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필 문학의 대표작 도연초 전2권 중 제2권 지은이: 요시다 겐코 옮긴이: 송숙경 펴낸곳: (주)을유문화사 [ 하권 제137 단 꽃은 활짝 피어 만발했을 때, 달은 구름 없는 맑은 하늘에서 교교히 빛날 때에만 완상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먹구름이 낀 밤하늘에 명월을 그리워하고, 두문불출하다가 봄이 다 가는 것도 모르고 지내는 것도, 생각해 보면 깊은 정취가 감도는 일이다. 이제 금방 벌어지려고 봉오리가 부풀어 있는 꽃가지, 낙화로 어지러워진 마당이나 뜰 따위가 오히려 볼만한 맛이 있다. 와카의 머리말에도 "꽃구경을 갔더니만 벌써 꽃이 지고 난 뒤여서"라든가 "볼일이 생겨서 가지도 못하고"라고 쓰면, "꽃을 보고 나서"라고 쓴 것에 비해 그만 못한 것일까. 꽃이 지고 달이 기우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는 인정은 수긍할 만한 일이지만, 특히 생각이 트이지 않고 멋을 모르는 사람은, "이 가지도 저 가지도 다 꽃은 지고 말았다. 이젠 볼 만한 것이라곤 없구나"라고 한다던가. 무슨 일이든 시초와 종말이 특히 재미있는 법이다. 남녀의 정애에서도 다만 서로 만나는 밀회가 성공된다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만나러 갔다가 못 만나고 돌아오는 아쉬움이나, 덧없이 끝난 사랑의 약속을 탄식하여 기나길 밤을 쓸쓸히 혼자 지새우며 먼 곳의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쑥대가 무성한 오두막집에서 그리운 사람과 만나던 옛 일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거나 하는 그런 것이 진정으로 연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보름달이 맑고 밝게 빛날 동안 천리의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것보다, 새벽녘 가까이 되어서야 기다리던 달이 겨우 올라오는 모습이 더욱 정취가 있고 검푸른 나뭇가지 사이에 떠오른 달그림자, 나무 사이로 새어드는 달빛, 약간의 먹구름 사이로 숨는 달의 정경 따위가 한층 더 정서가 깊은 것이다. 참나무나 상수리나무의 젖은 듯이 윤기가 흐르는 잎 위에 달빛이 번쩍번쩍 빛나는 모습은 사무치도록 마음을 움직여 기분이 통하는 친구가 곁에 있었으면 하고,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새삼 생각게 한다. 아마도, 달이나 꽃을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그 정취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리라. 봄에는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달밤에는 잠자리에 들어 있으면서도 꽃이나 달을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뜻있는 사람은 별로 반해서 열중한 모습도 보이지 않거니와 흥겹게 여기는 품도 매우 산뜻하고 멋이 있다. 시골뜨기들은 무엇에나 끈덕지게 흥겨워 한다. 꽃을 볼 때만 하더라도, 그 나무 밑에 바싹 다가서서 보기도 하고, 꽃을 뚫어지게 바라다보기도 하며, 술을 마시기도 하고 렌가를 짓기도 하다가, 마침내는 커다란 꽃가지를 분별없이 꺾어 들고 즐거워한다. 샘물에는 손이나 발을 마구 쑤셔 넣어 씻기도 하고, 눈이 쌓인 뜰에는 일부러 나아가서 발자국을 내 놓기도 한다. 무슨 일이나 멀찍이 두고 보는 일이 없다. 그런 시골뜨기들이 가모의 축제를 구경하는 꼴이란 참으로 진경이다. "오는 게 더디구먼, 그 동안 관람석에 앉아 있는 것도 무미한 일이다"라며,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고, 바둑이나 쌍륙을 치며, 관람석에는 지키는 사람을 두고 망을 보게 하다가 "지나가십니다"라는 연락을 받고서야 허둥지둥 달려나와 법석을 떨며, 자리를 찾아 밀고 닥치고 지나가는 축제 행렬을 한도 빠짐없이 보려 든다.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저건 어떻고 이건 어떻고 하며 떠들어대다가 그 행렬이 다 지나가고 나면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 다음 행렬이 올 때까지라도 마시고 먹고 하는 것이다. 그저 겉모양만 구경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토의 멋이 있는 사람들은 조는 듯한 모습으로 별로 눈여겨보는 것 같지도 않다. 젊은 하인배들은 시중을 드느라고 앉았다 섰다 하지만, 뒤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자세를 흐트러뜨려서 앞을 다투어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무리하게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에 접시꽃 잎(가상의 축제 때, 접시꽃 잎을 그 상징으로 삼았다)을 장식해서 우미한데, 밤이 새고 날이 밝을 무렵, 슬쩍 관람석으로 다가오는 유람용 수레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싶어서 그분인가 저분인가 두루 상상해 보고 있으면, 소를 끄는 소몰이꾼이나 하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도 있다. 우아하고도 아름답게 꾸민 수레가 오가는 모습도 보고 있노라면 재미있게 느껴진다. 통 싫증이 나거나 지루하지 않다. 해가 저물 무렵이 되면, 죽 늘어섰던 수레도 빽빽하게 모여 있던 사람들도 어디로 가버렸는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수레가 혼잡을 이루는 것도 일단락지면 관람석의 발이나 자리도 모두 거두어지고 치워져서 복 있는 동안에 쓸쓸한 거리가 되어가는 모습은, 정말 세상이 무상하고 덧없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되어 애수가 스며드는 것이 지정 "가모의 축제"를 본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 관람석 앞을 왕래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안면이 있는 사람이 제법 많이 있는 것으로 헤아려 보면 세상 사람의 수효는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닌 것이다. 이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난 다음에 내가 죽을 차례라고 생각한다손 치더라도 멀지 않아 죽음에 직면하게 될 것만은 틀림없지 않은가. 커다란 그릇에 물을 담고 모래구멍을 하나 내놓는다고 하면, 물이 새는 것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쉴 사이 없이 새어나가게 되면 얼마 안 가서 물은 다 없어지고 말 것이다. 장안의 이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안 죽는 날이란 있을 리 없다. 하루에 어찌 단 한 사람이나 두 사람에 그치겠는가. 