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강의 꿈 - 검열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는 어린이 '꿈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꿈의 생성과 본질, 기능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꿈은 잠을 방해하는 (심리적) 자극을 환각적 만족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제거하는 것)입 니다. 성인의 꿈들 중에서 우리는 그저 한 종류의 꿈만을 해명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유아적 형태의 꿈이라고 명명했던 그런 꿈이었습니다. 다른 꿈들은 어떤지에 관해서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 고 있고 또 그것을 이해하고 있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잠정적으로 하나의 결과만을 얻었을 뿐인데 그 의미를 과소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꿈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을 때는 언제나, 그 꿈은 환각적인 소원 성취의 꿈으로 밝혀지곤 했습니다. 이러한 일치는 그저 우연적인 것이라거나 아 무래도 상관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른 종류의 꿈에 대해서 우리는 여러 가 지의 숙고를 거쳐 실수 행위에 대한 설명과의 유추 관계를 통해 그 꿈이 알 수 없는 내용에 대한 왜 곡된 대체물이라는 것과 바로 그 알 수 없는 내용에 원인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꿈-왜곡>에 대한 연구,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다음 과제인 것입니다. 꿈-왜곡이란 우리에게 그 꿈을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게 보이도록 만드는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우 리는 그것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유래하는 것인가 하는 점, 그것의 역동성, 또 둘째로, 그것이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 하는 점, 마지막으로 그 왜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꿈(왜곡이란 꿈)(작업의 결과라는 것도 말할 수 있습니 다. 우리는 이 꿈)(작업에 대해서 서술하고 그것을 꿈) 작업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힘으로 환원시키려 고 합니다. 이제 다음의 꿈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그것은 우리와 같이 정신분석을 행하고 있는 한 동료에 의 해 보고된 것입니다. (후크 '헬무트가 보고한 것이다' 원주 , 후크 - 헬무트의 '스스로 해석하는 꿈Ein Traum, der sich selbest deutet'(1915) 참조) 그 꿈은 매우 명망 있고 학식이 풍부하며 나이가 많은 부인이 꾼 꿈이라고 합니다. 이 꿈에 대한 분석은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동료가 느낀 바에 의 하면 그것은 정신분석자에게는 해석이 필요하지 않은 꿈이었다고 합니다. 꿈을 꾼 그 부인도 그것을 해석해 보려고 시도해 보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꿈을 평가하면서 마치 그녀 자신이 해석할 수 있는 것 처럼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꿈에 대하여<밤낮으로 자식 걱정밖에 없는 나이 50 이나 먹은 사람이 그렇게 황당하고 끔찍한 꿈을 꿀 수 있다니!>라며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 1914년에서 1918년 사이에서 그 부인의 아들은 전쟁터에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은 <자원 봉사Liebesdienste>(는 <사랑에 의한 봉사>, 다시 말하면 <무보수 봉사>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존경하기 힘든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제1육군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는 문 앞에 서 있는 보초에게, 자원 봉사를 하고 싶어서 병원 장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그녀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이름을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봉사≫라는 말을 힘주어 말했으므로 그 말을 들은 하급 장교는 ≪자원 봉사≫라고 즉시 알아들었 다. 그녀가 나이가 지긋한 부인이었으므로 하급 장교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녀를 통과시켰다. 그녀는 그러나 병원장에게 가는 대신 어떤 커다랗고 음산한 방에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많은 장교들과 군의 관들이 긴 테이블에 둘러서 앉거나 서 있었다. 그녀는 신청서를 선임 군의관에게 제출했고 그는 몇 마디를 주고받고 나서 곧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꿈속에서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빈에 살고 있는 나와 그 밖에 수 많은 부인들과 처녀들은 군인들과 대원들, 상하 계급의 구분이 없이 모든 장교들에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뒤를 이었다. 어떤 사람은 놀라운 표정을 짓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음흉한 표정을 짓는 등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말귀 를 알아들은 것 같았으므로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우리의 결정이 매우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그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비장한 것입니다. 전투에 나가는 군인에게 자신이 죽을 것인지 아닌지, 그 사람 의 의사를 물어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몇 분 동안의 고통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선임 군의관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면서 말했다. ≪친애하는 부인,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웅 서거림) 그녀는 ≪남자들이란 다 똑같군≫하고 생각하며 그의 팔을 자기 허리에서 풀어 내고는 대답 했다.≪어머나, 나는 나이든 여자입니다. 그러므로 전혀 그렇게 할 수 없을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한 가지 조건은 지켜져야 하겠어요. 나이를 고려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나이 먹은 여자가 팔팔한 젊은 남 자외…….(웅성거림) 그건 정말 끔찍하겠군요.≫군의관이 대답했다. ≪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 다.≫ 몇 명의 장교들이(그 중에서 하나는 젊은 시절에 그녀에게 구혼한 적이 있었는데)껄껄거리고 웃 어댔다. 그녀는 일을 깨끗하게 완결지을 수 있도록 그녀가 알고 있는 병원장에게 데려다 달라고 부탁 했다. 그때 그녀는 불현듯 자기가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선임 군의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깍듯하고도 정중하게 그 방문앞에서부터 위층으로 통하는, 철로 만들어진 비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서 2층에 있는 방으로 가라고 가르쳐 주었다. 계단 위로 올라가는 도중 그녀는 한 장교가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정말 대단한 결심입니다.젊었든 늙었든 그건 상관이 없습니 다.경의를 표합니다!>자신은 단순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라고 느끼면서 그녀는 끝없는 계 단 위를 올라가고 있었다.> <이 꿈은 몇 주 안 되는 기간 동안 두 번이나(그 부인의 느낌으로는)별로 중요치 않은 무의미한 약간의 변화만 빼고는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었다고 한다.> 이 꿈은 진행 과정으로 볼 때 낮 동안의 공상과 일치합니다. 그것에는 단지 몇 개의 잘려 나간 부분 이 있는데, 그 내용의 개개 사항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질문으로 밝혀질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은 여러 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꿈에 있어서 눈에 띄는 점이면서 흥미를 끄는 부분은 그것이 많은 틈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인데,그 틈은 기억의 틈이 아니라 내용의 틈입니다. 그 내용은 세 군데에서 사라진 것처럼 잘라져 있습니다. 이 틈이 생긴 부분에 해당되는 말은 웅성거 림으로 중단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꿈에 대해 어떤한 분석도 해보지 않았으므로 엄밀히 말해서 우 리에게는 그 꿈의 의미에 대해서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 단지 어떤 암시만이 주어져 있어서 그로부터 어떤 의미를 추론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원 봉사>라는 단어가 있고 웅성거리는 소리로 중 단되기 전의 이야기는 어떤 보충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어떤 내용일 지는 아주 분명합니다. 그것을 보충해 보면 그 공상의 내용은, 애국적인 의무감에 가득 차서 장병이나 장교를 막론하고 군인들의 사 랑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엄청나게 추잡스러운, 뻔뻔스런 리비도 Libido적인 공상의 전형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꿈속 에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기의 관련성이 고백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바로 불분명한 웅성거 림이 꿈속에서 생겨나서 무엇인가가 없어져 버리거나 억압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서의 바로 이러한 추잡함이야말로 그것을 억누르고 있는 모티브라는 것을 여러분도 짐작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이러한 현상과의 일치점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현재와 같은 시절에는 그리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정치적 신문이라면 아무것이나 손에 집어 들고 살펴보십시오. 군데군데 본문 내용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는 신문의 하얀 백지가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그것이 신문 검열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렇게 텅 비어 버린 곳에는 원래 저 높은 검열 관청의 눈에 마음에 안 드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제거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 참 유감이로군. 그게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었을텐데. 그것 이 바로<핵심적인 부분>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어떤 때는 완성된 문장에 검열Zensur이 작용하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기자가 검열에 걸릴 만한 부 분이 어느 곳인지를 미리 예상하고 사전에 그것을 완화시키거나 약간 수정을 가하고, 혹은 그것과 비 슷한 내용을 만족하거나 자신이 원래 쓰고자 했던 내용에 대한 암시로 그치거나 한 경우입니다. 그렇 게 되면 신문에서 백지로 된 부분이 없어지지만 이리 저리 돌려 쓴 내용이나 표현의 불명확성을 통해 서 기자가 검열이 있을 것을 미리 고려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평행 관계를 확실하게 고려해 봅시다. 잘려져 나간 부분, 다시 말해 웅성거림으로 은폐된 꿈 속에서의 이야기는 검열에 의해 희생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직접적으로 꿈-검열Traumzensur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그것은 꿈-왜곡이 있어서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을 여겨집니다. 외현적 꿈에 있어서 틈이 나 있는 부분에서는 어디서건 꿈-검열이 한몫 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꿈-요소에 비해 특별히 미약하다거나 불분명하고 수상쩍은 모습을 하고 있을 때, 바로 그것은 꿈-검열의 작용 탓이라고 주장하고자합니다. <자원 봉사>의 꿈과 같은 경우에서처럼 꿈-검열 이 그렇게 숨김없이 그대로, 순진하다고 할 정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대다수의 경우에서 꿈-검열은 제2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원래 표현하고자 하는 것 대신에 표현을 완화시키거나 그저 비슷하게 변죽을 울리거나 암시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꿈-검열의 제3 유형이 있는데, 이는 내가 알기로 신문 검열의 형태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 금까지 분석된 꿈의 사례 중 유일한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이 세번째의 유형을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1플로린 50크로이체에 좋지 않은 좌석표 3매>라는 꿈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이 꿈의 잠재적 사고에는 <너무 빨리 서둘러서>라는 요소가 전면에 놓여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렇게 <빨리> 결혼한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그렇게 <빨리> 표를 구입한 것도 바보같았고, 시누이가 보석 하나를 사기 위해 그렇게 <서둘러서> 돈을 다 써버린 것도 역시 우스운 짓이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꿈(사고의 중심 요소에서 외현적 꿈으로 옮겨 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꿈속에서는 극장에 가기-표 사기라는 행위가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강조점의 이동, 내용적 요소의 재편성을 통 해서 외현적 꿈은 잠재적 꿈-사고와 아주 다른 모습을 하게 된 것이고 그때문에 아무도 외현적 꿈에 서 잠재적 꿈-사고를 추측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조점의 이동은 꿈-왜곡의 중요한 수단이 며 꿈에다가 낯선 외양을 부여해 주기 때문에, 그로 인해 꿈을 꾼 사람 자신도 그것을 자기 자신의 작품으로 선뜻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한 재료의 누락, 수정, 내용 재편성 등은 그러므로 꿈-검열의 작용이며 꿈-왜곡의 수단입니다. 꿈-검열 그 자체는 우리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꿈-왜곡을 일으키는 원흉이거나 원흉 중에 하나가 되 는 것입니다. 수정과 재편성을 우리는 또 <전위Verschiebung>라는 용어로 통합하기도 합니다. 꿈-검열의 작용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진술하기로 하고 이제는 꿈의 역동성에 대해 검토해 봅시다. 여러분들이 이 표현을 지나치게 의인화시켜서 생각한 나머지 검열관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우리들의 머릿속의 한 작은 방에 거주하며 자기 맡은 바 일을 수행하는 어떤 작은 요괴나 영혼을 상상하는 일 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너무 국지적으로 생각하여 어떤 <뇌중추>를 상상하면서 그 중추가 그런 중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든가, 그 중추가 손상당하거나 제거되면 그 영향력도 자연히 상실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검열관이라는 용어는 잠정적으로 역동적인 관계를 표현 하기 위한 편의상의 술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단어의 사용으로, 어떠한 경향성에 대해 그 영향력이 행사되는지에 관한 질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또,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에 그러한 꿈-검열의 사례에 마주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리 놀라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정말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유 연상이라는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을 때에 실로 놀라운 경험을 한적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꿈-요소에서 그것의 대체물인 무의 식적인 요소에 이르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 어떤<저항>이 ㅁ서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꼈던 것입 니다. 이 저항은 여러 가지의 크기를 갖고 있어서 어떤 때는 엄청나게 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매 우 미약하기도 하다고 우리는 말한 바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 우리의 해석 작업은 단지 몇 개의 중 간 과정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되지만 그 저항이 매우 클 경우에 우리는 꿈-요소에서 멀리 떨 어진 곳으로 인도되어서, 떠오른 연상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적인 반론들과 같은 수많은 어려움들을 그 과정에서 극복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해석 작업 중에 저항으로 맞서 오는 것을 우리는 꿈-검열로 서 꿈-작업 속에 기록해 두어야만 합니다. 해석 과정에서 나타나는 저항은 단지 꿈-검열의 객관화에 대한 저항입니다. 또 이 해석 과정의 저항은, 검열의 힘이 꿈-왜곡을 불러오는 것으로 소모되어서 그 때부터 소진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왜곡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지속적인 제도로서 존속된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해석 과정에서 각각의 요소에 대한 저항의 강도가 각각 다른 것처럼 같은 꿈에 있어서도 검열에 의해 생겨난 왜곡은 개별적인 요소마다 크기가 다릅니 다. 외현적 꿈과 잠재적 꿈을 비교해 보면, 몇몇 개의 어떤 잠재적 요소는 완전히 제거된 반면 어떤 것들은 다소 수정되어 있고 또 어떤 것들은 변화없이, 오히려 강화된 채로 외현적 꿈-요소로 바뀌어 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 다. 이제 우리가 계속해서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경향성이 검열의 역할을 하고 있고 또 어떤 경 향성에 대해 그 검열이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꿈을 이해하기 위한,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이 물음은 우리가 해석을 하기 위해 연구해 온 일련의 꿈들을 살 펴보면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검열을 자행하고 있는 경향성은 꿈꾼 이의 각성된 판단에 의해 인 정되며 또 그자신이 자기의 것을 느끼게 되는 그러한 경향성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자신의 꿈에 행해 진 제대로 된 해석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꿈-검열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와 똑같은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똑같은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똑같은 동기로 꿈-왜곡도 일어나는 것이며 해석 작업이 필요하게 되는 거입니다. 앞에서 기술된 50세된 부인의 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꿈을 해석 작업을 통해 해석 해 보지 않고도 그녀는 자신의 꿈을 망측스럽게 여겼습니다. 만일 폰 후크 여사Frau Dr.v. Hug가 그 녀에게 오인의 여지가 없는 그 해석을 들려주었더라면 그녀는 훨씬 더 격분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 한 판단 때문에 꿈속에서도 그 망측스런 부분이 웅성거림으로 대체됐던 것입니다. 꿈-검열이 목표로 하고 있는 그 경향성을 우리는 이제 이러한 기제Instanz의 관점에서 부터 서술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경향은 거의가 비난할 만한 성질의 것이고 윤리적, 미적, 사회적 관점에서 보 아 추잡스러운 것이며 사람들이 감히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아니면 혐오감을 갖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검열을 받게 되는, 꿈속에서 왜곡된 표현으로 나타나는 소원들은 무절제하고도 앞뒤 안 가리는 이기심의 발로인 것입니다. 게다가 자기 자신의 자아는 어느 꿈속에서나 나타나며 외현적 내용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곧잘 숨기고는 있지만 언 제나 주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꿈의 이러한 <신성한 이기주의 scaro egoismo>는 잠자고 싶어 하는 심적 태도, 즉 외부 세계 전체에서 자신의 관심을 철회시키는 태도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닙니 다.(『꿈의 해석』참조) 윤리적인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자아는 성본능의 모든 요구들과 일치된 자신 을 발견합니다. 그것들은 이미 우리의 미적 교육과정을 통해 나쁜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들이며 모든 관습적인 제약에 반하는 것들입니다. 욕망 추구의 노력, 즉 우리가 말하는 리비도는 자기의 대상 을 아무런 제약 없이 선택하게 되고 금지된 것이야말로 가장 열렬히 선택됩니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탐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합의에 의해 성스러운 대상으로 인식되어 온 근친 상간Inzest적 대상, 즉 남자에게는 어머니나 누이, 여자에게는 아버지나 오빠까지 욕구의 대상이 됩니다(앞서 기술된 50세 부인의 꿈도 역시 근친 상간적인 꿈으로서 그 리비도는 틀림없이 아들을 향하고 있다). 우리가 인간 적인 본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믿어 왔던 정욕은 꿈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는 것입 니다. 증오도 아무런 절제 없이 날뛰게 됩니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인 부모나 형제, 배우자, 자기 자식들에 대한 복수나 죽음의 소망들도 결코 이상 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검열을 받게 되는 소망들은 실로 지옥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깨 어 있을 때의 해석에 의하면 어떤한 검열도 그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용이 그처럼 악의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꿈 자체에 비난을 퍼부어서는 안 됩니다. 그 꿈 자체는 아무 해가 없는, 오히려 유익하다고 할 수 있는 기능, 수면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기 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셨을 줄 믿습니다. 그러한 흉악성은 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 습니다. 정당한 소원의 성취나 참을 수 없는 육체적인 욕구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꿈들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꿈들은 왜곡된 내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들은 자아의 윤리적이거나 미적인 경향성을 손상시키지 않고서도 자신의 기능 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또 여러분들은 꿈-왜곡이 두 가지 인자에 정비례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검열을 받아야 할 소망이 사악하면 사악할수록 왜곡도 그만큼 더 커지고, 또 한편으로 검열 의 요구가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꿈-왜곡도 더 커집니다. 엄한 가정에서 교육받은 어리고 수줍은 소녀 는 그러므로, 우리 의사들이 보기에는 전혀 무해하고 그 소녀 자신도 10년쯤 지난 후에는 그렇게 판 단할 만한 리비도적 소원인 꿈의 충동을 가차없는 검열로 왜곡해 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어쨋든 우리는 우리의 해석 작업의 결과에 대해 화를 내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직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어떠한 바격에도 맞서서 우리의 해석 결과를 지켜나가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트집을 잡는 것은 그 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꿈-해석은 이미 고백한 바와 같이 다음의 세 가지 전제하 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꿈에는 어쨌거나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 그 당시에는 무의식적이며 심리적인 과정의 존재를 최면 상태에서 추론할 수 있듯 그것을 정상적인 수면 상태로 전용해도 된다는 것, 모 든 연상 내용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 등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전제에 근거해서 꿈-해석에 대 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결론에 도달했다면 이러한 전제들도 역시 옳은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해도 무 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내가 방금 설명한 대로 나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며, 적어도 매우 개연성이 희박한 결 과입니다. 그러므로 그 전제는 어딘지 모르게 틀린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꿈이 심리적인 현상이 아니거나 정상적 상태에서는 무의식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기술 중 어딘가 에 오류가 있거나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편이 우리가 우리의 전제들에 근거해서 발견했다고 하 는 그 모든 끔찍한 사실들보다 인정하기에 훨씬 단순하고 만족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좀더 단순하기도 하고 좀더 만족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필연적으로 더 옳은 것은 아닙니다. 시간을 갖고 생각해 봅시다. 이 문제는 아직 판결을 내릴 단계에 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꿈-해석에 대한 비팜을 좀더 강화시켜 볼 수 있 습니다. 그롸 같은 결론이 그렇게 불유쾌하고 꺼림칙하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가 어떤 꿈을 판단하여 이러 이러한 소망 경향을 갖고 있다고 해석했을 때 꿈꾼 사람이 이 해석을 매 우 단정적으로, 꽤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부정할 때, 그것이 더욱 강한 반론 이 될 것입니다. 한사 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뭐라고요? 당신들은 내가 누이를 결혼실킬 때 든 비용이나 남동생의 교 육 비용을 아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내 꿈을 통해서 증명할 수 있다는 겁니까? 절대로 그럴 리는 없습니다. 나는 오직 나의 형제 자매만을 위하여 일했습니다. 내가 집안의 맏이로서 돌아가신 어머니 께 약속드린 바와 같이 나는 내 인생에서 나의 누이와 남동생을 위해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 외 엔 다른 관심이 없어요.> 또 다른 여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나의 남편이 죽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인가요? 그건 정말 화가 치솟을 정도로 끔찍한 말이군요. 우리는 정말로 행복한 결혼 생활 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당신들은 잘 안 믿으려 하시겠지만- 그가 죽는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누 리고 있는 모든 것들까지도 한꺼번에 앗아가고 말 거예요.>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내가 나의 누이에게 성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고요? 정말 우습군요. 나는 나의 누이에 대해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살고 있어요. 우리는 사이가 나빠요. 나는 오래 전부터 그 애와 말도 나누지 않고 살고 있는걸요.> 우리가 그들의 꿈에 대해 내린 해석에 대해서 꿈꾼 사람들이 아무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 고 부정하려고만 한다면 차라리 우리는 그 사실을 좀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 이야말로 자기 스스로는 알 수 어벗는 그런 일이라고 우리는 담담히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의 내부에서 우리가 내린 해석과는 정반대되는 소원을 느끼고 있고 정반대의 것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생활을 통해서 보여 줄 때,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적이 황당한 일이 될 것 입니다. 그 결과가 불합리한 것ad absurdum으로 결판이 났으니 이제야말로 우리의 해석 작업을 집어 치워야 할 때가 아닐까요? 아닙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다시 비판적으로 공박하면 이러한 강한 반론도 산산조각이 납니다. 정신생활에는 무의식적인 경향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의 식 속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것이 증명된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런 증거능력도 갖 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정신 생활에는 대립적인 경향들을 위한 공간, 별렬적으로 존재하는 상호 모순점들을 위한 공간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 어느 하나의 충동이 지배적이라는 것은 그 것과 반대되는 무의식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꿈-해석의 결과가 간단치 않으며 몹시도 언짢은 것이라는, 첫번째 제기된 반론은 그러나 그대로 남습니다. 그에 대한 첫번째 대답은, 단순 명료한 것에 대한 여러분의 집착만을 가지고는 꿈-문제Traumproblem의 어떤 것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더욱 복잡한 관계들까지도 흔쾌히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 다음 두 번 째로, 어떤 것이 마음에 든다거나 혐오스럽다거나 하는 여러분들의 감정을 과학적인 판단의 동기로 삼는다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꿈-해석의 결론이 불유쾌하고 심지어 창피스럽기까지 하며 또 혐오스럽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가 아직 젊은 의사였던 시절에 나의 은사이신 샤르코J. M. Charcot 선생도이와 비슷한 경우에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Ca n 'empeche pas d'exister>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정말로 어떠한 모습 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 알고자할 때는 겸손해야 하며 자기 자신의 호감이나 반감을 깨끗이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 이 말에 담긴 뜻이 될것입니다. 어떤 물리학자가, 이 지구상의 생물은 얼마 안 있어 모두 응고되어 버리고 말것이라고 증명했을 때 여러분은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 불쾌한 일이다>라고 맞서 항변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얌전히 침묵하면서 어떤 다른 물리 학자가 나서서 먼젓번의 그 과학자에게 그의 전제 속에 들어 있는 오류나 계산 착오를 증명해 주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부분을 여러분이 거부해 버린다면 여러분 들은 꿈-형성의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대신에 그 매커니즘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아마도, 검열을 받는 꿈-소망Tramwunsch의 그토록 혐오스러운 성격에서 눈을 돌리려 하면서 인간의 자질 중 악에 그렇게 넓은 영역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 은 사실이라는 논의로 되돌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자신 있게 <그렇 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자신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든지 그것은 내 관심사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인간 본성속에 있는 이기적인 악의 존재에 대해서 반박하고 나서는 것을 의무 로 느낄 만큼 그렇게 상사나 동료에게서 호의를 받고 있습니까? 당신의 적에게서 그렇게 많은 기사도 정신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 당신이 속한 사회에서 전혀 시샘을 받고 있다고는 느끼지 않고 계십니 가? 성생활의 모든 문제에 평균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무절제하고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전혀 모르십ㄴ? 우리가 매일 밤 꿈속에서 보는 그 모든 탈선이나 방탕이 매일매일 깨어 있 는 사람에 의해 실제적인 범죄 행위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까? 정신분석이 하고 있는 일이란, 플라톤이 한 말대로, <선인이란 악이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을 꿈속에서 해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제 개인에게서 눈을 돌려 아직도 전유럽을 휩쓸고 있는 세계대전을 생각해 봅시다. 또한 현재 문 명국에 만연하고 있는 그 엄청난 잔인성과 폭력성, 기만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명령에 복종할 따름인 수백만의 사람들이 같은 죄를 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면, 양심이라고는 없는 단지 한 줌 밖에 안 되는 야심가들과 유혹자들이 이 모든 악한 정신들을 발산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라 고, 여러분들은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 이러한 사채를 목도하고서도 여러분은 인간의 정신적 자질 속 에는 악이 제외된다고 의연하게 주장하고 나설 용기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나에게, 내가 이 전재을 너무나도 편협하게 평가하고 있다고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전쟁 은 마찬가지료ㅗ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드러내 보여 주었으며 그들의 영웅적 용기, 자기 희생, 사회적 연대감까지도 고스란히 보여 주지 않았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 여 사람들이 정신분석에 대해 그렇게도 자주 범하곤 했던 그러한 부당한 행동에 동조하지 마시기 바 랍니다. 정신분석이 어느 하나를 주장하기 위해서 다른 어느 하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사람들 은 그렇게 비난해 왔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 본성속에 있는 고귀한 것을 향한 노력들을 부정하 려고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가치를 과소 평가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반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검열을 받는 사악한 꿈-소망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꿈-소망을 억누르고 알아보기 어렵게 만드는 검열의 존재도 보여 주었습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사악함을 우리가 이 렇게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까닭도 실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부정하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 게하여 인간의 정신 생활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편 협한 윤리적 평가를 포기하기만 한다면 인간의 본성속에 있는 악과 선의 관계에 대한 더욱 정확한 공 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꿈-해석에 대한 우리의 연구 결과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우리에게 생경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아마도 훗날 다른 방법을 통하여 그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은 이것 하나만 확실히 해둡시다. 꿈-왜곡은 검열의 결과 로서, 밤중에 잠자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움직이고 있는 어딘지 모르게 혐오스러운 소원 충동 Wunschregung에 대하여 자아의 용인된 경향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러 한 비난받아 마땅한 소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꼭 밤중에남 나타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해야 할 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들 연구의 다른 성과를 강조하는 것을 게을리한다면 그것도 역시 부당한 일이 될 것 입니다. 잠자는 동안 우리를 방해하는 꿈-소망은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것이며 그것은 꿈-해석을 거 친 뒤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알려집니다. 따라서 그것은 당시에는 앞서 논의한 의미에서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그것은 그 당시에는 무의식적인 것이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이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많은 경우에서 경험했던 바와 같이 꿈을 꾼 사람은 그 꿈-해석을 통해 그 소원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에도 그것을 여전히 부정하기 때 문입니다. <트림을 합시다>라는 잘못 말하기를 해석해 주었을 때 우리가 만나게 되었던 그러한 경우 가 되풀이될 뿐입니다 건배의 축사를 했던 그 사람은 그 당시에도, 또 그 이전에도 자신의 상사에 대 하여 그러한 불경스러운 감정을 느껴 본 일이 없었다고 몹시 분개하면서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우 리는 그 당시에 이미 그러한 확언의 가치를 의심한 바 있으며 말하는 당사자는 계속적으로 자신의 내 부에 도사리고 있는 감정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고 가정을 함으로써 그 사실을 보완해 보았던 것 입니다.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꿈을 해석할 대에는 항상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므로 우리의 견해는 차츰 의미를 갖게 됩니다. 정신 생활에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오래 전부터 모르고 있을 뿐 아 니라 어쩌면 단 한번도 의식되지 않는 그러한 과정이나 경향들이 있다는 가정을 할 수 밖에 없습니 다. <무의식>은 그러므로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는데, <그때>라든가 <일시적으로>라는 말은 무의식의 본질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때에는 잠재되어 있었다>라는 뜻일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 로> 무의식적이라는 뜻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물론 다른 기회에 또 많은 것을 언 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열 번째 강의 꿈의 상징적 의미(꿈-상징에 대한 프로이트의 논의는『꿈의 해석』여섯 번째 장의 〈꿈에서 상징에 의한 묘사: 그 밖의 전형적인 꿈〉부분을 참조하라. 신사 숙녀 여러분, 꿈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는 꿈-왜곡은 용인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소원 충동에 반대하는 검열 활동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꿈-왜곡에 책임 을 지고 있는 요인은 검열 하나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꿈-왜곡이라는 이러한 작용에 는 또 다른 계기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계속적인 꿈의 연구를 통하여 발견하게 될 것입니 다. 