봅 울프의 법칙 당신이 임하게 될 협상이 어떤일에 과한 것이든지, 내 경험에 기초한 한가지 조언은 봅울프식으로 말하라는 것이다. 봅 울프가 미국 연예계, 스 포츠계, 언론계 유명 인사들의 에이전트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우 연이 아니다. 고객들이 그를 찾아오고 그의 상대들 조차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까 닭은 그의 말 속에 무언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실함과 직업 정신, 그리고 유머다. 그의 말이 이 세 가지 요소 를 갖추고 잇기 때문에 그는 협상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에이전트 봅 울프' 라고 항상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럴 때 나는 봅과 같이 존경받는 사람이 나를 대리한다고 말함으로써 나 자신이 높아지 는 듯한 느낌을 늘 받게 된다. 봅은 결코 위협을 가하거나 상대를 적대시하지 않는다. 그는 협상에서 상 대방을 도덕상의 적으로 보지않고 존중 할 만한 상대로 여긴다. 따라서 그 들을 대할 때 말도 그런 방식으로 한다. 래리 버드를 대리하여 보스턴 셀틱스와 협상을 벌이더라도 결코 '그가 원 하는 대로 구단이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는 훈련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 고 말하진 않는다. 협박으로써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 으며, 협상 도중에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나를 대리하여 테드 터너와 협상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오늘 밤 (래리 킹 라이브)는 지난번에 방송 된 것을 재방송 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왜냐하면 래리 킹이 방송국에 없 을 테니까'라는 식으로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믈론 이족으로서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점을 봅은 언제나 분명히 한다. 말로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 점을 분명한 말로 설명해 준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상대를 협박하는 식으로는 좁근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본성에 어긋나고 다라서 그의 방식이 아니 다. 그에게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단기적 승리란 승리에 해당하지 않는 다. 그는 내게 '만일 당장 돈 몇 푼을 손에 넣으려고 상대방을 영원히 멀리 하게 된다면 그쪽과는 다시 계약을 맺을 수 없을 것' 이라고 말한적이 있 다. 그런 승리는 오래 가지 못하는 얄팍한 승리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허브 코헨도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하비 멕케이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경험, 많은 전문가들과의 대화, 그리고 이들 세 명의 친구를 통하여 내가 얻은 비열이 바로 이것이다. 다음 번에도 이길 수 있도록 당 신의 방패를 수리하여 두라. 이 세 명의 성공한 협상꾼들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 이 하는 대로 당신이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그들이 말하는 방식을 따라 할수만 있다면 당신은 오늘 당장 성공할 수 있 다. 물론 내일도 성공하게 될 것이다. 회의 회의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불평할 말이 몇 마디는 있을 것이다. 어떤 회 의든지 생산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러한 역할을 맡아서 수행 해야 한다. 회의가 필요하면서도 불평거리가 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여러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리려 할 때, 또는 함께 무슨 일을 이루기 위 해 계획을 짜려 할 때, 회의를 잘 운영할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반면에 회의가 잘못되면 그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에게 고통만 따를 뿐이 다. 이제부터 화의에 관한 몇 가지 간단한 요점들을 설명하기로 한다.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가. 거기 참석하지 않으면 된다. 당신이 반드시 참석해야 할 자리가 아니라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 고 참석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 시간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거리 하나를 만들어서 그 때문에 못 간다고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말을 적게 할수록 좋다. 일단 그 자리에 참석했다거 하자. 그런데 진행중 인 논의가 당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다. 이런 경우 그 대화에 불쑥 끼어들고 싶은 유혹이 커질 것이다. 이것을 참아야 한다. 단순히 주의를 끌기 의해 상관없는 말을 꺼내지 말라. 개중에는 자기도 무언가 기여하는 바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대화에 끼 어들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끼어들어 한 푼 어치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든다는 평판보다는 필요할 때에 만 말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는 것이 훨씬 낫다. 워싱턴에서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캘빈 쿨리지가 대통령에 취임 하여 첫 월급을 건네받았을 때다. 대통령에게 수표를 전하러 백악관에 온 재무성 직원이 수표를 건네주고도 돌아갈 생각을 안하고 멀뚱멀뚱 서 있었 다. 버몬트 주의 시골에서 온 이 촌사람이 그렇게 큰 돈을 받고 어떤 반응 을 보이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미침내 쿨리지가 그 직원에게 뭘 기다리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 원은 각하께서 그 수표에 대해서 무언가 하실 말씀에 있는지 궁금해서 그 런다고 대답했다. 쿨리지는 수표를 잠시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들어 그 직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말없는 캘'(Silent Cal)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말을 적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한 번은 여류 인사 몇 명이 백악관에 초청 되어 차를 마셨다. 그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각하, 여기 같이 온 부인들하고 조그만 내기를 했는데 제가 각하로 하여 금 두 단어 이상 말하게 한다고 걸었지요.' 쿨리지가 대답했다. '그럼 지셨군요.'(You lose) 그 여자는 내기에 졌지만 쿨리지는 과묵함으로 인하여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토록 과묵한 사람이 일단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 여자가 만일 이 점에 과해서 내 기를 했더라면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남을 바하하는 말은 하지말라. 회의레 자주 참석해 본 사람이면 쓸데없 는 말들이 얼마나 많이 오가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회의의 주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사소하고 때로는 순전히 얼빠진 소리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아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 생이다. 탁자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멍청한 소리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멍 청한 소리라고 가르쳐 주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해 주고 싶은 욕구 는 걍하게 일겠지만 참아 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참지 못하면 당신에 게 손해다. 말 한마디로 평새의 적을 만들고자 하낟면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멍청한 질문이라도 필요할 때에는 할 수있는 자세를 갖추라. 어떤 회의 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한가지 경향은 사공이 없는 배와 같다는 점이 다. 초반에 한 사람이 어떤 주제를 꺼내면 그 다음에 모두가 거기에 대고 이러쿵 저러쿵 하다 보면 완전히 옆 길로 새나가 종잡을 수 없게 되는 경 우가 많다. 이럴 때에는 누군가 나서서 산만한 대화를 추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산만한 대화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원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직설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그들이 하는 말을 받아서 좀 멍청해 보이는 식 으로 물음으로써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왕이 그렇게 발가벗은 채로 바깥에 서 있었다면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준비 없이는 발언하지 말라. 회의에 참석하여 당신이 무언가 발언 하도 록 되어 있다든가, 그렇지는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경우에는 미리 준비하라. 요점을 정리하여 종이에 적어 두는 것이 좋 다. 준비 없이 그냥 말하게 되면 십중팔구 당신의 발언은 장황한 횡설수설 이 되고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시느이 입장을 지지하려던 사람마저 등 을 돌리게 되기 십상이다. 말이 너무 길어지게 되는 까닭은 자꾸만 곁가지 를 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자꾸만 말이 중간 에 막히고 그만큼 에,저와 같은 군소리가 자주 나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는 발언의 효과를 높일 수 없다. 유머의 사용에 주저하지 말라. 회의에서는 가끔 한 번씩 웃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회의가 지루하게 장시간 계속될 때에는 더욱 그렇다. 80년대 미국에서 임대 아파트를 콘도 미니엄으로 변경하는 일이 성행 할 적에 그 문제를 결정할 회의에 내가 아는 사람이 참석했다. 워싱턴의 한 부동산 회사에서 열린 회의였는데 아주 길고도 지루하게 논란이 계속되었 다. 이미 이야기가 지지부진해서 그상태로는 결론이 날 수 없는 형편이었 는데도 사장은 여전히 나중에 다시 거론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 자 이 친구가 고개를 들고 말하기를 '나는 카톨릭 신자로서 콘도미니엄의 사용을 반대합니다'(카톨릭 교회는 콘돔의 사용을 반대함)라고 했다. 좌중에서 폭소가 터지고 그것으로 회의 가 끝났다. 회의를 주제하는 경우에 가장 중요한곳 세 가지는 첫재도 준비, 둘째도 준비, 셋째도 준비다. 우 선 준비해야 할 것은 '안건이 무엇이냐'하는 것이다. 작은 쪽지에 짤막하게 적은 것일지라도, 어쨌든 안건은 분명하게 처리해서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회의를 진행하면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빠짐없이 다루었는지 확실하게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회의를 통하여 당신이 얻 거자 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확률을 한 층 높일 수가 있다. 그밖에 중요한 점 몇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정시에 시작하라. 아주 기본적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얼마 나 많은 회의가 그렇게 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라. 사소한 잡담은 회의 가 시작되기 전 또는 끝난 다음에 복도에서 하게 하라. 회의 벽두에 간밤 에 벌어진 축구 경기에 관한 잡담이 벌어지는 데도 사회자가 그냥 놔둔다 면, 그회의를 초점이 명확한 생산적 토론으로 이끌 수 없게 된다. 비단 잡담이 아니더라도 회의 초반의 10-15분 사이에 참석자들이 이 얘 기 저 얘기 하도록 놔두어도 결과는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확실한 결론을 이끌어 내라. 자 이제 안거니 무엇인지는 정해졌다고 하 자. 그렇다면 그 각각의 안건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는 첫째,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둘째 '누가 그 일을 맡을 것인가?'이다. 이 점들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회의를 열 필요조차 없다. 확고한 자세를 취하라. 참석자들이 시간을 낭비하거나 서로 누가 잘 났 는지 경쟁하는 흐름을 타지 않도록 분위기를 잡으라. 그렇다고 해서 그들 을 꾸짖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꾸짖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회자가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예를 들면 시간이 그 중 하나다. '이버게 피트 말을 끊어서 미안하네.자 네 말은 잘 알겠지만 다른 안건을 또 올려서 처리해야 하거든'과 같은 방 식으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사회를 맡아보는 입장에서 대장처럼 행동한다든가 쌀쌀맞다는 말을 들을 까 봐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마음을 놓아도 된다. 회의를 효율적으로 주재하여 짧은 시간에 결론에 이르도록 할 수만 있으 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모든 사람이 당신의 역량을 높이 보게 될 것이고 자기네시간을 절약해 주었다고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그 사람 각자 말하고 싶은데로 내버려둔다면 회의는 엉망이 되어 버릴 것이다. 회의를 통해 당신이 얻고자 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평판 또한 엉망이 될 수 밖에 없다. 회의가 엉망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염두 해야 할 점을 세익스피어에 게 물어 보았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여보게 브류터스. 잘못은 회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는 걸세.' 발표 발표는 일조의 대중 연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 연설에 관해서는 뒤에 서 자세히 다룰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회의 석상에서 하는 발표만을 다 룬다. 오늘날 발표는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는 시각의 시대인 만큼 청중에게 말로써 당시느이 의사를 전달하는 한편, 그들로 하여금 시각을 통하여 그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도 효과 적인 방법이다. 환등기, 차트. 각종도표, 구림, 사진 등을 이용할 수 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로스 페로가 시각적 방법의 효과와 중요성을 다 시한 번 일깨워 준바 있다. 