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 내가 이 '제3의 물결'을 쓰게 되기까지는 그녀의 설득력 있는 권유에 힘입은 바 크다 . 이 책의 곳곳에는 나의 사상에 대한 그녀의 끊임없는 비평과 편집인으로서의 전문가 적 충고가 배어있다. 그녀의 공헌은, 동료로서, 지적 반려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 그리고 아내로서의 역할 이상이었으리라. (서론) 테러리스트들이 인질을 잡아 죽음의 개입을 연출하고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설이 나 도는 가운데 각국의 통화는 변동을 거듭하고 있다. 곳곳에서 대사관이 불타오르고 각 지에서는 기동타격대가 만반의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상황아래 우리는 날마 다 공포에 질려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불안심리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금값은 터무 니없이 폭등을 계속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경영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맹위를 떨치고 있고 세계 각국 정부는 속수무책인 채 무능상태에 빠져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아래 어디를 가도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카산드라의 그것과 같은 불길 한 예언의 대합창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거리의 경제가들은 세상이 미쳤다고 하는가 하면 전문가들도 세계의 추세가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견해와는 전혀 다른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세계는 결코 정상적인 길을 벗어나 광기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핏 무의미 한 사건들이 뒤를 이으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러한 사건들의 배후 에는 놀랄 만큼의 희망적인 하나의 경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그러한 희망에 이어지는 그 경향에 대해 말해 보고 싶은 것이다.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은 인류의 역사가 종말을 맞이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막 사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인 것이다. 오늘날 하나의 거센 물결이 전세계에 밀어닥치고 있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기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양육하고, 드디어는 은퇴하는 환경을 둘러싸고 이 물결 은 새롭고도 기묘한 상황을 연출시키고 있다. 기업인들은 밤낮없이 격변하는 경제의 흐름과 맞서 분전하고 있으며 정치가는 자기들에 대한 지지율이 극단적으로 상승하기 도 하고 하강하기도 하는 현실에 놀라고 있다. 대학과 병원, 그 밖의 연구기관들은 인 플레이션에 대해 필사적인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가치체계가 산산조각으로 분열되었 고 궤멸되었다. 가정이나 교회, 국가라는 구명보트도 격렬하게 바닷속으로 내던져졌다 . 이같은 격심한 변화에 직면하여 우리들은 그러한 것들이 불안정하고 분열과 혼란을 되풀이하고 있는 세태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며 사건을 개별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다. 그러나 좀더 냉정히 그리고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하나하나의 현상에 이끌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선,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변화의 대부분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 또한 제멋대로 그와 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핵가족의 붕괴, 지구 전체의 에너지 위기, 신흥종교의 융성, 전화와 텔레비젼의 보급, 자유근무시간제의 일반화, 유급휴가, 건강보험 등 일련의 부가급여의 증대, 캐나다의 퀘벡주에서 프랑스의 코르 시카섬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잇는 독립운동 등의 현상은 제각기 관계 가 없는 사건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의깊게 관찰해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 외에도 무관계한 것처럼 보이는 여러 사건들은 서 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산업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문명의 출현이라는 보 다 큰 현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여러가지 현상들 하나하나를 고립된 변화로 보아서 이 커다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다면 의사결정은 목표를 상실하거나 자기 부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정부차원에서 말한다면 위기상태 속에서 계획도 희망도 비젼도 없으면서 정책을 억지로 밀고 나가는 격이 되고 만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며 거기에 대 한 체계적인 기초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마치 폭풍우 속에서 위험한 암초 사이를 나침 반도 해도도 없이 항해하려는 승무원과도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전문가들이 서로 대립하고, 단편적인 자료와 불필요한 정보로 면밀한 분석이 난문하는 문화상황에서의 종합적 분석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제3의 물결'은 대대적인 종합적 분석을 시도한 책이라 할 것이 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지금까지의 문명에 대해 서술함과 동시 에 우리들 안에서 지금 꽃피고 있는 새로운 문명의 포괄적 모습을 신중하게 그려 보이 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문명은 극히 혁명적인 것이어서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던 모든 정설 에 도전하고 있다. 낡은 사고방식이나 낡은 공식, 도그마(dagma), 낡은 이데올로기는 과거에 아무리 유효한 것이었고 존중되어왔다 해도 벌써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 다. 새로운 가치관이나 기술, 새로운 지정학적 관계, 새로운 생활양깃이나 커뮤니케이 션 방식 등이 서로 부딪치는 가운데 급속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발상, 새로운 유추, 새로운 분류,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들은 내 일의 세계에 살게 될 태아를 과거의 연습 속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지금까지 정통이 라고 알려졌던 행동이나 마음가짐도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 미지의 새로운 문명에 관해 기술을 전개해 가는 동안 세상에서 지금 범람하고 있 는 건방진 염세주의에 반박할 수 있는 논거가 점차 분명해진다. 절망이절망을 말하고 노력을 포기하는 제멋대로의 행동^36,3^이미 10 년 이상이나 문 명을 지배했다. (분명, C.P. 스노가 어디에선가 언급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망 은 단순히 죄일 뿐만 아니라 도저히 시인할 수 없는 부당행위인 것이다. 이것이 '제3 의 물결'의 결론이다. 나는 쓸데없는 낙천적인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로 인한 세계의 파멸, 환경파괴와 광신적 인종차별, 국지적인 폭력사태 등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이러한 위험들에 관해 지금까지 몇번이나 집필한 바 있고 아마 앞으로도 또 쓰게 될 것이다. 전쟁, 경 제의 와해, 대규모적인 기술의 혼란, 이런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보더라도 미래의 역사는 파멸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고 있는 에너지 양식과 새로운 생활양식과의 관계 혹은 새 로운 생산방식과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한다는 자조운동과의 관계 등 (이런 것은 한두 개의 예에 불과하지만) 새로 태어나고 있는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면 우리는 오늘날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고있는 대부분의 상황이 실은 매혹적이며 새로운 가능성 에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3의 물결'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책이다. 이 책은 파 괴와 황폐의 속에서 우리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려 한다는 주목할 만한 증거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 제3의 물결문명은 통찰력과 약간의 행운이 주어진다면 지금까지의 어떤 문명보다도 건전하고 바람직하며 인간에게 보다 알맞은 민주적인 문명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없이 분명해지고 있다. 만일 이 책의 이론이 대체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폭풍과 위기로 가득 찬 시기가 과도기적으로 몇년간 계속된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유력한 논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을 집필하고 있던 지난 몇년 동안 나의 강연을 듣는 청중들에게서 '제3 의 물결'이 먼저 저술했던 '미래의 충격(Future Shock)'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 았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저자와 독자의 견해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제3의 물결'은 형식면에서나 논의의 초점이라는 면에서도 '미래의 충격'과는 근 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선 '제3의 물결'은 '미래의 충격'보다 미래는 물론 과 거에 대해서도 시간적으로 훨씬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또 단순히 사실을 기술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을 전망하고 있다 . 또한 책으로서의 구성도 다르다.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의 구성이 바로 물결과 물결의 충돌이라는 핵심적 비유를 반영하고 있음을 간파했으리라 생각한 다.) 내용에 있어서의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미래의 충격'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 는가 하는 점에 주목했던 데 반해 이 책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개인이나 사회에 어떤 희생을 강요하는가 하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제3의 물결'은 변화에 대한 적응의 어 려움에 주목했고 동시에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얼마나 큰 손실이 따르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미래의 충격'에서는 '너무 이른 미래의 도래'에 대해 쓰면서도 모 습을 보이기 시작한 미래의 사회에 관해서는 어떤 그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스케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충격'의 초점은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그 과정이었던 것이 다. 이 책에서는 렌즈의 초점이 뒤바뀌어 있다. 나의 관심은 그러한 변화의 진전보다 그 변화가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키려 하는가 하는 변화의 방향에 중점을 두고 있 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두 권의 책은 본편과 속편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양자가 상호 보완해 가면서 보다 큰 체계를 이루려고 하는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책 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를 읽게 되면 다른 책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것이다. 이 책처럼 방대하고 종합적인 저술을 시도하려면 단순화, 일반화된 요약이 필수불가 결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광범위한 영역을 망라한 문제를 한 권의 책 으로 묶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결과 이 책은 문명을 농업단계의 제 1의 물결, 산업단계의 제2의 물결, 그리고 지금 막 시작된 제3의 물결, 이렇게 3 단계 로 나누었다. 역사가 중에서는 이렇게 구분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농업문명이 전혀 다른 여러가지의 문화로 구성되었다는 것, 산업주의 자체가 현실적 으로는 실로 여러가지 발전단계를 겪었다는 것을 지적하기는 쉬운 일이다. 과거를 12 단계나 38 단계, 또는 157 단계로 나누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한없이 세분화되어 큰 구분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취급한다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도서관 하나쯤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다소 조잡하더라도 보 다 단순한 구분이 효과적인 것이다. 방대한 범위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다른 이유에 의해서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가끔 제1의 물결, 혹은 제2의 물결이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 하면서 문 명 자체를 주체화할 때가 있다. 물론 문명 자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나 도 충분히 알고 있고 독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 간인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문명이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라고 쓰는 것으로 시간 이 절약되고 쓸데없는 논쟁을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학자, 미래학자, 경제계획의 입안자에서 점성술사나 전도사에 이르기까지 누구하나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또 알 수도 없다. 현명한 독자들은 그런 것을 잘 알 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또 알 수도 없다. 현명한 독자들은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내가 어떠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독자들은 당연히 그런 일이 일 어날 것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해 가면서 읽어 줄 것이라 생각하며 쓰고 있다. 그렇 게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유보가 많이 쌓여서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지리한 내용의 책이 되고 말 것이다. 도대체 사회적 예측이라는 것은 아무리 전 산화된 자료를 이용한다 해도 결코 객관적인 가치관과 무관계하다고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는 과학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3의 물결'은 객관적인 예 측의 책은 아니며 그 내용에 대해서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전개시킨 사고방식이 자의적이며 체계가 '권력영역'이라는 면에 서 분석하고 그 영역들이 모두 오늘날의 세계에서 어떻게 혁명적 변혁을 이룩하고 있 는가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네 개의 영역 상호간의 관계를 명확하 게 한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생물영역', '심리영역'과의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했 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간 상호간의 심리적, 내면적 연결을 통해야만 비로소 외부의 여러 변화가 인간의 사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에서는 문명이라는 그 자체가 어떤 종류의 과정과 원칙을 사용하여 현실 을 설명하고 그 문명의 존재 자체를 정당화하는 '슈퍼이데올로기(superideology)'를 발전시킨다라는 사고를 바탕에 두었다. 이러한 체계, 방법, 원칙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그것들이 상호간에 어떤 변화를 강 요하며 그것에 의해서 일어나는 강력한 변화의 흐름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 게 된다면 현재 우리들의 생활에 밀려오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대해 보다 명확 한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사용한 중요한 비유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변화의 물결이 서로 충돌함으 로써 생겨난 현상들이다. 이 물결이라는 비유는 별로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노버트 엘리어스는 그의 저서 '문명의 프로세스: The Civilizing Process'에서 '수세기에 걸 쳐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문명의 물결'에 대해 언급한 바 잇다. 1837 년에는 미국 서 부의 정착화 과정을 설명하면서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물결'에 비유한 적도 있었다. 우선 초창기의 개척자, 뒤를 잇는 농민, 그리고 기업인의 이주가 '제3의 물결'이라는 것이었다. 1893 년에는 프레데릭 잭슨 터너가 그의 고전적 명저 '미국 역사에 있어서 의 프로티어의 의미: Significance of the Frontier History'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 을 사용했다. 따라서 물결이라는 비유는 별로 신선한 것도 아니며 다만 그것을 오늘날 의 문명적 변화에 적용시켰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것이다. 물결이라는 비유를 이 책에서 사용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는 것이 밝혀지 고 잇다. 물결이라는 개념은 극단적으로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조직화하는 데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격동하는 변화의 배후를 꿰뚫어 보는 데에도 소용이 되는 것이 다. 물결이라는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혼란스러웠던 많은 것들이 명확하게 된다. 일상 적으로 자주 보던 낯익은 것들이 새로운 조명 밑에서 간혹 놀랄 정도로 신선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변화의 물결이 서로 충돌하고 겹치면서 우리들의 주변에 모순과 긴장을 낳고 있 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부터 변화 그 자체에 대한 생각마저도 달라지고 말았다. 교육이나 건강문제에서 기술, 혹은 개인생활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변혁 속에서 단순히 표면만의 변화, 즉 과거 산업사회의 연장에 불과한 변화인지 아니면 정 말로 혁명적인 변화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유효한 비유라 하더라도 부분적인 진실만을 제시하는 데에 불과하다. 그 어떤 비유도 도저히 전체적인 내용을 모든 측면에서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따라서 미래의 전망은 커녕 현재에 관한 어떠한 관찰도 결코 완전한 것 또는 최종적인 것으로 나타내지는 못한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10 후반에서 20 대 초반 당시벌 써 25 년 전의 일이지만모든 청년들이 그러한 것처럼 모든 문제에 대해 해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라나 나는 곧 내 자신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편 견에 찬 일방적이고 진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말해서 대개 의 경우 그릇된 질문에 대한 옳은 해답보다는 옳은 질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에 생각 이 미친 것이었다. 나는 '제3의 물결'이 이것저것 문제에 답하는 것과 동시에 여러가지 새로운 질문도 이끌어 내게 되기를 원하고 있다. 지식은 완전할 수가 없고 전체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비유도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은 그 자체가 참으로 인간적이다. 이러한 인식만 있으면 광신에 빠질 염려는 없다. 반대 론자에게도 부분적인 진실은 있는 법이다. 자기자신이 과오를 범할 수도 있다는 가능 성을 인정케 하는 것이다. 규모가 방대한 통합적 견해를 전개하려 하면 할수록 잘못을 저지르는 위험성이 따른다. 그러나 평론가 조지 스테이너는 '보다 큰 질문을 하는 것 은 사물을 잘못 다루게 되는 위험성이 있지만 전혀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은 지적 생활 을 속박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생활이 여러 갈래로 조각나고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하는 한편 기묘하고도 새로운 생활양식이 팽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 폭발적인 변화의 시대에 우리들의 미래 에 관한 최대의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인 류의 생존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자각하고 있든 아니든간에 우리 모두는 이미 새로운 문명창조에 참가하거나 혹은 그 것을 거부하는 세력에 가담하는 둘 중의 어느 한 편에 속해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 람이 그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제3의 물결'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 이다. 부딪치는 물결 제1장 내일에의 대투쟁 지금 우리의 생활 속에서 새로운 문명이 출현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그것을 저지하려고 애쓰고 잇다. 이 새로운 문명과 더불어 새 가정형태가 태어나고 직업, 연애, 생활양식이 변화하고 경제도 새로워지고 정치적 인 충돌 또한 새로워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식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이 새로운 문명의 부분들이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잇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내일의 리듬에 맞추어 자신들의 생활을 조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미래를 두려워 한 나머지 기를 쓰며 과거로 도피하여 전진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이 살 아온 시대, 이미 죽어가고 있는 세계를 되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이 새로운 문명의 출현이야 말로 우리 생애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동향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사건이며 가까운 장래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문명의 출현은 1 만년전 농업의 발명으로 시작된 제1의 물결, 그리고 산업혁명에 의해 촉발되어 순식간에 전세계를 석권한 제2의 물결과 마찬 가지로 사회를 밑바닥부터 변혁시키는 대사건이다. 우리는 이러한 두 변혁의 뒤를 이 어 닥쳐오는 제3의 물결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엄청난 변혁의 압도적인 힘과 그 광범위한 영향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모색하고 있다. '우주시대', '정보화 시대', '전자공학시대'라고 말하는 사람 도 있다. 캐나다의 문화사학자 마샬 멕루헌은 통신의 발달에 의해 지구상의 모든 사람 이 한 마을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여 '지구촌'이라는 조어를 제창했 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전보장문제 특별보좌관 비그뉴브 레진스키는 인류가 '기술, 전자공학시대'로 돌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과 전자공학의 충격에 의해 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특질을 표현하려는 말이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다가오는 사회를 '탈산업화 사회'라고 말 했고 나 자신도 '초산업사회'라는 표현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관해 포괄적인 저술 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나 지신의 말을 포함해서 그 어느 것도 충분하고 적절한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들 표현 중에서 변화하고 있는 한 가지 요인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문제를 넓게 포착하지 못하여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는커녕 오히려 좁게 하고 잇다. 또 어떤 것은 정적인 표현이 지나쳐서 새로운 사회가 기존의 가치체계와의 대립이나 긴장도 없이 원활하게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우리에게 밀어닥치고 있는 변화, 또는 그 변화로 인해서 일어나게 되는 압력이나 갈등 이 얼마나 격렬하게 밀어닥치고, 얼마나 많은 범위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표현으로는 도저히 현상을 나타낼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인류는 미래를 향해 일대 비약하는 단계에 와 있다. 사회를 뿌리채 뒤흔드는 대변동, 예전에 없던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내는 변혁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점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아주 새롭고 주목할 만한 문명을 그 기반부터 쌓아올리려 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제3의 물결이 갖는 의미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두 차례나 대변혁의 물결을 경험했다. 그 물결은 변혁 이전에 존재 했던 문화나 문명을 거의 망각해 버리고 그것들을 그 이전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생활양식을 일반화시켜 놓았다. 제1의 물결에 의한 농업혁명은 수천년에 걸쳐서 완만하게 전개되었었다. 산업문명의 출현으로 제2의 물결이 일으킨 변혁은 불과 300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늘날 역사의 진행은 더욱 가속적이어서 제 3의 물결은 불과 2,30 년 동안에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그 변혁을 완성해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이 충격적인 시대에 우연히도 지구상에서 살게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본격적인 제3의 물결의 충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은 우리의 가족관계를 붕괴시키고 경제의 기반을 뒤흔들고 정치체제를 마 비시키고 가치체계를 깨뜨려서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든 낡은 권력관 계에 도전하고 위기에 빠져 있는 현대사회의 엘리트들의 특권과 특전에도 도전하고 있 다. 그리고 이 물결이 미래에 전개될 권력투쟁의 중요한 배경이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문명의 많은 부분은 낡은 전통적인 산업주의 가 만든 문명과는 모순되는 것이 많다. 그것은 고도의 과학기술적인 동시에 반산업적 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젱3의 무결은 전혀 새로운 생활양식을 가져다 준다. 그 기반이 되는 것은 다양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 자원이나 조립 란인에 의한 공장생산을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새로운 생산방식, 핵가족과는 또 다른 새로운 가족형태인 '전자주택(el ectornic cottage)'이라고 호칭하게 될 직장과 주택을 겸하게 되는 생활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학교와 기업체 등이 그것이다. 새로이 출현하게 될 문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행동규범을 수립시키고 제2의 물결사회의 특징인 표준화, 동시화, 중앙집권화 등 산업 사회의 제약을 뛰어넘어 에너지, 부, 권력의 집중화를 극복하는 길을 개척해 준다. 이 새로운 문명은 한편에서는 구체제를 타도하면서 관료체제를 붕괴시키고 국민국가 의 역할을 약화시켜서 제국주의 이후의 세계에 반 자립경제를 등장시킨다. 새로운 문명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정부보다도 간소하고 보다 효율적인 민주적 정부를 필요로 한다. 이 문명은 자체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 공간, 논리,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독특한 사고방식을 수반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앞으로 설명하게 되는 바와 같이 산업혁명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분리되었던 생산자와 소비자를 다시 융합시켜 '생산소비자(prosumer)'라고 불리게 되 는 경제를 만들어 내게 도니다. 이러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문명은 우리가 다소 의 지적 노력을 함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인간적인 문명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 틀 림없다. 혁명적 전제 오늘날 두 개의 명확하게 대조적인 미래상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영원히 계속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현 상에 너무나도 안주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상상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들이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문명이 전면적으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다. 물론 그들도 사물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변화는 그저 자기들 옆에 지나쳐 갈 뿐 익숙해진 경제체제나 정치구조는 미동도 하지 않을 것 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미래는 현재의 연장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직선적인 사고는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잇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생각들이 사업가나 교사, 부모, 정치가 등이 결정을 내릴 때의 검증되지 않은 가정으로 나타난 다. 좀더 고도의 단계에서는 이러한 사고방식에 통계나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자료, 미랙학자의 전문용어 등으로 성장을 한다. 어떤 경우라도 실질적으로는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미래사회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제2의 물결에 의한 산업주의가 점 점 확대되고 지구는 더욱 산업주의 일색으로 되고 만다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들은 이렇게 확신에 찬 미래상을 격렬하게 뒤흔들고 있 다. 이란사태의 폭발, 모택동의 격하, 석유가격의 급등과 인플레이션의 광란, 테러의 만연과 그것을 저지 못하는 각국 정부들 등, 뒤를 이어 일어나는 위기가 신문제목을 장식하면서 일반인들은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갖게 되었다. 쉬지 않고 제공되는 암담한 뉴스, 지구의 종말을 테마로 한 영화, 성경의 묵시록에 관한 이야기, 최고의 두뇌집단들이 발표하는 악몽과도 같은 미래^36^예측에 대한 시나리오 등을 완전히 믿 은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사회는 미래까지 존속하지 못한다고 결론내리고 말았 다. 미래 그 자체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묵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세계 파멸적인 전쟁 이 목전에 다가왔으며 지구는 무서운 종말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 두개의 미래상은 퍽 다른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나 정치적 으로나 양자는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둘 다 상상력과 의지를 마비시키고 말 기 때문이다. 실제에 있어서 만일 내일의 사회가 현재의 확대판 시네라마(cinerama)에 불과한 것이 라면 우리들은 미래에 대해서 준비할 것이 별로 없다. 반면에 만일 사회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동안에 자멸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들로서는 거기에 대응할 아무 런 방법도 없게 된다. 요컨대 미래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그 어느 것이나 자기만을 생 각하는데 급급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생활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의 행동을 동결시키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잇는 사태를 이해하려 한다면 이러한 종말론이나 현 재와 별 차이가 없는 미래가 온다는 단순한 선택에 얽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좀 더 분명하고 건설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미래에 대응하는 방법과 보다 중요한 일은 현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하는 지침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이 책은 내가 '혁명적 전제'라고 이름지은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2 ,30 년 동안은 동란과 격동이 가득한 현재 이상으로 폭풍적 풍조가 만연하는 시대가 되더라도 우리들은 전면적으로 자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가 지금 경험하고 있 는 충격적인 변화는 결코 혼란이나 우연으로 일어난 일도 아니다. 실제로는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 하나의 패턴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 서 있는 것이다 . 또한 이러한 변화는 누적적인 것이어서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인간의 생활, 일, 사 고방식을 모두 바꾸고, 건전하고 바람직한 미래가 온다고 전제한다. 요컨대 앞으로 전 개되는 이 책의 내용은 현재 일어나고 잇는 사태가 범세계적인 혁명, 역사상의 일대 비약이라는 전제하에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책의 출발점으로 되어 있는 전제는 우리가 낡은 문명의 최후 세대이며 동시에 새로운 문명의 최초의 세대라는 것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혼란, 고뇌 , 방향감각의 상실은 우리 자신의 정신, 또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정치제도 내부의 모순과 투쟁의 반영일 따름이며 그것은 벌써 종말이 가까워진 제2의 문명과 그것에 대 처하려는 제3의 새로운 문명이 일으키는 갈등을 직접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결국 이것만 이해하게 되면 얼핏 무의미한 모든 사건들이 갑자기 분명하게 이해가 된 다. 변화의 광범위한 패턴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한 행동을 일으키 는 것이 다시 가능해지고 또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켠대 혁명적 전 제는 우리들의 지성과 의지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물결의 방향 그러나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변화가 혁명적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변화에 방향을 제시하고 조종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역사의 흐름을 확인하고 그것 을 분석하는 새로운 수법이 필요하게 된다. 이 방법을 모르면 우리는 자기자신을 잃어 버리는 미궁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하나의 유력한 새로운 접근법은 변화하는 사회적 물결의 머리를 분석하는 능력이다. 변화의 물결이 연속적으로 밀려오는 것을 역사라 생각하고 각 물결의 앞머리가 우리를 어디로 운반해 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역사의 연속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불연 속성, 전환과 혁신에 주목한다. 변화의 열쇠가 되는 패턴을 찾아냄으로써 그러한 패턴 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농업의 출현이 안간의 사회발전의 최초의 전환점으로 삼고 산업혁명을 두 번 째의 커다란 전진이라고 하는 단순한 관념에서 출발하는 이 접근방법은 농업의 출현과 산업혁명이 각기 별개의 사건이라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정한 속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변화의 물결이라고 생각한다. 제1의 물결에 의한 변화가 일어나기 이전 인류의 대부분은 소집단을 이루어 각지를 방랑하면서생활하였고 채집, 어업, 수렵, 목축으로 식량을 얻고 있었다. 그것이 대략 1 만년쯤 전에 농업혁명이 시작되고 지구상에 서서히 퍼져 나가면서 촌락 과 경작지가 생기고 새로운 생활양식이 확대되어 갔다. 이 제1의 물결에 의한 변화는 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 제2의 커다란 세계적 변혁의 물결이 밀어닥쳤던 17세기 말까지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변화인 산업화는 제1의 물결 때의 변화보다 훨씬 급속하게 나라에서 나라로, 대륙에서 대륙 으로 퍼져 나갔다. 이렇게 해서 두 개의 다른, 명확하게 그 성격을 달리하는 변화의 물결이 각기 다른 속도로 지구상을 동시에 진행해 나아갔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제1의 물결은 사실상 완전히 퇴색하고 말았다. 아직도 농업을 모르고 있 는 지역은 남아메리카나 파푸아 뉴기니등의 일부 소수부족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도 강력했던 제1의 물결이 기본적으로는 이미 소진해 버린 것이다. 한편 불과 수세기 동안에 유럽, 북아메리카, 기타 세계 일부지역의 인류의 생활에 혁 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제2의 물결은 지금도 여전히 기본적으로 농업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나라들에게 퍼져 가고 있다. 거기에는 지금도 제철공장, 자동차공자, 섬유공장, 철도, 식품가공공장 등이 건설되고 있다. 산업화의 활기는 분명히 지금도 활동하고 있 으며 제2의 물결의 세력은 아직도 완전히 소모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이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그것과 병행해서 더 한층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십년 동안 산업화의 물결이 절정에 달 해 있는 그때까지도 분명하게 정체를 나타내고 있지 않았던 제3의 물결이 지구의 여기 저기에 밀려오기 시작하여 그 물결과 마주친 모든 것을 변혁시키지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이 동시에 두 개나 세 개의 전혀 성질이 다른 변혁의 물결에 의해 충격을 받았다. 각기 변화의 속도도 다르고 그 배후에 있는 힘의 강도도 달랐다. 이 책에서는 편의상 제1의 물결시대는 기원전 8000 년경에 시작되고 1650--1750 년대 경까지 다른 세력의 도전을 받음이 없이 지구상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 그리고 그 무렵부터 제1의 물결의 세력이 쇠토하기 시작하고 때를 같이하여 제2의 물결이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2의 물결이 이룩한 산업문명이 지 구를 석권하여 드디어 그 정점까지 올라갔다. 이 역사상 가장 새로운 전환점은 미국을 예로 들어보면 대략 1955 년부터 1965 년에 걸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 10 년 간에 화이트칼라(white-collar)와 서비스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사상 처음으로 블루칼라(blue-collar)의 수를 능가했다. 대폭적인 컴퓨터의 도입, 제트비행기에 의한 관광여행 붐, 피임약의 보급, 기타 많은 충격적인 변혁이 뒤이어 일어난 것도 이 10 년 동안의 일이었다. 이 10 년이야말로 미 국에서 제3의 물결이 그 세력을 펴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 이후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 프랑스, 스웨덴, 서독, 소련, 일본 등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 어났다. 오늘날 고도의 산업기술국가에서는 낙후된 장식을 하고 있는 경제 및 여러 제 도와 제3의 물결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로 인해 예외없이 동요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점을 이해해야 비로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래의 물결 어떤 사회를 지배하는 변화의 물결이 단 하나뿐이라면 미래를 향해서 그 사회가 어떠 한 패턴으로 발전해 나아가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 작가, 화가, 저널리스 트, 기타 온갖 사람들이 미래의 물결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19세기 유럽에서는 수 많은 사상가, 실업계의 지도자, 정치가, 그리고 일반인들마저도 미래에 대해서 명확하 고도 기본적으로 정확한 미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기계화되어 있지 않은 농업 에 대한 공업의 궁극적 승리를 향해서 역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 그 승리와 함께 제2의 물결이 가져오는 여러가지의 변화를 매우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즉 보다 고도화된 기술, 보다 대규모의 도시, 보다 고속화되는 수송기관, 대 중교육 등등이다. 이처럼 분명한 미래상은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정당이나 정치운동은 마치 삼각법으로 측정하는 것처럼 미래를 측정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산업화 이전의 농업 관계자는 서서히 침범해 들어오는 산업주의, 대기업, '조합의 보스(boss)', '악의 소 굴인 도시' 등에 대해 최후의 배수진을 치게 되었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막이 오르고 있는 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조종간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 소수민족들은 자 기들의 권리를 산업사회 안에서 개선하기 위해 취업 및 승진의 기회균등, 도시에서의 주택확보, 임금인상, 공공교육의 확대 등을 요구했다. 이 산업에 관한 미래의 비전은 심리적으로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도 격렬하게 때로는 피투성이의 투쟁을 전개했다. 불황과 갑자기 일어나는 호황 이 생활을 파탄시킬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에 널리 퍼진 이 산업중심의 미래상은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선택의 범위를 명확히 해주었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현재 어떤 상태하에 있는가를 알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도 전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즉 심한 사회적 변화의 와중에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안 정감과 자기자신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에 비해 사회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변화의 큰 물결을 맞이하고 게다가 그 어 느 것이 우위에 서게 될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을 때는 미래상은 분열하지 않을 수 없 다. 변화와 더불어 일어나게 되는 모순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지 기 때문이다. 물결과 물결이 서로 부딪쳐서 대양은 거칠어지고 본류와는 관계없는 소 용돌이가 사방에서 일어나 그 밑바닥에서 흐르는 보다 중요한 역사의 조류를 잃어버리 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다른 나라에서도 같겠지만제2의 물결과 제3의 물결의 충돌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일어났고 위기적인 투쟁이 전개되고, 계급, 인종, 성, 혹은 당파 등의 상식적 구분을 초월한 기묘하고도 새로운 정치적 물결이 조성되었다. 이 충돌이 전통 적인 정치용어들을 혼란시켜 진보주의자와 반동주의자, 동지와 적의 구분마저도 곤란 하게 만들었다. 종전의 분열이나 유대가 모조리 백지화되고 말았다. 노동자와 경영자 가 서로 의견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힘을 합해 환경보호론자와 대립하는가 하면 한 때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손을 잡고 있던 흑인과 유태인인 반목되기도 한다. 여러 국가에서 소득의 재분배라는 '진보적' 정책에 지금까지 호의적이었던 노동자 계 급이 이제는 여성의 권리, 자녀의 교육, 이민, 관세, 시민운동에 대하여 '반동적' 입 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통적인 '좌익'이 때때로 중앙집권이나 극단적인 국수 주의가 되어 환경보호론자들과 대립하기도 한다. 또한 정치가를 본다면 지스카르 데시탱 프랑스 대통령,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주 지사에 이르기까지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보수적' 태도를 취하 고 있지만 예술, 성도덕, 여성의 권리 또는 환경규제 등에 대해서는 '자유분방'한 태 도를 취하고 있다. 일반대중이 어리둥절하여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해 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언론기관들은 그들대로 여러가지 혁신, 반전, 기괴한 사건, 암살, 납치, 우주선 발사, 정부의 붕괴, 특공대의 기습작전, 뇌물사건 같은 얼핏 서로 무관한 것으로 보 이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다. 정치 생활의 일관성 상실은 개인에게 투영되는 사람들의 생활적응력을 파괴하고 있다 . 정신분석의와 종교치료사가 성업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이 정신요범사들의 경쟁에 휩 쓸려서 정처없이 헤매고 있다. 종교의식이나 마녀의 집회라고나 해도 좋을 곳에 숨어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병적인 비관주의에 빠지고 만다. 이 세상은 불합리하고 미쳐 있어서 의미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분명 인생이란 것은 대우주적 견지에서 본다면 하잘 것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사건들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는 숨겨져 있는 물결에 의한 변화와 이 제는 쇠퇴해 가고 있는 제2의 물결에 의한 변화를 구별하기만 하면 그 숨겨진 질서를 곧 간파할 수 있다. 이 두 물결의 충돌로 일어난 모순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에 대한 보다 명확한 미래상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여러가지 정치적, 사 회적인 힘을 꿰둟어 보는 X선도 갖게 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역사에 대해 어떤 개 인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통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미력하다 해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부속품이 되어 역사를 형성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화의 물결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일어나게 되는 역류는 직업, 가정생활, 성에 관한 태도, 개인적 윤리관 등에 반영된다. 그것은 생활태도나 선거 때의 투표행위에도 선명 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개인생활에 있어서나 정치생활에 있어서 물질적으로 혜택받 은 나라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본질적으로는 다음에 예시하는 세 가지의 생활방식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멸되는 운명에 처해 있는 질서를 유지시키려는 제2의 물결의 인간으로 있든지 현재 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미래를 건설하려는 제3의 물결의 인간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두개의 중간, 즉 혼란 속에서 조금씩 자기 부정적인 인간으로 있을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황금 붐에 춤추는 투기광에서 암살까지 제2의 물결집단과 제3의 물결집단과의 대립은 실제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정치적 긴장관계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잇다. 오늘날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어떤 정견을 발표하든 그들의 내부항쟁은 쇠퇴해 가고 있는 산업주의 체제의 찌꺼지 중에서 누가 최대의 이익을 짜낼 수 있는가 하는 투쟁에 불과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바꾸어 말한다면 자주 인용되는 예이긴 하지만 정치가들은 침몰하고 있는 타이타닉호 선상에 서 갑판에 있는 의자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보다 근본적인 정치문제는 이제부터 진술하는 바와 같이 누가 산업사회의 말기를 지 배하느냐가 아니라 급속하게 산업사회와 교체되어 가고 정치적 싸움에 정신이 팔려 우 리들의 정력과 주의력을 다 소모하고 있는 사이에 밑바닥에서는 벌써 본질적인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투쟁의 한쪽은 지난날의 산업사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며 한 편에는 식량, 에너지, 군비축소, 인구, 빈곤, 자원, 환경, 기후, 고령화 사회, 도시공 동체의 붕괴, 생산성의 증진, 고임금노동의 필요성 등 세계의 가장 긴급한 당면문제들 이 이제는 산업주의 체제의 틀 속에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수백만의 사람들이다. 이 양자의 대립이야말로 여기서 말하는 '내일에의 초투쟁'임에 틀림없다. 제2의 물결 에서 얻은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제3의 물결 세계에세 살려고 하는 사람들 간의 대결은 이미 모든 나라의 정치를 통해서 전류처럼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심지 어 비산업국가들마저 밀어닥치는 제3의 물결에 의해 지금까지의 전선을 다시 그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농업사회의 봉건적 특권계급과 산업사회의 엘리트들 간의 지금까지 의 투쟁은 자본가든 사회주의자든간에 산업주의의 퇴조와 함께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 었다. 제3의 물결에 의한 문명이 출현하고 있는 현재 급속한 산업화는 신식민지주의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는 속국상태의 영속을 보장하 는 것일까? 이러한 광범한 배경을 감안해야만 비로소 우리들은 신문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다. 무엇이 우리에게 보다 중요하며 변화하는 우리의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 을 수립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 신문의 1 면에서 이란의 정치적 혼락과 인질문제, 급등하는 금에의 투기, 미국에서의 흑인과 유태인의 반목, 서독 군비 예산의 대폭적인 증가, 롱 아일랜드에서의 화형집행, 멕시코만의 대량의 원유유출사건, 사상최대의 반핵집회, 방송용 주파수의 할당을 둘러싼 경제대국과 소국과의 대립 등이 보도되고 있다. 종교 적인 각성운동도 리비아, 시라아, 미국 등지에서 계속 융성화의 기운을 보이고 있고 광신적인 네오파시스트은 파리에서 발생한 암살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제너럴 모터스사는 전기자동차개발을 위한 기술적 장해를 극복했다고 발 표하고 있다. 이러한 단편적 신문기사들은 일관된 통합성을 크게 외치고 있다. 산업주의를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밀어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벌써 치열한 싸 움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세계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강력하고도 새로운 열쇠를 갖게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있 는 경우거나 기업의 전략 혹은 개인 생활의 목표를 수립하는 경우에도 우리의 세계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도구를 가져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도구를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낡은 산업중심의 문명을 연장시키는 변화와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촉진시키는 변화를 명백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신구 두 개의 사회, 즉 우리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온 제2의 물결이 만든 산업주의 사회체제와 앞으로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살아가게 되는 제3의 물결이 만들 문명 모두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의 각 장에서는 제3의 물결세계를 탐구하기 위한 준비로써 제1, 제2의 물결 때 문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는 제2의 물결문명이 결코 제멋대로의 요소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많든 적든간에 예측가능하며 상호관련 이 있는 부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라는 것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산 업사회에서의 생활의 기본적 패턴은 문화의 전통이나 정치제도의 차이와는 관계없이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라는 것도 이해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반동주의자들 이'좌익'이건 '우익'이건어떻게 해서라도 유지하려고 하는 문명인 것이다. 그것이야말 로 문명의 역사 속에서 변혁을 강요하는 제3의 물결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세계인 것 이다. 제2의 물결 제2장 문명의 구조 300 년 전에 지구상에서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지역에 따라서는 반세기 전후의 시간 적 차이는 있었지만 충격적인 파괴력을 가진 변동이 전세계에 파급되었다. 낡은 사회 들은 붕괴시키고 전혀 새로운 문명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 대폭발이 바로 산업혁명이 다. 그리고 이 혁명에 기인되는 거대한 해일, 즉 제2의 물결은 맹렬한 기세로 전세계 를 덮쳐서 과거의 모든 제도 및 관습과 충돌하면서 수백만이라는 인간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제1의 물결로 이루어진 문명이 지배하던 수천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은 두 개의 범주, 즉 '미개인'과 '문명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소수의 집단과 부족을 이루어 채집, 수렵, 혹은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이른바 미개인족은 농업혁명과는 관계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문명'세계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토지를 경작해 서 생활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농업이 시작된 지역에는 어디나 문명이 뿌리를 내렸다. 중국, 인도로부터 아프리카의 옛토후곡 베닌(Benin)이나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또한 그리스나 로마에서 여러 문명이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면서 끊임없이 다채로운 융합문명 을 만들었다. 그러나 표면상의 차이는 있더라도 토지가 경제, 생활, 문화, 가족 구조 및 정치의 기 반을 이루고 있었다. 생활은 부락을 중심으로 영위되었다. 예외없이 간단한 분업이 행 해지고 몇 가지로 뚜렷하게 구분된 카스트(cast)의 계급이 출현했다. 그것은 귀족, 승려, 무사, 농민, 농노 또는 노^36^예였다. 어느 곳에서도 권력은 엄격 한 독재주의였다. 가문의 인생의 지위를 결정했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나 경제는 지방 분권적이었고 각각의 공동체는 생활필수품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역사는 단순하지는 않았으므로 예외도 있었다. 대양을 종횡으로 활약한 뱃사람들에 의한 상업문화권도 있었고 거대한 관개시설을 중심으로 조직된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왕국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얼핏 특수한 것처럼 보이는 문명 들은 같은 하나의 사회현상, 즉 제1의 물결에 의해 일반화된 농업문명의 특수한 경우 로 보아도 잘못은 아니다. 농업문명의 지배적이었던 시대에도 간혹 장래를 예견케 하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는 대량생산공장들도 있었다.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는 기원전 400 년에, 미얀마에서는 서기 100 년에 석유를 채굴하기 위해 시추를 했던 일 이 있다. 바빌로니아나 이집트에서는 광범위한 관료주의가 번창했다. 아시아나 남아메리카에서는 거대한 도시들이 건설되었다. 화폐가 존재했고 교역도 행 해졌다. 중국에서 도버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칼레(Calais)에 이르는 통상의 길은 사막 바다와 산맥을 넘어 종횡으로 교차되어 있었다. 물론 성숙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치단 체나 국가라는 개념도 존재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놀랍게도 선구적인 증기기관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산업문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방금 거론한 미래를 내다볼 만한 현상들은 시대적으로나 장소적으로나 여기저기 흩어 진 것에 불과해서 말하자면 역사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일관성 있는 체계를 이루지 못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따라서 1650 년까지는 완전히 제1 의 물결시대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1750 년까지도 제1의 물결세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곳곳에 미래사회나 곧 도래하게 될 산업사회를 예견하게 하는 현상이 보이기는 했지 만 역시 농업문명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러한 상태가 영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은 이 농업문명 속에서 시작되었고 제2의 물결을 일으킴으로써 전혀 미지의 강력하고 열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활력이 넘치는 문명, 그때까지의 문명과는 대조 적인 문명을 창조해 냈다. 산업주의란 단순히 공장굴뚝이나 조립라인만의 문제가 아니 었다. 그것은 강력하고 다방면에 걸쳐진 사회체계이며 인간생활 모든 면에 관계하고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제1의 물결의 모든 특질에 도전했던 것이다. 산업주의는 다트 로이트 교외 윌로우 런에 거대한 공장군을 만들어 낸 것뿐만 아니라 농장에는 트랙터 를, 사무실에는 타이프라이터를, 부엌에는 냉장고를 등장시켰다. 일간신문이나 영화, 지하철, DC3 항공기를 이 세상에 내놓았다. 회화의 세계에서는 큐비즘(cubism)을 음악 에는 12음계를 가져다 주었다. 공업기술과 예술과의 결합을 목표로 하는 종합조형학교 바우하우스(Bauhaus)의 건축, 바르셀로나 양식의 의자, 연좌파업, 비타민제, 평균 수명의 연장^36,36^이것들은 모두 산업주의의 산물이었다. 팔목시계와 선거를 보급시킨 것도 산업주의이다. 그러나 보 다 중요한 것은 산업주의자 이러한 별개의 현상들을 모아서 마치 부속품으로 기계를 조립하는 것처럼 이것들을 조립하여 그때까지는 없었던 대단히 강력하고 일관된 광범 한 사회제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제2의 물결이 가져온 문명인 것이다. 폭력적 해결 제2의 물결이 여러 사회로 밀어닥침에 따라 농업사회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도래하고 있는 산업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은 마침내 정면충돌을 일으켜 양자의 격돌현장에 있던 구시대 의 사람들은 구석으로 밀려나거나 때로는 대량살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이 충돌은 농업에 의한 제1의 물결문명을 확립하려고 하는 유럽인이 이주 해 옴으로써 시작되었다. 백인에 의한 농업문명의 조류는 사정없이 서쪽으로 밀려 가 서 인디언들을 내쫓고 멀리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농장과 농촌을 계속적으로 만들어 냈 다. 그러나 농민들의 뒤를 이어 앞으로 오게 될 제2의 물결시대의 첨병이라고도 할 수 있 는 초기 산업인들도 도착했다. 뉴잉글랜드와 대성야 연안 중부 여러 주에는 공장과 도 시들이 급격히 출현하게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동북부는 공업지대로서 급속한 발전 을 계속하여 무기, 시계, 농기구, 섬유제품, 재봉틀 등의 제품을 생산해 냈다. 반면 그 외의 지역에서는 아직 농업세력이 지배적이었다.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 사이에 는 경제적,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어 드디어 1861 년에는 무력투쟁으로 발전되고 말았 다. 남북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노^36^예제도를 둘러싼 도덕적 논쟁 이나 관세문제라는 협소한 경제적 대립만이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전쟁이 결말 지으려 하는 것은 훨씬 중요한 문제 때문이었다. 즉, 풍요한 이 신대륙을 농민이 지배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산업가들이 지배할 것인가, 제1의 물결세력에 굴복하는가 아 니면 제2의 물결세력이 승리하는가, 그것이 전재의 진실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미래의 미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농업형 사회로 되느냐 산업형 사회로 되는냐의 분수령이었다 . 북군이 승리하으로써 주사위는 던져졌다. 미국의 산업화가 확정된 것이다. 그때 이 후부터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면에서 농업은 후퇴를 계속하고 공업이 융성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제1의 물결은 후퇴하고 제2의 물결이 밀려들게 되었다. 비슷한 두 문명의 충돌은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났다. 1868 년에 시작된 일본의 메이 지유신 역시 과거의 농업시대와 미래의 산업시대와의 싸움을 똑같이 재연한 것이었다. 1876 년에 실시하게 된 사족의 기록을 폐지함으로써 봉건제도가 종말을 고하고, 1877 년에 일어난 사쓰마항의 반란 때문에 일어나 세이난의 전쟁, 1889 년에 서구형 헌법 의 공포, 이런 것들은 모두 일본에 있어서의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의 충돌을 반영 하는 사건이며 일본이 세계 제1급의 산업국으로 전진하는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러시아에서도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의 세력 사이에 이같은 충돌이 일어났다. 1917 년의 러시아혁명은 남북전쟁의 러시아판이었다. 표면상의 중요한 쟁점은 공산주 의 체제를 취하느냐 아니냐처럼 보였지만 실은 여기서도 문제의 중심은 산업화에 있었 다. 볼셰비키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농노제도와 봉건영주의 전제정치에 종지부를 찍 어 농업은 뒷전으로 제쳐 놓고 의식적으로 산업화를 촉진시켰다. 볼셰비키 역시 제2의 물결 편에 들어온 정당이 된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이 계속 충돌하면서 정치적 위기, 동란, 파업 , 반란, 쿠데타, 전쟁 등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20세기 중반까지 제1의 물결세력은 완 전히 붕괴되고 제2의 물결문명이 지구를 지배했던 것이다. 오늘날 산업주의 사회는 지구상의 북위 25 도선과 65 도선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북미대륙에서는 약 2억 5000 만의 인구가 산업화된 생활양식에 따라 살고 있다. 서유 럽에서는 스칸디나비아의 남쪽에서 이탈리아에 이르는 지역에 역시 2억 5000 만 정도 의 인구가 산업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동쪽으로 향하면 유라시 아(Eurasia) 공업지대, 즉 동유럽과 소련의 서부가 산업주의 문명권이며 여기에도 2억 5000 만의 인구가 산업사회 특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아시아의 산업지역인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호주, 뉴질랜드, 한국, 중국본토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의 2억 5000 만의 산업화된 인구가 있다. 결국 산업문명에 속하는 인간 은 약 10억에 이르고 이것은 지구 전체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나라들은 분명 다른 언아, 문화, 역사,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어서의 그 뿌리깊은 차이점 때문에 전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의 물결에 속해 있는 사회에는 여러가지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그 차이점 의 배후에는 유사성이라는 공통의 기반암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체제와 충돌을 되풀이하고 있는 사회변화의 물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사회의 공통적 구조, 즉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제2의 물결이 이루어 놓은 문 명의 구조를 확실하게 알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다름아닌 이 산업사회의 기 본구조 그 자체가 지금 붕괴되려 하기 때문이다. 육체노동에 의존하고 있던 동력 새로운 문명이건 낡은 문명이건간에 모든 문명의 전제조건은 에너지이다. 제1의 물결 사회에서의 에너지원은 인간이나 동물의 근육의 힘인 '생물에 의한 동력원', 태양열, 풍력 등 자연의 힘에 의존하고 있었다. 취사나 난방을 위해서 삼림이 벌채되었다. 물 레방아도 있었다. 논이나 밭에서는 관개용 풍차가 찌극찌극 소리내며 돌고 있었다. 가 축은 쟁기를 끌고 있었다. 프랑스혁명 당시만 해도 유럽에는 에너지원으로 1400 만 필 의 말과 2억 400 만 두의 소가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것은 제1의 물결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이용된 모든 에너지원은 재생가능한 에너지였 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림은 자연이 회복시켜 주었고 배를 달리게 해주는 바람도, 기 선의 외륜을 돌려주는 강물의 흐름도 자연의 힘으로 해서 순환되었다. 에너지원으로서 혹사당하던 가축이나 인간도 교체요원은 얼마든지 있었다. 여기에 비해서 제2의 물겨이 만들어 낸 사회는 모두가 석탄이나 가스, 석유 등 한번 소비해 버리면 재생불가능한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712 년 영국 의 기술자 토머스 뉴코먼에 의해서 실용적인 증기기관이 발명된 이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단순하게 자연이 만들어 내는 이자만으로 인간문명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축적해 둔 자본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가 축적해 두었던 에너지를 조금씩 뜯어 먹는 것은 산업문명을 성립시키는데 있 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보조금의 역할을 했다. 이것으로 해서 산업문명은 대단히 급속 한 경제성장을 실현했다. 제2의 물결이 밀려온 나라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나 값싼 화석연료를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거대한 과학기술의 체계와 경제기구를 수립했다. 자본주의 사회이건 사회주의 사회이건, 그리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분명히 같은 전환이 일어났다. 즉 어디에서도 구할 수 있는 에너지에서 특 정한 장소에 집중하고 있는 에너지로, 재생가능한 것에서 재생불능의 것으로, 잡다한 종류의 자원이나 연료에서 소수의 연료로 전환하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화석연료 는 제2의 물결에 속하는 모든 사회의 에너지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기술의 요람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의 도약은 과학기술의 거대한 진보와 발전을 가져왔다. 제1의 물결이 가져온 사회는 2000 년 전에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말했던 것처 럼 '문명의 발달에 필수불가결한 발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랭크, 쐐기, 노 포, 포도짜는 기구, 지렛대, 기중기 등 초기에 발명된 기계는 주로 인간이나 동물의 근육의 힘을 증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제2의 물결은 과학기술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모터, 벨트, 호스, 베어링, 볼트 등이 하나가 되어 규칙적인 운동을 계속하면서 톱니바퀴를 물고 돌아가 는 거대한 전기기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기계는 단순히 근육의 힘을 증 강시키는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산업문명은 인간보다 정확한 시각, 청각, 촉각을 갖는 기계를 만들어 과학기술에게 감각기관을 대행시킬 수도 있게 되었다. 산업문명은 또 새로운 기계를 만들기 위한 공작기계를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만들어 냈 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술에 요람을 제공해 준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산업문명이 여러가지 기계를 한 지붕 밑에 모아 놓고 상호연관된 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라 하여 공장이 만들어지고 나아가서 공장 내부에 조립라인 작업체제가 확립되었다. 이 기술적 기반 위에 서서 많은 산업이 급격하게 일어나 제2의 물결이 이루어 내는 문명의 특질을 명확하게 했다. 맨처음 발달한 것이 석탄산업, 섬유산업, 철도산업이고 철강, 자동차산업, 알루미늄, 화학제품, 항공기산업이 그 뒤를 이었다. 거대한 공업도시가 각지에 출현했다. 섬유산업이 성황을 이룬 프랑스 북부의 릴, 영국 북서부의 맨체스터, 미국의 자동차산업 도시인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 철강도시인 서독의 에센, 소련 서부에 있는 마그니토고르스크 등 수백개가 넘는 공업도시가 태어 났다. 이 공업중시지에서 내의, 구두, 자동차, 시계, 장난감, 비뉴, 샴푸, 카메라, 기관총, 전동기 등 동일한 제품들이 수없이 생산되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 가동되기 시작한 새로운 과학기술이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붉은 탑 그러나 대량생산이 되었다 해도 유통체제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제1의 물결사회에서 상품은 보통 손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 에 제품은 주문에 따라 하나씩 만들고 있었다. 유통도 이러한 생산과 비슷했다. 서구에서는 낡은 봉건적 질서의 균열이 넓어짐에 따라 상인들은 규모가 크고 복잡한 조직을 가진 무역회사를 만들어 낸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회사들이 상선대나 낙타로 운반하는 대상을 조직하여 전세계에 무역로를 개척했다. 그리고 이들은 유리, 종이, 명주, 차, 포도주, 양털, 인디고(indigo), 메이스(mace) 등을 판매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의 대부분은 소규모의 점포 또는 시골 구석까지 짐을 지고 가거나 수레를 끌고 가서 판매하는 행상인을 통해서 소비자에게 전달되었다. 조잡한 통신사 정과 원시적인 수송수단이 판매시장을 결정적으로 한정시켜 놓았던 것이다. 이들 소규모 점포의 경영자와 행상인들이 제공하는 상품의 종류는 극히 한정되어 있었 고 게다가 상품이 품절되는 상태가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이나 이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제2의 물결은 시대에 뒤떨어져서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는 이 유통체계에도 변혁 을 가져왔다. 유통상의 변혁은 생산부문의 변혁 못지 않게 근본적인 변혁이었다. 철도 와 고속도로, 운하가 오지까지 개발시켰다. 그리고 산업주의와 더불어 상업의 전당인 최초의 백화저머이 출현했다. 중개인, 도매업자, 대리점, 그리고 제조업자의 대표들 사이에 복잡한 조직망이 만들어지고 1871 년에는 조지 헌팅턴 하트포드가 대량판매망 을 확립했다. 나중에 헨리 포드가 공장에서 실현하게 된 대량 생산을 그는 유통면에서 일찍이 실현하였던 것이다. 뉴욕에 진출한 하트포드의 최초의 상점은 붉은 건물과 중 국의 탑 모양을 본뜬 독특한 매장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세계 최초의 거대한 체인점(c hain store) 조직인 '대서양, 태평양 차 회사(The Great Atlantic and Pacific Tea Co mpany)'를 창립함으로써 유통산업을 기존의 것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 특정의 단골손님만을 상대로 하던 유통이 기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산업사회에 공통적 이고 핵심적인 요소가 된 대량유통과 대량판매에 밀려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검토해 온 모든 변화를 만일 일관해서 표현한다면 '기술영역'의 변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개사회나 농업사회, 혹은 산업사회를 불문하고 모든 사회는 에너지를 소비하여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유통시킨다. 어떠한 사회에서도 에너지 체계 와 생산체계, 유통체계는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다 전체적인 하나의 체계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보다 전체적인 체계가 기술영역이다. 이 기술영역은 사회 의 발전단계에 따라 각기 특징적인 형태를 갖는다. 지구상에 제2의 물결이 파급됨에 따라 농업사회의 기술영역은 산업사호의 기술영역으 로 바뀌어졌다. 재생불가능한 에너지가 대량생산체계에 직결되고 그 대량생산체계는 고도로 발달한 대량유통체계에서 상품을 건네주게 되었다. 유선형 가족 그러나 제2의 물결의 기술영역은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사회영역이 필요했다. 즉, 기 술이 산업사회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사회조직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가족형태는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농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어디나 백부, 백모(혹은 숙부, 숙모), 장인, 장모(혹은 시부모), 조부모, 사촌 등 여러 세대의 가족이 한 지붕 밑에서 생활했고 경제적으로도 모두가 하나의 생산단위로서 함께 일하는 대가족주의가 일반적이었다. 인도의 가부장제에 대한 대가족(joint family),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었 던 가족공동체 (zadruga), 서유럽에서 일반적이었언 수세대를 포함하는 종의 복합가족 인 확대가족 (extended family) 등의 예를 들 수가 있다. 그리고 가족은 이동하지 않 고 토지에 뿌리를 박고 살았다. 제2의 물결이 제1의 물결사회를 휩쓸게 되자 가족은 변화를 강요당하게 되었다. 각 가정 내부에서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이 충돌하면서 가정내의 분쟁, 가부장의 권 위에 대해 도전하기 시작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가 변했고 예의범절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경제적인 생산의 장소가 농토에서 공장으로 바뀌어지자 가족은 이제 하나의 생산 단위로서 함께 일하지 않게 되었다. 집안의 일꾼을 공장노동으로 보 냄으로써 가족의 중요한 기능은 각각 전문적 기관들이 분담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에 맡겨졌다. 노인에 대해서는 구호시설이나 양호시설에 맡겨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새로운 사회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노부모, 병자, 신체장애자, 그리고 많은 자녀들을 부양하고 있는 확대가족은 도저히 이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비극을 일으키면서 가정의 구조가 점차로 변화 하기 시작했다. 도시로의 이주로 이별하게 되고 경제적인 폭풍에 휩쓸리기도 하면서 가족은 불필요한 친족을 떨쳐버리고 이제는 보다 작고 이동성이 큰 새로운 기술영역에 적응해 나아갔던 것이다. 성가신 친족들은 떼어내 버리고 부모와 두셋의 자녀들만으로 구성되는 이른바 핵가족 이 자본주의 사회건 사회주의 사회건 할 것 없이 모든 산업사회에서의 표준적인 '근대 적' 가족의 모델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되었다. 조상숭배에 의해서 가부장제도가 중 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일본에서마저도 핵가족이 성행하게 되었다. 단결심이 강한 대가족이 제2의 물결의 도래와 더불어 붕괴하기 시작했고 점점 핵가족 이 늘어났던 것이다. 요컨대 석탄이나 석유 등 화학연료, 제철소, 체인점 등이 제2의 물결를 제1의 물결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던 것처럼, 핵가족은 제2의 물결사회와 제1의 물결사회를 확연히 구분짓는 요인이 된 것이다. 내면적인 교육계획 노동의 장소가 농토나 가정에서 벗어나 공장으로 이행함에 따라 자녀들은 공장노동에 적합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생겨났다. '일단 사춘기를 지낸 사람들은 농업에서 전업 한 경우거나 수공에서 전업한 경우거나 간에 공장의 유능한 일꾼이 되기는 어려웠다.' 라고 1835 년에 앤드루 우어가 쓰고 있지만 산업화한 영국에서는 초기의 광산이나 공 장경영자가 먼저 그 사실을 알았다. 젊은 연령층을 미리 산업주의 체제에 적합하게 양 육하면 나중에 산업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훈련을 받을 때 직면하게 되는 곤란을 크 게 완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출현한 것이 모든 제2의 물결사회에 공통적인 또 하나의 중요한 구조 즉 대중교육이다. 공장을 모델로 해서 설립된 대중교육은 초보적인 읽기와 쓰기, 산수를 주체로 하고 역사나 기타의 과목도 간단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교육계획이었다. 사실에 있어서 그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교육계획이 있었고 이것이 산 업사회에는 근본적으로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이 교육계획은 세 개의 과목으로 성립 되어 있었다. 물론 대개의 산업주의 국가에서는 현재도 이 세 개의 도덕과목이 존재해 있다. 그것은 첫째, 시간 엄수이다. 둘째가 복종, 셋째가 기계적인 반복작업의 습관 화이다. 공장노동자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일이다. 특히 조 립 라인의 근무자인 경우가 그러했다. 그리고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노동자여 야 했다. 또한 남자든 여자든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완전히 기계적인 반복작업을 싫증 도 내지 않고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인내력의 양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19세기 중반 이후 제2의 물결이 밀어닥친 나라에서는 교육제도가 지나칠 정도로 발달해 갔다. 취학연령은 점점 나아지고 재학생수는 늘어날 뿐이었다. (미국 에서는 1878 년에서 1956 년사이에 35 퍼센트가 늘어났다.) 그리고 의무교육 연한도 당연히 연장되었다. 공립학교에서의 대중교육은 분명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진전이었다. 1829 년 뉴욕의 어느 기계공과 직공 그룹이 선언한 것처럼 '교육은 생명과 자유 다음 으로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다.'라고 간주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이 도래한 이후의 학교는 몇 세대에 걸쳐서 젊은 사람들을 규격화하고 전기기계와 조립 라인에 알맞은 획일적인 노동자를 양성해 왔다. 핵가족제도와 공장노동자를 위한 교육제도는 젊은 사람들이 산업사회에서 유능한 역 할을 다하기 위한 종합적인 준비체제의 일부로서 기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제2의 물결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건 공산주의 사회건 북이건 남이건 모두 비슷했다. 법인이라는 이름의 불사조 제2의 물결에 의해서 태어난 모든 사회에는 핵가족 및 대중교육과 함께 이러한 사회 적 영향력을 더 한층 강력하게 하는 제3의 제도가 대두되었다. 그것은 주식회사라는 조직의 발명이었다. 그 이전의 기업에서는 보통 개인 또는 가족이 소유하고 있거나 몇 몇 사람의 공동경영이었다. 주식회사도 있기는 했지만 극히 소수의 존재에 지나지 않 았다. 미국 독립혁명 당시만 해도 공동경영이나 개인경영을 대신해서 주식회사가 기업으로 서의 주요한 조직으로 되리라는 것은 경세사가 아더 듀잉이 말했던 것처럼 '누구도 분 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였다. 1800 년이 되어서도 미국 전토에 있는 주식회사는 불과 335개사에 불과했는데 그것마저도 대부분은 운하건설이나 유료도로를 경영하는 공영 에 가까운 사업체였다. 대량생산의 개시는 이러한 상태를 일변시키고 말았다. 제2의 물결이 가져온 과학기술 은 방대한 자본의 축적을 필요로 했다. 이제는 개인이나 소수의 집단이 출자하는 한도 를 넘고 있었다. 투자할 때마다 자기개인의 전재산을 잃게 되는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면 기업의 소유자 또는 공동경영자는 위험이 수반되는 대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 게 된다. 그래서 이들의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서 유한책임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만일 회사가 망하더라도 투자자는 투자한 재산만 잃을 뿐이며 그 이상의 피해는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 제도는 투자의 급격한 증대를 가져왔다. 게다가 회사는 사법기관에 의해서 절대로 '죽지 않는 존재=법인'으로 취급되게 되었 다. 즉, 최초의 투자자가 사망하여도 법인을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기업의 입 장에서 본다면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여 전에는 생각지 도 못했던 거대한 사업에 착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01 년에는 세계 최초의 10억 달러 규모의 기업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스틸(United States Steel)사가 등장했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자본의 집중이었 다. 1919 년에는 이러한 거대 기업이 6개로 늘어났다. 그야말로 거대기업은 모든 산업국가의 경제생활에 공통되는 특징을 이루게 되었던 것 이다. 이런 점은 사회주의 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의 형태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과는 상이했지만 조직면에서 보았을 때 그 본질은 대단히 비슷했 다. 핵가족, 공장식의 대중교육, 그리고 거대 기업이라고 하는 3개의 조직이 제2의 물 결에 의해서 태어난 사회에는 예외없이 출현해서 그 사회를 특징짓는 제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 스위스, 영국, 폴란드, 미국, 소련 등 제2의 물결세계에서는 국민의 대부분이 규격화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즉 핵가족의 일원으로 성장하여 공장노동에 순응하기 위해 집단으로 학교교육을 받았으며 사기업이건 공영기업이건간에 대기업으 로 들어가서 일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개개인의 생활방식이 모든 면에서 제2의 물결사회를 성립시키고 있는 사회제도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음악공장 지금까지 논술해 온 가족, 학교, 기업이라고 하는 세 가지 핵심적 제도들을 중심으로 그 밖의 여러가지 무수한 조직이 생겨났다. 정부의 각 부서, 스포츠 단체, 교회, 상 공회의소, 노동조합, 변화사회나 의사회 등의 전문기관, 정당, 독서 클럽, 미국에 많 은 인종이나 문화, 종교 등을 공통으로 하는 인종단체, 기타 수많은 단체들이 제2의 물결과 함께 출현했다. 각 단체들은 서로 원조하거나 원조를 받거나 하는 관계 외에 대등의 관계, 세력의 균형관계 등 실로 복잡한 조직상태가 조성되었다. 그저 보기에는 이러한 다수의 단체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어서 혼돈상태처럼 느껴 진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면 이들 잡다한 단체에도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는 하나 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제2의 물결이 밀려오면 어느 나라에서건 사회적 제도를 발명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공장이야말로 가장 진보된 능률적인 생산조직이라 고 믿는 나모지 공장 이외의 조직에도 그 원리를 적용하려고 했다. 학교, 병원, 형무소, 정부의 관료기구 및 그 외의 조직, 분업, 위계구조, 금속처럼 냉 랭한 비인간성 등 여러 면에서 공장과 공통적인 특징을 갖게 된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 예술의 분야도 어떤 면에서 본다면 공장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오랜 농업문명시대 의 예술가는 후원자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연주가나 작곡가, 화가, 작가 들은 점차 시장원리에 좌우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들까지 이름도 없는 소비자들을 위해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제2의 물결이 밀려온 나라의 여기저기에서 이 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자 예술작품의 구조 그 자체도 변하게 되었다. 음악이 그 좋은 예이다. 런던, 파리, 비인 등 여러 도시에 콘서트 홀이 출현한 것은 제2의 물결이 도래한 시대였다. 이와 함께 매표소가 생겨났고 예술제작에 투자하여 문 화소비자에게 표를 판매하는 흥행주라는 이름의 사업가가 나타난 것이다. 표가 팔리면 팔리수록 당연히 흥행주의 주머니에는 보다 많은 돈이 모이게 되었다. 그 때문에 홀의 객석수는 점점 늘어났다. 그러나 콘서트 홀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큰 소리로 연주해야 했다. 맨 뒷좌석에서도 음악소리가 잘 들릴 수 있어야 했다. 그 결 과 음악은 실내악에서 교향악으로 그 형식이 바뀌게 되었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후에 미국으로 귀화한 유명한 음악학자 쿠르트 작스는 그의 저서 '악기의 역사'에서 '18세기 중에 귀족적 문화에서 민주적 문화로 이행함에 따라 음악 회장은 작은 살롱에서 거대한 콘서트 홀로 변했고 홀이 크면 클수록 한층 더 음량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당시는 이런 음량을 높이는 기술이 없었으므로 필요한 음량을 내기 위해 점차로 악기와 연주자의 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 과 태어난 것이 근대의 관현악이고 베토벤이나 멘델스존, 슈베르트, 브람스 등이 웅장 한 교향곡을 쓴 것도 이러한 산업사회의 조직 때문이었다. 관현악단은 그 내부구조에 있어서도 몇 가지 공장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처음에 관현악단에는 지휘자가 없었다. 연주자들이 수시로 돌아가면서 지휘를 맡고 있 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연주자들은 공장이나 관료조직이 잘 정비된 사무실에서 일하 는 근로자처럼 부문별(악기별 섹션)로 나누어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체의 생산(음 악)에 기여하면서 매니저(지휘자)나 때에 따라서는 관리자의 계급조직에서 본다면 훨 씬 하급의 장(콘서트 마스터나 악기부의 장)에 의해 조정되게 되었다. 그리고 악단이라는 조직이 그 제품을 대중시장에 판매한 것이다. 결국에는 음악이라는 생산에 레코드라는 제품이 첨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음악의 제조공장이 탄생하 게 된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사회영역은 가족, 학교, 기업 등 세 가지의 핵심조직과 함께 여러 분야 의 조직이 제각기 산업기술영역의 필요에 따라 그것에 적합한 형태로 발생함으로써 성 립된다.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 다. 그러나 문명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술영역과 거기에 대응하는 사회영역만으로 성립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명에는 정보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전달하는 이른바 '정보 영역'이 필요한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도 제2의 물결이 가져온 변화는 괄목할 만한 것 이었다. 종이바람 모든 인간집단은 원시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 대 인간의 직접적인 의사 전달에 의존해 왔다. 그러므로 메시지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헤서 보낼 수 있는 제도도 필요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외치는 보초대'라 불리는 탑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큰 음성을 낼 수 있는 사람을 올라가게 하여 이 탑에서 저 탑으로 필요한 메세지를 육 성으로 중계하도록 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쿠르수스 푸블리쿠스(cursus publicus)라 불리는 광범위한 메신저(messenger) 서비스망을 두고 있었다. 1305 년에서 1800 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의 탁시스(Taxis)일가에서는 유럽 전체에 망아지를 이용한 일종의 우 편 서비스망을 운영하고 있었다. '탁시스 우편'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이 우편제도 는 1628 년 당시만 해도 2 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고용되어 있었다. 이 회사의 배달부 는 청색과 은색의 제복을 입고 황태자, 장군, 상인, 금융업자들 사이에서 왕래되는 메 시지를 가지고 유럽대륙을 종횡으로 뛰어다녔던 것이다. 제1의 물결문명시대에는 이러한 정보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부자나 권력층 에 한했다. 일반대중은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가 로린 질리아쿠스가 말한 것 처럼 '이와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편지를 보내려는 시도는 권력자에게 의심을 받거나 결국은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간의 정보교환은 모든 사람에게 허가된 데 비해 가족이나 마을을 넘어서는 정보전달의 보다 새로운 체제는 본질적으로 공공 적 서비스가 아니라 사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대중을 관리하는 목적으로 이용된 데 불 과했다. 실제로 이 제도는 엘리트의 무기였던 것이다. 제2의 물결이 여러나라로 파급되는 과정에서 대중 전달의 점유체제는 하나하나 타파 되었다. 이것은 부유계급이나 권력층이 갑자기 서민의 이익을 생각해서 그렇게 된 것 이 아니라 제2의 물결이 가져온 과학기술과 공장에서의 대량생산이 낡은 제도로는 도 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정보의 '대중화'를 필연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원시사회와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경제적인 생산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비교적 단순 한 것이어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얻는 정보로도 충분했다. 대부분은 언어나 몸짓에 의한 정보였다. 이것에 비해 제2의 물결경제는 다수의 장소에서 행해지는 작업 의 엄격한 조정을 필요로 했다. 대량의 정보를 낳아서 원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그 정보를 각 방면에 유통시켜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제2의 물결이 본격화되자 모든 나라가 앞을 다투어 우편제도를 확립하게 되엇다. 우체국이라는 것은 솜을 다루는 기계나 방적기와 마찬가지로 그 이 전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참으로 창의적이고도 사회적으로 유익한 발명이었다. 오늘 날에는 보통의 흔한 기계로 되어 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은 매우 기쁘게 한 물건 들이었다. 미국의 정치가이며 명연설가로서 유명했던 에드워드 에버레트는 "우체국이 야말로 기독교와 함께 우리들의 근대 문명을 뒷받침해 주는 큰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 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체국에 의해서 처음으로 산업화 시대의 대중전달회로가 열렸던 것이다. 1837 년에 영국의 체산성은 엘리트층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1 년에 약 8800 만 통의 편지를 취급 했다. 당시의 수준에서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현상이라고 할 정도의 규모였 다. 산업화 시대가 거의 절정에 이르러 제3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한 1960 년대에는 연간 우편물취급 건수가 100억 통에 달했다. 같은 해에 미국의 우정국은 어린이까지 포함하여 전국민 한 사람당 355 통의 국내 우편물을 배달했다. 산업혁명과 동시에 일어났던 우편물의 홍수는 제2의 물결에 따라 밀려오기 시작한 방 대한 정보와 비교하면 그것은 극히 작은 하나의 전조에 지나지 않았다. 대규모 조직체 내부에서는 우편물을 훨씬 능가하는 정보가 이른바 마이크로 우편제도라는 기구를 통 해서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회사 내부의 문서는 공공의 커뮤니케이션 회로에는 나타 나지 않지만 이 역시 편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제2의 물결이 절정에 달했 던 1955 년 후버 위원회(Hoover Commission)가 3 대 기업의 서류철 내용을 감사했다. 그 결과 3사는 각각 종업원 한 사람당 3 만 4000건, 5 만 6000건, 6 만 4000건의 서류 나 연락문서를 철해 두고 있음이 드러났다. 더욱이 산업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급격한 정보의 필요성은 문서만으로는 도저히 대처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19세기가 되자 전화와 전보가 발명되어 언제나 팽창일로에 있 는 대중정보의 일부를 분담하게 되었다. 1960 년의 미국내에서의 1일 통화량은 약 2억 5000 만 건, 연간 930억 건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전화망과 최신식의 장치 를 가지고 있으며서도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다. 이상의 예를 든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는 일정한 시간에 개인과 개인이 정보를 전달하 는 체제다. 그라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 하는 수단, 즉 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보낼 수 잇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다. 소수 의 고용자를 두고 필요할 때는 그 고용인의 자택도 방문할 수 있었던 산업혁명 이전의 고용주와는 달리 산업사회에서의 고용주는 수많은 근로자와 1 대 1의 방식으로 커뮤 니케이션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대중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판 매업자로서는 고객의 한 사람 한 사람과 의사소통을 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었다. 제2의 물결사회는 같은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싼 값으로 또한 단 시간내에 틀림없이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으며 또 실제로 그러한 수단을 발명했 다. 우편은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수백만이라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시 간이 걸렸다. 전화는 메시지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수백만이라는 사 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간격을 메우게 된 것이 대중매체였다. 오늘날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모든 산업국가들에는 예외없이 대량의 발행부수를 자랑 하는 신문과 잡지가 일상생활의 일부로 정착되어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그러나 국내 전역을 대상으로 한 인쇄물의 발행이 활발하게 된 것은 여러가지 새로 운 산업문명적 기술과 사회형태의 급격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쇄물을 가능케 한 원인을 장 루이 세르방 슈레베르는 다음과 같은 요인이 겹 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행한 인쇄물을 하루에(유럽 정도의 넓이) 국내 모든 곳에 운반할 수 있는 철도, 몇 시간만에 수천만 부를 인쇄할 수 있는 윤전기, 전보와 전화 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무교육에 의해 글을 해득하게 된 대중과 제품의 대량판매를 필요로 하는 산업들의 결합 때문이다.' 신문이나 라디오로부터 영화나 텔레비전에 이르는 대중매체에도 역시 공장의 기본적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매체는 마치 공장이 수백만의 가정에 서 사용되는 물건을 찍어 내듯이 수백만이라는 사라들의 머릿속에 같은 내용의 메시지 를 보내는 것이다. 대량생산된 표준화 제품과 마찬가지로 대량생산된 '사실'이 집중화 도니 소수의 이미지 공장에서 수백만의 소비자에게 흘러간다. 이 엄청나게 강대한 정 보유통의 체계가 없었더라면 산업문명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고 확실하게 기능을 발 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모든 산업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회건 사회주의 사회건간에 주도면밀한 '정보영역', 즉 커뮤니케이션 루트가 발생했으나 개인적인 메시지나 대중 상대의 메시 지도 모두 이 루트에 의해 제품이나 원료처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보영역은 기술영역과 사회영역에 결합되어 그것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경제적 제품 과 개인의 소비활동을 연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이 세 가지 영역들은 그것들을 통합한 보다 큰 체계 속에서 각기 주요한 역할을 했으 며 어느 것이나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기술영역은 부를 생산하 여 그것을 개인에게 분배했고 사회영역은 서로 관련을 갖는 무수한 조직을 통해서 개 인에게 체계내에서의 역할을 분담했다. 그리고 정보영역은 체제 전체가 작동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배정했다. 이 세 가지 영역이 일체가 되어 사회의 기본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이상이 제2의 물결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사회에 공통되는 구조의 윤곽이다. 그것은 문화적 또는 풍토적인 차이나 인종적, 종교적 유산을 초월하여 스스로가 자본 주의를 표방하건 사회주의를 표방하건 상관없이 공통의 구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서독이나 프랑스, 캐나다뿐만 아니라 소련이나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이들 기본구조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표현되는 한계를 설정해 주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낡 은 제1의 물결구조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 낡은 문명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문명 뿐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간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인 격심한 투쟁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이러한 공통의 사회구조가 출현되었던 것이다 . 제2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인류의 희망은 상상을 넘을 정도로 커졌다. 인류역사상 처 음으로 빈곤과 기아, 질병이나 전제정치를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8세기 영국의 평등사상가 아베 모렐리나 공상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 프랑스의 사회 과학자 생시몽, 사회개혁가 푸리에, 사회주의자 프루동, 루이 블랑, 미국의 소설가 에 드워드 벨라미 등 수많은 유토피아 작가나 철학자들은 눈앞에 전개되기 시작한 산업문 명 속에서 평화와 화합의 도래, 실업문제의 해소, 부화 기회균등, 족벌에 의한 특권의 종언, 기타 수십만년 동안의 원시생활, 수천년 동안의 농경문명 속에서 절대로 변화 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믿어오고 있던 일의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오늘날에 만일 산업문명이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가 혹하고 황량하며 상태학적으로도 위험에 처해 있고 전쟁과 연결되기 쉽고 인간의 심리 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2의 물결을 살아가는 정신구조를 서로 적대적인 두 부분으로 분열시 키는 거대한 쐐기가 무엇인가를 살펴볼 때 우리는 처음으로 이 문제에 해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제3장 보이지 않는 쐐기 제2의 물결은 마치 핵분열의 연쇄반응과 같이 종전에는 하나의 통합체였던 인간생활 을 격렬하게 양쪽으로 갈라 놓았다. 그 과정에서 제2의 물결은 우리들의 경제생활, 정 신구조, 나아가서 성적 자아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쐐기를 박 고 말았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산업혁명은 아주 독특한 기술이나 사회제도 및 정보채널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매우 종합적인 사회구조를 이루어 놓았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산업혁명은 사회의 내면적인 통일성을 깨고 우리 생활을 경제적 긴장, 사회적 대립, 심리적 불안 등이 가득찬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2의 물결시대를 통하여 이 보이지 않는 쐐기가 우리 생활의 유형을 어떻게 변회시켰는지를 이해해야 비로소 오늘날 우리 생활을 재구축하려는 제3의 물결의 충격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물결은 우리 인간생활을 생산과 소비라는 두 개의 극으로 갈라놓고 말았다. 이를테면 우리는 현재 자기자신을 '생산자'와 '소비자'의 어느 하나에 속한다고 생각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된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생산한 식량이나 그 밖의 일용품, 또는 갖가 지 서비스의 대부분이 생산자 자신이나 그 가족 또는 자기를 위해 어떻게든 잉여물자 를 모을 수 있었던 극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소비되고 있었다. 농업사회의 단계에서는 대개 인구의 대부분이 영세한 농민이며 그들은 겨우 외부와의 교류도 별로 없이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식사를 하며 소 유주의 유복한 생활에 필요할 만큼만 경작을 하면서 최저수준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농민이 농업기술을 개선하거나 생산을 늘리는 데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지 못한 이유 로서는 장기간 식량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고 또 먼 시장에 식량을 운반하기 위한 도로도 없었다. 물론 아무리 생산을 늘린다 하더라도 노^36^예소요주나 봉건영주 에게 징수당하여 버린다는 사실을 농민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상업도 존재했었다. 극소수의 두려움을 모르는 상인이 나타나 수레 또는 배에 상품을 싣고 수천 마일의 먼 곳까지 운반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또 도시의 발생 이 농촌지대에서 운반되는 식량공급에 의존했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1 519 년 멕시코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은 틀라텔롤코(Tlatelolco)에서 수많은 주민들 이 갖가지 상품을 매매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보석, 귀금속, 노^36^예, 샌들, 포목, 초콜릿, 로프, 짐승가죽, 칠면조, 야채, 토끼, 개, 각종 도기류와 같은 잡다한 것이 매매되고 있었던 것이다.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독일의 금융업자들을 위해 발행된 민간통신 '더 푸거 뉴스레터: The Fugger Newsletter'를 보면 당시의 무역이 얼마나 활발했던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코친(Cochin)에서 온 한 통의 편지는 후 추를 사들여 유럽으로 운반하기 위해 5척의 선단을 편성하여 인도로 온 한 유럽 상인 의 활동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후추의 매매는 이익이 많은 장사이다. 그러나 그 장 사를 하려면 일에 대한 열의와 인내가 요청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상인은 후추 외에도 정향나무, 육두구, 밀가루, 육계피와 같은 약재 등을 싣고 유럽 시장으로 가 져갔다. 그란 이와 같은 상업활동은 역사에 매우 미미한 흔적을 남겼을 뿐이며 당시의 생산품 은 그 대부분이 농토가 없는 노^36^예나 농노들 자신이 소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16세 기에 이르러 이 시대의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한 페르난도 브로델에 따르면 서쪽은 프 랑스, 스페인에서 터키 국경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전역의 인구는 6000 만에서 7000 만 정도였으며 시장에 팔기 위해 내놓은것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브로델은 '지중해 연안 지역의 전생산물 중 60--70 퍼센트까지는 결코 시장경제에 유 입되는 일이 없었다.'고 기술하고 잇다. 지중해 연안 지역까지도 그러했었다면 북유럽 의 경우는 도저히 시장이라고 할 만한 정도의 것이 아니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메마른 토지와 긴 겨울 때문에 영세한 농민들이 잉여생산물을 얻어내기는 더 욱 곤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혁명 이전의 제1의 물결경제가 두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부문에서는 자가소비를 위해 생산활동이 이루어진다. 둘째 부문에서는 팔거나 교환하기 위해 생산활동을 하게 된 다. 제1의 물결경제에서는 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고 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작은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생산과 소비는 단순한 생활유 지기능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양자가 완전히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인이나 로 마인, 중세 유럽인들은 생산과 소비를 구별하지 못했다. '소비자'라는 말조차 없었다. 제1의 물결시대를 통해서 시장경제에 생활의 터전을 두고 있었던 것은 전인구 중 극 히 적은 부분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과는 상관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역사가 R.H. 토니는 "금전거래는 자연경제의 세계에서는 주변적이고 2차적인 행위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2의 물결은 이러한 상황을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그때까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들과 자급자족의 사회를 대신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의 식량, 일용품, 서비스란 것이 모두 판매나 물물교환을 목적으로 생산되고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제2 의 물결에 의해서 생산자 자신과 그 가족이 자가소비를 위해서만 물건을 만드는 경우 는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 이미 거의 자급자족으로 사는 사람이 없는 문명, 농민까지 도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 문명을 창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 생산한 식량이나 일용품, 서비스에 의존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요컨대 산업주의는 하나였던 생산과 소비를 분열시켜 생산자와 소비자로 갈라 놓았다 . 이렇게 해서 제1의 물결시대의 생산과 소비가 융합된 경제는 양자가 분리된 제2의 물결경제로 변모되었다. 시장의 의미 생산과 소비의 분열은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짐나 그 의미는 오늘날까지도 잘 이 해되지 않고 있다. 먼저 시장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기 이전은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이 전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즉 경제가 시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산업화도니 사회라면 자본주의 경제나 사회주의 경제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다. 서구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순전히 자본주의적 생활실태만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 어 이 말을 '이윤추구형 경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교환, 또는 시장은 이윤보다 먼저 발생된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이란 정확히 말 해서 재화나 서비스가 마치 메시지처럼 각기 적당한 목적지로 송달되는 교환조직 또는 문자 그대로 교환대에 불과한 것으로서 자본주의적인 것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시장이라는 교환대는 이윤추구형의 산업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산업사회에도 필 요불가결한 것이다. 요컨대 제2의 물결이 몰아닥쳐 생산의 목적이 자가소비에서 교환으로 바뀐 사회에서 는 그 교환을 하는 기구가 존재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시장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러 나 시장이란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경제사가 칼 폴라니는 초기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또는 종교문화적인 목적에 종속되어 있던 시장이 산업사회가 되자 반대로 사회의 목적 을 설정하는 존재로 변모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이 화폐경제 속에 짜여지게 되었다. 상업적인 가치가 중 시되기에 이르고 시장규모로 측정할 수 있는 경제성장이 자본주의 국가이든 사회주의 국가이든 정부으 제일 목표가 된 것이다. 시장이 커지게 된 배경에는 원래 시장의 성격이 확대를 목표로 꾸준히 자신을 강화하 여 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의 분업이 상업을 발달시켰던 것과 같이 이번에 는 시장이라는 교환대의 존재 자체가 다시 노동의 세분화를 촉진하고 그 결과 생산성 의 급상승을 가져오게 되었다. 즉 노동의 분화와 시장이 서로 상대방의 활동을 촉진하 면서 확대되어 간다는 자체증폭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장의 폭발적인 확장은 생활수준의 전례없는 비약적 상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정치면에서는 제2의 물결에 휩싸인 여러 나라의 정부들이 생산과 소비의 분리 로 생겨난 새로운 대립에 의해 차츰 분열이 심화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중시하는 계급투쟁이라는 사고 방식은 고임금, 고이윤을 추구하는 생산자(노동과 경영자의 쌍방을 포함한다.)의 요구와 반대로 가격인하를 추구하는 소 비자(마찬가지로 노동자와 경영자 쌍방을 포함한다.)의 요구 사이에 생긴 보다 크고 보다 심각한 대립을 불명확하게 만들어 버렸다. 경제정책은 이 대립을 받침대로 해서 어느 쪽의 요구에 역점을 두느냐에 따라 시소와 같이 변동해 왔다. 미국에서의 소비자 운동의 증대, 폴란드에서의 공정가격인상에 반대하는 폭동, 물가 와 임금정책을 둘러싸고 영국에서 쉬지 않고 계속되는 논쟁, 또 소련에 있어서의 중공 업과 소비재 공업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끝없는 이데올로기 투쟁, 이런 것들은 모두 자 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생산과 소비의 분리가 사회내부에서 일으킨 심각한 대 립의 구체적인 예이다. 정치뿐 아니라 문화도 또한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 의해서 변모되었다. 왜냐하면 이 분리에 의해 금전만능, 이익추구형의 상업본위적이고 극히 타산적인 문화가 역사에 출 현했기 때문이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가족의 유대, 사랑, 우정, 이웃이나 지역공동 체와의 유대는 모두 상업주의적 이기심에 물들어 타락해 버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산당 선언'에서 '새로운 사회에는 노골적인 사리, 가차없는 현금거래 이외에 사람과 사람을 묶어둘 고삐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라마과 사라마의 인간적인 유대가 상실되었다는 지적은 옳았지만 마르크 스가 그 책임을 자본주의에 떠넘긴 것은 옳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집필했을 당시에 관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산업사회는 자본주의 형태였다. 사회주의, 적어도 국가사회주의에 기반을 두고 산업사회가 성립된 지 반세기 이상이 경과된 현재 약탈적인 이윤추구, 상업적 부패, 인간관계를 차가운 경제관계로의 격하 등은 결코 이윤추구를 노린 자본주의 사회만의 독점물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금전, 재화, 물질에 뒤따르는 끈질긴 관심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체제와는 관계 없이 산업주의의 반영이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시장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이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가 생활필수품을 얻기 위해 자기의 생산 기술보다는 시장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 을 수 없다. 시장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산업사회에서는 정치체제와는 관계없이 제품뿐 아니라 노 동, 아이디어, 예술, 영혼까지도 모두 거래나 교환의 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구미에는 부정한 커미션을 착복하는 구매담당자가 있으며 소련에는 책을 출간해 주는 대신에 저자로부터 뇌물을 받는 편집자나 의뢰받은 일을 하기 위해 요금 이외의 보드카를 1병 요구하는 연관공이 있기도 하다. 프랑스나 영국, 미국에는 돈만을 위해서 일을 하는 작가나 화가는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소련의 별장, 보너스, 새 자동차의 구입권과 같은 여러가지 경제적 특전을 얻기 위해 창작상의 자유를 포기하는 작가나 화가, 극작 가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패나 타락은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 수반하여 발생한 것이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다시 연결하여 생산된 상품을 소비자에게 도달케 하기 위한 교환대 로서의 시장이 꼭 필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장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어떤 논법으 로 그 권력을 정당화하려고 하는가는 별도로 하고도 지나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모든 산업사회, 즉 제2의 물결사회의 특징을 이루는 이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인간서 에 관한 우리의 퍼스낼리티에 대한 전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행동을 일련의 '거래행위'로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우정, 혈연관계 혹은 부족의 장이나 영주에 대한 충성에 바탕을 두는 사회를 대신하여 제2의 물결으 도래와 함께 실질적 또는 암묵적 인 계약관계에 기반을 두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부부 사이까지 도 계약결혼이라는 말이 오르내리는 시대인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두 역할의 분리는 또한 이중적인 퍼스낼리티를 만들어 냈다. 동일인물이 생산자로서는 가정에서나 학교, 직장의 상사로부터도 개인적인 만족은 뒤 로 미루고 규율이나 통제에 복종하며 모든 것에 소극적이고 순종하며 팀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도록 교육받는 한편, 소비자로서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만족감을 충족하고 신 중히 행동하기보다는 쾌락에 사로잡혀 규율 따위와는 상관없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즐겨움을 추구하려고 애쓴다. 다시 말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요구받았다. 특히 서구에서는 소비자에 대한 광고기술이 교묘해져서 소비자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충동구매를 하게 하고, '먼저 하늘의 여행을 즐기십시오. 지불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라는 팬 아메리카의 광고처럼 경제의 수레바퀴를 계속 돌아가게 함으로써 국가발전에 공헌하자는 것이다. 남녀의 역할분리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시킨 제2의 물결사회의 거대한 쐐기는 노동 또한 두 종류로 나누어 놓았다. 이 사실은 가정생활, 남녀의 역할 및 개인의 내면생활에도 커다란 충 격을 주었다. 산업사회에 가장 일반적인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의 하나는 남자는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하여 '객관적'이며 여자는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만일 남녀의 차이에 관하여 이런 견해에 진실의 핵심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생물학적 실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쐐기에 의한 심리적인 영향일 것이다.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의 대부분이 논밭이나 가정에서 이루어졌고 가족전체가 하 나의 경제단위로서 일하며 생산된 물품은 대부분 촌락이나 장원에서 소비되고 있었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다. 촌락에서는 어디서나 자급자족이 일 반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에 일정지역의 농민이 많은 수확을 올리느냐 못 올리느냐는 다 른 지역의 풍작, 흉작과는 관계가 없었다. 하나의 생산단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계절이 나 질병이나 기호에 따라서 자기역할을 바꾸거나 타인과 일을 교환하면서 여러 종류의 일을 했다. 산업주의 이전의 분업은 매우 원시적인 것이었다. 제1의 물결에 속하는 농업사회의 노동은 상호간의 의존도가 낮은 것이 특징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기타 국가들에 밀려든 제2의 물결은 노동의 장소를 농토와 가정 에서 공자으로 옮기고 노동의 상호의존도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노동은 이제 집단작업 이 되고 분업, 조정, 각종 기술의 통합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일을 잘 되기 위해서는 작지에서 모인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중히 계획된 협동작 업에 의존하도록 되었다. 대형 제철소나 유리공장에서 자동차공장에 필요한 제품이 원 만히 흘러가지 않으면 경우게 따라서는 산업계나 지역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상호의존도가 높은 노동과 낮은 노동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분담, 책임, 또는 보수에 대한 격렬한 분쟁이 생기게 되었다. 예를 들면 초기의 공장경영자는 종업 원의 책임감 결여로 고민했다. 공장 전체의 능률에는 전연 관심이 없고 가장 분주한 시기에 낚시를 가거나 소란을 떨거나 술에 취해 나타나기가 보통이라고 불평했다. 사 실 초기의 공장노동자 대부분은 농민 출신이고 상호의존도가 낮은 일만 해 왔기 때문 에 생산공정 전체 속에서의 자기역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여 자기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공장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능률저하나 경영의 파탄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이해 하지 못했다. 게다가 임금이 비참할 정도로 낮았기 때문에 일할 의욕이 희박했다는 면 도 무시할 수 없다. 상호의존도가 높은 노동과 낮은 노동이라는 두 노동형태가 충돌한 결과 새로 태어난 노동형태의 우위는 명백해졌다. 생산이 차츰 대규모 공장과 사무실에 집중되기에 이르 고 농촌인구는 흡수되고 있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상호의존도가 높은 조직의 구성원 으로 짜여졌다. 제2의 물결이 만들어 낸 노동은 이렇게 해서 제1의 물결과 관련된 과 거의 낡은 노동형태를 완전히 압도하고 말았다. 그러나 상호의존적인 노동이 자급자족의 노동으로 완전히 대치된 것은 아니었다. 낡은 노동형태가 완고하게 고수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가정이 그러한 곳이었 다. 가정은 여전히 아기를 낳는다는 생물학적인 재생산을 하면서 육아와 문화의 전승에 종사하는 독립된 하나의 단위였다. 어는 가정이 출산이나 육아에 실패하거나 자녀를 장래의 노동형태에 잘 적응시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이웃의 출산이나 육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가정내의 노동은 상호의존도가 낮 은 활동이었다. 이런 상황하에서도 주부는 여전히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해왔다. 그것은 바로 출산과 육아, 기타 가사노동이다. 주부가 하는 일도 '생산'이었다. 그러나 그 생산은 자기의 가정을 위한 것이지 시장에 내놓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남편은 직접적인 경제활동에 진출하고 있었던 데 비해 주부들은 가정에 남아 간접적인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는 역사적으로 보다 진보된 형태의 노동을 분담하고 여자는 뒤쳐져서 더욱 뒤떨어진 형태의 노동을 맡았다. 남자 는 이른바 미래를 향해 전진한데 비해 여자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려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남녀의 역할분담은 사람들의 인격과 내면생활에서도 분열을 야기시켰다. 공장이나 사무실은 본래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이며 조정이나 통합을 필요로 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공장노동이나 사무노동이 일반화되자 객관적인 분석 이나 객관적인 인간관계가 강조되게 되었다. 남자는 어린 시절부터 장차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길러지고 '개관적'인 사람이 되도록 기대되었다. 이에 비해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고립되어 출산, 육아 그 밖의 여러가지 단조 로운 가사를 분담하도록 훈련된 여자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성은 대 부분의 경우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는 어렵다고 생각되어 왔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사고나 분석적 사고는 본시 객관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생각해 보면 비교적 고립되기 쉬운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타인과 관계가 깊은 상호의존적 생산에 종사하는 여성이 여자답지 않고 냉철하고 거칠어졌다고 비난받는 일은 당연했다. 요컨대 그러한 여성은 '객관적'으로 되게 마련인 것이다. 남녀의 차이나 그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 사실은 남자도 소비활동을 하고 여자도 생 산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생산에만 종사하고 여자는 소비만을 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에 의해서 더욱 강조되어 갔다. 즉 제2의 물결이 지구상을 휩쓸기 훨 씬 이전부터 여성은 억압된 존재였지만 현대의 '남녀의 투쟁'은 거시적으로 보면 두 노동형태의 대립과 함께 시작되고 특히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생 산과 소비가 분리된 경제는 남녀의 분열에도 박차를 가한 것이다. 여기까지 밝혀 온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쐐기가 박혀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자 그 뒤에 여러가지 중요한 변화가 연이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시장이 형성 되고 확대되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결부시키는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인 대립이 생기고 남녀의 새로운 역할이 정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이 정도의 의미만으로는 그치지 않았다. 제2의 물결사회는 모두 같은 방법으로 운영되 고 특정한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생산의 목적이 이윤이든 아니든, '생산수 단'이 공공의 것이든 사유이든, 또 시장이 '자유경제'이든 '계획경제'이든, 자본주의 이든 사회주의이든 이 점에 대해서는 똑같다. 생산이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교환을 위한 것이라면 생산물을 경제적인 교 환대나 시장을 통하여 유통시키는 한 제2의 물결 특유의 원리는 준수되어야 했다. 일단 이러한 원칙의 존재가 확인되면 모든 산업사회의 숨겨진 역할관계가 밝혀지게 된다. 제2의 물결시대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고방식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제2의 물결문명의 기본법칙, 즉 사람들의 행동규범서를 형 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4장 규범의 내용 어떠한 문명이든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그 문명 고유의 숨겨진 규범이 있다. 즉 그 문명의 모든 활동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일련의 법칙 혹은 원칙이 있다. 그것은 갖가 지 사례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그 문명의 기본적인 구도와 같은 것이다. 산업주의가 지구상을 휩쓸면서 그때까지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 문명 특유의 기 본적 구도가 차츰 밝혀지게 되었다. 그것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진 6개의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6개 원칙이 오늘날까지 수백만이라는 인간의 행동을 규제해 왔다. 이 원칙은 앞 장에서 서술한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파생된 것이며 우리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성, 스포츠, 노동, 전쟁 등 인간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학계나 기업계 또는 정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치열한 투쟁이 사실은 이 6개 원 칙을 둘러싼 싸움이다. 제2의 물결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원칙들을 적용하여 자기 들의 문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 원칙을 고수하려 하고, 제3의 물결의 사람들은 그것 에 도전하여 원칙 자체에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것은 이 책에서 서서히 밝혀지게 될 것이다. 표준화(standardization) 제2의 물결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들 원칙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표준화'이 다. 산업사회가 무수한 규격품을 생산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수 행하는 역할이 커지면서 단순히 표준화되는 것은 코카콜라병, 백열전구, 자동차의 변 속장치 같은 종류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 지 않았다. 인간은 표준화의 원칙을 그 밖의 수많은 사물에 적용한 것이다. 이 사실의 중요성을 최초로 이해한 사람은 시어도어 베일이었다. 그는 금세기 초에 미국 전신전화회사(AT & T)를 설립하여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 다. 1860 년대 말 철도우편 사무원으로 일하던 베일은 우편물의 수신인이 동일한 경우라 도 배달경로는 반드시 같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우편량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 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곤 했는데 수주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며 몇 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배달경로의 표준화를 도입하여 수신인이 동일한 편지는 모두 동일한 경로로 배달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써 우편사업의 혁명을 이룩했다. 그뒤 그는 AT & T사를 창립했을 무렵에 이번에는 미국내의 가정용 전화기를 모두 흑색 규격품으로 통일하여 버렸다. 베일은 전화기를 비롯하여 모든 부품을 표준화했을 뿐 아니라 AT & T사의 업무절차, 관리체계까지 표준화했다. 그는 1908 년에 몇몇의 중소전화회사들을 흡수합병했는데 그 정당성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표준화가 진행된 공장을 중앙에서 관리 함으로써 교환업무, 법률관계업무분야에서 경비를 절감할 수 있고 아울러 전선, 전선 관, 기타 시설의 건설비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교환업무와 요금계산이 단일 화되는 데서 파생되는 경비의 절감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제2의 물결세력에 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hardware)에 발맞추어 업무 절차라든가 관리업무 등의 소프트웨어(software)를 모두 표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베일 이외에도 산업사회를 육성한 '위대한 표준화 추진자'는 수없이 많다. 또 하나의 예는 미국의 발명가 프레데릭 윈슬로 테일러이다. 기계 수리공 출신의 개혁운동가인 그는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종사하는 일의 절차를 표준화함으로써 노동을 '과학적 '으로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20세기 초에 테일러는 각 작업을 수행하는 데는 한 가지 최선의 방법이 있고 그 일을 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도구는 단 하나밖에 없 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의 순서나 도구는 그것에 맞추어 표준화해야 하며 또 그 일을 완성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도 표준화된 작업시간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철학으로 이론무장을 한 테일러는 세계의 지도적인 경영관리의 거물이 되었다 . 그는 그때부터 프로이트, 프랭클린 등과 나란히 존경을 받았다. '능률전문가', '성과급제도', '초고능률지도자'라는 말과 더불어 테일러주의를 예찬한 것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마지막까지 짜내는 데 열의를 보이던 당시의 자본주의 사회 의 경영자들뿐만은 아니었다. 공산주의자들도 똑같이 테일러에 열광했던 것이다. 레닌 은 그의 방법을 사회주의적 생산에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러시아의 산업화를 제일의 목표로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이지만 표준화의 열성 스런 신봉자라는 점에서는 남못지 않았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의 표준화뿐만 아니라 고용절차까지도 점차 표준화가 진행 되고 있었다. 특히 공무원의 경우 표준화된 시험에 의해서 일에 적합치 않다고 여겨지 는 사람을 확인하고 배제했다. 모든 산업을 통하여 임금기준이 결정되고 임금 이외의 복리후생, 점심시간, 휴일, 불만처리절차 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표준화가 진행되 었다. 젊은층을 노동시장으로 내보내기 위해 교육관계자는 표준화된 교과과정(curricu lum)을 세우게 되었다. 터먼이나 비네와 같은 사람들은 표준화된 지능 테스트 방법을 고안했다. 학교의 채점법, 입학시험 방법, 졸업자격에 관한 규정 등도 똑같이 표준화 되었다. OX식 시험도 완전히 일반화되었다. 한편 대중매체도 표준화된 이미지를 보급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광고, 같은 뉴스, 같은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다. 중앙정부에 의한 소수민족의 언어탄압에 매스컴 의 영향도 가세되어 웨일스어나 알사스어와 같은 한 지역의 사투리가 그의 사라지거나 완전히 없어지기도 했다. 영어, 프랑스어라는 표준어가 비표준어를 밀어내 버렸다. 이 점은 러시아어도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여러가지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지역 이 어디를 가나 같은 주유소, 광고판, 흔해빠진 주택 따위밖에 볼 수 없게 되고 지방 색이 완전히 상실되어 버렸다. '표준화'의 원칙은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좀더 상세히 이 점을 살펴보자. 산업문명은 중량이나 길이 등 도량형의 표준화를 필 요로 했다. 산업시대 이전의 유럽에서는 도량형이 제각기 달랐다. 프랑스의 산업주의 시대가 개막된 대혁명 직후 각지에서 제각기 달랐던 도량형 대신에 새로이 미터법과 태양력을 채택하는 법률이 공포된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제2의 물결에 의 해 통일된 도량형제도가 거의 전세계에 보급된 것이다. 또 대량생산방식이 기계, 제품, 작업공저의 표준화를 필요로 하게 되자 확장을 계속 하던 시장도 거기에 대응하여 화폐의 표준화와 가격의 표준화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 다. 역사적으로 보면 화폐는 국왕은 물론이고 은행이나 개인에 의해서도 발행되고 있 었다. 미국에서는 지방에 따라 19세기에 와서도 개인이 발행한 화폐가 유통되고 있었 으며 캐나다에서는 1935 년까지도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된 국가들은 차차 정부 이외의 화폐발행을 금지시켜 단일화된 표준통화 가 국내에 유통되도록 힘썼다. 더구나 산업화된 국가들에서도 19세기 이전은 팔 사람과 살 사람이 거래 때마다 마치 고대 이집트 카이로의 바자(bazaar)처럼 가격을 둘러싸고 흥정하는 것이 거의 보통이 었다. 1825 년의 일이다. A. T. 스튜어트라는 북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청년이 뉴욕에 포목상을 내고 상품에 가격을 표시하여 고객과 경쟁업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정가상 법'은 가격의 표준화뿐 아니라 이 상법 덕택에 스튜어트는 당시의 거상이 되었다. 동 시에 그의 방식은 대량유통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주요한 장애 하나를 제거하게 된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선구적인 사상가들은 여러가지 사고방식의 차이는 있었으나 표준화가 능률적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었다. 인간생활의 여러 부문에서 제2의 물 결은 가차없이 표준화의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에 갖가지 특질과 차이점이 그 과정에서 획일화되고 있었다. 전문화(specialization) 제2의 물결사회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또하나의 대원칙은 '전문화'이다. 제2의 물결이 진행됨에 따라 언어, 여가, 생활양식의 분야에서 다양성이 사라질수록 노동의 영역에서는 다양성이 더욱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분업을 추진함으로써 제2의 물결은 계절노동자와 같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농민을 대신해서 한정된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전문가와 테일러의 방식대로 오직 한 가지 알만을 날마다 되풀이하는 노동자를 등장 시킨 것이다. 1720 년 어느 영국인에 의해서 '동인도 무역의 권장'이라는 보고서가 공표되었다. 거기에는 이미 분업에 의해서 '노동시간과 노동손실의 경감'이 가능해진다고 지적되어 있다. 이어 1776 년에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공간하고 그는 그 서두에 자신을 가지고 어렇게 서술했다. '생산력이 가장 큰 진보는 분업이 가져다 준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스미스는 이제 고전이 그의 저서에서 핀의 제조과정을 설명했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자기 혼자서 필요한 모든 작업공정을 해내는 옛날식의 직공이 하루에 만드는 핀의 양 은 고작해야 한 줌, 수로 따져 20개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미 스는 자기가 전에 방문한 일이 있는 '공장'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거기서 는 하나의 핀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공정을 18개 부문으로 나누고 10 명의 전문직공을 고용했다. 오직 한 가지 작업을 맡은 직공도 있으며 두세 작업을 담당하는 직공도 있 다. 이 방식에 따르면 하루에 10 명이 4 만 8000개, 1인당 4800개의 핀을 제조할 수 있다." 19세기경에는 더욱 많은 작업이 공장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에 따라 핀 제조의 사례가 점차 대규모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전문화에 의한 인건비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산업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의 논점은 고돌로 전문화된 반복노동이 노동자의 인 간성을 박탈했다는 것이었다. 1908 년 헨리 포드가 포드 T형의 자동차제조를 개시했을 때에 1대의 자동차를 완성하 는 공정은 18개 공정이 아닌 7882개 공정으로 나뉘어 있었다. 뒷날 자서전에서 포드는 이 7882개 공정으로 분할한 작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고 있다. "전공정 중에서 949개 공정은 '신체가 튼튼한 숙련공, 육체적으로 장애가 없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3338개의 공정은 '여성이나 어느 정도의 연령에 도달한 어린이'라도 작업이 가 능하다." 그리고 포드의 냉정한 분석은 다시 계속된다. "670개 공정는 두 발이 없는 노동자라도 충분하여 2637개 공정은 다리가 하나뿐인 노 동자라도 할 수 있다. 두 팔이 없는 직공이라도 할 수 있는 공정이 둘이 있고 715개 공정은 팔이 하나뿐인 직공이라도 된다. 장님 직공 10 명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정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전문화된 노동은 종합적인 환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사람 의 한 부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포드의 방법은 극단적인 전문화가 인간을 짐승처 럼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였다.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전문화를 자본주의의 고유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으나 실제로는 사회주의 체제하의 산업사회에도 분명히 나타났다. 왜냐하면 자본주 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모든 제2의 물결 사회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노동의 극단적 인 전문화는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전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오늘날의 소련, 폴란드, 동독, 헝가리와 같은 나라들의 공장도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전혀 다른 데가 없다. 미국 노동성의 통계에 따르면 1960 년 현재 분류할 수 있는 직종은 2 만종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자본주의 산업국이나 사회주의 산업국에서도 전문직업화의 풍조가 고조되었다 . 전문화된 노동에 종사하는 집단이 어느 분야의 난해한 지식을 독점하고 신참자를 배 제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낼 때마다 그들은 정해 놓고 자기들의 일을 전문적 직업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2의 물결이 밀어닥침과 동시에 지식의 소유자와 그 지식을 구하는 고객 사이에 시장이 개입하게 되었다. 전자가 생산자이며 후자가 소비자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제2의 물결사회는 건강이라는 것도 자기자신의 지식이나 주의의 결과로 누리게 되는 것(이것은 자체소비의 생산이지만)이라기 보다는 의사나 건강증진을 관장 하는 의료관료기구라 할 수 있는 것에 의해 제공되는 하나의 제품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교육도 결국 학교라는 시설에서 교사라는 생산자에 의해 '생 산'되고 학생이라는 소비자에 의해 '소비'되는 것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도선과의 사서에서 세일즈맨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직업집단이 자기들은 전문직 업인으로 불릴 자격이 있고 자기들의 작업규준, 가격, 신규참가자의 가입조건을 결정 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 의장 마이클 퍼처크는 "현대 문화는 이제 우리 일반 시민을 '고객'이라 부르고 우리의 필요를 알려주는 전문직업인 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정치적인 선동행위까지도 하나의 전문직업으로 생각되었다. 레닌이 대중은 전문가의 원조없이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의미이 다. 레닌에 따르면 '필요한 것은, 수가 한정되어 있던 직업적 혁명가를 대중으로까지 확대하여 그들을 직업적 혁명가로 탈바꿈시키고 그들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제2의 물결에 의해 자본가, 경영자, 교육자, 성직자 또는 정치가들에게 공통의 정신 상태를 조장함으로써 분업을 더욱 더 세분화하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켰다. 1851 년 세 계대박람회가 크리스탈궁(Crystal Palace)에서 개최되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공은 '전문화야말로 문명을 추진하는 힘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시대의 사람들 은 누구 한 사람 그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표준화와 전문화는 평행으로 진행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화(synchronization) 생산과 소비 사이의 균열이 커짐에 따라 제2의 물결의 인간들은 시간에 대한 태도에 도 변화를 가져왔다. 시장에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자유경제이든 계획경제이든 시간은 돈으로 환산된다. 값비싼 기계는 쉬게 할 수 없고 그 기계의 리듬에 따라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산업문명의 제3원칙인 '동시화'가 발생한다. 초기의 사회들에서도 노동에 있어 시간은 중요한 문제였다. 예를 들어 용사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전원이 일제히 작업에 임할 필요가 있었다. 어부가 배를 젓거나 그물 을 잡아당길 때도 같았다. 오래 전에 조지톰슨은 노동의 필요에 의해 얼마나 많은 노 래가 생겼는가를 밝혔다. 배젓는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은 '오우^6,3^오프(O-op)'라는 단순한 두 음절의 소리에 의해서 구획되고 있었다. 두 음절째의 '오프'는 준비시간을 의미하고 있었다. 배를 끌어당기는 작업은 노를 젓는 일보다도 중노동이 의미하고 있 었다. 그래서 톰슨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추가하고 있다. "힘을 내는 방법을 정점으로 가져 가기 위해 지르는 소리는 비교적 긴 간격을 두고 내게 된다. 예를 들면 아일랜 드의 배를 당기며 부르는 노래는 '홀^6,3^리^6,3^호^6,3^헙(Ho-li-ho-hup)'하는 식으 로 마지막 '헙'에서 힘을 결집할 때까지 준비기간이 다소 길게 잡혀 있다." 제2의 물결에 의해서 기계가 도입되고 노동가가 불리지 않게 되기까지 이러한 작업의 동시화는 자연발생적이며 유기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계절의 리듬, 생리적인 반응, 지구의 자전, 심장의 고동 등에서 흉내낸 것이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그 와 대조적으로 기계의 고동에 맞추어 움직였다. 공업생산이 일반화되자 기계 그 자체의 비싼 비용과 노동의 높은 상호의존성이라는 두 요인에 의해서 동시화가 한층 정밀히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공장에서 어떤 작업공정을 담당하는 노동자 그룹의 작업이 지연되면 그 다음 공정에서 는 더욱 더 지연된다. 이렇게 해서 농경사회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던 시간엄수라 는 것이 사회적 필수사항이 되고 각종 시계가 보급되었다. 1790 년대의 영구에서는 이 미 시계가 진귀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E.P.톰슨에 의하면 시계는 '산업혁 명에 의해 더욱 대규모적인 노동의 동시화가 요구된 바로 그 시점에서 보급된 것'이라 는 것이다. 산업문화 속에서 자란 어린이가 어릴 때부터 시계 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교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늦지 않도록 등교하는 습관을 익히는 것 은 나중에 사이렌에 맞추어 정확히 공장이나 사무실에 출근시키기 위한 것이다. 일은 시간으로 계산되고 초단위로 세밀히 측정되게 되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가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근무시간의 원칙이 되었다. 동시화가 진행된 것은 직장생활만이 아니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이윤아니 정치 적 배려와는 상관없이 사회생활을 모두 시계로 규제하고 기계의 요구에 맞추어지게 되 엇다. 여가시간까지 미리 결정되고 있었다. 작업시간 속에 표준적인 휴가와 휴일, 휴 식시간의 길이가 설정되었다. 아무튼 어린이의 취학과 졸업연령이 통일되었다. 병원도 환자를 일제히 기상시켜 아 침식사를 들게 한다. 이렇게 해서 러시 아워가 발생하고 교통체계가 위태로워진다. 방 송국은 한정된 시간대에 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골든 아워(golden hour)가 생기게 된다. 원료제공자나 판매담당자의 형편에 따라 모든 일에 그 일 특유의 피크타임이나 성수기가 생기게 되었다. 또 공장의 생산촉진계, 선표작성자에서 교통순경, 나아가서 는 표준작업시간의 연구자에 이르는 동시화에 대한 전문가들이 나타났다. 반대로 새로운 산업사회의 시간체계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리고 여기서는 남녀의 차이가 문제로 되었다. 제2의 물결 밑에서 노동에 종사한 사람들은 그 대부분 이 남자들인데 그들은 가장 시간의 움직임에 얽매였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세상의 남편들이 언제나 이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아내는 태연히 사라마을 기다리게 하고 시간 감각이 없다. 언제까지고 옷차려 입기에 정신을 빼앗겨 약속시간에 늘 늦는다고 투덜댄다. 대부분의 여성은 가사라는 상호의존 성이 적은 일을 하기 때문에 남성만큼 기계적인 리듬에 영향받지 않고 일해 왔다. 이 와같은 이유에서 도시인들은 시골사람을 느리고 믿을 수 없다고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 "그 친구들은 늘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다. 도대체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이런 불만이 나오는 것도 원인을 따지면 고도로 상호의존이 필요한 제2의 물결의 노동과 논밭이나 집에서 이루어지는 제1의 물결의 노동에서 생기 는 차이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제2의 물결이 지배하게 되자 가장 사사로운 일상적인 잔일까지도 일정한 시간체 계 속에 짜여져 버렸다. 전체문명이 표준화, 전문화, 동시화의 원칙을 채용함에 따라 미국, 소련, 싱가폴, 스웨덴, 프랑스, 덴마트, 독일, 일본 등 모든 나라의 가정이 같 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출근한다. 일하는 시간도 집에 돌아가는 시간도 같고 침실에 들어가서 잠이 드는 것도 같고 게다가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일 까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비슷한 시간에 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집중화(concentration) 시장의 등장과 함께 제2의 물결문명의 또 다른 원칙 즉, '집중화'가 발생했다. 제1의 물결사회는 갖가지 에너지원에 의존하여 성립된 사회였다. 그러나 제2의 물결 사회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라는 고도로 집중화된 화석연료에 에너지원을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집중화가 진행된 것은 에너지만이 아니었다. 제2의 물결은 인간의 집중화를 촉진했다. 농촌에서 사람들을 끌어내어 거대한 도시로 이동시킨 것이다. 그뿐 아니라 노동까지 집중화했다.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을 가정이나 마을, 들판 , 등 어디서나 이루어졌던 데 비해 제2의 물결의 노동은 대부분이 수천명의 노동자가 한 지붕 밑에서 일하는 공장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에너지나 노동만이 아니다. 영국의 사회과학잡지 '뉴 소사이어티(New Sociely)'에서 스탠리 코헨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사회에서는 다소의 예외 는 있으나 가난한 사람은 자기 집에 있든가 친척들의 신세를 지고 있었다. 죄인은 벌 금을 내게 되거나 곤장을 맞거나 혹은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또 정신병자는 집에 갇히고 집이 가난한 경우에는 지역사회가 보살펴 주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와같은 집단은 특정한 장소에 집중하지 않고 지역사회 여기저기에 산 재해 있었다. 산업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19세기 초는 대투옥 시대라 일컬어 지고 있다. 그 시대에는 죄인은 일망타진되어 감옥에 감금되고 정신병자는 정신병원에 , 어린이는 학교로 각각 끌려나오듯이 모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공장에 수용되었다. 집중화는 자본의 흐름에도 나타났다. 그 결과 제2의 물결문명은 거대기업을 낳고 더 나아가 트러스트(trust)나 독점을 만들어 냈다. 1960 년대 중반에는 제너럴 모터스사, 포드사, 크라이슬러사라는 미국의 3 대 자동차 회사가 전 미국 자동차의 94퍼센트를 생산하고 있었다. 서독에서는 폴크스바겐사, 벤츠사, 오펠(GM)사, 포드 베르케사의 4 개 회사가 91 퍼센트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프랑스에서는 사실상 르노사, 시트로엠사, 생카사, 푸조사의 4개 회사에서 100 퍼센트를, 이탈리아에서는 피아트사 한 곳에서 90 퍼센트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알루미늄, 맥주, 담배, 아침식사용 시품과 같은 상품의 80 퍼 센트 이상이 각 분야의 4--5개 회사에 의해서 생산되고 있었다. 서독에서는 플라스터 보드(plasterboard)와 염료생산의 92 퍼센트, 사진필름의 98 퍼센트, 산업용 재봉틀의 91 퍼센트가 각 분야의 4개 회사 이내의 기업에 의해 독점생산되었다. 이런 종류의 고도의 집중화가 진행된 기업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 사회주의의 입장에 있는 경영자들도 생산의 집중화가 능률적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 었다. 사실은 자본주의 국가에 사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산업 의 집중화가 진행되는 것을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필요한 과정으로서 환영하고 있었다. 완전히 집중화된 산업은 궁극적으로 국가가 관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레닌은 "노든 시민은 단 하나의 거대한 기업합동체인 국가라는 기업의 노동자, 즉 국 가의 종업원으로 변모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반세기 후에 소련의 경제학자 N. 렐 류키나는 '보프로시 예코노미키: Voprosy Ekonomiki'지에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집중 화된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서술하기에 이르렀다. 제2의 물결문명에서 볼 수 있는 집중화의 원칙은 모스크바와 서방 여러 나라 사이에 가로놓인 온갖 이데올로기상의 대립을 초월하여 모든 분야에 깊숙히 침투하고 있었다. 그것은 에너지원, 인구의 분포, 노동형태, 교육방법, 기업과 같은 경제조직에까지 영 향을 미치고 있었다. 극대화(maximization) 생산과 소비 사이에 균열이 생김으로써 제2의 물결사회에는 대개 '큰 것이 좋은 것' 이라는 '극대화 편집광'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이 나타났다. 그것은 큰 것을 좋아하는 텍사스인들처럼 쓸데없이 크기와 성장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공장의 작업시간이 길어 져서 생산량이 많아지면 단위생산원가는 저렴해진다. 이 사고방식이 옳다고 한다면 같 은 논법으로 규모를 크게 하면 절약을 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나타나는 것도 무리 가 아니다. 그 결과 '크다'는 말이 '능률적'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고 '극대화'는 제 2의 물결시대를 해명하는 제5의 열쇠가 되었다. 국가나 도시는 저마다 세계최고의 초고층 빌딩이 있다. 세계 최대의 댐이 있다고 자 랑하게 되고 결국에는 세계 최대의 축소형 골프장이 있다고 서로 겨루는 사태까지 출 현했다. 원래 큰 것은 성장이 가져다 준 결과였기 때문에 산업화가 진행된 국가의 대 부분은 정부나 기업, 그밖의 모든 기관이 홀린듯이 성장이라는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 했다. 일본의 마쓰시타사에서는 매일 아침 종업원과 관리직이 다 같이 모여 사가를 합창한 다. 새 일본의 건설에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합쳐 생산에 부지런히 힘쓰자. 세계 속으로 우리는 나아간다. 샘물이 콸콸 끊임없이 솟아나듯이 산업진흥 산업진흥 화친일치의 마쓰시타전기! 1960 년이라는 해는 미국이 전통적 산업주의를 완성의 영역으로 제고시킴과 동시에 변혁을 강요하는 제3의 물결의 영향을 최초로 느낀 해이기도 했다. 이 해에 전미국 50 위까지의 대기업은 평균종업원 8 만 명이라는 규모로 성장해 있었다. 제너럴 모터스사만도 59 만 5000 명의 종업원을 고용했으며 앞서 언급한 데오도어 베 일이 창립한 공익사업 AT & T사는 남녀를 합하여 73 만 6000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 해에 미국의 평균가족수가 3.3 명이었으므로 200 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AT & T라는 한 기업이 지불하는 급여로 생활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다시 말하면 해밀턴이나 조지 워싱턴이 미국을 하나의 국가로 수립하려고 했던 시대의 미국 전인구 중 반수에 해당하는 집단이 AT & T사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 1960 년 이후에도 AT & T는 흡수합병을 계속하여 더욱 더 커졌다. 1970 년에 이 회사는 95 만 6000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불과 1 년 동안에 13 만 6000 명을 증원했다.) AT & T사의 예는 특수한 사례지만 미국인에게는 특히 큰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극대화 편집광은 미국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63 년 프랑스에서는 숫자상으로는 전체 기업의 불과 0.25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140 0개 기업이 전체 노동인구의 39 퍼센트를 차지한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서독, 영국, 그 밖의 나라에서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기업합병을 권장했다. 그렇게 함 으로써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미국의 거대기업과의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믿었기 때문 이다. 기업규모의 극대화는 단순히 이윤의 극대화만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마르크 스는 '사업체의 규모확대'를 사업체의 '물질적 힘의 확장'과 관련시켜서 생각하고 있 었다. 이에 대해 레닌은 '거대기업, 트러스트, 기업합병은 대량생산의 기술을 최고수 준으로까지 끌어 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 후에 레닌이 경제활동에 관 하여 내린 지령은 러시안인의 경제생활을 정리통합하여 기업체의 수를 최소한으로 정 리하고 가급적 규모가 큰 생산단위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스탈린은 규모의 극대화를 더욱 추진하여 몇몇의 커다란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크니코고르스크와 자포로즈스탈의 철강단지, 발하슈의 동제련소, 하르코프와 스탙린 그라드의 트랙터 공장이 그것이다. 스탈린은 곧잘 미국의 이런저런 공장설비의 규모를 묻고 그 이상의 큰 공장을 세우라고 명령했었다. 레온 M. 허먼박사는 그의 저서 "소비에트 경제계획에 있어서의 거대신앙"에서 '소련 각지에서 지방정치가가 세계최대의 사업을 유치하는 경쟁에 말려들고 있었다.'고 기술 하고 있다. 이미 1938 년에 이같은 '거대광'에 대하여 경고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소련이나 동유럽 공산당지도자들은 허먼 박사가 말하는 '거대화 중독 증'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모에 대한 이러한 단순한 신앙은 '능률'이라는 것을 제2의 물결의 좁은 시야에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주의의 극대화 편집광은 공장에만 머무르지 않 았다. 예를 들면 이른바 GNP(국민총생산)를 통계지표로 삼는 사고방식에도 나타나 잇 다. GNP란 한 나라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총계한 것으로,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데이터가 들어 있다. 이를테면 GNP라는 관점에서 보는 한 경제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식료품이든 교육이나 건강에 관한 서비스이든 혹은 군수품이든 그런 것 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옥을 건축하는 데에 고용이 되든 반대로 집을 헐어버 리는 데에 고용이 되든 그들이 받은 임금은 모두 GNP에 가산된다. 한쪽의 행위는 주택 의 숫자를 늘이는 것에 기여하고 다른 한쪽은 그 숫자를 줄이는 것이지만 모두 생산으 로 보는 것이다. GNP는 시장활동이나 상품거래만을 계측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육아나 가사노동과 같은 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생 명유지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모두 경시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러한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의 물결시대의 각종 정부들은 세계 곳곳에서 어 떻게든 GNP를 상승스키려고 경쟁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 생하고 고도성장을 위해서는 생태계의 파괴나 사회적 파멸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풍조 를 낳았다. 이같은 극대화 편집광적 원칙은 산업주의 시대 사람들의 정신에 깊이 침투 하여 이 이상 더 합리적인 원칙은 없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극대화는 표준화, 전문화등 산업사회를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몇몇 원칙들과 더불어 동 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중앙집권화 산업화가 진행되자 모든 산업국가들은 중앙집권화를 예술작품의 영역으로까지 발전시 켰다. 