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유전자 기계 세포는 유전자의 화학 공장이다 유전자의 수동적 피난처로서 생긴 생존 기계는 처음에는 경쟁자들과의 화학전과 우연한 분자 충격의 피해로부터 몸을 지키는 벽을 유전자에게 제공하는 데 불과했다. 처음에 그들 은 수프 속에서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유기 분자를 먹이로 하고 있었다. 이 편한 생활이 끝난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활발한 햇빛의 영향 밑에서 수프 속에 형성된 유기적인 먹이가 모두 다 사용되어 없어졌을 때였다. 오늘날 식물이라고 부리고 있는 생존 기계의 주요한 갈 래는 생존 기계 스스로가 직접 햇빛을 사용하여 단순한 분자로부터 복잡한 분자를 만들기 시작하여 원시 수프의 합성 과정을 더 높은 속도로 재연했다. 동물이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갈래는 식물을 먹든지 다른 동물을 먹든지 하여 식물의 화학적 작업을 가로채는 방법을 발 견했다. 생존 기계의 두 갈래는 다양한 생활 방법으로 자기의 효율을 높이려고 더욱 교묘한 책략을 발달시켜 부단히 새로운 생활 방법을 개발해 갔다. 이 두 갈래에서는 그 곁갈래에 또 곁갈래가 생겨 특수화된 생활 양식을 진화시켰다. 그들은 각각 바다에서, 지상에서, 공중 에서, 땅 속에서, 나무 위에서 나아가서는 다른 생물체 내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데만 힘써 왔다. 이 가지 뻗기가 오늘날 우리를 감동시킬 정도로 동식물의 다양성을 생성하게 된 것이 다. 개체는 세포의 군체 동식물은 여러 가지 세포로 모든 유전자의 완전한 복사가 분배되어 있는 다세포 생물로 진화해 왔다. 이와 같은 것이 언제, 왜 혹은 독립적으로 몇 번이나 생겼는가는 모른다. 어떤 사람은 몸을 세포의 군체(colony; 집단)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몸을 유전자 의 군체, 세포를 유전자의 화학 공장으로서 적합한 작용 단위라고 생각하고 싶다. 몸은 유전자의 군체일지라도 행동 양상은 끊임없이 그 자체의 개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하나의 동물은 통제된 전체로서, 즉 하나의 단위로서 행동한다. 주관적으로 인간은 자기 스 스로를 하나의 군체가 아닌 하나의 단위라고 느끼고 있다. 이것은 당연하다. 선택은 다른 유 전자와 협조하는 유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적은 자원을 건 치열한 싸움에서는 공동체 적인 몸의 내부가 무통제적인 것보다 중추에 의해 싸움에서는 공동체적인 몸의 내부가 무통 제적인 것보다 중추에 의해 통합되어 있는 쪽이 유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간의 상호 공동 진화가 계속적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개개의 생존 기 계가 상호간의 공동체적인 성질을 갖는다는 점을 간하기 쉽다. 확실히 그것을 발견 못하는 생물학자가 많고 그들은 나와는 의견을 달리한다. 다행히 저널리스트들이 이 책의 나머지 부분 속에 있는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대부분 의견의 불일치는 학술적인 것이다. 자동타의 성능을 논할 때 양자나 소립자에 관해 말해 보았자 소용이 없듯이 생존 기계의 행동을 논할 때 유전자의 말을 끄집어내는 것은 지 루하고 불필요할 때가 많다. 사실 일반적으로 개체라는 것은 그 전체 유전자를 후세대에게 보다 많이 전하려고 '애쓰는'것이다라고 생각해 두는 것이 많은 경우 편리하다. 나는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따라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 이상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행동'은 동물의 어떤 개체가 별개의 개체에 대해서 행해지는 행동을 말한다. 동물의 행동 이 장에서는 '행동', 즉 동물이라고 불리는 생존 기계가 대체로 이용해 온 재빠르게 움직 이는 묘기에 대해 기술한다. 동물은 민첩하고 활발한 유전자의 운반자, 즉 유전자 기계가 되 었다. 생물학자가 쓰는 의미로 '행동'의 특징은 움직임이 빠르다는 것이다. 식물도 움직이는 하나 매우 느리다. 고속도 영화로 보면 덩굴식물은 활동적인 동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부 분의 식물 운동은 사실상 비가역적인 생장이다. 한편 동물은 식물보다 수십만 배나 빨리 움 직이는 방법을 발달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동물의 운동은 가역적이고 무한히 반복할 수가 있다. 동물이 빠른 운동을 하기 위하여 진화시킨 기관은 근육이었다. 근육은 증기 기관이나 내 연 기관과 같이 화학 연료로 저장된 에너지를 사용해서 기계적 운동을 발생시키는 엔진이 다. 단지 차이점은 근육의 직접적인 기계적이 증기 기관이나 내연 기관의 경우처럼 증기압 이 아닌 긴장의 형태로 생긴다는 점이다. 그러나 근육은 가끔 끈이나 경첩이 붙은 지렛대에 힘을 주는 점에서 엔진과 유사하다. 우리의 몸에서 지렛대는 뼈, 끈은 힘줄 그리고 경첩은 관절이다. 근육의 움직임의 엄밀한 분자적 측면에 관해서는 대단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 나, 나는 근육 수축의 시간적 조절 문제에 대해 더 흥미가 있다. 당신은 어느 정도 복잡한 인공 기계, 예컨대 편물 기계, 재봉틀, 베틀, 자동 병공장, 건초 묶음기 등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동력은 전동기나 트랙터로부터 공급된다. 그러나 더욱 이 상한 것은 조작 타이밍의 복잡성이다. 밸브가 올바른 순서로 개폐되고 강철 손가락이 재치 있게 건초의 단을 묵고 칼이 나와서 그 끈을 자른다. 대개의 인공 기계에서는 굉장한 발명 품인 캠(cam)에 의해 시간적 조절이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편심륜 또는 특수한 형의 바퀴 에 의해 단순한 회전 운동을 복잡하고 리드미컬한 패턴의 조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뮤 직박스에서도 같은 원리가 사용되고 있다. 그 밖에 증기 기관이나 자동 피아노와 같은 기계 에서는 어떤 패턴의 구멍을 뚫은 카드나 두루마리 종이가 사용된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단 순한 기계적 타이머가 전자 타이머로 대체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형 컴퓨터는 복잡 한 시간적 조절이 일어나는 운동 패턴을 발생시키는 데 사용되는 다재다능한 대형 전자 장 치의 예이다. 컴퓨터와 같은 근대적 전자 기기의 기본적 구성 요소는 반도체이다. 그 중에 낯익은 것으로 트랜지스터가 있다. 뉴런과 컴퓨터 생존 기계는 캠과 펀치 카드 등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행동의 시간적 조절에 쓰고 있는 장치는 컴퓨터와 공통점이 많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조작은 전혀 다르다. 생물 컴퓨터와 공통점이 많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조작은 전혀 다르다. 생물 컴퓨터 의 기본 단위인 신경 세포, 즉 뉴런은 그 내부 작용이 트랜지스터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확실히 뉴런에서 뉴런으로 전해지는 신호는 디지철형 컴퓨터의 펄스(pulse) 신호와 조금은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개의 뉴런은 트랜지스터에 비해 정교한 데이터 처리 단위이다. 세 개의 다른 부품과 연결되는 트랜지스터에 비해 하나의 뉴런에는 다른 성분과의 연결이 수십만에 이른다. 뉴런은 트랜지스터보다 정보 처리의 속도는 느리나 과거 20년간 전자 산 업계가 추구해 온 소형화라는 점에서는 많이 앞서 있다. 이것은 인간의 뇌에는 수십억 개의 뉴런이 있는데 하나의 두개골에는 겨우 수백 개의 트랜지스터밖에 넣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식물은 움직여 다니지 않고도 생활하기 때문에 뉴런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대부분의 동물 집단에서는 뉴런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동물의 진화에서 일찍이 '발견'되어 모든 집단에게 계승되거나 또는 독립적으로 몇 번인가 재발견됐을 것이다. 뉴런은 세포이다 뉴런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가 세포이고, 다른 세포와 같이 핵과 염색체를 가지로 이TEk. 그러나 그것들의 세포막은 가늘고 길며 철사 모양의 돌기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 의 뉴런에는 축삭 돌기라는 특별히 긴 '철사'가 한 가닥 있다. 축삭 돌기의 폭은 현미경적인 것이나 길이는 수미터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한 가닥의 길이가 기린의 목의 전체 길이에 이를 정도로 긴 축삭 돌기도 있다. 축삭 돌기는 보통 다발로 되어 있어 많은 섬유로 된 굵은 케이블을 형성한다. 이것이 신경이다. 신경은 몸의 어떤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마 치 전화 케이블 간선처럼 메시지를 운반한다. 어떤 뉴런은 축삭 돌기가 짧고, 신경절 또는 더 큰 경우에는 뇌라고 하는 밀집된 신경 조직의 집합 속에 수용되어 있다. 뇌는 기능상 컴 퓨터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어느 것이나 복잡한 입력 패턴을 분석 하여 저장되어 있는 정보와 조회하고 나서 복잡한 출력 패턴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유사하 다. 뇌-근수축의 제어와 조정 뇌가 생존 기계의 성공에 실제로 공헌하는 방법으로서 중요한 것은 근수축의 제어와 조정 이다. 뇌가 이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근육으로 통하는 케이블이 필요하다. 그것이 운동 신경 이다. 그러나 근수축의 제어와 조정이 유전자의 효과적인 보존에 이어지는 것은 근수축의 타이밍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타이밍과 어떤 관계가 있을 때뿐이다. 깨물 것이 입 속 에 있을 때만 턱 근육을 수축시키고, 뛰어 쫓아야 할 이유도 그 대상이나 뛰어 도망해야 할 이유가 존재할 때에만 다리의 근육을 주행시의 패턴으로 수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 에 자연 선택은 감각 기관, 즉 외계의 물리적 사건의 패턴을 뉴런의 펄스 신호로 바꾸는 장 치를 갖추도록 되어 있어 동물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뇌는 감각 신경이라는 신경삭에 의 해 감각 기관-눈, 귀, 맛봉오리-등에 이어져 있다. 감각계의 작용이 매우 난해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들이 가장 고가인 최량의 인공 기계에 비교해서도 훨씬 복잡한 패턴 인식을 행하 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타이피스트는 전원 필요 없게 되어 말을 인지하는 기계와 손으로 쓴 문자를 읽는 기계로 교체되어 있을 것이다. 타이피스트는 앞으로도 수십 년은 필 요로 할 것이다. 진화 중에 감각 기관이 뇌를 거치지 않고 근육과 연결되어 있던 시기가 있었다. 말미잘은 현재도 이 상태에서 별로 진화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의 생활 양식에서는 그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근수축의 타이밍 사이에서 더욱 복 잡하고 간접적인 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매개물로서 어떤 종류의 뇌가 필요했다. 굉장 한 진보는 기억이라는 진화적 '발명'이었다. 이 장치에 의해 근수축의 타이밍은 직전의 과거 의 사건만 아니라 먼 과거의 사건의 영향도 받게 될 수 있었다. 디지털 컴퓨터에서도 기억, 즉 메모리가 그 본질적인 주요 부분이다. 컴퓨터의 기억은 인간의 기억보다 확실하지만 그 용량은 작고 정보 수정의 기술은 많이 떨어진다. 생존 기계의 행동에서 가장 뚜렷한 특성의 하나는 합목적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동물의 유전자의 생존에 필요하도록 잘 계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기는 싫다. 물 론 그럼에는 틀림없으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의도적인 행동에 잘 닮아 있다는 것이다. 동물이 먹이를 '찾거나'배우자를 찾거나, 또는 잃은 새끼를 찾고 있는 것을 보면 우 리들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을 때 경험하는 어떤 종류의 주관적 감정을 그 동물이 가지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감정에는 어떤 것에 대한 '욕망', 바라는 것을 '머리에 그리는 상' 또는 '목적' 내지 '설계도'가 포함되어 있다. 누구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는 것처 럼 우리는 적어도 현대의 생존 기계에서는 이 합목적성이 '의식'이라는 특성을 발달시켰음을 알고 있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철학자는 아니 지만, 다행히도 목적에 따라 동기가 주어지는 것과 같이 행동하는 생존 기계의 일을 말하는 것은 쉽고 생존 기계가 실제로 의식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미해결 상태로 남길 수도 있으 므로 우리의 현재 목적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들 생존 기계는 기본적으로 극히 단순하 여 무의식의 합목적적 행동의 원리는 공학의 어디에나 흔히 널려 있다. 이 고전적인 예는 와트(James Watt)의 증기 기관의 조속기이다. 피드백 이것에 포함되는 기본 원리는 음(-)의 '피드백(feedback)'이라는 것으로 이에는 여러 가지 의 형태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목적 기계', 즉 의식적 목적을 가지고 있 는 양 행동하는 기계 내지 물건은 사물의 현재 상태와 '바랐던' 상태와의 차이를 재는 일종 의 측정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이 차이가 클수록 기계는 더 열심히 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 다. 이렇게 해서 기계는 자동적으로 차이를 줄이려고 한다. 이것이 음의 피드백이라고 불리 는 이유이다. 그리고 '바랐던'상태에 도달하면 기계는 멈춘다. 와트의 조속기는 증기 기관의 힘으로 도는 한 쌍의 볼(ball)로 되어 있다. 볼은 각각 돌쩌귀가 붙은 암(arm)의 끝에 붙어 있다. 볼이 빨리 돌수록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여 암을 수평 위치로 밀어 올리는데 이에 반하여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 암은 엔진에 증기를 보내는 밸브에 연결되어 있고, 암이 수평 위치에 접근하면 증기의 공급이 감소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엔진이 지나치게 빨 라지면 공급되는 증기의 양이 줄고, 엔진은 느려지게 된다. 엔진이 너무 느리면 밸브에 의해 보다 많은 양의 증기가 엔진으로 자동적으로 보내져 엔진은 다시 속도를 되찾는다. 이와 같 은 목적 기계는 종종 도가 지나치거나 시간이 지연되는 것 때문에 진동을 일으킨다. 이 진 동을 억제하는 부속 장치를 조립하는 것이 기술자에게 요구되는 솜씨이다. 와타가 조속기에 대해 '바랐던' 상태는 하나의 일정한 회전 속도이다. 분명히 이 기계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계의 '목표'란 단순히 기계가 도달해야 하는 상태라고 정의된다. 현대의 목적 기계는 더욱 복잡한 '살아 있는 것과도 같은' 행동을 달성 하기 위해 음의 피드백과 같은 기본 원리를 확대하여 이용하고 있다. 예컨대 유도 미사일은 얼핏 적극적으로 목표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사정 거리 내의 표적을 발견하면 표적이 도망치려고 지그재그로 가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 등을 계산하여 때로는 그것을 '예 측'까지 하여 추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것이 행해지는 방법의 상세한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음의 피드백, 실행 전에 결함을 예기하고 행하는 피드백 과정의 제어(feed-forward), 그리고 기술자에게는 잘 이해되어 있고 현재로는 생물체의 활동 에 널리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 기타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원격 조정하는 식으로 외부에서 전달되는 의식은 전혀 없다. 가령 문외한이 그 신중하고 의도적으로 보이는 행동 을 보고 미사일이 인간 조종사에 의해 직접 조정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해 도 말이다. 컴퓨터 장기 유도 미사일과 같은 기계는 본래 의식 있는 인간의 손으로 설계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서 마치 의식 있는 인간에 의해 직접 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흔히 있는 잘 못이다. 