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부 당신의 생각대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 1 논쟁을 피하라 세계 제1차 대전 종점 직후의 어느 날 밤, 나는 런던에서 매우 귀중한 교훈을 배웠다. 그 당시 나는 로스 스미스경의 매니저였다. 로스 경은 전쟁 중에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용맹을 떨친 유능한 호주인 조종사로 전쟁이 끝나자마자 지구의 절반을 30일만에 비행하여 전 세계 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그러한 모험이 시도된 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호주 정부는 로스 경에게 5만 달러의 상금을 하사했고, 영국 왕실에서는 그에게 훈공 작위를 수여했다. 그는 한동안 대영 연방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 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로스 경을 휘한 어느 연회에 참석했다. 식사 도중에 내 곁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인간들이 아무리 일을 벌여 놓아도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신의 뜻이다"라는 말을 인용해 가면서 익살스런 이야기를 했다. 이 인용문은 성경에 있는 문구라고 그 재담꾼 은 말했다. 그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그 인용문을 잘 알고 있었다. 거 기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존심을 세우고 동시에 잘난 척 하기 위해서 그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뭐라고요? 셰익스피 어 작품에 나오는 말이라고요? 그럴 리가 없소! 말도 안되는 소리요! 그 말은 성경에 나온 단 말이오"하고 그는 주장했다. 그 이야기꾼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왼쪽에는 나의 오랜 친구인 프랭크 가몬드가 앉았 었다. 가몬드는 오랜 세월을 셰익스피어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의견을 듣기로 하였다. 가몬드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식탁 아래로 나를 쿡 치면서 "이봐, 데일, 자네가 틀 렸네. 저 신사분의 말씀이 옳아. 그건 성경에 나오는 말일세"라고 말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가몬드에게 "프랭크, 자네는 그 인용문이 셰익스피어에서 나오는 말임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물론 알고 있지"라고 가몬드가 대답했다. "<햄릿>" 5막 2장이지. 하지만 데일, 우리는 그 즐거운 모임의 손님이었잖아. 자네는 왜 그 사람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들지? 그렇게 하면 그가 자네를 좋아하게 되나? 왜 그 사람 체면을 세워주지 않나? 그는 자네의 의견을 묻지 않았네. 원하지도 않았단 말일세. 왜 그 사람과 논쟁을 하려 하는가? 항상 원만하게 처신해야 되네" 그 친구는 나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 재담꾼을 곤란하게 만 들었을 뿐만 아니라 친구까지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내가 따지고 들지 않았더라면 얼 마나 좋았을까? 나는 논쟁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나에게 매우 필요한 교훈이었다. 어린 시절 에 나는 매사에 형님과 토론을 벌였다. 대학에서는 논리학과 논법을 공부했고 토론 대회에 도 참가했다 나는 미주리 출신이었으므로 미주리 출신답게 과시하고 싶었다. 후일 나는 뉴 욕에서 토론과 논법을 가르쳤으며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언젠가는 이에 관한 저서를 쓸 계획도 세웠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수많은 토론을 경청하기도 하고, 참여하기도 하면서 토론들의 결과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런 경험에 의해서 나는 논쟁에서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이 세상에서 오직 단 한가지 방 법, 즉 토론을 피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방울뱀이나 지진을 피하는 것처럼 토론을 피 하도록 하라. 십중팔구 논쟁은 그 참가자들이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믿게 되는 것으로 끝나는 법이다. 당신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논쟁에 지면 지는 것이고, 이긴다고 해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자, 다른 사람이 당신과의 논쟁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하자.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당신 기분이야 좋겠 지만 상대방은 어떻게 되겠는가? 당신은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고, 그의 자존심을 구겨 버렸다 그는 당신의 승리를 혐오할 것이다. 자기 의사와는 반대로 설득 당한 사람은 그래도 자기 의견을 굳게 지킨다. 몇 년 전에 패트릭 오헤어가 우리 강좌에 참가했다. 오헤어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은 적 이 없었으나 논쟁을 매우 좋아했다. 한 때는 운전기사를 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트럭 판매 를 하고 있으나 별 재미를 못 보자 나를 찾아왔다.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그는 거래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대립하는 사람이라 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만일 트럭을 사러 온 손님이 트럭에 대해 한 가지 나쁜 점이라도 이야기하면 오헤어는 몹시 화를 내면서 그 손님의 멱살을 잡는 것이었다. 오헤어는 그 당시 여러 논쟁에서 이겼다. 나중에 나한테 "저는 가끔 '저런 녀석은 본때를 보여주어야 돼!'하고 말하면서 사무실을 걸어 나오곤 했죠. 물론 본때를 보여주었죠. 그러나 물건을 팔지는 못했 습니다"하고 말했다. 내가 제일 먼저 해결할 문제는 패트릭 오헤어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당 장 해야할 임무는 오헤어에게 말을 삼가고 언쟁을 피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일이었다. 오헤어는 뉴욕의 화이트 모터 사에서 가장 우수한 세일즈맨이 되었다. 오헤어는 어떻게 그 렇게 되었을까? 여기에 오헤어가 직접 한 말을 옮겨 보기로 한다. "요즘에는 고객이 '뭐요? 화이트 트럭이라고요? 필요 없소. 거저 주어도 나는 싫소. 나는 월 드 후지트 트럭을 사겠소'라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월드 후지트 틀럭은 훌륭합니다. 당신이 원드 후지트 트럭을 구입하신다면 올바른 판단을 하신 겁니다. 월드 후지트 트럭은 훌륭한 회사에서 만들고 훌륭한 사람들이 판매를 하고 있죠'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고객은 아무말도 하지 못합니다. 논쟁을 할 여지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월 드 후지트 트럭이 최고라고 말하고, 또 내가 그 말에 동조를 해주면 그는 거기서 말을 그만 둘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자기 말에 맞장구를 치는데 하루 종일 '월드 후지트 트럭이 최고 야' 소리를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면 우리는 월드 후지트 트럭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두게 되고, 그 다음에 나는 화이트 트럭이 가진 장점들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고객이 처음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말에 내가 화를 벌컥 내던 때가 있었죠. 월드 후지 트 트럭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논쟁을 하면 할수록 나의 고객은 월드 후지트 트럭 을 감싸 돌며, 논쟁을 할수록 그 고객은 경쟁사의 제품을 더욱 더 좋아하더군요." "이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떻게 내가 전에 물건을 팔 수 있었는지 의문이 갑니다. 나는 내 인생의 수년 동안을 싸우고 논쟁하는 일에 허비했습니다. 이제는 입을 다물고 지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득이 되더군요."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일 당신이 사람들에게 따지고 상처를 주고 반박을 한다면 때때로 승리를 할 수도 있 다. 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승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결코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호 의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 스스로 생각해 보아라. 이론적이고 지적인 승리를 원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호의 를 택하겠는가? 양쪽 모두 가지기는 어려Q다. 보스토의 <트랜스 크립트>지는 언젠가 다음 과 같은 의미 심장한 싯귀를 실은 적이 있다. 여기에 윌리엄 제이가 영원히 잠들다. 죽을 때까지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던 사람이 그가 살아온 길은 백 번이고 옳았도다. 그러나 그도 역시 죽어 있지 않은가? 당신이 죽을 때까지 옳을 수도 있고, 말다툼을 하는 동안에는 백번 옳을 수도 있다. 그러 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에서는 마치 당신이 틀린 것처럼 아무 소용이 없다. 소득세 상담원인 프레드릴 파슨즈는 정부의 세우서 직원과 한 시간 동안 논쟁을 하고 있었 다. 9천 달러의 돈이 걸려 있는 일이었다. 파슨즈는 그 9천 달러가 사실상 악성 채권으로 결 코 되받지 못하므로 세금을 매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악성 채권이라는 무슨 소리요. 세금을 내야 합니다."라고 세무서 직원은 고집했다. 파슨즈는 우리 강좌에 나와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감사원은 냉정하고 거만한 데다 가 고집불통이어서 이유도 소용 없었고 사실을 들이대도 소용 없었습니다. 논쟁을 하면 할 수록 그는 점점 더 고집불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논쟁을 피하고 그 대신 화제를 바 꾸어서 그에게 칭찬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문제는 당신이 내려야 할 정말 중요하고도 어려운 결정에 비 하면 매우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자신도 조세에 관해서 공부를 한 적이 있습 니다만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에 불과 합니다. 당신은 경험의 최일선에서 그것은 얻고 있으 니까 저는 가끔 당신과 같은 직업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테니까요.' 내가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감사원은 의자에서 몸을 바로 세우고 등을 뒤로 기대더니 자기가 적발했던 교묘 한 부정 행위를 들려주는 등,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한참 동안 나에게 이야기 해 주었습 니다. 그의 음성이 점점 다정해지더니 곧 자기 아이들에 관해서도 말을 하더군요. 떠나면서 감사원은 내 문제를 좀 더 고려해 본 뒤 며칠 내로 결정해서 알려 주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흘 후 감사원은 내 사무실로 전화해서 그 세금 건을 원산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알려 주 더군요." 이 세무 감사원은 인간이면 누구에게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나약함을 보여주 었다. 감사원은 자신이 중요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어했다. 그래서 파슨즈와 논쟁을 할 때에는 자기의 권위를 큰소리로 주장함으로써 그의 중요감을 성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이 중요성이 인정되고 또 논쟁이 끝나고 자기의 자부심을 펴 보일 상황이 되자 그는 호의적인 인간으로 변했던 것이다. 부처가 "미움은 결코 미움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없어진다."라고 말한 것처럼 오해도 결코 논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치나 수완, 화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마음 등에 의해서 없어진다. 링컨은 언젠가 자기 동료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던 어느 젊은 장교를 몹시 꾸짖은 적이 있 었다.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은 사사로운 논쟁 따위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걸 세.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은 자기 성격을 망치거나 자제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 네. 자기에게 약간의 정당성밖에 없을 때는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상대방에게 양보해야 하네. 정당성이 있는 경우라도 적은 일에는 양보하게. 개와 싸움을 하다가 개에게 물리는 것 보다는 개에게 길을 비켜주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설령 그 개를 죽인다 해도 물린 상처가 아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일세." <비츠 앤드 피시즈>지에 실린 기사에서 의견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논쟁을 벌이지 않는 방 법에 대하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의견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기꺼이 환영하라. '두 사람의 의견이 항상 일치한다면 두 사 람 중 한 사람은 불필요한 인물이다'라는 슬로건을 기억하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에 부딪히게 될 때 당신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을 감사하라. 아마 그것은 당신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맨 처음에 본능적으로 떠오른 느낌을 믿지 말라. 의견의 차이가 생기는 상황 속에서 우리 가 제일 먼저 자연적으로 취하는 반응은 자신을 변호하려는 태도이다. 이것을 조심하라. 침 묵을 지키면서 당신의 첫 반응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최선이 아닌 최악 의 사태로 몰리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감정을 조절하라. 무엇이 어떤 사람을 화나게 하는지를 보고 그 사람의 실체를 파 악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먼저 귀를 기울여라. 상대방이 말할 기회를 줘라. 상대방이 그 말을 끝낼 수 있도록 하라. 방해하거나 말을 가로막거나 논쟁하지 말라. 이런 일은 장애물만 생겨나게 할뿐이다. 이해의 다리를 만들도록 노력하라. 오해라는 더 높은 장벽을 만들지 말라. 의견이 일치를 이루는 부 분을 찾아라. 상대방의 말을 다 들어본 후 당신이 그 사람과 동의하는 부분들을 생각하라. 당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시인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도록 하라. 실수에 대해서 사과를 하 라. 그러면 상대방은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논쟁하려는 태도를 늦추게 될 것이다. 상대방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여 신중히 연구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하라. 그리 고 정말로 그렇게 하라. 상대방이 옳을지도 모른다. 이 단계에서 성급하게 행동하여 상대방 이 당신에게 "말을 하려 했으나 당신이 듣지 않으려고 했잖소?"라는 말을 하게 하는 상황에 처하느니 차라리 그들의 생각을 고려해 보는 편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다. 상대방이 관심을 가져주는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라. 당신에게 반대하기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정말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 당신은 적을 친구로 바꿀 수가 있다. 문제를 철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당신의 행동을 뒤로 미뤄라. 