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3 지은이: 후안 마누엘 옮긴이: 김창민, 강성식 외 펴낸곳: 도서출판 자작나무 (저자 약력) * 지은이: 후안 마누엘(Don Juan Manuel) 1282년 스페인의 에스깔로나(Escalona)에서 태어났으며, 뻬로뻬스 데 아알라 주교와 함께 14세기 스페인의 산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현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알폰소 10세(제위기간: 1252--1284)의 조카라는 신분 덕택에 젊어서부터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였고, 페르난도 4세와 알폰소 11세 때에는 전쟁에 활발히 참여했다. 나이가 들자 자신이 도미니크 수도회에 기증한 뻬냐피엘 수도원에 들어가 작품활동을 하다가 1348년 삶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토록 도미니크 수도회를 정신적^5,23^물질적으로 후원하면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지만 동시에 부와 명예에 관한 세속적인 관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기사와 시종에 관한 이야기 Libro de caballero et del escudero',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이야기 Libro de los estados'가 있고 그 외에도 '시가집 Libro de los cantares o de sus cantigas', '산추린 연대기 La cronica abreviada', '무기교본 Libro de las armas' 등이 있다. * 옮긴이: 김창민 1959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동 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멕시코 구아달라하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중남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서로는 '저주받은 사랑'(열음사), '미국은 섹스를 한다'(자작나무)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푸에르토리코 현대소설에 나타난 문화적 갈등', '수필에 나타난 에르네스또 사바또의 문학관'이 있다. 강성식, 이소현, 박정희, 전미연, 정수현, 최철훈, 한희주, 허인숙: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대학원 재학중@ff 첫번째 이야기 보상금을 찾아 준 철학자 어느 가난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천 플로린이 들어 있는 돈주머니는 주웠다. 그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그것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아내는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일단 나한테 들어오면 절대로 그냥 나갈 수가 없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 재물을 내리신 거니 둘이서 끝까지 지켜야 해요." 하지만 다음날, 천 플로린을 잃어버린 부자가 사방에 방을 붙여놓았다. 돈을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보상금으로 백 플로린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돈을 주웠던 가난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이 돈을 돌려줍시다. 그리고 양심의 거리낌없이 마음 편하게 보상금이나 받읍시다.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천하를 얻는 것보다 떳떳하게 사는 게 더 값어치 있지 않겠소?" 아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편을 말리고 싶었지만, 남편은 아내의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주인에게 돈을 돌려주고 보상금으로 백 플로린을 요구했다. 하지만 부자는 돈이 자기 수중으로 돌아오자 마음이 변해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은 주운 돈을 나에게 돌려주었소. 하지만 사백 플로린이나 모자라오. 당신이 나머지를 마저 가져온다면 그 때 가서 백 플로린을 주겠소." 가난한 사람은 천 플로린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한게 없었다고 말했지만 부자는 믿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말다툼이 싸움으로까지 번지자 그들은 왕을 찾아가 천 플로린을 왕에게 맡기고는 누가 옳은지 재판을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왕이 어느 철학자에게 이 사건을 상세히 조사해서 공정한 판결을 내리라고 명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라고 불리는 철학자에게 이 사건을 재판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재판관이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이 아직도 이 부자의 돈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전부 돌려주었는지 나에게만은 사실대로 말해주시오." 가난한 사람이 말했다. "하늘에 맹세컨대 제가 주운 것은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부자가 말했다. "제가 천사백 플로린을 잃어버렸다는 건 하늘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들은 철학자가 왕에게 말했다. "고귀하신 전하께 청하옵건데, 다음과 같은 판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 플로린은 전하께서 보관해두시고, 일단 백 플로린을 이 가난한 사람에게 보상해주십시오. 천사백 플로린을 잃어버렸다고 맹세까지 했으니, 천 플로린은 이 정직한 부자의 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잃어버린 돈은 다른 사람이 보관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 나중에라도 운이 좋아 이 부자가 잃어버린 천사백 플로린을 주운 사람이 나오면, 그 때 가서 되돌려주면 될 것입니다." 왕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철학자의 판결이 현명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부자는 자기의 꾀에 자기가 넘어갔음을 알고는 왕에게 자비를 내려달라고 간곡히 사정했다. "전하,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제가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있사옵니다. 여기 있는 천 플로린은 제가 잃어버렸던 돈입니다. 이 가난한 사람에게 약속했던 보상금을 안 주려고 꾀를 낸 것이었습니다." 너그러운 왕은 자비를 베풀었다. 왕은 부자에게 천 플로린을 돌려주도록 하고 돈을 주운 가난한 사람에게도 제 몫을 돌려주도록 했다. 그래서 그 가난한 사람은 공정하고 현명한 재판관 덕택에 부자가 뒤집어씌운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는 법이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마저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ff 두번째 이야기 맡겨놓은 돈 스페인 남자 한 사람이 메카로 가던 도중 이집트에 들렀다. 그는 인적이 드문 마을이나 사막을 지나다가 도둑을 맞거나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여행 경비에 필요한 돈만 남겨놓고는 믿을 만한 이집트인에게 돈을 맡겨 놓기로 작정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이집트인이 정직하고 의리 있고 깨끗한 성격을 가졌다고 했다. 스페인 남자는 그 말을 믿고 은화 이십 마르코스를 그에게 맡기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는 메카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이집트 인을 찾아가 자기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집트인이 음흉한 마음을 먹고는, 이런 사람은 본 적도 없다면서 자기한테 돈을 맡기지 않았다며 잡아떼는 것이었다. 스페인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하다가 동료들에게 돌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 남자가 얼마나 정직하고 덕이 많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인데 그런 짓을 하겠냐면서 오히려 그가 하는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집트인을 다시 찾아가 더욱 겸손하고 정중한 태도로 사정을 했다. 그렇게 하면 자기 돈을 돌려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예를 갖췄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기꾼은 그가 사정을 하면 할수록, 자기가 돈을 맡아두었다는 사실을 더 완강히 부인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스페인 남자가 자기 명예를 더럽힌다며 그를 고소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스페인 남자는 기가 푹 죽어 돌아가다가 어느 노파를 만나게 되었다. 수녀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있던 노파는 외국인이 정신이 나가 헛소리를 하면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스페인 남자는 노파에게,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 이집트인과 자신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마음씨 좋은 노파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하늘이 도와줄 테니 희망을 가지라며 그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자기도 사실을 밝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노파는 우선 남자에게 믿을 수 있는 고향 친구를 데려오도록 하고는 그에게 자기의 묘안을 일러주었다. "당신은 상자 네 개를 고급스럽게 색칠한 다음에 안은 조약돌들로 채우고 위는 은과 비단으로 덮어서, 당신 돈을 가로채려 했던 그 사람 집으로 가져가도록 하세요. 당신 친구가 그 이집트인에게 보물로 가득 찬 상자를 맡기려고 한다는 것을 믿게 해야 해요. 그리고는 사람들이 상자를 다 운반했을 때 당신이 그 집에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 거예요. 하느님이 도우시면 당신은 돈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스페인 남자는 노파가 시킨 대로 일을 준비했다. 노파는 그의 친구와 함께 이집트인의 집으로 상자를 옮겨놓고 그 사기꾼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여기 이 사람들이 금은 보화를 잔뜩 가지고 온 스페인 상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메카로 가려던 차에, 어르신이 정직하고 의리 있으며 성실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네가 돌아올 때까지 상자 네 개를 어르신께 맡기려고 합니다. 이 보물들을 가지고 사막을 통과하다가 도둑맞을까봐 두려운 거지요. 어르신께서 부디 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건 우리들만 아는 비밀로 했으면 합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네가 그렇게 엄청난 재물을 가지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들이 상자를 방에 집어넣고 있는데 갑자기 먼저 돈을 맡겼던 스페인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노파가 시킨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자기 돈을 돌려달라고 공손히 요구했다. 돈을 맡긴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었던 이집트인은 그가 보물상자를 맡기러 온 사람들에게 자기 얘기를 나쁘게 하거나, 소동을 피울까봐 덜컥 겁이 나 이렇게 말했다. "아이구, 나한테 은을 맡겨놓고 가서는 이제야 오시면 어떡합니까! 당신이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하던 차였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페인 남자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그는 스페인 남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보물 상자를 맡기러 온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못해 보석을 맡기지 않고 그냥 돌아갈까봐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노파는 그 불쌍한 남자가 돈을 되찾는 걸 보고는 안심한 기색으로 사기꾼에게 보물 상자들을 맡겼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파는 이렇게 재치와 속임수로 스페인 남자가 은을 되찾도록 도와주었다. * 주위와 평판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늘 기대에 어긋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ff 세번째 이야기 시인과 꼽추 어느날 현자가 아들에게 말했다. "일을 조금 그르쳤다고 해서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라. 잘못된 줄 알면 빨리 손을 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꼴이 되느니라." 그리고는 아들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학문을 아끼는 왕이 살았다. 한 시인이 그 왕의 공적과 업적을 칭송하는 기가 막힌 글들을 써서 세상의 감탄을 자아냈다. 왕은 시인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은 마음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시인은 한 달 동안 성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는 수문장을 시켜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어 있었다. 성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신체적 결함에 한 냥씩 벌금을 물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시인의 글에 푹 빠져 있었던 왕은 흔쾌히 승낙을 했다. 시인이 자신의 새 직업에 우쭐해져서 성문을 지키고 있을 때 꼽추 한 명이 망토를 푹 뒤집어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꼽추가 성 안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시인은 그가 꼽추이기 때문에 돈을 내야 한다면서 그를 가로막았다. 돈을 안 내려는 꼽추와 시인은 실랑이를 벌였다. 그 바람에 꼽추의 망토가 벗겨졌다. 가만 보니 꼽추는 애꾸눈이기도 했다. 그것을 본 시인이 말했다. "당신은 애꾸눈이기 때문에 두 냥을 내야 하오. 꼽추에 해당하는 한 냥까지 합쳐서 말이오." 하지만 꼽추는 한푼도 못 내겠다며 완강하게 버텼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통에 시인이 꼽추의 모자를 벗기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꼽추는 두창까지 앓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이 말했다. "이제 세 냥을 내야 하오. 당신이 두창을 앓고 있으니 말이오." 하지만 꼽추는 그 돈도 안 내려고 끝까지 버텼다. 그러자 시인이 완력을 써서라도 돈을 받아내겠다며 덤벼들었다. 꼽추도 질세라 소매를 걷어부치고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팔목을 걷어올리자 옴에 걸려 사방이 쭈글쭈글한 팔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인이 네 냥을 내야 한다고 우겼다. 왕의 허락을 받고 요구하는 것이니 돈을 내야 된다는 시인과 자기를 욕보이는 일이니 그럴 수 없다는 꼽추는 결국 주먹질을 하며 싸우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꼽추가 땅바닥으로 뒹굴면서 탈장에 걸린 배가 그대로 다 드러나버리고 말았다. 이를 본 시인이 다른 신체적 결함까지 합해서 이제는 다섯 냥을 내야 된다고 우겼다. 결국에는 꼽추가 시인의 요구대로 다섯 냥을 내고서야 싸움은 끝이 났다. 처음에 아무 말 않고 한 냥을 냈으면 일이 그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 조그만 손해를 보더라도 막을 수 있으면 괜한 고집을 부리지 말라. 