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 내가 이 '제3의 물결'을 쓰게 되기까지는 그녀의 설득력 있는 권유에 힘입은 바 크다 . 이 책의 곳곳에는 나의 사상에 대한 그녀의 끊임없는 비평과 편집인으로서의 전문가 적 충고가 배어있다. 그녀의 공헌은, 동료로서, 지적 반려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 그리고 아내로서의 역할 이상이었으리라. (서론) 테러리스트들이 인질을 잡아 죽음의 개입을 연출하고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설이 나 도는 가운데 각국의 통화는 변동을 거듭하고 있다. 곳곳에서 대사관이 불타오르고 각 지에서는 기동타격대가 만반의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상황아래 우리는 날마 다 공포에 질려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불안심리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금값은 터무 니없이 폭등을 계속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경영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맹위를 떨치고 있고 세계 각국 정부는 속수무책인 채 무능상태에 빠져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아래 어디를 가도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카산드라의 그것과 같은 불길 한 예언의 대합창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거리의 경제가들은 세상이 미쳤다고 하는가 하면 전문가들도 세계의 추세가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견해와는 전혀 다른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세계는 결코 정상적인 길을 벗어나 광기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핏 무의미 한 사건들이 뒤를 이으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러한 사건들의 배후 에는 놀랄 만큼의 희망적인 하나의 경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그러한 희망에 이어지는 그 경향에 대해 말해 보고 싶은 것이다.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은 인류의 역사가 종말을 맞이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막 사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인 것이다. 오늘날 하나의 거센 물결이 전세계에 밀어닥치고 있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기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양육하고, 드디어는 은퇴하는 환경을 둘러싸고 이 물결 은 새롭고도 기묘한 상황을 연출시키고 있다. 기업인들은 밤낮없이 격변하는 경제의 흐름과 맞서 분전하고 있으며 정치가는 자기들에 대한 지지율이 극단적으로 상승하기 도 하고 하강하기도 하는 현실에 놀라고 있다. 대학과 병원, 그 밖의 연구기관들은 인 플레이션에 대해 필사적인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가치체계가 산산조각으로 분열되었 고 궤멸되었다. 가정이나 교회, 국가라는 구명보트도 격렬하게 바닷속으로 내던져졌다 . 이같은 격심한 변화에 직면하여 우리들은 그러한 것들이 불안정하고 분열과 혼란을 되풀이하고 있는 세태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며 사건을 개별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다. 그러나 좀더 냉정히 그리고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하나하나의 현상에 이끌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선,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변화의 대부분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 또한 제멋대로 그와 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핵가족의 붕괴, 지구 전체의 에너지 위기, 신흥종교의 융성, 전화와 텔레비젼의 보급, 자유근무시간제의 일반화, 유급휴가, 건강보험 등 일련의 부가급여의 증대, 캐나다의 퀘벡주에서 프랑스의 코르 시카섬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잇는 독립운동 등의 현상은 제각기 관계 가 없는 사건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의깊게 관찰해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 외에도 무관계한 것처럼 보이는 여러 사건들은 서 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산업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문명의 출현이라는 보 다 큰 현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여러가지 현상들 하나하나를 고립된 변화로 보아서 이 커다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다면 의사결정은 목표를 상실하거나 자기 부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정부차원에서 말한다면 위기상태 속에서 계획도 희망도 비젼도 없으면서 정책을 억지로 밀고 나가는 격이 되고 만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며 거기에 대 한 체계적인 기초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마치 폭풍우 속에서 위험한 암초 사이를 나침 반도 해도도 없이 항해하려는 승무원과도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전문가들이 서로 대립하고, 단편적인 자료와 불필요한 정보로 면밀한 분석이 난문하는 문화상황에서의 종합적 분석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제3의 물결'은 대대적인 종합적 분석을 시도한 책이라 할 것이 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지금까지의 문명에 대해 서술함과 동시 에 우리들 안에서 지금 꽃피고 있는 새로운 문명의 포괄적 모습을 신중하게 그려 보이 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문명은 극히 혁명적인 것이어서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던 모든 정설 에 도전하고 있다. 낡은 사고방식이나 낡은 공식, 도그마(dagma), 낡은 이데올로기는 과거에 아무리 유효한 것이었고 존중되어왔다 해도 벌써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 다. 새로운 가치관이나 기술, 새로운 지정학적 관계, 새로운 생활양깃이나 커뮤니케이 션 방식 등이 서로 부딪치는 가운데 급속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발상, 새로운 유추, 새로운 분류,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들은 내 일의 세계에 살게 될 태아를 과거의 연습 속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지금까지 정통이 라고 알려졌던 행동이나 마음가짐도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 미지의 새로운 문명에 관해 기술을 전개해 가는 동안 세상에서 지금 범람하고 있 는 건방진 염세주의에 반박할 수 있는 논거가 점차 분명해진다. 절망이절망을 말하고 노력을 포기하는 제멋대로의 행동^36,3^이미 10 년 이상이나 문 명을 지배했다. (분명, C.P. 스노가 어디에선가 언급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망 은 단순히 죄일 뿐만 아니라 도저히 시인할 수 없는 부당행위인 것이다. 이것이 '제3 의 물결'의 결론이다. 나는 쓸데없는 낙천적인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로 인한 세계의 파멸, 환경파괴와 광신적 인종차별, 국지적인 폭력사태 등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이러한 위험들에 관해 지금까지 몇번이나 집필한 바 있고 아마 앞으로도 또 쓰게 될 것이다. 전쟁, 경 제의 와해, 대규모적인 기술의 혼란, 이런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보더라도 미래의 역사는 파멸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고 있는 에너지 양식과 새로운 생활양식과의 관계 혹은 새 로운 생산방식과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한다는 자조운동과의 관계 등 (이런 것은 한두 개의 예에 불과하지만) 새로 태어나고 있는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면 우리는 오늘날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고있는 대부분의 상황이 실은 매혹적이며 새로운 가능성 에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3의 물결'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책이다. 이 책은 파 괴와 황폐의 속에서 우리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려 한다는 주목할 만한 증거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 제3의 물결문명은 통찰력과 약간의 행운이 주어진다면 지금까지의 어떤 문명보다도 건전하고 바람직하며 인간에게 보다 알맞은 민주적인 문명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없이 분명해지고 있다. 만일 이 책의 이론이 대체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폭풍과 위기로 가득 찬 시기가 과도기적으로 몇년간 계속된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유력한 논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을 집필하고 있던 지난 몇년 동안 나의 강연을 듣는 청중들에게서 '제3 의 물결'이 먼저 저술했던 '미래의 충격(Future Shock)'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 았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저자와 독자의 견해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제3의 물결'은 형식면에서나 논의의 초점이라는 면에서도 '미래의 충격'과는 근 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선 '제3의 물결'은 '미래의 충격'보다 미래는 물론 과 거에 대해서도 시간적으로 훨씬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또 단순히 사실을 기술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을 전망하고 있다 . 또한 책으로서의 구성도 다르다.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의 구성이 바로 물결과 물결의 충돌이라는 핵심적 비유를 반영하고 있음을 간파했으리라 생각한 다.) 내용에 있어서의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미래의 충격'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 는가 하는 점에 주목했던 데 반해 이 책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개인이나 사회에 어떤 희생을 강요하는가 하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제3의 물결'은 변화에 대한 적응의 어 려움에 주목했고 동시에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얼마나 큰 손실이 따르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미래의 충격'에서는 '너무 이른 미래의 도래'에 대해 쓰면서도 모 습을 보이기 시작한 미래의 사회에 관해서는 어떤 그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스케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충격'의 초점은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그 과정이었던 것이 다. 이 책에서는 렌즈의 초점이 뒤바뀌어 있다. 나의 관심은 그러한 변화의 진전보다 그 변화가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키려 하는가 하는 변화의 방향에 중점을 두고 있 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두 권의 책은 본편과 속편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양자가 상호 보완해 가면서 보다 큰 체계를 이루려고 하는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책 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를 읽게 되면 다른 책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것이다. 이 책처럼 방대하고 종합적인 저술을 시도하려면 단순화, 일반화된 요약이 필수불가 결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광범위한 영역을 망라한 문제를 한 권의 책 으로 묶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결과 이 책은 문명을 농업단계의 제 1의 물결, 산업단계의 제2의 물결, 그리고 지금 막 시작된 제3의 물결, 이렇게 3 단계 로 나누었다. 역사가 중에서는 이렇게 구분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농업문명이 전혀 다른 여러가지의 문화로 구성되었다는 것, 산업주의 자체가 현실적 으로는 실로 여러가지 발전단계를 겪었다는 것을 지적하기는 쉬운 일이다. 과거를 12 단계나 38 단계, 또는 157 단계로 나누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한없이 세분화되어 큰 구분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취급한다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도서관 하나쯤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다소 조잡하더라도 보 다 단순한 구분이 효과적인 것이다. 방대한 범위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다른 이유에 의해서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가끔 제1의 물결, 혹은 제2의 물결이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 하면서 문 명 자체를 주체화할 때가 있다. 물론 문명 자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나 도 충분히 알고 있고 독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 간인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문명이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라고 쓰는 것으로 시간 이 절약되고 쓸데없는 논쟁을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학자, 미래학자, 경제계획의 입안자에서 점성술사나 전도사에 이르기까지 누구하나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또 알 수도 없다. 현명한 독자들은 그런 것을 잘 알 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또 알 수도 없다. 현명한 독자들은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내가 어떠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독자들은 당연히 그런 일이 일 어날 것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해 가면서 읽어 줄 것이라 생각하며 쓰고 있다. 그렇 게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유보가 많이 쌓여서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지리한 내용의 책이 되고 말 것이다. 도대체 사회적 예측이라는 것은 아무리 전 산화된 자료를 이용한다 해도 결코 객관적인 가치관과 무관계하다고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는 과학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3의 물결'은 객관적인 예 측의 책은 아니며 그 내용에 대해서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전개시킨 사고방식이 자의적이며 체계가 '권력영역'이라는 면에 서 분석하고 그 영역들이 모두 오늘날의 세계에서 어떻게 혁명적 변혁을 이룩하고 있 는가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네 개의 영역 상호간의 관계를 명확하 게 한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생물영역', '심리영역'과의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했 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간 상호간의 심리적, 내면적 연결을 통해야만 비로소 외부의 여러 변화가 인간의 사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에서는 문명이라는 그 자체가 어떤 종류의 과정과 원칙을 사용하여 현실 을 설명하고 그 문명의 존재 자체를 정당화하는 '슈퍼이데올로기(superideology)'를 발전시킨다라는 사고를 바탕에 두었다. 이러한 체계, 방법, 원칙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그것들이 상호간에 어떤 변화를 강 요하며 그것에 의해서 일어나는 강력한 변화의 흐름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 게 된다면 현재 우리들의 생활에 밀려오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대해 보다 명확 한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사용한 중요한 비유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변화의 물결이 서로 충돌함으 로써 생겨난 현상들이다. 이 물결이라는 비유는 별로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노버트 엘리어스는 그의 저서 '문명의 프로세스: The Civilizing Process'에서 '수세기에 걸 쳐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문명의 물결'에 대해 언급한 바 잇다. 1837 년에는 미국 서 부의 정착화 과정을 설명하면서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물결'에 비유한 적도 있었다. 우선 초창기의 개척자, 뒤를 잇는 농민, 그리고 기업인의 이주가 '제3의 물결'이라는 것이었다. 1893 년에는 프레데릭 잭슨 터너가 그의 고전적 명저 '미국 역사에 있어서 의 프로티어의 의미: Significance of the Frontier History'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 을 사용했다. 따라서 물결이라는 비유는 별로 신선한 것도 아니며 다만 그것을 오늘날 의 문명적 변화에 적용시켰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것이다. 물결이라는 비유를 이 책에서 사용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는 것이 밝혀지 고 잇다. 물결이라는 개념은 극단적으로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조직화하는 데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격동하는 변화의 배후를 꿰뚫어 보는 데에도 소용이 되는 것이 다. 물결이라는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혼란스러웠던 많은 것들이 명확하게 된다. 일상 적으로 자주 보던 낯익은 것들이 새로운 조명 밑에서 간혹 놀랄 정도로 신선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변화의 물결이 서로 충돌하고 겹치면서 우리들의 주변에 모순과 긴장을 낳고 있 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부터 변화 그 자체에 대한 생각마저도 달라지고 말았다. 교육이나 건강문제에서 기술, 혹은 개인생활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변혁 속에서 단순히 표면만의 변화, 즉 과거 산업사회의 연장에 불과한 변화인지 아니면 정 말로 혁명적인 변화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유효한 비유라 하더라도 부분적인 진실만을 제시하는 데에 불과하다. 그 어떤 비유도 도저히 전체적인 내용을 모든 측면에서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따라서 미래의 전망은 커녕 현재에 관한 어떠한 관찰도 결코 완전한 것 또는 최종적인 것으로 나타내지는 못한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10 후반에서 20 대 초반 당시벌 써 25 년 전의 일이지만모든 청년들이 그러한 것처럼 모든 문제에 대해 해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라나 나는 곧 내 자신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편 견에 찬 일방적이고 진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말해서 대개 의 경우 그릇된 질문에 대한 옳은 해답보다는 옳은 질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에 생각 이 미친 것이었다. 나는 '제3의 물결'이 이것저것 문제에 답하는 것과 동시에 여러가지 새로운 질문도 이끌어 내게 되기를 원하고 있다. 지식은 완전할 수가 없고 전체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비유도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은 그 자체가 참으로 인간적이다. 이러한 인식만 있으면 광신에 빠질 염려는 없다. 반대 론자에게도 부분적인 진실은 있는 법이다. 자기자신이 과오를 범할 수도 있다는 가능 성을 인정케 하는 것이다. 규모가 방대한 통합적 견해를 전개하려 하면 할수록 잘못을 저지르는 위험성이 따른다. 그러나 평론가 조지 스테이너는 '보다 큰 질문을 하는 것 은 사물을 잘못 다루게 되는 위험성이 있지만 전혀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은 지적 생활 을 속박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생활이 여러 갈래로 조각나고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하는 한편 기묘하고도 새로운 생활양식이 팽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 폭발적인 변화의 시대에 우리들의 미래 에 관한 최대의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인 류의 생존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자각하고 있든 아니든간에 우리 모두는 이미 새로운 문명창조에 참가하거나 혹은 그 것을 거부하는 세력에 가담하는 둘 중의 어느 한 편에 속해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 람이 그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제3의 물결'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 이다. 부딪치는 물결 제1장 내일에의 대투쟁 지금 우리의 생활 속에서 새로운 문명이 출현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그것을 저지하려고 애쓰고 잇다. 이 새로운 문명과 더불어 새 가정형태가 태어나고 직업, 연애, 생활양식이 변화하고 경제도 새로워지고 정치적 인 충돌 또한 새로워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식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이 새로운 문명의 부분들이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잇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내일의 리듬에 맞추어 자신들의 생활을 조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미래를 두려워 한 나머지 기를 쓰며 과거로 도피하여 전진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이 살 아온 시대, 이미 죽어가고 있는 세계를 되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이 새로운 문명의 출현이야 말로 우리 생애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동향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사건이며 가까운 장래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문명의 출현은 1 만년전 농업의 발명으로 시작된 제1의 물결, 그리고 산업혁명에 의해 촉발되어 순식간에 전세계를 석권한 제2의 물결과 마찬 가지로 사회를 밑바닥부터 변혁시키는 대사건이다. 우리는 이러한 두 변혁의 뒤를 이 어 닥쳐오는 제3의 물결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엄청난 변혁의 압도적인 힘과 그 광범위한 영향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모색하고 있다. '우주시대', '정보화 시대', '전자공학시대'라고 말하는 사람 도 있다. 