물론 그가 그러한 기술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광고회사, 자문회사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러한 기숭르 사용해 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자신의 의견을 인상 깊게 전달하는 데에 여러 색채가 사용된 간단 명료 한 도표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학교 선생들 역시 이 점을 오래 전부 터 강조해 왔다. 국민하교 1학년 때부터 시청각 교재의 사용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미국 역사에서는 성조기가 도안될 때부터 이미 시각 효과가 정치에서 떼 어 낼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다. 시각 효과의 활용에는 종종 능란한 수 완이 적용하기도 한다. 케네디 대통령의 저서 평화의 전략을 보면 시각 효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예가 나온다. 1840년대에는 미국과 케나다 사이의 국경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래 서 당시 미국 국무장관 대니얼 웹스터와 영국 특사 애시 버튼 경 사이에 이 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케네디의 설명에 따르면 그 문 제에 관하여 두 나라는 한 치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웹스터와 애시 버튼 경이 어떤 합의를 도출해 내든지 각자의 본국 정부에 의하여 거 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자기들이 합의한 조약을 본국 정부에 설명하면서 매우 효과적은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조약이 승인 및 비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 나라 사이의 관계 역시 오늘날과 같이 돈독함을 유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케네디는 이렇게 설명한다. 1842년에 미국과 케나다 사이에 ㅋ어진 웹스터-애시 버튼 조약은 두 나 라 모두에서 지지하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웹스터 장관과 애시 버튼 경에 대해서 국익을 손상시킨다는 비난이 각기 국내에서 드높았다. 전해오는 이 야기에 의하면 웹스터가 미국 상원을 설득하면서 보여준 지도와 애세 버튼 이 영국의회를 설득할 때 걸어 놓은 지도에는 국경이 서로 다르게 표시되 어 있었다고 한다. 즉 각기 의회와 국민에게 우리 나라가 상대방보다 취한 것이 더 많다고 함으로써 그을을 설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백 년 이상을 끌 면서 말써을 증폭시켜 온 문제가 종식되었다. 그러한 타협의 결과 가능해진 두 나라의 공동 번영이 분쟁의 씨앗이 되 었던 땅덩어리 정체의 가치보다 수천 배 컸음을 후세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따라서 발표를 할 때에는 무엇ㅇ르 말할지, 그이고 그 말ㅇ르 어떻게 해 야 할지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그것ㅇ르 어떻게 보여 줄 지에 관해서도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시각 자료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덧붙일 점이 있다. 그런 자료를 사용하 여 할 때에는 반드시 미리 연습을 해보아야 한다. 말하는 중간에 기재에 말썽이 생겨서 헤매게 된다면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하려던 것이 오히려 일을 망치고 만다. 챠트를 펼쳐 놓고는 그 앞을 당신이 가로막고 선다든가, 환등기의 슬라이드를 잘못 끼워서 화면이 거꾸로 나오게 되는 것도 짜증나 기는 마찬가지다. 스텐젤 화법 : 초점을 흐리는 기교 시각 기재는 당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 만 때로는 무언가 모호한 점을 남겨 두는 것이 당신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 도 있다. 이런 일에 관한 전문가는 물론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은 태초부터 애매 모호한 대답을 선호하여 왔다. 특히 어떤 일 또는 말 때문에 책임지고 싶지 않을 때일수록 그들은 질문 을 요리조리 돌려 아무 뜻도 없는 대답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하지만 이런 일에 있어서 내가 보기에 역사상 최고의 챔피언은 정치인이 아니다. 케이 시 스텐젤이 뉴욕 양키즈 팀의 감독을 맡고 있을 때 그는 정말 그 방면의 도사였다. 말은 많이 하지만 듣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는 ㅣ술을 케이시는 거의 예술의 정치까지 승화시켰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질문의 초점을 흐리기 위해서, 그리고 심지어는 질문자를 헷갈라게 만들기 위해서 그 기교를 자주 사용했다. 물론 분명히 말하고자 할 때면 그는 누구보다도명료하게 마했다. 하지만 그가 일단 이 전략을 써야할 때 라고 생각하면,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자동적으로 허풍선으로 변화했다. 그 의 말투가 하도 유명해져서 '스텐젤의 화법'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 다. 그가 한 말 중에 걸작도 많지만 1958년 7월 9일 미국 상원 소위원회에 출석하여 한 것이 그 중에서도 최고다. 그 위원회는 '공정 거래 및 독점 금 지 소위원회' 였는데 의장은 테네시 출신의 에스테스 기포버 의원이 맡고 있었다. 당시 메이저 리그는 1920년대에 내려진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공정거래 법의 적용을 면제받고 있다. 이 면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야구계에 서는 법안 하나를 제안 했는데 그 법안이 상원에서 심의 중이었다. 스텐젤 은 증인으로 상원에 불려 나가게 되었다. 그와 함께 소송된 사람 가운데 에는 미키 맨틀도 있었고 그 밖에 선수 여러명이 그 자리에 나가 각 티므 니 입장을 대변했다. 키포버 의원이 스텐젤에게 맹세코 그 법안ㅇ르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다 음은 이에 대한 스텐젤의 대답 가운데 일부다. 저, 그 문제에 대하여 꼭 이 자리에서 대답을 해야 한다면, 내 생각에는 그 저에서 야구계가 선수들의 협조 덕분에 매우 향상되오 왔다고 봅니다. 지금 나는 연금에 가입해 있지는 않습니다. 여기 나와 같이 온 젊은이들 은 연금에 가입되어 있지요. 그들은 자기 팀을 대표하고 떠한 동료 선수들 을 대표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연금에 가입하지 않았고 또 내게는 지금 연 금이 나오지도 않기 때문에 말하자면, 오 하느님, 그에 관해서도 여기서 한 마디 해야겠지만서도, 어쨌든 선수들 한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 수들에 관하여 말하자면 내가 할 말이 바로 그 점이죠. 즉, 그들에게는 잘 짜여진 연금제도가 있다는 점 말입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젼 덕분에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노후에 지 불할 돈ㅇ르 마련할 길이 없었을 겁니다. 이 대답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키포버 상원 의원이 채근했다. '스텐젤씨, 내 질문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군요.' 별명이 '말 도사'인 스텐젤은 이렇게 받아 넘겼다. '맞습니다. 의원님. 잘 보셨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 질문에 완벽한 대답 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키포버는 분명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스텐젤 선생, 내 질문은 왜 야구계가 이 법안의 통과를 원하느냐는 것이 요.' 이에 스텐젤은 또 다시 자신의 전략을 구사했다. 기어이 ㅏㄹ해야 한다면 모르겠다고 할 수 밖에 없겠네요. 하지만 내 생 각에 그들이 그 법안을 원하는 까닭은 야구계의 시각에서 볼때, 다른 종목 에 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야구 경기가 계속 이루어지고 야구계 에서 구기 경기 중에 선수들에게 가장 좋은 대우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 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종목에 대해서는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야구예에 몸담고 있을 뿐 입니다. 야구계는 지난 백 년 동안 어 떤 분야보다도 깨끗했습니다. 텔레비젼 중께료니, 야구장에서 벌어드이는 수입이 얼마니,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일단 접어두어야 할 겁니다. 나로서는 자세히 모르는 일이지요. 내 이야기는 요즈음 야구 선수 들이 여러 면에서 향상되었다는 것입니다. 키포버 상원 의원은 스텐젤이 말을 이어 갈수록 답답해지기만 했다. 하 지만 자신이 한 질문에 대한 답은 얻어야 했기 때문에 스텐젤을 포기하고 이번에는 맨틀에게 물었다.증인석에서 맨틀이 스텐젤의 바로 옆에 앉았기 때문이였다. '맨틀씨, 독점 금지법을 야구에도 적용해야 할지에 관해서 어떤 견해가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미키는 탁자위의 마이크를 향해 몸을 조금 수그리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 다. '제 생각에도 케이시의 생각과 똑같습니다.' 7. 내가 만난 최고의 게스트, 최악의 게스트 내가 강연하러 돌아다닐 때마다 갖아 자주 듣는 질문은 ' 당신 쇼에 출 연한 게스트 중 누가 가장 훌륭했고 누가 갖아 형편 없었나요?' 이다. 이 장에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보려 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 대답으로부터 말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 교훈ㅇ르 얻을 수 있기 바란다. 훌륭한 게스트가 되려면 게스트의 잠재적 가치와 실제 행동을 평가할 때 나에게는 네 가지 기준 이 있다. 프로듀서와 내가 다음 프로그램에는 누가를 초청할지 궁리할때 처음 고려하는 것은 물론 그 날의 화제와 상대의 스케줄이지만, 그 다음에 는 이 네가지 기준이 핵심적인 고려 사항이 된다. 그 네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은 틀림없이 쇼를 빛내게 된다. 적어도 그 중 세 가지는 갖추고 있어 야 초청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자신의 일에 대한 열의 2.자신의 일을 시청자에게 분명하고도 흥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 그 리하여 시ㅓ자로 하여금 그 일에 관하여 좀더 알고 싶어하도록 흥미를 유 발 할 수 있는 능력 3.무엇에 관해서이든 약간 열이 바친 사람 4.유머 감각, 자신의 약점에 관해서도 툭 털어놓고 농담을 즐길 수 있으 면 더욱 좋음. 토크 쇼의 사회를 잘 보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화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래리 킹 라이브)는 나에 관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만일 빌 클린 턴이 출연하여 한 시간 동안 나에 관하여 물어본다면 나로서는 재미있겠지 만 제작자들 마음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관하여, 특히 자신의 일에 관하여 나름대로 열의 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게스트로는 적격이다. 하지만 이 점은 토크쇼의 게스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저녁식사 또는 칵테일 파티에 초대되었을 때에도 그런 점을 갖춘 사람이 환영받게 될 것이다.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어떻게 대화를 잘할 수 있겠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둘 사이에 관련이 있는 경우가 종종있다. 집앞에 쌓인 눈을 언제 치워 줄 거냐고 시청 또는 법원에 가서 한바탕 싸 우고 온 사람은 대담 프로에서 누구보다도 생동감 있게 말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하려 하는데 계산대의 직원이 자기는 다섯시에 퇴근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가서 계산하라고 하면서 가 버 렸다고 하자. 그럽 경우 화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와 비슷한 경우를 한두 번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따라서 대화가 끊기지 않고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고의 게스트 그 네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사람을 들라면 나는 언제나 프랭크 시나트 라를 든다. 그가 자기 일에 열의를 가지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ㅇ이 틀 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자기 직업에 관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뉴저지주의 호보켄에서 자라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수 많은 일을 겪었다. 그 일들이 관하여 항 마이 꽤나 많은 것이다. 그는 대체로 뉴스 미디어를, 특히 기자들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 만 토크쇼라면, 게다가 그 사화자에 대하여 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시나 트라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그런 자리라면 그는 어떤 질문에 대헤서도 대답을 꺼리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 현재, 직 업, 경력, 음악계 등에 관하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럴때 그가 하는 대 답에는 실질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시나트라가 괴팍하고 성질이 못돼먹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좀 기분 나쁜 것을 물어 보았다가는 욕이나 먹기 쉽상이라고 생 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은 매우 중요한 점을 놓치게 된다. 시나트라 역시 그 나름의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자신에 관한 농담이더라도 시청자를 유쾌하게 할 수 있다면 전혀 꺼려 하지 않는 다. 그가 게스트로 출현하여 털어놓은 이야기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 다. 그가 헐리우드의 체이슨즈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데 돈 리틀즈가 와서 무언가 부탁 할게 있다고 했다. 돈은 그때 결혼한 직후여서 그 식당에 처 가쪽 사람들과 같이 왔다고 했다. '프랭크, 저기 저 사람들과 인사를 좀 나누시지 않겠어요?' '물론 그럴 수는 없지. 안 되고 말고. 그들더러 이쪽으로 오라고 해.' 그러자 돈은 만일 프랭크가 그쪽 테이블로 가서 인사를 나누어 주면 자 기 위신이 좀더 서겠다고 부탁했다. 그래서 시나트라도 동의하고 그렇게 했다. 시나트라는 식당의 홀을 가로질러 돈의 처가 사람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로 가서 돈의 등을 두드리면서 '훌륭한 분을 만나 뵙게 되서 영광' 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돈 리클즈가 웃으며 쏘아붙였다. '프랭크, 무게 좀 그만 잡아요. 이건 그냥 사석일 뿐에요.' 프랭크는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주 즐거워한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가지고 유머를 부리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질이야말로 토크 쇼 사회자들이 원하는 바인 것이다. 