그것은, 꿈-검열이 배제되는 경우에도 우리는 역시 꿈을 이해할 수 없으며 외현적 꿈은 잠재적 꿈 -사고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꿈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이 다른 계기, 꿈-왜곡에 관여하는 이러한 새로운 요소는 우리의 해석 기술 속에 있는 결함에 유의하게 되면서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미 고백한 바 있듯이 피분석자에 게 꿈의 각 요소에 대한 아무런 연상도 전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경우는 피분 석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렇게 빈번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강요하면 연상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연상이 꽉 막혀서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어쩌다 강요된 연상이 떠오른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그것이 아닐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 이 정신분석의 치료중에 일어나면 거기에는 필시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지금 여기에서는 그 부분은 다루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꿈-해석에 서도 일어날 수 있고 또 자기 자신의 꿈-해석에서도 발생합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어떠한 강요나 추 궁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면 그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우연이 규칙적으로 일정한 꿈-요소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우리의 꿈-해석 기법이 기능을 하 지 못하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했으나 결국에는 거기에서 어떤 법칙성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러한〈침묵하는〉꿈-요소를 스스로 해석하고, 우리만의 방법으로 그에 대한 번역을 시도해 보려는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새로운 보충적 방법으로 꿈-해석을 시도할 경우 언제나 만족할 만한 의미를 얻게 되는 반면, 그러한 새로운 처치법을 과감하게 도입하지 않는 경우 꿈은 항상 의미없는, 관련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파편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어쩔 수 없 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비슷한 경우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처음에는 주저했던 우리의 시도에도 확 실성이 부여될 것입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다소 도식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허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변조된 것이 아니라 단지 단순화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들은 일련의 꿈-요소들에 대해서 일정한 번역문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통속적 인 꿈 해몽 책들에서 자신들의 꾼 꿈에 대한 해몽을 찾아내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연상법에서 는 어떤 꿈-요소에 대해서 일정한 대체물이 나타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즉시, 이러한 해석 방법은 자유 연상을 통한 이전의 해석 방법보다 훨씬 불확실하고 공 격받기 쉽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자, 그러나 여기에는 또 첨가해야 할 사항이 있습 니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그러한 일정한 번역문을 충분히 모아 나가다 보면 꿈-해석의 이러한 부 분은 실제로 자기 자신의 지식으로 채울 수 있었으리라는 것과 정말로 꿈꾼 사람의 연상 내용이 없이 도 그 꿈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어떻게 깨닫게 되는지 에 대해서는 우리 논쟁의 후반부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꿈-요소와 그의 번역 사이의 이러한 항상적 관계를 〈상징 관계 Symbolbeziehung〉라고 부르고 또 꿈-요소 그 자체는 무의식적인 꿈-사고의 〈상징〉으로 부르기로 합시다. 내가 이전에 꿈-요소와 그 것의 본래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그것들을 세 가지로 구분했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는 전체에 대한 부분의 관계, 또 하나는 암시의 관계이고 마지막 하나는 형상화의 관계 입니다. 네 번째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만 했지 그것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네 번째 가 바로 여기에 도입되고 있는 상징 관계입니다. 이 관계와 관련해서는 매우 흥미있는 논의가 이어지 는데, 상징적 의미에 대한 특별한 연구를 설명하기 전에 이러한 논의를 다루어 보기로 합시다. 상징 의미론은 아마도 꿈-이론 Traumlehre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장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상징은 불변의 고정적인 번역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고대의 통속적인 꿈-해석의 이상을 실현해 준다고 볼 수 있으나, 그것은 우리의 해석 기술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입니 다. 어떤 경우에는 상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꿈을 꾼 당사자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도 상징을 통해서 꿈을 해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꿈-상징 Traumsymbol과 거기에 덧붙여 꿈꾼 이의 성품, 그가 살고 있는 생활환경, 꿈을 꾸게 만든 인상 같은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 꿈을 즉시 해석하고 쉽게 번역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재주는 꿈의 해 석자를 우쭐하게 만들고 꿈꾼 이를 감동시킵니다. 그것은 꿈을 꾼 사람에게 일일이 물어 보아야 하는 그 힘든 작업과 뚜렷하게 비교되면서 기분 좋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여기서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 다. 재주를 부리는 것이 우리의 과제는 아닙니다. 상징의 지식에 근거한 해석은 연상법을 대체할 수 있고 또 그것과 비교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상징에 의한 해석법은 연상법의 보완일 뿐이며 그것과 연결된 구조 속에서만 유용한 결과를 제공합니다. 꿈꾼 이의 심리적인 상황에 대한 지 식과 관련해 보면, 여러분들이 평소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꿈만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꿈을 꾸게 만 든 원인이 되는 그날 그날의 사건에 대해 일반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피분석자에 게 떠오른 연상이 바로 그 사람의 심리적 상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지식을 제공하곤 한다는 점 등을 고려에 넣어야 합니다. 후에 언급하게 될 관련성을 고려해 볼 때, 매우 특이하다고 할 만한 점은 꿈과 무의식 사이에 상징 관계가 존재한다는 우리의 주장에 대해 다시금 격렬한 항의가 제기되고 있 다는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정신분석에 웬만큼 동조하던, 판단력과 명망을 갖춘 사람들까지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동조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동과 관련해서 또한 특이한 점은, 첫째로 상징이 꿈에만 관 계되는 매우 독창적이고도 특징적인 사항이 아니라는 것과, 둘ㅉ로 정신분석이 놀랄 만한 새로운 발 견을 풍부하게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꿈에서 상징을 읽어 내는 작업 자체가 정신분석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와서 꿈의 상징성에 처음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발견한 사람으로는 철학자 쉐르너를 들 수 있습니다. (쉐르너의 '꿈의 생활'참조) 정신분석은 다만 쉐르너의 이 발견을 확 인한 것이며 근본적으로 그것을 수정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꿈의 상징적 의미의 본질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의 사례들에 대하여 듣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나도 내가 아는 것을 여러분 들에게 기꺼이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는 우리가 원하는 정도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백해야만 하겠습니다. 상징 관계의 본질은 비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임의적으로 아무렇게나 하는 비교는 아닙니다. 이러한 비교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조건이 전제되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는 있으나 이 조건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일반적 으로 어떤 대상이나 어떤 과정을 비교할 수 있는 것처럼 꿈속에서도 그와 같이 모든 것에 대한 상징 이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꿈은 또한, 어떤 것이든 모두 상징화Symbolisierung하는 것이 아니라 잠 재적 꿈-사고 속에 있는 어떤 특정한 요소만을 상징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양 방향에서 모두 제약이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정해야 할 점은, 상지의 의미가 항상 예리하게 구분되 는 것은 아니며 보완이나 표현, 그 외에 그와 비슷한 것들과 혼동되며 암시에 가까운 것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련의 다른 상징에서는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비교가 매우 뚜렷하게 나타 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상징에서는 추정되는 이러한 비교의 준거Tertium comparationis, 즉 공통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서 그 공통점을 찾아낼 경우도 있지만 어떤 대는 영원히 숨겨진 채로, 남겨질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상징이 하나의 비교하고 한다면 이러한 비교를 알지도 못하는 채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 면서 그러한 비교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꿈꾼이는 그러한 비교 를 설명해 주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징 관계는 그러므로 매우 특이 한 종류의 비교라는 것, 그 근거를 우리는 아직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주지하셔야 합 니다. 어쩌면 나중에 가서야 이러한 미지의 것에 대한 시사점이 드러날 것입니다. 꿈속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사물의 범위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전체로서의 인간 육체, 부모, 자 식, 형제 자매, 출생, 죽음, 나체 등. 또 그리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유일하게 전형적인 것으로 서는 전체로서의 인간 존재에 대한 규칙적인 표현으로서 〈집〉이 있습니다. 그것은 쉐르너도 인정했던 것 이었는데 다만 그는 이 상징에 대해 그에 맞지 않는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꿈속에서 어떨 때는 매우 기분이 좋아서, 또 어떨 때는 걱정에 가득 차서 집의 전면을 기어 내려오는 일이 있 습니다. 벽면이 매끈한 집은 남성이고, 어딘가 튀어나온 부분이나 발코니가 있어서 몸을 의지할 수 있 으면 그 집은 여성입니다. 부모는 꿈속에서 황제나 여황제, 왕이나 여왕, 그 밖에 매우 위엄 있는 사 람으로 묘사됩니다. 꿈은 이 경우에 매우 경건합니다. 자녀나 형제 자매의 경우에는 그렇게 자애롭지 못합니다. 그들은 작은 동물이나 해충 따위로 나타납니다. 탄생은 거의 언제나 물과의 관계로 표현됩 니다. 사람이 물 속으로 뛰어들거나 물 속에서 솟아오르고 아니면 어떤 사람을 물 속에서 구출하거나 혹은 자신이 물에서 구출되거나 하는 등, 물이 어머니와의 관계로 상징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꿈속에 서 여행을 떠나는 것, 기차타고 가는 것 등으로 표현됩니다. 죽어 있는 상태는 갖가지의 어둡고 공포 스러운 암시로 상징되고 나체는 옷이나 제복 등으로 상징됩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상징 묘사 Symboldarstellung와 암시 묘사Suggestion darstellung 사이의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다는 것을 깨닫 게 되셨을 것입니다. 위에 예를 든 것들의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영역에 서의 대상과 내용은 매우 풍부한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생활의 영 역으로서 성기, 성적 과정, 성교에 관한 것들입니다. 꿈-상징의 거의 대다수는 성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주목할 만한 불균형이 드러나는데, 표현되는 대상의 수는 적은 반면 그에 대한 상징은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적인 것들은 어느 것이나 거의 동등한 가치를 갖은 수없이 많은 상징으로 표현될 수 있게 됩니다. 이ㄸ 그 상징을 해석해 주면 일반적으로 사람들 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상징 해석은 꿈을 표현하는 다양성에 비하면 매우 단조롭습니다. 성의 상징 해석Symboldeutung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이 마음에 들 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강의에서 성생활Sexualleben의 내용들이 언급 되는 것은 처음이므로 내가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려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잠깐 설명해 드려야 할 책임을 느낍니다. 정신분석은 사실을 은페하거나 암시로 그치게 할 하등의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성적인 내용에 관한 모든 것을 그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올바르고도 분별 있는 행동으로 생각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방해가 되는 부수적인 생각을 가장 쉽게 멀리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성과 남성이 섞여 있는 이 청중들 앞에서 강의한다는 사실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초보자를 위해 적당히 서술해도 되는 학문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녀들만을 위한 학문 또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 강의를 듣고 있는 여학생들은 이 강의실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남성들과 똑같이 대우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 습니다. 꿈속에서 남성의 성기를 표현하는 상징들은 매우 많은데, 그것들 사이에는 비교되고 있는 공통점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우선적으로 남성의 성기 일반에는 신성한 숫자 3이 상징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양성의 성기 중 더욱 눈에 두드러지고 관심이 가는 성기인 남성의 음경은 첫째로, 형태가 비스하게 보이는 것, 즉 길고 높이 솟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들, 지팡이, 우산, 몽둥이, 나무, 그 밖에도 그와 비슷한 것들을 통해 상징적인 대체물들을 찾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신체에 침입해 들어가는 특성과 상처를 입히는 특성을 지닌 것들, 모든 종류의 뾰족한 물건들, 예를 들어 칼, 단도, 창, 검 등과 총포류의 무기들, 총, 피스톨, 그 모습에 있어서 매우 쓸모 있어 보이는 권총 같은 것들이 음경의 상징으로 이용됩니다. 소녀들의 불안스러운 꿈들에서는 칼이나 총기 등을 갖고 있는 남자에게 쫓기는 상황이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마도 꿈의 상징성이 드러나는 가장 빈번한 경우로서 여러분들도 쉽게 번역할 수 있는 것들이 될 것입니다. 즉, 수도꼭지, 물뿌리개, 분수 등이 그 렇고, 늘일 수 있는 물건들, 즉 걸 수 있는 램프, 샤프 펜슬도 음경을 상징합니다. 연필이나 펜 대, 손 톱 가는 줄, 망치, 또 그밖의 다른 기구 등도 의심의 여지없이 남성 성기의 상징인데 이것은 그 신체 시관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품고 있는 견해와 관련된 것입니다. 중력에 대항하여 곧추설 수 있는 음경의 특이한 성질, 즉 발기라는 부분 현상은 기구, 비행기, 또 최 근에 이르러서는 체펠린Zeppelin 비행선 등과 같은 것들과 같은 상징 표현까지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꿈은 그 밖에도 이 발기 현상을 상징화할 수 있는 훨씬 탁월한 표현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꿈은 이 성기를 인간적 전 존재의 본질로 인식하고서는 인간 자체를 날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처럼 아름답게 생각되던 비행의 꿈이 일반적인 성적 흥분이라던가 발기의 꿈으로 해석된다고 해서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신분석 연구가들 중에서는 페더른P. Federn이 모든 의혹에 대항하여 이 해석을 확립시켰습니다. (페더른의 '두 가지 전형적인 꿈-감각에 대하여Uber zwei typische Traumsensationen'(1914)참조 ) 또 연구에 임할 때의 냉정함으로 인해 세간의 칭송을 받았고, 팔다리 등을 인위적으로 위치시킴으로써 그 결과가 꿈속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실험한 바 있으며, 정신 분 석과는 인연이 없었고 어쩌면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을 폴트도 자신의 실험을 통해 똑같은 결 론에 도달했습니다.(폴트의 『꿈에 대하여』참조) 여성들도 비행의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떤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꿈은 통상 소원 성취의 꿈이며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남성이기를 원하는 소원이 여성들에게 흔히 발견된다는 점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성과 똑같은 감각 작용을 통해서 이 소원을 실현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해부학에 대해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도 그 성기 안에 남성의 것과 모양이 비슷한 작은 음경을 가지고 있고 음핵이라 불리우는 이 작은 음경은 유년기나 성교를 할 수 있는 나이 이전의 시기에 남 성의 큰 음경과 같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들 중에 별로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로 서는 도마뱀이나 물고기, 또 무엇보다도 그 유명한 상징인 뱀이 있습니다. 모자 나 외투 따위가 어떻게 해서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아내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나 그 상징적 의미는 명백합니다. 남성 성기의 대체물로서 다른 사지 중 하나, 즉 발이나 손을 상징적인 의미로 생각해도 좋을지 어떤지에 대한 의문이 솟아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전체적인 관련성 속에서나 그에 대응하는 여성적인 대상을 생각해 보면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 다. 여성의 성기는 여성적 성기와 공통의 성질을 갖는 것들, 즉 공동이 있어서 그 안에 무언가를 받아 들일 수 있는 것들이면 어느것이든 그러한 여성적 성기의 대상들로 상징적으로 표현됩니다. 갱도, 구 덩이, 구멍들, 또 용기나 병들, 서랍이나 캔, 가방, 깡통, 상자, 호주머니 등이 그것들입니다. 배도 또한 그러한 대열에 끼일 수 있습니다. 어떤 상징들은 여성의 성기 자체보다는 어머니의 자궁과 더욱 긴밀 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즉, 장롱이나 아궁이, 무엇보다도 방-상징이 그렇습니다. 방-상징은 집-상 징과 나란히 있습니다. 방문이나 대문은 다시금 성기의 공동에 대한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옷감도 또 한 여성의 상징이며 목재나 종이, 그 외에도 이와 같이 재료들로 이루어진 사물들, 예를 들어 식탁이 나 책 등도 같은 상징입니다. 동물들 중에서는 적어도 달팽이나 조개는 오인의 여지없는 여성의 상징 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체의 부분 중에서는 입이 성기의 공동을 대리하는 것이며 건축물들 중에서는 교화와 성당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모든 상징들이 다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 닙니다. 유방은 성적 기관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는 것으로서, 여성 신체 중에 커다란 반구형으로 이 루어진 부분인 둔부와 마찬가지로 사과나 복숭아, 그 밖의 과일 일반으로 표현됩니다. 남녀 양성에 있 어서 성기를 덮고 있는 음모는 꿈속에서 숲이나 관목숲으로 묘사됩니다. 여성 성기는 그 복잡한 국소 구조로 인해 종종 바위와 숲, 물이 있는 하나의 풍경으로 묘사되는 수가 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 입니다. 반면에 남성 성기의 그 위엄있고 당당한 기능적 장치는 모든 종류의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계들을 그것의 상지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여성 성기의 상징 중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는 보석 상자가 있습니다. 보석과 보물은 꿈속에서 또 사랑하는 사람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 다. 또 단것들은 성교 과정 중의 쾌락에 대한 표현으로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자기 자신의 성기에서 비롯된 만족은 모든 종류의 유희로 암시되며 피아노 연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자위Selbstbefleckung 에 대한 극히 뛰어난 상징적 표현은 활강이나 미끄럼타기, 또는 나뭇가지 꺾기 등이며 특히 기묘하다 고 할 만한 자위의 상징은 이가 빠지는 것이나 빠져 버린 이입니다. 그것은 우선 확실하게 자위 행위 에 대한 벌로서의 거세Kastration를 상징합니다. 성교 행위에 대한 특별한 표현은 이제까지 보고된 것 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댄스나 승마, 그리고 등산 등과 같은 리드미컬한 활동 정도를 언급할 수 있겠고 차에 치이는 것과 같은 난폭한 체험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수공업 작업과 무기로 위협하는 것등도 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상징을 사용할 때나 그것 을 번역할 때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기대에 반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자주 일 어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상징으로 나타나는 이들 표현 중에서 양성의 차이가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떤 상징들, 예를 들어 작은 아이나 어린 아들, 어린 딸 등은 남성의 것이든 여성의 것이든 상관 없이 성기 일반을 나타냅니다. 한 편으로 주로 남성적인 성기의 상징이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 니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인간의 성적 관념의 발달에 대한 통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상징의 이러한 모호성은 외관상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러한 상징 중에서도 무기나 호주머니, 상자와 같은 명백한 것들은 이러한 양성적인 사용에서 제외되 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표현되어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징에서 출발하여, 성적인 상징이 어느 영역으로부터 가장 많이 차용되어 왔는지에 대한 개괄적 조망을 하려 합니다. 또 이해하기 힘든 공통점을 갖고 있는 상징들을 특별히 고려하면서 몇 가지 사항을 덧붙이려 합니다. 그렇게 어둡고 흐 릿하게 보이는 것으로서는 모자, 또는 머리를 덮는 용도로 쓰이는 것들을 들 수 있겠는데, 그것은 일 반적으로 남성 성기의 상징을 의미하지만 여성의 그것을 의마하는 것으로도 쓰입니다. 마찬가지로 외 투는 남성을 의미하는데, 항상 꼭 성기와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이 경우에 여러분들은 왜냐고 물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이트는〈Mantel(외투)〉와 〈mann(남자)〉사이의 유사음 때문이라고 추측한다.'새로운 정신분석 강의'(프로이트 전집 3, 열린책들)참조 ) 밑으로 내려뜨리는 것이면서 여성들에 의해서는 사용되지 않는 넥타이는 명백하게 남성적인 상징입 니다. 흰 속옷이라든가 린넬 같은 것은 여성적인 것이고 옷이나 제복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나체나 신체 형태에 대한 대체물입니다. 구두나 슬리퍼는 여성 성기에 대한 것이고 식탁이나 나무는 수수께끼 같지만 확실하게 여성적인 상징으로 이미 언급된 바 있습니다. 사다리, 계단, 층층대, 혹은 그것들을 올라가는 것 등은 확실하게 성교의 상징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올라가는 행위에 있어서 의 리듬감이 그것들 간의 공통점으로 우리 눈에 뜨이게 될 것 입니다. 또 어쩌면 그것들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흥분이 커지고 숨쉬기가 가빠진다는 것도 공통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풍경은 여성적인 성기의 표현으로 이미 인정한 바 있습니다. 산과 바위는 남성 성기의 상징이고 정원은 여성적 성기의 상징으로 가장 흔히 사용됩니다. 과일은 아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슴에 대한 상징입니다. 야수는 관 능적으로 흥분되어 있는 인간을 의미하며 더욱 나쁜 본능이나 정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꽃과 화초 등은 여성 성기의 상징이고 혹은 더욱 특별하게 말하자면 처녀성을 상징합니다. 여러분들은 꽃이 실 제로도 식물의 성기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방을 하나의 상징으로 인식한 바 있습니다. 이 표현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방의 창문이나 입구, 출구가 신체의 공동을 의미하게 됩니 다. 방이 열려 있는 것, 또는 닫혀 있는 것 등도 이 상징에 덧불여지며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는 확실 한 남성의 상징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꿈-상징의 재료하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완결된 것이 아니며 더욱 깊이 들어갈 수도 있고 더욱 폭넓게 확장시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만 으로도 여러분들에게는 충분함 그 이상이며 여러분들을 언짢게 만들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 러분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렇다면 정말 성적 상징의 한 가운데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내가 입고 있는 모든 옷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모 든 물건들이 전부 다 성적 상징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까?〉 이렇게 당혹스러운 질 문을 퍼붓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 중 제일 처음 떠오르는 질문은,〈우리는 도대체 어디 에서 이러한 꿈-상징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꿈꾼이 자신도 그 의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고 또 가르쳐 준다 하더라도 극히 불충분한 것에 불과할 뿐인데 말입니다〉가 될 것입니 다. 나는, 〈그것들은 매우 여러 가지 원천에서 끌어올 수 있습니다. 동화나 신화들, 농담이나 기지, 민속 학, 즉 풍습이나 습관, 격언, 민중들의 민요에 대한 학문들, 또 시적이고 통속적인 관요어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려 합니다. 위에 열거한 것들 중의 여기저기서 그와 똑같은 상징성이 발견되어 대부분의 영역에서 특별한 가르침이 없어도 그 상징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원 천들을 하나 하나 검토해 들어가면 꿈-상징과 대단히 많은 유사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해 서 우리의 해석에 대해 확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쉐르너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는 꿈속에 서 빈번하게 〈집〉이라는 상징에 의해 표현된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상징에 연이어 서 창문과 문, 대문은 우리 몸이 갖고 있는 공동으로 향하는 입구에 해당된다는 것, 또 집의 전면은 매끈할 수도 있고 돌출 부분이나 발코니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때의 돌출 부분과 발코니는 붙잡을 수 있는 구조물로 해석된다는 것 등도 설명드렸습니다. 이러한 상징성은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관용어 에서도 발견되는데 아주 친한 사람을 만났을 때 다정하게 〈야, 이 친구야altes Haus〉(〈altes Haus 〉는 〈오래된 집〉이라는 뜻이다.) 하고 인사하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또 〈그를 한대 때려 주었 다einem eins aufs Dachl geben〉(〈einem eins aufs Dachl geben〉는 〈지붕을 한 번 내리치다〉라 는 의미이다.)고 말할 때나〈그가 좀 돈 거 아니야es sei bei ihm nicht richtig im Oberstubchen?〉 (〈Oberstubchen〉는 글자 그대로는 다락방. 여기서는 뇌를 뜻함) 라고 주장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부학에서는 몸 속의 공동을 직접적으로 〈몸의 입구Leibespforten〉라고 부릅니다. 꿈속에서 만나는 황제 부부나 왕과 왕비가 부모로 해석된다는 것은 처음에는 몹시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유사점은 동화 속에서 발견됩니다. 〈옛날에 왕과 왕비가 살았습니다〉라고 시작하는 많은 동화는 〈옛날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았습니다 〉라는 뜻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통찰이 어렴풋 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집에서도 농담삼아 아이들을 왕자로 부르고 제일 맏아들은 황태자로 호칭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왕도 자기 자신을 〈국부〉라고 부릅니다. 작은 아이들을 지칭할 때 농담처럼 벌 레들Wurmer이라고 부르고, 또 때로는 연민 섞인 감정으로 불쌍한 벌레das arme Wurm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집〉의 상징으로 돌아가 봅시다. 꿈속에서 우리가 집의 돌출부를 잡을 수 있는 손잡 이zum Anhalten로 인식하는 것은 커다랗게 잘 발달된 유방을 가리켜서 〈저 여자는 붙잡을 데가 있 군Die hat etwas zum Anhalten〉이라고 말하는 독일의 유명한 속어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한 경우 에 독일인들은 또 〈 저 여자는 집 앞에 많은 목재를 쌓아 두고 있어Die hat viel Holz vor dem Haus〉라고 다르게 표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마치 목재는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상징이라는 우리 의 해석을 도와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목재Holz에 관해 또 다른 것을 살펴봅시다. 여러분들 은 이 재료가 어떻게 해서 모성적이고 여성적인 의미로 사용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경 우에 비교 언어학이 도움이 되어 줄지 모르겠습니다. 독일어 단어 〈Holz(나무)〉는 재료, 원료를 뜻 하는 그리스 어인과 동일한 그리스 어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재료를 뜻하던 이름이 나중 에 가서는 어떤 특별한 재료만을 뜻하는 이름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그렇게 드물지만은 않은 것 같습 니다. 대서양에 마데이라Madeira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 섬을 발견했을 당시에 붙인 이름인데, 그 이유는 그 섬이 발견 당시에 숲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기 때 문이라고 합니다. 마데이라는 이를테면 포르투칼 어로 목재Holz라는 뜻입니다. 이마데이라라는 이름은 다시금, 재료 일반을 뜻하는 라틴 어인 마데이라Materia에서 조금 변형된 단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 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금방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테이라는 엄마Mater, 어머니Muter라는 어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본바탕인 재료는 그러므로 모성적인 부분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목재를 여자나 어머니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그러므로 그에 대한 옛 관념이 이러져 내려온 것입니다. 탄생은 꿈속에서 언제나 물과의 관련성을 통해 표현됩 니다. 물 속으로 뛰어들거나 혹은 물 속에서 나오는 경우인데 그것은 분만을 하거나 출생한다는 의미 가 됩니다. 이ㄸ 이 상징은 두 가지의 발생사적인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즉 모 든 포유 동물은(인간의 조상까지도 포함하여)수서동물에서 진화된었다는 것이고(이것은 두 가지 사실 중 더 먼 옛날의 이야기일 것이다 또 모든 포유 동물, 모든 인간은 그의 존재의 첫 시기를 물속에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태아의 형태로 어머니의 몸 속에서 양수에 담겨 살았으며 출생과 함께 물 속에서 나오게 된것입니다. 나는 꿈꾼 이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사실을 도무지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그는 아마도 어린 시절에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출생에 관해 다르게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마저도 이러 한 상징 형성Sumbolbildung에는 아무런 역할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아직 어린이였을 적에 사람들은 그에게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황새는 어디서 그 아기를 물고 오는 것입니까? 연못에서 아니면 샘물에서, 그러므로 다시금 물 속에서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내 환자 중의 한 사람은 (그 당시에는 어린 백작이었는데) 어릴 때 이 이야기를 듣 고는 오후 내내 해방 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사람들은 그가 성에 있는 한 연못가에 엎드려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는 작은 얼굴을 수면 위로 기울이고는 물 속 깊은 곳에서 혹시나 아기 같은 것을 볼 수 있을까 열심히 노려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토 랑크가 비교 연구를 행한 바 있는 영웅들 의 출생에 관한 신화속에는(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기원전 2800년경의 아가데Agade의 사르곤 Sargon 왕에 대한 신화인데 ) 물 속에 처박는 것과 물에서 구출되는 이야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랑크의 '영웅 탄생의 신화Der Mythus von der Geburt des Helden'(1909)참조) 랑크 는 이러한 출산 이야기가 꿈속에 흔히 등장하는 표현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꿈속에 서 어떤 사람을 물에서 구출할 때에는 그 자신이 그 사람의 어머니가 되거나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됩니다. 신화 속에서 아기를 물에서 구해 내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그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잘 알려져 있는 농담 중에는 어떤 영리한 유대인 남자아이에게 누가 모세의 진짜 어머니 냐고 물은 결과, 그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공주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아니야, 공주는 아기를 그저 물 속에서 구해냈을 뿐이잖아〉라고 말하자 아이는 〈공주가 그렇게 말했을 뿐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이는 이로써 신화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내리고 있음을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프로이트 전집 16, 열린책들)에서 〈신화의 정확한 해석〉을 그의 이론 전개의 기본으로 삼았다.) 꿈속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것 역시 어린이 놀이방의 방식입니다. 어린아이가 자기가 그리워하고 있는 죽은 사람의 소재을 물으면 어른들은 그에게 〈그 사람은 여행을 떠났다.〉고 말해 줍니다. 꿈-사징은 이처럼 어 린아이들에게 쓰여지고 있는 변명 같은 것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 나는 또다시 반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인들이 피안에 대해서 말하면서 〈어떤 여행자도 다시 돌아오지 못한 미지의 땅 〉이라고 표현할 때, 그들도 역시 이러한 동일한 상징 관계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마지막 여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일입니다. 고대의 의식에 대해서 잘 알 고 있는 사람들은 예을 들어 고대 이집트 인들의 신앙 속에서 죽음의 나라로 떠나는 여행에 대한 관 념이 매우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생각되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치고 여행자가 영행 안 내서을 휴대하듯이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미라에게 『사자의 서Totenbuch』가 주어졌는데 이것은 오 늘날도 여러 군데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묘지가 살고 있는 곳에서 분리되어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면서부터 죽은 자의 이 마지막 여행은 현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성기의 상징이 꼭 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 중의 누구하고 언젠가 한 번은 여자에 대해 〈 늙은 할멈alte Schachtel〉(Schachtel은 여기서 성냥갑이라고 할 때의 그 작은 상자 따위를 뜻함)이라 고 지칭하는 무례함을 범한 적이 있을 텐테, 그때 여러분들은 그 말이 일종의 성적 상징die sexuelle Symbolik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약 성서에는 〈여자는 깨지기 쉬운 그릇이다〉라 는 말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성서에는 시적이라고 할 만한 문체로 묘사된 성적 상징의 표현들로 가 득 차 있는데 그것들은 언제나 제대로 이해되었던 것은 아니어서, 예를 들어 솔로몬의 『아가서』에 대한 주석들에는 여자를 집으로 표현하고 문은 여자의 음문을 상징하는 예들이 꽤 널리 퍼져 있습니 다. 예를 들어 자신의 아내가 처녀가 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그 여자의 문은 열려 있었다 〉라고 탄신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식탁에 비유하는 상징도 이 히브리 문학에서는 유명한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말하기를 〈나는 남편을 위해 식탁을 정돈해 두었는데 그가 그것을 뒤엎어 버 렸다〉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다리를 저는 아이가 태어난 것은 〈남편이 식탁을 뒤엎었기〉때문이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증들은 브륀에 살고 있는 레뷔L. Levy의 논문에서 발췌한 것들입니다.(레뷔 의 「성서와 탈무드에 나타난 성적 상징Die sexualsymbolik der Bibel und des Talmuds」(1914)참조 - 원주) 꿈속에 나타나는 배Schiff 역시 여자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배라는 단어가 원래 점토질 용기 의 이름이었으며 〈Schaff(물통)〉이라는 단어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어원학자의 말을 신빙성 있 게 만들어 줍니다. 