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발 지은이:크리스티 브라운 옮긴이:최승자 차례 제1장. 글자 A 제2장. 어--머--니 제3장. 집 제4장. 헨리 제5장. 카트리오나 델라헌트 제6장. 화가 제7장. 연민의 시선 제8장. 감옥의 벽 제9장. 루르드 제10장. 어머니가 지은 집 제11장.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제12장. 그랬었더라면 제13장. 펜 제14장. 연민이 아닌 긍지 제15장. 상투적인 문구와 시이저 제16장. 그녀에게 붉은 장미를 지은이 소개 이 책의 저자 크리스티 브라운은 1932년 6월 에이레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심한 뇌성마비 증세를 보여 식물인간과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의지가 강한 어머니와 여의사 아일린 콜리스. 주위사람들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내면에 잠재한 천재성을 발휘하여 화가로서, 시인으로서, 베스트셀러 소설가로서 명성을 드높였다. 그의 나이 27세에 한 자선 모금 파티에서 메리카를 만나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1981년 어느 날 저녁 식사 중에 음식이 식도에 걸려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으로는 "DOWN ALL THE DAYS" "A SHADOW ON SUMMER" "COME SOFETY TO MY WAKE" "BACKGROUND MUSIC" "MY LEFT FOOT"등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자서전인 "MY LEFT FOOT"를 우리말로 옮긴 작품으로 그의 특별한 삶의 열정과 삶의 인식이 가득찬 생의 노트이다. 머리말 "육체이자 정신이었던 지상의 발 하나" 태양이 뜨겁던 여름 어느 날 모선배로부터 시나리오 한 편을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것을 읽어 내려가던 중 원작을 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10월쯤 원서는 쥐어졌고 고통스러운 한 예술가의 자화상을 좇기 시작하였다. 천형을 이겨내는 장애자의 진실로 가득 찬 생애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펜을 놓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크리스티 브라운의 특별한 삶의 열정과 삶의 인식을, 그의 아름다운 왼발자국을 따라 그저 따라가보기로 하자. 육체이자 정신이었던 지상의 발 하나. 우리 몸이 한 군데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해도 우리의 온 인생이 불편해진다. 하물며 모든 기관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단 하나 왼발만을, 그것도 오랜 훈련을 통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불구자의 삶이란 얼마나 아프고, 불편한 삶이었겠는가. 선천성 뇌성마비라는 천형을 짊어지고 태어났던 크리스티 브라운에게 만일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다는 예술적 충동, 예술에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그의 삶에의 의지 또한 쉽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티 브라운은 이 자서전에서 왼발 하나로 밟고 걸어간 삶, 왼발 하나로 꽃피운 예술의 지극한 아픔과 슬픔을 그러나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아픔과 슬픔을 예술을 통해 이미 정화시킨 자의 담담함이다. 육체이자 정신이었던 지상의 왼발 하나. 그 왼발 하나로 써내려간 인간의 역사. 그 왼발 하나로 밟고 걸어간 아름다운 족적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더 이상의 말은 군더더기이리라.... 1990. 12. 최승자 제1장. 글자 A 나는 1932년 6월 5일, 로턴다 병원에서 태어났다. 내 앞에 아홉 아이가 있었고 내 뒤에 열둘이 있었고, 그러니까 나는 중간층에 속한다. 모두 합쳐 스물두 명이 되는 아이들 중에서 열일곱 명이 살았고, 그 중에서 네 명은 어려서 죽었으며 열세 명이 남아 아직도 가문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경우는 힘든 출산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들 둘 다 죽을 뻔했다. 한 무리의 친척들 전부가 늦은 새벽시간까지 병원 밖에서 늘어서서 소식을 기다리며, 그것이 좋은 소식이 되기를 열렬하게 기도했다. 나를 낳은 뒤 어머니는 몇 주일 동안 몸을 회복하도록 다른 곳으로 보내졌고, 어머니가 떠나 있는 동안 나는 병원에 맡겨졌다. 나는 이름도 없는 채로--내가 세례를 받은 것은 나를 교회에 데려갈 만큼 어머니의 몸이 회복된 후였기 때문이다--얼마 동안 병원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게 뭔가 잘못된 게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안 사람은 나의 어머니였다. 내가 태어난 지 네 달 가량 되었을 때였다. 어머니는 무엇을 먹이려고 할 때마다 내 머리가 뒤로 축 쳐지는 버릇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머니는 내 목뒤를 자기 손으로 받쳐 목이 쳐지지 않게 함으로써 그것을 고쳐보려 했다. 그러나 손을 도로 떼면, 내 고개는 이내 푹 꺾이곤 했다. 그것이 첫번째 경고 신호였다. 그런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머니는 다른 결함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의 두 손이 항상 꽉 움켜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내 입은 젖병 꼭지를 물지도 못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인데도 어머니가 내 입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악물고 있지 않으면, 갑자기 턱의 힘이 빠지고 느슨해지면서 입 전체가 한쪽으로 쏠려버리기 때문이었다. 여섯 달 되었을 때 나는 주위에 베개들을 잔뜩 쌓아놓지 않고서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열두 달이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이야기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의술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나를 여러 병원들과 진료실들로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내가 한 살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양친은 내게 뭔가 분명히 이상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병명도 알 수 없었지만, 그러나 아주 현실적인 것이고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었다. 나를 검진한 거의 모든 의사들이 내게, 아주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러나 가망 없는 환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많은 의사들이 내가 정신박약아이며 평생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내 어머니에게 아주 부드럽게 알려줬다. 그것은 건강한 자식을 벌써 다섯 명이나 길렀던 젊은 어머니에게는 거센 일격이었다. 나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이 거의 오만함으로 보일 정도로까지 의사들은 자기들 생각을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어머니에게 장담했다. 내가 치료 불가능이며, 구제불능이며, 심지어 희망을 가질 수조차 없다는 사실, 그 피할 수 없는 사실--그 당시엔 그렇게 보였다--을 어머니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의사들이 얘기해준 대로 내가 백치라는 것을 어머니는 믿을 수 없었고,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내 육체가 불구라 하더라도 내 정신은 불구가 아니라는 자신의 확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아주 하잘것없는 증거 하나라도 그녀는 놓치지 않고 붙들었다. 모든 의사들과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그녀가 그 이유를 알고 있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아주 작은 의심도 느끼지 않은 채 어머니는 그냥 알고 있었을 뿐이다. 나에게 믿음을 두지 말라고, 즉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보다는 나를 그저 먹여주고 씻어주고 그런 다음 도로 치워두는 어떤 것으로 보라는 얘기 외에는 의사들이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어머니는 당장 그 자리에서 모든 문제를 자기 자신이 떠맡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녀의 자식이었고, 따라서 가족의 일부였다. 내가 아무리 아둔하고 무력한 사람으로 자라난다 할지라도, 어머니는 나를 집에 손님들이 있을 때면 결코 입에 올리는 법이 없는, 뒷방에다 가둬두는 "괴상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차원에서 나를 대해주기로 결심이 섰던 것이다. 나의 미래의 인생과 관련된 한은, 그것은 기념비적인 결정이었다. 그것은 내가 언제든 나의 어머니를 나의 편으로 갖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앞으로 닥쳐올 모든 고난과 싸울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었고, 내가 거의 패배하려 할 때마다 내게 새 힘을 북돋워줄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젠 친척들과 친구들이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다정하게, 동정심을 갖고 대하긴 하되 진심에서 우러나는 정성으로 대해선 안된다고 어머니에게 주장했다. 그런다면 실책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 애에 대해서는 다른 애들처럼 기대를 걸지 말아요. 그러면 결국 당신 가슴만 무너질 테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 떼거리에 대항하며 버텼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백치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았고, 그것을 증명하려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슨 단단한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에서였다. 어머니가 그토록 성공을 거둔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이다. 앞으로 더 많은 식구가 생길 테지만, 그 무렵에도 어머니에게는 "힘든 애"외에도 돌아보아야 할 다른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었다. 나의 형들인, 짐과 토니와 패디, 그리고 나의 두 누이 릴리와 모나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아주 어렸는데, 거의 연년생이어서 흡사 하나하나 올라가는 층계의 계단과 같았다. 사년이 흘러갔다. 나는 다섯 살이었지만 아직도 갓난아이처럼 몸을 자유로이 놀릴 수가 없었다. 나의 아버지가 우리들의 생계를 위해 나가 벽돌을 쌓는 동안, 나의 어머니는 나와 다른 아이들 사이에 가로놓인 벽으로부터, 느리게, 끈기 있게 벽돌들을 하나씩 끌어내리고, 내 정신 위로 드리워져 나의 마음을 다른 아이들의 마음과 갈라놓고 있는 그 두꺼운 장막 너머로 느리게, 꾸준히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힘겨우면서도 가슴 무너지는 작업이었다. 그 보답으로 그녀가 내게서 얻은 것이라고는 희미한 미소와 어쩌면 미약한 꿀럭거림뿐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나는 말을 하거나 심지어 옹알거릴 수조차 없었고, 걸음을 띄는 것은 고사하고, 받치지 않고서는 내 힘으로 혼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움직이지 않거나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움직임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칠고, 뻣뻣하고, 뱀 같은 움직임이 잠잘 때 말고는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나의 손가락들은 끊임없이 비틀리고 팔딱거리고 두 팔은 등쪽으로 돌아가다가 종종 느닷없이 이쪽저쪽으로 튀어나오곤 했으며, 머리는 축 늘어진 채로 옆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괴상한, 항상 뒤틀려져 있는 아이였다. 어머니는 어느 날 있었던 일을 내게 들려주셨다. 그날 어머니는 위층 한 방에서 몇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앉아서, 내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산타 클로스로부터 받았던 커다란 이야기책들에 나오는 그림들을 보여주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동물들과 꽃들의 이름을 말해주면서, 헛되이 내게 그 이름들을 따라 말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나와 함께 말하고 웃고 하면서 몇 시간 동안 그것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난 뒤에 어머니는 내게 몸을 굽히고서 내 귀에 대고 가만히 말했다. "이게 마음에 들었니? 곰들과 원숭이들과 그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마음에 들었니? 그렇다면 "그래요"라고 고개를 끄덕이렴, 착한 아이지." 그러나 나는 내가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는 표시를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괴상하게 생긴 내 손이 내뻗쳐올라가, 그녀의 목 주위로 굵직하게 늘어뜨려진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칼을 한 움큼 움켜잡았다. 어머니는 꽉 쥐어진 내 손가락들을 부드럽게 풀긴 했지만, 손가락 사이엔 아직도 몇 가닥의 검은 머리칼이 움켜쥐어져 있었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호기심 어린 내 시선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서는 울면서 방에서 나갔다. 어머니 뒤편으로 문이 닫혀졌다. 그 모든 일이 가망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백치이며 도울 길이 없다는 친척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옳은 것처럼 보였다. 그 친척들이 이제는 공공시설에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뜻을 내 어머니에게 비칠 때마다 "안돼요!"라고 어머니는 거의 사납게 외쳤다. "난 내 아들이 백치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망가진 것은 그 애의 육신이지 정신이 아니라구요. 난 그걸 확신해요." 확신? 그렇긴 하지만 마음 속으로 그녀는 신에게 자신의 믿음에 대한 어떤 증거를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그녀는 믿는다는 것과 사실임을 증명한다는 것은 전연 다른 일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제 다섯 살이었는데,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만한 어떠한 것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나의 발가락들--왼쪽 발의 발가락들에 특히 더--외의 사물들에는 아무런 뚜렷한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의 대소변 버릇이 잘 들어져 있다 하더라도 혼자 힘으로는 할 수가 없어서 그 일에서는 아버지가 나를 돌봐주었다. 나는 부엌에서, 아니면 밝고 따뜻한 날에는 나가 풀밭 위에서 줄곧 등을 대고 누워 있곤 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기대를 갖고 있는 나를 자기들 자신의 온정과 인정의 세계에 속하도록 만들어주는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는, 뒤틀린 근육들과 뒤틀린 신경들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뭉텅이였다.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내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 외로웠다. 나는 차단되고 분리되어 있었다. 마치 나의 삶과 그들의 삶 사이에 유리벽이 가로놓여 있어, 그들의 생활과 그들이 하는 일들의 영역 바깥으로 나를 내모는 것 같았다. 나는 뛰어다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열렬히 원했지만, 그러나 내가 묶인 속박을 풀고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히 그 일이 일어났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변했고, 내 미래의 삶은 분명한 모양으로 빚어졌고, 나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은 헛되지 않아 그녀의 내밀한 두려움은 터놓고 드러낸 승리감으로 바뀌었다. 기다림과 불안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그 모든 세월 뒤에 이런 일이 너무도 급속하게, 너무도 간단하게 일어났던 까닭에 나는 마치 지난주에 일어났던 것처럼 그 장면 전체가 눈에 보이고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춥고 음울한, 12월 어느 날 오후의 일이었다. 바깥 거리들은 눈으로 빛났다. 반짝거리는 흰 눈송이들이 창틀에 쌓여 녹고 있거나 나뭇가지들 위에 용해된 은처럼 걸려 있었다. 새로 한 차례씩 돌풍이 일 때마다 일어났다 스러지는 소용돌이치는 눈기둥들을 채찍질하면서, 바람이 음산하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위로, 잔뜩 흐린 침침한 하늘이 거무칙칙한 덮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집안에서는, 모든 식구들이 커다란 부엌 난로 주위에 모여 있었고, 난로가 그 작은 방을 따뜻한 불빛으로 환하게 밝히면서, 벽과 천장 위에 거대한 그림자들이 춤추게 만들고 있었다. 한구석에서, 모나와 패디가 몇 개의 찢어진 교과서들을 앞에 놓고서 함께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밝은 노란색 분필을 이용하여, 오래 되어 벗겨진 석판 위에다 간단한 셈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몇 개의 베개들로 벽에 받쳐진 채, 그들과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토록 내 관심을 끈 것은 분필이었다. 그것은 생생한 노란 빛깔의 길고 가느다란 분필이었다. 전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거니와, 그것이 석판의 검은색과 대조를 이루어 아주 잘 돋보이는 바람에 나는 그게 금막대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에 매혹당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나의 누이가 하고 있는 것을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윽고,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생각하거나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내뻗어 내 누이의 손에 들려 있는 분필을 빼앗았다--나의 왼발로. 그러기 위해서 어째서 왼발을 이용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수수께끼이다. 어렸을 적에 나의 발가락들에 대해 묘한 관심을 보이긴 했었지만, 그러나 그전까지는 내 두 발 중의 어느 하나를 어떻게든 써보고자 시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발들은 내 손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날, 나의 왼발은, 분명 제 자신의 의욕에 따라서, 내뻗어 아주 버릇없게도 누이의 손에서 분필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나는 그 분필을 발가락으로 꽉 쥐고, 어떤 충동에 따라서 석판 위에다 거칠게 휘갈겼다. 그런 다음 나는 약간 어지럽고 놀라 멈추었다. 그것으로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나는 내 발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노란색 분필자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얘기하던 것을 멈추고 말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도 꼼짝하지 않았다.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칼을 가진 토실토실한 작은 얼굴의 모나는, 입을 벌린 채 굉장히 큰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덮개가 없는 난로 맞은편에는 불꽃들의 빛을 얼굴에 받으면서 아버지가 앉아 있었는데, 그의 몸은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무릎 위에 두 손을 펼쳐놓은 채로 긴장되어 있었다. 나는 이마에 땀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주방으로부터 김이 나는 냄비를 들고 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녀는 식탁과 난로 사이에서 우뚝 멈춰섰다. 그 방 전체에 흐르는 긴장을 느낀 것이었다. 그녀는 식구들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구석에 있는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길은 나의 얼굴로부터 발가락 사이에 분필이 꽉 잡혀 있는 내 발로 옮겨졌다. 어머니는 냄비를 내려놓았다. 이윽고 어머니는 내게로 건너와, 전에도 수없이 그랬던 것처럼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걸 갖고 뭘 하는 건지 보여주마, 크리스티." 느리게, 그리고 이상하게 움찔거리는 모습으로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어떤 마음의 흥분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발그레져 있었다. 모나로부터 다른 분필 조각을 받아들고서 어머니는 머뭇거리다가. 내 앞의 마룻바닥에다 아주 찬찬히 그렸다. 그것은 글자 A였다. "따라서 써봐라." 어머니가 말했다. "이걸 따라서 써보렴, 크리스티."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주위를 바라보았고, 내게로 향한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에 얼어붙어버려 꼼짝 않은 채, 열렬한 마음으로 자기들 사이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긴장되고 흥분된 얼굴들이었다. 깊은 정적이 감돌았다. 방안 가득한 불꽃들과 그림자들이 내 눈앞에서 춤을 추면서 내 팽팽한 신경을 어루만져 나는 깨어 있으면서 자는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주방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벽난로 선반 위에 걸린 시계의 커다란 똑딱소리, 그리고 덮개 없이 난로에서 타는 장작들이 쉬쉬거리고 뿌드득거리는 부드러운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써보려 했다. 나는 발을 내밀고서 분필로 거칠게 경련하듯 한 번 시도해보았지만, 그러나 거기에서는 아주 삐뚤어진 선이 나왔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석판이 움직이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 "다시 해보렴, 크리스." 어머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다시 한번."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온 몸을 뻣뻣하게 하고서, 나의 왼발을 다시 세번째로 내밀었다. 나는 A자의 한쪽을 그렸다. 다른 한쪽의 반을 그렸을 때, 그때 분필 자루가 부러져나가 내 발가락엔 그 밑둥만 남아있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내던져버리며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어머니의 손이 어깨에 닿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시 한번 시도해보았다. 나의 발이 앞으로 나갔다. 나는 몸을 떨었고 땀을 흘렸으며, 모든 근육들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두 손은 손톱이 살 속으로 파고들 정도로 단단히 움켜쥐어져 있었다. 나는 아랫입술이 거의 꿰뚫어질 정도로 이빨을 단단하게 악다물었다. 내 주위의 얼굴들이 하얀 반점들에 불과한 것으로 변할 때까지 방안의 모든 것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나 나는 그 A자를 그렸다. 내가 그린 A자가 마룻바닥 위에 있었다. 흔들거리고, 볼품없고 건들거리는 두 측면과, 그 중앙에 그어진 삐뚤삐뚤한 선. 그러나 분명 그것은 A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나는 순간 어머니의 얼굴과 그 뺨에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이윽고 아버지가 몸을 굽히더니 나를 자기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나는 그것을 해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작된 그 일이, 나의 정신에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들을 주게 될 것이었다. 물론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나는 이제 입말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글말을 통해서 말을 하게 되리라. 발가락 사이에 움켜잡힌 노란색 분필의 부러진 몽당이로 마루 위에 휘갈겼던, 그 한 글자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는 나의 길이었고, 나의 정신적 해방을 위한 열쇠였다. 뒤틀린 입 뒤에서 자기를 드러내 표현하려 헐떡거리며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물건이었던 나에게, 그것이 한숨 돌리는 느긋함의 원천을 제공해줄 것이었다. 제2장. 어--머--니 내게 한쪽 발로 A자를 쓰는 것을 가르쳐주고서, 어머니는 다음에는 아주 똑같은 방법으로 내게 알파벳 전체를 가르치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나타난 기회를 이용하여 내가 입말은 아니라 하더라도 글말을 통해서라도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어머니는 결심한 것이었다. 그녀가 그 일을 시작했을 때의 방법을 나는 아직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집안일로 바쁘지 않은 날이면 어제든, 어머니는 앞쪽으로 나 있는 침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 나에게 한 글자씩 차례로 가르쳐주면서 몇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녀는 글자 하나하나를 분필조각으로 마루 위에 썼다. 그런 다음에는 그것을 지우개로 지워버리고는, 내게 발가락 사이에 끼운 분필로, 기억을 좇아서 그것을 다시 써보라고 시켰다. 그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힘든 작업이었다. 그녀가 주방에서 식사를 위한 요리들을 만들고 있을 때에, 내가 자신의 한 단어의 철자들을 정확하게 썼는지 보도록 오게 만들기 위해서 울부짖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내가 틀렸을 경우에는, 나는 손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게 그것을 바로 쓰는 법을 가르쳐주게 만들곤 했다. 내가 처음으로 배워 쓸 수 있었던 것은 내 이름의 이니셜인 C.B.였다는 게 기억난다. 물론 종종 혼동을 하여 B를 먼저 쓰고 C를 다음에 쓰기도 했지만. 누구든 내게 이름이 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분필조각을 움켜잡고서, 아주 유려하게 C.B.라고 쓰곤 했다. 그 뒤에 곧 나는 두 개의 이니셜 대신에 정식 성명을 쓰는 것을 배웠다. 그것을 할 수 있었을 때 나는 무지무지하게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대단히 잘난 인물인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는 여섯 살로 접어들고 있었고, 그리고 그저 내 이름이나 쓰고 있는 것이 지겨워졌다. 나는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뭔가 좀더 큰 일을.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읽을 줄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읽을 수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는 다만, 짐도 읽을 줄 알고, 토니도 읽을 줄 알고, 모나와 피터도 읽을 줄 안다는 사실과, 그 때문에 나 역시 읽고 싶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질투했던 것인가 보다. 더디고, 몹시 힘겹게, 나는 어머니와 함께 스물여섯 글자 전체를 헤집고 나가면서 점차로 그것들 하나하나를 순서대로 익혔다. 그 무렵에 내 어머니에게 큰 용기를 북돋워준 것은, 그녀가 내 곁에 앉아서 가르쳐줄 적에 그것에 귀기울이며 지켜볼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다는 점이었다. 나의 주의력은 거의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느 겨울 저녁에 우리가 커다란 난로 앞에서 말털로 짠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난로 건너편에 놓인 요람 안에서는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침침한 주방 안에는 우리 단 둘만이 있었다. 아버지는 벽돌공 모임에 나갔고 누이들과 형들은 거리에 나가 놀고 있었다. 어머니는 피터의 교과서를 손에 들고서, 사악한 계모에 의해 백조로 변한 가엾은 리르의 아이들, 디아르무르와 그레인, 그리고 만지는 것마다 금으로 변하게 만들었다는 왕 등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읽어주고 있었다. 어스름이 깔려 방안이 어두워지고 갓난아기인 이어몬이 자다가 일어나 울 때까지 어머니는 내게 계속 책을 읽어주었다. 이윽고 어머니는 일어나 전등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마법은 깨어졌고, 그 요술이 걸린 것 같은 세계는 사라져버렸다. 알파벳을 안다는 것은 반은 이긴 싸움이었다. 곧 나는 그 글자들을 하나로 합쳐 소소한 단어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얼마 뒤에 나는 단어들을 하나로 합쳐서 문장들을 만든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나는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거나 간단한 게 아니었다. 어머니에겐 이제는, 나 자신 외에도 돌보아야 할 다른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었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협력자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누나 릴리, 혹은 다른 사람들이 별명을 붙인 대로 하자면 "티치"였다. 그녀는 맏누이로서 그 떼거리의 작은엄마 노릇을 했으며, 물결치는 검은 곱슬머리와 반짝이는 눈을 가진, 작지만 실팍한 아이였다. 릴리는 그럴 마음만 생기면 아주 다정한 사람--정말로 완전한 작은 천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이 나면 그녀는 너무도 천사 같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의 힘든 형편을 다른 어느 여자 어른보다도 더 빨리 깨달았고 거기에 대처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다. 릴리 누나는 요리하고 빨래하고, 동생들에게 옷을 입히고,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에 반드시 귀 뒷쪽까지 씻겼다. 그녀는 너무 지나치게 열성적이기도 했다. 짐이나 토니가 계면쩍은 얼굴로 주방에 슬며시 들어와 귀가 부어오르거나 눈이 멍든 그 모양새로써, 꼬마 릴리가 가정주부 노릇을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나는 똑똑하게 말을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식구들이 다소간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킁킁거림 언어를 갖게 되었다. 내가 어려운 사정에 빠졌는데 식구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마루 위에 내 왼발로 그 말들을 썼다. 내가 쓰고자 하는 단어들의 철자를 쓸 수가 없을 때면 나는 버럭 화를 냈고, 그러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조리가 닿지 않게 킁킁거리는 말을 하게 만들 뿐이었다. 일곱 살이 되어도 말은 별로 많이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나는 이제 혼자 일어나 앉아 있을 수 있었고, 내 뼈를 부러뜨리거나 어머니의 도자기 그릇을 깨는 일이 없이, 내 엉덩이로 이리저리 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구두도 신지 않았고, 발에는 어떤 종류도 걸치거나 신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는 맨발이면 내가 아주 소홀히 취급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내가 어릴 적부터 발을 덮어 감싸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만들려 애써 왔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 발에 무엇이든 신길 적마다 나는 언제나 그것을 재빨리 도로 벗어 던졌다. 나는 발을 덮는 것을 싫어했다. 어머니가 내 발에 구두나 양말을 신기면, 나는 누구든 정상적인 사람이 자기 손이 뒤로 묶일 때 느낄 그런 기분을 느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의 모든 일에서 내 왼발에 점점 더 많이 의지하기 시작했다. 나의 왼발은 내 자신의 뜻을 가족들에게 이해시키는, 의사소통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아주 느리게 나의 왼발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이 되어갔다. 나의 왼발로 나는 나와 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의 얼마간을 쳐부술 줄 알게 되었다. 나의 왼발은 내가 갇혀 있는 지옥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였다. 마룻바닥 위에 무언가 적었을 때면, 그 위에 침을 뱉고 발꿈치로 문질러 지우고서, 어머니가 내게 가르칠 적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기억을 따라서 그것을 다시 써보는 게 나의 버릇이었다. 내가 여섯 살 때의 진찰을 마치고 어느 날, 한 의사가 럭비 게임을 하다가 손목을 삔 내 형을 보러 왔다. 위층에서 내려온 의사는 발가락으로 분필을 잡고서 마루 위에 쓰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의사는 몹시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나에 관해 질문들을 해대기 시작했고, 내가 모든 얘기를 알아듣는다는 것을 의사에게 몹시도 보이고 싶었던 어머니는 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서, 의사에게 자길 위해 무엇이든 써보라고 내게 청해 보라고 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 가방에서 커다란 기록대장을 꺼내고 내게 큰 붉은색 연필을 내주고는, 그 책에다 내 이름을 써보라고 했다. 나는 내 발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우고 그 책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몸을 안정시키고서, 책표지 안쪽의 빳빳한 여백에다 커다란 고딕 대문자로, 내 이름을 천천히 썼다. "경탄할 만하군요! 놀랍습니다. 브라운 부인. 이건 정말로...."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깜짝 놀라 말을 멈추었고,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을 붉혔다. 왜냐하면 내가 잠시 머뭇거린 다음에 그 페이지 위에 찬찬하게 침을 뱉고서, 연필로 쓴 글자들을 분필로 쓴 것들보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내가 썼던 것들을 지우려고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어머니의 변명을 웃음으로 넘겼다. 그는 내 머리를 토닥거리면서, 나더러 참 굉장한 녀석이라고 말했다. 그 의사는 종종 나를 찾아왔고, 많은 세월 동안 내가 나아가는 길을 열심으로 따라왔다. 한편 식구는 꾸준히 불어나고 있었다. 층계의 계단들이 점점 더 높이높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 역시 자라나고 있었다. 내 육체는 불어나고 있었으며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었고, 나의 정신 또한 그러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이미 ABC 단계를 벗어났고, 그녀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도 벗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어머니가 내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동안 그저 앉아서 듣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았다. 나는 피터와 모나처럼, 내 자신이 직접 읽을 수 있었으면 하고, 가만히 있질 못했다. 나는 또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나는 이제 분필 대신에 연필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긴 하지만 만년필에는 결코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한번은 이웃사람 두어 명이 기대감을 보이며 둘러 서 있는 가운데, 내 아버지의 가장 좋은 만년필로 내 이름을 쓰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쓰려고 할 때마다 종이가 찢어지기만 할 뿐 아무것도 되지 않자 지겨워져서 그 만년필을 휙 내던져버려, 어머니를 당황시켰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어떤 방법으로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근심했다. 이제는 나의 정신상태가 완전히 정상인 것에 만족하고 있긴 했지만,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으로 자라나고 그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물론 지적인 면에서도 커다란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거의 항시 그러한 두려움이 어머니와 함께 하였다. 그것은 불구자인 데다 무학인 아들을 갖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인한 수치심 때문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단지, 내가 더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이 내게 중대한 결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가능한 한 모든 면에서 나를 나의 형제자매들과 동등하게 만들어주고 싶어했고, 그리고 내가 학교에 다닐 수 없었으므로 그녀는 그 불이익이 가져올 결과들을 자신이 직접 줄여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날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시간도 기회도 많지 않았다. 우리 모두를 이끌고, 실직과 병과 그리고 그밖의 다른 많은 근심거리들이 생기는 시기들을 헤쳐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언제나 한가한 날이 없었던 것이다. 때때로 미소짓기도 힘든 적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어떻게든 용케 미소지어 주곤 했다. 어머니가 바쁠 때는 나는 나 혼자서 계속 공부하면서, 새로운 단어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것들을 베껴 써보려 애썼다. 나는 난로, 그림, 개, 문, 의자 같은 내 주위에 있는 물건들의 이름을 써보려 노력했다. 새 단어를 써 보일 때는 내 자신이 몹시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나는 피터의 책에서 마주쳤던 한 새 단어를 익히려고 특히 열심히 애쓰고 이었다. 마침내 나는 그것을 해냈다. 나는 어머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난롯가에서 의자에 앉아 나의 남동생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었다. 저물어가는 사월의 햇빛이 마루에 무늬를 만들고, 작은 마호가니 식탁의 윤나는 윗면에 닿아 빛나면서 그 표면에 지그재그로 난 갈라진 틈들을 선명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차 마시는 시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위층에서 학교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피터의 책을 앞에 펼쳐두고 왼발로 연필을 잡은 채 소파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날 나는 그 단어를 나 혼자 힘으로 베껴쓰는 데 절망하여, 여러 번 어머니가 있는 곳을 하소연하듯 건너다보곤 했었다. 그러나 아기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서, 의자에서 가만히 몸을 앞뒤로 흔드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도로 돌려버렸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단어 한 개는 어머니의 도움없이 나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는 것을 막연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몇 분 뒤에 내게서 커다란 승리의 환성이 터져나오면서, 어머니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어머니 품안의 아기가 불안스럽게 꼼지락거리게 만들었다. "무슨 일이니, 크리스?" 그녀가 물었다. "애기를 깨울라."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 나름의 괴상하고 끙끙거리는 말로 어머니에게 당장 내게로 건너오라고 말했다. "새 단어로구나, 그렇지?" 자고 있는 아기를 안고 방을 가로질러와 소파 가장자리에 앉으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연필을 들어올리고서,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쩔쩔매게 만들었던 그 단어를 썼다. 그것이 끝나자 나는 잘 썼다는 인정을 받으려고 어머니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그 페이지 가장자리 여백에 내가 써놓은 것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 잠긴 채 어머니가 너무도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 있자 나는 초조해져서 왼발로 그녀를 쿡 찔렀다. 어머니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내게 손을 얹으며 미소지었다. 내가 처음으로 쓸 줄 알게 되었던 그 말은 "어--머--니 (M-O-T-H-E-R)"였다. 제3장. 집 나는 이제 일곱 살이 되었고, 나의 형제들의 도움을 통해서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학교가 끝난 뒤에 거리에서 놀려고 나갈 때면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들은 자기들이 나의 "전차"라고 부르는, 녹슬고 낡은 발로 미는 차(go car)에 나를 태우고 밀고 다녔다.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의 얼마간은, 비틀어진 핸들과 구부러진 바퀴들을 가진 그 찌그러진 낡은 고물차와 함께 지나갔다. 유월 저녁의 밝고 따뜻한 어스름 속에서 혹은 십이월 밤의 차가운 잿빛 속에서 가로등이 켜진 거리들을 거쳐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따라, 그들이 나를 태운 채 내달릴 적에 그 고물차는 삐걱거리며 신음했다. 나는 금방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는 내 자신의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캐묻는 법 없이 나를 자기들 중의 일부로 받아들일 만큼 어리고 또 그럴 만큼 숨김이 없는 이웃에 사는 사내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자라났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나를 난생 처음 보거나 나와 함께 본 적이 없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그 아이들이 더 나와 어울리는 것을 편하게 여겼다. 실은, 그 아이들 중의 다수는 나의 불행을 괴상하긴 하지만 어떤 우월성의 상징, 심지어 신적인 것으로 여겼고, 그래서 그들은 이상하지만, 어린이다운 방식으로 복종심과 존경심을 갖고 나를 대했다. 나는 이제 아주 많이 나아져서, 베개를 뒤에 받치지 않고서도 발로 미는 차 안에 앉을 수 있었다. 그 발로 미는 차에 앉아 달리다가 쓰러지는 일도 많았다. 아이들이 내가 탄 발로 미는 차를 전속력으로 밀며 모퉁이를 돌 때면 차가 쓰러져 뒤집히면서 나는, 외침과 비명들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땅바닥에 굴러떨어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 아주 건강해졌고,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에도 아주 능숙해져서, 심하게 떨어졌을 때조차도 내게는 한 군데 멍이 들거나 한두 군데가 긁히는 일밖에 없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커다란 스릴을 느꼈다. 우리 집안에서는 먹는 게 큰 일이었다. 아이들은 식사 시간이 언제나 너무 늦게 돌아오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가 참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어머니가 식탁에 차리면 우리는 곧바로 거기로 달려들곤 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엉덩이로 기어나가, 대개는 용케도 맨 먼저 거리에 다다르곤 했다. 왜냐하면, 내가 한 의자를 향해 그 의자가 내 차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와락 덤벼들면 결국 큰 아이들 중의 누군가가 나를 들어 그 위에 앉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면 이젠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들 중 누가 먹기에서 다른 아이들을 이기는가 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식사 순서 중에서 마시는 부분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정말로 배가 터지지 않게 하면서 먹어치울 수 있는 한의 많은 빵과 버터를 쑤셔넣어 배를 채우는 일이었다. 물론 나는 내 자신이 직접 먹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런 식탁 경쟁대회에 아주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나 아니면 아버지가 내 곁에 앉아 먹여주곤 했다. 그들의 손은 빵을 집어 내 입 안에 넣어주는 단순한 일로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낫겠구먼" 일곱번째 혹은 아홉번째로 빵 접시로 손을 뻗치면서, 아버지는 투덜거리곤 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이기려고 애썼고 각기 잘 먹어치웠지만 그러나 이기는 것은 언제나 피터였다. 어머니가 "몇 개나?"라고 말하면, 우리는 언제나 "세 쪽이요."라고 모두가 함께 외치곤 했다. 그 다음엔 차를 마시고 나서,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정했을 때엔 우리는 함께 모여 숨바꼭질이나 장님놀이를 하곤 했다. 그런 경우에는, 아버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당장 의자에서 일어나 신문을 내던지고서, 코트와 모자를 걸치고 문 밖으로 나서면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었을 때 돌아올게." 우리들 중에서 누가 장님이 될 것인가를 정하기 위해, 반페니 동전을 던지고 "머리냐 꼬리냐?" 하고 외친다. 누군가가 낡은 스카프나 털 양말 한 짝을 가져와, 그것으로 장님으로 뽑힌 아이의 눈을 가리고 놀이가 시작된다. 눈 가린 아이가 휙 스치는 누군가의 팔이나 슬쩍슬쩍 닿는 다리를 붙잡으려 애쓰고, "다정하게" 두드리거나 밀치는 것에 시달리면서 방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 주위에서 뛰어다니면서 웃어댔다. 그것은 아주 점잖은 놀이가 아니었다. 이따금씩 장님 역할이 내게 떨어졌다. 그들은 내 눈을 스카프로 묶고, 자기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이윽고 "시작" 하고 외쳤다. 어디에 누가 숨어 있는지를 가리켜주는, 숨을 들이쉬거나 킬킬거리는 것 같은 아주 자그마한 소리라도 붙잡으려 기다리면서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기어갔다. 