이와 같은 오해의 또 하나의 예는 "컴퓨터는 기사가 명한 것밖에 못하기 때문에 컴 퓨터는 진정한 의미로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 오해인 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전자가 행동을 '제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장기는 이 점을 설명하는 데 매우 좋은 예이므로 간단히 다 루어 보기로 하자. 컴퓨터는 아직 명인과 상대할 정도로 장기의 명수는 못되나 잘 두는 아마추어의 실력 정 도는 될 것이다. 대개 아마추어의 상수 실력 정도는 된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마추어의 상수 수준에 달하고 있는 것은 프로그램 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장 기를 두는 데 어떤 컴퓨터를 이용하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프로그램 작성자의 역 할은 무엇일까? 첫째로 분명히 그는 인형을 실로 조작하는 인형사처럼 계속 컴퓨터를 조작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가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프로 그램을 짜서 컴퓨터에 넣는다. 이때부터 컴퓨터는 독립한다. 즉, 자기의 수를 컴퓨터에 입력 시키는 대전자를 제외하면 인간의 개입은 더 이상 필요 없다. 프로그램 작성자는 가능성이 있는 말의 위치를 모두 예측하고 만약 일어날지도 모르는 각각의 말의 위치에 대한 솜씨를 기다란 리스트로 하여 컴퓨터에 입력시켜 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다. 장기에서 가능성이 있는 말의 위치는 너무 많아서 그것을 전부 다 써 넣기도 전에 이 세상 이 끝나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필승의 작전이 발견될 때까지 가능성이 있는 모든 수와 가능성이 있는 모든 수 읽기를 헛되게 시험토록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짤 수는 없 다. 가능한 장기 게임은 은하계의 원자 수보다도 많다. 그래서 컴퓨터가 장기를 두도록 프로 그램을 짜는 것에 관한 상세한 미해결 문제에 이 이상 깊이 개입하는 것을 그만하자. 사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가장 잘 된 프로그램일지라도 아직 명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프로그램 작성자의 역할은 오히려 아들에게 장기를 가르치는 아버지의 역에 가깝다. 그는 컴퓨터에게 개별적으로 가능한 수 모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경제적으로 나타낸 규 칙에 따라 게임의 기본적인 수를 가르킨다. 그는 그라 뜻 그대로 알기 쉽게 "비숍은 대각선 으로 움직인다"라고 하지 않고 수학적인 언어로 다음과 같이(단, 더 간단히)말한다. "비숍의 새운 좌표는 본 X 좌표와 본 Y좌표의 양방에 동일 정수(단, 부호는 필히 동일하지 않아도 좋다)를 더 함으로써 얻어진다." 그리고 그는 같은 종류의 수학적 또는 논리적인 말로 쓰여 진 어떤 '충고'를 프로그램에 짜 넣는다. 보통 우리말로 하면 "왕은 무방비 상태로 두지 말 라."라고 하는 힌트나 기사에 의한 '겹장'과 같은 유효한 책략이 그것이다. 이 상세한 것은 흥미를 끌게 하나 너무 개입하면 옆 길로 너무 빠져들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컴 퓨터가 실제로 승부를 할 때 그것은 이미 독립하고 있고 명수의 도움은 필요없다. 프로그램 작성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특수한 지식의 리스트와 전략과 기술에 대한 힌트 간에 균 형이 맞게 짜 넣어서 컴퓨터의 상태를 가급적 좋게 하는 것이다. 유전자-생존 기계 행동 제어 유전자는 또한 직접 스스로 인형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프로그램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자기의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하고 있다. 그것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생 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 후에는 생존 기계가 독립하기 시작하여 유전자는 그 속에서 그저 점잖게 앉아 있게 된다. 그것들은 왜 그렇게 수동적이 될까? 왜 부단히 고삐를 잡고 지시를 척척 하지 않을까? 시간적 지연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그 해답이다. 이 사실은 공상 과학 소설(SF)에서 끄집어낸 다른 예를 들면 잘 알 수 있다. 호일(Fred Hoyle)과 엘리 엣(John Elliot)의 저서 (안드로메다의 A)는 마음 설레는 책이다. 그리고 우수한 공상 과학 소설이 다 그렇듯이 그 배경에는 흥미 깊은 과학적인 문제점이 어느 정도 들어 있다. 묘하 게도 이 책은 이들 기초가 되는 문제의 가장 중요한 점에 대해 뚜렷한 서술이 부족한 것처 럼 보인다. 그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내가 여기서 그것을 똑똑히 설명했다고 하더 라도 저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200광년이나 멀리 있는 안드로메다좌에 어떤 문명 세계가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문화 를 먼 외계에까지 전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직접 여행 따위 는 논외이다. 광속은 우주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속도의 이론적인 상 한선이다. 거기에다 기계 공학적 문제를 생각하면 사실상의 한계는 광속보다 훨씬 더 낮다. 또한 외계 전체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 무선 전파는 우주의 다른 장소와 교신하는 좋은 수단이다. 모든 방향으로 신호를 발송하는 힘이 있으면 아주 많은 세계(그 수는 신호가 가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한다)에 도 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선 전파가 광속으로 가더라도 그 신호가 안드로메다로부터 지구 까지 오는 데는 200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거리로 말미암아 결코 통화가 성립되 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로부터 송출된 메시지가 각기 12대를 지난 사람들에 의해 전달된 다는 사실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와 같은 거리에서 서로 말을 교환한다는 시도는 분명히 헛 된 일이다. 이 문제는 곧 우리에게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무선 전파가 지구와 화성 사이를 오가는 데는 약 4 분이 걸린다. 우주 비행사는 짧은 문장으로 말을 교환하는 습관을 버리고 통화라 기보다 편지와도 같은 긴 혼잣말을 쓰지 않으면 안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페 인(Roger payne)이 지적한 대로 바다는 어떤 독특한 음향 특성을 갖추고 있다. 일정한 깊이 에서 헤엄치고 있는 혹고래들의 엄청나게 큰 소리의 노래는 이론상 세계의 모든 곳에서 들 려야 할 것이다. 그것들이 실제로 매우 먼 곳에 있는 친구와 교신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그렇다면 그것들은 아마도 화성에 있는 우주 비행사와 같은 곤란에 직면하 고 있음에 틀림없다. 수중의 음속으로 하면 그 노래가 대서양을 횡단하여 회답이 오기까지 는 약 2시간이 걸린다. 나는 고래들이 서로 말을 교환하지 않고 8분간이나 계속 독백을 하 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들은 그 후 노래의 처음으로 돌아와 또다시 그 노 래 전부를 되풀이하여, 매번 약 8분씩 완전한 사이클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이야기 속의 안드로메다 사람도 같은 일을 했다. 회답을 기다려 봤자 별다른 수가 없으므 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모아 멀리멀리 이어지는 방대하고 끊기지 않은 메시지를 담아 수개월을 한 사이클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우주로 계속해서 발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메 시지는 고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거대한 컴퓨터의 건설과 프로그램 작성에 관 한 암호화된 지령이었다. 몰론 그 암호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숙련된 암호 해독자의 손에 걸리면 거의 어떤 암호라도 해독되고 마는 것이다. 특히 암호 작성자가 일부 러 간단히 풀 수 있도록 만든 경우는 그렇다. 조드렐 뱅크(Jodrell Bank) 전파 망원경에 걸 린 이 메시지는 실제로 해독되어 컴퓨터가 조립되고 프로그램이 작동됐다. 결과는 인간의 파멸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안드로메다 사람의 의도는 당연히 이타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 이다. 이 컴퓨터는 세계를 장악하여 독재 정치를 수행하다가 결국 영웅의 도끼에 의해 파괴 된다. 우리의 관점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안드로메다 사람이 지구상에서 생긴 일을 조작하고 있 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라는 문제이다. 그들은 컴퓨터가 척척 해내는 것 을 직접 제어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들은 컴퓨터가 만들어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정 보가 그들에게 미치려면 200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주인에게서 일반적인 방침의 지시를 받는 것까지도 불가능했다. 넘을 수 없는 200년이란 벽 때문에 그 지령은 모두 미리 짜여져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그것은 장기를 두는 컴퓨터의 경우와 똑같이 프로그램되어 있었을 것이나 국부적인 정보의 흡수에 관한 능력과 융통성은 훨씬 컸을 것이다. 이것은 그 프로그램이 지구상만 아니고 진보된 기술을 가졌다면 어떤 세계에서도, 즉 안드로메다 사람 이 상세한 상태를 알고 있지도 않은 어떤 세계에서도 통용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예언한다 안드로메다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나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지구상에 컴퓨터 가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의 유전자도 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나 유전자는 암호화 된 지령을 보낸 안드로메다 사람에 상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지령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조작 인형을 실로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유전자가 우리를 직접 조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마 찬가지로 시간 지연 때문이다. 유전자는 단백질 합성을 제어하는 데 작용한다. 이것은 세계 를 조정하는 강력한 방법인데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배(embryo)를 만드는 데 는 몇 개월 동안 인내 있게 단백질 합성의 실을 조작해야만 한다. 반면에 행동의 특징은 빠르다는 것이 다. 그것은 수개월이라는 시간 단위가 아닌 몇 초 또는 몇 분의 1초라는 시간 단위로 작용 한다. 이 세상에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부엉이가 머리 위를 휙 지나가고 키 큰 풀숲이 부시 럭거리며 포획물이 있는 곳을 알려서 1/1000초 단위로 신경계가 팔딱 흥분하여 근육이 떨리 고 누군가의 생명이 구해지기도 하고 또는 잃기도 한다. 유전자는 이와 같은 반응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안드로메다 사람처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컴 퓨터를 조립하여 '예측'할 수 있는 한 불의의 사건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과 '충고'를 사전에 프로그램하여 미리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 두는 것뿐이다. 그러나 장기 게임이 그렇듯이 생 물은 너무도 많은 경우의 사건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있어 도저히 그 모두를 예측할 수는 없다. 장기의 프로그램 작성자의 경우처럼 유전자는 스스로의 생존 기계에 생존술의 각론이 아니라 살기 위한 일반 전략이나 일반적 비결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연(J.Z. Young)이 지적하였듯이 유전자는 예언과 비슷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 존 기계의 배가 만들어질 때, 그 배에게 닥칠 생명 위험이나 문제는 미래의 일이다. 어떠한 맹수가 어떤 숲속에 숨어 있는가, 어떤 발빠른 포획물이 눈앞에 튀어나와 지그재그로 도망 치거나 하는 것은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예언자도, 어떤 유전자도 말할 수 없다. 그 러나 어느 정도 예측은 할 수 있다. 북극곰의 유전자는 곧 생겨날 생존 기계의 미래가 춥다 는 것을 틀림없이 예측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생각하고 예언하는 것은 아니다. 전 혀 생각조차도 못한다. 그것들은 그저 묵묵히 두터운 모피를 만든다. 이것은 그것들이 이전 의 몸으로 항상 해 온 것이고 그것들이 또 유전자 풀 속에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 것들은 또 지면에 눈이 올 것을 예언하고 그 예언은 모피를 백색으로 위장한다. 북극의 기 후가 급변하여 아기곰이 열대의 사막에서 태어나든디 하면 그 예언은 빗나가 그들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아기곰은 죽고 그 속의 유전자도 망하고 말 것이다. 프로그래머 유전자 복잡한 세계를 예언하는 것은 불확실한 일을 동반하는 것이다. 생존기계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도박이다. 그리고 평균하여 잘 되는 결정을 내리도록 뇌를 미리 프로그램해 놓은 것이 유전자의 일이다. 진화의 카지노에서 쓰이는 통화는 생존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유전자 의 생존인데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개체의 생존을 그 타당한 비슷한 일로 보아도 좋다. 만 약 물을 마시러 물가로 내려 간다면 물가에 접근하는 포획물을 숨어서 기다리는 포식자에게 먹힐 위험이 많다. 물가로 가지 않는다면 결국은 목이 마라 죽을 것이다. 어느쪽을 택하든지 위험은 있으며 자기의 유전자가 살아 남는 기회를 긴 안목으로 보아 최대로 하도록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아마도 최선의 수단은 목마름을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다가 정 못 참을 지 경일 때 내려가서 오랫동안 견딜 수 있도록 물을 잔뜩 마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물가에 가는 횟수를 줄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물을 마실 때에 오랫동안 머 리를 숙이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신하는 가장 좋은 요령은 조금씩 마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가 옆을 뛰어가는 도중에 황급히 조금씩 마신다. 작전 요령으로서 어떤 것이 가장 좋은지 는 여러 가지의 복잡한 사정에 따른다. 가령 포식자의 수렵 습성들이 그것인데, 이것들은 각 각의 포식자의 입장에서 최대의 효과를 올리도록 진화하고 있다. 안정성의 성공 여부에 관 해서는 무엇인가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는 하나, 물론 동물이 의식적으로 계산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유전자가 가급적 개체로 하여금 도박을 할 수 있도록 뇌를 만들어 준 그 개체 는 당연히 보다 잘 살아 남고, 따라서 그 같은 유전자를 늘려갈 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유전자는 도박꾼이다 도박의 비유를 좀더 써 보기로 하자. 