이제 내가 대담 해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게스트 몇 명을 소개 하기로 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이 네 가지 기준 중에서 적어도 세 가지는 갖추고 있다. 헤리 트루만. 플립 윌슨이 표현한 바와 같이 트루만은 언제나 있는 그대 로다. 그는 나의 기준 네 가지 모두를 갖춘 극소수의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항상 자기 일에 열의를 가지고 있었고, 과거든 현재든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꿰뚫고 있었다. 이해하기 쉬운 보통 언어로 자신을 표현 할 줄 알았으며 무언가에 대하 여, 특히 언론과 공화당에 대하여 약이 올라 있었다. 더욱이 그는 자기 자 신에 관한 농담이라도 배꼽 잡고 웃을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테드 윌리암스. 그는 내가 본 야구 선수 중에서 가장 위대한 타자였는데, 동시에 내가 초청한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게스트에 속하기도 했다. 그 역시 트루만이 갖추었던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는 야구 계의 웨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윌리암스로 하여금 훌륭한 게스트가 될 수 있게 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 지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그가 뉴스 미디어를 아주 싫어했다는 점이다. 미디어의 각광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출세에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미디어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데 뉴스 미디어를 싫어하는 것은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런 사람이 훌륭한 게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윌리암스는 일단 타석에 들어섰다 하면 언론의 보도에 전혀 신 경을 쓰지 않았다. 지난 50년 동안 한 해에 4할대의 타율을 기록한 타자는 오직 그 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위대한 업적을 그는 순전히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 내 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나와서 기자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 면 -그는 가자들을 '키보드 앞에 앉은 흑기사'라고 불렀다.- 그에게 동감하 는 시청자들의 전화로 방송국의 북새통을 이루었다. 정치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에도 그의 견해는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 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가고 없으니 담나 명복을 빌 뿐이다. 나는 그를 게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사랑한다. 리차드 닉슨. 내 기준 가운데 네번째인 유머 감각에 관한 한 닉슨은 겨 우 합격선에 들까 말까 할 정도다. 그가 자신에 관한 농담을 꺼리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런 농담을 잘 하지 못할 뿐이다. 닉슨은 자신이 농담을 잘 못한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농담을 할 때에는 농담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뻔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사람들을 웃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기준에 관해서는 너무나 탁월하다. 그는 게스트 로서 아주 훌륭하고 따라서 그가 출현하게 될 때마다 나는 항상 환영했다. 분석력에 관한 내 쇼에 출연한 사람들 가운데 그가 최고일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그것을 분석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만일 방송국 하나를 소유했다면 닉슨을 고용하여 회 사의 전반적 운영 실태와 장기 목표를 분석하여 어떻게 하면 그 목표를 달 성할 수 있을지 답을 구했을 것이다. 1993년과 1994년에 북한 정부가 미국에 가한 위협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 지 그에게 물어 보았다면, 그 모든 일에 대하여 상세하고, 분명하고, 흥미 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훌륭한 게스트라면 갖추어야 할 다섯 번째 자질 하나를 닉슨은 추가로 겆추고 있다. 그는 여러 다양한 분야에 상당할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 연예계, 대중 가요 또는 야구에 관한 화제가 나오더라도 그는 막힘이 없 다. 그 중에서도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계에 특히 열의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 가진 몇 차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스포츠 중계 아나운서가 되었을 거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그는 한때 사위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와 함께 리틀 야구 팀 하나를 운 영한 적이 있다. 또한 그는 야구 경기를 TV를 통해서ㅁ 보는 것이 아니라 종종 경기자에 직접 가서 구경하기도 한다. 야구장에 갔을 때 닉슨은 두 가지 점에서 괄목할 만하다. 그 두 가지는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째, 그는 잘 차려입은 부자들끼리 어울려 앉아 있는 로얄 박스가 아 니라 스텐드 맨 아래쪽에 자리 잡는다. 둘째, 그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 리를 뜨지 않는다. 이 다섯 번째 자질 -다양한 분야에 관한 흥미- 로 말미암아 닉슨을 어 떤 토크 쇼의 사회자라도 환영하는 존재가 되었다. 리차드 닉슨이 출현한 다면 중간에 화제가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애틀라이 스티븐슨. 스티븐슨이 내 쇼에 출현한 것은 내가 마이애미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는 케네디 대통령 시절이였는데, 당시 그는 유엔 대사로 일하고 있었다. 대담의 서두에서 그는 자신을 '대사님' 이라 부르지 말고 '주지사님'이라고 불러달라고 내게 요청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전에 일리노이 주지사를 지냈기 때문이었다. 말할 때의 스티븐슨은 발음이 분명했고 파란 눈에서는 눈동자가 이글거 렸다. 비록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 낙선했지만, 두 번 다 상대가 아이젠하 워였던 만큼 누군들 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선거에서 이기지는 못 했지만, 사회 보장을 비롯하여 당시 미국 젊은이들이 요구한 문제들을 공 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스티븐슨이 처음이다. 그 다음 성거에서는 케네다가 그러한 정책을 표방하여 당선되었다. 내게 투표권이 나오고 처음으로 투표한 대통령 선거에서 나는 그를 찍었다. 그 런 사람이었던만큼 내 쇼에 초대하게 된 것은 나로서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개인적인 존경을 표시했다. 내가 게스트에게 그렇게 한 것은 내 일생을 통하여 그 뿐이다. 대담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주지사님, 제가 방송중에 이럼 말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입니다만 저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주지사님을 찍었습니다. 지사님은 저의 영웅입 니다. 저는 지사님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티븐슨은 어떤 경우에나 침착라게 기지를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내 가 그렇게 말을 하자 그가 기지를 발휘할 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잔주름 진 눈에서 그의 눈동자가 반짝 거렸다. 그리고 그는 이ㄹ게 응수했다. '우리가 한 번도 만난 일은 없지만 선생을 처음 보자마자 사람들의 성격 판단을 잘하겠다는 인상을 받았지요.' 그는 내가 대담해 본 상대 중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심오한 지성과 훌륭한 대화 솜씨를 겸비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서 는 당시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사실 그는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잘난 척'한다는 악평의 희생물이 되 고 만 것이다. 보통 미국인의 평균 지성을 능가한다는 전이 그에게는 도움 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가 되었다. 하지만 게스트로서 그런 점들은 대담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다만 네 가지 기준 가운데 한 가지는 그에게서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즉 그는 결코 화를 내지 않았고, 무슨 아야기를 해도 흥분하는 적이 없 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기준은 그가 많이 가지고 있는 자원이었다. 그 역 시 자신의 실수를 들먹이는 농담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인물이었 다. 이 점은 사실 훌륭한 사람들에게 공통된 한 가지 특징을 그도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 주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지나친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말은 어쩌면 모순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한 나라 또는 이 세 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여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그 정 반대인 경우가 많다. 정부, 기업, 연예계, 기타 분야 에서 지도적 지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바는 한 자 리에서 한 가지 일을 너무 오래 그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경우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너무 큰 비중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이 점은 훌륭한 게스트 모두에게 공통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다. 로버트 케네디. 보비 역시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 였다. 자기 자신에 관하 여 농담을 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웃길 줄 알았고 그럼으로써 그는 점수를 땄다. 그가 워싱턴 정계에서 얻은 평판은 '매정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는 그를 인터뷰하면서 전혀 그런 인상을 받지못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 면 사람들은 놀라겠지만, 나는 그를 가장 재미있는 게스트 중의 한 사람이 라고 평가한다. 그가 웃을 때의 표정은 내가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서 최고였다. 마리오 쿠오모. 현재 미국에서 연설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 는다면 아마도 마리오 쿠오모라고 대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원고를 미 리 준비하고 하는 연설뿐만 아니라 원고 없이 하는 연설에서도 탁월한 능 력을 보인다. 그와 대담을 하다보면 내가 질문을 던져 놓고도 어느 새 나 자신이 그가 제기한 문제에 관하여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1984년에 샌프란시스코 에서 열렸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가 그 유명한 기조 연설을 할 때에 나 도 청중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그 전당 대회만큼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느껴 본 적은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다. 쿠오보가 연설할 때 나는 오클라호마 주에서 온 대위원들 옆에 서 있었 다. 그 중 한 사람이 '저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연설을 듣다보니 내가 왜 민주당원이 되었는지 분명해 지는군.' 하고 말했다. 쿠오 모의 연설에는 바로 이런 종류의 효과를 자아 낼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 다. 무대에 올라가 연단 앞에 서서 말할 때나 아니명 토크 쇼에 출현하여 게스트로 자리했을 때나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쿠오모가 내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해 준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1950년데에 그는 피츠버그 파이러츠에 소속된 마이너 리그 팀에서 외야수 로 뛰고 있었다. 하루는 경기 중에 타석에 나갔다가 투수의 공을 머리에 맞고 부상을 입어 그 후 두 경기를 쉬어아 했다. 그 동안 연습도 못하고 하릴없이 앉아서 파리나 잡아야 했다. 그러고 있는데 당시 팀의 총감독을 맡고 있던 브랜치 리키가 찾아와 충 고 한 마디를 해 주었다고 한다. 리키는 내가 어릴 적에 열광하던 브루클 린 템에서 코치로 있었던 사람인데 사람 보는데 천재적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리키는 쿠오모의 인생 행로에 관하여 이야기 했다. '이보게, 자네는 절대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할 수 없을 거야. 그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거 든. 그 대신 자네에게는 좋은 머리가 있지 않나. 그러니 법과 대학에 진학 하게.' 마리오는 결국 리키의 충고를 따랐다. 그리도 그 일화에는 그의 성격에 포함된 두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즉,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충고를 들었을 때 그것이 도움이 되는 충고라 는 점을 알아차릴 줄 알았고, 아울러 자신의 재능과 한계에 관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두 속성은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대 부분 공유하는 특징이다. 빌리 그레함. 이 사람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워낙 대단한 인물이기 때문 에 어떤 토크 쇼에서도 환영받는 게스트가 될 것이다. 물론 내 쇼에서도 그는 일등 게스트 중의 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보통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어떤 일 에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오히려 화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든 도와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는 점잖으면서도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다. 그의 관심 분야 또한 광범 위하다. 1994년 4월에 그는 북한을 방문라고 돌아왔는데 그 며칠 후에 (래 리 킹 라이브)에 출현했다. 