화덕이 여자나 자궁을 뜻한다는 것은 〈코린트의 페리안드로스와 그의 아내 멜리 사〉라는 그리스의 전설이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 폭군은 자기가 너 무나 열정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질투에 휩싸여 죽여 버린 자기 아내의 망령에게 자기 앞에 나타난 망 령이 누구인지 알게 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하는데 그 죽은 이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사실 을 상기시킴으로써 자신을 확인시켰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그(페리안드로스)가 차가운 아궁이 에 자기의 빵을 집어 넣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크라우스F.S. Krauss가 편찬해 낸 '안트로포피테 이아Anthropophytheia'에는 여러민족들의 성생활에 대한 내용들이 다른 어떤 책도 필적 할 수 없을 만큼 집대성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독일의 어떤 지방에서는 아기를 분만한 여자를 가리켜 〈그 여 자의 화덕은 부서졌다Der Ofen ist bei ihr zusammengebrochen〉고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불을 준비하는 것, 그 밖에도 그와 연관된 모든 것들에는 성적 상징들이 철저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불꽃 은 언제나 남성의 성기이며 불을 피워 올리는 곳, 화덕은 여성의 자궁입니다. 꿈속에 나타나는 경치가 여성의 성기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은 〈어머니인 대지 〉가 옛 사람들의 관념과 의식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경적에 대한 개념도 얼마나 이 상징성에 의해 규정되었던가를 신화학자들에게서 배우시면 될 것입니다. 꿈속에서 방Zimmmer은 부인을 표상 하고 있다는 여러분들은 Frau(부인) 대신에 Frauenzimmer라고 표현하는 우리들의 관용어의 예에서부 터 이끌어 내어 설명하려 할실 것입니다. 이 경우 인간적인 존재는 자신에게 정해진 공간을 통해서 대리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와 유사하게 우리는 〈Hohen Pforte(궁중)〉를 터키의 황제와 그의 후궁 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통치자를 지칭하는 파라오Pharao도 〈궁중의 큰뜰 〉을 뜻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고대 동양에서도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이중문 사이에 있는 큰 뜰은 사람들의 집합소로서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의 광장과 같은 역할을 했음.)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만 이러한 도출이 너무 피상적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으로서 방의 의미가 여성의 상징이 되는 데 더 많이 작용하였으리라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생각됩니다. 우리는 집을 이미 그러한 의미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신화나 시적인 문체에서 등장하는 도시, 성채, 성, 요새 등도 여성에 대한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독일어를 말하지 못하거나 알아듣지 못하 는 사람의 꿈을 참고로 하면 그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 나는 주로 외 국어를 말하는 환자들을 다루어 왔는데, 그들의 언어에는 이것과 유사한 관용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 고 그들의 꿈에서도 방은 역시 여자를 뜻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꿈 연구가인 슈베르트G. H. von Schubert가 이미 주장한 대로 상징 관계는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시사하 는 또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꿈의 사징Die Symbolik des Traumes』(1814)참조-원주) 나의 환자들 중에서는 독일어를 전연 모르는 환자는 없었으므로 나는 이에 대한 판단을 다른 나라에 서 한 가지 언어만을 할 수 있는 환자들을 상대로 연구하고 있는 다른 정신분석 학자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표현 중에서 농담 속에서나 비속어에서나 또는 시적인 표현, 특히 매우 고전적인 시인들의 묘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꿈속에 나타나는 그러한 상징들만이 아니고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 연 장들, 예를 들어 쟁기같이 새로운 것들도 포함됩니다. 남성의 상징 표현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어쨌든 매우 멀리까지 나아가게 되고 논란이 분분한 영역들까지 근접해 가게 되므로 경제적인 이유에서 여기 서 그치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러한 대열에서 빠져 버렸던 상징인 숫자 3에 관해서만 조금 더 이야기해 봅시다. 이 숫자에 붙여지고 있는 신성함이라는 것이 이러한 상징 관계에서 연유하는 것 인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자연 속에 나타나는 사물 중에서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들, 예를 들어 클로버 잎 같은 것이 문장이나 표장으로 이용되는 현상은 거의 확실하게 그러한 상징적 의미에서 유 래되었으리라는 점입니다. 이른바 프랑스의 문장인 세 잎파리의 백합이나 서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섬들인 시칠리 섬과 남자의 섬Isle of man의 몹시도 이상스러운 문장인 트리스켈레스Triskeles (중앙에서 각각 뻗어 나간 세 개의 굽은 다리)도 단지 남성 성기의 변형에 불과합니다. 고대에 남자의 성기를 그대로 본 뜬 형상은 나쁜 영향력에 대항하는 가장 힘센 방어 수단(재앙막이Apotropaea)으로 여겨졌고 그것은 또,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우리 시대의 부적들은 모두 성기 상징과 성적 상징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은으로 된 몸에 붙이는 작은 장식물들인 네 잎 클로버, 돼 지, 버섯, 말편자, 사다리, 굴뚝 청소부 등을 살펴봅시다. 네 잎 클로버는 원래 상징으로 적합했던 세 잎 클로버를 대신한 것이며 돼지는 옛날에 다산의 상징이었습니다. 버섯은 의심할 여지없이 페니스의 상징인데 또 버섯 중에는 그 생긴 모습이 영락없는 남성의 페니스 그 자체여서 분류 학명을 그것에서 따 온 것도 있습니다(Phallus impudicus). 말발굽은 여성의 성기 입구의 모양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 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굴뚝 청소부는 그가 하는 일을 성교시의 그 일과 속되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에 속하게 되었습니다('안트로포피테이아'참조). 그의 사다리는 우리가 이미 꿈을 다 루었을 때 성적 상징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독일어의 관용어들은 〈steigen(올라가다)〉이라는 단어 가 얼마나 분명하게 성적인 의미로 응용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실례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 은 〈여자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den Frauen nacheur〉라든가 〈늙은 방탕아ein alter Steiger〉라 는 표현을 흔히 씁니다. 불어에서는 la marche가 계단이라는 뜻인데, 플레이 보이를 가리켜서 독일어 와 매우 유사하게도 〈계단을 올라가는 노인un vieux marcheur〉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많은 수의 몸집이 큰 동물들의 성교는 올라가기, 암컷 위에 올라타기를 전제로 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연관성 속 에서 결코 낯선 일이 아닙니다. 나뭇가지를 꺾는 것이 자위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사실은 자위 행위에 대한 속된 명칭과 일치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신화적 유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목 할 만한 사항은 자위와 그러한 자위 행위에 대한 처벌인 거세를 이가 빠지는 것과 이를 뽑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와 같은 내용을 민속학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것들은 꿈꾸는 사람들 중 아주 적은 사람들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할례는 그와 비슷한 의미가 있는 등가물이거나 아니면 거세의 대용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나는 별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보고에 의하면 호주 대륙의 한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할례를 성인 의식 (소년에서 성인 남자로 되는 의식)으로 거행하며 또 그들과 아주 가까이에 살고 있는 다른 종족들은 이러한 할례 의식 대신에 이를 뽑는 의식을 치른다고 합니다. 위에 예시한 몇가지 사실들로 이제 나 의 서술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그것들은 다만 예시에 지나지 않는 것들로서 우리는 물로 그것들보 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비전문가가 아니고 신화학과 인류학, 언어학, 민 속학 분야의 정식 전문가들에 의해서 그와 같은 예시들이 주어진다면 그것들은 얼마나 더 풍부하고 재미있는 것이 될른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점에서 몇가지의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것은 그로써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첫째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꿈꾸는 사람은 꿈을 꾸는 동안은 그러한 상 직적 표현들을 자유롭게 사용하지만 깨어난 상태에서는 그것들에 대해 알지 못하며 재인하지도 못한 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마치도 여러분의 하녀가, 당신이 알기로는 그녀가 분명히 보헤미아 지방에서 태어났고 산스크리트어 같은 것은 배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스크리트 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 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느끼게 되는 놀라움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의 심리 학적인 견해로 제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상징에 대한 지식은 꿈꾸는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의 무의식적인 정신 생활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외에는 다른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가정을 좇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까지는 그저, 일시적으로 혹은 계속적으로 그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의식되지 않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지향적 노력을 가정하 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런데 그 이상의 것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것이 항 상 다른 것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대상들 사이의 비교, 사고의 관계들, 무 의식적인 지식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비교들은 그때 그때마다 항상 새로이 이루어지는 것 이 아니고 이미 완결된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사람들 간에 이루어진 합의, 나아가서 서 로 다른 언어에도 불구하고 생겨난 합의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징 관계에 대한 지식 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관용어는 단지 그 중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다 른 영역에서 얻었던 복잡 다단한 유사점은 꿈꾸는 사람에게는 대부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 도 그것을 알아내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이러한 상징 관계들은 꿈을 꾼 사 람이나 꿈-작업(이 꿈-작업을 통해서 그 상징 관계가 표현된 것인데) 에만 고유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신화나 동화들도 그와 비슷한 상징을 사용하고 있고 민중들도 그들의 속담과 민요 속에서 그것을 사용하고 있으며 비속한 관용어들이나 시적인 환상들도 그러한 상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상징의 영역은 엄청나리만큼 큰 것이고 꿈-상징 영역은 그 중의 극히 일 부분에 불과합니다. 꿈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갖고 있는 문제 전체를 다루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 해 보이지 않습니다. 꿈 이외의 다른 곳에서 쓰이고 있는 많은 상징들 가운데는 꿈속에 나타나지 않 거나 나타난다고 해도 아주 드물게만 보이는 그러한 상징들이 매우 많습니다. 꿈-상징의 많은 것들은 모든 다른 분야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여러분이 확인하셨듯이 여기 혹은 저기에만 간혹 볼일 뿐 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오래된, 이제는 사라져 버린 표현 방식들이 있는데 그것들 중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영역에 각각의 다양한 표현 방식들이 잔존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어떤 것 은 여기에만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저기에, 또 제3의 것은 조금 변형된 형태로 여러 군데에 남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재미있는 정신질환자의 망상이 생각납니다. 그는 공상 속에서 〈기본 언어〉라 는 것을 상상해냈는데, 이 모든 상징 관계들은 바로 이〈기본 언어〉의 잔존물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것은 편집증 환자인 대법관 쉬레버에 대한 프로이트의 사례 연구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프로이트 의 '편집증 환자 쉬레버-자서전적 기록에 의한 정신분석'(프로이트 전집11, 열린책들)참조) 세 번째로, 언급됐던 다른 분야의 상징들은 결코 성적 상징 그것만은 아닌 반면에 꿈에서 등장하는 상징들은 거 의 예외 없이 단지 성적인 대상이나 관계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여러분들에게도 조금 특이하게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이 사실 또한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성적인 의 미를 가지고 있던 상징들이 후에 가서 다른 의미를 띠게 되었고 그 결과 그 상징 의미가 조금 약화된 채로 변형된 의미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꿈-상징에만 몰두하고 있는 한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정상적 상징과 성적 상징 간에는 특별히 긴밀한 관계가 성립되어 있으리라는 추측을 고수할 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이에 관한 매우 중요한 암시가 주어졌습니다. 정신분석과는 무관하게 활동하고 있는 웁살라 의 슈페르버H. Sperber라는 언어학자는 성적인 욕구가 언어의 생성과 발전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슈베르버의 '언어의 생성과 발전에서 성적 요인의 영향에 관하여Uber den Einfluβ sexueller Momente auf Entstehung ung Entwicklung der Sprache'(1912)참조) 최초의 말소리는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서 성적 상대방을 부르는 데 쓰였으며, 기본 언어의 다음 발전 단계는 원시인들의 노동 작업과 병행되어 발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 일들을 공동 작업이었고 율동적으로 반복되는 언어 표현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성적인 관심은 노동 작업으로 전이되었습니다. 원시인들은 이러한 노동을 성적 교섭과 버금가는 대등한 가치가 있는 것, 보상물로 여기면서 동시에 그 노동을 꽤 괜찮은 어떤 것으로 만들어 간 것입니다. 공동 작업 도중에 입에서 뱉어 낸 소리들은 그렇게 하여 두 가지의 의미를 갖게 되었는데, 성행위를 나타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와 똑같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노동 활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쓰였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그 말은 성적 인 의미에서 벗어나서 이러한 노동에만 고정되었습니다. 몇 세대가 지나면서 이렇게 성적인 의미를 가졌으면서도 새로운 의미로 노동 분야에도 적용되었던 이 단어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 다. 이런 식으로 많은 수의 어간들이 만들어졌고, 그것들은 처음에는 모두 성적인 뿌리를 갖고 있었지 만 차차 그 의미를 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요약하여 간추려 놓은 주장이 정확하게 핵심을 꿰뚫고 있다면 꿈-상징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석이 열리게 됩니다. 이렇게 아주 오래된 역사적 상황 을 간직하고 있는 꿈에 어째서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성적 상징들이 있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무기나 연장들은 항상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며 재료들이나 가공된 것들은 항상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며 재료 들이나 가공된 것들은 항상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징 관계는 옛 날의 단어 정체성의 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성기와 같은 이름으로 불려졌던 사물들은 오늘 날 이르러 꿈속에서 바로 그것에 대한 상징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꿈-상징과 유사한 것들을 우리가 다른 영역에서도 발견해 냄으로 해서 여러분들은 정신분석의 성격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 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성격은 정신분석을 일반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는 심 리학이나 심리 치료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신분석적인 작업을 하는 도중에 여타 다른 정신 과학들, 즉 신화학이나 언어학, 민속학, 민족심리학, 종교학과의 관계들이 파생되어 나오느데 그것들에 대한 연구는 귀중한 문제 해명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들 관계를 연구하는 것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잡지가 이러한 정신분석적인 토양 위에서 자라나게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 입니다. 그것은 1912년에 발행되기 시작한, 한스 작스Hans Sachs와 오토 랑크Otto Rank에 의해 운영 된 '이마고Imago'라는 잡지입니다. 이들 학문들간의 모든 관계에서 정신분석은 우선적으로 베푸는 입 장일 뿐 받는 입장은 아닙니다. 정신분석의 낯설어 보이는 결론들이 다른 영역에서도 또다시 발견됨 으로 해서 그러한 결론들이 우리에게 친숙해졌다는 이점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보 아, 기술적인 방법과 시각들을 제공해서 그것들을 다른 영역에서 응용했을 때 매우 유익한 결과가 나 올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정신분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개개 존재들의 영혼의 삶은 정신분석적 인 연구를 통했을 때 우리에게 해명을 던져 줄것이며, 그것들로 우리는 인간 대중의 삶에서의 많은 수수께끼들을 풀 수 있게 되거나 최소한 밝혀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게 우리가 상 정한 바 있던 〈기본 언어〉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가, 또 그것들 중의 대다수가 어 떠한 영역에 그대로 남아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에게 아직 설명드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는 한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대상의 전체 의도도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것 은 바로 신경증의 영역으로서 신경증 환자의 증세와 그들이 드러내는 기타 다른 표현들이 그 재료가 되는 것이며 정신분석은 바로 그러한 것들을 해명하고 치료하기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나의 네 번째 관점은 다시 우리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데,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궤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꿈-검열 작요이 없다고 하더라도 꿈이 우리에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남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 경우에 꿈-상징 언어를 깨어 있는 사고의 언어로 번역해야만 하는 과 제 앞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징은 꿈-검열 작용 말고도 꿈-왜곡을 일으키는 두 번째의 독립적인 변수가 되는 것입니다. 꿈-검열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상징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마 찬가지로 꿈을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매우 편리할 것이라는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꿈을 계속해서 연구해 나가게 되면 꿈-왜곡에 관여하는 또 다른 계기에 부딪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는 곧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꿈-상징에 대한 이 주제를 떠나 기 앞서 나는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를 다루어 보고 싶습니다. 꿈 이외의 다른 분야, 즉 신 화나 종교, 예술, 언어 등에서는 상징적 표현이 그처럼 널리 퍼져 있는데도 꿈-상징에 대해서는 교육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째서 그토록 격렬한 저항이 일어나는가 하는 수수께끼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또 성적인 것Sexualitat에 대한 관계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열한 번째 강의 꿈-작업(『꿈의 해석』의 여섯 번째 장에서 프로이트는 꿈-작업에 대하여 자세히 논하고 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들이 꿈-검열에 관한 것과 상징 표현들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고 해도 꿈 -왜곡 현상을 완전하게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대부분의 꿈들을 이해 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경우에 두 개의 상화 보완적인 기술을 사용하게 되는 데, 여러분들이 대체된 내용에서 원래적인 것에 다다르게 되기까지는 꿈꾼 사람의 연상들을 불러내야 하며 또 여러분 자신의 지식을 통해 알 수 있는 상징들이 갖고 있는 의미를 밝혀 내야 합니다. 이 경 우에 발생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하게 될 것입니다. 꿈-요소와 그것 들의 원래 내용 사이의 관계들을 검토했을 당시에 불충분한 방법을 통해 시도했던 그 작업을 다시 추 진해 봅시다. 그때 우리는 전체에 대한 부분의 관계, 근사 또는 암시 관계, 상징 관계들과 조형적인 언어 표현의 관계 등, 네 가지의 주요 관계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와 똑같은 것을 이제는 또 좀더 큰 규모로 시도 하려고 하는데, 외현적 꿈-내용을 해석에 의해 발견된 잠재적 꿈과 비교하려는 것입 니다. 여러분들이 이 두 개를 혼동하는 일은 결코 없기를 바랍니다. 이 두 개를 혼동하지 않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꿈을 이해하는 일에서 아마도 『꿈의 해석』을 읽은 나의 독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잠재적이 꿈을 외현적인 꿈으로 변환시키는 것(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생각 하고 있는 내요이 여러 가지의 대치, 암시, 상징, 검열, 왜곡 과정을 거쳐서 우리들이 실제로 꿈속에서 보게 되는 외현적인 내요으로 나타나는 것을 바로 꿈이라고 하며 그때 우리들의 영혼 속에서 이러한 변환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꿈-작업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설명이다.), 그 작없이 〈꿈-작 업〉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작업, 다시 말해 외현 적인 꿈에서부터 잠재적인 꿈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해석작업〉입니다. 해석작업은 꿈 -작업을 상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아적인 유형의 꿈들 중에서 명백하게 소원 성취의 꿈으로 인식 되는 꿈도 어느 부분까지는 이러한 꿈-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말하자면 소원의 형태를 현실에 맞게 변화시키고 대개는 생각을 시각적인 그림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해석이 필요 없으며 다만 이러한 두 가지의 변환을 되돌려 놓는 작업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와는 다른 형태의 꿈들에서 꿈-작업에 무언가 더해진 것, 그것을 우리는〈꿈-왜곡〉이라고 부르며, 이는 우리의 해석 작업을 통해서 원래대로 환원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여러가지 꿈-해석의 경우들을 비교한 결과 나 는, 꿈-작업이 잠재적 꿈-사고라는 재료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에 관해 요약해서 설명해 드 릴 수 있는 상황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에 관해서 그러나 대단히 많은 것을 알게 되리라고는 기 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단지 일부분의 기술에 불과한 것이지만 침착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들어주 시기 바랍니다. 꿈-작업의 제일 첫번째 역할은 압축Verdichtung입니다.('꿈의 해석'여섯 번째 장의 〈압축 작업〉에 서 이에 대한 예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외현적 꿈이 잠재적 꿈보다 적은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잠재적 꿈에 대한 일조의 요약된 번역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이 압축 현상이 생략될 때도 있으나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또 상당한 압축이 이루어진 경우도 종종 있 습니다. 그 반대로 뒤바꾸는 경우는 없습니다. 즉 외현적 꿈이 잠재적 꿈보다 훨씬 내용이 풍부하고 광범위한 것을 다루는 일이란 결코 없다는 뜻입니다. 압축은 다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는데 (1)어떤 잠재적 요소는 아예 빠져 버리거나 (2) 잠재적 꿈의 여러가지 복합체 중에서 단지 어떤 조각 만이 외현적 꿈으로 이행되거나 (3)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 여러 개의 잠재 요소가 외현적 꿈에서는 통합되어 하나의 단일 요소로 용해되어 버리거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압축〉이라 는 명칭을 이 제일 마지막의 과정에만 사용사신다 해도 상관 없습니다. 이 과정의 작용을 알기 쉽게 보여 드리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꿈들을 살펴보면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단 한 사람 에 압축되었던 예를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복잡한 혼성적인 사람은 A 같은 외관을 하고는 있지만 또 B처럼 보이면서 C를 기억나게 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고 그러나 그가 D라는 인식 또한 확 고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혼합 인물에는 분명히 네 사람 모 두에게 공통적인 무언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입니다. 인물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또 사물이나 장소와 관련된 것에서도 혼합물이 생길 수 있는데 그때 각각의 사물이나 장소는 잠재적 꿈이 강조하 고 있는 무언가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는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도 이러 한 공통점을 핵으로 한 새롭고도 잠정적인 개념이 형성된 것과도 같습니다. 서로서로 압축되어 있는 개개의 것들의 중첩으로 말미암아 대개는 흐릿하면서 몽롱한 형상이 생겨나는데, 이는 여러분들이 한 개의 사진판에다가 여러 개를 촬영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입니다.(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갈톤 F.Galton의 〈혼합 사진〉을 압축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꿈-작업은 그러한 혼합물을 만들어 내 는 데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왜냐하면 그와 같은 혼합물에 필요한 공통점이 즉시 찾아지 지 않았을 때는 어떤 관념에 대한 언어적인 표현을 선택해 냄으로써 고의로 그러한 공통점을 만들어 냈음이 쉽게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압축과 혼성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 말하기의 발생에 큰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여자를begleitdigen(begleiten(동반하다)과 beleidigen (모욕을 주다)의 일부 철자가 합성됨)하려고 했던 젊은 남자를 기억해 봅시다. 그 외에도 기법에 있어 서 그러한 압축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많은 기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점들은 제외하고라도 이 과정에는 매우 범상치 않은 생소한 점들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꿈속에서의 혼성 인물의 형성과 대응되는 것을 우리들이 공상 속에서 창조해 내는 형상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서로 합치될 수 없는 요소들을 매우 간단히 하나의 통일체로 합성해 내는데, 이를 테면 켄타우르스라든가 오래된 신화 속에 나오는 동화적 동물들, 또 뵈클린Bocklin의 그림들이 그러 한 예에 속한다거 볼 수 있습니다. 이때의 〈창조적〉인 공상은 아무것도 창조해 내지 못합니다. 다만 서로 낯선 요소들을 하나로 합성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꿈-작업의 과정에서 특이한 것은 다 음과 같은 점들입니다. 꿈-작없의 근저에 놓여 있는 재료들은 생각, 또 생각이고 그 중 어떤 것들은 추잡하거나 용인될 수 없는 것일망정 제대로 형성되고 표현된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꿈-작업을 통해서 다른 형태로 변형되는데, 흡사 다른 언어와 문자로 옮겨 놓는 것과 같은 이러한 번 역 과정과 전용 과정에서 특이하고도 이해하기 곤란한 것은 융합과 결합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는 점 입니다. 본문 속에 주어진 차이점에 주목하고 유사점을 구별해 내는 것이 번역 작업에서 추구되는 점 일 것입니다. 그러나 꿈-작업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것이 시도됩니다. 즉 두 개의 서로 다른 생각을 압축시키는 과정에서(기지가 생겨나는 이치와 마찬가지로)그 두 가지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 는 다중의 의미를 가진 단어를 찾아냄으로써 그 과정을 가능케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당장 이해될 것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지만 꿈-작업을 파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될 것 입니다. 이 압축 과정으로 말미암아 꿈이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꿈-검열의 결과 라는 인상을 받게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계적이거나 경제적인 계기에 그 이유를 돌리기 십상인 데, 검열을 어쨌든 거기에도 작용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압축의 성과는 엄청난 것이 될 수도 있습니 다. 그것의 도움으로 때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잠재적 사고 과정이 하나의 외현적 꿈으로 합쳐지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외관상 매우 그럴듯한 해석을 얻게 되긴 하지만 그럴 경우의 가능 한 과잉해석Uberdeutung은 간과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 잠재적 꿈과 외현적 꿈과의 관계에서 압축으 로 인한 결과로 여기에 있는 요소와 저기에 있는 요소들 사이에 단순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하나의 외현적 요소가 동시에 여러 개의 잠재적 요소와 대응될 수 있고, 또 반대로, 하나 의 잠재 요소가 여러개의 외현적 요소와 관련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즉 교차의 형태에 따라 그 러한 관계가 성립됩니다. 또 꿈을 해석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개의 외현적 요소에 따라 떠오르 는 연상은 순서에 따라 꼭 차례대로 떠오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전체의 꿈이다 해석될 때 까지 기다려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꿈-작업은 아주 독특한 형태의 꿈-사고 표기법Transkription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단어와 단어, 기호와 기호를 곧이곧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단어의 자음만을 표현하고 모음은 생략해 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떤 법칙에 의한 선택을 감행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개의 요소를 대신해서 항상 어떤 하나의 요소를 등장시키는 등의 대표물을 만드는 것도 아닌 매우 다른 어떤 것, 그보다 훨씬 복잡한 다른 표기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꿈-작업의 두 번째 기능은 전위Verschiebung입니다. (『꿈의 해석』의 여섯 번째 장 참조) 이것에 대해서는 다행스럽게 도 우리가 일전에 사전 작업을 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위 작요이 그 전체로 보아 꿈-검열의 업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위의 두 가지 현상은 첫째로, 잠재적 요소가 그것 고유의 구성 요 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 그러니까 암시에 의해 대체되어 나타나는 경우 이고, 또 둘째로 심리적인 강세가 중요한 요소에서 중요하지 않은 다른 것으로 옮겨져서 꿈의 중심이 다른 곳으로 이동된 것처럼 보이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암시에 의한 대체는 우리 가 깨어 있는 가운데 사고하는 현상처럼 친숙하게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깨어 있 으면서 사고할 ㄸ 발생하는 암시는 이해하기 쉬운 것이어야만 하고, 그 대체물은 그것의 원래적인 것 과 내용적인 관계 속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농담이나 기지도 역시 암시라는 수법을 사용하는데, 내용 적 연상 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떨쳐 버리고 이것을 이례적이고 표면적인 연상들, 즉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이나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를 사용하는 식의 방법으로 대체시켜 버립니다. 그러 나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지켜져야 합니다. 어떤 재치를 대했을 때 만일 암시에서 그것의 원래적인 것으로의 회귀가 어렵기만 하다면 그것은 모든 효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러나 꿈 의 전위적 암시는 이러한 제한 요건에서 자유롭습니다. 그것은 꿈에 의해 대체되는 요소와 가장 피상 적이고 동떨어진 관계 속에 놓여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되돌려서 환원되었을 때에 이해하기 힘든 것 으로 비쳐지며 그것을 해석해 놓았을 때 어딘지 모르게 잘못 알아맞힌 기지나 무지막지한 억지 춘향 격의 주석 정도로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암시에서 원래의 것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을 때, 바로 그 경우에만 꿈-검열이 성공한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수 있습니다. 강세의 전위는 사 고 표혀의 수단으로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각성시의 사고에서 때때로 희극적인 효과를 나타 내기 위해서 그것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만들어 내는 혼란스러운 인상을 여러분들에게서 불러 일으키려면 다음의 일화를 설명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어떤 마을에 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사형에 처해질 만한 중대한 범법 행위를 했다. 법원은 그 죄값은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대장장이는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유일한 대장장이었고 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던 반면에 양복장이들은 세 명이나 있었으므로 그를 대신해서 양복장이 중의 한 사람을 교수 형에 처한다는 것이 판결 내용이었다.) 꿈-작업의 세 번째 기능은 심리학적으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고를 시각적인 그림 으로 변환시키는 데에 그 초점이 있습니다.('꿈의 해석'여섯 번째 장을 참조할 것) 그런데 꿈-사고 중 모든 것이 다 이러한 변환을 겪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합시다. 많은 생각들은 그것 자체로 남아 있게 되며 외현적 꿈에서도 생각이나 지식으로만 떠오릅니다. 또한 시각적 그림은 사고 가 변환되는 유일한 형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꿈-형성의 본질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 습니다. 꿈-작업의 이러한 부분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두 번째로 고정 불변의 것이며 개개의 꿈-요소에 대한 〈조형적인 언어 표현plastische Wortdastellung〉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기능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그것이 갖고 있는 어려움에 대 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신문의 어떤 정치적인 사설을 여러 가지의 화보나 그림 등으로 표현해 보라는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것은 마치도 표음 문자에서 상형 문자로 역행하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 사설 내용에서 인물이나 구 체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씌어진 것을 그림으로 옮겨 놓는 작업은 아마도 매우 수월하게, 어쩌면 더 효과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추상적인 단어들이나, 사고 관계 등을 나타내는 모든 수사 학적 표현들, 예를 들면 품사나 접속사와 같은 것들을 표현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대단한 어려움이 여 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단어를 옮기는 일과 관련해서 여러분은 가능한 모든 인위적인 조작을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 사설의 본문을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좀더 구체적이 고 그 회화적 표현에 맞는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는 다른 문장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곧 여러분은, 대부분의 추상적 단어들이란 구체적인 단어에서 퇴색된 것들이라느 기억을 되살 리게 되고 가능한 한 이러한 단어들을 그것이 갖고 있는 원래적이고도 구체적인 의미로 거슬러 올라 가서 바꾸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물을 〈소유Besitzen〉하고 있다는 의미를 표현 하고자 할 때 실제적이고도 신채적인 행위인 〈그 위에 앉는 Daraufsitzen〉것으로 표현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는 매우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꿈-작업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통Ehebruch처 럼 그림으로 묘사하기 어려운 요소가 꿈-작업에서 다른 부러짐Bruch, 즉 다리 골절Beinbruch 등으로 대체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이 원고를 교정하던 도중에 우연하게 신문의 어떤 기사가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위에서 설명한 주장에 대한 예기치 않았던 주석 으로 적당했으므로 여기에 전재하기로 한다. 