그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엉덩이로 내 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고서는 피터의 바짓가랑이나 모나의 옷을 잡으려고 온통 긴장해 있는 내 왼발을 총알처럼 내뻗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잡아들일 발가락들로 내 쪽으로 잡아당기고서 두 다리로 꽉 감아버리면 급기야 그는 소리를 치거나 그보다는 헐떡거리며서 "내가...졌어!"라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그 아이를 풀어주었고, 그리하여 눈 가리개는 내 눈에서 떼어져 그 아이에게로 넘어가곤 했다. 한번은 내가 여덟 살 가량 되었을 때의 만성절 전야에,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외출하고 없는 동안에 자그마한 파티를 열려고 몇몇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그날 밤 우리는 온 집을 우리들 것으로 독차지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 숫자가 정말로 한떼거리가 되었으니까. 나의 세 누이들도 역시 친구 몇 명을 데리고 왔다. 그래서 집안에는 일곱 명의 계집애들과 그것의 약 두 배가 되는 숫자의 사내아이들이 있었는데, 모두 괴상한 옷차림에다 무서운 마스크들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사과와 밤과 다른 것들을 간단하게 해치웠다. 그 다음에 우리는 숨바꼭질놀이를 했다. 나는 장난을 칠 참이었다. 여자애들 중의 하나가 하는 말을 엿들었기 때문이다. 붉은 뺨에 황갈색 머리칼을 가진 열두 살짜리 통통한 계집애인 샐리가 모나에게 자기는 주방에 있는 커다란 목욕통에 숨을 거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목욕통이 대개의 경우에 그러하듯, 물이 가득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는 찾아볼 꿈도 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엔, 목욕통은 비어 있었고, 그래서 샐리는 숨을 만한 훌륭한 곳을 발견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샐리가 도착하기 전에 할 수 있는 한 빨리 어두운 주방 안으로 기어들어가, 그 커다란 에나멜 목욕통 바로 아래쪽에 숨었다. 거기엔 낡은 부츠, 옷, 자그마한 병들 같은 잡동사니들이 쑤셔넣어져 있었고, 그리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낡은 우산 끝이 갈비뼈를 찔러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용케 견뎠다. 잠시 뒤에 나는 누군가 주방으로 들어와 목욕통을 향해 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살짝 내다보았다. 문 사이의 작은 틈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빛으로 가늘고 하얀 두 다리의 아랫부분과 샌들을 보았다. 나는 그것이 샐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목욕통으로 올라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러나 그녀는 내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머리 위로 뚜껑을 내려덮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참 바보 같은 아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가 하얀 실크 프록을 입고 있었으므로, 누군가 들어오면 어둠 속에서도 그녀를 쉽게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분 뒤 누군가 들어왔다. 그 콘크리트 바닥에 울리는 징박은 부츠 소리로 보아, 그것은 사내애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을 기다려왔던 것이고, 그리고 샐리가 틈을 내어 도망가기 전에 사내애들이 잡을 수 있도록 고함을 지른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쉬고 소리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징 박은 부츠는 큰 걸음으로 목욕통 있는 곳으로 건너갔고, 그리고 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나는 그게 우리의 친한 친구 중의 하나인 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샐리, 거기 있니?" 그 목소리가 말했다. "찰리? 그래. 기다리고 있었어." 샐리가 곧 대답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큰 소리 내지 마." "안 그럴게." 찰리가 말했다. 그 다음에 그는 목욕통 가장자리로 올라가 안으로 뛰어내렸다. 그 다음엔 그들 둘의 머리 위로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목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느끼면서 숨어 있던 곳으로부터 기어나와, 목욕통 옆에 앉아 귀기울였다. 나는 더 가까이 기어가, 뚜껑에 약 이인치 가량의 공간을 남겨 분절되어 있는 부분에 귀를 갖다댔다. 이젠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날 사랑해?" 샐리가 묻는 말과 뒤이어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이야." 찰리가 멋적게 말했다. 그러고 나자 아주 커다랗게 키스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구역질이 나 얼굴을 돌려버렸다. 다른 사내애들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 계집아이와 함께 있는 걸 보니 찰리는 계집애 같은 사내애라는 확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문을 향해 살금살금 나아갈 때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다. 나는 어둠 속에서 혼자 빙긋 웃으면서, 목욕통 있는 곳으로 다시 기어 돌아왔다. 될 수 있는 대로 소리내지 않고서 나는 목욕통 곁에서 몸을 일으키고서, 목욕통 안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 곳에 가능한 한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내가 약간 큰 소리를 냈지만, 그러나 목욕통 안의 두 사람은 너무도 열중해 있어서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손을 사용할 수도 없었고, 그런 자세에서는 발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좀도 앞으로 몸을 뻗쳐 두개의 수도꼭지 중의 하나에 이마를 붙이고서, 몹시 아프긴 했지만, 다음 순간 수도꼭지가 완전히 열리면서, 목욕통 안으로 물이 세차게 흘러들어갔다. 나는 바닥으로 몸을 내리고서, 거미처럼 빠르게 기어서 문간을 향해 나아갔다. 내 뒤쪽으로부터 목욕통 뚜껑이 획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샐리와 찰리가 바닥으로 기어나오는 동안 가엾은 샐리가 "엄마! 엄마!" 하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 둘 중의 어느 하나가 물을 닦아내기 전에 제때에 나는 문을 살짝 빠져나와 주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 이후로는 샐리도 찰리도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 때때로 차릴 게 별로 없을 적에도,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우리에겐 즐거운 날이었다. 집에 아무리 돈이 없다 하더라도, 밝은 색깔의 종이로 여러 겹 싼--크게 보이게 하고 가슴 설레게 하기 위해 --자그마한 선물들을 갖고, 언제나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우리는 흔히,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장난감이 보이기 전까지는 그 종이들을 한 장씩 차례로 벗겨야만 했다. 그것들은 아무도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더블린의 갑갑한 작은 모퉁이들과 골목에 늘어서 있는, 싸고 평범한 작은 상점들에서 산 값싸고 흔한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아침에 베개를 베고 그대로 누워 있을 적의 우리에겐, 그러한 작은 선물들이 기차나 자동차 같은 아주 값비싼 장난감보다 더 의미있는 것들이었다. 그 전날 밤에는 우리 모두를 저녁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게 했다. 다만 나는 예외였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반 크라운씩 지불하는 조건으로 용케 라디오를 들여놓았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마다 내게 자지 말고, 자정에 키메이지에 있는 방송국으로부터 나오는 장엄미사를 듣도록 시켰다.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미사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게 기도를 가르쳐 왔었고, 그래서 이제는 라디오를 들을 대 그 미사를 조금은 따라 갈 수가 있었지만, 그러나 신부가 말하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부가 아버지 말에 의하면 라틴어라고 불린다는 그 우스운 말로 이야기할 때는 특히 그러했다. 나는 종종 신부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모든 기도들을 라틴어로 하는 걸까 자문해보기도 했다. 피터는 그건 모든 성자들이 라틴어만 쓰고 또한 하나님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머니는 내게 교리문답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러나 교리문답은 리르 왕과 백조로 변한 그의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만큼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하나님이 칠일 동안에 세상을 만든 얘기를 어머니가 들려주었을 때, 나는 그것에 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리르 왕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분명 나는 그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 백조로 변했으며 그들의 계모는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가 하는 등의 질문을 수없이 했었던 것이다. 나는 단연코 그것이 더 훌륭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토니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지었다는 얘기를 내게 했을 때 나는 그를 더러운 거짓말쟁이 라고 불렀다. 오직 벽돌공들만이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는 하나님은 벽돌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니는 거친 아이였다. 그는 언제나 집 안팎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약간 로미오 같은 타입이었다. 그는 이웃의 모든 여자애들이 자기 꽁무니를 쫓아다니게 만들었다. 토니로서는 그들 중 누구에게도, 심지어 그곳의 미인으로 알려져 있는 낸시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도 그러했다. 그는 우리 모두 중에서 가장 잘생겼고, 키가 크고, 안색이 창백한 소년이었다. 그는 매우 튼튼하고 성질이 아주 급했으며,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칼과 커다란 손, 그리고 미소짓거나 웃을 때 보이는 반짝이는 하얀 치아를 갖고 있었다. 집안의 모두가 그에게 약간의 경외심을 갖고 있었고, 그리고 나는 그를 나의 첫번째 영웅으로 삼았다. 나는 한번은 오도가도 못할 궁지에 빠진 그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내가 여덟 살이 되어가고 있었고, 토니는 열세살 쯤 되었을 때였다. 그와 한 친구가 무엇인가 때문에 틀어져서 서로 한바탕 치고받고 하다가 결국 토니가 자기 친구를 녹초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누군가 그것에 관해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하여, 토니는 흠씬 얻어맞고서 뒤쪽의 침실에 일주일 동안 갇혀 있었다. 다음날 밤은 만성절 전야였다. "일당" 모두가 꽃불들을 사려고 돈을 저축했었고 그래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엄한 분이었다. 토니는 집에서 지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 교훈이라는 게 그것이었다. 가엾은 토니는 절망하고 있었다. 집안의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내게 빌어먹을 열쇠만 있다면!" 침실 문 뒤편에서 그가 볼멘 소리를 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화가 났다. 나는 토니를 돕고 싶었다. 단지 내게 어떤 용기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앞치마 주머니 안에 그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거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 열쇠를 거기에 넣어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빼내는가 하는 게 문제였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아버지의 작업복을 꿰매고 있는 어머니에게 기어가, 서글픈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어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응석 부리는 것을 싫어했다. "왜 그러니, 피곤하니?" 바늘과 실을 내려놓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아주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몸을 굽히고서 나를 자기 무릎 위로 들어올렸다. "잠 도깨비가 오도록 노래를 불러주마." 그녀가 말했다. 이윽고 그녀는 누구에게나 잠이 오게 만든다는 오래 된 아일랜드 민요를 조용히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두 눈을 감았고, 그리고 몇 분 뒤에는 아주 그럴싸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나는 왼발을 어머니의 앞치마 주머니로 더 가까이 움직여 가다가 멈추고, 그러다가 다시 움직여 이번에는 내 왼발이 실제로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나는 주머니 안에 든 것들을 조심스럽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가위, 단추, 실패와 같은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 있었다. 마악 포기하려고 할 때 내 발가락에 뭔가 차갑고 단단한 것이 닿았다. 나는 마침내 열쇠를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발가락들로 열쇠를 감아쥐고서, 그것을 단단히 움켜잡은 채 천천히 발을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살짝 빼냈다. 그런 일을 아주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해냈으므로 어머니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내가 자면서 좀 움직이는 걸로 생각했다. 얼마 뒤에 어머니는 나를 소파 위에 가만히 누이고서, 따뜻하게 하려고 낡은 코트를 덮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여전히 나직하게 혼자 노래 부르면서 어머니는 저녁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부엌을 나가는 순간 나는 코트를 휙 내던지고서 소파에서 살짝 빠져나와,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문 쪽으로 기어갔다. 다행히도 문은 열려 있었으므로 홀 안으로 빠져나가, 게처럼 뒤쪽으로 해서 내 몸을 이끌고 층계를 올라가 목을 부러뜨리는 일 없이 층계참에 다다랐다. 나는 왼발로 침실문을 찼다. 매우 미심쩍어하는 것처럼 들리는 토니 형의 목소리가 안쪽으로부터 들렸다. "거기 누구야?" 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그에게 겨우 이해시켰다. "뭘 하려는 거야?" 그가 물었다. 나는 내가 열쇠를 갖고 왔다고 킁킁거리는 말로 전했다. 당장 방 안쪽에서 허둥거리는 소리가 났고, 다음 순간 토니와 나는 각기 문의 반대편에 웅크리고 앉아, 문 밑의 틈을 통해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이 완전히 일치해 있었다. "잘했어! 그 열쇠를 문 밑에 밀어넣어줄 수 있겠니?" 속삭이는 말로 토니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려 애썼지만 그러나 그 틈은 열쇠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지 못했다. 열쇠는 중간에서 끼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해보지." 형이 딱딱하게 말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내, 반 인치는 족히 더 넓어질 때까지 문 밑부분의 나무를 깎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해봐!" 그가 내게 말했다. 나는 열쇠를 다시 안쪽으로 들이밀었고, 그러자 이번에는 매끄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잘했어." 그가 탄성을 질렀다. 나는 그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는 소리를 들었고, 몇 분 뒤에 자물쇠가 돌아갔고 큰 얼굴에 커다랗게 싱글거리는 웃음을 띠운 토니가 층계참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몸을 굽히고서 내 귀를 잡아당겼다. "넌 멋진 사나이야, 크리스." 그가 또 말했다. "저 녀석들 떼거리보다 낫다!" 그런 다음 그는 단거리선수처럼 계단을 달려 내려가다 맨 밑에서 멈춰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다시 싱긋 웃어 보이고는 다음 순간 소리없이 앞문을 열고서 빠져나갔다. 나는 힘들여 계단을 기어내려와 주방을 통해 살짝 들어가 소파로 도로 기어올라가 누웠고, 어머니는 여전히 바쁘게 저녁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열쇠가 없어진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문이 어떻게 된 거야?" 나중에, 토니가 깎아냈던 부분을 바라보다가 아버지가 화를 내며 했다. "쥐가 그런 거에요." 기도를 올리기 위해 무릎을 꿇으면서 토니가 말했다. 제4장. 헨리 여덟 살이 되었을 때에도 낡은 발로 미는 차는 여전히 나의 전차였고, 나는 왕처럼 그것을 타고 돌아다녔다. 그것은 아무에게서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못생기고 찌그러진 고물이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언제나 발길로 차고, 걷어차 뒤집어엎고, 이리저리 밀쳐버리고, 올라가 밟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두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사랑스러운 어떤 것, 거의 인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차는 나 이외의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제 나름의 어떤 이상한 위엄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헨리라고 불렀다. 나는 털들이 삐져나온 그 의자에 앉아서 집 바깥의 생활을 최초로 훑어보았었다. 아이들이 분주한 거리들을 헤치면서 나를 밀며 달리던 내 뺨에 닿던 축축한 바람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도로에 난 도랑에는 물이 흐르고 가로등 불빛이 거기에 반사되어 그 도랑들이 어둠 속에서 마치 자그마한 금의 강물처럼 보이는 어느 겨울날 밤에, 나의 형들이 한 가로등 아래서 자기 친구들과 함께 카드놀이를 할 적에 곁에서 그 차 안에 앉아 있었던 것을 지금도 나는 기억할 수 있다. 고물 헨리는 나의 왕좌였다. 그 위에 앉아서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모험과 흥분을 맛보았다. 아이들은 어디든 나를 데려갔고, 심지어 주말마다 극장에도 데리고 갔다. 나는 큰형 짐의 등에 업혀 들어가곤 했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면 짐은 그들에게 "꺼져"라고 고함치는 것을 자주 보긴 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내 형의 등에 업히면 안될 이유를 나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예전부터 줄곧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등에 업혀 돌아다녔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는 "활동사진" 보러 가기를 좋아했다. 불들이 꺼지고 극장 전체가 점점 어두워지면, 뒤쪽으로부터 우리의 머리 위로 길고 가느다란 빛줄기가 흘러나와 커다란 스크린에 떨어지면서 그것을 활기차고 밝게 만들고 우리를 눈부시게 만들고, 이윽고 갑자기 깊은 정적이 깔리고 그리하여 영화가 시작되곤 하는 그런 과정이 나는 좋았다. 우리가 극장에 갔을 때 한번은 피터와 친구들 중의 몇몇이 내게 담배를 피우게 하려 했다. 그들은 피터가 그날 낮에 일찍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훔쳐던 담배로 실험해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입에 담배를 끼웠을 때, 나는 당장 그것을 씹기 시작하여 그들이 담배에 불을 붙이기도 전에 몽땅 먹어버렸다. 피터는 내가 새파랗게 변하거나 아니면 담배를 토해낼 줄 알고,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저 싱긋 웃어 보이고 담배를 더 달라고 입을 벌렸다. 그는 내게 더 이상 담배를 주지 않았다! 여름이 왔다. 담을 따라 얼마 안되는 숫자로 한 줄로 늘어서 있는 물망초들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 조그만 별 모양의 꽃들은 모두가 푸른색, 흰색, 반점들이 있는 붉은색이었다. 우리 이웃집 정원에 있는 커다란 나무는 밝은 초록색 나뭇잎들로 뒤덮였고, 그 나무껍질에 달려있는 이끼들은 축축해 보였고, 햇빛 속에서 반짝거리는 작은 보석 같은 이슬을 달고 빛나고 있었다. 영화 구경을 가기에는 너무도 무더운 날씨였다. 그래서 나의 형제들은 고물 헨리에게 대청소를 해주고서, 나를 싣고 더블린 교외로 산책을 나가거나, 혹은 일요일에는 그들은 페닉스 공원으로 날 데리고 갔다. 거기서 우리는 풀밭에 누워 낮을 보내고 그 다음엔 도넬리 골짜기 안으로 내려가 불을 피우고서 녹슬고 낡은 양철 주전자로 커피를 끓여 마시고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으면서, 어둑어둑해져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될 때까지 있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일들은 언제나 대단히 재미있었다. 나의 형제들이 나를 그 고물차에 싣고 몰고 갈 적에는 사람들이 때때로 멈춰서서 나를 응시하곤 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왜 그렇게 빤히 바라보는지를 나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의 한쪽에는, 어딘가 뭔가 잘못되었다, 나는 뭔가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나가다 말고 저렇게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한 생각은 나를 무섭게 만들었으며,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결코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다만 행복해지기만을 바랬다. 그리고 나의 형제들이 내가 행복해지도록 배려해주었던 것이다. 내가 여덟 살 반쯤이었을 적의 어느 날 우리가 더블린 밖의 시골로 갔던 작은 여행을 나는 기억한다. 우리는 구월의 밝고 따뜻한 어느 일요일 아침 열시에 출발했다. 고물 헨리는 전날 밤에 특별히 기름을 칠해 두고 잘 손질해놓았었고, 그 결과 헨리 일행은 아침에는 덜 격하게 낑낑거리고 있었다. 피터는 자기 책들을 다락방에다 쏟아버리고 나서 책가방에다 샌드위치와 구페니짜리 소스병을 쑤셔넣었다. 우유병 두 개는 내 차의 쿠션 밑에다 밀어넣었다. 나의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그 우유병들 때문에 내 엉덩이에 멍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나의 형제 두 명과 친구 두 명과 나 자신을 합해서, 모두가 다섯이었다. 우리 모두는 나들이옷을 입었고, 피터는 토니에게서 훔친 머릿기름을 머리에 발랐다. "지금 내가 클라크 게이블 같지 않니?" 우리의 침대 위쪽 벽에 걸려 있는, 먼지 투성이에다 파리똥 자국들이 난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피터가 말했다. 그가 바로 그 말을 할 적에 층계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토니가 층계를 올라오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난 없는 거야!" 피터는 속삭이듯 말하며 얼른 침대 밑으로 숨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토니가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피터 보았니?" 날카롭게 방안을 둘러보면서 그가 물었다. "미사에 참석하러 갔어" 무심하게 넥타이를 매만지면서 패디가 대답했다. "그 녀석이 또 내 브릴크림을 훔쳐 갔어." 성이 나 계단을 내려가면서 토니는 볼멘 소리로 말했다. "갔니?" 피터가 침대 밑에서 내다보면서 살그머니 말했다. "응. 하지만 토니가 널 잡으면 아마 죽이고 말 거야." 패디가 일러주었다. "이 밑은 먼지가 끔찍하게 많은걸." 몸을 털며 일어서면서 피터는 언제나처럼 무사태평하게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마침내 떠났고, 몇 시간 뒤에는 산속 시냇물의 한쪽 기슭에 캠프를 쳤다. 나는 물가 가장자리에 앉아서, 햇빛으로 아롱거리는 물 속을 매혹당한 듯 내려다보면서, 자그마한 물고기들이 맨 밑바닥의 흔들거리는 푸른 이끼들 사이를 푸드득거리면서 그림자처럼 들락날락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은빛 물고기들이 바로 내 밑에서, 비스듬히 기울어진 한 바위턱 주위에 한 무리 모여 있었다. 재빨리 나는 샌들을 벗어던지고서 왼발을 물 속으로 휙 들이밀었다. 내 발가락들로 그 물고기들 중의 하나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물고기의 습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물고기들은 줄줄이 떼지어 한바탕 잔물결들을 일으키면서 맞은편 가장자리로 쏜살같이 달아나, 내 왼발이 미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버렸다. 우리는 멋진 하루를 보냈다. 피터는 근처 들판에 있던 암소와 친해졌다. 그것은 졸린 눈과, 뒷다리 주위에 밧줄처럼 감겨 있는 큰 꼬리를 가진 크고 살진 갈색 짐승이었다. "내가 저 암소의 젖을 짜볼게!" 피터가 우리에게 말했고, 우리는 그의 말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는 그 늙은 암소의 귀에 다정한 말들을 속삭여 살살 구슬러서 마침내 암소를 가만히 서 있게 만들어놓았다. 그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양철 주전자를 암소 밑에 받쳐놓고, 우리를 향해 싱긋 웃었다. "자 이제 잘봐!"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뻗어 암소의 젖꼭지에 갖다댄 순간, 암소는 성이 나 뒷발길질로 그를 저만큼 날려보내 벌렁 나자빠지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암소는 꼬리를 휘두르면서 어슬렁어슬렁 가버렸다. "어쨌든 저건 여자 소니까." 패디가 말했다. 우리는 한바탕 웃어댔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우리는 집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반쯤 왔을 때는 우리는 몹시도 배가 고파졌다. 먹을 것들은 이미 두 시간 전에 다 떨어졌고,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빈 우유병들밖에 없었다.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었다. 나도 물론 배가 고프긴 했지만 그러나 다른 아이들처럼 걸어야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차 위에 기대 앉아 있고,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나를 밀고 갔던 것이다. "배고파 죽겠어." 피터가 투덜거렸다. 그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조용히 해. 나도 마찬가지니까." 투덜거림을 맞받아, 화가 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패디는 큰 걸음으로 계속 나아갔다. 패디는 피터에게, 샌드위치를 더 많이 가져왔어야만 되는 게 아니냐고, 그러고 보니 그가 모두를 어린 병아리 새끼들로 생각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피터는 진짜로 그에게 "욕"을 했다. 우리 모두가 짜증을 내며 길모퉁이를 돌 때 갑자기, 앞에 연철 대문이 달려 있고 사방이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쳐진 커다란 시골 저택이 보였다. 그 집의 앞뜰 전체가 과일나무들로 뒤덮여 있었고, 그 가지들이 온갖 종류의 과일들을 휘어질듯 매단 채 담장 너머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우리는 모두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는 처음엔 그 과일나무들을 바라보다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배고파." 피터가 두번째로 그 말을 했다. 그의 두 눈은 사과들과 배들을 못박힌 듯 바라본 채로. "나도 그래." 손등으로 입술을 문지르면서 일행 중 하나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자기 배를 부드럽게 만지며 다른 한 아이가 말했다. 피터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아무도 없어."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저 발로 미는 차를 담에 바싹 갖다 붙이고 내가 그 위에 올라서면..." 우린 모두가 그 계획에 동의했지만 패디만은 예외였다. 우리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던 만큼, 별로 마음내키지 않는 모양으로 어떤 품위를 간직하려 애쓰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명령을 내려달라고 그를 바라보았다. 패디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피터가 초조하게 말했다. "어떻게 할까?" 패디 형은 발을 번갈아가며 이쪽저쪽으로 옮기더니 헛기침을 하고 일종의 절망적인 엄숙함을 갖고 말했다. "일곱째 계명... 훔치지 말라!" "계집애 같은 놈!" 다른 세 아이가 소리치고는 담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 중 하나가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서, 버팀대처럼 두 다리에 힘을 꽉 주었고, 피터가 그 아이의 어깨를 밟고 올라섰다. 피터는 손을 뻗어 과일을 딴 다음 밑에서 자기 상의를 보자기처럼 앞으로 내밀고 서 있는 세번째 아이에게 그것을 떨어뜨렸다. 패디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 차를 담장으로 밀고 가, 차 한쪽 옆을 밟고 올라섰다. 그러나 한 팔을 뻗쳐 올리기만 붉은 사과들과 누르스름한 배들에 손이 닿을 수 있게 되었다. "됐어, 이거면 충분해. 너무 욕심을 내지 말란 말이야." 그들이 얼마간의 사과들과 배들을 따모았을 때 패디가 말했다. 그들은 내려와 다섯 몫으로 나누고 나서 먹으려고 길 가장자리의 풀밭에 앉았다. "어쨌거나 이 정도면 우리가 집에 돌아갈 때까진 괜찮을 거야." 내게 배를 먹여 주면서 피터가 말했다. "하지만 우린 이걸 고해해야만 해." 패디가 경건하게 말했다. "이건 진짜 죄는 아니야." 사과를 와삭와삭 깨물어 먹으면서 피터가 말했다. "아무도 이것들이 없어진 줄 모를 텐데." "누가 오나?" 봅이 말했다. 그는 개처럼 머리 한쪽을 갸우뚱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마악 모퉁이를 돌아 다가오고 있는 발소리를 들었다. 피터는 우리에게 눈짓을 해 보이고는 모퉁이 쪽으로 살금살금 나아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엿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헐떡거리며 뛰어 돌아왔다. "순경이야!" 그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패디는 파랗게 질렸다. 그는 움직일 힘도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그가 무기력하게 물었다. "도망가자!" 후다닥 일어서며 봅이 말했다. "크리스티를 여기 남겨두고 갈 수는 없잖아?" 발소리는 더욱 가까워 오는데 피터가 불쑥 끼여들어 그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에게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빨리, 이것들을 모두 크리스티의 의자 쿠션 밑에다 처넣어!" 다른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리고서 피터가 말했다. 묻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몇 초만에 그들은 과일들을 모두 끌어모아 나를 발로 미는 차에서 반쯤 끌어낸 뒤 그것들을 그 맨 밑바닥에다, 찢어진 낡은 쿠션 밑에다 내려놓고서는, 나를 도로 그 위에 앉혔다. 순경은 모퉁이를 돌아 걸어나오다 우리를 보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저녁이다 얘들아." 순경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는 나의 머리를 토닥거렸다. "꼬마야 늦게 나왔구나, 응? 여덟 시가 다 되어가는걸." 다른 네 명의 아이들은 침착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러나 그들은 불안으로 안절부절 못했고, 암탉들처럼 자기 몸무게를 번갈아 가며 이쪽저쪽 발에 옮겨놓고 있었다. "얘들아, 이제 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 줘라." 친절한 순경이 말했다. "더 이상 꾸물거리지 말거라." 그 말과 함께 순경은 우리가 왔던 쪽으로 느릿느릿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순경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과일들을 꺼냈다. 그런데 그것들은 이제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아휴, 그것들을 돌려줘버려!" 패디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것들을 훔치는 걸 좋아하지 않으셔." 그래서 아주 서글픈 모습으로, 그들은 끈적끈적해진 과일들을 도로 그 큰 집의 담 너머로 던져넣었고, 그리고 우리는 다시 집을 향해 길을 떠났다. 우리는 뱃속이 텅텅 비어버려 심한 배고픔을 느끼면서, 밤 열시에 집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재미있게 지냈지?" 우리가 집안으로 들어갈 때 문앞에서 어머니가 물었다. 피터는 패디를 바라보았고, 패디는 피터를 바라보았고, 그리고 그들 다 나를 바라보았다. "예." 피터가 말했다. 그는 그 정도에서 얘기를 끝냈다. 다음날 우리는 더 나은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날은 토니와 짐이 우리집에서 아주 멀지 않은 운하에서 자기들이 수영하는 것을 구경하라고 나를 데리고 갔다. 그날 날씨는 아주 덥고 숨이 막힐 듯했다. 햇빛은 내리쬐지 않았지만 무겁고 찌는 듯한 열기가 공기 그 자체를 우리 몸에 닿아 짓누르는 단단한, 손에 잡힐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운하에 다다라 보니 이미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물 속에서 헤엄을 치고, 어떤 애들은 --주로 계집애들이-- 치마와 에이프런을 무릎 위 높은 곳까지 들어올리고서 얕은 물가에서 철벅거리며 물장난을 치고, 또 어떤 아이들은 기슭의 풀밭에 누워 몸을 말리면서 서로에게 자갈들을 던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도로변을 물보라로 뒤덮으면서 물 속에서 이리저리 물을 튀기며 돌아다닐 적에 허공은 아이들의 웃음과 고함소리들로 가득 찼다. 다리 위에서는 진짜 한떼의 구경꾼들이 서 있었다. 나의 두 형은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지점에다 나를 데려다 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다리 아래로 가 수영복을 갈아입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모든 시끄러운 소리들과 흥분 가운데서 구경하면서 나는 뜨거운 더위와 끈끈함 그리고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 나는 나의 형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옷을 벗어 던지고서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갑자기 나는 처음으로 A자를 썼던 바로 그날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남들이 하고 있는 것을 하고 싶고, 그들이 느끼는 것을 느끼고 싶고, 그들이 아는 것을 알고 싶다는, 어떤 이상한 열망과 무의식적인 결심이었다. 나는 그 순간에는 물 속에 들어간다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원치 않았다. 잠시 뒤에 토니가 둑 위로 올라왔다. 그의 몸은 물기로 반짝이고 있었고, 앞이마에 머리칼이 늘어져 있었다. 내가 그에게 고함을 내지르자 그가 내게로 다가왔다. 내 나름대로의 괴상한 끙끙거리는 말로 나는 그에게 수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와, 날 놀리고 있구나!" 토니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우겼다. "하지만 넌 빠져죽게 될걸." 그가 내게 말했다. 토니가 무슨 말을 해도 물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나의 열망을 식힐 수는 없었다. 나는 언제나, 무엇이든 일단 해보고 싶어하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럼 좋아." 그가 말했다. 그러나 맏형 짐이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기는 그런 일에 끼여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토니가 나의 옷을 벗기고 수영복을 입히는 것도 거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형 수영복이나 내놔." 토니가 다그쳤다. "얘가 펠트 바지를 입고 들어갈 수는 없잖아!" 토니는 한적한 한 덤불숲 뒤로 나를 데리고 가, 거기서 내 옷을 벗겼다. 짐은 몸집도 매우 크고 살이 쪘고, 그의 수영복은 내게는 커도 한참이나 컸다. 토니가 그 수영복을 내 허리에 몇 겹을 돌려 두르고 내 뒤쪽에 핀을 꽂은 다음에야 그것은 내 몸에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모든 준비를 갖춰주고서, 나를 둑 아래로 안고 갔다. 그는 멈춰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들어가고 싶어?" 그가 물었다. "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안 떠올라도 괜찮다는 거야?"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나는 두려웠겠지만, 나는 옹고집이었고, 너무도 옹고집이어서 이제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가엾은 짐은 곁에 서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지 마. 네가 이 아이를 죽이고 말 거야!" 짐이 말했지만, 우리는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토니는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어, 물에 적셨다가 내 머리 위에다 흔들고서 "우리의 아버지."하며 기도를 올렸다. 그런 다음 그는 내 두 팔 밑을 잡아 약간 들어올리고서 흔들다가 운하 속으로 집어던졌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내게 달려드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숨이 헉 막혔다. 나의 두뇌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모든 것이 물 속 같은 흐릿한 상태로 녹아버렸다. 나는 한순간 물 밑에 있다가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다가 다시 한 번 떠올라 세 번째로 가라앉을 참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라앉지 않았다. 가라앉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두 발로 차댔다. 내가 알게 된 것은 계속 기운차게 발로 차면서 물 위로 떠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둑으로부터 웃음소리들이 터져나오는 것을 들었고 그리고 잠시 뒤에 토니가 내 곁으로 헤엄쳐 왔다. 그는 내 팔을 잡고서 운하의 양쪽을 잇는, 배 끄는 길 쪽으로 나를 이끌어 가자 기다리고 있던 짐이 나를 물가로 세차게 끌어당겼다. 나는 거기에 누워 헐떡였지만 기분만은 의기양양해 있었다. "넌 언젠가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도 이기고 말 게다." 무릎을 꿇고 내 몸의 물기를 닦아주면서 토니가 말했다. 그것은 나의 최초의 수영이었다. 그리고 그게 나의 마지막 수영은 아니었다. 그 후 한 여름 숲에서 발견했던 바위가 많은 작은 시내에서 나는 다시 여러 번 수영을 했던 것이다. 종종 나는 다른 아이들이 헤엄을 치거나 딸기를 따는 동안 시냇물 기슭에 누워 있곤 했다. 이따금씩 거기서 잠이 들어 버리기도 했다. 나는 행복했다. 나는 세상을 내다보면서 모든 것을 눈여겨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내 자신만을 보지 못한 채. 그런데 어느 날 나의 발로 미는 차가 부서졌다. 굴대축이 부러지고, 앉는 자리가 무너져버려 아무도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은 석탄광 안으로 처넣어져 녹슬고 있었다. 그 차가 없으면 나는 끝장이었다. 나의 형제들은 밖으로 놀러 나갈 때 더 이상 나를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시 일자리를 얻으면, 새 차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런 어머니의 말이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낭패감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그것은 단지 그 낡은 차가 몹시도 그립다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나의 형제들과 더 이상 밖에 나갈 수가 없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그러하였다. 모든 것이 변했다. 나는 마침내 내 자신과 맞닥뜨리게 되었던 것이다. 전에 이따금씩 찾아들던 생각,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이상한 생각이 이제는 훨씬 더 커다란 모습으로 다가왔다. 며칠 뒤 내가 앞뜰에 앉아서 형제들과 장난감병정놀이를 하고 있을 때, 몇몇 친구들이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말했다. 그날은 날씨가 좋아서 아무도 집에 남아 있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낚싯대와 다른 도구들을 가지러 달려갔고, 모두 흥분해 있었다. 피터는 날이 저물기 전에 자기가 피라미 스무 마리를 잡겠다고 내기를 걸었다. 그들 모두가 떠날 준비를 하고서 대문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때 토니가 뭔가를 잊어버리고서 그것을 가지러 한 친구와 함께 되돌아왔다. 그가 다시 길을 내려갈 적에 나는 묵묵히 그를 올려다보면서 말없이 호소를 했다. 토니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어디든 나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은 그것이 첫 번째였던 것이다. "미안하다, 크리스."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피라미들을 많이 잡아다줄게." 그는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저 애가 가엾구나." 그의 친구가 말했다. 토니가 그 친구를 난폭하게 밀치는 바람에 그는 길바닥에 넘어졌다. 그들은 계속 나아가 다른 아이들과 합류하였다. 나는 뜰에 혼자 남아 있었다. 나는 뒤틀리고 또 뒤틀리는 나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제5장. 카트리오나 델라헌트 내 세계의 밑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삶이 시들해져버린 것 같았다. 내가 보고 느끼는 바로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 나는 행복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주방 창가에 앉아 바깥에서 나의 형제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축구시합을 하는 것을 내다보곤 하였다. 특히 피터가 골을 얼마나 자주 집어넣는가도 보았다. 때로는 그 아이들 중의 누군가가 나에게 미소지으면서 손을 흔들곤 했다. 나는 손을 흔들어 답을 하려 했지만 팔을 쳐들 때마다 내 팔은 옆으로 휙 뻗쳐나가 창틀에 쾅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뒤쪽에 있는 소파 위로 몸을 던지고서 한구석에다 얼굴을 파묻고 있곤 했다. 이제 나는 꼭 열 살이었지만 걸을 수도 말을 할 수도 혼자 힘으로 먹거나 옷을 입을 수도 없는 소년이었다. 나는 진작부터 무기력했었지만 그러나 이제 비로소 내가 정말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나는 내 자신에 관해서 아직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 이상의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나는 무엇이 나를 다르게 만든 건지, 어째서 그런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다만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다니거나, 축구를 하거나 나무에 올라갈 수 없으며 심지어 혼자 밥을 먹을 수조차 없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 분명하게 생각할 수도 없이 느낌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 마음이 간직하고 있는 그 모든 환상들과 꿈들을 뚫고 계속 올라와 마침내 그것들을 조각조각 찢어버리고 내 마음을, 내가 불구자라는 현실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때까지는 나는 내 자신에 관해서는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씩 내가 남들과 같지 않다는 어렴풋한 느낌이 들거나 내 마음 속에서 약간 혼란스런 불안감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만물의 밝음 속의 단 한 개의 어두운 점이었을 뿐, 그것에 대해서 곧 잊어버리곤 했다. 나는 계속 나의 형제들과 함께 놀며, 내가 볼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삶의 편린들을 즐기면서 그 동안 내내 나 자신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이제 나는 즐거움을 얻으려 몹시 애쓰는 호기심으로 들끓는 한 작은 소년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서야 마악 자기 자신의 불행을 발견한 한 불구자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나는 피터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튼튼하고 실팍한 손가락들을 가진 끄떡거리지 않는 갈색의 손, 단단하게 움켜잡을 수도 있고 밤알을 공중 높이 던질 수도 있는 손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나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구부러지고 비틀어진 손가락들을 가진 괴상하고, 뒤틀린 손이었고, 결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실룩거리고 흔들거려 인간의 손이라기보다는 꿈틀거리는 두 마리의 뱀처럼 보이는 그런 손이었다. 나는 그 손과, 거울을 볼 때마다 보이는 건들거리는 나의 머리와 한쪽으로 쳐져 있는 나의 입을 혐오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거울을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거울은 나에게 너무도 견디기 힘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울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때마다 볼 수 있는 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입이 열리면 옆쪽으로 돌아가 흉하고 바보처럼 보이게 되고, 얘기를 하려고 하면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턱 아래로 침을 흘리며 꺽꺽거리기나 할 뿐이며, 머리는 연신 이쪽저쪽으로 흔들리고 건들거리며, 미소를 지으려고 하면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이 찌그러져 흉한 탈바가지처럼 보이는 그런 모양을.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들에 깜짝 놀랐다. 내가 그렇게 보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거울을 보았지만, 그러나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나의 이상한 모습을 보지 못했었던 것이다. 이젠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똑같은 괴이한 얼굴이 맞받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내 침대 위로 올라가 발로 벽에 걸려 있던 작은 거울을 걷어찼다. 