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마리니] 흡혈귀 - 잠들지 않는 전설 지은이 : 장 마리니 출판사 : 시공사 봉사자 : 김생남 "나는 바닥에 놓인 백작의 관을 보았다. 그 안에는 백작이 누워 있었고, 마차에서 떨어진 흙덩어리들이 그의 몸 위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마치 왁스를 발라놓은 듯 창백한 얼굴과,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무시무시한 복수의 빛을 띤 빨간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자 그 눈동자는 석양을 향했고, 이글거리던 증오의 빛은 이내 승리의 빛으로 바뀌었다. 바로 그 순간, 조너선의 큰 칼이 허공을 가르며 그의 목을 꿰뚫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그와 동시에 모리스 씨는 사냥칼을 들어 그의 심장을 푹 찔렀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숨 한번 쉴까 말까 하는 짧은 순간에 백작의 몸이 스르르 재로 변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 1897년 "무슨 소리, 내가 말해 주마... 네가 갈 곳은 심판에 따라 머리가 잘리고 눈이 뽑히며 목이 베이는 곳, 음란함이 극에 달해 어린 소년들의 영광이 빛을 잃은 곳, 손발 잘린 이들이 사는 곳, 고문당하는 인간들의 하얀 비명 소리가 일그러진 얼굴 위로, 등뼈 깊숙이 파고드는 곳...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보면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알 수 있지. 너 같은 인간이 피비린내 진동하는 사자 동굴 속으로 던져져야 하는 것처럼... 아이스킬로스 '복수의 여신들' B.C. 5세기 제1장 피에 대한 갈증 피의 매력 흡혈귀와, 어둠의 산물인 다른 초자연적 존재를 구분하는 기준은 흡혈귀의 경우에는 살기 위해서 살아 있는 존재의 피를 마셔야 한다는 점이다. 흡혈귀 신화는 두말할 것도 없이 피와 연관된 환상의 산물이다. 피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고귀한 액체이며,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곧 치명적인 위험을 의미한다. 이 흡혈귀 환상의 기원은 아주 오래 전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발견된 유사 이전의 항아리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피를 빨아먹으려고 하는 괴물과 남자가 싸우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비교적 덜 오래 된, 몇 천년밖에 안 된 것으로, 릴리투-어린 아기들의 피를 먹는 것으로 알려진 귀신-에 관한 바빌로니아의 신화 또한 또 다른 단서가 된다. 이 분야의 권위자 가운데는, 피를 마시는 '산 송장'이나 망령에 관한 B.C. 6세기 중국의 전설을 그 기원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정확한 지명이나 연대를 따지지 않더라도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피에 굶주린 초자연적 존재에 관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 그 상상은 고대 중국의 전설뿐만 아니라 인도, 말레이시아, 폴리네시아, 나아가 아스텍과 에스키모에서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흡혈귀는 유럽 문명의 소산이다. 그 뿌리를 찾으려면 서구 문명의 요람인 고대 그리스, 그리고 서구 윤리의 기초인 유태-기독교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피와 죽음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은 자의 세계와 피를 신비하게 연결시켜 놓았다. B.C. 9세기 또는 8세기에 쓰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제9권을 보면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도와 줄 유령들을 불러 내기 위해 양을 죽여 피를 모으는 장면이 나온다. 죽은 자의 정령들은 이 피를 마시고 잠시 힘과 활기를 되찾아 오디세우스와 이야기를 한다. 다른 전설과 풍습을 보더라도 피의 소생 능력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 시대까지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엠푸사, 라미아, 스트리게 등 피에 굶주린 여신들의 수만도 엄청나게 많다. 고전은 이 여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카테 여신의 딸인 엠푸사는 청동 발을 가진 괴물이었는데, 잠자고 있는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예쁜 여자로 변신했다고 한다. 라미아는 벨루스라고 하는 동방의 왕의 공주로 제우스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질투심 강한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에게 아이들을 잃었다. 그 후 라미아는 아이들을 먹거나 피를 빠는 괴물로 변했다고 한다(이후 엠푸사와 라미아는 요부나 괴물을 뜻하는 일반 용어가 된다). 한편, 스트리게는 새의 몸을 가진 여자 괴물로, 갓 태어난 아기의 피를 빨아먹거나 잠자고 있는 남자의 생명력을 빼앗아 간다고 한다. 이런 신화 속의 존재들은 오늘날의 흡혈귀와 마찬가지로 잠자고 있는 생명체의 피를 빨아먹었다. 그러나 이 고대의 신들과 오늘날의 흡혈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오늘날의 흡혈귀와 달리 엠푸사, 라미아, 스트리게는 '산 송장'이 아니라 육체가 없는 신으로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인간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따름이다. 어쨌든 그들은 기독교 시대의 몽마 수쿠부스의 원형이라 하겠다. 수쿠부스는 젊은 남자가 잠자는 사이에 정을 통하면서 생식력을 빼앗아 갔는데, 심한 경우에는 남자가 죽기도 했다고 한다. '구약성서' : "피는 곧 모든 생물의 생명이다." ('레위기' 17장 14절) 바빌로니아 시대의 릴리트가 그 이전 시대에 어떻게 그려졌는가 하는 것은 헤브루의 경외 전설('구약성서'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브가 만들어지기 전 아담의 첫째 아내였던 릴리트가 바로 그 원형인 것이다. 성에 어리숙했던 아담에게 화가 난 릴리트는 그의 곁을 떠나 악마의 여왕이 된다. 그녀 역시 라미아와 스트리게처럼 어린아이의 피를 빨아먹고 잠자는 젊은 남자의 생식력을 앗아 갔다. 헤브루인들의 믿음으로 볼 때 릴리트는 살아 있는 생물의 피를 마시지 못하게 한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 둔다. 너희는 어떤 생물의 피도 먹지 마라. 피는 곧 모든 생물의 생명이다. 그것을 먹는 사람은 겨레 가운데서 추방하리라."('레위기' 17장 14절) 헤브루인들은 언제나 피와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그들에게 피는 생명의 상징이면서 불순함의 표시였다. 피는 신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성한 것인데, 오직 신만이 생명과 죽음을 주재했다. 동시에 그것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 이래로 인간성을 오염시킨 저주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 저주로 말미암아 인류가 타락했고, 신이 이브의 후예에게 내린 벌인 월경은 바로 불순한 상처의 증거로서 받아들여졌다. 헤브루 전설에서 월경 때 비치는 피는 다양한 재난의 원천으로 묘사되어 있다. 월경중인 여성은 사람들 앞에 나다닐 수 없었다. 그 여인이 나타나면 빵이 부풀지 않고, 술이 식초가 되며, 또한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순수하지 않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었다. 헤브루인들에게 피는 영원의 죄와 재앙을 암시했다. '신약성서': 기독교가 피를 되살렸다 '신약성서'는 예수가 피를 흘림으로써 인류를 구원했다고 가르친다.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를 당하기 전에 예수는 최후의 만찬을 베풀었고, 여기에서 12사도와 함께 상징적인 대체품이라 할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자신의 피가 의미하는 구원성을 강조했다. '요한복음'이 피가 가진 재생의 덕목을 강조함에 따라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제물에 관한 해석의 문제를 놓고 싸워야 했다. 혹시라도 인간의 희생이나 식육 의식 같은 비기독교적인 관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부추기지나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만 이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772년 초, 게르만족의 일족인 프랑크족의 왕 샤를마뉴는 이웃의 게르만족인 색슨족을 복속시키려고 누차에 걸쳐 공격한다. 777년 드디어 샤를마뉴 왕은 성공을 거두었고, 785년 비기독교도인 색슨족에게 무조건 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성체화(성찬식 동안 예수의 육신과 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는 믿음)의 신비와 이교의 믿음을 혼동하여 인간의 살을 바치는 축제에 참가한 자들에게는 죽음을 내렸다. 이렇게 주의했건만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는 피에 초자연적인 힘이 주어졌다. 따라서 그 힘은 쉽게 악마 숭배, 즉 흡혈귀에 대한 믿음의 원천으로 변할 수 있었다. 11세기, 피의 속죄성에 대한 믿음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사악한 해석으로 악마와 의사는 동일하게 여겨졌고, 처녀들의 오점 없는 피는 온갖 질병을 치유하고 더디게 나이를 먹게 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죽음 후의 삶: '부활' 죽음 후의 삶에 대한 신플라톤주의식 개념은 기독교와 흡혈귀에 대한 믿음 사이에 또 하나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껍데기에 불과한 육신은 썩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최후의 심판에서 부활할 것을 기다리며 다른 세계에서 계속 산다고 본 점이 그것이다. 죄지은 자의 영혼은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죽기 직전에 종부성사를 받을 수 있다. 종부성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나 자살 또는 파문으로 정화된 땅에 묻히지 않은 사람은 구원의 가능성이 배제된다. 그것이 돌아온 영혼(망령)에 대한 믿음의 원천이다. 그리고 흡혈귀는 기독교의 논리에 따르면 '고통받는 영혼'이다. 그들은 산 자의 세상에도, 죽은 자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다. 망령한 흡혈귀의 주요한 차이는 바로 망령은 육신이 없고 해를 끼치지 않는 데 반해 후자는 영혼이 연옥에서 돌아와 이전의 육체 안에 그대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즉, 흡혈귀는 '육신 안으로 돌아온 망령'이다. 피를 빨아먹는 시체 11세기에 들어서자, 무덤에서 나온 시체들의 이야기가 유럽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자크 알뱅 시몽 콜랭 드 플랑시라고 하는 프랑스의 마법 전문가는 1818년에 자신의 저서 '악마의 사전'에서 중부 프랑스의 한 주교가 1031년에 쓴 보고서를 언급했다. 그 주교에 따르면 파문을 당하고 죽은 한 기사가 매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러 번 목격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발견된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들은 라틴어로 쓰인 연대기들에 기록되어 있다. 저명한 교회학자인 월터 맵이 1182년에서 1192년 사이에 쓴 '조신들의 농담', 1196년에 아우구스투스 신봉자인 뉴버러의 윌리엄이 쓴 '잉글랜드의 역사', 이 두 권의 책에는 죽은 자에 관한 온갖 이야기가 다 들어 있다. 주로 파문을 당하고 죽은 자에 관한 이야기로, 그들이 밤마다 무덤에서 나와 생전에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일련의 의문사를 일으킨다고 한다. 그들의 관을 열어 보면 시체가 하나도 상하지 않은 채 온전하고 또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는데, 그 사악한 저주를 끝내는 유일한 길은 시체를 칼로 찌른 다음 불태워 없애는 것이라고 씌어 있다. 당시 이런 유형의 살아 있는 시체를 지칭하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기록자들은 '피를 빨아먹는 시체'라는 뜻의 라틴어 'cadaver sanguisugus'를 썼다. 그것이 바로 흡혈귀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흡혈귀의 첫 무대는 영국이다. 유행병과 미신 그 현상이 르네상스까지 지속되기는 하지만 특별히 일반 대중의 상상의 세계에 흔적을 남긴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4세기에 들어서서 주로 동부 프로이센, 실레지아, 보헤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흡혈귀에 대한 믿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던 그 현상이 갑자기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대중의 인식에 깊이 자리잡은 것이다. 흡혈귀에 대한 믿음이 이렇게 확산된 것은 그 지역이 흑사병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사람들은 병균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죽은 자를 묻어 치우기에 바빴다. 이따금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묻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며칠 후 가족 무덤을 열었을 때, 핏자국이 몇 군데 있고 전혀 상하지 않은 시체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운 나쁜 희생자가 관 속에서 길고도 무서운 공포의 시간을 보낸 뒤 어떻게든 관을 열고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상처를 입은 채 그대로 죽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시체들이 흡혈귀가 되었다고 상상하는 것이 당연했다. 마신이 횡행하던 14세기, 중부와 동부 유럽을 휩쓴 이 전염병이 흡혈귀에 대한 믿음을 조장한 것이다. 15세기의 두 괴물 14-15세기 서유럽에서는 흡혈귀 소동이 아주 이따금 벌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1440년 프랑스에서 유명한 질 드 레의 재판이 벌어졌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흡혈귀와 연관되어 거론되고 있다. 그것은 19세기의 프랑스 소설가 조리카를 위스망이 자신의 소설 '라바'(1891)에서 그를 진짜 흡혈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잔 다르크의 경비병이었고 프랑스의 장군이었던 질 드 레는 남서부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은퇴한 후 연금술에 빠져들었다. 그는 '철학자의 돌'의 비밀이 피 속에 있다고 믿었다. ('철학자의 돌'이란 어떤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 상상의 물질이다) 그러나 실험이 거듭되면서 야만성이 눈을 떠, 그는 이삼백 명의 어린이를 무참하게 살해했다. 질 드 레의 이야기는 도깨비의 이미지나 전설적인 살인마 '푸른 수염의 사나이'와 더 비슷하지만 이따금 흡혈귀로 묘사되기도 한다. 흡혈귀와 정말 흡사한 역사상의 인물은 지금의 루마니아에 속하는 고대 왕국 왈라키아의 왕자인 블라드 테페스이다. 블라드는 두 개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테페스(말뚝으로 박는 자)요, 또 하나는 드라큘라(악마 또는 용을 의미하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 드라큘의 지소사-서양에서 용은 불길한 짐승이다)이다. 블라드는 투르크 제국의 침입에 맞서 용감히 싸운 민족의 영웅인 동시에 단지 재미를 위해 수천 명을 말뚝에 박아 놓은 잔혹한 폭군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다. 블라드의 끔찍한 악행은 수많은 연대기 작가들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했고, 결국 그는 오늘날의 흡혈귀 신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전설 속의 인물이 되었다. 4세기가 지난 후 그의 잔인함에 분노한 아일랜드의 작가 브램 스토커가 소설 '드라큘라'를 썼다. 1486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사악한 마법'의 출판을 허용했다. 이것은 밤에 활동하는 남녀 악마-인쿠부스와 수쿠부스로 알려진-와 망령의 현상에 관한 논문이다. 교황이 이 논문의 출판을 허락하자 전 유럽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경악했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산 송장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이제 유령은 자유롭게 날개를 달고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제2장 신성한 흡혈귀 '산 송장' : 지옥에서 온 악마 16세기 후반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와 의식을 반대하는 종교개혁의 주창자들 역시 흡혈귀의 존재를 인정했다. 페스트가 여전히 맹위를 떨쳐 혼란에 빠져 있던 당시에, 일반 사람들은 관 속에 있는 시체를 먹을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산 사람도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시체가 있다고 믿었다. 무덤 속에서 죽은 자가 뭔가를 씹어먹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증인도 여럿 나왔다. 목사인 게오르크 뢰러는 이런 유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종교개혁의 주창자인 마르틴 루터와 관련이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1552년이 시작되면서 프로이센과 실레지아에서는 시체가 이빨로 씹지 못하도록 입에 돌이나 동전을 넣는 관습이 생겼다. 이런 흡혈귀의 원형들을 독일어로 나흐체러(Nachzehrer)라고 했다. 이 말은 '약탈자' 또는 '기생충'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연옥의 개념에 도전한 장 칼뱅을 위시한 스위스의 종교개혁자들도 죽은 자의 복귀를 마법으로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스위스의 신학자 루이 라바테르는 유령과 영혼, 밤에 나타나는 도깨비에 관해 1581년에 쓴 소책자에서, 망령은 죽은 자의 영혼이 아니라 죽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마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훗날 영국의 제임스 1세가 된다-가 1597년에 쓴 '악마론'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제임스 6세는 신비학의 연구로 이름을 떨쳤다. 이때부터 악마의 정식 사자로 인정을 받은 '산 송장'은 서유럽의 문화에서 정식 시민권을 확보했다. 피로 얼룩진 여백작 17세기 초, 2세기 전의 질 드 레 사건과 놀랄 정도로 유사한 일이 헝가리에서 벌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미신이 횡행하던 헝가리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이 사건은 바로 1611년의 에르체베트 바토리 여백작의 재판이다. 그녀는 헝가리 산악지대인 카르파티아 산맥의 한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체이테성 주변 마을에 살던 수많은 어린 소녀들을 납치, 고문한 죄로 고발당했다. 당대의 기록에 따르면 그 희생자의 수가 300명에서 8,000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아마 실제 희생자의 수는 전자에 가까웠을 것이다. 질 드 레나 블라드 테페스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에르체베트 바토리 사건에도 초자연적인 존재는 없었다. 즉 여백작을 산 송장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희생자의 피를 마시는 일이 그녀에게 엄청난 쾌락을 주었다는 점에는 모든 설명이 일치한다. 그녀는 희생자의 피를 목욕통에 가득 채우고 목욕을 즐겼다. 이것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고픈 욕망에서였다. 바토리 여백작이 이 비극적인 삶에 빠지기 전, 그녀는 페렌츠 나다스디 백작의 아내였다. 페렌츠 나다스디는 용맹하기로 이름난 백작이었지만 아내에게는 소홀했다. 남편이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그녀는 마법 공부로 무료함을 달랬다. 그러다가 하인인 토르코의 도움을 받아 농부의 딸들을 유괴, 고문하기 시작했다. 1600년 남편이 죽은 후 바토리는 이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토르코뿐만 아니라 간호사인 일로나 주, 시종인 요하네스 우이바리, 다르불라라고 하는 마법사도 이 일에 참여했다. 전설의 인물, 에르체베트 바토리 10년 동안 수십 명의 소녀가 성의 지하 감옥에 갇혀 엄청난 고문을 당한 후 피를 흘리며 죽어 갔다. 