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1 지은이: 후안 마누엘 옮긴이: 김창민, 강성식 외 펴낸곳: 도서출판 자작나무 (저자 및 역자 약력) * 지은이: 후안 마누엘(Don Juan Manuel) 1282년 스페인의 에스깔로나(Escalona)에서 태어났으며, 뻬로뻬스 데 아알라 주교와 함께 14세기 스페인의 산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현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알폰소 10세(제위기간: 1252-1284)의 조카라는 신분 덕택에 젊어서부터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였고, 페르난도 4세와 알폰소 11세 때에는 전쟁에 활발히 참여했다. 나이가 들자 자신이 도미니크 수도회에 기증한 뻬냐피엘 수도원에 들어가 작품활동을 하다가 1348년 삶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토록 도미니크 수도회를 정신적^5,23^물질적으로 후원하면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지만 동시에 부와 명예에 관한 세속적인 관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기사와 시종에 관한 이야기 Libro de caballero et del escudero',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이야기 Libro de los estados'가 있고 그 외에도 '시가집 Libro de los cantares o de sus cantigas', '산추린 연대기 La cronica abreviada', '무기교본 Libro de las armas' 등이 있다. * 옮긴이: 김창민 1959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동 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멕시코 구아달라하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중남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서로는 '저주받은 사랑'(열음사), '미국은 섹스를 한다'(자작나무)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푸에르토리코 현대소설에 나타난 문화적 갈등', '수필에 나타난 에르네스또 사바또의 문학관'이 있다. 강성식, 이소현, 박정희, 전미연, 정수현, 최철훈, 한희주, 허인숙: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대학원 재학중@ff 첫번째 이야기 악마와의 계약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물었다. "빠뜨로니오, 점술과 예언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를 잘 이용하면 미래도 알 수 있고 재산도 늘릴 수 있지 않겠소?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니, 그 사람이라고 실수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겠소. 당신은 현명하니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조언을 좀 해주시오." "백작님, 어떤 가난뱅이에게 있었던 일화를 들려드리지요." 옛날에 한 가난뱅이가 살고 있었는데, 너무 가난해서 입에 풀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그도 예전에는 떵떵거리는 부자로 살았었지요. 백작님도 아시다시피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다가 가난뱅이가 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과거에 부자였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지요. 어느날 그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신세타령을 하면서 산길을 걷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악마 하나가 앞에 나타나지 않았겠습니까? 악마는 그 가난뱅이가 괴로워하는 이유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모르는 척 가난뱅이에게 왜 괴로워하냐고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가난뱅이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면서 왜 묻냐고 대뜸 화를 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악마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했지요. 그리고는 자신의 능력을 믿게끔 하기 위해 가난뱅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아맞추었답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예전보다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답니다. 물론 사람이 아닌 악마였기 때문에 그 일을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지요. 가난뱅이는 상대가 악마라는 사실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지만 자기 처지를 생각해 보고는, 부자로만 만들어 준다면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말했답니다. 하지만 백작님, 원래 악마라는 놈은 속이기에 가장 적합한 때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희생물에게 접근하는 법이지요. 다시말해 악마는 희생물로 삼은 사람이 가장 궁핍하거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다가가 그를 이용하지요. 마찬가지로 이 가난뱅이에게 악마가 찾아간 것도 그가 가장 힘들었을 때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 사이에는 계약이 이루어졌고, 그후 가난뱅이는 악마의 종으로 전락했습니다. 악마는 계약이 맺어지기가 무섭게 가난뱅이에게 도둑질을 시켰지요. 그러면서 말하기를 아무리 굳게 닫혀 있는 문이라도 열리지 않는 문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만에 하나라도 일이 잘못되거든 자기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도와주세요, 마르띤.’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즉시 나타나 위험에서 구해주겠다고 했지요. 모든것이 악마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가난뱅이는 칠흙 같은 어둠을 틈타 어떤 부유한 상인의 집을 털기로 했답니다. 원래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은 빛을 싫어하는 법이지요. 상인의 집에 도착하자 출입문과 보물이 담긴 궤짝의 문이 악마의 힘에 의해 열렸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훔칠 수 있었지요. 그날 이후로 그는 끊임없이 도둑질을 하였고, 그래서 가난했던 지난날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모으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어느날 도둑질을 하다 경찰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악마에게서 들은 구절은 읊조렸지요. 그러자 악마는 어디서 왔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 그를 구해주었답니다. 악마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이제는 미친 듯이 도둑질을 해댔습니다. 하지만 또 경찰에게 붙잡히고 말았답니다. 그는 또 악마에게 구원을 요청했지요. 하지만 악마는 예전처럼 그렇게 빨리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악마는 경찰이 조사를 얼마간 진행하고 있을 때야 나타났던 것입니다. 악마가 나타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 마르띤. 내가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아십니까? 이번에는 왜 그리 오래 걸렸지요?” 이 말을 들은 악마는 그간 너무 바빴다는 말만 하고는 위험에서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악마가 보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그는 그후로도 도둑질을 멈추지 않았고 그러다 또 다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그가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다시 악마의 도움으로 왕에게 상소를 올려 풀려날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 후로도 그의 도둑질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에는 붙잡혀 교수형을 선고받았답니다. 악마는 그가 교수대에 올려졌을 때에야 보습을 드러내었지요. 악마가 나타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마르띤, 왜 이리 늦었어요. 난 정말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구요.” 그 말을 듣자 악마는 도둑에게 보따리 하나를 주면서 그 속에는 오백 마라베니의 돈이 들어 있으니, 재판관에게 몰래 건네주면 곧바로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요. 그는 악마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드디어 재판관이 형을 집행하라고 지시했지요.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목을 옭아맬 줄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줄은 찾기 시작하였고, 도둑은 그 틈을 이용해 재판관에게 보따리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재판관은 보따리를 슬쩍 건네받고서는 주위를 둘러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당신들 중에서 교수형을 집행하는 데 줄이 없어지는 것을 지금껏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이것은 틀림없이 신의 뜻일 겁니다. 신이 저 사람의 죽음을 원치 않아 우리로 하여금 줄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무죄일 것이니 집행을 내일로 연기하고 그동안 사건을 좀더 엄밀히 조사해 봅시다. 그리고 나서 형을 집행해도 늦지는 않을 겁니다. ” 재판관은 그를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따리 속에 오백 마라베니의 돈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따리를 여는 순간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속에는 돈이 아닌 교수용 줄이 놓여 있지 않겠습니까? 화가난 재판관은 즉시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했답니다. 교수대에 올라 목에 줄을 걸고 있을 때, 악마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가난뱅이는 또 다시 악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요. 하지만 악마는 이전에는 같이 일할 친구들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많다는 말만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가난뱅이는 악마 때문에 몸과 영혼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백작님. 악마가 하는 일은 모두 나쁜 결말을 초래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예언자니 점쟁이니 요술쟁이니 하는 자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나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 말을 믿기 힘드시면, 이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미신을 좋아했던 알바르 누녜스나 가르실라소(역주: 16세기 스페인 최고의 시인)의 종말이 어떠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백작님, 재산을 늘리고 싶으시거든 점술이나 예언 같은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땀과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미신과 우연에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은 비참한 삶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ff 두번째 이야기 신하의 부인과 살라디노 사이에 일어난 일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뺘뜨로니오에게 조언을 청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난 이 세상 누구도 나의 질문에 당신처럼 그렇게 사려깊은 대답을 하는 이가 없다는 것을 잘 아오. 그래서 묻는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은 무엇이요? 이걸 묻는 까닭은 비록 내게 이롭지는 않더라도 올바르고 좀더 나은 행동을 하기 위해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요. 그래서 행동하는 데 유의할 점 중 꼭 잊지 말아야 하며 항상 보탬이 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싶소." "백작님, 백작님께서 그렇게 절 칭찬해 주시고 제가 많은 지혜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시니 실수할까 두려워집니다. 이 세상에서 상대방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지 그 사람이 본래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일만큼 실수하기 쉬운 일은 없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선 그가 삶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선행으로 덕을 쌓은 사람이라도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다보면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겁니다. 누가 현명한 지혜를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옳은 말을 하고 아주 이성적이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거느린 영지는 잘 다스리면서 올바른 말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옳은 말도 아주 잘하고 영지도 잘 다스리지만 옳지 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인지, 올바른 사고의 소유자인지,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인지,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인지 확실히 알아보시려면 미리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의 평소 행동을 보고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영지가 번창하는지, 쇠퇴하는지에 따라서도 앞서 말한 모든 것을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아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지 물으셨는데 살라디노와 그의 부하 기사의 아주 현명한 아내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아시면 도움이 되실겁니다." 살라디노는 바빌로니아의 술탄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대동해 다녔는데, 어느날인가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한집에서 모두 묵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라디노는 어느 부하 기사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그 충직한 부하는 최선을 다해 살라디노를 대접했고 즐겁게 해주려고 애썼습니다. 그의 부인도, 자식들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간의 일에 훼방을 놓는 악마는 살라디노로 하여금 사랑해선 안될 그 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부인에 대한 사랑이 애절했던 살라디노는 별로 신통치 않은 조언자에게 어떻게 하면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충고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백작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모든 지도자들이 옳지 못한 길을 가지 않도록 충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선 옳지 못한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사람도 항상 있기 마련이지요. 살라디노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못된 조언자는 살라디노에게, 그녀의 남편을 불러 선심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적당한 임무를 주어 먼곳으로 보내서 남편이 그것에 있는 동안 뜻을 이루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살라디노는 이 충고를 받아들여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그 부하는 살라디노가 베풀어준 우정과 친절을 생각하며 먼 곳으로 떠났고, 살라디노는 그 부하의 집으로 갔습니다. 살라디노가 집에 오는 것은 안 그 부인은 그가 남편에게 보인 호의를 아는 터라 그를 잘 대접했고 그 집의 모든 사람들도 많은 애를 썼습니다. 식사를 끝내자 살라디노는 넓은 방으로 들어간 뒤 그녀를 찾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여 그 부인은 얼른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살라디노는 그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부인은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어 이렇게 돌려 말했습니다. “저는 전하께서 언제나 멋진 인생을 사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다스리시는 전하께서 저희 부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항상 전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살라디노는 자신이 베푼 호의에 상관없이 그 부인을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훌륭한 성품에 넓은 이해심을 지니고 있던 그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하, 비록 제가 미천한 여자이오나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저에게 가지고 계시는 사랑이 진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남자들 특히 높은 분들께서는 어떤 여자가 마음에 들면 그 여자가 원하는 일은 뭐든지 하겠다고 하시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여자들을 농락하고 난 뒤에는 업신여기고 결국 저버리곤 하십니다. 