〈신의 징벌(간통에 대한 징벌로서 입은 팔 골절상)〉 시 민군의 아내인 안나M이라는 부인이 〈간통 혐의〉로 클레멘티네 K 부인을 고소했다. 소장에는 K가 그녀의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서 매달 70크로네라는 돈을 송금했음에도 불구하고, 칼 M과 법에 저촉 되는 불륜 관계를 맺어 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미 K는 원고의 남펴에게서 〈상당한 양의 돈을 〉받았다는 것인데 반면에 그녀 자신은 아이들과 함께〈기아와 빈곤 상태 속에서〉살 수밖에 없었다 는 것이었다. 남편의 친구들이 은밀히 알려 준 바에 의하면 K는 M과 함께 술집에 가서 거기서 밤 늦 도록까지 술을 홀짝거리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피고가 원고의 남편에게 많은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나이든 마누라와 헤어지고 자기 집으로 이사올 수는 없겠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K의 집을 관리하는 여자 역시 원고의 남편이 내복을 입은 채 K의 집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K는 어제 레오폴드 시의 판사 앞에서 자신이 M을 안다는 사실을 〈부인했으며〉,자신이 그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베르틴 M이라는 여자는 K가 원고의 남편과 입을 맞추었으며, 자기가 이를 목격하자 그녀가 놀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미 앞서 진행된 재판 과정에 서 증인으로 진술한 M은 당시에 피고와의 내연 관계를 부인했다. 어제 판사 앞에 한 장의 〈편지〉 가 놓였는데, 거기서 증인은 처음 재판할 때 자신이 증언했던 내용을 부인하고, 자신이 지난 6월까지 K와 애정 관계를 맺어 왔다고 〈시인〉했다. 그가 앞선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피고와 맺었던 관계를 부인한 이유는 단지, 피고가 재판을 받기 전에 그 앞에 나타나서, 그가 그녀를 구해 줄 것과 아무것도 증언하지 말 것을 〈무릎을 꿇고 빌었기〉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오늘에 와서야(증인은 계속해서 이 렇게 쓰고 있다) 나는 법정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왼쪽 팔이 부러졌으며>, 나에게는 이것이 나의 잘못에 대한 일종의 <신의 정벌>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 다.〉 판사는 처벌이 가능한 이 행위의 〈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판결했으며, 이로써 원고는 그녀의 〈고소를 취하했고〉,피고는 방면되었다.- 원주)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 표음 문자를 대체하는 상형 문 자의 미숙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그러나〉처럼 사고 관계 를 나타내는 수사학적 요소(품사)들의 표현에는 그와 같은 보조 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속의 이러한 구성 요소들은 그림으로 변환될 때 그대로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꿈-사고의 내용도 이와 마 찬가지로 꿈-작업을 통해서 그것의 원재료인 대상이나 활동 등으로 분해되어 버립니다. 그 자체에 있 어서 표현되기 어려운 관계들이 그림의 섬세한 표현에 의해 어느 만큼이라도 표현될 수 있는 가능성 이 있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만 합니다. 바로 이렇게 해서 꿈-작업에 있어서도, 잠재적 꿈-사 고의 내용 중의 많은 것들을 외현적 꿈의 형식적 고유성, 즉 명료성이라든가 모호성, 혹은 여러 개의 부분으로 나누는 등으로 표출시키는 일이 성공하게 됩니다. 하나의 꿈에서 나뉘어지는 부분-꿈 Partialtraume의 숫자는 대체로 잠재적 꿈속에 있는 사고의 계열, 다시 말해 꿈의 주요 주제의 개수와 일치합니다. 짧은 서막 꿈Vortraum은 뒤에 따라오는 상세한 중심 꿈Hauptraum에 대해서 종종 서론 이나 동기 부여의 관계를 가집니다. 꿈-사고의 부분장Nebensatz은 외현적 꿈에서 그에 덧붙어진 장면 변화를 통해 대체 되고는 합니다. 꿈-형태Traumgestalt는 그 자체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그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합니다. 하룻밤 사이에 연달아 꾸게 되는 여러 개의 꿈은 종종 같은 의미를 갖고 있으며, 계속해서 점증하고 있는 긴급한 자극을 좀더 잘 제어하기 위한 노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꿈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요소는 〈중복〉을 통한 표현, 즉 여러 번의 상징 을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언어학에서 보면 어원은 같지만 뜻은 다른 단어가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꿈-사고와 그것을 대체하는 외현적 꿈을 비교해 보면 우리가 미처 그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그것은 꿈이 갖고 있는 무의미와 불합리함까지도 그 자 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꿈에 대한 의학적인 견해와 정신분 석학적인 견해와의 대립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을 정도로 가장 날카롭게 첨예화됩니다. 전 자에 따르면 꿈을 꾸고 있는 동안의 정신 활동이 모든 비판 활동에서 제외되어 있으므로 꿈이란 무의 미하다는 것이고,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 꿈-사고에 포함되어 있는 비판이 〈그것은 말 도 안 되는 일이야〉라는 판단을 표현하게 될 때, 비로소 꿈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여 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극장에 가려던 꿈(극장표 3장에 1플로린 50크로이체)은 그에 대한 좋은 예라 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표출된 판단은 다름아닌, 그렇게 빨리 결혼했던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 다는 뜻입니다.(『꿈의 해석』여섯 번째 장 참조) 어떤 하나의 요소가 꿈에 나타났던가 아닌가, 그것 이 이것이었던가 아니면 그와는 다른 어떤 것이었던가 하는가의 여부, 그리고 꿈꾼 이가 종종 나타내 곤 하던 의심과 불확실성에 해당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는 해석 작업을 통해서 알려집니다. 일반적으로 잠재적 꿈-사고에서는 이러한 의심이나 불확실성에 해당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대체 로 꿈-검열의 작용이며 시도되기는 했으나 완전히는 성공하지 못한 삭제의 결과로 간주할 수 있습니 다.(강박신경증의 증상에 대한 의심은 열일곱 번째 강의를 보라) 꿈-작업이 잠재적 꿈의 모순점을 다 루고 있는 방식은 우리가 발견해 낸 사실 중 가장 놀라운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재적 재료 중의 일치점들은 외현적 꿈에서는 압축을 통해서 대체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 다. 모순점들도 일치점들과 똑같이 취급되는데, 동일한 외현적 요소를 통해서 특별하게 선호되면서 표 현됩니다. 모순을 허용하는 외현적 꿈의 어떤 요소는 자기 스스로를 의미하거나 혹은 자신에 대한 모 순을 의미하며, 또 그 두 개를 동시에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중 어느 해석을 선택하는가의 문제는 그 것이 가진 의미가 비로소 결정할 수 있습니다. 〈부정Nein〉의 표현이 꿈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러므로 바로 이러한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꿈-작업의 이와 같은 생소한 행위에 대 한 유사점을 우리는 언어발달 과정에서도 찾아보게 됩니다. 태곳적 언어에서는 〈힘센-약한〉,〈밝은 -어두운〉,〈크다-작다〉라는 반대어들이 동일한 어근에 의해 표현되었다고 많은 언어학자들이 주장 하고 있습니다.(〈원시 언어의 반대 의미〉). 고대 이집트 어에서는 원래 〈ken〉은 강함과 약함을 동 시에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는 도중에 생겨나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서 대화중에는 말에 악센트를 주거나 몸짓을 통해 의미를 분명히 했으며 문자로 나타낼 때에는 소위 한정부라고 하는 발음되지는 않는 그림을 첨가했습니다. ken(강하다를 의미할 때는 문자 뒤에 곧바로 서 있는 남자의 그림을 그려 넣고,ken) 약하다를 나타낼 때는 힘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남자를 그 려 넣었습니다. 똑같이 발음되는 원시어를 약간씩 변화시킴으로써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대립적 의 미에 대한 두 개의 표기가 형성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ken(강함-약함)에서 〈강 하다〉의 의미인 ken과 〈약하다〉의 의미인 kan이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후기 발달 단계에서의 고대 언어뿐만 아니라 훨씬 후기의, 현재까지 쓰이는 언어에서도 이와 같은 오래된 반대 개념을 그대로 간 직하고 있는 단어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서 나는 여러분에게 아벨K. Abel의 논문 에서 몇 가지 실례들을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아벨의 「원시어의 반의어에 대하여Der Gegensinn der Urwte」(1884)참조-원주) 라틴 어 가운데 현재까지도 상반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들로서 는, altus(높다-낮다)와 sacer(신성한-사악한) 등이 있고, 같은 어원을 가졌으면서도 약간씩 변형된 단어들로는, clamare-(소리치다)와 clam-(조용한, 정숙한, 은밀한), siccus-(마른)와 succus-(주스)등이 며, 독일어에서는 Stimme-(목소리)와 stumm-(말없는, 벙어리의)이 있습니다. 유사한 언어들을 대조해 보면 많은 예들이 나옵니다. 영어의 lock-(닫다)와 독일어의 Loch(구멍), Lucke(틈), 영어의 cleave(분 열하다)와 독일어의 kleben(달라붙다)이 그것입니다. 영어의 without은 원래 〈……와 함께〉,〈……없 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날은 〈……없이〉의 의미만으로 쓰입니다. with가 부여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빼앗는 의미도 갖고 있다는 것은 withdraw(철회하다), withhold(보류하다) 등 의 합성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독일어의 wieder(〈……과 함께〉또는 〈……에 대항하여〉라 는 뜻을 가짐.) 꿈-작업의 또 다른 특성도 언어 발달 과정중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른 후기 언어 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이집트 어에서도 똑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의 음 순서가 뒤바뀌는 일이 있 었습니다. 영어와 독일어 사이의 그러한 예를 들어보면, Topf(단지)-pot(독, 단지), boat(배)-tub(통, 함 지), hurry(서두르다)-Ruhe(평온), Balken(대들보)-Kloben(통나무)이나 club(곤봉), wait(기다리 다)-tauwen(기다리다) 등이 있습니다. 라틴 어와 독일어 사이에도 capere(붙잡다)-packen(붙잡다, 포 장하다), ren(신장)-Niere(신장)가 그 예입니다. 여기서 개개의 단어에 발생했던 바와 같은 그러한 전 도Umkehrung는 꿈-작업에 의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의미의 전도, 반대어에 의한 이러 한 대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항입니다. 그 밖에도 꿈속에서는 상황의 전도라든가 두 사람 사 이 관계의 전도 등이 발생하며 마치〈전도된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꿈속에서는 토끼가 사냥꾼을 쏘는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건 순소가 뒤바뀌는 일도 있어서 원인 관계 로 보아 앞에 있었던 사건이 꿈속에서는 후속 사건의 뒤에 오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도 서투른 유랑 극단의 연극 상연에서 먼저 주연 배우가 쓰러지고 난 후, 그를 저격하는 총소리가 무대 뒤에서 울려 오는 상황과도 같습니다. 또 어떤 꿈에서는 모든 요소들의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어서 의 미 있는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마지막의 것을 가장 먼저 해석하고 맨 처음에 등장했던 것은 가장 늦 게 해석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꿈의 상징성에 대한 우리의 연구에서 밝혀졌던 것처럼 물 속으 로 들어가거나 뛰어드는 것은 물 속에서 나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출산 이나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며, 계단이나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은 그것을 내려오는 것과 똑같은 의 미라는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표현상의 자유를 통해 꿈-왜곡이 어떠한 이 점을 취할 수 있는지는 오인의 여지없이 명백합니다. 꿈-작업의 이러한 특징에 〈태고적〉이라는 명 칭을 붙여도 상관 없을 듯합니다. 이 특징은 고대의 표현 체계나 언어, 문자에도 그대로 나타나며 그 와 똑같은 해석상의 어려움들을 수반하고 있는데, 그에 관해서는 이후에 비판적 관점에서 더 언급하 기로 하겠습니다.(〈퇴행Regrssion〉의 주제에 관해서는 스물두 번째 강의에서 자세히 논의하고 있 다.) 이제는 또 다른 몇 가지의 관점에 관해서 논의할 차례입니다. 꿈-작업에서 무엇보다 문제되는 것 은 언어로 표현된 잠재적 사고를 대개는 시각적인 속성을 가진 감각적인 그림으로 변환시키는 일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들은 원래 그러한 감각 형상Sinnesbilder들에서 비롯된 것들이 며 최초의 재료와 전단계는 감각인상Sinneseindrucke들, 좀더 정확히 말해 그러한 것들에 대한 기억 형상Erinnerungsbilder이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가서야 이러한 것들에 언어들이 결부되고 그것은 다시 생각 내지는 관념과 결합됩니다. 꿈-작업은 이러한 생각에 퇴행적 처리를 거치게 하여 그것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퇴행 과정에서 기억 형상들이 생각으로 계속적으로 발전되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획득물들과 같은 것들은 모두 생략시켜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이른바 꿈-작업인 것입니다. 우리가 꿈-작업에서 알게 된 과정들과 비교해 보면 외현 적 꿈에 대한 관심은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러나, 우리가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유 일한 것인 이 외현적 꿈에 대해서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려고 합니다. 외현적 꿈이 이렇게 하여 우리 에게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그럴듯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아니면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몇 개의 개별적인 상들로 이루어져 있든지 그런 것은 이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꿈이 외견상으로는 매우 의미심장한 외관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겉모습은 꿈-왜곡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며, 이탈리아 교회의 정면이 교회자체의 구조나 양식과는 어떠한 유 기적 관계도 맺고 있지 않는 것처럼 이 겉모습도 꿈의 내적인 내용과는 아무런 유기적 관계가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꿈의 이러한 외관이 의미를 갖고 있는 일도 있는데 그것 은 그 외관이 잠재적 꿈-사고의 중요한 구성 요소를 아주 조금만 왜곡했거나 혹은 전혀 왜곡하지 않 은 채 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꿈을 해석해서 왜곡이 얼마만큼 일어났는지를 판단할 수 있 기 전까지는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꿈속에 있는 두 가지 요소가 서 로 밀접한 관계 속에 놓여 있는 듯이 보일 때도 이와 비슷한 의혹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은 밀접한 요소들에 대응하는 것들을 잠재적 꿈속에서도 짜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중요한 암시가 이러한 사 실 속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경우에는 사고 내용으로 보아서는 함께 속하는 것들이 외현적 꿈에서는 따로 따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마치도 꿈이 일관된 구성을 갖고 있는 것이라거나 어떤 실용적인 표현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해서 외현적 꿈의 한 부분을 다른 한 부분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시도는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여 러 가지의 돌 조각들을 접착제를 사용하여 합성시켜 만든 콘크리트와 비교될 수 있는데, 그때 만들어 지는 문양은 원래의 암석 함유물이 갖고 있는 문양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실제적으로도 소위〈이 차 가공 작업sekundare Bearbeitung〉이라고 볼 수 있는 꿈-작업의 어떤 부분이 있는데 그것의 임무 는 꿈-작업의 일차적인 성과에서 어떤 전체적인 것, 대략적으로 꽤 조리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입 니다.('꿈의 해석'참조) 이러한 과정 도중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떤 의미에 따라 재료가 배열 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것이 삽입되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꿈-작업을 과대 평가한 나머지 그것에 너무 많은 신뢰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위에 열거한 기능만으로도 꿈-작업은 소진되어 버리고 맙니다. 압축하고 전위시키고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그리고는 그 전체를 다시 이차 가공을 거치게 하는 것, 꿈-작업은 그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 꿈속에서 판단의 표명, 비판, 놀라움, 추론 등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꿈-작업의 소산은 아니며 아주 예외적으로만 꿈에 대한 숙고의 표명으 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소 변형되고 연관성에 맞게 수정된 다음 외현적 꿈으로 이행된 잠재 적 꿈의 일부분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꿈-작업은 대화를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극히 예외적 이라고 할 만한 경우에만 꿈속 대화는 꿈을 꾸기 전날에 그가 들었던 대화 내용이나 아니면 그 스스 로 언급했던 대화들의 복사본 내지는 그것들의 합성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하나의 재료로 서 혹은 꿈의 자극제로서 잠재적 사고 속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꿈-작업은 또한 숫자 계산도 할 수 없습니다. 외현적 꿈에 나타나곤 하는 계산들은 대개는 숫자들을 나열한 것이거나 거짓 계산이며 계산 그 자체로서는 전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시금 잠재적 꿈-사고 속에 내재해 있는 계산들의 복사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볼 때 꿈-작업에 돌려졌던 관심이 그 로부터 등을 돌리고 잠재적 꿈-사고로 향하게 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 잠재적 꿈- 사고로 향하게 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 잠재적 꿈-사고로 향하게 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 잠재적 꿈-사고는 다소 왜곡된 채로 외현적 꿈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냅니 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너무나 극심하게 이루어진 나머지 이론적인 고찰속에서 잠재적 꿈-사고를 꿈 그 자체의 자리에 놓고 전자(잠재적 꿈-사고)에 해당될 이야기를 후자(꿈)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의 성과가 그러한 혼동에 잘못 이용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라고밖에 말할수 없습니다. 〈꿈〉이란 꿈-작업의 성과라고 부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잠재적 꿈-사고가 꿈-작업을 통해서 바뀌어진 그 형 태die Form를 뜻하는 것입니다. 꿈-작업은 매우 독특한 과정으로서 그와 같은 것은 이제까지의 정신 생활 영역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형태의 압축이나 전위, 또 생각들을 그림으로 변환 시키는 것과 같은 퇴행적 행태는 전혀 새로운 것들로서 이것을 발견해 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정신 분석적인 노력은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꿈-작업과 유사한 여러 가지 상응 점들을 통해 여러분들은 다른 영역, 특히나 언어 발달과 사고 발달 영역에서 정신분석 연구로 부터 비롯된 유사한 관련성들이 얼마나 많이 재차 발견되고 있는가를 추측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러한 통찰이 가지고 있는 다른 중요한 의미에 대해서는 꿈-형성의 메커니즘이 신경증 징후들의 생성방법 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서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 결과에 서 심리학에 미치게 되는 새로운 수확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가 개관할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무의식적인 정신적 행위(그것이 바로 잠재적 꿈-사고이지만)의 존재에 대한 어떠한 새로운 증거가 밝혀졌는가에 대해서, 또 꿈-해석이 무의식적인 영혼 생활에 대해 얼마나 넓은 인식의 통로를 약속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지적하고자 했던 것입 니다. 자, 이제는 전체적인 관련성 속에서 설명하고 준비해 왔던 여러 가지의 작은 꿈의 실례들을 여 러분들 앞에 설명해 보일 차례인 것 같습니다. 열두 번째 강의 꿈의 사례들에 대한 분석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들을 멋있고 큼직한 꿈들을 해석하는 작업에 참여하라고 초대하는 대신 또 다시 여러분들 앞에 꿈-해석의 파편 조각들만을 내놓게 된 것에 대해 너무 실망하지는 말아 주십시 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해왔으므로 여러분들은 당연히 그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실 것이며, 그처럼 수천 개의 많은 꿈들을 성공적으로 해석했으므로 꿈-작업과 꿈-사고들에 대한 우리의 모든 주장들을 증명해 줄 수 있는 탁월한 꿈의 실례들을 충분히 수집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고 확신하 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소망을 가로막는 어려움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 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여러분들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꿈을 해석하는 것을 자신의 직업 으 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사람들은 꿈을 해석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때때로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의도도 없이 친한 사람의 꿈에 몰두하기도 하고 정신분 석적 작업을 배우기 위해서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꿈을 대상으로 해석을 시도해 보기도 합니다. 그 러나 대부분은 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신경증 환자들의 꿈이 문제가 됩니다. 후자의 경우 꿈들이 야말로 가장 훌륭한 재료가 되는 것이며 건강한 사람들의 꿈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치료 기법상 꿈-해석을 치료적 목적에 종속시키고 그러한 꿈-해석에서 치료에 필요한 무언가 를 얻어낸 다음에는 많은 수의 꿈들을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게 됩니다. 치료 기간 중에 등장하는 많 은 꿈들 중 어떤 것들은 해석하기 곤란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심리적 재료의 전체 덩어리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치료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신경증의 전 비밀을 밝혀 내는 작업을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우 리는 신경증 연구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서의 꿈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 나 이러한 재료들을 기꺼이 포기해 버리고 차라리 건강한 사람들의 꿈이나 자기 자신의 꿈에 대한 설 명을 듣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꿈들이 갖고 있는 내용으로 볼 때 불가능합니다. 자 기 자신을 포함해서 자기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발가벗길 수는 없 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꿈을 정밀하게 분석함으로 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결 과는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그의 인격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건드리게 될 것입 니다. 재료 조달에 관계되는 이러한 어려움 말고도 꿈을 보고할 때에 또 다른 어려움이 문제됩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꿈이란, 그 꿈을 꾼 사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타 자에게는 물론이려니와 꿈을 꾼 당사지에게도 낯설게만 보일 뿐입니다. 우리의 문헌들에는 아주 상세 한 꿈-분석의 예들이 꽤 있습니다. 나 자신도 병력 보고의 틀 안에서 그러한 몇 개의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도라이 히스테리 분석'(프로이트 전집 10,열린책들)과 「늑대 인간-유아기 노이로제 에 관해여」(프로이트 전집 11, 열린책들)참조). 꿈-해석의 가장 훌륭한 사례들로서는 오토 랑크에 의 해 보고된 서로 관련을 가진 두 개의 연이은 꿈들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랑크의 '스스로 해석하는 꿈 Ein Traum der sich selbst deutet'(1910)참조) 그것은 어떤 소녀의 꿈으로서 인쇄된 면으로는 두 페 이지에 달하지만 그에 대한 분석은 76페이지의 지면을 차지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꿈들에 대 해서 설명을 하자면 한 학기가 모두 소요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대단히 길고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꿈을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된다면 그에 대해 수많은 설명을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연상이나 기억 재료Einnerungsmaterial들을 수없이 많이 끌어 대야 할 것이며 여러 군데의 옆길로도 들어가야 만 하지만 그에대해 강연을 하게 된다 해도 그것은 지극히 종잡기 어려운 복잡한 것이며 불충분한 것 이라는 인상만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가볍게 손에 쥘 수 있는 것, 신경증 환자의 꿈들 중 작은 부분들에 대한 보고만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이 런 저런, 작은 것들은 개별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꿈-상징들은 가장 쉽게 여러분들에게 제시해 보일 수 있는 것들이며 그리고 나서 퇴행적 꿈-묘사Traumdarstellung의 몇 가지 특징들을 설 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음에 예시하는 꿈의 하나 하나에 대해서 그것이 왜 설명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이 꿈은 단 두 개의 짤막한 영상들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삼촌은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어떤 부인이 그가 마치 친 자식이라도 되는 양 그를 쓰다듬고 애무하고 있다.〉 첫번째의 장면에 대해서 꿈꾼 이(유대 인임)는 삼촌이 매우 경건한 사람으로서 그와 같이 죄가 되는 일은 결코 한 일이 없으며 앞으로도 절대 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의 장면에 나오는 어떤 부인에 대해서 그는 자신의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이 두 개의 장면 혹은 생각은 틀림없이 하나의 연관성 속에 관 련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가 현실 속에서는 삼촌이 그런 행동 을 하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부정하고 있으므로 〈만일〉이라는 가정을 세워 봅시다. 〈나의 삼촌이 그렇게 경건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토요일에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면 나 또한 어머니에게 애무를 받 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가정이 성립됩니다. 이것은 분명히, 어머니에게 애무를 받는 일은 토요 일에 담배를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건한 유대 인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가 이미 이전에도, 꿈-작업에서는 여러가지 꿈-사고 간의 모든 관계 개념들이 탈락해 버리고 꿈-사고 들은 그것 자체의 원재료로 분해되어 버리는 것이며 바로 이렇게 탈락해 버린 관계들을 다시 복원시 키는 것이 꿈-해석의 과제라고 말한 바 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2) 꿈에 관한 나의 저술 활 동으로 말미암아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꿈 문제의 공식적인 상담자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년전부터 여러 방면에서 수많은 편지들을 받곤 했는데 그것들은 나에게 꾸믈 이야기해 오거나 그 꿈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꿈에 대해서 그에 대한 해석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다른 많은 재료들을 덧붙이거나 그 스스로 해석을 보내 오신 분들 모두에게 나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 범 주에 속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소개하게될, 1910년에 뮌헨의 어떤 의사분이 보내 오신 꿈-내용입니다. 꿈꾼이가 우리에게 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꿈이란 대체로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인 가를 이 꿈이 잘 증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꿈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하는 것입니 다. 여러분들이 근본적으로 상징적 의미를 사용한 꿈-해석을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여기고 꿈에 대 한 연상적 기법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하고 싶어하시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와 같은 위험한 착각에서 여러분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느낍니다. 〈1910년 7월 13일. 아침 나절에 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튀빙엔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는데 갈색의 닥스훈트 Dachshund 사냥개가 나에게 달려들어 발뒤꿈치를 물었다. 나는 조금 더 내려가다가 자전거에서 내려 계단 위에 앉은 후에 나를 꽉물고 놓지 않고 있는 그 짐승을 쫓아내기 위해서 마구 몸을 흔들어 댔다 (물렸다는 사실이나 그 전체 상황에 대해서 못마땅한 기분은 느낄 수 없었다). 내 맞은편에는 몇 명의 늙은 부인들이 앉아서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 눈을 떴는데 거의 언 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잠을 깨는 순간에 그 꿈 전체가 나에게 선명히 다가왔다.〉 여기서는 상 징을 갖고 작업을 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꿈을 꾼 사람이 그 밖에도 우리에게 보고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최근에 어떤 소녀를 알게 되어서 사랑에 빠졌습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말고는 어떻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닥스훈트 사냥개야 말로 우리를 연결시켜 줄 가장 근사한 방법이 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원래가 짐승들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 처녀에게서도 이러한 특징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이 말에 덧붙여서 그는 자신이 벌써 여러 번 이나 싸우는 개들한테 달려들어 그들을 때어놓곤 했으며 사람들은 그의 이 재주에 놀라곤 했다는 사 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우리가 또 알게 된 사실은 그의 마음에 들게된 처녀가 언제나 이처럼 특이한 종자의 개를 데리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처녀는 외현적 꿈에서는 제거되고 그 대신에 그녀 와 같이 연상된 개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꿈속에서 그에게 웃어 보인 그 나이든 부인들은 그 처녀 대신에 등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외에도 그가 우리에게 전해 준 사실들은 이 문제를 해명 하기에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가 꿈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던 것은 회상된 상황을 그대로 재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개를 데리고 가는 그 처녀를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만 보았던 것입 니다. (3)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가족 중 한 사람을 잃게 된 사람들은 그 후로도 오 랫동안 매우 특이한 종류의 꿈을 꾸게 되는데, 그 속에서 그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픈 욕망은 그가 죽 었다는 사실에 대한 지식과 교묘한 타협점을 찾아내곤 합니다. 어떤 대는 죽은 사람이 사람이 이미 죽기는 했지만 그 자신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계속 살아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다 가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완전히 죽게 됩니다. 또 어떤 때는 그 는 반쯤은 죽은 사람이고 또 반쯤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든 상황들은 그것만의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꿈들을 단순히 무의미한 꿈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꿈속에서 죽은 이를 부활시키는 것은 예를 들어 동화 속의 경우보다 특별히 용 인되지 못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동화 속에서는 그러한 경우가 매우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이들 꿈을 분석해 본 바로는 그것을 아주 이성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내고 싶은 그 경건한 소망은 매우 진기한 방법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그처럼 괴상망측하고 말도 안 되는 것처 럼 보이는 하나의 꿈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분석해 보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이론적 인 고찰을 통해서 알게 되었던 여러 가지 예비 지식 중의 많은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 다. 그것은 아버지를 오래 전에 잃은 한 남자의 꿈입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런데 시체가 발 굴되었는데 그 모습은 매우 나빠 보였다. 그는 그 이후로 계속 살아 계시는데 나는(꿈꾸고 있는 그 사람)그가 이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몹시 애를 썼다(그러자 꿈은 또 다른 꿈으로 이행되었는데 그것은 얼핏 보기에 그 전의 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이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체가 발굴되었다는 것은 사실과는 다릅니다. 그 밖의 모든 사실 들도 현실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고려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꿈꾼 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에 집에 돌아온 이후로 이빨 하나가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이가 속을 썩이면 즉시 그것을 빼라》는 유대 인의 교훈에 따라 아픈 이를 빼려고 의사에게 갔다. 의사는 나에 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가 아프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빼버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인내심 을 가져야만 합니다. 아픈 이의 신경을 죽이기 위해서 당신의 이속에 어떤 장치를 해드리겠습니다. 3 일 후에 다시 오십시오. 그러면 그 이를 빼드리겠습니다. 》〉 〈이렇게 《이를 뽑는 것》이 바로 시 체를 파내는 것을 의미하겠지요?〉라고 그는 툭 던지듯이 말을 했습니다. 꿈꾼 이의 이 말은 옳은 것 일까요? 그 말이 전부 다 옳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옳은 것이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빼를 것이 아니라 무언가 죽어 버린 것이 그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험 으로 보아서 그와 같은 부정확성이 꿈-작업에 나타나는 것은 있을 법한 일입니다. 그래서 꿈꾼 이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신경을 죽이기는 했으나 아직도 남아 있는 이를 압축시켜서 하나로 통일시키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외현적 꿈에서는 그것과는 상관 없는 무의미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해도 전 혀 놀랄 일이 못됩니다. 이에 대해서 언급된 것들이 아버지에 모두 들어맞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압축을 가능하게 만든 이와 아버지 사이의 유사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꿈 꾼 이가 곧 이어서,〈이가 빠지는 꿈은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한 사실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널리 알려 져 있는 해석이 틀린 것이며 그저 괴상한 의미로 해석할 때만 옳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제시된 주제를 꿈-내용의 다른 부분의 배후에서 발견하게 되었을 때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꿈꾼 이는 별다른 재촉을 받지 않고도 아버지의 병환과 죽음에 이르게 되 었던 그간의 과정과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병을 앓으셨고 그를 돌보고 치료하는 일은 아들인 그에게 많은 돈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일이 너무 힘들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지쳐버린 나머지 빨리 끝이 나버렸으면 하고 바란 적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서 유대 인다운 경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대 인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도 매우 엄격했습니다. 꿈에 나타나있는 생각들 중에 어떤 모순점이 눈에 띄지 않습니까? 그는 아버지와 이를 동일시했습니다. 그에 따른 판단에 의하면이가 고통과 분노를 자아 낼 때는 그것을 뽑아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도 그는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기서는 〈돈이 들거나 화가 난다고 해도 신경쓰지 말고, 모 든 어려움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고통을 가져다 주는 대상에 대해서 어떠한 적대적인 감정도 가져서 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일치가 너무 자위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 는 실제로도 아픈 이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 대해서도 비슷한 감정을 품지는 않았을까요?