캐나다의 문화사학자 마샬 멕루헌은 통신의 발달에 의해 지구상의 모든 사람 이 한 마을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여 '지구촌'이라는 조어를 제창했 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전보장문제 특별보좌관 비그뉴브 레진스키는 인류가 '기술, 전자공학시대'로 돌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과 전자공학의 충격에 의해 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특질을 표현하려는 말이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다가오는 사회를 '탈산업화 사회'라고 말 했고 나 자신도 '초산업사회'라는 표현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관해 포괄적인 저술 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나 지신의 말을 포함해서 그 어느 것도 충분하고 적절한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들 표현 중에서 변화하고 있는 한 가지 요인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문제를 넓게 포착하지 못하여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는커녕 오히려 좁게 하고 잇다. 또 어떤 것은 정적인 표현이 지나쳐서 새로운 사회가 기존의 가치체계와의 대립이나 긴장도 없이 원활하게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우리에게 밀어닥치고 있는 변화, 또는 그 변화로 인해서 일어나게 되는 압력이나 갈등 이 얼마나 격렬하게 밀어닥치고, 얼마나 많은 범위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표현으로는 도저히 현상을 나타낼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인류는 미래를 향해 일대 비약하는 단계에 와 있다. 사회를 뿌리채 뒤흔드는 대변동, 예전에 없던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내는 변혁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점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아주 새롭고 주목할 만한 문명을 그 기반부터 쌓아올리려 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제3의 물결이 갖는 의미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두 차례나 대변혁의 물결을 경험했다. 그 물결은 변혁 이전에 존재 했던 문화나 문명을 거의 망각해 버리고 그것들을 그 이전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생활양식을 일반화시켜 놓았다. 제1의 물결에 의한 농업혁명은 수천년에 걸쳐서 완만하게 전개되었었다. 산업문명의 출현으로 제2의 물결이 일으킨 변혁은 불과 300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늘날 역사의 진행은 더욱 가속적이어서 제 3의 물결은 불과 2,30 년 동안에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그 변혁을 완성해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이 충격적인 시대에 우연히도 지구상에서 살게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본격적인 제3의 물결의 충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은 우리의 가족관계를 붕괴시키고 경제의 기반을 뒤흔들고 정치체제를 마 비시키고 가치체계를 깨뜨려서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든 낡은 권력관 계에 도전하고 위기에 빠져 있는 현대사회의 엘리트들의 특권과 특전에도 도전하고 있 다. 그리고 이 물결이 미래에 전개될 권력투쟁의 중요한 배경이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문명의 많은 부분은 낡은 전통적인 산업주의 가 만든 문명과는 모순되는 것이 많다. 그것은 고도의 과학기술적인 동시에 반산업적 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젱3의 무결은 전혀 새로운 생활양식을 가져다 준다. 그 기반이 되는 것은 다양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 자원이나 조립 란인에 의한 공장생산을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새로운 생산방식, 핵가족과는 또 다른 새로운 가족형태인 '전자주택(el ectornic cottage)'이라고 호칭하게 될 직장과 주택을 겸하게 되는 생활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학교와 기업체 등이 그것이다. 새로이 출현하게 될 문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행동규범을 수립시키고 제2의 물결사회의 특징인 표준화, 동시화, 중앙집권화 등 산업 사회의 제약을 뛰어넘어 에너지, 부, 권력의 집중화를 극복하는 길을 개척해 준다. 이 새로운 문명은 한편에서는 구체제를 타도하면서 관료체제를 붕괴시키고 국민국가 의 역할을 약화시켜서 제국주의 이후의 세계에 반 자립경제를 등장시킨다. 새로운 문명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정부보다도 간소하고 보다 효율적인 민주적 정부를 필요로 한다. 이 문명은 자체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 공간, 논리,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독특한 사고방식을 수반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앞으로 설명하게 되는 바와 같이 산업혁명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분리되었던 생산자와 소비자를 다시 융합시켜 '생산소비자(prosumer)'라고 불리게 되 는 경제를 만들어 내게 도니다. 이러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문명은 우리가 다소 의 지적 노력을 함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인간적인 문명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 틀 림없다. 혁명적 전제 오늘날 두 개의 명확하게 대조적인 미래상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영원히 계속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현 상에 너무나도 안주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상상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들이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문명이 전면적으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다. 물론 그들도 사물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변화는 그저 자기들 옆에 지나쳐 갈 뿐 익숙해진 경제체제나 정치구조는 미동도 하지 않을 것 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미래는 현재의 연장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직선적인 사고는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잇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생각들이 사업가나 교사, 부모, 정치가 등이 결정을 내릴 때의 검증되지 않은 가정으로 나타난 다. 좀더 고도의 단계에서는 이러한 사고방식에 통계나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자료, 미랙학자의 전문용어 등으로 성장을 한다. 어떤 경우라도 실질적으로는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미래사회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제2의 물결에 의한 산업주의가 점 점 확대되고 지구는 더욱 산업주의 일색으로 되고 만다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들은 이렇게 확신에 찬 미래상을 격렬하게 뒤흔들고 있 다. 이란사태의 폭발, 모택동의 격하, 석유가격의 급등과 인플레이션의 광란, 테러의 만연과 그것을 저지 못하는 각국 정부들 등, 뒤를 이어 일어나는 위기가 신문제목을 장식하면서 일반인들은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갖게 되었다. 쉬지 않고 제공되는 암담한 뉴스, 지구의 종말을 테마로 한 영화, 성경의 묵시록에 관한 이야기, 최고의 두뇌집단들이 발표하는 악몽과도 같은 미래^36^예측에 대한 시나리오 등을 완전히 믿 은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사회는 미래까지 존속하지 못한다고 결론내리고 말았 다. 미래 그 자체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묵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세계 파멸적인 전쟁 이 목전에 다가왔으며 지구는 무서운 종말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 두개의 미래상은 퍽 다른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나 정치적 으로나 양자는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둘 다 상상력과 의지를 마비시키고 말 기 때문이다. 실제에 있어서 만일 내일의 사회가 현재의 확대판 시네라마(cinerama)에 불과한 것이 라면 우리들은 미래에 대해서 준비할 것이 별로 없다. 반면에 만일 사회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동안에 자멸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들로서는 거기에 대응할 아무 런 방법도 없게 된다. 요컨대 미래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그 어느 것이나 자기만을 생 각하는데 급급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생활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의 행동을 동결시키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잇는 사태를 이해하려 한다면 이러한 종말론이나 현 재와 별 차이가 없는 미래가 온다는 단순한 선택에 얽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좀 더 분명하고 건설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미래에 대응하는 방법과 보다 중요한 일은 현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하는 지침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이 책은 내가 '혁명적 전제'라고 이름지은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2 ,30 년 동안은 동란과 격동이 가득한 현재 이상으로 폭풍적 풍조가 만연하는 시대가 되더라도 우리들은 전면적으로 자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가 지금 경험하고 있 는 충격적인 변화는 결코 혼란이나 우연으로 일어난 일도 아니다. 실제로는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 하나의 패턴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 서 있는 것이다 . 또한 이러한 변화는 누적적인 것이어서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인간의 생활, 일, 사 고방식을 모두 바꾸고, 건전하고 바람직한 미래가 온다고 전제한다. 요컨대 앞으로 전 개되는 이 책의 내용은 현재 일어나고 잇는 사태가 범세계적인 혁명, 역사상의 일대 비약이라는 전제하에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책의 출발점으로 되어 있는 전제는 우리가 낡은 문명의 최후 세대이며 동시에 새로운 문명의 최초의 세대라는 것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혼란, 고뇌 , 방향감각의 상실은 우리 자신의 정신, 또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정치제도 내부의 모순과 투쟁의 반영일 따름이며 그것은 벌써 종말이 가까워진 제2의 문명과 그것에 대 처하려는 제3의 새로운 문명이 일으키는 갈등을 직접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결국 이것만 이해하게 되면 얼핏 무의미한 모든 사건들이 갑자기 분명하게 이해가 된 다. 변화의 광범위한 패턴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한 행동을 일으키 는 것이 다시 가능해지고 또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켠대 혁명적 전 제는 우리들의 지성과 의지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물결의 방향 그러나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변화가 혁명적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변화에 방향을 제시하고 조종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역사의 흐름을 확인하고 그것 을 분석하는 새로운 수법이 필요하게 된다. 이 방법을 모르면 우리는 자기자신을 잃어 버리는 미궁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하나의 유력한 새로운 접근법은 변화하는 사회적 물결의 머리를 분석하는 능력이다. 변화의 물결이 연속적으로 밀려오는 것을 역사라 생각하고 각 물결의 앞머리가 우리를 어디로 운반해 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역사의 연속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불연 속성, 전환과 혁신에 주목한다. 변화의 열쇠가 되는 패턴을 찾아냄으로써 그러한 패턴 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농업의 출현이 안간의 사회발전의 최초의 전환점으로 삼고 산업혁명을 두 번 째의 커다란 전진이라고 하는 단순한 관념에서 출발하는 이 접근방법은 농업의 출현과 산업혁명이 각기 별개의 사건이라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정한 속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변화의 물결이라고 생각한다. 제1의 물결에 의한 변화가 일어나기 이전 인류의 대부분은 소집단을 이루어 각지를 방랑하면서생활하였고 채집, 어업, 수렵, 목축으로 식량을 얻고 있었다. 그것이 대략 1 만년쯤 전에 농업혁명이 시작되고 지구상에 서서히 퍼져 나가면서 촌락 과 경작지가 생기고 새로운 생활양식이 확대되어 갔다. 이 제1의 물결에 의한 변화는 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 제2의 커다란 세계적 변혁의 물결이 밀어닥쳤던 17세기 말까지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변화인 산업화는 제1의 물결 때의 변화보다 훨씬 급속하게 나라에서 나라로, 대륙에서 대륙 으로 퍼져 나갔다. 이렇게 해서 두 개의 다른, 명확하게 그 성격을 달리하는 변화의 물결이 각기 다른 속도로 지구상을 동시에 진행해 나아갔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제1의 물결은 사실상 완전히 퇴색하고 말았다. 아직도 농업을 모르고 있 는 지역은 남아메리카나 파푸아 뉴기니등의 일부 소수부족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도 강력했던 제1의 물결이 기본적으로는 이미 소진해 버린 것이다. 한편 불과 수세기 동안에 유럽, 북아메리카, 기타 세계 일부지역의 인류의 생활에 혁 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제2의 물결은 지금도 여전히 기본적으로 농업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나라들에게 퍼져 가고 있다. 거기에는 지금도 제철공장, 자동차공자, 섬유공장, 철도, 식품가공공장 등이 건설되고 있다. 산업화의 활기는 분명히 지금도 활동하고 있 으며 제2의 물결의 세력은 아직도 완전히 소모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이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그것과 병행해서 더 한층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십년 동안 산업화의 물결이 절정에 달 해 있는 그때까지도 분명하게 정체를 나타내고 있지 않았던 제3의 물결이 지구의 여기 저기에 밀려오기 시작하여 그 물결과 마주친 모든 것을 변혁시키지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이 동시에 두 개나 세 개의 전혀 성질이 다른 변혁의 물결에 의해 충격을 받았다. 각기 변화의 속도도 다르고 그 배후에 있는 힘의 강도도 달랐다. 이 책에서는 편의상 제1의 물결시대는 기원전 8000 년경에 시작되고 1650--1750 년대 경까지 다른 세력의 도전을 받음이 없이 지구상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 그리고 그 무렵부터 제1의 물결의 세력이 쇠토하기 시작하고 때를 같이하여 제2의 물결이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2의 물결이 이룩한 산업문명이 지 구를 석권하여 드디어 그 정점까지 올라갔다. 이 역사상 가장 새로운 전환점은 미국을 예로 들어보면 대략 1955 년부터 1965 년에 걸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 10 년 간에 화이트칼라(white-collar)와 서비스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사상 처음으로 블루칼라(blue-collar)의 수를 능가했다. 대폭적인 컴퓨터의 도입, 제트비행기에 의한 관광여행 붐, 피임약의 보급, 기타 많은 충격적인 변혁이 뒤이어 일어난 것도 이 10 년 동안의 일이었다. 이 10 년이야말로 미 국에서 제3의 물결이 그 세력을 펴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 이후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 프랑스, 스웨덴, 서독, 소련, 일본 등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 어났다. 오늘날 고도의 산업기술국가에서는 낙후된 장식을 하고 있는 경제 및 여러 제 도와 제3의 물결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로 인해 예외없이 동요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점을 이해해야 비로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래의 물결 어떤 사회를 지배하는 변화의 물결이 단 하나뿐이라면 미래를 향해서 그 사회가 어떠 한 패턴으로 발전해 나아가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 작가, 화가, 저널리스 트, 기타 온갖 사람들이 미래의 물결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19세기 유럽에서는 수 많은 사상가, 실업계의 지도자, 정치가, 그리고 일반인들마저도 미래에 대해서 명확하 고도 기본적으로 정확한 미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기계화되어 있지 않은 농업 에 대한 공업의 궁극적 승리를 향해서 역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 그 승리와 함께 제2의 물결이 가져오는 여러가지의 변화를 매우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즉 보다 고도화된 기술, 보다 대규모의 도시, 보다 고속화되는 수송기관, 대 중교육 등등이다. 이처럼 분명한 미래상은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정당이나 정치운동은 마치 삼각법으로 측정하는 것처럼 미래를 측정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산업화 이전의 농업 관계자는 서서히 침범해 들어오는 산업주의, 대기업, '조합의 보스(boss)', '악의 소 굴인 도시' 등에 대해 최후의 배수진을 치게 되었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막이 오르고 있는 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조종간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 소수민족들은 자 기들의 권리를 산업사회 안에서 개선하기 위해 취업 및 승진의 기회균등, 도시에서의 주택확보, 임금인상, 공공교육의 확대 등을 요구했다. 이 산업에 관한 미래의 비전은 심리적으로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도 격렬하게 때로는 피투성이의 투쟁을 전개했다. 불황과 갑자기 일어나는 호황 이 생활을 파탄시킬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에 널리 퍼진 이 산업중심의 미래상은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선택의 범위를 명확히 해주었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현재 어떤 상태하에 있는가를 알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도 전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즉 심한 사회적 변화의 와중에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안 정감과 자기자신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에 비해 사회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변화의 큰 물결을 맞이하고 게다가 그 어 느 것이 우위에 서게 될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을 때는 미래상은 분열하지 않을 수 없 다. 변화와 더불어 일어나게 되는 모순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지 기 때문이다. 물결과 물결이 서로 부딪쳐서 대양은 거칠어지고 본류와는 관계없는 소 용돌이가 사방에서 일어나 그 밑바닥에서 흐르는 보다 중요한 역사의 조류를 잃어버리 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다른 나라에서도 같겠지만제2의 물결과 제3의 물결의 충돌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일어났고 위기적인 투쟁이 전개되고, 계급, 인종, 성, 혹은 당파 등의 상식적 구분을 초월한 기묘하고도 새로운 정치적 물결이 조성되었다. 이 충돌이 전통 적인 정치용어들을 혼란시켜 진보주의자와 반동주의자, 동지와 적의 구분마저도 곤란 하게 만들었다. 종전의 분열이나 유대가 모조리 백지화되고 말았다. 노동자와 경영자 가 서로 의견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힘을 합해 환경보호론자와 대립하는가 하면 한 때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손을 잡고 있던 흑인과 유태인인 반목되기도 한다. 여러 국가에서 소득의 재분배라는 '진보적' 정책에 지금까지 호의적이었던 노동자 계 급이 이제는 여성의 권리, 자녀의 교육, 이민, 관세, 시민운동에 대하여 '반동적' 입 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통적인 '좌익'이 때때로 중앙집권이나 극단적인 국수 주의가 되어 환경보호론자들과 대립하기도 한다. 또한 정치가를 본다면 지스카르 데시탱 프랑스 대통령,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주 지사에 이르기까지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보수적' 태도를 취하 고 있지만 예술, 성도덕, 여성의 권리 또는 환경규제 등에 대해서는 '자유분방'한 태 도를 취하고 있다. 일반대중이 어리둥절하여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해 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언론기관들은 그들대로 여러가지 혁신, 반전, 기괴한 사건, 암살, 납치, 우주선 발사, 정부의 붕괴, 특공대의 기습작전, 뇌물사건 같은 얼핏 서로 무관한 것으로 보 이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다. 정치 생활의 일관성 상실은 개인에게 투영되는 사람들의 생활적응력을 파괴하고 있다 . 정신분석의와 종교치료사가 성업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이 정신요범사들의 경쟁에 휩 쓸려서 정처없이 헤매고 있다. 종교의식이나 마녀의 집회라고나 해도 좋을 곳에 숨어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병적인 비관주의에 빠지고 만다. 이 세상은 불합리하고 미쳐 있어서 의미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분명 인생이란 것은 대우주적 견지에서 본다면 하잘 것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사건들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는 숨겨져 있는 물결에 의한 변화와 이 제는 쇠퇴해 가고 있는 제2의 물결에 의한 변화를 구별하기만 하면 그 숨겨진 질서를 곧 간파할 수 있다. 이 두 물결의 충돌로 일어난 모순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에 대한 보다 명확한 미래상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여러가지 정치적, 사 회적인 힘을 꿰둟어 보는 X선도 갖게 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역사에 대해 어떤 개 인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통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미력하다 해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부속품이 되어 역사를 형성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화의 물결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일어나게 되는 역류는 직업, 가정생활, 성에 관한 태도, 개인적 윤리관 등에 반영된다. 