일을 크게 확대시키다가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ff 네번째 이야기 양을 데리고 강을 건너는 방법 어느 왕이 옛날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이야기꾼을 한 명 데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꾼은 왕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때마다 왕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어느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왕이 이야기꾼을 불러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상시처럼 이야기를 다섯 가지만 할 게 아니라 더 해달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이야기꾼은 다른 짤막한 이야기 세 편을 더 해주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그 이야기들은 너무 짧구나. 그러지 말고 좀 긴 이야기 하나만 더 해주고나서 자러가거라." 왕의 명령에 이야기꾼이 긴 이야기 하나를 시작했다. "어느 시골 사람한테 찬 리브라가 생겼습니다. 그 남자는 장에 가서 이천 마리의 양을 샀지요. 그런데 그가 양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여울목은 물론이고 다리 위로도 강을 건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시골 사람이 어떻게 강을 건널까 고민하고 있는데 사람 한 명과 양 한 마리에다가 가까스로 끼워넣으면 양 한 마리 정도는 더 탈 수 있는 배 한 척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양을 두 마리씩 태워서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양 두 마리, 양 네 마리, 양 여섯 마리^5,5,5^" 그런데 이야기꾼은 이런 식으로 양들을 세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왕은 급히 그를 깨워서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야기꾼은 이런 재치 있는 대답으로 왕을 만족시켰다. "오, 고귀하신 전하. 이 강이 워낙 넓은 데다가 배는 작고 양들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전하, 불쌍한 시골 사람이 그 많은 양들을 데리고 강을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나서 하던 이야기를 마저 끝내겠습니다." * 상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재치이다.@ff 다섯번째 이야기 왕의 재단사와 네디오 이야기 옛날에 아주 훌륭한 재단사를 둔 왕이 있었다. 재단사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옷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냈으므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에게는 제자들도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네디오라는 제자가 가장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축제가 다가오자 왕은 재단사를 불러 자신과 왕실 사람들을 위해 멋진 옷들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에미코라는 신하를 시켜 모든 게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식사도 푸짐하게 대접하도록 했다. 어느날 에미코가 달콤한 꿀을 겻들인 빵과 푸짐한 간식을 내왔다. 에미코는 네디오가 없는 것을 알고는 사람들에게 네디오 몫으로 음식을 조금 남겨두자고 했다. 그러자 재단사가 말했다. "네디오는 꿀을 안 먹으니까 다 먹어버려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돌아온 네디오는 사람들이 자기 몫의 음식마저 먹어치운 것을 보고는 화를 냈다. 에미코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너희 스승께서 네가 꿀을 안 먹는다고 말씀하시더구나. 그래서 네 몫을 따로 남겨놓지 않은 거야." 네디오는 스승이 자기를 골탕먹인 것에 대해 어떻게 분풀이를 할까 궁리했다. 그러던 어느날 스승이 없는 자리에서 에미코가 네디오에게 물었다. "너는 네 스승보다 더 훌륭한 재단사를 본 적이 있느냐?" 네디오가 대답했다. "스승님이 그 나쁜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재단사가 될 수도 있을 텐데^5,5,5^" 궁금해진 에미코가 무슨 병이냐며 묻자 네디오는 사뭇 걱정스런 얼굴로, 한 번 발병을 했다 하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다 때려죽이려 드는 병이라고 말했다. "그가 언제 발병을 하는지 알기만 하면 사람들이 다치거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내가 그를 묶어놓을 수 있을 텐데." 이 말을 들은 네디오가 대답했다. "스승님이 손으로 재단대를 탁탁 치면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뭔가를 찾기 시작할 겁니다. 그럼 그때가 발병을 하는 시기라 생각하시면 틀림없어요. 그때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크게 다치고 말 거예요." 에미코가 대답했다. "네가 미리 귀띔을 해줘서 천만다행이구나. 내가 모두를 보호할 테니 걱정마라." 다음날 네디오는 스승의 가위를 몰래 숨겨놓았다. 가위가 눈에 띄지 않자 재단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재단대를 손으로 탁탁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가위를 찾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에미코는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하인들을 시켜 묶게 하고는 재단사가 정신을 차리도록 몽둥이로 때리라고 했다. 재단사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고스란히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 그는 왜 아무 이유도 없이 자기를 때리는 거냐며 큰 소리로 항의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만 생각할 뿐 몽둥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 후에 풀려난 재단사는 아픔을 호소하면서 신하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나를 이리도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겁니까?" 에미코가 대답했다. "모두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당신이 가끔 미쳐서 흥분하면 제자들을 때린다는 말을 당신 제자인 네디오에게서 들었습니다. 당신을 묶어서 벌주지 않으면 그 몹쓸 병이 나을 길이 없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당신 병을 고치기 위해 묶어서 때리도록 한 거예요." 그때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된 재단사가 제자에게 "이런 고약한 놈을 봤나. 네놈이 내가 미친 걸 언제 봤다는 거냐?" 하고 따져묻자 제자가 대답했다. "저는 선생님께서 제가 꿀을 안 먹는다고 말씀하셨을 때 선생님이 미치신 줄 알았어요." 그 말을 들은 신하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선생이 당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남을 속이려다고 오히려 자기가 속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에게 속임수나 조롱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자신부터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다른 사람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ff 여섯번째 이야기 거지가 된 오만한 왕 어느 나라에 젊고 부유하고 강한 권력을 지닌 왕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오만하여 신의 노여움을 사는 큰 죄를 범하게 되었다. "우리의 주이신 신께서 권세 강한 자를 연약케 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셨도다."라는 찬미가의 구절을 듣게 된 왕은 화가 났다. 자신의 권력을 비웃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왕은 왕국 전체에 이 구절을 지우고 대신 이렇게 쓰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께서 강한 자를 권좌에 앉히시고 비천한 자를 저승으로 데려가시니라." 왕이 고친 이 구절을 들은 신은 무척 노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왕이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목욕을 하러 강가로 갔을 때였다. 왕이 옷을 벗어두고 목욕을 하는 동안 신이 보낸 천사가 왕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벗어둔 왕의 옷을 입고 수행원들을 거느린 채 왕궁으로 돌아가버렸다. 왕의 옷이 있던 자리에는 성문 밖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의 누더기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목욕을 끝낸 왕은 시종과 수행원들을 불렀으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몹시 노하여 모두 참수형에 처하겠노라고 으르릉거렸다. 시종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고 믿은 왕은 벌거벗은 채 누군가를 찾았으나 아무도 없는 것을 보자 그만 할말을 잃어버렸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왕은 구석에 놓인 넝마를 보자 저것으로라도 대충 몸을 가리고 왕궁으로 돌아가 모두에게 참혹한 벌을 내리리라 마음먹었다. 왕이 사람들 눈을 피해가며 성으로 돌아왔을 때 성문 앞에는 낯익은 수문장이 버티고 있었다. 왕은 나지막한 소리로 그를 불러 누군가 이 광경을 보기 전에 냉큼 문을 열라고 말했다. 허리에는 기다란 칼을 차고 손에는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있던 수문장은 '네 놈이 대체 누구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왕은 노하여 소리쳤다. "이런 발칙한 것! 너희들이 친 장난이 모자라 이제는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다니. 냉큼 문을 열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수문장이 대답했다. "정신나간 녀석, 어서 썩 물러가라. 그리고 계속 허튼 소리를 하고 다니면 큰코 다칠 줄 알거라. 왕께서 돌아오신 지가 언제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 지금 쉬고 계시니 깨지 않으시도록 어서 꺼지거라." 이 말을 들은 왕은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 수문장에게 달려들었으나 몽둥이 세례를 당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왕임을 주장하다 봉변만 당한 왕은 이제 마지막으로 왕비궁으로 향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몰라봐도 아내만은 자신을 알아보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비 앞에 이르러 자신이 왕이라고 말하자, 쉬고 있는 천사를 남편으로 믿고 있던 그녀는 그에게 욕을 퍼부으며 쫓아내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왕은 이제 거지가 되어 세상을 떠돌 뿐이었다. 구걸을 하며 허기를 면하고 변변한 잠자리가 없어 길에서 밤을 지새야 했다. 그러는 사이 왕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오만함으로 신을 모욕했음을,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왕은 그제서야 큰 소리로 울며 용서를 구했다. 왕국을 돌려받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하고 그저 영혼을 구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왕과 똑같은 모습을 지닌 천사가 수문장을 불러 물었다. "어느 광인이 이 땅의 왕이라고 소리치며 다니는 해괴한 일이 있다던데 그게 사실인가?" 천사는 수문장에게서 그간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들은 후 그를 잡아 대령시키라고 명했다. 광인이 옥좌 아래 꿇어앉자 왕은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가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가 몹쓸 불행으로 왕국을 잃은 왕이라는데 그게 사실인가? 내 절대 해치지 않을 테니 어디 그 사연을 말해보게나." 이 말을 들은 불쌍한 왕은 무어라 대답할 바를 몰랐다. 이제 죽게 되었다며 절망한 그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왕이시여, 제 어찌 아뢰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제겐 삶과 죽음이 다름이 없고 이 모든 것을 신께서 아시니 무엇을 숨기오리까. 왕이시여, 저는 광인임이 분명하고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리 여겨온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만함으로 왕국을 잃은 왕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는 더할 나위 없이 솔직한 태도로 자기의 죄를 고백했다. 천사를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 당신의 말이 모두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방금 고백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주께서 천사인 나를 보내어 당신의 왕좌를 빼앗게 한 것입니다. 끝없는 자비를 지니신 신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셨으니 이제 다시는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같은 죄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것과 진심으로 참회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범하기 쉬운 오만함은 신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 죄가 신의 권능에 대적할 뿐 아니라 영혼을 파멸시키기 때문이지요. 어떤 혈통도, 지위도, 인품도, 모두 다 덧없이 소멸할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왕은 통곡하며 천사의 발치에 몸을 던졌다. 그리하여 회개한 왕은 용서를 받고 잃은 명예까지 되찾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신과 백성을 섬기는 겸손한 왕이 되어 치적을 남기고 명성을 얻었다. * 신의 은총과 세상의 명성을 얻으려면 모든 일에 겸손해야 한다.@ff 일곱번째 이야기 정신병자보다 더 미친 사람 옛날 밀라노에 아주 유명한 의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정신병을 잘 낫게 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집에는 큰 울타리가 쳐져 있고, 그 안으로는 더럽고 깊은 늪이 있었다. 그 늪 가운데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의사는 병을 고치러 온 정신병자들을 벌거벗겨 기둥에 묶어놓고 치료를 했다. 늪의 물은 무릎 정도부터 시작해서 미친 정도에 따라 그 깊이가 깊어졌다. 그는 환자의 병에 차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계속 묶어만두었다. 어느날 한 정신병자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왔다. 그는 허벅지까지 오는 진흙탕 속에서 보름을 지냈다. 보름이 지나자 그는 제정신을 차린 것 같다며 제발 꺼내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려 통사정을 했다. 의사는 고문과 다름없는 그 지저분한 늪에서 환자를 꺼내주기는 했지만 울타리 밖으로 절대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로부터 며칠간 정신병자가 의사의 말을 듣고 고분고분하게 지내자, 의사는 그에게 울타리 밖으로 나가도 좋다고 허락을 했다. 하지만 문 밖으로 나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정신병자는 신이 나서 집안을 돌아다녔지만, 항상 의사의 말을 명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신병자는 문가에 기대어 서있다가 말을 탄 기사가 매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았다. 두세 마리의 개도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평생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는 그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기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기사가 가까이 오자 정신병자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내 말 좀 들어봐요. 