북한의 핵 무기 개발 시도를 둘렀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 마찰이 불겨지 고 있던 참이었는에, 그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내 는 모종의 메시지를 받아 가지고 귀국했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석 달 전의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 메시지의 내용을 공개헤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 마디로 잘라서 '인된다'고 대답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을 테니 나 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우리는 주로북한의 대체적 실정에 관하여 그리고 그가 자신의 종교적 메 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하여 구상하고 있던 새로운 계획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담을 통하여 그레함 박사는 뛰어난 대화 솜씨를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그의 말은 언제나 듣는 사람을 매료시키고, 그안에는 항상 풍부한 내용과 정보가 들어 있다. 밀리 그레함과 나는 게스트와 사회자로서 짝이 잘 맞는다. 내 생각에는 내가 불가지론자라는 사실이 거기에 상관되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무 신론자가 아니라 불가지론자 말이다.(무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불가지론자는 단지 모를 뿐이다). 내가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을 물오보기 좋아 한다는 점은 불가지론 과 상관이 있다. 방송 또는 사석에서 나는 자주 여러 사람들에게 신에 관 하여 질문을 던진다. 이와같이 불가지론자들은 계속해서 왜 그런지를 묻기 때문에 인터뷰를 진행하기에 적격이다. 특히 상대가 성직자라든가 신학자일 때에 더욱 그렇 다. 반면에 무신론자는 이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가 때 문에이다. 불가지론자의 태도는 '나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호기 심을 가지고 '왜' 그런지를 계속해서 물어 본다. 그 질문에 대하여 빌리 그레함은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성심껏 답변한다. 지금까지 TV를 통하여 복음을 전파한 사람은 여 럿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이를 들자면 단연 빌리 그레함일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있기 때문에 내 쇼에서는 그를 자주 초청해 온 것이 다. 마이클 밀켄. 미국 증권과 금융계를 뒤흔든 상호 부금 사기 사건과 관련 하여 여섯까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감옥에 간 소위 '정크 본드의 황제'도 토크 쇼에 나왔을 때에는 훌륭한 게스트였다. 그 사건과 관련하여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관계없이 이 점은 사실이다. 그는 내가 여지껏 만나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다. MCI, 터 너 방송회사, 타코 벨 및 기타 미국의 대기업들 사이에 합병을 성사시키면 서 보인 그의 수완이 이를 증명한다. 그와 대담을 할 때면 항상 그의 뛰어난 대화 솜씨를 새삼 느끼게 된다.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 솔직하면서도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다. 요즈음 그는 고환암의 치료법을 찾는 일에 자신의 시간, 돈, 정력 및 창의력을 모 두 쏟아 붓고 있다. 또 그 자신이 병마와 싸우고 있기도 하다. 데니 케이. 데니 케이를 한 마디로 설명하라면 데니 케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우리 둘이 만나게 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하는데, 브루 클린의 동향 출신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를 알게 되면 누구라도 그 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데니 케이는 무대 또는 은막에서 연기 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항상 변함이 없다. 위대한 연기자일수록 항상 자신의 진실된 모습대로 살아가 는 경우가 많은데, 데니 케이는 확실히 그런 사람중의 하나다. 그가 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현했을 때의 이야기인데, 어떤 여성이 전 화를 해서 그에게 물었다. '케이 시하고 직접 말하게 되리라고는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 어요. 그래서 물어 볼 말도 없네요. 그 대신 무언가 말해 주고 싶은 것이 하나 있어요. 제 아들이 워낙 케이씨를 좋아했어요. 그 애는 케이 씨처럼 되고 싶었나 봐요. 맨날 케이 씨처럼 차려 입고 흉내를 냈지요. 그 애한테 는 이 세상이 온통 케이 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되었나 봅니다.' 핵심은 그 다음에 나왔다. '그런데 그 애는 열 아홉에 전사했어요. 해군 병사로 참전했다가요. 해군 에서는 가지고 있던 유품 하나를 집으로 보내왔는데, 그것이 바로 케이 씨 의 사진이었어요. 내무반에 남겨 놓은 것 중에 사진은 그것뿐이었대요. 그래서 나는 그 사진을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답니다. 그 애 사진 옆 에 붙여서 넣었어요. 지난 30년 동안 난마다 그 두 장의 사진을 수건으로 닦아 왔어요. 저는 케이 씨한테 이 이야기를 꼭 알려 주고 싶었어요.' 그 동안 스튜디오에서는 데니 케이가 울고 있었다. 나도 그랬고 말하는 그녀도 그랬다. 그가 눈물을 삼키고 물었다. '아드님이 좋아하던 노래가 있었나요?' '예, 디나를 가장 좋아했어요.' 데니 케이는 그의 히트곡 중의 하나인 그 노래를 불렀다. 한국 전쟁에서 금성무공훈장을 받은 병사의 어머니에게 들려 주었다. 악단도 없이, 피아노 반주도 없이 그냥 혼자 목소리만으로 울먹이면서 불렀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적인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방송을 해 왔지만 그토록 감동 깊은 경험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데니 케이의 열린 마음 때문이었다. 물론 이 경우에 그가 자신에 관하여 무엇을 토로한 것은 아니다. 대신에 그는 상대방의 느낌에 공감하고 그러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막 상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로젠 아놀드. 나는 로제을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그만큼 나는 그녀의 딱 한 처지가 안됐다고 느낀다. 그녀에게는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들이 많았다. 동시에 그녀는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사 람이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다양한 면모가 있다. 그녀는 일류 코메디언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전국 방송망을 타는 TV 쇼 프로그램 두 개의 제작자이며 그 밖에 여러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로젠을 인터뷰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녀가 자기 일에 얼마 나 열의를 보이는지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녀의 유머 감각 또한 자기 자신에 관계되는 농담이라고 해서 꺼리지 않는다. 그녀로 하여금 열받게 하는 일이 많다는 점 또한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래리 킹 라이브)에 그녀가 가장 최근에 출현했을 때의 일인데, 그녀는 아주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TV출현 경험이 그토록 많은 사람이 저질 렀다고는 믿기 힘든 정도의 실수였다. 화장을 너무 짙게 한 나머지 눈을 똑바로 뜨지 못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카메라응 정면으로 바라보지도 못했 다.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는 것은 내가 항상 강조한 점이다.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대화에서도 그렇지만 TV시청자를 향해 말할 때에도 마찬가지 다. 화장을 진하게 한 정도는 시청자들이 대충 넘어가든지, 아니면 기껏해 야 반쯤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눈동자를 맞추지 못한다면, 특히 로제과 같이 대중 사이에 논란 을 불러 일으킨 사람이라면, 시청자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ㅇ르 남기게 된 다.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시청자와 카메라를 정면으로 대하 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최악의 게스트 들을 만한 이야깃거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오 놓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초 청한 사람들이 막상 나와서는 형편없거나 별볼일없는 이야기로 일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에서도 몇가지 배울 점은 있다. 그 교훈이 토 크 쇼 사회자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적이 되었든, 감정을 울리는 것이든, 철학적 성찰이든, 똑같은 아야 기를 하고 또 하는 사람은 게스트로서 낙제다. 아니타 브라이언트에게도 게스트로나와서 훌륭하게 대화를 끌어 나갈 자 질은 있었다. 실제로 내 생각에 그녀는 대중 앞에 처음 서기 시작할 때만 해도 말을 곧잘 했다. 하지만 내 쇼에 출현했을 당시에는 이제 막 마음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 한 종교적 열정에 너무나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그녀 개인으로 보아서는 그보다 중요한 일이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종교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 들은 훌륭한 게스트가 되지 못한다. 그저 종교나 신에 관해서만 말하려 들 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그 한가지 주제말고 다른 화 제로 옮겨 가기가 지극히 힘들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주제에 관하여 대화 를 나누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은 도무지 다른 사람으로서는 알아 듣기 어 렵다. 봅 호프도 비슷한 이유로 내게 실망을 안겨 준 적이 있다. 호프의 경우 에는 한 가지 주제에 매달렸기 때문은 아니고 말을 줄곧 한 가지 방식으로 만 했기 때문이다. 무슨 질문을 하든지 그는 마냥 농담으로만 받아 넘겼던 것이다.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그는 비공식적 사교 모임에서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다만 카메라 앞에 서기만 하면 그에게는 연기하려는 충 동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을 물오 보든지 그는 짤막 한 문장 하나로 응수했다. 그렇다고 해서 추상적안 성찰을 통한 경구를 말 한 것도 아니다. 무언가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화제를 꺼내어 물어 보는데도, 그 의 대꾸는 마낭 농담조였다. 코메디언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 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으로서는 때때로 농담말고 다른 이야기 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 윌리암 러셔는 네 가지 기준 가운데 세가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훌륭 한 게스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인 나를 굉장히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형 편없는 게스트다. 그 대담을 지켜 본 시청자들 역시, 극우파에 속하는 사람 들을 제외하고는,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전에 (국민 평론)을 발행한 바 있는 정치 평론가다. 그의 평론은 독설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 다. 러셔가 나를 '그랭글' 했다고 하면 브루클린 사람들은 금방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랭글'은 사전에 나오는 단어가 아니다. 브루클린에서만 쓰이는 방언이다. 누군가의 성겨을 버아 넘기려니 칠판을 손톱으로 긁을 때 나는 소리를 들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 때 쓰는 말이다. 러셔가 형편없는 게스트라는 마릉ㄴ 그의 정치적 입장이 극우로 치우쳤 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파의 목소리를 목청 높여 대변하는 사람 가운데에 도 훌륭한 게스트는 많다. 뉴트 깅그리치, 패티 뷰캐넌, 댄 퀘일 등이 그런 사람이다. 그들의 견해는 러셔의 견해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러셔와는 달리 그들은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옆에 합석한 다른 게스트와 전화한 시청자들이 피력하는 다른 입장을 경청할 줄 안다. 러셔에게는 그 점이 결여된어 있다. 게다가 그에게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인 필 맥콤이 전한 바가 사실이라면, 리 차드 닉슨이 별세했을 때 러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닉슨에 대해서 한 말 중에 가장 심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은 마 로 살리도마이드 기형아에게 두 팔이 없는 것이 그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닉슨에게 원칙이 없는 것 여시 그의 잘못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을 프랭크 맨키에비치의 경우와 대조해 보라. 맨키에비치는 로버트 케네디의 언론 담당 비서로 일했던 사람인데, 러셔가 오른쪽으로 치우친 만큼이나 왼쪽으로 치우친 사람이다. 그는 닉슨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닉슨은 미국에서 정치로 입신한 사람들 중에서 스스로에 대한 긍지가 가장 낮았던 것 같다. 말하자면 그는 미국 정계의 윌리 로만 이다.' 윌리 로만은 '세일즈 맨의 죽음'에 나오는 인물로서, 사람들이 자기를 좋 아하기는 하지만 '아주' 좋아 하지는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이다. 맨키에비치의 평에는 균형이 잡혀 있다. 미국인 가운데 그 평을 수긍할 사람은 수백만 명에 이를 것이다. 1960년대의 케네디 가의 두 형제 존과 로버트를 보좌했다는 경력은 걷 닉슨의 추종자, 심지어는 닉슨 본인과 목 숨을 걸고 싸웠음을 의미한다. 당시 두 진영 사이의 싸움은 불꽃이 튀는 것이었다. 멘키에비치는 그 싸 움의 한 가운데에서 투쟁했다. 그런데도 그는 닉슨의 심보를 증오한다든가 또는 그 작자는 악당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 인간 또는 대통령으로서의 닉슨에 대하여 차분하고도 사려깊은 평가를 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평가는 그 시대를 함께 겪어 온 미국인 다수가 고개를 끄덕 일 만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러셔의 평은 닉슨의 면모보다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어떤 종 류의 인간인지를 보여 주고 있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러셔조차도 내 가 겪어 본 최악의 게스트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로버트 미첨이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딱 한번 내 TV쇼에 출현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가 그날 밤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가끔 영화에서 까만 모자 를 쓴 악당역을 맡은 적도 있긴 하지만, 대개 미첨은 말이 없으면서도 강 인한 존 웨인 스타일의 역을 맡아 왔다. 