그것은 생활태도나 선거 때의 투표행위에도 선명 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개인생활에 있어서나 정치생활에 있어서 물질적으로 혜택받 은 나라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본질적으로는 다음에 예시하는 세 가지의 생활방식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멸되는 운명에 처해 있는 질서를 유지시키려는 제2의 물결의 인간으로 있든지 현재 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미래를 건설하려는 제3의 물결의 인간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두개의 중간, 즉 혼란 속에서 조금씩 자기 부정적인 인간으로 있을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황금 붐에 춤추는 투기광에서 암살까지 제2의 물결집단과 제3의 물결집단과의 대립은 실제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정치적 긴장관계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잇다. 오늘날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어떤 정견을 발표하든 그들의 내부항쟁은 쇠퇴해 가고 있는 산업주의 체제의 찌꺼지 중에서 누가 최대의 이익을 짜낼 수 있는가 하는 투쟁에 불과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바꾸어 말한다면 자주 인용되는 예이긴 하지만 정치가들은 침몰하고 있는 타이타닉호 선상에 서 갑판에 있는 의자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보다 근본적인 정치문제는 이제부터 진술하는 바와 같이 누가 산업사회의 말기를 지 배하느냐가 아니라 급속하게 산업사회와 교체되어 가고 정치적 싸움에 정신이 팔려 우 리들의 정력과 주의력을 다 소모하고 있는 사이에 밑바닥에서는 벌써 본질적인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투쟁의 한쪽은 지난날의 산업사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며 한 편에는 식량, 에너지, 군비축소, 인구, 빈곤, 자원, 환경, 기후, 고령화 사회, 도시공 동체의 붕괴, 생산성의 증진, 고임금노동의 필요성 등 세계의 가장 긴급한 당면문제들 이 이제는 산업주의 체제의 틀 속에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수백만의 사람들이다. 이 양자의 대립이야말로 여기서 말하는 '내일에의 초투쟁'임에 틀림없다. 제2의 물결 에서 얻은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제3의 물결 세계에세 살려고 하는 사람들 간의 대결은 이미 모든 나라의 정치를 통해서 전류처럼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심지 어 비산업국가들마저 밀어닥치는 제3의 물결에 의해 지금까지의 전선을 다시 그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농업사회의 봉건적 특권계급과 산업사회의 엘리트들 간의 지금까지 의 투쟁은 자본가든 사회주의자든간에 산업주의의 퇴조와 함께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 었다. 제3의 물결에 의한 문명이 출현하고 있는 현재 급속한 산업화는 신식민지주의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는 속국상태의 영속을 보장하 는 것일까? 이러한 광범한 배경을 감안해야만 비로소 우리들은 신문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다. 무엇이 우리에게 보다 중요하며 변화하는 우리의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 을 수립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 신문의 1 면에서 이란의 정치적 혼락과 인질문제, 급등하는 금에의 투기, 미국에서의 흑인과 유태인의 반목, 서독 군비 예산의 대폭적인 증가, 롱 아일랜드에서의 화형집행, 멕시코만의 대량의 원유유출사건, 사상최대의 반핵집회, 방송용 주파수의 할당을 둘러싼 경제대국과 소국과의 대립 등이 보도되고 있다. 종교 적인 각성운동도 리비아, 시라아, 미국 등지에서 계속 융성화의 기운을 보이고 있고 광신적인 네오파시스트은 파리에서 발생한 암살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제너럴 모터스사는 전기자동차개발을 위한 기술적 장해를 극복했다고 발 표하고 있다. 이러한 단편적 신문기사들은 일관된 통합성을 크게 외치고 있다. 산업주의를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밀어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벌써 치열한 싸 움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세계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강력하고도 새로운 열쇠를 갖게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있 는 경우거나 기업의 전략 혹은 개인 생활의 목표를 수립하는 경우에도 우리의 세계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도구를 가져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도구를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낡은 산업중심의 문명을 연장시키는 변화와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촉진시키는 변화를 명백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신구 두 개의 사회, 즉 우리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온 제2의 물결이 만든 산업주의 사회체제와 앞으로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살아가게 되는 제3의 물결이 만들 문명 모두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의 각 장에서는 제3의 물결세계를 탐구하기 위한 준비로써 제1, 제2의 물결 때 문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는 제2의 물결문명이 결코 제멋대로의 요소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많든 적든간에 예측가능하며 상호관련 이 있는 부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라는 것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산 업사회에서의 생활의 기본적 패턴은 문화의 전통이나 정치제도의 차이와는 관계없이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라는 것도 이해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반동주의자들 이'좌익'이건 '우익'이건어떻게 해서라도 유지하려고 하는 문명인 것이다. 그것이야말 로 문명의 역사 속에서 변혁을 강요하는 제3의 물결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세계인 것 이다. 제2의 물결 제2장 문명의 구조 300 년 전에 지구상에서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지역에 따라서는 반세기 전후의 시간 적 차이는 있었지만 충격적인 파괴력을 가진 변동이 전세계에 파급되었다. 낡은 사회 들은 붕괴시키고 전혀 새로운 문명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 대폭발이 바로 산업혁명이 다. 그리고 이 혁명에 기인되는 거대한 해일, 즉 제2의 물결은 맹렬한 기세로 전세계 를 덮쳐서 과거의 모든 제도 및 관습과 충돌하면서 수백만이라는 인간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제1의 물결로 이루어진 문명이 지배하던 수천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은 두 개의 범주, 즉 '미개인'과 '문명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소수의 집단과 부족을 이루어 채집, 수렵, 혹은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이른바 미개인족은 농업혁명과는 관계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문명'세계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토지를 경작해 서 생활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농업이 시작된 지역에는 어디나 문명이 뿌리를 내렸다. 중국, 인도로부터 아프리카의 옛토후곡 베닌(Benin)이나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또한 그리스나 로마에서 여러 문명이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면서 끊임없이 다채로운 융합문명 을 만들었다. 그러나 표면상의 차이는 있더라도 토지가 경제, 생활, 문화, 가족 구조 및 정치의 기 반을 이루고 있었다. 생활은 부락을 중심으로 영위되었다. 예외없이 간단한 분업이 행 해지고 몇 가지로 뚜렷하게 구분된 카스트(cast)의 계급이 출현했다. 그것은 귀족, 승려, 무사, 농민, 농노 또는 노^36^예였다. 어느 곳에서도 권력은 엄격 한 독재주의였다. 가문의 인생의 지위를 결정했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나 경제는 지방 분권적이었고 각각의 공동체는 생활필수품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역사는 단순하지는 않았으므로 예외도 있었다. 대양을 종횡으로 활약한 뱃사람들에 의한 상업문화권도 있었고 거대한 관개시설을 중심으로 조직된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왕국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얼핏 특수한 것처럼 보이는 문명 들은 같은 하나의 사회현상, 즉 제1의 물결에 의해 일반화된 농업문명의 특수한 경우 로 보아도 잘못은 아니다. 농업문명의 지배적이었던 시대에도 간혹 장래를 예견케 하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는 대량생산공장들도 있었다.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는 기원전 400 년에, 미얀마에서는 서기 100 년에 석유를 채굴하기 위해 시추를 했던 일 이 있다. 바빌로니아나 이집트에서는 광범위한 관료주의가 번창했다. 아시아나 남아메리카에서는 거대한 도시들이 건설되었다. 화폐가 존재했고 교역도 행 해졌다. 중국에서 도버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칼레(Calais)에 이르는 통상의 길은 사막 바다와 산맥을 넘어 종횡으로 교차되어 있었다. 물론 성숙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치단 체나 국가라는 개념도 존재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놀랍게도 선구적인 증기기관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산업문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방금 거론한 미래를 내다볼 만한 현상들은 시대적으로나 장소적으로나 여기저기 흩어 진 것에 불과해서 말하자면 역사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일관성 있는 체계를 이루지 못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따라서 1650 년까지는 완전히 제1 의 물결시대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1750 년까지도 제1의 물결세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곳곳에 미래사회나 곧 도래하게 될 산업사회를 예견하게 하는 현상이 보이기는 했지 만 역시 농업문명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러한 상태가 영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은 이 농업문명 속에서 시작되었고 제2의 물결을 일으킴으로써 전혀 미지의 강력하고 열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활력이 넘치는 문명, 그때까지의 문명과는 대조 적인 문명을 창조해 냈다. 산업주의란 단순히 공장굴뚝이나 조립라인만의 문제가 아니 었다. 그것은 강력하고 다방면에 걸쳐진 사회체계이며 인간생활 모든 면에 관계하고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제1의 물결의 모든 특질에 도전했던 것이다. 산업주의는 다트 로이트 교외 윌로우 런에 거대한 공장군을 만들어 낸 것뿐만 아니라 농장에는 트랙터 를, 사무실에는 타이프라이터를, 부엌에는 냉장고를 등장시켰다. 일간신문이나 영화, 지하철, DC3 항공기를 이 세상에 내놓았다. 회화의 세계에서는 큐비즘(cubism)을 음악 에는 12음계를 가져다 주었다. 공업기술과 예술과의 결합을 목표로 하는 종합조형학교 바우하우스(Bauhaus)의 건축, 바르셀로나 양식의 의자, 연좌파업, 비타민제, 평균 수명의 연장^36,36^이것들은 모두 산업주의의 산물이었다. 팔목시계와 선거를 보급시킨 것도 산업주의이다. 그러나 보 다 중요한 것은 산업주의자 이러한 별개의 현상들을 모아서 마치 부속품으로 기계를 조립하는 것처럼 이것들을 조립하여 그때까지는 없었던 대단히 강력하고 일관된 광범 한 사회제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제2의 물결이 가져온 문명인 것이다. 폭력적 해결 제2의 물결이 여러 사회로 밀어닥침에 따라 농업사회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도래하고 있는 산업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은 마침내 정면충돌을 일으켜 양자의 격돌현장에 있던 구시대 의 사람들은 구석으로 밀려나거나 때로는 대량살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이 충돌은 농업에 의한 제1의 물결문명을 확립하려고 하는 유럽인이 이주 해 옴으로써 시작되었다. 백인에 의한 농업문명의 조류는 사정없이 서쪽으로 밀려 가 서 인디언들을 내쫓고 멀리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농장과 농촌을 계속적으로 만들어 냈 다. 그러나 농민들의 뒤를 이어 앞으로 오게 될 제2의 물결시대의 첨병이라고도 할 수 있 는 초기 산업인들도 도착했다. 뉴잉글랜드와 대성야 연안 중부 여러 주에는 공장과 도 시들이 급격히 출현하게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동북부는 공업지대로서 급속한 발전 을 계속하여 무기, 시계, 농기구, 섬유제품, 재봉틀 등의 제품을 생산해 냈다. 반면 그 외의 지역에서는 아직 농업세력이 지배적이었다.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 사이에 는 경제적,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어 드디어 1861 년에는 무력투쟁으로 발전되고 말았 다. 남북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노^36^예제도를 둘러싼 도덕적 논쟁 이나 관세문제라는 협소한 경제적 대립만이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전쟁이 결말 지으려 하는 것은 훨씬 중요한 문제 때문이었다. 즉, 풍요한 이 신대륙을 농민이 지배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산업가들이 지배할 것인가, 제1의 물결세력에 굴복하는가 아 니면 제2의 물결세력이 승리하는가, 그것이 전재의 진실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미래의 미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농업형 사회로 되느냐 산업형 사회로 되는냐의 분수령이었다 . 북군이 승리하으로써 주사위는 던져졌다. 미국의 산업화가 확정된 것이다. 그때 이 후부터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면에서 농업은 후퇴를 계속하고 공업이 융성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제1의 물결은 후퇴하고 제2의 물결이 밀려들게 되었다. 비슷한 두 문명의 충돌은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났다. 1868 년에 시작된 일본의 메이 지유신 역시 과거의 농업시대와 미래의 산업시대와의 싸움을 똑같이 재연한 것이었다. 1876 년에 실시하게 된 사족의 기록을 폐지함으로써 봉건제도가 종말을 고하고, 1877 년에 일어난 사쓰마항의 반란 때문에 일어나 세이난의 전쟁, 1889 년에 서구형 헌법 의 공포, 이런 것들은 모두 일본에 있어서의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의 충돌을 반영 하는 사건이며 일본이 세계 제1급의 산업국으로 전진하는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러시아에서도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의 세력 사이에 이같은 충돌이 일어났다. 1917 년의 러시아혁명은 남북전쟁의 러시아판이었다. 표면상의 중요한 쟁점은 공산주 의 체제를 취하느냐 아니냐처럼 보였지만 실은 여기서도 문제의 중심은 산업화에 있었 다. 볼셰비키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농노제도와 봉건영주의 전제정치에 종지부를 찍 어 농업은 뒷전으로 제쳐 놓고 의식적으로 산업화를 촉진시켰다. 볼셰비키 역시 제2의 물결 편에 들어온 정당이 된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이 계속 충돌하면서 정치적 위기, 동란, 파업 , 반란, 쿠데타, 전쟁 등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20세기 중반까지 제1의 물결세력은 완 전히 붕괴되고 제2의 물결문명이 지구를 지배했던 것이다. 오늘날 산업주의 사회는 지구상의 북위 25 도선과 65 도선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북미대륙에서는 약 2억 5000 만의 인구가 산업화된 생활양식에 따라 살고 있다. 서유 럽에서는 스칸디나비아의 남쪽에서 이탈리아에 이르는 지역에 역시 2억 5000 만 정도 의 인구가 산업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동쪽으로 향하면 유라시 아(Eurasia) 공업지대, 즉 동유럽과 소련의 서부가 산업주의 문명권이며 여기에도 2억 5000 만의 인구가 산업사회 특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아시아의 산업지역인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호주, 뉴질랜드, 한국, 중국본토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의 2억 5000 만의 산업화된 인구가 있다. 결국 산업문명에 속하는 인간 은 약 10억에 이르고 이것은 지구 전체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나라들은 분명 다른 언아, 문화, 역사,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어서의 그 뿌리깊은 차이점 때문에 전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의 물결에 속해 있는 사회에는 여러가지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그 차이점 의 배후에는 유사성이라는 공통의 기반암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체제와 충돌을 되풀이하고 있는 사회변화의 물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사회의 공통적 구조, 즉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제2의 물결이 이루어 놓은 문 명의 구조를 확실하게 알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다름아닌 이 산업사회의 기 본구조 그 자체가 지금 붕괴되려 하기 때문이다. 육체노동에 의존하고 있던 동력 새로운 문명이건 낡은 문명이건간에 모든 문명의 전제조건은 에너지이다. 제1의 물결 사회에서의 에너지원은 인간이나 동물의 근육의 힘인 '생물에 의한 동력원', 태양열, 풍력 등 자연의 힘에 의존하고 있었다. 취사나 난방을 위해서 삼림이 벌채되었다. 물 레방아도 있었다. 논이나 밭에서는 관개용 풍차가 찌극찌극 소리내며 돌고 있었다. 가 축은 쟁기를 끌고 있었다. 프랑스혁명 당시만 해도 유럽에는 에너지원으로 1400 만 필 의 말과 2억 400 만 두의 소가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것은 제1의 물결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이용된 모든 에너지원은 재생가능한 에너지였 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림은 자연이 회복시켜 주었고 배를 달리게 해주는 바람도, 기 선의 외륜을 돌려주는 강물의 흐름도 자연의 힘으로 해서 순환되었다. 에너지원으로서 혹사당하던 가축이나 인간도 교체요원은 얼마든지 있었다. 여기에 비해서 제2의 물겨이 만들어 낸 사회는 모두가 석탄이나 가스, 석유 등 한번 소비해 버리면 재생불가능한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712 년 영국 의 기술자 토머스 뉴코먼에 의해서 실용적인 증기기관이 발명된 이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단순하게 자연이 만들어 내는 이자만으로 인간문명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축적해 둔 자본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가 축적해 두었던 에너지를 조금씩 뜯어 먹는 것은 산업문명을 성립시키는데 있 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보조금의 역할을 했다. 이것으로 해서 산업문명은 대단히 급속 한 경제성장을 실현했다. 제2의 물결이 밀려온 나라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나 값싼 화석연료를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거대한 과학기술의 체계와 경제기구를 수립했다. 자본주의 사회이건 사회주의 사회이건, 그리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분명히 같은 전환이 일어났다. 즉 어디에서도 구할 수 있는 에너지에서 특 정한 장소에 집중하고 있는 에너지로, 재생가능한 것에서 재생불능의 것으로, 잡다한 종류의 자원이나 연료에서 소수의 연료로 전환하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화석연료 는 제2의 물결에 속하는 모든 사회의 에너지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기술의 요람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의 도약은 과학기술의 거대한 진보와 발전을 가져왔다. 제1의 물결이 가져온 사회는 2000 년 전에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말했던 것처 럼 '문명의 발달에 필수불가결한 발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랭크, 쐐기, 노 포, 포도짜는 기구, 지렛대, 기중기 등 초기에 발명된 기계는 주로 인간이나 동물의 근육의 힘을 증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제2의 물결은 과학기술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모터, 벨트, 호스, 베어링, 볼트 등이 하나가 되어 규칙적인 운동을 계속하면서 톱니바퀴를 물고 돌아가 는 거대한 전기기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기계는 단순히 근육의 힘을 증 강시키는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산업문명은 인간보다 정확한 시각, 청각, 촉각을 갖는 기계를 만들어 과학기술에게 감각기관을 대행시킬 수도 있게 되었다. 산업문명은 또 새로운 기계를 만들기 위한 공작기계를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만들어 냈 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술에 요람을 제공해 준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산업문명이 여러가지 기계를 한 지붕 밑에 모아 놓고 상호연관된 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라 하여 공장이 만들어지고 나아가서 공장 내부에 조립라인 작업체제가 확립되었다. 이 기술적 기반 위에 서서 많은 산업이 급격하게 일어나 제2의 물결이 이루어 내는 문명의 특질을 명확하게 했다. 맨처음 발달한 것이 석탄산업, 섬유산업, 철도산업이고 철강, 자동차산업, 알루미늄, 화학제품, 항공기산업이 그 뒤를 이었다. 거대한 공업도시가 각지에 출현했다. 섬유산업이 성황을 이룬 프랑스 북부의 릴, 영국 북서부의 맨체스터, 미국의 자동차산업 도시인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 철강도시인 서독의 에센, 소련 서부에 있는 마그니토고르스크 등 수백개가 넘는 공업도시가 태어 났다. 이 공업중시지에서 내의, 구두, 자동차, 시계, 장난감, 비뉴, 샴푸, 카메라, 기관총, 전동기 등 동일한 제품들이 수없이 생산되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 가동되기 시작한 새로운 과학기술이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붉은 탑 그러나 대량생산이 되었다 해도 유통체제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제1의 물결사회에서 상품은 보통 손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 에 제품은 주문에 따라 하나씩 만들고 있었다. 유통도 이러한 생산과 비슷했다. 서구에서는 낡은 봉건적 질서의 균열이 넓어짐에 따라 상인들은 규모가 크고 복잡한 조직을 가진 무역회사를 만들어 낸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회사들이 상선대나 낙타로 운반하는 대상을 조직하여 전세계에 무역로를 개척했다. 