당신이 타고 온 게 뭔지 얘기해줘요. 그리고 그게 뭐에 쓰이는 건지도요." "이건 '말'이오. 사냥을 하기 위한 거라오." 다시 정신병자가 물었다. "그럼 당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뭐요? 그건 어디에 쓰이는 거요?" "이건 '매'라는 거요. 메추라기나 백로 같은 새들을 사냥하기 위한 거라오." 정신병자가 개에 관해서도 궁금해하자 기사가 말했다. "이건 '개'라는 건데, 사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동물이요. 개가 산토끼, 새, 그밖의 다른 사냥감들을 찾아내기 때문이라오." 그러자 정신병자가 물었다. "그러면 개나 매를 데리고 사냥하면 일 년에 얼마 정도 벌 수 있는 거요?"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대충 금화 사 리브라에서 오 리브라 정도 벌지 않을까 싶소." "그러면 그 개나 매에 드는 비용은 일 년에 어느 정도 됩니까?" "보통 오십 리브라 정도 든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자 정신병자는 그 기사가 미쳤다고 생각하고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어서 빨리 여기서 도망쳐요. 날 수만 있다면 날아서라도 빨리 도망을 가요. 우리 의사가 당신을 보면 안돼요. 의사가 당신이 얼마나 미쳤는가를 알게 되면 아마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요. 다른 정신병자들처럼 당신도 늪에다가 묶어놓을 거요. 내가 보기엔 당신이 제일 깊숙이 잠기게 될 것 같소. 이곳 환자들 중 당신이 가장 심하게 미쳤으니 말이오." *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 결국 망신을 당하게 되는 법이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ff 여덟번째 이야기 황소만한 여우 기사가 시종과 함께 길을 가다가 여우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원 세상에, 저렇게 큰 여우가 있다니!" 뒤따르던 시종이 기사에게 말했다. "저 여우를 보니 나으리께서 놀라실 만도 합니다. 하지만 옛날에 제가 살던 고장에서는 황소보다 더 큰 여우를 본 적도 있답니다." 그러더니 수다스러운 시종은 길을 가는 동안 계속해서 황당무개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참다 못한 기사가 말했다. "오, 전지전능하신 주피터 신이시여. 오늘 저희가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다치지 않고 아무 탈 없이 그 위험한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무사히 인도해 주옵소서." 기사의 기도 소리를 들은 시종이 기사에게 물었다. "나으리, 무슨 연유로 그렇게 간곡히 기도를 하시는 겁니까?" 기사가 대답했다. "너는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단 말이냐. 이제 우리는 신비의 강을 건너야만 해. 그런데 그날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 강을 살아서 건너지 못한다는 거야. 그냥 물에 빠져 죽고 마는 거지." 그 말을 들은 시종은 덜컥 겁이 났다. 조그만 개울물이 나오자 시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 강이 나으리께서 말씀하시던 그 위험한 강입니까?" "아니. 아직 근처에 오지도 못했다.?" "그래서 어쭤본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예전에 본 그 여우는 사실 당나귀만했습니다." 기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여우 크기가 어떻다는 거냐? 그게 무슨 상관이야." 계속 길을 재촉하던 두 사람은 이번에는 강을 만나게 되었다. "나으리, 이 강이 나으리께서 말씀하셨던 그 강이지요." 기사가 아직도 멀었다고 하자 시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나으리께 여쭤본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그 여우는 사실 새끼 송아지보다 작았어요." 그러자 기사가 말했다. "나는 그 여우가 크건 작건 별 관심이 없다." 잠시 후에 그들은 또 다른 강가에 도착했다. 그러자 수심에 잠겨 있던 시종의 얼굴이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틀림없이 이 강이 그 위험하다는 강이지요?" "그 강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그 여우 말인데요. 사실 그 여우는 양만한 놈이었지요." "이제 여우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 좀 할 수 없겠느냐?" 어느덧 오후가 되어 엄청나게 큰 강에 도착하자 시종이 말했다. "틀림없이 이 강이 나으리께서 말씀하신 그 강일 것 같네요." "그래. 이 강이 바로 그 신비의 강이다." 그러자 시종은 잔뜩 겁에 질려 창피를 무릅쓰고 말했다. "나으리. 여우에 대해 거짓말했던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겠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맹세컨대 예정에 봤던 그 여우는 오늘 우리가 함께 봤던 그 여우보다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기사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에게 맹세컨대, 이 강이 다른 강들보다 위험할 이유는 전혀 없느니라." * 거짓말은 언제나 더한 거짓말을 낳는 법. 아무 생각없이 거짓말을 하다가는 자신의 말을 번복해야 하는 때가 온다.@ff 아홉번째 이야기 콩과 콩 껍질 재산도 많고 평판도 좋은 부자가 있었다. 남 부러울 게 없는 삶이었지만 그는 항상 '만약 가난해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고심 끝에 현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자 덕망 높은 현자는 부자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내로라 하는 부자인 두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하나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여 극심한 가난에 빠지고 말았지요. 입에 풀칠할 것조차 구하지 못했던 그가 유일하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콩을 몇 알 띄운 수프 한 대접이었습니다. 쓰디쓴 수프를 먹으며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니 부족한 것 없었던 옛날이 생각나 그는 서글픔에 잠겼습니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콩 껍질을 등뒤로 버리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한 남자가 자신이 버린 콩 껍질을 주워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남자는 부자였던 두 사내 중 다른 하나였지요. 그는 껍질을 주워 먹는 남자에게 어쩌다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말했지요. "한때는 내가 자네보다 더 부자였지. 그런데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이젠 끼니를 채우지도 못하게 되었다네. 오늘도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자네가 버리는 콩 껍질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이 말을 들은 남자는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후로는 마음을 가다듬고 일을 한 끝에 그 불행한 상태에서 벗어나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끝낸 현자는 부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한다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신의 섭리지요. 그러나 원하는 것 모두는 아니더라도 신이 당신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편하고 정직하게 살 수 있으니, 만일 돈이 모자라 어려운 때가 있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당신보다 더 부유하고 명예로운 사람들도 어려운 때가 있음을, 당신보다 가난한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자신의 빈궁한 처지가 서글퍼질 때면 자신보다 더 불행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생각하라.@ff 열번째 이야기 당나귀를 팔러 간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장에 가고 있었다. 그들은 당나귀에 아무 것도 싣지 않은 채였다. 길을 가다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와 아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제정신이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당나귀를 써먹지도 않을 거면 먹이는 왜 준 거요? 그걸 타고 가면 몸도 덜 피곤하고 신발도 덜 닳지 않겠소? 당나귀야 튼튼하고 건강하니 그 위에 탄다고 해서 뭐가 문제요? 그게 당나귀가 해야 할 일이 아니오. 워낙 일할 팔자를 타고 태어난 놈 아니냔 말이오?" 사람들의 말을 그럴듯하게 여긴 아버지는 당나귀 위에 아들을 태우고 자기를 걸어서 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고 해도 그렇지. 아버지는 늙어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하는데 그냥 걸어서 가고, 사냥개보다 더 잘 뛸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녀석은 당나귀를 타고 와? 자식을 잘못 키워도 영 잘못 키웠어. 자식 교육은 그렇게 시키는 게 아닌데. 그렇게 키워봐야 게으르고 철없는 한량밖에 더 되겠나?" 그들의 충고가 제법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늙은 아버지는 아들을 내려오게 하고, 자기가 당나귀를 타고 갔다. 그렇게 아버지는 당나귀를 타고, 아들은 뒤에서 걸어가다가 또다른 나그네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보자마자 나무라기 시작했다. "원 세상에, 무슨 아버지가 저리도 매정하담. 둘 다 태워도 끄떡없을 것 같은 당나귀인데 자기 혼자만 타고 가다니. 아들보다 당나귀를 더 귀하게 여기는 모양이군. 이 더위에 저렇게 걸어가다니 아들이 무슨 고생이야. 저러다가 더위라도 먹어 일사병에 걸리면 몸도 탈날 텐데. 다리라도 다쳐봐. 병신되기 딱 십상이지.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 병원신세나 지고 골골할 텐데."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이 측은해져서 아들도 당나귀에 함께 태웠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타고 가다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전에 보았던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아버지와 아들을 나무랐다. "세상에 별꼴을 다 보겠네. 당나귀 한 마리 위에 장정 둘이 타고 가다니. 당나귀 한 마리 위에 당나귀 두 마리가 올라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 저 가련한 것이 힘이 들어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잖나. 인정사정도 없는 사람들 같으니. 차라리 그 당나귀를 타고 언덕길을 올라가지 그래. 당나귀가 배가 터져 죽어야 직성이 풀릴 사람들이야."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구나. 당나귀가 지쳐서 죽으면 안 되잖니. 다리를 묶어서 막대기에 걸쳐 성까지 들고 가자꾸나. 그렇게 하면 힘도 덜 들고, 또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인정 많다고 칭찬도 할 것 아니겠니? 당나귀도 푹 쉬고 나면 팔 때 돈도 더 많이 쳐서 받을 수 있을 테고."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의 네 발을 묶어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이런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마구 비웃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나? 이 당나귀가 똑똑하기는 똑똑한가 보군. 두 멍청한 인간들이 자기를 메고 언덕길을 오르게 하니 말이야. 저 당나귀라면 두 사람을 태우고 거기다가 짐까지 실을 수도 있을 텐데, 거꾸로 당나귀가 사람들한테 실려가다니.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러 태어난 짐승인데 저리 신주단지처럼 모셔서야 되겠나. 괘씸한 짐승이로군. 저런 놈은 가죽을 벗겨서 세상 사람들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해." 아버지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당나귀가 괘씸해지면서 화가 났다. 그는 당나귀를 메고 가던 막대기를 꺼내들고는 당나귀 머리를 냅다 내리쳤다. 당나귀가 그 자리에서 죽어 고꾸라지자 아버지는 당나귀 껍질을 벗기면서 말했다. "온종일 이 놈의 당나귀 때문에 수도 없이 욕만 먹었군. 이제 이 놈 껍데기를 벗겨버리면 욕 먹을 일도 없겠지." 아버지는 당나귀 껍질을 어깨에 들쳐메고 장으로 갔다. 착한 일보다는 나쁜 일에 더 눈독을 들이는 동네 개구장이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개구장이들은 늙은 노인네가 피범벅이 된 당나귀 껍질을 팔려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 껍질을 뺏아 여기저기로 던지다가 진흙탕 속에 빠뜨렸다. 그 덕에 노인의 얼굴은 진흙범벅이 되고 말았다. 진흙과 피투성이로 온몸이 엉망이 된 그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 주려다가 결국에는 재산을 잃고 망신만 당한 꼴이 되었다.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만족시킬 수는 없으므로 자기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남의 말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된다.@ff 열한번째 이야기 세 명의 길동무 세명의 길동무들이 있었다. 그들은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다가 우연히 만난 사이였는데 두 명은 도시에 사는 상인이고, 나머지 한 명은 시골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식량이 떨어져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조그만 빵 한 개만 겨우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밀가루뿐이었다. 약아빠진 도시상인들이 이걸 보고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이젠 더 먹을 빵도 없어. 저 시골놈이 엄청 먹어댔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러니 그나마 남은 빵이라도 저 녀석을 빼고 우리끼리 먹을 궁리를 해야 돼." 이렇게 해서 그들은 시골사람을 속일 꾀를 생각해내곤 이렇게 말했다. "우리 셋 중에서 가장 신기한 꿈을 꾼 사람이 마지막 남은 빵 한 개를 먹는 걸로 합시다." 세 길동무는 이렇게 하기로 결정을 하고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골사람은 도시상인들의 꿍꿍이속을 눈치채고는 반쯤 익다 만 빵을 다 먹어치우고 다시 잠을 잤다. 잠시 후 상인 중 하나가 신기한 꿈을 꿨는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신기한 꿈을 꿨는지 놀라서 자지러지는 줄 알았네. 천사 두 명이 나타나 하늘의 문을 열어주고는, 신이 계신 곳으로 나를 인도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들은 다른 상인이 환희에 찬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 꿈 한 번 신기하네. 하지만 내가 그보다 더 신기한 꿈을 꿨으니 한 번 들어보게나. 내 꿈에는 천사 두 명이 나타나서 나를 땅 위로 질질 끌고가 지옥으로 데리고 갔다니까." 시골사람은 계속 잠든 척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상인들은 이제 자기네 속임수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 시골사람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시골사람이 너무나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니, 누가 나를 깨우는 거야?" 상인들이 대답했다. "그야 우리지. 누구긴 누군가?" 그러자 시골사람이 다시 물었다. "아니, 이떻게 다시 돌아왔어?" 상인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우리는 여길 떠난 적이 없는데 다시 돌아왔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시골사람이 대답했다.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천사 두 명이 나타나서 자네둘 중 한 명은 신 앞으로 데리고 가고, 다른 한 명은 지옥으로 질질 끌려가는 꿈을 꾸웠네. 