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 1 날짜 : 2001.04.01 (Sun) 23:55:00 조회 : 24 게시자 : malkum 홈 : http:// 첨부 : No 요시모토 바나나-도마뱀 이 글 속에서 그녀를 도마뱀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렇게 부르는 것은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작은 도마뱀 문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눈은 검고 둥글다. 파충류의 눈, 사심이 없는 눈이다. 그녀는 작고 몸은 구석구석까지 차갑다. 너무나 차가워서 나는 그녀를 내 양 손바닥으로 감싸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병아리나 새끼 토끼에 대해 느끼는 느낌과는 다르다. 감싸고 있는 손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위화감이 느껴지는 뾰족한 발로 간지럽히듯 움직여서, 내가 들여다보면 작고 빨간 혀를 내밀고 그 유리알 같은 눈에 <무언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의 초조한 얼굴에 비추어진다. 그런 생명체의 감촉이다. 「피곤해」 무척 언짢은 목소리로 말하며 도마뱀이 방으로 들어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하얀 가운만이 반사되어 보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고 나는 이미 잠자려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미처 불을 켜기도 전에 도마뱀은 재빨리 나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그리고 아플 정도로 세게 내 어깨와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내 잠옷 안으로 그 차가운 손바닥을 집어넣었다. 맨살에 닿는 얼음 같은 그 손의 느낌이 좋았다. 나는 29살의 남자로 자폐아 전문의 작은 병원에서 카운셀링과 치료를 하고 있다. 도마뱀을 만난 지는 벌써 3년이 된다. 언제부턴가 도마뱀은 나 이외의 사람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사람과 말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녀의 생명의 밧줄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내 가슴의 뼈와 뼈 사이로 무척 세게 얼굴을 비벼댔다. 언제나 그렇다. 파고들듯이 너무 세게 눌러서 답답할 정도다. 처음에 나는 그럴 때 그녀가 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얼굴을 든 도마뱀은 상쾌해진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눈을 하고 있다. 틀림없이 낮 동안에 쌓인 그 어떤 것들을 토해 내고 있는 것이리라. 베개에 얼굴을 파묻듯이. 그렇지 않으면 피곤한 자신으로부터 의식을 분리시키려고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도마뱀은 갑자기 나의 그런 의문에 답해 주었다. 「사실은 나 어렸을 때 눈이 안 보였던 적이 있어」 고백은 어둠 속에 울렸다. 「그래? 완전히?」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래, 완전히」 「도대체 왜?」 「히스테리성 발작으로. 다섯 살 때부터 여덟 살 때까지 줄곧」 「어떻게 해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지?」 「지금 네가 일하고 있는 데와 비슷한 병원의 극진한 간호 끝에」 「그랬군……」 나는 말했다. 「물어봐도 될까? 왜 보이지 않게 되었지?」 꿀꺽 하고 도마뱀이 침을 삼켰다. 「음, 집 안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었어. 그걸 보게 되어서……」 무리해서 말하지 않아도 돼, 하고 나는 말했다. 말하는 것이 괴로운 듯했다. 도마뱀의 양친은 건재하시다. 만난 적도 있다. 형제는 없다. 이혼도 하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아주 어렸을 적에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뭐든지 살짝 만지는 정도로는 안심이 안돼. 특히 피곤해서 오감이 둔해져 있으면 눈을 감고 세게 누른다거나 꽉 쥐어나 하지 않으면 안심할 수가 없어. 아파? 미안해」 「눈이 보여도 무서울 때는 무서운 거야. 우리 병원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이 오지」 「응, 알고 있어」 「결혼하자. 이사해서 둘이서 살자」 나는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을 충동적으로 말했다. 도마뱀은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꼼짝 않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침묵에 긴장해서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피부에 다른 내장을 감싸고 잠잘 때는 다른 꿈을 꾸는 머나먼 타인을 의식했다. 「비」 도마뱀은 작은 소리로, 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말을 끊었다. 또 침묵했다. 나는 생각했다. 비 그리고 뭐라고 말하려던 것이었을까? 비참해? 비현실적이야? 비합리? 비둘기? 비? 이윽고 내 가슴에 더욱 세게 붙이고 있던 입술로부터 우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밀이 있어」 내가 처음으로 도마뱀을 만났던 것은 당시에 다니던 스포츠 클럽에서였다. 