그리고 이들은 유리, 종이, 명주, 차, 포도주, 양털, 인디고(indigo), 메이스(mace) 등을 판매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의 대부분은 소규모의 점포 또는 시골 구석까지 짐을 지고 가거나 수레를 끌고 가서 판매하는 행상인을 통해서 소비자에게 전달되었다. 조잡한 통신사 정과 원시적인 수송수단이 판매시장을 결정적으로 한정시켜 놓았던 것이다. 이들 소규모 점포의 경영자와 행상인들이 제공하는 상품의 종류는 극히 한정되어 있었 고 게다가 상품이 품절되는 상태가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이나 이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제2의 물결은 시대에 뒤떨어져서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는 이 유통체계에도 변혁 을 가져왔다. 유통상의 변혁은 생산부문의 변혁 못지 않게 근본적인 변혁이었다. 철도 와 고속도로, 운하가 오지까지 개발시켰다. 그리고 산업주의와 더불어 상업의 전당인 최초의 백화저머이 출현했다. 중개인, 도매업자, 대리점, 그리고 제조업자의 대표들 사이에 복잡한 조직망이 만들어지고 1871 년에는 조지 헌팅턴 하트포드가 대량판매망 을 확립했다. 나중에 헨리 포드가 공장에서 실현하게 된 대량 생산을 그는 유통면에서 일찍이 실현하였던 것이다. 뉴욕에 진출한 하트포드의 최초의 상점은 붉은 건물과 중 국의 탑 모양을 본뜬 독특한 매장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세계 최초의 거대한 체인점(c hain store) 조직인 '대서양, 태평양 차 회사(The Great Atlantic and Pacific Tea Co mpany)'를 창립함으로써 유통산업을 기존의 것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 특정의 단골손님만을 상대로 하던 유통이 기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산업사회에 공통적 이고 핵심적인 요소가 된 대량유통과 대량판매에 밀려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검토해 온 모든 변화를 만일 일관해서 표현한다면 '기술영역'의 변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개사회나 농업사회, 혹은 산업사회를 불문하고 모든 사회는 에너지를 소비하여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유통시킨다. 어떠한 사회에서도 에너지 체계 와 생산체계, 유통체계는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다 전체적인 하나의 체계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보다 전체적인 체계가 기술영역이다. 이 기술영역은 사회 의 발전단계에 따라 각기 특징적인 형태를 갖는다. 지구상에 제2의 물결이 파급됨에 따라 농업사회의 기술영역은 산업사호의 기술영역으 로 바뀌어졌다. 재생불가능한 에너지가 대량생산체계에 직결되고 그 대량생산체계는 고도로 발달한 대량유통체계에서 상품을 건네주게 되었다. 유선형 가족 그러나 제2의 물결의 기술영역은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사회영역이 필요했다. 즉, 기 술이 산업사회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사회조직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가족형태는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농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어디나 백부, 백모(혹은 숙부, 숙모), 장인, 장모(혹은 시부모), 조부모, 사촌 등 여러 세대의 가족이 한 지붕 밑에서 생활했고 경제적으로도 모두가 하나의 생산단위로서 함께 일하는 대가족주의가 일반적이었다. 인도의 가부장제에 대한 대가족(joint family),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었 던 가족공동체 (zadruga), 서유럽에서 일반적이었언 수세대를 포함하는 종의 복합가족 인 확대가족 (extended family) 등의 예를 들 수가 있다. 그리고 가족은 이동하지 않 고 토지에 뿌리를 박고 살았다. 제2의 물결이 제1의 물결사회를 휩쓸게 되자 가족은 변화를 강요당하게 되었다. 각 가정 내부에서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이 충돌하면서 가정내의 분쟁, 가부장의 권 위에 대해 도전하기 시작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가 변했고 예의범절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경제적인 생산의 장소가 농토에서 공장으로 바뀌어지자 가족은 이제 하나의 생산 단위로서 함께 일하지 않게 되었다. 집안의 일꾼을 공장노동으로 보 냄으로써 가족의 중요한 기능은 각각 전문적 기관들이 분담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에 맡겨졌다. 노인에 대해서는 구호시설이나 양호시설에 맡겨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새로운 사회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노부모, 병자, 신체장애자, 그리고 많은 자녀들을 부양하고 있는 확대가족은 도저히 이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비극을 일으키면서 가정의 구조가 점차로 변화 하기 시작했다. 도시로의 이주로 이별하게 되고 경제적인 폭풍에 휩쓸리기도 하면서 가족은 불필요한 친족을 떨쳐버리고 이제는 보다 작고 이동성이 큰 새로운 기술영역에 적응해 나아갔던 것이다. 성가신 친족들은 떼어내 버리고 부모와 두셋의 자녀들만으로 구성되는 이른바 핵가족 이 자본주의 사회건 사회주의 사회건 할 것 없이 모든 산업사회에서의 표준적인 '근대 적' 가족의 모델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되었다. 조상숭배에 의해서 가부장제도가 중 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일본에서마저도 핵가족이 성행하게 되었다. 단결심이 강한 대가족이 제2의 물결의 도래와 더불어 붕괴하기 시작했고 점점 핵가족 이 늘어났던 것이다. 요컨대 석탄이나 석유 등 화학연료, 제철소, 체인점 등이 제2의 물결를 제1의 물결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던 것처럼, 핵가족은 제2의 물결사회와 제1의 물결사회를 확연히 구분짓는 요인이 된 것이다. 내면적인 교육계획 노동의 장소가 농토나 가정에서 벗어나 공장으로 이행함에 따라 자녀들은 공장노동에 적합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생겨났다. '일단 사춘기를 지낸 사람들은 농업에서 전업 한 경우거나 수공에서 전업한 경우거나 간에 공장의 유능한 일꾼이 되기는 어려웠다.' 라고 1835 년에 앤드루 우어가 쓰고 있지만 산업화한 영국에서는 초기의 광산이나 공 장경영자가 먼저 그 사실을 알았다. 젊은 연령층을 미리 산업주의 체제에 적합하게 양 육하면 나중에 산업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훈련을 받을 때 직면하게 되는 곤란을 크 게 완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출현한 것이 모든 제2의 물결사회에 공통적인 또 하나의 중요한 구조 즉 대중교육이다. 공장을 모델로 해서 설립된 대중교육은 초보적인 읽기와 쓰기, 산수를 주체로 하고 역사나 기타의 과목도 간단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교육계획이었다. 사실에 있어서 그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교육계획이 있었고 이것이 산 업사회에는 근본적으로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이 교육계획은 세 개의 과목으로 성립 되어 있었다. 물론 대개의 산업주의 국가에서는 현재도 이 세 개의 도덕과목이 존재해 있다. 그것은 첫째, 시간 엄수이다. 둘째가 복종, 셋째가 기계적인 반복작업의 습관 화이다. 공장노동자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일이다. 특히 조 립 라인의 근무자인 경우가 그러했다. 그리고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노동자여 야 했다. 또한 남자든 여자든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완전히 기계적인 반복작업을 싫증 도 내지 않고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인내력의 양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19세기 중반 이후 제2의 물결이 밀어닥친 나라에서는 교육제도가 지나칠 정도로 발달해 갔다. 취학연령은 점점 나아지고 재학생수는 늘어날 뿐이었다. (미국 에서는 1878 년에서 1956 년사이에 35 퍼센트가 늘어났다.) 그리고 의무교육 연한도 당연히 연장되었다. 공립학교에서의 대중교육은 분명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진전이었다. 1829 년 뉴욕의 어느 기계공과 직공 그룹이 선언한 것처럼 '교육은 생명과 자유 다음 으로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다.'라고 간주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이 도래한 이후의 학교는 몇 세대에 걸쳐서 젊은 사람들을 규격화하고 전기기계와 조립 라인에 알맞은 획일적인 노동자를 양성해 왔다. 핵가족제도와 공장노동자를 위한 교육제도는 젊은 사람들이 산업사회에서 유능한 역 할을 다하기 위한 종합적인 준비체제의 일부로서 기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제2의 물결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건 공산주의 사회건 북이건 남이건 모두 비슷했다. 법인이라는 이름의 불사조 제2의 물결에 의해서 태어난 모든 사회에는 핵가족 및 대중교육과 함께 이러한 사회 적 영향력을 더 한층 강력하게 하는 제3의 제도가 대두되었다. 그것은 주식회사라는 조직의 발명이었다. 그 이전의 기업에서는 보통 개인 또는 가족이 소유하고 있거나 몇 몇 사람의 공동경영이었다. 주식회사도 있기는 했지만 극히 소수의 존재에 지나지 않 았다. 미국 독립혁명 당시만 해도 공동경영이나 개인경영을 대신해서 주식회사가 기업으로 서의 주요한 조직으로 되리라는 것은 경세사가 아더 듀잉이 말했던 것처럼 '누구도 분 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였다. 1800 년이 되어서도 미국 전토에 있는 주식회사는 불과 335개사에 불과했는데 그것마저도 대부분은 운하건설이나 유료도로를 경영하는 공영 에 가까운 사업체였다. 대량생산의 개시는 이러한 상태를 일변시키고 말았다. 제2의 물결이 가져온 과학기술 은 방대한 자본의 축적을 필요로 했다. 이제는 개인이나 소수의 집단이 출자하는 한도 를 넘고 있었다. 투자할 때마다 자기개인의 전재산을 잃게 되는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면 기업의 소유자 또는 공동경영자는 위험이 수반되는 대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 게 된다. 그래서 이들의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서 유한책임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만일 회사가 망하더라도 투자자는 투자한 재산만 잃을 뿐이며 그 이상의 피해는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 제도는 투자의 급격한 증대를 가져왔다. 게다가 회사는 사법기관에 의해서 절대로 '죽지 않는 존재=법인'으로 취급되게 되었 다. 즉, 최초의 투자자가 사망하여도 법인을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기업의 입 장에서 본다면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여 전에는 생각지 도 못했던 거대한 사업에 착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01 년에는 세계 최초의 10억 달러 규모의 기업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스틸(United States Steel)사가 등장했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자본의 집중이었 다. 1919 년에는 이러한 거대 기업이 6개로 늘어났다. 그야말로 거대기업은 모든 산업국가의 경제생활에 공통되는 특징을 이루게 되었던 것 이다. 이런 점은 사회주의 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의 형태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과는 상이했지만 조직면에서 보았을 때 그 본질은 대단히 비슷했 다. 핵가족, 공장식의 대중교육, 그리고 거대 기업이라고 하는 3개의 조직이 제2의 물 결에 의해서 태어난 사회에는 예외없이 출현해서 그 사회를 특징짓는 제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 스위스, 영국, 폴란드, 미국, 소련 등 제2의 물결세계에서는 국민의 대부분이 규격화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즉 핵가족의 일원으로 성장하여 공장노동에 순응하기 위해 집단으로 학교교육을 받았으며 사기업이건 공영기업이건간에 대기업으 로 들어가서 일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개개인의 생활방식이 모든 면에서 제2의 물결사회를 성립시키고 있는 사회제도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음악공장 지금까지 논술해 온 가족, 학교, 기업이라고 하는 세 가지 핵심적 제도들을 중심으로 그 밖의 여러가지 무수한 조직이 생겨났다. 정부의 각 부서, 스포츠 단체, 교회, 상 공회의소, 노동조합, 변화사회나 의사회 등의 전문기관, 정당, 독서 클럽, 미국에 많 은 인종이나 문화, 종교 등을 공통으로 하는 인종단체, 기타 수많은 단체들이 제2의 물결과 함께 출현했다. 각 단체들은 서로 원조하거나 원조를 받거나 하는 관계 외에 대등의 관계, 세력의 균형관계 등 실로 복잡한 조직상태가 조성되었다. 그저 보기에는 이러한 다수의 단체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어서 혼돈상태처럼 느껴 진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면 이들 잡다한 단체에도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는 하나 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제2의 물결이 밀려오면 어느 나라에서건 사회적 제도를 발명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공장이야말로 가장 진보된 능률적인 생산조직이라 고 믿는 나모지 공장 이외의 조직에도 그 원리를 적용하려고 했다. 학교, 병원, 형무소, 정부의 관료기구 및 그 외의 조직, 분업, 위계구조, 금속처럼 냉 랭한 비인간성 등 여러 면에서 공장과 공통적인 특징을 갖게 된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 예술의 분야도 어떤 면에서 본다면 공장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오랜 농업문명시대 의 예술가는 후원자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연주가나 작곡가, 화가, 작가 들은 점차 시장원리에 좌우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들까지 이름도 없는 소비자들을 위해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제2의 물결이 밀려온 나라의 여기저기에서 이 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자 예술작품의 구조 그 자체도 변하게 되었다. 음악이 그 좋은 예이다. 런던, 파리, 비인 등 여러 도시에 콘서트 홀이 출현한 것은 제2의 물결이 도래한 시대였다. 이와 함께 매표소가 생겨났고 예술제작에 투자하여 문 화소비자에게 표를 판매하는 흥행주라는 이름의 사업가가 나타난 것이다. 표가 팔리면 팔리수록 당연히 흥행주의 주머니에는 보다 많은 돈이 모이게 되었다. 그 때문에 홀의 객석수는 점점 늘어났다. 그러나 콘서트 홀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큰 소리로 연주해야 했다. 맨 뒷좌석에서도 음악소리가 잘 들릴 수 있어야 했다. 그 결 과 음악은 실내악에서 교향악으로 그 형식이 바뀌게 되었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후에 미국으로 귀화한 유명한 음악학자 쿠르트 작스는 그의 저서 '악기의 역사'에서 '18세기 중에 귀족적 문화에서 민주적 문화로 이행함에 따라 음악 회장은 작은 살롱에서 거대한 콘서트 홀로 변했고 홀이 크면 클수록 한층 더 음량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당시는 이런 음량을 높이는 기술이 없었으므로 필요한 음량을 내기 위해 점차로 악기와 연주자의 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 과 태어난 것이 근대의 관현악이고 베토벤이나 멘델스존, 슈베르트, 브람스 등이 웅장 한 교향곡을 쓴 것도 이러한 산업사회의 조직 때문이었다. 관현악단은 그 내부구조에 있어서도 몇 가지 공장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처음에 관현악단에는 지휘자가 없었다. 연주자들이 수시로 돌아가면서 지휘를 맡고 있 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연주자들은 공장이나 관료조직이 잘 정비된 사무실에서 일하 는 근로자처럼 부문별(악기별 섹션)로 나누어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체의 생산(음 악)에 기여하면서 매니저(지휘자)나 때에 따라서는 관리자의 계급조직에서 본다면 훨 씬 하급의 장(콘서트 마스터나 악기부의 장)에 의해 조정되게 되었다. 그리고 악단이라는 조직이 그 제품을 대중시장에 판매한 것이다. 결국에는 음악이라는 생산에 레코드라는 제품이 첨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음악의 제조공장이 탄생하 게 된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사회영역은 가족, 학교, 기업 등 세 가지의 핵심조직과 함께 여러 분야 의 조직이 제각기 산업기술영역의 필요에 따라 그것에 적합한 형태로 발생함으로써 성 립된다.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 다. 그러나 문명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술영역과 거기에 대응하는 사회영역만으로 성립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명에는 정보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전달하는 이른바 '정보 영역'이 필요한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도 제2의 물결이 가져온 변화는 괄목할 만한 것 이었다. 종이바람 모든 인간집단은 원시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 대 인간의 직접적인 의사 전달에 의존해 왔다. 그러므로 메시지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헤서 보낼 수 있는 제도도 필요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외치는 보초대'라 불리는 탑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큰 음성을 낼 수 있는 사람을 올라가게 하여 이 탑에서 저 탑으로 필요한 메세지를 육 성으로 중계하도록 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쿠르수스 푸블리쿠스(cursus publicus)라 불리는 광범위한 메신저(messenger) 서비스망을 두고 있었다. 1305 년에서 1800 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의 탁시스(Taxis)일가에서는 유럽 전체에 망아지를 이용한 일종의 우 편 서비스망을 운영하고 있었다. '탁시스 우편'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이 우편제도 는 1628 년 당시만 해도 2 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고용되어 있었다. 이 회사의 배달부 는 청색과 은색의 제복을 입고 황태자, 장군, 상인, 금융업자들 사이에서 왕래되는 메 시지를 가지고 유럽대륙을 종횡으로 뛰어다녔던 것이다. 제1의 물결문명시대에는 이러한 정보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부자나 권력층 에 한했다. 일반대중은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가 로린 질리아쿠스가 말한 것 처럼 '이와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편지를 보내려는 시도는 권력자에게 의심을 받거나 결국은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간의 정보교환은 모든 사람에게 허가된 데 비해 가족이나 마을을 넘어서는 정보전달의 보다 새로운 체제는 본질적으로 공공 적 서비스가 아니라 사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대중을 관리하는 목적으로 이용된 데 불 과했다. 실제로 이 제도는 엘리트의 무기였던 것이다. 제2의 물결이 여러나라로 파급되는 과정에서 대중 전달의 점유체제는 하나하나 타파 되었다. 이것은 부유계급이나 권력층이 갑자기 서민의 이익을 생각해서 그렇게 된 것 이 아니라 제2의 물결이 가져온 과학기술과 공장에서의 대량생산이 낡은 제도로는 도 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정보의 '대중화'를 필연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원시사회와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경제적인 생산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비교적 단순 한 것이어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얻는 정보로도 충분했다. 대부분은 언어나 몸짓에 의한 정보였다. 이것에 비해 제2의 물결경제는 다수의 장소에서 행해지는 작업 의 엄격한 조정을 필요로 했다. 대량의 정보를 낳아서 원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그 정보를 각 방면에 유통시켜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제2의 물결이 본격화되자 모든 나라가 앞을 다투어 우편제도를 확립하게 되엇다. 우체국이라는 것은 솜을 다루는 기계나 방적기와 마찬가지로 그 이 전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참으로 창의적이고도 사회적으로 유익한 발명이었다. 오늘 날에는 보통의 흔한 기계로 되어 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은 매우 기쁘게 한 물건 들이었다. 미국의 정치가이며 명연설가로서 유명했던 에드워드 에버레트는 "우체국이 야말로 기독교와 함께 우리들의 근대 문명을 뒷받침해 주는 큰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 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체국에 의해서 처음으로 산업화 시대의 대중전달회로가 열렸던 것이다. 1837 년에 영국의 체산성은 엘리트층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1 년에 약 8800 만 통의 편지를 취급 했다. 당시의 수준에서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현상이라고 할 정도의 규모였 다. 산업화 시대가 거의 절정에 이르러 제3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한 1960 년대에는 연간 우편물취급 건수가 100억 통에 달했다. 같은 해에 미국의 우정국은 어린이까지 포함하여 전국민 한 사람당 355 통의 국내 우편물을 배달했다. 산업혁명과 동시에 일어났던 우편물의 홍수는 제2의 물결에 따라 밀려오기 시작한 방 대한 정보와 비교하면 그것은 극히 작은 하나의 전조에 지나지 않았다. 대규모 조직체 내부에서는 우편물을 훨씬 능가하는 정보가 이른바 마이크로 우편제도라는 기구를 통 해서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회사 내부의 문서는 공공의 커뮤니케이션 회로에는 나타 나지 않지만 이 역시 편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제2의 물결이 절정에 달했 던 1955 년 후버 위원회(Hoover Commission)가 3 대 기업의 서류철 내용을 감사했다. 그 결과 3사는 각각 종업원 한 사람당 3 만 4000건, 5 만 6000건, 6 만 4000건의 서류 나 연락문서를 철해 두고 있음이 드러났다. 더욱이 산업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급격한 정보의 필요성은 문서만으로는 도저히 대처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19세기가 되자 전화와 전보가 발명되어 언제나 팽창일로에 있 는 대중정보의 일부를 분담하게 되었다. 1960 년의 미국내에서의 1일 통화량은 약 2억 5000 만 건, 연간 930억 건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전화망과 최신식의 장치 를 가지고 있으며서도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다. 이상의 예를 든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는 일정한 시간에 개인과 개인이 정보를 전달하 는 체제다. 그라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 하는 수단, 즉 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보낼 수 잇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다. 소수 의 고용자를 두고 필요할 때는 그 고용인의 자택도 방문할 수 있었던 산업혁명 이전의 고용주와는 달리 산업사회에서의 고용주는 수많은 근로자와 1 대 1의 방식으로 커뮤 니케이션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대중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판 매업자로서는 고객의 한 사람 한 사람과 의사소통을 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었다. 제2의 물결사회는 같은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싼 값으로 또한 단 시간내에 틀림없이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으며 또 실제로 그러한 수단을 발명했 다. 