그 지역에서 상당한 수의 소녀가 실종되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1610년 12월 30일, 바토리의 사촌인 기오르기 투르소 백작이 일단의 군인과 기병대를 이끌고 그 성에 도착했다. 막 피의 의식이 진행되는 참이었다. 성에 들어간 백작은 지하 감옥에서 수십 구의 시체와 함께 온몸에 바늘로 찔린 자국이 수없이 난 채 아직 살아 있는 희생자를 숱하게 발견했다. 그 정도로 여백작은 만족하지 못했는지 많은 수의 소녀들이 아직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가의 친척(그녀의 삼촌이 트란실바니아의 왕자였다)이었던 덕분에 목숨만은 건졌지만, 여백작은 모든 창문과 문이 폐쇄된 방에서 남은 일생 동안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다른 공범자들은 전부 처형되었다. 여백작이 죽은 후 성은 오랫동안 저주받은 성으로 방치되었다. 에르체베트 바토리 여백작 사건은 그 지역에 온갖 소문과 전설이 나도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 많은 전설은 여백작이 죽어서도 피의 쾌락을 찾아 계속 나타났고, 결국 진정한 의미의 흡혈귀가 되었다고 전해 준다. 어쨌든 그녀는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원형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영화와 소설의 소재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동유럽의 오지까지 퍼진 흡혈귀 17세기를 거치면서 흡혈귀와 관련된 미신이 알바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등의 남유럽으로, 동쪽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동부와 러시아로 퍼져 나갔다. 사실 그런 사건들은 주로 서유럽, 즉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포르투칼 등지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유럽에서는 그런 사건들이 차츰 줄어든 반면 동유럽에서는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그 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사회학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16세기 말과 17세시 초 동유럽의 나라들은 가난했다. 특히 산악지대에 있는 나라들은 그곳까지 가는 것만도 엄청난 일이었다. 르네상스의 지적인 발견과 인본주의 경향이 그런 오지까지는 미치지 못했고, 도시에 사는 중간 계급을 제외한 대다수 주민-주로 농부들-은 문맹이었다. 여행자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미신들이 떠돌기에 알맞은 토양이었다. 또 다른 요인은 종교상의 것이다. 카톨릭이 우세한 나라-독일, 남부 프랑스, 북부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칼-에서는 이단과 미신을 상대로 무자비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또 영국이나 스위스 같은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는 교회 당국이 유례없이 마녀 사냥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동유럽의 비잔틴 정교회는 미신적인 요소를 예배의식에 통합시킬 정도로 미신에 대한 태도가 훨씬 더 관대했다. 브리콜라카스에서 흡혈귀로 죽은 사람이 썩지 않고, 또 무덤에서 나올 수 있다는 그리스인의 믿음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이다. 이 '죽지 않은 자'에게는 브리콜라카스(vrykolakas)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주로 자살을 하거나 교회에서 파문당해 정화된 땅에 묻힐 수 없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들은 산 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이 괴로운 영혼들의 유일한 희망은 육신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그들은 교회가 파문을 취소하기만 하면 곧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어원상, 브리콜라카스라는 말은 슬라브어에서 차용한 것으로 늑대인간을 의미한다(늑대인간이란 늑대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중세의 악마학에서 유행한 것이 바로 이 늑대인간이다. 그러나 16세기가 되면서 발칸 반도와 카르파티아 산맥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에서는 이 단어가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산 송장과 무시무시한 늑대인간을 뜻하는 말로 분별 없이 사용되었다. 헝가리의 왕이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지기스문트는 1414년 주교 공의회에서 늑대인간의 존재를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이런 현상이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가자 16세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공식적인 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1520년에서 17세기 중반 사이에 약 3만 건의 늑대인간 사례가 접수되었다. 서유럽에서는 프랑스가, 동유럽에서는 세르비아와 보헤미아, 헝가리가 특히 많았다. 17세기 말이 되면서 늑대인간이 죽은 다음에는 산 송장이 되어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다-흡혈귀의 예고편 격이다-는 소문이 실레지아, 보헤미아, 폴란드, 헝가리, 몰다비아, 러시아, 그리고 그리스로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그곳에서는 한때 아무 해도 없었던 브리콜라카스가 피에 굶주린 괴물로 변해 버렸다. 나라마다 각기 이 무서운 괴물을 지칭하는 말이 있었지만 흡혈귀라는 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서유럽 여러 나라의 도시에까지 소문이 퍼져 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던 프랑스의 월간 잡지 '르 메르퀴르 갈랑'의 1694년 10월호는 그 사건에 관한 기사로 온통 채워졌다. 17세기 말엽, 아직 확실하게 흡혈귀라는 말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흡혈귀에 대한 믿음이 동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일종의 집단 정신병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공포가 아직은 소문을 통해서만 떠돌 뿐 공식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다. 목격자의 보고와 설명이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것은 1710년대부터이다. 그러나 흡혈귀에 대한 소문은 여전히 근거 없는 낭설로 여겨졌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가 무르익어 가면서 이성이 승리를 구가했다. 대부분의 미신은 일대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흡혈귀에 대한 관심은 문자 그대로 폭발적이었으며 집단 정신병의 징후까지 보였다. 흡혈귀에 대한 열기는 전유럽으로 퍼져 나가면서 상류계급의 시민과 군인, 그리고 교회 당국자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제3장 흡혈귀의 황금시대 흡혈귀 열기의 폭발 1710년 페스트가 창궐해 동부 프로이센을 유린할 당시, 그 지역을 지배하던 오스트리아 당국자들이 그들의 주목을 끄는 흡혈귀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흡혈귀들이 그 재앙에 책임이 있다고 지목돼 한 공동묘지의 무덤을 모조리 파헤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프로이센, 폴란드, 모라비아, 러시아에까지 확산되었고, 이제는 페스트보다는 흡혈귀가 문제였다. 이 기간 동안에 정말 특이한 사건이 두 건 있었다. 하나는 헝가리 농부인 페테르 플로고요비츠 사건이었다. 플로고요비츠는 1725년에 죽었다가 흡혈귀가 되어 키실로바라는 작은 마을에서 8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한 건은 농부인 아르놀트 파올레가 1726년 건초 마차에서 떨어져 죽었다가 역시 흡혈귀가 되어 메드베지아라는 세르비아 지방의 한 마을에서 사람과 가축을 상당수 죽인 사건이다. 바로 이 플로고요비츠 사건 기록에 흡혈귀 'vampire'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 'vanpir'가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다. 아르놀트 파올레 사건은 플로고요비츠 사건보다 더 큰 소동을 일으켜 1731년 12월에 공식 조사가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군의관인 요한 플뤼킹거가 '본 대로 보고 받은 대로'라는 제목의 공식 보고서를 작성했고, 다른 의사와 군 장교들의 연대 서명이 빽빽하게 들어갔다. 그들은 이 보고서를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 있었던 오스트리아 참모회의에 보냈다. 1732년에 출판된 이래 여러 번 재발행된 이 보고서는 서구의 지배 계급 사이에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오스트리아 황제 카를 6세는 플로고요비츠 사건을 면밀히 추적해 가며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의 루이 15세는 오스트리아 주재 프랑스 대사인 리슐리외 공작에게 좀더 자세한 공식 조사 기록이 담긴 자료를 보내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플로고요비츠와 파올레 덕분에 유럽 전역에서 관련 자료를 인쇄하느라 엄청난 양의 잉크가 소비되었다. 루이 15세의 베르사유 궁정에서 인기가 높았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잡지 '르 글라뇌르'는 1732년 3월 3일자에서 파올레 사건을 상세하게 다루었는데, 여기서 흡혈귀라는 뜻의 프랑스어 'vampyre'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해 3월 11일자 '런던 저널'이 영어권 사람에게 'vampire'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의사, 성직자, 철학자들의 토론 이 두 사건과 다른 유사한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유럽에서는 흡혈귀를 주제로 한 소책자와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문학 서클과 대학에서도 논쟁과 토론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흡혈귀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만 전승되었고, 세대를 거치면서 단순한 소문이나 떠도는 풍문에 불과하던 그 이야기에 살이 붙었다. 그러나 이성이 미신을 누른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권위 있는 학자와 의사, 그리고 성직자들이 흡혈귀를 기록, 분류, 분석하는 학구적인 저작물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의 소책자 가운데 하나인 '씹는 사자에 관한 역사 철학적 논문'(라이프치히, 1679)은 필리프 로어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악마가 몸에 들어와 무덤 속에서 씹고 있는 사자의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 책자가 나오자 18세기에는 로어의 초자연적인 설명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이성의 이름으로 그 설명을 거부하는 사람 사이에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후자는 보고된 '사실들'을 미신과 무지의 소산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1728년 미하엘 란프트는 라이프치히에서 출판한 유명한 책자 '무덤에서 씹는 사자의 책'에서 로어의 가설을 부정했다. 그는 만일 사자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작용을 가할 수 있다해도 어떤 경우든 형태를 드러낼 수 없으며, 악마가 사자의 몸 속으로 들어갈 능력이 없다고 단언했다. 파올레 사건 이후 엄청난 양의 책자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 가운데 두 권이 가장 널리 읽혔다. 요한 크리스티안 슈토크가가 1732년에 독일의 예나에서 출판한 '피를 빨아먹는 시체의 육체적 특성에 관한 논문'과 요한 하인리히 초프트가 할레에서 1733년에 출판한 '사로잡힌 흡혈귀에 관한 논문'이 그것이다. 이 두 저자는 흡혈귀를 악마가 빚어 낸 가상의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교회는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흡혈귀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과학적인' 책자들이 쏟아져 나오자 교회도 더 이상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시 가장 유명한 글 가운데 하나가, 성서 해석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프랑스인 베네딕트회 수도사 동 오귀스탱 칼메가 쓴 '헝가리, 모라비아 등의 지역에서, 육신으로 되돌아온 자, 파문당한 자, 흡혈귀, 브리콜라카스에 관한 논문'이다. 논제를 속속들이 파헤친 이 책자는 1746년 파리에서 두 권으로 출판되었다. 흡혈귀에 대한 믿음을 잠재우기 위해 동 칼메는 방대한 양의 흡혈귀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일화가 많고 때로는 그 논조가 지나치게 단순하지만 역사학자와 사회학자, 인류학자는 이 책에 엄청난 관심을 쏟았다. 칼메와 더불어 고위 성직자들은 교회의 견해를 널리 알리겠다는 의도로 출발했지만, 결과는 흡혈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피렌체의 대주교인 주세페 다반차티의 '흡혈귀에 관한 논문'(나폴리, 1744)이 그렇고, 또 교황 베네딕트 14세인 프로스페로 람베르티니가 지은 방대한 저서 '하느님의 종의 미화와 미화된 자의 성전 승인에 관하여'(로마, 1749)의 제2권에서 흡혈귀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흡혈귀에 관해 여러 쪽을 할애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에서 계몽주의의 주요한 개념, 다시 말해 회의주의와 이성주의를 가장 잘 구체화한 '백과전서'의 저자들인 드니 디드로와 장 르 롱 달랑베르는 흡혈귀를 둘러싼 소동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백과전서파의 일원으로 풍자를 좋아하던 볼테르는 자신의 저서 '철학사전'에서 그런 현상을 마음껏 조롱했다. 또한 장 자크 루소도 파리의 대주교에게 흡혈귀의 존재를 믿는 세태를 혹평하는 편지를 보냈다. 계몽주의가 한창인 시대에 어떻게 그런 미신이 나돌 수 있는지 볼테르와 루소, 두 사람 다 의아해했다. 서유럽에서 흡혈귀에 관한 이런 책자들이 나옴으로써 이전에는 소수의 여행자나 외교관이나 되어야 접할 수 있었던 내용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 또 흡혈귀라는 단어를 모두가 다 아는 일반용어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전에는 피를 빨아먹는 유령을 가리키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1732년-아르놀트 파올레 소동이 일어난 해-이 시작되면서 흡혈귀, 즉 'vampire'(물론 그 표기는 vampyr, vampyre, wampire 등 조금씩 달랐다)라는 용어가 단어 체계상 하나의 용어로 확립되었다. 흡혈귀의 특징 18세기 초에 흡혈귀를 정의하는 세 가지 특징이 마련되었다. 먼저 흡혈귀는 망령 또는 '육신 안으로 돌아온' 망령이지, 유령이나 악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밤이면 무덤에서 나와 살아 있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으며 사후에도 존재를 이어 가고, 셋째로 그 희생자 역시 죽은 후에 흡혈귀가 된다는 것이다. 드라큘라 이야기가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이래 괴기 영화에서는 전설 속의 흡혈귀가 약간은 변형되어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어떤 측면은 엄청나게 과장하고 어떤 측면은 축소시켰다. 예를 들어, 거울 속에 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흡혈귀의 보편적인 속성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오직 독일의 일부 지방에서만 나타난다. 그곳에서는 그림자나 상을 영혼의 상징이라고 믿었는데, 흡혈귀는 영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영화 제작자들이 흔히 쓰는 뾰족한 이빨은 늑대인간의 송곳니의 흔적이지만, 괴기 문학에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대개 흡혈귀는 희생자를 물지 않고 피부의 털구멍을 통해 피를 빠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토당토않게 박쥐가 흡혈귀를 상징하는 동물이 된 것 역시 영화 때문이다. 여기에는 프랑스의 박물학자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 드 뷔퐁 백작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소를 비롯한 가축의 피를 빨아먹는 중남미의 박쥐에 흡혈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사실 전설상의 흡혈귀는 거미와 나비는 물론 어떤 동물로도 변신할 수 있고, 또 안개나 지푸라기로도 변신할 수 있다. 마늘을 가지고 있으면 흡혈귀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흡혈귀 퇴치법은 루마니아 특유의 것이다. 한편, 흡혈귀가 밤에만 나오고 새벽닭이 울기 전에 무덤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은 모든 지역에서 인정하는 사실이다. 흡혈귀는 성수-생명의 원천-와 성찬용 빵, 그리고 십자가를 무서워한다. 끝으로, 신성을 모독하는 이 존재를 끝장내는 최선의 방법은 흡혈귀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 주는 것과는 반대로 그런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흡혈귀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흡혈귀에 관한 18세기 책자들과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19세기의 연구 성과로, 이 신화의 중요한 특징들이 분명히 드러났다. 유럽 국가들 사이에는 흡혈귀의 많은 변종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흡혈귀란 매장한 지 몇 주가 지나도 부패하지 않은 시체를 말한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비정상적으로 자란다. 눈썹 역시 더부룩하며 손바닥에도 터럭이 나 있다. 루마니아의 흡혈귀는 때로 털로 뒤덮인 짧은 꼬리가 달려 있는데, 화를 내면 부풀어오르는 이 꼬리에 초자연적인 힘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흡혈귀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흡혈귀를 찾아내는 방법도 관심을 끌게 되었다. 과연 어느 무덤이 흡혈귀의 것인지 밝히기 위해서 젊은 처녀를 완전히 검거나 흰 처녀 말에 태워 묘지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달리게 한다. 그러면 흡혈귀의 무덤에 가서는 말이 뒤로 물러난다는 것이다. 무덤 근처에 있는 작은 구멍도 하나의 증거가 된다. 안개로 변신한 흡혈귀가 이 구멍을 통해 무덤을 빠져 나온다고 여긴 것이다. 흡혈귀와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사람은 확실하게 흡혈귀를 구분해 내는 재주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람을 세르비아에서는 뱀피리츠(vampiritch) 또는 뱀피로비츠(vampirovitch), 보헤미아에서와 헝가리에서는 담피레스(dhampires)라고 했다. 어떻게 흡혈귀가 되는가? 이론상 누구나 흡혈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파문당한 자, 자살한 자, 격렬한 폭력의 희생자, 마녀, 사산아, 기독교식 매장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 또 어떤 사람은 선천적인 특성 때문에 이런 치명적인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이가 나 있는 사람, 대망막(태아가 출생시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 엷은 막)을 뒤집어쓰고 나온 사람, 너무 까맣거나 비할 데 없이 푸른 눈을 가진 사람, 빨강머리나 몸에 점이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죽었을 때는 입관과 매장 사이에 두 번의 예방조치를 취했다. 루마니아에서는 시체의 머리에 못을 박거나 시신을 바늘로 찌르고, 또 성 이그나티우스의 날에 잡은 돼지의 비계를 칠하기도 했다. 흡혈귀의 영혼이 그 육신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에 특별한 물체(루마니아에서는 마늘 뿌리, 그리스에서는 정화의식을 거친 빵 조각, 독일의 작센 지방에서는 레몬 조각)를 넣기도 했다. 수데텐란트(지금의 체코공화국 일부)에서는 흡혈귀로 의심받은 사람의 시체를 긴 양말로 둘둘 말았다. 