그 날 늦 게라도, 아니면 그 다음날 다시 만나자고 하는 제안을 하라. 그때는 모든 사실을 다시 검토 할 수가 있다. 그 준비 과정으로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어려운 질문을 해 보라. 상대방이 옳을까? 부분적이라도 그것이 옳은 생각일까? 그들이 취하는 입장이나 주장에 진 실이나 장점이 담겨 있는가? 내 행동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분노를 다소 해소시키는데 지나지 않을까? 내 가 취한 반응으로 인해서 상대방과 더 멀어질까. 아니면 더 가까워질까? 사람들이 나에 대 한 평가를 더 좋은 쪽으로 내리게 하는 것일까? 나는 이길까. 아니면 질 것인가? 이기게 된 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만일 내가 잠자코 있으면 서로간에 의견 대립이 잠잠해질 까? 이런 어려운 상황이 나에게 어떤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오페라 테너 가수인 얀 피어스는 거의 50년의 결혼 생활 후에 이렇게 말했다. "집 사람과 나는 오래 전에 조약을 하나 맺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아무리 화가 나도 이 조약을 지켜왔습니다. 한 사람이 소리 지르면 다른 사람은 무조건 잠자코 듣기로 했죠.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고함을 지르게 되면 대화는 없어지고 단지 소란과 흥분만 남게 되니 까요." 원칙 1 논쟁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피하는 것이다. The only way to get the best of an argument is to avoid it. 2 적을 만드는 확실한 방법과 이것을 피하는 방법 테오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자기 생각 중 75%가 옳은 생각이라 면 자신으로서는 그것을 바라는 기대치의 최고라고 고백하였다.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이런 바램을 갖고 있었다면 당신과 나는 어떤 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55퍼센트까지 옳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월 스트리트에서 하루에 1 백만 달러를 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55퍼센트에 이르는 확신도 갖지 못하면서 당신은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외모, 억양이나 제스처 통해서 말로 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다른 사람의 생각 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틀렸다고 말한다면 그들이 과연 당신에게 동의 하겠는가? 처만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들의 지성, 판단, 자만심, 그리고 자존심 모 두를 직접적으로 건드렸기 때이다. 그래서 그들도 당시에게 반격을 가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마음 따위는 염두에도 없다. 아무리 칸트나 플라톤의 논리를 모두 동원하여 설명하여도 상대방의 의견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당신이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내가 당신에게 이 러 이러한 것을 증명해 보이겠소"라는 말로 시작하면 안 된다. 이것은 좋지 못한 설득 방법 이다. 이 말은 마치 "내가 당신보다 더 똑똑하니 몇 가지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 당신 마음을 바꾸 시오"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일종의 도전인 셈이다. 반대 감정만 불러일으켜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이 말 도 꺼내기 전에 당신과 싸우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다. 가장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 런데 왜 더 어렵게 만드는가?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를 증명하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라. 교묘하면서도 재치있게 해라. 알렉산더 포프의 다음 말은 이런 사실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가르치고, 새로운 사실을 제안할 때는 마치 그 사람이 잊어버렸던 것이 다시 생각난 듯이 제안하라. 약 3백여 년 전에 갈릴레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남을 가르칠 수는 없고, 단지 그가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체스터필드 경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현명해지도록 하라. 그러나 그것을 그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있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반복해서 말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소크라테스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그들의 생 각이 틀렸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시의 생각으로는 틀린 말을 하더라도, 또 실제로 틀린 말을 하더라도 "글쎄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죠. 나는 종종 그러니까요. 만일 내 생각이 틀리다면 바로 고치고 싶습니다.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검토해 봅시다."라고 말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겠죠. 종종 그러니까요. 이것을 다시 한 번 검토해 봅시다"라는 말 속에 는 마력이 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죠.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검토해 봅시다" 고 하는 당신의 말에 반대하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강좌에 참여한 사람 들 주에 고객을 관리하는데 이 방법을 시도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몬태나의 빌링스 에서 닷지 자동차 영업담당을 하고 있는 헤롤드 랜케였다. 그는 자동차 영업으로 인해서 바 든 압박감 때문에 고객들의 불만 사항을 처리할 적에 종종 비정하고 냉담해진다고 했었다. 이것이 성격을 급하게 만들어 고객을 잃고 모든 일에 기분이 나쁘게 되었다. 랜케는 그의 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아무런 득이 안 된다는 점을 깨닫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저희 대리점에서는 많은 실수를 하고 있어서 저는 종종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선생 님께 실수를 범한 것 같은데 그걸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런 방법을 쓰면 고객의 마음이 꽤 지정되고, 이렇게 일단 감정이 누그러지게 되면 문제 해결에 관해서 보다 분별있게 행동할 수 있는 법입니다. 실제로 고객 몇 사람은 나에게 이 해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들 중 두 사람은 자신들 친구에게 새 차를 구입하도록 권유하여 나에게 데리고 온 적도 있습니다. 경쟁이 매우 치열한 이 시 장에서 우리는 이런 고객과 같은 사람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고객의 의견을 존중 해 주고, 그들을 능숙하고도 정중하게 대하면 경쟁에서 이기는데 도움이 된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면 결코 당신은 곤란에 빠지지 않는다. 또한 이런 일은 모든 논쟁을 중단시키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당신처럼 공평해지고 솔직해지고 너그러 운 마음을 갖도록 만들 것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쩌면 내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고 인 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할지도 모른다. 상대방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당신이 확실하게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무뚝뚝한 태도로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뉴욕에 사는 젊은 변호사 S씨는 언젠가 연방 대법원에서 중요한 사건을 두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이 사건에는 상당한 액수에 달하는 돈과 중요한 법률 문제가 걸려 있었다. 논쟁을 하던 중 대법원 판사 한 사람이 그에게 "해사법의 법정 기한이 6년이지 않소"하고 물었다. S씨는 가만히 서서 잠시 동안 그 판사를 노려보다가 퉁명스런 말투로 "판사님. 해사법에는 법정 기한이란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법정 아니 조용해졌습니다" 하고 S씨는 우리 강조에 나와서 자기 경험담을 들려주 었다. "차가운 공기가 온 법정을 감쌌습니다. 내 말이 옳고 그 판사의 말은 틀렸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던 거였죠. 그랬더니 그 판사의 태도가 부드러워졌냐고요? 그렇지 않더 군요. 나는 지금도 그 당시의 법에 대한 내 견해가 옳았다고 믿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변론 도 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판사를 설득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대단히 학식 있고 저명한 그 판사에게 그의 마리 틀렸다고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 입니다." 논리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들 대부분은 편견을 갖고 있거나 생각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질투, 선입관, 부러움, 의심, 두려움과 자만심 등으로 인해서 우리의 판단은 대부분 흐려져 있다. 아울러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기들의 종교나 머리 모양, 혹은 공 산주의나 좋아하는 영화 배우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므 로 만약 당신이 가람들에게 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으면 매일 아침마다 식 사를 하기 전에 다음에 소개하는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이 글은 제임스 하비 로빈슨 교수 의 명저 <정신의 발달 과정>의 한 귀절이다. "우리는 아무런 저항이나 별다른 감정 없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 러나 만일 누군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기라도 하면 분개하고 고집을 부린다. 우리는 믿음 을 형성하는데 있어서는 놀라울 만큼 경솔하지만, 만일 누군가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가려 고 할 때에는 그 믿음에 대하여 쓸데없이 집착하게 된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그 생각 자 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전 받는 우리의 자존심이다. '나의'라는 말은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며 따라서 이것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야말로 지혜로움의 시작인 것이다. 이것은 '나의' 저녁식사, '나의' 개, '나의' 집, '나의' 아버 지, '나의' 조국, '나의' 하나님 등에서 보듯이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기의 것이라면 시계든 자동차든 혹은 천문, 지리, 역사, 의학의 지시기든 여하간 그것을 헐뜯기만 하면 사납게 화를 낸다. 우리는 진실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하여온 것을 언제까지나 믿고 싶어한다. 그 신념을 뒤흔들려는 것이 나타나면 분개한다. 그리고 무슨 구 실을 대서라도 그 믿음을 지키려고 한다. 결국 대부분의 논쟁은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 들을 옹호하기 위하여 그 논거를 찾으려는 노력인 것이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카알 로저스는 <인간이 되는 길>이란 저서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내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매우 귀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당신은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을 허락하는 일이 과연 필요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 제일 먼저 취하는 반응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 대신에 평가나 혹은 판단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의 기분이 나 태도, 혹은 신념을 나타낼 때 우리는 대개 즉시 '옳다', '어리석다', '비정상적이야', '이치에 맞지 않아', '틀렸어', '좋지 않군'이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이해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언젠가 나는 우리 집에 커튼을 달려고 실내 장식가를 부른 적이 있었다. 청구서를 받아보 고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며칠 후, 나의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그 커튼을 보았다. 가격을 말해주자 그녀는 의기양양 한 목소리로 소치쳤다. "뭐라구? 너무 비싸다. 바가지 썼구나." 실은 그녀의 말대로였다. 하지만 자기의 어리석음을 폭로하는 것 같은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방어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싼 게 비지떡이고 싸구려 가격을 주고는 품질과 예술적 감각을 살릴 수가 없다는 등 이런 저런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다음날, 다른 친구가 우리 집 으로 찾아와서 그 커튼을 보고는 흥분을 하면서 찬사를 하더니 자기도 집에다가 그런 물건 을 들여놓으면 참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이 때 내가 보인 반응은 전날과는 전혀 달랐다. "응, 사실은 말이야. 나도 이것을 살만한 돈은 없어. 아무래도 너무 비싸. 안 살 것을 산 것 같아."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때, 자기 스스로에게 이것을 인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만일 우리 가 부드럽고 재치있게 대해진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자시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으며, 심지 어는 솔직하고 너그러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불 쾌한 사실을 들이대고 공격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남북 전쟁 당시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편집가였던 호레이스 그릴리는 링컨의 정책에 격렬 한 반대를 했다. 그릴리는 링컨에게 따지고 조롱하고 비난을 퍼부으면 링컨의 생각이 달라 질 것으로 믿었다. 그릴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렇게 비난을 했다. 실제로 그는 링컨이 부스 에게 저격당하던 날 밤, 링컨 대통령에 대해 야만적이며 혹독하고도 빈정대는 듯한 공격을 가하는 기사를 썼다. 그러나 이런 혹독한 일을 당한다고 해서 링컨 대통령이 달라졌던가? 천만의 말씀이다. 비웃음과 비난은 절대로 아무도 설득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자신과 사람 들을 잘 다루는 방법과 인격을 도야하는 삶의 이야기로서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어보도록 하라. 플랭클린은 어떻게 해서 따지기 좋아하는 못 된 버릇을 극복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유능하고 온화하며 사교에 능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 가를 말해 주고 있다. 벤자민 프랭크린이 실수를 잘 저지르던 청년 시절의 어느 말, 퀘이커 교도인 옛 친구가 그 를 찾아와서 호되게 비난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퍼부었다. "벤자민, 자넨 틀렸어. 