도박꾼은 주로 거는 돈과 승산과 상금이라는 세 가 지 요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금이 크면 기꺼이 큰 돈을 걸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 는 도박꾼은 큰 돈을 모을지도 모른다. 또는 큰 손실을 볼지도 모른다. 평균적으론 큰 돈을 거는 도박꾼은 적은 돈을 걸어서 적은 상금을 노리는 승부사와 비교하여 벌이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주식 시장에서 투기적인 투자가와 착실한 투자가의 경우에도 그렇다. 어떤 점에서 주식 시장의 예는 카지노의 예보다 더 많이 닮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카지노는 주인에게 유리하도록 미리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돈을 많이 건 승부사는 조금 건 승부사보다 할당이 나쁘고 조금 건 사람도 전혀 안 건 사람보다 는 재미 볼 확률이 나쁘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논의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이것을 무시 하면 건 돈이 큰 도박이건 돈이 적은 도박이건 둘 다 이치에 맞는 것처럼 생각된다. 동물에 도 큰 판돈이 적은 도박이건 둘 다 이치에 맞는 것처럼 생각된다. 동물에도 큰 판돈을 거는 도박꾼이나 작은 판돈을 거는 도박꾼이 있을까? 제 9장에서 보게 되듯이 수놈은 큰 돈을 건 모험적인 큰 도박꾼이고, 암놈은 착실한 투자가로 봐 줄 수가 있다. 여러 수놈이 암놈을 놓 고 싸우는 일부 다처형의 종류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박물학자는 판돈도 크고 위험도 큰 승부사로 볼 수 있는 종과 더 작은 승부를 거는 종이 생각날 것이다. 그렇 다면 여기서 유전자가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는가 하는 보다 일반적인 테마로 이야기를 돌 려 보자. 시행 착오 다소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예측해야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학습 능력을 짜 넣는 것이다. 이 경우 프로그램은 생존 기계에게 다음 과 같은 지령을 행할 것이다. "여기에 보수가 되는 사물의 리스트가 있다. 즉, 달콤한 것, 오 르가슴, 따스한 기후, 방실거리는 아이, 그리고 싫은 사물의 리스트가 있다. 즉, 여러 가지의 고통, 토할 기분, 공복, 울고 있는 아이이다. 만약 무엇인가를 하고 그 후에 싫은 것이 생기 면 또다시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이점은 최초의 프로그램에 짜 넣어야만 될 자세한 규칙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과 자세히 예측 못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어떤 예측들은 여전히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유전자는 사탕의 섭취나 교미가 유 전자의 생존에 적합하다는 의미로 입속의 단맛이나 오르가슴은 '좋은 것'이어야 된다라고 예 측하고 있다. 이 예를 따르면 사카린과 수음의 가능성은 예측되지 않으며, 사탕이 부자연스 럽게 과다한 오늘날의 환경하에서 사탕의 과다도 예측되지 않고 있다. 장기를 두는 컴퓨터의 프로그램 속에도 학습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인간이나 다른 컴퓨터를 상대로 승부하는 데 따라 실제로 장기가 숙달된다. 그 것은 규칙과 전술의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는데 결정의 수순에는 다소 거칠은 경향도 짜 넣 어져 있다. 이와 같은 컴퓨터는 과거의 결정을 기록해 가며 승부에 이길 때마다 승리로 이 어지는 전술에 더 많은 비중이 놓여지게 되어 다음에 그 전술을 또다시 선택할 확률이 조금 놓아지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 중에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의 하나는 시물레이션(simulation:모의 실 험)이다. 한 장군이 어떤 작전 계획이 좋은가 하는 여부를 알고 싶을 때 그것을 예언하기는 어렵다. 날씨도, 자기 부대의 사기에도, 적의 작전에도 미지의 요소가 있다. 그것이 좋은 계 획인지 어떤지를 아는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시험해 보는 것인데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한 젊은이가 얼마가 있든 한계가 있고 가능한 작전 계획이 매우 많은 것만 보아도 여러 모 양의 계획을 닥치는 대로 모두 시험해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목숨을 걸고 착실히 행 하는 것보다 모의적으로 여러 가지의 작전 계획을 시도해 보는 편이 좋다. 이것은 공포탄을 써서 '북'과 '남'이 싸우는 대훈련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시간과 자재면에서 비경제적이 다. 덜 허비하려면 큰 지도상에서 인형 군대와 장난감 탱크를 가지고 전쟁놀이를 하면 좋다. 컴퓨터와 시뮬레이션 최근에는 군사 전략뿐만 아니라 경제학, 생태학, 사회학, 기타 미래의 예측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가 대부분의 시뮬레이션을 맡아 보고 있다. 그 기술은 다음과 같이 작 용하고 있다. 세계의 한 측면을 컴퓨터로 꾸민다고 해도 이것은 컴퓨터의 뒷뚜껑을 열면 속 에 시뮬레이크된 것과 같은 형의 작은 모형이 보인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를 두는 컴 퓨터의 기억 장치 속에 기사나 졸이 놓인 장기판으로 보이는 '상상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장기판과 그 편재 위치는 전자적으로 기호화된 수치표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는 세계의 일부를 2차원으로 압축한 축소 모형이다. 컴퓨터가 필요로 하는 지도는 아마 도 거리와 다른 지점을 각각 위도와 경도라는 두 가지 수치로 표시한 도표임에 틀림없다. 어떻든 간에 컴퓨터가 머리 속으로 세계의 모형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 다. 그것을 조작하고 처리하고 그것을 사용해서 실험하는 형태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리고 오퍼레이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보고를 해 온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뮬레이션 기술 중에 모델 전쟁은 이기는 수도 있고 지는 수도 있으며, 시뮬레이트 된 항공기는 날 수도 있고 추 락할 수도 있다. 경제정책은 번영으로 이끌기도 하고 파멸에 귀착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 도 컴퓨터는 실생활에서 걸리는 시간의 몇 분의 일로도 전과정에 걸리는 일을 한다. 물론 훌륭한 세계 모형이 있으면 좋지 못한 모형도 있고, 좋은 모형조차도 그저 유사한 것에 불 과하다. 시뮬레이션의 결과일지라도 실제로 생기는 것을 반드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 은 아니다. 그래도 엉터리 시행 착오보다는 훨씬 낫다. 시뮬레이션은 대리 시행 착오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됐지만 이것들은 오래 전에 쥐 심리학자에 의해 사용된 말이다. 시뮬레이션이 그렇게 좋은 방안이었다면 생존 기계는 벌써 옛날에 그것을 발견했을 것이 다. 무엇보다도 생존 기계는 인간이 쓰고 있는 기타 여러 가지의 공학 기술을 우리가 등장 하기 훨씬 이전에 발명해 낸 초점 렌즈와 반사 망원경, 음파의 주파수 분석 장치, 항공 서보 조정장치, 수중 음파 탐지기, 인력 정보의 완충 기억 장치, 그 밖의 긴 이름이 붙은 무수한 기술(이들의 상세한 것은 중요치 않음)이 그것이다. 시뮬레이션에 대해서는 어떠할까? 아마 도 당신 자신이 미래의 미지수를 견적한다는 어려운 결정을 요구당했을 때 당신은 반드시 시뮬레이션이라는 형태를 취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길을 각각 취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상상한다. 머리에 그리는 것은 세계의 모든 모형이 아닌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한정된 일련의 모형이다. 당신은 그것을 생생하게 마음에 그리기도 하고 그것들의 형태로써 추상 개념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당신의 뇌 속에 있는 장소가 상상하고 있는 사실의 실험 공간 모형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컴퓨터의 경우와 같 이 뇌가 어떻게 세계의 모형을 표현하느냐는 세부보다는 뇌가 그 모형을 사용하여 가능한 사건을 예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미래의 시뮬레이션을 행하는 생존 기계는 명 백한 시행착오에 근거하지 않고는 학습이 안 되는 생존 기계보다 일보 진보되어 있다. 명백 한 시행의 난점은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명백한 착오의 난점은 생명이 위험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뮬레이션은 보다 안전하면서도 신속하다. 시뮬레이션 능력의 진화는 주관적인 의식의 발생으로 장점에 이른다. 왜 그와 같은 것이 생기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는 현대 생물하기 당면한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이다. 컴퓨터가 시뮬레이션을 할 때에 의식이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으나, 그것들이 장래에 그렇게 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해야 한다. 다분히 의식이 생기는 것은 뇌에 의해 세계의 시뮬레이 션이 완전하게 되어 그 자체의 모형을 포함해야만 될 정도로 되었을 때일 것이다. 분명히 생존 기계의 사지와 몸은 그것이 시뮬레이트 되어 있는 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 에 틀림없다. 아마도 비슷한 이유에서 시뮬레이션 그 자체가 시뮬레이트 되어야 할 세계의 일부로 생각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자기를 알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되는데, 나는 이 로 인해 의식의 진화가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의 하나는 무한 복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형의 모형이 있다면 왜 모형의 모형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할 수 있다 이 책의 논지로 말한다면, 의식에 의하여 어떤 철학적 문제가 생기든 의식이란 실행상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 기계가 궁극적인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된다고 하는 진화 경향의 극 치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뇌는 생존 기계의 일을 매일 관리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 고 그것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도 손에 넣고 있다.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기를 거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후술하 는 바대로 인가는 이런 점에서 대단히 특수한 경우인 것이다.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나는 이타적이든 이기적 이든 간에 동물의 행동이 그저 간접적이라는 것만으로도 매우 강력한 의미에서의 유전자의 제어하에 있다고 하는 견해를 확립하려고 하고 있다. 생존 기계와 신경계를 조립하는 방법 을 지령하는 것에 따라 유전자는 행동에 기본적인 힘을 내고 있다. 그러나 다음에 무엇을 할까를 순간순간 결정해 가는 것은 신경계이다. 유전자는 방침 결정자이고 뇌는 실시자이다. 그러나 뇌는 다시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차츰 실제의 방침 결정까지도 맡게 되어, 이때에 학습이나 시뮬레이션과 같은 책략을 쓰게끔 됐다. 어떤 종도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되어 있 지 않으나 이 경향이 계속적으로 진행되면 논리적으로는 결국 유전자가 생존 기계에 단 하 나의 종합적인 방침을 지령하게끔 될 것이다. 즉, 우리를 살려 두는 데 가장 좋다고 생각되 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될 것이다. 컴퓨터의 비유와 인간의 의지 결정과의 비유는 어느 것이나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 리는 여기서 현실 문제로 돌아와 진화는 실제로 유전자 풀 속의 유전자 생존에 차이가 있다 는 것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된다. 따라서 행동 패턴-이타적인 것이든 이기적인 것이든- 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위한 유전자가 행동을 '위한'또 다른 경제적 유전자, 즉 대립 유전자보다도 유전자란 신경계의 발달에 영향을 주고 신경계 를 이타적으로 행동하기 쉽도록 하는 유전자이다. 그러면 이타적 행동의 유전에 대한 실험 적 증거는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없다. 그러나 놀랄 것은 없다. 왜냐하면 행동에 관해서도 유 전의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불행히도 완전히 이타적인 것이 라고 할 수는 없으나 매우 복잡하여 흥미로운 행동 패턴의 연구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이타적 행동이 어떻게 유전할 수 있는가를 가리키는 모형으로서 필요하게 될 것이다. 꿀벌의 유충버리기 꿀벌은 부저병(foul brood)이라는 세균성 전염병에 걸린다. 이것은 봉방 속의 유충을 해치 는 병이다. 양봉가가 키우고 있는 꿀벌에서는 어떤 계통이 다른 계통보다 이 병에 걸리기 쉽고 이러한 계통간의 차이는 적어도 몇 개의 예로서 행동의 차이에 의한다는 것을 알고 있 다. 말하자면 위생적이 계통은 병에 걸린 유충을 발견하고 봉방에서 끄집어 내어 벌집 밖으 로 버리고 병을 빨리 근절해 버린다. 한편 감염되기 쉬운 계통은 이 '유충버리기'를 안하기 때문에 병에 걸리기 쉽다. 이 위생법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행동이다. 일벌은 병에 걸린 각각의 유충 봉방을 발견해 그 봉방의 뚜껑을 떼고 유충을 벌집의 출입구로 끄집어내어 쓰 레기장에 내던져야 한다. 꿀벌을 이용하여 유전 실험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귀찮은 일이다. 일벌 자 신은 번식하지 않으므로 한 계통의 여왕벌과 다른 계통의 수벌을 섞어서 그것에서 생긴 일 벌의 행동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한 사람은 로센부러(W.C. Rothenbuhler)였다. 그는 잡종 제 1세대의 꿀벌이 모두 위생적이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즉, 위생적인 어미의 행동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후에 알았는데 위생적 형질의 유전자는 인간의 푸른 눈의 유전자처럼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성이었던 것이다. 로센불러가 잡종 제 1세대 와 위생적 형질의 계통과를 '역교배'해 본 결과(물론 여왕벌과 수벌을 써서) 아주 좋은 결과 를 얻었다. 태어난 꿀벌은 3개의 그룹은 전혀 위생적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세 번째 그룹은 어중간한 생동을 했다. 맨 나중 그룹은 병에 걸린 유충이 있는 봉방의 뚜껑을 뜯는 데는 성 공했는데도 유충을 버리는 데 관한 두 종류의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위생적 계통은 그 양쪽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감염되기 쉬운 계통은 이 두 개의 유전자의 라이 벌인 대립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어중간한 일밖에 못하는 잡종은 아마도 뚜껑을 떼는 유전 자를 (2배수로) 가지고 있으나 버리는 쪽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로센불러는 완 전히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꿀벌의 그룹 중에 유충을 내버리기 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뚜껑을 떼는 유전자를 잃었기 때문에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그룹이 숨겨져 있지나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뚜껑을 열어 주고 이 추측의 정확함을 잘 증명했다. 