흡혈귀는 매년 한 코씩 뜨개질한 것을 풀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흡혈귀가 밤마다 세도록 양귀비 씨앗을 관 속에 집어 넣었다. 아니면 양귀비 씨앗이나 찔레 가시를 흡혈귀가 하나씩 줍도록 공동묘지로 이르는 모든 길에 뿌려 놓았다. 세르비아에서는 문과 창에 타르를 칠한 십자가를 걸어 두어 흡혈귀의 공격을 막았다. 루마니아에서는 방마다 마늘 줄기를 걸어 두고, 문, 창, 굴뚝, 열쇠 구멍에 마늘을 문질러 댔다. '대속죄' 또는 흡혈귀의 죽음 흡혈귀를 단숨에 영원히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무 말뚝을 심장에 박는 것이라고 미신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예수의 십자가에 쓰였던 미루나무를 사용한 데 반해, 다른 나라는 예수의 면류관을 참고해 산사나무를 선호했다. 달마티아와 알바니아의 아드리아해 연안에서는 사전에 성직자의 축성을 받은 단검이 무기였다. 루마니아에서 '대속죄'라 이름 붙인 그 처형은 새벽 동이 틀 때 거행해야 했고, 집행자는 흡혈귀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말뚝을 단 한 번에 박아야 했다. 만약 그 시체가 재로 변하지 않으면 무덤 파는 일꾼이 쓰는 삽으로 머리를 자르고 나머지는 불태워 그 재를 바람에 날려 보내거나 네거리에 묻어야 했다. 믿음의 끝? 18세기 말이 가까워지면서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대학교와 문학 살롱에서는 흡혈귀가 대화의 주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초반 사람들을 괴롭히던 그 초자연적인 사건들과 같은 소동은 점점 사라졌다. 계몽주의 시대의 실증주의-경험과학에 대한 믿음, 자연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가 천천히나마 유럽 대륙의 오지까지 퍼져 나가고 페스트가 진정되면서, 흡혈귀에 대한 믿음도 자연히 시들해진 것이다. 물론 19세기에 들어서서 흡혈귀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대두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대중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유럽의 산업화는 점차 새로운 생활양식을 소개했고, 미신과 함께 옛 것을 밀어냈다. 그렇지만 카르파티아 지방의 오지에서는 오늘날에도 흡혈귀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 이성의 승리가 전설 속의 흡혈귀를 이겼지만 그렇다고 상상의 세계에서까지 몰아 낼 수는 없었다. 물질 실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그리고 매혹적이고 신비에 싸인 과거에 대한 향수의 표현으로 일어난 낭만주의 운동은, 그 초기에 즉각 흡혈귀를 문학 속에 부활시켰다. "실내에 키가 후리후리한 노인이 서 있었다. 길고 하얀 콧수염만 남겨 놓고 깨끗하게 면도를 한 얼굴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옷을 걸쳤다. 어느 곳 하나 색깔의 흔적조차 없다." 1897년, 브램 스토커의 펜 끝에서 흡혈귀가 되살아났다. 문학의 영역으로 들어간 드라큘라는 때로 안개가 낀 듯 현실의 경계선이 흐려지는 상상의 무대 위에서 육체를 얻었다. 제4장 흡혈귀의 부활 분명히 빅토리아 시대의 소산인 브램 스토커의 소설은 진정한 의미의 근대 신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소설은 흡혈귀의 전설상의 토대를 영구화하는 동시에 그 의미에 심대한 변화를 주었다. 그렇지만 드라큘라가 갑자기 태어난 것도 아니며 우연히 어느 한 개인의 상상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강조되어야 한다. 드라큘라는 100년 전 화려한 꽃을 피웠던 문학상의 한 부류이다. 이성적인 사고의 승리 18세기 후반 유럽의 풍경을 바꿔 놓기 시작한 산업혁명은 지난 시대 설 자리를 찾지 못했던 마녀와 악마, 망령들에게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흡혈귀는 그 뿌리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유럽인의 상상력이 빚어 낸 최신 창조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신종 괴물은 이성주의 시대의 여명기에 미신을 믿는 농부들이 주로 살고 있던 유럽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18세기의 백과전서파들이 분석, 해부,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한 이 괴물은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그때 박물관의 유물 전시관에나 어울렸다. 사실 18세기 후반에는 흡혈귀에 관한 기사가 거의 없었고, 과학의 진보와 기술이 지면을 현란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19세기 초 헝가리나 세르비아의 시골에서 아직도 흡혈귀를 찾는다며 무덤을 파는 일이 있다는 기사가 이따금 신문에 등장했지만 독자들의 흥미를 거의 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일반인들의 생활양식이 야금술과 철도, 가스등 따위의 출현으로 완전히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유럽의 경제적, 사회적 풍경이 급속하게 변모했고,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개발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 모델 속에는 더 이상 과거의 미신이나 믿음, 꿈 같은 생각이 차지할 공간이 없었다. 실증과학이 모든 것 위에 올라서는 가운데 부르주아 사업가 계층은 일, 수입, 사회적 지위, 종교에 기초를 둔 이데올로기의 바탕 위에 사회질서를 세우고 있었다.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 이 사회문화적 제약을 가장 잘 보여 준다. 규범과 확립된 가치에서 일탈한 것은 모조리 은폐-실제로는 엄격하게 억압-되었다. 바로 이런 영국의 상황 속에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나타난 것이다. 낭만주의와 흡혈귀의 부활 18세기 말에 낭만주의가 싹트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의 물질주의에 대한 반동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독일의 질풍노도 문학운동, 그리고 영국의 고딕 소설 등 감정의 분출에 이어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이성주의와 물질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차갑고 몰개성적인 논리에 대해 감정과 정열의 우위를 선언했으며, 집단에 대한 개인의 우월을 주장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기적을 믿는 시대에 향수를 느꼈고, 근대보다는 중세와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영감을 구했다. 19세기로 접어들 무렵, 영국 낭만파의 제2세대가 초자연적인 것에 강렬하게 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흡혈귀의 전설을 부활시켰다. 대부분 흡혈귀를 고도로 은유화한 이들은 곳프리트 아우구스트 뷔르거의 '레노레'(1773), 괴테의 '코린트의 신부'(1797) 등 지난 세대의 위대한 독일 작가들의 모범을 따랐다. 그들은 죽음을 저승에서 돌아온 젊은 연인의 모습으로 의인화했다. 그 포옹은 달콤했지만 그것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낭만파 작가들은 흡혈귀 신화를 죽음도 불사할 만큼 달콤한 열정에 비유하는 은유로 사용했다. 따라서 이것은 신화를 왜곡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동 칼메가 묘사한 산 송장은 절대 색마가 아니며, 전통적인 전설에는 성적인 의미가 전혀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 고대 또는 중세 발라드의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낭만주의 시가에 등장하는 색마적인 흡혈귀는 무엇보다도 '남자를 파멸시키는 요부'의 상징이었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크리스타벨'(1816), 존 키츠의 '잔혹한 미녀'(1818)와 '라미아'(1820)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흡혈귀가 피를 빨아먹는지 아닌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죽음과 쾌락을 동시에 가져다 주며, 그 '희생자'가 희생에 동의하는 성인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흡혈귀와 희생자의 관계에 가학-피학대 음란증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불어넣었다. 흡혈귀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요부는 낭만주의 시대 이후에도 오래 살아 남은 여주인공이다. 유혹하는 여성을 의미하는 영어 'vamp'가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영어권에서 널리 쓰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흡혈귀이면서 요부인 주인공은 19세기와 20세기의 유럽과 미국 문학에 수없이 등장했다. 1866년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흡혈귀의 변신'에서 그러한 여주인공을 타락한 색정광으로 변신시켰다. 또 산문시 속에서도 긴 수명을 누렸는데, 프랑스의 작가 테오필 고티에의 '죽은 연인'(1836)에 나오는 매력적인 주인공 클라리몽드,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요부들의 시조가 된 조지프 셰리던 르파뉴의 신비하고 매혹적인 여주인공 '카르밀라'(1871)가 바로 그들이다. 물론 드라큘라의 성에서 브램 스토커의 주인공 조너선 하커의 심장을 세차게 뛰게 만든 세 명의 미인 포로를 빼놓을 수 없다. 흡혈귀가 산문의 세계로 들어가다 흡혈귀가 시의 세계에만 한정되었다면 폭넓은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했으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영국의 존 윌리엄 폴리도리의 소설 '흡혈귀'의 주인공 루스벤 경이 없었다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역시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폴리도리가 흡혈귀를 산문문학의 세계에 소개한 것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그 발단은 1816년 6월 제네바에서였다. 어느 날 저녁,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그와 함께 여행을 하던 동료들(동료 작가 퍼시 바이셰와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셸리, 그리고 바이런의 개인 비서 겸 의사 존 폴리도리 박사)은 유령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신들이 직접 서스펜스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로 결정했다. 바이런이 다벨이라는 흡혈귀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품을 끝내지 못한 바이런이 그 줄거리를 폴리도리에게 넘겼다.(한편,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어 공포문학의 최고봉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자신의 고용주를 끔찍이 싫어했던 폴리도리는 1817년 바이런의 곁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바이런의 미완성 소설에서 영감을 받기는 했지만, 그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만들어 가며 이름을 바꿨다. 흡혈귀 다벨은 루스벤 경이 되었다. 냉소적이며 난봉꾼인 루스벤 경은 기묘하게도 바이런과 비슷했다. 이 소설은 1819년 4월 '뉴 먼슬리 매거진'에 실렸다. 그 잡지의 편집자는 작가를 바이런으로 발표하는 협잡을 부렸다. 그런데 불쌍한 폴리도리는 이 저명한 후원자의 이름 뒤에 숨어 있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이름 덕분에 소설 '흡혈귀'는 쇄를 거듭해 찍었고, 프랑스어로 번역되었으며, 극장용 멜로드라마-처음에는 샤를 노디에가 1820년에, 이어 1852년에 알렉상드르 뒤마(우리가 아는 뒤마의 형)가 개작-로 개작되었다. 바이런의 명성 덕분에 폴리도리의 이야기는 흡혈귀 문학을 전유럽에 유행시켰다. 그에 따라 수많은 모작이 탄생했다. 폴리도리의 책은 일반 대중에게 흡혈귀를 소개하고 지적인 흡혈귀의 개념을 창조해 냈다는 점에서 흡혈귀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거만하고 매혹적인 흡혈귀의 좋은 예이다. 공포이야기에 대한 열광 무대와 대중문학에 등장한 흡혈귀가 몰고 온 인기의 파도는 1850년 이후 급속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복해서 써먹기 때문에 갈수록 내용이 빈약해지고 질은 점점 더 떨어졌다. 흡혈귀는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대중을 따분하게 만들면서 거의 종말을 고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갈수록 환상과 공포에 물들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그렇지 않았다. 영국 대중이 초자연적인 것과 소름끼치는 것에 열광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영국 역사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 국가적인 전통에 속한다. 영국은 언제나 무서운 이야기가 사랑받는 유령의 천국이었다. 산업혁명은 간접적으로 그 전통을 재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점잖은 빅토리아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공상의 세계를 멋진 탈출구로 본 것이다. 정당한 질서가 조롱당하고 확립된 도덕이 의문시되는 공포 이야기를 읽는 것이 일종의 집단적인 배출구가 되었다. '싸구려 공포' 잡지의 성공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런 잡지에 1847년에 책의 형태로 출판된 익명의 무용담 '흡혈귀 바니' 같은 흉악한 이야기가 끝없이 연재되고 있었다. 드라큘라의 선조, 카르밀라 1890년대에 망령 이야기는 빅토리아 사회의 모든 계층으로 파고들어 갔다. 심지어 찰스 디킨스와 에드워드 조지 벌워 리턴 같은 최고의 작가들도 거리낌없이 이런 이야기에 손을 댔다. 디킨스의 '유령의 집', 리턴의 '귀신들린 자와 귀신 사냥꾼'이 모두 1859년에 발표되었다. 당시 체제의 허식이 어느 정도로 심했는가 하면, 단어가 비유하고 최후에 가서 도덕이 승리하기만 하면 검열도 그냥 통과했고, 가장 무섭고 비열한 이야기조차 아무 문제 없이 허용될 정도였다. 이것이 1871년 아일랜드의 작가 르파뉴의 '카르밀라'가 탄생할 당시의 상황이다. 그는 흡혈귀의 유구한 전통을 새롭게 세웠고,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예고했다. 이 중편소설의 배경은 슈티리아(중부 오스트리아)이며, 별명이 카르밀라인 주인공 미르칼라 폰 카른슈타인 여백작은 바토리 여백작에게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르파뉴는 영리하게도 흡혈귀의 성적인 영역을 개발했다. 빅토리아 사회의 눈에 악의 화신으로 비친 그의 여주인공은 육감이 넘치는 존재였다. 이 소설은 신의 영향으로 악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는 것으로 끝나므로 교훈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치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하던 나라에서 발표된 이 소설은 여성 흡혈귀와 그 여성 '희생자' 사이의 관계를 모호하게 묘사하고 있다. 르파뉴는 부도덕하다는 사회의 비난을 교묘히 피해 가면서 독자들의 변태적인 취미를 만족시켜 준 인물이다. 브램 스토커 역시 그의 예를 따른다. 19세기 흡혈귀의 최고봉, '드라큘라' 1897년에 출판한 '드라큘라'는 흡혈귀 역사의 진정한 전환점이었다. 정통 흡혈귀 전설로 원대 복귀한 이것은 18세기 고딕 양식의 부활에 맞먹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것이 갖는 가장 중요한 점은 신화를 시대에 맞게 근대화했다는 점이다. 저자 자신도 이 책의 성공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브램 스토커는 원래 직업적인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친구인 헨리 어빙이 총감독으로 있던 런던 라이시엄 극장의 무대감독이었다. 스토커는 글쓰기를 취미 내지는 부업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가 전업작가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1903년 극장이 파산한 이후이다. 어릴 때부터 공상문학에 심취한 스토커는 폴리도리의 '흡혈귀'와 '흡혈귀 바니'도 읽었고, 독일 작품을 번역하여 1860년에 출간한 작가 미상의 작품 '신비한 이방인'도 읽었다. 물론 '카르밀라'도 읽었다. 흡혈귀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쓰고 싶었던 스토커는 흡혈귀 신화와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전설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에밀리 제라드가 쓴 트란실바니아 여행 및 문화 안내서인 '숲 저편의 땅'을 꼼꼼히 읽었다. 그는 비밀 이교 집단인 '황금빛 새벽'의 구성원으로, 신비학과 마법에 심취해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을 설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는 친분이 있던 아르미니우스 밤베리 교수이다. 밤베리 교수는 부다페스트 대학교의 동양어 교수로서 중부 유럽의 역사와 민간전승에 해박했다. 런던 방문길에 스토커를 만난 밤베리 교수는 진짜 존재했던 드라큘라, 블라드 테페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스토커는 드라큘라라는 이국적인 이름에 끌려 그것을 주인공의 이름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드라큘라'가 1897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때는 제1장이 빠져 있었다. 스토커가 빼기로 결정한 것이다. 1914년 그의 미망인은 그 부분만 따로 '드라큘라의 손님'이라는 제목의 중편소설로 출판했다. 여기에는 그라츠의 돌링겐 여백작이라는 여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바로 카르밀라를 모델로 삼은 것이었다. 조너선 하커가 트란실바니아로 떠나다 영화에서는 대부분 원작의 줄거리를 약간은 변형하기 때문에, 간단하게나마 이 소설의 원래의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젊은 법률가 조너선 하커는 드라큘라 백작과 상담을 하라는 명령을 받고 트란실바니아로 간다. 드라큘라 백작이 영국에 땅을 사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소설은 편지, 일기 따위를 진짜 기록처럼 제시한다) 하커는 이 고객의 무시무시한 비밀을 발견한다. 즉 드라큘라 백작은 산 송장으로, 사람의 피를 맛보고 싶은 갈증 때문에 밤이면 관에서 나오는 흡혈귀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용감한 하커는 이 고객의 죄악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제 선악이 대결하는 첫 번째 장이 시작되고, 하커는 결국 덫에 걸려든다. 게임의 초기에는 악이 승리한다. 드라큘라는 하커의 약혼녀 미나의 친구인 루시를 희생물로 선택한다. 불운한 루시는 피를 다 빨린 후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선이 승리를 거둔다. 하커, 미나, 밴 헬싱 교수, 미국인 퀸시 모리스가 흡혈귀를 잡는 것이다. 모리스의 칼이 그의 심장을 찌르는 순간 드라큘라는 재로 변하고 미나는 사악한 저주에서 풀려난다. 이 소설은 독자가 주인공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공포를 향해 들어가고, 이어 악과 싸우는 게임에 동참하게 만드는 전개방식을 쓰고 있다. '드라큘라'는 장르상 독특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고딕 소설의 분위기-무시무시한 비밀을 간직한 지하실이 있는 황폐한 중세의 성과 함께-를 되살리고 있지만 무대는 19세기 말의 근대이다. 이 소설의 일부는 런던을 배경으로 전개되며 최신 의학지식(주로 정신병 분야)도 숱하게 도입된다. 또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룬 것 같은 리얼리티가 높은 소설로도 으뜸 가는 작품이다. 즉, 스토커는 대영 박물관의 자료실에서 흡혈귀뿐만 아니라 트란실바니아의 역사와 지리, 풍습, 민간전승에 관한 자료를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했던 것이다. 이전의 주인공들과 달리, 스토커의 주인공은 전통적인 흡혈귀의 특성을 모두 보여 준다. 그림자가 없고, 마늘과 기독교의 상징물들을 겁낸다. 동물로 변신할 수 있고 밤에만 되살아나며, 오직 피만을 먹고 산다. 물론 불합리하고 어색한 장면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드라큘라'는 공상문학의 대표작임에 틀림없다. 이 소설은 끊임없이 재출판되고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수많은 아류작을 낳았으며, 20세기에 들어서서 더욱 각광을 받은 신화적인 존재를 창조해 냈다. 