교회를 시작으로 하는 제1의 물결의 지배자도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하는 방법은 잘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대처한 것은 현대와 비교하면 훨씬 단순한 사회 였다. 또 오늘날의 산업사회를 밑바닥부터 중앙집권화된 사람에 비하면 제1의 물결의 지배자들은 미숙한 아마추어와 같은 존재였다. 복잡한 사회는 예외없이 중앙집권적 기능과 탈중앙집권적 기능의 공존을 필요로 한다 . 제1의 물결경제는 기본적으로 지방분권적이며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한다. 지방색이 뚜렷한 경제였다. 이러한 특징을 갖춘 경제가 종합적 국민경제인 제2의 물결 경제로 이행함에 따라 전연 새로운 권력의 중앙집권화 방법이 나타났다. 이 새로운 유 형의 중앙집권화 방법은 개별기업과 산업, 그리고 전체경제의 차원에서 구체화되어 갔 다. 이러한 이행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초기의 철도산업이다. 당시는 다른 산업과 비교하면 거대한 규모였다. 1850 년의 미국에서 자본금 25 만 달러 이상의 공장은 41 개 업체에 불과했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뉴욕 센트럴철도회사는 이미 1860 년에 3000 만 달러의 자본금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와같은 거대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영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철도회사 경영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우주계획관리자들처럼 새로운 경 영기법을 개발할 필요가 절실했다. 그들은 기술, 운임, 운행시간을 표준화하고 수백 마일에 이르는 열차운행을 동시화하고 새로운 업무를 부서별로 전문화했다. 자본, 에너지, 인력의 집중화가 이루어지고 철도망 규모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 였다. 그리고 이상의 모든 것을 잘 통합하기 위해 정보와 지휘계통의 중앙집권화에 기 반을 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냈다. 종업원은 '라인(line)'과 '스태프(staff)'로 나뉘어졌다. 차량운행, 적재량, 파손, 화물분실, 수리, 운행거리 등에 관하여 자료의 제출이 요구되었다. 이들 모든 정보는 중앙집권화된 명령계통을 통하여 상부로 올라가 총지배인에게 도달하고 거기서 결정이 내려져서 라인을 통해 하부로 명령을 전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철도산업은 기업사가 알프레드 챈들러가 지적했듯이 이윽고 다른 대규모 조직체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중앙집권적 경영은 제2의 물결의 여러 국가들에서 선진적이고 세련된 경영수법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정치분야에서도 제2의 물결은 중앙집권화를 촉진시켰다. 미국에서는 이미 1780 년대 후반에 탈중앙집권적인 '13개주 헌법'을 중앙집권적인 미합중국 헌법으로 만들려는 투 쟁 속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분명히 싹트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1의 물결의 색채를 띤 지방세력은 중앙정부로 권력이 집중하는 데에 저항한 반면에 헤밀턴이 이끄는 제2의 물결의 상업세력은 그들의 기관지 "더 패더럴리스트: The Federalist" 등을 통하여 강 력한 중앙정부는 군사, 외교상의 이유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주 장했다. 그 결과로서 1787 년에 연방헌법이 태어났는데 그것은 교묘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제1의 물결을 대표하는 세력도 여전히 강력했기 때문에 이 헌법을 중요한 여러 권한을 중앙정부에 넘겨주지 않고 종전대로 각 주에 남겨 두었다. 지나치게 강력한 중앙정부 의 출현을 막기 위해 입법, 행정, 사법의 3권분립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채택했다. 그 러나 헌법 속에는 어떻게도 해석할 수 있는 탄력적인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그것에 의 해 연방정부는 매사에 권한을 확장하고 있었다. 산업화로 인해 정치체제가 더욱 중앙집권화함에 따라 워싱턴의 연방정부가 갖는 권한 과 책임은 점차 커지고 전국적 차원의 경책결정은 더욱 더 중앙정부의 독점물로 되어 갔다. 한편 연방정부내의 권력은 외화나 법원으로부터 3부 중에서도 가장 중앙집권기 능이 강한 행정부로 이행하게 되었다. 닉슨 행정부에 와서는 한때 열성스런 중앙집권 주의자였던 역사학자 아더 슐레진저조차도 '황제와 같은 대통령의 지위'라고 공격할 정도가 되었다. 정치의 중앙집권화를 촉진하는 힘은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 더욱 강력히 적용했다. 스웨덴, 일본, 영국 혹은 프랑스 등의 제도는 얼핏 보기에도 미국보다 훨씬 중앙집권 적이라는 사실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에도 미국보다 훨씬 중앙집권적이라는 사실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나 예수가 없었다면: Without Marx or Jesus" 의 저자 장 프랑소와 르벨은 이 점에 관하여 정치적 항의에 대한 각국 정부의 반응방 법의 차이를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프랑스에서 데모가 금지될 경 우 누가 그것을 금지시켰느냐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만일 그것이 정치 문제에 관한 데모라면 이를 금지시킨 것은 중앙정부임이 틀림없다. 미국에서 데모가 금지되었다고 하자. 이럴 경우 미국인이 먼저 제기하는 의문은 누가 데모를 금지시켰 느냐 하는 것이다.' 라고 르벨은 지적하고 잇다. 그는 미국의 경우 데모를 금지하는 세력은 자치권을 가진 지방행정당국일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극단적으로 정치의 중앙집권화가 진행된 것은 물론 마르크스주의적 산업국가들 이다. 1850 년에 마르크스는 '국가에 의한 권력의 결정적 중앙집권화'의 필요성을 주 장한 바 있다. 엥겔스도 해밀턴과 마찬가지로 탈중앙집권적 연방제에 의한 정치형태를 '가장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잇다. 뒷날 소련은 산업화의 촉진에 엄중 한 나머지 정치, 경제의 양면에서 가장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구조의 국가를 건설하게 되고 생산에 관한 결정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중앙계획당국의 손을 빌리게 되었다. 전에는 탈중앙집권적이었던 경제가 단계적으로 중앙집권화한 데에는 중앙은행이라는 그 명칭부터가 중앙집권적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는 기관의 출현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 다. 1694 년이라면 아직 산업화의 여명기로서 뉴코먼이 증기기관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무 렵인데 이 해에 윌리엄 패터슨이 처음으로 잉글랜드 은행을 창설했다. 그리고 이 은행은 모든 제2의 물결에 속하는 여러 나라에서 중앙집권기능을 갖는 같은 기관의 원형이 되었다. 통화와 신용의 중앙집권적 관리를 목적으로 한 중앙은해이라 는 기관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한 나라의 제2의 물결의 발전단계는 완전한 것이 되었다 고 할 수 있다. 패터슨이 설립한 중앙은행은 정부발행의 국채를 팔고 정부보증의 통화를 발행했다. 한편 나중에는 다른 시중은행의 대출업무도 규제하게 되었다. 결국 이 은행은 통화공 급의 중앙관리라는 오늘날의 모든 중앙은행이 갖는 본질적 기능을 떠맡게 되었다. 180 0 년에는 이와같은 목적을 가진 프랑스 중앙은행이 설립되었고 1875 년에는 독일 연방 은행 라이히방크(Reichlsbank)가 설립되었다. 미국에서는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 간의 충돌이 헌법제정 직후에 중앙은행의 설립 을 둘러싼 대규모으 대립으로 나타났다. 제2의 물결정책의 대표적 주창자인 해밀턴은 영국식 중앙은행의 설립을 강력히 주장했다. 남부와 아직 국경을 넓혀가고 있던 서부 는 농업중심의 입장을 버리지 못하고 해밀턴에 반대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 있던 북동부의 지지를 얻은 해밀터은 미국의 연방은행 설립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연방은행이 오늘날의 연방준비제도의 전신이다. 그 역할은 정부를 대신하여 시장활동의 수준과 속도를 규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서 중앙은행들은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 일정한도의 비공식적인 단기계획을 도입했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제2의 물결사회의 모든 동맥에 통화라는 혈액이 흐르 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가 모두 중앙집권화된 통화공급기관을 필요 로 했고 그 결과 중앙은행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중앙은행과 중앙정부는 서로 손을 맞잡고 나아가게 되었다. 이렇듯 중앙집권화도 또한 제2의 물결문명의 지배적 원리의 하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6가지 지도원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느 제2의 물결국가들로 부터 한결같이 작용하고 있는 하나의 퍼로그램을 이루고 있다. '표준화', '전문화',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라는 6가지 원리들 은 자본주의 국가건 사회주의 국가건 모든 산업사회에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이 6가지 원리들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정적인 분리와 시장기능의 계속적 확대에 의해서 필연 적으로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원리들은 상화간에 상승작용을 계속하였는데 그 결과 생겨난 것이 비인간적 인 관료제도였다.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거대하고 경직되고 강력한 관료조 직이 출현하여 각 개인은 거대조직이 지배하는 카프카(Kafka)적 세계에서 갈길을 몰라 방황을 계속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이 거대조직들에 짓눌리고 압도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문제의 근원을 제2의 물결문명을 프로그램화한 숨겨진 규범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규범을 형성하고 있는 6가지 원리들은 제2의 물결문명에 뚜렷한 특징을 제공해 왔 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곧 밝혀지듯이 이 6가지 원리들은 어느 것이나 제3의 물결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위기는 기업, 금융, 노사관계, 정부, 교육, 언론 등의 분야에서 오늘날도 여전히 이 원리들을 자기의 행동원리로 적용하고 있는 제2의 물결사회의 엘리트에 대 해서도 말할 수 있다. 새로 태어난 문명은 낡은 문명의 모든 기득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규칙을 만드는 일에 익숙해 있던 산업사회의 엘리트들은 앞으로 전개될 격 동 속에서 과거의 봉건귀족이 겪었던 것과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엘리트들 중 일 부는 낙오될 것이고 일부는 권좌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일부는 무능력자로 전락하거나 구차스런 체면유지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지성과 적응력을 갖춘 일부 엘리트들 만이 변신하여 제3의 물결문명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이 지배하는 가까운 장래에는 누가 지배자의 자리에 앉게 될까? 그것 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날의 사회를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5장 권력의 전문가 '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가?' 이 의문은 제2의 물결사회에 특유한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이런 의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배자가 국왕이든 무당이든 장군이 든 태양신이나 성자이든 민중은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누군인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밭에서 일하는 가난한 농부가 고개를 들어 바라볼 때면 멀리 지평선 위로 화 려한 궁전이나 사원이 솟아 있었다. 정치학자나 언론인에게 특별히 권력의 정체에 관 하여 수수께끼를 풀어달라고 할 것까지도 없이 지배자가 누구인가는 만인의 눈에 명백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이 밀어닥침에 따라 도처에 새로운 권력이 대두하였다. 그것은 막 연한 정체불명의 권력이었다. 지배자는 이제 이름없는 '그들'이 되어 버렸다. '그들'이란 대체 어떠한 사람들이었을까? 통합자 산업주의는 이미 보아왔듯이 사회를 공장, 교회, 학교, 노동조합, 형무소, 병원과 같 은 뭇하게 서로 맞물린 부품으로 분해시켰다. 교회와 국가가 개인 사이에 있었던 명령 계통을 단절시켰다. 포괄적인 지식은 여러 전문분야로 나뉘어졌다. 일은 세밀한 작업 과정으로 분해되었다. 내가족은 분열하여 핵가족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산업주의는 공동체의 생활과 문화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누군가가 이들 부품을 모아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 필요가 생겼다. 이같은 필요성에 따라 새로운 종류의 전문가집단이 탄생했다. 그들의 주요임무는 '통 합하는 일'이었다. 경영자, 행정관, 대표, 조정자, 사장, 부사장, 관료, 중역 등이라 고 일컫는 새로운 집단이 모든 기업, 정부기관, 그리고 사회의 각계각층에 출현하여 이윽고 그 존재는 사회에 필요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이들이 통합자(integrator) 들이 었다. 통합자들은 사람들의 역할을 결정하고 업무를 배정했다.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보수 를 지불하는가를 결정했다. 또한 계획을 입안하고 판단기준을 정하며 사람들에게 자격 을 부여하거나 철회했다. 통합자들은 생산, 유통, 수송, 통신 등을 서로 연결시키고 여러 조직들의 상호관계를 규정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요컨대 산산히 흩어진 사회를 다시 제조립한 것이 그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제2의 물결체제는 도저히 운영될 수 없었을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마르크스는 기계와 기술,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가 사회를 지배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장은 노동이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스크라이크 에 의해서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고 고용주로부터 기계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 다. 그리고 일단 생산수단을 소유하면 노동자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는 마르크스의 예상을 뒤엎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가 적절히 지적한 노동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현실에서는 체제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새 로운 인간집단에 더욱 큰 권력이 집중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지배자의 지위에 오른 것은 자본가도 아니며 노동자도 아니었다.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를 불문하고 정상의 자리에 앉은 것이 이들 통합자들이었다. 권력의 원천은 '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니고 '통합수단'의 장악이었다. 이 말의 의미 를 좀 더 깊이 고찰해 보자. 기업계에서 초기의 통합자들은 공장소유자, 상점경영자, 제분소나 철공소주인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들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몇몇 사람들의 조수들과 함께 다수의 미숙 련공의 노동을 조정하고 나아가서는 기업을 커다란 경제의 흐름 속에 통합시킬 수 있 었다. 이 시대에는 '소유자=통합자'였으므로 마르크스가 이 양자를 혼동하여 소유라는 것을 크게 강조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생산양식이 다 복잡해지고 분업도 더 한층 전문화되어 감에 따라 고용자와 노동간의 중간적인 존재로서 놀랄 만큼 다양한 관리자 와 전문가들이 기업에서 속속 출현하게 되었다. 문서업무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윽고 대기업에서는 사장이든 대주주이든 그 어떤 개인도 기업 전체의 운영을 파악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기업소유자의 의사결정이 체제의 조정역할을 맡은 전문가집단 에 의해 형성되고, 결국 그들에게 통제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소유에 의존하지 않 고 통합수단을 관리함으로써 권력을 손아귀에 쥐는 새로운 경영 엘리트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경영권의 권력이 증대함에 따라 주주들의 힘은 후퇴해 갔다. 회사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친족끼리 소유하고 있던 주식은 다수의 분산된 주주들에게 매각되어 이 주주들은 회사의 실무에 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주주들은 회사의 일 상업무뿐 아니라 회사의 장기목표나 경영전략이라는 것까지 고용된 경영자에게 맡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론상으로는 회사의 소유자들을 대표하고 있는 이사 회 조차도 만족스런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또 투자면에서도 개인의 직접투자를 대신해서 연금이라든가 투자신탁 또는 은행의 신탁부문 등을 통한 간접투자가 활발하 게 되자 기업의 실제소유자는 더욱 기업경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들 통합자들의 새로운 권한을 가장 명백히 설명해 준 사람은 미국의 전 재무장관 마이클 블루멘덜이다. 블루멘델은 재무장관이 되기 전에 벤딕스사의 사장이었는데 벤 딕스사의 소유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회사를 소유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지배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사장으로서 완전한 지배권을 장 악하고 있다. 다음 주에 주주총회가 있는데 이 97 퍼센트의 주주로부터 위임장을 맏았 다. 그러나 내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은 불과 8000주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회사의 지배권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바란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은 어 리석은 일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기업이라는 이 거대한 동물을 지배하여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경영방침은 고용된 경영자나 남의 돈을 투자하는 자 금 관리자들에 의해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노동자는 차지하고 회사의 실제소유 자(주주)들 조차도 정책을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통합자들이 이 일을 떠맡았다. 이와같은 현상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발생했다. 이미 1921 년에 레닌은 자기 손으로 만든 소련의 관료제도를 비난하는 발언을 했었다. 트로츠키는 망명중인 1930 년에 소 련에는 이미 5600 만 명의 관리자계급이 '생산노동에는 직접 종사하지 않고 오로지 관 리하고 명령을 내리고 지휘를 하며 사람들을 처벌하거나 사면하고 있다.'라고 비판하 였다. 그에 따르면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은 국가이지만 '국가를 소유하는 것은 관료 이다.'라는 것이다. 1950 년대에는 밀로반 질라스가 그의 저서 "새로운 계급"에서 유 고슬라비아의 경영 엘리트 집단의 권력증대를 비판하고 있다. 티토대통령은 질라스를 투옥했으나 대통령 자신도 '기술자에 의한 지배와 관료에 의한 지배는 노동자계급의 적이다.'라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모택동시대의 중국에서도 경영주의에 의한 지배를 미연해 막는 일이 언제나 중심과제였다. 이와같인 자본주의 사회뿐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통합자들이 효과적으로 권력 을 장악했다. 그들의 존재없이는 사회체제 각 부분들이 통합적인 기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사회라는 이름의 '기계'는 통합자없이는 작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통합의 원동력 한 기업 또는 전체 산업을 통합한다고 해서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산업사회는 노동조합이나 동업자조합에서 교회, 학교, 진료소, 오락단체에 이 르기까지 무수한 단체나 조직을 만들어 냈다. 그 때문에 법률을 만들 필요가 생긴 것 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영역, 사회영역, 기술영역이라는 새 영역이 서로 밀 접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제2의 물결문명을 통합해야 한다는 강력한 필요성 때문에 사회체제를 통합하는 엔진 이라 할 수 있는 최대의 통합자인 '거대한 정부'가 출현했다. 제2의 물결사회마다 모 두가 거대한 정부를 가지게 된 것은 이 사회체제가 통합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라 고 할 수 있다. 행정부의 축소를 주장하는 정치가들도 나타나긴 했으나 이들도 일단 정권을 잡고 나 면 행정부의 축소는 커녕 반대로 관청의 수를 늘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제2의 물 결정부의 첫째 목적이 산업문명을 건설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 하면 이와같은 언행의 불일치는 일어날 만한 일임을 납득할 수 있다. 산업문명의 확립과 유지라는 중요한 목표 앞에 사소한 입장의 차이는 해소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문제에서는 서로 논쟁을 벌이는 정당이나 정치가들도 이 점에 관해서는 암암리에 서로 양해하고 있다. 비록 주의주장을 달리하더라도 거대한 정부를 만드는 일은 모든 정당과 정치가의 양해사항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산업사회에서는 통합이라 는 중요한 과업이 행정부에 완전히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 클레이튼 프리치도 지적하고 있듯이 미국 연방정부는 심지어 최근 3기에 걸친 공화장 정권하에서도 끊임없이 확대일로를 걸어왔다. 프리치에 의하면 '그 까닭 은 지극히 단순하다. 중대한 악영향을 남기지 않고 연방정부를 해체하는 일이란 요술 사 후다니의 솜씨를 가지고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자유시장론자들은 정부의 기업활동에 대한 간섭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민간기업에만 맡겨 두었더라면 산업화가 훨씬 더 늦어졌을 것이고 과연 산업화가 진행되었는지조차 도 의문이다. 정부는 철도건설을 촉진하고 항만, 도로, 운하,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우편제도를 확립하고 전신, 전화, 방송시설을 개설하고 그것들을 운용하는 규칙을 만 들었다. 상거래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시장의 표준화를 시행했다. 자국의 산업을 육성 하기 위해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거나 관세를 부과했다. 산업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농민을 농촌에서 몰아냈다. 가끔 군사채널을 통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고 첨단기술개 발을 지원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아에서 정부는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었고 또 하고자 하지도 않았던 커다란 통합역할을 맡아온 것이다. 정부는 거대한 산업화의 추진자였다. 정부는 강제집행력과 조세권을 가지고 민간기업 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간기업이 들어 갈 수 없는 분야 또는 재산성이 없는 분야라는 체제내의 공백지대를 진출하여 산업화 의 기운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말하자면 정부는 '예상적 통합'을 할 수 있었 던 것이다. 정부는 대중교육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장래의 산업노동력으로서 기대되는 청소년을 교 육시키고 결과적으로 산업계를 원조함과 아울러 핵가족이라는 생활양식의 보급에도 기 여했다. 어린이의 교육을 비롯하여 전통적 역할의 부담으로부터 가정을 해방시켜 줌으 로써 정부는 가족구조가 공장체제의 요구에 적응하도록 촉진했다. 이와같이 정부는 여러 차원에 걸쳐 복잡하게 뒤얽힌 제2의 물결문명을 통합하는 역할 을 맡았던 것이다. 통합의 중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당연히 정부의 본질이나 형태도 변화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나 수상은 옛날과 같이 창조적인 정치지도자나 사회지도자가 아닌 관리자로 서 등장하게 되었다 인격과 행동면에서도 대기업의 사장과 거의 다름없는 사람이 되었 다. 닉슨, 카터, 대처, 브레즈네프, 지스카르 데스탱, 오히라 등과 같은 선진공업국의 수뇌들은 의무적으로 민주주의라든가 사회정의를 말하지만 그 직무에 앉으면 실제로 는 능률적으로 행정을 한다는 정도의 약속밖에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산업사회에는 전체를 일관하는 한 가지 동일 한 패턴이 생겼다고 해도 될 것이다. 대기업 또는 생산조직과 거대한 행정기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생산수단을 탈취한 노동자계급'도 아니며 아담 스미스학파가 거대한 '권력을 유지하는 자본가계급'도 아니다. 전혀 새롱운 세력이 등장한다. 이 세력은 노동자나 자본가에게도 소속되지 않고 그 양자에 대항하는 세력 이다. 권력전문가들이 '통합수단'을 먼저 수중에 넣고 그것을 사용하여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을 지배한 것이다. 이로써 제2의 물결사회는 통합자들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다. 권력구조의 피라밋 권력전문가들은 엘리트들과 준엘리트들로 구성되었다. 각 기업과 정부의 각 부처에도 즉시 독자적인 체제가 이루어지고 그 안에 지배층, 다시 말해서 강력한 '그들'이 형 성되었다. 스포츠, 종교, 교육 등 각계에는 고유한 권력 피라밋이 있으며 과학계의 지배층, 국 방관계의 유력자, 문화계의 지배층 등이 차례로 형성된다. 제2의 물결문명의 권력은 이와같이 수십명, 수백명, 수천명의 전문분야의 엘리트로 분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분야의 스페셜라이즈드 엘리트(specialized elite)를 통합하고 있는 것은 제너널리스트 엘리트(generalist elite)이다. 이 집단은 모든 전문분야에 걸쳐 구성 원을 가진 다재다능한 조직 밖의 집단이다. 소련이나 동구의 공산당이 그 예로 항공분 야로부터 음악, 철강업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에 당원이 있다. 공산당원은 준엘리 트들 사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정보연락망으로 기능하고 있다. 공산당은 정보에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전문적 준엘리트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이처럼 명확한 형태는 아니지만 각종 민간위 원회나 임원회에 참여하는 주요기업인이나 변호사가 비슷한 역할을 해왔다. 어쨌든 명백한 것은 제2의 물결국가에는 관료라든가 이사라는 이름의 통합전문가집단 이 존재하고 그것을 다재다능한 통합 제너럴리스트 집단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슈퍼 엘리트 이 피라밋의 더 높은 상층부에서는 투자의 배분을 담당하는 '슈퍼 엘리트'들에 의한 통합이 이루어졌다. 금융계나 산업계, 국방성이나 소련의 경제계획관료들 등 산업사회 내의 주요한 투자배분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그 밑에 있는 통합자들이 기능할 테두리를 정한다. 미국의 미니에폴리스에서나 소련의 모스크바에서도 대규모적인 투자결정이 내려지면 그 결정은 장애의 선택범위를 제한하게 된다. 자원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일단 투자하여 벳세머 용광로나 석유분해증류공장, 조 립공장과 같은 것을 건서러해 버리면 감가상각이 끝날 때까지 해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설비투자에 의해서 일단 매개변수가 고정되면 그것이 장래의 경영자나 통합자의 행동을 규정하게 된다. 모든 산업사회에서는 이러한 투자결정의 조종간을 장 악하는 익명의 결정권자집단이 슈퍼 엘리트층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제2의 물결사회 어디에서나 서로 비슷한 엘리트 구조가 생겼다. 사회위기나 정치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지방이나 나라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반 드시 이와같은 은밀한 권력의 위계질서가 생겨났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뀌고 슬로건 , 정당명, 후보자가 그때마다 달라졌고 혁명의 불길은 타올랐다 이윽고 사라졌다. 훌 륭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는 얼굴모습도 바뀌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권력구조 그 자 체는 전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 3세기에 걸쳐 권력의 장벽을 타파하고 사회정의와 정치적 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를 수립하고자 하는 반란이나 개혁이 거듭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었다. 한 동안은 자유에 대한 희망이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도 있었다. 때로는 혁명가들 이 한 체제를 전복하는 데에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최종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반역자들이 자기들 혁명의 기치 아 래 준엘리트, 엘리트, 슈퍼 엘리트들로 이루어진 유사한 구조를 재구축했던 것이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통합구조와 그것을 지배하는 권력전문가집단이 제2의 물결문명에 있어서 공장, 화석연료, 핵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산업주 의와 그것이 약속한 완전한 민주주의는 사실상 양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혁명운동 등에 의해서 산업국가들은 자유시장경제와 중앙계획경제 사이를 오락가락할 때가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국가로 바뀌거나 또는 그 반대로 되는 경 우도 있었다. 그러나 '표범은 그 반점무늬를 바꿀 수 없는 법'이라는 속담대로 산업국 가의 본질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강력한 통합구조없이는 산업국가는 기능할 수가 없었다. 변혁의 제3의 물결이 경영관리층 세력의 보루에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는 오늘날 이 권력체계에도 최초의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경영참여, 의사결정의 분담, 노동자, 소비자, 시민에 의한 관리, 예상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 아지고 있다. 가장 진보된 산업국가에서는 과거보다도 위계적 색채가 덜하고 애드호크 러시 성격이 강한 조직구성이 시작되고 있다. 권력의 분산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 고 관리자들은 더욱 더 하부로부터의 정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정치 체제의 격변을 예고하는 초기적 경고에 불과하다. 현재 이미 제2의 물결문명의 산업사회를 공략하고 있는 제3의 물결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튼 사회적, 정치적 혁신을 초래할 것이다. 현재의 낡고 억압적이고 뒤떨어 진 통합구조들을 대신하여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새로운 제도가 태어날 날이 다가오 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눈을 돌리기 전에 무너져 가는 체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뒤떨어진 정치체제를 X광선으로 투시하여 이 체제가 제2의 물결문명에 얼마나 적합한가 산업사회의 질서와 엘리트에게 얼마나 봉사해 왔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이 체제가 이미 부적당하고 더 이상 존속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떠오를 것이다. 제6장 숨겨진 청사진 프랑스인에게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운동의 풍경만큼 이해하기 곤란한 것도 없다. 핫도그를 먹여주기도 하고 어깨를 두들겨 주며 갓난아기에게 까지도 키스를 해 준다. 그런가 하면 아주 조심스럽게 출마를 포기했다가는 예비선거에 참가하고 전당대회를 열고 이어 열광적인 자금모금운동,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의 유세, 연설회, 그리고 TV광고로 이어진다. 이들 모두가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다. 한편 미국인들은 또 프랑스인들의 지도자 선택방법을 납득하기가 힘들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영국식의 구태의연한 선거, 20개도 넘는 정당이 제멋대로 후보자를 내세우는 네덜란드의 선거, 몇몇의 후보자에게 순위를 매기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선택투료제도, 그리고 일본의 돌려먹기식 파벌협상 등이다. 이 모든 정치제도들은 나라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더군다나 소련이나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당 독재하에서의 선거, 다시 말해 가짜 선거제도쯤 되면 더욱 이해하기 곤란하다. 특히 정치제도에 관한 한 산업국가들 사이에서도 같은 형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2의 물결시대를 개척한 혁명가는 프랑스, 미국, 소련, 일본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 제1의 물결시대의 엘리트를 가까스로 권력의 자리로부터 끌어 내렸다. 그리고 나서 헌법을 제정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새로운 정치제도를 거의 무에서부터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창조의 의지를 불타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말하고 새로운 정치구조에 대해 논의를 했다. 도처에서 대의제도의 형태에 대해서 논란이 전개되었다. 누가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 의원에 선발된다면 의회에서의 투료는 선거민의 뜻에 구속당하는 것인가? 자기 자신의 판단으로 투표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임기는 긴 것이 좋은가, 짧은 것이 좋은가? 정당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새로운 정치구조는 어느 나라에서나 이같은 의견의 대립과 토론을 통해 등장했다. 이들 정치구조를 자세히 조사해 보면 모두가 낡은 제1의 물결의 사고방식과 산업화 시대의 도래를 가져온 새로운 사상들의 결합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업의 시대가 수천년이나 계속되었으므로 제1의 물결시대의 정치체제의 창설자들은 토지 대신에 노동력, 자본, 에너지, 원자재 같은 것을 기반으로 한 다른 종류의 경제를 상상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토지를 중심으로 한 사고방식이 여러가지 선거제도 속에 남아 있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미국과 영국 등 여러 나라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은 지금도 사회계층, 직업, 인종, 성별, 혹은 생활양식별 집단을 대표한다기보다는 일정한 넓이의 토지에 사는 주민들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선출된다. 제1의 물결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은 이동성이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산업화 시대의 정치체제의 설계자가 한평생을 똑같은 장소에 계속해서 사는 사람들을 상정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각국의 선거법에는 거주요건이 일반화되어 있다. 제1의 물결시대는 생활의 속도가 완만했다. 통신수단도 매우 원시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륙회의'의 뉴스가 뉴욕에 도달하기까지는 일주일이나 걸렸었다고 한다. 조지 워싱턴의 연설내용이 미국 전역에 전해지기까지는 여러 주일 내지 여러 달의 시간을 필요로 했었다. 1865 년에 링컨이 암살되던 때에도 런던의 시민이 이 소식을 알게 된 것은 12일이나 지난 뒤였다. 세상의 움직임이 느리다고 하는 암묵의 양해를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의회나 영국의 국회와 같은 대표기관은 심의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천천히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1의 물결시대의 선거민은 거의가 무지하고 문맹이었다. 따라서 일반 사회에서는 의원이라면 당연히 선거민들보다도 현명하고 훌륭한 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교육정도가 높은 계층으로부터 선출된 의원이라면 더욱 더 그러하였다. 그러나 제2의 물결과 함께 나타난 혁명가는 새로운 정치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서 제1의 물결사회의 상식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미래에도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 낸 구조물은 당시의 몇몇 최신 기술부문의 개념들을 반영하고 있다. 기계광 산업화 시대의 초기에는 기업가, 지식인, 혁명가들은 모두가 기계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증기기관, 시계, 방직기, 펌프, 피스톤 등에 매혹되어 그 당시의 여러가지 간단한 기계기술에 기초한 수많은 유사개념들을 무수히 만들어 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든가, 토머스 제퍼슨이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개혁자인 동시에 과학자 겸 발명가였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 때는 뉴턴의 위대한 발견에 의해서 새로운 문화가 꽃피우려 하던 격동의 시대였었다. 뉴턴은 천체를 관측한 결과 우주 전체가 거대한 시계처럼 정확한 기계적 질서에 의해서 운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이기도 했던 라 메트리는 1748 년에 "인간 기계론"을 발표하여 인간 자체가 기계라고 선언했다. 그는 경제도 하나의 체계이며 더욱이 그 체계는 '여러 면에서 기계와 매우 흡사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4 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매디슨은 미국 헌법을 둘러싼 논의를 설명하면서 '체계'의 '재형성'이라든가 정치권력의 '구조'의 변경이라든가, 일련의 여과과정을 통한 공직자선출 등의 종종 기계로부터 발상된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 헌법 자체도 거대한 시계의 내부처럼 여러가지 부품의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으로 성립되고 있었다. 제3 대 대통령 토머슨 재퍼슨도 '정부기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의 정치사상은 그 후에도 계속 회전조절용 바퀴, 체인, 기어, 견제와 균형 등과 같은 표현을 반영했다. 제8 대 대통령 마틴 바 뷰렌은 '정치기구'를 만들어 냈으며 뉴욕시에서는 실제로 '트위드 기구'라 불리는 1인 지배의 기반을 만들고 뉴저지주에서는 프랭크 해이그가 '해이그 기구'를 통해서 제멋대로 지배를 했다.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역대 정치가는 정치적 '청사진'을 만들고, '선거공작'을 하고 '강력한 압력을 가해서' 연방의회나 주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크로머 경이 '기계의 여러가지 부품처럼 조화있게 활동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제국정부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와같은 기계적 발상법은 비단 자본주의에만 국한된 산물이 아니다. 예를 들면 레닌은 "국가란 자본가가 노동자를 억압하기 위한 기관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트로츠키는 '부르주아의 사회적 기계장치의 모든 바퀴와 나사가 일체가 되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혁명정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기계에 관한 용어를 사용해 논하고 있다. 혁명정당을 강력한 '장치'에 비유하여 이렇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계도 다른 기계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정지하고 있다. 대중운동은 이 죽은 것과 같은 관성상태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증기의 힘으로 이 관성상태를 타파하고 회전조절용 바퀴를 돌려야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계적 발상에 완전히 젖어 기계의 힘과 능률을 맹신하게 된 제2의 물결사회의 창시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사회주의 사회의 많은 면에서 초기 산업기계의 특징을 닮은 정치제도를 만들어 냈던 것은 당연했었다. 대의정치 그들이 꾸준히 쌓아 올린 제2의 물결의 정치구조는 대의제도의 개념을 근본으로 하고 잇다. 그리고 각 나라에 따라 특정한 부품들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부품들은 일종의 보편적 대의장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부품들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1. 선거권이라는 무기를 가진 개인들. 2. 표를 모은는 정당들. 3. 당선되면 자동적으로 유권자들의 대표가 되는 후보자들. 4. 의원들이 투표로서 법령을 만들어 내는 의회들.(영국형 의회, 일본형 국회, 미국형 의회, 독일형 의회, 기타 미국형 주의회등) 5. 정책이라는 형태의 원자재를 입법기관에 공급하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들.(대통령, 수상 등.) 정치세계에서의 유권자들은 뉴턴 물리학에 있어서의 '원자'에 해당한다. 정당에 의해서 모아지는 표는 대의정치체계의 요체로서 기능했다. 당은 여러 형태의 표밭에서 표를 모아 그것을 선거라는 집계기에 투입한다. 이 기계에서 집계된 표의 수는 당의 세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국민의 뜻을 나타내 준다. 비록 그 숫자가 정부라는 기관에 원동력을 제공하는 기본연료로 간주되었다. 이 대의장치의 여러가지 부품들은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른 방법으로 교묘하게 조작되었다. 20세 이상의 성인들 누구에게나 투표권이 주어지는 나라도 있으며 백인 남성 이외에는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선거라는 절차가 실제로도 독재정치를 위한 겉치레인 경우가 있으며 선출된 공직자가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나라도 있다. 정당제도에 대해서 양당제인 나라도 있고 다수정당제인 나라도 있으며 일당독재의 나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이나 역사적으로 명백한 하나의 유형이 있다. 아무리 여러가지 부품을 수정하여 배치하더라도 공식 정치기구를 구성하는 데 사용한 기본장치는 모든 산업국가들에서 동일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든가 의회제는 결국 특권층의 위장물에 불과하다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흔히 자본주의에 대하여 공격한다. 그러한 정치기관은 대부분의 경우에 엘리트에 의해 조작되고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운용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주장인데 그러면서도 모든 사회주의 산업국가들은 서둘러서 이와 유사한 의회제도(물론 허울뿐인 것이지만)을 도입했다. 공장이 모든 산업사회의 기술체계 그 자체의 상징이 된 것처럼, 대의제도하의 정부를 갖는 것은 (그 실태야 어떻든간에) '선진국'의 상징으로 되었다. 실제 여러 후진국들조차도 식민지 건설에 앞장서 온 제국주의 국가의 압력에 의해서이건 맹목적인 모방을 통해서이건 서로 다투어 이같은 공식기구를 설치하여 선진국들과 똑같은 보편적 대의장치를 사용하게 되었다. 범세계적 법률공장 민주주의의 기관들이 국가적 차원에서만 설치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기관들은 주, 군 등 지방수준에서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시의회나 읍의회 등의 시, 읍, 면의 수준에서도 생겨났다. 오늘날 미국에는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공직자의 수는 약 50 만 명에 달한다. 도시에서만도 2 만 5869개의 자치단체가 있으며, 제각기 선거제도와 대의기관 및 선거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도시 이외의 지역에서도 수천개의 대의기관들이 서로 법석대면서 제각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 전체로 본다면 그 수는 더욱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스위스의 주, 프랑스의 군, 영국의 주, 캐나다의 주, 폴란드의 지방구, 소련의 공화국, 싱가포르, 이스라엘의 항만도시 하이파, 오오사카나 오슬로에서 입후보자가 출마하여 요술처럼 '의원'으로 변신한 기관들이 각종 법과 시행령, 규칙, 규정의 제조에 힘쓰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각 개인과 각 투표권이 독립된 원자로 비유되는 단위인 것처럼 전국이나 주 단위, 시, 면 단위의 정치적 단위들도 각각 독립된 원자적 단위로서 취급되었다. 각각의 정치단위는 신중하게 정해진 관할권, 독자적인 권한 그리고 독자적인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 단위들은 국가단위에서 주나 시, 읍, 면과 같은 지방단위에 이르기까지, 계층에 따라 위로부터 아래로 질서정연하게 조직화되어 왔다. 그러나 산업주의가 성숙하여 경제가 점차적으로 통합되어 감에 따라 이들 정치단위의 정책결정은 그 관할구역 밖에까지 영향을 미쳐 다른 정치조직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일본의 국회가 섬유산업에 관한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것은 곧 노스케롤라이나주의 고용문제나 시카고의 복지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하원이 외국산 자동차의 수입제한을 결정하면 나고야나 트리노의 지방자치단체는 곧장 대응책의 검토를 재촉받게 된다. 예전 같으면 정치가는 분명히 정해져 있는 자신의 관할권 내의 일에만 정신을 쏟고 그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내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다. 외관상 주권이나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전세계의 수만개의 정치조직들이 20세기 중엽이 되자 경제의 각종 회로를 통해 단단히 맺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급격히 늘어난 여행, 이민, 통신 등을 통해 정치기관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활성화하고 자극하게 되었다. 대의정치의 여러 구성요소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전세계의 수천개의 대의기관들은 이러하여 점차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초대형기구, 즉 범세계적 법률공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누가 어떻게 이 초대형기구의 조종간을 조작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선거는 확인의식 제2의 물결의 혁명가들이 품었던 인류해방의 꿈에서 탄생한 대의정치 제도는 종전의 권력체계에 비교한다면 매우 비약적인 진보였다. 이것은 나름대로 증기기관이나 비행기에 못지 않은 정치기술의 승리였다. 대의정치제도의 도입에 의해서 세습왕조없이도 질서정연한 정권이양이 가능하게 되었다. 사회의 상하 계층 간에 의사 소통을 시도하는 통로가트였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집단 간의 의견차이를 평화적으로 조정하는 토대가 쌓여졌다. 다수결원칙과 1인 1 표 원칙에 입각한 이 제도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점누가들로부터 혜택을 얻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따라서 대의정치제도가 전세계에 확산되는 것은 인간존중의 시대를 개척하는 돌파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제도는 처음부터 당초의 약속과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상상을 크게 해보아도 이 제도는 그것이 어떻게 정의되었든간에 인민에 의해 장악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현실적으로는 준엘리트, 엘리트, 슈퍼 엘리트로 구성된 산업국가들의 기본적 권력구조는 어느 나라에서나 한결같이 변함이 없었다. 사실 관리자인 엘리트는 감독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공식적 대의기관을 통해 더욱 더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핵심적 통합수단의 열쇠를 장악하게 되었다. 누가 당선하는가에는 전혀 관계없이 선거 그 자체는 엘리트들을 위한 강력한 문화적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가 한 표를 던질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선거는 평등에 관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정책적 선택이 조직적이고 기계처럼 체계적이고, 그리고 은연중에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으며 이 안도감이 투표를 대중의 확인의식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선거는 일반시민이 역시 권력의 소유자임을 보증함으로써 지도자를 선택한다는 것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지도자를 그 자리로부터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확인해 주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나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이러한 확인의식(선거)이 선거의 실제 결과보다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정치의 조직은 장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 통합기능을 수행하는 엘리트는 정당의 수를 규제하기도 하고 선거자격을 조작함으로써 조금씩 다른 정치기관의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이다. 그러나 선거라는 으식 그 자체가 희극적인 요소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어는 나라에서나 받아들여졌다. 소련과 동유렵의 선거가 항상 99 퍼센트 내지 100 퍼센트라는 놀라운 지지율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의 사회에서도 자유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최소한 유권자를 안심시키는 확인의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를 실시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항의를 해소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대의정치체제는 민주적 개혁의 추진자나 급진론자의 의도와는 달리 항상 통합기능을 수행하는 엘리트의 손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좌우되었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명이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제2의 물결정치체제가 갖는 기계적 본질을 간과해 버리고 있는 설명이 대부분이다. 제2의 물결정치제제를 정치학자의 눈이 아닌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다면 지금까지 간과해 온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산업 엔지니어들은 기계를 기본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즉 단속적으로 작동하는 일괄처리기계와 연속적으로 작동하는 연속흐름기계이다. 전자의 예로서는 흔히 쓰는 동력 펀칭프레시기와 같은 것이 있다. 노동자는 기껏해야 한 번에 두세 장의 금속판을 천공기 위에 올려 놓고 필요한 형으로 구멍을 뚫는다. 한 공정이 끝나면 다음 재료가 올 때까지 기계는 멈춘다. 후자의 예로는 정유시설을 들 수 있다. 정유장치는 일단 작동하기 시작하면 쉬는 일이 없이 계속 작동한다. 석유는 온종일 송유관과 저장탱크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간다. 범세계적인 법률공장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투표가 단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일괄처리공장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은 정해진 시기에 후보자들 가운데서 대표를 선택할 수가 있지만 선거가 끝나면 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계'는 다시 정지상태에 들어간다. 선거는 단속적으로 실시되지만 정치활동은 연속적이어서 조직화된 세력, 정치 브로커, 압력단체의 활동이 끊일 새가 없다. 각 기업체와 정부의 각 부처로부터 파견된 로비스트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지식인들로 구성된 각종 위원회에서 증언하는가 하면 심의회의 위원으로서 활약한다. 회합이나 만찬에 참석하고 워싱턴에서는 칵테일로 건배를 하고 모스크바에서는 보드카로 축배를 든다. 이처럼 항상 정보를 교환하면서 24시간 정책결정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엘리트들은 요컨대 선거라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단속적인 기계와 병행하여 또 하나의 연속적인 기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이 강력한 기계는 단속적인 기계와 더불어 어떤 때는 이것을 보완하고 또 어떤 때는 완전히 역방향으로 작동한다. 단속적인 기계와 연속적인 기계를 함께 고찰할 때 비로소 범세계적 법률공장에서 국가의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고 있는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선거에 의한 대의정치라는 게임에서 국민은 기껏해야 몇 년만에 한번 정부나 그 정책에 찬부를 표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권력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책결정의 과정에 연속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의제도의 원리 자체에 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보다 강력한 장치가 교묘하게 조립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인을 대표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새로운 엘리트의 탄생을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들이 최초로 노조결성권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을 때 그들은 괴로움을 받고 음모죄로 기소를 당하거나, 회사의 스파이에게 미행당하거나 경찰이나 고용된 폭력배에 의해 구타당했던 것이다. 노동자는 아웃사이더였으며, 체제내에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이 없었거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노동조합이 결성되면 새로운 통합자집단이 생겨나게 된다. 노동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노동자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기업 및 정부의 엘리트들 사이에서 조정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죽은 미국 노동총동맹 산업별 조합회의(AFLCIO: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nd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의 회장 조지 미니나, 프랑스의 CGT(노동총동맹) 회장 조르쥬 세기 같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슨 말을 하건간에 통합 엘리트의 중요한 일원이 되어 버렸다. 소련이나 동유럽의 노동조합위원장들도 노동자대표라는 자리는 허울좋은 간판일 뿐 권력전문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낙선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선거구민에게 항상 성실하게 행동하고 선거구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원칙 아래 움직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만으로써 의원들이 권력구조에 휩쓸려 버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례를 들자면 한이 없겠지만 전세계의 도처에서 의원들을 선출하는 사람들과 의원에 선출되는 사람들간의 단절은 확대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대의정치제도는 요컨대 불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개발된 산업사회의 기술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대의정치제도는 대의제의 유사한 제도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까지의 설명을 정리해 본다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현대문명의 중요한 지주는 석탄이나 석유 등의 화석연료, 공장생산, 핵가족, 기업, 대중교육, 대중매체 같은 것들이다. 이 모든 것은 점점 확대되는 생산과 소비의 분열에 기초한 것으로 이 모두가 전체를 통합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일련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관리되었다. 이러한 체제하에서는 대의정치정치제도가 정치세계에 있어서의 공장과도 같은 구실을 했다. 이 공장이 생산해 온 것은 집단적 통합결정이었다. 대부분의 공장과 마찬가지로 대의정치체제도 상부에서 관리했다. 그것은 또 대부분의 공장들처럼 나날이 시대에 뒤떨어져 가고 있다. 제3의 물결이 고조됨에 따라서 그 물결의 희생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제2의 물결시대의 정치구조가 날이 갈수록 시대에 뒤떨어져 오늘날 새로운 사회의 복잡한 문제에 대응해 나갈 수 없다고 한다면 그 원인의 일단은 다음 장에서 고찰하려는 제2의 물결시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제도인 국민국가에서 찾을 수가 있게 된다. 제7장 광란하는 국가 아바코(Abaco)섬은 인구 6500 명의 플로리다 앞바다에 있는 바하마군도의 하나이다. 수년 전 미국인 실업가, 투기상인, 정부의 규제를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자유 기업론자' 그리고 흑인 첩보원과 영국 상원의원이 포함된 1개 집단이 이제야말로 아바코는 독립을 선언해야 할 때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혁명이 성공하는 날에는 1인당 1에어커의 토지를 무상으로 주겠다고 약소하며 바하마 정부의 지배를 배제하고 섬을 점령하려고 기도했던 것이다. (이렇게 섬 주민들에게 1에어커씩 주더라도 또한 속셈이 시커먼 부동산업자나 투자자들에게 25 만 에어커 이상의 토지가 남았을 것이다.) 그들의 궁극적인 꿈은 아바코섬에 세금이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여 사회주의를 두려워하는 돈많은 실업가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섬주민들은 바하마 정부의 속박을 떨쳐버릴 의향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신생국가건설계획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국제연합(UN)이라는 국가 조합에 152개국이 가입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러한 독립운동의 희극도 아주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바코섬의 6500 명의 주민은 괴짜인 실업가들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간에 과연그들은 국가를 만들 수 있었을까? 싱가포르가 인구 230 만 명으로 한 국가를 형성한다면 왜 뉴욕은 800 만의 인구가 있는데도 국가가 아니란 말인가? 뉴욕의 브루클린구는 제트폭격기만 갖추면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제3의 물결이 제2의 물결문명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 질문은 결코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제2의 물결문명의 기초의 하나가 다름아닌 이 국민국가였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이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의 쌍방에 충격을 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민족주의의 문제를 둘러싼 애매한 논의의 결말을 보지 않는 한 신문지상을 뒤덮고 있는 사건을 이해할 수도 없고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간의 충돌 또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말 갈아타기 제2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기 전에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들은 아직 국민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의 세계는 부족, 씨족, 후작령, 공국, 왕국 등 잡다하고 다소간 지역적 성격이 강한 단위를 이루고 있었다. '국왕이나 속국의 군주는 아주 작은 권력밖에 갖지 못했었다.'고 정치학자인 파이너 교수는 쓰고 있다. 국경은 분명하지 않았으며 정부의 권한도 확실치 않았다. 국가권력도 아직 표준화되어 있지 않았으며 지방에 따라 엉망이었다. 파이너 교수에 따르면 어떤 마을에서는 풍차의 사용료를 징수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다른 마을에서는 농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두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수도원장을 임명하는 정도였다. 개인이 여러 지역에 재산을 갖고 있다면 여러 영주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장 위대한 황제일지라도 잡동사니와 같은 자그마한 지방자치의 공동사회를 통치했을 따름이다. 정치적 지배력은 아직도 장소에 따라 한결같지는 않았다. '유럽을 여행할 때는 말을 갈아타듯이 법률까지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볼테르의 불평은 이 상태를 단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물론 이 풍자에는 더욱 깊은 의미가 있었다. 말을 빈번히 갈아 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수송력과 통신수단이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고, 결국 군주가 제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더라도 그 지배력이 실제적으로 강력하게 미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국가의 권위는 약화되고 있었다. 정치적 통합없이는 경제적 통합도 불가능했다. 값비싸고 새로운 제2의 물결기술은 지방시장의 범위를 초월한 보다 커다란 시자아을 상대로 상품을 생산함으로써 비로소 재산이 맞았다. 그러나 기업가가 자기들의 소속한 공동체를 벗어나 한 걸음 내디디자 여러가지 관세, 세금, 노동법규가 있고 또 통화도 달라 있었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넓은 지역을 상대로 하는 매매가 가능할 리 없다. 새로운 기술이 이익을 낳기 위해서는 각지의 경제가 전국적인 하나의 국민경제로 통합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은 전국적인 분업이 성립되고 상품과 자본을 위해 전국적인 시장이 열리지 않으면 안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결국 정치적으로도 전국적인 통합이 필요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제2의 물결의 경제단위의 규모가 확장되어 감에 따라 제2의 물결의 정치적 단위도 그 규모를 확대해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제2의 물결사회가 전국적인 경제권을 확립하자 대중의 의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제1의 물결사회의 소규모 지역적 생산은 지방색이 강한 인간을 길러 냈다. 그들 대부분은 오로지 이웃이나 자기네들의 부락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극히 소수의 귀족이나 승려, 아직 각지에 흩어져 있는 상인 그리고 몇몇의 예술가, 학자, 용병 등 이러한 사람들만이 마릉 외부에까지 관시미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제2의 물결이 도래하자 보다 넓은 세계에 이해관계를 갖는 인간들이 증가해 갔다. 증기나 석탄을 기초로 하는 기술과 전기의 출현으로 보다 많은 제품생산이 가능해진 프랑크푸르트의 의류, 제네바의 시계, 맨체스터의 직물제조업자들은 지방의 한정된 시장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또 먼 곳으로부터의 원료를 구해 와야만 했다. 공장노동자들도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금융시장의 변동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었다. 즉 그들의 일자리가 먼 곳의 시장 사정에 의해 좌우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심리적인 지평선이 조금씩 확대되어 나갔다. 새로운 대중매체는 먼 지역으로부터의 정보나 이미지를 증가시켰다. 이러한 변화가 자극이 되어 지역편중의 사고방식은 후퇴하고 국민의식이 싹텄다.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시작하여 19세기를 걸쳐 계속 고조되어 오던 국가에 대한 열광은 세계의 산업화 지역을 휩쓸어 나갔다. 독일의 소규모이고 다양하고 서로가 반목시하고 있던 350개 미니 국가들이 연합하여 오직 하나의 국민적인 시장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조국 독일'이다. 사보이가, 교황, 오스트리아의 함스부르크가, 스페인의 부르봉가 등에 의해서 분할통치되었던 이탈리아도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헝가리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프랑스인 등 모든 민족이 갑자기 자기들의 동포에 대해 신기하게도 서로 친근감을 갖게 되었다. 시인들은 민족정신을 노래했다.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국민적 영웅이나 문학 그리고 민속을 재발견했다. 작곡가들은 민족에 대한 찬가를 작곡했다. 그러한 현상들은 산업화가 그것을 필요로 했던 바로 그 시점에서 일시에 일어났던 것이다. 산업화 시대가 통합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국민국가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명백하게 된다. 국가는 슈펭글러가 말하는 '정신적인 통일체'도 아니고 또한 '정신적 공동체' 혹은 '사회적 정신'도 아니다. 또 국가는 르낭의 말처럼 '풍요로운 기억의 유산'도 아니고 오르테가 가세트가 주장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공유의 이미지'도 아니다. 우리가 근대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제2의 물결에 특유한 하나의 현상으로서 단일의 통합경제 위에 위치해 있거나 또는 융합되어 있는 단일의 통합경제는 제아무리 모여들더라도 국가가 될 수는 없다. 가령 지역경제의 엉성한 집적 위에 공고한 통일적 정치체제가 성립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근대국가는 아니다. 통일된 정치체제와 통일된 경제, 이 둘의 융합이야말로 근대국가를 탄생시킨 결정적 요인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그 밖의 유럽의 나라들에서 산업혁명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민족주의자들의 봉기는 정치적 통합의 수준을 제2의 물결이 가져온 급속한 경제적 통합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려는 노력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가 뚜렷한 특징을 가진 국가단위들로 나누어 지게 된 것은 어떤 신비주의적 영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황금의 못 각국의 정부는 시장을 넓히고 정치적 권위를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언어의 차이나 문화적, 사회적, 지리적, 전략적인 장벽 등 외곽적 한계에 부딪쳤다. 또한 하나의 정치구조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영역을 아무리 확장하려 해도 수송력이나 통신수단의 정비유무, 에너지 공급이나 기술의 생산성의 조화 등 여러가지 사정이 제약으로 작용했다. 나아가서 회계절차, 예산관리, 관리기법 등이 어느 정도 세련되어 있는 가에 따라서도 정치적 통합 및 범위가 한정되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정부나 기업의 통합 엘리트들은 규모의 확대를 목표로 싸웠던 것이다. 지배하는 지역이 확대될수록 또 경제적 시장의 범위가 커질수록 그들의 부와 권력은 증대했다. 각국이 경제적, 정치적 변경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과정에는 그 나라 고유의 한계뿐만 아니라 경쟁국가들과도 충돌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통합 엘리트들은 고도의 기술을 이용했다. 그들이 달려든 것은 예를 들면 19세기의 '우주개발경쟁', 즉 철도의 건설이었다. 1825 년 9월 영국에서 스톡턴과 달링턴 사이에 철도가 부설되었다. 유럽대륙에서는 벨기에가 1835 년 5월 브뤼셀과 말리느 사이를 개통시켰다. 그해 9월 독일이 바바리아 지방에서 뉴렘베르크와 푸르트 사이에, 다음 해 프랑스에서 파리와 생제르맹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838 년 4월 차르콩 셀로와 페테르스부르크간에 철도가 부설되었다. 그뒤 30여년에 걸쳐 각국에서는 차례차례 철도를 건설하여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여 나갔다. 프랑스의 역사가 샤를르 모라제는 이렇게 설명했다. '1830 년에 거의 통일되어 있던 나라들은 철도의 출현으로 그 통합이 한층 강화되었다. 그러나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했던 나라들도 이 새로운 철도의 건설없이는 통일이 어려운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자기 나름대로 철도를 건설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나라들은 1세기가 넘게 유럽의 정치적 경계선을 정해 준 이 수송체계에 의해 국가로서 인정받기 위해 철도가 건설되기 전부터 서둘러 존립권을 선언하고 나섰다.' 미국에서는 역사가 마즐리시가 말하는 것처럼 정부는 '대륙횡단철도의 건설이 대성양연안과 태평양연안간의 연대의 밧줄을 더욱 강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광대한 토지를 민간 철도회사에 무상으로 불하했다. 최초의 대륙횡단철도의 개통을 기념해 박은 황금의 못은 참으로 미국이 전대륙적인 규모로 통합된 상징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전국적인 시장의 문이 개방된 것을 의미한 것이다. 이로써 전국에 대한 정부의 지배권은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인 것이 되었다. 이제 워싱턴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미국 대륙 어디에나 신속하게 군대를 이동시켜 그 권위에 종속시킬 수가 있게 되었다. 이와같이 각지에서 차례차례로 국민국가라는 새로운 강력한 통일체가 등장하게 되었다. 세계의 지도는 빨강, 분홍, 오렌지, 노랑, 녹색 등에 의해서 정연하고도 중복됨이 없이 나뉘어 채색되었다. 그 결과 국민국갈라는 체제는 제2의 물결문명을 지탱하는 핵심적 구조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이 국민국가의 밑바탕에는 통합을 촉진시키려는 산업주의의 일상적인 요청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통합은 국민국가 각각의 국경에서 멈추지 않았다. 산업문명은 그 강대한 힘에도 불구하고 외부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산업문명은 세계의 다른 지역을 화폐경제로 끌어들이고 이 화폐경제를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통제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제3의 물결이 창조하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얼서도 매우 중요하다. 제8장 제국주의로의 길 어떤 문명도 다른 문명과는 분쟁없이 확장될 수는 없다. 제2의 물결문명은 제1의 물결세계에 대해 대규모적인 공격을 퍼붓고 그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수백만이라는 인간 그리고 나중에는 수십억이라는 인간을 마음대로 지배했다. 물론 제2의 물결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인 16세기부터 유럽의 통치자들은 이미 거대한 식민지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성직자와 정복자, 프랑스의 사냥꾼, 영국, 독일, 포르투칼, 이타리아의 탐험가 등이 지구를 횡단하면서 주민들을 노^36^예로 만들거나 학살하고 광대한 토지의 지배권을 장악하고 본국의 왕에게 공물을 보내왔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그 다음에 일어난 사태에 비하면 그것은 작은 사건에 불과했다. 이들 초기의 탐험가나 정복자가 본국으로 보냈던 금은보화는 실제로는 개인적인 약탈물이었다. 이러한 보물들은 전쟁자금으로 쓰이기도 했고 사적인 재산이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겨울을 지내기 위한 궁전이나 무위도식하는 궁중인의 허식에 가득 찬 개인생활을 채색하는 자금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물들은 아직 본질적으로 자급자족의 단계에 있던 식민주의 국가의 경제와는 거의 상관이 없었다. 화폐제도와 시장경제와는 전혀 관계없이 햇볕에 그을은 스페인의 대저나 영국의 짙은 안개가 무상한 광야에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농노들은 수출할 만한 것이라곤 거의 갖고 있지 못했다. 그들은 그 지방에서 소비하는 것조차도 충분히 재배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다른 나라들에서 훔쳐오거나 구입해 온 원료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농민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외정복의 성과는 농민으로서 살고 있던 일반대중과는 상관없이 지배계급이나 도시민을 풍요하게 해줄 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제1의 물결시대의 제국주의는 아직 한 나라의 경제 속에 충분히 통합되지 못하고 있었다. 제2의 물결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던 이러한 좀도둑 행위를 커다란 사업으로 변모시켰다. 소제국주의를 대제국주의로 바꾼 것이다. 이리하여 생겨난 새로운 제국주의는 금과 에메랄드, 향료, 비단 등을 몇 상자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량의 초석, 면화, 야자유, 주식, 고무, 보크사이트, 텡스텐 등을 여러 척의 배에다 실어 자기나라로 운반해 가는 본격적인 제국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이 제국주의는 콩고강 유역에 구리광산을 파고 아라비아에 석유 굴착장치를 만들었다. 또한 식민지로부터 원료를 빼내다가 그것을 가공한 다음 완성된 제품을 식민지에 되팔아 거대한 이익을 올렸다. 요컨대 이 새로운 제국주의는 이제 한 나라의 경제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산업국가의 기본적 경제구조에 통합하여 수백만이라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일자리가 생겼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새로운 원료에 대한 수요뿐 아니라 점차로 식량의 수요도 증가했다 제2의 물결국가들은 제조업을 중시하여 농업노동력을 공장으로 이동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식료품을 해외로부터 수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 중국, 아프리카, 서인도제국, 중앙아메리카 등으로부터 쇠고기, 양고기, 곡물, 커피, 홍차, 설탕 등이 수입되었다. 한편 대량생산이 진전됨에 따라 새로운 산업 엘리트들은 보다 큰 시장과 새로운 투자의 장소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880 년대와 1890 년대의 유럽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뻔뻔스럽게 서슴지 않고 말했다. '제국은 무역에 의해 성립된다.'고 영국의 정치가 조지프 체임벌린은 선언했다. 프랑스 수상 패리는 더욱 노골적으로 프랑스에 필요한 것은 '산업과 수출품과 자본의 확장이다.'라고 말했다. 호황과 불황의 순환으로 동요되고 만성적인 실업에 직면한 유럽 지도자들은 몇세대에 걸쳐 식민지의 확대가 중단되면 실업으로 인해 자국에 무력혁명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대제국주의의 뿌리는 경제적 요인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략상의 배려, 종교적 열정, 이상주의, 모험심 이것을 모두가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백인 또는 유럽인이 다른 인종보다 뛰어나다는 맹목적인 억지와 더불어 인종차별정책도 관계되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ㅢ적 정복을 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백인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라는 영국의 작가 키플링의 표현은 기독교와 '문명'을 보급시키려는 유럽인의 사명관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경우 문명이란 제2의 물결문명을 의미한다. 식민지주의자들은 제1의물결문명이 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한 것이더라도 이를 뒤떨어지고 미발달된 문명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농업 종사자는 유치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특히 유색인종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이런 사람들은 '약삭빠르고 부정직'한 데다 '근면하지 못하고, 삶의 가치를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제2의 물결세력은 가는 곳마다 그들을 방해하는 자들을 전멸시키는 행위를 쉽사리 정당화할 수 있었다. "기관총의 사회사: The Social History of the Machine Gun"에서 저자인 존 엘리스는 19세기에 돤성된 이 새로운 치명적인 무기가 우선 맨 먼저 체계적으로 사용된 대상은 식민지의 원주민들이었지 결코 유럽의 백인이 아니었다고 쓰고 있다. 대등한 인간을 기관총으로 죽이는 것은 스포츠맨 정신에 위배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식민지인을 사살하는 것은 전쟁이라기보다 오히려 사냥과 같은 것으로서 또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엘리스는 또 이렇게 쓰고 있다. '남로디지아의 마타벨이나 탁발 고행승 그리고 티베트인을 총으로 헤치우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군사작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소 위험성이 있는 사냥놀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에서 나일강을 건넌 곳에 있는 옴두르만이나는 도시에서 이 최신 기술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1898 년에 스스로 마디(Mahdi, 세상의 종말 전에 나타난다고 하는 구세주)라 칭하고 수단 독립정부를 수립하고 있던 무하마드 아메드가 거느린 회교승들이 6정의 맥심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군에 의해 참패를 당했던 것이다. 목격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것은 구세주 마디의 강림신앙과 위대한 지도자의 최후였다^5,5,5^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처형이었다.' 이 단 한번의 교전에서 영국군의 사망자는 28 명인데 비해 회교승의 사망자는 실로 1 만 1000 명에 달했다. 영국군 한 사람에 대해 회교도는 392 명이나 죽은 것이다. 엘리스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싸움은 영국 정신의 승리와 백인들의 우월성을 보여준 또 하나의 예가 되었다.'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네덜란드인 등이 전세계로 뻗어가도록 밀어준 인종차별주의적 사고방식과 종교적 정당화의 배후에는 하나의 냉엄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제2의 물결문명이 고립해서는 존속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값싼 자원이라는 일종의 보조금과 같은 것이 없이는 아무것도 안되었다. 제2의 물결문명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이러한 보조금을 빨아들이는 흡수관의 역할을 하는 통합된 세계시장이었다. 앞뜰의 가스펌프 통합된 하나의 세계시장을 창조하려는 움직임의 토대에 있던 사고방식은 영국의 경제학자 리카도의 '분업은 공장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국가들 사이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고 하는 말에 가장 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리카도는 이렇게 지적했다. "만일 영국인이 섬유산업을, 포르투칼 사람이 포도주제조를 전문화한다면 두 나라에 모두 이익이 있다. 각국이 제작기 유리한 산업에 종사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적 분업'이 성립되고 각 나라에 전문화된 역할을 배정함으로써 모든 나라들이 윤택해질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그 의미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 동안 확고한 정설로 굳어져 왔다. 어떤 경제권에서 분업이 통합의 필요성을 증대시켜 통합 엘리트를 생성시켰듯이 국제적 분업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로 범세계적 규모의 통합을 요구하여 범세계적 엘리트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제2의 물결에 속하는 소수의 국가들로 이들 나라들이 모든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다른 대다수의 나라들을 교대로 지배해 왔다. 하나의 통합된 세계시장을 창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성공을 거둔 것은 유럽이 한 차례 제2의 물결에 휩쓸리자 세계무역이 놀랄 만한 성장을 보인 것만으로도 명백하다. 1750 년부터 1914 년 사이에 세계무역의 거래액은 7억 달러에서 거의 400억달러로 5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리카도의 말이 옳았다고 한다면 이러한 세계무역의 이익은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거래 참여국가에 골고루 배분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문화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나라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는 자기중심적인 신념은 공정한 경쟁이라고 하는 하나의 환상 위에 성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학설은 노동과 자원의 완전한 효율적인 이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또한 정치력이나 군사력의 위협을 받지 않는 공명저어대한 거래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대등하게 맞서는 계약당사자간의 객관적 거래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리카도의 이론은 현실 그 자체를 무시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제2의 물결에 속하는 상인과 제1의 물결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의 설탕이나 구리, 코코아 등 그 밖의 자원에 대한 거래교섭은 전혀 일방적인 경우가 많았다. 테이블 한 쪽에는 돈 계산에 빈틈이 없는 유럽인 또는 미국인이 대기업과 은행의 방대한 금융조직, 압도적인 테크놀로지, 강력한 정부를 배경으로 앉아 있으며, 또 한편에는 아직 대부분이 화폐제도조차 갖추지 못하고 소규모 농업이나 향토공예에 경제적 기반을 둔 사람들을 거느린 지방영주나 족장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한편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강력한 기계력의 진보된 문명을 대표하는 사람들로서 자기들의 우월성을 확신하고 당장이라도 총검이나 기관총으로 그 우월성을 증명항 수 있다는 태도로 앉아 있었다. 그에 대해 또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무력이라고는 고작 활이나 창밖에 갖추지 못한 아직 국민국가 이전의 조그만 부족국가나 속국의 대표에 불과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후진국의 통치자나 기업인은 서구인들에게 간단히 돈으로 매수당해 버리고 뇌물이나 개인적인 이익에 눈이 어두워 원주민의 노동력 착취를 방관하고, 저항운동을 억제하거나 법률을 외국인에게 유리하도록 바꿔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한편 식민지화해 버리면 제국주의자들은 원료의 가격을 자국의 기업인들에게 유리하도록 정하고 경쟁국의 무역관계자가 가격을 인상할 수 없도록 견고한 방어벽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와같은 상황 아래에서 산업국가들에게서는 당연히 자유경쟁의 시장가격보다 싼 원료나 에너지 자원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제2의 물결국가들이 필요로 한 원료의 대부분은 그 소유자인 제1의 물결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거의 무가치했다. 아프리카의 농민에게는 크롬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으며, 아랍의 족장은 자신들이 사는 사막의 모래 아래에 있는 검은 황금인 석유의 용도를 알지 못했다. 어떤 상품에 대해서 한 번도 거래의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첫번째 거래로 결정된 가격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리고 가격은 생산원가나 이익, 경쟁이라는 경제적 요소보다도 상호의 군사력이나 정치력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결정된 가격은 이렇다 할 경쟁상대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러한 경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의 가치 상태에서 대부분 구매자의 요구대로 가격을 인정해 버렸다. 그리고 이 '최초의 가격'이 한번 싼 값으로 결정되고 나면 그 이후의 가격은 모두 거기에 따라 낮추어지는 것이었다. 싼 가격에 사들인 원료가 일단 산업국으로 옮겨져 최종적인 제품으로 상품화되면 처음의 낮은 가격은 그대로 고정되어 버렸다. 결국 이렇게 하여 모든 상품에 대해 세계시장가격이 형성되고 모든 산업국은 아무런 경쟁없이 제공받은 값싼 원료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제국주의자들이 미시여구를 써서 자유무역과 자유기업의 미덕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제2의 물결국가들은 '불완전한 경쟁'에 의해서 막대한 이익을 올렸던 것이다. 제국주의자인 레토릭이나 리카도의 학설에도 불구하고 무역을 확대한 데 따른 혜택은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혜택은 주로 제1의 물결세계에서 제2의 물결세계로 흘러들어 갔다. 마기린을 위한 야자농장 제1의 물결세계에서 제2의 물결세계로 이윤의 흐름을 촉진시키기 위해 산업주의 열가아은 열심히 세계시장을 확대하고 통합해 나아갔다. 통상이 국경을 넘어 형성되자 각국 단위의 시장은 보다 커다란 상호관련을 가진 일정 지역, 또는 하나의 대륙 전체의 시장연합체의 일부가 되어 마침내 제2의 물결문명을 지배하는 통합 엘리트들이 꿈꾸고 있는 단일의 통일적 교역 시스템의 일부를 형성하게 되었다. 온 세계가 화폐로 짜여진 한 폭의 직물처럼 변해 버렸던 것이다. 제2의 물결국가들은 세계의 나머지 나라를 모두 자신들의 가스나 식량, 석탄, 석재, 그리고 값싼 노동력의 공급자로서 취급하고 지구상의 비산업국 사람들의 사회생활에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 수천년 동안 자기들의 식량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내는 자급자족의 생활을 계속해 온 사람들의 문화가 싫든 좋든간에 세계무역의 시스템에 끌려 들어가 볼리비아인이나 말레이시아인의 생활수준은 엉뚱하게도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산업국가들의 경제적 요구에 얽매이게 되었다. 가정용 마가린 제조의 변모은 그 동안의 사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마가린은 원래 유럽에서 그 지방 특유의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가린이 널리 보급되고 수요가 증가하자 원료가 부족하게 되었다. 1907 년 한 연구가가 코코넛과 야자유로도 마가린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럽에서의 이 발견이 서아프라카인의 생활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영국 식량과학기술연구소의 전 소장이었던 매그너스 파이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야자유 주산지의 땅은 부락 전체의 공유였었다.' 야자나무의 이용에는 지방마다 복잡한 관습과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나무를 심은 사람이 죽기까지 그 나무의 생산물에 대한 권리가 주어졌다. 장소에 따라서는 여성이 특권을 가진 경우도 있었다. 파이크의 기술에 따르면 '유럽이나 미국의 산업사회의 주민이 가까운 가게에서 언제나 마가린을 쉽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방의 기업인들은 야자유의 대량생산체제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것은 산업화되어 있지 않은 아프리카인의 복잡하고 취약한 사회조직을 파괴해 버렸다.' 벨기에링 콩고, 나이지리아, 카메룬, 아프리카 서부의 영국 식민지인 골드코스트(Gold Coast)에 거대한 야자농장이 만들어졌다. 유럽은 거기에서 마가린을 얻었고 아프리카인은 이들 대농장에서 반노^36^예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또 하나의 예가 고무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의 자동차 제조가 타이어와 튜브의 원료인 고무의 수요를 급증시켰다. 무역업자는 현지의 통치자와 결탁하여 고무의 생산에 종사하는 아마존강 유역의 인디언을 노^36^예처럼 부렸다. 리오데자네이로 주재의 영국 영사 로저 케이스먼튼는 '아마존강의 지류인 푸투마요강 유역에서 1900 년부터 1911 년까지는 4000 톤의 고무가 산출되었는데, 이 때문에 3 만 명의 인디언의 죽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이므로 대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예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식민주의 열강이 항상 잔혹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장소에 따라서는 학교가 세워지고 피지배주민들을 위해서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보건시설도 설치되었다. 위생시설, 상하수도 등도 개선되어지는 등 일부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끌어 올린 것도 사실이었다. 또 식민지 이전의 사회를 낭만적으로 이상화하거나 오늘날의 비산업국가의 빈곤의 원인을 제국주의 탓으로만 돌려 이것을 나무라는 것도 공평한 태도는 아니다. 빈곤의 원인에는 풍토, 그 지방의 도덕적 수준의 낮음, 전제정치, 무지, 외국인 기피성, 기타 여러가지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유럽인이 찾아오기 훨씬 이전부터 여러가지 참상이나 억압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자급자족의 생활이 깨치고, 화폐와 교역을 위해 생산을 부득이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자신들의 사회조직을 광업이나 대규모 농장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도록 장려를 받기도 하고 강요당하기도 하자 제1의 물결사회의 주민들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시장에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빠져 버렸다. 지도자들이 매수당하기도 하고 고유의 민족문화는 조소의 대상으로 변했다. 자신들의 언어를 말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더구나 식민주의 열강은 피정복민의 마음 속에 깊은 열등감을 심어주고 말았다. 이 열등감이 오늘도 과거 열강의 지배하에 있던 나라들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하나의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제2의 물결사회에서 대제국주의는 상당히 성과를 거두었다. 경제사가 윌리엄 우드러프는 '이들 식민지의 개발과 그 식민지를 상대로 한 무역의 증대야말로 서유럽 국가들의 가족에게 일찍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풍요를 가져다 주었다.'고 쓰고 있다. 제2의 물결의 경제기구와 깊이 연결된 제국주의는 끝없는 자원의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지구 전체를 석권해 나갔던 것이다. 1492 년 콜럼버스가 최초로 신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유럽인이 지배하고 있었던 지구 전체의 겨우 9 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1801 년에는 3분의 1이 되었으며, 1880 년에는 3분의 2에 달했다. 그리고 1935 년에 유럽인은 세계 면적의 85 퍼센트, 전인구의 70 퍼센트를 정치적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제2의 물결사회와 마찬가지로 세계가 통합하는 쪽과 통합당하는 쪽으로 나뉘어졌던 것이다. 미국인에 의한 통합 그러나 통합하는 측도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제2의 물결국가 사이에서도 성장과정에 있는 세계경제기구의 지배권을 에워싸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우위에 서 있던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신흥 독일의 산업력이 도전했다. 전쟁에 의한 파괴, 거기에 잇따른 인프레이션과 불황의 악순환, 러시아 혁명, 모든 것이 산업사회의 세계시장을 뒤흔들었다. 이러한 격변은 세계무역의 성장률을 매우 둔화시켰고 무역체제 속에 들어온 나라의 수는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국제거래량은 감소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다시 통합적인 세계시장의 확대속도를 지연시키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서유럽은 폐허의 잔재만이 남아 있었다. 독일은 마치 달표면처럼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소련도 인적, 물적 양적 면에서 말로 할 수 없는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일본의 산업시설도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 주요한 산업열강 가운데서 미국만이 경제적 피해를 받지 않고 있었다. 1946 년부터 1950 년에 걸쳐 세계경제는 이러한 지독한 혼란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국제무역은 1913 년 이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유럽의 열강들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 세력이 약화되자 식민지 국가들이 차례로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인도의 간디, 베트남의 호치민, 케냐의 케냐타와 같은 반식민주의자들의 식민주의 배척운동에 열을 올렀던 것이다. 따라서 전후의 세계산업경제는 새로운 기반 위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미국과 소련이 제2의 물결체제를 재구성하고 재통합하는 일을 떠맡게 되었다. 미국은 그때까지 대제국주의 운동에서는 한정된 역할밖에 맡고 있지 않았다. 북미대륙에서 국경선을 확장해 나가는 가운데 미국도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을 대량으로 학살하거나 보호구역으로 몰아 넣었다. 또한 멕시코,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에서는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의 제국주의적 전략을 모방했다. 미국의 '달러 외교'는 20세기 초 수십년에 걸쳐 유나이티드 푸르트사 등 많은 자국 대기업들에게 남아메리카로부터 설탕, 바나나, 커피, 구리, 기타 원료를 헐값에 구입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미국은 활발한 대제국주의 전개운동에선느 신참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등장을 했다. 이 나라는 최신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가장 안정된 정치구조를 과시했다. 그리고 전쟁으로 약화된 경쟁국들이 식민지로부터 밀려나게 되자 이때 생겨난 공백을 틈타 권력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1914 년 초 미국의 금융정책 입안자들은 전후의 세계경제를 자국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제통합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국제통화, 금융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1944 년 미국의 제창으로 뉴햄프셔주 브렌튼우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44개국이 두 개의 중요한 통합조직인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의 설립에 동의했다. IMF에서는 회원국통화의 외환비율을 미국의 달러와 금값에 고정시킬 것을 의무화했다. 그 당시 금의 대부분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보유량은 1948 년 현재 전세계 금보유량의 72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IMF는 이것으로써 세계의 주요통화의 기본적인 관계를 고정시켰던 것이다. 한편 세계은행은 당초 유럽 국가들에게 전후의 복구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것인데, 점차로 비산업국가에도 융자를 해 주게 되었다. 이러한 융자는 주로 도로, 항만 등 이른바 '기간시설'의 건설에 투자되었지만 이들 시설이 결국은 제2의 물결국가들에 대한 공업원료나 농산물 수출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구실을 하게 되었다. 얼마 후, 이 체제에 제3의 요소가 추가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가 설립되었다. 역시 미국의 주도로 추진된 이 협정은 무역자유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므로 경제력이나 과학기술이 뒤진 나라들에게 자국의 산업보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IMF에의 가입이나 GATT의 취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세계은행의 대부를 금지한다는 규정에 의해 이 세 개의 조직체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체제에 의해서 미국의 재무국들은 통화나 관세율 조직을 통하려 부담을 줄이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이 체제는 세계시장에서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또한 제1의 물결국가들이 정치적 독립을 이룬 후에도 그들 나라의 경제계획에 대해 산업화가 이루어진 열강, 특히 미국의 계속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도록 해 주었다. 상호관련된 이들 세 개의 기관들은 세계무역의 단일 통합구조를 형성했다. 그리고 1944 년부터 1970 년대 초까지 미국은 이 체제에 편승하여 정책을 실행해 나갔다. 국제관계에 있어서 미국은 다른 통합국을 다시 통합해 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제국주의 그러나 제2의 물결세계에 대한 미국의 리더쉽은 소련의 등장과 더불어 점차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스스로 반제국주의자를 자칭하고 세계 식민지국가들의 우방이라고 주장했다. 레닌은 정권을 장악하기 1년 전인 1916 년에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정책에 대해서 통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또한 레닌은 제국주의를 순전히 자본주의적 현상으로만 보고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들이 다른 나라를 억압하고 식민지화하는 것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필연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주장 소게,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이윤은 일반적으로 시간과 함께 체감하는 불가항력적인 경향이 나타난다고 하는 설이 있다. 다분히 의심스러운 이 학설은 사회주의자들에게 하나의 철칙이 되었다. 이 학설을 전제로 하여 레닌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최종단계에서 작구내의 이윤체감을 보완하기 위해 해외에서 '과당이익: super profits'을 추구하는 것은 부득이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레닌은 사회주의만이 경제적 착취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식민지화된 사람들을 억압과 비참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닌이 간과한 것은 자본주의 산업국가들을 움직이고 있는 원리원칙의 대부분이 사회주의 산업국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세계통화체제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와 다름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도 생사놔 소비의 분리 위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를 맺어 주는 시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반드시 이익을 목표로 한 시장은 아니었지만)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자국의 공업기계를 운용하기 위해 외국으로부터의 원료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들 또한 자국의 필수품을 획득하고 생산품을 외국에 팔기 위해 통합된 세계경제기구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사실 레닌은 제국주의를 공격하면서도 사회주의의 목적에 대해 "단순히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합하는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소련의 경제분석학자 M. 세닌이 "사회주의적 통합"에서 쓰고 있듯이 레닌은 1920 년에 '여러 나라들의 통합은^5,5,5^ 최종적으로는 공도의 계획에 의해서 조정되는^5,5,5^ 단일 세계경제를 창설하기 위한 목적이 분명한 과정이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산업주의적인 견해였다. 표면적으로는 사회주의 산업국가들도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원의 필요에 쫓기고 있었다. 그들 역시 급속히 증대되는 공장과 도시인구에 원료나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면화나 커피, 니켈, 설탕, 밀, 기타의 물자가 필요했다. 소련은 지금도 그렇지만 풍부한 자원의 혜택을 입고 있었다. 망간, 납, 아연 , 석탄, 그리고 금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두 나라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가능한 한 낮은 가격으로 이러한 원료를 구입하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소련도 세계통화체제의 일단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나라건 일단 이 통화체제에 흡입되어 일반적인 통상방식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내 그 형태에 알맞도록 능률과 생산성의 정의에 얽매여 버렸는데 이러한 정의 자체는 초기의 자본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사회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거의 무의식 중에 전통적인 경제개념, 범주, 정의, 회계절차, 일련의 도량형 단위 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전문가들은 자본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원료생산원가를 외국으로부터 조달하는 경우의 비용과 비교 계산하게 되었다. 그들 또한 만들어야 하는지 사들여야 하는지의 결정으로 고민해야 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명확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원료는 세계시장에서 구입하는 편이 자국에서의 생산원가보다 싸게 먹힌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던 것이다. 한번 이런 결단이 내려지면 소련의 빈틈없는 구매 담당자들은 일제히 세계시장으로 나아가 이미 제국주의 국가의 무역업자들이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해 놓은 가격으로 원자재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소련의 트럭은 영국의 상인이 말레이지아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사들인 고무로 만든 타이어를 달고 다니게 되었다. 최근에 들어 소련은 기니아에 소련 군대를 주둔시키고 미국이 1톤당 23달러에 사들이는 보크사이트를 6달러에 사들였다. 소련은 그 제품을 인도에게 자국내 가격보다 30퍼센트나 비싼 가격으로 수출하면서 인도의 제품을 소련이 수입할 때는 30퍼센트나 낮은 가격으로 가져가서 인도가 항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란과 아프카니스탄은 소련에 비정상적인 헐값으로 천연가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같이 소련은 자본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국가들의 희생에 의해서 이익을 얻었던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소련의 공업화는 매우 늦어졌을 것이다. 소련 역시 전략적 고찰에 의해서 제국주의적 정책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다. 나치 독일의 군사력에 대항하기 위해 소련은 우선 발틱 연안국가들을 식민지화하고 핀란드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군대에 의한 침략의 깃발을 나부끼면서 동유럽 전역에 걸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거나 유지하도록 했다. 소련보다 산업화면에서는 훨씬 진보되어 있던 이들 나라들은 더러는 소련에 착취당하면서 식민지 또는 '위성국'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신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하위드 셔먼은 이렇게 쓰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수년 동안 소련이 동유럽의 자원을 정당한 대가의 지불도 하지 않고 자국으로 가져갔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매우 노골적인 약탈과 군사적 배상이 실행되었다. 소련이 경영상권을 가진 합작회사도 설립되었고 소련은 이들 나라로부터 이윤을 착취해 간 것이다. 또한 추가적으로 전쟁배상에 해당하는 국토의 불평등 통상조약이 체결되어졌다.' 오늘날에는 표면적으로 노골적인 약탈행위나 합작회사는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셔먼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소련과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간의 교역은 소련이 상당히 공정해진 현재에도 여전히 불평등한 것으로서 소련이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많다.' 그러면 이런 방법으로 얼마나 많이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는지는 소련에서 발표한 통계가 부정확하기 때문에 확실히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유럽 전역에 소련군을 주둔시켜 두는 군사비보다는 이러한 경제적 이익이 웃돌고 있으리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미국이 IMF, GATT, 세계은행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낸 데 대해 소련은 COMECON(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을 만들어 동유럽 여러 나라에 가입을 강요함으로써 단일의 통합된 세계경제체제라는 레닌의 꿈의 실현에 한 발자욱 내디딘 것이다. COMECON 회원국들은 소련에 의해 그 밖의 가입국들과의 통상을 강요당했을 뿐 아니라 자국의 경제개발계획을 모스크바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아야만 했다. 모스크바는 분업화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리카도의 학설은 내세워 과거 제국주의적 열강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에 각각 분업화된 전문적인 기능을 부여했다. 이에 대해 공공연히 침착한 저항을 시도한 것은 루마니아뿐이었다. 루마니아는 소련이 자기 나라를 '석유 펌프가 딸린 앞뜰'로 삼으려 한다고 주장하면서루마니아의 전면적인 발전, 즉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다각적인 산업화를 목표로 개발에 착수했다. 루마니아는 소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통합'에 착수했던 것이다. 요컨대 미국이 자본주의 산업국가들 사이에서 리더쉽을 발휘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 새로 자국에 유리한 세계경제체제를 만들어 가는 동안에 소련도 자국 지배하의 지역에서 거기에 상응하는 기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주의와 같이 방대하고 복잡하고 변화하는 현상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국주의가 종교와 교육, 보건위생, 문학과 미술의 주제, 인종문제에 대한 수용자세, 세계 각국 국민의 심리구조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아직도 역사가들은 해명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가 잔혹행위를 한 것은 분명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적극적인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2의 물결문명의 발생에 대해 제국주의가 많은 기여를 했다고 지나치게 강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제국주의를 제2의 물결세계가 산업화를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엔진의 과급기 또는 액셀레이터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 일본, 소련이 외국으로부터의 식량이나 에너지, 원료의 도입이 없었더라며너 얼마나 빠른 산업화를 실현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인가? 보크사이트나 주석, 바나듐, 구리와 같은 온갖 원자재의 가격이 만일 10 년마다 30--50 퍼센트씩 올랐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아마 무수한 최종제품의 가격이 그것에 따라서 올랐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 비싼 상품의 대량소비가 불가능했을 것이 틀림없다. 1970 년대 초의 원유가격의 급등에 따른 석유파동을 생각해 보면 어렴풋이나마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설령 국산자원으로 대체가 되었더라도 제2의 물결에 속하는 여러 나라의 경제성장은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다. 제국주의가 가져다 준 은밀한 보조가 없었더라면 자본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제2의 물결문명은 지금도 고작 1920 년이나 1930 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전체적인 조감도가 분명히 보일 것이다. 제2의 물결문명은 세계를 세분화하고 제각기 독립된 국민국가로 재구성했다. 그리하여 다른 지역의 자원을 필요로 했던 제2의 물결문명은 제1의 물결사회와 그 밖의 세계의 원시적인 민족을 통화체제 속으로 끌어들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통합된 시장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휩쓴 산업주의는 단순히 경제적, 정치적, 혹은 사회적 체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생활양식, 사고방식의 문제이기도 했다. 산업주의는 제2의 물결특유의 정신구조를 생성해 냈다. 이러한 정신구조야말로 오늘날 제2의 물결문명의 창조를 방해하는 최대의 핵심적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9장 산업적 현실상 제2의 물결문명은 지구 전체에 그 강한 촉수를 뻗어 그 손길이 미치는 모든 것에 변화를 강요했다. 그것은 과학기술이나 통상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제2의 물결은 제1의 물결과의 충돌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현실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도록 했다. 제2의 물결은 여러 면에서 농업사회의 가치, 관념, 신화, 도덕과 충돌하는 가운데 신이나 정의, 사랑,권력,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 나갔다. 새로운 개념이나 태도, 유추의 방법을 보급시켰다. 시간과 공간, 물질, 인과관계에 대한 옛날부터의 전제를 뒤엎고 이것을 무용화시켰다. 강력하고 일관성있는 세계관이 등장하여 제2의 물결의 현실을 정당화한 것이다. 이 산업사회의 세계관에는 이제까지 특정한 이름이 없었으나 '산업적 현실상'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적 현실상이란, 산업주의 사회에 태어나는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속한 현실세계를 이해하도록 가르쳐 주는 개념이나 가설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제2의 물결문명에 의해서 채택된 이 문며에 속하는 과학자, 실업계의 리더, 정치가, 철학자 등이 즐겨 활용해 온 온갖 전제의 포장물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산업적 현실상에 대립하는 견해의 소유자도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은 산업적 현실상의 지배적인 개념에 도전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사는 제2의 물결사상의 지류가 아니라 본류였던 거이다. 외관상으로 본류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오히려 두 개의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흐름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다. 19세기 중반에 이르게 되자 산업화를 추진하는 나라마다 개인주의와 자유기업주의를 옹호하는 우익집단과 생산이나 경제활동의 수단을 국가가 통제하는 집산주의,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좌익집단이 구분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산업국가들에만 한정되어 있던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투쟁은 곧 전세계로 확산되어 갔다. 1917 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세계적 규모의 중앙통제하의 선전기구가 조직되면서 이데올로기의 투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 되자 미국과 소련은 각각 자국에 유리한 세계시장, 혹은 전세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대부분의 시장을 재통합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거액의 돈을 쏟아 넣어 비산업국가의 국민들에게 각각 자신들의 주의를 심어 나갔다. 한쪽에는 전체주의 정권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소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논리적인 토의가 결렬될 때를 대비해 총과 폭탄을 배치해 놓았다. 종교개혁기의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충돌 이후 두 개의 사상진영 사이에 이만큼 뚜렷하게 주의주장에 의한 경계선이 그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데 이 치열한 선전전쟁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양측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양쪽 모두 같은 '초이데올로기'를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양측의 결론(그 경제계획과 정치원리)은 완전히 이질적이었지만, 출발점이 된 전제의 대부분은 동일했던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성직자들이 저마다 해석을 다르게 하면서도 같은 성서를 똑같이 거룩하게 받들면서 양쪽 다 같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처럼 마르크스주의자와 반마르크스주의자, 자본주의자와 반자본주의자, 미국인과 소련인은 한결같이 세계의 비산업화 지역인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로 진출해 갔다. 그리고 그 진출에 있어서 그들은 같은 기본적 전제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스스로는 그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다른 모든 문명에 대한 산업주의의 우월성을 역설했다. 양자는 모두 산업적 현실상의 열렬한 주창자였던 것이다. 진보의 법칙 그들이 전파한 세계관은 산업적 현실상을 구성하는 상호연관성이 깊은 세 개의 신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 세 가지의 신조는 제2의 물결에 속하는 나라들을 하나로 묶어 지구상의 다른 나라들과 그들을 구별짓게 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냈다. 이 핵심적 신조의 첫째는 자연에 관련된 것이다.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는 자연의 산물을 어떻게 분배하는가에 대해서 격렬하게 대립하였으나 자연을 보는 견해를 똑같았다. 양쪽 모두에게 자연은 인간이 이용해도 좋은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였던 것이다. 인간은 당연히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은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산업혁명까지만 해도 그것은 소수의견에 지나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전의 거의 모든 문화가 강조했던 것은 가난함을 받아들이고 인류와 인간을 둘러싼 자연생태계를 조화시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혁명 이전의 문화가 자연에 대해 특별히 순종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산을 개간하고, 토지의 면적에 비해 너무 지나칠 정도의 가축을 방목하고 땔감을 위해 남벌을 했다. 그러나 당시의 인간이 가진 자연파괴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대지에 결정적인 충격을 주는 힘도 없었으며 스스로가 끼친 손해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도 필요하지 않았다. 제2의 물결문명이 도래하자 자본주의 산업가들은 이윤추구를 위해 땅 속의 지하자원을 대규모로 파올리고 대기 중에 대량의 유해 가스를 방출하고 넓은 지역의 삼림을 벌거숭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나 먼 장래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연은 개발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상이 근시안적 전망과 이기주의를 정당화하는 편리한 구실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들만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이윤추구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산업가들 역시 권력을 장악하면 어디에서나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사실 그들은 자연과의 투쟁을 자기들의 경전 속에 짜 넣어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원시사회에 대해 인간과 자연은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을 상대로 생사를 건 처절한 투쟁을 벌였다고 명시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계급사회의 출현과 함께 이 '인간 대 자연'의 투쟁이 불행히도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변해 버리고 공산주의에 의한 계급없는 사회가 실현된 다음에 인간은 '인간 대 자연'의 투쟁으로 희귀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자연과 대립하고 이것을 지배한다. 이데올로기의 분수령으로 막혀 있던 두 진영에 이처럼 동일한 인간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인간상은 산업적 현실상의 주요 구성요소이므로 이 초이데올로기로부터 마르크스주의자들도 한결같이 자신들의 가설을 도출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적 현실상을 구성하는 두 번째 신조는 첫째 신조와 서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논쟁을 더 한층 진전시켰다. 그것은 인간이 단순히 자연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랜 진화과정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하는 사고방식이었다. 진화론은 그 이전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이 개념에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사람은 19세기 중엽 당시의 최선진 산업국인 영국에서 교육받은 다윈이었다. 그가 주장한 것은 세계 속에는 '자연도태'라는 무작위적 기능이 작용하고 있어서 생존경쟁에 으ㅢ해 약하고 무능력한 자는 용서없이 도태되어 가는 것이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살아 남은 종이 최적자라고 정의했다. 다윈의 관심사는 주로 생물의 진화였지만 그의 사상은 명백히 사회적,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재빨리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진화론자'들은 사회내부에도 이 자연도태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진화론적 사실 때문에 가장 부유하고 강한 권력을 가진 자가 부와 권력에 적합한 최적자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사고방식을 좀더 진전시키면 모든 사회가 이 도태의 법칙에 따라 진화한다는 사상과 연관되어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산업주의는 그 주변의 비산업문화에 비해 보다 높은 진화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고 하는 결과가 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제2의 물결문명은 다른 모든 문명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사회진화론이 자본주의를 합리화했던 것처럼 스스로의 문화적인 우월은 제국주의를 정당한 것으로 합리화해 주었다. 확대되는 산업사회는 값싼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생명선이 필요했고 심지어는 농업사회나 모든 원시사회를 말살시켜서라도 싼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행위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즉 사회진화론은 비산업사회의 사람들을 산업사회의 인간보다 못한 존재라고 결정짓고 따라서 생존 부적격자로서 대우하는 것에 대한 지적, 윤리적 구실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다윈 자신도 냉혹한 필치로 태즈메니이니아 원주민의 대량학살에 대해 언급하며 민족말살의 열정을 뿜어댔다. 그는 "장래의 언젠가는 문명인이 온 세계의 야만인을 멸종시키고 그에 대신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라고 예언했다. 제2의 물결문명의 선구자들에게는 생존할 가치가 있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마르크스만 하더라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산랄하게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산업주의가 사회의 가장 가장 진보된 형태이며 다른 모든 사회도 필연적으로 점차 그 단계를 향해서 발전해 갈 것이라는 점에서는 진화론의 소유자였다. 산업적 현실상을 구성하는 핵심적 신조의 세 번째는 자연과 진화를 연결하는 사상, 즉 진보의 법칙이었다. 역사는 거꾸로 흐르는 법 없이 인류에게 있어 보다 나은 생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도 역시 산업주의 시대 이전에 이미 많은 선례가 있었다. 그러나 진보사상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게 된 거은 제2의 물결의 진행과 때를 같이하고 있었다. 제2의 물결이 전유럽을 휩쓸자 갑자기 수많은 목소리가 문명의 찬가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라이프니츠, 튀르고, 콩도르세, 칸트, 레싱, 존 스튜어트 밀, 헤겔, 마르크스, 다윈 등 많은 사상가들이 모두 우주론적인 낙관주의를 논증해 갔다. 과연 그들의 이론적 전개는 다양했다. 진보는 역사의 필연인가 아니면 인류의 손을 빌려야 하는가, 향상된 생활의 핵심은 무엇인가, 진보는 영원히 계속하는가 아니면 계속할 수 없는가 등등. 그렇지만 진보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신론자와 신학자, 학생과 교수, 정치가와 과학자들이 모두 이 진보를 만드는 새로운 신앙을 역설했다. 기업가와 공산주의 국가의 인민위원도 모두가 악에서 선으로, 선에서 보다 나은 선으로 향하는 이 불가항력적인 전진의 예증으로서 각지의 새로운 공장, 신제품, 신흥주택단지, 도로, 댐의 탄생을 내세웠다. 시인도 극작가도 화가도 진보를 의심하지 않았다. 진보라는 이름은 자연의 파괴와 '저개발' 문명의 정복을 정당화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도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는 견해가 일치하고 있었다. 로버트 헤일브로너가 기록하고 있듯이 "스미스는 진보의 신봉자였다. '국부론: Wealth of Nations'에서 진보는 이제 인류의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라^5,5,5^. 인류가 필연적으로 나아가는 목적지이며 개인의 경제적 목표가 이룩하는 부산물로서 저절로 얻어졌다."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개인의 경제적 목표가 자본주의를 낳게 하고 또 가지 멸망의 종자를 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진보 그 자체가 인류를 사회주의, 공산주의, 나아가서 그것을 초월한 보다 나은 체제에로 진화해 가는 긴 역사의 당당한 흐름을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제2의 물결문명기에서의 자연과의 투쟁, 진화의 의의, 진보의 법칙이라는 세 개의 주요개념은 산업주의 전파자들에게 문명을 설명하고 이것을 정당화시킬 때에 사용되는 이론적 무기가 되었다. 이러한 확신의 배후에는 현실에 대한 보다 더 심오한 가설이 존재했다. 인간경험의 구성요소들 자체에 대한 무언의 신념들이 내재해 있었다. 인간인 이상 이들 요소와 무관하지 않으며 모든 문명이 제각기 다른 표현에 의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모든 문명들은 그 사회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간과 공간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신화에 의해서건 비유나 혹은 과학이론에 의해서건 어떻게 자연이 작용하는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일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도 무언가의 해답을 제시해 주어야만 한다. 이리하여 제2의 물결문명은 성숙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 사상과 그 원인에 대해 이 문명의 독특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기반으로 전혀 새로운 현실상을 만들어 냈다. 과거의 단편적 사실을 수집한 뒤 새로운 방법으로 에워싼 세계를 인지하는 방법과 경험적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인간이 자신을 에워싼 세계를 인지하는 방법과 일상생활에서의 행동양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시간의 소프트웨어 인간의 행동과 기계리듬의 동시화가 산업주의의 보급에 얼마만큼 공헌을 했는가는 이미 제6장에서 본 대로이다. 사람들이 정확히 같은 시각을 새겨 넣은 시계에 따라 살아간다고 하는 동시화는 제2의 물결문명의 지도원리들 중의 하나였다. 산업사회의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디에 있더라도 시간에 쫓게 언제나 초조하게 시계만 들여다보는 시간의 노^36^예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이 시간관명의 철저를 통한 동시화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관한 사람들의 기본적 가설, 즉 마음 속의 시간에 대한 영상을 변혁할 필요가 있었다. 말하자면 새로운 '시간에 관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농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씨를 뿌리는 시기와 수확의 시기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1년을 단위로 한 시간에 대해서는 아주 정확한 측정법을 발달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매일의 노동에는 따로이 정밀한 동시화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민들 사이에서는 짧은 시간을 재기 위한 정확한 시간단위는 거의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보통 1시간, 1분과 같이 시를 일정단위로 분할하지 않고 가사노동에 필요한 시간의 길이를 대체적이고 애매한 덩어리로 나누고 있었다. 예를 들면 농부가 '젓짜는 시간'이라는 표현으로 일정한 시간의 경과를 나타냈다. 마디가스카르에서는 시간의 단위로서 통용하고 있던 것의 하나로 '밥짓는 시간'이라는 시간단위가 있으며, 또 짧은 시간을 표현하는 데는 이 지방의 식생활을 반영하여 '메뚜기 튀기는 시간'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영국인은 '주기도문을 외는 동안' 즉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라는 기도문을 외는 시간이라든가 더 까다롭지 앟은 표현으로 '소변을 보는 동안'이라는 시간개념을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인접한 공동체 혹은 촌락간의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노동형태도 정확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므로 머릿속에서 시가능ㄹ 재는 단위 그 자체가 토지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면 중세의 북부 유럽에서는 일출부터 일몰까지를 일정하게 나누었지만, 일출부터 일몰까지의 길이는 날마다 변화하므로 12월의 '1시간은' 3월이나 5월의 '1시간'보다 짧았다. 산업사회에서는 '주기도문을 외는 동안'이라는 막연한 시간구분 대신에 시, 분, 초라는 아주 정확한 시간단위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들의 단위는 계절이 변하더라도 언제나 통용할 수 있도록 규격화, 표준화되어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오늘날에는 전세계가 질서정연한 시간대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는 '표준시'라는 말을 쓴다. 전세계의 항해사들은 '줄루시간(Zulu time)' 즉 그리니치 표준시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협약에 의해 영국의 그리니치가 모든 시차를 계측하는 기점이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마치 하나의 의지로 움직여지고 있는 것처럼 시계를 주기적으로 한 시간씩 앞으로 또는 뒤로 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제아무리 우리 마음 속에서 주관적으로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기도 하고 또 그와 반대로 날아가듯이 빨리 지나간다고 생각된다 할지라도 이제 1시간은 언제 어디서나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일정한 길이로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제2의 물결문명은 시간을 보다 정확하고 표준화된 단위로 분할한 것만이 아니다. 이들 단위를 무한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미래로 연장되는 직선상에 배열했다. 시간을 직선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시리제로 시간이 적선적이라는 가정은 우리의 사고 속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2의 물결사회에서 자란 우리로서는 다른 시간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많은 산업화 이전의 사회나 지금도 제1의 물결사회로 남아 있는 일부 나라에서는 시간을 직선이 아닌 원이라고 생각했다. 마야족에서 불교도와 힌두교도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은 시간을 순환적, 반복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사 또한 무한히 반복되고 생명도 부활에 의해 재생된다고 믿었다. 시간이 커다란 원과 같다고 하는 생각은 힌두교에서 순환하는 겁(우주의 생성과 멸망 사이의 아주 긴 시간)의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다. 1겁은 40억년에 해당하는데 그것마저도 힌두교의 창조신 브라마(Brahma)가 재생했다가 붕괴되고 또 재생을 반복하는 단 하루를 나타내는 데 불과하다. 시간이 순환한다는 개념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리스토텔레스의 제장인 에우데무스는 자기 자신이 시간의 순환에 따라 같은 순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이었다. "시간과 동양인: Time and Easten Man"속에서 조지프 니덤은 '인도^5,23^그리스 문화권에서의 시간은 순환적이며 영원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시간의 직선적 개념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니덤에 따르면 '고대 도교의 사변철학자들 중에서 분명히 시간의 순환적인 관념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산업화 이전의 몇 세기 동안 두 가지의 모순된 시간관이 공존하고 있었다. 수학자 F.J.휘트로우는 이렇게 쓰고 있다. '중세를 통해서 직선적인 시간개념과 순환적인 시간개념이 대립상태에 있었다. 직선적인 시간개념은 상인계급과 화폐경제의 등장에 의해서 조장되었다. 이것은 토지소유자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한 시간은 얼마든지 있고 농민의 생활은 불변하는 대지의 순환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제2의 물결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 몇 년 동안의 갈등은 끝이 났다. 승리를 거둔 것은 직선적인 시간개념이었다. 직선적인 시간개념이 등서양을 불문하고 모든 산업사회의 지배적인 개념이 되었다. 흡사 시간은 머나 먼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하나의 고속도로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간개념은 산업문명 이전에 살아 온 수십억이라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선 것이었지만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경제, 과학, 정치의 각 분야에 걸쳐 모든 계획의 기초가 되었다. IBM의 경영진이든 소련의 아카데미든 일본의 경제기획청이든간에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직선적 시간관이 진화와 진보에 관한 산업현실관(indust-real view)에 있어서의 전제조건이었다고 하는 점이다. 직선적 시간관이 진화와 진보에 그럴듯한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 자체가 반복하고 잇던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진화와 진보는 이제 환상^36,36^시간이라는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화, 표준화, 직선화, 이 세 가지는 제2의 물결문명을 성립시킨 기본적 가설에 영향을 끼쳐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변혁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변모를 가져온 이상 공간도 역시 새로운 산업적 현실상에 적응하는 변화가 필요했다. 공간의 재구성 제1의 물결문명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의 우리의 먼 조상들의 수렵이나 목축, 어로나 채집에 의존하던 때의 생활은 끊임없는 이동의 연속이었다. 굶주림과 추위 또한 환경의 변화에 쫓기고, 혹은 따뜻한 기후나 사냥감을 찾아 이동을 계속했다. 고도의 이동성은 현대인의 특성처럼 말해지는데 사실은 고대인이야 말로 최초의 '수준 높은 유랑인'이었다. 거추장스런 가재도구를 일체 갖추지 앟고 가볍게 여행하면서 광막한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남녀노소를 모두 합하여 50 명 남짓의 인간이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맨해턴섬의 6배 넓이의 토지가 필요했고 주의의 상황에 따라 매년 실제로 몇 백 마일씩 이동을 해야 했다. 그들은 오늘날 지리학자가 말하는 '공간적으로 넓은' 생활을 영위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1의물결 문명은 '공간적 수전노'라고 표현할 수 있는 토지에 집착하는 인종을 길러 냈다. 유목생활이 농경생활로 바뀌자 유랑민들이 다녔던 고장은 농경지와 항구적인 경정착지로 변해 갔다. 넓은 지역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던 일을 그만 두고 이제는 농부가 되어 그 가족과 함께 정주하여 넓은 바다 같은 공간 속으 자그만한 밭은 열심히 갈았다. 아득한 대평원 가운데의 이러한 인간의 생활은 그 규모가 더욱 작아보였다. 산업문명이 탄생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농가의 군락은 모두가 넓다란 광야에 둘러싸여 있었다. 소수의 상인, 학자, 군인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영역은 아주 한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밭으로 나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외에는 교회에 다녔다. 배로는 6,7마일 떠러진 이웃마을을 찾는 수도 있었다. 기후나 지형에 따라 사정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역사가인 J.R. 헤일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험한 여행은 일생 중 가장 긴 것이라야 평균잡아 15마일 정도밖에 안될 것이다."고 말한다. 농업은 '공간적으로 제한된' 문명을 낳았다. 18세기에 유럽에 불어닥친 산업화의 회오리는 다시금 '공간적으로 넓은' 문화를 만들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거의 세계적인 규모를 지닌 문화였다. 몇 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의 상품과 인간, 사상이 교류하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각지의 농지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생산을 바야흐로 도시지역에 집중되었다. 엄청난 인구가 소수의 인구밀집지대로 모여들었다. 옛 촌락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높은 굴뚝과 용광로의 불길로 둘러싸인 공업중심지가 생겨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전원풍경이 급변하면서 도시와 농촌 사이에는 훨씬 주의깊은 조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식량, 에너지, 인간 그리고 각종 원료가 도시로 흘러들어 가고 농촌으로는 각종 공산품과 유행, 사상, 금융정책이 흘러들어 갔다. 이 두 방향의 흐름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주의깊에 통합되고 조정되었다. 나아가서 도시 내부에서도 더욱 다양한 공간 형태가 요청되었다. 오랜 농업체제 속에서의 기본적 건조물이라고 하면 교회, 영주의 저택, 그리고 초라한 농가 같은 것들에 가설술집이나 수도원 정도였다. 그런데 제2의 물결문명의 경우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진 분업화로 인해 여러가지 전문화된 공간형태가 수없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이유에서 얼마 후 건축가들은 사무실, 은행, 경찰서, 공장, 철도역, 백화점, 교도소, 소방서, 병원, 극장 같은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여러가지의 이러한 공간형태들은 논리적, 기능적으로 적합하도록 구성되어야 했다. 공장의 입지, 집에서 상점가는 길, 철도 대피선과 부두 또는 트럭 하역장과의 관계, 학교나 병원, 수도관, 발전소, 배전관, 가스관, 전화국 등 모든 설비가 공간적으로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했다. 공간은 마치 바흐의 푸가처럼 세심한 배려로 주도 면밀하게 구성될 필요가 있었다. 용도별로 특수화도니 공간을 이와같이 정확하게 배치하는 것은 적당한 때에 적재를 적소에 얻기 위해 필요했던 조건이므로 시간에 대해 동시화가 추진된 것과 마찬가지로 공간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일반화된 것이었다. 즉 공간의 동시화였다. 산업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선행하는 시대보다 더욱 세밀히 시간과 공간을 구성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시간에 대해서 보다 정확하고 표준화된 단위가 필요했던 것처럼 공간에 있어서도 보다 정확하고 보편적인 단위가 필요하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전, 아직 시간이 '주기도문을 외는 동안'이라고 하던 식으로 시간이 커다란 단위로 나뉘어져 있던 무렵은 공간의 측량도 역시 엉망이었다. 예를 들면 중세 영국에서는 1루드(rood)의 길이가 짧게는 16.5 피트, 길게는 24 피트까지 여러가지였다. 16세기에 1루드의 길이를 재기 위해 교회에서 나오는 남자 16 명을 임으로 선발해서 서로의 왼발과 오른발을 붙들어 매고 한 줄로 세우고는 그 길이를 재는 것이었다. '말을 타고 하루의 거리', '걸어서 한 시간' 혹은 '말을 가볍게 달려서 30분'처럼 더욱 애매한 말투도 있었다. 일단 제2의 물결이 노동형태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쐐기에 의해 시장이 확대되어 가자 이러한 대체적인 개념으로는 더 이상 통할 수가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무역의 증대로 정확한 항해술이 더욱 중요시되어 각국 정부는 상선에 정확한 항로를 잡아주기 위해 좋은 방법을 고안해 내는 자에게는 큰 상을 주었다. 육지에서도 더욱 정밀한 계측과 보다 정확한 단위가 도입되었다. 제1의 물결문명의 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혼란과 모순과 무질서한 여러가지 관습, 법률, 상거래행위 등을 새로이 정비하여 합리적인 것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정밀하고 표준화도니 도량형 단위가 없다는 것은 제조업자나 신흥상인계급에 있어서 일상생활상의 큰 문제였다. 산업시대의 여명기에 프랑스 혁명을 단행한 부르주아가 새로운 역법에 따른 시간의 표준화와 미터법에 의한 거리의 표준화에 열의를 보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시되어 국민의회가 공화국 선언을 위해 처음 소집되었을 때 우선적으로 상정해야 할 의안의 하나가 되었다. 모든 것에 변화를 가져왔던 제2의 물결은 또한 국경선의 증가와 정밀함에도 영향을 끼쳤다. 19세기까지도 여러 왕국들의 경계선은 애매하고 부정확한 경우가 많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토지가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으므로 정확성이 요구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교역이 증대되고 공장이 유럽 전역에 세워지기 시작하자 각국의 정부는 자국의 국경을 체계적으로 지도에 그려 넣게 되었다. 관세를 부과해야 할 구역에 대해서는 특히 분명한 구획선이 그어졌던 것이다. 국유지는 물론 사유지조차도 전 시대와는 달리 더욱 세밀하게 경계를 정하고 표지를 세워 울타리를 만들고 기록을 분명히 했다. 지도는 더 한층 세밀해지고 포괄적이고 표준화되었다. 새로운 시간관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새로운 공간관이 등장한 것이다. 시간에 따라 계획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시간적인 정확성과 시간에 대해 더 많은 여러가지 한계와 경계를 정해야 했던 것처럼 더 많은 경계선이 출현하자 공간적으로도 한계가 설정되었다. 시간의 직선화까지도 공간에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이다. 산업화 이전의 사회에서는 육로나 수로를 불문하고 일직선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농부가 다니는 길, 소가 다니는 길, 인디언들이 밟고 다니던 길 모두가 지형에 따라 꼬불꼬불 이어져 있었다. 도시를 에워싼 성벽도 불룩 튀어나와 구부러지거나 불규칙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중세 도시의 도로는 서로 얽혀 복잡하게 구부러지고, 뒤엉키고, 소용돌이처럼 꼬부라져 있었다. 제2의 물결사회는 선박에게 정확한 직선항로를 잡게 했을 뿐만 아니라 철도를 건설할 때도 번쩍거리는 두 줄의 궤도가 어디까지라도 평행선으로 펼쳐지게 선로를 부설하고 그 위에 기차를 달리게 했다. 미국으 기획담당관인 그래디 클레이가 언급하고 있듯이 철도의 선로(이 말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직선적임을 의미하고 있다.)를 중심축으로 하여 그 주변에 바둑판 모양의 새로운 도시들이 형성되었다. 직선과 직각으로 결합된 이 바둑판 무늬는 자연의 경관에 독특한 기계적 규칙성과 직선적 특징을 더해 주었다. 지금도 하나의 도시를 관찰해 보면 구시가지에서는 가로, 사각형의 광장, 원형광장, 복잡한 교차점 등이 마구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은 도시내에서도 산업화가 더욱 진전된 시기에 새로이 건설된 구역에서는 이와같은 복잡한 것들을 대신해서 질서정연한 바둑판 모양의 시가지가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어떤 지역이나 혹은 나라 전체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기계화가 진전되면서 농경지에도 직선모양을 보이기 시작했다. 산업화 이전의 농민들은 소가 밭은 갈았으므로 밭이랑 불규칙하게 구불구불한 곡선이 되었다. 농부는 일단 밭은 갈기 시작한 소를 중도에서 쉬게 하지 않으려고 소가 밭이랑 끝까지 가면 크게 돌아서 S자 모양을 그려 놓았다. 그러나 오늘날 비행기의 창에서 내려다보는 농지는 네모 반듯하게 구획정리가 되어 자로 잰 듯한 이랑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직선과 직각의 배합은 농지나 시가지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과 가장 친밀한 공간인 주택에도 반영이 되었다. 산업시대에서는 곡선을 이루는 벽이나 직각으로 교차하는 모서리 같은 건축물의 형태는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불규칙한 모양의 방 대신에 정돈된 직각의 방이 나타났고 고층건물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어 갔다. 또한 일직선의 도로에 면한 건축의 대형 벽에는 창문들이 직선 또는 바둑판 모양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인간의 공간에 대한 관념고 경험은 시간의 직선화에 병행하여 공간의 직선화라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든 사회주의 사회든, 동양이든 서양이든을 불문하고 모든 산업사회에서는 건축공간의 전문화, 정밀한 지도, 같은 모양의 반복, 통일되고 정밀한 도량형 단위의 사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선이 새로운 산업적 현실상의 기본이 되는 하나의 문화적 상수가 되었던 것이다. 현실상의 본질 제2의 물결문명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여 거기에 따라 인간의 일상행동을 규정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오랜 궁금증이었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사물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이 의문에 해답을 주기 위해 모든 문화는 그들 나름대로의 신화나 비유법을 만들어 왔다. 어떤 문화에 있어서는 우주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통일체'라고 상상했다. 그곳에서의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조상이나 자손의 생활과 불가분으로 연결되고 동물이나 수목, 암석, 하천에서까지도 자기들과 똑같이 '생기'를 느낄 정도로 자연계와 융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개인은 개별적, 자율적인 독립체가 아니라 가족, 씨족, 부족, 공동체 등 보다 큰 유기체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다른 사회에서는 우주의 전체성이나 일체성이 아니라 우주가 몇 가지인가의 요소로 분할될 수 잇다는 분열성을 강조해 왔다. 현실은 하나의 융합된 통일체가 아니라 많은 개별적 부분들로 이루어진 구조물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산업주의가 출현하기 약 2000 년 전, 데모크리투스는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학설을 발표했다. 우주는 완전무결한 단일체가 아니라 분리되어 있으며 파괴하거나 줄일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으며 더 이상 세분할 수 없는 여러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미세한 입자를 '원자(atom)'라 이름 붙였다.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우주가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은 거듭 제기되었다. 중국에서는 데모크리투스의 시대보다 약간 늦게 정리된 "묵자"속에서 '점'의 정의를 분명히 하였는데, 이 이상 더 분할할 수 없는 짧은 한 조각으로 절단된 선이라는 것이다. 인도에서도 서력 기원 후 얼마 되지 않아 원자, 즉 현실구성의 최소단위라는 사고방식이 제기되었다. 고대 로마의시인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의 철학을 아주 상세하게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관들은 소수의견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남의 조소를 받든가 무시를 당했다. 제2의 물결시대가 막을 열어 여러가지 혼합된 사상의 흐름이 몇 가닥씩 합류하여 우리의 물직관을 변혁시키자 마침내 원자론은 지배적인 사상으로 성장했다. 17세기 중반 프랑스인 신부이자 파리 왕립대학의 천문학자이며 철학자였던 삐에르 가생디는 물질은 '초미립자(corpuscula)'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루크레티우스에게 영향을 받은 가생디는 원자적 물질관의 아주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으며 그의 사상은 얼마 후 영국 해협을 건너서 기체의 압축성을 연구하고 있던 젊은 과학자 로버트 보일에게 전해졌다. 보일은 이 원자론을 사변적 이론으로부터 실험실로 옮겨 공기마저도 몇 가지 미세한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생디가 사망한 뒤 6년 후, 보일은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어떠한 물질도(예를 들면 흙 보다) 단순한 물질로 분해할 수 있으며 그것은 원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 예수회에서 교육을 받은 수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가생디로부터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보다 작은 부분으로 분해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검토 중인 어려운 문제는 하나하나를 가능한 한 여러 부분으로 분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제2의 물결이 고조됨에 따라 물질에 대한 원자론에 병행하여 철학적 원자론이 발달한 것이다. 이리하여 '통일체'라는 개념에 대해 차례차례로 반론이 제기되었다. 이 공격에는 즉시 과학자나 수학자, 철학자가 차례로 가담하였고 그들은 우주를 더 작은 단편으로 분할을 계속하여 획기적인 성과를 올렸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발표하자 미생물학자 르네 뒤보스는 '그것을 의학에 응용함으로써 즉각 수많은 발명이 이루어졌다.'고 쓰고 있다. 원자론과 데카르트의 원자론적 방법론의 결합은 화학과 그 밖의 분야에 놀랄만한 발전을 가져왔다. 1700 년대 중반에는 우주가 분리할 수 있는 독립된 부분과 소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개념은 상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은 새로이 형성되어 가고 있던 산업적 현실상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문명이 탄생할 때에는 언제나 과거로부터 관념들을 추출하여 그것들을 새로운 문명 자체와 세계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재구성한다. 마치 따로 떨어져 있는 부품들을 모아 조립제품의 대량생산을 막 시작한 사회인 것 같은 산업사회에서의 우주가 개별으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집합체라는 사고방식은 불가피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현실에 대한 원자론적 해석이 받아들여진 배경에는 정치적, 사회적 이유도 있었다. 제2의 물결은 제1의 물결에 속하는 기존의 구체제와 격돌하면서 사람들은 대가족, 전능의 교회, 군주제 등으로부터 어떻게 해서든 해방시킬 필요가 있었다. 산업자본주의는 개인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논거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낡은 농업문명이 쇠퇴하고 산업주의의 새벽을 1,2세기 앞둔 때로부터 무역이 확대되고 도시의 수가 증가하자 신흥상인 계급들은 거래나 융자, 시장확대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새로운 인간관을 구상해 냇다. 한 인간의 원자가 모여 사회가 성립한다는 사고방식이었다. 이제 인간은 부족, 신분제도, 씨족 등의 수동적인 부속물이 아니라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이었다. 각 개인은 재산을 사유하고, 상품을 획득하고 운반하고 거래하며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부자도 되고 굶기도 하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이에 상응하여 종교를 선택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갖게 되었다. 요커대 산업적 현실상은 원자와 아주 흡사한 개인, 즉 사회의 기본적 구성요소로서 더 이상 줄일 수도 파괴할 수도 없는 구성단위로서의 개인이라는 사고방식을 낳게 했던 것이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원자로는 정치분야에도 등장하여 투표가 최소의 구성입자가 되었다. 또 국제사회에서의 경우 국가라고 부르는 그것이 자기충족적, 불가침적, 독립적인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개념이 나타났다. 즉 물질적 질료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인 질료도 벽돌을 쌓아 올라가듯이 자율적인 단위, 즉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원자론은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침투했다. 현실이 불리 가능한 단위를 조직화함으로써 성립된다는 개념은 또 새로운 시간상 및 공간상에도 완전히 부합한다. 시간과 공간 그 자체가 보다 작은 단위로 세밀하게 분할된다고 생각하기 되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제2의 물결문명은 세력을 확대하여 소위 '원시'사회와 제1의 물결문명을 제압하고 동시에 논리성, 일관성을 점차로 강화해 가면서 인간이나 정치사회에 대한 이 산업주의적 개념을 전세계에 전파시켜 나갔다. 그러나 이 논리체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최후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궁극적 질문 '왜' '왜' 여러가지 사상이 일어나는가? 하나의 문명은 이 '왜'에 대해서 뭔가의 설명이 필요하다. 설령 1 할은 해명이 되고 나머지 9 할이 수수께끼로 남는다 해도 뭔가의 설명을 준비하지 않는 한 그 문명은 효과적인 생활을 계획할 수가 없다. 문화가 요구하는 것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약간의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의 오래된 질문 '왜'에 대해 어떤 종류의 해답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2의 물결문명은 모든 것의 설명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강력한 이론을 제시해 주었다. 연못 속에 돌맹이를 던진다. 파문이 재빠르면 수면에 퍼진다. 왜인가? 무엇이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것일까? 산업사회의 아이들이라면 '누군가가 돌을 던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12,3세기의 학식이 풍부한 유럽신사라면 우리와는 현저하게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의 4원인이라는 사고방식에 따라 질료인, 형상인, 동력인, 목적인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4원인의 어느 것이나 그 자체로서는 아무 일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 중세 중국의 현자라면 음양과 같은 신비한 힘의 상호작용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에 의해서 모든 현상이 발생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제2의 물결문명은 인과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뉴턴의 획기적인 발견인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찾아냈다. 뉴턴에게 있어서 원인이란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물체에 가해지는 힘'이었다. 뉴턴적 인과론을 설명해 주는 전형적인 예로는 차례차례로 충돌하여 거기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당구공의 예가 있다. 계측이 가능하여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외적 요인들만을 강조하는 이러한 변화의 개념은 직선적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산업적 현실상에 완전히 합치한다는 점에서 아주 유력한 이론이 되었다. 사실 뉴턴의 역학적 인과론은 산업혁명이 유럽 전역에 전파되는 것과 동시에 받아들여졌으며 그에 따라서 산업적 현실상도 확립되어 갔다. 만일 세계가 소형의 당구공과 같은 독립된 입자들로 구성된 것이라면 모든 원인은 이들 공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생겨나게 된다. 하나의 입자, 즉 원자는 제2의 원자와 부딪친다. 제1의 원자의 운동은 제2의 원자가 운동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되고 그 운동은 제1의 입자나 원자의 운동이 가져온 결과가 되는 것이다. 공간에는 운동이 없는 작용은 없으며, 원자는 동시에 한 군데 이상의 장소에는 존재할 수 없다. 복잡하고 흐트러져서 예측할 수 없는 아주 번잡스럽고 신비하고 혼돈스럽던 우주가 갑자기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세포의 내부원자로부터 까마득히 먼 밤하늘의 차가운 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이 운동하는 물질로서 각 입자가 인접한 입자를 활성화시켜 그것을 움직여 영원한 존재의 춤을 추게 하고 있다고 해석되어졌다. 이 사상은 후에 라플라스가 주장했듯이 무신론자가 신이라는 가설없이도 생명을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신의 자리가 남아 있었다. 신이 지금은 그 게임을 그만 두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신은 당구채를 가지고 최초로 당구공을 쳐서 움직이게 한 원동력으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관한 이 비유는 새로이 등장하는 산업주의의 문화에 대해서 지적 아드레날린 주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 프랑스 혁명의 토양을 만들어내는 데에 기여했던 급진적 철학자의 한 사람인 돌바크 남작은 의기양양하게 내뱉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대집합인 우주는 물질과 운동만을 나타낸다. 이 전체는 우주의 사색에 오직 원인과 결과의 중단없는 방대한 연속만을 제시해 줄 뿐이다." 의기양양한 이 짧은 한 마디 속에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즉 우주란 조립된 실체로서 개별적인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집합체가 이루어져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물질은 운동 즉 공간에서의 이동이라는 관점에서만 이해되었다. 사건은 직선적으로 연속해서, 즉 과거에는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의 직선을 따라 평행으로 나아간다. 돌바크에 따르면 증오, 이기심,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도 마찬가지로 반작용, 관성, 인력 등 물리적인 힘에 비유되며 마치 과힉이 공동의 선을 위해 물리적인 힘을 조작하는 것처럼 현명한 국가는 그들의 인간적 감정을 공공의 복리를 위해 조작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산업사회의 현실을 근거로 한 우주관 그리고 거기에 내재된 갖가지 가설로부터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강한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행동양식이 탄생했다. 거기에는 우주나 자연뿐만 아니라 사회나 인간도 일정하게 에측가능한 법칙에 따라서 행동한다고 하는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 확실히 제2의 물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은 강력히 우주의 법칙성을 논리적으로 논한 사람들이었다. 뉴턴은 천체의 운행법칙을 자신있게 발표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심리상태의 법칙을 찾아내어 설명했다. 그 밖에도 수많은 학자, 기술자, 사회과학자, 심리학자들이 이러한 분야 외의 각 분야에서 여러가지 법칙을 차례차례로 탐구했다. 제2의 물결문명은 이제 기적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력하고 폭넓은 응용서을 가진 인과론을 자유로이 구사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전의 복잡하게 보이던 것도 이제는 간단한 공식에 환원해서 설명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러한 법칙이나 규칙은 뉴턴 또는 이름이 알려진 누군가가 법칙을 정했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모두가 실험과 경험적 검증을 거쳐 타당성이 실증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법칙을 따라 다리를 건설하고공중으로 전파를 보내고 생물학적 변화를 예지할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경제를 움직이고 정치운동이나 정치기구를 조직하고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행동까지 예측하거나 형상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필요한 것이라고는 어떠한 현상도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변수를 발견하는 일뿐이었다. 