작은 언덕 사이에는 길을 잘못 든 것 같은 자작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자작나무는 성장이 느리고, 그 질척질척한 지반 위에 5년 가량이나 서있은 뒤, 쓰러져서 썩어 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엇인가가 불쌍해지는 것이었다. 그녀 앞에는 격렬하고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처녀가 나타났다. 그 처녀는 지금 눈이 심하게 내리는 속을 혼자서 피로에 지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은 감옥 안에 있다. 아마도 아직 자지 않고 어떤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에미가 아니다. 그에게는 어머니보다도 가까운 사람이 있다. 괴롭고 가슴 답답한 생각은 뒤엉킨 비구름처럼 어머니의 온몸을 기어다니면서 바짝 심장을 죄어왔다. "아주머니, 고단하시지요? 그만 주무세요." 하고 이고르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머니는 이고르에게 인사를 하고 나자 스며드는 쓰라린 상념을 가슴에 안고 옆 걸음으로 조용히 부엌으로 나갔다. 다음 날 아침 차를 마실 때 이고르가 물었다. "그러나 만일 아주머니가 붙잡혀서 어디에서 이 유인물을 가져왔느냐고 심문당한다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이 알 바 아니오 하고 말해 주겠네."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놈들은 그런 대답으로는 절대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고 이고르가 반대했다. "그놈들은 이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임무라고 깊이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기를 쓰고 납득이 갈 때까지 물어볼 것 입니다." "그래도 나는 말하지 않을 작정이네 !" "그럼, 아주머니는 감옥에 들어가시게 될 거예요." "그것이 어쨌다는 건가? 하다 못해 그 정도로 도움이 된다면 고마운 일이지 !" 하고 그녀는 한숨을 지으면서 말했다. "누가 나 같은 것을 필요로 하겠나? 아무도 없을 걸세. 게다가 고문 같은 것은 하지 않을 테니까." "흐음 !" 하고 이고르는 뚫어질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고문은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훌륭한 사람은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해야 한 답니다." "자네한테 그런 것은 배우지 않아도 되네." 하고 어머니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이고르는 입을 다물고 방을 가로 질러 걸어와서 그녀 옆에 서서 말했다. "괴로운 일입니다. 아주머니 ! 아주머니에게는 무척이나 괴로운 일 일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다 괴로울 테지 !" 하고 손을 흔들면서 그녀는 대답했다. "아마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빼놓고는 그 사람들은 조금은 편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도 훌륭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조금씩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네..." "하지만 아주머니, 만일 아주머니가 그것을 이해해 준다면, 그 사람들에게,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얘기입니다!" 하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그를 흘끗 보고는 잠자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오가 되자 그녀는 침착하게 자신의 가슴 주위에 유인물을 집어 넣었다. 그 방법이 하도 능숙해서 이고르는 만족스럽게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대단히 좋습니다! 독일인은 맥주를 열 병 마셨을 때 그렇게 말한다더군요, 아주머니. 유인물이 아주머니의 모습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군요. 아주머니는 역시 뚱뚱하고 키가 큰, 중년 부인 그대로입니다. 신들도 아주머니의 일의 시작을 축복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반 시간쯤 뒤에, 어머니는 짐이 무거워서 등을 약간 구부리면서도, 침착하고 태연스런 모습으로 공장문 옆에 서있었다. 두 명의 수위가 노동자들의 조롱에 짜증을 내면서 공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서로 욕설을 주고 받으면서 난폭하게 몸 수색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한 사람의 경찰관과 붉은 얼굴에 약삭빠른 눈매의 다리가 가느다란 사나이가 서 있었다. 어머니는 멜대를 어깨에 바꿔 메면서 저놈이 첩자 임이 분명하다고 느끼면서, 이마 너머로 그 사나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키가 큰 곱슬 머리의 청년이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자신의 몸을 뒤지고 있던 수위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 너희들, 주머니 같은 것을 뒤지지 말고 머리 속을 뒤져봐라 !" 수위 중 하나가 대답했다. "네 녀석의 대가리에는 이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구." "네 녀석은 머리 속을 뒤질 것도 없어, 주머니를 뒤져야지." "너희들이 잡을 수 있는 건 농어가 아니라, 기껏해야 이 정도라구 !" 하고 노동자가 마주 고함을 쳤다. 첩자가 그를 재빨리 흩어보고 침을 탁 뱉었다. "나를 지나가게 해주세요 !" 하고 어머니는 부탁했다. "보시다시피 짐을 메고 있어서 어깨가 부러질 것만 같아서요 !" "빨리 들어갓!" 수위가 화가 난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 여자까지 잔 소리를 하고 있구만..." 어머니는 공장 안으로 무사히 들어 오게 되자 땅바닥에 큰 항아리를 내려놓고, 땀을 닦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대장장이인 구세프 형제가 다가왔다. 그리고 형인 바실리가 미간을 찡그리고 큰소리로 물었다. "피로그(튀김 만두) 있소?" "내일 가지고 올게요 !"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것은 미리 정해둔 암호였다. 형제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반은 참을 수 없게 되어서 소리쳤다. "정말로 대단한 아주머니시군요." 바실리는 쭈그리고서 큰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동시에 그의 품 안으로 전단 뭉치가 던져 넣어졌다. "이반!" 하고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자구!" 그렇게 말하면서 재빨리 그는 전단을 장화 속에 쑤셔넣었다. "새 행상인을 단골로 삼아야지....." "그렇고말고 !" 이반은 맞장구를 치면서 소리를 내서 웃었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면서 목청을 돋우었다. "양배추 수프! 따뜻한 국수!"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재빨리 전단을 꺼내 한 뭉치, 한 뭉치, 형제의 손에 건네주었다. 유인물이 그녀의 손에서 사라질 때마다. 그 헌병 장교의 얼굴이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의 성냥불처럼 그녀 앞에서 노란색 반점이 되어서 번쩍였다. 어머니는 마음이 언잖아져서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자아, 자, 이것도 맛있어요." 마지막 다발을 건네주면서 만족스러운 듯이 덧붙였다. "자아, 더 드세요." 노동자들이 손에 공기를 들고 다가왔다. 그들이 가까이 오자 이반 구세프는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래서 블라소바 부인은 침착하게 수프와 국수를 건네주었다. 구세프 형제는 어머니에게 농담을 했다. "아주머니, 음식 맛이 좋네요." "다급하면 쥐 새끼도 잡아 먹는다고 하니까." 하고 보일러 공인 누군가가 음침하게 말했다. "돈버는 자식을 잡아 가다니, 악당 놈들 ! 자, 국수를 3코페이카어치 주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머니 ! 어떻게든 될 거예요." "친절하신 말씀 정말 고마워요!" 하고 그녀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옆쪽으로 멀어져 가면서 신음하듯이 말했다. "말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요, 뭘..." 어머니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따뜻한 수프와 국수가 있어요." 어머니는 자신의 최초의 경험을 아들에게 어떻게 얘기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눈앞에는 역시 그 장교의 의심쩍어하는 심술사나운 누런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에서는 검은 콧수염이 난처한 듯이 실룩거리고, 짜증스러운 듯이 젖혀진 윗 입술 아래엔 앙다문 이빨의 흰 치골이 빚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종달새처럼 기쁨이 노래하고, 양쪽 눈씹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자아.. 또 갑니다." 16 마리야의 집에서 일을 마친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와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창 밖에서 흙탕물을 밟는 말발굽 소리가 나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부엌문 앞으로 달려갔다. 현관으로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누군지 알 수 없어서 문설주에 몸을 기대고 한쪽 발로 문을 밀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하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리고, 그녀의 어깨 위에 야윈 긴 양손이 놓여졌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기대가 빗나간 절망과 우크라이나 인 안드레이를 만난 기쁨이 뒤엉켜 불타을랐다. 어머니의 감정은 뜨거운 물결이 되어서 자신을 감쌌다. 어머니는 안드레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의 팔도 떨렸다. 어머니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울었다. 안드레이는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치 노래라도 부르듯이 말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 저는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파벨은 곧 방면될 거예요 ! 그에게 불리한 증거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동지들은 모두 조린 생선처럼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요." 어머니의 어깨를 안고 안드레이는 방 안으로 갔다. 어머니는 그에게 몸을 기댄 채 가슴 가득히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파벨이 제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더 할 수 없이 건강하고, 쾌활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곳은 굉장히 비좁아요. 이곳 사람들과 시내 사람들을 백 명 이상이나 붙잡아다가 한 방에 서너 명씩 수용하고 있으니까요. 감옥 당국은 그런 대로 괜찮고, 녹초가 되어 있더군요. 그 헌병 놈들이 잔뜩 일거리를 갖다가 안겨 주었으니까요 ! 그래서 감옥 쪽은 그다지 시끄럽게 명령하는 정도는 아니지요. '여러분, 조금만 더 조용해 주세요. 우리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 하고 오히려 부탁하더군요. 하여간 만사가 잘 되고 있습니다. 모두들 얘기를 나누거나 책을 서로 빌려 보거나 먹을 것을 나누어 먹고 있지요. 좋은 감옥입니다. 낡고 지저분하지만 대단히 여유가 있고 편안한 감옥이더군요. 형사 범들도 좋은 사람들이에요, 여러 모로 우리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나하고 부킨과 그 밖에 네 명이 방면되었습니다. 파벨도 곧 나올 거예요. 이것은 확실 합니다. 제일 늦게까지 남을 사람은 배소푸쉬코프일 거예요. 그 친구는 이 사람 저 사람 상관 없이 계속 덤벼들고 있으니까요. 헌병들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틀림없이 재판에 회부되든가, 고문을 당하거나 할 것입니다. 파벨은 그에게 '그만하게, 니콜라이, 자네가 아무리 고함을 쳐대도 저놈들은 좋아지지는 않는다네.' 하고 말해도 '놈들을 이 지상에서 상처 딱지처럼 때어내 버리겠어.' 하고 악을 쓰고 있답니다. 파벨은 조용하고 침착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파벨은 곧 석방될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곧 말이지 ?" 하고 어머니는 안심하고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어. 이제 곧 나올 거라는 걸 !" "알고 계신다면 됐습니다. 자아, 그럼 저한테 차를 한 잔 주시겠어요? 그리고 어떻게 지내셨는지 얘기해 주세요." 안드레이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동그란 눈 속에는 다정하면서도 슬픈 꽃이 빚나고 있었다. "나는 자네를 무척 좋아한다네, 안드류샤 !" 하고 어머니는 깊이 한숨을 내쉬면서 수염이 텁수룩하게 돋아 있는 그의 야윈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머니깨서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넓으니까요 !" 하고 의자 위에서 몸을 흔들면서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아닐세. 나는 자네를 특별히 좋아한단 말일세 !" 하고 그녀는 우겼다. "만일 자네에게 어머니가 계시다면, 이런 좋은 아들을 가진 것을 모두 시기할 거라구." 우크라이나 인은 고개를 흔들고 양손으로 세게 머리를 비벼댔다. "저에게도 어딘가에 어머니가 계실 것입니다." 하고 작은 소리로 그는 말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나?" 하고 어머니는 외쳤다. 그리고 성급하게, 만족한 기분으로 약간의 과장을 섞어가며 공장으로 유인물을 숨겨 들어간 경위를 얘기해 들려주었다. 안드레이는 처음에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맣게 뜨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껄껄거리고 웃기 시작하더니 양쪽 발을 움직이면서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소리쳤다. "허허 ! 농담은 아니시겠지요? 대단한 일이네요. 파벨이 기뻐할 거예요, 안 그래요? 이것 참 멋지군요, 어머니 ! 파벨을 위해서도, 모두를 위해서도." 안드레이는 신이 나서 손가락을 탁탁 튕기고, 휘파람을 불며 온몸을 흔들었다. 그의 얼굴에 기쁨의 빚이 감돌자 어머니도 더할 수 었이 기뻣다. "이봐, 안드류샤!"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 조용한 기쁨으로 가득 찬 말이 시냇물처럼 솟구쳐나왔다. "나는 말이야, 오오 예수 그리스도님! 나 자신의 일생에 대해서 생각했다네. 그래, 무엇 때문에 나는 살아왔을까? 두들겨맞고, 일을 하고, 남편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두려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거든. 그리고 파벨이 어떻게 해서 커 갔는지도 보지 않았고, 남편이 살아 있던 동안에는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는지, 어떠했는지도 몰랐다네 나의 마음은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남편이 화를 내지 않도록, 때리겠다고 위협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과 단 한 번만이라도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애처롭게 생각해 주도록 비위를 맞추는 일이었다네. 그러나 애처롭다고 생각해 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네. 그 사람은 나를 때렸지, 그리고 나를 마누라가 아니라, 원한을 품은 사람을 때리듯이 때리는 것이었네. 20년 간을 이런 생활을 해왔다네. 시집 오기 전의 일은 기억나지 않네. 생각해 내려고 해도 마치 장님처럼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이고르 이바노비치가 찾아왔었네. 그 사람과 나는 같은 마을 출신이더군.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어떤 일이 누구의 집에 일어났었는지 다 잊어버렸다네. 불이 난 일 은 기억하고 있네. 불은 두 번인가 났었거든. 아마도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으로부터 몰려 나가고, 마음은 완전히 닫혀지고, 장님이 되고 들리지 않게 되어 있는 모양일세."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고, 물 속에서 건져 올려진 물고기처럼 공기를 들이마신 뒤 목소리를 낯추고서 말을 계속했다. "남편이 죽고, 나의 관심은 아들에게 돌아갔네. 그런데 아들은 이런 일에 발을 들여 놓았다네. 그래서 나의 가슴은 다시 두근거리고, 아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다네...이 그 아이가 신세를 망치게 되면, 나는 어떻게 살아 나가느냔 말일세 ? 나는 얼마나 끔찍한 생각을 하고 불안을 맛보았는지 모르네. 그 아이의 운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다네..." 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머리를 흔들면서 의미깊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들 여자의 애정이라는 것은 순수한 것은 아니더군 ! 여자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사랑하거든. 그런데 이렇게 자네를 보고 있으면 자네는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자네에게 어머니가 필요할까? 게다가 다른 모든 사람들도 고통받고, 감옥에 투옥되거나 시베리아로 귀양 보내 져서 죽어가는 거라구. 젊은 아가씨들이 한밤중에 진흙탕 속을, 눈 속을, 그리고 빗 속을 걸어서 가고 시내에서 이곳까지 7킬로나 걸어오는 거야. 그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조종당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야. 그 사람들은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거라구 ! 그 사람들이야말로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일세 ! 믿음을 가지고 말이야. 안드류샤, 그런데 나는 그런 식으로는 할 수가 없어 ! 나는 나 자신에게 가까운 것만을 사랑하는 거야." "어머니는 할 수 있어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평소처럼 양손으로 힘껏 머리와 뺨과 눈을 문질렀다. "누구나 모두 가까운 것을 사랑하고 있지만, 그러나 커다란 마음 속에서는 멀리 있는 것도 가까운 것이지요. 어머니는 큰 일을 할 수가 있어요. 어머니의 마음은 너무나 크다구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수!" 하고 작은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나도 그것을 느끼고 있다네. 그런 식으로 생활하면 좋겠다고 말일세. 게다가 나는 자네를 좋아하네. 어쩌면 파벨보다도 더 좋아할지도 몰라. 우리 아이는 자기 마음을 털어 놓지를 않거든, 사웬카하고 결혼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어머니인 나에게 그런 말을 한 마디도 해주지 않는다네..." "그것은 오해입니다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반대했다. "저도 그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파벨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결혼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래요 ! 그녀가 결혼을 원해도 파벨은 원하지 않을 거예요." "어머, 그럴까?" 하고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니의 눈은 슬픈 듯이 우크라이나 인을 바라보았다. "그래, 정말 그럴까? 인간이 자신의 소망을 버린다는 말이로군." "파벨은 특별한 사람이에요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강철과 같은 사람이지요." "지금 그 아이는 저렇게 감옥에 들어가 있쟎은가!" 하고 어머니는 생각에 잠겨서 말을 게속했다. "걱정도 되고 또 무서워 죽겠네. 하지만 이제 그 정도는 아니야. 생활 전체도 달라졌고, 두려움도 달라졌거든. 모두의 일이 걱정일세. 마음도 변했고, 이제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있다네. 그 마음은 슬프기도 하고 또한 기쁘기도 하다네.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은 알지 못하지만, 자네들이 주님이신 하느님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화가 나고 슬프다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러나 자네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네. 그래 ! 그리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괴로운 생활로,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쓰라린 생활로 스스로 뛰어들어갔지. 자네들의 진리도 나는 알고 있네. 부자가 있는 한 국민은 무엇 하나 얻을 수가 없네. 진리도, 기쁨도, 아무것도 말일세 ! 이렇게 나는 자네들 사이에서 생활해 가면서 때때로 옛날 일을 생각하곤 했네. 발로 짓밟힌 나의 힘을, 나의 짓이겨진 젊은 마음을 말일세. 그러면 나는 자신이 불쌍해지고 슬퍼지는 걸세.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의 생활은 훨씬 좋아졌다네. 점점 더 나 자신을 알게 되었거든." 우크라이나 인은 일어났다. 깊이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으로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조심스럽게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머니, 참으로 좋은 말씀을 하셨어요." 하고 안드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좋은 말씀입니다. 케르치에 젊은 유태인이 있었어요. 그는 시인이었죠. 언젠가 이런 시를 썼습니다. <죄없이 살해당한 사람들까지도 진리의 힘은 소생시켜 줄 것이다.> 이 청년은 그곳의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지만,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 청년은 진리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수 없이 많이 사람들 속에 뿌린 것입니다. 당신들이야말로 그 죄 없이 살해당한 사람들이라는 얘기입니다." "나는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지만," 하고 어머니는 얘기를 계속했다. "말을 하고 스스로 자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지만 내 말을 전부 믿지는 않는다네. 일생 동안 나는 단 한 가지 것을 생각해 왔네. 오로지 내가 어떻게 하면 방해받지 않고 하루를 조용히 보낼 수 있을까, 눈에 띄지 않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네. 그런데 지금은 모두의 일을 생각하고 있네. 나는 자네들의 일은 잘 모를지는 몰라도, 어떤 사람이나 나에게 있어서 가까운 사람들로는 모두가 불쌍하고,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을 바라고 있다네. 게다가 나는 안드류샤, 자네에게는 특별히..." 안드레이는 어머니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잡아 힘껏 흔들고는 얼굴을 돌렸다. 흥분으로 피로해진 어머니는 느릿느릿 찻잔을 씻으면서 잠자코 있었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감정이 조용히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방 안을 서성이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언젠가 기회를 봐서 베소푸쉬코프에게 상냥한 말이라도 한마디 걸어 주세요. 그 친구의 부친도 감옥에 가있답니다. 몹시 불쾌한 노인이지만요. 니콜라이는 창 너머로 그 부친을 보고 욕지거리를 퍼붓곤 하더군요. 옳지 못한 행동이지요. 그러나 니콜라이는 좋은 사람이에요. 동물은 무엇이나 좋아하면서도 사람은 싫어해요. 그 정도로까지 인간성이라는 것이 손상될 수가 있다니 !" "그 사람의 어머니는 행방 불명이고, 아버지는 도둑에다가 술 주정뱅이니까." 하고 어머니는 우울하게 말했다. 안드레이가 자러 가자, 어머니는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그에게 성호를 그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잠자리에 누워서 반 시간 가량 지났을 때,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자지 않나, 안드류샤?" "네, 무슨 일입니까?" "잘 자게 !" "고맙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하고 안드레이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에서 대답했다. 17 이튿날 닐로브나 블라소바 부인이 음식이 담긴 통을 짊어지고 공장 문 옆에까지 오자 수위들이 난폭하게 그녀를 불러 세웠다. 항아리를 땅바닥에 내려 놓으라고 명령한 뒤, 꼼꼼하게 조사했다. "내 음식이 모두 식어 버린다구요 !" 하고 어머니는 자신의 몸 수색을하고 있는 그들에게 침착하게 항의했다. "잠자코 있어요." 수위 한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또 한 사람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찌르고 자신있게 말했다. "내가 뭐랬어 ? 울타리 밖에서 던져넣고 있는 거라구 !" 그녀 옆으로 시조프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들었소, 아주머니 ?" "무엇을 말인가요?" "전단 말이오. 또 나왔어요. '자아, 잘 오셨습니다' 하는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사방에 뿌려졌다구요. 그래서 검색이다. 가택 수색이다 하고 난리가 벌어졌어요. 내 조카인 마진도 감옥에 끌려갔고 당신의 아들도 끌려갔는데 전단이 나오는 걸 보면 아이들이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셈 아니오?" 시조프 노인은 자신의 턱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걱정이 담긴 말을 하면서 떠나갔다. "우리 집에도 좀 놀러 오시구려. 혼자서는 외로울 텐데."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음식의 이름을 외치면서 공장 안이 평소와는 다르게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모두들 흥분해서 이곳 저곳에 모여 있었고,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매연이 들어찬 공기 속에서는 뭔가 활기찬 숨결이 느껴졌다. 여기저기에서 찬성의 외침이나 조소적인 구령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이든 노동자들은 조심스럽게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공장의 간부는 바쁜 듯이 돌아 다니고, 경찰관들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노동자들은 느릿느릿 흩어져 가버리든가, 혹은 슬그머니 얘기를 중단하고 그들의 살기등등하고 초조한 얼굴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모두 말쑥한 게 세수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구세프의 키가 큰 모습이 얼핏 보이고, 동생은 오리 걸음걸이를 해보이면서 껄껄거리고 웃고 있었다. 어머니 옆을 천천히 목공장의 감독인 바빌로프와 출근 기록원인 이사이가 지나갔다. 왜소하고 허약한 이사이는 머리를 흔들어대고, 목을 왼쪽으로 구부렸다. 그리고 감독의 찡그린 얼굴을 바라보고 조그만 턱수염을 흔들면서 빠른 말투로 얘기했다. "저 녀석들이 웃고 있어요. 저 녀석들은 이번 일이 재미있나 봐요. 공장장님이 말한 것처럼 국가의 파괴에 관한 사건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풀을 가는 정도로는 안 되겠어요. 아예 쟁기로 갈아 엎어 버리든지 해야지..." 바빌로프는 등짐을 지고 걸어갔다. 그는 손가락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빌어먹을, 좋을 대로 인쇄를 해보라지!" 하고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에 대해서 한 마디만 써봐라." 바실리 구세프가 다가와서 말했다. "아주머니한데서 점심을 사 먹어야겠어요. 맛있거든요." 그리고 눈을 꿈벅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명중이에요. 아주머니. 아주 잘했어요." 어머니는 상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서 소문난 난폭자인 이 젊은이가 공손한 말투로 얘기를 걸어준 것이 기뻤고, 공장 전체의 흥분한 모습도 기뻤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만일 내가 없었더라면..."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세 사람의 인부가 멈춰 섰다. 그 한 사람이 작은 소리로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한 장도 찾을 수가 없었어..." "얘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나는 글씨를 읽지 못하지만, 그놈들이 옆구리를 한 방 맞은 것은 알고 있다구 !" 다른 사람이 말했다. 또 한 사람은 주위를 살펴보고 말을 꺼냈다. "보일러실로 가세. 내가 읽어 주지." "지금 효력이 나타나고 있어요." 하고 구세프가 눈짓을 하면서 속삭였다. 닐로브나 부인은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는 글씨를 읽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더라구." 하고 어머니는 안드레이에게 말했다. "나도 젊었을 적에는 읽을 수가 있었는데 모두 까먹어 버려서." "지금부터 공부를 해보세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권했다. "이 나이에 말인가? 사서 웃음거리가 될 것까진 없쟎아." 그러나 안드레이는 서가에서 책을 한 권 끄집어내서 표지의 문자를 나이프 끝으로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 글자는 뭐죠 ?" "에뢰외 !" 하고 웃으면서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럼, 이것은요?" "아..." 그녀는 쑥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안드레이의 눈이 웃음을 감추며 자기를 비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상냥하고 차분했으며 얼굴은 진지했다. "안드류샤, 설마 자네는 정말로 나에게 글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니겠지?"'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러면 안 된단 말씀이세요?" 하고 안드레이는 반문했다. "어머니는 예전에 읽을 수 있었으니까 생각해내는 것은 간단하다구요. 기적은 일어나지 않더라도 괜찮지만 일어나도 나쁘지는 않다고들 하더군요." "하지만 성상을 잠깐 바라보는 정도로는 성자가 될 수 없다고도 말하니까." "그야 물론이죠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했다. "속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는 것이 적으면 깊은 잠을 잔다 같은 것은 잘못이겠지요? 속담을 생각하는 것은 위장입니다. 위장은 영혼을 다루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이 속담으로 영혼의 기반을 짜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슨 글자입니까?" "엘"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맞았습니다. 이렇게 발을 벌리고 있는 것 같지요. 그럼, 이것은?" 시력을 긴장시키고 눈썹을 무겁게 움직이면서 어머니는 잊어버리고 있던 문자를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열중했다. 그러나 얼마 뒤 어머니는 눈이 피로해졌다. 처음에는 눈이 피로해서 눈물이 흘렀지만 곧 슬픔의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읽고 쓰기 공부라니!" 하고 어머니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사십이 넘어서야 나는 겨우 지금 읽고 쓰기 공부를 시작한 거야."' "울지 마세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상냥하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그 밖의 생활을 할 수가 없었잖아요. 그래도 지금까지 헛되게 사셨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머니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가 있는 데도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좋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일하고 먹고, 일하고 먹고... 이렇게 평생의 세월을 오로지 일하고 먹는 일로만 보냅니다. 이런 생활에 무엇이 좋은 게 있겠어요? 그렇게 사는 동안 아이가 태어나고, 한동안 기쁨으로 생활하지요. 아이들이 자라서 많이 먹기 시작하면 화를 내며 '이 대식가 녀석, 빨리 커라, 이제 일해도 좋을 나이야' 라고 욕을 퍼붓습니다. 그때부터 자신의 자식들은 짐으로 여기게 되죠. 그리고 자식들이 차라리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기게 되지요. 그 아이들은 자신의 배를 위해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또다시 이런 생활이 한도 없이 계속되는 거지요. 오로지 인간의 이성을 묶는 사슬을 끊어내 버리는 인간만이 참다운 인간입니다. 지금 어머니도 나름대로 그 일에 착수한 셈이구요." "아닐세. 나 같은 것이 무엇을 하겠나?" 하고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나 같은 것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나?" "아니,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것은 보슬비와 같은 것입니다. 그 한 방울 한 방울이 곡물을 윤택하게 하는 거라구요. 아주머니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안드레이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방 안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아네요, 아주머니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파벨이 돌아오면 '아니, 이럴 수가!' 하게 될 것입니다." "아아, 안드류샤 !"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젊은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간단하지만, 그러나 나이를 먹게 되면 기억력도 부족하고, 머리는 완전히 쓸모가 없어져 버린다네...." 18 밤에 우크라이나 인이 외출을 하자, 어머니는 램프를 켜고 테이블을 향해 앉아서 양말을 꿰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뒤 일어나서 방을 지나서 부엌으로 나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눈썹을 찡그리면서 방으로 되돌아왔다. 창에 커튼을 내리고 주위를 살펴본 뒤 책 위에 몸을 구부렸다. 그리고 입술을 움직였다. 길거리에서 소리가 들려오면 그녀는 깜짝 놀라서 책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읽었다. "살, 고, 있, 는, 살, 땅,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서 책을 책장에 도로 꽃고 불안스러운 듯이 물었다. "누구세요 ?" "접니다." 루이빈이 들어와서 점쟎게 턱수염을 한 변, 쓰다듬고 말했다. "전에는 이름을 묻지 않고 열어 주시더니... 혼자십니까? 나는 또 우크라이나 인이 있는 줄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늘 그 친구를 보았거든요. 그 사람 감옥에서는 별로 상하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의자에 걸터앉더니 어머니에게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합시다." 루이빈은 뭔가 의미가 있는 듯한 비밀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불안했다. "무슨 일이든 돈이 필요한 법이지요." 하고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공짜로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니까요. 책이든, 전단이든 돈이 들어갑니다. 아주머니, 전단을 만드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있나요?" "몰라요." 하고 어머니는 뭔가 위험한 것을 느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나도 모릅니다. 둘째로 그 전단은 누가 만들고 있는 건가요 ?" "배운 사람들이겠지요, 뭐..." "배운 사람들, 가진 사람들이죠." 하고 루이빈은 말했다. 그의 수염이 난 얼굴은 팽팽히 긴장하고 붉어졌다. "그러니까 지식인들이 전단을 만들어서 뿌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전단에는 부자들에게 반대한다는 내용이 씌어 있어요. 그렇다면 어디 말해 봐요. 자기에게 반대해서 들고 일어나도록 하는 것을 위해서 돈을 쓴다면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는 겁니까?" 어머니는 눈을 깜빡거리고 겁이 나서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래요 !" 하고 루이빈은 의자 위에서 곰처럼 몸을 비틀었다. "바로 그거예요. 나도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소름이 끼칩디다." "그래서 무엇인가 알아냈나요?" "속임수예요." 하고 루이빈은 대답했다. "속임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속임수가 있다구요. 지식인들은 뭔가 그럴 듯한 소리들을 하면서 우리를 속이고 있어요. 내게 필요한 것은 진실이에요, 그리고 나는 그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냈어요. 지식인들과 함께 가지는 않을 거라구요. 그 사람들은 때가 되면 우리를 밀쳐내 버리고 다리라도 건너듯이 우리들 뼈 위를 밟고 지나갈 거예요." 루이빈의 말은 어머니의 마음을 마치 꽁꽁 묶는 것 같았다. "오오, 하느님 !" 하고 어머니는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정말로 파벨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게다가 그 사람들이..." 그녀 앞에 이고르나 니콜라이 이바노비치나 사웬카의 진지하고 정직한 얼굴이 깜빡거려서 그녀의 마음은 떨렸다. "아니에요 !" 하고 어머니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고 반론을 제기했다.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사람들은 양심을 걸고 하는 거예요." "누구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까?" 하고 신중하게 루이빈은 물었다. "모두의 얘기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얘기예요 !" "잘못 보셨어요, 아주머니. 좀더 앞을 보아야 해요 !" 하고 루이빈은 목을 떨어뜨리고 말했다. "우리들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아마 스스로도 아무것도 모를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그 뒷전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오로지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것만을 바라고 있는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자신을 반대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농사꾼다운 묵직한 신념을 가지고 루이빈은 덧붙였다. "그들에게서 좋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해낸 거지요?" 하고 어머니는 또다시 의혹에 사로잡혀서 물었다. "내가 말입니까?" 하고 루이빈은 흘끗 어머니를 보고 입을 다물고는 다시 되풀이했다. "지식인들로부터 떨어져야 한다구요." 그리고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계속 말했다. "나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이런 일에는 소질이 있거든요. 그리고 진실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떠날 거예요." 루이빈은 고개를 떨구고 잠시 생각했다. "혼자서 마을이나 시골을 돌아다니겠어요. 사람들에게 모반을 일으키게 하겠어요.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모두들 그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갈 것입니다. 나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어요. 자기 자신 외에는 믿을 것이 없지요, 자신의 머리 외에는 생각할 머리도 없다구요." 어머니는 그가 불쌍해지고, 이 사나이의 앞날이 어쩐지 끔찍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언제나 그녀에게 있어서는 싫었던 그가 지금은 웬지 친근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잘못하면 붙잡혀 들어갈 거예요." 루이빈은 그녀를 바라보고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붙잡혀도 방면할 걸요. 그러면 나는 또다시 할 겁니다." "농민들한테 붙잡힌다구요. 그리고 감옥에 들어가게 될 거예요." ''집어 처넣어 보았자 곧 풀려난다구요. 그러면 다시 하는 거예요. 게다가 농민들도 한두 번은 붙잡겠지만 이윽고 알게 될 겁니다. 나를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란 것을 말예요. 나는 농민들에게 말해 주겠어요. '당신들, 내가 말하는 것을 신용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다만 말하는 것을 들어만 달라'고 말예요. 그러나 듣고 나면 믿게 될 겁니다." 루이빈은 입에 담기 전에 마치 한 마디 한 마디를 손으로 더듬듯이 느릿느릿 얘 기했다. "나는 최근에 참으로 많은 것을 이해했어요.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저씨는 신세를 망치고 말 거예요, 미하일로 이바노비치 씨 !" 하고 슬픈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그녀는 말했다. 루이빈은 뭔가 묻고 싶은 듯이,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듯이 어둡고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단단한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양손은 의자의 팔걸이를 꽉 움켜 잡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얼굴은 검은 턱수염에 묻혀 창백하게 보였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리스도가 한 알의 밀알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는지 들은 적이 있나요? 죽지 않으면 새로운 싹이 되어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내겐 죽기까지는 아직 오랜 시간이 남아 있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른 길을 선택한 거지요. 지름길로 가야 더 빨리 갈 수 있지요. 제가 그것을 설명해 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군요." 루이빈은 의자 위에서 움찔움찔 몸을 움직이면서 서두르지 않고 일어 났다. "선술 집에 가서 사람들을 잠시 만나보고 가야겠어요. 우크라이나 인은 오늘은 돌아오지 않을 모양이군요. 슬슬 다시 시작한 모양이지요?" "그렇구말구요 !" 하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럴 거예요. 아주머니, 그 사람에게 내 얘기를 좀 해주세요."'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부엌에서 나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짧은 말을 교환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 "잘 가세요. 봉급은 언제 받나요?" "벌써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제 떠나지요?" "내일입니다. 아침 일찍요. 잘 있어요." 루이빈은 몸을 구부리더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어색스럽게 현관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문 앞에 서서 무거운 발소리와 자신의 가슴 속에 싹트기 시작한 의혹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몸을 돌려서 방을 지나 커튼을 조금 들어 올리고 창 밖을 보았다. 유리창 너머에는 어둠이 자욱이 끼어 있었다. '나는 한밤중 속에서 살고 있구나 !'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저 고지식한 농민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잠시 후 안드레이가 기분이 좋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그에게 루이빈 얘기를 하자 안드레이는 소리치며 말했다. "그래요, 그 사람에게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진리의 종을 울려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게 좋아요. 우리들과 함깨 해나가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어려울 테니까요. 그 사람의 머리 속에는 농민들의 생각만 가득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생각은 끼여들 수가 없다구요." "그리고... 그 사람은 부자들 얘기를 하고 있었다네. 그곳에는 뭔가가 있다고 말일세!" 하고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속지 말라고 하더군." "아픈 곳을 찌르는 말을 했군요." 하고 웃으면서 우크라이나 인은 말했다. "울화가 치미는 것은, 어머니, 돈입니다 ! 우리들에게 그 돈만 있다면 ! 우리들은 지금까지도 타인의 주머니에 의존하고 있어요, 니콜라이 이바노비치는 월 75루블을 받고 있는데 우리들에게 50루블을 주고 있답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구요. 학생들도 배고픔을 참으면서 때로는 몇 코페이카씩 모아서 보내 주고 있어요. 하지만 부자들 가운데도 물론 여러 가지 부류가 있어요. 속이는 자도 있고 떨어져 나가는 자도 있지만,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우리들과 모두 함께 전진하고 있어요." 안드레이는 두 손을 맞잡고 힘차게 말했다. "우리들이 꿈꾸는 최후의 축제는 멀었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메이데이에는 조촐한 일을 벌일 겁니다. 더 할 수 없이 유쾌합니다 !" 그의 기운찬 모습이 루이빈이 뿌린 불안을 쫓아냈다. 우크라이나 인은 한 손으로 머리를 비비면서 방 안을 돌아다니고, 그리고는 마루를 내려다 보면서 얘기했다. "이따금 마음 속에는 대단히 멋진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어디를 가든 가는 곳마다에 동지가 있고, 모두가 하나의 불로 타고 있어요. 모두가 유쾌하고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모두가 하나의 코러스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있지요. 모든 노래는 시냇물처럼 부지런히 흘러서 하나의 강으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 브그 강은 새로운 생활의 밝은 기쁨의 바다로, 넓고 유연하게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의 얘기에 방해가 될까 봐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 보다도 큰 관심을 가지고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의 얘기는 누구보다도 알기가 쉽고, 그의 말은 휠씬 강하게 마음을 움직였다. 파벨은 앞날에 대해 한 번도 얘기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 우크라이나 인은 그녀에게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그의 말 속에서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미래의 축제일에 대한 옛날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옛날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있어서 그녀의 아들이나 그 동료들 모두의 생활과 일의 의미를 비쳐내 주었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와서!"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머리를 흔들고 나서 얘기했다. "주위를 보면 으스스하고 더럽습니다. 모두가 지쳐 있고,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깊은 슬픔을 담아서 안드레이는 말을 계속했다. "이것은 화가 치미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그 이상으로 미워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되고 맙니다. 인간의 양면성이 보이게 됩니다. 너는 오로지 사랑하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야수처럼 덤벼 들어서, 살아 있는 마음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다운 얼굴을 발로 차 버리는 인간을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겠는가? 용서할 수는 었다!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모욕도 참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난폭한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등 위에 올라타고, 다른 사람들을 때리는 연습 같은 것은 하게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의 눈은 차갑게 번득였고 고집스럽게 머리를 갸우뚱거린 채 더욱 더 또렷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나는 가령 나 자신에게는 해가 안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된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 한 사람이 지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 오늘 내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모욕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해서 그냥 웃고 넘겨 버린다면, 그 모욕을 가한 인간은 나에게서 힘을 시험해 보고, 내일은 다른 사람의 껍질을 벗기러 들 것 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것은 다양한 관점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엄격히 갖고, 인간을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우리 편이다. 이 사람은 적이다.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정당하지만 서글픈 일입니다." 어머니는 웬지 그 장교와 사웬카를 생각해냈다. 한숨을 지으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정말 체에 거르지 않은 밀가루로 만든 빵과 같은 것이로군..." "그래서 난처하다는 것입니다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외쳤다. "그렇구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마치 이끼가 낀 커다란 바위같이 음침하고 무거운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나타샤의 남편이 된 우크라이나 인과 사웬카와 결혼할 아들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그러나 왜 그럴까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흥분해서 물었다. "이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라서 오히려 우스쾅스러울 정도예요. 그것은 오로지 인간이 평등한 입장에 서있지 않다고 하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구요. 모두를 평등하게 보세요 머리로 만든 것 전부, 손으로 만든 것 전부를 평등하게 나누어 봅시다. 서로를 공포와 시기의 노예 속에 놓거나 탐욕과 우둔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해보자구요." 두 사람은 종종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호트카는 공장에 복직하고, 그는 자신의 급료를 몽땅 어머니에게 건네 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파벨의 손에서 받아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럼 없이 돈을 받게 되었다. 이따금 안드레이는 눈에 웃음을 띄우고 어머니에게 권했다. "책을 읽을까요, 어머니, 어떠세요?" 어머니는 절반은 농담으로 그러나 완고하게 거부했다. 그러한 그의 미소가 그녀에게 어색한 기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간 화를 내면서 어머니는 생각했다. "자네가 비웃는데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겠나?" 그러나 자신의 귀에 익지 않은 책에 있는 이런저런 말의 의미를 그에게 묻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물어 볼 때 딴청을 부리며 마치 별 관심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안드레이는 그녀가 남몰래 혼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부끄러움을 이해하고 함께 책을 읽자고 권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얼마 뒤, 그녀는 안드레이에게 말했다. "눈이 자꾸만 나빠지는 것 같네, 안드류샤, 안경을 좀 사야겠어."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고 안드레이는 시침을 뚝 때고 말했다. "이번 일요일에 함께 시내로 가서 의사에게 보이고 안경을 사도록 하시죠." 19 어머니는 벌써 세 번씩이나 파벨의 면회를 부탁하러 갔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검붉은 뺨과 커다란 코를 가진 백발의 경찰 책임자는 상냥하게 거절했다. "일 주일 지난 다음에야 된다니까요. 그 전에는 안 됩니다. 아주머니 ! 일 주일 지나면 생각해 봅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됩니다." 경찰 책임자는 동글동글하고 살이 쩌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가게에 진열이 된 솜털과 같은 곰팡이에 뒤덮인 농익은 자두를 연상시켜 주었다. 그는 언제나 빼죽한 노란색 이쭈시개로 조그만 흰 이빨을 쑤시고 있었는데, 그의 작은 녹색이 섞인 눈은 상냥하게 미소를 짓고 목소리는 친절하고 다정한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정중한 사람이더군 !" 하고 어머니는 뭔가 궁리하는 얼굴로 우크라이나 인에게 말했다. "항상 싱글벙글하고 있고..." "그래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말했다. "그 친구들은 자못 친절하고 싱글벙글하지요. 그 친구들은 '자, 이 녀석은 머리가 좋은 성실한 인간이다. 이 녀석은 우리들에게는 위험하니까 목을 매달아야겠다.'고 말하죠. 그러면 그 친구들은 희죽이 웃고 목을 매답니다. 그리고는 또 싱글벙글 웃고 있겠지요." "우리 집으로 가택 수색을 나왔던 놈은 훨씬 단순하더라구." 하고 어머니는 비교해 보았다. "금세 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자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을 두들겨 패서 귀머거리로 만드는 망치 같은 존재입니다. 도구지요. 그 도구로 우리들을 편리하게 만들고 있지요. 그놈들은 우리들을 지배하는 자들에게 고용되어서 시키는 대로, 그것이 왜 필요한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무슨 짓이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어머니는 면회를 허가 받아서 일요일에는 감옥 사무실의 한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천장이 낮고 비좁은 지저분한 방 안에는 면회를 기다리고 있는 몇 사람의 가족이 있었다. 아마 사람들은 벌써 몇 번씩이나 이곳에 왔기 때문에 서로 아는 사이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거미줄같이 끈적거리는 낯은 얘기 소리가 느릿느릿 뒤엉켜 있었다. "들으셨나요?" 하고 무릎 위에 핸드백을 얹은 곰보상의 뚱뚱한 여자가 말했다. "오늘 아침 미사 때, 교회의 합창 지휘자가 합창대 아이의 귀를 잡아 찢었다는 얘기 말예요."' 퇴직 군인의 군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크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합창대 녀석들은 모두 난폭자들이라구요." 손이 길고 턱을 앞으로 내민, 키가 작은 대머리의 사나이가 사무실 안을 분주하게 돌아 다니고 있었다. 그는 계속 서성거리며 불안스러운 삐걱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람들도 점점 난폭해지는 거라구요. 중간육이 4킬로에 14코페이카, 빵이 또 2코페이카 반이나 되었답니다." 이따금 무거운 가죽 장화를 신고 회색 복장을 한 죄수들이 들어왔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들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 사람들의 발치에서는 족쇄가 찰그락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기묘하게 조용하고, 불쾌할 정도로 소박했다. 사람들은 그 생활에 익숙해져서 완전히 몸에 배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태연하게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사람이 있고, 망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고, 피로한 모습으로 죄수들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떨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 가슴 답답한 기운에 놀라서 주위의 모든 것을 의아스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블라소바 부인과 나란히 왜소한 몸집의 노파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주름 투성이였으나 눈은 맑았다. 가는 목을 돌리면서 그녀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상하게 도전하듯이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댁은 누가 이곳에 들어와 있습니까?" 하고 블라소바 부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들입니다. 학생이에요." 하고 노파는 크고 빠른 말투로 대답했다. "댁은요 ?" "아들이지요. 노동자입니다." "이름은 ?" "블라소바입니다." "들은 적이 없는 데요.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와 있었나요?" "7주째 됩니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는 10개월째라우 !" 하고 노파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 속에서 블라소바 부인은 자랑 비슷한, 뭔가 기묘한 것을 느꼈다. "그렇습니다." 하고 대머리 노인이 빠른 어조로 말했다. "인내도 한계가 있습니다. 모두가 짜증스러워하며 악을 써대고 있어요. 모든 것이 다 값만 오르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그것에 반비례해서 값어치가 내려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소리는 들을 수가 없군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하고 군복을 입은 사나이가 말했다. "추태입니다. 이제는 '닥쳐라!' 하는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단호한 목소리가..." 이야기는 공통적인 것이 되고 활기를 띠었다. 누구나 각자 생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서둘러 말하려고 했으나, 모두는 작은 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 속에서 뭔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인연이 없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집에서는 이것과는 달리 좁더 알기 쉽게, 좀더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붉은 갈색의 사각형 턱수염을 기른 뚱뚱한 교도관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 발 끝에서 머리 위까지 눈알을 굴리며 쏘아보고 나서, 그녀를 향해서 이렇게 말하고 절뚝거리면서 걸어갔다. "내 뒤를 따라 오시우." 어머니는 따라 가면서 좁더 빨리 걸으라고 교도관의 등을 떠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은 방 안에 파벨이 서있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한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그 손을 잡고 눈을 깜빡거리면서 웃음을 지었으나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 잘 있었니?" "어머님, 침착하세요." 하고 파벨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단다." "아주머니!" 하고 한숨을 내쉬고 교도관이 말했다. "떨어지란 말이요. 두 사람 사이에 간격을 두라구." 그리고 큰 소리로 하품을 했다. 파벨은 어머니에게 건강과 집안 일을 물었다. 그녀는 뭔가 그 밖에 물어 올 말을 기다리면서 그것을 아들의 눈속에서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언제나처럼 침착했으며, 다만 얼굴이 약간 창백하고 눈이 조금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웬카가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더라."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파벨의 눈꺼풀은 떨리고 얼굴은 부드러워 지더니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날카로운 아픔이 어머니의 마음을 옥죄었다. "이제 곧 너는 방면이 되겠지 ?" 하고 어머니는 노여움과 초조함을 담아서 입을 열었다. "무엇 때문에 투옥된 거냐? 글쎄, 전단은 아직도 나오고 있는데 말이야." 파벨의 눈이 기쁜 듯이 빚나기 시작했다. "다시 나왔다구요?" 하고 파벨은 흥분해서 물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하고 교도관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집안 일 뿐이야!" "하지만, 이것이 집안 얘기 아닙니까?" 하고 어머니가 항의했다. "그런 것은 나는 모릅니다. 다만 금지되어 있단 말이오." 하고 교도관은 무관심하게 우겨댔다. "어머님, 집안 일을 얘기하세요." 하고 파벨은 말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세요?" 어머니는 자신의 내부에 뭔가 싱싱한 격정 같은 것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공장으로 운반해 가고 있단다. 그것을 전부..." 말을 끊고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국수와 수프와 여러 가지 마리야의 음식과 다른 먹을 것을..." 파벨은 어머니의 말 뜻을 금세 알아들었다. 아들의 얼굴은 억누른 웃음 때문에 떨렸다. 머리칼을 긁어 올리더니 다정하게, 지금까지 어머니가 들어 본 적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에게 일자리가 있어서 다행이군요. 지루하지도 않구요?" "하지만 그 전단이 나타났을 때는 나도 몸 수색을 당하게 되었단다." 하고 얼마간 자랑스러운 듯이 어머니는 말했다. "또 그런 소리를!" 하고 교도관은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다. "하면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소! 아무것도 모르게 하려고 감금시켜 둔 거라구요. 그런데 당신은 제멋대로 지껄여 대고 있으니!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야지." "이제 그만하세요, 어머님." 하고 파벨은 말했다. "마트배이 이바노 비치는 좋은 분이에요. 이분을 화내게 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들은 이분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이분은 오늘 우연히 면회 입회인이 된 거예요. 여느때는 교도 소장의 부관이 입회하지만요." "면회 끝 !" 하고 교도관은 시계를 보고 말했다. "고마워요, 어머님 !" 하고 파벨은 말했다. "고맙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나는 곧 방면될 거예요." 파벨은 어머니를 힘껏 껴안고 키스를 했다. 어머니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떨어지라구 !" 하고 교도관이 말하고, 어머니를 데리고 나가면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울 것 없어요. 곧 방면될 테니까요! 모두 방면되고 있어요. 너무 비좁아서요." 집에 돌아오자 그녀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담고 힘차게 눈썹을 움직이면서 우크라이나 인에게 말했다. "내가 잘 말해 주었기 때문에 그 아이는 알아들었다구 !" 그리고 슬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들었다구 ! 그렇지 않고서는 그처럼 다정한 모습은 보여 주지 않았을 거야.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 "그렇군요, 어머니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웃기 시작했다. "모두들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지만, 어머니가 구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따뜻한 위로로군요." "그렇지가 않다네, 안드류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남의 얘기라네 !" 갑자기 놀라음을 담아서 어머니가 외쳤다. "어쩌면 그렇게 익숙해 졌을까? 자식들을 빼앗기고 감옥에 집어 처넣어졌는데도, 태연히 찾아와서 의자에 걸터앉아 기다리며 잡담을 하고들 있으니 말야. 어떻겠느냐구? 교육을 받은 사람들까지 그처럼 익숙해졌다면, 무식한 사람들은 두말할 것도 었겠지 ?" "그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우크라이나 인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법률이 우리들에 대한 것보다는 가혹하지가 않죠. 그 사람들에게는 우리들보다도 훨씬 더 법률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법률로 이마를 얻어 맞아도 그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기는 해도 그것은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구요. 그 사람들에겐 법이 어느 정도 보호막이 되거든요. 우리들에겐 꼼짝도 못하게 하는 쇠사슬이지만요." 20 어느 날 밤이었다. 어머니가 데이블을 향해 앉아 양말을 뜨고, 우크라이나 인이 로마의 노예 봉기에 대해서 쓴 책을 소리내서 읽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커다랗게 노크를 했다. 우크라이나 인이 문을 열자, 베소푸쉬코프가 옆구리에 보따리를 끼고서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무릎까지 진흙탕을 튀 긴 채 들어왔다. "지나가면서 보니까 아주머니네 집에 불이 켜져 있어서 인사차 들렀습니다. 감옥에서 곧장 오는 길이에요 !" 그는 이상한 목소리로 말하고, 블라소바 부인의 손을 잡고는 힘차게 아래 위로 흔들면서 말했다. "파벨이 안부를 전하더군요." 그리고는 주저하면서 의자에 앉더니 의심많은 음침한 눈초리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어머니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모가진 짧게 깎은 머리 모양이나 조그만 눈에는 뭔가 늘 그녀를 위협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도 기뻐서 상냥하게 웃으면서 힘차게 말했다. "자네도 꽤 말랐구먼 ! 안드류샤, 차를 좀 대접하게나." "저는 벌써 사모바르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랍니다."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부엌에서 대답했다. "그래, 파벨은 어떻게 지내고 있던가? 다른 사람도 방면되었나, 아니면 자네만 방면된 건가?" 니콜라이는 고개를 떨구고 대답했다. "파벨은 안에서 잘 견더내고 있어요. 방면된 것은 저 혼잡니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향해서 눈을 들고 천천히 입 안에서 우물쭈물 말했다. "나는 놈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이제 더이상 못참겠다. 나를 내보내 달라! 아니면 누군가를 죽이고, 나도 자살을 해버리겠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방면해 주더군요." "어머, 그랬어?" 하고 어머니는 그에게서 떨어지면서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눈이 그의 가느다랄고 날카로운 눈과 마주치자 엉겁결에 깜빡거렸다. "그런데, 페자 마진은 어떻게 지내고 있던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부엌에서 소리쳤다. "시를 쓰고 있더군.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간다구 !" 하고 머리를 흔들어 대면서 니콜라이가 말했다. "그 녀석은 방울새라도 되나? 우리에 집어 넣어 져서도 노래를 하고 있으니 ! 내가 한 가지 알고 있었던 것은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싫지 않다는 것 뿐이었지." "그래, 자네 집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고 궁리를 하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텅 비어 있고, 페치카도 때지 않고, 모든 것들이 냉탱하게 차기만 하겠지." 니콜라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잠자코 있었다.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서 천천히 불을 붙이더니, 얼굴 앞에서 사라져가는 연기의 회색 원을 보면서 음침하게 희죽이 웃었다. "그렇겠지요. 틀림없이 춥겠지요. 마루 위에는 얼어죽은 바퀴벌레가 굴러 다니고 있을 테죠. 쥐새끼들도 얼어죽었을 거구요. 펠라게야 닐로브나 부인, 여기서 하룻밤 재워 주었으면 좋겠네요, 괜찮겠지요?" 하고 니콜라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고 낯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암, 좋고말고!" 하고 어머니는 얼른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 함께 있는 것은 거북스럽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은 자식이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시대니까요." "뭐라구?" 하고 어머니는 움찔하며 물었다. 니콜라이는 그녀를 힐끔 보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의 곰보상은 장님처럼 되었다. "자식들이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하고 니콜라이는 되풀이해서 말하고는 큰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파벨이 아주머니를 부끄럽게 생각할 일은 결코 없겠지만요.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의 집에는...... 나는 이제 돌아가지 않겠어요. 나에게 아버지는 없습니다. 집도 없어요 ! 나는 경찰의 감시를 받지 않는다면 시배리아에라도 갔을 겁니다. 나는 그곳에서 유형수들을 도망치게 하고 탈주시키고 싫다구요." 어머니는 이 사나이가 괴로워한다는 것은 알 수가 있었으나, 그의 괴로움은 어머니에게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래, 만일 그렇다면 가는 편이 좋겠군, 그래." 하고 어머니는 잠자코 있으면 그가 기분을 상할까 봐 대꾸했다. 부엌에서 안드레이가 나와서 웃으면서 말했다. "무엇을 그렇게 설교하고 있나요, 네 ?"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일어났다. "먹을 것을 좀 준비해야겠네..." 베소푸쉬코프는 뚫어질듯이 우크라이나 인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몇 명을 작살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네 !" "허허 ! 하지만 무엇 때문에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물었다. "놈들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지..." 키가 크고 깡마른 우크라이나 인은 두 발을 꽉 딛고서 몸을 흔들면서 방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위에서 밑으로 니콜라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담배 연기에 둘러싸인 채 의자 위에 철썩 주저앉아 있었는데, 그의 회색 얼굴에는 붉은 반점이 나와 있었다. "이사이 고르보프의 대가리를 댕강 잘라 버릴 테니까 두고 보라구 !" "무엇 때문에 말인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물었다. "첩자 노릇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지. 그놈 때문에 아버지는 파면 되어 버렸어. 그놈 때문에 아버지는 지금 스파이가 되려고 하고 있단 말야." 베소푸쉬코프는 음침한 적의가 담긴 눈으로 안드레이를 보면서 말했다. "그런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외쳤다. "하지만 자네에게 누가 비난이라도 퍼붓던가? 그 바보 같은 놈들 외에 말이야." "바보 녀석도 영리한 놈도 모두 한 패거리란 말야 !" 하고 니콜라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네는 영리하고, 파벨도 그래. 그런데 나는 자네들에게 있어서는, 페자 마진이나 사모일로프와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자네들 두 사람만이 서로 짝패라는 얘기인가? 거짓말은 하지 말라구. 나는 어차피 신용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자네들은 모두 나를 옆으로 밀어내고 방해꾼 취급을 하고 있어." "자네는 마음의 병에 걸려 있네, 니콜라이!" 하고 작은 소리로 상냥하게 우크라이나 인이 말하며 그의 옆에 걸터 앉았다. "병에 걸려 있는 거야. 그리고 자네들의 마음도 병에 걸려 있어. 다만 자네들의 병은 우리들 것보다는 고상하다고 자네들은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러나 말해 두겠는데, 우리들은 모두 서로가 밑바닥 인생들이라구. 밑바닥 인생이라고 해서 뭔가 불만이 있나? 응, 어때 ?" 니콜라이는 안드레이의 얼굴에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이빨을 드러 내 놓고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흥분된 그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고 두터운 입술에는 뜨거운 것으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떨림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자네에게 아무것도 말할 게 없네!"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푸른 눈의 서글픈 미소로 배소푸쉬코프의 적의에 찬 시선을 따뜻하게 감싸면서 말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마음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을 때, 그러한 사람과 토론을 한다는 것은 다만 상대방을 화나게 할 샘이라는것을 나는 잘 알고 있지. 형제 !" "나를 상대로 토론을 할 수가 없다는 거겠지.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까." 하고 니콜라이는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계속했다. "우리들은 누구나 다 깨진 유리 위를 맨발로 걸어왔네. 누구나 다 괴로울 때는 자네 처럼 꽁꽁 앓는 소리를 냈다네...." "자네는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구!" 하고 배소푸쉬코프가 느릿느릿 말했다. "내 마음은 늑대처럼 짖어대고 있어 !" "말하기도 싫네 !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자네의 그런 기분도 가라 앉는다는 것일세. 물론 완전히는 어렵겠지만 서서히 가라앉을 걸세 !" 안드래이는 싱긋이 웃었다. 그리고 니콜라이의 어깨를 탁 하고 두드리고는 말을 계속했다. "그것은 홍역과 같은 어린애들의 병일세. 우리들은 모두 그 병에 걸리지. 강한 자에게는 가볍지만, 약한 자에게는 무거운 병이라네. 우리들의 형제가 이 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 생활에서 자신의 장소를 아직 찾지 못했을 때 일세. 자네는 이 지상에서 자기 한 사람만이 매우 훌륭한 오이이고, 모두가 자기를 따먹으려고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일세. 이윽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그 사나이는 자신의 마음에는 좋은 한 조각도 있지만, 다른 밭에도 그것에 못지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자네는 휠씬 마음이 편해지는 것일세. 그리고 조금 부끄러워지게 되지. 자신의 종은 너무나 작아서 축제일에 울릴 때는 들리지도 않는데, 무엇 때문에 종각에 올라가 있었을까 하고 깨닫고 말일세. 그리고 나서 그 뒤에 다시 깨닫게 되지. 자네의 종은 코러스 속에서는 들리지만, 따로 혼자 떨어져서 울리게 되면, 기름 속에 떨어진 파리처럼 수많은 오래된 종의 울림 속에 삼켜져 버린다는 것을 말일세. 자네는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겠나?" "이해할 것도 같네 !" 하고 니콜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만 나는 믿지는 않네 !" 우크라이나 인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벌떡 일어났다. "나 같아도 믿지 않았을 걸세 ! 아아, 자네는 짐 수레로군!" "왜 짐 수레라고 하는 거지 ?" 하고 니콜라이는 우크라이나 인을 바라 보고 음울하게 쓴 웃음을 지었다. "글쎄, 서로가 닮았으니까 !" 갑자기 배소푸쉬코프는 입을 크게 벌리고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왜 그러나, 자네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그를 마주보는 곳에 멈춰서서 놀라서 물었다. "나는 생각했지. 자네를 화나게 하는 녀석은 멍청이일 것이라고 !" 하고 니콜라이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어떻게 나를 화나게 만든다는 거지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어깨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도 몰라." 베소푸쉬코프는 사람이 좋다고도, 겸손하다고도 할 수 없는 태도로 이빨을 드러내놓고 말했다. "나는 다만 자네를 화나게 한 사람은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야." "뭐야? 무슨 얘기를 시작한 거야" 하고 웃으면서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안드류샤!" 하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불렀다. 안드레이는 나갔다. 혼자가 된 베소푸쉬코프는 주위를 둘러보고 무거운 장화를 신은 한쪽 다리를 뻗고 나서 허리를 굽혀서 양손으로 굵은 장딴지를 만졌다. 그리고는 한 손을 얼굴 앞으로 올리고, 손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는 뒤로 뒷짐을 쥐었다. 손은 굵고, 손가락은 짧은데 누런 강모로 덮여 있었다. 그는 그 손을 공중에 흔들면서 몸을 일으켰다. 안드레이가 사모바르를 들고 들어왔을 때, 베소푸쉬코프는 거울 앞에 서서 이런 말로 그를 맞이했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자신의 상판 대기를 보지 못했네." 희죽이 웃고는 고개를 흔들면서 덧붙였다. "나는 정말 불쾌한 상판을 갖고 있구먼 !" "그것이 어쨌다는 말인가?" 하고 안드레이는 그에게 호기심에 찬 눈을 보내며 물었다. "사웬카가 말하더군.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고 느릿느릿 니콜라이가 말했다. "그건 잘못이야!"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외쳤다. 그 아가씨는 코는 매부리코에다 광대 뼈는 가위 같지만, 마음은 꼭 별과 같더군." 베소푸쉬코프는 그에게 흘끗 시선을 보내고 엷은 웃음을 띄었다. 차를 마시려고 모두 의자에 앉았다. 베소푸쉬코프는 커다란 감자를 집어 들고, 빵 한 조각에 소금을 잔뜩 뿌리고는 조용히 황소처럼 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쪽 일은 어떤가?" 하고 배소푸쉬코프는 입에 잔뜩 집어 넣은 채 물었다. 그리고 안드레이가 그에게 공장에서 일어난 일을 즐거운 듯이 얘기해 들려 주자, 그는 또다시 침울한 얼굴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늦어. 너무 늦단 말야 좀더 빨리 해야지....." 어머니는 베소푸쉬코프를 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가슴 속에는 그에 대한 적의가 조용히 꿈틀거렸다. "생활이라는 것은 말이 아닐세, 채찍으로 때릴 수도 없는 것이라구 !" 하고 안드레이는 말했다. 베소푸쉬코프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너무 늦다니까 ! 나는 견더낼 수가 없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지 ?" 그는 우크라이나 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무기력하게 두 손을 벌리고 대답을 기다리며 입을 다물었다. "우리들은 모두 공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어야만 하네. 이것이 우리들이 하는 일 일세." 베소푸쉬코프는 물었다. "그러나 언제가 되어야 싸움을 할 건가?" "그때까지에는 우리들은 몇 번씩이나 더 두들겨 맞아야 하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네 !" 하고 쓴 웃음을 지으면서 우크라이나 인이 대답했다. "그러나 언제 우리들이 싸우게 될지 그것을 나는 모르고 있다네 ! 그 전에 이보게, 머리를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나서 손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니콜라이는 다시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마 너머로 눈에 띄지 않도록 베소푸쉬코프의 커다란 얼굴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그 얼굴 속에서 가슴답답한 네모난 모습이 불쾌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조그만 눈이 쿡 찌르고 들어오는 듯한 시선과 마주치면, 어머니는 쭈삣거리며 눈썹을 움직였다. 안드레이는 불안한 모습으로 갑자기 얘기를 시작하면서 옷거나 갑자기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니콜라이는 잠자코 앉아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인이 뭔가 물으면 자못 내키지 않은 듯이 짧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작은 방 안에 있는 우크라이나 인과 어머니는 숨이 답답하고 비좁아서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흘끗흘끗 손님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나는 그만 자야겠어요. 안에서 계속 앉아만 있다가 갑자기 내보내 져서 걸어 왔기 때문에 무척 피곤하군요." 그는 부엌으로 나가서 잠시 바스락거리더니 갑자기 마치 그곳에서 죽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그 조용함에 귀를 기울이고 나서 안드레이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은 끔찍한 일을 생각하고 있구나." "까다로운 젊은이에요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머리를 흔들면서 찬성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져 갈 거예요. 그러한 일은 저에게도 있었으니까요. 마음 속에서 꿈틀대기만 하고 잘 타오르지 않을 때는 검댕이만 잔뜩 쌓이는 법입니다. 자아, 어머니, 먼저 주무세요. 저는 좀더 책을 읽다가 잘 테니까요." 어머니는 커튼으로 가려 있는 침대가 있는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안드레이는 테이블 옆에 앉아서 그녀의 기도와 한숨의 따뜻한 술렁거림을 한참 동안 듣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안드레이는 흥분해서 이마를 비비며 긴 손가락으로 콧수염을 비틀고, 발로 버스럭 버스럭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계의 추가 소리를 내고, 창 밖에서는 바람이 한숨을 짓고 있었다. 어머니의 어렴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하느님, 이 세상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모두가 각자 신음하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있구 말구요. 얼마 안 있으면, 그련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네, 많이 나오고말고요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대답했다. 21 생활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것은 갖가지 색상과 모습의 나날이었다. 매일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났으나 그것은 더이상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밤에는 낯선 사람들이 점점 더 빈번하게 찾아오게 되었다. 조심스러운 듯이 작은 소리로 안드레이와 얘기를 나눈 뒤 옷깃을 바짝 세우고 모자를 눈썹 있는 데까지 눌러 쓰고 조심스럽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떤 사람에게서나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고 모두들 노래라도 부르며 소리를 내서 웃고 싶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런 여유는 없고 언제나 서두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소적이고 진지했고, 솔직하고 쾌활한 사람도 있었으며, 또한 깊이 생각에 잠기는 조용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의 눈에는 똑같이 뭔가 자신감으로 가득 찬 것으로 비쳤고, 각기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의 얼굴로 합쳐졌다. 그것은 여위고 침착한 결의에 가득 찬 밝은 얼굴로 마치 엠마오로 갈 때의 그리스도의 눈처럼 어둡고 상냥하지만 엄하고 깊은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람들을 마음 속에서 파벨의 주위에 모아 보았다. 그 무리가 둘러 싸자 파벨은 적의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시내에서 발랄한 곱슬 머리 처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안드레이를 위해서 뭔가 꾸러미를 가지고 왔는데, 돌아갈 때 쾌활한 눈을 반짝이면서 블라소바 부인에게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동지." "잘 가요 !" 하고 미소를 억누르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리고 처녀를 전송하고 나자 창문 옆으로 다가가서 봄의 꽃처럼 싱싱하고, 나비처럼 경쾌한 그녀가 조그만 다리를 아장 아장 움직이며 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동지라니 !" 하고 어머니는 처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말했다. "어머, 귀여운 아가씨로군 ! 오오, 하느님, 저 아이에게 일생의 성실한 동지를 내려 주소서." 어머니는 시내에서 찾아오는 모두의 내부에 어딘가 어린애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대범하게 웃음을 짓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감동시키고 기쁜 놀라움을 가져다 준 것은 그 사람들의 신념이었다. 그 신념의 깊이를 어머니는 더욱더 명확히 느꼈으며, 정의가 승리한다고 하는 그들의 꿈은 어머니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 잡혀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특히 감동한 것은 그 사람들의 소박함과 자기 자신에 대한 아름다운, 아낌없는 무심함이었다. 어머니는 그들이 생활에 대해서 얘기한 것들 가운데서 벌써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불행의 확실한 근원을 밝혀 주었다는 것을 느꼈고, 그 생각에 찬성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그들이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로 잡을 수가 있다거나, 모든 사람들을 인간답게 살자는 의지의 불꽃으로 끌어들일 만한 힘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누구나 오로지 오늘 배불리 먹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도 자신의 식사를 내일로 미루려고는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멀고 괴로운 길을 가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사람이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한 형제처럼 살게 될 동화 속의 이야기 같은 우애의 왕국도 쉽게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수염을 깎지 않거나, 때로는 피로에 지친 얼굴로 열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어린애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자네들은 모두 귀여운 사람들이야." 하고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면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훌륭하고 진지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좋은 일을 얘기하고,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신들이 알고 행하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러한 생활이 비록 위험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둡고 막막하기만 했던 과거를 한숨을 지으면서 되돌아보았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엔 자기가 먼저 죽으면 새 여자가 와서 집안일을 돌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파벨이 자라서 거리를 쏘다닐 때도 자기는 아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생활에 자신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냉정한 의식이 어느 틈엔가 그녀의 마음 속에 이루어져 있었다. 이전에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고는 한 번도 느끼지를 못했으나, 지금은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은 기분좋은 것으로 어머니를 자신감 넘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공장에 정기적으로 유인물을 운반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들키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몇 번인가 몸 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전단이 공장에 나돌고 난 다음 날의 일이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어머니는 첩자나 수위들의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요령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붙잡아서 수색을 했으나, 어머니는 화가 난 시늉을 하면서 그들과 말다툼을 벌이고, 망신을 주고, 자기가 잘 해냈다고 하는 긍지를 느끼면서 돌아왔다. 어머니는 '장난'이 마음에 들었다. 배소푸쉬코프는 공장에 복직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목재 상에서 일하게 되어, 마을 안에서 통나무나 장작을 운반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거의 매일 그를 볼 수 있었다. 두 마리의 검은 말이 긴장 때문에 떨리는 다리를 힘껏 땅 바닥에 버티고 지나갔다. 두 마리 모두 깡마르고 늙고 쇠약해서 머리는 축 늘어진 재 서글프게 흔들렸고 몽롱하게 흐린 눈은 힘없이 꿈뻑거리고 있었다. 말 뒤에는 길다란 젖은 통나무 판자의 산더미가 끝이 서로 부딪쳐서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길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누더기옷을 걸친 니콜라이 베소푸쉬코프가 무거운 장화를 신고 모자를 뒤로 젖혀 쓰고서, 마치 흙 속에서 캐낸 목재와 같은 꼴사나운 모습으로 고삐를 늘어 뜨리고 걸어갔다. 그도 또한 머리를 흔들면서 자신의 발 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말이 맞은 편에서 오는 짐 수레나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부딪쳤기 때문에 성난 고함소리가 벌 떼처럼 그의 주위에서 소용돌이치고, 저주의 외침소리가 공기를 짓찢었다. 니콜라이는 그것에는 대꾸를 하지 않고, 머리도 들지 않은 채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어대면서 말을 향해 둔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랴, 힘내라구 !" 외국의 신문이나 팜플렛의 신간을 읽기 위해서 안드레이 방에 동료들이 모일 때는 니콜라이도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한쪽 구석에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잠자코 듣고 있었다. 모두 읽고 나면 젊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토의를 했지만 베소푸쉬코프는 토의에는 끼지 않았다. 그는 제일 끝까지 남아 있다가 안드레이만 남게 되면 그제서야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제일 죄가 많은 것은 도대체 누군가?" "죄가 있는 것은, 알겠나?" 이것은 '내 것'이라고 최초에 말한 작자라네. 그 인간은 수천 년 전에 죽어 버렸네. 그러니까 그 작자에게 화를 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지 !" 하고 안드레이는 농담삼아서 말했으나, 그 눈은 불안스러운 빚을 띠고 있었다. "그럼, 부자들은 어떤가? 부자와 한패거리인 녀석들은 어떤가?" 우크라이나 인은 머리를 끌어안고 콧수염을 잡아당기면서 오랫동안 알기 쉬운 말로 생활이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얘기는 모든 인간이 전부 죄가 있는 것처럼 되었는데, 그것이 니콜라이를 만족시키지 않았다. 니콜라이는 두터운 입술을 꽉 다물고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리고 의심쩍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불만스러운 듯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언젠가 니콜라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죄가 있는 작자가 반드시 있을 거야. 그 녀석은 바로 우리 옆에 있어 ! 말해 두지만, 우리들은 이 생활을 잡초가 무성한 밭처럼 깡그리 새로 갈아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구. 용서없이 말이야 !" "꼭 그런 식으로 이사이도 자네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네 !" 하고 어머니가 생각해냈다. "이사이가 말입니까?" 하고 베소푸쉬코프는 잠깐 입을 다물고 나서 물었다. "그렇다니까. 나쁜 인간이라네. 모두의 행동을 염탐하며 다니고 있어. 이 동네에도 찾아와서 우리 집 창문도 들여다보곤 한다구." "들여다보곤 한다구요?" 하고 니콜라이가 어머니의 말을 되풀이했다.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무엇인가 쓸데 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인이 황급히 둘러대듯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 녀석들, 마음대로 돌아 다니면서 구경하라지 ! 그 녀석들은 시간이 남아 돌아가니까 산책하고 있는 거야." "아니, 잠깐 기다려 봐 !" 하고 니콜라이가 낯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 녀석에게 죄가 있는 거야." "어떤 점이 말인가?" 하고 빠른 어조로 우크라이나 인이 물었다. "바보라서 말인가?" 베소푸쉬코프는 그것에는 대답하지 않고 가버렸다. 우크라이나 인은 가느다란 거미와 같은 다리를 조용히 끌면서 느릿 느릿 피로한 듯이 방 안을 돌아 다니고 있었다. 발소리를 내서 블라소바 부인이 자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언제나 장화를 벗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잠자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니콜라이가 돌아 가자 불안스러운 듯이 말했다. "나는 저 사람이 무서워 !" "그래요 !" 하고 느릿 느릿 말 끝을 잡아 늘이면서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성을 잘 내는 어린애니까요. 어머니, 이사이에 관한 것은 저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사이는 실제로 스파이노릇을 하고 있지만요."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 그 사람의 대부는 헌병이니까!"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틀림없이 니콜라이는 그 녀석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하고 걱정스러운 듯이 우크라이나 인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그 잘난 나리님들이 우리 민중들의 가슴에 심어 놓은 감정이 어떤 것인가를 보시게 될 거예요. 