저 자신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그러자 살라디노는 그녀가 행복할 수 있도록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자신이 요구한 답을 얻어오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살라디노는 그녀가 요구하는 답을 얻지 못하게 되면 더 이상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하자 그녀는 그가 할 수 없는 일은 요구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곤 무릎을 꿇고 그의 손과 발에 입맞춤을 하고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은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살라디노는 이 착한 부인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도 살라디노가 답을 구하면 언제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살라디노는 대동한 이들과 모든 현인들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물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인간이 가질수 있는 최고 덕목은 선한 영혼을 갖는 것이라고 하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은 천국에서나 필요한 진실이지 이 세상에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몇몇이 충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최고 덕목이라고 하자 또다른 사람들은 비록 충직한 것이 좋긴 하나 인간이란 충직하다고 해도 동시에 비겁하고, 약하고, 어리석고, 무지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충직함보다는 다른 어떤 것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살라디노에게 확실한 답을주진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하자, 살라디노는 두명의 뜨내기 음유시인들을 데리고 신분을 숨긴 채 세상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교황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있는 모두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떠나 프랑스 왕궁과 다른 왕궁들을 돌아다녔지만 그 어디서도 대답을 얻지못했습니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이 흐르자 살라디노는 이 일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그는 사랑하는 그 부인을 위해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한 일을 포기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시작한 일을 포기하는 것은 그로서는 큰 치욕이었기 때문이죠. 만약 힘들어서 혹은 두려워서 그 일을 포기한다면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추될 명예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살라디노는 그 답을 얻지 않고서는 자신의 날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살라디노는 함께 다니던 뜨내기 음유시인들과 길을 가다가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는 사슴 한 마리를 잡아 산에서 내려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늙은 그의 아버지는 그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기사였지만 이미 수년 전에 앞을 볼 수가 없게 되어서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례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살라디노 일행에게 어디서 오는 누구인지 묻자, 그들은 그저 뜨내기 음유시인들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오늘 사냥이 아주 잘 되었는데, 마침 음유시인들이시라니 저희집에서 즐겁게 밤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뜻밖의 청을 받은 살라디노 일행은 얼른 서둘러 대답하기를 어떤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자기 나라를 떠난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 아무도 그 질문에 만족하게 대답해준 이가 없었다고 하면서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그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며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자기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아마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살라디노는 매우 기뻐하며 젊은이의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다다랐을때, 젊은이는 아버지에게 사냥 이야기와 자신과 함께 온 음유시인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질문을 아버지에게 말하고 답을 청했습니다. 젊은이는 아버지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답을 줄 사람은 없다고 장담했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 늙은 기사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뜨내기 음유시인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아들에게 말하기를 저녁을 든 후에 그 담을 하겠노라고 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음유시인이라고 믿고 있는 살라디노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고 저녁식사가 끝날 때까지 좀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식탁을 치우고 뜨내기 음유시인들도 노래를 마치자 그 늙은 아버지는 어느 누구도 주지 못했던 그 답을 알려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살라디노는 즉시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좋은 성품의 정수, 즉 인간의 최고 덕목은 무엇입니까?” 그 늙은 기사는 이 질문을 듣고 그 뜻을 완벽하게 이해했으며 그 질문을 하는 이가 살라디노라는 것도 알아차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에 살라디노의 성에서 오랜 기간 동안 머물면서 많은 혜택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보시오, 우선 한번도 이렇게 훌륭한 음유시인들이 내집을 방문한 적이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이 저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당신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한 질문의 답은 바로 부끄러움입니다. 바로 이것으로 인해 어떤 이는 죽음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나쁜 일을 하고 싶은 많은 충동을 느끼지만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모든 나쁜 행동의 출발점이 됩니다.” 살라디노는 이 말을 듣자, 그 늙은 기사의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찾던 대답을 얻자 크게 기뻐하며 그 늙은 기사와 아들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가 집을 나서기 전에 그 늙은 기사는 아들에게 그가 살라디노이며 자신은 그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노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늙은 아버지와 아들은 살라디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있은 후, 살라디노는 서둘러 자기 나라로 향했습니다. 그가 도착하자 모든 부하들이 기뻐하며 그의 귀향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축제가 끝나자 살라디노는 그 부인을 찾아갔고, 그가 올 것을 알고 있던 부인은 그를 맞이하여 극진한 대접을 했습니다. 살라디노는 식사를 마친 후 큰 방으로 들어가 부인을 찾았습니다. 부인이 들어오자 살라디노는 자신이 답을 찾기 위해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제 그답을 찾았고 완벽하게 대담을 할 수 있으니 약속한 바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질문에 대한 답부터 들어보고 만약 그 답이 만족할 만한 것이면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살라디노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품 중 으뜸은 부끄러움이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부인은 이 대답에 매우 만족해하며 살라디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하, 이제 전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답을 얻어내셨습니다. 왕은 모름지기 진실만을 말하셔야 함을 아실 겁니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이 세상에서 전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제게 말씀해 주시렵니까?” 살라디노는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러웠지만 그 자신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부인은 그 말을 듣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처량하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좀전에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전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시라는 것 둘째, 부끄러움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 사실들을 잘 아신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이신 전하께 청하오니 이 최고의 덕목인 부끄러움을 가지시고 저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인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살라디노는 자신이 하마터면 저지를 뻔했던 잘못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그녀의 지혜로움과 성품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 세상 무엇보다도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 대신에 백성들을 충실하고 정직하게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그 부인의 덕성으로 인해 그녀의 남편은 다시 고향집에 되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살라디노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이웃들로부터 많은 존경도 받았습니다. 이 보든 일이, 부끄러움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품 중 으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 부인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저에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지 물으셨으니 이제 그 답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바로 부끄러움이죠. 부끄러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노력하게 하며, 성실과 좋은 습관으로 선행을 하도록 만든답니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백작님도 아셨을 겁니다. 따라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고 추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숨어서 한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어떤 이가 숨어서 잘못을 저지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 일이 밝혀졌을 때 얼마나 부끄러울지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나쁜 일을 행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하고 자신이 얼마나 못된 인간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 백작님, 이제 그 질문에 답을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시간 동안 숙고를 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도움 되는 이야기에 관심도 없고 배우려 하지도 않는 백작님의 친구분들이 들으시면 화를 내실 만 할 것 같군요. 그들은 마치 금자루를 지고 가며 무겁다고 말하면서 그 값어치는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들은 들은 것에 대해 화를 내실 뿐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흔히 일어나는 이러한 일 때문에 그리고 제가 드린 대답들로 인해 그분들과의 관계에서 마찰이 생길까봐 더 이상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 부끄러움은 모든 나쁜일에서 멀어지게 하고, 좋은 일들을 많이 만든다.@ff 세번째 이야기 악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물었다. "빠뜨로니오, 내가 잘 아는 이웃이 두 명 있소. 그중 한 사람은 존경할 만한 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가끔씩 실수를 저질러 나를 불쾌하게도 한다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내가 호의를 베풀 필요도 없고, 존경할 이유도 없으며, 또한 별로 내맘에 들지 않는 일도 한다오.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 내가 이들에게 각각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시오." "백작님,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일입니다. 다시 말해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제가 말씀드리는 두 이야기를 듣고 가장 적절한 방법을 택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는 선과 악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고, 나머지는 하나는 선한 사람과 미친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럼 먼저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옛날에‘선'와‘악이 있었는데 그들은 함께 지내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본래 악이라는 놈은 자기 이익만 챙기기에 급급하고 항상 말썽만 일으키는 놈이었지요. 그런 악이 어느날 선에게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하자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선은 그 말에 동의했고, 얼마 후 몇 마리의 양을 사게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양이 새끼를 낳자, 악이 선에게 말하기를 양에서 필요한 부분을 먼저 택하라고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본래 마음씨가 고운 선은 악의 제의를 사양하며 오히려 악에게 그 선택권을 주었지요. 이 말을 들은 악은 자기는 젖과 털만 가질 테니 선에게는 새끼양을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선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악의 의견에 동의했지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악은 또 돼지를 몇 마리 사자고 제의 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은 아무 말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돼지 새끼가 태어나자 악이 선에게 말하기를 저번에는 내가 젖과 털을 가졌으니 이번에는 네가 젖과 털을 가지라며 자기는 새끼돼지를 갖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도 선은 아무런 불평없이 그 제안을 들어주었지요.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채소가 필요해 무를 심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무가 다 자라자, 악은 선에게 땅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 땅 위로 나온 부분을 가지라며 자기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땅 속의 것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은 아무 말 없이 악의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그 후 그들은 또 배추를 심게 되었습니다. 배추가 다 자라자 악은 선에게 저번에는 네가 보이는 부분을 가졌으니, 이번에는 내가 보이는 부분을 갖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은 아무런 반대 없이 악의 분배를 따랐지요. 그러던 어느날, 악이 이번에는 여자를 한 명 갖자고 하였습니다. 선은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여자가 생기자 악은 자신이 여자의 허리 아랫부분을 가질 테니 선더러는 허리 윗부분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은 집안일을 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게 되었고, 악은 잠자는 데 필요한 부분을 가지게 되었지요. 얼마 후 그 여자에게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여자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갑자기 선이 나타나 몸의 윗부분은 자기 소관이라며 젖을 먹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편 밖에 나가 있던 악은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지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기가 울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여자에게 이유를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여자는 선이 몸의 윗부분은 자기 소관이라며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못하게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악은 그길로 선에게 달려가 자기 아들에게 젖을 먹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선은 몸의 윗부분은 자기 것이라며 허락할 수 없다고 했지요. 하지만 악이 계속해서 부탁을 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보게, 친구. 이제까지 내가 자네의 몫과 내 몫이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전혀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말게.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네. 마음이 상하기는 했지만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 여태껏 참고 지내왔다네. 그러나 자네는 그런 나를 본체만체 했었지. 좋다네. 하지만 앞으로는 자네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여도 난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네. 여태껏 자네가 한 짓을 한번 생각해 보게나. 그리고 이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네도 한번 고통을 당해보라구." 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신의 아기가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빌려 선에게 자비로써 그 어린 생명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선이 시키는 대로만 할 테니, 과거의 일은 제발 잊어달라고 했습니다. 