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유로부터의 도피 지은이: 에리히 프롬 출판사: 홍신문화사 봉사자: 조혜경 머리말 이 책은 근대인의 성격구조, 또 심리적 여러 요인과 사회적 여러요인과의 사이의 교호작용이라는 문제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의 일부분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이러한 연구에 종사해 오고 있으나, 이 연구가 완성되기에는 아직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정치적인 발전이 가장 위대한 근대문화의 업적-개성과 인격 의 독자성-에 대하여 위험천만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광범위한 연구를 중단하고, 단지 오늘날의 문화 및 사회적 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일면, 즉 '근 대인에 대한 자유의 의미'라는 것에만 연구를 집중시키려고 결심했다. 만일 내가 현 대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인간의 성격구조에 관한 완전한 연구를 독자에게 명확하 게 제시할 수 있다면 내가 여기서 논하려고 하는 과제는 훨씬 수월하게 전달할 수 있 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의 의미는 근대인의 성격구조를 전반에 걸쳐서 분석해 봄으 로써 비로소 충분히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개념과 결론을 보다 더 넓은 범위에 걸쳐서 충분히 추고하여 인용하고자 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다른 중요한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해서도 단지 개관정도에 그치거나 전혀 언급할 수 없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심리학자는 비록 완전성에 대한 절 실한 요구를 희생시키더라도, 현대의 위기를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될 여러 방도를 지 체없이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대의 상황에 대하여 심리학적 고찰이 얼마 나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느냐를 지적하는 일은, 나의 의견으로는 결코 심리학을 과 대평가하는 일이 아니다. 사회과정의 기본적 시체는 개인이며, 또한 그의 욕구와 공 포, 그의 열정과 이성, 그의 선과 악을 보는 성벽따위이다. 사화과정의 역학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마치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형성하는 문화의 맥 락 속에 서 개인을 보아야 하듯이, 개인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심리학적인 과정의 역학을 이 해해야 한다. 이 책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즉, 근대인은 개인에게 안정감을 부여해 주는 동시에 또한 그를 제약하고 있던 전개인적 사회의 여러 가지 구속으로부터는 해 방되었지만 그의 개인적 자아의 실현, 즉 개인의 지적,정서적 및 감각적인 여러능력 의 표현이라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과 합리성을 부여해 주었지만, 또한 근대인을 고립시킴으로써 마침내 그를 불안에 싸인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고립은 참을수 없는 것이므로, 근대인은 자유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도피하여 새로운 의존과 복종을 찾아가느냐 그 렇지 않으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성에 기인된 적극적인 자유의 충분한 실현을 위하여 전진해 가느냐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이 책은 하나의 예측이 라기보다 오히려 진단-해결보다는 오히려 분석-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 행위의 진로 에 대하여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여 준다. 왜냐하면, 어찌하여 자유를 내버리고 전체 주의 쪽으로 도피하려는가 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 적인 것을 타도 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출간을 기뻐하기 전에 나를 채찍질하여 나 자신의 생각에 건설적인 비판을 준 모든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여러 학생들에게 감사를 드리고자 한다. 또한 나는 이 책을 완성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공헌해 주신 분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자 한다. 첫째로 나는 엘리자베드 브라운 양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녀의 탁월한 시사와 비판은 이 책을 구성하는데 귀중 한 도움이 되었다. 그밖에 원고의 편집을 도와주신 T. 우드하우스 씨와 이 책에서 취 급된 철학적인 문제에 조력하여 주신 A.자이데만 박사에게 감사를 드리고자 한다. 제 1장 자유-일종의 심리학적 문제인가 근대 유럽과 미국의 역사는 사람들을 구속해 온 정치적, 경제적 및 정신적인 질곡으 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하는 노력에 집중되고 있다. 자유를 위한 싸움은 압박 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지켜야 할 여러특권을 가지고 있 던 자들에게 항거하여 새로운 자유를 얻으려고 했다. 어떤 한 계급이 지배체제로부터 벗어나 그 자신의 자유를 얻고자 싸우고 있었을 때, 그들은 인간의 자유 그 자체를 위 하여 싸우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압박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 의 마음속에 뿌리박고 있는 자유를 찾으려는 이상과 동경에 호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오랫동안 계속된 싸움의 어떤 단계에서는 압박에 항거하여 싸워 온 계급도 일단 승리하여 새로운 특권을 수호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되면, 도리어 자유 를 해치려는 적을 편들었던 것이다. 여러 차례의 엎치락뒤치락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위한 싸움은 승리를 거듭해 왔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압박에 항거하는 싸움에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자유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이 싸움에서 죽어갔다. 그와 같은 죽음은 그들의 개성을 최고도로 긍정하는 일이었다. 역 사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배하며, 스스로 결단하며, 스스로 좋다고 보는 대 로 생각하며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점차 실증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인간이 가지 고 있는 여러 가능성을 충분히 나타내게 하는 일이 곧 사회적인 발전이 급속도로 접근 해 가는 목표인 것처럼 보였다. 경제적 자유주의, 정치적 민주주의, 종교적 자율 및 각자의 생활에 있어서의 개인주의 등에 관한 여러 원리는 자유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표현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인류는 그 실현에 더욱 접근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들을 얽매고 있던 쇠사슬은 하나씩 끊어져 갔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로부터 탈피하 여 마침내 자기 자신의 지배자가 되었다. 즉, 인간은 교회의 지배와 더불어 절대주의 국가의 지배를 벗어났다. '외적인 지배를 폐지시키는 일'은 '각 개인의 자유'라는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충분한 조건인 것같이 보였다. 수많 은 사람들이 제 1차 세계대전은 최후의 싸움이며, 이 싸움의 결말은 자유를 위한 궁 극적인 승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낡은 군주정치를 대신하 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 해가 경과하는 동안에 사람들이 여러 세기에 걸친 싸움에 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믿고 있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부정해 버리는 새로운 조직이 나 타나게 되었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및 개인적 생활을 지배하게 된 이와 같은 새로운 조직의 본질은,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 스스로 지배할 수 없는 어떤 권위에 예속시키는 일이었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조직이 승 리를 거두게 된 것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품고 있는 광기때문이며, 따라서 그들이 품 고 있는 광기는 곧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안심하고 있었다. 또 어떤 이들 은 이탈리아나 독일 사람들은 민주정치의 훈련기간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 에 그들이 정치적으로 성숙된 서구 민주주의의 수준에까지 도달하는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족하다는 일방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일반적인 환상-아마 이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일 게다-은 이런 것이었다. 즉, 히틀러와 같은 사람들은 오직 권모술수를 통해서 거대한 국가의 기구를 지배하는 권력을 획득한 것이었으며,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단순히 힘만 가지고 지배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밀고와 위 협으로 말미암아 아무런 의욕도 갖지 않게 된 데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몇 년 이 지나 비로소 이와 같은 논의는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마침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즉, 독일에 거 주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자유를 위하여 싸운것과 마찬가지의 열성 으로 자유를 포기해 버렸다는 사실, 자유를 찾는 대신에 그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길 을 찾았다는 사실, 그밖의 수백만에 달하는 자유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들은 자유를 목숨을 걸고 수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는 믿지 않았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또한 민주주의의 위기가 특별히 이탈리아와 독일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는 모든 근대국가가 한결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자유 를 해치려는 적들이 어떠한 상징을 내세우건 그것은 그리 크게 문제될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반파시즘의 이름으로 공격을 당하건 또는 노골적으로 파시즘의 이름 으로 공격을 당하건 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존듀이에 의해서 너무나 잘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말을 여기에 인용 하고자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즉, '우리의 민주주의가 지금 중대한 위협 을 받게 된 것은 외국에 전체주의적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외적인 권위와 규율과 통일 및 여러 외국의 지도자에의 의존 등, 승리를 거두게 된 여러 가지 조건 이 바로 우리들 자신의 태도 속에도, 또한 우리들 자신의 여러 가지 제도 속에도 존 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싸움터는 바로 여기에, 즉 우리 자신과 우리의 제도 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만일 우리가 파시즘과 싸우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희망적인 견해는 우리들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낙관적인 공식을 기계적으로 외는 일은 마치 기우제를 올릴 때 추는 인디언의 춤처럼 흔히 빗나가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이 판명될 것이다. 따라서 파시즘을 발생시킨 경 제적 및 사회적인 여러조건의 문제 이외에 마땅히 이해되어야 할 하나의 인간적인 문 제가 있다. 근대인의 성격구조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동적인 여러 요소를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이는 여러 파시즘 국가에서 근대인으로 하여금 자유를 포기 하게 하였으며, 또한 오늘날 우리 나라의 수백만의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요 소이다. 우리가 인간의 자유라는 측면과 복종에 대한 동경 및 권력에의 갈망이라는 것 에 주목하게 될 때 다음과 같은 뚜렷한 의문이 발생하게 된다. 즉 인간의 경험으로서 의 자유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자유를 찾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고 있 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그 속에서 생활하는 문화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동 일한 경험일까.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회에 있어서 개인주의의 발달 정도에 따라서 달 라지는 것일까. 자유란 단지 외적인 압박이 없는 상태일까. 또는 무엇이 '존재하는것' 일까-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를 위하여 싸우게 하 는 사회적 및 경제적인 요인은 대체 무엇일까. 그런데 자유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도저 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담이 되어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생각이 일어나는 일이 관연 있을 수 있을까.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유의 관념이 소중히 여기는 목표가 되는 데 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그것이 일종의 위협으로 느 껴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내적인 욕 망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복종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만 일 그렇지 않다고 하면 오늘날 지도자에 대한 복종이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 키는 일을 과연 어떻게 해야 될까. 복종이란 언제나 사람의 눈에 띄는 권위에의 복종 일까, 아니면 의무와 양심과 같은 내면화된 권위라든가 인간내부에 깃들인 강제력이라 든가 또는 여론과 같은 익명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면 복종하는 데는 마음속에 숨겨진 만족감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일 까. 사람들 마음속에 만족할 줄 모르는 권력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는 요소는 또한 무 엇일까. 그것은 인간이 가진 생명의 에너지일까.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자발적인 친 밀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근본적인 약점일까. 대체 어떠한 심리적인 조건이 이와 같은 경향을 강화하는 것일까. 또 이러한 심리적인 조건은 대체 어떠한 사회적인 조건에 기인하는 것일까. 인간의 자유와 권위주의의 측면을 분석해 볼 때 우 리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일반적인 문제, 즉 사회과정 속에서 심리적인 요소가 얼마 나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마침내 사회과정에 있어서의 심리적, 경제적 및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들의 교호작용이 라는 문제를 초래한다. 파시즘이 과연 어떻게 해서 위대한 여러 나라의 국민을 매혹 시켰는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부득이 심리적인 요소의 역할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지금 여기에서 취급하고 있는 하나의 정치제도는 본질적으로는 인 간 속에 깃들여진 이기심이라는 합리적인 힘에 호소하지 않고 도리어 우리가 실재하 지 않는 것으로 믿어 왔거나, 또는 이미 오래전에 소멸해 버렸다고 믿어왔던 악마적인 힘을 분기시켜서 이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세기 에 거쳐서 일반에게 알려진 인간상은, 이기심과 또한 그 이기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능 력에 의해서 자기의 행동을 결정할수 있는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이었다. 권력의 추구 와 적개심을 인간행동의 원동력으로 생각한 홉스와 같은 사람마저도 이와 같은 힘의 존재를 이기심의 논리적인 결과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즉,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여 한 결같은 행복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만족 을 줄수 있을정도의 부는 없다. 따라서 인간은 서로 싸울 수밖에 없으며, 또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안전하게 향유하려고 권력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홉스가 그린 인 간상은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 중산계급이 종전의 정치적 또는 종교적 지 배자들의 권력을 점점 분쇄해 가는데 성공함에 따라, 또한 사람들이 자연을 정복하는 데 성공해 감에 따라, 그리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해 감에 따라 사람 들은 더욱 이 세계와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게 되었다. 인간이 지닌 침울한 악마적인 힘은 중세기, 또는 그 이전의 시대로 추방되었다. 그리하여 그러한 악마적인 힘은 지식의 결여에서 생겼다든가, 여러 왕이나 승려들의 교활한 음모로부터 생겼다고 설명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시대를 마치 오랫동안 분화하지 않은 사화산을 보는 것처럼 뒤돌아보고만 있었다. 사람들은 근대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인해서 마침 내 이 모든 흉악한 세력은 완전히 불식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즉, 이세계는 불빛 이 환히 비춰진 시가지와 같이 밝고 안전한 것으로 보였다. 전쟁도 지나간 시대의 최 후의 유물이며, 이제는 단 한번의 전쟁을 거침으로써 마침내 전쟁이란 영영 이 세상에 서 종말을 고하게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또한 경제적 위기라 할지라도, 물론 주기적으 로 찾아들기는 했지만, 이것도 역시 우연적인 사건으로 생각했다. 