나는 거기에서 일주일에 두 번 수영을 했는데, 도마뱀은 거기에서 에어로빅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묘한 여자가 있구나 하고 눈에 뛸 때마다 생각했다. 작고 아주 단단한 체격에 치켜 올라간 눈은 어쩐지 어두운 느낌이어서, 다른 강사의 쾌활함에 비할 때 그 독특한 분위기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무척 이질적이었다. 사랑을 느꼈다기보다 우선 하여튼 눈길을 끌었다. 내가 풀에서 나오면 마침 그녀가 스튜디오에서 에어로빅을 가르치고 있는 시각이었다. 아줌마와 아줌마와 아줌마의 육체의 바다 저편에 지나치게 가냘픈 그녀의 몸이 마치 달리의 조각처럼 무리한 자세로 정지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너무나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모든 자세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격렬한 음악이 흐르고 있어도 그녀만이 소리가 없는 세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별 생각 없이 눈여겨보고 있는 사이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나는 수영을 마치고 스튜디오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거기에 있었고 아줌마들에게 매트 운동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주스를 마시면서 무심코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만일 어느 날 갑자기 저 사람이 그만두어 버린다면 따분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어느 유부녀와의 길고 열정적인 연애를 막 정리했을 때인 데다 상대에게 차인 상태였기 때문에 상당히 지쳐 있어서 도저히 사랑에 쏟을 에너지가 없었지만, 도마뱀에 대한 그런 막연한 관심만으로도 자기 안에 뭔가가 싹트는 것을 느꼈다. 비유를 들자면, 기분 좋은 봄날 저녁에 그다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호감을 느끼는 여성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여, 어디로 식사하러 갈까, 어디로 술을 마시러 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차를 타고 있을 때와 같이 들뜬 느낌, 오늘 밤 섹스를 할 수 있을까 없을까는 전혀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세련된 행동거지, 나를 위해서 두른 스카프의 무늬랄지 코트 자락이랄지 웃음 띤 얼굴 등을 보고 있으면, 마치 머나먼 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을 때처럼 자신의 마음까지도 깨끗해진 것 같은 기분이 될 수 있는 느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런 들뜬 느낌이 그때 향기가 풍기듯이 불현듯 되살아났던 것이다. 자, 이제 집에 갈까 하고 막 그곳을 떠나려고 했을 때, 아야…… 하는 외침이 들렸다. 뒤돌아보니 스튜디오 안에서 한 아주머니가 발을 누르고 있었다. 발에 쥐가 났구나 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도마뱀이 그 사람에게 쓱 다가가서 발을 만졌다. 어스레한 스튜디오에서 음악이 아직 흐르는 가운데 도마뱀은 의사처럼 침착하게 그 사람의 발을 문질렀다. 나에게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앉아서 팔을 뻗치고 있는 도마뱀이 마치 어둠에 미끈미끈 빛나는 아름다운 조각품처럼 보였다. 그 아주머니는 곧 얼굴에 웃음을 띠게 되었고 도마뱀도 빨간 입술로 생긋 웃었다. 내가 있었던 곳과는 유리로 차단되어 있어 소리도 목소리도 어렴풋하게만 들렸기 때문에 더욱더 이상한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도마뱀이 다시 일어서며 다리를 뻗을 때 오른쪽 허벅지 윗부분에 작은 도마뱀 문신이 있는 것을 보았고, 그때 나는 온통 넋을 잃고 말았다. 그것이 도마뱀과의 묘한 연애의 시작이다. 확실히 이런 일에 무척 지칠 때도 있다. 환자를 진정으로 도와주고 싶다면 환자에게 동조하거나 공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오로지 동조해 주기만을 강렬하게 바라는 환자에게 파장을 맞추지 않도록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배가 고플 때 눈앞에 맛있는 것을 두고도 신경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은 목숨 걸고 동조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으니까. 모든 에너지를 그 한순간을 넘기기 위해서 쏟아붓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유해서 말하면 프로급 웨이터가 된 것 같은 의식을 가지도록 한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웨이터는 음식을 나르면서 먹고 싶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피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잊지 않도록 한다. 고치고 싶은 거지? 병이 나았으면 하는 거지? 그 기본적인 사실에 항상 의식을 맞춘다. 적당히든 어쨌든 맞춘다. 휘말리지 않도록 한다. 자신이 도와주려고 하고 있는 상대가 협력할 태세를 취하지 않으면 때때로 무척 피곤해진다. 지금처럼 고민이 있을 때에는 더욱이 그렇다. 점심을 먹으면서 도마뱀의 비밀이란 뭘까? 하는 생각만 계속했다. 