드라큘라, 교훈적인가 아니면 에로틱한가? '드라큘라'는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엄청난 성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악명을 높이며 광범위한 지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 언론들은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폴 몰 가젯'지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했고, '데일리 메일'지는 차분한 논조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에드거 앨런포의 '어셔 가의 몰락'과 비교했다. '드라큘라'는 초자연적인 공포 이야기를 갈망하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의 독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요소를 빠짐없이 두루 갖추고 있었다.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보여 주어 엄격한 도덕률도 만족시켰다. 게다가 온갖 형태의 사악함을 지니고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악마 드라큘라가 조화로운 영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상황 설정으로, '드라큘라'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외국 것을 혐오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구미에 딱 맞았다. 몇 군데 함축적으로 표현된 이 소설의 과장된 관능성은, 공개적으로 내보일 수는 없지만 엄격한 규범과 도덕률에 갇혀 질식하던 독자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은밀한 윙크였다.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읽어 내려가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교훈적이라는 엉터리 딱지가 붙은 이 소설이 엄청나게 관능적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기까지 했다. 백작이 빅토리아 시대의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다른 주인공들을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신화의 탄생 '드라큘라'는 출판되면서 대환영을 받았지만 저자 생전에는 신화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드라큘라는 셜록 홈즈만한 영광을 얻지 못하고, 브램 스토커는 아서 코넌 도일 경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신화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은 처음에는 무대, 그 다음에는 영화였다. 스토커가 죽은 지 12년 후인 1924년 6월, '드라큘라'가 처음으로 영국의 더비에서 무대 위에 올랐다. 각색은 해밀턴 딘이 맡았다. 그때 드라큘라가 입고 나온 야외복과 검은 망토는 현대 흡혈귀의 표상이 되어 버렸다. 1927년 6월 재공연된 이 연극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해 9월 대서양을 건너가 브로드웨이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주인공 백작 역을 헝가리 배우 벨라 루고시가 맡았다. 4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에서 그는 다시 백작 역을 맡아 주인공의 성격을 완벽하게 소화해, 드라큘라가 신화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보증해 주었다. 스토커의 소설을 각색한 최초의 유성영화는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1931년, 벨라 루고시가 주인공을 맡았다)이다. 이 영화는 현대신화의 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현대의 신화는 진행되어 왔다.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독일의 표현주의자 F.W. 무르나우가 만든 무성영화 '노스페라투'가 있었던 것이다. 토드 브라우닝의 작품 또한 덴마크의 영화제작자 카를 테오도어 드레이어가 '카르밀라'를 원용하여 만든 대작 '흡혈귀'의 그늘에 가리고 말았다. 따라서 현대의 드라큘라 신화가 진정으로 태어난 것은 1931년 할리우드에서였다. 그때 그 장소에서 신화가 태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미국은 역사적으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1929년 월가의 주식거래소의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수백만 명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미국인의 눈에 비친 드라큘라는 경제위기로 빚어진 증오와 고통을 그 어떤 영화 속의 괴물보다도 잘 집약한 결정체였다. 미국인은 이 혐오스러운 이방인을 모든 사회악의 원흉으로 보았다. 특히, 벨라 루고시의 헝가리인 특유의 악센트와 창백한 안색, 메스꺼운 미소를 보며 그런 생각을 더욱 굳혔다. 영화의 자극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까지 드라큘라를 주인공으로 하는 미국의 대중문학이 쏟아져 나왔다. 슬라브어나 독일어 이름을 가진 드라큘라와 그 아류가 집단 무의식 속에 볼셰비즘과 나치즘까지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원래의 신화와 엄청나게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신화의 국제화 195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가 공산권을 제외한 전세계로 파고들었다. '미국식 생활방식'의 하나의 종합편으로서, 드라큘라 신화 역시 해외로 퍼져 나갔다. 흡혈귀 영화가 이탈리아, 에스파냐, 멕시코, 심지어 필리핀에서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는 동안에 드라큘라의 얼굴이 바뀌었다. 1958년 테렌스 피셔가 감독한 '드라큘라'에서 영국 배우 크리스토퍼 리는 전에 벨라 루고시가 맡았던 역을 멋지게 재연했다. 그리고 훗날 론 체이니와 존 캐러딘이 그 역을 재창조하게 된다. 체격 조건이 루고시와 전혀 달랐던 리는 흡혈귀 백작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해냈다. 후리후리한 키에 희끗희끗한 관자놀이, 제왕의 풍모, 품위 있는 태도와 야만성을 고루 갖춘 50대 남성의 매력적인 특징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전의 드라큘라는 기괴하게 젖혀진 입술 밑에 큼지막한 송곳니를 달고 있었다. 리는 스토커의 주인공을 정말 많은 영화 속에서 재현해냈다. 그러다가 그 역할에 지친 나머지 '파리의 흡혈귀'라는 클로드 클로츠의 소설을 각색, 에두아르 몰리네로가 감독한 프랑스 코미디 영화 '드라큘라, 아버지와 아들'에서 스스로 자신을 희화화하고 만다. 어쨌든 한 세대 동안 리와 그 역이 너무나 완벽하게 동일시되는 바람에 그의 뒤를 이어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단순히 그를 흉내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1979년은 드라큘라 영화의 이미지가 분명하게 전환된 해이다.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는 두 편의 상이한 영화가 나온 것이다. 먼저, 독일 감독 베르너 헤르초크의 '흡혈귀 노스페라투'가 나왔다. 이 작품은 일부분 원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노스페라투 역을 맡은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는 무르나우의 영화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막스 슈레크의 분장을 그대로 재현했다. 즉, 대머리에 뾰족한 귀, 커다란 앞니를 달고, 악몽에나 나옴직한 얼굴로 등장한 것이다. 두 번째로 존 배드햄의 '드라큘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연출되었다. 여기서 프랭크 란젤라는 젊고 매력적인 흡혈귀로 분장했는데, 이 역시 관객을 압도하는 매력을 발산했다. 현대의 드라큘라 여기서, '드라큘라'가 흡혈귀 영화의 영감을 준 유일한 소설이 아님을 분명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 르파뉴의 '카르밀라' 역시 영화로 여러번 제작되었고, 그 최고 걸작은 로제르 바댕의 1960년 작 '그리고 쾌락의 죽음으로'일 것이다. 바토리 여백작 역시 영화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여백작을 가장 잘 재현한 여배우로는, 해리 쿠멜이 1971년에 감독한 '빨간 입술'에서 아름답고 수수께끼에 싸인 신비한 얼굴을 선보인 델피네 자이리크를 들 수 있다. 현대영화는 그 장르의 상투적인 표현을 뛰어넘는 파격성을 보이고 있다. 흡혈귀 영화도 1983년 '굶주림'과 1987년의 '어둠 가까이'로 다시 태어났다. 두 영화 모두 완벽한 현대판 흡혈귀를 보여 주고 있다. 영화와 문학, 텔레비전, 만화책 덕분에 브램 스토커에게서 물려받은 이 신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사고방식이 변함에 따라 그 내용도 조금씩 변화를 거쳐 왔다. 오늘날의 흡혈귀는 더 이상 마늘이나 종교적인 상징물을 겁내지 않는 특이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마법과 귀족 칭호, 카르파티아의 성을 잃은 대신 현대의 도시에서 군중 속에 섞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만약 흡혈귀가 피에 굶주린 야행성 포식자로 남아 있다면, 맬혹적인 모습, 심지어 동정을 사는 측면까지도 보여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흡혈귀의 전설이나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변신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흡혈귀는 우리에게-고대의 라미아, 트란실바니아의 산 송장과 마찬가지로-피와 밤, 삶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그 모든 매력과 고뇌를 함께 보여 줄 것이다. 기록과 증언 태양계 너머를 탐험하는 20세기의 마지막 시점에서도 흡혈귀 신화가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 영화, 만화들 다양한 매체로 계속 부활하는 흡혈귀의 매력을 찾아 떠나는 공포 여행! 드라큘라라는 이름의 폭군 "(옛날에) 문테니아(왈라키아, 남부 루마니아) 땅에 그리스정교 신자인 총독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드라큘라였다. 그 이름은 우리말로 '악마'를 뜻한다. 너무나도 사악했던 그의 생애는 이름 그대로였다." 러시아의 연대기 예절 교육 어느날 투르크 제국 외교관들이 그에게 신임인사를 왔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관습대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머리에 쓴 것은 벗지 않았다. 블라드가 물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위대한 군주를 모욕하는 것인가?" 그들은 "이것이 군주에 대한 우리 나라의 관례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블라드가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 관례를 더욱 강화시켜 주겠다. 저들을 꽁꽁 묶어라!" 그는 그들의 터번을 작은 쇠 징으로 머리에 붙박으라고 명령했다. 나중에 그는 그들을 풀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서 너희 군주에게 말하라. 너희 군주는 너희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는 그런 관습이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관습을 원하지 않는 군주에게 자신의 관습을 강요하지 말고 자기나 잘 지키라고." 낙원을 얻는 법 하루는 블라드가 가난과 병으로 고생하는 노인네와 환자는 전부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비로운 조치가 내려질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전국의 거지와 부랑자들이 기대에 전국의 거지와 부랑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블라드는 그들을 임시로 지은 호화스러운 집에 묵게 하고는 원하는 것은 뭐든지 먹고 마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은 실컷 배를 채운 다음 재미있게 놀기 시작했다. 그때 블라드가 그들 앞에 나타나 물었다. '더 원하는 게 있는가?' 그러자 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우리의 군주이시여, 오직 신과 폐하만이 그것을 아십니다. 신이 모든 것을 폐하께 알려 줄 것입니다." "내 조치가 마음에 든다 이건가?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뭔가 더 혜택이 돌아오려나 보다 하고 기대한 그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예! 바로 저희가 바라는 대로입니다, 폐하!" 그러자 블라드는 그들이 묵는 집의 문을 다 잠그고 불을 지르라고 명령했다. 집은 불길에 싸여 잿더미로 변해갔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블라드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저들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내 땅에 사는 이들은 이제 가난한 사람이 없이 모두 부자가 되리라.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난과 병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저들을 해방시켜 주기 위함이 두 번째 목적이었느니라." 선행에 대한 보상 어느 날, 헝가리에서 온 상인이 드라큘라의 도시에 도착했다. 당시의 규율에 따라 그는 자기가 하룻밤 묵을 여관 앞에 마차를 세워 두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마차에서 160다카트 금화를 훔쳐 갔다. 그는 블라드 앞에 나아가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했다. 블라드가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조용히 들어가 있으라. 오늘밤 금화가 돌아올 것이다." 그는 시내를 샅샅이 수색해서 도둑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그 명령에는 만약 도둑을 못 잡으면 전 시가지를 없애버릴 것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그리고 그 상인의 마차에 상인이 잃어버린 양의 금화 외에 동전 한 닢을 더 갖다 놓으라고 시켰다. 다음날 잠에서 깬 상인은 금화를 되찾았다. 두 번을 세어 본 상인은 동전 한 닢이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인은 블라드에게 가서 말했다. "폐하, 금화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제 것이 아닌 동전 한 닢이 더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도둑이 잡혀 왔다. 블라드가 상인을 보고 말했다. "조용히 돌아가라! 만약 네가 동전 한 닢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너를 이 도둑 다음으로 말뚝에 박을 생각이었다." 마테이 카차쿠 '중부와 동부 유럽의 드라큘라 공의 역사', 1988년 세기를 넘어온 흡혈귀 흡혈귀라는 말이 생기기도 이전인 11세기 이래로 망령이나 '걸어다니는 시체'의 존재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망령과 관련된 최초의 사건 가운데 하나가 1304년에 열린 종교회의의 의사록에 언급되어 있다. 이어 샤르트르의 대주교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주 최근, 그러니까 부르주 평의회 직후, 우리 교구의 기사 한 사람이 파문당한 상태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친구와 친척들이 탄원을 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사면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약탈의 죄를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허락없이 사제 한 사람이 장지에 따라갔고, 병사들이 성 베드로 성당 근처에 그를 매장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 시체가 공동묘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땅 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던 것입니다. 병사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수의말고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다시 그를 묻었고, 이번에는 흙과 돌을 무덤 위에 엄청나게 많이 쌓아 올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에도 그 시체가 땅 위로 나와 있었습니다. 무덤은 손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다섯 번이나 매장을 했고, 그때마다 멀리 버려진 시체를 목격하고는 놀랐습니다. 드디어 이것이 무시무시한 일이라고 확신하게 된 병사들은 공동묘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흙을 가져다 시체를 덮었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병사 대장이 지체없이 우리에게 찾아와 화해를 구했습니다." 그 사건에 대해 평의회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최고 중재자가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교들이 파문당한 사람에게 기독교적 매장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모든 면에서 정당하다는 것, 그 사건은 바로 이런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런 사람은 평화보다는 파렴치한 짓에 골몰하면서 신앙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1304년 종교회의 회의록 토니 페브르의 '흡혈귀'(1962)에서 인용 1197년 옥스퍼드의 부주교로 임명된 월터 맵(1140년경-1209년경)은 작가이자 현인이었다. 그는 산 송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아래의 글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강인한 체력과 굳센 용기를 가진 영국 군인 윌리엄 로던이 길버트 폴리옷을 찾아갔다. 폴리옷은 당시 헤리퍼드의 대주교로 있다가 지금은 런던의 대주교로 있는 사람이다. 그때 로던은 폴리옷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주교님, 저는 대주교님의 의견을 듣고자 왔습니다. 최근에 한 웨일스 악한이 저희 집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믿지 않노라고 고백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흘 간격으로 그가 나타나서는 옆집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사흘 안에 죽고 맙니다. 그동안 다 죽고 이제 몇 사람 남지 않았습니다. 깜짝 놀란 대주교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주님께서 악의 천사에게 어떤 힘을 주신 듯합니다. 그래서 시체가 걸어다니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목을 찌르고 성수로 무덤을 정화한 다음 다시 매장하십시오." 로던은 대주교의 말대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산 사람들은 그 유령에게 고통과 공격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이제 몇 사람밖에 남지 않았고, 드디어 윌리엄의 이름이 세 번 불렸다. 용기 있고 대담한 윌리엄은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칼을 휘둘렀다. 악마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달아났다. 윌리엄은 무덤까지 쫓아가 무덤에 누워 있는 악마의 목을 잘라 버렸다. 바로 그 순간, 악마의 저주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윌리엄과 그 어느 누구도 악마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월터 맵 '조신들의 농담', 1182년경-1192년경 몬태규 서머스의 '유럽의 흡혈귀'(1929)에서 인용 맵과 같은 시기의 역사가인 뉴버러의 윌리엄(1136-1198경)은 어떤 면에서는 현대의 흡혈귀와 흡사한 인물을 묘사해 놓았다. 몇 해 전, 신분이 높은 귀부인의 담임 신부가 죽었다. 그는 웅장한 멜로스 수도원에 묻혔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이 신부는 자기 수도회의 서약을 별로 존중하지 않았고, 속인처럼 살다가 죽었다. ... 그가 별로 좋지 않은 평판 속에서 살았다는 것은 그가 죽은 뒤에 일어난 일만 봐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의 죄상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아니 가증스럽까지 하다. 그는 무덤에서 나와 수도원으로 들어가려고 며칠 밤을 노력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해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거나 깜짝 놀라게 할 수 없었다. 그곳에 사는 수도사들의 덕이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 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한때 자신이 담임 신부로 있던 집의 귀부인 침대 곁에 나타나 고통에 찬 이상한 신음소리를 질러댔다. 