파시즘이 대두하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갖추고 있지 못 했다. 준비를 갖추기는커녕 도대체 인간이 이와 같은 악으로 떨어지려는 성질과 권력 에의 갈망, 또는 이와 같이 약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강자에게 복종하고자 하는 열망 을 가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오직 소수의 인간들만이 이윽고 폭발될 화산의 울림을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니체는 19세기의 자기만족적인 낙관주의를 경고했으며 마르크스도 또한 다른 방법으로 경고했다. 그리고 또 다른 경고가 이것보 다 약간 뒤늦게, 프로이트부터 나오게 되었다. 확실히 프로이트와 그의 많은 제자들은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대단히 소박한 관념밖에 가지지 못했으며, 따라서 사회문제에 대 한 그의 심리학의 적용은 대체로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인간의 감정 적 및 정신적인 불안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우리들을 화산의 절정으로 이끌고 올라 가 마침내 끓어오르는 분화구를 들여다 보게 했다. 프로이트는 인간행동의 여러 가지 측면을 결정하는 비합리적이며 무의식적인 힘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이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더 앞서 있었다. 현대심리학에 있어서 프로이 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단순한 근대합리주의에 의해서 무시되어 온 인간성의 비합리적 및 무의식적인 측면을 밝혀 놓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러한 비합리적인 현상도 일정 한 법칙을 따르는 것이며, 따라서 이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 다. 프로이트는 또한 인간행위에 있어서의 비합리성과 더불어 꿈속의 말과 신체적인 증상도 능히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비합 리성은 인간의 성격구조 전체와 같이 외계로부터의 -특히 어린시절에 받은 영향의-반 작용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 시대의 정신문화에 너무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 한계선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한계가 병적 인 인간을 이해하는 경우의 한계가 되었다. 즉, 이와 같은 한계는 정상적인 인간을 이 해하는 데나 또는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비합리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방해가 되 었던 것이다. 이 책은 사회과정의 전반에 걸쳐서 심리적인 여러 요소의 역할을 강조 하고 있으며, 이러한 분석은 프로이트의 기본적인 몇가지 발견 -특히 인간의 성격 속 에서 작용되는 무의식적인 힘의 움직임과 그것이 외부의 영향에 의존하고 있다는 데 관한 발견에 입각해 있으므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방법의 일반적인 원리는 대체 어 떠한 것인가, 또는 이것이 고전적인 프로이트의 개념과는 과연 어떠한 점에서 차이가 있는가를 먼저 설명하는 편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우리라고 생각한다. 프로이트는 인 간성을 악으로 보는 전통적인 교의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나누는 전통적인 이분법을 받아들였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반사 회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사회는 인간을 교화시켜야 하며 또한 생물학적인-그래서 좀 처럼 근절할 수 없는-충동에 대하여 어떤 직접적인 만족을 주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사회는 인간의 근본적인 여러 충동을 순화시켜 이를 교묘하게 억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에 의해서 자연적인 여러 충동이 억압되는 결과, 놀랄 만한 일이 일어 나게 된다. 억압된 충동은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노력으로 변하며, 그럼으로써 이는 문화의 인간적인 기반이 된다. 프로이트는 이와 같은 억압으로부터 문화적인 행동에의 기이한 전환을 승화라고 불렀다. 만일 억압의 도수가 승화의 한계이상에 달하게 되면 개인은 신경질적이 되며, 따라서 그러한 억압을 감소시킬 필요가 생기게 된다. 그러 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여러 충동의 만족과 문화와는 역비례하는 법이다. 즉, 억압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만큼 많은 문화가 생긴다.(그리고 그만큼 신경증적인 여러 장애가 생길 위험성도 더욱 늘어간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하면 개인과 사회 와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정적인 것이다. 즉, 개인이란 사실상 동일한 존재이므로, 사 회가 각 개인의 자연적인 충동에 대하여 보다 더 많은 압력을 가하든가(이런 경우에는 승화의 도는 높아진다)또는 보다 더 많은 만족을 느끼게 하는 한에 있어서만(이런 경 우에는 문화가 희생된다)변화하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초기의 여러 심리학자들이 시 인해 온 소위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과 마찬가지로 인간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도 본질적으로는 근대인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충동에 관한 하나의 고찰이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이란 어떠한 문화 속에서 살건간에 '인간'임에 틀림이 없고, 따라서 근대인 특유의 격정과 불안감도 인간의 생물학적인 구조에 기인된 불멸의 힘으로 보 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점에 관하여 수많은 예증을 제시할 수가 있다(이를테면, 오 늘날 근대인에게서 많이 볼수 있는 적개심의 사회적 근거라든가 에디푸스 콤플렉스라 든가 또는 여자에게 있어서의 소위 거세콤플렉스와 같은). 그러나 나는 특히 중요한 예증의 하나만을 제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관한 모든 개념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언제나 개인이란 존재를 타 인과의 관계에서 고찰한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생각하고 있는 대인관계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는 개인이 그 타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특유의 경제적인 관계와 유사 하다. 각자는 스스로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일하는 것 이며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로빈슨 크루소는 아 니다. 즉, 각자는 다른 사람들을 고객으로서, 고용인으로서, 또는 고용주로서 필요로 한다. 그는 사고 팔며 주고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다. 그것이 상품이건 노동이건 간에 시장이 이러한 관계를 조절한다. 이리하여 본래는 고독하고 자기만족적인 존재인 개인은 하나의 목적, 즉 사고팔고 하는 목적의 수단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경제적 관계 를 맺게 된다. 인간의 관계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는 본질적으로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즉, 각 개인은 생물학적으로 여러 가지 충동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충동은 만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가지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개인 은 다른 사람이 가진 '물건'과의 관계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리하여 다른 사람들은 언 제나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며, 혼자일때의 개인 속에 스스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효력을 충족시키기 위한 존재이다. 프로이트가 의미하는 인간관계의 세계는 시장과 유사하다. 즉,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구의 만족을 서로 교환하려는 것인데, 여기에 있어서의 타인에 대한 관계는 언제나 하나의 목적에 대한 수단이며 결코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다. 이 책에서는 프로이트의 견해와는 반대로 다 음과 같은 가정 아래에서 문제를 분석해 보려고 한다. 즉,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 제는 각 개인의 이 세계와의 특수한 관련성에 관한 문제이지 결코 여러 가지 본능적 인 욕구 그 자체의 만족이라든가 좌절과 같은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며, 나아가 개 인과 사회와의 관계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 계는 한쪽에 자연적인 충동을 가지는 개인이 존재하며, 다른 한쪽에는 그 개인과는 별개의 사회가 존재하여 그것이 개인의 내재적인 성벽을 만족시키든가 혹은 좌절시 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욕망, 이 를테면 배고픔이라든가 목마름이라든가 또는 성욕과 같은 욕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성격에 있어서 '개인차'를 형성하는 사랑과 미움, 권력에 대한 갈망과 복종에 대한 동경, 그리고 감각적인 즐거움의 향유와 그에 대한 공포...와 같은 여러 충동은 모두 사회과정의 산물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면은 가장 보 기 흉한 면과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않는 생물학적인 인간성의 일부분이 아니라 바로 인간을 형성하는 사회과정의 산물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는 단지 억압적인 하나의 기 능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하기야 그러한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또한 하나의 창 조적인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성질과 그의 정열 및 불안 등은 모두 하나의 문화 적인 산물이다. 사실상 인간 그 자체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창조이며 또한 그 완성체인데, 우리는 바로 그러한 노력의 기록을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상 이와 같은 인간창조의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 바로 사 회심리학의 과제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떤 역사적인 시대와 다른 시대와의 사이에 인간의 성격이 명백한 차이를 보이는 걸까. 어찌하여 르네상스의 정신은 중세기의 정 신과 판이한 것일까. 또한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인간의 성격구조는 어찌하여 19세기 에 있어서의 인간의 성격구조와 판이한 것일까. 사회심리학은 그것이 좋건 나쁘건간 에 새로운 능력과 정열이 어찌하여 생기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르네 상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의 마음은 불꽃과 같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명예 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오늘날에 와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이러한 노력이 중세사회의 인간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 이다. 근세 이후의 사람들은 그들이 종전에 가져보지 못했던 자연미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켰다. 또한 북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16세기 이래로 그 이전의 시기에 살고 있 던 자유로운 인간에게는 볼 수 없었던 노동을 해야겠다는 강렬한 요구가 발달하게 되 었다. 그러나 인간만 역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도 인간에 의해서 만들 어진다. 일견 모순같이 보이는 이러한 사실을 해결하는 일이 사회심리학의 분야이다. 그런데 사회 심리학의 과제는 여러 가지 정열과 욕구와 불안 등이 하나의 사회과정의 '결과'로서 과연 어떻게 변화하여 발전해 가느냐를 보여주는 일뿐만 아니라, 그와 같 이 특수한 형태로 된 인간의 에너지가 과연 어떻게 하여 '생산적인 힘이 되어 사회과 정을 조성해 가느냐'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명예와 성공과 노동에 대한 정열을 그것이 없었다면 근대자본주의가 발달해 갈 수 없었던 힘들이다. 만일 이러한 힘과, 그 밖의 수많은 힘이 없었더라면 근대적인 상공업조직이 사회적 및 경제적인 요구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원동력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이 책이 가 지는 관점은 프로이트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역 사를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제약되지 않은 심리적인 힘의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우리 는 그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바다. 또한 사회과정에 있어서 여러 동적인 요소 중의 하나인 인간적인 요인의 역할을 무시하는 이론에도 단연코 반대한다. 이러한 비판은 단지 사회학으로부터 심리적인 여러 문제를 명백히 배제하고자 하는 사회학적인 이론- 이를테면, 뒤르켕과 그의 학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다소간 행동주의적인 심리학의 색채를 띤 이론에 대해서도 가해진다. 이러한 모든 이론이 의거하고 있는 전제조건은, 인간성에는 그 자체의 동적인 운동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심리적인 변화들은 새 로운 문화양식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습관'의 발달이라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이론은 심리적 요소를 말하고는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러한 요소를 문화양식이라는 그늘 속에 쓸어넣고 만다. 이리하여 오직 동적인 심리학-물 론 그 기반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이룩된 것이지만-만이 단지 말뿐만이 아리나 인간적 인 요인에 봉사할 수가 있다. 하기야 고정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인간성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든가, 그 자 체의 동적인 심리적 운동을 발전시킴이 없이 어떠한 외적인 조건에 적응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인간성이란 역사적 진화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어떤 종류 의 고유한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심리학의 과제이 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을 얼마만큼 말하였고, 또한 적응이라는 관념을 논의 하는 데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같은 논의는 심리적 메 카니즘이나 법칙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면 우선 '정적인' 적응과 '동 적인'적응을 구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적인 적응이란 전체의 성 격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고 오직 새 로운 습관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행동양식에의 적응을 말한다. 이러한 종류의 적 응은, 예컨대 중국식 식사방법으로부터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서양식 식사방법으 로 바꾸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인은 이내 이러한 새로운 식사 방법에 적응해 갈 것이다. 그러나 적응자체는 그의 인격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즉, 그러한 새로운 양식에의 적응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이는 새로운 충동이 라든가 또는 성격적 특징을 초래하지 않는다. 동적인 적응이란, 예를 들면 어떤 아 이가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착한 아 이'가 되는 경우다. 물론 그 아이는 환경의 필요에 스스로를 적응시켜 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 아이는 아버지에 대해 강렬한 적개심을 가지게 될지 모르지만 그는 그것을 억제한다. 왜냐하면, 적개심 을 표시한다든가, 그것을 의식하는 일조차 대단히 위험한 일 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억압된 적개심은 비록 표면화되지는 않 는다 할지라도, 그의 성격구조에 있어 하나의 동적인 요소가 된다. 이것은 새로운 불 안을 낳고 더 나아가서는 보다 더 뿌리 깊은 복종으로 인도한다. 이런 경우에는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생일반에 대하여 막연한 반항심을 형성할 것 이다. 여기에서도 앞서의 중국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인은 어떤 외적인 환경에 그 스스로를 적응시켜 가기는 하지만 이런 종류의 적응의 경우에는 그 개인속에 어떤 새 로운 것, 즉 새로운 충동과 새로운 불안이 일어난다. 모든 신경증이란 이와 같은 동적 인 적응의 예다. 신경증이란 본질적으로는 비합리적인 외적 조건에 대한, 즉 일반적 으로 말하면 어린아이의 성장 발달에 좋지 않은 외적 조건(특히 유년기의)에 대한 적 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경증적현상에 비교할 수 있는 사회 심리학적 현상(왜 이것 을 신경증이라고 부르지 않는가는 뒤에 설명하겠다), 즉 사회집단에 있어서 파괴적 또는 사디슴적인 충동과 같은 것도 역시 비합리적이며 인간의 발달에 대하여 유해한 사회적 여러 가지 조건에 대한 동적인 적응의 예이다. 어떠한 '종류'의 적응이 일어나 느냐 하는 문제 이외에도 해답을 필요로 하는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즉, 우리 가 상정할 수 있는 어떠한 생활조건에 대하여 인간을 적응시켜 가는 힘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인간의 적응의 한계선은 과연 어디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 답할 때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일은 인간성 속에는 다른 어떠한 부분보다도 훨씬 융통성이 있고 적응해 가기 쉬운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에 따라서 차이 가 있는 이 노력과 습성은 대단히 많은 탄력성과 순응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즉, 사 랑, 파괴성, 사디슴, 복종하고자 하는 경향, 권력에의 갈망, 자기확장의 욕구, 절약에 의 열의, 관능적 쾌락의 향유 및 그것에 대한 공포 등이다. 