여기껏 천국이나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자네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지. 그래서 아까 일어나 혼자서 빵을 다 먹어치웠다네." * 자기가 똑똑한 줄 알고 어수룩한 상대방을 속이려하다가는 오히려 자기가 자기 꾀에 빠질 수도 있다.@ff 열두번째 이야기 분수를 모르는 씨돼지 조그만 씨돼지가 다른 돼지떼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씨돼지는 자기가 덩치가 작아 우두머리가 되지 못하는 데다 다른 돼지들이 자기를 떠받들지 않자 늘 불만에 차 있었다. 그래서 다른 돼지들에게 어금니를 들이대면서 못살게 굴기도 했지만 자기가 아무리 괴롭혀도 돼지들이 꿈쩍도 하질 않자 제풀에 지쳐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여기서는 내가 뭘 시켜도 들은 척도 하질 않아.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무서워하지 않고, 갖은 협박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질 않아." 씨돼지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곳을 떠나서 자기를 알아주는 곳으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길을 떠난 씨돼지는 양떼들을 만났다. 씨돼지가 양떼 한가운데로 가서는 이를 갈면서 씩씩거리자, 양떼들이 겁에 질려 하나 둘씩 도망가기 시작했다. 씨돼지가 흐뭇해져서 말했다. "여기서 사는 게 좋겠군. 여기서는 대접을 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화를 내면 무서워서 도망가고 겁을 주면 기겁을 하잖아. 여기 있으면 모두에게 존경받을 수 있을 거야." 씨돼지 혼자 기분이 들떠 이렇게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굶주린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양떼들을 잡아먹으려 했다. 늑대가 오는 것을 본 양들은 가파른 바위가 있는 곳으로 얼른 도망을 쳤지만, 씨돼지는 양들이 자기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고는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다. 씨돼지는 꼼짝없이 늑대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옛날 같이 살던 돼지떼들이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들을 알아본 씨돼지가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자 돼지떼들이 달려들어 힘을 합쳐 늑대를 물리치고는, 거의 반쯤 죽다 살아난 동료를 구해주었다. 씨돼지는 온몸이 아프기도 하고 망신스럽기도 해서 울상이 된 얼굴로 자기를 구해준 돼지들에게 말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겠어요. 내가 가족 곁을 떠나지만 않았어도 이런 봉변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 자기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거만한 사람은 큰 봉변을 당하기가 쉽다.@ff 열세번째 이야기 진정한 친구 아라비아의 한 현자가 아들에게 말했다. "개미가 너보다 더 현명하다는 사실을 묵과하면 안 된다. 여름에 아끼고 열심히 일하는 자만이 겨울에 편하게 사는 것이다. 닭이 너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도 안 된다. 닭은 꼭두새벽에 일어나는데 너는 잠만 자는구나. 아홉 여자를 거느리는 남자가 너보다 더 강해서도 안 된다. 너도 원한다면 한 여자는 거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가 너보다 더 의리가 있어서도 안 된다. 개는 항상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데 너는 그렇지 못하구나. 아무리 하찮은 적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되며 많은 친구들을 가진 것처럼 허세를 부려서도 안 된다." 죽음에 임박하여 아라비아의 현자가 다시 아들을 불렀다. 현자는 아들에게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제 생각에 백 명은 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 너에게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나는 아직 반쪽 친구도 얻지 못했다. 그것도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아느냐. 그런데 네가 그 많은 친구들을 가졌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구나. 그러면 너는 네 친구들 중 누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느냐." 현자의 말에 아들은 도리어 물었다. "아버지, 어떤 친구를 진정한 친구라고 합니까?" 그러자 아버지는 '모두가 등을 돌릴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한 철학자의 말을 들려주었다. 아들이 다시 현자에게 질문을 했다. "혹시라도 진정한 친구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버지가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본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아들은 나중에라도 그런 친구를 가질지 모르는 일이니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현자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상인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이집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바그다드인이었는데 그들은 심부름꾼과 편지 그리고 남들의 이야기로만 서로를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장사를 하면서 거래차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바그다드 상인이 이집트에 갈 일이 생겼다. 친구가 온다는 전갈을 받은 이집트인은 너무나도 반갑게 그를 맞이하며 자기 집에 묵게 했다. 그는 일 주일 동안 친구에게 후한 대접을 하고, 자기의 은밀한 비밀까지도 전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바그다드에서 온 친구가 갑자기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이집트 상인은 친구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 지방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의사들 중에서도 제일 이름난 의사 몇 명을 골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친구의 맥을 짚어본 의사들은 그가 아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면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그가 마음이 병들었거나, 귀신에 홀렸거나, 사랑에 빠졌거나, 욕심이 많아서 아픈게 아니라면 아프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집트 상인은 친구에게 자기한테만은 숨김없이 말해보라고 사정했다. 혹시 자기 집에 마음에 둔 여자가 있는지, 그래서 그 여자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긴 건지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다. "자네 집에 있는 여자들을 전부 보여주게나. 만일 그 여자들 중에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면 사실대로 말하겠네." 그래서 이집트 상인은 자기 집에 있는 모든 하녀들을 불러모았다. 하지만 친구가 찾는 여자는 거기에 없었다. 이집트 상인의 딸들 중에도 그가 찾는 여자는 없었다. 이집트 상인은 마지막으로 오래 전부터 자기의 아내로 삼으려고 마음먹었던 여자를 데려오게 했다. 그 여자를 본 친구는 바로 저 여자한테 자기 목숨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집트 상인은 아름답고 우아한 그 처녀를 그 자리에서 지참금까지 줘서 친구와 결혼을 시켰다. 그러자 그 친구는 곧 병이 나았고, 사업차 왔던 일이 끝나자 그 여자를 데리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세월이 한참 흘렀고 이집트 상인은 우여곡절 끝에 전 재산을 다 잃게 되었다. 그는 바그다드에 있는 친구에게 갈까 생각했다. 그 친구가 자기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의 벌거벗은 거나 다름없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배고픔을 참으며 친구를 찾아갔다. 그는 밤이 되어서야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하지만 자기의 형편없는 몰골이 창피해서 친구 집으로 찾아간다는 게 두려웠다. 더군다나 야심한 시간에 찾아간다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사원 안에서 밤을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사원 안에 드러누워 이런 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거리던 그는 자기가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화도 삭이고 바람도 좀 쐴 겸 걸어다니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거리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한 남자가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싸움소리를 듣고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은 죽어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자 살인자를 잡겠다며 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남루한 행색의 이집트인을 보자 그를 의심하게 되었다. 이집트 상인은 사람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는 어차피 이렇게 빈털털이가 된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자기가 그 남자를 죽였다고 말해버렸다. 이렇게 해서 그 이집트 상인은 그날 밤 당장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음날 재판관 앞으로 끌려간 이집트 상인은 교수형을 받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교수형당하는 광경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는데, 마침 이집트 상인을 찾아왔던 그 바그다드 상인도 구경꾼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는 친구를 알아보고는, 믿기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사형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의 이집트 친구, 자기를 극진히 대접했고 사랑하는 여자까지 양보했던 바로 그 친구였던 것이다. 그는 남자라면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죽고 나면 은혜를 갚을 길이 영영 없어진다고 생각한 그는 친구를 대신해서 죽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 나쁜 재판관 놈들아. 왜 죄없는 사람을 죽이려는 거냐. 너희들이 아무리 그 사람을 죽여봐야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바로 나니까. 내가 그 남자를 죽였다. 내가 살인자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재판관들은 그를 붙잡아들인 후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원래 사형에 처하려고 했던 이집트 상인은 풀어주었다. 이 모든 걸 보고 듣고 있던 진짜 살인범은 자기가 지은 죄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서로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두 친구의 우정과 믿음을 보게 된 것이다. 벌을 받을 사람이 있다면 자기인데, 아무 죄도 없는 그들이 죽는다면 그건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 살인범은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재판관님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사실 신들이야말로 공평한 재판관님이십니다. 신들은 무고한 사람이 처벌당하도록, 또 죄인이 벌을 받지 않고 무사하도록 내 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저 세상에서 더 엄하고 처참한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그 남자를 죽인 진짜 살인범이라는 걸 자백합니다. 내가 지은 죄값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죄없는 그 사람은 풀어주시고 죄인인 나를 벌해주십시오!" 깜짝 놀란 재판관들은 그 남자를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뭔가 더 자세히 조사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사건에 대한 경위서와 함께 세 사람을 포승에 묶어서 왕에게 보냈다. 왕도 그 사건이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그 살인사건이 정당방위였음이 드러났고, 세 사람은 모든 의원들과 현자들의 동의를 얻어 무죄를 인정받고 석방되었다. 그리고 애 세 사람이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외쳤는지 그 진짜 이유도 밝혀지게 되었다. 바그다드 상인은 이집트 친구가 가난해진 것을 보고는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말했다. "자네가 내 집에 머무르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자네 것이야. 우리 둘이 같이 공유하는 거지. 그게 싫다면 내 재산을 둘로 똑같이 나눠서 반반씩 갖도록 하세. 나는 아무래도 좋아." 그리하여 이집트 상인은 친구가 나눠준 재산을 가지고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들이 현자에게 말했다. "아버지. 그런 친구는 옛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친구는 많이 있지만 어려울 때 자신을 던져 도움을 주는 친구는 많지 않다. 그런 친구가 바로 진정한 친구이다.@ff 열네번째 이야기 억울한 누명 한남자가 아무 재산도 없이 집 한채만 덩그라니 아들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막노동을 해서라도 먹고 살려고 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배를 곯는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집을 파느니, 무슨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견디려 했다. 그런데 한도 끝도 없이 욕심이 많은 옆집의 부자가 그 집을 탐내기 시작했다. 그는 청년이 집을 팔게 만드려고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청년은 옆집 남자가 얼마나 음흉하고 교활한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자가 그에게 다가가 달콤한 말로 속삭였다. "자네가 집을 팔지 않는다고 원망할 노릇은 아니지. 그러면 그 집의 일부분이라도 세를 놓을 수 없겠나? 거기에 올리브 기름 열 통을 갖다놓을 테니 자네가 그걸 보관해주게나. 수고비와 방세도 톡톡히 쳐주겠네. 그럼 자네한테 득이 되면 되었지 해는 안 될 걸세." 이 말에 솔깃해진 청년이 자기 집의 방 한 칸을 세주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속임수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청년은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에 부자는 기름이 잔뜩 든 다섯 개의 통을 방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통에는 기름을 반만 채우게 했다. 청년이 돌아오자 부자는 그에게 방 열쇠와 기름통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나는 자네만 믿고 기름을 맡겨놓는거야. 자네가 잘 지켜야 해." 청년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보관하게 될 기름 열 통이 다 꽉 차 있는 걸로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기름값이 많이 오르게 되자 부자는 기름을 팔아야겠다고 청년에게 말했다. 청년은 부자와 기름을 사러 온 상인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다섯 통에만 기름이 가득 들어 있고, 나머지 다섯 통에는 반만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속이 시커먼 부자가 이걸 보고는 청년에게 말했다. "기름 좀 보관해달라고 그랬더니 자네가 나를 속인게로군. 