그런 일이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자 이 귀부인은 공포에 질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그녀는 수도원에 수도사로 있는 오빠를 불렀다. 그녀는 너무나 이상하고 기괴한 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자신을 위해 수도원에서 특별 기도를 올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수도사는 동생을 진정시키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해결책을 찾겠노라고 약속했다. ... 수도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수도사는 신중하고 현명한 동료 수도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두 사람은 건장하고 용기 있는 두 젊은이와 함께 불행한 신부가 묻혀 있는 묘지에 가서 밤새 지켜 보기로 결정했다. ... 자정이 지났는데도 괴물이 움직이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세 사람은 추위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잠시 근처의 오두막에 불을 쬐러 갔다. 귀부인의 오빠인 수도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가 혼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악마는 이 독실한 사람의 용기와 지조를 깰 기회가 왔다고 판단해 무덤에서 몸을 일으켰다. ... 악마가 바로 앞에 나타났을 때 수도사는 자신이 지금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곧 용기를 되찾았다. 그는 추호도 달아날 생각이 없었다. 악마가 엄청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그는 발을 땅에 굳게 딛고 서서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에 맞은 괴물은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몸을 돌려 나타날 때와 똑같이 바람처럼 달아나 버렸다. 용감한 수도사는 온 힘을 다해 무덤까지 뒤쫓아갔다. 무덤은 순식간에 열렸다가 수도사가 다가서는 순간 홱 닫혀 버렸다. 그 사이에 그 무덤의 주인은 잽싸게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 자초지종을 들은 다른 세 사람은 새벽동이 트자마자 저주받은 시체를 파내기로 결정했다. ... 그들이 흙을 다 파내고 시체를 꺼내 밝은 데에서 보니 시체에 커다란 상처가 보였다. 상처에서 나온 시커먼 피가 온통 무덤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시체를 수도원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져가 불에 태운 다음 재를 바람에 날려 버렸다. 뉴버러의 윌리엄 '영국의 역사', 1196년 몬태규 서머스의 '유럽의 흡혈귀'(1929)에서 인용 1717년에 출판된 '르방 여행기'에서 프랑스 식물학자 조제프 피통 드 투르느포르(1656-1708)는 그리스의 섬 미코노스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브리콜라카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장난꾸러기 브리콜라카스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미코노스의 농부 이야기이다. 당연히 기분 나쁘고 말이 많을 문제이기도 하다. 그 농부는 벌판에서 살해되었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마을의 교회에 묻힌 지 이틀 후, 그가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와 가구를 돌려 놓고, 불을 끄며, 또 사람들을 뒤에서 껴안는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그는 갖가지 장난을 벌인다고 했다. 정신착란에 빠진 섬 처음에 사람들은 웃었다. 그러나 마을의 유지들까지 그 일로 괴로워하기 시작하자 사태는 심각해졌다. 교황까지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나름대로 다 근거가 있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미사를 올렸다. 그러나 농부의 장난은 여전했다. 마을의 지도자와 신부, 수도사들이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진 끝에 장례 후 9일이 될 때까지-나로서는 그게 옛날의 의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른다-기다리기로 결정했다. 10일째 되는 날, 농부가 묻혀 있는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되었다. 성당 안에 있는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미사가 끝난 후, 시체를 꺼내 심장을 도려내는 의식을 거행했다. 늙수그레하고 솜씨가 서툰 마을의 정육점 주인은 가슴이 아니라 배를 갈랐다. 그는 한참을 헤맸지만 도무지 심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 횡격막을 절개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드디어 심장을 도려내자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시체의 악취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향을 태워야 했다. 하지만 시체의 악취와 섞인 그 냄새는 너무나 지독했고, 슬며시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환상 속을 헤매었다. 환상의 세계에 빠진 그들은 시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한 줄기 짙은 연기가 난다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감히 그것이 향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성당 안과 앞마당에서 "브리콜라카스!"를 외칠 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망령의 이름이었다. 그 소리가 거리로 퍼져 나갔다. 울부짖음 같은 그 소리에 성당의 기둥이 흔들렸다. 구경꾼 가운에 몇몇은 이 불운한 농부의 피가 정말 붉다고 주장했고, 정육점 주인은 시체가 아직도 따뜻하다고 맹세하기까지 했다. 그런 사실로 짐작건대 이 농부가 진짜로 죽었다기에는 뭔가 부족한, 아니 좀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악마에 의해 부활했다고 그들은 결론지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브리콜라카스에 대해 갖는 관념이었다. 그들은 놀라운 방법으로 그 이름을 퍼뜨렸다. 이어 한 무리의 사람이 도착했는데, 그들은 자기네가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 벌판에서 성당을 가지고 올 때에는 시체가 굳지 않은 상태였다고 큰 소리로 고백했다. 따라서 그것이 진짜 브리콜라카스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브리콜라카스를 마치 후렴구처럼 되풀이해서 중얼거렸다. 만약 그 자리에 우리가 없었다면 이 사람들은 분명 시체에서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정신이 나가 있었고, 죽은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시체에 가까이 접근해서 살펴보려다가 악취에 질려 뒤로 물러설 뻔했다. 그들이 그 시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가 정말로 죽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짓눌린 상상력을 치료해 주기 위해, 아니 최소한 부추기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정육점 주인이 시체의 내장에서 온기를 느낀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장이 썩고 있는 중이므로 따뜻한 건 당연했다. 또 똥덩어리를 휘저으면 냄새가 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리고 벌건 핏덩이로 보이는, 지금도 정육점 주인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악취가 코를 찌르는 혼합물일 뿐이었다. 우리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그들은 해변으로 가서 시체의 심장을 태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렇게 처형을 하고 난 다음에도 사람들은 불안감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더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들은 농부가 밤에 여전히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때리고, 문이나 지붕을 부수고 들어오고, 창문을 깨고, 옷을 찢고, 주전자와 물병의 물을 다 비워 버렸다고 주워섬겼다. 그는 매우 목이 마른 사자였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가 묵고 있는 총독의 집을 빼고 그 사자가 가지 않은 집이 없었던 것 같다. 사악한 마법에 종말을 그들은 브리콜라카스의 시체를 성 게오르기우스섬의 꼭대기로 가져갔다. 그곳에 이미 엄청난 양의 화장용 장작이 준비되어 있었다. 장작이 제대로 타지 않을까 싶어 타르까지 발라 놓았다. 그들은 장작더미 위로 시체를 던졌다. 시체는 순식간에 재로 변해 버렸다(이것이 1701년 1월 1일의 일이다). 우리는 델로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불길을 보았다. 그것은 진짜 환희의 불길이다. 이제 아무도 브리콜라카스에 관해서 불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번에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악마를 확실하게 잡았다며 만족해하고 있다. 그리고 브리콜라카스를 조롱하는 노래도 몇 곡 지었다. 투르느포르의 결론 지금 그 섬의 전 주민은 악마가 시체를 소생시키는 곳은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뿐이라는 말을 믿고 있다. 산토리니섬의 주민들은 늑대인간을 매우 무서워한다. 그리고 미코노스 사람들은 그 환상이 사라진 후 투르크와 티노스의 주교가 고발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시체를 불태울 때 사제는 한 사람도 참석하려 하지 않았다. 혹시 주교가 허락 없이 그 자리에 참석한 것에 대한 벌로 벌금을 요구할까 봐 꺼렸던 것이다. 투르크인들은 미코노스를 처음 방문하면서 그 나라에서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된 악마의 피값을 미코노스 공동체가 지불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일이 있은 지금, 오늘날의 그리스인이 과거의 위대한 그리스인은 아니며 다만 무지와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불과하다는 점을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제프 피통 드 투르느포르 '르방 여행기' 제 1권, 1717년 폴 바버의 '흡혈귀, 매장과 죽음'(1988년)에서 인용 흡혈귀를 서유럽에 널리 알린 것은 의사인 요한 플뤼킹거가 1732년에 작성한 '본 대로 보고받은 대로'라는 보고서이다. 이것은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아르놀트(세르비아어로는 아르노드) 파올레 사건을 다루고 있다. 메드베지아라는 마을의 주민 몇몇이 이른바 흡혈귀에 피를 빨리고 죽었다는 보고가 있은 후 나는... 그곳에 가서 철저히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방면에 정통한 관리 몇 사람과 의료 조수 두 사람이 함께 갔다. 우리는 하이두크(일종의 용병)로 구성된 스탈라트 중대의 중대장에게 현재의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고르시츠 하드나크는 중대장이자 나이가 가장 많은 하이두크였다. 그는 약 5년 전에 아르노드 파올레라는 이름의 한 시골 하이두크가 건초 마차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파올레는 살아 있을 때 사람들에게 가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흡혈귀가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몰라. 나는 흡혈귀의 무덤이 있는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흡혈귀의 피를 몸에 바른다네..." 그가 죽은 후 바로 그 죽은 아르노드 파올레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네 사람이 그의 손에 죽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 끔찍한 사건을 종식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아르노드 파올레가 죽은 지 40일째 되는 날 그의 무덤을 팠다. ... 사람들은 그의 시체가 하나도 썩지 않은 채 온전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깨끗한 피가 그의 눈과 코, 입, 귀에서 흘러나와 있었다. 또 전의 손톱과 발톱은 다 빠지고 새것이 나와 있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가 진짜 흡혈귀라고 믿고, 관습에 따라 그의 심장에 말뚝을 박았다. 그 순간, 그는 들릴 듯 말 듯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피를 엄청나게 쏟았다. 사람들은 그 날 바로 시체를 태워 재를 무덤에 뿌렸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이 흡혈귀에게 고통을 받다가 죽은 사람도 흡혈귀가 된다고 떠들어댔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네 사람의 주검도 같은 식으로 처리했다. 그러고도 그들은 아르노드 파올레가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도 공격, 피를 빨아먹었다는 말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요한 플뤼킹거 '본 대로, 보고받은 대로', 1732년 폴 바버의 '흡혈귀, 매장과 죽음'(1988)에서 인용 1746년에 발표한 논문(영어로는 '유령의 세계:영혼과 허깨비의 역사와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1850년에 출판되었다)에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동 오귀스탱 칼메는 헝가리에서 흡혈귀에 관해 그의 친구가 써 보낸 편지를 인용했다. 흡혈귀와 관련된 칼메 신부님의 질문에 충실히 답변하기 위해서, 서명자는 신부님도 틀림없이 읽었을, 유럽 전역의 잡지에 게재된 공식 기록과 서류가 사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이제까지 나타난 공식기록 가운데서도 특히 고 카를 4세 폐하가 지명하고, 당시 세르비아 왕국의 총독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알렉산더 공작 폐하가 인솔한 베오그라드 대표단의 기록은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본인의 서류가 바로 옆에 없어서 그게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인지 정확하게 적을 수는 없습니다. 공작은 베오그라드를 출발했습니다. 반은 군인, 반은 관리로 구성된 대표단은 왕실 기록관과 함께 몇 년 동안 무서운 흡혈귀가 나타나고 있다는 마을로 갔습니다. 그 흡혈귀는 자신의 친척들 사이에 엄청난 재앙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피를 빨아먹는 것들이 그것들의 가족과 친척 사이에서만 우리 인간을 파괴하는 기쁨을 찾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대표단은 성품이나 학식이 훌륭하고 비난받을 게 없는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선서를 했고, 알렉산더 공작의 근위연대에서 파견된 중위와 24명의 척탄병의 호위를 받았습니다. 공작을 포함해서 베오그라드에 있는 신사들은 전부 이 대표단에 합류, 이제 본인이 밝힐 증거의 진위 여부에 대한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대표단은 15일 동안, 다섯 명의 조카를 둔 흡혈귀가 그 중 세 명과 형제 한 사람까지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흡혈귀는 다섯 번째 희생자로 이미 두 번이나 피를 빨아먹은 아름다운 자신의 질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도착한 대표단은 아래의 조치를 통해 이 슬픈 비극에 결말을 짓게 됩니다. 사람들이 대표단과 함께 베오그라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로 갔습니다. 밤이었습니다.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이 신사는 저에게 자기보다 먼저 죽은 자에게 피를 빨릴 때의 상황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지금의 문제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피를 빨린 후에는 힘이 다 빠지고 피곤했으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그가 매장된 지 3년이나 지난 때였습니다. 그의 무덤 위에서 희미한 등불이 반짝였습니다. 그 무덤을 파헤쳐 보니 안에는 시체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시체는 손상된 데 하나 없이 온전했습니다. 시체를 보고 있는 우리들처럼 건강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머리카락이며 손톱, 이빨, 눈(반쯤 감겨 있었습니다)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장 역시 뛰고 있었습니다. 시체를 무덤에서 꺼냈습니다. 아주 부드럽지만은 않았습니다만 살이든 뼈든 없어진 부분 없이 모두 그대로 있었습니다. 쇠스랑으로 그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러자 피와 함께 하얀 액체가 흘러 나왔습니다. 물론 그 액체보다는 피가 많았습니다. 시체에서는 나쁜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이어 영국에서 처형할 때 쓰는 도끼와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그의 목을 잘랐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심장을 찌를 때와 마찬가지로 하얀 액체와 피가 나왔습니다. 나머지 부분을 빨리 처치하려고 생석회를 무덤에 가득 뿌렸습니다. 두 번이나 피를 빨린 그의 질녀는 그때부터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사람들이 피를 빨린 장소는 아주 푸른 점으로 표시를 합니다. 여러 곳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정확한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상은 가장 정확한 기록에 나와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부분 믿을 수 있는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학덕 높은 칼메 신부님의 호기심을 더욱 완벽하게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본인은 눈으로 직접 본 것들을 상세하게 적어서 성 우르바인의 기사에게 보내 그분에게 전달할 생각입니다. 이 편지를 쓴 일도 즐겁거니와, 그분에게 뷔르템베르크의 고 알렉산더 공의 근위연대에서 대위 겸 부관으로 재직했고, 지금은 트렝크 남작의 연대에서 척탄병 대위로 근무하고 있는, 겸손하고 충직한 하인 L. 드 벨로즈보다 더 숭배와 존경을 받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동 오귀스탱 칼메 '망령의 출현과 흡혈귀에 관한 논문', 1746년 프랑스 낭만주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프로스페르 메리메(1803-1870년)는 세르비아를 여행하던 중 흡혈귀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증언 그날 밤, 그 집의 두 여자는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한 시간 전에 나갔다. 나는 주인을 위해 그 나라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침실에서 무시무시한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당시 풍습대로 한 하인이 남아서 모든 시중을 들고 있었다. 후닥닥 무장을 하고 달려간 우리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어머니가 부들부들 떨면서 더욱 안색이 창백한 딸을 붙잡고 있었다. 딸은 이미 혼절해 침대로 쓰는 건초더미 위에 쭉 뻗었다.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흡혈귀가! 흡혈귀가! 우리 아이를 죽이려고 했어요." 우리는 어머니를 불쌍한 카바에게서 겨우 떼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에 수의로 몸을 감싼 남자가 창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을 덮쳤다고 했다. 그리고 목을 조르다가 물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비명을 지르자, 유령은 사라지고 자기는 기절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흡혈귀가 15일 전에 죽은 비차니 마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목에는 작고 붉은 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것이 원래 있던 반점 같은 것인지, 아니면 벌레 같은 것이 물은 자국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 새벽이 되자 온 마을이 소란해졌다. 