만일 적당한 당구공을 찾아내서 그것을 가장 좋은 각도에서 쳐주기만 하면 무슨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새로운 인과론은 새로운 시간관, 공간관, 물질관과 결합함으로써 인류의 대다수를 낡은 우상의 압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것은 과학기술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성취하게 함과 동시에 모든 것의 확실한 개념화와 실천적 성취의 기적할 만한 성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권위주의에 도전하여 수천년 동안 구금상태에 있던 인간의 정신을 해방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산업적 현실상은 또한 스스로의 새로운 질곡을 낳았다. 즉 산업주의적 정신구조는 수량화되지 않은 것을 멸시하거나 무시하고 때로는 엄밀성만을 중시하여 상상력을 도외시하였다. 또한 인간을 너무 단순화하여 원형질로 된 개체로 생각하였고 어떠한 문제든지 기계적 해결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산업적 현실상은 또한 표면상으로 도덕적 중립성을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것은 제2의 물결문명의 호전적인 초이데올로기로서 산업시대를 특징짓는 좌익사상이나 우익사상 모두가 거기에서 파생된 자기정당화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다른 문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2의 물결문명도 일그러진 여과장치를 만들어 내는 이 문명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이나 우주를 보게 되었다. 이 여과장치를 통한 일련의 사상, 관념, 가설, 그리고 거기에서 생겨난 온갖 유추가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가장 강력한 문화체계를 형성했던 것이다. 끝으로 산업주의의 문화적 측면이라고도 해야 할 산업적 현실상은 스스로가 이룩해 놓은 사회에 적합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이든 사회주의 사회이든 사회를 만들어 내는 추진력이 되었다. 산업적 현실상은 새로운 에너지 체계, 가족체계, 기술체계, 경제체계와 아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제2의 물결문명을 형성했던 것이다. 오늘날, 여러가지 제도, 기술, 문화와 함께 지구를 휩쓸고 있는 제3의 물결의 급변 속에서 제2의 물결문명 전체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산업주의의 결정적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새로운 시대가 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제10장 홍수 산업화 시대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볼 때 3세기에 불과한 짧은 기간동안을 휩쓴 홍수와 같은 사거너이었다. 산업혁명은 왜 일어났는가? 제2의 물결은 왜 전세계를 석권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아직도 수수께끼이다. 여러 가지 작은 변화으 흐름들이 이 시기에 한곳에 모여들어 하나의 커다란 강물을 이루었다. 신세계의 발견은 산업혁명 전야의 유럽의 문화와 경제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인구증가는 도시로의 인구이동을 촉진했다. 영국은 산림자원이 고갈되어 연료를 석탄으로 대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탄광의 갱도는 더욱 깊어져서 말이 움직이던 종전의 양수기로는 갱내에서 솟아나는 물을 퍼낼 수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의 완성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가능성을 넓혀 주었다. 점차 산업을 중심으로 한 사고방식이 널리 확산되어 교회와 정치권력을 위협하게 되었다. 문맹률이 저하되고, 도로가 개선되면서 교통기관이 발달하자 어떤 모든 변화들이 한 지점에 일시에 집중되어 역사의 둑을 뚫는 힘이 되었다. 산업혁명의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원인을 하나로 좁힐 수가 없고, 다른 것에 비해 특별히 지배적인 원인을 들기도 어렵다. 역사는 기술 자체만의 발전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이념이라든가 가치관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을 계급투쟁에서만 찾는 것도 잘못이다. 생태학적 변화나 인구동향, 통신기술상의 발명과 같은 사실을 기록하는 것만이 역사는 아니다. 산업혁명이건 다른 역사상의 사건이건간에 경제적 관점에서만 설명할 수 없다. 모든 변화들을 설명할 수 있는 '독립변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요인이 끝없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것이다. 미로처럼 복잡한 원인을 찾으려 해도 그것들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하나의 목적에 가장 합치된 요인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정도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왜 그 요인만을 특별히 선택하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무리라는 사실을 인색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전제에서 제2의 물결문명을 형성하기 위해 모여든 여러 요인들 중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분열 확대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시장이라고 일컫는 그물코와 같츤 교환조직망의 성장이 가장 뚜렷한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고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도,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그 거리가 멀어질수록 시장이 현실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시장은 놀랄 만큼 복잡해져서 사람들의 일련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치며 시장이 함축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은유와 숨겨진 가정들이 사회적 현실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미 보아 왔듯이 근대의 화폐제도는 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쐐기에 의해서 태어났다. 중앙은행제도, 주식시장, 세계무역, 관료적 계획자들, 모든 것을 양으로 파악하는 계량주의적 사고방식, 계약의 윤리, 물질주의적 경향, 편협한 성공관, 엄격한 보상체계도 모두 생산과 소비의 분리와 화폐제도의 확립이 가져다 준 것이다. 고성능의 계산기가 태어난 것도 그 때문인데 계산기의 문화적 중요성을 우리는 경시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는 표준화, 전문화, 동시화 그리고 중앙집권화를 향하여 여러 면에서 박차를 가했다. 남성과 여성의 ㅣ역할분담이나 기질의 차이도 이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제2의 물결을 일으킨 요인은 다른 데에도 얼마든지 있지만 먼 옛날부터 일체였던 생산과 소비 사이의 분열이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음은 틀림없다. 이 분열의 여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제2의 물결문명에 의해서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자원이나 문화가 바뀐 것만은 아니다. 인간 그 자체가 바뀌고 그 결과 새로운 성격을 띤 사회가 태어나기도 했다. 물론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제2의 물결문명을 형성하는 데에 기여했으며 또 그와 반대로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성이 보다 더 직접적으로 시장과 관계를 가지고 새로운 작업방법을 경험했기 때문에 여성보다 산업주의적 성격을 더 깊이 익혔다.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성격을 요약하여 '산업화 인간: Iudustrial Man'이란 말을 사용해도 여성 독자의 양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산업화 인간은 그 이전의 어떠한 인간과도 다르다. 에너지라는 노예를 지배하여 그 위에 군림함으로써 자기의 미약한 힘을 극도로 강화했다. 산업화 인간은 공장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기계와 조직을 상대로 일생의 대부분을 지내게 되고 거기에서는 개인이 마치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핵가족의 일원으로 자라 공장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학교에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세상 일은 대개 대중매체를 통해서 알게 된다. 그는 대기업이나 관청에서 근무하고 노동조합이나 교회와 같은 조직에 소속되어 자기 힘을 쪼개서 조금씩 기여하면서 살았다. 자기가 사는 마을이나 도시에 대한 소속감은 희박해지는 한편 국가에 대한 소속감은 강해졌다. 자연과 대치하고 생활하면서 평소부터 자연을 황폐시키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이 되면 자연을 찾아 나선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자연을 해치면 해칠수록 자연을 로맨틱하게 노래하며 찬미하는 법이다.) 산업화 인간은 자기자신을 거대한 경제, 사회, 정치체제의 뒤얽힘 속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한 여러 체계의 지나친 복잡함에서 그 확대를 잃고 만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산업화 인간은 자주 반항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생활을 위해 싸우고 사회에서 요청되는 역할을 맡도록 배웠다. 이러한 역할에 불만스런 일이 많지만 이윽고 순응해 간다. 생활수준은 향상되었으나 자기자신을 풍요한 사회의 희생자라 생각하고 있다. 그는 산업중심의 사회에서는 시간을 재촉하면서 오로지 달려가고 있으나 결국 도착하는 곳은 묘지라고 느끼고 있었다. 죽음이 가까워짐에 따라 이 지구와 거기에 사는 인간은 규칙적이고도 냉혹하게 움직이는 광활한 우주 속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실을 깨달았다. 산업화 인간은 그때까지의 인간이 여러 의미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에서 살았다. 인간의 오감에 작용하는 것까지도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제2의 물결은 소리의 세계도 바꾸었다. 수탉이 때를 알리는 소리에 뒤섞여 사라져 버렸다. 밤은 낮과 같이 밝아지고 취침시간이 늦어졌다. 이제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시각영상의 세계도 열렸다. 우주에서 인간이 보지 못하던 지구의 사진을 보내게 되고 일부 영화에는 초현실주의적 몽타쥬가 나타났다. 전자현미경은 생명의 신비를 해명해 주었다. 거름냄새가 없어지고 대신에 휘발유냄새와 페놀의 악취가 코를 찌르게 되었다. 고기나 야채 맛도 바뀌었다. 오감에 작용하는 모든 지각세게가 바뀐 것이다. 사람의 몸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표준적 신장이 현재와 같이 커진 것도 이 시대에 들어선 뒤부터이다. 여러 대에 걸쳐 자식들이 줄곧 부모의 키를 뛰어 넘었다. 신체에 대한 사고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엘리어스는 "문명의 과정"에서 '16세기까지는 독일이나 다른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나체를 보는 일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체를 수치로 생각하게 된 것은 제2의 물결이 확산된 이후의 일이다. 특별한 잠옷을 입게 되면서부터 침실의 풍속도 바뀌었다. 식탁용 포크와 나이프가 보급된 결과 식사에서까지 예절을 따지고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죽은 짐승을 식탁 위에 올려 놓은 것을 경사스럽고 즐거운 일로 생각하던 문화에서 '고기요리라도 동물의 주검을 연상시키는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려는' 문화로 이행된 것이다. 결혼은 경제적인 편의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전쟁의 규모도 확대되어 공장의 조립라인에 의존하게 되었다. 부자관계가 바뀌고 사회적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인간관계가 모든 면에서 바뀌었다. 이렇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의 자의식에도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여러 가지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변화는 너무나 광범위했기 때문에 인간의 두뇌는 그것을 어떻게 파악해야 될지 갈피를 못잡게 되었다. 한 문명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 것인가? 그 문명의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척도로 평가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것인가? 예술의 우수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그 문명이 인간의 수명을 얼마나 연장시켰는가? 과학적인 성과는 얼마나 올렸는가? 개인에게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었는가 등을 평가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제2의 물결의 영역내에는 대공황과 엄청난 인명의 손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물질적 생활수준이 향상된 것은 틀림없다. 산업주의의 비판자들은 18--19세기 영국 노동자계급의 비참한 생활을 들어 제1의 물결시대를 자주 낭만적으로 말하곤 한다. 옛날의 전원생활은 온화하고 안정되고 유기적인 공동생활로서 단순한 물질적 가치보다도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생활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들의 연구결과는 아름다워 보이는 시골 촌락도 사실은 영양실조나 질병, 빈곤, 불량배의 소굴이며 폭력의 온상이었으며 사람들은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영주와 주인의 채찍 앞에 속수무책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도시나 그 주변에 생겨난 보기 흉한 빈민가와 불량식품, 질병을 만연시키는 비위생적인 급수, 비참한 구빈원, 끊이지 않는 폭력 등이 모두 문제였다. 확실히 그것은 비참한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산업혁명 이전의 생활조건에 비하면 상당히 향상된 것이 분명하다. 영국의 작가 베이지는 '영국의 농촌이 목가적이라는 것은 과장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빈민가이기는 하지만 농촌에서 도시의 이주가 사실상 평균수명을 지표로 해 보아도 주택조건이나 음식의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보아도 비약적인 생활수준의 향상을 의미했던 것이다. 보건의료에 관해서도 윌리엄스의 "고뇌의 시대: The Age of Agony"나 클라크슨의 "산업혁명 이전 영국에 있어서의 죽음, 질병, 기근: Death Disease and Famine in Pre-industrial England"을 읽어보면 제1의 물결문명을 찬미하고 제2의 물결시대를 비판하는 것이 잘못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크리스티나라너는 이러한 서적에 대한 비평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사회사학자나 인구통계학자의 연구에 의해 드넓은 농촌에서도 불결한 도시와 같이 질병, 고뇌, 죽음 등이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평균수명은 매우 짧았다. 16세기에는 40세 정도였으나 17세기에 들어서자 전염병이 유행하여 35--36세까지 낮아졌다. 간신히 40 대 초반으로 획복된 것은 18세기에 들어선 뒤의 일이다^5,5,5^. 결혼을 해도 부부가 오랫동안 함께 사는 일이 드물었고 유아의 사망률도 매우 높았다.' 오늘날의 보건제도가 잘못되어 있고 위기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확실히 오늘날의 보건의료에는 문제는 있겠으나 산업혁명 이전에는 공적인 의료기관은 전무했으며 출혈요법을 치료수단으로 여겼고 수술도 마취없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 시대의 주된 사인은 페스트, 티푸스, 인플루엔자, 이질, 천연두, 결핵 등이었다. 라너는 냉철한 어조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보건의료의 진보라 하지만 고작 사망원인이 약간 바뀐 정도가 아닌가라고 현명한 체하는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수명이 연장된 것은 사실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전염병이 노인뿐 아니라 젊은이까지도 무차별하게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럼 보건의료나 경제문제에서 예술이나 이데올로기 문제로 눈을 돌려보자. 산업화 시대는 물결주의 일변도의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가 그 이전의 봉건시대에 비해 정신적으로 더 불모의 시대였을까? 공업을 중시하고 기계를 중심으로 한 사상은 전시대에 비해 새로운 것에 대한 사고방식을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중세의 교회나 전제군주에 비해 어느 쪽이 이단에 대해 너그러웠을까? 현대의 비대화한 관료제도와 수세기 전의 중국이나 고대 이집트의 관료제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경직되어 있을까? 예술면에서는 지난 300 년 동안 서구의 소설, 시, 회화 등은 그 전시대, 혹은 서구 이외 지역의 예술에 비해 생동감이 적고 깊이가 없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지 못한 단순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2의 물결문명은 우리 부모세대의 생활조건을 향상시키는 데에 크게 공헌한 반면, 물론 어두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기보다도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하나는 지구상의 생태계를 거의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까지 엉망으로 파괴해 버린 점이다. 자연을 경시하는 산업현실적 편견, 인구증가, 과학기술의 비인간성, 그리고 제2의 물결문명 자체가 언제나 확대재생산을 필요로 한다는 것 등의 원인으로 역사상 유례를 볼 수 없는 환경파괴가 일어났다. 산업화 이전 도시의 기리거리에는 말똥이 굴러다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오염이란 세삼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증거로서 곧잘 인용되는 예이다. 고대 도시의 길거리가 하수에서 넘쳐 나온 오물로 가득해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들어서자 생태계의 오염 및 자원의 극단적인 이용이라는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어 현재나 과거의 척도로는 다루기 어렵게 되었다. 도시를 파괴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지구전체를 파괴할 그러한 수단을 문명이 가졌던 경우는 역사상 일찍이 없었다. 인가의 탐욕이나 부주의의 결과 바다전체가 오염되거나 동식물의 종이 하룻밤 사이에 멸종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광산의 개발은 지구표면을 상처투성이로 만들고 헤어스프레이의 에어졸은 오존층을 고갈시켰다. 열오염은 지구전체의 기상조건을 바꾸어 버릴 정도가 되었다. 더욱 복잡한 것은 제국주의의 문제이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인디언이 광산채굴을 위해 노예로 사용되고,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대규모의 농업이 도입되는 등 식민지의 경제는 산업국가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크게 왜곡되어 버렸다. 이러한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 제2의 물결문명은 인종차별을 낳고 자급자족으 소규모경제를 무리하게 세계적인 무역체제로 몰아 넣었다. 상처는 아직도 곪고 있어 치유될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다시 옛날의 가난한 자급자족의 경제를 찬미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산업화가 진행되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까지도 300 년 전에 비해 더 악화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평균수명, 식량사정, 유아사망률, 문맹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면에서 아직도 사하라사막 주변이나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수백만, 수천만이라는 사람들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를 비관하기에 바쁜 나머지 과거를 미화하고 낭만적인 옛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인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래를 향한 길은 과거의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제2의 물결문명을 일으킨 원인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이에 대한 평가도 한 가지일 수 없다. 나는 제2의 물결문명을 결점도 포함해서 묘사하려고 했다. 내가 한편에서 이 문명을 비난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이를 찬양한 것은 단순한 평가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면적으로 찬미하는 것도 옳다고 할 수 없고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비난하는 것도 옳은 평가라고 하기는 어렵다. 산업주의가 제1의 물결 밑에서 살던 윈시적인 사람들의 생활을 파괴해 버린 것을 증오하고 있다. 제2의 물결은 자기 문화에 대하여 오만하고 지역에 대하여 수치스런 약탈행위를 저질렀다. 또 도시의 빈민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에너지 낭비, 창조적 정신의 낭비는 불쾌할 정도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시대나 같은 시대의 사람에 대한 불합리한 협오는 미래를 창조하는 최상의 기초가 될 수 없다. 산업주의는 과연 쾌적한 문명에서 졸고 있는 사람들을 덮치는 악몽이었을까? 혹은 또 광막한 황야이며 완전한 공포의 세계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할까? 과연 과학기술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온통 죄악으로 칠해진 세계였을까? 그런 면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보다 더 많은 장점이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영원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산업화 시대도 역시 인생 자체와 마찬가지로 고통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길고도 짧은 시대였다. 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현재를 역사 속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별도로 하고 산업화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다음 차례의 변화물결이 시작되면 제2의 물결은 에너지를 다 써 버리고 쇠약해져 사라져 간다. 새로운 물결의 도래에 의해서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나 산업문명은 이제 정신적으로 존속할 수 없게 된다. 첫째로 우리는 자연에 대한 투쟁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생태계가 이제 산업주의의 공격에 견딜 수 없는 한계까지 도달해 버린 것이다. 둘째로 이제까지 산업화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온 재생불능의 에너지에 더 이상 무한정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사회의 종말 또는 에너지 자원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의 과학기술의 진보는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서 과거에 없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대체 에너지가 개발될 때까지 산업국가는 아마 몇번이고 격렬한 퇴조의 증상으로 인해 고생할 것이다. 그리고 낡은 형태의 에너지와 대체할 것을 찾아내기 위한 싸움이 우리에게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강요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한 가지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앞으로 몇십년 이내에 값싼 에너지가 종말을 고하리라는 것이다. 제2의 물결문명은 이 문명의 발전을 뒷받침해 온 두 가지의 중요한 성분 중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동시에 제2의 물결에 있어 다른 하나의 숨은 성분이었던 값싼 원자재도 없어지고 있다. 식민지주의 또는 신제국주의의 시대는 끝나고 선진산업국이 나아갈 길은 둘밖에 없다. 하나는 대체 에너지나 새로운 원자재를 선진산업국 상호간의 무역에 의해서 교역함으로써 비산업국과의 경제관계를 점차 약화시켜 가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산업국과의 무역을 계속한다 하더라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조건으로 무역을 하게 될 것이다. 어느 경우나 원가가 상당히 높아지고 문명의 에너지 기반은 물론이고 자원기반 전체가 완전히 바꾸어 버릴 것이 틀림없다. 산업사회는 외부로부터의 힘에 의해 변혁을 강요당할 뿐 아니라 체제 내부의 힘에 의해서도 와해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가족제도나 프랑스의 전화제도(중남미의 작은 개발도상국보다도 나쁜 상태에 있다), 일본의 전철체제를 보거나(승객들이 역에 밀어닥쳐 역무원을 인질삼아 항의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마찬가지이다. 가족제도, 통신체계, 교통체계 등 문제는 모두 같아 인간과 제도간의 긴장관계가 이미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제2의 물결체계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다. 사회복지제도, 우편제도, 학교제도, 의료보험제도, 도시체계, 국제금융제도도 모두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민국가 그 자체도 의문시되고 있다. 제2의 물결의 가치체계도 붕괴의 위기에 빠져 있다. 산업문명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고 있던 역할분담, 의무와 책임도 위기에 처해 있다. 남녀 역할분담의 변혁을 추구하는 운동이 그러한 가장 극적인 현상이다. 여권운동, 동성애 합법화 운동, 유니섹스(unisex) 패션의 보급에서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분담은 서서히 불분명해지고 있다. 직업에 있어서의 역할분담도 붕괴되기 시작하고 있다.예를 들면 간호사와 환자가 모두 의사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려 하고 있다. 경찰관이나 교사도 정해진 역할을 버리고 위법으로 되어 있는 파업을 하게 되었다. 법률문제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은 변호사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있다. 노동자는 차츰 경영참여의 요구를 증대시키고 전통적 경영자역할을 침해하고 있다. 산업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던 역할 구조의 이러한 범사회적 균열현상은 매일 신문지면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정치적 항의나 데모 등 표면에 나타난 변화보다도 더욱 의미하는 바가 크고 사회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핵심적 지주의 상실, 사회의 생명유지장치의 기능마비, 역할구조의 분해 등의 여러가지 압력들이 수렴되어 가장 기본적이고도 취약한 구조물인 인격의 위기를 조성했다. 제2의 물결문명의 붕괴는 인격의 위기를 만연시켰다. 오늘날 자기의 생활태도에 자신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아 영화관에 쇄도하고, 연극을 보고 자기개발을 주장하는 책을 탐독하고 있다. 비록 내용이 애매하더라도 주체성을 찾아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필사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미국에 있어서의 인격의 위기는 뒤에 언급하겠지만 마로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격위기의 희생자들은 정신과의사의 집단요법에 몰려들고 신비주의의 포로가 되고 성유희 등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변화를 갈망하면서 다가올 변화를 두려워한다. 어떻게든 현재의 존재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에 뛰어들어 현재의 자기와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 발버둥치고 있다. 직업, 배우자, 역할, 책임까지도 바꾸고 싶어한다. 원숙하고 현실에 만족하고 있는 듯한 미국의 기업인들조차 현실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미국 경영자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간관리자의 40 퍼센트 이상이 현재의 직업에 불만을 품고 있고 전체의 3분의 1이상의 사람들이 좀더 보람있는 직업으로 바꾸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만이 그대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거나 방랑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추구하기도 한다. 다시 학교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으며 수축되는 원을 따라 더욱 더 빠른 속도로 돌다가 마침내 압력에 못이켜 쓰러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불안의 원인을 자기자신 속에서 찾다가 까닭모를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게 된다. 마음 속의 고민이나 불안이 더 큰 사회적 위기의 주관적 반영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그들은 무의식중에 사회의 병폐를 반영한 연극 중의 어떤 장면을 실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여러 가지 위기는 각각 하나의 고립된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기와 인격의 위기 사이의 관계를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남녀의 새로운 역할간의 관계를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남녀의 새로운 역할간의 관계를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자신이 붕괴의 위기에 빠져 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어느 것이나 커다란 역사의 흐름 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관련된 연속적인 변화의 물결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 세대의 본질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산업화 시대는 과거의 것이 되고 있고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탈산업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는 여러 가지 변화의 징조들 중에서 진정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제3의 물결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생활의 테두리가 되는 것은 이러한 제3의 물결의 변화이다. 멸망해 가는 옛문명에서 지금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새로운 문명으로 원활히 갈아타려면 그리고 자기자신을 잃지 않고 앞으로 몰아닥칠 더욱 격렬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제3의 물결의 변혁을 정확히 파악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변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을 면밀하게 살펴볼 때 우리는 온갖 실태와 붕괴현상이 교차하는 가운데에서 이미 새로운 것이 태어날 조짐과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가까이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제3의 물결이 벌써 멀지 않은 해변기에서 우르렁거리면서 밀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제3의 물결 제11장 새로운 통합 20세기 후반의 막이 오른 1950 년 1월, 22세의 가냘픈 청년이었던 나는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대학졸업증서를 들고 현실사회의 거친 세파에 뛰어들기 위해 야간버스를 탔다. 옆좌석에 여자 친구를 앉히고 좌석 밑에는 책을 가득 넣은 싸구려 종이가방을 밀어 넣었다. 나는 비에 씻긴 창밖으로 미국 중서부의 공장들이 끝도 없이 지나가는 동안 청동색 먼동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의 미국은 세계의 심장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5 대호를 둘러싼 지역은 미국의 산업중심지였다. 그리고 심장 속의 심장이라고 할 이 지역에서도 공장이야말로 맥박의 핵심이었다. 제강공장, 알루미늄공장, 공작기계공장, 금형공장, 정유공장, 자동차공장 등 우중충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공장 안에서는 각종 압단기, 펀치, 드릴러, 벤더, 용접기, 단조기, 주조기 등이 우렁차게 작동하고 있었다. 공장은 산업화 시대 전체의 상징이었다. 별로 고생을 모르는 비교적 안락한 중하류층 가정에서 자라나 대학 4 년 동안 플라톤과 엘리어트, 미술사, 추상적인 사회과학 이론 등을 배운 청년에게 공장으로 대표되는 세계는 우즈베크 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나 남미대륙 남단의 푸에고제도 만큼이나 이국적 풍경이었다. 나는 그 후 5 년 동안 이 공장들 속에서 살았다. 사무원도 아니고 인사계원도 아니 조립공, 기계설치공, 용접공, 화물을 들어올리는 기계운전수, 퍼너치프레스공으로서 송풍기 날개를 찍어내고 공장에 기계를 설치하며 미국의 탄광에서 쓸 거대한 집진기를 만들고, 조립라인 위를 덜컹거리면서 지나가는 경트럭에 판금작업을 하기도 했다. 여기서 나는 산업화 시대의 공장노동자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지를 피부로 배우고 있었다. 나는 공장의 분진과 연기를 마셨다. 증기 뿜는 소리, 체인이 부딪치는 소리, 흙을 반죽하는 기계의 요란한 소리로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다. 백열의 철강을 쏟을 때의 그 열기도 느꼈다. 발에는 아세틸렌 불꽃에 입은 흉터자리가 남아 있다. 나는 교대시간이 될 때까지 마음과 근육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수천의 부품을 생산했다. 나는 노당자들을 감독하는 화이트칼라도 역시 상사로부터 끊임없이 추궁당하고 학대받는 것을 목격했다. 기계에 손가락을 넷이나 잘려 피투성이가 된 65세 할머니를 도와준 일도 있었다. 그 때 '빌어먹을, 이래 가지고는 이제 일은 다 해 먹었구나!'하던 할머니의 그 외침은 지금도 내 귀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공장^36,36^그 시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오늘날에도 건설 중인 새 공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장을 성역으로 만들었던 문명은 멸망하고 있다. 그리고 현제 세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젊은 남녀가 떠오르는 제3의 물결문명의 심장부를 향하여 차를 몰고 밤길을 달리고 있다. '내일을 위한 탐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젊은이들의 노려에 참여하는 일이야말로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만일 그들의 뒤를 목적지까지 쫓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대체 어디에 이르게 될까? 불꽃에 싸여 대기권 밖으로 돌진해 가는 로켓 발사대에 도달할까? 해양학의 해저실험실일까? 원시생활을 영위하는 가족이 모인 공동체일까? 인공두뇌의 연구집단일까? 광신적인 신흥종교의 교단일까? 그들은 자발적으로 간소한 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원시공동체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테러리스트에게 총을 밀반출하고 있을까? 도대체 어디서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만일 우리 스스로 이와 유사한 미래를 향한 탐험을 계획한다면 그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미래는 이미 현재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는 현재인가? 오늘날 우리의 현재는 모순으로 가득차고 지리멸렬하다. 현대의 아이들은 마약, 섹스, 우주로켓의 발사 등에 관하여 매우 익숙해져 있다. 아이에 따라서는 컴퓨터에 관하여 부모들보다 지식이 더 풍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성적은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혼율이 여전히 상승하고 있는가 하면 재혼율도 상승하고 있다. 여권반대론자들이 반대하던 여성의 권리확대가 실현된 것과 때를 같이하여 여권반대론자들이 발언권을 확대하고 있다. 동성연애자들도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당당하게 밀실에서 걸어 나오는가 하면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갑자기 동성애에 대한 차별철페조항의 제정에 반대하여 플로리다주에 사는 애니타 브라이언트라는 여성이 '호모의 손에서 자녀를 구하자.'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제2의 물결의 모든 나라를 엄습하고 있는데도 실업문제는 계속 심각해져 고전경제학이론으로는 대처할 방법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수요와 공급의 논리를 무시하고 단순히 직장을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이고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일을 찾고 있다. 경제학만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정치세계에서는 예를 들어 기술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전에 없이 정치색을 강화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서 각 정당은 거꾸로 충성심이 두터운 당원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 또 지구상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범세계주의라는 이름아래 국민국가에 대한 공격이 격렬해지는가 한면 이롸 반대로 민족주의 운도이 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에 직면하여 우리는 세상의 추세와 역추레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에 대하여 마법의 해답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컴퓨터가 쏟아내는 갖가지 출력정보와 도표, 미래학자가 그럴 듯하게 활용하는 수리적 모델이나 행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노력은 당연하면서도 객관적인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해마저도 그런 단계에 머물려 있는 것이다. 체계적인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역설과 모순, 육감, 상상력 그리고 대담한(가설로서의) 통합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다음 각 장에서 미래를 탐구해 감에 있어서는 단순히 세상의 주요 추세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직선적 사고의 유혹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미래학자도 내일을 단순한 오늘의 연장으로 생각한 나머지 시대의 추세가 외견상 아무리 강력한 것이 되더라도 단순히 직선적오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러한 추세들의 방향이 반대로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 추세들은 멈추기도 하고 새로 시작되기도 한다. 무슨 일이 지금 이리어나고 있다고 해서 혹은 과거 100 년 동안 계속 일어났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앞으로 이 책에서는 미래를 언제나 예상외의 것으로 만드는 모순, 갈등, 방향전환 그리고 돌파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관찰하고자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태들 간의 숨은 관계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반도체나 에너지 또는 가족관계(자기자신의 가족도 포함하여)의 장래를 예측하면서 다른 조건들이 불변하다는 가정에 서서 예측이라면 거의 소용이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는 유동적이지 동결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우리가 매일의 결정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느냐에 달려 있으며 개개의 사태는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제2의 물결문명은 문제를 그 구성요소로 분해하는 인간의 능력을 극단적일 정도로 중시한 반면 산산히 분해된 부분을 재구성하는 능력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화적 통합보다 분석에 익숙하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의 우리 자신의 이미지가 매우 단편적이고 일관성이 없으며 따라서 잘못되어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전문가(분석)로서가 아닌 다재다능한 사람(통합)으로서 미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통합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연과학으로부터 사회학, 심리학, 그리고 경제학에 이르는 학문분야에서 다시 스케일이 큰 사고방식, 일반이론, 흩어진 부분의 재구성으로 복귀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 같다. 특히 경제학분야에서 그 경향이 짙다. 왜냐 하면 전체로서의 맥락과 관계없이 세부적 수량화만을 중시하여 자질구레한 문제들의 정밀한 측정에만 지나치게 매달려서는 인간의 지식 자체가 더욱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우리 생활을 뒤흔들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찾아내어 흐름들의 상호관계를 밝히게 될 것이다. 그 각각의 흐름 자체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들이 한데 모여 더 크고 더 깊고 더 빠른 변화의 강물들을 형성하고 그리고 이번에는 그 강물들이 모여 차츰 더 큰 흐름, 즉 제3의 물결을 형성하는 과정을 밝히고 싶은 것이다. 금세기의 반환점에서 당시의 세계의 심장부를 보려고 나섰던 청년처럼 우리도 이제 미래로의 탐구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탐구는 우리의 일생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제12장 변모하는 주요산업 1960 년 8월 8일, 웨스트버지니아주 태생의 화학기사 먼로우 래드본은 룩펠러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뉴욕의 맨해턴 사무실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 결정이야말로 제2의 물결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대석유회사 엑슨의 대표이사 래드본이 이날 엑슨사가 산유국정부에 지불하던 세금을 삭감하기로 조치를 취한 데 대해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방 언론들은 이것을 문제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산유국정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나라들의 제정은 사실상 전적으로 석유회사에서 징수하는 세금으로 조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에 다른 대석유회사들이 뒤따라 엑슨사처럼 세금삭감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리고 한 달 후인 9월 9일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몇몇 산유국대표가 아라비안나이트의 도시 바그다드에 모여 긴급평의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절박한 상태에서 모인 그들은 여기서 석유수출국들의 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러나 그 후 13 년 동안 몇몇 석유산업 정기간행물에나 가끔씩 그 활동이나 이름이 등장하는 이외에는 외부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완전히 묵살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3 년 제4차 중동전쟁과 함께 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ntries)가 갑자기 어둠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고 세계의 원유공급을 억제함으로써 제2의 물결경제를 송두리채 공포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던 것이다. OPEC는 산유국의 세입을 4배로 증대시켰을 뿐 아니라 제2의 물결기술체졔에 응어리져 있던 혁명의 불길에 기름을 붓게 되었다. 태양 에너지와 대체 에너지 오일쇼크에 의해서 에너지 위기가 발생했으나 그것을 둘러싼 시끄러운 소동 속에서 너무나 많은 계획, 제안, 주장, 반론들이 한꺼번에 제기되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 지 판단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각국 정부의 혼란상도 길거리의 일반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이런 혼돈을 타파하는 한 가지 방법은 개개의 기술이나 정책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들의 기초가 되는 원리들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러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의 중에서 제2의 물결 시대의 에너지 체계를 전제로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입장과 전혀 새로운 원천을 찾으려고 하는 입장의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이해하면 에너지 문제의 전모가 근본부터 매우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앞에 서술한 대로 제2의 무결의 에너제 체계는 재생불능의 자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에너지는 고도로 밀집된 유한한 광상에서 값비싼 고도의 기술에 의해 발굴되고 있다. 그 종류는 한정되고 있고 채굴방법도 채굴장소도 한정되어 있다. 이런 것들이 산업시대를 통하여 제2의 물결국가가 사용했던 에너지 체계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특징을 염두에 두고 석유위기가 낳은 여러가지 계획이나 제안을 검토해 보면 어느 것이 옛체계의 연장선 위에 있고, 어느 것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에너지의 선구자인가를 재빨리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원유를 배럴당 40 달러에 사느냐 안 사느냐, 원자력발전소를 시브룩에 만들어야 하느냐 그론디에 만들어야 하느냐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산업사회를 위해 개발되어 제2의 물결의 특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낡은 에너지 체계가 과연 장래에도 존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로 문제가 제기되면 그에 대한 해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 50 년 동안 전세계 에너지 공급원의 3분의 2는 석유와 가스였다. 그러나 지하에서 잠자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상태가 앞으로 다소의 유전이 발견되더라도 영구히 계속될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광신적인 자연보호론자나 추방당한 이란국왕까지도, 태양열 이용을 열심히 부르짖는 사람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으로부터 스마트한 차림에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러 국가의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통계는 각양각색이다. 세계가 암초에 걸릴 때까지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에 관해 갖가지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예측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과거의 많은 예언들이 현재는 우습게 보이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석유와 가스를 땅 속으로 되돌려 주어 에너지 공급을 보충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종말은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 것인가? 어느 절정의 순간에 갑자기 석유가 멎어 벌릴지, 아니면 극히 불안정한 부족사태와 일시적 과잉상태가 계속된 다음에 닥쳐올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석유시대는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란, 쿠웨이트인도 이 사실을 아고 있다. 나이지리아인, 베네수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인도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석유회사들도 석유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앞을 다투어 석유 이외의 사업으로 업종을 다양화하고 있다. (최근에 동경에서 어느 석유회사 사장과 만났을 때 그는 대석유회사들도 마치 청도회사처럼 사멸한 공룡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그것이 몇 십년 후가 아니라 수년 안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의미에서만 석유의 고갈을 논하는 것은 초점에서 빗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석유의 공급량보다는 석유의 가격이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을 고려하더라고 결론은 같다. 앞으로 수십년 내에 어쩌면 경이적인 기술혁신이라든가 경제변동이 일어나서 다시 에너지가 풍부해져 값이 싸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비록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대적인 석유가격은 계속 오를 것으로 보아야 한다. 채굴 파이프는 더욱 더 깊이 파내려가야 하며 유전의 개발은 더욱 더 벽지로 옮겨지고 또 석유구매자들이 더욱 증가하여 경쟁이 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OPEC는 별도로 하고 최근 5년 동안에 하나의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멕시코 등에 새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기도 하고 원유가격이 자꾸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원유의 확인매장량은 증가는 커녕 감소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과거 수십년 동안 볼 수 없었다. 이 역시 석유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한편 세계 에너지 전체의 나머지 3분의 1은 석탄이다. 석탄도 언젠가는 반드시 바닥날 것이 틁림없지만 현재로서는 아직 상당한 매장량이 있다. 그러나 석탄의 대량소비는 대기오염을 초래하고(공기 중의 탄산가스의 증대에 의해서) 세계의 기후를 악화시켜 결국은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설사 앞으로 수십년 동안 이러한 폐해를 필요악으로서 허용한다 하더라도 석탄을 자동차의 연료탱크에 넣을 수는 없으며, 오늘날 석유나 가스를 사용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당장 석탄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한편 석탄을 가스화하거나 액화하기 위한 공정은 막대한 자본과 농업용수가 부족할 만큼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며 또 궁극적으로 비경제적이고 비능률적이기 때문에 우회적이고 일시적인 방편일 수밖에 없다. 원자력 기술도 현재의 개발단계에서는 한층 더 어려운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원자로는 우라늄을 이용하고 있으나 우라늄 그 자체가 역시 한정된 자원이다. 또 안전성에서도 문제를 안고 있다. 비록 안전문제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비가 든다. 핵연료 폐기물의 처리문제도 아직 완전히 해결되어 있지 않다. 또 핵발전비용이 매우 높기 때문에 다른 에너지원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조금이 필요한 형편이다. 고속증식로는 그 자체로서는 매우 훌륭한 기술이다. 핵반응에 의해서 나오는 플루토늄이그대로 연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고속증식로가 영구히 운동을 계속하는 기계라고 믿어 버린다. 그리고 이것도 결국은 소량밖에 매장되어 있지 않은 재생불가능한 자원, 즉 우라늄에 의존하고 있다. 고속증식로는 고도의 집중관리가 필요하며 엄청난 경비가 드는 물건으로 위험물질이 누출될 우려도 있다. 더구나 핵전쟁과 테러 분자들에 의한 핵물질의 도난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해서 다시 중세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든가 아니면 경제발전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류가 하나의 발전과정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발전과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제2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세계가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 전환해야 할 또 하나의 근본적인이유가 있다. 에너지 체계라는 것은 농촌경제이든 산업경제이든그 사회의 기술수준, 생활의 본질, 시장이나 인구분포 등 여러가지 요인들에 적합하야만 하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는기술상전혀 새로운 발전단계에 따라 완성된 것이다. 석탄이나 석유라는 화석연료가 기술발전을 촉진시킨 것은 사실이나 그 반대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대량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탐욕스런 기술이 발명되어 석탄이나 석유의 개발을 더욱 더 촉진시켰다. 가령 석유를 예로들면석유기업이 급속히 성장한 것은 완전히 자동차산업의 발전 때문이며 한때는 석유회사가 디트로이트의 부속품과 같았다. 전에 어느 석윻쇠사의 연구실장이었던 도날드카가 그의 저서 '에너지와 지구기계: Energy and the Earth Machine'에서 말한 대로 석유산업은 '어떤 종류의 내연기관의 노예'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다시 기술의 역사적 비약을 맞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다가올 새로운 생산체계는 전체 에너지 산업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OPEC가 천막을 걷고 조용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없는 사태도 예상된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대한 사실은 에너지 문제가 양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 체계의 구조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일정량의 에너지만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다양한 형태로 온갖 장소(혹은 변화하는 지점)에서 밤낮없이 연중 언제나, 그리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목적을 위해 입수할 수 있는 에너지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종전의 에너지 체계에 대처될 에너지를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 단순히 OPEC의 가격결정 때문만이 아니다. 새로운 에너지의 탐구는 방대한 자금과 상상력을 투입하여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경이적인 가능성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물론 경제변동 등의 혼란이 에너지 체계의 이행을 늦추는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나 더 큰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그것은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탐구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전에 없이 참신하고 흥분을 자아내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눈앞에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단계로서는 어떤 기술들의 결합이 어떤 목적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될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도구와 연료는 방대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석유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비교적 특이한 에너지라도 색다른 가능성을 갖고 상업적 채산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현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태양광선을 전기로 전환하는 광전지(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 솔라렉스사, 에너지 컨버젼디바이스사 등 다수의 기업이 연구 개발중임)라든가 소련에서 계획 중인 대류권과 성층권 경계의 대기층에 풍차가 달린 풍선을 쏘아 올려 지상을 향해 전선으로 전기를 보내는 방법 등을 들 수 있다. 뉴욕시는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어느 회사에 연료로 매각하고 있으며 필리핀은 야자껍질을 이용한 발전소들을 건설 중에 있다.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뉴질랜드에서는 지열발전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혼슈의 해안에 500 톤의 배를 띄워 파력발전이 실험 중에 있다. 지붕에 설치하는 태양열 난방장치가 전세계에 보급되고 있다. 남캘리포니아 에디슨사에서는 태양열을 컴퓨터 조작 거울로 받아 그 것을 증기 보일러에 집적한 뒤 발전시켜 이 회사와 계약한 가정에 공급하는 이른바 '발전탑'을 건설 중에 있다. 서독의 슈투트 가르트에서는 벤츠사가 개발한 수소 추진 버스가 거리를 달리고 있다. 록히드 캘리포니아에서는 수소연료로 나는 항공기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연구개발 중인 기술은 그 수가 너무나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새 에너지를 개발하는 기술은 그것을 저장하고 수송하는 새로운 수단을 개발함으로써 더욱 빛나는 장래를 개척해 줄 것이다. 제너럴 모터스사가 최근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이 회사는 전기자동차용 고성능 축전지를 개발했다고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National Aerorrautics and Space Aduinistration) 연구소에서는 종전의 납과 황산을 사용한 배터리의 3분의 1 가격으로 제조할 수 있는 '레독스(Redox)'라는 축전장치를 완성했다. 또 장기적인 전망에서 초전도체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고 '정상적인' 과학의 영역을 초월하여 최소한의 손실로 에너지를 보낼 수 있는 테슬라파의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의 대부분이 아직 초기 개발단계에 있고 그 중 상당수는 실용화와 거리가 먼 것도 많다. 그러나 지금 당장, 또는 10--20 년후에는 상업화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 경우 비약적인진보는 하나의 고립된 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러가지 기술을 병용하거나 결합하는 풍부한 창조력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은 자주 간과되는 것 같다. 이를테면 태양광전지로 전기를 일으키고 그 전기로 물에서 수소를 분리해 낸 뒤 그것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다음 시대를 향한 도약 이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술한 바와 같은 수많은 새 기술들을 결합함으로써 더 많은 잠재적인 가능성이 햇빛을 보게 되고 제3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의 구축이 급속히 진전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는 제2의 물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몇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다. 첫째로 에너지 공급원의 대부분이 고갈되지 않고 재생가능한 것이 많아진다. 또 고도로 집중화된 연료에 의존하지 않고 넓은 지역에 산재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에너지의 생산기술도 현재처럼 엄밀히 집중화된 것이 아니라 집중화된 기술과 탈집중화된 기술을 결합하게 되리라 본다. 한정된 생산방법과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대신에 에너지 형태가 매우 다양해질 것이 틀림없다. 에너지의 다양화에 의해서 우리는 더욱 더 다양해지는 수요에 부합하는 여러가지 형태와 품질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에너지는 낭비를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제 비로소 과거 300 년 간의 에너지 체계에서 정반대로 전환한 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체계가 우리 눈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제3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가 확립될 때까지는 격렬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고도기술국가들에서 시작되고 있는 아이디어와 거대한 자금의 전쟁에서는 하나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삼파전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첫번째 당사자는 낡은 제2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석탄, 석유, 가스, 원자력 및 그 대체재 등 재래식 에너지원과 기술을 지지함으로써 제2의 물결의 '현상유지'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은 석유회사, 공공사업체, 원자력위원회, 광산회사등과 그 관련 노동조합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제2의 물결세력은 난공불락의 진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비해 제3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를 추진하려는 세력은 소비자, 환경보호 운동가, 과학자 그리고 첨단산업의 기업가와 그 동맹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세력은 분산되고 자금도 없고 정치적으로도 무력한 경우가 많다. 제2의 물결을 위한 선전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은 이들이 너무나 순진하고 돈의 현실을 모르고 공상적인 기술에 눈이 어두워 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불행히도 제3의 물결의 지지자는 제1의 물결세력의 동조자로 오해되기 쉽다. 제1의 물결세력은 세 번째 당사자로 새로운 고도의 지식과 과학에 기초한 영속적인 에너지 체계를 찾아 전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전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 입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려면 기술은 거의 배제되고 인간의 행동범위는 한정되고 도시는 축소되어 곧 소멸하며 자연보호라는 이름 아래 금욕생활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제2의 물결진영에 속하는 로비스트, 홍보전문가, 정치가들은 제3의 물결세력과 제1의 물결지지자를 의식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여론을 혼란시켜 제3의 물결세력을 불리한 입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의 물결이나 제2의 물결정책의 지지자들은 마지막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전자는 환상에 매달려 있고 후자는 문제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에너지 체계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정없이 상승하는 제2의 물결의 에너지 비용은 제2의 물결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든다면 급증하는 제2의 물결의 에너지 기술의 투자비용이다. 제2의 물결의 기술에서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새로운 에너지 '순증'을 가져오기 위해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사실이있다. 더욱 더 증대하는 공해문제와 핵이용에 따르는 위험도 있다. 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원자로, 노천채굴광산, 대발전소 건설에 반대하여 경찰권력과의 싸움도 불사한다는 자세로 나오고 있다. 비산업국가들에서 독자적인 에너지 개발 및 자국의 자원에 대한 가격인상 등 가공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욕구도 제2의물결의 에너지 체계에 불리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다. 요약하면 원자로나 석유가스화 또는 석탄액화 등의 기술은 언뜻 '진보된 미래형'의 '혁신적'인 기술로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은 치명적인 모순에 빠진 제2의 물결의 과거 산물에 불과하다. 그 중에는 일시적인 방편으로서 유용한 것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퇴행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2의 물결세력이 아무리 강대해 보이고 그것에 대항하는 제3의 물결지지자가 나약해 보이더라도 과거에 많은 기대를 거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문제는 제2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가 붕괴되어새로운 체계로 대체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고 그것이 얼마나 빨리 대체될 것인지가 문제일 뿐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투쟁은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변혁(제2의 물결 기술의 붕괴)과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내일의 도구 석탄, 철도, 섬유, 철강, 자동차, 고무, 공작기계제조^36,36^이런 것들은 제2의 물결의 고전적인 산업들이다. 기본적으로는 단순한 전기역학의 응용원리에 토대를 둔 이 산업들은 대량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거대한 산업 폐기물을 토해 내며 공해를 초래하고 장시간 노동, 비숙련 노동, 반복작업, 표준화 제품, 고도의 중앙집권적 통제 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1950 년대 중반부터 이들 산업이 날로 시대에 뒤떨어져 쇠퇴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예를 들면 1965--74 년까지 10 년 동안에 노동인구는 21퍼센트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섬유산업의 종업원은 불과 6 퍼센트밖에 늘지 않았고 철강산업의 종업원은 오히려 10 퍼센트가 감소되었다.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 일본 등의 물결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들 시대에 낙후된 산업들은 값싼 노동력이 있고 기술수준이 낮은 이른바 '개발도상국'들로 이전되기 시작하면서 그와 함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약화되었다. 그 대신에 활력있는 새로운 산업들이 잇달아 출현한 것이다. 새로운 산업들은 몇가지 면에서 전 시대의 산업들과 현저히 다르다. 새로운 산업들은 첫째로 전기역학 위주의 산업이 아니며 제2의 물결시대의 고전적 과학이론에 토대를 둔 것도 아니다. 그 대신 이 산업들은 양자전자공학, 정보이론, 분자생물학, 해양학, 원자핵물리학, 사회생태학, 우주과학 등의 같이 지난 4반세기 동안에 태어나서 정립된 여러가지 과학분야의 최첨단에서 개발된 산업이다. 이러한 과학들 덕택에 우리는 제2의 물결시대의 산업이 척도로 삼고 있던 시간이나 공간의 특징을 넘어서 소련의 물리학자 쿠즈네초프가 지적한 대로 '극소의 공간 (원자핵의 반경은 10^35,45,3456,1,14^cm)과 10^35,45,3456,12,14^초라는 극히 짧은 시간'을 계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과학과 급속히 발달한 계측기술이 컴퓨터, 데이터 처리, 항공우주산업, 정밀석유화학, 반도체, 첨단통신산업 등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켰다. 기술분야에서 제2의 물결로부터 제3의 물결로의 이행이 가장 빨리 찾아온 것은 미국으로, 1950 년대 중반이었다. 동부 뉴잉글랜드의 메리맥 밸리와 같은 구산업도시는 불황의 밑바닥에 가라앉는 대신에 보스턴 교외의 128구역이나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 밸리'같은 지대는 일약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런 도시 주변의 주택지구에는 반도체 물리학, 시스템 엔지니어링, 인고두뇌, 고분자화학 등의 전문가가 연이어 이사해 왔다. 기술의 이행에 따라 일자리와 풍요도 이용했다. 남쪽의 '선벨트지대'의 각 주에는 대규모 군수산업의 수주에 의해서 첨단기술기지가 잇달아 건설된 대규모 군수산업의 수주에 의햇 첨단기술기지가 잇달아 건설된 반면 동북부나 5대호 주변의 구산업지대는 쇠퇴하여 파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뉴욕시의 장기적인 재정위기는 바로 이 기술변동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철강업의 중심지였던 로렌지방의 불황도 같다. 그리고 차원을 달리하지만 영국 사회주의적 쇠퇴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후에 영국 노동당 정부는 산업의 보루를 장악하겠다고 공언했고 또한 실행했다. 그러나 노동당 정부가 국유화한 보류는 석탄, 철도, 철강처럼 어느 것이나 기술혁신의 혜택도 받지 못한 사람들 말하자면 구시대의 보루였다. 제3의 물결산업을 가진 지역은 번영하고 제2의 물결 산업지역은 쇠퇴했다. 그러나 이 전환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각국의 정부는 이러한 이행에 따르는 폐해를 최소한 억제하면서 의식적으로 이러한 구조개혁을 촉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 통산성의 기획담당 관리는 미래의 서비스업 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서독의 슈미트 수상과 그의 고문들은 '구조정책'을 부르짓으면서 유럽 투자은행의 협력을 얻어 전통적 대량생산형 산업으로부터의 탈피를 꾀하고 있다. 앞으로 크게 성장하여 제3의 물결시대의 중추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 4개의 서로 관련된 산업군이다. 이들 산업의 성장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제휴관계에 또 다시 큰 변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서로 관련이 깊은 4개 산업군의 첫째는 말할 나위도 없이 컴퓨터 산업과 전자공학이다. 전자산업이 이 세계시장에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현재 이미 연간 매출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1980 년대 후반에는 3250억 달러에서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잇다. 이렇게 되면 전자공학산업은 철강, 자동차, 화학공업에 이어서 세계 제4위의 산업이 된 것이다. 컴퓨터의 급속한보금에 관해서는 주지하는 사실이며 여기서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컴퓨터는 생산비용이 급격이 감소하는 반면 용량은 경이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잡지 '컴퓨터 월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지난 30 년 동안에 컴퓨터 산업이 성취한 것을 자동차산업이 할 수 있다면 롤스로이스 자동차 한 대의 생산원가는 2. 50 달러, 그리고 휘발유 1갤론당 주행거리는 200 만 마일에 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값싼 소형 컴퓨터가 미국 가정에 대거 보급되고 있다. 1979 년 6월에는 가정용 컴퓨터를 제조하는 회사가 약 100개사를 헤아렸으며 이 중에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같은 대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시어즈 로우벅이나 몽고메리 워드와 같은 슈퍼체인점들도 가정용품 매장에 컴퓨터를 진열하게 되었다. 달라스시의 한 소형 컴퓨터 소매업자의 말을 빌리면 '이제 곧 컴퓨터는 모든 가정에 보급되어 화장실처럼 가정의 표준시설이 될 것이다.'고 한다. 가정용 컴퓨터가 은행, 상점, 관청, 이웃집, 자기의 직장 등과 연결되면 생산업에서 소매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의 기업형태도 필연적으로 바뀔 것이다. 노동의 질이나 가족구조에도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컴퓨터 산업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전자산업도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소형계산기, 전자시계, TV 스크린 게임 등이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소형이면서 값이 싼 농업용 기후 및 토양 감지기라든가 옷에 부착하여 심장의 고동이나 스트레스 정도를 탐지하는 극소형의 의료기구 등 전자공학을 응용한 제품은 앞으로 수없이 등장할 것이다. 또 제3의 물결산업의 발전은 에너지 위기에 의해서 크게 촉진될 것이다. 왜냐하면 제3의 물결 산업의 생산공정이나 제품은 에너지 소비량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전화를 예로 들면 제2의 물결시대의 도로 밑은 꼬불꼬불한 전화선과 도관, 중계시설, 스위치 등 각종 매설물들이 묻혀 있어 마치 구리광산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이제 전화선은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빛을 전달하는 섬유를 사용한 광섬유체제로 대체되려 하고 있다. 이 대체에 의한 에너지 소비의 절감은 놀라운 것으로 광섬유제조에 소요되는 에너지량은 구리를 채굴하고 제련하여 동선으로 가공하는 에너지량의 약 1000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90마일의 동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석탄으로 광섬유는 무려 8만 마일이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전자공학분야에서 반도체물리학도 같은 방향으로 변천해 가고 있다. 생산되는 부품을 보면 필요한 입력 에너지량이 착실히 감소되고 있다. IBM이 최근 개발한 대규모 직접회로(LSI: Large Scale Integration) 기술은 불과 50 마이크로와트의 전력으로 작동되는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공학 혁명이 갖는 이러한 특색을 고려하면 에너지 부족으로 고민하는 고도기술경제에 있어 에너지 낭비형인 제2의 물결산업에서 제3의 물결산업으로의 방향전환이야말로 최선의 에너지 보존전략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사이언스'지가 기술했듯이 '전자공학의 발전에 의해 국가경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예기치 않던 새로운 전자공학기기가 출현할 때마다 허구가 현실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공학의 융성은 새로운 기술체계를 개척하는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궤도를 도는 기계 우주와 해양개발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제2의 물결의 고전적 기술을 훨씬 초월하는 모험이 감행된다. 앞으로의 기술체계를 구성하는 두 번째 산업군은 우주산업이다. 당초의 계획보다는 지연되고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매주 5 대의 우주왕복선이 사람이나 화물을 싣고 우주공간을 왕복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일반인들은 아직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우주의 변경'이야말로 다가올 고도기술혁신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적합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그루만사와 보잉항공사는 현재 에너지 생산용 위성과 우주기지를 개발하고 있다. '비즈니스 위크'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몇몇 기업들은 이제서야 인공위성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반도체에서 약품에 이르는 각종 제품을 인공위성에서 제조하고 가공할 수 있는 것이다. 고도의 기술을 사용하여 만들어 내는 물질은 정교하게 통제되는 취급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중력이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우주공간에서는 중력을 염려할 필요가 없고 용기도 불필요하다. 유독물질이나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경우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초고온 및 초저온가 함께 진공상태도 무한정 공급된다.' 이런 뜻에서 '우주공장'은 과학자, 기술자, 고도기술 기업체의 경영진 사이에서 새로운 화제가 되고 있다. 맥도널 더글라스사는 몇몇 제약회사에 대해 인체세포에 희귀한 효소를 분리하는 데에우주왕복선을 사용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고 있다. 유리업계는 레이저 및 광섬유용 물질을 우주에서 제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다. 우주공간에서 만든 단결정의 반도체에 비하면 지상에 만든 반도체는 매우 초보적인 제품으로 보일 것이다. 또 특정한 혈액질환에 사용하는 응혈 용해제는 현재 1회 투여시마다 2500 달러나 드는데 NASA의 우주산업화 연구실장 제스코폰 푸트카머 씨에 의하면 이것을 우주공간에서 제조하면 5분의 1 이하의 비용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구상에서는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도 절대로 제조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제품이 있다는 것이다. 항공우주개발과 전자공학부문 개발회사인 TRW의 발표에 의하면 중력 때문에 지구상에서는 만들 수 없는 합금이 400종류나 된다고 한다. 제너럴 일렉트릭사는 우주용광로를 설계하고 있고 서독의 다임러 벤츠사와 MAN사에서는 우주볼 베어링 공장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다. 또한 유럽 우주국과 영국항공사 등 특정한 기업들도 너나없이 우주공간에서의 사업이 상업적 채산에 맞도록 여러 가지 제품과 설비를 고안 중이다. '비즈니스 위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런 계획은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 더 많은 회사가 진지하게이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주공장' 못지않게 진지하고 그 이상으로 열성적인 지지자를 얻고 있는 것이 오닐 박사의 '우주도시'계획이다. 프린스턴대학의 물리학자인 오닐 박사는 우주에 대규모 기지나 섬을 띄워 수천명의 인구를 수용하는 도시를 건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열심히 강연해 왔다. 현재는 NASA나 캘리포니아주 지사(캘리포니아주의 경제는 우주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음)뿐 아니라 '전지구 카탈로그'를 창작한 스튜어트 브랜드가 이끄는 히피 출신 보컬밴드까지도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오닐 박사의 아이디어는 달을 비롯하여 다른 천체에서 캐낸 물질을 사용하여 조금씩 우주에 도시를 건설하려는 것인데 동료인 브라이언 오리어리 박사는 아폴로나 아모르 등 소행성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NASA, 제너럴 일렉트릭사, 연방정부의 에너지 기관 등의 전문가들은 정기적으로 프린스턴대학에 모여 달 등의 외계광물의 화학처리에 관한 논문, 우주주택의 설계와 건축 그리고 폐쇄된 생태계 등에 관허여 정보교환을 하고 있다. 지구 밖에서의 외계생산까지 포괄하는 방대한 우주계획과 첨단전자공학을 결합함으로써 기술체계는 제2의 물결의 수많은 제약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해저개발 우주공간과 방향은 완전히 반대지만 해저개발은 우주개발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해저개발은 새로운 기술체계의 주요부문인 제3의 산업군이 되려 하고 있다. 우리 조상이 약탈고 수렵 중심의 생활을그만두고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것이 역사상 최초의 사회변혁의 물결이었다고 한다면 현재의 우리는 바다와의 관계에서 똑같은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지역에서는 바다가 식량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바다를 농장이나 목장처럼 이용함으로써 인체의 영양에 빠뜨릴 수 없는 단백질을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화가 고도로 진행된 현대의 상업적인 어업은 일본이나 소련의 공장선이 고기의 씨를 말리는것처럼 지나친 남획으로 여러가지 해양생물을 전멸시킬 우려가 있다. 이것처럼 지나친 남획으로 여러가지 해양생물을 전멸시킬 우려가 있다. 이에 반하여 물고기의 양식이나 해조의 재배 등 지식이 요구되는 '해양농업'을 경영하면 우리의 생명과 깊은 관계에 있는 생태계를 파괴하기 않고 세계의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바다에서 '기름을 기를' 가능성은 최근의 해저유전개발 쇄도를 인해 뒤로 밀려난 감이 있으나 바텔 기념연구소의 로렌스 레이몬드 박사는 석유성분이 많이 함유된 해초의 재배가 가능함을 증명하고 현재 경제적으로 채산성이 있는 재배법을 연구 중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다에 잠들어 있는 무진장한 광물자원이다. 구리, 아연, 주석, 은, 금, 백금 그리고 농업용 비료를 만드는 인산광 등 각종 광물이 풍부하다. 수온이 높은 홍해에는 34억 달러 상당의 아연, 은, 납, 금 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몇몇 광산회사가 일찍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 세계 최대의 광산회사를 포함한 100개 이상의 기업들이 감자 모양의 해저 망간덩어리를 채굴할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망간덩어리는 자연재생되는 자원으로 하와이 남쪽에서 확인된 것만 해도 연간 600 만^36,36^1000 만 톤씩이 형성되고 있다.) 현재 4개의 국제적 콘소시엄이 1980년대 중반부터 수십억 달러의 규모로 해저광업을 시작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의 콘소시엄에는 23개의 일본기업을 비롯하여 서독의 ARM그룹이나 캐나다 인터내셔널 니켈의 미국 자회사 등이 들어가 있고 두번째 콘소시엄에는 벨기에의 유니옹 미니에르, US 스틸, 선 등의 회사가 연계되어 있다. 세 번째 콘소시업에는 캐나다의 노란다, 일본의 미쓰비시, 리오 틴토 징크사, 영국의 콘솔리데이트드 골드 필즈사가, 그리고 네 번째 콘소시엄에는 록히드와 로열더치 셸 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런던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러한 노력들이 선택된 몇 가지 광물을 둘러싼 세계적인 채광활동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광산회사뿐 아니라 제약회사 호프만 라 로셰사 등은 항균제, 진통제, 검사약, 지혈제 등 바닷속에서 새로운 약품을 찾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앞으로 물 속에 절반 또는 전부가 잠긴 '해양부락'이나 해상공장의 건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현상태로서는 부동산가격이 제로라는 점과 해양자원(바람, 조류, 파도 등)으로부터 에너지를 싸게 공급할수 있음을 고려하면 이러한 수중 또는 해상시설은 지상의 시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해양기술 전문지인 '머린 폴리시'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해상기지 건설기술은 비교적 단순하고 경비도 별로 들지 않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세계 각국의 정부나 기업, 민간단체가 실제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인구과밀상태인 산업사회들이 만드는 해상주택이다. 또 다국적기업에 있어서는 무역활동을 위한 이동 터미널로서 또는 공장선으로서 이용가치가 있다. 식품회사는 해상도시를 만들어 "해양농업"을 경영한 것이며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은 회사나 새로운 생활양깃을 추구하는 모험가는 해양도시를 건설한 후 새로운 국가를 수립할지도 모른다. 이윽고 해상도시도 공식적인 외교적 승인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소수민족이 해상국가를 만들어 독립하는 것도 하나의 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닻으로 해저에 고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프로펠러나 벨러스트, 부력조정장치 등을 사용하여 해상에 떠 있는 수천개의 해저유전 채굴기의 건설과 관련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미래의 해상도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새로운 산업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다. 총체적으로 해양진출의 상업적 타당성은 급격히 증대하고 있고 경제학자 리아프치거가 말한대로 '마치 옛 서부의 농장주들처럼 많은 대기업들은 조금이라도 넓은 바다를 획득하려고 출발선에 줄지어 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비산업국가들은 해양자원을 부유국들의 독점물이 아닌 인류의 '공동재산'으로서 확보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분야들에서의 발전이 각각 독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관련을 갖고 스스로를 보강해 주고 또 각 과학시술의 발전이 서로의 발전을 촉진시켜 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때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기술은 제2의 물결의 기술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임이 명백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근본적으로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기술체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서술해 온 사례들도 지금 분자생물학 연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심한 변화에 비하면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생물학 산업이야말로 내일의 경제에서 네 번째의 산업군이며 4개 산업군 중에서 인류의 장래에 가장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유전자 산업 오늘날 유전자에 관한 정보가 2 년마다 2배로 증가하고 유전자 기술자 들이 초과근무를 하고 있는 가운데 '뉴 사이언티스트'지는 '유전공학은 현재 대량생산체계를갖추고 사업에 뛰어들 태세가 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저명한 과학평론가 리치 캘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다루던 것처럼 생명이 있는 물질을 제조하는 시대가 왔다." 대기업은 이미 새로운 생물학의 성과를 상업적으로 응용할 수 없을까하며 열성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들의 꿈은 특수한 효소를 사용하여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측정하게 하고 그 오염도에 관한 자료를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보내 엔진을 자동적으로 조절하도록 '뉴욕타임스'는 "금속을 먹는 미생물을 사용하여 바닷물 속에서 소량의 귀금속을 추출할 수 있다."라고 보도한 것이 대기업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대기업은 새로운 생물을 특허의 대상으로 해달라고 요구하여 이미 특허권을 따낸 것도 있다. 이 경쟁에 참가하고 있는 회사는 제너럴 일렉트릭을 비롯하여 엘리 릴리, 호프만 라 로셰, GD 셜, 업존, 메르크 등이 있다. 평론가나 과학자들이 이같은 경쟁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석유누출뿐 아니라 병을 옮기고 다수의 지역주민의 생명을 뺏앗을지도 모를 '미생물누출'이다. 전염성 세균을 배양하다가 사고로 그것이 방출된다는 생각만 해도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현대사회에 대한 경고의 한 예에 불과하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존경할 마난 과학자들은 오늘날 상상을 엇갈리게 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와 같은 위장을 가지고 들에 나 있는 풀이나 건초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든다면 인간은 현재보다도 먹이연쇄의 하등품을 먹게 되므로 식량문제는 저절로 완화되지 않을까? 노동자를 일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변모시키는 것은 과연 허용될 수 있을까? 이를테면 남달리 빠른 반사신경을 가진 파일럿을 만들어 내거나 단순노동에 적합하도록 신경학적으로 설계된 조립공을 만드는 것 등이다. '열등한 인간'을 말살하고 '우수한인종'을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히틀러와 같은 시도이지만 히틀러가 갖지 못했던 유전학상의 무기가 멀지 않아 연구실로부터 제공될 것이다.) 전쟁에 적합한 사람을 영양생식으로 만들어 병사의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유전학적 예측을 이용하여 '부적절한 아기'를 배제하는 것은 허용될까? 신장, 간장, 폐 등의 '저축은행'을 만들어 내장기관을 예비해 두면 어떨까? 이와 같은 생각들이 터무니없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과학계에서는 각각의 구상에 대해 찬반양론이 있고 또 괄목할 만한 상업적 응용이 이루어진 예도 있다. 유전공학의 평론가 제레미 리프킨과 테드 하워드의 공저 '누가 신의 역할을 맡을 것인가'에서 이렇게 언급하였다. '조립공장, 자동차, 왁친, 컴퓨터 등의 기술과 같이 대규모 유전공학도 미국에 도입될 것이다. 유전학이 발전하여 새로운 성과가 상업적으로 실용화되면 그때마다 새로운 소비자의 요구가^5,5,5^ 개척되고 새로운 기술을 위한 시장이 조성될 것이다.' 잠재적인 응용법은 무수히 많다. 예를 들면 새로운 생물학은 에너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 과학자는 지금 태양광선을 전기화학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 박케리아 이용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생물학적 태양전지'를 거론하고 있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소를 대체시킬 생물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방사능누출위험을 대신하여 생물누출의 위험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보건분야에서도 현재의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수많은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부주의라든가 고의에 의해서 더 나쁜 질병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윤추구만을 생각하는 회사가 자기회사제품으로만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 은밀히 전염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가벼운 감기와 같은 증상이라도 치료약이나 치료법이 독점되어 있으면 거대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수많은 유전학자와 제휴하고 일하는 캘리포니아의 세터스사 사장은 "30년 이내에 생물학은 화학보다도 중요한 학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 모스크바에서 발표된 소련 정부의 성명서 중에서도 '국가경제에 있어서의 미생물의 광범위한 이용을 꾀하여...'라는 말을 볼 수 있다. 생물학이 발전하면 플라스틱, 비료, 의복, 페인트, 살충제, 기타 수많은 제품의 생산에 석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적게 사용해도 될 것이다. 목재나 양모와 같은 자연상품의 생산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미 US스틸,피아트, 히타치제작소, ASEA, IBM등 여러 회사들이 자체의 생물학 사업부서를 설치하고 제조로부터 '생조'로 이행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상상하지도 못했던 여러가지 제품들을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다. 퓨처스그룹의 지도자 고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단 생물학에 손을 대기만 하면 '인간의 세포조직과 다름없는 셔츠'라든가, 인간의 유방과 같은 물질로 만든 '유방과 다름없는 감촉의 매트리스'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훨씬 이전에 유전공학은 농업에 활용되어 세계의 식량공급을 늘리는 데에 공헌할 것이다. 1960 년대에는 품종개량에 의한 농산물의 증산을 겨냥한 '녹색혁명'이 크게 떠들썩했으나 결국 그것은 제1의 물결세계의 농민에게는 커다란 올가미에 불과했다. 석유로 만든 수입비료를 대량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생물학적 농업혁명은 바로 이 화학비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전공학은 생산성이 높은 작물, 모래땅이나 염분이 많은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나 병에 강한 작물 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보다 간단하고 값싸고 에너지 절약적인 식품보존 및 가공방식과 함께 전혀 새로운 식품이나 섬유를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유전공학은 놀라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세계각지의 굶주림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달콤한 약속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유전학농업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말이 절반만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고 다른 여러 변화와 함께 궁극적으로는 부국과 빈국의 관계를 변화시키리라 본다. 녹색혁명은 빈국이 부국에 의존하는 정도를 약화시키기는커녕 강화시키는 작용을 했는데 생물학적 농업혁명은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생물공학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갈지 확신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원점으로 되돌아기도 너무 늦었다. 이미 발견한 것을 덮어둘 수는 없다. 우리가 더 이상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용을 올바로 관리하고 성급한 개발을 막는 일이다. 한 나라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고 이 분야에서 기업이나 국가나 과학자의 경쟁을 최소한으로 막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 가지 아주 확실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 300년 간의 전통적 제2의 물결의 기술인 전기기계의 테두리에 묶여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실의 의의를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제2의 물결은 석탄, 철강, 전기, 철도 등을 결합하여 자동차를 비롯한 생활를 변혁시킨 수많은 제품을 만들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컴퓨터, 전자공학, 우주나 해양에서 만든 신소재, 유전공학 등을 서로 연결하는 새로운 기술들을 결합시키고 또 그것이 에너지 체계를 결합시켜야 비로소 새로운 변혁이 참다운 영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은 결합해야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기술혁신의 거대한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제3의 물결문명의 새로운 체계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반역자들 이 기술들의 진보가 지닌 중요성과 그것이 인류의 진화에 앞으로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하면 기술의 진보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게 된다. 팔짱을 끼고방관하는 것이나 대수롭지 않다고 낙관하는 것도 우리 자신과 자손의 운명을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다. 현재의 변화는 그 규모, 힘, 속도에 있어서 역사상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다. 대재해가 될뻔한 스리 마일섬의 원자력발전사고, 비극적인 DC-10기의 충돌사고, 멕시코 해안의 멈출 수 없던 대량의 원유누출사건 등 기술개발에 따르는 몇몇 놀라운 사건들이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이러한 재해를 눈앞에 두고 미래의 강력한 기술인 진보나 결합을 제2의 물결시대의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판단기준에서 결정해도 될까? 과거 300 년 동안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를 불문하고 새 기술이 태어날 때마다 제기된 기본적 문제는 경제적인 이익이 있는가, 혹은 군사력증강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두가지 점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두 판단 기준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새로운 기술들을 경제와 군사의 양면 뿐 아니라 생태환경이나 사회적인 면에서도 엄격히 심사되어야 한다. 미국 전국과학재단에 제출된 어느 보고서 가운데에 '기술이 사회에 끼친 충격'이라는 제목하에 최근의 기술재해가 열거되어 있다. 이 목록을 자세히 조사하면 그 대부분이 제2의 물결기술이 일으킨 재해이고 제3의 물결기술에 기인하는 것은 별로 볼 수 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제3의 물결기술의 대부분이 아직 유아기에 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유전자누출, 기상간섭, 원거리에서 지각진동을 발생시켜 고의로 지진을 일으키는 이른바 '생태전쟁'등이다. 새로운 기술체계를 향하여 전진함에 따라서 더 많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에 새로운 기술에 반대하는 거의 무차별적인 대규모의 대중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저지하려는 시도는 제2의 물결의 초기에도 볼 수 있었다. 이미 1663 년 런던의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협당한다는 이유로 제재소에 새로 설치한 기계를 파괴하고 1676 년에는 리본 제조공들이 자기들의 기계를 파괴했었다. 1710년에는 새 양말기계의 도입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그 뒤에 방직공장에서 사용하는 북을 발명한 존 케이는 성난 군중이 자기집을 때려 부수자 결국 영국에서 도망쳤다. 이런 종류의 사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산업혁명이 절정이던 1811 년부터 16 년에 걸쳐 '러다이트'라는 기계파괴주의자들이 노팅검의 방직기를 파괴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들 초기의 기계반대운동은 산발적이고 자연발생적이었다. 어느 역사가가 지적했듯이 '사건의 대부분은 기계 자체에 대한 적의에서 일어난 것이었다기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고용자를 위압하는 수단으로 발생'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며 배고픔과 절망에 빠진 노동자의 눈에 비친 기계는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급격히 발전하는기술에 대한 오늘나의 반항은 이것과는 다른다. 결코 가나하지도 무식하지도 않는 사람들, 반드시 반기술적이거나 경제성장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무절제한 기술혁신이 자기자신과 세계 전체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반항에 가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수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 중에서 과격파는 기회가 있으면 러다이트와 같은 수단에 호소할지도 모른다. 컴퓨터 장치나 유전자 연구실 또는 건설 중인 원자로 등이 폭파당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아주 무서운 기술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그것이 방아쇠가 되어 '모든 약의 근원'인 백의의 과학자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미래의 선동정치가 중에는 '케임브리지대학의 10인조'나 '오크리지 원자력발전소의 7인조'라고 멋대로 명명한 다음 그 주변을 조사하여 이름을 떨치려고 하는 자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술반역자들의 대부분은 폭탄을 던지거나 러다이트와 같이 기계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이 가운데에는 수많은 일반시민들 이외에도 원자력기술자, 생화학자, 물리학자, 공중위생관계의 공무원, 유전학자 등 수천명의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러다이트와는 달리 잘 조직되고 발언권이 있는 사람들이다. 독자적으로 과학잡지나 홍보지를간행하고 소송을 제기하거나 법안을 만들기도 한다. 동시에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데모도 한다. 이런 운동은 자주 반동적이라고 비난받지만 사실은 탄생되고 있는 제3의 물결의 중요한 일부이다. 기술분야에서 에너지를 둘러싸고 3개 집단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지만 기술분야의 투쟁과 병행하여 정치, 경제 분양에서도 3파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운동의 참가자들은 세 집단 중에서도 미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여기서도 역시 한편에는 제2의 물결세력이 있고 한편에는 제1의 물결의 수정주의자들이 있으며 제3의 물결진영은 이 두 세력과 싸워야 한다. 제2의 물결세력은 기술에 대해 낡고 어리석은 생각을 고집하고 있다. '유익하다면 건설하자. 팔 수 있다면 생산하자. 군사력 강화와 관계가 된다면 만들자.' 제2의 물결의 신봉자들은 진보에 대하여 시대에 낙후된 산업 현실관에 집착하여 기술을 무책임한 방법으로 실용화하려고 이권을 다투고 있다. 이들은 위험성에 대하여 전혀 무관심하다. 한편 소수이지만 목소리가 높은 극단적인 낭만주의자들의 일단이 있다. 이 집단은 원시적인 제1의 물결의 기술 이외의 모든 것에 적의를 품고 중세의 공예나 수공업으로 돌아가자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중산층에 속하여 배고픔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유리한 입잔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들은 제2의 물결의 기술지지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차별하게 기술혁신에 저항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이고 그들 자신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세계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는 환상을 품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 양 극단의 사이에는 각국에서 기술에 대한 반란의 핵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제3의 물결의 대리인이다. 그들은 갑자기 처음부터 기술문제를 논하지는 않는다. 인류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하는 난제로부터 토론을 시작한다. 그들의 쟁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제 기술의 진보는 너무나 많은 방향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자금을 투자하여 모두 개발을 진행하고 실용화하는 것은 무리이다. 따라서 보다 더 신중히 선택하여 장기적으로 사회와 환경에 기여하는 기술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기술이 우리의 목적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의 커다란 흐름의 방향을 사회가 관리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 기술반역자들은 아직 명확하고 포괄적인 계획을 마련하지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온 수많은 성명, 청원, 선연, 연구보고 등을 읽으면 그 속에서 몇 가지 사상의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이 종합되어 기술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견해, 미래의 제3의 물결로의 이행을 위한 하나의 적극적인 정책이 탄생하게 된다. 그들 사상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지구의 생물체계는 약하여 파괴되기 쉬우므로 새로운 기술이 강력하면 할수록 지구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위험성이 커진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모든 새로운 기술은 역효과를 야기시키지 않도록 사전에 심사하여 위험한 것은 재설계하거나 개발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미래의 기술들은 제2의 물결시대에 비해 더 엄격한 생태적인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술반역자들은 우리가 기술을 지배하지 않으면 기술이 우리를지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경우 '우리'란 과학자, 기술자, 정치가, 기업인 등 소수의 엘리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서독, 프랑스, 스웨덴, 일본, 미국 등에서 일어난 반핵운동이나 콩코드기 취항 반대투쟁 또는 날로 고조되고 있는 유전자 연구의 제한요구 등은 어떤 공적을 올렸으냐는 별도로 하고 모두 기술 있어서의 결정과정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가 확대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뛰어난' 기술이란 반드시 규모가 크고 복잡하고 값비싼 기술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고압적인 제2의 물결의 기술들이 실제보다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기업체나 사회주의적 사업체들이 공해, 실업, 노동재해 등에 필요한 방대한대책 경비를 사회전체에 부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일종의 '생산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얼핏 '높은 효율'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기계들도 사실은 완전히 비능률적이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기술반역자들은 적절한 기술들의 종합계획을 세워 좀더 인간적인 일을 준비하고 공해를 없애고 환경을 보호하고, 국가나 세계시장보다도 지역이나 개인의 소비를목적으로 하는 생산에찬동한다. 기술반역자들은 세계 각국에서 비록 기술규모는 작지만 물고기의 양식이나 식품가공으로부터 에너지 생산, 쓰레기의 재생, 값싼 주택건축, 간편한 교통 등 각 분야에서 수천가지의 실험을 촉발시켰다. 이러한 실험 가운데에는 너무 소박하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도 있지만 실용적인 것 또한 많다. 실험 중에는 최신의 소재와 과학적인 장치를 새로운 방법으로 옛날의 기술과 조합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중세 기술사학자인 장펠이 만들고 있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도구류는 비산업국가들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것은 신소재와 구식기법을 결합한 것이다. 또 하나의 예는 최근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비행선이다. 비행선의 기술은 한때 잊혀졌었지만 최근에는 섬유 등 기타 재료의 진보에 의해 유효하중이 매우 커져서 적재량이 늘었다. 비행선은 환경면에서도 해로움이 없고 브라질이나 나이제리아와 같이 도로사정이 나쁜 지역에서 다소 속도는 떨어지지만 싸고 안전한 수송수단으로서 가장 알맞다. 무엇이 가장 타당한 기술인가 혹은 대체기술은 없는가를 조사하는 실험을 하다 보면,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는 간단한 소규모의 기술이라도기계가 그 용도에 꼭 맞고 기술이 갖는 부작용까지 모두 감안할 경우 복잡한 대규모 기술 못지 않게 '성능이 좋은' 기술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술반역자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이 지구상에 커다란 과학기술의 불균형이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총 인구의 75퍼센트를 차지하는 나라들의 과학자 수가 세계 과학자 총수의 불과 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나라들을 위해 기술적 관심을 증대시키고 우주자원이나 해양자원도 더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인류공통의 유산은 바다나 하늘만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첨단기술 자체도 인도인, 아라비아인, 고대중국인 등 수많은 민족의 역사적 공헌이 없었더라면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마지막은 제3의 물결로의 이행에 있어 우리는 제2의 물결시대의 자원을 낭비하고 공해를 수반하는 생산체제에서 보다 '물질대사기능이 높은' 체제로 한 걸음 한 걸음 서서히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대사기능이 높은 생산체제'란 생산의 산출물과 부산물이 반드시 다음 생산의 투입물이 되어 폐기물이나 공해가 없는 생산체제를 말한다. 다음 생산과정의 투입물이 되지 않는 산출물을 생산하지 않는 체제가 최종목표이다. 이런 체제가 되면 생산성이 높을 뿐 아니라 생태계에 미치는 손해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최소한으로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현대 기술반역자들의 의견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기술반역자들의 사고방식은 격렬한 기세로 진보하는 기술을 좀 더 인간화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 일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기들이 자각하든 못하든 제3의 물결의 대리인이다. 그들은 앞으로그 수를 늘릴 수는 있어도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금성탐험, 경이적인 컴퓨터, 생물학상의 발견 또는 해저탐험 등이 모두 다음 문명을 향한 전진이라면 기술에 대한 반역자들도 또한 다음 문명의 선도자이다. 제1의 물결의 환상가들과 제2의 물결의 기술옹호자들은 상대로 한 그들의 투쟁에서 새롭고 영속성있는 에너지 체계에 어울리는 실제적인 기술들이 태어난다. 그런 기술들이 이제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이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새로운 기술들을 접속시킬 때 우리 문명전체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문명의 심장부에는 엄격한 환경규제와 사회관리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는 과학에 기초를 두면서도 세련된 '고속'의 산업과 그리고 역시 세련되기만 하지만 소규모이고 인간미 넘치는 '저속'의 산업이 혼연일체가 되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이 두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본원리는 제2의 물결의 기술체계를 지배해 온 원리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 되리라 본다. 이 두 산업이 서로 협력하여내일의 주요 산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서술한 것은 보다 광대한 전망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기술영역을 변혁시키면서 동시에 정보영역도 변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제13장 매체의 탈대중화 비밀첩보원은 현대의 강렬한 상징의 하나이다. 이토록 멋지게 현대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두고 있는 것은 없다. 수많은 영화가 007을 시초로 무분별한 가고세계의 첩보원들을 영웅적으로 묘사해 내고 있다. TV나 각종 문고판 서적들도 실제보다 훨씬 용감하고 낭만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또 몸집이 큰(또는 작은) 스파이상을 끊임없이 꾸며내고 있다. 한편 정부도 첩보활동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넣는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M: Komitet Gosudarstvennoi Bezopasnosti), 미국 중앙정보국(CIA: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등 기타 수십개에 이르는 정보기관이 서로 격전을 벌이면서 베를린에서 베이루트로, 마카오에서 멕시코시티로 암약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서방측의 신문기자가 간첩용의자로 기소되었다. 본에서는 간첩의 손이 내각에까지 뻗어 수상이 실각한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경찰위성이 서로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지구상의 어떤 미세한 점도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는다. 스파이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에 와서 스파이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고조되어 사립탐정이나 형사, 카우보이를 제쳐놓고 스파이가 세상 사람들의 상상력을 지배하게 되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볼 가치가 잇다. 누구나 주목하는 되는 것은 이러한 전설상의 인물들과 스파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형사나 카우보이는 오로지 권총이나 맨주먹에 의존하고 있는 것에 반해 소설 속의 스파이는 전자공학을 이용한 도청기, 컴퓨터, 적외선 카메라, 하늘을 나고 물 속을 달리는 차, 헬리콥터, 1인승 잠수함, 살인광선 등등 온갖 최신의 아주 색다른 기술로 만든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스파이가 각광을 받게 된 데에는 좀더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카우보이, 형사, 사립탐정, 모험가, 탐험가 등 서적이나 영화에서 낯익은 전통적인 영웅들은 목장이나 돈을 원하고 악당을 잡거나 여자를 차지하려고 했다. 즉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의 대상물을 추구했다. 그러나 스파이는 그렇지 않다. 스파이의 주요임무는 정보이다. 정보는 세계에서 가장 급성장하고 가장 중요한 사업일 것이다. 스파이는 오늘날 정보영역을 휩쓸고 있는 새로운 혁명의 살아 있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의 저장고 정보폭탄이라는 또 하나의 폭탄이 현대사회의 한가운데에서 폭발하고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미지의 파편이 소나기처럼 퍼부어 우리는 이제까지의 인식방법이나 행동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도록 되어 있다.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의 정보체계로의 전환기를 맞아 우리 자신의 정신구조가 변혁되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머릿속에 현실에 대응하는 정신적 모형을 만들고 있다. 즉 이미지의 창고이다. 이미지 속에는 시각적.청각적인 것도 있고 또 촉각적인 것도 있다. 또 '지각'에 의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곁눈질로 얼핏 쳐다본 푸른 하늘과 같이 주위의 상황에 관한 것도 있다. 또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두 단어와 같이 상호의 관련에 나타나는 것도 있다. 단순한 것이 있는 한편 복잡하고 개념적인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인플레이션은 임금상승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이미지의 총체가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함으로써 이것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조직망 속에 우리의 위치를 정립시켜 준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디서나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형성되는지는 모르지만 이미지는 주위에서 보내오는 신호나 정보에서 형성된다. 직장, 가정, 교회, 학교, 정치적인 타협 등이 제3의 물결의 충격을 감지하고 주위의 상황변화에 따라 동요되면 우리를 둘러싼 정보의 바다도 또한 변화한다. 대중매체가 출현하기 이전의 일을 고찰해 보자. 제1의 물결시대의 아이들은 변화가 느린 마을에서 성장하면서 자그만한 정보원이 전해주는 이미지에 의해서 거기에 대응하는 현실의 모형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정보원은 학교의 교사, 목사, 촌장이나 관리, 특히 가족이라는 범위에 머물러 있었다. 미래 심리학자 허버트 거조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동네 사람 외에 갖가지 분야의 사람들이나 여러 외국인과 접할 기회를 주는 라디오나 텔레비젼전이 없었다... 외국의 도시를 구경한 일이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본보기로 보일 사람들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린 경혐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본보기로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더욱 좁았다.' 그러므로 마을의 아이들이 품는 세계관은 극히 좁은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받는 메시지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서 매우 중복되어 있었다. 첫째로 중단과 반복이 가득 찬 일상적인 연설의 형태로 그러한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그것에 관한 고정관념같은 것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면 '하지 말라'라는 같은 말을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은 국가나 가족에게서 이미 수십번씩이나 들어온 말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공동체의 일치된 의견에 따르고 순응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뇌리에 작용하는 이미지와 행동의 범위는 더욱 더 한정된 것이 되었다. 그런데 제2의 물결시대가 되자 사람들이 뇌리에 그리는 현실상의 실마리가 되는 회로가 무수히 증가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자연이나 주위사람들뿐 아니라 대량의 발행부수를 가진 신문, 잡지, 라디오, 그리고 나중엔 TV에서 많은 이미지를 알게 되었다. 대체로 교회나 국가, 가정, 학교는 여전히 같은 소리를 반복하면서 서로를 보강했다. 그러나 이제 대중매체가 거대한 확성기가 된 것이다. 대중매체는 지역, 민족, 부족, 언어의 경계선을 넘어 그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사회구조를 형성하고 표준화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가 매우 광범위하게 대중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갖가지의 이미지를 정착시켰다. 물결치는 붉은 깃발 아래 의기양양하게 턱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레닌의 여상은 십자가의 예수상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우상으로 되었다. 중산모자에 지팡이를 든 채플린, 혹은 뉘른베르크에서 열광하는 히틀러의 이미지, 부헨 발트 강제수용소의 장작처럼 쌓여있는 인간의 시체, 처칠의 V사인, 검은 망토의 루스벨트, 바람에 펄럭이는 마릴린 몬로의 스커트, 그 외의 수많은 대중매체 스타들의 이미지, 또 세계적으로 알려진 수많은 상품, 이를테면 미국의 아이보리 비누, 일본의 모리나가 초콜릿, 프랑스의 청량음료 페리에, 이런 것들은 모두 세계적인 이미지 목록에 오른 전형적인 항목이 되었다. 대중매체가 이러한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대중의 마음에 심어주는 데에 기여한 결과, 산업사회의 생산체제가 요구하는 표준화된 행동을 만들게 되었다. 우리 내부에서 이미지가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이미지가 한층 일시적인 것이 되어 간다는 사실도 의미한다. 1회용 예술, 1회용 연속 코미디, 즉석에서 인화할 수 있는 플라로이드 사진, 복사, 쓰고 버리는 인쇄미술, 이러한 것들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져 간다. 갖가지 관념, 신조, 태도 등이 의식 속에 힘차게 나타났다가 도전을 받았는가 싶을면 즉시 저항에 부딪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과학이나 심리학에 관한 이론은 매일처럼 뒤바뀐다. 이데올로기는 붕괴된다. 몇사람의 저명인사들이 우리의 의식속에 한순간 맴돌다가 사라져 버린다. 정치나 도덕의 서로 모순되는 슬로건이 우리를 공박해 온다. 주마등처럼 어지럽게 우리의 마음 속을 왕래하느 일련의 환상들이 어떤 의미를 지닜고 또 이미지의 형성과정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제3의 물결이 정보의 흐름을 가속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활동을 좌우하는 정보의 구조 그 자체를 변혁시키기 때문이다. 탈대중화 매체 대중매체는 제2의 물결시대를 통하여 시종일관 성장을 계속하여 강력한 힘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3의 물결이 산더미처럼 밀려와서 대중매체는 급속히 그 영향력이 약화되어 당자 대부부의 전선에서 철수를 강요당하고 있다. 이를 대신하여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 여기서 말하는 '탈대중화 매체'이다. 구체적인 예로서 먼저 신문을 들어보자. 제2의 물결에서 대중매체의 최고참인 신문은 이제 그 독자를 잃고 있다. 그러나 1973 년에 미국의 신문 총 발행부수는 하루 6300 만부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1973 년 이래 발행부수는 늘기는커녕 감소되기 시작했다. 1978 년에는 6200 만부로 떨어지고 그 뒤에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일간지의 구독자도 1972 년의 69 퍼센트에서 1977 년에는 62 퍼센트로 감소되어 미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몇몇 신문이 심한 타격을 받았다. 뉴욕에서는 1970 년부터 1976 년 사이에 3 대 일간지가 합계 55 만의 독자를 잃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973 년을 정점으로 발행부수가 줄기 시작하여 1976 년까지 8 만명의 독자를 잃었다. 필라델피아의 2 대 신문독자는 15 만명, 클리블랜드의 2 대신문 독자는 9 만명, 샌프란시스코의 2 대 신문독자는 8 만명 이상이나 모두 감소되고 있다. 한편 수많은 작은 신문이 출현하여 그때까지 미국의 주요일간지로 알려졌던 '클리블랜드 뉴스', '하트포드 타임스', '디트로이트 타임스', '롱 아일랜드 프레스'는 모두 주류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와같은 경향은 영국에서도 볼 수 있다. 1965 년부터 1975 년 사이에 전국지의 총 발행부수는 8 퍼센트가 감소되고 있다. 이같은 신문의 퇴조가 순전히 TV의 등장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최근에 일단의 소량부수 발행 주간지, 격주간지 그리고 '쇼핑정보'라는 것 등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도시의 대량시장을 상대로 하는 것을 피하고 특정한 지역주민이나 공동페를 위해 자상한 광고나 뉴스를 제공해 준다. 오늘의 대중 일간지는 이러한 간행물들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대도시 중심의 대중일간지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탈대중화 매체들이 기만하게 움직이며 대중매체의 뒤를 바짝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대중잡지를 살펴보자. 1950 년대 중반 이래 미국에서는 연례 행사처럼 대중잡지가 폐간되고 있었다. '라이프', '루크',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이들은 모두 폐간되는 처지가 되었고 그 뒤 복간되었다 해도 발행부수는 전보다도 훨씬 적어졌다. 1970 년부터 1977 년 사이에 미국의 인구는 1400 만명이 늘었으나 같은 기간 중 25 대 잡지의 발행부수는 도합 400 만부나 감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미국에서는 미니잡지가 폭발적인 인기리에 탄생했고, 특수대상이나 특정지역을 노린 수천가지의 새로운 잡지가 등장했다. 파일럿이나 항공기 팬은 그들을 상대로 하는 수십종의 정기간행물 중에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틴에이저,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 퇴직자, 여성 스포츠 선수, 골동품 카메라 수집가, 테니스광, 스키어, 스케이트보드 애호가 등은 모두 자기들의 전문지를 가지고 있다. 또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 '뉴욕', '뉴웨스트', 달라스의 'D', '피츠버거'와 같은 지방지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 지방지 중에서도 특정대상을 위한 이를테면 '켄터키 비즈니스 레저'라든가 '웨스턴 파머'와 같은 전문지가 탄생하여 더욱 더 시자을 세분화하고 있다. 오늘날 모든 단체, 공동체, 정치단체, 종교집단들이 각기의 인쇄기를 사용하여 스스로 출판물을 인쇄하고 있다. 소규모 집단들도 복사기로 정기간행물을 차례로 발행하고 있고 이러한 복사기는 미국의 사무실이라면 어디에나 설치되어 있다. 대중잡지는 국민생활에서 차지했던 강력한 영향력을 잃었다. 탈대중화 잡지, 즉 미니잡지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제3의 물결이 준 충격은 인쇄매체에 그치지 않는다. 1950 년부터 1970 년 사이에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 수는 2336개에서 5359개로 늘었다. 인구는 35 퍼센트가 증가하는 동안에 라디오 방송국은 129 퍼센트가 증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인 6 만 5000 명 당 방송국 하나이던 것이 3 만 8000 명당 1개소로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또한 청취자들의 프로글맹 선택범위가 그 만큼 넓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청취자들은 여러 방송국에 분산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성도 크게 제고되어 여러 방송국들이 종전처럼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하지 않고 전문화된 청취자 그룹을 대상으로 방송하게 되었다. 교육정도가 높은 중산층에 대해서는 뉴스 전문국이 생겼다. 다양성을 지향하는 청소년층에 대해서는 하드 록, 소프트 록, 펑크 록, 컨트리 록, 포크 록 등 각각 전문국이 있다. 흑인을 상대로 한 솔 뮤직 방송국, 고소득층을 상대로 한 클래식 음악 방송국, 뉴 잉글랜드의 포르투갈인을 비롯하여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일본인과 같은 미국내의 여러 민족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어 방송국도 출현했다. 정치평론가 리처드 리보즈는 이렇게 쓰고 있다. '로드 아일랜드 주 뉴포트시에서 라디오의 AM방송 다이얼을 돌렸더니 38개국의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3개국은 종교방송국이며 2개국은 흑인을 사대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고, 1개국은 포르투갈어로 방송하고 있었다.' 또 음성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여 특수한 방송국으로 흐른 나머지 대중청취자들마저 잠식해 간다. 1960 년대에는 소형의 값싼 테이프 레코더나 카세트 플레이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10 대 청소년들은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60 년대에 비해 일반적으로 예상된 것과는 반대로 감소하고 있다. 라디오의 평균 청취시간은 1967 년의 하루 4.8시간에서 1977 년에는 2.8시간으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시민 밴드 라디오(citizens band radio. 약칭 CB라디오)이다. 이것은 미국의 일반시민에게 공개되어 있는 주파수를 이용하여 교신할 수 있는 워키토키와 같은 라디오이다. 종래의 라디오 방송이 일방통행인데 비해(청취자는 프로그램을 보내는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다) 자동차에 장치된 CB라디오는 5--15 마일의 범위내에서 서로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1959 년부터 1974 년 사이에 미국에서 CB라디오는 불과 1백만 대밖에 사용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2백만 대가 되는 데에 8개월, 다시 3백만 대가 되는 데에는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워싱턴의 연방통신위원회도 놀라고 있다. CB라디오는 마치 로켓 분사와 같은 기세로 보급되었다. 1977 년에는 거의 2500 만대 사용되고 '경찰관이 과속차량을 단속하고 있으니 조심하라.'든가 기도, 매춘부의 호객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다양한 공중전화가 하늘을 메우게 되었다. 지금은 한차례 유행이 지나갔지만 그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라디오 방송회사는 광고수입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CB라디오 때문에 정취자가 줄지는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광고회사들은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마스켈러 광고회사가 뉴욕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CB라디오 사용자 중에서 45 퍼센트가 카 라디오 방송을 10-15 퍼센트밖에 듣지 않게 되었다고 대답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CB라디오 사용자의 반수 이상이 라디오와 CB라디오의 둘을 동시에 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신문, 잡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화 현상은 라디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출판계와 마찬가지로 음성분야에서도 탈대중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2의 물결매체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놀란운 타격을 받은 것은 1977 년 이후의 일이다. 우리 세대에 있어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많은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매체는 말할 나위도 없이 TV였다. 그런데 1977 년에 이르러 브라운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장이다. 방송이나 광고업계의 간부들은 초조해하면서 통계를 들여다 보았다. 그들이 본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역사상 처음으로 TV 시청률이 떨어진 것이다.'라고 '타임'지는 쓰고 있다. '전에는 TV 시청자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어느 광고인도 한탄했다. 지금도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TV프로그램이 옛날에 비해 시시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형태의 프로그램이 너무나 많다고도 말한다. TV 방송사 사장들이 몇번이고 바뀌었다. 새로운 형태의 쇼를 방영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TV광고의 구름으로부터 보다 깊은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TV의 네트워크가 대중의 의미지를 집중관리하여 전능을 과시하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이다. NBC의 전 사장은 미국 3 대 네트워크이 어리석은 시청률 경쟁을 비난하고 1980 년대 말에는 3사의 고든 아워 시청률이 50 퍼센트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왜냐하면 제3의 물결의 새로운 전달매체가 진출하여 이제까지 방송계의 전선에 군림하고 있던 제2의 물결매체의 지배를 각 방면에서 전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유선TV는 오늘날 이미 미국의 1450 만 세대에 보급되고 있고 1980 년대 초기에는 허리케인과 같은 기세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전문가의 예측에 따르면 1981 년 말까지 2000 만내에서 2600 만의 가입자가 예측되어, 미국 전세대의 50 퍼센트에 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동선의 동축 케이블을 대신하여 머리칼과 같은 가느다란 섬유를 통하여 광파를 보내는 값싼 광섬유 시스템이 채택되면 사태는 더욱 급속히 진전될 것이다. 간편한 인쇄기나 제록스와 마찬가지로 유선TV는 일반시청자를 탈대중화하여 대중을 다수의 소규모 집단으로 분할할 것이다. 더욱이 유선 시스템에 의해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고, 가입자는 프로그램을 시청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여러가지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일본에서는 1980 년대 초에 전국 도시가 광파통신 케이블로 연결되어 다이얼만 돌리면 각종 프로그램으로부터 사진, 데이터, 극장의 예약상황, 신문이나 잡지기사에 이르기까지 가정의 TV수상기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도난방지, 화재예방의 자동경보기도 이 시스템으로 운영하게 될 것이다. 오사카 교외의 주택지, 나라현 이고마시에서 필자는 '하이 오비스(Hi Ovis)' 시스템이라는 실험적인 TV프로그램에 출현한 일이 있다. 그것은 섬유 케이블을 사용한 양방향의 영상정보 시스템으로 가입자의 가정에 TV수상기와 함께 마이크로폰 카메라를 장치하고 시청자가 동시에 정보를 보내는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회자로부터 인터뷰를 받고 있을 때 자기집 거실에서 이것을 시청하던 사카모토라는 부인이 프로에 참가하여 서툴기는 했지만 영어로 부담없이 우리들의 대황에 가담했다. 화면에는 그녀의 모습이 비치더니 아네게 환영한다는 인사를 하는 동안, 방안을 작은 사내아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보였다. 이 유선 TV는 음악, 요리, 교육 등 온갖 테마의 비디오 카세트를 갖추어 놓고 코드 넘버를 누르기만 하면 컴퓨터가 작동하여 보고 싶은 것을 아무 때고 가정의 수상기에 상영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세대는 약 160세대에 지나지 않지만 '하이 오비스'의 실험은 일본 정부의 보조와 후지쓰, 스미토모사, 마쓰시타사, 긴데쓰와 같은 기업에서 출자를 받고 있다. 이 시도는 매우 첨단적인 것으로 이미 광섬유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이보다 1주일 전에 필자는 오하이오주의 컬럼버스시에서 워너 케이블 회사가 경영하는 '큐브(Qube)' 시스템을 견학했다. 이것은 가입자에게 30회선의 TV채널을 통해(정규방송국은 4국밖에 없지만) 취학 전의 아동으로 부터 의사, 변호사 등 특수대상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고, 그 중에는 '성인상대의 프로그램'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큐브'는 세계에서 가장 잘 개발되고 상업성이 높은 송수신 겸용 시스템이다. 가입자에게는 작은 계산기와 비슷한 어댑터가 제공되고 있어 푸쉬 버튼으로 방송국과 교신한다. 핫라인(hot-line)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직통 버튼으로 '큐브'의 스튜디오를 불러내어 그 컴퓨터와 교신이 가능하다. '타임'지는 이 시스템을 흥분해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가입자는 자기 고장 정치토론에서 자기 의견을 표명할 수도 있으며 불필요해진 가정용품의 창고 세일(garage sale)을 열 수도 있고 자선경매에서 예술품을 입찰할 수도 있다.정치가에 대한 질문, 지방의 신인 탈렌트의 인기투표에도 누구나 버튼 하나로 참가할 수 있다소비자는 각 슈퍼마켓의 상품종류, 품질, 값을 비교하여 쇼핑할 수도 있고 동양식 레스토랑의 테이블을 예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전국 네트워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유선TV만은 아니다. 최근에 비디오 게임이 가장 인기있는 상품이 되고 있다. 수백만의 미국인이 TV화면을 탁구대나 하키장 또는 테니스 코트로 만들어 주는 이 장치에 열중하고 있다. 정통적인 정치학자, 사회학자에게는 이같은 사태 발전이 하찮거나 관련성이 없는 현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가까운 장래의, 말하자면 전자공학에 에워싸인 생활환경에 적을하기 위한 사전훈련 내지는 사회학습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커다란 파도가 벌써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디오 게임은 일반시청자를 더욱 더 탈대중화시켜 일정시간대의 TV방송 프로그램으이 시청자 수를 잠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는 얼핏 보기에는 별로 해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장치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TV로 놀고, 거기에 말을 하고, 교신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수동적인 수신자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송신자로 변하고 있다. 이제까지 TV에 조종당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TV를 조종하는 쪽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현재, TV화면을 통하여 제공되는 정보 서비스가 이미 실용화되고 있고, TV수상기에 어댑터를 장치하면 버튼 하나로 뉴스, 일기예보, 금융정보, 스포츠의 결과 등 10여가지 자료 서비스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자동적으로 활자가 쳐서 나오는 수신 테이프와 같이 TV화면에 차례로 나타난다. 오래지 않아 이용자들은 TV화면의 어떤 데이터나 영상이라도 기록에 남기고 싶으면 용지에 복사할 수 있게 될 거서이다. 정보 서비스라는 면에서도 전에 없던 새로운 변화를 앞에 놓고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디오 카세트의 재생기나 녹화기도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1 년까지 1백만 대의 보급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것에 의해서 월요일의 축구경기를 녹화해 두었다가 토요일에 재싱해서 볼 수 있고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영상의 동시성을 파괴하게 된다.) 영화나 스포츠 경기의 녹화 테이프의 판매를 가능케 해 준다. (아랍인들도 매력적인 것에는 무관심하지 않다. 이를테면 모하메드의 생애를 그린 영화 '메신저: The Messenger'를 아라비어어의 금박 글자로 장식한 카세트 케이스에 담겨져 팔리고 있다.) 또한 비디오 레코더와 프레이어는 예컨대 의사나 간호원용 의학교재라든가 소비자를 위한 조립식 기구의 조립방법이라든가, 토스터가 부서졌을 경우의 수리법을 보여주는 테이프를 포함한 고도로 전문화된 카트리지의 시판을 가능케 해 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디오 녹화기를 갖게 되면 소비자가 스스로 영상제작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도 시청자의 탈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끝으로 국내방송위성에 관하여 언급해 두자. TV방송국은 인공위성을 통해 기존 방송망을 빼돌리고서도 약간의 경비만 들이면 어디에나 자유로이 전파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개별 프로그램을 공급하기 위한 일시적인 미니 방송망이 가능하게 된다. 1980 년대 말에는 인공위성에서 전파를 발신하는 유선TV 지상국이 1천국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방송 프로그램 공급처가 국내방송위성의 사용료만 지불하면 즉석에서 전국적인 유선TV 방송망을 이용할 수 있다^5,5,5^. 어떤 시스탬의 그룹에 대해서도 프로를 선택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라고 잡지 '텔레비젼, 라디오 시대'는 쓰고 있다. 영 앤드 루비캄 광고회사 전자매체담당 부서장인 윌리엄 J. 도넬리는 '국내방송위성은 시청자의 세분화와 전국적 프로그램의 다양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 대중매체에 있어서의 갖가지 진보, 발전에 관하여 서술했는데 여기에는 하나의 공통된 현상이 있다. 즉 이러한 변화는 불특정다수의 텔레비젼 시청자를 세분화하고 문화의 다양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오늘날까지 완전히 우리의 이미지를 지배해 온 TV방송망의 세력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의 풍부한 통찰력을 지닌 칼럼니스트 존 오코너는 '하나만은 확실한 사실이 있다. 이제 상업TV는 프로그램 내용이나 방송시간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도 사실은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고 이러한 변화가 하나의 커다란 파도가 되어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잡지나 TV에 이르는 방대한 매체의 지평선을 석권하고 있다. 대중매체는 지금 공격을 받고 있다. 새롭고 세분화도니 매체가 크게 늘어나 제2의 물결사회 전체를 완전히 지배하던 대중매체에 도전하고 때로는 이를 대체하고 있다. 제3의 물결은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시대, 탈대중화 맻체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새로운 '정보영역'이 새 '기술영역'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이 '정보영역'은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 즉 우리 두뇌 속의 영역까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 변화들이 일체가 되어 우리의 세계에 관한 인식능력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순간영상문화(Blip Culture) 매체가 탈대중화함과 동시에 우리의 정신은 세분화된다. 제2의 물결시대에는 대중매체가 표준화된 이미지를 쉬지 않고 우리에게 쏟아 넣어 비평가가 말하는 대중심리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에는 대중이 모두 같은 메시지를 받는 일이 없어지고 대신에 더 소규모의 그룹으로 세분화된 사람들이 자기들이 만들어 낸 엄청난 양의 이미지를 서로 교환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제3의 물결의 특색인 다양화로 이행함에 따라 새로운 매체도 이러한 과정을 반영하고 더욱 그것을 촉진한다. 이는 괌 뮤직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대하여 국민의 의견이 분열되고 일치점을 찾아내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배경설명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여론의 일치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은 없어지게 되었다.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는 갖가지 모순되고 서로 관련이 없는 단편적인 이미지군에 의해서 포위되고 전격적인 공격을 받아 이제까지 품어 오던 낡은 사고방식이 뒤흔들리고 있다. 이미지의 단편은 레이더의 스크린 위에 물체의 위치를 나타내는 발광범과 같이 명멸하는 그림자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방사된다. 사실 우리는 '순간영상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평론가 제프리 울프는 '소설이 다루는 분야는 더욱 더 좁아져서 미세한 테마에 파고들어 간다.'라고 한탄하고 소설가는 '점점 더 웅대한 구상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다니엘 라스킨은 '국민연감(The People's Almanac)'이나 '무엇이나 빨리 안다(The Book of Lists)'는 종류의 대단히 인기를 얻고 있는 안내서를 비평하면서 논픽션의 분야에서도 '힘을 들인 종합적인 생각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을 대신하는 것으로서 특히 재미있을 듯한 단편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미지가 순간영상으로 붕괴되는 것은 서적이나 문학의 범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신문이나 전자공학을 이용한 매체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단편화된 일시적인 이미지들이 지배하는 이런 종류의 새로운 형태의 문화에서 제2의 물결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제3의 물결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확대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고루한 윤리와 과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확신을 갈망하는 제2의 물결의 사람들은 이같은 정보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고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 그들은 1930 년대의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1940 년대의 영화를 그리워한다. 또 새로운 매체가 속출하는 환경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들리는 것의 거의 전부가 험악하고 기분 나쁜 것인 데다가 정보가 전달되는 방법 자체가 숙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속성을 가지고 서로 관련되고 유기적, 종합적으로 서로 관련을 갖는 일련의 관념을 전달받는 대신에 지금까지의 우리의 정신구조에는 잘 맞지 않고 광고, 명령, 이론, 단편적 뉴스, 불완전한 단편조각 등 짧고 틀에 박힌 정보의 순간영상들에 더욱 더 노출되고 있다. 또 이들 새 이미지는 분류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 까닭은 낡은 개념적인 범주를 벗어난 것인데다가 그 전달방식이 너무나 기묘한 모양으로 소개되고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려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의 사람들은 순간영상문화의 소용돌이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새 매체에 대하여 마음 속으로 분노를 느끼고 있다. 제3의 물결의 사람들은 이와 대조적이다. 30초의 상업광고로 분단되는 90초의 단편적 뉴스, 단편적인 노래나 가사, 신문표제, 풍자만화, 콜라주(collage: 신문이나 광고조각 따위를 맞추어 선이나 색을 나타내는 추상적 구상법) 짤막한 시사해설, 컴퓨터로 찍혀 나오는 순간정보의 집중포격을 받아도 끄떡없이 태연하다. 탐욕스런 독자들은 페이퍼백이나 특수한 전문지를 탐독하고 막대한 양의 정보를 재빨리 삼켜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이나 비유에 의해서 다량의 순간영상들을 솜씨있게 유기적인 전체상으로 종합한다. 그들은 제2의 물결의 규격화된 범주나 구조 속에서 새로운 최소단위의 자료를 맞추려 하지 않고 그들 독자적인 테두리를 만들어 새로운 매체가 내뿜는 순간영상 자료를 스스로 종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현재 우리의 정신에서 요구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성의 현실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상을 창조하고 재창조해 나가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노력은 보다 뛰어나 개성 즉 문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의 다양화와 관계되는 것이다. 새로운 압력에 눌려 지쳐 버리거나 아니면 무관심이나 분노 속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로는 훌륭하게 형성되고 항상 성장을 계속하는 유능한 인재로서 보다 높은 수준에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경우나 긴장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제2의 물결시대의 사회학자나 공상과학소설가들이 예견한 획일적이고 표준화되고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로봇과는 전혀 다른 인간상이다.) 문명의 탈대중화 현상은 매체의 변화가 반영되기도 하고, 동시에 또 매체가 그 경향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탈대중화야말로 우리가 서로 교환하는 정보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현대사회는 차츰 '정보화사회'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같은 정보량의 증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명의 다양화가 진행되고 기술이나 에너지의 형태,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차별화하면 할수록^36,36^특히 고도의 변화에 수반되는 긴장하에서 그 전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도 또한 이 격심한 변화에 대응하여 문명을 구성하는 각 요소의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어야 한다. 특히 격심한 변화에 직면해 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한 가지 조직을 예로 들면 그 조직이 분별있는 행동을 하려고 할 경우에는 다른 조직이 어떻게 변화에 대처하고 있는가를 다소나마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에 대해서도 같다. 우리가 획일적일 경우는 상대의 행동을 미리 알기 위해 서로를 알 필요성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반대로 우리 주위 사라들의 보다 개성화되고 다양화되면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고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개략적 이나마 예측해 두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예측을 하지 않고는 행동을 일으킬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도, 조직도 끊임없이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게 되고 전체 체제는 더욱 더 활발한 자료의 흐름으로 고동치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사회체제의 결속을 위해 필요한 대량의 정보와 정보교환의 신속화에 제2의 물결의 정보체계는 이제 대처하지 못하고 그 압력에 짓눌릴 처지에 있다. 제3의 물결은 이 시대에 낙후된 구조를 타파하고 이에 대신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제14장 지적 정보가 가득 찬 환경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체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고 암석이나 대지와 같이 얼핏 생명이 없어 보이는 것에도 생명력이 숨겨져 있다고 예전의 여러 민족들은 믿고 있다. 현재에도 이런 민족이 조금은 남아 있다. 마나(mana)라고 불리던 것이 그것이다. 미국 인디언의 수우족은 그것을 와칸(wakan)이라 불렀고 알곤키안족은 마니토우(masitou)라 했으며 이러쿼이족은 오렌다 (orenda)라고 했다. 인디언들은 주위의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제3의 물결문명에 어울리는 새로운 정보체계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자기 주위에 있는 '생명이 없는 환경'에게 생명대신 지적 정보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 혁명적 발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컴퓨터이다. 전자적인 기억을 조립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는 1950 년대 초기에는 과학적 호기심의 대상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1955 년에서 65 년까지 10 년 동안 제3의 물결이 미국에 출현함에 따라 컴퓨터는 서서히 산업계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당초 컴퓨터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용량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주로 경리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그 얼마 후 용량이 큰 컴퓨터가 기업체 본사에 설치되어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다. 경영진단을 업으로 하는 부즈 알렌 & 해밀턴회사의 부사장 하베이 포펠은 이렇게 말한다. "965 년에서 77 년까지 우리는 대형 컴퓨터 시대에 살고 있었다. 컴퓨터는 기계시대의 사고방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인류최고의 걸작이었다. 최고급의 대형 컴퓨터는 마치 방공호가 같은 본사 지하실 수백 피트나 되는 곳에 설치하고 방부처리된 무균상태 속에서 일단의 우수한 기술자의 손에 의해 조작되고 있었다." 이 중앙집권화된 거인들은 매우 인상저이었으므로 어느덧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 인간사회의 미래상을 알려고 할 때는 반드시 컴퓨터가 등장하게 되었다. 영화제작자, 만화가, 공상과학소설가 등의 사람들이 미래를 상징하는 도구로 컴퓨터를 이용했지만 그들이 묘사하는 것은 언제나 정해 있었다. 전지전능, 즉 초인간적 지능을 집중적으로 구비한 거대한 존재라는 것이 그들이 묘사한 컴퓨터상이다. 그러나 70 년대로 접어 들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픽션은 사실에게 뒤지고 말았다. 작가들이 묘사했던 낡은 이미지는 뒤로 처지고 만 것이다. 소형화가 급속하게 진척되었고 용량이 급증하고 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싸고 성능이 좋은 소형 컴퓨터가 도처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공장, 실험실, 판매점, 그리고 생산부서마다 자기 전용의 컴퓨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너무나도 많은 컴퓨터를 도입했기 때문에 회사내에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의 수를 파악 못하는 회사가 나타날 정도였다. 이리하여 '두뇌활동'을 하는 컴퓨터는 이제 어떤 특정한 장소에 집중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어디라도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컴퓨터에 의한 정보처리는 현재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데이터 분산 처리장치(distibuted data processing)', 즉 'DDP'의 미국내에서의 매상은 1977 년에 3억 달러에 달했다. 컴퓨터 관계의 시장조사를 행하는 유명한 회사인 인터내셔날 데이터 코퍼레이션의 조사에 의하면 매상액이 1982 년에는 틀림없이 3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별교육을 받은 전문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값싼 소형 컴퓨터를 타자기처럼 어디에서나 보게 될 날도 멀지 않다. 모든 작업환경을 '현대화'하고 있다. 컴퓨터는 기업체나 공공기관 외의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간편한 기계화로 계속 보급되고 잇디. 가정용 컴퓨터까지 태어났다. 5 년 전만 해도 가정용 및 개인용 컴퓨터의 수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미국 안의 거실, 부엌, 서재 등에서 30 만 대의 컴퓨터가 사용되고 잇다고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IBM이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의 대기업들이 판매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전의 숫자이다. 가정용 컴퓨터는 언젠가는 TV수상기와 같을 정도로 팔리게 될 것이다. 가정용 컴퓨터는 이미 세금을 계산하거나 가정의 에너지 소비량을 점검하고, 게임에 사용되고, 조리법을 기억했다가 그것을 지시해 주기도 하고 약속한 시간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 가정내의 모든 일에 활용되고 있으며 성능 좋은 타자기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컴퓨터가 갖고 있는 능력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텔리컴퓨팅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라는 회사는 컴퓨터를 사용해서 '더 소스(The Source)'라는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서는 적은 요금을 받으면 UPI 통신 기사를 보내주고 방대한 양의 증권 및 상품시장 데이터 등을 컴퓨터의 화면에서 볼 수 있다. 어린이에게는 산수, 국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의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할인판매상점의 회원으로 컴퓨터에 등록된다. 호텔에 예약을 하거나 관광예약 등 여러가지 업무를 대행해 준다. '더 소스'는 또 소형 컴퓨터를 갖고 있는 가정끼리 서로 통신을 하는 기능을 가능케 했다. 마음만 먹으면 몇천 킬로미터나 멀리 있는 친구와 컴퓨터를 사용해서 브릿지나 체스, 주사위놀이 등을 즐길 수도 있다. 이용자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단번에 여러 사람에게 정보를 보낼 수도 있고 또 모든 통신을 컴퓨터에게 기억시켜 둘 수도 있다. '더 소스'는 이렇게 해서 컴퓨터로 연결된 '전자공동체'라 불리는 공통의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집단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더 소스'에 가입해서 컴퓨터로 연결된 10여개 도시의 사진애호가들이 카메라, 부속품, 암시기술, 조명, 컬러필름 등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또 상대방의 코멘트 내용을 몇개월 후에라도 주제별, 날짜별, 범주별로 재생하여 이용할 수 도 있게 되었다. 컴퓨터를 가정으로 보급시킴으로써 다양한 네트워그에 연결되어 그들 간에 상호 연락할 수 있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지적 생활을 크게 도와주는 구실을 했다. 또 컴퓨터가 하는 일은 그것뿐이 아니다. 컴퓨터 정보의 보급은 마이크로프로세서나 마이크로컴퓨터의 개발과 더불어 더욱 높은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정보을 응축시킨 작은 칩들이 인간이 만들어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들의 부품으로 이용되게 될 것이다. 마이크로컴퓨터는 기업의 제조공정이나 경영면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외에 냉난방장치, 자동차, 재봉틀, 계량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에 이미 장치되고 있거나 곧 이용되려 하고 있다. 마이크로컴퓨터는 가정에서의 에너지 소비량을 감시하고 사용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도 한다. 세탁기를 사용할 때 세제의 양고 수온을 조절하기도 한다. 자동차의 연료장치를 조정하기도 하고 수리가 필요할 때가 되면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시계가 부착되어 있는 라디오, 토스터(toster), 커피 끓이는 기구, 샤워 꼭지에도 사용되며 아침에 일어나면 이런 것이 모두 준비되어 있게 된다. 그 외에 차고의 난방이나 문을 잠그는 일 등, 마이크로컴퓨터가 하는 일은 중요한 일에서부터 극히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만능의 일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마이크로컴퓨터의 이용 범위가 앞으로 20--30 년 사이에 어디까지 발전할지에 관해 미국의 유명한 마이크로컴퓨터 보급자인 앨런 P. 홀드는 '우리집 프레드(Fred the House)'라는 시나리오에서 흥미있는 전망을 하고 있다. 홀드에 의하면 '가정용 컴퓨터는 현재에도 말을 하거나 통역을 하거나 하고 기타 여러가지 가정용 전기제품을 조정할 수가 있다. 검출기를 장치하고 센서라고 불리는 자동제어장치에 적당한 단어를 입력하면 보통의 전화기를 사용해서 전세계의 누구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실용화까지는 물론 여러가지 난관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틀림없다. 홀드는 이어 다음과 같은 상황을 말한다. '당신이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당신 집에 있는 컴퓨터인 프레드가 당신을 호출한 것이다. 프레드는 방금 발생한 강도사런을 전하고 있는 아침뉴스를 모니터하면서 호우가 올 것 같다는 일기예보를 찾아낸 것이다. 이 정보는 프레드가 기억하고 있는 많은 정보 중에서 지붕상태를 점검하도록 했다. 비가 샐 것 같은 장소가 발견되면 프레드는 당신에게 보고하기 전에 슬림(Slim)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한다. 슬림은 그 거리 아래쪽에 있는 농장 스타일의 집에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이다. 프레드와 슬림은 데이터 뱅크를 공유하고 있고 각기 가정내의 일에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게 탐색능력이 갖추어져 있다. 프레드의 판단을 믿고 수선을 하는 편이 좋을 것은 물론이다. 그런 다음에는 지극히 간단하다. 프레드가 지붕 수선공에게 전화를 한다^5,5,5^.' 이 공상적 이야기는 아주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앞으로 지적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잘 전해 주고 있다. 실제로 그러한 환경에서 살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컴퓨터는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 네트워크로 결합된 컴퓨터군은 우리들이 그 기능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대형 컴퓨터는 장래에 전화를 받는 일뿐만 아니라 토스터나 TV수상기를 조정하기도 하면서 우리들의 행동이나 심리를 모두 감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은 도대체 컴퓨터와 집적회로를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까? 모든 정보를 컴퓨터라는 물질적 환경 속에 끝도 없이 지능을 쏟아붓다가 결국 우리들 자신의 정신이 퇴화하는 것이 아닐까? 또, 만일에 어떤 삶이 또는 어떤 것이 컴퓨터의 플러그를 벽에서 빼 버리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 컴퓨터가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하게 된다면 우리 인간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게 될 것인가? 