우편은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수백만이라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시 간이 걸렸다. 전화는 메시지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수백만이라는 사 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간격을 메우게 된 것이 대중매체였다. 오늘날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모든 산업국가들에는 예외없이 대량의 발행부수를 자랑 하는 신문과 잡지가 일상생활의 일부로 정착되어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그러나 국내 전역을 대상으로 한 인쇄물의 발행이 활발하게 된 것은 여러가지 새로 운 산업문명적 기술과 사회형태의 급격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쇄물을 가능케 한 원인을 장 루이 세르방 슈레베르는 다음과 같은 요인이 겹 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행한 인쇄물을 하루에(유럽 정도의 넓이) 국내 모든 곳에 운반할 수 있는 철도, 몇 시간만에 수천만 부를 인쇄할 수 있는 윤전기, 전보와 전화 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무교육에 의해 글을 해득하게 된 대중과 제품의 대량판매를 필요로 하는 산업들의 결합 때문이다.' 신문이나 라디오로부터 영화나 텔레비전에 이르는 대중매체에도 역시 공장의 기본적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매체는 마치 공장이 수백만의 가정에 서 사용되는 물건을 찍어 내듯이 수백만이라는 사라들의 머릿속에 같은 내용의 메시지 를 보내는 것이다. 대량생산된 표준화 제품과 마찬가지로 대량생산된 '사실'이 집중화 도니 소수의 이미지 공장에서 수백만의 소비자에게 흘러간다. 이 엄청나게 강대한 정 보유통의 체계가 없었더라면 산업문명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고 확실하게 기능을 발 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모든 산업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회건 사회주의 사회건간에 주도면밀한 '정보영역', 즉 커뮤니케이션 루트가 발생했으나 개인적인 메시지나 대중 상대의 메시 지도 모두 이 루트에 의해 제품이나 원료처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보영역은 기술영역과 사회영역에 결합되어 그것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경제적 제품 과 개인의 소비활동을 연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이 세 가지 영역들은 그것들을 통합한 보다 큰 체계 속에서 각기 주요한 역할을 했으 며 어느 것이나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기술영역은 부를 생산하 여 그것을 개인에게 분배했고 사회영역은 서로 관련을 갖는 무수한 조직을 통해서 개 인에게 체계내에서의 역할을 분담했다. 그리고 정보영역은 체제 전체가 작동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배정했다. 이 세 가지 영역이 일체가 되어 사회의 기본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이상이 제2의 물결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사회에 공통되는 구조의 윤곽이다. 그것은 문화적 또는 풍토적인 차이나 인종적, 종교적 유산을 초월하여 스스로가 자본 주의를 표방하건 사회주의를 표방하건 상관없이 공통의 구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서독이나 프랑스, 캐나다뿐만 아니라 소련이나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이들 기본구조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표현되는 한계를 설정해 주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낡 은 제1의 물결구조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 낡은 문명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문명 뿐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간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인 격심한 투쟁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이러한 공통의 사회구조가 출현되었던 것이다 . 제2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인류의 희망은 상상을 넘을 정도로 커졌다. 인류역사상 처 음으로 빈곤과 기아, 질병이나 전제정치를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8세기 영국의 평등사상가 아베 모렐리나 공상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 프랑스의 사회 과학자 생시몽, 사회개혁가 푸리에, 사회주의자 프루동, 루이 블랑, 미국의 소설가 에 드워드 벨라미 등 수많은 유토피아 작가나 철학자들은 눈앞에 전개되기 시작한 산업문 명 속에서 평화와 화합의 도래, 실업문제의 해소, 부화 기회균등, 족벌에 의한 특권의 종언, 기타 수십만년 동안의 원시생활, 수천년 동안의 농경문명 속에서 절대로 변화 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믿어오고 있던 일의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오늘날에 만일 산업문명이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가 혹하고 황량하며 상태학적으로도 위험에 처해 있고 전쟁과 연결되기 쉽고 인간의 심리 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2의 물결을 살아가는 정신구조를 서로 적대적인 두 부분으로 분열시 키는 거대한 쐐기가 무엇인가를 살펴볼 때 우리는 처음으로 이 문제에 해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제3장 보이지 않는 쐐기 제2의 물결은 마치 핵분열의 연쇄반응과 같이 종전에는 하나의 통합체였던 인간생활 을 격렬하게 양쪽으로 갈라 놓았다. 그 과정에서 제2의 물결은 우리들의 경제생활, 정 신구조, 나아가서 성적 자아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쐐기를 박 고 말았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산업혁명은 아주 독특한 기술이나 사회제도 및 정보채널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매우 종합적인 사회구조를 이루어 놓았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산업혁명은 사회의 내면적인 통일성을 깨고 우리 생활을 경제적 긴장, 사회적 대립, 심리적 불안 등이 가득찬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2의 물결시대를 통하여 이 보이지 않는 쐐기가 우리 생활의 유형을 어떻게 변회시켰는지를 이해해야 비로소 오늘날 우리 생활을 재구축하려는 제3의 물결의 충격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물결은 우리 인간생활을 생산과 소비라는 두 개의 극으로 갈라놓고 말았다. 이를테면 우리는 현재 자기자신을 '생산자'와 '소비자'의 어느 하나에 속한다고 생각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된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생산한 식량이나 그 밖의 일용품, 또는 갖가 지 서비스의 대부분이 생산자 자신이나 그 가족 또는 자기를 위해 어떻게든 잉여물자 를 모을 수 있었던 극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소비되고 있었다. 농업사회의 단계에서는 대개 인구의 대부분이 영세한 농민이며 그들은 겨우 외부와의 교류도 별로 없이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식사를 하며 소 유주의 유복한 생활에 필요할 만큼만 경작을 하면서 최저수준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농민이 농업기술을 개선하거나 생산을 늘리는 데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지 못한 이유 로서는 장기간 식량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고 또 먼 시장에 식량을 운반하기 위한 도로도 없었다. 물론 아무리 생산을 늘린다 하더라도 노^36^예소요주나 봉건영주 에게 징수당하여 버린다는 사실을 농민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상업도 존재했었다. 극소수의 두려움을 모르는 상인이 나타나 수레 또는 배에 상품을 싣고 수천 마일의 먼 곳까지 운반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또 도시의 발생 이 농촌지대에서 운반되는 식량공급에 의존했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1 519 년 멕시코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은 틀라텔롤코(Tlatelolco)에서 수많은 주민들 이 갖가지 상품을 매매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보석, 귀금속, 노^36^예, 샌들, 포목, 초콜릿, 로프, 짐승가죽, 칠면조, 야채, 토끼, 개, 각종 도기류와 같은 잡다한 것이 매매되고 있었던 것이다.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독일의 금융업자들을 위해 발행된 민간통신 '더 푸거 뉴스레터: The Fugger Newsletter'를 보면 당시의 무역이 얼마나 활발했던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코친(Cochin)에서 온 한 통의 편지는 후 추를 사들여 유럽으로 운반하기 위해 5척의 선단을 편성하여 인도로 온 한 유럽 상인 의 활동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후추의 매매는 이익이 많은 장사이다. 그러나 그 장 사를 하려면 일에 대한 열의와 인내가 요청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상인은 후추 외에도 정향나무, 육두구, 밀가루, 육계피와 같은 약재 등을 싣고 유럽 시장으로 가 져갔다. 그란 이와 같은 상업활동은 역사에 매우 미미한 흔적을 남겼을 뿐이며 당시의 생산품 은 그 대부분이 농토가 없는 노^36^예나 농노들 자신이 소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16세 기에 이르러 이 시대의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한 페르난도 브로델에 따르면 서쪽은 프 랑스, 스페인에서 터키 국경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전역의 인구는 6000 만에서 7000 만 정도였으며 시장에 팔기 위해 내놓은것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브로델은 '지중해 연안 지역의 전생산물 중 60--70 퍼센트까지는 결코 시장경제에 유 입되는 일이 없었다.'고 기술하고 잇다. 지중해 연안 지역까지도 그러했었다면 북유럽 의 경우는 도저히 시장이라고 할 만한 정도의 것이 아니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메마른 토지와 긴 겨울 때문에 영세한 농민들이 잉여생산물을 얻어내기는 더 욱 곤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혁명 이전의 제1의 물결경제가 두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부문에서는 자가소비를 위해 생산활동이 이루어진다. 둘째 부문에서는 팔거나 교환하기 위해 생산활동을 하게 된 다. 제1의 물결경제에서는 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고 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작은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생산과 소비는 단순한 생활유 지기능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양자가 완전히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인이나 로 마인, 중세 유럽인들은 생산과 소비를 구별하지 못했다. '소비자'라는 말조차 없었다. 제1의 물결시대를 통해서 시장경제에 생활의 터전을 두고 있었던 것은 전인구 중 극 히 적은 부분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과는 상관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역사가 R.H. 토니는 "금전거래는 자연경제의 세계에서는 주변적이고 2차적인 행위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2의 물결은 이러한 상황을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그때까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들과 자급자족의 사회를 대신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의 식량, 일용품, 서비스란 것이 모두 판매나 물물교환을 목적으로 생산되고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제2 의 물결에 의해서 생산자 자신과 그 가족이 자가소비를 위해서만 물건을 만드는 경우 는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 이미 거의 자급자족으로 사는 사람이 없는 문명, 농민까지 도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 문명을 창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 생산한 식량이나 일용품, 서비스에 의존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요컨대 산업주의는 하나였던 생산과 소비를 분열시켜 생산자와 소비자로 갈라 놓았다 . 이렇게 해서 제1의 물결시대의 생산과 소비가 융합된 경제는 양자가 분리된 제2의 물결경제로 변모되었다. 시장의 의미 생산과 소비의 분열은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짐나 그 의미는 오늘날까지도 잘 이 해되지 않고 있다. 먼저 시장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기 이전은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이 전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즉 경제가 시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산업화도니 사회라면 자본주의 경제나 사회주의 경제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다. 서구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순전히 자본주의적 생활실태만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 어 이 말을 '이윤추구형 경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교환, 또는 시장은 이윤보다 먼저 발생된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이란 정확히 말 해서 재화나 서비스가 마치 메시지처럼 각기 적당한 목적지로 송달되는 교환조직 또는 문자 그대로 교환대에 불과한 것으로서 자본주의적인 것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시장이라는 교환대는 이윤추구형의 산업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산업사회에도 필 요불가결한 것이다. 요컨대 제2의 물결이 몰아닥쳐 생산의 목적이 자가소비에서 교환으로 바뀐 사회에서 는 그 교환을 하는 기구가 존재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시장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러 나 시장이란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경제사가 칼 폴라니는 초기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또는 종교문화적인 목적에 종속되어 있던 시장이 산업사회가 되자 반대로 사회의 목적 을 설정하는 존재로 변모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이 화폐경제 속에 짜여지게 되었다. 상업적인 가치가 중 시되기에 이르고 시장규모로 측정할 수 있는 경제성장이 자본주의 국가이든 사회주의 국가이든 정부으 제일 목표가 된 것이다. 시장이 커지게 된 배경에는 원래 시장의 성격이 확대를 목표로 꾸준히 자신을 강화하 여 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의 분업이 상업을 발달시켰던 것과 같이 이번에 는 시장이라는 교환대의 존재 자체가 다시 노동의 세분화를 촉진하고 그 결과 생산성 의 급상승을 가져오게 되었다. 즉 노동의 분화와 시장이 서로 상대방의 활동을 촉진하 면서 확대되어 간다는 자체증폭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장의 폭발적인 확장은 생활수준의 전례없는 비약적 상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정치면에서는 제2의 물결에 휩싸인 여러 나라의 정부들이 생산과 소비의 분리 로 생겨난 새로운 대립에 의해 차츰 분열이 심화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중시하는 계급투쟁이라는 사고 방식은 고임금, 고이윤을 추구하는 생산자(노동과 경영자의 쌍방을 포함한다.)의 요구와 반대로 가격인하를 추구하는 소 비자(마찬가지로 노동자와 경영자 쌍방을 포함한다.)의 요구 사이에 생긴 보다 크고 보다 심각한 대립을 불명확하게 만들어 버렸다. 경제정책은 이 대립을 받침대로 해서 어느 쪽의 요구에 역점을 두느냐에 따라 시소와 같이 변동해 왔다. 미국에서의 소비자 운동의 증대, 폴란드에서의 공정가격인상에 반대하는 폭동, 물가 와 임금정책을 둘러싸고 영국에서 쉬지 않고 계속되는 논쟁, 또 소련에 있어서의 중공 업과 소비재 공업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끝없는 이데올로기 투쟁, 이런 것들은 모두 자 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생산과 소비의 분리가 사회내부에서 일으킨 심각한 대 립의 구체적인 예이다. 정치뿐 아니라 문화도 또한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 의해서 변모되었다. 왜냐하면 이 분리에 의해 금전만능, 이익추구형의 상업본위적이고 극히 타산적인 문화가 역사에 출 현했기 때문이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가족의 유대, 사랑, 우정, 이웃이나 지역공동 체와의 유대는 모두 상업주의적 이기심에 물들어 타락해 버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산당 선언'에서 '새로운 사회에는 노골적인 사리, 가차없는 현금거래 이외에 사람과 사람을 묶어둘 고삐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라마과 사라마의 인간적인 유대가 상실되었다는 지적은 옳았지만 마르크 스가 그 책임을 자본주의에 떠넘긴 것은 옳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집필했을 당시에 관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산업사회는 자본주의 형태였다. 사회주의, 적어도 국가사회주의에 기반을 두고 산업사회가 성립된 지 반세기 이상이 경과된 현재 약탈적인 이윤추구, 상업적 부패, 인간관계를 차가운 경제관계로의 격하 등은 결코 이윤추구를 노린 자본주의 사회만의 독점물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금전, 재화, 물질에 뒤따르는 끈질긴 관심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체제와는 관계 없이 산업주의의 반영이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시장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이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가 생활필수품을 얻기 위해 자기의 생산 기술보다는 시장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 을 수 없다. 시장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산업사회에서는 정치체제와는 관계없이 제품뿐 아니라 노 동, 아이디어, 예술, 영혼까지도 모두 거래나 교환의 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구미에는 부정한 커미션을 착복하는 구매담당자가 있으며 소련에는 책을 출간해 주는 대신에 저자로부터 뇌물을 받는 편집자나 의뢰받은 일을 하기 위해 요금 이외의 보드카를 1병 요구하는 연관공이 있기도 하다. 프랑스나 영국, 미국에는 돈만을 위해서 일을 하는 작가나 화가는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소련의 별장, 보너스, 새 자동차의 구입권과 같은 여러가지 경제적 특전을 얻기 위해 창작상의 자유를 포기하는 작가나 화가, 극작 가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패나 타락은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 수반하여 발생한 것이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다시 연결하여 생산된 상품을 소비자에게 도달케 하기 위한 교환대 로서의 시장이 꼭 필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장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어떤 논법으 로 그 권력을 정당화하려고 하는가는 별도로 하고도 지나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모든 산업사회, 즉 제2의 물결사회의 특징을 이루는 이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인간서 에 관한 우리의 퍼스낼리티에 대한 전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행동을 일련의 '거래행위'로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우정, 혈연관계 혹은 부족의 장이나 영주에 대한 충성에 바탕을 두는 사회를 대신하여 제2의 물결으 도래와 함께 실질적 또는 암묵적 인 계약관계에 기반을 두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부부 사이까지 도 계약결혼이라는 말이 오르내리는 시대인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두 역할의 분리는 또한 이중적인 퍼스낼리티를 만들어 냈다. 동일인물이 생산자로서는 가정에서나 학교, 직장의 상사로부터도 개인적인 만족은 뒤 로 미루고 규율이나 통제에 복종하며 모든 것에 소극적이고 순종하며 팀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도록 교육받는 한편, 소비자로서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만족감을 충족하고 신 중히 행동하기보다는 쾌락에 사로잡혀 규율 따위와는 상관없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즐겨움을 추구하려고 애쓴다. 다시 말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요구받았다. 특히 서구에서는 소비자에 대한 광고기술이 교묘해져서 소비자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충동구매를 하게 하고, '먼저 하늘의 여행을 즐기십시오. 지불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라는 팬 아메리카의 광고처럼 경제의 수레바퀴를 계속 돌아가게 함으로써 국가발전에 공헌하자는 것이다. 남녀의 역할분리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시킨 제2의 물결사회의 거대한 쐐기는 노동 또한 두 종류로 나누어 놓았다. 이 사실은 가정생활, 남녀의 역할 및 개인의 내면생활에도 커다란 충 격을 주었다. 산업사회에 가장 일반적인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의 하나는 남자는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하여 '객관적'이며 여자는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만일 남녀의 차이에 관하여 이런 견해에 진실의 핵심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생물학적 실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쐐기에 의한 심리적인 영향일 것이다.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의 대부분이 논밭이나 가정에서 이루어졌고 가족전체가 하 나의 경제단위로서 일하며 생산된 물품은 대부분 촌락이나 장원에서 소비되고 있었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다. 촌락에서는 어디서나 자급자족이 일 반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에 일정지역의 농민이 많은 수확을 올리느냐 못 올리느냐는 다 른 지역의 풍작, 흉작과는 관계가 없었다. 하나의 생산단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계절이 나 질병이나 기호에 따라서 자기역할을 바꾸거나 타인과 일을 교환하면서 여러 종류의 일을 했다. 산업주의 이전의 분업은 매우 원시적인 것이었다. 제1의 물결에 속하는 농업사회의 노동은 상호간의 의존도가 낮은 것이 특징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기타 국가들에 밀려든 제2의 물결은 노동의 장소를 농토와 가정 에서 공자으로 옮기고 노동의 상호의존도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노동은 이제 집단작업 이 되고 분업, 조정, 각종 기술의 통합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일을 잘 되기 위해서는 작지에서 모인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중히 계획된 협동작 업에 의존하도록 되었다. 