인간 속에서 찾아볼 수 있 는 이와 같은 수많은 노력과 공포는 어떤 생활조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발달한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일단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격의 일부분이 될 때에는 그렇게 쉽사리 소멸하든가 또는 어떤 다른 충동으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특별히 융통 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들이-특히 유년기에-그들이 놓여 있는 모든 생활양식에 따라서 여러 가지 욕구를 발달시켜 간다는 의미에서는 그것은 융통성이 있 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욕구는 어느 것을 막론하고 고정된 것은 없다. 즉, 그것은 어 떠한 환경속에서도 발달하고 만족되어야 한다는 그런 인간성의 내적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욕구들과는 반대로, 인간성에 대하여 필수불가결의 부분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나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다른 욕구가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배고픔과 목마름과 수 면욕과 같은 인간의 생리적 조직에 뿌리를 둔 욕구이다. 그런데 이러한 욕구에는 각각 일정한 한계선이 있는데 만일 불만의 상태가 이 선을 넘을 때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 게 되며, 그러한 때에는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경향은 대단히 강력한 충동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생리적으로 조건 지어진 여러 욕구는 모두 자기보존이라는 관념으로 요약할 수 가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자기보존의 욕구는 어떠한 상태하에서도 만족을 얻으려는 인간성의 한 부분이며, 이는 인간행동의 제 1차적인 동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을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란 우선 먹고, 마시고, 잠자고, 여러 적에 대하 여 자기 자신을 수호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노동을 하여 무엇을 생산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이란 결코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것은 아니다. 노동이란 언제나 구체적인 노동이다. 즉, 이는 어떤 특정한 경제조직하에 있어서의 특정한 노동을 말한다. 인간 은 봉건제도 아래에서 하나의 노예로서, 인디언부락의 농부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립된 상인으로서, 근대적 규모를 가진 백화점의 여자 판촉원으로서, 또는 큰 공장 에 설비된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노동자로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노 동의 성격에 따라서 전혀 판이한 인격의 특성이 요구되며 또한 타인과의 관계도 각 각 달라진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그 무대는 만들어져 있다. 사람은 우선 먹고 마시지 않으면 안 되며 따라서 그것을 위하여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그가 태어난 특수한 조건 밑에서 그 사회에 의해 그에게 결정된 방식에 따라 일해야 함을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욕구와 사회조직이라는 두 가지 요소는 원칙적으 로 하나의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의해서는 도저히 변경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보 다 더 큰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다른 여러 가지 경향의 발달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조직의 특수성에 의해서 정해지는 생활 양식이 개인의 셩격구조 전 체를 결정하는 제 1차적인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그는 어디까지나 자기보존을 해 야겠다는 강렬한 욕구로 말 미암아 어쩔 수 없이 부여된 생활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 다고는 하지만, 이 사실은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어떤 경제적 및 정치적인 변혁을 시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개인의 인격이란 특 수한 생활양식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를테면, 사람은 모두 어린 아이 때에 이미 가족이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어떤 특수한 생활양식에 직면하게 되는 데, 이 가족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회와 계급을 상징하는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 다. 생리적으로 제약된 욕구만이 인간본성의 절대적인 부분은 아니다. 그밖에도 그것 과 같은 불가피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신체적인 여러 과정에서가 아니라 바로 인 간의 생활양식과 습관의 본질 그 자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외계와 관계를 맺으 려는 욕구라든가 고독을 피하려는 욕구가 그것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홀로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일은 마치 육체적인 기아가 마침내 죽음을 가져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은 파멸을 가져온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일은 육체적인 접촉을 말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은 몇 년이고 육체적으로는 고립되어 지낼 수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여러 가지 이상이라든가 가치 또는 적어도 '귀속'감을 자아내게 하는 사회 적인 행동양식과 관련성을 가질 수가 있을 것이다. 또 반면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 어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극도의 고독감에 사로잡힐 수 있는데, 만일 그 결과로 고 독감이 일정한 한계선을 넘을 경우에는 정신분열증적인 장애와 같이 광적인 상태가 된다. 이와 같이 여러 가치, 상징, 행동양식과의 관련성을 상실하고 있는 상태를 우 리들은 도덕적 고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덕적인 고독은 육체적인 고독 과 마찬가지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아니, 오히려 육체적 고독감은 도덕적 고독 을 수반할 때만 참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외계와의 정신적인 관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수가 있다. 즉, 신을 믿고 암자에 홀로 틀어박혀 있는 승려라든가 또는 서로 격리되어 있으면서도 동지들과 일체감을 느끼고 있는 정치범은 정신적으로 는 결코 고독하지 않다. 또한 가장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예복을 입고 있는 영국 신 사나, 그의 동료들로부터는 격리되어 있지만 그 국민과 그 상징에 대해서 일체감을 가지고 있는 소시민도 모두 정신적으로는 고독하지 않다. 외계와의 관계에는 물론 고 귀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비록 가장 낮은 수준의 행동양식으로라 도 관계를 맺는 일이 홀로 고독에 사로잡혀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종교와 민족주 의라는 것도 부당하고 비천한 속성을 가진 습관이나 신앙과 마찬가지로-만일 그것이 각 개인을 다른 사람들과 결합시키기만 한다면-사람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즉 고독 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된다. 정신적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강렬한 욕구는 발자크 의 <발명가의 고통>속의 다음과 같은 구절 속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명심하라. 즉, 인간이란 고독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 직도 유순한 그대의 마음속에 굳게 아로새겨라. 모든 고독 중에서도 도덕적인 고독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신과 더불어 살아간 최초의 은자들은 성령들의 세계에 둘러싸여 생활했었다. 문둥병환자이건 죄수이건 악한 사람이건 병자이건간에 사람의 머릿속에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자기의 운명에 대한 공감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다. 그 생명 자체와 같은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인간은 모든 삶의 에너지를 소비 한다. 그런데 사탄은 이와 같은 열망을 갖지 못한 사람을 과연 발견할 수가 있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대 서사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는 <실 락원>의 서사처럼 되었으리라. 왜냐하면, <실락원>이란 반역을 변명하는 데 지나지 않는것이기 때문이다.' 고립에 대한 공포가 인간에게 어찌하여 그렇게도 강력하게 작 용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려고 할 때에는 십중팔구 우리들은 이 책에서 추구해 가는 중 심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일체감을 갖고자 하는 욕 구는 어떤 신비적인 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인상을 독자에게 주지 않기 위하여 필자가 그 해답을 과연 어떠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가를 여기서 제시해 두어야 겠다. 한가 지 중요한 요소는 인간이란 타인과 어떠한 모양으로건 협력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어떤 문화 속에서도, 적어도 인간이 살아남 기를 원하고 있는 한, 인간은 여러 적들이나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 해서나, 일하고 생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 로 빈슨크루소마저도 '프라이데이'라는 하인을 데리고 있었다. 만일 그 하인이 없었던들 그는 아마 정신이상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나 모두 어린아이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하는 법 이다. 가장 중요한 기능에 대해서도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타 인과의 접촉은 모든 아이들에게는 생사의 문제이다. 고독 속에 홀로 방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모든 존재에 대하여 가장 중대한 위협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그 무엇에 '귀속'을 원하는 욕구를 불가피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즉, 주 관적인 자기 의식,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자연 및 다른 사람들과는 판이한 개체로 서 인식하는 사고능력이다. 다음 장에서 지적하겠지만, 그러한 자각의 정도는 여러 가지로 변화해 가는 것인데, 그 자각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바로 인간을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문제에 직면시키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이 자연과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의식함으로써-비록 희미하게나마-죽음과 질병과 노쇠를 의식함 으로써 인간은 우주와 '자기'이외의 모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기의 존재가 얼 마나 무의미하며 왜소한가를 느끼게 된다. 그 무엇에 소속되지 않든가, 그 생활에 아 무런 의미와 방향을 갖지 못할 경우 인간은 자기 자신을 한낱 티끌과 같은 존재로 느 끼고, 마침내는 개인적인 무의미성에 압도되는 지경에 떨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생활에 의미와 방향을 부여해 주는 어떠한 조직과도 아무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어 그의 마음은 의심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마침내 행동하겠다는 힘, 즉 살아가 겠다는 힘마저 마비되고 말 것이다. 다른 문제로 옮겨가기 전에 사회심리학의 여러 문 제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방법에 관하여 지금까지 지적해 온 사실을 요약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간 본성이란 생물학적으로 고정되었거나 타고난 모든 충동의 총화도 아니요 또한 문화적인 모든 형식에 대하여 그 자신을 쉽사리 적응시키는 생명이 없는 그림자도 아니다 인간 본성은 바로 인간 진보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고유한 메카니즘과 여러 법칙을 가지고 있다. 인간 본성 속에는 고정되어 조금도 변화하지 않 는 여러 요소가 있다. 생리학적으로 제약된 모든 충동을 만족시키고자 한다든가, 고 립과 정신적인 고독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들 개인은 일정한 사회에 특 유한 생산 및 분배의 조직에 뿌리박고 있는 삶의 양식을 받아들여야 함을 알았다. 문화에 활발하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개인의 모든 행동과 감각을 자극시키는 수많은 강력한 충동이 발달했다. 물론 개인은 이러한 모든 충동을 의식할 수도 있고 의식하지 못할 경우도 있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나 그 충동은 강력한 것이며, 또한 그것이 발현되면 곧 만족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충동은 이번에는 사회과정을 형성해 가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힘이 된다. 그리고 경제적, 심리적 및 이념적인 여러 요인이 과연 어떤 모양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며, 이러한 상호작용에 관하여 과연 어느 정도로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뒤에 '종교개혁과 파시즘'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논의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언제나 본서의 핵심이 되 는 주요한 테마가 될 것이다. 즉, 타인이나 원초적인 일체성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되면 될수록, 또한 그가 더욱 '개인적으로'되면 될 수록 그는 자발적 인 사랑이나 생산적인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외계와 결합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의 자유와 개인적 자아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인연으로 외계와 결합함으로 써 일종의 안정감을 찾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는 외에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다. 제 2장 개성의 발견과 자유의 다의성 우리가 자유란 근대인에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근대인은 왜, 또는 어떻게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중요한 논제를 고찰해 보기 전에 먼저 하나의 개념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개념은 어느 정도 현실성이 결여된 것같 이 보일지는 모르나 근대사회에 있어서의 자유를 분석, 이해하는 데는 필수불가결의 전제이다. 자유는 인간 존재 그 자체를 특징짓고 있다는 사실과, 자유의 의미는 인간 이 자기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 의식하는 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역사는 인간이 자연계와 일체를 이루고 있는 상태로부터 벗 어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나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분리된 존재로서 자기 자 신을 발견하게 될 때에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각을 오랫동안 대단히 흐 릿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개인은 여전히 자기가 태어난 자연 및 사회적 세계와 밀접 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즉, 부분적으로는 그 자신을 하나의 분리된 존재로서 자각하 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외계의 일부분이라고도 느끼고 있었다. 개인이 그가 가진 최초의 결합으로부터 점차로 벗어나는 과정, 즉 '개성화'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은 종교개혁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사에 있어서 그 절정에 달한 것처 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도 이것과 똑같은 과정을 본다. 어 린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 벌써 어머니와는 한몸이 아니고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하 나의 생물학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물학적 분리는 개인적 인간 존재 의 출발이기는 하지만, 그 어린이는 여전히 기능적으로는 상당한 기간동안 그의 어머 니와 일체를 이룬다. 비유하자면, 개인이 외계와 얽매여진 탯줄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하는 한 그에게는 자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합은 그에게 안정감과 소속감 및 어떤 곳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부여해 준다. 그런데 개성화의 과정 에 의해 개성이 완전히 발견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결연을 나는 '근원적인 결연'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인간 발달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는 의미 에서 유기적이다. 거기에는 개성이 결여되어 있기는 하지만, 개인에게 안정감과 아울 러 나아갈 방향을 부여해 준다. 어린아이를 그의 어머니와, 원시사회의 구성원울 그 씨족과 자연에, 또는 중세의 인간을 교회나 그 사회적 계급에 결연시키는 일들은 모 두 이와 같은 근원적 결연관계이다. 