니콜라이와 같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울화통을 터뜨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하늘은 피로 물들고, 토지는 그 핑속에서 비누처럼 거품이 일겠지요." "무섭네, 안드류샤 !" 하고 작은 소리로 어머니는 말했다. "파리를 삼키지 않으면, 구역질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고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나서 안드레이가 말했다. "그러나 역시 그 녀석들의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밀물과 같은 민중들의 눈물로 씻겨질 것입니다." 안드레이는 갑자기 조그만 목소리로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정당한 일이지만, 그러나 역시 기분은 좋지가 않죠?" 22 어느 일요일이었다. 어머니는 가게에서 돌아와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서다가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온몸은 마치 여름비를 맞은 것처럼 기쁨으로 젖었다. 방 안에서 파벨의 또렷한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자아, 자네 어머님이 돌아오셨네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소리쳤다. 어머니는 재빨리 파벨이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들의 얼굴이, 그녀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커다란 것을 약속하고 있던 감정으로 확 하고 불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래, 돌아왔구나...... 집에 있구나 !" 하고 어머니는 너무나도 뜻밖의 일에 망연해서 중얼거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파벨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어머니 쪽으로 몸을 구부렸다. 그의 눈꼬리에는 작은 눈물 방울이 빛나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파벨은 잠자코 있었다. 어머니 역시 잠자코 아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조그맣게 휘파람을 불고는 목을 떨어뜨리고 두 사람 옆을 지나 뜰로 나갔다. "고마워요, 어머니 !" 하고 파벨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어머니의 손을 움켜잡고는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낯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아들의 얼굴과 목소리의 울림에 감동한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 듬고, 가슴의 두근거림을 억누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 잘 됐구나 ! 그런데 왜 나에게 고맙다고 하는 거냐?" "우리들의 커다란 사업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파벨이 말했다. "인간이 자신의 어머니와 정신적인 동지가 된다는 것은 좀처럼 없는 행복이니까요." 어머니는 소리도 내지 않고 아들의 말을 열려진 마음으로 받아 들이면서 넋을 잃고 아들을 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밝고 친근한 아들이 자기 앞에 서있었다. "저는 어머니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여러 가지 일로 어머니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나는 생각하고 있었어요. 절대로 어머니는 우리들과는 융합할 수 없고, 우리들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 들여 주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에요. 다만 지금까지 평생 참고 살아 온 것처럼 잠자코 참아 갈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괴로운 일이었어요." "안드류샤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나에게 이해시켜 주었단다 !"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어머니 얘기를 다 해주었어요." 하고 웃으면서 파벨이 말했다. "이고르도 마찬가지란다. 그 사람과 나는 같은 마을 출신이더구나. 안드류샤는 글자까지 가르쳐 주려고 했었단다." "그러나 어머니는 창피스러워서 혼자 남몰래 공부를 시작 했다면서요?" "그 사람은 모두 다 알고 있었구나!" 하고 어머니는 계면쩍어서 외쳤다. 그리고 가슴 가득히 넘쳐 흐르는 기쁨에 안절부절 못하고 파벨에게 권했다. "그 사람을 불러오면 어떠냐 !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부러 밖으로 나가 준 것 같구나. 그 사람은 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안드레이 !" 하고 파벨은 현관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소리쳤다. "여기 있네. 장작을 패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이리 오라니까." 안드레이는 금방 오지는 않았으나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살림꾼 같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이에게 장작을 가지고 오라고 얘기해야 되겠어. 뗄깜이 별로 없는 것 같으니까. 어머니, 보세요. 파벨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라에서는 모반인들을 처벌하는 대신에 살만 찌게 할 셈이라구요." 어머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다시 심장이 기분 좋게 마비되고 기쁨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벌써 뭔가 소극적인 조심스러운 것이 평소와 같은 아들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그녀의 마음 속에 불러 일으켰다. 마음 속은 너무나도 좋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의 일생에서 최초의 커다란 이 기쁨을 이대로 영구히 그대로 마음 속에 간직해 두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이 줄어 들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마치 사냥꾼이 우연히 잡은 진귀한 새를 감추듯이 그 행복을 얼른 감춰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식사를 하자꾸나 ! 파벨, 너는 아직 식사를 안 했겠지?" 하고 어머니는 신바람이 나서 말했다. "네, 안직 안 먹었어요. 어제 교도관한테서 방면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들으니까 오늘은 마실 생각도 먹을 생각도 나지 않더라구요." "내가 돌아와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시조프 노인이었어요." 하고 파벨은 애기했다. "그분은 나를 보더니 길을 가로질러와서 인사를 하더군요. 내가 '아저씨는 이제부터 나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는 위험 인물이어서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으니까요' 하고 말했더니, '그런 것은 개의치 않네.' 하고 말하시더군요. 그리고 말예요. 그분이 조카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물었는지 아세요? '어떤가, 표토르는 잘 있던가?' 하고 묻길래, '감옥에서 잘 있느냐니, 무슨 뜻입니까?' 하고 말하니까, '아니, 동료에게 불리한 쓸데 없는 소리를 지껄여 대지 않았느냐는 말일세.' 하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페자는 성실하고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그분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우리들 시조프 일가에는 나쁜 인간은 없다네 !' 하고 말하더군요." "그 사람은 머리가 좋은 노인이야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는 노인과 자주 얘기를 나누는데 훌륭한 농민이시더군. 페자는 곧 방면될 건가?" "모두 방면될 거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 녀석들에게는 이사이의 증언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또 그 사나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서성거리면서 아들을 바라 보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파벨의 얘기를 들으면서 양손을 뒤에서 맞잡고 창가에 서 있었다. 파벨은 방 안을 돌아 다니고 있었다. 파벨은 턱수염이 자라고 가느다란 검은 머리칼이 조그만 소용돌이를 그리며 양쪽 뺨을 빽빽이 뒤덮어서 검은 얼굴이 오히려 부드러워 보였다. "다들 어서 앉아요." 하고 어머니는 테이블에 뜨거운 음식을 내려 놓고 권했다. 식사를 하면서 안드레이는 루이빈 얘기를 했다. 그가 얘기를 끝내자 파벨은 서운하다는 듯이 외쳤다. "내가 집에 있었다면, 그 사람을 가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 그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갔겠나? 커다란 분개의 감정과 머리 속의 혼란을 갖고 갔을 거야." "하지만,"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사십이 넘은 나이일세. 오랫동안 자신과 자신의 마음 속의 곰과 싸워 온 사람을 다시 개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 일세." 다시 옛날의 논쟁이 시작 되어서 두 사람은 어머니에게는 알 수 없는 말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났어도 두 사람은 아직도 서로 어려운 말을 파열하는 폭죽처럼 상대방에게 쏘아 대고 있었다. 이따금 알기 쉬운 말도 튀어나왔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네. 한 발도 옆으로 벗어 나지 말고 !" 하고 파벨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도중에서 우리들을 적으로서 맞이하는 수 천만의 인간과 부딪치게 되는 걸세..." 어머니는 그 논쟁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파벨은 농민들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으나 우크라이나 인은 농민들의 편을 들고, 농민들에게도 좋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안드레이가 말하고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었고, 안드레이 쪽이 옳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가 파벨에게 뭔가 말할 때는 언제나 어머니는 귀를 기울이고, 숨을 죽이고 아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이 아들을 화나게 하지는 않는지를 빨리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함을 쳐대기는 해도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이따금 어머니는 아들에게 물었다. "더 들겠니 ? 파벨 ?" 미소를 지으면서 파벨은 대답했다. "네, 그러죠." "나리, 당신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심술굿은 얼굴로 놀려댔다. "배불리 드셨겠지만, 잘 씹지를 않았기 때문에 목구멍에 한 조각이 걸려 있소이다. 아무래도 양치질을 하시는 것이 건강상 좋을 것 같습니다요." "놀려대지 말게 !" 하고 파벨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니, 나는 자네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일세." 어머니는 조그만 소리로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3 봄이 다가와서 눈이 녹자 그 밑에 숨어 있던 진흙탕이나 검댕이가 표면으로 나왔다. 날이 갈수록 진흙탕이 눈에 띄게 되어서 온세상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때 투성이처럼 보였다. 낮 동안에는 지붕에서 물이 떨어져서, 집들의 회색 벽은 지치고 땀에 젖어서 김을 내고, 밤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고드름이 녹아내렸다. 햇빚이 내리쬐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늪으로 흘러들어가는 시냇물 소리도 똑똑히 들리기 시작했다. 메이데이를 축하하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공장이나 마을 곳곳에서는 이 축제일의 의의를 설명하는 전단이 나돌고 있었다. 그리고 선전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젊은이들까지 그 전단을 읽고서 말했다. "이 일은 꼭 해야만 돼 !" 베소푸쉬코프는 까다로운 엷은 미소를 띄우고 소리쳤다. "자아, 때가 찾아왔다 ! 숨바꼭질은 이제 집어치우자 !" 페자 마진은 기삐했다. 그는 지독하게 말라서, 그 동작이나 말투의 신경질적인 떨림은 조롱에 갇힌 종달새와 꼭 닮아 있었다. 그는 언제나 말수가 적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샌님인 야코프 소모프와 함께 다니고 있었다. 소모프는 시내에서 일하고 있었다. 감옥에서 한층 더 머리칼이 빨개진 사모일로프, 바실리 구세프, 부킨, 드라그노프 그리고 또 몇 사람인가는 무기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파벨과 우크라이나 인과 소모프와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 반대하고 있었다. 언제나 지쳐서 땀을 많이 흘리고 숨을 헐떡이는 이고르가 다가와서 농담을 했다. "지금 어떤 제도를 바꾸려고 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세, 자네들. 더구나 그 일을 좀더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나는 새로운 장화를 사지 않으면 안 되네." 하고 그는 자신의 찢어진 평상 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의 덧신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누더기가 되어 버려서, 매일 나는 발이 흠뻑 젖어 있거든. 나는 공개적으로 명백히 이 낡은 세상이 바뀌기 전에 땅 속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네. 그러니까 무장 데모를 하자고 하는 사모일로프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는 튼튼한 구두로 무장할 것을 제안하는 바일세, 그것은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서는 대단히 큰 뺨을 때리기보다는 훨씬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깊이 확신하고 있기 때문일세." 이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이고르는 노동자들이, 여러 나라에서 민중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생활을 변혁시키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얘기해 들려 주었다. 어머니는 그의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의 얘기에 경도되어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느꼈던 거북스러운 감정은 잊게 되었다. 어머니가 그의 얘기에서 받은 기묘한 인상으로는 민중을 가장 심하게 여러 차례에 걸려서 기만한 교활한 적은, 덩치는 작지만 배가 튀어나온 혈색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양심이 없고 탐욕스럽고 잔혹한 인간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황제들의 권력 밑에서 쓰라린 생활을 하고 있는 민중들을 선동해서 황제의 권력과 싸우게 한 뒤 그 권력을 왕의 손에서 되찾자 그 권력을 자신들의 손에 넣고, 민중들을 불길 속으로 몰아넣어 버리고, 만일 민중들이 반항하거나 하면 수백 명 수천 명 할 것 없이 학살했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어머니는 힘을 내서, 이고르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 생활의 정경을 그에게 얘기해 들려 주고, 계면쩍은 듯이 웃으면서 물었다. "내 얘기가 맞나, 이고르 이바노비치 ?" 이고르는 조그만 눈알을 뱅글 뱅글 돌리면서 웃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면서 양손으로 가슴을 문지르며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아주머니 ! 아주머니는 역사라고 하는 소의 뿔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 퇴색한 역사라는 화판에 장식을 하고 수를 놓아 훌륭하게 내용을 채우신 거예요. 그러나 본 줄기는 조금도 흐트리지 않으셨구요. 바로 그 뚱뚱한 인간들이 죄악을 끌어 들이는 장본인들로, 민중을 잡아 먹는 가장 큰 독충들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놈들에게 '부르주아'라고 하는 멋진 이름을 붙여 주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잘 기억해 두세요, 부르주아입니다. 그놈들이 우리들을 씹고 씹어서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자를 말하는 건가?"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그렇습니다 ! 그곳에 그놈들의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갓난애의 음식 속에 조금씩 구리를 넣어 가면, 그것은 갓난애의 뼈의 발육을 방해해서 그 갓난애는 난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인간에게 황금이라는 독을 먹이면, 그 마음은 마치 5코페이카 동전으로 살 수 있는 고무공과 같은 죽은 회색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파벨은 이고르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안드레이, 가장 농담을 잘 하는 것은 마음이 잔뜩 달아 있는 친구들이라구." 우크라이나 인은 한참 동안 잠자코 있었으나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자네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러시아 전체가 너무 웃다가 지쳐서 죽어 버릴걸."' 나타샤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도 어딘가 다른 도시에서 감옥에 들어가 있었으나, 그녀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나타샤가 있으면 우크라이나 인이 훨씬 쾌활해져서 농담을 던지고, 그 부드러운 아이러니로 모두를 안타깝게 만들고, 그녀에게 명랑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러나 그녀가 돌아가면, 안드레이는 그 끝이 없는 노래를 서글프게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하고, 멕없이 다리를 끌면서 방 안을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사웬카도 이따금 들렀으나 언제나 미간을 찌푸리고, 서둘렀으며 웬지 점점 더 퉁명스러워지고 표독스러워져 갔다. 언젠가 파벨이 그녀를 전송하려고 현관으로 나갔을 때였다. 미처 닫히지 않은 문을 통해 어머니는 두 사람의 대화를 잠시 엿듣게 되었다. "당신이 깃발을 들고 가나요?" 하고 작은 소리로 아가씨가 물었다. "응, 그래." "그것은 정해진 일인가요?" "응, 그것은 내 권리라구." "또 감옥 행인가요?" 파벨은 잠자코 있었다. "당신은 할 수가 없나요?" 하고 그녀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무엇을?" 하고 파벨이 물었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을..." "할 수 없어 !" 하고 큰 소리로 파벨이 말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모두들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과 나혹트카는 이곳에서는 제일 중요한 사람이에요. 당신들은 자유로운 몸으로 있으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을 좀 해봐 주세요 ! 그런데 그 때문에 당신들은 몇 년씩이나 감옥에서 썩어야 하쟎아요? 몇 년씩이나!!" 어머니는 그 아가씨의 목소리 속에서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이 울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웬카의 말은 마치 커다란 덩어리의 얼음처럼 그녀의 마음 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냐, 나는 결심했어." 하고 파벨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이것을 그만둘 수 없다구." "내가 부탁을 해도?" 파벨은 갑자기 빠른 어조로, 그리고 한충 더 엄숙하게 말을 꺼냈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 당신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구 !" "나도 사람이라구요 !" 하고 사웬카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훌륭한 사람이로군 !" 하고 역시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마치 헐떡이고 있는 것 같은 특별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야.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이만 가겠어요 !" 하고 아가씨는 말했다. 그녀의 뒤꿈치 소리로 어머니는 그녀가 마치 뛰어 가듯이 서둘러 가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파벨은 그녀의 뒤를 쫓아서 뜰로 나갔다. 무겁고 짓누르는 것 같은 놀라움이 어머니의 가슴을 죄어 들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러나 자신의 앞길에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 아이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파벨은 안드레이와 함깨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인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빌어먹을 ! 이사이 녀석 ! 그 이사이 녀석을 어떻게 해줄까?" "그 친구에게 그런 음모는 그만두라고 충고해야겠어요." 하고 불쾌한 듯이 파벨이 말했다. "파벨, 너 무엇을 하려는 거냐?" 하고 어머니가 고개를 떨구고 물었다. "언제 말입니까? 지금 말입니까?" "메이데이에...... 5월 1일에 말이다." "아, 네에 !" 하고 파벨은 목소리를 낮춰서 외쳤다. "우리들이 깃발을 들고 갈 거예요. 그것을 들고 선두에 서서 행진할 겁니다. 그러면 나는 또 틀림없이 감옥에 처넣어지게 되겠지만요." 어머니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입 안은 바짝 타들어 갔다. 파벨은 그녀의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어머니가 이해해 주세요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 하고 어머니는 천천히 얼굴을 쳐들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아들의 눈의 고집스러운 빚을 만나자 다시금 밑으로 떨어졌다. 파벨은 어머니의 손을 놓고,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비난하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슬퍼하지 말고 기뻐해 주어야 해요. 자신의 자식들을 기꺼이 죽음으로 떠나 보내는 어머니들이 언제가 되면 나타날까요?" "이봐, 무슨 말을 그렇게 달리듯이 하나?" 우크라이나 인이 중얼거리듯이 파벨에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니 ?" 하고 어머니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나는 너를 방해하지는 않겠다. 내가 너를 불쌍히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로서의 애정이란다." 파벨은 어머니 옆을 떠났다. 그리고 어머니는 격렬하고 날카로운 말을 들었다. "애정이란 때로 사람이 가는 길을 방해하기도 한다구요." 어머니는 부르르 몸을 떨며 또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을 밀어내 버리는 말을 아들이 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빠른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됐다. 파벨 ! 나는 이해한다. 너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겠지. 동료들을 위해서는..." "그렇지가 않아요 !" 하고 파벨이 말했다. "이 일은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라구요." 문턱에 안드레이가 서있었다. 그는 문보다도 키가 컸기 때문에, 마치 액자에 끼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상스럽게 양쪽 무릎을 구부리고, 한쪽 어깨는 문설주에 기대고, 다른 한쪽 어깨와 머리와 목을 앞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연설은 그만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리 !" 하고 안드레이는 튀어나 온 눈을 불쾌한 듯이 파벨의 얼굴 위에 고정시키고 말했다. 그는 바위 틈에 있는 도마뱀 같았다. 어머니는 울고 싶어졌다.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참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네..." 그리고 현관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머리를 구석에 처박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울었다. 그리고 눈물과 함께 심장에서 피가 흘러 나오는 것처럼 기운이 빠져 나갔다.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다투는 낮은 목소리의 울림이 새어나왔다. "자네는 왜 어머니를 괴롭히고, 잘난 체하고 있는 건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묻고 있었다. "그런 말을 할 권리는 자네에게는 없네 !" 하고 파벨이 소리쳤다. "자네의 그 바보 같은 짓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바보가 되는 느낌일세. 자네는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했지 ? 알고나 있는 거야?" "예스냐 노냐는 언제나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 "그것을, 어머니에게 말인가?" "모두에게 말일세, 다리에 엉켜 붙어서 일을 못하게하는 사랑이나 우정이라면, 나는 그런 것은 필요가 없네." "잘났군! 코나 닦게, 닦고 나거든 그것을 모두 사웬카에게 말하게! 그녀에게 꼭 해야 될 말이니까." "벌써 말했어 !" "그래 ? 거짓말 말게 ! 그녀에게는 자네는 상냥하게 얘기 했겠지. 애정을 담아서 얘기했을 테지. 나는 듣고 있지는 않았지만 모두 다 알고 있어 ! 그런데 어머니 앞에서는 영웅주의의 허풍을 떨더구만, 그래. 알겠나, 이 잘난 체하는 녀석아 ! 자네의 영웅주의 따위는 한 푼의 값어치도 없단 말이야 !" 블라소바 부인은 서둘러 뺨의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인이 파벨을 화나게 만들지 않을까 하고 놀라서 황급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떨면서 부엌으로 들어가,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아이고 추워라 봄인데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할 일도 없이, 여러 가지 물건들을 여기저기로 바꿔 놓고, 방안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지우려고 노력하면서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서 말했다.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니까. 사람들은 성미가 급해지고, 날씨는 추워지고. 지금쯤은 따뜻하고 하늘도 개고, 해님도 볼 수가 있었는데 말이야." 방 안은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부엌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꼼짝 않고 기다렸다. "들었겠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묻는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넨 이것을 알아야 한다구, 빌어먹을 ! 어머니가 자네보다 훨씬 더 마음이 풍요하단 말이야." "차를 좀 마시겠니 ?"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물었다. 그리고 그 떨림을 숨기기 위해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소리쳤다. "웬일일까? 내 몸이 얼어붙어 버렸네." 어머니 앞으로 파벨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파벨은 미안한 듯이 입술 위에 떨리는 미소를 띄운 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요, 어머님! 하고 파벨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직 어린애라서 바보스러운 짓을 했어요." "나한데 신경 쓸 것 없다." 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안으면서 슬픈 듯이 외쳤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네 마음대로 해라. 너의 생활은 네것이니까 ! 하지만 마음을 너무 상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 어머니라는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쓰지 않고 있을 수 있겠니 ? 그럴 수는 없단다. 나는 모두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너희들은 모두 피를 나눈 육친과 같고, 모두가 훌륭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나를 빼놓고 누가 너희들의 몸을 걱정해 주겠니? 네가 가면, 다른 사람들은 너의 뒤를 따라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갈 게다... 파벨 !"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는 커다란 뜨거운 사랑이 물결치고, 마음은 안타까운 수난자와 같은 기쁨에 찬 감정으로 물결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얘기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 말을 할 수 없는 초조감에 손을 흔들며 날카로운 아픔으로 불타는 눈으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았어요,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나는 다 알고 있어요." 하고 파벨은 머리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싱긋이 웃으며 어머니를 바라보고 나서 기쁜 듯이 덧붙였다. "이번 일을 나는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어머니는 아들을 밀어내고 방 안을 들여다 보고는 부탁하듯이 상냥하게 안드레이에게 말했다. "안드류샤 ! 자네도 이 아이에게 고함을 치지 말게나. 자네가 물론 나이가 많지만." 우크라이나 인은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서서 이상하게 우스꽝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멍, 멍 ! 고함쳐 주겠어요 ! 아니, 고함보다 두들겨 패 줄 거예요!" 어머니는 천천히 안드레이 옆으로 다가가서 한쪽 손을 내밀고 말했다. "이보게...." 우크라이나 인은 고개를 돌리고, 마치 암소와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는 양손을 등에 돌리고 어머니 옆을 지나서 부엌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그의 놀려대는 것 같은 음울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빨리 나가라구. 파벨, 안 그러면 자네의 목을 잘라 버릴 거야 ! 어머니, 농담입니다. 곧이 듣지 마세요. 자아, 제가 사모바르 준비를 할게요. 그래요 ! 이 집의 석탄은 축축해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니까요 !" 안드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가 부엌에 나갔을 때는 그는 바닥에 앉아서 사모바르를 후후 불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그녀를 보지 않고 또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친구에게는 손을 대지 않을 테니까요. 저야 삶은 무처럼 물러터졌쟎아요. 그러나, 이봐, 용감한 친구, 듣지 말라구! 나는 저 친구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 친구의 조끼는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저 친구 좀 보세요. 새로 산 조끼가 핑장히 마음에 드나봐요. 저렇게 배를 내밀고 걸으면서 내 조끼가 어떠냐는 듯이 모두를 떠밀치고 간 답니다. 과연 그 조끼는 멋져요, 하지만 무엇 때문에 떠밀치고 다닌답니까?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데 말예요." 파벨은 쓴 웃음을 짓고 물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고함을 칠 생각인가? 나를 한 방 때리면 그것으로 마음이 후련할 텐데!" 우크라이나 인은 마루 위에 앉아서 사모바르의 양쪽에 양다리를 뻗고 파벨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문턱에 서서 안드레이의 등근 뒤통수와 그의 구부러진 목덜미에 부드럽고도 슬픈 듯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몸을 뒤로 젖혀 양손으로 마루에 놓고, 조금 붉어진 눈으로 어머니와 파벨을 흘끗 바라보고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은 좋은 분들이에요." 파벨은 몸을 구부리고 안드레이의 손을 잡았다. "끌어 당기지 말라구!"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내가 넘어진다니까." "무얼 주저하고 있는 거지?" 하고 슬픈 얼굴로 어머니가 말했다. "서로 키스를 나누고 힘껏 포옹하면 될 텐데....." "어떤가? 우리 한 번 해볼까?" 하고 파벨이 물었다. "좋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일어서면서 대답했다. 힘껏 포옹한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 개의 몸은 우정으로 뜨겁게 불타는 하나의 마음이었다. 어머니의 얼굴 위로 또다시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는 눈물을 닦고 계면쩍은 듯이 말했다. "여자들은 눈물이 많아서 큰일이야, 슬프다고 해서 울고, 기쁘다고 하면서 울고..." 우크라이나 인은 부드러운 몸짓으로 파벨을 밀어내고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 이 석탄은 정말 못말리겠군 ! 불어도 불어도 연기만 나오고 눈이 아릴 뿐이라니까." 파벨은 고개를 떨구고 창쪽을 향해 앉아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눈물은 부끄럽지가 않아....." 어머니는 아들 옆으로 다가가서 나란히 걸터앉았다. 그녀의 마음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감정으로 감싸여 있었다. 어머니는 슬프기도 했지만 또한 기분좋고 차분한 심정이었다. "내가 찻잔을 가져 올 테니까 어머니는 가만히 앉아만 계세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푹 쉬고 계세요 ! 무척 마음아파 하셨으니까요." 그리고 방 안에서는 그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우리들은 지금에서야 참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맛 보았습니다. 정말로 인간다운 생활을 말입니다." "그래요." 하고 파벨은 어머니를 바라보고 말했다. "모든 것이 변했어."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슬픔도 변하고, 기쁨도 변했지."' "그렇게 되어야만 해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새로운 마음이 자라나고 있으니까요. 어머니, 새로운 마음은 생활 속에서 자라 나오는 것이랍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 메말라 있었지요. 탐욕과 사리 사욕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병든 걸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대로 계속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이 나타난 겁니다. 그 사람은 이성의 불로 생활을 비추고, '민중들이여, 하나의 가족으로 단결하라!'고 외치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무척 외롭답니다. 쓸쓸하고 춥고... 그래서 더욱 큰 소리로 외치며 동지를 찾고 있지요, 그러나 그의 외침은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하나로 뭉치고 서로 결합하여 힘찬 은 종처럼 울리고, 하나의 커다란 마음으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입술이 떨리지 않도록 굳게 다물고,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눈을 감고 있었다. 파벨은 한 손을 쳐들고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어머니는 그의 다른 한쪽 손을 잡고 그것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저 사람 얘기를 방해하지 마라." "아시겠습니까?"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문턱에 서서 말했다. "사람들의 앞길에는 아직도 많은 눈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보다 많은 피를 착취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슬픔과 피는 나의 가슴 속과 머리 속에 있는 희망과 비교하면 하잘 것 없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별과 같은 풍부한 빚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일도 참아내고 모든 일을 견더냅니다. 그것은 나의 내부에 기쁨이 있기 때문이며, 이 기쁨은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절대로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기쁨 속에 힘이 있습니다!" 차를 마시고 한밤 중까지 테이블을 둘러싸고 생활에 대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털어놓고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의미를 똑똑히 알게 되자 한숨을 지었다. 자신의 과거는 항상 가슴 답답하고 거칠고 난폭했던 것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슴에서 꺼낸 이 생각으로 현재의 생활과 비교를 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얘기의 흐름 속에서 그녀의 두려움은 녹아 없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부친으로부터 거칠게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화가 난 얼굴을 해도 소용없어 ! 어떤 바보 같은 녀석이 나타나서 너를 색시로 데려가겠다면 너는 가야 하는 거야 ! 계집애들은 모두 시집을 가야 해. 여편네가 되면 모두 애를 낳는 거구. 부모들에게 있어서 아이들은 모두 골칫거리지만. 너는 어떻게 된 거냐,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어머니는 이러한 말을 들은 뒤, 자기 앞에 있는 피할 수 없는 한 개의 오솔길을 보았다. 그 오솔길은 텅 빈 어두운 주위를 한없이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오솔길을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녀의 가슴은 맹목적인 평안함으로 가득 찼다. 지금도 그러했다. 그러나 새로운 슬픔이 찾아올 것을 느끼고,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누군가를 향해서 말했다. "자아, 가지고 가려무나." 그것은 그녀의 아픔을 부드럽게 해주었다. 그 아픔은 팽팽한 활 시위처럼 가슴 속에서 떨면서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 올 슬픔으로 술렁거리는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가날프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희망이 불타고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약탈당하는 일은 없을 거야 ! 무엇인가는 남아 있을 거야.....' 24 아침 일찍 파벨과 안드레이가 외출을 하고 나자 마리야 코르스노바 부인이 황급히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사이가 살해당했대요 ! 구경을 갑시다." 어머니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불꽃처럼 그 하수인의 이름이 스쳐지나갔다. "누가 죽였대요?" 하고 어머니는 어깨에 숄을 걸치면서 물었다. "그놈이 이사이 위에 꼼짝 않고 앉아 있겠수? 넘어뜨리고 가버렸대요." 하고 마리야는 대답했다. 거리로 나가자 마리야가 말했다. "또 온통 사방을 뒤지면서 범인 수색이 시작될 거예요. 당신네 집의 젊은이들은 어제 밤 집에 있기를 잘 했어요. 내가 그 증인이라구요, 한 밤중에 옆을 지나가면서 창문으로 들여다보았더니, 모두 테이블에 앉아 있었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마리야? 우리 집 사람들에게 의심을 품다니, 될 법이나 할 소리예요?" 하고 놀라서 어머니는 소리쳤다. "그럼, 그 녀석을 죽인 것은 누구란 말이지요? 틀림없이 당신네 동료들일 거라구요." 하고 확신한다는 듯이 코르스노바 부인이 말했다. "그 녀석이 당신네 동료를 미행하고 있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어머니는 멈춰 서서 숨을 가쁘게 쉬면서 한 손을 가슴에 갖다 댔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무서워할 것은 하나도 없어요 도둑놈이 천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 빨리 갑시다. 그렇지 않으면 옮겨가 버릴 테니까 !" 어머니는 베소푸쉬코프의 일을 음울하게 생각하면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렇게까지 되어 버렸구나!' 하고 어머니는 멀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공장 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얼마 전에 화재가 있었던 집의 불탄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발로 재를 밟아서 뽀얗게 먼지를 피워 올리면서 마치 벌 떼처럼 와글와글 떠들어대고 있었다. 여자들도 많았지만 아이들은 더 많았다. 가게 주인들이나 선술집의 급사, 경찰관도 있었다. 게다가 복스러운 은색 턱수염을 기른 경찰인 페틀린도 가슴에 훈장을 달고 와 있었다. 이사이는 불탄 통나무에 등을 기대고 모자도 쓰지 않은 머리를 오른쪽 어깨에 축 떨어뜨리고 땅바닥에 반쯤 쓰러져 있었다. 오른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어져 있었으나 왼손에는 부슬 부슬한 흙을 쥐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이사이의 한쪽 눈은 힘없이 벌어진 양다리 사이에 떨어져 있는 모자를 멀거니 보고 있었으며, 입은 깜짝 놀란것처럼 반쯤 벌어져 있었다. 붉은털의 턱수염은 옆쪽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머리가 뾰죽하고, 주근깨 투성이의 뼈가 앙상한 얼굴은 더욱 왜소해 보였다. 어머니는 한숨을 짓고 성호를 그었다. 살아 있었을 때는 혐오스러운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조용한 연민을 불러 일으켰다. "피가 나와 있지 않군."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틀림없이 주먹으로 얻어맞은 거야." 심술사나운 목소리가 크게 말했다. "고자질하는 입을 누군가가 막아 놓았군." 경찰은 부르르 몸을 떨고는 양손으로 여자들을 밀어 젖히면서 위협하듯이 물었다. "지금 그렇게 말한 게 누구냐, 응?" 사람들은 슬그머니 흩어졌다. 그중에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재빨리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꼴 좋다는 듯이 큰소리로 웃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누구 한 사람 그를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구먼 !'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 앞에는 마치 그림자처럼 니콜라이 베소푸쉬코프의 커다란 모습이 서있었다. 그의 가느다란 눈은 차갑고 잔인하게 응시하고 있었고, 오른손은 마치 부상이라도 당한 듯이 흔들흔들 거리고 있었다. 아들과 안드레이가 점심 식사를 하러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맨 먼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지 ? 아무도 붙잡히지 않았어 ? 이사이 건으로." "그런 말은 못들었는데요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대답했다. 어머니는 그들 두 사람 모두 낙담해 있는 것을 보았다. "니콜라이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이 돌고 있지 않더냐?" 하고 어머니는 살며시 물었다. 아들의 심각한 눈이 그녀의 얼굴 위에 엊었다. 그리고 아들은 똑똑히 말했다. "아무 말도 없어요. 그리고 아마 의심받지도 않을 걸요. 그 친구는 이곳에는 없어요. 어제 점심때, 강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나도 그 친구가 궁금해서 찾던 중이에요." "어머, 그것 참 잘 됐구나." 하고 한숨을 내쉬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것 참 잘 됐어." 우크라이나 인은 어머니에게 시선을 보내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 사람은 쓰러져 있더구나." 하고 어머니는 침울하게 얘기했다. "마치 깜짝 놀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더구나. 게다가 아무도 그 사람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아무도 다정한 말로 감싸주는 사람도 없더라. 너무 왜소해서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 마치 부서진 조각이 땅에 떨어져서 굴러다니고 있는 것 같더라.." 식사를 하다가 파벨은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이건 나로써는 이해가 안 가." "무엇을 말인가?"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물었다. "동물을 죽이는 것은 그것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지만, 이미 그것은 그 자채로 지저분한 짓이야. 맹수나 맹금을 죽이는 것은...... 그것은 이해 할 수가 있어 ! 나도 인간에 대해서, 짐승이 된 인간이라면 죽일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그런 불쌍한 녀석을 죽이다니, 어떻게 손을 쳐들 수 있었을까?" 우크라이나 인은 어깨를 치켜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 녀석은 짐승에 못지 않은 유해한 인간이었네. 모기는 우리들의 피를 아주 조금 빨아 먹을 뿐이지만 우리들은 아무렇지 않게 때려 죽이쟎나." "그건 그렇지 !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세..... 내가 말하는 것은 혐오스럽다는 얘기야 !"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고 안드레이는 다시금 어깨를 치켜 들어 보이고 말했다. "자네는 그런 인간을 죽일 수 있겠나?" 하고 파벨은 한참 동안 입을 다물었다가 깊은 생각에 잠겨서 물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그 동그란 눈으로 파벨을 바라본 뒤 어머니에게 힐끔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슬픈 표정으로,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했다. "동료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 일이든 다 할수 있네. 살인도 하겠네. 설사 내 아들이라고 해도...." "어머나, 안드류샤!" 하고 어머니는 작은 소리로 외쳤다. 안드레이는 그녀에게 싱긋이 웃어 보이고 말했다. "그렇게 해야만 됩니다. 삶을 위해서라면요." "그렇지" 하고 느릿느릿 잡아 늘리듯이 파벨이 말했다. "생활이란 그런 것이니까."' 안드레이는 갑자기 무엇인가에 흥분해서 벌떡 일어나서 양 손을 흔들며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사람들을 사랑이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빨리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법일세. 생활의 진행을 방해하고, 금전으로 사람을 팔아 넘기고, 그 금전으로 자신만의 안락과 명예를 사들이는 녀석은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되네. 만일 정직한 사람들의 앞길에 유다스가 가로 막고 서서 배반하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면 그 녀석을 멸망시켜 버리지 않는 한, 나 자신이 유다스가 될 걸세 ! 나에게 그 권리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그리고 그 녀석들, 우리들을 지배하는 그 녀석들에게는 군대나 참수인이나 창녀집이나 감옥이나 유형지나, 그러한 그들의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지켜주고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간직해 둘 권리가 있단 말인가? 내게 그 녀석들의 몽등이를 빼앗을 기회가 온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빼앗겠네. 그 녀석들은 수백 수천 명의 민중들을 죽이고 있네. 그들 중 겨우 한 놈을 내려 칠 권리가 우리에게 없단 말인가? 게다가 우리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방해하고 있는 놈인데도 말이야. 생활이란 이런 것일세. 나는 이러한 생활에는 거역하겠네. 나는 그러한 생활은 바라지 않네. 나는 알고 있네. 그 녀석들의 피로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네. 그것은 열매를 맺지는 못하지 ! ...... 우리들의 피가 큰 비가 되어서 대지에 쏟아져 내릴 때 진리가 자라나게 될 걸세. 그리고 그 녀석들의 썩은 피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거야. 나는 그것을 알고 있네 ! 그러나 나는 이미 그것이 필요하다고 보았을 때는, 나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살인이라도 하겠네.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말하고 있을 뿐일세. 나의 죄는 나와 함께 사라지고, 미래에 오점을 남기지 않네. 그것은 나 밖에는 아무도 더럽히지 않네, 아무도 !" 안드레이는 방 안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얼굴 앞에서 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뭔가 공중에 있는 것을 후려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때어 내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슬픔과 불안을 담아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마음 속의 무엇인가가 부러져서 그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살인 사건에 대한 어둡고 무서운 생각은 그녀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베소푸쉬코프가 죽인 것이 아니라면, 파벨의 동료들 가운데서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없어.'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파벨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우크라이나 인의 얘기를 듣고 있었으나, 상대는 끈기있게 힘을 담아서 얘기하고 있었다. "전진의 길을 걷다 보면 자기 자신을 거역하는 일도 있네. 모든 감정을 버리는 것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 사업을 위해 죽는 것도 각오해야 하지. 보다 많은 것을 내던지고, 그리고 자네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을 내던지면, 그때에는 자네의 가장 소증한 것, 자네의 진리가 힘차게 뻗어나게 될 걸세 !" 안드레이는 방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창백한 얼굴로 눈을 절반 쯤 감고 한 손을 들어 엄숙하게 서약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알고 있네. 사람들이 서로 사랑이 넘쳐나는 눈으로 바라보고, 각자가 상대방 앞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시대가 반드시 올 걸세 ! 해방된 민중들이 가슴을 펴고 전진해 갈 걸세.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는 시기심이 깨끗이 사라지고, 모두가 증오를 갖지 않게 될 걸세. 그때 있는 것은 생활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봉사로, 인간의 모습은 높이 우뚝 솟게 되네. 해방된 민중들은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도달할 수가 있네. 그때에는 사람들은 진리와 자유 속에서 미를 위해서 살게 되네. 그리고 가장 넓은 마음으로 세계를 끝어안고, 가장 깊이 세계를 사랑하는 자가 가장 훌륭한 자로 간주되고, 가장 자유스러운 자가 가장 훌륭한 자가 되고, 그 사람이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이 돼 있는 걸세. 이러한 생활을 하는 민중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민중들이겠지..." 안드레이는 입을 다물고 가슴을 편 다음, 가슴 전체로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한 생활을 위해서는 나는 어떤 짓이라도 다 하겠네." 안드레이의 얼굴은 떨리고, 눈에서는 커다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파벨은 얼굴을 들어 창백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서 안드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의자에서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들고, 불안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왜 그러나, 안드레이?" 하고 파벨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머리를 흔들고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어머니를 바라 보면서 말했다. "나는 전부 보았어요...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서 재빨리 안드레이 옆으로 다가가서 그의 두 손을 붙잡았다. 그는 오른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어머니는 힘껏 그 손을 잡고서 뜨거운 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조용히! 제발.." "기다려 주세요!" 하고 낮은 목소리로 우크라이나 인이 중얼거렸다. "그때의 상황을 말씀드리지요." "안 돼!" 하고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그를 바라보면서 속삭였다. "안 돼, 안드류샤." 파벨은 천천히 옆으로 다가가서 글썽이는 눈으로 친구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안드레이는 창백해져 있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띄우면서 크지 않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는 자네가 하지 않았나 하고 걱정하고 있다네.." "나는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아 ! 설마, 안드레이 네가 그놈을...믿을 수가 없구나.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해도 믿지 않을 거야." "기다려 주세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고 다시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어요." "그만두게, 안드레이." 하고 파벨이 말했다. 파벨은 한 손으로 안드레이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은 마치 상대방의 떨림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처럼 안드레이의 어깨 위에 올려 놓았다. 우크라이나 인은 파벨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작은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것을 원하고 있지는 않았네. 그것은 자네도 알고 있쟎나, 파벨? 일은 이렇게 된 것일세. 자네가 먼저 가버리자, 나는 드라그노프와 함깨 모퉁이에서 멈춰 섰네. 이사이가 모퉁이의 반대편에서 나와 옆에 서더니 우리들을 보고 희죽희죽 웃더군. 드라그노프가 '알겠나! 저 녀석이 밤새도록 내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네. 내가 저 녀석을 혼줄을 내주어야겠어.' 하고 말했네. 그리고 가버렸지. 나는 집으로 돌아간 줄 생각하고 있었네. 그런데 이사이가 내 옆으로 슬슬 다가오더군." 우크라이나 인은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녀석 만큼 심하게 나를 모욕한 녀석은 아무도 없었네. 그 스파이 녀석이...." 어머니는 잠자코 그의 손을 잡고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겨우 어머니는 안드레이를 의자에 앉게 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와 나란히 어깨를 맞붙이고 앉았다. 파벨은 그의 앞에 서서 침울하게 턱수염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그 녀석이 이렇게 말하더군. 너희들의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고 있다. 모두 헌병대의 리스트에 올라 있어. 메이데이 이전에 모두 채포될 것이라고 말일세.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웃고 있었으나 가슴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네. 그 녀석은 이런 말도 꺼내더군. 너는 영리한 젊은이니까, 그런 길을 걸어서는 안 되네, 그것보다도..." 안드레이는 말을 끊고 왼손으로 머리를 닦았다. 그의 눈은 바짝 메마르게 빚나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네." 하고 파벨이 말했다. "그것보다도 철창 신세나 지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겠지, 어떤가?" 우크라이나 인은 한 손을 치켜 들어 움켜 쥔 주먹을 흔들어댔다. "철창신세라고? 그 저주받을 놈의 스파이 근성!" 하고 안드레이가 말했다. "나는 뺨을 얻어맞는 편이 차라리 편했을 것일세. 그 녀석도 아마 그랬을 것일세. 그러나 그렇게 그 녀석이 내 마음에 냄새나는 침을 뱉은 이상 나는 더 참고 있을 수가 없었네." 안드레이는 경련하듯이 자신의 손을 파벨의 손 안에서 빼냈다. 그리고 한층 더 둔탁한 목소리로 혐오를 담아서 말했다. "나는 그 녀석의 뺨을 한 방 먹이고 걷기 시작했네. 뒤쪽에서 드라그노프가 작은 목소리로 '걸려들었구나?' 하고 말하고 있더군. 그 친구는 틀림없이 모퉁이 그늘에 숨어 있었던 모양일세..." 잠시 말을 끊었다가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나는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네. 그럴 생각은 들었지만...... 때리는 소리는 들었지 발로 개구리를 짓밟아 버린 정도의 기분으로 태연하게 걸어갔네. 일을 하러 나가니까 '이사이가 살해당했어.' 하고 소리치고 있더군. 사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네. 그러나 손이 쭈물거리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가 없더군. 아프지는 않지만, 웬지 손가락이 짧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안드레이는 곁눈질로 흘끗 한쪽 손을 보고 말했다. "틀림없이 평생동안 나는 이 저주스러운 오점을 씻어 버릴 수는 없을거야." "자네의 마음만 깨끗하면 되는 걸세!" 하고 작은 소리로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것이 아니라구요!" 하고 단호하게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짓은 혐오스럽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 일이에요." "나는 자네의 심정을 잘 모르겠네." 하고 파벨은 어깨를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살해한 것은 자네가 아니쟎아? 설사 만에 하나...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말리지 않은 것은....." 파벨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것을 잘 모르겠네." 그리고 잠깐 생각하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아."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인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그 권력의 울림과도 같은 사이렌 소리를 끝까지 듣고 나서 부르르 몸을 떨면서 말했다. "일하러 나가지 않겠네." "나도 가지 않겠네." 하고 파벨이 대꾸했다. "목욕이나 갔다 와야겠어!" 하고 엷은 웃음을 띄우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그리고 잠자코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음울한 얼굴을 하고서 방을 나갔다. 어머니는 동정이 담긴 눈으로 안드레이를 전송하고 나서 아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파벨 !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아무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사이는 너무나 불쌍하더구나. 조그만 못처럼 된 그를 보고 나는 그 녀석이 너를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겁을 주던 일을 생각해 냈지만, 그 녀석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미움도 없고 기쁘지도 않단다. 다만 불쌍하게 생각되더라. 그러나 지금은 불쌍하다고도 생각되지 않는구나....."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놀란 것처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 파벨, 들었느냐?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파벨은 분명히 듣고 있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었다. 천천히 방 안을 돌아 다니면서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에 잠기면서 불쾌한 듯이 말했다. "안드레이는 이 일을 쉽게 잊지 못할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 모르겠지만요. 어머니도 안드레이를 잘 아시쟎아요. 사람들은 때때로 모순된 경우를 겪게 되쟎아요? 원하지 않는데 때려야만 하는 경우 말이에요. 그 상대는 어떤 인간인가요? 똑같이 권리가 없는 인간이지요. 그 녀석은 우리보다도 한층 더 불행하답니다. 그것은 어리석기 때문이지요. 경찰, 헌병, 스파이 모두 우리들의 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이고 똑같이 피를 빨리우고, 똑같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모든 것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인간을 서로 적대시키고, 우둔과 공포로 장님을 만들고 있단 말입니다. 모두의 손과 발을 묶고, 목을 조르고, 착취하고, 서로 밀고 당기고, 때리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인간을 총으로, 몽둥이로, 돌맹이로 만들어 버리고, 이것이 국가다! 하고 말하고 있단 말입니다." 파벨은 어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이것은 범죄입니다. 어머니! 수백만 명의 인간을 죽이는 가장 더러운 살인으로, 정신적 살인입니다. 아시겠어요? 정신을 살해하고 있는 거라구요. 우리들과 그 녀석들의 차이를 알고 있으세요? 인간을 때리면 불쾌한 기분이 들고 부끄럽고 괴롭습니다. 불쾌한 기분,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녀석들은 수천 명의 인간을 태연하게 죽입니다. 불쌍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의 떨림도 없이 기꺼이 죽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은이나 금이나 쓸모없는 지폐를,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그 녀석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이 불쌍한 잡동사니 일체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죽이도록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녀석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들의 영혼을 일그러 뜨리면서 까지 끝까지 지키고 있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거라구요. 그들의 관심은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인 것입니다." 파벨은 어머니의 두 손을 잡고 몸을 구부리더니 그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어머니가 이 더러움과 부끄러운 부패를 전부 느낄 수 있다면 우리들의 진리도 이해해 줄 것이고, 그 진리가 얼마나 크고 밝은가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아들의 마음과 하나의 불꽃으로 융합시키고 싶은 감정으로 가득 찬 채 흥분해서 일어셨다. "기다려다오, 파벨, 좀 기다려라!" 하고 숨을 가쁘게 쉬면서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나도 그것을 느끼고 있단다. 기다려다오." 25 현관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가슴이 철렁해서 얼굴을 마주보았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루이빈이 들어왔다. 자아, 제가 왔수다 !" 하고 머리를 들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루이빈이 말했다. "우리들 농사꾼은 무엇에든지 이끌려서 온답니다. 빵에 든, 술에 든 말이오. 자, 인사를 받아 주시오 !" 루이빈은 타르가 묻은 반모피 외투를 입고 수피화를 신고 있었다. 허리띠에는 손가락이 없는 검은 장갑을 꽃고, 머리에는 털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잘 있었다. 파벨? 방면이 되었다면서 ? 그래,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닐로브나 부인?" 루이빈은 흰 이빨을 보이며 크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부드러운 울림이었으나, 얼굴에는 턱수염이 한층 더 짙게 자라나 있었다. 어머니는 기뻐서 루이빈 옆으로 다가가 그의 커다란 검은 손을 잡고, 타르의 강한 냄새를 들이쉬면서 말했다. "아아, 오랜만이에요...... 잘 와주었어요 !" 파벨은 루이빈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훌륭한 농사꾼이 되셨군요." 천천히 외투를 벗으면서 루이빈이 대꾸했다. "그렇다네. 다시 농사꾼이 되었다네. 자네는 조금씩 신사가 되어 가지만, 나는 도로아미타불일세 그려." 줄 무늬의 면 셔츠를 잡아 당겨서 주름을 펴면서, 루이빈은 방으로 들어가 주의 깊은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세간살이는 불어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책은 많아진 것 같구먼. 그럼, 얘기를 들려 주겠나? 일 쪽은 좀 어떤가?" 루이빈은 의자에 걸터 앉아서 양 다리를 넓게 벌리고 양 손을 무릎에 얹었다. 궁금한 듯이 검은 눈으로 파벨을 바라보며 호인다운 미소를 띄운 채 대답을 기다렸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어요." 하고 파벨이 말했다. "밭을 갈고 씨를 부리고, 자랑은 할 수 없지만 수확을 끝마치면 탁주를 담가 놓고서 느긋하게 잠이나 자자는 식인가?" 하고 루이빈은 농담을 했다. "아저씨는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미하일로 이바노비치 씨?" 하고 파벨은 그와 마주보고 앉으면서 물었다. "그럭저럭 무사하게 살아가고 있다네. 에질리게이보에 자리를 잡았지. 에질리게이보라고 들어 본 일 있나? 좋은 마을일세. 일 년에 두 번 정기 시장이 서고, 주민은 2천 명 이상쯤 되는데 심술이 고약한 녀석들이지 ! 땅이 없으니까 정부의 토지를 소작하고 있는데, 그것도 땅이 시원치를 않다네. 나는 어떤 착취꾼의 머슴으로 고용되었는데 그곳에는 그런 친구들이 시체에 덤벼드는 파리 떼처럼 엄청나게 많다네. 타르를 빼내거나 숯구이를 하지. 급료는 이곳의 4분의 l도 안 되지만, 힘이 드는 것은 두 배 이상이라네, 그 농장에는 머슴이 일곱 명이나 있네. 모두 젊지, 나를 빼놓고는 모두 그 고장 사람들일세. 모두 읽고 쓰기를 할 줄 아네. 특히 예핌이라고 하는 젊은이는 무척이나 성급한 녀석이라서 골칫거리일세." "아저씨는 어떻습니까. 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눕니까?" 하고 파벨은 활기를 띠면서 물었다. "가만히 있지는 않지. 나는 이곳의 전단을 몽땅 가지고 갔으니까. 34매나 가지고 갔었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성경을 사용해서 하고 있네. 그곳에는 쓸 만한 것이 많으니까. 관청에서 쓰는 두터운 책인데다 공무원이 찍은 것이니까 신용을 할 수가 있거든 !" 루이빈은 파벨에게 눈짓을 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나는 자네 집에 책을 얻으러 왔다네. 예핌과 내가 타르를 싣고 왔는데, 잠시 자네 집에 들러 가기로 합의를 보았지. 예핌이 오기 전에 나에게 책을 좀 빌려 주게나. 그 녀석에게 여러 가지 사정을 알리는 것은 필요없는 일이니까 말일세." 어머니는 루이빈을 바라보면서 그가 벗어던진 것은 신사복 외에 다른 무엇인가가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전만큼 무게가 없어지고, 눈도 심술사나워지고, 솔직함보다는 교활해 보였다. "어머니." 하고 파벨이 말했다. "책을 좀 가져다 주시겠어요? 저쪽에서는 무엇을 보내야 좋을지를 알고 있을 테니까요. 농촌에 보낼 것이라고 말해 주세요." "알았다 !"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지금 곧 물이 끓을 테니까, 그때 갔다 오마." "아주머니도 이 일을 시작했나요, 닐로브나 부인?" 하고 엷은 미소를 띄우며 루이빈이 물었다. "그렇군요. 지금 내가 있는 곳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교사가 가르쳐준 거예요. 성직자 집안의 출신인데, 훌륭한 젊은이라는 소문입니다. 여교사도 7킬로 가량 떨어진 곳에 있어요, 아니, 그 사람들은 공무원이니까 무서워서 금지된 책은 사용하지 않지만요. 그러나 내가 필요한 것! 나는 그것을 그 사람들의 손에 남몰래 건네주려는 거예요. 경찰관이나 성직자들이 발견하면 그 금지본은 교사들이 나누어주고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리고 나는 때가 올 때까지 시침을 뚝 떼고 있을 수 있다구요." 그리고 자신의 뛰어난 생각에 만족해서 유쾌한 듯이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어머, 당신이라는 사람은..."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곰 같은 얼굴을 하고, 여우처럼 행동을 하고 있군요."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파벨이 물었다. "만일 교사들이 금지본을 배포한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면, 그 때문에 감옥에 투옥될 거예요." "투옥되겠지. 하지만 그것이 어쨌다는 건가?" 하고 루이빈은 물었다. "책을 나누어 준 것은 아저씨지, 그 사람들이 아니쟎아요 ! 감옥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아저씨라구요." "웃기는 친구로군." 하고 루이빈은 한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면서 엷은 웃음을 띠었다. "누가 나라고 생각하겠어 ? 평범한 농사꾼이 그런 짓을 하고 있다면, 그 말을 누가 믿겠나? 책은 나리들의 소관이지. 책은 유식한 자들의 책임이거든." 어머니는 파벨이 루이빈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파벨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말했다. "미하일로 이바노비치 씨는 일은 자기가 하고, 그 벌은 다른 사람이 받게 하려는 거란다." "그렇다니까." 하고 루이빈은 턱수염을 만지면서 말했다. "시기가 올 때까지는 말일세." "어머니," 하고 파벨은 퉁명스럽게 불렀다. "만일 우리들의 동료들 가운데 누군가가, 가령 안드레이가 내 이름을 사용해서 무슨 일을 하고, 그 때문에 내가 감옥에 투옥된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는 뭐라고 하겠습니까?" 어머니는 움찔하고 몸을 떨고 의아스러운 듯이 아들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서 말했다. "그렇게 동료를 모함하는 일을 할 수가 있겠니?" "아아, 그렇군," 하고 루이빈은 말꼬리를 잡아 끌면서 말했다. "이제야 자네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알겠네, 파벨." 조소하듯이 눈짓을 하고 루이빈은 어머니 쪽을 보고 말했다. "이것은 아주머니,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다시 파벨을 보고 가르치고 깨우치듯이 얘기를 시작했다. "형제여 ! 자네의 생각은 아직 유치하네. 비밀 운동에서는 예의 같은 것은 필요없다네. 생각해 보게. 첫째 말이지, 감옥에 투옥되는 것은, 우선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발각된 젊은이들이지, 교사가 아닐세. 이것이 첫번째이네. 둘째는 교사들은 허가된 책을 배포하고 있으나, 그곳에 씌어 있는 것은 금지본에 씌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단지 말이 틀리고, 진리가 적을 뿐이네. 이것이 두 번째일세. 즉,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나하고 같은 거야. 다만 그 사람들은 시골길을 걷고 있지만, 나는 큰 길을 걷고 있네.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똑같이 죄가 있네. 안 그런가? 그리고 셋째로는, 나는 그 사람들과는 관련이 없어. 걸어가고 있는 인간이 말을 타고 가는 인간과 친구가 될 수는 없는 법일세. 농민이 상대라면, 나는 이런 짓을 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걸세.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하나는 성직자의 아들이고, 또 하나는 지주의 딸일세. 어째서 이런 사람들이 국민을 궐기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부자 나리들의 생각은 농사꾼인 나로서는 알 수가 없네. 나는 자신이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사람들의 생각은 농사꾼인 나로써는 알 수가 없다구. 수천 년 동안 부자들이 존재하면서 농민의 가족을 착취해 왔는데,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농민들의 눈을 뜨게 해주려는 것일세, 나는 동화는 좋아하지 않지만, 이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라구. 부자들은 나하고는 거리가 멀어. 겨울에 들판을 걸어가면, 앞쪽에서 무엇인가 살아 있는 것이 어른거려 보이지. 무엇일까? 늑대일까, 여우일까, 아니면 그냥 개일까? 나에게는 보이지가 않는다네 ! 멀기 때문에 말일세." 어머니는 흘끗 아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들의 얼굴은 슬퍼 보였다. 그러나 루이빈의 눈은 검게 빚나고, 그리고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는 눈초리로 턱수염을 흥분해서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는 아첨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네. 생활은 엄숙한 눈초리로 지켜 보고 있다네. 양의 우리가 아니라 개 집일세. 여러 종류의 개의 무리가 제멋대로 짖어대고 있는 거야." "민중을 위해서 자기 몸을 희생하고 평생을 감옥 안에서 지내고 있는 부자들도 있어요." 하고 어머니는 기억에 있는 얼굴을 상기하면서 말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계획도 있고, 잘못된 계산도 있는 거라구요!" 하고 루이빈은 말했다. "농사꾼이 부자가 되면 술집 주인 밖에 더 되겠어 ? 부자가 가난해지면 농사꾼밖에 안 되지. 지갑이 비게 되면 싫어도 영혼은 깨끗해진다네. 파벨, 기억하고 있나? 자네가 나에게 설명해 준 적이 있었지. 인간은 그 생활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진다고 말일세. 그래서 노동자가 '그렇다'고 말하면, 주인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고, 또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주인은 그 본성으로부터도 틀림없이 '그렇다'라고 소리치는 걸세 ! 그 때문에 농사꾼과 주인 나리는 본성이 다른 것일세. 농민이 배가 부르면 주인은 밤에도 잠이 안 오는 법일세. 물론 어떤 신분이라도 팔푼이는 있는 법이지. 그래서 나는 농민이라면 무조건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은 반대일세." 침울한 표정으로 루이빈이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이 흐려지고, 턱수염이 떨렸는데, 마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이빨을 부드득 간 것 같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서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5년 동안이나 이 공장 저 공장으로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농촌을 완전히 잊어버렸네. 바로 그걸세 ! 그곳에 가보았더니, 이제 그런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 알겠나? 할 수가 없는 거야 ! 당신들은 여기서 살고 있으니까 그런 저주스러운 것을 보지 못했겠지만, 그곳에서는 굶주림이 그림자처럼 인간을 쫓아다니고, 빵을 얻어 먹을 희망은 전혀 없다네. 전혀 없다구 ! 굶주림이 영혼을 마구 파먹고, 인간다운 얼굴을 지워 버린다네. 인간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가난 속에서 썩어가는 걸세, 그리고 주위에 까마귀 같은 관리들이 여분의 빵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감시를 하고 있네. 찾아내면 강탈을 하고, 뺨을 찰싹 때리거든...." 루이빈은 주위를 둘러 보더니 한 손을 데이블에 짚고 파벨 쪽으로 몸을 구부렸다. "나는 또다시 그 생활을 보자 대뜸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왔네. 도저히 해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억누르고 아니, 장난이 아닐세, 나는 여기에 남아야 한다고 내 마음에 타일렀네. 나는 당신들을 위해 빵을 손에 넣을 수는 없지만, 죽은 끓여 주겠다. 나는 형제들에게 죽을 끓여 주겠다 ! 나는 인간들을 위해서, 그리고 또 인간들에 대해서 저주스러운 감정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단 말일세. 그런 나의 감정은 심장 속에 나이프처럼 꽂혀서 마구 흔들리고 있단 말일세." 루이빈의 얼굴에는 땀이 홍건히 배어 나와 있었다. 그리고 파벨 쪽으로 다가가서 어깨 위에 한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를 좀 도와 주게 ! 읽으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그런 책을 좀 주게 ! 머리 속에 고슴도치를 집어넣지 않으면 안 되네, 가시가 돋은 고슴도치를 ! 자네들을 위해서 써주고 있는 시내의 동지들에게 농촌을 대상으로 해서도 써 달라고 부탁을 좀 해주게 ! 농촌이 끓는 물을 뒤집어쓰고, 모두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도록 만들어 주게." 루이빈은 한 손을 쳐들었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아 없에 버린다. 바로 그것일세 ! 그러니까 사람들이 되살아나기 위해서 죽는 걸세, 이 지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몇천 명인가는 죽어도 괜찮은 걸세! 죽는 것은 쉽네. 되살아나면 되는 걸세. 사람들이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 거라구." 어머니는 곁눈질로 루이빈을 보면서 사모바르를 들고 왔다. 묵직하고 힘찬 그의 말은 그녀를 압도했다. 그 말 속에는 무엇인가 그녀의 남편을 연상케하는 것이 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이빨을 드러내고, 팔뚝을 걷어 붙이고, 양팔을 흔들어댔다. 남편의 내부에도 참을 수 없는 꼭 같은 증오가 있었다. 그러나 참을 수는 없었어도 벙어리로 지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 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그건 해야지요." 하고 파벨은 머리를 흔들고 말했다. "자료를 주십시오. 우리들은 당신들을 위해서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보고 머리를 흔들며 잠자코 외투를 입고는 집을 나섰다. "해주게! 모두 나누어 주겠네. 송아지도 알 수 있도록 쉽게 좀 써 주게." 하고 루이빈이 소리치고 있었다. 부엌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예핌이구나." 하고 루이빈이 부엌을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이리 오게, 이 사람이 예핌일세. 이 사람은 파벨이라고 하네. 이 사람에 대해서 자네에게 얘기를 해주었었지?" 파벨 앞에 모자를 손에 들고 회색 눈을 치뜨고 바라보는 황갈색 머리칼의 커다란 젊은이가 서있었다. 그는 짧은 반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단단한 체격이, 틀림없이 기운도 셀 것 같았다. "실례합니다." 하고 약간 쉰 목소리로 그는 말하고, 파벨의 손을 잡고 나서 뺏뺏한 머리칼을 양손으로 쓰다듬었다. 방 안을 획 둘러 보더니 다짜고짜 천천히 발소리를 죽이고 서가 쪽으로 다가갔다. "드디어 발견했나 보군." 하고 루이빈은 파벨에게 눈짓을 하고 말했다. 예핌은 고개를 돌려 그를 흘끗 보고는 이렇게 말하면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읽을 것이 얼마든지 있군요. 그러나 틀림없이 책을 읽을 시간은 없겠네요. 시내에 산다면 책을 읽을 시간이 있겠지만."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을 걸요?" 하고 파벨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읽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거예요." 하고 젊은이는 턱을 비벼대면서 말했다. "요즘은 생각하지 않고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걸요. 하지만 죽지 않으려고 모두 머리를 쓰기 시작했으니까요. '지질학'이라, 이것은 무슨 책입니까?" 파벨이 설명해 주었다. "우리들에게는 볼일이 없겠군요." 하고 젊은이는 책을 책장에 꽃으면서 말했다. 루이빈은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농사꾼에게는 토지가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것은 재미가 없지. 그런 것이 아니고, 토지가 어째서 제멋대로 남의 손에 들어갔는가, 지주들이 어떻게 토지를 농민으로부터 약탈해 갔는가 하는 것이 더 재미가 있는 걸세. 지구가 서있느냐, 돌고 있느냐, 그것은 문제가 아닐세. 지구가 새끼 위에 걸려 있다고 해도 상관없네. 인간을 먹여만 주면 되는 거지. 공중에 못을 박고 걸어 놓아도 상관없네. 인간을 먹여 살려만 주면 되는 거라구." <노예사> 하고 예핌이 또다시 표제를 읽고 파벨에게 물었다. "우리들에 대해서 써 있습니까?" "농노제에 대해서 쓴 것도 있습니다." 하고 파벨은 그에게 다른 책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예핌은 그 책을 받아들고 양손으로 뒤적였다. 그리고 옆에 놓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옛날 이야기로군요." "당신들도 토지를 분배받았겠지요?" 하고 파벨은 물었다. "우리들 말입니까? 가지고 있고 말고요! 우리들 형제 세 사람이 분배받은 땅은 4데샤티나(1데샤티나는 약 1핵타르)입니다. 모래밭이지요. 놋 그릇을 닦는 데는 좋지만 곡물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땅이지요." 잠깐 입을 다물고 나서 예핌은 계속했다. "나는 토지하고는 인연을 끊었습니다.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대로 먹여 주지도 못하면서 손만 묶어 둡니다. 벌써 4년째 일용 머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금년 가을에는 군대에 나가야 합니다. 미하일로 아저씨는 가지 말라고 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군대는 국민을 두들겨 패기 위해서 뽑는다고 하지만, 나는 군대에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대란 스챈카 라진의 시대에도, 또 푸가초프의 시대에도 국민을 두들겨 팼습니다. 이제 그것을 못하게 해야 할 때입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예핌은 파벨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래야 할 때입니다!" 하고 미소를 지으며 파벨이 말했다. "다만 어려운 일이겠지요. 군인에게 어떤 것을 얘기할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잘 알아야 할 테니까요." "가르쳐 주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예핌이 말했다. "만일 그런 일로 상관에게 붙잡힌다면 총살당할지도 모릅니다." 하고 파벨은 호기심을 느끼고 예핌을 보면서 말했다. "상관은 용서하지 않겠지요." 하고 조용히 젊은이는 동의하고, 다시 책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차를 마시게. 예핌, 곧 떠나야 하니까." 하고 루이빈이 말했다. "곧 갑니다." 하고 젊은이는 대답하고, 또다시 물었다. "혁명이라는 것은 폭동을 말하는 건가요?" 안드레이가 땀 투성이에다 얼굴이 빨개져서 집에 돌아왔다. 잠자코 예핌과 악수를 나누고, 루이빈과 나란히 걸터 앉아 예핌을 바라보면서 웃고만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불쾌한 눈초리를 하고 있나?" 하고 루이빈이 그의 무릎을 손으로 치면서 물었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닙니다."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대답했다. "역시 노동자입니까?" 하고 예핌은 안드레이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그렇습니다."하고 안드레이는 대답했다. "그것이 어쨌단 말입니까?"' "이 친구는 처음으로 공장 사람들을 만났다네." 하고 루이빈은 설명했다. "농민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네." "어딘가 좀 다른 곳이 있습니까?" 하고 파벨이 물었다. 예핌은 찬찬히 안드레이를 살펴보고 말했다. "뼈가 뾰죽히 나와 있군요. 농민은 뼈가 좀더 둥글고...." "농민은 훨씬 편안하게 두 다리로 서 있다네." 하고 루이빈이 보충을 했다. "농민은 자신의 발 밑에 토지를 느끼고 있지. 토지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토지를 느끼고 있단 말일세! 그러나 공장 사람들은 철새와 같아서 고향도 없고, 집도 없네. 오늘은 이곳으로, 내일은 저곳으로 날아 가지. 여편네들도 공장에 다니는 남편을 한 곳에 붙들어둘 수가 없다구. 무슨 일만 있으면 '잘 있게, 잠깐 비켜 주실까'이지! 그리고 좀더 좋은 곳을 찾으러 떠나 버리는 걸세. 그러나 농민은 그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든지 개선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네. 아, 아주머니가 돌아왔군!" 예핌은 파벨 옆으로 가너 물었다. "나에게 책을 좀 빌려 주시지 않겠어요?" "그러세요." 하고 파벨은 기꺼이 응했다. 젊은이의 눈은 탐욕스럽게 불타 올랐다. 그리고 예핌은 빠른 어조로 말을 꺼냈다. "틀림없이 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 동료들이 이 근처에 타르를 싣고 오니까, 그 편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벌써 외투를 입고 단단히 허리띠를 졸라 맨 루이빈은 예핌에게 말했다. "자아, 빨리 가세." "보세요, 나는 이것을 읽기로 했어요." 하고 예핌은 책을 내밀면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떠나자 파벨은 안드레이 쪽을 향해서 활기에 차서 외쳤다. "믿음직스러운 친구들 아닌가?" "으음."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천천히 말끝을 끌었다. "소나기 구름 같구먼..." "미하일로 씨는?"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공장에서 생활한 적이 전혀 없는 것처럼 완전히 농사꾼이 된 것 같구나.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자네가 없어서 유감이었네." 하고 파벨은 테이블 옆에 걸터 앉아서 자기 컵을 우울하게 바라보고 있는 안드레이에게 말했다. "그 마음의 움직임을 자네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네. 자네는 늘 마음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말일세. 조금 전에, 루이빈은 대단한 기염을 올리면서 나를 완전히 압도해 버렸네... 나는 그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었네. 그의 마음 속은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더군, 루이빈 씨는 인간을 얼마나 값싸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네. 어머니가 한 말은 사실일세. 그 사람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네." "그 힘은 나도 경험해서 알고 있네." 하고 음울하게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지주들이 농민들을 저렇게 만든 것일세. 농민들이 일어나면 모든 것을 뒤집어 엎어 버릴 거야. 농민들은 지주들의 땅을 발거 벗길 거야. 농민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벌거벗은 토지일세. 그리고 농민들은 모든 것을 잡아 뽑아 버릴 걸세 !" 안드레이는 느릿느릿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에 대해서 조용히 언급했다. "안드류샤 ! 잊어버리게 !" "기다려 주세요, 어머니." 하고 작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우크라이나 인이 부탁했다. 그리고 갑자기 흥분해서 한 손으로 테이블을 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파벨. 농민은 일어나면 토지를 벌거 벗겨 버린다구.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뒤 처럼 농민은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고, 자신들의 굴욕의 모든 상처 자국을 몽땅 잿더미로 만들어서 후후 불어 날려 보내 버릴걸세." "그리고 나서, 우리들의 길을 가로 막고 선다는 말이군." 하고 작은 목소리로 파벨이 말했다. "우리들의 임무는 그것을 못하게 하는 것일세 ! 우리들의 임무는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라구. 우리들은 가장 농민에게 가깝네. 농민은 우리들을 믿고 따라올 것일세." "루이빈 씨가 농촌 대상의 유인물을 만들어 달라시더군." 하고 파벨이 알려 주었다. "그것은 필요하지." 파벨이 웃으며 말했다. "그분과 토론을 했으면 좋았을 걸 !" 우크라이나 인은 머리를 긁으며 조용히 말했다. "토론은 앞으로 다시 하면 되네. 자네는 계속 피리를 부는 거야. 토지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자네의 가락에 맞춰서 춤을 추겠지! 루이빈 씨가 지적한 대로, 우리들은 자기 발 밑에 토지를 느끼고 있지는 않네. 게다가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상관없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사명은 이 토지를 뒤 흔드는 것이니까 말일세. 한 번 뒤 흔들면 농민들에게 채워진 족쇄가 떨어져 나갈 것이고, 또 한 번 뒤 흔들면 모든 것을 떨쳐내 버리고 일어날 걸세."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안드류샤 ! 자네 입장에서 보면 아주 간단하구먼." "그럼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말했다. "간단하지요. 생활과 마찬가지로요." 잠시 후 안드레이가 말했다. "들판으로 나가서 조금 걷다 오겠어요." "목욕한 뒤에 ? 바람이 있어서 감기 들기 십상인데." 하고 어머니가 주의를 주었다. "바로 그것을 식히는 것이 필요하다니까요."하고 안드레이는 대답했다. "조심하게, 감기 든다니까." 하고 다정하게 파벨이 말했다. "자는 편이 좋을 거야." "아니, 좀 나갔다 오겠네." 그리고 안드레이는 외투를 걸치고 말없이 방을 나갔다. "저 사람 괴로워서 저러는 거야." 하고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어머니," 하고 파벨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머니가 저 친구에게 이전보다 한층 더 친근하게 대해 주시는 것은 참 잘하신 일이에요." 어머니는 놀라서 아들을 보고 대답했다. "내가 그랬니 ? 난 미처 몰랐구나.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구나. 저 사람은 나에게 무척 가깝게 느껴져서..." "어머니, 어머니는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계세요." 하고 파벨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네게 그리고 너희들 모두에게 하다 못해 뭔가 도움을 좀 주고 싶은 거란다.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걱정할 것 없어요. 도움을 줄 수 있고말고요." 어머니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이다.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나로서는 불가능하단다." "알았어요, 어머니 ! 잠자코 있을게요." 하고 파벨은 말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세요. 나는 어머니에게 너무너무 감사하고 있다구요." 어머니는 자신의 눈물로 아들을 곤혹스럽게 하지 않으려고 부엌으로 나갔다. 우크라이나 인은 밤 늦게 피로에 지쳐서 집에 돌아 와서는 이렇게 말하고 금세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10킬로 정도는 뛰었을 거야." "그래, 효과가 있었나?" 하고 파벨이 물었다. "방해하지 말게. 이제 그만 자야겠으니까." 그리고 마치 죽은 것처럼 깊은 잠에 떨어졌다. 며칠 후 배소푸쉬코프가 언제나처럼 누더기옷을 입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불만스러운 듯이 찾아왔다. "이사이 녀석을 죽인 것이 누군지 얘기를 듣지 못했나?" 하고 그는 어색한 모습으로 방 안을 돌아 다니면서 물었다. "못 들었는데!" 하고 파벨이 짧은 말로 대답했다. "엉뚱한 녀석이 나타나서 잘도 해치웠더군, 그래. 내 손으로 직접 그 작자를 목졸라 죽이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거든.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었어.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었다구." "그만두게, 니콜라이, 그런 얘기는!" 하고 파벨이 그에게 동정하듯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하고 어머니가 다정스럽게 그 말을 받아서 얘기했다.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자네가 그런 난폭한 소리를 하다니 도대채 왜 그러는 건가?" 그 순간, 어머니는 니콜라이를 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의 곰보상 조차도 여느때보다는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나는 이런 일 외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를 않는다구." 하고 니콜라이는 어깨를 움츠려 보이면서 말했다. "어디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네. 내가 할 일은 없더라구 !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실어도 나는 그것을 할 수가 없어. 나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네.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도 똑같이 느끼고 있네. 하지만 그것을 입에 담아서 말할 수는 없단 말일세. 말을 할 재간이 없는 인간이라구." 니콜라이는 파벨 옆으로 다가가서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후벼대면서, 그답지 않게 웬지 어린애 같은 애처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형제들, 나에게 무엇인가 중대한 일을 시켜줄 수 없겠는가? 나는 이런 식으로 무의미하게 살아나갈 수는 없다구. 자네들은 모두 일을 하고 있네. 나는 다 보고 있지. 그 일은 자꾸만 뻗어 나가고 있더군. 그런데 나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단 말일세 ! 통나무나 판자조각을 운반하고 있지만, 이렇게 해서 살아나갈 수 있겠나? 제발 괴롭고 힘든 일을 좀 시켜 주게 !" 파벨은 니콜라이의 손을 잡고 그를 끌어당겼다. "암, 적당한 일이 있지..." 그때 문턱 너머에서 우크라이나 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콜라이, 내가 자네에게 활자를 뽑는 법을 가르쳐 주겠네. 자네는 식자공이 되는 거야. 괜찮겠나?" 니콜라이는 안드레이 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만일 가르쳐 준다면, 자네에게 나이프를 주겠어......" "나이프 같은 건 사양하겠네." 우크라이나 인은 소리 치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좋은 나이프란 말이야!" 하고 니콜라이는 우겨댔다. 파벨도 또한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니콜라이 베소푸쉬코프는 방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물었다. "자네들은 나를 비웃고 있는 건가?" "그렇고말고!"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침대에서 뛰어 내리면서 대답했다. "왜 그런지 설명해 주지. 들판으로 산책을 좀 나가지 않겠나? 좋은 달 밤일세..."' "좋아!" 