이러한 여러가지의 의문에 대해 정반대의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컴퓨터는 정말 토스터나 TV수상기, 모든 자동차 엔진과 부엌용품을 감시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지능이 환경 전체에 걸쳐 분산되고 이용자들이 수천군데에서 동시에 이를 가동시켜도 컴퓨터는 여전히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가? 컴퓨터 이용자가 중앙의 컴퓨터를 경유하지 않고 서로 교신하고 있는 경우에도(이것이 보통의 형태이다.) 중앙의 컴퓨터에 지배력이 남아 있는 것일까? 사실상 정보의 분산은 전체주의적인 국가권력을 강화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힘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가 정부를 속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약삭빠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존 부르너의 소설 '충격파를 타는 사나이(The Shockwave Rider)'는 복잡한 줄거리의 훌륭한 작품이지만 주인공이 컴퓨터의 네트워크를 사용해서 사상통제를 가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연 인간의 정신은 퇴화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일까? 지적 정보가 가득찬 환경이 조성되면 사실은 완전히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우리의 명령에 따르는 기계를 개발하는데 데 대해 인간에게 해를 주지 않는 것을 만들 수는 없을까? 확실한 대답은 나와 있지 않다. 또한 이런 문제점드를 무시하는 거도 무책임한 노릇이긴 하지만,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인간에게는 불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소박한 사고방식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지성과 상상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 믿는 것도 가지가지겠지만 우리들은 현재의 정보영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들은 제2의 물결시대의 획일적인 정보전달수단을 다양호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험 위에 완전히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첨가하고 잇는 것이다. 제3의 물결시대의 정보영역은 이제 겨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지만 이것이 대중매체, 우체국, 전화가 지배한 제2의 물결시대의 정보영역을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퇴색된 존재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두뇌의 강화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 정보영역이 결정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우리들은 문제의식을 갖는 법, 정보를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수법,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방법 등 우리들 자신의 정신활동도 동시에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읽고 쓰는 것의 역할도 다시 검토해 보고, 뇌의 화학적 반응을 변호시킬 필요마저 생기게 되었다. 홀드는 컴퓨터들과 칩을 장치한 기구들이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가능성에 대해서 논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꼭 공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 시험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음성 데이터를 처리하는 컴퓨터는 이미 1000개의 어휘를 인식하고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IBM이나 일본의 NEC와 같은 대기업 그리고 휴리틱스사나 센티그램사와 같은 작은 기업체에 이르기까지 많은 회사들이 이 어휘를 늘리고 처리기술을 단순화하고 제조원가를 대폭 떨어뜨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기계가 보통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정도의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으려면 몇 년이 더 걸리는가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20 년에서 불과 5 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비나 이러한 발전이 갖는 의미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대단히 큰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날 문맹이라는 이유 때문에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의 수는 몇백만 명이나 된다. 아무리 간단한 일자리라도 간단한 문서, 기계의 조작법, 수표, 작업순서 등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사실, 제2의 물결세계에서는 읽고 쓰기의 능력이 고용주에게서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읽고 쓰기를 못한다는 것은 머리가 나쁘다는 것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에서 일고 쓰기를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농업, 건축, 수렵,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매우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많은 문맹자들이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을 갖고 있고 수개국의 말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어학력에는 대학을 졸업한 보통의 미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상대도 안된다. 그렇더라도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문맹자는 경제적인 혜택을 못받는 운명에 있었다. 물론 문자해독이란 것은 단순한 직업적 기능보다도 앞서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굉장한 상상력과 즐거움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러나 여러가지 기계나 기구, 또는 벽까지에도 회화능력이 있도록 설정되어 있는 지적 정보가 가득 찬 환경에서는 문자해득이라는 것이 제2의 물결이 시작된 이후 300 년 동안에 비해 취직하는 데 별로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항공회사의 예약접수계, 상품진열실 요원, 기계의 운전수나 수리공들은 글을 읽지 못해도 귀로 듣는 정보에 의해서 정확하게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계가 말하는 소리가 작업의 순서나 고장난 부품의 교환방법 등을 지시해 주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결코 초인적인 존재는 아니다. 고장도 나고 잘못도 범하고 때로는 그 잘못이 너무 커서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컴퓨터는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니며 그들은 분명코 인간환경에서 '정신'이나 '영혼'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컴퓨터는 인간이 이룩한 업적 중에서 가장 멋있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산물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제2의 물결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신체적인 힘을 강화해 준 것처럼 컴퓨터는 우리들의 정신력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강화된 인간의 정신이 우리들을 궁극적으로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지 우리들 자신이 아직 모르고 있는 정도인 것이다. 우리들은 장래 지적 정보가 가득 찬 환경에 익숙해지고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와 대화하도록 배운다면 현재로서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침착성과 자연스러운 태도로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의 컴퓨터는 소수의 '우수한 태크너크래트(technocrat)'가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일이나 세계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오늘날 어떤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들은 즉시 그 원인을 규명하려 한다. 그러나 컴퓨터 이전의 인간은 통찰력이 풍부한 사상가라 해도 사물의 원인을 설명할 때는 겨우 몇가지의 인과적 요인을 가지고 규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뇌는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한 번에 두 개나 세 개 이상의 일은 처리하지 못하며 그저 생각하는 것만도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왜 청손년들은 비행을 저지르는가, 왜 경제계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가, 도시화는 주변의 하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가 등 이런 복잡한 문제와 직면하게 되면 우리들은 두세 가지 요인만을 강조하고 더욱 중요할지도 모르는 기타의 원인을 무시해 버리기 쉽다. 우리들이 무시한 여러 원인 중에는 그 중 하나만 꺼내 보아도 중요한 것이 있기도 하고 몇개를 모아 보아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있다. 더구나 전문가들은 전형적으로 '그 자체'의 원인 등이 갖는 근본적인 중요성만 부여하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배제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황폐화라는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주택문제의 전문가는 그 원인으로 주택의 밀집과 주택건설의 감소라고 밝힌다. 교통전문가는 대중교통수단의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 복지문제의 전문가는 탁아소나 사회사업관계의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환경보호론자들은 지나친 공해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범죄전문가는 경찰의 순찰횟수가 적다는 점을 거론하고, 경제전문가는 너무 높은 세율이 기업투자를 위축시키는 때문이라고 말하는 따위들이다. 그들 전문가들이 얽히고 섥혀서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수많은 원인들은 머릿속에 넣고 생각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도시의 황폐문제는 피터 리트너가 그의 저서 "공간의 사회: The Socity of Space"에서 '원인과 결과가 서로 얽힌 문제'라고 적절하게 정의한 여러 문제들 중의 한 가지에 불과하다. 리트너는 '인간이 직면하는 위기적 상황의 질이 변화하고 원인과 결과를 단순하게 결부시키는 분석이 불가능하게 되어 원인과 결과를 상호관련시킨 분석을 행하는 할 상황이 급속하게 증가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분석해 본다 해도 간단하게 그 원인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질 않는다. 각각 독립해 있으면서 상호관련이 있는 몇몇의 원인에서 발생한 수백가지나 되는 영향이 작용해서 위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여러가지 인과관계를 기억하고 그것들의 상호관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있으므로 우리가 리트너가 말한 '원이과 결과가 서로 얽힌 문제'를 해결하려면 컴퓨터는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방대한 자료를 분류하고 그 속에서 미묘한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순간영상들'은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의미를 갖는 전체상을 만들어 낸다. 일련의 가설 혹은 하나의 모델을 기초로 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통의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완전하게 밝혀 낼 수 있다. 컴퓨터는 또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 또는 자원간에 존재하는 관계를 발견해 내서 문제해결에 임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의 지능, 상상력, 직관력은 앞으로 몇십년년 쯤은 컴퓨터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해낼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문화의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밝혀 줄 것이고 우리들에게 사물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해력을 높여주거나 주변에 산재해 있는 상호간의 무관계한 정보를 종합하여 의미를 갖는 전체상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주고 있다. 컴퓨터는 순간영상문화의 해독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편, 지적 정보가 가득 차 있는 환경은 우리들의 문제를 분석하거나 정보를 조직하는 방법을 변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뇌의 화학적 구성까지도 변화시키려 한다. 데이비드 크레치, 마리언 다이어몬드, 마크 로젠츠바이크, 에드워드 베네트 등이 실험한 바에 의하면 여러가지 '혜택받은'환경에 노출된 동물이 통제된 집단의 동물들에 비해 대뇌피질이 커지고 뇌신경세포가 많고 신경세포도 커지고 신경전달물질도 더욱 활발하게 되며 뇌에 보내지는 혈액의 양도 증가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환경을 복잡하게 만들고 정보량을 증가시키면 인간은 지금보다 지능이 더 나은 존재로 될 수 있을 것인가? 신경정신병학의 세계적 권위인 뉴욕 정신병연구소의 연구실장 도널드 F. 클라인 박사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크레치의 실험은, 지능형성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 중에는 초기 환경의 풍요함과 감수성이 포함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자극이 적고 빈약하고 반응이 느린 이른바 '조건이 나쁜'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는 무슨 일에 대해서나 요행수를 바라지 않도록 배운다. 따라서 잘못을 저지를 염려가 적고 매우 조심스럽고 보수적이고 호기심이 없고 또는 아주 소극적인 성격이 되어 뇌에 자극을 줄 만할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것에 반해 복잡하고 자극이 풍부하며 재빠른 반응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는 전혀 다른 능력을 키워 나가게 된다. 어릴 때부터 주위 환경에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어린이는 부모에게 의지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자기가 숙달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 또한 호기심이나 탐구심, 상상력이 풍부하여 항상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인생과 맞설 수 있다. 이러한 자질 모두가 뇌 그 자체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가능성도 갖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현재 추측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적 정보가 풍부하게 있는 환경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신경세포 연접부를 발전시키고 대뇌피질을 확대해 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요컨대 혜택받은 환경이 우수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장에서 논술해 온 것은 새로운 정보영역이 가져다 주는 변화의 한 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정보전달 매체의 탈대중화 현상과 그것에 뒤이은 컴퓨터의 출현은 다같이 사회의 기억장치 본연의 자세를 바꾸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기억 모든 기억은 순수한 사적, 개인적인 것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사회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람들의 공유가 되지 못하는 사적인 기억은 개인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지만 사회적인 기억은 살아 남는다. 공유의 기억을 정리하고 재이용한다면 획기적인 노력이 인류의 끊임없는 진화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기억을 만들어 내고, 저장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인류 운명의 근원에 관계되는 것이 된다. 인류는 지금까지 두 번 사회적 기억에 커다란 변혁을 주었다. 오늘날 새로운 정보영역을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인류는 또 다른 제3의 변혁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최초에 인류는 공유의 기억이나 사적인 기억도 동일한 장소, 즉 개인의 머릿속에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의 연장자나 현인들이 공유의 기억을 역사, 신화, 전승, 전설 등의 형태로 간직하여 그것을 이야깃거리, 노래, 규범 등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전했던 것이다. 불을 만드는법, 새를 잡는 법, 뗏목을 만드는 법, 농사짓는 법, 농기구의 손질법, 가축의 사육법 등 집단에 전승되는 모든 경험은 인간의 뇌신경 세포 속에 저장되었다. 이러한 형태로 지속되는 한 사회적 기억의 범위는 대단히 한정되어 있었다. 연장자들의 기억력이 아무리 좋고 또 노래나 교훈 등이 아무리 기억하기 쉽게 되어 있더라도 인간의 머릿속에 넣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문명은 기억량의 증대를 저해하고 있던 장애물을 제거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제2의 물결은 읽고 쓰기의 능력을 사회전체에 보급시켜서 기록이 조직적으로 남겨지게 했다. 수많은 도서관이나 박물관이 세워지고 자료정리용의 캐비넷이 고안되었다. 요컨대 제2의 물결은 사회적인 기억을 인간의 머릿속에서 밖으로 빼내어 이를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냄으로써 종전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기억을 크게 확장해 주었다. 축적된 지식의 양이 증가함으로 해서 사회적 기억은 기술의 혁신과 사회변화의 속도를 가속화시켜 그 결과 제2의 물결문명은 종전의 그 어떤 문명보다도 가장 빨리 변화했고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들은 사회적인 기억에 관해 종래와는 다른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잇다. 매체의 철처한 탈대중화, 새로운 매체의 발명, 인공위성에 의한 지도의 작성, 전자검출기에 의한 입원환자의 진단, 기업에서의 컴퓨터를 이용한 자료의 정리 등은 우리가 문명의 여러 활동을 미세한 점까지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지구를 사회적 기억과 함께 소각해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거의 완전한 문화기록을 갖게 된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은 불과 25년 전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면밀하게 정리된 자기의 정보를 가질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제2의 물결로부터 제3의 물결로 변모해 가는 사회기억의 양상은 단순히 양적인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우리들은 자기의 기억에 생명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인 기억이 인간이 두뇌에 저장되어 있었을 때에는 그것이 계속 침식되고 재생되고 뒤섞이고 결합되고 또 새로운 방법으로 조립되고 있었다. 그러한 의미로 사회적 기억은 활발하며 다이내믹했고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기억이었다. 사회적 기억은 산업화로 진보된 제2의 물결문명에 의해 인간의 두뇌 속에서 밖으로 끌려나와 객관적인 존재가 되고, 서적, 종업원 명부, 신문, 사진, 필름 등에 간직되었다. 그러나 일단 표상이 문자화되고 필름에 촬영된 사진, 인쇄된 신문 등은 수동적이고 정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기록은 다시 인간의 두뇌에 주입되었을 경우에만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 그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거나 새로운 방법으로 조립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제2의 물결문명은 사회적인 기억을 대폭 확장하는 한편 동시에 기억을 고정시키는 작용을 했던 것이다. 제3의 물결은 정보영역으로의 도약이 미증유의 상황을 전개시켜 주고 있다. 왜냐하면 제3의 물결은 사회적인 기억을 다방면에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2의 물결시대에 상실되었던 사회적 기억에게 생명을 다시 재생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축적된 정보를 처리함으로써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낸다. 즉 컴퓨터는 사회적 기억에게 전파하는 능력을 갖게 해 주는 것과 동시에 활동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기억량의 증대와 그것이 활성화라는 두 개의 기능이 결합되는 결과 컴퓨터는 커다란 추진력이 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컴퓨터에 의해서 새롭게 확대한 기억에 활력이 주어지면 신선한 문화적 에너지가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컴퓨터는 순간영상들을 잘 정돈된 정보로 조직하고 종합하는 데에 사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한다. 도서관이나 자료가 들어 있는 캐비넷 등은 그 자체가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독자적인 발생을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컴퓨터는 '인간이 생각지도 않던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생각하는 데 소용이 된다. 컴퓨터는 지금까지의 사상이나 상상의 영역 밖에 있던 새로운 이론, 개념, 이데올로기, 예술적 감각, 기술적 진보, 경제적 및 정치적 혁신 등을 가능케 해준다. 과거 사회의 정보영역은 인간상호의 의사전달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상례였다. 제3의 물결의 정보영역은 이러한 인간들간의 전달수단을 증가시켜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상호의 정보교환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설비를 만들어 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과 그 주위의 지적 환경 상호간에 의사를 통하게 하는 설비도 탄생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한발 물러서서 대국적으로 전망한다면 정보영역의 혁명은 기술영역, 즉 사회의 에너지 영역이나 기술적 기반의 혁명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극적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새로운 문명의 건설작업은 각양각색의 국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제15장 대량생산의 저편에 있는 것 최근의 일이지만 필자는 어느날 눈이 뒤덮여 있는 록키산맥의 정상을 뒤로 하고 렌트카로 하산하고 있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고원을 가로지르자 내리막 길로 접어 들어 그 길을 따라 내려가서 간신히 이 대산맥의 동쪽 기슭에 도착했다. 밝은 하늘 밑을 달려서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도착한 나는 고속도로를 따라 낮고 길에 뻗어 있는 공장지대로 향했다. 그것은 뒤쪽의 먼 산봉우리 때문에 더욱 작게 내 눈에 비쳤다. 건물 안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나는 과거에 내가 일하던 여러 공장들을 기억해 냈다. 기계의 소음, 먼지와 매연 등과 더불어 그 당시 꾹 참고 있었던 분노마저도 마음 속에 되살아났다. 우리 부부는 육체노동을 그만둔 후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줄곧 '공장견학'을 하고 있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경우에도 명승고지이나 관광객 상대의 카바레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데만 전념했다. 공장 이상으로 인간의 문화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여전히 공장견학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가 세계에서도 가장 첨단적인 생산시설 중의 하나라는 말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공장에 들어가면 얼핏 보기만 해도 최신의 과학기술과 최첨단 정보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고 이것들이 결합되어 효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휴레 패카드(통칭 H-P)' 공장은 TV 수상기용 브라운관, 의료기구, 오실로스코프, 실험용 '논리해석기', 그리고 비전문가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각종 제품 등, 연간 1억 달러 상당의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공장에는 1700 명이 고용되어 있지만 그 40 퍼센트가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기술자, 사무원 및 관리요원이다. 그들은 천장이 높은 거대한 개방적 공간 속에서 작업하고 있다. 한쪽 벽면은 말하자면 하나의 거대한 전망창이 있어서 눈앞에 다가서는 파이크스 피크(Pikes Peak)를 그 액자 안에 넣은 것 같이 보였고, 나머지 3면의 벽은 밝은 황색과 백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엷은 색의 비닐을 깐 바닥은 병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깨끗하고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무직원에서부터 컴퓨터의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혹은 공장장에서 부터 조립공, 검사원에 이르기까지, 칸막이가 없는 개방된 장소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기계의 소음 때문에 방해가 되어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눌 필요없이 서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평상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직종도 외견상으로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종업원들은 각자의 작업대나 책상 앞에 앉아 있고 책상 뒤에는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정원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이 공장 안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생각했다. 옛날에 같이 일하던 친구들^36,36^주물공장이나 자동차공장의 일관작업 현장에서 소음과 먼지를 뒤집어 쓰며 자주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상급자에게 욕을 얻어먹기도 하면서 일을 배우던 육체노동에 종사할 때의 옛날 친구들을 마법이라도 써서 이 최신식 작업환경으로 옮겨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통쾌한 일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이 H-P 공장이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한다면 나도 의문이 있고 옛친구들도 그리 간단하게 천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임금명세표, 연금, 유가휴가, 건강보험 등의 부가급여, 건의사항 처리제도의 유무 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할 것이다. 공장 안에서 취급되고 있는 이상하고 새로운 자세는 정말 안전한 것일까, 환경위생상의 위험은 없는가 등등 질문을 하겠지, 표면상으로는 화합이 잘 되어 있는 여기의 인간관계의 이면에도 명령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옛친구들은 그 날카로운 눈으로 이 공장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전통적인 공장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장이라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예를 들어 H-P 공장의 종업원은 모두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앞을 다투어 각자의 작업현장으로 달려가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제한은 있겠지만 각자가 다른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아침부터 밤까지 같은 장소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며 자유로이 자리를 이동할 수 있다. 이들은 또 제한된 범위내에서 각자 작업 페이스를 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관리직이나 엔지니어에게도 지위나 신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는 자유, 제멋대로의 복장에 대해서도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요컨대 개인이 존중되고 있는 것이다. 발끝이 쇠로 된 무거운 구두를 신고 더워러진 작업복에 작업모를 쓰고 일하던 옛 동료들은 여기를 '공장'이라고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공장을 대량생산의 장소라고 본다면 H-P 공장은 공장이 아니라는 옛 동료들의 관점도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공장은 대량생산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벌써 대량생산의 다음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쥐의 밀크와 T셔츠 '선진국'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과거 20 년간 감소되어 왔다는 것은 이젠 하나의 상식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총인구의 불과 9 퍼센트 즉 2000 만의 노동자가 약 2억 2000 만 명을 위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나머지 6500 만의 근로자는 서비스직 및 사무직 근로자들이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제조업의 후퇴가 가속화됨에 따라 반복작업에 의하는 제조업은 알제리에서 멕시코, 타일랜드에 이르기까지, 소위 '개발도상국'에게 하청을 주게 되었다. 선진국 국민이 사용했던 낡은 자동차는 이러한 나라들에게 다시 사용되는 것과 같이 제2의 물결에 속한 가장 낙후된 산업은 이렇게 해서 풍부한 나라들로부터 가난한 나라로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풍부한 나라들도 경제적인 이유와 전략적 견지로 해서 제조업을 전면적으로 후진국으로 보낼 정도의 여유는 없다. 그래서 풍부한 나라들을 순수한 의미로 '서비스 사회'라든지 '정보사회'라고 부를 수는 없다. 풍부한 나라들은 '정신적 생산'으로 살아가고 가난한 나라들은 물질적 생산에 종사한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다. 실제는 그렇지 않고 풍부한 나라들도 계속 기간산업을 분담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필요한 노동자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 이유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 자체를 전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에 속하는 제조업의 본질은 수백만 개의 동일하고 표준화된 제품의 장기적 생산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제3의 물결산업의 본질은 단기가동으로 그 일부 또는 전부를 주문에 의해 생산하는 데 있다. 일반인들은 지금도 제조업을 장기가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는 10억 단위의 담배, 백만 야드 단위의 직물, 천문학적 수량의 전구, 성냥, 벽돌, 점화 플러그를 계속 생산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당분간은 그런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은 가장 고도의 첨단산업제품이 아니라 오히려 낙후된 산업의 제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이러한 제품은 전체 공산품의 약 5 퍼센트를 점하는 데 불과하다. 어느 경제분석가가 소련 연구의 전문지 '크리트크: Critique'에 다음과 같은 경제 기사를 실었다. "개발도상국GNP간 연간 1인당 1000에서 2000 달러의 나라들이 대량생산공업의 발달에 전념하고 있는 사이에 고도의 선진국들은.컴퓨터, 특수기계장치, 항공기, 자동생산 시스템, 고차원의 과학기술을 응요한 페인트, 의약품, 나일론 등의 종합체제품, 플라스틱 제품 등 고도의 숙련노동과막대한 연구비를 필요로 하는 단기가동의 생산방식에 의한 제품 수출에 전력하고 있다." 일본, 서독, 미국, 심지어 소련에서도 전기제품, 화학, 항공우주, 전자공학, 특수차량, 통신 등의 각 산업분야에서 탈대량화 생산의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일리노이주 북부의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최신형 플랜트(plant)에서는 400가지가 넘는 '전기회로 팩(circuit pack)'을 생산하고 있지만 윌 생산량은 최고 2000개에서 적은 것은 단 2개 짜리도 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H-P 공장에서도 각 모델마다의 생산수는 적어지고 있어서 50개에서 100 단위가 보통이다. 미국의 IBM, 폴라로이드, 맥도넬 더글러스, 웨스팅 하우스, 재너럴 일렉트릭, 영국의 플레시, ITT, 독일의 지멘스, 스웨덴의 에릭슨 등 각 회사에서도 역시 단기생산과 주문제품으로 향하는 변화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이전에는 자국내 조선생산의 45 퍼센트를 차지했던 아커그룹이 해상석유공장 건설로 전향했다. 즉 선반의 '형별 대량생산'에서 해상시설의 '주문생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한편 확학공업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엑슨사의 중역인 R.E. 리에 의하면 이 회사는 '파이트, 측선, 패널(panel)등의 압출성형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플리프로필렌(polypropylene)이나 폴리에틸렌(polyethylene)등의 가공제품은 단기가동으로 이행해 가고 있으며 파라핀의 경우에도 주문생산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파라핀 제품 중에는 생산량이 극히 미량의 것도 있으므로 "엑슨사에서는 이것을 '쥐의 밀크 만들기'라고 부르고 있다."라고 리 중역은 덧붙였다. 군수품 생산에 대해서는 일반에서는 아직도 대량생산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소량생산'의 경우가 많다. 군수품이라고 하면 수백만이라고 하는 동일규격의 제복, 헬멧, 총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현대적 군사장비는 대량생산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제트 전투기는 한번에 10대에서 50 대 정도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사용의 목적과 분야에 따라 조금씩 설계를 변경하는 경위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량 주문생산에 따라 항공기에서 소요되는 부품도 대부분이 단기가동으로 생산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국방성의 최종제품(end-product) 구매량별 지출을 분석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놀랍게도 최종제품 수를 확인할 수 있는 물품에 지출된 91억달러 중에 78 퍼센트(71억 달러)는 생산수량 100이하의 군수품 구입에 충당되고 있었다. 최종제품 자체는 단기가동으로 생산되는 것이지만 구성부품은 아직도 대규모의 양산 시스템에 의지하고 있는 분야도 있다. (고도의 첨단산업에도 여전히 그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단기가동으로 생산되는 최종제품의 여러가지 다양성에 따라 구성부품에도 형상변경이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애리조나주의 고속도로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자동차가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한때는 비교적 획일적이었던 자동차시장이 지금은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기술시대의 거문인 자동차 메이커들조차도 이제는 별수없이 부분적 주문생산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유럽, 미국,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지금, 기본적인 부품이나 보조부품을 대량생산하고 이것을 수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조립하여 여러가지 자동차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번에는 차원을 달리해서 T셔츠로 시선을 돌려 보겠다. T셔츠는 양산된다. 그러나 새로이 등장한 값싼 속열식 압력 인쇄기계를 이용하면 가지각색의 디자인이나 문구를 아주 적은 양을 인쇄하여 셔츠를 만들어도 경제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결과 셔츠를 입은 사람이 베토벤 팬인지, 맥주 애호가인지, 심지어는 포르노 배우인지를 금방 식별할 수 있는 여러가지 셔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나 T셔츠 등 대량생산과 소량생산과의 중간단계를 상징하는 제품은 많다. 이 단계를 한 발 넘어서면 물론 완전한 주문생산이 되며 실질적으로 일종일점생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분명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것은 고객의 개별적인 주문에 맞추는 주문제품인 것이다. 랜드사의 정보 서비스 부장이며 첨단산업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H. 앤더슨은 말한다. "가까운 장래에 주문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언젠가는 주문생산 쪽이 대량생산보다 제조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이제 여러가지 규격품을 만들어 이것을 조립하는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5,5,5^. 우리는 지금 명백한 주문생산의 영역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마치 옷을 주문하는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 주문생산으로의 이행을 가장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마 수년 전에 복식산업에 도입되었던 컴퓨터 방식의 레이저 재단기(laser gun)일 것이다. 제2의 물결이 대량생산을 가져다주기 전에는 옷을 한 벌 새로 해 입으려면 양복점이나 바느질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든지 아내가 바느질해서 만들어 주든가 했었다. 어느 것이건 손으로 일을 하는 것을 기반으로 본인의 치수에 맞게 만들어졌었다. 모든 봉제의 근본은 주문생산이었다. 제2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획일적인 의상의 제조가 시작되었다. 이 시스템에서는 작업원이 천을 여러 장 겹쳐 놓은 복지 위에 옷본을 올려놓은 다음 자동재단기를 사용하여 여러 장의 똑같은 천조각을 재단한다. 이어 이 이 동일공정으로 처리되어 크기, 모양, 색 등, 모두 같은 제품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새로 등장하는 레이저 재단기는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원리를 기초로 해서 작업한다. 10 매, 50 매, 100 매 혹은 500 매의 셔츠나 상의를 단번에 재단하지 않는다. 한 번에 1 매씩 재단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용해 온 대량생산방식보다도 신속하고 더 값싸게 재단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방식에 의해 불필요한 요소들은 제거되어 제고품을 대량으로 안고 있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최대의 의료제조회사인 제네서코 상의 말에 의하면 "레이저 재단기는 단 한 벌의 주문에 응해도 채산이 맞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장래에 표준치수라는 것이 없어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치수를 전화를 말해 주든지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해서 데이터를 직접 컴퓨터에 입력한다. 컴퓨터는 재단기에 지시를 주어서 손님의 몸에 꼭 맞게 재단된 옷을 한 벌만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본 것은 고도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실질적인 주문제품이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전의 번영했던 생산체계의 복원이면서 보다 고도의, 또 보다 치밀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대중매체의 세계에서 탈대중화 현상이 진행 중임과 동시에 제조업에서도 탈대중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프레스토 효과 이 외에도 극히 이상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진보가 물건을 만드는 방법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대량생산에서 소량생산으로 이행하는 산업이 있는가 하면 그 단계를 지나 연속가동을 기반으로 해서 완전 주문생산으로 이행하고 있는 산업도 있다. 단기가동작업의 전후에 그때마다 생산기계를 멈추거나 움직이게 하지 않아도 기계자체가 연속적으로 자동조절 되어서 그 결과 각각 다른 제품 단위가 기계에서 연속적으로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들은 24시간 연속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기계화된 주문생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제20장에서 간단하게 설명하겠지만 또하나 중대한 변화가 생겨서 그 결과 고객이 이전보다 더 제조공정에 직접 참가하게 되었다. 일부 산업에서는 고객의 주문을 받은 회사가 희망하는 상품의 성질 명세를 제조업자의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여 그 컴퓨터가 생산공정을 관리하는 상황에 거의 도달해 있다. 이러한 업무형태가 보급되면 고객도 제조공정에 깊이 참여하게 되어 도대체 누가 '소비자'이고 누가 '생산자'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제조업이 제품을 일단 부품상태로 분해하고 그것을 재차 조립한다는 의미로는 데카르트(Descartes)적이었는데 비해 제3의 물결의 제조업은 탈데카르적 (탈descartes)이고 부품보다도 전체에 존재가치를 둔다는 의미로는 '전체론적' 입장을 취한다. 이런 예는 팔목시계와 같은 흔한 공업제품을 갖고서도 예측할 수 있다. 이전의 시계에는 수백 가치의 부품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정회로의 도입에 의해서 자동부품을 한 개도 사용하지 않아도 보다 정확하고 또 신뢰성이 높은 정밀한 반도체 시계를 생산할 수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마쓰시타 전기 제품의 TV에서는 10 년 전에 비해서 부품이 반정도밖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 거적의 칩들로 만들어진 소형의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가 여러가지 제품에 사용되어 방대한 양을 이루던 과거의 부품들을 대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엑슨사는 QYX라는 신형 타이프라이터(typewriter)를 선보였는데 이것은 IBM사의 셀렉트릭(Selectric)이 수백 개의 가동부품을 사용했는데 비해 QYX의 부품은 몇개밖에 안된다. 그리고 유명한 35mm카메라인 캐논 AE-1은 구형에 비해 부품이 300개가 적어졌다. 그 중 175개를 불필요하게 한 것은  사스 인스트루먼트사가 개발한 집적회로를 인쇄한 단 1개의 칩이 대신하고 있다. 우리들은 미분자 차원에 들어섬으로써 컴퓨터로 움직이는 디자인이나 그 밖의 첨단 제조기계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많은 기능을 보다 적은 부품속에 통합하여 여러가지 다른 부품들을 '전체적인 것'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시각예술에서의 사진기술의 출현과 비교할 수 있겠다. 캔저스에 물감으로 여러 색깔을 칠하지 않고서도 사진사는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로 한꺼번에 전체적 영상을 제작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프레스토 효과'를 제조업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 나타난 패턴은 명백하다. '기술체계'와 '정보체계'의 커다란 변화가 서로 어울려서 제품의 생산방법을 크게 변화시킨 것이다. 우리들은 전통적인 대량생산단계를 지나서 대량생산제품과 탈대량생산제품이 복잡하게 혼합된 단계로 급속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어떤 목표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명백한 것이다. 완전히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만들어지는 상품이 세분화 된 부품을 조립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종합체로서 연속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점차 소비자들의 주문에 따라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지금 우리들은 뿌리를 깊이 박고 있는 생산구조를 밑바닥으로부터 혁신하며 사회의 모든 계층에 변화의 물결을 파급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장래에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하고 생각하고 있는 학생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고, 기업가의 투자계획, 국가의 개발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이 변혁은 이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현재 진행 중인 또하나의 혁명과 밀접하게 관련시켜 고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사무분야의 혁명인 것이다. 비서가 불필요한 시대 풍요한 나라에서는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소위 기호산출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아이디어, 특허, 과학방정식, 청구서, 송장, 기구개편, 문서철, 서류, 시장조사, 판매계획, 공문, 법률서류, 설계설명서, 컴퓨터의 프로그램, 기타 수없이 많은 형식의 데이터를 상대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러한 사무직, 전문직, 관리직 활동의 증가는 많은 나라에서 입증되었으므로 여기서 숫자를 들어 확인할 것도 없다. 사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추상적 생산의 증대를 가리키며 사회의 '탈산업화' 단계로 접어든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한 것이다.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증가는 새로운 체제로의 도약이라기보다는 산업주의의 연장이며 제2의 물결의 마지막 파도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노동형태의 추상화가 이전보다 진행되었고 구체성이 적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는 현장인 사무실은 제2의 물결시대의 공장을 직접 모델로 하고 있으며 노동 자체도 세분화 되어 있다. 반복작업이 많아 짜증스럽고 비인간적인 면도 공장의 생태와 같다. 지난날의 사무실 재편성마저도 그 대부분은 한층 더 공장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제2의 물결은 이 '기호공장'이라고나 할 사무실에도 공장의 경우와 같이 계급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장노동자는 육체노동자와 비육체노동자로 구분되는데 사무실에서도 역시 '고급추상' 요원과 '하급추상' 요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고급추상 작업자는 과학기술의 엘리트인 과학자, 기술자, 관리자 등에 의해서 구성되는 계층이어서 그들은 회합, 회의, 업무상의 오찬, 업무상의 지시, 계약을 위한 메모작성, 전화로 행해지는 정보 교환 등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최근의 어떤 조사에 의하면 관리자의 시간 중 80 퍼센트가 1일에 150-300 회에 달하는 '정보처리'로 사용되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계층은 '하급추상 작업자'이다. 말하자면 화이트칼라 프롤레타리안(white-collar proletarian)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제2의 물결시대의 공장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반복되는 짜증스러운 작업을 수행한다. 이 집단의 대부분이 여성이거나 비조직적 노동자이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탈산업주의'론에 대해 그들이 비웃는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은 바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사무실도 역시 제2의 물결을 넘어서 제3의 물결로 이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날의 산업사회적 계급제도도 도전을 받게 됐다. 사무실 내의 여러 형태의 낡은 위계질서와 구조도 얼마 안가서 전면적으로 개혁될 것이다. 사무실에 대한 제3의 물결의 혁명은 몇 개 세력의 충돌에 의해 일어났다. 정보에 대한 수요는 대단히 급격하게 성장을 해서 제2의 물결의 사무원, 타이피스트, 비서 등의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있고 또 열심히 일하더라도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문서업무의 코스트가 너무나 상승해서 그것을 억제하기 위한 연구가 맹렬히 진행되었다.(여러 기업에서 사무경비가 전코스트의 40 퍼센트로부터 50 퍼센트로 팽창하고 있고, 전문가의 추정으로는 1 통의 업무용 문서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경비는 모든 숨겨진 요소를 넣고 계산했더니 14 달러^36,36^18 달러가 된다고 한다.) 게다가 오늘날 미국의 공장노동자의 기술장비 비용은 1인당 평균 약 2 만 5000 달러로 추정되는 데 반해, 제록스사의 어떤 판매원의 주장에 의하면 사무실 노동자는 '500 달러나 1000 달러짜리 중고 타자기나 계산기를 사용하는 데 지나지 않아 아마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상태이다. 사무실의 '생산성'은 과거 10 년간에 불과 4 퍼센트의 상승률을 보였다. 아마 미국외의 나라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 현저하리라 생각한다. 이것에 비하면 컴퓨터의 생산비용은 그것이 해낼 수 있는 기능의 수가 증가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크게 내려가고 있다. 컴퓨터에 의한 업무처리량은 과거 15 년간에 1만 배로 늘어났고 한 가지 기능건당 비용은 10 만 분의 1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쪽은 비용의 상승과 생산성의 저하로 고민하는 '오피스 위크(office work)'와 다른 한쪽은 컴퓨터 분야의 발전이 어쩔 수 없이 결합되었다. 그 결과 사무실은 '언어장치'를 둘러싸고 크게 흔들릴 것 같다. 그야말로 '언어지진'이 일어날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큰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워드프로세서'라고 불리는 전자장치이다. 이 장치는 미국내 사무실에서는 벌써 25 만 대가 가동 중이다. IBM이나 엑슨과 같은 대기업을 포함해서 이 기기의 제조업자는 얼마 안 있어 연간 1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경쟁태세를 갖추고 있다. '자동화 타이프라이터' 또는 '문서 편집기'라고 불리고 있는 이 장치는 사무실 내에서의 정보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일의 구조도 변화시키게 된다. 그런데 이 장치는 화이트카라의 세계로 대거 밀어닥치고 있는 신과학기술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1979 년 6월 시카고에서 개최돈 국제 언어 프로세싱협회(International Word Processing Association) 대회 때, 회장이 터질 듯이 모여든 약 2 만 명의 열성적인 참관자들이 진열된 기막힌 기기들을 이것저것 시험적으로 조작하고 있었다. 광학식주사기, 고속인쇄기, 마이크로 그래팩 장치, 팩시밀리 시설, 컴퓨터 장치 등이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보고 있던 것은 미래의 '서류가 필요없는 사무실'의 막이 열리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수도 워싱턴에서는 컨설팅(consulting)회사인 마이크로네트사에서 17개사나 되는 제조업자의 설비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모델오피스를 만든 일이 있다. 여기에는 종이로 된 서류는 일체 금지되어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되는 기록은 역시 마이크로 필름에 수록 보존하고 나중에 컴퓨터로 재생한다. 연수목적도 있었던 이 전시용 사무실은 기록장치, 마이크로 필름, 광학식 주사기, 비디오 터미널 등을 한데 모아 하나의 컴퓨터시스템으로 기능하도록 한 것이었다. 마이크로네트사 사장, 래리 스토케트의 말에 의하면 목적은 장래의 사무실이고 거기서는 서류의 분류, 보관에 대한 잘못이 절대로 없다. 마켓팅이나 판매, 회계, 연구 등을 위해 최신의자료들을 비치하고 시간당 수십만 매의 정보자료를 페이지당 1센트의 싼 값으로 재생되어 배포된다. 정보는 인쇄매체로부터 디지탈(digital) 매체, 사진매체로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미래의 사무실을 실현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미래의 사무실이 성공하는 열쇠는 일상적 통신업무이다. 제2의 물결의 사무실에서는 간부나 편지나 메모를 기안하려면 우선 매개자인 비서를 부른다. 이 사람이 맨처음 할 일은 간부의 말을 토트나 타이프지에 받아쓰는 일이다. 그 다음에 받아 쓴 그것을 수정해서 잘못 쓴 것을 바로 잡고 타이프를 친다. 아마 몇번쯤은 고쳐 쳐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타이프로 정서하여 카본이나 제록스로 복사한다. 그리고 원본은 우편실 또는 우체국을 통해 목적지에 발송하고 사본은 철해 놓는다. 여기서는 문안작성이라는 최초의 공정을 제외하더라도 구술필기, 수정, 복사, 발송, 철이라는 연속적인 5 단계의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오늘날의 사무기계는 이 연속적인 과정을 동시에 행함으로써 5가지 과정을 하나로 압축하고 만다. 필자는 이 새로운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 또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간이 컴퓨터를 구입하여 그것을 워드프로세서로 이용하면서 이 책의 후반부를 집필해 보았다. 다행히도 필자는 단기간에 이 기계를 마음대로 조자할 수 있게 되었다. 몇 시간쯤 연습했더니 쉽게 조작할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1년 이상을 이 기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속도와 능력에는 지금도 여전히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초고를 쓰려는 용지에 타이프하는 대신 키보드(keyboard)를 치면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라는 것에 전자형태로 만들어 저장된다. 다음에는 눈앞에 있는 TV식 스크린에 내 말이 비쳐진다. 몇 개의 키를 치게 되면 패러그래프(paragraph)를 바꾸거나, 삭제하거나, 삽입하거나, 밑줄을 치거나 하여 마음에 드는 문장이 얻어질 때까지 내가 쓴 글을 즉석에서 고치거나 바꾸어 놓을 수가 잇다. 어렇게 함으로써 초고를 여기저기 지우개로 지우거나, '타이프지우개'로 지우거나, 일부를 잘라내거나, 붙이거나, 삭제하거나, 제록스에 복사하거나, 완성원고를 타이프할 필요가 없게 된다. 초고의 수정을 끝내면 버튼을 하나 누른다. 그러면 옆에 놓여있는 인쇄기가 눈깜짝할 사이에 인쇄를 한 완벽한 원고를 작성해 준다. 그러나 용지를 사용해서 사본을 만드는 것은 이 기계로서는 원시적인 방버이며 원래의 의도에 반대되는 일이다. 전자공학을 최대로 이용한 사무실이 갖는 최대의 장점은 단순히 비서가 편지를 타이프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자동화가 발달된 사무실에서는 편지를 테이프나 디스크에 전자적으로 저장한다. 내용의 오자를 전자사전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수정할 수도 있다. 늦어도 가까운 장래에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기계들을 전화선으로 연결하면 비서는 즉석에서 수신의 프린터나 스크린에 내용을 송부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이 장치는 원문의 작성, 수정, 복사, 전송, 보관이라는 모든 작업을 그야말로 단숨에 해치운다. 시피드는 올라가고 코스트는 내려간다. 5단계의 작업이 하나로 압축되는 것이다. 이 압축된 작업과정의 영향은 사무실뿐만 아니라 외부에까지 미친다. 예를 들면 이 장치를 인공위성, 마이크로웨이브 등의 원격통신설비와 연결시키면 과중한 업무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제2의 물결의 고전적 기구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편체제를 조업정지시킬 수도 있다. 사무실의 자동화가 보급되면(워드프로세싱은 그것의 극히 작은 일부분) 우편배달원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전자우편' 체제의 창설이 필연적으로 된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청구서, 영수증, 구입주문서, 송장, 은행거래맹세서, 수표 등의 업무문서가 국내우편물 전체의 3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편물의 대부분의 개인간이 아니고 조직간을 왕래하는 것들이다. 우편 위기가 심각화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기업체가 제2의 물결의 산물인 우편제도를 대신하는 것을 찾고 있으며 제3의 물결의 체제라고도 할 수 있는 설비를 하기 시작했다. 텔레프린터(teleprinter), 팩시밀리(facsimile), 위드프로세서, 컴퓨터 단말기를 기반으로 하는 이 전자우편제도는 선진국에서 특히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으며 장래에는 새로운 인공위성체제에 의해서 크게 증강될 것이다. IBM, 에트나 캐쥬얼티 앤드 슈어티, 미국통신위성 공사의 3개사는 SBS(통신위성 비즈니스 시스템)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하여 많은 기업에 종합적 정보 서비스를 하고 있다. SBS는 제너럴 모터스나 훽스트사 또는 도시바사와 같은 고객회사들을 위해 통신위성을 발사할 계획을 하고 있다. SBS 통신위성은 각 회상에 설치된 값싼 지구국과 연결해서 독자적인 전자우편제도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며 공공우편기관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 우편제도가 보내는 것은 문서가 아닌 전자파를 발송한다. 아더 D.리틀 조사기관의 빈센트 줄리아노 박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에도 전자공학은 여러 분야에서 많이 이용되는 매체이다. 거래는 전자기기로 행하고 문서에 의한 청구서, 영수증, 명세서 등은 나중에 그것을 확인하는 데 자니지 않는다. 바야흐로 문서가 언제까지 필요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메시지와 메모는 순간적으로 소리하나 내지 않고 전달된다. 정보가 흐르기 시작하면 각자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단말기(대기업체에 수천대씩 설치되어 있는 단말기)은 조용히 깜박리면서 통신위성을 통해 지구 저편의 사무실이나 회사간부 주택의 단말기에서 보내온 정보를 처리한다. 컴퓨터는 어떤 기업체의 파일을 필요에 따라 다른 기업체의 파일에 연결시켜 줄 수도 있고 경영자는 뉴욕타임즈 정보은행과 같은 데이터 은행에 저장해 두었던 회사 밖에 있는 정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이 어디까지 전개될는지는 아직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그려온 미래의 사무실은 너무나도 정연하고 지나치게 세련되어 있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더 복잡한 형태로 사태는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은 급속하게 전진하는 도상에 있고 현재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바, 전자공학을 구사하는 사무실로의 이행이 사회적, 심리적, 경제적으로 폭발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이다. 다가오는 '언어지진'은 단지 새로운 기계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무실 내부의 인간관계와 각자의 역할의 개편을 약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맨 먼저 비서의 여러 기능 중 많은 것이 소멸될 것이다. 미래의 사무실에서는 음성인식 기술이 도입되면 타이핑조차도 시대에 뒤떨어진 기능으로 전락할 것이다. 최초에는 메시지를 정리하여 그것을 전송 가능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타이프 기능은 계속 수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라안가서 사용자의 특징적인 개센트까지 구별하여 음성을 문자로 바꾸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타이프 작업은 완전히 불필요하게 된다. 줄리아노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낡은 기술이 타이피스트를 이용한 것은 말하자면 기술들이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점토판을 사용했던 시대에는 점토를 굽거나 문자를 조각하는 기술을 알고 있는 서기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문자를 기록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타이피스트라는 이름의 서기를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샐오눈 기술이 나타나 손쉽게 메시지를 파악하고 수정, 기억, 검색, 전송, 복사 등을 행하는 것이 쓰거나 말하는 것같이 간단하게 되면 우리들은 이 모든 작업을 자기 혼자서 처리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기계에 익숙해지면 타이피스트는 불필요하게 된다.' 많은 워드프로세서의 전문가들이 기대하고 잇는 것은 비서가 타이프 치는 일에서 해방되어 더 고차원의 일을 하게 되고 또 적어도 타이프치는 일과 같은 잡무가 완전히 불필요하게 될 때까지 간부들이 직접 타이프를 치든지 아니면 적어도 그 일부를 분담하는 것 등이다. 이런 예가 있다. 국제 워드프로세싱대회에서 강연했을 때 나는 타이핑작업을 비서에게 시키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내 원고는 내가 직접 타이프를 쳐서 작성한다. 사실 말이지 비서가 사용하는 것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언어시스템 쪽이 더 빠르다.'라고 대답했더니 회장 안이 환성으로 들끓었다. 그들은 신문의 구인란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릴 날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룹 부사장 구함) 업무내용: 재정, 마켓팅, 부문별 생산 라인 개발의 조정 기타. 자격: 음성 경영관리 경험자 연락처: 멀티라인 인터내셔널사 수석부사장. * 단, 타이핑은 필수기능임. 이에 대해 간부들은 자신의 손가락을 문직이는 일에 반대할는지도 모른다. 좌우간 이 세상의 간부라는 사람들은 자기가 마실 커피잔을 나르기도 싫어하는 친구들이니까. 더구나 음성인식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구술을 하기만 하면 기계가 받아 쓰고 타이핑 작업을 모두 대신해 버리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키보드를 조작하는 방법을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간부들이 어떤 태도를 위하건 간에 제3의 물결의 생산방식과 제2의 물결의 여러 체제가 사무실내에서 충돌하면서 불안과 갈등을 일으켜 사무체제를 개편하고 재편성하며 또 일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직업과 기최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는 구 경영지의 업무범위, 위계질서, 남녀의 역할분담, 각 부서간 분과주의의 장벽 등, 이런 문제들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일들이 완전히 없어진다든지, 현재의 비서들 대부분이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워드프로세싱 업계나 부즈 앨런 앤드 해밀턴 컨설팅사의 사장인 랜디 골드필드처럼 보다 낙관적인 전망도 있어서 이 두 가지 견해가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 골드필드 여샤의 의견에 의하면 비서는 사고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반복적 작업요원이 되기는 커녕 '부사장'으로 격상되어 전에는 완전히 소외되었던 전문적인 일이나 의사결정 과정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화이트칼라 사이에 심한 분열이 일어나 보다 책임있는 지위로 올라가는 사람과 밑으로 떨어지기만 하다가 결국 밀려나는 사람들로 나누어 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밀려나는 사람들, 그리고 경제 전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자동화가 최초로 등장한 1950 년대 말에서 1960 대 초에 걸쳐서 여러 나라의 경제학자나 노동조합 관계자는 대량실업을 예언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예상을 뒤엎고 고도한 과학기술국가에서는 오히려 고용이 확대됐던 것이다. 제조부문이 축소되자 화이트칼라가 증가하고 서비스 부문이 신장해서 산업계의 불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인 제조부문이 계속 축소되고 동시에 사무부문의 고용마저도 부진한 상태가 된다면 내일의 고용은 어떻게 하 보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 쉴새 없이 연구가 계속되어 있으며 여러가지 주장들이 맹렬히 나오고 있지만 서로 상반되는 예상이나 논증이 나타나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 들면 기계화나 자동화에 투자하는 액수와 제조부문의 고용수준 사이에 대해 연관성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런던의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기사와 같이 '상관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963--73 년까지의 최신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액을 조사해 보았더니 부가가치 중에 점유하고 있는 설비투자의 비율에서는 조사대상 7개국 중 일본이 가장 높았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또한 고용증가에 있어서도 최고의 성장을 이룩했던 것이다. 설비투자율이 가장 낮았던 영국은 최고의 실업자수를 나타냈다. 미국은 대체로 일본과 비슷해 기술투자와 신규고용 증가가 동시에 일어났다. 한편 스웨덴,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는 각각 현저하게 독자적인 패턴을 나타낸다. 고용수준이 단순하게 과학기술의 진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화를 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고용율이 상승하거나 하강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고용은 여러가지 정책이 수렴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노동시장에 가해지는 압력은 앞으로 몇년간 크게 가중될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컴퓨터 한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무실도 공장도 다같이 개혁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화이트 칼라인 부문과 제조부문에서의 이 동시개혁은 궁극적으로 전면적인 새로운 생산양식이 출현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거대한 전진인 것이다. 이 전진은 간단하게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영향력은 고용수준이나 산업구조 등에서 나타나는 현상뿐만 아니라 정치력과 경제력의 균형, 노동의 작업단위 규모, 국제적 분업, 여성의 경제적 역할, 노동의 성격, 생사자와 소비자의 분리 등의 상황에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하는 장소라는 겉보기에 매우 사소한 사항까지도 변혁을 가하려고 할 것이다. 제16장 전자주택 새로운 생산체제로 이행해 가는 이면에는 하나의 사회개혁이 태어나려 한다. 그것은 놀랄 정도의 넓은 범위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직시하려고도 않는다. 바야흐로 우리의 가정새활까지도 변혁시키려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술한 바와 같이 새로운 생산테제는 노동규모의 축소를 촉진하고 생산의 도시집중화를 배제하기 위해 그것이 분산화를 도모하였고 노동의 실제적 성격에 변화를 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새로운 생산체제는 제2의 물결이 공장과 사무실을 한 장소에 모아 둔 수백만의 직장을 다시 이전의 장소인 가정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가정생활, 학교, 기업의 질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변화하게 될 것이다. 300 년 전에, 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인구가 줄어들고 사람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도시의 공장으로 몰려들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적으로 일어났다. 대규모의 공장지대나 사무실이 밀집되어 있는 빌딩가의 절반이 우리가 살아 있을 통안에 텅 비게 되어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썰렁한 창고가 되거나 생활공간으로 전환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현재로는 아직 이른 대담한 발언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형태는 그것을 가능케 한다. 새로운 고도의 전자공학을 기반으로 하는 '가내공업'으로의 복귀를 가져오고 거기에 따라 가정이 사회의 중심으로서 새로이 중요시될 가능성은 충분히 보인다. 얼마 안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사무실이나 공장에 출근하는 대신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고 말하면 곧 격렬한 반론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또 이러한 회의적인 견해가 계속 나오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설사 집안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세상 여자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가정에서 벗어나 직장에 나가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을 봐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뛰노는 속에서 무슨 일이 되겠는가.' '웃사람이 감시하고 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일할 생각을 않는다.' '일하는 데에 필요한 신뢰감이나 자신감을 기르기 위해서는 서로가 직접 접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 가옥의 구조는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가정에서 일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지하실에 소형 용광로라도 만들라는 것인가.' '주택을 작업현장으로 한다면 도시계획에 의한 제한이나 집주인의 반대를 어떻게 막는가' '그런 생각은 노동조합에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일하는 만큼의 세액공제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데 세금은 어떻게 되지?' 그리고 최후의 반론은 이것이다. '뭐라고? 하루종일 마누라하고 얼굴을 맞대고 있으라고?' 물론 여성의 입ㅂ장에서는 그와는 반대의 발언을 하겠지. 그리고 칼 마르크스마저도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한 직장에 노동자를 모이게 하는 것이 사회에 분업을 성립시키기위한 필수요건이고 집에서 일하는 것은 생산형태의 후퇴이다.'라고 그는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러한 착상 그 자체를 어리석은 것이라고 보게 되는 이유는(이치에 닿지 않는 이유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있다. 가내노동 300 년 전에는 사람들이 가정이나 농사일에서 떠나 공장으로 일하러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는 나름대로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300 년 전까지는 1 만년 동안이나 자기집 가까이에 있는 토지에서 일해 왔었다. 가정생활의 구조, 아이들의 양육과 퍼스낼리티의 형성과정, 재산에 관한 제도나 권력의 구조, 문화, 매일매일의 생존경쟁 등 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사슬에 의해 가정과 농경지에 매여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 체제가 출현하자 이 사슬은 즉시 끊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다시 그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적 세력이 합쳐져서 노동의 자소를 이동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생산형태가 새롭고 더욱 발전된 제3의 물결의 생산형태로 전환되면 앞의 장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육체를 자본으로 하는 노동자의 수는 감소한다. 제조부문에 잇어서도 증가되는 작업량은 통신기술과 그 부속장비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자기집이나 어떤 곳에서라도 작업할 수 있고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 웨스턴 일렉트릭사는 전화국용의 전자기계식 전화교환기에서 전자교환기로 생산전환을 했다 이것에 의해 일리노이주 북부에 있는 이 회사의 최신식 공자의 인력구조는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 전환이 행해지기 전의 생산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사무직이나 기술관계의 근로자에 비해 3 대 1이나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비율은 1 대 1이다. 이것은 2000 명의 종업원 중 반수가 물건을 다루지 않고 정보를 다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의 대부분은 얼마든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북부 일리노이주 공장의 기술부장 돔 쿠오모는 "기술자도 그 속에 포함한다면 현행업무의 10 퍼센트^36,36^25 퍼센트는 현재의 기술수준에서 가정에서도 일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쿠오모의 부하인 기술과장 제럴드 미첼은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의 기술이라면 2000 명 중 600 명이나 700 명이 가정에서 일할 수 있으며 5 년 후에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두 사람은 확신에 찬 태도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앞의 장에서 언급했던 콜로라도 스프링즈에 있는 H-P 공장의 생산부장 하워드의 예측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 공장에서 실제로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은 1000 명이다. 기술적으로 볼 때, 아마 그 중 250 명은 가정에서 작업할 수 있다. 자재공급 업무가 복잡하게 되겠지만 필요한 기재와 자본설비만 갖추면 가능한 일이다. 또, 화이트칼라들이 하고 있는 조사업무나 개발부문에서도 컴퓨터의 단말기에 투자를 한다면 절반 혹은 4분의 3정도의 인원이 가정에서 일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H-P 공장에서는 350이나 520 명이 더 가정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즉, 이 고도의 첨단공장에서는 현재에도 전종업원의 35-50 퍼센트가 그 일의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거의 전부를 가정에서 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3의 물결의 생산형태는 마르크스의 신조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의 전부를 작업장에 집중시킬 필요가 없게 도니 것이다. 이러한 것은 전자공업이나 대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캐나다의 제약회사 오소 퍼머스티컬사의 부사장 피터 태틀에 의하면 문제는 몇 사람이 집에서 작업하 룻 있는가가 아니고 몇 사람의 종업원이 사무실이나 공장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태틀은 그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300 명을 대상으로 한다면 "필요한 통신설비만 갖추면 적어도 75퍼센트의 종업원이 가정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전자업계나 제약업계에서 적용되는 일이라면 당연히 다른 첨단산업에도 적용될 것이다. 제조부문에서 많은 수의 종업원들이 가정에서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직접 생산품을 취급하지는 않지만 화이트카라의 사무분야에서도 상당수의 인원이 가정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확실한 통계는 없지만 지금도 상당량의 일을 이미 가정에서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판매를 하는 사람퍼머 전화나 개별방문이 대부분이어서 가끔 사무실에 나오는 사람, 건축가나 디자이너, 최근에 급격히 각종업계의 전문상담여들, 환자의 사회복귀를 도와주는 임상의사나 심리학자 등 대인관계가 일인 사람들, 음악교사나 어학교사, 미술상, 투자상담원, 보험판매원, 변호사, 학술연구가, 기타 전문적.지적 업무에 종사하는 다수의 화이트칼라들이다. 게다가 이러한 분야는 앞으로도 급속하게 퍼져나갈 것이다. 따라서 가정마다 싼 경비로 '작업장'을 만들 수 있도록 기술이 실용화되고 고성는 타자기, 팩시밀리 시설, 컴퓨터용 조작탁자, TV회의시설을 갖추게 되면 가내근무의 가능성은 더 한층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시설이 갖추어진다면 현재와 같이 한 장소에 집중해서 일하는 중앙집권적인 작업장으로부터 전자기기를 구비한 소주택, 즉 '전자주택'으로 맨 처음 이전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사업상 직접적인 대인접촉의 필요성이라든가 이러한 접촉에 수반되는 의식적 혹은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이 갖는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 주로 테이터를 기록하고 타자를 치고 카드를 검색하고 숫자를 계산하고 상품의 송장을 작성하는 등 추상성이 낮은 일상적인 업무에 종사하며 거래상대와 직접 교섭할 필요가 없는 사부직 등은 가장 간단하게 전자주택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극히 추상성이 높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예컨대 연구원, 경제학자, 정책의 입안자, 조직으 중추에서 계획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외부와의 긴밀한 연락도 필요하겠디만 그 반면 조용히 혼자서 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거래관계 종사자들도 자기집에 돌아가서 숙제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레만 브러더즈 쿤 로브 투자은행의 고문 나다니엘 새뮤얼즈도 같은 의견이다. 새뮤얼즈는 그 자신이 벌써 연간 50일에서 70일을 집에서 일하고 있지만 "장래의 기술은 가내노동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일은 사무실에서 해야 ㅎ나다는 의견들을 완화하고 있다. 최근, 큰 목재가공회사인 웨이어하우저사에서는 종업원 관리 때문에 새로운 팜플렛을 작성할 필요가 생겨 부사장 R.L.시걸과 3명의 부하가 부사장 집에 합숙하면서 1주일이나 거려 초안을 작성했다. 시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의력이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었다. 집에서 일하는 것은 융통성있는 시간 관리를 주장하는 회사의 방침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어디서 일하는가 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경제지 '월 스트리트 저널: Wall street Jounal'에 의하면 이것은 웨이어하우저사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회사에서도 사원에게 집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이 소개한 것 중의 하나는 유나이티드 항공사(Umited Airlines)이다. 이 회사에서는 홍보담당이사가 자기 참모들에게 연간 20일 정도는 집에서 서류작성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유명한 맥도널즈사에서까지 하급종업원은 햄버거를 굽는 곳에서 떠날 수는 없지만 몇 사람의 간부에게는 집에서 일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정말로 사무실이라는 것이 필요할까.'라고 부른 앨런 & 해밀턴사의 하베이 포펠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발표되지 않은 예측보고서에서 '1990 년까지는 서로간의 통신시설이 충분히 발달되고 가정에서 일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장려되며 각 분야에서 일반화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의견은 다른 많은 연구가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잇다. 몬트리올의 캐나다 전화회사에서 장기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로버트 F. 레이덤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정보관계의 일이 증가 일로에 있고 통신시설이 개선되고 있으므로 가정이나 지역의 업무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 내무성의 관리담당고문 홀리스 베일은 1980 년대 중엽까지는 "미래의 워드프로세싱 센터들이 손쉽게 개인의 가정에도 설치될 것이다."라고 역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아프거사에 근무하고 있는 비서 제인 애덤스는 가내근무를 하고 있으며 처리해야 할 문제 때문에 토의를 하거나, 사무실에서의 모임이 있을 때 참석하여 상사와 만나게 될 뿐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한 견해는 미국의 IFF(미래협회: Institute for the Future)의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IFF는 벌써 1971 년 새로운 정보기술을 취급하며 최첨단 기업에 속해 있는 150 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개 분야의 작업을 가정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 IFF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필요한 시설만 갖춰진다면 비서에게 맡겨졌던 일 중의 대부분이 '사무실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수행가능하다. 이러한 체제가 만들어지면 비서가 결혼해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일을 할 수 있으므로 노동의 영역이 넓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집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서 구술되는 작가의 말을 받아 쓰고 타이핑을 하게 된다. 그것을 작가의 자택이나 사무실에 보내게 된다. 이런식의 작업방식을 부정할 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다.' IFF는 계속 주장한다. '기사나 설계사, 기타 화이트칼라의 근로자들이 취급하는 일이 사무실에서와 마찬가지로 혹은 사무실보다도 훨씬 신속하게 가정에서 행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미래의 씨'가 싹이 트고 있다. 그것은 F.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이다(F는 freelance 즉 자유계약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 회사는 프로그래머를 팀으로 편성해서 기업체에서 알선하고 있는데 네덜란드나 스칸디나비아까지 서비스망을 넓히고 있다. 의뢰자 중에는 브리티쉬 스틸사, 셸석유, 유니레버사 등의 대기업까지 포함되어 있다. '가정에서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짠다는 것이야 말로 1980 년대의 가내공업이라 할 수 있다.'라고 '가디언(Guardian)'지는 말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제3의 물결이 사회를 휩쓸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회사라는 것이 더욱 더 '사람들이 컴퓨터 주위에 몰려 있는 장소에 불과하다.'라고 어떤 연구자가 말했던 것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개인의 집에 설치하면 사람들은 회사에 출근하여 컴퓨터 주위에 모여있을 필요가 없다. 제3의 물결시대에는 제조부문과 마찬가지로 사무부문에 있어서도 노동력을 100 퍼센트 직장에 집중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장소인 공장과 사무실로부터 제3의 물결의 장소인 가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많은 곤란이 따른다는 것을 과소평과해서는 안된다. 사원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일과 관리, 회사 내외의 조직 재편성 등 이러한 문제가 가정으로의 전환을 늦어지게 하거나 곤란하게 만든다. 또 커뮤티케이션을 모두 간접적으로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거래할 때마다 조건이 다른 경우와 같이 그때그때 적절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는 일에 대서는 상대방과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태나다 해외투자회사 사장 마이클 코너는 "우리들은 모두 1000 피트 이내에 살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통근 대용으로서의 통신 많은 곤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자주택'의 실현을 향해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보아서 수송과 전기통신과의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대해서는 이제 결론은 명확해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고도기술국가들은 심각한 교통난에 직면하고 있다. 도로와 고속도로는 자동차로 꽉 차 있다. 주차를 위한 공간도 없다. 환경오염문제는 심각해지고 파업과 파괴가 일상화되고 교통비용이 급등하고 있어서 대중교통체계는 한계점에 달하고 있다. 폭등하는 교통비용은 개개인의 근로자가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임금의 상승이라는 형태로 고용주에게 전가되며 또 소비자에게는 물가의 상승이라는 부담을 준다. 잭 닐슨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팀은 국제과학재단의 후원을 받아, 화이트칼라의 일을 기업이 집중되어 있는 도심가에서 이전시킬 경우, 경비와 에너지가 얼마나 절약되는가를 조사했다. 닐스의 연구팀은 종업원의 가정으로까지 이동시킬 것은 가정하지 않았지만 가정과 가까운 업무센터로 일을 분산시킬 것으로 가정하고 직장과 자택으 중간지점에 모델을 설정했다. 이 그룹의 연구결과가 나타내는 것은 놀랄 만한 의미를 갖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어떤 보험회사의 종업원 2048명에 대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1인당 하루 평균 출퇴근 왕복거리가 평균 21.5 마일이었다.(미국의 도시근로자 전체의 평균은 18.8 마일이다). 고위관리직일수록 통근거리도 길어져서 최고간부쯤 되면 평균 33.2 마일이 된다. 이 회사의 종업원이 통근을 위해 자동차를 굴린 거리는 연간 총 1240 만 마일이고 여기에 소모된 시간은 무려 50 년이나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1974 년 당시의 휘발유값은 1마일을 가는데 약 22센트가 들었으니까 회사와 그 거래처에서 간접적으로 지불한 금액은 합계 2730 만 달러라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닐스의 조사에 의하면 이 회사는 도심까지 출근하는 종업원에게 지방에 분산되어 있는 회사들의 임금수준보다 연간 520 달러를 더 지불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사실상 교통비용보조금이었다. 또한 주차장, 기타 업무를 집중화시킴으로써 필요하게 되는 시설에도 경비가 연간수입을 약 1 만 달러로 가정하고 교통비가 하나도 들지 않느다면 회사에서는 300 명의 종업원을 더 고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상당한 이익을 실질적으로 더 높일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원격통신시설의 설치비와 운영경비를 통근에 필요한 경비보다 적게 들이는데 있다. 기름값과 기타의 수송비는(자동차 외의 대량수송경비도 포함하여) 급등하고 있는데 비해 전기통신의 비용은 현저히 인하되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이 두 개의 곡선이 교차하는 날이 올 것이다. 생산현장의 지리적 분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내전자근무체제의 실현을 향해 우리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이것뿐이 아니다. 닐스 연구팀이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적인 도시 통근자가 직장과 가정을 왕복하는데 사용하는 하루의 휘발유는 64.6kW의 에너지에 해당한다(로스앤젤레스 보험회사의 종업원은 통근 때문에 연간 3740만 kW의 열량을 소비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정보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훨씬 적다. 보통의 컴퓨터 단말기는 조작 중에 100-250W, 또는 그 이하의 전기를 소비한다. 또 전화선은 통화 중에는 불과 1W이하의 열량이면 충분하다. 닐스는 통신시설의 필요겅비와 그 가동기간에 대해서 정확한 가정을 세운 후에 전기통신과 현행의 통근을 비교하여 소비 에너지가 얼마나 절약이 되는가를 계산했다. 즉, 통근으로 소비되는 에너지에 대하여 통신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비율을 구한 것이다. 자가용을 사용하는 경우 그것은 적게 잡아도 29 대 1이고 대량수송의 경우네는 정상의 상태에서 11 대 1, 그리고 대량수송체계를 100 퍼센트 활용하는 경우에도 그 비율은 2 대 1이다.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계산이 성립된다. 즉 1975 년의 도시 통근자의 12--14 퍼센트 만이라도 통신통근으로 대체했더라면 미국은 약 7500 만 배럴의 유류를 절약할 수 있었고 해외에서 석유를 수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미국의 국제수지나 중동정책에 부여하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수십년에 걸쳐서 석유 및 기타 에너지의 값은 올라가게 된다. 여기에 반해 자동타자기, 전송복사기, 음성.영상전달기, 가정용 컴퓨터 조작탁자의 운영비용과 에너지 비용은 급격하게 인하된다. 뿐만 아니라 제2의 물결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대규모의 집중화된 직장으로부터 생산부문의 일부만이라도 분산이점시킴으로써 파생되는 이익도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석유의 부족, 승용차의 홀짝수 운행제도, 주유소 앞에 늘어선 행렬, 소비제한 때문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통근의 혼란과 지연, 그리고 사회적.경제적 조건에 의한 휘발유가격의 상승이 단속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원격통신과 통근이 바꾸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은 절박해진다. 이러한 경향을 촉진시티는 더 강한 압력이 있다는 사실을 덧붙이겠다. 기업이나 정부기관들은 작업의 장소를 가정 또는 가정과 현재의 직장 중간에 있는 지역사회나 가까운 업무 센터로 이전시킨다면 현재 지불하고 있는 막대한 부동산비용을 단번에 줄일 수 잇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본사나 공장이 소규모로 되면 될수록 부동산에 대한 지출이 적어지며 냉난방, 조명, 보안 등 건물의 유지관리비용도 틀림없이 줄어들게 된다. 토지나 상공업용의 부동산 그리고 그것에 관련된 세금이 급등하고 있는 현재 기업은 이러한 경비를 어떻게든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일거리를 가정이나 가까운 업무 센터로 하청을 주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원하는 바인 것이다. 직장이 옮겨지고 환경오염도 완화되어 환경정화에 들어가던 비용도 경감되게 된다. 기업이 오염의 원인이라는 데 대해서는 기업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해방지론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오염도가 낮은 운영방식을 취하려 할 것이고 그 때문에 대규모로 집중화된 직장으로부터 보다 소형의 업무 센터로, 그리고 더 바람직스러운 행태로는 가정으로의 업무분산을 장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의 지원도 있다. 환경보호론자들이나 자연보호단체들이 오늘날 자동차의 파괴적인 영향력에 맞서 도로나 고속도로건설에 반대하며, 특정지역에서 자동차를 몰아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눙동은 싸고 편리한 전자공학을 이용한 통신시설에 비해 이제 교통기관은 개인에게 있어서도 불편하고 비싼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환경보호론자들이 전자공학에 의한 통신과 통근의 장단점을 발견하고 가정으로의 작업장소 이전을 올바른 선택의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들의 존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앙으로부터의 분산이동이라고 하는 중요한 변화를 추진시키는 힘이 되어 인류가 제3의 물결문명으로의 진입을 유도하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요인면에서도 가내전자근무체제로의 이전은 필연적인 것이다. 근무시간이 짧아지면 상대적으로 통근시간은 길어진다. 8시간의 노동을 위해 통근시간을 1시간이나 소비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근로자는 만일 근무시간이 단축된다 하면 통근에 1시간이나 소비하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근무시간에 대한 통근시간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직장으로의 왕복에 노력을 소비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로자들이 통근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면 사용자 측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집중화된 대규모의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간접적으로 수당을 더 주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통근에 필요한 시간, 불편, 비용이 적어지게 되므로 임금의 액수는 다소 적어진다 해도 '가내전자근무체제'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노동자는 늘어난다. 이런 점에서 본다 해도 업무의 이전이 점점 장려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가치관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것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자유를 갖고 싶어하는 욕구가 높아졌고 작은 마을이나 시골에서의 생활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과는 별도로 사람들의 가족이라는 구성단위에 대한 상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핵가족은 제2의 물결시대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지된 표준적인 가족형태였지만 현재로는 분명히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가족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검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하나의 사실을 지적하는 데 그치겠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핵가족으로부터의 탈피가 진행되고 있는 곳에서는 어디나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구성단위의 결합을 강하게 하려는 욕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때 가족을 굳게 맺어주던 요소 중의 하나는 가족이 함께 일을 분담한다는 것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나에도 노동의 장소를 함께 하면서 일하고 있는 부부쪽이 이혼율이 낮다고 생갂한다. 가내전자근무체제가 만들어지면 다시금 남편과 아내(아이들도 함께 있게 되겠지만) 하나의 노동단위로서 함께 일하게 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정생활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직장을 가정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동의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세금부담의 경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 정책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제2의 물결시대의 초기 노동운동가들은 '1일 10시간 노동'을 주장하며 투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제1의 물결시대에는 거의 이해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가저어에서 해야한다.'라는 운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많은 노동자들은 이러한 선택을 하나의 권리로서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일의 재배치가 거정생활을 충실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게 되면 노동자의 이러한 요구는 정치, 종교, 문화 등 각계의 여러 단체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가내전자근무체제를 요구하는 투쟁은 제2의 물결의 과거와 제3의 물결의 미래 사이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한 대투쟁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 대투쟁은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을 개발하는 데 열심인 과학기술자와 기업뿐만이 아니라 환경보호론자, 조직의 새로운 형식과 폭넓은 제휴를 목표로 하는 노동운동가, 보수적인 성직자 등으로부터 급진적인 여권운동가, 정계의 주류세력들까지도 결합시켜 새롭고 보다 만족할 만한 가족의 미래를 실현하는 일을 지원하도록 만들것이다. 가내전자근무체제는 제3의 물결이 만드는 내일의 세력을 집결시키는 중요한 거점으로서 그 모습을 명확하게 할 것이다. 가정 중심의 사회 전자주택이 실현되면 대단히 중요한 결과가 뒤를 이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게 된다. 열성적인 환경보호주의자나 고학기술의 발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자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게 된다. 지역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가정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의 인구규모가 커지면 현재보다도 지역공동체의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변화가 심한 여러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지금으로서는 공동체의 안정은 도저히 실현시키기 어려운 목표이지만 이러한 가정내 근무자가 많아질수록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근로자가 일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정에서 할 수 있게 된다면 직장을 바꿀 때마다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다니고 있지만 가정이 작업의 현장이 된다면 플러그를 다른 컴퓨터에 바꾸어 곶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게 되면 이사 가는 것을 강요당하는 일도 적어질 것이고 개인에게 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인간관계가 단절될 염려도 없고, 지역공동체로의 참가의식도 높아진다.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어떤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더라도 1,2 년 있다가 또 이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서 이웃의 단체에 가입하거나 깊은 우정을 갖거나 지방 정치에 참가하거나 지역공동체생활에 연대감을 갖는다는 그런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게 된다. 전자주택은 지역공동체로의 구속감을 되살리게 하여 교회나 부인단체, 지역의 모임, 동호회, 스포츠클럽, 청소년단체 등 각종 단체들을 부흥시키는 계기가 ㅗ딜 것이다. 전자주택이란 사회학자가 즐겨 사용하는 독일어의 전문용어 '공동사회' 이상의 확대개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 일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정으로 옮기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에너지의 필요량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원의 분산을 도모할 수 있다. 고층 빌딩이나 무질서하가 늘어서 있는 공장단지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에너지 집중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내전자근무체제가 도입되면 에너지의 수요가 분산되기 때문에 태양열이나 풍력, 기타 대체 에너지의 기술을 이용하기 쉽게 된다. 각 가정에 소규모의 에너지 발생 장치를 설치하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집중 에너지의 일부는 이것으로 대용할 수가 있다. 이것은 오염을 줄이는 것도 된다. 그 이유의 하나는 소규모의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대치하면 오염도가 높은 연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환경위험지역에서 나오는 농도가 높은 오염물 방출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체제로 인하여 쇠퇴되는 사업도 있을 것이고 성장하는 사업도 나타나게 된다. 전자공학이나 컴퓨터, 통신시설관계의 산업은 분명히 번성하게 될 것이다. 석유회사, 자동차산업, 부동산개발업은 타격을 받게 된다. 소형 컴퓨터를 판매하는 기업이나 정보 서비스업 같은 새로운 업종이 대두하는 반면 우편사업은 축소될 것이다. 제지회사는 그다지 시원찮은 사업으로 될 것이고 서비스업이나 화이트칼라 산업은 이익이 증대될 것이다. 좀더 깊이 분석해 보자. 누구나가 전자공학기기의 단말기나 시설을 외상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고전적 용어인 노동자라고 부르기 보다는 독립된 사업가의 존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소위 노동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가 강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가내근무자들이 모여 자기들이 행하는 서비스에 관한 계약을 대행해 주는 작은 회사를 설립하거나 기계를 공유하는 협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할 것이다. 온갖 종류의 새로운 모임이나 조직형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에 미치는 영향 노동영역의 이밍지가 변화하고 추상적인 숫자나 기호를 취급하는 일이 늘어남에 따라 극도로 지적인 작업환경이 태어난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 지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며 어느 면에서 본다면 지금보다도 더 비인간적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볼 때 가정에서 일한다는 것은 가족이나 근처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게 되어 인간관계가 두터워지는 계기도 된다. 공상과학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처럼 특정한 개인과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있는 전광 스크린이 인간관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가 두 종류로 나뉘어진다고 가정할 수가 있다. 하나는 직접적 접촉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기기를 통해서 행해지는 간접적인 인간관계이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규칙과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여러가지로 실험도 하게 되고 불완전한 방법들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어느 시간에는 집에서 일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밖에서 일하려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여러 곳에 업무 센터가 설치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몇 개월, 혹은 몇 년간을 가정에서 일하고 다음 몇 년간을 밖에서 일하고 다시 또 가정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리더쉽이나 경영능력의 패턴도 바꾸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대기업에서 화이트칼라가 담당하고 있던 일을 청부하는 소규모의 회사가 늘어나게 되어 가내근무자들을 팀으로 편성하여 일을 가르쳐 주고 관리를 하는, 그런 전문화된 직책을 맡아하게 될 것이다. 아마 이런 소규모의 회사는 팀의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 컴퓨터의 제어탁자나 타자기의 키보드를 통한 관계뿐만 아니라 서로 직접 면식이 있게 하기 위해 각종 파티나 사교모임.공동의 휴일을 설정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가정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임금수준이나 기회비용을 둘러싼 분규에 직면해 있다. 직접적인 교제나 인간적인 감정의 교류가 가정내에서 강화되는 한편,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거의 컴퓨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간접적 접촉으로 끝나버린다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실업자의 수는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체제가 된다면 '취업자'와 '실업자'라는 말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러한 질문이나 문제점을 무시한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 아닐까? 그러나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나 난관이 있더라도 새로운 가능성들도 있다. 새로운 생산체제로의 비약이 이루어지면 현재 우리들이 안고 있는 과독기적인 많은 문제들은 과거의 것으로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봉건시대 노동의 비참한 상황은 그 시대의 농업제도가 계속되는 한 완화되지는 않았다. 소작농의 폭동이나 귀족의 박애주의나, 종교적인 이상가들에 의해서도 그런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비참한 상황은 공장제도가 들어오고 봉건적인 농업제도가 완전히 변질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공장제도는 또다른 여러가지 문제점을 가져온 것이다. 실업, 작업의 지나친 단조로움, 극도로 전문화된 분업, 비정한 개인주의, 저임금, 이러한 산업사회 특유의 여러가지 문제들은 각 기업, 노동조합, 친절하고 너그러운 고용주, 또는 혁명적 노동자의 정당 등의 열성적인 노력이나 기대에도 불구하고 제2의 물결체제 속에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300년간이나 미해결인 채 지속되어 왔다고 한다면 이것은 생산형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생산체제로의 비약이 제조업과 화이트칼라 양쪽에서 행해져서 전자주택으로의 돌파구가 열리면 논쟁의 전제조건은 완전히 변하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논쟁하고, 투쟁하고, 때로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생명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는 쟁점들이 대부분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다. 사실 현재로서는 가내전자근무체제가 미래의 규범이 될지의 여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현행 노동력의 10 퍼센트^36,36^20 퍼센트가 금후 2,30 년 사이에 역사적인 전환을 이루어 놓으면 경제, 도시, 생활환경, 가족구조, 가치관, 그리고 정치마저도 현재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실현가능한 일이며 바람직한 가능성으로서 충분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제3의 물결에 의한 여러가지 변화들을 개별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이제 우리는 그 상호간의 관련을 고찰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현재의 기술체제와 에너지원이 변화를 강요당하여 새로운 '기술영역'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대중매체의 탈대중화 현상과 지적 정보가 가득 찬 환경의 조성이 진행되고 '정보영역'도 개혁된다. 이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이 합류해서 현재의 생산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 공장이나 사무실에서의 일의 성격을 바꾸어 넣고 궁극적으로는 작업의 장소를 가정으로 되돌리는 방향으로 우리들을 인도해 간다. 이렇게 거대한 역사적인 전환은 우리들이 지금, 새로운 문며의 맨 앞에 서 잇다는 주장을 정당화시킬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들은 가족간의 기반이나 우정이나 학교나 기업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 그 자체를 재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지금 제3의 물결의 '기술영역' 및 '정보영역'과 더불어 제3의 물결의 '사회영역'마저도 창조해 가고 있는 것이다. 제17장 미래의 가족 1930 년대의 대공황기에 수백만 명이라는 실업자가 거리에 득실거렸다. 공장은 문을 닫고 해고통지를 받은 실업자들은 극도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자책감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이윽고 실업이라는 사태는 개인의 게으름이나 도덕적 퇴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힘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의 편재, 근시안적인 투자, 무책임한 투기, 어리석은 무역정책, 무능한 정부 등이 실업의 원인이지 실업자 개인의 약함에 의한 것은 아닌 것이다. 실업자가 스스로를 책망한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순진하고 잘못된 생각이었다. 오늘날 또 다시 수백만의 사람들이 30 년대와 마찬가지로 자아를 잃고 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들이 죄책감에 휘말리고 있는 것은 경제적 파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가정의 파탄이 그 원인인 것이다. 결혼생활의 파국으로 남녀가 고민을 하고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역시 스스로를 책망한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에서 나온 생각이다. 가정의 파탄이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개인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혼이나 별거, 그 밖의 가정적 불행이 여러 나라들에게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면 그 원인은 이제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 없는 것이다. 가정파탄이라는 오늘의 문제는 산업주의의 위기라는 일반적인 위기상황의 일부로 취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2의 물결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제도가 붕괴되려 하고 있는데, 이것도 그 한 예인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제3의 물결의 사회영역을 수립하기 위한 정지작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종래 가족제도의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변모를 가져오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은 사람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마음의 상처까지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가족제도의 붕괴라는 말을 곧잘 듣게 된다. '가정'이야말로 최대의 과제라고들 말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부는 가족제도를 보호하는 정책을 세워야만 할 것이다. ^5,5,5^ 이문제는 정부에 잇어서 최우선의 과제다." 교회도, 정부도, 신문도, 평론가도 대개가 이러한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가족이라 함은 특정한 형태의 가족을 의미하고 있다. 말하자면 수많은 형태의 모든 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의 가족이란 제2의 물결의 가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가족이란 한 집안의 가장인 남편, 가정을 지키는 아내, 그리고 몇 명의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이다. 세계에는 여러 모양의 가족형태가 존재하고 있는데 제2의 물결문명이 이상으로 삼은 것은 핵가족이라는 형태였다. 핵가족은 지배적인 가족형태가 되어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핵가족이 표준적인 가족형태로서 널리 사회에 보급되어졌다. 대량생산의 사회는 계급제도와 관료제도가 지배하며 직업과 주거의 분리를 기본으로 한 사회이다. 핵가족은 이러한 사회에서 폭넓은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요청에 꼭 알맞은 가족형태로 정착한 것이다. 오늘날 당국자들이 가정의 회복을 촉구할 때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가족이란 제2의 물결의 가족, 즉 핵가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조글 핵가족으로만 한정해 버리는 좁은 견해는 문제의 전체적인 판단을 그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핵가족이 이전으 중요성을 되찾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데 있어서 유치히기 짝이 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러한 당국자들은 저질잡지의 자동판매기로부터 록뮤직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이든지 가족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이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낙태를 금하고, 성교육을 폐지하고, 여권운동에 반대하기만 하면 가정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통계책임자는 "결혼에 대한 올바른 사고방식을 철저히 하기 위해 교육을 강화하고 보다 좋은 결혼상대를 선택하기 위해 과학적 증거가 있는 상성 테스트 같은 것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결혼상담역을 증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이라는 것의 이미지 회복을 시도하기 위해 홍보활동을 화발히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한다.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라는 역사의 큰 흐름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선의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완전히 표적에서 벗어난 어리석은 제안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핵가족 보호운동 만일 진정으로 핵가족의 회복을 원한다면 다음과 같이 가능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몇 가지의 예를 들어 보자. (1) 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대량생산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기술의 발전을 제2의 물결단계에서 동결시켜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먼저 컴퓨터를 파괴하여야 한다. 제2의 물결의 가족에게 있어 컴퓨터는 낙태허용법이나 동성연애자의 권리옹호운동이나 포르노 잡지보다도 위협적이다. 왜냐 하면 핵가족은 대량생산체제를 전제로 성립되어 있는 데 비해 컴퓨터는 인간을 대량생산의 다음 단계로 이행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경제의 분야에서는 제조업을 장려하고 서비스 부분의 성장을 억제한다. 화이트칼라나 전문직.기술직 근로자들은 블루칼라 근로자들보다도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지적.심리적으로 능동적이며 가족중심의 사고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이혼율은 서비스 직종이 늘어남과 동시에 상승하고 있다. (3)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너자력과 같은 고도로 집중화된 에너지 생산방식을 채용한다. 핵가족은 탈중앙집권화 사회보다도 중앙집권적인 사회에 더 적당한 것이다. 에너지 체계의 형태도 사회나 정치의 중앙집권화에 영향을 미친다. (4)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대중매체를 규제한다. 먼저 유선 TV와 카세트의 보급을 규제하되 지방지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핵가족은 정보나 가치관이 단순하고 국민의 여론을 얻기 쉬운 사회에 가장 적당하다. 고도로 다양화된 사회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매체가 가족의 붕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비평가도 있으나 사실은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형태로서 찬양해 온 것은 다름 아닌 대중매체였다. (5) 여성을 부엌으로 되돌려 보내고 여성의 임금을 최저선에 억제시킨다.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더욱 불리한 지위를 얻더라도 노동조합의 선임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 여성의 직장진출에 의해서 양친 모두가 집을 비우게 된 것은 핵가족의 핵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이 활동하고 남성이 집을 지키며 아이들을 양육하도록 해도 좋다.) (6) 그와 동시에 청소년 근로자의 임금을 대폭으로 인하하여 귿르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을 연장시켜 자녀의 자립심의 발달을 억제한다. 청소년들이 부모의 슬하를 떠나 일찍부터 활동하게 되면 핵가족은 점점 분해되어 버린다. (7) 피임을 금지하고 생물의 생식에 관한 연구를 일체 금지한다. 피임은 여성의 독립심을 강조하고 혼외 성관계를 조성하므로써 핵가족의 유대를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 (8) 생활수준은 1955 년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사회가 풍부해지면 독신자, 이혼자, 근로여성, 그 밖에 가정을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경제적인 독립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핵가족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빈곤이 필요하다. (9)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 예술, 교육, 경제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사상의 자유 및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혁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제지함으로써 사회의 다양화를 정지하고 다시금 획일화된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핵가족이 존속하 ㄹ수 있는 것은 대량생산과 대중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밖에는 달리 있을 리 없다. 핵가족 이외의 가족개념은 생각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계속 고집하려면 이상과 같은 가족보호대책을 실행해야 한다. 제2의 물결가족의 복귀를 진저응로 원한다면 제2의 물결문명 전체의 회복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업기술뿐만 아니라 역사 그 자체를 동결해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가족 그 자체가 소멸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형태를 이상으로 한 제2의물결의 가족제도다 이제 최종적으로 파탄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에 대신하여 다양한 가족형태가 출현하고 있다. 제3의 물결문명을 맞아 대중매체와 생산을 탈대중화하는 동시에 가족제도도 탈대중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핵가족의 생활양식 제2의 물결의 도래가 확대가족제도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제3의 물결이 도래한다고 해서 핵가족제도가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핵가족이 이상적인 모델은 아니라는 것이다. 별로 주목시되지 않된 일이기는 하나 제3의 물결이 가장 많이 침투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전형적인 핵가족의 형태를 벗어나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핵가족이란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집안을 돌보며 두 아이를 기르는 가족이라고 규정하고 실제로 이러한 가족형태를 취하고 잇는 미국인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해 보면 그 결과는 놀랄 만한 것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7 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미 93 퍼센트의 사람들이 제2의 물결의 이상적인 가족상 밖으로 이탈해 버린 것이다. 설령 개념정의를 넓혀 부부가 다 같이 일하고 잇는 가정이나 자녀수가 둘 이하이거나 둘 이상의 가정을 포함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3분의 2내지 4분의 3의 사람들)은 핵가족이 아닌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핵가족의 형태는 다른 가족형태가 계속 증가해 가고 있는 반면(핵가족을 어떻게 규정하든지) 여러가지 증거로 집작해 보건대 그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우선 가족과 떠나서 혼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970 년부터 1978 년까지의 사이에 미국에서는 14세부터 34세 연령의 단독생활자 수가 150 만 명에서 430 만 명으로 약 3배나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제 전세대의 5분의 1이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 모두가 아내나 남편을 여의고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의로 얼마동안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시애틀시에서 여성 시의회의원의 입법보좌관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은 "좋은 사람을 만나기만 한다면 결혼을 고려해 보겠지만^5,5,5^ 결혼 때문에 자신의 직업이나 인생을 완전히 희생해야겠다고까지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독신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 일찍 부모의 슬하를 떠나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인구문제의 전문가인 아서 노튼은 '여성의 독신생활은 과도적 생활단계로서 여성의 생활권 속에 정착해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다 나이 든 연령층에 대해서 보면 상당수의 이혼경력자들이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새로운 결혼상대자가 발견되기까지의 동안, 즐겁게 혼자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쪽이 편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증가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신문화가 번영하고 있다. 독신자들이 많이 모이는 술집이나 스키클럽, 혼자서도 참가할 수 있는 단체여행, 독신자용의 상품들이 격증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부동산업계에서도 독신자 전용의 콘도미니엄이 분양되고 있으며 침실수가 적은 소형 아파트나 교외주택의 수요가 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집을 사는 사람의 약 5분의 1이 독신자들이다. 법적인 결혼절차를 거치지 않고 동거하는 사람의 수도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잇다. 미국에서는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과거 10 년 동안에 그 수는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동거생활자가 너무나 증가했기 때문에 미국의 도시주택개발성은 종전의 규칙을 개정하여 공영주택의 입주자격을 허가하게 되었다. 코네티컷주에서 캘리포니아주 등의 법원에서는 정식결혼수속을 끝내지 않은 사람들이 '이혼'하는 경우의 법률상의 문제라든가 재산상의 문제처리에 시달리고 있다. 동거생활자들은 서로가 상대방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에티켓 칼럼니스트들의 글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결혼상담뿐만 아니라 '커플(couple)상담'이라는 새로운 전문 서비스가 등장했다. 자녀가 없는 생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자녀들이 없는 생활 방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미국정책연구 센터의 선임연구원인 제임스 레이미는 자녀중심의 가정에서 어른중심의 가정으로 가정상이 이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20세기 초에는 혼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막내가 독립하고 나서 부부가 오래 사는 일도 비교적 드물었다. 따라서 어느 가정이나 사실상 자녀중심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미 1970 년에는 18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사는 어른은 세 사람에서 한 사람 꼴로 감소해 버렸다. 현재는 자녀갖지 않기 운동을 벌이는 단체가 나타났으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자녀갖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1960 년에는 결혼 경력이 있는 30세 이하의 미국 여성 중 아이가 없는 사람은 20 퍼센트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1975 년에 이르자 32 퍼센트로 급증했다. 15 년 동안에 실로 60 퍼센트의 급증을 보인 것이다. 아이들을 갖자고 하는 캠페인에 대해 '자녀를 갖지 않을 자유수호를 위한 전국연합회'라는 시끄러운 단체가 생겨나 자녀가 없는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전국 무자녀 가정친목회'와 같은 조직이 있다. 유럽에서도 의식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본에 사는 30 대의 롤 부부는 남편은 시청공무원, 아내는 비서인데, "우리는 앞으로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롤 부부는 결코 경제적으로 곤란한 것은 아니다. 작으나마 자기 집을 갖고 있으며 휴가중에슨 캘리포니아라든가 프랑스 남부지방으로의 여행을 즐길 만큼의 여유는 있다. 그러나 아기를 가지면 부부의 생활은 완전히 큰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현재의 생활양식에 익숙해 있어요.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생활이 좋아요."라고 말한다. 소련에서는 러시아 민족 이외ㅢ 소수 민족의 출산율이 여전히 높은데도 러시아인의 출산율만은 저조해서 소련 당국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자녀가 있는 가정으로 눈을 돌려보면 핵가족의 붕괴는 보다 한층 명백해진다. 한쪽 부모만 있는 가정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 이혼, 가정불화, 별거 등의 현상이 핵가족에서 현저하게 나타나 미국 아이들의 7 명 중 하나는 양친 중 어느 한쪽밖에 없는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도시에서는 이것이 4 명중 한 명이라는 더욱 높은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한쪽 부모만을 가진 가정의 증가는 심각한 문제이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에 따라서는 부부 사이의 끊이지 않는 불화 속에서 길러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환경 아래서 자라는 편이 문제가 적다는 인식이 넓어져 가고 있다. 신문이나 여러 단체들이 편친가정을 짖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으며 편친가정끼리 단결하여 정치적 발언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것 또한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영국에서도 대개 10세대 중 1세대는 편친가정으로 이루는 세대이다. 그 중에 6분의 1은 아버지만 있는 세대이다. 잡지 '뉴 소사이어티'는 편친가정은 빈곤층 속에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런던에 본부를 둔 '전국 편친가정협의회'는 이러한 가정의 보호를 목표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서독의 쾰른에서는 주택조합이 편친가정을 위해 전용 아파트를 건설하여 보육원을 설치하는 등 부모가 주가에 직장에 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제국에서도 이러한 가정에 대한 일련의 시책이 강구되고 있다. 예를 들면 스웨덴에서는 편친가정을 위해 유유아 시설이나 보육원을 개설하고 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에서는 편친가정 쪽이 경우에 따라서는 전형적인 핵가족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이혼한 ㅅ람의 재혼이 많아지게 되면 여러 모양의 새로운 가족형태가 생겨난다. 나는 이미 '미래의 충격'속에서 '집합가족(aggregate family)'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혼한 사람이 서로 아이들을 데리고 재혼함으로써 생겨나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 대해 언급했다. 이 경우 새로운 가족에는 이미 성인이 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미국에선느 아이들의 25퍼센트는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이와 같은 가정에서 자라게 되리라고 추정되어진다. 데이다인 멜일리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의 아이에게 여럿의 부친이나 여럿의 모친이 있는 가족이 앞으로의 가족의 주류가 될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이혼한 아내에게 자녀양육비를 보내주고, 아내는 전남편에게서 새오할비를 받아들이는 다부다처적인 경제관계가 성립할 것이다.' 그녀의 보고에 따르면 이와 같은 가족이 증가해 부모오 혈연관계가 없는 자녀간의 성관계가 맺어지게 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가족형태가 공존하고 있다. 동성애에 의한 결혼, 생홀공동체, 노인들만의 공동생활(어느 경우에는 성적 관계도 있다), 몇 개의 소수민족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민족 그룹내의 결혼 등, 종래에 볼 수 없었던 여러가지의 복잡한 가족형태가 나타났다. 계약결혼.연속결혼(serial marriage). 가족연합과 그 밖의 성관계를 수반한 것, 그렇지 않은 것 등 여러가지 결연을 볼 수 있다. 남편과 아내가 별거하여 각각 다른 도시에서 직어블 갖고 있는 가정도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의 가정형태도 표면화되지 않은 여러가지 변형된 가족형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켈람, 엔스밍거, 터너 등 3 명의 정신과 의사가 시카고의 흑인빈민가에서 조사해 본 결과 자그마치 86종류의 가족형태가 분류되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가족, 어머니와 큰어머니의 가족, 어머니와 계부의 가족, 기타 어머니와의 연관만으로도 수많은 가족형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가족형태가 분명해져 가는데 따라서 꽤 정통적인 학자마저도 핵가족의 시대는 끝났으며 다양화된 가족생활을 특색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이전에는 과격론을 당해 온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회학자인 제시 버나드는 '앞으로의 결혼의 특징은 사람들이 자기 기호에 따라 다양한 결혼형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인간관계도 획일적이 아니라 다양화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미래의 가족은 어찌될 것인가."라는 물음을 우리는 곧잘 듣게 된다. 그런 경우 제2의 물결의 핵가족이 세력을 잃고 무언가 다른 형태가 그에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제3의 물결 문명에서는 어떤 특정의 가족형태가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를 지배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가족은 다양화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인간이 모두 획일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인간이 일생 동안에 스스로 '주문한' 가족형태를 여러 모로 경험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핵가족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고 하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온갖 가족형태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제3의 물결의 도래에 의해서 생산체제 및 정보체제와 더불어 가족제도도 역시 다양화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관계 이와 같은 가족형태의 다양화 속에서 어떠한 형태가 제3의 물결문명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우리의 자녀들은 10 년이나 20 년이라는 긴 시간을 혼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 자녀는 갖지 않게 될 것인가. 일처다부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유전학이 발달해 남자나 여자 아이를 마음대로 낳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남자가 지나치게 많아지거나 한다면^5,5,5^ 이런 생각까지도 해 본다.) 동성연애자가 결혼하여 자녀들을 기른다면 어찌될 것인가. 법조계에서도 이제 이와 같은 문제도 논ㄹ란되고 있다. 영양생식이 가능하게 된다면 어떠한 충격적 사태가 일어날 것인가. 일생동안에 여러가지 가족형태를 경험한다고 하면 인생은 어찌될 것인가. 우선 먼저 시험결혼단계가 있고, 다음에는 자녀들을 갖지 않은 채로 붑가 모두 직업을 갖고 함께 활동을 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는 동성애결혼에 들어가서 비로소 자녀를 갖는 수도 있을지 모른다. 베시 버나드는 "결혼에 관한 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기이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당사자들로서는 아주 자연스런 일인 듯하다."고 말한다. 어떤 가족형태가 없어지고 어떤 형태가 늘어날 것인가는, '가족은 신성한 것이다.'라는 도덕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업기술이 어떠한 발전을 이룩할 것인가, 노동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요소가 많다. 가족형태를 결정하는 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어서 정보전달의 유형, 가치관의 변화, 인구동태의 변화, 종교관 혹은 생태계의 변화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족형태는 노동의 형태요ㅘ 가장 깊은 관계가 있다. 핵가족은 공장노동과 사무노동의 등장과 더불어 증가해 온 가족형태인데 공장과 사무실로부터의 작업이전이 이루어지면 가족의 형태도 또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한정된 지면에서 노동력이나 노동의 성격변화가 어떻게 가정생활을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자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아마 앞으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게 될 특기할 만한 중요한 변화를 하나만 들어 둔다. 이 변화는 우리가 경험한 것은 아니나 앞으로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꿔 버릴 가능성을 안고 잇다.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노동의 장소가 사무실이나 공장으로부터 다시 가정으로 되돌아 간다고 하는 사살이다. 가령 앞으로 25 년 후에 노동력의 15 퍼센트가 가정에서 상근 혹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가내노동은 인간관계를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애정의 의미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가내전자근무체제의 생활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내용은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팜플렛의 작성, 멀리 떨어진 공장의 모습을 모니터로써 감시하는 공정관리, 건축설계, 전자장치에 의한 통신문의 타이핑, 그 밖에도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일들에 하나의 분명한 변화가 일어난다. 일터가 가정 안으로 들어옴에 따라 전에는 하루 중에 한정된 시간에만 얼굴을 마주하던 부부가 온 종일 함께 지내게 되어 상호간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진다. 오히려 괴로운 일로 생각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상호간에 공통의 경험이 증대됨으로써 부부 사이는 보다 풍부해져서 결혼생활에 도움이 경우가 많을 것이다. 미래의 가내전자근무 가정을 차자 사람들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생활의 양식이나 노동의 형태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이 판명될 것이 틀림없다. 어떤 집에서는 종래와 별 다름이 없는 형태로 서로의 일을 분담하고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봉급을 받는 일을 하고 또 한 사람이 집안 일을 하는 형태이다. 실제로는 역시 이와 같은 가정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남편은 프로그래밍의 일을 하고 아내는 자녀양육에 전념하고 잇다. 그러나 일을 집에서 하기 있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의 일을 돕고 남편도 아내의 수고를 덜어 주는 것도 역시 쉬어진다. 부부가 둘이서 한 가지 일을 분담하는 가정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공정을 서재에 놓인 조각탁자 위의 화면으로 보면서 감시하는 것과 같은 일은 남편이 4시간, 아내가 4시간씩 교대로 맡는 것도 가능하다. 또 다른 집에서는 부부가 제각기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편은 세포생리학자이고 아내는 공인회계사로서 각각 자기의 전문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부부가 서로의 전문용어를 배운다거나 상대방의 전문분야에 관해 관심을 갖고 그 직업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직업과 개인의 생활을 완전히 떼어 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남편이든 아내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곳으로부터 상대방을 배제하는 일도 우선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방문조사를 계속해 나가면 바로 이웃집에는 부부가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일을 둘이서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남편은 파트타임으로 보험의 계획과 입안을 하고 있으며 건축 조수의 일도 파트타임으로 하고 있다. 아내도 남편과 교대로 같은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남편에게나 아내에게나 일이 다양하여 서로에게 흥미도 갖게 된다. 부부가 각기 일하거나 또는 몇 가지의 같은 일을 함께 하고 있는 경우에는 남편은 아내에게서 아내는 남편에게서 배우는 경우도 많고 협력해서 문제해결에 임하며 서로 도움을 주게 된다. 그 결과 부부의 관계는 보다 친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직업관계상 부부가 서로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반드시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제1의 물결시대의 대가족은 경제적인 생산의 단위이기도 했었다. 여기서는 부부가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대가족이 부부 상호의 신뢰관계를 기르고 심리적인 의지가 되기에 알맞은 모델이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으며 스트레스도 있었다. 그러나 제1의 물결시대의 부부는 현대와 같은 교류가 적은 차가운 인간관계는 아니었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함으로써 오늘날에 와서 보면 부러울 만큼의 친밀하고 뜨거운 인간관계가 생겨나 부부 사이의 사랑의 밧줄은 튼튼했었다. 즉 가내근무가 이상으로 되어 가면 가족의 구성이 변할 뿐만 아니라 가족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단적으로 말하면 부부에게 공통의 체험이 많아지며 부부 사이에 대화가 부활한다. 그리고 부부는 차가운 관계로부터 뜨거운 관계로 변하는 것이다 사랑의 정의가 새로운 문제로 나타나게 되고 '사랑+알파'라는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사랑 ^26^ 알파(love plus alpha) 제2의 물결시대가 진전됨에 따라 본래는 가정에 귀속해 있던 온갖 기능이 전문시설에 맡겨지게 되었다. 교육은 학교에, 병자의 간호는 병원에 맡겨졌다. 이리하여 가정의 기능은 점점 줄어들어 낭만적인 사랑이 싹터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제1의 물결시대에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조건으로서 일을 잘 하는가, 병자의 뒷바라지를 잘 하는가, 태어나는 아이들을 훌륭히 교육할 수 있는가, 함께 기분좋게 일할 수 있는가, 부지런한 사람인가 게으른 사람인가라는 것이 문제로 되었다. 실제 농가에서 며느리를 고르는 경우 무엇보다도 우선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은 '건강하고 부지런한가?' '병은 없는가?'라는 것이었다. 제2의 물결시대에 들어서 가정의 기능이 축소되자 가정은 이미 생산의 단위라는 사실도, 학교라는 사실도, 또 야전병동이나 보육원일 필요도 없게 되어 버렸다. 그 대신에 가정의 심리적인 모든 기능이 중시되어졌다. 결혼이란 인생의 반려자, 섹스, 따뜻함, 마음의 의지 등을 구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가정의 기능이 달라지자 결혼상대를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져 갔다. 한 마디로 사랑이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사랑만 있으면 만사가 잘 되어 간다.'고 누구나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세상은 그렇게 연애소설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계급이라든가 사회적 지위, 수입이라는 요소가 완전히 무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은 대서특필되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지게 되었다. 장래의 가정생활이 가내전자근무체제가 시작되면 '사랑만 있으면....'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통용되지 않게 된다. 부부는 하루의 대부분을 따로이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으므로 성적 매력이라든가 심리적인 만족감, 혹은 사회적 지위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게 된다. 사랑에 새로운 알파가 요구되어진다. 성적 매력, 심리적인 만족감 외에 +알파 즉 두뇌의 명석함(조부모의 시대에는 근육이 자랑거리였지만 손자의 시대에는 지력이 자랑으로 되었다.), 성실성, 책임감, 수양 등 일에 관련된 능력이나 덕목이 요구되어진다. 미래의존 덴버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노래를 부르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좋다, 그대의 눈동자가 연분홍의 입술 다정함이 그대를 감싼다. 그대의 예쁘장한 손가락 끝은 키를 두들기며 컴퓨터의 화면을 조작한다. 그런 그대의 손놀림이 나는 좋다. 미래의 가정의 역할은 오히려 다양화하여 사회적으로도 여러 기능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정의 역할이 변하면 거기에 수반하여 결혼상대를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지며 사랑의 정의 그 자체도 바뀌게 될 것이다. 일하는 아이들 한편 가내전자근무체제내의 아이들은 현재의 아이들과는 다른 성장과정을 체험한다. 우선 부모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나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아이들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제1의 물결의 아이들은 철이 들면서부터 양친이 일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이에 대해 제2의 물결의 아이들, 적어도 최근 세대의 아이들은 학교라는 피난장소에 격리되어 노동과는 관계가 없는 장소에서 자라고 있다. 아이들 대부분은 자기 부모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매우 막연하게 밖에 알지 못한다. 실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회사의 중역이 어느 날, 아들을 회사에 데리고 갔다. 중역실에는 호화로운 융단이 깔렸고조여은 간접조명이고 근사한 수위실까지 있었다. 점심 때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나갔다. 예의바른 웨이터가 시중을 들고 있고, 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소년은 집에 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 놀라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우리집은 가난한데 아빠는 회사에 오면 이렇게 부자가 되는 거예요?" 현대의 아이들, 특히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들의 생활의 중요한 면을 전혀 모른 채 자란다. 그러나 가내전자근무체제의 아이들은 양친이 일하고 있는 것을 볼 뿐만 아니라 어느 연령에 도달하면 아이들 자신도 일을 하게 된다. 제2의 물결시대에는 연소자노동은 제한되고 있다. 최초에는 취로의 제한의 선의적인 필요에 의해서 제한되도록 되었지만 현재에는 오히려 젊은 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부터 축출하는 시대착오적인 장치로 변모해 가고 있다. 노동이 가정내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이런 종류의 제한의 적용은 더 한층 어렵게 된다. 일에 따라서는 아동취향의 것을 택해서 오히려 기술교육의 일환으로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이라 하지만 14,5세가 되면 상당히 고도의 것도 이해하고 복잡한 문제에 손을 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아마 법적으로는 위법일 테지만 캘리로니아주의 어느 컴퓨터 가게에서 아직도 이에 치열교정기를 붙인 아이가 가정용 컴퓨터의 복잡한 구조를 훌륭히 해설하여 판매를 돕고 있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있다.) 현대 미국에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층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내전자근무체제의 작업장으로 그들을 통합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도 멀지 않아 닥쳐올 문제이다. 청소년의 범죄, 폭력, 정신병 등이 실업에 수반하여 파생한다. 이것은 전체주의적인 방법으로 청년들을 전쟁에 동원하든가, 혹은 강제노동에라도 몰아내지 않는 한 제2의 물결의 경제체제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가내전자근무체제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생산적인 역할을 다시금 청소년들에게 부여하기 위한 해결수단이 될 것이다. 멀지 않아 연소자들의 노동은 정치적인 과제로 되고, 연소자들의 노동시장 확대운동이 전개되는 날이 올 것이다. 다만 그런 경우 연소노동자들이 경제적으로 착취당하지 않도록 보호대책이 새로이 강구되어야 한다. 전자 확대가족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다. 가정 내에서 노동이 이루어지게 되면 가족의 형태도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 확대가족'이라고도 말해야 할 것이다.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여러 대에 걸친 부부가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는 이른바 확대가족이란 것이 가장 일반적인 가족형태였다. 혈연관계가 전연 없는 한 두명의 고아나 도제.머습 등을 포함한 확대가족도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가내근무가정에는 남편이나 아내의 회사 동료가 함께 생활하는 일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업무상 단골이나 공급자 또는 이웃집의 아이들이 일을 배우기 위해 동거하는 일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정과 직장을 겸한 생활공동체를 육성하기 위해 제정된 특별법하의 자그만 주식회사 같은 그러한 가족을 단위로 한 법인조직을 설립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전자 확대가족의 형태가 일반화되어 갈 것이다. 1960 년대부터 70 년대에 걸쳐 생겨난 많은 생활공동체는 급속히 붕괴해 버렸다. 생활공동체와 같은 것은 고도의 산업기술 사회에서는 원천적으로 불안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가장 급속도로 붕괴한 것은 정신적인 연줄을 찾아 이루어진 생활공동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적인 접촉을 추구하여 고독과 싸우며 우정을 추구해 만들어진 생활공동체에는 경제적 기반도 없이 이상사회를 지향한 실험을 하려고 했던 것이 많았다. 현재 성공하고 있는 생활공동체는 이것과는 반대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경제적 기반을 갖춘 것들이다. 이상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 전망을 가진 자는 살아 남은 것이다. 외부적으로 드러난사명이 한 집단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필요한 경제적 기반도 제공해 주게 된다. 생활공동체의 목적에는 신제품의 개발, 병원의 전산사무처리, 보험회사의 데이터 처리, 통근비행기의 시간표 작성, 카탈로그 작성, 기술에 관한 정보 서비스 등 갖가지 것이 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내일의 전자 생활공동체는 실현가능하며 안정된 가족형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전자 확대가족이 출현했다고 해서 그 밖의 가족형태에 사회적 비난이 더해질 리는 없다. 또 전자 확대가족은 전시효과를 노려서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제체제를 유지해 나가는 데에 필요불가결한 부분을 전자 확대가족이 담당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이 가족형태는 아주 길게 계속될 것 같다. 대가족이 상호연관성을 깊게 하여 대가족망을 형성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대가족망, 혹은 대가족연합은 일을 하는데도 서로 협력하고, 사회생활면에도 협력을 한다. 전자 확대가족의 내부에서는 부부의 범위를 초월하여 성적 관계가 생겨나는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 이성간의 관계도 있으며 동성애도 있다. 아이들이 없는 집도 있으며, 아이들이 너무 많은 집도 나타날 것이다. 요컨대, 확대가족이 부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성인의 약 6퍼센트가 확대가족으로 생활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 이르면 이 숫자는 2배나 3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된다. 그 가운데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을 가족의 일원으로 삼는 확대가족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미국만 해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이웃과의 관계, 연애나 결혼의 유형, 친구관계, 경제나 소비생활 등 그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된다. 전자 확대가족의 출현은 사람들의 심리나 인격형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새로운 형의 확대가족이 새시대의 필연적인 가족형태라는 뜻은 아니다. 그 이외의 가족형태와 비교하여 그 좋고 나쁨을 논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복잡해져 가는 미래의 사회에 적합한 수많은 새로운 가족형태의 한 전형으로서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부모를 고발한다. 다양한 가족형태가 공존하는 시대는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만 비로소 찾아온다. 왜냐하면 가족 형태가 달라짐으로써 가족 하나 하나의 역할도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형태의 여하를 불문하고 하나의 사회가 성립하면 그 사회의 역할분담, 즉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기대하는 것을 드러내게 된다. 그의 실현을 위해 모든 기관이 설치된다. 예를 들면 기업과 노동조합의 존재가 그렇다. 양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노동자,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을 각각 명시하고 있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책임이나 의무를 결정한다. 제2의 물결가정에서는 일가의 가장, 가사를 돌보는 사람, 아이들로 각각 그 역할이 정해져 있다. 핵가족이 붕괴하게 되면 사람들은 심한 충격으로 고통을 받게 되고 그에 따른 역할 분담도 흔들리기 시작하여 이윽고 붕괴되기 시작한다. 베티 프리던은 '새로운 여성의 탄생: The Feminine Mystique'라는 충격적인 책을 써서 현대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이후 전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핵가족 다음에 닥쳐올 새로운 가족 속에서 남녀의 역할 분담을 재규정하기 위하여 비통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남녀의 일의 분담, 법적.경제적 권리, 가정 내에서의 채깅ㅁ, 나아가서는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등 온갖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록뮤직 잡지인 '크로대디: Crawdaddy'의 편집자 피터 노블러는 말하고 있다. "지금은 규칙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여자들에 대항해 남자들이 싸워야만 할 때인 것이다. 파괴해도 좋을 규칙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떠한 사태도 좋아지지는 않는다." 핵가족 이외의 가족형태가 증가되어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게 되면 역할분담의 변경과 관련된 소송도 잇달아 제기될 것이다. 법적인 결혼절차를 밟지 않았던 부부가 이혼한 경우 두 사람의 재산은 어찌될 것인가? 인공수정으로 아내 이외의 여성에게 아이를 낳게 한 경우 그 여성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자궁 사용료)은 법률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영국의 법정은 이것을 부정했다. 그러나 이것도 언제까지 지속될는지는 의문이다.) 동성애를 하는 여성에게 어머니의 자격이 있는가, 그녀는 이혼 후에도 아이들의 보호자일 수가 있을 것인가? (미국의 법정은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 선량한 부모란 무엇인가? 콜로라도주 볼더의 법원에서 톰 한센이라는 24세의 '성난 젊은이'가 제기한 소송만큼 역할분담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도 없다. 한센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부모가 잘못을 범하는 것은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 책임은 법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모가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35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자녀들이 부모의 위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이야기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가족 이러한 혼란과 동요의 배후에서 새로운 제3의 물결시대의 가족형태가 생겨난다. 제3의 물결의 가족은 여러가지 형태가 있으며 개인의 역할분담도 다양해지고 있다. 획일화의 시대는 지나가고 다양한 가족형태 속에서 자신의 기호에 알맞은 가족의 형태를 선택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은 특정의 가족형태를 그 구성원에게 억지로 강요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인생관에 의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가족형태를 자유로이 선택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일생 동안에 몇 가지의 가족형태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장밋빛 시대를 맞기 전에 변화의 고통을 겪어야만 할 것이다. 새로운 질서가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종래의 질서가 붕괴되고 사람들은 높은 차원의 다양성 앞에 당혹감을 느끼게 되어 그 혜택을 누릴 수가 없다. 사람들은 해방되는 대신 과잉선택권 때문에 자신을 잃고, 상처를 받고, 슬픔과 고독에 잠겨 괴로워하게 된다. 다양한 가족형태에 의해서 시달리는 일이 없이 그것이 우리의 이익으로 작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도덕, 세금, 고용, 관습 등 여러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변혁이 진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가치관의 영역에서는 종래의 가족형태가 붕괴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를 갖게 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죄는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매체, 교회, 법원, 정부는 죄의식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핵가족이라는 형태에 구속당하지 않고 생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자기가 선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치관의 변화는 현실사회의 변화보다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다양화된 사회가 필요로 하는 힘과 동시에 그 사회가 빚어내는 관행의 윤리관이 아직도 충분히 몸에 배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제2의 무결사회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다만 한 가지 가족형태가 정상이라고 배워왔기에, 다른 형태는 상궤를 벗어난 것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약간 이상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가족형태를 좀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견해가 변하지 않는 한 핵가족에서 다음 단계로의 이행에는 필요 이상의 커다란 곤란을 수반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양화된 가족형태를 자유로이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법률, 세법, 사회복지정책, 학교제도, 주택기준, 나아가서 건축양식 등이 개선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은연중에 제2의 물결의 가족형태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로여성,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남성, 독신남성, 독신여성(얼마나 좋지 않은 말인가), 집합가족, 이혼자, 독신생활 또는 협동생활을 하고 있는 미망인과 같은 이러한 사람들의 특수한 요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이와같은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차별을 받아 왔다. 부엌은 신성한 장소다. 가사를 송고한 직업이라고 찬양하면서도 제2의 물결문명은 가사에 조아하는 사람들의 존엄성을 충분히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 가사는 생산적인 활동이며 아주 중요한 직업이다. 