화장터나 공동 묘지, 그 밖의 야산에 장사 행렬이 많은 날은 있을지언정 하나도 없는 날이라곤 도시 없다. 그렇기 때문에 관을 짜서 파는 삶은 만들어 놓은 관을 오래 묵힐 새가 없을 정도다. 젊으니까 염려할 것 없다든가 튼튼하니까 안심이라는 법은 없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인 것이다. 오늘날까지 죽음을 모면하여 살아온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잠시 동안도 이 세상을 태평스럽게만 여겨서는 안 된다. 무사가 전쟁터에 나갈 때에는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각오하여 집을 잊고 내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속세를 떠나서 살아가는 오두막 같은 암자에서는 조용히 뜰의 풍치나 즐기며 죽음 같은 것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실로 한심스런 일이다. 조용한 산골짜기에서도 무상(죽음)이라는 적이 갑자기 달려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음과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은 적진과 대치하고 있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제138 단 가모의 축제가 끝나면 접시꽃 잎은 필요 없다고 해서 발에 장식되었던 것을 모두 다 떼어 내게 한 것은 멋없는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으나, 만사에 능통한 분이 하는 일이니 무슨 뜻이 있으리라고도 생각되었는데, 스호노나이시(1)가, 그리운 임에게 주고 싶어서 행여나 하고 접시꽃 이파리를 발에 걸어 놓고 기다렸지만, 함께 보며 즐기지 못하고 접시꽃 이파리가 말라서 시들어 버리듯, 임도 멀리 떠나 버렸구려. 라고 노래한 것도, 안채에 쳐놓은 발에 걸어 장식했던 접시꽃 이파리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 노래한 것이라고 스호노나이시의 가집에 기록되어 있다. 옛 와카의 서문에도 "지나간 옛시절이 그리운 것은 말라버린 접시꽃 이파리"라고 씌어 있는데, 무척 품위 있는 착상이다. 가모노 죠메이(2)가 지었다는 "시키노모노가타리"(3)에도 "구슬로 엮은 발에 장치한 접시꽃 이파리가 축제가 지났는데도 여정을 아직도 풍겨 주고 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자연히 시들어서 말라 버리는 일조차 아쉽게 생각되는데, 흔적도 없이 모조리 치워 버리는 일은, 그렇게 해도 좋은 것일까. 미쵸다이(귀인의 침대를 가리는 휘장)에 걸려 있는 구스마다(5월 5일에 부정을 씻는 액막이로, 향을 비단주머니에 넣어 조화나 오색실을 단 장식품)도 9월 9일, 국화와 바뀌어진다고 하니, 5월 5일의 창포는 9월의 국화 시절까지 매달아 두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비와(4) 황태후가 서거한 후, 낡은 침대 휘장 안에 창포랑 구스다마 등 시든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창포의 계절도 아닌데 슬픈 눈물이 이슬 같은 구슬이 되어 아직도 걸려 있네"라는 뜻의 노래를 비와 황태후의 딸의 유모가 써보냈는데, 답사로, "창포꽃은 살아 계실 때와 다름없이 있는데"라고 한 여관이 노래를 지어 보냈다고 한다. 제139 단 저택 안에 심어 놓고 싶은 나무는 우선 소나무 벚나무다. 잣나무도 좋다. 벚나무는 외겹꽃이 피는 것이 좋다. 겹꽃 벚나무는 원래 나라 장안에만 있었던 것이 요즈음 세간에 많이 퍼진 것이다. 요시노야마의 벚꽃도 외겹꽃이다. 겹꽃 벚나무는 괴상한 것이다. 무척 집요하게 비틀려 있다. 그러니까 심지 않아도 좋으리라. 늦게 피는 벚나무가 또 재미없다. 벌레가 붙어 있는 것도 징그럽다. 매화는 백매와 담홍색 매화가 좋다. 외겹꽃이 일찌감치 피는 것도, 겹으로 도니 홍매의 빛깔이 아름다운 것도 다 좋다. 늦게 피는 매화는 벚꽃과 같은 때에 핏기 때문에 인기가 없고, 압도되어 가지에 달라붙어 있는 모양은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외겹꽃이 일찌거니 피었다가 어느새 져 버리는 것이 매우 민감한 느낌을 주어서 재미가 있다"고 하며, 사다이에(5) 경은 역시 외겹꽃이 피는 매화나무를 처마 앞에 심었다. 그것이 교고쿠(6)의 저택 남향으로, 지금도 두 그루가 있는 모양이다. 버드나무도 풍정이 있다. 4월경에 새싹이 난 싱싱한 단풍나무 잎은 모든 각양각색의 꽃이나 홍엽보다도 월등하게 좋은 것이다. 귤나무 계수나무 등 어느 것이나 오래된 고목일수록 좋다. 화초로는 황매, 등나무, 창포, 패랭이꽃. 연못에는 연꽃, 가을을 상징하는 초목은 싸리, 갈대, 도라지, 물억새, 마타리, 향등골나무, 탱알, 오이풀, 솔새, 용담, 국화(황국도 곁들여), 담쟁이덩굴, 칡덩굴, 나팔꽃 등, 너무 키가 크지 않고 울타리 사이에 그다지 무성하지 않게 올려져 있는 것이 좋다. 이밖에 세상에 흔하지 않는 것이나, 중국 이름으로 어렵게 불리고 꽃도 눈에 선 것은 친밀감을 가질 수 없다. 대개 무엇이든지 희한하고 흔하지 않은 것은 인품이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것이니 그런 것은 없는 편이 좋은 것이다. 제140 단 죽고 난 후에 재산이 남는다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 하지 않는 짓이다. 보잘 것 없는 물품을 축적해 놓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요, 좋은 물품은 좋은 물품이기 때문에 미련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에서 허무하기만 하다. 더구나 주체할 수 없이 많은 것은 더 싫어진다. '내가 가지겠소" 하고 달라는 사람도 있어서, 죽은 후에 다투게 되는 것은 볼품없는 일이다. 죽은 뒤에 누구에게 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 생전에 주는 것이 좋다. 늘 곁에 두고 써야 할 필수품은 하는 수 없지만, 그 밖의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펴니 홀가분한 것이어서 좋다. 제141 단 히덴인(7)의 교렌 스님은 재속시에는 성이 미우라라고 하는 굉장한 무가 집안이었다. 어느 날 향리에서 온 사람이 이야기를 하던 끝에, "간토 지방 사람의 말은 신뢰할 수가 있다. 장안 사람들은 말을 주고받는 어조만 좋을 뿐 성실하시겠지만, 나는 오래 장안에 살고 있어 여기 사람들과 친교가 생기고 익숙해져 보니 인정이 못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모든 면에 인정이 있고 부드럽기 때문에 남의 말을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고, 무슨 일이나 결단을 내리지 못하여 쾌히 승낙하는 일이 많지요. 거짓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니까 자연히 본심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간토 지방은 나의 고향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고 무뚝뚝하며 그저 기질이 강하기 때문에 첫마디에 딱 잘라 말하고 더 이상 개입하지 않지요. 