남자들은 총과 도끼로 무장했고, 여자들은 시뻘건 인두를 가지고 왔으며, 아이들은 돌과 막대기를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저주의 소리를 지르며 공동묘지로 몰려갔다. 나는 분노한 군중 틈을 뚫고 무덤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 시체를 덮은 수의를 벗기는 순간,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옆에 있던 한 여자가 지른 소리였다. 나는 머리카락이 온통 곤두섰다. "저건 흡혈귀야! 벌레가 먹지 않았잖아." 이어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 말을 되풀이했다. 동시에 20정의 총구에서 발사된 총탄이 시체의 머리를 박살내 버렸다. 카바의 아버지와 가족이 긴 칼로 시체를 난도질했다. 여자들은 엉망이 된 시체에서 흘러 나오는 빨간 피를 천에 묻혀 카바의 목에 문질렀다. 한편, 젊은이 몇 사람이 총탄에 벌집투성이가 된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소나무 줄기에 꽁꽁 묶었다. 그리고 그 집 맞은편의 과수원으로 질질 끌고 갔다. 동네 아이들이 전부 그 뒤를 따라갔다. 거기에는 이미 장작과 짚이 마련되어 있었다. 불을 지르고 시체를 던졌다. 사람들은 그 둘레에서 원을 지어 춤을 추면서 악을 써댔다. ... 사람들은 축 처져 있는 카바의 목에 피로 보이는 시뻘건 액체가 묻은 악취 나는 천조각들을 감아 주었다. 불쌍한 카바의 반쯤 드러난 목과 어깨는 그 시뻘건 색과 대비되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프로스페르 메리메 '라 구즐라', 1827년 토니 페브르의 '흡혈귀'(1962)에서 인용 합리주의자들의 반응 계몽주의 시대의 새로운 합리주의 정신을 받아들인 18세기의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들은 온갖 출판물과 과학논문들에 등장하는 흡혈귀 이야기에 강력하게 비난을 퍼부었다. 저명한 프랑스 풍자가 볼테르는 '철학사전'의 '흡혈귀' 항목에서 피를 빨아먹는 망령에 대한 미신을 마음껏 조롱했다. 흡혈귀를 믿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이런! 이 18세기에 흡혈귀가 존재한다고?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 로크의 제자인 안토니 애실리 쿠퍼 샤프츠베리, 트렌차드, 그리고 신학자인 안토니 콜린스의 시대가 지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소리를, 장 르 롱 달랑베르와 드니 디드로, 생 랑베르, 뒤클로스가 건재하고 있는데 흡혈귀가 있다고 믿는단 말인가? 존경하는 동 칼메 신부, 1년에 10만 리브르의 수입을 올리는 성당의 주임신부이며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사인 그가 흡혈귀의 역사에 관해서 소르본 대학의 승인을 받은 책을 출판했다고 해서 그걸 믿는단 말인가? 흡혈귀는 밤이면 무덤에서 나와 살아 있는 사람의 목구멍이나 위장을 통해 피를 빨아먹고 다시 무덤으로 돌아가는 시체였다. 피를 빨린 사람은 기운이 빠지고 창백해지며 무기력증에 빠졌다. 한편, 그 시체는 갈수록 살이 찌고 혈색이 좋아지며 멋진 식사를 즐겼다. 죽은 자가 이처럼 멋진 축제를 즐긴 것은 폴란드와 헝가리, 실레지아, 모라비아, 오스트리아, 로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는 흡혈귀가 런던이나 파리에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이 두 도시에는 벌건 대낮에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주식 중개인, 사업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한 사람일지언정 죽은 자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 진짜 피를 빨아먹는 자는 공동묘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호사스러운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사제들이야말로 유일한 진짜 흡혈귀이다 죽은 후에도 자신에게 진수성찬을 바치도록 한 것은 페르시아 왕이 처음이라 한다. 지금의 왕들 역시 유사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 왕의 정찬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은 사제들이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왕은 흡혈귀가 아니다. 진짜 흡혈귀는 왕과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제들이다. 성 스타니슬라우스(폴란드의 수호 성인:역주)가 폴란드의 귀족에게 땅을 사고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자, 귀족의 상속인이 그를 고발했다. 그가 볼레슬라스 왕 앞에 불려 나오게 되자 그 귀족을 소생시켰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벌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땅을 판 사람에게 포도주 한 잔도 주지 않는 바람에 그 망령이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고 명계로 돌아갔다는 말은 없다. 그 후 사람들은 과연 파문 당하고 죽은 흡혈귀가 사면될 수 있는가 하는 엄청난 질문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이것은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라 하겠다. 나로서는 그 문제에 관해 의견을 낼 정도로 신학에 관한 조예가 없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사면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의심스러운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온건한 해결책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은 없다! 그 일의 결과 유럽의 상당 지역이 5-6년간 흡혈귀 소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소동은 없다. 또 프랑스에서도 20년 동안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논쟁은 없다. 또 1,700년 동안 마귀 들린 사람이 있었다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사람은 없다. 그리스 신화 이래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사람은 없다. 최근까지도 에스파냐와 포르투칼, 프랑스, 시실리섬에 위선자들이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사람은 없다. 볼테르 '철학사전', 1764년 1755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수석 주치의였던 게라르트 판 슈비텐이 자신의 고용주에게 흡혈귀에 대한 믿음을 비난하는 편지를 보냈다. 영국의 흡혈귀 몇 달 전, 저는 1751년에 런던에서 출판된 소책자를 읽어 보았습니다. 유명한 사건을 잘 정리해 놓은 책이었습니다. 1750년 2월, 데번셔 지방의 오래된 가족묘지가 발굴되었습니다. 뼈와 관이 무수히 나왔는데, 그중 온전한 목관 하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호기심에서 그것을 열어 보았습니다. 안에는 한 남자의 시신이 온전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피부는 생전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어깨, 목, 손가락의 관절도 살아 있는 사람의 것처럼 유연했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눌렀을 때에는 손가락이 들어갔지만, 손을 떼자마자 피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몸 전체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시커먼 수염은 10cm나 자라나 있었습니다. 시체는 방부처리도 되어 있지 않았고, 절개된 흔적 하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의 흡혈귀입니다. 이 흡혈귀는 무덤 속에서 80년 동안 평화롭게 쉬면서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미신, 무지의 딸 이제 흡혈귀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제시된 사실들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로시나 이올라킨은 1754년 12월 22일 사망했고, 1755년 1월 19일 발굴되어 흡혈귀 판정을 받고 불에 태워졌습니다. 무덤 속에 온전하게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해부학자들은 겨울에는 시체를 5주간 외부에 그대로 노출시켜 둡니다. 심지어 2개월 동안 그대로 두기도 하는데, 그래도 시체는 전혀 부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추위가 특히 혹독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땅에서 파낸 시체는 대부분 이미 부패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완전하게 부패하지 않은 것이 나왔으니 그런 시체를 얼른 불태운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 무지함이란! ...후일, 그들이 관리들에게 스스로 고백한 바에 따르면, 바싹 마른 시체는 본 적도 없고 인체구조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두 명의 소독 전문가 '외과의사'가 시체를 불태우라는 판정을 내린 증인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엉터리 사실을 근거로 이 모든 이야기가 날조된 것이며, 신성이 모독되었고, 무덤의 성스러움이 침해당한 것입니다. 사자와 그 가족에 대한 불신도 쌓여 갔습니다. 가족은 그런 폐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 뻔합니다. 아무 죄도 없는 어린아이가 처형인의 손에 넘겨지고, 이 세상에 아무 해도 미치지 않은 사람이 단지 마녀로 추정되는 어떤 것이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이유 때문에 무덤에서 파헤쳐지는 불운을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녀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시체는 처형자의 손에 넘어가 한 줌 재로 변하고, 그 판결은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심한 처벌을 강조했습니다. 그것들과 같은 종류에게 본보기를 보인다고 아주 불명예스럽게 화형에 처한 것입니다. 게라르트 판 슈비텐 로제르 바댕의 '흡혈귀의 역사'(1963)에서 인용 시가 속의 흡혈귀 산문문학에 도입되기 전의 흡혈귀-정확하게 말하자면 흡혈귀의 모습으로 나타난 요부-는 유럽 전역의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97년 '코린트의 신부'를 썼다. 그 대단원에서 소녀의 망령은 자신의 연인에게 자기의 정체를 드러낸다. 돌연 공포에 질린 젊은 연인이 소녀를 보호하려 얇은 베일을 씌우고 융단을 덮어 가리운다. 그녀는 금방 풀어 헤친다. 남김없이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사지를 길게 늘어뜨린 그녀가 천천히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낮고 어두운 그녀의 음성- "당신은 내가 신랑 곁에서 밤을 보내 못마땅하신가요?" 아득하고 아득한 기다림으로 인도하려 내 운명의 눈을 뜨게 하셨나요? 수의를 입히던 당신의 맹세가 신에게 미치지 않아 이렇게 빨리 무덤에서 나를 불러 내셨나요? ... 예전에 그 사람은 나에게 맹세했어요. 그러자 비너스 여신의 사랑의 신전이 다시 이 땅에 세워졌지요. 어머니, 그런데 당신은 약속을 어겼어요. 야만적이고 아무 가치 없는 서약을 지키기 위해! 어느 신이 용서하겠어요. 어머니가 자기 딸의 손을 뿌리치는 것을. 나는 침묵의 묘에서 왔어요. 잃어버린 기쁨을 찾아서- 내가 한 줌의 재가 될지라도 내 곁을 떠난 그를 아직도 사랑해요. 그의 심장에서 열렬히 생명의 피를 빨았어요. 곧 그는 죽고 다른 이들은 유혹에 빠져 젊은이들은 내 욕망의 제물이 되고 아름다운 젊은이여, 이제 그대의 날은 다하였도다! 그대는 이제는 곧 이곳에서 기운이 다하여 죽을 거예요. 나는 그대에게 목걸이를 징표로 주나니 대신 그대의 머리채를 언약의 표시로 가져갈게요. 지금 잘 봐 두세요. 내일은 잿빛으로 변하고 무덤 속에서나 갈색으로 될 테니. 어머니,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꼭 들어 주세요. 불을 피워 주세요! 이렇게 부탁합니다! 숨막히는 내 무덤을 열고 불길 속에 던져진 연인들을 뉘어 쉬게 해주세요! 불꽃이 타오를 때, 재에서 열기가 끓어오를 때 고대의 신들이 하늘에서 환호할지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코린트의 신부'에서 1857년,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 출판될 예정이었다. 그중 여섯편은 검열관이 비도덕적이고 외설적이라 하여 삭제한다. 아래의 '흡혈귀의 변형'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다.(후일 재판에 수록했다.) 그 사이 여인이 몸부림치는 뱀처럼 몸을 뒤틀고 있다. 그리고는 코르셋의 가슴 부분 위로 젖가슴을 꽉 움켜쥔다. 그녀의 입에서 한 마디 한 마디가 사향처럼 퍼져 나온다. "내 입술은 촉촉해요. 내 입술로 어떻게 하는지 나는 알지요. 양심도 이불 속 어딘가로 사라지지요. 노인네도 어린아이처럼 웃게 만들고 내 가슴 위에서는 어떤 눈물도 다 말라 버리죠. 존경하는 학자님, 내가 열어 주는 쾌락의 세계는 달콤하기 짝이 없답니다. 나의 운명적인 포옹을 받은 남자는 수줍은 듯 방탕하고, 부드러운 듯 단단한 내 젖가슴을 이로 물고는 황홀해서 정신을 잃지요. 무력한 천사들은 나를 보면 저주할 거예요!" 그녀가 내 뼈에서 골수를 빨아먹었을 때, 나는 기운이 다 빠져 그녀에 기댔다. 그녀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키스를 하려고 할 때 내가 본 것은 고름이 가득 찬 더러운 술 포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섬뜩한 공포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낮의 햇빛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에는 내 피를 그렇게 깊이 빨아들이던 인형처럼 예쁜 여인 대신 해골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바람개비 소리처럼, 겨울 밤 세찬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장대에 매달린 낡은 표지판처럼 삐걱거리고 있었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악의 꽃' 산문 속의 흡혈귀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 영감을 준 '드라큘라'는 근대의 흡혈귀 신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19세기 문학의 두 걸작에서 드러나듯이 남자만은 아니었다. 프랑스 작가이자 비평가인 테오필 고티에의 1857년 작 '죽은 연인'이 그러하고, 1872년 작인 아일랜드 소설가 조지프 셰리단 르파뉴의 단편 '카르밀라'가 또한 그러하다. '드라큘라' 우리의 주인공 조너선 하커는 트란실바니에 있는 드라큘라 백작의 성으로 파견된다. 그는 고객의 이상한 행동을 일기로 쓴다. 드라큘라의 환대를 받는 하커 노인은 오른손을 들어 아주 정중하게 손짓했다. 그리고 억양은 조금 어색하지만 영어를 훌륭하게 구사했다. "내 집에 온 것을 환영하오!" 그는 나를 맞으러 앞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돌로 변하기라도 한 듯 뻣뻣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내가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갑자기 앞으로 나와 내 손을 잡았다. 손아귀의 힘이 너무 강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릴 정도였다. 그는 손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손 같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망설이지 말고 들어오고, 무사히 돌아가시오. 당신이 가져온 행복이 있으면 조금 남겨 두고!" 나는 미심쩍은 듯이 물어 보았다. "드라큘라 백작님?"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드라큘라요. 환영하오, 하커 선생. 들어오시오. 밤바람이 차구려. 먼저 뭘 좀 먹고 쉬어야 할 거요." 드라큘라의 초상화 그의 얼굴은 가느다랗게 높이 솟다가 이상하게 굽은 매부리코에 동그란 이마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관자놀이 주위에는 머리숱이 듬성듬성 있었지만 다른 곳에는 무성했다. 엄청나게 긴 양쪽 눈썹이 금방이라도 코에 닿을 듯 가까이 붙어 있었다. 숱이 많은 콧수염 아래로 유별나게도 흰 뻐드렁니와 함께 겨우 보이는 입은 단호한, 아니 어떻게 보면 잔인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그 나이 또래의 노인치고는 놀랄 정도로 활기 있어 보였다. 아주 새하얀 귀는 윗부분이 극단적으로 뾰족했고, 단단해 보이는 턱과 살이 없는 볼은 강인한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비정상적으로 창백한 얼굴이었다. 조금 전에 불빛에 비친 그의 손등을 슬쩍 보았을 때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그의 손은 하얗고도 고와 보였다. 그러나 지금 가까이서 보니 그의 손은 아주 거칠며 넓적했다. 손가락은 짤막했다. 그런데 말하기도 이상하지만, 넓적한 손바닥 한가운데에 터럭이 나 있었다. 손톱은 길고도 잘 다듬어져 있었고, 끝이 뾰족했다. 백작이 내 쪽으로 몸을 기대면서 손으로 나를 건드리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숨냄새가 고약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참으려 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백작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도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뻐드렁니가 눈에 띄게 드러났다. 그는 벽난로 가의 자기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동터 오는 새벽의 첫 빛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이 묘한 적막에 싸여 있었다. 문득 계곡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수가 제법 많은 것 같았다. 늑대소리를 듣는 백작의 눈이 반짝 빛을 냈다. "저 소리 좀 들어 보시오. 밤의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소리를!" 드라큘라, 흡혈귀의 본성을 드러내다 잠자리에 든 지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면도용 거울을 창틀에 걸어 두고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창가로 갔다. 막 면도를 시작하는 순간, 어깨 위에 손이 와 닿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백작의 목소리를 들었다. "좋은 아침이오." 나는 깜짝 놀랐다. 거울에 방 전체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놀란 나머지 살을 베고 말았지만 그 순간에는 의식하지 못했다. 백작의 인사에 대답한 후 나는 다시 거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도대체 왜 못 알아보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실수할 리가 없었다. 그가 바로 내 옆에 서 있고, 어깨 너머로 분명히 그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거울에 비치지 않았다! 등 뒤의 방 안 모습은 분명히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나말고는 사람의 자취가 없다. 그동안 이상한 일이 많았지만 이번 일이 제일 놀라웠다. 백작이 옆에 있을 때마다 느끼던 막연한 불안감이 이제는 먹구름처럼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상처에서 나온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껴졌다. 나는 면도기를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얼핏 반창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백작이 내 얼굴을 보는 순간, 그의 눈에 일종의 흉포한 분노가 번뜩였다. 동시에 그는 불쑥 손을 내밀어 내 목을 잡았다. 내가 뒤로 물러나자 그의 손이 십자가 상에 떨어진 핏방울에 닿았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홱 바뀌었다. 언제 그런 내색을 했는지조차 모르게 얼굴에서 분노의 빛이 사라지고 없었다. 드라큘라, 벽을 타고 기어가다 내가 본 것은 창문에서 나오고 있는 백작의 머리였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목이며 등과 팔의 움직임으로 볼 때 분명 그였다.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그동안 살펴볼 기회가 유달리 많았던 손이 틀림없이 그의 것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놀라움 반이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흥미를 느끼는게 당연하니까. 