어쩌면 단지 나하고 결혼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닐까? 항상 병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공원 옆의 메밀국수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거기라면 환자와 마주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창 밖에는 신록 내음이 나고, 공원은 잔잔히 오후의 햇살을 가득 담고 있다. 벤치에는 영업사원이랑 노인이 햇볕을 쪼이며 한가하게 앉아 있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잘 다듬어진, 완벽하게 기능적인 모습에서 인간이란 것의 형태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노인도 아이도, 여자도 남자도 모두 나름대로 아름답다. 본래의 기분이 완전히 되살아나서 열심히 일하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그런 생각이 든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도마뱀도 그렇게 생각하며 일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으로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한 것은 그녀의 클래스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평상복을 입은 그녀를 보는 것은 그때가 처음인데 지극히 평범한 검정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이었지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에어로빅 옷을 벗어버리니 특별히 눈에 띠는 곳은 없는 사람이었다. 웃으면 잇몸이 보이고 광대뼈 부근에 주근깨가 있고 화장도 너무 진했다. 하지만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도마뱀이 걷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뭔가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이유는 모르지만 <사명>이라는 말을 항상 떠올린다. 뭔가 무거운 것을 등에 지고 있지만 그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그런 진지함을 느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점에 끌렸다. 그런 사람이 잇몸을 보이며 벙긋 웃기라도 하면 그건 매우 탄력 있는 진정한 미소라는 느낌이 든다. 미소의 <의미>를 발견한다. 작은 일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다른 손님은 없는 조용한 음식점에서. 그토록 긴장했던 적은 없을 정도로 긴장했다. 도마뱀은 말이 없고 소식가이며 술은 거의 마시지 못했다. 「춤을 참 잘 추더군요」 내가 말하자 느닷없이 도마뱀은, 「하지만 그 일 그만둘 거야. 다음 달로」 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서 내가, 「왜?」 라고 묻자,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라며 미소지었다. 「뭐지?」 나는 말했다. 「괜찮다면 물어봐도 될까? 무척 재능이 있으니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괜찮아. 있잖아, 침술과 뜸질을 배우는 학교에 다닐거야」 도마뱀은 말했다. 「뭐?」 나는 더욱 놀랐다. 「도대체 왜지?」 「그 방면에 더더욱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 난, 보기만 하면 그 사람이 어디가 안 좋은가를 알지. 만지는 것만으로 고칠 때도 있어. 그런 능력을 키우려고 생각해서」 「그런 재능도 있었구나」 「그래」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몸을 써서 밖을 향해 계속 표현하는 것보다도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밀어내지 않으면 갈증은 해소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 지금까지 나는 격렬하게 움직여서 간신히 자신을 지탱해 왔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생각했지. 벌써 서른셋이기도 하고」 「뭐? 서른셋?」 스물다섯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분명히 너보다 연상일걸」 도마뱀은 웃었다. 헤어질 때 역 근처에서 도마뱀은 나에게, 「식사에 초대해 줘서 고마워」 하고 말했다. 「난, 친구도 없고, 부모하고도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오랜만이라 너무 수다를 떤 것 같아」 밤의 어둠, 길 가는 사람들. 밤바람, 빌딩의 창. 전차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발차 신호 소리. 치켜 올라간 눈을 가진 도마뱀의 맑은 표정. 「또 만나줘요」 라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만지고 싶어서, 미칠 정도로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서. 그녀의 손을 만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지요, 신이여.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든 부자연스럽든 상관없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이 났다. 사실은 그랬다. 