자네는 자네 생각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준단 말이야. 너무 공격적인 말이라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자네 친구들은 자네가 없는 자리에서 는 훨씬 더 신나고 재미있다더군. 자네가 너무 유식한 척해서 자네에게는 아무도 말을 할 수가 없네. 사실 아무도 자네하곤 말하려고 하지 않네. 왜냐하면 그런 노력을 해 보았자 마 음만 불편하고 힘만 들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 알로 있는 얄팍한 지식 외에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걸세." 벤자민 프랭클린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그의 가장 훌륭한 점의 하나가 바로 이런 종류의 호된 비난을 받아드리는 태도이다. 프랭클린은 이 말이 사실이라고 깨달을 만큼 그릇이 크 고 지혜로웠고 어쩌면 이로 인해서 실패와 사회적 소외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래 서 그는 방향을 전환했다. 자신의 거만하고도 독선적인 태도를 당장 바꾸기로 결심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직접 들어 보기로 하자. "나는 남의 의견을 정면에서 반대하거나 또 나의 의견을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 다. 심지어 '확실히'나 '의심할 나위없이' 등등의 말과 같이 단정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말이 나 글은 모두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에 '...라고 생각합니다'나 '...라고 여겨집니다' 혹은 '...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현재로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등의 마을 쓰기로 했습니다. 나는 누군가가 잘못된 주장을 하더라도 퉁명스럽게 그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 고 그의 제안이 엉터리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당장 밝히는 일도 삼갔습니다. 그 대신 나는 그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안이 엉터리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당장 밝히는 일도 삼갔습니다. 그 대신 나는 그의 생각이 어떤 경우에는 옳을지도 모르나 현재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고 대답했습니다. 얼 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내 태도의 변화가 많은 이익을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의 대화가 더욱 즐겁게 되었습니다. 내 의견을 제시할 때에도 조심스럽게 꺼내면 상대방으로부터 보다 적극적인 수용을 얻어낼 수 있으며 비난도 적어졌습니다. 내가 틀렸다는 말을 들어도 예전보다 억울한 생각이 덜 들고, 내 생각이 옳을 경우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원만하게 설득시켜 그들의 잘못을 돌이키도록 했습니다." "내가 처음에는 성격을 죽여가면서 취했던 이런 태도가 곧 익숙해져서 나는 아마 거의 50년 동안 독선적인 말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습관이 생김으로써 내가 새로운 제 도나 혹은 개정안을 제시할 때 여러 시민들을 염두에 두게 되었고 아울러 위원회의 일원으 로서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지독한 눌변가로 말이 유창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언어사용도 부정확하며, 단어를 선택하는 데도 대단히 망설이 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내 의견을 대체적으로 잘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이런 방법을 비즈니스에는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 여기에 두 가지 예가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킹즈 마운틴에 사는 캐더린 A.올레드는 어느 방직공장의 생산기계 담 당 감독원이다. 그녀는 우리 강좌에 나와서 자기의 고민거리를 우리 강좌에서 훈련을 받기 전과 받은 후에 각각 어떻게 처리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제가 맡은 책임은 기능공들이 더 많은 실을 생산하여 수입을 많이 올릴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한 수출 장려 제도와 등급제를 연구하고 운용하는 일입니다. 두 세 가지 종류의 생사만을 생산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기존 시스템은 잘 운영되었지만 최근에 들어와서는 12가 지의 다른 종류의 생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도록 물품 명세서와 공장 시설 등을 늘렸습니 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기능공들에 대한 적적한 대우를 해 줄 수가 없고, 더욱이 생산량을 증 가시키기 위한 장려금을 줄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능공들이 어떤 특정 시간 내에 생산하는 생사의 등급을 따라 대우받을 수 있도록 저는 새로운 시스템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이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즈음 새로운 시스템이 야말로 적절한 조치라는 점을 경영진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간부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간부들에게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어떤 점이 공평치 못했으며 제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해결책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말했습니다. 물론 형편없는 실패였죠. 저는 새로운 시스템에 관한 제 입장만을 옹호하느라 정신이 없던 나머지 간부들의 문제점을 그들 스스로 자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 때문에 결국 그 시스템 건은 무효화되었습니다." "이 강좌에 여러 번 참석해 본 후, 저는 실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회의를 소집하여 이번에는 간부들이 생각하는 바의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간부들의 의견을 요 청했습니다. 각 의견을 토론한 후 그들 생각에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 물어보았습니다. 적 절한 시간을 두고 저의 낮은 목소리로 몇 가지 제안을 한 후 잠자코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 나갈 무렵에 비로소 제가 연구한 시스템을 소개하자 간부들은 열렬히 그것을 환영했습니 다." "이제 저는 다른 사람에게 그가 틀렸다고 그 자리에서 직선적으로 말해 보아야 아무런 득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은 피해만 입게 된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얻는 것 이라곤 그 사람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일과 어떤 토론에서든지 환영받지 못하는 것뿐입니 다." 다른 예를 한 가지 더 들어보자. 지금 소개하려는 경우는 수많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경험담 중에서 골라낸 것임을 기억하라. R.V. 크롤리는 뉴욕에 있는 한 목재소의 세일즈맨이었다. 여러 해 동안 크롤리는 뉴욕에 있는 한 목재소의 세일즈맨이었다. 여러 해 동안 크롤리는 고집불통의 목재 검사관들에게 그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따지며 지적해 왔었다. 많은 논쟁을 벌여서 이겼다. 그러나 아무 소 득이 없었다. "이 검사관들은 야구 심판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일단 결정을 내리면 결 코 바꾸는 법이 없답니다"하고 크롤리는 말했다. 크롤리는 자시의 공장이 이런 논쟁으로 인해서 수천 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 래서 우리 강좌에 나와서 강의를 들으면서 새로운 방법을 쓰기로 하는 동시에 논쟁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에 크롤리가 강좌에 나와 들 려준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어느 날 아침, 사무실의 전화 벨이 울리더군요. 저쪽 사람이 흥분한 어조로 말하기를 우리 가 그의 공장에 실어 보낸 자동차 한 대부분의 목재가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측에서는 목재를 부리는 작업을 중단하고, 우리에게 그 목재를 다시 회수해 가 도록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더군요. 적재된 목재의 4분의 1찜 하역되었을 때, 그 회사의 검사관이 목재의 55퍼센트 가량이 불합격품이라는 말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자 그들은 인수받기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저는 당장 그 공장을 향해 떠나면서 도중에 이 상황을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최선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여느 때 같았으면 합격 기준을 그 들에게 제시하면서 목재 검사관으로서의 내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서라도 그 목재가 합격 품이며 그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믿게 하려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강좌에 서 훈련받은 원칙을 적용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현장에 도착해 보니, 그 회사측과 검사관은 고약한 성미를 가진 사람들로서 모두 저 하고 논쟁과 싸움을 벌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목재를 실은 자동 차로 걸어가서 제가 확인할 수 있도록 그들이 계속 작업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는 퇴짜 맞은 불합격품과 합격품을 따로 가려주도록 그 검사관에게 부탁했습니다." "잠시 동안 검사관을 주시한 결과 저는 그 검사관의 검사 기준이 너무 엄격한 편이며 또 그 법규들을 그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특수 목재는 백송으로 만든 것 인데, 제가 알기로는 그 검사관은 단단한 재목에 관해서는 내노라하는 전문가였지만 백송에 대해서는 유능하고 경험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백송이라면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검사기준에 반대하고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감독관을 지켜보면서 우리 목재가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 검사관의 생각이 틀 렸다는 내색을 어느 한 순간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앞으로 그들에게 목재를 제대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저는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매우 다정하고 협조적으로 질문을 하고 아울러서 그들의 처사가 매우 옳았다는 것 을 끊임없이 말하다 보니, 그 사람의 마음이 부드럽게 누그러 들었고 또 우리 사이에 맴돌 던 긴장이 눈녹듯이 사라져 버리더군요. 가끔씩 신중하게 던진 제 말 몇 마디가 검사관으로 하여금 퇴짜 놓은 그 불합격품 목재가 어쩌면 심사기준에 맞을지도 모르며 그들이 요구하는 목재들은 훨씬 값비싼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것을 머리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을 검사관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중을 기하기로 했습니 다." "그 검사관의 태도가 점점 변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검사관은 백송나무를 다룬 경험이 없다 는 사실을 인정하며 오히려 그 나무들에 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그 목재 가 명시된 합격 기준품이 될 수 있는 이유를 검사관에게 설명하면서 지금이라도 그의 마음 에 흡족하지 않다면 인수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드디어 검사관은 매번 퇴짜를 놓을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리고 나중에는 심사기준을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던 실수가 자기측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 그 결과 제가 그것을 떠난 후에 검사관은 다시 그 목재를 전부 검사한 다음 전체 물량을 인수했고 우리는 대금 전액을 수표로 결재 받았습니다." "이 한가지 예를 보더라도 상대방에게 그가 틀렸다는 말을 삼가는 지혜가 우리 회사에 상당 한 금액을 벌어들일 수가 있었으며 또한 호의를 지킨 것이 돈으로는 그 가치를 따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평화주의자인 자신이 어떻게 해서 당시 미국에서 흑인으로서는 제일 높은 계급장을 달고 있던 미공군의 다니엘 '채피' 제임스 장군의 숭배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때 킹 박사는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내 기준이 아닌 그들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와 비슷한 예로, 로버트 E. 리 장군은 언젠가 남부동맹의 의장인 제퍼슨 데이비스에게 자 기 지휘하에 있던 어느 장교에 대해서 매우 진지한 어조로 칭찬을 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 던 한 장교는 깜짝 놀랐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그토록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신 사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군님을 중상모략하는 자라는 것을 모르십니까?"하고 그 장교가 물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의장께서는 그 장교에 대한 내 의견을 물었던 걸세. 나에 대한 그 장교의 태도를 물은 것은 아니라네."하고 리 장군은 말했다. 나는 여기서 새로운 비결을 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2000년 전 예수께서는 "속히 너희 적과 화해하라"고 가르쳤다. 예수가 탄생하기 2200년 전에 이집트의 악토이 대왕은 아들에 게 다음과 같은 지혜로운 충고를 했다. 오늘날 이 충고는 우리에게 매우 절실한 것이다. "사 람을 설득하려면 외교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고객이나 배우자, 혹은 적들과 논쟁을 하지 말라.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 는 말도 하지 말로 그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 다음의 원칙을 사용해 보라. 원칙 2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라. 결코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지 말라. Show respect for the other person's opinions. Never say, "you're wrong". 3 당신이 잘못했으면 그것을 인정하라. 우리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원시림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 곳에는 ha이 되면 산딸기가 흰 꽃을 피우고 다람쥐가 보금자리를 만들어 새끼를 기르고 잡초들은 말의 키만큼 무성해진다. 이 자연 그대로의 숲은 '숲의 공원'이라고 불리웠다. 곁으로 보기에는 콜 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당시와 벼로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보스톤산 불독인 '렉스'를 데리고 자주 이 공원을 산책했다. 렉스는 사람을 잘 따르고 물지 않는 개였다. 우리 는 그 공원에서 사람과 마주치는 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렉스에게 마스크를 씌우거나 개줄로 묶지 않고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우리는 공원에서 말을 탄 경찰관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자기 권위를 과시하고 싶 어서 좀이 쑤시는 그런 사람이었다. "공원에서 개를 마스크나 개줄로 묶지 않고 풀어 놓으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경찰 관은 나를 징계했다. "위법 행위라는 걸 모르십니까?"