다 시 말해,빠른 죽음만이 이처럼 낭비적이고 고통스럽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실존의 방식에 종식을 고해 주리라고 원하지는 않았을까요? 나는 이것이 실제로 그토곡 오랜 기간 동안 앓고 계셨던 아버지에 대 한 그의 입장이었을 것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대 인적 경건성에 대한 허영에 가까운 확신 은 그에 대한 기억을 딴곳으로 돌려 놓기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고통을 일으키 는 사람이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일게 마련이며 그것은 〈그를 위해서는 단 하나의 구원일텐 테〉하는 동정적인 생각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법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잠재적 꿈-사고 자체에 있는 장벽마저도 무너뜨리고 있음을 여러분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각의 첫 부분(아버지 가 죽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은 틀림없이 일시적인 것으로서 꿈-형성 중에만 무의식적으로 나타났을 것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적대적 감정은 계속적으로 무의식이었던 것으로서 어쩌면 유년 시절에서 시 작해서 아버지가 병을 앓고 있는 동안 때때로 조심시럽게 변장한 채로 의식 속으로 스며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또 이 점을 그 꿈-내용에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은 꿈속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유년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그러한 적의 의 뿌리를 연구해 가 면, 아버지는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들의 성적인 행위를 금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공포심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 그는 대체로 자식의 사춘기가 지난 시기에도 사회적인 이유 로 말미암아 같은 역할을 반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관계는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그 꿈꾼 이에게도 해당됩니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 속에는 어렸을 적의 성적인 두려움위 원천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충분할 정도의 존경심과 두려움이 함께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외현적 꿈의 그 밖의 문장들은 자위 콤플렉스Onaniekomplex에 의해 설명됩니다. <그는 안색이 나빠 보였다>라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이를 빼고 나면 얼굴이 보기 싫어질 것이다>라는 치과의사의 그 다음 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 동시에 사춘기 소년의 나쁜 안색과도 관계되는데 나쁜 안색 을 갖고 있다는 것은 사춘기소년의 과도한 성적행위를 폭로하는 것이고 혹은 그것이 폭로될까 봐 두 려워하고 있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외현적인 내용에서는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에서 꿈꾼 이가 이러한 나쁜 안색을 아버지에게로 옮겨 놓고 있는데 이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는 꿈-작 업의 전도의 한 예입니다. <그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살아계신다>라는 것은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기 를 바라는 마음과도 일치하지만 동시에 이를 빼지 않고 그냥 놔두겠다는 치과의사의 약속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가장 교묘한 것은 <아버지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꿈꾼 이는(나는) 할 수 있 는 모든 일을 다했다>라는 문장으로서 그것은 잘못해서 우리가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보완하게 만들도록 교묘하게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의미 있는 보완은 다시금 자위 콤플렉 스에서 생겨나는데 소년이 아버지에거 자신의 성생활을 감추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리 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소위 그러한 종류의 이 로 인한 꿈들을 항상 자위나 그에 대한 두려운 처벌 등으로 해석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 은 이상하고도 우리를 혼란시키기에 충분한 압축을 만들어 냄으로써, 또 모든 생각들과 가장 멀리 떨 어진 듯하고 시기적으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애매모호하기만한 대용물을 형성함으로써 가능해지 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지급까지 여러 번 무의미한 것이나 이상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저 냉정 하고도 진부한 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러한 꿈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사람들은 왜 그처럼 아마래도 상관 없는 것들을 꿈꾸게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솟곤 했습니다. 나는 이와 같은 종류의 꿈들 중 또 하나의 새로운 꿈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려고 하는데, 그것들은 하룻밤 사이에 꾼 세개의 서로 연관성이 있는 꿈들로서 어떤 젊은 여성이 꾼 것입니다.(a) <그녀는 집 안의 넓다란 거실을 걸어가다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샹들리에에 피가 나도록 심하게 머리를 부딪 쳤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 중에서는 그에 대한 어떤 회상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여기에 붙여 이 야기한 것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온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머리털이 너무 많이 빠진답니다. 애 야, 계속 그렇게 머리털이 빠져 나가다간 네 머리는 엉덩이처럼 되어 버리겠구나 하고 어머니께서도 어제 말씀하셨어요.>머리는 그러니까 여기서는 다른 쪽에 있는 신체의 말단입니다. 샹들리에에 관한 것은 별다른 도움 없이도 상징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게 늘어뜨릴 수 있는 물건은 모두 남성 성기의 상징이라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되는 것은 남성의 페니스와 부딪쳐 서 생겨날 수 있는 신체 하부 말단의 출혈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여러 가지의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그녀의 다음연상에서 알 수 있게 된 사실은, 월경은 남성과의 성적 접촉으로 인 해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믿음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녀들에 게서 흔히 발견되는 일ㅈ의 성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 <그녀는 포도원에서 꽤 깊숙한 웅덩이 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알기로는 나무를 한 그루 뽑은 데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 그 녀가 말하기를, 자기에게는 그런 나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녀는 꿈속에서 그 나무를 보지 못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할 때의 그 발음은 다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 로서 상징 해석을 완전히 받쳐 주고 있습니다. 그 꿈은 유아적 성이론의 다른 또 한 부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자아이들도 원래는 남자아이들과 똑같은 성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것은 거세 때문에 생긴 것(나무를 뽑아 내는 것)이라는 믿음과 관계 있는 것입니 다.(c)<그녀는 자신의 책상 서랍 앞에 서 있다. 그녀는 그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누가 그것에 약 간만 손을 대도 금방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책상 서랍은 다른 모든 서랍이나 상자, 곽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성기를 상징합니다. 그녀는 성기를 보 면 성교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그녀는 그냥 만지기만 하는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금방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오래 전부터 그것이 입증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 개의 꿈들에 서는 모두 주안점은 (안다)라는 사실에 두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성적 호기심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그때에 얻어냈던 결과에 매우 우쭐해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 니다. (5) 다시 또 하나의 상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와 관계된 심리 상 황을 간단히 먼저 설명하고 나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어떤 남자가 한 여자와 사랑의 밤을 보내고 나서 그 상대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그녀는 모성적기질의 여자로서 남자와의 사랑의 행위 를 통해서 아이를 몹시 갖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는 유형의 여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만나고 있는 처지는 사정된 정액이 여자의 자궁에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조심성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 밤이 지나서 잠에서 깨어난 여자는 다음과 같은 꿈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빨간 모자 를 쓴 어떤 장교가 거리에서부터 그녀를 쫓아왔다. 그녀는 그에게서 도망쳐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래 도 그는 줄기차게 쫓아왔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집에 도착한 그녀는 급히 문을 꽝 닫고는 잠가 버렸 다. 그는 밖에 남아 있었는데 그녀가 문의 동그란 구멍으로 내다보니 그는 밖의 의자 위에 앉아서 울 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이와 같이 빨간 모자를 쓴 장교가 쫓아온다거나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 가는 광경 등에서 그것이 다름아닌 성교의 표현이라는 것을 인식하셨을 것입니다. 꿈을 꾼 여인이 쫓 아오는 사람을 뒤에 두고 문을 닫아 건다는 것은 꿈에서 그렇게도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전도의 예로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현실 속에서는 남자가 사랑의 행위를 서둘러 끝내 버리기 때문입 니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슬픔도 상대방에게로 전이되었습니다. 꿈속에서 울고 있는 것은 그 남자이며 그것은 또 동시에 사정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모든 꿈들이 성적인 의미를 가진 것 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여러분들도 이미 한 번은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 러한 비난의 브당함에 대해 스스로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앞 에 있는 욕구들, 즉 배고픔이나 갈증, 자유에 대한 갈망 등을 충족시켜 주는 소원-꿈Wunschtraum들 을 이미 알고 있고 편의-꿈과 인내심이 없는 꿈, 또 몹시 탐욕적이고도 이기적인 꿈들에 대해서도 알 고 있습니다. 그러난 매우 심하게 왜곡된 꿈은-이것 역시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주로 성적인 소원의 표현이라는 것을 정신분석학의 연구의 결과로서 머릿속에 기억해 두셔도 좋을 것입니다. (6) 상징을 사용하고 있는 꿈의 예들을 모으는 데에는 내 나름대로우의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우 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신분석학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그것을 설명해 보이는 것과 가르친 것에 대한 확신을 끌어내는 데에 얼마만한 어려움이 있는지 이미 호소한바 있고 여러분들도 그 이후로 그 에 대해서 확실히 동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의 개개의 주장들은 내부적으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어서, 한 가지 문제에서 확신이 서면 전체의 좀더 커다란 부분에 대한 확신으로 자연히 옮겨 갈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 손가락 하나를 내밀게 되면 그것은 벌써 손 전체로 마주 잡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실수 행위에 대한 해명을 이해하게 된 사람은 놀리적으로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믿음을 더 이상 뿌리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해하기 쉬운 두 번째의 부분이 바로 꿈-상징입니다. 이미 다른 곳에서 발표한 적이 있는 평범한 어느 부인의 꿈 이야기를 들려드리 겠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경비원이었고 그녀가 한 번도 꿈-상징이라든가 정신분석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리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그 꿈을 성적 상징의 도움으로 분석하는 것이 자의 적이라거나 억지스럽다는 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여러분들 스스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집 안으로 침입해 들어왔고 그녀는 불안에 가득 차서 경비원을 불러댔다. 그러 나 그는 두 명의 《떠돌이》들과 함께 교회로 가버렸다. 그리로 가려면 여러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교회 뒤에는 산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는 빽빽한 숲이 있었다. 경비원은 헬멧을 쓰고 세운 옷깃 에 외투를 걸치고 있었으며, 갈색 수염이 턱을 덮고 있었다. 얌전하게 경비원과 함께 가고 있던 두 명 의 떠돌이들은 자루처럼 걷어 올린 앞치마를 걸치고 있었다. 교회에서부터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하 나 나 있었다. 그 길은 양편이 모두 풀들과 잡목들로 덮여 있었는데 점점 더 빽빽해져서 산의 꼭대기 에 이르러서는 울창한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사용된 상징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들입 니다. 남성위 성기는 세 명의 사람들로, 여성의 성기는 교회와 산, 숲이 있는 풍경으로 표현되어 있습 니다. 다시금 여러분들은 성행위의 상징인 계단을 만날 수 있습니다. 꿈에서 산으로 불리는 것들은 해 부학에서도 역시 비너스의 언덕Mons Veneris이라든지, 수치의 언덕Schamberg등으로 불립니다. (7) 또 다시 상징 개념을 투입해서 풀 수 있는 꿈을 소개하겠습니다. 꿈꾼 이는 꿈-해석에 관해서 아무런 이론적 예비 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 스스로 모든 상징들을 번역해 내고 있다는 점은 또 주목할 만한 사실이며 증거 능력이 충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매우 특이한 것이고 그에 대한 조건 역시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어떤 곳을 산책했 는 데 그곳은 프라터Prater공원임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원형 건물이 있었고 또 그 앞에는 작은 현관이 있었으며 그 현관에는 계류 기구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구는 안의 공기가 많 이 빠져서 헐렁해져 있었다.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왜 이렇게 여기 있어야 하는가 물었다. 그는 이상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답해 드렸다 그러다가 그들은 어떤 뜰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납으로 된 커다란 양철판이널려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중에서 상당한 크기의 부분을 떼어 내려고 하면서 그 전에 누가 보고 있지 않은지 조심시럽게 주위를 살펴 보았다. 그런 것은 관리인에게 말만하면 아 무 어려움 없이 갖고 갈수 있을 것이라고 그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 뜰에서부터 계단 하나가 지하 실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하실의 벽은 가죽으로 된 안락 위자처럼 부드럽게 그 속이 채워져 있었다. 그 지하실의 끝에는 꽤 긴 플랫폼이 있었고 거기부터 또 다른 지하실이 시작되고 있었다. > 꿈꾼 이 는 이 꿈을 스스로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원형 건물은 나의 성기이고 그 앞에 있는 계류 기구 는 나의 페니스로서 그것이 힘없이 풀죽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요즈음 몹시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 다.> 이것을 조금 더 자세하게 해석해 보면 원형 건물은-어린이들은 흔히 그 전부를 다 성기로 간주 하고 있지만-엉덩이이고 그 앞에 있는 작은 현관은 고환입니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은 다 무얼하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그것은 다시 말하면 성기의 목적과 용도를 물어 본 것이라고 볼 수 있 습니다.이 사태를 뒤집어 보게 되면 꿈꾼 이 스스로가 물어 보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 렇게 물어 본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는 결코 일어날 가능성이 없으므로 우리는 그 꿈-사고를 소원으 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내가 아버지께 성적인 문제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면 어떻게 될 까?>하는 가정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계속해서 다른 부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양철판이 깔려 있었던 그 뜰은 우선은 상징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아버 지의 술집에서 연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꾼 사람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나는 아버 지가 취급하고 있는 다른 물건을 <양철판>으로 바꾸어 말했지만 그렇게 해도 꿈에서 나온 물건의 발 음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꿈꾼 이는 아버지의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이 전체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좋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매우 심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 다. 그러므로 위의 꿈-사고를 계속해서 이어 보면, <(내가 그에게 물었다면) 그는 자기의 고객을 속였 던 것처럼 나를 곳였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사업상의 부정직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떼어 낸다>는 행위에 대해서 꿈꾼 이는 제2의 설명을 통해서 그것이 자위를 의미하고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그 자위의 비밀이 그 반 대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그것을 공공연하게 할 수도 있다는)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러 한 자위 행위는 다시금 아버지에게로 전가되는데 그것은 꿈 장면의 첫번째 부분에서의 물음이 그러했 던 것과 같으며 우리의 모든 기대와 일치합니다. 그는 또 지하실의 벽이 두툼하고 부드럽게 되어 있 다는 사실을 들어서 그것을 즉시 여성의 질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올라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 속에서의 성교 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은 나는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첫번째의 지하실에 이어서 제법 긴 플랫폼이 연결되고 있고 연이어 또다시 지하실이 나타난다는 개멸 적 사실들을 그는 또 자신의 개인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성교 행위를 즐겨 왔는데 어떤 문제가 생겨서 그 행위를 단념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치료를받고 나서 다시 성교를 할 수 있 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8) 어는 이방인이 보고한 다음 두 개의 꿈은 일부다처제의 경향 을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서 나는 이 꿈을, 자신의 자아라는 것이 외현적 꿈에서는 숨겨져서 나타나 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꿈에 어떤 모습으로든 꼭 출현한다고 하는 나의 주장에 대한 증명으로 여 러분들에게 제시하고자 합니다. 꿈속에 나타나는 가방은 여성의 상징입니다. (a) <그는 여행을 떠나는 데, 여행 가방들은 차에 실려서 기차역으로 운반되고 있다. 수많은 가방들이 쌓여 있는 가운데 두 개 의 커다랗고 까만 가방이 유독 눈에 띄는데, 마치 견본 가방처럼 보인다. 그는 누군가에게 《그래, 저 것들은 그저 역까지만 같이 가는 거야》라고 안심시키려는 듯 말한다.> 그는 실제로도 많은 짐들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치료중에도 여자들과의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대화 속에 끼여들곤 했습 니다. 두 개의 검은 가방은 현재 그의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두 사람의 흑인 부인 에 해당되고 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빈으로 그를 따라오려고 했으나 그는 나의 충고에 따라 그것 을 전보로 거절한 바 있었습니다. (b)〈세관에서의 한 장면, 함께 여행하던 어떤 사람이 자기의 가방 을 열면서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담배를 피우면서 말한다.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요》세관 직원 은 처음에는 그의 말을 믿어 주는 듯이 보였으나 다시 한번 가방을 들여다보고는 그 안에서 특별한 금지 품목을 발견한다. 여행자는 《어쩔 수가 없군요》라고 체념한 듯이 말한다.〉여기서 여행자는 바 로 그 자신이고 나는 세관 직원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때에는 매우 정직하게 자신의 비 밀을 들려주었으나 어떤 여자와의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있었던 것 같습 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제대로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확 인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그는 다른 낯선 사람에게 전가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그 자신은 이 꿈에 등 장하지 않는 듯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9) 다음의 꿈은 내가 이제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상징에 대 한 사례로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매 사이이기도 한두 명의 여자 친구와 함께 가고 있던 자 신의 누이동생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는 두 명의 여자들과는 악수를 나누지만 누이에게는 악수를 건네지 않았다.〉현실 속에서 이와 부합되는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의 생각은 저 먼 옛날로 거슬러 올 라가서 소녀들의 가슴이 매우 늦게 발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품게 되었던 생각에 미치게 되었습 니다. 그 두 명의 자매들은 그러니까 가슴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는 그녀가 자신의 누이동생만 아니 라면 누이의 가슴을 한 번 만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10) 꿈속에서의 죽음 상징에 대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 이름을 잊어버리고 만 두 명의 사람들과 그는 매우 높고 험한 철교를 건너가고 있다. 갑자기 두 사람은 사라지고 그는 린네 옷 을 입고 있는 유령처럼 생긴 사람을 만난다. 그가 혹시 전보 배달부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아니오 》라고 답하고, 그럼 혹시 마부가 아니냐고 묻는다. 그는 역시《아니오》라고 답한다. 그는 계속해서 걸어갔고…….〉 꿈속에서도 커다란 두려움을 느꼈는데 깨어난 후에도 계속 그에 대한 공상을 이어 나가다가 철교가 갑자기 끊어지면서 자신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꿈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누군지 잘 모르겠다거나 그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렸음이 특히 강조되는 사람들 은 대개는 자신과 매우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꿈꾼 이에게는 두 명의 남자, 여자 형제가 있었는데 그 가 만일 이 둘이 죽기를 원했다면 그로 인한 죽음의 공포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전보 배달부에 관해서는, 그러한 사람들이란 늘상 불행한 소식을 가져다 줄 뿐이라고 그는 믿었던 것 입니다. 그가 입고 있던 제복으로 보아 그 사람은 어쩌면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가 로등 켜는 사람이란 죽음의 정령이 생명의 등불을 꺼버리듯이 그 가로등을 꺼버리기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마부에 관해서 그는 울란트Uhland의 시 '카를 왕의 항해Konig Karl Meerfahrt'를 연상하면 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했던 위험천만 했던 항해를 기억해 냈습니다.(울란트의 시'카를 왕의 항해'에 서 카를 왕은 열두 명의 기사와 신비의 땅으로 항해하던 중 폭풍을 만난다. 열두 기사들은 차례로 불 안에 빠졌으나 카를 왕은 말없이 키를 잡고 배를 안전하게 조종했다.) 그는 그 속에서 시에 나오는 왕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철교에 관해서는 그는 최근에 있었던 한 사고와〈삶이란 허공에 매달린 다리〉라는 진부한 속담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11)죽음을 나타내고 있는 또 다른 한 예로는 〈낯모 르는 어떤 신사가 내게 까만 테가 둘러쳐진 명함을 건네었다〉는 꿈이 알맞을 것 같습니다. (12) 여러 가지 점에서 다음의 꿈은 여러분의 흥미를 끌 것으로 보이는데 이 꿈에는 또 신경증적 상황이 전제되 고 있습니다. 〈 그는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기차는 텅 빈 들판에 멈추어 섰다. 그는 사고가 곧 일 어날 것이라고 예감하고는 도망갈 궁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차의 칸칸마다 뛰어들어서는 차장이 됐던, 기관사가 됐든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때려 죽었다.〉이에 대해서 그는 어떤 친구의 이야 기를 기억해 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어떤 철도 구간에서 한 미친 사람이 분리된 객차 칸에 넣어 져서 호송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착오가 생겨서 여행자 한 사람이 그 사람이 타고 있던 칸으 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미친 사람은 그 여행자를 때려 죽였습니다. 꿈꾼 이는 자신을 이 미친 사람 과 동일시하면서, 그를 때때로 괴롭히고 있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없애 버려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스스로 더 좋은 동기를 찾아냈는데 그것이 그 꿈을 꾸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제 극장에서 결혼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여자 쪽에서 질투 를 일으킬 만한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스스로 단념하고 말았던 여자를 만났던 것입니다. 만일 그가 그녀와 결혼하기로 작저했다면 그의 마음속에 불타오르기 시작한 질투심의 강도는 그를 미쳐 버리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그로서는 그녀를 너무나도 믿을 수가 없었으므로 그의 사랑을 방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죽여 버릴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방방으로 뛰어드었다는 것은, 여기서는 기차의 객차 칸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을 기혼 상태에 대 한(일부일처제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상징으로 인식한 바 있습니다. 텅 빈 들판에 기차가 멈추어 섰 다는 것과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는 것 등을 설명할 때 그는 다음의 사실들을 연관지었 습니다. 즉 언젠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에 역이 아닌 곳에서 그와 같이 멈추어 선 일이 있었 는데, 같이 동행하던 젊은 여자는 기차가 충돌할 위험이 있는 것 같으니까 두 다리를 올리는 것이 안 전할 듯하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두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은 그가 옛날의 그 여자와 행복하 게 사랑을 나누었던 시절에 산책을 하거나 드넓은 자연 속으로 피크닉을 하곤 했을 때 수없이 치렀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녀와 결혼하려고 했다면 미쳐 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미쳐 버렸으면 하는 소원이 그에게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었습니다. 열세 번째 강의 꿈의 태고적 특성과 유아성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의 논의를 진행시켜 나가면서 또다시, 꿈-작업은 잠재적 꿈-사고를 꿈-검열 의 영향 아래에서 다른 표현 방식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라는 우리의 결론을 들추어 내지 않을 수 없 습니다. 잠재적 사고는 깨어 있을 때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의식적 사고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표현 방식은 여러 가지의 특징으로 인해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특징들이 우리가 예전에 그복하고 지나온 우리의 지적 발달 과정의 여러 상채에 상응하는 것이며 우리의 사고 언어가 발달하기 이전에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었던 상형 언어들이나 상징 관계, 또 어딘지 그와 비슷한 상황들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작업의 이러한 표현 방식을 〈태고적, 혹은 퇴행적〉이라고 명명하려고 합 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여러분들은, 꿈-작업에 관해 더욱 심오한 연구를 해나감으로써 지금까지 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의 지적 발달의 시작에 관한 중요한 열쇠들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게 되 리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도 역시 그렇게 되리라고 희망하고 있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이 러한 작업은 아직 착수되지 않고 있습니다. 꿈-작업이 우리를 되돌려 놓고 있는 그 이전 시기는 이중 적인 것으로서 첫째는 개인적인 이전 시기, 즉 유년기라고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모든 개개인이 자신의 유년기를 통해 인류의 모든 발달 과정을 어떤 형식이 됐든 축약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한에서 이러한 이전 시기는 계통 발생적인 이전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재적인 정신 과정의 어떤 부분이 개인적인 것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또 어떤 부분이 계통 발생적인 이전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재적인 정신 과정의 어떤 부분이 개인적인 것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또 어떤 부분이 계 통 발생적인 태고 시대에서 유래하고 있는지를 구별하는 일을 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 습니다. 예를 들어 개개인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상징 관계와 같은 것은 계통 발생적인 유산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꿈의 유일한 태고적 특성이라고는 볼 수 없 습니다. 여러분들 모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 특이하다고 할 만한 유년기의 망각에 대해서 잘 알 고 계실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인생의 첫번재 시기, 다섯 살 혹은 여섯 살, 또 여덟 살 때까지의 시 기는 그 이후의 체험과는 달리 기억 속에 희미한 흔적밖에 남겨 놓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것 입니다. 초기의 어렸을 적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지속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고 자랑하 는 몇몇 사람들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들, 기억의 틈이 엄청난 경우들은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한 것입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충 분히 놀라워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아이는 두 살이 되면 잘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이 복잡한 정신적 상황 속에서도 곧잘 대처하고 있음은 여기저기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은 잊어버리고 말지만 수년이 지나서까지도 다른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게 되는 어떤 특이한 이야기를 하 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초기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 이후보다 부담이 훨씬 덜 하기 때문에 후년의 기억보다 기능이 우수합니다. 기억능력이라는 것이 고도의 특별히 어려운 정신적 능력이라고 인정해 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반대로 지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사람들에게서도 탁월한 기억력을 발견할 수 있는 예가 아주 많습니다. (유아기 망각에 대한 더 이상의 논의는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프 로이트 전집9,열린채들)를 참조할 것.) 이러한 유년기의 기억에 부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이성은 그 초창기의 유년기를 뒤덮고 있는 기억의 허공에서부터 몇몇 개의 잘 보존된 차라리 조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기억들이 두드러져 나타난다는 것인데 부분적으로 몇몇 개의 기억이 그처럼 잘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앞서의 상황을 통해 잘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이후의 삶 속에서 일 어나는 여러 가지 인상들의 재료와 관련해서 우리 기억은 그 중 어떤 것만을 추려내는 선별 작업을 취하는 듯이 보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중요한 것은 남겨두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탈락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잘 보존된 유년기의 중요한 체험과 꼭 부합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보았 을 때 중요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조차도 잘 보존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혼합니다. 그것들은 때때 로 너무도 진부하고 무의미한 것들이어서 어째서 이러한 것들이 망각 속으로 묻혀지지 않고 기억되고 있을까 하고 스스로도 의아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 자신도 예전에 이 유년기의 망각이라는 수수 께끼와 그것들에 맞서서 살아남아 있는 기억의 흔적들을 정신분석의 도움을 빌어 풀어 보려고 시도하 였고 그 결과, 어린아이에게도 오로지 중요한 것들만이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바 있습니다. 이 중요한 것들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압축 과정과 또 특별하게 전위의 과정을 거 쳐서 중요하지 않게 보이는 다른 것들로 대치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유년기 기억 을 중요한 회상을 억제하는 은폐기억Deckerinnerung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은폐 기억에 대해서는『 일상 생활의 정신병리학』참조) 철저한 분석을 통해서 이 은폐 기억에서 잊혀진 모든 것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신분석적인 치료에서는 거의 일반적으로 유아기 기억의 틈을 메워야 하는 과 제가 주어지는데, 이 과제가 제대로 수행되는 경우에만 rmEO의 치료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 대체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처럼 망각에 덮여 있던 유년기의 내 용들은 다시금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이러한 인상들은 실제로 잊혀진 일은 결코 없고 그것들은 다만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 잠재적으로 변해 버린 것으로서 무의식에 속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들이 변해 버린 것으로서 무의식에 속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자발적으로 무의식에서 솟아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꿈과 연결되어서 그렇게 됩니다. 꿈-생활Traumleben은 이러한 잠 재적인 유아기의 체험에 연결되는 통로를 알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를 입증하는 매우 아름 다운 예가 관련 서적에 기록되어 있고 나 또한 그 방면에서 작은 공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언 젠가 어떤 관련성 속에서였는지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어떤 사람의 꿈을 꾼적이 있는데 그를 나는 꿈 속에서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몸집이 자그마한, 애꾸눈을 가진 남자였는데 몸은 뚱뚱했고 머 리는 어깨 속에 깊숙이 박혀 있었습니다. 나는 꿈 속의 관련성 속에서 그가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 었습니다. 나는 꿈 속의 관련성 속에서 그가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 나는 그 무 렵까지도 살아 계시던 어머니께, 내가 세 살이 되면서 떠나 왔던 고향 마을의 의사가 어떻게 생긴 사 람이었던지를 물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애꾸눈이고, 키 작고 뚱뚱하며, 머리가 어깨 속에 깊숙이 박 혀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또 이미 나 자신은 망각해 버린한 사고를 당했을 당 시에 그가 바로 나를 치료해 주었다는 사실도 드을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유년 시절의 잊혀진 자료 들에 대한 이와같은 기억이야말로 꿈의 또 다른 태고적 특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억 정 보는 또, 우리가 지금까지 부딪쳐 왔던 수수께끼의 또 다른 특성에서도 힘을 발휘합니다. 