또한 경제활동의 일부로서 가사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상에 종사하는 것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혹은 개인이든 집단이든간에 가사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임금을 지불하여 경제적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눈을 가정 밖으로 둘려 보면, 고용면에서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활동을 하는 것은 남성의 역할이고 아내는 기껏해야 보조적인 수입을 벌어들인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동등한 독립된 존재로서 똑같이 취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인간적인 노동환경을 완성하여 다양화한 가족형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미국 등지에서 노동조합이 기득권으로 옹호하고 있는 선임자 우선의 승진요건을 완화하고 자유근무시간제를 채택하여 파트타임제의 노동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다양한 가족형태에 적응하기 위한 근로제도가 나타나고 있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 최대은행의 하나인 시티뱅크가 여성을 관리직에 승진시키기 시작하자 남성 중역 가운데는 이 새로운 동료와 결혼하는 자도 생겨났다. 이 은행에서는 오랫동안 부부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규칙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비즈니스 위크'지에 따르면 부부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부부는 회사에 있어서나 가정생활에 있어서나 유익하기 때문에 바야흐로 증가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멀지 않은 장래에 회사가 부부뿐만 아니라 일가족 모두를 고용하여 하나의 생산팀으로서 협동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요구마저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제2의 물결의 공장생산에서 비능률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앞으로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잘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때로는 공공자금을 지출해서라도 소규모의 실험을 장려하여 새로운 가족의 양상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시책을 실행하여 비로소 미래로의 정지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될는지도 모르는 고통을, 최소한에 그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행의 과정에서 고통이 기다리고 있든 없든 과거의 제2의 물결의 상징이었던 핵가족에 대신하여 새로운 가족형태가 출현하고 있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이 새로운 사회영역의 핵심적인 제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세대가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고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새로운 문명에 적응할 가족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도 새로운 사회의 창조행위의 일부인 것이다. 제18장 기업존립의 위기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사업조직은 대기업이었다. 오늘날 수천의 민간 혹은 공공의 거대기업이 온세계를 지배하면서 우리가 사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대기업은 위압적인 모습이다. 방대한 자원을 지배하고 수백만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컴퓨터와 전용 제트비행기, 대규모의 사업계획과 투자,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의 대기업을 보고 있으면 확고부동한 군력이 영구히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오늘날 대기업은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걸음 안에 들어가 보면 조직을 움직이는 남성들(때로는 여성들)의 견해는 다르다. 실제로 오늘날 최고경영자는 그 대부분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욕구불만에 빠져 있고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핵가족, 학교, 대중매체 등 산업화시대의 중요한 사회조직들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또한 제3의 물결의 변화에 휘말려 동요되고 변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많은 경여자들은 그들이 부딪치게 된 사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춤추는 통화 기업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세계경제의 위기이다. 과거 200 년 동안, 제2의 물결문명은 세계를 하나의 통합된 시장으로 조성하려고 했다. 이 움직임은 전쟁이나 불황 또는 재해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둔화되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세계경제는 회복되었으며 규모 또한 더욱 성장하여 통합기능이 강화되었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이 위기는 종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왜냐 하면 이제까지 산업화시대에 경험했던 모든 위기와 달리 이 위기는 단순히 통화만의 위기가 아니라 사회의 전체 에너지 체계가 흔들리는 그러한 위기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고조된 다음에 실업이 발생하는 것이 과거의 경향이었으나 현재는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종래와 달리 현재의 위기는 기본적인 생태환경의 문제나 새로운 기술, 생산체제에 있어서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도입과 직접 관련되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 위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자본주의에서만 일어나는 위기가 아니라 사회주의 산업국가에서도 똑같이 겪고 있는 위기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산업문명 전체의 위기인 것이다. 세계경제의 격동으로 기업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되었고 경영자들은 전혀 생소한 환경 속에 내던져진 꼴이 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터 1970 년대까지 기업은 비교적 안정된 환경 속에서 기능해 왔다. 성장이 표어였다. 달러는 왕좌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래서 통화는 오랫동안 안정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산업국가들이 미국의 뉴햄프셔주 브레튼 우즈에서 모였는데 그 결과로 설립된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이라는 전후의 재정기구도, 또한 소련이 설립한 COMECON(동유럽 경제상호원조회의) 체제도 확고한 것처럼 보였다. 풍요를 향한 에스켈레이터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동향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경제는 '잘 조정되고 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말을 하다가는 조소를 받을 뿐이다. 카터 대통령은 농담으로 경제학자들보다는 자기가 알고 있는 조지아주의 시골 점쟁이 말이 차라리 더 잘 맞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카터 행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W. 마이클 블루멘덜은 "경제학자란 직업은 사전이든 사후이든 경제의 현상을 파악한다는 일을 거의 포기한 상태에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종래의 경제이론이 혼란을 일으켜 파탄상태에 있고 전후경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목전에 두고 기업의 결정권자들은 증가하는 불확실성에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금리는 지그재그로 오르내리고 통화는 불안정하게 동요된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대량의 화폐를 사고 팔면서 통화의 동요를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변동은 더욱 더 심해질 뿐이다. 달러화도 엔화도 카부티(일본의 전통적 민중 연극의 하나) 춤처럼 심하게 움직이고 유럽에서는 EX가 독자적으로('에쿠'라는 기묘한 이름의) 새 화폐를 발행하려 하고 있다. 그런 한편 아랍 여러 나라는 수십억이라는 미국 지폐, 이른바 오일달러를 처분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금값도 기록을 깨뜨리면서 치솟고 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한편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세계시장의 구조를 바꾸어 버렸다. 국경을 초월한 생산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또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가틍 노할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제트기 시대에 어울리는 통화체제가 형성되려 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위성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지만 전자공학을 이용한 전세계적인 은행조직망이 홍콩, 마닐라, 싱가포르 등을 순식간에 바하마 제도, 케이스맨 제도, 뉴욕 등과 연결하여 준다.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 은행이나 아부다비 국립은행은 물론이고 뉴욕의 시티뱅크, 영국의 바클레이 은행, 일본의 스미토모 은행, 소련의 국립은행 등을 잇는 광범한 은행망은 한 나라 정부가 지배하지 못하는 통화와 신용을 낳고 '무국적 통화'라는 거대한 풍선을 만들어 냈다. 이 풍선이 언제 터져 벌리지 몰라 모두가 떨고 있는 것이다. 무국적 통화의 대부분은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서구 여러 나라의 은행이나 개인이 차익을 노려 운용하고 있는, 미국의 손을 떠난 유러달러(Eurodollar)이다. 1975 년에 급격하게 증가하는 유러달러에 관한 글 가운데에서 나는 이 새로운 통화는 경제라는 게임에서 트럼프의 와일드 카드, 즉 소유자의 의사에 따라 어떤 카드로나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쓰고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대량의 유러달러가 국경을 넘어 이곳저곳에 출몰한다. 그리고 각지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거나 국제수지 균형을 혼란시키거나 통화가치를 위태롭게 한다.' 당시 유러달러의 총액은 180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었다. 1978 년에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는 당장 공황이 밀어닥치고 있는 듯한 어조로 유러달러가 4000억 달러 상당의 유러달러, 유러마르크, 유러프랑, 유러길더, 유러엔 등으로 증대했다고 썼다. 국제통화를 다루는 은행은 현금유보가 없어도 무제한으로 크레디트를 발행할 수 있고 매우 싼 금리로 대출할 수도 있었다. 오늘날 유러달러는 총계 1조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되고 있다. 기업을 성장시킨 제2의 물결의 경제체제는 국가를 단위로 하는 시장이나 통화, 정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단위의 경제구조는 새롭고 국제적인 전자공학시대의 '유럽의 포말통화'를 견제하거나 규제할 능력이 없다. 이 제2의 물결세계에 맞추어 설계된 경제기구도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 버렸다. 실제로 범세계적 규모의 범주 안에서 세계의 무역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그것이 거대기업의 이익을 지켜 왔지만 이제는 그 테두리에 금이 가기 시작하여 당장이라도 와해될 스한 상태이다. 세계은행, IMF,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등 모두가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유럽의 국가들은 자기들이 관리할 수 있는 새기구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개발도상국이나 오일딜러를 무기로 군림하는 아랍국가들이 내일의 금융제도 속에서 발언권을 얻으려고 IMF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통화기금의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달러는 왕좌를 박탈당하고 세계경제는 여기저기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모든 증상과 함께 에너지나 자원이 갑자기 부족하거나 과잉공급이 되기도 한다. 소비자나 노동자, 경영자의 자세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또 무역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산업세계로부터의 공격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하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 오늘의 기업은 고전하고 있다. 경영자들은 기업이 지닌 힘을 포기할 의사는 조금도 없다. 이윤과 생산, 게다가 자신의 발전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고조되고 있는 예측불허의 상황, 고조되는 대중의 비판, 적대적인 정치압력 등에 직면하여 지성적인 경영자들 중의 대부분이 자기 기업의 목표나 기구, 책임, 존재이유 등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대기업의 다수가 전에는 안정적이었던 제2의 물결구조가 눈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기업존립의 위기와 유사한 어떤 것을 경험하고 있다. 가속화의 경제 기업존립의 위기를 더욱 조장하고 있는 것은 사태변화의 빠른 속도 때문이다. 이러한 빠른 속도의 변화가 기업경영에 하나의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여 생소한 환경에 벌써부터 신경이 곤두선 기업임원들에게 더욱 더 신속한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할 시간은 거의 없어져 버렸다. 금융면에서 말하면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컴퓨터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거래속도가 가속적으로 빨라졌다. 심지어 시차에서 생기는 이익을 찾아 점포의 위치를 옮기는 은행까지 생겼다. 국제적인 금융잡지인 '유러머니(Euromoney)'는 '시차를 경쟁의 무기로서 이용할 수 있다.'라고 쓰고 있다. 이와 같이 격렬히 움직이는 상황 속에서 대기업은 어쩔 수 없이 갖가지 통화를 그것도 1 년이나 90,7일이라는 기간을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하룻밤이라든가 시, 분의 단위로 대차거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임원실에는 '국제현금담당'이라는 새로운 간부가 등장했다. 24시간 동안 전세계에서 펼쳐지는 컴퓨터 카지노를 움직여서 최저의 이율, 가장 유리한 통화거래, 가장 신속한 회전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현금담당간부가 맡은 일이다. 마케팅 분야에서도 이와 똑같은 가속화가 진행되고 있다.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지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상품시장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 3대 네트워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편성책임자는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을 가려내어 중단시키는 일을 가속화하고 있다. 6--7주 또는 한 시즌의 상황을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예를 하나 더 들자. 비리스틀 마이어즈사가 존슨 & 존슨(J & J)사의 타이레놀이란 진통제와 경쟁할 악품의 염가판매를 결정했다고 하자. J & J사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어림도 없다. 놀랍도록 단 시간에 타이레놀의 소매가격을 인하할 것이다. 도저히 몇 주간이나 몇 개월을 우물거리고 있을 수 없다.' 이 잡지의 문장자체가 숨막힐 듯이 기술되어 있다. 잘 조사해 보면 기술, 제조, 연구, 판매, 연수, 인사 등 그 밖에 기술의 모든 부서에서 그와 같은 결정이 가속화하고 잇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소 진행정도는 느리지만 이런 면에서 사회주의 사넝ㅂ국가도 같은 과정을 밟고 있다. COMECON은 전에는 5개년 계획을 세워 5 년마다 가격을 수저어해 왔으나 최근에는 세상의 빠른 사태진전에 따라가기 위해 해마다 가격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이 수정은 6개월마다 하게 되었다. 대차가 증가하고, 매매의 빈도가 늘고, 소비 패턴이 오래 지속되지 않게 된다. 일시적인 유행이 늘고 끊임없이 새 업무절차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연수기회가 증가한다. 계약방법이 줄곧 바뀌고, 교섭이 많아지며 법률사무가 증가한다. 소매가격의 변동, 근로자의 이직률이 높아지고,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프록젝트와 같은 임시적인 조직도 증가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이런 경향을 더욱 조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업을 에워싸는 상황은 극히 위험한 것이 되어 인간의 신체에서 예를 든다면 고단위 심장자극제를 주사한 듯한 고도의 흥분상태가 되고 있다. 이러한 갖가지 압력이 증대하는 가운데 기업가, 은행가, 회사중역 등이 자기업무에 자신을 잃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제2의 물결의 안정기에 자란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가속적으로 밀어닥치는 변동의 물결에 파괴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탈대중화의 사회 그들이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당혹해하는 것은 산업화시대의 대중사회가 파탄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오래도록 산업대중사회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도록 훈련되어 왔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의 관리자들은 대량생산은 가장 진보되고 능률적인 생산방법이라고 배웠었다. 대량시장은 표준화된 상품을 필요로 하고 대량판매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획일적인 노동자 '대중'은 기본적으로 모두 같은 자극에 의해서 똑같이 동기가 부여된다고 배웠었다. 따라서 유능한 관리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라고 배워 왔다. 사실 이 사고방식은 제2의 물결의 성황하에서는 대체로 옳았었다. 오늘날 제3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한 뒤부터 기업관리자들은 종래의 사고방식이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기업은 원래 대중사회를 위해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중사회가 탈대주이화를 지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보, 생산, 가정생활뿐 아니라 상품시장이나 노동시장마저도 변화가 잦고 보다 작은 단위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대량시장은 분열되어 꾸준히 그 수가 증가하고 변화되어 소시장이 되었다. 소시장은 상품의 다양한 모델, 타입, 크기, 색깔, 고객의 주문에 따를 수 있는 방법 등 여러가지를 확대할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예전에 전미국 가정에 똑같은 흑색수화기를 공급하여 거의 성공시켰던 벨 전화회사는 현재 갖가지 부품의 조립으로 1000종이 넘는 전화기를 제조하고 있다. 색깔은 핑크도 있고 백색도 있다. 또 맹인용 전화, 성대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전화, 공사현장용 소음방지전화기 등 여러가지이다. 백화점은 원래 시장을 대량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제는 한 백화점 안에 수많은 '전문점'을 두게 되었다. 미국의 체인스코어 형식의 백화점으로서 유명한 페더레이티드 백화점 부사장 필리스 스웰은 "앞으로는 전문화가 더욱 더 진행되어 여러가지 특색을 지닌 백화점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한 국가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종류가 자꾸 늘어나고 있는 것은 기업이 소비자를 조종하여 있지도 않은 수요를 만들어 내는 별로 의미도 없는 상품을 비싼 가격에 팔아 그것으로 이윤을 증가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 설명은 부분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상품이나 서비스 종류의 다양화는 탈대중화해 가는 제3의 물결사회의 수요나 가치기준, 생활양식의 다양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다양성을 촉진시키고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노동시장의 분화이다. 특히 화이트칼라와 서비스 부문에서 새 직종이 잇달아 생겨나고 있다. 신문의 구인광고에는 '우드프로세싱에 탁월한 비서'라든가 '소형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말이 나온다. 서비스업에 관한 어떤 회의석상에서 어느 심리학자가 소비자보호가,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변호사, 성치료사, 심리화학요법사, 민원조사관 등 무려 68종에 이르는 새 직종을 열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직업의 상호교환성을 잃어감에 따라 인간의 상호교환성도 잃어가고 있다. 노동자는 누구하고나 즉시 대체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기를 거부하며 직장에서도 자기들의 인종, 종교, 직업, 성별, 문화 그리고 개인의 차이점을 강렬히 의식하기 시작했다. 제2의 물결시대를 통하여 대중사회에 '통합'과 '동화'를 위해 싸웠던 집단이 이제는 차이점의 해소를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각자의 독특한 특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제2의 물결의 기업들은 아직도 대중사회에서 기능하도록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종업원이나 고객 사이에서 계속 높아지고 있는 다양성의 조류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탈대중화현상이 가장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곳은 미국인데 다른 나라들에서도 같은 경향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영국은 한때 고도의 동질사회였으나 현재는 파키스탄, 서인도 제도, 키프로스, 우간다, 터키, 스페인 등으로부터의 이민이 뒤섞여 영국인 자체가 동질성을 잃어가고 있다. 또 일본인, 미국인, 네덜란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등 관광객이 밀물처럼 밀려오자 미국식 햄버거 스탠드나 일본의 튀김 레스토랑 등을 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상점의 창문에는 '스페인어를 합니다.'라는 표지가 나붙게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소수민족은 그 주체성을 주장하면서 오랫동안 거부당해온 일할 권리, 정당한 수입을 얻을 권리, 기업에서 승진할 권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캐나다 에스키모족, 미국의 흑인과 치카노(Chicano)라 불리는 멕시코계 미국인, 나아가 정치적으로는 아주 점잖다고 생각되어 왔던 동양계의 소수민족까지도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 통해안의 메인주에서 극서부지방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은 '붉은 힘'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족 전래의 토지를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OPEC 국가들에게 정치원조와 경제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오랫동안 가장 동질적인 공업국이라 생각되던 일본에서도 탈대중화의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사회의 한 구석에 밀려나 있던 아이누(Ainu)도 소수집단의 대변자로서 돌령ㄴ히 발언하게 되었다. 재일 한국인도 행동을 시작하고 있다. '한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 ^5,5,5^ 일본사회는 현재 급속히 통일성을 잃고 분열되어 가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덴마크인과 이민노동자들 사이에, 또 가죽잠바를 입은 오토바이족과 장발족 젊은이들 사이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벨리에에서는남동부에 사는 왈룬계 주민, 플랑드르 지방의 주민, 브뤼셀 지방의 주민 사이에 중세 이래의 옛분쟁이 재연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퀘벡주의 분리독립운도이 시작되어 대기업은 몬트리올의 본사를 폐쇄했다. 그리고 캐나다 전역에서 영어를 사용하던 기업간부들이 서둘러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대중사회를 형성하고 있던 어려 세력들이 가자기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도의 기술체제하의 민족주의는 지역주의로 대체되고 여러 인종을 하나의 도가니에 넣어 융합시키려던 힘 대신에 자기들 인종만으로 뭉치자는 새로운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 정보매체도 대중문화의 창조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에너지 형태의 다양성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에너지 형태의 다양화나 대량생산의 다음 단계를 노리는 움직임 등과 병행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모두 연관되어 하나의 전혀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사회의 생산조직이 사기업이든 사회주의 기업이든 앞으로는 이 새로운 구조 안에서 기능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대중사회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영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눈 앞에 두고 충격을 받아 혼란하기만 할 것이다. 기업의 재평가 이런 상황에서 기업존립의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기업의 구체적인 이런저런 방침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려는 움직임뿐 아니라 이제까지 서술해 온 불안정한 배경 밑에서 기업의 목적 자체를 철저히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 규모로 싹트기 시작한 점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지의 편집자 데이비드 유잉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미국 대중의 기업에 대한 분노는 놀라운 기세로 고조되고 있다.' 유잉은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의 한 연구원이 1977 년에 한 조사를 인용하면서 이 조사보고서가 '기업계에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대상이 된 소비자 중 거으 절반이 10 년 전에 비해 시장에서 손님대접이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5분의 3은 상품의 질이 떨어졌다고 대답하고 반수 이상의 사람이 상품의 보증을 전혀 신용하지 않는다고 회답하고 있다. 유잉에 따르면 어느 사업가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마치 캘리포니아의 산 안들레아스 절벽 위에 앉아 있는 것같아 언제 지진을 당할지 몰라 내 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유잉은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더욱 나쁜 것은 새로운 기술과 기업의 새 기획에 싫증을 내거나 초조해 하거나 분노를 느끼고 있을 뿐 아니라 이유없는 돌발적인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자꾸 늘어나고 있다." 거대한 1급 회계사무소의 하나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사의 간부 존 C. 비글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기업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대공황이래 최저이다. 미국의 기업가나 공인회계사는 원점에서 재출발하여 일을 재검토하도록 요구되고 있다. 기업의 업적도 이제까지 볼 수 없던 새로운 척도로 측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북유럽이나 서유럽 그리고 사회주의 산업국가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에서도 도요타 자동차의 간행물에 쓰여 있듯이 '이제까지 볼 수 없던 유형의 강력한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기업이 일상생활을 파괴한다고 비판하는 운동이다.' 과거에도 기업이 심한 고엮을 받았던 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들려오고 있는 불만의 소리가 과거의 불만과 근본적으로 다른점은 그것이 소멸되고 있는 제2의 물결시대 산업주의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이다. 제2의 물결시대 산업주의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제3의 물결문명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이다. 제2의 물결문명에의 기업은 어디까지나 경제활동의 단위라고 생각되었고, 기업에 대한 비판은 주로 기업의 경제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즉 기업은 노동자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비싼값에 팔고 있다. 카르텔을 결성하여 가격을 조작한다. 불량상품을 만든다는 등의 제도적인 경제활동을 일탈한 몇몇 기업의 범죄행위가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가혹한 비판자라도 기업 그 자체를 본시 경제조직이라고 정의하고 잇는 사실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업비판가들은 전혀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경제가 의도적으로 정치나 도덕 등의 분야에서 분리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업의 책임을 경제활동뿐 아니라, 대기오염으로부터 회사간부의 쓰트레스에 이르는 온갖 부차적 영향에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기업은 석면공해를 야기시키고 있다든가 가난한 사람들을 약품 테스트의 실험재료로 만들고 있다든가 비산업화 세계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해서 비판당하고, 인종차별, 남녀차별, 비밀주의, 기만 등에 관해서도 책임을 추궁당하게 되었다. 또 칠레의 파시스트 장군들이나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주의자들, 이탈리아 공산당 등 평판이 좋지않은 정치체제나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공격당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비난이 타당하느냐(대개 타당하지만) 가 이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기업의 개념이 종래의 그것과는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제3의 물결과 함께 전혀 새로운 기업의 존재를 찾는 요구가 일고 있다. 기업의 책임은 이제 상품을 생산하고 이익을 올리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에 환경, 도덕, 정치, 인종, 성별, 사회 등 온갖 복잡한 문제 해결도 공헌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이제 극히 한정된 경제기능에만 집착하는 존재가 아니라 비판의 소리나 법률 그리고 이 문제에 진지하게 대처하는 경영자들의 자극을 받아 다목적인 조직으로 되어가고 있다. 다섯 가지 압력 기업의 존재를 재평가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어떻게든 해야할 필연적인 과제이다. 이 재평가는 실제의 생산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섯 가지의 혁명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기업을 새롭고 다면적이고 다목적의 형태로 재편성하는 데에 힘을 빌리고 있는 다섯 가지 변화란 생물체계를 포함한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 사회에 있어서 여러 세력 사이에 이루어지는 세력관계의 변화, 정보가 수행하는 역할의 변화, 정부조직의 변화, 도덕기준의  화이다. 이들 새로운 압력 속에서 제일 먼저 오는 것은 생물체계의 변화이다. 미국에서 제2의 물결이 성숙기를 맞은 1950 년대 중반, 세계인구는 27억 5000 만이었다. 현재는 그것이 40억을 넘고 있다. 1950 년대 중반 지구상의 전인류가 소비하고 있던 에너지는 영국식 열량단위로 연간 8 만 7000조 Btu에 불과했다. 그런데 우리는 26 만조 Btu가 넘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50 년대 중반에 아연과 같은 주요원료의 소비량은 연간 270 만 톤이었는데 현재는 560 만 톤에 이르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측정하더라도 자원에 대한 수요는 자꾸 증가할 뿐이다. 그 결과 생물체계는 위험신호를 보내어 우리를 경고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기오염, 사막화 현상, 해양오염, 기후의 미묘한 변화 등이 진행되어 그것을 무시할 경우 우리에게는 파멸이 온다. 우리가 과거의 제2의 물결시대와 같은 방법으로 생산을 계속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경제적인 생산활동의 중요한 담당자가 기업이므로 기업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의 생산자 역시 기업인 것이다. 만일 앞으로 경제성장을 계속하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진정 지구상에서 생존을 계속하고 싶다면 미래의 경영자들은 기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여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자진해서 이 책임을 질 생각이 있든 없든 간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생물체의 여러가지 조건의 변화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기업은 경제조직임과 동시에 환경보호단체가 되도록 개편되어 갈 것이다. 기업을 개편하는 것은 공상적 사회개혁론자들도 아니고 혁신단체나 환경학자도 관료도 아니다. 생산과 생물체계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의 중요한 변화에 의해서 기업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둘째의 압력은 기업이 존립하고 있는 사회환경에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기업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이전보다 훨씬 조직화되어 있다. 옛날에는 각 기업이 미조직사회라고 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기능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사회체계가 새로운 조직화 단계로 급속히 이행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그 경향이 짙다. 잘 조직되고 자금도 충분히 가지고 있는 단체나 기관, 노조, 집단들이 서로 작용하고 얽혀서 커다란 하나의 세력이 되어 사회체계 속에서 우굴거리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는 137 만 개의 회사가 있는데 이들 회사는 대학을 포함한 9 만여개의 학교, 33 만여개의 교회, 1 만 3000여개의 전국규모의 단체, 그 밖의 지역수준의 환경단체, 사회단체, 종교단체, 체육단체, 정치단체, 인종단체, 민간단체 등과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각각 고유한 주의주장과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법률사무소가 14 만 4000개나 있다. 이와 같이 많은 단체들이 가득한 사회영역에서의 모든 기업의 행동은 무력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은 물론이고, 전문 참모진들을 거느리고 간행물을 발간하며 정치체제에 연줄을 가지고 전문가나 변호사 등을 고용할 자금을 가지고 있는 조직집단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이와 같이 다수의 단체가 늘어선 사회영역 안에서의 기업이 내리는 결정은 엄격한 감시를 당하게 된다. 실업이라든가 환경파괴, 가제이전 등 기업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오염'은 즉시 적발되고 경제상의 '제품'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건, 즉 사회적 '제품'에 대해서도 전보다 훨씬 큰 책임을 지도로 압력이 가해지는 법이다. 셋째 압력은 정보영역의 변화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의 다양화가 진행됨에 따라 기업을 포함한 여러가지 사회제도가 균형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정보교환이 더욱 절실해진다. 제2의 물결의 생산방법 밑에서 기업정보는 원료와 동등한 필수품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거대한 진공소제기처럼 데이터를 흡수하고 그것을 가공처리하여 더욱 더 복잡한 방법으로 타기업에 전한다. 정보가 생산에 중요성을 띠게 됨에 따라 '정보담당 관리자'가 산업계에서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기업은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보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정보가 새로이 중요성을 갖게 됨에 따라 기업 데이터의 관리를 둘러싸고 분쟁이 일게 된다. 정보를 좀더 일반에게 공개하라는 투쟁이나 이윤을 공개하라는 요구(예를 들면 석유회사의 생산량이나 이윤 등), '거짓없는 광고'라든가 '대출의 진상'을 공개하라는 압력 등이 나타난다. 왜냐 하면 새로운 시대에는 정보의 영향이 환경에서 오는 영향이나 사회의 영향과 마찬가지로 중대한 문제로 대두되어 기업은 경제적 생산자임과 동시에 정보의 생산자로도 간주되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넷째 압력은 정치와 권력체계에서 오는 것이다. 사회의 다양화 현상과 급속한 변화는 행정부의 엄청난 복잡화를 초래하고 있다. 사회가 여러 층으로 분화됨에 따라 행정부의 분화도 가져오고 있다. 따라서 기업과 관련되는 행정기관도 잇달아 전문화하고 있다. 더구나 각 정부 부서들은 서로 조정이 미치지 않아 각기 세력권을 주장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조직개편이 해해지는 혼란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이다. 걸프 석유회사의 제인 베이커 스페인 부사장은 '10 년이나 15 년 전에는 EPA, EEOC, ERISSA, OSHA, ERDA, FEA 등과 같은 정부기관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뒤에도 정부기관은 이들 맡고도 계속 탄생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각 기업은 지역, 지방,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치, 때로는 국제정치에도 말려드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말하면 기업이 내리는 중요한 결정은 물건의 생산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어도 간접적인 정치적 효과도 낳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의 책임도 져야 한다. 제2의 물결문명이 쇠퇴하고 그 가치체계가 붕괴됨에 따라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에 대하여 다섯째의 압력이 가해지게 되었다. 그것은 고도의 도덕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압력이다. 종래에는 '정상'이라고 생각되던 행위가 갑자기 부패되었다든가 부도덕하다든가 스캔들이라고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록히드사에서 뇌물을 받은 일로 일본의 내각이 무너지고 남아프리카에 무기를 수출했다는 이유로 올린사가 기소당하기도 했다. 걸프석유회사의 회장도 뇌물 스캔들 때문에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은 영국의 디스틸러즈사나 맥도넬 더글러스사의 DC-10 사건 등 모두 도덕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되었다. 기업의 윤리적 자세가 사회의 가치기준에 대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환경이나 사회적 체계가 끼치는 영향과 다름없이 중요한 영향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기업은 도덕적 효과도 '제조한다'는 생각이 더욱 더 강화되기에 이르렀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생산활동을 둘러싼 물질적, 비물질적인 다서가지 조건의 변화에 의해서 기업이란 경제제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제2의 물결의 교과서적 관념은 옹호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상황에서는 생산이든 이윤이든 그 경제기능을 최대화하는 것에만 전심하는 것은 이제 허용되지 않게 되었다. '생산'이라는 말의 정의 자체가 결정적으로 확대되어 기업활동의 직접적인 결과뿐 아니라 부차적 효과나 장기적 효과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기업의 '제품들'이 증가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제품'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되었다. 제2의 물결시대의 경영자들이 상상도 못했던 환경, 사회, 정보, 정치, 도덕과 같은 각 분야에서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여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기업의 목적은 이와 같이 단수에서 복수로 바뀌었다. 단순히 다목적 기업이라는 선전문구가 아닌, 기업의 주체성과 자기규정 면에서 복수의 목적을 갖게 된 것이다. 갖가지 기업의 내부에서 과거 제2의 물결시대에는 단 한 가지 목적만 추구하던 기업들과 제3의 물결시대의 생산조건에 대처하여 본래의 다목적 기업을 겨냥한 싸움을 준비한 기업들 사이의 내부적 투쟁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목적 기업 제2의 물결문명 속에서 자란 사람들은 기업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의료 외에도 경제기능을 가진 병원이라든가, 교육 이외에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 학교라든가, 거대한 비경제기능, 또는 '초경제' 기능을 가진 기업 등을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 은퇴한 헨리 포드 2세는 전형적인 제2의 물결사상의 소유자인데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업은 특히 사회의 경제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지 기업활동과 관계없는 사회적 요구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헨리 포드나 다른 제2의 물결의 옹호자들이 생산조직의 재정립에 저항하고 있는 한편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교모히 그 용어나 방침을 변경하기 시작하고 있다. 상황은 결코 분명하지 않다. 입으로는 멋진 말을 하고, 선전문구도 새로운 것을 노래하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회적 책임을 깨달은 새시대라는 표어를 내건 아름다운 선전 팜플렛이 '노상강도귀족'으로 불려온 탐욕스러운 기업을 은폐시켜 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제3의 물결에 의해서 초래한 새로운 여러가지 압력에 부응하도록 기업의 조직, 목표, 책임 등이 개념을 재평가하는, 다시 말해서 근본적인 '어형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수없이 많다. 이를테면 대석유회사 아모코사의 간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장의 입지선정에 있어 우리 회사는 통상적인 경제적 평가뿐 아니라 그 지역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상세히 조사한다. 자연환경뿐 아니라 주위의 공공시설에 미치는 영향이라든가 지역의 고용상황, 특히 소수민족의 고용조건에 미치는 영향 등 많은 요인을 고려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방침이다." 기업합병인 경우에서도 미국 최대의 컴퓨터 제조회사의 하나인 컨트롤 데이터사의 경여자는 재정적, 경제적인 요인뿐 아니라 합병이 가져다 주는 '관련요인', 즉 사회적 효과라든가 종업원에 미치는 영향, 컨트롤 데이터사가 지역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여 검토하고 있다. 또 많은 회사가 공장을 워싱턴이나 세인트폴, 미니애폴리스의 중심에 건설하여 소수민족 고용을 촉진하고 쓸쓸해지기 시작한 도심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컨트롤 데이터사는 자사의 사명에 관하여 '시민생활의 질을 높이고 평등을 촉진하며 잠재적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한 기업으로서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차믕로 파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국가정책 중에서 여성과 유색인종의 지위향상은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였다. 현재 기업 중에는 이런 면에서 '적극적 행동'을 취하는 경영자에게 경제적 포상을 한다는 과감한 시책을 내놓은 곳도 있다. 일류식품회사 필즈버리사에서는 3개 생산부문별로 다음 해의 판매계획과 함께 여성과 소수민족의 고용, 연수, 승진계획안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경영목교와 연결되게 된 것이다. AT & T사에서는 모든 관리직이 매년 근무평가를 받는데 이러한 진취적인 행동목표를 달성했느냐의 여부가 좋은 평점을 받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뉴욕의 케미컬 은행에서는 지점장의 업적평가의 10--15 퍼센트가 사회적 업적, 즉 지역공동체의 임원으로 일했다든가 비영리 단체에 대한 대출을 해주었다든가 소수민족의 고용이나 승진 등에 공헌했느냐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체인조직에 의해서 수많은 신문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 가네트사의 사장 앨런 뉴하드는 편집인들과 체인에 가입한 지방 발행인에 대해 '보너스를 사정할 때는 이들 사회적 묙표의 달성도에 따라 결정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기업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면을 담당하는 임원들의 지위와 발언권이 최근에 갑자기 높아지고 있는 것도 두드러진 현상이다. 어떤 회사는 사장직속으로 보고서를 내기도 하고 중역회의 안에 새로운 기업책임을 규정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한다. 기업이 사회적 요구에 민감해진 것은 반드시 실질적인 면 때문만은 아니다. 호프만 라 로슈의 미국내 자회사에서 지역사회문제의 최고책임자인 로즈마리 브루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선전용인 것도 있다.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업의 역할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업 경영자들은 어느 때는 마지못해서, 어느 때는 항의나 소송에 의해서, 혹은 정부의 개입에 대한 공포에서, 또 어느 때는 좀더 순박한 동기에서 새로운 생산조건에 적응하고, 기업이 여러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다양화하는 '순수익'의 내용 현재 등장하고 있는 다목적 기업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수한 경영간부를 필요로 한다. 경영진은 먼저 많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비중을 결정하며 상호간의 관련성을 규정함과 동시에 여러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승효과가 있는 경영방침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요소뿐 아니라 많은 변수를 동시에 확인하여 장래에 밝은 전망을 세울 수 있는 경영방침이 필요하다. 한 가지 일만을 생각하는 종래의 제2의 물결의 경영자들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나갈 수 없다. 그래서 많은 목표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업적평가방법 또한 개선되어야 한다. 종전의 경영자는 경제적인 '순수익'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훈련되어 왔으나 제3의 물결기업은 서로 관련되는 복수의 순수익, 즉 사회, 환경, 정보, 정치, 도덕과 같은 각 분야에서의 이익에 대해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복잡한 요구에 직면하여 현대의 경영자들은 대부분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제3의 물결시대의 경영에서 필요하게 될 지적 수단이 결여되어 있다. 기업의 이윤을 계산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경제외적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가를 산정하는 방법 등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게사무소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사의 존 C. 비글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경영자는 공적 책임을 산정하는 기존의 기준이 전혀 없는 분야에서 기업활동을 책임지도록 요구당하고 있다. 공적 책임이라는 말의 개념마저 명확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뜻에서 '공적 책임(accountability)'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명학히 하려는 움직임이 대두되었다. accountability라는 말은 금전처리에 관한 보고서의 의미를 지닌 account라는 말에서 파행되고 있는데 회계보고의 개념자체가 이전의 좁은 경제적 의미의 범주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필레델피아에 있는 컨설팅 회사인 휴먼 리소시스 니트워크사는 미국의 대기업 12개사의 협력을 얻어 기업이 '초경제적' 목표란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전체산업에 공통된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경제외적인 여러 목표를 기업의 업무계획과 통합시킴과 동시에 기업이 '초경제'적 업적을 측정하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한편 미국 연방정부에서는 쥬어니터 크레프스 상무장관이 "정부는 솔선해서 '사회업적지수'를 만들어 기업이 그들의 업적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여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잇다. 유럽에서도 같은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 환경.사회문제연구소의 마이놀프 디르케스와 로브 코포크의 자료에 따르면 '유럽의 대기업 또는 중규모의 기업 중에서 약 20개사가 정기적으로 사회적 업무보고를 발표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100개 이상의 기업이 사내의 경영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사회적 업무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보고서 중에는 공해와 같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고의로 피하고 자사가 시행하고 있는 '훌륭한 업적'만을 나열한 선전문도 있지만 대부분의 보고서는 매우 정직하고 객관적이며 정확하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대규모 식품회사인 미그로스 게노센샤프트사의 사회보고서는 여자종업원의 임금이 남자보다도 낮다는 사실, 대부분의 일이 '극단적으로 권태로운' 것이라는 사실, 과거 4년 동안에 이산화질소의 배출량이 늘어났다는 사실 등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저무이사 피에르 아르놀은 '목표와 현실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라고 쓰고 있다. STEAG라든가 자아르베르그베르케사와 같은 회사는 특정한 사회적 복지사업을 위해 경비를 지출하는 선구가 되었다. 이만큼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출판사 베르텔스만사라든가 복사기 제조업체인 랑크 제록스사, 화학약품 제조업체인 훽스트사 등은 일반에게 공개하는 사회적 데이터의 테두리를 과감하게 확대하고 있다. 스웨덴이나 스위스의 기업, 서독의 도이치 셸사 등은 더 진보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도이치 셸은 연차보고서를 중지하고 '연차사회보고서(Annual and Social Report)'라는 것을 발행하고 그 안에서 경제적인 데이터와 함께 초경제적 데이터를 서로 관련시키면서 공표하고 잇다. 디르케시와 코포카가 '목표에 대한 회계와 그 보고'라고 이름한 셸사의 방식은 그 경제적 목표와 함께 환경적인 목표, 사회적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을 정하고 그에 할당할 경비를 기록하고 있다. 셀사는 기업목표로서 다섯 가지의 포괄적인 목표를 내걸고 잇는데 순수한 의미에서 경제목표라 할 수 있는 '정당한 투자수익'을 얻는 것은 그 목표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경제목표나 경제 외적 목표에도 기업결정에서는 '균등한 비중'을 두도록 명기하고 있다. 목표달성도의 수지결산을 한다는 방식에 따라 기업은 초경제적 목표를 명확히 정하고 그 달성기한을 정하여 그것을 일반이 검토할 수 있게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이론적 수준에서 고찰하면 영국의 버밍엄대학 회계학 교수 트레버 갬블링은 그의 저서 '사회회계학'에서 이미 사회지표나 사회회계의 방식을 개발하고 있는 사회학자들의 업적과 경제학자나 회계사의 업적을 통합하여 회계의 공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델프트대학 경영대학원의 코르넬리우스 브레보르 학장은 기업행동을 사정하는 다각적인 기준을 고안했다. 이런 것이 필요하게 된 배경에는 사회에 있어서의 가치기준이 크게 변하여, 그 중에서도 '경제적 생산지향'이 약화되고 '전체적 복지지향'이 강화된 경우를 들 수 있다고 브레보르는 말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기능별 전문화에서 관련학문의 종합적인 제휴방식'으로의 이행도 들고 있다. 이러한 변동이 기업이라는 것에 관한 개념을 좀더 다면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할 필연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브레보르 교수는 기업의 업적을 평가하기 위한 32개의 기준을 들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소비자, 주주, 노조와의 곤계로부터 환경보호단체와 경영진과의 관계 등이 열거되고 있다. 그러나 브레보르 교수에 따르면 장래의 기업이 자체평가하는 경우의 보조변수는 이들 32개 부문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제2의 물결경제의 하부구조가 붕괴되고, 탈대중화가 촉진되고, 생태계가 위험신호를 보내오고, 사회 속의 조직화가 고도로 진행되어 생산을 둘러싸고 정보체계를 비롯하여 정치적, 윤리적 조건이 바뀜에 따라 제2의 물결의 기업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생산의 의미와 생산활동을 해온 조직 그 자체의 의미를 철저하게 재검토하여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것이 끝나야 비로서 장차 새 유형의 기업으로 이행될 수 있는 것이다. 아메리칸대학의 경영학 교수 윌리엄 핼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환했을 때에 봉건적 장원이 기업으로 대체되었듯이 낡은 형태의 기업을 대신하여 새로운 형태의 경제조직이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조직은 경제적 목적과 초경제적 목적을 결합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경제적 이익에만 사로잡하지 않는 복수의 순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기업의 변화는 사회체계 전반에서 일어나는 보다 큰 변화의 일부로서 일어난다. 그것은 기술영역과 정보영역에 관하여 일어나는 극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모두 하나가 되어 거대한 역사의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거대한 구조들만이 아니다. 일반인의 일상생활도 행동양식도 바뀌게 된다. 왜냐 하면 문명의 심층적인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의지로 삼고 있는 규범을 모두 재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19장 새 규범의 발견 미국의 중산층에 속하는 수많은 가정에서는 현재 다음과 같은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다. 최근에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이나 딸이 뒤늦게 저녁 삭탁에 앉아 투덜거리며 구인광고가 실린 신문을 식탁 위에 내던지면서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얽매이면서 하는 일은 품위를 떨어뜰는 속임수라고 공언한다.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일은 참아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부모가 식당에 들어온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막 돌아온 아버지와 청구서 뭉치를 다 처리하고 기진맥진하여 의기소침해진 어머니는 자녀들의 말을 듣고 화를 낸다. 아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부모로서는 인생의 고락을 다 경험해 본 입장에서 대기업의 안정된 직장 쪽이 더 좋다고 권한다. 아들은 부모의 충고를 시큰둥해서 듣지 않고 작은 회사가 더 낫다면서 도대체 어느 회사가 가장 좋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학력이라고? 그런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런 것은 모두 헛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기들의 의견이 모두 거절되는 것에 실망하면서 듣고 있던 부모도 마침내 참지 못하고, 부모의 입장에서 "너희들은 언제나 현실세계애서 살겠느냐?"하며 소리를 지른다. 이런 장면은 미국이나 유럽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일본의 기업경여자들도 술자리에서 직업에 대한 윤리관이나 기업에 대한 충성심, 일에 대한 시간엄수와 엄격한 규율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급속히 사라져 간다고 한탄한다. 소련 중산층 가정에서도 부모는 자녀들로부터 똑같은 반발을 받고 있다. 이 사실은 옛날부터 흔히 있는 세대간의 갈등의 한 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혹은 어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자녀와 부모가 말하는 '세상'이란 각각 다른 것을 가르키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의문이 잇달아 생긴다. 제2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사람들의 일상행동을 규정하는 여러 원리나 규칙을 담은 '규범서'가 가져온 것은 제4장에서 서술한 바와 같다. 동시화, 표준화, 극대화라는 제2의 물결원칙이 정치, 경제 또는 일상생활의 전반에 적용되어 시간엄수와 스케줄에 대한 충실성이 중시되는 사회가 성립되었다. 오늘날에는 과거의 원칙을 부정하는 새로운 '규범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무의미한 의견충돌은 그 대부분이 학교 교실, 회사 회의실, 정치가의 회합 등에서 벌어지는 대립들과 마찬가지로 신.구의 두 규범서 중 어느것을 적용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지는 충돌이다. 새로운 '규범서'는 제2의 물결시대의 사람이 옳다고 배운 대부분의 것들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제2의 물결시대에는 시간업수와 '동시화', 순응성 혹은 '표준화'라는 것이 중요시되고 있었으나 이들은 모두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 이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중앙집권화나 직업 전문화의 효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큰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확신이나 '집중화'를 우선하는 사고방식을 재고하도록 촉구하기도 한다. 이 새로운 규범을 이해 다면 특히 그것이 과거의 낡은 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분명히 인식한다면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개인의 능력, 지위, 수입 등을 위협하는 갖가지 충돌을 즉각 이해할 수 있다. 9시^36,36^5시 근무제의 종말 앞에 소개한 자녀들의 반항으로 빠져 있는 부모의 예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제2의 물결문명은 제4장에서 지적했듯이 일상생활에 '동시화'의 원칙을 도입했다. 일어나 있는 시간과 잠자고 있는 시간 또는 작업시간과 휴식시간의 리듬은 근본적으로 기계의 움직임에 맞추어 설계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문명 밑에서 자란 부모들은 일이란 동시에 할 필요가 있으며 모든 사람이 동시에 출근하고 일을 함께 시작해야 하며 러시아워의 교통혼잡은 피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또 식사시간도 일정해야 하고 그 시간을 지키려면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단단히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왜 아이들이 약속을 잘 안지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는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의 근무제(또는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 직무)가 전에는 잘 받아들여졌었는데 왜 갑자기 아이들이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제3의 물결이 출현함과 동시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시간관념이 도입된 데에 있다. 제2의 물결은 우리 생활을 기계의 속도에 맞추었지만 제3의 물결은 이 기계적 동시화에 도전하고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리듬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우리를 기계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1970 년대에 산업계에서 가장 빨리 유행한 새로운 개혁이 '자유근무시간제'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유근무시간제는 미리 정해진 시간의 범위에서 근로자들이 자기의 근무시간을 선택하도록 허용한다. 자유근무시간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업은 모든 사원이 동일시간에 출근하는 것을 중지시켜 버린다. 단순한 시차출근도 아니다. 그 대신에 사원 모두가 근무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심근무시간대를 설정하고 그 밖의 시간대를 신축성있게 분류한다. 근로자는 각자가 희망하는 신축성있는 시간대들 중에서 어느 시간대를 선택하게 된다. 자유근무시간제의 결과, 생리적인 리듬에 의해서 아침 일찍 잠을 깨는 '주간형 인간'은 오전 8시의 출근시간을 선택할 것이고 반면에 그와는 신진대사기능이 다른 '야간형 인간'은 오전 10시나 10시 반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그로 인해서 근로자는 집안일을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아이를 치과의사에게 데려갈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 아침 일찍 또는 밤늦게 볼링을 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에 맞추어 근무시간을 결정할 수 있다. 요컨대 시간이 '다양화'되고 있다. 자유근무시간제는 1965 년 주부를 보다 많이 노동시장에 내보내려는 방법으로서 독일의 경제학자 크리스켈 케메리 여사의 제안에 따라 시작된 제도이다. 1967 년 '독일의 보잉사'라 할 수 있는 맛서슈미트사는 수많은 노동자가 러시 아워의 교통혼잡으로 시달리다 못해 다 지쳐서 출근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히사는 먼저 2000 명의 노동자에 대해 각자의 희망에 따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엄격한 근무시간제를 중지하고 그들 스스로 근무시간을 선택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시도했다. 2 년만에 전종업원 1 만 2000 명이 자유근무시간제로 일하게 되었고 몇몇 부서에서는 심지어 모든 사람이 '중심근무시간대'에 근무장에 있어야 한다는 요구조건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1972 년에 '오이로파(Europa)'지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쓰고 있다. '약 2000개의 서독 기업에서 시간엄수라는 독일 특유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이유는 글라이차이트(Gleizeit), 즉 '변화하는' 또는 '신축성있는 근무시간제의 도입 때문이다.' 1977 년까지는 서독의 전노동인구중 4분의 1 500 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한 가지 또는 다른 형태의 자유근무시간제로 일하게 되었고 또한 이 제도는 프랑스, 핀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영국 등의 2 만 2000개 기업에 종사하는 약 400 만 명의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스위스에서는 모든 산업체의 15--20 퍼센트의 기업이 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질문화의 확산에 크게 공헌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은 이윽고 이 제도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네슬레사와 루프트한자 항공회사는 미국지사에서 그것을 시도했다. 미국 경영자협회를 위해 작성된 스텐리 놀렌 교수와 버지니아 마틴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7 년까지 모든 미국기업의 13 퍼센트가 자유근무시간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앞으로 몇년 안에는 17 퍼센트에 이르러 800 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현재 자유근무시간제를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대기업 중에는 스코트 페이퍼사, 캘리포니아 은해, 제너럴 모우터즈사, 브리스톨 마이어즈사, 에퀴터블 라이프 보험회사 등이 있다. 제2의 물결시대의 현상유지를 주창하는 일부 노동조합들은 보다 보수적이어서 자유근무시간제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개의 노동자들 대부분은 자유근무시간제가 자기들을 자유롭게 해준다고 생가한다. '기혼의 젊은 여사원들은 새 제도를 크게 환영하고 있다.'고 런던에 본사를 둔 보험회사의 경영자는 말하고 있다. 스위스에서의 한 조사에 따르면 자유근무시간제를 경험한 노동자의 무려 95퍼센트가 이 제도를 지지하고 있고 35퍼센트의 사람들(여성보다 남성이 많다)이 그 이전보다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고 대답했다. 보스턴의 한 은행에서 일하며 자녀를 둔 어떤 흑인 여사원은 다른 점은 문제가 없는데 지각을 자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당할 직전의 상태에 있었다. 지각이 잦다는 것이 '흑인노동자는 신뢰할 수 없다.'라든가 '나태하다.'는 인종차별주의자의 고정관념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일하고 있는 은행이 자유근무시간제를 도입한 이래 그녀는 지각하지 않게 되었다. 사회학자 앨런 코헨의 보고에 따르면 '사실 그녀는 아이를 매일 아침 탁아소에 맡겨야 했기 때문에 출근시간에 늦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고용주 측에서도 자유근무시간제의 유용성에 관하여 생산성 향상, 결근감소 등을 들고 있다. 무론 새로운 제도에 따르기 마련인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경영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일단 자유근무시간제를 채택한 회사 중에서 과거의 엄격한 근무시간제로 되돌아 간 곳은 겨우 2퍼센트에 불괗다. 루프트한자사의 한 중역은 "이제 시간엄수라  강조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되었다."라고 간단히 결말짓고 있다. 잠자지 않는 마녀 고르곤(Gorgon) 자유근무시간제에 관해서 폭넓게 소개되고 있지만 그것은 제3의 물결이 가져온 시간의 전반적인 재편성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테면 오늘날 야간노동량이 비약적으로 증가되고 있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협상은 오하이오주 아크론이나 볼티모아와 같이 종래부터 야간노동자가 많은 전통적 제조업단지보다는 오히려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서비스업이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최첨단의 산업에서 보게 된다. '현대의 도시는 결코 잠자지 않는 마녀 고르곤과 같은 존재이며 그곳에서는 정상적인 낮과 밤의 리듬에서 벗어나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쓰고 있다. 선진국에서의 야간노동자의 비율은 전체노동자의 15--25 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1957 년에 불과 12 퍼센트였던 야간노동자의 비율이 1974 년에는 21 퍼센트로 상승하였다. 미국에서는 밤에 일하는 정규노동자의 수가 1974--77 년 사이에 13 퍼센트나 올라 시간제 노동자를 포함하여 전체의 수는 1350 만 명에 이르렀다. 더욱 현저했던 것이 시간제 노동의 증가로서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시간제 노동을 선호하게 되었다. 디트로이트 지역에 있는 허드슨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거의 65 퍼센트가 시간제 근무자이다. 프루덴셜 보험회사는 미국 및 캐나다의 지사에서 약 1600 명의 시간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정규노동자 5 명에 대하여 1 명의 시간제 노동자가 있으며 1954 년의 상황과 비교하면 시간제 노동자의 수는 정규 노동인구의 2배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시간제 노동의 증가는 현저하여 1977 년에 조지타운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거의 모든 일을 시간제 노동이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되고 있다. '상임 시간제 고용: 경영진의 전망'이라는 표제로 된 이 연구보고서는 68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서 반수 이상의 기업이 시간제 노동자를 고용한 경험이 있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정규노동시간보다도 시간제 노동을 희망하는 실업자의 수가 과거 20 년 동안에 2배나 증가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간제 노동의 보급은 특히 여성, 노령자 도는 퇴직상태에 있는 사람들 외에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미, 스포츠나 종교, 예술, 정치상의 관심사를 추구할 시간을 갖는 대신에 적은 수입에도 기꺼이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제2의 물결의 특징이었던 동시화를 붕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유근무시간제, 시간제근무 및 야간근무제가 도입된 결과 9시^36,36^5시까지의 근무시간(혹은 특정한 스케줄)에 묶이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더욱 더 늘어나서 사회 전체가 밤낮 구별없이 활동하는 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이러한 생산면에서의 시간적 구조변화와 병행하여 소비자 측면에서도 새로운 행동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한 예로 철야영업을 하는 슈퍼마켓의 번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캘리포니아에서 특이한 사람들을 상징하던 새벽 4시의 물건 구매자가 서부보다 덜 열정적인 동부의 생활에서도 극히 당연한 존재가 된 것일까?'라고 '뉴욕타임스'는 묻고 있다. 답은 분명히 '예스'이다. 미국 동부에 있는 슈퍼마켓 체인의 광고담당자는 그의 회사의 점포가 철야영업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예전보다도 늦게까지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특집담당 기자가 어느 슈퍼마켓에서 아침까지 지키고 앉아 그곳을 이용하는 각양각색의 손님들에 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도를 하고 있다. 병든 아내를 보살피는 운전사가 6 명의 가족을 위해 쇼핑을 하러 온다. 젊은 아가씨가 심야의 데이트에 가는 도중 생일축하카드를 사러 온다. 병든 딸을 간호하고 있던 사나이가 장난감 밴조를 사러 뛰어들기도 한다. 또 어떤 부인은 도자기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1주일분의 쇼핑을 하기 위해 들어선다. 새벽 3시에 오토바이를 탄 사나이가 카드 한 벌을 사러 요란하게 도착한다. 새벽녘 낚시를 간다는 두 사나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들어선다^5,5,5^. 식사시간도 이런한 변화의 영향을 받아 똑같이 동시화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예전과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고 있다. 어떤 시간에도 간단히 식사를 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fast-food) 점포들이 문을 열게 됨에 따라 하루에 세끼 식사를 하는 습관이 무너지고 있다. TV가 도시생활자, 야간노동자 또는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함에 따라 TV시청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은행 또한 누구나 주지하고 있는 '은행의 영업시간'을 포기해 버렸다. 맨해턴의 대은행 시티뱅크는 TV광고에서 새로이 도입한 업무자동화 시스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선전을 하고 있다. '이제부터 보시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은행의 모습입니다. 시티뱅크의 24시간 서비스를 소개하겠습니다.^5,5,5^ 어느 때나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 슬레이터씨, 당신이 새벽에 예금잔고를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문제없습니다. 브라이언 홀랜드씨, 당신이 원하는 어느 때라도 당신의 예금잔고에서 인출을 할 수 있습니다.^5,5,5^ 사람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은행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시티뱅크는 언제나 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현재 시간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그 방법을 전반적으로 관찰하면 우리 생활이 제2의 물결 리듬으로부터 새로운 시간구조를 향하여 미묘하지만 급격하게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변화란 시간의 탈대중화이며 그것은 제3의 물결이 초래한 그 밖의 사회생활의 탈대중화와 궤도를 같이 하여 진행되고 있다. 친구찾기 스케줄 우리는 현재 시간의 재편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겨우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예컨대 시간을 개인의 기호에 맞는 것으로 만들면 일의 지루함을 줄일 수 있지만 고독이라든가 사회적 단절이라는 현상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친구, 연인, 가족이 각자 다른 시간에 일하고, 게다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회적 접촉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옛부터 그 나름대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의 역할을 했던 동네의 선술집, 교회의 집회, 학교의 무도회 등은 예전과 같은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것을 대신해서 사회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제3의 물결에 어울리는 새로운 제도들이 창출되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면 '개인별 스케줄'이라든가 '친구의 스케줄'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컴퓨터화된 서비스 장치를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장치는 자기의 계획을 상기시켜 줄 뿐 아니라 친구나 가족의 스케줄이 저장되어 있어 버튼만 누르면 그들이 언제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되고 그에 따라 약속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해낼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시간의 탈대중화는 그 밖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하나는 교통의 변화로서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를 고정된 시간에 일제히 일하게 하는 제2의 물결은 혼잡한 러시 아워를 야기시켰지만 시간의 탈대중화는 교통의 흐름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새로운 모양으로 바꾸고 있다. 사실 어느 사화에서 제3의 물결이 얼마나 진행되었는가를 판단하는 하나의 초보적인 방법은 교통의 흐름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다. 교통혼잡이 절정에 달하는 시간이 아직도 매우 두드러지거나 아침저녁으로 도로 교통의 흐름이 한 곳으로만 흐르는 것은 제2의 물결의 특징인 동시화가 아직도 우세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수많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통의 흐름이 하루종일 쉬지 않고 계속되고 더구나 그것이 한쪽으로만 거거나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는 제3의 물결 산업이 정착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즉 서비스 업종의 노동자수가 제조업의 노동자수를 능가하고 자유근무시간제가 널리 채택되고, 시간제 노동이나 야간노동이 일반화되고 슈퍼마켓, 은행, 주유소, 레스토랑 등 철야영업을 하는 업종이 상당수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보다 신축성있게 개인사정에 맞추는 스케줄을 짜게 되면 한꺼번에 몰리던 교통량을 분산시켜 에너지의 비용이나 대기오염을 감소시키게 된다. 미국 12개주의 전력회사들이 전기사용량이 절정에 달하는 시간대의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기업이나 가정 고객에 대해 '시간별' 요금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 코네티컷주의 환경보호국은 연방정부의 환경정책에 호응하는 수단으로서 기업에 자유근무시간제를 채택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서술한 것은 시간구조의 변화에 수반하는 매우 눈에 잘 띄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변화가 수년 혹은 수십년에 걸쳐 진행됨에 따라 앞으로는 훨씬 더 강력하고 지금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예술, 인간의 생태 자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냐 하면 우리가 시간과 관련을 맺고 있을 때에는 우리는 모든 인간적인 경험과 관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마리화나 제3의 물결 리듬은 깊숙이 잠재해 있는 심리, 경제 및 기술이라는 각 분야의 에너지를 결집함으로써 생겨나고 있다.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제2의 물결세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성격변화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기회가 얼마든지 보다 풍부하게 살고 있고 교육수준도 높으며 인생에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대중화되는 것에 완강히 저항한다. 종사하는 일이나 소비하는 물자가 다양화될수록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강요되는 스케줄에는 저항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새롭고 보다 개성이 풍부한 제3의 물결 리듬은 우리 생활에 이미 광범위하게 채택되고 있는 새로운 기술의 내부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비디오 카세트와 가정용 비디오 녹화장치는 TV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 테이프에 녹화하여 그들 자신이 원하는 때에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칼럼니스트인 스티븐 브릴은 "앞으로 2--3 년 안에 TV는 아마 최악의 TV시청 중독자들이 스케줄조차도 지배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시청하게 만드는 NBC, BBC, NHK와 같은 대방송 네트워크의 위력은 그 힘을 상실하게 된다. 컴퓨터 역시 우리의 스케줄이나 시간에 관한 개념을 근본부터 바꾸어 놓고 있다. 사실 대기업 내부에 자유근무시간제를 채택할 수 있게 한 것은 컴퓨터이다. 가장 단순한 컴퓨터라 하더라도 개인별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스케줄을 조정할 능력이 있다. 컴퓨터는 또한 시간에 관한 커뮤니케이션 패턴을 바꾸었다. 오늘날 우리는 복수의 정보를 동시에(경우에 따라서는 비동시에) 입수하고 교환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갖는 의미는 오늘날 컴퓨터 이용자들 사이에서 '컴퓨터 회의'를 여는 기회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회의는 어떤 집단이 가정이나 사무실의 컴퓨터를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약 600 명에 이르는 여러 나라의 과학자, 미래학자, 기획담당자, 교육전문가들이 이 전자정보교환 시스템(Electronic Information Exchange System)을 이용하여 에너지, 경제, 지방분산, 인공위성 등의 문제에 관하여 장시간 토론을 하고 있다. 이 경우 각자와 관계되는 정보는 가정이나 사무실에 있는 텔레프린터나 컴퓨터의 화면을 통해 언제라도 희망하는 방법으로 받게 된다. 따라서 많은 시간대로 나누어 각 이용자들이 가장 편리한 때에 정보를 보내거나 받을 수 있다. 누구나 본인만 희망한다면 새벽 3시에도 일할 수 있다. 몇사람이 합의하면 똑같이 컴퓨터를 통하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컴퓨터가 시간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커서 시간에 관한 개념 자체를 바꾸고 있다. 컴퓨터는 새로운 용어, 예를 들면 '실시간(real-time)'을 만들어 냈다. 그것에 의해서 시간에 관한 갖가지 현상을 밝히고 분류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컴퓨터는 또 현재, 시간을 계측하거나 속도를 조정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인 시계를 대신해 가기 시작하고 있다. 컴퓨터 작업은 매우 신속하며 보통 사람의 감각이나 신경으로는 감지하거나 반응할 수 없는 이른바 '잠재 의식속의 시간'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현재 컴퓨터 제어에 의해서 1분의 1 만행에서 2 만행을 출력할 수 있는 마이크로프린터(microprinter)가 있다. 이 속도는 이간이 읽을 수 있는 속도의 200배 이상이나 되지만 그것도 컴퓨터의 기능으로서는 가장 느린 부분에 속한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20년 이내에 현재의 1000분의 1초에서 진보하여 10억분의 1초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의 압축은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초월하고 있다. 개인이 평생동안 노동하는 시간은 1 년을 200시간으로 계산하여 40 년이면 8 만 시간이 되는데 그서이 불과 4.8분 동안으로 단축되는 것이다. 컴퓨터 이외에도 탈대중적 시간의 방향으로 작용하는 기술과 제품이 있다. 이를테면 정신신경에 영향을 주는 약제는 인간의 두뇌 속에 있는 시간에 대한 의식을 바꾸는 작용을 한다.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는 더욱 진보된 약제가 개발되면 그것이 좋든 나쁜든 우리의 시간에 관한 의식이나 경험은 보편성이 줄어들고 매우 개인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 제2의 물결문명의 시대에는 기계가 동시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개별적인 움직임이 허용되지 않는다. 노동자는 기계의 움직임에 맞추어 작업하고 있었다. 그 결과 사회의 규범도 이러한 사실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졌다. 오늘날 기계의 동시화는 극히 고도의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아무리 작업이 빠른 노동자라도 도저히 그 움직임에 따라갈 수가 없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기계에 연결시키기보다는 기계에서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제2의 물결문명의 시대에는 기계의 동시화가 인간을 기계의 기능에 묶어 두고 사회생활의 전부를 공통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넣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오늘날 기계의 동시화는 컴퓨터에서 명백히 볼 수 있듯이 매우 정밀해짐에 따라 인간은 그 움직임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점진적으로 해방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이 가져온 심리적인 영향의 하나는 우리 생활 속에서의 시간엄수라는 말의 의미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시간엄수'로부터 선택적이거나 또는 '상황에 따른 시간엄수'로의 변화이다. 현재의 아이들은 막연히 느끼겠지만 시간을 지키는 것의 의미가 옛날과 달라지고 있다. 제4장에서 지적했듯이 제1의 물결문명의 시대에는 시간엄수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농업 자체가 상호협력관계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공장이나 사무실에서는 노동자 한 사람의 지각이 곧 다른 노동자의 일을 방해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시간엄수는 중요한 덕목으로서 사람들을 묶어 놓았던 것이다. 오늘날 제3의 물결에 의해서 보편화되었거나 대중화된 스케줄 대신에 개별화된 스케줄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지각의 영향은 그다지 분명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도 지각은 친구나 동료노동자에게 폐를 끼치며 일의 종류에 따라서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기 하지만 그것이 생산에 미치는 악영향은 차츰 감소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경우에 시간엄수가 중요하고 또 어떤 경우에 서로 다른 습관이나 예의로서 시간을 지키는 것이 필요한지 그 구별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확실히 시간엄수는 어떤 상황에서나 여전히 중요하지만 컴퓨터가 보금되어 사람들이 어느 때나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은 시간엄수를 특별히 이행하지 않아도 생산활동에서 능률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시간을 지키라'는 압력이 줄어들게 되고 젊은이들 사이에 시간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가 만연되고 있다. 시간엄수는 도덕성과 마찬가지로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것이 되었다. 요컨대 새로 출현한 제3의 물결은 낡은 산업화 시대의 행동양식에 도전하면서 문명과 시간과의 관계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에서 자발적인 기쁨을 파괴하는 기계적인 제2의 물결이 지닌 특징의 하나인 동시화라는 원칙이 사라져 가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하는 체제를 거부하고 옛날부터 지켜 온 시간엄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 그 자체가 '현실세계' 속에서 변화되어 왔고 그와 아울러 우리도 일찍이 우리를 지배하던 기본규칙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탈표준화 정신 제3의 물결은 제2의 물결문명이 가져다 준 동시화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산업화 사회의 또 다른 기본적 특징인 표준화에도 공격의 손을 뻗고 있다. 제2의 물결사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규범은 가치, 중량, 거리, 크기, 시간, 통화에서 제품이나 가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강제로 표준화시키려고 했다. 제2의 물결시대의 경영자는 모든 부품들을 표준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일부 사람들은 지금도 그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 제3의 물결시대를 사는 가장 치밀한 경영자는 제15장에서 서술했듯이 낮은 비용으로 주문생산(표준화의 반대)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으며 개성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신기술을 적용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있다. 고용관계에서도 직업의 종류가 다양화됨에 따라 동일한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임금이나 특별 급여도 개인에 따라 더욱 다양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와 같이 노동자 개개인의 차이가 커지고 또 노동자 자신도 소비자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직접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전통적인 대량생산체제로부터의 이탈은 동시에 판매, 거래, 소비의 탈대중화를 초래했다. 오늘날의 소비자는 어떤 구매심리를 충족시킨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자기 나름의 기호의 유형에 맞느냐 안 맞느냐를 판단하면서 사는 것이다. 지금 서술한 상품에 대한 고도로 개성화한 소비자의 기호는 그것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생활양식과 마찬가지로 영속적인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소비도 생산과 같이 개성을 중시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탈표준화 생산은 탈표준화 소비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품의 가격도 제2의 물결시대를 통하여 표준화되어 왔으나 이것도 오늘날 주문생산이 보급됨에 따라 점차 탈표준화되어 가기 시작하고 있다. 이파이 세트의 값도 마찬가지로 조립하는 단위장치의 종류나 구매자가 얼마나 많은 장치를 하고자 하는가에 따라 정해진다. 항공기, 해저유전굴착기, 배, 컴퓨터, 그 외에 고도의 과학기술제품의 가격은 하나하나의 단위장치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계에서도 같은 경향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의견이 탈표준화되어 감에 따라 많은 나라에서 국민적 합의가 성립되기 어려워진다. 그러한 상태에서 수많은 '이해 그룹'이 생겨나고 그 하나하나가 자신들이 지향하는 협소하고 때로는 일시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문화에도 적용되어 다양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제13장에서 소개했듯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사용되면 대중정신이란 것은 와해된다. 대중매체의 탈대중화, 즉 미니잡지, 뉴스 통신, 제록스로 복사한 정도의 소규모 통신물의 출현은 유선 TV, 카세트, 컴퓨터의 이용과 아울러 제2의 물결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넓혀 놓은 표준화된 세계관을 파괴하고 다양한 이미지, 관념, 상징, 가치 등을 사회에 주입시키고 있다. 우리는 주문생산품을 사용할 뿐 아니라 다양한 상징을 사용하여 우리의 세계관까지도 주문생산하고 있다. '아트뉴스'지는 서베를린 국립미술관의 타이테르 호니쉬 관장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싣고 있다. '쾰른에서 호평은 얻은 작품이 뮌헨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슈투트가르트에서 공공한 작품이 반드시 함부르크 시민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지역적인 관심에 지배됨으로써 국민적 문화감각이 상실되고 있다.' 문화적 탈표준화의 과정에 대하여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대변지 '크리스티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최근 기사가 매우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편집자는 '현재 그리스도교 신자는 성서에 관하여 너무나 많은 번역판이 나와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은지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옛날의 신자들은 수많은 역시 가운데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지적하고 또 이 점이 기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크리스티애니티 투데이지는 성서의 어느 번역판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추천을 결코 하지 않는다.' 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서의 번역이라는 특정한 영역에서조차도 일반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표준이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종교관은 우리의 취미와 마찬가지로 점차 일률성과 표준화에서 벗어나고 있다.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나 조지 오웰은 제2의 물결세계의 단순한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없는 탈개인적 인간으로 이루어지는 가까운 미래사회를 묘사해 보았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사회를 탈피하여 다양한 생활양식과 고도로 개성화한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 '탈표준화 정신' 및 '탈표준화 대중'이 나타나는 것이다. 탈표준화의 경향은 앞으로 사회적, 심리적 또는 철학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그에 앞서 이미 사회적인 고독이나 단절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성껴은 산업화 시대에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 대중적 획일화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오늘날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도 제3의 물결은 아직 지배적이 아닐고 제2의물결의 조류가 이직도 짙게 남아 있다. 우리는 제2의물결이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부분을 완성시켜 가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하듭커버 서적출판이라는 오랫동안 뒤떨어진 산ㅇ버이 페이퍼백 출판과 대부분의 다른 소비산업이 한 세대 훨씬 전에 달성한 대량판매 단계에 이제야 도달하려 하고 있다. 그 외에 제2의 물결과 관련된 움직임 속에는 미국에서 도량형법을 유럽에서 사용하는 것과 일치시키기 위해 이처럼 뒤늦은 시기에 미터 제도를 채택하려는 운동과 같이 거이 실현불가능한 것이 있다. 혹은 자동차의 백미러에서 대학 학위증서까지 모든 것을 '일치'시키려고 하는 브뤼셀의 EC관료의 노력과 같이 관료주의적 지배력을 구축하려는 것에서 나온 것도 있다. '일치'란 요컨대 산업화 시대의 표준화를 위해 널리 통용되는 완곡한 표현이다. 오늘날 문자 그래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운동이 적지 않게 있다. 한 예가 미국의 학교 관계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원칙으로의 복귀'운동이다. 이 운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중교육이 가져다 준 폐해에 대해 분개하여 이 운동을 일으킨 것이며 그런 점에서 그들이 하려던 일에는 정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탈대중화 사회가 새로운 교육전략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로 학교교육에 다시 한번 제2의 물결의 특질이라 할 수 있는 획일성을 제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획일성을 성취하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사라져가는 제2의 물결문명의 후위활동일 뿐이다. 제3의 물결의 변혁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동화된 생산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생활관, 정치신념, 섹스의 양상, 교육방법, 식생활, 종교관, 인종관, 음악적 취향, 유행 또는 가족형태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미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 이행하는 역사적 전환점에 이르렀고 제2의 물결문명에서 지배원리의 하나였던 표준화는 이제 그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새로운 배열 산업사회의 특유한 동시화와 표준화라는 원칙이 급속히 그 세력을 잃어가고 있는 오늘날 사회규범이 다른 부문에서도 재정립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형태 여하를 불문하고 사회란 모두 중앙집권화와 탈중앙집권화의 양자를 필요로 하지만 제2의 물결문명이 전자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짙었던 것은 이제까지 서술한 바와 같다. 산업주의를 건설하는 데에 공헌한 위대한 표준주의자들은 미국 독립혁명의 알렉산터 해밀턴, 러시아 혁명의 레닌에서 뉴딜 정책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이르는 위대한 중앙집권주의자들과 제휴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새로운 정당, 새로운 경영기법, 그리고 새로운 철학은 제2의 물결시대의 중앙집권주의적 사고방식을 분명히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탈중앙집권화는 캘리포니아에서 키에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정치문제로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탈중앙집권화를 제창하는 군소정당의 연합이 44 년 동안 정권을 잡고 있던 중앙집권주의의 사회민주당과 대체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최근 수년 동안 탈중앙집권화와 지역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격렬히 멀어지고 있고 도버해협 너머 스코틀랜드에서도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경제의 탈중앙집권화를 촉진하라고 주장하는 일부 세력을 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활동은 서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멀리 뉴질랜드에서도 그자지 세력은 크지 않지만 벨류즈당이란 정당이 지방정부의 자치능력 확대에 따른 중앙정부의 권한이나 규모의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탈중앙집권주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있고 그것이 좋건 나쁘건 전국에 번지고 있는 조세저항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시정 차원에서도 탈중앙집권주의가 힘을 발휘하여 '주민 파워(neighoborhood power)'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정치가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지역에 기반을 둔 활동가 그룹도 잇달아 태어나고 있다. 산 안토니오의 환경개선 주민위원회(ROBBED: Residents Organized for Better and Beautiful Environmental Development), 클리블랜드의 큰 길을 시민에게 되찾아 주기 위한 시민의 모임(CBBB: Citizents to Bring Broadway Back), 혹은 뉴욕 브루클린의 민간소방조직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그룹에 가입한 사람들은 워싱터의연방정부는 지역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지역에 여러가지 귀찮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근원이 되고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연방정부의 주택도시개발부 지역담담 차관보이며 전에는 지역 및 공민권운동가였던 제노 바로니의 말에 따르면 탈중앙집권화된 소규모 집단들의 출현은 오늘날 틀에 박힌 파벌덩치가 그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과 또한 중앙정부가 각지방과 주민이 갖고 있는 폭넓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 점에 관하여 '뉴욕타임스'는 지역운동가들이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쓰고 있다. 이러한 탈중앙집권주의적인 사고방식은 미국의 버클리대학과 예일대학의 건축학 및 도시공학 연구실, 런던의 건축학회 등에서 활발해지고 있다. 학생들은 그 사고방식에 따라 환경보호, 태양열 이용 또는 장차 부분적으로나마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 도시농업 등을 위해 새로운 건축기술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젊은 건축가들의 사고방식은 그들이 책임있는 지위에 올라서게 되는 향후 몇년 사이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탈중앙집권화'라는 말이 경영면에서 유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앞을 다투어 부서를 세분화하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이윤센터'를 설치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식품, 화학제품, 석유, 그리고 보험업 등을 운영하는 대기업 에스마르크사의 조직개편이었다. 에스마르크사의 로버트 레네커 회장은 "과거에 우리 회사의 경여에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점이 있었다. 부문간의 조정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직을 작은 단위로 분할하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에스마르크사는 개별적으로 업무에 책임을 지는 1000개의 센터로 분할되었다. '눈에 띄게 나타난 효과는 레네커 회장을 일상적인 의사결정의 부담에서 해방시킨 일이다. 재정면의 통제를 제외하고 에스마르크스는 모든 부문에서 분권화가 진행되고 있다.'라고 '비즈니스 위크'지는 쓰고 있다. 그 뒤에도 에스마르크사는 몇차례 조직개편을 단행했는데 그 시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회사의 예가 일반적 경향을 나타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백 수천에 이르는 기업이 에스마르크사와 마찬가지로 탈중앙집권화를 시켜 가고 있으며 때로는 너무 자나쳐서 후퇴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상업무에 관해서는 서서히 중앙의 통제가 완화되어 가고 있다. 좀더 깊이 살펴보면 대규모 조직들도 집중화가 필요한 경영형태에서 서서히 탈바꿈해 가고 있다. 제2의 물결의 전형적인 기업이나 정부기관은 '한 사람의 상사'라는 원칙에 토대를 두고 조직되어 있었다. 종업원이나 임원이 부하를 많이 두고 있더라도 한 사람의 상사에게만 보고할 뿐이었다. 이 원칙에 따르면 명령계통은 모두 중앙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오늘날 제조업, 서비스업, 각종 전문직업, 대부분의 정부기관에서 그 제도가 자체의 중량을 감당하지 못한 채 붕괴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결과로서 기업내에서 한 명 이상의 상사를 모시는 사람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 나는 전에 쓴 '미래의 충격'에서 대규모 조직들 중에는 특별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조사단(tsak force), 부서간 위원회, 또는 프로젝트 팀(project team)이라는 임시적인 조직단위가 벌집처럼 설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는 이 현상을 애드호크러시라고 불렀다. 그 뒤에 많은 대기업들은 이러한 일시적인 조직단위들을 '매트릭스 조직(matrix organization)'이라고 부르는 아주 새로운 공식적인 조직으로 구체화시키게 되었다. '매트릭스 조직'은 중앙집권화된 통제 대신에 복수의 명령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 밑에서는 각 종업원은 먼저 한 부서에 소속되고 통상적인 방법으로 한 명의 상사에게 업무보고를 한다. 동시에 그 종업원 역시 단일 부서에서는 처리하지 못할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구성된 팀에도 배속된다. 따라서 전형적인 프로젝트 팀은 생산, 조사, 판매, 기술, 경리 등의 부서에서 모인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러한 프로젝트 팀의 구성원들은 모두 통상적인 상사에게는 물론 프로젝트 리더에게도 자기의 업무를 보고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한 명의 상사에게는 순수하게 행정적인 목적으로 업무보고를 하고, 한편 업무수행이라는 실질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다른 한 사람의 (또는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닌) 상사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다. 이 체제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몇가지 업무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여 정보의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기업의 문제를 자기가 속하는 부서의 좁은 범위에서만 보지 않도록 방지하는 작용을 하며 급속히 변하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응해 가는 경우에도 도움이 된다. 요컨대 이 체제는 과거의 중앙집권적 통제를 근본부터 뜯어 고치는 것이다. 매트릭스 조직은 그것을 일찍부터 도입한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나 스웨덴의 스칸디나비아 보험회사와 같은 대기업은 물론이고 일반병원, 회계사무실, 미국의회 등에서도 볼 수 있다.(미국 의회에는 여러 종류의 새롭고 반공식적인 '정보교환회'라든가 '정당간부회'라는 모임이 각기 다른 위원호의 란인조직에 생겨나고 있다.) 보스턴대학의 S. M. 데이비스 교수와 하버드대학의 P. R. 로렌스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매트릭스는 '경영기법의 하나이거나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 그것은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대응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기업조직이 탄생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새로운 유형의 경영조직은 제2의 물결시대의 1인경영체제에 비해 중앙집권화되어 있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 내부뿐 아니라 경제 전체가 탈중앙집권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한 가지 현상으로서 미국에서는 '금융시장'의 거인으로 군림한 극소수의 대은행에 대응한 지방은행의 대두를 들 수 있다. 산업이 지방에 분산됨에 따라 전에는 '금융 센터'라고 할 수 있는 대은행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점차 지방은행으로 거래선을 바꾸고 있다. 내슈빌에 본점을 둔 퍼스트 알메리칸 은행의 케네스 로버츠 은행장은 "미국 은행업의 장래가 금융시장 역할을 하는 대은행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융제도뿐 아니라 경제 그 자체에서도 그런 경향을 볼 수 있다. 제2의 물결은 역사상 처음으로 참다운 의미에서의 전국적인 시장을 출현시키고 '국민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국가적인 경제운용 도구를 발달시킬 필요가 생겼다.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중앙정부의 계획이며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이나 국가전체의 금융재정 정책이었다. 오늘날 이 두 가지 경제운용도구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체제운용을 위해 애쓰는 제2의 물결경제인이나 정치가들은 당황하고 있다. 아직 막연하게만 인식되어 있으나 국민경제는 급속히 분열되어 지역별, 부문별로 세분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각각 독자적인 문제를 안은 하위국민경제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새 공업지대로서 주목되고 있는 남부의 선 벨트 지대, 이탈리아의 메초조르노 지방, 혹은 일본의 관서지방과 같은 지역은 산업화 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비슷한 모습으로 성장해 가지 않고 에너지 수요, 자원, 다양한 직종의 혼재, 교육수준, 문화의 성격과 같은 여러가지 주요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또 그들 하위국민경제의 대부분은 1세대 전에 국민경제가 달성한 것과 같은 큰 규모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상을 올바로 인식하지 않으면 경제안정을 지향하는 정부의 노력은 파탄에 빠진다. 단순히 전국적인 규모로 조세의 감면이나 인상을 단행하거나 금융과 신용을 조작하거나 그 밖에 획일적인 정책을 통해서 인플레이션이나 실업을 억제하려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따름이다. 제2의 물결시대에 통용된 도구를 가지고 제3의 물결경제에 대처하는 것을 예를 들어 말하자면 아침에 병원에 출근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골절, 췌장파열, 뇌종양, 발톱의 발육부진 등의 갖가지 증상을 무시하고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아드레날린(Adrenalin) 주사를 지시하는 것과 같다. 요컨대 개별적이거나 지방실정을 고려한 경제정책만이 새로운 경제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경제라는 것이 세계적, 획일적 양상을 나타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점점 더 탈중앙집권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나 기업, 정부조직, 경제 그 자체에 있어서의 모든 이러한 반중앙집권주의적 경향은 새로운 매체의 발달, 컴퓨터의 보급, 에너지 체계의 발전 등과 병행하여 일어난 변화에 의해 드디어 지배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 경향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과거의 규칙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어 간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제까지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제2의 물결사회을 성립시켰던 수많은 규범들은 어느 것이나 제3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철절히 수정되고 있다. 따라서 제2의 물결의 강박관념적인 극대화 지향이 현재 심한 공격을 받고 있다. '큰 것이 좋다.'라고 외친 사람들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공격받게 된 것이다. 그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1960 년대의 일이다. 현재 도처에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경제에는 한계가 있으며 수많은 기업들이 이 한계를 초월하고 있다는 인식이 세상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업은 이제 작업단위의 규모를 축소하기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로의 이행이 경영의 규모를 작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지붕 밑에서 몇천 명이 일하는 제2의 물결시대의 공장이나 사무실은 고도기술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어느 자동차회사 사장에게 미래의 자동차산업에 관하여 물었더니 그 사장은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곳에서 7000 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을 건설할 생각은 없다. 각각 300 명 또는 400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작은 공장을 많이 만들 생각이다. 새로운 기술이 그 방법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그 뒤에도 나는 비슷한 의견을 식품제조회사나 그 밖의 생산회사의 최고경영자들로부터 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단순히 큰 것이나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큰 것과 작은 것을 잘 조화시키는 것이 최고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의 저자 E.F. 슈마허가 그의 열렬한 추종자들보다 잘 분별하고 있던 사실이다. 슈마허는 친구들에게 만일 그가 소규모 조직의 존재가 당연한 세계에서 살았더라면 틀림없이 '튼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책을 썼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 양자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시작하고 있다. 이를테면 독점판매권제도가 미국, 영국, 네달란드 기타 여러 나라에서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데 이 경향은 자본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자 탈세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중앙집권화와 탈중앙집권화의 다양화 정도에 따라 소규모의 단위조직을 급속하게 만들고 그것을 큰 조직에 연결하는 방법이며 전체 속에 크고 작은 조직을 조화시키는 하나의 시도이다. 극대화를 존중하는 제2의 물결의 경향은 이제 쇠퇴하고 있고 적절한 규모가 좋다고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제2의 물결시대의 전문화나 또는 전문직업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제2의 물결규범에 비추어 보면 전문가는 매우 존경받는 존재였다. '전문가가 되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비결'이라고 했다. 오늘날 정치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편협하지 않는 지성의 원천이라고 신뢰를 받던 전문가의 가치를 일반대중이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전문가는 자신의 관심만을 추구하기 쉽고 편협한 시야 이오의 어떠한 것도 해낼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병원이나 기타 기관에서 의사결정기구에 비전문가를 참여시켜 전문가의 권한을 누르려고 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부모들은 교육을 학교 교상에게 맡기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학교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권리를 원하고 있다. 수년 전 워싱턴주의 어는 조사위원회는 시민의 정치참여방법을 검토했다. 그들은 새로운 접근방법을 요약한 보고서에서 '자기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제2의 물결문명에서는 또 하나의 원리인 집중화가 장려되고 있었다. 그 결과 자본, 에너지, 자원 및 인간의 집중화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도시로의 인구집중이 현저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과정이 뒤바뀌어 오히려 지방으로 인구가 분산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에너지의 경우도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에 집중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에서 보다 광범하게 산재된 여러가지 형태의 에너지를 추구하게 되었다. 또 학교, 병원, 연구기관 등의 인구를 분산시키려는 시도를 수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우리는 제2의 물결의 모든 규범에서 점차 체계적으로 해방되려 하고 있다. 즉 표준화, 동시화, 중앙집권화, 극대화, 전문화 그리고 집중화의 여서 원칙에서 해방되기 직전에 있다. 그리고 이제 제3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이제까지 일상생활이나 사회적 의사결정을 지배해 온 낡은 기본규칙이 커다란 변혁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있다. 미래의 조직 이미 지적했듯이 어느 한 조직에 제2의 물결의 여러 원칙이 적용되자 그 결과 출현한 것은 전형적인 산업주의에 바탕을 둔 관료제도이다. 그 제도는 비교적 안정된 산업화 사회에서 단순반복생산이나 반복결정을 하는 데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대하고 위계적이며 영속적인 상의하달을 취지로 하는 기계적인 조직이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원칙을 채택하고 그것을 적용하여 미래로 나아가는 전혀 새로운 조직을 갖추려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제3의 물결 조직은 위계제가 그다지 엄격하지 않고 상층부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조직이다. 조직은 수시로 변동하는 소규모의 구성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구성단위는 각각 외부와 독자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중앙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펴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조직은 차츰 주야를 가리지 않고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새로운 조직은 기본적인 점에서 관료제도와 다르다. 그것은 2개 또는 그 이상의 구조형태를 가질 수 있는 '이원' 또는 '다원' 조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조직은 열을 가하거나 냉각시키면 변화하지만 일상의 온동에서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가는 플라스틱과 같은 것이다. 군대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군대는 평시에는 민주적이고 임의로 참가하는 조직이지만 전시에는 고도로 통제된 권력집중형 조직이 된다. 다른 예를 들면 T포메이션을 비롯하여 어떤 플레이라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축구팀이 호각만 불게 되면 경기내용에 따라 축구, 야구, 농구 등 어떤 팀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즉석에서 대응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고 어떤 조직에서도 어떤 역할이든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조직에서는 정연한 위계적 방식뿐만 아니라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관리자가 요청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피라밋과 같은 튼튼한 구조의 조직에서는 무론 전위예술가 캘더의 모빌(mobile)가 비슷한 조직, 즉 소수의 가느다란 경영상의 끝으로 연결되어 있어 사소한 움직임에도 반응하는 거의 자율적인 단위들로 구성된 조직 안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미래의 조직에 어울리는 명칭을 아직 찾아내지는 못했다. '매트릭스'나 '애드호크'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적절하지는 않다. 많은 이론가들이 여러가지 표현을 제시하고 있다. 광고업자 레스터 분더맨은 "지적인 전사로서 행동하는 '앙상블 그룹'이 위계적 구조와 대체되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직론의 권위자인 토니 저지는 미래 조직의 네트워크적 성격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기술하고 있는 가운데 "네트워크란 어떤 특정한 개인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인간집단이 서로 그 움직임을 조정하는 형태인 이른바 '자동조정'에 의해서 가능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토니 저지는 또한 미래의 조직을 버크민스터 플러의 '연결'의 원리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표현하든 과거와는 완전히 모습을 바꾼 조직이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히 새로운 조직의 탄생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 탄생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규범서가 그 체제를 정비하고 있고 거기에 제3의 물결의 여러 원리, 즉 인간사회가 발전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기본규칙이 실려 있다.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규범서에 얽매여 있는 부모가 옛날의 규칙이 벌써 통용되지 않게 되었음을 자녀들은 새로운 규칙의 출현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으며서도 그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구세대나 신세대도 모두 쇠퇴해 가고 있는 제2의 물결질서와 새로 태어나고 잇는 제3의 물결문명의 틈바구니에 서 있는 것이다. 제20장 생산소비자의 출현 역사의 커다란 변혁은 일상생활 안에서 조그만한 변화에 의해 상징적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1970 년대 초에 그러한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지만 그것에 대한 중요성은 간과되었다.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의 약국에서 새로운 상품이 팔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임신 테스트 용품이었다. 불과 수년 사이에 이 상품은 유럽에서만 1500 만^36,36^2000 만 개가 팔렸다. 어느덧 미국 신문에도 '임신이란 생각이 들면 지금 곧 워너 램버트로.'라는 광고가 실렸다. 위너 램버트라는 미국 회사가 이 상품을 내놓자 그 반응은 대단했다. 1980 년으로 들어서자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수백만 여성들이 종전에 의사나 연구소의 손을 거치고 있던 검사를 일상적인 일처럼 자기자신이 하게 되었다. 의사의 손을 빌리지 않게 된 것은 그녀들만이 아니다. '메디칼 월드 뉴스'지에 의하면 전문가도 아무것도 아닌 일반이들이 의학지식과 청진기나 혈압특정기의 취급법을 배우고 흉부검사나 자궁암 조기진단법을 익히고 심지어 간단하 외과수술까지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목의 세균검사를 할 수 있는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 간단한 간호법에서 '즉석 소아과'에 이르는 과정까지 가르쳐 주는 학교도 있다. 미국에서는 쇼핑 센터나 공항, 백화점 등에 동전식 혈압측정기가 1300개소 이상이나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들 자신이 직접 혈압을 재고 있다. 1972 년까지만 해도 의료기기나 의사 이외의 사람들에게 팔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가정용 의료기기의 판매가 급속도로 신장되고 있다. 검이경, 귀지 청소기, 코나 목구명 세척기, 회복기의 환자용 의료기기 등이 잘 팔리고 있다. 개인이 자신의 건강에 책임을 지게 되어 그만큼 의사를 찾는 횟수도 줄었도 입원기간도 단축되었다. 그런 것은 일시적인 유행에 지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을 지불하고 남의 신세를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일을 스스로 처리하려는 생활태도는 기본적 가치관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만으로는 이 변화가 갖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놓치기가 쉽다. 이 현상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하려면 간단히 역사의 흐름을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제1의 물결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생산한 것을 소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대적인 의미로 볼 때 생산자도 소비자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생산소비자'라고나 불러야 할 존재였던 것이다. 생산과 소비 이 두 가지 기능이 분명하게 분리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였다. 이가은 기능분리로 시장이나 교환망이 급속도로 확대되었고 재화나 서비스를 서로 상대방에게 보내기 위한 복잡한 유통경로가 태어났던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소비를 위한 생산'에 기초를 두었던 농업사회는 제2의 물결을 맞아 '교환을 위한 생산'에 기초를 둔 산업사회로 이행해 갔다. 물론 실제의 상황은 좀더 복잡했다. 제1의 물결시대에도 소량의 생산물이 교환되고 있었도 시장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또 제2의 물결시대에서도 자급자족 물품의 생산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다 쉽게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된다. 경제활동은 크게 나누어 두 개의 부무으로 성립된다. A부문에는 자기자신과 가족 또는 공동체를 위해 보수를 받지 않고 하는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B부문에는 교환망이나 시장을 통해서 판매 또는 교환하려는 모든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활동이 포함된다. 이렇게 분류하면 제1의 물결시대에는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한 A부문의 경제활동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B부문은 적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의 물결시대가 되자 이것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시장으로 대상으로 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제2의 물결의 경제학자는 A부문의 존재를 잊어버렸을 정도였다. 그리고 경제라는 말은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이나 생산에만 한정시켜 사용함으로써 생산소비자는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청소, 세탁, 육아, 지역사회조직 등 보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주부들의 노동은 모두 비경제적 노동이라고 무시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B부문의 눈에 보이는 경제활동도 A부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활동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없다면 다음 세대에 B부문에서 일할 임금노동자가 없어지고 경제 그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 대손변을 가리는 것도 배우지 못하고 말도 배우지 못하고, 필요한 사회적 훈련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면 경제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높은 생산성은 바랄 수도 없다. 최소한의 훈련마저도 받지 못한 근로자가 B부문으로 온다면 이 부문의 생산성은 엉망이 될 것이다. B부문의 생산성은 A부문의 생산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A부문도 역시 B부문에 의해 지탱되는 구조로 되어 있으나 제2의 물결 경제학자는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있다. 오늘날 제2의 물결사회는 최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가나 전문가는 B부문의 거래에서만 측정되는 경제통계만을 기초로 해서 경제성장과 생산성의 둔화를 걱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2의 물결의 가치기준만으로 사고를 계속하여 A부문의 활동을 무시하고 이를 경제 외적인 부문으로 간주하는 한, 즉 생산소비자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한 결코 경제문베를 올바로 다룰 수 없는 것이다. 자세히 조사하면 A부문과 B부문간의 관계가 근본적인 변화를 나타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구분하고 있던 경계선이 애매해지고 생산소비자가 중요한 존재로 등장하고 잇다. 더구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렸고 전세계에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시장의 역할마저도 변혁시키게 될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의사가 하던 일을 자신이 스스로 처리하기 시작한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그들이 지금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생산의 일부를 B부문에서 A부문으로, 즈 경제학자들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눈에 보이는 경제에서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던 가공의ㅣ 경제로 이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생산소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제 외롭지 않다. 대식가와 미망인 영국 맨체스터에 살고 잇ㄴ느 캐서린 피셔라는 가정주부는 여러 해 동안 심한 외출공포증으로 고생하던 끝에 1970 년 비슷한 공포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하나의 단체를 만들었다. 그 단체는 공포증협회라고 하며 현재는 완전히 기반이 굳어져 많은 지부를 두고 있다. 자신들의 문제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해결하기 위한 이런 집단들은 선진국에 수천개나 잇으며 심리적, 의학적, 사회적, 성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디트로이트시에는 친척이나 친구를 읺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며 돕는 '사별자모임'이 50개 가까이나 있다. 호주에는 정신병이나 신경증 환자였던 사람들이 만든 'GROW'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하와이,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에 지부를 두고 있다. 미국의 22개 주에는 동성연애를 하는 자녀들을 갖고 있는 부모들이 조직한 '게이와 레즈비언 부모협회'가 결성되었다. 영국에는 우울증환자협회가 60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익명의 마약중독자, 배우자 없는 부모모임, 미망인상조회 등이 계속 결성되고 있다. 물론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 하며 정보를 교환하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자조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갔던 일은 역사상 없었던 것이다. '뉴 휴먼 서비스 인스티튜트'의 공동경영자인 프랭크 리스먼과 앨런 가트너의 말에 의하면 현재 미국에는 50 만이 넘는 이러한 단체가 있으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 수는 인구 435 명당 하나꼴이다. 오래 가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하나가 없어질 때마다 몇개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조직의 성격도 여러가지이다.전문가에 대한 불신감 때문에 전문가에게 매달리지 않고 자기들만으로 해결하려는 모임도 있다. 그 모임은 종전처럼 전문적인 카운셀러와 상담하지 않고 자기들의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상호간에 도움을 주는 '상호 카운셀링'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단체도 있다. 의회에 압력을 가해서 법률개정이나 세제면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단체도 있다. 준종교적 성격의 단체, 회합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들어 실제로 함께 생활을 같이 하는 단체 등 대단히 다채롭다. 이런 단체들은 지역적, 심지어 국제적 조직을 갖고 있다. 심리학의 전문가나 사회사업가, 의사 등이 참여하는 경우에는 그들의 역할이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지금까지의 전문가는 무엇이라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상대방과 대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문가도 상대방과 같은 입장에서 함께 노력하는 경청자, 교사,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복지단체나 봉사단체는 타인을 도와주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자조'의 원칙에 입각한 운동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조운동은 사회영역을 개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흡연자, 말더듬, 자살미수자, 도박꾼, 인후염환자, 쌍둥이 부모, 대식가 등 온갖 단체가 거미줄과 같은 조직망을 형성하여 제3의 물결가족이나 기업의 구조와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그러한 단체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은 불문하고라도 지금까지 수동적이던 소비자로부터 능동적인 생산자로의 기본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단체들은 B부문에서 A부문으로, 교환경제로부터 생산소비경제로 경제활동의 일부를 이행시켜 가고 있다. 물론 시장은 존속하며 교환경제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새로 시작된 이러한 운동은 다른 분야에서도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세계적인 대기업 중에는 기술적, 경제적 이유 때문에 생산소비자가 늘어나도록 돕고 있는 곳도 있다. 손수만들기(DIY) 1956 년 미국전신전화회사(AT & T)는 통신수요의 급증으로 새로운 전자기술을 도입해서 장거리 전화의 자동화를 시작했다. 오늘날 한걸음 더 나아가 국제전화의 대부분이 자동화되어 있다. 소비자가 직접 상대방의 번호를 돌리면 종전에 교환원이 해주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1973--74 년에 아랍의 석유금수조치로 인해 휘발유값이 급등했다. 대석유회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올렸지만 조그만 주유소는 경영의 위기를 맞아 원가절감을 위한 셀프서비스(selfservice) 급유장치를 도입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이상스럽게 보였던지 신문도 라디에이터에 휘발유를 잘못 놓은 사건을 흥미거리 기사로 보도됐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셀프서비스로 급유하는 것은 당연하게 되었다. 1974 년에 셀프서비스에 의한 급유는 미국의 주유소 중에서 불과 8 퍼센트였던 것이 1977 년에는 거의 50 퍼센트로 상승했다. 서독에서 1976 년까지 3 만 3500개의 주유소 중 약 15 퍼센트가 셀프서비스로 전환하여 총 판매고의 35 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비중이 곧 70 퍼센트에 이를 것이라고 업계의 전문가는 보고 있다. 여기서도 소비자는 생산자의 일을 대신하게 되어 생산소비자가 된 것이다. 한편 가타은 시기에 은행에서는 현금 카드에 의한 자동지불을 시작했다. 은행의 영업시간 외에도 현금인출이 가능해져 은행시간의 패턴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소비자는 그때까지 은행원이 하고 있던 일을 대신하게 된다. 고객에게 일의 일부를 분담시키는 것(경제학자들은 이를 노동비용의 외부화라고 한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슈퍼마켓의 셀프서비스가 그 좋은 예이다. 상품을 놓아 둔 곳을 잘 알고 있어서 고객이 부탁하면 애교있는 태도로 상품을 꺼내 주던 점원은 스스로가 쇼핑 수레를 밀고 다니면서 물건을 고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옛날과 같은 훈훈한 서비스를 그리워하는 고객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새로운 제도를 좋아한다. 셀프서비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몇 푼이라도 싸게 살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즉, 점원이 서비스하던 것만큼 대가를 지불받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다른 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디스카운트 상점(discount store) 같은 곳에서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방법을 지향하고 있다. 점원수가 줄어서 서비스는 좋지 않지만 그 대신 어느 정도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 고객은 옛날에 비해 약간 수고를 해야 한다. 옛날부터 숙련된 점원이 없으면 잘 되지 않는 장사라고 생각되었던 구두가게들 조차도 셀프서비스로 바뀌어 소비자 스스로가 구두를 고르는 시대가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캐롤라린 버드는 '밀집중후군'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집에서 간단히 조립할 수 있는 상품이 늘어나고 있다. 크리스마스 세일 때는 뉴욕의 오래된 상점에서조차 점원들이 판매전표를 빨리 써 주지 않아 손님이 직접 전표를 끊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1978 년 1월의 어늘날, 워싱턴의 어느 관청에 근무하고 있는 30세의 배리 너스범은 자기집 냉장고의 소리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전같으면 수리공을 불러서 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수리비용은 비싸며 원하는 시간에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냉장고의 취급설명서를 읽어 보았더니 '800'이라는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냉장고의 제조업체인 미시간주 벤톤 하버에 있는 휠풀 전기회사의 전화번호로 통화료는 회사부담이었다. 이것은 쿨라인(Cool-Line)이라고 하는 전용전화회선으로 서비스 문제를 돕기 위해 설치해 놓은 것이었다. 그가 전화를 했더니 수리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어느 나사못을 풀어야 하고 어떤 소리에 주의해야 하며 또 어떤 부품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지시해 주었다. "너무나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것만이 아니고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도 자신감을 주는 설명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어려움없이 냉장고의 수리를 끝냈다. 이 회사에는 상담원으로 9 명의 상근자와 여러 명의 시간제 근무자가 있으며 헤드폰을 쓰고 전화를 받고 있다. 그 중에는 이전에 현장 정비요원이었던 사람도 있다. 그들 앞에 설치된 스키린이 즉각 문제가 된 제품의 설계도를 보여준다. (휠풀사는 냉장고 외에도 냉동기, 전기접시닦이 기계, 에어콘 등을 만들고 있다.) 휠풀전기회사에서는 1978 년에만도 15 만건의 전화를 처리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쿨라인과 같은 방식이 주택수리체제의 기초적 모형이 되어 예전에는 수리공이나 전문가에게 대금을 지불하면서 의로하던 일을 이제는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장거리 전화요금이 싸지고 유선 TV가 보급되면 가정용 TV수상기에 수리하는 공정이 나타나고 상담원이 TV를 통해 수리를 지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체제가 보급되면 수리공이 다루는 것은 보다 중요한 일이거나 아니면 (의사나 사회사업가의 경우처럼) 생산소비자를 위한 교사, 안내자, 혹은 지도자와 같은 구실을 하게 된다. 비용의 외부화는 모든 업종에서 발생한다. 소비자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하던 일을 자기가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B부문의 경제활동이 A부문으로, 교환경제가 '생산소비경제'로 이행해 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변화도 DIY(do-It-yourselfers: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수하는 사람들)에 연관되는 산업분야에서 급격하게 일어나는 변화와 비교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손수 만드는 사람들은 창틀의 수리, 조명설비의 수리 등을 자기 스스로가 해왔다. 이런 일들은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문적인 목수, 전기기술자, 연관공 등과 비전문가인 손수 만드는 사람과의 관계는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10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전기공구의 불과 30 퍼센트가 일반가정용으로 판매되었고 70 퍼센트는 전문가용이었다. 그런데 불과 10 년 사이에 그 비율은 완전히 역전되어 현재에는 30 퍼센트가 전문가용이고 70 퍼센트가 일반가정용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산업연구회사인 프로스트 & 설리반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1974--1976 년에 걸쳐서 매우 주목해야 할 변화가 있었다. '건축자재의 50 퍼센트 이상이 건축업자들이 아니라 직접 집주인에게 판매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숫자는 1건당 25 달러 이하의 일거리에 지출한 3억 5000 만 달러를 제외한 숫자이다. 1970 년대 전반의 건축자재 판매량은 31 퍼센트가 증가했으나 손수 만드는 주택소유자의 전축자재에 대해서만은 65 퍼센트가 증가해 전체 증가율의 두 배에 이른다. 프로스트 & 설리반사는 이 변화는 극적인 것이며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연구보고서는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중산층의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것을 경멸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긍지를 가지고 자기 일을 하고 있다. 학교나 대학, 출판사들에서는 '하우투(howto)'에 관한 강좌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에 의하면 '빈부의 구별없이 모두가 하우투에 대한 것에 달려들고 있다. 클리블랜드시에서는 공공주택사업계획 속에서 집주인이 직접 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들어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자택에 직접 사우나탕, 온천, 지붕을 만드는 것이 유행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유럽에서도 이른바 'DIY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 기질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독일이나 네델란드의 DIY는 진지하고 수준도 높으며 장비도 제대로 갖추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최근에 시작되어 나이 든 사람 가운데는 스스로 자기일을 하는 것은 체면이 손상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DIY가 보급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인플레이션이 그 중의 하나이다. 목공이나 연관공을 불러오기가 힘들다. 비록 온다 하더라도 적당히 해치울 때가 많다. 여가시간도 늘어났다. 이런 여러가지 원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상대적 비효율성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화에 의해서 단위당 생산비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수공품과 비자동화 서비스의 상대가격이 상승한다는 원리이다. 가령 연관공의 시간당 노임이 20 달러이고 휴대용 전자계산기의 값도 20 달러라고 해 두자. 그런데 자동화가 진전되어 휴대용 전자계산기를 20 달러로 여러 대 살 수 있게 된다면 연관공의 노임은 상대적으로 많이 인상된 결과가 된다. 다른 재화의 가격에 비해 노임은 몇배나 오른 것과 같은 결과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여러가지 서비스의 가격은 계속 치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비스 가격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게 된다. 즉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상대적 비효율성의 법칙'에 의해서 자가소비용 생산일 더욱 더 이익이 될 것이며 이 때문에 더욱 더 B부문의 경제활동은 A부문으로, 교환경제는 생산소비겨제로 이행해 가는 것이다.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outsider and insider) 그러면 생산소비활동은 어떻게 해서 발전해 가는가. 장기적 전망을 위해서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재화도 함께 고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비자는 단순히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에까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열성적인 제조업자들은 제품설계에 협조할 고객들을 모집할 뿐아니라 그들에게 보수까지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식품, 비누, 화장품 등 대중과 직결된 상품뿐만 아니라 탈대중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전자공업 등 최첨단의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의 기획담당 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한두 명의 고객과 충분히 의견교환을 한 후에 만든 상품이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끼리만 타당서을 검토하고 서둘러 시장에 표준상품을 내놓았을 때는 대체로 잘 안 팔린다." 아날로그 디바이스사의 시릴 브라운은 모든 제품을 두 개의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생산자 주도형' 제품과 '소비자 주도형' 제품이다. '소비자 주도형' 제품이라는 것은 셍산자측이 아니라 잠재적 소비자측에서 어떤 제품이 좋다고 규정하는 제품으로서 이 '소비자 주도형' 제품이 이상적이라고 브라운은 말한다. 첨단제조업으로 이행해 갈수록 그리고 생산의 탈대중화와 주문화가 더 한층 진전될수록 소비자는 필연적으로 생산과정에 보다 깊이 참여하게 된다. 컴퓨터 에이디드 매뉴팩처링 인터내셔널사에서는 생산의 완전자동화를 위해 부품과 그것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공정을 모두 분류하고 그 하나하나에 분류번호를 부여하는 코드화 작업을 하고 잇다. 펜실베니아주립대학 산업생산 시스템 엔지니어링과의 함인용(Ham Inyong) 교수는 완전자동화는 아직 시작단계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소비자가 직접 컴퓨터에 자기가 원하는 제품명세를 입력시켜 지시한 대로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함교수에 의하면 소비자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제품의 설계뿐만 아나라 제품의 제조공정까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컴퓨터는 기계까지도 정해 줄 것이며 연마에서부터 도장에 이륵기까지 모든 필요한 단계의 순서도 정해 준다. 소형 컴퓨터들이나 기계조작용 수치제어 장치들에 필요한 프로그램도 마련해 준다. 또한 경제적.환경적 목적을 위해 이들 여러가지 공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적응적 통제'도 가능케 해줄지 모른다. 마침내 소비자는 단순하게 주문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버튼을 눌러서 데이터를 입력하고 생산공정 전체를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현재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가 사라져 가는 세계에서 차지했던 자리를 물려받아 생산공정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게 될 것이다. 소비자가 직접 생산공정을 움직이는 시스템의 실현은 아직 멀었다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그것에 필요한 하드웨어는 이미 개발되어 있다. 제15장에서 말한 봉제공장의 컴퓨터 제어 레이저 재단기를 전화로 가정의 퍼스널 컴퓨터와 연결하면 소비자는 자택에 있으면서 자기몸의 치수를 입력하고 좋아하는 옷감을 골라서 멀리 있는 레이저 재단기를 움직여 자신의 주문대로 양복을 맞드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미국 RAND연구소의 정보 서비스 부장 로버트 앤더슨은 컴퓨터에 의한 제조공정관리의 전문가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 인간이 더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소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가 입을 옷을 디자인하거나 표준 디자인을 자기가 사용하기에 알맞게 고치는 등의 일만 해주면 컴퓨터로 제어되는 레이저 재단기가 옷감을 재단하고, 수치제어기계가 주문대로 바느질을 해줄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해서 자기가 희망하는 설계대로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현실화된다. 물론 컴퓨터에는 연방정부의 안전기준과 필요로 하는 물리학적 특성이 미리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기준을 벗어난 자동차가 나오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에 덧붙여, 제16장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가내전자근무체제에서 일을 하게 되는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소비자가 활용할 수 있는 '생산의 도구' 그 자체도 크게 달라지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곳에서 사용되는 전자기기의 대부분은 보수를 받기 위해 노동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자가소비용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도 사용된다. 이러한 체제를 통해 제1의 물결사회에서 주역을 맡았던 생산소비자가 또다시 경제활동의 주역으로 복귀한다. 이번에 제3의 물결의 생산소비자는 첨단기술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자조운동이나 일용목공 등 손수만들기의 경향 또는 생산기술의 새로운 동향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것은 소비자가 생산과정에 보다 깊이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종전의 생산자오 소비자의 구별은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생산의 바깥 쪽에 있던 소비자는 '아웃사이더'에서 '인사이더'가 되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B부문의 경제는 점점 더 생산소비자가 지배하는 A부문으로 이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것은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야기시킨다. 처음에는 이 변혁이 냉담하게 받아들여지나 나중에는 아마 가속적으로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제도인 시장을 변혁시키게 될 것이다. 생산소비자의 생활양식 소비자가 자진해서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여러가지 경향이 나타난다. 애당초 시장이란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 구분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자급자족시대에는 정교한 시장이 불필요했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면서 비로소 시장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재래식 학자들은 시장을 좁은 의미로 화폐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교환망이다. 교환망에는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여러 형태가 존재해왔다. 서방에서의 시장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장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소련 스몰렌스크의 이반 이바노비치가 만든 재화나 서비스가 교환망을 통해서 동베를린에 살고 있는 요한 슈미트가 만든 재화나 서비스가 교환되는 일이 있다. 화폐를 기초로 한 시장도 있고 물물교환 시장도 있다. 시장은 자본주의적인 것도 사회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소비와 생산의 분리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따라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시간이 갖는 기능.역할 그리고 힘이 전체적으로 의문시 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처럼 생산소비자의 활동이 성행하게 되면 시장의 기능은 필연적으로 달라진다. 앞으로 이 미묘하고도 중요한 움직임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속단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장이 출현하기 이전의 경제로 역행할 수도 없다. B부문, 즉 교환부문의 경제가 축소되어 사라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시장에 의존하는 생활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소비활동이 성행되면 A부문과 B부문간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제2의 물결의 경제학자들이 거의 무시했던 일이다. 근본적인 변화는 생산소비가 적어도 일부 경제활동의 '탈시장화'를 수반하고, 따라서 시장의 사회적 역할을 대폭 변화시키기 때문에 나타난다. 미래의 경제는 A부문이나 B부문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제1의 물결경제나 제2의 물결경제와도 다른 새로운 경제가 출현한다. 그것은 제1의 물결의 특성과 제2의 물결의 특성을 역사적으로 새롭게 결합시킨 통합적 경제인 것이다. 여러가지 유료 서비스 비용의 급등, 제2의 물결의 관료적 체제의 붕괴, 제3의 물결의 새로운 기술의 출현, 구조적인 높은 실업률 등 여러가지 요인들의 수렴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생산소비자의 등장은 새로운 노동양식과 생활양식을 가져다 주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는 일이 없어지고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또 가내전자근무체제가 등장하고 가정생활의 구조도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를 염두해 두고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생활양식에도 몇가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결국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미래의 경제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풀타임 유급직업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풀타임'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립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노동시간은 점점 더 단축되게 될 것이다.(스웨덴에서는 최근의 법률에 의해 근속년수나 연령에 관계없이 연간 5주간의 유급휴가가 보장되었고 연간 표준노동시간은 1840시간으로 정해졌다. 실제로는 결근율이 높기 때문에 1600시간이 일반적인 노동시간으로 되어 있다.) 이미 일주일에 3일이나 4일만 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반년이나 1년의 휴가를 얻어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이 있다. 부부가 맞벌이하는 가정이 늘어나면 이런 경향은 더 강화될 것이다. 임금노동자가 증가하고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노동참가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1인당 노동시간은 단축된다. 이와 관련해서 여가시간에 문제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가의 대부분은 자기자신을 위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 즉 생산소비활동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까지의 노동과 여가라는 구별은 무의미해진다. 문제는 노동이냐 여가냐 하는 구별이 아니고 임금을 위한 B부문의 노동이냐 아니면 자기자신을 위한 A부문의 무보수 노동인가라는 것이다. 제3의 물결시대에는 교환을 위한 생산이 반이 되고 자가소비를 위한 생산이 반이 되는 생활양식이 일반화된다. 실제로 산업혁명 초기의 농촌에서는 그러한 생활이 영위되고 있긴 했다.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농민은 서서히 노동자가 되어 도시로 이주하고 그 생활양식도 달라져 갔지만 산업혁명의 과도기에는 반은 농토에서 일하고 반은 공장에서 일하는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식량은 스스로 생산하고 생활필수품의 일부는 사서 쓰고 나머지는 만들어 쓰는 생활이었다. 이런 생활을 현재에도 게속하고 있는 지역이 세계 곳곳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이 늦어진 나라들이 그것이다. 재화와 식량생산의 기술이 발달되고 일반 소비자들이 자기가 쓰는 물건을 손수 만드는 방법이 비약적으로 진보하게 되는 21세기에서 이런 생활을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면 미래의 생산소비자는 양복의 옷본을 사오는 대신 자동화된 전자재봉틀을 조작하는 프로그램 내장 카세트를 구입하게 될 것이다. 이 카세트만 있으면 솜씨가 서투른 사람이라도 자기가 입을 와이셔츠쯤은 사이즈에 맞게 만들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기계를 만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차를 정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자동차를 반쯤 조립해 낼지도 모른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언젠가는 고객이 자기가 원하는 자동차의 여러가지 조건은 전화로 말해 주면 공장에서 생산공정을 관리하고 있는 컴퓨터에 프로그램되어서 주문한 대로의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소비자가 자동차생산에 참여한 방법이 있다. 브래들리 오토모티브사는 '브래들리 GT 키트'라는 조립식 스포츠카를 판매하고 있어서 고객들 스스로가 호화로운 스포츠카를 조립할 수 있게 되었다. 반쯤 조립된 이 키트를 구입하는 생산소비자는 폴크스바겐 샤시에 유리섬율로 된 차체를 올려 놓고 엔진과 핸들을 부착하고 좌석을 붙이는 등의 일을 하면 된다. 시간제로 유급근무하는 세대가 늘어나게 되면 자택에도 여러가지 기계나 공구를 갖추어 놓고 스스로 물건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나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는 일이다. 시장에 내놓을 물건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시간이 일년의 반이고 나머지 시간은 시장 이외의 일에 사용하게 되면 수입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면 돈을 지불해야 했던 일을 스스로 함으로써 수입감소를 메울 수 있을 뿐아니라 인플레이션의 영향도 줄일 수 있게 된다. 미국 모르몬교도의 생활은 미래의 생활양식을 생각하는 하나의 모델이 된다. 모르몬교회는 교구마다 농장을 갖고 있어서 교구의 신도들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가가 있을 때는 모두 농업봉사에 종사하고 있다. 농산물의 대부분은 판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상용으로 저장되거나 가난한 모르몬교도에게 분배된다. 통조림공장이나 식품공장도 있고 큰 곡물창고도 있다. 신도들 중에는 자기가 재배한 농산물을 통조림공장으로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고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신선한 야채를 근처에 있는 통조림공장로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 솔트 레이크시의 어느 모르몬교도는 "우리 어머니는 토마토를 사와서 통조림을 만든다. 부녀회가 날짜를 정해 모두 함께 가서 자가소비용의 토마토 통조림을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 모르몬교도 중에는 교회에 헌금을 할 뿐만 아니라 노동봉사로써 건설공사장에서 일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모르몬교도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또 사회적으로 굳게 맺어진 특수 공동체의식이 광범위하게 재창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모르몬교도의 경우에는 신학적으로 강한 자립제가 원칙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자가소비용 생산원리가 앞으로 점점 더 성행하게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된다. 도시 또는 심지어 아파트에서도 야채나 과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유전학적으로 개량된 종자가 공급된다. 가정에서도 플라스틱 제품을 가공할 수 있는 값싼 도구가 개발되고 새로운 건축자재나 접착제가 공곱되고 또 전화로 무료 기술자문을 받을 수 있게 되며 나아가서 TV나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 지시사항이 제공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보다 원숙하고 다양하며 싫증을 모르는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제3의 물결문명의 생활양식은 제2의 물결문명보다 더 창조적이고 덜 시장의존적인 것이 될 것이다. B부문의 활동이 어디까지 A부문의 생산소비활동으로 변화될 것인가를 알고자 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A부문과 B부문간의 균형이 나라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직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가소비용 생산과 교환용 생산간의 균형이 크게 달라지면 경제체제나 사람들의 가치관도 반드시 그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제3의 물결경제 근면을 취지로 하는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의 전통이 상실되는 것을 개탄하는 사람이 많다. 타인을 위한 생산으로부터 자신을 위한 생산으로의 변화가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었던 근면한 기풍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경향이다. 서방의 경영자들은 '영국병'을 탄식하며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들은 모두 궁핍 속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근면하게 일하는 것은 일본인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본의 경영자들은 '일본도 벌써 영국병에 감염되어 있다. 