하고 파벨이 말했다. "나도 가겠어!" 하고 니콜라이가 말했다. "나는 말이지, 우크라이나 인, 자네가 웃는 것을 좋아한다구." "나는 말이지, 자네가 무엇인가를 준다고 약속하는 걸 좋아하네!"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엷은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안드레이가 부엌에서 옷을 입고 있을 때 어머니는 그에게 투덜투덜 말했다. "좀더 두꺼운 옷을 입고 나가야지.." 그들 세 사람이 함께 나가자, 어머니는 창문 너머로 그들을 보고, 성상에게 시선을 보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주여, 저 사람들을 도와주소소..." 26 날은 하루 또 하루 재빨리 지나갔다. 어머니는 5월 1일, 노동절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없이 바빴다. 다만 밤이 되어서 낮 동안의 시끄럽고 마음을 조이게 만드는 분주하므로 지쳐서 침대에 누우면 그때서야 희미하게 쭈물거렸다.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새벽 녁에 공장의 사이렌이 울리면 아들과 안드레이는 황급히 차를 마시고 가벼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몇 가지 볼일을 부탁해 놓고 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하루 종일, 생쥐처럼 바지런히 뛰어다니고 점심 식사를 만들고, 인쇄한 전단을 붙일 연보라 빚 풀을 만들거나 했다. 또한 누군가 사람들이 찾아와서 파벨에게 전해 달라고 편지를 내밀고, 그 흥분을 어머니에게까지 감염시켜 놓고는 모습을 감춰 버렸다. 노동자에게 메이데이의 경축을 호소하는 전단은 거의 매일 밤 여기저기 담에 붙여졌다. 그것은 경찰서의 문에까지 나타났으며, 매일 공장에서 발견되었다. 매일 경찰관은 고함을 쳐대면서 마을 안을 뛰어다니고, 담에 붙은 벽보를 떼어내거나 긁어내거나 했는데, 점심 때쯤에는 다시 인쇄물이 가로에 날아 다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치에 굴러왔다. 시내에서 스파이가 파견되어 왔다. 그들은 거리 모퉁이에 서서 공장으로부터 신바람이 나서 활기를 띠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돌아 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경찰의 무력함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이든 노동자들까지 비웃으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도대채 무엇들을 하는 거야, 응!" 가는 곳마다에서 사람들이 몰려서서 사람의 피를 들끓게 하는 유인물을 가운데 놓고 열심히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들끓고 있었다. 그것은 금년 봄에는 누구에게 있어서나 다른 어느 때보다 재미있고, 무엇인가가 즐거운 것을 모두에게 가져다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모반인들을 얄미운 듯이 비난했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이 걱정스러워서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막연한 희망과 불안을,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소수이기는 했으나 자신들이야말로 모두를 눈뜨게 만드는 힘이라고 하는 자각의 날카로운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파벨과 안드레이는 거의 매일 밤 한잠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사이렌이 울리기 직전이 되어야 두 사람 모두 파김치가 되어서 목도 쉬고 창백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들이 숲속이나 늪가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을 주위를 밤마다 기마 경찰관이 순찰을 돌고, 스파이가 숨어서 탐색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노동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붙잡아서 몸 수색을 하고, 모여 있는 사람들을 쫓아 보내고, 때로는 누군가를 검거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들과 안드레이도 매일 밤 검거당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그것을 원하고 있을 정도였다. 두 사람을 위해서는 그 편이 낫다고 어머니에게는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사이 살인 사건은 이상스럽게도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그 고장의 경찰은 이 건에 대해서 사람들을 심문하고, 10여 명 가량의 사람들을 취조했을 뿐, 살인 사건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마리야 코르스노바 부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찰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언젠가 어머니와 얘기를 나눌 때 자신의 말 속에 경찰의 생각을 암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러다가는 범인을 찾을 수 있겠어요? 그날 아침에 이사이를 본 사람은 틀림없이 백 명은 넘었을 것이고, 그 가운데 최소한 90명은 그 사나이에게 뺨을 올려 붙일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라구요. 지난 7년 동안, 사람은 모두에게 정말 몹쓸 짓을 해왔으니까요." 우크라이나 인은 눈에 띄게 변해 버렸다. 뺨은 움푹 패이고, 눈꺼풀은 두터워져서 튀어나온 눈 위에 늘어져서 그것을 덮었다. 콧구멍에서 입술의 양쪽 끝에 걸쳐서 잔주름이 잡혀 있었다. 안드레이는 일상의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자꾸만 흥분해서 술 취한 것 같은, 그리고 모두를 취하게 만드는 것 같은 회열 상태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미래의 일을 자유와 이성의 승리의 밝은 축제일에 대해서 얘기했다. 이사이의 살인 사건이 흐지부지되자 안드레이는 불쾌한 듯이, 그리고 서글픈 듯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놈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민중들 뿐만이 아니야. 놈들이 개처럼 부려먹던 인간들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다구. 놈들이 아까워하는 것은 충실한 앞잡이인 유다스가 아니라 은화란 말야." "그 얘기는 이제 지겹네, 안드레이." 하고 파벨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썩은 나무가 작은 충격을 받고 산산조각으로 허물어진 것 뿐일세 !" "사실이 그렇기는 하지만 별로 기분은 좋지 않군요." 하고 음울하게 우크라이나 인은 말했다. 우크라이나 인은 종종 이 말을 입에 담았다. 그 말은 뭔가 특별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비통하고 신랄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메이데이(노동절)가 찾아왔다. 사이렌이 언제나처럼 위압하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한잠도 잠을 자지 못한 어머니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어제 밤부터 준비해 둔 사모바르에 불을 지피고, 여느때처럼 아들과 안드레이의 방문을 노크하려고 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한 뒤 마치 이빨이라도 아픈 것처럼 얼굴에 한 손을 갖다대고서 창가로 가서 걸터앉았다. 파르스름한 하늘에 가벼운 흰 색과 장미 빚의 구름이 지나갔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새가 사이렌의 우렁찬 신음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머리는 무겁고, 눈은 잠을 못 이룬 때문에 충혈되고 꺼칠꺼칠해져 있었다. 가슴 속에는 이상한 차분함이 있었고, 심장은 조용하게 고동치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머리에 떠올라왔다. '사모바르를 너무 일찍 끓였나 봐. 펄펄 끓어 버리겠군 ! 저 아이들은 오늘은 좀더 오래 자게 해야겠어. 두 사람 모두 지쳐서 기운을 못 차리니까...' 창문에 싱싱한 햇빚이 즐거운 듯이 비쳐 들어왔다. 어머니는 그 빚에 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밝은 빚이 손 위에 떨어지자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다른 한쪽 손으로 그것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사모바르의 연통을 때어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세수를 하고 나서, 힘차게 성호를 그으며 조용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지고, 오른쪽 눈썹이 천천히 위쪽으로 을라가는가 싶더니 다시 갑자기 내려갔다. 두 번째 사이렌은 먼저 것보다는 작은 소리로, 얼마간 미덥지 못하게 울리기 시작했는데, 그 굵고 축축한 울림 속에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그 사이렌이 오늘은 여느때보다 길게 울리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방 안에서 안드레이의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벨 ! 들리나?" 두 사람 중 어느 쪽인가가 맨발로 마루를 두드리고 어느 쪽인가가 기분좋게 하품을 했다. "사모바르 준비가 되어 있다." 하고 어머니가 소리쳤다. "곧 일어날게요." 하고 파벨이 쾌활하게 대답했다. "해가 떠오른다!"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구름이 몰려오네... 저 구름은 오늘은 쓸모가 없는데....." 그리고 험하게 자서 머리칼이 마구 헝클어져 있었으나 유쾌한 얼굴로 부엌으로 나갔다.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머니는 안드레이 옆으로 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안드류샤 ! 저 아이와 나란히 서서....." "그야 물론이지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속삭였다. "우리들은 함께 있는 한, 어디든지 나란히 서서 걸어갈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세요." "자네는 거기서 뭘 그렇게 소곤거리고 있나?" "아무것도 아닐세, 파벨." "어머님은 좀더 세수를 깨끗이 하라고 나에게 말하고 계신다네 ! 처녀들이 구경하러 나올 거라고 말일세."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세수를 하러 나가면서 말했다. "일어서라, 일어나라, 노동자." 하고 파벨이 작은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날은 더욱더 맑게 개고, 구름은 바람에 쫓겨서 사라져 갔다. 어머니는 찻잔을 늘어놓고 있었으나 고개를 흔들면서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왜 이렇게 이상할까? 오늘 아침은 두 사람 모두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싱글벙글하고 있지만, 점심때에는 어떤 일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은 누구도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 자신도 웬지 마음이 편하고 기쁨이 넘쳐났다.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리고 파벨은 언제나처럼 컵 속의 설탕을 천천히 정성들여서 스푼으로 뒤섞고, 빵 조각에다 ㅋ곰꼼히 소금을 뿌렸다. 우크라이나 인은 테이블 밑에서 발을 바스락바스락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발을 괴롭혔다. 그리고 천장이나 벽 위에 물에 반사한 햇빚이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 "내가 열 살 때였을 거야. 해를 컵으로 잡으려고 생각하고, 이렇게 컵을 손에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확 하고 벽 위를 덮어 씌웠다네. 손에 상처를 입고, 그 때문에 나는 얻어 맞았지. 그런데 얻어맞은 뒤에 뜰에 나가니까 물 웅덩이에 비치고 있는 해가 눈에 띄어서, 재빨리 그것을 두 발로 밟아 주었다네. 그랬더니 온 몸에 진흙탕이 튀어서 나는 또 얻어맞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네. 그래서 태양을 향해서 소리쳐 주었지. '빨간 털의 악마 녀석아, 나는 아프지 않단 말야. 하나도 아프지 않아!' 라고 말일세. 그리고 혓바닥을 내밀어 보였는데, 그제서야 화가 풀리더군." "왜 태양이 자네에게는 빨간 털로 보였을까?" 하고 파벨이 웃으면서 물었다. "그것은 우리 집 맞은 편에 대장장이가 있었는데 말이야. 빨간 털의 턱수염을 기른 붉은 얼굴의 사나이였거든. 쾌활하고 사람이 좋은 영감이었는데, 나에게는 태양이 그 영감과 닮아 보였던 거야." 어머니는 조바심이 나서 말했다. "이젠 행진을 어떻게 하느냐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는 게 어떨까?" "이미 정해진 것을 얘기한다는 것은 다만 일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에요." 하고 부드럽게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만일 우리들이 모두 끌려 간 경우 니콜라이 이바노비치가 찾아올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어머니에게 얘기해 줄 것입니다." "알았네." 하고 어머니는 한숨을 짓고 말했다. "거리로 나가 볼까?" 꿈꾸듯이 파벨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니, 좀더 집에 있는 편이 좋을 거야!" 하고 안드레이가 말했다. "일부러 경찰의 눈을 끌 건 없네. 자네는 경찰에게는 충분히 잘 알려져 있으니까 말일세!" 그때 페자 마진이 눈을 번뜩이고 뺨이 붉어져서 달려왔다. 온통 기쁨의 흥분으로 가득 채워진 페자는 기다리는 동안의 따분함을 쫓아 버렸다. "시작되었어!" 하고 페자는 얘기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구!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어.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도끼 같다니까. 공장 문 앞에서는 계속 베소푸쉬코프가 구세프 바실리와 사모일로프와 함께 서서 연설을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구. 자아, 가세. 벌써 10시일세." "가야지!" 하고 파벨이 단호하게 말했다. "두고 보게." 하고 페자가 약속했다. "점심 식사 뒤에는 공장 전체가 들고 일어날 거라구!" 그리고 페자는 달려가 버렸다. "폭풍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타고 있구나." 하고 어머니는 조용한 말로 그를 전송하고 나서,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가서 몸 단장을 시작했다. "어머니, 어디에 가시는 겁니까?" "너희들과 함께."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안드레이는 자신의 콧수염을 잡아당기면서 파벨을 보았다. 파벨은 제빨리 머리를 빗고는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어머님,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어머니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알았다. 알았어. 제발 무사하렴!" 하고 어머니는 중얼거렸다. 27 어머니가 거리로 나서자 여기저기서 떠들썩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대하고 있던 것과 같은 함성도 들려왔다. 가는 곳마다 창가나 문 옆에 모여서 호기심의 눈으로 안드레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어머니의 눈에는 안개와 같은 반점이 떠올라서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기도 하고 투명한 녹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온 몸이 떨리며 눈앞이 깜깜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으나, 그 인사 속에는 웬지 모르게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녀의 귀는 단편적인 작은 목소리에 저절로 귀 기울여졌다. "저것 좀 봐 ! 저 두 사람이 주동자라구..." "누가 지휘를 하는지 우리들은 몰랐어요." "아니, 내가 언제 허튼소리 하는 거 봤어요?" 안뜰의 다른 장소에서는 누군가가 짜증스러운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경찰에 붙잡힐 거야. 저 녀석들도 당하고 말거라구." "벌써 붙잡혀 갔는 걸!" 신음하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창으로부터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당신은 혼자 사는 몸이 아니쟎아요?" 공장에서 매달 불치의 병 수당을 받고 있는, 다리가 없는 조시모프의 집 옆을 지나갈 때였다. 조시모프가 창문에서 목을 내밀고 고함을 쳤다. "파벨! 이 쌍놈의 자식, 그런 짓을 하다가는 얼마 못가서 네놈은 목이 잘려 나갈 거야. 거기서 기다리지 못해 !" 어머니는 부르르 몸을 떨고 멈춰 섰다. 그 외침소리는 그녀의 마음에 격렬한 증오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어머니가 그 불구자의 퉁퉁 부운 얼굴에 흘끗 눈을 보내자, 그는 욕지거리를 하면서 머리를 디밀었다. 어머니는 발걸음을 빨리 해서 아들에게 따라 붙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그 뒤를 쫓아갔다. 파벨과 안드레이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자신들에게 던져지는 비난의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미로노프가 두 사람을 불러세웠다. 그 중년의 내성적인 사나이는 진지하고 결백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모두에게 존경받고 있었다. "당신도 역시 일하러 나가지 않았나요, 다닐로 이바노비치 ?" 하고 파벨은 물었다. "우리 집에서는 마누라가 만삭인 데다가 또 이처럼 시끌시끌한 날이라서 말일세." 하고 미로노프는 빤히 동료들의 얼굴을 보면서 설명하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들은 공장장에게 싸움을 걸려고 한다는 소문인데, 유리창이라도 깰 생각인가?" "우리들은 술주정뱅이가 아닌 걸요." 하고 파벨은 소리쳤다. "우리들은 다만 거리를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노래를 부르려는 것 뿐이에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우리들의 노래를 들어 주세요. 그 노래에는 우리들의 신념이 담겨 있으니까요." "자네들의 신념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네." 하고 생각에 잠겨서 미로노프는 말했다. "그 전단들을 읽었네. 아니, 닐로브나 부인 !" 하고 그는 영리한 눈으로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외쳤다. "당신도 소동을 일으키려고 나왔나요?" "죽기 전에 진리와 나란히 걷고 싶어서지요." "허허!" 하고 미로노프는 말했다. "당신이 공장으로 금지된 책을 몰래 운반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군요."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하고 파벨이 물었다. "아니 그렇다는 소문일세! 그럼, 잘 가게. 잘들 해보게나." 어머니는 남 몰래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것이 기분좋았다. 파벨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도 감옥행이에요." 태양은 점점 더 높이 떠올라서 봄날의 발랄한 싱싱함 속에 그 따스함을 쏟아 붓고 있었다. 구름은 한층 더 느리게 흐르고, 그 그림자는 좁고 엷어져 갔다. 그 구름은 거리나 집들의 지붕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서 사람들을 감싸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시름을 씻어내 버리고, 마을을 정화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기온은 점점 따뜻해지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져서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계의 소음을 지워 버렸다. 또다시 어머니의 귀에 곳곳에서 속삭이는 얘기가 들려왔다. 비난의 소리도 있었고, 걱정과 지지를 하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어머니는 문득 그것에 일일이 대꾸를 하거나, 감사하거나 설명하고 싶어졌다. 이 날의 기묘한 갖가지 대화에 참견하고 싶어졌다. 길 모퉁이의 건너쪽 좁은 골목에 백여 명 가량의 사람의 무리가 모여있고, 그 속에서 베소푸쉬코프의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있었다. "우리들은 덩굴의 즙이 짜내지듯이 피를 착취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망치처럼 떨어져 내렸다. "옳소!" 하고 몇개의 목소리가 당장 산울림이 되어서 대답했다. "저 친구, 제법 잘 하고 있군!"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좋아, 내가 가서 도와줘야지..." 안드레이는 등을 구부렸다. 그리고 파벨이 그를 제지할 사이도 없이, 마치 콜크에 병따개를 찔러 넣듯이 그 길다란 유연한 몸을 군중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유창한 말소리가 울려왔다. "여러분! 이 지상에는 유태인이나 독일인, 영국인이나 타타르 인 등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오로지 두 개의 민족 뿐입니다. 부자와 가난뱅이라고 하는 이 두개의, 사이가 서로 좋아질 수 없는 민족 뿐입니다! 인간이 입고 있는 복장은 가지각색이고, 얘기하는 언어도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나 잘 보십시오. 돈 많은 프랑스 인이나 독일 인이나 영국 인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노동자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하나같이 깡패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놈들은 목구멍에 가시라도 걸리는 것이 좋습니다." 군증 속에서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렸다. "또 다른 한쪽에서 봅시다. 그러면 프랑스의 노동자도 타타르 인도 터키 인도 우리들 러시아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큰 거리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잠자코 목을 길게 빼고 발 뒤꿈치를 들고서 골목으로 들어왔다. 안드레이는 목청을 더욱더 높였다. "외국의 노동자들은 이미 이런 간단한 진리를 터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메이데이의 맑게 겐 날에......" "경찰관이다!" 하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거리에서 정면으로 군중을 향해서 네 명의 기마 경찰관이 채찍을 휘둘러 대면서 돌진해 오고 있었다. "해산하라!"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마지못해 말에게 길을 양보했다. 담 위로 기어 올라간 사람도 있었다. "돼지 새끼들! 말을 한 번 얻어 타고서 제가 대장이라도 된 듯 팩팩 돼지 멱따는 소리를 하고 있구먼!" 하고 누군가가 도전하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크라이나 인은 옆 골목 한가운데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를 향해서 두 마리의 말이 머리를 흔들어 대면서 덤벼들었다. 안드레이가 옆으로 몸을 피하자, 그때 어머니가 그의 한쪽 손을 붙잡고 잡아 당겼다. "파벨과 함께 있겠다고 약속해 놓고, 자네 혼자서 난폭한 짓을 하다니!" "미안합니다!"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닐로브나 부인은 몸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피로와 불안에 사로잡혔다. 그 피로는 내부로부터 치밀어올라와서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들고, 마음 속에 이상하게 슬픔과 기쁨을 교대로 불러 일으켰다. 빨리 정오의 사이렌이 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교회 옆 광장으로 나갔다. 교회 주위에는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6백 명 가량의 청년들과 아이들도 있었다. 군중들은 파도처럼 물결치며 불안한 모습으로 사방을 둘러 보면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고양된 기분이 느껴졌다.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허세를 부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들의 억제한 듯한 목소리가 낮게 울리자 남자들은 화가 난 듯이 여자들에게 얼굴을 돌리며 이따금 조그만 비난의 소리를 질렀다. 적의에 가득 찬 충돌의 둔탁한 소음이 잡다한 군중을 감싸고 있었다. "미첸카!" 하고 여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자기 몸을 생각하세요!" "저쪽으로 가지 못해!" 하고 그것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집시의 힘찬 목소리가 침착하게 타이르듯이 얘기하고 있었다. "아니야. 우리들은 사람들을 버려서는 안 돼! 젊은 사람들은 우리들보다 영리하고, 좀더 대담하게 생활하고 있어! 늪을 메우는 기금 사건 때, 끝까지 견더낸 것은 누군가? 젊은 친구들이야. 이것을 잊어서는 안 돼. 그 친구들은 그 때문에 감옥으로 끌려갔네, 그런데 그 덕택에 모두가 승리한 거라구."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고, 그 검은 울림에 사람들의 얘기소리는 삼켜져 버렸다. 군중은 떨고 있었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고, 한순간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많은 얼굴들이 창백해졌다. "여러분." 하고 울려 퍼지는 힘찬 파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마른 뜨거운 안개가 어머니의 눈을 덮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갑자기 힘이 솟은 몸을 재빨리 움직여서 아들의 등 뒤에 가 섰다. 사람들은 마치 자석에 빨려 들어가는 쇳 가루처럼 파벨 쪽으로 몸을 돌리고 그를 둘러쌌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오로지 그 자랑스럽고 불타는 듯한 눈만을 보고 있었다. "여러분! 마침내 때가 왔습니다. 우리들의 짐승같은 생활, 거짓과 탐욕과 증오로 가득 찼던 이 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인간답지 못한 이 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오늘 우리들이 어떤 인간인가를 공공연히 선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우리들의 깃발을, 이성과 진리와 자유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 것입니다!" 희고 긴 깃대가 공중에서 번뜩이더니, 기울어져서 군중들을 가르고 그 속으로 숨었다. 잠시 후 쳐다보는 사람들의 얼굴 위로, 노동자들이 치켜든 깃발이 빨간 새처럼 날아 올랐다. 파벨이 한 손을 치켜 들자 깃대가 흔들렸다. 그러자 수십 개의 손이 희고 매끄러운 막대기를 붙잡았다. 그 손가운데는 어머니의 손도 있었다. "노동자 만세!" 하고 파벨은 외쳤다. 수백 명의 목소리가 우렁찬 외침 소리로 그것에 응답했다. "사회 민주 노동당 만세! 여러분, 이것이 우리들의 당, 우리들의 마음의 조국입니다!" 군중은 흥분으로 들 끓었다. 이 깃발의 의미를 이해한 사람들은 군중을 헤치고 깃발 옆으로 나갔다. 마진과 사모일로프와 구세프 형제가 파벨과 나란히 섰다. 머리를 갸웃거리며 니콜라이가 사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젊고 불타는 듯한 눈을 한 젊은이들이 어머니를 밀어 젖히며 다가 왔다. "전세계의 노동자 만세!" 하고 파벨은 외쳤다. 그러자 힘과 기쁨을 점점 더 더해 가면서 수천 명의 목소리의 메아리가 마음을 뒤흔드는 울림이 되어서 파벨의 외침에 응답했다. 어머니는 니콜라이의 손과 또 하나의 누군가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눈물로 목이 막혔으나 울지 않았다. 두 다리가 떨렸다. 입술을 떨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사랑스런 젊은이들..."니콜라이의 곰보상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퍼져 나갔다. 니콜라이는 깃발을 바라보고 한 손을 내 뻗으면서 환성을 지르며 갑자기 한 손으로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여러분!"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그 부드러운 목소리로 군중의 술렁거림을 멎게 하고 노래하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지금 새로운 하느님, 빚과 진리의 하느님, 이성과 선의 하느님의 이름으로 십자군을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들의 목적은 멀고 가시관은 가깝습니다. 진리의 힘을 믿지 않는 자, 진리를 죽을 때까지 지켜낼 용기가 없는 자, 자신을 믿지 않고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자는 우리들 옆으로 비켜서 주십시오. 우리들은 우리들의 승리를 믿는 자를 불러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목적을 모르는 자는 우리들과 함께 걷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 앞에는 오로지 불행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전열을 짭시다! 해방된 노동자들의 축제일 만세! 메이데이 만세 !" 군중은 한층 더 불어나 있었다. 파벨이 깃발을 흔들었다. 깃발은 공중에서 빨갛게 나부꼈다. "낡은 것들은 떨쳐 버리자." 페자 마진의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러자 수십 명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힘찬 물결이 되어서 그 뒤를 따랐다. "낡은 것들은 떨쳐 버리자." 어머니는 입술 위에 뜨거운 미소를 띄우고 마진 뒤에서 걸어가면서, 그의 머리 너머로 아들과 깃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주위에는 기쁨에 찬 얼굴과 가지각색의 눈이 어른거렸다. 파벨과 안드레이는 군중들의 선두에서 걸어갔다. 어머니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안드레이의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가 아들의 굵은 베이스 목소리와 하나의 울림으로 사이좋게 융합하고 있었다. 일어나라, 궐기하라, 노동자들이여! 투쟁에 나서라, 굶주린 자들이여! 어디선가 한무리의 사람들이 빨간 깃발을 향해서 달려왔다. 그들은 함성을 지르며 군중과 어울렸다. 그리고 그 외침소리는 노래의 울림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머니는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 집에서는 숨 죽여 부르던 노래였으며 우크라이나 인은 휠파람으로 불곤 했었다. 그 노래를 듣자 어머니의 가슴 속엔 강철 같은 용기가 솟아났다. 이 용기는 지난 날의 어두웠던 과거를 씻어내 주었고, 앞으로 닥칠 위험과 두려움도 불살라 버리는 것 같았다. 그때 빨갛게 흥분띤 얼굴을 한 여인이 어머니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흐느끼며 외쳤다. "미챠 ! 어디를 가는 거야?" 어머니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걱정할 것 없어요! 나도 굉장히 무서웠었다구요. 내 아들이 맨 앞에 서있어요.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이 내 아들이라구요!" "어처구니없는 녀석들이로군! 너희들은 어디로 가는 거냐? 저쪽에는 군인들이 있단 말야." 그리고 뼈만 남은 손으로 갑자기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키가 큰 깡마른 여자가 외쳤다. "무슨 그런 노래를 부르는 거지? 미챠도 부르고 있네."' "걱정할 것 없어요" 하고 어머니는 중얼거렸다. "이것은 성스러운 일이니까요 생각 좀 해보세요. 그리스도도 사람들을 위해서 죽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구요!" 그 생각은 어머니의 머리 속에서 갑자기 떠올랐는데, 그 간단하고 명료한 진리에 어머니는 스스로도 놀랐다. 어머니는 자신의 팔을 꽉 움켜잡은 여인의 얼굴을 흘끗 쳐다보고는 깜짝 놀란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되풀이해서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도 만일 사람들에게 살해 당하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머니 옆에 시조프가 다가왔다. 그는 모자를 벗어 노래에 맞춰서 그것을 흔들면서 말했다. "아주 당당하군요. 노래까지 만들고 말입니다. 정말 대단한 노래로군요. 아주머니, 어때요?" 황제에게는 군대가 필요하지. 내 자식을 내놓으라고......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구먼." 하고 시조프가 말했다. "하지만 공장이 내 아들을 무덤으로 데려갔다구요." 어머니는 심장의 고동이 너무나 빨라져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옆으로 밀려나서 담쪽에 바싹 붙었다. 어머니 옆으로 군중이 물결 치며 흘러 갔다. 그 많은 사람들을 보자 어머니는 기뺐다. 일어나라, 궐기하라, 노동자여! 노랫소리는 거대한 나팔처럼 울려 사람들을 불러모았고, 어떤 이들의 가슴에는 투쟁에 대한 각오를, 또 어떤 이들의 가슴에는 막연한 희열과 뜨거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한쪽에서는 막연한 희망의 전율을 불러 일으키고, 또 다른 쪽에서는 수천 개의 쌓이고 쌓인 증오의 매콤한 흐름에 배출구를 찾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공중에 빨간 깃발이 흔들리고 춤추는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전진합시다." 하고 누군가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악을 썼다. "대단한 젊은이들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분명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적절하게 표현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듯했다. 그런 반면 맹목적인 비난의 소리도 들려왔다. 마치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쇠 소리를 내며 달아나는 뱀의 소리와 같았다. "이단자 놈들!" 어떤 사람이 창 밖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외치기도 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쇠된 목소리가 귀찮게 어머니의 귀를 찌르고 들어왔다. "황제에게 대항하려는 것인가? 국왕 폐하에게 대항하려는 거냐구? 모반을 일으킬 생각인가?" 그러나 군중은 어머니 옆을 상기된 얼굴로 달려 갔다. 사람들의 노랫 소리는 뜨거운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노랫소리는 길가에 놓여 있는 장애물들을 말끔히 쓸고 나가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먼 곳에서 펄럭이는 빨간 깃발을 바라보자 어머니에게는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굳은 신념을 지닌 구릿빚 이마와 불에 타오르는 그 눈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어머니는 군중의 맨 끝이 되어서 느릿 느릿 걷고 있던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다. 차거운 호기심을 품고 무관심하게 앞쪽을 바라 보고 있던 구경꾼들의 무리였다. 그 사람들은 이 구경거리의 대단원을 벌써 대충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걸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확신이 있는 것처럼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학교 옆에는 일개 중대가 있고, 또 한 중대는 공장 옆에 있대......" "지시가 왔다더군." "정말인가?" "이 눈으로 보았다니까. 정말 왔다구." 누군가가 즐거운 듯이 욕설을 퍼부으며 말했다. "역시 노동자들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지! 군대를 보내고 지사까지 달려 온 것을 보면 말야." "이봐요." 하고 어머니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불렀다. 그러나 어머니 주위에서는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 사람들로부터 떨어지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의 느린 걸음을 추월하는 것은 어머니로서는 쉬운 일이었다. 그러자 돌연 군중의 선두가 무엇인가에이 부딪친 것처럼 움찔하더니 불안스럽고 낯은 술렁거림을 내면서 뒤로 흔들렸다. 노래 소리도 한순간 떨렸으나, 이윽고 이전보다 리듬을 빨리하고 높아져 갔다. 그러자 또다시 그 울림의 두터운 물결이 흔들렸다. 목소리가 차례차례로 합창 속에서 빠져나가 뿔뿔이 흩어진 노래가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서 큰소리로 튀어나와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노랫소리를 이전의 높이로 끌어 을리고, 대열을 전진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일어나라, 궐기하라, 노동자여! 나가라, 적을 향해서, 굶주린 자들이여! 그러나 그 호소에는 공통의 융합된 확신이 없었고, 불안이 섞여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앞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어서, 어머니는 군중을 헤집고 서둘러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때 어머니 쪽을 향해서 사람들이 뒷걸음질 쳐 왔다. 머리를 떨구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면쩍은 듯이 쓴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조소하듯이 휘파람을 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는 한심스러운 듯이 그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은 말없이 묻고, 부탁하고, 호소하고 있었다. "여러분!" 하고 파벨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군인도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을 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때리겠습니까? 우리들이 모두가 원하는 진리를 내걸고 전진해가기 때문일까요? 이 진리는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지만, 그들이 우리들과 나란히 일어나서 강탈과 살인의 깃발 아래가 아닌, 우리들의 자유의 깃발과 함께 전진할 때가 가까워왔습니다. 그들이 우리들의 진리를 하루라도 빨리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전진합시다. 전진해야 합니다!" 파벨의 목소리는 단호하게 울리고, 말은 공중에서 정확하고 똑똑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군중은 붕괴되어 가고 사람들은 차례 차례로 오른 쪽으로, 읜 쪽으로, 집 쪽으로 떠나가고, 담에 몸을 기댔다. 이제 군증은 쇄기 모양이 되고, 그 선단에는 파벨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서는 노동자들의 깃발이 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또 군중은 검은 새와 비슷했다. 그 날개를 넓게 펴고 당장이라도 날아 올라 가려고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파벨은 그 새의 부리였다. 28 거리 끝에서 어머니는 보았다. 광장으로 나오는 출구를 가로막고, 얼굴이 없는 똑같은 모양을 한 사람들이 회색 벽이 되어서 우뚝 버티고 서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 위에는 날카로운 총검의 열이 가늘고 차갑게 빚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의 움직이지 않는 벽으로부터 노동자들을 향해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을 뚫고 심장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머니는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갔는데, 그곳에서는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앞쪽의 깃발 옆에 서있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과 몸을 기대듯이 하고 나란히 있었다. 어머니는 키가 크고 말끔하게 수염을 깎은 사람에게 옆구리를 찰싹 갖다 댔다. 그 사람은 애꾸눈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보려고 머리를 완전히 돌렸다. "왜 그러세요? 누구시지요?" 하고 그는 물었다. "파벨 블라소프의 에미랍니다!" 하고 그녀는 무릎 밑이 떨리고 아랫 입술이 자꾸만 벌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아아, 그러세요!" 하고 애꾸눈이 말했다. "여러분!" 하고 파벨이 말했다. "우리는 전진을 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이것밖에 길이 없습니다." 그러자 물을 뿌린 듯이 고요해졌다. 깃발은 치켜 올려져서 흔들렸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생각에 잠긴 듯이 펄럭이면서 군인들의 회색 벽 쪽으로 유연하게 흘러갔다. 어머니는 몸이 떨려 눈을 감고 말았다. 앙다문 입술 사이로 저절로 비명이 새어나왔다. 파벨, 안드레이, 사모일로프, 그리고 마진이 군증에게서 떨어져 앞으로 전진해 갔다. 그리고 페자 마진의 밝은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대 머리 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네. 이 투쟁 속에 파멸의.... 굵고 낮은 목소리가 두 개의 무거운 한숨이 되어서 응답했다.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결연하고 굳은 결심을 한 새로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대들은 모든 걸 바쳤네. 그것을 위해서.. 하고 페자의 목소리가 선명한 리본처럼 넘실거리며 흘렀다. 해방을 위해서.... 하고 동료들은 소리를 합쳐서 노래를 불렀다. "아하!" 하고 누군가가 옆에서 꼴 좋다는 듯이 소리쳤다. "개새끼들, 드디어 장송곡을 부르기 시작했군." "그 녀석을 두들겨패 줘라!" 분노한 목소리가 방금 말한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어머니는 양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지금까지 거리에 빽빽이 들어차 있던 군중이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 멈춰 서서 망설이며 깃발을 든 사람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깃발을 가진 사람들 뒤에 몇십 명인가가 행진해 가고 있었으나,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마치 거리 한가운데의 길이 불 붙고 있어서 발바닥에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한 사람씩 길 가장자리 쪽으로 뛰어서 피하는 것이었다. 전제정치는 멸망하리...... 하고 페자는 예언하듯이 노래를 불렀다. 민중은 부활하리 ! 힘찬 목소리의 합창이 확고하고 위협하듯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그 노래 소리의 화음도 금세 끊어졌다. 병사들이 움직였던 것이다. "거총!" "앞으로 갓!" 하고 애꾸눈의 사나이가 말하고는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획하니 옆으로 뛰어서 비켜났다. 어머니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군대의 회색 물결이 흔들리며 삽시간에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은색으로 빚나는 총검의 차가운 이빨을 앞으로 내밀면서 수평으로 냉정하게 움직였다. 어머니는 성큼 성큼 걸어서 아들 옆으로 다가갔다. 안드레이 역시 파벨 앞으로 걸어 나가서 장신의 몸으로 그를 감쌌다. "여보게, 함께 걸어 가세!" 하고 파벨이 큰소리로 외쳤다. 안드레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양손을 등 뒤에서 맞잡고, 머리 위로 올리고 있었다. 파벨은 어깨로 그를 밀면서 다시 소리쳤다. "나란히 서자고? 그럴 권리는 없어 ! 선두는 깃발이다." "해산하라!" 하고 왜소한 장교가 흰 서양의 긴 칼을 휘둘러 대면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발을 높이 쳐들고 무릎을 구부리지 않은 채 도전하듯이 뒤 꿈치로 지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번쩍 번쩍하게 닦은 장화가 어머니의 눈을 때렸다. 장교 옆 조금 뒤에 굵은 백발의 콧수염을 기른, 키가 큰 사나이가 묵직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는 빨간 안감이 달린 길다란 외투를 입고, 황색의 측장이 달린 두터운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도 또한 우크라이나 인처럼 양손을 뒤에서 잡고, 짙은 백발의 눈썹을 높이 치켜들고 파벨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숨을 쉴 때마다 뛰쳐나오려고 하는 커다란 외침소리가 잔뜩 담겨 있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어머니는 가슴을 양손으로 끌어안고 그 외침소리를 억제하고 있었다. 떠밀려서 비틀거리면서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전진해 갔다. 그리고 자기 뒤의 사람들이 점점 적어져 가고, 차거운 큰 물결이 정면에서 밀어 닥쳐와서 그 사람들을 휩쓸어 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빨간 깃발의 사람들과 회색의 사람들의 빽빽이 이어진 사슬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서 군인들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거리 하나 가득 펼쳐진 더러워진 황색의 좁은 줄무늬에 있는 보기 흉하게 찌그러진 얼굴이었다. 그 줄무늬 속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눈이 들쑥 날쑥 박혀져 있었고, 또 그 앞에는 총검의 가느다란 선단이 잔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가슴에 향해진 그 총검의 선단은 아직 닿기도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씩 차례로 몰아내고 군중을 파괴해 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뒤에서 도망쳐 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었다. 짓눌린 불안스러운 목소리가 소리치고 있었다. "모두 해산헤라." "블라소프, 도망쳐라!" "돌아와라, 파벨." "깃발을 버려라, 파벨!" 하고 베소푸쉬코프가 우울하게 말했다. "이리 주게. 내가 들고 있겠네." 그는 한 손으로 깃대를 잡았다. 그러자 깃발은 뒤로 휘청 흔들렸다. "그만두지 못해!" 하고 파벨이 외쳤다. 니콜라이 배소푸쉬코프는 화상이라도 입은 듯 움찔하며 손을 놓았다. 노래 소리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파벨을 빽빽이 둘러싸고 멈춰 섰으나, 파벨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순식간에 침묵이 찾아 왔다. 마치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위에서 내려와서, 투명한 구름으로 사람들을 감싼 것만 같았다. 깃발 아래 서있던 사람들은 20여 명 정도밖에 안 되었으나, 그들은 의연하게 서있었다. 어머니는 그들의 몸을 염려하는 감정과 뭔가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 때문에 그들 쪽으로 이끌려 갔다. "그 녀석의 깃발을 빼앗아라, 중위!" 하고 키가 큰 노인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한 손을 내밀어서 깃발을 가리켰다. 왜소한 장교는 파벨 옆으로 달려와서 한 손으로 깃대를 잡고 쇠된 목소리로 외쳤다. "손을 놓아라 !" "손을 치우지 못해!" 하고 파벨이 큰소리로 말했다. 깃발은 빨갛게 공중에서 떨면서 좌우로 기울었다가 다시 똑바로 섰다. 장교는 뒤로 물러 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니콜라이가 주먹을 쥔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고 그답지 않게 재빠른 동작으로 어머니 옆을 삐져 나갔다. "이 녀석들올 체포하라!" 하고 노인이 한 발로 땅바닥을 힘껏 밟으며 악을 썼다. 그러자 몇 명의 군인이 앞으로 뛰어나왔다. 그 중 하나가 총의 개머리 판을 휘두르자 깃발이 떨리면서 기울더니 군인들의 회색 산더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빌어먹을!" 하고 누군가가 비참하게 소리쳤다. 어머니도 야수와 같은 울음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 대답해서 군인들의 무리 속에서 파벨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 안녕히 계세요!" "살아 있구나! 나를 생각해 주다니!" 하는 생각이 어머니의 마음을 두 번 때렸다.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안드레이의 목소리도 아득하게 들려왔다. 발 끝을 들고 양손을 휘둘러대면서 어머니는 두 사람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군인들의 머리 위에서 안드레이의 둥근 얼굴을 발견했다. 그 얼굴은 미소를 띄우고 어머니를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운 내 아들들... 안드류샤 ! ...... 파샤 ! ......" 하고 어머니는 소리쳤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하고 군대들의 무리 속에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몇 차례나 뿔뿔이 흩어진 메아리가 그것에 대답했다. 그 메아리는 창문 안에서, 지붕 위에서 응답하고 있었다. 29 누군가 어머니의 가슴을 떠다 밀었다. 눈에 낀 안개를 통해서 어머니는 앞에 있는 왜소한 장교를 보았다. 그 얼굴은 빨갛게 굳어져 있었다. 장교는 그녀를 향해서 고함쳤다. "비켜라, 이 할망구야." 어머니는 그를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보고, 그의 발 밑에 두 개로 꺾어 진 깃대를 발견했다. 그 하나에는 빨간 천 조각이 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허리를 구부려서 그것을 주워 올렸다. 장교는 그녀의 손에서 그 막대기를 낚아 채서는 옆으로 집어 던지고 발을 구르면서 소리쳤다. "비키라고 말했쟎아!" 군대들 사이에서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어나라, 궐기하라, 노동자들이여.. 모든 것은 춤추고 흔들리고 떨고 있었다. 공중에는 전선의 둔한 신음소리 같은 굵고 불안한 소음이 꽉 들어 차 있었다. 장교는 뒤로 뛰어 물러나서 짜증스러운 듯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노래를 중지시켜라! 크라이노프 상사." 어머니는 비틀거리면서 그가 내던져 버린 깃대의 조각 옆으로 다가가서 다시 주워 올렸다. "놈들의 입을 틀어막아라." 노래 소리는 간헐적으로 새어나오다가 이내 사라졌다. 누군가가 어머니의 어깨를 붙잡고 빙그르 방향을 바꾸게 하고는 등을 떠밀었다. "자아, 빨리 가버려. 가버리라니까!" "거리를 쓸고 깨끗이 청소하라!" 하고 장교가 명령했다. 어머니는 열 걸음 가량 떨어진 곳에 아직도 빽빽이 모여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으르렁 소리를 내거나 짖어대거나 휘파람을 불거나 하면서, 천천히 거리의 안쪽으로 후퇴해 들어갔다. "빨리 꺼져. 이 악마!" 하고 콧수염을 기른 젊은 군인이 어머니 옆에 서자, 정면으로 어머니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그녀를 보도로 밀어냈다. 어머니는 깃발에 몸을 의지하고 걸어갔다. 그녀의 다리는 덜덜 떨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어머니는 한 손으로 담을 붙잡았다. 그녀 앞에서는 사람들이 뒷걸음질치고 있었으며, 그녀 옆이나 뒤로부터는 군인들이, "해산!, 해산!" 하고 외치면서 뛰어다녔다. 군인이 그녀를 앞질러 가버렸기 때문에 어머니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거리 끝에는 그 군인들이 광장으로 나오는 출구를 가로막고서 드문드문 열을 짓고 서있었다. 광장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앞쪽에는 역시 회색의 그림자가 흔들리면서 천천히 사람들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뒤로 되돌아 가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또다시 앞으로 전진해 가서 옆 골목 있는 곳에 도달하자, 좁고 인기척이 없는 그 옆 골목으로 꺾어졌다. 또다시 멈춰 섰다. 무거운 한숨을 한 번 내쉬고 귀를 기울였다. 어딘가 앞쪽에서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깃대에 의지하고, 미간을 실룩실룩 움직이면서 앞으로 걸어 갔다. 갑자기 땀이 배어 오른 그녀는 입술을 움직이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심장 속에는 무엇인가의 말이 스쳐지나가고 북적거렸다. 그리고 그 말을 입에 담아 소리치고 싶다는 집요하고 힘찬 욕망이 불타올랐다. 옆 골목은 왼쪽으로 굽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퉁이 그늘에,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힘차게 큰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혈기만으로는 총검에 대항할 수가 없단 말야, 형제들." "그 친구들은 어떤데, 응? 놈들이 덤벼들어도 끄덕하지 않았다구. 끄떡도 하지 않고 버텨내고 있쟎아." "파벨 블라소프는 대단한 친구야." "그리고 우크라이나 인은 어떤가?" "팔을 뒷 짐지고서 희죽희죽 웃고 있더군, 빌어먹을!" "여러분!" 하고 어머니는 소리치면서 군중 속으로 파고 들어 갔다. 모두는 경의를 표하면서 그녀 앞에 길을 열어 주었다. 누군가가 웃기 시작했다. "보라구, 깃발을 들고 있는데! 손에 들고 있는 건 깃발이라구!" "잠자코 있게!" 하고 또 다른 목소리가 핀잔을 주었다. 어머니는 양손을 넓게 펼쳤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들어 주세요! 여러분들은 모두 피를 나눈 형제들 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친근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두려워하지 말고 보아 주세요. 자식들이, 우리들의 피를 나눈 자식들이 얌전하게 행진해 갔던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행진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를 위해서, 여러분들의 갓난애를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밝은 내일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리의 생활, 정의의 생활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심장은 터져나갈 것만 같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은 바짝 말라서 불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 속 밑바닥에서 모든 사람들을 포옹하는 사랑의 말이 생겨나고, 그녀의 혀를 태워서 점점 더 힘차게, 점점 더 자유롭게 그 혀를 움직였다. 어머니는 모두가 잠자코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빼곡하게 자신을 둘러싸고 서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 속에 확실한 욕망이 떠올랐다. 그것은 여기에 남은 사람들을 아들과 안드레이와 군대의 손에 넘겨져서 그대로 잡혀 있는 모두에게로 이끌고 싶은 욕망이었다. 주위의 찌푸린 얼굴이나 열심히 듣고 있는 얼굴을 둘러보면서 어머니는 부드러운 힘을 담아서 얘기를 계속했다. "우리들의 자식들은 얌전하게 행진해 갔던 것입니다. 저 아이들은 모두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서 간 겁니다. 우리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기며 우리를 지배하는 자들에게 반대해서 행진해 갔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친근한 사람들,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들의 젊은 피가 일어서지 않았습니까? 전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서 저 아이들은 행진해 간 것입니다. 저 아이들로부터 떨어지지 말아 주십시오. 저 아이들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들의 자식을 외톨박이로 놓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하고 자식들의 마음을 믿어 주십시오. 저 아이들은 진리를 낳고, 진리를 위해서 멸망해 가는 것입니다. 저 아이들을 믿어 주십시오." 어머니는 목이 쉬었다. 그녀는 지쳐서 비틀거렸다.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잡아 주었다. "하느님의 말씀이다!" 누군가가 흥분해서 낮게 소리쳤다. "하느님의 말씀이오, 여러분들! 들어야 합니다!" 다른 목소리가 애처로워하면서 말했다. "저런, 저런 ! 더 할 수 없이 쇠약해져 있구먼!" 그 말을 듣자 고쳐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쇠약한 것이 아니야, 우리들 어리석은 자들을 채찍질하고 있는 거야. 그것도 모르겠어?" 군증 위에 높고 떨리는 목소리가 치솟아을랐다. "그리스 정교 신자 여러분! 우리집 미챠는 결백한 마음씨의 아이였는데 무엇을 그 아이가 했단 말입니까? 그 아이는 친구들을 따라서, 사랑하는 모두의 뒤를 따라 간 것 뿐이에요. 이 아주머니가 말하는 대로 입니다. 우리들은 왜 자식들을 내버리는 겁니까? 저 아이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나쁜 짓을 했다는 겁니까?"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몸을 떨면서 조용한 눈물로 대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요, 닐로브나 부인! 돌아갑시다. 아주머니! 너무나 지쳤쟎소!" 하고 시조프는 큰소리로 말했다. 시조프는 창백해져 있었다. 그의 턱수염은 마구 헝클어지고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고, 시조프는 모두에게 엄숙한 시선을 던지더니 쭉 가슴을 펴고 분명하게 말했다. "내 아들 마트배이는 공장에서 깔려서 죽었소. 그것은 여러분들도 모두 다 알고 있소. 그러나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 해도 나는 자발적으로 그 아이를 저 사람들과 함께 가게 했을 것이오. '마트배이, 너도 가거라! 가거라! 이것은 옳은 일이다. 이것은 존경할 만한 일이다.'라고 스스로 말했을 거요." 시조프 장로는 말을 끊고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사람들은 뭔가 크고 새로운 것에 압도당해서 음울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그들을 위협하는 힘은 아니었다. 시조프는 한 손을 움켜쥐고 말을 계속했다. "이 노인이 말하고 있는 것이오. 당신들은 나를 알고 있을 것이오. 39년 동안 이곳에서 일하고, 53년 동안 이 세상에서 살아 왔소. 내 조카인 마음씨 착한 아이가, 영리한 아이가 오늘 또 끌려갔소. 그 녀석도 역시 선두에서 블라소프와 나란히 서서 행진했었소. 깃발 바로 옆에서 말이오." 시조프는 한 손을 흔들며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아주머니는 사실을 말했소. 우리들의 자식들은 옳고, 이성에 따라 살아 가려고 생각했던 것이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저 아이들을 버렸소. 도망쳐 버린 것이오. 자아, 갑시다. 닐로브나 부인." "친애하는 여러분!" 하고 어머니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모두를 둘러 보면서 말했다. "생활은 자식들을 위해서, 대지는 자식들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자아, 돌아갑시다. 닐로브나 부인! 자아, 이 깃대를 들어요." 하고 시조프 장로는 깃대 조각을 그녀에게 건네 주면서 말했다. 모두는 슬픔과 존경을 담아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동정의 술렁임을 가지고 전송했다. 시조프는 잠자코 길에 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나갔으며, 모두는 묵묵히 옆 쪽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뒤로 끌려 들어가는 힘에 의해서 천천히 그 뒤를 따라 걸으면서, 작은 소리로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집 문 앞에 이르자 어머니는 사람들을 돌아다 보면서 깃대 조각에 몸을 기대고서 절을 하고 감정을 담아서 말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공포에 떨었던 순간에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을 기억해내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면서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군중은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조프 장로도 머리를 숙이고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문 옆에 서서 무엇인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헤어져 갔다. H핂m 1 그날의 나머지 시간은 각양 각색의 추억의 안개 속에서, 또 육체와 영혼을 강하게 죄는 피로 속에서 지나갔다. 왜소한 장교가 회색의 반점이 되어서 춤을 추고, 파벨의 청동과 같은 얼굴이 빚나고, 그리고 안드레이의 눈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머니는 방 안을 돌아다니다가 창가에 걸터 앉아서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서성이기 시작하고 눈썹을 치켜들고서 몸을 떨거나 주위를 둘러 보거나 했다. 그리고 생각하는 바도 없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물을 마셔도 갈증은 없어 지지 않았고, 또 가슴 속에서 불타 듯이 지글거리고 있는 슬픔과 분노는 꺼버릴 수가 없었다. 하루는 두 개로 단절되어 있었다. 그 하루의 앞쪽에는 내용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내용의 알맹이가 전부 흘러나가 버리고, 그녀 앞에는 음침한 공허함이 펼쳐지고 풀 재간도 없는 의문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리야 코르스노바 부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두 손을 휘둘러대며 소리치고, 우는가 싶으면 기쁨에 넘쳐서 두 발을 구르면서 무엇인가를 약속하거나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처럼 모두를 화내게 만들었으니까!" 하고 마리야가 목째지는 소리를 했다. "그래요!" 하고 어머니는 듣고 있었다. "공장이 말이에요, 모두 들고 일어났다구요. 공장 전체가 궐기했다구요." "네, 그래요!" 하고 어머니는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벌써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 것, 안드레이와 파벨과 함께 그녀에게서 떠나가 버린 것을 뚫어져라 하고 응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울 수가 없었다. 심장은 꽉 죄어들고 바짝 메말랐다. 입술도 역시 바싹 말라서 입 안에는 물기가 없어졌다. 양손은 와들와들 떨리고 등에서는 피부가 오한으로 떨고 있었다. 밤이 되자 헌병들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놀라움도 두려움도 없이 그들을 맞았다. 헌병들은 와글와글 시끄럽게 떠들며 들어 왔으나 어딘지 모르게 유쾌한 듯한 만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런 얼굴의 장교는 이빨을 드러 내놓고 말했다. "어떻소, 잘 있었소? 만나뵙는 게 벌써 세 번째든가?" 어머니는 메마른 혓바닥으로 입술을 빨면서 잠자코 있었다. 장교는 설교 조로 쉴새없이 지껄여댔다. 어머니는 이 사나이의 취미가 지껄여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와닿지도 않았고, 또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다만 장교가 "아주머니, 당신이 나쁜 거예요, 하느님과 황제를 존경하는 마음을 아들에게 불어 넣지를 못했다면 말이오." 하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문 옆에 서서 그의 쪽을 보지 않은 채 잘 들리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우리들을 심판하는 자는 아이들이에요. 우리들이 자식들을 이러한 길에 던져넣은 것을, 아이들은 진리에 비춰서 심판해 줄 거예요." "뭐라고요?" 하고 장교는 소리쳤다. "좀더 큰소리로 말해 봐요 !" "심판하는 자는 아이들이라고 말했어요." 하고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면서 되풀이했다. 그러자 장교는 무엇인가 빠른 말투로 화가 난 듯이 말하기 시작했으나, 그의 말은 어머니의 마음을 짜증스럽게 만들지도 못했다. 입회인 가운데는 마리야 코르스노바 부인이 와있었다. 그녀는 어머니 옆에 서있었으나 어머니의 얼굴은 보지 않았다. 그리고 장교가 그녀 쪽 을 향해서 무엇인가 질문했을 때는, 그녀는 서둘러 깊숙이 절을 하고 단조로운 어조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저는 모릅니다. 나리! 저는 무식한 여자로, 행상을 하고 있습니다만, 어리석은 백성이라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럼, 입 닥치고 있어!" 하고 장교는 콧수염을 움직이면서 명령했다. 그녀는 절을 하고는 그에게 들키지 않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어머니에게 속삭였다. "자아, 이거나 처먹어라 !" 그녀는 블라소바 부인의 몸 수색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녀는 눈을 깜빡거리며 장교를 향해서 크게 떠 보이고는 깜짝 놀란 것처럼 말했다. "나리, 저는 그런 것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요 !" 장교는 발을 구르며 고함쳤다. 마리야 부인은 눈을 내리 깔고 작은 소리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하는 수 없군요. 단추를 벗겨 줘요, 펠라게야 닐로브나 부인." 그녀는 어머니의 옷을 만지고 뒤지면서 얼굴이 벌결게 달아서 속삭였다. "정말 개 같은 놈들이군, 안 그래요?" "당신 거기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하고 장교는 그녀가 몸 수색을 하고 있던 구석을 돌아다 보고 거칠게 소리쳤다. "여자끼리의 얘기입니다. 나리." 하고 마리야 부인은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장교가 어머니에게 조서에 서명하도록 명하자, 그녀는 서투른 솜씨로 활자체의 굵고 엉성한 문자를 종이 위에 썼다. "노동자의 과부, 펠라게야 블라소바." "뭐라고 쓴 거야? 이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붙인 거냐구?" 하고 장교는 불쾌한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외쳤다. 그리고 그 뒤에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야만스러운 작자들이로군." 헌병들은 돌아 갔다. 어머니는 가슴 위에 팔짱을 끼고 창가에 서 있었다. 그리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오랫동안 자기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썹을 잔뜩 치켜 올리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 턱을 힘껏 앙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 뒤 이빨에 아픔을 느꼈을 정도였다. 램프의 석유는 모두 타버리고 불은 탁탁 소리를 내면서 꺼질 것처럼 되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불어 끄고 암흑 속에서 그대로 꼼짝 않고 있었다. 안타까운 방심의 어두운 구름이 그녀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심장의 고동마저도 괴로웠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에 피로했다. 창 밑에서 마리야 부인이 술취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펠라게야 인가요? 잠이 들었나요? 정말로 불쌍하게 고생을 하는군요. 잘 자요 !" 어머니는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마치 깊은 연못에라도 가라앉는 것처럼 잠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시내로 가는 도중에 있는, 늪 건너쪽의 노란색 모래 언덕의 둔덕을 꿈에서 보았다. 그 가장 자리의 모래를 채취한 자국의 구멍으로 내려가고 있는 벼랑 위 쪽에 파벨이 서있었다. 그리고 안드레이와 같은 목소리로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일어서라, 궐기하라, 노동자.' 어머니는 둔덕 옆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에 손바닥을 얹고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아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머니는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 옆으로 가는 것이 창피했다. 그리고 그녀의 품 안에는 갓난애가 있었다. 앞 쪽으로 걸어 나갔다. 들판에서 아이들이 공치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공의 색깔은 빨갰다. 갓난애가 그녀의 품에서 아이들 쪽으로 몸을 내밀고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고 온 길을 되돌아왔다. 돌아을 때 보니 그 둔덕 위에는 군인들이 서있었다. 군인들은 그녀를 향해서 총검을 들이댔다. 그녀는 들판 한가운데에 서 있는 구름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엄청나게 높고 희고 가벼운 교회 쪽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었으며, 관에 크고 검은 딱 들어 맞는 뚜껑이 덮여 있었다. 신부와 부제는 흰옷을 입고, 교회 안을 돌아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스도, 죽음에서 부활하시도다.' 부제는 향을 피우고, 그녀에게 절을 하고 미소지었다. 그의 머리칼은 선명한 당근 색깔이고, 그 얼굴은 사모일로프처럼 쾌활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뒤쪽의 둥근 천장에서는 타올처럼 폭이 넓은 햇빚이 떨어지고 있었다. 양쪽의 성가대 석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스도, 죽음에서 부활하시도다.' '놈들을 채포하라!' 하고 돌연 신부가 교회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외쳤다. 신부가 입고 있던 흰옷은 사라지고, 그 얼굴 위에는 백발의 근엄한 콧수염이 나타났다. 모두들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갓난애를 사람들의 발 밑에 잘못해서 떨어 뜨렸다. 사람들은 그 갓난애의 벌거벗은 몸을 겁먹은 표정으로 바라 보면서, 그것을 피해서 도망쳐 달아났다.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그들에게 호소했다. '이 아이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데리고 가주세요.' '그리스도, 죽음에서 부활하시도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인이 등 뒤로 양손을 끼고 미소를 지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몸을 구부려서 갓난애를 안아 올려서 판자를 실은 짐마차 위에 태웠다. 짐마차 옆에는 니콜라이가 느릿느릿 걸으면서 이렇게 말하고 소리를 내서 웃고 있었다. "나에게는 형편없는 일을 시키는군요." 거리는 지저분했다. 창문마다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고서 휘파람을 불거나 고함을 치거나 손을 흔들었다. 태양이 반짝반짝 빚나는 맑은 날이었으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머니, 노래를 부르세요!" 하고 우크라이나 인이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생활이니까요." 그리고 우크라이나 인은 자신의 목소리로 모든 것의 소리를 지워 버리고 노래했다. 어머니는 그의 뒤를 따라서 걷고 있었으나, 갑자기 발을 헛딛고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떨어져 갔다. 그 심연이 그녀를 향해서 겁을 집어먹은 듯이 으르렁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부들부들 떨면서 잠을 쨌다. 누군가의 거칠고 무거운 손이 그녀의 심장을 붙잡고 심술굿게 장난을 치면서 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출근을 독촉하는 사이렌이 집요하게 울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이 두 번째 사이렌이라는 것을 알았다. 방 안에는 책이나 옷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고, 마루는 더러웠다. 어머니는 일어섰다. 그리고 세수도 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은 채 방 안 정리를 시작했다. 부엌에서는 빨간 천 조각이 달린 막대기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어머니는 원망스러운 듯이 그것을 집어들고, 난로 밑으로 쑤셔 넣으려고 했으나, 한숨을 내쉬고 깃발의 천 조각을 떼어내서 꼼꼼히 접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집어 넣고, 막대기는 무릎에 대고 꺾어서 난로 앞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는 차거운 물로 창문과 마루를 닦고, 사모바르 준비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부엌의 창가에 걸터 앉자 또다시 그녀 앞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자아, 이번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아직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어머니는 성상 앞에 섰으나,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있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마음 속은 공허했다. 기묘하게 조용했다. 어제는 거리에서 그렇게 소리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집 안에 몸을 숨기고 잠자코 그 이상한 하루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갑자기 어머니는 젊었을 때 본 하나의 장면을 생각해냈다. 자우사일로프 나리의 오래된 뜰에 수련이 무성한 큰 연못이 있었다. 어느 흐린 가을 날 그녀는 그 연못 옆을 걷고 있었는데 연못 한가운데에 한 척의 보트가 있었다. 연못은 어둡고 조용하고, 보트는 마치 노란 나뭇 잎으로 쓸쓸하게 장식된 검은 물에 붙여져 있는 물건 같기도 했다. 노를 젖는 사람도 없고 노도 없고, 마른 나뭇 잎의 침침한 수면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고독한 보트에서는 깊은 비애와 정채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숨쉬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 한참 동안 연못 기슭 위에 멍하니 서서 '저 보트는 기슭에서 떠밀려 나갔을 거야,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밤이 되어서야 그 연못에서 자우사일로프 가의 집사 아내가 몸을 던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늘 검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다니던 작은 몸집의 부인이었다. 어머니는 그 기억을 떨쳐 버리려고 한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녀의 생각은 어제의 인상 위로 떨면서 되돌아갔다. 그 인상의 포로가 되어서 어머니는 차갑게 식은 찻잔 위에 눈을 멈춘 채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누군가 영리하고 솔직한 사람을 만나서, 여러 가지 것을 물어 보고 싶은 감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의 이런 희망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점심때가 지나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를 보자 갑자기 불안에 사로 잡혔다. 그리고 그의 인사에도 대꾸하지 않고 작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머, 자네는 여기에 찾아오지 않는 게 좋을 걸 그랬네 ! 너무 경솔하구먼 ! 누가 보면 붙잡혀 가게 될 거라구." 니콜라이는 어머니의 손을 힘껏 잡으면서 안경을 고쳐쓰고, 자신의 얼굴을 그녀 옆으로 바짝 대면서 빠른 말로 설명했다. "저는 말입니다. 파벨과 안드레이에게 약속했답니다. 그 두 사람이 체포되면 저는 그 이튿날 즉시 어머니를 시내로 옮기기로 말이에요." 니콜라이는 상냥하게, 그러나 근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여기는 수색을 당했지요?" "수색당했다네. 발칵 뒤집었다네. 그놈들에게는 부끄러움도 양심도 없더군." 하고 어머니는 외쳤다. "그놈들에게 양심이 있을 턱이 있습니까?" 하고 어깨를 쳐들어 보이며 니콜라이는 말했다. 그리고 왜 그녀가 시내로 옮겨야 하는가를 얘기해 들려 주었다. 어머니는 친절하게 걱정해 주고 있는 니콜라이의 목소리를 듣고, 창백한 미소를 띄우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얘기의 논거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 사람에 대한 다정한 신뢰감이 솟아오르는 것이 스스로도 이상할 정도였다. "만일 파벨이 그것을 원하고 있고."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자네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니콜라이는 어머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격정하지 마세요. 저는 혼자 살고, 이따금 누이가 찾아 올 뿐이니까요." "놀면서 빵을 얻어 먹고 싶지는 않네." 하고 어머니가 소리를 내서 말했다. "만일 원하신다면 일거리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말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일이라는 개념은 아들이나 안드레이나 그 동료들의 일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어머니는 니콜라이 옆으로 다가가서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집은 작지만, 저 혼자 살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아닐세. 집안일이 아니라니까!" 하고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그가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에 실망해서, 서글픈 듯이 한숨을 지었다. 니콜라이는 근시의 눈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글쎄요. 만일 아주머니가 파벨과의 면회 때 신문을 원하던 그 농민들의 주소를 물어다 주신다면...." "나도 그 농민들을 알고 있네!" 하고 어머니는 기쁜 듯이 소리쳤다. "찾아내서, 자네가 말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하겠네. 내가 불법 전단들을 가지고 다닐 거라고 어느 누가 의심하겠나? 공장에도 운반했다네. 실수없이 말일세." 어머니는 갑자기 어깨에 보따리를 짊어지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서, 숲이나 마을을 지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제발 부탁이니까 나에게 그 일을 꼭 좀 시켜 주게!"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겠네. 모든 동네를 다 돌아 다니고, 길을 전부 찾아 내겠네! 겨울이나 여름이나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순례자가 되어 돌아 다니겠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운명일 테니까." 어머니는 마을의 농사꾼 집의 창 밑에서 적선을 구하는 집없는 순례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 서글퍼졌다. 니콜라이는 살며시 그녀의 한 손을 잡고, 자신의 따뜻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시계에 눈길을 보내고 말했다. "그 일은 다시 나중에 의논하십시다." "여보게," 하고 어머니는 외쳤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자식들이 자유도 목숨도 다 내던지고,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고 죽어가고 있는데 에미가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어머니의 눈앞에 깃발을 들고 전진하던 파벨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아들은 진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려고 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그 애 곁에서 그 애의 일을 지켜본 지 벌써 5년째야. 나도 눈과 귀가 있다네. 무엇을 위한 일인지 나도 알아. 자네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지도 아네. 그러니 제발 나도 아들을 도울 수 있게 해주게나." 니콜라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다정스런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는 그러한 말씀을 듣는 것은 생전 처음입니다." "내가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겠나?" 하고 슬픈 듯이 머리를 흔들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힘없는 몸짓으로 양손을 펼쳐 보였다. "만일 내가 에미로서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어머니는 흥분하고 답답한 마음에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거네. 심술 사납고, 양심 없는 사람들까지도 말일세." 니콜라이도 일어나서 또다시 시계에 시선을 보냈다. "그럼, 결정한 겁니다. 아주머니깨서는 시내의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시는 거지요?" 어머니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옮기시겠습니까? 빠를수록 좋습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부탁하고 나서 상냥하게 덧붙였다. "저는 아주머니가 정말로 걱정되어서요." 어머니는 놀라서 그를 보았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목을 떨구고 계면쩍은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등을 구부리고 그녀 앞에 서있었다. 니콜라이는 초라한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모두 그에게 어울리지가 않았다. "돈은 좀 가지고 있습니까?" 하고 니콜라이는 눈을 내리 깔고 물었다. "없네 !" 니콜라이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열고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자아, 사양하지 마시고 받으세요." 어머니는 머리를 흔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들은 너무나 달라. 돈까지도 자네들에게선 값어치가 없어지는군! 인간은 돈 때문에 자신의 영혼도 파는데 말이야. 자네들은 돈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은 거로구먼! 마치 자네들은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 서 돈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먼." 니콜라이는 부끄럽다는 듯이 웃었다. "굉장히 불편하고 불쾌한 물건이거든요. 돈이라는 건 말예요. 남에게서 받든, 남에게 주든 간에 언제든지 어색스러운 물건이지요." 니콜라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서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사하세요." 그리고 언제나처럼 조용하게 돌아갔다. 그를 전송하고 나서 어머니는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좀 불쾌한 듯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2 니콜라이가 찾아온 뒤 사흘이 지나서 어머니는 그의 집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두 개의 트렁크를 실은 짐수레가 마을을 떠나 들판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곳은 자신의 어둡고 무겁고 가슴답답한 시기를 보낸 곳이기도 하면서 새로운 기쁨과 슬픔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날들을 겪은 곳이기도 했다. 어쩌면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매연으로 거무스름해진 토지 위애 커다란 검 붉은 거미 같은 공장이 펼쳐지고, 그 굴뚝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단층짜리 판잣집이 그것에 기를 쓰고 매달려 있었다. 회색의 납작한 그 판잣 집들은 늪지 끝에 빽빽이 뭉쳐서 모여 있고, 조그맣고 그을은 창문으로 서로가 처량하게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위쪽에는 역시 공장의 색깔을 닮은, 검붉은 색깔의 교회가 우뚝 솟아 있었으나, 그 종각은 공장의 굴뚝 보다는 조금 낮았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고 목을 죄고 있던 블라우스 깃을 바로잡았다. "이랴, 이랴!", 마부는 말을 향해 고삐를 휘두르면서 중얼거렸다. 나이가 분명치 않은 다리가 좀 구부러진 사나이였다. 얼굴이나 머리에는 드문드문 색깔이 바랜 털이 돋아 있었다. 그는 양 옆으로 몸을 흔들면서 짐수레와 나란히 걸어갔다. 그는 짐수레가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걷고 있었다. "이랴, 이랴" 하고 마부는 무표정한 목소리로 말하고, 메마른 진흙이 달라 붙은 묵직한 장화를 신은 자신의 구부러진 다리를 우스쾅스러운 모습으로 내던지면서 걸어 갔다. 어머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들판은 마음 속과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었다. 말이 무기력하게 머리를 흔들면서 햇볕에 의해 따스해진 깊은 모래 속에 묵직하게 발을 내리면 모래는 희미하게 사박사박 소리를 냈다. 기름도 충분히 치지 못한 누더기 짐수레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는데, 그런 소리들은 모두 흙 먼지와 함께 뒤로 남겨졌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는 시내의 변두리에 인적이 드문 거리의 조그만 녹색 별채에 살고 있었다. 그 별채는 낡고 너덜너덜해진 이층짜리 어두운 건물과 달라 붙어 있었다. 별채 앞에는 무성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세 개의 거실 창문을 라일락과 아카시아와 또 포플러의 어린 나무의 은색 잎이 애교스럽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 안은 청결하고 조용했다. 마루 위에는 햇빚이 무늬처럼 소리없이 떨고 있고, 벽에는 책이 가득 꽃힌 서가가 뻗어 있고, 근엄해 보이는 사람들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아주머니에게는 여기가 좋겠지요?" 하고 니콜라이가 안내했다. 그 방은 창 하나가 정원을 향해 있고 다른 창 하나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안뜰로 나 있는 작은 방이었다. 방 안에는 벽 쪽으로 선반이 매어있고 책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부엌 방이 좋은데."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부엌 방은 밝고 깨끗해서..." 어머니는 니콜라이가 당황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어색하고 난처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설득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것에 동의하자 당장 환하게 밝은 얼굴이 되었다. 세 개의 방에는 모두 무엇인가 특별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기분 좋게 숨을 쉴 수는 있었지만 목소리는 자연히 낮아졌는데, 높은 목소리로 얘기를 해서 벽에서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깊은 생각을 방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꽃에 물을 줘야 되겠구먼." 하고 창 위에 놓인 화분의 흙을 만져 보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군요." 하고 주인은 미안한 듯이 말했다. "저는 말입니다. 꽃을 좋아하지만 돌볼 시간이 없어서요." 어머니는 니콜라이를 바라보면서 그가 이 쾌적한 공간의 주인이면서도 손님처럼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니콜라이는 자신이 보는 것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오른손의 가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고쳐 쓰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흥미를 가진 대상에 무언의 질문을 던졌다. 때로는 물건을 손으로 집어 들어 얼굴 앞으로 가져와서 꼼꼼하게 눈으로 살피며 조사했다. 그것은 그가 어머니와 함께 들어 가기는 했으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그곳에 있는 것은 모두 낯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니콜라이 뒤를 따라다니며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를 확인하고, 생활의 관습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는 자신이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 밖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듯이 미안해하는 말투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꽃에 물을 주고, 피아노 위에 흩어져 있는 악보를 제자리에 정리해 놓고 나서 어머니는 사모바르를 보고 말했다. "닦아야겠는 걸." 니콜라이는 먼지가 앉은 금속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만지고, 그 손가락을 코 끝으로 가져가서 진지한 모습으로 들여다 보았다. 그의 진지한 행동에 어머니는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서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다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생 처음으로 남의 집에 있는 데도 별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니콜라이를 생각했다. 그에게 잘 해주고 싶다는 생각과 그의 생활 속에 무언가 부드럽고 따뜻한 것을 집어 넣어 주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어머니는 니콜라이의 어색한 동작, 우스쾅스러울 정도로 세상 물정에 대한 어두운 면과 그의 밝은 눈 속의 뭔가 현명하고 어린애 같은 면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는 다시 아들을 떠올렸다. 그녀 앞에는 또다시 메이데이 날이 완전히 새로운 울림으로 장식되어 펼쳐졌다. 그리고 그날의 슬픔은 매우 특별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슬픔은 주먹으로 둔탁하게 머리를 쳐서 사람을 거꾸러 뜨리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바늘로 마음을 찔러 마음 속에 조용한 분노를 일으키고, 구부러진 등을 똑바로 펴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슬픔이었다. '아이들은 참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어.' 하고 어머니는 시내의 낯선 울림에 귀 기울이면서 생각했다. 그 울림은 앞뜰의 나뭇 잎을 술렁거리게 하고, 열려진 창문 안으로 숨어 들고, 멀리서 피로하고 창백한 울림이 되어 날아 와서는 방 안에서 조용히 사라져 가버리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어머니는 사모바르를 닦아 그것으로 더운 물을 끓이고, 소리를 내지 않도록 식기를 늘어 놓고는 부엌에 앉아서 니콜라이가 잠이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콜라이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한 손에 안경을 들고, 다른 손으로 목을 만지면서 문턱으로 들어왔다. 그의 인사에 대답하면서 어머니가 사모바르를 방 안으로 들고 들어가자, 그는 마루 위에 물을 튕기면서 비누와 칫솔을 떨어 뜨리거나 코를 킁킁거리면서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차를 마시며 니콜라이는 어머니에게 얘기했다. "저는 지방 자치회 사무실에서 매우 서글픈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우리 농민들이 영락해가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미안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되풀이해서 말했다.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쇠약해져서 일찍 죽고, 태어난 갓난애들은 허약해서 가을 철의 파리처럼 죽어 갑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모두 다 알고 있고, 그 불행의 원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그냥 바라보면서 봉급을 타 먹고 있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묵묵히 바라보는 일 뿐이에요." "그전에는 무엇을 했었나? 학생인가?" 하고 어머니는 그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교사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바트카에서 공장 감독관이었기 때문에 덕분에 저는 교사가 되었죠. 그런데 저는 농촌에서 농사꾼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다가 감옥에 투옥되었어요. 감옥을 나오고 나서 서점의 점원을 하고 있었지만, 신중성이 결여된 일을 해서 또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아르한젤스크로 유형당했답니다. 그곳에서도 또 지사와 분쟁이 있어서, 백해 연안의 작은 마을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저는 5년 동안을 보냈습니다." 그의 얘기 소리는 햇살이 비쳐드는 밝은 방 안에서 조용히 그리고 막힘 없이 울렸다. 어머니는 이미 이러한 신상담을 여러 차례 들었는데,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그러한 얘기를 이처럼 냉정하게 얘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준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점과 그런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신기했다. "저의 누이가 오늘 찾아 올 거예요." "결혼은 했나?" "미망인입니다. 남편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지만, 그곳에서 탈주해서 2년 전에 외국에서 폐병에 걸려 죽었답니다." "여동생인가?" "여섯 살이나 위입니다. 저는 누님한데 대단히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누님이 피아노 치는 것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저것이 누님의 피아노예요 ! 이곳에 있는 물건은 대부분이 누님의 것이고, 내것은 책 뿐입니다." "그럼, 어디에서 살지?" "정해진 곳은 없어요." 하고 니콜라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용감한 사람이 필요한 곳, 그곳에 누님이 있다는 얘기죠." "역시 같은 일을 하나 보지 ?"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물론입니다 !" 하고 그는 말했다. 니콜라이는 얼마 뒤 직장으로 출근했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매일 매일 차분히 벌여나가는 '운동'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들 앞에 있는 자신이 한밤중에 산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오 쯤에 검은 옷을 입은 키가 크고 날씬한 부인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자, 그녀는 작은 황색 트렁크를 마루 위에 내던지고 재빨리 블라소바 부인의 손을 힘차게 잡았다. "파벨 미하일로비치 씨의 어머니시죠?" "그래요."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으나, 그녀의 훌륭한 옷차림을 보고 당황했다. "당신은 제가 상상하고 있던 대로의 분이시군요 ! 동생은 함께 살게 될 거라고 편지에 써보냈더군요." 하고 부인은 거울 앞에서 모자를 벗으면서 말했다. "파벨 미하일로비치 씨와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친한 친구였답니다. 그 사람은 어머니 얘기를 자주 해주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알아 듣기 힘들고 느릿느릿한 말투였으나, 그러나 동작은 힘차고 시원스러웠다. 커다란 회색 눈은 발랄하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관자놀이 위에는 벌써 가느다란 눈꼬리의 잔주름이 빚나고 있었고, 조그만 컷불 위쪽에는 백발이 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배가 고파요!" 하고 그녀는 말을 꺼냈다. "지금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군요." "곧 끓여오리다!" 하고 어머니는 대답하고 찬장에서 커피 잔을 꺼내면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정말로 파벨이 나에 대해서 얘기하던가요?" "그럼요. 엄청나게 많이요." 그녀는 작은 가죽제 담배 케이스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물었다. "아드님 때문에 걱정이 되시죠?" 커피 포트 밑의 알코울 램프 불꽃의 푸른 혓바닥이 떨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빙긋이 웃고 있었다. 귀부인 앞에 있다는 어색함은 기쁨의 밑바닥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그 녀석은 나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에미를 생각하고 있어.' 하고 어머니는 생각하고 천천히 말했다. "물론 걱정이 된다우. 그러나 전에는 훨씬 더 심했지. 