일단 개성화가 완전한 단계에 도달하여 개인이 이 런 근원적 결연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 그는 하나의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즉, 그는 전개인적 존재의 경우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기 자신에게 나아갈 방향을 지시 하고 외계에 발을 내디뎌 안정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유의 의미도 이러 한 단계로 진화되기 이전까지 적용되고 있던 자유와는 판이한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 서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개념을 개인적, 사회적 발전과 연결시켜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 함으로써 이를 명백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태아로부터 급격하게 하나의 완성된 인간 으로 변하여 탯줄이 끊어지면 어린아이는 명백히 어머니의 신체로부터는 독립하게 된 다. 그러나 이 독립은 단지 두 개의 육체가 분리했다는 소박한 의미뿐이다. 기능적인 면에서 볼 때 그 어린아이는 여전히 그 어머니의 일부분이다. 어린아이는 자기 스스로 먹거나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점에서 어머니의 보호를 받는다. 그 아이는 서서 히 어머니와 그밖의 것들을 그 자신과는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의 원인이 되는 것은 어린이의 신경 및 그 육체의 전반적인 발달, 또 육체적인 것이 건 정신적인 것이건 여러 가지 사물을 파악하여 지배하는 능력의 발달이다. 어린아이 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외부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개성화의 과정은 교 육과정을 통하여 더욱 촉진된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많은 욕망의 좌절과 금지를 필연 적으로 초래하는데, 이는 그 어머니의 역할을 어린아이의 욕구와는 서로 상충되는 목 적을 가진 인간, 때로는 적개심을 갖고 있는 위험한 인간의 그것으로 변화시킨다. 이 와 같은 반항심-이것은 결코 교육과정의 전부가 아니라 그 일부분이다-은 '나'와 '너' 와의 사이를 명백하게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어린아이는 생후 수개월이 경 과해야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자기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미소를 띄우면서 대할 수가 있으며, 또한 생후 수년이 경과해야만 비로소 외계와 자기를 혼동하지 않게 된 다. 이때까지 어린아이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주의를 보이는데, 이러한 자기중심주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친절이나 관심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 '다른 사 람들'이 실제로 자기로부터 떨어져 있는 존재로는 경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 유에서 어린아이가 처음의 수년간에 있어서 권위에 의지하는 것은 그후 성장해서 어 떤 권위에 의지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양친은-혹은 권위자라면 누구라 도-아직도 근본적으로 분리된 하나의 존재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어린아이의 세계의 일부분이며 또한 이러한 세계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어 린아이와 부모에 대한 복종과는 성질이 다르다. 열 살 된 아이가 갑자기 자기 개성에 눈뜨는 사정에 대해서는 R. 휴즈의 작품인 <자메이카의 강풍>에 예리하게 서술되어 있 다. '그리고 그때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에밀리의 신변에 일어났다. 그녀는 문득 자 기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사건이 어째서 5년 전에 일어나지 않았는 지, 또는 어째서 5년 후에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 다. 또 그러한 사건이 어찌하여 바로 그날 오후에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도 전혀 알 길 이 없었다. 그녀는 닻을 감아올리는 기계 뒤에 있는 뱃머리 오른쪽 구석에서 소꿉장난 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그 닻을 감아올리는 기계에다 노커로서 악마의 발톱과 같이 생 긴 것을 매달아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소꿉장난도 싫증이 나 선미쪽으로 아무 목적도 없이 꿀벌과 아름다운 여왕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걸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 의 머릿속에 갑자기 자기는 다른 사람 아닌 <자기>라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그녀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시선이 닿는대로 자기의 몸 전체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녀 는 자기의 웃저고리 앞자락과, 시험삼아 올려본 두 손 이외에는 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갑자기 자기의 것으로서 깨닫게 된 작은 몸을 실감하는 데에는 그것으 로 충분했다. 그녀는 자조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그래!>그녀는 이일에 대해 생각했 다. <다른 사람의 일을 상상해 봐. 모두가 이와 같은 걷기도 하고 붙잡혀 있기도 하잖 아! 너는 당분간은 이런 데서 벗어날 수 없어. 그리고 너는 처음에는 어린이인데, 어 른이 되어 늙어빠지게 되어서야 비로소 이와 같은 미치광이 짓을 그만두게 될 거야!> 이처럼 중요하고 좋은 기회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려고 그녀는 돛대 꼭대기 에 있는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로 가기 위해 줄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팔과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그 손발이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새삼스러운 느낌 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물론 여태까지도 손발은 지금같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는 그것이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그 장소에 일단 자리를 잡자, 그녀는 주의깊게 양손의 피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그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웃저고리 자락을 비집어 어깨를 내놓았다. 그리고 그 어깨를 내려다보고 그 아래에도 그녀의 몸이 쭉 달려있는 것을 확인하자 어깨를 뺨에 닿도록 움츠려 보았다. 그녀는 얼굴이 따스한 어깨의 살결과 맞닿을 때 상쾌한 드릴을 맛보았다. 마치 다정한 친구와 포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러한 느낌이 뺨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어깨로부터 오는 것인지, 또한 어느 쪽이 포옹하는 편이며 어느 쪽이 포옹당하는 편인지 하는 것은 아무래도 알 수 없었다. 이제 그녀는 자기가 에밀리 바스돈튼이라는 이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고 그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이제'라는 말을 덧 붙였는지 그녀로서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자기가 다른 사람이었다는 어리석고 윤회적인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근원적인 혈연관계가 점차로 끊어짐에 따라서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는 마음은 더욱 왕성해간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는 일이 과 연 어떠한 운명을 지니게 되느냐 하는 문제는 개성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의 변증법 적인 성질을 이해함으로써 비로소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어린아이가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으로 더욱 강하게 되는 면이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강렬성과 적극성이 증진된다. 그와 동시에 이 영역이 점점 종합 되어 간다. 개인적인 의지와 이성에 의해서 인도되는 하나의 조직화된 구조가 발달한 다. 만일 이와 같이 조직되고 종합된 퍼스낼리티 전체를 자아라 부른다면 '개성화가 진전되는 과정은 자아의 힘의 성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개성화와 자아의 성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도달하는가는, 부분적으로는 개인적인 여러 조건에 의해서 정해진 다. 왜냐하면, 물론 이 점에 대한 각 개인의 차도 크기는 하겠지만, 모든 사회는 보통 사람이 도저히 그 이상 나아갈 수는 없는 어떤 수준의 개성화에 의해서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개성화 과정의 또 다른 측면은 '고독의 증대'이다. 근원적인 여러 가지 결 연관계는 안정감을 가져다 주며 바깥 세계와의 근본적인 통일을 부여해 준다. 어린아 이는 바깥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자기는 고독하다는 것, 즉 자기는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하나의 실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외 계로부터의 분리는 무력감과 불안감을 자아내게 하는데, 그 외계라는 것은 이를 개인 적인 존재와 비교해 본다면 압도적으로 강력하고 위협적인 경우가 많다. 인간이 그러 한 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 분자인한 비록 개인적 행동의 가능성과 의무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외계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개인이 되면 홀로 외 계의 모든 무시무시하고 저항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와 마주서게 된다. 바로 이런 데서부터 자기의 개성을 버리고 완전히 외계 속에 몰입되어 고독감과 무력감을 이겨 내고자 하는 충동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충동과 이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새 로운 여러 가지의 결연은 성장의 과정에서 끊어져 버린 근원적인 결연관계와 같은 것 이 아니다. 마치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난 어린아이가 육체적으로 다시 모태 안으로 되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정신적으로도 개성화의 과정을 역행할 수는 없다 만일 구태 여 그렇게 하려고 하면 그때에는 아무래도 복종의 성격을 띠게 되는데, 이러한 복종에 있어서는 권위와 그에 굴종하는 어린아이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근본적인 모순은 결코 제거되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의식적으로는 자기가 지불하고 있는 대가는 그 자신의 힘과 통일성의 포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리하여 복종의 결과는 종전의 상태와는 정 반대이다. 즉, 복종은 어린아이의 불안감을 증대시켜 주는 동시에 적개심과 반항심을 조성한다. 그런데 이러한 적개심과 반항심은 그 어린아이가 의지해 온-또는 의지하 게 된-바로 그 사람들에게 향하게 되므로 보다 더 위협적인 것이다. 그러나 복종하는 것이 고독과 불안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또 한가지 생산적이며 풀 수 없는 모순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즉, '인간과 자연의 자발적인 관계'인데, 그것은 개성을 배제하지 않고 개인을 외계와 결합시키는 관계이다. 이런 종류의 관계-그 가장 뚜렷한 표현은 애정과 생산적인 일이다-는 전인격의 통일성과 강력성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자아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장해 가느냐 하는데 따라서 좌우된다. 개성화가 진전되어 감에 따라 두 가지 가능한 결과로서 복종과 자발적 행동이라는 것 이 생기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상세하게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반적인 원리, 즉 개성화가 진전되어 개인의 자유가 점점 더 증대해 가는 결과로서 생기는 변증법적인 과정만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어린 아이는 그를 제한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결연관계에는 방해되지 않고 개인적 자아를 더욱 자유롭게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그를 제한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결연 관계에는 방해되지 않고 개인적 자아를 더욱 자유롭게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아 이는 또한 그에게 안정과 안심을 부여해 주던 세계로부터 보다 다 자유롭게 된다. 개 성화의 과정은 개인의 퍼스낼리티가 더욱 힘을 얻어 완성되어가는 과정인데, 그와 동 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근원적인 동일성이 상실되어 어린아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점 점 독립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분리가 더욱 진전되면 마침내 황량한 고 독에 떨어지게 되어 심한 불안과 동요를 자아낸다. 그런데 만일 어린아이가 내면적인 힘과 생산성을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새로운 친밀감과 연대의식을 갖게 될 것 이다. 이와 같은 내면적인 힘과 생산성이 바로 외계와의 새로운 관계가 성립되기 위한 전제가 된다. 분리와 개성화가 진행해 가는 방향에서의 여러 단계가 자아의 성장과 대 응해 간다면 그 어린아이의 발달은 조화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개성화의 과정은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반면에 자아의 성장은 많은 개인적 및 사회적 이유로부터 방해받는다. 이러한 두가지 경향의 지체가 참을 수 없 는 고독감과 무력감을 자아내며, 이 감정은 뒤에 '도피의 메카니즘'으로서 설명되는 바와 같은 '심리적 메카니즘'을 자아내게 한다. 계통 발생적으로 보면, 인간의 역사도 개성화와 자유화가 점점 성장해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특징지을 수 있다. 인간은 강 제적인 모든 본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첫 순간부터 전 인간적인 단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만일 본능이라는 것을 유전적인 신경학상의 구조로 결정되는 하나의 특수한 행 동양식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경향은 동물의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발전단 계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만큼 자연과의 적응이라든가 다른 모든 행동은 본능적이며 반사적인 메카니즘에 의하여 지배된다. 몇몇 곤충들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저 유명한 사회적 조직이란 전적으로 본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발전단계가 높 은 동물일수록 출생시의 행동양식은 융통성이 많으며, 그만큼 육체적인 적응은 보다 불완전하게 된다. 이러한 발전은 인간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 났을 때에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다. 그리고 인간의 자연과의 적응은 학습과정에 기인하는 것이지 결코 본능적인 결정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본능은 고 등동물, 특히 인간에 있어서는 비록 완전히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점점 감 소해 가는 것이다.' 인간적인 존재란, 본능에 의한 행동이 어느 정도까지 없어질 때, 즉 자연에 의한 적 응이 그 강제성을 상실하게 될 때, 또한 행동양식이 이미 유전적인 메카니즘을 탈피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즉, '인간존재와 자유는 그 발단부터 분리시킬 수는 없는 것이 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란 '...에 대한 자유'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이다. 즉, 그 행위를 본능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말한다. 이러한 자유는, 말하자면 하나의 애매한 선물 에 불과하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다른 동물과 같은 적응성을 갖지 못한다. 즉,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도 오랫동안 양친의 보호에 의존하고 있으며, 환경 에 대한 반응도 자동적으로 본능적인 모든 행동보다 더욱 완만하며 눈에 띄지도 않는 다. 또한 인간은 본능적인 준비가 없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일어나는 여러 가지 위 험과 공포를 모두 경험한다.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무력함이야말로 인간의 발전이 생 기는 기반이기도 하다. 즉, '인간의 생물학적인 약점이야 말로 바로 인간 문화의 조 건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여러 가지 행동방침을 선택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된다. 동물의 경우에는 굶주림과 같은 하나의 자극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러한 자극으로 부터 생긴 긴장을 푸는 것 같은, 다소 엄밀하게 결정된 행동으로써 끝을 맺는 연쇄반 응적인 관계가 있다. 인간의 경우에는 그러한 연쇄관계는 절단되어 있다. 물론 자극 은 있지만 그것을 만족시키는 종류는 '공개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여러 가지의 행동방침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정된 본능적 행동 대신 인간은 그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의 가능한 행동방침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정된 본능적 행동 대신 인 간은 그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의 가능한 행동방침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즉, 인간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그의 역할을 순전히 수동적인 면으로부터 능 동적인 면으로 변경시켜 간다. 인간은 물건을 생산한다. 인간은 도구를 발명하여 자 연을 정복해 가는 한편 자신은 자연으로부터 더욱 멀어져 간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혹은 오히려 그가 소속하고 있는 집단에 대해서 - 그것이 자연과 동일한 것 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도, 또한 그 자연을 초월한다고 하는 하나의 비극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점 점 분명해진다. 비록 인간은 여러 가지 환상으로 죽음마저 부정하려 해도, 결국 죽음 이라는 것이 궁극적인 운명임을 의식하게 된다. 