선은 이 발을 듣고, 악이 이제는 자신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악의 나쁜습성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선은 악에게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싶거든 아기를 등에 업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치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이여, 착한 일을 하면 결국에는 선이 악을 이기는 법입니다!’하고 말입니다. 악은 자기 아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치고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의 제안을 받아들였지요. 아울러 선 역시도 그렇게 해서 악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악은 약속을 지켰고, 이로써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하면 결국 선이 악을 이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선한 사람과 미친 사람 사이에 일어났던 다음의 이야기는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옛날 대중목욕탕을 가지고 있는 착한 사람이 한 명 있었지요. 하지만 그 마을에는 미친 사람이 한 명 살고 있었답니다. 그는 목욕탕에 사람들이 한창 많을 때 들어와서는 물통이든, 몽둥이든 가릴 것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사람들에게 휘둘러댔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목욕탕을 뛰쳐나와야 했고, 그래서 그 착한 사람은 목욕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목욕탕 주인은 미친 사람의 횡포를 참다 못해 아침 일찍 일어나 그가 나타나기 전에 목욕탕 속으로 들어가 있었지요. 그리고는 벌거벗은 채로 뜨거운 물 한 바가지와 큰 몽둥이 하나를 들고 미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람들 괴롭히는 재미로 목욕탕에 오는 그 성미 고약한 사람이 나타나자, 곧장 다가가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머리에 쏟아붓고는 몽둥이로 늘신 두들겨 패주었지요. 갑작스런 봉변으로 죽는 줄 알았던 미친 사람은 자기를 때린 놈은 분명히 정신이 이상한 놈일 거라 여기고는 죽는다고 고함을 치며 목욕탕을 뛰쳐나갔지요. 그리고는 웬 호들갑을 그리 떠느냐고 묻는 행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조심하세요. 목욕탕에 또 다른 미치광이가 있어요." 결국 주인도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게 된 것이지요. "백작님, 당신도 이와 같이 행동하십시오. 즉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대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게는 비록 그가 가끔씩 백작님을 실망시킨다 할지라도 집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호의를 베푸세요. 하지만 그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그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지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주셔야 합니다. 반대로 그렇게 대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굳이 애써 참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 그가 백작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결코 백작님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일러두십시오. 왜냐하면 나쁜 친구들은 두려움이나 이익 때문에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 선은 항상 선행으로 악을 이긴다. 못된 자는 상대해 봤자 이로울 게 없다.@ff 네번째 이야기 아마씨의 위험을 피한 제비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소. 나보다 권세 높은 주변사람들 몇 명이 모여서 나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함정을 파는가 하면 나쁜 음모도 꾸미고 있다고 하오. 나는 그 말을 믿지도 않고 의심조차도 하지 않소. 허나 그대는 현명한 사람이니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조언을 좀 해주었으면 하요."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제 생각에 백작님께서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지 아시려면 어떤 제비와 다른 새들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비 한 마리가 어떤 사람이 밭에 아마씨를 뿌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혜로운 제비는 만약 아마씨가 다 자라면 사람들이 그것으로 새 잡는 그물이나 올가미를 만들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새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불러모아 놓고 어떤 사람이 아마씨를 뿌렸는데 만약 그 씨가 나서 자라게 되면 큰 해를 입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씨가 싹트기 전에 그곳으로 가서 씨를 다 파헤쳐버리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초창기에는 그 해악을 뿌리뽑기가 쉽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새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는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비는 끈질기게 설득했지만 다른 새들은 그것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고 심지어는 자기가 한 말을 들은 체 만 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윽고 그 아마는 싹이 터서 뽑아버리고 싶어도 새들의 발톱이나 부리로는 어쩔 수 없을 만큼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새들은 아마가 다 자라면 자기들이 해를 입게 될 것이고 이제는 그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제비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습니다. 한편 다른 새들이 자신들에게 닥칠 위험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자 위험을 느낀 제비는 도리어 아마씨를 뿌린 그 사람에게로 날아가서 그의 보호 아래 있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비는 자신과 후손들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제비는 사람들의 보호 아래서 살게 되었고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제비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던 다른 새들은 날이면 날마다 그물과 올가미에 의해 사냥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 앞으로 닥칠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그 피해를 입지 않으시려면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하고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그 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한 법입니다. 자기에게 무슨 해로운 일을 안겨다 줄 소지가 있는 어떤 징후나 움직임에 직면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책을 강구하는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는 법입니다." * 자기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르는 일이 있다면 처음부터 대비해야 한다.@ff 다섯번째 이야기 은혜를 모르는 교황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다. "빠뜨로니오, 어떤 남자가 도움을 청하러 왔는데 그 대가로 내게 이롭고 명예로운 일은 무엇이든지 해주겠다고 했소.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를 도와주었는데, 그 문제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내게 생겼다오. 그러나 자기 문제가 내 덕분에 잘 해결되었다고 하던 그 사람이 내가 도움을 청하자 양해를 구하며 거절했소. 그 후에도 나를 도울 수있는 기회가 또 있었는데 내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매번 거절했소.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려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아시려면 똘레도에 거주했던 대학자 일란과 산티아고 지방의 대리 주교사이에 있었던 일을 아시는 것이 좋겠군요.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산티아고에 강령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대리 주교가 있었는데 똘레도의 일란이라는 학자가 그 분야에 통달해 당대의 그 누구보다도 마술에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령술을 배우기 위해 곧장 똘레도에 있는 일란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학자는 집에서 외따로 떨어진 방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지요. 그는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기는 했지만, 점심 식사 이후까지는 방문 이유를 듣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일란은 손님이 편하게 기다릴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하며 그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두 사람은 방으로 갔고 대리 주교는 방문 목적을 설명하며 마술을 전수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일란이 대답하기를, 당신은 사회 상류층인 대리 주교로서 아주 높은 직위까지 오를 수 있을 텐데, 은혜를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여느 고위직 사람들처럼 마술을 배우고 난 후에는 가르쳐준 사람의 은혜를 잊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대리 주교는 가르쳐만 주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했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점심부터 저녁이 가까울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긴 이야기 끝에 마침내 합의에 도달하자 일란은 마술이라는 학문은 한적한 곳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하며 대리 주교를 밀실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곤 하녀를 불러 메추라기를 저녁거리로 준비하되 그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요리를 시작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대리 주교와 마술사는 좁은 복도를 지나 아름답게 조각된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 층계가 끝나자 좋은 가구와 읽어야 할 책들이 가득 차 있는 아주 아늑한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어떤 책들을 먼저 들춰봐야 할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중 두 남자가 들어와 대리 주교의 삼촌인 주교가 보낸 편지를 전했습니다. 그 내용인즉 주교가 심한 병에 걸려 목숨이 오락가락하니 살아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면 당장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대리 주교는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삼촌의 병환이 마음에 걸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막 배우기로 한 마술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렇게 빨리 포기할 수는 없다고 결정하고 삼촌에게 보낼 편지를 썼습니다. 그 후 3,4일이 지나자 상복을 입은 남자들이 몇 명 와서는 대리 주교에게 주교의 사망 소식과 그 뒤를 이을 사람을 지명하기 위해 온 교회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모두들 신앙심을 가지고 그를 지명하고 있으나 그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좋을 것이므로 대기하고 있으라 전했지요. 7,8일 정도 지난 후에 잘 차려입은 하인 두명이 나타나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는 그를 주교로 임명하는 증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란은 대리 주교가 자신의 집에서 이런 희소식을 받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하면서, 신의 은총을 받아 직위가 상승했으니 이제는 비게 된 대리 주교 자리에 자신의 아들을 앉혀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러나 새 주교는 대리 주교의 자리를 자신의 동생에게 양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는 일란의 아들에게는 교회의 다른 직위를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란과 그 아들에게 산티아고로 같이 가줄 것을 제안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모두 산티아고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아주 성대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도시에서 얼마 동안 지낸 후 주교는 교황이 보내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는 주교를 똘로사 지역의 대주교로 임명하며 산티아고의 주교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일란은 이번에는 꼭 자기 아들을 임명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러나 주교는 그 자리를 자리 삼촌에게 양보해 달라고 했습니다. 일란은 언짢은 마음을 표시하고 앞으로 잘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대주교는 그렇게 할 것을 약속하며 함께 똘로사로 가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도시에 도착하자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다 나와 그들을 환영했지요. 그곳에서 2년을 지내자 이번에는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더불어 똘로사의 대주교 자리에 그가 원하는 사람을 앉힐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습니다. 일란은 다시 빚을 받아낼 양으로 지금까지 계속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똘로사 대주교 자리를 자기 아들에게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추기경은 대주교의 자리를 평생 착하게 살아온 자신의 늙은 외삼촌에게 양보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 대신 추기경이 되었으니 교황청이 있는 곳까지 동행하면 좋은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했지요. 일란은 내키지 않았지만 추기경이 하자는 대로 로마까지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다다르자 추기경을 비롯한 교황청의 사람들이 그들을 크게 환영했습니다. 일란은 자기 아들을 배려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추기경은 막연한 대답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황이 사망하고 추기경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일란은 그에게 더 이상 약속을 회피할 길이 없다고 했지요. 그러자 교황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며 기회가 닿으면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일란은 화를 내며 그가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의심스러웠으며 아무것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제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투덜거리는 소리에 질렸다며 계속 잔소리를 한다면 사기꾼에다 이교도라는 명목으로 감옥에 처넣을 것이라고 협박했다지 뭡니까. 일란이 똘레도에서 하던 일은 마술뿐이었으니 말이지요. 이 말을 들은 일란은 그가 추기경을 위해 한 일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깨닫고 이별을 고했습니다만 교황은 먼 길을 떠나는 일란에게 음식물 하나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란은 교황에게 그가 음식을 주지 않으니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저녁으로 준비하라고 한 메추라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며 하녀를 불러 요리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일란의 명령이 떨어지자 교황은 갑자기 처음 똘레도에 왔을 때처럼 대리 주교의 신분이 되어 그 도시에 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리 주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수치스러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일란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으니 메추라기를 나누어줄 생각이 없다며 잘 가라고 내쫓아버렸습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고맙다는 인사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그리 많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럴때면 똘레도의 일란에게 보답할 줄 몰랐던 대리 주교와 같은 사람을 위해 노력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시면 안 된다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미천한 자리에 있을 때 도움을 받고도 보답할 줄 모르는 자는 좋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욱 배은망덕해진다.@ff 여섯번째 이야기 간을 닦아야 했던 남자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과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나는 요즘 돈이 넉넉하지 못해 괴롭다오. 그래서 마음은 아프지만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을 팔아버리든가 아니면 다른 방도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소. 지금 처해 있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소. 내 주변에는 그동안 내가 고생해서 모은 돈을 요구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오. 그 사람들한테는 그 돈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과 그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일은 어떤 병자에게 일어난 일과 비슷 하군요." 