지금은 그 아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런데, 이름은?" "소피아라고 합니다." 하고 상대방은 대답했다. 어머니는 빤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부인에게는 뭔가 자유 분방하고, 너무나도 대담하고, 그리고 성급한 구석이 있었다. 바쁜 듯이 커피를 홀짝이면서 소피아 부인은 자신 있는 듯이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 모두가 오랫동안 감옥에 들어가 있지 않고 빨리 재판에 넘어가는 거예요! 유형이라고 결정되면, 우리들은 즉각 파벨 미하일로비치 씨의 탈주를 계획할 겁니다. 그 사람은 이곳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니까요."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모습으로 소피아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소피아는 담배 꽁초를 버릴 곳을 눈으로 찾다가 그것을 화분의 흙 속에 쑤셔넣었다. "그런 짓을 하면 꽃이 죽어 버린다우" 하고 어머니가 엉겁결에 주의를 주었다. "미안해요!" 하고 소피아는 말했다. "니콜라이한테도 늘 그런 말을 듣고 있답니다." 그리고 화분에서 꽁초를 빼내서 창 밖으로 내던졌다. 어머니는 난처해하는 얼굴로 그녀를 보고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하구려. 그만 엉겁결에 그런 말을 했다우.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었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에요, 내가 칠칠치 못해서 그런 걸요, 잘못은 마땅히 가르쳐 주셔야죠." 하고 소피아는 어깨를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커피가 준비 되었나요? 고마워요! 왜 찻잔이 하나밖에 없는 건가요? 당신은 들지 않으세요?" 그리고 갑자기 어머니의 어깨를 잡아서 자기 쪽으로 끌어 당기고는 눈을 들여다보면서 깜짝 놀라 물었다. "제가 불편하게 해드렸나요?"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바로 조금 전에 당신에게 담배 꽁초 때문에 뭐라고 했는 데도 당신은 오히려 내가 불편해하지 않나 염려하는군요." 그리고 어머니는 자신의 놀람을 숨기지 않고 마치 질문이라도 하듯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제 이 집에 처음 왔는데도 마치 내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무서운 것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고."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하고 소피아는 힘차게 말했다.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우.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요." 하고 어머니는 얘기를 계속했다. "이전에는 마음을 털어 놓고 무엇인가를 말할 때까지는 그 상대방 주위를 돌아다니고, 또 돌아다니곤 했지만, 지금은 서슴없이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금세 얘기 할 수가 있다니..." 소피아는 그 회색의 눈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상냥하게 말없이 비추면서 또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탈주를 도모한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그 아이는 탈주자가 되면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겠어요?" 하고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고 소피아는 다시 자기 찻잔에 커피를 따르면서 대답했다. "수십 명의 탈주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생활해 나가게 될 거예요. 나는 지금 그런 사람을 한 명 맞이해서 무사히 보내주고 오는 길이랍니다. 그 사람도 무척 중요한 사람이지요. 5년 동안의 유형을 선고받았지만, 유형지에는 3개월 반 동안만 있었던 셈이라구요." 어머니는 뚫어질듯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틀림없이 그날 때문에, 메이데이 때문에 뒤죽박죽이 된 모양이우. 어딘가 좀 이상해요. 마치 동시에 두 개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가 하면, 갑자기 마치 안개 속에 길을 잘못 든 것처럼 되기도 한다우. 이렇게 지금 당신을 보고 있으니.. 당신도 이 일을 하고 있고, 파벨도 잘 알고,,, 또 인정해 주니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아니에요. 나야말로 당신에게 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고 소피아는 웃기 시작했다. "내가 무얼 했다구? 그 아이에게 가르침을 준 것은 내가 아니라우."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소피아는 담배 꽁초를 자기 찻잔 접시에 놓고는 목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금색 머리칼이 굵은 가닥이 되어서 등으로 흘러 내렸다. 그녀는 방을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아, 나도 이 거창한 옷을 모두 벗어 던질 차례로군요." 3 저녁 때가 되자 니콜라이가 돌아 왔다. 저녁 식사 때, 소피아는 유형지에서 탈주해 온 사람을 맞아서 숨겨준 일과 모든 사람들이 다 스파이로 보여서 무서웠다는 것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 탈주자가 얼마나 우스광스러운 행동을 했는가를 웃으면서 얘기해 들려주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힘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만족해하는 노동자를 연상시키는 무엇인가가 들어 있는 것처럼 어머니에게는 생각되었다. 소피아는 화려한 옷 대신 회색의 가볍고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을 입고 있으니까 휠씬 키가 커 보이고, 그 눈빚은 웬지 더 진해지고, 동작도 훨씬 더 침착해 보였다. "누님에게" 하고 식사가 끝난 뒤에 니콜라이가 말을 꺼냈다. "또 한가지 일을 부탁해야겠어. 누님도 알다시피, 우리들은 농촌 대상의 신문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지난번의 검거 때문에 농민들과의 연락이 끊겨 버렸다구. 그런데 그 신문 배포를 맡아 줄 사람을 찾는 방법은 여기 계신 펠라게야 닐로브나 부인이 알고 계셔. 누님은 닐로브나 아주머니와 함께 그곳에 가줘. 가능한 한 빨리." "알았어!" 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소피아는 말했다. "함께 갑시다. 펠라게야 닐로브나 부인!" "네, 가고말고요." "먼가요?" "약 85킬로쯤 될 거예요." "그만하면 됐어요. 그럼, 잠시 피아노나 좀 쳐야겠어요. 당신은 어떠세요, 아주머니? 잠시 동안 참고 음악을 좀 들어 주시겠어요?" "나한테 신경쓸 것 없어요! 내가 이곳에 없는 것처럼 생각하라니까요!" 하고 어머니는 긴 의자 끌에 걸터앉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남매가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어느 틈엔가 두 사람의 대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빠져 들게 되었다. "자아, 들어봐라, 니콜라이! 이것은 그리그 곡이야. 오늘 가져온 건데..." 창문을 좀 닫아다오." 소피아는 악보를 펼치고 왼손으로 가볍게 건반을 두드렸다. 윤기 있는 굵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오른 손가락 밑에서 이상하게 맑은 외침이 밝게 울려 퍼지면서 불안한 무리가 되어 날아 오르고, 낮은 음조의 약간 어두운 배경 위를 겁먹은 새처럼 뒤흔들리고 서로 부딪쳤다. 처음 피아노 음률을 들었을 땐 어머니는 그 울림에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 울림의 흐름 속에서 어머니는 다만 울려퍼지는 소리의 얽힘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녀의 귀는 음조의 복잡한 떨림 속에서 선율을 파악 할 수가 없었다. 꾸벅꾸벅 졸면서 의자 반대쪽 끝에 양다리를 꺾고 앉아 있는 니콜라이와 소피아의 엄격한 옆 얼굴과 황금색 머리칼이 뒤덮인 그 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빚은 처음에는 소피아의 머리와 어깨를 따스하게 비추다가 피아노 건반 위로 떨어지더니 소피아의 손 끝에서 뒤엉켜 어른거렸다. 음악은 점점 더 방 안을 가득히 채우면서 어머니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 그 마음을 일깨워 갔다. 그리고 웬지 그녀 앞에는 과거의 어두운 구멍 속에서 하나의 굴욕이 떠올라 왔다. 그것은 이미 까마득한 옛날에 잊어버렸던 것인데도, 지금 씁쓸한 밝음을 가지고 되살아난 것이었다. 죽은 남편이 밤늦게 지독하게 술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팔을 잡고 침대에서 마룻바닥으로 끝어 내려 옆구리를 발로 차면서 말했다. "나가 버려, 이년아! 나는 이제 너에게 신물이 났다구." 그녀는 남편한테 얻어맞지 않도록 몸을 웅크리면서 두 살난 아들을 재빨리 끌어안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몸을 방패로 하여 아들의 몸을 방비했다. 아들은 울었다. 겁을 집어먹고 그녀의 품안에서 몸부림을 쳤다. "나가라고 말했쟎아." 하고 미하일은 악을 써댔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부엌으로 달려가서 어깨에 윗도리를 걸치고 , 아이를 솔에 감싸고 아무 말 없이 거리로 나왔다. 속옷 위에 윗도리만 걸친 채 거리를 맨발로 걸어갔다. 5월이었지만 밤 기운은 제법 차가웠다. 거리의 흙 먼지는 차갑게 발바닥에 달라붙고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아이는 울면서 몸부림쳤다. 그녀는 가슴 속으로 아들의 몸을 끌어안았다. 공포에 쫓기면서 작은 소리로 아기를 얼르면서 걸어갔다. "그래, 그래... 착하지, 우리 아기 착하지 !" 멀리서 불빚이 보였다. 그녀는 누군가가 거리로 나와서 절반을 벗은 자신의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섭고 부끄러웠다. 그녀는 늪 쪽으로 내려가서 사시나무가 빼곡히 자라 있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하고 밤의 어둠에 감싸인 채 크게 부릅뜬 눈으로 뚫어질 듯이 어둠을 응시하면서 한참 동안 앉아서 잠이 든 아이와 자신의 치욕을 당한 마음을 달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래, 그래... 착하지, 우리 아기 착하지!" 그녀가 그곳에서 몇 분인가를 보내고 있는 사이에 뭔가 검은 새가 그녀의 머리 위로 날아 오르더니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녀는 퍼뜩 눈을 뜨고 일어났다. 추위에 떨면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구타와 새로운 굴욕, 이미 익숙해진 공포를 향해서... 무관심하고 차갑게 울려퍼지는 화음이 최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한번 쉬고는 사라져 버렸다. 소피아는 고개를 돌려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로 동생에게 물었다. "마음에 들었니?" "굉장히!" 하고 니콜라이는 잠에서 깬 것처럼 몸을 흔들고서 말했다. "굉장히 좋아...."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는 추억의 잔향이 노래하며 떨고 있었다. 그리고 불쑥 이런 생각이 솟아 올라왔다. '이 남매는 이처럼 사이좋게, 조용히 생활하고 있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서로 욕설을 주고받지도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빵 한 조각 때문에 다투는 일도 없구나.' 소피아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줄 담배를 피웠다. "이것은 세상을 떠난 코스챠가 좋아하던 곡이야!" 하고 소피아가 황급히 연기를 빨아들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또다시 낮고 구슬픈 화음을 쳤다. "나는 그 사람에게 들려주는 걸 무척 좋아했지. 그 사람은 정말로 감정이 섬세하고, 어떤 것에 대해서나 민감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어." '틀림없이 남편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야' 하고 어머니는 얼핏 생각했다. '그런데 저렇게 웃으며 얘기하는 걸 보면....' "그이는 얼마나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지 몰라." 작은 소리로 추억을 얘기하며 동시에 가벼운 음을 눌렀다. "그이는 정말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 하고 니콜라이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노래하는 것 같은 마음이었지." 소피아는 피우기 시작한 담배를 어딘가에 던져 버리고는 어머니 쪽을 향해 물었다. "나의 시끄러운 소리가 당신에게 폐가 되지는 않았나요?" 어머니는 화가 나는 것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에게 신경쓰지 말래두 그러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 걸. 그저 이렇게 편안히 앉아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네요. 당신은 이해하실 거예요." 하고 소피아는 말했다. "여자는 누구나 음악을 이해하니까요. 특히 슬픈 감정일 때는요." 소피아는 세게 건반을 두드렸다. 그러자 마치 누군가가 끔찍한 소식을 들은 것 같은 커다란 외침이 울려퍼졌다. 그녀가 그 사람의 가슴을 때려서, 이 전율하게 만드는 울림을 일으킨 것이다. 발랄한 목소리가 겁먹은 듯이 떨기 시작하고 어딘가로 황급히 날아갔다. 또다시 커다란 분노의 목소리가 외치기 시작하고, 모든 울림을 말끔히 지워 버렸다. 틀림없이 불행이 일어난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이 불러일으킨 것은 불행이 아니고 분노였다. 이윽고 누군가 상냥하고 힘센 사람이 나타나서 달래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좋은 말을 해주고 싫은 감정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음악에 취해서, 자신은 이 남매를 위해서 무언가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느끼고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눈으로 찾아헤매다가 사모바르 준비를 하기 위해 살며시 부엌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바램은 그녀의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차를 따르면서 어머니는 수줍은 듯이 엷은 미소를 띄우고, 그리고 그들 두 남매에게도 자신에게도 평등하게 부여되어 있던 따뜻한 말로, 자신의 마음을 마치 쓰다듬듯이 하면서 말했다. "우리들,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다 느낀다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입에 담아서 말하기가 어렵다네. 우리들은 부끄럽기 때문에 알고 있어도 말할 수가 없는 거라구. 그래서 종종 우리들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화를 내지.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표현을 못 하니 부끄러울 수밖에, 그러니 부끄러움은 더욱 커지고 우리들을 깨우쳐 준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네. 그래서 모든 걸 잊고 살고 싫기도 하지. 자네들도 알다시피 삶이란 매우 복잡한 것이니까. 생활은 사방팔방에서 주먹질을 가하고 마구 찌르는 거야. 그러니 그저 쉬고 싶어지고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진다네." 니콜라이는 안경을 닦으면서 듣고 있었고, 소피아는 그 커다란 눈을 크게 뜨고서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피아노 옆에서 몸을 반쯤 남동생 쪽으로 향한 채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오른손의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애절한 가락이 어머니의 말과 뒤섞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무슨 말이든 할 수가 있게 됐다네. 그것은 사물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비교할 수가 있기 때문이지. 옛날의 생활에서는 아무것도 비교할 것이 없었으니까. 우리들의 생활에서는 모두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러나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으며, 내가 어떤 생활을 해왔는가를 돌이켜보게 되었다네. 그것은 슬프고 쓰라린 것뿐이었지." 어머니는 목소리를 낯춰서 말을 계속했다. "어쩌면 내가 틀린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 또 이런 것을 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 자네들은 이 모든 것들을 충분히 알고들 있으니까....." 미소를 짓고 있는 어머니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어머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자네들에게는 마음을 털어놓고 싶다네. 얼마나 내가 자네들이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지 말하고 싶어서." "우리들은 모두 다 알고 있어요!" 하고 니콜라이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는 또다시 그녀에게 있어서 새로웠던 것, 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을 계속 얘기했다. 굴욕과 고난 속에 놓여 있던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슬픈 나날들의 잿빚 두루마리를 펼치고, 남편에게 얼마 만큼 두들겨 맞았는가를 헤아리고, 스스로도 얻어 맞은 동기가 하찮은 것이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자신이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아해 하면서 입가에는 유감스러운 엷은 미소를 띄운 채 증오가 담기지 않은 말투로 얘기를 계속했다. 두 남매는 그녀의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가죽처럼 취급당하면서도 오랫동안 불평도 하지 않고 살아온 한 여인의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의 생활이 그녀의 입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가 살아 온 생활은 모두 단순하고 흔해빠진 것이었다. 그러나 지상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도 그와 같이 단순하고 흔해빠진 생활을 보내왔기 때문에, 그녀의 얘기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니콜라이는 테이블에 양 팔꿈치를 짚고, 손바닥 위에 머리를 얹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긴장으로 가늘게 뜬 눈으로 안경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피아는 의자의 등에 몸을 기대고 이따금 몸을 부르르 떨고 머리를 옆으로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한때 나는 자신을 불행한 여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요. 나의 생활은 열병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거든요" 하고 소피아는 머리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유형지에서지요. 조그만 시골 도시로,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제자신을 빼놓고는 생각할 것도 없었답니다. 나는 할 일이 없어서 자신의 불행을 몽땅 쌓아올려 그것을 저울에 달아 보았지요. 사랑하던 아버지와 싸웠던 일, 여학교를 쫓겨났던 일, 그리고는 감옥, 나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던 동료의 배신, 남편의 검거, 또다시 감옥과 유형, 그리고 남편의 죽음. 그때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러나 나의 모든 불행도 그것을 열 배로 곱한다 해도, 당신의 생활의 1개월에도 미치지를 못하는군요, 펠라게야 닐로브나 아주머니... 그것은 여러 해에 걸친 매일의 시련이니까요. 어디서 인간은 괴로움을 견더내는 힘을 퍼올리는 것일까요?" "익숙해진 것 뿐이에요." 하고 블라소바 부인은 한숨을 짓고 대답했다. "나는 생활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고 니콜라이는 깊은 생각에 잠겨서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 보니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끔찍하군요. 그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이 모여서 생활을 만들어 나가는 그 한순간 한순간이 정말로 무섭습니다." 대화는 흐르고 뻗어나가 어두운 생활을 진지하게 얘기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추억에 잠기고, 과거의 희미한 어둠 속으로부터 나날의 굴욕을 이끌어내고, 자신의 청춘을 파묻어 버린 무언의 공포의 무겁고 가슴답답한 정경을 그려내 보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 너무 오랫동안 얘기를 했군. 벌써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 모든 것을 전부 얘기한다는 것은....." 누이와 동생은 잠자코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그녀는 니콜라이가 여느때보다 더 머리를 숙이고, 더 세게 손을 잡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소피아는 그녀를 방까지 데려다 주고, 문턱에 멈춰 서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럼, 편안히 주무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고, 잿빛 눈은 어머니의 얼굴을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자신의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대답했다. "고마워....." 4 며칠 뒤 어머니와 소피아는 허름한 차림을 한 장사꾼이 되어서 니콜라이 앞에 나타났다. 낡은 옷과 외투를 입고, 어깨에는 자루를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 복장 때문에 소피아는 키가 작게 보이고 창백한 얼굴은 한충 더 엄숙해졌다. 누이와 헤어질 때, 니콜라이는 그녀의 손을 힘껏 맞잡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때 다시 한번 두 사람이 다정다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남매들은 입맞춤도 나누지 않고 다정한 말도 나누지 않지만, 서로가 진실한 마음과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어머니 주변의 사람들은 입맞춤도 많이 했지만 굶주린 게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두 여인은 잠자코 시내의 거리를 빠져나가 양쪽에 늙은 자작나무가 늘어서 있는 넓고 울퉁불퉁한 길올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갔다. "피곤하지 않아?" 하고 어머니는 소피아에게 물었다. "내가 그다지 많이 걷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나 보죠? 나는 걷는 데는 익숙해 있다구요.." 소피아는 마치 어릴 때의 장난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혁명 활동을 어머니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위조 사진을 사용하면서 타인의 명의로 생활을 하거나, 스파이를 따돌리기 위해 변장을 하거나, 여러 도시를 걸어 다니면서 금서를 배포한 일을 얘기했다. 유형수가 된 동료들을 위해 탈출 계획을 세우고, 외국으로 그 사람들을 밀출국시키는 일도 했다. 그녀가 살던 집에는 비밀 인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헌병들이 그것을 알고 가택 수색을 위해 찾아왔을 때, 그녀는 그들이 오기 1분 전에 하녀로 변장해서 집 앞에서 그들과 마주치면서 도망을 쳤다. 그리고 외투도 입지 않고 머리에 가벼운 프라토크를 쓰고, 손에 석유통을 들고서 지독한 추위 속에서 시내를 끝에서 끝까지 빠져나갔다. 또 어떤 때는 낯선 도시의 친지의 집으로 찾아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을 때, 그곳에서 가택 수색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래서 그녀는 대담하게 친지의 집 한층 밑의 문의 벨을 누르고, 트렁크를 든 채 낯선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설명했다. "만일 원하신다면 나를 헌병들에게 넘겨 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이 그런 짓은 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하고 그녀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무척 놀라서 밤새껏 자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노크를 하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침이 되자 그녀와 함께 헌병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언젠가는 그녀는 수녀로 변장하고서 그녀를 노리고 있던 스파이와 같은 객실의 같은 좌석에 앉아 여행했다. 그 스파이는 자신의 기민함을 자랑하면서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를 그녀에게 들려 주었다. 그는 그녀가 이 기차의 2등실에 타고 있는 줄 믿고,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를 않는군요. 틀림없이 잠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도 역시 피곤할 데니까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괴로운 생활이니까요." 어머니는 소피아의 얘기를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상냥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키가 크고 야윈 소피아는 날씬한 다리로 경쾌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나 말이나, 또 약간 분명하지 않지만 그 목소리의 울림 속이나, 또 그녀의 곧은 모습 속에는 정신의 건강함과 쾌활한 대담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발랄하게 모든 것을 바라 보고, 가는 곳마다에서 청춘의 기쁨으로 그녀를 기쁘게 하는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저것 좀 보세요, 얼마나 멋진 소나무입니까?" 하고 소피아는 어머니에게 한 그루의 나무를 가리키면서 외쳤다. 어머니는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그 소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그리 크지도 않고 무성하지도 않았다. "좋은 나무로군" 하고 어머니는 엷은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그리고 바람이 소피아의 귀 뒤쪽의 백발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종다리예요." 소피아의 회색 눈은 부드럽게 불타고, 그리고 몸은 밝고 높은 곳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고 울려퍼지고 있는 음악 쪽으로 향해서 지상에서 치솟아 올라가는 것 같았다. 이따금 소피아는 유연하게 몸을 구부리고, 들꽃을 따서 가늘고 재빠른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드리고 떨리는 꽃잎을 다정스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소피아의 이러한 행동들이 어머니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더욱 그녀를 친밀하게 느껴지게 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발을 맞춰서 걸으려고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녀 쪽으로 몸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나 때때로 소피아의 말 속에는 갑자기 뭔가 격렬한 것이 나타나고, 그것은 어머니에게는 불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어 불안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루이빈 미하일로 씨 마음에 들지 않을 텐데..." 그러나 곧 소피아는 다시 솔직하게 진심이 담긴 말투를 썼다. 그리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어쩌면 그렇게 젊지?" 하고 한숨을 내쉬며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 나는 벌써 32세라구요!" 하고 소피아는 소리쳤다. 블라소바 부인은 빙긋이 웃었다. "그런 말이 아니라우. 얼굴로는 더 연상으로도 볼 수 있어. 그러나 당신의 눈을 보고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처녀 같아서 깜짝 놀랄 정도라구. 이 생활이 평안이 없고 괴롭고 위험한 것인데도 그렇게 웃고 있으니......" "나는 괴롭다고는 느끼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이것보다도 더 좋고 재미있는 생활 같은 것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지금부터 당신을 닐로브나라고 부르고 싶어요. 펠라게야는 당신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좋을 대로 부르게." 하고 어머니는 신증하게 말했다. "당신이 좋을대로 부르게. 나는 이렇게 당신을 보고 얘기를 듣고 생각하고 있으니 당신이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는 길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기쁘다우. 당신 앞에서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모두 두려움도 없이, 걱정도 없이 열리고 있다우. 당신에게 향하면 마음은 자연히 열리는 모양이야. 그리고 나는 당신들 모두의 일을 생각하지. 당신들은 생활의 악을 무찌를 수가 있다구." "우리들은 이길 거예요. 그것은 우리들이 노동자들과 함께이기 때문이에요." 하고 확신을 가지고 소리높이 소피아는 말했다. "노동자들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숨겨져 있어요. 그리고 노동자와 함께라면 모든 것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성장하는 자유가 주어져 있지 않은, 그 자각을 눈 뜨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소피아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마음 속에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어머니는 웬지 소피아를 악의가 없는 친근한 연민의 감정으로 애처롭게 생각했다. 그리고 소피아로부터 좀더 솔직한, 좀 다른 말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의 노고에 대해서 누가 당신들에게 보답을 해주지 ?" 하고 어머니는 작은 소리로 구슬프게 물었다. 소피아는 긍지를 가지고 대답했다. "우리들은 벌써 보답받고 있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만족하는 생활을 찾아낸 거예요. 우리들은 마음껏 살아가고 있쟎아요?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겠어요?" 어머니는 소피아를 흘끗 보고는 고개를 떨구고서 또다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루이빈 미하일로 씨의 마음에는 들지 않을 탠데...' 달콤한 공기를 가슴 가득히 들이쉬면서 두 사람은 삐른 속도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순례길에라도 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의 일을 생각해냈다. 그녀가 축제일이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원으로 영적 효험이 있는 성상에 참예하러 갔을 때의 그 아름다운 기쁨을 생각해냈다. 이따금 소피아는 크지는 않으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늘이나 사랑을 노래한 어떤 새로운 노래를 부르거나, 갑자기 들판이나 숲이나 볼가 강의 시에 대해서 얘기를 하거나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그 가락에 사로잡혀서 자신도 모르게 시의 리듬에 맞춰 머리를 흔들었다. 어머니의 가슴 속은 마치 여름날 밤, 조그만 오래된 정원에라도 있는 것처럼 따스하고 조용한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5 나타샤는 시골의 직물 공장 부속 학교의 여 교사가 되어 들어갔다. 닐로브나 부인은 그녀의 직장에 금지본이나 유인물, 신문을 운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임무가 되었다. 한 달에 몇 차례 씩 수녀로 변장하거나, 레이스나 손으로 짠 모시를 파는 행상인이나 부유한 장사꾼 아낙네나 또는 순례자로 변장했다. 어머니는 등에 보따리를 메거나 손에 트렁크를 들고 버스를 타거나 걸어다녔다. 열차 안이나 기선 안이나 여관이나 여인숙, 어디에서든 어머니는 싹싹하고 차분한 태도를 취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먼저 얘기를 걸어 그 상냥하고 사교적인 말투로 세상 물정에 밝고 자신 있는 행동거지로 사람들의 주의를 자신에게 끌어들였다. 어머니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좋았다. 그들의 생활 얘기나 불평이나 당혹스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날카로운 불만을 확인했을 때는 언제나 기쁨으로 넘쳤다. 그것은 운명에 저항해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열심히 찾아헤매고 있는 불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앞에는 사람들의 삶이 점점 더 폭넓게 펼쳐 졌다. 그것은 다양하고 불안한 모습들이었다. 어디를 가나 배불리 먹을 수 있기 위한 생존경쟁과 불안한 생활의 정경이 점점 더 넓고 잡다하게 펼쳐졌다. 도처에서 남을 속이고, 빼앗고, 자신을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착취하고, 그 피를 빨아 먹으려고 하는 난폭하고 노골적이고 뻔뻔스러운 욕망이 똑똑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 지상에는 무엇이든지 풍요한데도 사람들은 곤궁하고, 절반은 굶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산 위에는 하느님에게는 소용없는 금이나 은으로 가득 찬 교회가 서있는데도, 그 교회 입구에는 거지들이 떨면서 그 손에 조그만 동전이 던져지기를 헛되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거창한 교회나 성직자들의 금자수가 놓여진 옷이나 가난한 민중들의 판자집과 누더기를 보아왔다. 옛날에는 그것이 자연스립게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용서할 수 없게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알게 되었다. 교회는 부자들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깝고 필요한 것이란 걸. 그리스도를 그린 그림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에 의해서 어머니는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들의 친구이며 검소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빈민들이 위안을 구해서 찾아가는 교회 안에서 어머니가 본 것은, 그리스도가 황금과 불쾌한 옷감이 스치는 소리를 내는 비단에 둘러싸여 묶여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무의식중에 루이빈의 말을 생각해냈다. "하느님을 이용해서 우리들은 속임을 당한 거라구요."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를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처럼 보여도 그리스도의 가르침 대로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이 지상을 가난한 자의 왕국이라고 생각하고, 지상의 모든 부를 평등하게 분배하기를 원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점점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자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 이런 생각이 자라나고 깊어졌다. 그녀에게 보이는 것, 그녀가 듣는 것을 모두 감싸고 뻗어나가서 어두운 세계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을 밝게 비추어 주는 기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언제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그리스도를 대할 수밖에 없어서 공포와 희망이 엇갈리고 감동과 비에가 결부되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그리스도가 실제로 생활을 위해서 되살아 난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인류의 이 불행한 친구의 이름을 외우는 것을 순수하게 삼가고, 그의 이름을 걸고 아낌없이 뜨거운 피를 흘렸고 그리스도는 그 피에 씻겨져서 생기를 되찾은 것이었다. 여행에서 니콜라이의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어머니는 여행길에서 보고 들은 것이 즐거웠고, 임무를 완수한 것에 만족하고 흡족해했다. "여러 고장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더군." 하고 어머니는 니콜라이에게 매일밤 얘기했다. "생활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으니까 말일세. 민중은 생활의 가장 자리로 밀려나 내던져지고, 모욕을 당하며 애면글면 살고 있더군. 그러나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고 생각하게 되거든. 왜 나는 구석으로 쫓겨나야 하는가? 왜 이처럼 풍요로운데 나는 굶주리는가 하고 말일세. 그리고 다들 지혜로운데 나는 어리석고 무식할까 하고 말일세.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는 부자도 가난뱅이도 없고 모두가 하느님에게 소중한 자식이라고들 하는데, 그 자비심 많은 하느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말일세. 민증들은 조금씩 자신의 생활에 분노를 느끼기 시작하고 있더군. 자신의 몸은 부정 때문에 목이 졸려질 것이라고 느끼고 있더라구." 그리고 어머니는 자기 입으로 사람들에게 생활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얘기해 들려 주고 싫다는 강한 욕망을 점점 더 빈번하게 느끼게 되었고, 때로는 그 욕망을 억누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니콜라이는 그녀가 그림을 보고 있을 때 마주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언제나 놀라운 것을 얘기해 주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무한한 인간의 의지에 놀라서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니콜라이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정말로 할 수 있을까?" 그러면 니콜라이는 안경 너머로 상냥한 눈초리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예언의 정당성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끈기있게 해주었다. "인간의 소망에는 한계가 없고, 그 힘은 무한합니다. 그러나 세계는 아직도 정신적으로 풍부해져 가는 속도가 팽장히 느립니다. 그것은 아직 각자가 자신은 독립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탐욕을 없에고 강제 노동의 포로에서 해방된다면..." 어머니로서는 니콜라이의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그 말에 생기를 부여하고 있던 조용한 신앙의 감정은 더욱더 가슴 깊숙이 스며 들었다. "이 지상에는 해방된 인간이 너무나도 적어서, 불행이 있는 거랍니다." 하고 그가 얘기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탐욕이나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러한, 사람이 좀더 많아진다면 생활의 어둡고 무서운 모습은 좀더 선량하고 밝은 것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잔혹해지는 것입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슬픔을 담아서 얘기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크라이나 인의 얘기를 생각해냈다. 6 어느 날, 항상 시계처럼 정확한 니콜라이가 평소보다 훨씬 늦게 직장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외투도 벗지 않고 흥분해서 손을 비비면서 황급히 말했다. "아주머니, 오늘 우리들의 동료 하나가 감옥에서 탈주했답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누구인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지만요." 어머니는 가슴이 울렁거려서 비틀거리며 의자에 걸터 앉아서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어쩌면 파벨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고 니콜라이는 어깨를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나 어떻게 몸을 숨기는 것을 도와주느냐, 어디서 찾아내느냐가 문제입니다. 나는 혹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거리를 마구 쏘다녔습니다. 그것은 바보스러운 짓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다시 나가봐야 겠습니다." "나도 가겠네." 하고 어머니는 소리쳤다. "아주머니는 이고르를 찾아가 보세요. 그가 무엇인가 알고 있지 않을까요?" 하고 니콜라이는 권하고 서둘러 뛰어나갔다. 어머니는 머리에 프라토크를 쓰고 희망애 사로잡혀서 그의 뒤를 따라 재빨리 거리로 나갔다. 눈이 따끔따끔하고 심장은 빠르게 방망이질을 쳤다. 어머니는 거의 뛰는 걸음이 되었다. 어머니는 머리를 숙이고서 주위의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희미한 희망을 향해서 달려갔다. "제발 그 아이가 그곳에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 머리를 스치면서 그녀를 앞으로 떠밀어 보냈다. 더웠다. 어머니는 지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고르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까지 당도하자 더이상 걸어 갈 힘이 없어졌다. 그곳에 멈춰 선 채 뒤를 돌아다 보고 놀라서 앗 하고 작은 소리로 외치고는 한순간 눈을 감았다. 그녀는 문 옆에 니콜라이 베소푸쉬코프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한 번 눈을 돌렸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헛것을 본 모양이군.' 어머니는 계단을 걸어 올라 가면서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귀를 곤두세웠다. 안뜰에서 느릿느릿 걷는 둔탁한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계단에 멈춰 서서 어머니는 몸을 구부리고 아래를 살펴보았다. 또다시 그녀는 웃고 있는 곰보상을 발견했다. "니콜라이, 니콜라이" 하고 어머니는 그를 향해 내려가면서 소리를 쳤으나 아들이 아니라는 실망으로 마음이 쓰라렸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올라 가세요. 저도 을라갈 겁니다." 하고 그는 한 손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는 재빨리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이고르의 방으로 들어갔다. 긴 의자에 누워 있는 그를 발견하자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니콜라이가 도망쳐 나왔네... 감옥에서....." "어느 니콜라이 말입니까?" 하고 이고르는 배개에서 머리를 들어 올리면서 쉰 목소리로 물었다. "니콜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그곳에 두 사람이나 있는데요." "배소푸쉬코프야. 이곳으로 올 거네." "그것 참 멋지군요." 니콜라이는 벌써 방 안으로 들어와서 문에 빗장을 지르고, 모자를 벗고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작은 소리로 웃었다. 이고르는 의자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짚고 일어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왔네이." 니콜라이는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어머니 옆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는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했으면 감옥으로 되돌아갈 뻔했어요. 시내에는 누구 한 사람 아는 사람도 없고, 옛마을로 돌아갔다가는 즉시 체포될 것이구요. 걸으면서 바보 같은 녀석, 왜 도망을 쳤느냐고 생각했어요. 문득 보니까 아주머니가 뛰어가고 있더군요 ! 나는 아주머니 뒤를 미행해서..." "자네는 어떻게 도망쳐 나왔나?"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니콜라이는 의자 끝에 어색스럽게 걸터앉아서 미안한 듯이 어깨를 들어 보이고 말했다. "우연히 그렇게 되어 버렸어요. 나는 운동하러 나와 있었지요. 마침 형사범들이 교도관을 때리기 시작하더군요. 그곳에는 교도관이 한 놈 뿐이었거든요. 그 교도관은 공금을 횡령하다가 면직이 되었답니다. 첩자 노릇을 하고 있어서 아무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 녀석을 죄수들이 때려서 큰 소동이 일어난 거죠. 교도관들은 놀라서 도망다니며 호각을 부는 형편이었지요. 보니까 문이 열려 있고 광장과 거리가 보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나는 유유히 걸어 나왔죠. 마치 꿈만 같았어요. 조금 떨어지고 나서야 어디로 갈까 하고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보니까 감옥 문은 벌써 닫혀 있더군요." "흠!" 하고 이고르가 말했다. "아니, 그러면 자네는 다시 돌아가서 공손하게 문을 노크하고 들여 보내 달라고 부탁하면 되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깜빡 잊어버리고...' 어쩌고 하면서 말일세." "아니야." 하고 니콜라이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일세. 그러나 역시 동지들에게 좋지가 않다구.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지. 걸어가면서 보니까 어린애의 장례 행렬이 지나가고 있더군. 관 뒤를 따라서 고개를 숙이고 아무도 보지 않은 채 걸어갔지. 묘지에 잠시 앉아서 바람을 씌고 있으려니까 한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더라구." "한 가지 생각?" 하고 이고르가 물었다. 그리고 한숨을 짓고 덧 붙였다. "생각하는 데는 머리 속은 그다지 좁지가 않을 텐데..." 니콜라이 베소푸쉬코프는 머리를 흔들면서 함께 웃었다. "그래, 내 머리도 지금은 옛날처럼 텅 비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고르 이바노비치, 자네는 줄곧 병으로 누워 있었나?"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지." 하고 이고르는 콜록콜록 하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지방 박물관에 갔었지. 그곳에서 구경하고 돌아 다녔지만 머리 속에서는 어디를 가야 할까 하고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네. 나 자신에 대해서 화가 치밀 정도였네. 게다가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거리로 나와서 걷고 있으려니까 신경질만 나더군. 그때쯤에서야 경찰관들이 검문을 하고 있더라구. 이런 내 상판으로 금세 잡힐 거라고 생각했네. 그런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정면에서 뛰어오는 게 아닌가! 나는 옆 골목에 숨었다가 뒤를 밟았지. 이것이 전부일세." "하지만 나는 자네를 보지 못했는데." 하고 어머니는 미안한 듯이 말했다. 어머니는 배소푸쉬코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는 이전보다는 훨씬 몸이 가벼워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틀림없이 동료들이 걱정하고 있을 거야." 하고 머리를 긁으면서 니콜라이 배소푸쉬코프가 말했다. "그러나 자네는 관리들이 불쌍하지 않나? 그 녀석들도 역시 걱정하고 있을 게 아닌가?" 하고 이고르가 끼여들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고 마치 공기를 먹고 있는 것처럼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농담은 그만두세! 자네를 숨겨 주어야 하는데. 내겐 유쾌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세. 내가 일어날 수만 있다면..." 하고 이고르는 한숨을 짓고, 자신의 두 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서 나약한 동작으로 가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병이 깊은가 보군, 이고르 이바노비치." 하고 니콜라이는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고 불안스러운 듯이 좁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것은 내 개인적인 문제일세." 하고 이고르는 대답했다. "아주머니, 파벨에 대해서 좀 물어보세요. 궁금하실 텐데 뭘 망설이세요?" 배소푸쉬코프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파벨은 걱정할 것 없어요. 아주 건강합니다. 그 친구는 우리가 있는 감옥 안에서는 감방장 같은 존재지요, 관리들과도 대화를 하고, 모든 일을 지시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무척 존경받고 있구요." 블라소바 닐로브나 부인은 베소푸쉬코프의 얘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고르의 부어오르고 창백한 얼굴을 곁눈질로 바라 보고 있었다. 표정이 없는, 움직이지 않고 굳어진 그 얼굴은 이상하게 납작하게 보였다. 그리고 눈만이 그 얼굴에서 발랄하고 즐거운 듯이 빚나고 있었다. "뭘 좀 먹을 걸 줄 수 없겠나? 정말로 배가 고파서 미칠 지경이라구." 하고 느닷없이 니콜라이가 소리쳤다. "아주머니, 선반 위에 빵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도로 나가서 왼쪽으로 두 번째 문을 두드리세요. 어떤 여자가 문을 열거든 먹을 수 있는 것을 몽땅 가지고 오라고 말해 주세요." "몽땅 가지고 와서 어떻게 할 셈인가?" 하고 니콜라이 베소푸쉬코프가 반대했다. "걱정할 것 없네. 그다지 많지도 않으니까." 어머니는 방을 나가서 문을 노크하고서 문 너머 쪽의 조용함에 귀를 기울이며 슬픔을 안고 이고르를 생각했다. '죽어 가고 있어...' "누구세요?" 하고 문 너머에서 묻는 소리가 났다. "이고르 이바노비치 씨의 방에서 왔습니다." 하고 작은 소리로 어머니는 대답했다. "좀 와달라고 말씀하시던데요." "지금 곧 가겠습니다!" 하고 문을 열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노크를 했다. 그러자 문이 훽 하고 열리고 안경을 낀 키가 큰 부인이 복도로 나왔다. 짧은 상의의 꾸깃꾸깃한 소매를 황급히 펴면서 그녀는 날카롭게 어머니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이고르 이바노비치 씨의 방에서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가십시다. 아아, 나는 당신을 알고 있어요!" 하고 작은 소리로 부인이 외쳤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어두워서요." 블라소바 부인은 그녀를 힐끗 보고 그녀가 니콜라이의 집에 이따금 찾아 왔던 것을 생각해냈다. '모두 우리쪽 사람이야.' 하고 어머니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블라소바 부인을 향해서 다가온 그녀는 블라소바 부인을 앞 장세우고 자기는 뒤에서 따라 오면서 물었다. "그 사람, 몸이 나쁨니까?" "네, 누워 있어요. 먹을 것을 좀 가져다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아니, 그것은 필요없을 거예요." 두 사람이 이고르의 방에 들어가자 목 쉰 소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나는 이제 선조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갈 겁니다. 류드밀라 바실리예브나, 이 사람은 관리의 허가를 받지 않고 감옥에서 빠져나온 사람이오. 대담한 사나이지요. 우선 이 사람에게 식사를 준비해 주고 그 다음에 어딘가에 숨겨 주세요."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고르, 당신은 손님들이 오시면 즉각 나를 부르러 보냈어야지요. 게다가 당신은 두 차례나 약을 먹지 않았어요. 나는 보지 않고도 다 알고 있다구요. 왜 게으름을 피는 거죠? 여러분, 내 방으로 가주세요! 곧 병원에서 이고르를 데리러 올 테니까요.'' "역시 나를 입원시킬 건가요?" 하고 이고르는 물었다. "그래요. 내가 그곳으로 당신과 함께 가겠어요." "거기까지두요? 이런, 이런..." "불평을 할 때가 아니에요." 부인은 얘기하면서 이고르의 가슴 위의 담요를 바로잡아 주고 니콜라이를 빤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병에 들어 있는 약을 눈 짐작으로 세어 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았으며, 그 동작은 가벼웠다. 얼굴은 창백하고, 짙은 눈썹은 콧마루 위에서 거의 달라 붙은 것처럼 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어머니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그것은 거만스럽게 보이고, 눈길에는 미소도 없고 광택도 없었다. 그리고 그 말투는 마치 지시라도 하는 것 같은 어조였다. "우리들은 저쪽 방으로 가십시다!" 하고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곧 돌아올게요. 아주머니는 이고르에게 이것을 스푼에 하나 가득 먹여 주세요. 얘기는 하지 못하게 해주시구요." 그리고 그녀는 니콜라이를 데리고 나갔다. "훌륭한 부인입니다." 하고 이고르는 한숨을 짓고 말했다. "대단한 부인이지요." "아주머니, 그 사람을 좀 도와주세요. 그 사람은 무척 지쳐 있어요." "자네, 얘기를 해서는 안 되네! 자아, 이것을 마시는 게 좋을 걸세." 하고 부드럽게 어머니가 부탁했다. 이고르는 약을 먹고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서 말을 계속했다. "어차피 나는 죽을 거예요. 잠자코 있어 보았자." 다른 한쪽 눈으로 이고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입술은 서서히 풀려서 미소를 담았다. 어머니는 고개를 떨어 뜨렸다. 연민의 감정이 그녀 눈물을 몰고 왔다. "괜찮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이 살아간다고 하는 만족은 그 뒤에 죽는다고 하는 희생을 수반하는 거니까요." 어머니는 이고르의 머리 위에 한 손을 올려 놓고 또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제발 잠자코 있게나." 이고르는 눈을 감고 심장의 고동소리라도 듣는 듯 잠자코 있다가 또다시 고집스럽게 말을 계속했다. "잠자코 있어 보았자 무의미합니다. 아주머니!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나에게 무슨 득이 있겠느냐구요? 임종의 고통만 길어지고, 좋은 사람들과 얘기하는 기쁨을 잃을 뿐입니다. 나는 저 세상에는 이 세상처럼 좋은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근심스러운 듯이 이고르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까 그 부인이 돌아오면, 자네에게 말을 시켰다고 나를 꾸증할 거라구." "그 사람은 평범한 부인이 아닙니다. 여자 혁명가이고 동지이고, 훌륭한 인물이지요. 아주머니, 그 사람은 틀림없이 어머니를 꾸짖을 거예요. 모두를 꾸짖고 있으니까요, 언제나...." 그리고 천천히 괴로운 듯이 입술을 움직이면서 이고르는 이웃에 사는 여자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미소를 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가 일부러 자신을 애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촉촉히 푸른 빚을 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불안스럽게 생각했다. '곧 죽을 데지...' 류드밀라가 들어와서 뒷 손으로 문을 조심스럽게 닫으면서 블라소바 부인을 향해 말을 꺼냈다. "당신 친구는 옷을 갈아 입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우리 방에서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펠라게야 닐로브나 부인, 당신은 지금 당장 그 사람이 입을 옷을 구해 오세요. 소피아가 없어서 유감이네요. 사람을 숨겨 주는 것은 그 사람의 전문이거든요." "소피아 부인은 내일 돌아올 거예요." 하고 블라소바 부인은 프라토크를 어깨에 걸치면서 말했다. 어머니는 어떤 임무가 주어졌을 때는 언제나 그 일을 빨리 능숙하게 처리하고 싶은 희망에 사로잡혔다. 더이상 자신의 임무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걱정스러운 듯이 눈썹을 떨어뜨리고 사무적으로 물었다. "어떤 옷을 구해야 하죠?" "무슨 옷이든 상관없어요. 그 사람은 밤에 떠나야 하니까요." "밤은 좋지 않습니다. 거리에는 사람의 통행이 적고, 감시의 눈은 많으니까요. 게다가 그 사람은 재치가 별로 없어서..." 이고르는 목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병원으로 자네를 문병하러 가도 괜찮은가?"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이고르는 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하고 교대로 이 사람의 병 간호를 해주시지 않겠어요? 괜찮겠습니까? 어머, 잘 됐네요! 그러나 지금은 빨리 다녀오세요." 상냥하게, 그러나 힘차게 어머니의 팔을 잡고 문 밖으로 나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쫓듯이 했다고 화를 내지는 마세요! 하지만 그 사람은 말을 하는 것이 독입니다. 아직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가 악수를 하자 그 손가락에서 뚝뚝 울리는 소리가 마치 울음을 삼키는 소리 같았다. 눈꺼풀은 눈 위로 축 늘어져 내렸다. 그 행동에 어머니는 곤혹을 느졌다. 그래서 어머니는 중얼거렸다.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미행하는 자가 있는지 조심하세요!" 하고 류드밀라 부인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양손을 얼굴 쪽으로 을려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녀의 입술은 떨리고 얼굴은 아주 부드러워졌다. "물론 알지요!" 하고 어머니는 얼마간 자랑스러운 듯이 그녀에게 대답했다. 문을 나서자 어머니는 잠깐 멈춰 서서 프라토크를 바로 쓰고, 눈에 띄지 않게 재빨리 주위를 살펴 보았다. 어머니는 이제 거의 실수없이 거리의 인파 속에서도 스파이를 구별해 낼 수가 있었다. 그들의 일부러 무관심하게 보이려고 하는 발걸음도, 부자연스럽지 않고 세련된 몸짓도, 따분한 것 같은 얼굴 표정도, 그리고 그러한 태도의 배후에 어색하게 숨겨진 침착성 없는 혐오스러운 날카로운 눈초리도 어머니에게는 완전히 낯익은 것이었다. 그때는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서두르지 않고 거리를 걸어갔다. 그리고는 삯 마차를 타고 시장으로 가 달라고 부탁했다. 니콜라이의 옷을 사면서 어머니는 장사꾼을 상대로 형편없이 값을 깎고, 내친김에 자신의 주정뱅이 남편의 헙담을 하면서 거의 매달 모든 것을 새로 사서 입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아이디어는 상인에게는 별로 효력이 없었으나, 그녀 자신에게는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는 돌아오는 길에 경찰은 물론 니콜라이가 변장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 시장에 스파이를 보내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박한 경계를 하면서 어머니는 이고르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머니는 니콜라이를 시내의 변두리까지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다. 그녀와 니콜라이는 거리 양쪽으로 갈라져서 걸어 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베소푸쉬코프가 머리를 숙이고 짙은 갈색의 길다란 외투 자락을 발목까지 늘어뜨리고 코 위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자를 다시 쓰면서 뒤척뒤척 걷고 있는 것을 보자 우습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했다. 인기척이 없는 거리에서 두 사람은 사웬카를 만났다. 그래서 어머니는 베소푸쉬코프와 목례를 주고받고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파벨은 아직도 감옥에 있으니....그리고 안드류샤도....'하고 어머니는 다시 슬픈 기억을 떠올렸다. 7 집으로 돌아오자 니콜라이는 불안스러운 목소리로 어머니를 맞았다. "알고 계십니까? 이고르의 상태가 굉장히 나쁩니다. 굉장히요! 병원으로 실려갔어요. 류드밀라가 찾아와서 아주머니도 오시라고 부탁하더군요." "병원으로 말인가?" 니콜라이는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고 어머니가 옷입는 것을 도와 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자아, 이 보따리를 가져 가세요. 배소푸쉬코프 쪽은 잘 되었나요?" "아주 잘 되었다네." "나도 이고르에게 가야겠어요." 피로 때문에 어머니는 머리가 어찔어찔했다. 그런데 니콜라이의 불안한 기분은 그녀에게 비극의 슬픈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죽어 가고 있는 모양이군' 하는 어두운 생각이 어머니의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청결하고 밝은 병실에 도착해서 이고르가 침대 위에 앉아 웃고 있는 것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어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구에 서서 환자가 의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었다. "치료는 개혁과 같은 것일세." "장난치는 게 아니야, 이고르!" 하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걱정스러운 듯이 의사가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나는 혁명가니까 개혁을 증오하거든." 의사는 이고르의 손을 조심스럽게 그의 무릎 위에 놓아 주고, 턱수염을 쓰다 듬으면서 환자의 얼굴에 난 종기를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 의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니콜라이의 친한 동료 이반다닐로비치였다. 어머니는 이고르 옆으로 다가갔다. 이고르는 그녀를 향해서 혀를 내밀어 보였다. 의사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아, 닐로브나 부인! 안녕하세요? 손에 들고 있는 건 무엇입니까?" "틀림없이 책이겠지요?" "이 사람은 책을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몸집이 작은 의사가 주의를 주었다. "이 사람은 나를 천치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구요!" 하고 이고르가 호소했다. 가르랑 거리는 짧고 가슴답답한 한숨이 이고르의 가슴에서 새어 나오고, 그의 얼굴은 식은 땀에 뒤 덮였다. 이고르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무거운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닦았다. 부어오른 볼은 기묘하게 움직이지 않고, 폭이 넓은 선량한 얼굴은 일그러지고, 그 윤곽 전체는 죽은 것 같은 가면 밑으로 사라져 버리고, 부종 때문에 움푹 들어가 있는 눈만이 편안한 미소를 띄운 채 밝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 의사 선생! 피곤한데 누워도 괜찮겠나?" 하고 이고르가 물었다. "안되네!" 하고 의사는 짧게 대답했다. "그럼, 자네가 가고 난 뒤에 눕겠네." "닐로브나 부인, 이 사람을 눕지 못하게 하세요. 베개를 바로잡아 주세요. 그리고 제발 이 사람하고는 얘기를 하지 말아 주세요. 해로우니까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빠른 발걸음으로 병실에서 나갔다. 이고르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은 뒤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손가락만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조그만 방의 하안 벽에서는 메마른 냉기와 날카로운 슬픔이 스며나왔다. 보리수나무의 오그라든 가지가 커다란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먼지 투성이 잎 속에 노랗게 물든 반점이 다가오는 가을을 예고하고 있었다. "죽음은 느릿느릿...... 끈질기게... 나를 찾아오고 있어요." 몸도 꼼짝하지 않고 눈도 뜨지 않은 채 이고르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죽음은 틀림없이 내가 얼마간 불쌍한 모양이에요. 그처럼 남에게 호감을 주는 젊은이였으니까 말이지." "자네는 잠자코 있는 편이 나을 걸세, 이고르 이바노비치." 하고 어머니는 그의 손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부탁했다. "기다려 주세요. 이제 곧 입을 다물 테니까요." 숨을 가쁘게 쉬며 힘을 긁어 모아서 말을 입으로 밀어내는 이고르는 몇 번씩이나 힘이 부쳐서 간격을 두고 얘기를 이어 나갔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아주머니가 우리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말입니다.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결국 이분은 어떻게 될까? 하고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모두와 마찬가지로 감옥과 온갖 더러운 것이 아주머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아주머니는 감옥이 무섭지 않으세요?" "무섭지 않네!" 하고 어머니는 선뜻 대답했다. "그것은 물론 그렇겠지요. 그러나 역시 감옥이라는 것은 참으로 혐오스럽고, 자아, 나를 이런 병신으로 만든 것도 감옥이라구요. 솔직히 말하면 나도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틀림없이 아직 죽지는 않을 걸세!' 하고 어머니는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의 얼굴에 흘끗 눈을 보내고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아직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살아 있을 필요도 없고 살아 있는 것 자체도, 바보스럽지요." "그것은 옳은 말이지만, 비참한 일이에요!" 하는, 안드레이의 말을 어머니는 무심결에 생각해내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는 지쳐 있었고,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환자의 단조롭고 축축한 속삭임이 방안에 가득 차고 매끈매끈한 벽의 표면을 맥없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창 밖의 보리수나무 가지는 낮게 드리운 비구름을 닮아 놀라울 만큼 구슬픈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황혼의 고요함 속에서 밤을 기다리면서 기묘하게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기분이 묘할까!" 하고 이고르는 말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침묵을 지켰다. "잠을 좀 자게!" 하고 어머니는 권했다. "그러면 아마 훨씬 좋아질 걸세." 그리고 어머니는 그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슬픔에 사로잡혀서 몇 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었으나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문 옆의 조심스러운 소리에 어머니는 퍼뜩 잠에서 깨어나 움찔하고 몸을 떨고는 이고르의 벌어진 눈을 보았다. "깜빡 잠이 들어서... 미안하네." 하고 작은 소리로 어머니가 말했다. "저야말로 미안합니다." 하고 이고르도 똑같이 작은 소리로 되풀이했다. 희미한 달빚이 창으로 새어들고 탁한 냉기가 눈을 내리 눌렀다. 모든 것이 기묘하게 칙칙하게 보이고, 환자의 얼굴이 검은 빚을 띠기 시작했다. 류드밀라의 옷스치는 소리와 목소리가 울렸다. "어둠 속에서 얘기들을 하고 있군요. 이 방의 스위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방은 갑자기 전체가 무뚝뚝한 흰 빚으로 채워졌다. 그 속에 온몸을 검은색으로 휘감은 키가 큰 류드밀라가 서있었다. 이고르는 심하게 온몸을 떨면서 한 손을 가슴 옆으로 올렸다. "왜 그래요?" 하고 류드밀라는 외치고 이고르 옆으로 달려갔다. 이고르는 침착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 눈은 크고 이상하게 빚나 보였다. 이고르는 입을 크게 벌리고 머리를 쳐들고는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머니는 망설 이듯이 그의 손을 잡고 숨을 죽이고 이고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고르는 목을 경련하듯이 세게 움직이고,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소리높이 외쳤다. "안 돼! 이제 끝장이야!" 이고르의 몸이 가늘게 떨리다가 머리가 힘없이 어깨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크게 벌어진 눈 속에는 침대 위쪽에 켜져 있던 램프의 차가운 빚이 생기없이 반사되어 있었다. "이보게나!" 하고 어머니는 속삭였다. 류드밀라는 천천히 침대에서 떠나 창가로 다가갔다. 멍하니 자신의 앞 쪽을 바라보면서 평소때보다 훨씬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죽어 버렸어요." 류드밀라는 몸을 구부리고 창문 턱에 양 팔꿈치를 짚으며 마치 머리라도 얻어 맞은 것처럼 무너지듯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죽여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고르의 무거운 양손을 그 가슴 위에 포개고, 베개 위의 머리를 바로잡아 주고는 눈물을 닦으면서 류드밀라 옆으로 다가갔다. 그녀 위로 몸을 구부려 짙은 머리칼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류드밀라는 천천히 그녀 쪽으로 돌아 앉았으나, 눈물이 글씽글썽한 눈은 병든 것처럼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입술을 떨면서 속삭였다. "우리들은 함께 유형지에서 생활하고, 그곳에 가서 감옥에서도 함께 있었어요. 때로는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되고,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워져서 뜻을 꺾은 사람도 많이 있었죠." 메마른 흐느낌이 그녀의 목을 죄었다. 잠시 후 그녀는 흐느낌을 속으로 삼키면서 어머니에게로 다가가 눈물없이 흐느껴 울면서 빠르게 얘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언제나 피로도 모르고 쾌활하고 농담도 잘했지요. 남자답게 자신의 괴로움을 숨기고 약한 사람들을 격려하려고 했었죠. 마음이 착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어요. 시베리아에서는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타락하고 비열한 감정이 생겨나는 법이지만, 저 사람은 그것과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구요. 저 사람이 어떠한 동지였는지, 만일 당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저 사람의 개인 생활은 쓰라리고 괴로운 것이었지만, 저 사람의 불만을 들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답니다. 나는 저 사람의 친한 친구였어요. 나는 저 사람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었답니다. 저 사람은 자신의 머리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에게 해주었어요. 그리고 고독하고 지쳐 있어도 한 번도 그 대가나 호의를 요구한 적이 없었답니다." 그녀는 이고르 옆으로 다가가서 몸을 구부리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추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의 친근하고 그리운 동지, 고마워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잘 가세요 ! 당신이 했던 것처럼 일하겠습니다. 지치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평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잘 가세요..." 흐느낌이 그녀의 몸을 떨게 했다. 그리고 침대 위 이고르의 발치에 머리를 놓았다. 어머니는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눈물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어머니는 류드밀라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싶었다. 사랑과 슬픔의 아름다운 말로 이고르에 대해서 얘기해 주고 심었다. 눈물에 젖은 채 어머니는 그의 움푹 패인 얼굴과 부어오른 눈꺼풀로 덮인 눈,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굳어진 입술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느낌 소리만 조용하게 울리는 병실 안에는 쓸쓸한 불빚만이 가득했다. 의사 이반 다닐로비치가 언제나 처럼 황급히 종종결음으로 들어왔다. 방 한가운데에서 멈춰 서더니 재빠른 몸짓으로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짜증스러운 듯이 커다란 소리로 물었다. "꽤 오래 되었나요?" 대답은 없었다. 의사는 조용히 비틀거리면서 이마를 문지르더니 이고르 옆으로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아 보고 나서 다시 옆쪽으로 떨어졌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의 심장으로는 이런 일은 최소한 반 년 전에 일어났을 일이니까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크고 평정을 위장한 의사의 목소리는 갑자기 끊겼다. 벽에 등을 대고 그는 손가락을 재빨리 움직여서 턱수염을 비틀었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면서 침대 옆에 있는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또 한 사람이!" 하고 의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류드밀라는 일어나서 창 쪽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얼마 뒤에 그들 세 사람은 창가에 서로 몸을 기대고 서있었다. 그리고 가을밤의 음울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들의 검은 가지 위로는 별빚이 쏟아질 듯 빚나고 있었다. 의사는 머리를 낮게 숙이고 손수건으로 안경을 닦고 있었다. 창 밖의 고요함 속에 밤거리의 술렁거림이 들려오고, 냉기가 얼굴에 불어와서 머리칼을 날리게 했다. 류드밀라는 몸을 떨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병원 복도에서는 황급한 발소리와 신음 소리, 속삭임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창가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서 어둠 속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살그머니 팔을 빼고 이고르에게 절을 하면서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돌아가십니까?" 하고 작은 소리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의사가 물었다. "네." 거리로 나가자 어머니는 류드밀라가 생각보다 심하게 울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안심이 되었다. "그 사람은 울 수조차 없는 모양이지.." 이고르의 임종의 말이 생각나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거리를 걸어가면서 어머니는 그의 빛나던 눈과 농담과 얘기를 생각했다. '좋은 사람에게는 사는 것은 힘이 들고 죽는 것은 손쉬운 모양이야. 나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죽으려나?'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밝은 방의 창가에 있는 류드밀라와 의사, 그 뒤에 있는 이고르의 죽은 눈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그러자 사람들에 대한 꽉 죄어드는 것 같은 연민에 사로잡혀서 크게 한숨을 내쉬고 발 걸음을 재촉했다. 무엇인가 아련한 감정이 그녀의 걸음을 '좀더 빨리 가야 해. 바쁠 테니까.' 하고 어머니는 몸 안에서 부드럽게 찌르고 올라오는 슬픈, 그러나 힘찬 힘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8 다음 날은 장례식 준비로 바빴다. 저녁때 어머니와 니콜라이와 소피아가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사웬카가 이상스럽게 들떠서 밝은 얼굴로 찾아왔다. 그녀의 뺨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고, 눈은 쾌활하게 빚나고, 그녀의 온몸이 무엇인가 즐거운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죽은 사람의 일을 마음 속에 떠을리고 있던 슬픈 감정 속에 사웬카의 그러한 기분이 격렬하게 폭풍처럼 파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에 섞이지를 못하고 마치 어둠 속에서 갑자기 타오른 불처럼 모두를 당혹시키고 놀라게 만들었다. 니콜라이는 깊은 생각에 잠겨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사웬카, 오늘 당신 모습은 평소하고는 전혀 다르군요." "그래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고 그녀는 대답하고, 행복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면서 웃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이고르 이바노비치를 생각하고 있었지요."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그렇지 않아요?" 하고 사웬카는 말했다. "나는 늘 그 사람이 얼굴에 미소를 띄고, 농담을 하는 것을 보아 왔어요. 게다가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습니까! 그 사람은 혁명의 예술가였어요. 거장처럼 혁명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어요. 재치 있는 말로 허위나 폭력이나 부정의 광경을 그려내 보였지요. 그를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사웬카는 눈에 사려 깊은 미소를 띄우며 작은 소리로 얘기했지만 그 미소는 그녀 눈 속의 불을 끄지 못했다. 그들은 동지를 생각하는 슬픔을 사웬카의 기쁨과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슬픔을 간직한 자신들의 권리를 무의식적으로 지키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기분 속에 사웬카를 끌어 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사람이 죽었다구요!" 하고 뚫어질듯이 사웬카를 보면서 소피아가 집요하게 말했다. 사웬카는 재빨리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모두를 둘러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목을 떨어뜨리고는 느릿느릿한 손짓으로 머리칼을 만지며 입을 다물었다. "죽었다구요?" 하고 사웬카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도전하는 듯한 눈으로 모두를 보았다. "죽었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무엇이 죽어 버렸다는 것인가요? 이고르에 대한 우리들의 존경, 동지였던 그 사람에대한 애정, 그 사람의 사상의 활동에 대한 추억이 정말로 죽어 버린 것일까요? 이 활동이 죽어 버린 것일까요? 그 사람이 나의 마음 속에 일깨워 준 감정이 사라져 버리고, 그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나의 개념이 파괴되어 버린 것일까요? 그것들이 모두 죽어 버린 것일까요?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들이 너무나 성급하게 한 사람이 죽어 버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의 입은 죽었지만, 말은 영구히 살아 있는 자의 마음 속에 살아있도다!' 라고 하니까요." 사웬카는 흥분해서 또다시 테이블을 향해서 앉고, 그 위에 팔꿈치를 짚고 미소를 담고는 흐려진 눈으로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목소리를 낮추고 한층 더 사려 깊은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틀림없이 내가 말하는 것은 바보스럽게 들리겠지요. 그러나 나는 말이에요, 여러분, 성실한 사람들의 불사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생활과 행복을 가져다 준 사람들의 불사를 믿고 있어요. 이 생활은 그 놀라운 복잡함으로, 갖가지 현상으로, 또한 나의 마음처럼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상의 성장으로 나를 기쁘고 취하게 만듭니다. 우리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감정을 지나치게 아껴서 사상으로 사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얼마간 우리들은 일그러져 있어서 사물의 평가는 할 수 있어도 느끼는 것은 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는 뭔가 좋은 일이 있었나요?" 하고 소피아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요!" 하고 사웬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굉장히 좋은 일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는 밤새 껏 베소푸쉬코프와 얘기를 나누었어요. 나는 이전에는 그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었답니다. 난폭하고 무지한 사람처럼 생각되었으니까요. 아니,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내부에는 모두를 향해서 꿈쩍도 하지 않는 어두운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으니까요. 그 사람은 언제나 무겁게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고, 난폭하고 증오에 가득 차서 '내가, 내가 !' 하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에는 무엇인가 사람을 짜증스럽게 만드는 소 시민적인 것이 있었지요." 사웬카는 빙긋이 웃고 또다시 빚나는 눈초리로 모두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은 '동지들!'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투도 많이 변했답니다. 어딘가 계면쩍어하는 듯한, 부드러운 애정을 담아서 말이에요. 그것은 도저히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놀랄 만큼 소박하고 성실하게 되어 온 몸이 일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찾아낸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알고,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진정한 동지적 감정이 생겨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블라소바 부인은 사웬카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엄격한 처녀가 부드러워지고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것이 기분좋았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어머니의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염려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럼, 파벨은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거지?" "그 사람은!" 하고 사웬카는 얘기를 계속했다. "완전히 동지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어떤 것을 설득했다고 생각하세요? 동지들을 위해서 탈옥을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 사람은 그것이 생각보다 무척 간단하고 손쉬운 일이라고 말했어요." 소피아는 머리를 들고 힘이 나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웬카? 생각뿐인 거 아니에요?" 어머니의 손에 든 찻잔이 떨리기 시작했다. 사웬카는 미간을 찌푸리고 자신의 들떠오르는 기분을 억제하려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꺼냈다. "만일 실제로 모든 것이 그 사람이 말한 대로라면 우리들은 헤야 하지 않겠어요? 그것은 우리들의 의무니까요!" 사웬카는 얼굴을 붉히고 의자에 걸터앉아서 입을 다물었다. '어머나, 귀여운 아가씨!' 하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소피아 또한 미소를 지었으나, 니콜라이는 사웬카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조그만 소리를 내서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웬카는 머리를 쳐들고 모두를 똑바로 응시한 채 목소리 속에 노여움을 담아서 뾰루퉁해서 말했다. "당신은 웃고 있군요. 나는 당신의 생각을 알 수 있어요...... 당신은 내가 개인적인 이해 관계에서 이 일을 계획하고 있다고 믿는 거지요?" "왜 그래요, 사웬카?" 하고 소피아가 일어나서 그녀 옆으로 다가가면서 재빨리 물었다. 이 질문은 어머니에게는 쓸데없는 것으로, 또 처녀에게는 모욕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웬카는 한숨을 내쉬고, 눈썹을 치켜들고 비난의 눈빚으로 소피아를 보았다. "나는 빠지겠어요!" 하고 사웬카는 외쳤다. "나는 당신들이 그런 식으로 보고 있다면 문제의 해결에는 참가하지 않겠어요." "그만둬요, 사웬카!"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니콜라이가 말했다. 어머니도 또한 그녀 옆으로 다가와서 몸을 구부리고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만졌다. 사웬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빨갛게 된 얼굴을 위로 쳐들고, 수줍은 듯이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사웬카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서글픈 듯이 한숨을 지었다. 소피아는 사웬카와 나란히 의자에 앉아서, 그 어깨를 안고 호기심어린 미소를 띄운 채 그녀의 눈을 돌여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군요." "그래요. 내가 아주 바보 같은 짓을 한 것 같군요." "어떻게,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죠?" 하고 소피아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니콜라이가 사무적으로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탈옥이 만일 가능한 일이라면, 그것을 계획하는데 이견이 있을 수가 없어요. 우선 먼저, 우리들이 알아내야 할 것은 옥중의 동지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사웬카는 고개를 숙였다. 소피아는 연거푸 담배에 불을 붙이고서 동생에게 흘끗 시선을 보내고, 성냥개비를 어딘가 구석에 내던졌다. "그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하고 한숨을 짓고 어머니가 말했다. "다만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가 없지만..." 모두들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탈옥이 가능하다는 것을 무척이나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베소푸쉬코프를 만나 보아야겠군요." 하고 소피아가 말했다. "내일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알려 드릴게요." 하고 사웬카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답니까?" 하고 소피아는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물었다. "그 사람은 새로운 인쇄소의 문선공으로 취직하기로 결정되었어요. 그러나 그때까지는 숲지기의 집에서 당분간 신세를 지게 될 거예요." 사웬카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얼굴은 평소의 엄격한 표정으로 변하고, 목소리는 퉁명스럽게 울렸다. 니콜라이는 찻잔을 씻고 있던 어머니 옆으로 가서, 그녀에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모레 면회를 가기로 되어 있지요? 그래서 파벨에게 편지를 좀 전해 주셔야겠어요. 그때 물어보아야 할 것은..." "나도 알고 있네. 모두 다 알고 있다네!" 하고 빠른 말로 어머니가 대답했다. "내가 건네 주겠네." "나는 이만 돌아가겠어요." 하고 사웬카는 말하고 재빨리 모두의 손을 잡은 뒤 한층 더 힘찬 발걸음으로 여윈 모습을 꼿꼿이 세우고서 방을 나갔다. 소피아는 어머니의 어깨에 양손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은 어머니를 흔들면서 미소를 담고 물었다. "닐로브나 부인, 당신은 저 처녀가 좋습니까?" "물론이지. 단 하루라도 저 아이들이 함께 있는 걸 보고 실다우." 하고 블라소바 부인은 울음이 터질 것처럼 되어서 대답했다. "네, 조그만 행복은 누구에게나 좋은 것입니다." 하고 작은 소리로 니콜라이가 말했다. "그런데 조그만 행복을 구하는 인간은 없다구요. 하지만 그러한 행복이 많이 있을 때는 그것은 싸구려가 되지요." 소피아는 피아노 앞애 앉아서 구슬픈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9 그 다음날 아침, 수십 명의 남녀가 병원 문 옆에 서서 동지의 관이 거리로 옮겨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주위에는 첩자들이 조심스럽게 빙글빙글 돌아다니면서 단편적인 외침소리를 엿듣거나 얼굴이나 행동거지나 말을 기억에 새기고 있었다. 거리의 반대쪽에는 허리에 권총을 찬 경찰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첩자들의 뻔뻔스러움이나 경찰관들의 조소적인 엷은 미소와 언제든지 자신들의 힘을 보여 주겠다고 하는 식의 태도는 군중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초조감을 숨기려고 농담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부화가 터지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불쾌하게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분노를 억누르고 말만이 무기인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관리들을 조소하고 있었다. 연푸른 가을 하늘은 회색 구름을 이고 노란 나뭇잎이 흩어져 있는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낯익은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구슬프게 생각했다. '당신들은 너무나 수가 적어요 ! 게다가 노동자는 거의 없고...' 문이 열리고 빨간 리본을 단 꽃다발을 얹은 관이 거리로 옮겨져 나왔다. 사람들은 일제히 모자를 벗었다. 마치 검은 새의 무리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붉은 얼굴에 검은 수염을 기른 키가 큰 경감이 성큼 성큼 군중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그의 뒤에서 사람들을 난폭하게 밀어 젖히면서 경찰관들이 묵직한 장화를 포석에 소리 높이 부딪쳐대면서 전진해 나갔다. 경감은 목쉰 소리로 구령이라도 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본읕 떼어내라!" 사람들이 그를 뻑빽이 둘러쌌다. 흥분한 사람들은 서로를 밀고 당기면서 그에게 뭐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눈 앞에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흥분해서 입술을 떨고 있는 얼굴이 어른거렸다. 어떤 부인의 얼굴에는 분노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폭력을 타도하라!" 하고 누군가의 젊은 목소리가 외쳤으나, 그 목소리는 왁자지껄한 소음 속으로 쓸쓸하게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 또한 비통함을 느끼고 옆에 있는 초라한 복장을 한 젊은 사람에게 분개해서 말했다. "장례식조차 동료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하다니, 이런 일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야." 적의는 높아져가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는 관 뚜껑이 흔들렸다. 바람은 리본을 비웃으며 사람들의 얼굴이나 머리에 달라붙어 메마른 천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사로 잡혀서 황급히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멋대로 하게 둬요. 리본을 떼어 버리면 된다구요. 양보하면 된다구요!" 크고 격한 목소리가 소음을 지워 버리고 울려퍼졌다. "우리들은 요구한다. 너희들에게 시달림받은 자의 마지막 길을 방해하지 말 것을." 누군가가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대는 희생이 되어 투쟁 속에서 쓰러지고 "리본을 떼어 버려라 ! 야코블레프, 잘라내라." 칼집에서 칼이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격한 소동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한층 더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사냥을 당한 늑대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잠자코 머리를 낮게 숙인 채 거리에 하나 가득 술렁거리는 발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앞쪽에서는 압수된 관 뚜껑이 뒤죽박죽이 된 꽃다발을 달고 공중에서 흔들리고, 경찰관들이 옆에 흔들거리면서 말을 타고 따라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보도를 걷고 있었다. 관은 무수한 군중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어머니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군증은 어느 틈엔가 불어나서 거리를 가득 메웠다. 군중의 뒤에도 말을 탄 경찰관들의 모습이 높이 솟아 보이고, 그 양옆에는 허리에 찬 칼을 손으로 잡고서 경찰관이 걸어갔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에 어머니가 얼굴을 알고 있는 첩자들의 날카로운 눈이 어른거리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었다. "잘 가거라, 동지여, 잘 가거라..." 하고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만하세요 !" 하고 외침소리가 울렸다. "조용히 갑시다. 여러분." 이 외침소리 속에는 엄하고 설득하는 힘이 들어 있었다. 구슬픈 노래 소리는 중단되고, 얘기 소리도 훨씬 조용해지고, 다만 포석을 때리는 힘찬 발소리만이 둔탁하고 느린 울림으로 거리를 가득 채웠다. 그 발소리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높이 올라가서 맑은 하늘 속으로 흘러들어가 먼곳에 있는 폭풍을 알리는 천둥소리의 반향처럼 공기를 떨게 했다. 차가운 바람은 점점 더 기세를 더하여, 증오스러운 듯이 가로의 먼지나 쓰레기를 정면으로 사람들에게 퍼붓고, 머리칼이나 옷을 부풀리게 하고, 눈을 못뜨게 만들고, 가슴을 때리고, 다리에 엉겨붙었다. 성직자도 없고, 마음을 죄어드는 것 같은 노래소리도 없는 이 침묵의 장례 행렬과 침울한 얼굴들은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어머니는 문득 이런 말이 떠을라 중얼거렸다. '진리를 향하는 당신들은 너무나 수가 적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고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이것은 이고르의 장례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친근하고 필요한 것을 장사지내고 있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슬프고 혐오스러운 기분이었다. 마음은 이고르를 전송해가는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안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물론'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이고르는 하느님을 믿고 있지 않았고, 저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음의 무거운 짐을 밀어 젖히고 싶은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오, 주여, 주 예수 그리스도여 ! 정말로 나도 이런 존재일까요? 주여 !' 묘지에 도착하여 한참 동안 무덤 사이의 좁은 길을 빙빙 돌아서 겨우 낮고 흰 십자가가 흩어져 있는 넓은 공터로 나갔다. 모두 무덤 주위에 모여 서서 잠자코 있었다. 무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엄숙한 침묵은 무엇인가 무서운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은 떨리고 초조해졌다. 십자가 사이로 바람이 휘몰아쳐서 관뚜껑 위에서는 뒤죽박죽이 된 꽃이 슬프게 떨리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귀를 곤두세우고 대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덤 위에 모자를 쓰지 않고 머리칼을 길게 기른 눈썹이 짙고 창백한 얼굴의 키가 큰 사나이가 일어섰다. 그리고 동시에 경찰 대장의 목쉰 소리가 울려퍼졌다. "여러분...." "동지 여러분!" 하고 강하고 잘 울리는 목소리로 검은 수염의 사나이가 시작했다. "잠깐 기다려라!" 하고 경찰관이 소리쳤다. "미리 말해 두지만, 연설은 허용할 수가 없다." "나는 간단히 한두 마디만 하겠습니다." 하고 젊은 사나이는 침착하게 말했다. "동지 여러분! 우리들의 스승이며 동지인 사람의 무덤 앞에서 맹세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절대로 그의 유지를 잊지 맙시다. 우리들은 모두 한 평생 우리들의 조국의 모든 불행의 원천에 대해서 쉬지 않고 무덤 구멍을 팔 것입니다. 조국을 압박하고 있는 증오해야 할 전제 정치에 대해서 !" "검거하라!" 하고 경찰관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일제히 터져나온 외침소리의 폭발에 지워져 버렸다. "전제 정치 타도." 군중을 밀어 젖히고 경찰관들은 연사 쪽으로 달려갔으나 사면 팔방으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던 연사는 한 손을 흔들면서 외쳤다. "자유 만세 !" 