비 위생적으로 보이는 벌의 반수는 이때에 완전히 정상처럼 '유충버리기' 행동을 보여 주었다. 이 이야기는 앞 장에서 나온 수많은 중요한 문제점을 예증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가령 유전자로부터 행동에 이르는 배발생상의 원인의 화학적인 사슬이 어떠한 것인가를 전혀 모 르면서조차도 '무슨 무슨 행동을 위한 유전자'라는 논법을 써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원인의 사슬에는 학습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예컨대 뚜껑을 떼 기 위한 유전자는 벌이 병에 감염된 밀랍의 맛을 좋아하게 하므로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즉, 그들로서는 병에 걸린 유충을 덮고 있는 밀랍의 뚜껑을 먹는 것이 보수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유전자의 일하는 법이 이렇다 할지라 도 다른 조건이 같을 때에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벌은 뚜껑을 뜯고, 갖지 않은 벌은 뚜 껑을 떼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뚜껑을 떼기 위한' 유전자라고 해도 좋다. 둘째로 그것은 유전자들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생존 기계의 행동에 '협력해서' 작용을 미 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유충을 버리는 유전자는 뚜껑을 떼는 유전자가 없다면 필요 없게 되고, 그 역도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전 실험에서 분명히 아는 바대로 이 두 개의 유전자는 세대를 통한 그들의 여행에서 원칙상 전혀 따로따로 행동한다. 그 작동을 보 는 한 그것들은 단일 협동 단위가 되나 복제에 임해서는 두 개가 자유롭고 독립된 인자가 되는 것이다. 논의를 진행시키 위해 모든 종류의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수행하기 '위한' 유전자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물에 빠진 친구를 건지기 위한' 유전자에 대해 기술하고, 당신이 그와 같은 개념을 믿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위생적인 꿀벌의 이야 기를 상기하라. 복잡한 근수축이나 감각 통합, 더 나아가서는 의식적인 결단에 이르기까지, 친구를 구조하게 만드는 유일한 원인이 유전자는 아니라는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학습과 경험 또는 환경의 영향이 행동의 발달에 관여하는가 여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않고 있다.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다른 조건이 같고, 또 다른 다수의 중요한 유전자나 환경 요인이 존재하고 있다면 한 단일 유전자가 대립 유전자에 비해서 물에 빠진 친구를 더 한층 잘 도와줄 법한 몸을 만들 수가 있음직도 하다는 것이다. 두 개의 유전자간의 차이가 실은 어떤 단순한 양적 변수의 근소한 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때도 있을 것이다. 배발생 의 상세한 과정은 흥미를 끄는 것이기는 하지만 진화적인 고찰에는 관계가 없다. 로렌츠는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유전자는 종합 기본 프로그램이다 유전자는 종합 기본 프로그램이고 자기의 생명을 위해 프로그램을 짠다.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가 생애에서 부딪치는 모든 위험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 에 의해 심판받는다. 그 심판은 생존하느냐 소멸하느냐 하는 냉혹한 것이다. 유전자의 생존 이 일견 이타적 행동처럼 보이는 것에 의해 재촉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후에 또 다루 기로 하고, 여하튼 생존 기계와 생존 기계를 위해 결단을 하는 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체의 생존과 번식이다. 이 '군체' 내의 모든 유전자는 이 두 가지에 우선권을 인정하기로 합의하고 있다. 그래서 동물은 먹이를 찾아 잡기 위하여, 자기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하여, 병이나 사고를 피하기 위하여, 자기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하여, 병이나 사고를 피하기 위하 여, 매우 나쁜 기후 조건에서 몸을 지키기 위하여, 이성을 보고 교미를 유도하기 위하여, 그 리고 자기들이 향수하고 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어쨌든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구태여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원한다면 주위의 야생 동물을 잘 관찰해 보라. 그러나 특별한 종류의 행동에 대해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후에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이야기를 할 때에 재차 이 문제를 언급해야만 할 것 같아서이다. 그것은 대체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생존 기계의 커뮤니케니션 한 생존 기계가 다른 생존 기계의 행동 또는 신경계의 상태에 영향을 끼칠 때 그 생존 기 계는 그의 상대와 커뮤니테이션했다고 할 수가 있다. 이것은 끝없이 주장하고 싶을 정도의 정의는 아니지만 당면한 목적에는 충분하다. 영향이라 함은 직접적인 인과적 영향을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예는 무수히 많다. 새와 개구리,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개가 꼬리치는 동작 이나 털을 세우는 행동, 침팬지의 이빨을 내보이는 행동, 인간의 몸짓이나 말씨 등 생존 기 계의 많은 동작은 다름 생존 기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자기의 유전 자의 번영을 꾀한다. 동물들은 이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 는다. 옛부터 새의 노랫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이미 다루어 보았듯이 흑고래의 매우 정교하고 신비스런 노래는 그 음역이 무척이나 넓다. 즉, 그 주파수 범위는 가청 범위 이하의 웅웅거리는 소리부터 초음파의 쌩쌩거리는 소리까지 인간의 청력 범위를 훨씬 넘고 있다. 땅강아지는 착실히 옛 축음기의 나팔(hom)이나 메가폰과 같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 아래에서 울어 자기의 울음소리를 큰 소리로 증폭한다. 꿀벌은 먹이의 방향과 거리에 대해 다른 벌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 어둠 속에서 춤을 춘다. 그 커뮤니케이션의 교묘 함은 인간의 언어에 필적한다. 동물 행동학자의 전통적인 이야기에 의하면 커뮤니케이션 신호는 송신자와 수신자 쌍방이 서로 이익을 받도록 진화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병아리는 길을 잃든지 춥든지 하면 큰 소 리로 삐약거려 어미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이 음성은 보통 어미를 불러대는 직접 효과를 가지고 있고, 어미는 그 병아리를 찾아 모은다. 이 행동은 자연 선택이 길을 잃고 울던 병아 리와 그 울음소리에 적절히 반응하는 어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의미로 상호 이익을 위 하여 진화했다고 할 것이다. 바란다면(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이 울음소리를 어떤 의미를 가진 것, 즉 정보(이 경에는 '길을 잃었다'라고 하는 정보)를 번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제 1장에서 말한 새의 경계음은 '메가 있다'라는 정보를 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정보를 받아서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은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이 정보는 진실한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이 틀 린 정보를 전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동물들의 거짓말 동물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오해를 초래하기 쉬우므로 미리 고려해 두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가드너 부처(Beatrice and Alen Gardner)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들의 유명한 '말 하는' 침팬지 와슈(Washoe; 이 침팬지는 아메리카식 수화법을 쓴다. 그 대단한 솜씨는 언어 학자간에도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상기한다. 청중 중에는 몇 사람 의 철학자가 있었다. 강의가 끝나자 그들은 와슈가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지의 문제로 심한 토론을 했다. 나는 가드너 부처가 토론할 더욱 흥미로운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이 책에서는 철학자들보다 훨씬 솔직하게 '속인다'든가 '거 짓말을 한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속이려고 하는 의식적인 의도에 관힘을 표시했다. 나는 단순히 속이는 것과 기능적으로 같은 효과를 가진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컨 대 어떤 새가 매가 없을 때에 '매다'하는 신호를 써서 그 때문에 동료를 겁주어 쫓아버리고 먹이를 혼자 독점했다고 하면 이 새는 거짓말을 했다고 하겠다. 이 새가 고의로 속이려고 의도하고 작정한 것은 아니다. 의미하고 있는 것은 거짓말쟁이 새가 다른 새의 희생에 의해 먹이를 획득했다는 것과 다른 새가 도망친 것은 정말로 매가 있을 경우에 적합한 방법으로 거짓말쟁이 새의 소리에 반응했기 때문이라는 것뿐이다. 포식자도 의태한다 먹어도 독이 없는 많은 곤충은 앞 장에서 말한 나비처럼 다른 맛없는 곤충이나 핌을 쏘는 곤충의 모습을 흉내냄으로서 몸을 지키고 있다. 우리들 자신도 잘못하여 노란색과 흑색의 얼룩이 있는 장수말벌을 벌로 오인하는 수가 많다. 꿀벌로 의태한 몇 마리의 장수말벌은 그 속임수가 더한층 완벽하다. 포식자도 또한 속인다. 아귀(angler fish)는 해저에 파묻힌 채로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유일하게 보이는 부분은 머리의 끝에서 뻗어 있는 디가란 '낚싯대' 끝에 있는 지렁이같이 꿈틀거리는 몸의 부분이다. 작은 물고기가 접근하면 아귀는 그 작은 물고기 앞에서 지렁이 닮은 미끼처럼 움직여서 숨어 있는 자기의 입 가까이로 유인한다. 그 러다가 아귀는 급속히 입을 벌려서 작은 물고기를 삼켜 버린다. 아귀는 꿈틀거리는 지렁이 와 같은 것에 접근한다는 작은 물고기의 성질을 이용하여 속이는 것이다. 아귀는 '지렁이가 있다'라고 하여 그 거짓말을 '믿는' 작은 물고기는 모두 잡아먹는다. 어떤 생존 기계는 다른 생존 기계의 성적 용망을 이용한다. 벌난초는 벌을 자기의 꽃과 교미시킨다. 그 꽃은 암벌과 꼭 닮았다. 벌난초가 벌을 속여서 필요한 것은 화분을 옮겨 주 게 된다. 개똥벌레는 빛을 깜빡거려 교미 상대를 끈다. 각각의 종은 특유한 깜빡거림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그에 의해 종간의 혼란과 그 결과 생기는 유해한 난교를 방지하고 있다. 특 정 등대의 깜빡거림 패턴을 찾는 선원처럼 개똥벌레도 같은 종임을 신호하는 깜빡거림 패턴 을 찾는다. Photuris 속의 암놈은 Photinus 속의 암놈의 깜빡거림 신호를 흉내낼 경우 Photinus 속의 수놈을 유인할 수 있음을 '발견' 했다. Photuris의 암놈은 이것을 실행하고 있 다,. 그리고 Photinus의 수놈이 이 속임수에 속아서 접근하면, 그는 즉석에서 Photuris 암놈 에게 먹혀 버린다. 사이렌(Siren)과 로렐라이(Lorelei)의 이야기야 얼핏 떠오르는데, 콘 월 (Cornwall) 지방의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초롱불을 가지고 배를 벼랑으로 유인하여 난파선에 서 나온 화물을 약탈했다는 옛 해적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진화할 때에는 어떤 것이 그 시스템을 자기만의 목적에 이용하려 고 하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종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진화를 배워 왔기 때문 에 자칫하면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은 포식자와 먹이 그리고 기생자 등과 같이 다른 종에 속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개체의 유전자의 이해가 다양화되어가면, 항상 거 짓이나 속임이나 커뮤니테이션의 이기적 이용이 생길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동 일 종의 개체간에서도 말할 수 있다. 후술하는 바대로 아이가 어버이를 속이거나 남편이 처 를 속이고 형제끼리 거짓말을 한다든가 하는 것조차 예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신호는 본래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진화된 것으로 그 후에 불순한 친구들에 의해 악용되게끔 되었다고 믿는 것도 역시 너무 단순하다 동물의 모든 커 뮤니케니션에는 처음부터 바로 속인다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동물 의 모든 상호 작용에는 적어도 무엇인가의 이해 충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 서는 진화의 관점에서 본 이해 충돌에 관한 유력한 사고 방식을 소개하기로 한다. 제5장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개체는 이기적 기계이다 이 장에서는 오해가 많은 공격에 대한 화제에 대부분을 맞추기로 하자. 이어서 개체를 자 기의 유전자 전체에 적합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무분별하게 행하도록 프로그램된 이기적 기계라고 보기로 하자. 이것은 편의상의 말이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또다시 개개의 유전자 의 말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한 생존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자기의 아이 또는 가까운 인연의 개체가 아닌) 다른 생존 기계는 바위나 냇물이나 한 조각의 먹이 같은 환경의 일부이다. 그것은 방해물일 수도 있고 이용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자칫 반격해 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생존 기계도 또한 미래를 위해 자기의 불사신의 유전자를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에 의해 선택되는 것은 환경을 가장 효과적 으로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이다. 이것에는 다른 종과 같은 종을 불문하고 다른 생존 기계를 가장 잘 이용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두더지와 지빠귀 어떤 경우에 생존 기계는 서로의 생활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예컨 대 두더지와 지빠귀는 먹거나 먹히거나 하지도 않고 교미를 할 필요도 없고 생활 장소를 가 지고 싸울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아주 독립된 존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둘러싸고-한 예로 지렁이를 가지고-다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두더지와 지빠귀가 지렁이를 가지고 줄다리기라도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빠귀 는 일생 동안 두더지를 보지 못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더지의 개체군을 근 절 또는 죽였다고 하면 지빠귀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 상세한 것이 어떻고 어떠한 우 여곡절을 겪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까지 마구잡이로 말하는 것은 나로서는 할 수 없다. 종이 다른 생존 기계끼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은 포식 자이기도 하고, 먹이가 되기도 하고, 기생자이기도 하고, 숙주이기도 하고, 어떤 부족한 자원 을 가지고 싸우는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또 벌이 화분 운반자로서 꽃에게 이용당할 때와 같이 특수한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는 수도 있다. 