한 남자가 심하게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를 본 의사들은 갈비벼를 들어내고 간을 꺼내 약물로 닦지 않으면 낫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남자가 수술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의사가 간을 꺼내 손에 들고 있을 때 마침 그곳에 있던 어떤 사람이 의사에게 그 간을 자기 고양이의 먹이로 주겠다며 달라고 했답니다.과연 그 남자는 자기 간을 그 사람에게 주었을까요? 백작님, 어려움을 겪어가며 모은 돈을 별로 필요로 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주신다면 그건 그 남자가 자기 간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남에게 줘서는 안 될 것을 줘버린다면 당신에게 큰 해가 될 수도 있다.@ff 일곱번째 이야기 금괴에 담아둔 심장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에게 자신의 재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빠뜨로니오, 어떤 이들은 내게 가능한 한 많은 재물을 끌어모으라고 충고한다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재물이 가장 유용할 거라고 하면서 말이오. 이것에 대한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소."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내노라 하는 대지주가 그 이름에 걸맞는 여러 일을 치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재물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재물을 축적하는 데 급급하여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부하를 괴롭히며, 나라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물에 눈이 멀어 그것만을 좇는다면 어떤 롬바르드인이 볼로냐 시에서 겪은 일과 같은 경우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볼로냐 시에는 아주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롬바르드인은 그 재물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개의치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 모으는데만 열성을 다 했답니다. 그러다 심한 병을 앓게 되었는데 다 죽게 된 그를 본 친구 하나가 마침 그 도시에 와 있던 성 도밍고에게 고해성사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친구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성 도밍고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자는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닐 거라 판단했지요. 그래서 자신이 고해성사 받기를 거부하고는 대신 사제 한 명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성 도밍고를 불러오게 시켰다는 것을 알게 됨 롬바르드인의 자식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성자가 아버지에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전재산을 기부해야 한다고 하면 자신들의 유산이 날아갈까봐 걱정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제가 집에 오자 자시들은 아버지가 고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니 다시 부를 때 와달라며 돌려보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롬바르드인은 입이 굳어버렸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다음날 장례식에서 자식들은 성 도밍고에게 마지막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성자는 그렇게 하기로 했고 기도중 그 롬바르드인을 거론하면서 이런 성경 구절을 인용하였지요. ‘너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의 심장이 있다. 그리고는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요, 성경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 보려면 이 죽은 자의 심장을 찾아보시오. 분명히 그의 심장은 몸 속에 있지 않고 재물을 담아두던 궤짝 안에 있을 것이오.” 사람들이 시체를 살펴보자 과연 심장이 없었으며 성 도밍고의 말대로 보석상자 안에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구더기에 가득 차서 말입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이미 말씀드렸듯이 재물은 두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라야만 좋은 것입니다. 첫째, 그것을 얻게 된 경위가 정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는 재물에 지나치게 마음을 두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 명예에 흠이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일을 통해 얻은 재물로 신의 은총을 받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깨끗한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 진정한 보물을 얻으려고 노력하되, 부질없는 재화는 멀리하라.@ff 여덟번째 이야기 여우에게 치즈를 빼앗긴 까마귀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내 친구 하나가 명예로 보나 권세로 보나 또 선한 마음씨로 보나 내게는 남다른 기품이 있다며 나를 추켜세우기 시작했소. 이렇게 나를 한껏 추키더니, 얼핏 듣기에 내게 상당히 득이 될 것 같은 거래를 하자고 제의해 왔소." 백작은 빠뜨로니오에게 자기가 제안받은 그 거래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그러나 빠뜨로니오는 득이 될 것 같은 그 거래와 친구가 한 감언이설의 이면에는 속임수가 숨어 있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래서 백작에게 이렇게 말했다. "백작님, 그는 백작님을 속이기 위해 백작님의 권세와 형편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그가 백작님에게 쓰려고 하는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으시려면 까마귀와 여우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느날 까마귀 한 마리가 큰 치즈 조각을 발견하고는 남들에게 빼앗기거나 먹는 데 방해를 받을까봐 치즈를 가지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나무 밑을 지나고 있던 여우 한 마리가 치즈를 물로 있는 까마귀를 발견하고는 어떻게 하면 치즈를 빼앗아 먹을 수 있을까하고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까마귀님, 오래 전부터 당신의 고귀함과 고운 자태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참 많이도 찾아다녔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지금까지 내게는 당신을 만나볼 만한 기회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당신을 만나고 보니 당신은 내가 익히 들어왔던 것보다 훨씬 더 기품이 넘쳐보이는군요. 내 말이 단순한 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당신의 기품과 우아함을 낱낱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검은색은 보통 다른 색깔처럼 아름답지 않다고 하죠. 그리고 당신 역시 깃털부터 눈, 부리, 다리 그리고 발톱까지 완전히 새까맣다고 하면서 그것이 당신의 흠이라고 겸손해합니다. 물론 당신은 새까맣습니다. 그러나 비록 당신의 깃털이 검긴 하지만 당신의 그 검은 빛깔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인 공작의 깃털처럼 푸르스름한 빛을 발합니다. 또한 당신의 눈도 검습니다. 그러나 검은 눈은 다른 어떤 색깔의 눈보다 아름다움 것입니다. 원래 눈이 하는 역할이란 본다는 데 있는 것이고, 검다는 것은 시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검은 눈이 최고랍니다. 당신의 부리나 발톱 역시 당신만한 크기의 다른 어떤 새들보다도 강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거센 바람도 거슬러 날 수 있는 당신의 그 신속한 비행술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어떤 새도 당신처럼 그렇게 가볍게 날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는 다 합당하게 창조하셨으니 신은 이 모든 것을 갖춘 당신이 다른 새들보다 노래를 못하게 창조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늘에야 신은 내가 당신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이제 나는 당신이 이제껏 들어온 것보다 훨씬 더 기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참에 당신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조재가 될 것입니다.” 그 까마귀는 여우가 온갖말로 자기를 칭송하는 것을 듣고는 정말이지 옳은 말만 한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것도 틀림없이 진실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여우가 그런 말을 한 것이 자신의 치즈를 빼앗기 위함이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까마귀는 그를 친구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우가 자기에게 여러 가지 칭찬을 해가며 노래를 들려줄 것을 간청했으므로 까마귀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까마귀가 입을 열자마자 치즈는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여우는 재빨리 그것을 물고 가버렸습니다. 그 까마귀는 실제 자기가 갖추고 있는 것보다 더 우아한 자태와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믿음으로써 여우에게 속아넘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여우가 한 말들이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여우의 진짜 속셈은 까마귀를 속이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꿰뚫어보셔야 합니다. 결정적인 속임수나 죽음을 부를 정도의 해악은 참말같은 거짓말 뒤에 숨어 있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백작님께 여러 면에서 많은 은혜를 베푼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백작님이 실제보다 훨씬 더한 권세와 명예, 선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믿도록 만들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백작님을 속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아시고 그를 경계하시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고 행동일 것입니다." * 네 앞에서 교언영색하는 자는 바로 네 재산을 탐하는 자다.@ff 아홉번째 이야기 측근을 시험한 왕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내가 좋은 친구라고 여기는 사람이 한 명있는데 그는 명예도 있고 권세도 있는 사람이오. 그 사람이 일전에 은밀하게 내게 이런 말을 했소. 자기에게 일어난 몇 가지 일 때문에 이 땅을 떠나서 여하한 일이 있어도 돌아오지 않을 작정인데, 나와 친분도 있고 또 날 대단히 신뢰하고 있는 터라 내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기고 싶노라고 말이오. 그 중 일부는 팔아달라고 하고 나머지는 관리를 해달라고 했소. 그사람이 그렇게 원하니 나로서는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기도 하고 큰 이득도 될것 같소. 그대 생각은 어떤지 조언을 좀 해주었으면 좋겠소."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은 제 소언 따위가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소견을 듣는 것이 백작님의 뜻이라는 말씀드려보지요. 우선 백작님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계신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백작님을 시험해 보고자 함에 다름아닌 듯합니다. 이는 어떤왕과 그 측근 사이에 일어난 일과 유사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어떤 왕이 자기 측근 중 한 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는 어느 시대, 어떤 곳에서도 있기 마련이라 그 사람이 누리는 총애와 행운에 대한 사람들의 시기 역시 대단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왕과의 사이가 틀어지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방법으로 설득을 해도 그를 신뢰하는 왕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을 섬기는 그의 지극한 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쓴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왕에게 그 측근이 원하는 것은 왕이 빨리 죽어 왕의 어린 아들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일단 어린아이가 모든 왕실 재산의 주인이 되면 그 특근은 스스로 왕이 되려고 어린 왕을 죽일 것이라고 모함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있던 왕도 이 말을 듣고 나자 그 측근을 예전처럼 믿지 못하고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되어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그때는 후회해 봐야 소용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징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의심하고 경계하기 시작하자 왕은 차츰 불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그 측근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왕에게 그 측근을 모함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한 것이 사실임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왕을 속이고는, 왕에게 측근을 시험해 볼 방법 한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왕은 그들이 알려준 방법대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며칠이 흘러 측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왕은 이승의 삶이란 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고 모든 것이 허망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장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또 다시 측근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승의 삶과 부귀영화에 대한 허무가 나날이 더해간다고 얘기를 끌어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몇날 며칠을 두고 몇 번이나 했기 때문에 그 측근은 드디어 왕이 덧없는 명예나 부는 물론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에도 아무런 의미를 못 찾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측근이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왕은 어느날 그에게 그곳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외떨어지고 낯선 곳으로 가서 죄를 참회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신을 어여삐 여겨 영원한 광영을 얻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실 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말을 듣고 그 측근은 매우 놀라며 온갖 방법으로 왕의 결심을 단념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만약에 왕이 굳이 그 나라를 떠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평화롭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숱한 백성들을 팽개치는 결과가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신에 대한 불경한 짓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나버리면 분명 반란이 일어나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져서 결국 신을 잘못 섬기는 결과가 될 것이고, 왕국은 큰 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차치한다 손치더라도 최소한 왕비와 홀로 남게 될 어린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그 뜻을 굽혀야만 한다고 왕에게 간곡히 진언했습니다. 그래도 왕이 끝끝내 고집한다면 틀림없이 왕비와 어린 아들은 재산뿐 아니라 생명마저도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말을 듣고 왕은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자기 부인과 아들이 왕국을 평화롭게 다스리면서 존경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도를 미리 생각해 두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나를 잘 보좌해서 재산이 불어나도록 도와주었다는 것과 언제나 충성을 다해 나를 올바르게 잘 섬겼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세상 누구보다도 그대를 신뢰하고 있소. 그러니 그대에게 내 아내와 아들을 보호해 줄 것을 부탁하며 동시에 왕국의 모든 성과 땅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양도할 생각이오.” 왕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도 감히 자기 아들에게 해가 될 만한 짓은 못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행여나 자신이 왕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해도 그에게 위임한 모든 것들이 잘 관리되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죽음을 맞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그가 왕비를 잘 섬길 것은 물론이요 자기 자들을 잘 키워서 아들이 왕의 직무를 맞아 현명하게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왕국을 잘 보존해 줄 것도 확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산 역시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관리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왕이 자기에게 국사와 왕자를 맞기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측근은 그 말의 깊은 의미까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으나 내심 기뻐했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자기 수중으로 들어온다면 자신에게 큰 득이 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측근은 집에 포로 한 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 포로는 매우 현명한 철학자였습니다. 그 측근이 해야 할 일이나 왕에게 해주어야 할 조언을 가르쳐준 사람도 바로 그 포로였습니다. 