어머니는 옆 쪽으로 떠밀려났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공포에 사로잡혀서 십자가에 몸을 기댄 채 얻어맞는 것을 예상하고 눈을 감았다. 어지러운 소음이 강렬한 선풍이 되어서 귀를 멍하게 했다. 발 밑의 땅이 흔들리고, 바람과 공포가 그녀의 호홉을 가로 막았다. 경찰관의 호각소리가 요란스럽게 공중에 울려 퍼지고, 거친 호령소리가 울리고,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생울타리의 나무들이 우지직 소리를 내고, 메마른 땅을 밟는 육중한 발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로 서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어머니는 눈을 뜨고는 비명을 지르면서 양손을 앞으로 내뻗고 앞쪽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무덤 사이의 좁은 길에서 경찰관들이 머리칼이 긴 사나이를 둘러싸고, 사방팔방에서 덤벼드는 군중과 맞서고 있었다. 칼집에서 뿐힌 칼들이 차갑게 공중에 번뜩였다. 뒤엉킨 사람들의 아우성이 허공을 떠돌아다녔다. 젊은 사나이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보이며 그의 또렷한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동지 여러분! 나를 보내 주세요. 무엇 때문에 목숨을 헛되이 합니까?" 그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사람들은 울타리에서 뽑은 널빤지를 내던지고 한 사람 한 사람 뛰어서 사라져 갔다. 어머니는 억제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자꾸만 앞으로 빠져 나갔다. 그리고 니콜라이가 모자를 젖혀 쓰고, 증오에 취한 사람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책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들 머리가 돈 거요? 제발 마음을 가라 앉히세요 !" 어머니는 그의 한쪽 손이 빨개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어서 도망쳐 ! ......'' 하고 어머니는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외쳤다. "아주머니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저쪽으로 가면 맞아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소피아가 나란히 서있었다. 모자도 쓰지 않고 머리칼을 흐트린 체 마치 어린에와 같은 청년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 청년은 구타를 당해서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한 손으로 닦으면서 입술을 떨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놓아 주세요. 문제없습니다." "이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 주세요. 자아, 손수건예요. 얼굴을 감싸 주세요."하고 소피아는 빠르게 말했다. 그리고 젊은이의 손을 어머니의 손에 쥐어 주고 "빨리 가세요. 검거 당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뛰어 가버렸다.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묘지 사이를 경찰관들이 꼴사납게 외투 자락을 다리에 휘감은 채 욕설을 퍼부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청년은 늑대와 같은 눈초리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빨리 갑시다." 하고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으면서 작은 소리로 외쳤다. 그는 하고 피를 뱉어내면서 중얼거렸다. "아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아프지 않습니다. 그놈은 나를 칼자루로... 그래서 나도 그놈을 널빤지로 한 방 먹였다구요." 그놈은 신음 소리까지 내더군요."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주먹을 휘두르면서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라, 그렇게는 잘 안 될 걸, 우리들이, 모든 노동자들이 일어났을 때는 너희들을 싸움 같은 것을 하지 않고 한번에 짓밟아 주겠다." "빨리!" 어머니는 재촉을 하며 묘지 울타리의 조그만 쪽 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어머니는 울타리 너머의 들판 속에서 경찰들이 숨어 있다가 두 사람에게 덤벼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살그머니 문을 열고, 가을의 황혼으로 뒤덮인 들판을 내다 보았다. 조용함과 인기척이 없어서 안심이 되었다. "자아, 얼굴에 이 수건을 대요." 어머니가 말했다. "아니, 필요없어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요. 명예 있는 싸움입니다. 그놈이 나를 먼저 때렸으니까 나도 그놈을..." 어머니는 재빨리 상처를 감싸주었다. 피를 보자 그녀의 가슴은 연민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손가락이 축축한 따뜻함에 닿았을 때 공포를 느꼈다. 어머니는 부상당한 청년의 손을 잡고 삐르게 들판으로 데리고 갔다. 입의 붕대를 늦추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건가요? 나는 혼자 걸어갈 수 있어요." 그러나 그녀는 그가 휘청거리고 있고, 발을 옮기는 것도 부정확하며 손도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힘이 빠져가는 목소리로 얘기한 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저는 양철공인 이반이라고 하는데,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우리들 세 사람은 이고르 이바노비치 씨의 서클에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모두 양철공으로... 전부해서 열한 명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분을 무척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편안한 천국에 가시기를 ! 나는 하느님을 믿고 있지는 않지만요." 거리에서 어머니는 마차를 세워서 이반을 태우고는, 그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지금은 잠자코 있어야 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입을 손수건으로 가로 막았다. 이반은 한 손을 입 옆으로 들어 올렸지만 그 손은 힘없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역시 손수건 너머로 계속 중얼거렸다. "이렇게 얻어맞은 것을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오기까지는 치토비치라고 하는 대학생이 우리들을 가르쳐 주었어요. 정치와 경제학을요. 그리고는 검거당했답니다." 어머니는 이반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 당겼다. 청년은 갑자기 축 늘어져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공포로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심정으로 어머니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어딘가 모퉁이에서 경찰관이 달려나와 이반의 싸맨 머리를 보고, 그를 붙잡아서 죽여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술을 마신 겁니까?" 하고 마부가 뒤를 돌아다보고 호인다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물었다. "독한 술을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마셨답니다." 하고 한숨을 지으며 어머니가 대답했다. "아드님인가요?" "네, 구두장이에요. 나는 식당에 고용되어서 먹고 살고 있다우." "그렇다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군요." 말을 향해서 채찍을 휘두르자, 마부는 다시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계속했다. "조금 전에 묘지에서 싸움이 벌어 졌답니다. 어떤 정치 관계의 인물의 장례식을 하고 있었대요. 정부에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로 그 사람들은 관청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어요. 그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던 것도 그러한 사람들로 바로 그 친구들이랍디다. 그런데 그곳에서 고함을 치기 시작했대요. 정부를 쓰러뜨리자, 관청이 국민을 못살게 굴고 있다고 하면서 말이오. 경찰이 그 녀석들을 두들겨 패서 맞아 죽은 사람도 있다는 소문입디다. 아니, 경찰 쪽도 역시 당한 것 같아요." 마부는 입을 다물고, 서글픈 듯이 머리를 흔들고는 묘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죽은 사람조차도 가만히 두지 않으니 원... 놈들은 아마 무덤까지도 쫓아갈 걸요." 2인승 마차는 포석 위에서 덜커덩거리면서 튀고, 이반의 머리는 부드럽게 어머니의 가슴을 눌렀다. 마부는 비스듬하게 앉아서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무슨 큰 소동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마을에서도 술렁거리고 있지요. 그래, 어젯밤에도 우리 집 근처에 헌병들이 찾아와서는 아침 나절까지 뭔가 우물쭈물하고 있더니, 아침이 되자 대장장이를 한 사람 채포해 끌고 갔어요. 밤중에 강으로 끌고 가서 남몰래 물에 빠뜨려 죽였다는 소문입디다. 그 대장장이는 착실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오." "그 사람 이름은 뭐지요?"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그 대장장이 말입니까? 사벨리라고 하는데, 보통 예프첸코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지요. 젊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었어요. 유식하다는 것도 죄가 되는 세상인 모양입디다 ! 자주 찾아와서는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당신들의 생활은 어떤가요, 마부 아저씨 ?' '분명히 개만도 못한 생활이지.' 하고 우리들은 말했었지만요." "여기 좀 세워 줘요!"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이반은 덜컹하고 멈춰 선 충격에 정신을 차리고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젊은이, 고주망태로군!" 하고 마부는 말했다. "정말이지 그 보드카라는 술은..." 가까스로 발을 옮기고 온몸을 휘청거리면서 이반은 안뜰을 걸어가며 말했다. "문제없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10 소피아는 벌써 집에 돌아와 있었다. 소피아는 담배를 입에 물고 성급하게 흥분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맞이했다. 부상자를 장의자 위에 눕히고 소피아는 손수건을 능숙하게 풀고 담배 연기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지시했다. "이반 다닐로비치 박사님, 부상자가 왔어요. 아주머니, 피곤하시죠? 놀라셨죠. 그렇죠? 자아, 좀 쉬세요. 니콜라이, 아주머니께 포도주를 한 잔 드려." 어머니는 방금 경험한 일 때문에 망연해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웠고, 가슴은 고통으로 터질 것 같았지만 조용하게 말했다.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머니는 누군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옆방에서 손에 붕대를 감은 니콜라이와 고슴도치 처럼 완전히 머리칼을 곤두세운 의사 이반 다닐로비치가 나왔다. 그는 성큼성큼 이반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위에 몸을 숙이고 말했다. "물을 줘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깨끗한 붕대와 탈지면도." 어머니는 재빨리 부엌으로 가려고 했으나 니콜라이가 어머니의 팔을 잡고 식당 안으로 끌고 들어가면서 상냥하게 말했다. "아주머니에게 말한 게 아닙니다. 소피아에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주머니, 마음 고생이 심했지요. 그렇지요." 어머니는 빤히 니콜라이의 얼굴을 웅시했다. 그의 다정한 눈매에 부딪치자 더이상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세상에 그런 일이 다 있을 수 있느냐구 ! 사람을 칼로 베더라구. 사람을 칼로 내리쳤다니까 !" "저도 보았어요." 하고 그녀에게 포도주를 건네 주면서 니콜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양쪽 모두 신경 과민이 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그놈들은 칼등으로 내려쳤기 때문에 증상을 입은 것은 단 한 사람 뿐인 것 같으니까요. 그 사람은 내 눈 앞에서 얻어맞았는데, 내가 그 사람을 끌어냈으니까요." 니콜라이의 얼굴과 목소리, 방 안의 따뜻함과 빚이 블라소바 부인을 침착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감사의 눈빚으로 니콜라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도 맞았나?" "아니에요. 무엇인가에 손을 긁혀서 살갖이 벗겨진 것 같아요. 차를 좀 드세요. 추운 데도 얇은 옷을 입고서." 어머니는 찻잔에 손을 뻗었으나 자신의 손가락이 말라 붙은 피의 반점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보고는 엉겁결에 손을 무릎 위에 내려 놓았지만 스커트가 젖어 있었다. 눈을 치켜뜨고 눈썹을 쳐든 어머니는 곁눈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어찔어찔하고 심장은 마구 방망이질을 쳤다. '이런 식으로 파벨이 당할지도 몰라.' 이반 다닐로비치 박사가 조끼를 입고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왔다. 그리고 니콜라이의 무언의 질문에 대해서 말했다. "얼굴의 상처는 별로 대단치 않지만, 두개골에 금이 가있네. 하지만 염려하지 않아도 돼. 원기왕성한 젊은이니까 ! 그러나 출혈은 심했네. 병원으로 보내세." "왜 그러나? 여기에 놓아 두라구!" 하고 니콜라이가 외쳤다. "오늘도 좋고, 아니 내일이라도 좋네. 병원에 보내주는 편이 나에게는 가장 핀리하네. 나는 왕진을 할 시간이 없네. 자네는 묘지 사건에 대해서 유인물을 써주겠나?" "물론 쓰겠네!" 하고 니콜라이는 대답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갔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아주머니 ?" 하고 니콜라이는 걱정이 되어서 불러 세웠다. "소피아 누님이 혼자 다 할 수 있어요." 어머니는 그에게 시선을 보내고 몸을 떨면서 묘한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피가 많이 묻어서..." 자신의 방에서 옷을 갈아 입으면서 어머니는 다시 한번 이 사람들의 침착한 태도와 끔찍한 일에 즉각 대처하는 힘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냉정을 되찾고, 마음 속의 공포를 떨쳐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부상자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소피아는 그 젊은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말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그것은 !"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구요." 하고 젊은이는 쇠약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잠자코 있어요. 그쪽이 당신에게 좋으니까." 어머니는 소피아 뒤에 서서 그녀의 어깨에 양손을 올려 놓고 미소를 머금고 부상자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가 삯마차 위에서 헛소리를 하며 이상한 말을 떠들어대서 그녀를 조마조마하게 만든 일을 웃으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반은 잠자코 듣고 있었으나, 그 눈은 열병처럼 불타고 있었다. 그는 혀를 차면서 작은 소리로 계면쩍은 듯이 말했다. "저는 바보 같은 녀석이에요.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그럼, 우리들은 저쪽에 가 있겠어요!" 하고 담요를 다시 덮어 주면서 소피아가 말했다. "푹 자요 !" 식당으로 나온 두 사람은 오늘의 사건에 대해서 오랫동안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이 극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벌써 먼 옛날의 일과 같은 태도였고,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고 내일에 대한 방법을 의논했다. 얼굴은 지쳐 있어도 생각은 원기왕성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얘기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의사는 의자 위에서 신경질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가늘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억지로 누르면서 말했다. "선전을 해야 하네, 선전! 이것이 지금 부족하네. 청년 노동자들이 말하고 있는 대로야! 선동을 좀더 확대할 필요가 있네. 노동자들이 말하는 대로야." 니콜라이는 음울하게 그의 말투에 맞춰서 대답했다. "도처에서 인쇄물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와있는 데도, 우리들은 아직까지 인쇄소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네. 류드밀라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어. 만일 우리들이 도울 사람들을 붙여 주지 않는다면, 류드밀라는 병에 걸리고 말 걸세." "그럼, 베소푸쉬코프는?" 하고 소피아가 물었다. "그는 시내에서는 살 수가 없지. 그는 새로 만드는 인쇄소밖에는 일을 할 수가 없고, 이쪽 인쇄소에도 한 사람이 부족하다구." "내가 하면 어떨까?" 하고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가 물었다. 세 사람은 일제히 어머니를 보았으나 한참 동안 잠자코 있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하고 소피아가 외쳤다. "안 됩니다. 그것은 아주머니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입니다" 하고 냉담하게 니콜라이가 말했다. "일을 시작하면 아주머니는 시외에 사셔야하고, 파벨과의 면회도 할 수 없게 되고, 게다가 애당초.." 한숨을 짓고 어머니가 반대했다. "파벨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별로 대단한 손해도 아니고, 게다가 나에게 있어서도 면회는 다만 마음을 찢어 놓기만 한단 말일세. 아무것도 얘기를 할 수가 없으니까. 아들 앞에서 병신처럼 우두커니 서있고, 놈들은 이쪽의 입을 지켜 보면서 뭔가 쓸데없는 말을 지껄여대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고 있다네." 지난 며칠 동안의 사건은 어머니를 완전히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겪은 사건으로부터 떠나 시외에서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어머니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러나 니콜라이는 그 이야기를 묵살하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이반?" 하고 니콜라이는 의사를 향해서 물었다. 탁자 위에 낮게 숙이고 있던 머리를 쳐들고서 의사는 우울하개 대답했다. "우리들은 너무 인원수가 적단 말일세. 좀더 정력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 돼. 그리고 파벨과 안드레이를 설득해서 탈옥시키지 않으면 안 되네. 그 두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감옥에 들어가 있기에는 너무나도 귀중한 존재니까 말일세." 니콜라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힐끔 어머니에게 시선을 보내더니 의심스러운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머니는 자기가 있으면 아들 얘기를 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모두가 그녀의 희망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노여움을 가슴에 안은 채 자신의 방으로 나갔다. 눈을 뜬 채로 침대에 누워서 어머니는 어렴풋한 속삭임소리를 들으면서 불안한 기분에 잠겼다. 어머니는 오늘 하루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래서 어머니는 파벨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유로운 몸이 된 아들을 보고 싶었으나, 동시에 그것은 그녀에게는 무서웠다. 그녀에게는 자기 주위에서 모든 것이 첨예화되어 가고, 격렬한 충동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침묵의 인내도 조금씩 깨어지고 도처에서 무엇인가 흥분시키는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유인물이 한 장씩 뿌려지면 시장에서, 상점에서, 하인이나 공원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시내에서 검거가 있을 때면 사람들은 잠시 의기소침해지지만 곧 검거의 부당성을 토로하며 운동가들을 격려하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어머니는 반란이라든가, 사회주의자라든가, 정치라든가 하는, 예전에 자신을 놀라게 만든 말을 점점 더 빈번하게 일반 서민의 입에서 듣게 되었다. 그러한 말들은 조소적으로 얘기 되어졌으나, 그 조소의 항간에는 알고 싶어하는 끈질긴 욕망이 어설프게 숨겨져 있었다. 증오를 가지고 얘기할 때는 공포가 느껴졌으며, 사려깊게 얘기할 때는 희망과 위협을 포함하고 있었다. 선동이 점차 활기를 띠게 되자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삶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차차 모임에 관심을 보이다가 참석하게 되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그 동안 지켜온 침묵이 억울하다는 듯이 매일 사건을 일으켰고, 습관적으로 살던 일상 생활도 뒤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보다도 많이 생활의 음울한 모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고통과 분노로 패인 주름살의 원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사람들의 이러한 변화가 기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자신의 아들이 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기뻤지만 만일 아들이 감옥에서 나온다면, 가장 위험한 장소에 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은 또다시 위험한 처지가 될 것이다. 위험한 처지란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아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서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아들은 그녀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영웅적인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면 감동한 그녀는 조용한 환희 속에서 아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희망에 가득 차서 생각했다. '모든 것이 좋아질 거야, 모든 것이.' 그러다가 곧 모성애가 불타 올라서, 거의 아플 정도로까지 가슴을 옥죄었다. 자랑스러운 감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불길하고 슬픈 생각에 몸 부림쳤다. '그 아이는 죽을 거야. 모든 게 끝장날 거야.' 11 정오에 어머니는 감옥의 면회실에서 파벨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물기어린 눈으로 아들의 수염 투성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손가락 사이에 숨겨들고 있는 종이쪽지를 아들에게 건네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잘 있습니다. 모두 잘 있어요!" 하고 아들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별일 없단다. 이고르 이바노비치 씨가 죽었단다!" 하고 기계적으로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요?" 하고 파벨은 외치며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장례식 때 경찰이 싸움을 걸어와서 한 사람이 검거되었다더구나." 하고 어머니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계속했다. 감옥의 부 소장이 화를 내며 입술을 내밀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그런 얘기는 금지되어 있다. 모르겠는가! 정치 얘기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단 말이다." 어머니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시늉을 하면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정치 얘기를 한 게 아닙니다. 싸움 얘기를 한 거예요. 그 사람들이 싸움을 한 것은 사실이쟎아요. 한 사람, 머리가 깨진 사람도 있었구요." "어쨌든 마찬가지요. 그 얘기는 더이상 하지 마시오 ! 그러니까 당신과 직접 관계가 없는 일, 일반적으로 말해서 당신네 집에 관계가 없는 일은 말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오." 부 소장은 자신의 말이 혼란된 것을 느끼고, 책상을 향해 앉아 서류를 들치면서 힘 없이 축 늘어져서 말했다. "나에게 책임을 물으니까..." 어머니는 흘끗 주위를 살펴보고 재빨리 파벨의 손에 종이 쪽지를 밀어 넣고 나서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얘기를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네." 파벨은 엷은 웃음을 띄었다. "나도 모르겠는데요." "그렇다면, 면회할 필요가 없지!" 하고 관리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얘기할 것도 없는데 찾아와서 번거롭게 하는군." "재판은 언제 열리냐?" 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어머니가 물었다. "얼마 전에 검사가 와서 곧 열릴 거라고 했어요." 두 모자는 서로 중요하지도 않은 말을 주고 받았다. 어머니는 파벨의 눈이 애정을 담아서 자신의 얼굴을 다정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함없이 아들은 침착해 보였다. 다만 수염이 길게 자라서 나이보다 늙어 보이고, 손목도 희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뭔가 기분좋은 일을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자 니콜라이의 일이 떠올랐다. 목소리를 바꾸지 않고 필요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을 얘기하던 것과 같은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네 대자를 만났단다." 파벨은 무언의 질문을 담아서 빤히 어머니의 눈을 응시했다. 베소푸쉬코프의 곰보상을 상기시키려고 어머니는 자신의 뺨을 손가락으로 찔러 보였다. "그 아이는 무사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단다. 이제 곧 일자리도 정해질 거야." 아들은 어머니의 말뜻을 알아 차리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눈에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 참 잘 됐군요." "그럼, 그렇지?" 하고 어머니는 아들이 기뻐한 것에 감동해서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헤어질 때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아들에 대한 친근감과 애정이 취기처럼 어머니의 머리로 올라왔다. 그래서 말로는 표현 할 길이 없어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가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자, 사웬카가 와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닐로브나 부인이 면회를 간 날에 찾아왔다. 사웬카는 절대로 파벨에 대한 것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어머니가 자기 쪽에서 먼저 그의 얘기를 하지 않으면 뚫어질 듯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웬카는 걱정스러운 눈빚으로 어머니를 맞았다. "그래,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던가요?" "별로 달라진 건 없더구먼, 건강히 잘 있더라구." "종이쪽지는 전하셨어요?" "물론! 감쪽같이 전해 주었지." "그 사람이 읽어 보던가요?" "그곳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그래요. 깜빡 잊고 있었네요." 하고 천천히 아가씨는 말했다. "앞으로 일 주일을 기다려야 하겠네요. 일 주일! 하지만 아주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사람은 찬성할까요?" 사웬카는 미간을 찌푸리고 뚫어질 듯한 눈초리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하고 어머니는 궁리했다. "만일 그것이 위험하지 않다면 탈옥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나?" 사웬카는 고개를 흔들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환자에게 무엇을 먹이면 좋은지 아주머니는 알고 계시죠? 배가 몹시 고픈가 봐요." "아무거나 괜찮아. 아무거나! 내가 지금 준비하지."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고, 사웬카는 천천히 뒤따라왔다. "거들어 드릴까요?" "고맙지만, 그럴 필요없어." 어머니는 냄비를 집으려고 몸을 구부렸다. 처녀는 작은 소리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눈은 슬픔으로 크게 벌어지고, 떨리는 입술에 힘을 주고 빠른 말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께 부탁이 있어요. 나는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은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 아주머니가 설득해 주세요. 그 사람이 필요해요. 그 사람이 사업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 또 그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고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에게 꼭 말씀해 주세요. 아주머니도 알고 계시쟎아요? 재판 일자도 아직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구요." 그녀는 자못 얘기하는 것이 괴로운 것 같았다. 사웬카는 온몸을 똑바로 일으켜세우고 옆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눈꺼풀을 축 늘어뜨리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는데, 꽉 움켜진 주먹에서는 손가락이 우둑우둑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처녀의 걱정에 압도당했지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슬픈 감정으로 가득 차서 사웬카를 끌어 안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 아이는 자기 외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네! 어느 누구의 말도!" 두 사람은 몸을 찰싹 붙인 채 잠자코 있었다. 이윽고 사웬카는 자신의 어깨에 얹혀진 어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고 몸을 떨면서 말했다. "그래요. 아주머니의 말씀 대로예요. 이런 일은 모두 바보스러운 짓이에요.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져서." 그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진지해졌다. "그것은 그렇고 환자에게 식사를 좀 줘야겠어요." 이반의 침대 옆에 앉은 사웬카는 상냥하게 묻고 있었다. "아직도 머리가 아픈가요?" "그다지 심하지는 않은데, 그냥 모든 것이 다 몽롱합니다! 게다가 힘이 없고..." 하고 이반은 계면쩍은 듯이 담요를 턱까지 끌어을리면서 대답하고, 마치 밝은 빛을 정면으로 받은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사웬카는 그가 자기 앞에서는 음식을 먹을 결심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이반은 침대 위에 앉아서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고 눈을 깜빡이면서 말했다. "아름다운 분이세요." 이반의 눈은 밝고 빚났다. 이빨은 가늘고 빈틈없이 늘어서 있고, 그리고 아직 변성이 되어 있지 않았다. "자네는 몇살인가?"하고 어머니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물었다. "17세입니다."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지?" "시골에 계십니다. 나는 열 살 때부터 이곳에 와있었어요. 학교를 마치고 바로 이곳에 왔습니다. 아주머니 성함은 어떻게 됩니까, 동지?" 어머니는 언제나 이 '동지'라고 하는 말로 얘기를 걸어오면 우스워지기도 하고, 또 감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알고 싶은 건가?" 젊은이는 난처해져서 잠시 입을 다물고 나서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쟎아요. 우리들에게 강의를 해주던 대학생 말이에요. 그 사람이 우리들에게 노동자인 파벨 블라소프의 어머님 얘기를 해주었거든요. 아시죠, 메이데이 사건을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귀를 곤두세웠다. "그분이 우리 당의 깃발을 당당히 내걸었다구요!" 하고 젊은이는 긍지를 가지고 말했는데, 그의 긍지는 어머니의 마음에도 공명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그 자리에는 없었어요. 우리들은 그때 다른 곳에 집결해 있었거든요.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적게 모였거든요. 그러나 다음 번에는 꼭 보아 주십시오." 이반은 앞으로 다가올 사건을 미리 그리면서 흥분으로 목이 메어 스푼을 공중에 휘둘러 대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 블라소바 어머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도 역시 그 뒤에 당에 입당했답니다. 참으로 훌륭한 분이라는 소문입니다." 어머니는 크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청년의 찬사를 듣는 것이 유쾌하면서도 어색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내가 그 블라소바예요!' 하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것을 억누르고 '주책 없는 할멈이로군' 하고 자신을 보고 속으로 말했다. "자아 좀더 많이 먹어요.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해서 빨리 회복해야지요." 하고 어머니는 이반 쪽으로 몸을 구부리고 갑자기 흥분해서 말을 했다. 문이 열리고 축축한 가을의 냉기와 함께 소피아가 뺨을 빨갛게 상기시킨 채 기분이 좋아서 들어왔다. "스파이들이 나를 뒤쫓아다니는 것이 영락없이 부잣집 처녀를 쫓아다니는 신랑 후보 감들 같다니까요. 정말이에요. 당분간 이곳에서 자취를 감춰야겠어요. 그런데 이반은 어때요? 괜찮나요, 닐로브나 부인?" "파벨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던가요? 사웬카는 왔습니까?"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질문을 하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어머니와 젊은이를 회색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녀를 바라보고 마음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생각했다. '이처럼 나도 좋은 사람들의 동지가 되어 있구나.' 그리고 또다시 이반 쪽으로 몸을 구부리고 말했다. "빨리 나아야 하네, 착한 청년이니까." 그리고 식당으로 나갔다. 그곳에서는 소피아가 사웬카에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류드밀라는 벌써 3백 부나 완성했더군요. 그 사람은 이렇게 일을 하다가는 자신을 죽이고 말 거예요. 영웅이에요. 이봐요. 사웬카,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고, 그 동지가 되어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라구요." "그렇습니다." 하고 처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밤에 차를 마시고 난 뒤에 소피아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주머니, 다시 그 마을에 갔다오셔야겠어요." "네, 상관없어요. 언제죠?" "사흘 쯤 지나서요. 괜찮겠지요?" "좋아요." "마차를 타고 가세요." 하고 작은 소리로 니콜라이가 권했다. "우편 마차를 빌려 타고 이번에는 다른 길로, 그러니까 니콜스크 마을을 지나서 가세요." 니콜라이는 입을 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은 그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았으며, 항상 차분하던 표정을 이상하게 흉하게 바꿔 버렸다. "니콜스크를 지나서 가는 건 좋지만!"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나 마차를 타고 가는 건 비싸게 먹히는데." "그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애당초 이번 여행은 반대했어요. 그곳은 무척 소란스럽고 벌써 여러 차례나 검거가 있었으며, 교사도 체포당했기 때문에 충분히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데..." 소피아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말했다. "우리들은 그 인쇄물의 배포를 중단헤서는 안 돼요. 널로브나 부인, 당신은 가는 게 무서운 건 아니겠지요?" 하고 소피아가 돌연 물었다. 어머니는 모욕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언제 무서워했었나? 처음에 할 때도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게다가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갑자기..."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머리를 떨구었다. 어머니는 무섭지 않느냐라든가,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 언제나 이와 같은 질문 속에는 모두가 자신을 옆으로 젖혀놓고 자신들의 동지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보고 무서워하지 않느냐고? 그런 것을 묻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구." 하고 어머니는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자네들 끼리는 서로 무섭지 않느냐고 묻지를 않쟎은가?" 니콜라이는 황급히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쓰고 빤히 누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어색한 침묵이 블라소바 부인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듯이 의자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뭔가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피아가 그녀의 팔에 손을 얹고 작은 소리로 부탁했다. "미안해요! 이제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그 말을 듣자 어머니의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몇 분 뒤 세 사람은 걱정스러운 듯이 사이좋게 여행에 대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12 이틀 뒤, 새벽 녁에 어머니는 가을비로 씻겨진 길을 우편마차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고 진흙탕이 물을 튕겨댔다. 마부는 마부대에서 절반은 어머니 쪽을 향해 앉아 수심에 잠겨 콧소리로,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형에게 말했지요. 어때요. 나누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하고 말입니다. 우리들은 나누기 시작했지요." 마부는 갑자기 왼쪽 말에게 채찍을 먹이더니 밉살스러운 듯이 외쳤다. "왜 그러는 거야 ! 장난치지 말라니까. 그래, 네 어미는 마녀야"' 기름기가 오른 까마귀가 바쁜 듯이 벌거벗은 밭을 걸어다니고, 차가운 바람이 으르렁거리면서 그 위를 덮쳤다. 까마귀들은 옆구리에 바람을 맞아 깃털이 부풀어 오르고, 비틀거렸다. 까마귀는 날개를 치며 새로운 장소로 날아 옮겨갔다. "그런데 그놈은 나를 속였다구요. 정신을 차려 보니까 내가 차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하고 마부는 말했다. 어머니는 마부의 말을 마치 꿈이라도 꾸듯이 듣고 있었다. 기억은 그녀 앞에 지난 몇 년 동안에 경험한 사건의 길다란 행렬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어머니는 도처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생활은 어딘가 먼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어서, 그것은 누가 무엇 때문에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많은 일이 그녀의 눈앞에서, 그녀의 조력을 얻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에게 자신에 대한 불신과 만족, 의혹과 조용한 우울이 뒤얽힌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주위의 것은 모두 완만한 움직밈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잿빚 비구름이 무겁게 쫓고 쫓기면서 흘러갔다. 길 양쪽에서는 젖은 나무들이 벌거벗은 가지를 흔들어대고, 밭들은 빙글빙글 돌아서 사라져가고, 그리고 언덕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져 갔다. 마부의 콧소리와 방울 소리와 바람의 습기찬 신음소리는 술렁거림이 뒤섞인 구불구불한 시냇물이 되고, 그것은 단조로운 힘이 되어서 들판 위를 흘러갔다. "부자들은 천국에 가도 골치가 아플 거예요. 이곳에서야 돈만 있으면 관청도 친구가 돼주지만요." 하고 마부대에서 몸을 흔들어 대면서 그는 얘기를 계속했다. "5코페이카만 주시지 않겠소. 한 잔 걸치고 싶은데요 !" 어머니는 동전을 주었다. 그러자 마부는 그 돈을 손바닥 위로 획 하고 던져 올리더니 같은 어조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3코페이카로 보드카를 마시고, 2코페이카로 빵을 사 먹어야겠소." 정오가 지나서 파김치가 되고, 꽁꽁 얼어붙은 어머니는 니콜스크의 커다란 마을에 도착하여 역 부근에서 차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자신의 무거운 트렁크를 의자 위에 올려 놓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람들이 지나 다녀서 지저분한 융단처럼 된 노란색 풀로 뒤덮인 조그만 광장과 마을의 면사무소, 지붕이 축 늘어진 암회색 집이 보였다. 면사무소의 계단 입구에는 대머리의 수염이 긴 농사꾼이 셔츠 바람으로 걸터앉아서 파이프를 피우고 있었다. 풀 위를 돼지가 돌아 다니고 있었다. 그 돼지는 불만스러운 듯이 귀를 털고 콧등을 땅바닥에 쭈셔넣고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비구름이 어두운 덩어리가 되어서 서로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조용하고 어두컴컴해지며 적적했다. 생활은 마치 어딘가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경찰이 광장으로 말을 타고 달려왔다. 면사무소 계단 아래에 붉은색 털의 말을 세우더니, 채찍을 공중에 휠둘러 대면서 농사꾼에게 고함을 쳤다. 외침소리는 유리창을 드르르 울리게 했으나 말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농사꾼은 일어서서 한 손을 내밀어 먼 곳을 가리켰다. 경찰은 땅으로 뛰어내려 비틀거리다가 농사꾼에게 고삐를 던져 주고, 양손으로 난간을 잡고 힘이 드는 듯이 계단을 을라가서 면사무소의 문으로 모습을 감췄다. 또다시 조용해졌다. 말은 두 번 부드러운 땅을 발굽으로 찼다. 가게 안으로 소녀가 들어왔다. 뒷 덜미에 노란 머리 다발을 늘어뜨린 동그란 얼굴의 눈이 부드러운 소녀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찻잔을 얹는 가장자리가 깨진 커다란 쟁반을 양손 위에 들고 와서는 머리를 숙이고 절을 했다. "안녕! 영리한 아이로구나." 하고 어머니는 다정스럽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테이블 위에 접시와 찻잔을 늘어 놓으면서 소녀는 갑자기 신이 나서 말했다. "지금 강도가 붙잡혀서 끌려가는 중이에요." "도대체 어떤 강도인데?" "잘 모르겠어요." "어떤 짓을 했는데?" "모르겠어요" 하고 그녀는 되풀이했다. "붙잡혔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니까요. 면사무소의 수위가 서장님을 부르러 갔어요." 어머니는 창밖을 보았다. 광장에 농사꾼들이 나타났다. 느릿느릿 차분하게 걷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황급히 걸어오면서 반 외투의 단추를 채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들 면사무소 계단 밑에 멈춰 서서 어딘가 왼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도 또한 거리로 시선을 보내더니, 문을 소리나게 닫으며 뛰쳐 나갔다. 어머니는 부르르 몸을 떨고 자신의 트렁크를 의자 밑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머리에 솔을 쓰고서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빨리 달려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행동했다. 계단으로 나가자 날카로운 한기가 눈과 가슴을 파고 들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리는 막대기처럼 뺏뺏해졌다. 광장 한가운데를 루이빈이 양손을 뒤로 묶인 채 걸어오고 있었고, 그 옆에는 두 사람의 경찰이 걸으면서 지팡이로 리듬에 맞춰서 땅을 두드리고 있었다. 면사무소 계단 옆에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서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넋을 잃고 눈을 떼지 않은 채 응시하고 있었다. 루이빈이 뭐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그 말은 떨리는 가슴에 아무런 의미도 전달해 주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숨을 들이 쉬자 계단 옆에 길다란 턱수염을 기른 농사꾼이 푸른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질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기침을 하고, 공포 때문에 기운이 빠져 버린 손으로 목을 문지르고는 가까스로 그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굽니까?" "하여간 보고만 있으시오." 하고 농사꾼은 대답하고 얼굴을 돌렸다. 또 한 명의 농사꾼이 다가와서 나란히 섰다. 경찰은 군중 앞에서 멈춰 섰다. 군중은 자꾸만 수가 불어나고 있었으나 모두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돌연 루이빈의 목소리가 굵게 울려 퍼졌다. "농부님네들, 나는 도둑이 아니오.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 남의 집에 불을 지르지도 않았소, 거짓과 대항해서 싸웠을 뿐이오. 당신네들은 우리들 농사꾼의 생활에 대해서 참말이 씌어 있는, 신용할 수 있는 책에 대해서 들어 본 일이 있소? 그래서 그 책 때문에 나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소!" 사람들은 점점 더 빽빽하게 루이빈을 둘러쌌다. 그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똑똑하게 울렸다. 그것이 어머니에게 제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자네, 들었나?" 눈이 파란 농사꾼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또 한 사람의 농사꾼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상대방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머리를 들고, 또다시 어머니의 얼굴에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또 다른 농사꾼도 어머니를 보았다. 그는 첫번째 농사꾼보다 젊고, 색깔도 짙은 드문드문한 턱수염을 기르고, 죽은 깨가 많은 여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 두 사람은 계단에서 옆쪽으로 멀어져 갔다. '나를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하고 어머니는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그녀의 주의는 날카로워졌다. 계단의 높은 곳에서 어머니는 똑똑히 루이빈의 상처 투성이가 된 검은 얼굴을 보고, 그의 눈의 불타는 것 같은 빚을 알아 보았다. 어머니는 그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발돋움을 하고 그가 있는 쪽으로 목을 길게 뺐다. 사람들은 불쾌한 듯이, 그리고 의심쩍어하는 듯이 루이빈을 바라보고 잠자코 있었다. 다만 군중의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듯한 얘기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농민 여러분!" 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루이빈이 얘기했다. "이 종이를 믿어 주십시오. 나는 지금 그 종이 때문에 살해당할지도 모릅니다. 나를 때리고, 고문을 하면서, 내가 이 종이를 어디에서 손에 넣었는가를 알아 내려고 했소. 앞으로도 두고두고 때리겠지만 무슨 짓을 해도 견디어 낼 작정이오! 그것은 이 책들 속에는 진리가 있고, 이 진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빵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아 듣겠소?" "저놈은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 하고 계단에 서있던 농사꾼 하나가 작은 소리로 외쳤다. 눈이 푸른 농사꾼은 아무 말 없이 생각하는 듯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마찬가지요. 두 번 죽는 일은 없으며, 한 번 죽는 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사람들은 잠자코 서서 이마 너머로 음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군중들 위로 무엇인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겁고 가슴답답한 것이 내리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계단 위에 경찰관이 나타나서 몸을 흔들거리면서 술취한 목소리로 고함치기 시작했다. "그런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게 어떤 놈이냐?" 그는 갑자기 계단 위에서 뛰어 내려와 루이빈의 머리칼을 잡고 흔들면서 소리쳤다. "네 녀석이 지껄여댔지, 이 새끼야? 너지 ?" 군중이 기우뚱하니 한쪽으로 흔들리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자아, 잘 봐두시오 여러분." "닥쳐라!" 경찰관은 그의 귀를 때렸다. 루이빈은 비틀거렸으나 어깨를 쳐들어 보였다. "남의 손을 묶어 놓고 마음껏 괴롭히는군." "이놈을 끌고 가라. 모두들 해산하라!" 경찰관은 고기 조각 앞에 쇠사슬로 매어진 개처럼 루이빈 앞에서 뛰어 다니면서 그의 얼굴과 가슴과 배를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때리지 마라!"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무엇 때문에 때리는 거야?" 하고 또 다른 소리가 응원했다. "가세." 하고 눈이 푸른 농사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면사무소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호의를 담은 눈으로 두 사람의 뒷 모습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녀는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관이 다시 계단을 근엄하게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먹을 휘두르면서 미친 사람처럼 악을 써대고 있었다. "그놈을 이리로 데리고 와! 이리로 데리고 오라고 말했쟎아." "그럴 필요없다!" 하고 군중 속에서 힘찬 목소리가 울렸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한 것은 푸른 눈의 농사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짓은못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저쪽으로 끌려가도록 내버려 두면 맞아 죽을 겁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는 우리들에게, 너희들이 죽였다고 뒤집어 씌울 거라구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농민 여러분!" 하고 루이빈의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당신들은 정말로 자신의 생활이 보이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착취당하고 속아 넘어가고, 피를 빨리우고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겠소? 모든 것이 당신들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 지상의 첫번째 힘이란 말이오. 그런데도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소? 굶어서 개죽음을 하는 것이 그것만이 당신들의 권리란 말이오." 농사꾼들은 갑자기 서로가 상대방을 가로막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말하는 게 사실이다." "서장을 불러와라! 서장은 어디 있느냐?" "경찰이 말을 타고 부르러 갔다." "그 술주정뱅이가 !" "관리를 부르건 말건 우리들이 알 바가 아니다." 소동은 점점 더 커지고 높아져 갔다. "계속 얘기해요. 우리가 당신을 못 때리게 하겠소." "조심해라. 공연히 말려들면 곤란하다구." "우선 손을 풀어 주시오." 모든 목소리를 누르고 완만하게 울림이 좋은 목소리로 루이빈이 말했다. "나는 도망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농민 여러분! 나는 진리로부터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진리는 내 뼈속에서 살고 있소." 몇 사람의 농사꾼이 군중에게서 떨어져서 수군수군 말을 나누고, 머리를 혼들면서 여러 가지 방향으로 흩어져 갔다. 그러나 허술한 옷을 서둘러 걸치고 흥분해서 달려오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더 불어났다. 그들은 루이빈 주위에 어두운 물결처럼 되어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루이빈은 양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숲속의 종각처럼 그들 사이에 서서 그 손을 흔들면서 군중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친절한 여러분, 고맙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묶여 있는 손을 풀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고 말고요! 누가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루이빈은 턱수염을 만지고 또다시 피투성이가 된 손을 치켜들었다. "이것이 나의 피요. 진리를 지키면서 흐르고 있는 피란 말이오 !" 어머니는 계단을 내려갔으나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루이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다시금 계단의 발판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가슴은 뜨거워져서 즐겁게 떨고 있었다. "농민 여러분! 책을 찾아내서 읽어 주십시오. 관리나 성직자들이 우리들을 위해서 진리를 가져다 주려는 사람들을 무신론자라느니, 모반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놈들이 말하는 것을 신용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는 은밀히 지상을 걸으며 민중 속에 그 동지를 구하고 있습니다. 관리들에게는 그것은 칼이나 불 같은 것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관리들을 베고 불태우니까요! 진리는 당신들게는 좋은 친구지만, 관리들에게는 원한이 맺힌 원수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숨어 있는 것입니다." 또다시 군중 속에서 외침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스 정교도 여러분, 들어 보시오 !" "아, 아, 형제, 자네는 당하고 말 거야." "당신을 배반한 것은 누구요?" "성직자다!" 경찰관 중 하나가 말했다. 두 농사꾼이 심한 욕설을 서로에게 퍼부어댔다. "조심해요. 모두들!" 누군가 다급하게 위험을 알리듯이 외쳤다. 13 둥근 얼굴에 키가 크고 단단한 몸매를 가진 경찰 서장이 군중 쪽으로 걸어 갔다. 모자를 옆으로 비스듬히 쓰고, 한쪽 콧수염은 위쪽으로 비틀려 올라가고, 한쪽은 밑으로 처져 있었다. 그 때문에 서장의 얼굴은 비뚤어져 보이고, 움직이지 않는 미소로 흉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왼손에 칼을 들고, 오른손을 공중에 휘두르고 있었다. 서장의 둔중하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군중은 서장 앞에서 길을 비켰다. 뭔가 음침하고 압박당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사람들의 얼굴 위에 나타나고, 소동은 마치 땅 속으로 기어들어간 듯이 조용해지고 낮아졌다. 어머니는 이마의 피부가 떨리고, 눈이 뜨거워진 것처럼 느꼈다. 어머니는 또다시 군중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져서 앞으로 몸을 구부리고 긴장한 자세로 꼼짝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하고 경찰 서장은 루이빈 앞에 멈춰 서서 그를 찬찬히 살펴 보면서 물었다. "왜 손을 묶지 않고 있느냐? 니키타, 어서 묶어라 !" 서장의 목소리는 강하고 잘 울렸으나 윤기가 없었다. "묶어 놓았었지만 모두가 풀어 주었습니다." 하고 경찰 중 하나가 말했다. "뭐라고? 모두라고? 모두라니, 그게 누군가?" 서장은 그의 앞에 반원형을 이루고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아까와 꼭 같은, 표정이 없는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그 모두라는 건 도대체 누구냐?" 경찰 서장은 칼 자루를 한 번 흔들고, 푸른 눈의 농사꾼 가슴을 찔렀다. "튜마코프, 모두라고 하는 건 너겠지 ? 그리고 그 밖에 또 누구지 ? 미쉰, 너냐?" 그리고 오른손으로 누군가의 턱수염을 잡아당겼다. "해산해라, 이 불한당 놈들아! 해산하지 않으면 너희들 모두 혼줄을 내주겠다" 서장의 목소리와 얼굴에는 분격도 협박도 없었다. 그는 침착을 잃지 않고 얘기하고, 익숙해진 거리낌 없는 동작으로 때렸다. 사람들은 서장 앞에서 뒷걸음질을 치고, 머리를 떨구고,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어찌된 거냐? 뭐야, 너희들은!" 하고 서장은 경찰들에게 명령했다. "어서 묶어라 !" 실컷 욕을 퍼붓고 나서 서장은 다시금 루이빈을 향해 커다란 소리로 말했다. "손을 뒤로 돌려라, 이 녀석아." "나는 손을 묶이고 싶지 않다." 하고 루이빈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도망칠 생각도 없고, 난동을 부릴 생각도 없다. 무엇 때문에 나를 묶겠다는 건가?" "뭐라고?" 하고 서장은 루이빈 쪽으로 한 걸음 내 디디면서 물었다. "민중을 괴롭히는 짓은 이제 그만해라, 이 짐승 같은 놈아!" 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루이빈은 말을 계속했다. "이제 곧 네놈들에게는 즐거운 날이 찾아올 것이다." 서장은 루이빈 앞에 서서 콧수염을 실룩거리면서 그의 얼굴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 걸음 물러서서 피리와 같은 목소리로 깜짝 놀라 소리쳤다. "허허 ! 짐승 같은 놈?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그리고 다짜고짜 호되게 루이빈의 얼굴을 내리쳤다. "주먹으로는 진리를 때려 죽일 수 없을 게다!" 하고 루이빈은 서장에게 다가가면서 소리쳤다. "너에게는 나를 때릴 권리가 없다구! 이 매독에 걸린 개새끼 같으니라구!" "때릴 수가 없단 말이냐? 이 내가?" 하고 경찰서장은 말을 길게 늘이면서 짖어댔다. 그리고 또다시 루이빈의 머리를 향해서 손을 휘둘렀다. 루이빈이 날쎄게 허리를 구부렸기 때문에 주먹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서장은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았다. 군중들 속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옷었다. 그리고 또다시 루이빈의 분노의 외침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를 때릴 권리는 너한테 없단 말이다. 이 악마 녀석아." 서장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시커먼 원이 되어서 좁혀 들어오고 있었다. "니키타!" 하고 서장은 뒤를 돌아다 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 니키타." 사람들 사이에서 짧은 반 외투를 입은 키가 작은 농사꾼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커다랗고 덥수룩한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을 보고 있었다. "니키타!" 콧수염을 비틀면서 서두르지 않고 서장이 말했다. "이놈의 뺨을 한 대 힘껏 갈겨 줘라." 농사꾼은 한 결음 앞으로 나와서 루이빈을 마주보고 멈춰 서더니 얼굴을 쳐들었다. 루이빈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고서 묵직하고 똑똑한 말을 퍼부었다. "자아, 보시오. 여러분들, 잘 보아 두시오. 짐승 놈들이 당신들의 손으로 당신들의 목을 조르고 있소! 잘 보고 생각해 보시오." 농사꾼은 느릿느릿 손을 쳐들어 마지 못해서 루이빈의 머리를 때렸다. "누가 그렇게 맥 없이 때리라고 했지, 이 짐승 같은 놈아!" 하고 서장은 쇠된 소리로 말했다. "이봐, 니키타!" 하고 군중 속에서 낯은 목소리가 외쳤다. "하느님을 잊지 말라구." "때리라고 했쟎아!" 하고 서장은 농사꾼의 목덜미를 찌르며 소리쳤다. 농사꾼은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면서 머리를 숙이고 음침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둘래요." "뭐라고?" 서장의 얼굴이 갑자기 꿈틀하고 떨렸다. 서장은 발을 동동 구르고 고함을 지르면서 루이빈에게 덤벼들었다. 쿵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루이빈은 한 손을 흔들며 비틀 거렸으나, 두번째 일격으로, 서장은 그를 땅바닥에 넘어뜨리고, 그 주위를 뛰어다니며 으르렁거리면서, 양발로 루이빈의 가슴과 옆구리와 머리를 차기 시작했다. 군중은 술렁거리기 시작하고 서장에게 다가갔다. 서장은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뒤로 물러나서 칼을 뽑아 들었다. "이놈들, 그래, 모반을 일으킬 생각이냐? 응...... 어떠냐?" 서장의 목소리는 떨리고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되더니 마치 뚝 꺾어진 것처럼 갈라졌다. 목소리와 함께 서장은 갑자기 기력을 잃었다. 어깨 속에 머리를 집어 넣고 등을 구부리고, 사방 팔방에 공허한 시선을 보내더니 조심스럽게 뒷발로 지면을 더듬으면서 뒷 걸음질 쳤다. 그리고 퇴각하면서도 목쉰 소리로 불안스러운 듯이 외치고 있었다. "좋다! 이 사나이를 체포하겠다. 자아, 어떠냐? 빌어먹을 짐승 같은 놈들, 너희들은 이 녀석이 정치범이라는 걸 알고 있느냐? 황제에게 거역해서 모반을 꾸미고 있는 녀석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 녀석을 지키겠다는 거지? 너희들도 모반인이냐? 아아 ! 그렇군."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공포와 연민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마치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기력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머니의 머리 속에서는 사람들이 화를 내는 소리와 증오에 찬 외침소리가 벌 떼처럼 울려퍼지고, 서장의 떨리는 목소리와 그리고 누군가의 속삭임이 울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나쁜 짓을 했다면 재판을 해라 !" "이 사람에게 자비를 배풀어 주시오, 서장 나리.." "대낮에 사람을 때리다니, 아무런 법률도 없지 않소?" "이런 짓을 해도 괜찮단 말인가? 이처럼 여럿이서 두들겨패기 시작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겠어 ?" 사람들은 두 무리로 갈라졌다. 하나의 무리는 서장을 둘러 싸고 와글와글 떠들어대면서 그를 달래고 있었다. 또 하나의 무리는, 사람 수는 훨씬 적었으나 두들겨 맞은 루이빈 주위에 머물면서 낮은 소리로 불쾌한 듯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몇 사람이 루이빈을 땅바닥에서 세워 일으키자 경찰들은 다시 그의 손을 묶으려고 했다. "기다렷, 이 악마들!"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루이빈은 얼굴과 수염의 흙과 피를 닦아내고 주위를 둘러 보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어머니의 얼굴에 힐끗 닿았다. 어머니는 부르르 몸을 떨면서 루이빈쪽으로 몸을 내밀고는 엉겁결에 한 손을 흔들었다. 루이빈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한참 있다가 그의 눈은 다시 어머니의 얼굴에 멎었다. 어머니는 루이빈이 몸을 똑바로 세우고 머리를 쳐들더니 피투성이가 된 뺨을 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를 보았구나, 정말로 알아본 것일까?' 그리고 구슬프고 안타까운 기쁨에 떨면서 루이빈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어머니는 루이빈 옆에 그 푸른 눈의 농사꾼이 서서 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초리는 한 순간 그녀에게 위험하다는 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엔 내가 아닐까? 나도 함께 붙잡혀 버리지 않을까?" 농사꾼은 루이빈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루이빈은 머리를 획 하고 흔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똑똑하고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없어! 이 토지 위에 있는 것은 나 한 사람만이 아니다. 진리를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은 그놈들도 할 수가 없을 거야! 내가 있었던 곳에서는 두고두고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그놈들이 본거지를 부셔 버려도, 그곳에는 이미 우리 동지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저 말은 나를 위해서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어머니는 즉각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윽고 독수리가 자유를 향해 날아 오르고, 사람들이 해방되는 날이 찾아 올 것이다." 어떤 여자가 물통을 들고 와서 한숨을 짓고 흐느껴 울면서 루이빈의 얼굴을 씻어 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날프고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는 루이빈의 말에 뒤엉켜서, 어머니는 그 말을 알아 듣기가 힘들었다. 서장을 선두로 한 농사꾼들의 무리가 다가오더니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죄수를 태울 짐 마차를 가져와라! 어이! 누구 차례지 ?" 그리고 다시 서장의 화가 나있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네 녀석을 때릴 수 있지만, 너는 그렇지가 못해. 나를 때릴 수는 없는 거야, 이 멍청이 같은 놈아." "그래 ? 그럼,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하느님이냐?" 하고 루이빈이 외쳤다. 중구난방의 외침 소리의 폭발이 루이빈의 목소리를 삼켜 버렸다. "반항하지 말아요, 아저씨! 그래도 관리라구요." "나리, 화를 내지 마십시오. 이 녀석은 제정신이 아니니까요." "너는 입닥치고 있어, 괴물 같은 녀석아." "야아, 네 녀석은 지금 시내로 압송되어 가는 거야." "그곳에 가면 법률이 실력을 발휘하니까." 군중의 외침소리는 중재하는 듯한, 그리고 부탁하는 듯한 울림을 지닌 채 와글와글 거리는 소음 속에 빨려 들어가고,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애처로웠다. 경찰들은 루이빈의 팔을 잡고 면 사무소의 계단으로 끌고 올라가서 문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농사꾼들은 느릿느릿 광장으로 흩어져 갔다. 어머니는 푸른 눈의 사나이가 자기 쪽으로 향해 오면서 이마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무릎 밑이 와들와들 떨리고, 두려움이 가슴을 죄어서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도망쳐서는 안돼!'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도망쳐서는 안돼!' 그리고 난간을 꽉 움켜쥐고 기다리고 있었다. 서장은 면사무소의 계단 위에 서서 양손을 휘두르면서 비난하듯이, 또다시 무표정한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녀석들, 불한당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정치 문제에 참견하러 들다니! 개새끼들이! 나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 나의 친절에 대해서 내 발밑에 끓어 엎드려 절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니까! 내가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너희들은 모두 징역감이란 말야." 20명 가량의 농사꾼들이 모자를 벗고 서서 서장의 말을 듣고 있었다. 차츰 어두워지고,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푸른 눈의 사나이가 계단으로 다가와서 한숨을 한 번 쉬고 말했다. "이래서야, 이런 꼴로는..." "그래요." 하고 어머니는 작은 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그녀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고 나서 물었다. "무슨 장사를 하고 있나요?" "주부들에게서 레이스 뜬 것을 사서 모으고 있어요. 그리고 모시 천도요." 농사꾼은 천천히 수염을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면사무소 쪽을 보면서 우울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은 이곳에서는 살 수가 없을 거요." 어머니는 그를 내려다 보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사꾼의 얼굴은 사려가 깊어 보이고 아름다웠으며 눈은 슬퍼 보였다. 어깨죽지가 넓고 키가 큰 그는 누덕누덕 기운 긴 외투와 깨끗한 셔츠를 입고, 손으로 짠 갈색 바지와 누더기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어머니는 안도한 듯이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돌연 막연한 생각을 뚜렷하게 만든 직감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묻고 있었다. "어때요? 당신 집에서 좀 재워 주지 않겠어요?" 그렇게 말하자 그녀 몸 안의 근육도 뼈도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어머니는 뚫어질듯이 농사꾼을 웅시하면서 몸을 똑바로 폈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는 찌르는 것 같은 생각이 재빨리 스쳐지나갔다. '나는 니콜라이 이바노비치를 파멸시키게 될 거야. 파벨과도 만날 수 없을 것이고 오랫동안 실컷 두들겨맞게 될 거야.' 농사꾼은 땅바닥을 바라보고 가슴 위에서 외투를 여미면서 서두르지 않고 대답했다. "자고 가는 건가요? 좋아요. 상관없어요. 다만 우리 집은 너무나 누추해서요." "나는 호강을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하고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하고 농사꾼은 탐색하는 듯한 눈초리로 어머니를 힐끔힐끔 보면서 되풀이했다. 벌써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그리고 어스름한 빚 속에서 그의 눈은 차갑게 빚나고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해 보였다. 어머니는 마치 산에서 뛰어 내려오는 것 같은 기분으로 말했다. "그럼, 지금 가죠. 당신은 내 트렁크를 좀 가져다 주세요." "좋습니다." 그는 양쪽 어깨를 뒤로 젖히고 다시 긴 외투 앞자락을 여미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기 짐마차가 가는군요." 면사무소의 계단 위에 루이빈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양팔은 다시 묶여져 있었고, 머리와 얼굴은 무엇인가 회색의 것으로 감싸여 있었다. "그럼, 잘들 있으시오, 여러분들!" 루이빈의 목소리는 저녁의 냉기 속에서 울렸다. "진리를 찾아내서 그것을 소중히 간직해 주시오. 진리의 말을 가지고 오는 사람을 환영하고 진리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아끼지 마시오." "닥쳐라, 개새끼" 하고 어디에선가 서장의 목소리가 외쳤다. "어서 말을 출발시켜라, 이 멍청아." "당신들은 무엇을 아낄 게 있겠소! 당신들의 생활은 도대체 어떤 것이란 말이오?" 짐마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이빈은 그 위에, 두 사람의 경찰 사이에 끼여 앉아서 낮은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도대채 무엇 때문에 굶어 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자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시오. 자유는 빵도 진리도 가져다 주니까요. 그럼, 잘 있어요, 여러분들." 수레바퀴의 어수선한 소리와 말 발굽 소리와 서장의 목소리가 루이빈의 말을 감싸고 뒤엉키게 하고 짓뭉개 버렸다. "끝났군." 하고 농사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 쪽을 돌아다 보고 작은 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저 가게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올 테니까요." 어머니는 안으로 들어가 사모바르를 앞에 하고 탁자에 걸터 앉았다. 빵을 한 조각 손에 들었으나 천천히 접시에 내려놓고 말았다. 먹고 싶지가 않았다. 스푼을 집어 들자 또다시 구역질이 올라왔다. 뜨뜻미지근하고 역겨운 구역질에 힘이 빠지고 심장의 피가 빠져나가고 머리가 어찔어찔했다. 그녀 앞에 푸른 눈의 농사꾼의 얼굴이 떠을랐으나, 그것은 기묘하게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을 믿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왜 그런지 그 남자가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이미 그녀의 마음 속에 일어나서 심장 위를 둔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나를 알아본 거야!' 하고 힘없이 어머니는 생각했다. '알아보고 깨달은 거라구.' 그러나 그 이상 생각은 퍼져 나가지 않고, 구역질의 끈적끈적한 감각 속으로 가라앉았다. 창 밖의 소란스러움은 숨을 죽인 것 같은 고요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을 안에 감도는 그러한 정적이 어머니의 가슴 속에 고독감을 더해 주고 잿더미 같은 회색 연기를 마음 가득 피워 올렸다. 소녀가 들어와서 문턱에 멈춰 서서 물었다. "오믈렛을 좀 가져다 드릴까요?" "필요없어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저 고함소리로 인해서 간이 떨어져 나간 것 같구나." 소녀는 탁자 옆으로 다가와서 흥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 서장 나리는 너무 심하게 때렸어요. 나는 옆에 서서 다 보았다구요. 그 사람의 이빨이 몽땅 빠져 버려서 침을 뱉으면 검붉은 피가 나오는 거예요. 눈 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구요. 그 사람은 타르 직공이에요. 마을 경관이 술에 잔뜩 취해서는 술을 더 가져오라고 소리를 지를 때 그들을 봤대요. 그 사람들은 몇 명이서 모여 있었는데, 그 수염난 사람이 제일 높고 두목이라고 하더군요. 세 사람이 잡혔는데 한 사람은 도망쳤대요. 그 밖에 또 한 사람, 학교의 선생님이 붙잡혔는데, 역시 그 사람들과 한패거리래요. 그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고, 교회로 강도짓을 하러 들어가라고 모두에게 선동을 하고 있었대요, 무슨 그런 사람들이 다 있지요? 이곳의 농사꾼들은 그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처치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어요. 이곳에는 그런 마음씨가 사나운 농사꾼들도 있다구요. 정말 난처한 일이에요." 어머니는 두서없는 빠른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불안을 억누르려고 노력했다. 소녀는 자기 얘기를 들어 주는 것이 꽤나 기뻤는지 말을 끊어 가면서 한층 더 활기에 차서 목소리를 낮추면서 계속 지껄여 댔다. "아버지의 얘기로는 그것은 전부 흉년 탓이래요. 일 년 가량이나 이곳 토지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를 않았기 때문에 모두 지칠대로 지쳐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저런 농사꾼들도 나타나는 거라구요, 정말 곤란한 일이에요. 마을의 모임에서도 고함을 치거나 치고 받고 싸움을 한다니까요. 얼마 전에도 바슈코프네 집이 체납으로 공매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촌장의 뺨을 찰싹 하고 때렸다구요. 자아, 너에게 체납을 갚아 주겠다고 하면서요." 문 밖에서 육중한 발소리가 울렸다. 어머니는 탁자에 양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푸른 눈의 농사꾼이 들어와서 모자도 벗지 않고 물었다. "짐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가볍게 트렁크를 집어들고 그것을 흔들어 보면서 말했다. "텅 비었군요! 마리카, 손님을 우리 오두막집으로 안내해라." 그리고 돌아다보지도 않고 나가 버렸다. "여기서 묵고 가실 거예요?" 하고 소녀가 물었다. "그래요. 나는 레이스를 사모으고 있는데..." "여기서는 레이스 뜨개질은 하지 않아요. 친코프나 다리나에서는 하고 있지만, 이 근처에서는 하지 않는다구요." 하고 소녀는 설명했다. "그럼, 내일 그곳으로 가 봐야겠구나..." 소녀에게 차값을 치르고, 어머니는 3코페이카를 더 줘서 소녀를 무척 기쁘게 했다. 거리로 나가자 소녀는 맨발로 습한 땅바닥을 빠르게 걸으면서 말했다. "원하신다면, 내가 다리나로 달려가서, 이곳으로 레이스를 가져 오라고 아주머니들에게 전할까요? 저쪽에서 찾아온다면, 아주머니는 그곳에까지 가지 않아도 되쟎아요. 13킬로나 되니까요." "아니,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아, 아가씨!" 하고 어머니는 그녀와 나란히 걸으면서 대답했다. 차가운 공기로 어머니는 상쾌한 기분이 되고, 마음 속에는 막연한 결심이 생겨났다. 막연하지만, 그러나 무엇인가를 약속하는 이 결심은 느릿느릿 뻗어나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결심을 빨리 굳혀 버리려고 집요하게 자신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만일 정면으로 양심에 호소한다면...' 어둡고 축축하고 추웠다. 판잣집의 창문이 불그스름하게 밝혀져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졸리운 듯한 가축의 울음소리가 나고, 짧게 부르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마을은 어둡고 짓누르는 것 같은 상념에 감싸여 있었다. "여기예요!" 하고 소녀는 말했다. "아주머니는 지독한 잠자리를 골랐어요. 굉장히 가난한 농사꾼이라구요." 그녀는 문을 더듬어서 열고 집 안에 대고 힘차게 외쳤다. "타치아나 아주머니." 그리고 뛰어 돌아갔다. 암흑 속으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안녕히 계세요." 14 어머니는 문지방 옆에 멈춰 서서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대고 둘러보았다. 판잣집은 좁고 작았지만 그러나 깨끗했다. 그것은 금세 눈에 띄었다. 페치카의 그늘에서 젊은 부인이 얼굴을 내밀고, 말없이 절을 하고는 모습을 감췄다. 앞쪽의 한쪽 구석에 있는 탁자 위에 램프가 켜져 있었다. 그 집의 주인은 탁자에 앉아서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똑똑 두드리면서 빤히 어머니의 눈을 쳐다보았다. "들어 오세요!" 하고 한참 있다가 그는 말했다. "타치아나, 가서 표토르를 불러와, 서둘러서 말이야." 부인은 손님에게 눈도 주지 않고 서둘러 나갔다. 걸상 위에 마주 앉은 어머니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녀의 트렁크는 보이지 않았다. 괴로울 정도의 고요함이 판잣집을 가득 채우고, 오로지 램프 불만이 어렴풋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탁탁 튀고 있었다. 농사꾼의 미간을 찌푸린 얼굴이 몽롱하게 어머니의 눈 속에서 흔들리고, 그녀의 마음에 불안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내 트렁크는 어디 있나요?" 하고 돌연 자신도 뜻하지 않게 큰소리로 어머니가 물었다. 농사꾼은 어깨를 추스르고, 사려 깊은 얼굴로 대답했다. "없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목소리를 낮춰서 불쾌한 듯이 말을 계속했다. "나는 아까 소녀 앞에서는 일부러 텅 비었다고 말했는데요. 그것은 전혀 빈 트렁크가 아니고, 가득 차 있더군요." "그래서요?"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그것이 어쨌다는 거예요?" 그는 일어나서 그녀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 사람을 알고 있지요?" 어머니는 움찔했으나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네, 알고 있어요." 이 짧은 말로 어머니의 갈등은 사라졌다. 이 말이 전부 밝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는 안도한 듯이 한숨을 짓고, 걸상 위에서 무릎을 앞으로 내밀고는 자세를 다시 바로잡았다. 농사꾼은 얼굴 가득히 웃어 보였다. "나는 아주머니가 그 사람에게 신호를 하고, 그 사람도 같은 짓을 했을 때 모두 알아차렸다구요. 나는 그 사람에게 귀속말로 물어보았지요. '저 계단 위에 서 있는 여자는 아는 사람이냐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뭐라고 말하던가요?" 하고 어머니는 빠르게 물었다. "그 사람이요? 우리들의 동지는 수없이 많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요, 많이 있다구요."' 손님의 눈을 질문하듯이 들여다 보고 다시 희죽희죽 웃으면서 그는 말을 계속했다. "엄청난 힘이 있는 사람이에요! 대담하고 정면으로 나다! 하고 말하고 있어요. 얻어맞아도 자기가 원하는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고." 그의 주저하는 듯하면서도 평범한 목소리, 구김살없는 표정, 그리고 밝고 크게 떠진 눈은 더욱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불안과 우울에 대신해서 루이빈에 대한 연민의 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어머니는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져서 갑자기 무엇에 짓눌린 것처럼 소리쳤다. "악당, 미친 놈." 그리고 흐느껴 울었다. 농사꾼은 음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 옆을 떠났다. "관리들은 그 더러운 일을 하기 위해서 많은 하수인을 두고 있지요. 그래요." 그리고 그는 갑자기 다시 어머니 쪽으로 돌아서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말입니다. 이렇게 추측하고 있어요. 트렁크의 알맹이는 신문일거라고요, 그렇지요?" "그렇답니다!" 하고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면서 털어놓고 대답했다. "그 사람의 일터로 가져온 거예요."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턱수염을 주먹 속에 쥐고 딴전을 부리면서 잠시 잠자코 있었다. "신문은 우리들에게도 배포되고 있습니다. 책도 오고 있구요. 그 사람을 우리들은 다 알고 있어요.만난 적도 있지요. 아내에게도 종종 읽어 준답니다." 농사꾼은 멈춰 서서 잠시 생각하고 나서 물었다. "그렇다면, 트렁크를 아주머니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어머니는 힐끗 그를 쳐다보고 도전하듯이 말했다. "당신들에게 모두 놓고 가겠어요." 그는 놀라지도 않고 반대도 하지 않은 채 간단하게 대답했다. "우리들에게요."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먹으로 쥐고 있던 수염을 놓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쓰다 듬으면서 다시 걸터앉았다. 기억은 집요하게 어머니의 눈앞에 루이빈이 고문당하고 있는 장면을 밀어 내왔다. 그의 모습은 그녀의 머리 속의 모든 생각을 지워 버리고, 인간을 위한 아픔과 격분이 모든 감정을 뒤덮어 버렸다. 어머니는 이미 트렁크에 대해서도, 또 더이상 어떤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억제할 틈도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나 얼굴은 진지해지고, 이 집의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지도 않고 있었다. "사람을 발가 벗기고, 억누르고, 진흙탕 속에서 짓밟는 거예요, 저주받은 놈들이." "힘이에요!" 하고 작은 소리로 농사꾼이 맞장구를 쳤다. "놈들의 힘은 엄청난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 힘을 어디서 얻어 오지요?" 하고 어머니는 분노를 담아서 소리쳤다. "우리들에게서, 민중에게서 취하는 거예요. 모두 우리들로부터 손에 넣은 것이라구요." 어머니는 그의 밝고, 그러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얼굴에 짜증을 느꼈다. "맞아요!" 하고 사려깊게 그는 목소리를 길게 늘이며 말했다. "수레 소리로군요." 귀를 세우고 머리를 문 쪽으로 기울여 들으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왔어요." "누가?" "우리 친구가요." 그의 아내가 들어오고, 그 뒤에 한 사람의 농사꾼이 들어왔다. 구석에 모자를 던져놓고, 빠른 걸음으로 주인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나?" 주인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판!" 하고 아내는 난로 옆에 서서 말했다. "아마 여행하는 손님은 배가 고프실 텐데요?" "나는 괜찮아요. 고마워요, 아주머니!"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농사꾼은 어머니 옆으로 다가와서 빠른 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표토르 이고로프 리야비닌입니다. 사람들은 쉴로라고 합니다. 당신들의 일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읽고 쓰기도 할 줄 알고, 아주 터무니없는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밀어진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주인을 향해 말했다. "이보게, 스테판, 알겠나? 바르바라 니콜라예브나는 확실히 좋은 부인일세! 가끔 이런 일은 모두 쓸모없는 일, 헛소리라고 말씀하시지만 코흘리개 같은 애들이나 도시의 덜된 대학생들이 어리석은 일로 사람들을 선동한다고 하면서. 그런데, 낮에 본 것처럼 똑똑한 농사꾼이 체포되었고, 지금도 여기 있는 이분은 아무리 봐도 지주의 피를 물려 받은 분은 아닌 것 같구먼. 화는 내지 마십시오, 당신은 어떤 집안의 분이십니까?" 그는 빠른 말투로 또렷하게, 숨도 쉬지 않고 얘기했다. 그의 턱수염은 짜증스러운 듯이 흔들리고, 눈은 가늘게 떠져서 어머니의 얼굴이나 모습을 재빨리 살피고 있었다. 누더기 옷을 업고, 머리칼이 뒤엉키고 흐뜨러진 그는 방금 누군가와 격투를 해서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온몸이 즐거운 승리의 흥분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그의 대담함과 처음부터 정면으로 솔직하게 얘기를 걸어 온 모습에 호감이 갔다. 그의 얼굴올 상냥하게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그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번 그녀의 손을 쥐고 흔들며 약간 투박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멋진 일이라네, 안 그런가, 스테판! 훌륭한 일이라구! 내가 자네에게 말했지. 이것은 모두가 스스로의 손으로 시작하고 있다고 말일세. 그런데 이 부인은 사실은 말하고 싶지는 않을 거네. 잘못 말했다간 손해일데니까. 나는 이 부인을 존경하네. 그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 좋은 사람이고, 우리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이익이 돌아 가기를 바라고 계시지. 그러나 그것은 조금 뿐이고 자신의 손해가 되지 않을 정도 내의 일이라구! 그런데 농사꾼들은 당당하게 맞서고 싶은 거야. 손해도 두려워하지 않지. 자네도 보았겠지 ? 농사꾼은 평생 해보았자 틀려먹었어. 여기도 저기도 손해 투성이이고, '끔짝마'란 소리만 들려올 뿐 아무 것도 없네. 몸을 비킬 곳도 없을 정도라구." "나도 알고 있네!" 하고 스테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고 나서 곧 덧붙였다. "짐 때문에 이분은 걱정하고 계시다네." 표토르는 재빨리 어머니에게 눈짓을 하고, 안심시키듯이 한 손을 흔들면서 또다시 얘기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제대로 될 테니까요, 아주머니! 당신의 트렁크는 우리 집에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이 사람이 나에게 당신 얘기를 하면서, 당신도 역시 이런 일에 관계하고 있으며, 붙잡혀간 사람을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나는 이 친구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조심하게, 스테판! 이런 중요한 일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네' 라구요. 그런데 아주머니, 당신도 역시 우리들이 옆에 서있었을 때 틀림없이 알아 차렸을 데지요? 정직한 인간은 사람 눈에 띄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인간은 길거리에 많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당신의 트렁크는 우리 집에 있습니다." 표토르는 어머니와 나란히 걸터앉아서 부탁하는 듯한 눈매로 어머니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만일 그 인쇄물들을 없애려고 생각하신다면 우리들이 기꺼이 그 일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책은 우리들에게도 필요하니까요." "전부 우리들에게 주겠다고 말하셨다네!" 하고 스테판이 끼여들었다. "그것 참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우리가 모두 배포 할 곳을 찾겠습니다." 표토르는 벌떡 일어나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 안을 성큼성큼 왔다갔다 하면서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이것은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경우라는 것일세! 그래 보았자 지극히 간단한 일이지만. 한쪽이 끊어지면 다른 쪽에서 이어진다는 얘기지. 별것도 아니라구! 그러나 아주머니, 신문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줍니다. 지주 나리들에게는 싫은 일이겠지만요. 나는 여기서 8킬로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니콜라예브나라는 부인의 집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야 물론 좋은 주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책을 주는 데 말입니다. 이따금 읽어 주면, 아주 대우가 좋아집니다. 대체적으로 우리들은 그 부인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만요. 그런데 내가 신문을 한 장 보여 주었더니, 그 부인은 약간 기분이 상한 것 같더군요. '이런 것은 내다 버려요, 표토르! 이것은 코흘리게 아이들이 깊은 생각없이 하고 있는 일이에요. 그런 것을 읽고 있으면 당신들의 불행은 불어날 것이고, 그 다음에는 감옥과 시베리아 뿐예요.' 하고 말합디다." 표토르는 다시 갑자기 침묵을 지키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 물었다. "그런데 아주머니, 한 가지 묻겠는데요, 그 사람은 당신의 친척입니까?"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이애요!"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표토르는 무엇인가에 대단히 만족해서, 소리를 내지 않고 웃음을 터뜨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어머니는 이 '타인'이라는 말이 루이빈을 잘못 표현한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었다. "나는 그분의 친척은 아니지만,"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형제처럼, 오빠처럼 존경하고 있어요." 필요한 말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어머니는 혐오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또다시 흐느낌을 억제할 수 었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고요함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표토르는 머리를 어깨 위에 기울이고, 마치 무엇인가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스테판은 탁자에 팔 꿈치를 짚고 끊임없이 생각에 잠기면서 손가락 하나로 판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어두컴컴한 속에서 난로에 몸을 기대고, 어머니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때때로 어머니도 그녀의 코가 오똑하고, 턱을 깎아내린 것 같은 계란 모양의 약간 검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녹색이 섞인 눈이 주의깊게, 그리고 날카롭게 빚나고 있었다. "그럼, 친구라는 얘기로군요 !" 하고 작은 소리로 표토르가 말했다. "아니, 자부심이 있는 분입니다.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이것이 말이오, 타치아나, 당신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남자다운 일이라는거요." "그분은 가정을 가지고 있나요?" 하고 타치아나 부인이 그의 얘기를 가로 막고 물었다. 그녀의 조그만 얇은 입술이 꽉 다물어졌다. "홀애비지요." 하고 어머니는 슬프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대담한 거예요!" 타치아나 부인은 낮은, 배 밑바닥에서 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정을 가지고 있다면 도저히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어요. 겁이 나서요." "그렇다면, 나는 어때요? 가정이 있는 데도 어떤 일이든 하고 있지않소?" 하고 표토르가 반박했다. "그만하세요, 아저씨!" 하고 표토르 쪽은 보지 않은 채 입술을 일그러 뜨리면서 아내가 말했다. "당신들은 도대체 뭐예요! 그냥 얘기를 하고, 이따금 책을 읽는 것 뿐이쟎아요? 당신이 스테판과 함께 방구석에서 소곤소곤 얘기를 한 정도로는 별로 남들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구요."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는 사람이 꽤나 많다는 것을 모르시는군요!" 농사꾼은 화가 나서 쏘아 붙였다. "나는 이곳에서는 누룩 같은 존재라구요. 그런 말은 나를 무시하는 거구요." 스테판은 잠자코 아내를 노려보고 다시 머리를 떨구었다. "무엇 때문에 농사꾼들은 마누라가 필요하죠?" 하고 타치아나 부인이 물었다. "일하는 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 거냐구요?" "이제 그만하지 못하겠어!" 하고 스테판이 낯은 소리로 끼여들었다. "이런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해보았자 어차피 마찬가지라구요. 아이가 태어나도 돌봐줄 틈도 없지만요. 빵도 되지 않는 일을 하기 위해서 말예요?" 그녀는 어머니 옆으로 다가가서 그 옆에 걸터앉더니, 푸념도 슬픔도 보이지 않고 집요하게 얘기를 계속했다. "내게도 아이가 둘이나 있었어요, 하나는 두 살 때 끓는 물을 뒤집어 쓰고 죽고, 또 하나는 달을 채우지 못한 채 죽어서 태어났어요. 모두가이 빌어먹을 일 덕택이에요. 나에게 기쁜 일이 있겠어요? 나는 농사꾼이 마누라를 얻는 것은 말짱 헛일이라고 말하고 싶다구요. 다만 자신의 손발을 묶을 뿐이에요. 그것보다 자유롭게 생활하고, 원하는 생활을 위해서 그 사람처럼 똑바로 진리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 좋아요. 내 말이 틀렸나요, 아주머니 ?" "사실이지요."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정말이에요, 부인. 그렇게 하는 것 외에는 이 생활을 이겨낼 수가 없으니까요." "당신은 남편이 있나요?" "죽었어요. 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아드님은 어디에 있나요? 함께 살고 있겠지요?" "감옥에 들어가 있답니다!"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 말이 몰고 오는 슬픔과 함께, 조용한 자랑으로 가슴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랍니다. 그것은 모두 그 아이가 하느님의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펼쳤기 때문이랍니다. 그 아이는 젊고, 미남이고 영리합니다. 신문도 그 아이가 생각해 낸 것이고, 루이빈 미하일로 이바노비치 씨를 이 길로 끌어들인 것도 그 아이입니다. 미하일로 씨는 그 아이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데도 말이에요. 이번에는 재판에 회부되고, 그리고 벌을 받게 되겠지만, 그 아이는 시배리아에서 도망쳐 나와 또다시 그 일을 할 거예요." 그녀는 이야기했다. 