그러나 넉넉하고 잘 살기 때문에 남에게 의지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분명한 말씨로 말했다. 이 스님은 말씨에 간토 지방 사투리가 섞여서 무뚝뚝하고 불전의 자상한 논리도 모르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한 마디를 듣고 나니 인품이 고상하게 느껴지고, 많은 승려들 중에서 상당한 사원을 맡아서 관리할 수 있음은 이와 같은 온화한 점이 있어 위엄도 생기는 것이라고 수긍이 갔다. 제142 단 사리를 제대로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마디쯤은 좋은 말을 하는 법이다. 어느 난폭하게 생긴 무사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제분은 두셨습니까"라고 물었다. "하나도 두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자, "그럼, 인정이란 것을 알 수 없으시겠군요. 인정미가 없는 마음을 가지셨을 터이니 참으로 무서운 일이올시다. 자식이 있음으로써 따뜻한 정의 맛을 아는 법이니까요"라고 했다는 말은 정말 그럴듯한 말이다. 은혜와 정애의 도리가 아니고서 어찌 이러한 거친 사람에게 자비의 마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어버이에게 효도할 마음이 없는 사람도 자기가 자식을 낳아 기르게 되면 비로소 부모의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속세를 버린 채 홀홀단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가, 주렁주렁 자식들이 매달린 사람이 무슨 일에가 아첨하는 마음을 가지며 욕심이 많은 것을 보고 일방적으로 업신여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 장본인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공양하고 싶은 부모를 위해서, 또는 사랑하는 처자를 위해서는 진정 염치도 모르며 도둑질도 할 법한 일이다. 그래서{결과적으로) 도둑놈을 체포하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벌을 주기 전에, 세상 사람들이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일이 없도록 정치를 잘 펴나가야 할 것이 요망된다. 인간은 확실한 저축이나 재산이 없는 한 동요되지 않는 마음을 지속시킬 수는 없다. 대개의 인간은 절박해지면 도둑질도 하게 된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고, 굶주리고 헐벗어 추위에 떠는 고생이 있는 한 죄인이 절멸될 수는 없다. 백성을 도탄에 빠뜨려 고생을 시키고, 법률을 어기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처벌한다는 것은 모순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백성에게 혜택을 줄 것인가. 그것은 상류 계급의 사람들이 사치나 낭비를 삼가고, 백성을 위로하며 농업을 장려한다면 말단의 백성들에게까지도 영향이 미치고 이익이 돌아갈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의식이 확보되어 넉넉한 데도 다시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도둑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143 단 사람의 임종시의 태도가 훌륭하더라도 등의 이야기를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들을 때, 그저 차분하고 조용히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운명했다고 하면 매우 감명 깊게 여겨질 것을, 우매한 사람은 이상한 형으로 말을 곁들여, 임종시의 유언이나 동작 등을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서 칭찬하거나 하는 것은 죽은 이의 평소의 본의가 아닐 것이다. 이 운명시의 일대사는 신이나 부처의 화신 같은 훌륭한 사람이라도 미리 예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박학한 인사도 그것을 미리 예정해 둘 수는 없다. 요는, 본인 자신만 흐트러진 태도를 취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는 운명이라면 좋지 않겠는가. 남의 견문으로 좋고 그른 것을 결정할 일은 아니리라. 제144 단 ^5,5,5^ (생략) 제145 단 근위부 경호원인 하타노 시게미가 상황전의 수호를 맡은 무사인 시모쓰케노신간이라는 사람을 보고, "말에서 떨어져 다칠 염려가 그 상에 나타나 있으니 충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으나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고 있었는데, 정말 그 무사가 낙마하여 목숨을 잃자, 그 길에 깊이 통달해 있는 사람의 한마디는 귀신과 같다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도대체 어떠한 상을 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엉덩이가 굉장히 나온 데다가 성질이 거칠고 난폭한 말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상을 알아맞힌 것이다. 결코 잘못 맞히는 일은 없다"라고 했다. 제146 단 메이운이라는 어느 절의 주지가 관상가를 만나, "나에게 혹시 검난의 상이 있지나 않은가"라고 물은즉, 관상가는 "분명히 그러한 상이 나타나 있소이다"라고 대답했다. "그건 어떤 상인가"라고 거듭 스님이 물으니, "남에게 칼을 받아서 몸을 다칠 리가 없는 스님께서 적어도 그러한 생각을 하고 계시다는 것, 그래서 그러한 질문을 하시는 것, 그게 바로 그러한 위난의 징조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과연 그 스님은 화살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제147 단 뜸을 뜬 자국이 많아지면 신사의 행사를 하기에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는 일은 이 근래 누군가가 발설한 말이다. 고사의 격식의 규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제148 단 40 이후의 사람이 몸에 뜸을 뜬 뒤에는 삼리혈을 떠 두지 않으면 상기하게 된다. 반드시 삼리혈은 떠 두어야 한다. 제149 단 녹용 말린 것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서는 안된다. 아주 작은 벌레가 있어서 코로 들어가서 뇌수를 갉아먹는다는 이야기다. 