근면한 것은 한국인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그다지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다고 평판이 난 사람이라도 회사 밖에서는 화장실의 타일을 깔거나 자조운동에 참가하고, 또 바느질을 하고, 정원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융단을 짜고,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단편소설을 쓰고, 지붕을 손질하는 등 근면한 사람일 때도 있다. 즉 B부문의 경제를 확대발전시키던 에너지가 A부문의 생산소비활동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2의 물결이 갖고 온 것은 증기기관이나 자동직조기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성격까지 변화시켰던 것이다. 현재 제1의 물결에서 제2의 물결로 이행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다. A부문을 축소하고 B부문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는데 그것에 따라 사람들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제2의 물결이 성숙기에 이르고 제3의 물결의 충격을 받고 있는 사회에서는 A부문이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소비자가 생산에 종사하게 되면 사람들의 성격은 이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이 흥미로운 변화에 대해서는 뒤에 상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선 생산소비활동이 왕성해지면 성격구조 자체가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만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생산소비자의 출현에 의한 여러 변화 중에는 경제면에서의 변화가 가장 클 것이다. 경제학자는 연구대상을 B부문의 경제활동에만 한정시키지 말고 경제라는 개념을 보다 종합적으로 발전시켜 A부문의 경제활동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나아가서 이 두 부문의 상관관계에 관해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제3의 물결이 세계경제에 구조적인 변혁을 일으키면서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경제적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컴퓨터로 만든 복잡한 모델이나 모형도 현실의 경제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서방측 경제학이건 사회주의 경제학이건 불문하고 전통적인 경제학이론만으로는 급변하는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경제학자 자신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B부문 이외의(즉 교환과정 외의) 경제분야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현실의 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경제학을 다시 확립하기 위해서는 제3의 물결의 경제학자들은 생산소비자의 출현을 감안하여 A부문의 경제활동도 포함되는 새로운 모델.척도.지표를 개발해서 경제의 기본개념을 종합적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B부문의 경제활동은 계량이 가능하며 생산성을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A부문의 경제활동은 눈에 보이지 않고 계량이 불가능하여 생산성을 숫자로 나타낼 수가 없다. 그리고 A부문과 B부문간에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식한다면 경제용어의 정의들이 자연히 바뀌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전국경제연구위원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경제학자 빅터 콕스는 1960년대 중엽에 벌써 이런 문제에 대해 서비스 부문이 확대되면 전통적인 생산성 척도는 제구실을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비스의 생산성은 소비자의 상품지식, 경험, 정직성, 구매동기 등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소비자의 생산성이라는 말조차도 B부문만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에만 해당된다. 아직 A부문에서도 실제로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는 인식, 즉 재화나 서비스는 자기자신이 소비하기 위해 A부문에서 생산되었을 경우 B부문에서 생산되는 것과 대치될 수가 있어서 B부문의 생산과 동일한 실첼를 갖는다는 인식은 아직 푹스의 이론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GNP라는 개념도 A부문의 활동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점점 의미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비용의 개념도 생산소비자의 출현에 대한 의의를 이해함으로써 한층 명확해진다. A부문의 생산소비자활동이 효과적으로 행해지고 있는지의 여부가 곧 B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비용에 반영된다. 이 점을 깨닫게 되면 강한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예컨대 노동인구 중에서 알콜 중독자, 결근자, 신경쇠약자, 정신장애자 등의 비율이 늘어나면 지금까지 편의상 B부문에서 측정되고 있던 비용은 상승하게 된다. (알콜 중독이 미국경제에 주는 손실만도 연간 200억 달러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폴란드나 소련에서는 알콜 중독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으므로 그 숫자는 대단할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셀프서비스 등에 의해 노동량이 감소되면 그만큼 생산에 필요한 비용은 절감된다. 이와 같이 생산소비의 효율성은 그만큼 생산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 외에도 생산비용에 영향을 주는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다. 노동자의 문맹여부, 자기의사 ㅂ라표의 능력유무, 공통어의 사용여부, 시간관념의 유무, 의욕, 가정교육 등도 모두 B부문의 생산성에 관계가 있다. B부문의 생산성 제고에 필요한 이러한 노동자의 성격, 일에 대한 태도, 가치관, 숙련도, 일에 대한 적극성 등은 모두 A부문에서 생산되는 것,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생산소비되는 것이다. 소비자가 생산가정에 깊이 참여하게 되고 생산소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재평가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효율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경제학에서는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방법들을 비교해서 어느 것이 효율적인가를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B부문에서의 생산효율을 A부문에서의 생산소비효율과 비교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경제학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화폐소득이 보장되어 있을 경우 그 이상의 돈을 벌어서 타인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는 편이 경제적이며 심리적으로도 보다 이익이 될 수 있음을 터득하고 있다. B부문의 효율성이 떨어졌을 경우 A부문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문제는 경제학자도 경영자도 다같이 체계적인 연구를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 예로 어떤 회사에서 간부들이 평가를 엄격히 실시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병에 걸리거나 이혼의 원인이 되거나 알콜 소비가 늘어나기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전처럼 B부문의 관점에서 본다면 비효율적이더라도 경제의 전체상을 볼 때에는 오히려 대단히 효율적일 수도 있다. '효율성'은 1차적 효과뿐 아니라 2차적인 효과도 포함하고 A,B 두 부문의 경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했을 때라야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된다. 소득, 복지, 빈곤, 실업 등의 개념은 어떠한가? 시장체제에 절반쯤 몸을 두고 나머지 반은 그 밖에 있는 사람의 소득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유형, 무형의 생산물 중에서 어느 것을 소득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평균적 인간의 생활 속에서 생산소비활동이 커다란 의미를 갖는 사회에서는 숫자로 나타난 소득이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러한 사회체제에서의 복지란 무엇인가? 생활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도 일해야 하는가? 만일 일을 한다면 필연적으로 B부문에서 일하게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생산소비활동을 하는 것인가? 실업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일시해고로 일이 없는 자동차정비공이 자기집의 지붕을 고치거나 자동차수리를 하고 있는 경우와 그저 TV의 미식축구시합을 보고 있는 사람을 다같이 실업 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보장의 폐해가 페더베딩(featherbedding: 노동조합이 실업방지책의 하나로 행하는 점진적인 고용의 요구나 생산제한)이라는 문제도 종합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업자를 없애기 위해 제2의 물결사회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억제했고 이민도 제한했다. 또 직업소개소의 창설, 수입제한과 수출진흥, 공공사업의 실시, 노동시간의 단축 등을 행하였다. 노동의 이동률을 높이거나 노동력의 해외진출정책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쓰며 경기를 자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문제는 여전히 복잡하고 한층 더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이건 사회주의 사회이건 제2의 물결사회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한 해결이 안되는 것일까. 경제의 한 부문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지양하고 사회전체상을 파악하게 되면 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게 되지나 않을까? 생산에는 두 개의 부문이 있어서 타인을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행위와 작자신을 위한 행위가 있다고 한다면 최저임금의 보장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보통,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수입이란 타인을 위해 생산한 것에 대한 사람들은 시장과 직접 관계를 갖고 있지 않거나, 혹은 부분적으로만 관계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하는 것만은 변함없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사람은 남녀 할 것 없이 A부문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B부문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기여하지 있는 것이므로 B부문에서 일정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아도 얼마간의 '수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산소비자의 출현에 의해 경제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경제투쟁의 기반도 변한다. 노동력을 제공하며 생산에 관여하는 노동자와 관리의 일로 생산에 관여하고 있는 경영자와의 대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생산소비활동이 활발해지고 제3의 물결시대에 들어가면 노동자와 경영자의 대립은 그 중요성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신해서 새로운 사회투쟁이 일어난다. A부문의 경제활동과 B부문의 경제활동 중에서 어느 쪽을 앞세우는가에 대한 새로운 투쟁이 시작된다. 제2의 물결의 이익을 대표하는 집단은 기득권을 수호하고 생산소비자들에게 일을 뺏기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노동자의 자격심사나 건축기준 등을 엄격하게 하면서 단순노동자가 기능자의 일을 빼앗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다. 특히 교원노조는 부모가 학교 교육에 참가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반대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러나 산적해 있는 교육문제는 부형의 협력없이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과식, 운동부족, 흡연 등 건강문제가 환자의 적극적인 협력없이 의사만으로 해결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생산소비자의 등장은 경제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여러 투쟁이 주는 영향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커다란 역사의 물결은 세계경제 전체를 뒤흔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의 경제학자나 사상가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장에서 설명하는 시장의 종말이라는 중대한 사태를 파악하게 되면 이 장에서 다룬 것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장확대의 종말 지금까지 거의 무시되고 있던 것 중의 하나는 생산소비자의 등장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다른 하나는 역사적인 관점에서의 시장형성의 과정이 현재로서는 이미 완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전환점의 의미는 그야말로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지만 대단히 미묘한 것이다. 자본주의 학자와 사회주의의 경제학자들 모두가 제2의 물결의 테두리 안에서의 논쟁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징후에 대해서는 전혀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그 두 개의 학설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에 간과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류는 적어도 1만년의 세월동안 세계를 그물코처럼 연결한 유통기구, 즉 시장을 만들어 냈다. 제2의 물결시대로 접어들자 약 300 년 동안에 유통기구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정비되었다. 제2의 물결문명은 굉장한 속도로 전세계의 시장을 삼켜 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생산소비활동이 다시 활발해진 오늘날 시장의 발전은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갖는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장 또는 유통기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시장이란 파이프라인(pipeline)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지구상에 제2의 물결이 석권하기까지 화폐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교역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이고 사회의 대부분은 그 주변에 있었다. 유통기구를 뒷받침하는 중개인, 도매업자, 운송업자, 소매점, 은행 등은 규모가 작고 덜 발달되었으며 상품이나 돈의 통로인 파이프라인은 가늘고 그 수도 적었다. 이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지나온 300 년 동안 투입된 에너지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것을 완성시킨 것은 세 가지의 방법이었다. 첫째로 상인이나 제2의 물결문명에 속하는 요원들이 전세계를 뛰어다니면서 그때까지 자급자족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을 시장으로 권유 혹은 강제적으로 시장을 위한 생산으로 바꾸게 했던 것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이 돈과 바꾸기 위한 환금작물을 재배하고 광산에서 일하게 되었다. 식량을 자급하던 아시아의 농민들은 대규모농장에서 고무나무의 수액을 채위하게 되었고 그 고무가 자동차를 달리게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커피를 재배하여 유럽이나 미국에 수출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파이프라인이 건설되었으며 점차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의존해서 생활하게 되었다. 둘째로, 사람들의 생활 속에 상품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시장은 확대되기 시작했다. 시장에 의존해서 생활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시장으로 들어오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양이 증대되면서 시장의 용량은 계속 커져갔다. 말하자면 파이프라인의 직경이 커진 것이다. 시장의 확대에는 제3의 과정이 있었다. 사회나 경제가 복잡해짐에 따라 비누 하나를 예로 들어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에는 많은 중간업자가 개입하게 된다. 중간에서의 매매가 커지면 커질수록 파이프라인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도니다. 유통기구가 복잡하게 된다는 것은 특별한 튜브나 새로운 파이프를 파이프라인에 결합시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결과적으로 시장발전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장을 확대발전시키고 있던 이 세 가지의 방법은 그 모두가 현재에는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어지간한 벽지에라도 가지 않는 한 시장경제의 울타리 밖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하게 되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최저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수억의 자급농민이라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는 시장과 관계를 갖고 있으며 화폐체제에 의존하고 있다. 새로이 시장을 개척해서 많은 인구를 끌어들여 비약적으로 시장을 확대할 가능성은 없어졌다. 앞으로는 기껏해야 소탕작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논리적으로는 두 번째 방법에 의한 시장의 확대는 아직 가능하다. 상상력을 구사해서 새로운 상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고안해 내어 매상액을 늘리거나 교환을 활발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산소비자의 대두는 여기서 바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A부문과 B부눙의 관계는 복잡하다. 생산소비자의 활동이 늘어나면 거기에 필요한 자재나 도구의 소비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하게 되면 상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을 통하지 않고 공급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시장의 발전에는 종말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을 확대시켜 온 제3의 방법에 대해 보더라도 파이프라인은 복잡하게 될 뿐이며 끝이 없다. 유통기구가 복잡하게 되면 중간에 개재하게 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다. 현재 유통비용이 생산비용을 상회하고 있는 상품이 꽤 많이 있다. 유통비용은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더라도 이미 한계점에 도달해 있다. 컴퓨터가 발달하고 컴퓨터에 의해 생산소비자가 직접 생산에 관여하게 되면 상품의 수는 그 이상 늘어나지 않아 상품의 유통경로도 간소화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시장의 발전은 한계점에 도달해 있어서 우리들이 살아 있을 동안일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장래에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은 틀림없다. 파이프라인 계획의 완성이 가까워지고 그 이상의 발전을 바랄 수 없게 된다면 사람들의 직업이나 가치관, 정신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시장이라 해서 파이프라인 안에서 철강, 구두, 면직물, 통조림 등의 상품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란 상품이나 서비스가 유통하는 구조인 것이다. 아니, 시장을 단순한 경제적 구조만으로 처리해 버릴 수도 없다. 시장은 인간을 조직하는 것과 동시에 사회적인 관점이나 정신적인 풍토를 반영한다. 거기에는 그 사회의 공통되는 기대감이 내포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주문한 상품은 반드시 배달된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따라서 시장은 경제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심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 영향은 경제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십억의 인구가 시장에 체계적으로 연관되게 함으로써 이제는 어느 누구도 자기의 운명을 자기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시대로 만들어 놓았다. 그와 같은 말은 국가나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조직에 얽히는 것은 진보이고 자급자족은 낙후된 상태라는 신념을 가지게 했다. 저속한 물질주의가 보편화되고 경제나 경제적 동기야말로 인간생활을 진보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사고방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인간의 일생은 계약의 연속이고 사고방식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시장화는 수입억의 사람들의 행동에는 물론이고 가치관에도 영향을 주어 제2의 물결문명의 기조를 형성해 주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비즈니스맨이 한국의 알지도 못하는 비즈니스맨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에는 방대한 시간과 에너지, 자본, 문화, 원자재가 투입되었다. 비즈니스맨 중에는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도 있고 주판알을 튕기며 장사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시장에 관한 나름대로의 의미지를 가지고 서로 상대방에게 기대하면서 몸에 익히 상도의에 따라 행동한다. 이러한 비즈니스맨에 의해 세계의 상업이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라고 하는 정밀한 인간관계인 그물을 전세계에 펼쳤고 또한 폭발적으로 보급시켰다는 것은 제2의 물결문명의 최대한 성과이며 기술혁신의 성과를 능가한 것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사회문화적.심리적인 이 유통기구를 차근차근 착실하게 쌓아올려 완성시킨 업적은(유통기구를 통해서 운반된 상품이나 서비스의 방대한 양도 그렇지만) 이집트의 피라밋, 고대 로마의 수로, 만리장성, 중세 유럽의 대성당 등 그 전부를 합친 것이 1000배와도 필적할 만한 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세계에 파이프라인이 부설되고 그것을 통해 고동치며 흐르는 힘이 경제를 지탱했고 문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시장의 형성은 역사상의 대사업이었고 제2의 물결문명은 시장을 원동력으로 번영하였으며 시장과 더불어 발전을 이룩했다. 오늘날 이미 쇠퇴해 가고 있는 문명이 이룩한 사명은 무엇이었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세계에 시장망을 형성한 일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명은 오늘날 모두 달성되었다. 영웅적인 시장건설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완성된 파이프라인을 유지하고, 수리하고,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 가기만 하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량의 급격한 증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파이프라인의 중요한 부분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 전자공학이나 생물학, 사회공학에 대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원이나 상상력, 자본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제2의 물결시대가 시장건설을 위해 소비한 그 노력에 비한다면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 개혁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자본도 상상력도 훨씬 적게 든다. 전환하는 과정이 아무리 복잡하다 하더라도 시장화는 현재로서는 문명의 중심적 사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은 역사상 처음으로 초시장문명이 될 것이 분명하다. 초시장문명이란 유통기구가 없는 문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규모의 고립된 완전한 자급자족의 지역공동체가 상호간 교역도 하지 않고 또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 세계로 역행해 간다는 뜻은 아니다. 문명이 후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초시장문명은 시장에 의존하는 문명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을 건설하고 확대하는 유통기구를 완성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는 문명이다. 시장은 이미 완성되어 있으므로 초시장문명은 새로운 과제를 향해서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16세기 사람들로서는 시장의 발달이 기술, 정치, 종교, 예술, 사회 생활, 법률, 결혼, 인격의 형성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했는지에 대해 상상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우리들은 시장이 이 이상은 발달할 여지가 없다고 하는 사실이 우리들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들 세대가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 세대가 되면 시장개발의 종말은 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시장건설을 위한 비용은 방대했다. 순샇게 경제면에 나타난 비용만 보더라도 그 금액은 헤알리 수 없을 정도이다. 과거 300년 동안 생산성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A부문, B부문 할 것 없이 상당부문이 시장건설을 위해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젠 시장건설의 일은 사실상 완성되었으므로 지금까지 거기에 쏟아넣은 에너지를 인류에게 유익한 다른 것으로 향하게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문명을 한없이 변화시킨 것이다. 새로운 종교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상상도 못했던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며 과학은 눈부시게 진보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혀 새로운 사회제도, 정치제도가 태너날 것이다. 오늘날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나 사회주의의 위기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식량, 인구, 자본, 원자재, 실업 등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들이 직면하고 잇는 것은 시장의 역할이 미래의 문명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우리들의 생활은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생산소비자가 등장하고 있는 데 대한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여러가지의 변화가 하나의 덩어리로 되어 물결처럼 밀어닥치고 있다. 에너지 체계, 기술, 정보체계, 가족제도, 경영조직에 변혁을 강요하는 이 커다란 물결의 하나가 경제의 내부구조를 심층에서부터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의 세계관에도 반영된다. 우리들은 이 영역에서도 역사적인 격변을 체험하고 있다. 산업문명을 받쳐주고 있던 세계관의 모든 것, 즉 산업적 현실상 그 자체가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제21장 정신적 대혼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만큼이나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성의 힘에 대한 자신을 상실하고 있는 시대도 없다. 교육정도가 높고 지적으로 세련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은 서로 모순되고 혼란되고 불협화음을 이루는 여러가지 관념의 대혼란에 빠져들어 정신적인 무력감을 갖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 매일과 같이 무엇인가 새로운 유행이 탄생되고 과학적 발견이 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종교.운동.선언문이 태어나고 잇다. 자연숭배, 초능력, 천체론적 의학, 사회생물학, 무정부주의, 구조주의, 네오마르크스주의, 신물리학, 동양의 신비주의, 기술애호벽, 기술공포증, 그 외의 여러 흐름이 서로 부딪치고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것이 교조적 과학자나 즉석의 지도자를 동반하고 의식의 스크린 위를 지나간다. 기존의 과학에 대한 공격이 점차로 높아지고 있다. 근본주의 종교가 다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무엇이라도 믿을 수 있는 것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대부분은 실제로 격렬해지고 있는 문화전쟁새롭게 일어나는 제3의 물결문화와 산업사회의 근간을 떠받치고 있는 사상이나 사고방식과의 문화전쟁의 결과이다. 마치 제2의 물결이 그 이전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매몰시켜 버리고 산업적 현실상(내가 이름지은 사상 신조)의 체계를 이루어 놓은 것처럼 과거 300 년을 지배해 온 사상을 타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철학적 반란의 시초를 목격하고 있다. 산업시대의 중요한 사상이 의심받고 외면당하고 자리를 빼앗기거나 또는 보다 크며 더 강력한 이론에 포함되려 하고 있다. 제2의 물결문명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사상의 신조는 과거 300 년 동안에 정통이라고 인정될 때까지는 격렬한 투쟁이 따랐다. 과학이나 교육이나 종교나, 기타 여러 분야에서 산업사회를 밑고 있는 '진보적' 사상가들은 농업사회를 정당화하려 하는 '반동적' 사상가들과 투쟁했던 것이다. 오늘날, 바로 그 산업사회이 옹호자들은 새로운 제3의 물결문화의 형성에 따라 궁지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자연관 이러한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자연에 대한 이미지의 변화이다. 과거 10 년 동안 환경보호운동은 전세계에 퍼졌다. 이것은 지구의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와 잠재적인 위험을 내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태어났다. 이 운동은 대기오염, 식품첨가물, 원자로, 고속도로, 헤어스프레이 에어졸 등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이 운동은 또 우리들에게 자연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들은 자연과 피비린내나는 투쟁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 대신 지구와의 공존과 조화를 강조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유도해냈다. 우리들은 자연에 대한 적대적 자세에서 비적대적 자세로 변화해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분야에서도 생태학적인 상관관계를 잘 이해하고 인간이 자연에게 주는 파괴력을 완화시켜 그 힘을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향하게 하려는 연구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들은 그런 복잡한 관계와 다이내미즘(dynamism)을 인식하고 사회 그 자체를 재순환, 재생, 자연계의 수용량의 각도에서 재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은 자연에 대한 일반인의 태도변화에도 반영되고 있다. 여론 조사의 결과를 보거나 팝송의 가사, 광고의 시각영상 또는 설교의 내용을 보더라도 때때로 너무 낭만적이긴 하지만 자연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도시사람들이 전원생활을 동경하고 있으며 도시지역연구소의 보고서에서 상당수의 인구가 농촌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자연식, 자연분만, 모유에 의한 육아, 바이오리듬, 신체관리 등에 대한 관심이 요사이 붐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의심이 사람들에게 퍼진 결과, 또한 가장 단순한 GNP 신봉자마저도 자연을 보호되어야 하고 훼손해서는 안되며, 과학기술이 자연에게 미치는 나쁜 부작용을 미리 예건하고 예방해야 하며 간단히 무시해 버려서는 안된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자연의 파괴력이 커졌기 때문에 이제 지구는 제2의 물결문명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파괴되기 쉬운 상태에 있다고 간주되고 있다. 또한 지구는 시시각각으로 확대되고 있고 복잡성을 더해 가고 있는 우주 안에서 점점 작아져 가고 있는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보여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약 25,년 전 제3의 물결이 시작된 이래로 과학자들은 자연을 보다 넓게, 보다 깊이 탐색하는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 왔다. 레이저, 로켓, 소립자 가속장치, 플래즈마, 경이적인 사진기술, 컴퓨터, 충격과 장치 등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한 종래의 생각을 일변시키고 말았다. 우리들은 제2의 물결문명시대에서 알았던 어떤 현상보다도 그 규모에 있어서 더 크고 더 작은 더 빠른 현상들을 관찰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1센티미터의 10분의 1이라는 미세한 현상까지도 탐색하고 잇다. 한편 우주는 적어도 10 마일의ㅣ 먼 거리까지 탐색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1초의 10분의 1이라는 짧은 시간내에 일어나는 현상도 연구되고 있다. 한편, 현대의 천문학자나 우주과학자는 우주는 약 200억년 전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잇다. 탐구가능한 자연의 규모 그 자체가 어정쩡한 억측보다는 훨씬 앞으로 전진한 것이다. 더구나 이 소용돌이치는 광대한 우주공간에 지구에만 생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천문학자 오토 스트루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방대한 수의 항성이 혹성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많은 생물학자들이 생물이란 어떤 종류의 복잡한 분자나 집합체로부터 성립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태양형의 별에서 방출되는 화학원소와 빛과 열이 온 우주에 균등하게 퍼져 있다. 물은 지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화성이나 금성에도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우리들은 지금가지의 생각을 고쳐 지구 외에도 생명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곧 우주인이나 UFO(미확인 비행물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명체가 지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자연이나 자연 속에 있는 인간의 위치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달라지게 된다. 1960 년 이래 과학자는 우주공간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나 먼 곳에 있는 지적인 존재가 보내오는 신호를 탐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왔다. 미국 의회는 지구 바깥의 지적인 생명체의 가능성에 관한 공청회를 개치한 일도 있다. 그리고 우주선 파이오니어 10 호는 외계인에게 보내는 그림이 들어 있는 인사장을 싣고 행성 사이의 우주공간을 날아갔다. 제3의 물결문명이 시작되면서 우리 지구는 점점 작고 상처받기 쉬운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우주에서의 인간의 지위도 작게 보인다. 그리고 지구 이외에도 생물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그만 가능성마저도 우리들을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자연에 대한 우리들의 이미지가 달라진 것이다. 진화를 디자인하다. 진화에 대한 이미지도 진화라는 사고방식 자체도 달라졌다. 생물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들은 진화의 신비를 규명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 세계가 종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복잡한 세계에 자신들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예전에 보편적이라고 간주되던 법칙도 사실은 특수한 경우였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전학자 프랑수아 자코브는 이렇게 말한다. "다윈 이래 생물학자는 진화의 메커니즘 도식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자연도태라고 불렀다. 그 기초 위에 우주, 화학, 문화, 관념, 사회 등 어느 세계에서의 진화도 같은 도태의 메커니즘에서 지배되는 것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차원이 변하면 법칙도 변하는 것이므로 이같은 생각은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생물학적 차원에서 보아도 이전에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고 생각되던 법칙이 현재로는 의문시되고 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모든 생물학적 진화가 돌연변이와 자연도태에 따르고 있는지 어떤지 혹은 다윈이 말했던 것처럼 분자적인 차원에서 자연도태작용도 없이 변이가 거듭되고 그것이 쌓인 결과가 '유전적 퇴적물'을 결정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의 기무라모토 교수에 의하면 분자차원의 진화는 '네오다위니즘(neo-Darwinisw)이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믿고 있던 다른 여러가지 가설이 역시 흔들리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유카리오테스(eukaryotes: 인간 및 기타 대부분의 생물체)는 궁극적으로는 프로카리오테스(prokaryotes: 박테리아 등)라는 단순한 세포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가 이 학설의 기초를 허물어뜨리고 거꾸로 단순한 생물체가 복잡한 생물체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또한 진화는 생존하기에 알맞은 적응성을 나타낸 것에 바탕을 두고 그 이외의 것은 도태하는 것으로 상상되고 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는 유리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불리한 진화의 과정도 있다는 놀랄 만한 예가 현재 발견되고 있다. 진화는 어느 편에 유리한 것일까. 애틀랜타의 그랜트 파크(Grant Park) 동물원에서 전혀 다른 염색체를 가진 두 종류의 원숭이를 교미하여 전대미문의 새로운 잡종 원숭이를 낳았다는 놀라운 뉴스가 있다. 과학자들은 이 잡종 원숭이에게 이 암원숭이의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고 있지만 이 암원숭이의 기묘한 유전자는 진화가 단순히 작은 변화의 누적을 통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많은 생명과학자나 고고학자들은 진화가 서서히 진행된다고는 보지 않고 진화기록의 여러가지에 나타나 있는 '갭(gap)'이나 '비약'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또 피드백을 통해서 증폭되어 갑자기 구조적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작은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하나하나를 둘러싸고 과학자들은 각기 다른 입장에 서서 열띤 논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도 인간의 역사를 바꾸어 버렸다고도 할 수 있는 하나의 사실 앞에서는 왜소하게 보일 뿐이다. 1953 년의 어느 날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젊은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이 '이글'이라는 술집에 앉아 있을 때 동료인 프랜시스 크릭이 흥분해서 들어와 "다들 내말 들어, 우리 둘이서 생명의 비밀을 발견했어."라고 말했다. 그말 그대로였다. 왓슨과 크릭은 DNA의 구조를 해명했던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의 최초의 태동이 느껴지기 시작한 1957 년에 와서는 아더 콘버그 박사는 DNA가 어떻게 해서 자기증식을 하는가에 대해 완전히 규명해 내는 데에 성공했다. 지금 널리 알려져 있는 어떤 보고서는 그 후의 경과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DNA의 암호를 해독했으며 DNA가 어떤 방법으로 세포에게 전달하는가를 알았다. 또 우리는 유전기능을 결정하는 염색체를 분석하고 세포를 합성했다. 우리는 종류가 다른 두 세포를 융합시켰다. 순수한 인간의 유전자를 분리하는 데도 성공했다. 유전자의 '지도'를 그렸고 유전자를 합성했다. 한 세포의 유전자형질을 변화시켰다." 오늘날 전세계의 연구실에서 수많은 유전공학자들이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해 낼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진화 그 자체를 따돌리고 있는 것이다. 제2의 물결문명의 사상가들은 인류가 오랜 진화과정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제3의 물결문명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진화의 설계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진화라는 것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인식될 것이다. 자연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개념도 근본적인 재정립과정에 놓이게 되었다. 진보의 나무 자연 또는 진보에 대한 제2의 물결의 문명적인 사고방식이 바꾸어지고 있다고 한다면 진보에 대한 제2의 물결의 사고방식이 재평가되려 한다해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산업시대의 특징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과학적인 돌파구나 '새로운 개량품'을 인류의 완성을 향한 필연적 발전의 증거로 간주하는 안이한 낙관론에 의해 특징지어졌다. 제3의 물결문명이 제2의 물결문명을 강타하기 시작한 1950 년대 중반 이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50 년대의 비트족과 60 년대의 히피족은 인간이 놓여 있는 조건을 그때까지의 낙관론이 아니 비판론을 문화적 테마로 보급시켰다. 성급한 낙관주의를 성급한 비관론으로 바꿔 놓는데 그들은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어느덧 비관주의가 미래적인 스마트한 태도로 되어 갔다. 예를 들면 1950 년대와 1960 년대의 할리우드 영화들은 1930 년대와 1940 대의 미남형 영웅들 대신 소외되었던 반영웅들이유없는 반항자, 멋진 스타일의 총잡이, 매력적인 마약밀매업자, 불안에 쫓기는 오토바이족, 거칠고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그러나 감정은 풍부한) 핑크족을 등장시켰다. 인생은 승리자없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소설, 드라마, 미술도 역시 제2의 물결국가에서 미래가 없는 절망을 표현했다. 1950 년대 초에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까뮈는 이미 그런 종류의 테마를 명확하게 하고 있었지만 수많은 문학자가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영국의 어느 비평가는 이것을 요약해서 "인간은 오류를 범하고 정치이론은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동적으로 진보가 계속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환상이다."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유토피아적 모험이 가득했던 공상과학소설조차도 신랄하고 비판적으로 되어 올더스 허글리나 조지 오웰을 흉내내는 서투른 작품들이 뒤를 이어 탄생하였다. 과학기술은 이전에는 발전의 원동력으로 그려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인간의 자유와 물리적 힘을 파괴하는 무서운 힘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실제로 많은 환경보호론자에게는 '진보'란 더럽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점에 있는 두터운 책 중에는 '앞이 막힌 사회(The Stalled Socitety)', '오고야 말 암흑시대(The comming Dark Age)', '진보의 위기 속에서(In Danger of Progress)', '진보의 종말(The Death of Progress)' 등의 책들이 나타났다. 제2의물결 문명이 비틀거리면서 1970 년대로 들어서자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에 관한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의 보고서에서는 앞으로의 10년은 큰 일이 벌어진다며 불길한 어조로 산업사회의 파국을 전망했다. 동란, 실업, 인플레이션이 1973 년의 석유위기 때문에 심각화되고 비판주의의 그림자를 한층 더 어둡게 하는 동시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진보된다는 사고방식을 부정하는 힘을 강화시켰다. 헨리 키신저가 슈펭글러 식으로 서양의 몰락을 말하여 많은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 절망의 옳고 그름에 관해서는 독자에게 맡기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2의 물결문명의 종말이 가까워짐에 따라 지금까지 산업적 현실상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며 직선적인 진보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잇ㄴ는 사실이다. 진보는 이제, 과학기술이나 생활의 물질적 수준만 가지고는 측정할 수 없다는 인식이 현재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도덕적으로, 예술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타락한 사회는 아무리 돈이 많이 있고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다 해도 '선진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요컨대 진보에 관해 훨씬 더 포괄적인 생각^36,3^. 진보는 이제 자동적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 기준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들은 또, 어느 사회도 동일한 선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어서 한 문화의 정거장에서 다른 정거장으로 이런 식으로 점점 진보된 정거장을 향해 자동적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려 하고 있다. 한 노선이라 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선이 많이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각 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종합적인 발전을 이룩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진보를 한 나무에 피는 꽃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많은 가지가 미래를 향해 뻗어 있고 인간문화의 다양성과 풍요가 진보라는 나무를 재어보는 하나의 척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 다양화되고 탈대중화된 세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전진이라고 보여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생물이 진화할 때는 분명히 분열과 복잡화를 거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가까운 장래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제2의 물결시대의 특징인 생기있고 소박하며 직선적이고 맹목적으로 낙천적인 진보주의로 되돌아갈 것같지 않다. 때문에 지난 수십년 동안 자연과 진화와 진보에 관해 다같이 재정립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 진화, 진보 등의 개념은 좀더 기본적인 관념^36,36^시간, 공간, 사물, 인과관계 등에 관한 제2의 물결시대의 가설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3의 물결이 이 가설들, 즉 제2의 물결문명의 지적인 접착제 구실을 하고 있던 기본적인 관념을 해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미래 새로운 문명이 출현할 때,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다루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의 정신적인 지도도 달라진다. 제3의 물결은 이 시간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제2의 물결문명에서는 뉴턴 이후, 시간은 과거의 안개 속에서 저멀리 미래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전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은 절대적이며 우주를 통해 등속적이며 물질이나 공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고 설명되었다. 시간의 한 순간 한 순간은 같은 것이라고 가정했었다. 오늘날에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전에 천체물리학자였고 현재는 과학소설가인 존 그리빈은 이렇게 쓰고 있다. 완벽한 학문적 배경과 다년간의 연구경력을 가진 진지한 과학자들은 우리에게^5,5,5^'시간이란 시계나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가차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본질상 구부러지거나 비뚤어져 있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최종적인 결과는 그것을 측정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에 의해 달라진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초고밀도에 의해 생기는 중력장의 구멍인 블랙 홀(black hole)은 시간을 소멸시키고 오랫동안의 연구경력이 있는 진실한 과학자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시간에 대한 사고방식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아인슈타인은 이미 시간은 축소시키거나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시간은 절대적이라는 개념을 뒤엎고 말았다. 현재로는 고전적인 것으로 되어 버린 두 명의 관찰자와 철도선로의 예를 들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차 선로옆에 서 있는 사람이 선로 북쪽 끝과 남쪽 끝 양쪽에서 번쩍하고 빛나는 섬광을 동시에 보았다고 하자. 그 사람은 중간지점에 서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다른 사람이 고속열차를 타고 그 선로를 북쪽을 향해서 달리고 있다고 하자. 열차 밖에 있는 사람의 옆을 지나갈 때 그 사람도 그 섬광을 보게 되지만 두 개의 빛을 동시에 보지는 못한다. 열차가 빠른 속도로 그 사람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달리게 하고 있으니까 한쪽의 빛이 다른 한쪽의 빛보다 빨리 도착한다. 즉 열차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북쪽의 빛이 먼저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거리가 짧고 빛의 속도가 빠르므로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이 예는 아인슈타인이 말하고자 한 점, 즉 사건의 시간적 순서(첫째, 둘째, 즉 시간적으로 나중에 일어나는 것)는 관찰자의 속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간은 절대가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다. 이것은 고전물리학이나 제2의 물결시대를 지배한 산업적 현실상의 밑바닥에 있는 시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고전물리학이나 제2의 물결시대의 시간개념에서는 관찰자의 위치와는 관계없이 당연히 '앞'은 '앞'이고 '뒤'는 '뒤'여서 각기 고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 물리학은 안을 향해서나 매일과 같이 쿼크(quark)에서 준향성에 이르는 새로운 소립자나 천체물리학적 현상을 발견하거나, 가설을 세우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갖는 깊은 의미로 인해 시간개념의 주기적인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천체현상에서 에를 든다면 블랙 홀은 하늘에 구멍을 내고 그 속에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흡입해 버린다. 거기서는 물리학의 법칙은 완전히 무효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이 왜곡된다. 그 어두운 소용돌이가 끝나는 곳에서는 에너지도 물질도 완전히 소멸되고 만다고 한다. 물리학자 로저 펜로우스는 '벌레구멍(wormholes)'과 '흰구멍(White holes)'이 존재한다는 가정까지도 세워 놓았다. 블랙 홀 부근에서는 한순간은 지구의 시간으로는 몇만 년에 해당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어떤 우주비행 관제소에서 우주선을 보내서 블랙 홀을 탐험한다면 우주선이 도착할 때까지 100 막년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도의 영향은 블랙 홀 근처의 중력의 왜곡에 의해 우주선의시계는 불과 수분 또는 수초를 경과하게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천체를 떠나 미세한 입자나 극초단파의 세계로 들어가면 우리들은 여러가지 수수께끼같은 현상에 부딪치게 된다. 컬럼비아대학의 제럴드 파인버그 박사는 '타키온(tachyon)'이라는 입자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이것은 빛보다도 빨리 움직이고 있으므로 박사의 동료들이 설에 의하면 '타키온'에 대해서는 시간이 역류한다고 한다. 영구의 물리학자 J.G. 테일러는 '시간의 미시적 개념은 거시적 개념과는 대단히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의 물리학자 프리조프 케플러는 좀더 간단하게 시간은 '우주의 다른 부분에서 다르게 흐르고 있다.'고 한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시간을 단수형태로 말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서로 다른 복수의 시간이 있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우주의 다른 부분에서는 다른 법칙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모든 것이 제2의 물결문명의 보편적이고 직선적인 시간의 개념을 근본부터 파괴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은 순환하는 것이라는 고대인의 관념에 딧ㄴ하는 것은 없어지고 만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시간의 사회적인 사용법을 근본적으로 재편성하고 있다. 자유근무시간제를 도입함으로써 또한 노동자를 기계적인 컨베이어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혹은 제19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여러가지 방법을 취하는 것으로 해서 우리들은 시간에 대한 이론적인 이미지를 근본저긍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발견은 당장에는 일상생활에 응용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전에 칠판에 분필로 씌어졌던 이론적 기호의 경우도 그러했었다. 그 분필로 씌어졌던 공식을 사용해서 결국은 원자의 분열을 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우주여행자 지금까지 논술한 것처럼 시간의 개념에 관해 여러가지 변화가 일어난 결과 공간에 대한 우리들의 이론적 해석에도 많은 결함이 생기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은 상호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에 비해 우리들은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우리 가까이에서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현재 생활하며, 일하고, 놀고 있는 공간이 변화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직장에 가는가, 얼마만큼 거리를 어느만큼의 빈도로 여행을 하는가, 어디에 사는가 등등이 모두 우리의 공간경험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이 변화되고 있다. 실제로 제3의 물결문명이 도래함과 동시에 인류가 공간과의 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제1의 물결문명은 세계에 농업을 보급시키고 그것과 함께 항구적인 농경지대가 생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난 곳에서 몇마일의 범위 내에서 일생을 보내게 되었다. 농업은 사람들을 정착시켰고 집약적인 생활을 주었으며 강한 향토애와 마을의식을 길러 냈다. 제2의 물결문명은 이것과 대조적으로 거대한 인구를 대도시에 집중시켰다. 또 먼 곳에서 자원을 수집하고 먼 곳으로 상품을 유통시킬 필요성 때문에 유동적인 인간을 길러 냈다. 제2의 물결은 공간을 넓히고 마을중심보다는 오히려 도시나 국가중심의 문화를 만들었다. 제3의 물결문명은 인구를 집중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분산시키는 것으로 해서 우리들의 공간체험을 바꾼다. 세계의 산업화 과정에 있는 지역에서는 아직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향해 흘러들어 가고 있지만 고도의 산업국에서는 벌써 이 흐름이 역전되고 있다. 동경, 런던, 취리히, 글라스고우 등 주요도시에서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중소도시에서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 생명보험심의회는 '도시문제의 전문가 중에는 미국의 대도시를 과거의 유물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포춘지(Fortune)'지는 '수송수단과 통신기술의 발달에 의해 대기업과 전통적인 본사도시를 연결하고 있던 유대는 단절되고 말았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위크'지는 '주요도시없는 국가의 전망'이라는 제목이 붙은 논설을 실었을 정도이다. 이렇게 인구의 재분배와 분산에 의해서 개인적 공간이나 사회적 공간, 허용될 수 있는 통근거리, 주거밀도 등 여러가지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나 기대가 변화될 것이다. 그리고 제3의 물결과 더불어 극도로 지방적이고 전세계적이며 또한 은하게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이 펼쳐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도처에서 '지역사회'나 '이웃'에 관해 그리고 국내정치나 지역사람들의 연결에 대해서 새롭게 관심을 두는 사실과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세계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몇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곳의 기아나 전쟁에 대해 근심하고 있다. 고도의 통신수단이 발달되고 제16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전자주택이라고 불리게 될 가정이 일하는 장소로 된다면 이러한 새로운 이중적 초점이 점점 더 조장되게 될 것이다. 즉 집에서 그다지 먼 데로 가지도 않고, 이사를 다니는 일도 줄어들고 여행의 목적도 일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즐기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관심과 연락을 할 수 있는 범위는 지구전체와 대기권 밖으로까지 뻗어나가게 된다. 가까운 곳과 원거리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관심이 한 인간 안에 결합되어 일체가 되는 것이 제3의 물결의 정신인 것이다. 우리들은 또한 보다 동적이고 보다 상대론적 공간상을 급속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필자의 사무실에는 인공위성과 U-2기에서 촬영한 뉴욕과 그 주변지역의 사진이 크게 확대되어 걸려 있다. 인공위성의 사진은 아주 멋있는 추상화 같다. 바다는 짙은 녹색이고 그것을 배경으로 또렷이 보이는 해안선이 찍혀 있다. U-2기의 사진은 뉴욕시를 적외선으로 촬영해서 그 정밀한 세부에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라 가디어 공항 램프에 정지해 있는 비행기가 선명하게 잘 보인다. 나는 NASA의 직원에게 라 가디어 공황에 보이는 그 사진을 더 확대하면 날개에 그려 있는 무늬나 기호가 보이게 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사람은 여유있는 태도로 대답했다. "조그만 볼트까지 보이지요." 이러한 것은 정밀사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위스콘신대학의 지도전문가인 아더 H. 로빈슨 교수는 앞으로 10여년내에 인공위성에 의해서 살아있는 지도어느 도시, 어느 지방의 움직이는 지도가 만들어져서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활동을 완전히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도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이 아니라 영화인 것이다^36,36^아니, 실제로는 움직이는 X선 사진이 된다. 왜냐 하면 단순하게 지표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지하의 각 층과 지상의 각 고도에 있는 것들까지도 층층이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이 지도는 지형의 섬세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관계까지를 선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한편 지도제작자 중에는 제2의 물결시대의 학교나 교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래식 세계지도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산업혁명 이래 가장 널리 사용된 세계지도는 메르카토르(Mercator) 투영도법에 의해 제작된 것이었다. 이런 형의 지도는 해양을 항해하는 데는 편리하지만 지표의 축적을 많이 왜곡시키고 있다. 가까이에 있는 지도를 살펴보자. 만일 그것이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해 제작된 것이말면 스칸디나비아반도가 인도보다도 크게 그려져 있겠지만 실제로는 인도가 3배 가까이나 큰 것인데도 말이다. 지표를 상대적으로 정확한 비례로 표현하기 위해 독일의 역사가 아르노페터스가 개발한 새로운 투영법을 둘러싸고 지도제작자들가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페터스는 메르카토르 지도상 투영벙에 의한 지도의 왜곡이 산업국의 오만함을 조장했으며 비산업국을 지도상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올바르게 이해하기 힘들도록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자기 나라의 국토나 그 중요성에 대해 기만당하고 있었다고 페터스는 주장한다.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지도에는 유럽은 축소되어 있고, 알래스카, 캐나다, 소련이 짓눌린 것처럼 작아져 있고, 남미, 아프맄, 아라비아, 인도는 크게 확대되어 있다. 페터스의 지도는 독일의 복음전도단체인 세계선교회 등 여러 종교단체에 의해 6만부나 비산업국에 배포되었다. 이 논쟁에 의해 명백하게 된 것은 유일한 '바른' 지도라는 것은 없고 다른 목적에는 다른 공간의 이미지가 달라질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제3의 물결문명의 도래에 의해 전세계에 새로운 인식이 일어난 것이다. 천재론과 반분론 우리들이 제2의 물결문화에서 배경, 관제, 전체성을 강조하는 제3의 물결문명으로 이행해 감에 따라 자연, 진화, 진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한꺼번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2의 물결문명은 사물을 따로 떼어 놓고 개별적으로 연구할 것을 강조하고 제3의 물결문명은 문맥이나 상호관계, 전체를 강조한다. 1950 년대 초에 생물학자들이 유전자의 비밀을 연구하고 있을 때, 벨(Bell)연구소의 정보이론전문가와 기술자, IBM의 컴퓨터 전문가, 영구의 체신연구소의 물리학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 센터의 전문가들도 매우 흥미로운 연구에 착수하고 있었다. 그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행해졌던 '오퍼레이션즈 리서치(operations research: 기업경영 조사 또는 군사작전연구)에 의거하고는 있었지만 그것 보다 훨씬 앞선 것이다. 이것이 자동화의 혁명을 일으켰으며 공업기술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하드웨어(hardware)와 함께 새로운 인식이 등장했다. 자동화 혁명의 중심적 산물은 '시스템 어프로치(system approach)'였다. 데타르트파의 사상가는 구성요소의 분석을 강조하면서 가끔 전체적 의미를 희생시킨 데 대해 시스템파의 사상가는 초기 시스템 이론가 사이몬라모가 말했던 것처럼 "문제를 단편적이 아닌 전체적으로 본다."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서브시스템 (subsystem)간의 피드백(feedback) 관계와 그것들의 단위에 대해 구성되는 보다 큰 전체를 강조한 시스템적 사고방식은 1950 년대 중반부터 연구실 밖으로 새어나오면서 광범위하게 문화적 충격을 주어왔다. 이 이론의 용어와 개념은 사회과학자, 심리학자, 철학자, 외교문제분석가, 논리학자, 언어학자, 기술자, 그리고 경영자들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10--20 년간에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는 방식을 촉구한 것은 비단 이들 시스템 이론의 지지자만은 아니다. 너무나도 좁고 과도한 전문화에 대한 반항은 1970 년대의 환경보호 캠페인에 의해 지지를 받았는데 그것은 생태학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자연의 구조, 종의 상관관계, 생태계의 전체적 성격 등을 차차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배리 로페즈는 '환경보호운동(Environmental)'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환경보호론자는 사물을 구성요소로 분해하고 그 하나하나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과 대조적으로 환경보호론자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전체의 균형을 잡는 것을 생각해서 부분적인 해결을 하지 않는다.' 생태학적 어프로치는 시스템 이론의 어프로치와 서로 중복되면서 지식의 종합과 통합을 추진해 나아갔던 것이다. 지적 생활에 있어서의 이러한 변화는 문화의 여러가지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동야의 종교는 유럽 중산계급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극소수의 신자밖에 확보하지 못했지만, 산업사회의 붕괴가 심각해지자 수많은 서구의 젊은이들이 인도의 성지를 숭배하기 시작했고, 16세된 힌두교 도사의 말을 듣기 위해 아스트로돔에 모여들고, 라가(raga)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힌두교식의 채식주의 레스토랑을 열고, 뉴욕에서는 5번가에 나와 춤추기 시작했다. 드들은 세계가 데카르트적인 단편으로 쪼개져 있지 않고 세계는 '하나의 결합체'라고 갑자기 합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위생분야에서는 정신요법의 의사들이 '게쉬탈트(gestalt)' 형상요법을 사용해서 인간의 육체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면서 병을 고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형상요법방식이 폭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미국 전역에 형상요법치료소와 연구소가 설치되었다. 정신요법의 프레데릭 S. 펄즈에 의하면 이 활동의 목적은 개인의 감각의식, 인식, 외계와의 관계를 종합화하는 프로세스를 통해서 인간의 잠재력을 확대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의학의 분야에서는 '전체론적 건강(holistic health)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개인의 행복이 육체적, 정신적, 심령적인 것들의 통합에 달려 있다는 관념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가짜 치료와 진실한 의학적 성과를 뒤섞은 것 같은 이 운동은 1970 년대 후반에는 크게 성행했다. '사이언스(Science)'지의 보도에 의하면 '연방정부가 신앙요법, 홍채진단법(iridology), 지압, 불교의 참선, 전자의학 등을 테마로 한 보건회의를 후원해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 이후 여러가지 치료방법 및 체계에 관한 관심이 사실상 폭발적으로 증대했고 그것이 모두 전체론적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사이언스'는 보도하고 있다. 그만큼이나 많은 활동이 모두 다른 레벨에서 전개되어 '전체론(wholism 또는 holism)'이라는 전문용어가 일반 사람들의 말 속에 들어왔다 해서 별로 놀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이 말은 제멋대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은행의 어느 전문가는 '도시주건에 관한 전체론적 이해'를 요청했고, 미국 의회의 어느 조사단은 장기적인 '전체론적' 연구를 요구하고 있다. 교과과정의 전문가는 학생에 작문을 가르칠 때에 '전체론적 읽기와 채점법'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고급주택가 비벌리힐스의 미용체조학교에서는 '전체론적 체조'(몸 전체에 균형이 잡힌)를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운동, 유형, 문화의 흐름은 각기 다르기는 하지만 분명히 공통의 요소를 갖고 있다. 그서들은 모두 전체를 고립된 부분으로 나누어서 연구해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가정에 대한 공격을 대변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철학가이며 시스템 이론가인 어빈 래즐로의 다음과 같은 말에 요약되어 있다. "우리들은 상호 관련된 자연계 시스템의 일부분이다. 학식있는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상호관련의 패턴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개발하지 않는 한 우리의 여러가지 단기적인 사업들과 한정된 통제력만으로는 우리들은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단편적, 부분적 사고, 분석적 견해에 대한 공격이 너무나도 격렬해서 많은 광신적인 '전체론자'는 형언할 수도 없는 전체를 추구한 나머지 부분을 망각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전체론이 아니고 또 다른 단편론인 것이다. 그들의 광신적인 전체론은 반분론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좀더 사려 깊은 비평가들은 종합에 비중을 크게 두면서도 제2의 물결문명의 분석기술을 이용해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해 가장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생태학자 유진 P. 오덤 일 것이다. 그는 같은 연구자들에게 전체론과 환원론을 결부시켜 전체와 부분을 함께 관찰하도록 촉구했다. 그는 유명한 자기 형과 나란히 생명연구소의 상을 받았는데 그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가지의 구성요소....가 결합되어 보다 큰 기능적인 전체가 형성됨에 따라 한 단계 낮은 차원에서 존재하지 않았거나 나타나지 않던 새로운 특징이 나타난다. 이것은 환원론적인 과학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방법에 의해서 인류는 큰 이익을 받아왔으니까. 그러나 '대규모이며 종합적인 체제'의 연구도 똑같이 지원해 주어야 할 때가 왔다." 시스템 이론, 생태학, 전체론적 사고방식에 대한 일반적 강조 등은 모두 우리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2의 물결문명 아래서 자라나 지적인 전제들에 대한 문화적 공격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격은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에 관한 새로운 견해, 즉 새로운 인과관이라는 것이 출현함에 따라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우주의 오락실 제2의 물결문명에서는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가에 관해 우리들은 그 원인을 알고 있다(혹은 알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모든 현상은 시간과 공간 속의 어떤 분명하게 한정된 장소를 차지하고 있어서 같은 조건이 주어지면 언제가 같은 결과가 일어난다고 가르쳤다. 전체우주는 말하자면 당구장의 공과 당구봉, 즉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계론적 인과관은 극히 유효했고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것은 병을 고치고, 초고층 빌딩을 세우고, 정밀한 기계를 설계하고,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기계처럼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큰 힘이 될지라도 성장과 쇠퇴, 새롭고 복잡한 수준으로의 갑작스러운 발전, 갑자기 용두사미로 끝나는 대변화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또 그와 반대로 작고, 우발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건이 때때로 거대하고 폭발적인 힘으로 확신되는 것 같은 현사을 설명하기에는 대단히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날 뉴턴의 당구대는 우주의 오락실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기계적 인과율은특별 케이스로 간주되어 어떤 현상에는 적용되지만 모든 현상에는 적용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전세계의 학자와 과학자들은 자연, 진화, 진보, 시간, 공간, 사물에 대해 급속히 변화하는 견해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변화와 인과율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시키려 하고 있다. 일본 태생의 인식론 학자 마루야마 교수,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거 모랭, 그리고 스태포드 비어, 헨리 라보릿 등 정보이론의 전문가, 기타 여러 사람들은 살고, 죽고, 성장하고 그리고 진화와 변화를 경험하는 비기계적 체제 속에서 인과관계는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해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벨기에의 노벨상 수상자 프리고가네(Ilya Prigogine)는 질서와 혼란, 우연과 필연 그리고 그것들이 인과율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에 대한 놀랄 만한 종합적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제3의 물결의 인과율은 부분적으로는 시스템 이론의 주요개념인 피드백의 사고방식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사고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고전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실내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온도조절장치는 난방장치를 가동시킨 후 그것에 의해 온도의 상승을 탐지한다. 실내가 따뜻해지면 난방장치는 끊어진다. 온도가 내려가면 그 변화를 감지해서 다시 난방장치를 가동시킨다. 즉 여기에는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려면 그것을 멈추고 억압하려는 피드백의 프로세스가 작용하고 있다. 이른바 네거티브 피드백이라고 불리는 이 기능은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있는 것이다. 1940 년대의 후반부터 1950 년대의 전반에 걸쳐서 정보이론이나 시스템 이론의 전문가에 의해 네거티브 피드백의 개념이 정립하고 이를 연구하게 되자 과학자들은 그 실례나 유사현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리학(예를 들면 체온조절의 프로세스)에서 정치학(예를 들면 반대파가 어느 일정한 수준을 넘어선 반대파를 제거하는 방법)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그와 같은 안정유지 시스템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학자들 세계에서는 흥분의 도가 높아갔다. 네거티브 피드백은 우리들 주의의 모든곳에 작용하며 사물로 하여금 평형과 안정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1960 년대 초에 와서 마루야마 교수와 같은 비평가들은 안정에만 과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변화에는 충분한 주의가 기울여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포지티브 피드백^36,36^변화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고 이를 확대하는 프로세스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이에 도전하는 때로는 이를 압도하는 프로세스에 대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포지티브 피드백은 마루야마 교수가 강조하는 것처럼, 시스템 속의 작은 편차 즉 작은 '반동'을 확대해서 구조 전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진동이 될 수도 있다. 첫번째 종류의 피드백이 변화 축소적 또는 '네거티브'한 것이었다면 이것은 변화 확대적 또는 '포지티브'한 전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두가지를 똑같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지티브 피드백은 종전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여러가지 과정들의 인과관계를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포지티브 피드백은 안정을 깨고 자기증폭을 하기 때문에 악순환 및 선순환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앞의 자동온도조절장치의 예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감지장치와 제동 메커니즘이 거꾸로 작용한다고 생각하자. 실내가 따뜻해질 때마다 자동온도조절기는 난방장치를 끄지 않고 오히려 켜져서 온도는 자꾸만 올라간다. 혹은 게임의 '모노폴리(Monopoly)'를 생각해 보자. (이것에 한해서는 현실의 경제 게임을 봐도 좋다.) 이 게임에서는 경기자가 돈을 많이 가질수록 많은 부동산을 살 수 있다. 따라서 임대료 수입이 늘어나 더 많은 부동산을 살 수 있는 돈이 생긴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포지티브 피드백이 작용하고 있는 예이다. 포지티브 피드백은 모든 종류의 자기도발적(selfexcitatory) 과정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군비경쟁에서 소련이 새 무기를 만들면 미국은 좀더 큰 무기를 만든다. 그것이 다시 소련을 자극해서 또 새로운 무기를 만든다는 식으로 열광적이고 세계적인 군비경쟁으로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리고 네거티브 피드백과 포지티브 피드백을 합치면 두 개의 다른 과정이 인간의 뇌로부터 경제구조에 이르는 복잡한 유기적 조직체들 안에서 활발하게 상호작용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놀랄 만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사실 하나의 문화를 생각한 경우 그 내부의 아주 복잡한 시스템이(생물체이건, 도시이건, 국제정치의 질서이건) 변화의 혹대와 축소의 메카니즘, 포지티브 피드백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복잡성이 보이게 될 것이다. 즉 인과관계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가 진전되었다는 것이 된다. 이해가 더 비약적으로 전진하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인식할 때이다. 즉, 변화의 축소.확대의 메카니즘은 반드시 처음부터 생물이나 사회의 시스템에 들어 있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가끔 우연한 일의 결과로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연한 사건이 예기치도 않았던 결과를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형태로 나타나게 하는 계기가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어째서 변화라는 것이 탐지하기 힘들고, 추정하지 못하고, 경이에 차 있는가를 이것에 의해 알 수 있다. 완만하고 지속적인 과정이 갑자기 폭발적인 변화로 전환하거나 또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가 이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같은 조건이었던 것이 전혀 다른 결과로 될 수 있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제2의 물결문명의 의식구조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점차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제3의 물결문명의 인과율에 의해 하나의 복잡한 세계상이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내부의 여러 세력이 서로 작용하여 변화를 증폭시키는 메커니즘과 축소시키는 메커니즘이 함께 구비된 세계이다. 이러한 우주공간에 놓인 당구대 위에서 흰공이 예상대로의 충돌을 끝없이 계속하고 있는 세계는 아니다. 각기 다른 요소가 가득 찬, 지금까지와는 다른 놀라운 세계인 것이다. 그것은 제2의 물결문명의 메커니즘이 시사하는 것과는 전연 다른 세계이다. 흰개미의 교훈 일리야 프리고기네 박사와 그의 동료인 브뤼셀자유대학 및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학의 연구팀은 제2의 물결문명의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화학구조가 어떤 때는 우연히, 또 어떤 때는 필연적으로 분화와 복합의 보다 높은 단계로 비약하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프리고기네에게 노벨상이 주어진 것은 이 연구에 대해서이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고 벨기에에서 자란 프리고기네는 젊은 때부터 시간에 대한 문제에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고 표면적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문제와 씨름했다. 한편 물리학자는 엔트로피(entropy)를 내세우면서 우주는 차차 쇠퇴해 가고 있고 모든 유기체는 결국 소멸되어 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 생물학자는 생명 그 자체가 유기체이며 우리들은 끊임없이 보다 높고 보다 복잡한 유기체로 계속 발전해 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엔트로피와 생물진화는 정반대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프리고기네는 보다 높은 형태의 유기체가 어떻게 해서 생성하는가에 의무늘 가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화학과 물리의 연구를 계속했다. 오늘날 프리고기네가 지적하는 바에 의하면 액체 속의 분자로부터 뇌의 신경세포, 도시교통에 이르기까지 어떤 복잡한 시스템이라도 그 부분은 언제나 소규모의 변화를 일으키며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다. 어떤 시스템에서도 내부는 변동하고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네거티브 피드백이 작용하면 이 변동은 약해지고 억압되어 시스템의 평형이 유지된다. 그러나 포지티브 피드백이 작용하면 이 변동의 일부는 크게 확대되어 시스템 전체의 평형이 위협을 받게까지 된다. 외부 환경에서 일어나 변동이 이 순간에 외부환경의 변동이 닥쳐와 그 진동을 더욱 증폭시킨다. 결국 전체의 평형이 파괴되고 기존의 구조는 붕괴된다. 제어할 수 없는 내부변동의 결과 또는 외적인 힘의 결과 혹은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결과이건간에 현재의 평형이 파괴되었을 때, 혼란도 없고, 붕괴되지도 않으며 보다 높은 차원에서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만들어질 때가 자주 있다. 이 새로운 구조는 모르긴 해도 그 이전의 것보다 더 분화되고 내부의 상호활동도 활발해지고 복잡하다. 그리고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보다 많은 에너지와 물결을 (그리고 아마 보다 많은 정보와 자원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프리고기네는 주로 물리적 반응과 화학적 반응에 대해 말하면서 이것과 유사한 사회현상들에 관심을 촉구하고 이러한 새롭고 보다 복잡한 시스템을 '방산구조'라 이름지었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진화 그 자체는 새롭고 보다 고차원적인 방산 구조의 출현을 통해서 차차 복잡하고 다양화한 생물학적, 사회적 유기체로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순수한 과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적, 철학적 의미도 지니고 있는 프리고기네의 사상에 의하면 우리들은 '변동에서 질서'를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강의제목을 이용한다면 '혼란에서 질서'를 만들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진화는 기계론적인 방법으로 계획하거나 예정할 수는 없다. 변화에 대해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과정의 초기 조건들이 그 결과까지는 예정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 원자의 내부구조를 조사하는 물리학에서는 우연이 변화를 지배한다고 널리 믿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생물학의 잭 모노, 사회학의 윌터 버클리, 인식론과 인공두뇌학의 마루야마 등의 학자들이 이 대립개념들을 통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프리고기네의 연구는 단순히 우연과 필연을 연결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상호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그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구조가 새로운 단계의 복잡한 구조롤 도약하는 그 순간에 여러가지 형태 중의 어느 것을 취하는가는 실제적으로도, 원리적으로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길이 정해지고 새로운 구조가 태어나면 다시 결정론이 지배하게 된다. 한 가지 인상적인 예로서 그는, 흰개미가 얼핏 보기에는 제각기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도로 구조적인 집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흰개미는 지면을 제멋대로 기어다니면서 여기저기 멈춰 서서는 끈적끈적한 것을 놓아둔다. 이것은 우연하게 분포되지만 화학적 유인 물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흰개미를 유인한다. 이렇게 해서 끈적끈적한 것이 몇 개 장소에 모이고 점차 기둥이나 벽모양으로 쌓아 올라간다. 만일 이렇게 쌓은 것이 서로 흩어져서 떨어져 있으며 작업은 그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 가까이에 우연히 있게 되면 아치(arch)가 되고 이를 토대로 복잡한 개미집이 건축된다. 무작위한 행동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고도로 정밀하고 목표를 갖는 구조물로 변하는 것이다. 프리고기네의 말대로 우리는 여기서 '일관성이 있는 구조물의 임의적 형성' 즉 혼란으로부터 만들어 낸 질서를 목격하게 된다. 이것은 모두 지금까지의 인과율과 정면으로 충돌된다. 프리고기네가 요약한 것에 의하면 '엄밀한 인과율은 오늘날에는 한정된 상황에서 극히 이상화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 같다. 한 개의 법칙으로 변화를 표현하는 것 자체가 변화를 회화화하는 것 같은 것이다. 복잡한 과학은 이런 식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개념에 연결되어 있다.' 우리들은 기계적인 시계와 같이 활동하는 폐쇄된 우주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훨씬 융통성있는 체제에 처하게 되는데 이 체제에는 그의 말처럼 언제나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귀결될 수 있는 불안정한 가능성 속에 있는 것이다. 참으로 '열려 있는 우주'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제2의 물결의 인과율에 속박된 사고를 뛰어넘을 때 상호간의 영향, 변화의 확대와 축소의 메커니즘, 체제 단절과 갑작스러운 혁명적인 비약, 방산적 구조, 우연과 필연의 융합 등의 견지에서 사물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요컨대 우리들이 제2의 물결문명의 눈가림을 풀고 앞을 볼 때, 완전히 새로운 제3의 물결문명이 눈부시게 나타난다. 이 새로운 문화는 변화와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자연과 진화와 진보에 대한 새로운 견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롭고 보다 풍부한 개념 그리고 환원론과 전체론의 결합을 새로운 인과율과 통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전에 그만큼 강력했고 또 완전했으며, 그처럼 포괄적으로 우주와 그 구성요소의 조화를 설명하는 것 같이 보이던 산업적 현실상은 대단히 유효하긴 했지만 그 보편적 타당성이 붕괴되고 말았다. 제2의 물결의 초이데올로기도 내일의 관점에서 보면 국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일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사고방식의 쇠퇴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서 무엇이라도 의지할 곳을 구하기 시작했다. 텍사스의 도교에서 스웨덴식의 서피즘(Sufism)까지, 필리핀의 신앙요법에서 웨일스의 마술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라도 찾게 된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알맞은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는 대신 사람들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나 적합한 낡은 관념을 수입하기도 하고, 이식하기도 하고 또 근본적으로 다른 조건하에서 생활하던 조상들의 광신적인 신앙을 재생시키려 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정신구조는 붕괴되고 기술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해답을 안이하게 구하게끔 만든 것이다. 엉터리 지성이 유행된다. 갑자기 나타나서 잠시 반짝이다가 금새 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흐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불쾌한 난장판 소동과 종교적인 속임수가 가득 찬 영적인 슈퍼마켓 한간운데서 우리들의 시대와 장소에 알맞은 적극적인 새로운 문화의 씨가 뿌려지고 있다. 강력하며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게 되고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비유가 태어나고 있다. 산업사회의 문호적 잔재가 역사적인 제3의 물결의 변화에 휩쓸려 감에 따라 이제는 새로운 응집과 품위의 초기적 단서를 엿볼 수가 있게 된다. 현재 붕괴하기 시작한 제2의 물결의 초이데올로기는 산업주의가 세계를 조직화하고 있던 과정에서도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연이 각각 분리된 입자들로 구성되었다는 관념을 각각 분리된 주관을 가진 국민국가라는 사고방식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자연이나 사물에 대한 이미지가 변화함에 따라 국민국가 그 자체가 변모해 가고 있다. 이것도 제3의 물결문명에 한발짝 가까이 갔다는 셈이 되는 것이다. 제22장 국가의 붕괴 오늘날 온 세계에서 민족주의의 불꽃이 한창 타오르고 있다. 에티오피아나 필리핀 등지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고 카리브해의 도미니카, 남태평양의 피지라는 조그만 섬들이 독립된 국가를 선포하고 유엔에 대표를 파견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기술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지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되고 있는데도 오래 전부터 있던 나라들 가운데는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나라들도 있는 것이다. 제3의 물결이 지구 위를 요란스럽게 휩쓸면서 제2의 물결시대의 핵심적 정치 단위였던 국민국가(nation state)가 어떤 때는 위로부터 또 어떤 때는 아래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일련의 세력이 국민국가의 정치권력을 아래쪽으로, 국가내의 각 지역을 집단으로 이양하려고 노력한다. 또 다른 세력들은 국민국가의 권력을 위쪽으로, 초국가적 기관 및 단체에 이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두 가지 힘이 결합함으로써 기술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국가들은 보다 작고 권력이 약한 단위로 붕괴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의 세계정세를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입하지아인과 텍시코인 1977 년 8월의 일이다. 얼굴에 복면을 한 세 명의 사나이가 허름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의 한쪽 끝에는 등불이, 다른 한쪽 끝에는 촛불이 켜져 있고 그 중앙에는 깃발이 펼쳐 있었다. 그 깃발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머리띠를 두른 한 사나이의 성난 얼굴이 그려져 있었으며 그 밖에 FLNC라는 네 글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 복면의 사나이들은 눈을 가리운 채 회견장에 끌려나온 기자단을 복면 너머로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복면을 한 그들은 프랑스 국영방송의 코르스카섬의 유일한 중계기지인 세라 디 피뇨(Serra di Pigno) TV중계소를 폭파한 것은 우리들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들은 프랑스로부터 코르시카섬의 독립(분리)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코르시카섬의 분리 요구는, 프랑스 정부가 전통적으로 섬 주민들을 멸시하고 코르시카섬의 경제발전에 무관심한 데 분개하고 있던 중 알제리아 전쟁 이후 프랑스군 외인부대가 배로 코르시카섬 안에 있는 기지로 이동하여 섬 주민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더구나 프랑스 정부가 '삐에노와르(pieds noirs: 검은 발)'라 불리는 구알제리 식민지 정착민들에게 정부의 원조금을 받아 코르시카섬에 대한 정착 특권을 부여하게 되자 섬주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가 되었다. 알제리 식민지 이주자들이 대거 섬으로 밀려들어오자 관광을 제외한 섬의 유일한 중요산업인 포도밭을 잠깐 사이에 거의 사들여 버렸던 것이다. 그 결과 코르시카섬 주민들으 자기땅에서 더 한층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의 프랑스는 규모는 작지만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에 북아일랜드와 같은 분리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남쪽의 코르시카와는 정반대인 북쪽의 브루타뉴 지방에도 이전부터 분리를 지향하는 감정이 피어 오르고 있다. 이 지방은 프랑스 전역에서도 가장 실업률이 높은 데다 임금수준이 낮아 프랑스로부터의 분리를 바라는 감정이 주민들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운동은 여러 경쟁적 정당드로 분열되어 있으며 또한 테러 조직도 가지고 있어 그 구성원들이 베르사이유 궁전을 포함한 공공건축물의 폭파 혐의로 체포되어 왔다. 프랑스 정부에는 이밖에도 알사스 로렌 지방을 비롯해 랭도크 지방의 일부, 그 밖에 다른 지방들에서도 문화적, 지역적인 자치요구에 직면해 있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영국에서도 폭력사태는 프랑스보다 적지만 똑같은 요구가 스코틀랜드의 주민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1970 년 초만 해도 런던에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농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북해유전의 개발에 따라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독립의 가능성이 드러났기 때문에 이제는 농담이 아니라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독립된 스코틀랜드 국회를 창서하고자 하는 운동은 1979 년에 좌절되기는 했으나 자치압력의 요구는 뿌리를 깊숙히 내리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민족주의자들은 오랫동안 남부의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제발전에 치우친 영국정부의 모든 정책에 분노를 느껴 왔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스코틀랜드 경제는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고 소리높여 주장할 뿐만 아니라 침체된 영국경제가 스코틀랜드 자립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그들은 북해유전에서 나오는 석유에 대한 자기들의 관리권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침체된 철강 및 조선산업을 전자 등 첨단산업에 기초한 새로운 산업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현재 정부출자의 반도체 산업의 개발계획 추진을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스코틀랜드는 이미 미국 캘리포니아와 매사추세츠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집적회로 조립지대로 성장해 있다. 영국에서는 웨일즈 지방에서도 분리주의자의 압력이 나타나고 있으며 콘월(Cormwall), 웨섹스(Wessex) 같은 지방에서도 규모는 작지만 지방자치 운동이 표면화되고 있다. 이곳 분리주의자들은 지방의 독자적인 통치권, 입법권을 가진 지방의회의 개설, 그리고 낙후산업으로부터 고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산업으로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 전체로 말하면 일일이 다 예로 들 수가 없다. 벨기에에서는(왈룬인, 플랑드르인, 부뤼셀인들간에 긴장이 고조됨), 스위스(최근 쥐라지방에서 분파집단이 독자적으로 자치주 쟁취 투쟁에서 승리함), 서부 독일 (수데텐 지방출신의 사람들이 인근 체코슬로바키아내의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요구하고 있음), 똑같은 현상이 이탈리아의 남티롤인, 오스트리아의 슬로베니아인, 스페인의 바스크인과 카탈로니아인, 유고슬라비아의 크로아티아인에게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 밖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십개 민족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 걸쳐 원심분리적 압력이 세차게 일어나고 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아메리카대륙의 캐나다에서도 퀘벡주를 둘러싼 국내의 위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퀘벡주의 분리주의자 르네 레베크가 주지사로 선출되어 몬트리올로부터의 자본이나 기업의 유인정책이 속속 진행되어 캐나다 국내의 프랑스어 사용 국민과 영어 사용 국민과의 반목은 통일국가의 분열 가능성마저 조성하고 있다. 통일국가의 유지에 전력을 경주한 피에르 트뤼도 전수상(1980 년 2월의 선거에서 재선되었음.)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발했다. '만일 분리주의의 경향이 결정적으로 되면 우리나라는 붕괴하든가 분열하든가 어느 쪽일 것이다. 나라가 분열하면 하나의 국가로서의 존재도 기능도 상실하게 되어 버린다.' 그런데 캐나다의 분열을 촉진하는 요인은 퀘벡주 이외에도 있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퀘벡과 맞먹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앨버타주는 석유가 잔뜩 매장되어 있는데 분리와 자치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 가고 있는 것이다. 태평양의 저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퍼스(Perth)에서는 광산업계의 설력자인 랭 핸콕이 광물자원이 풍부한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가 동부지방의 공산품을 인위적인 비싼 값으로 사도록 강요당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지방 사람들의 불만은 동부의 수도 캔버라의 정책에 의해서 자신들이 정치적 대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항공운임이 부당하게 높이 책정되어 있어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이 방대한 나라인 서부 지역에서는 이것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 서부지방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랭 핸콕의 사무실 밖에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 분리운동'이라는 금박글씨의 간판이 걸려 있다. 그런데 인전해 있는 뉴질랜드도 골치아픈 분리주의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나라는 남아일랜드, 북아일랜드 및 인근 군도들로 이루어졌는데 남아일랜드의 수력발전에 의해 전국 에너지 수요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남아일랜드의 주민들은 자기들이 그 대가를 별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산업은 여전히 북쪽으로 떠나가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최근 남아일랜드 남동부에 있는 티니든의 시장이 의장을 맡았던 어떤 모임에서 남아일랜드의 독립을 선언하는 운동이 탄생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국가 붕괴의 위기를 위협하는 균열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압력이 두 개의 거대한 국가인 미국과 소련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련의 반체제 역사학자인 아드레이 아말리크는 소련의 붕괴를 예언했는데, 오늘날 그것이 실현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선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 당국은 1977 년에 일어난 모스크바의 지하철 폭파서건의 범인으로서 아르메니아인의 민족주의자를 투옥하고 있다. 1968 년 이후 지하단체인 '민족통일당'은 아르메니아 재통일을 호소하여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의 집단은 소련내의 다른 공화국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루지아에서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공화국 정부로 하여금 그루지아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도록 만들었으며 그루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공항 안내방송이 모스크바행 비행기편을 '소련행'이라고 말한 것을 듣고 깜짝 놀라는 외국인 여행자도 있다. 그런데 그루지아인이 러시아인에 대항하여 시위를 하는 동안, 그루지아 공화국 내의 소수민족인 압하지아인이 그루지아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며 수도인 수쿠미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들의 요구는 강경하여 세개의 도시에서 이루어진 군중집회도 매우 강경했기 때문에 몇몇 공산당 가누들을 해임시키는 한편 모스크바의 중앙정부는 압하지아인들을 달래기 위해 7억 5000 만 달러에 달하는 압하지아 개발계획을 발표했던 것이다. 소련내의 여러 지역에 걸친 분리주의 감정의 강도를 정확히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분리주의 운동이 여기저기서 발생한다는 악몽이 소련의 권력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만일 중국과의 전쟁이 터진다거나 동유럽에서 갑자기 폭동이 발생하는 경우 모스크바는 소련내의 다수의 공화국의 분리주의자나 자치주의자들의 폭동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이 분열에 직면하는 상황 등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인도 10 년 전에는 캐나다가 분열하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미국에서도 분리주의 압력이 급성장하고 있다.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지하소설은 뉴욕과 워싱턴에 저장되어 있는 핵무기의 폭파를 위협수단으로 삼고 미국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시도하려고 하는 미국 북서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으로부터의 분리를 다룬 시나리오는 많이 나돌고 있다. 키신저가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재직할 당시, 그에게로 캘리포니아와 미국의 만서부가 떨어져 나와 스페인어 사용권, 또는 영어와 스페인어의 고용권으로서 독립할 가능성을 논한 보고서가 제출된 적이 있다. 즉 캐나다에서의 퀘벡에 해당하는 소위 '치카노(Chicano: 멕시코인 부모를 가진 미국인)문제'이다. 신문이나 잡지의 투고란에도 텍사스를 멕시코에 병합시켜 강력한 산유국 즉, 텍시코(Texico)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다. 원래 양자는 역사상 어느 시기에는 하나의 정서 체제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텍사스주의 주도 오스틴의 어떤 호텔 신문판매대에서 '텍사스 몬슬리(Texas Monthly)'를 사 보니, 미국 정부의 멕시코에 대한 '그링고'(gringo, 멕시코인들이 백인, 특히 미국인들을 지칭하는 말)정책을 통렬히 비난한 기사에 내 눈을 끌었다. '근년에 우리 텍사스인은 워싱턴의 지도자에 대해서보다 오히려 멕시코시티의 옛 적들과 보다 많은 공통점을 갖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양키들은 스핀들톱(Spindletop) 이래로 우리의 석유를 훔쳐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텍사스인들은 같은 종류의 경제적 제국주의를 모면하려는 멕시코의 시도에 대해 결코 놀라지는 않는다.' 이 호텔의 같은 신문 판매대에서 나는 신문과 함께 차의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도 샀다. 그런데 이 스티커에는 텍사스의 별과 '분리'라는 단 한마디가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소한 일에까지 분리주의와 관련시키는 것은 지나친 억지로 받아들여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도기술국가들에서와 다름없이 미국에서도 국가의 권위는 지금 시련에 직면하여 분리를 지향하는 힘이 증대해 가고 있다. 푸에르토리코나 알래스카에서는 이전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잠재적으로 존재했으며 미국대륙의 원주민들의 주권국가 승인요구는 차치하라고도 우리는 북미대륙의 여러 주들간에도 균열이 확대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미국 주의회 회의에 따르면 '지금 미국에는 이미 제2의 남북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산업이 발달한 동북부 및 중서부 지방과 태양의 축복을 받은 남부 및 남서부 여러 주들 사이에는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유력한 비즈니스 관계의 잡지는 이 '제2의 남북전쟁'에 관해 '불균등 경제성장이 각 지역을 첨예한 분쟁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쓰고 있다. 마찬가지로 마치 당장이라도 싸울 듯한 태도로 덤비는 말투는 현재 진행 중인 '경제적 남북전쟁'에 언급할 때의 남부와 서부 여러 주의 지사나 공무원들의 입으로부터도 들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들 여러 주의 주정부 관계자는 백악관의 에너지 제안에 격노하여 '자기 지역의 성장하는 산업기반을 위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연방으로부터의 분리를 제외한 모든 공약을 내걸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서부의 여러 주들에서조차 균열은 확대되어만 갔다. '지구 벗의 모임(Friend of the Earth)'의 법률 담당 부장, 제프리 나이트는 "서부의 주들은 자기네의 주가 점점 캘리포니아와 같은 주의 에너지 식민지로 변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970 년대의 중반 난방용 유류파동 때 텍사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의 여러 주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범퍼 스티커(bumper sticker)가 유행했었다. '놈들을 어둠 속에서 떨게 만들자.'고 말하는 것이다. 루이지애나 주정부가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광고 문안에서도 분리를 함축하는 노골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있었다. '루이지애나가 빠진 미국을 잘 상상해 보라!' 광고는 독자들에게 그렇게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서부의 사람들은, 오늘날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굴뚝 산업 추구운동'을 중지하고 고장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지역주의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권장받고 있다. 한편 동북부의 주지사들은 자기 지역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조직을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은 세상의 경향은 '뉴욕시를 지키는 시민연합'이 게재한 전면 광고에서도 볼 수가 있다. 거기에는 '뉴욕시는 이제 연방정부의 정책에 간간당하려 하고 있으며 뉴욕시민이 어떻게든 그것을 저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고 워싱턴의 정부를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종류의 항의운동이나 폭력사태는 물론이고 전세계에서 들리는 이같은 모든 호전적인 언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해답은 명백하다. 산업혁명이 낳은 국가들에서 내부적 긴장이 폭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긴장상태의 일부는 에너지 위기에서, 그리고 제2의 물결의 에너지 기반에서 제3의 물결의 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할 필요성에서 연유한 것임이 분명하다. 또 다른 긴장사태들은 산업기반이 제2의 물결의 기반에서 제3의 물결로 이행해 가는 과정으 ㄹ둘러싼 분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또 제19장에서 쓴 바와 같이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는 한 세대 전의 국민경제의 규모와 비교될 만한 크기와 복잡하고 내부적으로 분화된 지역 또는 지방경제가 성장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분리주의 운동이나 자치운동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공공연한 분리주의의 형태를 취하진 지역주의, 복수언어주의, 지방자치주의, 탈중앙집권주의 등의 형태를 취하건간에 이같은 원심분리적 세력은 각국의 정ㅂ가 급속도로 사회가 탈대중화해 가는 경향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 한층 기세를 증대해가고 있는 것이다. 산업시대의 거대한 사회가 제3의 물결의 충격을 받아 해체해 감에 따라 지역적, 지방적, 인종적, 사회적, 종교적인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져 점차로 균일성을 잃어 간다. 사회조건이나 요구가 다양해지고 하나하나의 인간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재확인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기업체들은 제품 라인에 보다 큰 다양성을 도입하고 공격적인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정책을 추구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부들이 그 저어책을 국민 하나하나의 기호에 맞춘다는 것은 용이치가 않다. 제2의 물결의 정치적, 관료적 구조에 얽혀 있는 정부로서는 특정지역이나 도시, 그리고 제각기 자기 주장을 양보하지 않는 인종, 종교, 사회, 성, 민족 등에 근거한 그룹을 독립된 존재로서 취급한다는 것은 우선 불가능하다. 하물려 시민 하나하나를 개개의 인간으로서 대우한다는 것 등은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조건은 다양화함에 따라 국가로서의 의사결정을 해야 할 사람들은 급변해 나가는 지역사회의 요청에 무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령 어떤 지역에 한정된, 이러한 요구들을 파악하려고 한다 해도 결국은 지나치게 상세하고 소화할 수 없는 자료의 홍수에 빠지고 만다. 캐나다의 퀘백주 분리투쟁의 와중에서 수상직에 있던 피에르 트뤼도는, 1967 년에 이미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논하고 있다. "연맹정부의 일부분인 성이나 주가 매우 중요한 특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며, 또는 중앙정부에 대해 유별난 관계를 갖게 된다면 효율적이고 영향력 있는 연방정부체제를 가질 수 없다." 그 결과 워싱턴, 런던, 파리, 모스크바의 같은 각국의 국민 정부들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국민대중의 다양화가 추진되어 분단된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사회에 적합하도록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정책을 강요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지역이나 국민적 욕구는 망각되거나 묵살되어 분노의 불길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사회에 탈대중화 경향이 진전됨에 따라서 분리주의자나 원심분리적 세력은 더욱 더 강해지고 많은 국민국가들의 통일이 위기에 빠지게 되는 일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제3의 물결은 국민국가들에 대해 아래로부터 거대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압력 그와 동시에 굮민국가를 짓누르는 강력한 힘이 우리부터도 가해지고 있다. 제3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체계가 생기고 세계라는 무대에서 새로운 주역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종래의 국민국가가 제각기 지니고 있던 힘을 현저하게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규모가 너무 작은 특정지역에 바탕을 둔 문제였기 때문에 각국의 국민정부는 도리어 손쉽게 처리할 수 없는 경향이 있는 반면 오히려 큰 문제로서 단독구가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한, 새로운 문제가 급속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없이 스스로를 절대주권국으로 간주하는 국민국가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어떤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작다는 것이 분명하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도니 드 루주망은 이렇게 쓰고 있다. '유럽대륙에는 28개의 나라가 있는데 어떤 나라라도 이제는 자국의 힘만으로써 군사적 방위력의 만전을 기할 수는 없다. 자국의 번영이나 기술적 자원의 확보, 그리고 또 핵전쟁이나 생태계 파괴의 예방 등을 보장할 수가 없게 되었다.'고 루주망은 말하고 있다. 미국, 소련, 일본의 경우도 사정은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 각 나라들 사이의 경제적 관계의 강화로 인해 오늘날 어떤 개별적인 국민정부도 자기 나라 스스로의 히믕로 자국의 경제를 운영하거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끊임없이 팽창을 계속하고 있는 유러머니(Euromoney)를 억제한다는 것은 이미 한 나라의 힘만으로는 감당해 내지 못한다. 국내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억제나 실업 일소를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는 순진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거짓말쟁이일 것이다. 경제의 병리현상은 그 대부분이 국경을 초월해 전파하기 때문이다. 국민국가라는 경제적 껍질은 이제 침투하기가 더욱 용이해졌다. 국경이 경제의 흐름을 저지시킬 수 없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환경적 요인을 방어하는 데는 더욱 무력해지고 있다. 스위스의 화학 공장이 폐기물을 라인강에 투입하면 오염은 독일고 네덜란드를 걸쳐 결국 북해로 흘러들어 간다. 네덜란드나 독일이나 자기나라의 힘만으로써는 수로의 수질보전마저도 불가능한 것이다. 유조선의 누출, 대기오염, 실수로 인한 기상변화, 산림파괴와 같은 일들은 때로는 국경을 초월한 부작용을 일으킬 때가 많다. 국경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사태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게 되었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적 규모의 커뮤니케이션 체제는 각 국가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침투현상을 촉진한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지대에서는 미국측의 약 70개에 달하는 TV방송국에서 캐나다의 시청자들을 향해 미국의 국내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이것은 캐나다 국민에게는 오랫동안 분개해 왔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제2의 물결시대의 문화침투형태는 인공위성, 컴퓨터, 텔레프린터, 두 방향의 통신이 가능한 유선방송, 이용이 싼 지상중계국 등에 기초한 제3의 물결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체제들에 의한 침투현상에 비하면 극히 사소한 현상에 불과하다. 미국 상원의원인 조지 S. 맥거번에 따르면 '어떤 국가를 공격하는 한 가지 방법은 정보의 흐름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말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나라의 다국적 기업의 본사와 해외의 현지 지사들간의 연락을 차단하고 또 그 나라의 주변에 장벽을 쌓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관계의 사전에는 '정보주권'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더해지게 되었다."라고 맥거번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가타은 국경 붕쇄작전이 어느 정도 유효한가, 또 어느만틈의 기간동안 유효한가에 대서는 의문이라 하겠다. 왜냐 하면 제3의 물결시대의 산업기반으로 이행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세분화하고 민감하며 개방적인 신경조직이나 정보체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자료의 흐름을 막으려는 개별 국가들의 기도는 자국의 경제발전을 촉진시키기는커녕 그것을 방해하는 결과가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기술적 돌파구가 마련되어 국가의 껍질을 침투할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해 준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새로운 경제문제나 환경문제, 그리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이 발전되어 가는데 따라 범세계적인 상황 체계 속에 위치해 있는 국민국가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게다가 그와 시기를 같이하여 새로운 강력한 주역들이 세계라는 무대에 등장해서 국가 권력에 도전을 하게 된다. 범세계적인 기업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 것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강력한 존재는 국경을 초월한 기업, 보통 다국적기업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엄청난 생산의 세계화를 목격해 왔다. 그것은 단순히 한 나라로부터 다른 나라로의 원자재 또는 완제품의 수출에 기초한 것만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생산조직에 기초한 것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일을 하는 기업은, 한 나라에서 조사활동을 하고 다른 나라에서 부품의 생산을 한다. 그것을 제3국에서 조립해서 제4의 나라에 생산품을 판매하고 그리고 제5릐 나라에 이익금을 예금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초국가기업은 수십개국에서 계열회사를 운영할 수도 있다. 세계무대에 등장한 이 새로운 유형의 기업의 규모, 중요성 및 정치력은 1950 년대 중반 이후에 급격히 증대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비공산권 국가들 중 고도로 기술이 발달해 있는 나라만 하더라도 자그마치 1만 개를 헤아리는 기업들이 자국 이외의 나라들에 계열회사를 갖고 있고 그 가운데 2000여개 업체는 6개국, 혹은 그 이상의 나라에 계열회사를 갖고 있는 실정이다. 연간 매출액 10억 달러 이상을 자랑하는 대기업 382개사 중 무려 242개사가, 매출액, 자산, 수출량, 소득, 고용면에서 살펴보면 '해외항목(foreign content)'이 25 퍼센트 이상이나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기업의 특성을 정의하고 평가하는 것에 강경히 반대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기업을 특별히 분류하거나 그 숫자를 헤아리거나 하는 것마저도 경제학자들간에 의견이 크게 엇갈려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들이 오늘날 세계의 질서 속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아주 중요한 역할을 연출하고 그 결과 국민국가에 대한 도전자로 되고 있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기업이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알아보려면 1971 년에 이들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단기 유동자산이 2680억 달러였다는 사실이 도움을 준다. 미국 상원의 국제무역소위원회에 따르면 이 액수는 '국제통화기관이 같은 날 보유하고 있던 금액의 2배 이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유엔의 연간예산은 이 금액의 268분의 1 또는 0.00037 퍼센트에 불과했던 것이다. 1970 년대 초의 GM사의 연간 매출액은 벨기에나 스위스의 GNP보다도 컸다. '세계동향연구소' 소장인 경제학자 레스터 브라운은 이들 숫자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찍이 대영제굮에 해질 날이 없다고 말했다. 오늘날 대영제국에는 해가 지지만 IBM, 유니레버, 폴크스바겐, 히다치 같은 세계 기업은 해가 지지 않는다." 거대한 석유 자본의 하나인 엑슨사 하나만도 소련 유조선의 50 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동서관계의 전문가이자 오스트레일리아 육군사관학교의 경제학 교수인 조셉 윌친스키는 다음과 같은 기발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들 국제기업 10개사의 1973 년 1년 동안의 매출이익만 가지면 전체 사회주의 국가 14개국의 5800 만 공산당원에게 미국에서 반년간의 휴가를 즐기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국가기업은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실제로는 약 50개에 달하는 '사회주의 체제하의 초국가기업'이 COMECON 참가국을 횡단하는 형태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기업은 송유관을 부설하고, 화학약품이나 불 베어링(ball bearing)을 제조하고, 가성칼리나 석면을 생산하고 정기 여객선이나 화물선을 운행하고 있다. 더욱이 모스크바 은행으로부터 흑해, 발틱해 종합보험회사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제국으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취맇, 빈,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등지에서 영업화롱을 하고 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가들은 지금 '생산의 국제화'는 필연적, '진보'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973 년에 5억 달러 이상의 미출을 기록한 서방의 민간소유 500여개의 초국가기업들 중에 무려 140여개사가 COMCON 회원국과 1개국 이상의 나라와 상당한 규모의 상업적 거래를 하고 있다. 초국가기업이 부국에만 본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남미 경제기구에 속하는 25개국이 최근 농럽관련산업, 염가주택,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기계, 기구 등의 자본재 같은 분야에서 독자적인 초국가기업들을 창설하는 조치를 취했다. 필리핀에 본사를 둔 기업이 페르시아만에서 수심이 깊은 항만을 개발하고 있으며 인도의 초국가기업 몇개사가 유고슬라비아에 전자공자아을, 리비아에 제련소를, 알제리아에서 기계제작공장을 건설중이다. 초국가기업의 출현은 지구상의 국가국가의 지위를 변모시키고 있다. 마르트스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정부라고 하는 것이 기업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런데 초국가기업들은 때때로 그 본거지를 둔 모국의 이해와 상반되는 독자적인 손익계산으로 행동하는 수도 있으며, 그 반대로 모국의 이해와는 일치한다 하더라도 그 이외의 나라의 이해와는 모순되는 행동을 취하는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영국 국적의 초국가기업들은 영국의 수출금수조치를 어기고 있다. 미국  적의 초국가기업들은 유태계 기업의 아랍 보이콧에 관한 규제를 어기고 있다. OPCE의 석유수출금지조치 기간 중, 초국가 석유회사들은 국가적 우선순위가 아니라 각 회사의 우선순위에 따라 국가별 석유 인도량을 배정했다. 그 순위는 미국의 외교방침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었다. 이와 같이 국가에 대한 초국가기업들의 충성심은 기회만 주어지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므로 초국가기업은 주요업무를 실시하는 나라를 하나로 한정시키지 않고 때로는 환경규제 법망을 피해 다니며 투자대상국들을 서로 대결시켜 어부지리를 얻는다. 레스터 브라운에 따르면 '세계가 독립된 정치 주체인 국민국가로 정연하게 분할되어진 것은 과거 몇 세기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세계는 상호불가침을 원칙으로 하여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로 분할되어 왔다. 그런데 수백에 이르는 다국적기업, 또는 세계적 규모의 기업이 출현함에 따라 이같은 상호 배타적인 정치적 실체로서의 세계의 조직화는 이제 경제적 조직망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세계를 무대로 큰 세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국민국가가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매트릭스(matrix)가 세계적 규모로 성장된 이후 국민국가의 고유한 지배력은 과거에 비교하면 급속히 쇠약해지고 있다. 실제로 초국가기업들은 그 규모가 매우 커져 그 자체로서 몇 가지 국민국가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준외교관이라고 말해도 좋을 기업의 스태프, 혹은 기업자신이 설립한 고도의 효율적인 정보기관 등은 그 한 예이다. 민간의 정보기관을 분석한 짐 호건은 그의 저서 '정보기관이라는 괴물(Spooks)' 속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정보를 필요로 하고 있는 정도는 미국이건 프랑스이건 국가의 그것과 비교하여 전연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미국, 프랑스 이외의 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정보전쟁을 논의함에 있어서는 미국의 CIA와 소련의 KGB 및 그 위성기관들간의 정보전쟁에 관한 어떤 논의도 엑슨석유, 체이스맨해턴 은행, 미쓰비시, 록히드, 필립스 등의 다국적기업 소유의 정보기관들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들을 설명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초국가기업들은 '모국'과 협력하는 수도 있으며 모국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수도 있다. 때로는 모국의 정책을 집행하기도 하고 기업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모국의 힘을 이용하는 수도 있다. 이러한 초국가기업들의 존재는 전면적으로 좋다고만 말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만 말할 수도 없다. 초국가기업들은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국겨을 초월하여 이동 시킬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이전시키고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 초국가기업들은 국민정부를 앞질러 행동할 때가 많다. 휴 스티븐슨은 초국가기업이 국민구가에 안겨 주고 있는 영향을 분석한 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 우리가 문제로 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우리의 사고나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모두 독립된 국민국가라는 틀 속에서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는 초국가기업의 등장 이후 그러한 사고방식 그 자체가 무효로 되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비한다면 초국가기업이 어느 특정지역의 법률이나 규정을 후회할 수 있느냐의 여부만이 문제인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세계의 권력기구라는 점에 관해 말한다면 거대한 초국가기업의 출현은 국민국가가 해내고 있는 역할을 강화하기보다도 약체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밑으로부터의 원심분리적 압력이 이 체제의 분열을 위협하고 있는 시기와 꼭 부합되고 있었던 것이다. 'T네트'의 출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 오고 있는 여러 세력 가운데는 초국가기업이 가장 잘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유일한 세력은 아니다. 예를 들면 초국가적 노동조합이 그러한 것인데, 이것은 말하자면 기업의 국제화가 조합에도 반영되어 온 것이라 볼 수가 있다. 그 밖에 종교, 문화, 민족이라는 분야에서 국경을 초월하여 상호간에 제휴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유럽에서 핵무기 반대의 데모가 일어난 경우 여러 나라의 ㅅ위자들이 일제히 항의집횡나 행진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 한 예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정당을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다. 기독교 민주주의의 입장에선 사람들도, 사회주의자들도 이구동성으로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유럽사회당(기독교 민주당)'의 결성을 거론하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은 유럽 의회의 창설에 의해 더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같은 사태발전에 병행하여 초국가적 비정부단체들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단체는 교육으로부터 해양탐사, 스포츠, 과학, 원예, 재해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헌신하고 있다. 대양주 축구협회가 있는가 하면 국제적십자사, 국제중소기업연맹과 국제 여성법률가연맹도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포괄적인 단체나 각 연맹에는 모두 합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으며 수많은 나라들에 수만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이들 단체들 가운데는 정치적 이해가 얽힌 것도 있으며 전연 이해관계가 없는 것까지, 실로 천차반별이다. 1963 년에는 국경을 초월해 활동하고 있던 단체는 약 1300개를 헤아렸다. 그것이 1970 년대 중반에 이르자 2배인 2600개에 달하고 있었다. 1985 년에는 3500에서 4500으로 증가할 것으로 증망되고 있다. 이것은 이런 종류의 단체가 사흘에 한 개씩 새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UN이 '세계기구'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1975 년의 예산총액은 겨우 15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이 금액은 이들 모든 기구의 하부조직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자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각각의 조직에 공통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동업조합'이 설치되어 있다.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단체연합(Union of international Associations)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기관은 서로 수직관계를 맺고 초국가적인 조직 아래 지역별, 지방별, 국가별로 각종 단체들을 두고 있다. 그들은 또한 콘소시업 실무회의, 단체간 위원회, 기동 대책반 등의 밀접한 조직망을 통해서 횡적인 관계로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초국가적 연계가 매우 긴밀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국제단체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1977 년에는 1857개의 국제조직이 5 만 2075개의 종횡으로 중복되는 관계를 갖고 교차하면서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더욱이 이 숫자는 분명한 관계만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의 수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숫자 자체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수천 개의 크고 작은 국제회의, 심포지엄 등을 통해 이 여러가지 단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접촉을 배고 있다. 아직은 상대적으로 미발달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이와 같이 급속히 성장해 가고 있는 초국가적 조직망(transnational network), 즉 T^36^네트(T-Net)는 제3의 물결체제의 도래에 또 하나의 차원을 더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그 세계상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 국민국가의 역할은 국가 자체가 초국가적인 기관을  서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에 이르러 더 한층 감소하고 있다. 국민국가들은 될 수 있는 한 자국의 주권과 행동의 자유를 보전하려고 분투하고 있는데 점차적으로 독립을 구속하는 새로운 속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예를 들면 유럽 각국은 마지못해 하면서 ECC(유럽경제공동체), 유럽의회, 유럽 통화기구 그리고 원자력연구에 관한 유럽 공동기관 같은 초국가조직의 결성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 경제공동체의 조세담당 최고책임자인 리처드 버크는, 각 가맹국의 세계에 관한 국내정책의 수정을 촉구, 압력을 가하고 있다. 런던이나 파리에서 결정되던 농업정책이나 산업정책이 이 지금은 브뤼셀에서 행해지고 있다. 유럽 의회의 의원들은 본국 정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제로 ECC예산을 8억 4000 만 달러나 증액해 버렸던 것이다. 유럽 공동시장이야말로 초국가기관의 권력집중을 보여주는 으뜸가는 예라고 하겠다. 그런데 ECC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현재 정부간 기구의 폭발적 증가를 목격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 국제원자력 에너지 기구 같은 것에서부터 국제커피기구, 중남미 자유무역연합 같은 것까지 있다. OPEC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겠다. 이들 기구들은 세계적인 규모로서 교통, 통신, 특허 등의 조정을 시도할 뿐만 아니라 식량으로부터 천연고무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부간 조직의 수 자체도 1960 년의 139개에서 1977 년에는 262개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국민국가는 국내 차원에서 최대한의 결정권을 유지해 가면서 동시에 정부간 조직의 모든 활동을 통해서 국가의 규모를 초월하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점차로 국민국가의 힘을 끌어내리는 작용을 하여 더욱 더 대부분의 결정권이 국가의 규모를 초월한 조직으로 이행하여 국가의 결정권은 제한받게 된다. 초국가기업의 출현에서 초국가적 단체들의 폭발적 증가 그리고 이 모든 정부간 기구들의 창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가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련의 사태발전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국가들은 점점 독립적 행동으 ㄹ취하기가 어렵게 되어 통치권을 크게 상실해 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일종의 다층화된 새로운 범세계적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국가뿐 아니라 기업체와 노동조합, 가종 정치적, 인종적, 문화적 단체들, 초국가적 단체와 초국가적 기관들이 모두 참가하고 있다. 이미 밑으로부터의 압력으로 위협받고 있는 국민국가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범세계적 체제와 형태를 갖춤에 따라 그 행동의 자유가 억제되고 그 권한도 박탈당하거나 감소하고 있다. 지구의식 국민국가의 왜소화 현상은 제3의 물결이 밀어닥치고부터 시작되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범세계적 경제의 출현을 반영하고 있다. 국민국가는 국가 규모의 경제를 수용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용기였다. 그런데, 오늘날 국가라는 용기들은 금이 가 새어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의 번영에 의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그 이유는 우선 첫째로 한 시대 전이라면 국가규모의 경제와 맞먹을 정도로 지역경제가 국내에서 몇개나 성장해 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둘째로 국민국가가 주체로 되어 성립된 세계경제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켜져 종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를 갖게 되었다. 이리하여 새로이 출현한 세계경제는 거대한 '초국가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세계경제는 전자적 속도로 운영되는 은행이나 금융산업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또 세계경제는 어떤 국가도 혼자서는 관리할 수 없는 통화와 신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세계의 경제는 국경을 초월한 통화를 지향하는데, 그것은 '세계통화'라는 단일의 통화체계는 아니고 각기 국가별 통화 또는 상품의 '시장 비스켓'에 기초하고 있는 다양한 통화, 즉 초통화(melacurrency)로 나아가고 있다. 현실의 세계경제는 자원공급자와 소비자간의 세계적 규모의 엄청난 부채로 허덕이고 있다. 세계경제는 민간기업의 입장에 선 자본주의 경영과 국가사회주의의 입장에 선 기업이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호나합경제체제이다. 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적인 자유 방임도 아니며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세계주의(globalism), 즉 민족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관념이다. 제2의 물결시대가 지역적 차원을 초월하는 이해관계를 지니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기초를 이룬 소수의 사람들을 만들어 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제3의 물결은 국가 차원을 초월하는 이해관계를 지닌 지비단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이제 재빠르게 그 모습을 드러내 가고 있는 '지구의식'이라 불리는 전 세계주의 이데올로기 출현의 기초가 되고 있다. '지구의식'은 다국적 기업의 중역, 장발의 환경보호운동가, 금융업자, 혁명가, 지식인, 시인이나 확가 등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일본, 서유럽의 지식인들이 정치, 경제의 각 분야에서 국제적인 관점에서의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위원회를 조직했는데, 이러한 위원회의 회원들이 '지구의식'을 갖고 잇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는 어느 저명한 미국의 육군 대장으로부터 '국민국가는 죽었다.'는 분명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세계주의는 특정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데올리기 이상의 것을 표방하고 있다. 마치 민족주의가 모든 국가를 대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주의는 전세계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우주전체를 포괄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우주의식'에로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필연적인 발걸음이라고도 생각된다. 요컨대, 정치나 경제에서 조직이나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제2의 물결문명을 지탱해 온 지주인 국민국가에 대해서 심한 공격이 내부, 외부로부터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현대의 특징의 하나는 가난한 나라들이 국가적 자기 동일성을 확립토자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과거에는 독립 국가도시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산업화를 성공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그와 때를 같이하여 산업주의를 벗어나 달려가는 부국들은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다른 세계 수준으 기능으로 그 활동의 중심을 대체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수십년 동안, 세계의 각 나라들 사이에서 국가의식을 확립하고자 하는 나라와 국가의식을 초월한 나라와의 이해를 공정하게 대표하는 새로운 범세계적 조직들의 창설을 둘러싼 투쟁으로 점철되리라는 점이다. 신화와 창안 오늘날 백악관이나 크렘린에서 일하는 전문가로부터 길거리의 일반인에 이르기가지 새로운 세계체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확신을 가지고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지역이나 전세계의 질서를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성질의 기관이 생겨나는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모른다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기 쉬운 몇 가지의 신화를 무너뜨리는 것은 가능하다. 이런 종류의 신화 가운데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이 '롤러볼(Rollerball)'이라든가, '네트워크(Network)'라는 영화가 전파한 신화로서, 거기에 따르면 차가운 눈매의 악한이 나와서 세계는 일단의 초국가기업들에 의해 분할되어 그 지배를 받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종류의 신화에서 공통점은 세계적 규모를 가진 단일 '에너지 회사', 단일 '식량회사', 단일 '주택회사', 단일 '레크리에이션 회사' 등을 묘사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이들의 거대한 기업이 다시금 거대한 기업이 산하조직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이미지는 전문화, 극대화, 중앙집권화와 같은 제2의 물결추세의 직선적 외삼법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는 한 현실의 생활환경의 놀랄 만한 다양성, 세계적인 문화, 종교, 전통 등의 분야에서의 여러가지 대립, 변화의 스피드, 혹은 현재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들을 탈대중화로 이끌어 가고 있는 역사적 추진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며 에너지, 주택, 식량 등에 대한 수요을 간단하게 구획지을 수 있다는 소박한 전제에 입각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 자체의 구조나 목적에 있어 변혁을 시키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도 무시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견해는 기업의 본질과, 구조에 관한 한 제2의 물결시대의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이제는 시대에 뒤진 사고방식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또 한 가지 환상은 이 지구가 단일의 중앙집권적인 '세계정부'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환상은 기존의 몇몇 조직이나 정부('세계합중국', '지구 프롤레타리아 국가', 또는 현재의 UN 등)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인 듯하다. 그러나 이것 또한 제2의 물결시대의 여러 원칙들을 그대로 단순하게 확대한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세계주의 시대에 알맞은 세계조직은 앞으로 급속히 그 모습을 드거낼 것이지만, 그것은 기업이 지배하는 미래도 아니고 세계정부도 아니며 몇 가지의 첨단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체조직, 즉 매트릭스의 조직과 유사한 아주 복잡하게 짜여진 시스템의 형태를 갖게 될 것이다. 세계적 규모로 단일의, 또는 소수의 피라밋형의 관료체제가 아니라 공통의 이익을 가진 여러가지 성질의 조직들을 묶는 또는 매트릭스들을 엮어 나가고 있다. 예를 들면 앞으로 10 년 후에는 '해양 매트릭스' 같은 단체가 출현하게 될 것이다. 이 매트릭스를 구성하는 것은 기존의 국민국가만은 아니다. 해양문제에 관심을 가진 지역, 도시, 기업, 환경보호단체, 과학단체와 같은 실로 다채로운 구성이 된다. 상황이 변화하면 새로운 단체들이 등장하여 이 매트릭스에 가입하지도 하고 반대로 탈퇴해 가는 단체도 있는 상태이다. '우주 매트릭스', '식량 매트릭스', '교통 매트릭스', '에너지 매트릭스'와 같이 문제에 따라 똑같은 조직이 생겨도 조금도 이상하지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 그러한 조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이들의 매트릭스는 모두가 서로간에 출입을 되풀이해 그 일부는 다른 매트릭스와 중복되고 있다. 정연하게 폐쇄적으로 구분되어진 조직은 아니므로 얼핏 보아서는 복잡해 보이지만 개방된 조직인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관료체제의 부서들처럼 조직된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집단으롤 구성된 세계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여태가지 말해 온 바와 같은 일이 실현됨에 따라 유엔 내부에 대규모로 심각한 논의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즉, 유엔은 여태까지의 '국민국가들의 동업조합(trade association of nationstates)'을 존속시킬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국가 이외의 구성단위, 예를 들면 지역, 종교, 기업, 인종단체 등을 참여시킬 것인가를 둘러싸고 의견대립이 예상된다. 기존의 국가는 그 대부분이 분열상태에 빠져 재편성이 실시되고 있다. 초국가적 기업을 비롯한 새로운 주역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게 되었으며 전쟁의 위협이 급증함에 따라 국민국가가 여러 면에서 위험한 시대착오에 빠지고 있는 이 세계에 그나마 질서를 부여하려면 우리는 전적으로 새로운 정치형태, 정치적인 '용기'를 창안해 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23장 인공위성을 가진 간디. '갑자기 밀려온 격동', '예상하지 못했던 폭동', '격심한 동요', 이것들은 모두 신문의 편집자들이 혼미를 계속하느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열을 올리며 찾아낸 말이다. 이란에서의 회교도의 봉기는 그들을 아연케 했다. 중공에서의 모택동주의 정책의 갑작스로운 역전, 달러화으 붕괴, 가난한 나라들의 새로운 호전성, 엘살바도르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폭동이나 반란 등은 그들의 눈에는 모두가 놀랍고도 돌발적이며 관련성이 없는 사건으로 비친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세계는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는 무질서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 지상에 새로운 문명이 나타나면 낡은 관계가 무너지고, 정권이 전복되고, 금융체제가 소용돌이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혼란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은 새로운 문명을 수용하기 위한 대대적인 세력개편 과정일 뿐이다. 제2의 물결시대가 끝나려 하고 있는 지금, 세계를 돌아다 보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산업문명이 만들어 낸 세계는 4분의 1은 비교적 풍요롭지만 그 밖의 4분의 3의 지역은 매우 가난하다. 산업시대가 끝나려 하는 지금, 8억의 인간은 세계은행이 '절대적 빈곤'이라고 불러야 할 상태에 있다. 7억의 인간은 중증의 영야실조이며, 5억 5000 만 명은 문맹이다. 공공보건기관에 가보지도 못하고 안전한 음료수도 없는 인간이 12억이나 된다. 이 문명이 남겨 놓은 세계에서는 20--30개 산업국가들이 자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 값싼 에너지와 값싼 원자재 조달을 위한 은밀한 국가보조에 의존하고 있다. 이 문명은 제2의 물결권력을 위해 무역과 금융을 규제하는 전세계적인 하부 구조^36,36^IMF, GATT, 세계은행, COMECON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은 부구들의 수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단일농작물에만 의존하는 경제상태가 심화되어 가고 있다. 제3의 물결의 급속한 출현은 제2의 물결의 지배권에 종말을 예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궁사으로부터 빈곤을 추방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에 대해 지금까지의 생각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제2의 물결의 전략 1940 년대 말 이래로 세계의 빈부의 격차를 없애기 위해 하나의 전략이 취해져 왔다. 이것을 '제2의 물결의 전략'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접근방식은, 제2의 물결사회가 인류의 진화의 정점에 있으며 모든 사회문제는 서방, 소련, 일본에서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의 산업혁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여기서 진보라는 것은 수백만 인구를 농업으로부터 떼어내서 대량생산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말한다. 진보를 위해서는 도시화, 표준화 등 제2의 물결에 부수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개발이라고 하는 것은 성공한 실례를 충실히 모방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많은 나라의 정부가 차례차례로 이 게임 플랜을 실행해 보았다. 한국이나 대만 등 특수한 조건 아래 있는 소수의 나라들이 제2의 물결사회를 건설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노력은 비참한 실패로 끝났다. 실패의 원인은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다.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들에서의 신식민주의, 계획의 빈곤, 부패, 뒤떨어진 종교, 부족주의, 초국가기업, 미국 CIA, 개혁의 속도가 너무 늦거나 지나치게 빠른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제2의 물결의 모델이 다른 산업화 노력이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율이 높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사실을 가장 현저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이란이다. 1975 년까지 전제군주인 팔레비는 제2의 물결전략을 추구하여 이란을 중도에서 가장 발전된 선진산업국으로 만들 수가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뉴스위크'지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국왕의 명령을 받은 건설업자들은 공장, 댐, 철도, 고속도로와 그 밖의 본격적 산업혁명에 부수되는 모든 시설의 건설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1978 년 6월에는 국제적인 은행들이 페르시아걸프 조선회사나 마자데른 섬유회사, 국영전력회사 타바니르, 이스파한 종합제철소, 이란 알루미늄회사 등에 수십억이라는 돈을 아주 낮은 이자로 제공해 주고 있었다. 이러한 건설이 이란을 '근대국가'로 바꾸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 시기에 부정부태가 테헤란을 지배하고 있었다. 과시적인 소비가 빈부의 차를 더욱 더 심화시켰다. 근대화에 관계한 외국인전부는 아니지만 그 대부분이 미국인이었다은 날마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테헤란의 어떤 독일인은 본국에서 받던 급료의 3분의 1이상을 더 지급받는 한편, 그의 밑에서 일하는 이란인 종업원은 독일인 노동자의 10분의 1의 급료밖에 받지 못했다.) 도시의 중산층은 마치 빈곤이라는 큰 바다에 떠 있는 고도와 같은 존재였다. 테헤란에서는 석유를 제외하면 시장에 출하시키기 위해 생산되는 모든 상품의 3분의 2는 전체인구의 10분의 1밖에 안되는 인간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었다. 지방에서는 수입이 도신인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았으며 농민들의 우울한 생활은 더해만 갔다. 이란 정부를 좌우하고 있던 것은 제2의 물결전략을 실해하려 했던 백만장자나 장군들 그리고 테헤란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고용된 기술관료들은 개발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경제적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달러만 벌어들이면 종교나 문화, 가정생활, 남녀의 역할 등은 저절로 잘 되어 가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적 현실상에 꽉 얽매여, 세계는 다양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표준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들에게는 진정한 문화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각료의 90 퍼센트가 하버드나 버클리, 혹은 유럽에서 대학을 졸업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구적인 사고방식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 '시대에 뒤졌다.'는 한 마디로 무시되어졌다. 석유와 이슬람교의 혼합으로 가연성이 높아지는 등 몇 가지 독특한 상황도 물론 있었지만, 이란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제2의 물결전략을 취한 다른 나라들에도 공통된 점이다. 나라에 따라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똑같은 일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란의 팔레비 체제의 붕괴는 마닐라로부터 멕시코시티까지 각지에서 광범위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패의 원인에 대해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개발속도의 문제였다. 너무나도 속도가 빨랐던 것이 아닐까? 석유수입이 있더라도 정부는 과연 혁명적 변혁을 모면하기에 충분할 만큼 중산층을 빠른 속도로 형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떻든 이란의 비극과 팔레비 정권을 대신해 들어선 똑같은 억압적인 신권정치를 보면, 우리는 제2의 물결전략의 근본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전적인 산업화만이 진보의 길인 것인가? 산업문명 자체가 이제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있는 지금에 와서 산업화를 모방하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깨어진 성공 모델 제2의 물결의 국가들이 안정되고 풍요하며 더욱 더 부를 증가해 가고 있는 성공의 시대에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모델로 삼는 데는 알맞은 존재였다. 그러나 1950 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급격히 산업주의의 전반적인 위기가 시작되었다. 스트라이크(strilke), 파업에 따른 정전, 보도기관의 휴업, 수송기관의 마비, 범죄, 심리적 고뇌 등이 제2의 물결세계에 만연했다. 잡지는 '왜, 모든 게 이렇게 잘 되지 않는 것일까?'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에너지 체계와 가족제도도 동요했다. 가치체계나 도시기구가 붕괴했다. 공해, 부패, 인플레이션, 소외, 고독, 인종차별, 관료주의, 이혼, 맹목적 소비열 등, 모든 문제가 갑자기 야기되었다. 경제학자들은 금융제도가 전면적으로 붕괴할는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한편 전세계로 확대된 환경보호운동은 이윽고 공해도 에너지도 자원도 그 한계에 도달하여 기존의 제2의 물결의 국가들조차도 정상적인 기능을 다 할 수 없게 되리라고 경고했다. 이 한계를 넘으면 가령 제2의 물결의 전략이 기적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할지라도 지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변모하여 대대적인 생태계 파괴라고 하는 가슴 아픈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산업주의의 전반적인 위기가 깊어지는데 따라 부유한 나라들도 우려의 빛이 심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온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도대체 제2의 물결의 전략은 잘 되어 나갈 것인가, 한걸음 더 나아가 제2의 물결문명 그 자체가 붕괴도려 하고 있는 지금 왜 그 문명을 배울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제각각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놀라운 진보는 제2의 물결의 전략이 빈곤에서 풍요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이 전략에는 언제나 '먼저 '개발하라', 그러면 풍부해진다.' 고 하는 사고방식이 있었다. 풍요롱무은 근검, 절약, 프로테스탄트 윤리 그리고 오랫동안의 경제적, 사회적 변혁의 성과로서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OPEC의 석유 봉쇄와 중동에서으 오일 달러의 홍수는, 이러한 칼빈주의(Calvinism)적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단 몇 일 동안에 예상동 못했던 수십억 달러의 돈이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리비아 등의 아랍국가들로 갑자기 흘러들어 갔다. 온 세계으 사람들은 무한한 투자, 변혁의 결과로 손에 들어온 것이 아니고 부가 있었기에 변혁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개발'이 돈을 벌개 해준 것이 아니라 돈이 '개발'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이만큼 대규모로 일어난 일은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한편 부유한 나라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한국의 철강이 켈리포니아의 건설공사에 쓰여지고, 대만의 TV 수상기가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인도의 트랙터가 중동으로 진출한다. 중국이 잠재적 공업국으로서 급속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경제를 어디까지 침식할 것인가가 우려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즈'의 동경특파원은 쓰고 있다. 프랑스의 철강 노동자는 이러한 걱정을 스트라이크에 의해서 더 멋있게 표현했다. '철강업 학살'을 중지하라고 요구하며 에펠탑에 올라가 항의를 했던 것이다. 종래의 산업국에서는 제2의 물결의 산업과 그 정치적 동맹세력이 '노동력의 수출'과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산업화 확산정책을 반박하고 나섰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제까지 선전되어 온 제2의 물결의 전략이 과연 잘 되어 나갈 것인가, 혹은 잘 되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에 대해 도처에서 의문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제1의 물결의 전략 부유해진 나라들은 제2의 물결전략의 실패에 직면했다. 가난한 나라들로부터 세계경제의 철저한 수정을 요망하는 분노에 가득 찬 요구에 부딪쳐 자기 자신의 장래를 우려한 나머지 1970 년대에 들어서자 가난한 나라들에 대해 새로운 전략을 짜 내게 되었다. 각국 정부와 세계은행이나 국제개발기구, 해외개발협의회 등, 소위 '개발기관'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방침을 전환했다. 그러나 그것은 제1의 물결의 전략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제2의 물결의 전략을 정반대로 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농민을 몰아내 과밀한 도시로 모이게 하는 대신, 농촌개발을 강조했던 것이다. 수출용의 환금작물에 중점을 두는 대신에 식량의 자급자족을 장려했다. GNP가 올라가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대신에 자원을 직접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돌릴 것을 주장했다. 새로운 접근방법은 또한 노동절약형 기술을 추구하는 대신에 자본이나 에너지나 기능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노동력을 대량으로 이용하는 생산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거대한 제철소나 대규모의 도시공장 대신에 부락별로 탈중앙집권화된 소규모 시설들을 선호하고 있다. 