동종끼리의 경쟁 같은 종의 생존 기계끼리는 더욱 직접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여기 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자기 종에 속하는 개체군의 반수는 짝짓기 상대가 될 수 있는 개체이고, 또한 그것은 자기의 아이들을 위해 이용할 어미가 되는 개체이고, 또 한 그것은 자기의 아이들을 위해 이용할 어미가 되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같은 종의 구성원이 서로 잘 닮아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활 수단을 가지고 유전자를 지키 고 있는 기계이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둘러싼 직접적인 경쟁 상대라는 것이 다. 한 마리의 지빠귀에게는 두더지가 경쟁 상대라는 것이다. 한 리의 지빠귀에게는 두더지 가 경쟁 상대이기도 하나 다른 지빠귀만큼 중요한 경쟁 상대는 아니다. 두더지와 지빠귀는 지렁이를 가지고 다니나, 지빠귀끼리는 지렁이 및 그 밖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 그들이 동성이라면 교미 상대를 가지고도 다투게 될 것이다. 보통 수놈은 암놈을 가지고 싸 운다. 이것은 한 수놈이 경쟁 상대의 수놈에게 해로운 짓을 하면 자기의 유전자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신사적인 동물 그렇다면 생존 기계에게 논리적으로 바른 방침은 자기의 경쟁자를 죽여서 가능하면 먹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같은 종을 서로 잡아먹는 좋을 실제로 자연계에서 졸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의 소박한 해석에서 예측되는 정도로 자주 일어 나는 일은 아니다. 사실 로렌츠는 동물의 싸움, 즉 '공격'은 억제 가능한 신사적인 것임을 강 조하고 있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동물의 싸움이 복싱이나 펜싱의 규칙처럼 규칙에 따 라 싸우는 형식적인 시합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은 글러브를 낀 주먹과 끝을 둥그렇게 만든 검으로 싸운다. 위협과 겁주기가 목숨을 건 결투를 대신한다. 승자는 항복의 몸짓을 인정하 고 때려 죽이거나 물어 죽이거나 하는, 우리의 소박한 생각에서 예견되기 쉬운 행동을 삼간 다. 인간만이 카인의 후예이다 동물의 공격은 억제가 가능한 형식적이라는 이 해석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특히 불쌍 한 호모 사피엔스만이 자기의 종을 죽이는 유일한 종이고 카인의 후예이며, 이 같은 멜로드 라마적인 죄를 품은 종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자연주의자가 동물의 공격의 광포도를 강조하든가 억제를 강조하든가 하는 것은, 하나는 그 사람이 관찰하여 온 동물의 종류에 따라, 또 하나는 그 사람의 진화론상의 선입관에 따라 좌우된다. 로렌츠는 요컨대 '종의 이익'을 주장한다. 동물의 싸움을 글러브를 낀 주먹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표면적으 로 이것은 일종의 이타주의처럼 보인다.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은 이것을 설명한다는 어려운 일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물들이 모든 기회를 잡아서 자기 종의 경쟁자를 죽이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 물음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철저한 호전자에게는 이익(이득)과 동시에 손실도 있고, 더 욱이 그것이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B와 C는 모두 나의 경 쟁자이고, 내가 마침 B를 만났다고 하자. 이기적 개체인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당 연한 것으로 생각되나, 한편으로는 C도 또한 나의 경쟁자이고 동시에 C와 B도 서로 경쟁자 이기도 하다. 내가 B를 죽이면 친절하게도 C의 경쟁자 하나를 제거해 주는 것이 되지 않는 가. B를 살려 두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하면 그는 C와 다투거나 싸우거나 할 것이고 결국 나 에게는 간접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다. 이 단순한 가정의 예에서 보여 주는 교훈은 그저 함 부로 경쟁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뚜렷한 이점이 없다는 것이다. 크고 복잡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는 눈 앞의 경쟁자를 없앤다고 해도 반드시 좋은 결과만이 오는 것은 아니다. 한 경 쟁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당사자보다 다른 경쟁자가 이득을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충 방제 관계자들로부터 배운 쓰라린 교훈이기도 하다. 농작물에 심한 피해를 입히는 해 충이 있어 좋은 근절법을 발견하여 기꺼이 이 방법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그저 이 해충의 절멸에 의해 작물보다는 다른 해충이 득세하여 전보다 더욱 심한 상태로 될 뿐이다. 바다표범과 하렘 한편 어떤 특정한 경쟁자를 잘 계획하여 죽이거나 또는 적어도 싸운다는 것은 좋은 방법 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B가 암놈이 많이 있는 큰 하렘(harem; 한 마리의 수컷을 두러싼 여 러 암컷)을 가진 바다표범이고, 다른 바다표범인 나는 그를 죽임으로써 그의 하렘을 입수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할 것이다. 대개 상대를 선택하여 싸움을 걸어 봤자 손실 과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B가 반격해서 가치 있는 재산을 지키는 것은 그의 이익에 연관 된다. 만약 싸움이 벌어졌을 경우 내가 죽을 확률을 상대와 같다. 아니 아마도 내가 죽을 확 률이 더 놓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내가 싸움을 거는 원 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가? 아마도 그는 전승으로 그것을 얻었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도전하여 다른 개체를 수없이 격퇴하여 그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는 뛰어난 전사임에 틀림없다. 비록 전승으로 하렘을 차지하더라도 나는 이 싸움에서 상 처 투성이가 되어 이익을 즐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싸움은 시간과 에너지를 탕진한 다. 이 시간과 에너지는 당장에는 축적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당분간 싸움보다는 먹는 것에 전념하고 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하면 장차에는 강대해질 것이다. 언제가는 하렘 을 가지고 그와 싸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서두르기보다는 조금 기다리는 것이 결국 승률이 높을 것 같다. 유전자의 손익 계산 이 독백의 예는 이론적으로 말하면 싸울 것인가 아닌가의 결단에 앞서 무의식적으로라도 복잡한 '손익 계산'이 이상적으로 앞서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확실히 싸워서 이득을 볼 때도 있지만 항상 싸울 때마다 그만큼의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싸우는 동안 그 싸움을 확대시키느냐 하는 전술적 결단에는 각각 손실과 이득이 있어 그것은 원칙 적으로는 분석 가능한 것이다. 이 사실은 오랫동안 행동학자들에게 막연히 인식되어 왔으나, 자신을 가지고 이 발상을 분명히 표현하게 된 것은 일반적으로는 행동학자로 인정되지 않는 메이나드-스미스(J.Maynard Smith)의 힘이 필요했었다. 그는 프라이스(G.R. Price)와 파커 (G.A. Parker)와의 공동 연구로 게임 이론이라고 하는 수학의 한 분야를 이용했다. 그들의 훌륭한 이론은 수학 기호를 쓰지 않고도 말로 표현할 수가 있다. 단, 엄밀도에서 어느 정도 희생을 치러야만 된다. 메이나드-스미스가 제창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ESS)'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원래는 해밀턴(W.D. Hamilton)과 맥아서(R.H. MacAthur)의 착상이다. '전략'이라는 것은 미리 프로그램되어 있는 행동 방침이다. 전략의 일례를 들어보자. "상대를 공격하라. 그가 도망치면 쫓아라. 응수해 오면 도망쳐라."이해를 바라는 것은 이 전략을 개체가 의식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는 동물을 근육의 제어에 관해 미리 프로그램된 컴퓨터를 갖는 로봇 생존 기계라고 생각해 온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 전략을 한 세트의 단순한 명령으로 하여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이것에 관해 생각해 나가는 데는 편리한 방법이다. 확실히 모르는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동 물은 마치 이들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양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즉 ESS는 개체군의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것을 채용하면 다른 대체 전략에 의해 변화시킬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된다. 그것은 미묘하고도 중요한 개념 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개체로서 최선의 전략은 개체군의 대부분이 행하고 있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개체군의 나머지 부분은 각각 자기의 성공을 최대로 하려고 하는 개체 로 성립되어 있으므로 살아 남은 것은 어떤 이상 개체에 의해서도 개선될 수 없는 전략뿐이 다. 환경에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나면 짧기는 하나 진화적으로 불안정한 기간이 생기고 아 마도 개체군 내에 변동이 보이는 일까지도 있다. 그러나 일단 ESS에 도달하면 그것은 그대 로 남는다. 선택은 이 전략에서 이탈되는 것을 벌할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 이 개념을 공격에 맞추기 위해 메이나드-스미스의 제일 단순한 가정적인 예 하나를 고찰 하여 보자. 어떤 종의 개체군에는 매파형과 비둘기파형이라고 하는 두 종류의 전략밖에 없 는 것으로 하자(이 이름은 세간의 관례적 용어에 따랐을 뿐이고, 이 이름을 제공하고 있는 새의 습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실제로 비둘기는 어느 정도 공격적인 새이다.)우리의 가 정적 개체군의 개체는 모두 매파든 비둘기파든 어느 한편에 속하는 것으로 한다. 매파의 개 체는 가급적 항상 맹렬히 힘차게 싸우고 심하게 다쳤을 때가 아니면 굴복하지 않는다. 비둘 기파의 개체는 그저 무게 있고 규정대로 행하며 위협을 줄 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다. 매파의 개체와 비둘기파의 개체가 싸우면 비둘기파는 그냥 도망치므로 다치는 일이 없 다. 매파의 개체끼리 싸우면 그들은 한편이 중상을 입거나 죽을 때까지 싸운다. 비둘기파끼 리 부딪힐 때에는 어느 편이든 다치는 경우가 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 자세를 취하기만 하다가 결국은 실증이 나거나 그 이상 버틸 필요가 없다고 결심하면 중지하게 된다. 또 특정의 경쟁자가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를 미리 알 수 없는 것으로 가정해 놓자. 그는 경쟁자와 싸워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 뿐 그를 유도하는 특정의 개체와의 과거의 싸움 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한다. 그래서 싸우는 양자에게 '즉점'을 주기로 한다. 예컨대 승 자에게는 50점, 패자에게는 0점, 중상자에게는 -100점, 장기전에 의한 시간 낭비에는 -10점 이라고 하는 식이다. 이들 '득점'은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통화에 직접 환산되는 것으로 보아 도 좋다. 노은 득점을 얻은 개체, 즉 높은 평균 '득점'을 받고 있는 개체는 유전자 풀 속에 다수의 유전자를 남기는 개체이다. 이 실제의 수치는 제법 넒은 범위 내로 어떻게 취해도 분석에 지장이 없는 성질의 것인데 우리가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는 요긴하다. 중요한 것은 매파가 비둘기파와 싸울 때 상대를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언제나 매파가 이기는 것은 뻔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매파형 과 비둘기파형 중 어느 석이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한쪽이 ESS이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면 ESS인 쪽이 진화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두 개의 ESS가 있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있을 수 있다. 만약 개체군의 대세를 공격하는 전략이 종종 매파형 이든 비둘기파형이든 간에 어떤 개체로서 최선의 전략은 선례를 따르는 것이었다면 이와 같 이 말할 수가 있다. 이때에 개체군은 두 개의 안정 상태의 어느 것이든 좋으니까 종종 먼저 도달한 쪽으로 고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말하듯이, 실은 매파와 비둘기파라는 두 개의 전략은 어느 것이나 그 자체로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진화한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표시하려면 평균 득점을 계산하여야만 한다. 전원 비둘기파로 된 개체군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싸워도 다치지 않는다. 다툼은 아마도 긴 의식적인 시합, 더러는 노려보기만 하는 싸움이어서 어느쪽이든 기가 죽으면 결판이 난 다. 이때에 승자는 싸워서 자원을 차지했기 때문에 50점을 따나, 노려보기에 긴 시간이 걸렸 기 때문에 10점의 벌금도 내야 하므로 결국 40점이 되나. 패자도 역시 시간을 낭비했으므로 10점 깎인다. 평균하면 비둘기파의 개체는 모두 다툼의 반은 이기고 반은 지는 것으로 생각 된다. 따라서 싸움당 그의 득점은 +40과 -10을 평균하여 +15점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비둘 기파의 개체군 중의 비둘기파 개체는 모두 매우 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이 개체군에 매파형의 돌연변이 개체가 나타났다고 하자. 그는 여기서 유일 의 매파이므로 그는 모든 싸움에서 +50점을 기록하게 되며, 이것은 그의 평균 득점이 된다. 그는 순득점이 15점밖에 없는 비둘기파에 비해 막대한 이익을 누린다. 그것과 매파의 유전 자는 그 개체군 내에 급속히 퍼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매파의 각 개체는 이미 부팆 핀 경쟁자가 모두 비둘기파라고 기대할 수는 없게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매차의 유전자 가 순조롭게 퍼져서 개체군 전체가 매파로 됐을 때 이번에는 모든 싸움이 매파끼리의 싸움 이 되야만 할 것이다. 이제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매파끼리 부딪치면 한쪽이 다치기 때문에 -100점이 되는 반면, 승자는 50점을 딴다. 매파 개체군의 각 개체는 싸움의 반은 이기고 반 은 진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싸움당 평균 득점은 +50과 -100의 평균, 즉 -25점이다. 여기서 매파의 개체군 내에 비둘기파가 한 개체 있다고 하자. 확실히 그는 모든 싸움에서 패하는데, 그러나 한편 결코 부상하는 일이 없다. 매파 개체군 내의 평균 득점이 -25점인 데 비해서 그의 평균 득점은 매파 개체군 내에서 0이다. 따라서 비둘기파의 유전자는 그 개체군 내에 퍼지는 경향이 있다. 이 이야기의 말투로 보면 마치 개체군 내에 부단히 진동이 있는 양 생각될지도 모른다. 매파의 유전자는 압승하여 우세를 점한다. 그러면 대다수가 매파로 되는 결과로 인해 비둘 기파의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수를 늘려 간다. 하지만 비둘기파가 많아지면 다시금 매파 의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수를 늘려간다. 