제150 단 예능을 배워서 익히려고 하는 사람이 아직 능숙해지기 전에는 섣불리 남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몰래 연습해서 능숙해진 후에야 남의 앞에 나서는 것이 점잖고 의젓한 일이라고 대개는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러한 사람은 한 가지의 예능도 습득할 수가 없다. 아직 아주 서투른 동안부터 잘하는 사람들 틈에 끼여들어 흉을 잡히고 웃음거리가 되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견뎌 내며 연습을 힘껏 하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재간을 타고나지 못했더라도 모든 일에 구애받지 않고 또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하지 않으며, 연공을 쌓아간다면, 소질을 타고났으나 연습을 소홀히 하는 사람보다는 결국 능숙한 경지에 달하여, 관록이 붙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아 견줄 사람이 없을 만큼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는 예도에 출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시초에는 능숙하지 못하다는 평판도 있고 심한 결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예도의 규칙을 올바르게 지키고 소중하게 여겨 방자하지 않게 한다면, 1대의 모범이 되고 만인의 스승이 된다는 것은 어느 길에 있어서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제151 단 누군가가 말하듯이, 나이 50에 이르러서 아직도 능숙해지지 않는 그런 예도는 단념해 버리는 것이 좋다. 이 나이가 되면 열심히 노력해서 배워도 앞으로의 희망이나 기대가 없다. 노인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남들도 삼가서 비웃지도 못한다. 그걸 좋은 기화로 삼아 여러 사람 속에 끼여 얼굴을 내놓고 있는 것은 꼴불견이고 야비해 보인다. 대체 나이를 많이 먹으면 모든 일을 중단해 버리고 한가한 몸이 되는 것이 보기에도 좋다. 속세의 번거로운 잡사에 관여하며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다. 알고 싶다고 생각되는 일은, 이를테면 학문을 닦는 데 있어서라면 그 대강의 요점이 이해되거든 대충 알았다는 정도로 그만두는 게 좋다. 그보다도 애당초부터 그러한 소망을 걸지 않고 또 부러워하지도 않고 지내는 것이 최고로 좋다. 제152 단 사이다이지(진언종의 총본산)의 스님이 허리가 굽고 눈썹이 희고, 실로 덕을 쌓은 존귀한 모습으로 궁중에 입궐한 것을 내대신 사이온지 사네히라 공이, "아, 정말 숭고하신 모습이로구나"라고 하며 우러러보는 모양이었는데, 스케토모 경이 이걸 보고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것뿐이지요"라고 했다. 후일 스케토모 경은 늙어빠져 털이 뭉그러진 삽살개를 끌고 와서, "이 개의 모습이 매우 숭고하게 보입니다"라고 내대신에게 드렸다고 한다. 제153 단 교고쿠 다메카네(8)는 체포되어 무사들에게 빙 둘러싸여 로코하라탄다이(당시 막부의 출장소)로 이송되었는데, 스케토모 경이 도중에서 이를 보고, "아 참으로 부러운 일이로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으로 저렇게 되어 보고 싶구나"라고 했다 한다. 제154 단 이 스케토모 경이 교토 도지의 산문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 때, 불구자들이 모여 있었다. 수족이 어긋나고 뒤틀려 온통 병신들이어서 괴이하게 보였다. 각양각색이며 의지할 데라고는 없는 변태들이었다. 저건 애완할 가치가 있구나 싶어 한참 동안 바라다보고 있노라니, 차츰 기묘하다는 생각이 없어지고 꼴도 보기 싫고 천해 보여, 역시 정상적인 상태가 제일 좋은 것이로구나 하고 절절하게 느꼈다, 그 후 사람들이 소나무 따위의 수목을 이상하게 구부러진 것을 즐겨 찾아내어서 바라다보며 좋아한 것은 바로 그 불구자들을 즐겨 좋아하는 바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흥이 깨지는 느낌이었기에, 분재로 심어 놓았던 나무 등을 모두 캐내어 버렸다고 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제155 단 사회에 순응해 나가려는 사람은 우선 첫째로 시기를 알아야 한다. 적당한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은 남의 귀에도 거슬리고, 상대방의 생각과도 차이가 많아서 그 일을 잘 해나갈 수가 없다. 반드시 그러한 기회를 찾는 데는 요령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병에 걸리는 일, 애를 낳는 일, 죽는 일만은 시기를 보아서 할 수는 없다. 내 형편이 나쁘니 중지하겠다는 식의 방법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 주, 이, 멸의 섭리가 변천해 나가는 진리의 1 대사는 수세가 강한 강물이 넘실거리며 흐르는 것과 같다. 잠시도 쉬거나 머무르지 않고 자꾸자꾸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불도도 세 속의 일들도 반드시 해내겠다고 생각한다면, 시기가 없다거나 기회가 없다고 이러쿵저러쿵 말해서는 안 된다. 이러니저러니 하고 주저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봄이 저물고 난 뒤에야 여름이 되고, 여름이 끝난 다음에야 가을이 온다는 것은 아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의 기운이 배태되어 있고, 여름 속에는 일찍이 가을의 기색이 흐르고 있으며, 가을은 이내 추워지고, 그 추위가 계속 더해 가야 할 터인데도 10월에는 봄 같은 따스한 날씨에 풀이 다시 푸르러지기도 하고 매화가 봉오리를 부풀게도 한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도 나뭇잎이 떨어진 후에야 싹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밑에서 싹이 나오며 부풀어오르는 데 견딜 수 없어서 잎이 떨어지는 것이다. 받아들일 기운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교대의 순서가 매우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로병사가 빨리 돌아오는 현상은 사계의 변화 이상으로 빠른 것이다. 사계에는 그래도 정해진 순서가 있어서 좋으나, 인간의 사기는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죽음은 반드시 앞에서만 온다고는 한정되어 있지 않다. 언제나 배후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죽음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죽음은 예기하는 기분이 아직도 절박해 있지 않을 때 뜻하지 않게 달려든다. 