그렇지만 창문에서 빠져 나와 몸통 전체를 온전하게 드러낸 그가 성벽을 따라 내려가는 것을 보는 순간 공포와 혐오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는 얼굴을 아래로 향한 채 망토를 마치 커다란 날개처럼 펼치고 무시무시한 심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게 달빛이나 그림자의 조화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환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반들반들해진 돌모서리를 꽉 잡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그는 돌출된 부분이나 이가 안 맞는 부분을 잡고 엄청난 속도로 내려갔다. 마치 벽을 따라 움직이는 도마뱀 같았다고나 할까? 관 속에 누워 있는 드라큘라 바로 그 자리에 큰 상자가 있었다. 벽 가까이에, 뚜껑이 얹혀 있는 상태였다. 못질은 하지 않고 다만 못이 꽂혀 있기만 했다. 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시체를 살펴보기로 했다. 상자의 뚜껑을 들어 올려 옆에 세워 놓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내 온 영혼이 공포로 곧 터질 것만 같았다. 바로 거기에 백작이 누워 있었다. 허연 머리카락과 수염이 젊음을 반쯤은 되찾은 듯 짙은 회색이었고 뺨은 더 통통했으며, 하얀 피부 밑으로 선홍색이 비쳤다. 또 입술이 정말 붉어 보였는데 입가에는 핏방울이 묻어 있고, 목과 뺨에도 혈흔이 남아 있었다. 눈꺼풀이며 눈 아래 처진 살이 부풀어오른 탓에 깊고 불타는 듯한 눈동자가 두툼한 살 속에 파묻혀 있었다. 이 무서운 존재가 피를 실컷 먹은 것 같았다. 피를 질리도록 먹고 지쳐 누워 있는 더러운 거머리처럼. 영국에 온 드라큘라는 미나 하커를 강제로 흡혈귀로 만든다. 후에 그녀는 남편과 밴 헬싱 교수에게 그 무서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피의 세례 "조롱하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그 사람이 제 어깨 위에 한 손을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다른 손으로 제 목을 드러내며 말했어요. '먼저 노력의 대가로 내가 회춘해야겠어. 당신은 조용히 있는게 좋아. 당신의 피가 내 입맛을 돋우는 게 이번이 처음도 두 번째고 아니지!' 저는 너무 당황했고, 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사람을 저지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게 바로 그 사람의 손길이 닿을 때 내리는 무서운 저주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세상에, 너무나 무서웠어요! 그 사람이 그 냄새나는 입을 내 목에 갖다 댄 거예요." 그녀의 남편이 다시금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그녀는 그가 상처받은 사람인 양 그를 동정하는 눈길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온몸의 힘이 쭉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어요. 반쯤 기절한 상태였지요. 그 무서운 일이 얼마나 오래 계속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것만큼은 분명해요. 그 사람이 더럽고 끔찍하고 비웃는 듯한 입을 떼냈을 때, 저는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어요!" 그 날의 악몽 같은 기억으로 그녀가 축 늘어졌다. 남편이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필시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사람은 조롱하듯이 말을 던졌어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에게 대항할 수 있어. 또 그 사람들이 나를 사냥하고 내 계획을 좌절시키는 것도 도와 줄 수 있어. 내 앞길을 막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알고 있고, 그 사람들도 전에는 일부만 알았지만 머지않아 다 알게 되겠지. 그들에게 사용할 힘이 있으면 집 가까이에서 써먹게 비축해 두어야 해. 그들이 태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수많은 나라를 움직였고, 음모를 꾸미고, 전투를 치른 나한테 덤비겠다고 머리를 써 봐야 도로 역이용당하고 말 뿐이야. 그리고 당신, 그들이 제일 사랑하는 당신은 이제 나에게 살 중의 살이요, 피 중의 피요, 동족 중의 동족이야. 당분간은 내 충분한 포도주 통으로 있겠지만 곧 내 동반자, 협력자가 되겠지. 당신도 언젠가 복수를 당할 차례가 올 거야.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닌, 당신의 욕구에 따르다 보면 말이지. 하지만 당신은 과거의 과오로 처벌을 받게 될 거야. 당신은 나를 방해했거든. 이제는 내 명령에 따를 거야. 내 머리가 '오라!'고 말하면 당신은 바다를 건너서건 땅을 건너서건 오게 되어 있어. 그럼 먼저 이걸 해 볼까!' 그 사람은 셔츠를 풀어 젖히고 길고도 뾰족한 손톱으로 가슴의 혈관 하나를 터뜨렸어요. 그 사람은 내 양손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내 목을 잡았어요. 그리고 내 입을 그 상처에 갖다 댔어요. 숨이 막혀 죽지 않으려면 그걸 삼켜야 했어요.-하느님 맙소사!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나요? 내가 무슨 짓을 했기에 그런 운명에 빠진 걸까요? 순박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한 죄밖에 없는 내가.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죽음의 운명보다도 더 지독한 운명에 빠진 불쌍한 영혼을 굽어 살피소서!" 그녀는 입술을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죄가 씻기기라도 하듯.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 1897년 '죽은 연인' 이 작품의 화자인 젊은 사제 로무알은 고급 매춘부 클라리몽드의 임종미사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는 그 젊은 여인이 이미 죽은 뒤였다. 클라리몽드의 임종 고백해도 될까요? 죽음의 그림자가 축성을 내리고 더욱 세련되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녀의 완벽한 모습에 훨씬 더 관능적인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영면하고 있지만 그 모습은 마치 잠자는 것 같아 누가 보더라도 속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가 전에도 임종미사 때문에 그곳에 간 적이 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젊은 남편이 되어 신부가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했습니다. 신부는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는 절대 보여 주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슬프고, 또 한편으로는 기쁘다 못해 미칠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 공포와 열락에 몸을 떨며 나는 몸을 굽혀 수의 자락을 들어올렸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혹시 그녀가 깨지 않을까 숨소리를 죽여 가며, 혈관이 뛰었습니다. 관자놀이에서 피가 뛰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대리석을 들어올리기라도 하듯 눈썹에 땀이 맺혔습니다. 정말 클라리몽드였습니다. 내 서품식날 성당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창백한 뺨, 희미하게 붉은 빛이 도는 입술, 하얀 살결에 길고 긴 속눈썹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표정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수에 찬 순결과 애수 띤 고통의 표정이었습니다. 아직도 몇 개의 작은 파란 꽃들이 꽂혀 있는 풀어 내린 그녀의 긴 머리칼이 베개가 되어 머리를 감싸며 은근히 드러난 어깨를 살짝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하느님보다 더 순수하고 더 투명한 그녀의 손이 경건한 영면의 자세로 포개져 있었습니다. 진주 팔찌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부드럽고 뽀얀 살결이 맨살 그대로 드러난 팔은 너무나도 강렬한 유혹이었습니다. 흡혈귀가 된 클라리몽드는 로무알을 유혹한다. 그녀의 사악한 유혹에서 친구를 구하기 위해 세라피옹 신부는 그를 묘지로 데리고 간다. 클라리몽드의 최후 마침내 세라피옹 신부가 곡괭이로 관을 내리찍었습니다. 낭랑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가 관을 열었고, 나는 클라리몽드를 보았습니다. 대리석처럼 창백한 얼굴로 양손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하얀 수의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지런히 덮여 있었습니다. 그녀의 새하얀 입술 가에서 빨간 피 한 방울이 장미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세라피옹이 격분을 터뜨렸습니다. "아, 이 악마! 부끄러움도 모르는 매춘부, 그래, 여기 있었군! 피와 황금을 마시는 것!" 세라피옹은 시체와 관에 성수를 엄청나게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관 위에 성수로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불쌍한 클라리몽드에게 성수가 닿자, 그녀의 사랑스러운 육체는 먼지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재밖에 없었습니다. 냉정한 신부가 입을 열었습니다. "자, 이게 자네의 연인일세. 친애하는 로무알이여, 이래도 자네의 연인과 함께 리도와 푸시노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 안에서 뭔가가 부서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클라리몽드의 연인 로무알이 그토록 오랫동안 이상한 동반관계를 유지했던 불쌍한 사제의 곁을 떠난 것입니다. 바로 그 다음날 나는 클라리몽드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성당 현관 아래서 처음 만났던 날처럼 말했습니다. "불쌍한 사람! 불쌍한 사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왜 그 어리석은 신부의 말을 들은 거죠?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던가요? 꼭 그렇게 내 무덤을 비참하게 모욕하고 내 허무함을 드러내야 했나요? 우리 두 사람의 영혼과 육체가 맺었던 그 모든 것이 이제는 다 깨져 버렸어요. 안녕, 당신은 날 그리워하게 될 거예요." 그녀는 한 줄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고, 나는 두 번 다시 그녀를 보지 못했습니다. 테오필 고티에 '죽은 연인' '카르밀라' 은퇴한 후 스티리아에 있던 한 영국 노병의 딸인 로라는 오스트리아 중부지방에 갔다가 아버지가 데리고 온 신비의 여인 카르밀라에게 끌린다. 그녀는 새로운 친구에게 한눈에 반해 괴로운 관능에 휩싸여 간다. 알쏭달쏭한 이야기 나는 그녀에 관해 아주 모호한 세 가지 사항만을 알아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첫째, 그녀의 이름은 카르밀라라는 것. 둘째, 그녀의 가족은 아주 오랜 가문이며 귀족이라는 것. 셋째, 그녀의 고향은 서쪽에 있다는 것. 그녀는 가족의 성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문의 문장이 어떤 것이며, 영지의 이름이나 나라 이름도 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점만은 확실히 말해 두고 싶습니다. 즉, 그녀는 말하려고 하지 않았고, 나는 얼마 안 있어 그녀를 추궁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할 때, 그리고 결국은 다 알게 될 그 많은 전제와 내 명예에 대한 신뢰를 표시할 때는 너무나도 정열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감히 더 물어 볼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늘 자기의 아름다운 팔을 내 목에 걸쳤습니다. 그리고 나를 꼭 끌어당겨 뺨을 붙이고 입술을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귀여운 것, 네 작은 심장이 상처를 입었구나. 난 내 강점과 약점을 지배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따르는 거니까 나를 잔인하다고는 생각하지 마. 네 귀여운 심장이 상처를 받으면 내 사나운 심장도 너와 함께 피를 흘려. 나는 네 따뜻한 생명 속에서 살아. 그리고 너는 내 속에서 죽어. 죽는다구. 아주 달콤한 죽음이지. 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너에게 접근하듯이 너 역시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게 돼. 그리고 그 잔인함의 황홀경을 배우게 될 거야. 하지만 그게 바로 사랑이야.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나와 내 모든 것에 관해서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게 되지. 하지만 넌 진정으로 나를 믿게 될 거야." 긴 독백을 끝낸 후 그녀는 떨리는 품 속으로 나를 바싹 끌어당긴 다음 내 뺨 위에 입술을 대고 부드러운 키스를 퍼부어 댔습니다. 로라의 고통과 악몽 잠을 자고 있노라면 이상하고도 몽롱한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먼저 목욕을 할 때나 강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 느끼는 유쾌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차가운 흥분감이 찾아듭니다. 뒤이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꿈들이 이어집니다. 너무나 흐릿해 그것이 어떤 장면인지, 어떤 사람이 등장했는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꾸고 났을 때의 느낌만은 너무나도 뚜렷했습니다. 뭔가 엄청난 위험을 겪은 듯 허탈감이 엄습했습니다. 꿈을 꾸고 났을 때 어딘지 아주 어둔 곳에 갔었다는 것, 누군지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과 말을 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기억났습니다. 아주 맑은 목소리였습니다. 여자였습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경건함과 공포를 자아내는 그 목소리는 저 멀리서, 그리고 천천히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내 뺨과 목을 손으로 부드럽게 만지는 듯한 느낌도 왔습니다. 부드러운 입술로 키스를 하고, 더 오래 그리고 더 부드럽게 내 목에 키스했습니다. 그러나 애무는 그곳에서 멈추었습니다. 내 가슴의 고동이 더욱 빨라지고 숨결이 거칠어지다가 어느새 진정되었습니다. 나지막한 외마디 비명을 토하고 나면 목이 죄는 듯한 답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무서운 발작이 일어나면서 모든 감각이 사라졌고, 나는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이상한 증상이 일어난 지 벌써 3주가 지났습니다. 지난 주부터는 그 고통이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이 퀭하니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답답함이 표정에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농부들처럼 신음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흘 이상 아픈 적도 없고, 그 이상을 아프면 죽음이 찾아와 고통을 끝내 주니까요. 카르밀라 역시 꿈과 감각에 대해서 불평을 했지만, 나처럼 놀라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 꿈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내 상태를 알 수만 있었다면 무릎을 꿇고 도움을 간청했을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효력을 가진 최면제가 나에게 작용을 하고 있었고, 내 지각력은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나는 어둠 속에서 익히 듣던 목소리 대신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동시에 무시무시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어머니는 너에게 암살자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빛이 번쩍였습니다. 그 빛 속에서 카르밀라가 내 침대 발치에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뺨에서 발끝까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조지프 셰리단 르파뉴 '카르밀라' '르파뉴의 유령이야기 선집', 1964년 '흡혈귀와의 인터뷰' 1976년, 미국의 대중작가 앤 라이스는 일련의 가상 '연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얼마 안 있어 그녀의 이름을 전세계에 널리 알려 주었다. 금세기를 장식할 악마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프랑스에서 추방된 흡혈귀 레스타트였다. 앤 라이스는 브램 스토커가 떠난 곳에서 출발하여, 시대를 초월한 이 신화에 20세기의 옷을 입혀 놓았다. 악마의 회상 1970년대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흡혈귀가 인터뷰를 했다. 루이스라는 이 흡혈귀는 무척 겁먹은 소년에게 자기가 어떻게 해서 1791년 루이지애나에서 레스타트에 의해 흡혈귀가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루이스는 레스타트의 두 번째 방문을 이렇게 설명한다. "누나도 잠든 지 오래였어. 그 사람이 정원에 들어오더군. 큰 키에 금발머리, 살결이 유달리 흰 남자였어. 몸놀림이 마치 고양이 같았지. 그는 누나의 눈 위에 부드럽게 숄을 덮고는 램프의 심지를 낮추었단다. 그때 누나는 세면기 옆에서 졸고 있었지. 내 얼굴을 닦아 주던 수건이 옆에 떨어져 있었고, 누나는 아침이 될 때까지 그 숄을 덮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난 이미 변해 있었지." "어떻게 변했는데요?" 소년이 물었다. 흡혈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벽을 쳐다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 사람이 의사거나 아니면 가족 가운데 누가 나를 달래라고 부른 사람인 줄 알았지. 그런데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졌지. 그가 내 침대로 와서 나를 내려다보는 순간 나는 알았어. 램프에 비친 그 얼굴이 보통 사람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회색 눈이 빛을 뿜고 어깨에 그저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길고 하얀 팔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 그가 하는 말도 전부 무의미했고, 내 말은 내가 그와 그 이상한 광채를 보고, 그는 내가 아는 생물이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거야. 비정상적인 인간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던 내 자아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거지. 내 모든 생각, 심지어 죄의식이나 죽고 싶다는 마음까지도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느껴졌어. 나는 완벽하게 나 자신을 잊어버렸어!" 그는 가슴을 쓸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완전히 내 자신을 잊어먹은 거지.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가능성의 의미를 깨달았어. 그 순간부터 나는 시간이 갈수록 놀라운 경이로움을 경험했지. 그가 나한테 말을 걸고, 내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의 삶이 어떠했고 어떻게 견뎌 왔는지를 이야기했을 때, 내 과거는 그저 불씨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어. 나는 저만치 떨어져 내 삶을 바라보았어. 자만심에 가득 차서 언제나 화만 내고,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에게 말로만 복종하고, 기도서에는 성인들의 이름을 가득 써 놓았지만 편협하고 물질만 쫓는 이 이기적인 존재가 아무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 소년의 얼굴에 혼란과 놀라움의 빛이 역력했다. "그래서 흡혈귀가 되기로 결심했나요?" 흡혈귀는 잠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결심했다? 그건 정확한 말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 사람이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도 없고, 하지만 내가 결심했다고도 말할 수는 없어. 이렇게 말하면 될까? 그 사람이 말을 마치는 순간, 다른 결정이 불가능했다고. 그리고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갈 길을 갔다고." 레스타트의 악마 같은 매력에 빠진 루이스는 그를 도와 살인을 하고 이어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그 사람은 오른팔을 내 어깨에 두르고 나를 자기 가슴으로 끌어당겼지. 