측근은 왕과 헤어지자 곧바로 포로에게 달려가 왕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왕이 국사는 물론 왕자까지 맡기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면서 기쁨에 겨워 자기에게 돌아올 이득이 얼마나 클지를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철학자는 자기 주인이 왕과 나누었다는 대화 내용을 듣고는 왕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한 것에 대해 대단히 큰 잘못을 범했다며 호되게 그를 책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주인의 생명과 재산은 커다란 위험에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그런 말을 한 것은 그 일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려는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왕으로 하여금 그를 시험해 보도록 부추긴 탓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다만 그를 넌지시 떠본 것에 불과한데 면전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이제 주인의 생명과 재산은 아주 위험한 지경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왕의 측근은 이 말을 듣고 아주 걱정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이 포로가 말해준 그대로 전개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현병한 철학자는 주인이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닥쳐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순례자들처럼 머리와 수염을 삭발하고 누더기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낡아 떨어져서 징을 댄 신발을 신은 채 누더기옷의 기워 잇댄 헝겊 사이에 상당량의 금화를 챙겨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밝기 전에 왕이 기거하고 있는 궁궐의 문 앞으로 가서 그곳을 지키던 문지기에게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기 전에 그 도시를 떠날 수 있도록 즉시 왕을 깨우라고 비밀리에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문 밖에서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 문지기는 왕의 측근이 그런 몰골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놀랐지만 왕의 침실로 가서 시킨 대로 아뢰었습니다. 문지기의 말을 들은 왕은 깜짝 놀라서 그를 들여보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왕은 측근이 하고 있는 행색을 보고는 왜 그 꼴이 되었냐고 물었고, 그는 왕이 당장 이 땅을 떠나고 싶어하는데 자신에게 베풀어준 왕의 은혜를 잊고 이를 모른 척한다면 신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왕 덕분에 명예와 행복을 누렸으니 왕의 불행과 유랑생활도 같이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부인과 아들 그리고 나라를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데 자신이 그런 것들에 대해 미련을 둔다면 그것은 합당하지 않은 일이므로 왕과 함께 떠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왕의 뜻대로 아무도 왕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옷 속에 둘이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을 가지고 간다고 하면서 떠나시려면 남들에게 발각되거나 알려지기 전에 지금 당장 떠나자고 말했습니다. 왕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그의 충성심에 탄복해 대단히 기뻐하면서 그때서야 이 모든 일이 그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측근은 사람들의 시기심과 모함으로 위험에 빠질 뻔했지만 신은 그의 집에 있던 포로를 통해 그를 보살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도 친구로 생각하고 계신 그 사람에 의해 시험을 당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사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친구분이 그런 말을 한 것을 백작님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분이 백작님은 자신의 편이며 자기 명예를 아껴주고 자신의 그 어떤 것도 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도록 말씀하셔야 합니다. 만약 친구 사이가 그렇지 못하다면 우정이란 지속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남을 위해 자기에겐 해가 될 일을 해줄 사람이 있으리라고 믿지도 바라지도 말라.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 자기의 소망을 성취하는 것은 신의 자비와 훌륭한 조언 덕분이다.@ff 열번째 이야기 까마귀에게 속은 부엉이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에게 조언을 구했다. "빠뜨로니오, 나와 원수로 지내는 사람의 집에는 친척과 하인 그리고 그가 돌봐주고 있는 식객 한 명이 있다오. 그런데 하루는 그들끼리 크게 다투게 되어 이 식객이 몹시 모욕을 당했소. 그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괘씸히 여겨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고는 나를 찾아왔다오. 나는 쉽게 원수를 욕보일 기회를 얻게 되어 내심 무척 기쁘다오. 그러나 만약을 대비해서 당신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니 어디 당신 생각을 말해보시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는 필경 당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까마귀와 부엉이 이야기를 한번 참고해 보십시오." 까마귀들과 부엉이들은 몹시 사이가 나빴는데 언제나 더 많이 당하는 쪽은 까마귀들이었습니다. 부엉이란 낮동안에는 으슥한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나오는 종족 아닙니까. 부엉이들이 걸터앉아 밤을 보내는 나무는 원래 까마귀들의 잠자리였습니다. 부엉이들은 늘 잠든 까마귀들을 괴롭혀 상처를 입히고 또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하루는 부엉이들에게 시달리던 까마귀들 중 영악한 한 놈이 다른 까마귀들에게 복수할 계책을 내놓았습니다. 그 계책이란 이러했습니다. 그 까마귀는 동료 까마귀들이 자신의 털을 간신히 날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몽땅 뽑은 후에 혼자 버려두고 떠나도록 했습니다. 짐짓 학대당한 듯이 꾸민 그 까마귀는 부엉이들에게 가서 이제는 부엉이들과 다투지 말자고 말해서 동료들에게 몰매를 맞았다고 울먹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이제 부엉이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까마귀들을 괴롭힐 방책을 얼마든지 알려줄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부엉이들은 그 제안에 몹시 기뻐하며 그 까마귀를 동지로 받아들이고 잘 대접해 주었답니다. 그러나 경험 많고 나이 지긋한 한 부엉이는 즉시 침입자의 계책을 알아차리고는 그 까마귀는 우리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동태를 살피러 온 첩자라고 대장 부엉이에게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홀로 무리를 떠나 피신해 버렸답니다. 부엉이들이 신임하는 사이 깃털이 다 자란 까마귀가 이제 나가서 다른 까마귀들의 동태를 살펴보고 오겠으니 잠시 후면 모든 까마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말하자 부엉이들은 이를 흡족히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그 까마귀는 동료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낮 동안은 잠을 자는 부엉이들의 생활방식을 알게 된 까마귀들은 쉽사리 그들을 전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불행은 원수를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요.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을 찾아온 사람이 당신의 원수에게 은혜를 입었다면 경계하십시오. 그로인해 당신이 곤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 당신의 적이 어느 날 친구인 척하더라도 그를 믿지 말라.@ff 열한번째 이야기 위험한 혀 루까노르 백작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인간의 삶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이들은 반란자가 가장 나쁘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폭력배 혹은 불량배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가장 피해를 주는 사람은 말을 잘못 전달하는 중상모략자라고 의견이 모아졌다. 백작이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빠뜨로니오에게 들려주자 빠뜨로니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 뒤, 악마와 결탁한 위선자 중의 위선자였던 어떤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매우 선량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갈등 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한 것과는 상극인 악마는 그 사이좋은 부부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둘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를 했죠. 악마는 아무리 해도 그 부부 사이를 방해하지 못하자 풀이 죽어 어느날 한 사악한 여자를 찾아갔습니다. 악마가 인사를 하자마자 여자는 왜 그렇게 슬픈 기색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악마는 행복한 부부 사이를 방해하려다가 실패만 하여 이미 이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대장이, 만일 부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악마와 대장 간의 관계도 끝날 것이라고 협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아는 것이 그렇게 많은 악마가 실패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만일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 일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그 부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즉시 악마와 여자는 계약을 맺었고, 여자는 부부가 사는 곳으로 갔습니다. 여자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 선량한 아내와 가까워지려고 했습니다. 사악한 여자는 과거에 그 부인 어머니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은혜를 갚기 위해 부인을 도우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착한 여인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그녀를 집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뒤, 사악한 여자는 부부의 사적인 조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자는 자기를 신뢰하게 된 부인에게 와서 무천 슬픈 표정을 짓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방금 전에 들었던 말 때문에 기분이 몹시 언짢아요. 글쎄 당신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지 뭐예요. 당신 남편이 당신 외에는 그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이 그를 존경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에게는 이번 일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겠지요.” 착한 여인은 이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몹시 괴롭고도 슬펐습니다. 사악한 여자는 부인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자, 이번에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사악한 여자는, 그 남편이 부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부인이 남편보다 자기를 더 사랑해주는 남자를 찾겠다고 말했다며 착한 부인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사실을 말했다는 것을 알면 부인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며 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남편은 이 말을 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고통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비탄에 잠긴 남편을 보고난 후, 못된 여자는 남편을 앞질러 부인에게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인, 어떤 불행이 우리에게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당신 남편이 점차 당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 당신 남편이 전에 없이 슬프고 화난 얼굴로 집에 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그녀의 남편에게 가서 부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남편도 집에 돌아와서 부인의 슬픈 얼굴을 보자, 전과 같이 함께 있는 기쁨을 느낄 수가 없었고 둘은 모두 비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나가자, 그 여자는 부인에게 남편의 나쁜 버릇과 화를 없애는 마법을 알고 있는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슬쩍 부인을 떠보았습니다. 부인은 어떤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예전의 남편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에 여자의 말에 희망을 갖게 되어 매우 기뻐하고 고마워했습니다. 마침내 사악한 여자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 남자를 만나보았다며, 남편의 목덜미 부분의 머리카락 한줌이 있으면 그의 분노와 화를 없앨 수 있고 예전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도록 가능하면 그를 그를 무릎 위에 재우라고 말하고 칼을 건네주었습니다. 가련한 여인은 남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전과 같이 행복한 삶을 바라면서 칼을 받았습니다. 이윽고 사악한 여자는 남편에게 가서 부인이 새 애인과 함께 도망가기 위해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의 죽음을 걱정해주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당신이 집에 돌아가면 부인은 당신에게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자라고 청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잠들게 되면, 숨겨놓았던 칼을 꺼내서 몰을 벨 거예요.” 남편은 이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전에는 그저 우려에 그쳤지만, 이제는 너무 고통스러워 여자가 말한 것이 사실인가를 확인해 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자 부인은 그를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맞이했으며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일만 했으니 이제 자기 무릎을 베고 잠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남편은 그 사악한 여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남편이 부인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척하자 부인은 목덜미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칼을 꺼냈습니다. 자는 척 하던 남편은 부인이 칼을 쥐고 자신의 목부분에 가까이 가져오는 것을 보자 그 여자의 말이 맞다고 믿고 부인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서 부인의 목을 찔러 죽였습니다. 울음소리와 비명에 놀란 부인의 부모와 형제들이 부부가 있는 곳으로 왔을 때 그들은 목이 찔려 죽은 부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부인이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남편도 죽였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의 비명소리가 그의 부모에게 들리자, 부모는 자식을 죽인 살인자들이라며 부인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날은 이 마을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은 날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그 사악한 여자의 거짓말과 중상모략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이 못된 여인에게 벌을 내리는 대신 모든 일들이 자신의 중상모략에 의해 일어난 것임을 일깨워주고, 자신 때문에 부부가 잘못 판단하게 되어 끝내 비참한 살육을 초래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백작님,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과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선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위장한 위선자나 중상모략자 혹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대부분 사악하며 거짓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사람은 그의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백작님, 어떤 사람도 마음 속에 품은 악한 뜻을 오랫동안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악한 꼬임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겉모습보다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ff 열두번째 이야기 왕을 속인 좀도둑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을 구했다. "빠뜨로니오, 낯선 사람 하나가 찾아와 자신이 계획하고 잇는 사업의 밑천을 조금만 제공하면 큰 수익을 올려주겠다고 말한다오. 자신은 경험이 많아서 밑천의 열 배를 버는 일은 아주 쉽다고 하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가장 큰 이득을 얻으시려거든 연금술사와 왕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곤궁한 처지에서 벗어나 부자가 될 생각만으로 머리가 꽉 찬 철면피 사기꾼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왕이 연금술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이 사기꾼은 10페세타짜리 금화 백 개를 구해 갈아서 가루로 만들고 다른 여러 가지와 섞어서 백 개의 구슬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구슬 한개의 무게는 금화 한 닢의 무게에 다른 재료의 무게를 더한 것이 되었지요. 