그럭저럭 서로 마음이 있는 두 사람이 있어 별 생각없이 약속을 하고 밤이 되어 먹고 마시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오늘쯤 해도 된다고 서로가 암묵의 타협을 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만지고 싶어서, 키스를 하고 싶고 껴안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일방적으로든 아니든 눈물이 날 정도로 하고 싶어서, 지금 곧, 그 사람하고만, 그 사람이 아니면 싫다, 바로 그런 것이 사랑이었다. 생각이 났다. 「그래, 또 만나」 그렇게 말하며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역 계단을 올라갔다. 뒷모습이 인파에 묻혀 사라진다. 돌아가버린다. 이 세상이 끝난 듯한 상실감이 일었다. 도마뱀은 학교에 다녀서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재학중에 그녀의 재능을 인정해 준 기공사의 제자로 들어가서 반 년 동안 중국에 유학한 후 귀국해서 자그마한 치료원을 차렸다. 솜씨가 좋아 환자가 많아서 종업원도 고용했다. 매일같이 일본 전국에서 그녀에게로 환자가 몰려온다. 중병인 사람이 많다. 소문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온다. 아무리 바빠져도 그녀의 치료 능력은 감퇴하지 않는다. 다만, 말수만은 점점 줄어갔다. 딱 한번 장난삼아 가본 그곳은 방 하나짜리 아파트로 침대는 한 개밖에 없고 병에 걸린 사람들이 조용히 줄을 지어 긴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돌팔이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보잘것없는 치료원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도마뱀이 조용히 그 안을 걸어다니고 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도마뱀은 상냥하게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붙임성이 있는 편도 아니다. 그러니까 증상이 가벼워서 절실하지 않은 사람은 다시 오지 않게 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버림받아 여기로 흘러들어와 통증으로부터, 고통으로부터,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중증의 환자가 치료실에서 나와서는 곧 눈물이 쏟아질 듯한 눈으로 도마뱀을 쳐다본다. 일어서지 못했던 사람이 도마뱀의 부축을 받아 걸어서 병실을 나오면 같이 따라온 사람이 감탄의 소리를 지른다. 도마뱀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다음 사람을 치료하러 가버린다. 정말로 열심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치고 싶은 거다. 그것뿐이다. 진정으로 재능이 있어서 감사의 말이나 비위 맞추는 일 같은 것은 중요시하지 않는 거다. 나는 감동해서 그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지며 도마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방에서 도마뱀을 기다렸다. 「8시에 갈게」 라는 전화가 있었다. 「피자 주문해 놔. 매운 걸로」 도마뱀은 배달 피자를 좋아했다. 외식을 싫어한다. 인간은 싫어하지 않지만, 인간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해할 것 같다. 인간을 상대하는 직업은 인간에게 부딪혀서 피곤하다. 대개 우리는 방에서 조명도 어둡게 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저 음악만 틀어 놓고 멍하니 있을 때가 많다. 여행도 사람이 없는 깊은 산 속으로 간다. 묘한 교제다. 8시 반이 지나도 도마뱀은 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먼저 피자를 먹고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이제 오지 않을지도 몰라…… 하고. 비밀이 있어서, 프로포즈를 받아서, 말할 수가 없어서. 도마뱀의 성격으로 봐서 그녀가 만약 나와 헤어지고 싶다면 오늘 밤 오지 않는 것으로 끝낼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감정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래도 슬펐다.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런 교제이기 때문에 쾌활함이나 안식 같은 것은 얻을 수 없어서 가끔 병원에 있는 명랑한 간호사에게 순간적으로 끌릴 때도 있었지만 도마뱀을 대신할 만한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절망과 취기에 빠져 있는데 11시가 넘은 시각에 도마뱀이 쿵쿵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늦어서 미안」 하고 말하며 내게 기대는 머리에서 바깥 바람의 냄새가 났다. 「안 오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 나는 말했다. 만약 내가 어린아이였다면 그때 울상을 지었을 것이다. 「망설였어」 그렇게 말하고 도마뱀은 의자에 앉아 식어버린 피자를 버스럭거리며 먹었다. 「데워줄까?」 「괜찮아, 이대로」 도마뱀은 말했다. 「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너밖에 없어」 「알아. 하지만 환자와 최소한의 이야기는 하잖아? 병은 아니야」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너한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 중요한 것을」 「말해 봐」 나는 말했다. 