둘 사이의 차이는 웨인이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는 한편도 없다는 점 뿐 이다. 그리고 웨인은 언제나 흰 모자를 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말 대신에 행동으로 무언가응 보여주는 남자다운 서부 영웅의 역을 연기했다. 그렇지 만 그건 단지 영화의 배역을 따름일 거다. 실제로는 어떨까? 원래 그렇게 말이 없을까? 웨인을 인터뷰해 보지는 못했지만 미첨에게는 말을 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내가 그에게 말을 내가 그에게 말을 했을 뿐이다. 나를 약올리려 그랬는지, 즐겁게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었는지, 그날 밤 거기 나 오고 싶지 않았는지, 저녁 먹은게 체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 었는지는 지금도 알쏭달쏭한 일이다. 이유야 무엇이건 간에 그 사람이 말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대화는 마냥 다음과같은 식이었다. '존 휴스턴 감독와 같이 영화 찍을 때는 어땠나요?' '별문제 없었소.' '하지만 존 휴스턴 감독 밑에서 연기할 때와, 이를테면 존 스비스 감독 밑에서 연기ㅎ하는 데에는 뭐가 달라도 달랐을 어 아닙니까?' '아니 다를 거 없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대답은 복수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었다. 그런 데 그 다음부터는 그의 입에서 아예 한 단어밖에는 끌어 낼 수가 없었다. 뭐든지 '예', '아니', '응'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가장 유명한 배우 중에 한 사람이었던 로버트 드 니로 에 관해서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은 '만나 본 적 없소' 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실망했다. 시청자들이 실망할 것을 생각하 니 실망은 더욱 커졌다. 미첨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대중의 영웅으로써 거의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 점은 나 개인에게도 해당된는 일이다. 브루클린에서 허브 코헨이나 데이비 프라이드 등 친구들과 같이 토요일 오후에 벤슨 극장에 가서 영화 보던 시절에 미첨은 우리 편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으로 하여금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혼자서 틀오박혀 바깥 세 상과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일이란 참으로 고통스 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로버트 미첨의 경우는 한 가지 교훈을 말해 준다. 당신이 역사상 ㅈ가장 뛰어난 말꾼이 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고문을 가하거나. 뇌물을 쓰는 일조차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의 입을 열게 하기는 불가능하 다. 그런 경우에는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다른 사람을 찾이 보는 것이 현 명하다. 만일 당신이 토크 쇼 진행을 맡고 있다면, 프로듀서에게 그 사람을 다시 초대하려고 애쓸 것 없다고 말해 주는 것이 조금 더 현명할 것이다. 8. 말을 할 수 있는 한 실언은 나온다. 언어가 있어서 의사 소통을 시작한 때부터 인류는 실언을 해 왔다. 오늘 날과같이 매스컴이 발달한 시대가 그 먼 옛날과 다르다면 실언이 좀더 극 적으로 그리고 규모가 크게 일어난다는 점일 것이다. 라디오 방송이 처음 전파를 타기 시작한 이래 방송인들의 실수는 방송의 역사를 풍부하게 해 준 일면조차 있다. 초창기의 유명한 실수로는 해리 본젤의 것이 있다. 대서양 연안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전국의 청취자들이 귀를 기울인 가 운데 그는 허버트 후버 대통령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메리카 합중국의 데텅령 후버트 히버씨를 소개합니다.' 물론 실언은 방송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누구 나 하는 것이나 만큼 실언을 했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는 없다. 당신 말을 듣는 사람들이 친절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가지도, 얼른 실수를 떨쳐 버리 고 하던 말을 계속 하도록 하라. 해리 본 젤 역시 얼른 떨쳐 버렸다. 후버의 이름을 잘못 부른 실수는 그 뒤 방송계에서 전설적인 실수가 되었지만, 그 때문에 그의 경력에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 성공하였고 나중에 텔레비젼이 등장하자 그쪽에서 도 성공하였다. 그는 사회자로서 명성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성 공하였다. 1950년대에 방송되었던 인기 프로그램 '조지 번드 앤드 그레이 시 앨런 쇼'에 나오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말 잘하는 비결에 관하여 책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는 실수가 찾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나간 나날을 돌이켜보 노라면 자랑스러운 일도 있는 반면에 잊고 싶은 일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일수록 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다. 실언이 주는 부정적 암시 지금 와서 생각해 보아도 가장 창피한 실수는 마니애미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플레이저 빵집의 광고였는데 빵집에서 내세우는 구호는 '빵 중에서 최고의 빵집' 이라는 것이었다. 새로 내놓는 광고의 맛을 보다 신선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광고주와 대행 사에서는 그 광고를 생방송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을 내가 맡게 되었 다. 저녁 뉴스 중간에 나가는 광고로서 TV 방송국 세트를 돌아가며 해야 했다. 첫번째 방송국에서 광고 문안을 주욱 읽고 나서 마무리로 그 구호를 맡아했다. '방 중에 빵은 플레이져 빵집.'(Plager Brothers - The Brest in Bed) 이 정도면 실수로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런 실수를 더 이상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두번째 방송국에 가서도 똑같이 하고 말았다. 세번째는? 거기서도 마찬가지. 이렇게 된 까닭은 첫번째 실수를 저지르고 난 다음 또 '그렇게' 할까 봐 너무나 걱정이 컷기 때문이다. 그 실수가 입 안에서 뱅뱅 돌고 있으니 또 다시 혀가 그렇게 돌아갈 수 밖에. 실수를 했을 때 얼른 그것을 떨쳐 버리 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실수를 돌이켜 생각하고 다시 그 말이 튀어 나올까 봐 걱정하지 말 고, 그 실수가 없었던 듯 계속 나아가야 한다. 다시 그럴까 걱정하면 틀림 없이 또 그렇게 된다. 실언이 주는 아미에 걸리기 때문이다. 조지 번즈는 친한 사람들에게 이와 비슷한 종류의 암시를 잘 거는 버릇 이 있다. 그의 보조역을 특히 잘 해 낸 코메디언으로 잭 베니가 있는데, 두 사람은 뉴욕 시의 동부 지역에서 자랄 때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 베니는 번즈가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에 들어오기만 해도 웃음을 터뜨리 곤 했다. 물론 번즈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즐겁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베니에게는 깊은 암시가 되었기 때문에 조지가 웃지 말라 고 할수록 그는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넬슨 에디와 듀엣을 이루어 인기를 끌었던 지넷 맥도날드라는 가수가 있다. 그녀는 일요일마다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저 녁 식사를 했는데, 한번은 번즈와 베니도 손님 중에 포함되었다. 그리고는 두 사람 사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이것은 전적 으로 조지가 시작하여 그렇게 되었다. 조지는 자기 보조역을 맡기기에 적당할 성싶은 사람을 보면 우선 암시부 터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니는 언제나 번즈의 조역을 맡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어이, 잭, 자네 이번 일요일 저녁 때 저넷 맥도날드네 집에 갈 건가?" "그럼 가야지. 내가 초대 거절하는거 보았나? " "그럼 저녁 먹은 다음에는 저넷이 노래 몇 곡 부르는 것도 알겠그먼." "당연하지, 거기 가는게 이번이 처음으 아니니까." 그런 다음에 번즈가 주의를 주었다. "그때 웃으면 안 돼." "웃을 이유가 있어?" "어쨋든 웃지 말라구." 일요일이 되었다. 번즈가 베니에게 전화해서 자기 차로 같이 가게 데리 러 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명심하라구. 웃으면 안 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저넷 맥도날드가 노래 부르려고 일어나자마자 베니 는 웃음을 못 참게 되었다. 그 옆에서 번즈는 꼬마 악마와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라스베가스의 무대에서 드 사람이 코메디를 할 때에 번즈가 그 냥 신문을 보는 양 앉아만 있어도 베니로서는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이런 종류의 암시 때문이다. 이 일화들을 소개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마음 속에 걱정이 자리잡을 여지를 마련해 줌으로써 어떤 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를 보이기 위함 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미 당신 자신 이 그 일이 일어나도록 부추가는 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 자체를 마음 속에서 몰아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는 집중력, 노력 그리고 결단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이다. 혀가 잘 안 돌아가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 실언의 전부는 아니 다. 그리고 모든 실언을 다 스스ㅗ의 노력에 의하여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예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마이애미 돌핀스 팀의 미식 축 구 경기를 중계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1960년대 후반의 어느 날 이었는데, 마이애미 팀이 버팔로 빌즈 팀과 경 기를 하는 날이었다. 경기의 실황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는 조 크로건이었 고 나는 해설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경기를 시작하기 작전에 돌풍과 함께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 다. 그 돌풍이 어찌나 강했던지 우리가 준바해 두었던 서류를 모두 날려 버렸다. 광고, 각종 통계, 성수 명단과 포지션 기타 등등 모든 자료가 날아 가 버렸다. 그것들이 아예 경기장 밖으로 멀리멀리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곧 경기가 시작되었다. 돌핀스 팀의 선공으로 시작되는 것을 진눈깨비 사이로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빌즈 팀의 선수들은 누가 누군지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계속 내리는 눈으로 말미암아 등번호가 보이지 않았고, 경기장 안의 야드 표시선 역시 금방 눈으로 덮였다. 참으로 속수무책이었다. 눈앞이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저 아래 운동장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잇는지 알아낼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한다? 따뜻하고 아늑한 마이애미를 출발할 때만 해도 우리는 경 기 상황을 정확하고 빠짐없이 마이애미의 청취자에게 전하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실황 중계라는 것이 무의미 할 것이었다. 먼저 우리는 이리 호 연안을 비롯하여 나이애가라 폭포 주변의 기상 조 건이 최악임을 청취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중계 방송을 시작했다. 그 중계 방송은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 는 아니겠지만 어쨋든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했다. "누가 공을 가지고 달려갑니다... 누군가 패스되는 공을 차단하여 떨어뜨 렸습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패스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그를 태클합니다... 쓰로졌습니다. 아닙니다.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군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우리에게는 아직 선수 명단과 포지셩 챠트가 없었다. 양 팀의 공격과 수비 진영의 선수, 등번호, 이름, 포지션 등을 표시하는 도 표가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경우에도 그것이 없이는 중계 방송이 지극히 곤란하다. 하물며 그런 악천후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그것이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스탭들에게 알려 그 자료를 한 벌 새로 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이 당연히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가 불라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문제였 던 것이다. 우리는 구장 꼭대기에 있었고, 그들은 맨 아래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마저 꽁꽁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제 1쿼터가 끝날 때까지 내내 조와나는 그런 식으로 중계할 수 밖애 없 었다. 날씨는 여전히 마찬가지 였지만, 제 2쿼터가 시작할 즈음에 엘리베이 터가 움직였다. 그 덕에 선수 명단과 포지션을 건네 받ㅇ르 수 있었다. 시 야는 여전히 진눈개비로 가려 있어서 선수 개개인을 확인 할 수는 없었지 만, 대충 어림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악천후가 우리의 잘못은아니다. 우리로서는 전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 는 상황에 처했을 따름이다. 그 때문에 당황했더라면 거기에 우리 자신의 실수를 자꾸만 더하여 사태를 악화시켰을 것이다. 우리는 청취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에게 그날 모든 말썽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래시켰다. 