거울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쨍그렁 깨지는 소리를 듣고서, 어머니가 위층으로 달려올라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나의 왼발로 거울이 깨져 있는 곳을 가리켰다.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커튼을 친 창문을 뚫고 들어온 한 줄기 햇빛 속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런 짓을 하면 칠 년간 재수가 없단다." 부서진 유리조각들을 쓸어모으면서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몇 주일 뒤에 어머니는 용케도 내게 새 차를 사주실 수 있었다. 이번에는 속에 쿠션을 넣은 멋진 좌석과 고무 타이어를 가진 진짜 휠체어였다. "이젠 넌 다시 나갈 수가 있어." 어머니가 행복한 듯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나의 형제들은 그들이 부르는 대로 나의 새 마차를 몹시도 자랑하고 싶어서 나를 거리로 데리고 나갔다. 모든 친구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었고, 각기 순서대로 새 차에 탄 나를 밀고 다녔다. "이걸 마이크라고 불러라." 반짝이는 검은 가죽 팔걸이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아이들 중의 하나가 의견을 내놓았다. "아냐." 의기양양하여 으쓱거리며 피터가 말했다. "우린 이걸 실베스터라고 부를 거야." 그날 그들은 자기들이 축구시합 하는 것을 구경하도록 나를 데리고 갔다. 나를 둘러싼 그 떼거리들이 우스갯소리들을 하고, 그날 밤에 할 놀이들을 생각해내는 등,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똑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인가 나의 삶으로부터 빠져나갔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내가 무엇이 이상한가 눈여겨보는지를 그들의 표정으로 알아보기 위하여 계속 그들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내 곁을 지나갈 적마다 나는 얼굴을 숨겼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이 내 얼굴을, 그 다음에는 내 손을 힐끔거리고 같이 가는 사람에게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다 말고 힐끔힐끔 나를 뒤돌아보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내는 그런 시선들은 곧바로 내 몸을 꿰뚫고 들어와 내 가슴 속에 자리잡았다. 나의 형제들은 내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나는 알아차렸다. 나의 낡은 발로 미는 차가 부서져버린 이후의 그 몇 주일 새에, 나는 내 육체가 다르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된 만큼 내 마음도 달라져 있었다. 나는 더욱 예민해졌고, 내가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겁을 먹게 되었다. 나는 이제 그 끙끙대며 하는 말조차 사용하지 않고서, 나의 주위에서 노는 내 형제들과 친구들을 벙어리처럼 말 없이 구경하기만 했다. 나는 그들의 놀이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나는 이제 같이 끼여 노는 참가자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구경꾼으로 변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일년에 어쩌면 한두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시는 나가지 않았고, 나가더라도 그들에게 집들도 사람들도 없는 아주 고적한 곳으로 날 데려가도록 했다. 나의 형제들은 무엇이 나를 그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게 만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함께 밖으로 나가 전처럼 즐겁게 지내자고 내게 계속해서 졸라댔지만, 나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머리를 긁적이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자기들끼리 나갔다. 어머니는 나에게 일어난 그런 변화를 알아차렸다. 어머니는 그 이유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안의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더 잘 이해했다. 나는 어머니를 속일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것의 반을 스스로 느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행복한지 슬픈지를 알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젠 내가 거의 언제나 슬프고 우울하며 내 내면세계 속에 틀어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전처럼 집안을 이리저리 기어다니지 않고 커다란 안락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서 난롯불 아니면 그냥 벽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메워주려 열심히 애썼다. 그녀는 내가 외롭다는 것을 알았으며, 내가 외롭게 지내게 놔두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위해 작은 소일거리들을 만들어냈다. 왼발에 연필을 쥐고서 신문에 실린 이야기들을 육페니짜리 싸구려 종이에다 베껴쓰는 것도 소일거리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는 내가 그것을 정확하게 옮겨 적었는지 조사해보곤 했다. 그렇게 쓴 것들은 끔찍한 모양이었다. 중간에 점들이나 대시나 혹은 쉼표도 없이 그리고 물론 의문부호나 감탄부호 같은 것들도 전혀 없이, 가로선으로 나가면서 자꾸만 비스듬히 아래로 기울어지는 그 큼직한, 기어가는 듯한 대문자들. 그것이 나를 위해 나날을 좀더 가볍게 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이 내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있는 그 끔찍한 불만감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쓴다는 것, 아니 베껴쓴다는 것은 괜찮은 일이긴 했다. 그것은 최소한 내가 읽기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치는 않았다. 나는 다른 어떤 것을 원했다. 내 내부에서 차 올라오는 어떤 팽팽한 힘, 정신적 긴장, 내 신경질적인 에너지를 얼마간 써버릴 수 있는 기회를 원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쓴 것을 그저 베끼는 일에 지쳐버렸다. 나는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어떤 방법이 없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끔찍히도 짓눌려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열 살 반이었고, 내 자신의 내면 속으로 더욱더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단한 노력도 내게 기운을 차리게 해주지 못했고, 나를 이전과 같은 행복한 아이로 되돌려놓을 수 없었다. 이전의 행복한 소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소년 대신에,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고 전선줄처럼 팽팽한 신경을 가진, 늘 긴장해 있고 말이 없는 커다란 눈을 가진 한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날, 우리들 중의 하나가--패디였다고 생각된다--산타 클로스로부터 그림물감 상자를 선물로 받았다. 그때 나는 장난감 병정 선물을 받았지만, 온갖 놀라운 색깔들이 들어 있는 그림물감과, 보풀보풀한 털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그림붓을 본 순간, 나는 단번에 그것들에게 반해버렸다. 나는 그것들을 내가 가져 내 것으로 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나는 그 자그마한 단단한 덩어리의 물감들--푸른색, 빨강색, 노란색, 초록색, 하얀색--에 홀려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패디가 낡은 구두상자에서 찢어낸 하얀색 마분지 조각에다 뭔가 그리려 애쓰지만 잘 되지 않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에게 화가 나는 것을 느꼈고, 약간의 질투심마저 느꼈다. "빌어먹을, 난 이런 것들을 사용할 수가 없어." 붓을 내던지면서 그가 투덜거렸다. "이건 계집애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야." 나는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장난감 병정 상자를 그의 앞쪽으로 발로 내밀면서 나는 그에게 끙끙거리는 말로, 그림물감을 그것과 바꾸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좋았어!" 계집아이들이나 갖고 노는 그런 장난감을 없애버린다는 것이 기뻐서 패디는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 그걸 사용하지?" 그건 내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나의 왼발을 쳐들어 보이며 미소지었다. 나는 크리스마스의 흥분이 사라질 때까지 그것을 치워두었다. 그러다가 주방에 어머니와 나 외에 아무도 없던 어느 조용한 오후에 나는 벽장으로 기어가 물감이 든 자그마한 검은 상자를 꺼내어 내 앞에 놓았다. "뭘 하려는 거니?" 내가 벽에 등을 기대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곳으로 건너오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분명 네가 그림을 그리려는 건 아니겠지?" 그림을 그리려는 것이라고 아주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발가락들에 끼워 붓을 집어올려 침으로 적신 다음에 그것을 네모난 물감통들 중의 하나--내가 가장 좋아하는 밝은 푸른색 물감--에 대고 문질렀다. 그 다음에 나는 그 붓을 다른 한 발에 대고 문질렀다. 붓을 떼자 발에 난 푸른색 얼룩이 보였다. "되는구나!" 나는 용케도 큰 소리를 내어 외쳤고, 내 얼굴이 흥분으로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물을 갖다주마."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 물 한 컵을 갖고 돌아와 내 앞에 놓았다. 나에겐 종이가 없었다. 어머니가 피터의 공책 한 장을 떼어주었다. 나는 붓을 물 속에 담갔다가 생생한 붉은색 물감에 문질렀다. 그 다음에 나는 내 발을 움직이지 않게 안정시키고서, 어머니가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종이 위에 십자가 모양을 그렸다. 나는 어머니에게 의기양양하게 싱긋 웃어 보였다. 나는 오년 전 언젠가 어머니와 지금과 거의 같은 자리엣 함께 앉아 내가 몸을 떨면서 땀을 흘리며 처음으로 왼발로 글씨를 그렸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도 어머니는 내 곁에 있었고, 지금도 역시 어머니는 내 곁에 있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나를 북돋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땀을 흘리는 일도, 몸을 떠는 일도 없었다. 나는 아주 매끄럽게 해냈다. 지금은 부러진 분필조각이 아니라 그림붓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똑같은 것을 의미했다. 나는 외부세계와 통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나의 왼발로써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나의 그림물감에 빠지게 되었다. 피터의 얼굴 스케치--피터는 화를 내면서 그 스케치를 몹시 싫어했다--에서부터, 이웃집 고양이가 와 다 먹어치우기 전에 그렸던 쓰레기통 속에 들어 있던 죽은 물고기들에 이르기까지, 나는 말도 안되는 온갖 종류의 그림들을 그렸다. 그 다음엔 어머니가 한두 권의 스케치북과 연필 한 자루와 함께 더 많은 물감들과 붓들을 사주셨다. 그것들은 나의 표현영역을 더 넓혀주었고, 내게 소재들에 대한 더 큰 선택권을 갖게 해주었다. 불안하고 어색했던 처음 몇 주일이 지난 뒤에는 나는 나의 새로운 소일거리에 느긋하리만큼 익숙해졌다. 나는 날마다 위층 뒤쪽 침실에서 완전히 혼자의 힘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 변화하고 있었다. 그 당시엔 그걸 몰랐지만, 그러나 나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일들을 잊어버리고서 다시 행복해지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형제들과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 않았다. 나의 정신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 날마다 해야 할 어떤 것,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먹을 꼭 쥔 두 팔을 양옆으로 단단하게 붙이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다리 밑에 넣어 동그랗게 오그리고서, 왼쪽 발가락들로 붓을 잡은 채 마루 위에 몇 시간이고 웅크리고 앉아 있곤 했다. 모든 물감들과 붓들을 내 주위에 놓아두었고,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도화지를 압핀으로 꽂아 고정시켜 달라고 하곤 했다. 나의 머리는 거의 무릎 사이에 들어가 있고, 등은 병뚜껑 따개처럼 구부러져 매우 이상하고 거북스런 자세였다. 그러나 내가 그린 가장 좋은 그림들은 그런 자세에서, 마룻바닥을 나의 유일한 이젤로 삼아 그린 것들이었다. 서서히 나는 이전의 침울함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순수한 희열감을 느꼈다. 그것은 전에는 체험해본 적이 없는, 나를 나 이상의 것으로 승화시켜주는 듯한 감정이었다. 내가 침울해지고 집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뾰루퉁해지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 때뿐이었다. 어머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것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에게 불행감을 느끼는 시간을 줄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후에는 어머니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혼자서 지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위층 침실에서 몇 시간이고 그림만 그리며 앉아 있곤 했다. 내게 무언가 필요한 게 있는지 보려고 어머니는 자주 위층으로 올라와 발끝으로 방안에 들어오곤 했다. 언제나 어머니가 방안으로 들어와 보게 되는 것은 발가락에 붓을 쥔 채 도화지 위에 몸을 굽히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때때로 어머니는 내쪽으로 다가와 내려뜨려진 머리칼을 쓸어 올려 주거나 이마에 난 땀을 닦아주었다. 나의 왼발을 피터나 패디가 자기들의 손을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는 하지만 하나의 그림을 앞에 두고 거의 온종일 마루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은 신체의 다른 조직에는 여전히 끔찍한 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내가 괜찮은지 보려고 올라오면 나는 그저 고개만 무뚝뚝하게 끄덕이고 볼멘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내가 열한 살쯤이었던 어느 날, 어머니가 몸이 아파 로툰다 병원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몇 주일 뒤에 어머니는 마지막 아이인 사내아이를 낳아 우리 식구는 총 스물 두 명이라는 총 합계가 완성되었다. 맨 막내동생이 태어난 뒤에도 어머니는 계속 아프다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집에 남아 있는 우리들은 모두 끔찍한 상태에 있었다. 어머니가 집에 없게 되자 집안은 죽어버린 것 같았다. 그것은 시계에서 그 내부장치를 다 빼내버려 정지해 있는 힘없는 시침과 분침만 남아 있는 것과 같았다. 나는 이젠 그림조차 그릴 수 없었다. 어머니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십이월의 추운 어느 날 밤 내가 소파 위에 웅크리고 있을 때 현관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근심이 되어 읽지는 못하고 신문을 그저 손에 들고서 난롯가에 앉아 있던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다가 다시 한번 노크를 하자 일어나 문을 열어주기 위해 홀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서 말하는 목소리들이 들리긴 했지만 나는 일부러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머니 때문에 너무도 걱정이 되고 마음이 산란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마악 돌아앉아 소파에서 벽에 가장 가까운 구석에다 머리를 파묻었을 때 문이 열리더니 아버지와 어떤 사람이 부엌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아이가 크리스티요."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자 한 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고 있나요?" 눈을 약간 깜박거리며, 멍청한 모양으로 나는 방문객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전등을 켜지 않아 방안은 약간 어둑어둑했지만, 바깥 거리의 가로등 불빛으로 나는 그 손님이 젊은 처녀이며, 열여덟 살쯤 되었으리라 짐작했다. 그녀는 날씬하고 키가 크고 아름다웠다. 내가 이제껏 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안녕." 그녀가 아름다운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내 이름은 미스 델라헌트야. 너의 어머니가 내게 네 이야기를 해주셨단다." 나는 뭔가 말하려 애썼지만, 언제나처럼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었을 뿐이다. 그 처녀는 그저 싱긋 웃고서 소파 가장자리에 앉았다. "널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녀가 말했다. "괜찮지?" 나는 괜찮다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어떻게 나에 관해 듣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로툰다 병원 의료 사회사업계에서 일하는 학생이고, 어머니를 만나 나에 대한 이야기와 내가 왼발로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나를 만나보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찾아온 데에는 또 다른 동기도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 없이 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몹시 근심하고 있으니 어머니에게 간단한 메모를 쓴다면 전달해주리라는 것이었다. "날 위해서 그렇게 해주겠니?" 그녀가 물었다.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발가락으로 연필을 잡고서 나는 낡은 봉투의 뒷면에다 썼다. "사랑하는 엄마, 걱정 말아요. 모두가 괜찮아요. 먹을 것도 많고요. 빨리 나으세요. 크리스티." 나는 끝에다 키스를 보낸다는 뜻으로 "키스"라고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그러는 게 더 좋아 보일 거라고 말해 내키지 않으면서도 봉투 구석에다 커다랗게 "키스"라고 휘갈기고 나서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후 떠나갔다. 나는 그날 밤 어질어질한 기분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번에 그녀가 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랄 만한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나아가고 있으며 곧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좋은 소식과 함께, 그림물감과 붓과 드로잉북을 한 보따리 갖다주었던 것이다. 카트리오나 델라헌트, 그녀는 내가 누군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나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내 자신의 인생 길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있으면서도 나로 하여금 내 주위의 일상적인 수준의 사고와 활동을 넘어서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자 애써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나의 내면세계 속에서 좀더 안정감을 얻도록 어떤 사람이 내게 몹시 필요했던 때였던 것이다.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그녀가 내 앞에 놓여 있는 그 세월과 그 싸움들 속에서 나를 북돋워주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열한 살이었던 그때에는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다만 내가 그리던 최초의 꿈속의 여인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제6장. 화가 내가 그리던 최초의 "꿈의 여인"을 만났다는 것은 나를 위해 특이한 일련의 결과를 가져다줄 하나의 사건이었다. 나는 너무도 어려서, 내 가슴이 못된 짓을 했는지 알지 못했고, 또한 내 가슴이 그랬다 하더라도 나는 너무 어려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나이에는 나는 나의 다른 부분들--거기에 내 가슴도 포함된다--보다는 나의 왼발에 더 많은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나이 감정 역시 조금의 상상력이라도 가진 다른 여느 어린 사내아이의 그것과 거의 같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델라헌트 양이 나를 찾아올 때면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꺼려하긴 했지만, 그러나 점차 침착해지고 실은 그녀가 오는 날을 아주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웨이브"를 넣어 어머니에게 아주 세심하게 머리를 빗어달라고 하곤 했다. 그녀가 오는 날마다, 피터와 마찬가지로 이따금씩 나 역시 어머니에게 토니의 팔페니짜리 머릿기름 병에서 기름을 조금 훔쳐다가 내 머리에 발라달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왠지 나의 새 친구와 함께 있을 때면 말이라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어떤 이상한 무의식적인 언어, 즉 우리 자신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표현하지 않고도 서로를 이해하는 독특한 방법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나는 텔레파시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끙끙거리며 말하지 않고도 미스 델라헌트와 대화할 수 있었던 방법이 텔레파시로써 정확히 설명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의 정신은 쭉쭉 뻗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좀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그것들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좀더 많이 느끼고 좀더 많이 생각하고, 따라서 좀더 많이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것은, 내 자신을 표현하고 내 정신의 표면 저 아래에 놓여 있는 모든 것들 속으로 다다르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닥쳐올 모든 것들에 비추어볼 때에는, 나는 여전히 내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림에 더욱 몰두할수록 나는 내 마음이 더 행복해지고 더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뭔가 묻거나 심지어 내게 말을 걸어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덥석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유일하게 사랑할 만한 위대한 것이 되었고, 내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중심점이 되었다. 나는 나의 물감들과 붓들로 이루어진 궤도 안에서 살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단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이 즐겁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 나의 눈에는 일종의 여신이 되어버린 어떤 사람을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 나의 아름다운 "꿈의 여인"은 보잘것없는 나의 작은 그림들을 받으면 언제나 아주 즐거워했을 뿐만 아니라, 나의 그림들을 실재로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갖고 있는 위대한 점이었다. 그녀는 내가 쓸모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나는 아주 형편없이 그렸다. 내가 그리는 것, 아니 그릴 수 있는 것은 도화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갈색과 초록색의 커다란 덩어리들과, 커다란 넓이를 채운 엄청난 양의 끈적끈적한 푸른색--하늘을 나타내는--로 이루어진 끔찍하게 보잘것없는 풍경화들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미스 델라헌트는 언제나 그 그림들에 대하여 그것들이 위대한 명작인 것처럼 이야기했고, 그렇게 용기를 북돋워줌으로써 나는 더 잘 그리고, 더 큰 자부심을 갖고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쓰는 모든 색깔들을 내 자신이 섞어 만들었다. 나는 물감들을 마룻바닥 위에 배열해 놓고서 연필들과 붓들을 준비했다. 그 모든 것을 나의 왼발로 했다. 집안 식구들은 내가 그렇게 할 적에 기꺼이 도와주고 싶어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물감이나 붓에 대해서 가장 기초적인 것조차 알지 못했고, 그것들을 다룰 줄도 몰랐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나의 귀중한 장비들을 끔찍하게 망쳐 놓을까봐 겁이 났고, 그래서 그것들을 내 자신이 직접 손보는 쪽을 더 좋아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물감들을 몽땅 낡은 마분지 상자 속에 넣어 침대 밑에다 넣어두곤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것들을 보관할 수 있는 새 마분지 상자를 하나 만들어주었다. 그것을 나는 나의 "연장 상자"라고 불렀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를 몇 주일 앞둔 십이월 어느 날 나의 왼발로 "선데이 인디펜던트"를 뒤적이고 있을 때,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까지의 어린이가 참가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그림대회에 관한 광고를 보았다. 나는 막 열두 살이 조금 지났으므로 참가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여서 아이들이 모두 미사에 참석해 집에 없었고, 어머니는 저녁에 먹을 양배추를 씻고 있었고, 아버지는 창가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림 대회에 관한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거기엔 한 평범한 흑백 그림 하나가 실려 있었는데, 그 그림을 물감을 써서 채색화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흥겨운 무도회 광경을 그린 그 흑백의 그림은 살에 착 달라붙은 스타킹에 더블릿을 걸친 남자들, 흘러내릴 듯한 치마를 입고 있는 숙녀 등 모두가 품위 있는 옷들을 입고 춤추는 다른 사람들에 둘러싸여, 무도회장 한가운데서 왕자님과 춤추는 신데렐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샹들리에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물감으로 그려놓으면 좋은 그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에 너무도 마음이 끌려 응시하고 있자니, 그 그림 전부가 완성되어 색채들로 환히 빛나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게 내 눈엔 너무도 분명해 내 자신이 이미 그려놓았던 그림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주방에 있는 어머니를 불러내어, 그 그림대회에 관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한번 그려 보렴."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내가 그럴 수 있을 만큼 잘 그리지 못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건 바보 같은 말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천재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어. 그냥 한번 그려 보렴." 나는 그렇게 했다. 바로 그날 오후에 나는 그 그림을 물감으로 그렸고,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그렸다. 나는 신데렐라에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발그스레한 뺨, 황금빛의 긴 고수머리와 아름다운 푸른색 드레스로, 나는 신데렐라를 아주 눈부시게 찬란한 처녀로 만들었다. 그녀의 하얀색 새틴 신발이 두 마리의 작은 쥐처럼, 그녀의 긴 옷자락 밑에서 예쁘게 내다보고 있었다. 왕자님의 옷은 밝은 자줏빛으로 그렸고, 거기에다 예술적인 마무리로 보석처럼 자그마한 노란 점들을 잔뜩 그려넣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들 두 사람 모두 푸른색으로 칠했지만, 그러나 왕자의 눈에는 초록색의 자그마한 점 하나를 찍어 넣었다. 그 그림을 완성했을 때 나는 만족스러웠다. 가망성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림대회 자체와 무슨 관련을 갖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할 수는 있어도, 나는 무엇이건 나의 "꿈의 여인"이 내게 청하는 것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녀에게 그림대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내가 색채로 그린 그림을 그녀에게 보여주었을 때, 미스 델라헌트는 내게 지체하지 말고 거기에 참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게 있어서 그녀의 말은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그림을 다시 세심하게 뜯어보고, 여기저기에 몇 군데 다시 손질을 하고 전체적으로 색조를 조금 더 높였다. 그런 다음 어머니에게 그것을 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여 다음날 신문사로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정말 그 모든 게 시간낭비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곧 그것에 관해서는 잊어버렸다. 무슨 자그마한 위로상이라도 당선될 것 같은 희망은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이전으로 돌아가 그 주일 내내 보통 때 그리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게 쓸모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최소한 그녀가 부탁한 일을 함으로써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것으로 행복해했다. 그런데 그 다음 금요일, 앞문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빨래를 하다가, 누가 왔나 보려고 손에 비눗물을 잔뜩 묻힌 채 부엌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마침 나는 모든 물감들과 붓들을 주위에 늘어놓은 채 부엌에 있는 커다란 둥근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곳은 보통 때 그림을 그리는 장소가 아니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위층의 침실에서 작업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아침에는 나는 그냥 기분전환 삼아 부엌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노크 소리에 나가보니, 그것은 사진사 한 명을 데리고 "인디펜던트"에서 나를 만나러 온 신문기자였다. 나 모르게 미스 델라헌트가 신문사 사람들에게로 가, 그들에게 신문사로 보내진 그 그림들 중의 하나는 한 소년이 발가락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신문사에서는 그것을 약간 의심스러워했고, 그래서 그들은 그게 어찌 된 일인지 조사해보기 위해서 신문기자들 중의 하나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기자와 사진사가 부엌에 들어왔을 때, 나는 흔들거리는 야자수들과 황갈색 해변이 있는, 푸른 초호 속의 남태평양의 한 섬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서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신문사 사람 두 명이 그들 조금 뒤에 서 있는 나의 어머니와 함께 방 저편에서 나를 응시하며 서 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정신없이 그리기를 계속했다. "사실이로군." 나는 그들 중의 하나가 일종의 경외심 섞인 낮은 속삭임으로 탄성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그들 두 사람을 어머니가 내게로 데리고 왔고,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우린 믿기 어려운 것으로 보았었죠, 브라운 부인. 하지만 이젠...." 그들이 말했다. 그들은 나에 관해 어머니에게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어머니가 그 나이가 될 때까지의 나의 작은 역사를 이야기할 적에 그들은 전보다 더 못 미더워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내내, 나는 될 수 있는 한 침착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조용히 그림만 그렸다. 드디어 그들은, 발가락에 붓을 잡고 이젤을 앞에 세워놓고서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한 장 찍었다. 그 이젤은 몇 달 전에 한 친구에게서 선물받은 것이었다. 이젤은 매우 유용한 것이긴 했지만, 그냥 마룻바닥 위에 놓고서 그리는 것이 훨씬 더 좋았으므로, 이젤이 놓여진 것은 단지 그때를 위해서만, 내가 좀더 화가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나의 첫번째 사진이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내가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에서 피터와 함께 침대 속에 아늑하게 누워 있을 때, 아버지가 층계를 달려 올라와 방안으로 뛰어들어오더니, 나를 안은 자세로 일으켜 세웠다. "봐라! 봐라!" 내 얼굴 앞에 "선데이 인디펜던트"지를 흔들어 보이며 아버지가 말했다. "봐라, 네가 당선됐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거기, 가장 중심이 되는 페이지 위에, 이전 금요일에 그들이 찍었던 내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 속에는 짧은 바지를 입고, 야윈 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두 눈썹은 다소 고상한 척 치켜올려져 있고 뒤틀린 한쪽 손을 가만히 있게 하기 위해 옆구리에 꼭 붙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온 식구들이 아침을 들면서 나의 성공에 관해 흥분하여 얘기하고 있는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가 나를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모두가 당장 얘기를 그쳤다. 어머니는 들고 있던 찻주전자를 내려놓고서, 아버지의 두 팔에 안겨 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결코 노력을 멈추지 말거라, 크리스." 내게 키스하며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나의 "꿈의 여인"은? 그날 낮에 그녀 역시 왔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면서 내 이마에 키스했다. 나의 왼발과 나는 다시 해낸 것이다. 제7장. 연민의 시선 열세 살--그리고 아직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혹은 자기 자신의 능력들에 관해 그것들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만큼을 알게 되지 못한, 여전히 한참 어린 소년 화가. 그림그리기가 나에겐 모든 것이 되었다. 그것에 의해서 나는 여러 가지 세련된 방식들로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림그리기를 통해서 나는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한 감옥에 갇혀 아직은 나의 현실이 되지 못한 한 세계를 내다보는 죄수처럼 나의 쓸모 없는 육체 안에 가리워져 있는 나의 가슴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을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나의 두 눈보다는 나의 가슴으로 더 많은 것을 보았다. 나는 이따금 몇 시간씩 침대 속에서 혼자 앉아 있곤 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무엇을 하지도 않으면서, 나의 일상생활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 자신만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그냥 앉아 있곤 했다. 그런 백일몽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그냥 앉아 있곤 했다. 그런 백일몽들 중의 하나에 빠질 때면 나는 다른 모든 것들은 잊어버렸다. 아래층의 통풍이 잘 안되는 작은 부엌에서 나는 커다란 목소리들... 피터가 문간에서 부는 하모니카 소리... 아래층 라디오에서 나오는 재즈 음악 소리... 바깥 거리에서 외치는 넝마장수의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 그 모든 것들이 녹아들어, 서로 구분이 안되는 한 가지의 희미한 소음으로 변해버리고, 그러면 점차로 내겐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에 푹 빠져, 그냥 거기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젠 밖에는 전혀 나가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밖에 나가길 그만두었다. 나는 이제는 집안에서도 나의 형제들과 함께 놀지 않았다. 나의 형제들은 처음에는 그것에 어리둥절해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 사이에 새로이 들어선 그런 종류의 관계를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머지 식구들에게 내가 낯선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한 집안에서 모두 함께 살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서로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내면세계 속에 더 많이 틀어박혀 살게 되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로부터 떨어져서, 그들에게는 가장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 살았다. 나는 나 자신의 상태가 행복스러웠지만, 그러나 자족적인 상태에 이르기까지는 정말로 앞으로 얼마나 더 멀리 나가야만 하는가를 그 당시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 거리들과 뒷골목에서의 생활, 한 소년이 일상적으로 누리게 되는 생활을 박탈당했던 만큼 나는 나 자신의 정신이 나의 육체보다 몇 마일이나 훨씬 앞서서 성장하고 발전해 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나는 또다시 내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전번처럼 키가 크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내 나이에 더욱 어울리는 또 다른 "꿈의 여인"이 나의 시야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제니였다. 그녀는 우리집으로부터 몇 집 건너에서 살았다. 그녀는 작고 활기차고 발랄했으며, 그 생생한 초록빛 눈과 도톰하게 나온 입술과 요정처럼 예쁜 얼굴에 숱 많은 갈색 곱슬머리를 갖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제니는 남자를 녹이는 여자애였다. 그애는 단지 그 아름다운 두 눈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거리에 사는 소년들 사이에 일대 소동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모두가 그녀에게 반해 있었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누가 그녀와 결혼할 것인가를 놓고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들 사이에서 많은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진 않았지만, 그 때문에 제니를 그만 못 보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말하자면 나의 침실 창가로부터 그녀를 숭배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그림을 게을리하게 만들었다. 아래 거리에서 제니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창가로 기어가 침대 위에 앉아 제니가 전혀 내 눈길을 끌지 못하는 다른 여자애들과 함께 깡총거리며 뛰어 노는 모습을 내다보곤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에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려 했는데, 그 순간 그녀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나는 답으로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러자 그녀는 내게 키스를 보냈다. 나는 자신의 눈을 거의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키스를 보내고 나서는 검은 곱슬머리칼과 하얀 치맛자락을 바람에 날리면서 거리 아래로 달아나버렸다. 그날 밤 나는 낡은 수첩에서 한 페이지를 찢어내, 떨리는 발가락으로 연필을 잡고서 거기에다 제니에게 보내는 열정적인 작은 편지를 썼다. 나는 나의 남동생들 중의 하나에게 그 쪽지를 전달하라고 시키면서, 제니에게 직접 갖다주지 않으면 혼내주겠다고 나의 왼발로 위협했다. 그 쪽지에서 나는, 그녀가 우리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그렇게 하게 해준다면 그녀의 그림을 많이 그려주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에 황급히 덧붙인 추신에서, 그녀를 "무지무지"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제니가 답장을 주리라는 기대는 감히 하지도 못한 채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남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반 시간 뒤에 동생이 돌아왔는데, 그녀가 보내는 쪽지가 동생의 스웨터 속에 끼워져 있었다! 나는 그 쪽지를 꺼내, 동생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 열심히 읽었다. 동생은 내가 미쳐버렸거나 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하는 듯, 곁에서 이상한 눈길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제니의 짤막한 편지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고, 특히 그녀가 내가 원한다면 다음날 우리집 뒤뜰로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말한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이상하게 으쓱거리는 마음이 일어났고,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나는 내 몸이 번갈아가며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동생을 뒷짐을 지고 입을 딱 벌린 채, 아직도 내 곁에 서 있었다. 나의 얼굴을 못박힌 듯 바라보는 그의 커다란 푸른 눈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그에게 "꺼져"라고 고함을 질렀고, 동생은 놀란 토끼처럼 방에서 황급히 달아나버렸다. 이윽고 나는 베개 위에 몸을 던지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내 가슴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다음날, 온통 말쑥하게 차리고 토니의 값비싼 머릿기름이 실제로 이마 위에 뚝뚝 떨어질 정도로 머리 치장을 하고서 약속한 곳으로 나갔다. 귀여운 제니는 매우 다정했다. 우리는 함께 앉아 내가 그린 그림들 몇 개를 훑어보았다. 그녀는 내가 그림을 보여줄 때마다 작은 감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처음에는, 분명하게 나오지 않는 나의 말과, 두 손 대신 한쪽 발을 이용해야 하는 것 때문에 수줍어하고 거북스러워했다. 그러나 제니는 아주 천진난만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주 약삭빠른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에게서 이상한 것을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보였고, 피터나 패디에게 그러는 것과 똑같이 게임들과 파티들과 옆집에 사는 소년에 대해서 즐겁게 얘기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그런 점이 좋았다. 우리는, 제니와 나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매주일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쪽지들을 교환했고, 그녀는 토요일 밤마다 살짝 나를 만나러 오면서, 작은 책들과 잡지들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 책들과 잡지들을 결코 읽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나의 침실에 있는 낡아 벌레먹은 책장에 모두 넣어두고는, 보물처럼 무척 소중히 간직했다. 불구자인 내가 이웃에서 대부분의 애들이 따르는 가장 예쁜 여자애와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남몰래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다. 나는 피터가, 제니는 미녀이고 자기는 그녀의 가장 사랑받는 애인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열렬하게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내 자신이 완전히 하나의 정복자라고 생각하면서 엄청나게 우쭐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제니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제니가 나를 보러오기 때문이었다! 피터가 의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 피터는 제니와 내가 서로 머리를 아주 가까이 하고서 뒤뜰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우리는 제니가 갖고 온 무슨 낡은 이야기책을 함께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그러나 제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고개를 들고서 피터에게 짧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도로 책 위로 머리를 숙였다. 피터는 나를 죽일 듯한 시선을 던지고는, 문을 꽝 닫으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 떠나기 전에 제니는 한가롭게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아주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뭔가 힘든 말을 하려고 할 때면 그녀의 모습이 늘 그렇게 되는 것처럼, 작은 찡그림으로 그녀의 앞이마에 주름이 지고 아랫입술이 삐죽 내밀어져 있었다. 잠시 뒤에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서 머뭇거리더니, 갑자기 풀밭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주 다정하게 내 이마에 키스했다. 나는 깜짝 놀라고 당황하여 뒤로 몸을 움츠렸다. 이제껏 내게 키스해준 적이 없었다. 나는 뭔가 말을 하려 입을 열었지만, 그 순간 제니 는 벌떡 일어나--그녀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고 두 눈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달아나버렸다. 