하지만 비둘기파가 많아지면 다시금 매파의 유 전자가 성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식으로 진행될 것 같으나 이와 같은 진동이 일어날 필요는 없다. 어디에나 매파와 비둘기파의 안정된 비율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임의의 득점 시스템으로 계산해 보면 안정된 비율은 비둘기파가 5/12, 매파가 7/12인 것을 알게 된 다. 이 안정된 비율에 달하면 매파의 평균 득점과 비둘기파의 평균 득점은 꼭 같아진다. 이 때문에 선택이 이쪽보다 다른 쪽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만약 개체군 내의 매파의 수 가 점점 늘기 시작하여 그 비가 7/12 이상으로 되면 비둘기파가 나머지 이익을 받기 시작하 여 그 비율이 원래대로 되고 안정 상태가 된다. 안정된 성비는 50대 50인 것과 같이 이 가 정적 예로는 매파 대 비둘기파의 비는 7대 5이다. 어떤 경우에도 안정점 부근에서 진동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대단히 큰 것이 될 수는 없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그룹 선택설에 약간 유사한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그룹 선택설에 닮은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이 설명이 개체군에도 안정된 평형 상태 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흐트러뜨리며 또다시 그 점까지 되돌아오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ESS는 그룹 선택보다는 훨씬 미묘한 개념이다. 그것은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성공하느냐 어떠냐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이 사실은 우리의 가설적 예의 임의 득점 시스템을 사용하면 잘 설면된다. 매파 7/12, 비둘기파 5/12로 된 안 정된 개페군 내의 한 개체의 평균 득점은 6과 1/4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개체가 매 파이든 비둘기파이든 같다. 그런데 이 6과 1/4이라는 것은 비둘기파 개체군 내의 비둘기파 개체의 평균 득점(15)보다 훨씬 낮다. 전원이 비둘기파로 되는 것을 동의만 한다면 어느 개 체도 유리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그룹 선택설에 의하면 전원이 비둘기파로 되는 것을 동의 한 집단은 어느 것이나 ESS 비에 머물러 있는 경쟁자 집단보다 성공할 것이다(실은 전원 비둘기파로 되려고 하는 합의된 집단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은 아니다. 매파 1/6 과 비둘기파 5/6로 되는 집단에서는 싸움당 평균 득점이 16과 2/3이다. 이것이 생각한 것 중에서 가장 잘 된 합의인데 당장의 목적에서 하면 무시된다. 전원 비둘기파로 각 개체가 15점의 평균 득점을 갖는 집단이 ESS 집단보다 모든 단일 개체에게 훨씬 좋다). 따라서 그 룹 선택설은 전원 비둘기파의 합의로 향해 진화할 것으로 예언함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매 파가 7/12의 비율로 포함되어 있는 무리는 그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러나 합의의 부수 조건의 난점은 장기간에 걸쳐 전원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합의마저 배신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확실히 어떤 개체도 ESS 집단에 있는 것보다 전원 비둘기파의 집단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안됐지만 합의를 한 비둘기파의 집단에 태어난 한 개체의 매파 는 너무도 팔자가 좋아서 아무도 매파의 진화를 막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합의된 집단 은 불신 행위에 의해 내부로부터 붕괴되어 가는 운명에 매여 있다. 여기에 이르면 ESS는 안정하다. 그것은 ESS가 그것에 가세하고 있는 개체 입장에서 특히 유리해서가 아니고 단 지 내부로부터의 불신 행위를 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인간 인간에게 있어 각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합의를 하거나 협정을 맺거나 하는 것은 가령 그것이 ESS라는 의미로 안정되어 있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 이것이 되 는 이유는 개인이 전원 의식적으로 장래를 예견하고, 그 협정의 규약에 따르는 것이 자기의 장기적 이익에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협정마저도 그 협정을 깨면 단기간에 큰 이 득이 되기 때문에 그러게 하고 싶은 유혹이 항상 우세하게 될 위험을 갖고 있다. 이 사장 좋은 예는 아마도 가격 협정일 것이다. 가솔린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고가로 정하면 가솔린 업자 전원은 장기간 이익을 차지한다. 장기간 높은 이익을 의식적으로 예상하고 결탁한 가 격 협정 집단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조만간에 자기만 가격을 인하하여 빨리 많 이 벌고 싶다는 유혹에 말려드는 업자가 생겨난다. 그러면 당장에 그의 인근 업자도 가격을 내리게 되며 순식간에 인하 파동이 전국으로 퍼진다. 그래서 가솔린 업자 이외의 우리에게 는 안된 일이지만 그들의 장래에 대한 의식적 배려가 재차 머리를 들고 새로운 가격 협정이 결성된다. 이와 같이 의식적으로 예견을 하는 재능을 갖춘 인간에게마저 장기적 이익에 기 초하는 협정 또는 합의는 내부로부터의 붕괴의 위험선에서 동요를 계속하고 있다. 하물며 다투고 있는 유전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야생 동물에서는 집단의 이익이나 합의의 전략이 진화한다고는 거의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는 방식이 어디에 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의 가설적 예에서는, 어느 한 개체는 매파나 비둘기파 중의 어느 한쪽이 된다고 하는 단순한 가정을 했다. 그리고 결국 매파와 비둘기파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비율로 됐다. 이래 서 매파의 유전자와 비둘기파의 유전자의 안정된 비율이 유전자 풀 내에 확립되는 것이다. 유전학 용어로는 이 상태를 안정 다형(stable polymorphism)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학적으 로는 다형을 생각하지 않고도 다음과 같이 하여 똑같이 ESS가 달성될 수 있다. 어느 개체 라도 각각의 다툼에 있어서 매파처럼 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고 하면 전 개체가 같은 확률로, 즉 우리의 예대로 말하면 7/12의 비율로 매파처럼 행동하는 ESS가 달성된다. 실제 로 이것은 각 개체가 이때에는 매파처럼 행동할 것인가 비둘기파처럼 행동할 것인가를(대충 이기는 하나 7대 5의 비율로 매파편에 많이) 결단하여 각각의 다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것은 이 결단이 매파쪽으로 기울었다고는 하나 어떤 다툼에도 경쟁자는 자기의 상대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를 추정하는 수단이 없다는 의미에서 무작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7회의 다툼에 계속 매파로 행동하고 다음 계속해서 5회의 다툼에 비둘기파 로 행동하는 등등의 방식은 안 된다. 만약 어떤 개체가 이처럼 단순한 순서를 택했다고 함 면 그의 경쟁자는 얼른 이 순서를 깨닫고 이용할 것이다. 단순한 순서의 전략을 취하는 상 대를 이용하는 방법은 그가 비둘기파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을 때에만 그에게 대해 매파로 행동하는 것이다. 전쟁 게임 물론 매파와 비둘기파의 이야기  너무도 단순하다. 이것은 자연계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나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기에 필요한 '모델'이다. 모델에는 이 모델처럼 극 히 단순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을 이해하기에 또는 어떤 아이디어를 얻기에 필요한 것이 있다. 단순한 모델은 보다 정교하게 할 수도 있고 점점 복잡해질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잘 되면 모델은 복잡해질수록 현실 세계에 닮아 온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모델을 발전시키 는 시초는 다시 몊 개의 전략을 추가하는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만이 가능성이 있는 유일 한 전략은 아니다. 메이나드-스미스와 프라이스가 도입한 보다 복잡한 전략은 '보복파 (Retaliator)'라고 불린다. 보복파형과 허풍파형 보복파는 모든 싸움에서 처음에는 비둘기파와 같이 행동한다. 즉, 매파처럼 철저하게 심한 공격을 하지 않고 규정대로의 위협 시합을 한다. 그러나 상대가 공격을 걸어 올 때면 보복 한다. 바꿔 말하면 보복하는 매파에게 공격당했을 때에는 매파처럼 행동하고 비둘기파를 만 났을 때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 보복파는 조건 전략자이다. 이러한 행동은 상대의 행동 에 따라 정해진다. 또 하나의 조건 전략자는 '허풍파'이다. 허풍파는 누군가가 반격해 올 때까지는 누구에게 나 매파처럼 행동한다. 반격을 당하면 즉시 도망친다. 또 다른 조건 전략자는 '시험 보복파' 이다. 시험 보복파는 기본적으로는 보복파를 닮았으나 때로는 다툼을 조금 실험적으로 확대 시켜본다. 그리고 상대가 반격하지 않으면 이때 매파형의 행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만약 반 격을 당하면 비둘기파처럼 관습대로의 위협으로 되돌아간다. 공격을 받은 경우에는 보통의 보복파와 똑같이 보복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지금까지 말한 다섯 개의 전략자 모두를 서로 자유로이 행동하도 록 시키면 보복파만이 진화적으로 안정됨을 안다. 시험 보복파는 거의 안정적이다. 비둘기파 는 그 개체군이 매파와 허풍파의 침략을 허락하므로 안정이 안 된다. 매파도 그 개체군이 비둘기파와 허풍파의 침입을 허용했으므로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복차의 개체군은 보복파 자신보다 잘하는 전략이 다른 것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전략자에게도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 둘기파는 보복파의 개체군 내에서는 같은 정도로 잘할 수 있다. 즉, 다른 조건이 같다면 비 둘기파의 수가 점점 불어나게 된다. 그런데 비둘기파의 수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나면 시험 보복파가(그리고 덧붙여 말하면 매파와 허풍파도) 유리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비둘기파에 대해 대처하는 법이 보복파보다 좋기 때문이다. 시험 보복파의 개체군 내에서 그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전략 중에서 보복파뿐이었고 이 전략으로서 어느 정도 낫다는 데 지나지 않는 의미에서이다. 따라서 보복파와 시험 보복파의 혼합된 것이 아 마도 양자간의 조용한 진동을 유지하면서 소수파인 비둘기파의 수의 진동과 관련지으면서 우세를 점하여 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어느 개체라도 항상 있는 정해진 전략을 취한다는 다형을 상정할 필요는 없다. 각 개체는 보복파, 시험 보복파 및 비둘기파가 복잡하게 뒤섞인 행동을 취할 수가 있을 석이다. 이 이론상의 결론은 대부분의 야생 동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동물의 공격 중 '글러브를 낀 주먹'적 측면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했다. 물론 상 세한 것은 승리나 부상이나 시간의 낭비에 주어진 '점수'의 정확도에 달려 있다. 바다코끼리 에 있어서 승리에 대한 보수는 큰 하렘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래서 승리의 득점은 매우 높게 해 놓아야만 한다. 싸움이 격렬한 것도, 중상을 입을 확률이 높은 것도 벼로 이상 할 것이 없다. 시간의 손실이라는 비용은 부상에 의한 비용과 승리의 이익에 비하여 아마도 적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추운 지방에서 사는 작은 새에게는 시간의 낭비라는 비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손실일 것이다. 새기가 있는 박새는 30초마다 한 번꼴로 먹이를 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낮에는 일초일초가 귀중하다. 매파 대 매파 싸움에 소요되는 비교적 짧은 시간까지도 이와 같은 작은 새들에게는 아마도 부상의 위험 이상으로 심각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자연계의 모든 현상의 비용과 이익에 실제의 수치를 맞추어 보기 에는 아는 것이 너무도 부족하다. 우리는 제멋대로 정한 수치에서 결론을 간단히 내리지 않 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중요한 일반적 결론은 ESS가 진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ESS가 집단 의 합의에 따라 달성되는 최적 조건과 같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상식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전 메이나드-스미스가 생각한 또 하나의 전쟁 게임은 '지구전'이다. 이것은 위험한 싸움을 결 코 안하는 종과 다분히 부상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갑옷으로 덮인 종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종에서의 다툼은 모두 형식적 자세에 의해 해결된다. 다툼은 항상 어느 편 이든 물러섬으로써 끝난다.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상대가 등을 돌릴 때까지 자기 진지에 버티고 서서 적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위협하기 위하여 무한히 시간을 쓸 정도로 여유가 있는 동물은 없다. 달리 해야 할 큰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자원은 가치가 있을지 모르나 무한히 가치가 있을 리는 없다. 그것은 그래야 할 시간적 가치에 불 과하다. 경매할 때와 같이 각 개체는 그 자원에는 그럴 만한 가격밖에 쓰지 않을 각오를 하 고 있다. 시간은 이 두 경매인의 경매 통화인 것이다. 이들 개체는 모두 어떤 자원, 가령 암놈이 어느 정도의 시간에 가치가 있는가를 미리 저 확히 산정하는 것으로 생각하자. 조금만 길게 계속할 각오를 한 돌연변이 개체는 항상 이길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경매값을 지킨다는 전략은 불안정하다. 가령 자원의 가치가 아주 정 확히 추정되어 전개체가 옳은 갑을 불렀다고 해도 이 전략은 불안정하다. 이 시간을 최대화 하는 전략에 의해 경매를 하는 두 개체는 똑같은 순가에 포기하여 어느편도 자원을 입수하 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이 경우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권리를 포기 하는 편이 개체에게는 상책이다. 지구전과 실제의 경합과의 커다란 차이는., 요컨대 지구전 에서는 경쟁자가 모두 희생의 치름에 반해 이익을 얻는 자는 한쪽뿐이라는 점이다. 딸서 대 항하고 버티는 시간을 최대화하려고하는 전략을 취하는 개체군 내에서는 처음부터 포기한다 는 전략이 성공하여 개체군 내에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바로 포기하지 않고 몇 초 기다렸다가 포기하는 개체에게 어떤 이익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전략은 현재 개체군 내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즉시즉각파에 대하여 행동할 때 유리한 것이 틀림없다. 거기서 선택은 포기의 시간을 점점 연장하는 방향으로 돌려, 어쨌든 다투고 있는 자원의 참된경제 가치에 따라 허용되는 최대치에 다시 접근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수식을 쓰지 않고 말로써 마치 개체군이 모든 전략을 두루 살펴보는 진 동을 말하는 듯이 묘사해 왔다. 그러나 수학적 분석에 따르면 이때도 역시 그 묘사는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화적으로 안정한 어떤 전략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수학식으로 표시되 는데 그것과 같은 것을 말로 하면 이렇게 된다. 각 개체가 지구전을 계속하는 시간은 예언 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자원의 진가를 평균하는 것 외에는 예언을 못한다. 