꿈을 꾸게 만드는 인자는 아주 사악하고 방종스러운 성적인 소망이며 바로 그것이 꿈-검열과 꿈-왜곡을 필수적 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통찰에 도달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경악했던지를 여러분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꿈꾼 이에게 그와 같은 꿈을 해석해 주었을 때에, 아주 호의적인 경우 그가 그 해석 에 대해서 반박하지 않을 ㄸ라 하더라도 그는 계속해서 그와 같은 소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를 자문해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에게는 그 내용이 낯설기만 하며 오히려 스스로는 그와 반대되 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쁜 소원 충동은 과거에서 오는 것일 때가 많 습니다. 그것들은 지금은 비록 기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옛날에 언젠가는 알고 있었고 의식되었던 것들입니다. 17세인 자신의 외동딸이 눈앞에서 죽기를 원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꿈을 꾸게 된 어떤 부 인은 우리가 그 꿈을 해석해 주자 자신이 언젠가 이러한 소원을 품었던 적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 니다.(『 꿈의 해석』에서는 이 꿈속에 등장하는 소녀의 나이가 열다섯 살로 기록 되어 있다.) 그 아 이는 불행으로 끝나 버린, 얼마 가지 않아 곧 결별해 버린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그녀가 그 딸아이를 아직도 뱃속에 임신하고 있었을 무렵, 그녀는 남편과 격렬하게 싸우고 난 후 뱃속에 있는 아기를 죽이기 위해 걷잡을 수 없는 분노 속에서 자신의 배를 주먹으로 마구 두들겨팼던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자신의 아이를 매우 사랑하고 있고 어쩌면 너무 과도하게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 를 그 많은 다른 어머니들도 한때는 자신의 아이를 환영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자신의 뱃속에 있는 생명이 계속해서 자라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소원은 다해스럽게도 위 험스럽지 않은 여러 가지 다양한 행위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 기를 바라는 훗날의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소원은 그들과 맺은 관계가 형성된 저 먼 과거에서 유래하 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맏자식의 죽음을 바라고 있는 것이라는 꿈-해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어 떤 아버지는 이 소원이 언젠가 그에게 낮설지 않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야만 했습니다. 이 아이가 아직 젖먹이였을 적에 자신의 결혼 선택에 휘의를 느끼고 있었던 그 남자는 자신에게 아무것 도 의미하지 않는 이 작은 존재가 죽어 버린다면 자신은 그 결혼에서 자유로워질 것이고, 그로부터 얻은 자유를 좀더 유용하게 쓸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미움 충동 HaBregung 의 많은 경우들 또한 유사한 유래를 가지는 것으로서 그것들은 지금은 과거에 속하지만 한때는 의식 하고 있었고 정신 생활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어떤 것들에 대한 기억들인 것입니다. 여 러분들은 이러한 사실들에서, 한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 만일 그와 변화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고 그러 한 관계가 처음부터 똑같은 것이었다면 그러한 소원이나 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려고 할 것이빈다. 나도 여러분들의 그와 같은 결론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를 환기하고 싶은 것은, 꿈이 나타내고 있는 그 표면적인 의미가 아니라 해석에 따라 나타난 그 꿈의 의미를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매0우 사랑하고 있는 한 사람 이 죽기를 바라는 내용의 외현적 꿈은 단지 어떤 무서운 가면을 쓴데 불과하명 그서은 전혀 다른 어 떤 것을 의미한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기만적인 대용물로 나타났을 경우도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은 여러분들에게 또 하나의 다른, 더욱 심각하고도 진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반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죽음 소원Todeswunsch이 언젠가 존 재했고 또 기억에 의해 그것이 확인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어떠한 해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것은 이미 예전에 극복된 것이고 오늘날에는 아무런 감정이 붙어 있지 않는 기억으로서 무의식에 머 물러 있는 것일 뿐 전혀 힘있는 소원 충동이라고 할 수 없으며, 이러한 무의식을 확증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것이 꿈속에서 기억되는 것이냐>는 반론이 그것입니다. 네, 실제 로 이러한 질문은 매우ㅡ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답을 주고자 하는 시도는 우리의 연구를 너무나 멀리까지 확장시켜 갈 것이며 꿈-이론의 중요한 지점에서 어떤 확실한 입장표명을 요구할 것 입니다. 나는 그러나 우리 연구의 일정한 틀 안에서 머물면서 우리의 연구 내용을 계속 탐구해 보려 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렇나 질문에 대해 답변을 얻어내고자 하는 시도를 단념해야 할 것입니다. 꿈을 일으키는 인자로서의 이렇게 극복된 소망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적인 증명으로만 만족하고 다른 나쁜 소원들도 과거에서 이와 같이 유도해 낼 수 있는 것인지 연 구를 계속해 나가기로 합시다. 그렇지만 잠시 동안 이 제거 소망Beseitigswunsch에만 머물기로 합시다. 그것들은 대개는 꿈꾸는 이 의 무제한적인 이기주의에 그 원인을 돌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꿈을 형성하는 원인으로서의 그러한 소망은 매우 쉽게 증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누군가가 장애물이 되었들 때 - 인간 관 계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갈수록 그런 일은 얼마나 흔히 일어나는 것인지- 그렇게 되면 꿈은 그 대상 이 아버지가 되었든 어머니가 되었든, 혹은 형제 자매나 결혼 상대방이 되었든 곧 그를 죽여 버릴 준 비를 갖추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인간 본성의 이러한 추악성에 대해서 매우 놀라워한 나머지 꿈-해 석의 이 결과가 옳은 것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원의 근워ㅏ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암시를 받게 되면, 그러한 이기주의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그렇나 소원 충동이 더 이상 낯선 것이 될 수 없는 개인적 과거의 어는 시기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저 옛날, 어린 시절의 아이의 모습으로서, 훗날에 이르러서는 망 각에 덮여 버려 잊혀지지만, 이 작은 존재는 어떤 때는 극심할 정도의 이기주의를 드러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기주의에는 일반적으로 분명한 원인이 있는 것이고 바로 그것의 잔류물임 이 확실한 내용들이 때때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뿐이 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 자신의 자아를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법은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배우 게 됩니다. 아이가 처음부터 사랑하는 듯이 보이는 그러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처음에는 자신이 그 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 그들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 은 다시금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후에 가서야 비로소 사랑의 충동은 이기주의에서 독 립하게 됩니다. 아이가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실제로 이기주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관성 속에서 형제 자매들에 대한 아이의 입장을 부모의 입장과 비교해 보는 것이 유익할 듯 합니다. 그의 형제 자매들을 그작은 아이가 꼭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며 분명하게 사랑하지 않는다 는 것이 드러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아이가 형제 자매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경쟁자를 발견하고 미워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 상태는 긴긴 세월을 거쳐 성숙 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며 나중에까지도 끊임 없이 지속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 실입니다. 그것들이 또 사랑하는 감정으로 바뀌는 경우도 충분히 많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사랑하는 감정과 중첩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적대적인 마음이 일반적으로 연원이 더 오래된 듯이 보입니다. 자신의 동생을 새로이 맞이하게 된 두 살 반에서부터 4,5세까지의 어린아이들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동생은 환영받지 못하고 배척을 받습니다. <나는 저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황새가 그 애를 다시 데려갔으면 좋겠어>라는 등의 말을 일상적 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 새로이 태어난 그 아이를 깎아 내릴 수 있는 기회라면 모두 이용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시도나 심지어는 직접적인 암살기도 역시 전대미문의 일 이 아닌 것이 됩니다. 나이 차이가 특히 적을 경우, 강한 정신적 활동이 눈을 뜨게 되는 시기에 이른 아이는 동생의 모습에서 자신에 대한 강한 경쟁자를 발견하고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 런데 나이 차이가 많았지면 그 새로운 존재는 처음부터 재미있는 대상, 이를테면 일종의 살아 있는 인형처럼 여겨져서 애틋한 마음을 유발하게되며, 나이 차이가 여덟 살, 혹은 그 이상이 되면 특히 여 자아이의 경우, 보호해 주려는 모성적인 충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어쨌든 정확하게 말해서 형제 자매 가 죽기를 바라는 소원을 꿈의 배후에서 발견하게 될 때 그것을 그렇게도 기이한 것으로 여길 필요는 없는 것이며 예전의 어린 시절에서 그것의 원형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그 이 후의 시간 동안 함께 자라 나가는 사이에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형제 자매들이 함께 커나가는 아이들 의 방에서 결렬한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곳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싸움의 동기는 부모의 사랑을 서 로 차지하려는 경쟁심 때문이고 공동의 소유물과 공동의 생활 공간을 둘러싼 경쟁심 때문입니다. 적 대적 충동은 자신보다 나이 어린 형제 자매에게 뿐 아니라 더 큰 형제들에게도 향해집니다. <젊은 영 국 부인에게 자기의 어머니보다도 더 미워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언니일 것>이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버나드 쇼였던 것 같습니다. (버나드 쇼의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제 2막에서 존 태너간이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명에는 우리를 다황케 하는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는 듯이 보입니다. 형제 자매 사이의 미움이나 경쟁심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 준다고 하 더라도 딸과 어머니의 사이, 부모와 자식 간에 그러한 미움의 감정이 어떻게 끼여들 수 있는 것일까 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어린아이의 편에서 보더라도 형제 자매에 대한 관계에 비하여 의심할 여지없이 더 호의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의 기대에 잘 부합됩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 식 간에 있어서 형제 자매 사이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불가해한 일 로 여겨질 것입니다. 우리는 말하자면 다른 경우에서는 세속적이고 평범하게 느끼는 것이라 하더라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만큼은 어쩐지 신성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관찰이 입증해 주고 있는 바대로 부모와 장성한 자식 간의 감정 관계 역시 사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대로 부모와 장성한 자식 간의 감정 관계 역시 사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상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 는 경우가 얼마나 빈번한지 모릅니다. 경건함과 애정어린 관심이라는 부차적인 감정이 그것을 억누르 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적개심이 개입되어 겉으로 드러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동기 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하나의 일반적 경향을 드러내 주는데, 그것은 같은 성끼리 서로에 대 해 반발심을 일으키게 되는 경향으로서 딸은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멀어집니다. 딸은 어 머니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의지에 제한을 가하려는 권위적 자세를 보게 되고 성적 자유의 포기라는 사회의 요구를 그녀에게서 관철시키려고 분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 어떤 경우에 어머니는 그 러한 억압에 반대하는 경쟁자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관계가 아들과 아버지 사이 에서 더욱더 뚜렷한 모습으로 반복됩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유 의사에 반하는 그 모든 사회적 강 제를 구현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의지에 따라 행동하려는 통로를 막아 버리고 너무 빨리 성적 쾌락에 빠져 드는 것을 금지하며, 가족 간의 공동 재산이 있을 경우, 그것을 누리는 것을 억압합니다. 아버지가 죽기만을 엿보는 이와 같은 심리는 그러므로 황태자의 경우에 비극으로까지 치 달을 만큼 엄청난 정도로 발전합니다. 아버지와 딸의 경우, 또 어머니와 아들 간의 관계는 덜 위험스 러워 보입니다. 후자의 예는 어떤 이기주의적 감정으로도 상처받는 않는, 불변하는 애정의 가장 순수 한 본보기가 됩니다. 내가 왜, 이처럼 진부하고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사회에는 분명히 삶 속에서 이런 사실들이 차지하는 의미를 부인하고, 사회 적으로 요구되는 이상이 실제로 충족되고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잘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 고자 하는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제를 냉소주의자에게 떠맡겨 버리기보다는 심리학 자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부인은 현실적 삶에 만 관계됩니다. 소설을 쓴다거나 희곡을 쓰는 극작 활동과 같은 예술은 이러한 이상의 장애에서 출발 하는 동기들을 소재로 풍부한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의 꿈속 에서 부모의 제거, 특히나 동성의 부모 한쪽을 없애 버리고 싶어하는 소원이 발견됐다고 해서 그리 놀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원은 깨어 있을 때의 삶 속에서도 존재하고 있고, 우리의 세 번 째의 예에서 꿈꾼 이가 아버지의 무익한 고통에 대해 동정했던 것처럼 어떤 다른 동기로 가면을 쓰고 나타날 경우, 심지어 어떤 때는 의식되어지기도 한다고 가정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적대감 이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전부 지배하는 일은 몹시 드물고 훨씬 더 많은 경우에 애정어린 감정의 뒤 로 후퇴하게 되며 또 애정에 억압되거나 혹은 꿈이 그것을 바로유리시켜서 독자적인 힘을 얻게 될 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유리의 결과, 꿈이 우리에게 지나치게 커다랗게 보여 주는 것, 그것은 우리가 그 꿈을 해석해 주고 난 후 삶의 전체 연관성 속에 편입된 다음부터는 다시 왜소해집 니다. (한스 작스의 글 참조-원주. 작스의 '꿈-해석과 인간 지식Traumdeutetung und Menschenkenntnis'(1912)참조) 그러나 또 이러한 꿈-소망은 우리의 삶과 아무런 연관을 맺고 있지 않 은 곳, 즉 보통의 성인들이라면 깨어 있을 때엔 곁코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곳에서도 발 견됩니다. 그 이유는, 특히나 동성인 부모와 자식 간에서 흔히 발견되는, 가장 깊고 일반적인 소외의 동기가 이미 아주 어릴 적의 유년기에서부터 확립되어 왔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애정의 경쟁은 성적인 특성을 유달리 강조하는 태도에 기인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아들은 아 주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발전시켜 나가며 어머니를 자신만의 것으로 생각하고, 아버지 혼자만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경쟁자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와 마찬가지 로 어린 딸은 어머니를, 아버지에 대한 애정어린 관계를 방해하고 자기 스스로가 아주 훌륭하게 대신 할 수도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로 간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Odipuskomplex로 지칭하고 있는 이러한 감정 상태가 얼마나 먼 과거의 시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는 여러 가지 사례에 대한 관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는 아들이라는 상황 이 불가피하게 만들어 내는 두 개의 극단적 소원, 즉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하는 소원이 약간만 약화된 형태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아이 들의 부모에 대한 관계 전부를 설명해 주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훨씬 더 복잡 한 양태를 띨 수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역시 다소 차이나게 형성될 수 도 있다는 것이고 어 떤 식의 반전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동의 정신 생활 속에서 매우 일반적으고도 중 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의 영향이나 그것에서 시작되는 발전 상황들을 과대 평가하기보다는 과소 평가하려는 위험성이 더 많습니다. 어쨌거나 오이 디푸스적 감정 상태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성별의 차이에 따라 구별을 두어서 사랑하는 대상을 선택 하는 행위, 즉 아버지는 딸을, 또 어머니는 아들을 더 좋아하는 행위에 대해서나, 혹은 결혼 생활에서 사랑이 식었을 경우 더 이상의가치를 상실해 버린 동반자에 대한 사랑 대신에 자식을 사랑 대상 Liebeobjekt으로 삼으려 하는 부모들의 자극에 아주 쉽게 반응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한 정신분석학의 연구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반대 로 이 발견은 성인들 사이에서 아주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찍이 이처럼 이상 야릇하고 금기시되는 감정 관계를 부정하는 일에 동참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멋대로 해 석하면서 그 진정한 가치를 빼앗아 버림으로써 자신의 빚을 나중에 훌륭하게 되갚기도 했습니다.(아 들러A. Adler와 융C.G Jung의 탈퇴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나의 변함 없는 확신에 의하면 이 사실은 달리 어떻게 부정할 수도 미화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에게 불가피한 숙명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러한 상황과 타협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서 추방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창작의 손에 맡겨져서 완전히 자유롭게 처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랑크가 세심한 연구 끝에 밝혀낸 바에 따르면(랑크의 '문학과 전설에서의 근친 상간 모티프Das Inzest-Motiv in Dichtung und Sage'(1912)참조) 바로 이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우리가 이미 알 고 있는 검열의 산물로서, 다시 말하면 그렇게 왜곡된 모습으로 끝없는 변화와 완화, 변장을 거쳐서 희곡 문학에 풍부한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후년의 생활에서 그들의 양친과 별다른 갈 등을 겪지 않는 행복한 사람들의 꿈에서도 역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우리가 거세 콤플렉스Kastrationskomplex라고 부르는 것, 즉 초기 유아적 성행위를 억압하고 위축 시키는 역할을 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거세 콤플렉스와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 다. 유아의 정신 생활을 연구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금지된 꿈-소망의 다른 부분 들, 이를테면 과도한 성적 충동의 유래에 대해서 비슷한 설명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도 좋을 듯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아의 성생활의 발달 과정을 연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며 여러 가지 근거를 통해 다음과 같은 거슬 깨닫게 됩니다. 즉 그것은, 아동들의 성생활을 인정하지 않고 성 이란 사춘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 기관의 성숙과 함께 시작된다고 하는 가정이 얼마나 근거 없는 오류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동은 그 반대로 맨처음부터 대단히 풍부한 성생활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정상적이라고 인정되는 이후는 성생활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 의 생활 속에서 <성도착pervers>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상적인 행위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가 납 니다. 첫째로, 종의 장벽(인간과 짐승 간의 메울 수 없는 심연)을 뛰어 넘는 것이며 둘ㅉ로, 혐오감이 라는 장벽을 초월하는 것, 셋째로는 근친 상간의 벽(혈연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서 성적 만족을 구하 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넷째로 동성 간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그리고 다섯째로 성기의 역할을 다 른 신체 기관이나 신체 부분으로 확장시키는 따위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장벽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발달 과정과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형성된 것들입니다. 어린아이는 이 러한 것들에서 자유롭습니다. 아이는 인간과 짐승 간의 그 극복될 수 없는 차이를 아직 알지 못합니 다. 인간이 짐승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하는 그 오만은 이후에야 비로소 점차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아 이는 처음에는 배설물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혐호감을 느끼지 못하며 교육이 그렇게 강조하기 때문에 차차 그것을 배우게 될 뿐입니다. 아이는 성별의 차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며 그 두 성에 동일한 성기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최초의 성적 쾌락과 호기심을 자 기와 가장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인 부모나 형제, 자기를 돌보아 자는 사람에게로 돌립니다. 그리고 마 지막으로(나중에 애정 관계의 최고점에서 다시금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신체 부위에서도 그와 동일한 느낌을 찾으려 하는데, 그것들은 유사한 쾌감을 가져다 주면서 성기의 역할까지도 떠맡 게 되는 것입니다. 아동은 그러므로 <다형성 도착polymorph pervers> 상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또 아동이 이러한 모든 충동들을 아주 미미한 형태로만 드러내는 것은 한편으로 그 강도가 이후의 삶 에서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극히 미약한 데에도 원인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교육 과정이 아동의 모 든 성적 표현들을 즉시 강하게 억눌러 버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억압 경향은 말하자면 이론 속에서도 계속되어서 성인들은 아동의 성적 표현의 일부분은 간단히 간과하여 버리려고 노력하며 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해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성적인 성격을 벗겨 내려고 애를 씁니다. 어린이 놀이방에서 아동들의 모든 성적인 성격을 벗겨 내려고 애를 씁니다. 어린이 놀이 방에서 아동들의 모든 성적인 나쁜 행위들에 대해서 엄격하게 통제하며 분노를 터뜨리다가도 책상 앞 에 앉아서는 아동의 성적인 순수성을 열렬하게 변호하는 이들은 때ㄸ로 동일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 니다. 아동들이 혼자 있도록 내버려져 있을 때나 유혹을 받을 때 그들은 실로 놀라울 정도의 성적 도 착 행위들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아동들의 행위를 <어린애들의 짓>이나 <장난치는 것>정도로 보아 넘겨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옳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아동들은 관습의 엄격함이 나 법칙 앞에서 완전하고도 책임감 있는 존재로 평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엄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들은 타고난 소실의 징표로서나 이후 발달 과정의 원인이나 촉진 제로서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아동들의 성생활과 아울러서 인간들의 성생활 전 체에 대하여 어떤 열쇠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왜곡된 꿈의 배후에서부터 이 모든 도착적인 소원 충동들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꿈이 바로 여기서도 유아적 상태로 퇴행했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러한 금지된 소원 충동들 가운데 특별히 두드러지는 것은 근친 상간적 소원인데, 다시 말하면 부모나 형제 부모나 형제 자매와 성교를 하고자 하는 소원입니다. 그러한 성행위에 대해 서 인간 사회가 얼마만한 혐오감들을 느끼고 있고, 또 적어도 그러한 것들을 금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금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이 경주되고 있는지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근친 상간 혐오증을 설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쏟아 부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부에서는 그것을 자연 스 스로의 품종 개량에 대한 고려라고 가정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금지에는 동종교배를 하면 종족의 특 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생각이 심리적으로 표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유년기부터 식구들과 함께 살아 왔기 때문에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성적 욕망이 다른 데로 돌 려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두가지 경우 모두, 근친 상간은 자동적인 금지 사 항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격한 금지가 요구되는 것은 오히려 그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학적 연구는 명확하게, 근친 상간적인 사랑의 선택이 더 오래된 것이고 일반적인 것이며 그에 대한 거부감은 그 후에야 비로소 형성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저항을 개인심리학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규명하는 것은 명백하게 불가능합니다. 아동 심리학에 대한 깊은 연구가 꿈의 이해를 위해서 공헌한 것이 무엇 인지 요약해 봅시다. 우리는 망각된 어린 시절의 체럼이라는 재료가 꿈속에서는 도달 가능한 것이 된 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모든 특성이나 에고이즘, 근친 상간적인 사랑 선택 등을 포함한 아동의 정신 생활 모두가 꿈속에서, 다시 말해 무의식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꿈은 밤마다 우리를 이러한 유아적 단계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정신 생활에서 무의식적인 것은 유아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경하기만 했던 사실, 즉 인간들의 마음속 에 그토록 많은 사악함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이제 완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놀랍도록 무서운 사악함은 단순히, 유아의 정신 생활에 존재했던 처음의 것, 원시적인 것, 유아적인 것으로서 아동들의 내면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의 저급한 차원 때문에 간과되어 버리거나 또 한편으론, 아동들에게 그 어떤 윤리적 기준도 요구할 수 없음으로 해서 가볍게 보아 넘겨 버리게 됩니다. 꿈은 바로 이러한 단계로까지 퇴행하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도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사악함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놀라워해 마지않았던, 우 리를 현혹하는 가상일 뿐으로 우리가 꿈-분석을 통해서 가정하려고 했던 것만큼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사악한 존재는 아닌 것입니다. 꿈속에 나타나는 사악한 충동들이 단지 유아적인 것에 불과하며 생각 하는 것에서나 느끼는 것에서 꿈이 우리를 단순하게 어린아이의 상태로 만들어 줌으로써 우리가 우리 들의 윤리적 발달 단계의 초기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면, 이러한 사악한 꿈을 꾼다는 것 때문에 부끄러 워해야 할 이유는 당연히 없습니다. 우리의 정신 생활 가운에 이성적인 것은 단지 한 부분일 뿐이며 영혼 속에서는 그 밖에도 이성적이라고 볼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비이성적이게도 그러한 꿈들을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꿈-검열에 맡기기도 하 고 부끄러워하며, 또 이러한 소원 중의 하나가 예외적으로 그리 왜곡되지 않은 모습으로 의식속으로 밀치고 들어오는 데 성공하게 되어 그것을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되면, 분노하면서 마치도 우리가 그것 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처럼 그 왜곡된 꿈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봉사> 꿈을 꾸었던 저 점잖고 나이 많은 부인이 자신의 꿈을 우리가 해석해 주기도 전에 그 꿈에 대 하여 격노했던 사실을 상기해 보십시오. 문제는 그러니까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며 우리가 계속하서 연구해 나가게 된다면 또 다른 판단을 하게 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평가에 이르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모든 연구의 결과로서 우리는 두 개의 결론을 요약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단지 새로운 수수께끼와 새로운 의심의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첫째로, 꿈-작업의 퇴행 은 그저 형식적인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또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꿈- 작업은 우리의 생각을 원시적인 표현 방식으로 번역해 주는 것뿐아니라, 자아의 그 옛날의 절대 권력 이라든지 우리의 성생활의 원초적인 충동, 그리고 물론 상징 관계를 인간의 지적인 소유물로 간주한 다고 할 때 심지어는 인류의 오래된 지적인 소유물까지 포함하는, 그 모든 우리의 원시적 정신 생활 의 고유한 특성들을 다시금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둘ㅉ로, 이전에 우리를 완전히 지배했던 옛날의 이 모든 유아적인 것은 오늘날에 와서는 무의식으로 간주할 수밖의 이 모든 유아적인 것은 오늘날에 와 서는 무의식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데 이 무의식에 관해서 우리의 표상은 점점 변화되어 가고 확장 되어 가고 있습니다. 무의식이라는 것은 더 이상, 그 순간 잠재적으로 숨어 있는 것에 대한 이름이 아 니고 자신만의 소원 충동과 자신만의 표현 방식, 그리고 보통 때는 활동하지 않는 고유한 정신적 활 동 체계Mechanismus를 가진 특별한 정신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해석을 통 해서 추론해 낸 바 있는 잠재적 꿈-사고라는 것은 이 영역에서 나오지 안혹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도 생각할 수 있었던 그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식적이라는 특성을 갖는 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모순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요?우리가 여시서 예감하 기 시작한 것은 여기에 특별한 구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의식의 특성을 그대로 나누어 갖는 것으 로서 우리의 의식적인 생활에서 유래하는 어떤 것(우리는 그것을 낮의 잔재Tagesreste라고 부르려 합 니다) 이 무의식의 저쪽 영역에서부터 온 어떤 다른 특성과 함께 굼-형성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러 한 두 개의 부분 사이에서 꿈-작업은 수행됩니다. 낮의 잔재의 영향이 거기에 비집고 들어오는 무의 식으로 인해 아마도 퇴행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영적 영역을 연구해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도달할 수 있는 꿈의 본질에 관한 가장 깊은 통찰일 것입니다. 이제는 그러나 유아적인 저 영역에서 오는 무의식과 구별하기 위해서 잠재적 꿈-사고의 무의식적 특성에 다 른 이름을 붙여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온 듯합니다. 심리적 활동으로 하여금 잠자는 동안에 그러한 퇴 행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당연한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잠자는 동안 에 퇴행을 하지 않고는 수면을 방해는 심리적 자극을 처리할 수 없는 것일까요?만일 꿈-검열이라는 동기로 인해서 과거의, 이제는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린 표현 방식의 가면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 낡은, 지금은 극복되어 버린 정신적 충동과 소원 특성들, 다시 말하면 형식적인 것에 덧붙여지는 물질 적인 퇴행들을 다시 부활시켜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우리를 만족시줄 만한 단 하나의 대답은, 오직 그러한 방식으로만 꿈이 형성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점이며 역동적으로 꿈-자극 Traumreiz을 그렇게 제거하는 수밖에는 달리 어떤 방법이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러한 대답을 자신 있게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열네 번째 강의 소원 성취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가 지금가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가를 다시 한번 상기해 봅시다. 우리는 우리의 기법을 적용하는 데 꿈-왜곡과 마주치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것에서 비껴 가려고 작정했다가 유아들의 꿈에서 꿈의 본질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결과로 단단히 무장하고 나서 꿈-왜곡을 직접적으로 공략하게 되었고 내가 희망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점차 극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그러나, 우리가 한쪽 길에서 발견해 낸 사실들과 또 다른 길에서 찾아낸 사실들이 서로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하겠습니다. 이 두 가지의 결론들을 서로 일치시키고 조정하는 일이 우리의 다음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 양 방향에서 나온 결론은, 꿈-작업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어떤 환각적인 체험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그야말로 수수께끼라 할 만하지만 그것은 일반 심리학의 문제 로서 우리가 여기서 다룰 문제는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의 꿈을 분석함을로써 밝혀 낸 사실은, 꿈-작업 이란 수면을 방해하는 심적이 자극을 소원 성취를 통하여 제거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곡된 꿈에 대하여는 그 꿈을 해석하는 법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러하다고 단정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기대는 처음부터, 유아적인 꿈과 마찬가지로 이 왜곡된 굼도 그와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로 모아졌습니다. 이러한 기대가 처음으로 충족되면서, 모든 꿈들은 원래 아이들 의 꿈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유아적인 요소들, 즉 아동의 심적 충동과 활동 체계 아래 작용하고 있다 는 통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꿈-왜곡이라는 문제를 극복했다고 간주하고 소원 성취로서의 그 개념이 왜곡된 꿈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아닌지에 대한 연구에 착수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 는 최근 일련의 꿈을 해석해 보았는데 그러나 그때 욕구 충족Befriediung이라는 문제는 전혀 도외시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러나, 이른자 꿈-작업의 목표라고 하는 욕구 충족은 도대체 어디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밀려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서 그것은 말하자면 우리들에 대한 비전문 비평가들의 상투적 질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인류에게는 새로운 것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새로운 지식을 접했을 때 그것을 곧바로 최소한의 범위로 압축시키고 가능하면 표어 형태로 줄여 버리는 태 도도 그러한 태도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꿈-이론에게는 소원 성취가 바로 그러한 표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문외한들은 곧잘 <소원 성취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습 니다. <꿈은 소원 성취와 같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러한 질문을 제기하고 또 그것을 곧 거부 하는 태도로 답변하는 것입니다.