그녀는 작은 검은 색 구두를 요란스럽게 딸각거리면서 자갈길을 따라 달려내려가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 몇 주일 동안 그녀는 오지 않았고, 내가 정말로 폭탄을 퍼붓듯 그녀에게 쪽지를 잔뜩 보냈어도 나는 그녀 쪽에서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피터는 가엾은 제니에 대한 수많은 나쁜 얘기들을 내게 들려주며 내 마음을 돌려 놓으려 애썼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제니가 모든 사내애들에게 키스 한 번 해줄 때마다 일페니씩 바치게 한다는 얘기를 할 때에도 믿지 않아다. "그것 때문에 내가 언제나 빈털터리란 말이야." 빈 호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피터가 처량하게 말했다. 나는 종종 밤에 침대에 일어나 앉아 제니에 대해서, 그리고 그날 낮에 그녀가 뒤뜰에서 내게 키스했던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몹시 우울하고 외로운 기분이었다. 내 옆에서 피터가 편안하게 코를 고는 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서 불안스럽게 몸을 뒤척이면서 나는 어째서 그녀가 오지 않는 것일까, 혼자 물어보곤 했다. 나의 열네번째 생일이 왔다. 그날 아침에 받은 생일 카드들 중에, 제니의 것인 작은 어린애 같은 필체로 씌어진 것이 끼여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그녀는 계속 우리집 쪽에다 눈길을 주지 않았고, 한 번도 나 있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올리지 않았다. 나는 몇 시간이고 창가에 앉아 그녀가 나를 올려다봐주길 기대했지만, 마침내 어스름이 내기로 모든 것이 점점 어두워져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 떼거리의 사내애들이 웃어대면서 뒤쫓는 가운데 그녀가 다른 계집아이들과 함께 거리를 따라 달려내려갈 적에 보이는 그 희미한 하얀색 치마뿐이었다. 나는 실망감을 감추기 위해서 날마다 하루 온종일 성난 듯이 그림을 그리기만 했다. 형태 주제도 없는 미치광이 같은 보잘것없는 그림들이었다. 그것들은 그림이라기보다는, 들끓고 있는 내 마음의 조각들을 아무렇게나 거칠고 무분별하게 종이 위에 쏟아 내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뒤뜰에서 비누상자에 등을 기대고서 서글픈 마음으로 앉아 있을 때에,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친 듯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제니였다! 그녀는 몇 피트 떨어져 뜰 입구에 서 있었다. 그녀의 가녀린,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그녀 뒤쪽의 하얀색 담을 배경으로 하여, 유월의 햇빛 속에서 생생하고 환하게 그 윤곽이 드러나 있었고, 그녀의 그림자가 따뜻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 구부정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나를 건너다보고 있었지만, 연민의 시선이었다. 뒤에도 여러 번 알게 되었지만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동정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 즉 오직 참다운 인간적 애정만을 필요로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순전한 연민의 시선이란 게 얼마나 쓰라리고, 꼼짝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인가를. 나는 그녀의 연민 어린 눈길을 받으며 고개를 숙였고, 그리고 양편에서 한 마디 말도 없는 가운데 제니는 천천히 돌아서 나가버리고, 뜰엔 나 혼자만 남았다. 그 이후로 나는 달라졌다. 행복했던 몇 주일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내가 정상인 열네 살의 보통 소년이라고 꿈꾸도록 허용했었고, 그리하여 그 꿈 속에서 소년은 자기가 이웃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애를 "사랑"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년은 그 여자애가 거기에 응답하여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고 허황스러웠던 것이다. 이제 그런 가장은 모두 끝이 났다. 그러나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쓰라린 것은, 나의 불행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하며 나의 이상한 모습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나 자신의 자의식일 뿐이라고 믿도록, 내가 내 자신을 속였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멋지게 속아 넘어가다니, 내가 얼마나 바보였는가를 이젠 알게 되었다. 미스 델라헌트와의 만남이 가져다준 흥분과 제니와 함께 찾아왔던 꿈의 황홀함 속에서, 나는 자신을 거의 잊어버렸었다.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꿈의 세계 속에,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없는 낙원 속에서 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짧은 몇 주일 동안만이라도, 나 자신과 관련된 모든 불유쾌한 사실들에 대해서 내 눈을 멀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순수한 기쁨이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더욱 더 지독하고 쓰라릴 뿐이었다. 집안의 생활 역시 변해가고 있었다. 내게는 모든 아이들이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짐과 토니가 이젠 남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 느긋한 태도와 계집애 같은 여린 마음씨로 모든 사람들에게서 놀림 받는 조용한 소년이었던 짐도 남자가 되어 있었고, 그리고 겁없이 툭 하면 주먹을 써가며 얘기해서 집안의 나머지 다른 아이들보다 어떤 우월한 위치를 누렸던, 앞뒤 안 가리는 토니 또한 그러했다. 릴리 누이는 일요일 아침에 자주 나를 잠들게 하려고 내 두 눈에 동전을 얹은 채 나를 태우고 운하 둑을 따라 내 차를 밀고 가곤 했다. 패디는 이제 짧은 바지를 입고 뒷주머니에는 고무줄 새총이 삐져나와 있는 남학생이 아니라, 먼지와 회반죽이 잔뜩 묻은 장화와 작업복을 걸친 모습으로 매주 금요일 밤마다 한 다발의 봉급을 갖고 자랑스럽게 들어와, 뻐기면서 그것을 어머니에게 건네주는 벽돌 견습공이었다. 모나는 살찐 뺨과 오동통한 손을 가진, 솜털이 많고 토실토실한 작은 계집애에서 어느새 거의 매일 밤 "다른" 데이트를 즐기며 다른 어느 것보다도 춤추러가기를 좋아하는, 립스틱과 분을 바르고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열일곱 살의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해 있었다. 피터는 나보다 한 살 아래였고, 나는 그를 늘 가장 좋아하는 형제로 여겼었다. 거의 같은 나이라서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를 때리고 소리칠 수 있었고, 그래서 그가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피터마저 변한 것 같았다. 그는 몸이 자라나 긴 바지를 입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좀더 품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다가가기가 훨씬 더 힘들어진 어떤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나보다 어린 남동생들과 여동생들과는 아무런 연관이나 친근감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내가 이전에 그랬던 것과 똑같이, 겪어야 할 그들 자신의 유년시절이 있었고 사귀어야 할 그들 자신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좋은 아이들이었지만, 불구자인 자기들의 형제에게 약간의 경외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고, 그와 동시에 아마도 약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거의 알지 못했다. 나는 온종일 내 침실에서 그림을 그리느라 일요일 외에는 그들을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이면 나는 부엌 소파에 앉아 일요신문을 훑어보다가 그 다음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미사를 듣곤 했는데, 그때에도 나는 그들과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말을 잘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개는 내게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의 열다섯번째 생일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용케 파티를 열어주셨다. 그것은 즐거운 모임이었고, 나의 옛 친구들도 몇 명 왔다. 내가 모르게, 나의 누이 모나가 제니를 그 파티에 초대했고, 그래서 그녀도 왔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우리의 뒤뜰 로맨스 때 알았던 주근깨 많은 얼굴을 가진 꼬마 제니가 아니라, 회색빛 새틴 프록을 입고 미소짓는 아름다운 열여섯 살의 젊은 처녀였다. 그녀의 손톱은 윤나게 다듬어져 있었고, 그녀의 검은 머리칼에서는 향수냄새가 났다. 나는 테이블 건너편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전의 제니와 닮은 점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도, 그 다음 순간 그녀가 내게로 건너와 머뭇거리거나 수줍어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내 손을 잡았을 때 그것은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어때, 크리스 잘 지내니?" 반쯤은 장난치는 것 같고 반쯤은 달래는 것 같은 어조로 그녀가 물었다. "그래, 그래, 그만하면 됐어. 흥분하지 말아." 내가 뭔가 말하려 안간힘을 쓰자 그녀가 위로하듯 다시 말했다. 나는 그 때문에 그녀가 혐오스러워질 정도였다. 그 작은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 어머니가 내게 즐거웠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머리가 너무나 아팠던 것이다. 그러나 그 두통보다 더 고약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고약했던 것은, 그날 밤 자려고 누웠을 대에 느꼈던 그 끔찍한 마음의 아픔이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도 아니었다. 나는 유년시절의 아무것도 모르는 행복한 무지와, 깨어 일어나는 청년기의 고통과 좌절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이전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해지길 갈망했다. 그러나 나는 유년시절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뒤뜰에서 한 여자아이가 연민의 시선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던 그날, 나는 가망없고 헛된 내 미래를 보았던 것이다. 제8장. 감옥의 벽 나는 이젠 더 이상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내가 너무 커져버렸던 것이다. 하루 하루가 지나감에 따라, 형제들이 하나씩 자라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이상한--내가 보기에는--어른들이 되어갔다. 크고 작은 수천 가지 면에서 나는 내 자신의 삶이 가진 한계와 권태, 끔찍한 옹색함을 느꼈고 알게 되었다. 내 주위의 모든 것이 활동하고, 노력하고 성장해 가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뭔가 할 일을 갖고 있었고, 뭔가 정신을 몰두시키고 그들의 마음과 손을 계속 움직이게 해주는 것들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어떤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그들이 에너지가 자연적으로 배출되고 표현되도록 해주는 관심사들과 활동력과 목표들을 그들은 갖고 있었다. 나에겐 오직 나의 왼발밖에 없었다. 나의 삶은 내가 얼굴을 벽을 향하고 있도록 쳐넣어진 어둡고, 숨막힐 것 같은 조그만 구석진 장소와도 같았다. 그안에서 나는 바깥 큰 세상에서 나는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듣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꼼짝할 수가 없고, 나가서 나의 형제자매들과 내가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 세계 속에서 내 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었다. 나는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똑같은 것들을 느끼고, 똑같은 것들을 두려워하면서, 한 궤도를 움직일 뿐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겐 좌절된 시도들과 보잘것없는 좁은 생각들 외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게 언제나 용기를 북돋워주는 엄청난 감화력의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언제나 서로 의견이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많이 싸웠다. 내가 분명하게 그리고 전혀 힘 안들이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지옥으로 꺼져"였는데, 우리가 한 차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에 화가 나면 이따금씩 나는 어머니에게도 그 말을 했다. 말이란 나에게는 낯설고 거북스런 것이었지만,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내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 말을 필요로 하진 않았다. 어머니는 내 생각들을 거의 다 읽을 수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 사이에는 한 쪽이 갖는 느낌에 다른 한쪽이 움찔하게 할 수 있는 이상한, 거의 불가사의한 종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거미의 다른 두 다리가 서로 몇 야드나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 중의 하나가 생명이 남아 있는 한은 움직거리고 꿈틀거리는 것과 같았다. 나의 아픔들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나이 들어감에 따라 살아가는 일 속에서의 내 자신의 위치를 좀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애썼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그녀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라도, 내게 자신이 가진 힘과 기운을 나누어주려 애썼다. 그녀는 내게는 어머니 이상의 어떤 것이었고, 같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동지와도 같았다. 카트리오나 델라헌트 역시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청년기에 들어선 내 정신에, 그녀는 뭔가 너무도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씩 그녀가 실제의 인간일까 아니면 갑자기 사라져버릴 어떤 아름다운 환상 혹은 환영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을 내 귀로 들을 때, 그녀의 갈색 머리칼에 어린 여러 가지 색조의 밝은 빛을 볼 때, 그녀에게 주려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두 눈이 미소짓는 것을 볼 때는, 나는 그녀가 실제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나의 꿈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아름다운 현실이었다. 나는 보잘것없는 수채화들을 그리는 일을 계속했다. 여러 가지 풍경, 마을 정경, 배, 어떤 공원에 있는 연못가의 나무 같은, 결코 본 적도 없고 다만 상상해보았을 뿐인 것들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그리는 것까지도 달라졌다. 그림은 더 이상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여전히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것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내 속에 뭔가가 있었다. 밝은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어두운 갈색을 종이 위에 칠하고 그것들로 어떤 형태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어떤 새로운 에너지, 어떤 새로운 욕구가 있었다. 내게는 다른 어떤 것,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보다 폭넓은 매체가 필요했다. 나의 정신은 더욱 커졌는데, 내 그림의 영역은 단지 눈곱만한 것으로 쪼그라들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다.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없는데, 이젠 그림을 통해서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서히 질식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린아이였을 적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몹시 슬퍼했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내게는 세상이 끝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르다"는 것의 완전한 의미를, 그것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를 나는 이제 비로소 차츰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내 자신이 불구자 신세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비통하게 울었다. 그러나 이제는 울지 않았다. 내게는 눈물의 위안도 없었다. 나의 모든 고통은 마음 안쪽에 박혀 있었다. 어느 날 절망감이 울컥 솟자, 내 자신의 감정에 깜짝 놀라고 당황하여 나는 층계를 기어올라가 나의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그런 다음 나는 상자에서 연필과 종이를 꺼내 쓰기를 시작했다. 나는 침실 창문에서 아래 콘크리트 마당으로 몸을 던짐으로써 그날 "나 자신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나는 뒤에 남기기 위한 "고백"을, 일종의 "마지막 유언"을 쓸 참이었다. 나는 당당하게 연필을 들어올리고, 멋지게 쓰기 시작했다. "관계자 제위--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훌륭한 시작 문구라고 생각했다. 나는 짧은 글을 끝내고서 그것을 깔끔하게 접어 베개 위에 올려놓았다. 이윽고 나는 창문 가까이 기어가 왼발로 문을 열고서 내다보았다. 나는 전에는 집이 그렇게 높은 것으로 생각지 않았었다. 실제로는 십이피트 가량에 지나지 않았지만, 창문에서 바닥까지는 천피트나 될 것처럼 보였다. 그날은 매우 추웠고, 강한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나는 한쪽 다리를 내놓았다. 그러자 피터와 내가 어렸을 적에 여름 저녁마다 뒤뜰에서 장난감 병정들을 갖고 놀면서, 키 큰 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살금살금 다가가던 일이 생각났다... 이제 나는 남자답게 기운을 내어, 다른 쪽 다리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젠 아무런 까닭도 없이, 가엾은 아버지가 거의 바로 걸을 수 없는데도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다가 어둠 속에서 패디의 장화에 걸려 넘어지자, 쏟아진 온갖 장난감들에 둘러싸여 마룻바닥 위에 누운 채 "내 사랑 캐들린"을 노래했던 크리스마스가 기억났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서 내 몸을 위쪽으로 끌어당겼고, 그리하여 이제 나는 실제로 두 발을 허공에 달랑거리면서 창문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이젠 아무것도 나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때, 카트리오나 델라헌트가 생각났다.... 나는 창문에서 내려와 아기처럼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다. 릴리는 결혼했고, 폭풍 같은 로맨스 뒤에 토니 역시 결혼을 했다. 짐이 그 다음으로 기혼자 대열에 끼일 순서였고, 패디가 피터에게 여자 친구들을 얻기 어려운 일에 대해 열심히 강의를 하는 모양으로 보아 패디가 구애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추측이 갔다. 패디가 그런 강의를 할 때마다 피터는 가슴을 쑥 내밀고서,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자기가 몇 가지 실제적인 요령들을 그에게 가르쳐줄 수가 있노라고 패디에게 말하곤 했다. 모나는 밤마다 춤추러 갔고, 밤 열한 시는 그녀가 외출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아버지 말에 따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아버지와 전쟁상태에 있었다. 그녀는 밤 늦게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소리없이 열고는 하이힐을 벗고서, 나일론 양말을 신은 발로 고양이처럼 가만히 층계를 올라갔지만, 결국 층계참에서 아버지와 맞닥뜨리곤 했던 게 부지기수였다. 일년 뒤 피터는 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짐의 견습생으로, 또 한 명의 벽돌공이 되어 일하러 다녔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무슨 다른 직업을 택할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자기 아들들은 모두가 벽돌공이 되어야 한다는 아주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짐과 토니와 패디가 모두 벽돌공이 되어 돈을 잘 벌고 있었으므로, 아버지는 이제까지는 성공을 한 셈이었다. "저애가 너희들 떼거리 중에서 가장 훌륭한 벽돌공이 되었을 게다." 아버지는 약간 얼근해 있을 때면, 나의 형제들 앞에서 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곤 했다. "넌 지금쯤은 일주일에 오파운드쯤 받으면서, 작업복을 걸치고 강철로 만든 멋진 흙손을 손에 들고서 집을 짓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크리스." 나는 벽돌을 쌓을 수 없었기 때문에 벽돌 쌓는 일을 혐오했다. 몇 달 뒤에 내 마음 속에는 새로운 감정이 솟아났다. 그것은 끔찍한 것이었다. 나는 그저 비참하고 우울한 정도가 아니라, 원한까지 품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삐뚤어진 입과, 뒤틀린 손들과 쓸모도 없는 사지 때문에 세상 전체를 원망했다. 나는 주위에 있는 정상이며 완전한 모든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백번은 나 자신에게 묻곤 했다. 어째서 나는 다르게 만들어졌는가? 나에게 정상적인 생활을 할 권리를 주길 거부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보아도 구역질 나는, 실제로 제 기능을 할 줄 모르는 육체를 가졌는데도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감정과 똑같은 욕구와 감수성을 받은 것일까? 내게 기대할 무엇이 있는가? 내가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불구자 이외의 다른 무엇이 있는가? 내가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불구자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는 무슨 가망성이 있는가?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경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운좋은, 그렇다, 아주 놀라운 소년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왼발로 그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가? 내가 놀라운 소년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나는 놀라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평범해지고 싶을 뿐이다. 단지 내가 다른 사람들이 손으로 하는 것들을 외발로 한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그게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단지 두 손으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왼발을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내게 자랑스러움이나 우월감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사실은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서는 나의 왼발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바보 같고 거북스런 기분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나 재주를 부리는 원숭이나 물개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언제나 편지쓰기를 좋아했었다. 물론 대부분이 카트리오나 델라헌트에게 보내는 것들이었다. 주로 말과 관련된 것이나 어머니가 갓 낳은 아기에 관해 묘사한 편지들을 그녀에게 써보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나 이제 나는 뭔가 좀 더 야심적인 것, 그냥 편지 정도가 아니라 이야기들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그 생각은 점점 커져 드디어 나의 온 마음을 점령해버렸다. 나는 그 이전에는 독서를 많이 하지 않았다. 우리집에서는 책이란 희귀한 물건이었다. 빵이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에게는 정신에게 먹이를 주는 것보다 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그렇긴 하지만, 나의 정신 속에는 물감과 붓으로 표현할 수가 없는 수많은 생각들이 들끓고 있었다. 언어들을 이용하여 그런 생각들을 종이 위에 얽어매보자는 그런 갑작스런 영감이 내게 떠오른 것은, 어느 겨울 날 침대 위에 누워 발가락으로 지푸라기를 잡고, 빗물에 씻긴 창문에다 한가롭게 무슨 무늬들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당장에 나는 육페니짜리 수첩을 구해서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나는 그냥 거기 앉아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써내려갔다. 그것은 서로 조금의 관련도 없는 단어들과 문장들과 단락들의 미친 듯한 뒤범벅이었다. 그것은 나의 물감들을 뒤섞어, 한 덩어리의 색채로 합치게 하는 것과 꼭 같았다. 나는 새로운 장난감에 반한 어린아이처럼 단어들을 갖고 장난하면서 그것을 종이 위에 적었고, 그런 다음 일종의 경이감을 갖고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뒤에 나는 그 단어들을 서로 연결시키기 시작했고, 물감들을 갖고 그랬던 것과 똑같이, 그것들을 하나의 모양으로 엮어보고자 애썼다. 마침내 나는 내가 쓴 것들의 뒤에다 생각들을 집어넣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얼마 뒤에는 그것들은 그저 단어들이 아닌 관념들이 되었고, 그저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형상이 아닌, 생각들이 되었다. 내가 발가락으로 처음으로 글쓰기를 배웠던 것은 다섯 살 때였지만, 거의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나는 깨닫게 되었다. 즉 그것이 내게 새로운 종류의 삶을 여는 열쇠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으로써 사고의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고, 나 혼자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하여 살 수 있도록 나를 위한 세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것이다. 피터와 다른 형제들이 벽돌로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젠 지을 수가 있었다. 그저 어떤 집이 아니라 내 자신의 온전한 세계를, 벽돌과 회반죽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라 사고와 관념들로 만들어진 새롭고 위대한 세계를. 그때부터 쓴다는 것은 나의 유일한 실제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그림붓이 나의 왕홀이었던 것처럼, 이제 내 발가락에 연필이 쥐어져 있지 않을 때가 거의 없었다. 나는 엄청난 액션과 구르는 마차 등으로 이루어진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그것들은 대개가 어린 시절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에 대한 기억을 기반으로 하여 쓴 것들이었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낮에는 종일 말을 타고 다니고 밤에는 계속 술을 마시며 담배를 씹고 총을 메고 다니는 남자들과, 다리를 차올리고 진을 마시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 보이는 늘씬한 몸매에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는 눈을 가진 여자들이었다. 흔히 나는 스무 명 가량의 인물들을 집어넣어 하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러나 반쯤 지나면 누가 누군지 혼란이 오고 그 인물들 전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가 없게 되고, 그래서 중요한 인물 두 명 가량만 남을 때까지 그 인물들 모두를 차례로 총에 맞아 죽게 만들곤 했다. 나의 노트는 묘지가 돼버리기 일쑤였다. 그 다음에 나는 감상적인 기분이 되기 시작하여, "소년이 소녀를 만나다"라는 주제를 기본으로 하는 작은 연애 이야기들을 썼다. 그런 이야기들은 꿈 같고, 열망 어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쓸 때에는 즐겁다가도 그 뒤에 남는 것은 언제나 서글픔과 산란한 마음뿐이었다. 뒤에 가서는, 내가 그런 일들을 글로 쓸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내 자신이 직접 실제 생활에서 그런 것들을 결코 체험해보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총알들과 시체들로 가득 찬 탐정 "스릴러"물까지 써보았다. 언제든 침울한 기분이 되기만 하면 연필을 집어들고서, 지하실이나 다락방에서 썩어가는 시체가 발견되거나 음습하고 낡은 시골 대저택에서 쥐죽은 듯한 밤중에 갑자기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는 것 등에 관해 병적으로 묘사하곤 했다. 나는 언제나 멜로드라마적이었고, 그래서 그런 초기의 습작에서 그 인물들을 그냥 죽여버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불쾌한 방법으로 그들을 죽여버렸다. 나는 그 인물들을 작은 조각들로 토막쳐서 그 유해들을 여기저기 흩뿌려놓았다. 아주 유혈이 낭자한 이야기들이었다. 지금도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최소한 정신을 몰두할 데가 있었고 일상적이고 지겨운 단조로움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낸 셈이었다. 그것은 진저에일 병을 열어 그 안에 가득 차 있던 거품들을 모두 빠져나가게 하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산다는 게 조금은 숨이 덜 막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또 어디로 향하든, 언제나 나는 외로움과 불안을 느꼈다. 사슬에 매여 사는 것 같았다. 나의 정신이 발달되어감에 따라 내 육체를 더욱더 의식하게 되면서 급기야는 내 육체의 무능력에 대한 자의식이 내게 거의 육체적인 통증을 줄 정도까지 되었다. 나의 인생에서는 "새로운" 날이라는 게 없었다. 모든 날들이 어떠한 변화도 혹은 변화의 희망도 없는 어제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열일곱 살에 모든 것들이 내게 한꺼번에 밀어닥친 것 같았다. 나의 정서생활은 그 전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전에는 단지 어린아이의 변덕스런 기분들 같았던 것이 이제는 성인의 욕구가 되었다. 이전에는 단지 토라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진짜 우울로 변했다. 나는 함께 다닐 수 있는 친구를 원했다, 동정을 보이지 않는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을. 내가 불구자이고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축구, 춤, 맥주 파티, 여자 친구 등과 같은 욕구가 내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에 맺었던 다정한 관계들이, 청년기에 들어서면서 내가 어릴 때 함께 놀았던 그 소년들과 나 자신 사이에 생긴 틈으로 인해 이젠 모두 끊어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찌르는 듯한 아픔이 내 마음을 꿰뚫고 지나갔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게 아니라 나는 더 마음이 산란해지고 괴로워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최후의 재앙이 닥쳐왔다. 어느 날 카트리오나 델라헌트가 나를 찾아왔을 때, 부엌 창문 가까이에 한 줄기 햇빛 속에 놓여 있던 의자 위에 얹은 그녀의 손가락에서 나는 뭔가 빛나며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시 쳐다보고서, 그것이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저 바라보고만, 바라보고만 있었다. 몇 분 뒤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밀어 어머니에게 그 반지를 보이면서 괜찮아 보이느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축하를 해준 뒤에 그녀는 내게로 몸을 돌려 그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볼멘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시무룩한 얼굴을 하지 마." 내 어깨에 한 손을 얹고, 그녀 특유의 그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결혼한 뒤에도 널 보러 올 테니까." 그녀는 몇 달 뒤 유월의 어느 화사한 날에 대학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어머니가 나를 휠체어에 태워 데려갔다. 그곳에는 그녀의 친구들 한떼거리가 몰려와 있었지만, 그녀가 남편과 함께 교회에서 나올 때에 나를 보자 사랑스런 그녀의 얼굴 위에 밝은 미소가 환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그 미소를 뿌리칠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카트리오나 델라헌트가 아니라, 매기어 부인이었다. 매운 근사한 이름이긴 했지만,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이름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나는 매기어 씨를 만났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몹시 질투가 났다. 몇 달이 지나갔다. 우리 집안의 생활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한 집에 두 집안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자라났던 형제자매들이 한 집안이고, 우리 뒤에 나왔던 아이들이 다른 한 집안이었다. 우리는 늙은 세대를 이루었고, 그들은 젊은 세대를 이루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아이였을 적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마도 조금 더 뚱뚱해지고 검은 머리칼에 약간 흰 머리칼이 섞이긴 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똑같은 미소와 똑같이 반짝이는 눈과 가벼운 발걸음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꺾일 수 없는 여자였다. 아버지가 다소 더 늙어 보였다. 텁수룩했던 그의 아름다운 금발머리는 없어져 버렸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발의 흔적이라고는 꼭 풀로 붙여놓은 자그마한 회색 털실 덩어리처럼 보이는, 관자놀이에 붙어 있는 두 타래의 머리카락뿐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직도 쇠못처럼 강했고, 콘크리트 블록들을 들어올리고 끊임없이 흙손을 틀어치느라 딱딱해지고 옹이가 박힌 손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야단을 치기도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우리 모두를 또한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였다. 릴리 누가가 이미 세 아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어머니의 기록을 깨부수려 애쓰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녀를 놀리곤 했다. "가문의 전통을 지키라구, 릴리!" 우리들은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를 실망시키지 말아!" 그러나 그 많은 식구들 사이에 있을 때조차도, 나는 그들의 바깥에 있는 듯한 "바깥의 이상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가까워질 수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그 활기찬 분위기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실제로는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내 눈에는 그들은 내가 미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더 넘어선, 더욱더 다가갈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갔다. 나는 그들의 생활궤도로부터 날마다 더욱 더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로부터, 그리고 그들에게 일을 하도록 북돋워주는 모든 것들과 그들이 믿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바로 그들 한가운데 있을 때였다. 나의 열일곱번째 생일날 밤에, 나는 누워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겨우겨우 뒤뜰로 나갔다. 나는 더웠고, 그래서 바람을 쐬고 싶었다. 나는 기어가, 어떤 나무 아래 있는 부서진 널빤지 조각 위에 앉았다. 유월이었고, 대기는 꽃향기로 가득했다. 내 머리 위의 나뭇가지에서 새들이 짹짹거리며 움직이는 소리에서부터, 멀리서 울려오는 자동차 경적소리에 이르기까지 아주 조그마한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사각형의 뒤쪽 창문에선 노란 불빛이 비치고 있었고, 그 안의 부엌으로부터 커다란 목소리들이 내 귀에 들려왔다. 고요하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활기찬, 아름다운 밤이었다. 달빛이 모든 것들을 은빛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별들이 어두운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정도였다. 나는 판자 조각 위에 앉아, 그 밤의 그 모든 고요함과 평온함이 내 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일상세계를 지옥으로 만드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 달빛 어린 꿈속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한순간 나는 행복했다. 그러자 다시 생각이 났다. 미래가 검은 함정처럼 내 앞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나는 함정에 갇혀 묶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엇인가? 거기 앉아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신이 만드신 진짜 우스갯거리들 중의 하나일 뿐! 나의 인생은 정해진 모양도 없고, 목적도 가치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벽 안에 갇혀 있었고, 그리고 그 벽들은 내가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내 주위로 잠겨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몹시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나는 부숴뜨리고 탈출할 수 있기를 열렬하게 갈망했다. 제9장. 루르드 어려서부터 나는 음악을 좋아했다. 아이였을 때 나는 라디오 옆에 오랫동안 앉아서 무슨 음악이든 마음을 끄는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음악을 식별할 줄 알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형식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식구들은 모두 싫어했고 결코 듣지 않는 종류의 음악이었다.... 그것이 이른바 클래식음악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그 음악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어서 오케스트라 콘서트나 무슨 오페라 방송에 도취돼서 듣고 있으면 어머니는 눈을 치켜뜨면서 중얼거리셨다. "너와 그 이상한 음악!" 그러나 어느 날 이층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아래층에서부터 어떤 음악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날 나는 음악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침대에서 내려가 거의 몸을 내던지다시피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할 수 있는 한 빨리 부엌으로 기어갔다. 거기에서 나는 라디오를 통해 그 음악을 들었다. 그것은 느리고 장엄하고 고귀했으며 내 귀에는 거의 견딜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것은 깊이 가라앉아 내 마음 속 심금을 울리고 내 영혼 전체까지 일종의 황홀감으로 떨리게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아름다운 선율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음악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세계를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앉아 있어서야 일상의 범상한 세계로 차츰 되돌아왔다. 그것이 헨델의 "라르고"를 처음 들었을 때였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음악은 내게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밝고 아름다운 세계, 때로는 즐겁고 거세게 몰아치는, 그러나 대개는 심각하고 슬픈 그런 세계였다. 나는 라디오를 통해서 듣는 기회밖에 없었고 일생 동안 오페라나 심포니 콘서트에는 가본 적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곧 위대한 작곡가들을 다 알게 됐고 그들의 음악을 가려낼 줄 알게 됐다. 쇼팽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였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하루종일 그의 피아노 곡을 듣고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자주 내 인생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다지 우울하고 무의미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이 마치 커다란 그림맞추기처럼 천천히 조각들을 끼워넣음에 따라 모습을 드러내도록 주의 깊게 마련된 것같이 생각되었다.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감정의 고요한 흐름이 나를 침착하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해주고 다가올 무엇에 대한 희미한 약속이나 메시지를 가져다주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단지 음악이 흘러나올 때 뿐이었다. 그것은 창문이 다시 닫히고 문이 잠기기 전에 잠깐 공기를 마시고 하늘을 힐끗 보는 것과도 같았다. 내게 다시 연필과 공책으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아무 방법도 없었고, 내 형제들과 누이들이 자라 그들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가 보기에 이미 어린 형제나 누이들이 아니었고 어른 남자와 여자들이 되었다. 음악이 있다고 해도 집은 나를 벽으로 가두고 있는 감옥과도 같았다. 나는 이 패배감과 싸우고 싶었다. 나는 내가 졌다고 생각하기 싫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작은 의지력까지도 내게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다른 날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을 두려워하게까지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나의 고통 뒤에 어리석고 잔인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은 것이었다. 내가 신에 대해서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직 원망하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매일 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했으나 그저 기계적으로 했을 뿐 어떤 생각이나 진지함을 갖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도 내게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세스 매기어가 와서 내게 말했다. "크리스티, 루르드에 가보지 않겠니?" 사람들이 루르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오랫동안 들어왔으므로 그곳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느꼈다. 여행에 대한 모험심도 있고, 또 비록 종교적인 관심은 적었지만 내 마음 속 깊이 내 자신에게조차도 감히 말하지 않은 것이지만, 혹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래요."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돈은 어떻게 해요!" 어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오자, 우리는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계획을 세웠다. 여행경비는 34파운드가 들 것이었다. 순례단을 조직한 사람들을 루르드 위원회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경비 중 10파운드를 보태주기로 했다. 다음날 어머니는 매우 늙은 우리 친척 아주머니를 찾아가서 5파운드를 얻어왔다. 거기 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하고 미스 매기어가 말했다.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 마련해보지. 내 친구들을 모두 불러서 돈을 많이 걸고 브릿지 게임을 하는 거야. 백점에 5실링이라든가 그렇게 말이야. 그리고 그들이 돈을 모두 잃으면 그 돈으로 네가 루르드에 갈 수 있나 보자." 그녀는 그녀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모든 일이 잘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떠나기 전 몇 시간 동안 나는 몹시 조마조마했다. 이것은 나의 최초의 해외여행이었고, 거기다 더욱 고약한 것은 혼자서--혹은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없이--여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에 나는 겁이 났다. 사람들이 내 말을 알아들을까? 어떻게 식사를 할까? 어떻게 내 옷을 입고 몸을 씻고 침대에 들 것인가? 열여덟 살인데도 나는 여전히 먹여주고 입혀주고 씻어주어야만 했고, 그리고 아버지가 대소변을 보도록 보살펴주었던 것이다. 나는 거의 구제불능이 되었다--나의 왼발 외에는. 어머니는 매기어 부인과, 나를 그곳까지 태워다주었던 그녀의 남편과 함께 공항에서 나를 배웅했다. 우리는 새벽 세시에 출발해야만 했다. 두 명의 건장한 구급차 직원들이 나를 들것 위에 올려놓고서 비행기 안에 태웠다. 엄밀히 말해서, 내가 들것에 실려가야 할 환자는 아니었던 만큼 창문 곁의 좌석에 놓이게 되자, 나는 매우 기뻤다. 모든 일이 능률적으로 이루어지고, 비행기 안의 모든 것이 멋지고 아늑해서 나는 모든 걱정들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의사도 근사했고, 신부도 근사했고, 간호원들도 근사했고, 특히 검은 눈과 금발머리를 가진 간호원이 근사했다. 나는 그녀를 "잘 익은 체리"라고 불렀다. 곧 우리는 아일랜드 해를 지나고, 웨일즈 해안을 지나, 이윽고 영국 해협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처음으로 함께 가는 순례자들을 둘러보았다. 내 옆의 좌석에는 열아홉 살 먹은 처녀가 앉아 있었다. 밝은 다갈색 머리칼에 아름다운 얼굴이 싸여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고통으로 주름진 얼굴이었다. 