도마뱀은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벽을 응시하고 심호흡을 했다. 마치 그림자놀이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유연하게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나와는 다른 종류의 생물 같았다. 「내 눈이 보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말했지?」 도마뱀은 말했다. 그 일일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어,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5살 때 집에 미친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서, 뒷문으로 갑자기 말이야, 그는 뭐라고 종잡을 수 없는 말을 외쳐대며 부엌에 있던 칼로 어머니의 허벅지와 팔을 찌르고 도망가 버렸어. 난 아버지 회사로 전화를 했고, 아버지가 구급차를 부를 테니까 기다리라고 말했고, 그러고 나서 구급차가 올 때까지의 시간 동안, 죽어가는 어머니 옆에 있었어. 어머니가 죽어가는 것을 알고 무서워서, 정말로 무서워서 필사적으로 상처에 손을 대고 지혈을 시키려고 했어. 그때 나에게 병을 고치는 힘이 있다는 걸 알았지.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피가 멈추거나 상처가 없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손이 빛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어떤 반응이 느껴졌어.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줄어드는 느낌이. 곧바로 차가 와서 피투성이의 나와 어머니는 둘 다 병원으로 실려갔지. 나는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 있었어. 아버지가 달려오고, 경찰이 오고,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의사가 출혈이 적어서 기적적으로 살았다고 했어. 제대로 지혈도 하지 않았는데 용케도라고 했지」 나는 잠자코 들었다. 걸을 때 약간 끄는 듯하고, 일어설 때 매우 무거워 보이던 도마뱀 어머니의 오른쪽 다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쇼크로 한동안 정신이 이상해지고, 나는 눈이 안 보이게 되고, 아버지는 문단속에 병적일 정도로 신경질적이 되어, 우리 집은 엉망이었지. 내 눈이 어느날 갑자기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어머니가 혼자서 집 근처를 걸을 수 있게 되고, 아버지가 7개 있는 자물쇠를 전부 잠그지 않고도 안심하고 외출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회복되기까지 수년이 걸렸어. 암울한 나날이었지. 하지만 난 그때 생명의 비밀을 알게 되었어. 몸으로 깨달았지. 어머니는 당시 나에게 있어서는 우러러보이는 우주와 같았어. 아버지와 싸우고 울기도 했지만, 어머니라는 입장에서만 나를 대하는 안정된 그 어떤 것이었지. 그렇지만 그날 나는 울며 외쳐대고 도망치는 어머니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점점 <물체>로 변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고야 말았지. 영혼이 나를 보고 있지 않는다면 몸은 용기(容器)에 지나지 않아. 차를 정비하듯이 몸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주의 깊게 바라보면 동네에서도 이제 곧 죽을 사람은 검어. 간장이 나쁘면 간장 근처가 검지. 어깨가 결리면 어깨가 회색. 그런게 보이게 되었어. 너무 잘 보여서 정신이 이상해지지 않도록 에어로빅을 계속했지만 이제야 겨우 균형을 찾게 되었지. 널 사귄 이후로. 욕구가 충족된 이후로. 그래서 천직에 몸담을 수 있게 된거야」 「좋은 이야기잖아. 아무 문제 없어」 나는 말했다. 「아직 더 있어.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도마뱀은 말했다. 「부모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 그리고 또 입을 다물었다. 오랜 침묵이었다. 그 동안에 도마뱀은 피자를 버스럭거리며 하나 더 먹었고, 바라보니 놀랍게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도마뱀이 우는 걸 처음 보았기에 나는 당황했다. 그녀한테 무척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았다. 「참, 범인은? 찾아내거나 붙잡았어?」 나는 물었다. 도마뱀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만약 그 질문을 바로 그 순간에 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하면 오싹해진다. 하지만 할 수 있었다. 좋아했기 때문에.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다. 「붙잡혀서 정신 감정을 받고 바로 풀려나 버렸지」 도마뱀은 울먹이며 말했다. 「나, 죽였어」 「뭐?」 나는 소리쳤다. 「네 손으로?」 「아니…… 저주로 죽였어. 안 믿어지지? 하지만 정말이야. 내가 저주해서 죽였어」 「그런 것까지 할 수 있을 줄이야」 나는 말했다. 대체로 그토록 오래 흥분해서 말하는 도마뱀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서?」 「매일 매일 기도했을 뿐이야. 그놈이 차에 치여서 죽었으면 하고 말이야. 매일 집 안에서 나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그러자 2년째 되는 어느 날 저녁, 석양의 밝은 쪽을 향해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걸 알았어. 