제1의 물결전략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제2의 물결전략과 꼭 정반대로서 산업기술이 가난한 나라에 이전될 때 재난을 가져왔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기계가 고장나고 수리하지 않은 채 사용했다. 기계는 값비싼 수입 원자재를 필요로 할 뿐더러 수입 원자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숙련 노동자가 부족하다. 그래서 '적절한 기술 (appropriate technology)'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생겨난다. '중간(intermediate)'기술, '소프트(soft)' 기술, '대체(altemative)'등으로 형용되는 기술로서 말하자면 '낫과 콤바인 수확기의 중간'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이러한 기술을 개발하는 센터가 서구의 여기저기에 나타났다. 1965 년에 영국에 설립된 중간 기술개발 그룹은 그 시초였다. 개발도상국들도 이런 연구단체를 만들고 낮은 수준의 기술혁신을 차근차근 해 나갔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남부의 공화국 보츠와나의 모추디 농민대는 소나 당나귀에게 농기구를 끌게 하여 한 줄 두 줄의 밭이랑을 갈고 씨를 뿌리게 하고 비료를 살포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갬비아 농림성은 부품만 바꾸어 끼우면 한 장의 보습이 쟁기로도 사용될 수 있고, 낙화생을 파내는 기구, 파종기, 이랑 만드는 기구 등을 끼워서 이용될 수 있는 세네갈식 농기루를 채택했다. 가나에서는 페달식 벼 탈곡기, 양조장 찌꺼기를 짜내는 스크루식 프레스, 바나나의 섬유로부터 수분을 짜내는 목제 압착기 등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제1의 물결전략은 더욱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1978 년 인도의 새 정권은 석유나 비료의 가격 인상에 충격을 받아 네루, 간디 두 수상에 의한 제2의 물결전략에 실망하고 기계화된 섬유공업을 더 이상 확장하기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동력직조기 대신 수동신 직조기를 사용할 것을 권했다. 목표는 단순한 고용증가만이 아니었고 농촌에 가내공업을 육성함으로써 인구의 도시집중을 지연시키려는 데 있었다. 이 새로운 방식에는 확실히 우수한 점이 있다.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 이동을 막고 세계빈민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농촌부락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데 그 목적의 하나였다. 생태학의 면에 있어서도 현명한 방법이었다. 또 값비싼 수입 원료를 쓰지 않고 값싼 그 고장의 자원을 쓰는 것이 장려 되었다. '효율'성에 관한 종전의 지나치게 협소한 개념 정의에 도전한다. 그것은 국내의 관습과 문화를 감안하여 테크너크랫적(technocratic) 성격이 덜한 개발방법이었다. 자본을 부자들 사이에서 돌리고 있는 사이에 약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복지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빈곤을 개선한다는 데에 중점이 두어졌다. 제1의 물결방법은 그 나름대로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제1의 물결단계에 머물러 있던 사회의 최악의 상황을 조금 개선하는 것뿐이어서 변혁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치료약이 아니고 응급처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정부가 그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러한 각국의 사고방식을 대표해서 말했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이다. 서방이 소규모의 농촌 프로젝트에만 기여한다면 우리의 고충이 얼마쯤은 가벼워지는 일은 있더라도 우리는 결코 성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갑자기 노동 밀도가 높은 생산방법이 좋은 것이라 하여 장려한 것은, 부유한 나라가 자기나라의 이익을 위해 고안해 낸 것이라고 비난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이 제1의 물결상황에 머무르는 기간이 연장되면 부유한 나라들로서는 아무 경쟁상태가 없어 공급과잉상태에 있는 세계시장에 상품을 내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들이 농업에 머물러 있을수록 석유나 가스, 그 밖에 희소한 자원을 소모시키는 일 없이 정치적으로도 더 무력해져 말썽을 일으킬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제1의 물결전략에는 일종의 가부장적 간섭주의가 있다. 이것은 생산의 모든 요소를 절약하려고 하는 반면, 노동자의 시간과 노동량만은 절약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생각이며, 자신은 나쁘지만 다른 사람이 온종일 논밭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일하는 것은 괜찮다고 하는 생각이다. 아프리카 경제개발계획연구소의 새미르 아민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노동 밀도가 높은 기술에 갑자기 인기가 집중된 것은, 황금시대의 신화와 고귀한 야만인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히피 사상과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이다.' 또한 제1의 물결의 전략은 위험하리만큼 발전된 과학기술을 과소펑가했다. 현재 '적절'하다고 간주되어 장려되고 있는 기술의 대부분은 1976 년 당시 미국의 개척민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보다 더 원시적인 것으로 수확기 보다 오히려 낫에 훨씬 가까운 것이다. 150 년 전 미국이나 유럽의 농민이 '적절한 기술'을 이용하기 시작하여 그들의 목제의 농기구를 버리고 강철제의 써레의 날이나 철제쟁기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세계가 축적한 기술이나 야금분야의 지식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했던 것이다. 1855 년의 파리 박람회에 발명된 지 얼마 안된 탈곡기가 산뜻하게 등장했었다. 그때의 상황을 쓴 당시의 기록이 있다. 6명의 사나이가 도리깨로 탈곡하여 각국의 기계들과 경재을 벌였던 것이다. 한 시간의 탈곡량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도리깨를 가진 6 명의 탈곡자 ^25135^ 밀 36리터 벨기에제 탈곡기 ^25,135^ 밀 150리터 프랑스제 탈곡기 ^25,135^ 밀 250리터 영국제 탈곡기 ^25,135^ 밀 410리터 미국제 탈곡기 ^25,135^ 밀 740리터 1855 년에도 인간의 123배의 속도로 탈곡되는 기곌르 가볍게 밀쳐 버릴 수가 있었던 것은 잠시도 괴로운 육체노동에 고통받은 일이 없는 인간들 뿐일 것이다. 우리가 '첨단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부유한 나라의 과학자가 부유한 나라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해 낸 것들이다. 가난한 나라들의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첨단과학, 기술지식이 갖는 잠재적 가능성을 무시했다. '제1의 물결개발정책'은 절망과 기아와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농민들을 영원히 고통 가운데 머물러 있게 하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곳에 따라서는 때로 제1의 물결전략이 다수의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시켜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꽤 큰 나라들에세도 기계화 이전의 제1의 물결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동안 투자에 돌릴 만큼으 생산은 결코 불가능하다. 사실 많은 사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모택동 시대의 중국은 제1의 물결방법의 기본적 원칙을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거의 자신들 스스로가 생각해 내 그것을 실행했다. 영웅적 노력을 거듭하여 간신히 기아를 예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훌륭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60 년대 후반에 이르자 모택동주의자들은 농촌의 개발과 농촌공업에 대한 강조는 극에 달했다. 이리하여 중국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이다. 제1의 물결방법은 결국 침체를 위한 수단으로서, 제2의 물결전략과 마찬가지로 모든 가난한 나라들에 적용될 수 있는 전략은 아닌 것이다. 폭발적으로 다양화가 추진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여러가지 혁신적인 전략을 창안해 내야 하며 현재나 산업화 이전 시대인 과거에서 모델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눈앞에 다가올 미래를 응시해야 할 때이다. 제3의 물결의 문제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 두 가지의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어야만 할 것인가. 필자는 전략의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전략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해 보았다. 현실적으로 정부는 추상이론으로써 정치를 해서는 아니되므로 이 두가지 전략의 요소를 결합하고 있는 수가 많다. 그러나 제3의 물결이 높아짐과 동시에 우리는 두 개의 방법 사이를 탁구공처럼 왔다갔다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상황이 변한 것은 제3의 물결이 모든 사물을 철저히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이건 공산주의 국가이건 아무튼 고도의 기술을 가진 세계를 모방하는 이론으로서는 '개발도상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기존의 모델들은 전혀 이전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1의 물결의 사회와 제3의 물결문명과의 사이에 기묘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제1의 물결에 속하는 나라들은 '개발'하기 위해 대량생산, 대중매체, 공장식 교육,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식 의회정치, 국민국가 같은 일반적으로 부조화된 제2의 물결형식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가정생활이나 결혼의 관습, 종교, 역할구조 등을 모두 파괴하여 문화를 뿌리째 부서뜨려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잊는 수가 많다. 제3의 물결문명은 대조적으로 제1의 물결사회와 아주 흡사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집중화를 피한 생산, 적절한 규모, 재생 가능한 에너지, 탈도시화, 가내노동, 고도의 생산소비활동 등이다. 여기에는 변증법적 회귀라고도 해야 할 것을 찾아볼 수가 있게 된다. 현대의 경이적인 기술혁신이 혜성의 꼬리처럼 과거에 대한 기억의 추적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인 것이다. 급속히 형성되어 가고 있는 제3의 물결사회 속에, 옛날 농경시대의 매력과도 흡사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 '어디간에서 본 일이 있다.'고 하는 이상한 감각작용 탓인 것이다. 제1의 물결문명과 제3의 물결문명이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각각 제2의 물결과는 전연 다른 것이었다고 함은 놀랄 만하다. 요컨대, 제1의 물결과 제3의 물결은 조화적인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유사성에 의해서 오늘의 제1의 물결의 국가들은 자신의 문화를 버리고 제2의 물결적 개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제3의 물결문명의 특징들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나라에 따라서는 제3의 ㅁ루결구조를 도입하는 편이 고전적인 산업화를 추진하는 것보다 용이한 일일 것인가? 과거와 달리 오늘의 상황에서는 하나의 사회가 교환경제를 목적으로 한 생산활동에 전 에너지를 주입하지 않더라도 물질적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가 있는 것일까? 제3의 물결은 민족 특유의 종교나 가치 기준을 버리고 제2의 물결문명의 보급에 수반되는 서구형 물질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어리아이의 사망률을 감소시켜 수명을 연장하고, 문맹이나 영양실조를 없이하여 생활을 향상시킬 수가 있는 것일까? 미래의 '개발' 전략은 워싱턴이나 모스크바, 파리, 제네바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이에서 생겨날 것이다. 이 전략은 토착성이 강한 것으로서 각 지방의 구체적인 요구를 반영한 것이 될 것이다. 경제에 중점을 둔 나머지 환경, 문호, 종교, 가족구조와 생존의 심리적 차원을 희생시키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 그리고 이 점에서는 제3의 물결도 포함하여 외부의 형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 같은 없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의 모든 노력에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제3의 물결은 부유한 나라에나 가난한 나라에나 아주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태양, 새우 그리고 칩 제1의 물결문명과 제3의 물결문명의 구조적 특색 사이에 있는 많은 놀라운 일치성은 앞으로 십년 후에는 과거와 미래의 여러가지 요소를 혼합하여 새로운 보다 좋은 현실이 만들어질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제3의 물결문명으로 이행해 가고 있는 나라의 에너지 위기를 논할 경우, 잊기 쉬운 것은 제1의 물결사회도 역시 그 나름대로의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극단적인 저개발 상태로부터 출발할 경우, 도대체 어떤 에너지 체계를 만들어 내면 좋을 것인가. 이런 사회들도 제2의 물결 형태처럼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집중화된 대규모의 발전소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인도 과학자 레디(Amulya Kwnar N. Reddy)가 지적하듯이 이러한 사회들이 가장 긴급히 필요로 하는 것은 도시를 위한 집중화된 방대한 에너지 공급이 아니라 농촌을 위한 탈집중화된 에너지 공급인 경우가 많다. 토지를 갖지 않은 인도의 어떤 농가는 하루 중에 약 6시간은 요리나 방을 덥히는 데 쓰일 나무줍기에 소비하고 있다. 또 샘에서 물을 길어 오는 데도 4--6시간, 소나 염소나 양에게 풀을 먹여 주는 데에 역시 4--6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농가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노력을 덜기 위해 기계를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유일한 합리적인 방법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최소한 3명의 아이들을 가져야만 한다.'고 과학자 레디는 말한다. 그는 농촌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최선의 피임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레디는 농촌의 에너지 수요에 대한 조사를 하고 그 결론으로서 한 마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부락주민과 가축의 분뇨를 사용하는 소규모의 값싼 메탄가스 공장만으로도 쉽게 충족시킬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러한 시설을 수천 개 만드는 것이 소수의 거대한 집중화된 발전 시설을 세우는 것보다 유익하고 환경상으로도 건전하며 경제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이론은 메탄가스의 연구와 방글라데시나 피지의 가스 발전소 설치 계획에 뒷받침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도에서는 이미 1 만 2000개 공장이 가동중이며 앞으로는 10 만개소 설치를 목푤로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사천성에 20 만개소의 가정용 메탄가스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에는2 만 9450개소가 있으며, 1985 년까지에는 5 만 5000곳으로 증가하려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도의 저명한 미래 작가이자 기업가이기도 한 쟈그디쉬 카푸르는 뉴델리 교외의 황무비 10에이커의 땅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탄가스 공장을 갖춘 시범 '태양농장'으로 바꾸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이 농장은 그의 가족과 종업원들이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곡물, 야채, 과일을 생산하고 나아가서 시장에 수톤의 농작물을 출하해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인도 기술연구소는 농촌용의 10 킬로와트의 태양발전소를 설계하고 이것으로써 각 가정의 전등, 용수의 펌프, 지역의 TV와 라디오 등에 전력을 공급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타밀 나두주의 마드라스에서는 시당국이 태양전력을 이용한 바닷물의 담수화 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뉴델리 근처에 있는 센트럴 일렉트로닉사는 태양광전지를 사용하여 발전하는 모델하우스를 지었다. 이스라엘의 분자생물학자 하임 아비브는 시나이반도에서 이집트, 이스라엘 공동의 농공 프록젝트를 실시하려고 제안하고 있다. 이집트의 물과 이스라엘의 선진관개기술을 이용하면 카사바(cassawa)나 사탕수수를 지배한 뒤 그것들로부터 자동차 원료인 에탄올을 생산해 낸다는 것이다. 아비브의 계획은 사탕수수의 부산물을 양이나 소의 사료로 먹이고 사탕을 짜낸 암금인 셀롤로오스(cellulose)는 제지공장을 세우는 등 종합적인 생태 사이클(ecological cycle)을 조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아비브는 비슷한 프로젝트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의 지역에서도 실시할 수 있다고 제의하고 있다. 제2의 물결문명의 쇠퇴의 한 원인이 된 에너지 위기는 지구상의 보다 가난한 지역에서도 집중적, 탈집중적인 그리고 대.소규모의 새로운 에너지 생산을 위한 여러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제1의 물결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와 새로이 일어나고 있는 제3의 물결사회의 여러 문제들과의 사이에는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 어느 사회나 제2의 물결시대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에너지 체계에서는 해낼 수 없는 것들이다. 농업은 어떠한가. 여기서도 제3의 물결은 종래와는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유도해 간다. 애리조나주 투손의 환경연구소에서는 온실 속에서 오이나 상추의 주위에 길다란 물통을 놓아 새우를 양식하고 그 새우의 배설물을 밭의 비료로 돌리고 있다. 버몬트에서는 메기, 숭어 및 채소를 비슷한 방식으로 기르고 있다. 양식 탱크의 물이 낮동안의 태양열을 모아 야간의 기온을 올려주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고기의 배설물은 야채밭의 비료가 된다. 매사추세츠주의 뉴 앨케미 연구소에서는 고기의 양식 탱크 위에서 닭을 키우고 있다. 닭의 분뇨가 탱크 속의 물고기가 먹는 해조류의 비료가 된다. 여기서 얘기한 것들은 식량 생산이나 식품 가공의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기술혁신의 한 예에 지나지 않다. 이러한 실험은 오늘날의 제1의 물결사회에 있어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많다. 남캘리포니아대학의 미래연구센터가 발표한 세계의 식량공급에 대한 앞으로 20 년간의 예측에 따르면 몇 가지의 중요한 기술개발에 의해 화학 비료의 수요는 오히려 감소될 것이라고 한다. 동 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십중 팔구는 1996 년까지는 값싼 지효성 비료가 개발되어 질소 비료의 수요가 15 퍼센트를 감소시키게 될 가능성이 9 할이다. 그때까지는 질소고정력이 있는 곡물이 개발될 가능성도 많고, 그렇게 되면 질소비료의 수요는 더욱 감소될 것이다. 또 이 보고는 관갤르 하지 않은 토지에서 현재 보다 25--50 퍼센트가 증가한 수확고를 올릴 만한 신품종의 곡물이 '확실히 출현한다.'고 쓰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풍력으로 물을 뿜어올리는 우물을 파고, 소나 말로 그 물을 날라서 점적관개체제를 도입하면 수확량의 연도별 변동을 막고 대폭적인 증산을 꾀할 수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보고에 따르면 최소량의 물에도 자라는 사료용 목초를 길러줌으로써 건조한 지역의 가축에 의한 운반력을 배증할 수가 있으며, 영양소 배합에 대한 이해를 촉진함으로써 열대에서의 곡물 이외의 농산물의 수확고를 30 퍼센트 정도 증가시킬 수가 있다고 말한다. 또 병충해 방제의 돌파구를 열게 됨으로써 피해를 대폭 감소시킬 수도 있다고 말한다. 보고서는 낮은 단가의 신식 펌프에 관해서도 제안을 하고 있으며 독파리를 퇴치함으로서 가축사육의 가능한 지역을 단번에 확대할 수 있다는 등, 여러가지 개혁안을 제안하고 있다. 더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에너지 생산을 위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에너지 농장'에 전념하는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다.우리는 궁극적으로 기후 조작, 컴퓨터 및 기상 위성에 의한 관측, 유전학 등에 의해서 세계의 식량 공급에 혁명을 가져올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만으로 지금 곧 농민들의 빈 배를 채워 줄 수는 없으나 제1의 물결에 속하는 정부들은 장기농업계획을 입안할 때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며 또한 말하자면 호미와 컴퓨터를 결합시키는 길을 탐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3의 물결문명으로의 이행과 새로운 기술을 연결시킴으로써 다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이미 세상을 떠난 미래학자 존 맥헤일과 그 아내이자 연구 동료이기도 했던 마그다는 그들 부부의 뛰어난 연구보고서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Basic Human Needs)' 가운데서 초첨단 생물공학기술의 등장이 제1의 물결사회를 변혁하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결론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에는 해양농업을 비롯해 곤충과 그밖의 유기물을 이용하여 생산활동을 한다든가, 셀룰로오스 폐기물을 이용하여 가공육을 만드는 것, 혹은 등대초 같은 식물을 유황분이 없는 연료로서 사용하는 것 같은 류의 기술을 의미하고 있다. '녹색의약' 즉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식물이나 별로 활용도지 않았던 식물로부터 약품을 만드는 것도 제1의 물결에 속하는 여러 나라들에게 있어서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의 진보를 보더라도 종래의 개발이라는 사고방식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제1의 물결의 입장에 선 인간과 제2의 물결의 입장에 선 인간의 의견은 크게 엇갈려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논쟁이 일고 있다. 제1의 물결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량 생산업자는 노동력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개발은 자본이나 에너지보다도 인력을 많이 사용하는 소규모의, 기술적으로는 그다지 발전되지 않은 공장을 중점으로 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제2의 물결의 신봉자들은 현재 선진 공업국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철강, 자동차, 신발, 섬유 등은 제2의 물결산업을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제2의 물결적 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은 마차용 채찍공장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장을 세우는 데는 나름대로 전략이나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알루미늄보다 몇배나 강하고 견고하고 가벼운 새로운 합성물질이나 철강과 같은 정도의 강한 투명물질이 출현하여, 강한 플라스틱 모르타르가 전기도금의 수도관을 대신하게 된다면 철강의 수요는 곧 고개를 숙이게 되고 생산력은 과잉상태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인도의 과학자 M.S. 이옌가르는 '이들의 진보에 의해, 철강이나 알루미늄의 생산을 확장해 나간다면 곧 과잉생산이 될 것이다.'고 쓰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로서는 철강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외국자본의 차관을 바라기보다도 이제까지 말해 온 바와 같은 '각종 다양한 원자재를 활용하는 시대'에 대비하는 편이 좋을는지도 모른다. 제3의 물결은 보다 직접적인 가능성들도 제시해 주고 있다. 스웨덴의 룬드대학 연구정책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워드 모어하우스는 가난한 나라들은 제1의 물결의 소규모 산업이나 제2의 물결의 집중화된 대규모 산업이 아니라 지금 등장하고 제3의 물결의 주요 산업인 마이크로 전자산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 밀도가 높고 생산성이 낮은 기술에 역점을 두는 것은 가난한 나라들을 더욱 궁지에 빠지게 하는 함정이다.'고 모어하우스는 쓰고 있다. 그는 컴퓨터의 집적회로를 프린트한 실리콘의 작은 조각을 만드는 칩(chip) 산업의 생산성이 경이적으로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자본 부족의 개발도상국에 있어서는 투자한 자본에 대한 아웃푸트(output)를 보다 크게 하는 것이 이익으로 연관되는 길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욱 종요한 것은 제3의 물결의 기술이 현존하는 사회제도가 양립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전자제품을 이용함으로써 여러가지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기초적인 기술을 자기들의 사회의 요구와 자기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원에 적응시켜 이용할 수가 있다. 마이크로 전자기술은 그것 자체가 생산의 탈집중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모어하우스는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인구의 대도시 유입을 억제하는 것과도 연관을 가지며 또 이 분야의 제품의 급속한 소형화에 따라서 수송경비를 저하시키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더구나 이 생산방법은 에너지 소비량이 적다. 가장 진보된 제3의 물결산업이 가난한 나라의 필요에 꼭 맞는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은 모어하우스만은 아니다. 스탠포드대학의 집적회로 연구소 부소장인 로저 멜렌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산업세계는 생산을 위해 사람들은 도시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공장과 노동자를 다시 지방으로 되돌려 보내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는 중국을 비롯해 17세기 농업경제로부터 전환을 이룩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는 나라도 많다.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전인구를 이동시키지 않고도 새로운 기술을 사회에 적응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3의 물결은 빈곤과의 싸움에 새로운 기술을 제공해 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제3의 물결은 수송과 통신의 분야에 있어서의 필요에도 새로운 전망을 안겨준다.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도로가 사회, 정치, 경제 등의 발전에 선행되어야 했다. 오늘날에는 전자통신체제가 필요하다. 일찍이 통신은 경제발전의 부산물이라고 생각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더 D. 리틀 연구소의 존 매기 소장에 따르면 '현재로는 이 생각은 시대에 뒤진 것이다. TV, 라디오, 전화를 비롯한 새로운 원격통신은 경제발전의 산물은 아니고 경제발전을 가능케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오늘날 통신에 소요되는 단가는 점점 저하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운송 기능이 통신으로 대체할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진보된 통신망을 건설하는 편이 단가가 높은 도로를 거미줄처럼 누비고 다니는 것보다도 훨씬 싸고 에너지의 면에서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일 것이다. 도로 운송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생산이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어 있으면 그 분산의 정도에 따라서는 수송비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더라도 도시 지역으로부터, 또는 세계 전체로부터 고립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제1의 물결인 나라의 지도자들이 점점 통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세계의 전자 스펙트럼의 재분배를 요구하여 도전해 오고 있다는 사실로도 명백해진다. 제2의 물결으 여러 나라들은 원격통신을 발달시킨 것이 일렀으므로 주파수를 독점해 버렸다. 미국과 소련 2개국에서만도 단파 방송 주파수의 4분의 1을 독점하고 있으며 고도의 발달된 통신체계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신 시스템은 해저나 공중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전인류의 것이지 결코 몇몇 나라의 소유물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제1의 물결의 나라들은 예를 들어 현재 스펙트럼을 이용하는 시설을 갖고 있지 않아도 주파수는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자기들에게도 배분되어져야 마땅할 것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주파수를 타국에 임대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이 요구에 저항을 하고 있어 제1의 물결의 나라들은 '새로운 신세계 정보질서'의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더 큰 문제는 국내에 있다. 한정된 자원을 어떤 식으로 원격통신과 수송에 배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기술 선진국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낮은 비용의 자상국이나 키부츠(kibbutz) 정도의 규모의 공동체를 가상한 컴퓨터화한 관개체제, 지질탐사기기, 시골이나 가내공업에서 사용하는 매우 값싼 컴퓨터 단말기 등을 갖추면 제1의 물결의 나라들은 제2의 물결의 나라들과 같은 엄청난 수송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된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이제는 꿈만은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이 평범한 것으로 될 날이 얼마 안 있어 찾아올 것이다. 이전에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은 전통적인 칼 끝으로 스위치 버튼을 눌러서 인도네시아 열도를 하나로 연결하는 위성통신체제를 가동시켰다. 이것은 마치 1세기 전에 하여금의 큰 못을 박아 준공을 축하한 대륙간 횡단철도가 미국의 동해안과 서해안을 연결한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제3의 물결이 변혁을 바라는 나라들에 여러가지 가능성을 가져다 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다. 에너지, 농업, 기술, 통신 등 여러 분야에서의 이러한 발전은 사실상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과거와 현재, 제1의 물결과 제3의 물결을 결합시킨 전혀 새로운 사회의 탄생이다. 우리는 저속의 촌락형 소자본 농촌공업과 주의깊게 선택한 고도의 기술 모두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변혁전략을 세워 두 가지를 다 촉진하는 경제계획을 구상해 볼 수 있다. 자그다쉬 카푸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최첨단 과학기술과 간디가 꿈꾼 목가적인 푸른 전원의 촌락사회 사이에 하나의 새로운 균형을 잡아 나가야만 한다. 이 두 가지를 실제로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사회를 완전히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 사회의 상징과 가치 기준, 교육제도, 행동의 동기, 에너지 자원의 유통, 과학이나 산업의 조사 연구, 그리고 사회의 모든 제도를 바꾸어 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변혁이 이미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를 아주 새로운 통합체로 유도해 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미래주의자, 사회평론가, 학자, 과학자 등이 더욱 더 증가해 가고 있다. 이 새로운 통합은 한 마디로 말하면 인공위성을 가진 간디라고 할 수 있겠다. 최초의 생산소비자 이 새로운 통합에는 더욱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이건 사회주의 시장이건, 시장과 인간의 경제관계 전반에 관련되는 문제이다. 개인의 시간과 노동이 얼마만틈 생산에 돌려져야 하는가, 그리고 생산소비에는 얼마만큼의 돌려져야 하는가, 즉 시장을 상대로 한 작업과 자신을 위한 작업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동을 돌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제1의 물결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이미 화폐경제에 휘말리고 있다. 이는 '시장화'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얼마 안되는 화폐수입은 그들의 생존에 극히 중요한 것인 데 반해 교환을 위한 생산은 전수입의 일부만을 차지하고 생산소비가 나머지를 충당하고 있다. 제3의 물결은 이러한 상황을 새로운 견해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실업자의 수는 수백만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에서 완전취업을 지향하는 것은 과연 현실적인 일일까? 어떤 정책을 취해야만 우리 생애중에 급증하는 실업자들에게 풀타임(full time)의 일거리를 줄 수가 있을 것인가?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이 시사했던 바와 같이 '실업'이라는 말 그 자체가 제2의 물결의 개념이 아니겠는가? 세계은행의 폴 스트리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문제는 실업이 아니다. 실업이라는 것은 현대적인 임금고용, 노동력시장, 직업소개소 그리고 사회보장 급부를 전제로 한 하나의 서구적 개념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농촌빈민들의 무보수이고 생산성이 없는 노동이다." 오늘날 풍요한 나라들에서는 자기소비를 위해 생산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제3의 물결세계의 특징적인 현상이며 대부분의 제2의 물결의 경제학자가 제시한 가설과 목표에 의문을 품게 하는 원인으로 되고 있다. 서유럽의 산업혁명과 똑같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마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사업혁명은 제2자에서 말한 대로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A부문(생산소비부문을 위한)에서 B(시장부문)으로 이행해 가도록 만들어 버렸다. 자기소비를 위한 생산을 과거의 유물로 생각하기보다는 적극적인 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임금을 받기 위한 파트타임 고용과 그들의 생산소비활동을 보다 '생산적'으로 할 것을 지향한 상상력이 풍부한 새로운 정책들이다. 이 두 가지의 경제활동을 보다 현명하게 상호 연계시키는 것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구하고 있는 열쇠인 것이다. 실제문제로서는 현재 부유한 나라들이 이미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생산소비용 자본장비'를 제공하는 것이다. 풍요한 날들에서는 지금 이 두 부문간에 흥미있는 협동이 이루어져 시장이 세탁기에서 핸드 드릴과 배터리 검사에 이르기까지 생산소비자가 사용할 강력한 자본장비를 공급해 주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들의 상황은 극도로 비참하여 얼핏 세탁기나 동력공구 등을 들먹이면 거북스럽게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1의 물결문명을 탈피해 가고 있는 사회에는 거기에 알맞은 도구들이 있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건축설계가인 요나 프리드망에 의하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반드시 직업만은 아니다. 그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먹을 것과 거처할 주택이다. 직장은 어디까지나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먹을 것은 자기 손으로 만들 수도 있으며 집도 스스로 세울 수가 있다. 적어도 그 과정의 일부는 자기 손으로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서 프리드망은 유네스코에 제출한 논문 가운데서 정부비라고 이름붙인 활동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의 법률이나 규칙 때문에 불법거주자 취급을 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 주거를 만들거나 수리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좋겠다.) 프리드망은 정부가 이러한 장애를 제거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를 위해서는 '조직적인 지원과 얻기 힘든 일부 자재를 제공함과 동시에 가능하면 수도나 전기 등을 시설한 택지의 개발'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프리드망 등이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개인이 더 효과적으로 생산소비가 가능하도록 원조하는 것은 과거에 GNP라는 개념으로 측정해 온 생산과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생산소비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과학기술의 연구를 생산소비분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에라도 이렇다 할 경비를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단순한 수동식 공구를 공급하거나, 지역사회 작업장을 만든다거나, 숙련된 전기를 공급하는 등의 일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활동을 육성하는 홍보활동이나 '땀이라는 자본'을 투자하여 자신의 집을 짓거나 자신의 토지를 개량하거나 하는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제2의 물결의 선전덕택에 세계의 어디를 가든지 가장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은 질이 나쁜 대량생산품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을 경시하는 일이나 자신의 창조물보다도 제2의 물결의 제품을 좋게 평가하는 따위의 선전은 그만 두고, 자신이 만든 가장 우수하고 가장 창의력이 풍부한 주택이나 재화, 가장 '생산적인' 생산소비에 대해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마저도 점점 자기소비를 위해 생산을 하도록 되어 가는 현실을 알려주면 가나한 사람들의 태도도 변해 갈지도 모른다. 제3의 물결에 의해서 모든 미래사회의 시장활동과 시장외 활동의 관게는 극적인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은 경제나 기술 이외의 관심사들은 일차적인 중요한 위치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교육 같은 것도 새로운 관점에서 취하게 된다. 교육이 개발에 아주 중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교육이 중요한 것일까? 식민지주의 세력이 아프리카, 인도 등, 제1의 물결으 지역에 교육제도를 도입하면서 그들이 한 일은 공장형의 학교를 이식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본국의 엘리트 학교를 흉내낸 최악의 소형학교들은 설치했다. 오늘날에는 제2의 물결의 나라들의 교육이 모델로 될 수 있는가 어떤가 하는 것이 어디에서나 의문시되고 있다. 제3의 물결은 교육이 반드시 학교교실에서 실시되는 것이라는 제2의 물결적 발상에 도전을 한다. 현재 우리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학습을 노동이나 정치투쟁, 지역사회봉사, 심지어 놀이 등과 결합시키는 일이다. 교육에 관한 종래의 생각은 가난한 나라에서나 부유한 나라에서나 재검토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문맹퇴치는 과역 적절한 목표일 것인가? 적절한 것이라면 문맹이 아니라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읽는 것과 쓰는 것 두 가지를 가리키는 것일까? 우수한 인류학자 에드먼드 리치는 에딘버러에 있는 미래연구센터인 네비스연구소를 위해 논문을 썼는데 그 속에서 그는 쓰는 것보다도 읽는 쪽이 훨씬 더 쉽고 도움이 되므로 반드시 누구나가 글씨를 쓰는 방법을 배울 필요는 없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었다. 마샬 맥루헌은 음성언어문화로의 복귀야말로 제1의 물결사회에 알맞은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 기계기술의 개발이 놀랄 만한 새로운 전망을 열어 준 것이다. 단추만 누르면 되는 값싼 새 통신장치나, 소형의 테이프 레코더를 조립해 넣은 농업기계가 생기면 문맹의 농민이라도 기계의 사용법을 귀로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나가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읽고 쓰는 능력이란 무언가 하는 정의도 재검토되어야만 할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사람들은 인도의 시골사람이나 콜롬비아의 농민들에 대해 피동적이며 자발성이 결여 되어 있다고 말을 한다. 영양실조, 기생충, 기후, 억압적인 정치 등이 그 사람들에게서 적극성을 빼앗고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발성의 결여'라고 볼 수 있는 것의 일부는 앞으로 여러 해가 지나면 생활이 개선되리라는 막연한 희망만으로 현재의 가정이나 가족의 생활을 파괴하고 싶지 않다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개발'이 기존의 문화 위에 완전히 낯선 문화를 첨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한, 그리고 실제의 개선이 당장 이룩될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한 사람들이 수중에 있는 사소한 일에 매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3의 물결문명의 대부분의 특징은 제1의 물결문명의 그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인도이건 중국이건 분열이나 고통 그리고 미래의 충격을 별로 체험하지 않고서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생각 없다.'고 외치고 있던 것이 뿌리채 변해 간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제3의 물결은 단순히 에너지나 기술, 농업이나 경제의 분야 뿐만 아니라 개인의 두뇌나 행동에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출발점 닥쳐올 제3의 물결문명에는 모방하려 해도 기성의 견본이 없다. 이 문명은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나 부유한 사람들에게나 제3의 물결문명은 참신한, 그리고 아마 해방적인 가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그것은 제1의 물결세계의 약함이나 빈곤이나 비참함 등만이 아니고 여기에 내재되어 있는 몇 가지 강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적인 시점에서는 후진성이라고 볼 수 있는 옛 문명에서도 선진적인 제3의 물결의 척도에서 본다면 우수한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제24장 종결부: 대합류 우리들은 이제 10 년 전과 같이 상호 관계를 잘 알 수 없는 변화에 당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변화의 혼돈 저 너머로 하나의 일관성있는 패턴이 떠오르고 있다. 미래가 확실히 형체를 드러내개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인 대합류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으로서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변화의 흐름이 하나로 되어 대해의 큰 파도와도 같은 제3의 물결이라는 변화의 바다로 흘러가면서 시시각각으로 그 기세를 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역사적 대변화인 제3의 물결은 산업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종래의 발전과는 전연 그 방향이 다른 것으로서 때로는 사납게 그것을 부정한다. 즉 300년 전의 산업문명에 못지 않은 참으로 현대의 혁명이라고도 해야 할 완전한 변혁에 틀림없다. 다시 말하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기술혁명만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아주 새로운 하나의 문명의 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를 잠시 돌이켜 보면 여러 차원에서 몇 가지의 아주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더러는 그것들이 동시에 병행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생물영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인구와 자원의 관계를 반영하기도 하고 그 관계를 변경하기도 한다. 또 문명은 제각기 각각의 기술영역^36,36^분배체제와 서로 결부되어 있는 생산체제와 연관된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또한 그 생산조직은 유통조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져 있다. 또 문명에는 제각기 사회영역을 갖고 있고 그것은 서로 관계가 있는 사회제도로 성립되어 있다. 모든 문명은 필요한 정보를 유통하는 회로로서의 정보영역을 가지며 독자적인 권력영역도 갖추고 있다. 또한 문명은 제각기 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분명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착취적, 공존적, 호전적, 혹은 평화적인 독자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슈퍼이데올로기(superideology)'라고도 할 수 있는 일련의 강력한 문화적 전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현실의 견해를 결정하고 그 문명 개체가 갖고 있는 작용을 정당화한다. 제3의 물결은 바야흐로 그 모습을 분명히 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으며 이러한 온갖 레벨에서 동시에 혁명적이면서도 스스로를 강화하는 듯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 결과 단순히 낡은 사회가 붕괴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향하는 기초가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제도들이 우리의 주변에서 와해되고 범죄가 증가하고 핵가족이 무너져 가고 있다. 이전에는 믿을 만했던 관료체제가 급속히 제 기능을 상시하고 의료제도에 금이 가고 산업경제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한 동요를 보이기 시작함에 따라 우리의 주변에는 사회의 쇠퇴와 붕괴 현상들만 눈에 뛴다. 그러나 사회적 쇠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문명의 비료와 같은 토대가 된다. 에너지, 기술, 가족구조, 문화, 그 밖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우리는 새로운 문명의 특징을 규정하는 기본적인 구조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에야 비로소 미래의 문명의 주요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고무적인 것은 현재 우리가 목적하고 있는 제3의 물결문명의 새싹이 자라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이 문명은 생태학적인 의미에서나 경제학적인 의미에서나 일관성있고 실행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유의하기만 하면 현재의 문명보다도 훨씬 우수한 민주적인 것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결코 자연적인 결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과도기를 특징짓는 것은 극단적인 사회적 분열, 격심한 경제의 동요, 파벌간의 충돌, 분리 시도, 기술적 혼란이나 파괴, 정치적 혼란, 폭력, 전쟁이나 그 위협 등일 것이다. 제도나 가치관이 붕괴해 가는 과정에서는 권력을 추구하는 권위주의적인 선동정치가의 운동이 나타나고 아마 실제로 권력을 수중에 넣는 수도 있을 것이다. 지식인으로서는 그 성과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두 개의 문명의 충돌에 의해서 매우 위험한 사태가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얼핏 보아서는 불가해한 현상일지라도 파괴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살아 남기 위한 변화의 드러남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우리들을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는가를 아는 것이며, 눈앞의 단기적인 위협 속에서 뭔가 최악의 사태를 피하면서 어떠한 사회가 탄생하려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요컨대, 어떤 사회가 형성되려 하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내일의 기초 제3의 물결문명은 제2의 물결문명과는 달라서 서로 다양한 에너지 자원을 이용해야 된다. 그 종류는 수소, 태양열, 지열, 조류, 생물 등을 생각할 수 있으며 번개의 방전, 궁극적으로는 보다 고도의 핵융합력 등 1980 년대에는 상상도 못할 에너지원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가령 쓰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 이상의 피해가 계속 발행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원자력 발전소는 여전히 가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은 결국 단가가 높고 위험한 자원이라 할 수 있어 주요 에너지원으로서 퇴조를 보이게 될 것이다. 새로운 다양한 에너지 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에는 에너지의 공급이 과잉상태가 되기도 하고 부족하거나 혹은 가격이 격심하게 변동하는 극단적인 사태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경우 그 방향은 분명하다. 하나의 에너지 자원에만 의존하는 문명으로부터 안전을 생각하고 많은 자원에 의지하는 문명으로 이행할 것이 틀림없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다시 한번 소모성 자원이 아닌 재생이 가능한 자원에 의지하는 문명으로 되돌아서는 방향을 취할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을 지탱하는 기술적인 기반도 또 지금보다도 훨씬 다양한 것이 될 것이다. 우주과학이나 해양학 이외에 생물학, 유전학, 전자공학, 재료과학 등이 그러한 기반을 제공한다. 한편 약간의 새로운 기술들은 고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겠지만 제3의 물결의 기술은 현재보다 적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적어도 현재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제3의 물결의 기술은 종래에 비하여 더욱 다양해지고 환경문제를 고려한 위험이 적은 것이 될 것이다. 그 대부분은 규모가 작고 조작이 간편하여 미리 어떤 산업의 폐기물이 다른 산업의 주원료로 재이용될 수 있도록 설계될 것이다. 제3의 물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원, 더군다나 절대로 고갈하지 않는 자원이 무엇가는 아직 공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완전히 알려져 있는 정보에 상상력을 더해야만 비로소 오늘의 유한한 자원의 대체물이 발견될 것이다. 단 이와같은 대체물의 발견은 또 극적인 경제 변동과 곤란을 몇 차례고 겪은 다음이 아니고서는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정보가 전에 없이 중요하게 됨과 동시에 새로운 문명은 교육을 개편하여 과학연구를 재정의하며 무엇보다도 정보전달을 위한 매체의 재편성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대중매체는 인쇄매체와 전자매체를 불문하고 커뮤니케이션 수요에 대응하여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방대한 정보량과 다양한 문화를 제공해 주기에는 아주 부적절하다. 제3의 물결문명에 있어서는 소수의 대중매체가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상호간에 작용하여 탈대중화한 매체에 의존하면서 사회의 의식흐름에 극도로 다양하고 때로는 고도로 개성적인 이미지를 공급해 주게 될 것이다. 먼 장래를 전망하면 텔레비전은 '비디오'에 그 자리를 양보하게 될 것이다. 즉 방송도 궁극적으로는 단 한 사람의 인간을 대상으로 영상을 보내게 된다. 또 이것저것 약품을 사용하여 뇌와 뇌 사이의 직접 통신을 시도하는 등, 현재로서는 아직 막연하다고 밖에 생각되고 있지 않은 전자화학적 커뮤니케이션 방식들이 실용화될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태는 여러가지 정치적, 도덕적 문제를 야기시킬 것에 틀림없다. 해결 불능은 아닐지라도 전대미문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고속 회전 테이프와 복잡한 냉각장치를 가진 거대한 중앙집중식 컴퓨터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컴퓨터는 각 가정, 병원, 호텔, 교통기관, 여러가지 기구, 혹은 모든 건축용 벽돌에 내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자공학적 환경이 문자 그대로 우리와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이 고도로 전자화된 정보사회로의 이행은 값비싼 에너지의 수요를 확대시킨다고 오해되고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이다. 또 이 사회의 컴퓨터화(정보화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는지도 모른다.)는 인간관계의 탈개성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장에서 지적하겠지만 인간은 여전히 서로 고통받고 울고 웃고 서로 즐기거나 놀거나 한다. 그러나 지금과는 전연 다른 상황 아래서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의 에너지 형태, 기술, 정보매체의 결합은 우리의 노동방식의 변화를 (지구상의 일정지역에서는 앞으로 몇십 년이고 공장건설이 계속될 것이다.) 제3의 물결적 공장은 여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장과는 전연 다른 것이 될 것이며 풍요한 나라들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수는 급속한 감소를 계속할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에 있어서 공장은 이제 다른 제도의 모델로서의 역할은 다할 수 없게 되며, 대량생산이라는 주된 기능도 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제3의 물결에 속하는 공장은 탈대량화된, 때로는 주문에 의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것은 전체적 생산, 프레스토 생산이라는 첨단 방법에 따르고 있다. 또 이 유형의 공장은 최종적으로는 에너지의 소비량도, 원료의 소비량도 줄어들게 되고 소수의 노동자들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계의 대부분이 노동자의 손으로 직접 움직어지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멀리 떨어진 소비자 자신의 손으로 움직여지는 것이다. 제3의 물결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제2의 물결의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가장 인간적인 노동이 되며 반복적인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도 적어질 것이다. 노동자는 컨베이어 벨트(conweyer belt)의 기계적인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맞출 필요는 없게 되며 기계가 발하는 소음도 낮아진다. 노동자는 자기가 편리한 시간에 출퇴근할 것이다. 작업의 현장 자체가 꽃이나 푸른 나무가 기계를 장식하는 등, 훨씬 인간적이고, 개성적인 것으로 될 것이다. 급료와 연금, 유급휴가, 건강보험 등의 부가급부의 통합도 일정한 범위내에서 점차로 각 개인의 선택에 맡겨지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의 공장은, 점차로 대도시권 밖에 건설될 것이다. 그 규모는 종래보다는 훨씬 작아지고 노동자도 소수의 단위로 나뉘어지며 높은 수준의 자주적인 관리를 하게 될 것이다. 공장뿐만 아니라 사무실도 현재와는 다른 것으로 될 것이다. 사무실에서 필수적인 종이는 실질적으로(완전히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존재가치를 잃는다. 타이프라이터를 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어 버린다. 서류를 넣는 캐비닛도 사라질 것이다. 비서의 역할도 달라진다. 전자기계로 인해 여태까지의 일의 대부분이 불필요하게 됨과 동시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기회를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서류가 잇달아 책상 위를 왔다갔다 하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더구나 그러한 결정을 지금보다 많은 인간들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미래의 공장이나 사무실이 제기능을 다하게 하기 위해서 제3의 물결의 기업에는 기계적으로 단순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보다 스스로 사물을 판단할 수 있고 임기응변적인 대응이 가능한 노동자가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종업원을 양성하기 위해 학교는 아직까지도 극단적인 반복적 작업으로 향하는 제2의 물결의 노동자를 배출하는 현재의 교육방법을 개선해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3의 물결문명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아마 일터가 사무실이나 공장으로부터 다시금 가정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이 가정에서 가능할 리는 없다. 그렇지도 않을 것이며,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값싼 커뮤니케이션이 값비싼 수송을 대신하게 되고 생산의 경우, 지능과 상상력이 차지하는 역할이 증대하고 비인간적인 집단 작업의 역할이 감소하는데 따라 제3의 물결 사회에서는 많은 수의 노동자가 적어도 일의 일부를 가정에서 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공장은 실제로 원료를 다루어야만 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의 일터로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제3의 물결문명의 조직구조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학자들 가운데는 정보의 중요성이 더해 감에 따라서 대학이 공장으로 대체되어 내일의 사회의 중심적인 조직이 된다고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자들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제시된 사고방법은 대학만이 학문적 지식을 보유할 수 있는, 혹은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 편협된 견해에 근거한 것이며, 학자 특유의 소망충족심리에서 나온 환상에 불과하다. 한편 다국적기업의 경영자들은 그들대로 기업의 임원실이야말로 내일의 사회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보관리자'라고 하는 새로운 전문직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컴퓨터실이 새로운 문명의 중추라고 믿고 있다. 또 과학자는 기업들의 연구기관에 주목하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소수의 히피들은 내일의 사회의 중심으로서 중세적 농업공동체의 재건을 꿈꾸고 있다. 그 밖에 레저 만능사회의 '오락장소'가 미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 자신의 생각은 지금까지 대략 이야기해 온 것으로서 짐작했으리라고 생각되나 지금 말한 것은 어느 것이나 미래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중심은 사실은 가정인 것이다. 필자는 제3의 물결문명에서는 가정이 매우 새롭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생산소비자의 출현, 가내전자근무체제의 보급, 기업에 있어서의 새로운 조직구조의 창조, 생산의 자동화와 탈대량화의 실현, 이것들은 모두 가정이 내일의 사회의 중심적 존재로서 다시금 부상되어 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가정은 현재의 기능을 일부 잃게 되겠지만 경제적으로나 또 의료, 교육, 사회 등의 면에서도 활발한 기능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정도 포함해 어떤 조직이건 과거에 교회나 공장이 했던 것과 같은 중심적인 역할을 연출한다는 것은 우선 불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말함은 미래의 사회는 새로운 제도에 근거한 수직형의 하이어랄키(hierarchy: 피라미드형의 계층조직)라기보다는 오히려 네트워크에 의해서 맺어지는 수평형의 조직으로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내일의 기업(혹은 내일의 '사회주의적 생산 조직')이 사회의 다른 조직 위에 군림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제3의 물결사회에서는 기업은 단순히 이윤이나 시장점유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는 복잡한 조직으로 변모할 것이다. 오늘의 경영자 대부분은 단 한 가지의 순수익만 생각하도록 교육받았지만, 제3의 물결의 경영자는 인간다운 노동, 환경의 보호 등, 경제외적인 면에도 끊임없이 다각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책임을 경영자 하나하나가 지게 된다는 것이다. 중역의 급여나 보너스는 점차로 기업의 다목적인 기능추구를 반영하게 된다. 기업이 자발적이건 강제이건간에 현재로서는 비경제적으로 생각되며 그 때문에 오히려 경제활동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생태학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인 요인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됨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져 갈 것이다. 제2의 물결의 효율의 개념은 보통 간접적 비용을 부과시킴으로써 소비자나 납세자에게 전가시키는 기업의 능력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러한 사고방식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경제적, 그 밖의 비용을 고려하도록 재정립된 것이다. 따라서 '경제우선사고'라는 제2의 물결의 경영자를 특정짓는 사고방식은 그 보편성을 상설할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의 기본원리들이 적용됨에 따라서 기업도 다른 많은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재편성을 경험하게 된다. 제3의 물결사회에서는 일의 리듬은 컨베이어 벨트의 템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매우 융통성을 지닌 탄력적인 것으로 된다. 또 제3의 물결사회는 제2의 물결사회 특유의 표준화가 사라지고 행동, 사고, 언어, 생활양식이 더욱 개별적으로되며 다양성을 갖게 된다. 제3의 물결사회는 인구, 에너지 흐름 등 여러가지 생활상의 특징들을 집중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분산시키고 탈집중화를 지향한다. 제3의 물결사회는 '큰 것은 좋은 것이다.'라는 전제하에 항상 최대규모를 지향해 온 제2의 물결사회와는 달리 오히려 '적정규모'라는 말이 더욱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3의 물결사회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사회가 아니라 제각기의 수준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회인 것이다. 이와같은 변화는 표준화된 구식 관료제도로부터의 확실한 결별이다. 기업, 정부, 학교,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새로운 조직의 양상이 출현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계급제도가 남아 있는 곳에서도 비교적 상하관계가 평준화되어 일시적인 것으로 될 것이다. 대부분의 새로운 조직에서는 '하나의 인간에게는 반드시 한 사람의 상사가 있다.'고 하는 옛날부터의 관례가 무시된다. 이러한 경향은 모두 일하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노동세계의 등장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회는 제3의 물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심각한 실업문제에 직면한다. 1950 년대 이후, 화이트칼라와 서비스업의 대대적인 증가가 축소를 계속해 온 제조업 부문에서 해고된 많은 노동자를 흡수해 왔다. 현재는 마침내 화이트칼라의 일까지 자동화되어 간다. 그러므로 종래와 같은 서비스업 부문의 확대가 계속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써 실업자를 완전히 흡수할 수 있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나라에 따라서는 고용의 숫자를 실제보다 늘리기도 하고, 관청이나 민간의 조직을 확대하고, 또는 잉여 노동자를 외국으로 내보내기도 하여 문제가 표면화됮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강구하더라도 제2의 물결경제의 범주 속에서는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이것은 필자가 '생산소비'의 출현이라고 불러온 앞으로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융합이라는 사태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의 도래와 더불어 교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소비하기 위한 생산이라는 사고방식에 근거한 경제활동으 부활이다. '시장화'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탄생하고 나서 300 년이나 지난 현재 이 극적인 방향전환은 실업이나 복지문제로부터 레저노동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문제에 있어 우리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또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 극적인 전환은 또 경제에 점하는 '가사노동'의 역할에 있어서도 종래와는 다른 평가를 가져온다. 또 거기에 수반하는 현상태로서는 여전히 가사노동자의 대부분을 겸하고 있는 주부의 역할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미래의 문명의 도래는 아직은 상상도 못할 숱한 문제를 안고는 있지만 지상을 석권한 '시장화'라는 강한 물결의 벽에 부딪쳐 있는 것이다. 한편 제3의 물결의 사람들은 자연, 진보, 진화, 시간, 사물, 공간, 인과 관계 등에 있어 새로운 발상을 하기에 이를 것이다. 그들의 사고는 기계적으로 모든 것을 유추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에는 전연 영향받지 않게 되며, 프로세스(process), 피드백(feedback), 불균형이라는 개념을 구사하여 사물을 생각해 나간다. 그들은 연속상태로부터 직접 발생하는 불연속 상태라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많은 종교, 과학에 관한 새로운 개념,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미지,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산업주의 시대에 생겨난 것, 또는 산업주의 시대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있던 것에 비해 훨씬 풍부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생겨나는 가치관의 다양한 문화는 새롭게 형성된 잡단분규의 해결의 새로운 규칙이 개발되기까지는 혼란속에서 격심한 분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법체계는 별로 정확치 못한 자로서 가치관이 더욱 다양화해 가는 사회에서는 전연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성격이 다양화해 가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과 관련성이 있다. 국가는 여태까지 규격화를 강요해 온 가장 강력한 존재였다. 제3의 물결문명은 권력의 분산이라는 새로운 원칙을 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현재와 같은 국가는 종전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반면에 예를 들면 초국가기업에서부터 자치권을 가진 주민 조직, 또는 고대의 그리스와 비슷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국가 이외의 조직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전국적인 시장이나 경제가 세분화되어 감에 따라 지역이라는 것이 커다란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어떤 지역에서는 현재 이미 과거시대의 전국적인 시장이나 경제보다 규모가 큰 것이 있다. 새로운 협조관계는 가까운 곳끼리 이루어진다기보다는 공통의 문화, 환경, 종교, 경제적 유사성에 의해 새로운 동맹관계가 맺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북아메리카의 한 지역이 유럽이나 일본의 어느 지역과 경우에 따라서는 중앙정부와의 연관성보다 더 깊은 관계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가 하나로 정리되어 통일적인 세계정부가 성립된다는 것은 아니고, 국경을 초월한 새로운 조직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성립된다고 하는 것이다. 부유한 나라들을 제외한 세계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비산업화 지역도 맹목적으로 제2의 물결사회를 모방하거나 제1의 물결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단으로써 빈곤과 싸워나가게 될 것이다. 지역의 독자적인 종교적, 문화적 성격을 고려하여 미래의 충격을 될 수 있는 한 줄이려는 의도에서 아주 새로운 '개발전략'이 출현할 것이다. 앞으로는 많은 나라들이 산업화한 영국, 독일, 미국, 소련의 현상 등을 모방하려 하여 스스로의 종교적 전통, 가족구조, 사회생활을 사정없이 파괴해 버리는 것을 피하고 많은 나라들이 제1의 물결사회의 특징이 있는 면과 현재 제3의 물결을 맞은 나라들에서(고도의 기술에 의거해서) 재등장하고 있는 특징과의 사이에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토대로 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 나갈 것이다. 프렉토피아의 개념 지금까지 보아 온 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활양식의 윤곽이며, 그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지구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에 그 스케치를 보인 새로운 문명은 아무래도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내부에는 중대한 문제들일 소용돌이치고 있으며, 그런 문제들 중 몇 가지는 남은 페이지에서 규명하게 될 것이다. 그런 문제들 속에는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가 있고 그 밖에 정치문제, 정의, 평등, 도덕을 둘러싼 문제, 혹은 새로운 경제(특히 고용과 복지와 생산소비 활동과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그 외에 차례차례로 발생하게 될 문제도 포함하여 거기에 맞서는 우리의 정열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제3의 물결문명은 결코 '반유토피아'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지 오웰의 유명한 '1984 년'의 과장된 세계도 아니며 올더스 헉슬리의 "멋있는 신세계: Brawe New World"가 현실로 타난 것도 아니다. 이들 유니크한 두 권의 저서에서는, 거기에 촉발된 많은 추리적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미래는 고도로 집중화도니 사회, 관료화되고 표준화된 사회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개인차도, 아무 것도 없어지고 있다. 확실히 제3의 물결은 환경문제의 위협, 핵 테러의 위협과 전자공학적 파시즘에 이르기까지 인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동반하고 있는데 그 본질은 산업주의의 악몽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유토피아는 아니고 '프렉토피아(practopia)'라고나 불러야 할 세계이다. 그것은 상상이 가능한 세계 중 최고도 아니며 최저도 아니다. 우리의 현상 보다는 실용적이고 바람직한 세계일 것이다. 프렉토피아는 유토피아와는 달라서 질병이나 정치적 부패나 악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또 대부분의 유토피아와는 달리 프렉토피아는 상상 속의 완전상태에 정지되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옛날의 상상속의 '유토피아'를 모델로 한 단순한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프랙토피아는 유토피아를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악의 결정을 구체화하고 있는 사회라는 말도 아니다. 철저하게 반민주적인 사회도 아니며 본질적으로 호전적인 사회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민을 개성이 없는 허깨비로 바꾸어 버리는 것도 아니며 이웃과의 교제를 묵살하거나 환경을 파괴하거나 하는 것도 아닌 아니다. 요컨대 프랙토피아는 긍정적이고 혁명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현재의 사회와는 다른 질서와 가치관을 가진 사회인데, 실제로 실현이 가능한 사회인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은 이런 의미에서 진실로 프랙토피아적 미래이다. 그곳에서 들여다 보이는 문명은 개인차를 인정하고 있으며 인종적 또는 지역적, 종교적 다양성이나 소문화별 다양성을 억압하려 들지 않는 포용하는 문명을 엿볼 수 있다. 이 문명은 어느 정도까지 가정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하려 구축된다. 그것은 호박 속에 처박힌 문명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혁신과 함께 약동하면서도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아늑한 장소를 제공할 수도 있는 문명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시장화함으로써 정열의 대부분을 쏟는 문명은 아니다. 거기에서는위대한 정열을 예술에 바칠 수가 있다. 유전학의 발달에 의해서 진화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결정할 것인가 하는, 여태까지는 없었던 역사적인 선택에도 직면할 것이다. 그런 복잡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새로운 윤리적, 도덕적인 기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문명의 성격은 결국은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것으로서 생물영역과 훌륭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세계의다른 나라들이 제공하는 자원개발을 위한 보조금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문명이다. 프랙토피아의 실현은 어려움이 따르기는 하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늘의 변화는 이것저것이 모여서 크게 합류를 해 나가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까지의 문명과는 반대방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대에 점차 뒤떨어져 실행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산업주의 체제와는 역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프랙토피아에로의 방향이다. 잘못된 질문 왜 이와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왜 낡은 제2의 물결이 갑자기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왜 이 새로운 문명의 조류가 낡은 문명의 조류와 충돌하게 된 것일까?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산업혁명으로부터 300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역사학자는 산업혁명을 일으킨 '원인'을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의 길드(guild)라고도 해야 할 학회나 여러가지 철학의 학파들은 제각기 자신에게 유리한 설명을 하고 있다.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증기기관의 발명에 의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생태학자는 영국의 삼림이 황폐한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자는 양털가격의 불안정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 밖에 종교적, 문화적인 변화, 즉 루터나 칼뱅의 종교개혁이나 디드로나 볼테르에 의한 계몽주의가 그 원인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의 세계에서도 상호관계가 있는 대부분의 원인을 지적할 수가 있다. 전문가인 하가는 한정이 있는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의 증대, 세계적인 인구의 급증, 지구의 오염에 대한 공포심 등이 세계적인 구조 변화 이후의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과 그 다음에 생겨난 사회적, 정치적인 변화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비산업세계의 각성과 이에 따른 정치적인 변동이 싼 에너지와 원료를 확보해 온 우리의 생명선을 위협하게 된 원인이라고도 말한다. 성의 혁명, 1960 년대의 청소년들의 격동, 그리고 노동자의 일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 가치관의 급속한 변화를 원인으로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어떤 종류의 기술적인 발전을 가속화시킨 군비확장경쟁을 원인으로 지적할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종교개혁과 계몽운동을 합친 것만큼 심각한 현대의 문화적, 인식론적인 변화 속에 제3의 물결의 원인을 탐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분명한 것은 수많은 변화의 흐름이 하나로 합류되고 그것들이 상호간에 관계를 유지하면서 제3의 물결의 원인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 사회체제 속에서 놀랄 만큼 긍정적인 피드백의 고리들이 특정한 변화들을 광범위하게 증폭시키며 또한 부정적인 고리들은 다른 변화들을 억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격심한 변동의 시대에는 일리야 프리고기네 등의 과학자가 말하는 '도약현상'과 흡사한 현상도 보게 된다. 즉,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어느 부분이 무언가의 박자로 갑자기 복잡하고 다양성이 풍부한 아주 새로운 수준에 도달하는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제3의 물결의 방아쇠를 당긴 원인이 하나의 독립된 사향인가, 그렇지 않으면 일련의 연쇄적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상 특정의 원인을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질문방법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러한 질문 그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 제3의 물결의 원인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 자체가 모두 제2의 물결적 질문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했다고 하여 특별히 인과관계를 무시한다는 말은 아니고 그 복잡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 그것은 제3의 물결의 도래가 역사의 필연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확실히 제2의 물결은 무너지고 그 기능을 잃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 그대로 여기서 말하는 제3의 물결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의 힘이 작용하면 앞날의 전망이 완전히 변해 버리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경제적 붕괴, 환경의 파괴 등, 그러한 요인은 일일이 다 들 수 없을 정도이다. 그 누구도 최근의 역사적인 변화의 물결을 제어할 수는 없으며 필연과 우연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변화의 과저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의 피드백이 변화를 가속시키기도 하고 변화를 확대하기도 한다고 말했는데, 만일 이 말이 옳다고 한다면 체제에 약간의 '자극'만 주어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수도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혹은 정부로서 내리게 되는 결정은 격심한 변화의 물결을 비켜 가게 하거나 다른 데로 돌리거나 또는 일정 방향으로 유도하게도 하는 힘이 있다. 제2의 물결의 옹호자와 제3의 물결의 지지자가 대결하는 대투쟁에서 제기되는 도전에 대해서는 각양각색으로 다른 반응이 있을 것이다. 소련인은 소련인 나름대로의 반응을 보이고 미국인에게는 미국인다운 반응이 있다. 독일인, 프랑스인, 일본인, 노르웨이인도 역시 각기 그 나름대로의 반응이 다를 것이며 각국은 점점 비슷해지기보다는 오히려 상호간에 지금보다 개성적인 특색을 갖게 된다고 생각된다. 한 나라에서 국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기업, 학교, 교회, 병원 혹은 지역사회 속에서 자그만 변화가 커다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어떤 시대가 찾아오건 인간의 존재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미리 정해진 길을 자동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온갖 대립의 결과로 결정되어지기 때문이다. 기술선진국에서는 어느 곳이든 국내의 낙후지역이 필사적인 산업화를 달성하려고 노력한 공장을 기반으로 하는 직종을 보호하려고 하는 힘이 강하다. 그 결과 이미 기술의 기반을 제3의 물결에 둔 월등히 진보된 지역과 정면에서 충돌하게 된다. 이러한 충돌에 의해서 사회를 분열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 정치나 경제가 효율화하기 위한 기회를 열게도 되는 것이다. 현재 모든 사회에서 진행중인 제2의 물결에 속하는 사람들과 제3의 물결에 속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의 대투쟁은 그 이외의 싸움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계급투쟁, 인종을 둘러싼 대립, 필자가 말하는 이른바 '중년제국주의'에 대한 젊은이와 고령자의 반항, 그 밖에 지역, 성, 종교의 나름에 대한 대립 등, 이들 모든 투쟁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중 일부는 앞으로 다시금 치열함을 더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투쟁은 결국 제2의 물결과 제3의 물결과의 대투쟁으로 부터 파생된 부수적인 투쟁에 불과하다. 우리의 장래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투쟁밖에 있을 수 없다. 한편 제3의 물결의 굉음이 귀에 들려 음에 따라 두 가지 현상이 사회의 모든 면에 드러나고 있다. 그 하나는 사회가 다시금 고도의 다양화로 길을 걸어나간다고 하는 변화, 즉 대중사회의 탈대중화이다. 또 하나는 가속현상으로서 역사의 변화는 다시금 그 속도를 더해 가게 될 것이다. 이 두가지의 경향이 일체가 되어 비상한 긴장을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강화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우리의 주위에서 전개되는 대투쟁은 더욱 치열하게 되어 간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여태까지 다양성이 부족한, 느릿느릿한 변화에만 숙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자기들의 고도의 다양성과 빠른 속도의 변화에 대응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에 따른 압력이 그들에게 판단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 결과 미래의 충격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새로운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와 우리들의 조직을 변화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개조해 나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실행이 가능하고 인간성이 풍부한 미래에 도달하기 위한 통행료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라나 필요한 변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중요한 문제를 신선한 눈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우리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이 전연 논의를 하지 않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인간성은 미래에 어찌되어 갈 것인가. 정치는 미래에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가. 우리는 다음 장에서 그러한 문제를 다루기로 하자. (결론) 제25장 새로운 정신체계 새로운 문명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이 문명에 적응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기술혁신이나 사회변혁의 물결 속에서는 우정, 사랑, 헌신, 공동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같은 것은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전자공학의 경이적인 발달에 의해 인간관계는 현재보다도 더 각박해지고 간접적인 것이 되지 않을까? 이와 같은 질문은 반드시 엉뚱하다고만을 할 수 없다. 공포심을 품게 되면 당연히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천진난만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현대는 심리적 좌절의 시대이며 마음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공통된 정신영역에 폭탄이 투하되어 그것이 작렬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우리는 제2의 물결이 기술영역, 정보영역, 사회영역의 붕괴뿐 아니라 정신영역의 파탄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의 자살증가, 알콜 중독의 급증, 우울증의 만연, 파괴행위, 범죄 등의 문제는 풍요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미국에서는 노이로제는 물론이고 마리화나 환자, 스피드(speed)광, 코카인(cocaine) 중독자, 헤로인(heroin) 중독자 등으로 병원이 만원을 이루고 있다. 어디서나 사회사업과 정신건강산업이 크게 번성하고 있다. 워싱턴의 정신건강에 관한 대통령 자문위원회는 미국국민이 적어도 4 명에 1 명은 어떤 형태의 중증 스트레스 환자라고 발표하고 있다. 또 국립정신 보건연구소의 심리학자는 가족 중에 어떤 증상이든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집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혼란을 일으키고, 분열을 일으키며 미래에 불안을 안겨 주는 미국사회에는 심리적인 동요가 만연되고 있다.' 정신병의 정의 그 자체가 애매하거나 통계작성방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략적인 논의에는 의문이 있게 마련이며 옛날이 현재보다 정신적으로 더 건전했다는 것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은 초조하고 면도날처럼 예리하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지하철이나 주유소에 줄은 이은 행렬에서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하고 권총 총격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보여주듯이 사람들의 감정은 일촉즉발의 상태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폭발직전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마약환자, 광인, 변질자, 기행으로 치닫는 사람, 노이로제 환자 등이 증가일로에 있다. 더구나 그들이 반사회적 행동을 매스컴이 미화하는 일도 있는 실정이다. 적어도 서구에서는 광기에 대하여 로맨틱한 동경심 같은 것을 품고 있으며 '뻐꾸기 둥지' 즉 정신병동에 사는 사람을 미화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광기를 신화화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는 '미치광이는 천재나 성자 모두 동일한 영역에 속하므로 동일한 명칭과 명성이주어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문학잡지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런 한편에서 자기자신을 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미친 듯이 마음의 지주를 찾고 있다. 필사적으로 인간성의 회복을 목표로 즉흥적인 친밀감이나 황홀감을 제공해 주고 '들뜬' 의식상태로 이꿀어 줄 그 어떤 마법적인 심리용법에 뛰어들고 있다. 1970 년대 후반에는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운동이 일어나 정신분석이라든가, 동양전래의 신비적인 종교라든가 성적 실험, 유희용법, 옛날식 신앙부흥운동 등 이것저것 뒤섞인 8000종류에 이르는 치료법이 킬리포니아를 진원지로 하여 동으로 확산되어 갔다. 어느 평론가의 조사에 따르면 이런 심리요법은 '정신영역(Mind Dynamics)이라든가 아리카(Arica)요법, 실바 마인드 콘트롤(Silva Mind Control) 등의 그럴 듯한 이름을 내걸고 서해안에서 동해안에 이르기까지 전미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초월적 명상법(Transcendental Meditation)이라는 것도 이미 상당한 속도로 퍼지고 있었고 출생 이전의 개인경험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비과학적인 성격론에 바탕을 둔 정신위생공학이라는 것도 1950 년대부터 대중에 침투하기 시작하여 유행요법이 되었다. 동시에 미국에서는 신흥종교가 융성하여 대대적으로 자금을 모으거나 열심히 회원을 권유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인간이 지닌 잠재력의 개발을 간판으로 내건 사업보다도 더 주목할 것에 그리스도교의 복음운동을 들 수 있다. 대상을 저학력, 저소득층으로 좁혀서 고성능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이용한 '다시 태어나자' 운동은 급속히 그 규모를 확대시키고 있다. 종교는 파는 거리의 상인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들 종교 운동가들은 이 세상이 퇴폐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묘사하면서 추종자들을 마구 신앙으로 몰아대고 있다. 공업기술에 지배된 사회전역을 이 병적인 물결이 똑같은 히미으로 덮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유럽 등지의 독자가 보면, 이것은 분명 미국적 현상이라고 말하게 되고, 당사국인 미국내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의 유별난 자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고 보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어느 것이나 옳다고 할 수 없다. 미국에서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정신적 고뇌나 붕괴가 다른 지역보다 현저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제3의 물결이 다른 지역보다도 조금 빨리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며 제2의 물결적 사회구조의 붕괴가 다른 곳보다 빨리, 대대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미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일조의 편집광 환자가 늘고 있다. 로마에서도, 트리노에서도 테러리스트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파리나 전에는 평화스런 거리였던 런던에서도 노상강도의 문화파괴행위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시카고에서는 중년의 사람은 어두워지면 위험을 느끼고 횐자서 거리에 나서지 않는다. 뉴욕에서는 학교나 지하철 속에서의 폭력사건이 난무한다. 또 캘리포니아의 이야기가 되는데 잡지에서 호신용 권총술이나 개 훈련법, 도난 경보기, 호신술, 호신구, 컴퓨터를 이용한 경비체게 등의 실용기사를 특집으로 내고 있다. 공기 속에 질병의 냄새가 물씬거린다. 제2의 물결문명이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고독에 대한 도전 다가올 내일의 문명을 맞이할 보람있는 정서생활과 건전한 정신적 영역을 창조하려면 인간은 누구나 세 가지 기본적인 필요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귀속의식과 세상의 구조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인생의 의미에 대한 파악이라는 세 조건이다. 제2의 물결이 가져 온 사회의 붕괴에 의해서 이 세 가지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로부터 우리 자신 및 우리의 자손을 위해 보다 건전한 정신적 환경르 설계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첫째, 건전한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공동체 의식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테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귀속의식을 준다. 그런데 현대와 같이 공업기술 일변도의 사회가 되자 공동체를 성립시켜 온 제도가 계속 무너져 간다. 그 결과 고독이라는 이름의 벼이 만연되어 버렸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레닌그라드까지 온 세계의 도시에서 10 대의 청소년, 결혼생활이 원만치 못한 부부, 극히 평범한 노동자, 노인 등등 모든 사람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고독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부모는 자녀들이 너무 분주해서 발길을 끊고 전화마저 걸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혼자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자동화된 공중세탁소에서 동전을 넣고 빨래를 하는 고독한 이방인들은 어느 사회학자가 말했듯이 '영원히 고독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듯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독신자 전용 클럽이나 디스코장은 이혼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육체시장이 되어 있다. 고독은 경제의 요인으로서는 무시당하고 있다. 그러나 중상류층에 속하는 가정주부들은 교외의 자택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생활에 스며드는 허무감을 견더내지 못하고 대거 직업을 구해 일에 의해서 정신의 안정을 얻으려 하고 있다.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가득히 애완동물식품을 사들이고 있는가? 여행이 유행하고 연주나 영화 등 레저산업이 번성하는 것도 고독과 같은 관계가 있다. 마약이 널리 퍼지는 것도, 사람들이 패기가 없는 것도,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고독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편으로 고독한 사람들에게 신뢰할 만한 상대자를 알선한다는 결혼상담소 등 고독한 마음을 이용한 사업이 번창한다. 고독에 의한 정신적 고통은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독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에 역설적인 말이기 하지만 고독이야말로 현대인 공통의 체험이 되고 공통의 화제가 된다. 공동체는 정서적으로 만족스러운 개인들간의 유대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현대인은 타인과의 우정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속하는 제도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이싸. 사람들은 자기가 존중하고 충성을 맹세하며 애정을 기울일 만한 제도를 갈망하고 있다. 기업이 그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업은 너무 비대해져서 인간미를상실하여 버렸고, 일은 세분되어 종업원이 공통의 사명감이 남아 있지 않다. 거기에는 벌써 공동체 의식이 없다. 애사심이라는 말 자체가 따분하게 들리게 되어 버렸다. 실제로 애사심이란 말 자체가 따분하게 들리게 되어 버렸다. 실제로 애사심이란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대기업을 소재로 한 플레처 네벨의 대중소설 (보텀라인(The Bottom Line))의 여주인공은 회사간부인 남편에게 대든다. '애사심이라구요? 그런 말을 들으면 구역질이 나요.' 종신고용제를 택하고 회사의 온정주의가 아직도 존재하는 일본을 제외하고 (일본에서도 노동인구에서 차지하는 종신고용 인구의 비율은 저하되고 있다.) 직무를 통한 인간관계는 더욱 더 일시적인 것이 되어가고 정신적으로도 불만족스러운 경향을 볼 수 있다. 매년 피크닉을 가거나 회사비용으로 볼링대회를 열거나 직장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개최하여 인간관계를 두텁게 하려고 해도 직무상의 어울림이란 정을 느낄수 없어 표면적인 것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에는 자기보다 큰 것, 자기보다 훌륭한 것에 대해 소속감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때로는 생사와 관계되는 위기라든가 비상사태, 재해, 집단에 의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이같은 따뜻한 참여의식이 저절로 발생하는 경우는 있다. 예를 들면 1960 년대의 대규모 학생 운동이 일어 났을 때 학생 사이에 따뜻한 공동체의식이 생겼다. 오늘날에는 반핵 데모에 참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의식이 싹트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도,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맛본 연대감도 모두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어 그것을 추구하더라도 충족되는 일은 거의 없다. 현대사회가 극도로 다양화하고 있는 것도 고독감이 만연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대중화의 시대는 끝나고 사람들은 공통점보다도 서로 다른 점을 강조하게 되었다. 개성르 발휘하기 쉬운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시킬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인간적인 접촉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성을 주장하게 되자, 같은 흥미나 가치관을 가지고 같은 스케줄로 생활하며 기호가 일치하는 상대가 연인을 찾는 일이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다.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도 어려워진다. 그 결과 어디에서나 인간관계가 험악해져서 마침내 인간관계가 단절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획일화된 대중사회가 붕괴되면 사람들은 자기의 기호에 맞는 생활태도를 선택하게 되는 반면, 적어도 현재로서는 고독의 괴로움이 일반화하게 된다. 다가올 제3의 물결사회를 얼음처럼 차갑고 정신적으로 공허한 사회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정면에서 대처해야 한다. 공동체의 사회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기서도 역시 고독이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2의 물결의 여러 제도가 붕괴되느 데서 나온 사회문제라고 인식하기만 하면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얼마든지 있다. 먼저 공동체의 원점으로서의 가정을 재평가해야 한다. 상실한 가정의 기능을 부활하고 확대해야 한다. 산업혁명이래 우리는 가족의 노령자에 대한 부양책임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이제는 이 책임을 부분적으로 부활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공적인 연금제도 또는 기업에 의한 연금제도 등을 모두 중단하고 옛날처럼 가족이 전적으로 노인을 보살펴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노인을 모시는 가족에게 세제상의 혜택을 강구하는 등, 보상시책을 취할 수는 없을까? 노인을 인간미가 결여되기 쉬운 양로원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직접 보살피는 핵가족 이외의 새로운 가족형태를 강구할 수는 없을까? 세대를 초월하여 가족의 정을 강화하여 의좋게 살아가는 대가족은 경제적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혜택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이러한 원칙은 가정 이외의 기능으로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정은 청소년 교육장으로서도 소극적이어야 할 까닭이 없고, 더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가정에서 자기 자녀를 교육하려고 하는 부모는 의무교육법의 위반자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오히려 원조를 받아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맡겨 버리지만 말고 학교 교육에 관해서도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학교도 소속감을 기르기 위한 여러가지 가능성을 지닌 장소가 될 수 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적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급 전체, 또는 그 학급내의 그룹이 전체적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느냐의 여부도 감안하여 성적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자녀들은 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명확하게 배울 수 있다. 아직도 조금만 더 연구한다면 상상력이 풍부한 교육자일 경우,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교육법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기업도 또한 인간적 유대를 구축하기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 제3의 물결의 생산체제는 탈중앙집권화가 가능해져서 보다 규모가 작고, 보다 인간적인 사업단위가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창의적인 기업에서는 종업원 그룹이 작은 회사나 협동조합을 만들어 특정한 일을 직접 계약을 함으로써 노동자의 사기를 높여 소속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체를 이처럼 소규모의 자주관리 단위로 재편성하는 것은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다.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의 부편집장인 노먼 마크레이는 '함께 일하기로 뜻을 모은 6--17 명 정도의 친구들이 준 자치적인 팀을 구성하여 시장요인에 따라 생산모델벼로 생산단위당 임금이 얼마나 지급될 것인지를 알려주고 나서 거래처에서 주문을 받아 상품을 생산하다. 이윽고 자기들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 자주적으로 생산하도록 한다.'는 생산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마크레이는 또 이렇게 말을 잇고 있다. '우정으로 맺어진 좋은 그룹을 조직하여 협동조합으로 성공하면 사회에도 바람직한 일이며 장려금을 주거나 세제상의 혜택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 제도가 특히 재미있는 것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회사조직 속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협동 조합이 생기거나 반대로 또 사회주의 생산체제 밑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한 회사가 설립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은 퇴직제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고령 노동자를 일거에 기업에서 몰아내는 일은 그 사람으로부터 고정수입을 빼앗고,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던 생산적인 역할을 박탈할 뿐 아니라 갖가지 사회적인 유대를 단절해 버리는 일도 된다. 일단 회사를 퇴직한 사람들이 일손이 부족한 사회복지 등 공동체의 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좀더 단계적인 퇴직제도는 고려할 수 없을까? 이 경우 임금은 약간 지급하기로 해도 되며 봉사활동에 참여한다는 식으로 그들의 봉사를 받아도 될 것이다. 퇴직한 사람들을 젊은 사람들과 활발히 접촉하게 하는 것도, 반대로 젊은 사람들 쪽에서 퇴직한 사람들을 접촉하는 것도 공동체를 육성하는 유익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각 공동체가 고령자를 '보조교원' 또는 '생활지도원'으로 임명하고 지역학교에 초청하여 전문적 기능을 살린 기술지도 등을 하게 해도 좋을 것이다. 이 경우,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좋고 순전한 봉사활동도 좋다. 또 학생 쪽이 정기적으로 노인의 집을 찾아가 지도를 받게 해도 무방하다. 학교의 지도나 감독 밑에 사진가는 사진기술을 가르치고, 자동차 정비공은 다루기 힘든 엔진수리를 가르치고, 경리는 부기법을 가르친다는 식이다. 그러는 가운데 대부분의 겨우 스승과 제자간의 따뜻한 인간관계가 싹트는 것이며 그것은 단순한 기술 지도를 초월한 성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별로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구조가 급격히 붕괴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고독하다는 것이 특별히 수치스로운 일도 아니다. 런던의 유태계 신문 (주위쉬 크로니클: Jewish Chioonicle)에 이런 투서가 게재된 일이 있다. '이성과 만나기를 원하여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나가는 것은 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이 그렇지 않을까?' 이와 같은 혼자 사는 사람이 모이는 바나 디스코장이나 휴일의 행락지 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이 투서는 동유럽의 유태인촌에서 셔드칸(shadchan)이라 불리는 중매인의 존재를 소개하고 있다. 셔드칸은 적령기의 남녀가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게 중매를 선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런 데이트 중매나 결혼상담과 같은 일을 하는 중매업은 오늘날에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투서는 지적하고 있다. '남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필요하다고 거리낌없이 말하여 사람들과의 접촉을 청하고 사회와의 연관을 요구해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다. 고독한 사람들이 품위있는 방법으로 만남을 갖도록 도와주려면 신구식의 갖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 지금도 잡지의 (외로운 연인)이라는 광고에 의존해서 친구나 평생의 반려자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안 있으면 각 지방이나 이웃 마을의 유선 TV가 결혼을 희망하는 남녀의 프로필을 비디오로 소개하여 서로 데이트 시대를 고르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 높은 시청률을 올릴 것이다.) 이런 서비스는 연인이나 장래의 결혼상대자를 로맨틱한 만남에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사회가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공정하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상담소를 만들어 이용하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정보화 시대의 공동체 장기적 사회정책의 수준에서 보면 앞으로의 공동체는 정보화 시대에 적응한 공동체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통근제도와 고도의 이동성이 사회를 붕괴시키는 임팩트(inpact)에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래의 충격'에서 이미 상세히 기술했으므로 여기서 다시 논의를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제3의 물결의 시대에 공동체의식을 부활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하는 핵심적 조치는 교통이 수행해 온 역할을 어디까지 통신수단의 발달에 떠맡길수 있느냐이다. 컴퓨터나 통신망의 발달에 의해서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접촉이 줄어들고 인간관계가 희박해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소박하고 천진스런 염려에 불과하다.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짙다. 사무실이나 공장에서의 인간관계는 희박해지더라도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새로운 기술의 발달에 이해서 강화될 것이다. 컴퓨터와 통신망은 공동체의 조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컴퓨터와 통신망은 무엇보다도 먼저 많은 사람들을 통그에서 해방시킨다. 통근은 원심분리기와 같이 매일 아침 우리를 몰아내고 사업상의 표면적인 교제에 몰아넣음으로써 가정이나 지역사회라는 중요한 인간관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새로운 기술발달에 의해서 사람들이 집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적어도 자택곁에 있는 작업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 가족의 유대가 강화된다. 더 따뜻하고 마음이 통하는 인간관계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교제도 친밀하고 아기자기한 공동체 생활을 가능케 해줄 것이다. 전자근무주택이 미래의 비지니스의 특징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엄마와 아빠의 작업장이 된다. 이미 서술했듯이 자년들과 그 곳에서 함께 일하게 되고 가족단위의 협동직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 이외의 사람도 가담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부부가 장시간 집에서 함께 일한다고 해서 저녁 때 둘이서 외출할 생각마저 없어져 버릴 리는 없다. (현재가 오히려 통근에 지쳐서 집에 돌아가면 기진맥진하여 외출할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통신의 발달에 의해서 통근의 필요성이 없어지면 레스토랑이나 극장, 술집 등도 마을 주변에 크게 늘어 날 것이다. 교회 외에도 갖가지 자주적인 활동 그룹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이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성립된다. 그렇다고 해서 간접적인 인간관계가 모두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단순히 간접적인 것이 아닌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인간관계에 있다. 부끄럼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든가 병약하여 집안에만 있는 사람, 집을 비우지 못하는 사람, 사람을 마나 이야기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정보체계의 전자기기를 상요하여 같은 성향의 사람과 서로 깉이 교류할 수 있다. 다이얼을 돌리면 즈깃 연결되어 장기 친구들과 장기를 즐길수도 있으며 우표수집가, 시 애호가, 스포츠 팬 등 각각 동호인끼리 전자기기를 활요한 교류를 심화시킬 수 있게 된다. 통신도 응용방법에 따라서는 정보화가 진전된 공동체 형성이라는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 요컨대 제3의 물결문명을 쌓아감에 있어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요소보다도 공동체를 뒷받침하고 발전시키는 요인이 많다는 사실이다. 헤로인 중독 구조 공동체의 재건은 커다란 흐름 속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제2의 물결제도가 붕괴됨에 따라 우리 인생의 구조나 의미도 붕괴되어 버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은 착실한 생활의 구조를 필요로 하고 있다. 포괄적인 구조를 갖지 못한 인생은 정처없는 난파선과도 같다. 구조의 부재는 와해되는 법이다. 구조란 일반적으로 기준이 되는 좌표축을 가지고 있다. 회사난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것이 급료 이상으로 심리적인 지주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직장은 사람들이 바쳐야 할 시간과 정력의 요구량을 명확히 해줌으로써 생활의 나머지 부분을 조직할수 있는 일종의 구조를 제시해 주고 있다. 유아에 대한 부모의 조건없는 헌신, 병자를 간호하는 책임, 교회신도가 지켜야 할 엄격한 규율, 또 나라에 따라서는 정당의 당원이 따라야 할 통제, 이것도 역시 인생의 기본구조가 될 수 있다. 인생의 구조를 상실한 젊은이 중에는 그것을 마약해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심리학자 로로 메이에 따르면 '헤로인 중독은 젊은이에게 하나의 생활태도를 제시하게 된다. 목적의식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끊임없이 괴로워하던 젊은이가 헤로인을 상용하기 시작하면 경찰관의 눈을 어떻게 피해야 될까, 필요한 돈을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는가, 다음에는 약을 어디서 구해야 하느냐 등 정력을 쏟을 대상을 헤로인에 의해서 찾아낸다. 구조를 상실했던 세계가 일변하는 것이다.' 제2의 물결시대에는 핵가족 기타 사회적으로 부과된 스케줄, 분명한 역할 분담, 상하관계가 명료한 사회적 지위, 더구나 이해하기 쉬운 위에서 밑으로의 권위주의적인 일의 흐룸 등 이러한 모든 요소가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 그 나름대로 인생구조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 제2의 물결은 붕괴되고 사람들은 인새의 구조를 상실해 버렸다. 제3의 물결에 의한 제도는 아직 새 시대의 기주가 될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의존할 명확한 질서의 결여을 경험하고 잇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좌절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처럼 생활구조가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질서의 상실과 더불어 인생의 의미상실을 들 수 있다. 인간은 가족, 회사, 교회 또는 정당 등, 주변의 사회와 조화를 유지하고 건전한 관계에 있을 때에 비로소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또 자기보다 큰 것, 우주적인 질서 속에 위치해 있는 것을 확인해야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급격한 사회적 기반의 변동이 현대를 혼란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역할분담이나 사회적 지위가 불명확해지고 권위가 실추되고 순간영상 문화가 생활에 끼어들어 특히 사고체계가 바뀌었다. 그리고 산업을 중심으로 한 현실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등 우리 대다수 인간의 두뇌에 다져져 있던 세계관이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의 세상이 혼돈 속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인은 무력하다는 의식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방향을 잃고 있다. 고독도, 인생의 구조의 붕괴도, 인생의 의미상실도, 모든 것은 산업문명의 쇠퇴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그렇게 파악해야 비로소 현재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수수께끼같은 사회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이한 현상 속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의 하나가 신흥종교의 놀라운 성장이다. 신흥종교의 비결 제2의 물결체계의 붕괴가 진행되면서 그 간격에 무수한 신흥종교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사람이, 하고 생각되는 학력과, 사회적 지위도 상당한 사람들이 신흥종교의 신자가 되어 있다. '인민사원'의 종주, 짐 존스와 같은 사람이 수많은 신자들을 가나에서 집단자살로까지 몰고 간 그 절대적인 통제력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현재 미국에는 대략 1000여개의 신흥종교가 있으며 추종자는 약 300 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교적 큰 교단으로서는 '통일교회(Unifucation Church), 신광 전도회(Diwine Light Mission),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an), 하나님의 길' 등을 들 수 있고 각각 주요도시에 사원이라든가 지부를 설치하고 있다. 그 중 문선명의 통일교회만 하더라도 신도수가 6 만^36,36^8 만에 달하고 뉴욕에서 일간지를 발행하고 있는 외에 버지니아주에서는 생선통조림 공장을 경영하고 있고 몇몇 기업을 산하게 두고 활동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이 종파의 사람들이 익숙한 솜씨로 떠들썩하게 자금을 모금하는 모습도 이제는 눈에 익은 풍경이 되었다. 이와 같은 집단은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에서는 윈터쓰루(Winterthur)의 '신광전도센터'를 둘렸고 센세이셔널한 재판사태가 벌어져 국제적인 주목을 끌었다. 런던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신흥종교화 같은 공동생활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것은 미국이나 이 분야에서도 다른 나라들 보다 20년은 앞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 단체는 유럽, 기타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디에는 참투해 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 집단은 왜 회원에게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헌신과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가? 신흥종교의 비밀은 단순하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으며 인생에서의 구조나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것이 신흥종교이다. 이들 교단은 그 점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사람들에게 신흥종교는 먼저 떨쳐 버릴 수 없는 우정의 손길을 뻗친다. 이들 신흥종교 단체의 한 간부는 말한다. '누군가 외로운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세상에는 고독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신참자는 먼저 주의에서 우정을 느끼게 되고 웃음 띤 얼굴로 환영을 받는다. 신흥종교들은 공동체 생활을 요구한다. 갑자기 이런 인간적인 저에 에워싸여 친절한 대접을 받으면 신자는 완전히 가겨하여 자진해서 가족이나 그때까지의 친구와도 접촉을 끊고 그 교단에 재산이도 무엇이고 모두 바치기로 결의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그 때문에 마약을 버리고 금욕생활도 불사한다. 신흥종교가 번성하게 된 것은 생활공동체를 내세운 것만이 아니다. 신흥종교는 또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구조와 살기 위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종교는 회원의 행동에 엄격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 엄격한 규율을 만들어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고 개중에는 매질이라든가, 강제노동, 자체적인 추방이나 구금과 같은 분명히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제재까지 서슴지 않는 곳도 있다. 뉴저지 의과대학 정신병의학자 H.A.S. 스케데오는 존스타운의 집단자살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만나기도 하고 인민사원 회원이 쓴 것을 연구한 결과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현대사회는 너무나도 자유롭고 무엇을 하든 허용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너무 많아서 자기 힘만으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남이 결단을 내려 주기를 바라고 자기는 그저 거기에 따르는 쪽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딸과 전처를 가나의 집단자살에서 잃은 셔윈 해리스라는 사나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어떤 한 가지 생각만을 추구하고 있다. 짐 존스에게 맹종한 사람들도 인생에서 어떤 한 가지 생각만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인의 한 전형이 아닐까?' 신흥종교가 살아갈 힘을 주기 위한 최후의 간판은 인생의 의미, 즉 보람이다. 신흥종교는 제각기 독자적이고 편향된 세계관^5,23^종교관, 정치관, 문화관을 가지고 있다. 각 교단은 자기들만이 유일한 진실이며 그 진리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느 외부세계 사람들은 무지하거나 사탄에 빠져 있다고 가르친다. 신흥종교에 들어가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회에서 철저히 세뇌당한다. 날마다 쉴새없이 설교를 되풀이하여 그 교단특유의 좌표축으로 사물을 생각하고 특유한 용어를 사용하여 마침내 그것을 둘도 없는 인생으로 믿게 만든다. 신흥종교가 주장하는 인생의 의미라든가 보람이란 외부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엉뚱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은 문제가 안된다. 신흥종교가 호소하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순간적으로 사라져 가는 단편적인 문화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여 설명해 보이는 점에 신흥종교의 힘이 있다. 그래서 신흥종교의 새 신도가 일단 테두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외부로부터 신자에게 밀어닥치는 복잡한 정보를 조직화할 수 있게 된다. 그 사상의 테두리 자체가 현실에 부합되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으로서는 들어오는 데이터를 정확히 정리할 수 있는 편리한 작은 방을 제공해 준다. 거기서는 벌써 정보의 과다나 정보의 혼란으로 괴로워하는 일은 없다. 신흥종교가 가르치는 것은 그 자체가 특정한 진실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질서가 있고 따라서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신흥종교의 신자는 이 세상이 의미있는 것임을 알고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교단 밖의 외부사람들에게도 그 의미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신흥종교는 신자에게 사는 목적을 주어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계가 사실은 질서정연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신흥종교는 공동체를 되살아나게 하고 인생에 구조와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 댓가는 너무나도 크다. 자기를 완전히 희생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마 이것이 자기분열에서 피할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흥종교의 실체가 드러나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희생은 너무나도 크다. 제3의 물결문명을 건전하고 민주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새 에너지으 공급원을 개발하거나 새 기술을 실용화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공동체를 부활시키지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에 구조와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기 우해서는 역시 해야 할 일이 몇가지 있다. 그것은 어느 것이나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생활조직 전문가와 준교단 가장 간단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직업적, 준직업적 '생활조직 전문가(life-organizer)'의 간부진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드(id)라든가 에고(ego) 등을 두더지처럼 파고드는 정신용법전문가는 별로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생활을 이끌어 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천적인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자주 듣게 되는 말에 '내일은 제대로 해보겼어.'라든가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말을 진정으로 믿지는 않는다. 오늘날과 같은 기술의 변화가 심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는 자신의 생활을 조직화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제2의 물결의 보편적인 구조가 붕괴되고 생활양식이나 인생설계, 교육의 기회 등 선택할 대상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제까지 보아왔듯이 어려움이 더욱 더 커지고 있다. 비교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압력이 고도의 조직을 강요하고 있다. 중산계급, 특히 그 자녀는 물질적으로 너무 풍족하여 도리어 인생의 지주를 상실하는 경향이 많다.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정신과의사중에는 생활을 조직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들은 의자에만 앉아 있지 않고 취직상담을 하거나 이성친구들을 찾아주며 돈의 지출예산을 짜고 식이요법을 하는 것 등의 실제적인 상담을 하고 있다. 사회는 이러한 인식의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 상담을 더 많이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런 상담을 받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교육면에서도 보통 간과되고 있는 것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는 정부의 구조라든가 아메바의 구조 등, 오랜 시간에 걸쳐 갖가지 학과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구조에 관한 것은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 가르치고 있는가? 시간 활용법이라든가, 돈을 쓰는 방법, 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곤란할 때에 상담하러 갈 장소^36,36^이런 것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교육은 자녀들이 자기가 사는 사회의 구조에 관해서는 당연히 무엇이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상 자녀들은 기업이나 직장이 어떻게 되어 있고 장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관해 아주 막연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나 대학이 어떤 기구로 운영되고 있는가도 모른다. 대부분이 얼마나 많은 조직이 제3의 물결의 영향으로 어떻게 바뀌고 있는냐에 이르면 전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신흥종교를 포함하여 인생의 백본(backbone)이라고 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하는 제도를 다시 한번 신선한 눈으로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건전한 사회는 매우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것에서부터 고도로 조직화된 것까지 갖가지 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전통적인 학교와 함께 더욱 시민에게 개방된 자유로운 교실도 필요하다. 수도원처럼 엄격한 수련장도 필요하며 좀더 자유로이 들어가거나 그만둘 수 있는 조직도 필요하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것도 좋고 그렇지 않은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신흥종교와 같이 절대적인 통제에 의한 구조와 일상생활의 무질서라고 할 수 있는 구조사이에 존재하는 갭이 너무나도 크다. 수많은 신흥종교가 요구하는 절대적인 복종에 반발을 느낄 경우 구조적인 아닌 자유와 엄격하게 조직화된 통제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준교단의 결성을 권장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실에 종교단체라든가 채식주의 단체, 그 밖의 갖가지 교파와 집단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각자의 취지에 맞는 질서와 통제 밑에 집단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이와 같은 준교단은 허가제로 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그리고 횡령, 착취, 기타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또 그와 같은 준교단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탈퇴하고 싶으면 자유로이 탈퇴할 수 있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준교단은 외부적 구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6개월 또는 1 년 기간동안에 가입한 뒤 압력이나 비난을 받지 않고 떠날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서는 어느 시기는 준교단내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외부세계로 돌아간다는 생활을 되풀이하면서 고도의 통제력을 갖는 조직의 요구와 더 넓은 사회 속에서 제공하는 자유를 서로 경험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방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종류의 준교단은 또 군대와 같은 통제와 자유로운 시민생활의 중간에 위치하는 세속적인 조직의 필요를 대변하고 있다. 시나 학교, 또는 민간기업이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대 같은 것을 조직한다면 어떨까? 계약에 따라 젊은이를 모아 규율이 엄격한 집단 생활을 시키고 군대 정도의 급여를 지급하기로 하는 것이다. (이런 급여를 현재의 최저임금에 접근시키기 위해 대원은 대학등록금이나 연수비를 지불할 수 있는 추가적인 보장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공해대책단, 공중위생단, 의료봉사단, 노령자 지원단 등이 만들어지면 사회에도 유익하며 개인에게도 귀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사회에 유익한 활동이면서 어느 정도 인생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될 수 있는 이러한 조직은 그 회원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인생의 의미를 제공하게 된다. 그것도 좋지 못한 교리나 정치철학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고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단순한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척도를 초월하여 우리는 개인적인 인생의 의미를 더 넓고, 더 포괄적인 세계관 안에 위치하게 해야 한다. 자기는 사회를 위해 조금은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큰 구조안에서 자기는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하는가를 막연하게나마 어느 정도 느낄 수는 있어야 한다. 제3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사물들을 하나로 묶은 포괄적이고 새로운 종합적인 세계관이 필요하게 된다. 하나의 세계관만으로 모든 진실을 파악할 수는 없다. 여러 각도에서 사물을 복합적으로 보아야 비로소 전체상을(비록 불안전하더라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인정하는 것은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사실과는 관계가 없다. 만일에 광대한 우주적 관점에서 인생이 무의미한 것처럼 비쳤다 하더라도 인생을 사회적인 유대 안에서 파악하고 자기자신을 힘차게 펼쳐지는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 속에 위치하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제3의 물결문명을 구축해 감에 있어 우리는 고독에 대한 도전에 머무르지 않고 인생에 질서와 목적을 부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 하면 인생의 의미와 인생의 구조, 그리고 공동체란 서로 흩어진 것이 아니고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보람이 있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로부터의 고독이나 소외,인생구조의 결함,무의미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미래사회의 특징을 모방해 가는 중세보다도 오히려 지나쳐 가는 시대의 붕괴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 하면 우리가 매일의 결정이나 행동을 통하여 제3의 물결문명을 쌓아감과 동시에 그 제3의 물결이 또 반대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바꾸어 버리는 새로운 정신영역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미래의 퍼스낼리티'라는 문제가 다음 테마가 된다. 제26장 미래의 퍼스낼리티 새로운 문명이 일상생활에 급속히 스며들어 옴에 따라 우리는 자신이 이미 시대에 낙후된 존재가 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생활습관, 사물의 가치, 일상적인 생활태도면에서도 때로는 우리 자신이 제2의 물결문명의 유물은 아닌가, 과거의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니가 하고 새악하게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대착오주의자들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한편으로는 다가올 제3의 물결문명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를 예견하는 시민'도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과거의 퇴폐나 부외를 회고해 보면 기대되는 미래의 인간성의 윤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새로운 인간'의 등장이다. 그런데 '새로운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났다고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럽문화센터소장(The Center for European Culture) 앙드레 레슬러는 그 훌륭한 논문에서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 과거의 몇 가지 예를 말하고 있다. 예컨대 18세기 말에는 북미대륙에 새로 태어난 '미국의 아담(Adam)'이 있었다. 이 아담은 유럽인의 악덕이나 약점과는 관계가 없는 존재로 믿고 있었다. 20세기 중반이 되자 히틀러의 독일에 새로운 인간이 출현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헤르만 라오슈닝에 따르면 나치즘(Nazism)이란 '종교 이상의 것이며 슈퍼맨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의지의 발로'라고 했다. 나치가 만들어 낸 튼튼한 신체의 비유태계 아리안(Aryan)족은 농민, 병사, 신 등 다양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한때 히틀러는 라오슈닝에게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36,36^'새로운 인간을 이 눈으로 보았다. 용감무쌍하고 잔혹한 사나이다. 그 놈 앞에 서 있으면 두러워진다.'라고. 새로운 인간(어째서인지 '새로운 여성'에 대해서는 거의 문제삼지 않는다. 화제가 되었다고 해도 2차적인 문제로서 가볍게 다루어지고 만다.)의 이미지에 홀린 점에서는 공산주의자도 같았다. 오늘날에도 소련인은 '사회주의적 인간'의 출현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미래의 인간에 관해 선명하게 말한 것이 트로츠키였다. '사람은 유례없이 강인하고 현명해지며 더구나 예민하 감성을 갖추게 되었다. 육체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조화를 이루고 그의 움직임은 리드미컬하며 음성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같이 된다.생활태도 자체도 강렬하고 드마라틱해질 것이다. 극히 평범한 사람도 아리스토텔레스, 괴테, 마르크스와 같은 천재의 수준에 도달한다.' 바로 10 년이나 20 년 전에도 프란츠 파농이 '새로운 정신'을 가진 또 다른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대대적으로 논한 일이 있다. 체 게바라에 따르면 그가 이상으로 하는 미래의 인간이란 풍요한 정신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새로운 인간의 이미지는 실로 다양하다. 앙드레 레슬러는 '새로운 인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득력있게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장점은 문명에 읳서 오염되고 소멸되어 버렸다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장점을 모두 갖추었고 친숙하고 신비로운 세계의 인간상, 19세기 낭만주의 사상의 중추였던 '고귀한 야만인의 이미지가 대부분의 '새로운 인간'의 의미지 배후에 숨어있다.' 레슬러는 '새로운 인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국가는 어느 것이나 궁극적으로 전체주의적인 파국을 맞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야만인을 로맨틱한 인간상으로 만드는 방법에는 의문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은 타당한 견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새삼스럽게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운운하는 쪽이 어리석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생물유전학자가 진행하고 시험관 아기와 같이 엄밀히 생물학적 의밀에서 놀라운 '새로운 인간'이라는 말을 사용할 경우는 별도이다.)'새로운 인간'이라는 개념에서 상상되는 것은 프로토타입(prototype)이며 문명이 일관해서 추구하려고 헛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관념이 낳은 단순한 모델이다.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급속히 탈대중화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시대에는 그와 같은 프로토타입한 이미지를 생각할 만큼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렇지만 인간생활의 구체적인 여러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음에도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에게도 그 양향이 미친다. 필자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만일에 일반적으로 믿고 있듯이 인간성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더라도 사회적 변화에 의해 인간행동의 갖가지 특성 중에서 어떤 종류의 행위는 칭찬받고 반대로 어떤 것은 부정한다. 그 결과 일반대중 사이에서 볼 수 있는 행위의 특성은 진화의 법칙에 따라 변화해 갈 것이다. 사회적 성격에 관하여 가장 훌륭한 저작을 남겼다고 짐작되는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어느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들에게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성격 구조의 부분'이라는 정의로 사회적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어떤 문화에서도 사회적 성격을 형성하고 있는 광범위한 인간행도의 성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사회적 성격은 인간을 사회적 패턴에 따라 행동하는지 어떤지 일일이 의식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되게 된다. 실제로 사회적 성격에 촉구되어 해야 할 일을 하는 경우라도 자기가 원하여 그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자기가 속해 있는 문화가 요구하는 여러 조건에 충실히 따르며 행동하는 데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프롬의 지론이다. 이제까지 서술했듯이 제3의 물결은 관념의 소산인 슈퍼맨이나 사람들의 사이를 거드름을 피우며 걷는 영웅을 자처하는 사람을 출현시키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널리 인정되고 있는 특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하려 하고 있다. 새로운 인간이 아니고 새로운 사회적 성격이 태어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높은 평가를 받을 사회의 특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특성은 거기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외적인 압력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외적인 강제력의 반영은 아닌 것이다. 사회 내부의 활력, 다시 말하면 거기서 생활하는 개개인의 갖가지 의욕과 사회에 가해지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가져다 주는 긴장관계에서 그 사회의 특성은 태어난다. 그러나 사회의 특성이란 일단 모양이 분명해지면 그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영햘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면 제2의 물결의 출현과 함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서는 절약, 근면, 끝없는 향상심이 강조 되었다. 이러한 특성이 이윽고 경제적 발전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다. 제2의 물결은 또 주관성과 객관성의 관계, 개인주의, 권위에 대한 태도, 추상적인 사고능력, 감정이입이나 상상능력이라는 분야까지 다양한 변화를 초래했다. 농민들이 산업노동자로서 기계에 적응하려면 읽고 쓰기의 문자해독이 필요했다. 교육을 받고 정보를 제공받아 노동자로 양성될 필요가 있었다. 이제까지의 생활태도와는 다른 생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고 스스로를 생각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대량으로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지금 당장이라도 해방되어야 했다. 산업주의는 어느정도까지 커뮤니케이션이나 정치를 민주화시켜야 했던 것처럼 이와 동시에 인간의 상상력의 민주화도 진행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신문화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난 결과 그때까지 널리 분포되고 있던 사회적 특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적 성격의 발생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또다시 정신문화면에서의 커다란 변동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전에 영국작가 조지 오웰은 (1984 년)과 (동물농장)에서 획일화된 인간상을 그렸다. 탈대중화라는 사실에 의해서, 어떤 시대정신이 모습을 나타내려 하고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졌다. 무슨 일에 관해서나 미래의 일은 분명히 말하기가 어렵다. 특히 이 점에 관해서는 약간의 추측이 허용될 뿐이다. 그러나 제3의 물결사회의 시대정신의 동향에 영향을 미치리라 짐작되는 중대한 변화를 몇 가지 지적할 수는 있다. 그 작업을 통해서 결론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여러가지 흥미있는 문제에 직면한다. 왜냐 하면 이러한 변화는 자녀의 양육, 교육문제, 청소년문제, 노동문제, 우리 자신의 미래상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 말한 바와 같이 모든 분야에 변화를 주려고 하면 필욘적으로 미래의 사회적 성격 전체를 심층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러한 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장과정의 변화 먼저 내일의 사회에 사는 어린이는 오늘날과 같이 어린이 중심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기술이 고도로 진보된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의 사회적인 배려가 고연령층의 필요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와 대조적으로 젊은 연령층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감소되고 있다. 더구나 교환경제 내부에서 여성의 일이나 전문적 직업의 영역을 확대하여 감에 따라 여성의 모든 에너지를 어머니의 역할에 쏟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세력을 잃게 된다. 제2의 물결시대에 대부분의 부모는 꿈을 자녀에게 맡기고 일생을 마쳤다. 왜냐 하면 대개의 경우 자녀에게 자기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경제적 생활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자녀에게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상승이동으로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중산층에 속하는 부모들이 고뇌와 환멸을 맛보고 있다. 자녀들이 부모의 시대보다도 훨씬 어려움이 많은 사회환경에 있으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상승되기보다는 오히려 하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도저히 이루지 못했던 일을 자녀에게 기대할 만한 상황은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앞으로 태어나는 어린이들은 사회의 일원이 됨에 있어 벌써 자기들의 요구, 정신의 발육상태, 어린이다움, 일시적인 배타적 만족감 등에 대하여 지나치게 걱저아거나 응석받이로 자랄 수는 없게 될 것이다. 만일 이 예측이 적중한다면 장래의 '스포크박사'는 현재와는 달리 정확하고 계획성 있고 엄격한 유년시대를 보내게 해 주라고 권장할 것이다. 부모도 현재와 같이 자녀를 귀여워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청년기도 현재와 같이 지루하고 고통스로운 과도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어린이가 편친의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다. 거기서는 일하는 어머니(또는 아버지)는 불안정한 경제때문에 고통을 받고, 자녀 쪽은 부모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유년기를 보낸 1960 년대의 풍요한 세대에 비하면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앞으로는 16장에서 서술했듯이 가정과 직장을 겸한 가내전자근무가정에서 성장하는 자녀도 나오게 된다. 제2의 물결시대에 부부가 공장이나 상점을 경영하는 가정의 어린이가 그러했듯이 장래의 가내전자근무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직접 한 가정의 일에 참여하게 되고 어린시절부터 책음을 맡기는 현상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은 소년기나 청년기가 단축되는 한편, 책음을 수반한 생산적인 시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어론과 함께 일함으로써 그러한 가정의 자녀들은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쉽사리 굴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기대된다. 자녀들도 내일의 사회를 담당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동안은 실업문제가 극심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제2의 물결세력인 노동조합이 청소년을 가정 밖의 노동시장에서 추방하려는 것을 보게 된다. 노동조합(더욱이 교원조합에 가맹했든 안했든 교사들은)은 의무교육이나 준의무교육의 연장을 법제화하려고 획책할 것이다. 그들의 의도가 성공하면 수많은 젊은이들을 연장된 청소년기의 고통스로운 중간단계로 계속 몰아넣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내전자근무체제에서 일찍부터 책임이 따르는 일을 체험하고, 어려서부터 한 사람으로서의 성인이 된 청년과 그 이외의 곳에서 할 일없이 청년기를 지낸 젊은이와의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보면 교육도 또한 바뀐다고 기대해도 된다. 학습활동는 교실 안에서 보다도 밖에서 더 활발히 진행된다. 노동조합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의무교육 연한은 짧아지는 일은 있어도 길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획일적인 연령별 학년편성을 대신해서 젊은이와 나이 많은 사람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게 된다. 교육내용에도 변화가 생기고 교육과 노동이 서로 관계를 가지게 되며 사람들은 일생을 통하여 교육을 받게 된다. 한편 노동 쪽도 한 세대, 두 세대 전과 비교하면 더욱 젊은 시절부터 시작하게 된다. 이 경우 시장을 대상으로 한 생산활동도 있을 것이며 가정에서의 소비를 주목적으로 한 생산소비활동도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서술해 온 바와 같은 이유로 제3의 물결의 문명기에 들어가면 현재와는 완전히 달라져서 동료의 의견에 부화노동하지 않고 지나친 소비지향이나 지나친 향략을 삼가는 청년의 특성이 바람직한 것으로서 지지받게 될 것이다. 이런 지론이 적중하느냐 못하느냐는 별도로 하고 인간의 성장과정이 변화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 결과 당연히 인격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노동자 청년이 성인이 되어 직업이라는 경쟁 속에 뛰어들게 되면 새로운 구속력이 그 인격에 작용하게 된다. 어떤 종류의 특성은 바람직한 것으로서 표창되는 반면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지는 특성은 징벌의 대상이 된다. 제2의 물결시대를 통해 공장에서나 사무실에서도 노동은 점차 반복작업적인 성격이 짙어지고 분업화와 시가에 의한 제약이 심해졌다. 그래서 고용주는 순종하고 시간을 잘 지키며 기계적인 반복작업이라도 기꺼이 하는 노동자를 찾게 되었다. 이런 노동자에게 알맞은 특성이 학교에서나 기업에서도 표창의 대상이 되었다. 사회가 제3의 물결을 뒤집어쓰게 되자 노동은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고 있다. 또 노동의 세분화된 성격도 희박해지고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종래 보다도 크고 통합된 일을 하게 되었다. 자유근무시간제와 자기 페이스로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도입되어 많은 사람이 일제히 동일한 작업을 한다는 동시화의 필요성을 대신하고 있다. 노동자는 인사이동, 생산방식의 변화, 조직개편 등 어지러울 정도로 계속되는 노동현장의 변화에 따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볼 때 제3의 물결시대의 고용주에게 있어서 더욱 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가진 노동자이다. 책임을 정확히 자각하고 있을 것. 자기 일이 남의 일과 어떻게 관계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종래에는 체험한 일이 없는 큰 일을 다룰 수 있을 것. 환경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을 것. 주위 사람에게 신경을 쓰고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 제2의 물결기업에서는 조직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정해진 일만을 꾸준히 하고 있으면 출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제3의 물결기업은 미리 프로그램을 결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이는 사람을 찾고 있다.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기업연수담당 지배인 도널드 코노버에 따르면, 양자의 차이는 클래식 음악 연주가와 재즈 즉흥 연주가와의 차이라고 한다. 클래식 연주가는 미리 정해진, 준비된 패턴에 따라 연주하지만 재즈 즉흥 연주가는 연주곡만 정해지면 서로 신중히 신호를 주고 받으면서 그것을 기본으로 해서 다음에 낼 소리를 결정해 간다. 이 조건에 적합한 사람들은 복합적 사고력을 가졌고 개성적이며 자기가 주위 사람과 다른 생활태도를 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인물이야말로 제3의 물결산업이 필요로 하는 탈대중적인 노동자의 전형이다. 여론조사가인 다니엘 얀켈로비치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의 노동자 중에서 여전히 옛날부터 하던 동기부여로 노동의욕을 갖게 되는 사람은 불과 56 퍼센트에 불과하고 더구나 고령자가 많다. 그들은 엄밀한 작업요령과 명확한 업무지시를 받으면 일에 열중하지만 자기 일의 '의미'를 탐구하는 일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미 17 퍼센트나 되는 종업원이 제3의 물결과 함께 출현한 새로운 가치관에 영향을 받고 있다. 대붑분의 젊은층이 중간관리자인데 얕켈로비치가 단언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은 더 큰 책임이 부여되기를 원하고, 자기들의 재능과 기술을 동원하여 후회없는 중요한 일을 원하고 있다. 그들은 금전적인 보수 외에 일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질을 갖춘 노동자를 확보하려고 고용주는 노동자 개개인의 자질을 충분히 고려한 보상제도를 제공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 풍조를 환영하고 있는 것이 본사를 클리블랜드에 두고 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TRW사와 같은 수는 적으나 진보된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기업의 예이다. TRW사에서는 종래와 같이 일률적으로 조합한 부가급부방식을 중단하고 휴가난 의료급부, 연금, 각종 보험등을 종업원 한 사람 한사람이 자기사정에 맞추어 스스로 좋아하는 조합을 만들 수 있는 제도를 택하고 있다. 노동자는 마치 자기 옷을 만들 듯이 자기에게 맞는 부가급부의 조합을 만든다. 얀켈로비치에 따르면 '오늘날, 종업원의 요구는 다양화되고 있는 한 가지 인센티브만으로 노동력의 완전한 스켁트럼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한다. 얀켈로비치는 또 일에 대한 보수방법이 다양화되는 가운데 돈은 이제 전과 같이 유효한 수단이 아니게 되엇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제3의 물결이 노동자에게 돈에 대한 욕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돈은 아쉽다. 그러나 수입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그 뒤에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돈의 증액만으로는 노동자의 행동에 대하여 이전과 같은 영향을 줄 수는 없다. 아메리카은행 샌프란시스코 지점의 부지점장 대리 리처드 이즐리에게 겨우 20 마일 정도 떨어진 다음 지점으로의 승진이동을 제의했을 때 그는 그 회유를 거부해 버렸다. 통근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10여년전에 나는 '미래의 충격'에서 전근이 스트레스의 원이니 되고 있는 사태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 무렵은 아직 기업의 사정에 따른 전근에 저항하는 사람은 10 퍼센트의 추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10 년 후인 오늘 메릴린치릴로케이션 매니지머트사의 조사에 따르면 전근하면 그대로 같은 직장에 있는 것보다 임금이 크게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3분의 1에서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전근을 싫어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회사에 감사해서 말리공화국 수도 팀부크루와 같은 아프리카 오지로 부임하던 그들이 오늘날에는 가정이나 사적인 생활양식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라고 셀라니즈사의 부사장은 말하고 있다. 제3의 물결기업이 공해문제에 대한 대응 등을 강요당하고 이윤추구만으로는 해나갈 수 없듯이 종업원도 이익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로 다양화되고 있다. 한편 권력기구의 가장 뿌리깊은 패턴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예를 들면 제2의 물결기업에서는 직속상관은 한 사람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일 종업원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면 그것은 상사에게 들고 가서 해결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종래와 다른 복합형조직에서는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조업원은 동시에 2 명 이상의 상사를 받든 경우가 있다. 전혀 다른 지위에 있는 사람, 각기 다른 기능을 익힌 사람이 특징한 목적을 가지고 임시로 그룹을 결성한다. 이 테마에 관하 저작을 발표하여 정평을 얻은 보스턴대학교수 S.M. 데이비스와 P. R. 로렌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건의 차이 등은 조정을 맡는 공통의 상사가 없어도 해결된다. 이러한 복잡형조직에서는 대립은 오히려 조직이 건전한 증거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의견의 차이는 높이 평가되고 타인으로부터 거부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사람들은 자기 의견을 발표한다.' 이런 체제에서는 맹종형 근로자는 손해를 보고 어느 정도까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이익을 본다. 일의 의의를 추구하고 권위에 맹종하지 않으며 자기 판단에 의존하여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제2의 물결산업에서는 거북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제3의 물결산업은 이런 근로자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서술해 왔듯이 미묘하긴 하지만 인간성의 깊은 부분에서 특징있는 변화가 전면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경제체제의 양상과 합치되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다가올 사회의 특성을 형성하게 된다. 생산소비자 제3의 물결문명 속에서 인간성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녀기르기, 교육, 노동과 같은 것만은 아니다. 심지어 보다 깊은 곳에 있는 은인들이 내일의 정신에 영향에 미처려 하고 있다. 왜냐 하면 경제란 단순히 작업이나 임금노동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경제활도은 두 분야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교역을 목적으로 생산활동을 하는 분야이며 또 하나는 우리 자신의 소비를 목적으로 생산활동을 하는 분야이다. 전자는 시장부문 또는 생산부문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겠으며 후자는 이른자 생산소비부문이다. 양자는 각각 우리에게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다. 왜냐 하면 양자가 독자적인 윤리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목적도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시대에 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시장경제의 보급에 의해 장려된 것은 물질적 욕망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이것이 윤리는 개인의 성공이라는 것을 좁은 의미의 경제적으로만 정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3의 물결이 진행됨에 따라 이미 제20장에 서술한 바와 같이 자기 일은 자기가 하자는 정신에 근거를 둔 활동이 눈부신 기세로 뻗어가고 있다. 즉 이것이 생산소비활동이다. 이런 종류의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한 생산활동은 이제 취미활동을 넘어 전에 없이 커다란 경제적 의밀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시간이나 에너지가 대량으로 생산소비활동에 소비되며 우리 생활의 특징이 되어 거기에 바탕을 둔 사회의 특성이 형성된다. 시장경제의 가치관은 인간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생사소비자의 가치관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중시한다. 거액의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직도 명성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다른 특성도 중요시된다. 그 중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는 정신, 환경에 적응하여 곤란하 조건 밑에서도 생존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 더욱이 자기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능력 등이 매우 중시된다. 그것은 울타리를 만들거나, 요리를 잘 하거나, 옷을 스스로 만들거나 낡은 옷장을 수리하거나 하는 능력이다. 더욱이 공장생산이나 시장경제의 가치관이 하나의 목적에 집중하는 정신을 중시하고 있었는 데 비해 생산소비의 가치관은 치우침이 없는 원숙한 정신을 추구한다. 자기를 무슨 일에나 적합시킬 수 있는 만능성을 존중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제3의 물결이 도래에 의해서 경제분야에서 교역을 목적으로 한 생산활동과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한 생산활동의 양자가 조화를 이루게 되면 우리 생활에도 균형을 요구하는 소리가 날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우리의 활동이 생산분야에서 생산소비분야로 이행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내부에 또 하나의 다른 종류의 조화가 도래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오늘날도 여전히 시장경제를 목적으로 생산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는 계속 증가되고 있으나 그들은 언어, 숫자, 상품견본과 같은 추상적 개념이나 또는 거의 혹은 전혀 모르는 타인만을 상태로 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두뇌노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매력을 잃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보상받을 곳이 많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계속하고 있으면 자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일상생활과는 단절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수반할 때가 많다. 