다리와 척추가 마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두 눈으로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는 열살 적에 소아마비에 걸렸고 그래서 그 이후로는 결코 걷질 못했다. 우리는 친해졌다. 그녀는 자기 이름이 매이어이며 코위클로우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책들과 영화들에 관해 이야기했고, 언제나 춤추러 다니고 갔다와서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다는 자기 언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도 춤추러 가고 싶어요" 꿈꾸듯 창밖을 응시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뒤에 나는 그녀가 지친 듯 한숨을 쉬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아픈 듯 이마에 손을 갖다대는 것을 보았다. "오, 하나님." 그녀가 말했다. "난 어느 날인가는 걸을 거에요. 그러면 내 생이 첫 무도회에 가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이틀 뒤 루르드에서 죽었다. 그리고 커리에서 온... 대니 뭐라는 작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몇 주일 전에 두 다리와 오른손을 못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농장에서 젖을 짜던 암소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그가 심한 사투리를 써서 우리는 모두 웃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저 그의 암소 "넬리"에 대한 얘기만 하고 다 나으면 다시 그 젖소의 젖을 짜겠다는 얘기만 했다. 구석에 나이가 좀 든 부인이 있었는데 두 손은 마비되었고 두 발은 기형이었다. 그녀는 계속 기도만 하고 있었다. 건강하고 햇빛에 그을린 얼굴을 한 청년도 있었는데 그는 장님이었다. 귀 멀고 벙어리인 어린 소년도 있었는데 그애는 커다란 인형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토미는 쾌활하고, 그의 목소리는 듣지 좋았는데 그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내 뒤에는 젊은 부인이 누워 있었는데 그녀는 일 년 전에 아기를 낳은 후에 폐결핵에 걸렸다고 했다. 그녀는 들것에 엎드려 있었고 얼굴이 창백하며 수척했으며 이따금 신음을 했다. 더블린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에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져 몹시 괴로워하다가 죽었다. 저마다 괴로움을 안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을 보니 내게 새로운 빛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오히려 당황했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괴로움이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었다. 나는 작고 좁은 껍질 속에 갇혀 있던 달팽이와도 같았다. 그런데 그 달팽이가 이제 비로소, 그 너머에 놓여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커다란 세계를 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사람 들 모두가 신체적 불행이 심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는 이제까지 줄곧 장님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곤경을 내 눈으로 보고 정말로 내 가슴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짊어진 짐은 너무도 큰 것이어서 그에 비하면 나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우리가 탄 비행기는 타르브 비행장에 착륙했고,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에 와 있었다. 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저 멀리 뒤쪽에 피레네 산맥이 우뚝 솟아 있었다. 비행장에서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떼지어 서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아까 공중에서 보았던, 거대한 누비이불처럼 펼쳐져 있던 인근의 농장들에서 온 농부들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비행기에서 내려져 덮개가 없는 구급차에 실어졌다. 구급차는 길고 구불구불한 도로들을 따라, 칠일간의 순례여행 동안 지내게 될 수도원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 수도원은 루르드라는 작은 도시 안에 있었다. 우리의 차가 수도원 앞의 광장으로 다가갈 때에 그 유명한 교회당과 로자리 광장이 처음으로 내 시야에 들어왔다. 황금빛 십자가가 있는 길고 가느다란 뾰족탑이 환한 푸른 하늘 속으로 찌르듯 높이 솟아 있었고, 교회당 내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는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이미 그곳 광장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주위에 가지런히 놓인 의자 위에 앉아 성경을 읽거나 햇빛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이리저리 걸어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구급차로부터 들어올려져, 중국의 인력거 같은 의자 안에 넣어져, 수도원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이젠 정오가 다 되었고, 바깥에는 구름 한점 없는 하늘로부터 태양이 불타듯 사납게 내리쬐고 있었다. 병실 안은 매우 시원하고 밝았다. 저녁식사가 곧 나왔다. 젊은 간호원이 숟가락으로 떠먹여주었는데 나는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이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그 첫날에 동굴로 인도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여행을 했기 때문에 쉬라는 충고를 받았다. 이 낯선 주위환경 속에서 아직도 나는 새로 들어온 학생처럼 느껴졌고 밤이 되자 몹시 외롭고 버림받은 기분이 되었다. 기도하려고 애를 썼으나 자꾸만 집고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내가 막 이불 밑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버리려는데 문이 열리며 야간 근무하는 간호원이 들어왔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녀는 또 "잘 익은 체리"였다. 그녀가 쓰고 있는 하얗고 빳빳한 모자 아래로 곱슬거리는 금발머리가 매력적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그녀는 침대마다 다니면서 잠자리가 편한지 확인했다. 그녀는 내 침대 옆으로 와서 환하게 미소지으며 이불을 좀더 밀어넣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아, 그렇게 해주세요." 이불이 충분히 밀어넣어져 있었지만 나는 얼른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죠." 그녀는 미소지으면서 시트를 매트리스 밑으로 접어넣고 내 베개를 똑바로 펴주었다. "이제 편해요?" "네, 아주." 하고 나는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그후로 잠에 빠져들기 전에 기억나는 것은 그녀가 내 위로 몸을 숙이고 이불을 어깨까지 올려 덮어주면서 짓던 미소였다. 그날 밤에 나는 잠을 푹 잘 잤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그 유명한 치유의 샘으로 인도되었다. 거기에는 벌써 여러 나라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지하에서 샘솟는 그 경이로운 물을 만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의 샘물 위에는 현대적인 목욕탕이 지어져 있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목욕탕이 들어서 있는 낮은 콘크리트 건물 앞뜰에 거의 삼백 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에 사분의 삼 정도는 나처럼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내내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있어야 했다. 또 다리가 없는 사람도 있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절름거리며 겨우 걷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보았다. 다리가 없고, 팔이 없고, 눈 멀고, 아침 햇살 아래 시체처럼 누워 있는 사람들. 그것은 마치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나오는 기적의 마당과도 같았다. 그들 속에서 나는 너무 작고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목욕하려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 나무벤치에 앉혀지고 프랑스 사람 둘이 내 옷을 벗겼다. 건물 안은 전부 대리석으로 지어졌고 목욕탕은 바닥이 깊고 네모나게 패여 있었으므로 층계를 밟고 내려가 물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맞은편 벽에는 단순한 나무십자가와 라틴어로 쓰여진 기도문이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이 내 양팔을 부드럽게 잡아 들어올려서 층계를 내려가서는 나를 천천히 물에 집어넣었다. 차가운 물이 내 머리 위를 덮을 때 나는 숨이 막혔다. 그들은 나를 얼른 들어올렸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서툰 영어로 내게 다시 들어가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나를 다시 한번 물에 담갔다. 그 두 사람이 프랑스어로 기도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나를 밖으로 꺼내고 그 중 한 사람이 작은 십자가를 내 입술 앞으로 가져와 내가 거기에 입맞추게 했다. 순전히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그 물에서 나오자 나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무덤에서 한낮의 햇빛 속으로 걸어나오는 것과 같았다. 오후에 나는 그 동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이제 루르드는 정말로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성소로 가는 넓은 길을 휠체어로 내려가는데 수많은 순례자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사방에서 수십 가지 언어가 들려왔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너무 많은 나라 말이 한데 섞여서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나 더블린에서 왔건 로마에서 왔건 파리나 스톡홀름, 밀라노나 마드리드에서 왔든간에 그날 그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기도하고 희망하는 것이었다. 동굴에 도착하니 그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조직되어서 휠체어를 위한 길이 마련되어 있었고 성소에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곧 나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며 눈을 들어 대리석 조각을 바라보았다. 푸른 옷을 입고 키가 크고 아름다운 부인과 그 앞에 작은 시골 소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꼭 움켜쥐고 무아경에 빠져 있었다. 딱딱한 바위벽을 깎아 만든 적소에서 성모 마리아는 지금 그녀의 발 아래 무릎 꿇고 앉아 그들의 사랑과 슬픔을 그녀에게 바치고 있는 수많은 그녀의 아이들을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병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날 밤, 나는 촛불을 들고 그 작은 마을을 지나가는 행진에 참여했다. 그 장면을 나는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저녁 일곱 시에서 여덟 시경까지 수천 명이 로자리 광장에 모여, 해가 지고 주변의 언덕들이 어둠으로 둘러싸이자 수천 개의 초에 불을 밝혀 가지고 교회당에서부터 성소까지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 순례에 참가한 나라들의 고위 성직자들이 앞장서서 행진을 이끌어갔다. 그 아름다운 교회당의 정면은 모두 밝혀져서 밤하늘의 검은 벨벳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그 작은 마을을 지나 동굴로 가는 길을 따라 나아가면서 군중들은 목소리를 높여 "아베 마리아"를 노래했다. 부드러운 밤하늘 위로 음률이 오르내리며 가까이에 있는 언덕들로부터 다시 메아리쳐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열을 지어 길을 따라 걸어갔다. 부드러운 미풍에 촛불이 흔들렸다. 그와는 반대로 동굴 자체는 어두웠다. 대리석 제단에 촛불이 하나 켜져 있을 뿐이었다. 군중들은 여전히 노래부르며 그 성소를 에워싸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촛불이 그 모습을 밝혀주고 성처녀의 머리에 둘려 있는 진주면류관을 밝게 비춰주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우리가 더블린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잡고 가볍게 흔들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집에 돌아왔어요."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막 하품을 하려는데 올려다보니 그 사람은 "잘 익은 체리"였다. 그녀는 내 앞에 서서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왼발로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집에 가면 시간이 있을 때 자기를 그려주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확신시키기 위해서 머리를 열렬히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우리집을 방문할 테니 주소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러자 나는 왼쪽 구두와 양말을 거세게 벗어버리고 몸을 뒤로 기댄 채 왼발을 내 머리 위로 올려 그녀의 가슴 호주머니에 있는 연필을 꺼내서 그녀의 기도책 안쪽의 빈 페이지에 내 주소를 써주었다. 그리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집으로 태워갈 구급차에 나를 올려놓을 때 뒤돌아보았다. 그녀는 비행기 층계 위에 서서, 금발머리에 키가 크고 잘 생긴 승무원과 함께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가 미웠다. 그녀는 아직까지 그림을 그리러 오지 않았다. 집.... 일주일 동안 떠나가 있다 돌아오니 가족들이 기뻐했다. 다정한 그 얼굴들을 다시 보니 나도 기뻤다. 프랑스는 아름다웠지만 키미지는 고향이었다. 내가 목격한 그 모든 이상한 광경들과 그 모든 흥분들에 아직도 어리둥절한 느낌이었다. 내가 목격한 일들과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에서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내 자신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달랐다.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정상이었다... 나만 제외하고 내 누이들과 형제들은 루르드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정상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다. 피터나 패디가 얘기할 때는 말이 분명하게 발음되어 나왔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말하면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어 이상한 소리만 났다. 내 형제들은 아무 불편없이 손을 사용할 수 있는데 내 손은 어떻게 사용해보려 하면 이리저리 제멋대로 움직였다. 내 손들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뒤틀린 살덩이일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루르드는 그저 추억으로만 남았고 그 신비는 사라지고 나는 내 자신을 다시 의식하게 되고, 내 인생의 공허함과 지루함을 의식하게 됐다. 루르드는 끝났고 나는 다시 예전과 똑같아졌다. 나는 마치 예전의 껍질을 다시 뒤집어쓴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똑같았다. 나는 예전처럼 살아가고 예전처럼 생각하는 그 방식을 원망했다. 그것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내 삶이 어떤 목적과 가치를 지니기를 바랐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내 삶은 공허하고 무의미했다. 나는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찾고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잡으려 팔을 뻗으며 괴로워했다. 내가 아무리 겉으로 꾸며도,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려 꾸며도, 내가 아무리 내 자신을 속여도, 내가 이렇게 불구로 있는 한은 결코 행복해지거나 마음이 편해지거나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루르드와 그 동굴로 가는 도중에 만난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사람들과 같아지려고 다시 노력했다--인내하고, 명랑해지고, 그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다음 세상에서 보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나는 너무도 인간적이었다. 주님의 뜻에 기꺼이 복종하는 겸손한 종으로서의 마음가짐보다는 인간적인 성질이 내 안에 너무 많았다. 다음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기 전에 나는 이 세상에 대해서 많이 보고, 알고 싶었다. 루르드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온순해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 소년이었다. 제10장. 어머니가 지은 집 루르드는 내 마음에 오랫동안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나 자신이 외롭고 고립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나 자신은 다만 전세계에 퍼져 있는 고통스런 형제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동굴에 있는 동정녀 마리아의 발 밑에서 기도하고 희망을 갖기 위해 세상의 모든 곳에서부터 그곳으로 온 그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얼굴에서 빛나는 용기와 인내를 나는 기억했다. 나는 나와 함께 기도했던 그 사람들의 눈 속에 내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반영되고 있음을 보았고, 그렇게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서로 다른 이상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고통이라는 공통의 유산을 물려받은 한 가족이며 형제자매들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그 성스러운 작은 마을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낯선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느낌과, 고통이 우리에게 불어넣은 이해와 교감에 대한 욕구에 의해, 개인이나 민족을 갈라놓는 장벽들은 무너져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 루르드의 그 모든 영광과 광휘와, 그리고 처음으로 맛본 다른 사람들과의 영적인 친교와 이해 속에서 내 자신을 잊을 수 있게 해주었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이제 나는 다시 집에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많은 고통스러운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내 가족들은 건강하고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이 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옆에서 나는 내 자신이 꼭두각시처럼 느껴졌다. 잠시 자유롭게 풀려났던 새처럼 나는 다시 나의 새장에 갇힌 것같이 생각됐다. 루르드에서 돌아온 후 한두 주일 동안 그 무서운 고독감이 내게 다시 몰려와서 내 머릿속에는 온갖 황폐한 생각들이 들끓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썼다. 미세스 매기어가 내게 책을 많이 갖다주었다. 그러나 나는 디킨즈만 읽었고, 디킨즈는 나를 슬프게 할 뿐이었다. 물론 이따금 나를 웃기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세월이 감에 따라 나는 점점더 내 인생에서 어떤 일들이 "이랬었더라면" 하고 생각하고 또 곰곰히 생각하게 됐는데, 이제는 그러한 것에 대한 욕구와 그런 것들이 없음으로 해서 오는 상실감을 느끼기 시작했으므로 더욱 쓰디쓰게 생각하게 됐다. 어머니와 나는 여전히 서로 잘 이해했지만 어머니는 이제 나를 위로하거나 또는 나의 슬픈 기분을 웃어넘기게 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나, 둘 사이에도 어떤 장벽, 어떤 새로운 유리벽 같은 것이 가로놓여 서로 다가갈 수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조차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나는 느끼고 원하게 됐다. 루르드에서 돌아온 지 7, 8일쯤 지난 어느 목요일 저녁에 나는 창가에 앉아 가을날의 땅거미가 바깥 거리를 짙은 자줏빛으로 서서히 물들이는 것을 쓸쓸히 내다보고 있었다. 내 뒤의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저녁준비를 하시느라고 프라이팬에 소시지를 지글지글 굽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모두 그 주위에 모여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나 누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춤추러 나갈 준비를 하느라고 거울 앞에 서서 입술을 그리고 코에 분을 바르고 있었다. 피터도 매운 유쾌한 기분으로, 낡은 헝겊조각으로 구두를 열심히 닦으며 내게 윙크를 해 보였다. 그것은 그가 데이트를 하러 나간다는 뜻이었다. 그때 깊어가는 땅거미 속에 갑자기 찌르는 듯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던지며 자동차 한 대가 반대편 길 모퉁이를 돌아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자동차는 수풀 사이로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더니 우리집 문 앞에 와서 멈춰섰다. 한 남자가 자동차에서 내리더니 잠시 멈춰서서 번지수를 들여다보고는 만족한듯 대문을 열고 들어와 층계를 올라왔다. "저기 누가 온다." 하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집앞에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를 들은 피터도 "누구지?" 하고 물었다. "곧 알게 되겠지." 하고 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현관으로 가셨다 현관에서 어머니가 그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에 어머니는 그 낯선 사람을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오셨다. "얘가 크리스티에요."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앞에 서서 미소지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건장한 체격이었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청회색 눈은 나의 내부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는 내 옆의 의자에 앉아 자신은 의사이며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나를 본 적이 있고, 그 후에 어느 자선단체의 모임에서 형의 등에 업힌 나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무튼 그는 나를 잊지 않고 있다가 며칠 전부터 찾아나섰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일어서서 생각에 잠겨 잠시 이리저리 걸어다니더니 마침내 테이블 한쪽 끝에 걸터앉아 팔짱을 끼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 그는 깊고 기분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문제가 되고 있는 그 뇌성마비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었단다. 나는 네가 나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네가 네 자신을 도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나는 너를 도울 수 없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네 자신이 낫기를 원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눈을 내게서 떼지 않으며 물었다. "내가 도와주면 너는 노력해 보겠니?" '노력해 보겠냐고요!'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말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에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다만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눈에 담긴 메시지를 분명하게 읽은 모양이었다. 그는 만족하여 일어나서 내게로 다가와 내 어깨를 껴안고 말했다. "좋아! 내일부터 시작하자." 그는 다음날 조수 한 사람을 보내서 나를 진찰하고 치료방침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 치료 방법은 여러 사람에게 모두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직 그들만의 특수 병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를 집에서 치료하겠다고 했다. 그는 가려고 일어섰다. 막 문을 나가려다가 그는 멈춰서더니 돌아섰다. "그런데...." 그는 천천히 미소지으며 내게 말했다. "내 이름은 닥터 콜리스이다. 곧 너를 보러 다시 오마." 그렇게 말하고 그는 갔다. 그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나는 내 주위에 둘러서 있는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들은 모두 기쁨과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차를 한잔 따라주셨는데 너무 기뻐서 손을 떠셨다. 모나 누나는 춤추러 가는 일 따위는 잊어버리고 나를 바라보며 웃느라고 손에 주고 있던 분첩을 정신없이 조각조각 찢고 있었다. 내 착한 동생 피터는 그의 찻잔에 설탕 대신 소금을 두 숟가락이나 넣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나처럼 어머니도 자신의 느낌을 언제나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조용한 기쁨의 분위기가 어머니를 감싸고 있었으며 어머니의 얼굴에는 억제된 행복의 빛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내 목을 끌어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내게는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의 그 순간에, 내가 느끼고 꿈꾸기 시작하면서 그렇게도 열망하고 꿈꾸어왔던 그 순간에,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겠는가? 잠시 동안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모둔 감각은 마비되고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마침내 내가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게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고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나를 가운데 두고 식구들이 티 테이블에 둘러 앉아 흥분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나는 꿈 속에서처럼 희미한 정신으로 듣고 있었다.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찻잔을 내 입술에 갖다대줄 때마다 나는 아무 감각도 없이 차를 들이마시고 빵을 주면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면서 받아먹었다. 나중에, 차를 마신 후에 모두들 놀러 나가고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난롯가에 앉았을 때에야 나는 그날 들은 새로운 소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비로소 그 소식의 사실성과 진실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방식으로 흥분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의 이상스러움과 기묘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었다. 나는 희망에 가득 차서 기뻐하며--거의 확신에 차서 루르드에 갔었다. 일주일 후에 나는 조금 감동되고, 아마도 조금은 현명해져서, 그러나 매우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일이 전과 똑같았다. 루르드로 간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가볍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마음은 무겁고 슬펐다. 아무리 내가 내 삶이 변화되기를 열망한다 하여도 내 삶은 언제나 똑같이 단조롭고 텅 비어 있고 아무 빛깔도 없으리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날도 내가 여전히 쓰디쓰게 내 삶의 막막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의사가 들어와서는 내가 나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짤막한 몇 마디의 말로 그는 내 삶의 방식을 바꿔놓았다. 그는 나의 과거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고 나의 미래에 어떤 약속과 어떤 결정적인 목적을 가져다주었다. 내 앞에는 텅 비고 결실없는 세월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그 순간에 그는 내 생각과 열망을 붙잡아맬 수 있으며 투쟁해갈 수 있는 그 무엇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단지 우연한 일치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에게는 그것이 후에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로 인하여 그것은 기적--아름다운 작은 기적으로 여겨졌다. 그것이 내게 가져다 준 선 때문이 아니라, 쓰디씀과 실망만이 있던 곳에 그것이 믿음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삶의 거대한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에 가장 작은 사람까지도 모두 관여되어 있으며, 우리 모두가 그 한 부분이며, 보다 큰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가장 작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 그 순간에 나는 아무리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실행해야 할 어떤 역할이 있음을 알았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의심했던 것에 대한 참회의 기도도 드렸다. 다음날 나를 진찰하러 온 의사는 키가 크고 잘 생긴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어딘가 군인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어 그것이 나를 약간 위압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그는 거동이 느리고 신중했으며 그러한 태도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확신하고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곧 좋아졌다. 그의 이름은 루이스 워넌츠였다. 나는 언제나 감사와 사랑으로 그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닥터 워넌츠는 주로 내 자신이 집에서 할 수 있는 특정한 육체적인 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치료법의 특별한 방식을 정하여 내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원하면 아마도 가족 중에 누군가가 조금 도와줘도 된다고 했다. 이것은 다만 예비 테스트라고 그는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반응을 나타내면 그는 내게 보다 더 힘든 운동을 매일 하도록 할 것이고 점점 더 복잡한 운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운동이 물리요법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나는 그것이 정말 굉장한 명칭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닥터 워넌츠는 일주일에 한 번씩--일요일마다 내게 왔다. 그는 언제나 내게 운동을 해보라고 하고 내가 운동을 하는 동안 주의깊게 관찰하며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첩에 적고 또 틀린 부분은 고쳐주기도 했다. 일요일마다 닥터 워넌츠가 올 시간이 되면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서로 법석을 부리고 서로 부딪치는 모습은 우스웠다. 우리 가족들은 그를 존경하고 약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아주 친절한 신사이고 그의 태도는 흠 잡을 데가 없었으며 빈틈도 없었다. 그는 일에 진지했고 다른 것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그가 보통 때보다 조금 일찍 왔을 때 우리집의 부엌에는 크고 작은 우리 형제와 누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아이들을 모두 이층으로 올라가게 했지만 큰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했다. 닥터 워넌츠가 그 문제를 해결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는 정중하게 말했다. 그는 부엌에 남아 있는 예닐곱 명의 내 형제들을 둘러보더니 "새끼양들은 모두 나갔는데 어른 양들은 아직도 남아있군요, 브라운 부인." 하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짐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안녕, 자네가 짐이지?" 하고 그는 정답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산책하기에 정말 좋은 날씬데, 내가 코트 입는 것 도와줄까." 그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도 일어나 아주 좋은 기분으로 나갔다. 닥터 워넌츠는 문지기처럼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계속 문을 잡고 서 있었다. 닥터 워넌츠가 우리집에서 나를 치료하기에는 아주 힘이 들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바로 부엌이었는데 그 부엌조차 너무 작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내가 운동을 할 때 발을 뻗으면 내 발은 난로의 쇠살대에 가서 부딪쳤다. 그리고 내가 배를 바닥에 대고 누우면 내 머리는 의자 밑으로 들어가고 내 다리는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래서 내가 머리를 들면 꽝 하고 부딪치곤 했다. "크리스티, 네가 너무 큰 건지, 아니면 이 방이 너무 작은 건지..." 닥터 워넌츠가 말했다. "둘 다인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그날 오후에 서너번째 머리를 부딪쳤을 때 닥터 워넌츠가 "조금만 더 넓은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집 뒤에 넓은 빈터가 있었는데 우리 가족 모두가 그곳에 무엇을 심어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이따금 양배추나 순무, 감자 등을 심어 길렀으나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고 죽어버렸다. 채소를 심어도 꽃을 심어도 마찬가지였다. 그 낡은 땅은 완고하게 버티며 순한 토양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 땅은 아마도 황폐한 채로 있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시고 이따금 우리에게 누구든지 그 땅에 무엇을 심어 잘 가꾸면 반 크라운을 주겠다고 제안하시곤 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에게는 한 가지 생각이--갑자기 묘안이 떠올랐다. 저 뒷마당을 다른 용도로 쓰면 되지 않겠는가. 집안의 소음과 방해로부터 벗어나 우리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다면 닥터 워넌츠나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우리가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는 방을 뒷마당에 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 아, 그러나 돈--언제나 돈이 문제였다! 비용이 얼마나 들지를 어머니는 몰랐지만 벽돌공들과 한 집에서 살다보니 건축자재의 비용이 어느 정도가 될지는 어림잡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에누리 없이 50파운드가 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비용에 굴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야망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하고 곧장 일에 뛰어들었다. 빌리고, 팔고, 신용조합을 찾아가고, 예전의 전당포를 찾아가고, 아직 살아있는 부유한 먼 친척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을 찾아다녔다. 이 비밀스런 돈모으기 작업을 여러 주일 동안 계속하면서 어머니는 식구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내게만 말해주었다. 어머니의 캠페인 동안 물론 나는 어머니를 정신적으로 후원했다. 20파운드가 모였을 때 어머니는 집을 짓기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에게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다. 아버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시 협동위원회의 규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흔히 애용하는 단어인 "당국"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반대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어머니는 벽돌공인 네 아들에게 어머니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열성적으로 덤벼들지 않았다. 시작할 수 있다면 그들 모두 기꺼이 시작하겠지만, 흔히 그러하듯이 누구도 선뜻 먼저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생각을 언제나 곧 실천해야 하는 성미였다. 어느 오후에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셔서 콘크리트 벽돌 백 장과 시멘트 네 푸대와 모르타르 두 푸대를 주문하셨다. "시작하기 위해서"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자재는 그날로 배달되었다. 가련한 아버지는 그날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셔서, 앞마당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벽돌을 보고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셨다. 아버지는 비틀거리며 대문을 잡고 계셨다. 그 벽돌을 보고 아버지는 입을 벌렸으나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비틀거리며 정원을 걸어올라와 문을 열고 들리지 않을 만큼 쉰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아, 당신한테 말하는 걸 잊었군요." 하고 어머니는 식탁에 아버지의 저녁식사를 차리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크리스티를 위해서 뒷마당에 집을 지으려고 해요." "맙소사!" 하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우리 모두가 이 집에서 쫓겨나길 바라는 거요? 당신이 지금 뭘 하려는지 알고 있는거요? 당국에서...." "네, 네, 다 알아요." 하고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저녁이나 드세요. 식기 전에 어서요." "나 죽은 다음에나." 하고 아버지는 스튜를 입에 넣으시며 말했다. "물론 당신 장례를 먼저 치를 텐데요." 하고 어머니는 아주 온순하게 대답했다. 어머니와 논쟁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는 다음에 협조하지 않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아버지는 자신은 벽돌을 한 장도 쌓지 않겠다고 말했고, 우리 집안에 있는 네 명의 다른 벽돌공들에게도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어머니가 의기소침해지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저 미소짓고는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나 아이들이 하지 않겠다면 내가 집을 짓지요." 그 말에 모두들 웃었다.--여자가 집을 짓다니! 다음날 어머니는 다른 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얼른 준비하고 여섯 명의 어린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후에 시간을 내기 위해 집안일을 모두 오전에 끝냈다. 점심시간이 되고 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어머니는 머릿속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네 시쯤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가 집 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그러자 나는 뒷마당에서 특별한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도 느끼게 됐다. 나는 호기심에 식료품 저장실의 창문까지 비틀거리며 기어갔다. 나는 밖을 내다보았다. 거기에 어머니가 풀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한쪽 옆에는 시멘트가 양동이가 놓여 있고 다른 쪽에는 물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오른손에 흙손을 들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쌓아올린 벽돌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식구들에게 저녁식사와 차를 차려주고 난 후에 어머니는 다시 뒷마당으로 조용히 나갔다. 몇 분 뒤에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가지러 우연히 마당으로 나갔다. 거기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아버지는 잠시 멈춰섰다가 어머니가 쌓고 있는 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버지는 발로 그 벽을 툭툭 쳤다. "이게 뭐요?" 하고 아버지가 물었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요?" 어머니는 고개를 들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크리스티의 집을 짓고 있어요." 어머니는 벽돌을 또 하나 올려놓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버지는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뒤로 뺐다. 아버지는 쌓여진 벽돌의 반대편 끝으로 걸어갔다. 아버지의 윗입술이 조금 움직이다가 다시 가만히 있었다... 마침내 아버지가 말했다. "이것 봐! 당신 다 틀리게 하고 있어. 기초공사는 했어?" "내가 무엇인가를 잊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어머니는 약간 뾰루퉁하게 대답했다. 그때쯤에는 다른 벽돌공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서 어머니 주위에 모여섰다. "이것 좀 봐라, 얘들아." 하고 아버지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 어머니가 우리들의 일을 하고 있구나!" "이럴 수가 없어요!" 패디가 시멘트 벽돌을 꼼꼼히 들여다보고는 못마땅한 듯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수평으로 쌓지도 못했어요, 어머니!" "여자들은 언제나 남자와 동등하려 한다니까. 부엌으로나 돌아가세요, 어머니." 하고 피터가 말했다. "그래, 이것이 남자들의 일이라면 너희들이 하려무나."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는 가만히 서서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어머니는 천천히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내 곁을 지나면서 어머니는 미소지으셨다. 다섯 명의 벽돌공들은 거기 서서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집안으로 들어가자 아버지가 말했다. "자, 어서 시작하자." 그렇게 해서 그들은 뒷마당에 나의 작은 집을 지었다. 집을 짓는 일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고 어느 때는 집이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작업을 중단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돈이었다. 어머니의 20파운드는 곧 바닥이 났고 우리는 일을 멈춰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어느 날, 콘크리트 기초공사와 네 개의 벽만 서있는 저것이 뭐 같아 보이느냐고 내게 물었다. "미완성 교향곡 같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다시 몇 파운드를 어떻게 긁어 모아서 작업은 계속됐다. 아버지와 형들은 나를 십장으로 임명하고 어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내게 물었다. 나는 벽난로는 어디에, 창문과 문은 어디에 하라고 가르쳐주었다. 기술적인 점들에 대해서 아버지와 네 아들들은 많은 논쟁을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다 알고 있는 체했지만 기술적인 측면을 이해하지 못했다. 몇 달 후에 지붕이 올라가고 천장이 완성되었다. 그때 또 다시 자금이 떨어지고 작업은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자금이 융통되고 바닥과 벽난로가 완성되고 그 다음에는 창문틀과 문이 끼워졌다. 굴뚝이 올라가서 다른 건 몰라도 우리는 적어도 불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서서히, 차례대로 그 집은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창문에 유리가 끼워지고 벽에는 석회가 칠해지고 벽 아래쪽에 나무도 둘러쳐졌다. 건물 자체는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 건물은 창고 같은 모습이었다. 그 집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가구를 조금 갖다놓아야 했다. 가구가 하나씩 집 안으로 날라졌다. 긴의자, 침대, 의자 몇 개 그리고 테이블 등등. 그리고 목수인 자형이 작고 멋진 서랍장을 만들어주어서 나는 거기에다 온갖 잡동사니를 담을 수 있었다. 바닥에 리놀륨이 깔리고 벽에는 벽지가 발라지고 창문에 커튼도 둘러쳐졌다. 며칠 수에 전기가 장치되고 문과 창문틀에는 페인트가 칠해졌다. 마침내 들어가 살 수 있게 꾸며진 것이다. 원래는 닥터 워넌츠가 방해받지 않고 나를 치료할 수 있도록 운동실이나 연습실 같은 것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거기에서 밥도 먹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잠도 잘 수 있도록 그것을 거실 겸 서재로 개조시켰다. 나는 형제들에게 책꽂이를 설치하도록 부탁했고, 책꽂이는 차츰 책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가족들로부터 그리고 집 안의 소음과 활기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이제 적어도 나는 편안한 고립 속에서 살면서 끊임없는 소음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그림 그리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여름에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었다. 