분명히 알 수 있었어. 아, 이루어지는구나. 내 눈도 나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지. 그놈은 죽을 거라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뉴스에서 우연히 들었어. 정신이 이상해져서 스스로 트럭에 뛰어들었다고 하더군. 내가 해낸 거라고 생각했지. 꼴좋게 됐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세월은 흘러서 어른이 되고 나서 내가 한 일의 의미를 알게 되었지.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도 한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 점차로 무거운 짐이 되었어. 널 사귀고 나서 더더욱 깨닫게 되었지. 나는 누군가를 증오하면 죽일지도 몰라. 그 당시에 자신이 훌륭하게 느껴졌지. 해냈다, 하고 웃었어. 그런 점이 있어. 하지만 이건 꾸민 이야기도 아니고, 에도 시대의 신나는 복수극도 아니야. 이 평화로운 일본에서 실제로 나는 죽을 생각이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을 끝장내고 말았어. 벌 받을 거야, 언젠가 자신이 앙갚음을 당할 게 분명해. 그때는 너무 미운 나머지 그래도 좋다고 결심했었지. 하지만 시간이…… 시간이 그토록 위대한 것이라는 걸 몰랐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 좋게 살고, 나는 눈이 보이게 되어 일하게 되고 너와 알게 되고…… 그런 날이 온다는 건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 모두가 창을 열지 않고 어둠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던 당시의 우리 집의 상태가 끝이 난다는 것은 절대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했지.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술을 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어. 자신이 앙갚음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는데 나만이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어. 그 남자가 꿈에 나타나곤 하지. 나는 죽이지는 않았는데 넌 죽였어……라고 말해.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 무서워」 도마뱀은 쉰 콧소리로 하소연을 계속했다. 그놈의 죽음은 우연이야, 너에게 책임은 없어라고 말하는 건 간단했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있는 한 그 주술은 진짜가 된다. 그걸 알고 있었다. 스스로 그렇게 믿어 그 믿음에 사로잡혀서 생명을 잃은 아이들을 몇 명이나 보아왔다. 키우기로 약속한 화분을 말라죽게 했다며 목을 매단 아이랄지, 정해진 시각에 기도하는 걸 잊었다고 손목에 칼을 댄 아이. 싸우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좋은 일을 하면 할수록, 재능을 발휘하면 발휘할수록. 무겁게 짓누르는 것. 생리나 성욕이나 배설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자신만의, 결코 타인과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무의식의 무게. 모든 살인이나 자살의 근원이 되는 점점 부풀어오르는 어두운 에너지. 그래서 나는 이해할 수 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항상 초조함을 느낀다. 환자에게도 항상. 자신이 무력한 마더 콤플렉스를 지닌 오카마(여장을 한 남자?옮긴이)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진다. 도마뱀이 그렇게 오래 이야기한 것은 처음일지도 몰랐다. 나는 말했다. 「나가자」 도마뱀은 눈썹을 찌푸렸다. 「괜찮아. 이상한 곳에는 안 갈 테니까. 집에 있으면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나는 말했다. 「설마 네 병원으로 가서 나보다도 더 심한 환자를 보이고는, 힘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라고 하며 도마뱀은 웃으면서 얇은 코트를 걸쳤다.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농담을 하며 나도 일어섰다. 도마뱀이 코트를 걸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신을 신으려고 숙였을 때의 목을. 거울을 바라보는 치켜뜬 눈을. 여러 장면의 다양한 모습의 도마뱀을. 죽어가는 세포. 계속 새로 생겨나는 세포. 뺨의 탄력, 손톱의 하얀 반달. 살아있고, 수분으로 촉촉하고, 흐름을 타며. 그걸 느낀다. 그녀의 일거일동에 살아 있는 자신을 비추어 볼 수가 있다. 초여름의 냄새가 거리에 온통 가득 차 있었다. 은은하면서도 힘이 있어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풀 냄새가 난다. 「어디로?」 도마뱀이 물었다. 「둘이서 외출하는 게 너무나 오랜만이라서」 「바쁘니까」 그때 갑자기, 두 사람은 이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없다. 뻗어나갈 방향이 막혀 있다. 유리 케이스 안의 식물처럼 서로 돕고 있는데도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나 해방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상처를 서로 핥아준다거나 노부부처럼 붙어 앉아서 봄을 녹인다거나. 그뿐이다. 