이럴 수가 있나? 당장 모자라는 기름 양을 채워놓도록 하게." 청년은 자기가 속인 게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결국 죄인이 되어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청년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제가 기름 열 통을 보관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름을 빼돌리지는 않았어요. 너무 억울합니다." 그는 재판관에게 자기의 무죄를 입증할 시간을 달라고 청했다. 단 하루의 여유를 얻은 청년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주기로 소문난 철학자를 찾아갔다. 청년은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고는 겸손하게 그의 충고와 도움을 청했다. 청년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철학자는 그를 가엾게 여겼다. "여보게, 마음을 단단히 먹게나. 내가 자네를 도와주겠네. 거짓이 진실을 이겨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다음날 청년은 철학자와 함께 재판정에 나갔다. 그날은 마침 의회가 열린 날이라 왕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양쪽의 주장을 다 들은 왕이 철학자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이 사건을 맡기려 하네. 자네 같으면 어떤 기준으로 이 사건을 공정하게 판결하겠나?" 철학자가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 부자는 평판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할 사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 청년도 지금까지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못 믿을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선 기름이 가득 들어 있는 다섯 통과 그 안에 들어 있는 기름 찌꺼기의 양을 한 통씩 재보도록 해야 합니다. 기름이 반만 들어있는 다섯 개의 통도 같은 방법으로 재봐야 합니다. 찌꺼기의 양이 똑같다면 이 청년이 기름을 훔친 게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기름이 반밖에 안 들어 있는 기름통의 찌꺼기가 기름으로 가득 찬 통에서 나온 찌꺼기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면 이 청년은 무죄로 석방되어야 합니다." 철학자의 말대로 기름 찌꺼기를 재어보자 기름이 가득 들어 있는 통의 기름 찌꺼기가 반만 들어 있는 기름통 찌꺼기의 두 배임이 밝혀졌다. 결국 청년은 무죄로 판명되었고, 아버지가 물려준 자기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 남의 것을 탐내 잔꾀를 부려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그 속성을 간파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ff 열다섯번째 이야기 술에 취한 늑대 이야기 아주 많은 양들을 거느린 부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늑대들로부터 양을 지키는 개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부자가 워낙 인색한지라 내는 늘 배를 곯으며 사는 실정이었다. 어느날 늑대가 개에게 와서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말랐니?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러는구나? 그래 네 주인이 워낙 구두쇠라고 소문이 났으니 먹을 걸 제대로 줄 리가 없지. 네가 원한다면 좋은 생각이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개가 솔깃해져서 대답했다. "지금 나한테는 네 충고가 굉장히 절실해. 뭐든지 한 번 말해봐. 이젠 말할 힘도 없는 지경이야."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충고란 바로 이거야. 내가 양떼를 덮쳐서 양 한 마리를 훔쳐 도망가는 척할게. 그러면 그때 네가 나를 따라오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네가 힘이 달려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중간에 주저 앉아버리는 거야. 목동들이 그걸 보면 '저 놈을 제대로 먹이기만 했어도 늑대는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말할 거야. 그러면 그 때부터 너를 제대로 잘 먹이지 않겠니?" "그래 네 계획대로 하자." 잠시 후에 늑대가 양 한 마리를 낚아채 도망을 쳤다. 개가 늑대 뒤를 쫓아 열심히 뛰어갔지만 늑대를 잡기도 전에 기운이 달려 쓰러지고 말았다. 목동들과 집안 식구들이 그걸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먹는 걸 제대로 못 먹어서 저러는 거야. 제대로 잘 먹어 건강하기만 했어도 늑대가 어디 감히 나타나기나 했겠어. 아마 양 껍질도 못 가지고 갔을 거야. 충분히 먹질 못해서 그런 거니까 이번 일은 저 놈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주인은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 개에게 먹이를 준 놈이 대체 어떤 놈이야. 망할 녀석 같으니. 내가 배불리 먹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개를 굶어죽일 뻔했잖아." 집 주인은 자기 잘못을 다른 식구들 탓으로 돌리고 앞으로는 개에게 먹을 것을 충분히 주라고 명했다. 그 때부터 개는 고기 국물도 먹고 빵 부스러기도 먹고 해서 조금씩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늑대가 다시 개 앞에 나타나 말했다. "내가 너에게 좋은 충고를 했다는 걸 인정하겠지?" "그럼 좋다뿐인가. 나한테는 절실한 충고였지." "그럼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 "그래 어디 한 번 말해봐." "그 계획이란 게 말이야. 내가 다시 양을 낚아채 도망가는 거야. 그럼 네가 나를 쫓아와서 내 가슴에 살짝 상처를 입히는 거야. 하지만 곧 기운이 달려 더 이상은 못 쫓아가겠다는 시늉으로 쓰러지는 거지. 그럼 목동들이 '정말 저 놈을 제대로 배불리 먹였으면 확실히 기운을 썼을 텐데. 그랬으면 양도 뺏기지 않았을 테고, 늑대도 저 놈 손에 살아나지 못했을 텐데' 라고 말할 거야." 늑대의 계획을 들은 개가 대답했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는 주인님이 너무 무서워. 하지만 배불리 먹도록 주질 않으니 네가 말한 대로 할 수밖에." 늑대는 양떼에게 다가가 제일 통통하게 살찐 양 한 마리를 낚아채 도망가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한 대로 개가 늑대 뒤를 쫓아 열심히 뛰어가서 늑대의 가슴에 상처까지 입혔지만 기운이 달려 더 이상은 못 하겠다는 듯 땅바닥으로 그냥 쓰러져버렸다. 그 광경을 본 목동들이 말했다. "저 개를 좀더 배부르게 먹였으면 늑대가 살찐 양을 훔쳐가지도 못했을 테고, 늑대도 살아서 도망가지는 못했을 텐데." 그 말을 들은 주인은 화가 나서 앞으로는 개가 질릴 때까지 배불리 먹이라고 명령했다. 그때부터 개는 푸짐한 고깃덩어리와 빵을 먹을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늑대가 개 앞에 다시 나타났다. "어때, 내 말대로 됐지?" 고개를 끄덕이며 개가 대답했다. "그래, 모두 다 네 덕이야. 정말 고마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양 한 마리를 훔쳐가도 그냥 못 본 척하고 넘어가 줄래?" "내가 보기에는 그 대가를 이미 받은 걸로 아는데? 벌써 우리 주인님 양을 두 마리나 먹어치웠잖아." "너만 눈 감아주면 돼." "나는 못 본 척할 수가 없어. 네가 만일 무모하게 그런 짓을 한다면 넌 살아서 도망갈 수 없을 거야." 이 말을 듣고 늑대가 말했다. "그러면 난 지금 너무 배가 고파 죽기 일보 직전이니까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해봐." 개가 말했다. "마침 빵과 소금에 말린 고기와 포도주를 가득 보관해놓은 식량창고 벽이 어제 허물어졌어. 오늘밤에 그곳에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야." "나를 속이려고 그러는 거지? 내가 집 안에 들어가면 네가 마구 짖어대서 사람들에게 내가 거기에 와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 아니야?" "맹세할게.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마. 안심하고 먹을 거나 챙겨가도록 해." 날이 어두워지자 늑대는 식량창고 안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빵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는 포도주를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서 술주정까지 했다. "사람들은 빵과 포도주를 배불리 먹고 나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단 말이야.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나라고 노래 못 할 거 없지." 늑대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랫소리를 들은 개들이 일제히 짖어댔지만 늑대는 계속해서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늑대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말했다. "늑대가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 늑대 소리가 굉장히 가깝고 크게 들리는 걸. 늑대가 식량창고 안에 있는 게 틀림없어." 사람들은 일제히 식량창고로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늑대를 발견하고는 모두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말았다. * 도에 지나친 행동을 하면 결국 큰 화를 입게 된다. 만용을 부리지 말고 무엇이든 적당한 선에서 끝낼 줄 알아야 한다.@ff 열여섯번째 이야기 당나귀의 발을 핥은 늑대 당나귀가 산 중턱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데 여우가 와서 물었다. "너는 누구니?" 당나귀가 대답했다. "나는 짐승이야." 그러자 여우가 다시 말했다. "내가 물어보는 건 그게 아니야. 네 조상이 누구냐는 거지." "말이 내 할아버지뻘이 돼." "그것도 내가 물어보려는 게 아니야. 네 이름이 뭔지나 말해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난 내 이름도 몰라. 그래서 이름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왼쪽 발바닥에 이름을 새겨놓았대. 이름이 뭔지 알고 싶으면 내 발바닥에 새겨져 있는 걸 읽어봐." 여우는 당나귀의 속셈을 눈치채고는 그냥 산 속으로 들어가다가 평소에 사이가 나빴던 늑대를 발견했다. 때마침 늑대는 배가 고파서 탈진한 상태로 나무그늘 밑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여우는 늑대를 골탕먹일 속셈으로 늑대에게 다가가 마구 야단치기 시작했다. "아이구, 멍청하기는. 배가 고프다면서 왜 가만히 앉아 있는 거니? 얼른 일어나서 들판 있는 곳으로 가봐. 통통하게 살찐 동물이 있으니까 빨리 가서 잡아먹도록 해."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진 늑대가 초원으로 뛰어가서 여우와 똑같이 당나귀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니?" "나는 짐승이야." "내가 물어보는 건 그게 아니야. 네 조상이 누구냐는 거지." "말이 내 할어버지뻘 돼." "그것도 내가 물어보려는 게 아니야. 네 이름이 뭔지나 말해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난 내 이름도 몰라. 그래서 이름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왼쪽 발바닥에 이름을 새겨놓았대. 이름이 뭔지 알고 싶으면 내 발바닥에 새겨져 있는 걸 읽어봐." 당나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늑대는 당나귀의 속임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당나귀의 발바닥을 들여다보던 늑대는 뭐라고 씌어 있는지 자세히 보려고 흙투성이인 당나귀 발을 혀로 깨끗이 핥기 시작했다. 늑대가 당나귀 발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있을 때 갑자기 당나귀가 늑대의 이마 한가운데를 냅다 걷어찼다. 순간 눈알이 빠지면서 늑대는 기절해 넘어져버렸다.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여우가 박장 대소하면서 말했다. "아이구, 바보 같은 녀석.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 글을 읽겠다고 하는 꼴이란. 이제 쥐뿔도 모르는 놈이 아는 척하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걸 알겠지?" 앙숙인 늑대를 골탕먹이고 신이 난 여우가 다시 길을 가다가 독수리가 달팽이를 낚아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달팽이가 껍질 안으로 들어가 꼼짝을 하지않는 바람에 독수리는 달팽이를 먹을 수가 없었다. 여우는 달팽이 껍질을 깨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는 까마귀에게 다가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맛있는 걸 잡아오셨네. 하지만 머리를 써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그러자 독수리가 여우에게 달팽이를 나눠줄 테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여우는 이렇게 충고했다. "아주 높이 날아가서 바위에다 달팽이를 힘껏 떨어뜨리면 달팽이 껍질이 깨질 거예요. 그러고 나서 사이좋게 나눠먹으면 되잖아요?" 독수리는 좋은 생각이라면 하늘 높이 날아가 달팽이를 바위 위에 힘껏 떨어뜨렸다. 그러자 바위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우는 껍질이 깨진 달팽이를 가지고 재빨리 숲속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 눈앞의 이익에 혹하여 남의 말을 쉽게 믿다가는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ff 열일곱번째 이야기 영혼을 구원받지 못한 집사 카르카손에 살고 있던 한 집사가 병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수도원장과 주교를 모시고 오게 했다. 집사는 그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유언으로 남기면서 자기가 죽고 나거든 당부해둔 대로 일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것은 그가 원하던 대로 이루어졌다. 집사는 죽기 전에 사제들에게 많은 보상을 한 터라, 사제들은 그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한여자가 그 마을에 나타났다. 그 여자는 여러 가지 놀라운 말들을 하고 다녔는데, 들리는 말로는 그 여자에게 신이 내려서 그 마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했다. 집사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은 사제들은 그 여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놀라운 사실들을 말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그 여자를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집사는 영혼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신들린 여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 여자는 왜 자기를 찾아왔는지 알고 있다면서 그들이 궁금해하는 그 영혼은 얼마 전에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으려 했다. 그 집사는 너무나 진실하게 고해성사를 했고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성사를 다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제들은 만약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이 참된 것이라면 그 여자의 말은 사실일 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신들린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당신들이 믿는 신앙이 진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집사가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죽고 나서야 행했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의 의도가 선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자기가 죽거든 이러이러하게 하라는 말은 만약 죽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게다가 그 집사는 자기의 명성이 세상에 남기를 원했기에 선행을 행한 것이랍니다." * 신은 선행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선의에 상을 주신다. 