그리고는 좋은 옷으로 치장한 후 왕이 사는 도성에 가서 어느 향료상인에게 그 요술 구슬들을 사라고 꾀었습니다. 상인이 그 물건이 무엇에 쓰이는 것이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두루두루 많은 일에 유용하지만 특히 연금술에는 필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말에 상인은 구슬당 두세 닢의 금화를 지불하고 백 개를 모두 사버렸습니다. 얼마 후 도성 안에는 연금술사가 있다는 풍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마침내 왕에게까지 이 소식이 닿았답니다. 왕은 그를 불러들여 네가 정말 연금술사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짐짓 겸손한 척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곤 연금술에 많은 돈을 거는 일은 무모하지만 왕이 원하시면 자신이 가진 재주를 보여드리겠노라고 못이긴 척 말했습니다. 왕은 그가 말하는 품으로 보아 인품이 훌륭하다고 판단하고는 그를 아주 신뢰해 버렸습니다. 사기꾼은 두세 푼 어치의 가치도 없는 자질구레한 것들 몇개와 자기가 판 요술 구슬 하나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왕이 보는 앞에서 그 잡동사니들을 요술 구슬과 함께 녹였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두세 푼어치의 가치도 안되는 것들에서 10페세타 금화 무게에 해당하는 금조각을 꺼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왕은 몹시 흡족해 하며 그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명예로운 기사라 칭찬하고는 어서 더 많은 금화들을 만들라고 재촉했습니다. 사기꾼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순진한 척하며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제가 아는 것은 다 알려드렸습니다. 왕께서도 저처럼 잘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섞은 물건들 중 한가지라도 부족하면 금이 안 나오는 법이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가짜 비법을 가르쳐준 후 사기꾼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편 왕은 이제 홀로 남아 비법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사기꾼이 알려준 비율로 양을 두 배로 섞으면 금도 두 배로 나왔고, 세 배를 섞으면 당연히 세 배의 금이 나왔습니다. 이를 본 왕은 금화 천 닢을 만들기에는 다른 재료는 다 구할 수 있으나 요술 구슬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보고서 다시 사기꾼을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왕은 그에게 구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자기 고향에는 엄청나게 많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왕은 사기꾼에게 가서 있는 대로 몽땅 구해오라고 했고 사기꾼은 구입하는 데 필요한 돈과 경비를 합쳐 큰 액수를 요청했습니다. 그리하여 돈을 수중에 넣은 사기꾼은 그 길로 여행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신중하지 못해 사기를 당한 왕이 감감무소식인 그의 소식을 물으려 사기꾼 집에 사자를 보내었을 때 집은 텅빈 채 자물쇠로 잠긴 궤짝 하나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습니다. 열어보니 안에는 이런 글귀가 쓰인 편지 한 장이 있더랍니다. “세상에 요술구슬은 없도다. 내가 당신을 속였은즉, 애초에 내가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당신은 ‘네 말을 믿기 위해선 먼저 네가 부자여야 한다’고 말했어야 한다.” 여러 날이 흘러 내막을 알게 된 몇몇 사람들은 서로 모여 배꼽을 잡고는,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성품을 큰 종이에 썼답니다. 간교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 그리고 조심성 없는 사람들을 적는데 그 명단에 왕의 이름을 제일 먼저 썼습니다. 이를 안 왕은 그들을 불러 어떤 대답을 해도 벌주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는 왜 자신이 조심성 없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대답하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많은 돈을 주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이 잘못 알고 있으며, 이제 그가 구슬을 가지고 나타나면 자신이 현명한 사람임을 알게 되리라고 우겼습니다. 그들은 그 사기꾼이 나타나면 왕의 이름을 명단에서 지워드리겠다고 대답했답니다. "백작님, 이 왕처럼 조심성 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시려면 후회할 모험은 하지 마십시오. 불확실한 희망은 품지 않는 것이 현명한 법입니다." * 가난한 사람의 충고를 듣고 네 재산에 모험을 걸지 말라.@ff 열세번째 이야기 홍등가에 들어간 철학자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세상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을 당신도 알 것입니다. 항상 그랬듯이 나에게 당신보다 더 좋은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명성을 유지하고 키울 또 다른 방법이 없겠는지 말해주시겠소?" "백작님께서 저에게 충고를 부탁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경우 어느 늙은 철학자가 겪은 이야기를 아시면 저를 더 믿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모로코 왕국의 어느 도시에 위대한 철학자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심한 변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배설을 미루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배설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많은 제자들과 함께 그 도시의 어느 거리를 지나던날, 이 늙은 철학자는 화장실에 가고 싶었습니다. 의사들이 충고한 대로 바로 일을 치르기 위해 그는 어느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보 그 일로 인해 그 철학자의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엔 거리에서 육체를 팔며 사는 여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그곳에 그런 여자들이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변비환자인지라 대변을 보느라 오랜 시간을 보내고 기분좋은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나오자, 사람들은 평소 안 그렇게 보이던 그 철학자가 홍등가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나쁜 일은 입에서 입으로 와전되기 마련입니다. 특히 어떤 중요한 인물이 그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비록 그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나쁜 일을 저지른 것보다 더 비판하는 법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존경받는 노스승이 자신의 영혼은 물론 육체와 명성에 금이 가게 하는 그런 곳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철학자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제자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스승에게 그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 잘못에 대해 말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스승이나 제자나 똑같은 사람들로 여기게 될 것이며 애써 지켜왔던 명예도 다 무너졌다고 말했습니다. 철학자는 제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도대체 자신이 어디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온 도시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반문할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노스승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제자들에게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말도록 요청했고, 그날부터 8일째 되는 날까지 해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서재에 칩거해서 매우 유용하고 좋은 책을 한 권 썼습니다. 그 책을 제자들을 등장시켜 행복과 불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썼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나의 제자들아, 불행과 행복이 찾아오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느니라. 우선 행복의 경우 그것은 추구해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우연히 얻어질 수도 있다. 불행도 마찬가지로 화를 자초해 다가올 수도 있지만 우연찮게 당할 수도 있다. 열심히 선행을 하면 그로 인해 행복이 찾아오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불행이 닥친다. 이것이 스스로 만든 행복과 불행인데, 다시 말해 선행과 악행을 통해 만들어지는 행복과 불행인 것이다. 또 행복을 추구하진 않았지만 우연히 얻어지는 경우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이익을 얻는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돈이 가득 든 지갑을 줍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불행의 경우는,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이 새에게 던진 돌이 머리 위로 떨어져 다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은 모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노력이나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다가오는 행운과 불행이다. 더불어 자네들이 추구한 행복과 자초한 불행에 있어서 항상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 잇다. 그것은 선행은 좋은 결과를, 악행은 나쁜 경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또 우연히 얻은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도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로 나쁜 일을 행하거나 의심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 그 일이 불행을 초래하거나 불명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는 우연히 겪은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그날 건강상의 이유로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갔을 뿐 나쁜 평판을 만들어낼 만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곳에 거리의 여자들이 산다는 이유로 나를 헐뜯어 내 명예가 실추된 것이다. "백작님, 백작님께서 명성을 드높여 유지하기 원하시면 세 가지 일에 애쓰셔야 합니다. 첫째, 항상 좋은 일을 하십시오. 백작님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면서 가능한 한 이웃들에게도 선행을 베푸십시오. 그러나 만약 선행을 베풀지 않거나 나쁜 일을 하면 명성을 잃게 됩니다. 비록 어느 한순간 좋은 일을 했더라도 그것이 계속되지 못하면, 그간 얻었던 모든 것을 잃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둘째, 지금 백작님께서 누리고 계신 명성을 확실히 유지할 수 있도록 그 명성에 해가 될만한 언행이나 사람들의 의심을 살 만한 어떠한 행동도 삼가십시오. 셋째, 자주 좋은 일을 하되 보이기 위해 일부러 행동하지는 마십시오. 오직 백작님의 영혼을 위해 선행을 실천하십시오." * 항상 착한 일을 하라. 그리고 변함없이 좋은 명성을 유지하려면 의심받지 않도록 조심하라.@ff 열네번째 이야기 진정한 남자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게 언제나 훌륭한 조언을 해주는 부하가 하나있는데 그가 친척아이를 시집보내려고 한다오. 그 때문에 이번엔 그가 내게 조언을 구해 왔소.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수많은 구혼자들 중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거요. 그 사람이 정확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는데 뭐라 조언해 주어야 할지를 모르겠소. 당신은 그런 일에 대해 아는 게 많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가르쳐 주시겠소?" 그 말을 듣고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프로방스에 어떤 백작이 있었습니다. 매우 선량했던 그 사람은 명예롭고도 자기 지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건장한 남자들을 휘하로 받아들여 훈련시킨 뒤 그들을 이끌고 울뜨라마르의 산따띠에라(역주: 성스러운 땅이라는 뜻)를 향해 출발했으나 그만 술탈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포로의 몸이었지만, 백작의 훌륭한 심성을 아게 되면서 술탄은 최대한 그의 편의를 봐주었고, 그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방대한 영토와 막강한 힘을 소유한 술탄은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백작의 조언이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기에 술탄은 그를 깊이 믿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백작은 자기 영지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대접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백작이 영지를 떠날 때 그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딸은 아버지가 포로로 있는 동안 혼기가 찬 처녀로 자라났습니다. 백작의 아내와 친척들은 포로로 있는 백작에게 여러 왕자들과 세도가의 자식들이 딸에게 청혼해온다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술탄이 그를 만나러 간 어느날, 백작은 술탄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탄이시여, 당신은 제게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저를 존중하고 믿어주시어 제 조언을 그토록 중히 여기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감히 당신께 조언을 좀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백작의 말에 술탄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기꺼이 조언을 해주겠다면서 심지어는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도와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백작은 자기 딸에게 청혼해온 집안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딸을 누구와 결혼시켜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술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백작님, 저는 따님에게 청혼해온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들의 가계가 어떤지, 세도가 어느 정도인지, 행실은 어떤지, 당신과는 어떤 관계이며, 서로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낫고 못한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저의 조언이 적절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따님을 ‘남자'와 결혼시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백작은 술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즉각 알아듣고는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와 친척들에게 그 지방의 모든 귀족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그들의 예법이 어떠하고, 관습은 어떠하며, 또 행실이 어떤지 확인해보되 그들의 부도, 세력도 보지 말고, 단지 결혼할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만을 보라는 내용의 전갈을 보냈습니다. 백작의 편지에 친척들과 아내는 매우 놀랐으나 곧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청혼해온 모든 사람들의 예법과 관습, 장단점 등을 서신을 통해 그에게 알렸습니다. 백작은 가족들이 써보낸 것을 읽은 후에 술탄에게도 보여주었습니다. 구혼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모두가 매우 훌륭한 것 같았으나 술탄은 그들에게서 여러 가지 결점들을 발견해냈습니다. 예의범절이 바르지 못하거나, 성격이 모났거나, 비사교적이거나 사람을 맞아들이는 예법을 모르거나,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 등이 모든 청혼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인간적 결점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큰 세력은 갖지 못한 어느 부자의 아들이 그래도 가장 낫다고 판단 되었습니다. 그는 사윗감으로 적절한 자격을 가장 많이 갖추고 있었고, 여러 청혼자들 중에서 결점이 가장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술탄은 백작에게 딸을 그 사람과 결혼시키라고 했습니다. 더 세도가 잇고 신분이 높은 귀족도 많지만 그에 상당하는 결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세력은 없지만 결점도 없는 사람과 결혼시키는 게 더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를 평가할 때, 재산이 얼마나 된고 신분이 어떤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어떤가가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작은 아내와 친척들에게 편지를 보내 딸을 술탄이 권한 사람과 결혼시키라고 명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놀랐지만 그 청년을 찾으러 사람을 보냈고, 그에게 백작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젊은이는 백작의 집안이 자기 집안보다 훨씬 더 지체높고, 부유하며, 세도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기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자신을 놀림감으로 만들기 위한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백작가문의 사람들은 자기들 말이 사실이며 이 결혼이 성사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청혼해온 사람들 중에 세도 높은 왕이나 귀족의 아들이 아닌 그 청년에게 딸을 시집 보내라고 술탄이 백작에게 권고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당신이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에 청년은 그들이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술탄이 자신의 됨됨이를 인정하여 ‘남자’로서 자신을 택했으므로 자신이 응당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남자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백작부인과 친척들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자기에게 백작의 영지와 수입에 대한 권한을 모두 넘겨준다면 그들의 말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의논 끝에 합의를 보고 그가 요구한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습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하게 된 그는 비밀리에 여러 척의 배를 무장시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기일을 정해 결혼을 준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정해진 날짜가 되자 그는 화려하게 결혼식을 거행했습니다. 