바깥의 나무에서 행복한 듯이 노래부르는 새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겨울이 되자 그곳은 더욱 안락해졌다. 어둠 속에서 나는 벽난롯가에 앉아서 빨간 불꽃이 춤추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벽에 꽂힌 책들의 표지에서 금박장식으로 된 글씨들이 불빛에 빛났다. 나는 아직도 여러 가지 책들을 읽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찰즈 디킨즈였다. 나는 그의 책 예닐곱 권을 연달아 읽었다. 내가 특히 좋아한 책은 데이비드 커퍼필드였다. 나는 그 책을 세 번이나 읽었는데도 여전히 재미이었다. 특히 흥미진진했던 책은 쿡 선장의 여행이었다. 그 책은 미세스 매기어가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것이었다. 외딴 섬들과 난파선, 그리고 배가 바위틈에 걸려 버둥대고 있을 때 모래펄에 나타난 피에 굶주린 야만인들 등에 대해서 읽을 때 느꼈던 그 경이로움과 흥분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을 읽고 언젠가 나도 세상의 큰 도시를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국의 풍경들을 구경하리라고 꿈꾸게 되었다. 나의 상상력은 침묵에 잠긴, 폐허가 된 죽은 도시들과 생명으로 가득 찬 축축한 정글과 사람의 발자국이라곤 없는, 태양이 무자비하게 내리쪼이는 끝없는 사막 등을 상상하느라고 바빴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주 재미있었다. 아직 많이 읽지도 않았고 여러 가지를 읽지도 못했지만 책을 읽는 것은 나로 하여금 내 서재의 네 벽 너머에 있는 세상에 대해서 알게 해주었다. 그러는 동안 닥터 워넌츠의 치료는 계속되었다. 이제 우리는 보다 넓은 공간을 가졌으므로 나는 머리를 좀더 앞으로 뻗을 수 있게 되었다. 뇌성마비에 대한 이 치료법은 아직 매우 미숙한 것이었다. 뇌성마비의 원인이 아직 근본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이 병의 치료법도 아직 초기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닥터 콜린스가 우리집에 와서 나를 런던으로 보내기로 했다고 내게 말했다. 런던에 있는 그의 형수인 미세스 콜린스는 유명한 뇌성마비 전문의인데 내게 전면적인 재활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이 치료법에 반응을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그녀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들섹스 병원에서 그녀가 직접 나를 진찰하도록 부탁하고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될지 그녀의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며칠 후에 비행기로 런던으로 갈 것이고 닥터 워넌츠가 나보다 먼저 런던으로 가 있다가 노트홀트 비행장으로 나를 마중나와서 미세스 콜리스가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도 나와 함께 가시라고 했다. 나는 모든 것이 미세스 콜리스의 판단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나의 미래가 실제로 그녀의 손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내 경우는 치료해보기에는 너무 심한 상태라고 판단하면 나는 닥터 콜리스가 나를 찾아오기 전의 그 무력하고 희망없는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반면에 만일 그녀가, 내가 이 치료에 순조롭게 반응할 것이라고 판단하면 나의 삶은 어떤 의미와 궁극적인 가치와 보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나 자신과 정상적인 존재 사이에 가로놓인 벽들을 부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제11장.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1949년 1월, 새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갔다. 미세스 콜리스의 판정을 듣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그곳에 단 하루 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그 몇 시간 동안에 나의 전 인생이 변했다. 어머니에게는 첫번째 비행기 여행이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어머니가 흥분하시리라고, 적어도 약간 긴장하시리라고 생각했다. "기도책을 가져가세요." 하고 내가 중얼거렸다. "성 베드로가 어머니를 도와드릴 테니." 그러나 우리는 정말 어머니를 잘 몰랐다. 어머니는 비행기 타는 일을 상당히 침착하게 받아들였다. "땅에서 죽는 거나 하늘에서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어머니는 간단히 말했다. 다음날 어머니는 외출하시더니 새 모자를 사오셨다. "이건 런던 갈 때 쓸 모자다." 하고 어머니는 거울 앞에서 그 모자를 써보면서 우리들 모두에게 말했다. "클러리 상정에서 샀어요. 마음에 드세요?" 아버지는 그 모자를 아주 세밀하게 살펴보시고 잠시 멈춰서서 머리를 끄덕거리시며 말씀하셨다. "음, 나쁘진 않군, 매우 예술적이야. 하지만 무슨 모양을 나타내는 거지?" 그것은 검은색 공단으로 된 작은 모자였는데 커다란 깃털과 검은 베일이 붙어 있었다. "너무 화려해요." 하고 피터가 맞장구쳤다. "사람들이 어머니를 미세스 피콕(공작새라는 뜻)이라고 부리기 시작할 거예요." 그래도 어머니는 런던으로 가는 날 그 모자를 썼다. 그리고 닥터 콜리스 그 모자를 보고 멋지다고 하자 어머니는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제는 비행기 여행에는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멀미가 심하게 났다. 거의 죽을 지경으로 멀미를 하자 여승무원이 내 옆에 와서 멀미약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기 핸드백에 멀미약이 있다고 했다. 나는 머리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에 이제까지의 심한 두통이 사라졌다. 그녀가 내 손목을 잡고 맥박을 세는 동안에 나는 이제까지 내가 멀미를 하고 있던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녀는 멋진 승무원이었다... 우리는 맑고 추운 토요일 오전 열한 시에 노트홀트 비행장에 도착했다. 닥터 워넌츠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나를 어깨에 둘러메고 택시로 갔다. 나는 이렇게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서 가는 게 싫었다. 그건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 같았고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택시까지 기어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미들섹스 병원으로 향했다. 자동차가 런던거리를 지나는 동안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커다란 상점들의 쇼윈도우 바깥에 밀리는 사람들이며, 자전거를 탄 사람들과 빨간색 버스와 자동차의 끝없는 물결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소음과 움직임의 커다란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청회색의 하늘 위에 솟아 있는 커다란 회색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도시의 한가운데로부터 하루 종일 쏟아지는 소음이 그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잠시 후에 저 멀리 푸른 잔디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이 공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원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닥터 워넌츠가 그곳은 리젠츠 공원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 공원을 보니 더블린에 있는 피닉스 공원이 생각났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 그 푸른 풀밭에서 내 형들과 놀던 행복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오래 전에 나 자신만의 밝은 세계 속에서 살고 있던 행복한 아이.... 그러나 이제 열여덟 살이 되어 나는 중대한 모임에 참석차 런던의 넓은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나의 미래가 어떠한 길로 접어들 것인지 밝혀지게 되므로 나는 말없이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빨리 알고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겁이 나기도 했다. 그것은 내 삶에 너무도 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정상에 오르거나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마침내 자동차가 커다란 석조 건물 앞에 멈춰섰다. 건물 앞에는 굉장히 많은 층계가 있었다. 그것이 내 목적지인 미들섹스 병원이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작은 진찰실로 가서 미세스 콜리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의자에 앉는 것을 도와주면서 닥터 워넌츠가 미소지었다. "겁나니?" 그는 벽난로 위에 있는 놋쇠로 된 작은 조각을 만지며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겁이 날 거야." 그는 나를 보면서 계속 말했다. "너는 두려워하지만 네 자신에게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고집이 세다. 그건 좋은 일이야." 어머니는 완벽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앉아서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들을 보며, 가지고 온 햄샌드위치를 드시고 계셨다. 어머니가 더블린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우리집 부엌에서 아이들이 차마실 때 먹으라고 빵을 잘라주실 때처럼 침착하고 쾌활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도 속으로는 내가 느끼는 것과 꼭 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받을 이 진찰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며 내 전 인생이 그 결과에 지배된다는 것을 나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마디도 않았지만 어머니는 그것과 대면할 수 있는 자신의 용기와 힘의 한 부분을 내게 주셨다. 갑자기 내 뒤에 있는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와 여자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곧 자그마하고 마른 체격의 부인에게로 눈을 돌렸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그 부인은 경쾌한 걸음걸이로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부인이 미세스 콜리스라고 생각했고 그녀를 보자 이제까지의 의심과 불안은 곧 사라졌다. 그녀의 여유 있는 미소와 자연스러움과 스스럼없는 태도에는 그녀의 판정이 어떠하든간에 나는 침착할 수 있으리라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늦어서 미안해요." 하고 그녀는 우리에게 말하고 책상 모서리에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잠시 동안 그녀는 내게 눈길을 돌리지 않고 그냥 앉아서 날씨며, 담배값이며, 처칠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담배를 끄고 책상에서 내려서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네가 긴장을 좀 풀라고 그랬다, 크리스티." 하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몇 살이지?" 하고 그녀는 내게 물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내 나이를 말하려 하자 그녀는 손을 들어 말리며 정중하게 말했다. "크리스티 자신이 내게 말하게 하세요. 그저 장난삼아." 나는 열여덟 살이라고 겨우 대답했다. "열여덟 살이라고?" 하고 미세스 콜리스는 되물었다. "십팔년 동안이나 불구로 있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지겨우리만큼 충분하다. 이젠 그에 대해 뭔가를 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니?" 나는 동의의 뜻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럼,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보기로 하자." 그러고 나서 그녀는 그녀와 함께 들어온 남자를 불렀다. 그는 작은 체구에 엷은 갈색 머리와 갸름한 얼굴의 유쾌하게 생긴 젊은이였다. 그 사람이 다가오자 "이 사람은 갤러거 씨다. 우리 직원의 한 사람이지." 하고 미세스 콜리스가 말했다. 그 후에 갤러거 씨와 나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됐다. 그는 내가 싸워나가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으며 그의 이름은 언제까지나 다정함과 이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될 것이다. 갤러거 씨는 내 옷을 벗기고 나를 소파에 눕혔다. 미세스 콜리스는 닥터 워넌츠와 갤러거 씨의 도움을 받아가며 나를 진찰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대뇌", "신경절", "정리되지 못한" 등의 단어는 알아들었으나 그밖에 많은 수수께끼 같은 단어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를 진찰하는 동안 미세스 콜리스는 어머니에게 내 병력의 중요한 부분들을 설명하게 했다. 진찰이 끝나자 갤러거 씨는 내가 다시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서 네 사람--미세스 콜리스와 닥터 워넌츠, 갤러거 씨, 그리고 어머니--은 방의 한구석으로 가서 잠시 동안 이야기를 했다. 나는 소파에 혼자 앉아서 두근거리며 절망적인 기분으로 진찰 결과를 기다렸다. 나는 온몸에 땀을 흘렸다. 마치 내 인생이 실험대 위에 올라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콜리스가 천천히 방을 가로질러 와 내 옆에 앉았다. "자 크리스티, 너는 무의미하게 런던에 온 것이 아니다. 네가 치유되지 못할 이유를 나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단다." 나는 순수한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치유될 수 있다! 이제 무엇이 문제이랴! 그 모든 쓰라림과 가슴 아픔은 이제 행복으로 바뀌어 내 얼굴을 빛나게 했고 내 심장을 마구 고동치게 했다. 결국 나는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래." 하고 미세스 콜리스는 계속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정말로 힘든 많은 노력을 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너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녀는 말을 멈추고 나를 그윽히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먼저 너는 커다란 것을 희생해야 한다. 희생 없이 좋은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네가 희생해야 하는 것은... 너의 네 왼쪽 발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내 왼쪽 발! 그러나 그것은 나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내 왼발로만 말할 수 있었고, 내 왼발을 사용해야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었다! 내 왼발은 내가 바깥의 세상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고 내 자신을 표현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내 몸의 나머지 부분은 쓸모없고, 무가치했으며 다만 한쪽 다리, 내 왼발만이 내 몸 전체에서 단 하나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 외발 없이는 나는 벙어리이고 무력하고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 그것이 힘든 일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하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눈치채고 그녀가 말했다. "그건 엄청난 희생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출구이다... 지름길을 없다. 네가 왼발을 계속 사용한다면 언젠가 너는 그 왼발로 위대한 화가나 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너는 결코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네 손을 쓸 수 있게 되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못하면 너는 어떤 종류의 사회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렸다. 너는 왼발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할 수 있겠지?" 나는 그녀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았다.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제부터는 전면적인 투쟁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만일 그 싸움에서 이기기를 원한다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그 싸움에 걸어야 한다... 나는 큰 대가를 치뤄야만 한다. 어쩌면 잔인하기까지 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겠지만 그러나 결국은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약속하겠습니다." 하고 나는 미세스 콜리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때까지 내가 한 말 중에서 가장 또렷한 말이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눈은 빛났다. "훌륭한 아이다. 이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네게 부과할 과제에 너는 너의 온 정신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천천히, 특히 네 나이에는 아주 천천히 해나가야 한다. 이미 그 첫 단계는 내디뎌졌다... 나머지는 네게 달렸다." 치료를 받기 위해서 왜 내 왼발을 사용해서는 안되는지 나는 몰랐으나 나중에 미세스 콜리스가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왼발을 사용하는 것이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출구를 제공하므로 정신적으로는 좋지만 그것은 내 몸의 나머지 부분에 너무 큰 긴장을 강요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나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것은 나의 정신적인 긴장은 어느 정도 풀어주겠지만 이미 불구가 된 근육의 상태를 더욱 나쁘게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왼발로 내 자신을 이해시킬 수 있는 한 손을 써보려는 노력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왼발을 사용하지 않으면 내 몸의 나머지 부분을 사용하려고 전력투구하리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매우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정확하고 이치에 맞았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수행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그저 구두끈을 매서 내 불쌍한 왼발을 붙들어 매놓으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비참한 일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방에 갇히고 열쇠는 집어던져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겁을 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치 겨울 하늘처럼 해가 비추지 않고 나의 과거가 그 모든 쓰라림과 암울한 비관주의와 함께 다시 내게로 몰려올 것이다. 만일 내가 이 기회를 잡고 내 왼발을 "제거"한다면 나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게 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에 더블린으로 돌아갔다. 닥터 콜리스가 비행장으로 마중 나와 우리를 집에까지 태워다주었다. 미세스 콜리스와 이미 전화로 이야기를 했는지 콜리스는 좋은 소식을 듣고 매우 기쁘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 더블린의 매리언 가에 뇌성마비 병동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으며, 몰타 기사단과 성 존 구급대가 신체장애 아이들을 아침 아홉 시부터 낮 열두 시까지 병원으로 실어오고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데 차편을 제공하겠다고 동의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다음 월요일에 구급차가 나를 데리러 오면 그때부터 나는 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너는 어떤 일이든 극복해낼 수 있을 거다, 크리스티." 하고 닥터 콜리스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다는 걸 기억해라." 그러나 그때 나의 첫번째 과제는 내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며 그리고 투쟁은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12장. 그랬었더라면 처음으로 병원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매우 흥분되었다. 그 병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차가운 대리석 벽과 흰 옷을 입은 사람들과 온통 소독약 냄새가 날 것으로 상상했다. 잊을 수 없는 그 월요일 아홉 시 삼십 분쯤에 성 존 구급대 구급차가 우리집 문 앞에 와서 멈췄다. 나는 두려워하며 창문으로 그 차를 바라보았다. 나는 구급차를 언제나 장례식과 연관하여 생각하곤 했다. 침울하고, 으스스하고, 피를 흘리는 몸뚱어리 등을 생각하게 하곤 했다. 그런데 그 구급차의 운전수는 쾌활하게 미소지으며 아버지가 나를 들고 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래서 두려움이 조금 사라졌다. 의자에 앉아서 나는 차에 타고 있던 다른 환자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 앞에 놓인 들것에는 어린아이가 누워 있었다. 아이의 팔은 구부러지고 경직되어 있었으며 다리도 구부러지고 머리는 시체의 다른 부분과는 다른 각도로 비뚤어져 있었다. 그 아이 옆에는 어린 소녀가 앉아 있었는데 금발머리에 눈이 아주 큰, 매우 예쁜 소녀였다. 그러나 소녀의 다리는 가늘고 기형적으로 뼈가 튀어나왔으며 내 손보다 더 작고 연약해 보이는 소녀의 손은 나처럼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소녀는 내내 웃고 있었으며 눈앞에 흘러내린 곱슬머리를 쓸어넘기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 옆 의자에 누워 있는 어린 여자아이는 몸 전체가 무기력하고 얼굴은 얼어붙은 듯이 경직되고 아무 표정이 없었는데 다만 두 눈만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알려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소녀의 몸에서 살아있는 부분이라고는 그 두 눈뿐이었다.... 그 두 눈은 어두운 집에 불이 켜진 두 개의 창과도 같았다. 마침내 구급차는 매리언 가로 접어들어 어느 커다란 잿빛 석조건물 앞에 멈춰섰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기다란 거리 양편에는 인상적인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끊임없이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마치 중요한 회의에라도 가는 듯이 매우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리 맞은편에, 나라 전체의 복잡한 업무들이 수행되고 있는 행정부 건물이 있었으므로 그도 그럴 만했다. 돌아보니 닥터 워넌츠가 우리가 멈춰서 있는 건물의 층계를 내려오고 있었다. 그를 보니 다시 안심이 되었다. 나는 걸을 수 없는데 나를 건물 안에까지 데리고 갈 자동차나 휠체어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닥터 워넌츠를 쳐다보자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또 힘자랑을 해야겠구나, 크리스티." 하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 다리를 움켜잡고 나를 그의 어깨에 둘러멨다. 그가 나를 안고 계단을 올라갔을 때 나는 벽에 붙은 작은 금색판에 "더블린 정형외과 병원"이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았다. '기분나쁘게 들린다.' 하고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도대체 저 무시무시하게 들리는 단어의 뜻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닥터 워넌츠의 어깨 위에 걸쳐 있는 나로서는 주변을 잘 살펴볼 수가 없었지만 마룻바닥과 벽의 아랫부분만이 끝없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건물을 가로질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끝없는 계단을 내려가고 어둑어둑한 복도를 한참 동안 걸어가다가 마침내 흔들거리는 낡은 문을 열고 다시 환한 바깥으로 나왔다. "이것이 첫번째 여행이었고" 하고 닥터 워넌츠가 말했다. "이제 두번째 여행을 해볼까." 자갈길 양편으로 풀밭이 보이고, 머리를 들어보면 사물들이 거꾸로 보이는데 우리 주위에는 나무들이 둘러서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무슨 들판 같은 곳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풍경을 감상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럴 만한 상태도 아니었다. 닥터 워넌츠가 발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한 시간 전에 먹은 아침밥이 다시 목구멍으로 올라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목을 꾹 누르고 참아야 했다. "이 힘든 길이 이제 곧 끝나간다. 크리스티!" 하고 닥터 워넌츠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나는 머리를 겨우 돌려서 앞쪽을 바라보았다. 길고 좁은 목조건물이 보였다. 그것은 단층 건물이었는데 체육관처럼 보였다. 건물에 다가가니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는 소리도 들리고 우는 소리도 들리는데 대부분은 비명소리였다. 닥터 워넌츠는 나를 어깨에 둘러멘 채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소음이 거의 물리적인 힘처럼 맹렬한 힘으로 나를 두들겼다. 소음은 정말 굉장했다. 아이들은 울고, 고함치고, 비명을 지르고, 장난감이며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지 벽과 마룻바닥에 집어던지고, 다리를 허공에다 대고 흔들고, 발을 바닥에 구르고, 게처럼 기어다니며 서로의 몸 위로 타고 넘기도 했다. 닥터 워넌츠가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곳에는 세 살 이상으로 보이는 아니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혹시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곳은 유아원이나 탁아소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닥터 워넌츠가 나 말고 또 그 방안에 있는 유일한 어른을 발견했다. 나는 그가 갤러거 씨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나를 보더니 미소지었다.... 그 아우성 속에서 그가 미소짓는 것을 보니 나는 그가 매우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닥터 워넌츠는 두 명의 아기를 안고 방의 건너편으로 가다가 내 곁을 지나면서 "오늘 아침에는 치료를 하지 않을 테니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보거라, 크리스티." 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저 둘러보는 것도 치료의 한 과정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가르침이고 교훈이었으며, 이제까지 자기 집의 네 벽 너머에 있는 삶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무서운 체험이었다. 지금 내 앞에 이 삶의 온갖 새로운 측면들을 볼 때, 루르드에서 내가 보았던 것들은 다만 그림자에 불과했다. 이것이 예언의 본질이며 성취였다. 루르드의 동굴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물론 몹시 아프고, 오직 괴로운 삶만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모두 어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적어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아이들은 달랐다.... 여기에는 이성적인 이해는 없고, 다만 어찌할 바 없는 무력감과 거의 공포에 가까운 것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린아기들의 뒤틀리고 구부러진 작은 다리들, 기형적인 머리들, 뒤틀린 얼굴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여기저기 방안에 아무렇게나 내던진 빈 자루처럼 무기력하게 움직이지 않고 바닥에 움츠리고 누워 있었다. 작은 손은 꽉 움켜쥐고 다리는 서로 구부러져 꼬이고 머리는 비뚤어진 채, 마치 그들의 조그만 몸에 끊임없이 전기가 지나가 그들의 몸을 떨리게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왈칵 제치기도 하고 뒤틀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아이였을 때 내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렇게 어리고,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완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그 아이들을 나는 쉽사리 동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연민의 눈길이 얼마나 쓰디쓰게 내게 상처를 주었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연민 대신 나는 그 아이들에 대해서 공감과 연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지고 팽팽하게 긴장된 팔 다리 뒤에 있는 진정한 심성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연대감이었다. 형제와도 같은 통찰력이 나로 하여금 그들의 뒤틀린 근육 너머, 그들의 내면에 있는 갇힌 마음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감옥의 창살 뒤에 갇힌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날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가족들은 내 옆으로 몰려와서 병원이 어떠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나는 내 힘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느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닥터 워넌츠는 내가 적응해야 한다고 처음에 그냥 병원을 다니게 하고 일주일쯤 지난 후에야 천천히 치료를 시작했다. 그것은 전에 내가 집에서 받던 치료법과 꼭 같았으나 훨씬 넓고 더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병원에서 하는 운동은 더 자세하고 더 복잡하고 하기가 더 힘든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운동을 하면서 나는 다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가득 있는 방에서 그 아이들과 똑같은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꼭 새끼 고양이들 틈에 코끼리가 앉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또 실제로도 꼭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 틈에서 나는 배를 바닥에 대고 누워 몸을 쭉 펴다가... 이것은 이제까지 내가 해온 대로 등을 바닥에 대고 움직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운동의 일부였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깨닫는 것처럼 자주, 갑자기 멈추곤 했다. 그러고는 내 주위에 누워 있는 뒤틀리고 무기력한 아이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또 그 아이들 위로 몸을 수그리고 있는 닥터 워넌츠와 갤러거 씨의 얼굴을 쳐다보고, 갈색 대들보가 놓인 천장과 나무 벽을 쳐다보기도 하고 높다란 창문 밖으로 푸른 하늘, 흰 구름, 바깥 정원에 서 있는 나무들의 푸른 잎사귀들을 쳐다보았다.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멈추고 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다. '나, 크리스티 브라운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병원이라고 불리는 이 이상한 곳과,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돌아다니는 저 두 의사들, 저 이상하게 뒤틀린 몸과 축 늘어진 머리를 한 저 불구아들.... 이 모든 것들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집 침실에서 글이나 쓰지 않고 나는 왜 이상한 곳에 있는 것일까?'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바깥 세상"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 이 모든 것을 현실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이 사람들과 이 이상하고 어리둥절한 장소, 새롭고 빠르게 움직이는 이 세상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동굴에 사는 사람처럼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자기 자신의 좁은 방에 갇혀 있다가 이제 광활하고 풍부한 세상으로 갑자기 떼밀려 나와 처음으로 한낮의 햇빛을 보고, 또 그것이 드러내 보여주는 모든 것에 눈이 부셔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내가 마루에 구부리고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내 뒤에서 나를 슬쩍 건드렸다. 내가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 돌아보면 닥터 워넌츠가 거기 서서 미소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멍하니 꿈을 꾸고 있구나!" 하고 그는 내게 말하곤 했다. "언젠가 네가 쓸 책들을 생각하고 있니, 응? 그러나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너도 알지." 그렇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일은 일녀이나 이년, 또는 오년 안에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것은 평생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일을 잠시 멈추고 이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깨닫기 전에 내가 일어났던 그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따금 지나간 날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았던 지난 시절이 아니라 냉혹했던 지난 시절, 그대 나는 희망을 품을 일도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고 당장의 고통을 완화시켜줄 아무것도 없을 뿐 아니라 먼 미래의 어둠을 밝혀주는 것이 아닌 내 자신을 자각함에 따라 점점 커지는 내면의 고뇌와 고통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고 증오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내 자신의 고통을 증오하고 경멸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잔인하게 다르게--만들어졌다는 생각에 괴로웠고 반감을 느꼈다. 그러나 곧 나는 내가 가장 괴로웠던 시절에 신의 저주라고 생각했던 바로 이 고통이 내 인생에 특이한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병원에 일년쯤 다녔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사월의 어느 맑은 봄날 아침이었다. 병원은 그날 일과를 마치고 다음날을 위해 마악 문을 닫으려는 참이었다. 구급차 운전수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고 나만이 남았다. 나는 병원에서 나를 데리고 다니느라고 사용하는, 흔들거리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나는 문 밖에 앉아서 따스한 사월의 햇빛을 즐기며 풀들이 얼마나 푸르고 투명하게 보이는지를 생각하며, 신선하고 가벼운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사락사락 소리내는 것을 듣고 있었다. 내 뒤의 병실이 텅 비었으므로 사방이 고요했다. 나를 구급차로 데려갈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자갈길 저 끝으로부터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가벼운 발걸음 소리였다. 떨어진 낙엽을 천천히 발로 흐트리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길 위쪽의 나무들 사이로 빨간색의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옴에 따라 차츰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젊은 여자였다. 나는 얼른 다시 머리를 숙이고 나뭇잎을 이리저리 발로 차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체하려고 애썼다.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그녀는 내게 매우 가까이 왔다고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그녀가 내게 말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 내가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다. "바보처럼 굴지 마라." 하고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그 낯선 여자가 몇 발자국 앞에까지 왔을 때 나는 머뭇거리며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환장을 보는 것과 같았다. 그녀 뒤로는 푸른 나뭇잎들이 있었고, 이슬 맺힌 풀밭 위에는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뒤에서 비추는 햇빛은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뒤섞이고 흐트러져 그녀의 머리 주위에는 마치 후광이 어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나는 거의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가왔을 때 나는 그녀의 키가 보통보다 조금 더 크고 갈색 머리에 녹색 눈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의 얼굴은 거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순수한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처럼 선명하고 섬세하게 잘 다듬어진 얼굴이었다. 그녀의 뺨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고 그녀의 맑은 눈이 그녀를 자꾸 응시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었지만 나는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녀가 다가왔을 때 나는 내 자신에게 또렷하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 여자는 내가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자다!" 주위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갤러거 씨 어디 있는지 아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혀가 완전히 굳었다. 원래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마침내 나는 갤러거 씨가 곧 돌아올 거라고 겨우 뱉어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미소짓고는 내 옆을 지나 빈 병동으로 들어갔다. 일주일이 지나자 나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거의 버리려 했는데, 어느 목요일 아침 내가 휠체어를 타고 문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그녀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마루에 무릎을 대고 앉아서 어느 아이의 외투를 벗기고 있었다. 날이 지나감에 다라 차츰차츰 나는 그녀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됐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했고--그것은 처음에 나를 조금 놀라게 했다--그녀는 갤웨이에서 왔고, 그녀의 이름은 쉴라였다. 나는 구석에 앉아 그녀가 아이들 옆에 앉아서 이야기할 때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흘러내리는 거며 그녀가 머리카락을 성급하게 팔로 쓸어넘기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않게 그녀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유난히 의기소침해 있었다. 벽에 기대 앉아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생각으로 눈을 내리깐 채로 비관주의의 캄캄한 나락을 헤매고 있었다. 과거로부터 이따금 내게로 몰려오는 그 우울과 절망의 기분에 내 자신이 다시 끌려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한 목소리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기운을 내, 크리스티!" 나는 고개를 번쩍 들고 주의를 둘러보았다. 방 한가운데에서 쉴라가 나를 격려하며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내게서 우울을 몰아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를 잘 알게 됐다. 나는 운동을 매우 열성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대단한 용기를 내어, 그 전날 저녁에 동생에게 받아적게 한 편지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서 읽고 다음날 답장을 가져왔다. 물론 나는 지체하지 않고 곧 그녀의 편지에 답장을 해서, 우리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게 됐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는 커다란 장벽(가장 큰 장벽은 아니더라도)--말을 나눌 수 없는 장벽을 허물어뜨렸다. 입술로 말할 수 없는 것을 나는 종이 위에 표현한 것이다. 내 주위의 벽들은 아직 매우 높았다. 그러나 나는 그 벽들을 하나씩 허물고 있었다. 그 벽들을 허물자--그렇다, 그 벽들에게서 벗어나자--그렇다. 그러나 이 벽들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은 대개 "자유"니 "해방"이니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놓여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단지 극복이나 또는 용감한 작은 영웅처럼 적어도 내 자신의 핸디캡에 대항하여 싸우거나 또는 사람들이 내 뒤에서 박수를 치며 "곧 거기에 도달할 거이다"라고 말하게 하는 것 같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만일 그들이 "거기"라는 말로 육체적인 독립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괜찮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한"독립, 정신적, 감정적인 모든 갈등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도 의미한다면 그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니 "해방"이니 하는 그 모든 듣기 좋은 어구들은 공허한 말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내가 아직 감옥의 창살 뒤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내가 느꼈던 고통과 쓰라림은 이제 내가 나의 사슬로부터 빠져나가려고 애쓰고 있는 지금, 내 과거의 절망이 회복 가능성 있는 치유의 희망으로 바뀐 이 순간에 내가 느끼는 고통과 쓰라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내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영리한 사람들이 "깨달음"이니 "각성"이니 하는 말로 숨기려고 하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사월의 소나기처럼 왔다가 가버리는 어린아이 같은 멜랑콜리가 아니라 어른이 고통이었다. 그것도 물론 왔다가 가버리겠지만 그것은 내 마음에 더 깊은 흔적과 상처를 남겼다. 나는 내 자신의 욕구를 더 강하고 더 집요하게 깨닫게 되는 것을 느꼈으며 그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욕구의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나의 육체적인 한계가 때가 되면 극복된다 하더라도 나의 삶, 나의 내면의 정서적인 삶, 결국 정말로 중요한 삶은 결코 "정상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고통은 더욱 깊어졌다. 그것은 표현되지 않고 억제되어 밀봉된 채 나의 내부에 그대로 놓여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나는 병원 사람들의 도움으로 내 자신을 극복할 것이다--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또는 적어도 좀 더 평범하게, 좀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모자라는 것은 무엇인가 있으리라는 것--그림을 완성시키는 그 무엇, 또는 그림맞추기의 조각들을 마침내 완벽한 하나로 만드는 마지막 한 조각이 언제나 빠져 있으리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나는 알고 있었다. 나의 고통은 결국 "치유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것--정말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표현과 관계의 결여는 치유 불가능이었다. 신체적인 부자유를 내가 잘 극복한다 하더라도 나는 정상적인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정상적인 개체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그 "차이"는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그렇게도 절망적으로 바라지만 그러나.... 그것은 쓰디쓴 깨달음이었지만 진실하고 꼭 필요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내 자신에 대한 불쾌한 사실들에 대해서 눈을 감고 등을 돌린다고 해서 내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자주 나는 그렇게 됐지만, 그렇게 하면 최후의 시련을 조금 늦추는 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것은 언젠가는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이 다가오면 그것은 나를 한동안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겠지만 결국에는 나를 내 자신 안에서 강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결코 다른 사람들처럼 될 수 없다면 적어도 내 자신같이 될 수는 있을 테고 나는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쉴라는 내가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내가 마침내 속임수 없이 내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았다. 그녀는 어른으로서의 내 삶에 첫번째 이정표였으며 그녀를 통해서 나는 도중에 어떤 함정에도 빠지지 않고 나의 길을 갈 수 있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편지를 썼다. 나의 편지들은 몽상적이고 공상에 찬 것들이었고 그녀의 편지들은 지혜로 가득 찬 것이었다. 네가 언젠가 어떤 사람들은 너를 영웅으로 생각하는데 네 자신은 전혀 영웅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고 썼다. 