그에게는 곧 꿈과 관련된 자신의 수없이 많은 경험이 떠오르게 되는 데 그 꿈들 중에는 불쾌감과 두려운 불안감들이 뒤범벅되어 있었던 꿈들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어 서 정신분석학의 꿈-이론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왜 곡된 꿈에서는 소원 성취라는 현상이 그대로 드러날 수는 없고 그것은 찾아내야만 되는 것이며 그러 므로 꿈을 해석해 보기 전에는 그것에 대해서 어떠한 언명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우리는 간단히 대 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왜곡된 꿈의 소원들은 금지된, 검열에서 거부된 소원들이며 바로 그것의 존 재가 꿈-왜곡의 원인이 되며 꿈-검열을 일으키는 동기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 러나 꿈을 해석하기 전까지는 꿈의 소원 성취에 대해 물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비전문 비평가들에 게 이해시키리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사실을 계속 잊어버리게 됩니다. 소원 성취라 는 이론에 대한 그의 거부적 태도는 원래부터 꿈-검열의 논리적 결과외에 다름이 아닙니다. 다시 말 해서 이렇게 검열된 꿈-소망을 부정하는 태도의 대리물이며 유출물인 것입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내 용을 가진 꿈이나 또 특별히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꿈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에게도 물 론 그것을 해명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는 가운데 처음으로 꿈속의 감 정이라는 문제 의식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을 연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일이지만 유감스 럽게도 그것을 자세히 파헤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꿈이 소원 성취의 역할을 한다면 꿈속에서 느껴 지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불가능한 것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 점에서 비전문 비평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세 가지 복합 현상이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첫째로, 꿈-작업이 어떠한 소원 성 취를 만들어 내는데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 꿈-사고의 고통스러 운 감정에서부터 일정 부분이 외현적 꿈에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분석해 보면 저변에 깔려 있는 이 러한 꿈-사고들이 그로부더 형성된 꿈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지도 모릅 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갈증 자극에 의해서 형성된, 무언가를 마시는 꿈이 갈증 을 해소시켜야 하는 애초의 꿈 의도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그 꿈-작업은 그것의 목적을 이 루지 못했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꿈꾼 이는 계속 갈증을 느끼고 무엇인가를 마시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꿈입니다.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하 나도 어긋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참조))라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었던 의도는 적어도 칭찬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실패로 끝나는 사례는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꿈-작업이 꿈-사고 의 고통스러운 내용을 소원 성취로 변화시겼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고통스러운 감정은 여전히 변화되 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게 되는 일이 종종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꿈들에서는 거기에 있는 감정이 그 내용에 전혀 들어맞지 않게 되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의 비평가들은 <꿈은 소원 성취의 기능을 하 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해서 아무런 해가 없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고통스럽게 느껴질수 있는 것이 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제기 하는 반론에 대해서 우리는, 꿈-작업의 소원 성취 경향은 바로 그러한 꿈들에서 분리된 채로 전면에 드러나기 때문에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신경증 증상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용과 감정의 연결을 내적으로 긴밀한 연결 과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용에 관 계되는 감정 표현이 함께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자체의 내용만이 변화된다는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착오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것으로, 훨씬 더 중요하고 또 깊은 연관성 이 있는 계기는 비전문가들조차도 간과해 버리는 것으로서 바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소원 성취라 는 것은 확실히 쾌락을 가져다 줄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또 <도대체 누구에게>라는 질문을 동반 합니다. 물론 그것은 이러한 소원을 갖고 있는 <바로 그에게>일 것입니다. 그러나 꿈꾼 이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의 소원에 대하여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는 그것을 내던져 버리고 검열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을 좋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러한 소원 성취는 그에게 쾌락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정반대의 것을 가져다 줄 뿐입 니다.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아직도 조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는 그 반대의 것은 불안의 형태로 등장 합니다. 그러므로 꿈꾸는 이는 자신의 꿈-소망과의 관계에서, 아주 긴밀한 공통의 특성을 지니면서 결 합되어 있는 두 사람이 합친 상태와 대면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가지 복잡한 설명을 하는 대 신에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는 유명한 동화 하나를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동화 속에 서 이와 같은 관계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마음씨 좋은 요정이 아주 가난한 부부에게 그 들의 세 가지 소원을 이루어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행복해 했고 이 세 가지 소원들 을 매우 조심스럽게 골라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부인은 바로 옆의 오두막집에서 풍겨오는 구운 소 시지의 냄새에 현혹되어 그 구운 소시지 두 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즉시 소시지 들이 눈앞에 나타났고 그것으로 첫번째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 남편은 몹시 화가 났고 격분하여 몸을 떨면서 부인니 소원했던 그 소시지들이 부인이 코앞에 대롱대롱 매달려 버리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원 역시 이루어져서 그 소시지들은 부인의 코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의 소원 성취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원은 남편의 소원이었고 부인에게는 그것은 몹시 불편할 따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동화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는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ㅣ. 남편가 부인이란 근본적으로는 두 사람이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이르로 세 번 째의 소원은 어쩔 수 없이 그 소시지들이 부인의 코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동화를 또 다른 연관성 속에서 평가해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 극명하게 삽화롤 보여지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경우 한 사람의 욕구 충족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 쾌감을 주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그러므로 불안-꿈Angsttaum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더 이상 어렵지만은 않 을 것입니다. 이제 또 하나의 관찰사례를 더 살펴보고 여러 가지 사항을 그와 관련지어 열거할 수 있 는 하나의 가정에 다다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불안-꿈들이 종종 왜곡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 는, 말하자면 검열이 완전히 배제된 내용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불안-꿈은 때때로 적나라 한 소원 성취로서 말할 것도 없이 어떤 허용될 수 있는 소원이 아니고 파기되어 마땅한 소원의 성취 일 때가 많습니다. 검열 대신에 불안의 발전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아의 꿈이 허용된 소원의 공개적인 성취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왜곡되어 있는 저급한 꿈에 대해서, 억압된 소원이 변장하여 나타나서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꿈은 억압된 소원의 공개적 성취 라는 공식이 들어맞게 됩니다. 불안은, 억압된 소원이 검열보다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 또 관철 시키려고 한다는 것에 대한 뚜렷한 징표입니다. 꿈에 대하여는 소원 성취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꿈- 검열 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우리에게는 단지 고통스러운 느낌과 그에 대한 방어의 계기가 될 뿐 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꿈속에서 나타나는 불안은 다른 때 같으면 억압되고 눌 려졌던 소원이 강하게 나타날까 봐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어 가 왜 불안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꿈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알아낼 수가 없고 다른 분 야에서의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곡되지 않은 불안-꿈에 들어맞는 내용은 부분적으로 왜곡된 꿈에도 해당된다고 가정해 볼 수 있 습니다. 또 꿈속에서 고통스러운 감정이 거의 불안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그 빡의 몹시 불쾌한 꿈에도 해당될 것입니다. 불안-꿈은 또 일반적으로 꿈을 깨게 만드는 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꿈의 억압된 소원이 검열에 대항해서 완전히 성취되기 바로 그 전에 잠에서 깨어나곤 합니다. 이 겨우에 꿈-기능Traumfunktion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 되지만 꿈의 본질이 그것으로 변화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꿈을, 우리의 수면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지켜 주는 밤의 파수꾼, 혹은 잠의 파수꾼과 비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밤의 파수꾼도 그러한 방해나 위험을 혼자서 쫓아내 버리기에는 역부족이라 고 느끼게 되는 경우 자는 사람을 깨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또 우리는 그 꿈 이 매우 위험하게 되고 불안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도 잠을 꼭 붙드느 데 성공할 수가 있습니 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 <이것은 그저 꿈일 뿐이야, 계속 자야겠어>라고 말해 버리는 것입니다. 꿈-소망이 검열을 능가해 버릴 수 있을 정도로까지 발전하는 일은 언제 일어날까요? 이에 대한 조 건은 꿈-소망 측면에서도, 또 꿈-검열 측면에서도 충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검열의 행위가 이 러한 역학 관계의 전환에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종종 받게 됩니다. 개별적인 여러 경우 에 있어서 검열은 여러가지 다양한 강도를 갖고 작용한다는 것과 각각의 요소는 각기 다른 정도의 엄 격함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러한 검열의 강 도라는 것이 매우 변화무쌍하고, 이를테면 어떤 껄끄러운 요소에 대하여 항상 똑같은 엄격함을 적용 하는 것은 아니라는 가정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검열이 어떠한 꿈-소망에 대해서 자신을 무 력하다고 느끼게 되면, 왜곡이라는 작업을 수행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수단인 불안 을 발전시켜서 수면 상태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파기되어 마땅한 사악한 소원들이 어째서 밤중에만 준동하여 우리의 잠을 방해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 자신도 그 원인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기이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수면 상태의 본질에 근거하고 있는 가설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낮 동안에는 검열의 무거운 압력이 이러한 소원들을 짓누르기 때문에 그 소원들이 어떤 식으로든 표명되 기 어려운 것이 보통입니다. 밤이 되면 이 검열은 정신 생활의 다른 모든 관심과 마찬가지로 잠자고 싶다는 단 하나의 소원에 굴복해서 폐기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약화됩니 다. 밤동안에 이렇게 검열이 약화됨으로 인해서 금지된 소원은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면증이 있는 신경증 환자들 중에는 자신들의 불면증이 처음에는 자신들이 스스로 원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꿈을 꾸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이렇게 검열이 약화되 어 나타나는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검열의 약화 가 곧 어떤 부주의한 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통찰할 수 있습니다. 수면 상태는 우 리의 운동성을 마비시킵니다. 우리의 나쁜 의도라는 것도, 설령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실제적 으로는 아무런 해도 없는 꿈을 만들어 내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밤에 속하는 것이 기는 하지만 꿈-생활에는 속한다고 할 수 없는 꿈꾸는 이의 가장 이성적이라고 할 만한 인지력은 이 렇게 별일 없는 사태를 확인하고, <이건 단지 꿈일 뿐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서는 모든 것을 용인하고 계속 잠자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여러분들이 자신의 소원에 저항하고 있는 꿈꾸는 이 를 서로 다른 개테이기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두 사람을 합쳐 놓은 것과 동일시할 수 있다는 앞서의 견해를 기억한다면 또 하나의 다른 해명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테면, 소원 성취를 통해서 매우 불쾌한 사태, 예를 들어 징벌을 받는 것과 같 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시금 세 가지 소원에 관한 동화 이야기가 해명의 자 료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접시에 놓인 구운 소시지는 첫번째 인물인 부인의 직적적인 소원 성취였습니다. 또 코에 붙은 소시지는 남편의 소원 성취이지만 또 동시에 부인의 어리석은 소원에 대 한 벌이기도 합니다. 신경증 환자들에게서는 동화 속에서만 아직까지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세 번째 소원의 동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 생활 속에는 그렇게 벌을 받고 싶어하는 경향 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매우 강한 것들이어서 고통스러운 꿈의 한 부분을 그것이 책임지고 있 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대단한 소원 성취 이론도 거의 바닥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씀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분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꿈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해서 추후에 수많은 복잡성이 추가될 것을 염두에 둔다면 (많은 학자 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지만) 소원 성취-불안충족Angsteullung- 징벌 충족-Straferfullung이라는 이 해답은 너무나도 편협한 해답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불안은 소원의 바로 그 정반대라고 하는 사실, 또 연상 속에서는 반대되는 내용들이 특히나 매우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가 알게 된 바와 같이 무의식 속에서는 그것이 서로 일치하고 있다는 내용들이 추가되어야만 합니다. 더 나아 가서 징벌이란 다른 사람의, 즉 검열하는 개체의 소원 성취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나는 소원 성취의 이론에 대항해서 제기하는 여러분의 반론에 어떠한 양보도 한 일이 없 습니다. 우리는 그러나 임의적인 어떤한 꿈에 대해서도, 그 왜곡된 꿈은 소원 성취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는 사릴으 증명해야만 할 의무를 지고 있으며 이 과제를 회피랄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1플 로린 50크로이체에 좋지도 않은 극장 좌석표 3장이라는, 이미 우리가 한 번 해석해 본 바 있는 그 꿈 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그 꿈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지고 여러분들이 그 꿈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자신보다 겨우 석 달 정도 늦게 태어난 친구 엘리제가 약혼했다는 소식을 낮에 자기 남편에게서 들은 어떤 부인은 자신의 남편과 극장에 앉아 있는 꿈을 꾸 게 되었습니다. 극장의 한쪽 편 좌석들은 거의 텅 비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또 그녀에게 말하기를, 엘 리제와 그녀의 신랑될 사람도 극장에 오려고 했으나 1플로린 50크로이체로 나쁜 좌석표 3장만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오지 않ㄱ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그리 큰 불행은 될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 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꿈-사고가, 자신이 너무 일찍 결혼해 버렸다는 사릴과 자기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불만을 느끼는 데에서 비롯된 분노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바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흐려 놓는 생각이 어떻게 소원 성취로 바뀌어 갔는지, 또 외현적 꿈-내용의 어느 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 일찍, 성급하게>라는 요소는 검열에 의 해서 꿈에서 삭제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텅 빈 좌석들은 그에 대한 암시입니다. <1플로린 50크로이체에 3장>이라는 수수께끼처럼 보이느 요소는 우리가 지난 번에 공부한 상징의 도 움을 빌리면 쉽게 이해하 수 있습니다. 3이란 숫자는 실제로 한 남자를 의미하며 외현적 요소는 <지 참금으로 한 남자를 산다>는 의미로(<내 지참금이었다면 지금의 남편보다 열 배나 더 괜찮은 남자를 살 수 있었을텐데)라는 뜻)간단히 번역됩니다. 결혼은 극장에 가는 행위로 대체되었습니다. <너무 빨 리 극장표를 구했다>는 것은 너무 일찍 결혼했다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러한 대체가 바로 소원 성취인 것입니다. 이 꿈을 꾼 여인은 자기 친구가 약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 날처럼 항상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불만을 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빨리 결혼했다는 사실을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 했으며 자기 친구에 비해 자신이 더 인기가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약 혼을 하고 난 후의 순진한 처녀들은 이제까지 금지되어 왔던 연극 프로그램을 이제 곧 모두 볼 수 있 게 되었다면서 그러한 사실에서 약혼했다는 기쁨을 드러내는 수가 많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전면에 드러나 있는 바오 같은, 무언가를 보고 싶어하느 욕망과 호기심은 물론 처음에는 성생활, 특히 무보의 성생활에 대한 성적인 호기심으로서 소녀들로 하여금 일찍 결혼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과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식에 의해 극장 구경은 결혼했다는 사실에 대한 지금 현재의 분노 속에서 그녀는, 일찍 결혼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그러한 옛날의 소원 충동에 이끌려서 결혼을 극장에-가는-것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숨겨진 소원 서위를 증명하기에 완전히 이상적인 사례 를 찾아냈다고는 물론 말할 수 없겠지만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는 또 다른 왜곡된 꿈을 취급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앞에서 지금 그러한 작업을 실행해 보일 수 없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나 그러한 작업이 언제나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만큼은 여러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 나 이 이론의 바로 이 부분에서만큼은 조금 더 오래 머물면서 계속 논의하고자 합니다. 이 부분이 바 로 전체 꿈-이론 중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 중의 하나이며 많은 모순들과 오해들은 바로 이 부분과 관련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경험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분들은, 본인이 꿈은 충족된 소원이거나 그 정반대의 것이며 현실화된 불안이나 징벌이라고 말했음을 이유로 들면서 내가 이미 나 의 주장들 중의 어떤 것들은 철회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너 무나도 확실하게 분명한 사례들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것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너무 간단하게, 충분 히 납득이 가지 않도록 설명하고 만다는 비난도 들은 바 있습니다. 꿈을 해석하는 일과 관련해서 우리와 함께 여태까지 모든 도정을 걸어 왔고 꿈-이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을 모두 인정하는 사람일지라 하더라도 소원 성취 부분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멈추어 서서 이 렇게 질문해 올지도 모릅니다. <꿈이 항상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것, 또 이런한 의미는 정신분석학적 기법을 통해서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모든 증거가 뚜렷한데도 불구하고 이 의 미가 왜 항상 소원 성취라는 공식에 끼워 맞추어져야만 하는 것입니까? 왜 꿈이 한번은 충족된 소원 과 일치하고 또 다른 때는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반대의 내용, 또는 현실화된 두려움과 일치랄 수는 없다는 것입니까? 어째서 밤의 사고가 지니고 있는 의미라는 것은 낮의 사고활동이 지니는 의미 만큼 복잡다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또 어떤 때는 계획 같은 것을 나타내거나, 경고, 찬성 혹은 반 대에 대한 숙고, 비난, 양심 가책, 또는 바로 앞에 다가온 일을 준비하려는 시도 등으로 해석할 수 없 는 것입니까? 왜 항상 어떤 소원이거나 고작해야 그 정반대의 것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다른 점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다면 어떤 한 부문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별로 중요한 문 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꿈의 의미와 그것을 인식해 낼 수 있는 길을 발 견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이 위미를 너무 좁게 규정하려고 하면 앞으로 나아가긴 커녕 반 대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을 거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의 오해는 꿈에 대한 우리 인식의 본질을 흔들으 놓을 것이며 노이로제를 이해하기 위한 그것 의 가치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것입니다. 상인들의 세계에서는 <싹싹함>으로 좋게 평가될 수 있는 그러한 식의 타협적 태도는 학문적 영역에서는 적합하지도 않고 오히려 해로울 뿐입니다. 어째서 꿈이 그 주어진 의미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대답은 흔히 그런 것처럼, <왜 그럴 수 없는 것인지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설령 꿈이 그처럼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그에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꿈에 많은 의미 가 있다 하더라도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주 사소한 하나의 사실이 꿈에 대해 서 좀더 널리 알려진 안이한 견해, 즉 꿈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견해와 대치됩니다. 꿈ㅇ 여러 가 지 다양한 사고 형태나 지적인 조작에 대응할 것이라는 가설도 나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나의 두 번째 대답입니다. 나는 어떤 환자의 병력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꿈 하나를 보 고한 적이 있는데 그 꿈은 사흘 밤을 연이어 나타났다가는 그 후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행위를 설명하면서 그 꿈이 어떤 계획과 관련된 것이고 그 계획이 일단 실행되고 난 이후에 는 더 이상 등장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습니다. 그 후 나는 또 고백 에 해당하는 꿈 이야기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도라의 히스테리 분석)에서 도라의 첫번째 꿈-분석 을 말한다). 그런데도 내가 어떻게 꿈은 언제나 꼭, 충족된 소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요?(프 로이트의 (증명하는 꿈Ein Traum Beweismittel참조)) 내가 그렇게 하는 까닭은 꿈을 둘러싼 우리의 이제까지의 모든 노력의 성과를 잃게 할지도 모를 한 단순한 오해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꿈을 잠재적인 꿈-사고와 혼동함으로써 빚 어지는 오해입니다. 꿈-사고에만 해당될 수 있는 사실을 꿈에도 적용시킬 때 그러한 오해가 발생합니 다. 우리가 바로 전에 열거한 것이 모든 것들을 꿈이 대리하고 있고 그것에 의해서 대치될 수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맞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제대로만 살펴본다면 이 모든 것들이 오 로지 꿈속에서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잠재적 꿈-사고에만 해당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꿈을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서 인간들의 무의식적인 사고가 그러한 계획이나 준 비, 숙고 등고 씨름하고 있고 그로부터 꿈-작업이 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꿈을 해석 하려고 할 때 여러분들이 만일 꿈-작업에는 관심이 없고 인간의 무의식적인 사고 과정에 대해서만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면 실제로도 꿈-작업 같은 것은 제외시켜 버리고 꿈은 어떤 경고나 계획, 혹은 그와 비슷한 것들에 대응한다고 그렇게 꿈에 대해서 주장하게 되실 것입니다. 정신분석적인 작업을 하다 보면 흔히 이런 경우와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꿈의 형식을 다시 깨부수어 버리고 꿈이 만들어진 원천인 잠재적 사고를 그 대신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잠재적 꿈-사고를 평가하는 도중에 이렇게 해서 아주 우연하게도 우리는 열거된 모든 고도의 복잡 한 정신적인 행위들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굉장한 것이기도 하면서 또한 지극 혼란스럽기 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다시 되돌려 봅시다. 여러분들 이 그저 하나의 축약된 어법을 사용했을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위에서 열거한 다의성이 반드시 꿈의 본질에 해당한다고 여기지만 않는다면 여러분들의 말은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것은 외현적 꿈-작업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꿈-작업 그 자체, 즉 잠재적인 꿈-사고에서 외현적인 꿈을 만들어 내는 그 심리적 과정 자체를 말하거나 그 둘 중 하나입 니다. 이 단어를 그 밖의 어떤 다른 의미로 사용할 때 그것은 개념으 혼란만을 가져오고 화를 초래하 게 될 뿐입니다. 여러분들으 주장이 꿈의 배후에 있는 잠재적인 꿈-사고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직 접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있는 느슨한 표현 방식으로 꿈의 문제를 은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재적인 꿈-사고란 재료입니다. 꿈-작업은 그것을 외현적 꿈으로 바꾸어 놓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왜 재료와 그것을 변형시키는 작업을 혼동하려고 하십니까? 그런 식의 혼동을 계속한다면 작업의 결과만을 알고 있고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를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과 여러분들의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꿈에서 유일하게 본질적인 것은 생각의 재료에 작용하고 있는 꿈-작업입니다. 혹시 어떤 실제적 상 황에서는 꿈-작업을 태만히 다루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론에서도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정신분석학적 관찰 사례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생각들은 여러분들엑 친숙한 태고적이거나 퇴행적 표현 방식으로 번역해 내는 것으로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그 것은 낮 동안의 잠재적 사고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것에다가 무언가를 항상 덧붙이는데, 그것이야말 로 꿈-형성의 고유한 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필수 불가결하게 덧붙여지는 것이 바로 무 의식적인 소원이며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꿈-내용이 변형되는 것입니다. 꿈은 그러므로, 여러분들 이 그것에 의해 대리되는 사고들만을 고려할 때 가능한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경고나 계획, 준비 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꿈은 항상 어떤 무의식적인 소원이 성취되는 것일 뿐이며, 다시 말 해서 그것은 여러분이 꿈을 꿈-작업의 결과로 간주할 때만 그렇다는 말입니다. 꿈은 그러므로 결코 단순한 계획이나 경고에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무의식적인 소원의 도움에 의해 태고적인 표현방법으 로 번역되고 또 이러한 소원의 성취를 위해 변형되는 계획이나 그 밖의 것들을 뜻합니다. 소원 성취 라는 성격은 불변의 것이고 그 밖의 다른 성격은 가변적인 것입니다. 또한 꿈이 낮 동안의 잠재적 소 원을 무의식적인 소원의 도움을 빌려 충족된 것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도, 그 자신으 로서는 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일목요현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쉽도 록 그렇게 잘 설명해 드렸는지 어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증명해 드리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수많은 꿈들을 세밀하게 분석해 보지 않고는 되지 않는 일이고 또, 꿈에 대한 우리 견해 중에서 가장 까다롭고 중요한 문제로서 추후에 다루게 될 다른 것과 의 관련성 없이는 도저히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물의 내적인 관련성을 다 루면서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는 다른 한쪽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어느 하나의 속성에 아주 깊이 파 고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꿈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는 신경증 증상에 대해서 우리가 아직까지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는 까닭에 이제까지 알게 된 지식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 에게 단 하나의 사례만을 덧붙여 설명드리고 다른 새로운 고찰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미 몇 번이나 참고한, 1플로린 50크로이체에 극장표 3장 이라는 꿈으로 돌아가 봅시다. 내 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처음에는 내가 그것을 별다른 의도 없ㅇ 하나 의 예증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 꿈에 나타난 잠재적 꿈-사고들을 여러분들은 이미 알고 계십니 다. 그것은 자신이 결혼을 너무 서둘렀다는 데에 대한 분노와 작 친구가 이제야 비로소 약혼했다는 소식, 자신의 남편이 별 볼일 없다는 평가 절하, 그리고 조금 기다리기만 했더라면 더 나은 사람과 결 혼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들 등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에서 꿈을 만들어 낸 소원이 무엇인지를 우 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극장에 갈 수 있다는,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결혼을 하면 어 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는 오래된 호기심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호기심 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동들엑 있어서는 거의 언제나 부모들의 성생활을 향해하는 것으로서 그러므 로 유아적인 것이며 또 그것이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다고 할 경우 그 뿌리에 있어서는 유아적인 것 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본능 충동Triebregung인 것입니다. 그러나 낮의 그 소식은 이러한 보고 싶 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만한 어떠한 계기도 제공해 주지 않았ㅅㅂ니다. 단지 분노와 후회스러움만이 밀려들어왔던 것입니다. 또 그 소원 충동은 처음에는 잠재적인 꿈-사고에도 속ㅎ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도 꿈-해석의 결과를 분석작업 속에 집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분노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꿈을 만 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빨리 결혼했던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생각은 결혼하면 어 떻게 되는지 마침내 한 점 보고 싶다는 옛날의 소원이 재생되기 전까지는 꿈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 니다. 그 후에야 이 소원은 꿈-내용을 형성하게 되는데 결혼을 극장에-가는-것으로 대치시키고 그 내 용에다가 이전의 소원 성취의 형태, 즉 <자, 이제 나는 극장에 갈 수 있고 이제까지 금지됐던 것을 모두 볼 수 있어. 그렇지만 너는 그렇게 할 수 없지. 나는 결혼했지만 너는 계속 기다려야만 해>라는 형식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현재의 상황은 그 반대의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옛날의 승리가 현재 패배의 자리를 대신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밖에도 보고싶은 욕망 충족 또한 이기적인 경 쟁심을 만족시키려는 욕구와 굳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만족은 이제 외현적인 꿈-내용을 규정 하게 되어, 실제적으로 자기 자신은 극장에 앉아 있으나 친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내용으로 나 타납니다. 매우 부적절하고 이해할 수 없게 변형된 형태로 이 만족스러운 상황과 겹쳐져 있는 것은 잠재적인 꿈-사고가 여전히 은폐된 채로 남아 았는 앞서 언급된 꿈-내용의 부분입니다. 꿈을 해석하 는 것은 이렇게 소원 성취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주어진 암시로부터 고통스러운 잠재적 꿈-사고를 다시금 재현시켜야 하는 작업과 같습니다. 내가 또 제시하려고 하는 다음의 고찰은 지금 현재 전면에 드러나게 된 잠재적 꿈-사고 쪽으로 여러분의 주의를 돌리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 니다. 여러분들께서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그 잠재적 꿈-사고는 첫째로, 꿈꾸는 이에게는 무으식적인 것이고 둘째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관련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꿈의 계기에 대한 이해할 수 있는 반응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셋째로, 어떤 임의적인 심리적 충동이나 지적인 조작으로서의 가 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이 생각들을 예전보다도 더 엄격하게 <낮의 잔재>로 부르려 하는데, 꿈군 이는 그것에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제 낮의 잔재 와 잠재적 꿈-사고를 분리하려고 하며 우리가 옛날에 사용했던 그 방식 그대로 우리가 꿈을 해석하 면서 알게 되는 모든 것을 <잠재적 꿈-사고>로 지칭하고 반면에 낮의 잔재는 그 잠재적인 꿈-사고 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언명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견해는, 낮의 잔재에 무언가가 덧 붙여져 있다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무의식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주 강렬한 억압된 소원 충동으로서 바로 이것만이 꿈-형성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낮의 잔재에 대한 이러한 소 원 충동의 작용은 잠재적 꿈-사고의 다른 부분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은 더 이상 합리적이지도 않으 며 깨어 있을 때의 삶에서 보자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일 따름입니다. 무의식적인 소원에 대한 낮의 잔재의 관계를 좀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의 비교를 해본 적이 있 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그저 반복하는 것만으로 그치겠습니다. 어떤 사업이든지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대줄 자본가가 필요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행시킬 방법을 알고 있는 경영자를 필요 로 합니다. 꿈-형성에 있어서 자본가의 역할을 하는 것은 항상 무의식적인 소원입니다. 그것은 꿈-형 성을 위한 심리적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경영자는 낮의 잔재로서 이러한 비용의 사용을 결정하는 역 할을 합니다. 그러나 자본가 자신이 아이디어와 실무 지식을 겸비할 수도 있고 경영자 자신이 자본을 소유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상황을 단순화시켜 주지만 그러나 그것을 이론적으로 이해하 는 데는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국민 경제에서는 어떤 한 사람을 자본가의 면모로, 또는 경영자의 면 모로, 두 가지 면모를 분리하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의 비교가 출발했던 그 근본 상황이 다시 재현됩니다. 