밤이 되어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간 청년은 자리에 들기 전에 은밀히 백작부인과 친척들을 불렀습니다. 지기보다 더 뛰어나고 부유한 사람들 중에서 백작이 자기를 선택한 것은 그들도 이미 알고 있듯이 딸을 ‘남자’와 결혼시키라는 술탄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술탄과 백작이 자기를 그토록 믿어주었는데 남자로서 응당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남자도 아닌 셈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영지를 남겨둔 채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말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그는 아르메니아로 가서 그곳의 말과 풍습을 배울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그는 술탄이 사냥에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투함을 항구마다 한 척씩 배치해 놓고 자기가 명령할 때까지 정박지에서 나오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훌륭한 사냥용 새와 사냥개를 여러 마리 구해 술탄의 궁으로 갔습니다. 그가 술탄의 궁에 당도하자, 크게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환영의 뜻으로 귀족에게 의당 그렇게 하듯 그의 손에 입맞추는 이도,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해오는 이도 없었습니다. 술탄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무엇이든 주라고 했으나, 젊은이는 그런 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기에 술탄의 호의를 사양할 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기와 자기 부하들이 얼마간 술탄의 집에 머물면서 이것 저것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에 덧붙여 술탄이 사냥의 명수라는 소문을 듣고 훌륭한 사냥용 매와 사냥개들을 가져왔으니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기는 나머지를 데리고 술탄을 따라 사냥을 가고, 지기 힘이 닿는 데까지 술탄을 위해 무슨 일이든 봉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술탄은 매우 고마워하며 가장 좋아보이는 사냥용 매와 사냥개를 골랐습니다. 젊은 이는 술탄으로부터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약속을 얻어내거나 특혜 같은 것을 받은 바는 없었으나 꽤 오랜 기간을 술탄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사냥을 나갔을 때 매를 따라 학을 쫓아가다가 전투함 한 척이 청년의 명령대로 배치되어 있는 항구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말을 탄 술탄과 백작의 사위는 동료들로부터 너무 멀어져서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매들이 학을 잡아 물어뜯고 있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술탄은 매들을 돕기 위해 신속히 말에서 내렸고, 백작의 사위는 술탄이 땅에 내려오자 전투함에 있던 부하들을 불렀습니다. 사냥감에만 열중해 있던 술탄은 자기가 전투함에서 내린 군사들에게 포위된 것을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 청년은 칼을 뽑아들어 그를 해치려 하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술탄은 그제서야 자기가 함정에 빠져든 것을 알고 가슴을 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백작의 사위는 술탄에게 당신은 내가 주는 것을 모두 받았으나 자기는 술탄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않았으니 빚진 것도 없고, 또 당신의 신하도 아니므로 당신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없다고 하면서 불만은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는 술탄을 붙잡아 전투함에 태우고 나서, 자기는 ‘진정한 남자’이기 때문에 훨씬 나은 다른 사람들을 제쳐두고 술탄이 권해 선택된 백작의 사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라서 자기를 택했는데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남자’도 아닌 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술탄이 해준 충고가 훌륭한 것이고 진실 된 것이라는 것을 장인이 알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충고를 해준 것에 대해 만족해 하시도록 장인을 넘겨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술탄은 충고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맞춘 그를 치하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장인을 넘겨줄 테니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습니다. 사위는 술탄의 말을 믿고 그를 배에서 내려주었고 부하들에게 사람들 눈에 뛰지 않을 때까지 부두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명령한 후 자기도 따라 내렸습니다. 술탄과 백작의 사위는 매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따라온 사람들 눈에 술탄은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자기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을에 도착하자 곧 그들은 백작이 포로로 잡혀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술탄은 그를 보자 기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백작님, 제가 당신게 해드린 조언이 올바른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여기 이 사람은 바로 당신을 구하러 온 당신의 사위입니다.” 술탄은 그의 사위가 자기를 포로로 잡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었고, 자기에게 보여주었던 신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술탄과 백작 그리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청년의 지혜와 노력과 진실함을 칭찬했습니다. 술탄은 백작과 그의 사위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고, 갇혀지내는 동안의 노고를 달래기 위해 백작이 포로로 지낸 기간 동안 벌었을 수입의 두 배를 주어 그의 조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모두가 딸을 ‘남자’에게 시집보내라는 술탄의 훌륭한 충고 덕택이었습니다. "그러니 백작님, 결혼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사람 됨됨이를 관심있게 봐야 한다고 충고하셔야 할 것입니다. 청혼자의 부와 귀족칭호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훌륭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명예가 드높아지고, 가계가 발전하며 재산은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제아무리 귀족이고 부유하다 해도 사람이 옳지 못하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게 됩니다. 부모에게서 부와 지위를 물려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감당할 그릇이 못되어서 명예도 부도 모두 잃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또 오로지 본인이 훌륭해서 재산뿐만 아니라 명예까지 높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많아 그렇게 된 사람들보다 더 칭송을 받고 존경을 받습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은 그 사람됨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사람의 현재 상태와 조건이 어떻든 간에 말입니다. 따라서 첫번째로 살펴봐야 하는 것은 결혼상대의 예의범절과 행실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려는 여자는 남자가 얼마나 똑똑하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 됨됨이가 어떤지를 첫번째로 보고 그런 후에 누가 더 높은 귀족인지, 재산이 더 많은지, 조건이 더 잘 갖춰졌는지,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본다면 그 결혼은 훨씬 더 현명한 결혼이 될 것입니다." *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의 지위나 재산이 아니라 그의 됨됨이와 능력이다. 참된 인간은 작은 이익도 큰 것으로 만들 수 있다.@ff 열다섯번째 이야기 이간질에 속은 사자와 소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빠뜨로니오, 내겐 매우 권세 있고 정직한 친구가 있다오. 지금까지는 그에게서 의심스러운 면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요사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그가 전처럼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하오. 심지어는 나와 맞설 구실을 찾고 있다니 참으로 걱정이오. 만약 내가 자기를 의심하고 감시할 게 아니겠소? 그렇게 되면 불신과 미움이 커져 결국 갈라설 수밖에 없지 않겠소. 내가 믿고 의지할 곳이라고는 그대밖에 없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주겠소?" 이 말을 듣고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사자와 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사자와 소는 덩지 크고 힘이 셌기 때문에 다른 짐승들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사자는 소의 도움으로 육식동물을 통치했고, 반대로 소는 사자의 도움으로 초식동물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물들은 사자와 소가 서로서로 도와가며 자기들을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어왔음을 알게 되자, 동물들은 그러한 노예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자기들끼리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들은 사자와 소 사이에 불화의 씨앗 하나만 심어놓아도 자신들이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우와 양이 각각 사자와 소로부터 가장 큰 신임을 얻고 있었기에, 동물들은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사자와 소 사이에 싸움을 붙여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여우와 양은 동물들을 위해 자기들의 힘이 닿는 대로 노력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자의 조언자인 여우는 우선 육식동물 중 사자 다음으로 가장 힘이 센 곰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소가 사자를 해칠 기회를 노리고 있어서 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으며, 그런 소문이 떠돈 지 벌써 며칠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감시는 해야 할 것이라고 사자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소의 조언자인 양도 소를 빼면 풀을 먹는 모든 동물들 중 가장 힘이 센 말에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곰과 말은 그 소문을 사자와 소에게 전했습니다. 사자와 소는 그 이야기가 모두 사실일 거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가장 신임하는 자들이 둘사이에 불화를 불러 일으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자 결국에 가서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각자 믿을 만한 충신인 여우와 양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의 자초지종을 잘 알로 있는 여우와 양은 곰과 말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별 근거는 없는 일이겠지만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대비책을 모색해 두기는 해야 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먼저 상황을 좀 지켜보고 나서 일을 도모하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자와 소 사이에는 커다란 불신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둘 사이에 의심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자 소에게는 사자가 소를 시기하고 있다고, 또 사자에게는 소가 사자를 시기하고 있다고 이간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바로 상대가 마음속에 나쁜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꼬드겼습니다. 여우와 양은 거짓 조언자 노릇을 통해 얻게 될 이익에 눈이 멀어 대장에 대한 충성의 의무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참된 지혜로 일깨우는 대신 갈수록 더욱더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결국 사자와 소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사랑과 믿음은 증오와 불신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를 본 다른 동물들은 갈수록 더 그들을 부추겼습니다. 결국에 가서 그들은 드러내놓고 싸우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들은 각자가 자기들의 우두머리편에 서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모든 피해는 결국 사자와 소가 입게 되었습니다. 싸움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사자는 소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고 그에게서 힘을 많이 빼앗아갔습니다. 그러나 사자 또한 그 이후로 권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전처럼 다른 동물들을 통치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에게 힘을 행사할 수도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자와 소는 그때까지도 자기들이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 도왔기 때문에 존경받을 수 있었고 다른 동물들을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나쁜 충고를 경계하지 않았고, 둘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던 그 우정을 지키지 못해 서로 싸우게 되었으며 그 결과 모든 동물들은 군주였던 그들을 이제 더 이상 섬기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백작님, 친구분과의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그러면 소와 사자의 경우와 같은 일이 백작님께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믿고 형제가 서로 믿듯이 진정한 친구를 믿으십시오.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백작님께 뭐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본인에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그 친구도 그들이 당신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자를 벌하십시오. 아무도 그런 소리를 하거나 퍼뜨리고 다니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친구가 평생을 함께 할 정도로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면, 친구로 지내되 당신이 그를 의심한다는 것을 모르도록 조심하십시오. 백작님께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그의 작은 실수는 눈감아주십시오. 당신에게 그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그에게도 역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십시오.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시고 그의 행동에 대해 이유없이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면 우정이 지속될 것이고, 사자와 소가 범했던 실수는 범하지 않게 되실 겁니다." * 거짓말쟁이들의 이간질에 속아 유익한 친구를 잃지 말라.@ff 열여섯번째 이야기 최고의 기사는 누구인가 여느 때와 같이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말했다. "빠뜨로니오, 예전에 아주 막강한 세력을 가진 왕이 나의 적이었던 때가 있었소. 둘 사이의 대결은 하도 오랜 세월을 두고 계속되어 결국에는 화해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짓고 합의를 했다오. 그래서 지금은 친구가 되어 전쟁이 없어졌다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항상 서로를 의심하고 있소. 더군다나 그의 측근들이 그에게 하듯이 나의 벗들도 그가 우리 관계를 악화시킬 구실을 찾는 데 여념이 없다며 나를 불안하게 한다오. 그대는 내 모든 문제를 알고 있으니, 이런 때 어찌해야 하는지 충고해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제게 요구하시는 조언은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조언을 드리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백작님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전쟁 준비도 하고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또 당신을 모시고, 당신의 불행을 자신의 것처럼 아파하며 잘못을 깨우쳐주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께서 어떤 일에 대비를 하시도록 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리고 백작님께서 나쁜 일에 대비하시는 것을 막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며, 땅을 일구어 식량을 준비하고 요새를 튼튼히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자는 당신의 재산이 보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신께서 많은 친구와 부하를 거느리며 그들을 위해 너그럽게 베푸는 것을 저지하는 자는 당신의 명예와 영토 수호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행하지 않으면 큰 위험에 처하게 되실 것이나, 한편으로는 그 일들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어려운 일이지만 저의 조언을 바라시니 선하고 정직했던 한 기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군요." 