선행을 했더라도 그 의도가 선한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영혼은 구원받을 수 없다.@ff 열여덟번째 이야기 쓰디쓴 호두 호두나무 아래에 있던 원숭이는 그 나무에 열려 있는 열매의 이름이 무엇인지, 맛은 있는지 늘 궁금했다. 어느날 그 나무에서 아주 맛있는 호두열매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원숭이는 그 맛있는 걸 따먹을 생각을 하면서 혼자 흐뭇해했다. 하지만 나무가 워낙 높은 데가 중간에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가지들이 없어 그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숭이는 근처에 있는 한 농가를 찾아가 사다리를 좀 빌려달라고 집 주인에게 사정했다. 농부가 빌려준 사다리를 끙끙거리며 힘들에 가지고 온 원숭이는 갖은 고생 끝에 호두나무 위로 올라갔다. 호두열매를 딴 원숭이는 호두를 껍질째 날름 깨물었다. 하지만 딱딱한 호두 껍질에서는 쓴맛만 날 뿐 아무 맛도 없자 화가 나서 호두를 냅다 던져버렸다. 몇 개를 더 따먹어봤지만 매번 같은 맛일 뿐이었다. 원숭이는 분통을 터뜨리며 호두 열매들을 멀리 던져버리고는, 그 껍질 안에 있는 뇌 모양의 진짜 호두 열매는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원숭이는 아무 성과도 없이 고생만 한 것이 너무도 억울해 죽을 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나한테 이 호두가 맛있다고 칭찬하고, 먹을 수 있게 도와주고 충고해준 놈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야. 내 평생 이렇게 공들이고 헛수고만 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호두 열매가 그렇게 달고 맛있다고 하더니 이게 뭐야. 쓰기만 하잖아." 원숭이는 이렇게 한탄만 늘어놓다가 깊은 한숨을 쉬고는 그곳을 떠나갔다. *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일단 시작을 하고나면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일을 하는 과정보다는 그 일을 마쳤을 때의 결실을 보고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쓴맛을 못 본 사람은 단맛을 볼 자격도 없다.@ff 열아홉번째 이야기 우물에 갇힌 늑대 여러 마리의 소를 가진 농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소들이 워낙 말을 듣지 않아 농부는 땅을 갈려면 무진 애를 먹어야 했다. 그때마다 농부는 화가 난 나머지 소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똑바로 가지 않고 삐딱하게 가려고만 하니, 늑대들한테나 잡아먹으라고 줘야겠다." 이 말을 들은 늑대를 농부가 자기한테 소를 줄 거라고 믿고는 하루종일 기다렸다. 그런데 농부는 소들의 쟁기를 풀더니 그냥 자기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늑대는 농부에게 달려가 말했다. "당신이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나한테 소를 주겠다고 약속해놓고는 그냥 가면 어떡합니까? 당신이 약속한 거니까 지키세요. 나도 급하다고요."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다. "그냥 해본 소리 가지고 약속을 지키라니 그건 말도 안돼. 맹세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당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갈 줄 알아." 늑대와 농부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공정한 재판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길을 떠나려던 차에 그들은 그 옆을 지나가던 여우를 만났다. 여우가 그들에게 물었다. "안녕, 친구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 겁니까?" 늑대와 농부가 여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여우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것 때문이라면 다른 재판관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요. 내가 두 분들을 위해 공정한 재판을 해드리죠. 나야 두 분 사정을 훤하게 알고 있으니까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거예요. 우선 한 분씩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내가 내린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가서 다른 재판관들을 찾아도 늦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여우가 농부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이 나와 저 늑대에게 닭 두 마리만 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 소들이 안전하도록 조치를 취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당신이 한 말에 책임을 안 져도 돼요." 농부가 여우의 말을 따르기로 하자. 이번에는 늑대를 따로 불러 말했다. "친구야, 내 말 잘 들어. 요즘들어 내가 너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괘씸하지만, 그래도 너를 위해서 농부와 합의를 했다. 네가 소들을 가지고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너한테 좋은 치즈 한 덩어리를 주도록 했어. 그러니까 농부 말을 들어." 늑대도 여우의 제안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여우는 농부에게 소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고는, 늑대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너는 나랑 같이 맛있는 치즈가 있는 곳으로 가자." 여우는 늑대를 데리고 이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달이 떠오르자 우물가로 데리고 갔다. 여우는 우물에 비친 달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친구야, 잘 봐. 저기 큼지막하고 맛있게 생긴 치즈가 있지? 네가 밑으로 내려가서 그걸 가지고 올라오는 거야." 늑대가 대답했다. "이봐, 치즈는 네가 직접 나한테 건네줘야지. 네가 가져와. 하지만 만일 너 혼자 올라올 수 없으면 그때가서 내가 도와줄게." 여우가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 그렇게 하겠다고 선뜻 응했다. 그 우물에는 물을 퍼내기 위한 물통 두 개가 도르래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물통 한 개가 내려가면 다른 물통이 올라오게 되어 있었다. 여우는 우물 아래로 내려가서 한참을 꼼짝 않고 있었다. 그러자 늑대가 물었다. "이봐, 왜 그렇게 한참 걸리지? 치즈는 어떻게 된 거야?" 늑대는 여우가 혼자서 치즈를 다 먹어치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때 여우가 말했다. "치즈가 너무 커서 혼자서는 꺼낼 수가 없어. 얼른 다른 물통을 타고 내려와서 날 좀 도와줘." 늑대가 다른 물통을 타고 우물 밑으로 내려가자 여우가 타고 있던 물통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우는 우물 입구가 보이자 신이 나서 깡충 뛰어나갔고 늑대는 그만 우물 밑에 갇혀버렸다. * 감언이설에 넘어가 불확실한 것을 위해 확실한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ff 스무번째 이야기 어느 청년의 구애 아름답고 정숙한 여인을 아내로 둔 귀족이 있었다. 그는 성물을 구경하러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아내를 홀로 남겨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평상시 행동과 곧은 성품으로 보아, 그녀가 혼자 있어도 자기 자신을 잘 지키리라 믿었다. 남편이 길을 떠난 후에도 아내는 남편의 믿음대로 매사를 올바르게 처신하고 정조를 지키며 순결하게 살았다. 그러던 차에 마을의 젊은 청년이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게 되면서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루라도 그녀를 보지 않으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청년은 여러 사람들을 통해 많은 보석과 선물을 보냈지만 모든 게 헛수고였다. 청년은 너무나도 상심하여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하지만 몸을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어도 늘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의 집 주변을 맴돌았다. 그는 한 번만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기를 청했다. 하지만 여인은 청년의 청을 냉정히 거절했고, 청년은 너무나 슬프고 괴로운 표정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여인의 집 앞에 서 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근처를 지나가던 한 노파가 청년을 발견하고는 왜 그리 슬프게 우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마음씨 좋아보이는 노파에게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노파가 청년을 위로하며 말했다. "이제 기운을 차리게나. 내가 빠른 시일내에 자네가 원하는 걸 얻게 해줄 테니." 노파는 청년에게 희망을 심어주고는 그곳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온 노파는 암캐 한 마리를 방에다 가두어놓고는 아무 것도 먹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사흘 만에 매운 겨자를 바른 빵 한 조각을 개에게 먹였다. 너무나 배가 고팠던지라 덥석 그 매운 빵을 먹은 암캐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노파는 우는 개를 데리고 정숙한 여인의 집으로 향했다. 여인은 그 노파가 평상시 신앙심도 깊고 선량하기로 평판이 자자했기 때문에 반가운 얼굴로 정중하게 맞아들였다. 대화를 나누다가 개가 우는 것을 본 여인은 그 이유를 물었다. 노파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발! 이 암캐가 왜 눈물을 흘리는 건지 나한테 물어보지 말아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답니다. 그 이야기를 다 하기도 전에 내가 숨을 거둘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말에 더 궁금해진 여인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노파는 슬피 우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암캐가 사실은 내 친딸이라오. 이렇게 되기 전에는 행실바르고 기가 막히게 예쁜 딸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젊은 청년이 내 딸을 보고 반해서 사귀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내 딸이 쳐다보지도 않으니 결국에는 그 청년이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지요. 그 병에는 약도 없다잖아요. 그를 가엾게 여긴 신들은 모든 게 내 딸아이가 그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는, 내 딸을 이렇게 개로 둔갑시켜 놓았어요. 그 청년이 워낙 슬프고 간곡하게 기도를 올렸기 때문이지요." 노파의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변했다. "어떡하지요. 당신 말을 들으니 두려운 마음이 드는군요. 나도 얼마 전에 당신 딸과 비슷한 일을 겪었거든요. 나에게 너무나도 열렬히 구애를 하던 젊은 청년이 있었어요. 내 사랑을 받지 못하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지요. 하지만 남편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답니다."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노파가 말했다. "참 딱한 사정이네요. 하지만 당신이 내 딸처럼 개로 둔갑하지 않으려면 그 청년의 소원 한 가지는 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여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신의 뜻을 거역하지는 않겠어요. 그 청년이 나를 한 번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원하니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어요." 노파가 돌아간 후 여인은 대문 밖으로 나가 청년을 만났고 남편이 있는 자신의 처지를 잘 생각해보라고 청년을 설득했다. 그러자 청년은 남편을 극진히 사랑하는 부인의 마음에 감동하여 기쁘게 그녀를 떠날 수 있었다. * 사랑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상대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것이다.@ff 스물한번째 이야기 미련하게 욕심만 부린 늑대 늑대가 아침 일찍 일어나 기분좋게 기지개를 켜다가 방귀를 늘어지게 뀌고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재수가 좋을려나 보네. 꼬리에서 이렇게 기분좋은 소리가 났으니 말이야. 배불리 먹을 복을 생기려나?" 그리고는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중에 마차에서 떨어진 돼지 비계를 발견했다. 늑대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돼지 비계를 먹으면 배가 그득하게 차오를 테니까 오늘은 저 비계를 먹지 않고 그냥 가야지. 아침에 내 엉덩이가 예언한 바에 의하면 맛있는 걸 잔뜩 먹을 운세인데 미리 배를 채워두면 안 되지." 늑대는 조금 더 가다가 베이컨을 발견했다. "내 꼬리가 예언한 바에 의하면 오늘 맛있는 걸 먹을 운세니까 이걸 먹지 말고 그냥 지나쳐야지." 늑대는 또 절벽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다가 망아지와 함께 있는 암말을 발견하자 기분이 좋아 중얼거렸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내 오늘 먹을 복이 터질 줄 알았다니까." 늑대가 암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무척 배가 고파. 네 새끼를 잡아먹어야겠다." 그러자 암말이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하지만 어제 제 주인과 함께 길을 가다가 왼쪽 발에 가시가 박혔어요. 당신이 명의로 소문이 나 있으니 식사하시기 전에 내 발에 박힌 가시나 빼주세요. 그리고 나면 당신이 하자는 대로 다 하겠어요. 내 새끼를 드셔도 좋아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늑대가 암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주기 위해 말의 발바닥을 들여다보자, 암말이 냅다 늑대의 얼굴 한가운데를 걷어차고는 망아지를 데리고 산 속으로 유유히 도망쳐버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늑대가 혼자 중얼거렸다. '이까짓 일쯤이야. 하여간 오늘 안에 배불리 먹기만 하면 되잖아.' 늑대는 다시 길을 가다가 염소 두 마리가 풀밭에서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웬 떡이냐.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늑대가 염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잘들 있었느냐? 오늘 너희 둘 중 하나는 내 밥이 되야겠다." 그러자 한 염소가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하지만 우리 둘 중 누가 옳은지 재판부터 해주세요. 원래 이 벌판은 우리 아버지 것이었는데 이 녀석이 자꾸만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올바른 판결을 해주시면 당신 뜻대로 하겠어요." 늑대가 대답했다. "그쯤이야 기꺼이 할 수 있지. 하지만 너희가 어떤 방법으로 나눠 갖기를 원하는지 먼저 말해보거라." 그러자 다른 염소가 말했다. "저에게 좋은 방법이 하나 있어요. 당신이 초원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우리가 양쪽 끝에서부터 당신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겠어요. 먼저 도착한 염소가 이기는 거고, 진 염소는 당신 먹이가 되는 거예요." 늑대는 흔쾌히 그 방법에 동의했다. 그런데 염소들은 양쪽 끝에서부터 늑대가 있는 초원 한가운데로 있는 힘을 다해 뛰어와 늑대를 세게 들이받았다. 늑대는 양쪽에서 거센 충격을 받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정신까지 잃고 쓰러졌다.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된 늑대가 중얼거렸다.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야. 