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 개는 아무런 피해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하고 나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피해를 주지 않을 거라고요? 법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요. 저 개는 다람쥐를 죽이 거나 아이를 물지도 모릅니다. 이번 한 번은 봐 주겠지만 만약 저 개가 또 다시 마스크 개 줄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적발되면 당신은 판사한테 가 봐야 할 겁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순순히 약속했다. 그리고 나는 몇 번인가는 약속대로 했다. 그러나 렉 스와 나는 마스크 따위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반항해 보기로 했다. 얼마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우리는 뜻하지 않은 장애에 부딪히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 렉스와 나는 언덕배기까지 달리기를 했다. 그 곳에서 갑자기 적갈색 말을 탄 경찰관과 마주치게 되었다. 렉스는 내 앞에서 그 경찰관을 향해 곧장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꼼짝없이 당하는 꼴이 되었다. 나는 경찰관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선수를 쳤다. "나를 현행범으로 체포하셨군요. 나 는 법을 어겼습니다. 나한테는 알리바이도 변명거리도 없었습니다. 지난주에 나에게 또 다시 개한테 마스크를 채우지 않고 다니면 벌금을 물리겠다고 경고를 했지요" "글쎄올시다. 저런 조그만 개라면 아무도 없을 때 밖으로 데리고 나오 달리게 하고 싶은 유 혹도 생길 것 같군요"라고 경찰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나는 "분명 그런 유혹이 생기지만 위법행위는 위법행위지요"라고 경찰관에게 말했다. "그러나 뭐, 이렇게 작은 개는 누구에게도 위험을 주지 않겠지요." 경찰관은 오히려 이의를 제기했다. "자 당신은 이 문제를 너무 심각한 생각하는 것 같군요.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언덕 저편까 지 개를 달리게 하시오. 그러면 낸 눈에도 띄지 않고 우리 모두 이 일을 잊어버릴 것 아니 겠소." 그 경찰관도 인간이기 때문에 중요감을 느끼고 싶어했다. 내가 나의 죄를 인정했을 때 그의 자부심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용서하고 자신의 넓고 큰 도량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내가 자신을 변명하면서 경찰관과 논쟁을 벌였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러 나 나는 경찰관과 논쟁을 벌이는 대신에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고, 나는 전적으로 틀렸다고 인정을 했다. 나는 즉시 깨끗하게 성의를 다하여 나의 잘못을 인정했다. 내가 경찰관의 입장 에 서고, 그가 내 입장에 서니 이 문제는 원만하게 끝났다. 처음에는 법 운운하며 위협하던 이 경찰관이 일주일 후에 나에게 보여준 친절한 태도에는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만일 비난받을 일이 있으면 먼저 스스로를 비난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다른 사람으 로부터 비난을 듣느니 스스로 자기 비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훨씬 쉽지 않을까?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상대가 할 말을 먼저 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아무 할 말이 없어진다. 십중팔구 상대는 관대해지고 이쪽의 잘못을 용서하는 태도 로 나올 것이다. 나와 렉스를 용서한 경찰관처럼. 상업 미술가인 페르디난드 워렌은 이 방법을 사용해서 성미가 급하고 까다로운 고객으로부 터 호의를 얻어냈다. "광고용과 인쇄용 그림을 제작할 때는 매우 정밀하고 정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라 고 하면서 워렌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미술 편집자들은 자기들이 위탁한 일을 즉시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경우 사소 한 실수가 일어나기 마련이죠. 특히 나는 미술감독을 한 사람 잘 알고 있는데 그는 항상 사 소한 실수에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가끔 그의 사무실을 나올 때 나는 불쾌 한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의 비난 때문이 아니라 그의 공격 방법 때문이었습니 다. 최근에 나는 어떤 급한 일거리를 끝내서 이 미술감독에게 납품을 했는데 그는 당장 자 기 사무실로 오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자 그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했습니 다. 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는 실랄한 어조로 고소하다는 듯이 비난을 했습니다. 왜 이 렇게 했냐면서 열을 내었습니다. 그 동안 내가 공부한 자기 비판을 활용할 기회가 드디어 왔습니다. 그래서 '아무개 씨,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 잘못이니까 실수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위한 그림 제작도 이제는 제법 잘 할 만큼 되었는데도 이러니 제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당장 그는 나를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그래요. 당신 말이 옳지만 그래도 큰 실수는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실수에는 결과적으로 희생이 따르는 법이며 사람을 짜증나 게 하죠'" "그가 뭐라고 말을 하려 했으나 나는 가로막았습니다. 정말 신나는 경험을 했죠. 난생 처음 으로 나는 스스로를 꾸짖고 있었는데도 굉장히 신이 났습니다." "제 가 좀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정말 유감입니다"라고 하면서 나는 계속 말을 이어 갔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일거리를 많이 주셨으니 당연히 일을 잘 해드려야 했습니다. 그러 니 이 그림은 다시 그려 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아요!'하고 그가 항의하듯이 말하며 '당신에게 그런 수고를 끼칠 생각은 아니 었소'하면서 나의 일을 칭찬하면서, 약간의 수정만 하면 되며 이런 사소한 일로는 자기 회사 에는 아무런 손해도 없을 뿐 아니라 단지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실수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더군요."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을 열심히 함으로써 그 사람과 싸울 일이 모두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 다. 그는 결국 나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고 헤어지기 전에 급료로 수표 한 장과 다른 일거 리를 주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는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잘못과 방어적인 마음을 사라지게 할뿐만 아니라 실수로 인한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뉴 멕시코의 알버커키에 사는 브루스 하비는 병가중에 있는 어느 고용인에게 봉급을 잘못 지급한 적이 있었다. 실수를 깨달은 하비는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그 고용인에게 다음 봉급 때는 초과 지불한 액수만큼 봉급을 삭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고용인은 그렇게 되면 심 각한 경제적 문제가 생기므로 어느 일정 기간동안 그 돈을 상환해 갚아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하려면 윗사람의 허가를 받아야 된다고 하비가 말했다. 하비는 강좌에 나와서 다음 과 같이 말했다. "이 일로 사장님이 크게 화를 내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던 끝에 저는 일이 제 잘못임을 깨닫고 사장님께 가서 그 것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사장님의 사무실로 가서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께서는 화를 내면서 인사과의 실수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제 잘못이라고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렸습니다. 사장님은 다시 화를 내시더니 경리부의 부주의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다 시 한번 더 제 잘못이라고 설명 드렸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사무실의 다른 두 사람을 비 난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잘못이었다고 계속 강조했습니다. 이윽고 사장님은 저를 보시더니 '알겠네. 자네 잘못일세. 그러니 문제나 해결하게'하고 말씀하시더군요. 실수는 시 정되고 아무도 곤경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고 또 알리 바이나 찾으려 들지 않는 용기가 저한테 있음을 알고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사장님도 예전 보다 더욱 저를 신임해 주셨습니다." 어떤 바보라도 실수에 대해서 핑계를 댈 수 있다. 사실 바보들은 대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무언가 고결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예를 들여 보면 로버트 리 장군에 대한 역사적 기록 중에서 가장 빛나는 미담의 하나는, 피 켓트의 게티스버그 진격 작전의 실패를 자신에게만 돌렸다는 이야기이다. 피켓트의 진격은 분명히 서방 세계에서도 가장 빛나고도 멋진 공격이었다. 저지 피켓트 장 군 자신이 멋진 사람이었다. 피켓트 장군은 머리가 길어서 그의 적갈색 머리가 거의 어깨까 지 닿았고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나폴레옹과 같이 전쟁터에서도 거의 매일 열렬한 연애편지 를 썼다. 헌신적인 그의 부대는 그 비극적인 7월의 오후 장군이 모자를 오른쪽 귀에 멋지게 쓰고 의기 양양한 모습으로 유니온 라인을 향해 말을 타고 출발했을 때 크게 소리를 지르며 환호성을 울렸다. 그들은 줄을 지어 가면서 환성을 질렀다. 군기는 펄럭이고 총검은 태양 아 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당한 광경이었다. 용감하고 멋졌다. 유니온 라인으로 진격 했을 때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피켓트 장구의 군대는 과수원과 옥수수밭을 지나 목장과 계곡을 통과하면서 진격했다. 적의 대포는 그들의 대열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었으나 그 진격은 적들에게는 불 가항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구의 보병부대가 잠복해 있던 세메터리 지리의 돌담 뒤편에서 뛰쳐나와 피 케트의 진격부대를 향해 일제 사격을 가했다. 언덕 꼭대기는 화염으로 뒤덮여 아수라장이 되었으며 마치 화신이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얼마 후 피켓트 휘하의 지휘관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쓰러졌으며 부하 5천명 중 5분의 4가량이 전사했다. 어미스테드 장군이 살아남은 병사를 이끌고 최후의 돌격을 감행했다. 돌담을 뛰어넘어 총검 끝에 모자를 꽂아 흔들면서 "돌격하라, 돌격하라"하면서 소리 높여 외쳤다. 그리하여 돌담을 뛰어 넘어 적중에 뛰어든 남군은 대난전을 벌인 끝에 드디어 남군 군기를 세미터리 리지에 꽂았다. 그 깃발이 그 곳에 꽂혀 있던 순간은 아주 잠깐 동안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야말로 남부 동맹으로서는 최고 절정의 시간이었다. 피켓트의 돌격작전은 빛나고 영웅적인 것이었지만 종말을 알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리 장군 은 실패했다. 리 장군은 북군을 무찌를 수가 없었으며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남군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리 장군은 너무나 슬프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남부동맹 의장인 제퍼슨 데이비스에게 사의를 표명하고 대신 그 자리에 '젊고 유능한 인물'을 임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마일 리 장군이 피켓트 진격이 그토록 비참하게 실패하게 된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고 했다면 그럴 듯 한 구실을 만들 수도 있었다. 사실 리 장군의 실패는 몇몇 부대 지휘관들의 탓이었다. 보병 지원을 위한 기병대가 적시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진격은 실패로 끝났던 것이다. 그러나 리 장군은 고결한 분이었으므로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았다. 피켓트 패잔병들이 남부동맹으로 귀대할 때 리 장군은 몸소 나가서 엄숙한 자기 반성을 하 면서 그들을 맞아 주었다.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이며 이 전투에 패한 책임은 내가 지겠소" 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인격을 갖춘 장군은 역사상 그리 많지 않 았다. 홍콩에서 우리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강사인 마이클 쳉은, 중국 문화가 지닌 특수한 문제점 과 이런 것에 대해 옛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보다 때로는 새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훨 씬 유익하다는 사실을 인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강좌에 나온 사람 중에 여러 해 동안 자기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내온 한 중년 남자가 있었다. 이 아버지는 한 때 아편 중독자였으나 지금은 완치되었다. 중국 전통에 따르 면 이런 경우 나이 든 쪽이 먼저 나서는 법이 아니다. 이 아버지는 화해를 할 책임은 자기 아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강좌 초기에 이 아버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업는 손자 녀석들에 대해서, 그리고 얼마나 자기가 아들과의 화해를 갈망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모 두 중국 사람들인 수강생들은 그의 갈망과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통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아버지는 또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공경해야 하며 자신이 갈망 하는 대로 처신하지 않고 아들이 자기를 찾아주도록 기다리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강좌가 끝나갈 무렵 이 아버지는 강좌에 다시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문제를 곰곰 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데일 카네기는 '만약 당신이 틀렸다면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인정하 라'고 말했습니다. 빨리 인정하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확실하게 인정할 수는 있습니 다. 저는 제 아들에게 해를 입혔습니다 아들이 저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아 자기 인생에서 저를 제외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젊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체면이 깍 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말못했으므로 이것을 이전하는 일은 제 책임입니다." 수강생들은 그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으며 최대한으로 협력했다. 