악천후가 문제의 근원이었고, 그것은 겨울 할아버지 의 잘못이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모두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돌핀스 팀과 관계된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돈 슐라 감독으로 부임한 직후에 있은 경기에서, 주전 풀백으로 뛰던 래리 송카가 부상을 입었다. 게임이 끝났을 때 나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인터뷰를 위해서 라커 룸 으로 갔다. 거기서 의무실에 누워 있는 송카를 보았는데 그가 손짓으로 나 를 불렀다. 슐라는 의무실에서는 인커뷰를 하지 못하게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때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송카와 나는 몇 마디를 주고받 았고, 그 대화는 그대로 벙송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라커 룸에 있던 슐라가 문틈으로 우리를 발견하고 내가 손에 쥐고 있던 마니크 역시 그의 시야에 잡힌 것이다. 슐라는 목이 찢어 져라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송카는 생방송중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능청을 떡고 있었다. "저사람이 지금 누구한테 소리지르는 거지요?" 슐라는 나를 밖으로 내쫓았다. 하지만 내게는 아나운서에게 준비된 비상 수단이 있었다. "이상 인터뷰를 마칩니다. 스튜디오 나오세요." 그날 저녁 모두 모여 파티를 하는 자리에서 돈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아까 그거 방송중이었나?" 내가 그렇다고 하자 슐라의 얼굴이 실망으로 덮였다. 팬들이 그 욕을 다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로는 다음과 같이 위로해 주었다. "걱정마, 돈. 아무도 당신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름은 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었 다. 마이애미에서 슐라의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아예 말도안되는 실수를 저지른 적도 있다. 역시 돌핀스 팀 경기의 TV 중계 방송에서 해설을 맡았을 때였다. 하프 타임이 되어 광고가 들어갈 시 점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만 것이다. "여러분 지금 볼티모어 콜츠 상회 관악 협주단의 시범을 보고 있습니 다." 어떤 상황에서도 쇼는 계속 진행하라 한 번은 라디오 쇼를 진행하면서 게스트에게 자녀는 몇이나 두었냐고 물은 적이 있다. 통제 실에서 이 말을 들은 스태프들은 기겁을 했다. 그 게 스트가 카톨릭 신부였기 때문이다. 나는이 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계속해서 결혼 생활의 언저리를 맴도는 질문을 했다. 그 신부가 마침내 신부들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낸다 고 나지막하게 말해줄 때까지 나는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왜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게 되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질문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냥 습관적으로 나왔을 수도 있겠 다. 대담의 초반에 청취자들에게 그 게스트의 배경을 간단히 알려 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까닭이야 어찌되었든지 그 질문은 어 리석기 그지없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 점을 깨닫자 나 역시 말문이 거의 막혔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하낟. 나는 곧장 다음 질문으로 넘어감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마이애미에서 독립 기념일 페스티벌을 하는 데 내가 그 사회를 맡게 되었다. 온갖 깃발이 펄럭이고 각종 음악이 준비 되고 클로드 페퍼 의원의 연설 순서도 준비된 성대한 행사였다. 행사가 워낙 거창해서 주최측에서는 무대를 두 개나 마련하여 약간의 사 이를 두고 붙여 놓았을 정도였다. 사회자가 소개되자 나는 무대위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그만 무대 사이의 틈에 발이 빠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는 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런 와중에서도 핸드 마이크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상황 에서 내가 힐 수 있는 최대한으로 행동했다. 즉, 그 와중에도 마이크를 이용하여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갑자기 내가 무대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군중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러므로 나의 그러한 대응은 적절했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내가 사라지 자마자 스페커에서는 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단지 무대에서 떨어졌을 뿐입니다. 걱정하지는 마세요. 다친 데는 없으 니까요." 잠시 영문을 몰라 어리둔절하던 군중들은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그 사 건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오히려 즐겁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 이 내게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잘 끝 났다. 실수아니면 그보다 훨씬 심한 재앙을 미연에 방지한 적도 있다. 마이애 미에서 친하게 지내던 짐 비숍이란 친구가 내 쇼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는 신문의 칼럼도 쓰고 책도 쓰는 친구인데, 그 무렵에 이미 존경과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특히 그의 문체가 평이하고 보통 사람의 언 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더욱 사랑을 받았다. 그는 한때 알코올 중독으로 고 생한 전력이 잇었지만 그 때에는 술을 끊은 지2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 찬구가 그 날밤 완전히 취해 가지고 방송국에 나타난 것이다. 그가 술을 다시 입에 대는 것을 본 것은 그날뿐이다. 방송에 출연 하게 되어서 초조한 나머지 술을 통하여 깅운을 좀 얻어 버려고 그랬는지 도 모른다. 짐이 그 상태인 것을 목격하고 나니 이번에는 내가 초조해졌다. 보통 사 람이 쓰는 평이한 언어 더하기 술이면 답이 무엇이겠는가? 방송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 나올 것이 뻔했다. 그것은 실수로 보아 넘기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연방 방송 위원회에서 방송국의 면허를 취소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나는 보 따리를 싸고 브루크린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방송국에서 차표야 사 주겠지만 왕복표는 아닐 테니까. 친구라고 봐줄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다. 무언가 긴박하게 그리고 신속 하게 행동히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둑 다친다. 통제실에 유리창 너머에 대기하고 있는 기사에게 손짓을 보내고 '방송중'이라는 표시등을 켜 도록 했다. 부링 들어오는 것을 짐도 보았다. 그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참에 나는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 "짐, 고맙습니다.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오요.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 다. 안녕히 가세요."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짐 여시 내게 고맙 다고 인사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청취자로부터 전화를 받아 그 시간을 때웠다. 코를 골다니!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은 대가를 치른 실수는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내가 낸 소리 때문이었다. 방송이 나가는데 코를 골았던 것이다. 왜 그랬냐고? 그 까닭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있다. 잠에 골아떨어졌기 때 문이다. 1959년 새해 첫날 아침 마이애미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전날 밤에 나는 개경주장에서 장내 아나운서로 일했다. 그 일이 끝나고는 망년회장에서 갔 다.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망년회에 참석한댔자 별로 할 일도 없지만 참석은 했다. 그 자리가 파하자 새벽이 되었고, 6세부터 9시까지 WKAT방 송에서 내가 맡은 토크 쇼가 있어서 그것을 진행했다. 이제 남은 일은 9시 30분에 한 마디 하는 일뿐이다. 10시에는 그 다음 프로그램 진행자가 나올 것이고 나는 그 때 퇴근하면 된다. 9시부터 10시까지는 ABC방송의 '돈 맥닐의 아침 대담'이 중계된다. 다만 9시 30분에 잠깐 삽입되는 것이 있는에 그것만 하면 내 일은 끝나는 것이다. 내 쇼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나는 줄곧 '잠들면 안 돼'를 속으로다짐하여 야 했다. 방송국에는 나말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새해 첫날 아침이 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쇼를 끝마칠 수 있었고, 그리고는 ABC에서 오는 프로그램의 중계 스위치를 켰다. 이때까지 나는 만 25시간 동안 잠시도 눈 을 붙이지 못했다. 9시 30분이 되자 돈 맥닐이 '여기는 ABC 라디오 방송입니다'라고 말했 다. 이 큐 신호로 해서 각 지방의 ABC가맹 방송국에서는 자선의 방송국 이름을 대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ABC의 스위치를 내리고, 내 마이 크를 잡고 거기에다가 '여기는 마이애미 비치의 WKAT방송입니다'라고 말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ABC 스위치를 올리면 된다. 방송국 건물은 표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ㅇ었기 때문에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스튜디오 안이 훤히 보였고, 아나운서나 기자들이 하는 일하는 모습도 밖에서 볼 수 있었 다. 맥닐의 신호에 따라서 나는 ABC 스위치를 내렸다. 그리고 내 마이크를 잡아당겼다. 그것으로 그만 잠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날 아침 WKAT를 틀어 놓은 사람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이상 한 소리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겠지만 사실은 바로 내가 코고는 소리였다. 내가 다시 스위치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돈 맥닐의 아침 대담' 역시 소개될 리 없었다. 이상한 소리만이 마냥 계속되었다. 음악도 없고 광고도 없고 아나운서의 말도 없이 그냥 그 소리만 계속 나갔다. 청취자들이 방송국에 전화를 해댔지만 전화받는 사람도 없었다. 행인들 이 지나가다 WKAT방송국을 들여다보니 누군가가 마이크 앞에 쓰러져 있 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대소동이 일어났다. 싸이렌이 울리고 소방차가 오고 구조대가 달려왔다. 구조대는 건물 앞면의 유리창을 도끼로 깨고 들오왔다. 청취자들에게 이 번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무슨 유리창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가 둘렸을 것이다. 그리하여 갈수록 궁금증만 커졌으리라. 소방대원과 구조 대원들이 내게 소리쳤다. "무슨 일이예요? 다친 데 없어요?" 부시시 잠에서 깬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야단 법석이고 여기저 기 유리 조각 천지가 된 것을 보고는 그저 '어?' 했을 뿐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사장실로 불려갔다. 사자은 프랭크 카첸타인이었는데 대령으로 예편한 사람이라서 우리는 그를 대령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선 내게 해고를 통고했다. 그 다음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었다. "나는 자네를 좋아해. 자네는 재능이 많거든. 설명할 수 있겠나? 내가 자 네를 해고해서는 안 될 이유를 한 가지만 말해보게." 나느 되물었다. "대령님, 제가 어제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아니, 모르겠네." "마이애미 소방대와 구조대가 긴급 사태에 얼마나 빨리 출동하는지를 시 험해 본 겁니다." 그는 해고를 취소했다. 하지만 유리창 값은 내 주머니에서 지불해야만 했다. 말을 아무리 잘하는 사람, 협상을 아무리 잘 하는 사람, 기타 어느 분야 에서 최고봉에 오른 사람이라도 실수는 한다. 야구의 통계를 낼 때에는 처 음부터 한 칸을 따로 떼어 실책의 횟수를 재기까지 해야한다. 그러니 실수 를 했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옛날부터 이런 마도 있지 않 은가? '실수를 두려워 하는 사람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다.' 9.훌륭한 연설 : 준비 그리고 연습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ㄹ듯이 연설에서도 첫 경헙이란 떨리는 일아다. 대화를 아주 잘 하는 사람들도 처음 연설을 하게 되면 종종 두려움을 느낀 다. 어떤 사람은 경험이 아주 많은데도 연설을 할 때마다 공포를 느낀다. 사람들은 대중 연설을 하는 데에 무슨 비책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한 다. 그 문제에 관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연단에 서기 전에 연설 대학원 과정이라도 밟아야 하는 양 생각하기가 쉽다. 나는 해마다 수차례에 걸쳐 강연과 연설을 하러 다닌다. 청중이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변한다. 그런 까닭에 청중을 기본적으로 딱 꼬집어 무엇이 라고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때마다 연설을 잘하기 위한 나의 비결은 아주 간단하다. 나는 대중 열설이라고 해서 굳이 특별히 다른 망식으로 말해야 한다고 여기디 않는다. 어차피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일 따름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연설은 대화보다 쉬운 점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나갈지의 문제가 전적으로 연사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당 신에게 "정말 그래요? 어디 설명을 좀 더 해주시겠습니까?" 하는 식으로 흐름을 끊지 못한다.(물론 연설이기 때문에 생기는 약점도있다. 예를 들어 이야기 준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빠져 나가는 수단 같은 것이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이 점을 염두해 둔다면 연설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 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당신이 잘 아는 일에 관해서 망을 해야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점은 너무나 당연해서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지 보른다.