전에는 그렇게 가까이 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희미한 불빛에도 그의 눈의 광채와 이상한 피부를 볼 수 있었지. 내가 움직이려니까 그가 오른손 손가락으로 내 입을 누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 '조용. 지금 나는 너를 죽음의 문턱에서 꺼내 주려고 하는 거야. 너는 가만히 있으면 돼. 네 피가 내게로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만 조용히 있어. 너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너의 의식, 너의 의지야.' 나는 빠져 나가려 했지만 그가 손가락으로 나를 더욱 짓눌렀어. 손가락 힘이 얼마나 센지 꼼짝도 못 하겠더군. 내가 반항의 몸짓을 포기하는 순간 그의 이빨이 내 목을 뚫고 들어왔지." 소년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흡혈귀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미 의자를 저만치 빼고 앉은 터였다. 소년의 얼굴에 주르륵 긴장감이 흘렀다. 주먹을 한 방 날릴 준비라도 하는 양 소년의 눈이 가늘어졌다. "피를 정말 많이 흘려 본 적이 있니? 그 느낌이 어떤지 알아?" 흡혈귀의 물음에 소년의 입술이 아니라는 대답을 하는 양 움찔거렸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아뇨." "레스타트가 이렇게 속삭였어. '자, 눈을 크게 뜨고 있어.' 그 사람 입술은 여전히 내 목에서 움직이고 있었어.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던 게 지금도 생각나. 짜릿한 느낌이 퍼져 나가는데 그게 바로 열정의 쾌락이었어..." 그는 즐거운 모양이었다. 오른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엄지손가락으로는 가볍게 턱을 두드렸다. "그 결과, 나는 몇 분 만에 완전히 마비될 정도로 약해졌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아무리 말을 하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물론 레스타트는 나를 그대로 붙잡고 있었고, 그의 팔이 철근처럼 나를 누르고 있었지. 한 순간 뜨끔하다 싶더니 그의 이빨이 떨어져 나갔어. 구멍이 두 개 났는데 엄청나게 크게 보였지. 나는 힘이 빠져서 머리를 들 수도 없었어. 그가 나를 굽어보더니 오른손을 풀고 자기 손목을 깨물었지. 피가 내 셔츠와 겉옷에 뚝뚝 떨어지더군. 그걸 보는 그 사람 눈이 가늘어지면서 반짝였어... 그는 자기 손목을 내 입에 갖다 대고는 이렇게 말했지. '루이스, 빨아.' 나는 그 사람 말대로 했어. 그 사람은 '침착하게' 그리고 '빨리'라는 말을 몇 번 되풀이했어. 나는 입을 그의 팔뚝에 대고 피를 빨았지. 어릴 때 엄마 젖을 먹은 후 처음 느껴 보는 즐거움이었어. 내 몸과 마음이 하나의 생명원에 매달리는 그 기분. 그런데 그러고 있노라니까 이상한 일이 생겼어." 흡혈귀는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걸 표현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흡혈귀의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낮아졌다. 소년은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말이지. 소리가 났어. 처음에는 쿵 하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어. 그게 점점 더 커지는 거야. 마치 거대한 동물이 어둡고 외딴 숲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은 소리 있지, 그거였어. 이번에는 다른 북소리가 들려 왔어. 그런데 갑자기 레스타트가 팔목을 빼는 거야. 나는 눈을 뜨고 그의 팔목을 찾았어. 그러고는 있는 힘껏 그 사람 팔목을 내 입에 갖다 댔지. 거기서 문득 정신이 드는 거야. 그 북소리가 바로 내 심장 소리이고, 두 번째 북소리는 그 사람 심장 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거지." 흡혈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할 수 있겠니?" 소년은 뭔가 말하려다 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그게, 음, 이해할 수 있어요. 이해할 수 있어요." "물론이지." 흡혈귀는 시선을 돌렸다. "잠깐, 잠깐만요!" 소년은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테이프가 다 돼 가요. 다시 감아야 해요." 흡혈귀는 테이프를 다시 감는 소년을 끈기 있게 지켜 보았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소년이 물었다. 소년의 얼굴에 땀이 맺혔다. 소년은 얼른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내가 흡혈귀가 된 거지." 흡혈귀의 목소리가 초연하게 들렸다. 흡혈귀는 소년에게 전해 내려오는 흡혈귀의 특징 가운데 몇 개는 완전히 엉터리라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렴." "묵주가 있으면 막을 수 있다면서요?" "아, 십자가가 어떻고 하는 소리?" 흡혈귀는 웃으면서 말했다. "넌 우리가 십자가를 겁낸다고 생각하니?" "보지도 못한다면서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거면 뭐든지 다 볼 수 있어. 특히 고난상 보기를 좋아한단다." "열쇠 구멍 이야기는요? 그러니까... 연기처럼 빠져 나갈 수 있다던데?"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흡혈귀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다. 어떤 구멍이고간에 다 통과하면서 그 갖가지 모양의 간지러움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도 아니야."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즈음 그럴 때 쓰는 말이 있던데... 음, 헛소리. 그래, 헛소리." 소년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금세 표정이 신중해졌다. "나하고 있으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단다. 어서 물어 봐." "심장에 말뚝 박는 이야기는요?" 소년의 뺨이 약간 붉어졌다. "마찬가지야. 다 헛소리야." 흡혈귀는 일부러 말을 길게 뺐고, 소년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마술의 힘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는 다..." ... 한편 다른 특징들은 사실이다. "그러고는 어떻게 됐어요?" 소년이 물었다. 흡혈귀는 전구 쪽으로 퍼져 나가는 연기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음... 우리는 얼른 뉴올리언스로 돌아갔어. 레스타트는 자기 관을 성벽 가까운 곳 누추한 방에 놓아 두었더구나." "당신도 정말 관 속으로 들어갔나요?" "달리 방법이 없었어. 레스타트에게 옷장 속에 있게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웃더구나. 그리고 이렇게 묻는 거야. '아니, 네가 어떤 존재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니?' 그래서 나는 다시 애원했어. '이건 마법이잖아요? 꼭 이렇게 있어야 하나요?' 그는 다시 웃었어. 나는 정말이지 싫었어. 그 사람은 단호하게 말했어. '넌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거야. 자, 새벽이 다 됐어. 나는 널 죽어야 해. 어차피 너는 죽어. 태양은 내가 너에게 준 피를 파괴시켜. 하나도 남김없이. 혈관도 전부 터뜨리고.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어. 넌 꼭 팔이나 다리가 없으면서도 예전처럼 아픔을 느낄 수 있다고 고집하는 사람하고 똑같구나.' 그 말이 레스타트가 나하고 같이 있으면서 한 말 가운데 가장 지적이고 쓸모 있는 말이었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구나. '자, 이제 나는 안으로 들어갈 거야. 뭐가 좋은지 안다면 내 위에 눕도록 해.' 그 사람은 경멸하듯이 말을 던지고 들어가 버렸어. 나도 따라 들어갔어. 그 사람하고 얼굴을 맞대고 누웠는데, 정말이지 그렇게 가까이 있는 건 싫었어. 그가 아무리 잘생기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 사람이 뚜껑을 닫더구나. 나는 정말로 죽은 거냐고 물어 보았어. 온몸이 근질거리고 욱신욱신하는 거야.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 '아니, 아직은 아니야. 죽으면 뭔가 변하는 것을 듣고 볼 수 있을 뿐 아무것도 못 느끼게 돼. 너는 오늘밤 안으로 죽게 될 거야. 자, 잠이나 자 둬.'" 앤 라이스 '흡혈귀와의 인터뷰', 1976년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서 보낸 하룻밤 1977년, 루마니아 정부는 미국인 마술사이자 모험가인 빈센트 힐라이어에게 루마니아에 있는 블라드 드라큘 테페스의 유적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했다. 마침내 그의 평생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힐라이어의 도착 마침내 드라큘라성이 나타났다. 핏빛 노을을 토하며 서산을 넘어가는 햇살이 어슴푸레한 카르파티아 산등성이 꼭대기에 솟아오른 성을 뒤덮은 안개에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신비에 사로잡힌 파수꾼이 어두워 가는 하늘을 쳐다보듯, 희미한 성벽과 허물어져 가는 흉벽이 자줏빛 계곡에 우울한 시선을 던졌다. 드라큘라성, 그 남성다운 위용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길한 양상을 띠어 갔다. 나는 산림이 빽빽한 숲의 정상으로 이어지는, 1,531개의 거칠게 다듬은 계단을 밟고 오르기 시작했다. ...좁고 곧 무너질 것 같은 도개교가 눈에 들어왔다. 아르게스강 위 300m 높이에 매달려 있는 그 다리는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어질어질했다. 솔직히 말해서 땅거미가 지고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그 작은 다리는 아무래도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날은 갈수록 추워지고, 나는 흥분이 고조되어 갔다. 드디어 오늘밤 내가 드라큘라의 손님이 되는 것이다! 그러자 비로소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이 성의 주인을 만나게 될까?' 성 안에서 나는 랜턴을 켜고 복도에 담요를 폈다. 그리고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 문득, 낡은 지붕 위에서 소란스러운 날개짓 소리가 들려 왔다. 박쥐였다! 박쥐 수십 마리가 날고 있었다. ...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돌연 잠에서 깨어났다. 이상한 꿈이 생각나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떤 꿈일까 생각하다가 쇄골 부근에 약한 통증이 느껴져 무의식중에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뭔가 축축한 느낌이 들어 손가락을 들여다보았다. 손가락에 핏방울이 묻어 있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며 온몸이 떨리고 진저리가 났다. 그것은 하나의 예감이었다. 뭔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나는 몸을 돌려 달빛 교교한 복도를 힐끔 쳐다보았다. 벽이 헐어 구멍난 저 끝의 입구에서 별이 밝게 빛났다. ...그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그것은 별이 아니었다. 바로 눈동자, 나를 보고 있는 눈동자였다! ... 호기심이 일자 불안감이 가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랜턴의 불을 높였다. 그리고 천천히 동굴 같은 복도를 따라갔다. 그 눈은 내가 접근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관찰만 하고 있었다. ...목으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곧 나지막하고 낯선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환영하오!" 벽에 거의 다 다가갔다. 그 눈동자의 주인공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회색 주둥이의 늑대 한 마리가 머리를 안으로 들이밀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늑대의 눈 역시 깜짝 놀라는 빛이었다. 늑대는 후다닥 산 쪽으로 달아났다. 눈동자의 주인공은 이 성의 '주인'이 아니었다. ... 이상한 향내가 났다. 시든 꽃에서 나는 것 같은 향내였다. 그러나 이 황량하고 바위투성이인 곳에 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잠은 완전히 달아난 상태였다.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뼛속까지 한기가 파고들었다. 새벽 동이 트려면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 했다. 얼어 죽기 전에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루마니아 당국은 해가 뜨기 전에는 절대 숲 속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내게 경고했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떠나기로 했다. 산에서 내려오다 해가 떠오르는 것은 분명했지만 희미한 새벽빛은 울창한 숲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앞길은 여전히 어두웠다. 다행히 랜턴을 켤 연료는 충분했다. ... 여관에 도착한 나는 곧장 식당으로 갔다. 안내인이 지역 관리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나를 보고 하나같이 경악과 공포에 질려 버렸다. ...동시에 그때까지 나를 긴장시키고 있던 아드레날린이 갑자기 다 빠져 나가 버렸다. 양팔에서 힘이 쭉 빠지고, 위장이 마구 뒤틀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왔다. 내가 지금 쓰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안내인이 운전사를 불렀다. "차, 차. 힐라이어씨를 얼른 병원으로 모셔야 해." 의사가 목에 난 구멍을 본 모양이었다. 의사는 성에 서식하는 거대한 거미가 문 자국이라고 말했다. 그 거미가 내 담요에 기어들어 왔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그 시든 꽃 냄새는? 훗날, 그런 환경에서는 사악한 존재의 징후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지금도 '물린 자국' 생각만 하면 이해가 안 간다. 제대로 진단을 받았어도 큰 거미가 문 자국이라는 결과가 나왔을까? 아니면 드라큘라가 장난친 걸까? 빈센트 힐라이어 '흡혈귀', 1988년 영화 속의 흡혈귀 흡혈귀는 전세계에서 수백 편의 영화로 다뤄진 주제이다. 물론 그 질이야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 잘 알려진 문학작품을 영화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명목상의 구실일 뿐이다. 최초의 흡혈귀 스타 악의 초자연적인 창조물이 처음으로 영화에 등장한 것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독일판인 '노스페라투, 공포의 교향곡'(1922)에서였다. 다른 드라큘라도 그렇지만 주인공인 오를로크로 등장한 막스 슈레크는 지금 보더라도 정말 고약하다. 그 분장하며 걸음걸이, 눈은 아무리 보아도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다. 게다가 해가 뜬 다음에도 오를로크를 자기 곁에 두고자 하는 여주인공의 희생적인 죽음, 흡혈귀에 의해 전염된 유행병이 브레멘을 파멸시킨다는 등, 그 뒤에 만들어진 많은 드라큘라 영화의 관례가 된 갖가지 요소들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지속될 드라큘라 영화의 원형이 된 것은 1931년 벨라 루고시가 주인공을 맡은 '드라큘라'-최초의 주요한 유성영화-이다. 우리는 여기서 처음으로 '저 소리 좀 들어 보시오. 밤의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소리를!"이라고, 드라큘라 백작이 트란실바니아 성에서 늑대들의 울부짖음을 가리키며 강렬한 중세 유럽 악센트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루고시의 연기와 드라큘라의 전설은 놀라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주제의 갖가지 변종이 탄생하고 나름대로 뛰어난 몇몇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드라큘라는 언제나 세련된 루고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초현실적인 흡혈귀이야기 여기서 칼 드레이어의 '흡혈귀'(1932)는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작품은 진정한 예술가에게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한다. ...대중적인 오락물에 한정된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드레이어의 '흡혈귀'는 고전이다. 그러나 드레이어가 영화에 투영한 초현실주의 기법 덕분에 좋은 공포영화를 찾는 영화 팬들은 혼란에 빠지기 쉽다. ...단순한 전개상의 흥분보다는 심미안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특별한 경험으로 와 닿는다. 신경 써야 겨우 들리는 녹음과 엉터리로 편집된 작품이지만 그 나름대로 평가할 만한 부분은 있다. 흡혈귀에 관한 농담 19세기의 한 불운한 도제가 온갖 미친 흡혈귀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한 흡혈귀는 십자가가 통하지 않았고, 또 한 흡혈귀는 동성애 흡혈귀였다. 그런 이야기라면 무섭기보다는 가벼운 공상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두려움 없는 흡혈귀 킬러'(1967)가 그런 유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장르의 관례를 깨면서까지 웃음을 찾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웃기면서도 무섭다. 끊임없이 피와 순결을 위협받으면서 공포에 사로잡혀 침을 꿀꺽 삼키는 폴란스키는 그 방면에서도 뛰어날뿐더러 코미디 연기 또한 탁월하다. 흡혈귀를 잡겠다고 우왕좌왕하는 교수로 분한 잭 맥고런이 웃음을 유발하는 장본인이다. 현대의 드라큘라 1979년에 나온 '드라큘라'는 루고시보다는 스토커의 소설에 훨씬 더 근접했으며, 흡혈귀라기에는 너무나 부드러운 프랭크 란젤라의 목소리를 들려 주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와 나이를 초월한 카트린 드뇌브는 1983년 작 '굶주림'에서 멋진 현대판 흡혈귀 쌍을 보여 주었다.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영화이다. 베어드 시얼스 '공상과학 영화', 1988년 영화 일람 1922 '노스페라투:공포의 교향곡'. F.W. 무르나우(독일) 감독. 막스 슈레크, 알렉산더 그라나흐, 구스타프 폰 방겐하임, 그레타 슈뢰더 출연 1931 '드라큘라'. 토드 브라우닝(미국) 감독. 벨라 루고시, 헬렌 챈들러, 드와이트 프리에, 에드워드 밴 슬론 출연 1935 '흡혈귀의 표시'. 토드 브라우닝 감독. 벨라 루고시, 캐롤 볼랜드, 라이오넬 배리모어 출연 1936 '드라큘라의 딸'. 램버트 힐라이어(미국) 감독. 글로리아 홀덴, 에드워드 밴 슬론 출연 1958 '드라큘라'(미국 제목 '드라큘라의 공포'). 테렌스 피셔(영국) 감독. 크리스토퍼 리, 피터 쿠싱, 캐롤 마시 출연 1960 '드라큘라의 신부들'. 테렌스 피셔(영국) 감독. 데이비드 필, 피터 쿠싱, 마리타 헌트, 이본 몬로 출연 1960 '그리고 쾌락의 죽음으로'(미국 제목 '피와 장미'). 로제르 바댕(프랑스) 감독. 아네트 바댕, 엘사 마르티넬리, 멜 페레 출연 1960 '악마의 가면'. 마리오 바바(이탈리아) 감독. 바바라 스틸, 존 리처드슨, 이보 가라니 출연 1965 '드라큘라, 어둠의 왕자'. 테렌스 피셔(영국) 감독. 크리스토퍼 리, 앤드류 키어, 바바라 셸리 출연 1967 '두려움 없는 흡혈귀 킬러, 나를 용서하라, 하지만 당신의 이빨은 내 목에 있다'. 로만 폴란스키(영국/미국) 감독. 로만 폴란스키, 샤론 테이트, 퍼디 메인, 잭 맥고런 출연 1970 '드라큘라 여백작'. 피터 새스디(영국) 감독. 잉그리드 피트, 레슬리 앤 다운, 샌더 엘스 출연 1970 '어두운 그림자의 집'. 댄 커티스(미국) 감독. 조나단 프리드, 그레이슨 홀, 캐스린 레이 스콧 출연 1971 '드라큘라 백작'. 예수스 프랑코(독일/이탈리아/에스파냐) 감독. 크리스토퍼 리, 허버트 롬, 클라우스 킨스키 출연 1974 '빨간 입술'. 해리 쿠멜(벨기에/독일/프랑스) 감독. 델피네 자이리크, 다니엘 퀴넷, 폰스 레이드메이커스 출연 1974 '앤디 워홀의 드라큘라'. 폴 모리세이(이탈리아) 감독. 우도 키에르, 비토리오 데 시카, 아르노 유에르깅 출연 1976 '드라큘라, 아버지와 아들'. 에두아르 몰리네로(프랑스) 감독. 크리스토퍼 리, 버나드 메네스, 마리 헬렌 브릴랏 출연 1979 '드라큘라'. 존 배드햄(미국) 감독. 프랭크 란젤라, 로렌스 올리비에, 케이트 넬리건 출연 1979 '첫 깨물음에 사랑을'. 스탠 드래고티(미국) 감독. 조지 해밀턴, 수잔 세인트 제임스 출연 1979 '흡혈귀 노스페라투'(독일 제목 '노스페라투, 밤의 유령'). 베르너 헤르초크(독일/프랑스) 감독. 클라우스 킨스키, 이자벨 아자니, 브루노 간츠 출연 1983 '굶주림'. 토니 스콧(미국) 감독. 카트린 드뇌브, 데이비드 보위, 수잔 새런던 출연 1987 '잃어버린 아이들'. 조엘 슈마허(미국) 감독. 제이슨 패트릭, 코리 헤임, 다이앤 위스트, 키퍼 서덜랜드 출연 1987 '어둠 가까이'. 캐스린 비젤로(미국) 감독. 제니 라이트, 린스 에릭슨, 아드리안 파스단 출연 1992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미국) 감독. 개리 올드먼, 위노나 라이더, 앤소니 홉킨스, 키아누 리브스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