인간과 자유가 근본적으로 어떠한 관 계가 있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낙원추방이라는 성서의 신화 속에 특히 잘 나타나 있 다. 신화도 인간 역사의 시초는 선택이라는 행위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화는 이 시초의 자유로운 행위가 얼마나 죄 많은 것인가, 또한 그 결과로부터 생긴 고통을 특히 강조한다. 남자의 여자는 에덴 동산에서 상호간은 물론 자연과도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생활하고 있다. 에덴 동산은 평화로운 낙원이어서 일할 필요도 없고, 선택을 해야 할 일도, 자유도, 또한 생각할 일도 없다. 인간이 지혜의 선악과를 따먹 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은 마침내 신의 명령을 어기고 행동하게 된다. 즉, 그는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이 이루고 있는 조화의 세계를 파괴한다. 권위를 대변하는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본질적으로 죄악이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인간적인 자유의 시초인 것이다. 신의 명령에 반항하는 일은 강제로부터 자 기 자신을 해방시켜, 무의미한 존재로부터 인간의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의 명령에 항거하는 것, 즉 죄를 범하는 일은 적극적인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최 초의 자유행위, 최초의 '인간적'행위이다. 신화에서 말하는 죄란 형식적으로는 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이요, 구체적으로는 지혜의 열매를 따먹는 일이다. 하나의 자유로 운 행위로서의 거역은 이성의 시작이다. 신화는 최초의 자유로운 행위에 관하여 여러 가지 다른 결과를 말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과의 근원적인 조화는 파괴되었다. 신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인간과 자연간에 전쟁을 선언했다. 인간은 '개인'이 됨으로써 자 연으로부터 떨어져서 '인간'으로 가는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 인간은 자유의 첫 행위 를 범했다. 신화는 이러한 행위로부터 생기는 고통을 강조하고 있다. 자연을 초월하 고, 자연과 다른 인간적인 존재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은 마침내 벌거숭이의 모습을 부 끄러워한다. 인간은 고독하며 자유롭기는 하지만 무력하여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 다. 그리하여 새로 얻어진 자유는 하나의 재앙이 된다. 그는 낙원의 달콤한 속박으로' 부터'는 자유롭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집하며 그 개성을 실현하는 일'에는' 자유롭지 않다. '...으로부터의 자유'는 적극적인 자유인 '...에 대한 자유'와는 같지 않다. 인 간의 자연으로부터의 탈출은 대단히 오랜 기간에 거친 과정이다. 그는 자기가 탈출해 나온 세계와 아직도 굳게 결합되어 있다. 그는 여전히 자연 -그가 살고 있는 대지와 태양, 달과 별, 나무와 꽃, 동물 및 혈연으로써 결합되고 있는 인간집단 등 -의 일부 이다. 원시종교는 인간이 품고 있었던 자연과의 일체감을 증명하고 있다. 생물계와 무생물계는 모두 인간세계의 일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원시인은 아직도 자연계의 일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원적 결연관계는 인간의 충분한 인간적인 발달을 방 해하며 이것은 비판력의 발달을 저해한다. 그러한 결연관계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타인을 오직 사회적 및 종교적 협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통하여 인식시킬 뿐이며 결코 인간적인 존재로서 인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러한 결연관 계는 하나의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생산적인 개인으로서의 발달을 방해하고 있다. 그 러나 이것은 사태의 단면이고, 또 다른 면이 있다. 이렇게 자연과 종족과 종교와의 동 일성은 개인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는 하나의 구성된 전체에 소속되어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는 굶주림과 억압에 고통을 느낄지 모르지만, 모든 고통 중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완전한 고독과 의심이라는 고통은 맛보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가 성장하 는 과정은 이미 개인의 성장과정의 경우에서 고찰해 본 것과 같이 변증법적인 성격이 있음을 알수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힘과 완성의 성장과정이며, 자연의 정복과 이 성의 발달 및 다른 인간들과의 연대성이 증가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 있어서는 이러한 개성화가 증가함으로 말미암아 고독과 불안이 증진하며, 따라서 이 세계 안에서의 자기의 역할과 인생의 의미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심이 증진되어 그 와 함께 한 개인으로서의 무력감과 허무감이 쌓여간다. 만일 인류의 발전과정이 조화 를 이룬 것이며 하나의 명확한 계획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발전의 양면 -힘과 개성화의 증대 -은 확실히 균형이 잡힌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과는 반 대로 인류의 역사는 충돌과 투쟁의 역사이다. 개성화가 증대될 때마다 사람들은 새로 운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근원적인 모든 결연은 일단 단절되는 날이면 다시 는 결부시킬 수 없다. 그런데 개별화된 인간을 외계와 결합시키는 데는 오직 하나의 유효한 해결방법이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연대감과 애정과 작업이라 는 자발적인 행위뿐이다. 그것은 제 1차적인 모든 결연관계와는 달라서 인간을 하나의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재차 외계와 결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개성화의 모든 과정을 추진시켜 가는 경제적, 사회적 및 정치적인 여러 조건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의미에서 개성화의 실현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일 찍이 안정감을 부여해 주던 결연관계는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에 - 이러한 지연은 자유 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담으로 만든다. 그렇게 되면 자유는 의혹 그 자체가 되며, 의미와 방향을 상실한 생활이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비록 개인으로부터 그 자유를 빼 앗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종류의 자유로부터 벗어나 불안을 없애줄 인간과 외 계에 복종하여 이들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 중세 말기 이후 의 유럽 및 미국의 역사는 개성의 완전한 해방사이다.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 아에서 시작하여 현재 그 절정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중세기적 세계를 타파하여 가 정 노골적인 여러 가지 속박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데는 4백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개인은 많은 점에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도 발달하여 전에 없이 문화적 소산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으로부터의 자유'와 '...에 대한 자유'간의 지연도 또한 확대되었다. 어떤 결연 관계로부터도 자 유롭다는 것과, 자유와 개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가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과의 이러한 불균형은 마침내 유럽에서는 자유를 내버리고 새로운 결연관계, 또는 적어도 완전한 무관심으로의 도피행위를 초래했다. 근대인에 대한 자유의 의미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우선 중세 말기와 근세 초엽 유럽의 문화적인 양상을 분석해 보는 일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자. 이 시기에 서구 사회의 경제적인 기반은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 인간의 퍼스낼리티의 구조에도 그것과 동일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때 자유의 새로운 개념이 발전했는데, 이를 개념적으로 가장 의미 심장하게 표현한 것은 종교개혁의 새로운 종교적인 교의였다. 적어도 근대사회에서의 자유를 이해하려고 한 다면 근대문화가 처음으로 발생하게 된 이 시기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 면, 근대문화 전체에 작용해 온 자유의 다의적인 의미-한편에서는 고독감이 더욱 증진 되어 그 결과로서 개인의 허무감과 무력감이 높아져 가는것-를 인식하는 데에는 이같 은 근대인의 형성단계가 다른 어떠한 시대보다도 월등하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 간의 퍼스낼리티 구조에 있어서의 새로운 여러 요소는 그 기원을 연구함으로써 보다 더 명백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본질적인 특질을 바로 그 기원에 서 분석해 본다면, 우리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조직과 퍼스낼리티의 유형을 대비시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비에 의해 근대적인 사회조직의 특수성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즉, 근대인의 성격은 과연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이러한 퍼스낼 리티의 변화로부터 생기는 새로운 정신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를 이러한 대비를 통 해서 보다 더 명백하게 전망할 수가 있다. 다음 장에서는 종교개혁의 시대가 보기보다 는 현대의 양상에 더욱 유사하다는 것을 또한 보여주려고 한다. 사실 이 두 시대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이래로 자유의 다의성에 관해서는 현대와 이렇게 유사한 시대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개혁은 근대 민주주의 속에 표현된 바와 같이 인간의 자유와 자율이라는 관념의 한 원천이다. 그런데 이러한 면 은 특히 비가톨릭 교회에서는 언제나 강조되고 있지만 다른 일면, 즉 인간성의 약점, 개인의 무의미성과 무력성 및 외적인 힘에 예속하려는 욕구는 무시되고 있다. 개인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 개인은 본래 독립성을 가질수 없다는 것, 또는 다른 강자에게 복종하고자 하는 욕구 등과 같은 생각은 히틀러 가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물론 히틀러의 이데올로기는 프로테 스탄티즘에 고유한 자유와 도덕률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 근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15,6세기를 연구하는 것이 특히 효과적인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유사성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사실은 사회적인 형태에도 근본적인 유사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유사성이 이데올로기 및 심리학적 유 사성과 과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오늘날과 마찬 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및 사회적 조직의 혁명적인 여러 가지 변혁으로 인하여 그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위협받았다. 특히 중산계급은 오늘날과 같이 독점가의 힘과 우월한 자본의 힘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협은 개인의 고독과 허무를 더욱 증가시킴으로써 위협을 당하고 있는 계급의 정신과 그 이데올로기에 중대한 영 향을 미쳤다. 제 3장 종교개혁시대의 자유 제 1절 중세적 배경과 르네상스 중세의 모습은 지금까지 두가지 견해로 왜곡되어 왔다. 근대의 합리주의는 중세를 본질적인 암흑시대로 간주했다. 즉, 개인적 자유의 일반적인 결여, 극소수에 의한 수 많은 대중착취, 도시의 주민에 대해서, 이국인은 물론 그 근교의 농민들마저 위험천만 하고 이상한 이방인으로 보게 하는 편협성, 그리고 미신과 무지의 횡행 등이 중세기의 속성으로서 지적되어 온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로 보수적인 철학자들에 의해서, 혹은 근대자본주의의 진보적인 비평가들에 의해서 중세는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들은 중세가 가진 속성으로서 연대감, 인간적 모든 요구에 대한 경제의 종속, 인간관계의 솔직성과 구체성, 가톨릭 교회의 초국가적 원리, 중세 인간의 특징을 나 타내고 있는 안정감등을 지적했다. 이러한 두 견해는 모두 정당하다. 그러나 양쪽 다 현상적 일면만을 보았을 뿐 또 다른 면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잘못된 것이다. 근 대사회에 대비한 중세사회의 특징은 개인적 자유의 결여이다. 중세 초기의 인간은 누 구나 사회적 질서 속에서 자기의 맡은 바 역할에 얽매여 있었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는 어떤 거 리나 마을에서 다른 장소로 옮아가는 지리적인 이동조차 거의 불가능했다. 약간의 예 외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그가 태어난 고장에서 평생을 지내야 했다. 또한 자기가 좋 아하는 의복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취할 수 있는 자유도 갖지 못했다. 생산자는 그 제 품을 일정한 가격으로 팔아야 했으며, 또한 농민도 시장이라는 일정한 장소에서 매매 를 해야 했다. 동업조합구성원은 다른 조합의 구성원에게 생산의 기술적 비밀을 일체 누설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며, 또한 같은 조합의 구성원들에게는 원료를 구입하는 데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해야 했다. 개인적 생활은 물론, 경제적 및 사회적 생활 에 있어서도 한결같이 규칙과 의무에 속박되어 실제로 각 개인이 자유롭게 활동할 여 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자유는 없었지만 중세의 인간은 고 독하거나 고립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출생 순간부터 이미 명확하 고 변경할 수 없는 위치를 가지고 사회구조 속에 정착했다. 따라서 인생이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구태여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명확한 의미를 가진 것이다. 인간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적인 역할과 일치되어 있었다. 즉, 그는 한 사람의 농민이고 직공이고 기사이며 '우연히'그러한 직업을 갖게 된 '개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사회적인 질서 속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안정감과 소속감이 주어 졌다. 거기엔 서로 경쟁한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람은 일정한 경제적 지위를 가지 고 이 세상에 태어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으로 정해진 생활은 보장되었지만, 동 시에 보다 높은 상층계급의 인간에 대한 경제적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렇기는 하 지만, 각 개인은 그에게 허용된 사회적인 지위 안에서는 사실상 자유롭게 독창적인 사업에 종사할 수도 있었고, 정서적으로도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여러 가지의 생활양식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근대적 의미의 개인주의(이러한 선택의 자유 는 대단히 추상적인 것이다)는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실제생활에 있어서의 구체 적인 개인주의'라는 것은 널리 존재했다. 그 당시에도 근심과 번민은 있었지만, 한 편으로 교회라는 것이 있어, 그러한 고뇌는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이며 각자가 저 지른 죄의 결과라고 가르침으로써 그 고뇌의 도를 완화시켜 주었다. 교회는 죄의식을 조장하는 한편으로는 신의 절대적인 평등애를 보장하고, 신에게 용서를 받고 총애를 받을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었다. 신과의 관계는 의혹과 공포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뢰와 애정이었다. 마치 농민이나 도시 주민이 자기가 살고 있는 작 은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일이 희귀한 것같이, 이 우주도 한정된 것이어서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구와 인간이 곧 이 우주의 중심이며, 천국과 지 옥은 미래의 장소이며, 한평생의 모든 행위는 분명한 인과관계에 묶여 있었다. 물론 사회는 이와 같이 구조적이어서 인간에게 안정감을 주었지만, 그러나 사회는 개인을 속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속박은 그후의 세기에 나타난 권위주의나 압박 따위 와는 다른 것이었다. 중세사회는 개인으로부터 그 자유를 빼앗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 '개인'이란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아직도 근원적 인 결연관계에 의해서 외계와 결합되어 있었다. 사람은 아직 자기 자신을 하나의 개인 으로서는 인식하지 못했고, 단지 그 사회적인 역할(이것은 당시는 자연적인 역할이었 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비로소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또한 다른 사람 들은 '개인'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다. 도시로 들어오면 농민은 하나의 이방인이었고, 같은 도시 안에서도 서로 계급을 달리하는 인간은 이방인으로 취급했다. 자기 자신이 나 타인이나 외계에 대해서 이를 각각 분리된 실체로서 생각하는 그런 인식은 아직 충분히 발달되지 못했다. 중세사회에 있어서 개인의 자아의식이 어느 정도 결여되어 있었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부르크하르트의 중세문화에 대한 다음과 같은 고전적인 서 술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세에 있어서 인간의식의 양면 - 내향적인 거소가 외 향적인 것 - 은 공통의 베일 속에 아직 불명확한 상태로 숨겨져 있었다. 그 베일은 신앙이나 환상, 그리고 선입적인 호의로서 이루어졌는데, 바로 그 베일을 통하여 이 세상과 역사는 알록달록한 의복을 입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인간은 단지 민족, 국 가 , 단체, 가족, 조합 등의 구성원으로서만 - 어떤 일반적인 범주를 통해서만 - 인 식되고 있었다.' 사회의 구조와 더불어 인간의 퍼스낼리티는 중세 말기에 변화했다. 중세사회의 통일과 중앙집권은 점차로 약화되어 갔다. 이에 대해 자본과 개인의 경제 적 창출과 경쟁이 중요성을 더해 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새로운 유산계급이 출현했 다. 