오늘 아침에 꼬리가 예언한 바에 의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테니 꾹 참아야지."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가던 늑대는 돼지가 새끼들과 함께 강가 풀밭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 이럴 수가. 내가 오늘 먹을 복이 있다니까." 늑대가 어미 돼지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 자식들을 잡아먹어야겠다." 그러자 어미 돼지가 아무렇지도 않은 양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하지만 우리는 몸을 깨끗이 씻어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했어요. 내가 보기에는 신의 뜻에 의하여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 같으니 당신이 사제가 되어 우리 의식대로 내 자식들에게 세례를 주세요. 그때 가서 그놈들을 잡아먹든지 말든지 그건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깨끗하게 씻을 걸 먹으면 당신도 기분이 좋잖아요." 늑대가 말했다. "그러면 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거라." 돼지가 물레방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물이 제일 깨끗하고 신성한 물이에요." 늑대는 물레방아의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진짜 사제나 된 것처럼 폼을 재면서 돼지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물 속에 집어넣고는 세례를 주었다. 바로 그때 어미 돼지가 물레방아를 힘껏 들이박는 통에 늑대는 땅바닥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온몸에 멍이 들고 심하게 다친 늑대가 혼잣말을 했다. "흥, 내가 이까짓 고통에 물러날 줄 알고. 잠시 속았을 뿐이야. 원래 오늘의 내 운수가 얼마나 좋은 건데. 내 꼬리의 예언에 의하면 오늘 배불리 먹을 팔자란 말이야." 그리고는 마을 가까이 지나가다가 양 몇 마리가 아궁이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가 눈앞에 있군요." 늑대가 오는 걸 보자 양들은 놀라서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늑대가 아궁이 앞에서 으르릉대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잡아먹으러 왔다." 양들이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우리는 제사를 지내러 여기까지 온 거예요. 목청 좋은 당신이 노래를 불러주신다면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게요." 늑대는 자기가 덕망 높은 사제나 되는 것처럼 한껏 폼을 잡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는 개를 끌고 몽둥이를 집어들고 달려왔다. 늑대는 개들한테 실컷 물어 뜯기고 몽둥이 찜질을 당한 후 겨우 목숨만 건진 채 간신히 도망쳤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 그늘 밑에 쓰러진 늑대는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구, 내 팔자야. 대체 오늘 일진이 왜 이리 나쁜거야. 하진 내 잘못이 더 컸지. 돼지 비계와 베이컨을 우습게 알고 건방을 떨었으니 말이야. 약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암말을 고치겠다고 덤벼들고, 법에 법자도 모르는 내가 염소들의 싸움을 중재하겠다고 나섰으니, 그리고 글자도 모르는 내가 무슨 사제라도 된다고 돼지새끼들에게 세례를 주겠다고 설쳐대고 교황이나 추기경이 주관할 수 있는 제사를 내가 주관하겠다고 잘난 척했으니 벌을 받은 거야. 오, 주피터 신이시여. 상아로 만든 권좌에 앉으셔서 저에게 칼을 내려 벌을 주옵소서." 바로 그 때 남자 한 명이 나무 위에 올라가 가지를 치고 있다가 늑대가 하는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 늑대가 신세 타령을 마치자, 그 남자는 들고 있던 도끼를 집어던져 늑대의 목덜미를 찍었다. 늑대는 아파서 낑낑대면서 주변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늑대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 위대하신 주피터 신이시여. 당신의 섭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소원을 이리도 빨리 들어주시다니 그저 놀랄 뿐입니다. 이 장소를 성스러운 곳으로 지정해 괴롭고 슬픈 사람들에게 소원을 빌도록 하겠습니다." *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높은 이상을 추구하다보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떨어지는 폭도 큰 법이다.@ff 스물두번째 이야기 신부의 뇌물 투사아 지방에는 무식하지만 부자인 신부가 있었다. 신부는 기르던 개가 죽자 아주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뤄 무덤까지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무성한 소문을 낳았고, 급기야는 주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주교는 신부가 부자라는 걸 알자 그의 죄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손수 신부를 불러 벌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신부는 주교가 자기를 벌주는 것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금덩어리를 들고 주교를 찾아갔다. 주교는 신부가 개에게 무덤을 만들어 준 일을 심하게 문책했다. 그리고 신부를 감옥으로 끌고가 벌을 내리도록 명령했다. 신부는 주교가 강경하게 나오자 그에게 말했다. "주교님께서 그 개가 얼마나 똑똑했는지 아셨더라면 이렇게까지 노여워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개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머리가 영리했어요. 그 개는 살아 있을 때도 영리했지만,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는 더 그랬습니다." 주교는 신부는 말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신부가 대답했다. "그 개는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어요. 하느님이 계신 성당을 위해 얼마나 큰 돈이 필요한지를 알고는 주교님께 백 개의 금덩어리를 기부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가 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주교에게 금덩어리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주교는 개의 유언과 장례식을 인정하고는, 신하들에게 필요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금덩어리를 잘 보관해두라고 명했다. 그리고 신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는 그를 석방시켰다. * 돈의 위력을 믿고 큰 죄를 지어도 모든 게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죄값을 치르게 된다.@ff 스물세번째 이야기 신의 가호로 아들을 낳은 여인 가예테 시의 주민들은 바다로 나가 배를 타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도시 근처에 사는 어느 선원은 생계가 어려워지자 젊은 아내를 두고 바다로 나갔다가 오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 아내는 기다려도 남편이 돌아오질 않자 죽은 게 틀림없다며 남편을 기다리는 일을 단념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자기가 떠날 때보다 더 화려해진 집안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내에게 남겨주고 간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신의 가호가 내린 거니까요." 남편이 말했다.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신 신의 은총에 그저 고마울 뿐이야. 집에 좋은 가구가 가득 들어차 있고, 멋진 침대도 있으니 말이야." 그는 아내에게 어디서 이런 돈이 생겼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내는 모두가 신의 가호와 은총 덕택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신이 너무나도 자비롭다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갑자기 세 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사내아이가 아내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나타났다. 놀란 남편은 그 아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아내가 그들의 아이라고 대답하자, 남편이 자기도 없는데 어디서 아이가 생길 수 있냐며 아내를 다그쳤다. 아내는 신들의 가호와 은총을 받아 아이가 생긴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화가 난 선원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내 아내의 몸에서 자식을 잉태하는 게 신들의 은총이라면, 그런 신의 은총은 하나도 반갑지 않아. 아무리 신이라도 남의 일에 주제넘게 참견해서는 안 되지. 다른 일로 나를 도와주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내가 없는 틈을 타고 내 아내에게서 자식까지 만드는 건 결코 고마워만 할 일은 아니라구." * 모든 것을 신에게서 구하지 말라. 신이 베풀어주는 예상치 못한 은총 중에는 달갑지 않은 것도 있다.@ff 스물네번째 이야기 개의 가죽을 둘러쓴 염소 아주 많은 양을 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크고 무서운 사냥개가 있어 늑대로부터 양들을 보호했다. 그 개가 얼마나 사납고 무서웠던지 늑대들이 감히 양 가까이 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개도 나이가 들자 마침내 늙어 죽고 말았다. 개가 죽자 걱정이 된 목동들이 이야기했다. "어떡한담. 들판을 지켜주던 개가 죽고 없으니 이젠 늑대들이 마음놓고 와서 양들을 잡아갈 텐데 어떡하지." 목동들의 걱정을 들은 건방진 염소가 그들에게 말했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한 번 들어보세요. 내 뿔과 털을 깍고 나에게 죽은 개의 가죽을 벗겨서 씌워주세요. 그러면 늑대들이 내가 그 개인 줄 알고 놀라서 가까이 오지 못할 거예요." 그럴 듯한 말이라고 생각한 목동들은 염소에게 개의 가죽을 씌워 개로 변장시켰다. 늑대들은 양들을 잡으러 내려왔다가 평상시처럼 그 무서운 개가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도망쳤다. 그러던 어느날 배고픔에 견디다 못한 늑대 한 마리가 내려와서 양을 낚아채 도망쳤다. 개의 가죽을 둘러쓴 염소가 그걸 보고는 늑대 뒤를 급히 쫓아갔다. 염소는 자기가 진짜 개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늑대가 자기를 보고 놀라서 도망치는 것도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늑대의 뒤를 쫓았다. 늑대도 그 무서운 개가 쫓아오자 놀란 나머지 오줌을 싸면서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그 악명 높은 개가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쫓아오는 것을 보자 겁에 질려 자기도 모르게 오줌을 싸 몸을 다시 한 번 더럽혔다. 지칠 대로 지친 늑대가 붙잡히기 직전 염소의 개 가죽이 나뭇가지에 걸려 벗겨지면서 개가 아니라 염소라는 게 들통이 나버렸다. 그제서야 속임수라는 것을 깨달은 늑대가 염소를 붙잡고는 물었다. "너는 누구냐?" 염소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길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대답했다. "염소예요." "그런데 왜 나를 그렇게 놀래켰어?" "장난삼아 재미있어서 그랬어요." 이 말을 들은 늑대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는 염소를 끌고 자기가 놀라 오줌을 싼 곳으로 가서 말했다. "네가 보기에는 이게 재미있는 장난이지? 늑대가 염소를 보고 놀라서 두 번씩이나 오줌을 싼 게 재미있단 말이냐! 너는 죄값을 치러야 해!" 그렇게 해서 개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던 염소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 자기의 처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잔꾀를 부리다가는 더 큰 화를 당하게 된다.@ff 스물다섯번째 이야기 날아가버린 종달새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고 초목이 무성한 아름다운 과수원을 가진 시골 농부가 있었다. 그는 힘이 들거나 피곤하면 과수원을 찾아가 쉬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종달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농부는 그 소리에 반한 나머지 덫을 놓아 종달새를 잡았다. 종달새는 자기가 잡힌 신세가 되자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나를 잡으려고 애를 쓰는 거죠? 나를 잡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네 노랫소리가 내 마음속으로 구구절절이 스며들기 때문이지. 네 소리에 반해서 너를 잡은 거란다." "그렇다면 아저씨가 헛수고를 하신 거예요. 왜냐하면 아저씨가 돈을 주거나 통사정을 해도 나는 노래하지 않을 거니까요." 이 말을 들은 농부는 화를 내며 자기를 위해 노래를 하지 않는다면 종달새를 잡아먹겠다며 협박했다. 종달새가 말했다. "나를 어떻게 잡아먹을 건데요? 나를 삶아먹으면 워낙 조그마하니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테고, 나를 구워 먹으면 오그라들어 더 작아질 텐데요. 그러지 말고 나를 그냥 날려 보내주세요. 그러면 아저씨에게 세 가지 충고를 해드릴게요. 그 세 가지 충고가 돼지 세 마리를 잡어먹는 것보다 더 값어치 있을 걸요?" 솔깃해진 농부는 종달새의 말을 믿고 풀어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종달새는 농사꾼에게 말했다. "우선 첫 번째 충고는 아저씨가 듣는말을 모두 곧이 곧대로 믿지 말라는 거예요. 특히 사실 같지 않은 말들은 더 그렇구요. 두 번째 충고는 자기 것은 끝까지 지키라는 거예요. 마지막 세 번째 충고는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엎질러진 물은 가슴아파하지 말라는 거예요." 종달새는 이 말을 마치고는 나무 위로 올라가 아주 달콤한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농부의 눈을 멀게 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신이 그에게서 지혜를 빼앗으셨기에 그가 눈이 멀어 나를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우둔하여 내 몸 속에 일 온스나 되는 수정이 들어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만에 하나 그가 내 몸 속에 이런 보석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큰 부자가 되었겠지만 나는 그의 손에 죽고 말았겠지요." 이 소리를 들은 농부는 종달새를 풀어준 것을 너무나도 후회하면서 가슴을 쳤다. "아이구, 아이구, 불쌍한 내 팔자야. 내가 왜 그 여우같은 종달새 말을 들었는지^5,5,5^ 내 손으로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고 말았구나." 농사꾼의 한탄을 듣고 종달새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어리석군요. 내 충고를 벌써 잊어버렸나요? 내 조그만 몸집에 일 온스나 되는 큰 수정이 어떻게 들어 있겠어요? 당신이 듣는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지 말라고 했잖아요. 당신은 당신의 것도 지키지 못하는 데다 이미 되찾을 수 없는 일에 단념하지도 않는군요. 당신은 내가 말한 세 가지 충고 중 하나도 못 알아 듣는 바보예요." 종달새는 이렇게 농사꾼을 실컷 약올리고는 훌쩍 날아가버렸다. * 손 안에 있을 때 지키지 못한 금은 보화를 부러워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ff 스물여섯번째 이야기 은혜를 모르는 용 용 한 마리가 강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용이 자라면서 물이 부족해지자 용은 점점 하류 쪽으로 내려오다가 모래밭까지 오고 말았다. 물이 없어 용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데 농부가 그 옆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다. 농부가 용에게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고 묻자 용이 대답했다. "물을 찾아서 오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런데 여기도 물이 다 말라버려서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답니다. 