그 다음 강좌에 나와서 이 아버지는 자신이 어떻게 아들의 집에 찾아가 용서를 구했으며 이제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 고 손자 녀석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맺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앨버트 허바드는 미국 전역을 열광하게 만든 가장 독창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신랄한 문체는 때로는 격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을 다루는 인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기술을 지녔던 허바드는 가끔 적을 친구로 만드는데 재간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예를 들어 화가 몹시 난 어떤 독자 한 사람이 허바드에게 어떤 글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다면서 작가인 허바드에게 욕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하자. 이 편지를 받은 허바드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낸다. 그것에 관해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저 자신도 모두 다 동의하지는 못하겠더군요. 어제 쓴 글 이라 해도 오늘 다시 읽어보면 마음에 다 들지는 않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알게 되어서 저는 매우 기쁩니다. 다음에 당신이 이 근처에 오실 일이 있을 때 저를 방문해 주시면 이 점에 대해서 우리 함께 철저하게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저의 악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알버트 허바드 당신을 이렇게 대해 주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각이 옳을 때에 는 그 생각을 부드럽고 재치 있는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하고, 우리 생각이 잘못된 경우에는 -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면 이런 일이 놀랄 만큼 자주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 그 실수를 빨리 그리고 기꺼이 인정하도록 하자. 이 방법은 논란 만한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을 방어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방법이기도 하 다. 다음의 옛날 격언을 명심하라. "싸움을 해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양보한 다면 당신이 기대한 것 이상을 얻을 수 있다." 원칙 3 잘못을 했으면 즉시 분명한 태도로 그것을 인정하라. If you are wrong, admit it quickly and emphatically. 4 꿀 한 방울 당신이 화가 났을 때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몇 마디 퍼붓고 나면 당신 속은 후련해 진다. 그러나 상대방은 어떨까? 그 사람도 당신처럼 과연 속이 후련할까? 당신의 그 도전적 인 음성이나 적의에 찬 태도가 그로 하여금 당신에게 쉽게 동조하도록 만들어줄까? 우드로 윌슨은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에게 대든다면 나도 금방 두 주먹을 움켜 쥘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나에게 다가와서 '우리 앉아서 같이 이야기해 봅시다. 만일 우리가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서로 다른지, 또 서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라고 말한다면 서로의 의견 차이가 결국 그다지 큰 거시 아니며 서로 다른 점은 적고, 오히려 같은 점이 많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고 서로 잘 지내기 위한 인내심과 솔직함과 의욕만 있다면 우리는 함께 잘 해낼 수 있을 거이다"라고 했다. 우드로 윌슨이 한 말의 참 뜻을 존 록펠러 2세처럼 깊이 깨달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1915 년 당시 록펠러는 콜로라도 주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많은 미움을 받던 사람이었다. 미국 의 산업 역사상 가장 끔찍한 파업 사태가 2년 동안 콜로라도 주를 강타했다. 성난 광부들이 콜로라도 석유와 강철 회사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그 회사는 록펠러 소유였다. 회사 기 물이 파괴되고 군대까지 동원되었다. 유혈사태가 발생하여 파업을 하던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서로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찌를 듯한 바로 그 때에 록펠러는 어떻게든 상대방을 설득하려 고 했다. 록펠러는 결국 성공했다. 어떻게 성공했는가?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동지를 포 섭하는데 몇 주일을 보낸 뒤 록펠러는 파업 광부의 대표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은 처음부터 끝가지 하나의 대단한 걸작이었다. 그 결과는 놀랄 만하여 록펠러는 삼킬 듯한 증 오의 파도를 가라앉혔다. 또한 추종 세력도 생겨났다. 이 연설은 매우 우호적인 방법으로 사 실을 말했기 때문에 파업 광부들은 자기들이 그토록 격렬하게 싸웠던 임금인상 문제에 대해 서는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일터로 되돌아갔다. 그 유명한 연설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얼마만큼 우정이 넘쳐 있는가 잘 음미하여 보자. 명심할 것은 록펠러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자기를 사과나무에 목매달고 싶어하던 사 람들에게 연설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펠러는 의료 봉사대 앞에서 연설하는 것보다 더 온화하고 다정한 연설을 했다. 록펠러의 연설은 "여기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거나 "여러분의 가정을 방문하여 많은 가족을 만나 보았고","우리가 여기서 만난 것은 낯선 사람들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이며 "상호우호의 정신과 공동의 이익","내가 여기 에 잇게 된 것도 다 여러분의 덕택"이라는 등의 구절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내 생애에 있어서 특별한 날입니다." 하고 록펠러는 연설을 시작했다. "이 훌륭한 회사의 임직원과 근로자들의 대표들을 만나게 되는 영광은 오늘이 처음이며, 따라서 이 자 리에 서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오늘의 만남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2주 일 전에 이렇게 모였더라면 나는 여러분 중 몇 사람의 얼굴만 알아보는 낯선 사람으로 여기 이 자리에 섰을 것입니다. 지난주 동안 남부의 탄광촌을 모두 방문하여 그 자라에 없던 몇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근로자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여러분의 가정을 방문 하여 가족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 우리는 서로 낯선 사람들이 아닌 친구로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내가 여러분과 더불어 우리의 공동 이익 에 관해서 의논하는 기회를 갖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 상호 우호정신 때문입 니다. 이 자리는 우리 회사의 직원과 근로자 대표의 모임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이 덕분입니다. 불행하게도 나는 여러분 중 어느 한편에도 R지 못하지만 어떻 게 보면 나는 여러분 모두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가 주 주와 이사회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경이로운 방법의 훌륭한 본보기가 아닐까? 록펠러가 만약 다른 방법을 택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광부들에게 넌지시 그들이 잘못 했다고만 말했다고 치자. 록펠러가 논리의 모든 법칙을 동원하여 광부들의 잘못을 입증하였 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어떤 일일 일어났을까? 광부들의 분노는 더 터졌을 것이고 더 많은 증오와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의 의 가슴이 당신에 대한 나쁜 감정과 증오로 가득 찼을 때는 이 세상의 어 떤 논리를 가지고도 그의 마음을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다. 아이들을 꾸짖는 부모나 윽박지르는 직장 상사와 남편, 그리고 잔소리 많은 아내들은 사람들이 자기네들의 생각을 바꾸기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을 강제로 윽박지른다고 해서 그들의 의견이 당신과 나의 것과 똑같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진심으로 점잖 고 다정하게 대하면 그들의 생각이 바뀔 확률이 더 많다. 링컨은 1백여 년 전에 이런 말을 했다. "한 통의 쓸개즙보다는 한 방울의 꿀이 더 많은 파리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은 만고의 진 리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만일 누군가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우선 그 사람에게 당신이 그이 진정한 친구임을 확신시켜 주도록 하라.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 방울의 꿀이며 상대의 이성에 호소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파업하는 사람들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는 일이 득이 된다는 사실을 사업가들은 알 고 있다. 예를 들면, 화이트 모터사의 2천 5백 명의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과 유니온 샵을 요 구하며 파업을 일으켰을 때 당시 사장이던 로버트 블랙은 화를 내거나 그들을 비난하거나 협박하지 않았으며 또한 공산주의자들이라고 그들을 매도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블랙 사장 은 파업 근로자들을 칭찬했다. 그리고 사장은 클리브랜드의 각 신분에 '평화롭게 파업을 하는 방법'에 대한 찬사의 광고를 게재하였다. 파업 근로자들이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지 블랙 사장은 야구 방망이와 글러 브를 여러 벌 구입해 부면서 공터에서 야구를 하도록 권유했다. 야구보다는 볼링을 좋아하 는 사람들에게는 볼링장을 빌려주기로 했다. 블랙 사장이 이렇게 호의를 베풀자 놀라운 일 이 일어났다. 즉, 상대편에서도 호의를 베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파업 근로자들도 빗자루, 삽, 쓰레기 손수레를 빌려다가 공장 주변에 흩어진 성냥개비, 휴지, 담배꽁초 등을 치우기 시작했다. 상 상해 보라! 임금 인상과 노조 안정을 위해 파업중인 근로자들이 공장 마당을 치우고 있는 광경을. 그런 일은 미국의 오랜 노동쟁의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이 파업은 일주일만에 아무론 감정이나 상처 없이 서로 타협한 뒤 끝을 맺게 되었다. 다니엘 웹스터는 마치 신과 가튼 용모와 야훼와 같은 목소리로 변론을 펴곤 했는데 재판에 임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다정한 말로 자신의 강력한 주장의 말머리를 삼았다. "배심원님들 께서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생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 다.", "배심원 여러분들께서 놓치지 않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실들을 말씀드리겠습니 다." 또는 "인간의 심성을 잘 알고 계시는 배심원 여러분께서는 이러한 사실의 중요성을 쉽 게 통찰하실 것입니다." 그는 밀어붙이지도 않고 강압적인 방법도 쓰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의견을 강 요하지 않았다. 웹스터는 부드러운 말로 조용하고 다정스럽게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유 명한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당신에게는 파업 사태를 해결하거나 배심원들을 설득시킬 일이 결코 없을지도 모른 다. 그러나 전세금을 낮춰 달라고 부탁할 일은 생길 수 있다. 그러한 사람에게 이 온건한 이 야기 방법이 얼마 만큼 유용한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엔지니어링 O.L. 스트러브는 전세금을 깎고 싶었다. 그러나 그 전셋집 주인이 보통이 아님 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스트러브는 우리 강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집주인에게 임대계약이 끝나는 대로 즉시 집을 비우겠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실 저는 이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세금을 조금이라도 내려 준다면 그냥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희망이 없는 상태였고 다른 사람들도 전세금을 깎아 보려고 애를 썼으나 실 패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집주인이 말할 수 없이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저한테 말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사람 다루는 방법을 내가 배우고 있지 않 은가? 일단 내가 배운 방법을 사용해보자!' 집주인과 그의 비서가 제 편지를 받자마자 즉시 저를 만나러 왔더군요. 저는 그들을 문에서 다정히 반기며 여러 가지 좋은 인상을 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전세금이 비싸다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그 아파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칭찬을 했습니다. 저는 집주인이 건물 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찬사를 늘어 놓으면서 1년 쯤 더 살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된 다고 말했습니다. 집 주인은 세들어 사는 사람들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찌할 바를 모르더군요. 그러면서 집주인은 자기의 골칫거리를 저한테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불만 투성이인 입주 자들 중 어떤 사람은 편지를 열 네 통이나 보내왔는데 아주 모욕적인 편지도 있었다더군요. 어떤 사람은 위층의 남자가 코 고는 것을 막아주지 못하면 임대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엄포를 놓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처럼 만족해하는 입주자를 보니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합니다' 하고 집주인이 말하면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전세금을 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더 깍아주기를 원했으므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전세금을 이야기했더니 집주인을 두말 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집주인은 자리를 뜰 때 저를 보면서, '실내 장식은 어떤 것으로 해 드릴까요?'라고 묻는 것 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다른 입주자들이 했던 것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전세금을 깍으려고 했다면 저 역 시도 확실히 실패했을 겁니다.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우호적이고 동정적이며 그리고 집주인의 골칫거리를 알아 주는 접근법을 쓴 덕택이었습니다."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 살고 있는 딘 우드코크는 전기 회사의 한 부서 책임자였다. 전봇 대 위에 있는 어떤 기구를 수리해 달라는 주문이 그의 부서에 떨어졌다. 이런 작업은 종전 까지 다른 부서에서 해 왔는데 최근에 우드코크의 부서로 옮겨 왔다. 그의 부하 직원들도 이런 일에 훈련된 사람들이었지만, 실제로 이 일에 대한 주문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부서원들 모두가 이 일을 놓고 자기들이 과연 어떻게 이것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데 관심이 집중되었다. 우드코크의 부서로 옮겨 왔다. 그의 부하 직원들도 이런 일에 훈련된 사람들이 었지만, 실제로 이 일에 대한 주문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부서원들 모두가 이 일을 놓고 자기들이 과연 어떻게 이것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데 관심이 집중되었다. 