대형 제철소나 유리공장에서 자동차공장에 필요한 제품이 원 만히 흘러가지 않으면 경우게 따라서는 산업계나 지역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상호의존도가 높은 노동과 낮은 노동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분담, 책임, 또는 보수에 대한 격렬한 분쟁이 생기게 되었다. 예를 들면 초기의 공장경영자는 종업 원의 책임감 결여로 고민했다. 공장 전체의 능률에는 전연 관심이 없고 가장 분주한 시기에 낚시를 가거나 소란을 떨거나 술에 취해 나타나기가 보통이라고 불평했다. 사 실 초기의 공장노동자 대부분은 농민 출신이고 상호의존도가 낮은 일만 해 왔기 때문 에 생산공정 전체 속에서의 자기역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여 자기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공장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능률저하나 경영의 파탄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이해 하지 못했다. 게다가 임금이 비참할 정도로 낮았기 때문에 일할 의욕이 희박했다는 면 도 무시할 수 없다. 상호의존도가 높은 노동과 낮은 노동이라는 두 노동형태가 충돌한 결과 새로 태어난 노동형태의 우위는 명백해졌다. 생산이 차츰 대규모 공장과 사무실에 집중되기에 이르 고 농촌인구는 흡수되고 있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상호의존도가 높은 조직의 구성원 으로 짜여졌다. 제2의 물결이 만들어 낸 노동은 이렇게 해서 제1의 물결과 관련된 과 거의 낡은 노동형태를 완전히 압도하고 말았다. 그러나 상호의존적인 노동이 자급자족의 노동으로 완전히 대치된 것은 아니었다. 낡은 노동형태가 완고하게 고수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가정이 그러한 곳이었 다. 가정은 여전히 아기를 낳는다는 생물학적인 재생산을 하면서 육아와 문화의 전승에 종사하는 독립된 하나의 단위였다. 어는 가정이 출산이나 육아에 실패하거나 자녀를 장래의 노동형태에 잘 적응시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이웃의 출산이나 육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가정내의 노동은 상호의존도가 낮 은 활동이었다. 이런 상황하에서도 주부는 여전히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해왔다. 그것은 바로 출산과 육아, 기타 가사노동이다. 주부가 하는 일도 '생산'이었다. 그러나 그 생산은 자기의 가정을 위한 것이지 시장에 내놓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남편은 직접적인 경제활동에 진출하고 있었던 데 비해 주부들은 가정에 남아 간접적인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는 역사적으로 보다 진보된 형태의 노동을 분담하고 여자는 뒤쳐져서 더욱 뒤떨어진 형태의 노동을 맡았다. 남자 는 이른바 미래를 향해 전진한데 비해 여자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려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남녀의 역할분담은 사람들의 인격과 내면생활에서도 분열을 야기시켰다. 공장이나 사무실은 본래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이며 조정이나 통합을 필요로 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공장노동이나 사무노동이 일반화되자 객관적인 분석 이나 객관적인 인간관계가 강조되게 되었다. 남자는 어린 시절부터 장차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길러지고 '개관적'인 사람이 되도록 기대되었다. 이에 비해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고립되어 출산, 육아 그 밖의 여러가지 단조 로운 가사를 분담하도록 훈련된 여자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성은 대 부분의 경우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는 어렵다고 생각되어 왔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사고나 분석적 사고는 본시 객관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생각해 보면 비교적 고립되기 쉬운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타인과 관계가 깊은 상호의존적 생산에 종사하는 여성이 여자답지 않고 냉철하고 거칠어졌다고 비난받는 일은 당연했다. 요컨대 그러한 여성은 '객관적'으로 되게 마련인 것이다. 남녀의 차이나 그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 사실은 남자도 소비활동을 하고 여자도 생 산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생산에만 종사하고 여자는 소비만을 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에 의해서 더욱 강조되어 갔다. 즉 제2의 물결이 지구상을 휩쓸기 훨 씬 이전부터 여성은 억압된 존재였지만 현대의 '남녀의 투쟁'은 거시적으로 보면 두 노동형태의 대립과 함께 시작되고 특히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생 산과 소비가 분리된 경제는 남녀의 분열에도 박차를 가한 것이다. 여기까지 밝혀 온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쐐기가 박혀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자 그 뒤에 여러가지 중요한 변화가 연이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시장이 형성 되고 확대되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결부시키는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인 대립이 생기고 남녀의 새로운 역할이 정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이 정도의 의미만으로는 그치지 않았다. 제2의 물결사회는 모두 같은 방법으로 운영되 고 특정한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생산의 목적이 이윤이든 아니든, '생산수 단'이 공공의 것이든 사유이든, 또 시장이 '자유경제'이든 '계획경제'이든, 자본주의 이든 사회주의이든 이 점에 대해서는 똑같다. 생산이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교환을 위한 것이라면 생산물을 경제적인 교 환대나 시장을 통하여 유통시키는 한 제2의 물결 특유의 원리는 준수되어야 했다. 일단 이러한 원칙의 존재가 확인되면 모든 산업사회의 숨겨진 역할관계가 밝혀지게 된다. 제2의 물결시대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고방식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제2의 물결문명의 기본법칙, 즉 사람들의 행동규범서를 형 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4장 규범의 내용 어떠한 문명이든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그 문명 고유의 숨겨진 규범이 있다. 즉 그 문명의 모든 활동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일련의 법칙 혹은 원칙이 있다. 그것은 갖가 지 사례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그 문명의 기본적인 구도와 같은 것이다. 산업주의가 지구상을 휩쓸면서 그때까지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 문명 특유의 기 본적 구도가 차츰 밝혀지게 되었다. 그것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진 6개의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6개 원칙이 오늘날까지 수백만이라는 인간의 행동을 규제해 왔다. 이 원칙은 앞 장에서 서술한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파생된 것이며 우리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성, 스포츠, 노동, 전쟁 등 인간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학계나 기업계 또는 정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치열한 투쟁이 사실은 이 6개 원 칙을 둘러싼 싸움이다. 제2의 물결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원칙들을 적용하여 자기 들의 문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 원칙을 고수하려 하고, 제3의 물결의 사람들은 그것 에 도전하여 원칙 자체에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것은 이 책에서 서서히 밝혀지게 될 것이다. 표준화(standardization) 제2의 물결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들 원칙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표준화'이 다. 산업사회가 무수한 규격품을 생산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수 행하는 역할이 커지면서 단순히 표준화되는 것은 코카콜라병, 백열전구, 자동차의 변 속장치 같은 종류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 지 않았다. 인간은 표준화의 원칙을 그 밖의 수많은 사물에 적용한 것이다. 이 사실의 중요성을 최초로 이해한 사람은 시어도어 베일이었다. 그는 금세기 초에 미국 전신전화회사(AT & T)를 설립하여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 다. 1860 년대 말 철도우편 사무원으로 일하던 베일은 우편물의 수신인이 동일한 경우라 도 배달경로는 반드시 같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우편량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 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곤 했는데 수주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며 몇 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배달경로의 표준화를 도입하여 수신인이 동일한 편지는 모두 동일한 경로로 배달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써 우편사업의 혁명을 이룩했다. 그뒤 그는 AT & T사를 창립했을 무렵에 이번에는 미국내의 가정용 전화기를 모두 흑색 규격품으로 통일하여 버렸다. 베일은 전화기를 비롯하여 모든 부품을 표준화했을 뿐 아니라 AT & T사의 업무절차, 관리체계까지 표준화했다. 그는 1908 년에 몇몇의 중소전화회사들을 흡수합병했는데 그 정당성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표준화가 진행된 공장을 중앙에서 관리 함으로써 교환업무, 법률관계업무분야에서 경비를 절감할 수 있고 아울러 전선, 전선 관, 기타 시설의 건설비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교환업무와 요금계산이 단일 화되는 데서 파생되는 경비의 절감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제2의 물결세력에 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hardware)에 발맞추어 업무 절차라든가 관리업무 등의 소프트웨어(software)를 모두 표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베일 이외에도 산업사회를 육성한 '위대한 표준화 추진자'는 수없이 많다. 또 하나의 예는 미국의 발명가 프레데릭 윈슬로 테일러이다. 기계 수리공 출신의 개혁운동가인 그는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종사하는 일의 절차를 표준화함으로써 노동을 '과학적 '으로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20세기 초에 테일러는 각 작업을 수행하는 데는 한 가지 최선의 방법이 있고 그 일을 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도구는 단 하나밖에 없 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의 순서나 도구는 그것에 맞추어 표준화해야 하며 또 그 일을 완성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도 표준화된 작업시간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철학으로 이론무장을 한 테일러는 세계의 지도적인 경영관리의 거물이 되었다 . 그는 그때부터 프로이트, 프랭클린 등과 나란히 존경을 받았다. '능률전문가', '성과급제도', '초고능률지도자'라는 말과 더불어 테일러주의를 예찬한 것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마지막까지 짜내는 데 열의를 보이던 당시의 자본주의 사회 의 경영자들뿐만은 아니었다. 공산주의자들도 똑같이 테일러에 열광했던 것이다. 레닌 은 그의 방법을 사회주의적 생산에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러시아의 산업화를 제일의 목표로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이지만 표준화의 열성 스런 신봉자라는 점에서는 남못지 않았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의 표준화뿐만 아니라 고용절차까지도 점차 표준화가 진행 되고 있었다. 특히 공무원의 경우 표준화된 시험에 의해서 일에 적합치 않다고 여겨지 는 사람을 확인하고 배제했다. 모든 산업을 통하여 임금기준이 결정되고 임금 이외의 복리후생, 점심시간, 휴일, 불만처리절차 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표준화가 진행되 었다. 젊은층을 노동시장으로 내보내기 위해 교육관계자는 표준화된 교과과정(curricu lum)을 세우게 되었다. 터먼이나 비네와 같은 사람들은 표준화된 지능 테스트 방법을 고안했다. 학교의 채점법, 입학시험 방법, 졸업자격에 관한 규정 등도 똑같이 표준화 되었다. OX식 시험도 완전히 일반화되었다. 한편 대중매체도 표준화된 이미지를 보급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광고, 같은 뉴스, 같은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다. 중앙정부에 의한 소수민족의 언어탄압에 매스컴 의 영향도 가세되어 웨일스어나 알사스어와 같은 한 지역의 사투리가 그의 사라지거나 완전히 없어지기도 했다. 영어, 프랑스어라는 표준어가 비표준어를 밀어내 버렸다. 이 점은 러시아어도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여러가지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지역 이 어디를 가나 같은 주유소, 광고판, 흔해빠진 주택 따위밖에 볼 수 없게 되고 지방 색이 완전히 상실되어 버렸다. '표준화'의 원칙은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좀더 상세히 이 점을 살펴보자. 산업문명은 중량이나 길이 등 도량형의 표준화를 필 요로 했다. 산업시대 이전의 유럽에서는 도량형이 제각기 달랐다. 프랑스의 산업주의 시대가 개막된 대혁명 직후 각지에서 제각기 달랐던 도량형 대신에 새로이 미터법과 태양력을 채택하는 법률이 공포된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제2의 물결에 의 해 통일된 도량형제도가 거의 전세계에 보급된 것이다. 또 대량생산방식이 기계, 제품, 작업공저의 표준화를 필요로 하게 되자 확장을 계속 하던 시장도 거기에 대응하여 화폐의 표준화와 가격의 표준화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 다. 역사적으로 보면 화폐는 국왕은 물론이고 은행이나 개인에 의해서도 발행되고 있 었다. 미국에서는 지방에 따라 19세기에 와서도 개인이 발행한 화폐가 유통되고 있었 으며 캐나다에서는 1935 년까지도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된 국가들은 차차 정부 이외의 화폐발행을 금지시켜 단일화된 표준통화 가 국내에 유통되도록 힘썼다. 더구나 산업화된 국가들에서도 19세기 이전은 팔 사람과 살 사람이 거래 때마다 마치 고대 이집트 카이로의 바자(bazaar)처럼 가격을 둘러싸고 흥정하는 것이 거의 보통이 었다. 1825 년의 일이다. A. T. 스튜어트라는 북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청년이 뉴욕에 포목상을 내고 상품에 가격을 표시하여 고객과 경쟁업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정가상 법'은 가격의 표준화뿐 아니라 이 상법 덕택에 스튜어트는 당시의 거상이 되었다. 동 시에 그의 방식은 대량유통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주요한 장애 하나를 제거하게 된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선구적인 사상가들은 여러가지 사고방식의 차이는 있었으나 표준화가 능률적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었다. 인간생활의 여러 부문에서 제2의 물 결은 가차없이 표준화의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에 갖가지 특질과 차이점이 그 과정에서 획일화되고 있었다. 전문화(specialization) 제2의 물결사회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또하나의 대원칙은 '전문화'이다. 제2의 물결이 진행됨에 따라 언어, 여가, 생활양식의 분야에서 다양성이 사라질수록 노동의 영역에서는 다양성이 더욱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분업을 추진함으로써 제2의 물결은 계절노동자와 같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농민을 대신해서 한정된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전문가와 테일러의 방식대로 오직 한 가지 알만을 날마다 되풀이하는 노동자를 등장 시킨 것이다. 1720 년 어느 영국인에 의해서 '동인도 무역의 권장'이라는 보고서가 공표되었다. 거기에는 이미 분업에 의해서 '노동시간과 노동손실의 경감'이 가능해진다고 지적되어 있다. 이어 1776 년에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공간하고 그는 그 서두에 자신을 가지고 어렇게 서술했다. '생산력이 가장 큰 진보는 분업이 가져다 준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스미스는 이제 고전이 그의 저서에서 핀의 제조과정을 설명했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자기 혼자서 필요한 모든 작업공정을 해내는 옛날식의 직공이 하루에 만드는 핀의 양 은 고작해야 한 줌, 수로 따져 20개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미 스는 자기가 전에 방문한 일이 있는 '공장'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거기서 는 하나의 핀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공정을 18개 부문으로 나누고 10 명의 전문직공을 고용했다. 오직 한 가지 작업을 맡은 직공도 있으며 두세 작업을 담당하는 직공도 있 다. 이 방식에 따르면 하루에 10 명이 4 만 8000개, 1인당 4800개의 핀을 제조할 수 있다." 19세기경에는 더욱 많은 작업이 공장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에 따라 핀 제조의 사례가 점차 대규모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전문화에 의한 인건비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산업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의 논점은 고돌로 전문화된 반복노동이 노동자의 인 간성을 박탈했다는 것이었다. 1908 년 헨리 포드가 포드 T형의 자동차제조를 개시했을 때에 1대의 자동차를 완성하 는 공정은 18개 공정이 아닌 7882개 공정으로 나뉘어 있었다. 뒷날 자서전에서 포드는 이 7882개 공정으로 분할한 작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고 있다. "전공정 중에서 949개 공정은 '신체가 튼튼한 숙련공, 육체적으로 장애가 없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3338개의 공정은 '여성이나 어느 정도의 연령에 도달한 어린이'라도 작업이 가 능하다." 그리고 포드의 냉정한 분석은 다시 계속된다. "670개 공정는 두 발이 없는 노동자라도 충분하여 2637개 공정은 다리가 하나뿐인 노 동자라도 할 수 있다. 두 팔이 없는 직공이라도 할 수 있는 공정이 둘이 있고 715개 공정은 팔이 하나뿐인 직공이라도 된다. 장님 직공 10 명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정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전문화된 노동은 종합적인 환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사람 의 한 부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포드의 방법은 극단적인 전문화가 인간을 짐승처 럼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였다.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전문화를 자본주의의 고유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으나 실제로는 사회주의 체제하의 산업사회에도 분명히 나타났다. 왜냐하면 자본주 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모든 제2의 물결 사회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노동의 극단적 인 전문화는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전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오늘날의 소련, 폴란드, 동독, 헝가리와 같은 나라들의 공장도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전혀 다른 데가 없다. 미국 노동성의 통계에 따르면 1960 년 현재 분류할 수 있는 직종은 2 만종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자본주의 산업국이나 사회주의 산업국에서도 전문직업화의 풍조가 고조되었다 . 전문화된 노동에 종사하는 집단이 어느 분야의 난해한 지식을 독점하고 신참자를 배 제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낼 때마다 그들은 정해 놓고 자기들의 일을 전문적 직업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2의 물결이 밀어닥침과 동시에 지식의 소유자와 그 지식을 구하는 고객 사이에 시장이 개입하게 되었다. 전자가 생산자이며 후자가 소비자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제2의 물결사회는 건강이라는 것도 자기자신의 지식이나 주의의 결과로 누리게 되는 것(이것은 자체소비의 생산이지만)이라기 보다는 의사나 건강증진을 관장 하는 의료관료기구라 할 수 있는 것에 의해 제공되는 하나의 제품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교육도 결국 학교라는 시설에서 교사라는 생산자에 의해 '생 산'되고 학생이라는 소비자에 의해 '소비'되는 것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도선과의 사서에서 세일즈맨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직업집단이 자기들은 전문직 업인으로 불릴 자격이 있고 자기들의 작업규준, 가격, 신규참가자의 가입조건을 결정 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 의장 마이클 퍼처크는 "현대 문화는 이제 우리 일반 시민을 '고객'이라 부르고 우리의 필요를 알려주는 전문직업인 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정치적인 선동행위까지도 하나의 전문직업으로 생각되었다. 레닌이 대중은 전문가의 원조없이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의미이 다. 레닌에 따르면 '필요한 것은, 수가 한정되어 있던 직업적 혁명가를 대중으로까지 확대하여 그들을 직업적 혁명가로 탈바꿈시키고 그들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제2의 물결에 의해 자본가, 경영자, 교육자, 성직자 또는 정치가들에게 공통의 정신 상태를 조장함으로써 분업을 더욱 더 세분화하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켰다. 1851 년 세 계대박람회가 크리스탈궁(Crystal Palace)에서 개최되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공은 '전문화야말로 문명을 추진하는 힘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시대의 사람들 은 누구 한 사람 그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표준화와 전문화는 평행으로 진행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화(synchronization) 생산과 소비 사이의 균열이 커짐에 따라 제2의 물결의 인간들은 시간에 대한 태도에 도 변화를 가져왔다. 시장에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자유경제이든 계획경제이든 시간은 돈으로 환산된다. 값비싼 기계는 쉬게 할 수 없고 그 기계의 리듬에 따라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산업문명의 제3원칙인 '동시화'가 발생한다. 초기의 사회들에서도 노동에 있어 시간은 중요한 문제였다. 예를 들어 용사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전원이 일제히 작업에 임할 필요가 있었다. 어부가 배를 젓거나 그물 을 잡아당길 때도 같았다. 오래 전에 조지톰슨은 노동의 필요에 의해 얼마나 많은 노 래가 생겼는가를 밝혔다. 배젓는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은 '오우^6,3^오프(O-op)'라는 단순한 두 음절의 소리에 의해서 구획되고 있었다. 