그러자 자랑스러운 감정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점점 더 부풀어올라 영웅의 모습을 만들어냈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어서 목이 메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오늘 본 무의미한 공포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잔혹하므로 그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그 어두운 것을 무엇인가 찬란하고 이지적인 것으로 벌충을 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그 동안 직접 겪었던 체험들을 불꽃처럼 그려냈다. "지금도 많지만 앞으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그 최후까지 자유를 지키고,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일어설 것입니다." 어머니는 경계심도 잊어 버렸다. 그리고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나, 탐욕의 쇠사슬로부터 민중을 해방하는 비밀 활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얘기해 들려 주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에 있어서 소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자신의 말 속에 사랑의 힘을 쏟아 넣었다. 그사랑은 늦게나마 자신의 체험에 의해서 일깨우게 된 풍부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녀의 감정에 의해서 기억 속으로 떠오른 사람들을 강렬한 기뿜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러한 운동은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들의 힘은 잴수가 없고 헤아릴 수가 없는 것으로 쭉쭉 뻗어나고 있어요. 우리들이 승리할 때까지 줄기차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어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말이 거침없이 술술 나왔고, 마치 더러운 피와 진흙을 진심으로 씻어내려는 욕망의 강한 실에 그 말을 구슬처럼 꿰는 듯했다. 어머니는 농사꾼들이 못이 박힌 것처럼 되어서 움직이지 않고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자기 옆에 앉아 있는 부인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가 사람들에게 하는 얘기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궁핍과 권력에 짓눌리고, 부자와 그 앞잡이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은 모두 자신들을 위해서 감옥 안애서 죽고, 죽음의 고통을 향해서 전진하는 사람들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은 사심은 없고,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행복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조금의 거짓도 없이 괴로운 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우격다짐으로 끌고 가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단 그 사람들과 나란히 서면, 이제 절대로 떨어질 수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옳은 것이다. 이 길이야말로 진실한 길이라는 것은 알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오랜 동안의 희망을 실현하여, 이렇게 자기가 사람들에게 진리에 대해서 얘기해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 더 할 수 없이 기뻤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함깨 전진해갈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조그만 일로는 타협을 하지 않고, 모든 속임수나 모든 악의나 탐욕이 정복되지 않는 한 멈춰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합쳐지고, 목소리를 합해서, 나야말로 주인이다. 나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법률을 만들 것이라고 말할 때까지는 멈춰 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 어머니는 지쳐서 입을 다물고 방 안을 둘러 보았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자신의 말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조용히 가로 놓여 있었다. 농사꾼들은 아직도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토르는 양팔을 가슴 앞에 끼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스테판은 한 손의 팔꿈치를 탁자에 짚고, 몸 전체를 앞으로 내밀어 목을 길게 뻗고서 아직도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림자가 그의 얼굴 위에 떨어지고, 그 때문에 그 얼굴은 전보다 더 단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의 아내는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서 팔꿈치를 무릎 위에 짚고, 앞으로 몸을 숙이고서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겠지요!"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표토르가 말하고, 머리를 흔들면서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스테판은 천천히 몸을 세우면서 아내를 흘끗 보았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끌어 안으려는 듯이 양팔을 공중에 펼쳤다. "이 일에 착수하려면," 하고 생각에 잠겨서 스데판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제로 자신의 전부를 쏟아넣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표토르는 망설이면서 끼여 들었다. "응, 그래, 뒤를 돌아다 봐서는 안 되겠지." "이 계획은 엄청나게 큰 거니까." 하고 스테판은 계속했다. "전세계에 걸쳐 있으니까!" 하고 다시 표토르가 덧붙였다. 15 어머니는 벽에 등을 기대고 목을 뒤로 젖히고서 두 사람의 탐색하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타치아나 부인이 일어나서 방 안을 살펴 보고는 다시 앉았다. 그녀의 녹색 눈은 불만스러운 듯이 경멸의 빚을 띠고 농사꾼들을 보고 있었다. "당신은 많은 고생을 해온 것 같군요." 하고 그녀는 어머니 쪽을 향해서 갑자기 말했다. "옛날에는요!" 하고 어머니는 대꾸했다. "얘기를 너무나 잘 하시니까 당신의 얘기에 마음이 끌려 들어갑니다. 아아, 하다 못해 잠깐이라도 좋습니다. 그런 사람들이나 생활을 한 번 보고 싶어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꼭 양과 같은 생활일 거예요. 나는 읽고 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책도 읽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세상 일을 생각하며 밤 잠을 못 이룰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도대채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요? 생각하지 않아도 어차피 개 죽음을 당할 것이고, 생각해 보았자 역시 헛된 일이니까요." 그녀는 눈에 차가운 웃음을 띄운 체 얘기를 하고, 때때로 마치 실을 이빨로 끊듯이 스스로 얘기를 뚝 끊어 버렸다. 농사꾼들은 잠자코 있었다. 바람은 유리창을 두드리고, 지붕의 짚을 바스락 바스락 울게 하고, 굴뚝 안에서 희미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개가 짖어댔다. 그리고 때때로 빗방울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램프의 불이 흔들려서 어두워졌으나 잠시 뒤에는 다시 똑바로 밝게 불타 올랐다. "그러한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머니의 얘기만으로도 상상이 되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당신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나도 그러한 것은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당신의 얘기를 들을 때까지는 나는 그런 것은 들은 일도 없고, 나에게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도요." "타치아나, 뭘 좀 먹어야 되겠어. 그리고 불을 꺼야 해!" 하고 스테판은 미간을 찌푸리고 천천히 말했다. "튜마코프의 집에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구. 우리들은 상관 없지만 손님을 위해서는 곤란한 일이 될지도 모르니깐." 타치아나 부인은 일어나서 난로 옆으로 갔다. "그래요!" 하고 미소를 띄고 작은 소리로 표토르가 말했다. "이보게, 이제부터는 방심은 금물일세! 사람들 사이에서 신문이 나돌면..." "나는 나 자신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체포되어 보았자 별 볼일 없으니까." 그의 아내는 식탁 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비키세요." 그는 일어나서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녀가 식탁을 준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엷은 옷음을 띄우며 말했다. "우리들 동료의 값은 한 다발에 5코페이카니까 한 다발에 백 명이라고 치면...." 어머니는 갑자기 그가 불쌍해졌다. 어머니는 그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될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생각은 옳지 않아요, 주인 아저씨!"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인간의 피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인간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에 찬성할 필요는 절대로 없어요. 당신은 스스로 자신을 내부로부터 평가해야 하는 거예요. 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편을 위해서 말이에요." "우리들에게 어떤 편이 있다는 겁니까?" 하고 작은 소리로 농사꾼이 외쳤다. "빵 한 조각을 얻기도 힘든데." "하지만 내 말은 민중들은 모두 서로 친구라는 거예요." "그렇겠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고 스테판이 말했다. "그럼, 여기서도 친구들을 만드세요." 스테판은 잠시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그래요. 해 보아야겠군요." "식탁에 앉아 주세요." 하고 타치아나 부인이 불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의 얘기에 압도 되었던 표토르가 다시 원기를 되찾고 빠른 어조로 얘기했다. "아주머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일찍 이곳을 떠나셔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시내로 가지 말고 다음 역으로 가세요. 우편 마차를 타고 가십시오." "왜 그래? 내가 모시고 가겠네." 하고 스테판이 말했다. "그건 안 돼!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자네는 그 여자가 자고 갔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구. 그러면 어디로 갔느냐고 묻겠지. 자네가 모시고 갔다고 말하면, '허허, 네가 데려다 주었다고? 그럼, 감옥으로 들어가라!' 이렇게 된다구. 알겠나? 그러나 무엇 때문에 서둘러서 감옥에 들어갈 필요가 있겠나? 무슨 일에도 차례라는 것이 있는 법일세. 때가 되면 임금님도 죽는다는 얘기라네, 그런데 여기에서는 단지 자고, 말을 세내고, 떠나갔다는 것 뿐 아닌가? 어느 집에든 자고 가는 손님은 얼마든지 있지. 인근 마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니까 말이야." "표토르 씨, 당신 도대체 어디서 무서워하는 것을 배워왔지요?" 하고 타치아나 부인이 비웃듯이 물었다. "아니, 타치아나 부인,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어야만 해요." 하고 자신의 무릎을 치면서 표토르가 외쳤다. "무서워할 줄도 알고, 대담해지는 것도 알아 두어야 한다구요. 당신도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이 신문이 원인이 되어서 바가노프는 군수에게 호되게 얻어 맞지 않았소? 지금 바가노프는 큰 돈을 쌓아 놓고 설득을 해도 책을 손에 들지 않아요. 정말이라구요! 아주머니, 나를 믿어 주세요. 나는 무슨 일을 시켜도 날쎈 녀석이니까요. 이것은 누구든지 다 잘 알고 있답니다. 책도 유인물도 가장 효과있게 얼마든지 배포해 드리겠습니다. 이 부근의 농사꾼은 능숙하게 읽고 쓰기를 못 하고 게다가 겁이 많답니다. 하지만 옆구리를 걷어 차이고 나서는 도대체 이건 어찌된 일인가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살아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책이 아주 간단하게 그것에 대답해 준다는 그런 얘기올시다. 잘 생각해 보고 궁리해 보라는 것이지요. 글씨를 못읽는 사람이 글씨를 읽을 줄 아는 사람보다 이해가 더 빠른 예도 있습니다. 특히 배가 부른 유식한 사람보다는요.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온갖 것을 다 보아왔기 때문에 잘 알지요. 살아나가기는 하지만, 다짜고짜 물 웅덩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머리와 엄청나게 재빠른 행동이 필요합니다. 관청에서도 농사꾼 쪽에서 뭔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습니다. 농사꾼들은 잘 웃지도 않고 무뚝뚝하지만 대체적으로 관청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싶어하거든요. 예를 들까요? 얼마 전 스몰랴코프에서 사건이 있었지요. 바로 이 근처 마을이지요. 세금을 거두러 나왔는데 농사꾼들은 화가 나서 몽둥이를 들고 나왔어요. 서장은 모두에게 고함을 쳤지요. '앗, 이 무지렁이 놈들! 이것은 황제에게 반항한다는 얘기로군! 그곳에 스피바겐이라는 농사꾼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사람은 '네 녀석들이야말로 황제와 함께 마귀 할멈에게 잡아 먹혀 버려라! 단 한 벌 남은 내의까지 벗겨 가겠다는데, 황제고 개나발이고 어디있어?' 하고 쏘아 붙였답니다. 하여간 이런 지경에까지 와있다구요, 아주머니! 물론 스피바겐은 붙잡혀서 감옥에 집어 처넣어졌지만, 말은 뒤에 남아서 어린애들까지도 그것을 외우고 있다구요. 그 말은 살아서 왕왕 울리고 있다구요 !" 표토르는 먹지 않고 쉴새 없이 빠른 어조로 말했다. 검은 눈을 힘차게 번뜩이면서 마치 지갑에서 동전을 뿌리듯이 마을의 살림에 대해서 헤아릴 수 없는 견문을 어머니 앞에 마구 뿌려댔다. 두 번 가량 스테판은 그에게 말했다. "이보게, 좀 먹는 게 어떤가.." 표토르는 빵조각과 스푼을 손에 들었지만, 마치 방울새가 지저귀듯이 얘기에 열중했다. 겨우 저녁 식사가 끝나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자아, 이제 나는 돌아가야겠어요." 어머니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주머니! 아마 두번 다시는 만나뵙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을 만난 것도, 당신의 얘기도 무척 좋았습니다. 트렁크 속에는 인쇄물 외에 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털로 짠 프라토크요? 털 프라토크는 멋있지요, 스테판, 기억해 두게! 이 친구가 트렁크를 가지고 올 겁니다. 가세, 스테판 ! 그럼, 안녕히 가세요. 몸조심하시고 !" 두 사람이 나가 버리자, 바퀴벌레가 움직이는 소리와 바람이 지붕을 건드려 굴뚝 뚜찡이 달그락달그락 울리는 소리와 가랑비가 따분하게 창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치아나 부인이 난로 위와 선반에서 옷을 끌어 내려서, 그것을 의자 위에 깔고 어머니를 위한 침대를 준비했다. "쾌활한 사람이군요."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주부는 이마 너머로 어머니를 흘끗 보고 말했다. "왕왕 떠들어 대지만, 그다지 멀리까지는 들리지 않지요." "그런데 댁의 주인은 어떤가요?" "글쎄요. 착실한 농사꾼이지요. 술도 마시지 않고 그럭저럭 사이좋게 살고 있어요. 다만 성격이 너무 나약해서요." 그녀는 몸을 바로 세우고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물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가 일어서는 거겠죠? 물론 그렇겠지요. 모두 그런 생각은 하고 있어요. 다만 각자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커다란 소리로 외쳐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처음에는 누군가 한 사람이 대담하게 나서야 할 텐데..." 그녀는 의자에 걸터 앉더니 갑자기 물었다. "말씀 좀 해주세요. 젊은 여자들도 이런 일을 하고 있나요? 노동자가 있는 곳을 돌아 다니면서 책을 읽어 주나요? 그런 일을 싫어하거나 꺼리지는 않습니까? 무서워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리고 어머니의 대답을 꼼짝 않고 들은 다음에, 깊은 한숨을 내쉬고 그녀는 다시 눈꺼플을 내리 깔고는 고개를 떨군 채 다시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책에서 나는 '사생형챙이 없는 생활'이라는 말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금방 말이에요, 나는 그러한 생활을 알고 있어요. 사상은 있어도, 양치기가 없는 양들처럼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기만 하고 아무리 해봐도, 그 누구도 그것을 모을 수가 없지요. 이것이 바로 사상이 없는 생활이거든요. 나는 그런 생활로부터는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도망치고 싶답니다.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을 때, 지난 생활에 대한 반성과 고통을 저도 느끼고 싶어요." 어머니는 안타까움을 주부의 메마른 눈빚 속에서, 그리고 여윈 얼굴 위에서 보았고, 상냥한 말을 걸어 주고 싶어졌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벌써 알고 있군요." 타치아나 부인은 작은 소리로 그것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걸요. 자아, 준비가 모두 되었습니다. 어서 주무세요." 난로 쪽으로 가서 생각에 잠겨 몸을 똑바로 세우고 잠자코 서있었다. 어머니는 옷을 벗지 않고 누웠으나, 마디마디에 쭈물거리는 것 같은 피로를 느끼고 희미하게 신음소리를 냈다. 타치아나 부인은 램프를 껐다. 그리고 집 안에 어둠이 들어차자, 타치아나 부인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는 마치 가슴답답한 어둠의 납작한 얼굴에서 무엇인가를 닦아내는 것처럼 울렸다. "당신도 기도를 하지 않는군요. 나도 하느님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적 같은 것도 없구요." 어머니는 불안스러운 듯이 의자 위에서 몸을 뒤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정면으로 창 밖에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요함 속에 겨우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바스락 바스락 울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니는 거의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망설이면서 얘기를 했다. "주님은 혼란스럽게 되어 버렸지만 그리스도는 믿어요." 타치아나 부인은 잠자코 있었다. 암흑 속에서 어머니는 시커먼 난로를 배경으로 그녀의 잿빚 모습의 윤곽을 보았다. 그 모습은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었다. 어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 아이들이 죽은 일로 인해서 나는 하느님도 인간도 용서할 수가 없다구요. 절대로." 어머니는 그 말을 토해내게 한 괴로움의 힘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불안스러운 듯이 몸을 일으켰다. "당신은 아직 젊으니까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가 있어요." 주부는 한참 있다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닙니다. 나의 몸은 이제 완전히 못쓰게 되어서, 앞으로는 절대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의사가 말했지요." 쥐 새끼가 마루 위를 달려갔다. 무엇인가 메마른 커다란 소리가 움직이지 않는 정적을 눈에 보이지 않는 번개의 울림으로 깨뜨리고 울려 퍼졌다. 그리고 또다시 지붕을 때리는 가을비 소리가 똑똑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깊어가는 가을밤을 알려 주려는 듯 추적 추적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가물 가물 잠으로 빠져들던 어머니의 귀에 둔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살며시 문이 열리고 나지막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타치아나, 잠들었어?" "아뇨." "손님은 주무시나?" "그럭저럭 잠이 드신 것 같아요." 불이 확 하고 타올라 떨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농사꾼은 어머니의 침상 옆으로 다가가서 모피 외투를 바로 잡아서 그녀의 발을 감싸 주었다. 그러한 배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래서 어머니는 다시 눈을 감고 빙긋이 웃었다. 스테판은 잠자코 옷을 벗고 침상으로 올라 가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잠에 취한 채 고요함을 즐기며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그러자 그녀 앞에 피를 뒤집어쓴 루이빈의 얼굴이 흔들렸다. 침상 위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분들도 이런 일을 하고 계신다구요. 이미 나이가 들고, 실컷 고생을 맛보고, 뼈빠지게 일을 하셨던 분이에요, 이제는 휴식을 취해도 좋을 때인 데도, 저렇게 열심히 뛰어다니고 계세요. 당신은 아직 젊고 건강한데 이게 뭐예요, 스데판?" 농사꾼의 윤기 있는 굵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런 일에는 잘 생각하지 않고 덤벼들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 "그런 말은 벌써 귀가 따갑게 들어왔어요." 속삭임은 중단되었다가 다시 계속되었다. 스테판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할 거야. 우선 농민들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얘기를 해야 해. 알료샤나 마코프는 읽고 쓰기도 할 줄 알고, 관리들에게 원한도 품고 있어. 세르게이나 쇼린도 머리가 좋은 친구지. 크리야제프는 정직하고 대담한 사람이야. 우선 이 정도면 충분해. 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도 만나 보아야겠어. 나는 도끼를 들고 장작패는 일로 돈 벌러 간 것으로 해놓고, 시내로 달려가겠어. 그곳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지 ?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야. 인간의 값어치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야. 낮에 붙잡힌 그 사람은 하느님 앞에 끌려나가도 항복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경찰 서장 따위야 우습지. 그런데 니키타는 처음엔 시키는 대로 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기 시작했어. 신기한 일이지 ?" "눈앞에서 사람이 맞고 있는 데도, 당신들은 입을 쩍 벌리고 서 있었으면서..."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구. 그를 때리지 않은 걸 고마워해야 돼. 누구든지 사람을 때릴 자격은 없으니까." 스테판은 오랫동안 속삭였다. 말은 어머니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강하고 굵은 목소리로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부는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쉬! 잠을 깨시겠어요..." 어머니는 잠시 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은 숨막히는 비구름처럼 덤벼들어 어머니를 끌어안고 데려가 버렸다. 타치아나 부인이 어머니를 깨웠을 때는 아침 노을이 어슴푸레하게 창 문을 들여다보고, 교회의 종소리가 마을 하늘의 정적 속으로 졸리운 듯이 사라져 간 뒤였다. "사모바르 준비를 해놓았어요. 차를 드세요. 일어나자마자 떠나시면 추울 테니까요." 스테판은 뒤엉킨 턱수염을 빗으면서 시내에서 그녀를 만나려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고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이 농사꾼의 얼굴이 오늘은 훨씬 더 아름답고 단정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를 마실 때, 스테판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참 이상하군요." "무엇이요?" 하고 타치아나 부인이 물었다. "이렇게 가까워진 것 말이야! 이렇게 쉽게....." 어머니는 사려깊게, 그러나 자신감을 가지고 말했다. "이 일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놀랄 만큼 시원시원하지요." 어머니와 헤어질 때, 주인 부부는 신중하고 말수는 적었지만 어머니의 형편을 생각해서 이것저것 세밀하게 신경을 써주었다. 어머니는 마차를 타고 떠나면서 이 농사꾼은 조심스럽게 두더지처럼 소리도 내지 않고, 한결같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서는 아내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채찍처럼 울리고, 그녀의 녹색 눈이 불타오르는 듯이 반짝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 속에서 잃어버린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어머니의 원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이빈의 얼굴과 불타는 듯한 눈과 그 말이 생각났다. 마음은 야수와 대치한 씁쓸한 무력감으로 죄어졌다. 그리고 시내까지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잿빚 날씨의 뿌연 배경 위에 루이빈의 딱 벌어진 모습이 어머니의 눈앞에 서있었다. 그것은 누더기 셔츠를 입고, 뒤로 손을 묶이고,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분노에 차서 자신의 진리에 대한 신념에 불타고 있었다. 어머니는 땅에 쭈삣거리며 납작 달라붙어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을들과 진리의 도래를 은밀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생각하는 일도 없이 잠자코 계속 일만 하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생활은 갈아 일구지 않은 구릉 투성이의 들판처럼 생각되었다. 그 들판은 잔뜩 긴장한 채 소리도 없이 일하는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잠자코 자유롭고 성실한 사람들의 손에 이렇게 약속했다. '나에게 이성과 진실의 열매를 맺게 해달라. 나는 그것을 백 배로 해서 되돌려 주겠다.' 어머니는 이번 일을 무사히 마친 것을 생각하자 가슴이 설레었다. 혼란스럽던 머리도 차츰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자 부끄러움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어머니는 수줍은 듯이 그것을 억눌렀다. 16 집에 도착하자 머리를 헝클어뜨린 니콜라이가 책을 손에 든 채 문을 열어 주었다. "벌써 돌아오셨어요?" 하고 니콜라이는 기쁜 듯이 소리쳤다. "뼈르군요." 그의 눈은 안경 밑에서 부드럽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그녀가 외투를 벗는 것을 도와주고, 상냥한 미소를 띄운 채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보시다시피 어잿밤에 가택 수색이 있었답니다. 나는 원인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체포되었다면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둘리는 없었을 테니까요." 니콜라이는 어머니를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활기에 차서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청에서 쫓겨날 겁니다. 그것은 비관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요. 나는 이미 말을 갖고 있지 않은 농사꾼의 숫자를 계산하는 일에는 신물이 났으니까요." 방 안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 엄청나게 힘이 센 사람이 집 안의 것을 몽땅 흔들어 떨어뜨려 놓은 것처럼 보였다. 초상화는 마루 위에 뒹굴고 있고, 벽지는 벗겨내져서 솔처럼 되어 삐져나와 있었으며, 어떤 곳에서는 마루판이 떠올라 있고, 창문 턱도 뒤집혀지고, 난로 옆의 마루 위에는 재가 마구 흩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 낯익은 광경을 보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니콜라이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의 내부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느꼈다. 테이블 위에는 불이 꺼진 사모바르와 더럽혀진 채로 있는 식기와 접시 대용의 종이 위에 얹은 소시지와 치즈가 얹혀 있었다. 빵조각이나 책에 사모바르의 숯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머니가 쓴웃음을 짓자, 니콜라이도 역시 계면쩍은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내가 약탈의 장면에 덤을 붙인 겁니다만, 뭐 괜찮습니다. 아주머니, 나는 태연합니다! 나는 놈들이 다시 찾아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것들을 모두 치우지 않고 놔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여행은 어땠습니까?" 이 물음은 무겁게 어머니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의 눈앞에는 루이빈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의 얘기를 하지 않아서 미안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자 위로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는 니콜라이 쪽으로 다가가서,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무엇인가를 혹시 빠뜨리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체포당했다네." 니콜라이의 얼굴이 움찔하고 떨렸다. "정말입니까?" 어머니는 한 손을 흔들어 그의 질문을 막았다. 그리고 마치 정의 앞에 앉아서 인간의 박해에 대해서 부당함을 호소하는 듯한 어조로 얘기를 계속했다. 니콜라이는 의자의 등에 몸을 기대고 창백해져서 입술을 깨물면서 듣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천천히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라도 털어 버리는 것 같은 몸짓으로, 한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의 얼굴은 험악해지고 광대뼈는 묘하게 튀어 나오고 코 끝이 떨렸다. 어머니는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보자 조금 겁이났다. 어머니가 이야기를 끝내자, 니콜라이는 일어나서 양 주먹을 깊숙이 주머니 속에 찔러넣고 잠시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리고는 입을 우물우물 거리며 중얼거렸다. "큰 인물입니다. 분명히. 서둘러서 무슨 수를 세워야겠군요. 그분은 감옥에서는 견디지 못할 거예요. 그분과 같은 인물은 그곳에서는 상당히 괴로울 것업니다." 니콜라이는 양손을 더욱 깊이 찔러넣고 자신의 흥분을 억누르고 있었으나 그 흥분은 어머니에게 전해져 왔다. 그의 눈은 마치 나이프의 칼끝처럼 가늘어졌다. 니콜라이는 다시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화가 난다는 듯이 말했다.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얼마 안 되는 멍청한 인간들이 국민에 대한 자신의 유해한 권력을 지키려고 모두를 때리고 착취하고 짓밟고 있는 것입니다. 야만성이 퍼져 나가고 잔인성이 생활의 계율이 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떤 자는 사람을 때려도 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야수처럼 되고, 잔학한 변태 성욕에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노예 근성이나 짐승의 습관을 마음껏 발휘하는, 자유를 얻은 노예들의 혐오해야 할 병입니다. 또 어떤 자는 복수욕의 노예가 되고, 또 다른 자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맞아 벙어리나 장님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민중을 타락시키고 병들게 하는 겁니다." 니콜라이는 얘기를 중단하고 이를 악물었다. "이 야수와 같은 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짐승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니콜라이는 자신의 흥분을 억제하고 눈에 단호한 빚을 담고서 눈물이 넘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시기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아주머니! 자아, 소중한 동지, 우리 정신을 바짝 차립시다." 니콜라이는 서글픈 미소를 띄면서 어머니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구부리고,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물었다. "아주머니의 트렁크는 어디에 있습니까?" "부엌에 있네."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우리 집 문 옆에는 스파이들이 잠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인쇄물을 눈치 못채게 가지고 나갈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숨길 만한 곳도 없고요. 나는 그놈들이 오늘밤에 또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애써 만든 것을 아깝기는 하지만 모두 불태워 버려야 합니다." "무엇을 말인가?"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트렁크 안에 있는 것 모두 말예요." 어머니는 니콜라이가 말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무척 슬픈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는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네. 한 장도 말이야." 하고 어머니는 말하고, 차츰 활기를 띠면서 스테판 튜마코프와 만난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이는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불안스러운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으나, 다음에는 놀라움을 나타내고,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얘기를 가로막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아, 그것 참 잘 되었군요! 아주머니는 놀랄 만큼 운이 좋은 분이에요." 어머니의 손을 움켜잡고 니콜라이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의 그 사람을 믿는 마음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군요. 나는 정말로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처럼 아주머니를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신기한 듯이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니콜라이가 이처럼 밝고 활기에 차있는지 그것을 알고 싶었다. "요컨대 멋집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양손을 비비면서 말하고, 조용하고 상냥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나는 말이지요, 지난 며칠 동안 무척 보람 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을 만나서 함께 읽고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자 마음 속에는 놀랄 만큼 건강한 순수한 것이 축적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아주머니, 나는 젊은 노동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거예요. 착실하면서도 민감하고,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욕구로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러시아가 지상에서 가장 찬란한 민주국가가 될 거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니콜라이는 마치 맹세라도 하듯이 결연히 한쪽 손을 들고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나서 다시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웬지 시큼해져서 책이나 숫자에 곰팡이가 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거의 일 년 동안의 이런 생활은 비정상이라구요. 나는 노동자 속에 있는 것에 익숙해진 거예요. 그래서 노동자에게서 떨어지게 되면 나는 혼란스러워지지요. 나는 그러한 생활을 위해서 무리하게 긴장하고, 마음을 팽팽히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자유롭게 살 수가 있습니다. 노동자들과 만나서 함께 공부하는 거예요. 아시겠지요? 나는 새롭게 태어난 사상의 요람 옆에 있으며, 정고 창조적인 에너지의 눈앞에 있게 되는 셈입니다. 그것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 아름답고,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것입니다. 젊어지고, 견실해지고, 풍요롭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니콜라이는 계면쩍은 듯이, 그리고 유쾌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기쁨은 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너무나 좋은 분이에요!" 하고 니콜라이는 외쳤다. "정말로 자네는 사람들을 또렷하게 잘 그려내고, 사람들을 잘 보는 것 같네." 니콜라이는 어머니 옆에 앉아서 즐거운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수염을 어루만지고 있었으나, 곧 고개를 돌려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놀라울 정도의 성공입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외쳤다. "아주머니는 감옥에 투옥될 위험이 충분히 있었는 데도... 그리고 갑자기 농민도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군요. 이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그 부인의 모습을 눈에 떠올릴 수가 있어요.... 우리들은 농촌 운동에 전문적인 사람을 두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는 부족합니다... 생활은 여러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정말로 파벨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안드류샤도 !" 하고 어머니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니콜라이는 어머니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말은 아주머니에게는 쓰라린 일이겠지만, 그러나 역시 말해 두겠습니다. 나는 파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탈옥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재판을 받으려 해요. 시련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 거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아마 파벨은 시베리아에서나 탈주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한숨을 짓고 대답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나? 그 아이는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지 잘 알고 있을 걸세." "흐음!" 하고 니콜라이는 다음 순간에 안경 너머로 어머니를 바라 보면서 말했다. "그 농사꾼이 서둘러 우리들을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는데요! 루이빈 씨의 사건으로 농촌 대상의 유인물을 써야 합니다. 그분이 그처럼 대담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면 그분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오늘 당장 쓰겠습니다. 류드밀라가 즉시 그것을 인쇄해 줄 거예요.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곳에 인쇄물이 갈 수 있을까요?" "내가 가지고 가겠네." "정말 고맙습니다만!" 하고 재빨리 니콜라이는 외쳤다. "나는 배소푸쉬코프가 이번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과 얘기를 해볼까?"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하지만, 나는 무엇을 한다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니콜라이는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테이블 위를 정리하면서 니콜라이 쪽을 이따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펜이 떨리면서 종이를 메꿔 가는 것을 보았다. 이따금 그의 목이 경련했다. 니콜라이는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의 턱도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걱정이 되었다. "자아, 다 썼습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아주머니는 이것을 몸 속에 넣어서 숨겨 주십시오. 그러나 알아 두십시오, 헌병이 찾아오면 아주머니도 몸 수색을 받게 될 거예요." "멋대로들 하라고 하게!" 하고 어머니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밤이 되자 의사 이반 다닐로비치가 찾아왔다. "왜 갑자기 관리들이 이렇게 설치기 시작한 것일까?" 하고 이반은 방 안을 서성거리면서 말했다. "어젯 밤에는 일곱 군데서 가택 수색을 했다네. 환자는 어디 갔지?" "그 사람은 벌써 어저께 가버렸다네!" 하고 니콜라이가 대답했다. "오늘은 토요일 아닌가? 그 친구 집에서는 독서회가 있다더군. 그 친구는 그것에 빠질 수가 없다더군." "그건 바보 같은 짓이야. 깨진 머리를 하고 독서회에 참석해야만 하다니." "나도 그 점을 강조했지만 막무가내였네." "동료들 앞에서 자랑을 하고 싶은 거라네." 하고 어머니가 끼여들었다. "이것 봐라, 나도 이미 피를 흘렸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의사는 어머니를 흘끗 보고는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를 앙물고 말했다.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자아, 이반, 자네는 여기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우리들은 지금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참일세. 돌아가 주게! 아주머니, 이 사람에게 그 종이쪽지를 좀 건네 주심시오." "또 종이 쪽지인가?" 하고 의사는 소리쳤다. "자아, 이것을 인쇄소에 좀 전해 주게나." "알았네. 건네주지. 그것 뿐인가?" "그것 뿐일세. 우리 집 문 옆에 스파이가 있을 거야." "보았네. 우리 집 입구에도 버티고 있더군. 그럼, 잘 있게! 안녕히 계세요, 성미가 거친 아주머니. 그건 그렇고, 묘지에서의 격투는 결국은 잘 한 일이었네! 온 시내가 그 얘기로 떠들썩하니까, 그 사건에 대해서 자네가 쓴 유인물도 꽤나 좋더군. 게다가 적절한 시기에 나왔네." "내가 언제나 말했지? 말다툼은 나쁜 평화보다는 낫다고 말일세." "알았네. 자아, 빨리 가게나." "정말 심하게 푸대접하는군! 닐로브나 부인, 손을 주십시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 청년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구.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자네는 알고 있을 테지?" 니콜라이는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내일 그 청년을 왕진해야 하니까. 훌륭한 젊은이야, 안 그런가?" "물론이지." "그 청년을 잘 보살펴 주게나. 건강한 두뇌를 갖고 있으니까!" 하고 의사는 방을 나가면서 말했다. "그러한 젊은이들 속에서 진짜 프롤레타리아 인텔리젠타가 태어나는 것일세. 그리고 우리들이 아마도 계급적 모순 같은 것이 없는 곳으로 떠나갈 때 우리들을 대신해 줄 것일세." "이반, 자네는 굉장히 말이 많아졌군. 그래." "하지만 나는 유쾌하다구. 그래서 그런 거야, 그럼, 감옥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인가? 그곳에서 편히 쉬어 주게." "고맙네. 나는 조금도 피로하지는 않지만 말일세." 어머니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데, 그 노동자와 일을 걱정해 주는 것이 기뻤다. 의사를 돌려 보내고 나서 니콜라이와 어머니는 차를 마시고, 가벼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님을 기다리면서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오랫동안 유형지에서 살아온 자신의 동료 얘기나, 이미 그곳에서 탈주해서 다른 이름으로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했다. 방의 벌거벗겨진 벽은 세계의 개혁이라는 위대한 사업에 자신의 힘을 사욕없이 다 바친 영웅들의 이야기에 놀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의 목소리의 조용한 울림으로 대답했다. 따뜻한 그림자가 어머니를 감싸고, 낯선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의 상상 속에서 끝없는 거대한 힘으로 가득 찬 한 사람의 거인상을 만들어냈다. 그 거인은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지상을 걸어가고, 자신의 일에 반한 그 손으로 허위의 여러 해 묶은 곰팡이를 지상에서 떨쳐내고, 사람들의 눈앞에 생활의 단순하고 또한 명료한 진실을 밝혀서 보여 주었다. 그리고 위대한 진실은 되살아나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고 다정스럽게 손짓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탐욕과 증오와 허위 이 세 가지 괴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다. 이 세 가지 괴물이야말로 그 뻔뻔스러운 힘으로 전세계를 노예화하고 위협해 온 것이었다. 이 거인의 모습이 어머니의 마음에 불러일으킨 감정은, 기꺼운 감정의 기도를 올렸을 때와 닮아 있었다. 지금 어머니는 그러한 나날들의 일은 잊어버렸지만, 그 무렵에 생겨난 감정은 퍼져 나가서 더욱더 밝고 기쁜 것이 되고, 더욱더 깊이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려서 싱싱하고 밝게 타올랐다. "그런데 헌병 놈들은 찾아오지 않는군요" 하고 갑자기 얘기를 중단하고, 니콜라이가 소리쳤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화가 난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그런 놈들은 개에게라도 물려가 버리면 좋겠네." "물론이지요, 그러나 아주머니, 이제 주무셔야만 합니다. 틀림없이 무척 피곤하실 테니까요. 아주머니는 정말로 놀랄 만큼 건강하시군요. 걱정이나 불안이 있어도 그것을 태연히 견더내시니까요. 다만 머리칼이 갑자기 희어진 것 같아요, 그럼, 이만 가서 주무세요." 17 어머니는 부엌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잠을 깼다. 인내심을 가지고 집요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아직 어둡고 조용했기 때문에 그 소리는 온 집안을 울리며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어머니는 재빨리 옷을 입고 서둘러 부엌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물었다. "누구세요?" "저예요!" 하고 낯선 목소리가 대답했다. "누구예요?" "빨리 열어 주세요." 하고 문 너머에서 사정하는 듯한 작은 소리의 대답이 있었다. 어머니는 빗장을 벗기고 문을 열었다. 이그나트가 들어와서 기쁜 듯이 말했다. "자아 이렇게 어김없이 찾아왔쟎아요." 이그나트는 허리 근처까지 흙탕물이 튕겨 있었다. 얼굴은 회색이 되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다만 곱슬머리만이 모자 밑에서 삐져나와 기세좋게 사방으로 뻗어나가 있었다. "우리 고장에서 곤란한 일이 일어났어요.!" 하고 이그나트는 문을 닫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젊은이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눈을 꿈뻑거리며 물었다. "어디서 들었지요?" 어머니는 간략하게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붙잡혔나요? 당신의 동료 말이에요." "두 사람은 집에 없었어요. 출두하고 있었지요. 징병 말이에요. 루이빈 아저씨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 붙잡혔어요." 이그나트는 코로 숨을 들이쉬고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틀림없이 나를 찾고 있을 거예요." "어떻게 당신은 무사했나요?"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방으로 가는 문이 조용하게 열렸다. "나 말인가요? 하고 의자에 걸터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그나트가 대답했다. "놈들이 오기 조금 전에 숲지기가 달려와서 창문을 두드리고 '이보게, 모두 조심하게, 자네들을 붙잡으러 오니까' 하고 귀띔을 해 주었거든요." 이그나트는 희미하게 웃고 옷자락으로 얼굴을 닦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루이빈 미하일 아저씨는 망치로 얻어 맞는다 해도 귀머거리는 안 될거예요. 아저씨가 나에게 말했어요. '이그나트, 시내로 가게. 서둘러 달려가야 하네. 그 나이먹은 아주머니를 알고 있겠지 ?' 그리고 자기 손으로 황급히 편지를 써주고, '자아, 어서 가게!' 하고 말합디다. 내가 덤불 속을 가고 있으려니까, 놈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사방팔방에서 와글와글 지껄여대고 있었어요. 그 악마 녀석들! 공장 주위를 포위하더군요. 덤불 속에 엎드려 있으니까 바로 옆을 통과해 가더군요. 그래서 나는 몸을 일으키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었어요. 이틀 밤과 하루를 쉬지 않고 걸었지요." 이그나트는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갈색 눈 속에는 미소가 빚나고, 커다란 붉은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곧 차를 갖다 줄게요!" 하고 어머니는 사모바르를 잡고 급히 말했다. "편지부터 받아 주세요." 이그나트는 가까스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한쪽 다리를 쳐들고, 목을 그렁거리면서 그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문턱에 니콜라이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동지!" 하고 니콜라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내가 도와주겠소." 그리고 몸을 구부리고 재빨리 먼지가 쌓인 각반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됐어요." 하고 젊은이는 발을 빼내면서 작은 소리로 외치고, 놀란듯이 눈을 깜빡거리면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깨닫지 못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발을 보드카로 씻어 주어야겠네요." "물론입니다!" 하고 니콜라이가 말했다. 이그나트는 계면쩍은 듯이 코를 콩쿵거렸다. 니콜라이는 편지를 발견하자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회색의 꾸깃꾸깃해진 종이를 얼굴 앞에 갖다대고 읽었다. "아주머니, 일을 잊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키가 큰 부인에게 잊지 말고 좀더 우리들의 일에 대해서 써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루이빈 올림." 니콜라이는 편지를 든 한쪽 손을 천천히 내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참 훌륭한 편지로군요." 이그나트는 구두를 벗은 더러워진 발가락을 살며시 움직이면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감추듯이 하고, 물을 담은 대야를 들고 이그나트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루 위에 주저 앉아서 그의 발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재빨리 그 발을 의자 밑으로 쑤셔넣고 놀라서 소리쳤다. "왜 그러세요?" "빨리, 발을 내놓아요." "나는 가서 알코올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하고 니콜라이가 말했다. 짊은이는 발을 점점 더 깊숙이 의자 밑으로 집어넣으면서 중얼거렸다. "당신네들,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요? 여기가 병원입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다른쪽 발의 구두를 벗기기 시작했다. 이그나트는 큰소리로 코를 쿵쿵거렸다. 그리고 어색스럽게 목을 움직여서 어머니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우스쾅스러운 모습으로 입을 벌렸다. "당신은 알고 있나요?" 하고 어머니는 목소리를 떨면서 말을 꺼냈다. "미하일 이바노비치 씨는 죽도록 두들겨 맞았어요." "그랬어요?" 하고 젊은이는 외쳤다. "그래요. 죽도록 얻어맞고 끌려가서 니콜스크에서 또 경찰관에게 두들겨맞고, 서장에게는 주먹으로 얼굴을... 발길질도 당해서 피투성이가 되었지요." "그놈들은 그게 특기인데요, 뭘!" 하고 젊은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외쳤다. 그의 어깨는 경련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놈들이 악마처럼 무섭단 말이에요. 그런데 농민들은 때리지 않았나요?" "한 사람 때린 사람이 있었지만 서장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던 거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었어요. 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음, 그래요. 농사꾼들도 아저씨가 무엇 때문에 그런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지 깨닫기 시작한 거라구요." "그곳에도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은 있어요." "어디에든지 있어요. 다만 부족할 뿐이지요. 어디에선가 혼자 끙끙 앓고 있기 때문에 찾아내는 것이 어려운 거라구요." 니콜라이는 알코올 병을 가져오고, 사모바르에 숯을 집어 넣은 뒤 잠자코 다시 나갔다. 이그나트는 그를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작은 소리로 어머니에게 물었다. "이 집 주인인가 보군요. 의사인가요?" "주인이라기보다는 동지예요." "아무래도 이상한데요!" 하고 이그나트는 믿을 수가 없어서, 곤혹스러운 미소를 띄면서 말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아니, 별로요. 한쪽에서는 얼굴을 후려갈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발을 씻겨 주고. 그렇다면 그 중간은 무엇인가요?" 방문이 활짝 열리면서 니콜라이가 문턱 위에 서서 말했다. "그 가운데 있는 것은 얼굴을 때리는 놈들의 손을 핥고, 얼굴을 얻어 맞은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는 놈들이오. 이것이 그 중간이라오." 이그나트는 존경을 담아서 니콜라이를 보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그렇겠지요!" 젊은이는 일어나서 발을 바꿔 밟아 보더니 양발로 힘껏 마루를 밟고 말했다. "너무 상쾌하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식당으로 가서 차를 마시면서 이그나트는 또렷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나는 유인물을 배달했기 때문에 다리는 무척 튼튼합니다."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은 많은가요?" 하고 니콜라이가 물었다. "읽고 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읽고 있습니다. 부자도 읽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물론 우리들의 신문은 받지 않지만요. 그 사람들은 알고 있다구요. 농사꾼들의 피로 나리나 부자들의 손에서 땅을 돌려 받으리라는 것을요. 그러니까 자기네들끼리 토지를 나눠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예요. 그렇게 되면, 주인도 머슴도 없어지게 되고 공평하게 나누게 되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그것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때문에 싸움을 시작하겠습니까?" 이그나트는 화라도 내는 것 같은 모습으로, 니콜라이를 질문하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니콜라이는 잠자코 미소를 지었다. "가령 오늘 전세계를 통털어서 싸움을 하고 이겼다고 헤도, 내일이 되면 또 부자와 가난뱅이가 생긴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어요. 돈이라는 것은 푸슬푸슬 부서지는 모래 같은 것이어서 얌전하게 한 곳에 머물러 있지를 않는다구요. 다시 사방팔방으로 흘러가 버리는 거예요! 아니, 그런 것이 도대체 왜 필요합니까?" "젊은 양반, 그렇게 화를 낼 것 없어요." 하고 어머니는 농담으로 말했다. 니콜라이는 사려 깊게 말했다. "우리들은 어떻게든 빨리 루이빈 씨가 체포당했다는 것을 알리는 유인물을 그곳으로 보내고 싶군요." 이그나트는 귀를 곤두세웠다. "그러면 그 유인물이 벌써 인쇄되었다는 말씀이세요?" 하고 이그나트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주십시오. 내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하고 젊은이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어머니는 이그나트 쪽을 보지 않고 작은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당신은 지쳐 있고, 또 무섭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이그나트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머리 위의 곱슬곱슬한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시원시원하게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섭기는 해도 일은 일입니다. 아주머니는 왜 웃으세요? 아주머니도 처음에는 그랬었쟎아요?" "어머, 젊은 양반이 귀엽기는!" 하고 어머니는 즐거운 감정에 사로 잡혀서 엉겁결에 외쳤다. "귀엽다고 하지 마세요." 니콜라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젊은이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당신은 그곳에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하고 이그나트는 근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당신은 위험해요. 다른 사람이 가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자세히 얘기를 해주면 됩니다. 어떤 식으로 하면 되는지를 말입니다." "좋습니다!" 하고 이그나트는 마지 못해서 대답했다. "우리들은 훌륭한 신분증명서를 만들어서 당신을 숲지기로 만들 생각입니다." 젊은이는 재빨리 고개를 쳐들고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하지만 만일 농사꾼들이 뗄나무를 훔치러 오거나, 아니면 또 그곳에서 아니, 도대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요? 붙잡아서 묶어야 하나요? 그런 일은 나에게는 적합치가 않아요." 어머니는 웃음을 터뜨리고, 니콜라이도 다시 웃기 시작했다. 그것이 또 젊은이를 당혹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걱정할 것 없어요." 하고 니콜라이가 그를 위로했다. "당신은 농사꾼을 잡아서 묶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하여간 나를 믿고 기다려 봐요." "그렇다면 좋아요." 하고 이그나트는 쾌활하게 웃었다. "나는 그것보다는 공장에 가고 싶어요. 공장 노동자들은 굉장히 영리하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어머니는 데이블에서 일어나서 수심에 잠긴 채 창 밖을 내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아, 이것이 생활이에요. 하루에 다섯 번 웃고, 다섯 번 울고! 그럼, 이그나트, 이제 끝났지요? 저리로 가서 자도록 해요." "아니, 나는 자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푹 자두는 게 좋아요." "우격다짐이로군요. 그럴게요. 차 잘 마셨습니다. 또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침대에 누운 이그나트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아주머니 방은 타르 냄새로 가득 찰 거예요, 이것은 전부 헛일이애요. 나는 자고 싶지 않은데.. 저분은 그 중간에 대해서 멋지게 표현하더군요.. 빌어먹을..." 그리고 이내 코를 골면서 입을 반쯤 벌리고는 잠에 곯아 떨어졌다. 18 밤늦게 이그나트는 조그만 지하실 방에서 베소푸쉬코프와 마주보고 앉아서 미간을 찌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그에게 말했다. "가운데의 작은 창문을 네 번..." "네 번이란 말이지요?" 하고 베소푸쉬코프가 근심스러운 듯이 되풀이 했다. "처음에는 세 번, 자아, 이렇게요!" 그리고 구부린 손가락으로 헤아리면서 데이블을 두드렸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나서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알았소." "빨간 머리의 농사꾼이 창문을 열어 주고서 산파를 부르러 왔느냐고 물을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주인이 시켜서 왔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저쪽은 누군지 알 거예요."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건장한 체격이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머니는 양손을 가슴에 끼고 테이블 옆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비밀의 노크나 암호의 질문이나 응답은 모두 그녀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생각했다. "아직 어리니까..." 벽 위에 걸려 있는 램프의 불빚이 마루 위의 일그러진 양동이와 양철 지붕의 조각을 비추고 있었다. 녹과 페인트와 습기 냄새가 방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이그나트는 털 보풀이 있는 두꺼운 천의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그는 그 외투를 무척 소중히 여겼다. 어머니는 그가 넋을 잃고 소매를 만져 보고, 굵은 목을 돌려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둘러 보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가슴 속에 부드럽게 고동치는 것이 있었다. '마치 친자식 같아...' "이제 됐어요!" 하고 이그나트는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기억하고 있지요? 최초에는 무라토프의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를 불러서..." "기억하고말고요." 하고 배소푸쉬코프는 대답했다. 그러나 이그나트는 아무래도 미심쩍다는 듯이 또다시 노크와 암호의 말을 되풀이하고 나서야 겨우 손을 내밀었다. "그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세요. 좋은 사람들이에요. 만나보면 알아요." 이그나트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양손으로 외투를 만져 보고 나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돌아가도 됩니까?" "길을 제대로 찾겠어요?" "문제없어요!. 그럼, 잘 있어요, 동지들." 그리고 어깨를 높이 치켜 올리고 가슴을 쭉 펴더니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양손을 주머니에 꽂으며 당당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의 관자놀이 위에서는 즐거운 듯이 황갈색의 곱슬머리가 떨고 있었다. "자아 이제 나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군!" 하고 배소푸쉬코프는 다정하게 어머니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나는 벌써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감옥을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냥 숨어 있기만 했으니까요. 감옥에서는 공부를 했고, 파벨이 많은 것을 가르쳐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건 그렇고, 아주머니, 탈출 문제는 어떻게 결정되었나요?" "나도 잘 모르겠네." 하고 어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짓고 대답했다. 니콜라이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주머니가 그 사람들에게 말해 보세요. 아주머니 말이라면 들을 테니까요. 그것은 쉬운 일이에요. 자아, 보세요, 이것이 감옥의 담이에요. 옆에 가로등이 있어요. 그 너머 쪽은 공터이고, 왼쪽에는 묘지, 오른쪽은 거리로서 집들이 늘어서 있어요. 그 가로등이 있는 곳에 청소부가 낮에 램프 청소를 하러 옵니다. 담에 사다리를 걸치고 기어 올라가서 담 꼭대기에 줄사다리의 갈퀴를 건 다음 그 줄사다리를 감옥의 안뜰로 내립니다. 담 너머에서는 그것이 행해지는 시간을 알고 있다가, 죄수들에게 소동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하든가 아니면 자신들이 소동을 일으킵니다. 그 동안에 사람들이 줄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어오는 겁니다. 그것으로 탈옥 성공입니다." 베소푸쉬코프는 어머니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대면서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의 얘기로는 모든 일이 간단명료하게 잘 되어 갈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를 둔하고 재간이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이전에는 니콜라이의 눈은 모든 것을 음침한 증오와 불신을 가지고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마치 그 눈은 새롭게 떠진 것처럼 따뜻하게 빚나며, 어머니를 설득하고, 가슴설레이게 했다.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한낮에 하는 거라구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낮에 해야만 합니다. 대낮에 감옥 전채가 보고 있는 곳에서 죄수가 탈옥을 결행하리라고는 어느 누구의 머리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권총을 쏘아 댄다면?" 하고 어머니는 몸을 떨면서 말했다. "누가 씁니까? 군대는 없고, 교도관들은 총을 못을 박는 데 쓰고 있다구요." "그렇지만 너무 간단하니까..." "알고 있어요. 확실하다니까요! 하여간, 아주머니가 그 사람들에게 얘기를 좀 해주세요. 우리 쪽에서는 완전히 준비가 갖춰져 있다구요. 줄 사다리도, 그 갈퀴도. 이 집 주인이 청소부가 되는 거예요." 문 밖에서 누군가가 바스락거리며 헛기침을 하고, 짤가닥 하는 양철 판 소리가 났다. "그래요, 저 사람이에요!" 하고 니콜라이가 말했다. 열려진 문턱으로 양철 욕조가 들어오고, 목쉰 소리가 중얼거렸다. "얌전히 들어가지 못하겠니, 빌어먹을..." 그리고는 모자를 쓰지 않은 둥근 백발 머리가 나타났다. 눈이 튀어 나오고 콧수염이 있는 호인다운 얼굴이었다. 니콜라이가 거들어서 욕조를 끌어 들였다. 문 턱에 키가 크고 등이 구부러진 사나이가 들어와서, 수염을 깎은 뺨을 부풀려서 기침을 한 뒤 침을 뱉고는 목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시우..." "그래요. 이분한테 물어보세요." 하고 니콜라이가 외쳤다. "내게 말인가? 무슨 일을?" "탈옥 얘기말입니다." "아아, 그것 말이로군." 하고 주인은 검은 손가락으로 콧수염을 닦으면서 말했다. "글쎄, 야코프 바실리예비치 씨. 그것이 아주 간단하다는 것을 이 아주머니는 믿지를 않는답니다." "음, 믿지 않는다구? 그러니까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나하고 자네는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고 말야. 그러니까 믿는 거야!" 하고 주인은 침착하게 말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구부리고는 둔한 소리를 내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이 멈추자 가슴을 쓰다듬고, 한참 동안 방 한가운데에 서서 씩씩거리면서 튀어나온 눈으로 어머니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파벨과 동료들이 결정할 일이라네." 하고 닐로브나 부인이 말했다. 니콜라이는 생각에 잠겨서 머리를 숙였다. "그 파벨이라는 게 누군가요?" 주인이 걸터앉으면서 물었다. "내 아들입니다." "성은?" "블라소프랍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 쌈지와 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담배를 담으면서 띄엄띄엄 얘기를 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우리 조카가 그 사람을 알고 있더군요. 조카도 감옥에 들어가 있답니다. 예프첸코라고 하는데, 들은 적 있습니까? 나의 성은 고븐이라고 합니다. 이제 모든 젊은이는 감옥에 투옥될 테니까, 우리들 노인은 아주 속이 편안해질 거요. 헌병은 조카를 시베리아로 보내 주겠다고 나에게 약속을 합디다. 보내겠지요, 그 개새끼들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바닥에 몇 번씩이나 침을 뱉으면서 그는 니콜라이를 향해서 말했다. "그렇다면 싫다고 한단 말이지 ? 그것은 이분 마음대로지. 인간은 자유니까 앉아 있는 것이 힘들면 걸으면 되고, 걷는 것이 힘들면 앉으면 되는 거라네. 모조리 벗겨가도 참아라, 얻어맞아도 참아라, 죽이거든 누워 있으면 된다는 얘기지.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거라구, 그러나 나는 조카 녀석을 꼭 빼내 오겠네. 아암, 빼내 오고말고 !" 그의 짧고 짖어대는 것 같은 말은 어머니를 당혹스럽게 하면서도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차가운 바람과 비를 맞으며 거리를 결어가면서 어머니는 니콜라이 베소푸쉬코프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람이 싹 달라졌구먼. 정말 놀랐는 걸.' 그리고 고븐 노인을 생각해내고 거의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나 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애 !' 그러자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들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격해져 갔다. '그 아이가 승락을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19 일요일, 감옥의 사무실에서 파벨과 작별을 할 때 어머니는 자신의 손안에 조그만 종이쪽지를 느꼈다. 어머니는 손에 화상이라도 입은 듯이 몸을 떨고, 아들의 얼굴을 부탁하듯이, 그리고 질문하듯이 바라보았으나 대답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파벨의 파란 눈은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확신에 찬 미소를 띄고 있었다. "잘 있거라!" 하고 어머니는 한숨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들은 또다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엇인가 다정한 것이 그의 얼굴 속에서 떨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어머님 !" 어머니는 그 손을 놓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시고, 화도 내지 마세요!" 하고 파벨이 말했다. 이 말과 이마 위의 고집스러운 주름이 파벨의 대답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하고 어머니는 머리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냐?" 그리고 어머니는 눈물과 입술의 떨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아들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황급히 사무실을 나왔다. 도중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대답을 꽉 움켜쥐고 있는 손의 뼈가 쭈물거리고, 마치 어깨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팔 전체가 무겁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니콜라이 이바노비치의 손 안에 종이 쪽지를 밀어넣고, 뭉쳐진 종이 쪽지의 구김살을 펴는 것을 기다리면서 또다시 희망의 떨림을 느꼈다. 그러나 니콜라이는 "물론 그렇겠지! 자아, 이렇게 써있습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들은 탈옥하지 않을 겁니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자존심을 잃는 것이 되니까요. 최근에 체포당한 농민에게 신경을 써주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당신들의 배려를 받을 값어치가 있는 사람이며, 도와줄 가치도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곳이 대단한 고통입니다. 매일 관리들과 충돌하고, 벌써 하루 밤낮을 먹방에서 보냈습니다.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그가 탈옥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위로해 주십시오. 어머니에게 잘 얘기해 주십시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입니다.' 어머니는 머리를 쳐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나에게 얘기할 게 있겠나? 나는 모두 다 알고 있네 !" 니콜라이는 재빨리 옆으로 얼굴을 돌리고 손수건을 꺼내서 소리 높이 코를 풀고서 증얼거렸다. "아무래도 코감기에 걸린 것 같군요." 그리고는 안경을 고쳐 쓰기 위해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방 안을 돌아 다니면서 말을 꺼냈다.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상관없네, 재판을 받게 하면 되지 않겠나." 하고 어머니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러나 가슴은 촉촉한 안개와 같은 슬픔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페테르부르그의 동지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요." "하지만 그 아이는 시베리아에서는 탈출할 수 있겠지,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동지는 이렇게 써보냈더군요. 공판 날짜는 곧 결정된다. 판결은 전원이 유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요. 아시겠어요? 이 인색한 사기꾼 놈들은 자신의 재판을 어리석기 짝이 없는 희극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놈들은 판결을 재판보다 먼저 패테르부르그에서 내리고 있습니다." "그 얘기는 그만두게,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하고 어머니는 결연히 말했다. "나를 위로할 필요도, 설명해줄 필요도 없네. 파벨은 서툰 일은 하지 않을 걸세.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헛되게 괴롭히는 짓은 하지 않을 걸세. 게다가 그 아이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네. 그렇네 ! 알겠나? 내 걱정을 해주고 있으니, '잘 설명해 주십시오. 위로해 주십시오.' 라고 써있쟎은가?"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은 빨라지고 머리는 흥분 때문에 어찔어찔했다. "아주머니의 아드님은 훌륭한 분입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어울리지 않게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를 무척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루이빈의 일을 생각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하고 어머니는 제의했다. 어머니는 지금 어딘가로 파김치가 될 때까지 걸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 좋습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방 안을 걸어다니면서 대답했다. "사웬카를 불러와야겠군요." "그 아가씨는 곧 올 걸세. 내가 아들을 면회가는 날에는 항상 찾아오니까." 생각에 잠긴 듯이 머리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고 수염을 비틀면서 니콜라이는 어머니와 나란히 장의자에 걸터앉았다. "누이가 없어서 유감이군요." "파벨이 그곳에 있는 동안에 지금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을 걸세. 그 아이는 무척 기뻐할 거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갑자기 어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그 아이가 왜 탈옥하려고 하지 않는지." 나로서는 정말 알 수가 없네." 니콜라이는 벌떡 일어났으나 그때 벨이 울렸다. 두 사람은 얼른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웬카일 거예요, 틀림없이!" 하고 니콜라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아가씨에게 뭐라고 말할 건가?" 하고 역시 작은 소리로 어머니가 물었다. "글쎄요..." "그 아가씨가 너무나 불쌍해서..." 벨이 다시 울렸으나 소리는 전보다 작았다. 마치 문 밖의 사람도 망설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니콜라이와 어머니는 일어나서 함께 나갔다. 그런데 부엌으로 통하는 문 옆에서 이렇게 말하고 니콜라이는 옆으로 비켜섰다. "아주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이 낫겠어요." "그 사람, 거절했습니까?" 하고 어머니가 문을 열자, 사웬카는 또렷한 어조로 물었다. "그렇네." "나는 그럴 줄 알고 있었어요." 하고 사웬카는 시원스럽게 말했으나, 그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그녀는 외투의 단추를 풀고, 그리고 다시 두 개의 단추를 끼우더니 그대로 어깨로부터 벗으려고 했다. 그것은 잘 되지를 않았다. 그러자 사웬카가 말했다. "바람과 비로 이 지경이에요. 그 사람은 건강히 잘 있던가요?" "응." "원기왕성하고 기분이 좋을 테지요." 하고 사웬카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루이빈 씨를 구출해 달라고 써보냈어." 하고 어머니는 처녀의 얼굴을 보지 않고 알려 주었다. "그랬습니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천천히 사웬카가 대답했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 하고 니콜라이가 문턱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말했다. "안녕, 사쳰카 !" 한 손을 내밀면서 사웬카가 물었다. "그럼, 어디에 문제가 있나요? 모두들 이 계획은 완벽하다고 찬성하지요?" "하지만, 누가 그 조직을 맡지요? 모두 자기 일로 하루가 꽉 차 있는데..." "나에게 맡겨 주세요!" 하고 사웬카가 일어서면서 빠른 어조로 말했다. "나는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맡아 주세요. 그러나 도와줄 사람들의 의견도 물어보아야 합니다." "좋아요, 내가 물어보겠어요. 지금 당장 갔다 오겠어요." 그리고 가날픈 손가락을 정확히 움직여서 다시 외투의 단추를 끼우기 시작했다. "잠시 좀 쉬었다가 가는 것이." 하고 어머니가 권했다.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으니까요."그리고 잠자코 두 사람과 악수를 하고는 또다시 차고 엄격한 모습으로 돌아 가서 집을 나갔다. 어머니와 니콜라이는 창가로 다가가서 사웬카가 안뜰을 지나서 문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조용히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고, 테이블 앞에 앉아서 뭔가 쓰기 시작했다. "이번 일을 하게 된다면, 저 아가씨도 얼마간 슬픔을 잊어버리게 되겠지." 하고 어머니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그럴 거예요, 물론!" 하고 니콜라이는 대답했다. 그리고 어머니 쪽으로 돌아 앉아서 상냥한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하지만, 아주머니, 그런 경험은 맛본 적이 없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안타까움을 모르시지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하고 어머니는 한 손을 마구 흔들면서 외쳤다. "나에게 안타까움 같은 것이 어디 있었겠나? 오직 두려움 뿐이었네. 어떻게 해서든 이 남자나 저 남자에게 시집을 가지 않으려고 말일세." "그럼,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단 말예요?" 어머니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기억이 나지를 않네. 왜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겠나? 틀림없이 누군가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 있었겠지만, 다만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일세 !"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고 조용한 비애를 담아서 깨끗이 얘기를 끌냈다. "나는 남편에게서 심하게 얻어 맞았기 때문에 시집가기 전에 있었던 일은 모두 까맣게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것 같네." 니콜라이는 테이블 쪽으로 돌아앉았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방 밖에 나가 있었으나 다시 돌아왔다. 니콜라이는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추억을 소중하게 어루만지듯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꼭 사웬카와 똑같은 복잡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처녀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처녀였습니다. 스무 살 때, 나는 그 사람을 만나 그때부터 사랑하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줄곧 변함없이 마음 전체로, 감사하는 듯한 마음으로 영원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따뜻하게 반짝이는 니콜라이의 눈을 보고 있었다. 양손을 의자의 등에 얹고, 그 위에 자신의 머리를 을려놓고서 니콜라이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여위고 호리호리한, 그러나 힘찬 몸 전체는 마치 식물의 줄기가 태양의 빚을 구하듯이 앞으로 돌진해가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럼 뭘 망설이나? 결혼을 하면 될 텐데!" 하고 어머니는 권유하듯이 말했다. "그녀는 결혼한 지가 벌써 5년째나 되는 걸요." "하지만 그 전에 왜 결혼하지 않았나?"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그는 대답했다. "글쎄요,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어째서 그런지 그런 식으로 꼬여 버렸어요. 그녀가 감옥 안에 들어가 있으면, 나는 출옥하고, 내가 자유의 몸으로 있으면, 그녀는 감옥에 있든가 유형지에 있었던 거예요. 이것도 사웬카의 상태와 아주 비슷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10년 간의 형기로 시베리아로 보내졌어요. 엄청나게 먼 곳입니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아 가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해서도, 나 자신에 대해서도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어요. 나의 동료인데, 무척 좋은 청년입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함깨 탈주했어요. 지금은 외국에서 살고 있답니다." 니콜라이는 얘기를 중단하고, 안경을 벗어 닦은 뒤 렌즈를 불빚에 비쳐 보고는 다시 닦기 시작했다. "어머, 불쌍도 해라!" 하고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그가 불쌍했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의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가 그녀에게 따뜻한 어머니와 같은 미소를 불러 일으키게 했다. 그런데 니콜라이는 자세를 바꾸고, 다시금 손에 펜을 집어들고 한 손을 흔들면서 자신의 얘기의 리듬을 잡으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가정 생활은 혁명가의 에너지를 저하시킵니다. 자식이 태어나고, 생활은 불안정하고, 빵을 위해서 죽자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혁명가는 자신의 에너지를 쉴새없이 더욱더 깊고 넓게 신장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들은 언제나 모두의 선두에 서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들 노동자에게는 역사의 힘에 의해서 낡은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생활을 창조해내는 사명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들이 피로해지거나, 또 개인의 성공의 가능성에 끌려서 뒤처지게 된다면 그것은 나쁜 일이지요. 혁명의 사업에 대한 배신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신앙을 굽히지 않고, 함께 전진할 수가 있는 그러한 상대는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임무는 조그만 성공이 아니라 완전한 승리 뿐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니콜라이의 목소리는 확신에 찬 것이 되고, 얼굴은 창백해지고 눈에는 억제된 힘이 불타기 시작했다. 또다시 소리 높이 벨소리가 울려서 니콜라이의 얘기를 중단시켰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외투를 입고, 추위 때문에 뺨을 새빨갛게 상기시킨 채 류드밀라가 찾아온 것이었다. 찢어진 덧신을 벗으면서 그녀는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판 날짜가 정해졌어요. 일 주일 뒤라고 하더군요." "확실합니까?" 하고 니콜라이가 방 안에서 소리쳤다. 어머니는 재빨리 니콜라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으나, 자신을 흥분시키고 있는 것이 놀라움인지 아니면 기쁨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류드밀라는 어머니와 나란히 걸으면서 언제나 처럼 낮은 목소리로 빈정거림을 담아서 말했다. "확실합니다. 법원에서는 판결이 벌써 나와 있다고 아주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더라구요. 그러나 그것은 도대채 어떻게 된 일이죠? 정부는 그 적에 대해서 관리들이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모양이지요? 그처럼 오랫동안, 그처럼 열심히 자신의 하인들을 타락시켜 왔는데도, 아직도 그 하인들이 언제라도 비열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모양이지요?" 류드밀라는 여윈 뺨을 손바닥으로 비비면서 장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윤기없는 눈 속에서는 경멸이 불타고, 그 목소리는 더욱더 노여움으로 넘쳐 흘렀다. "그것은 화약의 냥비라는 거예요, 류드밀라." 하고 타이르듯이 니콜라이가 말했다. "그놈들에게는 당신의 얘기는 전혀 들리지가 않을 테니까요." 어머니는 긴장해서 류드밀라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으나, 무엇하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같은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재판, 일 주일 뒤에 재판..." 어머니는 완강하고 비인간적으로 각박한 것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20 머쟎아 불행이 닥쳐오리라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이틀이 지나갔다. 사흘째 되는 날 사웬카가 찾아와서 니콜라이에게 말했다. "완전히 준비가 끝났어요. 오늘 l시에..." "벌써 준비가 끝났습니까?" 하고 니콜라이는 놀랐다. "그야 당연한 일이죠. 내가 해야 할 일은 루이빈 씨가 숨을 장소를 마련하고, 옷을 손에 넣는 일이었어요. 그 밖의 일은 전부 고븐 노인이 맡아서 해주었으니까요. 루이빈 씨는 단 한 구역만을 걸어가면 된다구요. 거리에서 베소푸쉬코프가 물론 변장하고 그를 맞이하여 외투를 입히고, 모자를 씌워 주고, 길을 가르쳐 줄 거예요. 내가 그 사람을 기다렸다가 옷을 갈아 입히고 데리고 갈 거예요." "완벽하군요. 그런데 고븐이라는 분은 누굽니까?" 하고 니콜라이가 물었다. "당신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분의 집에서 열쇠 수리공들과 모임을 가졌었쟎아요." "아아, 기억이 나는군요. 조금 괴팍스러운 노인이었지요." "그분은 군인 출신인데 지붕 고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다지 많은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모든 압제에 대해서 끌없는 증오를 품고 있어요. 철학적인 데가 있지요." 하고 사웬카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겨 말했다. 어머니는 잠자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자 뭔가 막연한 것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부풀어 올라왔다. "고븐 노인은 자신의 조카를 탈옥시키려 하고 있어요. 기억하실 걸요? 당신이 마음에 들어하던, 멋과 사치를 좋아하는 그 예프첸코를." 니콜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븐 노인의 집에서는 만사 차질없이 일이 진행되고 있어요." 하고 사웬카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나는 불안해요. 옥외 운동은 모두가 함께 하쟎아요? 그렇기 때문에 죄수들이 줄 사다리를 발견했을 때는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사웬카는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면 서로에게 방해가 될 테고..." 세 사람 모두 창문 앞에 서있었다. 어머니는 니콜라이와 사웬카 뒤에 있었다. 두 사람의 빠른 말투의 대화는 막연한 감정을 어머니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켰다. "내가 그곳에 가보아야겠네!" 하고 어머니가 돌연 끼여들었다. "왜요?" 하고 사웬카가 물었다. "가서는 안 됩니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걸려 들게 됩니다. 그건 안 됩니다!" 하고 니콜라이가 만류했다. 어머니는 그를 보고, 목소리는 낯았지만 좀더 집요하게 되풀이했다. "아닐세. 나는 갈 걸세." 두 사람은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사웬카는 어깨를 쳐들면서 말했다. "그 마음은 알겠어요." 어머니 쪽을 돌아다보고 사웬카는 팔을 잡고 어머니 쪽으로 몸을 기대듯이 하고, 어머니의 마음에 친근하고 꾸밈없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기대를 하고 있어도 모두 허사예요. 그는 탈옥하지 않을 거예요." "하여간 !....." 하고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끌어 안고 외쳤다. "나를 데려가 주게. 방해는 하지 않을 테니. 나도 그애가 탈옥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어." "이분은 가고 말 거예요." 하고 사웬카는 니콜라이에게 말했다. "그것은 당신이 결정할 일이오." 하고 니콜라이는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우리들은 함께 있을 수는 없어요. 아주머니는 들판으로 나가서, 야채밭 쪽에 계세요. 그곳에서도 감옥의 담이 보입니다. 그러나 만일 발각되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기쁨에 찬 어머니는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대답할 말을 찾아내겠네..." "아주머니는 교도관들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하고 처녀는 얘기했다. "만일 그 교도관들이 그곳에서 아주머니를 본다면..." "들키지 않을 걸세!" 하고 어머니는 외쳤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는 끊임없이 눈에 보이지 않게 꿈틀거리고 있던 희망이 밝게 타 올라서 그녀의 힘을 북돋아주었다. '혹시 어쩌면 그 아이도...' 하고 어머니는 생각하고 서둘러 외투를 입었다. 한 시간 뒤에는 어머니는 감옥 뒤쪽의 들판에 있었다. 세찬 바람이 그녀의 주위를 휘몰아쳐 옷을 부풀리게 한 뒤 얼어붙은 땅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그녀가 지나온 야채밭의 낡은 울타리를 뒤혼들어 놓고, 감옥의 그다지 높지 않은 담에 정면으로 부딪쳐 갔다. 바람은 담 너머 쪽으로 몰려가 안뜰에서 누군가의 외침소리를 감아 올려 공중에 뿌리고는 사라졌다. 하늘에서는 구름이 몰려다니고, 언뜻언뜻 틈새로 푸른 하늘이 들여다 보였다. 어머니 뒤에는 야채밭이 있고, 앞에는 묘지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20미터 되는 곳에 감옥이 있었다. 묘지 옆에는 한 명의 병사가 말을 타고 지키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의 병사가 그와 나란히 서서 땅바닥을 양쪽 발로 구르며 휘파람을 불다가 웃기도 했다. 감옥 주위에는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그들에게로 다가가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서 염소 한 마리를 못 봤나요?" 그들 중 한 사람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못 봤소." 어머니는 느릿느릿 그들 옆을 지나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묘지의 울타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갑자기 두 다리가 떨리며 마치 땅바닥에 얼어붙은 것처럼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감옥의 한쪽 구석에서 어깨에 사다리를 맨, 등이 굽은 사나이가 청소부 차림으로 황급히 나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겁먹은 눈을 깜빡이면서 재빨리 군인들을 보았다. 군인들은 같은 장소에서 발을 구르고, 말은 그들 주위를 달리고 있었다. 청소부 차림의 사나이는 벌써 사다리를 담에 세우고, 서두르지 않고 그것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안뜰을 향해서 한 손을 흔들고는 재빨리 내려와서 담 모통이 뒤로 모습을 감췄다. 어머니의 심장은 쿵쾅거리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감옥 담 위에 놓인 사다리의 선은 진흙이나 회반죽이 벗겨진 것이어서 퇴색된 벽담 사이에서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담 위로 검은 머리가 나타나더니 담을 타고 넘어와 사다리를 내려왔다. 보풀이 난 모자를 쓴 또 하나의 머리가 나타나고, 검은 덩어리가 땅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져서 재빨리 담 모통이 뒤로 사라졌다. 루이빈 미하일은 몸을 뻗어 주위를 둘러보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빨리 뛰어 ! 빨리!' 하고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속삭였다. 어머니의 귀는 윙윙 울리고 커다란 외침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담위로 세 번째 머리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잡고 숨이 넘어가는 듯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수염이 없는 황갈색 머리가 위로 쑥 튀어 올랐으나 다시 담 뒤로 사라졌다. 외침소리는 점점 더 크고 격렬해지고, 바람은 호루라기의 가날프게 떠는 소리를 공중에 뿌렸다. 루이빈 미하일은 벌써 담을 지나 감옥과 거리의 집들 사이의 공터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가 너무나도 느릿느릿 걷고, 무의미할 정도로 높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구라도 한번 그의 얼굴을 본다면 언제까지나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속삭였다. '빨리..이. 빨리..' 감옥의 담 너머에서는 무엇인가 쨍그렁하고 메마른 소리가 났다. 깨진 유리의 가느다란 울림이 들려 왔던 것이다. 한 사람의 병사는 양다리를 힘껏 지면에 짚고, 말을 끌고 있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주먹을 입에 갖다 대고 감옥 쪽을 향해서 무엇인가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기울이고는 그쪽을 향해 귀를 대고 있었다. 어머니는 긴장해서 고개를 사방으로 돌렸다. 그녀의 눈은 모든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엄청나게 복잡한 것으로 생각하던 것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행해졌던 것이다. 그 신속함이 그녀를 망연하게 만들고,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거리에는 이미 루이빈의 모습은 없고, 누군가 긴 외투를 입은 키가 큰 사람이 걸어가고, 여자 아이가 달려갔다. 감옥의 모퉁이에서 세 명의 교도관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서로가 몸을 찰싹 붙이고 달렸는데, 모두 오른손을 앞쪽으로 내뻗고 있었다. 