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지 한 번 샐각해 보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별로 잘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꺼냈다가 위기를 맞는 것이다. 그 위기는 다음과 같이 양면에서 찾아온다. 1. 만일 그 주제에 관하여 청중이 당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면 그들은 금방 지겨워 할 것이다. 2. 당신이 그 주제에 관하여 어딘가 불편히게 여긴다면 당신의 행동 역 시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제를 정할 때부터 당신이 잘 아는 주제를 정하는 것이 좋다. 만일 할 수 없이 광범위한 주제에 관하여 연설을 하게 되는 경우라면, 당 신 자신의 경험담을 곁들인 다든가 하는 식의 개인적인 접근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성지 순레를 하고 돌아와서 교인들 앞에서 그 여행이 어떠했는지를 소개하는 자리라고 하자. 이런 자리에서 이스라엘과 PLO 사 이의 강화조약의 의미를 분석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는 없다. '당 신' 이 본 것, 그리고 '당신' 이 만났던 사람들이 그러한 정치적 사건을 어 떻게 받아들이거 있었는지만 말해 주면 된다. 그렇게 접근함으로써 틀림없이 당신 자신이 훨씬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청중 또한 부담없이 당신의 이야기를 즉길 수 있게 될 것이 다. 내 생애 최초의 연설 - 열세살 때 나는 열세살 때 처음 연서릉ㄹ 했다. 그 때 나는 내가 아주 잘 아는 이 야기를 주제로 정했다. 유태인 소년은 누구든지 일생에 한 번 13세가 되었 을 때 성인식을 갖는다. 당시 우리집은 돈의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가 3면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 혼자서 생계를 꾸려야 했 던 것이다. 영세민 보조금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시 우리 어머니의 가장 큰 꿈이었다. 내가 성인식을 치룬 얼마 뒤에 우 리 집은 보조금 없이도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쪼드리는 살림이었지만 어머니는 나와 내 동생의 성인식만은 치루어 주 었다. 성인식에서 당사자는 사람들 앞에 나가 연설을 한 마디 해야 한다. 그때까지 나는 학교 교실에서 앞에 나가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불러 본 것을 빼면 남들 앞에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럼데 그 자리는 진짜로 내가 청중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청중의 대부분 역시 내 또래의 꼬마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었던 것이 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나는 아 버지 생전에 내가 얼마나 아버지를 존경했는지를 얘기했다. 그리고 일주일 에 엿새 동안 식당을 경영하느라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나와 함께 지냈음을 얘기했다. ㄹ하워드가에서부터 사라토가 공원까지 아버지와 산책하던 추억도 들려 줬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면서 "엄마한테는 말 하지 마라. 저녁 먹을 때가 되었는데 군것질 시킨다고 나무랄 테니까" 말 씀하시곤 했다는 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공원이나 아니스크림보다도 마버지와 나눈 이야기를 훨씬 소중하게 느껴ㅈ다고 덕붙였다. 또한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조 다마지오가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의 양키즈 팀에 대한 이야기며, 1941 년 루 게릭의 장례식에 가 본 이야기등을 내게 해 주었다. 어떤 때는 그날 유태인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묻기도 하였다. ㄱ,리고는 당신이 스무살 때 머물 곳을 찾아 떠나면서 러시아를 택하지 않고 미국으 로 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ㅓㅆ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였다. 이런 추억들을 나는 청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이고 내가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사라토가 공원에서 나를 향해 말하던 그의 숨결을 느낀다고 말했다. 내 경우에 성인식에서 아버지를 주제로 이야기한 것은 당연한 일ㅇ리 수 밖에 없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아버지가 마땅히 화제의 초점이 되어야 했 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게는 사람들 앞에나가 말할 만한 얘깃거리로 마땅한 것 이 없기도 했다. 내가 편안한 기분이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에 관한 것뿐이었다. 아버지에 괸해서라면 자신있게 그리고 자세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연설을 끝마치자 어른 몇몇이 내게 와서 칭찬을 해 주었다. 나 스 스로도 그들과 추억을 나누는 일이 썩 괜찮은 일이었다. 내가 '말하는 직 업'을 갖기로 결심하게 된 데에 이 경험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유비무환 : 준비와 연습 연서을 잘하기 위한 두번째 열쇠는 준비하는 것이다. 항상 대비하라는 것이다. 방금 앞에서 말한 애 충고에도 익히 알고 있는 주제를 선택한 경 우라면 연설의 준비가 특별히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점들을 염두해 두면 당신의 생각을 존더 효율적으로 조직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1.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서두에서 밝혀라. 2. 본런을 이야기하라. 3.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요약함으로써 마무리하라.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미리 밝혀 두면 청중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따 라 가기가 훨씬 쉬워진다. 말미에 가서 그 이야기를 한 번 더 요약해 주면 요지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이 때에는 서두에서 한 표현을 그대로 다시 한 번 되풀이하기 보다는 약 간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내 경우에는 연설을 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번번히 그 준비를 위하여 많 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나를 연사로 초청하는 사람들이 대개 원하 는 주제는 내게 아주 익숙한 일들이다. 예를 들면, 토크 쇼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 클린턴, 부시, 퍼로말고도 기 타 대통령 후보자들이 내 쇼에 출연했을 때의 이야기, 고어와 페로 사이의 TV토론에서 내가 맡았던 경험담, 방송 매체가 활자 매체에 미치는 영향과 상호 관계의장래, 또는 옛날 브루클린 다저스 킴에 대한 이야기들과 같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주제들이다. 따라서 내 연설에 앞서서 내가 특별히 해야 할 숙제는 없다. 하지만 전에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주제에 관하여 열설하게 될 경우 에 사전 준비는 필수적이다. 이 준비는 여러 방식으로 할 수 있는데 그 가 운데 가장 좋은 방법을 그때그때 선택하면 되될 것이다. 먼 저 연설할 때 할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원고로 작성하여 연단에서 그 대로 읽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연사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 할 때에는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원고를 사전에 여러 번 읽고 숙지하 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연단에서 청중을 향해 머리만 숙인 채 마냥 원고나 들여 다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요점만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그것을 토대로 연설을 행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사람은 메모지에 요약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파일 카드를 사용하기 도 한다. 요점만을 메모해서 연설하게 되면 몇가지 좋은 점이 있다. 연설이 좀더 즉흥적이 되기 때문에 생동감이 있게 되고 머리까지 숙여 가며 원고 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게 된다. 또한 단순히 말뿐만 아니라 온몸을 다 사용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첫번째 방법보다 반드시 낫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당신에게 가장 편한 방법을 찾아서 그대로 하면 된다. 원고를 작성하든지 아니면 요점만을 메모하든지 사전에 충분한 연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연설을 여러 번 마리 연습해 봄으로써 그 내용, 속도 그 리고 표현 방식 등을 익혀 두어야 한다. 거울 앞에서 연습한다든가, 아니면 가족 또는 동료를 청중으로 삼아 그 앞에서 연습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연습을 할 때에는 시간을 재도록 하는 것이 좋다. 원고를 작성할 때, 또 는 요점을 정리하면서 생각한 것과는 달리 막상 해 보면 내용이 너부 길거 나 너부 짧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당신에게 할당된 시간이 얼마나 되 는지를 알아보고 그 시간에 맞추는 연습 또한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연설을 미리 준비하는 것을 큰 도움이 된다. 당신이 맡은 연설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무 심코 자나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역시 한창 연설 경험을 쌓아 나가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 다. 그때 나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일이 하도 즐거웠기 때문에 어 떤 자리든 불러 주기만 하면 마다 않고 수락하였다. 대중 연설가로서 명성을 얻고 싶은 의욕에 불타서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 '사례비야 당신이 주고 싶은 만큼 주시오' 하는 식이었던 것이다. '돈이 없다구요? 그럼 무료로 합시다.때와 장소만 일러 주시오 그러면 가리 다,' 이런 식이었다. 하루는 라디오 방송국으로 전화가 왔다. 마이애미 로타리 클럽의 화장에 게서 온 전화였다. 6월에 클럽 정기 총회가 있는데 거기서 연설을 좀 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1월이었으니 반 년 뒤의 일이었다. 내가 쾌히 승락 하자 상대방은 그 모임의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물었다. "그런데 연설 주제는 무엇입니까?" "뭐 주제랄 거야 있습니까? 콩상 저는 그냔 아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쨌든 청중을 즐겁게 해 주면 될 거 아닙니까?" 그때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였다. 로타리 클럽의 회장은 이렇게 응수해 왔 다. " '이 자리' 는 러타리 클럽의 모임이예요. 연사가 아이젠하워라 해도 주 제가 뭔지는 미리 알려 주어야 해요." " 그럼 그 사람에게 전화하세요."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며칠 뒤 방송국에서 쇼 진행을 준비히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방송 시작이 일 분 밖에 남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럼데 프로듀서가 와서 '래리, 1번에 긴급한 전화' 하고 소리쳤다. 수화기를 들자 무언가 찰칵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로타리 클럽의 회 장인지 하는 친구가 다시 전화한 것이다. "지금 여기 인쇄소에 와 있어요. 정기 총회를 알리기 위해서 안애 전단 을 찍거 있어요. 당신 연설의 주제가 무엇인지 꼭 들어거야 돼요." "연설의 주제는 미국 해운업의장래라고 하세요." 내 대답이었다. 그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내가 그 때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때 내가 한 음절 한 음절 또박 또박 그렇게 대답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로타리 클럽의 회장 마음에는 그 주제가 마음에 쏙 들어 버린 모 양이었다. 자기네 회원이 모두 좋아할 주제라고도 하였다. "6원 10일 오후 8시, 마이애미 해변 컨트리 클럽." 그는 다시 한 번 일시와 장소를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6개월 뒤 나는 약속된 사간에 약속돤 장소로 갔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차에서 내려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데 출입구에 붙 은 커다란 안내문이 보였다. '오늘 밤! 미국 해운업의장래!' 그것을 보면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김 새는군. 연사가 나 혼자인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이 또 있나 보네." 그것이 내 연설의 주제라는 사실을 까맣게 ㅇ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도착한 것을 발견한 회장이 컨트리 클럽 문 밖으로 나와 마중하였 다. 그리고는 아주 신이 나서 떠들었다. "래리! 모두들 지금 당신 연설을 듣고 싶어서 기다릴 수가 없었을 정도 야. 이 주제 때문에 지금 클럽 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참섯했다구!" 사회를 맡은 친구는 주제가 너무나 흥미있어서 그날 하루 직장을 쉬고 도서관에 가서 해운업에 관해 이것저것 뒤져 보았을 정도라고 했다. 나를 소개하면서 주제에 관해서도 뭔가 몇 마디 덧붙이려고 했다는 것이 다. 그래서 사회자는 나를 소개하면서 해운업에 쓰는 단위며, 항만의 규모, 화물이 어떻고 군수품이 어떻고 하면서 설먕을 곁들였다. 하지만 나는 그 런 일에 관해서 와전히 문외한 이었고 관심도 전혀 없었다. 해운업의 '역 사'에 관하여 일장 연설을 한 다음에 나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해운업의 '장래'에 관하여 말씀해 주실 연사가 여기 오셨 습니다. 래리 킹 씨를 소갸합니다." 내 연설을 30분 짜리였다. 모르는 일이면 아는 체 말라는 것이 내 신조 다. 그래서 해운업에 관해서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연설이 끝났을 때 박 수도 없고 환호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나 차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에게 는 어떤 연설 요청도 들어오지 않겠구나 히고 생각했다. 어쩌면 오히려 잘 된 거야. 연설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뭐. 시동을 걸 때까지도 나는 속으로 질려서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는 참인데 그 사회자가 내 차에까지 쫓아와서 차창을 두드리는 것이 었다. 차문의 유리를 내려주자 고개를 안으로 디밀었다. 내 손가락에 엄청 난 유혹이 전해졌다. 그는 내게 악을 썼다. "당신이 해운업의 장래에 관하여 연설을 할 거라고 여태 안내해 왔단 말 이오! 그래서 내가 도서관에 가서 공부한 다음에 그 역사에 대해서 설명까 지 했는데, 당신은 해운업의 장래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을 수 있소?" "해운업의 장래는 어두워요." 