두 음절째의 '오프'는 준비시간을 의미하고 있었다. 배를 끌어당기는 작업은 노를 젓는 일보다도 중노동이 의미하고 있 었다. 그래서 톰슨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추가하고 있다. "힘을 내는 방법을 정점으로 가져 가기 위해 지르는 소리는 비교적 긴 간격을 두고 내게 된다. 예를 들면 아일랜 드의 배를 당기며 부르는 노래는 '홀^6,3^리^6,3^호^6,3^헙(Ho-li-ho-hup)'하는 식으 로 마지막 '헙'에서 힘을 결집할 때까지 준비기간이 다소 길게 잡혀 있다." 제2의 물결에 의해서 기계가 도입되고 노동가가 불리지 않게 되기까지 이러한 작업의 동시화는 자연발생적이며 유기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계절의 리듬, 생리적인 반응, 지구의 자전, 심장의 고동 등에서 흉내낸 것이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그 와 대조적으로 기계의 고동에 맞추어 움직였다. 공업생산이 일반화되자 기계 그 자체의 비싼 비용과 노동의 높은 상호의존성이라는 두 요인에 의해서 동시화가 한층 정밀히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공장에서 어떤 작업공정을 담당하는 노동자 그룹의 작업이 지연되면 그 다음 공정에서 는 더욱 더 지연된다. 이렇게 해서 농경사회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던 시간엄수라 는 것이 사회적 필수사항이 되고 각종 시계가 보급되었다. 1790 년대의 영구에서는 이 미 시계가 진귀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E.P.톰슨에 의하면 시계는 '산업혁 명에 의해 더욱 대규모적인 노동의 동시화가 요구된 바로 그 시점에서 보급된 것'이라 는 것이다. 산업문화 속에서 자란 어린이가 어릴 때부터 시계 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교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늦지 않도록 등교하는 습관을 익히는 것 은 나중에 사이렌에 맞추어 정확히 공장이나 사무실에 출근시키기 위한 것이다. 일은 시간으로 계산되고 초단위로 세밀히 측정되게 되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가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근무시간의 원칙이 되었다. 동시화가 진행된 것은 직장생활만이 아니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이윤아니 정치 적 배려와는 상관없이 사회생활을 모두 시계로 규제하고 기계의 요구에 맞추어지게 되 엇다. 여가시간까지 미리 결정되고 있었다. 작업시간 속에 표준적인 휴가와 휴일, 휴 식시간의 길이가 설정되었다. 아무튼 어린이의 취학과 졸업연령이 통일되었다. 병원도 환자를 일제히 기상시켜 아 침식사를 들게 한다. 이렇게 해서 러시 아워가 발생하고 교통체계가 위태로워진다. 방 송국은 한정된 시간대에 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골든 아워(golden hour)가 생기게 된다. 원료제공자나 판매담당자의 형편에 따라 모든 일에 그 일 특유의 피크타임이나 성수기가 생기게 되었다. 또 공장의 생산촉진계, 선표작성자에서 교통순경, 나아가서 는 표준작업시간의 연구자에 이르는 동시화에 대한 전문가들이 나타났다. 반대로 새로운 산업사회의 시간체계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리고 여기서는 남녀의 차이가 문제로 되었다. 제2의 물결 밑에서 노동에 종사한 사람들은 그 대부분 이 남자들인데 그들은 가장 시간의 움직임에 얽매였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세상의 남편들이 언제나 이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아내는 태연히 사라마을 기다리게 하고 시간 감각이 없다. 언제까지고 옷차려 입기에 정신을 빼앗겨 약속시간에 늘 늦는다고 투덜댄다. 대부분의 여성은 가사라는 상호의존 성이 적은 일을 하기 때문에 남성만큼 기계적인 리듬에 영향받지 않고 일해 왔다. 이 와같은 이유에서 도시인들은 시골사람을 느리고 믿을 수 없다고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 "그 친구들은 늘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다. 도대체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이런 불만이 나오는 것도 원인을 따지면 고도로 상호의존이 필요한 제2의 물결의 노동과 논밭이나 집에서 이루어지는 제1의 물결의 노동에서 생기 는 차이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제2의 물결이 지배하게 되자 가장 사사로운 일상적인 잔일까지도 일정한 시간체 계 속에 짜여져 버렸다. 전체문명이 표준화, 전문화, 동시화의 원칙을 채용함에 따라 미국, 소련, 싱가폴, 스웨덴, 프랑스, 덴마트, 독일, 일본 등 모든 나라의 가정이 같 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출근한다. 일하는 시간도 집에 돌아가는 시간도 같고 침실에 들어가서 잠이 드는 것도 같고 게다가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일 까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비슷한 시간에 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집중화(concentration) 시장의 등장과 함께 제2의 물결문명의 또 다른 원칙 즉, '집중화'가 발생했다. 제1의 물결사회는 갖가지 에너지원에 의존하여 성립된 사회였다. 그러나 제2의 물결 사회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라는 고도로 집중화된 화석연료에 에너지원을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집중화가 진행된 것은 에너지만이 아니었다. 제2의 물결은 인간의 집중화를 촉진했다. 농촌에서 사람들을 끌어내어 거대한 도시로 이동시킨 것이다. 그뿐 아니라 노동까지 집중화했다.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을 가정이나 마을, 들판 , 등 어디서나 이루어졌던 데 비해 제2의 물결의 노동은 대부분이 수천명의 노동자가 한 지붕 밑에서 일하는 공장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에너지나 노동만이 아니다. 영국의 사회과학잡지 '뉴 소사이어티(New Sociely)'에서 스탠리 코헨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사회에서는 다소의 예외 는 있으나 가난한 사람은 자기 집에 있든가 친척들의 신세를 지고 있었다. 죄인은 벌 금을 내게 되거나 곤장을 맞거나 혹은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또 정신병자는 집에 갇히고 집이 가난한 경우에는 지역사회가 보살펴 주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와같은 집단은 특정한 장소에 집중하지 않고 지역사회 여기저기에 산 재해 있었다. 산업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19세기 초는 대투옥 시대라 일컬어 지고 있다. 그 시대에는 죄인은 일망타진되어 감옥에 감금되고 정신병자는 정신병원에 , 어린이는 학교로 각각 끌려나오듯이 모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공장에 수용되었다. 집중화는 자본의 흐름에도 나타났다. 그 결과 제2의 물결문명은 거대기업을 낳고 더 나아가 트러스트(trust)나 독점을 만들어 냈다. 1960 년대 중반에는 제너럴 모터스사, 포드사, 크라이슬러사라는 미국의 3 대 자동차 회사가 전 미국 자동차의 94퍼센트를 생산하고 있었다. 서독에서는 폴크스바겐사, 벤츠사, 오펠(GM)사, 포드 베르케사의 4 개 회사가 91 퍼센트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프랑스에서는 사실상 르노사, 시트로엠사, 생카사, 푸조사의 4개 회사에서 100 퍼센트를, 이탈리아에서는 피아트사 한 곳에서 90 퍼센트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알루미늄, 맥주, 담배, 아침식사용 시품과 같은 상품의 80 퍼 센트 이상이 각 분야의 4--5개 회사에 의해서 생산되고 있었다. 서독에서는 플라스터 보드(plasterboard)와 염료생산의 92 퍼센트, 사진필름의 98 퍼센트, 산업용 재봉틀의 91 퍼센트가 각 분야의 4개 회사 이내의 기업에 의해 독점생산되었다. 이런 종류의 고도의 집중화가 진행된 기업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 사회주의의 입장에 있는 경영자들도 생산의 집중화가 능률적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 었다. 사실은 자본주의 국가에 사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산업 의 집중화가 진행되는 것을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필요한 과정으로서 환영하고 있었다. 완전히 집중화된 산업은 궁극적으로 국가가 관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레닌은 "노든 시민은 단 하나의 거대한 기업합동체인 국가라는 기업의 노동자, 즉 국 가의 종업원으로 변모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반세기 후에 소련의 경제학자 N. 렐 류키나는 '보프로시 예코노미키: Voprosy Ekonomiki'지에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집중 화된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서술하기에 이르렀다. 제2의 물결문명에서 볼 수 있는 집중화의 원칙은 모스크바와 서방 여러 나라 사이에 가로놓인 온갖 이데올로기상의 대립을 초월하여 모든 분야에 깊숙히 침투하고 있었다. 그것은 에너지원, 인구의 분포, 노동형태, 교육방법, 기업과 같은 경제조직에까지 영 향을 미치고 있었다. 극대화(maximization) 생산과 소비 사이에 균열이 생김으로써 제2의 물결사회에는 대개 '큰 것이 좋은 것' 이라는 '극대화 편집광'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이 나타났다. 그것은 큰 것을 좋아하는 텍사스인들처럼 쓸데없이 크기와 성장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공장의 작업시간이 길어 져서 생산량이 많아지면 단위생산원가는 저렴해진다. 이 사고방식이 옳다고 한다면 같 은 논법으로 규모를 크게 하면 절약을 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나타나는 것도 무리 가 아니다. 그 결과 '크다'는 말이 '능률적'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고 '극대화'는 제 2의 물결시대를 해명하는 제5의 열쇠가 되었다. 국가나 도시는 저마다 세계최고의 초고층 빌딩이 있다. 세계 최대의 댐이 있다고 자 랑하게 되고 결국에는 세계 최대의 축소형 골프장이 있다고 서로 겨루는 사태까지 출 현했다. 원래 큰 것은 성장이 가져다 준 결과였기 때문에 산업화가 진행된 국가의 대 부분은 정부나 기업, 그밖의 모든 기관이 홀린듯이 성장이라는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 했다. 일본의 마쓰시타사에서는 매일 아침 종업원과 관리직이 다 같이 모여 사가를 합창한 다. 새 일본의 건설에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합쳐 생산에 부지런히 힘쓰자. 세계 속으로 우리는 나아간다. 샘물이 콸콸 끊임없이 솟아나듯이 산업진흥 산업진흥 화친일치의 마쓰시타전기! 1960 년이라는 해는 미국이 전통적 산업주의를 완성의 영역으로 제고시킴과 동시에 변혁을 강요하는 제3의 물결의 영향을 최초로 느낀 해이기도 했다. 이 해에 전미국 50 위까지의 대기업은 평균종업원 8 만 명이라는 규모로 성장해 있었다. 제너럴 모터스사만도 59 만 5000 명의 종업원을 고용했으며 앞서 언급한 데오도어 베 일이 창립한 공익사업 AT & T사는 남녀를 합하여 73 만 6000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 해에 미국의 평균가족수가 3.3 명이었으므로 200 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AT & T라는 한 기업이 지불하는 급여로 생활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다시 말하면 해밀턴이나 조지 워싱턴이 미국을 하나의 국가로 수립하려고 했던 시대의 미국 전인구 중 반수에 해당하는 집단이 AT & T사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 1960 년 이후에도 AT & T는 흡수합병을 계속하여 더욱 더 커졌다. 1970 년에 이 회사는 95 만 6000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불과 1 년 동안에 13 만 6000 명을 증원했다.) AT & T사의 예는 특수한 사례지만 미국인에게는 특히 큰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극대화 편집광은 미국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63 년 프랑스에서는 숫자상으로는 전체 기업의 불과 0.25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140 0개 기업이 전체 노동인구의 39 퍼센트를 차지한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서독, 영국, 그 밖의 나라에서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기업합병을 권장했다. 그렇게 함 으로써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미국의 거대기업과의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믿었기 때문 이다. 기업규모의 극대화는 단순히 이윤의 극대화만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마르크 스는 '사업체의 규모확대'를 사업체의 '물질적 힘의 확장'과 관련시켜서 생각하고 있 었다. 이에 대해 레닌은 '거대기업, 트러스트, 기업합병은 대량생산의 기술을 최고수 준으로까지 끌어 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 후에 레닌이 경제활동에 관 하여 내린 지령은 러시안인의 경제생활을 정리통합하여 기업체의 수를 최소한으로 정 리하고 가급적 규모가 큰 생산단위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스탈린은 규모의 극대화를 더욱 추진하여 몇몇의 커다란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크니코고르스크와 자포로즈스탈의 철강단지, 발하슈의 동제련소, 하르코프와 스탙린 그라드의 트랙터 공장이 그것이다. 스탈린은 곧잘 미국의 이런저런 공장설비의 규모를 묻고 그 이상의 큰 공장을 세우라고 명령했었다. 레온 M. 허먼박사는 그의 저서 "소비에트 경제계획에 있어서의 거대신앙"에서 '소련 각지에서 지방정치가가 세계최대의 사업을 유치하는 경쟁에 말려들고 있었다.'고 기술 하고 있다. 이미 1938 년에 이같은 '거대광'에 대하여 경고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소련이나 동유럽 공산당지도자들은 허먼 박사가 말하는 '거대화 중독 증'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모에 대한 이러한 단순한 신앙은 '능률'이라는 것을 제2의 물결의 좁은 시야에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주의의 극대화 편집광은 공장에만 머무르지 않 았다. 예를 들면 이른바 GNP(국민총생산)를 통계지표로 삼는 사고방식에도 나타나 잇 다. GNP란 한 나라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총계한 것으로,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데이터가 들어 있다. 이를테면 GNP라는 관점에서 보는 한 경제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식료품이든 교육이나 건강에 관한 서비스이든 혹은 군수품이든 그런 것 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옥을 건축하는 데에 고용이 되든 반대로 집을 헐어버 리는 데에 고용이 되든 그들이 받은 임금은 모두 GNP에 가산된다. 한쪽의 행위는 주택 의 숫자를 늘이는 것에 기여하고 다른 한쪽은 그 숫자를 줄이는 것이지만 모두 생산으 로 보는 것이다. GNP는 시장활동이나 상품거래만을 계측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육아나 가사노동과 같은 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생 명유지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모두 경시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러한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의 물결시대의 각종 정부들은 세계 곳곳에서 어 떻게든 GNP를 상승스키려고 경쟁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 생하고 고도성장을 위해서는 생태계의 파괴나 사회적 파멸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풍조 를 낳았다. 이같은 극대화 편집광적 원칙은 산업주의 시대 사람들의 정신에 깊이 침투 하여 이 이상 더 합리적인 원칙은 없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극대화는 표준화, 전문화등 산업사회를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몇몇 원칙들과 더불어 동 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중앙집권화 산업화가 진행되자 모든 산업국가들은 중앙집권화를 예술작품의 영역으로까지 발전시 켰다. 교회를 시작으로 하는 제1의 물결의 지배자도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하는 방법은 잘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대처한 것은 현대와 비교하면 훨씬 단순한 사회 였다. 또 오늘날의 산업사회를 밑바닥부터 중앙집권화된 사람에 비하면 제1의 물결의 지배자들은 미숙한 아마추어와 같은 존재였다. 복잡한 사회는 예외없이 중앙집권적 기능과 탈중앙집권적 기능의 공존을 필요로 한다 . 제1의 물결경제는 기본적으로 지방분권적이며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한다. 지방색이 뚜렷한 경제였다. 이러한 특징을 갖춘 경제가 종합적 국민경제인 제2의 물결 경제로 이행함에 따라 전연 새로운 권력의 중앙집권화 방법이 나타났다. 이 새로운 유 형의 중앙집권화 방법은 개별기업과 산업, 그리고 전체경제의 차원에서 구체화되어 갔 다. 이러한 이행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초기의 철도산업이다. 당시는 다른 산업과 비교하면 거대한 규모였다. 1850 년의 미국에서 자본금 25 만 달러 이상의 공장은 41 개 업체에 불과했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뉴욕 센트럴철도회사는 이미 1860 년에 3000 만 달러의 자본금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와같은 거대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영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철도회사 경영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우주계획관리자들처럼 새로운 경 영기법을 개발할 필요가 절실했다. 그들은 기술, 운임, 운행시간을 표준화하고 수백 마일에 이르는 열차운행을 동시화하고 새로운 업무를 부서별로 전문화했다. 자본, 에너지, 인력의 집중화가 이루어지고 철도망 규모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 였다. 그리고 이상의 모든 것을 잘 통합하기 위해 정보와 지휘계통의 중앙집권화에 기 반을 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냈다. 종업원은 '라인(line)'과 '스태프(staff)'로 나뉘어졌다. 차량운행, 적재량, 파손, 화물분실, 수리, 운행거리 등에 관하여 자료의 제출이 요구되었다. 이들 모든 정보는 중앙집권화된 명령계통을 통하여 상부로 올라가 총지배인에게 도달하고 거기서 결정이 내려져서 라인을 통해 하부로 명령을 전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철도산업은 기업사가 알프레드 챈들러가 지적했듯이 이윽고 다른 대규모 조직체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중앙집권적 경영은 제2의 물결의 여러 국가들에서 선진적이고 세련된 경영수법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정치분야에서도 제2의 물결은 중앙집권화를 촉진시켰다. 미국에서는 이미 1780 년대 후반에 탈중앙집권적인 '13개주 헌법'을 중앙집권적인 미합중국 헌법으로 만들려는 투 쟁 속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분명히 싹트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1의 물결의 색채를 띤 지방세력은 중앙정부로 권력이 집중하는 데에 저항한 반면에 헤밀턴이 이끄는 제2의 물결의 상업세력은 그들의 기관지 "더 패더럴리스트: The Federalist" 등을 통하여 강 력한 중앙정부는 군사, 외교상의 이유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주 장했다. 그 결과로서 1787 년에 연방헌법이 태어났는데 그것은 교묘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제1의 물결을 대표하는 세력도 여전히 강력했기 때문에 이 헌법을 중요한 여러 권한을 중앙정부에 넘겨주지 않고 종전대로 각 주에 남겨 두었다. 지나치게 강력한 중앙정부 의 출현을 막기 위해 입법, 행정, 사법의 3권분립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채택했다. 그 러나 헌법 속에는 어떻게도 해석할 수 있는 탄력적인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그것에 의 해 연방정부는 매사에 권한을 확장하고 있었다. 산업화로 인해 정치체제가 더욱 중앙집권화함에 따라 워싱턴의 연방정부가 갖는 권한 과 책임은 점차 커지고 전국적 차원의 경책결정은 더욱 더 중앙정부의 독점물로 되어 갔다. 한편 연방정부내의 권력은 외화나 법원으로부터 3부 중에서도 가장 중앙집권기 능이 강한 행정부로 이행하게 되었다. 닉슨 행정부에 와서는 한때 열성스런 중앙집권 주의자였던 역사학자 아더 슐레진저조차도 '황제와 같은 대통령의 지위'라고 공격할 정도가 되었다. 정치의 중앙집권화를 촉진하는 힘은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 더욱 강력히 적용했다. 스웨덴, 일본, 영국 혹은 프랑스 등의 제도는 얼핏 보기에도 미국보다 훨씬 중앙집권 적이라는 사실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에도 미국보다 훨씬 중앙집권적이라는 사실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나 예수가 없었다면: Without Marx or Jesus" 의 저자 장 프랑소와 르벨은 이 점에 관하여 정치적 항의에 대한 각국 정부의 반응방 법의 차이를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프랑스에서 데모가 금지될 경 우 누가 그것을 금지시켰느냐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만일 그것이 정치 문제에 관한 데모라면 이를 금지시킨 것은 중앙정부임이 틀림없다. 미국에서 데모가 금지되었다고 하자. 이럴 경우 미국인이 먼저 제기하는 의문은 누가 데모를 금지시켰 느냐 하는 것이다.' 라고 르벨은 지적하고 잇다. 그는 미국의 경우 데모를 금지하는 세력은 자치권을 가진 지방행정당국일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극단적으로 정치의 중앙집권화가 진행된 것은 물론 마르크스주의적 산업국가들 이다. 1850 년에 마르크스는 '국가에 의한 권력의 결정적 중앙집권화'의 필요성을 주 장한 바 있다. 엥겔스도 해밀턴과 마찬가지로 탈중앙집권적 연방제에 의한 정치형태를 '가장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잇다. 뒷날 소련은 산업화의 촉진에 엄중 한 나머지 정치, 경제의 양면에서 가장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구조의 국가를 건설하게 되고 생산에 관한 결정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중앙계획당국의 손을 빌리게 되었다. 전에는 탈중앙집권적이었던 경제가 단계적으로 중앙집권화한 데에는 중앙은행이라는 그 명칭부터가 중앙집권적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는 기관의 출현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 다. 1694 년이라면 아직 산업화의 여명기로서 뉴코먼이 증기기관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무 렵인데 이 해에 윌리엄 패터슨이 처음으로 잉글랜드 은행을 창설했다. 그리고 이 은행은 모든 제2의 물결에 속하는 여러 나라에서 중앙집권기능을 갖는 같은 기관의 원형이 되었다. 통화와 신용의 중앙집권적 관리를 목적으로 한 중앙은해이라 는 기관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한 나라의 제2의 물결의 발전단계는 완전한 것이 되었다 고 할 수 있다. 패터슨이 설립한 중앙은행은 정부발행의 국채를 팔고 정부보증의 통화를 발행했다. 한편 나중에는 다른 시중은행의 대출업무도 규제하게 되었다. 결국 이 은행은 통화공 급의 중앙관리라는 오늘날의 모든 중앙은행이 갖는 본질적 기능을 떠맡게 되었다. 180 0 년에는 이와같은 목적을 가진 프랑스 중앙은행이 설립되었고 1875 년에는 독일 연방 은행 라이히방크(Reichlsbank)가 설립되었다. 미국에서는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 간의 충돌이 헌법제정 직후에 중앙은행의 설립 을 둘러싼 대규모으 대립으로 나타났다. 제2의 물결정책의 대표적 주창자인 해밀턴은 영국식 중앙은행의 설립을 강력히 주장했다. 남부와 아직 국경을 넓혀가고 있던 서부 는 농업중심의 입장을 버리지 못하고 해밀턴에 반대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 있던 북동부의 지지를 얻은 해밀터은 미국의 연방은행 설립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연방은행이 오늘날의 연방준비제도의 전신이다. 