나는 영웅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너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하겠다. 선한 신께서 네게 우수한 두뇌와 예술적인 재능을 주셨다. 그리고 신은 또한 네게 신체적 장애를 주셨다. 정신적인 능력을 위해서는 너이 신체장애에 대한 현재의 투쟁은 불가피하다.... 또한 너의 어머니를 기억해라, 네 어머니의 훌륭한 분별력이 없었더라면 너는 그저 언제나 '이랬었더라면...' 하는 얘기나 하고 있는 불만에 찬 젊은이가 되었을 것이다.... 내 서재에는 잘 보관되어 있는 작은 갈색 상자가 있다. 그 상자 안에는 쉴라로부터 받은 모든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 편지들은 감상적인 푸른 리본으로 묶여져 있다. 모두 서른 두 통이다.... 며칠 전에 그것들을 세어보았다.... 제13장. 펜 병원에서의 체험과 그것이 내게 준 효과는 내 머릿속을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차게 했다. 마치 내 눈앞에 있던 커튼이 걷어치워진 것 같았고, 또한 나를 그렇게도 오랫동안 괴롭히고 혼란케 했던 그 무엇에 대한 열쇠를 마침내 찾아낸 것 같았다. 나는 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또한 세상에 무엇인가를 몹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의 내부에는 말하고 싶은 어떤 강한 충동이 일었으며 나는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었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내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끼기 시작한 이후로 줄곧 찾아헤매던 그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찾는 데도 수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그것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나는 그것들을 사방으로 던져서 그것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것은 단지 내 자신에 대한 어떤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사방에 높은 벽들에 갇혀서 좁고 억눌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나는 그 벽들을 허물고 그 벽들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나의 공간을 햇빛 속으로 이끌어가고, 강건한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에서 나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길을 마침내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내가 말하고 싶은 것,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것을 나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의 두 손은 내게 아무 쓸모도 없었다. 그것들은 여전히 뒤틀리고 제멋대로였으며, 여전히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내 입술 역시 성급한 벌떼들처럼 내 마음 속에서 윙윙대는 생각들을 표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나는 발음을 제대로 못하므로 내 가족들 외에는 내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혀가 굳어 있었고, 여전히 침묵하도록 운명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내 성실한 오랜 친구, 내 왼발은 어떤가? 그렇게도 내게 봉사를 잘했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절망과 패배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였던 그 발은? 지금 그것을 사용할 수 없을까? 안된다! 그럴 수는 없다. 미세스 콜리스와 한 약속을 깰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내 자신이 배신자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결심을 했고 그것을 지키기로 했었다. 그러나 내가 왼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성실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는 내가 유혹에 저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한 힘이 못 되었을 것이다. 내가 왼발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내가 만약 왼발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내 자신의 회복과, 능동적인 삶--정상적인 삶은 아니더라도 훨씬 익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왼발을 동여매서 치워버렸는데 이제 다시 그것을 불러내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어떻든 항복의 의미가 될텐데 나는 아직 백기를 들 생각은 없었다. 나는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았다. 돌아보면 사방이 모두 막혀 있었다. 나는 마치 손발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린 사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는 어떤 영감이 떠올랐다. 나는 부엌에 앉아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종이 위에 옮겨 적을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동생이 테이블 위에 공책을 펴놓고 손에 펜을 쥐고 앉아 글씨를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에이먼은 그 당시 열두 살이었는데 숙제를 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영어작품이었는데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그다지 재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앉아서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그와, 창가에 앉아서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들끓으면서도 손에 펜을 쥘 수 없는 나 자신을 생각하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거의 미쳐 날뛰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그에게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학교에 낼 작품을 쓰고 있는 중이야." 하고 에이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대로 해가지 않으면 아마 얻어맞을 걸." 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했다--그 대신 그도 내게 무엇인가를 해준다면. "물론 해주고 말고." 하고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무슨 일인데?" "날 위해서 써주는 거야." 하고 나는 간단하게 말했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는데!" "너는 그저 펜만 잡고 있으면 돼. 무엇을 써야 할지는 내가 말해줄게." 내 동생은 나의 생각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것은 그에게는 몹시 복잡하게 들렸고 그는 이면에 뭔가 "수상한"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작문숙제를 제대로 해가고 싶은 생각에 결국은 나의 조건에 동의했고 나는 그의 숙제를 해주었다. 그의 숙제를 끝내고 우리는 집 뒤에 있는 나의 서재로 갔다. 서랍에서 연습장을 꺼내어 테이블 앞에 앉아서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다. 펜을 쥐고 내 동생은 "자, 뭘 써야 되지?" 하고 순진하게 물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그 위로는 맑은 봄하늘이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동생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동생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얼굴이었다. "내 인생의 이야기." 하고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가엾은 에이먼은 펜을 도로 테이블 위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형의... 뭐?" 하고 그는 물었다. 내가 그에게 다시 말하자, 이번에는 그가 아주 조용해졌다. 결국 나는 그가 "언제까지라도" 나를 위해 글씨를 써주기로 동의하게 됐다. 우리는 아무 준비도 없이 바로 그날 오후부터 시작했다. 내 자서전을 쓰는 첫 시도를 시작했을 때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것은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으며, 일곱, 여덟 음절의 단어로 된 진실이 숲이었다. 이제까지 읽은 것이라곤 디킨즈밖에 없고 경험이 없어서 나는 디킨즈의 문체를 흉내내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그 결과 내가 쓴 영어는 오십 년 전의 영어였다! 내가 사용한 단어나 구절은 어느 누구의 혀라도 몇 초 안에 굳어버리게 만들고 말 그런 것이었다. 단어들은 너무 길어서 동생이 종이 위에 쓰려면 내가 철자를 하나하나 불러줘야 했다. 그 끔찍한 첫 시도에서 어떻게 우리 둘 중에 아무도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는지 지금도 이상하게 생각된다. 수만 단어를 쓰고 난 후에야 나는 풀이 좀 죽었다. 그것은 녹인 납물처럼 느리게 질질 끌려갔다. 가엾은 내 동생은 글씨를 쓰다가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거의 사백 페이지나 썼는데 나는 이렇게 하다가는 이 책은 영원히 끝이 안 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제목이 내용 전체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제목을 "어느 정신박야자의 회상"이라고 붙였다. 나는 것이 내 다섯 살 때 나의 정신상태가 정상일 것인가를 의심한 그 의사들의 면전을 향한 일종의 풍자이며 좋은 아이러니가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언어는 불가능하지만 근사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내 자신을 불구자라고 부르는 대신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 또는 "하늘의 실패작"이라고 썼다. 나는 또한 바른 단어를, 끝에다 "주의"라는 말을 붙여서 애매모호하게 만들기를 좋아했다. "패배"라고 쓰는 대신 나는 "패배주의"라고 썼다. 마찬가지로 나는 근본적으로 단순한 생각들을 표현하면서도 완전히 추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는 데 정통해 있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묘사하고 싶을 때 나는 "불가해"라는 단어를 썼고, 무엇인가 맞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부조리하다"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이 없고 경박한 것을 뜻하는 말로 "물질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그래서 그 당시 사물에 대한 나의 뒤틀린 개념으로는, 내 동생 피터가 디킨즈를 읽지 않고 춤이나 추러 다니고 파티에나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를 물질주의자라고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며칠 전에 그 유명한 원고의 한 부분을 꺼내보았다. 첫장에서 나는 우리집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었다. ...나는 노동자 계급의 도덕과 원칙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 계층에서는 학문적인 지식에 대한 추구는 널리 행해지고 있지 않다... 지적 탐구는 이 사람들의 특징이 아니다.... 이 마지막 문장이 무슨 뜻인지 누구나 추측할 수 있으리라! 32페이지에서도 나는 여전히 노동자 계급을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계급과 사회적 구분이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러한 분리는 온건한 범위 안으로 국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불필요한 편견과 사회적 갈등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던 때에! 이 모든 것은 물론, 내가 하려는 말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나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옮겨놓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복잡하게 표현할 수만 있다면 결코 단순하게는 표현하지 않으려고 결심한 사람 같았다. 나는 서너 문장을 쓴 다음에야 내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단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 한 단락씩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본론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우리 아버지의 표현대로 하자면 "요점에서 벗어나 딴 소리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다음에 내가 인용하는 구절은 디킨즈가 내게 끼친 영향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구절은 디킨즈의 어느 책에서 따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전형적인 디킨즈풍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의 흥분과 휘몰아침이 끝난 후에 우리가 의식적인 노력이나 정신적인 결의 없이, 후회와 달콤한 기쁨으로 뒤섞인 꿈 속에 빠져들 때... 잊혀진 과거의 모든 기쁘고 슬픈 장면들이 우리들 내면의 눈앞에 몰려온다... 우리는 우리가 체험했던 괴로움과 즐거움을 다시 체험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작은 허영과 허세를 다시 불러내어... 우리 자신에게 외친다.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았다. 정말!'...그러나 과거는 결코 속이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고칠 수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성자와 또 천사들이 있었겠는가!... 이렇게 썼을 때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원고는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나는 계속 부르고 내 동생은 계속 받아적어 나중에는 우리 둘 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채 그저 자동적으로 부르고 쓰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맴을 돌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내 인생의 이야기를 쓰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곳에도 다다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계속 말하고 에이먼은 계속 받아적어 공책은 날마다 쌓여갔다. 그것들은 단어들의 숲이었을 뿐, 그 숲을 지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동생에게 불러주기 전에는 내 생각들은 너무도 분명하다가도 일단 부르기 시작하면 그 생각들은 모두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낙엽처럼 그 생각들은 모두 내 머릿속에서 뒤바뀌고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생각들은 붙들고 지속시키기가 어려웠다. 나는 내 자신의 우둔함에 화가 났다. 나는 내 자신을 바보라고 불렀다. 내 가여운 동생에게도 바보라고 불렀다. 사실 바라는 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이 두꺼워질수록 나는 더욱 신경질적으로 되어갔다. 내 앞에 뭔가가 걸리기만 하면 나는 발을 들어서 그것을 힘껏 차버렸다. 나는 너무도 화가 나서 어떤 때는 그 모든 것을 태워 버리고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나는 거의 이년 동안 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모든 일이 헛된 것이고 나는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것을--내 자신에게조차도--견딜 수 없었다. 나는 너무도 고집이 세어 굴복하는 그것을 불 속에 던져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좋은 책을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만--다만 할 수만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내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어색함 없이 명료하고 구성적으로 쓰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만 있다면! 자기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줄 어떤 사람. 나는 나를 이끌어줄 손이 필요했다. 나는 두뇌뿐만이 아니라 심장을 지닌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어떤 사람인 대부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무튼 식구들 중에서는 아니다. 우리집에서는 벽돌공들밖에는 없다. 내 형들은 글 쓰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또 나는 벽돌 쌓는 일에 대해서는 모르고 그런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나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나 혼자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내 자신을 표현하려고 고통스럽게 애쓰며,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헤매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아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자신이 너무도 역겨워서 더 이상 동생이 받아적도록 불러주기조차 싫어져서 침울하게 창가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한 이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나는 의자에 굴러떨어질 뻔했다. "콜리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콜리스!" 나는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에이먼에게 소리쳤다. 나는 그에게 서랍에서 엽서를 가져와 그것을 곧 닥터 콜리스에게 보내게 했다. 나는 당돌했다--나는 다만 짤막하게 이렇게 썼다. '친애하는 콜리스 의사선생님, 나는 책을 하나 쓰려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오셔서 나를 도와주세요. 크리스티 브라운.' 엽서를 보내고 나서 나는 내가 한 짓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그 의사를 일 년 이상 보지 못했다. 런던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그가 병원을 설립한 사람이고, 아일랜드의 뇌성마비협회 회장이라는 것 이외에는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나는 그를 본 순간부터 좋아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앞에서 당황하거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도 언제나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 가족들과 같이 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다만 의사일 뿐이지 않은가?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내가 글 쓰는 것을 도와줄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 말고 그는 어떤 사람인가? 얼마 후에야 나는 그가 닥터 콜리스가 아니라 로버트 콜리스이며,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유명한 희곡 "매로우본 레인"과 그의 자서전 "은빛의 양털"과 그밖에도 여러 희곡과 책을 쓴 사람이었다. 다음날 내가 집 뒤의 내 작은 서재에서 난롯가에 앉아서 디킨즈를 일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닥터 콜리스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한쪽 팔에는 책을 잔뜩 끼고 다른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는 책들을 침대 위에 던지고 서류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안녕." 하고 말하고 그는 다가와서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너의 구원요청 편지를 오늘 아침에 받았다. 그래 책을 하나 쓰고 있단 말이지. 자, 어디 한번 볼까." 나는 그 원고를 낡은 가죽가방에 넣어서 침대밑에 놓아두었었다. 그는 몸을 구부려 그 가방을 잡아당겨 원고를 꺼냈다. 그는 원고를 테이블로 가져와서 안경을 쓰고는 읽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둘째 페이지, 셋째 페이지를 읽으면서 그의 눈썹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그러다가 그는 원고를 테이블에 내던지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세상에!" 이 한 마디를 하고는 그는 말을 멈췄다. 그는 내가 비판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지 보려고 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그는 미소지었다. "그래, 너무 지나치다." 하고 그가 말했다. "네가 쓰고 있는 언어는 아마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유행했겠지만..." 그 말에 내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았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지금 내가 그 무엇보다도 더 하고 싶은 일--내 인생의 이야기를 쓰는 일을 나는 결코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하고 싶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상태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나의 꿈은 실현되기에는 너무 큰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책을 쓰겠는가--일생 동안 집안에 갇혀 있었고 학교라곤 교실 안도 들여다보지 못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 미친 짓이었다. 로버트 콜리스가 내 앞에 앉아서 그 끔찍한 원고를 넘기고 있는 동안에, 그런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따금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갑자기 그는 읽기를 멈추고 의자에 똑바로 앉았다. 나는 놀라서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긍정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다!" 그는 흥분하여 손을 테이블을 탁 치면서 말했다. "여기 이 문장은 잡초 속에 있는 한 송이 장미 같다고 할까, 돌들 가운데에 던져진 빛나는 작은 보석 같다고 할 만한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보면 글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잘 쓸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구나. 내가 알고 싶었던 게 바로 그거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일어나서 내 책꽂이에 있는 몇 안되는 책들을 보았다.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현대적인 훌륭한 어휘구사를 하려면 현대 영어를 읽어야 한다. 크리스티. 디킨즈는 매우 훌륭하지만... 다른 모든 취향과 마찬가지로 문학적인 취향도 바뀌는 거란다." 그리고 그는 그가 가지고 온 책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는 그 책들을 모두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L.A.G. 스트롱의 단편소설들과 숀 오펠런의 책 두 권, 그리고 존 스튜어트와 모리스 콜리스, 그리고 전세계의 유명한 문학작품을 모아놓은 전집 여섯 권 등이었다. "좋은 영어는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지를 이 책들이 네게 보여줄 것이다."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작가가 되고 싶으면 그는 글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글쓰기는 그림그리기와 똑같이 어려운 것이어서 그것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연습해야 하고 조금씩 조금씩 자기 자신의 문제를 계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그것을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내가 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나는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고, 그것은 어떤 문체를 갖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계속 해나감에 따라 내가 개발할 수 있다. 어떤 일을 정말 잘하기 위해서는 그것하기를 좋아해야 한다. 문체 뒤에 아무 것도 없으면 좋은 문체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한 글은 음식은 없고 미각만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의자에 앉아서 원고를 다시 집어들고는 깊이 생각에 잠겨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벽난로의 나무가 탁탁 타는 소리와, 벽난로 위의 선반에 놓인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와, 마당 건너 집안의 부엌에서 식구들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크리스티." 그는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몸을 앞으로 기대며 말했다. "이 모든 것..." 그는 원고를 가리켰다. "이 모든 것은 헛되지 않았다. 읽을 만한 것은 못 된다 하더라도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아무것도 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네가 생각을 해내는 연습을 많이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적어도 네가 아직도 너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말이야..." 그는 말을 멈추고 묻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끄덕였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럼 좋다." 하고 그는 계속했다. "그렇다면 너는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야기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는 후에 그가 많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이야기를 쓰든지 글을 쓰는 데는 우선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첫째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둘째 그것을 읽는 사람이 그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한다. 이제 구체적인 점들에 대해서 말하겠다. 가능한 한 긴 단어보다는 짧은 단어를 사용해라. 너는 붓으로 그림을 그려왔는데 이번에는 그와 똑같이 펜으로 그렇게 해보아라. 연습을 하거라. 여기 이 방을 한번 묘사해 보아라. 저기 얼룩진 벽에 걸려 있는 저 그림, 깨진 거울, 저 책들--저 천연색 사진...." 나는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그의 말을 열심히 들었다. 그날 저녁과 그 이후로도 여러 날 동안 그는 내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었다. 그가 한 말을 나는 하나도 잊지 않고 있다. 마침내 그는 내게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그때 나는 내가 이제까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사람이 내 뒤를 밀어주는 한은 언젠가는 그 일을 성취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에서 그것을 느꼈다. 제14장. 연민이 아닌 긍지 이미 말한 대로, 길고 좁다란 체육관 건물인 메리언 가의 병동은 더블린 정형외과 병원 뒤에 있어 그곳에 가기는 수월치 않았다. 외따로 떨어져 있기도 했거니와 공간도 몹시 비좁았다. 모든 것이 더할 수 없이 최악의 상태였다--아이들까지도 포함해서. 장비를 놓을 만한 공간도 거의 없었다. 다만 나무로 만든 커다란 "미끄럼틀"을 한 쪽 벽에 바짝 붙여놓았는데 그나마 그것이 거의 방 한쪽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 기묘한 장치는 아이들을 즐겁게 놀도록 하기 위한 것 외에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 미그럼틀에는 위쪽에 편편한 받침대의 올라가는 층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이들이 그 층계를 오를 때 난간을 손으로 잡음으로써 훌륭한 운동 효과를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은 두 손 두 발을 동시에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많은 아이들이 그것을 평상시에는 그저 불규칙적이고 발작적으로밖에는 하지 못했다. 미끄럼틀을 내려가면서 아이들은 몸의 긴장을 푸는 법과 동작의 공포를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병동은 점점 만원이 되어갔다. "이렇게 계속되다가는 아이들을 지붕 위에 올려놓아야 되겠군." 하고 닥터 워넌츠가 어느 날 말했다. 이따금 방안은 교통이 혼잡스러운 거리 같았고 아이들은 수많은 자동차들이 한꺼번에 경적을 울리는 것보다도 더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댔다. 너무나 시끄러워서 어떤 때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조차도 잘 모를 때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좀더 좋은 환경의 더 큰 건물로 이사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더욱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다. 지금 있는 병동이 너무 작은 상황이긴 했지만 나는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기 때문에 나는 그 병동에 정이 갔다. 나는 내가 처음 그곳에 갔던 날 아침을 기어가고 있다. 그 갈색 나무벽들, 높은 창문들, 바깥에 십이월의 비 속에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서 있던 나무들... 그리고 쉴라.... 그 즈음에 우리는 닥터 워넌츠와 헤어져야 했다. 그는 외국의 어느 병원으로 갔다. 우리는 모두 그가 떠나는 것이 섭섭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디론가 멀리가고 싶어하는 충동 "방랑벽"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에 그에게서 온 소식에는 자신이 극동에서 "한 낮의 햇빛 속에 땀 흘리며"있다고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갤러거 씨도 우리를 떠나 캐나다로 갔다. 그 후로 나는 그에 대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병원이 마악 개선되려는 순간에 가장 유능한 사람 둘이 떠나버린 것이다. 우리가 새 병원에 처음으로 간 것은 삼 년 전, 어느 따뜻한 여름 날 아침이었다. 병원은 불 앤리 가에 있었다. 거리에서 보면 그것은 빨간 벽돌의, 멋진 아치와 꼭대기에는 녹색의 둥근 천장을 얹은 크고 높다란 건물이었다. 건물의 앞면에는 커다란 창문이 많이 있었고 창문에는 정교한 쇠창살이 쳐 있었다. 전 병원에 비하면 매우 멋졌다. 내부도 훨씬 더 좋았다. 우리는 그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사실 우리는 방 세 개를 빌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방들은 크고 햇빛이 환히 들어오고 모두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었다. 모든 일이 훨씬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직원도 많아졌고 참가자도 많아졌고 치료기준이나 진행도 훨씬 좋아졌다. 방은 셋으로--치료실과 공부방과 놀이방으로 나누어졌다. 치료실에서는 우리가 운동을 하는 데, 열다섯 명 또는 스무 명의 아이들이 바닥에 열을 지어 누워서 물리요법가들의 지시에 따라 똑같은 동작을 하는 모습은 마치 많은 머리가 달린 커다란 뱀이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공부방에서는 "다르기" 때문에 누이나 형제들과 같이 학교에도 갈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심한 아이들이 초보적인 정규 교육을 받았다. 교사는 이런 어려운 임무를 위해 특별히 훈련을 받아 국가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해서 또 하나의 심연 위에는 다리가 놓아지고 그 아이들이 보통 사람들과 정상적인 접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집에 있는 누이나 형들처럼 그들도 "학교에 갈" 수 있고, 책과 책상을 가지고, 산수를 배운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들의 여선생님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고 선생님이 자기들을 어떻게 도와주는지에 대해서도 자랑하곤 했다. "보통"학교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 아이들도 "매"를 맞았다. 그 학교의 선생님은 그들의 손보다는 그들의 정신에 더 전념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정상적인 아이들보다 열등하지 않고 그들과 똑같다고 생각하도록 배웠다. 놀이방에서는 많은 일들이 행해졌다. 여기에서 "놀이"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일을 의미하기도 했다. 놀이를 가장하여 아이들은 손과 발을 올바르게 움직이는 법을 개발하고 틀린 동작을 교정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들은 그저 테이블 위에 앉아서 놀고, 보통 아이들처럼 뛰어다니고 계속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나 하는 것같을 것이다. 사실 그랬다. 아이들은 정상적인 아이들처럼 돌아다니고 행동하도록 고무되었다. 다만 그 아이들이 그렇게 즐겁게 돌아다니는 동안 원래의 틀린 신체적인 동작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관찰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그것은 제대로 뛰어다니고 올바른 방법으로 놀고, 방안을 돌아다니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동작은 사용을 거부당했기 대문에 부자연스러운, 틀린 동작을 개발했던 것이다. 놀이방에서 아이들은 가장 작은 동작에서 가장 큰 동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작을 할 수 있는 대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하도록 배웠다. 아무것도 그들에게 "쉬운" 것이 없었다. 바닥에서 분필 한 조각을 들어올리는 간단한 동작도 어떤 아이들에게는, 기술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밧줄타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작업이었다. 나는 그 병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다녔으므로 그 병원은 어떤 의미에서 내 삶의 일부, 내 삶에 꼭 필요한 일 부분처럼 생각하게 됐다. 나는 그곳이 그저 내 고통을 치료 받기 위해서 가는 곳이나, 의사와 하얀 옷을 입은 물리요법가들이 있는 "임상 연구소"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의사들이 있고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고 긴 복도와 차가운 대리석 벽돌이 있었다. 그곳에는 이 모든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밖에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그곳에는 능률뿐만이 아니라 정신이 있었고 냉정하고 과학적인 엄밀성뿐만이 아니라 진실된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었다. 차가운 하얀 옷을 입은 그 사람들을 매우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일에서 따뜻한 마음이란 매우 소중한 덕목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의학적인 기술만큼이나 중요했는데 그들의 환자들은 정상적이지 않아 그들이 일은 그저 단순하고 평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나 간호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히 "신체적인"이라는 말만으로는 요약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진지하고도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의학적인 치료뿐만이 아니라 신뢰와 다정함이 필요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들의 근육이나 팔다리만이 아니었다--때로는 우리의 뒤틀린 팔다리보다 우리의 정신, 우리의 내면적인 자아가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했다. 비뚤어진 입과 뒤틀린 손을 가진 아이는 곧 자기 자신과 인생에 대해서 매우 뒤틀리고 비뚤어진 마음가짐을 가지기 쉬웠다.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나게 되면 특히 더 그랬다. 정상적인 아이들과의 "차이"가 아이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의 몸처럼 뒤틀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인생은 다만 자기 자신의 "뒤틀림"과 자신의 정서적인 고통의 반영일 뿐으로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는 달랐다. 여기에의 우리는 "우리들 자신 가운데" 있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 때로는 자신보다도 더 심한 사람들 가운데에 있었으므로 이제까지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되었던 점들이 전혀 다른 점으로 생각되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 자신이 버림 받은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될 뿐이라고 이제까지 생각해왔었으나 우리를 이해하고, 돕기 위해서 진정으로 그들의 삶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렇게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찬란한 그 무엇이 성취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병원에 오는 아이들의 하나인 버니를 나는 물론, 누구나 다 좋아했다. 버니는 "가망이 없는" 경우에 대해서조차도 이 병원이 무엇을 하루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예였다. 버니는 이 병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환자 중의 하나였다. 내가 처음 그 애를 보았을 때 그 애는 겨우 두 살이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같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왔다. 그 당시에 그 아이가 얼마나 애처로운 모습이었는지 나는 기억하고 있다. 내 앞의 들것에 누워 있는 그 애를 나는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자그마한 요정 같은 얼굴에서 반짝이는 두 눈뿐이었다. 그 아이는 어찌나 작았던지, 그 두 눈이 그 아이에게서 가장 큰 부분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애는 따스한 온기나 생명이 없이 차갑고 주위에 대해서 무감각한, 그저 딱딱하고 웅크린 물건처럼 완전히 무기력한 채로 누워 있었다--다만 두 눈만이 인형처럼 담요에 싸여 있는 아이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줄 뿐이었다.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그 아이는 마치 "얼음이 조금씩 녹는 것"처럼 생명을 나타내 보여주기 시작했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그 아이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운동을 그 아이가 할 수 있을 만한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버니는 이제 병원에서 가장 활기 있는 환자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훌륭한 예가 되었다. 그 아이를 돌봐주는 도로시 헨더슨 양은 버니를 "깜찍한 계집아이"라고 불렀다. 병원에서 버니의 가장 큰 라이벌은 도로시이다. 그 두 아이들이 서로 운동을 더 잘하려고 애쓰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판토마임을 구경하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도로시는 매우 소중한 아이이고 또 매우 귀엽다. 병원에 있을 때 그 아이는 가장 나쁜 케이스 중에 하나였는데 그 역시 상태가 무척 좋아져 처음 치료를 시작했을 때 그 애를 본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 그 애는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그 애의 등은 휘었고 어깨는 아래로 쳐졌고 머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데이지처럼 이리저리 건들거렸다. 그 애는 여기저기로 기어다니려고 애썼지만 손과 무릎이 제대로 받쳐주질 못해서 앞으로 엎어져 얼굴을 바닥에 대고 누워버리기 일쑤였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에 차츰차츰, 처음에는 바닥에 펴놓은 담요 위에 누워 긴장을 푸는 것부터 배우고 그 다음에는 앉아 있는 자세를 배우고 마침내는 아주 조금 받쳐주면 설 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걷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히 만들어진 나무 "스키"를 신어야 했다. 그것은 손을 잘 받쳐주고 올바른 자세로 서게 하여 전체적으로 자세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도로시는 손과 무릎으로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고 혼자서 천천히 머뭇거리며 몇 걸을 떼어놓을 수도 있게 되었다. 도로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귀여운 아이다. 커다랗고 맑은 갈색 눈에 흐트러진 검은 곱슬머리, 그리고 사람을 끄는 수줍은 미소를 지을 때는 작은 들창코에 언제나 주름이 잡혔다. 도로시는 또한 물리요법사가 될 소질이 있었다. 그 애는 머리가 영리해서 모든 것을 잘 받아들였고 여러 해 도안 병원을 다니다 보니 물리요법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게 되어 병원의 직원들에게 자기가 그 방면에 대해서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 애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에게로 기어가서 그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 아이들에게 운동하는 법을 가르쳐주려 하고 그 아이가 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려주기도 한다. 이따금 도로시는 의욕이 넘쳐서 아장아장 걸어서 방을 가로질러 내게로 와서는 내게도 연습을 시키려 한다. 그러나 도로시가 내게 "다리를 구부리라"든지 "배를 밀어넣으라"든지 "잘 앉아 있으라"고 지시하면 나는 무감각하게 누워서 그 애를 쳐다보며 웃기만 했기 때문에 언제나 도로시를 화나게 했다. 나 자신도 지난 이 년 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배운 것은 긴장을 푸는 것이었다. 이것은 쉬운 일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매일 아침 내가 해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긴장을 푼다는 것은 단순히 침대에 누워서 통나무처럼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완전히 긴장을 푸는 것은 정상인들에게도 매우 힘든 일이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축 늘어지도록 근육을 완전히 이완시키려면 우선 정신의 긴장을 완전히 풀고 사고를 자유롭게 풀어놓아 생각이 아무런 의식적인 지시에 따르지도 않고 어떤 특정한 대상에게로 의식적인 지시에 따르지도 않고 어떤 특정한 대상에게로 의식적으로 향하는 일도 없이 자유로이 떠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내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생각되었다. 내 머릿속은 매우 불안정하다. 머릿속이 쉬는 것은 잠 잘 때뿐이다. 게다가 나는 잠도 잘 못 잔다! 팔다리를 고요하게 놓아두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긴장을 풀었다는 표시는 아니다--나는 팔다리를 긴장함으로써 그것들을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이다. 긴장을 푼 것처럼 보이기는 쉽다. 그러나 긴장을 풀었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긴장을 억지로 풀려고 하는 것이 가장 나쁜 일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하면 더욱 육체적인 긴장만 싸여서 진정한 긴장완화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극도로 의식하고 있다. 소음, 빛과 그늘의 상호작용과 변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특정한 표정들, 목소리들의 음색과 억양.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호수에 떨어지는 조약돌처럼 내 머릿속에 분명하고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올바르게 긴장을 완전히 풀기 전까지는 나는 나와 같은 다른 사람들이 이와 똑같은 지도로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성취했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병원을 관리하는 닥터 메리 오도넬과 직원으로 있는 세 명의 물리요법가 중에 한 사람인 바바라 엘렌 양의 전문적인 지도 아래 나는 요즈음에는 어린 도로시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다만 훨씬 더 큰 특수한 스키를 신고 걷기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또한 두 손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우고 있다. 병원에서 가장 나이 많은, 병원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미세스 프랜시스 프린스이다. 그녀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원의 장래가 불확실하던 때부터 합류하여 이제까지 일하고 있다. 이따금 울적한 기분이 들 때에도 그녀가 곁에 있으면 나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얼버무릴" 수가 없다. 내가 테이블 앞에 앉아 있으면 그녀는 내가 할 일들을 찾아내어, 찰흙으로 형상들을 만들게 한다든지--나는 언제나 형편없이 보기 흉한 형상들을 만들어내곤 하지만--아령을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기게 하는 등이 손을 움직이기에 좋은 운동들을 내게 시키곤 한다. 정상적인 사람들과 접촉하고 싶어하는 나의 열망에 가장 큰 장애는 말이었다. 그것은 나의 장애 중에서 가장 쓰라린 괴로움을 주는 부분이었다.