성스럽고 자비로운 페르난도 왕이 회교도들이 점령하고 있던 세비야를 포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를 모시고 있던 많은 부하들 중에 당대 최고의 무사로 인정받고 있던 세 명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로렌소수아레스 갈리나또였으며, 두번째는 가르시아 뻬레스데 바르가스였고 세번째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하루는 이 세 기사가 서로 누가 최고의 무사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쟁이 끝날 것 같지 않자 그들은 무장을 하고 적이 점령하고 있는 세비야의 성문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세 기사는 무장을 하고 그 마을로 갔습니다. 성벽과 망루 위에서 정찰을 하고 있던 회교도들은 그 세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는 외교서신을 전하는 사자일것이라고 판단하고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 기사는 성 밖의 담을 지나 성문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기사들은 창끝으로 문을 여러 번 두드린 후 말을 돌려 다시 진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지요. 이들이 서신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회교도들은 노하여 기사들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성문을 열고 기병 천오백 명과 보병 이만 명 정도가 뒤따르기 시작했을 때 세 기사는 이미 멀리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따르는 회교도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본 기사들은 말을 돌리고 기다렸습니다. 적이 다가오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기사가 먼저 나서서 싸웠습니다. 로렌소수아레스와 가르시아 뻬레스는 움직이지 않았지요. 그러나 적이 더 가까이 오자 가르시아 뻬레스 데 바르가스가 싸우기 시작했고 로렌소 수아레스는 혼자 계속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 회교도들이 그를 에워싸고 공격을 하자 그도 용감하게 싸우기 시작했지요. 왕의 군사들은 이 세 기사가 적에게 포위된 것을 보고는 즉시 지원하러 달려갔습니다. 많이 다치고 백적간두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다행히도 이 세 기사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과 회교도들의 결투는 너무 치열했기에 페르난도 왕도 몸소 참가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승리는 기독교인들에게 돌아갔으나 진영으로 돌아오자 왕은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무모한 짓을 벌인 세 기사를 체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하들이 세 기사를 용서해 달라고 빌자 왕은 그렇게 했지요. 후에 왕은 목숨을 건 그 모험의 발단이 세 기사 중 누가 최고인가를 가리지 못하여 생긴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휘하의 모든 훌륭한 전사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세 기사 중 누가 더 훌륭했는가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모두 모이자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혹자는 처음 혼자 싸움을 시작한 기사가 가장 용감하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두번재가, 또 다른 이들은 세번째가 가장 뛰어났다고 했지요. 모든 의견의 근거와 이유가 너무도 논리정연하여 틀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격론 끝에 다음과 같은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회교도인들이 수가 많기는 하여도 세 기사들의 용기와 노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첫번재 기사가 가장 훌륭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이 너무 많아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싸움을 시작했다는 것은 승리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도망가는 수치스러움을 당할 수 없어 두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용기를 가지고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두려움을 견디면서 적이 더 가까이 다가와 공격을 할 때까지 싸움을 시작하지 않은 두번재 기사도 나름대로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랫동안 두려움을 견디고 회교도들의 공격을 직접 받고서야 싸움을 시작한 로렌소 수아레스 갈리나또가 세 기사 중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뛰어나다.”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께서는 불안과 공포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또한 한번 시작하면 쉽게 끝나지 않는 전쟁이 있다는 것도 아시지요. 그러나 불안하실수록 그만큼 더욱 현명하게 대처하실 수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대비하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갑자기 당신에게 화를 입히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가 충고하건대 절대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마시고 급작스럽게 큰 화를 입지는 않으실 것이니 상대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사람들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 근거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자들은 뭔가 일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측근이나 상대의 친구들도 전쟁을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스스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시에는 쓸모 없으며 온전한 평화를 즐길 줄도 모릅니다. 그들은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란을 피워 그 틈을 타 축재나 하려고 하며, 당신을 심란하게 만들어놓고는 재산을 갉아먹으려고 할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당신께 해가 되는 일을 하더라도 그들을 정확히 파악하시는 한 당신께서는 안전합니다. 당신은 모든 일에서 소신껏 행동한다는 것을 만인이 알게 될 것 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백작님께서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으신다면 아무도 당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백작님께 해가 되는 일을 하면서까지 못된 자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평화를 누리실 것이며 착한 이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 타인의 불평을 받아주느라 해를 입지 말라. 고통을 참을 줄 아는 자만이 승자이니.@ff 열일곱번째 이야기 사자 앞에 선 두 마리 말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과 그의 조언자 빠뜨로니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오래 전부터 내게 많은 해를 끼치고, 무척 괴롭히는 원수가 한 놈 있소. 우리는 서로 하는 일이 다를 뿐만 아니라 마음도 맞지 않다오. 그런데 최근에 우리 둘보다 더 세력 있는 자가 나타나서는 우리에 게 큰 해가 될 일을 하고 있다 하오. 일이 이렇게 되자 원수로 지내던 그 놈이 이젠 화해하고 이 자로부터 서로를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제의를 해오지 않았겠소? 둘이 합심한다면 우리를 확실히 지켜낼 수 있지만 따로 떨어져 있다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자에게 둘중 하나가 손쇱게 제거될 거라고 말이오. 그렇게 된다면 남아 있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오.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큰 고민이라오. 한편으로는 그 놈이 나를 속일까 두렵기도 하고 말이오. 일단 그 놈과 가까워지게 되면 내 목숨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닐 것이오. 둘이 가까이 지내게 된다면 내가 그를 믿고 그가 나를 믿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으나, 실은 그 점이 몹시 불안하오. 반대로 만약 내가 그 놈의 제의를 거절한다면 이미 말했듯이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오. 당신을 믿고 당신의 지혜를 알고 있으니, 지금 내가 행해야 할 바를 알려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도 위험한 일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으시려면 튀니지에서 헨리 왕자를 모시던 두 기사에게 있었던 일을 아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튀니지에서 헨리 왕자를 모시던 기사가 두 명 있었지요. 그들은 매우 친해서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두 기사는 각자 말을 한 마리씩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마리 말은 주인들과는 반대로 서로를 미워했다는군요. 두 기사는 따로 살 만큼 재산이 넉넉하지 못했지만 서로 증오하는 애마들 때문에 같은 집에 살수가 없었지요. 이렇듯 불편한 생활을 하던 중 두 기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궁에서 사자를 기르고 있던 튀니지 왕에게 그 말들을 줘버릴 것을 헨리 왕자에게 부탁하였습니다. 헨리 왕자는 사정의 내막을 이해하고 튀니지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요. 이 왕은 즉시 말들을 사들여 사자를 가두어놓은 우리에 함께 넣어버리도록 하였습니다. 한 우리에서 만나게 된 말들은 끔찍할 정도로 서로 물고 뜯으며 싸움을 벌였지요. 그때 한쪽에 갇혀 있던 사자를 풀어놓았습니다. 사자를 보자 두 말은 사시나무마냥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서게 되었지요. 한동안 아주 가깝게 있던 말들은 같이 사자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는 물어뜯고 걷어차고 하며 사자를 몰아붙였습니다. 사자는 종전에 갇혀 있던 우리로 쫓겨났고 말들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지요. 그 후부터 이 두 동물은 절친한 사이가 되어 같은 구유에서 먹고, 같은 마구간에서 잤다고 합니다. 둘이 가까워진 이유는 사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루까노르 백작님게서 그 원수가 두려워하는 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백작님을 필요로 하고 지난 날의 나쁜 기억을 다 잊으려 한다고 믿으시면, 그 두 마리 말들이 가까워져 불신을 없애고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백작님도 옛 원수에 대한 신뢰를 가져보십시오. 그가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신의를 지킨다면 그를 믿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타인에게 화를 입지 않도록 서로 돕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사람은 때로 그 사람이 밉더라도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타인이 우리에게 저지를지 모르는 악행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보아 위험이 지난 후에 당신을 해칠 수 있으며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예측 할 수 있으면 그를 돕는 것은 우매한 일이므로 가능한 한 빨리 그를 멀리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위험에 처한 자가 자신을 구해주는 사람에 대한 나쁜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기회가 닿을 때마다 복수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지요." * 낯선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되, 측근들의 악행에도 방심하지 말라.@ff 열여덟번째 이야기 조롱받은 선한 일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방에서 빠뜨로니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그대가 알고 있듯이 나는 뛰어난 사냥꾼이라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사냥을 하곤 했소. 이를테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올가미나 그물 같은 것을 사용했단 말이오. 그런데 지금은 나에 대해서 험담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그것을 두고 나를 조롱하고 있소.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시드나 페르난 곤잘레스 백작, 성인들 혹은 페르난도 왕을 칭찬할 때에 나에 대해서도 칭찬하는 것을 들을 수 있지만 그물이나 올가미 등을 사용하는 나의 사냥법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되면 어느새 조롱하는 투가 된다오. 그들이 하는 칭찬은 존경이라기보다 모욕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조롱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는지 조언을 해주시오." 그러자 빠뜨로니오는 꼬르도바의 아랍 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꼬르도바에 알하켄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가 통치하면서 나라가 평화로워지자 그는 이에 만족할 뿐 다른 왕들이 흔히 강조하는 명예나 명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왕들에게는 나라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업적을 쌓아서 통치를 강화시키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하켄 왕은 자신의 통치 이외의 업적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단지 먹고 마시며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뜰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악기는 모로인들이 즐겨 부는 피리였는데 왕은 그 피리소리가 원래의 소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 악기를 가져다가 악기 아랫부분에 구멍을 내었고, 그러자 피리소리는 전보다 한결 좋아졌습니다. 왕은 유익한 일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왕으로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왕을 존경하는 척하며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칭찬하는 말로서, ‘알하켄 왕의 추가물이구나’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말이 온 나라에 퍼져 왕의 귀에까지 이르자 왕은 신하들에게 사람들이 그 말을 왜 그리 즐겨 사용하는지 물었습니다. 신하들은 애써 숨기려 했지만 왕이 자꾸 묻는 바람에 대답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듣고 난 왕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자꾸 사용하는 사람들을 벌하기보다 왕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왕은 짓고 있던 꼬르도바의 회교 사원을 완공 시켰습니다. 이 사원은 현재까지 모로인들이 스페인에서 지은 사원 중 가장 크고 훌륭한 사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산타 마리아 교회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답니다. 그 전까지는 조롱하며 거짓으로 왕을 찬양하던 사람들이 왕이 회교 사원을 지은 이후로는 진심으로 그를 받들고 찬양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작님, 사람들이 사냥을 위해 발명한 그물과 올가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조롱한다면, 이번에는 위대하고 품위있는 업적을 쌓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당신의 업적에 대해 감탄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 선하되 위대하지는 못한 일을 했다면, 더 정진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라.@ff 옮긴이의 말 산문의 대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던 돈 후안 마누엘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 후세에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역시 이 책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이다. 이 작품이 오랜 세월 동안 스페인 민중들의 고전으로 자리잡아온 가장 큰 이유는 시대를 초월한 삶의 지혜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작품은 기독교 세계, 아랍 세계, 동양 세계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에 뿌리를 둔 예화들을 통해서 지리적, 종교적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이 지닌 또다른 중요성은 문학사적 가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창적이고 대중적인 문체를 모색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라틴어로 써야만 저서의 권위가 인정되던 시기였으나 저자는 라틴어를 습득하지 못한 대중들을 위해서 스페인어를 사용해 명확하고 간결한 문체를 구사함으로써, 귀족이었던 자신의 신분을 극복함과 동시에 당시 속어에 불과했던 스페인어를 좀더 세련된 언어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그 후에 나온 많은 작품들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스페인 황금 세게 극작가인 깔데론 데 라바르까(Calderon de la Barca)의 '인생은 꿈 La vida es sueno', 세르반테스의 '기적의 재단 El retablo de las maravillas',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리'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이 작품의 예화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대학원 수업 시간에 강독한 작품으로 수업에 참가한 사람들이 우리 독자들에게 스페인의 고전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해서 일반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예화들을 공동번역하고 새롭게 편집하였다. 이 기회를 빌어 어려운 출판 여건 속에서도 스페인 중남미 문학을 소개하는 데 많은 관심과 노력을 보여주시는 도서출판 자작나무의 최청수 사장님과 여러 직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1997년 4월 김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