바닷가에 개펄이 멀리 펼쳐져 있다고 해서 까딱 안심하고 서 있노라면, 어느 겨를에 조수가 밀려와서 온통 펀질하게 물이 차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제156 단 대신에 임명된 사람의 피로연은 적당한 장소를 빌려서 개최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좌대신인 후지와라 요리나가 공은 도산조도노에서 거행되었다. 당시 도산조도노는 고노에 천화의 황거였는데, 좌대신이 차용해 달라고 하므로 딴 곳으로 옮기셨다고 한다. 별로 대단한 연고가 없어도 뇨인(황태후, 황후, 내친황의 궁전) 등을 빌려서 거행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제157 단 붓을 손에 들면 자연히 무엇인가 쓰고 싶어지고, 악기를 손에 들면 소리를 내보고 싶어진다. 술잔을 들면 술을 마시고 싶고, 주사위를 들면 쌍륙을 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마음이란 반드시 사물에 접촉하고서야 생기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좋지 못한 장난 같은 걸 해서는 안 된다. 어쩌다 잠깐 경문의 한 구절을 펴놓고 보면 자연히 그 전후의 문장도 눈에 띄게 된다. 그런 데서 문득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고 오랜 세월 동안의 과오를 후회하고 고치게 되는 일도 가끔 있다. 만일 지금 이 글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랜 동안 저지른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말았으리라. 이것이 결국 마음이 사물과 접촉해서 얻는 바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신심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더라도 불전에 앉아서 염주를 굴리고 경문을 읽어 보면, 또 주의가 산만한 마음이라도 좌선하는 좌석에 참석하면 부지불식간에 마음이 통일되어서 오도의 경지로 들어갈 것이다. 현상과 진리는 원래 다른 두 개의 것이 아니다. 외적인 형식이 만일 잘못된 바가 없다면, 마음 속의 오도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태여 외적인 형식은 진실된 신심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제158 단^36,36^제160 단 ^5,5,5^ (생략) 제161 단 꽃이 만발하는 한창때는 동지로부터 150일째라고도 하고, 춘분에서 7일째라고도 하는데, 입춘에서 75일 만이라는 것이 대체로 틀림없다는 이야기다. 제162 단 헨조지라는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중이 근방의 연못에 야조를 길들여 놓고 법당 안까지 먹이를 뿌려 놓은 뒤에 문짝 하나만 열어 두면 야조들이 수없이 많이 집 안으로 몰려 들었다. 그러면 그 자신도 그 속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걸고 새들을 잡아죽이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근처에서 꼴을 베던 목동이 이 소리가 너무나 엄청난 것을 듣고 사람들에게 알려 마을 사람들이 우우 몰려 법당에 가 보니, 큰 기러기들이 이리저리 쫓겨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퍼드득거리는 속에, 중이 섞여서 기러기를 때려잡고 목을 비틀어 죽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중을 잡아다가 관아에 넘겨주었다. 관아에서는 잡아 죽인 기러기들을 중의 목에 걸어 감옥에 넣어서 징계했다. 이는 모토토시라는 분이 장관으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제163 단 태충(9월의 다른 이름)의 태자에는 점을 찍어야 하느냐 찍지 말아야 하느냐 하고 음양도의 사회에서 의론이 분분하던 일이 있었다. 모리치카(9) 법사가 말한 바에 의하면, "아베노 요시히라(10)의 자필로 된 우라카나(11) 뒷면에 쓰인 기록이 고노에 관백 댁에 있는데, 거기에는 점을 찍은 글자가 씌어 있다"고 했다. 제164 단 세상 사람들은 어디서든지 만나게 되면 잠시도 잠자코 있지를 않는다. 반드시 말이 많이 오간다. 그것을 들어 보면 대개는 무익하고 부질없는 이야기들이다. 세상의 부침이 덧없다는 말에서부터 남의 비평에 이르기까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손해는 많고 이득은 적은 이야기들이다. 더구나 설상가상 격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는 동안에 피차의 마음 속에도 이로움이 없고 무익하기만 하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제165 단 간토 지방 사람이 교토 사람들의 사회에 끼여들거나, 또 교토 사람이 간토 지방으로 진출해서 출세를 하고, 또 원래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본거지의 사원을 떠난 천태, 진언 종파에 속하는 승려가 모두 자신의 본래의 영역에서 외계로 나가 사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그다지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제166 단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거동을 보면, 마치 봄날 눈사람을 만들어 그 눈사람을 위해서 금은주옥의 장식을 달아서 안치해 둘 저택을 건축하려고 하는 일과 흡사하다. 눈사람이 만들어지고, 제대로 만들어지는 것을 기다려서 잘 안치해 둘 수가 있을 것인가. 인간들이 수명이 아직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저 밑바닥에서는 생명이 사라져 가는 것이 마치 눈사람과 같은 것이다. 그 덧없는 일생 동안에 안달스럽고 안타깝도록 기대를 거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제167 단 한 가지 길에 정진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문이 아닌 방면의 모임에 참가하여, "아니, 이것이 나의 전문 분야였더라면 그렇게 수수방관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라고 말을 하거나 속으로 생각하거나 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러한 것은 몹시 좋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모르는 어느 분야의 일이 부럽게 느껴지거든 "왜 배우지 않았던가" 정도로 말해 두는 것이 좋다. 자기의 지식을 내세워 남과 다투는 것은 이를테면 뿔을 가진 짐승이 뿔로 받거나 찌르려고 덤벼들고, 날카로운 어금니를 가진 짐승이 적을 만나면 그 어금니를 드러내고 달겨드는 유가 아니겠는가. 사람이란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말고, 남과 시비다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다. 