꿈-형성에서도 그와 같은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계속 추적하는 일은 여러분 에게 그대로 맡겨 둘 생각입니다. 이 문제에 애해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벌써 오래 전에 하나의 의심 때문에 몹시 흔들리고 있고 그 의심은 들어 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이 물을 것입니다. <낮의 잔재라는 것은 꿈을 만들기 위해서 꼭 덧붙여 져야만 하는 무의식적인 소원과 똑같이, 그와 동일한 의미에서 무의식적입니까?>라고. 여러분들의 예 감은 제대로 들어맞은 것입니다. 여기가 문제 전체의 핵심입니다. 그것들은 똑깥은 의미에서 무의식적 이지는 않습니다. 꿈-소망은 다른 무의식의 영역에 속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유아적인 유래를 가진 것으로, 특별한 메커니즘으로 무장된 것으로 인식한 바 있습니다. 무의식이 이러한 두 가지 존재 형태 를 다른 명칭르로 서로 구별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경증 현상에 친숙해질 때까지는 조금 더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을 때도 그 생각을 환상적인 어떤 것으로 치부하면서 우리를 비난한 바 있는데 이 두 개의 무의식이 꼭 존재해야 만 한다고 고백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어떻게 나오겠습니까?(<무의식>이란 용어의 사용에 대한 의 문은 프로ㅇ의 이론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는 이 강의의 여러 곳에서 <무의식>에 관한 언급 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언급을 불완전한 것으로 생각했고, 이후에<자아와 이드>(프로이트 전집14, 열린책들)에서 이 주제제 관하여 광범위하게 논하고 있다. 가장 결론적인 그의 생각은 <새로 운 정신분석 강의>의 서른 한 번째 강의를 참조하라) 여기서 일단 이야기를 멈추기로 합시다. 여러분들은 다시금 그저 불완전하기만한 이야기를 들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우리 자신이나 혹은 우리 뒤에 따라오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명 백하게 밝혀질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검토되리라고 생각하면 적이 희망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 도 또한 새로운 것들과 놀라운 사실들을 충분히 많이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열다섯 번째 강의 불확실한 것들과 비판들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발견해 낸 새로운 사실들과 견해들에 관련된 가장 일반적인 의 심과 불확실한 사태들을 다루지 않은 채로 꿈의 영역을 떠나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주의 깊게 들은 사람들은 이에 관한 얼마간의 자료들을 모아 놓았을 것입니다. (1) 우리가 분 석 기법을 주도면밀하게 지켰을 때라 하더라도 꿈에 대한 우리 해석 작업의 결과들이 매우 불확실하 기 때문에 외현적 꿈을 그 잠재적 꿈-사고로 정확히 번역하는 것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꿈-해석에서 받은 인상일 것입니다. 이에 대한 것으로 여러분들은 첫째로, 꿈의 어떤 요소를 그 본래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이유를 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징으로 사용된 사물들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의미를 영영 상실 해 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항을 결정지을 수 있는 어떤 객관적인 근거가 없 을 경우 그때의 해석은 이 점에 있어서 꿈-분석가의 자위에 내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로, 꿈-작업에서는 상반되는 것들이 일치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어떤 꿈-요소를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 해야 할지, 또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 그 자체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보아야 할지가 항상 불확실하게 남게 됩니다. 그것도 그러므로 해석자의 자의에 맡겨지는 새로운 기회를 제 공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꿈에서는 어떤 종류에든 전도 현상이 매우 선호되고 있으므로 해석자가 마음대로 어떤 곳에서든지 그와 같은 전도를 감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은, 어 떤 꿈에 대해 내려진 해석이 가능한 유일한 해석인지 아닌지를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하실 것입니다. 하나의 꿈에 대해서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해 버릴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는 해석자의 자의성에 많은 여지가 주어지고 그러한 여지가 상당한 정도에 이를 경우 해석 결과의 객관적인 확실 성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어쩌면 또, 그러한 오류는 꿈 자체 가 안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꿈-해석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견해들이나 전제들 이 처음부터 옳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데에 그 원인을 돌릴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의 이 모든 항의 자료들은 나무랄 데 없이 옳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여러분들의 결론을 정당화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굼-해석이 해석자의 자의에 맡겨져 있다는 것과 결과에 담겨 있는 결함이 우리 방법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마든다는 결론은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해석자의 자의성 대신에 그들의 숙련성, 경험, 이해력을 문제삼는다면 나 역시 여러분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그러한 요소도 물론 포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꿈-해석이 매우 까다로운 경우는 더 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다른 여타 학문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기술을 다루는 데 다른 사람보다 더 숙련됐다든지 또는 더 잘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것은 어쩔 수 없 는 일입니다. 그 이외에 예를 들어 상징 해석Symboldeutung에서 자의성으로 간주되는 것들은 일반적 으로 꿈-사고의 관련성들, 즉 꿈꾸는 이의 삶과 꿈과의 관련성과 그 꿈을 꾸게 된 전체적인 심리 상 황과의 관련성 등을 고려하여, 주어진 해석 가능성들 중에서 어떤 하나를 선택하고 또 다른 것은 불 필요한 것으로 파기하여 버림으로써 제거될 수 있습니다. 꿈-해석이 불완전한 것은 우리 가설들이 부 정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결론 역시, 꿈의 다의성이나 애매모호함 등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특성으로 증명해 보일 때 효력이 상실됩니다. 꿈-작업은 꿈-사고를 상 형 문자와 유사한 원시적인 표현 형식으로 번역해 내는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음을 상기해 봅시다. 이 모든 원시적인 표현 체계는 그러한 모호성이나 불확실성과 숙명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실용성을 의심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꿈-작업에서 서로 반대되 는 개념들이 일치하는 것은 고대 언어에 존재했던 이른바 <원시 언어의 상반적 의미>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언어학자 아벨은(우리의 이러한 관점도 실은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어 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몹시도 모호한 표현으로 말을 했다고 해도 그것을 애매한 것으로 받아들이 지 말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벨의(원시어의 반의어에 대하여)참조-원주) 그 두가지의 상반된 의미 중에서 말하는 이가 무엇을 의도하려고 했는지는 그의 말투나 몸짓 등에서 의심의 여지 가 없을 만큼 뚜렷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몸짓이 나타나지 않는 문자에서 그것은 발음은 되지 않지만 그에 덧붙여진 일정한 그림 부호로 대체되는데, 예를 들어 이집트 상형 문자에서 두 가지 의 미를 지닌 이라는 단어는 힘없이 웅크리고 있는 남잔나 건장하게 서 있는 남자의 그림을 통해 서 <약하다>, 또는 <강하다>의 의미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소리나 부호가 가지고 있는 애 매로호성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고대의 언어에서 쓰였던 문자들처럼 오 래된 표현 체계는 오늘날 우리의 문자에서는 결코 통용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그처럼 많이 갖고 있었 습니다. 셈 족 문자중 어떤 것에서는 단어의 자음만이 표기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생략되어 있는 모 음은 읽는 사람이 자기의 지식에 따라, 혹은 문맥의 관련성에 따라 덧붙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와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상형 문자들은 대개 이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느 고대 이집트 문자의 발음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집트 인들의 신성문자에는 이와는 또 다른 불명료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림들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배열한 것인가, 또는 왼쪽에서부 터 오른쪽으로 배열할 것인가는 완전히 쓰는 사람의 결정에 맡겨졌던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형상의 얼굴들, 즉 새나 그 밖의 것들의 얼굴 방향을 보고 방향을 가늠하고서는 그 규칙에 따라 읽어 가야 했습니다. 또 상형 문자를 수직 방향으로 배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작 은 물체에 써야 하는 비문과 같은 경우에서는 모양새에 따라 혹은 그 자리에 들어맞을 수 있도록 하 기 위해 그림의 순서를 또 다른 방법으로 변경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상형 분자에서 가장 골치아픈 것은 아마도 그들이 띄어 쓰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림들은 서로 똑같은 간격으로 옆으로 나열되어 있으므로 어떤 부호가 그 전에 있었던 부호에 연결되는지 아니면 다른 단어의 시작 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페르시아의 설형 문자에서는 <글자 구분용 기호>로 비스듬히 그려 넣은 쐐기가 사용되었습니다. 지극히 오래되고 또 오늘날도 4억 이상의 인구 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문자는 중국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고 간주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나는 오로지 꿈의 불명료성에 대한 유추 해석의 가능성을 그곳에 서 찾을 수 있을까 희망하면서 중국어에 대해 조금 배웠을 뿐입니다. 나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습니 다. 중국어는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그러한 모호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알다시 피 수많은 음적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자 하나가 따로, 혹은 두 개가 결합되어서 발음됩니다. 주요한 방언 중의 하나는 그런 발음이 4백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방언의 어휘는 대략 4천 단어에 이르므로 편균적으로 한 개의 글자가 10개의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 어떤 것은 좀더 적은 개수의 뜻을 가지고 있을 수있고 또 다른 것들은 그로 인해 더욱 많은 의미 를 갖게 될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열 개의 의미 중 어떤 것을 말하고자 의도한 것 이지를 알아내는 일은 문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므로 문자가 갖고 있는 수많은 다의성에서 벗어나 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이 동원됩니다. 그 중의 한 방법은 두 개의 소리를 하나의 단어로 결합시키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서로 다르게 발음되도록<4성>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비교와 관련해서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이 언어에는 문법 체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한 음절짜라 잔어 에 대해서 그것이 명사인지,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말할 수는 없으며 단어에는 도통, 성이나 수, 어미, 시간, 혹은 화법을 알아볼 수 있는 단어의 변화라는 것이 없습니다. 중국어는 그러므로 말하자면 오로 지 원료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마치도 우리의 사고 언어가 꿈-작업속에 서 관계에 대한 표현이 생략되어 버림으로써 그것의 원료로 해체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중국 어에서는 이렇게 애매모호한 모든 경우에 그 결정은 듣는 이의 이해에 맡겨집니다. 그는 그때에 맥락 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여기에 중국 속담의 하나를 인용해 볼 작정인데 그것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 것이 적으면 놀라워할 것이 많다. Wenig was sehen viel was wunderbar.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적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이 그만큼 더 많다>라 는 뜻이거나 <적게 본 사람에게는 놀라워할 만한 것이 많아진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문법적으 로 서로 다른 번역들 중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하는 것은 물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입니 다. 이와 같은 애매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어가 사고 표현을 위한 매우 훌륭한 언어라는 것은 확실 합니다.그러므로 모호성이 반드시 다의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론, 꿈의 표현 체계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태는 이모든 고대 언어나 문자보다도 훨씬 열악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쨌거나 고대 언어나 문자들은 그 본질에 있어서 의사 소통을 위한 것이며 어떤 방법과 어떤 보조 수단을 통해서든 언제나 이해될 수 있도록 그렇게 계산되어진 것들이기 때문입니 다. 꿈에는 바로 이러한 성격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꿈은 그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말하려고 의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사 소통의 수단이 아니며 그 반대로 이해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갖고 있는 그러한 수많은 다의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꿈을 해석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나감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하더라도 크게 놀라거나 당황해 할 필요는 없 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비교해 본 사항들 중에서 그래도 소득이랄 수 있는 것은, 우리 이론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꿈-해석의 적확성에 대한 이의로 내세우는 그러한 불확실성 이야말로 모든 원시적인 고대 언어 체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성격이라고 하는 통찰에 이르게 되 었다는 것입니다. 꿈이 실제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이해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오로지 연습과 경험을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습니다. 상당한 정도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며 올바른 교육을 받 은 정신분석가들이 내놓은 결과들을 비교해 보면 나의 견해가 옳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잘 아 시다시피 문회한에 가까운 대중들이나 혹은 학문에 종사한다고는 하나 비전문적인 사람들은 어떤 학 문적인 성과가 어렵고 불확실하다고 할 때 대단한 회의를 품으면서 그것에 반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바빌론-아시리아의 비문들 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그와 비슷한 상황들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아마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형 문자를 해독하는 사람들을 환상주의자들로 간주하고 그 모든 연구를 <사기>로 생각 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857에 왕립 아시아 협회는 결정적니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들 은 권위 있는 4명의 설형 문자 연구학자들인 롤린슨Rawlinson과 힌크스Hincks, 폭스 탈보트Fox Talbot, 오페르트Oppert에게 새로이 발견된 비문에 관한 각자의 번역문을 밀봉된 봉투에 넣어 송부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 4개의 해독문들을 비교한 결과 그것들이 일치하는 정도는 지금까지 이루어 져 온 성과를 신뢰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고, 앞으로의 발저 또한 기대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충분 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배웠다고 하는 문외한들의 조롱도 그 와 함께 점차 사그라들었고 설형 분자 서류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확실성도 그 이후부터 눈에 띄게 증 대되었습니다. (2) 두 번재로 제기되는 일련의 의혹들은 바로 다음에 언급하는 이상과 매우 깊숙히 연 관되어 있으며 아마도 여러분들도 그로부터 벗어나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 인상이라는 것은, 꿈-해 석의 해답들중 많은 것들이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우며 거짓되고, 견강부회처럼 보이며 그 결과 무리 하고 우스우며 가당치 않은 익살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들은 이제까지 너무도 흔히 들어온 것들로서 내가 알게 된 것들 중에서 가장 최근의 것을 아무거나 하나 뽑아서 여기에 인 용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자유로운 나라라고 하는 스위스에서 최근에 어느 세 미나 지도 교수가 정신분석을 연구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의를 제기했고 베른 의 한 신문이 이 판결에 대한 학교 당국의 평가를 공개적으로 공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사 중 에서 정신분석에 관계가 있는 몇 개의 문장을 인용하기로 하겠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가 인 용하고 있는 쮜리히의 피스터Pfister 박사의 책에 나와 있는 많은 실례들에서 보이는 인위적이고 가식 적인 것들입니다……. 정작 더 놀라운 사실은 세미나 지도 교수라고 하는 그와 같은 사람이 이러한 모든 주장이나 거짓 증거드를 그처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의 문장들은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들>이 내린 결정으로서 신문지상에 소개되었습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이러 한 <냉정>이야말로 <조작된 것>으로 보이나는 사실입니다. 조용한 판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숙 고나 얼마만큼의 전문 지식은 결코 해가 되지 않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이 언급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 기로 합시다. 어떤 사람이 심층심리학의 매우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해서 얼마나 신속하게, 또 얼마나 확실하게 자신이 처음 받은 인상에 따라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지켜본다는 것은 정말로 상쾌한 일 입니다. 그에게는 이러한 해석 따위는 너무나도 가식적이고 억지스러워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전부 엉터리이고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듯이 보일 뿐입니다. 잠시 스펴 가는 생 각 중에서 그 어느 것 하나도, 이러한 해석들이 그렇게 보이는 데에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 밖의 다른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또 그때의 그럴듯한 이유라는 것은 도 대체 무엇일까 하는 다른 문제들도 이것과 결부되어 떠오르게 됩니다. 여기에 이렇게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태는 본질적으로 꿈-검열의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전위의 결과와 관련이 있습니다. 꿈-검열은 전위으 도움을 빌려 우리가 암시라고 지칭하고 있는 대체물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함시들을 암시 자체로서 파악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들에서 원래의 것을 찾아내는 귀로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암시들은 꿈의 본래적인 사태들과 이상스럽고 기이하 고 그다지 잘 쓰이지 않는 특이한 연상들을 통해서 맺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겨우들에서 문제 되는 것은 숨겨져야 하고 은페되어야 하는 대상들인데 꿈-검열은 바로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숨겨진 어떤 것을 그것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곳, 그것에 들어맞는 곳에서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기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국경 감시청은 스위스의 문교 당국보다 훨씬 교활합니 다. 그들은 숨겨진 서류나 도면들을 찾는데 서류 가방이나 지갑을 수색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간첩이나 밀수업자들이 그렇게 중요한 금수품들은 옷의 가장 은밀한 곳, 거기에 있으리라고는 상상조 차 할 수 없었던 곳, 예를 들어 그들 장화의 이중창 사이에 숨겨 가지고 들여 올지도 모른다는 가능 성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숨겨진 물건이 있을 만한 그것에서 발견되면 그것은 어쨌거나 매우 힘들게 찾아낸 것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렇게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잠재적 꿈-요소와 그것의 외현적 대리물과의 사이에는 가장 거리가 먼 듯면서도 이상스러운, 어떤 때는 우스 꽝스러웠다가도 또 어떤 때는 재미있게 보이는 연관성들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우리 스스로는 보통 해결할 수 없었던 사례들에서 매우 풍부한 경험들을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해석들을 우리 스스로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연관 성을 추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꿈을 꾼 사람이 자시의 직접적인 연상을 통해서 그 해답을 번개같이 내 놓을 수도 있고-그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대체 형성이 이루어진 장소는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또 한편으론 그가 많은 자료들을 우리 앞에 내어 놓기 때문에 그 해답을 발견하는 데 더 이상 어떤 특별한 두뇌가 핑요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냥 꼭 필연적이기나 한 듯이 그렇게 슬몃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꿈을 꾼 사람이 이 두 가지 중의 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 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는 그 외현적 요소는 그렇게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내가 최근에 경험한 바로 그러한 실례를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허 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여자 환자 중의 한 사람이 치료를 받는 도중에 아버지를 잃게 되었습니 다. 그녀는 그 일이 있은 후로 자신의 아버지를 꿈속에서 다시 살려 내기 위하여 모든 기회를 다 이 용해 보았습니다. 그녀의 꿈속의 어느 한 장면에서 관련성도 없는 곳에서 아버지가 불쑥 나타나더니 <11시 15분이다. 11시 45분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상스러운 꿈을 해석하면서 그녀에게 떠오른 연상은 단지, 자신의 아버지가 장성한 자녀들이 함께 식사하기로 한 시간에 때맞춰 나타나면 매우 기뻐하시곤 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꿈-요소와 관계가 있는 것이긴 하 지만 그것의 유래는 여전히 오리무중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치료 상황을 통해 보았을 때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에 대한 매우 조심스럽게 억눌려진 비판적인 반발심이 이 꿈의 한몫을 담당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만한 근거가 발견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 꿈에서 매우 동떨어 져 있는 듯이 보이는 그녀의 연상들을 계속해서 추적해 나가는 도중 그녀는 다음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에서 어느 친척 한 사람이 <원시인Urmensch은 우리 모두속에 계속 살아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꿈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척 이 말했다는 그 이야기는 그녀가 꿈속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살려 내게 만드는 데에 아주 최상 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녀는 꿈속에서 아버지로 하여금 12시를 향해 가는 15분마다 시간을 말하 게 함으로써 아버지를 시계 인간Uhrmensch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와 발음이 같다) 여러분들은 지금 예를 든 사례들이 익살고 흡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꿈꾼 이가 생각해 낸 위트를 해석자의 위트로 간주하는 일을 실제로도 종종 일어나곤 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농담을 상대하고 있는 것인지 꿈을 상대하고 있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잘못 말하기가 일어나는 실수 행위에도 이와 비슷한 의심이 떠올랐던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의 꿈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이 삼촌의 자동차에 앉아 있었는데 삼촌이 자 기에게 키스를 하는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재빨리 거기에다가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 는데 그것은, <자가 성애Autoerotismus(리비도 이론에서 나온 용어로서 대상이 없이 혼자 즐기는 성 적 만족을 이름)>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우리에게 농담을 한 것일까요? 자신에게 갑지기 떠 오른 기지를 꿈이라고 말한 것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꿈을 꾸었 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응 놀ㄹ게 만드는 꿈과 기지 사이의 유사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 된 것일까요? 이 문제 때문에 나는 이전에 잠깐 옆길로 들어선 일이 있는데 익살도 그 자체로서 좀더 자세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참조). 농담 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전의식적인 사고 과정이 한순간 무의식적인 사고의 가공 작업에 내맡 겨지고 그로부터 하나의 농담이 탄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의식의 영향 밑에서 그것은 그곳을 지배 하는 압축이나 전위 등과 같은 메커니즘, 즉 우리가 꿈의 작업에 관여하고 있다고 인식했던 바로 그 와 똑같은 과정의 작용을 경험하게 되며 이렇게 위트와 꿈이 생겨나게 되는 그 과정의 유사성이 바로 그 공통점을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위트가 가져다 주는 유쾌함과 관련해서 보자면 이 의도하 지 않았던 <꿈-농담Traumwitz>은 아무런 쾌감도 주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인지 그 이유는, 농담에 대해서 더 연구하다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꿈-농담>은 우리에게 재미없는 위트로만 느껴지며 우 리를 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썰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대의 꿈-해석의 발자취를 다시 따라가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불필요한 것들 이외에도 꿈-해석의 좋은 실례들을 남겨 주었는데 우리 자신은 아직도 그것을 능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꿈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려 고 합니다. 플루타르크와 달디스의 아르테미도루스는 서로 약간 다르게 알렉산더 대왕의 꿈에 관해서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대왕은 완강하게 방어하고 있는 도시 국가인 티루스를 포위하고 있을 때(기원 전322년) 사티로스가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전쟁터에 함께 수행하고 있었던 꿈 해몽가인 아리스탄드로스Aristandros는 사티로스를 사 튀루스(티로스 너의 것이다dein ist Tyrus> 라는 뜻이다) 라는 두 단어로 나누었고 꿈을 해석하기를 그 성은 싸워서 함락시킬 수 있다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 꿈-해석에 의지하여 포위를 계속할 것을 명령했고 마침내는 그 성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억지로 꾸민 듯이 보였던 그 해석은 의심할 여지없이 옳은 것이었던 것입니다. (3)그 자신 오랜 세원 동안 정신분석학자로서 꿈-해석에 몰두하고 있었던 그런 사람들조차 꿈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매우 이상 한 기분을 느끼실 것입니다. 새로운 오류를 불러올 수 있는 그처럼 좋은 자극제가 활용되지 않은 채 남게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개념적인 혼동과 부당한 일반화 의 결과로 꿈에 관한 의학적인 견해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옳지 않은 주장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꿈이란 현재에 적응하기 위한 시도이고 또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것, 그러므로 <미래를 전망하려는 경향성을 보 인다>는 것입니다. (매더A. Maeder)(매더의 <꿈-기능에 대하여Uber die Funktion des Traumes>1912참조) 이러한 주장ㄹ은 꿈을 잠재적 꿈-사고와 혼동한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 미 알고 있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전제는 꿈-작업을 간과해 버린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무의 식적인 정신 활동으로서의 이러한 경향은(잠재적 꿈-사고도 그에 속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며 또 한편으로는 그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인 정신 활 동은 미래에 대한 준비말고도 그 밖의 많은 것들에 관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심한 혼동 은 <꿈의 배후에는 모두《죽음의 유보 조건》이 있다>는 확신에 근거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슈테 켈W.Stekel의 <꿈의 언어Die Sprache des Traumes>1911 참조). 이 공식이 무엇을 의미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추측하기로는 그 배후에는 꿈을 꾼 사람의 전인 격과 꿈을 혼동하는 오류가 도사리고 있는듯 합니다. 몇 개 안 되는 적은 사례들에서 비롯된 부당한 일반화의 현상은 다음의 명제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즉, 모든 꿈은 두개의 해석을 허용하는데 그 하나는 우리가 제시한 것과 같은 그러한 것으로서 이른 바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본능 충동은 무시해 버리고 더욱 높은 정신 능력을 표 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비적 상징 해석이라는 것입니다.(질베러H. Silberer)(질베러의 <신화와 그 상징의 문제Probleme der Mystik und ihrer Symbolik>1914 참조). 그러한 꿈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 나 여러분들이 이 견해를 더 많은 꿈들에 확대해서 적용해 보려고 해도 그것은 헛된 노력으로 끝나 버릴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들어 온 것들 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은 모든 꿈은 남 녀 양성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일 것입니다. 남성적 혹은 여성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두 가지 흐름이 만나는 것이 꿈이라는 것입니다(아들러A.Adler)(아들러의 <삶과 신경증에서의 정신적 자웅 양 성체Der psychische Hermaphroditismus im Leben und in der Neurose>1910 참조). 말할 필요도 없 이 그러한 꾸모 더러 있습니다. 이러한 꿈들은 어떤 히스테리적 증상과 같은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꿈의 새롭고도 일반적인 특징에 관한 이러한 발견들을 내가 여기에서 모두 언급하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이러한 것들을 경계하도록 만들기 위함이고, 또 적어도 여러분들이 내가 그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4) 분석적으로 치료받은 환자들은 꿈-내용을 자신들의 의사가 좋아하는 이론 쪽으로 맞추어서 이야 기하곤 한다는 사실, 즉 어떤 사람은 주로 성적본능 충동에 관한 꿈을 꾸고 또 어떤 사람은 권력 추 구, 또 일부는 심지어 재탄생에 관한 꿈을 꾼다는 발견으로 인해서 꿈 연구 객관적 가치가 의문시되 었던 일리 있었습니다(슈테켈). 그러나 자기들의 꿈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정신분석적 인 치료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부터 이미 사람들은 꿈을 꾸어 왔고 그리고 현재 치료 중에 있는 사람 도 치료받기 전의 시점에서도 항상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실의 중요성은 그 비중 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발견으로 ㅂ어졌던 것은 곧 자명한 것으로, 또 꿈-이론 쪽 에서 보았을 때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게 마련입니다. 꿈을 만드어 내는 낮의 잔재라는 자극은 각성시 삶 속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관심의 잔류물입니다. 의사의 말이나 그가 주는 자극이 분 석받는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그것은 낮의 잔재의 범주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감정이 수반된, 그날 낮의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다른 관심처럼 꿈을 형성하는 데에 심리적 자 극을 줄 수 있으며 잠을 자는 동안에 잠자는 이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인 자극과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꿈의 다른 자극들과 마찬가지로 의사에 의해 자극된 사고들도 외현적 꿈-내 용에 나타날 수 있고 또 잠재적 꿈-사고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습니다. 꿈이란 실 험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꿈-재료의 어떤 부분을 꿈속에 ㄴ타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환자에게 영향을 주는 이와 같은 분석자의 역할은 모울리 폴트의 실험에서 피실험자의 팔다리를 어떤 일정한 위치에 놓은 실험자의 역할과 조금도 다르 지 않습니다. 꿈꾸는 이에게 자극을 가해 <무엇에 관한>꿈을 꾸게 하는 데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로 하여금 <무엇을> 꿈꾸게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꿈-작업의 메커니즘과 무의식적 인 꿈-소망에는 그 어떤 외부의 낯선 영향도 미칠 수가 없습니다. 신체적인 자극에 의한 꿈을 연구하 면서 우리는 이미, 꿈에 가해진 신체적, 정신적 자극에 대해 응답하는 그러한 반응 작용 속에 꿈-생활 의 특이성과 독립성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된 꿈 연구의 객관성을 의심하는 주장들은 다시금 꿈과 그 꿈-재료들을 혼동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내가 여러분들에게 꿈의 문제와 관련해서 설명드리고자 했던 부분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많은 부분들은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는 것을 추측하셨을 터이고 또 거의 모든 점에서 나의 이론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음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꿈 현상과 노이로제 현상이 서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연구한 것은 신경증 이론을 연구하기 위한 입문으로서 그렇게 한 것이고 그것은 이 과정을 거꾸로 행한 것보 다 틀림없이 옳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이 신경증을 이해하기 위한 준비의 역할을 해준 것처 럼 또 한편으로 꿈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신경증적인 현상들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확보되고 난 후에 나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여러분들의 관심과 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 을 꿈의 문제를 연구하는 데에 바친 것에 대해서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 게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꿈 이외의 다른 어떤 대상과 비교해 보아도 정신분석학이 서 있고 속하 고 있는 문제와 관련해서 이보다 더 빨리 그 주자의 정당성을 확신하게 해준 것은 없었습니다. 신경 증적 질병의 여러 경우에서 그 증상들은 각각의 독특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특정한 의도를 따르고 또한 질병을 앓는 사람의 운명에서부터 비롯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수개월, 혹은 수년 동 안의 전력을 쏟아 붓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동일한 사태를 처음에는 불가해한 혼란스러운 꿈- 작업 속에서 증명하고 그럼으로써 정신분석학의 모든 전제들, 즉 정신적 과정의 무의식 상태와 그 과 정이 드러나는 특별한 메커니즘과 또 그것들이 표현되고 있는 충동적 힘들을 확인하는 작업은 단 몇 시간 동안의 노력만으로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꿈과 신경증 증상들의 구조에 나타나는 그 광범위한 유사성과 꿈을 꾸고 있던 사람을 각성된, 이성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그 신속성을 비 교해 보면 신경증도 정신 생활의 여러 힘들 살이의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힘의 작용에 그 원인이 있 다는 확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