군인 하나가 그들 쪽으로 달려갔다. 또 한 사람은 말 주위를 뛰어 다니면서 그것에 올라 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은 이리저리 몸을 피하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쉴새없이 흐느끼듯이 울리면서 공기를 짓찢었다. 그 불안스럽고 절망적인 울림이 어머니에게 위험의 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어머니는 몸을 떨고 묘지의 울타리를 따라 교도관들을 지켜 보면서 걸어갔다. 그러나 그들이나 군인은 감옥의 너머 쪽의 모퉁이 뒤로 뛰어 들어가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역시 그곳으로 어머니가 얼굴을 아는 부교도소장이 제복의 앞을 열어 젖히고 달려 들어갔다. 어디에선가 경찰관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달려왔다. 바람은 마치 무엇인가를 기뻐하는 것처럼 빙글빙글 춤을 추면서 불어 왔다. 그리고 어머니의 귀에 간간히 뒤엉킨 외침소리와 휘파람소리를 실어 왔다. 이 뒤죽박죽된 소동은 어머니에게는 유쾌했다. 어머니는 걸음을 재촉하면서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우리 아이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어머니를 향해서 울타리 모퉁이에서 갑자기 두 명의 경찰관이 불쑥 나타났다. "서라!" 그 증 하나가 괴로운 듯이 호흡을 하면서 소리쳤다. "수염을 기른 사나이를 보지 못했소?" 어머니는 야채 밭 너머를 한 손으로 가리키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쪽으로 뛰어 갔습니다만 무슨 일인가요?" "에고로프, 호각을 불어라 !" 어머니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웬지 서운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에는 무엇인가 씁쓸하고 부화가 치미는 것이 얹혀 있었다. 어머니가 들판에서 거리로 나오자 삯마차 한 대가 그녀의 앞을 가로 질러갔다. 머리를 들어 보니 황갈색의 콧수염을 기르고 창백하고 지친 얼굴을 한 젊은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도 또한 그녀를 보았다. 그는 비스듬히 옆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의 오른쪽 어깨는 왼쪽 어깨보다 높은 것 처럼 보였다. 니콜라이는 기쁜 얼굴로 어머니를 맞이했다. "그래, 그쪽은 어땠습니까?" "잘된 것 같았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생각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탈옥의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그 진실을 의심하면서 그대로 그냥 옮기기라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들은 운이 좋습니다!" 하고 니콜라이는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아주머니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뭐라고 형용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구요. 아주머니, 친한 친구로써 나의 충고를 받아 들여 주세요, 재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파벨의 자유도 가까워지는 거예요. 믿어 주세요! 어쩌면 파벨은 도중에서 탈출할지도 모릅니다. 재판은 대체로 이런 거예요." 니콜라이는 재판정의 모습을 어머니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것을 듣고 있었으나, 그가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격려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네!" 하고 어머니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재판은 무서운 거라네! 모든 것을 속속들이 조사해내서 심판하기 시작한다면! 너무나 무서운 것은 벌이 아니고 재판이라구. 나는 말로 잘 나타낼 수가 없지만...." '니콜라이는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하고 어머니는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어머니는 자신의 두려움을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괴로운 것이 되어 갔다. 21 곰팡이처럼 가슴답답한 습기로 호흡을 죄는 공포가 어머니의 가슴 속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재판날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등과 목을 창백하게 만드는 두려움과 부담을 안고 재판정으로 향했다. 거리에서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잠자코 인사를 하면서 음울한 인파 속을 빠져 나갔다. 법원의 복도와 법정 안에서 어머니는 피고들의 친척들과 만났으나, 역시 그들도 목소리를 죽이고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은 어머니에게는 필요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머니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슬픈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것이 어머니에게 전해져서 한층 더 그녀의 마음을 압박했다. "이 옆에 앉으세요!" 하고 시조프가 의자에서 몸을 비키면서 말했다. 어머니는 권하는 대로 앉아 옷 매무시를 고치고는 주위에 시선을 보냈다. 그녀의 눈앞에는 녹색과 홍색의 줄 무늬와 반점이 뒤섞여 떠오르고, 가느다란 황색 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댁의 아들 때문에 우리 그리샤는 못쓰게 되어 버렸다구요." 하고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잠자코 있어, 나탈리야!" 하고 시조프가 불쾌한 듯이 한 마디했다. 어머니는 그 여자를 보았다. 사모일로프의 어머니였다. 건너편에는 대머리에다 텁수룩하게 턱수염을 기른 품위 있는 그녀의 남편도 앉아 있었다. 그의 턱은 뼈가 앙상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을 보고 있었는데 수염이 떨리고 있었다. 높은 창으로 희뿌연 빚이 법정 안으로 비쳐 들었다. 유리창의 바깥 쪽에서는 눈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창과 창의 중간에는 굵고 번쩍번쩍 빚나는 금태 액자에 들어간 차르 황제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창의 무거운 진홍색 커튼이 똑바로 주름을 이루고, 양쪽에서 그 액자를 감싸고 있었다. 초상화 앞에는 거의 법정의 너비 하나 가득 녹색의 나사천으로 덮인 테이블이 길게 뻗어 있고, 오른쪽 벽 옆의 쇠창살 뒤에는 두 개의 밴치가 놓여 있고, 왼쪽에는 진홍색 팔걸이 의자가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녹색 옷깃을 세우고 가슴과 허리 위에 금단추를 단 관리들이 법정 안을 소리도 내지 않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탁한 공기 속에는 조용한 속삭임이 헤매어 다니고, 약품 같은 여러 가지가 뒤섞인 냄새가 흘렀다. 이러한 모든 색깔이나 빛이나 소리나 냄새는 눈을 짓누르고, 호홉과 함께 가슴 속으로 침입하여 공허해진 마음을 축 늘어지게 만들고 움직이지 않는 얼룩진 혼탁함으로 가득 채웠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큰소리로 뭐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움찔했다. 모두가 일어섰기 때문에 어머니도 시조프의 팔을 붙잡고 일어섰다. 법정 왼쪽 구석의 높은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흔들흔들하면서 안경을 쓴 몸집이 작은 노인이 나왔다. 잿빚의 작은 얼굴에서는 백발이 드문드문한 구레나룻이 흔들리고, 수염을 깎아낸 윗입술은 입 안으로 움푹 들어가고, 튀어나온 광대뼈와 턱은 제복의 높은 깃 위에 을라앉아 있어서 옷깃 밑에는 목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둥근 도자기와 같은 얼굴을 한 키가 큰 젊은 남자가 뒤에서 그의 팔을 부축하고 있었다. 두 사람 뒤를 따라 또 금테를 두른 제복의 사나이 세 사람과 문관복을 입은 세 사람이 느릿느릿 걸어 들어왔다. 그들은 테이블 뒤에서 오랫동안 바스락거리더니 한참만에야 팔걸이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더니, 그들 가운데 제복의 단추를 푼 사나이가 부푼 입술을 소리도 없이 움직여서 노인에게 무엇인가 말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묘하게 몸도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걸터 앉으면서 듣고 있었는데, 그의 안경알 안쪽에서 어머니는 두 개의 조그만 색깔이 없는 반점을 보았다. 테이블 끝의 탁자 옆에서는 키가 크고 머리가 벗겨진 사나이가 일어나서 이따금 기침을 하면서 서류를 뒤척이고 있었다. 노인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첫마디는 똑똑히 입에 담았으나, 나머지 말은 그의 엷은 회색 입술을 기어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개정합니다. 입정!" "보세요." 하고 시조프는 살며시 어머니를 찌르고 일어섰다. 쇠창살의 안쪽 벽면에 있는 문이 열리고 어깨에 칼집에서 뽑은 칼을 맨 병사가 나오고, 그 뒤에 파벨, 안드레이, 패자 마진, 구세프 형제, 사모일로프, 부킨, 소모프, 그리고 어머니가 이름을 모르는 다섯 명 가량의 청년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파벨은 상냥하게 미소를 짓고, 안드레이 또한 흰 이빨을 보이며 목례를 하고 있었다. 법정의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침묵은 그들의 미소와 활기찬 얼굴로 다소 밝고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제복의 번쩍거리는 금속 빚도 흐려지고 힘찬 확신의 기대와 싱싱한 힘의 숨결이 어머니의 마음을 부드럽게 했다. 그때까지는 사람들이 짓눌린 듯한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던 그녀 뒤쪽의 의자에서도 역시 그것에 답하는 낯은 술렁거림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군!" 하고 말하는 시조프의 속삭임 소리를 어머니는 듣고, 오른쪽에서는 사모일로프의 어머니가 희미하게 탄식의 소리를 울렸다. "정숙하도록!" 하고 거친 외침 소리가 울렸다. "주의해 두겠는데..." 하고 노인이 말했다. 파벨과 안드레이는 나란히 앉고, 두 사람과 함께 오른쪽 의자에 마진, 사모일로프, 구세프 형제가 앉앤다. 안드레이는 턱수염을 깎았지만 콧수염이 자라서 밑으로 축 늘어져 고양이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어 있었다. 안드레이의 얼굴에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 있었다. 입가의 잔주름 속에는 날카로운 신랄한 것이 있고, 눈 속에는 어두운 빚이 있었다. 마진의 윗입술에는 두 개의 검은 줄기가 보이고, 얼굴은 전보다 살이 쪄 있었다. 사모일로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곱슬머리를 늘어 뜨렸고, 이반 구세프도 여전히 느긋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오, 페자, 페자!" 하고 시조프는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어머니는 노인의 알아듣기 어려운 질문을 듣고 있었다. 노인은 피고들의 얼굴은 보지 않고 질문하고 있었는데, 그 머리는 제복의 옷깃 위에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올라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침착한 짧은 대답을 들었다. 어머니에게는 재판장도 그 동료들도 모두 심술사납고 잔혹한 인간일 리는 없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판사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보면서 어머니는 무엇인가를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가슴 속에 새로운 희망이 부풀어 오르는 것에 조용히 귀 기울이고 있었다. 도자기와 같은 사나이가 무뚝뚝하게 서류를 큰소리로 읽었는데, 그의 단조로운 목소리는 법정에 따분함을 가득 채웠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마치 마비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네 명의 변호사가 작은 소리이기는 하지만 활기를 띠고 피고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힘차고 민첩하게 움직였는데 그 모습은 커다란 검은 새를 연상시켰다. 노인의 한쪽 옆에는 부어오른 것 같은 눈을 한, 살이 껴서 푸석푸석한 판사가 그 몸으로 팔걸이 의자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른 쪽에는 창백한 얼굴에 붉은색을 띤 콧수염을 기른, 등이 좀 굽은 판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의자의 등에 힘없이 머리를 기댄 채 눈을 반쯤 감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검사의 얼굴도 피로에 지친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판사들 뒤쪽에는 뚱뚱하게 살이 찐, 풍채가 좋은 시장이 생각에 잠긴 듯 뺨을 만지면서 앉아 있었다. 그 옆에 백발에다가 구레나룻이 무성한 붉은 얼굴의 귀족회의 집행관이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앉아 있었고, 주름이 잡힌 가운을 입고 커다란 배를 한 면장이 있었다. 이 사람은 아무래도 그 배 때문에 난처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가운 자락으로 그 배를 감추려고 했으나 숨을 쉴 때마다 배가 실룩댔다. "이곳에는 죄인도 없으며, 판사도 없습니다." 하고 파벨의 또렷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곳에 있는 것은 다만 감금된 자와 정복자 뿐입니다." 조용해졌다. 몇 초 동안 어머니에게는 오로지 종이에 미끄러지는 펜의 사각사각하는 소리와 자신의 심장의 고동소리만이 들렸다. 재판장도 또한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동료들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재판장이 말했다. "흠, 흠, 안드레이 나호트카 ! 당신은 죄를 인정합니까." 안드레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쭉 몸을 펴고, 자신의 콧수염을 비틀면서 이마 너머로 노인을 보았다. "아니, 어떤 점에서 내가 자신을 유죄라고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평소처럼 노래라도 부르는 것 같은 어조로 느릿느릿 어깨를 쳐들어 보이면서 말을 시작했다. "나는 살인도 하지 않았고, 도둑질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만 인간이 서로 강탈하거나 서로 죽이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이러한 생활의 제도에 대하여 찬성하지 않을 뿐입니다." "답변은 간단하게 하시오. 명료하게!" 노인이 말했다. 어머니는 자기 뒤쪽의 의자에서 술렁거림을 느켰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작은 소리로 속삭이고, 그 도자기 같은 사나이의 거미줄 같은 말을 떨쳐 버리려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들었어요, 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말을?" 하고 시조프가 속삭였다. "표토르 마진, 답변을 하시오." "싫다." 하고 페자는 벌떡 일어나서 똑똑히 말했다.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벌겋게 상기되고, 눈은 반짝반짝 빚나고 있었다. 그는 양손을 뒷 짐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시조프는 신음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변호를 거절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당신들의 재판은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들은 무엇인가? 당신들에게 우리들을 심판할 권리를 부여한 것이 국민인가? 아니다. 국민은 결코 부여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네들을 모른다." 페자는 다시 앉아서 자신의 시뻘게진 얼굴을 안드레이의 어깨 그늘에 숨겼다. 뚱뚱한 판사가 재판장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무엇인가 속삭였다. 창백한 얼굴의 재판관은 눈꺼풀을 쳐들고 곁눈질로 피고들을 노려보고는 한 손을 테이블 위로 내밀어 서류에 연필로 무엇인가를 써넣었다. 면장은 머리를 흔들더니 조심스럽게 발의 위치를 바꾸고, 배를 양쪽 무릎 위에 올려 놓은 뒤 양손으로 그것을 감췄다. 노인은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붉은 털의 판사 쪽으로 몸을 돌려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속삭였다. 상대방은 머리를 기울이고 그것을 경청했다. 귀족회의 집행관은 검사와 속삭임을 주고받고, 시장은 뺨을 만지면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자 또다시 재판장의 활기없는 말이 울렸다. 네 명의 변호사가 그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고, 피고들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속삭였다. 페자가 얼굴을 가리고 웃는 것이 언뜻 보였다. "어때요, 저 당돌한 답변은? 정말 정곡을 찔렀지요?" 하고 놀란 듯이 시조프는 어머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어머니는 어리둥절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것은 모두 어머니에게는 끔찍한 것에 대한 불 필요한 서막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끔찍한 것은 나타나기만 하면 당장 차가운 공포로 모든 것을 짓이겨 버릴 것이다. 그러나 파벨과 안드레이의 침착한 말은 마치 법정에서가 아니라, 마을의 작은 집에서 말하던 것처럼 두려움도 없이 또렷하게 울리고 있었다. 페자의 격렬한 행동은 어머니의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법정 안에는 뭔가 대담한 기운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기 뒤쪽의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해서, 그것을 느끼고 있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의 의견은?" 하고 노인이 말했다. 머리가 벗겨진 검사가 일어나서 탁자에 한 손을 짚고, 숫자를 인용해 가면서 빠른 어조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 속에서도 끔찍한 것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콕콕 쑤시는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 와서 어머니의 마음을 술렁거리게 했다. 무엇인가 그녀에게 적의가 있는 것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협박도 고함을 치지도 않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이 자꾸만 커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딘가 판사들의 주위에서 느릿느릿 둔하게 요동치고, 마치 그들을 앞이 보이지 않는 구름으로 감싸서, 그 구름을 통해서 무엇 하나 외부에서 그들에게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판사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어머니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머니가 염려하던 것처럼 파벨이나 페자에 대해서 화를 내지 않았으며, 말로 모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질문한 것은 모두 그들에게 있어서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들은 마치 마지 못해서 질문하고 무리를 해서 답변을 듣고 있으며,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어머니에게는 생각되었다. 그러자 그들 앞에 헌병이 서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파벨 블라소프가 주모자라고 모두 말했습니다." "그럼, 나호트카는?" 하고 뚱뚱한 판사가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인은 나직하게 물었다. "당신은 이의 없습니까?" 어머니는 판사들이 모두 환자처럼 생각되었다. 병적인 피로가 그들의 몸짓과 얼굴 위에 나타나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 법정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권태가 나타나 있었다. 틀림없이 그들에게는 제복도, 법정도, 헌병도, 변호사도,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질문하거나 들어야 할 역할도 모두 거추장스럽고 지긋지긋할 것이다. 그들 앞에 낯익은 누린색 얼굴의 장교가 서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우 중요한 것처럼 큰소리로 파벨과 안드레이에 대한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들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네가 알고 있는 건 몇 푼어치도 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어머니는 쇠창살 너머에 있는 젊은이들을 공포나 연민을 느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연민은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어머니의 마음에 오로지 경탄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찌는 애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경탄은 편안한 것이고, 그 애정은 기쁘고 밝았다. 젊고 단단한 그들은 벽가에 앉아 있는 증인들이나 판사들의 단조로운 대화나 변호사들과 검사들의 논쟁에도 거의 끼여들지 않았다. 때때로 누군가가 경멸하듯이 엷은 웃음을 지으면서 동료들에게 무엇인가 말했다. 그러면 그 동료의 얼굴에도 똑같은 조소적인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안드레이와 파벨은 거의 줄곧 변호사 한 사람과 작은 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전날 밤 그 사람을 니콜라이의 집에서 만났었다. 활기가 있고, 누구보다도 몸을 잘 움직이는 마진이 세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사모일로프는 뭔가 이따금 이반 구세프에게 말을 하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이따금 이반이 팔꿈치로 살며시 상대를 찌르면서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뺨을 부풀린 채 머리를 떨구고 있었다. 두 번 가량 웃음을 터뜨렸으나, 그 뒤 한참 동안은 좀더 당당한 태도를 보이려고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각기 어떤 형태로든 젊음에 넘쳐서, 그 발랄한 분출을 억누르려고 하는 노력은 금세 무산되어 버렸다. 시조프는 살그머니 어머니의 팔꿈치를 건드렸다. 그녀가 그의 쪽을 돌아다 보자 그의 얼굴은 만족스러워 보이고, 약간 걱정하는 빚도 감돌았다. 시조프가 속삭였다. "잘 보세요. 저 개구쟁이 녀석들이 꽤 어른스러워졌쟎아요? 대단한 인물들이 되었군요." 법정에서는 증인들이 빠른 말투로, 그리고 윤기없는 목소리로 얘기하고, 판사들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이 무관심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뚱뚱한 판사는 푸석푸석한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하품을 하고, 붉은색의 콧수염을 한 판사는 점점 더 창백해져갔다. 그는 이따금 한 손을 들어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세게 누르고, 처량하게 치뜬 눈으로 멍청하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검사는 때때로 연필로 서류에 기입을 하고는, 또다시 귀족회의 집행관과 소리를 내지 않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러면 상대는 백발의 턱수염을 만지면서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고개를 구부리고 미소를 지었다. 다만 면장만이 배를 무릎 위에 얹고, 소중한 듯이 그것을 양손으로 안고는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단 혼자만이 단조로운 목소리의 시냇물 소리를 열심히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노인은 팔걸이 의자에 완전히 몸을 파묻고, 마치 바람이 없는 날의 풍향계처럼 그 안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삐져 나와 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계속되고, 사람들도 역시 마비될 것 같은 따분함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휴식을......" 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엷은 입술로 다음에 이어지는 말을 뭉개 버리고 몸을 일으켰다. 술렁거림, 한숨, 희미한 외침, 기침과 발을 끄는 소리가 법정에 넘쳐 흘렀다. 피고들은 끌려 나갔다. 그들은 나갈 때 미소를 지으면서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반 구세프는 작은 소리로 외쳤다. "겁먹을 것 없어, 이고르 !" 어머니와 시조프는 복도로 나갔다. "차를 마시러 갈까요?" 시조프는 신경써서 신중하게 어머니에게 물었다. "한 시간 반이나 남았으니까요." "마시고 심지 않아요." "그럼, 나도 가지 않겠소. 정말 대단한 녀석들이군, 어때요? 자신들만이 참다운 인간이고, 나머지 인간들은 모두 문제가 아니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지 않소! 페자 녀석은 또 어떻소?" 두 사람이 있는 곳에 사모일로프의 아버지가 모자를 손에 들고 다가왔다. 그는 음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그레고리는 어떻습니까? 변호인도 거절하고,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낸 것은 그 아이가 처음이랍니다. 펠라게야 부인, 당신네 아이는 변호사를 붙이라고 했지만, 우리 아이는 필요없다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네 명이 거절을 했다더군요." 그와 나란히 아내가 서있었다. 쉴새없이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녀는 손수건 자락으로 코를 풀고 있었다. 사모일로프는 턱수염을 한 손으로 잡고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놈들을 자세히 보세요. 그런 것을 생각해 낸 것은 쓸데없는 짓이고, 무익하게 자신의 몸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구요. 그런데 갑자기 혹시 어쩌면 그놈들이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내 말 좀 들어 봐요. 공장에서는 그런 친구들이 자꾸만 불어나고 있답니다. 노상 붙잡히지만 개울 속의 송사리처럼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는군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또 어쩌면 그 친구들 쪽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구요." "스테판 페트로프 씨, 이 문제는 우리들에게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어려운 것이외다." 하고 시조프가 말했다. "어렵지요. 그건 맞아요." 하고 사모일로프도 찬성했다. 그의 아내는 크게 코로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모두들 씩씩하고 미더워요." 그리고 커다란 곰보상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억누르면서 말을 계속했다. "닐로브나 부인, 화내지 마세요, 아까 당신에게 당신의 아들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화를 냈지요? 솔직히 말하면, 누가 나쁜 것인지 알 수가 없쟎겠어요? 우리 그레고리에 대해서도, 헌병들이 스파이들과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구요. '그 녀석도 하려고 하고 있었지? 그 빨간 털의 악마 새끼도 말이야' 하고요." 그녀는 아무래도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자기 아들을 자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을 어머니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녀의 말에 다정한 미소와 조용한 말로 대답했다. "젊은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진실한 쪽에 가까운 거지요." 복도에서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모여서 무리를 이루어 수군거리고, 수심에 잠기거나 낮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외톨박이로 서있는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었다. 어떤 사람의 얼굴에나 얘기를 나누고, 묻고, 얘기를 듣고 싶다는 바람이 나타나 있었다. 두 개의 벽 사이의 흰 굴뚝 같은 복도를 사람들은 앞쪽으로 뒤쪽으로 마치 강풍에 밀려다니듯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뭔가 묵직히, 그리고 단단하게 발을 딛고 서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키가 크고 야윈 부킨의 형이 양손을 혼들어대면서, 그리고 사방으로 재빨리 몸의 방향을 바꾸면서 우기고 있었다. "면장인 크레바노프는 이 문제에 얼굴을 내밀 자격이 없다구요." "잠자코 있어라, 콘스탄틴!" 하고 그의 부친인 키가 작은 노인이 겁 먹은 듯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들을 제지하고 타이르고 있었다. "아니에요. 할 말은 해야겠어요. 그 사람은 자기 집 집사를 그 마누라 때문에 죽였다고 하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구요. 그 집사의 마누라는 그 녀석과 동거하고 있답니다. 이것은 도대채 어떻게 해석하면 좋습니까? 게다가 그 녀석은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둑놈이에요." "얘야, 제발, 콘스탄틴 !" "정말이에요." 하고 사모일로프는 말했다. "정말입니다! 재판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구요." 부킨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모두를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흥분으로 시뻘겋게 된 양손을 휘둘러대면서 외쳤다. "도둑이나 살인자를 재판하는 것은 농민이나 상인들 같은 평민의 배심관들이어야 한다구! 그런데 관리에게 반대한 인간을 재판하는 것은 관리라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느냔 말야? 네가 나를 모욕했으니까, 나는 너를 때린다. 그런데 너는 그것으로 나를 재판하려 든다. 물론 내가 잘못했다고 판결이 나겠지. 그러나 최초에 모욕을 가한 것은 누구냐구? 너 아니난 말야? 바로 너라구." 백발에 매부리코이고 가슴에 훈장을 늘어뜨린 수위가 인파를 헤치고 와서 손가락을 흔들며 겁을 주면서 부킨에게 말했다. "이봐, 소리치지 말게! 여기가 선술집인가?" "미안하오, 나리. 나도 알고 있소이다. 그러나 내 말을 잘 들어요. 만일 내가 당신을 두들겨패고서, 그 일로 내가 당신을 재판한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겠소?" "하지만 나는 네 녀석을 당장 여기서 끝어내라고 고해 바치겠네." 하고 수위는 엄숙하게 말했다. "어디로 끌어낸다는 거야? 무엇 때문에 ?" "길거리로지. 네가 두번 다시 악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말일세." 부킨은 모두를 둘러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녀석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두가 입을 다무는 것이라구." "그렇다면, 자네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나?" 하고 수위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부킨은 양손을 벌리고 전보다도 소리를 더 낯춰서 반박했다. "게다가, 왜 법정에는 가족만 들여 보내고, 일반 사람은 들여 보내지 않는 거요? 만일 공평한 재판을 한다면, 모두의 눈앞에서 재판을 하면 될 것 아니오?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 있단 말예요?" 사모일로프는 거들었다. 이미 그 목소리는 휠씬 커져 있었다. "재판은 공정한 것이 아니라구. 이것은 확실해." 어머니는 재판의 불법에 대해서 니콜라이에게서 들은 것을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했으며, 게다가 잊어버린 부분이 더 많았다. 그것을 생각해내기 위해서 어머니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서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황갈색의 콧수염을 기른 어떤 젊은 사나이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오른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있어서, 그 때문에 그의 왼쪽 어깨는 낮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세의 특징이 어머니에게는 본 기억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등을 돌렸다. 어머니는 어떤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에 곧 그의 일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한참 있다가 작은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이 아주머니인가?" 그러자 누군가가 커다란 소리로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어머니는 뒤돌아보았다. 어깨가 비스듬하게 된 남자가 그녀에게 옆구리를 돌리고서 그녀 옆에 서있던, 짧은 외투를 입고 장화를 신은 검은 수염의 젊은이에게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또다시 그녀의 기억은 불안으로 떨렸으나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는 아들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압도적으로 불타 올랐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이 진리에 반대해서 뭐라고 말할지 듣고 싶었다. 모두의 말에 의해서 재판의 결정을 헤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재판이 어디 있어요?" 하고 어머니는 시조프를 향해서 조심스럽게 작은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누가 했느냐 하는 것은 꼬치꼬치 캐내려고 하지만, 무엇 때문에 했느냐는 것은 묻지도 않으니 말이에요. 게다가 그 사람들은 모두 노인네들 뿐이에요.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이 재판을 해야지요." "그래요." 하고 시조프는 맞장구를 쳤다. "우리들에게는 이 문제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그리고 심각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수위가 법정의 문을 열고 외쳤다. "가족들만 방청권을 꺼내서......" 불쾌한 목소리가 천천히 말했다. "입장권? 꼭 서커스에 들어가는 것 같다니까!" 모든 사람들 속애서 막연한 짜증스러움과 분노가 느껴졌다. 그들은 줄곧 난폭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하고, 와글와글 떠들어대면서 수위와 말 다툼을 벌였다. 22 의자에 앉으면서 시조프는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모두들 멍청이라고 말하는 거요." 벨이 울렸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알렸다. "속개하겠습니다!" 또다시 모두가 일어나고, 같은 순서로 판사들이 들어와서 앉았다. 그리고 피고들이 연행되어 들어왔다. "정신 차려요!" 하고 시조프가 속삭였다. "검사가 지껄인다구요." 어머니는 목을 빼고 온 몸을 앞으로 내밀며 또다시 새롭고 무서운 것을 기다리면서 숨을 죽였다. 검사는 팬튼들을 향해서 비스듬히 옆으로 서서 그들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는 탁자에 팔꿈치를 짚고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공중에서 휘두르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부분의 말은 어머니로서 늘어지다가 빨라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검사의 목소리는 굵직했지만 말은 단조롭게 실로 꿰맨 자국처럼 긴 열로 뻗어가는가 싶으면, 갑자기 황급하게 날아올라서 설탕 덩어리에 달려드는 검은 파리 때 처럼 빙글빙글 도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말들 속에서 무서운 것과 협박하는 것은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눈처럼 차갑고, 재처럼 회색인 그 말들은 사방으로 뿌려지고 마구 흩어져서, 가느다란 메마른 흙먼지처럼 화나게 하고 진절머리나게 하는 것으로 법정을 가득 채웠다. 인정미가 없고, 말수만 엄청나게 많은 이 논고는, 파벨이나 그 동료들의 마음에는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분명히 조금도 그들을 자극한 것 같지는 않았다. 모두는 침착하게 앉아서 변함없이 소리도 내지 않고 얘기를 주고받고, 때로는 미소를 짓고, 또 때로는 그 미소를 숨기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엉터리로 지껄여대고 있군!" 하고 시조프가 속삭였다.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검사가 모든 피고들에게 구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사는 파벨에 대해서말해 놓고, 페자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하고, 그를 파벨과 함께 얘기해 놓고, 그 두 사람이 있는 곳에 집요하게 부킨을 끌어다 붙이는 방법으로 모든 피고를 모조리 한 개의 자루에 쑤셔 넣어, 그것을 포장해서 꿰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검사의 말의 표면은 어머니에게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또 위협하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역시 무서운 것을 기다리면서 그것을 검사의 얼굴이나 눈초리나 목소리 속에서 찾아 헤매고 있었다. 무엇인가 무서운 것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느끼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요령부득이고, 뭐라고 규정할 수도 없어서 또다시 그 메마르고 매콤한 채로, 그녀의 마음을 감싸 버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판사들을 바라 보았다. 그들도 또한 이 논고를 듣는 것이 따분했음에 틀림없었다. 생기없는 누런색이나 잿빚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검사의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안개를 공중에 넘쳐 흐르게 했다. 그것은 점점 더 퍼져나가서 판사 주위로 자욱히 끼어 있었고, 무관심과 지쳐 버린 기대의 구름이 되어서 그들을 더욱더 빈틈 없이 감쌌다. 재판장은 마치 말라붙은 듯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안경알 속의 회색 반점은 때때로 사라지고 얼굴의 표면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 죽은 것 같은 냉담함과 무관심을 보고 있으려니까 납득이 가지 않아서 자신에게 묻곤 했다. '이것을 재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은 어머니의 마음을 옥죄었다. 그리고 그 마음 속에서 무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을 차츰 쥐어짜내고, 그것은 굴욕감이 되어 다시 목을 쥐어 뜯었다. 검사의 논고는 돌연 중단되었다. 검사는 빠른 말투로 두세 마디 결론의 말을 입에 담고는 판사들에게 절을 하고 양손을 비벼대면서 앉았다. 귀족회의 집행관은 눈을 크게 뜨고 검사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시장은 한 손을 내밀고, 면장은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검사의 논고는 판사들을 기쁘게 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페도세프, 마르코프, 자가로프의 변호인에게 발언을 허락합니다." 하고 노인은 얼굴 옆으로 무슨 서류를 가져가면서 말했다. 어머니가 니콜라이의 집에서 만났던 변호사가 일어났다. 그 변호사는 호인다운 커다란 얼굴에 그 조그만 눈을 빚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그것은 붉은기가 섞인 눈썹 밑에서 두 개의 칼같이 삐져나와 마치 가위처럼 공중에서 무엇인가를 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변호사는 서두르지 않고, 잘 울리는 목소리로 또렷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의 변론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시조프가 그녀의 귀에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변호사의 말 들었소? 민중들은 파탄 직전에 놓여 있다는군요. 또 아무것도 모르는 체 노예처럼 당하고 있다는데요. 저 사람이 그 표토르요?" 어머니는 무겁고 가슴 답답한 환멸에 짓눌려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노여움이 불어나서 마음을 압박했다. 지금 블라소바 부인에게는 왜 자신이 정의를 구하고, 아들의 진리와 판사들의 엄숙하고 공평한 법정 싸움을 보고 싶어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가 명백해져왔다. 어머니는 판사들이 파벨을 오랫동안 심문하고, 생활 전체에 대해서 제밀하고 주의깊게 물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답으로 아들의 생각이나 활동을, 그 모든 나날의 생활을 조사할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들의 올바름을 인정했을 때는 정당하게 소리높이, '이 사람은 정당하다.' 하고 말할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피고들은 판사들로부터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판사도 그들에게는 소용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어머니는 지쳐서 축 늘어지고 재판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그 발언도 듣지 않고 화가 나서 생각했다. '이것을 재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변호사의 변론이 계속되었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묵묵히 보고 있어야만 하겠습니까? 부정과 부패로 일관된 삶을 거부한 것뿐입니다.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을 도저히 보아넘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옳은 말만 하는군." 하고 시조프는 찬성하면서 속삭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재판의 마지막에 듣게 될 말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저들도 긴장하고 있으니까." 시조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머니는 판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불안으로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벌써 몸집이 작은 또 한 사람의 변호사가 정중하고 냉소적으로 발언하고 있었다. "저는 검사님께서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신. 뒤 말씀을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사님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는 자들을 우리는 첩자라고 부르고 있으니까요." 검사가 일어나서 무엇인가 조서에 관한 일로 빠르게 불만스러운 듯이 발언했다. 그 뒤에 늙은 재판장이 설교조의 말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듣더니만 다시 발언을 계속했다. "증인으로 채택된 흐이만이 '바로 이 사람들인 걸 알고 매우 놀랐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법정에 계신 분들은 모두 들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증인들이 매수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피고들에 대해 근거 없는 예단을 내리게 하는 이 말에 대해서는 재판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도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이것은 변호인측의 공통된 주장으로...." 검사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다. 그는 다시 큰소리로 재판장에게 무엇인가를 호소했다. 재판장은 다시 변호사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변혹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만약 검사님께서 자신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고 번복하신다면 검사님에 대한 제 입장을 바꾸겠습니다만 변론의 내용까지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검사님이 왜 그렇게 흥분하시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들춰내는 거야!" 하고 시조프가 끼여들었다. "계속 몰아 붙여야만 한다구." 법정 안에는 활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변호사는 격렬한 투지를 불태우면서 날카로운 말로 판사들의 늙은 피부를 자극했다. 판사들은 마치 몸들을 서로 찰싹 붙인 것처럼 한 동아리로 뭉쳐서 변호사의 신랄하고 예리한 바늘을 되돌려 보내려고 뺨을 부풀린 채 잔뜩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파벨이 일어 섰다. 그러자 갑자기 뜻하지 않게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온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사회민주당원인 나는 오로지 우리 당의 재판밖에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의 발언은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똑같이 변호를 거부한 우리 동지들의 희망에 따라서 여러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점들을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검사는 사회민주주의 깃발 아래서의 우리들의 진출을 권력에 반대하는 폭동이라고 명명하고, 끊임없이 우리들을 차르의 전제 정치에 반항하는 폭도로 간주해 왔습니다. 우리들이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전제 정치는 국가의 신체를 속박하고 있는 하나의 쇠사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전 민중을 속박하고 있는 이 쇠사슬을 가까운 데부터 끊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의연한 목소리에 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그 목소리는 법정의 벽을 힘껏 밀어 넓혀놓은 것 같았다. 파벨은 동료들로부터 분리되어 선명하게 떠오른 것 같았다. 판사들은 불안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족회의 집행관은 한 판사에게 무엇인가 속삭였다.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판장 쪽으로 돌아 앉았으나, 다른 한쪽에서 동시에 병이 든 판사가 재판장에게 귓속 말을했다. 재판장은 팔걸이 의자 위에서 좌우로 몸을 흔들면서 파벨에게 무엇인가 말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파벨의 크고 도도한 흐름 속에 가라 앉아 버리고 말았다. "우리들은 사회주의자입니다. 이것은 사유 재산제의 적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사유재산제는 민중을 서로 떼어놓고, 적대시키고, 타협을 할 수 없는 이해의 대립을 만들어 냅니다. 이 대립을 숨기거나 정당화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모든 것을 허위와 위선과 증오로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유재산제도에 의해서 유지되는 이 사회는 인간을 단지 자신의 돈 버는 도구로 취급합니다. 자신이 생산한 부의 노예밖에 될 수 없는 비 인간적인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는 우리들의 적입니다. 우리들은 그러한 사회의 표리가 있는 허위의 도덕과 타협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에 대한 이 사회의 파렴치함, 잔인함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혐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사회에 의한 온갖 형태의 육체적이고 정신적 민중을 착취하는 이 모든 제도와 노예화에 반대하고, 사리 사욕을 위해서 민중을 착취하는 이 모든 제도와 싸우기를 원하고, 또 싸워나갈 것입니다. 우리들 노동자는 거대한 기계에서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노동에 의해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고, 우리들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실제로 이용하고 이제 우리들은 지배 계급의 전 권력을 전복하고 이를 노동 계급의 손으로 넘기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사유재산제 타도!, 모든 생산 수단은 노동자에게!,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만인에게 노동의 의무를!, 이래도 우리가 폭도입니까?" 파벨은 웃으며 한 손으로 천천히 머리칼을 긁어 올렸다. 그의 하늘색 눈의 불꽃은 한층 더 밝게 타올랐다. "요점만 말하시오!" 하고 재판장이 똑똑하게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파벨 쪽으로 가슴을 돌리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에게는 재판 장의 몽롱한 왼쪽 눈이 탐욕스럽게 불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모든 판사들이 그녀의 아들을 노려보고 있으며, 그들이 아들에 몸에 달라붙어 피를 뽑아 자기들의 더러운 몸뚱이에 채워 넣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등이 곧고 키가 큰 파벨은 의연히 서서, 그들 쪽으로 한 손을 내뻗고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똑똑히 말했다. "우리들은 혁명가입니다. 어떤 자는 오로지 명령만 하고, 다른 자는 오로지 일만 할 뿐인 상태가 계속되는 한 혁명가로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당신들이 그 이익을 옹호하도록 명령받고 있는 사회에 반대하고, 타협하는 일이 없는 이 사회의 적으로 감연히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들 사이에서 화해는 우리들이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들 노동자는 승리를 손에 넣을 겁니다. 당신들을 위임한 사람들은 당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그렇게 강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노예화한 수백만 명의 인간을 희생해서 축적하고 보유한, 그 사유재산제 자체가 또 우리들에 대한 그들의 지배권을 부여하는 힘 자채가 그들 사이에 적대적인 마찰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유재산제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너무나도 많은 긴장을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우리들의 지배자인 당신들 모두는 우리들 이상으로 노예인 것입니다. 당신들은 정신적으로 노예가 되어 있으며, 우리들은 다만 육채적으로 노예가 되어 있는데 불과합니다. 당신들은 편견과 관습의 압력, 당신들을 정신적으로 살해한 압력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내면적으로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우리들을 중독시키기 위해서 쓰고 있는 독극물은 우리들의 의식 속에 주입시키고 있는 해독제보다도 약한 것입니다. 이 의식이 성장하여 멈출 줄 모르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더욱더 빠른 속도로 불타올라 모든 뛰어난 것, 모든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을 당신들의 세계 속으로 조차도 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당신네들에게는 이미 권력을 지키고, 사상적으로 싸울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당신들은 역사의 정당성의 압력에 대해서, 당신들을 방어할 수 있는 그러한 논의를 모두 써먹어 버렸습니다. 당신들의 사상으로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습니다. 당신들은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창조해낼 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사상은 성장하고, 더욱더 불타올라 갈 것입니다. 그것도 민중을 사로잡고, 자유를 구하는 싸움으로 조직해 나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위대한 역할이라는 의식은, 세계의 모든 노동자를 하나의 마음으로 융화시키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이 생활 혁신의 걸음을 멈추게 하려면 잔인과 파렴치 외에는 아무런 수단도 없는 것입니다. 파렴치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며, 잔인함은 민중을 더욱 격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손도 이제 곧 사이좋게 우리들의 손을 잡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의 힘은 돈의 증대라고 하는 기계적인 힘이며, 그것은 서로가 상대를 잡아 먹는 역할을 가진 그룹으로 당신들을 결합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힘은 모든 노동자들의 더욱더 성장해가고 있는 연대감의 살아 있는 힘입니다. 당신들이 하고 있는 것은 모두 범 죄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노예화를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임무는 당신들의 위선이나 증오나 탐욕에 의해서 태어난 괴물, 민중을 위협해 온 괴물로부터 세계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당신네들이 파괴한 세계를 하나의 위대한 통일체로 결합해가고 있으며, 이 통일체는 반드시 완성될 것입니다." 파벨은 한순간 말을 멈췄으나, 한층 조용하게 그러나 힘차게 되풀이했다.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판사들은 기묘하게 찌푸린 상을 짓고 서로 속삭이고 있었으나, 그 탐욕스러운 시선을 파벨에게서 때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들이 파벨의 건강과 힘과 싱싱함을 시기해서 저런 눈매를 하고, 그의 유연하고 튼튼한 육체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느껴졌다. 피고들은 동료의 연설을 주의깊게 듣고 있었으나, 그들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눈은 기쁜 듯이 빚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는데, 그 말들은 정연하게 열을 이루어 그녀의 머리 속에 깊이 새겨졌다. 재판장은 몇번이나 파벨의 말을 제지하고, 그에게 뭔가 설명했으나 어떤 때는 서글픈 듯이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파벨은 잠자코 재판장의 말을 모두 듣고나서 다시금 엄숙하게, 그러나 조용하게 얘기하기 시작하고, 판사들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에 따르게 하고 경청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마침내 재판장은 파벨 쪽으로 한 손을 내밀고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것에 답해서 얼마간 조소적으로 파벨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럼, 끝마치겠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들을 모욕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대로 당신들이 재판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이 희극에, 마지못해서 참석한 것에 대해서 나는 당신들에 대해서 동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들의 목적에 적대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폭력에 봉사함으로써 이토록까지 창피스럽게 전락하고, 이토록 자신의 인간적 존엄 의식을 상실한 사람들을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파벨은 판사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앉았다. 어머니는 숨을 죽이고 뚫어질 듯이 판사들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기분좋은 얼굴로 파벨의 손을 굳게 움켜잡았다. 사모일로프, 마진, 그리고 모든 피고들이 활기를 띠고 파벨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파벨은 동료들의 격정에 약간 계면쩍은 듯이 미소를 짓고는, 어머니 쪽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묻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만하면 되었겠지요?' 어머니는 온몸으로 애정을 느끼며 따뜻한 눈빚으로 대답했다. "이것으로 재판이 시작된 거야!" 하고 시조프가 속삭였다. "어때요, 저 녀석이 저놈들을 한 방에 해치웠쟎소?" 어머니는 아들의 용감한 행동에 만족해서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마지막 말이 너무나 통쾌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머리 속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떨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자아, 어떻게 하겠어요? 이제 당신들은 저 아이들을 어떻게 할 작정이냐구요?' 23 아들의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법정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신념에 불가사이한 매력을 느꼈다. 어머니는 파벨의 냉정함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아들의 말은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아들의 정당함과 아들의 승리에 대한 굳건한 확신의 덩어리가 되어 굳어져 갔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판사들이 아들과 치열하게 논쟁을하고, 자기들의 진리를 주장하고 화를 내면서 반박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안드레이가 일어나서 몸을 한 번 추스르고는 이마 너머로 판사들을 빤히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변호인 여러분." "당신 앞에 있는 것은 변호인단이 아니고, 법정이다!" 하고 환자와 같은 얼굴을 한 판사가 화가 난다는 듯이 큰소리로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안드레이의 얼굴 표정으로 어머니는 그가 장난을 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안드레이의 콧수염은 떨리고, 눈 속에서는 어머니에게는 낯익은 고양이와 같은 교활한 애교가 빚나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긴 손으로 머리를 세게 비비고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인가요?" 하고 안드레이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판사가 아니라, 그냥 변호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데요." "문제의 본질에 관해서만 얘기해라!" 하고 판사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문제의 본질에 관해서라구요? 좋습니다. 나도 벌써 나 자신에게 그렇게 생각하게 했습니다요. 당신들이 실제로 판사이며, 독립된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말이지요." "법정은 당신의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흐음 그건 그렇다치고, 역시 나는 발언을 계속하겠습니다. 당신들은 자신의 것도 타인의 것도 갖지 못한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해둡시다. 그런데 지금 당신 앞에는 두 개의 그룹이 있습니다. 한쪽 그룹에서는 나를 강탈하고 못살게 굴고 학대했다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다른 쪽은, 나는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강탈하거나 괴롭히거나 학대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당신은 본질적인 것에 대하여 뭔가 말할 것이 있습니까?" 하고 노 판사가 목청을 높여서 물었다. 그의 한쪽 손은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판사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안드레이의 행동은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들의 진술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진지하고 엄숙한 논쟁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인은 잠자코 재판장을 바라본 뒤 머리를 비비고 진지하게 말했다. "본질적인 것이요? 그러나 도대채 무엇 때문에 내가 당신들과 본질적인 문제에 대하여 얘기할 필요가 있나요? 당신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 동지가 이미 다 말했어요. 그 밖의 일은 시간이 있을 테니까, 다른 친구들이 입증할 겁니다. 다른 친구들은..." 재판장은 엉덩이를 쳐들고 명했다. "당신의 발언을 금지합니다! 다음은 그레고리 사모일로프." 우크라이나 인은 입을 한 일자로 다물고 시큰둥하게 의자에 주저앉았다. 안드레이 옆에서 사모일로프가 곱슬 머리를 흔들며 벌떡 일어났다. "검사는 우리 동지들을 야만인이라든가, 문화의 적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발언은 당신들의 사건에 관한 것만 하시오." "이것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성실한 인간에게 관계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발언을 방해하지 말아 주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묻겠는데 당신네들의 문화란 도대채 어떤 것입니까?" "우리들은 당신들과 논쟁하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게 아니오. 본론으로 들어가시오." 하고 이빨을 드러내놓고 재판장이 말했다. 안드레이의 행동은 재판장의 태도를 바꿔 놓았다. 눈에는 차가운 녹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파벨의 변론은 그들을 짜증스럽게는 만들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존경을 느껴 그 힘으로 그 짜증스러움을 억누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그 억제력을 파괴하고 그 밑에 숨겨져 있던 것을 손쉽게 노출시켜 버렸던 것이다. 판사들은 기묘하게 찌푸린 상을 하고 서로 속삭이고,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지나치게 빠를 정도의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스파이들을 양성하고 있소. 당신들은 주부나 처녀들을 타락시키고 있소.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도둑질을 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살인을 하게 되는 처지로 내몰고 있소. 당신들은 앞날이 깜깜한 민중들을 보드카로 못쓰게 만들고 있소. 국제적으로 살육전을 계획하고, 전 민중에게 사기를 치고, 온갖 타락한 짓을 일삼는 야만인이오. 이것이 당신들의 문화요! 그렇소, 우리들은 그러한 문화의 적이오." "발언에 주의하시오!" 하고 재판장은 턱을 흔들어대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사모일로프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서 눈을 번뜩이면서 지지않고 소리쳤다. "그러나 우리들이 존중하고 소중히하는 것은 이것과는 다른 문화요. 이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을 당신들은 감옥 속에서 쇠약하게 만들고 미치게 해서..." "발언을 금지한다. 다음 마진 !" 몸집이 작은 마진이 마치 갑자기 송곳으로 찔린 것처럼 벌떡 일어나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는 맹세한다 ! 나는 알고 있다. 당신네들이 나를 속인 것을 !" 시조프는 큰소리로 헛기침을 하고 바스락 바스락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청인들은 모두 점점 높아만 가는 흥분의 물결에 사로 잡혀서 술렁대고 있었다. 울고 있는 여자도 있었다. 호흡이 곤란한 듯이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헌병들은 피고들을 우둔한 놀라움으로 바라보고, 또 방청인들을 증오를 담아서 바라보고 있었다. 판사들은 흔들 흔들 몸을 흔들고, 재판장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구세프 이반!" "진술하고 짚지 않다!" "바실리 구세프!" "싫다 !" "표토르 부킨!" 얼굴에 병색이 완연한 젊은이가 느릿느릿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천천히 말했다. "당신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나는 별로 아는 건 없지만, 그래도 정의라는 것은 알고 있다!" 부킨은 한 손을 머리보다 높이 치켜들고, 마치 어딘가 먼 곳을 뚫어질듯이 응시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눈을 절반쯤 감고 입을 다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 재판장은 짜증을 내면서 팔걸이 의자 위에서 몸을 뒤로 젖히고 놀라움을 담아서 소리쳤다. "당신들에게 설명해 보았자 쇠귀에 경 읽기지. 그만 두겠소." 부킨은 불쾌한 듯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의 어두운 말 속에는 커다란, 그리고 중요한 것이 있었다. 무엇인가 서글프게 비난하는 소박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느껴지고, 판사들조차 그 말보다도 훨씬 더 뚜렷한 메아리가 울려오지는 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것처럼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방청석에서는 모든 것이 물을 뿌린 듯 조용해지고, 단지 간헐적인 울음소리만이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검사가 어깨를 치켜들어 보이면서 희죽이 웃고, 귀족회의 집행인이 크게 헛기침을 했다. 또다시 차츰 속삭임소리가 생겨나더니 흥분해서 법정 안을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시조프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물었다. "판사들이 무슨 말을 하나요?" "모두 끝나 버렸어요. 이제 판결만 남았을 뿐이오." "그것 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어머니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모일로프의 어머니는 의자에서 불안스러운 듯이 몸을 움직이면서 어깨와 팔꿈치로 남편을 찌르며 말했다. "도대채 어떻게 된 거예요? 이것으로 끌낼 수가 있어요?" "두고 보라구, 끝낼 테니까 !" "그럼, 저 아이는, 그리샤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시끄러윗!" 사람들은 어이없는 재판에 놀라고 당황해했다. 사람들은 모두 보이지 않게 된 것 같은 눈을 이상하다는 듯이 깜빡거렸다. 마치 자신들 앞에는 형태도 분명치 않은, 그리고 의미도 알 수 없는, 그러나 끌어 들이는 힘을 가진 무엇인가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열린 위대한 것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서 모두들 무슨 영문인지 알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부킨의 형이 서슴지 않고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저 애들은 얘기를 못하게 하는 거지 ? 검사는 뭔데 마음 대로 얘기를 하게 내버려 두는 거야?" 의자 옆에 서있던 관리가 손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쉿 ! 조용히 하시오..." 사모일로프는 몸을 뒤로 젖히고 아내의 등 뒤에 숨어서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면 본인들 입으로 설명하게 하라구! 이 사람들은 무엇에 반대한 거지 ?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단 말야. 나에게도 알 권리가 있으니까." "조용히!" 하고 관리는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겁을 주면서 외쳤다. 시조프는 불쾌한 듯이 고개를 젖혔다. 어머니는 눈을 떼지 않고 판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점점 더 흥분해서 알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얘기소리는 차갑고 매끄러워서, 그것이 어머니의 얼굴에 닿자 뺨이 떨리고, 입 속에 소름끼치는 험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머니는 웬지 그들이 모두 젊은이들의 육체에 대해서, 뜨거운 피와 싱싱한 힘으로 가득 찬 젊은이의 근육과 손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육체가 그들의 병들고 추한 마음 속에 끈적끈적한 탐욕을 불태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풍요로운 삶과 모든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육체들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은 판사들은 노쇠해진 야수와 같아서 복수심과 안타까운 초조감을 불러 일으키며 먹이를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해 울부짖는 무리 같았다. 이 기묘한 생각은 어머니가 주의깊게 판사들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점점 더 뚜렷한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젊었을 때는 온갖 향락을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병든 영혼만 남아 무기력해진 자신들의 모습이 초라하고 분통이 터진다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어머니에게는 아들의 육채가 영혼을 일깨워주는 정신 이상으로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초점없는 저 눈들이 아들의 얼굴을 흩어 내리고 온몸을 기어다닌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들은 마치 확 하고 불타을라서 절반은 죽은 인간의 정화된 혈관이나 닮아빠진 근육 속의 피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서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저들은 자신들이 심판해야 하는 젊은 생명에 대한 시기와 탐욕에 자극받아서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이 불쾌한 감촉을 느끼고 있어서, 부들부들 떨면서 자기 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벨은 피로한 듯한 눈으로 냉정하고 다정하게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금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웃고 있었다. '이제 곧 자유의 몸이 될 거예요!' 하고 그 미소가 어머니에게 얘기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부드럽게 손을 뻗어서 어머니의 심장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돌연 판사들이 모두 한꺼번에 일어셨다. 어머니도 엉겁결에 일어섰다. "재판장이 나오고 있어요." 시조프가 말했다. "판결을 내리겠지요?"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글쎄요...." 재판장은 법의 속으로 머리를 쭈셔박고 졸리운 듯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법정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재판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선 판사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면장은 한쪽 어깨에 머리를 내려 놓고 있었다. 귀족회의 집행관은 느긋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만지고 있었으며, 검사는 피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판사들 뒤에 걸려 있는 초상화 속에서는 붉은 군복을 입은 차르가 근엄한 표정으로 법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액자 밑으로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황제의 얼굴 위로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유형이라고?" 시조프가 재판장의 말을 반복하면서 의자에 주저 앉았다. "그렇겠지. 저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중 노동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걱정마세요." 시조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웬지 자신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군요." 어머니는 힘없이 말했다. 어머니는 긴장이 갑자기 풀어지고, 몸은 숨막히는 듯한 피로감에 사로잡혀 눈썹이 떨리고 이마에서는 땀이 배어나왔다. 무겁고 가슴답답한 환멸과 노여운 감정이 몰려와서 판사나 재판에 대한 마음을 옥죄는 듯한 모욕의 감정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머니는 미간에 통증을 느껴 손바닥으로 세게 이마를 만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고의 가족들은 쇠창살 쪽으로 다가가고, 법정은 와글거리는 소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머니도 또한 파벨 옆으로 다가가서 아들의 손을 꽉 움켜잡고 노여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서 울기 시작했다. 파벨은 어머니에게 다정한 말을 속삭이고, 우크라이나 인은 농담을 하거나 웃었다. 여자들은 모두 울고 있었으나, 그것은 슬프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습관 때문이었다. 느탓없는 충격이 아닌, 자식들과 헤어지게 된 슬픔 때 문이었다. 그러나 그 의식도 오늘 하루의 갖가지 인상 속에 녹아들어갔다. 아버지나 어머니들은 복잡한 심정으로 자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평소의 우월감은, 그 자식들에 대한 존경에 가까운 감정과 이상하게 합쳐져서 막연한 앞날의 두려움과 젊은이들이 만들어 낼 새로운 삶의 기대가 한데 어우러졌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말들이 오갔다. 그러나 대화는 단순한 일들, 내의나 의복에 관한 것, 건강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등이었다. 부킨의 형은 양손을 흔들어대면서 동생에게 타이르고 있었다. "요컨대 정의다! 그것 생이다 !" 동생이 대답했다. "찌르레기를 잘 돌봐줘!" "걱정마 !" 시조프는 조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얘기하고 있었다. "그럼, 표토르, 정말로 가는구나." 페자는 몸을 구부리고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귀에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호송병도 희죽이 웃었으나 금세 엄숙한 얼굴을 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어머니는 파벨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옷에 관해서, 건강에 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으나, 가슴 속에는 사웬카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또 아들에 대한 수십 가지 질문이 밀치락 달치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아들에 대한 애정이, 아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고, 그 마음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고 하는 팽펭한 희망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무서운 것을 기다리던 마음은 사라지고, 오로지 판사들을 생각해낼 때의 불쾌한 떨림과 그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 속에 커다란 기쁨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어리둥절할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인이 파벨 옆에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그가 파벨보다도 더 많은 애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끼고 그와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판이 마음에 들지 않았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어머니 ?" 하고 우크라이나 인은 감사하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물레방아는 낡기는 했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있어요." "사람들이 특별히 무서워하지도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진리는 누구의 진리인지 잘 모르겠네." 하고 어머니는 망설이면서 말했다. "허허 ! 어머니는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습니까?" 하고 안드레이는 말했다. "이런 곳에서 진리의 싸움 같은 것을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미소를 지으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또 무서운 것인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이야기는 소음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호송병들이 다가와서 젊은이들 곁에 섰다. 대화 소리가 차츰 줄어들었다. 여인들의 간헐적인 울음소리가 다시 터져나오고 젊은이들은 하나 둘 법정을 삐져나갔다. "잘 가거라, 표토르 ! 그리고 모두들 건강하게 잘들 지내게 !" 부킨의 형이 큰소리로 작별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잠자코 아들과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울고 싶었으나 우는 것은 창피스러웠다. 24 어머니는 법원을 나섰다. 벌써 거리는 어둑어둑했다. 길에는 가로등이, 하늘에는 별이 총총 빚나고 법원 주위에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다. 혹독하게 추운 대기 속에서는 눈이 휠날리는 소리를 내고, 젊고 싱싱한 목소리가 서로 상대를 가로막으면서 울리고 있었다. 회색 방한모를 쓴 사람이 시조프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황급히 물었다. "어떻게 판결이 났습니까?" "유형이라오." "모두가 말입니까?" "그렇다오." 그 사람은 떠나갔다. "그것 보세요." 하고 시조프가 말했다. "사람들 모두 관심이 많다니까요." 갑자기 십여 명 가량의 청년과 처녀들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어머니와 시조프는 멈춰 섰다. 판결과 피고들의 태도, 누가 어떤 진술을 했는가 하는 것을 물어왔다. 그 질문 속에는 호기심의 가락이 울리고 있었다. 그 진지한 호기심은 그것을 만족시켜 주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여러분! 이분이 파벨 블라소프의 어머님이세요." 누군가가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금세 모두가 침묵했다. "악수를 해도 될까요?" 누군가의 억센 손이 어머니의 손을 맞잡고 흥분해서 "당신의 아드님은 우리들 모두에게 용기의 본보기가 될 겁니다."라 말했다. "러시아의 노동자 만세!" 잘 들리는 외침소리가 울려퍼졌다. 외침소리가 커지고, 수가 불어나자 그 열기는 폭발할 듯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시조프와 어머니 주위에서 서로 부딪쳤다. 경찰관의 호루라기 소리가 공중에서 난무했으나 외침소리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시조프는 웃고 있었는데,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모두 꿈처럼 생각되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악수를 하거나 절을 했다. 그러자 기쁨에 겨워 눈물이 흘렀다. 다리는 피곤해서 떨리고 있었으나 기쁨으로 가득 찬 마음은 모든 것을 빨아들여 호수의 잔잔한 수면처럼 어머니 가까이에서 누군가의 맑은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동지 여러분! 러시아의 민중을 잡아먹는 괴물이 오늘도 그 탐욕스러운 아가리로 삼켜 버렸소." "아주머니, 가십시다!" 하고 시조프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사웬카가 나타나서 어머니의 팔을 잡고 재빨리 건너쪽으로 끌고갔다. "빨리 가세요. 틀림없이 얻어맞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검거당할거예요. 유형이지요? 시베리아로?" "응, 그래." "하지만 파벨 씨는 어떻게 얘기했나요? 안 들어도 나는 다 알고 있어요. 그이는 누구보다도 강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물론 누구보다도 엄격했을 거예요. 그리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냥한 사람이지만, 그런 자신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했지요?" 사웬카의 뜨거운 속삭임이나 사랑의 말은 어머니의 불안을 가라 앉히고 힘을 북돋아 주었다. "언제 그 아이가 있는 곳에 가주겠어 ?" 하고 어머니는 사웬카의 손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기면서 조용히 다정스럽게 물었다. 사웬카는 자신이 있는 것처럼 앞쪽을 보면서 대답했다. "내가 하는 일을 맡아 줄 사람을 찾는 즉시 떠날 거예요. 나도 역시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몸이니까요. 아마 나도 역시 시베리아로 보내질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는 파벨 씨가 가는 곳과 같은 장소로 유형시켜 달라고 신청할 거예요." 뒤쪽에서 시조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는 내 안부도 좀 전해 주시오. 시조프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말이오. 그 아이는 알 거요, 표토르 마진의 숙부라고 말하면." 사웬카는 뒤돌아서서 시조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페자를 알고 있어요. 나는 알렉산드라라고 합니다." "그럼, 아버님의 이름은?" 사웬카는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그럼, 돌아가셨나요?" "아니에요, 살아 있어요!" 하고 처녀는 흥분해서 대답했다. 그리고 무엇인가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것이 그녀의 목소리와 그 얼굴에 나타났다. "아버지는 지주입니다. 지금은 자치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농민들을 착취하고 있다구요." "그렇군요!" 하고 시조프는 실망한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처녀와 나란히 걸으며 그녀를 옆에서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럼, 아주머니, 잘 가시우! 나는 왼쪽으로 가니까요. 잘 가요, 아가씨. 당신은 아버지에 대해서 너무 엄하군요. 물론 그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만일 당신의 아드님이 남들에게 해를 끼치고, 당신에게도 못된 짓을 한다면 당신도 나와 같은 말을 하시겠지요?" 하고 사웬카는 흥분해서 말했다. "그야 그렇게 말하겠지요." 하고 노인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정의가 아드님보다도 더 소중하고, 나에게는 정의가 아버지보다 더 소중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시조프는 고개를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과연, 당신은 멋진 말을 하는구먼 ! 당신을 오랫동안 상대하고 있으면 노인들도 당하겠는 걸, 당신의 공격은 대단하구먼!... 그럼, 잘가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조금 부드럽게 대해줘요. 잘 가요, 아주머니! 파벨을 만나거든 진술을 잘 들었다고 말해 주구려. 완전히 납득이 간 것은 아니고 무섭다고 생각한 일조차 있었지만, 그러나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전해줘요." 시조프 노인은 모자를 조금 들어 보이고는 유유히 거리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틀림없이 좋은 분일 거예요.!" 하고 사웬카는 커다란 눈에 미소를 지으며 골목을 바라 보면서 말했다. 어머니에게는 오늘 이 처녀가 여느 때 보다도 부드럽고 상냥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집에 돌아오자 두 사람은 장의자에 찰싹 붙어서 앉았다. 어머니는 고요함 속에서 한숨 돌리면서, 파벨이 있는 곳으로 가는 사웬카의 여행 얘기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사웬카는 짙은 눈썹을 수심에 잠긴 듯 치켜들고, 꿈꾸는 듯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는 조용한 상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얼마 뒤에 아이가 생기면 나도 그곳으로 가서 아이들을 돌봐 줄게. 틀림없이 그곳에서도 이곳에 못지 않는 생활을 할 수가 있을 거야. 파벨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테고. 그 아이는 누구보다 좋은 솜씨를 갖고 있으니까." 사웬카는 탐색하는 듯한 눈을 어머니에게 던지고 물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지금 당장 파벨 씨를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어머니는 한숨을 짓고 말했다. "내가 그 아이를 위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나? 탈출할 때 방해가 될 뿐이지. 게다가 그 아이도 승락하지 않을 거구." 사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락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내게는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하고 어머니는 가벼운 긍지를 갖고 덧붙였다. "그래요!" 하고 사웬카는 사려깊게 대답했다. "그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돌연 자신의 몸에서 무엇인가를 떨쳐 버리려는 듯이 몸을 한번 흔들고는 솔직하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파벨 씨는 그곳에서 살게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은 물론 탈출할 거예요."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게다가 아이라도 생겼을 때는?" "그때는..." "그때 가서 생각해 보아야지요. 그 사람은 나를 보살펴 줄 수는 없을 것이고, 나도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쓰라리겠지만, 그러나 나는 살아나갈 수 있어요. 나는 그 사람에게 절대로 폐는 끼치지 않겠어요." 어머니는 사웬카가 말한 것을 그대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사웬카가 불쌍해졌다. 어머니는 그녀를 끌어안고 말했다. "불쌍하기도 해라! 많은 고생을 하게 되겠구먼." 사웬카는 어머니에게 온몸을 맡기고 상냥하게 웃었다. 니콜라이가 지쳐서 돌아왔다. 그리고 외투를 벗으면서 황급히 말을 꺼냈다. "자아, 사웬카, 얼른 이곳을 떠나 주십시오. 아침부터 두 명의 스파이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체포할 기색인 것 같아요. 나에게는 예감이 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파벨의 진술이 있는데 그것을 인쇄하기로 결정했어요. 이것을 류드밀라의 집에 가져가서 빨리 인쇄하도록 부탁 좀 해주십시오." "파벨의 진술은 정말 훌륭하더군요, 닐로브나 부인! 스파이를 조심하세요, 사웬카." 이렇게 말하면서 니콜라이는 얼어붙은 손을 세게 비비며 테이블 있는 곳으로 가 서랍을 열고, 그 속에서 종이 다발을 꺼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어떤 것은 찢어 버리고 또 어떤 것은 옆으로 따로 내놓았다. "얼마 전에 모두 정리했는데 벌써 이렇게 여러 가지가 쌓여 버렸군, 빌어먹을! 아주머니, 이곳에서 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그 소동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따분한 일이고, 게다가 그 녀석들은 아주머니도 감옥에 집어 넣을지 모릅니다. 아주머니는 파벨의 진술을 가지고 여기저기에 돌아다니는 일을 하셔야 될 탠데 말입니다." "아니, 나에게 그놈들이 무슨 볼일이 있겠나?"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니콜라이는 눈앞에서 손목을 흔들어대면서 자신있게 말했다. "저는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구요. 게다가 아주머니는 류드밀라를 도와줄 수도 있을 거예요. 어떻습니까? 위험한 곳에서 좀 떠나 있으시는 것이..." 아들의 진술을 인쇄하는 일에 가담하는 것은 어머니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그런 일이라면 가겠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뜻하지 않게 자신있는 듯이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무섭지가 않다네, 너무 고맙게도 말일세." "그것 참 잘 됐군요!" 하고 니콜라이는 어머니를 보지 않고 외쳤다. "그런데 내 트렁크와 내의가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아주머니도 필요한 것을 모두 챙겨 가세요. 그놈들은 내 재산을 자유롭게 처리할 권리를 빼앗아 버릴 데니까요." 사웬카는 말 없이 페치카 안에서 서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타버리자 꼼꼼하게 재를 뒤섞었다. "사웬카! 당신은 돌아가세요." 하고 니콜라이는 한 손을 그녀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잘 가요. 무엇인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책으로 써서 내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럼, 안녕히 가시오, 친애하는 동지! 조심하시구요." "이번에는 오래 걸릴 거라고 예상하세요?" 하고 사웬카가 물었다. "그거야 알 수 있겠어요? 아마 나 때문에 무엇인가 탄로가 날 거예요. 아주머니, 함께 가세요. 어때요? 두 사람 쪽이 미행이 어려울 테니까요. 아시겠어요?" "가겠네!" 하고 어머니가 대답했다. "지금 당장 외투를 입고 올 테니까." 어머니는 주의깊게 니콜라이를 지켜보았다. 평소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얼굴 표정이 조금 흐려있을 뿐 별로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가장 친근한 니콜라이에게서 쓸모없는 조바심이나 흥분의 어떤 징후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마음을 쓰고, 누구에게나 상냥했지만 언제나 냉정하고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니콜라이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생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보다 한걸음 앞선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니콜라이가 자기 옆으로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 접근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조심스러운 애정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지금 어머니는 니콜라이가 견딜 수 없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만일 그것을 보인다면, 니콜라이가 당혹하고 난처해져서 언제나처럼 약간 우스쾅스럽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런 그를 보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니콜라이는 사웬카의 손을 잡고서 말하고 있었다. "훌륭합니다! 나는 그것이 그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대단히 좋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개인적 행복은 해가 되지 않습니다. 준비가 되었습니까, 아주머니?" 니콜라이는 싱글벙글 옷으면서 안경을 바로잡고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머리를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 3개월? 4개월? 기껏해야 반 년 가량, 반년이라고 하면 꽤나 긴 생활입니다. 부디 몸 건강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자아, 포옹을 좀 해주세요." 여위고 호리호리한 니콜라이는 어머니의 목을 자신의 힘찬 팔로 끌어 안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이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주머니한데 반한 것 같아요. 계속 이러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는 잠자코 니콜라이의 이마와 양쪽 뺨에 키스를 했으나, 그녀의 양팔은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어머니는 팔을 빼냈다. "내일 아침에 어린애를 보내 주세요. 류드밀라의 집에 그런 꼬마가 있을 거예요. 그 아이에게 살펴보고 오게 하세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동지 여러분! 안녕!" 거리로 나오자 사웬카가 속삭이듯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여차하면 저런 식으로 깨끗이 죽음을 향해서 걸어갈 거예요. 그리고 틀림없이 저런 식으로 약간 조급하게 말이에요. 그리고 드디어 죽음과 마주셨을 때는 안경을 고쳐 쓰고 '멋지다!' 라고 말하며 죽어 갈 거예요."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한다네." 하고 어머니가 속삭였다. "나는 감탄을 하고 있지만 좋아하지는 않아요. 무척 존경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딘가 정감이 없어요. 좋은 분이고, 때로는 다정하지만, 그러나 인간미가 부족해요 아무래도 우리들은 미행을 당하고 있는 것 같지요? 헤어지기로 합시다. 만일 스파이가 있는 느낌이 든다면, 류드밀라의 집에는 가지 마세요." "알고 있네."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러나 사웬카는 집요하게 덧붙였다. "절대로 들어가지 마세요. 그럴 때는 우리 집으로 오세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는 사웬카는 재빨리 방향을 바꿔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25 어머니는 류드밀라의 조그만 방 페치카 옆에서 몸을 덥히고 있었다. 검은 옷에 벨트를 맨 여주인은 천천히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옷스치는 소리와 구령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방 가득히 울리고 있었다. 난로 속에서는 불이 탁탁 튀는 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근성이 나했다기보다는 훨씬 더 어리석은 존재라구요. 몸 가까이에 있는 것이나 지금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밖에는 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손 가까이에 있는 것은 모두 싸구려 뿐이고, 값어치가 있는 것은 먼 곳에 있는 법이에요, 엄밀하게 말한다면, 만일 생활이 좀더 편한 것이 되고, 인간이 좀더 영리한 존재가 된다면, 모두에게 있어서 유리하고 기분도 좋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자신이 불편한 꼴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다가 갑자기 어머니 앞에 멈춰 서서 목소리를 낮추고 마치 사과하듯이 말했다. "좀처럼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누군가가 찾아오면 자꾸만 얘기를 늘어놓게 됩니다. 우습지요?" "별 말씀을 다 하는군요."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어머니는 이 여인이 어디서 인쇄를 하는지 알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거리 쪽으로 창문이 세 개 나 있는 방 안에는 장의자와 책꽃이와 책상이 있고, 벽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옆의 구석에는 세 그림이 걸 면대가 있고 반대쪽 구석에는 난로가, 그리고 벽에는 복제된 그림이 있었다. 모든 것이 잘 정돈되고 청결했다. 