남보다 뛰어난 바가 있다는 것은 실온 큰 결점이다. 신분이나 문벌이 남보다 높다거나 재간이 훌륭하게 뛰어났다손 치더라도, 또는 조상이 훌륭한 영예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남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사 입밖에 내어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 가운데 많은 죄과가 있다. 늘 조심하여 남보다 나은 점을 잊어버리도록 해야 한다. 멍청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남에게 비난도 받으며 재간을 초래하는 것은 이 만심 때문이다. 한 가지 방면의 일에라도 참으로 통달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명백하게 자신의 결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라도, 또한 자만심을 가지고 뽐내는 일도 없다. 제168 단 나이 많은 늙은 사람이라도 무엇인가 한 가지 일에 재능이 있어서, "이 사람이 죽어 없게 되면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하나" 하는 등 말하는 것은 늙은이 역성을 드는 말이지만, 살아 있어서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한 경우일지라도, 늙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잘 알고 있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 한 가지만으로 끝났다는 말이 되어 신통하게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젠 잊어버려서 모르겠는데^5,5,5^" 정도로 대답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체로 아무리 잘 알고 있는 일이라도 조심성 없고 경박스럽게 마구 하다 보면 틀리는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는 모릅니다"와 같이 말하는 것은 정말로 그 방면의 권위자로구나 하는 인상을 주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일을 아는 체하는 데다, 나이가 위여서 가볍게 취급할 수도 없는 거북스런 상대자가 득의 만면하게 지껄이는 것을, 속으로는 그렇지도 않은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소 곳이 듣고 있기란 정말 싫증이 나고 괴로운 일이다. 제169 단 "무슨 식의^5,5,5^ 라는 말씨는, 고사가 천황 시대까지는 쓰지 않던 것을 요즈음에 와서 쓰기 시작한 말씨다"라고 했는데, 실은 겐레이몬인(12)의 시중을 들던 여관이 고토바노인의 재위시에 또 한 번 궁중에 들어가서 여관 노릇을 한 기록에, "세상의 식도 변한 게 없는데"(13)라고 되어 있다. 제170 단 별로 긴한 볼일도 없으면서 남의 집에 가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꼭 볼일이 있어서 갔다고 하더라도 볼일이 끝나면 곧 일어나서 돌아가는 게 좋다. 오래 머뭇거리고 앉아 있는 것은 매우 성가신 일이다. 남과 대좌해서 앉아 있으면 수다스러워지기도 하고, 몸도 피로하며, 마음도 가라앉지 않고, 모든 일에 지장을 초래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피차간에 아무런 이익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서 궁둥이가 무거워 얼른 일어나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흥미없어 마지못한 얼굴로 대담하는 것도 좋지 않다.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에는 차라리 그 이유를 솔직히 말해 버리는 것이 좋다. 서로 기분이 잘 통해 상대해서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사람이 마침 한가한 시간이 있어서 "오늘은 조금만 더 실례를 하고^5,5,5^"라고 말할 경우에는 형편은 달라진다. 원적(죽림칠현의 한 사람. 위선과 권모를 미워하여 시와 술과 정담으로 세월을 보냈다 함)이 마음에 드는 방문객은 청안으로 맞아들였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노릇이다. 별로 볼일도 없이 찾아와서 태평스럽게 담화를 나누고 돌아가는 것은 좋다. 또 편지도, "오랫동안 적조했기에"라고 써서 보내 오는 것은 진정 즐거운 일이다. 제171 단 모든 일은 먼 곳만을 바라보며 밖에서 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선 내 손길이 닿는 가까운 곳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송나라의 청헌공은 "착한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그날의 길흉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도 그와 마찬가지이리라. 내부에 주의를 게을리 하고, 경솔하게 제 마음대로 방자한 행위를 하여 성의가 없이 한다면, 먼 곳에 있는 나라가 반드시 거역을 하게 된다. 그때에 이르러 비로소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마치, "바람을 맞고 습기 찬 곳에서 잠을 자서 병에 걸리게 한 뒤, '병을 고쳐 주시오'하고, 신불에게 기도하는 것은 몹시도 어리석은 사람의 행위이다"라고, 의서에 씌어 있음과 같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괴로움을 제거해 주고 혜택을 주어 올바른 길을 취하기만 한다면, 그 교화가 차츰 먼 곳에까지 이르러 퍼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하나라 우왕도 먼 곳에 있는 삼묘를 정벌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철수했는데, 자기 나라 안에 착한 정치를 펴서 스스로 먼 나라를 교화함만은 못했던 것이다. 제172 단 젊은 시절에는 혈기가 넘치고 마음이 사물에 동요되어 정욕이 많다. 따라서 몸을 위태롭게 하고 망신하기 쉬움이 마치 둥근 구슬을 굴리는 것과 같다. 아름답고 화려함을 즐겨 재보를 탕진하는가 하면, 금방 변덕스럽게 이들을 버리고 먹물을 들인 장삼의 궁상맞은 모습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혈기가 충천하여 무슨 일에나 잘 다투고, 자신의 주장을 세워 관통시키려고 고집한다. 선망을 한다거나 좋아하거나 하는 마음이 그때그때의 충동에 따라서 동요되어 언제나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고 있다. 연애에 빠지고 인정에 치우쳐 제멋대로 마음껏 행동 하다가 기나긴 일평생을 쓸모없이 허송한 사람들과 같이 되고 싶어하며, 하고 싶은 짓을 하다가 자기 몸을 망치고, 자신의 안전이 장구하기를 원하지 않고, 후세에까지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젊은 시절의 소행에서 생기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정신이 쇠약하며, 담담하고 대범하여, 여간한 일에는 느껴 감동하는 일이 없게 된다. 