모든 사회계급 가운데서 개인주의라는 것이 현저하게 성장했는데, 이는 취미, 유 행, 예술, 철학 등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었다. 내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과정 전체가, 한편으로는 부유하고 번영해가는 자본가들의 소집단에 대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이라는 대중 - 특히 도시의 중산자본가들의 소집단 - 에 대해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발전이 도시의 중산계급에게는 어느 정도의 부를 가져다 주고 개인적인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주 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 집단들이 심리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과연 어떻게 반응해 가느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 이에 의해서 결정되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차이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새로운 경제적, 문화적 발전은 서부 유럽이나 중부 유럽에서 보다는 이탈리아에서 한층 더 강 하게 일어나 철학이나 예술이나 그밖의 모든 생활양식에도 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 다.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개인은 봉건사회로부터 뛰쳐나와 지금까지 그에게 안정성을 부여해 줌과 동시에 그를 구속하고 있던 결연관계를 끊어버렸다. 르네상스의 이탈리 아 사람은,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빈다면 '근대 유럽이 낳은 자식들 중의 장남', 즉 최초의 개인이었다. 중, 서유럽에서보다 왜 이탈리아에서 보다 더 빨리 중세사회의 붕괴가 이루어졌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수많은 경제적 및 정치적 원인이 있다. 그 가운데 우선 이탈리아 의 지리적인 위치와, 그로부터 생기는 상업적인 이익을 들 수 있다. 그 당시 지중해 는 유럽의 중요한 무역 루트였다. 또한 교황과 황제가 서로 싸운 결과 수많은 독립된 정치적 단체가 생겼으며, 더우기 동양에 접근되어 있는 관계로 편직물 공업과 같은 공 업발달에 중요한 여러 기술이 유럽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먼저 전해졌다는 것이 그 원인이다. 이러한 조건의 결과로서 이탈리아에서는 창의와 힘과 야심에 불타는 강력한 유산계급이 발생했다. 따라서 봉건적인 계층제도는 점차로 그 중요성을 상실해 갔다. 12세기 이래로 귀족과 자치도시의 시민들은 도시의 성벽 속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 다. 사회적 접촉의 결과로 계급적인 구별은 무시되었다 .이리하여 출생과 가문보다는 부가 더 큰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또 한편 대중들 사이의 전통적인 계층제도도 역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계층제도 대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정치적으로 압박받 아 온 도시의 노동대중이 출현했다. 부르크하르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일찌기 12 31년에 프레데릭 2세의 정책은 '봉건국가를 완전히 파괴하여 민중으로부터 반항의 의 지와 그 수단을 송두리째 빼앗아 국고를 위하여 민중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중세적 사회구조가 점차로 붕괴된 결과, 근대적인 의미의 개인이 출 현했다. 다시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인용해보자.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신앙과 환상 과 선입적 호의로 이루어진> 이러한 베일이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국가나 기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취급하고 고찰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동시에 <주 관적>인 면도 그에 따라서 강조되게 되었다. 즉, 인간은 정신적 의미에서 하나의 개 인이 되어 자기 자신을 그러한 존재로서 자각하게 되었다. 이는 마치 그리스 인이 일 찌기 자기 자신을 야만인과 구별하여 생각했고, 아라비아 인들이 자기들 자신을 단순 히 어떤 종족의 구성원으로서밖에 인식하지 못하던 시대에 자기 자신을 개인으로서 느 끼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새로운 개인의 정신에 대한 부르크하르트의 서술은 이미 앞장에서 제 1차적 결연관계로부터 벗어난 개성의 자각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 람들을 개인으로서 분리된 실체임을 발견한다. 또한 그는 자연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 자연을 이론적 및 실제적으로 정복할 대상물로서, 또한 그 아름다움을 향락할 대 상물로서 자기 자신과는 분리된 존재임을 발견한다. 그는 또 실제로는 신대륙의 발견 으로서, 정신적으로는 단테가 '전세계야말로 우리의 조국'이라고 했을 때와 같은 그 러한 코즈모폴리턴적인 정신의 발전에 의해 세계를 발견한다. 르네상스는 부와 권력 을 가진 상층계급의 문화였으며, 새로운 경제력이라는 폭풍우로 말미암아 거세게 일 어난 물결위에 놓여 있었다. 부도, 권력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은 종전에 가졌던 안 정된 생활상태를 상실하고, 때로는 아첨하고 때로는 위협도 당하는, 힘있는 자들에 의해서 교묘하게 조종되는 무조직 상태의 군중으로 변하고 말았다. 여기에 새로운 전 제정치가 새로운 개인주의와 병행해서 나타나게 되었다. 자유와 폭정, 개성과 무질서 는 도저히 풀수 없을 정도로 얽히어 있었다. 르네상스는 소규모의 상점주인이나 소시 민들의 문화가 아니라 바로 부유한 귀족과 부르즈와의 문화였다. 그들의 경제적인 활 동과 부는 그들에게 자유의 감정과 개인이라는 자각을 갖게 해 주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중세의 사회기구가 부여해 준 안정감과 소속감을 잃어 버렸다. 그들은 보다 자유롭게 되었지만 더욱 고독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힘과 부를 이용하여 생활로부터 쾌락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렇게 하기 위해 그들은 대중을 지배해야 했고, 또한 같은 계급내의 경쟁자들을 물리 치기 위하여 육체적은 고문으로부터 교묘한 심리적인 조종에 이르는 모든 수단을 사용 해야 했다. 모든 인간관계는 힘과 부를 얻기 위한 이와 같은 맹렬한 투쟁으로 말미암 아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 동지들 - 적어도 자기와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 들 - 과의 일치단결은 냉담하고 고립된 태도로 변했다. 다른 사람은 오직 이용할 '대 상물'로 간주되었고, 한 사람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활은 여지 없이 파괴 되었다. 개인은 격렬한 자기중심주의와 힘과 부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에 사 로잡히게 되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에 대한 건전한 관계도, 안정감이나 신뢰감도 피 해를 입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에게 조종될 하나의 대상물 이 되고 말았다. 르네상스 자본주의의 힘찬 주인공들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바와 같 이 그렇게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했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많은 의문점이 있다. 새 로운 자유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 즉 힘에 대한 증대된 감정과, 그와 동시에 고립과 의혹과 회의주의의 증대, 그리고 -그 결과로서-불안감의 증대를 가져다 준 것같이 보인다. 이와 같은 모순을 여러 휴머니스트들의 철학적 저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과 힘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철학 속에서는 불 안과 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적의에 찬 세계에서 고독하게 된 개인의 상태로부 터 나오는 이러한 잠재적인 불안은 바로 부르크하르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르네상스 시대의 개인을 특징짓는 성격-명예를 갈망하는 열정-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것은 적어도 중세적 사회기구 속에서 살던 사람들에게서는 그렇게 강하게 나타나지 않 았던 것이었다. 인생의 의미가 의심스럽게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관계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마저 불안하게 되는 경우, 명예심은 이집트 사람의 피라밋과 영생을 믿는 기독교 신앙의 기능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한하고 불안정한 개인의 생명을 불명의 세계로 끌어올린다. 만일 어떤 사람의 이름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알 려지고, 그것이 여러 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것을 기대할 수가 있 다면, 그 사람의 생애는 바로 이러한 반향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의 판단 속에서 비 로소 의미와 가치를 얻게 된다. 따라서 개인의 불안을 해소시킬수 있는 이러한 방법 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던 사회계층에게만 가능했다는 것은 명한 사 실이다. 이것은 동일 문화 속에서 살지만 무력한 대중이나 종교개혁의 중핵이 된 도 시의 중산계급에서 발견될 해결방법은 아니었다. 우리는 르네상스의 검토로부터 논의 를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 시기가 근대적 개인주의의 발단이기 때문이며, 이 시기를 연구한 역사가들의 저작이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과정에 대한 중 여러 요인을 명 백히 해 주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인간이 전 개인적 존재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독 립된 존재로서 충분히 의식하게 된 과정이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유럽적인 사상을 발 전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아니었으나, 근대자본주의의 근원인 그 경제적인 기 구와 정신은 중세 말기의 이탈리아 문화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중, 서유럽의 경제 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루터와 칼빈의 교의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두 문화의 주 요한 차이는 다음과 같다. 르네상스 시대의 상업자본주의와 공업자본주의는 비교적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그것은 부유하고 힘을 가진 소수가 지배한 사회였으며, 또한 그들은 이 시대의 문화가 가진 정신을 표현한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을 낳게 한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반면에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도시의 중, 하층계급과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물론 독일에도 푸거 가와 같은 부유한 사업가들이 있기는 했지만, 새로운 종교의 교의가 호소한 대상이나 근대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된 주요한 근원은 그들이 아니었다. 막스 베버가 보여준 바와 같이 서유럽에서 근대자본 주의 발달의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은 도시 중산계급이었다. 이러한 두 운동의 사회적 배경이 전혀 판이하기 때문에 우리는 르네상스의 정신과 종교개혁의 정신을 각각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루터와 칼빈의 신학을 검토해 보면 그러한 차이의 일부는 저절 로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개인적인 질곡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 과연 도시 중산계 급의 성격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느냐 하는 문제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해 보기로 하자. 즉, 프로테스탄티즘과 칼비니즘이 새로운 자유의 감정을 표시하는 동시에 자유 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의 도피가 된 사정을 밝혀보기로 하자. 우선 16세기 초 유럽, 특히 중부 유럽에서의 경제적 및 사회적 사정을 검토하고, 그 다음으로는 이러한 사 정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일과 루터와 칼빈의 가 르침이 이러한 여러 가지 심리적인 요인과 과연 어떠한 관계를 가졌는가, 그리고 이러 한 새로운 종교의 모든 교의가 자본주의의 정신과 과연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 를 분석해 보기로 하자. '중세기적 사회'에서는 도시의 경제적 조직이 비교적 안정되 어 있었으며, 중세 말기 이후 직공들은 그들의 길드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고용주 는 제각기 한두 사람의 도제를 가지고 있었고, 그 고용주의 수도 그 사회의 필요와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었다. 물론 밥벌이를 위해서는 필사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길드의 구성원들은 자기의 손작업으 로써 충분히 생활해 갈 수 있었다. 만일 훌륭한 의자와 신발과 빵과 말안장등을 만들 기만 하면 그것으로써 그 전통적인 사회적 지위와 생활수준을 충분히 보유해 갈 수 있었다. 그는 자기의 '좋은 직업'이란 신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단지 경제적인 의미에 서이다. 길드는 그 구성원들 사이의 심한 경쟁을 일체 금하고 원자재의 구입이라든가 제품의 가격에 대해서 서로 협조해 나갈 것을 강요했다. 중세의 생활 전체와 더불어 길드 조직까지 이상화시키려는 경향에 반대하는 어떤 역사가는 길드가 언제나 독점 적인 색채를 띠고서 작은 집단을 보호하는 한편 새로운 사람들을 몰아내려고 하는 속 성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비록 이상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할지라도 길드는 상 호간의 협동에 기인하여 그 구성원들에 대하여 비교적 안정감을 부여했다는 데는 많 은 학자들이 한결같이 동의하고 있다. 좀바르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중세의 '상업'은 대체로 많은 소규모 상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소매상과 도매상은 아직도 분리되 지 않았고 북부 독일의 한자동맹의 구성원들과 같이 외국을 상대로 하는 무역상인들마 저 소매상에 불과했다. 자본의 축적도 15세기말까지는 대단히 완만했었다. 이리하여 소규모 상인은 대자본과 독점기업이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던 중세 말기의 경제적 사정에 비해 보면 상당한 안정성을 누리고 있었다 - 토니 교수는 중세의 도시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기계적인 많은 것이 그 당시에는 인격적이고 친 밀하고 직접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개인에게 적용되는 표준 이상의 큰 조직체와, 또 한 염치없이 경제적인 방편이라는 궁극적인 구실을 붙여서 일체의 거래를 막는 것과 같은 교의는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 이 사실은 중세사회에서 개인의 지위가 과연 어떠한 것이었느냐를 이해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점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즉, 그것은 단지 가톨릭 교회의 교의 속에만 아니라 세속적인 여러 법률 속에도 표현 되어 있는 것과 같은 '경제적 활동'에 관한 '윤리관'이다. 이 점에 관해서 우리는 토니의 의견 을 따르게 된다. 그의 입장은 중세적 세계를 이상화시킨다든가 낭만화시키려고 하는 것과 같이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두 가지 경제 생활에 관한 근본적인 가정이 있다. 즉, '경제적 이익은 생활의 진실된 직무(이것은 구제수단에 불과하다) 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과, 경제적 활동이란 인간행위의 일면이며 이는 인간행위의 다른 면과 마찬가지고 도덕률에 구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토니는 경제적 활동에 대한 중세적인 견해를 다음과 같이 상술하고 있다. '물질적 부란 필요한 것 이다. 그러나 이는 2차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인간은 스스로 살아갈 수도 없으며 상대방을 도와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모든 동기는 의심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강력한 욕망이므로, 인 간은 그것을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칭찬할 정도로 야비하지는 않기 때 문이다. ...따라서 중세의 이론 속에는 도덕적인 목적에 관계가 없는 경제활동은 허 용될 여지가 없다. 사회에 대한 학문을 생각할 때 경제적 부를 얻으려는 욕망은 언제 나 어느 정도 존재하는 힘이며, 이를 다른 자연력과 마찬가지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자명한 요소라고 가정하는 것은, 마치 사회철학의 전제는 투쟁본능이라든가 성욕이라 든가 또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성질의 무제한적 작용이라고 생각하는일에 못지 않게 중세의 사상가들에게는 비합리적이요 비도덕적인 것으로 생각되었을 것이 다. ...성안토니오가 말한 바와 같이, 부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부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제적 이익이 참된 인간사를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여러 가지 제한과 속박과 경고가 내려진다. 물론 인간이 안락한 생 활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를 추구하는 일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추구하면 그것은 사업이 아니라 탐욕이다. 탐욕은 큰 죄악이다. 거래는 정당한 일이다. 각기 다른 나라에 여러 가지 자원이 있는 것은 신의 섭리이 다. 그러나 거래는 위험한 일이다. 사람들은 모름지기 거래란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하는 일이며, 자기가 취하는 이익은 그 노동에 대한 보수만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 해야 한다. 사유재산제도는 적어도 타락된 세계에서는 필요한 제도이다. 사람들은 물품이 모든 사람들의 공유로 되어 있는 경우보다도 사유로 되어 있는 경우에 보다 더 많이 일하며 다투는 일도 보다 더 적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 하는 것으로서는 허용될 수 있지만, 그 자체는 결코 칭찬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런 데 만일 인간의 성질이 상승되는 것이라면 공산주의야말로 이상적인 것이다. 