그리고 여주인의 수녀 같은 모습이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무엇인가 은밀히 숨겨진 것이 느껴졌으나,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 문을 통해서 이곳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난로 옆에는 또 하나의 좁고 높은 문이 있었다. "나는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하고 어머니는 여주인이 빤히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 어색해져서 말했다.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집에 찾아을 분이 아니니까요." 어머니는 류드밀라 부인의 목소리 속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울림을 느끼고,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보냈다. 상대방은 엷은 입술을 움직이며 웃고 있었는데, 안경의 랜즈 뒤에는 윤택이 없는 눈이 빚나고 있었다. 어머니는 시선을 돌리고 파벨의 진술 원고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인쇄해 달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니콜라이가 체포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류드밀라 부인은 잠자코 원고를 벨트 속으로 밀어넣고 의자에 걸터 앉았다. 그녀의 안경 렌즈에 난로의 빨간 불이 반사하여, 그 불의 뜨거운 미소가 움직이지 않는 얼굴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그놈들이 이곳에 찾아오면 나는 총으로 쏘아 줄 거예요!" 류드밀라는 어머니의 얘기를 모두 듣고 나자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폭력에 대해서 몸을 지킬 질리를 갖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권하고 있어요. 폭력과는 싸우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반사된 불빚이 그녀의 얼굴 위에서 일렁거렸다. 그러자 또다시 그 얼굴은 엄해졌는데 약간 거만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당신의 생활은 참 고생스러운 것이로군요.'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류드밀라 부인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파벨의 진술 원고를 읽기 시작했으나, 이윽고 읽고난 종이를 재빨리 옆으로 던지면서 원고 위에 점점 가까이 몸을 구부렸다. 그리고 다 읽고 나자 몸을 똑바로 펴고 어머니 옆으로 다가왔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류드밀라 부인은 잠시 동안 머리를 떨구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 아드님의 일로 당신과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만나 본 적도 없었고, 게다가 슬픈 얘기는 싫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까운 사람이 유형지로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런 아드님을 가져서 기쁘시지요?" "네, 기쁨니다!"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리고 두렵고요. 그렇지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류드밀라 부인은 바싹 빗어넘긴 머리칼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가벼운 그림자가 그녀의 뺨에서 흔들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억누른 미소의 그림자였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서 활자를 찍겠어요. 당신은 가만히 누워 계세요. 오늘은 무척 피곤하실 테니까요. 여기 침대에 누워 계세요. 나는 자지 않을 거예요. 밤중에 어쩌면 당신을 깨워서 도와달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잠이 들기 전에 램프를 꺼주세요." 류드밀라 부인은 난로에 장작을 두 개 던져넣고 몸을 똑바로 펴고, 난로 옆의 좁은 문으로 나가더니 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옷을 벗으면서 여주인에 대해서 생각했다. '뭔가 고민이 있는 모양이군..' 피로 때문에 어머니의 머리는 어찔어찔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평온해서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조용하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그 고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커다란 흥분 뒤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그녀를 불안하게 했으나, 지금은 다만 마음을 넓히고 크고 강한 감정으로 마음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램프를 끄고, 차가운 침대에 누워서 담요 밑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나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까 방은 맑은 겨울날의 차고 흰 빚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주인은 손에 책을 들고 장의자 위에 누워서 어울리지도 않는 미소를 띄운 채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나, 이런!" 하고 어머니는 계면쩍은 듯이 소리쳤다. "아니, 이렇게 오래 자다니, 꽤나 늦잠을 잤지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류드밀라 부인이 말했다. "이제 곧 10시가 될 겁니다. 일나세요. 차를 마셔야지요." "왜 깨우지 않았어요?" "깨우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당신 옆에 가보니까 무척 즐거운 듯이 꿈을 꾸며 웃고 있어서 말이에요." 유연한 동작으로 류드밀라 부인은 장의자에서 일어나 침대 옆으로 다가와서 어머니의 얼굴 위에 몸을 구부렸다. 어머니는 그녀의 윤기없는 눈 속에서 애정과 친근함을 발견했다. "당신을 방해하는 것이 안쓰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아마 당신은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나 보죠?" "꿈 같은 것은 전혀 꾸지 않았는데요." "어머, 그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의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요. 무척 평화롭고... 대범하게 웃는 얼굴이었답니다." 류드밀라 부인은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비로드와 같은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신의 생활도 괴로운 것이겠지요?" 어머니는 눈썹을 움직이며 잠자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괴로우실 거예요." 하고 류드밀라 부인이 외쳤다. "잘은 모르겠지만요," 하고 조심스럽게 어머니는 말했다. "괴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고, 그것은 모두 무척 진지하고, 놀라운 것들 뿐이고, 차례차례로 이렇게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어머니에게는 낯익은 힘찬 흥분의 물결이 가슴 속으로 차올라 사람들의 모습이나 사상을 마음 가득히 넘쳐 흐르게 했다. 어머니는 침대 위에 앉아서 황급히 말을 하며 생각을 지우려고 했다. "자꾸만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전진해가고 있어요. 괴로운 일은 엄청나게 많이 있어요. 하지만 모두가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있지요. 그 사람들은 비참하게 얻어맞고, 그리고 기쁨마저도 금지 당하고 있어요. 그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지요." 류드밀라 부인은 얼굴을 들고, 애정이 담긴 눈길로 어머니를 보고 말했다. "당신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일은 아니겠지요?" 어머니는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입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하지만 누구를 소중히 여기거나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경계를 해야 한다든지, 누구를 가없게 여기면서도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어떻게 자기 자신을 옆쪽으로 밀어 놓을 수 있겠어요? 모든 일이 서로 연관이 있고, 마음이 이끌리는데 자기만 한쪽으로 비껴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어머니는 옷을 입은 재로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는 자식의 신상을 생각하는 불안과 공포로 나날을 보내고, 자식의 몸을 지키고 싶다고 하는 생각만으로 살고 있었던 그 옛날의 자신이 아니었다. 그러한 자신은 떨어져나가 어딘가 멀리 가버렸다. 어쩌면 그 불안의 불로 완전히 불타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을 가볍게 하고, 깨끗이 하고, 새로운 힘으로 심장을 되살린 것처럼 생각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에 뭔가 불안한 것이 또다시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무엇을 그리 깊이 생각하고 있나요?" 하고 여주인이 어머니 옆으로 다가와서 상냥하게 물었다.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얼굴을 서로 마주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류드밀라 부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방을 나갔다. "우리 집의 사모바르는 어떻게 되었나...." 어머니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거리는 춥지만 햇빚이 내리쬐는 한낮이었다. 그녀의 가슴 속도 역시 밝고 뜨거웠다. 모든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즐겁게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마음 속으로 비쳐들어 황혼의 해 떨어지기 전의 빚으로 빨갛게 불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싫은 막연한 감정이 생겨났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기도를 을리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속을 술렁거리게 했다. 누군지 젊은 얼굴이 떠오르며 아득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분은 파벨 블라소프의 어머님이시다!' 사웬카의 눈이 다정하게 빚나고, 루이빈의 모습이 나타나고, 아들의 구릿빚 얼굴이 미소를 짓고, 니콜라이가 계면쩍게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돌연 모든 것이 깊고 가벼운 한숨으로 흔들려 가지각색의 구름 속으로 뒤범벅되고 말았다. "니콜라이가 말한 대로였어요." 하고 류드밀라 부인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그 사람은 검거당했어요. 나는 당신이 말한 대로 어린애를 그곳으로 심부름 보냈어요. 그 아이는 안뜰에 경찰관들이 있고, 한 사람의 순경이 문 뒤에 숨는 것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스파이도 배회하고 있었다더군요. 아이는 스파이들을 알고 있어요." "그랬군요." 하고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아, 불쌍하게도!" 한숨이 나왔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그런 자신에게 어머니는 놀랐다. "그 사람은 최근에 시내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여러 차례나 강의를 하고 있었고, 이미 검거당할 시기였다구요." 하고 암울하고 냉정하게 류드밀라 부인이 말했다. "동지들은 그에게 도망치라고 권하고 있었지만, 듣지 않았어요. 내 생각으로는 그런 경우에는 강제로라도 도망을 시켰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턱에 아름다운 눈과 매부리코를 한 검은 머리칼의 소년이 나타났다. "사모바르를 가지고 올까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부탁한다. 세료쟈 ! 나의 양자랍니다." 어머니에게는 류드밀라 부인이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달리 훨씬 솔직하고,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날씬한 몸의 유연한 움직임 속에는 많은 아름다움과 힘이 있어서, 그것이 그녀의 근엄하고 창백한 얼굴을 얼마간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그녀의 눈 밑의 기미가 짙어져 있었다. 그녀에겐 언제 보아도 영혼의 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노력이 엿보였다. 소년이 사모바르를 들고 들어왔다. "인사드려라, 세료쟈 ! 펠라게야 닐로브나 아주머니시란다. 어제 판결을 받은 그 노동자의 어머님이시다." 세료쟈는 잠자코 절을 하고 어머니와 악수를 나누고 방을 나가더니 곧 흰 빵을 들고 들어와서 테이블 앞에 걸터앉았다. 류드밀라 부인은 차를 따르며 경찰관들이 잠복하고 있는데, 누가 목표인지 분명해질 때까지는 집에 돌아가지 말라고 어머니를 설득하고 있었다. "아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당신은 틀림없이 심문을 당할 거라구요." "멋대로 심문하라고 하면 되쟎아요!" 하고 어머니는 대답했다. "게다가 체포당해 보았자 아무렇지도 않다구요. 아무튼 우선 먼저 파벨의 진술을 배포하고 싶어요." "진술 원고의 활자는 벌써 모두 뽑아 놓았어요. 내일은 시내와 노동자 부락에 배포할 전단이 준비될 거예요. 당신은 나타샤를 알고 있지요?" "알고 있다마다요." "그 사람의 집에 전달해 주세요." 소년은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그 눈은 때때로 신문지의 그늘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소년의 발랄한 시선과 마주치면 너무나 기뻐서 미소를 지었다. 류드밀라 부인은 또다시 니콜라이의 일을 입에 올렸는데 그가 체포당한 일을 별로 서운해하는 것 같지 않아서 어머니는 야속했다. 시간은 다른 날보다도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차를 모두 마셨을 때는 벌써 정오경이 되었다. "하지만 말이에요!" 하고 류드밀라 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황급하게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소년은 일어나서 눈을 가늘게 뜨고, 질문하는 듯이 여주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세료쟈, 열어 주렴, 도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침착한 동작으로 류드밀라 부인은 한 손을 스커트 주머니에 집어 넣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만일 헌병이라면 당신은 저곳, 구석에 서있어 주세요. 그리고 세료쟈, 너는..." "알고 있어요. 비밀 통로로 가야죠." 소년은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 모습을 감추었다. 어머니는 빙긋이 웃었다. 어머니는 이와 같은 준비에도 가슴을 설레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몸집이 왜소한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황급히 말했다. "우선 첫째로, 니콜라이가 체포당했습니다. 아아, 닐로브나 아주머니, 당신은 여기에 있었군요? 당신은 니콜라이가 체포당할 때는 그 집에 없었나요?" "그 사람이 미리 나를 이곳으로 보냈어요." "흐음, 그러나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서 유리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둘째로, 어젯밤 여러 젊은 친구들이 파벨의 진술을 5백 장 가량 등사판으로 인쇄했습니다. 나도 보았는데 등사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더군요. 선명하고 똑똑히 보였어요. 그 친구들은 오늘밤 시내에서 그것을 뿌릴 계획으로 있어요. 나는 반대입니다. 시내에는 활판으로 된 인쇄물이 더 효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딘가 지방으로 보내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나타샤 집으로 가지고 갈게요 !" 하고 어머니가 신이 나서 외쳤다. "자아, 나에게 주십시오." 어머니는 파벨의 진술을 한시라도 빨리 세상에 배포해서 지상 전체에 아들의 말을 퍼뜨리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대답을 기다리는 눈초리로 의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탄원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주머니께서 지금 이 일에 착수하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전혀 알 수가 없군요." 하고 의사는 망설이듯이 말하고 시계를 꺼냈다. "지금은 1l시 43분입니다. 기차는 2시 5분에 있고, 그곳까지 거리는 5시간 15분이 걸립니다. 아주머니가 도착하면 밤이지만 그래도 조금 이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네, 그것은 문제가 아니죠." 하고 여주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되풀이 했다. "그럼,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고 어머니는 두 사람 쪽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단지 모든 것을 잘 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겠지요? 그렇죠?" 류드밀라 부인은 뚫어질듯이 어머니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마를 비비면서 주의를 주었다. "당신에게는 위험합니다." "어째서요?" 하고 격렬하게, 그리고 강경하게 어머니는 대들었다. "그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하고 의사는 빠른 어조로 말을 하기시작했다. "아주머니는 니콜라이가 체포되기 한 시간 전에 집에서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리고 아주머니는 공장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아주머니가 나타샤의 숙모로 모두에게 알려져 있어요. 아주머니가 왔다 간 다음에 공장에서 전단이 나돌았습니다. 이런 사실이 전부 함정이 되어서 아주머니의 목을 조여들게 됩니다." "나는 결코 남들에게 들키지는 않을 거예요!" 하고 어머니는 흥분하면서 설득했다. "돌아와서 채포당해서 어디에 갔다 왔느냐고 심문을 당해도....." 어머니는 한순간 말을 끊고 나서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말하면 좋은지를 다 알고 있어요! 그곳에서 나는 곧장 노동자 부락으로 갈 거예요. 그곳에는 내가 잘 아는 시조프 씨가 있어요. 그곳에서 나는 법원에서 곧장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고 말하겠어요. 그 사람도 조카가 판결을 받고 슬퍼할 것 같아서 위로하러 갔다고 하면 되지요. 그 사람도 그것과 같은 말을 증언할 거예요. 어때요, 이러면?" 어머니는 두 사람이 자신의 희망에 양보할 것이라고 느끼고, 빨리 그렇게 느끼게 하려고 점점 더 집요하게 얘기했다. 그래서 두 사람도 양보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군요. 아주머니가 가세요." 하고 의사도 마지못해서 동의했다. 류드밀라 부인은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방 안을 잠자코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흐려지고 초췌해졌다. 마치 머리가 갑자기 무거워져서 가슴 위로 처져내려오는 것을 목의 근육을 경직시켜서 떠받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당신들은 언제나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데" 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자기 자신들은 소중히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고 의사는 대답했다. "우리들은 자신을 소중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을 함부로 낭비하는 사람을 비난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그 법정 진술 전단은 정거장에서 건네드리겠습니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그것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가를 설명했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그럼, 성공을 빌겠습니다." 그리고 역시 무엇인가 불만스러운 모습으로 방을 나갔다. 의사가 나간 뒤에 문이 닫히자, 류드밀라 부인은 어머니 옆으로 다가와서 소리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아주머니의 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녀는 어머니의 팔을 잡고 또다시 조용히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나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어요. 열세 살이지요. 아버지와 함깨 살고있습니다. 남편은 검사보로 있답니다. 그 아이는 어떤 인간이 될까 하고 종종 생각한답니다.' 류드밀라 부인의 촉촉히 젖은 목소리가 흠칫 흔들리더니 이윽고 다시 조용하게 수심에 젖은 듯 흘러갔다. "그 아이는 나의 동료들의 적인 사람의 손에 키워지고 있습니다. 아들은 성장하고 나면 나의 원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아들은 나와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나는 가명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8년 동안 나는 그 아이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8년 간이라면 참으로 긴 세월이죠." 그녀는 창가에 멈춰 서서 창백하고 쓸쓸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만일 그 아이가 나와 함께 있다면 나도 틀림없이 강해질 거예요. 언제나 쑤셔대고 있는 이 마음의 상처도 없을 테구요. 그리고 설사 죽어버린다고 해도 나는 훨씬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어머,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어머니는 동정이 자신의 마음을 불태우는 것을 느끼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행복한 분이에요!" 하고 엷은 웃음을 지으면서 류드밀라 부인이 말했다. "이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에요. 어머니와 아들이 나란히 서있다. 이런 일은 좀처럼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블라소바 부인은 자기 자신도 전혀 뜻하지 않게 소리쳤다. "네, 멋진 일이지요." 그리고 마치 비밀을 털어놓기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를 계속했다. "당신들 모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도 말예요, 진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나란히 서있어요. 갑자기 사람들은 한 가족처럼 되어 버렸어요. 나는 여러분의 심정을 잘 알고 있어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전부 알 수가 있지요." "어머, 그렇습니까!" 하고 류드밀라 부인이 말했다. "그래요..." 어머니는 그녀의 가슴에 한 손을 얹고 살며시 밀면서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마치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응시하듯이 하고 얘기했다. "전세계로 아이들은 전진해 갑니다.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전 세계 지상의 모든 아이들은 전진해 갑니다. 도처에서 단 한 가지의 것을 향해서! 가장 뛰어난 마음, 결백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고 모든 악을 향해서 공격하고, 진군해 가서 그 힘찬 발로 허위를 짓밟고 있습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든 불굴의 힘을 단 한가지, 정의를 향해서 쏟아붓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슬픔을 정복하기 위해서 전진하고, 지상의 모든 불행을 절멸하기 위해서 무장하고, 추악을 타파하기 위해서 전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타파해 나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태양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라고 어떤 사람은 나에게 말했습니다만, 그 불을 붙일 것입니다! 모든 파괴된 마음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만, 결합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잊어버리고 있던 기도의 문구를 또다시 생각해냈다. 그녀는 새로운 신앙에 불타서 그 말을 자신의 가슴 속으로부터 내던졌다.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은 모든 것에 사랑을 가져다 주고, 새로운 하늘을 모든 것에 씌우고, 불멸의 빚으로 모든 것을 비쳐냅니다. 마음을 담아서, 새로운 생활이 전세계로 사랑의 불길 속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이 사랑을 지울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누가? 이 사랑보다 더 강한 힘이 어디에 있고, 누가 이 사랑을 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대지가 이 사랑을 낳고, 생활이 그 사랑의 승리를 바라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어머니는 흥분 때문에 지쳐서 류드밀라 부인 옆을 떠나 힘들게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류드밀라 부인 역시 소리를 내지 않고, 마치 무엇인가 깨뜨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살그머니 떨어져갔다. 그녀는 유연하게 방 안을 걸어다니며 깊은 시선으로 자기 앞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웬지 키가 커지고, 몸이 가늘어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의 여윈 얼굴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되고, 입술은 꽉 다물어져 있었다. 방 안의 조용함에 어머니의 흥분은 이내 가라앉았다. 류드밀라 부인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어머니는 미안한 듯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뭔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여댄 모양이지요?" 류드밀라 부인은 재빨리 놀란 것처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엇인가를 말리려고 하는 듯이 한 손을 흔들면서 빠른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아주머니 말씀대로입니다. 그 말 그대로예요. 하지만 이제 그 얘기는 이 정도로 해두십시다. 그것은 지금의 얘기 그대로 내버려 둡시다." 그리고는 한층 더 조용하게 말을 계속했다. "아주머니는 이제 곧 떠나셔야 해요. 먼 곳이니까 말이에요." "네, 곧 떠나야지요. 아아, 내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당신이 알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들의 말을, 피 같은 말을 가지고 가는 거니까요. 그것은 나 자신의 마음과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는 류드밀라 부인의 얼굴에는 뚜렷하게는 반사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류드밀라 부인이 평소의 자제심으로 자신의 기쁨을 식히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엄격한 마음에 자신의 불을 쏟아부어서 그것을 불태우고 싶었다. 기쁨에넘쳐 있는 자신의 마음과 가락을 맞춰서 그녀의 마음도 울려퍼지게 하고 싶다는 고집스러운 욕망이 치밀어 올랐다. 어머니는 류드밀라 부인의 손을 잡아 꽉 움켜쥐고 세게 흔들면서 말했다. "생활 속에 모든 사람들을 위한 빚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이 그 빚을 발견하고, 그것을 마음으로 끌어안을 때가 찾아올 거예요." 어머니의 선량하고 커다란 얼굴은 떨리며 눈은 미소로 빚났다. 눈씹은 마치 눈빚을 이길 수 없다는 듯 떨었다. 그녀는 커다란 사상에 취해 있었다. 그 사상은 많은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었다. 이 사상을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말로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한 말들은 봄볕을 받은 꽃처럼 찬란하게 피어났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을 위해서 새로운 하느님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것 아니겠어요?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여러분들 모두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정말로 여러분들 모두는 동지입니다. 그리고 가족이지요. 모두는 진리라고하는 한 사람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지요." 또다시 자신의 흥분의 물결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말을 멈추고 숨을 돌렸다. 그리고 마치 포옹이라도 하려는 듯이 커다란 몸짓으로 두 손을 벌리고 말했다. "나는 이 '동지'라고 하는 말을 마음 속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전진해가는 것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답니다." 어머니는 소망대로 류드밀라 부인의 얼굴은 놀랄 만큼 환하게 불타 오르고, 업술은 떨리고, 눈에서는 눈물 방울이 흘러 떨어졌다. 어머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고, 자신의 마음의 승리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소리내지 않고 웃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류드밀라 부인은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시겠어요? 당신과 있으면 너무나 기분이 좋아요." 26 거리로 나오자 매서운 공기가 몸을 감싸고 목으로 스며들어 코끝을 아리게 해서 한순간 호흡이 힘들었다. 어머니는 멈춰 서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가까운 길 모퉁이에 보풀이 돋은 모자를 쓴 마부가 서있었고, 먼 곳에는 한 남자가 몸을 웅크리고 목을 움츠린 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쪽에는 군인이 귀를 비벼대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틀림없이 저 군인은 가게로 심부름을 가는 모양이야!'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발치에서 눈이 사각거리는 것을 만족스러운 듯이 들으면서 걸어갔다. 정거장에는 일찍 도착했다. 아직도 그녀가 탈 기차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저분한 대합실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추위에 쫓겨온 선로공들도 있었고, 마부들이나 남루한 복장의 떠돌이들이 몸을 덥히기 위해 와있었다. 승객으로는 몇 명의 농사꾼과 너구리의 모피 외투를 입은 뚱뚱한 상인과 곰보 얼굴의 처녀를 동행한 신부와 다섯 명 가량의 군인과 바빠 보이는 소시민들이었다.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얘기를 나누거나 차와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다. 식당 옆에서는 누군가가 껄껄거리고 웃음소리를 내고, 사람들 머리 위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히 흐르고 있었다. 문이 열릴 때는 끼익끼익 소리가 나고, 닫힐 때는 유리가 흔들거리는 소리가 났다. 담배 냄새와 소금에 절인 생선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어머니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입구 쪽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구름처럼 그녀에게 덤벼들었으나 오히려 상쾌해서 가슴 가득히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손에 보따리를 든 사람들이 들어왔으나 옷을 많이 껴입어서 행동이 굼떴고, 문에 걸리자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들고 있는 짐을 바닥이나 의자 위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외투깃이나 소매의 뺏뺏해진 고드름을 털어내고, 턱수염이나 콧수염에서도 그것을 때어 내면서 괴상한 신음소리를 냈다. 손에 노란색 트렁크를 든 젊은 사나이가 들어와서 재빨리 주위를 둘러 보고는 곧장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모스크바에 가십니까?" 하고 그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조카 타냐의 집에요." "자요." 그는 트령크를 어머니 옆 의자에 올려 놓더니, 빠른 몸짓으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뒤 모자를 조금 들어 보이고는 말없이 다른 문 쪽으로 사라져 갔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트렁크의 차가운 가죽을 어루만지고, 그 위에 팔꿈치를 짚고 만족스러운 듯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한참 있다가 어머니는 다시 일어나서 플랫폼의 출구와 가까운 의자 쪽으로 걸어 갔다. 트렁크는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볍게 한 손에 들고, 앞에서 어른거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걸어갔다. 짧은 외투 깃을 세운 젊은 사나이가 어머니에게 부딪치고는 한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잠자코 뒤로 물러셨다. 어머니는 어디선가 그 남자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외툭 깃의 그늘에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주의깊은 눈초리는 어머니를 초조하게 했다. 그러자 트렁크를 들고 있던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짐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나는 어던가에서 저 남자를 보았어.' 어머니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불쾌하고 막연한 감정이 심장을 죄어들고 있었다. 그 감정은 자꾸만 커져서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와 입 안을 씁쓸한 맛으로 가득 재웠다.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사나이를 보았다. 그 사나이는 조심스레 발을 바꾸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무엇인가 결정을 내리지 못해 망설이는 듯했다. 그의 오른손은 외투의 단추 사이에 끼어 있고, 다른쪽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어서 오른 쪽 어깨는 왼쪽 어깨보다 좀 높게 보였다. 어머니는 서두르지 않고 의자로 다가가서, 마치 자신의 몸 속의 무엇인가가 파열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며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다. 한 번은 루이빈 씨가 탈주한 뒤의 교외의 들판이었으며, 두 번째는 법원이었다. 그녀가 루이빈 씨의 도망간 길을 거짓으로 가르쳐 준 그 지서장과 그가 나란히 서있었다. 그녀를 알고 있으며 미행해 온 것이다. 그것은 분명했다. '걸려든 것일까?' 하고 어머니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몸을 떨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그리고 즉각 자신을 억누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걸려든 거야.'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생각만이 차례차례로 머리 속에서 불꽃이 되어 불타고 꺼져 갔다. '트령크를 버리고 도망칠까?' 그러나 또하나의 불꽃이 좀더 밝게 번쩍였다. '아들의 말을 버리고 간단 말야? 저런 놈들의 손에...' 어머니는 트렁크를 끌어 안았다. '그럼, 이것을 가지고 도망칠까? ...... 달려서....' 그녀에게는 이러한 생각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밖에서 억지로 밀어넣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런 생각들은 그녀를 불태우고, 머리를 찌르고, 그리고 불채찍 처럼 심장을 강타했다. 그리고 아픔을 불러 일으켜 그녀를 화나게 하고, 그녀 자신으로부터, 파벨로부터, 그리고 이미 그녀의 마음과 합체한 모든 것으로부터 그녀를 제외시켜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적들의 손이 끈질기게 죄어 들어와서 자신의 어깨와 가슴을 짓누르고, 그녀를 끌어내리고, 죽음의 공포 속으로 끌고가는 것을 느꼈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심하게 맥박치고 머리가 뜨거워졌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의 온몸을 뒤혼드는 하나의 크고 강한 의지력을 쥐어 짜내서 이러한 교활하고 나약한 불꽃들을 꺼버리고, 자신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부끄러움을 알아라 !' 어머니는 당장 마음이 가벼워지고, 온전히 기운을 되찾게 되었다. '아들의 얼굴에 흙칠을 해서는 안 되지 ! 아무도 두렵지 않아.' 어머니의 눈은 누군가의 음침한 눈초리와 마주쳤다. 그리고 기억 속에 루이빈 씨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몇 초 간의 동요는 그녀의 마음 속에서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한 것 같았다. 심장의 고동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어머니는 주위를 둘러 보면서 생각했다. 스파이가 경비원을 불러 눈으로 그녀를 가리키면서 무엇인가 그에게 속삭였다. 경비원은 그를 힐끔힐꼴 바라보면서 되돌아갔다. 또 다른 경비원이 찾아와서 귀를 기울여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수염을 기른 백발 노인으로 몸집이 컸다. 그러자 그 노인은 스파이를 향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가 앉아 있는 의자 쪽으로 걸어왔다. 스파이는 재빨리 어딘가로 모습을 감췄다. 노인은 그녀의 얼굴을 화가 난 눈초리로 힐끔 힐끔 살펴보면서 서두르지 않고 걸어왔다. 어머니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 노인은 어머니 옆에 멈춰 서서,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낮은 소리로 날카롭게 물었다. "무엇을 보고 있지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아요." "다 알고 있어. 이 소매치기 년아! 나이를 처먹어 가지고 아직도 손을 씻지 못하고 있나보군." 어머니는 그의 말이 자신의 얼굴을 때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증오가 담긴 그 말은 뺨도 찢어지고 눈도 튀어나을 것 같은 아픔을 안겨 주었다. "나 말인가요? 나는 소매치기가 아니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 놓지 말아요." 하고 어머니는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이 모두 격분의 선풍기 속에서 빙빙 돌기 시작하고, 마음은 씁쓸한 도취감에 취한 것처럼 되었다. 어머니는 트렁크를 획 하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뚜껑이 열려 버렸다. "자아, 보시라구요! 잘 보라구요!" 하고 어머니는 소리치며 일어나서 손으로 끄집어낸 전단 뭉치를 머리 위로 치켜 들었다. 어머니의 외침 소리를 듣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무슨 일이지 ?" "아, 저기 경찰이 있어." "왜들 그러지?" "무엇을 훔쳤다던데?" "저렇게 멀쩡한 아주머니가, 설마!" "나는 소매치기가 아니라구요!" 하고 어머니는 사방에서 그녀를 향해 빽빽이 모여드는 군중을 보고, 조금 침착성을 되찾아 힘껏 목청을 돋워서 말했다. "어제 정치범들의 재판이 있었어요. 그 가운데 파벨이라고 하는 우리 아들도 있었는데 아들이 진술했다구요. 그 법정 진술이 바로 이거예요! 나는 여러분들이 이것을 읽고, 진리에 대해서 생각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가는 길입니다." 누군가가 슬며시 그녀의 손에서 한 장을 빼내갔다. 그녀는 그것을 공중에서 흔들어 군중 속으로 내던졌다. "이것도 역시 칭찬받을 짓은 아니지!" 하고 누군가의 겁먹은 소리가 외쳤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전단을 주워서 품 속이나 주머니 속에 챙기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다시금 그녀에게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온몸이 긴장하고, 긍지가 부풀어오르고, 짓눌려 있던 기쁨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어머니는 점점 차분해져서 힘을 모아 얘기했다. 트렁크 속의 다발을 꺼내서 그것을 읜쪽이나 오른쪽으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손에 던져 건네주었다. "우리 아들과 그 동료들 모두가 무엇 때문에 재판을 받았는지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까? 지금 얘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에미의 마음을, 이 에미의 백발을 믿어 주십시오. 어저께 이 사람들이 재판을 받은 것은, 이 사람들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진리를 가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어제 나는 알았습니다. 이 진리는... 누구든지 그것과 다툴 수는없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 군중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숫자가 늘어나고, 점점 더 빽빽하게 뭉쳐져서 살아 있는 몸으로 테두리를 만들고 어머니를 둘러쌌다. "가난과 굶주림과 질병, 이것이 노동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매일매일 일을 해야 하고, 언제나 진흙탕 속에, 속임수 속에 놓여 있어서, 목숨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인간들은 우리들의 노동으로 즐기고, 배불리 먹고, 우리들을 사슬로 묶어 놓은 개처럼 무지 속에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겁을 먹고 모든 것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들의 생활은 밤입니다. 어두운 밤이란 말입니다 !" "옳소!" 낮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저년의 입을 막아라." 군중 뒤쪽에서 어머니는 스파이와 두 명의 헌병을 발견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서둘러 마지막 뭉치를 건네 주려고 손을 트렁크에 넣었을 때,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에 부딪쳤다. "가져 가세요, 빨리 가져 가세요!" 하고 어머니는 몸을 구부리고 말했다. "해산해라!" 하고 헌병들은 사람들을 헤치면서 소리쳤다. 사람들은 떠밀려서 마지못해 길을 열었으나 한 덩어리가 되어서 헌병들을 밀어 붙이고, 헌병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선량한 얼굴에 정직해 보이는 커다란 눈을 가진, 이 백발의 부인은 사람들을 강하게 끝어 들었다. 생활에 의해서 제각기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그들은 어머니의 말이 지닌 불에 따뜻하게 덥혀져서 무엇인가 일체의 것으로 합쳐졌다. 이 말은 아마도 생활의 부정함에 격분하고 있던 많은 마음이 오랫동안 찾고 구해 오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잠자코 서있었다. 어머니는 그들의 열의에 찬 주의깊은 눈을 보고 자신의 얼굴 위에 따뜻한 숨결을 느졌다. "도망쳐요, 아주머니!" "우물쭈물하면 붙들린다구요!" "정말 대단한 분이야!" "비켜라! 해산하라!" 헌병들의 외침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서 울려 왔다. 사람들은 어머니 앞에서 서로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어머니는 모두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믿으려고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그 힘을 느끼고 있던 모든 생각을 전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심어서 안간힘을 썼다. 그 생각은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줄줄 흘러나와서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의 목소리가 힘이 떨어지고, 갈라지고, 자꾸만 끊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느끼고 있었다. "우리 아들의 말은 성실한 노동자의 깨끗한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말 속에서 두려움없는 용기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믿으세요. 민중의 진리와 해방을 위해 투쟁할 힘을 줄 것입니다." 누군가의 젊은 눈이 환희와 공포를 담아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어머니는 가슴을 맞아 비틀거리며 의자 위로 쓰러졌다. 사람들의 머리 위쪽에 헌병들의 손이 어른거렸다. 그 손은 목덜미와 어깨를 붙잡고, 몸을 옆으로 밀치고, 모자를 벗겨서는 그것을 멀리로 던져 버렸다. 어머니의 눈 속에서는 모든 것이 어두워지고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픔을 참으면서 어머니는 계속 목소리를 쥐어짜내서 외쳤다. "여러분, 자신들의 힘을 모아서 하나의 힘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헌병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마구 휘둘러댔다. "입 닥쳐!" 어머니는 뒤통수를 벽에 부딪치고, 마음은 한순간 공포의 연기에 둘러 싸였으나, 그 연기를 부리치고 또다시 밝게 불타을랐다. "가자!" 하고 헌병이 명했다. "아무것도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평생 동안 맛보고 있는 그 괴로움보다 더 쓴 괴로움은 없으니까요." "닥치라고 했쟎아!" 헌병은 그녀의 팔을 잡고 끌어 당겼다. 또 한 명의 헌병이 다른쪽 팔을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성큼성큼 걸으면서 어머니를 끌고갔다. "그 괴로움은 매일 마음을 쑤시고, 가슴을 메마르게 할 것입니다!" 스파이가 앞장서서 달려가기 시작하고, 주먹을 그녀의 얼굴에 들이 대고 위협을 하면서 강된 소리로 외쳤다. "입 닥쳐라! 이 못된 년!" 어머니의 눈은 크게 벌어져 불타오르고 턱은 떨리기 시작했다. 바닥의 매끈매끈한 돌에 양발을 힘껏 버티면서 어머니가 소리쳤다. "깨어난 마음은 죽일 수가 없습니다!" "반역자 주제에 뭐라고?" 스파이가 한 손을 들어서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이 늙은 할망구가! 맛 좀 봐라!" 하고 표독스러운 외침소리가 뒤따랐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한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피의 쩝찔한 맛이 입 안에 가득 찼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외침소리가 어머니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때리면 가만 두지 않겠다!" "새파란 것들이!!" "야, 이 불한당 놈아!" "저놈들을 해치워 버려라!" "피로는 이성을 죽이지 못할 거다!" 어머니는 목과 등을 떠밀리고, 어깨와 머리를 맞았다. 모든 것이 외침 소리와 악을 쓰는 소리와 휘파람소리 속에서 검은 회오리바람이 되어서 소용돌이치고,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 돌아갔다. 무엇인가가 핏속으로 들어가서 목구멍을 가로막고 숨을 못 쉬게 했다. 발 밑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무릎이 꺾이고 온몸이 떨려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수많은 다른 눈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낯익은, 간절하게 사랑해왔던 모습들이었다. 어머니는 정거장 입구로 끌려갔다. 어머니는 한 손을 뿌리쳐 빼내서 문기둥을 움켜잡았다. "피바다가 되어도 진리의 불을 끌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어머니의 손을 호되게 후려쳤다. "미친 놈들! 너희들은 오로지 증오만을 쌓아 올려 갈 뿐이다 ! 그 증오는 너희들의 머리 위로 다시 떨어져 내려올 것이다." 헌병은 어머니의 목을 잡고 조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불행한 사람들......"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 끝 > 리얼리즘의 고전적 대가 고리키 러시아 문학과 소비에트 문학의 가교 러시아 문학은 체혹프로 끌나고 소비에트 문학은 고리키로 시작된다. 고리키는 19세기 최후의 작가이자 20세기를 연 최초의 작가로서 체혹프의 뒤를 이어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20세기 소비에트 문학을 잇는 가교이다. 고리키의 작품은 러시아의 고전 문학이 끝나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에 서서 문학과 혁명을 의식적으로 연결한 첫 작가이자 사상가이며, 위대한 역사가이기도 했다. 흔히 고리키는 '소비에트 문학의 아버지', 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등으로 불리운다. 그러나 이러한 한정적인 수사 어구로 고리키를 평가하기에는, 그와 그의 위대한 작품들이 세계문학예술, 특히 민중 문학의 성립과 발전에 끼친 영항이 너무나 지대하다. 막심 고리키는 리얼리즘의 고전적 대가라는 의미에서 위대한 작가이며, 혁명 전후의 러시아 사회를 진솔하고 사실적으로 기록했다는 의미에서 너무나 위대한 역사가이기도 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문학 예술사에 있어서 고리키의 역할과 위치는 해아릴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이 격동의 시기 내내 고리키는 러시아 문학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따라서 이 시대를 고리키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고리키를 제외하고 당시의 민중 문학이나 세계 문학 예술의 발전을 논할 수 없으며, 이러한 평가는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르는 고리키의 생애는 그야말로 당시의 러시아 사회 현실과 고스란히 맞물려 있으며, 격렬하고 혼란스러운 변혁기의 러시아적 삶의 양태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서구의 근대 사회보다 약 1세기 가량이나 후진적이었던 봉건 제국 국가 러시아는 19세기 말에 이르러 1861년의 농노 해방이라는 신분 질서의 폐지, 나로드니키(농본주의적 급진 사상을 부르짖은 인민주의자들), 러시아 사회 민주주의자 등의 혁명 세력의 대두, 자본 주의의 성장 등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사회 모순과 체제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결국 이러한 혼란의 격변기 속에서 러시아의 노동자, 농민 등 제반 민주 세력은 빈민 노동운동의 전개,1906년 '피의 일요일 사건'과 제1차 혁명, 기만적인 의회제도 도입, 1917년 2월과 10월 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차르 전제 정권과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러시아에 새로운 삶의 질서를 확립시키게 된다. 바로 이러한 격동의 시대 상황 속에서 고리키의 삶과 문학은 당대의 변혁의 흐름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고리키는 러시아에서 가장 커다란 대중적 관심이 있는 작가로, 1892년 첫 단편 소설을 발표한 이후 그의 작품들을 통해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처지를 적극 옹호하고 혁명 후 러시아 문학을 주도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확립하였다. 1880년대를 전후하여 러시아 문학계는 그 사회적 혼돈만큼이나 큰 변화의 조류를 경험하고 있었다. 1870년대 문학의 황금시대를 이룩했던 천재적 거장들인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등은 이미 죽었으며, 톨스토이는 그 영광의 정점을 지나 문학을 부정하고 종교적 세계에 몰입해 있었다. 또한 체호프는 사라져가는 귀족사회에 대한 향수어린 만가를 부르고 있었다. 문학 예술계 전반에 걷쳐 허무적이고 환멸적 풍조가 퍼져 있었다. 이른바 19세기의 문학적 전통이 몰락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1880년대는 '잿빚 체혹프' 시대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적 딜레머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1890년 중엽으로 들어서면서 러시아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준비되었던 변혁의 열망이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고, 이와 때맞춰 문학적 침체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학 창조를 위한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1890년부터 1917년의 약 30여 년 동안은 구시대의 문학 전통이 전반적인 해채의 과정을 걷게 되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향한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던 시기이다. 고리키는 이러한 사회적, 문학적 시대 상황속에서 체호프에 식상한 러시아 인들에게 환멸의 비조를 뚫고 활기찬 인물들을 통해 현실로 부터의 탈출을 대담하게 주장하며 새로운 문학적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작품들은 현실의 진지한 반영 뿐 아니라 현실의 발전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생활에 대한 이상을 현실에 실현하려는 실천적 행동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고리키 문학은 끊임없는 현실 변혁에의 갈망이며, 그변혁을 이끌어 갈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추구이다. 현실을 억누르는 착취와 억압 세력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야유, 민중에 대한 애정과 옹호, 그리고 그들의 힘에 대한 예찬이야말로 고리키 문학의 주요 모티프인 것이다. 작가로서의 고리키의 생애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되어진다. 1892년 <마카르 추드라>에서 1899년 장편 사회소설인 <포마 고르제예프)까지를 전기, 그 이후 1907년 <어머니>까지를 중기, 그리고 그 이후를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에 발표된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단편으로 <에밀리안 필랴이>를 비롯하여 <첼카쉬>, <이제르길리 노파>, <스물 여섯 명의 남자와 한 처녀> 등 주로 작가 자신의 채험을 바탕으로 한 낭만적이고 원시적인 자유를 동경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전기 작품에서 이미 고리키 문학의 주요한 특징인 건강하고 혁명적인 인간상, 낙관적인 세계관, 인간 중심주의 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초기 작품이 주로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단막극이라면 중기 작품들은 보다 확장된 사회적 관계를 다루는 장막극이라 할 수 있다. <고르제예프>서 자본주의 상인 계층의 형성과 몰락, 그리고 그들의 속물 근성을 묘사하고, <세 사람>을 통해서는 노동자들의 일상과 공장 생활 등, 향후 그려질 혁명적 노동자 상을 예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무엇보다도 고리키 창작의 큰 획을 긋는 작품은 <어머니>이다. 고리키는 보다 확고한 사회 의식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혁명적 변화 과정 속에서 러시아 현실을 묘사하면서 이 변화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힘을 아주 깊이 있게 밝혀 주었다. 이때부터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선도적 지도자로서, 러시아 사회 변혁의 당당한 기수로서 전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정치와 밀접한 관계되는 창작의 제3기인 후기에서 고리키는 러시아 사회의 역사적 모순 구조와 인간 유형의 재변화, 그리고 그 속에서의 각 계급의 관계들에 초점을 맞추어 총체적 사회의 연관 구조를 작품 속에서 담아 려고 노력하였다. 이 시기의 주요 작품으로는 희곡 <적> 장편 <아르타모노프의 사업>, 그리고 미완성 대작인 <클림샴킨의 생애>등이 있다. 고리키(쓰라리다. 비참하다.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는 이름 그대로 민중의 아들이었다. 그는 하층민 출신으로 영락한 자의 생활의 모든 고통과 지옥 같은 부자유 노동을 체험하였다. 당연히 그의 작품은 이러한 참한 삶에 대한 자신과 이웃의 진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고리키의 작품에는 삶에 대한 인간의 고귀한 꿈과 애정이 깃들어 있다. 오스트리아의 전기 작가로 유명한 슈테판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러시아의 민중은 고리키가 전인류에게 러시아의 민중생활에 대하여,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에 대하여, 학대당하고 억압받고 추방당하고 있는 삶에 대하여 알리게 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살로 고리키의 입을 만들었다.' 민중의 아들, 작가로서의 탄생 고리키는 1868년 3월 28일 현재 고리키로 불리우는 볼가 강 연안의 상업 도시인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로 '고리키'라는 필명은 그의 처녀 작인 단편 <에마카르 추드래이>를 발표하면서 부터 쓰이게 되었다. 소목장이었던 아버지와 염색 공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리키는 그의 이름이 뜻하듯 매우 비참하고 고통스런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고리키가 3세 때 일가는 카스피 해에 가까운 볼가 강 하류의 어항 아스트라한으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 얼마 안 있어 아버지가 죽는다. 고리키의 첫 불행이었다. 고리키의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자전적 3부작 중 <어린 시절>은 바로 이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가장을 잃은 어머니는 고리키를 데리고 니즈니의 친정으로 돌아온다. 5세 때 어머니가 가출하고 그 뒤 재혼하여 모스크바로 나갔기 때문에 어린 고리키는 외 할아버지와 외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특히 고리키는 따뜻한 품성의 외 할머니로부터 많은 정신적 영향을 받았다. 그의 정신세계는 외 할머니의 경건하고 지혜로운 신앙심 속에서 자랐고 글자를 깨치면서 부터는 많은 독서를 통해 성숙되어 갔다. <어린시절>에서는 이 외 할머니가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생모는 고리키가 11세 때 죽는다. 고리키는 8세 때 니즈니에서 처음으로 얌스카야 교구 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다 한달 쯤 다니다 그만두게 되고 9세 때 다시 들어간 학교가 <어린 시절>에 나오는 카나빈스코예 초등학교다. 그러나 학교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외 할아버지가 파산하여 넝마주이가 된 외 할머니를 따라 쓰레기통을 뒤지며 학교를 다니다가, 결국은 가난 때문에 2학년을 마치면서 학교를 그만두었던 것이다. 이것이 작가 고리키가 평생을 통틀어 받은 학교 교육의 전부다. 이때부터 고리키는 스스로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구두가게 점원, 제도사 견습생, 새잡이, 짐꾼 등 헐벗고 굶주리며 닥치는 대로 수많은 직업을 전전해야만 했다. 자전 소설의 제2부인 <세상 속으로>는 바로 이 시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죽음과도 같은 참담한 생활이었지만, 바로 이 어두운 10대가 장래의 프롤레타리아 작가 고리키를 키운 것이다. 호혹의 관념성도 용납치 않는 하층 계급의 생활은 그의 정신 세계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생활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참여와 애정을 통하여 외할머니의 신앙적 세계관과 독서를 통해 얻은 관념적 지식들을 극복해 나갔던 것이다. 고리키는 13세 때 볼가 강 기선의 식당 접시 닦이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퇴직 사관이었던 요리사 스믈리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영향으로 고리키는 독서의 중요함을 인식하게 되고 문학서와 잡지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후에 고리키는 그를 ''의 첫 스승'이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학교를 제대로 못다닌. 고리키가 젊은 시절 책을 탐독하게 된 것은 이 시절 스믈리의 장서를 통해서, 그리고 카잔의 빵집 주인인 데렌코프의 문고에서, 그후 카잔의 나로드니키의 독서회에서였다. 고리키는 16세 때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목적으로 카잔으로 갔다. '나는 육체적으로는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지만 정신적으로는 카잔에서 태어났다.' 고리키가 뒷 날 술회한 바처럼, 그는 이곳에서 많은 지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카잔에서의 첫 시작은 그다지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 그는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좌졀을 느낀다. 게다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취직한 세메뇨프의 빵 공장에서는 극악한 노동 조건으로 인해 중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때의 경험은 단편소설 <스물 여섯명의 남자와 한 처녀와 주인> 등의 작품에 그려져 있다. 그러던 중 고리키는 카잔의 진보적인 청년 지식인들과 교제하면서 비 합법적인 인민주의 서클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급격한 지적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까지의 뜻모를 수많은 갈등과 회의에 대해 전면적인 이해의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의 자전 소설 제3부인<나의 대학>에서처럼 그는 비록 실제적인 대학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인생에서의 의식의 성장과 깨우침의 과정을 카잔에서 거치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고리키의 삶은 일대 전환을 겪게 되고, 작가로서의 대탄생을 고리키의 예비하게 된다. 고리키가 카잔을 떠난 것은 20세로 혁명가인 로마스를 따라 인근의 소읍 클라스노비도보로 갈 때 였다. 그는 로마스의 잡화점 경영을 도우며 농촌 계몽 사업에 참가했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경찰과 결탁한 우파 세력에 쫓기게 된다. 고리키는 그들을 피해 볼가 강을 따라 남하하여, 이른바 제1차 러시아 방랑길에 나서게 된다. 이듬해 여름 떠난지 4년 만에 고향인 니즈니로 돌아온 고리키는 결국 이곳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수난을 당한다. 이후 고리키는 줄곧 감시의 대상이 된다. 보름만에 풀려난 고리키는 카잔에서 알게 된 지식인들과 정치 토론에 골몰하면서도, 자신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더욱 키워 나갔다. 이 시절 그는 장편 서정시 <늙은 떡갈나무의 노래>를 써 코롤렌코에게 보여 주었으나 혹독한 비평을 받고 이후 2년 간 글쓰기를 포기하게 된다. 고리키는 코롤렌코에게서 굳은 신념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1891년, 지식인 혁명가의 오만함과 쟁론, 허위성에 실망한 고리키는 볼가 강 유역과 우크라이나, 카프카스 등으로 이어지는 제2차 러시아 도보 여행을 떠난다. 물론 이 여행의 동기에는 가능한 한 실제로 완전하게 현실을 알려고 하는 열망, 자신이 살고 있는 곳 주변의 민중은 누구인가를 알고 싶어하는 젊은 고리키의 강한 바람이 깃들어 있었다. 실제로 그는 여행을 통해 차르와 농도 제도의 폭력성, 억압받는 대중의 비참한 생활 상을 목격하고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때 만난 수많은 러시아의 민중들은 향후 고리키 작품 속에 생생하게 그려지게 되며, 이 방랑으로부터 얻은 대단히 강렬한 체험은 그의 어린 시절의 참담한 경험과 함께 고리키 문학창작의 원천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이 여행에서 얻은 강렬한 인상과 풍부한 경헙을 토대로 고리키는 다시 소설창작에 전념하게 되고, 1892년 12월 12일 그루지야 공화국의 수도 트빌리시의 지방 신문인 마프카스1 지에 <마카르 추드래>를 발표하면서 작가 고리키는 탄생하게 된다. 자유에의 강한 의지와 영웅적 인간상 방랑 생활 중에 민간 전설을 토대로 쓴 낭만적인 작품인 <마카르 추드래>는 개인의 원시적 자유를 갈망하는 젊고 아름다운 두 집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짙은 낭만성을 지닌 이 작품은 개인주의적 자유, 집시 마카르의 탈 사회적인 자유에의 지향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원시적 자유의 추구는 이밀리안 필랴이와 부두의 부랑자들을 그린 <첼카쉬>에 이르러서 사실주의적 방향성을 얻게 된다. 즉 자유를 구속하는 특정 대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변화하게 된것이다. '밀리안 필랴이와 첼카쉬'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부랑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농촌 출신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한 농촌의 황폐화 과정 속에서 농촌으로부터 추방당한 사회적 의미를 지닌 부랑자이다. 따라서 그들은 언제나 고향으로의 귀향을 갈망하며, 그 갈망을 이루어 줄 수 있는 돈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1861년의 농노 해방으로 농민들은 봉건적 신분질서에서는 벗어났으나, 이제는 경제적인 종속에 의해 더욱 절망적인 신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리키 작품의 주인공은 이러한 절망적 상황하에서도 자연에의 따뜻한 친화감을 지니며,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렇듯 고리키 초기 작품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발전해가는 러시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구조 속에 정착하지 못한 집시나 부랑자 같은 유동적인 하층민이다. 하지만 고리키에 의해 새롭게 조형된 이 주인공들은 자유에의 강한 의지를 지닌 영웅적 인간상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 고리키의 전기 작품은 대부분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들은 단순한 플롯과 두서너 명의 등장인물로 구성되며, 극적인 주제와 격렬한 행동을 담고 있다. 고리키는 이러한 단편적인 극적 장면을 연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주변의 상황애 대한 인간의 저항과 그들의 무감각, 혹은 절망으로 타락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고리키의 최고 걸작인 <어머니>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의 초기 작품의 단편들에서 이미 시도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리키의 초기 작품은 절망적인 감정에서 유발되는 무의식적인 반항을 묘사함으로써 한 사회의 해체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즉 러시아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어떤 식으로 인간 존재를 음울하고 사악한 은둔자로, 개인주의자로,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껍질에 감금된 채 식물적인 삶을 영위하는 존재로 전락시켰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같은 초기 작품의 주인공이 지닌 막연한 절망감과 낭만성은 고리키가 혁명적인 노동운동에 점차 참여하면서부터 보다 발전된 사회의식으로 대체된다. 이른바 고리키의 낭만주의 시대인 초기의 작품들, 즉 영웅적 낭만주의의 단편소설들에서 고리키는 새로이 성장하는 계층의 세계관을 그려내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말은 고리키 작품의 주인공들을 현실에 순종하거나 현실의 악을 묵인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항하게 만들었다. 초기 작품의 낭만적 경향은 인간에게 인간과 인간의 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불어넣었으며, 인간의 인간다움을 가로막는 현실에 대해 저항의 열정을 고취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고리키는 그 출발부터 자유와 인간의 가치에대한 타는 듯한 옹호자로서, 또한 사회 변혁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로서 등장했던 것이다. 1895년 고리키는 사마라에 가서 코롤렌코의 소개로 사마라 신문에 취직한다. 코롤렌코는 고리키의 처녀작이 출판되도록 도와주기도 했었다. 사마라 신문사에서 그는 컬럼니스트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임시 편집장이 되었다. 첼카쉬 등 많은 초기 작품들이 이 신문에 발표되었다. 고리키가 첫 아내 예카테리나를 만난 것도 이 신문사에서였다. 고리키는 1896년에 귀향, 이 해에 결혼을 한다. 잠시 고리키의 가족 사항에 대해 알아보면, 고리키는 1904년 이 첫 아내와 헤어지고 1906년 미국 여행 때는 배우이던 둘째 아내 안드레예바를 데리고 갔으며, 1921년에는 이 둘째 아내와도 이혼한다. 고리키는 첫 아내와의 사이에 딸 하나와 아들 하나가 있었다. 그러나 딸은 6세 때 죽고 아들 막심 페쉬코프도 1934년 37세의 나이로 고리키보다 2년 먼저 죽는다. 작가로서의 성공에 비해 가정적으로는 매우 불행한 편이었다. 인간 혁명을 예견한 바다제비 1898년에서 1899년 사이에 고리키의 초기 단편들을 모은 세 권의 작품집이 <설화 작품과 단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다. 이 작품 집은 러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즉각 영국 . 독일 . 프랑스 등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고리키에게 큰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고리키의 명성을 보다 확고하게 해준 작품은 1899년에 출관된 최초의 장편소설 <포마 고르제예프>와 1900년에 발표 된 두 번째 장편 <세 사람>이었다. 러시아 자산계급의 내적 분열과 그들의 속물 근성을 묘사한 <포마 고르제예프>는 후에 <아르타모노프 가의 사업>에서도 나타나는 주제를 여러 세대에 걸쳐 서사적으로 보여 주는 장편이다. 이 작품의 출판 후 고리키는 문단에 새로 떠오른 거성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세 사람> 역시 고리키의 문학적 힘이 잘 드러난작품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 가난한 일리야 루네프의 극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노동자들의 일상과 혁명적 노동자상을 예비하고 있다. 고리키는 평생에 걸쳐 소설을 쓴 작가이지만 소설 외에도 많은 비평문, 그리고 시도 남겼다. 1901년에는 그의 유명한 장편 서사시 <바다 제비의 노래>가 발표된 해이다. '폭풍이다. 곧 폭풍이 다가올 것이다'라는 강력한 웅변으로 20세기 러시아에 몰아 칠 혁명적 태풍을 예언하고 자극한 이 시는 러시아의 혁명적 대중들에게 널리 애송되었다. 특히 '폭풍우여, 세차게 세차게 불어 닥쳐라'라는 마지막 구절은 투쟁의 구호로 사용되었으며, 대중들은 고리키를 혁명을 예견하는 바다제비로 환영하였다. 이 시를 실은 잡지는 정간되자 지하에서 등사 판으로 수백 만부가 인쇄되어 손에서 손으로 퍼져 나가기도 했다. 이후 고리키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단원들과 가까워지면서 극작가로서의 재능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러시아의 유명한 배우이자 연출가인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요구로 씌어진 <소시민>에서 그는 통속적인 소 시민 근성과 심리구조, 구체제 속에 안주하려는 성향들과의 갈등을 그려내었다. 이 희곡은 러시아 노동자를 적극적인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린 최초의 작품이었다. 이어서 완성한 <밑바닥에서>는 극작가로서의 고리키의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역작이었다.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짐승의 소굴과도 같은 지하 하숙방을 무대로 정신적 . 물질적 빈민들의 암울한 삶을 보여 준 이 작품은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생겨나는 희생자들의 처지를 적극 옹호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개선하고자 한 고리키의 문학적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난 희곡이다. <밑바닥에서>는1902년 12월,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서 초연된 후 많은 사람들의 갈채와 찬사를 받았으며, 현재까지도 체호프의 작품들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공연되고 있다(우리 나라에서는 <밤주막>이라는 제목으로 1989년에 초연되었음). 고리키의 희곡은 부르주아 사회를 비난하고 본질적인 그 구조를 폭로하는 것이 주된 주제였으나, 결코 사회적 의미로 인해 인간적 향기를 잃지는 않았다. 이 시기에 발표된 다른 희곡으로는, 지식인 사회의 사회적 균열과 정신적 붕괴를 다룬 <별장의 사람들>, <태양의 아이들>과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정신적 퇴락과 진정한 창조력에 있어서의 무능함을 폭로한 <야만인들> 등이 있다. 1901년 고리키는 혁명 지하조직에 관여하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감옥에서 폐병이 재발되어 크리미아의 얄타에 있는 요양소로 옮겨진다. 이곳에서 그는 체호프와 처음 만나게 되고 문학적 교류를 갖게 된다. 이곳 얄타에서 그의 걸작 희곡인 <밑바닥에서>가 씌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체호프와 문학적 우정은 지속되는데, 이듬해 고리키가 러시아 학술원의 회원으로 선출되나 그가 정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황제가 이를 취소시키자, 체호프와 코롤렌코는 이에 대한 항의로 즉각 학술 회원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혁명의 소용돌이와 <어머니>의 탄생 고리키가 1906년의 1차혁명 (일요일 사건)을 맞이한 것은 페테르스부르크에서였다. 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리키의 역할은 작가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이른바 '피의 일요일' 사건 전, 황제와 노동자들의 중간에서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전 러시아 국민들과 유럽 각국의 여론에'라는 호소문을 써 '피의 일요일' 사건에 반대하는 항의에 앞장섰다. 결국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그는 몇 달 동안 패트로파블로프스키 요새에 감금된다. <태양의 아이들>이 씌어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 이 해에 고리키는 레닌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데, 이후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며 레닌으로부터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1906년 러시아 혁명은 작가로서 고리키의 발전에 일대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이후 고리키는 러시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서 민중의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점차 작품 속에 뚜렷이 부각시키게 된다. 새로이 부상하는 노동자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힘있는 필치로 그린 희곡 <적>과 <1월 9일>은 바로 그러한 고리키의 발전된 문학관이 잘 녹아든 작품들이다. 그러나 역시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고리키 문학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은 <어머니>이다. 진보적 노동자의 전형을 생생하고 정확하게 보여 준 <어머니>는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고전적 모범으로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의 빚나는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의 민중과 노동자들은 이 작품에서야 비로소 수동적인 사회의 희생자가 아닌,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가는 능동적이고 당당한 인간으로, 사회적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머니>는 노동 계급에 관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호응을 얻었으며, 특히 노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그들은 이 작품을 자신들의 문학적 선언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작품은 러시아가 아닌 외국에서 씌어지고 발표되었다. 감옥에 갇혔던 고리키는 작가로서의 명성에 힘입어 곧 풀려나나, 외국으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그는 1906년 러시아 혁명 기금 모금을 위해 미국으로 가게 되는데, <어머니>는 바로 이 미국 체류 동안 대부분 의 원고가 씌어지게 된다. 작품의 출판 역시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출판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907년에야 출판되었는데, 이 작품 출판은 러시아에 큰 소용돌이를 불러 일으켰다. 작품 제1부가 연재되었던 잡지는 압수당하고 폐기되었다. 2부가 연재된 부분은 검열에서 심하게 삭제를 당해 거의 읽어볼 수도 없는 형편이 되어 나왔다. 오랫동안 불법적인 지하판 외에는 온전한 작품을 구해볼 수가 없었고, 외국에서만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으로 작가로서의 고리키의 명성은 세계적인 것이 되었으며, 러시아에서는 문학적 혁명가요 시대적 등불로 숭앙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주위의 평가와는 달리 고리키 개인적으로는 한동안 정신적 방황과 문학적 침체기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방황과 동요는 1905년 혁명의 실패와 망명생활이라는 육체적 고달픔과 연관되어 있다. 러시아 혁명의 패배는 문학계에 혼란을 초래하였고, 고리키 역시 자신의 문학적 신념에 혼란을 느졌던 것이다. 1906년 10월, 미국에서 다시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1913년까지 머무르는 동안 고리키는 망명 초기에 사상, 철학상의 동요를 일으키게 된다. 주로 인간의 내성과 휴머니즘에 관심을 두었던 그는 '건신주의'라는 고리키적 신국건설에 몰입하게 된다. 이때의 심정은 <고백>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고리키의 방황과 동요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그는 다시 민중의 세계로, 혁명의 세계로 귀환했다. 사상의 동요를 실천으로 극복한 고리키는 다른 작가들을 독려하며 끊임없이 진보적인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했다. 침채기에서 벗어난 고리키는 새로운 걸작을 연달아 발표했다. 중편소설 <여름>은 농촌에서 혁명의 자각이 고양되는 모순을 그리고 있으며, 러시아의 위대한 민중에게 다가오는 부활을 예언하고 있다. 또한 중편소설 <오쿠로프 시>와 그에 이은 <마트베이 코제야킨의 생애>는 지방의 소시민 적인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민중의 정신 상태, 그들의 희망과 열악한 현실과의 충돌이라는 테마는 1912년부터 발표된 <러시아 순례>에서도 연결 돼 다루어지고 있다. 이 외에 카프리 섬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읕 배경으로 이탈리아 민중들의 삶을 통해 행동하는 휴머니즘을 드러낸 <이탈리아 이야기>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탈리아에서 머무는 약 7년 여의 망명 시절은 고리키에게 정신적 방황과 동요의 시기이자, 새로운 문학적 고양과 원숙한 창작의 시기였다. 서사적인 만년의 삶 고리키의 혁명 전의 문학작품을 매듭짓는 것은 고전적인 자전 3부작 중 <어린시절>과 <세상 속으로>)이다. 한 평범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감동깊게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러시아 역사의 생생한 기록이며, 격동기의 러시아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던 한 작가의 체험기이고, 당대 러시아의 역사이자 풍속사이기도 하다. 이 자전 소설에는 인간에 대한 고리키의 애정과 신뢰가 한 줄기 빚으로 흐르고 있다. 이들 작품은 단순히 고리키 자신의 성장 과정이나 내면적 고백이 아닌, 작가가 살아낸 삶과 당대 러시아적 삶의 연관 관계를 세밀히 추적한 일종의 사회소설이며, 한소년의 성장과 나란히 고양되어가는 러시아 인의 역사적 성장 과정을 보여 주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작가로서, 사상가로서 고리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진다. 고리키는 혁명 직후의 러시아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일이 허용된 유일한 문학가였으므로, 주로 러시아 문학을 살려내고 작가들을 후원하는 일에 전력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학자들의 집' 또는 '예술의 집' 등의 명칭을 지닌 기구들을 창설했으며, 교육사업이나 대규모의 출판사업을 벌여 작가나 학자들이 번역, 강연 등의 활동을 할 수있도록 도왔다. 또한 고리키는 젊은 작가들을 격려하고 가르치고 그들이 검열이나 유배 또는 처형을 당하게 될 경우 적극적으로 나서서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1918년부터 고리키가 사망한 1936년까지 러시아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고리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작가는 거의 없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21년 여름 폐결핵 증세의 악화로 래닌의 권유를 받아 고리키는 외국으로 요양을 떠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독일,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마지막에 이탈리아 소렌토에 정착하였다. 고리키는 이곳에서 1928년까지 살았다. 이 시기의 중요한 작품으로는 자전적 3부작의 완결편인 <나의 대학>이 있다. 1924년 레닌이 죽자 고리키는 그에 대한 장편의 회상기롤 썼다. 후에 <레닌에 대한 회상>이란 제목으로 정식 출판된 이 글에는 레닌과의 오랫동안의 우정을 바탕으로 고리키의 개인적인 인상들이 담겨 있다. 19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고리키는 서사적인 소설 창작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고리키의 후기 소설의 특징은 이전까지에 비해 더욱 웅대하고 고요하고 서사적이다. 고리키는 한 사회의 몰락 과정이 인류의 행복이 도래하는 과정이라고 확신하면서 이 몰락 과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였다. 이 때문에 젊은 시절의 작품에서 보이는 격렬성, 극적 서정성 등은 어느 정도 가라앉고, 그 대신에 거기에는 인류가 나아갈 길을 선명하게 직시하고 있는 위대한 인본주의자들의 탁월한 안정감이 자리잡는다. 그러나 이 서사적 안정과 유려함이 결코 그의 후기 소설의 고발적 성격을 약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고발과 비판은 더욱 강렬하며 확신에 차 있다. 그렇지만 이 고발은 이제 더이상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의 격렬한 공격 연설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순된 사회구조 전체를 피고석에 올려 놓은 인류라는 집행관의 연설을 높은 수준에서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후기 소설의 서사적 특징이 잘 응축된 작품은 1925년에 발표된<아르타모노프 가의 사업>이다. 이 장편소설은 부르주아 가족 3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러시아 부르주아의 역사, 즉 그 격렬한 등장과 순간적인 승리, 그리고 쇠잔의 행로를 예술적으로 그려내었다. 아르타모노프 집안의 몰락을 단순히 한 집안의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퇴락이 아닌, 사회 역사의 과정으로 묘사하면서 고리키는 세계 문학사상 최초로 새로운 요소 즉, 노동 계급의 혁명적 환경 속에서 한 인간이 형성되어가는 찬란한 과정을 담아냈다. <아르타모노프 가의 사업>을 끝내고 나서 고리키는 또 한편의 대서사 소설을 기획한다. 그가 죽는 날까지 저술했던 <쿨림 삼긴의 생애>가 바로 그것이다. 이 미완성 대작은 1877년에서 1917년까지 러시아 사회의 40여 년을 포괄하면서 러시아 사회의 모든 계급과 각종 집단들의 심리 구조를 다양한 연관 관계를 통해 밝혀내고 있다. 20세기 세계 문학사상 그 방대한 역사적 내용과 민족적 삶을 표현하는 폭에 있어 <클림 삼긴의 생애>에 비견될 만한 서사적 장편은 없을 것이다. 고리키는 이 작품에서 중산층 지식인인 클림 삼긴의 위선적인 생애를 통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반휴머니즘과 도덕적 타락, 그리고 19세기 세계문학의 전통적인 개인주의적 영웅상의 몰락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행동하는 휴머니즘의 불꽃 1928년 고리키는 그의 60세 생일을 모국에서 맞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성화로 러시아로 돌아오고, 몇 차례의 국내여행을 하고 나서 이후에 영구 귀국한다. 이 시기의 그의 활동은 문화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었다. 1934년 고리키는 소비에트 작가동맹의 초대 의장으로 추대되면서, 작가로서 영광의 절정에 이른다.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을 창조하는 일에 그의 동료 작가들이 힘을 합하여 노력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의 전통적 문화 유산을 계승하고자 온 힘을 쏟았다. 그는 맹목적인 신진 공산주의 작가들이 전통 문학의 훌륭한 유산과 결연히 손을 끊고 인공적으로 새로운 소비에트 문학의 토양을 배양시키려 하는 경향을 경계하면서 그들을 각성시켰다. 고리키는 구 시대의 선진적 지식인이 지닌 훌륭한 재능을 찾아내고 보호해 주었으며, 그들이 자발적으로 혁명 후의 새로운 사회 건설에 참여하도록 이골었다. 특히 문학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보다 높게 고양시키며 더 나아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미래까지도 긍정시키는 문학가의 임무와 그 창작방법의 문제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설했다. 만년에 이르러 고리키는 자신이 생각해 오던 문학적 이상과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현실이 어긋나 있음을 알고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그는 평생을 통해 인간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정신을 작품 속에 담으려고 노력했는데, 스탈린은 이런 것은 배제한 채 오로지 선동적이고 획일적인 문학만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고리키는 만년에 이르러서는 정치권과 소원해진다. 고리키는 죽기 한 해 전인 1935년에 그의 초기 희곡인 <치코프 가>와 <최후의 사람들>을 개작하는데, 이 두 편의 희곡은 당시의 고리키의 심정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당시 스탈린은 내심 고리키를 숙청할 생각이었으나 그의 세계적 명성과 작가적 무게 때문에 감행할 수는 없었다. 민중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동안 민중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던 고리키는 1936년 6월 18일, 서사적 대장편 <클림 삼긴의 생애>를 마저 완성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리키는 러시아 대중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고리키의 죽음에 대하여 어느 문학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위대한 리얼리즘 작가, 과거의 고전예술과 사회주의의 새로운 예술을 맺어주는 살아 있는 연결고리, 모든 피 억압자에 대한 위대한 사랑과 모든 착취자와 억압자에 대한 격렬한 증오로 가슴뛰는 강렬한 언어의 예술가 죽다.' 고리키의 창작은 전세계 리얼리즘 문학의 발전과 확산에 기여했다. 고리키의 형상에는 높은 사상성이 담겨 있다. 또한 생생한 형상은 독창적인 인간적 체험으로 충만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담고 있다. 고리키는 방대하고 놀랄 만큼 풍부한 살아 있는 창조의 길을 걸었다. 사실 작가로서, 혁명가로서의 그의 전설적인 삶은 그 창조적 역량과 관심의 여러 측면에 투영되어 있다. 위대한 장편 소설가이자 극작가였으며, 뛰어난 비평가이자 사회 정치 평론가였고, 평화를 위한 정열적인 사회 활동가이자 투사였던 고리키는 철학, 역사, 예술 등 모든 방면에 섬세한 안목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톨스토이, 체호프, R.롤랑, A.프랑스 등 유명한 작가들과 절친한 우의를 맺었으며, 또한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막심 고리키는 러시아 문학에 중대한 기념비 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 기념비 적 의미는 러시아 고전 문학이 지닌 불멸의 민중성과 그 생동성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고리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계급이 낡고 부패한 봉건적 신분들에서부터 용솟음쳐 올라오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참된 혼란을 서술했다. 그는 그 격동의 시대 상황 속에서 인간적, 영혼적 울림을 형상화하고자 노력했으며, 개인의 생활 속에서 사회의 변혁 과정이 펼치는 비극과 희극, 그리고 희비극을 창조해내었다. 고리키만큼 인간의 이웃에 있던 작가는 없었다. 그는 인간을 위한, 즉 자유롭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되찾고자 했다. 그는 전 작품을 통해 인간은 진실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창조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을 벗어나서는 어떠한 이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또 이러한 사상은 인간의 삶을 존중하고 타락시키는 악에 대해 격렬함으로 표명되었다. 그는 인간의 비 인간화가 잘못된 사회구조의 산물이라고 보고 그러한 비 인간화의 모순에 대해 격렬히 항의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역설한 문학 목적에 잘 나타나 있는데, 고리키는 '인간이 자기자신을 이해하고 자기자신에 대한 신념을 강화하고 진실을 향한 노력을 자신 속에서 키워가며, 세상의 물질욕과 싸우고 인간에게서 선한 것을 찾게 하고, 그 영혼 속에 부끄러움, 분노, 용기를 일깨우며 사람들을 강하게 모든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리키는 언제나 인간을 대문자로 썼으며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했다. '모든 것은 인간 속에,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고리키의 창작정신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였다. 이와 같이 인간의 힘과 이성에 대한 끊임없는 신뢰와 인간은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라는 철저한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고리키는 러시아 민중을 형상화시킴으로써 19세기 문학이 형상화하였던 왜소한 인간상을, 인물의 힘찬 행동성을, 실천적 의미를 내포한 적극적 인간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한 인간이자 작가로서 고리키는 죽을 때까지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았으며, 행동하는 휴머니즘의 불 을 끄지 않았다. 죽을 때에 그는 러시아 문학의 별로서, 역사상 보기 드물게 한 국가의 국민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러시아 국민들로 터 받았다. 세계 학사상 가장 웅대한 문학 계를 구축했던 각가로서, 격렬한 역사의 변혁기에 결코 물러서지 않고 싸웠던 한 위대한 인간으로서 막심 고리키는 영원히 독자들의 가슴에 살아남게 될 것이다. 소설 <어머니> 고리키 예술창작의 최고 정점이 할 수 있는 <어머니> 고리키 문학창작의 전환점일 뿐 아니라, 러시아 문학사적으로도 일대 전환점을 이룬 소설이다. 아마도 현대문학의 어떤 작품도 그것이 가져다 주는 감동과 그 파급 정도에서 <어머니> 앞지르지는 못할 것이다. <어머니> 인류에 의해 축적된 모든 물질적 정신적 가치를 보존 할만한 능력을 갖춘 하나의 세력으로 노동 급 그린 최초의 소설이었다. 고리키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희생자로서가 아닌, 웅대한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능동적이고 당당한 인간으로, 당대 사회적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인간으로 노동자를 묘사했다. 또한 이 작품에서 고리키는 노동자 급이 자기 생활의 어둠을 뚫고서 환한 인간적 삶을 구축해 나갈 길, 어렵기는 하지만 분명한 길을 제시해 주었다. 이 작품이 노동계급에 관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 최고의 소설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머니> 외아들인 공장 노동자 파벨 블라소프가 혁명 동에 가담하자 홀 머니 닐로브나가 처음에는 불안해하다가 파벨이 채포되면서 혁명가들의 정신에 공감하여, 어머니 스스로 혁명적 신념을 갖기에 이른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어머니>의 줄거리는 실제 사건에 기초한다. 즉, 고리키의 고향인 니즈니 노브고로드 근교의 소모프 공장에서 1902년에 있었던 노동자들의 시위 사건의 실화에서 취재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일종의 역사적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어머니와 아들도 실재 인물이었다. 아들인 파벨의 모델인 표토르 잘로모프는 소모프 지역당 조직의 지도자였고, 어머니 닐로브나의 원형인 안나 키릴로브나는 소셜에서처럼 혁명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파벨 블라소프는 러시아 및 세계문학 사상 고리키에 의해 창조된 가장 훌륭한 혁명적 노동자의 전형으로, 이 형상에는 20세기 초 러시아 노동 운동을 조직하고 지도한 수많은 혁명가들의 전형적인 특성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가장 뛰어나고 생명력을 갖는 점은 어머니 닐로브나의 성격 묘사에 있다. 이 어머니의 형상은 한 평범한 사람이 차츰차츰 정의의 투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처음에 아들을 향한 단순한 모성애에서 출발하여 결국에는 모든 인류에 대한 모성애로 발전하게 된다. 어머니로서의 감동을 통해서 그녀는 정의의 실체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닐로브나의 모습에는 20세기 초 혁명의 폭풍우 속에서 러시아 민중들의 혁명 의식이 각성되고 성장하는 장대한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 닐로브나가 겪는 체험은 혁명가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일체의 기억을 분쇄하고 자신의 인생 전체에 대한 뚜렷한 전망을 획득하게 되는 하나의 위대한 체험이다. <어머니>에서 우리는 잔인성과 야수성으로 가득 찬 낡아뼈진 러시아를 목도하게 된다. 스트라이크, 5월 시위, 재판관, 감옥 탈출, 혁명가의 장례식 등 이 모든 형상들은 진정한 서사시다운 풍부한 내용과 압도적 넓이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6월 시위나 혁명가의 장례식에서 잔인한 탄압 세력이 개입하는 사건은 부르주아적 주제의 소설들이 낡은 생활 형식의 해채를 그리는 경우와는 달리, 결코 어떤 혼란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서사시적 위대함을 가진 위대한 투쟁, 즉 빚과 어둠의 투쟁인 것이다. <어머니>가 세계 문학사에 가져온 획기적인 전환점은 고리키가 긍정적 영웅들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실로 이 소설의 획기적인 의의는 고리키 고유의 방법으로 인간이 어떻게 하여 긍정적 영웅으로 발전되는가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고리키는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적 형상화의 긍정적 이상에 도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