마음은 자연히 평온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짓은 하지를 않는다. 자기 몸을 아끼고 사려 고민하는 일이 없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지혜가 뛰어나 있는 것은 마치 젊은 사람의 용모가 늙은이에 비하여 훌륭한 것과 같다. 제173 단 오노노 고마치(14)의 사적은 매우 희미하고 석연치가 않다. 그가 퇴색한 모양은 "다마쓰쿠리"라는 책에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책은 미요시기요유키(16)가 저술했다는 말도 있는데, 고야노다이시(17)의 저작 목록에 들어 있다. 고보다이시는 조와 연대에 입적했는데, 고마치의 한창때는 그 후의 일이 아닌지, 하여튼 분명하지 않다. 제174 단 작은 새를 사냥하는 매 사냥에 적당하도록 훈련이 된 개를 큰 매 사냥에 부리고 나면, 그 후 다시 작은 매 사냥에 부리기가 나쁘게 되어 버린다고 한다. 모름지기 큰 것을 취하고 작은 것을 버리는 이치에 그릇됨이 없다. 인간이 영위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 불도에 몰두하는 즐거움보다 더 깊은 맛을 가진 것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1대사인 것이다. 한 번 이 도리를 듣고 이에 뜻을 두게 되면, 그 밖의 어떠한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다른 아무것도 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설사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명한 사냥개의 마음만 못할 수가 있겠는가(그만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도 큰 것을 취하고 작은 것을 버릴 수 있다. 하물며 인간이야 아무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175 단 세상에는 까닭을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무슨 일에나 기화가 있을 때면 으레 술을 권하고 억지로 마시게 하여 좋아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다. 술을 마시는 사람의 얼굴은 찡그려지고 매우 괴로운 것처럼 눈썹이 모로 서며 틈만 있으면 버리려고 하는 것을 잡아당겨 자꾸만 먹이고 권하다 보면, 단정한 사람도 미치광이처럼 되고 바보 같은 짓을 하며, 건강하던 사람도 당장에 중환자처럼 되어 전후를 가리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경축하는 잔치에서 이렇게 되면 그 꼴은 추태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날까지 머리가 아프고 음식이 받지 않아 신음 소리를 내며 뒹굴어, 마치 딴 세계의 일인 양, 어제 있었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며, 공사간 중요한 볼일을 제쳐놓고 몽롱하게 누워 있다가 매우 복잡한 상태를 야기하기도 한다. 남을 이토록 낭패로 몰아넣는 것은 인정도 없으며 예의에도 벗어나는 짓이다. 이런 꼴을 당한 사람은 화가 나고 분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누구나 화가 날 것이다). 남의 나라에만 이런 풍습이 있고 제 나라에는 없는 색다른 먼 곳의 이야기로 전해 듣는다면, 정말 기묘하고 이상한(수긍이 가지 않는) 느낌으로 들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이야기는 설사 남의 일이라 하더라도 몹시 싫은 일이다. 사려 분별이 있는 듯하고 품위도 있구나 생각한 사람도, 거침없이 웃어 제치고 수다스러우며, 모자가 비뚤어지고, 허리띠를 풀고 앞정강이가 쑥 비어져 나오는 칠칠치 못한 꼴이란 평소의 그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더구나 여자의 경우,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조심성 없이 긁어 올리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얼굴을 잦혀 위로 쳐들고 웃어대며, 술잔을 잡은 남자의 팔에 매달리기도 한다. 인품이 천한 것들은 안주를 집어 상대방 입에 밀어 넣었다가 그걸 도 제 입에 넣기도 한다. 정말로 꼴불견인 광경들이다. 또 한편, 소리소리 지르며, 제각기 노래하거나 춤을 추며, 늙은 중이 불려와서 더럽고 시커먼 몸의 어깨를 드러내고, 차마 보아 넘길 수 없는 야비하고 저속한 시늉을 하며 몸을 꿈틀거리고 춤을 추는 것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까지도 혐오증을 느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훌륭하고 잘났다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기에도 민망스럽고 식은땀이 흐를 만큼 끈덕지게 지껄여대거나, 혹은 취해서 울거나, 더욱이 저속한 사람들은 서로 욕하고 다투고 해서 술좌석은 흥이 깨어지고 이맛살이 찌푸려지게 된다. 망신스러운 일이나 딱하고 한심스러운 일이 계속되고, 종국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굳이 잡아당기다가 마루에서 떨어지거나 마차에서 떨어지는 실수까지 하게 된다. 또 탈 것을 탈 만큼의 신분도 못되는 자들은 큰 길가를 비틀거리며 갈짓자로 걷는가 하면, 흙담이나 문 밑에 대로 말로는 차마 못할 무례한 짓을 하며, 어지간히 나이가 든 가사 장삼을 걸친 중이 어린 중의 어깨를 붙들고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는 소리를 씨부렁거리며 비틀거리는 꼴들이란 참으로 눈뜨고는 볼 수가 없다. 이러한 짓을 함으로써 현세나 후세에 어떠한 보탬이 되는 것이라면 그는 하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술이란 이 현세에서는 과오를 저지르게 하고 재화를 탕진하게 하며 병만 몸에 남게 한다. 옛날부터 술은 백약의 우두머리라 하지만, 모든 병이 또한 술에서 생기는 것이다. 또 걱정 근심을 잊게 해준다고 하는데, 술취한 사람은 오히려 지난날의 우울하던 일들을 상기하여 울기도 한다. 후세에 있어서는 사람의 지혜를 상실케 하고 선근을 소실케 하는 일이 마치 불이 물건을 태우는 것과 같아, 그 힘이 세고 성하여 나쁜 행위를 거듭 저지르게 되고, 여러 가지 계율을 깨뜨려 지옥에 떨어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술을 들어 남에게 마시도록 권한 사람은 오백생 동안 손이 없는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렇게 술이란 좋지 않은 것, 꺼림칙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지만, 어쩐지 배척할 수만도 없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달이 밝은 밤에, 또는 눈이 온 천지를 순백의 세계로 만들어 놓은 이른 차임, 또는 꽃 밑에서 한가로이 이야기하며 술잔을 손에 드는 것은 어쨌건 간에 흥취 있는 일이다. 