최근에는 손으로 만든 물건이나 정원손질이 유행하며, 농민이나 노동자의 패션이 인기를 끌고, 트럭운전사와 같은 차림을 '멋지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시장경제를 목적으로 한 생산부문에서 추상화가 더욱 더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한 일종의 보상작용을 추구하고 있는 발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와는 반대로 생산소비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과 접촉하게 된다. 상대가 사람이든 물건이든 직접 접촉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일부를 파트타임의 노동자로 보내고, 나머지 부분을 생산소비자로 일하게 된다면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을 병행하면서 하루를 지낼 수 있다. 즉 서로 보완적인 작용을 하고 두뇌노동과 육체노동의 보완적 즐거움을 가지게 된다. 과거 300 년 동안 경멸당해 온 육체노동을 또 다시 존중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제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균형이 한 사람의 생활 속에서 유지되게 되면 사회에서 널리 용인되고 퍼스낼리티의 특성을 확산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미 이 책에서 서술한 것이지만 산업주의의 등장이 고도로 상호의존적인 공장노동을 보급시켜 남성들에 대해 조직의 일원으로 일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개입시킬 수 없는, 이른바 객관적인 존재가 되도록 장려되어 왔다. 한편 가정에서 서로 협력할 필요가 없고 집안 살림에 종사해 온 여성 사이에는 자기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주관주의가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오늘날 차츰 많은 여성들이 시자의 생산활동에 참여하게 됨에 따라 그와 더불어 여성 또한 점차 객관적인 존재로 바뀌고 있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조직의 일원으로 사고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반대로 과거보다 가정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만큰 집안일도 하게 되는 남성이 늘어나면 그들은 주위에만 신경을 쓰는 '객관성'을 지녀야 한다는 남성들의 요구도 줄어들고 있다. 남성도 자기의 기호에 충실한 '주관적' 존재로 되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제3의 물결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하루의 일부를 대규모의 상호의존적 기업이나 조직에서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기나 가족을 위한 자립적인 생산소비활동의 단위인 가정에서 일하게 되면 남녀가 모두 균형있게 객관성과 주관성을 갖추어 가게 될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남성적 태도'와 '여성적 태도'를 발굴해 내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조화를 통해 건전하게 세계를 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중요시될 것이다. 말하자면 객관적 주관주의자와 주관적 객관주의자들을 중요시 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생산소비활동이 경제전체의 내부에서 중요성을 띠게 됨에 따라 또다른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육아와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와 더불어 시장을 목적으로 한 생산활동과 생산소비활동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변화가 어울려 적어도 제2의 물결이 300 년 전에 가져다 준 사회적 성격을 극적으로 개조시켜 줄 것임에 틀림없다. 사실상 지금까지 서술해 온 견해가 모두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또 이제까지 보아온 여러 변화가 만일 모두 역전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갱신적인 영역에 대변혁을 예측케 하는 결정적으로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이 '케뮤니케이션 혁명'이다. 의형적인 나 커뮤니케이션과 퍼스낼리티의 관계는 복잡하여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매체를 완전히 바꿀 수 없고 인간도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매체의 혁명은 정신구조의 혁명을 의미한다. 제2의 물결시대에 사람들은 대량생산된 이미지의 바다에 빠져 있었다. 중앙에서 발행된 비교적 소수의 신문과 잡지, 중앙에서 일제히 흘러 나오는 라디오와 TV의 프로그램, 거기에 영화가나 비평가가 말하는 '단일체 의식'을 육성하고 있었다. 개개의 인간은 끊임없이 이들 매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말하자면, 소수의 모델과 지기를 비교하도록 요구받고 있고 그들의 생활양식을 소수의 선택된 가능성에 의거하여 평갸하도록 끊임없이 권장되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인간의 폭은 상대적으로 좁아지게 되었다. 오늘과 같이 매체의 탈대중화가 진행되면 자신을 본보기로 삼는 생활방식은 눈부실 정도로 다양화해진다. 더구나 새로운 매체가 제공하는 것은 완전한 형태를 갖춘 이미지가 아니고 말하자면 세분화된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이미지를 가져다 준다. 우리는 여러가지 중에서 선택된 일관성있는 자기동일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측정할 척도롤 정해야 하는 것이다. 제2의 물결시대에 비하면 이것은 용이한 일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주체성을 요구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런 상황이 있다. 그러나 이 노력을 계속함으로써 우리는 자기의 개성에 대해 자각을 높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남과 다른 자기의 특성을 선명히 의식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의 자아상도 변화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른 개성을 지닌 존재로 보이게 되고 그와 같은 대우를 받도록 요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새로운 생산방식이 개성적인 노동자를 필요로 하게 된 시기와 동시에 태어났다. 제3의 물결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힘을 빌려 우리는 자기 내부에 있는 순수한 개인적인 것에 구체적인 형태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아상의 생산자라기보다도 생산소비자가 되려 하고 있다. 서독의 시인이며 사회평론가로서도 알려진 한스 마그나스 엔첸스 베르거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이 있다. '과거의 대중매체에 있어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둘의 기술상의 차이였다. 그러나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엄격히 구별되었던 것 자체는 노도의 사회적 구분이 생산자와 소비자로 분리되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제2의 물결시대를 통하여 전문적인 보도담당자들이 시청자를 위해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보냈음을 의미하고 있다. 시청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에게 직접 반응하거나 서로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이에 반해 새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혁명적인 특징은 그 대부분이 상호작용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개개의 사용자는 외부에서 이미비를 받아들이 뿐 아니라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거나 송출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송수신겸용 유선 TV, 비디오 카세트, 값싼 복사기, 테이프 레코더 등의 출현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개인의 손에 맡기게 된 것이다. 장래에는 일반가정용 TV로도 서로 교신할 수 있는 단계가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TV에서 수동적으로만 아칭 벙커나 메리 타일러 무어의 쇼를 볼 뿐만 아니라 그들과 직접 이야기하고 쇼진행에 주문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도 큐브 유선 TV에서는 기술적으로는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면서 디렉터(director)에게 주문하여 프로그램의 템포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진행하거나 한 가지 이야기의 종결을 달리 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에 의해 우리 자신의 이미지도 종전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우리 모습이 현재보다 변화한 것이 된다. 지금까지의 어떤 종류의 행동을 촉진할 수도 있다. 자기의 이미지를 전세계를 향하여 전자공학적으로 보낼 수도 있다. 이런 것이 우리의 인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상이다. 과거의 문명에서는 인간이 이토록 강력한 수단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의식의 영역까지 지배하는 기술을 소유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급속히 돌입하고 있는 세계는 인간의 과거 경험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이것저것 마음 속에서 상상해 보아도 시종 확실한 것도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 갖가지 강렬한 힘이 합류하여 사회의 특성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현대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적 경향 가운데 어는 것은 더욱 조장되고 어느 것은 반대로 억압당해 버린다. 이런 과정에서 거기서 생활하는 우리도 완전히 변하게 된다. 제2의 물결문명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에너지 체제를 변경하든가 어느 기술적 기반을 다음 단계로 변환한다는 단순한 일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영역에도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관점에 서서 보면 과거를 미래에 투영해보았나 의미가 없으며 제3의 물결문명의 사람들을 제2의 물결의 용어로 묘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지금까지 서술해 온 가설이 부분적으로나마 옳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개성적으로 될 것이다. 대부부의 사람이 사회적으로도 지금보다 빨리 성숙하고 젊은 시절부터 책임감이 왕성해진다. 적응능력도 증대하고 개성을 풍부하게 발휘할 것이다. 권위에 대하여 항의한다는 점에서도 부모의 세대보다도 더 활발해진다. 또 그들은 돈을 바라고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생활이 궁핍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돈만을 목적으로 해서 일하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이 균형을 이루게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노동과 자유시간, 시장을 목적으로 한 생산활동과 생산소비활동, 두뇌노동과 육체노동,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객관성과 주관성처럼 서로 대립하는 둘 사이에서 그들은 균형을 바란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그 어떤 인간들보다도 휠씬 복잡한 조건 밑에서 자기를 확인하고 자기의 모습을 투영해 볼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이 성숙함과 함께 우리가 창조해야 할 인간은 과거의 인간보다 뛰어난 유토피아적인 남녀도 아니며 괴테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칭기즈 칸이나 히틀러라고 해도 좋다) 초인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사람이라고 부르기에 어울리는 인류를 희구하고, 인간적인 문명을 소망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인간다움을 긍지를 가지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바람직한 변혁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훌륭한 새 문명으로의 이행은 가능할까? 이것은 정치변혁의 필요성이라는 결정적인 명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끝으로 이 한편으로는 두렵고 또 한편으로는 기대에 넘친 전망에 대하여 언급하기로 하자. 미래의 인간상은 미래의 정치와 조화를 이루어어야 한다. 제27장 정치의 무덤 에너지, 기술, 가정생활, 남녀의 역할분담, 그리고 세계를 뒤덮고 있는 통신망, 이런 것에 혁명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게 되면 멀지 않아 어쩌면 폭발적인 정치혁명에 직면하게 된다. 산업세계의 모든 정당, 의회, 최고회의, 대통령이나 수상, 재판소 및 기타 사법기관, 무수한 계층의 관료조직 등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들이 집단결정을 하고 그것을 실시하기 위한 모든 수단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되어가고 있으며 변혁을 강요 받고 있다. 제3의 물결문명은 제2의 물결의 정치기구로서는 움직일 수가 없다. 산업시대를 창조한 혁명가들이 봉건제도의 기구로서는 정치를 행할 수가 없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은 또다시 새로운 정치수단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서 있다. 이것이 제3의 물결의 정치적 의미인 것이다. 블랙홀(black hole) 문제의 중대성은 아직 인식되지 있지 않지만 우리들이 직면하고 심각한 위기는 이러저러한 정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모든 형식의 대의민주주의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제2의 물결의 정치기술이 잡음과 신음소리를 내면서 자기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위기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사회가 생사와 관계되는 중대문제에 직면하고 있는데도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지 않아 거의 완전히 마비상태에 빠져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OPEC의 석유금수조치 이후 만 6 년이 지났고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는데도 미국의 정치기구는 속수무책으로 공전만 거듭하고 있을 뿐, 일관성있는 에너지 정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자립이나 관료기구가 개편되고 대통령도 열심히 호소하고 있는데도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이 정책의 진공상태는 에너지 문제에 국한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도시문제, 환경문제, 가족문제, 기술문제 등에 대해 아무런 포괄적인(혹은 수긍할 수 있는)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 해외의 평론가들은 미국은 외교정책다운 것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설사정책이 있다 하더라도 미국의 정치체제에는 그것을 통합하고 우선순위를 부여할 능력이 없다. 이러한 진공상태는 정책결정의 붕괴가 매우 진전되어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며 카터 대통령 자신이, 자기가 구성한 정부가 '마비상태에 있고 침체해 있으며^5,5,5^ 무정견하다.'고 이례적인 연설을 해서 정부의 잘못을 시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정책결정이 잘 되지 않는 것은 한 정당, 한 대통령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위기는 1960 년대 초에서부터 조금씩 심각하게 되어가고 있었으며 그 밑바닥에는 현재의 제도 안에서는 민주당, 공화당할 것 없이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정치문제는 가족, 학교, 기업 등 다른사회제도의 불안정이 원인이 되어 있기도 하다. 가족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십종의 법규가 모두 모순된 것이어서 가족의 위기는 한층 더 악화되었다. 교육제도면에서는 취학아동이 감소되는 시기에 학교건설자금을 많이 배정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학교가 난립되기도 했고, 어떤 목적으로 자금이 절대로 필요할 때에 예산이 삭감되기도 한다. 한편 기업측에서는 정부가 기업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조차도 짐작 못할 정도로 변덕스러운 정치환경에서 경영전략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미국 의회는 처음에 제너널 모터스 등 각 자종차회사에 대해 환경보호를 위해 모든 새 자동차에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촉매장치를 붙이도록 요청했다. 제너널 모터스가 촉매장치 개발에 4억 달러를 소비했고 그 제조에 필요한 귀금속을 구입하기 위해 5억 달러에 달하는 10 년 계약을 체결하자, 정부는 촉매장치를 붙인 자동차는 붙이지 않는 자동차보다 배기가스 중의 유황이 35배나 많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갈팡질팡하는 입법기관은 점점 더 이상한 법의 그물을 만들고 있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연간 4 만 5000 페이지에 달하는 새 규칙을 제정하는 것이다. 철강제조에 관한 연방법규만도 5600개가 잇고 그것의 이행여부를 감시하는 관청이 27개가 있다. (철강의 채굴, 유통, 수송에 관한 법규가 몇천개나 더 있다.) 일류 제약업체인 엘리 릴리사에서는 정부에 제출하는 서류를 작성하는 시간이 심장병이나 암에 관한 연구를 하는 시간보다 많다고 한다. 석유회사 엑슨에서 연방 에너지 기관에 제출하는 한 번의 보고서만도 44 만 5000 페이지이며 1000권의 책에 해당된다. 이 복잡한 관료주의가 경제의 족쇄가 되는 한편, 정부의 결정권자들의 갈팡질팡으로 일어나는 반응은 점점 무정부상태라는 느낌을 짙게 해 주고 있다. 현대사회의 근간이 되는 조직은 어느 것이나 지금 고통을 면치 못하고 있는 터에 나날이 목표없이 움직이는 정치체제는 우리의 기초적 사회제도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적 결정의 마비는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이탈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심지어는 공산주의 산업국의 정부마저 모두 엇비슷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지"에 의하면 전 일본 수상 미키 다케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있다. 문제해결능력, 혹은 이른바 민주주의의 통치능력이 도전받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도 의회민주주의는 시련을 격고 있다." 여러 나라의 정치결정기관은 나날이 긴장의 도가 더해 가고 있고 계속되는 과중한 근무 때문에 허덕이고 무관한 많은 데이터에 파묻혀 있으며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도 못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은 아주 중요한 문제에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혹은 엉뚱한 결정을 한다.)있으나 중요하지도 않는 일에 쫓기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대개의 경우 그런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들인 것이다. 간혹 중요한 결정을 했다 해도 시기가 늦어져서 원하는 효과를 올리질 못한다. 영구의 어느 의원은 의기소침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법률상으로는 해결했다.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7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몇번이나 부정을 제거했다. 환경문제도 해결했다. 모든 문제가 입법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법률을 만들었어도 그 기능이 발휘 안되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TV방송국 아나운서는 옛날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말은 곧바로 언덕길을 뛰어내려 간다. 마부가 아무리 고삐를 당겨도 멎지 않는다. 국가는 지금 그런 역마차 같은 느낌이다.' 정부고관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미국의 어느 상원의원을 나하고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자기는 도무지 유익한 일을 할 만한 힘이 없지 않을까 하는 깊은 좌절감에 빠지곤 한다고 말했었다. 가정생활은 혼란해지고, 광적인 생활속도, 지루한 시간, 피로한 영행, 회의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한없이 지속되고 끊임없이 제동이 걸린다, 등 그의 푸념은 끝이 없다. "이런 것을 해서 도대체 어디에 쓰겠는가?"하고 반문했다. 영국의 어느 국회의원도 같은 회의를 던지며 이렇게 덧붙였다. "하원은 박물관에 가면 알맞을 것이다. 과거의 유물이다." 백악관의 고위층 한 사람이 내게 말한 적이 있는데, 세계에서 제일 큰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미국 대통령도 때로는 무력감을 맛본다고 한다. "대통령은 마치 상대가 없는 전화에서 고함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하더군." 타이밍 좋게 훌륭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사회에 가장 깊숙이 깔려 있는 역학관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정상적이고 비혁명적인 상황하에서는 어느 사회에서도 엘리트가 정치체제를 사용해서 자기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고저 하는 법이다. 엘리트의 권력은 어떤 일을 일으키는(혹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한다.) 능력 여하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나 그 전제로서 그들은 사물에 대한 예건을 하거나 통제하는 능력이 없으면 안된다. 그들이 고삐를 당기면 말이 멎어야 하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엘리트들은 자기자신의 행동에 대한 예견을 하지 못한다. 그들이 운영하는 정치체제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고 낡아 사건이 일어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빈틈없이 '통제'해도 결과는 자기에게 불리하게 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밝혀두어야 할 것은 엘리트가 잃어버린 권력이 사회의 다른 계층으로 이전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권력을 이동했다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더 갈팡질팡해져서 누가(명목상이 아니고) 실질적인 권위자이며 그 권위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어수선한 반무정부상태에서 일반인들은 매우 냉소적이 되어 자기들이 선출한 '대표'를 믿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의원대표제 그 자체에 대해서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제2의 물결사회의 '재확인 의식'인 선거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해마다 미국의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다. 1976 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유권자의 46 퍼센트가 기권했다. 그러나 대립한 후보자에게 투표한 사람을 제외하면 대통령은 유권자의 4분의 1밖에 지지를 받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투표권을 갖지 않은 사람도 포함한 전국민과의 관계로 본다면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은 8 명에 1 명 꼴이 된다. 여론조사의 전문가 패트릭 카텔이 최근에 행한 조사에 의하면 아직도 투표에 중요한 의미를 인정하고 있는 사람은 투표권자의 불과 12 퍼센트밖에 안된다고 한다. 정당도 역시 흡인력을 상실했다. 1960 년에서 72 년 사이에 미국의회에는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의원의 수가 400 퍼센트로 급증했다. 1972 년에는 지난 1세기여만에 처음으로 무소속의원의 수가 양대 정당중 한 당의 의원수와 맞먹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1979 년까지 정권을 잡고있던 영국 노동당의 쇠퇴는 더욱 심해서 인구 5600 만에 대해 활동적인 당원수는 10 만이 될까말까하다.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투표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출한 정부를 거의 신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기들은 지도자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도 정치적 무관심의 물결은 넓어지고 있다. 어느 덴마크인 기사는 그 이유에 대해 '정치가에게 정치가 무력화되는 대세를 막을 힘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한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반체제작가 빅토르 네키펠로프에 의하면 소련에서도 지난 10 년간은 '심화된 혼란, 군사화, 파국적인 경제혼란, 생활비의 폭등, 주요한 식료품의 공급부족, 범죄와 주정꾼의 증가, 부패와 도둑질의 시대였고 무엇보다도 대중에 대한 정권담당자의 형편없는 권위실추의 시대였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정치주류의 공백상태에 항의하기 위해 '미키 마우스(Mickey Mouse)'라고 개명하고 입후보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이에 놀란 의회에서는 선거일까지, 개명한 지 6개월이 되지 않은 사람은 입후보할 수 없다는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켰을 정도였다. 시민들은 이제 분노의 단계를 넘어 정치지도자와 정부관리에 대해 반감과 경멸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변화가 시미하고 갈팡질팡하는 사회에서 팬들이나 안정장치 역할을 해야 할 정치체제가 붕괴되어 통제력을 잃은 채 공전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최근 정치학자의 한 팀이 워싱턴에서 '누가 워싱턴을 움직이고 있는가?'라는 조사를 했는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느 것이나 모두 간단하고도 결정적인 해답을 얻어냈다. 영국 에식스대학의 안토니 킹 교수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로부터 출간되었는데 이것에 의하면 "짧은 대답의 내용은 '아무도 없다', '책임자는 없다' 이런 것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제3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제2의 물결의 나라들 여기저기에서는 권력의 진공상태가 확대되고 있다. 사회에 블랙 홀이 출현한 것이다. 사설군대 이 권력의 진공상태가 갖는 위험성은 1970 년대 중반을 되돌아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무렵, OPEC의 석유금수조치의 영향을 받아 에너지나 원료의 공급이 줄어들어 인플레이션과 실업자가 늘어났다. 달러가 폭락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새로운 경제관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제2의 물결국가들이 여러가지 정치적 병리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관용과 예절의 나라로 유명한 영국에서마저 퇴역장군들이 질서를 바로 잡기 우해 사설군대를 결성하기 시작했고, 파시즘의 부활인 극우단체 '국민전선'은 약 90개의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입후보자를 세웠다. 파시스트와 좌익이 런던의 거리에서 일대 난투극을 일으킬 뼌했다. 이탈리아의 좌익계 파시스트 '붉은 여단'이 무릎 사격, 납치, 암살 등으로 그들의 영향권을 확산시켜 갔다. 폴란드에서는 정부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식료품값을 인상하려다가 혁명이 일어날 뻔했다. 서독에서는 계속되는 테러리스트들의 살인사건으로 궁지에 물려 침착서을 잃은 당국이 반대파를 누르기 위해 일련의 매카시(McCarthy)적 법안을 통과시켰다. 70 년대 후반에 산업경제가 부분적으로(그리고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정치적 불안의 징후가 퇴조한 것은 사실이다. 영국의 사설군대는 결국 활동까지는 못했다. '붉은 여단'은 알도 모로 수상을 암살한 후 일시 후퇴하여 재편성을 서두르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도 순조롭게 새로운 정권이 교체되었다. 미국에서는 반체제를 내걸고 당선한 지미 카터가(그후 체제와 타협했다.) 인기가 하락하고는 있다고 하나 간신히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을 볼 때, 제2의 물결과 함께 성립된 각 산업국의 정치체제가 다음에 오는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980 년대와 90 년대의 위기는 60 년대의 위기보다 더 심하며 분열될 위험마저 있을 것 같다. 최악의 사태는 지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무지를 폭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여러가지의 불길한 예측이 일어나고 있다. 이란의 석유가 몇 주일쯤 중단됨으로써 미국내 주유소 앞에 긴 행렬이 생기고 혼란과 폭동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현 지배자가 왕위에서 추방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여기저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세계 석유보유고의 25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이 작은 왕국이 이웃나라인 북예멘과 남예멘간에 끊임없는 전투가 일어나고 국내상태는 오일 딜러(oil dollar)나 이민 노동자, 과격한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해서 동요가 계속되는데도 영원히 권력을 쥐고 있을 수 있을까? 가와르와 아브카이크 유전에서의 태업은 물론 만일 수도 리야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종교적인 동란이나 혁명소동이 일어나면 워싱턴, 런던, 파리, 모스크바, 동경, 텔 아비브 등의 전쟁 공포증에 걸려 있는 정치가들은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할 것인가? 야마니 석유상이 예언한 것과 같이 만일 잠수공작원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중인 배를 침몰시키거나 해협을 기뢰로 봉쇄해 세계의 생명선인 석유통로의 절반을 막아 버린다면 과로와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는 동.서의 정치지도자들은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가? 지도를 펼쳐 놓고 이 전략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접은 해협의 한쪽이 국내의 법과 질서도 유지할 수 없게 된 이란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불안해진다. 또 하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시나리오가 있다. 멕시코가 열심히 자기나라의 석유를 개발하고 갑자기 오일 패소(0il peso)가 범람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잘 먹지도 못했고 오랫동안 시달려 온 농노들에게 멕시코의 소수독재자들은 과연 부의 분배를 하려 할 것인가, 분배를 하려 하더라도 그런 기술을 갖고 있을까? 현재의 소규모 게릴라 활동이 눈 깜짝할 사이에 미국의 바로 앞에서 본격적인 전투를 일으키기 전에 부의 분배를 할 만한 기술이 있을까, 만일 그런 전투가 벌어진다면 워싱턴은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또 그렇게 되면 남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멕시코인 부락에 살고 있는 많은 멕시코인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현재의 백악관이나 의회, 워싱턴 행정부의 혼란상태로 미루어 보아 이렇게 대규모로 일어나는 위기에 대한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경제에 대해 말한다면, 거대한 경제세력을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에게 국제금융 시스템의 대폭적인 변동이나 그 완전한 붕괴에 대응할 능력이 과연 있을까 하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통화의 통제를 하지 못하는 상태하에서 유러달러는 거품처럼 무제한으로 퍼져 나가고 있고, 소비자 론(loan)과 기업이나 정부의 차입금은 늘어만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장래의 경제안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급상승하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차관의 회수불능, 기타 어떤 이유로 해서 경제공황이 일어난다면 사설군대가 행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신흥종교의 문제가 있다. 현재, 무수한 종교단체가 난립해서 번영하고 있지만 그 속에 정치적 목적으로 조직된 것이 있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가, 탈대중화의 영향력을 받아 큰 종교조직이 분열되고 이 속에서 목사나 신부, 전도사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많이 출현할 것이다. 그 중에는 잘 훈련된 유사군대와 같은 정치적 추종자들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새로운 정당이 노골적으로 '법과 질서'를 내세우며 강렬한 권위주의적 경향의 '반포르노' 강령에 기반을 두고 대중동원력을 갖고 있는 기독교의 전도사 빌리 그레이엄(또는 그와 유사한 인물)을 입후보시키는 따위의 일이 없다고는 단정 못한다. 혹은 게이(gay)의 시민권 획득운동을 반대하는 데 유명한 애니타 브라이언트의 후계자가 나타나서 게이와 그 지지자 전원을 투옥하라고 요구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예는 장차 가장 비종교적인 사회에서도 종교정치가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호메이니 아닌 스미스, 슐츠, 심농 등의 아야톨라(Ayatollah)가 이끄는 각종 종교적 정치운동이 탄생되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이 세상의 이런 몇 개의 시나리오대로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심각한 위기가 지금까지 일어났던 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협을 안고 온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현재의 제2의 물결의 지도층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제로 오늘날, 제2의 물결의 정치기구는 70 년대보다도 더욱 기능이 저하되어 있으므로 1980 년대와 1990 년대의 위기를 맞았을 때 각국 정부는 과거 10 년간보다도 더욱 무능력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며 근시안적이 될 것이라는 것도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가장 위험스러운 정치적 환상을 밑에서부터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구세주 콤플렉스 구세주 콤플렉스라는 것은 지도자를 바꾸면 자기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이다. 제2의 물결의 지도자가 제3의 물결의 대두로 야기된 여러가지 문제와 직면해서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넘어지기도 하는 꼴을 본 사람들이 이 곤란한 사태가 일어나게 된 원인은 '지도자의 실패'에 있다는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결론에 매달리려고 한다. 신문이나 잡지도 이것에 박차를 가한다. 어쩌면 구세주가 정치세계의 지평선에 모습을 나타내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오늘날 미덥고 남성적인 지도자를 열망하는 소리가 선량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자기 주변에 있는 세계가 붕괴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하에 놓이게 된 결과, 질서와 조직, 장래를 예측하고 싶어하는 갈망이 점점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1930 년대에 히틀러가 등장했을 때, 스페인의 작가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쓴 것처럼 '수많은 개들이 별을 향해서 짖어대는 것처럼 지휘를 해 주는 그 누구를, 혹은 무엇인가를 원하는 강한 외침 소리'가 지금 우리들의 귀에 들려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리더쉽의 결여'가 큰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영구에서 대처가 선출된 것은 적어도 그녀가 '철의 여성'이라는 환상을 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공공연하게 리더쉽을 문제삼을 수 없는 공산주의 산업국에서조차도 '보다 강한 리더쉽'을 요구하는 압력이 높아가고 있다. 소련에서는 '필요한 정치적 결단'을 단호하게 내리는 스탈린의 능력을 크게 찬양하는 소설이 나타났다. 알렉산더 차코프스키가 쓴 (승리)의 출판은 '스탈린주의의 부활' 운동의 일환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스탈린의 작은 사진이 자동차의 앞유리나 가정, 호텔, 신문판매대에 범람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의 제도)의 저자 빅토르 네키펠로프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날 자동차의 앞유리에 스탈린의 사진을 붙이는 풍조는 역설적으로 들릴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중의 밑바닥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으로서 현체제의 무능과 지도성의 결여에 대한 민중의 항의인 것이다.' 위기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오늘날 리더쉽을 요구하는 소리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검은 세력이 또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일어났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프랑스에서는 소수이긴 하지만 30 년 이상이나 동면하고 있던 우익단체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파시즘의 패배와 함께 실추되었던 지적 각광을 다시 받아보려고 인종적, 유전적, 정치적 엘리트주의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아리안족의 우월서오가 격렬한 반미주의를 선전하는 그들의 논조는 (피가로)를 무대로 전개되고 있다. 인종이라는 것은 제각기 선천적으로 불평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 능력차를 사회정책적으로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극히 반민주적인 편견에 과학적 색채를 부여하기 위해 E.O. 윌슨이나 아더 젠센의 말을 예로 들면서 자기들의 주장을 장식하고 있다. 얼마 전에 나는 아내와 함께 지구 저편에 있는 일본에 머무르던 중 트럭에 탄 정치운동가의 데모행진과 만나서 교통이 끊겨 45분이나 자동차를 세워야 했다. 제복과 헬멧으로 무장한 정치운동가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일본인 친구의 말을 들으면 이 소란스런 사람들은 마피아와 비슷한 '야쿠자'와 선이 닿고 있으며 종전 전의 우익권력의 부활을 노리는 유력한 정치가로부터 자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좌익'에도 이것과 대응하는 현상이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사회민주주의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 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전체주의적 리더쉽을 플라스틱 폭탄의 위력으로 사회를 강요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 미국에서의 위험한 징후들 중의 하나로 파렴치한 인종펴견의 부활을 들 수 있다. 1976 년 이래, 흑인과 유태인을 배척하기 위한 비밀결사 K.K.K.가 또다시 부활했다. 애틀랜타에서 십자가를 불태우고, 앨라배마주 디테이터의 시청을 습격하기도 했고, 미시시피주 잭슨의 흑인교회와 유태교회에 총탄을 퍼부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코네티컷주에 이르는 21개 주에서 K.K.K.는 활동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나치스라고 자칭하는 K.K.K.단원이 좌익의 반 K.K.K. 활동가를 5명이나 살해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보다 강한 리더쉽'을 원하는 소리가 높아진 것은 대의정치의 붕괴로부터 이익을 얻으려는 권의주의적인 집단이 다시 나타나려는 때와 같은 시기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둘은 마치 성냥과 휘발유가 같이 있는 것처럼 극히 위험한 일인 것이다. 이처럼 강한 리더쉽을 원하는 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세 가지의 잘못된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 하나는 권위주의적인 능률성의 신화이다. 독재자는 무엇이 어떻게 되든 '정각에 기차를 달리게 한다.'고 널리 믿어져왔다. 지금 너무나도 많은 제도가 붕괴되고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경제, 정치, 사회라고 하는 기차를 정각에 달리게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유의 일부를 내던져 버려도 좋다(남의 자유라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리더쉽은 비록 전체주의 체제하에서라도 능률성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소련의 리더쉽은 확실히 프랑스, 미국, 스웨덴보다는 강하고 권위주의적이지만 오늘날의 소련이 능률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체제유지에 필요한 군대, 비밀경찰 등의 조직을 제외하면 소련은 모든 면에서 여러 보도기관까지 포함하여 물이 새는 배와 같은 느낌이 든다. 무책임, 나태, 부패에 의해서 반신불수가 된 사회이며 한 마디로 해서 '전체주의적 비능률'이 만연된 사회인 것이다. 폴란드인, 러시아인, 유태인, 그리고 그 외의 '비아리안'을 일소하는 데에 경이적 능력을 발휘한 나치 독일마저도 다른 점에서는 도저히 유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영국의 국회의원 레이먼드 플레처는 독일에서 교육을 받았고 독일사회를 직접 관찰한 사람인데, 그는 우리가 잊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켜 주는 글을 썼다. '우리는 나치를 능률의 모범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독일인보다 영국인 쪽이 전쟁에 대한 체제를 잘 조직하고 있었다. 나치는 루르공업지대의 철도가 파괴되어 수송수단이 없어진 다음에도 전차나 장갑차의 제조를 계속하고 있었다. 과학자를 다루는 솜씨도 서툴렀다. 비능률이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전시중에 있었던 1만 6000에 달하는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발명 중, 실제로 생산과 연결된 것은 극히 적은 숫자였다. 나치의 정보기관은 대단했다. 영국은 거국적으로 철사줄에서 냄비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위해 동워너되었지만 독일인은 저니시중에도 사치품을 제조하고 있었다. 영국은 일찍부터 여자를 동원한 데 비해 독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히틀러 자신이 우유부단의 화신이었다. 제3제국이 군사, 공업 양면에서 능률이 좋은 나라로 알려진 것은 엉터리같은 신화에 불과하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기차를 정각에 달리게 하는 것에는 강력한 리더쉽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한 것이다. 강력한 리더쉽을 요구하는 소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두 번째의 이유는 과거에 통용되었던 리더쉽의 형태가 은연중에 미래에도 통용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리더쉽에 대해 생가가할 때 우리는 언제나 루스벨트, 처칠, 드골 등 과거에 있던 지도자의 의미지에 좌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명이 변하면 리더쉽의 질도 변화된다. 어떤 문명 속에서 강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사람도 다른 문명에는 제구실을 못하는 수가 있다. 제1의 물결의 농노제도에 기반을 둔 문명에서의 지도자는 보통 업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문에 의해서 정해졌다.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몇가지의 한정된 능력뿐이었다. 예를 들어 전쟁 때에 부하를 통솔하는 능력이나, 자기 부하인 호족들을 서로 대항시켜 어부지리를 얻는 지혜, 우리한 결혼을 할 수 있는 재치 등이었던 것이다. 읽고 쓰거나 추상개념을 널리 다룰 줄 아는 힘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헌법이나 의회나 여론 등의 기관도 전혀 없었으므로 지도자는 종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개인의 권위를 휘두를 수가 있었다. 타인의 승인이 필요한 경우에도 귀족, 영주, 승려 등 소수 그룹으로부터의 동의만 있으면 되었다. 그들로부터 찬동을 얻을 수 있는 재주만 있으면 '강한' 지도자였다. 이것과 대조적으로 제2의 물결의 지도자는 보다 추상적인 힘을 행사할 줄 알아야 했다. 결정을 내려야 할 범위도 매체를 조종하는 것으로부터 거대한 경제의 운영까지 대단히 넓어졌다. 게다가 그가 내리는 결정을 실행하는 것은 몇 개의 조직과 기관이다. 따라서 그는 실행기관 상호간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고 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읽고 쓰기는 물론, 추상적인 사고력도 있어야 한다. 소수의 신하가 아니라 많은 엘리트들을 조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의 권력은 설사 전체주의 국가의 독재자라 해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헌법이나 판례, 정당한 요구, 대중의 여론 등의 힘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제1의 물결의 '최강'의 지도자라 할지라도 제2의 물결의 정치구조 속에 들어서게 되면 '가장 약한, 제2의 물결의 지도자보다도 약하고 혼란만 일으키는 이상한 존재'로 될 것이다. 지도자의 '약함'은 그 개인의 자질의 반영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권력을 의존하고 있는 체제 그 자체의 붕괴로 인한 결과인 것이다. 그들의 표면상 약하게 보이는 것은 그들의 '권력'이 늘어난 결과인 것이다. 제3의 물결이 사회를 변혁시키고 다양성과 복잡성을 더해감에 따라 모든 지도자는 결정을 내린 후 그것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 지도자가 지휘권을 발휘하기 위한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지도자는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날망정 결코 적어지지는 않는다. 초음속 전투기, 핵무기, 컴퓨터, 전기통신기기 등의 예를 생각해 보더라도 그것을 금방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의존관계는 어떻게 해서라도 끊어버릴 수는 없다. 왜냐 하면 현재의 권력 자체가 필연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미국 대통령은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버튼 앞에 앉아 언제라도 지구를 날려보낼 만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이 없는 전화로 말하고 있는' 것같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권력과 무력, 이 두 개는 집적회로를 프린트한 반도체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한 제3의 물결문명은 완전히 새로운 형의 리더쉽을 요구하고 있다. 제3의 물결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필수조건은 아직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강력한 지도자라는 것은 지도자 개인의 발언력보다는 타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능력이 있을 것,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힘보다는 상상력이 있어야 하며 과대망상이 아니어야 하고 새로운 세계에서의 리더쉽의 한계를 인식할 줄 아는 그런 지도자라야 할 것이다. 내일의 지도자는 현재보다 훨씬 탈중앙집권적이며 다수의 참여적인 사회를 상대하게 된다. 게다가 오늘의 사회보다 훨씬 더 다양화한 사회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실제로 한 인간이 모든 특성을 갖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좀더 암시적이고 단체적이며 모든 일을 합의하에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될 것이다. 질 트위디는(더 가디언: The Guardian)의 시평란에서 날카롭게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카터를 비판하기는 쉽다. 그는 약한 사나이이고 동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도 동요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지미 카터의 가장 큰 결점은 지구는 나날이 작아져가는데도 문제는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상호 얽혀 있어서 옛날처럼 한 인간, 한 정부의 주도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은 점일는지도 모른다.' 트위디가 시사한 것을 요약하면 우리들은 애써 새로운 형의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누군가가 그러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성질상,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제의 강자도 내일의 사회에서는 약자로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대로 되느냐 안되느냐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을 궁지에서 구해주는 정치적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논리에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그런 생각은 우리들의 기본적인 문제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데서부터 출발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설사 성인이나 천재나 영웅이 주도권을 잡더라도 제2의 물결 시대의 정치기술인 대의제정치의 위기를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망상조직의 세계 만일 '최선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만을 걱정한다면 현재의 정치제체 속에서도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는 대단히 깊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도자설사 최선의 지도자라 해도가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일을 추진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그 제도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현재의 정치나 행정의 구조는 아직 국민국가라는 것이 본령을 발휘하고 있는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당시 각국 정부는 독자적인 결정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나라의 주권이라는 신화는 살아 있기는 하나 이제는 한 나라가 독자적인 결정을 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은 나라에서 나라로 전염해 나가는 전염병같은 것이기 때문에 브레즈네프나, 그 후계자들마저도 인플레이션이 국경을 넘어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공산주의 산업국들은 부분적으로는 세계경제에서 뚝 떨어져서 엄격한 내부통제를 가하고 있지만 석유, 식량, 기술, 차관, 기타 필요한 자원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1979 년 소련은 각종 소비물가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연료용 석유가격이 두 배로 인상되었다. 헝가리는 전기요금을 51 퍼센트나 인상해서 소비자들을 놀라게 했다. 어느 나라가 하나의 결정을 내릴 때마다 다른 나라에 문제가 파급되어 여러가지 반응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프랑슨는 카프 드 라 아그에 원자로를 건설중인데 이것은 영국의 윈드시케일의 원자로보다도 런던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방사능이 포함되어 있는 먼지나 가스가 새어 나오면 강한 바람을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멕시코만의 원유유출사건으로 500 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텍사스 해안이 오염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리비아가 원유산출량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하면 많은 나라의 생존에 직접적 또는 장기적 영향을 준다. 그물눈처럼 밀접하게 얽혀 있는 조직체 속에서 지도자들이 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놓더라도 ㄹ혹은 강압적인 정치를 하더라도 좀처럼 유효한 정책을 실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의 결정은 마치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 같아서 곧 세계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과 동시에 국내의 시골 구석구석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 영향이란 것은 예산을 축내고, 바람스럽지 못한 것이며 때로는 위험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정부의 규모도, 결정권의 배분도, 이제는 절망ㅈ거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오늘날의 세계와는 맞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도 현행의 정치구조를 시대에 낙후된 것으로 만드는 여러 원인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러 부문에 걸친 문제 오늘날의 정치제도는 시대에 뒤떨어진 지식체계를 반영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재정, 외교, 방위, 상업, 우편, 운수 등을 개별적으로 취급하는 관청을 갖고 있다. 미국 의회나 기타 입법 기관도 다같이 분야별로 문제를 처리하는 위원회를 갖고 있다. 아무리 중앙집권화되어 있고 권쥐주의적이라 해도 제2의 물결정부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각 부분에 걸쳐지게 되는 문제이다. 즉, 이 개별단위의 활동을 통합해서 상호 모순적이고 상쇄적인 효과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질서있고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 수십년의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회문제와 정치문제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에너지는 경제에 영향을 주고, 경제는 건강문제에, 건강문제는 교육, 노동, 가정생활 기타 여러 분야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정연하게 구분되어 있는 문제를 따로 떼어내서 취급하려는 태도(그 자체가 산업시대의 산물이다)는 혼란과 비참한 결과밖에 낳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의 조직구조는 묘하게도 이런 제2의 물결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이 시대착오적인 구조가 가져오는 것은 끊임없는 권력투쟁과 책임회피(각 기관마다 다른 기관을 희생시키면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이며 역효과 발생의 연속이다. 때문에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면 또다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원래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기도 한다. 많은 나라의 정부는 각 부처간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형식주의적인 절차를 생략하는 '독재자'를 임명하는 등으로 중앙집권화를 한층 더 강화시켜 해결하려고 한다. 독재자는 어떠한 파괴적 파급효과가 일어나는 것도 모르고 제멋대로 일을 변경하거나 혹은 절차를 더 복잡하게 해서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게 된다. 중앙집권화는 이미 효과가 없는 제도인 것이다. 파멸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은 부서간의 위원회를 무수하게 만들어 조정을 하거나 결정을 재심사하는 행위이다. 그 결과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거쳐야 할 장벽이 더욱 더 늘어나서 미로와 같은 관료기구가 한층 더 복잡해졌다. 현대의 정부나 정치구조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된 원인은 세계를 제2의 물결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일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다. 결정의 가속화 지금은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테헤란에서 인질극을 연출하거나 콤의 병원에서 기침을 한 번 해도 워싱턴이나 모스크바, 파리, 런던에서는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몇분 내에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이다. 이 극단적인 가속화는 정부나 정치가에게 대책을 강구할 틈을 주지 않아 그들에게 무력감과 혼란을 더 크게 가져다 준다. 신문이나 잡지도 이러한 사태를 개탄하고 있다. 예로 들면 미국의 광고업계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 Advertising Age)는 '불과 3개월 전 백악관은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구매로 달러를 낭비할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가지 수단을 쓰며 가벼운 마음으로 달러를 쓰도록 만들고 있다.'고 쓰고 있다. 석유 전문가들은 석유가격의 인상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포춘)지에 의하면 1974 년부터 1975 년까지 미국의 경기 후퇴는 그 '압도적인 진행속도와 심각함'때문에 정책입안자들에게 타격을 주었다고 했다. 사회적 변화도 가속적으로 빨라졌고 그것이 또 정책입안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비즈니스 위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미국에서 산업과 인구의 이동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때는^5,5,5^ 그것이 국가의 통일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 5 년간은 산업과 인구이동의 속도가 돌발적으로 빨라져서 현존의 정치제도로서는 수습이 곤란하게 되고 말았다.' 정치가들 자신의 경력도 가속화되어 그 변화의 요란함은 정치가 자신들이 자주 놀라고 있는 현상이다. 1970 년만 해도 마거릿 대처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은 여성이 영국정부의 각료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9 년에는 그녀 자신이 수상자리에 앉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지미 카터가 무명에서 백악관에 들어가기까지는 불과 몇 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더구나 대통령이 취임하는 것은 선거 다음해 1월에 하게 되어 있는데도 카터는 선거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카터는 중동문제, 에너지 위기, 기타의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드는 단번에 '절름발이 오리'에서 '죽은 오리'로 되고 말았다. 정치의 시간은 단축되고 역사는 너무나도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인습적인 지면은 용서받을 여지가 없다. 마찬가지로 새 대통령과 신문보도와의 '가까운 사이'도 곧 끝나고 말았다. 카터는 이미 위ㅐ임 전부터 각료의 인선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 그가 추천한 CIA장관 후보자를 후퇴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4 년의 임기를 절반도 지나기 전에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알려진 정치기자 리처드 리브스는 카터 대통령은 재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통신의 스피드와에 의해 시간이 단축된 결과 현대의 대통령은 과거의 대통령이 재선되어 8년을 경험한 것보다도 훨씬 많은 사건, 더욱 많은 분쟁, 더욱 많은 정보를 산출해 내기 때문에' 카터 대통령의 정치생명이 짧을 것이라고 이미 예견했다. 일반적인 가속화를 반영하는 이 정치생활 속도의 격화가 오늘의 정치와 정부의 붕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원만한 사회에 알맞게 만들어진 제2의 물결제도 안에서 일해야 되는 오늘의 지도자들은 사태의 추이에 맞추어 현명한 결단을 민첩하게 내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여기 존스 홉킨스대학 국제정치대학원(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의 로버트 스키델스키 교수가 쓴 글이 있다. '설사 의회의 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정당이 존재한다 해도 의회에서의 절차를 밟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어서 재정정책은 사실상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 글이 씌어진 것은 1974 년이다. 그후 미국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정책결정은 6년 동안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변화의 가속화는 기성제도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결정기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의 이데올로기나 지도자의 리더쉽에도 불고하고 모든 정치기구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현재의 제도는 규모나 기구면에서도 부적당할 뿐만 아니라 그 사무처리의 스피드에 있어서도 불충분하다. 더구나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다. 여론의 붕괴 제2의 물결이 대중사회를 낳게 했다고 한다면 제3의 물결은 우리들을 탈대중화로 가게 하고 모든 사회체제를 보다 다양한, 보다 복잡한 단계로 이행시킨다. 진화에 있어서의 생물의 분화와 유사한 이 혁명적인 과정이, 현재 가장 많이 주목받고 있는 정치현상의 하나인 여론 붕괴의 원인으로 되어 있다. 산업화된 세계의 여러 정치가들이 개탄하고 있는 것은 '국가목적'이 상실되었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불연합군을 독일에서 후퇴시켰던 낡은 사상이긴 하지만 그립기도 한 '던커크 정신(Dunkirk spirit)'이 없어졌다는 것, '국민의 일체감'이 소멸되었다는 것, 그리고 어물어물하고 있는 사이에 강력한 분파 그룹이 많아졌다는 것 등이다. 최근 워싱턴 관청가에서의 유행어에 '문제별 그룹(single issue group)'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각자가 낙태, 총기소지규제, 동성애의 권리, 학교버스의 문제, 원자력 등을 둘러싸고 결성되는 정치조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조직은 수천명의 회원을 갖고 있으며 전국적, 지방적 규모의 이들 세력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정치가와 관리들이 이들에 관한 기록을 남길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이동주택 소유자들은 자기들만의 조직을 만들어서 군의 지정지역의 장소변경을 반대한다. 농가는 송전선 건설에 저항한다. 연금생활자는 학교를 위한 세금부과에 반대해서 조직을 만든다. 여권신장론자, 멕시코계 미국인, 노천채탄장의 광부, 노천체탄의 반대파 그리고 미혼모도 포르노 반대 운동가들도 모두 조직들 만든다. 미국 중서부의 어떤 잡지에 의하면 '게이 나치스(gay Nazis)'라는 조직까지도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호모에 관심이 없는 나치스에게도, 게이 해방 운동가에게도 불쾌감을 줄 것이다. 한편, 전국규모의 대조직은 조직유지에 고생하고 있다. 어떤 단체의 대회에 참석했던 어느 참가자는 '지방의 교회는 이제 중앙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노동문제 전문가의 보고에 의하면 AFL-CIO(미국 노동총연맹 산업별회의)에 의한 통일적이고 집단적인 정치운동을 대신 가맹한 조합은 각각 독자적인 목표를 내결고 독자적인 투쟁을 강화하고 있는 경향이 점점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유권자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분파 그룹 자체가 점차 일시적인 것이 되어 새로 조직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해산되는 것도 있다. 너무나도 급속하게 교대를 계속하는 불안정한 상태여서 도저히 분석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유동서을 나타내고 있다. 어느 정부관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새로운 자원봉사 단체의 수명은 대개 6개월에서 8개월로 봐도 좋을 것이다. 새 단체가 뒤를 이어 태어나고 있지만 어는 것이나 단명하다.' 이렇게 가속화와 다양화라는 두 개의 경향이 결합해서 완전히 새로운 국가글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진전되는 데 따라 정치연합, 동맹, 연합전선 등의 개념도 망가해 버리게 되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1932 년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해냈던 것처럼 그 당시에는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가 6개나 되는 중요한 단체를 단결시키고 더구나 그 연합을 몇년이나 유지시키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에는 수백, 수천이나 되는 작고, 단명하고, 특수한 이해관계를 갖는 그룹을 결집시켜야 하는데 그 연합체도 또 단기간밖에 가지 않는다. 설령 연합체가 된다 해도 그 단결은 대통령을 선출할 때까지 밖에 계속되지 못하고 선거가 끝나면 또 분열하고 만다. 그래서 대통령은 자기의 정치방침을 지지하는 단체도 없어진 채 공중에 뜨고 마는 것이다. 정치생활의 이러한 탈대중화는 지금까지 말했던 기술이나 생산, 통신, 문화 등의 변화를 근본에서부터 밝힌 것이며 이것이 정치가의 중요한 결정을 행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지금까지 잘 알고 있는 소수의 잘 조직되고 명료하게 편성된 선거구민을 다루는 데 익숙했던 정치가느 갑자기 많은 선거민에게 포위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어디를 향해도 많은 선거민이 유동적인 조직을 결성하고 현실적이긴 하지만 특수하고 귀에 익지 않은 요구를 많이 내결고 그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수한 요구사항들이 입법기관이나 관료기구의 모든 길을 이용해서 홍수처럼 밀려가고 있다. 우편과 온갖 전달수단을 이용하여 그 길을 통해서 비집고 들어간다. 요구사항이 너무나도 많아서 도저히 심의를 하지도 못한다. 더욱이 사회가 가속도로 변화하기 때문에 시기가 늦은 결정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것보다도 나쁠 때가 있기도 해서 누구나가 다 즉작적인 결정을 요구한다. 그 결과 의회는 쉴 사이도 없이 소집하게 된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선출된 민주당의 N. Y. 미네타의원의 말을 빌리면 "모두 들락날락하면서 얼굴을 맞대고 있지만 바빠서 찬찬히 생각할 사이도 없다."고 한다. 나라에 따라 이러한 사정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제3의 물결의 혁명적 도전을 받아 제2의 물결의 여러 제도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물건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제2의 물결제도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또 새로운 단계를 맞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다양성에 대응하기에는 너무나도 획일적 조직인 것이다. 현대의 제도나 조직은 좀더 완만하게 움직이는 단순한 사회에 알맞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현재 완전히 궁지에 몰려 있어서 타이밍이 맞지 않게 되고 말았다. 제3의 물결의 도전을 방어하려면 규칙만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 도전은 제2의 물결의 정치이론의 가장 기본사상인 의회대표제라는 것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정치체제가 이론적으로는 다수결 원칙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이렇게도 다양화가 진전되면 인류가 생존하는 데 퍽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다수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여론이 붕괴된 결과 어떤 정부라 해도 소수파에 의한 정부가 되고 동요하고 있는 불확실한 연합체에 의해 간신히 지탱되게 될 것이다. 다수파가 없어져 버리면 표준적인 민주주의라는 미사여구는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변화의 스피드화와 다양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선거구 전체를 '대표한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대중산업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요구가 퍽 획일적이고 기본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여론을 얻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국가 목적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 시의 차원에서도 명확한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프랑스에서도, 일본이나 스웨덴에서도 선거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이 방대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대표'로 선출되었다 해도 이제는 선거구민 전체의 여론을 대변하고 있다고 정정당당하게 주장할 수는 없다. 총체적인 의견을 대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총체적인 의지 자체가 도대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 아래서 '의원대표제 민주주의'의 사상은 대체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을 제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공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제3의 물결이 얼마나 풍요롭고 개방적인 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주는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밝히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 의문은 하나의 틀림없는 사실을 명백하게 해 준다. 즉 제2의 물결제도만이 아니고 그 기초를 받쳐주고 있는 그 자체가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는 것이다. 과중한 부담에 허덕이고 있으며 또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산업시대의 정치기술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려 하고 있다. 이 정치기술은 자기나라만으로는 처리하지 못하는 문제에 충분히 대응 못하기 때문에 현 시대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서로간에 얽힌 문제도 처리하지 못하며, 가속화된 움직임에도 따라가지 못하고 고도의 다양성도 대처를 못한다. 결정의 내부파열 오늘날의 지도자에게는 익숙치 않는 문제가 너무나도 많다. 더구나 그것에 대해 보다 빨리 보다 많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의 정치결정, 정부결정이 총체적으로 무력하게 된 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과 같이 '지도성의 결여' 때문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사태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도는 결정의 내부파열에 의해 밑바닥에서부터 흔들거리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정부가 효과적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급속하게 저하되고 있다. 윌리엄 쇼크로스는(하퍼스: Hapers)지에서 닉슨과 키신저의 캄보디아 정책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결정이 백악관에서 내려져야만 했다면 도저히 그 하나하나를 충분히 심의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백악관에는 대기오염, 의료비, 원자력문제로부터 위험한 완구의 추방에 이르기까지 여러 안건이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대통령 고문은 "정말이지, 여기서는 모두가 미래의 충격 때문에 머리가 아프지요."라고 말하고 있다. 행정기관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각 부처가 결재를 기다리는 안건이 산적되어 있다. 나날이 가속도적으로 강해지는 압력을 받으며 매일 무수한 규정을 시행하고 많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 예술진흥기금이 최근에 내부조사를 했더니 이 이사회는 4분 30초마다 1건의 기금신청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라 한다. 이 조사보고는 '신청의 건수가 대단히 많아 정확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결정하기가 어려워진 데 대한 원인을 연구분석한 것은 많지 않다.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의 하나로 1968 년 미국 정보수집함정이 북한에 나포되어 양국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졌던 이른바 푸에블로호 사건에 관해서 트레바 암브리스터가 행한 분석이 있다. 암브리스터의 조사에 의하면 푸에블로호의 파견계획을 승인했던 국방성의 담당관은 76건의 군사적 임무 제안에 대한 위험도 측정을 불과 몇 시간내에 평가해야만 될 처지에 있었다 한다. 이 조사서를 발표한 후, 담당관은 푸에블로호 심의에 관해 실제로 몇 시간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밝힐 것을 거절했다. 그러나 암브리스터가 인용했던 DIA(국방정보국)의 어는 직원의 말이 이 문제의 실태를 명백하게 해 주고 있다. '오전 9시에 두터운 서류가 도착했고 정오까지는 결론을 내리고 돌려 보내라는 명령이 내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서류는 통신판매 카탈로그만큼이나 두터웠다. 하나하나의임무를 상세하게 검토하기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한 시간적 제약을 받으면서 푸에블로호 임무의 위험성을 '최소'로 평가했던 것이다. DIA직원의 말이 맞는다면 푸에블로호에 관한 계획이 처리된 날에 군사임무평가에 소요된 시간은 1건당 평균 2분 30초였다. 이러니 잘될 수가 있겠는가. 예컨대 미국방성 관리들은 외국으로부터의 무기 발주건에서 300억 달러가 행방불명이 된 사건이 일어났다. 터무니 없는 경리의 착오인지, 전액 청구 누락인지, 아니면 다른 데에 돈을 써 버렸는지 도무지 판명되지 않았다 한다. 국방성의 어느 감사관에 의하면 몇십억 달러가 되는 실수는 '갑판에 포탄이 놓여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치명적인 사태가 일어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슬픈 일이긴 하지만 이런 혼란상황이 얼마나 심한 것인지 아무도 잘 모르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을 선별해 내려면 아마 5년은 걸릴 것이다.' 컴퓨터와 신뢰성이 높은 정보체제를 자랑하고 있는 국방성마저도 너무나도 거대하고 지나치게 복잡하게 되어 관리가 잘 안된다고 하면 도대체 정부 전체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낡은 결정기관은 외부세계의 혼란을 점점 더 분명히 반영하게 되었다. 카터 대통령의 보좌관인 스튜어트 아이젠슈타트는 "사회가 이익단체에 분할되어 거기에 대응해서 의회의 권한도 소집단으로 분산되고 말았다."로 말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상황 속에서 대통령은 자기의 의지를 쉽게 의회에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원로이자 유력한 상하원의 위원장 5,6명과 타협을 하여 법안을 승인하는 데 필요한 표를 얻을 수가 있었다. 현재에는 AFL-CIL나 카톨릭교회가 조합원 또는 교인의 표를 간단히 모을 수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상하원의 위원장들도 쉽게 젊은 의원들의 표를 확보할 수가 없게 되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과 시간에 쫓기고 있는 대통령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사람들은(의원들도 포함해서) 더욱 더 자기 자신의 생각으롤 움직이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타인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고만 있지는 않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원인이 작용해서 현재의 구조로는 의회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계속적인 심의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필요에 재빨리 대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의회 미래정보본부의 보고서는 이 '광란의 스케줄'에 쫓기고 있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에 가스 규제해제, 로디지아 문제, 파나마운하 문제, 교육성의 상실, 식량표, AMTRAK(미국철도여객공사) 관계의 인가, 고체쓰레기의 처리, 멸종 직전의 동식물의 보호등, 잡다한 문제를 일주일내에 표결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복잡함과 빛의 속도처럼 빨리 움직이고 있는 변화로부터 오는 위기가 예전에는 신중한 심의의 장소였던 의회를 웃음거리고 만들고 말았다.' 물론 산업국이라고는 해도 정치의 절차나 구조는 나라마다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 '혼란과 침체로 허덕이고 있는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라고 (US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쓰고 있다. 소련은 어떨까? 그들 정부에서도 미국의 핵무기 관리 제안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 나라에서도 자본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외국과의 무역협정 교섭이 오랫동안 지연되고 있다. 국빈으로 초정한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을 영접하는 데도 서투른 솜씨가 눈에 띠었다. 중동정책에 대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서구의 공산당에 대해서도 자기나라 정부에 반대하라고 지시하기도 하고 협력하라고 호소하기도 해서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일당체제하에서마저도 확고한 정책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복잡한 문제에도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런던에서 어는 국회의원이, 영국정부는 '매우 과중한 부담을 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 이전에 각료를 했던 일이 있는 리처드 마쉬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의회의 조직은 지난 25 년 간 거의 달라진 데가 없다. 오늘날 필요로 하고 있는 경영관리적인 결정을 할 정도로 정치구조가 되어 있지 않다. 전체가 완전히 무력하다. 그리고 내각도 역시 대동소이하다.' 지난 10 년간 국론이 양분되어 있는 원자력문제에 대해 스웨덴의 불안정한 연합정부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테러리즘과 정치위기를 되풀이하면서 정부는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는 없었던 위협적인 사실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들 눈앞에 있는 정치적 동요나 위기적 상황은 지도자를 바꾼다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지도자가 국정을 강력하게, 또는 허약하게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활동하고 있는 장소가 과중한 부담에 허덕이고 있으며 현상태를 대응 못할 정도로 이미 붕괴되어 버린 제도를 통하지 않을 수 없는 데 있다. 정치체제라는 것은 그것을 수행할 능력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규모로 운영되어야 하고 서로 다른 정책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않으면 안되며 적당한 스피드로 결정하고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 그것에 대응해야 한다. 이런 점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혼란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지도자의 강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는 구조 그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들의 정부가 조금이나마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농장을 운영한 경험밖에 없는 18세기에 살고 있던 조상이 깃털펜으로 극히 초보적으로 그린 조직표를 가지고 대회사를 운영하려고 하는 회사 사장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1900 년에 처음으로 영불해협 횡단에 성공한 블레리오나, 1929 년에 뉴욕.파리간의 대서양 무착륙비행에 성공한 린드버그가 사용한 항공술이나 조종장비를 가지고 초음속 제트기를 타겠다는 조종사가 있다고 하면 미친 사람이 분명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정치세계에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핵무기가 가득하고 세계가 경제적으로 혹은 생물학적으로 붕괴하기 직전의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때, 제2의 물결의 정치체제가 급속하게 시대에 뒤떨어진 기구로 되어가고 있는 사실은 사회전체에체제 '밖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중대한 위협을 주고 있다. 우리들을 직접 위협하고 있는 위기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한 고의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최선의 의도라 할지라도 무서운 결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는 시대착오적인 정치관료적 결정기구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 비고의적인 부작용을 가져오게 하는 바로 그것인 것이다. 우리들이 '현대의' 정치체제라고 부르고 있는 것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은 도대체 언제였을까? 그것은 공장제도가 생기기 이전의 일이었다. 그 무렵에는 통조림식품도 냉장고도 가스등이나 사진도 없었다. 또 벳세머 용광로도 타자기도 전화도 발명되어 있지 않았다. 라이트 형제도 아직 하늘을 날기 이전이었으며 자동차도 비행기도 거리를 단축시키기 이전이었다. 또한 라디오나 TV가 우리들의 마음에 이상한 작용을 주지도 않았다.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공장도, 군사용의 신경가스나 핵미사일도 없었고 컴퓨터, 복사기, 피임약, 트랜지스터도 레이저 광선도 없는 시대였던 것이다. 지적인 의미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 즉 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이전의 세계에서 설계된 체제인 것이다. 정치제도, 정부조직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것이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과제인 것이다. 우리들은 계속적으로 위기를 겪게 되면 히틀러나 스탈린의 신봉자들이 파멸의 수령에서 기어나와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잡동사니와 같은 현재의 제도와 함께 자유마저도 포기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가르쳐 줄 것을 갈망할는지도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제3의 물결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인간의 자유를 더 얿히려 한다면 현존의 제도를 지키려 드는 것만으로는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2세기 이전의 아메리카 건국의 선조들처럼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된다. 제28장 21세기의 민주주의 건국의 선조들께 지금은 돌아가신 혁명가 여러분! 여러분이 남자건 여자건, 농민, 상인, 직장인, 변호사, 인쇄업자, 시사문제의 집필자, 상점주인, 군인이건 여러분은 모두 조국을 멀리 떠나 미국의 해안에 힘음 합혀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1787 년과 함께 미국땅에 찾아온 필라델피아의 무더운 여름에 미합중국 헌법이라 불리는 놀라운 문서를 작성하려고 모인 55인도 끼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창조자이며 그 미래가 지금 나의 현재로 되고 있습니다. 1791 년, 권리장전이 추가 제정된 미합중국 헌법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훌륭한 업적의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치열한 사회적, 경제적 혼란이 절정에 달했던 수많은 곤란도 초조해 하지 않았고 어떻게 여러분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자각을 그만큼 분명하게 가질 수 있었는가를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고 언제나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일에의 먼 메아리를 들으면서 여러분은 하나의 문명이 끝나고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수처럼 밀려오느 몇몇 사건에 봉착한 여러분은 이미 타당성을 잃은 원리나 시대에 뒤떨어진 기구에 얽매여서 마비상태가 되어 버린 무력한 정부가 와해되지 않도록 어쩔 수 없이 피나는 노력을 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재기가 넘치고 자기 중심적이고 상반된 이해를 가진 사람들, 그러한 다양한 기질의 사람들에 의해서 장엄한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 낸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 모양의 지역적, 경제적 사업에 열정적으로 참가하고 있던 사람들은 당시의 놀랄 만큼 무능한 정부에 의해서 짓밟힘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이 확 뜨일 만큼 훌륭한 원리에 입각한 급진적인 신헌법을 공동 작성하여 제안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지구상의 헤아릴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온 것처럼 지금도 나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독립선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이나 유명한 (코먼센스(Commonsense))의 저자 토머스 페인의 문장의 어느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그 아름다움과 진리에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반 세기에 미치는 인생을 다른 사람의 지배 아래서가 아니라 법률의 지배 아래 미국 시민으로서 지내 온 것을, 지금은 고인이 된 여러분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특히 그 대용품이 있을수 없는 귀중한 '권리장전(Bill of Rights)' 덕택으로 자유로이 생각하며, 때로는 바보스럽고 빗나갈 수가 있는 보편화되지 않은 견해들을 발표할 수 있었다는 것을^5,5,5^ 또 검열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러한 문장을 엮어 낼 수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쓰지 않을 수 없는 사실들은 나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로부터 너무나 오해를 받기가 쉬운 것들입니다. 반정부 감정을 선동하는 자로 단정해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제 아무리 진리로 인정하는 것이 괴롭더라도 진리이며, 그 사실을 여러분이라면 당장에 이해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이 쌓아올린 정부체제는 그 바탕에 있는 원리 그 자체를 포함하여 더욱 더 시대에 뒤진 것이 되며 우리의 행복을 저해하는 위험한 것이 됩니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변혁하여 새로운 정부체제, 즉 21세기의 민주주의를 창안해내야 합니다. 어떠한 정부도, 어떠한 정치체제도, 어떠한 헌법도, 어떠한 헌장이나 국가도 영구적인 것은 못 되며 과거의 결정이 미래를 언제까지나 구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오늘날의 우리들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문명을 위해 설계된 정부가 다음 시대의 문명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헌법마저도 재검토하고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이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연방예산의 삭감이나, 세밀한 원칙들을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자유에 대한 위협을 고려하여 '권리장전'의 정신을 부연하는 것이며 또 새로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부족함이 없는 현명하고 민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포괄적인 새 행정기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내일의 헌법의 청사진이 손쉽게 입수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 문제를 명확히 하려고 하는 단계에 있는데도 이미 해답이 나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신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행제도에 대신해야 할 아주 새로운 제도를 그려 보며 내일의 민주주의 구조에 대해 철저하게 논의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논쟁하며 구상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 필요서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함은 여러분의 동시대인 한 사람인 제퍼슨이 심사숙고 끝에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을 신성한 외경심을 가지고 보았기에 십계명을 새긴 석판을 담은 '법궤(상자)'처럼 너무나 신성시하여 손을 대서는 안될 것처럼 생각해 온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전 시대의 사람들을 인간 이상의 현자로 간주하여 그들이 한 일은 수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5,5,5^ 나는 법률이나 헌법이 종종 충분한 심의도 거치지 않은 채로 수정되는 것을 결코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5,5,5^ 그러나 법률이나 제도는 인류의 정신의 진보와 제휴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5,5,5^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진리가 해명되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생활양식이나 사람들의 의견이 변하면 제도 또한 시대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개선되어 나가지 않으면 아니된다.' 나는 제퍼슨의 이 견식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리고 지금 그 역할을 끝내고 새로운 제도로 바뀌어야만 될 현재의 제도를 만들어 내는 데 전력을 다한 제퍼슨에게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앨빈 토플러 코네티컷 주, 워싱턴에서 이것은 가공의 편지인데 기회만 있으면 똑같은 소감을 술회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이것은 오늘날 정부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함은 나 혼자만이 발견한 비밀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미국만의 병패도 아니다. 요컨대, 낡은 문명의 잔해 위에 새로운 문명을 구축한다고 말함은 단적으로 말해서 많은 나라들에서 일제히 보다 새로운 적절한 정치구조를 설계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곤란하기는 하나 필요불가결한 사업이며 정신이 아찔할 만큼 광범위하여 완성하려면 아마 몇십년이나 걸릴지도 모르는 사업인 것이다. 미국 의회, 공산주의 산업국가들의 중앙위원회나 정치국, 영국 연방제도의 하원과 상원, 프랑스의 하원, 서독 연방회의, 일본의 국회, 많은 나라들의 거대한 부처와 확고한 공무원제도, 헌법, 재판제소 등 소위 대의제 정부라고 불리것 것 대부분이 경직화하여 점점 융통성이 없어져 가는 현재, 이러한 기구들을 철저히 해체 수리하든가 분배하는 데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당한 장기전을 각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치투쟁의 이러한 파동이 국가의 수준에 머무르는 일은 없다. 이제부터 앞으로 수십년간에 걸쳐 국제연합으로부터 지역의 시의회나 음악회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입법기관'이 고조되어 가고 있는 재건에의 저항하기 어려운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들 모든 기구는 근본적으로 개조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 기구가 본래부터 폐해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또 특정의 계급이나 집단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경직화가 진척되고 양상이 일변해 버린 세계의 절박한 요구에 더 이상 대응할 수 없게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밀어넣게 될 것이다. 이 철저한 해체정리가 완강한 저항을 만나면 유혈사태가 벌어지기 쉽다. 이 이행이 평온하게 이루어지느냐 않느냐는, 많은 요인들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현재의 엘리트들이 융통성이 있는가 비타협적인가, 경제적 붕괴에 의해 변화가 촉진될 것인가 안될 것인가, 외부로부터의 협박이나 군사개입이 있는가 없는가 등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분명히 위험 부담은 크다. 그러나 현행의 정치제도를 해체 수리하지 않으면 위험은 더욱 커진다. 정치기구의 해체 수리를 일찍 시작하면 할수록 우리는 보다 안전해질 것이다. 새로운 유연한 정부를 구축하여 우리의 생애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정치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2의 물결시대에 누적된 상투적인 발상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 우리는 다음에 말하는 세 가지 중요한 원리에 비추어 정치생활을 재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 세 가지 원리야말로 제3의 물결 아래서의 내일의 정치형태의 근간을 이루는 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소수세력 현재의 사고방식에서 보면 이단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제3의 물결의 정치체계를 지탱하는 제일의 원리는 소수세력을 중시하는 점이다. 다수결이라고 하는 제2의 물결시대의 정통적인 기본원리는 날로 시대에 뒤진 것이 되고 있다. 현해의 정치체계는 이러한ㄴ 사실에 대해 깊이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의 독립에 참여했던 세대들의 선조가 어떠했었는가 하면, 다시금 제퍼슨이 이야기가 되는데, 정부는 '과반수의 결정에는 절대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것은 독립혁명에 가담했던 세대의 의견을 대표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다시 미국이나 유럽은 아직 제2의 물결의 여명기에 있어 산업화된 대중사회로 저환해 가는 긴여정을 바로 시작하고 있었다. 이미 말해 온 바와 같이 오늘날 우리는 산업주의를 넘어서 탈대중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 과반수를 모은는 것은 물론이요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마저 더욱 관란하게 되어 가고 있다. 오히려 불가능하게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6개월 동안, 네덜란드에서는 5개월 동안이나 정치적 공백이 계속되었던 것은 이때문이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정치학자인 윌터 딘 번햄에 따르면 미국에서 '오늘날 무슨 일이든 적극적인 의미에서 과반수를 얻을 수 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제2의 물결의 엘리트들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다수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다수파를 대표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로서 발언권을 주도해 왔다. 미국 정부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 소련 공산당은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고 있다고 닉슨은 미국의 '소리없는 대중(Silent Majority)'을 대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서는 신보수파 지식인들이, 흑인이나 여권운동가나 멕시코계 미국인 등, 최근에 새로이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소수파의 요구를 공격하고 자신들은 분별있는 온건한 중도를 걷는 다수파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구적인 신보수파의 무리들은 미국 동북부의 명문대학이나 워싱턴의 싱크탱크(think tank)에 근무하고 있어서 함부로 오하이오주의 마리에터라든가 캔자스주 살리나 등지에 발을 들여놓지를 않는다. 그들은 '미국의 중산층' 사이에도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의견의 일치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의견이 일치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고작 때때로 우연히 의견이 일치했다는 정도이며, 더구나 너무나 적은 일들에 한정되기 마련이다. 신보수파의 무리들은 현실의 다수파를 적은 일들에 한정되기 마련이다. 신보수파의 무리들은 현실의 다수파를 옹호하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실체가 없는 다수파라는 신화의 장막속에 반소수파 정책을 은폐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정치권의 다른 한쪽 끝에도 역시 그렇다고 말해야겠다. 많은 서유럽국가들에게 사회당이나 공산당은 '노동자 대중'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대중사회로부터 우리가 탈피해 나가면 나갈수록 마르크스 주의의 가설은 무너져 간다. 이렇게 말함은 대중이나 계급이나 지금 출현하고 있는 제3의 물결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협조의 대부분의 정부는 그 정당성이 미약해져 간다. 몇 개의 중요한 진영이 연합하여 다수파를 형성한다 하는 피라밋형 사회대신에 수천개나 되는 소수파가 아주 새롭고 일시적인 형태로 난립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51퍼센트인 과반수에 뭉치게 할수가 없는 병렬 사회가 올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현존의 대부분의 정부는 그 정당성이 미약해져 간다. 우리가 사회정의라 믿어 온 다수결이란 가설에 대해 제3의 물결은 감히 도전자을 보내오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도 다른 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놀랄 만한 역사적인 반복현상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제2의 물결문명의 시대를 통해서 다수결을 요구하는 싸움은 인가미가 넘치는 해방을 지향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처럼 산업화가 진행중인 나라들에서는 현재도 그렇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 다수결은 거의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다 공펴한 기회를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다수파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제3릐 물결에 흔들리는 나라들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사태는 완전히 반대로 되어 있다.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는 반드시 다수파는 아니다. 많은 나라들에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수파로 되어 있다. 경제적인 대타격이 야기되지 않는 한 이 사태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제3의 물결시대로 이행해 가고 있는 사회에서 이미 다수결은 언제나 정당한 원리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또 반드시 인간적인 것도 아니며 민주적인 것도 아니다. 제2의 물결의 신봉자들은 대중사회의 해체를 시종 한탄한다. 그들은 이러한 풍부한 다양성을 인류발전의 좋은 기회로 보기보다는 '수류탄이 파열하는 것과 같은 분열'이라든가 '이전의 발칸반도의 제국의 분열과도 흡사한 세분화'라고 혹평하고, 다양성을 소수파에 의해서 일어난 '이기주의'의 탓이라고 한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잘못 이해산 불충분한 이론이다. 소수파의 적극적인 행동이 고조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변덕스로 이기주의의 결과는 아니다. 그것은 특히 새로운 생산방법의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어떤 것 보다도 변화가 많고 다채로운 그리고 개방된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의미 심장하다. 예를 들면 소련이 새로운 다양성을 억압하려고 시도하거나 다양화와 함께 일어나는 정치적 다원주의를 제압하려 할 때, 그들의 전문용어를 쓴다면 '생산수단을 속박하는' 결과가 되어 경제적 발전이나 생산방법의 기술적인 발전을 지연시킬 것이다. 그리고 비공산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양자택일을 강요당하고 있다. 제2의 물결의 정치제도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인 그러나 무익한 노력에 의해 다양성으로의 추진력에 저항할 수 있거나 아니면 다양성을 인정하여 정치제도를 여기에 알맞게 변화시킬 수 있다. 반직접민주주의 내일의 정치체계를 쌓기 위한 두 번째 골격은 반직접민주주의라는 원리이다. 선출된 대표자에게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자기들 자신이 대표가 되는 것으로의 전환인 것이다. 즉 간접대표와 직접대표의 두 가지를 다 혼합시킨 것이 반직접민주주의인 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여론을 상실함에 따라 대의제도의 개념 그 자체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 유권자들 사이에 합의가 없다면 대표자란 도대체 누구의 대표자란 말인가? 더구나 국회의원은 법률을 제정함에 있어 참모의 보좌나 외부의 전문가들의 조건에 더욱 더 의존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의 하원의원이 정부의 중앙관서의 관료들에 비해 약체라고 말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말함은 그들에게는 적절한 참모 기능이 없고 이 때문에 많은 권한이 의회로부터 선거에 의하지 않은 관리에게로 이관되어 가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의회는 행정관청의 관료의 실력과 균형을 꾀하기 위해 예를 들면 의회예산담당사무국, 기술평가국 그 밖의 필요한 기관과 부속기관을 설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10 년 동안에 연방의회의 직원은 1 만 700 명으로부터 1 만 8400 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를 단순히 관할 밖으로부너 관할내로 이전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선출한 의원들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무수한 법안에 대해서 지식이 부족하여 타인의 판단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가고 있다. 의원은 이제 대표라고는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기본적으로 말하면 입법부라고 하는 것은 이론으로 경쟁적인 소수파의 주장을 조정할 수 있는 장소였다. 자신이 대표하고 있는 국민을 위해 거래를 하는 것이 의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시대에 뒤떨어져 버린 정치적 수단을 사용하고 있어서는 의원은 자신이 대표하는 작은 그룹에 충분한 보살핌을 하지도 못하고 더구나 그 소그룹을 위해 효과적인 거래를 하거나 중개의 노력을 할 수가 없게 되고 있다. 미국의 의회나 서독의 의회, 노르웨이의 국회 등에 과중한 부담이 안겨질수록 사태는 더욱 더 악화된다. 단일쟁점을 안은 정치적 압력집단이 왜 비타협적으로 되는 것인가. 이것은 그 설명으로도 될 것이다. 미국 의회나 주회를 통해서 복잡해진 거래나 조정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기구상, 그들의 요구에는 도저히 대처할 수 없다고 해도 좋겠다. 최종적인 중개의 역할을 해야만 할 대의정부의 이론도 역시 무너져 가고 있다. 교섭은 성립되지를 않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게 되었다. 대의제도의 마비상태는 악화일로를 달려 이것이 장기화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소수의 이름뿐인 대표자에 의해서 내려지고 있는 많은 결정이 서서히 선거구민 자신들 손으로 옮겨 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선출한 중개자가 우리를 위해 유리한 거래를 할 수 없다고 하면 우리는 스스로가 그것을 해야 할 것이다. 대표자가 제정하는 법률이 우리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점차 동떨어지거나 부합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법률을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의 대의제도의 기초가 되는 일련의 제도를 만들어 낸 제2의 물결의 혁명가들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직접민주주의 가능성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1793 년 헌법은 직접 참가하여 정치를 하는 직접민주주의의 흔적을 뒤에 남기고 있다. 미국의 독립에 관계했던 혁명가들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뉴잉글랜드에 발달하고 있던 주민 총회에 의한 소규모이기는 하나 조직적인 여론의 형성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 뒤 유럽에서는 마르크스와 그 후계자들이 법률의 제정과 시행에 있어서 시민 참가의 하나의 모델로 가끔 파리코뮌(Paris Commune)을 끄집어내곤 했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단점과 한계도 잘 알려지고 있어서 당시로서는 직접민주주의를 택하지 않는 것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있는 매콜레이, 루드, 존슨 등 세 사람이 쓰고 있는 바에 따르면 '미국 헌법 비준 촉진을 위한 당시의 논문집(더 페더럴리스트: The Federalist)'에서는 직접민주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제도에 반대해야 할 이유로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로 직접민주주의는 국민의 일시적인 감정적 반응을 억제하고 유예 시킬수가 어렵다는 것이요, 둘째로 당시의 커뮤니테이션이 기구를 통제할 수 없었다. 이 지적은 정당하다. 예를 들면1960 년대 중반에 좌절감과 분노의 감정에 불타고 있던 미국 국민이 하노이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야 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어떠한 투표를 했었던 것일까. 버더 마인호프의 테러리스트에 격노하고 있던 서독의 국민은 그 지지자들을 위한 강제수용소를 설치하라는 제안에 대해 어떻게 투표를 했을까? 르네 레베크가 권력을 장악한 일주일 뒤에 퀘벡에 대해 캐나다인들이 국민투표를 했다면 도대체 어찌 되었을까. 선출된 의원들은 국민보다는 덜 감정적이고 또 보다 신중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이 감정에 빠지기 쉬운 문제는 온갖 방법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국민투표나 그 밖의 직접민주주의 형태를 거처서 결정된 중요 결의는 실행에 앞서 냉각기간을 둔다든가 두 번째의 투표를 실시한다든가 하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극복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 예로서 스웨덴에서 실시된 방법이 참고가 될 것이다. 1970 년대 중반에 스웨덴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입안을 하면서 국민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이 태양열로부터 원자력이나 지열에 이르는 다양한 에너지에 대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적절한 기술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정부에 대해 공식적인 권고를 할 수 있도록 10시간의 에너지 과정, 내지는 거기에 상응한 과정을 설치하여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초청했다. 동시에 노동조합, 성인교육센터, 우익으로부터 좌익까지의 각 정당이 모두 10시간 강좌를 개설했다. 당초는 1 만 명 정도의 스웨덴 사람이 참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놀랄 정도로 약 7--8 만 명이 가정과 지역사회 시설의 토론에 참가했다. 이것은 인구비유로 환산하면 미국에서라면 약 200 만 명의 시민들이 국민적인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하려고 했다는 결과가 된다. 이와 같은 체제는 국민투표나 그 밖의 직접민주주의 형태에 있어서 과격한 감정주의의 결점을 해소시키기 위해 용이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의 결점도 해소할 수 있다. 이것은 이전과 같이 커뮤니케이션의 한계가 광범위한 직접민주주의를 제약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비로소 정책의 의사결정에 직접 시민이 참가할 수 있는 온갖 가능성을 단번에 열어 놓았던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큐브 케이블(Qube cable) 텔레비전 시스템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일렉트로닉스에 의한 주민총회'라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기조연설을 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 쌍방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 의해서 콜럼버스 교외의 주민은 지역계획 위원회의 정치적 회합과 일렉트로닉스를 통해 실제로 참가했던 것이다. 지역구획 획정, 주택건설 기준, 고속도로 건설안 같은 일상생활에 관한 제안에 대해서 주민은 거실에서 단추를 눌러 곧장 투표를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찬.반 투표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토론에 참가하고 방송으로 당당히 의견을 진술할 수도 있었다. 버튼을 이용해서 의장에게 의제의 다음 항목으로 너머기도록 요청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내일의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최초의 가장 원시적인 징후에 불과하다. 고성능 컴퓨터, 인공위성, 전화, 유선TV, 새로운 투표기술, 그 밖의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교양있는 시민이 스스로 많은 정책결정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한 쪽이라고 하는 뜻은 아니다. 간접민주주의인가 직접민주주인가, 타인에 의해 아니면 자신이 대표가 되는가 하는 양자택일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말함은 두 가지 모두가 장점을 가지고 있고 시민의 직접 참여에 '대표'를 추가해 반직접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은 아직 실용단계라고는 말할 수 없짐반 아주 창조적인 방향이다. 예를 들면 이미 캘리포니아주나 오스트리아에서 실시해 온 것처럼 핵개발과 같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유권자에게 직접 맡기지 않고 종래대로 미국 의회와 같은 대표기관이 이것을 논의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민이 핵무기 사용에 찬성표를 던지며 미리 결정해 놓은 일정한 '집단'의 표로 미국 의회의 핵무기 찬성 의워너에게 배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 강한 반응에 근거해 국민토표에서의 찬성표에 따라서 그들에게 의회에서 10 퍼센트나 20 퍼센트의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시민의 소망이 완전히 자동적으로 실현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꽤 명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앞에 말한 국민투표안의 변형이다. 이 밖에도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를 맺어주는 여러가지 절차가 생각된다. 지금도 미국의 의회나 다른 나라 국회 및 주의회 의원들은 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다. 방치되어 있는 문제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문제를 처리할 위원회를 만들게 할 대책은 없다. 입법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 국민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서 입법기관에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직접 청원할 권한이 왜 국민에게는 없는 것일까? 필자가 이러한 공식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되풀이해 하고 있는 것은 이 제안들에 서슴없이 찬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더 보편적인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지금 붕괴 직전에 있으며 적절한 대표제라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설령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극소수에 불과한 이 체제를 개방하여 민주화해 나가는 강력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암시에 가득 찬 새로운 제안은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전에 신중한 지역적 실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저런 제안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든지간에 대의제민주주의에 대한 반대의견이 강해져 가고 바로 그 시기에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오래된 반대의겨니도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다. 반직접민주주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미래를 위해 새롭고 실현 가능한 제도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온건한 원리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결정권의 분산 정치체제를 더 많은 소수파의 세력에 개방하고 시민이 스스로의 통치에 보다 직접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두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일의 정치에 불가결한 세 번째 원리는 결정권의 집중을 분산시켜 결정권을 거기에 알맞은 장소로 이행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지도자를 바꾸는 것은 아니며 정치적 마비상태에 대한 해독제이다. 필자는 이것을 '결정권의 분산'이라고 부른다. 문제에 따라서는 지역 수준에서 해결될 수 없는 것도 있다. 또 국가 수준에서도 해답을 찾기 어려운 점도 있다. 같은 수준에서 동시에 행동할 필요가 있는 문제도 있다. 더군다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적당한 장소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에 따라 변한다. 오늘의 결정의 미숙은 제도사의 과중부담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결정권을 나눠 재분배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필요성에 따라 가장 광범위하게 결정권을 배분하여 의사결정의 장소를 대체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의 정치제도는 이 원리를 크게 위배하고 있다. 문제는 바뀌어도 결정권자는 변함이 없다. 너무 많은 결정권이 집중화되어 국가 수준에서는 제도상의 기구는 정확하기 이를 데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초국가적 차원의 결정 방법은 반드시 충분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를 위해서 필요한 기구도 기본적으로느 후진적이다. 거기에다 지역, 주, 도, 지방, 지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사회집단과 같은 수준에서는 결정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국민정부가 해결하려고 고심하는 많은 문제들을 너무 방대하여 한 나라의 정부가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그러므로 초국가적인 새로운 제도를 완성시켜 많은 결정을 거기에 이관하는 것이 아무래도 필요하게 된다. 예를 들면 초국가기업은 그것 자체가 국민국가의 라이벌이 되고 있는 현상태에서 광범위한 힘에 대응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초국가적인 새로운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으며 그것에 실행될 필요가 있다면 기업의 운영에 있어 세계적인 수준에서 규제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부패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해외에 판로를 가진 미국의 기업은 미국의 반중수회 법률에 의해 극심한 손해를 입고 있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정부는 자국의 제조업자에 대해 외국의 고객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장려마저 하고 있지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외국 국적을 가진 기업은 책임있는 환경정책을 가지고도 여기에 대한 초국가적 수준에서의 적절한 규제조직이 없는 한 그렇게 하지 않은 기업과의 불공평한 경쟁에 계속 직면하게 될 것이다. 초국가적인 식량비축과 '정치적 분쟁지대(hot spot)'의 재해구조기구가 필요하게 된다. 흉작을 예지하여 조기에 경보를 발하고 주요 물가의 변동을 평준화하고 무기의 거래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적인 기관이 필요하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제에 정력적으로 맞서는 콘소시엄(consurtion)이나 비정부 기구도 필요하다. 관할 외의 통화를 규제하기 위해 우수한 기관이 필요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COMECON(동유럽 경제상호원조회의),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등과 같은 제도를 대신할 만한 것, 혹은 이것들을 완전히 개조한 것이필요할 것이다. 기술의 이점을 늘려 그 유해한 부작용을 제한하는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우주나 해양을 통치하는 강력한 초국가적 기관의 설립을 서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직화하여 관료적으로 되고 있는 유엔을 철저하게 정비해야 할 것이다. 300 년 전에 산업혁명이 시작된 당시, 국가가 아직 발달되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는 원시적이고도 미숙한 단계에 있다. 몇 가지의 결정은 국민국가로부터 '위'로 옮김으로써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곤란한 문제의 대부분이 그래야만 할 단계에서 효과적으로 결정될 수 있으며, 그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의 과중부담에 허덕이는 국민국가의 무거운 짐을 경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결정권의 분산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결정권을 위로 옮기는 것은 과제의 절반에 불과하다. 의사결정적의 방대한 양을 중심부로부터 아래로 옮길 필요가 있는 것도 명백하다. 이 문제도 역시 양자택일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순수하게 중앙집권 대 탈중앙집권화도 아닌 것이다. 현재의 체제는 중앙집권에 역점을 너무 많이 두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가 중앙의 의사결정자에게 홍수처럼 쏟아져 오는 것을 합리적으로 재배분하려고 하는 것이다. 탈중앙집권화가 실현되면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도 악질적인 전제정치가 가능하다. 지방정치는 국정보다 훨씬 부패해 있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탈중앙집권화로 간주되는 대부분은 예를 들면 닉슨 정부가 단행했던 개혁처럼 중앙집권의 자리에 있는 것의 이익을 수용하기 위한 일종의 허울뿐인 탈중앙 집권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쁜 예가 있다고 하더라도 중앙권력의 실질적인 이양없이는 많은 정부가 적절한 판단을 내리게 되고 질서를 회복하여 능률적인 행정을 해 나갈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결정의 부담을 분산시켜 그것의 중요한 부분을 밑으로 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낭만적인 무정부주의자가 '촌락민주주의'의 부흥을 바라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또는 성난 부유한 납세자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사업을 감축해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데에 있다. 어떠한 정치구조도, IBM의 컴퓨터 370의 장치를 갖추고 있더라고 일정량의 정보만을 다룰 수 있고 특정한 질과 양 모두에 한정된 결정밖에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결정에 관한 내부 파탄은 정부를 압박하고 이제 그 한계를 초월하기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제도는 경제의 구조, 정보체제, 그 밖에 문명의 특색과 상호간에 관련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인습에 사로잡한 경제학자는 거의 주목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생산과 경제활동의 근본적인 분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참으로 경제의 기초적인 단위는 국가경제는 아니라고 말해도 좋다. 이미 내가 지적해 온 바와 같이 각각의 국가경제속에 광범위한 강한 결합력을 가진 지역적인 하부경제가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하부경제는 뚜렷이 다른 문제를 지니면서 점차 서로 달라지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실업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가 하면 노동력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곳도 있다. 벨기에의 왈로냐(Wallonia)는 플랑드르 지방으로의 산업이전에 항의를 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록키산맥 주변의 각 주가 서해안의 에너지 식민지로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워싱턴이나 파리나 본에서 책정된 획일적인 경제정책은 이들 하부경제에 완전히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저의 지역이나 산업을 원조하는 나라들의 경제정책은 다른 지역이나 산업에 심한 타격을 준다. 이러한 이유에서 경제의 정책결정은 상당한 부분에서 탈국가화, 탈중앙집권화되어야 한다. 최근 제너럴 모터스에서는 어떻게 하여 관료적인 경향을 분석하고 보다 많은 결정을 중앙으로부터 이관하는가에 대해 280명의 최고 간부들을 모아놓고 이틀 동안에 걸쳐 회합을 여는 등, 기업에 관해서 말한다면 실제로 지리적 탈중앙집권화도 목격하고 있다. (비지니스 위크)지는 '대부분의 회사가 국내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 공장을 건설하고 사무실을 옮기고 하는 미국 경제계의 지리적 경향'에 관해 기사를 쓰고 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사회에 있어 정보의 흐름이 대규모 이동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중앙 네트워크의 힘이 약화되는데 따라 통신기관의 근본적인 탈중앙집권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유선 TV, 카세트, 컴퓨트, 전자장치를 이용한 사설통신 연락망 등이 놀라운 기세로 보급되고, 이것들 모두가 탈중앙집권화라는 동일 방향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나의 사회에서 경제활동, 통신기관, 그 밖의 수많은 아주 중요한 과정의 탈중앙집권화가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조만간에 정부의 의사결정 역시 탈중앙집권화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현행 정치제도의 표면적인 변화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당연히 거기에는 예산, 세금, 토지, 에너지, 그 밖의 자원의 관리에 대해서 거대한 투쟁을 의미한다. 결정권의 분산은 쉽사리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권이 너무 집중화된 나라들에서는 그것은 아무래도 회피할 수는 없다. 여태까지 우리는 경직화된 정치체졔다 다시금 기능할 수 있도록 문제를 해방시켜 장애를 제거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결정권의 분산을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표면적에 드러난 이상의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정부의 정책결정의 부담을 가볍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엘리트의 구조 그 자체를 근본으로 바꾸어 서서히 출현하고 있는 새로운 문명의 요구에 그들을 순응하게 만든다. 엘리층의 확대 '결정의 부담'이라는 개념은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이해를 하든간에 아주 중요하다. 어떠한 사회도 그 사회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질, 양 모두에 있어 일정의 정치적 결정을 필요로 한다. 실제 각각의 사회는 독자적 결정기구를 가지고 있다. 사회를 관리해 나가는 데에 필요한 결정이 너무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복잡해질수록 그만큼 정치적인 '결정의 부담'이 겹치게 된다. 이 부담을 어떻게 분담하느냐 하는 것은 사회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의 수준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분업이 거의 이루어지지를 않고 변화가 완만한 산업화 이전의 사회에서는 실제로 사물들을 관리 운영해 가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행정적인 결정은 아주 적었다. 결정의 부담이 작았던 것이다. 약간의 교육을 받고 전문지식도 없는 소수의 지배 엘리트라도 아래로부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으며, 뭔가를 해 나갈 수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라 부르고 있는 것은 결정의 부담이 그것을 처리해야 할 예로부터의 엘리트의 능력을 초월하여 급히 부풀어올랐던 시대에 갑자기 드러난 것이다. 제2의 물결의 도래는 시장의 확대와 대폭적인 분업을 가져와 사회는 비약적으로 복잡성을 더하게 되었다. 그때 제3의 물결이 오늘날 야기시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정의 내부 파탄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결과 낡은 지배 그룹의 결정능력이 매몰되고 새로운 엘리트와 준엘리트(subelite)가 결저으이 부담에 대처하기 위해 보충되어야 했다. 혁명적인 새로운 정치제도가 이 목적을 위해 설계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산업사회가 발전하여 그 복잡성의 비율이 높아져 가는데 따라 '권력을 지배하는 전문가'인 통합 엘리트는 확대해 가는 결정의 부담을 분담해 줄 새로운 인재를 계속 보충해 줄 필요가 있었다. 사회의 중간계층을 점차적으로 정치의 무대로 끌어들이게 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이 과정이었다. 의사결저에 대한 필요성의 이러한 확대는 보다 더 광범위한 참정권을 가져왔고 밑으로부터 보충될 더 많은 적합한 자리를 만들어 냈다. 미국 흑인의 인종차별 철페 투쟁, 영국의 노동조합원에 의한 교육의 기회균등을 요구하는 투쟁, 정치에 대한 권리를 지향하는 여성들의 싸움, 폴란드나 소련의 숨은 계급투쟁 등, 제2의 물결의 나라들에서의 치열한 정치투쟁의 대부분은 이러한 엘리트 기구의 새로운 자리의 배분을 불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시점에서는 통치 엘리트층 가운데 얼마만큼의 인간을 추가하여 흡수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일정의 한도가 있었다. 이 한도는 결정분담의 크기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되고 있다. 제2의 물결사회는 실력 제일주의라고 말하면서도 일반대중의 대부분은 민족성, 인종, 남녀 등 이와 유사한 조건에 따라서 차별되고 있었다. 사회의 복잡성이 비약적으로 증대하여 결정의 부담이 증가할 때마다 배척당한 집단들은 새로운 기회의 도래를 감지하고 동등한 권리를 위한 요구를 더해 갔다. 엘리트들도 문호를 약간 개방하여 사회는 민주화로의 태동 같은 것을 경험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설명이 개략적으로나마 옳은 것이라면 민주주의의 확장은 문화라든가,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전쟁터의 용기, 웅변, 정치적 의사 등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사회에서나 그 결정의 부담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무거운 부담은 최종적으로는 보다 넓은 민주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분담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체제의 결정의 부담이 확대되어 가는 동안은 민주주의는 선택의 문제는 아니고 필연의 진화라고 하게 된다. 사회의 체제는 그것 없이는 관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으로 지금 민주주의의 커다란 전진의 시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바야흐로 의사결정의 파탄은 각 나라의 대통령, 수상, 그리고 정부도 압도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산업혁명 이후 처음있는 일로서 정치 참여의 급격한 확대를 위한 가슴 벅찬 전망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닥쳐올 투쟁 우리는 정치에 대해 새로운 제도를 추구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가정, 교육, 기업의 새로운 모습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에너지를 체계, 새로운 과학기술, 새로운 산업을 추구하고 있는 것과 깊은 관련를 갖게 되는 것이며, 또 통신수단의 대변혁이나 비산업세계와의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소리에도 호응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여러 영역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여러 변화의 정치적 반영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러한 관련성을 살펴보지 않고는 신문을 풍성하게 하고 있는 여러가지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갈등도 아니며 우세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간의 갈등도 아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갈등도 아닌 것이다. 오늘날 결정적 의미를 갖는 투쟁은 산업사회를 지지하여 이것을 지켜 나가려고 하는 자와 그것을 초월해 전진하려고 하는 자 사이에 벌어지느 싸움이다. 그것은 내일을 위한 초투쟁이라고도 말해야 할 투쟁이다. 물론 계급, 민족,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전통적인 투쟁도 사라지는 일은 없다. 특히 우리가 대규모적인 경제변동을 경험할 때에는 오히려 그 투쟁은 격화된다는 것마저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옛날식의 투쟁은 내가 말하는 초투쟁이 예술이나 성의 문제를 비롯해 기업이나 선거제도까지 포함한 모든 인간활동을 석권할 때 모두 그 중에 흡수되어 그 속에서 끝나 갈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의 주위에는 수준이 다른 두 가지 정치적 싸움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차원에서는 직접적인 이익을 추구하여 제2의 물결의 집단이 서로 다투는 일상적인 정치적 충돌이다. 그런데 그 심층에서 이들 제2의 물결의 기성 집단은 제3의 물결로부터 생겨난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항하여 공동 전선을 펴고 있다. 조직면에서나 이데올로기의 면에서 시대에 뒤져 있는 현존 정당이 제각기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대동소이한 존재로 되어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나 공화당도, 보수당이나 노동당도, 기독교 민주당이나 드골파도, 그리고 자민당이나 사회당도, 공산당이나 보수당도, 모두 제2의 물결시대의 정당에 불과하다. 제2의 물결 내부에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면서도 모든 정당이 기본적으로는 감소되어 가는 산업질서의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가장 중대한 정치적 발전은 제2의물질문명에 관여되거나 제3의 물질문명에 관여된 두 개의 진영 사이에 전개된다. 한편은 핵가족, 규격화된 대중교육, 대기업, 거대한 노동조합, 중앙집권적인 국민국가, 의사 대의정부에 의한 정치 등, 산업대중사회의 핵심제도의 유지를 위해 끈질기게 헌신하고 있다. 이에 비해 다른 한편에서는 에너지, 전쟁, 빈곤을 비롯해 환경오염, 가족관계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가장 긴급한 여러 문제가 이제 산업문명의 범주 속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진영 사이에는 아직 선명한 경계선은 그어져 있지 않다. 개인의 입장으로 보아도 사람들 대부부은 쌍방의 진영에 한쪽 발을 들여 놓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오리무중의 상태로서 상호의 관련성이 분명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각 진영을 구성하는 다수의 집단은 뭔가 포괄적 비전도 갖지 못하고 각자의 완고한 해석에 입각해서 이기적인 추구를 하고 있는 수가 많다. 어느 한 쪽이 도덕적인 미덕을 독점하지는 않는다.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양쪽 모두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진영 사이에는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어쩔 수 없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제2의 물결의 옹호자들은 특유하게도 소수세력에 대항해 싸운다. 그들은 직접민주주의를 '대중인기주의(populism)'라고 부르며 조소한다. 탈중앙집권화, 지역사회의 중시, 다양성과 같은 것들에 저항을 나타낸다. 학교교육의 탈대중화 운동에 반대하고 후진적인 에너지 체계를 유지하려고 하여 싸운다. 핵가족을 신성시하고, 환경문제를 가볍게 취급하고 산업시대의 전통적 내셔널리즘을 역설하고 국가의 공정한 세계경제의 질서를 정비하려고 하는 시도에 반대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3의 물결에 속하는 사람들은 소수세력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그들은 한 걸음이라도 직접민주주의에 접근하기 위한 실험에 들어갈 각오가 있다. 그들은 초국가주의와 근본적인 권력의 이전을 지지한다. 거대한 관료기구의 붕괴를 요구한다. 그들은 핵가족뿐만이 아니라 여러 모양의 가족형태를 선택할 권리를 합법화하고자 원한다. 학교의 탈표준화와 가일층의 개별화를 위해 싸운다. 환경문제를 우선시켜 사물을 생각해 나간다. 현재보다도 균형이 잡힌바른 기반 위에 세계경제를 다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커다란 차이는 제2의 물결의 옹호자들이 보수적인 정치게임을 하고 있는 동안에 제3의 물결의 사람들은 모든 정치가와 정당, (새롭게 생겨난 정당도 포함하여 모든 정당)에 회의적이며 현존하는 정치의 틀 안에서는, 우리가 미래에 살아 남기 위한 중대한 의사결정은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고 느끼고 있는 점이다. 제2의 물결진영은 아직도 정치가, 경영자, 조합 간부, 교육자, 매스컴계의 중진이 된 현대 사회에서의 명목상의 실력자를 다시 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이제는 제2의 물결의 세계관이 통용되지 않게 되고 있는 데에 아주 당황하고 있다. 제2의 물결진영은 숫적으로는 아직까지 대다수의 일반시민들에 의하여 막연하게나마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도 비관론과 환멸감이 급속히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제3의 물결의 옹호자의 성격을 기술하기에는 더욱 어렵다. 대기업을 통솔하는 자도 있으며 열성적인 반기업적 소비자보호주의자가 된다. 환경보호에 전심하고 있는 자도 있으며 남녀의 역할분담의 문제, 가정생활, 개인적인 성장 등에 보다 커다간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자도 있다. 대체 에너지의 개발에 거의 온 힘을 쏟고 있는 자가 있는가 하면 통신혁명에 해서 약속된 민주주의에 자극을 받는 자도 있다. 제2의 물결적인 분류방법으로 말하면 소위 '우파'에 속해 있던 사람도 있고, '좌파' 출신도 있다. 자유시장주의자, 자유론자, 신 사회주의자, 여성해방론자, 시민운동가들로부터, 꽃을 몸에다 붙이고 사랑이나 친절로서 인생이나 사회의 무제를 해결하려고 한 히피족같은 것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가장 진실한 인간도 더해지고 있다. 어떤 자는 평화운동에 오랜 활동가이며, 어떤 자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떤 행진이나 데모에도 참가한 적이 없다고 하는 인간도 있다. 열렬한 신앙가도 있고 완고한 무신론자도 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형태가 없는 집단 과연 '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계급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고등교육을 받은 정보를 다루는 근로자, 지식인, 기술자들로 된 '신계급'과 같다는 논리가 될 것이다. 확실히 제3의 물결의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중간계급의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 혹은 서비스 부문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아마 넓은 의미로는 그들을 하나의 계급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이 한정한 것은 문제가 표면에 드러나는 것보다 더 짧은 것을 감추게 된다. 산업사회 속에서 탈대중화로 향해서 급속히 이행해 가고 있는 중요한 집단 가운데는 비교적 교육정도가 낮은 소수민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서류가방을 안은 두뇌노동자의 모습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 한정된 역할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여성들의 특성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은가? 그리고 또 급속히 증가하는 수많은 자조 운동가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은가? 또 파괴된 가정, 편친, 호모와 같은 성적 소수파 등의 수많은 희생자들^36,36^이러한 계급이라는 개념에 뚜렷하게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피억압자'들은 어떻게 포착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집단은 사실상 사회의 모든 계층, 모든 직업의 출신자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제3의 물결을 추진하는 운동의 중요한 원동력인 것이다. 사실은 운동이라는 말조차도 오해를 초래할 우러가 있다. 왜냐 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운동이란 기존의 운동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공통의식에 의해 맺어지고 있으며, 또 제3의 물결의 사람들은 과거의 모든 대중운도을 철저하게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계급, 운동 또는 개인의 변화하는 배열과 일시적인 집단에 의한 유동적인 모임에 지나지 않던간에 그것들 모두는 낡은 제도에 무서운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구체계가 이제는 회복 불가능하도록까지 파괴되어 버렸다고 하는 공통의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제2의 물결과 제3의 물결의 모든 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초투쟁의 불규칙한 경계선처럼 계급이나 정당, 연령별의 그룹이나 인종집단, 성별 선호와 소문화 등을 분단하고 있다. 이 투쟁은 우리의 정치생활을 제조직하여 재편성한다. 다만 그것은 조화가 이루어진 계급, 차별이 없는 갈등으로부터 해방된 비이데올로기적인 미래사회로 곧장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위기감이나 심각한 사회불안을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산업사회의 유산에 의해서 윤택하게 되는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누가 후속사회의 형성과 그 최종적 정치투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 역할이 파괴적으로 되든 창조적으로 되든 가능성은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창조하는 운명 어떤 세대는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 태어나고 어떤 세대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태어난다. 제2의 물결의 역사적 변혁을 초래한 세대는 환경에 의해 어쩔수 없이 창조자가 되었다. 몽테스키외, 밀, 매디슨 같은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정치형태의 대부분을 만들어냈다. 제1의물결과 제2의 물결사이에 끼어들어 창조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오늘날 가정, 학교, 회사, 교회 등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혹은 에너지 체계나 통신기구 속에서 우리는 제3의 물결의 새로운 모든 제도를 창조할 필요를 강요받고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무수한 인간이 이미 그러한 활동을 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정치생활만큼 노후화가 진행하여 위기에 직면해 있는 영역은 없다. 그리고 오늘날 어떤 분야에서도 기본적인 변화를 고찰할 상상력, 실험, 자발성을 조금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실험실, 부엌, 교실, 회사 등에서 자신의 일을 용감히 쇄신하려고 하는 사람들마저 헌법이나 정치제도가 노후화하여 근본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어떤 제안에도 냉담한 것 같다. 그들로서는 정치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고 하는 것은 그에 수반되는 위험과 더불어 너무나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현상유지가 아무리 초현실적이고 가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의상황이 생각할 수 없는 모든 세계 속에서 최선의 것으로 생각되어질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회에나 제2의 물결시대에 뒤떨어진 가설에 빠져 있는 편향적 혁명가라고 하는 아웃사이더가 있다. 그들은 어떠한 변혁안이 제시되도라도 아주 혁신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 무정부주의적 낭만주의자, 우익광신자, 탁상공론을 구사하는 게릴라, 분명한 테러리스트들이 그것인데, 그들은 전체주의적 관료제도라든가 중세적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었음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의 새로운 영역으로 질주하고 있을 때 마저도 그들은 과거의 정치 논문 색채가 배합된 페이지로부터 뽑아 낸 혁명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 초투쟁이 격화될 때 거기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왕년의 혁명극의 재연은 아니다. 대중을 거느린 특정의 '전위파'가 중앙으로부터의 지령에 의거해서 권력을 수중에 넣은 엘리트를 타도하는 것도 아니다. 테러에 의해서 유발된 자연발생적인 단순한 카타르시스에 불과한 대중 봉기도 아니다. 제3의 물결문명에 알맞은 새로운 정치구조는 오직 하나의 대변동이 클라이막스에 달한 때에 단숨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수십녀에 걸쳐 많은 장소, 여러가지 수준에서 생기는 수많은 개혁이나 충돌의 결과로서 이룩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내일로 향하는 도정에는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제1의 물결에서 제2의 물결의 이행은 전쟁, 폭동, 기근, 강제이민, 쿠데타, 참사 등 피에 물든 일련의 긴 드라마였다. 오늘날 이해관계는 더 한층 까다로워졌으며 짧은 시간 안에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므로 위험은 오히려 커져만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위기를 잘 타개하든 못하든 현재의 엘리트, 준엘리트(subelite), 슈퍼엘리트들의 융통성과 지성에 좌우된다. 만일 이러한 엘리트 집단이 과거의 지배자들의 집단의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근시안적이고 상상력이 모자라고 거기다가 소심하다면, 그들은 제3의 물결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폭력의 발생과 자멸의 위험을 고조시킬 것이다. 반면에 만일 제2의 물결의 엘리트가 제3의 물결에 적응해 나간다면, 만일 민주주의를 확대할 필요를 인정한다면, 마치 제1의 물결의 가장 지성적인 엘리트들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사회의 도래를 예상하고 그의 창조에 참가했던 것처럼, 그들은 사실상 제3의 물결문명의 창조과저에 참가할 수가 있을 것이다. 현대를 사는 인간들 대부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가를 알고 있다. 전쟁과 경제변도이 물엇을 의미하는가도 알고 있다. 고귀한 의지와 사회적 쇠퇴가 종종 전체주의의 탄생에 연유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의 명확한 차이점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나라에 따라서 사정은 다르다. 그러나 현재만큼 수많은 인간들이 고등교육을 받는 시대는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믿기 어려우리 만큼의 광범위한 지식에 의해서 집단적으로 무장되고 있다.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로 수준 높은 풍부한 생활을 누리던 시대도 없었다. 이 풍요함은 아마 안정된 풍부함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시민으로서 사회적 관심을 갖고 행동을 일으킬 만큼의 시간과 능력을 부여했다. 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교류하며 다른 문화에서 배울 수가 있었던 시대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필연적인 변혁이 가령 밑바탕으로부터의 변혁이라 할지라도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함으로써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얻은 시대는 없었던 것이다. 제 아무리 계몽된 엘리트들일지라도 그들만으로 새 문명을 창조할 수 없다. 거기에는 전인류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한 에너지는 이용가능한 것으로서 개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만일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다음 대의 확실한 목표로서 내건다면, 특히 고도의 과학기술 국가들에서는 물질적 에너지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수많은 인간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소수세력(minority power)의 중시, 반직접민주주의 확립, 결정권의 분산이라는 세 가지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앞으로의 정치제도는 빨리 설계를 시작하면 할수록 평화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위험도를 높이는 것은 변혁 그 자체가 아니라 변혁을 방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유혈의 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를 지키려고 하는 맹목적인 시도이다. 그러므로 폭력적인 혼란을 피하려 한다면, 우리는 세계적 경향인 정치 기구의 시대에 뒤떨이진 문제에 즉각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첫 단계로 제3의 물결문명이 요구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제도의 필요성을 둘러싸고 더욱 광범위한 대중토론을 전개해야만 된다. 우리는 회의, TV프로그램, 콘테스트, 모의훈련(simulation exercises), 모의제헌회의등을 실시하여 정치재건을 위해 상상력이 풍부한 제안을 폭넓게 모아 참신한 아이디어의 분출을 자유롭게 시도하고 인공위성이나 컴퓨터에서 영상용 디스크나 양방향 TV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유용한 가장 선진적인 도구를 활용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제3의 물결사회에서는 무엇이 가장 잘 기능할 것인가는 그 누구도 상세히 알지는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대규모의 개편이나 위로부터 강요된 단순한 혁명적인 대변혁은 아니고, 수많은 의식적이고 탈중앙집권화된 실험이다. 그것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새롭고 다양한 모델을 국가적, 초국가적 수준에 적용하기 이전에 지방적, 지역적 수준에서 시도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국가적, 초국가적 차원에서도 제도에 대해서는 마찬가지 실험과 혁신적인 재설계를 하기 위해서 그 지지층을 만들어 나아가야만 한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 널려 있는 제2의 물결의 정부들에 대한 환멸감, 분노, 괴로운 생가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요구하는 선동자들에 의해서 열광 속에 파묻혀 버리든가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 재건으로 향해 결집되든가, 그 이외에 해소의 길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상되는 장래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많은 나라들에서 일제히 실험을 시도, 광범위한 사회적 연구에 착수함으로써 전체주의가 돌입하는 위험을 막을 수가 있다. 수많은 인간들에게 전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혼란이나 위험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다. 더구나 필요한 변혁을 촉진시키기 위해 기존의 정치제도에 대해 전략적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밑으로부터의 엄청난 압력없이 우리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 상원의원, 중앙위원회 위원 등 오늘날의 명목상의 지도자들이 기존의 여러 제도에 도전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다. 아무리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에게 명성이나 돈을 가져다 주고 현실은 아니지만 권력의 환상을 부여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장기적 전망을 가진 정치가난 관리는 예외적으로 정치변혁을 노리는 투쟁에 일찍부터 지지를 표명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은 외부로부터의 요청에 항거할 수 없게 되어 버리거나 이미 위기가 고조되어 폭력사건으로 발전하기 직전, 그들이 어떤 대안도 찾지 못할 때에만 어떤 수단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우선 자신의 일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참신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의외로운 발상을 가진 사람, 급진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미리부터 마음을 닫아 버릴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교육시켜야 한다. 그것은 사상적 암살자를 배제하는 싸움이다. 그들은 기존의 모든 것이 매우 불합리하고 억압적이고 운용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 현실성을 이유로 그것들을 옹호한다. 그런 반면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비현실적이라고 단정짓고 말살해 버리려고 드는 것이다. 그것은 또 표현의 자유, 가령 이단이고 할지라도 자신의 사상을 발표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기존의 정치제도의 붕괴가 현재 이상으로 진행하여 가두에 위압적인 독재자의 군대가 파견되어지지 않도록, 21세기의 민주주의로서 평화적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기 전에 재구축의 길을 걸어나가는 것이다. 만일 지금 시작한다면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 구조만이 아니라 문명 그 자체를 재구축한다는 마음 셀레이는 사업에 참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혁명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창조자여만 할 운명을 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 후기) '제3의 물결'을 집필함에 있어서 나는 여러 종류의 정보를 최대한 이용했다. 첫째,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세계 각국의 서적, 의사록, 신문, 보고서, 기록, 잡지, 그리고 전공 논문을 읽고 자료를 모았다. 둘째는, 인터뷰인데 현대를 움직이는 개혁의 기수라고 할 만한 사람들을 만나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나는 실험실, 사장실, 교실 또는 스튜디오를 찾아 그들을 만났는데 그분들 모두가 한결같이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의 생각을 기탄없이 말해 주었다. 인터뷰의 상대로는 가정문제의 전문가를 비롯하여 물리학자, 각료, 수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각계 각층의 인사가 망라되었다. 또 한 가지 나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여행에서 나의 눈과 귀로 직업 들은 정보인데, 나는 이런 종류의 견문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종종은 직접적인 체험이나 하찮은 태화가 그때까지 막연하게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던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는 계기가 되곤 했다.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어느 나라으 수도에서 우연히 타게 되었던 택시의 운전사는, 그 나라 정부의 낙관적인 통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얘기해 주었다. 나는 그 운전사에게, 왜 당신네 나라 사람들은 잇단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는가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단순 명쾌하게 "따따따"하고 기관총을 쏘는 흉내를 해보였던 것이다. 협력을 해 주신 분들 한분 한분을 모두 일일이 들어 얘기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이겠지만, 그 중 세명의 친구 도널드 F. 크라인(Donald F Klein), 해럴드 L. 슈트러들러(Harold L Strudler), 로버드 I. 와인가르텐(Robert I Weingarten)은 원고를 읽고 날카로운 비평과 조언을 해주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또 가장 유수하고 전문적인 편집인으로 손꼽히는 리 기이어 고든(Lea Guyer Gordon)과 일리노어 나들러 슈월츠(Eleauor Nndler Schlwartz)가 완성된 원고의 사실 관계를 체크하여 내용의 정확성을 기해 주었다. 슈월츠 부인은 출판사에 넘겨줄 원고를 마지막으로 손질하느라 분주하던 때에, 편집자로서의 의무를 넘어서 끊임없이 내게로 찾아와 언제나 흔쾌히 도움을 베풀어 주곤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정을 맡아준 윌리엄 모로우(Williarm Morrow) 출판사측의 베시 시네딜라(Betsy Cenedella)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달라붙어 색인 목록의 틀을 만들어 그것을 컴퓨터의 언어 처리 프로그램으로 짜준 카렌 토플러(Karen Toffler)에게도 고마움을 전하는 터이다. 우리는 잘못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기술에 어딘가 엉뚱한 오류가 끼여 있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필자인 본인에게 있음을 부언해 둔다. 앨빈 토플러 (역자의 말) (미래의 충격: Future Shock)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앨빈 토플러(Alvin Toffer) 박사가 또 한의 주목할 만하 문명비평서를 내놓았다. 공전의 인기를 모으며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미래의 충격)을 오히려 압도하는 내용의 야심작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이 그것이다. 전자가 오로지 초점을 '미래'라는 하나의 시점에만 고정시킨 데 반해 여기에 번역하여 소개하는 (제3의 물결)은 인류문명의 발전과정을 역사적 분석, 기술하면서 그들 과거문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제 막 고성을 울린 '제3의 물결'이라는 특이한 변종을 저자의 날카로운 지성가 직관을 총동원하여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책이름으로 되어 있는 '제3의 물결'이란 명칭이 바로 이와 같은 배경을 상징하는 단적인 예가 된다. 토플러는 인류의 문명을 크게 3단계로 나눈다. 즉 기원전 8000 년으로부터 서기 1700 년경까지의 농경문화(이것을 제1의 물결이라 부른다.)과 18세기 산업혁명 이래로 현대에 이른 산업사회문명(제2의 물결), 그리고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하고 빠르면 수십년 만에 끝날지도 모르는 미래의 문명(제3의 물결)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인류는 미래를 향한 일대 비약의 시점에 서 있다고 토플러는 진단한다. 그같은 징조는 오늘날 인류를 궁지로 몰어넣고 있는 각종 위협과 질곡들, 말하자면 석유값의 급등, 격심한 경제변동, 자연의 황폐화, 인플레이션, 폭력, 테러의 만연, 전쟁, 그리고 산업화 시대가 가져다 준 인간의 규격화, 집단화, 비개성화 및 도덕의 타락상 등에서 뚜렷이 느낄 수가 있으며, 이로 말미암은 우리의 개인적 혼란과 방향감각의 상실은 바로 종말에 와 있는 제 2의 문명과 그를 대치하려는 제3의 문명이 일으키는 필연적인 상극현상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들 악몽 같은 현실레 직면하여 어떤 이들은 지구의 종말 또는 인류 소멸을 예언하지만 토플러는 그와 같은 지관적인 견해를 단연 거부한다. 왜냐 하면 그와 같은 산업화 사회의 모든 질곡을 종식시키고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서과 비만을 가져다줄 대변혁의 물결이 지금 막 우리 앞에 도도히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새 문명을 낡은 전통적 산업주의가 만든 문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도의 고학기술을 지탱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비사회적인 성격을 띤 문명이다. 이 문명의 기반이 되는 것은 다양한 에너지 자원이나 일관작업에 의한 공장생산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생산방식이며 생산소비자 형태에 따른 가정이 곧 직장이 되는 생활, 핵가족과는 또 다른 가족형태, 산업사회의 특징인 표준화, 동시화, 중앙집권화를 지양하며 에너지, 부, 권력의 집중화를 넘어서는 길을 개척해 주는 문명이다. 내용 곳곳에 한국이 실례로 등장하고 있어 친근감을 준다. 그리고 오랫동안 에너지 등 자원문제로 시달려 온 우리에게 복음과 같은 예언이 담겨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제3의 물결에서는 OPEC(석유 수출국회의)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리라는 전망이 그 한 가지 예이다. 저명한 학자요, 저널리스트인 저가가 각종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펼쳐 보이는 인류문명의 어제와 오늘을 우리는 여기서 조감하면서 나아가 10 년 뒤, 20 년 뒤의 자신의 좌표를 가늠하게 한다. 이 책은 실로 학자, 정치가, 경제인, 학생, 주부 등 누구를 막론하고 보다 값진 내일을 설계하려는 이들에게 예언자적인 시사를 던져줄 것임에 틀림없다. 끝으로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함에 있어 뉴욕 소재 William Morrow사의 1980 년도 초판본을 텍스트로 하였음을 밝히며, 전문적인 경제용어나 사실들에 관하여 전문가의 충분한 자문을 구하지 못한 점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질정을 바라는 바이다. (역자 소개) * 원창엽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수업 미국 USC 남가주 대학 대학원 졸업 현재 U.S.A. 공무원 'NAPCA'으로 재직중 저서: '허무주의 극복', '장자의 사상' 역서: '명상록', '비극의 철학', '우수의 철리', '소크라테스의 변명', '천로역정'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