가령 자원이 실제로는 5분간의 가치가 있다고 가정하자. ESS로 5분 이상 과시 행동을 계속하는 개체가 있다면, 5분 이하밖에 계속 못하는 개체도 있고, 또 꼭 5분간만 계속하는 개체도 있 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경우 어느 정도의 시간을 계속할 작정인가를 상대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지구전에서는 포기하려고 하는 눈치를 상대가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 엇보다도 중요하다. 수염을 조금 움직이든지 하여 패배를 드러내고 말까 하고 생각하고 있 을 때에 실수하여 그 눈치를 표출하게 되면 그 순간 불리하게 된다. 가령 수염을 움직이는 것이 1분 후에 즉각 공격을 한다는 확실한 징조라면 극히 단순한 승리의 전략일 것이다. "상대의 수염이 움직이면 처음의 계획이 무엇이었든 1분간 더 참는게 좋다. 상대의 수염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게다가 자기가 포기하려고 했던 시간까지 이제 1분도 안 남았다고 생 각될 깨는 즉각 손들고 그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편이 좋다. 자기의 수염은 결코 부동 이다."이런 이유로 자연 선택은 수염을 움직이는 것이나 그 밖의 행동을 표출해 버리는 짓 을 즉시 벌할 것이다. 무표정한 얼군(포커 페이스)이 진화해 갈 것임에 틀림없다. 철저하게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편이 좋은 것은 왜 그럴까? 역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안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체가 지구전에서 정말 로 장시간 버틸 각오가 있기 전에는 목의 털을 세우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상대의 반대 되는 계략이 진화될 것이다. 즉, 상대가 목털을 세우면 즉시 굴복하는 작전이다. 그러나 여 기서 거짓말이 진화되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장시간 버틸 각오가 없는 개체가 언제나 털을 세우고 용이하게 빨리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거짓말쟁이의 유전자가 퍼져나 갈 것이다. 드디어 거짓말쟁이가 대세를 차지하면 선택은 이제 그 허점을 깨닫고 도전하는 개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 때문에 거짓말쟁이는 다시 수가 감소할 것이다. 지구전에서 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진화적으로 안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무표정 한 얼굴은 진화적으로 안정적이다. 결국 항복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 한 일이다. 자기 보호를 위한 싸움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해 온 것은 메이나드-스미스가 '대칭적'다툼이라고 하는 것뿐이다. 즉, 경쟁자끼리의 싸움에 있어서 전략 이외의 모든 것은 똑같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는 같은 강도였고, 무기나 갑옷으로 동등하게 무장했고, 승리에 의해 얻은 것도 동등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이것은 모델을 이용하기에는 편리한 가정인데 별로 현 실적은 아니다. 그래서 파커와 메이타드-스미스는 비대칭적인 투쟁을 생각해 보았다. 예컨 대 만약 전투 능력과 몸의 크기가 개체에 따라 다르며 각 개체가 자기와 비교해서 상대가 어느 정도로 큰가를 잴 수 있다고 하면 이 일이 거기에 생기는 ESS에 영향을 미칠까? 아마 도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비대칭적인 다툼에는 세 가지의 주된 것이 생각된다. 첫째는 지금 말한 대로 몸의 크기라 든가 전투 능력이 개체에 EK라 틀리는 경우이다. 둘째는 승리에 의해 얻어지는 이익의 크 기가 개체에 따라 틀릴 경우이다. 가령 아무리 참고 버텨도 여생이 짧은 노인은 앞으로 긴 생식 생활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와는 달라서, 비록 부상을 입었다 해도 질 수는 없는 입 장일 것이다. 세 번째는 이 설의 색다른 결론인데, 완전히 임의적이고 일견하여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이는 비대칭이 ESS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비대칭의 덕택으로 다 툼이 급속히 수습이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경쟁자의 한쪽이 더러는 다른 쪽보다 먼저 싸움터에 도착해 있을 경우 대개 이것에 해당된다. 그들을 각각 '거주자'와 '침입자'라 고 부르기로 하자. 논의의 편의상, 거주자나 침입자에게 일반적인 이익은 없다고 가정한다. 후술하거니와 이 가정이 실제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있으나 이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가령 거주자가 침입자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유는 없어도 이 비 대칭 그 자체에 의해 정해지는 어떤 ESS가 진화한다는 점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인간이 크게 떠들지 않고도 동전을 던져 분명하게 다툼의 결판을 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거주자와 침입자 조건 전략, 즉 "자기가 거주자라면 공격하고, 침입자라면 퇴각하라."라는 것이 ESS일지도 모른다. 또 비대칭이 임의라고 하는 가정이 있으므로 "거주자라면 퇴각하고 침입자라면 공 격하라."라는 역의 전략이 안정적일 가능성도 있다. 어떤 개체군에 있어서 이 두 개의 ESS 중 어떤 것이 채용될지는 어느 쪽이 먼저 대세를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개체는 벌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에 의하면 그것이 ESS인 것이다. 이를테면 개체가 '거주자가 이기고 침입자가 도망'이라는 전략을 취한다고 하자. 이것은 그들이 싸움의 반은 이기고 반은 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들은 결코 다치지 않고 시 간도 허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다툼이 임의의 규정에 따라 즉시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에 새로운 돌연변이의 반역자가 나타났다고 하자. 그는 항상 공격하며 결코 물 나지 않는 순수한 매파 전략을 취한다고 하자. 상대가 침입자일 경우에는 그가 이길 것이다. 상대가 거주자하면 부상이라는 큰 위험을 당하게 된다. 평균하면 그는 ESS의 임의의 규칙 에 따라서 행동하는 개체보다 득점이 낮아진다. "거주자라면 도망하라. 침입자라면 공격하 라." 라는 역의 규정을 시도하려고 하는 반역자는 더욱 나쁘다. 그는 때때로 부상을 당할 뿐 만 아니라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무언가 우연한 일로 인하여 이 역의 규정에 따르 는 개체가 대세를 잡을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때에 그들의 전략은 안정된 규범이 되어 이에서 벗어난 자는 벌을 받는다. 한 개체군을 여러 세대에 걸쳐 관찰하다 보면 때마 침 한 안정 상태에서 다른 안정 상태로 돌변해 버리는 모습을 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생활에 있어서 정말 임의의 비대칭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거주자 는 대개 침입자보다 실제로 유리한 입장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토지의 지형을 잘 알고 있다. 또 거주자가 오래도록 거기에 있었음에 반해 침입자는 싸움터에 출전해 왔기 때문에 숨을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계에서 두 개의 안정 상태 중 "거주자는 이기고 침입자 는 진다."라는 상태의 편이 보다 가능성이 높다는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즉 "침입자가 이기고 거주자가 진다."라는 역의 전략은 자기 붕괴를 초래할 경향을 본래 가지고 있다. 메 이나드-스미스는 이것을 '역설적 전략'이라고 했다. 이 역설적 ESS의 상태에 있는 개체군 내의 개체는 항상 거주자로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즉, 어떤 다툼에 있어서도 항상 침입자인 양 애써 노력할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은 따로 하고라도 이 진화 경향은 '거주 자'라는 범주를 자연히 소멸시키는 성이 된다. "거주자는 이기고 침입자는 진다."라는 또 한 편의 안정 상태에 있는 개체군에서는 자연 선택이 거주자가 되려고 애쓰는 개체에게 유리하 게 작용한다. 각 개체에게 있어 이것은 어떤 구역에 틀어박혀 가능한 한 그 곳에서 이탈하 지 않고 그 곳을 '지키자'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거니와 이와 같은 행동은 자 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영역의 방위'라고 한다. 가시고기의 영역 싸움 이 형의 행동적 비대칭에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실례는 우수한 행동학자인 틴 버겐(Niko Tinbergen)이 스스로 터득한 천재적인 단순 명쾌한 실험에 의해 제시한 것이다. 그는 두 마리의 큰 가시고기 수놈이 들어 있는 수조를 갖고 있었다. 물고기는 각기 수조의 반대측의 구석에 집을 짓고 자기 집 둘레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틴버겐은 이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각각 큰 유리 시험관에 넣어 이 두 개의 시험관을 가지고 물고기들이 시험관을 통 하여 싸우려고 하는 것을 관찰했다. 그래서 매우 흥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두 개의 시험관 을 수놈 A의 집에 가까이 접근할 경우에는 A가 공격 자세를 취하고 수놈 B는 퇴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험관을 수놈 B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니까 형세는 역전됐다. 틴버겐은 단순히 두 개의 시험관을 수조의 한 끝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수놈이 공격하고 어떤 수놈 이 퇴각하는가를 알 수가 있었다. 어느쪽 수놈도 분명히 단순한 조건 전략을, 즉 "거주자가 되면 공격하고 침입자가 되면 퇴각한다."라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생물학자는 자주 영역 행동의 생물학적 '이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에는 여러 가지의 가능한 답이 있는데 그 중의 몇 가지에 대해서는 후에 언급하겠다. 그런데 이제 이 질문 자 체가 무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역 '바위'란 그저 두 개체와 토지 구확과의 관 계를 정하는 도착 시간의 비대칭 때문에 생긴 ESS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임의가 아닌 비대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크기와 일반적인 전투 능력일 것이다. 체구가 크다 는 것은 필히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할 수 없으나 역시 그 하나이 기는 하다. 싸움에 있어 큰 편이 항상 이긴다면, 그리고 각 개체가 자기가 상대보다 큰지 작 은지를 화실히 알고 있다면 무언가의 의미 있는 전략은 단 하나 밖에 없다. 즉 "상대가 자 기보다 크면 도망가라. 자기보다 작은 놈은 공격하라." 크기의 차이가 그다지 확실하지 못하 게 되면 일은 다소 복잡해진다. 체구가 크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면 지금 말한 전략 은 아직 안정하다. 그런데 부상의 위험이 크게 되면 제 2의 '역설적 전략'도 생각된다. 즉, "자기보다 큰 놈에게 싸움을 걸고 작은 놈은 피하라!"이 전략이 역설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완전히 상식에 반한다고 생각된다. 이 전략이 안정하다는 이유는 이것이 다. 모두가 역설적 전략을 취하는 개체군에서는 누구도 부상을 입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다 툼에 있어서 관계자의 한쪽, 즉 몸이 큰 편이 항상 도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은 상대를 괴롭힌다는 '상식적'전략을 취하는 평균적 크기의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그 개체는 맞부딪친 상대의 반수와 격한 다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자기보다 작은 상대에게 부딪치 면 공격을 하고 그 작은 개체는 역설적 전략을 취하고 있으므로 심하게 응전해 오기 때문이 다. 상식적 전략파는 역설적 전략파보다 이길 확률은 높으나 한편 저서 크게 다칠 위험도 많이 있다. 개체군의 대부분이 역설적 전략을 취하고 있으므로 상식적 전략자는 어느 역설 적 전략자보다 다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사회성 거미 역설적 전략은 가령 안정하다고 해도 아마도 이것은 학문적으로 흥미 있는 것에 불과하 다. 역설파가 상식파보다 높은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수적으로 상식파보다 현저 히 많을 때에 한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상태가 처음에 어떻게 해서 생길 수 있는가를 상 상하기는 어렵다. 가령 그것이 생겼다 해도 개체군 내의 역설파에 대한 상식파의 비율이 아 주 조금 증가하는 것만으로 또 하나의 ESS, 즉 상식파의 ESS '유인 지역'에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다. 이 경우 유인 지역이라는 것은 상식파가 유리하게 되는 개체군 비율의 집합으로 정의되는 영역이다. 즉, 한 개체군이 이 유인 지역에 도달하면 상식적 전략의 안정점을 향하 여 피할 수 없이 말려드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역설적 ESS의 예를 발견하는 것은 흥분할 만한 일이기는 하나 정말로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나는 너무 빨랐던 것 같 다). 이 글을 쓴 후에 나는 메이나드-스미스 교수로부터 버제스가 멕시코 산의 사회성 거미 인 Oecobius civitas의 행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쓴 것을 들었다. "이 거미는 어떤 방해물 때문에 숨었던 장소에서 쫓겨나면 바위 위로 올라가 몸을 숨길 수 있는 빈틈을 찾지 못하면 같은 종의 다른 개체의 집으로 달려든다. 도망쳐 들어온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에 거기에 거 주하던 거미는 침입자를 공격하지 않고 바로 나와 자기의 숨을 곳을 새로이 찾는다. 이 때 문에 일단 최초의 거미가 쫓겨나면 잇따른 도주가 계속되어 이것이 수분 사이에 종종 그 집 단의 개체가 자기의 살림집에서 옆집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사회성 거미", Scientific American 1976년 3월호) 순위제 만약 동물이 과거의 싸움에 관해 무언가 기억하고 있다면 어떠할까? 그것은 그 기억이 개 별적인 것인가 일반적인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귀뚜라미는 과거 싸움에서 있었던 일에 대 해서 일반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최근에 많은 싸움에서 승리한 귀뚜라미는 매파적으로 된 다. 최근 계속 지기만 한 귀뚜라미는 비둘기파적으로 된다. 이것은 알렉산더(R.D. Aleander) 에 의해 자세히 제시됐다. 그는 모형 귀뚜라미를 사용하여 진짜귀뚜라미를 기습했다. 이 처 리를 가한 후로 그 귀뚜라미는 다른 진짜 귀뚜라미와의 싸움에서 지기만 했다. 각각의 귀뚜 라미는 자기의 개체군 내의 평균적 개체의 전투 능력과 비교한 자기의 전투 능력을 평가하 기를 부단히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의 싸움을 기억하는 귀뚜라미와 같은 동 물이 밀집된 집단을 이루고 지내면 모종의 순위제가 발달하는 것 같다. 관찰자는각 개체를 순번대로 나열할 수가 이TEk. 순위가 낮은 개체는 순위가 높은 개체에게 항복하는 경향이 있다. 개체끼리 서로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승리에 습관된 개체는 더욱더 이 기에 되고 패배에 버릇이 된 개체는 정해 놓고 지기만 한다는 것이 형상의 모두이다. 