그리고 나는 그냥 떠나와 버렸다. 약간 죄스러움이 느껴졌다. 가책에 사로잡힐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20대 청년의 행동에는 무책임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어쨌 든 그들이 원하는 바는 해 주지 않았는가? 내 연설은 분명히 좌중을 즐겁 게 해 주었어'라고 나는 스스로 합리화하였다. 며칠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실제로 거기 참석한 로타리 클럽 회원들은 내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고 한다. 박수가 없었던 까닭은 다만 예고된 주제와 동떨어진 내용이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만일 내 입으로 밝힌 주제를 잊지 않았더라면 그런 곤경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이애미 시절에 ㄱ은 경험인데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 었다. 나를 초청한 쪽에서는 주제가 무엇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내가 (아니 면 누구라도)와서 연설만 해 주면 된다고한 경우였다. 이번에도 전화 벨이 울리면서 일이 시작되었다. 내 동료 한 사람이 전화 를 받아 건네주었다. "어이 래리, 2번에 자네 전화야" 수화기를 받아 들고 내가 한 말은 '여보세요'하는 한 마디였다. 저쪽에서 나에게 일방적으로 통고하고 있었다. "킹 씨죠? 내 이름은 붐붐 죠르노. 11월 3일. 전쟁 기념관. 포트 로더데 일시. 자선 모금 만찬. 가수는 세르지오 프랭키. 사회자는 래리 킹. 검은 색 넥타이로 정장할 것. 여덟시. 반드시 참석할 것." 딸깍. 그러고는 전화를 끊는 것이다. 몇 달이 지나 그 곳에 갔더니 죠르노라는 사람이 웃으며 나를 맞았다. "이렇게 와 주셔서 영광입니다." '영광 좋아하시네.' 나는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얼른 무대 위로 가서 세르지오를 찾았다. "세르지오, 여기 어떻게 오게 됐나?" "붐붐이라는 친구가 전화했던데." 그 때 붐붐이 와서 내가 할 일을 꼬치꼬치 일러주었다. "이봐, 젊은 친구. 무대에 올라갈 차례야. 소리를 지르든 떠들든 맘대로 해. 20분 간 그렇게 하고 세르지오를 소개하는 거야. 단, 홀의 전등은 켜면 안돼." "내가 전등 스위치에 손댈 까닭이 있겠소?" "글쎄 전등은 켜지 말라니깐. 사람들 틈에 경쟁자들이 많이 섞여 있단 말이야." "경쟁자라니, 무슨 소리요?" "올리브 기름 장수도 와 있고, 밀가루 반죽 장수도 와 있고, FBI 친구들 도 와 있단 말이야. 홀은 계속 어두침침하게 놔 두어야만 해." 그래서 나는 무대로 올라가 20분 동안 사람들을 좀 재미있게 해 주고 세 르지오를 불러낸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 행사가 파하고 차 쪽으로 가는 데 붐붐이 나를 불러세웠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어이, 젊은 친구. 아주 잘 하던데!" "고맙군, 붐붐" 그러자 그는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이봐, 자네 덕분에 잘됐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부탁하라구." "덕은 무슨... 그냥 좋아서 한 일이야. 나도 재미있었거든." 그 다음에 붐붐이 한 말은 내 평생에 처음 들어 본 말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는 지금도 그 네 마디 말이 생생하 게 기억난다. 그뿐만 아니라 그 때 그 상황을 모두 뚜렷이 기억할 수 있다. 바다 위 하늘에 달이 떠 있었고, 가을 밤의 냉기가 바람 따라 스치고 있었다. 그리 고 붐붐이 한 말 때문에 내 등골에도 냉기가 흘러내렸다. "보기 ㅅ은 놈 있나?" 누구든지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우선 주변의 인물을 주욱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양심이 들고 일어나서 나를 가로막았 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본인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지만, 그날 밤 나는 채널 4번 방송국 사장의 목숨을 구 해 준 셈이다. 그 이름을 대는 대신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붐붐. 그런 짓은 못해." 그러자 붐붐은 다른것을 물어 왔다. "경마 좋아하니?" "그럼, 재밌잖아." "나중에 연락할께." 3주 뒤에 전화가 다시 왔다. 저쪽에서는 '히얄레 경마장 3번 경주 애플 트리'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때 내 명의로 된 재산이라곤 800달러가 전부였다. 500달러를 더 꿔서 1300달러를 전부 애플 트리에 걸었다. 그 모두를 단식 마권으로 바꾼 것이 다. 장난도 아니고 농담도 아니었으며 허풍도 아니었다. 지면 나는 완전히 파산이다. 처음 두 경주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내 인생에서 필연은 세 가지 -죽음, 세금 그리고 애플 트리가 오늘 우승 한다는 사실.' 내 생각으로는 결승점에 바로 못 미친 지점에서 앞서 달리던 말 다섯 마 리가 '우연히' 넘어진다든가, 뭐 그런 식으로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세번째 그런 희귀한 사건이 전혀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 결 과 뿐이었다. 애플 트리가 우승한 것이다. 마권 한 장당 배당액은 12달러 80센트. 총액으로는 8천 달러 가깝게 땄 다. 붐붐은 이제내게 빚을 갚았다. 그는 오늘 밤 다리를 쭉 뻗고 쉬어도 된 다. 기타 충고 몇 가지 나 자신의 경험과 아울러서 내가 목셔한 다른 연사들의 경우에 비추어 몇가지 충고가 더 있다. 말할 때는 청중을 바라보라. 시선의 일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한 요점이다. 첫째, 원고 또는 메모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라. 둘째, 연설장 뒤의 벽이나 옆의 창을 보지 말라. 당신의 청중은 벽이나 창이 아니다. 준비한 원고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 때마다 시선의 방향을 바꾸도록 하라. 그리하여 청중들 모두에게 당신 의 시선을 전하도록 하라. 청중 각자는 당신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말의 속도와 억양을 미리 준비하라. 원고를 준비하여 말하는 사람들 가 운데에는 가조하고자 하는 단어에 밑줄을 그어 두는 경우가 많다. 요점만 을 준비하는 경우에도 꼭 가조하고 싶은 부분에 표시를 해두면 좋을 것이 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ㅈ은 점이 있다. 연사가 위도하는 곳에서 강조를 잊지 않고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군데군데에서 말투와 강약을 달리함으로써 연설의 단조로움을 피 할 수 있게 된다. 단조로운 목소리의 연설은, 특히 식사 시간 직후에는 청 중을 꿈나라로 모시기에 안성맞춤이다. 똑바로 서서 말하라. 물론 군대식으로 차려 자세를 취하라는 말은 아니 다. 연설용 탁자에 몸을 기대거나 하지 말고 편안한 자세로 서서 말하라는 것이다. 탁자 위에 몸을 수그리면 호흡이 불편해서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 게다 가 보기에도 좋지 않다. 마이크를 사용하는 경우. 마이크를 당신의 키에 맞추어 조절하든지, 혼자 소 할 수 없으면 기사에게 부탁해서라도 그렇게 하라. 마이크가 너무 높아서 황새처럼 목을 뽑아 들고 말하게 되는 경우를 미 연에 방지하라.(가능하다면 이런 점은 미리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마 이크에 대고 말할 때는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평소대로 하라. 소리를 질러 댈 것 같으면 애당초 마이크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르게 되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함들게 만들 뿐이다. 마이크와 입 사이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다. 가까이 왔다 멀리 왔다 하게 되면 메아리처럼 들이게 된다. 옆쪽에 자리한 청중 가운데 누가 질문을 한다고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면 서 대답하면 목소리가 마이크에는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유머 연설이라면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암 치료법이라도 발명해야 해설한다든지, 아니면 선전 포고라도 하는 따위가 아닌 한 , 필요 이상 오랬동안 심각한 어조로 일관하려 들지 말라. 주제가 실네로 심각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가끔씩 유머를 섞게 되면 모두에 게 환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농담을 하나 하려고 하면서도 미리 김을 빼고 시작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1. 농담 한 마디 하겠습니다.(농담을 여러 마디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 무도 없다.) 2. 오늘 여기 오는데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3. 농담이 하나 있는데, 들어 보면 재이 있을 겁이다. 진짜로 웃기는 이 야기예요. 4. 농담 하나가 생각나는데, 들어 본 사람도 있겠지만 해 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한들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고? 그 까닭은 그것들이 낡을 대로 낡아빠진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배꼽 잡는 농담을 하겠다고 해서 청중들로 하여금 잔뜩 가대하게 해넣고 막상 별볼일 없는 농담을 하게 되면 실망만을 안겨 줄 따름이다. 농담을 하나 하겠다고 하면 누구든 약간의 기대를 하기 마련인데, 거기 에 대고 이미 들은 들은 적이 있을거라고 덧붙이는 것 역이 김빼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농담을 끝마치면서 '지금까지는 농담이었고, 이제 진지한 이야기를 합시 다.'하고 말 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로 피해야 한다. 이와 같이 진부한 표현 대신에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농담이 연설 내용의 흐름에 섞이도록 하는 일이다. 기업체의 간부진을 청중으로 경영 전략과 각 전략의 추진 방식에 관하여 연설하는 자리라고 가정하자. 이런 주제의 종류를 논할 때 내가 즐겨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1차 세계 대전 때 월 로저스(당시 활약하던 미국 배우이자 코미디 작가) 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지요. "내가 보기에 문제는 독일 잠수함 U보트들이 우리 편 함정을 침몰시킨 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대서양을 가열해서 팔팔 끊여 버리자. 그러면 바다 가 너무 뜨거워서 독일 잠수함들이 물 밑에 숨어 있을 수가 없을 테고, 따 라서 모두 바다 위로 떠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 때를 기다렸다가, 오클라호마에서 사냥할 때처럼, 그놈들을 하나하나 박살 내 버리면 된다." 로저스는 이 말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데서양을 섭씨 100도로 끊일 방법이 뭐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기술자들이 해결할 문제이지 내가 해결할 일은 아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이지 기술 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청중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나서 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이 이야기를 당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논지에 연결시킨다. 정책의 수립과 정책의 집행 사이에는 이와 같은 차이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만일 청중이 기술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같은 일화를 아야기하더라도 반대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 팀이 이런 식으로 정책을 수립해 주니 고마운 일 아니겠습니까? 기술자들을 자극해서 분발하게 해 주니까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끌러 갈 때 청중의 호응을 얻기가 쉬운 까닭으로 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1.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다. 2. 그 이야기를 통해서 끌어내려는 논지가 청중 각자의 경험에 와닿는다. 사업하는 사람이나 다른 전문 분야애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깊 은 관심을 가지는 주제 가운데에는 문제 해결 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이 주제에 관하여 연설을 행할 때 적절한 예화 하나를 소개한다.내 친구 재키 글리슨의 재담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뉴욕시의 교통 문제 에 대한 해결책 하나를 가지고 있다. "모든 도로를 일방 통행로로 정해서 북쪽 방향으로만 갈 수 있게 하면 된다. 그러면 올바니 시(뉴욕 시의 북쪽에 있는 도시)에서는 골치 아파하겠 지만 그거야 자기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다." 웃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이 재담을 본래 논지에 연결시킨다. 예를 들면, '글리슨의 농담에는 문제 해결을 꾀하면서 문제를 오히려 복 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뼈가 드러 있다.'는 식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식적 표현과 상스러운 표현 유행어와 전문 용어를 피하고 평이한 언어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여러번 설명한 바와 같다. 이 점은 연설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청중 앞에서 하는 연설도 마찬가지로 대화의 변형뙨 형식이라는 점을 염두해 두고 당신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 으로 말한다면 청중들 역시 당신이 하는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당신의 말이 머리 꼭대기를 살짝 스쳐가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하 는 말이라는 느낌을 청중들로 하여금 갖게 해야 한다. 하지만 쉬운 표현을 쓴다고 하더라도 구어체 표현의 지나친 사용은 삼가 야 한다. 90년대에와서 금기 사항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비어나 상스러운 말로써 청중의 감동르 불러일으키려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발생할 뿐이 다. 일상 언어를 가능하면 삼가고 점잖은 표현-당신의 입장에서 보면 '실언' 에 해당하겠지만=을 써야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당신이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사람 자신은 '빌어먹을', '젠 장'등의 말투에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마침 자기 아내와 동행하고 있고, 당신의 말투가 자기 아내 의 귀에는 거슬릴 것이라는 점을 그가 알고 있는 상화이라면, 당신과의 대 화가 그 사람 자신에게도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아주 친근하게 잘 아는 사람이나 또는 부대의 동료를 만나 말하는 경우는 전적으로 다른 상 황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평소에 쓰는 말투는 삼가야 할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