우드코크와 간부 몇 사람과 다른 부서원들이 그 작업을 지켜보기 위해 현장에 나갔다. 승용차며 트럭들 도 거기에 많이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전봇대 위에 달랑 매달려 있는 두 삶을 지켜보았 다. 주변을 돌아보다가 우드코크는 길 위쪽에 어떤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그 광경을 찍기 시작했다. 전기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유난히 여론에 신경을 쓰는 법인데, 우드코크는 그 카메라 맨 에게 그 광경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즉, 두 사람이 해도 될 일에 열댓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둘러서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우 드코크는 길 위쪽에 있는 카메라 맨에게로 다가갔다. "당신은 우리 일에 관심이 있으신가 보군요?" "네. 우리 어머니께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실 겁니다. 어머니는 귀사에 주식 투자를 하셨는 데 아마 이 광경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일 테니까요. 어머니는 아마도 투자를 잘못 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전 우리 어머니에게 몇 년을 두고 당신네 같은 회사에서는 쓸데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고 말씀드려 왔는데 이제 그 증거가 생긴 셈입니다. 신문도 이런 사진을 보면 반가워할 테구요."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요. 나부터도 당신의 입장이라면 똑같은 행동을 했을 테니까요. 하지 만 이번에는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그러면서 딘 우드코크는 어떻게 해서 이 일이 자기 부서에서의 첫 번째 작업이 되었으며 또 경영진이나 말단 사원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일 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계속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보통 때 같으면 두 사람이 충분히 감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그에게 주지시켰다. 카메라를 찍던 그 사람은 카메라를 치우고 우드코 크와 악수를 하면서 그 상황을 설명해 줬음을 감사해 했고 우드코크는 곤혹스러운 경우를 모면하게 되었다. 우리 강좌에 나왔던 또 다른 사람으로 뉴 햄프셔 주 리틀톤에서 사는 제랄드윈은 우호적인 방법을 통하여 어떤 손해 배상 클레임을 대단히 만족스럽게 해결했던 경험담을 들려 주었 다. "이른 봄날, 겨울 내내 꽁꽁 얼어붙은 땅이 채 녹기도 전에 보기 드문 폭우가 쏟아지는 바 람에 여느 때 같으면 길 양 옆의 배수구나 도량으로 흘러들었을 물이 제가 막 지어 놓은 지 터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더 이상 흐를 수가 없자 집의 토대 주변에 수압이 가중되었고 물은 시멘트로 된 지하실 바 닥 밑으로 스며들어 바닥이 갈라지면서 지하실이 물로 가득 찼습니다. 이로 인해서 벽난로 와 온수기가 망가져 수리비가 2천 달러 이상이 되었는데 이런 손해에 대해서는 보험도 들어 놓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청업자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배수관을 집 근처에 설비하지 않았 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만날 약속을 하고 그 사람의 사무실 로 25마일을 달려가는 동안 그 상황을 조심스럽게 검토하면서 이 강좌에서 배웠던 원칙들을 되새기며 화를 내봐야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자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 하청업자가 최근에 서인도 군도에서 보낸 휴가에 대해서 물어보기 시 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알맞은 때가 왔다고 느꼈을 때 나는 물 때문에 빚어진 '대수롭지 않은 손해'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청업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자기 책임을 다 하기로 바로 동의했습니다. 며칠 후 하청업자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 복구공사를 자기가 해 주겠다며 앞으로 그런 일 이 재발하지 않도록 배수관을 설비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하청업자의 잘못이긴 했지만 만일 내가 우호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그 손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맡게 하는 일에 훨씬 큰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입니다." 여러 해 전, 내가 미주리 주 서북부의 한 시골 학교까지 나무숲 사이를 맨발로 통학하던 어 느 날, 해와 바람에 대한 동화를 읽은적이 있다. 둘이서 누가 더 힘이 센지 서로 말다툼을 벌였는데 바람이 말하기를, "내가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줄 테야. 저 밑에 코트를 입은 노인이 있지? 내가 너보다 빨리 저 노인의 옷을 벗길 수 있어."라고 했다. 그래서 해는 구름 뒤에 숨었고, 바람은 거의 폭풍이 될 지경까지 불어댔으나 바람이 세면 세어질수록 그 노인 은 외투를 더 꼭 움켜 잡았다. 마침내 바람은 포기했다. 해가 구름 뒤편에서 나와 그 노인에 게 다정한 미소를 보냈다. 그러나 그 노인은 금방 땀을 닦으면서 외투를 벗었다. 해는 "부드 러움과 다정함이 화를 내거나 강압적인 것보다 언제나 더 힘이 세다"고 바람에게 말했다. 꿀 한 방울이 쓸개즙 한통보다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는 사실을 터득한 사람들은 점잖고 우 호적인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매일 실증해 보여준다. 메릴랜드 주 루터빌에 사는 게일 코너는 구입한지 4개월 된 자신이 승용차를 세번째 보증수 리 받으러 갔을 때, 이것을 증명해 보였다. 게일은 우리 강좌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 "조목 조목 따지거나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서비스 담당 책임자에게 이야기해 봐야 문제 해 결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나는 차를 샀던 대리점의 쇼룸에 가서 대리점 사장인 화이트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잠 시 후에 나는 화이트의 사무실로 안내되었습니다. 나는 내 소개를 한 후 그의 대리점에서 자동차를 구입했던 친구들의 권유로 내가 그 곳에서 차를 구입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친구 들의 말을 빌리면, 이 대리점 가격이 아주 저렴할 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단연 뛰어나다고 하자 사장은 내 말을 듣고 만족스런 미소를 짓더군요. 이윽고 나는 그 대리점의 서비스 담 당부에서 내가 당한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의 훌륭한 명성에 흠이 될 상황 에 대해 사전에 알고 싶어하실 것 같아서 이야기 드립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사장 은 이런 문제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사장은 내 문제 해결에 몸소 발벗고 나섰을 뿐만 아니라 내 차를 수리할 동안 타고 다니라며 자기 차를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솝은 크리서스 궁에 살던 그리이스의 노예였는데, 기원전 600년에 불멸의 우화들을 썼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솝의 진리는 36세기 전에 아테네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보 스톤이나 버밍햄에서도 여전히 진리로 남아 있다. 해님은 바람보다 빨리 당신의 옷을 벌길 수가 있다. 또한 친절과 우호적인 방법은 이 세상의 온갖 공갈 협박보다 더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다. 링컨이 한 말을 명심하라. "한 방울의 꿀이 한 통의 쓸개즙보다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 원칙 4 우호적인 태도로 말을 시작하라. Being in a friendly way 5 소크라테스의 비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당신이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먼저 논의 하지 말아라. 당신은 동의하는 것에 대해서 말을 시작하고 계속 그것을 강조하라. 가능하다 면 당신과 상대방이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으며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방법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처음부터 "네, 네"라고 말하게 하고 "아니오"라는 말을 가능한 한 하지 않도록 하라. 오버스트리트 교수에 의하면 "아니오"라는 반응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 요인인 것이 다. 일단 "아니오"라고 말해 버리면 자존심 때문에 그 말을 계속 고집할 수밖에 없다. 나중 에 가서 "아니오"라고 대답한 것이 현명치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럴 때라도 자 존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한마디하고 나면 자기가 한 말을 고집해야겠다는 생각 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을 시작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노련한 연사는 시작부터 "네"라는 반응을 여러 번 이끌어낸다. 이것은 청중의 심리 상태를 긍정적 인 방향으로 유도해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당구공의 움직임과도 같은 것이다. 당구공 을 어느 한 방향으로 쳐보라. 구르는 공의 방향을 바꾸려면 많은 힘이 필요하며 반대 방향 으로 보내는 데에는 훨씬 더 큰 힘이 필요하다. 여기에서의 심리적인 패턴은 아주 분명하다. 사람이 진심으로 "아니오"라고 말하게 되면 실은 그 말 한 마디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행위를 하는 셈이 된다. 인체의 모든 기관, 즉, 편도선, 신경, 근육 등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거부 상태를 빚어낸다. 대개는 미미한 정도 이지만 때로는 눈에 띌 정도로 심각하게 육체의 거부 현상이 일어난다. 즉 신경과 근육의 전 조직이 거부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네, 그래요"라고 말할 때는 그와 같은 위축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의 신체 기관은 전향적이고 수용 적이며 개방적인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네, 그래요"라는 대답을 많이 유도해 내 면 낼수록 궁극적인 제안 사항에 대해 상대방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 다. 이 "네, 네"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은 아주 간단한 테크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처음부터 상대방의 적의를 야기시키는 것이 자기 스스로의 중요감을 느끼는 첩경이라고 생 각하는 것 같다. 학생은 두발 할 것도 없고 고객이나 어린이, 자기 남편이나 아내로 하여금 "아니오"라고 말 하게 해보라. 이 거센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려면 천사와 같은 지혜와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뉴욕 시에 있는 그리니치 세이빙즈 은행의 제임스 에버슨은 이러한 "네, 네" 테크닉을 사용 하여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고객 한 사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에버슨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구좌를 개설하려고 왔을 때 늘 사용하는 양식을 주면서 적으라고 했습니다. 몇 가지 내용은 부담 없이 썼으나 몇 가지에 대해서는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인간 관계를 공부하기 전 같았으면 저는 아마 그 사람에게 양식을 써주지 않으면 구좌개설 을 거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을 겁니다. 사실 이전에는 그렇게 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잘라 말하면 두말 할 것도 없이 기분이야 괜찮죠. 누가 주인인지 알려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은행이 규칙이나 규정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힌 셈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태도는 우리 은행의 고객이 되려고 온 손님에게는 불쾌감을 주었을 겁니다. 그 날에는 상식을 동원해 보기로 저는 작정했습니다. 은행이 원하는 바를 말할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로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고객으로 하여금 처음부터 '네, 네'라고 말하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 사람이 적기를 거부하는 그 사항은 은행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하지만, 만일 손님께서 이 구좌를 갖고 계신 채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법정 상속 인에게 이 구좌를 이체시켜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네, 그래요'라고 말하더군요. 나는 계속해서 '손님 사망시에 상속받은 사람을 알려 주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손님의 희망사항을 틀리거나 지체함 없이 시행해 드릴 테니까요'라고 말했고 그는 다시 '네' 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이런 정보를 요구하는 이유가 은행의 편의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는 데 있음을 알게 되자 그 때부터 태도가 누그러졌습니다. 그는 은행을 나서기 전에 자신에 관한 모든 사실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제 권유에 따라서 자기의 어머니를 수혜자로 지정하면서 신탁구좌를 개설했으며 자기 어머니에 관한 질문에도 기꺼이 응답해 주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제가 발견한 것은 처음부터 그 사람이 '네, 네'라고 대답하도록 했더니 그 사람은 문제가 된 부분은 잊어버린 채 저의 제안에 모두 기꺼이 응했다는 사실입니다." 웨스팅 하우스의 판매 책임자인 조셉 앨리슨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담당하던 구역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이 사람에게 상품을 팔려고 몹시 안달했습니다. 저의 선임자는 10년 동안이나 그 사람을 쫓아다녔지만 단 한 상품도 팔 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 구역을 맡은 후 저도 3년 동안 그를 찾아다녀 봤지만 한 것도 주문 받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13년 동안 방문을 거듭한 끝에 우리는 그 사람에게 모터를 몇 대 팔았습니다. 만일 이 코너의 성능이 입증된다면 아마 수백 대의 주문을 따낼 수 있을 것이 라고 저는 기대를 했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알았기 때문에 3주일 후 자신만만하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석 엔지니어가 저에게 인사를 하면서 '앨리슨, 나머지 모터는 당신에게서 살 수가 없게 되었고'라고 쇼킹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며 '도대체 왜죠?'하고 물 었습니다. 그는 '당신에게서 구입한 모터들은 너무 열이 심해 손을 댈 수가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논쟁을 해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네, 네' 대답을 유도해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네, 스미스 저도 백 퍼센트 동감입니다. 우리 모터가 너무 가열된다면 그런 모터를 구입하 시면 안 되겠죠. 전국 전기 제조업협회에서 정한 표준치 이상으로 가열되는 모터는 구입하 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엔지니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최초의 '네'를 얻어낸 것입니다. '협회의 규격으로는 모터의 온도가 실내 온도보다 화씨 72도까지 높아지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요?' '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맞습니다. 