그런 생각은 가슴에서 점점 부풀어 올라 나를 지배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도마뱀이 갑자기 말했다. 모든 것을 바꾸는 마법의 타이밍으로. 살아있는 말, 삶의 변화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며 즐거운 듯이. 「참, 나리타 산(成田山; 지바현 나리타 공항 근처에 있는 산 ?옮긴이)에 안 갈래?」 「느닷없이 왜?」 「상관없잖아? 내일은 오후부터 일하기로 하고 가자. 여기에서 택시로 1시간 정도면 되잖아?」 「도대체 왜 그래?」 「가고 싶어. 옛날에 가본 적이 있어. 아침에 참뱃길에서 소금에 절인 밑반찬을 사기도 하고 전병을 사기도 했던 북적거리는 노점을 보고 싶어」 도마뱀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욕망이 싹트는 것은 중요하다……는 식의 임상(臨床) 차원을 떠나서 도마뱀이 자신해서 뭔가 하고 싶다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말을 꺼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기뻤다. 「좋아, 가자」 가고 싶을 때에 가고 싶은 곳으로. 둘이서. 나리타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 가까운 시각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다행이 숙소가 있었다. 이미 캄캄해진 참뱃길의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둘이서 걸었다. 건물은 전부 낡았고 나무 냄새가 났다. 바람이 세고, 올려다보니 폭이 좁은 길가의 건물 사이로 별이 또렷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무척 바람이 세서 펄럭이는 도마뱀의 머리카락이 어둠 속에서 춤을 추었다. 절 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철수한 노점의 가지각색의 형체와 흔들리는 거대한 등불의 범자(梵字)가 울타리 이쪽 편에서 보였다. 거리에는 사람 한 명 없어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유령의 도시 같아……라며 도마뱀이 웃었다. 울타리에 기대어 5분 이내로 사람이 지나갈 것인지 내기를 걸고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역사의 냄새가 나는 참뱃길을 바람이 마치 수많은 사람과 같은 기척을 느끼게 하며 기세 좋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어둠 속의 도마뱀이, 그 하얀 이가, 하얀 셔츠가 꿈속에서처럼 빛나보였다. 「실은 나도 비밀이 있어」 나는 말했다. 「난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야」 도마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고 몸 전체로 듣고 있었다. 「어머니는 처음에 아버지의 동생과 교제하고 있었는데 차버리고 지금의 아버지와 결혼했어. 그랬더니 삼촌은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져서 어느 날 집에 쳐들어와 칼로 위협해서 두 사람을 묶어놓고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욕보이고 자기 몸에 등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서 자살했지. 무슨 소동인가 하고 달려왔던 이웃 사람들의 신고로 간신히 목숨을 건져 두 사람은 무사했지만 말이야. 유감스럽게도 내가 생겼던 거지」 「우리 집보다 심하군」 도마뱀이 말했다. 「그렇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희망대로 나를 낳고 바로 정신이 이상해져서 나는 친척 집에 맡겨졌다가,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가 5살 때던가. 자살했어. 미안하다는 유언을 들은 건 나였지. 상냥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지금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재혼한 사람이지」 「그렇구나」 「참혹한 것을 보고 죽는 사람도 있고, 네 어머니처럼 죽지 않는 사람도 있고, 다시 일어서는 가족, 엉망이 되어버리는 가족 등 여러 경우가 있는데 사건의 성질에 따라 다른 건지 사람들의 성격 탓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아이는 핸디캡을 떠안게 되지. 나는 어머니의 비참한 주검을 보았어. 하지만 살아 있으면 핸디캡이 있어도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 적어도.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의사가 된 거야?」 「글쎄.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죽음과 친하기 때문에 의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 죽음에 대한 인상이 뚜렷이 각인되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냄새가 스며들었다. 사라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그런 비슷한 과거를 오늘 알고 나름대로 나도 충격을 받았다. 그 정도로 숙명적으로 이끌렸던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아. 참혹한 일엔 끝이 없는 법이야. 그러니 마음 편히 이사라도 해서 나무가 많은 곳에서 살자. 우리 둘에게만은 좋은 일만 있으리라고 생각하자」 「짧은 금요일이란 소설 알아?」 도마뱀이 물었다. 「모르겠는데」 「평범한 부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야. 