그 역할은 정부를 대신하여 시장활동의 수준과 속도를 규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서 중앙은행들은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 일정한도의 비공식적인 단기계획을 도입했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제2의 물결사회의 모든 동맥에 통화라는 혈액이 흐르 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가 모두 중앙집권화된 통화공급기관을 필요 로 했고 그 결과 중앙은행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중앙은행과 중앙정부는 서로 손을 맞잡고 나아가게 되었다. 이렇듯 중앙집권화도 또한 제2의 물결문명의 지배적 원리의 하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6가지 지도원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느 제2의 물결국가들로 부터 한결같이 작용하고 있는 하나의 퍼로그램을 이루고 있다. '표준화', '전문화',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라는 6가지 원리들 은 자본주의 국가건 사회주의 국가건 모든 산업사회에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이 6가지 원리들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정적인 분리와 시장기능의 계속적 확대에 의해서 필연 적으로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원리들은 상화간에 상승작용을 계속하였는데 그 결과 생겨난 것이 비인간적 인 관료제도였다.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거대하고 경직되고 강력한 관료조 직이 출현하여 각 개인은 거대조직이 지배하는 카프카(Kafka)적 세계에서 갈길을 몰라 방황을 계속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이 거대조직들에 짓눌리고 압도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문제의 근원을 제2의 물결문명을 프로그램화한 숨겨진 규범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규범을 형성하고 있는 6가지 원리들은 제2의 물결문명에 뚜렷한 특징을 제공해 왔 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곧 밝혀지듯이 이 6가지 원리들은 어느 것이나 제3의 물결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위기는 기업, 금융, 노사관계, 정부, 교육, 언론 등의 분야에서 오늘날도 여전히 이 원리들을 자기의 행동원리로 적용하고 있는 제2의 물결사회의 엘리트에 대 해서도 말할 수 있다. 새로 태어난 문명은 낡은 문명의 모든 기득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규칙을 만드는 일에 익숙해 있던 산업사회의 엘리트들은 앞으로 전개될 격 동 속에서 과거의 봉건귀족이 겪었던 것과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엘리트들 중 일 부는 낙오될 것이고 일부는 권좌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일부는 무능력자로 전락하거나 구차스런 체면유지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지성과 적응력을 갖춘 일부 엘리트들 만이 변신하여 제3의 물결문명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이 지배하는 가까운 장래에는 누가 지배자의 자리에 앉게 될까? 그것 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날의 사회를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5장 권력의 전문가 '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가?' 이 의문은 제2의 물결사회에 특유한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이런 의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배자가 국왕이든 무당이든 장군이 든 태양신이나 성자이든 민중은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누군인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밭에서 일하는 가난한 농부가 고개를 들어 바라볼 때면 멀리 지평선 위로 화 려한 궁전이나 사원이 솟아 있었다. 정치학자나 언론인에게 특별히 권력의 정체에 관 하여 수수께끼를 풀어달라고 할 것까지도 없이 지배자가 누구인가는 만인의 눈에 명백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이 밀어닥침에 따라 도처에 새로운 권력이 대두하였다. 그것은 막 연한 정체불명의 권력이었다. 지배자는 이제 이름없는 '그들'이 되어 버렸다. '그들'이란 대체 어떠한 사람들이었을까? 통합자 산업주의는 이미 보아왔듯이 사회를 공장, 교회, 학교, 노동조합, 형무소, 병원과 같 은 뭇하게 서로 맞물린 부품으로 분해시켰다. 교회와 국가가 개인 사이에 있었던 명령 계통을 단절시켰다. 포괄적인 지식은 여러 전문분야로 나뉘어졌다. 일은 세밀한 작업 과정으로 분해되었다. 내가족은 분열하여 핵가족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산업주의는 공동체의 생활과 문화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누군가가 이들 부품을 모아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 필요가 생겼다. 이같은 필요성에 따라 새로운 종류의 전문가집단이 탄생했다. 그들의 주요임무는 '통 합하는 일'이었다. 경영자, 행정관, 대표, 조정자, 사장, 부사장, 관료, 중역 등이라 고 일컫는 새로운 집단이 모든 기업, 정부기관, 그리고 사회의 각계각층에 출현하여 이윽고 그 존재는 사회에 필요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이들이 통합자(integrator) 들이 었다. 통합자들은 사람들의 역할을 결정하고 업무를 배정했다.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보수 를 지불하는가를 결정했다. 또한 계획을 입안하고 판단기준을 정하며 사람들에게 자격 을 부여하거나 철회했다. 통합자들은 생산, 유통, 수송, 통신 등을 서로 연결시키고 여러 조직들의 상호관계를 규정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요컨대 산산히 흩어진 사회를 다시 제조립한 것이 그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제2의 물결체제는 도저히 운영될 수 없었을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마르크스는 기계와 기술, 즉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가 사회를 지배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장은 노동이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스크라이크 에 의해서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고 고용주로부터 기계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 다. 그리고 일단 생산수단을 소유하면 노동자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는 마르크스의 예상을 뒤엎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가 적절히 지적한 노동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현실에서는 체제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새 로운 인간집단에 더욱 큰 권력이 집중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지배자의 지위에 오른 것은 자본가도 아니며 노동자도 아니었다.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를 불문하고 정상의 자리에 앉은 것이 이들 통합자들이었다. 권력의 원천은 '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니고 '통합수단'의 장악이었다. 이 말의 의미 를 좀 더 깊이 고찰해 보자. 기업계에서 초기의 통합자들은 공장소유자, 상점경영자, 제분소나 철공소주인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들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몇몇 사람들의 조수들과 함께 다수의 미숙 련공의 노동을 조정하고 나아가서는 기업을 커다란 경제의 흐름 속에 통합시킬 수 있 었다. 이 시대에는 '소유자=통합자'였으므로 마르크스가 이 양자를 혼동하여 소유라는 것을 크게 강조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생산양식이 다 복잡해지고 분업도 더 한층 전문화되어 감에 따라 고용자와 노동간의 중간적인 존재로서 놀랄 만큼 다양한 관리자 와 전문가들이 기업에서 속속 출현하게 되었다. 문서업무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윽고 대기업에서는 사장이든 대주주이든 그 어떤 개인도 기업 전체의 운영을 파악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기업소유자의 의사결정이 체제의 조정역할을 맡은 전문가집단 에 의해 형성되고, 결국 그들에게 통제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소유에 의존하지 않 고 통합수단을 관리함으로써 권력을 손아귀에 쥐는 새로운 경영 엘리트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경영권의 권력이 증대함에 따라 주주들의 힘은 후퇴해 갔다. 회사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친족끼리 소유하고 있던 주식은 다수의 분산된 주주들에게 매각되어 이 주주들은 회사의 실무에 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주주들은 회사의 일 상업무뿐 아니라 회사의 장기목표나 경영전략이라는 것까지 고용된 경영자에게 맡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론상으로는 회사의 소유자들을 대표하고 있는 이사 회 조차도 만족스런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또 투자면에서도 개인의 직접투자를 대신해서 연금이라든가 투자신탁 또는 은행의 신탁부문 등을 통한 간접투자가 활발하 게 되자 기업의 실제소유자는 더욱 기업경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들 통합자들의 새로운 권한을 가장 명백히 설명해 준 사람은 미국의 전 재무장관 마이클 블루멘덜이다. 블루멘델은 재무장관이 되기 전에 벤딕스사의 사장이었는데 벤 딕스사의 소유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회사를 소유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지배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사장으로서 완전한 지배권을 장 악하고 있다. 다음 주에 주주총회가 있는데 이 97 퍼센트의 주주로부터 위임장을 맏았 다. 그러나 내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은 불과 8000주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회사의 지배권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바란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은 어 리석은 일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기업이라는 이 거대한 동물을 지배하여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경영방침은 고용된 경영자나 남의 돈을 투자하는 자 금 관리자들에 의해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노동자는 차지하고 회사의 실제소유 자(주주)들 조차도 정책을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통합자들이 이 일을 떠맡았다. 이와같은 현상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발생했다. 이미 1921 년에 레닌은 자기 손으로 만든 소련의 관료제도를 비난하는 발언을 했었다. 트로츠키는 망명중인 1930 년에 소 련에는 이미 5600 만 명의 관리자계급이 '생산노동에는 직접 종사하지 않고 오로지 관 리하고 명령을 내리고 지휘를 하며 사람들을 처벌하거나 사면하고 있다.'라고 비판하 였다. 그에 따르면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은 국가이지만 '국가를 소유하는 것은 관료 이다.'라는 것이다. 1950 년대에는 밀로반 질라스가 그의 저서 "새로운 계급"에서 유 고슬라비아의 경영 엘리트 집단의 권력증대를 비판하고 있다. 티토대통령은 질라스를 투옥했으나 대통령 자신도 '기술자에 의한 지배와 관료에 의한 지배는 노동자계급의 적이다.'라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모택동시대의 중국에서도 경영주의에 의한 지배를 미연해 막는 일이 언제나 중심과제였다. 이와같인 자본주의 사회뿐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통합자들이 효과적으로 권력 을 장악했다. 그들의 존재없이는 사회체제 각 부분들이 통합적인 기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사회라는 이름의 '기계'는 통합자없이는 작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통합의 원동력 한 기업 또는 전체 산업을 통합한다고 해서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산업사회는 노동조합이나 동업자조합에서 교회, 학교, 진료소, 오락단체에 이 르기까지 무수한 단체나 조직을 만들어 냈다. 그 때문에 법률을 만들 필요가 생긴 것 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영역, 사회영역, 기술영역이라는 새 영역이 서로 밀 접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제2의 물결문명을 통합해야 한다는 강력한 필요성 때문에 사회체제를 통합하는 엔진 이라 할 수 있는 최대의 통합자인 '거대한 정부'가 출현했다. 제2의 물결사회마다 모 두가 거대한 정부를 가지게 된 것은 이 사회체제가 통합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라 고 할 수 있다. 행정부의 축소를 주장하는 정치가들도 나타나긴 했으나 이들도 일단 정권을 잡고 나 면 행정부의 축소는 커녕 반대로 관청의 수를 늘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제2의 물 결정부의 첫째 목적이 산업문명을 건설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 하면 이와같은 언행의 불일치는 일어날 만한 일임을 납득할 수 있다. 산업문명의 확립과 유지라는 중요한 목표 앞에 사소한 입장의 차이는 해소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문제에서는 서로 논쟁을 벌이는 정당이나 정치가들도 이 점에 관해서는 암암리에 서로 양해하고 있다. 비록 주의주장을 달리하더라도 거대한 정부를 만드는 일은 모든 정당과 정치가의 양해사항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산업사회에서는 통합이라 는 중요한 과업이 행정부에 완전히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 클레이튼 프리치도 지적하고 있듯이 미국 연방정부는 심지어 최근 3기에 걸친 공화장 정권하에서도 끊임없이 확대일로를 걸어왔다. 프리치에 의하면 '그 까닭 은 지극히 단순하다. 중대한 악영향을 남기지 않고 연방정부를 해체하는 일이란 요술 사 후다니의 솜씨를 가지고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자유시장론자들은 정부의 기업활동에 대한 간섭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민간기업에만 맡겨 두었더라면 산업화가 훨씬 더 늦어졌을 것이고 과연 산업화가 진행되었는지조차 도 의문이다. 정부는 철도건설을 촉진하고 항만, 도로, 운하,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우편제도를 확립하고 전신, 전화, 방송시설을 개설하고 그것들을 운용하는 규칙을 만 들었다. 상거래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시장의 표준화를 시행했다. 자국의 산업을 육성 하기 위해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거나 관세를 부과했다. 산업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농민을 농촌에서 몰아냈다. 가끔 군사채널을 통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고 첨단기술개 발을 지원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아에서 정부는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었고 또 하고자 하지도 않았던 커다란 통합역할을 맡아온 것이다. 정부는 거대한 산업화의 추진자였다. 정부는 강제집행력과 조세권을 가지고 민간기업 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간기업이 들어 갈 수 없는 분야 또는 재산성이 없는 분야라는 체제내의 공백지대를 진출하여 산업화 의 기운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말하자면 정부는 '예상적 통합'을 할 수 있었 던 것이다. 정부는 대중교육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장래의 산업노동력으로서 기대되는 청소년을 교 육시키고 결과적으로 산업계를 원조함과 아울러 핵가족이라는 생활양식의 보급에도 기 여했다. 어린이의 교육을 비롯하여 전통적 역할의 부담으로부터 가정을 해방시켜 줌으 로써 정부는 가족구조가 공장체제의 요구에 적응하도록 촉진했다. 이와같이 정부는 여러 차원에 걸쳐 복잡하게 뒤얽힌 제2의 물결문명을 통합하는 역할 을 맡았던 것이다. 통합의 중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당연히 정부의 본질이나 형태도 변화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나 수상은 옛날과 같이 창조적인 정치지도자나 사회지도자가 아닌 관리자로 서 등장하게 되었다 인격과 행동면에서도 대기업의 사장과 거의 다름없는 사람이 되었 다. 닉슨, 카터, 대처, 브레즈네프, 지스카르 데스탱, 오히라 등과 같은 선진공업국의 수뇌들은 의무적으로 민주주의라든가 사회정의를 말하지만 그 직무에 앉으면 실제로 는 능률적으로 행정을 한다는 정도의 약속밖에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산업사회에는 전체를 일관하는 한 가지 동일 한 패턴이 생겼다고 해도 될 것이다. 대기업 또는 생산조직과 거대한 행정기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생산수단을 탈취한 노동자계급'도 아니며 아담 스미스학파가 거대한 '권력을 유지하는 자본가계급'도 아니다. 전혀 새롱운 세력이 등장한다. 이 세력은 노동자나 자본가에게도 소속되지 않고 그 양자에 대항하는 세력 이다. 권력전문가들이 '통합수단'을 먼저 수중에 넣고 그것을 사용하여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을 지배한 것이다. 이로써 제2의 물결사회는 통합자들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다. 권력구조의 피라밋 권력전문가들은 엘리트들과 준엘리트들로 구성되었다. 각 기업과 정부의 각 부처에도 즉시 독자적인 체제가 이루어지고 그 안에 지배층, 다시 말해서 강력한 '그들'이 형 성되었다. 스포츠, 종교, 교육 등 각계에는 고유한 권력 피라밋이 있으며 과학계의 지배층, 국 방관계의 유력자, 문화계의 지배층 등이 차례로 형성된다. 제2의 물결문명의 권력은 이와같이 수십명, 수백명, 수천명의 전문분야의 엘리트로 분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분야의 스페셜라이즈드 엘리트(specialized elite)를 통합하고 있는 것은 제너널리스트 엘리트(generalist elite)이다. 이 집단은 모든 전문분야에 걸쳐 구성 원을 가진 다재다능한 조직 밖의 집단이다. 소련이나 동구의 공산당이 그 예로 항공분 야로부터 음악, 철강업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에 당원이 있다. 공산당원은 준엘리 트들 사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정보연락망으로 기능하고 있다. 공산당은 정보에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전문적 준엘리트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이처럼 명확한 형태는 아니지만 각종 민간위 원회나 임원회에 참여하는 주요기업인이나 변호사가 비슷한 역할을 해왔다. 어쨌든 명백한 것은 제2의 물결국가에는 관료라든가 이사라는 이름의 통합전문가집단 이 존재하고 그것을 다재다능한 통합 제너럴리스트 집단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슈퍼 엘리트 이 피라밋의 더 높은 상층부에서는 투자의 배분을 담당하는 '슈퍼 엘리트'들에 의한 통합이 이루어졌다. 금융계나 산업계, 국방성이나 소련의 경제계획관료들 등 산업사회 내의 주요한 투자배분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그 밑에 있는 통합자들이 기능할 테두리를 정한다. 미국의 미니에폴리스에서나 소련의 모스크바에서도 대규모적인 투자결정이 내려지면 그 결정은 장애의 선택범위를 제한하게 된다. 자원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일단 투자하여 벳세머 용광로나 석유분해증류공장, 조 립공장과 같은 것을 건서러해 버리면 감가상각이 끝날 때까지 해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설비투자에 의해서 일단 매개변수가 고정되면 그것이 장래의 경영자나 통합자의 행동을 규정하게 된다. 모든 산업사회에서는 이러한 투자결정의 조종간을 장 악하는 익명의 결정권자집단이 슈퍼 엘리트층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제2의 물결사회 어디에서나 서로 비슷한 엘리트 구조가 생겼다. 사회위기나 정치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지방이나 나라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반 드시 이와같은 은밀한 권력의 위계질서가 생겨났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뀌고 슬로건 , 정당명, 후보자가 그때마다 달라졌고 혁명의 불길은 타올랐다 이윽고 사라졌다. 훌 륭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는 얼굴모습도 바뀌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권력구조 그 자 체는 전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 3세기에 걸쳐 권력의 장벽을 타파하고 사회정의와 정치적 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를 수립하고자 하는 반란이나 개혁이 거듭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었다. 한 동안은 자유에 대한 희망이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도 있었다. 때로는 혁명가들 이 한 체제를 전복하는 데에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최종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반역자들이 자기들 혁명의 기치 아 래 준엘리트, 엘리트, 슈퍼 엘리트들로 이루어진 유사한 구조를 재구축했던 것이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통합구조와 그것을 지배하는 권력전문가집단이 제2의 물결문명에 있어서 공장, 화석연료, 핵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산업주 의와 그것이 약속한 완전한 민주주의는 사실상 양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혁명운동 등에 의해서 산업국가들은 자유시장경제와 중앙계획경제 사이를 오락가락할 때가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국가로 바뀌거나 또는 그 반대로 되는 경 우도 있었다. 그러나 '표범은 그 반점무늬를 바꿀 수 없는 법'이라는 속담대로 산업국 가의 본질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강력한 통합구조없이는 산업국가는 기능할 수가 없었다. 변혁의 제3의 물결이 경영관리층 세력의 보루에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는 오늘날 이 권력체계에도 최초의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경영참여, 의사결정의 분담, 노동자, 소비자, 시민에 의한 관리, 예상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 아지고 있다. 가장 진보된 산업국가에서는 과거보다도 위계적 색채가 덜하고 애드호크 러시 성격이 강한 조직구성이 시작되고 있다. 권력의 분산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 고 관리자들은 더욱 더 하부로부터의 정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정치 체제의 격변을 예고하는 초기적 경고에 불과하다. 현재 이미 제2의 물결문명의 산업사회를 공략하고 있는 제3의 물결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튼 사회적, 정치적 혁신을 초래할 것이다. 현재의 낡고 억압적이고 뒤떨어 진 통합구조들을 대신하여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새로운 제도가 태어날 날이 다가오 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눈을 돌리기 전에 무너져 가는 체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뒤떨어진 정치체제를 X광선으로 투시하여 이 체제가 제2의 물결문명에 얼마나 적합한가 산업사회의 질서와 엘리트에게 얼마나 봉사해 왔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이 체제가 이미 부적당하고 더 이상 존속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