그런데 당신네 모터는 그보다 훨씬 더 뜨겁단 말이요.' 저는 논쟁을 하지 않고서 '공장 실내온도는 몇 도나 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아마 화씨 75도쯤 될 겁니다'하고 엔지니어가 대답했습니다. '공장 실내온도가 화씨 75도에 72도를 더하면 화씨 147도가 되겠군요 화씨 147동인 수도꼭 지에 손을 대고 있으며 손을 데지 않을까요?'하고 묻자, 엔지니어는 또 다시 '네'하고 대답했 습니다. '그렇다면 그 모터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소'라고 엔지니어도 동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잠시 이것 저것 이야기 를 나눈 다음, 엔지니어는 자기 비서를 부르더니 약 3만 5천 달러에 해당하는 상품을 주문 했습니다." "말다툼을 해보았자 소용없는 일이고 상대방의 관점에 서서 사태를 파악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네, 그래요'라고 말하게 하는 일이 사업하는 데 있어서는 훨씬 이롭고 동시에 재미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저는 말할 수 없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허비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 있는 우리 강좌의 스폰서인 에디 스노우는 어떤 가게 주인이 그 로 하여금 "네, 네"락 말을 하게 하는 바람에 그 집의 단골이 되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에디는 활사냥에 흥미를 갖게 되어 활가게에서 장비를 구입하는 데 상당한 돈을 썼다. 그의 동생이 집에 놀러 왔을 때 에디는 동생을 위하여 가게에서 활을 빌리려고 했다. 가게의 점 원은 그 가게에서는 활을 빌려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에디는 다른 활 가게에 전화 를 걸었다. "목소리가 아주 상냥한 사람이 전화를 받더군요. 활 대여에 관한 문의에 대해서 그가 보인 반응은 그 전 가게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그는 정말 유감이지만 형편상 활을 대여해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보고 전에 대여해 간 적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네, 하지만 몇 년 전이었죠'라고 나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마 그 때 25달러 내 지는 30달러를 지불했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나는 '네'라고 대답했죠. 그리고 나서 그는 나보 고 돈을 아끼고 싶지 않으냐고 묻더군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모든 필요한 장치가 전부 갖춰진 34달러 95센트짜리 활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나는 대여받는 값에 $4.95만 더 지불하면 완전한 한 세트를 살수가 있었죠. 그는 이러한 이 유 때문에 더 이상 대여를 안 한다고 나에게 설명해 주더군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 했느냐고요? 물론입니다. 나는 즉시, '네, 그래요'라는 반응을 보였고 그 가게에 가서 활 세트를 구입했을 뿐만 아니라 몇 가지를 더 구입하고 그 후부터는 그 가게에 단골이 되었습니다. '아테네의 천덕꾸러기'인 소크라테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전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두 세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해냈다. 즉 소크 라테스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은 지 24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변덕 많은 세상을 바꾸어 놓은 가장 지혜로운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숭상되어 오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했던가? 천만 의 말씀이다. 소크라테스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소크라테스는 너무나도 노 련한 사람이었다. 오늘날 '소크라테스 방법론'이라고 불리는 그의 방법은 "네, 네" 반응을 유 도해 내는 데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동의하 지 않을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했다. 그리고는 한 가지씩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 나갔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이 불과 몇 분전만 해도 기를 쓰고 반대했을 어떤 결론을, 상대방이 미 처 깨닫기도 저에 스스로 수용할 때까지 계속 질문했다. 그러므로 이 다음에 우리가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을 때는 소크라테스를 기억하고 부 드러운 질문, 즉 "네, 네"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질문을 하도록 하자. 중국인들은 지혜가 풍부한 동양의 옛 격언을 알고 있다. "부드럽게 걷는 사람이 멀리 간다." 중국인들은 인간성을 연구하는 일에 무려 5천 년을 보냈으며. 이로써 중국문화가 이루어졌 고 많은 지혜를 축적했던 것이다. "부드럽게 걷는 사람이 멀리 간다." 원칙 5 상대방이 당신의 말에 즉각 "네, 네"라고 대답하게 하라. Get the other person saying "yes, yes" immediately 6 불만을 해소시키는 안전 밸브 상대를 설득하려고 자기만 수다스럽게 떠드는 사람이 많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야기하 게 만들어라. 그들의 일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그들이 당신보다 더 많이 안다. 그러니 질문 을 해라. 그들에게 몇 마디 말하도록 하라. 그들과 의견이 다를 때는 중간에 말참견을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 지 말라. 위험한 일이다. 그들에게는 할 말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 관심을 줄 리 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활짝 열고 끈기 있게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진지하게 들어라.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라. 이런 방법이 과연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까?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한 판매책임자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하 겠다.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 중 하나가 차 시트용 직물을 1년치 주문하기 위해서 협상을 벌이 고 있었다. 세 개의 큰 메이커가 견본을 제출했다. 이 직물들이 자동차 회사의 중역의 검사를 거친 후에 지정한 날에 회사에 나오도록 되어 있 었다. 이 공장들 중 하나의 대표로 나온 G씨는 심한 후두염을 앓은 채 그곳에 도착했다. 우 리 강좌에 나와서 G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 차례가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더군요.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의가 열리는 방으로 안내되어 나는 직물담당 엔지니어, 구매담당 에이전트, 영업부장, 그리고 그 회사의 사장 등과 얼굴을 마주 보고 서게 되었습니다. 나는 똑바로 선 채 말을 해 보려고 무척 애를 썼으나 목소리가 쉬어서 말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테이블 주의에 모두 앉아 있어서 나는 종이에 '여러분, 목소리가 안 나와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내가 당신 대신 말해 드리지요'하고 나서더니 내가 가져간 샘플을 꺼내 보이 면서 그것에 대한 장점들을 말했습니다. 그 제품의 장점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더군요. 그리고 내 대신 말을 해 준 그 사장님은, 토론에서 내가 취할 역할을 맡아서 해 주었습니다. 내가 한 일이라곤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제스처를 몇 번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 재미난 모임으로 나는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가지 내가 받은 주문 중 가장 큰 것으로서 50만 야드 이상의 직물을 총액으로 약 160만 불이나 팔게 되었습니다. 목소리가 쉬지 않았더라면 그 계약을 놓쳤을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주문에 대해 전적으 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하면 때로는 큰 이득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나는 우연히 발견한 셈입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는 일은 사업상일 뿐만 아니라 가정생활에도 도움을 준 다. 바바라 윌슨 부인과 그녀의 딸 로리는 서로 대단히 좋지 않은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한때 는 조용하고 싹싹한 성품을 지녔던 로리는 점점 더 사람들과 비협조적이며 때로는 도전적인 십대로 변했다. 윌슨 부인은 그 아이에게 훈계도 해보고, 위협도 하고 벌을 주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윌슨 부인은 우리 강좌에 나와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나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로리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그녀에게 맡긴 집안 일도 하지 않고 친구를 만나러 나가 버렸습니다. 그 애가 돌아왔을 때 나는 전에 수천 번이나 했 던 것처럼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그럴 기운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그 애를 물끄러미 쳐다보 면서 '로리야, 도대체 너 왜 그러니?'라고 슬프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로리가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정말 알고 싶으세요?'하더군요. 내 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리는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하다가 말을 다 털어놓더군요. 나는 그전 에는 그 애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본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항상 이거해라 저거해라는 등 이 잔소리만 늘어놓았죠. 그 애가 자기의 생각, 감정, 느낌을 말하려고 하면 나는 그 애의 말을 가로막고 더 많은 잔소리를 퍼부었습니다. 나는 로리가 나로부터 혼란스런 일들에 대 해서 의논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허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동안 나는 그 애의 말에 귀를 기우였어야 할 때조차도 내 말만 늘어 놓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들어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딸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 애도 자기 마 음속에 있던 말을 함으로써 우리 모녀 사이는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야는 다시 다른 사람들 과 잘 어울리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뉴욕의 어느 신문의 경제란에 비범한 능력과 경험을 갖춘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광고가 크게 실렸다. 찰스 큐벨리스는 이 광고를 보고 서신을 보냈다 며칠 후 그 곳에서 인터뷰하자는 편지가 와서 그 곳으로 가기 전에 큐벨리스는 월 스트리트에 가서 그 회사를 창립한 사람에 대해서 가능한한 많은 조사를 했다. 인터뷰를 할 때 큐벨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귀사와 같 이 훌륭한 역사를 가진 회사를 알게 되어 영광입니다. 귀하께서는 28년 전에 책상 한 개와 속기사 한 명으로 이 사업을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초창기에 겪었던 어려움을 돌이켜보기를 좋아한다. 이 창업주 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단돈 4백 50달러와 독창적인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 하 여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일요일, 공휴일도 없이 하 루에 열 두 시간 내지 열여섯 시간 동안 일하면서 실의와 조롱을 어떻게 이기고, 결국 모든 역경을 극복한 끝에 오늘날 윌 스크리트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그에게 정보와 자문을 구하러 오게 된 경위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는 그러한 내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었으며 굉장히 흐뭇한 기 분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큐벨리스의 경력을 간단히 묻더니 부사장 한 사 람을 불러서 "이 분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사람인 것 같소"라고 말했다. 큐벨리스는 장차 자기의 고용주가 될 사람의 업적을 알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이다. 큐벨리 스는 상대방과 그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부분의 말을 하게 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호감을 샀던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세크라멘토에 거주하는 로이브래들리는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를 당했다. 자 기 회사의 영업직을 원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그는 잠자코 들어주었다. 로이는 이렇게 말 했다. "우리 회사는 규모가 작은 중개인 회사이므로 입원이나 의료보험, 그리고 연금 등의 혜택이 없었습니다. 각 책임자는 독자자적으로 대리점을 운영합니다. 규모가 큰 경쟁 회사와는 달리 고객을 위한 광고를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안내장조차 없는 형편입니다. 리처드 프라이어는 우리가 원하던 타입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내 부하 직원이 제일 먼저 그를 면담하면서, 이 직업에 따르는 모든 부정적인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프라 이어가 내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는 약간 실망하는 기색이 엿보였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일 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을 그에게 한 가지 말해 주었는데, 그것은 그가 독자적인 영업을 하므로 사실상 자영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점에 대해 말하는 동안, 그는 처음 면담하러 내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을 차츰 떨쳐 버리더군요. 몇 번인가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을 가 다듬는 것 같았어요. 때때로 그의 생각에 덧붙여 내가 몇 마디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으 나 면담이 끝날 즈음에 그는 우리 회사에 일하고 싶을 확신을 가진 jt 같았습니다. 는 프라이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있도록 가만히 듣고만 있었기 때문에 그는 마 음속으로 입사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는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그를 채용했고, 우리 회사에는 뛰어난 인물이 되었습니 다." 심지어 우리의 친구들까지도 우리가 하는 자랑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는 자기들이 해낸 일 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라 로슈푸코는 "만일 당신이 적을 원한다면 친구를 능가하라. 