그라타아 누스는 그의 칙령속에서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의 사용은 반드시 모든 인간에 대해서 공공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재산이란 말썽거 리를 일으키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것은 합법적으로 획득되어야 하며, 또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고루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난한 사람 들의 생활을 지탱해 주어야한다. 재산의 사용은 가능한 한 공공적이어야 하며, 그 재산의 소유자는 비록 실제로는 그렇게 빈곤에 허덕이지 않는 경우라도 그 재산을 필 요로 하는 자들에게 즐거이 나누어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인 규범을 표시했을 뿐 경제생활의 현실을 정확하게 묘 사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중세사회의 실제적인 정신을 반영한 것 이다. 직공들과 상인들의 지위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는 것은 중세도시의 특징이지 만, 중세 말기에 이르자 서서히 전복되기 시작하여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완전 히 붕괴되고 말았다. 이미 14세기에 이르러 -또는 그 이전에 - 길드의 내부는 점차로 붕괴되기 시작했는데, 그러한 붕괴를 저지시키려는 점차로 붕괴되기 시작했는데, 그 러한 붕괴를 저지시키려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더욱 가속되었다. 길드의 구성원들 중에도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자본을 갖고 한두 사람이 아니라 5,6명의 직공들을 고용하는 자가 나타났다. 이윽고 어떤 길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자본을 갖고 있는 자들만을 가입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또한 어떤 길드는 강력한 독점체가 되어 그 독립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모든 소득을 취하는 한편, 최대한으로 소비자를 착취했다. 그 반면에 수많은 길드의 구성원들은 가난하게 되어 그들의 전통적인 직업 이외에 얼 마간의 돈을 벌어야 했다. 즉, 그들은 부업으로 소규모 상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악착스럽게 경제적 독립이라는 전통적인 이상에 매달렸지만, 대부분은 경제적 인 독립과 안정을 잃어버렸다. 이와 같은 길드 조직의 발전과 관련해서 직공들의 지 위는 더욱더 악화일로를 달렸다. 이탈리아와 플란더즈의 공업에서는 이미 13세기 또 는 그 이전에 불평불만을 가진 노동자 계급이 존재했지만, 그래도 동업조합의 직공들 의 지위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물론 모든 직공들이 고용주가 될 수는 없었다. 그 러나 그들 중에는 고용주가 된 자도 많았다. 한 사람의 고용주 밑에서 일하는 직공의 수가 증가되었기 때문에 고용주가 되려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게 되었고, 길드 또 한 한층 독립적이요 배타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직공들에게 주어진 기회 는 보다 더 적어졌다. 그들의 경제적 및 사회적인 지위가 얼마나 악화되어 있었느냐 하는 것은 그들의 불만이 점점 더 증가했던 일과, 그들 자신이 스스로 조직체를 형성 하려고 했다는 일과, 스트라이크나 과격한 폭동 등이 일어났다는 사실로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동업조합의 자본주의적 발달에 관해서 지금까지 설명해 온 바는 , 이를 '상업'과 관련시켜 볼 때 보다 더 명백해진다. 중세의 상업은 주로 작은 도시와 도시 사이의 거래였지만 14,5세기에 이르러서는 국내 및 국제적인 상업이 급속도로 발달했 다. 대상업회사가 정확히 언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느냐하는 데에는 사람에 따라서 견 해가 구구하지만, 15세기에 이르러 더욱 강력하고 독점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한결같이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독점은 우월한 자본의 힘으로써 소 비자는 물론이요 소규모 상인들마저 위협했던 것이다. 15세기에 이루어진 지기스문트 황제의 정책은 입법이라는 수단에 의해 독점력을 억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규모 상 인들의 지위는 더욱 불안하게 되었다. '그는 그 불만을 사람들의 귀에 들리게 할 정도 의 영향력은 갖고 있었지만, 효과 있는 행동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은 갖지 못했다.' 독점에 반대하는 소상인의 격렬한 분노가 과연 어떠했느냐 하는 것은 1524년에 간행 된 <상업과 고리대금에 관하여>라는 루터의 팜플렛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모든 상품을 그들의 지배하에 두고 이미 언급해온 것 같은 온갖 술책을 공공연히 행 사하고 있다. 그들은 마음대로 가격을 조작함으로써 모든 소상인을 마치 곤들매기가 작은 고기를 괴롭히듯이 압박을 가해 이를 파괴시키고 있다. 그들은 또한 마치 신의 창조물 위에 군림하여 신앙과 사랑의 일체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것같이 행세하고 있다.' 이런 루터의 말은 오늘의 현실에도 들어맞는 것이다. 중산계급이 15,6세기에 부유한 독점자들에 대하여 품고 있던 공포와 분노는 바로 오늘날의 중산계급이 독점과 강력한 자본가들에 대하여 품고 있는 감정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자본의 역할은 '공업'에 서도 또한 증가했다. 그것의 뚜렷한 예가 광산업이다. 본래 광산 길드의 구성원은 제 각기 자기가 노동한 일의 양에 따라서 몫을 할당받았다. 그러나 15세기까지는 그 할 당몫은 대부분 자기 스스로는 일하지 않는 자본가들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많은 사업 은 임금은 받지만 실제로 기업에는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이 와 같은 자본주의적 발달은 다른 공업에서도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동업조 합이나 상업에 있어서 자본의 역할이 보다 증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즉, 빈부의 차 는 더욱 심해지고, 빈민계급들 사이의 불만은 점점 쌓여갔다. 농민의 사정에 대해서 는 의견이 구구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샤피로의 분석 은 많은 역사가들에 의해 전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번영에도 불구하고 농민의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16세기 초만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경작하는 토지를 가지고 지방회의에 그 대표자를 보낸 독립된 농민의 수는 극히 적었다. 그런데 지방의회에 대표자를 보낸다는 것은 중 세에 있어서는 곧 계급의 독립과 평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농민은 농노였 고, 개인적으로는 자유로왔지만 그들의 토지는 세금에 얽매이고 계약에 따라서 부역을 하게 되는 계급이었다. ...이러한 농노야말로 모든 농민봉기의 중추적 세력이었다. 이리하여 영주의 토지 근처에서 반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중산적 농민은 세금과 부역이 점점 증가하게 됨으로써 자기들이 사실상의 노예로 변해 가고 있으며 공동의 마을이 영주의 소유지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발전은 '심리적 분위기'에도 뚜렷한 변화를 일으켰다. 중세 말에 이르자 불안한 기분 이 생활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여기에 근대적 의 미의 시간관념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1분 1초가 가치있는 것이 되었다. 뉘 른베르크의 시계가 16세기 이래 15분마다 종을 울리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새로 운 시간관념을 잘 표현해 준 것이라 할수 있다. 지나치게 많은 휴일이 하나의 불행으 로 생각되었다. 시간은 귀중하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일하는 것을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태도가 발달했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하여 중산계급은 비생산적인 교회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이리하여 식객계급은 비생산적이며, 따라서 비도덕적이라고 비난받게 되었다. 능률이라는 관념 이 최고의 도덕적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생각이 등장했는데, 이와 도불어 부와 물질적 인 성공을 바라는 욕망이 모든 사람들을 열중시키는 정열이 되었다. 마르틴부처 목 사는 말했다. '오늘날 전세계는 한결같이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상거래와 직 업을 찾아 헤매고 있다. 예술과 학문의 연구는 천한 일이라 하여 내버린 채 돌보지 않는다. 보다 더 고귀한 연구를 위하여 신으로부터 재능을 받은 우수한 두뇌의 소유 자들도 모두 상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상업에는 거짓말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에 장사란 신사가 할 일이 못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설명해 온 경제적인 변화의 뚜렷한 결과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중세적 사회조직은 붕괴했고, 그와 더불어 그러한 사회조직이 보장해 준 안정 성과 상대적인 안전성도 마침내 파괴되고 말았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서 사회의 모든 계급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질서에는 자연적이며 의심의 여지 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고정된 장소는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개인은 홀로 남겨졌다. 모든 것은 각자의 노력에 달려 있지, 전통적인 지위의 안정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달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은 정도는 계급에 따라 각각 다르다. 도시 의 빈민들과 노동자들과 도제들에게는 그것은 더욱 착취되어 더욱 빈곤하게 되는 일이 었다. 농민들에게도 그것은 경제적 및 인간적인 압력이 늘어나는 일이었다. 하급귀족 은 물론 다른 사정이 있었지만 파멸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계급에게는 새로운 발달이 악화를 의미했지만, 도시의 중산계급에게는 그 사정은 훨씬 더 복잡했다. 도 시의 중산계급 내부에 분화가 증가되어 갔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던 바다. 그 런데 그 대부분은 더욱 나쁜 상태로 떨어졌다. 수많은 직공들과 소상인들은 자기들보 다 더 많은 자본을 가진 독점자나 경쟁자들의 우월한 힘과 대항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독립을 유지해 가는 일도 더욱 곤란하게 되었다. 그들은 때때로 압도적으로 강력한 세력에 항거하여 싸웠지만, 대체로 그것은 승리할 가망이 없는 절망적인 싸움 이었다. 중산계급중의 어떤 자는 보다 더 행운을 만나 상승하는 자본주의에 동승하기 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자본' 과 '시장'과 '경쟁'의 역할이 증대된 것으로 인해 성격이 변화되어 동요와 고독과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자본이 결정적인 중 요성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경제가 초인간적인 힘에 의해서 결정되고 그것으로 말 미암아 인간의 운명마저 결정된 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본은 '하인의 지위를 벗어나 주인이 되었다. 자본은 분리와 독립이라는 것으로 가장하면서 자신의 가혹한 요구에 따라서 경제조직을 지령할 수 있는 지배자의 권리를 요구했다.' 시장의 새로운 기능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다. 중세의 시장은 비교적 소규모여서 그 기능을 쉽사리 이해할 수가 있었다. 수요 공급의 관계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었 다. 생산자는 과연 얼마나 생산하면 좋은가를 대개 짐작했으며, 그 제품을 적절한 가 격으로 판매하는 데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점점 커져가는 대규모 시장을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기 때문에 과연 어느정도의 상품이 판매되겠는가를 미리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유용한 물건 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하나 의 조건이긴 하지만, 과연 그 제품들이 판매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판매된다면 과 연 어느 정도의 이익을 보고 판매될 것인가, 하는 것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시장의 여러 법칙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새로운 시장의 메카니즘은 칼빈의 예정설과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이 칼빈의 예정설은 개인은 마땅히 선량한 사람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 냐 하는 것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시 장 시대는 마침내 인간이 노력해서 생산한 제품을 심판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와 관계해서 나타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경쟁의 역할이 점점 증가한 일이다. 중세사 회에 경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봉건적인 경제조직은 협동의 원리에 바탕 을 두어 경쟁을 억제하는 모든 규칙에 의해서 통제되었으며 조직화되었던 것이다 .자 본주의의 발생과 더불어 이러한 중세적 원리는 개인적 기업의 원리고 변해갔다. 각자 는 자기 스스로 전진하여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결정해야 했다. 그는 용기를 내어 헤 엄치지 않으면 빠져 죽는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상대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상대방을 파멸시키느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파멸을 당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자본과 시장과 개인적 경쟁이란 역 할은 확실히 16세기에는 그후에 오는 시대만큼 중요성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 동 시에 근대 자본주의의 결정적인 여러 요소는 개인에 대한 심리적 영향과 더불어 이미 16세기에 이르기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당시의 사정의 한 면만을 설명해 왔는데 또다른 한 면이 있다. 즉, 자본주의는 개인을 해방시켰다는 사 실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협동적인 조직체로부터 해방시켜 자기 운명을 가지가 개 척해 나갈 수 있게 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 위험도 이득도 모두 그 의 것이 되었다.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그는 성공할 수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돈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위대한 것이 되었으며, 출신과 계급보다도 한층 더 강력한 것이 되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해 온 초기의 시대에 는 자본주의의 이러한 면이 겨우 발달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것은 도시의 중산 계급 보다는 오히려 소수의 부유한 자본가들에게 더욱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 대로 인간의 퍼스낼리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 15,6세기 에 있어서 사회적 및 경제적인 변화가 개인에게 과연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논의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미 전에 검토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도 자유의 다의성이 발견된다. 개인은 경제적 및 정치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다. 그는 새로운 조직 속에서 활동적이며 독립적인 역할을 다하면 적극적인 자유를 획 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일찍이 그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부여해 주던 속박들로부터 해방된다. 그리하여 인간이 세계의 중심인 것 같은 패쇄된 생활은 종 말을 고한다. 세계는 망막하고 공포고 가득한 것이 된다. 인간은 폐쇄된 세계속에서 갖고 있던 고정된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자기 생활의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된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의 존재와 생의 목적에 대한 의혹이 짙어 간다. 그는 자본이 나 시장과 같은 초인간적인 힘에 의해서 위협당한다. 모든 사 람들이 잠재적인 경쟁자로 보였기 때문에 그의 동료들에 대한 관계도 적의에 찬 서먹 서먹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는 자유롭게 되어 - 홀로 고립되어서 - 사방으로부터 위 협을 받고 있다. 일찍이 르네상스 시대의 자본가가 갖고 있던 것과 같은 부와 힘도 없 었고 타인이나 외계와 일체가 되어 있다는 감정을 상실한 인간은 그 자신의 무가치함 과 무력함에 압도당하고 만다. 천국을 영원히 잃어버린 개인은 홀로 이 외계와 직면 하게 되었다 - 그는 망막하고 공포에 찬 세계에 내버려진 이방인이다. 새로운 자유를 얻게 될 결과로 동요, 무력, 회의, 고독, 불안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개인이 바라는 바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이러한 여러 가지 감정은 마땅히 없애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제 2절 종교개혁의 시대 바로 이러한 발전의 시기에 '루터주의'와 '칼빈주의'가 출현하게 되었다. 새로운 종교는 상층계급의 종교가 아니라 도시의 중산계급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농민들의 종교였다. 새로운 종교는 이러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 면, 새로운 종교는 일찍이 그들에게 널리 침투되고 있던 무력감과 불안감은 물론, 자 유와 독립이라는 새로운 감정마저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의 교의는 경제적 질서의 변화로 야기된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교의는 그러한 여러 가지 감정을 증가시켜 주었으며, 동시에 개인으로 하여금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도 제공해 주었다. 새 로운 종교의 교의가 가진 사회적, 심리적인 의의를 분석하기 전에 우선 우리의 연구 방법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 두는 것이 이러한 분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종교적 교의나 정치적 원리의 심리적 의미를 연구할 때, 우리는 우선 심리적인 분석이 우리가 분석하는 원리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 진위에 대한 판단의 문제는 문제 그 자체의 윤리적인 구성이라는 면에서만 결정할 수가 있다. 