나는 물이 없으면 꼼짝도 못해요. 그러니 나를 당신 당나귀 위에 묶어서 강으로 데려다줘요. 그러면 금은보화를 선물로 드릴게요." 금은보화라는 말에 욕심이 생긴 농부가 용을 묶어서 당나귀에 싣고는 강으로 갔다. 용을 강에 내려준 농부는 약속대로 금은보화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용이 농부에게 말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네 놈이 감히 나를 묶어놓고는 그 대가를 바래?" 농부가 어이없다는 듯이 용에게 말했다. "네가 네 입으로 묶어달라고 사정했잖아." "그건 그때 일이지. 이제 배가 고프니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네가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구나." 한참을 이렇게 다투고 있는데 우연히 그 옆을 지나던 여우가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는 말했다. "자, 그렇게 싸우지 말고 차근차근 얘기해봐요." 그러자 용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농부가 나를 꽉 묶어서 자기 당나귀에 싣고는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요. 그래놓고는 이제와서 그 대가를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 다음으로 농부가 말했다. "여우 선생,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이 용이 강물을 따라 내려가다가 모래밭을 만나서 꼼짝도 못 하고 있는 걸 내가 발견했소. 그러자 용이 내게 자기를 묶어서 당나귀에 싣고 여기까지 데려다주면 금은보화를 주겠다고 약속했소. 그런데 이제 와서 약속을 지키는 건 고사하고 나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소." 여우가 말했다. "용을 묶은 건 당신 잘못이에요. 하지만 이제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어요. 용을 어떻게 묶었는지나 보여주세요. 그걸 보고나서 판단하겠어요." 농부가 용을 묶기 시작하자 여우가 용에게 물었다. "지금 농사꾼이 묶은 것만큼 세게 묶었습니까?" 용이 대답했다. "이것보다 백 배는 더 세게 묶었을 겁니다." 여우는 농부에게 더 세게 있는 힘을 다해 묶으라고 말했다. 여우가 다시 용에게 물었다. "어때요? 지금처럼 꽉 묶었어요?" 용이 대답했다. "예, 바로 지금처럼 묶었어요." 그러자 여우가 농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용을 꽉 묶었으니 이제 당신이 용을 당나귀 위에 싣고는 용을 발견했던 원래 위치에 다시 갖다 놓으세요. 그럼 더 이상 당신을 잡아먹을 수도 없을 거예요." 농부는 여우가 시킨 대로 하고는 용을 내버려둔 채 떠나버렸다. *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 있다.@ff 스물일곱번째 이야기 새끼 여우 베니티요 어느날 여우가 새끼 여우를 데리고 늑대에게 찾아가 자식에게 세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응한 늑대는 새끼 여우에게 베니티요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해준 후에 여우에게 말했다. "여우야, 내가 네 아들을 키워서 기술도 가르치고 교육도 시킬 테니 허락해다오. 내가 아는 기술들을 모두 전수시켜줄 테니 나와 같이 있는 게 네 아들한테도 이로울 거야. 다른 자식들도 많이 있는데 네가 그 자식들을 모두 다 제대로 키우려면 얼마나 고생이겠느냐." 여우가 대답했다. "당신 생각대로 하세요. 저를 잊지 않고 이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래서 베니티요는 늑대와 남고, 여우는 다른 자식들에게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늑대가 양을 잡아먹기 위해 베니티요를 데리고 양떼들이 머무는 목장으로 갔다. 하지만 개와 목동들에게 들켜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깊은 산 속으로 도망쳤다. 늑대가 양자인 베니티요에게 말했다. "오늘밤 양떼들을 습격했더니 몹시 피곤하구나. 눈을 좀 붙일 테니 너는 망을 보고 있거라. 풀을 뜯어먹으러 나온 동물들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있다가, 보이는 놈이 있으면 즉시 나를 깨우도록 해라. 그래야 출출한 배를 채우지." 다음날 아침 베니티요가 늑대를 깨웠다. "대부님, 대부님." "왜 그러느냐, 양자야." "돼지들이 나왔어요." 늑대가 말했다. "돼지는 지저분하고 거친 동물이니 그냥 내버려두자. 나는 어째 돼지만 먹으면 속이 영 거북해지고 입맛이 나빠지더구나." 잠시 후에 베니티요가 다시 늑대를 흔들어 깨웠다. "대부님." "무슨 일이냐, 양자야." "소들이 풀을 뜯어먹으러 나왔어요." 늑대가 대답했다. "잔인하고 힘센 목동들이 소들을 지키고 있는 데다가 못되고 용감무쌍한 개들도 있으니까 소들은 그냥 내버려두자. 개들이 나를 보면 목이 터져라 짖어대면서 죽을 때까지 달려들 거야." 잠시 후에 베니티요가 다시 늑대를 불렀다. "암말들이 나왔는데요." "말들이 어디고 가는지 잘 살펴보거라." "저기 산 중턱에 너도밤나무가 많이 있는 초원에 있어요." 그 말을 들은 늑대는 말이 있는 초원까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다가가서는 제일 통통하게 살찐 말을 골라 그 위에 올라탄 후 질식을 시켰다. 배불리 먹은 베니티요가 늑대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대부님. 저도 이제 혼자서 인생을 개척할 만큼 강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님의 놀라운 기술도 배웠고요. 이제는 엄마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늑대가 베니티요를 만류했다. "아들아, 안 가면 안 되겠니? 넌 아직 충분히 배우지 못했단다. 지금 떠나면 곧 후회하게 될 게다." "그래도 저는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늑대는 떠나겠다는 베니티요의 결심이 완강한 것을 보고는 말했다. "정 그렇다면 가거라. 하지만 곧 후회하게 될 거다. 가서 네 엄마에게 안부나 전해주렴." 베니티요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아들을 보자 여우가 말했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거니? 공부는 다 끝났니?" 베니티요가 대답했다. "더 이상 배울 게 없어서 일찍 돌아온 거예요. 이제 엄마도 고생하지 않으셔도 돼요. 앞으로는 내가 엄마와 동생들까지 다 배불리 먹일게요." "아들아, 어디서 뭘 그리 빨리 배웠다는 거냐?" "엄마, 질문은 이제 그만 하시고 그렇게 궁금하면 저를 따라오세요. 제가 얼마나 뛰어난 사냥꾼인지 직접 보시면 되잖아요." 여우는 너무나 자신만만한 아들이 미덥지는 않았지만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아들을 따라갔다. 베니티요는 늑대가 했던 대로 날이 어두워지자 양을 잡아먹으러 목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양을 잡지 못하자 다시 높은 산 위로 올라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도 잘 아시다시피 오늘밤에 양을 사냥하느라고 제가 피곤하고 많이 지쳤어요. 잠깐 눈을 좀 붙일 테니까 엄마는 망을 보세요. 풀을 뜯어먹으러 나오는 동물들이 있는지 잘 보고 있다가 저를 깨우세요. 그러면 제가 배운 걸 어떻게 써먹는지 보시게 될 거예요. 엄마에게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재주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음날 아침 여우가 아들을 깨웠다. "엄마, 왜 그래요?" "돼지들이 나왔다." 베니티요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돼지들은 더럽고 지저분한 데다가 성질이 고약하니까 그냥 내버려두세요. 그걸 먹으면 소화도 안 되고 입맛만 떨어져요." 잠시 후에 엄마 여우가 다시 아들을 불렀다. "소들이 나왔다." "소들은 성질이 고약한 개와 목동들이 지키고 있어서 너무 위험해요. 개들이 나를 보면 마구 짖어대면서 내가 지쳐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을 때까지 악착같이 따라올 거예요." 잠시 후 여우가 아들을 흔들어 깨웠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엄마 여우가 대답했다. "암말들이 풀을 뜯으러 나왔다." 그 말을 들은 베니티요가 반색을 하면서 기분이 들떠 말했다. "엄마, 말들이 어디로 가는지 잘 보고나서 돌아오세요." 엄마 여우가 돌아와서 암말들이 산 근처에 있는 초원으로 들어갔다고 일러주자 베니티요가 말했다. "엄마는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내가 하는 걸 잘 지켜보세요. 내가 얼마나 영리하고 용감한지 곧 알게 될 거예요." 베니티요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말들이 있는 곳으로 살금살금 숨어들어가서, 제일 통통하게 살찐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선생인 늑대가 했던 것처럼 말을 질식시켜 죽이려고 말의 코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암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코에 매단 채 목동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산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엄마 여우가 애가 타서 아들을 불렀다. "베니티요야, 말은 내버려두고 어서 돌아와." 하지만 베니티요는 말의 코에 이빨이 박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목동들이 달려나와 베니티요를 몽둥이로 때리는 광경을 보자 엄마 여우는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고, 내 아들 베니티요야! 그러길래 왜 그렇게 빨리 돌아왔니. 이제 사람들이 너를 죽일 텐데 이를 어쩌나. 그래 겨우 이 어미의 가슴에 못을 박으려고 일찍 돌아온 거니? 네 스승인 늑대의 말을 들었어야지." * 완벽하게 배울 때까지는 겸손한 자세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보다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을 얕잡아봐서도 안 된다.@ff 스물여덟번째 이야기 몸집 작은 남자와 사자 몸집이 자그마한 남자가 힘들게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나무도 심고 논밭고 일구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막 근처에 사는 사자 한 마리가 그가 열심히 가꾸어놓은 곡식과 나무들을 망가뜨려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사자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남자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사자를 잡으려고 했다. 사자는 그 남자가 자기를 잡으려고 많은 덫과 함정들을 파놓아서 도무지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낫다는 생각에 새끼 사자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새끼 사자도 어느덧 성장하여 몸집도 제법 크고 기운도 세졌다. 어느날 새끼 사자가 아빠 사자에게 물었다. "아빠, 여기가 우리 고향이에요? 아니면 고향이 따로 있나요?" "우리는 이 고장 출신이 아니란다. 우리는 다른 지방에 살았었는데, 그곳에 사는 몸집이 조그마한 남자의 덫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온 거야." 아들이 아빠 사자에게 물었다. "그 몸집 작은 남자가 대체 누구길래 아빠를 공포에 떨게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우리처럼 몸집도 크지 않고 기운도 세지 않단다. 하지만 굉장히 영리하고 속임수도 잘 써." "그렇다면 내가 가서 우리가 당한 모욕을 되갚아주고 오겠어요." 아빠 사자는 아들을 만류했다. "그 조그만 남자는 별의별 재주가 많단다. 넌 절대로 그곳에 가면 안 된다. 거기 갔다가는 그 사람의 꾀에 빠져 죽음을 당하고 말 거야." "걱정마세요. 나도 영리하고 용기가 있어요. 아빠가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당하지는 않아요. 기필코 복수를 하고 말겠어요." 아빠 사자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아들을 말렸다. "아들아, 가면 안 된다. 네가 내 말을 안 듣고 그렇게 고집을 피우다가는 곧 후회하게 될 거다." 하지만 새끼 사자는 아빠의 당부나 충고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남자를 찾아 길을 떠났다. 새끼 사자는 길을 가다가 등가죽이 벗겨지고 갈비뼈가 부러진 말이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누가 당신을 이렇게 흉측하게 만들어놓았어요?" "몸집이 조그만 남자인데, 그 사람은 나를 끈으로 너무 세게 묶어요. 그리고는 내게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라고 채찍을 휘두르는 통에 이렇게 온몸이 멍투성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새끼 사자가 혼자 으르렁대며 중얼거렸다. '아! 그 몸집 작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단 말인가! 내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동물들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단 말인가! 그놈에게 복수하겠다고 내 수염을 걸고 맹세하겠어.' 사자는 땅에 사람의 발자국이 나 있는 걸 보고는 황소에게 물었다. "이 발자국은 누구 거예요?" "그건 몸집이 작은 남자의 발자국이랍니다." 그러자 사자가 손바닥을 펴 그 남자의 발자국 크기를 재보고는 말했다. "발도 정말 조그맣네. 그런데도 그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하다니. 황소 아저씨, 몸집 작은 남자가 누군지 가르쳐주겠어요." 황소가 발로 멀찌감치에 서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사자는 그 남자가 높은 산 위에서 곡괭이를 들고 밭을 일구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봐. 네가 우리 부자와 다른 동물들에게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않고 있느냐! 이제 네 잘못을 뉘우칠 때가 왔다. 내가 너를 혼내줄 테다." 그러자 몸집 작은 남자가 몽둥이와 도끼, 칼로 무장을 하고는 사자에게 호통을 쳤다. "네가 여기로 올라오면 이 몽둥이로 너를 때려눕히고, 이 도끼로 네 살덩어리를 토막치고, 이 칼로 네 껍질을 벗기겠다고 신을 두고 맹세한다." 사자는 몸집 작은 남자의 기세등등한 행동을 보자 그만 주눅이 들었다. "그곳으로 올라가 너를 따끔하게 벌을 주려고 했지만 네가 그리 완강히 거부하니, 그럼 나와 함께 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서 누가 더 힘이 세고 왕이 될 수 있는지 판가름을 해달라고 하자." 몸집 작은 남자가 대답했다. "그럼 우리가 함께 길을 가면서 너는 내 몸에 손을 대지 않고, 나도 네 몸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맹세하자. 갈 때까지는 사이좋게 가자구." 이렇게 조건을 내세우고는 남자와 새끼 사자는 함께 길을 떠났다. 하지만 몸집 작은 남자는 큰 길을 내버려두고 덫과 함정들을 잔뜩 파놓은 샛길로 접어들었다. 사자가 그 남자에게 말했다. "나도 너를 따라서 이 길로 갈 테다." "네 마음대로 해." 그런데 남자 뒤를 바짝 쫓아가던 사자가 갑자기 덫에 걸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자가 큰 목소리로 몸집 작은 남자를 불러 도와달라며 사정을 했다. 남자가 사자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나도 몰라. 발이 묶여서 꼼짝할 수가 없어. 나 좀 풀어줘." "네 아빠의 판결이 있을 때까지는 길을 가면서 서로의 몸에 손도 대지 않기로 맹세한 걸 벌써 잊어버렸니? 난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발이 묶인 채로 엉금엉금 기어서 길을 가던 사자는 또 다른 덫에 걸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손까지 꽁꽁 묶이게 되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사자가 도와달라며 큰 소리로 몸집 작은 남자를 불렀다. 하지만 몸집 작은 남자는 사자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몽둥이를 집어들고 사자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사자가 말했다. "오, 몸집 작은 남자여. 나를 불쌍히 여기고 제발 나를 용서해줘. 내 머리나 등, 배는 때리지 말고 아버지의 충고를 제대로 듣지 않은 이 귀를 때려줘. 그리고 좋은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내 가슴을 때려줘. 아버지는 네가 영리하고 속임수도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거든. 아버지 말씀이 옳았어." * 자기보다 나은 사람의 충고와 조언을 한쪽 귀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충고가 세상을 사는 지혜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