그러나 친 구를 원한다면, 그라 당신을 능가할 수 있도록 해주라"고 말했다. 왜 이 말은 옳은 말일까? 친구가 우리를 능가할 때 그들은 중요감을 느끼지만 우리가 그들 을 능가하면 그들은 - 혹은 그 중 적어도 몇 명은 -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뉴욕시의 미드타운 직업 소개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카운슬러는 단연코 헨리에타 G.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헨리에타가 직업 소개소에서 일하게 된 청음 몇 달 동안 그녀에게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었다. 왜? 헨리에타는 자기가 한 소개. 새로운 고객과 의 거래, 성취한 일에 대해서 매일 자랑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잘했고 이것을 자랑스 럽게 여겼습니다." 헨리에타는 우리 강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동료들은 저와 함께 기뻐하는 대신에 비난을 하는 것 같더군요. 나는 그들에게 사 랑 받기를 원했고 진심으로 그들이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강좌에서 몇몇 제안을 배운 후, 나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덜 하고 대신 동료들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자랑할 것이 많이 있었고, 그들은 내 자랑을 듣는 것 보다는 자신들이 이룬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이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그들이 기뻤던 일을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하며 그들이 원할 때에만 나의 성취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원칙 6 상대방으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라. Let the other person do a great deal of the talking 7 협력을 얻어내는 방법 타인에 의해서 강요된 의견보다는 스스로 생각해낸 의견을 우리는 더 신뢰하고 있다. 그 렇다면 당신의 의견을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 아닐까? 제안 을 해서 상대방이 스스로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필라델피아에 사는 아돌프 셀츠는 어느 자동차 쇼룸의 영업부장으로 우리 강좌에 참가한 적 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실의와 혼란에 빠진 세일즈맨들에게 의욕을 되찾게 해줄 필요 성을 깨달았다. 그는 회의를 소집하여 그들이 그에게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해줄 것을 요 청했고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칠판에 적었다. 그리고 나서 셀츠는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내가 여러분들에게 서 기대할 권리가 있는 것을 말해주기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대답은 즉시 쏟아졌다. 즉 충 성, 정직, 솔선수범, 낙관주의, 팀웍, 하루 8시간 동안 열성적인 근무 등이었다. 회의는 그들 에게 새로운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어떤 세일즈맨은 하루에 14시간 동안 근무하겠노라고 자청했다. 그리고 나서 셀츠는 영업 실적이 현저하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들이 나와 일종의 도덕적인 거래를 한 셈이죠. 내가 맡은 부분을 실천하였으므로 그들도 결심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요구사항과 희망사항을 놓고 서로 의논한 것은 그들에게 는 마치 필요한 주사를 한 대 맞는 것과 같았습니다." 억지로 뭔가를 산다거나, 무슨 일을 하라고 명령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 무도 없다. 우리 자신의 뜻에 따라 물건을 사거나 혹은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한다고 느끼기를 우리는 더 좋아한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 욕구, 생각에 관해서 누가 물어주기를 좋아한다. 유진 웨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웨슨은 이 진리를 터득하기 전에는 수천 달러의 손해를 보았었다. 웨슨은 스타일리스트와 직물업자들을 위한 스튜디오 디자인을 팔았었다. 웨슨은 뉴욕의 어느 유명한 스타일리스트를 3년 동안 한 주일도 거르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방 문했다. "그는 나를 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디자인을 사준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내가 그려간 스케치를 자세히 보고는 '안되겠네, 웨슨. 오늘도 안되겠는걸'하고 말했습 니다." 1백 50번씩이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웨슨은 자기의 생각이 틀에 박혀 있음이 틀림없 다고 단정 짓고, 일주일에 한 번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 을 연구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또 새로운 의욕을 되찾아 보려는 결심을 하였다. 웨슨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작정하고 미완성인 스케치 몇 점을 가지고 고객의 사 무실로 찾아갔다. "저에게 호의를 좀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여기 미완성 스케치 몇 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당 신이 원하시는 대로 완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하고 웨슨은 말했다. 그러자 그 고객은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스케치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며칠간 나한테 맡 겨 놓게. 웨슨. 그리고 나중에 나를 다시 찾아오게나"라고 고객이 말했다. 사흘 후, 웨슨은 그를 찾아가서 그가 원하는 제안을 받아 스튜디오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는 그 고객의 아이디어에 따라 스케치를 완성시켰다.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 두말할 것 없 이 전부 팔게 되었다. 그 후에도 이 고객은 다른 스케치 몇 점을 웨슨에게 주문했는데 모두 고객의 아이디어로 그 려진 작품들이었다. 웨슨은 이렇게 덧붙였다. "몇 년 동안 왜 한 점도 그에게 팔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져야만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스케치를 사라고만 권유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내 방법을 완전히 바 꾸어서 그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디자인을 강조한다는 느낌이 들게 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팔지 않았습니다. 그가 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는 일은 비즈니스와 정치에 도움이 될 뿐만이 아니라 가정 생활에서도 도움이 된다. 오클라호마의 툴사에 살고 있는 폴 데이비 스는 우리 강좌에 나와서 어떻게 그가 이 방법을 사용했었는가에 대해서 말했다. "우리 가족과 나는 지금까지의 휴가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휴가 여행을 즐겼습니다 .나는 케티스버그의 남북전쟁 격전지,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관, 우리 나라의 수도와 같은 사적지 를 방문해 보기를 오랫동안 꿈꾸어 왔습니다. 포지 계곡, 제임스 타운, 그리고 윌리암즈버그 의 식민지 촌락 등이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3월에 아내 낸시가 여름 휴가에 대한 멋진 생각이 있다면서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와 네바다 등 서부 지역의 여러 주들을 여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몇 년 동안 이 여 행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 지역을 여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딸 아이인 앤은 중학교에서 미국 역사 강의를 들었는데, 그 애는 미국의 발전 배경을 이룬 여러 사건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애에게 다음번 휴가 때에는 학교에서 배운 곳을 찾아 가보지 않겠느냐고 내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앤은 그러고 시다고 대답하더군요. 이틀이 지난 다음 식구들이 저녁 식사를 하려고 식탁에 모여 있을 때, 낸시는 우리 모두가 찬성한다면 여름 휴가를 동부 지역에t 보내게 되면 그것은 앤에게 멋진 여행이 될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는 무척 신나는 일이 될 것라고 말하자 모두 찬성했습니다." X광선 제조업자 한 사람은 이와 같은 심리를 이용하여 부르클린에서 가장 큰 병원에 자기 회사의 장비를 팔았다. 이 병원은 시설확충을 하여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X선과를 운영할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X선과의 책임자인 L박사는 자기 회사에서 만든 장비에 대해 칭찬만 늘어 놓는 세일즈맨들 에게 기가 질렸다. 그런 좀더 현명한 제조업자가 있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일에 다른 사람보다 월등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폐사에서는 최근에 새로운 X선 장비를 제작 완료했습니다. 마침 첫 제품이 제 사무실에 막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에 좀더 개량해서 더 좋은 제품으로 만들기 를 원합니다. 박사님께서 시간을 내어 주셔서 장비를 한번 살펴보아 주시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전문전인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 고견을 주시면 다시없는 영광이겠습니다 시간만 정해 주시면 제 차를 언제든지 보내드리겠습니다. L박사는 우리 강좌에 나와서 그 때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편지를 받고 깜짝 놀랐습 니다. 놀랍기도 하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X광선 제조업자가 나한테 충고를 구한 적이 한번 도 없었으니까요.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주인 동안 계속 바빴지만 그 장비를 살펴보기 위해 저녁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장비를 이리저리 살펴볼수록 내 마음 에 들더군요." "나에게 그 물건을 팔려고 노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병원을 위해서 그 장비를 구 입하는 일이 내 아이디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나는 장비의 우수성에 반해서 그것을 설치 해 달라고 병원측에 말했습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그의 에세이 <자기 신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천재의 작 품 속에서 우리가 거부했던 생각들은 보게 되는데, 그 생각들은 어떤 위엄을 갖춘 채 우리 에게 다시 돌아온다." 에드워드 하우스 대령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 재임 중 국내 및 국제 문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윌슨 대통령은 다른 각료들보다 하우스 대령에게 더 많은 자문을 구하고 있었다. 대령은 어 떤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다행히 대령은 아이더 D. 스미스에게 숨김없이 이야기했고 스미스는 <세터데이 이브닝 포 스트>지에 그 이야기를 쓰고 있다. 하우스는 "저는 대통령을 알게 된 후 어떤 아이디어를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대통령의 마음속에 이것을 자연스럽게 심어 주는 것으로, 그것은 대통령에게 어떤 관 심을 갖게 하려 함이 아니라 대통령께서 나름대로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 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러한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러한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악관으로 대통령을 찾아가서 저는 대통령께서 반 대하시는 어떤 정책에 대해 건의드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저녁 식탁에서 대통령께서는 제가 건의한 제안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자 랑스럽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우스가 대통령의 말을 가로막으며, "그것은 대통령의 생각이 아니고 제 생각이었습니다" 라고 말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하우스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명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오직 결과만을 원했다. 그래서 윌슨 대통령 으로 하여금 마치 그것이 자신의 아이디어라는 느낌이 들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하우스는 아주 훌륭한 일을 해냈다. 즉 윌슨 대통령이 이 아이디어로 인해 공신력을 얻도록 해 주었 던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우드로 윌슨 대통령과 같다는 것을 명심하고 하우 스 대령의 테크닉을 한번 사용해 보자. 캐나다 뉴 브룬즈윅 지방의 경치가 아름다운 구역에 사는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이 테크닉을 사용하여 나를 그의 단골로 만들었다 그 때 나는 뉴 브룬즈윅에 낚시질이나 하면서 카누를 타볼 계획을 세우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관관성에 안내 요청 편지를 보냈다. 내 이름과 주소가 우편 목록 명단에 들어 있음이 분명했는데 왜냐하면 여러 곳의 캠프와 안내원들이 보낸 편지와 책자, 그리고 추천장들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것을 선택해야 좋을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어떤 캠프장 주인은 현명한 일을 했다. 그는 자기 캠프에서 묵어간 뉴욕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나에게 알 려주고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본후, 자기가 제공할 편의를 고객 스스로 선택하라고 권했다. 그 명단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음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캠프 에서 어떻게 보냈는가를 알아본 후 내가 도착할 날짜를 알리는 전보를 캠프로 쳤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떤 서비스를 하겠다는 등의 말만 늘어 놓으려 했지만 그 중 한사람은 내가 직접 선택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 방법이 효과를 거둔 셈이다. 2500여년 전에 중국 의 현자 노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오늘날 꼭 명심해야 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산에서 흐르는 시냇물이 강과 바닷물에 충성을 다 바치는 이유는 강과 바닷물이 시냇물 아 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모든 시냇물을 지배할 수 있는 법이다. 다른 사람의 위에 있고 자 하는 사람은 그 아래에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 앞에 서고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 뒤에 서야 하는 법이니라. 그리하면 위에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앞에 있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원칙 7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아이디어가 바로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라. Let the other person feel that idea is his or 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