처음 에는 완전히 두서없이 이기고 지고 하다가도 자연히 어떤 순위에 따라 가는 경향이 있는 이 것은 집단 내의 심한 다툼을 점차로 줄여 가는 효과가 있다. ESS와 순번제 이상과 같은 현상은 일종의 '순위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순위제라는 말을 개체가 인지하고 있을 때에만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과거 싸움의 기억은 일반적이라기보다 개별적이다. 귀뚜라미는 서로 상대를 개체로서 인지하고 있지는 않으나 닭이나 원숭이는 인지하고 있다. 어떤 원숭이에게 있어 과거에 자기를 이긴 적이 있는 원숭 이는 앞으로도 자기를 이길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럴 때의 개체로서의 최선의 전략은 이 전에 자기를 이긴 적이 있는 개체에 대해서는 비교적 비둘기파적으로 행동한다. 이전에 맞 부딪친 적이 없는 한 떼의 닭을 서로 맞세워 놓으면 보통은 마냥 싸움질을 한다. 그러나 때 가 지나면 결국 싸움은 약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귀뚜라미의 경우와 같은 이유에서는 아니 다. 닭의 경우, 각 개체는 서로 다른 개체에 대한 '자기의 지위를 배우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종 집단 전체에게 좋은 거이다. 그 증거로서 주목되고 있는 것은 순위가 확립되어 있어서 심한 싸움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닭의 집단에서는 끊임없이 구성원이 갈리고 있으므로 그 결과 항상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집단보다 산란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는 흔히 숭위제의 생물학적 이점, 또는 '기능'은 집단 내의 공개적인 공격을 줄이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방법은 옳지 않다. 순위제 그 자체는 진화적 의미로 '기능'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집단의 특성이지 개체의 특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단 수준에 서 볼 때 순위제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개체의 행동 패턴에는 기능이 있다고 할는지 모르나 '기능'이라는 말을 아주 버리고, 개체의 인지와 기억이라는 두 개의 조건을 가미한 비대칭적 인 다툼의 ESS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고찰하는 편이 훨씬 좋다. 지금까지 같은 종의 개체간의 다툼에 관해 고찰해 왔는데 종간의 다툼에 관해서는 어떨 까? 처음에 말한 바대로 다른 종의 구성원은 같은 종의 구성원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직접적 인 경쟁 상대는 아니다. 이 때문에 다른 종간에 자원을 가지고 다툼이 생기는 것은 적당 생 각되며 그 예상에는 확증이 있다. 가령 울새가 다른 울새에 대해서는 영역을 지키나 박새에 의 영역 지도를 중복해서 그릴 수가 있다. 이 두 종의 영역은 완전히 불규칙하게 겹쳐저 있 다. 그들은 따로따로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 같다. ESS와 동종 사냥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다른 종의 개체들도 매우 심하게 충돌한다. 가령 사자는 영양을 잡 아먹고 싶어하나 영양은 자기 몸에 관해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보통 자원 을 걸고 다툰다고 볼 수 없으나 이론적으로 말하면 왜 인정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때의 자원은 고기다. 사자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의 먹이로서 고기를 '좋아하고 있다.' 영양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를 위해 일하는 근육이나 기관으로서 그 고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 두가지 고기의 용도는 서로 양보할 수 없으므로 이권의 충돌이 생긴다. 자기 종의 구성원도 역시 고기로 되어 있다. 그러면 왜 서로 잡아먹는 것이 비교적 드문 가? 검은 머리갈매기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성숙한 것이 때때로 자기 종의 새끼를 먹는다. 성숙한 육식 동물이 가지 종의 다른 성숙한 개체를 먹으려고 의도하고 적극적으로 추격하는 일은 결코 없다. 왜 없을까? 우리는 여전히 진화에 대한 '종의이익'이라는 견해에 너무 익숙 해져 있어서 "사자는 왜 다른 사자를 사냥 않는가?"라고 하는 등의 아주 타당한 질문을 잊 어버리기가 쉰다. 또 하나 절대로 들을 수 없는 타입의 우수한 질문에 "영양은 왜 반격하지 않고 사자로부터 도망하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 사자가 사자를 잡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겐 ESS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먹기 전략 은 앞의 예에서 매파형 전략과 같은 이유로 불안정하다. 보복의 위험이 너무도 크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다른 종간의 다툼에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개 표적의 동 물이 보복을 않고 도망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은 다분히 다른 종의 두 개체간의 상호 작용에 있어서 같은 종의 구성원간의 경우보다 큰 비대칭이 조립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서로간의 다툼에서 큰 비대칭이 있을 때 ESS는 항상 그 비대칭에 의존하는 조건 전략으로 되는 것 같다. 다른 종간의 다툼에서는 이용되는 비대칭이 많이 있으므로 "작으면 도망하라, 크거든 공격하라."라는 식의 전략이 매우 진화되기 쉽다. 사자와 영양은 다툼에 본래 존재하는 비대칭이 부단히 증대하도록 강조해 온 진화적 방식에 의해 일종의 안정 상태에 도달해 있다. 그들은 각각 추격의 수완과 도주의 술책에 고도로 숙련되어 있다. 사자에게 '맞서는' 전략을 취하는 돌연변이의 영양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는 영양보 다 잘 될 것이 없을 것이다. ESS 개념 우리는 다윈 이래의 진화론에 있어서 ESS 개념의 발명을 가장 중요한 진보의 하나로서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개념은 이권 충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해당된다. 즉, 그것은 거의 모든 장면에 통용된다. 동물 행동의 연구자는 '사회 조직'이라고 하는 것에 관해 말하는 습관이 되어 있다. 사회 조직은 스스로의 생물학적 '이점'을 갖춘 독자적 실체 로서 취급되는 수가 너무도 많다. 지금까지 든 예로 말하면 '순위제'가 그것이다. 생물학자가 사회조직에 관해 말한 여러 설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룹 선택주의자의 가설이 숨어 있는 것 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메이나드-스미스의 ESS 개념이야말로 독립된 이기적인 단위의 집합이 어떻게 해서 단일의 조직하된 전채를 닮게 되는가를 비로소 분명히 가르쳐 주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은 종 내의 사회 조직뿐만 아니라 많은 종으로 이루어진 '생태계'나 '군집'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여하튼 나는 ESS 개념이 생태학에 혁명을 가져오게 될 것 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개념은 제 3장에서 기술했다. 좋은 팀워크를 필요로 하는 조정 선수(체내의 유전자에 해당)의 예에서 생긴 문제에도 적용된다. 유전자는 그것 단독으로 '우수한 것'으로서가 아니 고 유전자 풀 내의 다른 유전자를 배경으로 해서 일할 때 우수한 것으로 되면 선택되어 남 는다. 우수한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와 양립하여 서로 도와 몇 세대에 걸쳐서 몸의 공유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식물을 씹는 이빨의 유전자는 초식 동물의 유전자 풀 내에서는 우수 한 유전자이나 육식 동물의 유전자 풀에서는 나쁜 유전자인 것이다. 양립할 수 있는 한 세트의 유전자가 하나의 단위로서 정리하고 선택되는 것은 충분히 상 상할 수 있다. 제 3장에서 본 의태하는 나비의 경우에는 정말로 그랬었던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ESS 개념의 훌륭한 정도는 독립적인 유전자의 수준에서 선택에 의해 같은 결과가 쉽게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는 점이다. 유전자끼리는 같은 염색체상에서 연관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이 점을 설명할 때 조정 선수의 예는 부적합하다. 이 점에서 가장 적합한 것은 다 음과 같은 예이다. 실제로 레이스에 이기기 위해 보트 팀의 선수끼리가 말로서 자기의 활동 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자. 또한 코치가 마음대로 하는 선수 풀에서 어떤 선수는 영어밖에 못하고 어떤 선수는 독일어밖에 못한다도 하자. 영국인이 항상 독일인보다 배젓기 가 낫든지 서툴든지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므로 혼합의 보트 팀은 영국인만의 보트 팀이나 독일인만의 보트 팀에 비하면 이기게 되는 횟수가 적게 되기가 쉽 다. 코치는 이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선수를 마구 섞어서 이긴 보트에 탔던 선수에 게 점수를 주고 진 보트에 탔던 선수는 점수를 뺀다. 이기는 선수 풀에 종종 영국 선수가 많으면 보트에 타는 독일인은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함으로써 그 보트가 지는 원인이 되기 쉽 다는 것이다. 반대로 선수 풀에 종종 독일인 쪽이 많을 때에는 영국인이 레이스에 지게 하 는 원인이 되는 경향이 있다. 종합적으로 최상의 보트팀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개의 안정 상태가 하나가 될 때, 즉 전원이 영국인이든지 전원이 독일인이든지 하는 상태이다. 겉으로 보면 그것은 마치 코치가 언어별로 나눈 그룹을 단위로 하여 선택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러나 그는 그럴 리가 없다. 그는 레이스에 이기는 외견상의 능력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선수 를 선발하는 데 불과하다. 한 선수가 레이스에 이기는 경향은 종종 후부자의 풀에 어떤 다 른 선수가 있는가에 달려 있다. 소수파의 후보는 자동적으로 벌을 받으나 그것은 젓는 것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소수파이기 때문일 뿐이다. 이처럼 유전자가 서로 양립되기 때문에 선택됐다는 사실이 있다고 해서 -나비의 예에서 본 것같이- 유전자의 집단이 단위 로 되어 선택된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가 필히 있는 것은 아니다. 단일 유전자라고 하는 낮은 수준에서의 선택이 더 높은 수준에서의 선택이라는 인상을 주는 수도 있다. 이 예에서 선택은 단지 적합성만을 선택하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서로 보완해 주는 유전자가 선택되는 경우이다. 유추해서 말하면 이상적으로 균형잡힌 보트 팀은 오른손잡이 네 사람과 왼손잡이 네 사람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이때에도 또한 코치는 이 사실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선수의 '성적'을 기준으로 하여 선발하는 것으로 가정하자. 그런 데 선수 풀에는 종종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에 왼손잡이의 선수는 모두 유리한 상태에 있 다. 즉, 그는 자기가 타고 있는 보트를 이게 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수한 선수인 것처럼 보인 다. 반대로 왼손잡이가 많은 풀에서는 오른손잡이가 유리함에 틀림없다. 이 것은 비둘기파의 개체군 내에서 성공하는 매파의 개체나 매파 개체군 내에서 성공하는 비둘기파 개체의 경우 와 같은 것이다. 다른 점은 비둘기파와 매파의 예는 개체 간의, 즉 이기적인 기계 간의 상호 작용임에 비해 이때에는 체내의 유전자간의 상호 작용이라는 점이다. 코치가 맹목적으로 '좋 은' 선수를 뽑아도, 결국은 왼손잡이 네 사람과 오른손 잡이 네 사람으로 되는 이상적인 보 트 팀이 된다. 그것은 마치 그가 균형잡힌 한 벌의 단위로서 그들을 몽땅 뽑은 양 보인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 그는 한 수 아래의 수준이고, 즉 개개의 후보 수준으로 선택되고 있 다고 생각하는 것이 명쾌하고 분명하다. 왼손잡이 네 사람, 오른손잡이 네 사람이라는 진화 적으로 안정된 상태(여기서 '전략'이라는 말은 오해를 갖기 쉽다)는 단순히 외견상의 성적에 기초하는 낮은 수준에서의 결과로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유전자 풀은 유전자의 장기적인 환경이다. 유전자 풀에서 살아 남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것이 '우수한 '유전자인 것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관찰됐다는 사실조차 없다. 그것은 동어 반복이다. 흥미를 끄는 문제는 유전자가 좋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첫 접근으로서 유전자가 좋다는 것은 유능한 생존 기계, 즉 몸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썼다. 그러 나 이제는 이 견해에 단서를 붙여 두지 않을 수 없다. 유전자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유전 자의 세트, 즉 어떠한 새로운 유전자에 의해서도 침입받지 않는 유전자 풀로 정의되는 상태 에 도달할 것이다. 돌연변이나 재조합이나 이입에 의해 생기는 새로운 유전자는 대부분이 자연 선택에 의해 벌을 받아 즉시 도태될 것이다. 그리고 진화저긍로 안정한 유전자 세트는 복원된다. 때마침 어떤 새로운 유전자가 그 세트에 침입하는 데 성공하여 유전자 풀 내에 퍼져나가는 데 성공하는 수도 있다. 그러면 불안정한 과도기를 거쳐 드디어 진화적으로 새 롭고 안정한 조합을 이룬다. 매우 적게 진화가 된 것이다. 공격전략의 예에서 말한 것처럼 개체군에는 둘 이상의 대체 가능한 안정점이 있어 때때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연 비약이 일어나는 수도 있다. 진화란 부단한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된 수준에서 안정된 수준으 로의 불연속인 전진의 반복인 것 같다. 마치 그 개체군 전체는 한 개의 자동 조절 단위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착각이다. 실제로 그것은 단일 유 전자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에 의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는 '성적'으로 선택된다. 그러나 이 성적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 즉 현재의 유전자 풀이라는 배경 중에서의 행동 에 기초하여 판정되는 것이다. 메이나드-스미스는 모든 개체에서 볼 수 있는 공격적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사태를 극히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안정된 비율을 생각하는 것은 쉽다. 몸은 큰 물체이므로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각의 몸에 있는 유전자간의 이 와 같은 상호 작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 중의, 즉 유전자 풀 내에서의 유전자의 중요한 상호 작용의 대부분은 개개의 몸 속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들의 항소 작용을 눈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세포 내에서 특별히 발생 중인 배의 세포 내에 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잘 통합된 모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진화 적으로 안정된 세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요 테마인 동물 개체간의 상호 작용의 수준으로 말머리를 돌려야겠다. 공격을 이해하려면 개개의 동물을 독립된 이기적인 기계로 보은 것이 적절하다. 이 모델은 관계하는 개체끼리가 형제자매, 사촌끼리, 친자와 같은 근친자일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이다. 근친끼리는 그들의 유전자의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개의 이기적 인 유전자의 충성심은 다른 몸 사이에 분배되어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다음 정에서 설명하 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