물론 어떤 교의와 사상의 배후에 숨겨진 심리적 동기의 분석은 그 교외의 진의를 보다 더 잘 이해하게 하며, 또한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 지만, 그 교의의 타당성과 그 교의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과 대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원리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 보여주는 것은 주관적인 모 든 동기이다. 이러한 동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문제를 의식하게 하여 그 해답을 어떤 방향에서 추구하도록 한다. 참된 것이건 거짓된 것이건 사상이라는 것 은 그것이 전통에 사로잡힌 생각과 표면상으로만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사 상을 품고 있는 인간의 주관적인 요구와 관심에 의해서 자극을 받는 법이다. 주관적 인 관심은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고조되는 것과, 또한 그 진리를 파괴함으로써 고조되 는 것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도 심리적인 여러 동기가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중요한 유인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퍼스낼리티의 강력한 요구에 근거하지 않는 사랑은 그 사람의 여러 행동과 생활에 대해서 영향력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적인 교의와 정치적인 원리등을 그 심리학적인 의미와 관계시켜서 분석 할 때 우리는 다음 두 가지 문제를 구별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는 새로운 교의를 창 안한 개인의 성격구조를 연구하여 그의 퍼스낼리티 중 과연 어떤 점이 그의 사상의 독 특한 방향을 낳게 했느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컨대 루터와 칼빈의 성격구조를 분석해 보고 그들의 퍼스낼리티의 어떤 경향에 의해 그러한 결론 에 도달하게 되고, 또한 그러한 교의를 형성하게 되었는가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의 창안자의 심리적인 동기가 아니라 그 교의를 받아들이는 사회집단의 심리적 동기를 연구하는 일이다. 교의와 사상의 영향력은 그 어느 것을 막 론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성격구조의 심리적인 요구에 과연 어느 정도 호소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상이란 어느 사회집단의 강력한 심리적 여러 요구에 호응하 는 경우에만 비로소 역사상 강한 힘이 될 것이다. 물론 지도자의 심리와 그를 추종하 는 자들의 심리라는 두가지 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만일 그 양자가 동 일한 사상에 이끌린다면 그들의 성격구조는 틀림없이 중요한 점에서 유사성을 가질 것이다. 지도자에게 특별한 생각과 실행력이 있다는 것은 별문제로 하더라도, 그의 성 격구조는 언제나 보다 더 극단적이고 명확한 방법으로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의 특수한 퍼스낼리티의 구조를 나타낼 것이다. 즉, 그는 자기의 추종자들이 이미 심 리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사랑을 보다 더 명백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가 있다. 지도자 의 성격구조가 그 추종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어떤 특성을 보다 더 예리하게 보여 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두 요인 가운데 하나의 결과이거나, 아니면 그 양자의 결합 에 기인한다. 즉, 첫째로는 지도자의 사회적 지위가 전체 집단의 퍼스낼리티를 형성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조건이 되는 경우이며, 둘째로는 그 집단에 있어서는 사회상태에 의해서 형성되고 있는 어떤 특성이 지도자에게는 그 교육이라든가 개인적 인 경험과 같은 우연적인 사정으로 말미암아 눈에 띄게 발전되어 가는 경우이다. 프 로테스탄티즘과 칼비니즘의 교리가 가지는 심리학적 의의를 분석함에 있어서, 우리는 루터와 칼빈의 퍼스낼리티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던 사회계급의 심리적인 상태를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루터의 신학을 검토하기 전에 나 는, 한 인간으로서의 루터는 (뒤에 설명되겠지만)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간단하게 말해 두고자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지나칠 정도로 엄 격한 부친에게 양육되어 사랑과 안정감을 거의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퍼스낼 리티는 권위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으로 시달렸다. 즉, 그는 권위를 몹시 증오하여 그 것에 반항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를 몹시 동경하여 그것에 복종하려고 했다. 전 생애를 통해 언제나 그가 반항하면서 동시에 동경한 권위가 따라다녔으니, 즉 어렸 을 때에는 아버지의 수도원장, 그 후에는 교황과 황제가 그것이다. 그는 극도의 고독 감과 무력감 및 죄악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렬한 지배욕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었다. 그는 오직 강박적 성격의 소유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심한 회의 로 크게 번민했으며, 따라서 그에게 내면적인 안정감을 주어 그런 번민으로부터 구원 해 줄 그 무엇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특히 천민을 싫어하고 심지어는 자기 스스로의 삶마저 싫어했다. 이러한 증 오로부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강렬하고도 절망적인 충동이 일어나게 되었 다. 그의 전존재는 공포와 회의와 내면적인 고독감으로 충만되어 있었다. 바로 이러 한 개인적인 성격의 바탕 위에서 그는 마침내 심리적으로 대단히 유사한 상태로 놓여 있던 사회집단의 투사가 될 수 있었다. 다음의 분석방법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려는 목적은 그 러한 사상과 이념이 발생하는 심리적인 근원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러한 분석에 필요 한 첫째 조건은, 사상의 논리적인 전후관계와, 그 저자가 의식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비록 주관적으로 성실할지라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믿고 있는 것과는 다른 동기에 의해서 움직여 지는 경우가 빈번 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논리적으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는 하나의 관념을 역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적인'의미와는 다 른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아가서 그는 자기 자신 속 에 깃들어 있는 감정의 모순을 하나의 이념적인 구성으로써 조화시키고자 하거나, 또 는 억누르고 있는 사랑을 정반대되는 합리화에 의해서 감추려 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무의식적인 요소의 작용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말이라는 것 을 단순하게 신용하든가 또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 사상을 분석하는데 그 과제가 되는 것은 주로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실이다. 첫째 과제는 어떤 사상이 이데올로기의 전체계 속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느 냐를 결정하는 일이요, 둘째 과제는 사상의 '실제적인'의미와는 다른 합리화의 면을 과연 취급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일이다. 첫째 경우의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히틀러의 이념에 있어서는 베르사이유 조약의 부정을 강조하는 일이 대단 히 큰 역할을 했으며, 또한 그가 진심으로 평화조약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인 이념 전체를 분석해 보면, 그 근저에는 권력과 정복에의 강렬한 욕망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의식적 으로 독일에 가해진 부정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생각은 그의 전체 적인 사상으로 보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상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부여 한 의미와 참된 심리적 의미와의 차이는 이 장에서 문제로 삼고 있는 루터의 교의를 분석함으로써 알아낼 수 있다. 루터의 신에 대한 관계는 인간의 무력성에 기인된 복 종의 관계라고 우리는 말한다. 루터 자신은 그러한 복종은 공포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부터 생기는 자발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논리적으로 보면 복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 견지에서 보면, 루터가 말하는 사랑 과 신앙은 실제로는 복종하는 것이 그의 전 사상적 구조를 살펴볼 때 명백히 드러난 다. 그는 의식적으로는 신에의 복종을 자발적이며 애정이 충만한 관계라고 말하고 있 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신에 대한 관계를 복종관계로 만드는 무력감과 죄악감이 가득 차 있다(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마조히즘적인 의존이 흔히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것 과 같다). 그러므로 심리학적 분석의 견지에서는, 루터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으로 우 리가 믿고 있는 것과 그가 입으로 말하는 것과 아무리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루터의 사상체계가 가지고 있는 모순도 그의 관념의 의 미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봄으로써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교의를 분석함에 있어서 나는 종교적인 모든 교의를 그 전체계의 전후관계로 보아 그것이 실제로 의미하고 있는 바에 따라서 설명했다. 나는 그 중요성 과 의미를 생각하여 그것이 본질적으로 루터와 칼빈의 교의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확 신한 경우에는, 그 양자간에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는 문장은 인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내 설명에 알맞는 특수한 문장을 선정하는 방법이 아니라 루터와 칼 빈의 전 사상체계와 그 심리적 기반에 의거하여 그 전 체계의 심리학적 구조라는 관점 에서 개개의 요소를 설명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교의들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새로 운 것이었는가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중세기의 교회신학의 본질에 대해 살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살펴보려고 하면, 우리가 이미 '중세사회'라든가 또는 ' 자본주의사회'라는 개념에 대해서 논의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방법론적 난점에 직면 하게 된다. 경제적 구조에 있어서는 하나의 조직으로부터 다른 조직으로 갑자기 변화 되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이 신학의 영역에 있어서도 그와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란 없 다. 루터와 칼빈의 교의 중 어떤 것은 중세 교회의 교의와 너무 유사한 점이 많아서 양자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때가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이나 칼비 니즘처럼 가톨릭 교회도 역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미덕과 공적만으로는 도저히 구원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즉, 인간은 구원에 필수불가결의 수단인 신의 은총 없이는 도저히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낡은 신학과 새로운 신학에는 전적으로 공통된 요소가 있지만 가톨릭 교회는 종교개혁과 본질적으로 그 정신을 달리했다. 특 히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문제에 대해서, 도한 인간의 행위가 그 자신의 운명에 미 치는 결과에 대해서 그러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원리가 가톨 릭 신학의 특징이 되어 있었다. 즉, 아담의 조로 말미암아 타락되기는 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천부적으로 선을 추구한다. 또한 인간의 의지는 선을 추구하는 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 노력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에 기 인된 교회의 비적에 의해서 죄인은 구원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몇몇 대표적인 신학자들은 물론 상 술한 바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근본적으로 그와 다른 정신의 교의를 가르쳤다. 하기야 아퀴나스도 예절성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의지의 자유를 근 본적인 교의의 하나로서 강조하는 것을 잊지않는다. 자유의 원리와 예정설과의 모순 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그는 가장 복잡한 이론을 적용해야만 했다. 그런 이론이 그 모 순을 충분히 해결하는 것같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구제되기 위해서 필요한 의 지의 자유와 인가의 노력에 관한 교의를-물론 의지 그 자체는 신의 은총을 필요로 하 지만-포기하지 않았다. 의지의 자유에 관해서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은 자기 스스로 결단할 자유가 없다든가, 또 인간은 신의 은총을 거절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 는 일은 모두 신과 인간의 본성에 모순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학자들 중에는 아퀴나스 이상으로 구원을 위해서는 인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사람이 있다. 보나벤투라에 의하면 인간에게 은총을 내리는 것은 신의 섭리지만. 은총을 받는 자는 오직 공적을 쌓음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 진 사람들뿐이다. 13, 14, 15세기를 통하여 둔스 스코투스, 오캄 및 빌 등의 사상체계에 있어서 이런 점 이 더욱 강조되었는데, 이는 종교개혁의 새로운 정신을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루터의 공격의 화살은 특히 그가 '돼지같은 신학자'라고 부른 중세 말기의 스콜라 학파에 대해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둔스 스코투스는 의지의 역할을 강조 했다. 의지는 자유로운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지의 실현을 통해서 비로소 개인적 자 아를 실현하며, 따라서 이러한 자아의 실현은 개인에게는 최고의 기쁨이다. 신이 비 록 인간의 결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의지가 개인적 자아의 한 행위 라는 것은 곧 신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발과 오캄은 구제를 받는 조건으로서 인간 자 신의 공적이라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신의 협력에 대해서 자주 말하기는 하지만, 마치 종전의 낡은 교의와 같이 그것을 근본적으로 중요시하는 생각 은 포기했다. 빌은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신을 향해 나갈 수가 있 으며, 이때에는 신의 은총이 구원의 손길을 뻗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오 캄은 인간의 성질이 실제로 죄 때문에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죄란 인간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는 단순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트렌 트 조문 속에는 자유로운 의지는 신의 은총과 협력할 수 도 있지만 또한 그것과 절연 될 수도 있다고 명백히 표시되어 있다. 오캄과 그 밖의 후기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그 린 인간상은 가련한 죄인이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로서 나타났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자유로운 성질로 말미암아 인간은 모든 선 한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그 의지는 자연의 힘이나 외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면죄부를 사는 관례는 중세 후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 루터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었지만 그 관 례는 인간의 의지와 그 노력의 효용이 더욱 증대되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었다. 교황 의 밀사로부터 면죄부를 사들임으로써 사람은 영원한 형벌의 대신으로 생각되는 이 현세의 형벌을 면했다. 그리하여 제베르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은 모든 죄악으로 부터 사면될 수 있다고 기대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연옥의 형벌로부터의 사면을 교황으로부터 사들이는 행위는 인간이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효 용이라는 관념과 모순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는 교회의 권위적 비적에 의존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이지만, 또한 그 러한 행위가 희망과 안정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만일 인간이 그렇 게 쉽사리 형벌로부터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면 죄의 부담은 대단히 가벼워진다. 그는 과거의 중압으로부터 비교적 쉽게 벗어나 그를 따라다니던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우리가 잊어버려서는 안 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의 명시 적 및 묵시적인 교의에 의하면 면죄부는 그것을 사들이는 자가 죄를 참회하여 자백했 다는 전제에 의해서만 비로소 그 효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