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못하면 더욱 버림받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그러나 쓰여진 낱말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글은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형태이지만 목소리와 같이 두 사람 사이의 틈을 메워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을 쓰기보다는 친구와 한 시간 동안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싶고, 여자아이와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러나 이제 나는 투박하게 툴툴대는 것이 줄어들고 제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끙끙대던 내 말투는 약간 점잖아졌고 발음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이것은 병원의 언어장애치료가인 닥터 패트리시아 쉬언에게서 특수치료를 받은 덕분이다. 이 치료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솔직히 좀 당황했었다. "언어장애 치료"라는 말은 아주 거창하게 들리지만 그 방법은 아주 단순해서 이런 것은 누구라도 고안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한 어린아이들의 장난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잘못 생각했다! 단순하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치료의 요점이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놀라웠다. 첫번째로 내가 배운 것은 숨을 제대로 깊이 쉬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데 내가 아무렇게나, 갑작스럽게 숨을 쉬는 습관이 들어버렸다고 말했다. 호흡조절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나는 결코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곧 내게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호흡법을 위해 첫번째로 배운 것은... 비누방울 부는 것이었다! 어느날 그녀는 비눗물이 가득 든 작은 깡통을 가져왔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잡이가 달린 작은 금속 링을 꺼내 그것을 물에 담갔다가 꺼내서는 내게 밀리며 링에 생긴 엷은 막을 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으므로 나는 숨을 쉬고 입술을 내밀어 그것을 불었다. 곧 눈부신 색깔의 비누방울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내 코에 내 눈에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서 수십 개의 물방울들이 빛났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비누방울을 불 테야"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힘들어졌다. 그 병원에 다니는 또 다른 성인환자인 내 친구 존과 함께 나는 좀 색다른 방법으로 호흡을 늘리고 깊게 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병에 담긴 물에 튜브를 대고 불어서 튜브를 통해 다른 병으로 옮기는 방법이었다. 두 병은 밀페되어 있고 고무튜브가 양쪽으로 통하게 되어 있고 고무튜브의 양 끝은 코르크를 끼운 두 개의 작은 유리 실린더에 연결되어 있었다. 두 병 중 하나에는 색깔이 있는 물이 들어 있는데 그것을 불어서 연결 튜브를 통해 다른 쪽 빈 병을 채우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하게 들리지만 정말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커다란, 못된 늑대처럼 나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불고 또 불었지만 겨우 몇 방울만 똑똑 떨어뜨릴 수 있을 뿐이었다. 다음에 존의 차례가 되었는데 그는 불과 몇 초 만에 이쪽 병의 물을 저쪽으로 다 옮겨놓았다. 존은 폐가 굉장히 튼튼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매우 실망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물을 부는 작업에 조금씩 능숙해졌다--아직까지도 존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몇 달이 지난 후에 내 발음이 괄목할 만큼 좋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각각의 단어를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발음하고 또 평소에 그렇듯이 서두르며 부산을 떨지 않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침착하게 말하도록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이제는 말이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하기만 하면 상당히 말을 잘할 수 있다. 내 언어장애는 근본적으로 내 자신의 태도에 그 원인이 있었다. 낯선 사람이 내게 말을 걸면 언제나 뺨으로 뜨거운 피가 몰려올 정도로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나의 이상한 당황과 흥분을 일단 극복하자 내 언어장애의 근본 원인이 제거된 것이다. 요즈음에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완벽하고 건강한 사회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오래 연습해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또 완전함을 기대하거나 B.B.C. 방송에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닥터 쉬언 밑에서 이룬 크나큰 발전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증거이므로 나는 결단코 노력할 것이다. 나는 "모범적"인 환자는 아닌데도 직원들은 내게 상당한 인내심을 보이고 있다. 헨더슨 양은 내가 게으름을 너무 피우고 병원에서 작업에 충분한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이 옳으므로 할 수 없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내가 충분히 또는 적어도 내가 방금 말한 대로 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만큼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치료의 중요한 부분임을 알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나는 게으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누군가 아주 깊이 들여다보면 글을 쓰고 있는 일이 그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마루 위에서 꼬물대며 발을 허공으로 걷어차는 어린아이에서부터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놀고 이따금 서로의 몸 위로 넘어지는 조금 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병원의 아이들은 행복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병원까지 실어다주고 또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사람들은 자원해서 이삼 일씩, 또 때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아이들을 자신들의 차로 실어나른다. 아이들은 병원에 오기를 고대한다. 아이들과 그들을 실어다주는 사람 사이의 애정은 자주 깊고, 감동적으로 발전해간다. 아이들을 집으로 다시 데려다 주려고 정오에 자원봉사자가 오면 걸을 수 있는 아이들은 그녀--또는 그 남자--의 주위로 몰려들어 그날 오전에 한 일에 대해서 신이 나서 떠들어대고 움직일 수 없는 아이들은 바닥에 누운 채로 다리를 신나게 흔들어대며 소리를 지른다. 아이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뿐만 아니라--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그들이 무엇보다도 필요로 하는 이해와 공감, 단순히 친절한 몇 마디 말보다 더 깊은 이해와, 연민이 아닌 공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을 이끌어 가는 여자 직원들--닥터 메리 오도넬, 닥터 패트리시아 쉬언, 미세스 프랜시스 프린스, 도로시 헨더슨양, 바바라 앨런 양, 조이스 멕크로리 양, 그리고 학교선생은 유나 케네디 양--은 모두 훌륭한 일을 해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들의 비상한 능력과 솜씨는 나의 찬사가 필요치 않다. 그들은 모두 다정하고 이해심이 깊으며 때때로 그들의 훈시가 태만하고 등한하게 받아들여지면 그들은 다소 엄격해지긴 했지만 결코 냉정함으로까지 심화되지는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엄격해져도 아이들의 머리 위를 차례로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과 얼굴에서 열정적인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들어서면 곧 그곳에 생명을 불어넣고, 눈에서 눈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물결처럼 흐르는 정신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연민이 아닌 긍지였다. 제15장. 상투적인 문구와 시이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로버트 콜리스로부터 글쓰기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배워갔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에 너무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주어서 며칠이 지나자 나는 마치 보석이 가득 들은 보물상자를 갑자기 발견하고 그 빛에 눈이 부셔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어질어질했다. 그는 내 작은 서재에 와 앉아서 화려한 어휘를 늘어놓거나 애매한 이론을 펴지 않으면서 간결하게 글쓰는 법에 대해서 내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을 내게 말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평이하고 명료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우리 집안 식구 이외의 사람과 얘기할 때는 수줍고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지곤 했기 때문에 아직도 둘이서 제대로 토론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모든 일에 대해서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그가 주로 얘기하고 나는 듣고만 있었다. 차츰 나는 광대한 문학 세계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문학의 형태와 규범, 원칙, 관습, 미묘함과 특이함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학의 고요함과 아름다움과 매력에 대해서 알게 됐다. 내게는 문학이 비천한 사람에서부터 위대한 사람까지, 단순한 기록자나 역사가로부터 위대한 사상가까지, 정신으로 글을 쓴 사람에서부터 심장과 영혼으로 글을 쓴 사람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정신으로 세워진 인간의 생각과 이상의 사원이라고 생각됐다. 그에게서 배운 것에 비춰보니 내가 저지른 많은 실수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참을성이 많았다. 그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어떤 때는 일주일에 두세번 올 때도 그는 내게 어렵지 않게 전문적인 것들을 가르쳤다. 그는 훌륭한 비평가였는데 내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그는 비평을 늦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나의 재능을 믿었다. 그는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의 믿음은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곧 나는 내 자서전을 새로 쓰기 시작했다. 여전히 동생에게 받아쓰기를 시켰다. 내 대필가는 이번에는 열세 살짜리 동생 프랜시스였다. 프랜시스는 짧은 바지를 주로 입는 학생으로 내가 말하는 것을 그저 기계처럼 받아쓰는 에이먼이나 숀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는 자기가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우리가 낮에--또는 밤에 쓰는 때가 더 많았지만--그날의 분량을 마치면 그는 조용히 앉아서 그가 받아적은 것을 다시 읽어보면서 내게 문법이나 문장구조나 단의 뜻 등등에 대해서 묻곤 했는데 때때로 내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어느 날 밤에 나는 우리가 방금 끝마친 한 장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그는 손가락 사이에 펜을 끼우고 만지작거리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얼굴을 들고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괜찮긴한데 이걸 읽으려면 사전이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는 그에게로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얼굴에 웃음도 띄지 않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침착하게 깍지낀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두번째 시도에서 책은 첫번째보다 훨씬 나아졌다. 주제가 더 선명해졌고 구조는 보다 질서적으로 연결되었고 그 뒤에 있는 사고는 더 완숙해졌다. 나는 잠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으나 닥터 콜리스는 머리를 흔들었다. "전보다는 낫다."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충분치 않다. 너는 아직도 너무 문학적으로 쓰고 있다."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여전히 잘난 체하고 불필요하게 극적으로 꾸며대고 있었다. 많은 부분이 허위였고 아직도 나는 쓸데없는 얘기를 늘어놓기를 좋아했고, 아무 관련도 없는 일에 대해서 길게 얘기하고 있었다. "이걸 찢어버리고 다시 시작해라." 하고 그가 말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작품을 쓰고 또다시 쓰곤 한단다. 제대로 될 때까지 자주 절망적으로 다시 쓰지.... 세번째에는 성공할 거야." 나는 억지로 웃었지만 그 쓸모없는 원고 더미를 바라보면서 속으로는 나 자신을 욕하고 있었다. 결코 제대로 될 수 없을 것인가? "또 한 가지는, 크리스티." 하고 그가 어느 날 밤에 말했다. "너는 상투적인 문구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 상투적인 문구(클리쉐)라는 게 뭔지 아니?"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것은 무슨 외국의 동물이나 곤충의 이름같이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흔히 쓰는 말"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흔히 사용하는 관습적인 수사법, 책이나 일상적인 대화에서 너무 자주 쓰여서 닳아버린 단어나 구절, 너무 자주 쓰여서 낡고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표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심하게 그런 표현을 자주 쓰고 있나를 깨달았다. 바로 어제 나는 "포효하는 불" 옆에 앉아 있었으니, "절규하는 바람" 소리를 들었으니, "괴로운 조바심" 속에서 기다렸느니, 그녀는 "빛나는 눈과 끌어당기는 도톰함 입술과 백조 같은 목과 일렁이는 비단실 같은 머리칼"을 가졌다느니, "목에 덩어리가 걸린 것처럼 목이 메였다"느니, 어떤 사람이 "뱃놈처럼 욕을 했다"고 썼던 것이다! 내 원고를 다시 읽어보면 내가 얼마나 자주 이런 상투적인 문구를 썼는지 그 회수가 수백 번이 넘는 것 같았다. 또 내가 화려한 문구를 특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코르크가 물 위에 튀어오르듯이 그러한 구절이 여기저기에서 튀어올랐다. 상투적인 문구들처럼 그런 구절들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앵무새처럼 다른 사람들 흉내내기를 아주 좋아했다. 이 년 전 십이월의 어느 날 밤에 닥터 콜리스가 내 서재로 와서 내 앞에 앉았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가에서 손을 쬐며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의자를 뒤로 조금 밀고 나를 쳐다보았다. "크리스티." 하고 그가 말했다. "너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너는 독창적인 창작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최상으로 개발하느냐는 것이다. 너는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니?" 교육이라! 나는 실제로 교육은 전무였다 다섯 살 때에 어머니에게서 알파벳을 배운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교육이었다. 거기에서부터 나는 책을 일고--주로 디킨즈!--그 책에서 배우며 나 혼자 할 수 있는 대로 해왔다. 교육! 그 단어는 나를 떨리게 만들었다. 내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통해 내 자신에게 가르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지식이 무엇인지를 알기까지는 나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배우지 못했어요." 하고 나는 겨우 대답했다. "알겠다." 하고 그가 말했다. "교육은 매우 가치있는 것이란다. 더군다나 네 경우에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는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는 벽난로의 벽돌을 발로 툭툭 하고 한 손으로는 조끼의 단추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너는 학교나 대학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다닐 수 없겠지."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개인교습을 받는 일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좋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너의 남다른 신체 동작과 언어장애를 개의치 않을 그런 사람을 구해야지. 매로우본 래인 기금에 돈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할 작정이다." 며칠 후에 그는 내게 와서 카트리오나 매기어의 도움으로 나를 가르칠 이상적인 사람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키미지의 커다란 국립학교 교사인데 마침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이에 살고 있다고 했다. "너와 잘 어울릴 것 같더라." 하고 그가 말했다. "어떤 아이라도 그런 선생님과 공부라고 싶어할 그런 사람이다." 바로 다음날 저녁에 우리 교구의 신부님인 멀레인 신부님이 내 새 개인교수와 함께 와서 그를 내게 소개해주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자크 마리탱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신부님과 또 낯선 사람을 모시고 들어오셨다. "이 분은 거리스 씨다. 크리스티." 하고 멀레인 신부님이 말했다. 나는 얼굴을 들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는 땅딸막하고 날카로운 푸른 눈과 유쾌하게 생긴 입에 혈색이 좋아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그의 모든 동작은 매우 신중하고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둥그런 눈썹은 표정이 매우 풍부했다. 그의 얼굴은 날카로운 지성과 민감한 공감의 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그를 처음 본 순간 그의 인간성의 힘과 매력을 느꼈고 그 순간부터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안녕, 크리스티." 하고 그가 깊이 울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내게로 와서 나와 악수를 했다. "너를 알게 돼서 기쁘다. 이제부터 친구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거리스 씨는 조용하고 꾸준히 그리고 매우 확신에 찬 태도로 모든 장애를 극복해가며 그의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리의 관계는 다정하고 실제적이며 겸손한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거대하고 어려운 일을 같이 해나가는 파트너인 듯한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그는 나를 이끌어갔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대개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 왔다. 그는 두 시간 남짓 동안 가르쳤다. 처음 한 달쯤은 나는 매우 진도가 느리고 그가 옆에 있는 것이 불편했고 그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때 내 언어장애를 고통스럽게 의식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처음의 수줍음은 사라지고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우리가 하는 일에 안정이 되었다. 정말로 안정이 잘되어서 나는 상당히 자유롭게 말하기 시작했고 때로는 매우 수다스러워지기도 했다. 그날 저녁의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는 잠시 더 머물면서 버트란드 러셀의 철학이나 톰슨과 예이츠의 시에 대해서 또는 정신분석이 무엇인지 등등 많은 것에 대해서 나와 토론했다. 그렇게 해서 정규과목과는 별도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물론 그러한 토론은 내가 분명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처음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숫자를 잘 쓸 수 없어서 숀을 다시 불러서 도와달라고 해야 했다. 프랜시스는 내가 다시 쓰고 있는 책만으로도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숀은 학교에서 수학을 상당히 잘해서 산수나 대수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사실 숀은 도움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는 어렵고 귀찮은 일은 모두 그에게 시키고 나는 답을 맞히기만 했다. 나는 방정식이나 비율, 복리계산 등에 흥미와 즐거움을 느껴보려 애썼지만 그저 실증만 나고 골치 아프기만 했다. 나는 항상 숫자를 싫어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진도가 나갔다. 그런데 기하학을 배우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나는 기하학이 좋아졌다. 각도와 삼각형 평행사변형 면적, 직사각형 등의 문제와 공식에 열중했다. 내가 왜 수학에서 이 방면만 좋아하고 다른 분야는 싫어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기하학을 몹시 좋아해서 그 시간을 매우 즐겁게 보냈다. 그 다음에 라틴어를 배웠는데 나는 그것을 금방 배웠다. 나는 라틴어의 우아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표현의 부드러움과 산뜻함, 의미의 섬세함과 음영과 어조에 매료되었다. 한 해 동안 기초를 배운 후에 나는 갈리아 전기를 통해 시이저의 문체를 접하게 됐다. 나는 그 책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그러나 상당히 흥미 있었다. 나는 독서도 훨씬 현대적이고 포괄적이 되었다. 이 년 전에 쉴라가 결혼하러 미국으로 떠나가기 전에 그녀는 내게 크고 매우 아름다운 장정본으로 된 셰익스피어 전집을 주었다. 그것은 지금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소유물이다. 그녀가 병원을 영원히 떠나던 날 아침, 내게 햄릿의 비통한 독백, "죽느냐, 사느냐"를 그녀에게 낭독해 달라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그 부분을 말할 때 아이들이 우리 옆에서 온통 소리치며 웃고 있었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에 낀 약혼반지가 한 줄기 햇빛에 반짝였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내게 거의 감각적인 기쁨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자주 나는 그의 희곡의 어느 한 부분에서 읽기를 멈추고 숨도 못쉬면서 그의 상상력의 놀라운 아름다움과 그의 이성의 냉철함에 탄복하곤 했다. 그의 정서는 그렇게도 보편적이고 타당한 한편, 그러면서도 동시에 유일하고 독창적이었다. 그의 사고의 진기한 아름다움과 표현의 절대적인 기교는 나를 거의 망연케 했다. 그는 마치 인간의 정신을 낱낱이 해부해서 그것들을 햇빛 속으로 들어올려서 그것들을 세상의 눈앞에 보여주는 것 같이 생각됐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데 그 이전, 그 이후에도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한 유일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 다음에 나는 쇼를 읽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를 만난 것이 하늘에서부터 불어오는 미풍과도 같았다면 쇼는 삼월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과도 같았다. 나는 그의 재치와 신랄한 유머를 즐겼다. 그의 논리가 때로는 다소 비논리적이었지만. 곧 나는 그에게 몰두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해답을 가지고 있는 듯이 여겼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무신론자였을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무신론을 믿게 하려고 너무 안달한 나머지 그 자신은 무신론을 진정으로 믿지 못한 것 같다. 아마도 그는 내면의 믿음이나 적어도 믿어야 하는 강한 충동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외면으로 나타나는 교만 안에 감추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정신은 너무 미묘해서 나는 확실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희곡들을 읽는 것은 이른 아침에 바닷가를 달리는 것처럼 내게는 상쾌하고 고무적인 것이었다. 이따금 밤에, 내 서재에 앉아서 시이저를 읽거나 기하학이나 수학문제를 풀어야 할 대 나는 잠시 내가 만났을지도 모르는 그 모든 여자애들을 생각하곤 했다. 내 형이나 동생, 패디나 피터처럼 내가 같이 춤추고 아마도 같이 자기도 했을 그 모든 여자들, 그럴 때는 의자에 앉아서 시이저의 갈리아로의 출정이나 중세의 역사 또는 셰익스피어조차도 읽기가 힘들었다. 나는 여전히 "정신의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꼭 스무 살이었다. 나는 책 말고 또 다른 친구가 필요했다. 나는 책의 매력 못지않게 위험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위험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끊임없는 독서의 마력과 검은 마술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이럴 때는 나는 공부고 글이고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른 봄날 아침에 산을 오르는 기쁨을 알고 싶었고 달밤에 아름다운 여자와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즐거움을 알고 싶었다. 어느 날 저녁에 나는 특히 외로웠고, 친구들과 밖으로 나간 피터와 패디가 부러웠다. 나는 혼자였고 책을 읽기도 지겨웠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무룩하니 앉아 있었다. 받아쓰기를 하러 프랜시스가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펜을 집어들고 기다렸다. 나는 뭔가 할 말, 표현해야 할 말이 있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단어들은 모두 틀렸고 맞지 않았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쓸모없는 그 손들. 그때 갑자기 내 왼발이 생각났다. "빨리 나가, 프랜시스." 하고 내가 외쳤다. 불쌍한 프랜시스는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빨리." 하고 내가 말했다. "나가...." 그는 일어나서 겁에 질린 토끼처럼 어깨 너머로 나를 쳐다보더니 방에서 나갔다. 나는 얼른 침대로 올라가서 오른 발로 왼쪽 구두를 벗고 양말도 벗겼다.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우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썼다. 나는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절망하고 갇힌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자유로웠으며 생각하며 살아가고 창조할 수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닥터 콜리스가 들어왔다. 나는 글쓰기를 멈추고 왼발을 오른발 밑으로 감추고 그에게 웃음을 지으며 "추운 날씨"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고 벽난로 옆에 앉아서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그는 내가 쓰고 있는 책에 대한 주제로 돌아왔다. "그래, 네 왼발을 다시 불러내야 했구나."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다소 부끄러워하며 내 왼발을 밖으로 꺼냈다. "네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받아쓰기만으로는 충분치 않지? 그래, 이해하겠다. 아이린 콜리스에게는 말하지 말자. 그러나 꼭 어쩔 수 없을 때에만 왼발을 사용하거라." 나는 편안하고 놓여난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튼 이따금 내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춤추는 기쁨은 알 수 없을지라도 창조의 희열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제16장. 그녀에게 붉은 장미를 더블린에서 있었던 벌 이이브즈의 콘서트는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날 중에 하나로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 그것은 모두 예사롭지 않은 방식으로 일어났다. 닥터 콜리스의 기묘한 가족들 중에--나도 이제는 그 일원이지만--키가 작은 슬라브 헝가리 아이가 하나 있었다. 닥터 콜리스는 그를 벨슨에서 입양했다. 그는 검은 머리에 피부가 검고, 초롱초롱한 눈을 가긴 아이였다. 닥터 콜리스가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몹시 아팠는데 최근에 그는 폐의 그곳이 다시 나빠져서 런던의 체스트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벌 아이브즈는 전에 더블린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를 매우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그는 체스트 병원으로 그를 상당히 자주 찾아가서 그 아이와 또 병동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민요를 불러주곤 했다. 어느 날 오후, 닥터 콜리스는 폐를 절반이나 절개해내고 이제 회복기에 있는 그 아이에 대해서 크레맨트 프라이스 토마스 경과 의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병동에 들어와서 거기에서 규칙적으로 열리고 있는 그 신나는 콘서트를 보게 됐다. 닥터 콜리스는 갑자기 묘안이 떠올라 그에게 더블린에 와서 뇌성마비 장애자들을 돕기 위한 음악회를 열어 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벌 아이브즈는 곧 동의했다. 더블린으로 돌아오자 닥터 콜리스는 내게로 와서 그 일에 대해서 얘기해주었다. "벌 아이브즈가 노래하고 나는 뇌성마비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려는 생각이야. 그런데 네가 함께 하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하고 그가 말했다. "내가, 어떻게요...?" 하고 내가 말했다. "네 왼발로." 하고 그가 말했다. "내 발이요?" 그는 빙그레 웃었다. "네가 A자와 네 어머니에 대한 첫 장을 끝마쳤잖니." 하고 그가 말했다. "내가 그걸 사람들에게 읽어주는 것이 내가 한 시간 동안 설명하는 것보다 뇌성마비에 대해 깊이 알게 해줄 거야. 그러니 네가 꼭 같이 와서 내 옆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 글이 내가 쓴 것이 아니고 너의 작품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도록 말이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수많은 관객들 앞에 앉아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내 기묘한 동작과 내 뒤틀린 두 손과 나의 비뚤어진 입을 주시할 것이다. 나는 망설였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나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할 거지?" 하고 그가 말했다. "좋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하겠어요, 물론..." 그러나 나는 몹시 겁이 났다. 준비는 급속도로 진전됐다. 음악회는 아일랜드와 미국 친선협회에서 후원해주고 많은 저명인들이 초대되었다. 좌석이 5백석이 넘는 크고 멋진 그래셤 호텔의 애버딘 홀을 예약하고 티켓을 발매했으며 신문에 광고를 내고 저명한 컬럼니스트들과 인터뷰를 했다. 도시 전체에 이 음악회가 알려졌는데 우리집에서 야단법석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가족들이 모두 벌 아이브즈의 노래를 들으러 꼭 가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닥터 콜리스가 내가 쓴 글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무료로 가면 그 사람들만으로도 홀이 꽉 차서 뇌성마비 장애자들을 위한 자리는 별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야 한다. 그러자 페기가 내 옆에 앉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가기로 했다. 모나 누나와 그녀의 남편 톰은 사가지고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토니, 피터, 패디, 짐, 에이먼, 숀, 프랜시스, 대니는 내가 나오는데도 표를 사야 되느냐고 말했다. 릴리와 앤은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기회도 갖지 못했지만 아무튼 그들이 따라올 것은 분명했다. 그 다음에는 우리 모두가 일요일 오후에 어떻게 크럼린에서 도시 한복판인 오코넬 가까지 가는가 하는 것과, 중앙의 문 안쪽에 있는 커다란 라운지에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 붐비는 그래셤 호텔 안으로 내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지 하는 문제가 있었다. 모나 누나가 "버스 한 대를 대절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집안의 친구인 시드 맥코우가 그의 커다란 미국식 택시로 우리 가족을 한꺼번에 데려다 주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닥터 콜리스의 아들인 로비 콜리스는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키가 크고 금발 머리에 건장한 체격이었는데 그가 나를 호텔 뒷문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쇼가 시작되기 전에 내 자리에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음악회 날이었다. 그날 아침 내내 우리 식구들은 서로 부딪치고 한꺼번에 모두 떠들어대는 것이 토요일 밤의 술집 같았다. 어머니는 친구한테서 빌려온 모피코트를 입어보고 있었다. 부엌 한가운데 서서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어머니는 "내 모습 어떠니?" 하고 물었다. 우리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이처럼 어려운 질문에 선뜻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피터가 신문을 다시 들고 골똘히 들여다보면서 무심한 듯이 말했다. "간 밤에 동물원에서 도망쳐 나온 곰 같아...." 어머니는 그 말에 개의치 않고 전에 런던에 갈 때 썼던 모자를 꺼내어 거울 앞에서 써보았다. 모나 누나는 어머니에게 입술연지와 분도 바르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런 천한 색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도 흥분하였다. 아버지는 새 양복과 중절모와 중산모의 중간쯤 되는 이상한 모자를 사셨다. 그는 아주 멋져 보였다. 그 모자는 그의 머리에 꼭 맞았다. 그러고 나서 가족들은 나 모르게 빌려온 예복 저고리를 내게 입혔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피터와 토니는 억지로 내게 입혔다. "장소에 알맞게 입어야지." 하고 그들은 말했다. 택시가 시간에 맞춰 왔고 우리는 마차를 타고 가는 왕족처럼 출발했다. 열두 명만 그 차에 겨우 좁혀 앉아 탈 수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갔다. 형들과 누이들, 자형들, 형수들, 조카들--만도 스무 명에 가까웠다. 그들이 모두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은 작은 중대 같았다. 우리는 닥터 콜리스의 집으로 가서 로비를 태웠다. 그는 누군가의 무릎에 앉았거나 누군가를 그의 무릎에 앉혔거나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마침내 우리는 호텔에 도착했다. 다른 사람들은 먼저 정문 앞에서 내리고 나와 로비는 차를 타고 뒤쪽으로 갔다. 나는 내가 상당히 무거우리라고 생각했는데 로비 콜리스는 몸을 숙이고 나를 들어올리더니 신음소리 한 마디 없이 나를 걸머메고 갔다. 쇼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커튼도 아직 올라가지 않았으므로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패기, 토니와 그의 부인인 쉴라와 나란히 의장에 앉아 있었다. 커튼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좌석을 찾아 앉으려 걸어가는 소리와 말소리가 들렸다. 홀 안에는 굉장히 많은 청중이 모여 있고 이제라도 곧 커튼이 올라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났다. 판매된 표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들중에 대다수가 우리가 있는 무대 뒤쪽에 빽빽히 앉아 있었다. 주의를 돌아보니 나는 무대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가운데의 의자 서너 개만이 비어 있었는데 이제 그 자리에 아일랜드 미국 친선협회 회장과 영화 제작자인 존 휴스튼 씨, 그리고 닥터 콜리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뒤에 영화배우인 듯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가 앉아 있었고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또 있었다. 그런데 무대 옆에 문을 통해 무엇인가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어떤 남자였는데 처음에는 넓다란 금색 조끼와 녹색 바지만 보였다. 그러다가 그 옷의 주인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렇게 거대하고 눈부신 것은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체격이 클 뿐만 아니라 키도 굉장히 컸다. 그는 육 피트가 넘고 백 킬로도 넘는 것 같았다. 그는 달처럼 둥근 얼굴에 미소를 짓고, 눈은 작고 뾰족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어깨에 기타를 메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그는 동화에 나오는 거인처럼 환상적이었다. 그 사람이 벌 아이브즈였다. 다음 순간 커튼이 올라가고 쇼가 시작되었다. 나는 의자 손받이를 움켜쥐고 침착하려고 애썼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수많은 얼굴들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낯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몸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움직이는 모든 동작들을 의식하고 아무리 작은 움직임이라도 내게는 너무 눈에 띄는 동작인듯 괴롭게 생각되었다. 마치 나혼자 무대에서 맹렬하게 밝은 불빛을 받으며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현미경 렌즈 아래 놓여 내가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간파당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수천 개의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고 예전에 내가 느끼곤 하던 공포감이 내게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때 벌 아이브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하고 멋졌으며 유머러스한 음색이 섞여 있었으며 노래하는 스타일은 솜씨 있고 익살스러웠다. 나는 눈을 감고 그의 노래를 듣자 무대에서의 두려움을 반쯤 잊을 수 있었다. 곧이어 그가 "푸른 꼬리 달린 파리"와 "개구리 씨가 궁정으로 갔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등을 부를 때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웃었다. 끝으로 그는 모두에게 그와 함께 노래하자고 했다. 어느 늙은 부인이 파리를 삼켰네. 그녀가 왜 파리를 삼켰는지 모르겠네... 아마도 그녀는 죽을 거야... 홀 안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같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너무 많이 웃어서 다른 일들을 모두 잊어버렸을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갑자기 그치고 무대 밖으로 나갔다. 몇 번 앙코르 곡을 부르고 마침내 그는 퇴장했다. 그러고 난 다음, 아일랜드 미국 친선협회 회장이 닥터 콜리스가 뇌성마비협회를 대표해서 연설하겠다고 알려줬다. 닥터 콜리스는 일어나서 마이크 앞으로 갔다. 청중들은 여전히 웃고 이야기하며 유쾌한 분위기였다. 그들이 주의를 끌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나의 원고를 꺼내서 그의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저는 연설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저는 호소를 하지도 않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무엇인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뇌성마비로 불구가 된 어떤 사람의 내면의 모습을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여기...." 그는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크리스티 브라운이 왼발로 쓴 자서전의 첫 장입니다." 그리고 그는 읽기 시작했다. 처음 몇 분 동안 청중 가운데에서는 여전히 소음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발을 움직거리고 기침을 하기도 했다.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분명 음악회를 보러 온 것이지 불구자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닥터 콜리스가 원고를 읽어감에 따라 차츰 움직임과 소음이 사라져갔다. 청중들은 조용했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단지 꿇어지게 바라보는 눈길과 의아한 얼굴이 아니라 관심으로 가득 찬 열렬하고 다정한 얼굴이었으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원고를 읽고 있는 닥터 콜리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귀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무대 위에 앉아서 아직도 건강하고, 철사처럼 뻣뻣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나도 닥터 콜리스가 읽는 것을 경청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긴장이 풀렸다. 나는 무릎에 놓인 이상하게 뒤틀린 내 손을 잊고 있었다. 나는 비뚤어진 내 입과 흔들리는 머리를 잊었다. 나는 귀 기울였다.... 나는 정말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이 많은 청중들 앞에 앉아서 내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를 듣고 있는 것일까? 저 이야기들을 정말 내가 썼던가? 저 모든 것이 정말로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일까? 나는 꿈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귀 기울여 들었다. 나는 그 십이월의 어느 날, 부엌 마루에 앉아서 왼발에 노란 분필 조각을 끼우고 A자를 처음으로 쓰던 그날을 기억했다. 어머니는 내 옆에 앉아서 내게 포기하지 말라고 재촉하셨다.... 덤불 뒤에서 토니 형이 내 옷을 벗기고 짐 형의 커다란 저고리를 내게 입히고는 나를 운하 안으로 던져 버리고, 가련한 짐은 옆에 서서 "크리스티가 빠져죽으면 어떡해...." 하고 소리치던 일이 생각났다. 내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를 깨달았던 그 끔찍한 날, 내가 일생 동안 불구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꼈던 그 공포, 그리고 그림을 그리던 날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던 고독한 밤들--어둠 속에서 피터가 조용히 코를 고는 소리만이 들렸다--이 생각났다. ...루르드와 동굴 앞에 가물거리고 있던 촛불들.... 십이월 아침이면 바람에 흩어진 머리카락과 얼굴에 빗방울이 흐르는 채로 병원에 들어서던 쉴라.... 갑자기 나는 닥터 콜리스가 읽기를 그쳤다는 것을 알았다. 커다란 홀 안은 너무나 조용했다. 앞줄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이 울고 있었다. 나는 옆에 있는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눈을 반짝이며 똑바로 앉아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는 손에 든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나를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닥터 콜리스가 무대 위로 걸어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가 일어서도록 도와주었다. 그러자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그 소리는 끝없이 계속되어 파도처럼 우리를 에워싸는 것 같았다. 갑자기 청중에서 어떤 사람이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가지고 앞으로 나왔다. 닥터 콜리스가 몸을 수그리고 그 꽃다발을 받았다. 그는 어머니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손을 들었다. 박수소리가 멎었다. "여러분께서도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고 청중에게 말했다. "이것을 받을 분은 오직 한 분입니다.... 미세스 브라운에게 붉은 장미를! 이것을 받으십시오, 부인!" 하고 말하고 나서 절을 하며 어머니에게 꽃다발을 바쳤다. 다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홀 뒤쪽에 있던 내 형제들--짐, 프랜시스, 패디, 피터, 그리고 숀--이 미친 듯이 박수치고 소리지르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마치 여왕처럼, 살아가면서 매일 장미 꽃다발을 받아 익숙해 있는 듯한 태도로 그 꽃다발을 받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좀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장미꽃 때문인지 모피코트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 옆에는 아버지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대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서 계셨다. 어머니가 꽃다발을 팔에 안으며 입을 조금만 벌리고 속삭였다. "똑바로 좀 서세요, 여보." 아버지는 몸을 똑바로 폈으나 이번에는 모자를 떨어뜨렸다. 페기가 그 모자를 주웠다. 그때 벌 아이브즈가 다시 나왔다. 그는 우리 아일랜드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장을 지나갔다"와 그가 편곡한 "스페인 귀부인"을. 이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 노래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나는 평화롭고 행복했다. 나는 의자 깊숙이 기대앉았고, 내 다정한 왼발은 노래의 리듬에 맞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