그렇게 된다면 좋겠어. 완벽하게 행복한 하루를 마친 신앙심 깊은 두 사람이 나란히 잠들어 있는데, 맞은편에 있는 부엌에서 내일 먹을 빵을 준비하다가 실수를 하여 어느새 방에 가스가 가득 차게 되고, 그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지만 두 사람 다 그럭저럭 납득을 하고 그럭저럭 행복한 채로 죽어버리지」 「읽어볼게」 「그렇게 된다면 좋겠어. 누군가가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싫어. 그 소설에서처럼 죽었으면 좋겠어」 「우린 이제 괜찮아, 그런 거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주 충분히 생각해 오다가 실행에 옮긴 단계니까 이제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자.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어. 조금씩. 기어가듯이 조금씩이라도 좋은 생각을 하자. 할 수 있는 일을 늘리자. 그렇지 않으면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어. 지금은 아무리 이상한 모습이라도」 마음속에는 갈등의 폭풍우가 불고 있더라도 도마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도마뱀 곁에 있으면 나는 항상 15살의 소년이 되고, 그런 애인을 가진다는 것은 남자로서는 다른 놈에게 자만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낡은 여관에서 녹초가 된 몸으로 드러누웠다. 도마뱀은 언제나 그렇듯이 나에게 콧등을 푹 파묻고 잠이 들려 하고 있었다. 나도 졸려서 눈꺼풀이 감기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도마뱀이 뭐라고 중얼중얼거리고,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뭐라고?」하고 물었다. 도마뱀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누군가가 이 세상의 규칙을 담당하는 신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이건 너무 심하니까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거나, 이 사람은 여기까지라면 괜찮다고 하며 지켜보고 있어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없단 말이야. 만약 있다면 막아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막아주지 않아. 스스로 해야 해. 아무리 참혹한 것을 봐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야. 오늘밤 슬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가족을 잃은 사람이랄지 죽어가는 사람이랄지. 배반당한 사람이랄지 살해되는 사람. 실제로 지금. 세계는 넓어. 조금이라도 막아준다면 좋을 텐데.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좋을 텐데. 우리처럼 사는 게 괴로운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도록 말이야」 슬픈 기도는 슬픈 시처럼 어둡고 축축한 다다미 방에 울렸다. 나는 반쯤 잠이 든 채로, <하지만 저 어두운 참뱃길도 아침이 되면 북적거리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가게도 전부 열고 절도 활짝 문을 열고 하여튼 전혀 다른 얼굴이 된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변화해 간다. 즐기자. 뱀장어를 굽는 냄새, 전병 냄새, 한약을 사고, 참배를 하고 부적이라도 사서 새 집에 붙이자. 사람들의 왕래를 보자. 오늘 밤에는 아무도 없던 거리가 또다시 활기를 되찾아가는 모습을.> 하고 생각했다. 너무 졸려서 입밖에는 낼 수 없었지만, 그래, 내일 말하자. 죽는다는 건 뭘까? 존재가 없어져서 아무 말도 해주지 않고, 지금은 여기에 푹 파묻혀 있는 코의, 바로 그 짓누르는 힘의 원천.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의지를 담은 그릇. 그것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 도마뱀의 이 살랑거리는 머리의 표피. 뺨으로 떨어지는 빠진 속눈썹. 매니큐어를 칠한 손가락의 작은 화상 흉터. 그것들 전부를 움직이고 있는 영혼의 회전. 그런 걸 이야기하고 싶다,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살아만 있다면. 내일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도마뱀이 더욱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잘 자」 이미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약간 놀라서 눈을 떴다. 들여다보니 도마뱀은 눈을 감고 지금이라도 푹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잘 자라고 말하자 도마뱀은 눈을 감은 채로 졸려서 맥을 못 추며 말했다. 「죽으면 난 지옥에 갈까?」 그렇지 않아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괜찮아」 도마뱀은 말했다. 「지옥엔 환자가 더 많을 테니까」 그리고 쌕쌕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와 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며 둘의 어린 시절을 위해서 몇 분 동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