한가하고 무료한 날, 뜻밖에 친구가 찾아와서 한 잔씩 술을 나누는 것도 잊혀지지 않는 마음의 위로가 된다. 황공하옵신 분의 주렴 안으로부터 과일이나 하사주 등이 품위 있는 모습으로 내려지는 것 따위도 실로 호감을 일으킨다. 겨울에 비좁은 곳에서 불에 무엇인가 볶거나 하며 스스럼없는 친구들이 마주앉아 호연한 기운을 돋우며 마시는 것도 매우 재미가 있다. 여행중에 잠시 머무른 여창에서, 또는 산이나 들에서 "안주가 좀 무언가 있었으면 좋겠군"하고 말해 가며 잔디 위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좋은 일이다. 무척 귀찮게 생각하는 사람이 강권에 못 이겨 약간의 술을 마시는 것도 매우 좋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특히 "한 잔만 더하면 어떤가. 정말 아직 모자라는 게 아닌가?" 하고 말씀하시는 것도 기쁜 일이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술을 좋아하여 아주 흉금을 털어놓고 친밀해지는 것도 또한 즐거운 일이다. 술꾼은 호감이 안 간다고는 하지만, 대개는 애교가 있어 다소 과실이 있어도 관대하게 보아 넘겨지기도 한다. 술에 만취가 되어 그 다음날 아침에 늦잠을 자는데, 그 집 주인이 문을 열어젖뜨리면 엉겁결에 잠이 덜 깬 얼굴로 상투바람에 의관을 차려입을 새도 없이 거머쥐고 질질 끌며 달아나는, 허리띠도 잡아매지 못하고 손으로 움킨 뒷모습, 털이 길게 난 가느다란 정강이도 우습고, 진정 술꾼다운 모습이어서 그럴듯하다. 제176 단 구로도라고 불리는 전사는 고코 천황이 등극한 후, 이전에 신하의 신분으로 계실 때 부엌일 같은 천역을 하던 것을 잊지 않고 늘 하시던 곳이다. 장작불의 그을음으로 검게 그을러 있기 때문에 '구로도(검은 문의 뜻)'고 한다던가. 제177 단 가마쿠라의 어느 어전에서 축국 경기회가 있던 날, 비가 내린 뒤여서 아직 축국장이 마르지 않아 어쩌면 좋을까 하고 상의를 하고 있는데, 사사키 마사요시라는 사람이 톱밥을 수레에 싣고 와서 마당에 가득히 뿌려 진흙을 밟게 되는 걱정이 없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톱밥을 어떻게 모아 두었다가 이토록 유용하게 쓰느냐고, 그 준비성이 갸륵하다 하여 여느 사람으로는 어려운 노릇이라고 사람들이 모두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가 전하자, 그 말을 들은 요시다 후유카타 경이 "마른 모래는 준비하지 못했던 모양이군"해서 말을 전했던 사람은 좀 부끄럽게 생각이 되었다. 굉장히 좋은 것으로 여겼던 톱밥은 실은 품위가 없고 이상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축국장을 맡아 일체를 지휘하는 사람이 언제나 마른 모래를 준비해 두는 것이 규칙이었다고 한다. 제178 단 어느 귀족의 근시들이 나이시도코로의 미카구라(신전에 고양하는 음악)를 보고, 보지 못한 다른 사람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면서, "보검은 아무아무가 들고 가시더라"고 하는 것을 듣고, 주렴 저쪽에 있던 여관 한 사람이, "별궁으로 천황이 납실 때 들리고 가시는 것은 낮에 곁에 놓아두는 검이지요(보검이 아니라는 뜻)"라고 슬쩍 일러준 것은 매우 우아하게 느껴졌다. 그 여관은 오래전부터 있던, 전시(천황을 가까이 모시던 관리)였다고 한다. 제179 단 송나라에 건너간 학승 도겐 스님이 송나라 판으로 된 일체경을 가지고 와서 교토의 어느 곳에 안치해 두고 특히 "능엄경"을 강의하여, 그곳을 나란다지라고 불렀다. 이 스님이 말하기를 "인도의 나란타사는 그 대문이 북향이라고, 오에노 마사후사 경의 설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러한 것은 "서역전"(18)이나 "법현전"(19) 등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으며, 그러한 말이 씌어 있는 것이라곤 통 없는데, 그분은 어떠한 학식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없다. 중국의 서명사(20)가 북향으로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라고 했다. 제180 단 사기쵸라고 하는 것은, 정초에 푸른 대나무 끝에 쥘부채르 펴서 잡아매어 세워 장식으로 한 것을 말하며, 그것을 궁중에서는 신곤인(21)에서 신센엔(천황이 산책하던 뜰)에 옮겨다가 살라 버린다. 그 행사를 하면서 "호죠쥬노이케니코소"라고 외는데, 그것은 고보 대사가 이 뜰에 있는 연못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기원하던 비가 내렸다는 사적에서 기인된 말이고, 곧 신센엔에 있는 연못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제181 단 "내려라 내려라 가랑눈, 쌓여라 가랑눈"이라는 말에서 '고유키'라는 말은, 쌀을 찧어 체로 치면 아래로 떨어지는 고운 쌀겨와 비슷하기 때문에 '고유키'가 된다. 그런데 '담바노코유키'라는 말은 제대로 하면 '다마레코유키(쌓여라 가랑 눈)'가 되는 것을 잘못 말한 것이다. "울타리나 나무 가장이에"라고 노래를 부르면 좋다고 어느 박식한 사람이 말했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말해 온 것인데, 도바인이 어릴 때 눈이 오면 이렇게 노래처럼 부르며 좋아했다는 말이 사누키(22)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제182 단 시조 다카치카 경이 연어포(연어의 내장을 빼내고 말린 어포)를 천황의 수라상에 올리도록 바친 것을, "이런 저속한 것을 수라상에 올리는 법이 어디 있는가"고 누군가가 말했다는 걸 듣고, 다카치카 경은 "연어를 수라상에 올리지 않는다면 모르되, 연어를 올리는 바에야 연어포를 올리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은어포도 올리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고. 제183 단 사람을 받는 소는 뿔을 자르고, 사람을 무는 말은 귀를 잘라서 그 표시를 한다. 그 표시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게 되면 그 소나 말의 임자의 죄가 된다. 사람을 무는 개를 길러서는 안 된다. 이들은 모두 죄가 된다. 법률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제184 단 호조 도키요리(23)의 어머니는 마쓰노시타의 선니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성이다. 어느 날, 아들 도키요리를 초대한 적이 있었다. 검게 그을린 미닫이문이 군데군데 찢어진 곳을 선니 자신이 일일이 칼로 도려내고 새 종이를 바르고 있는데, 그의 오빠인 요시카게가 그날의 접대 준비를 하기 위해서 와 있다가 그것을 보고, "저에게 맡기시면 모라는 사나이에게 시키겠습니다. 이런 일에 익숙한 자올시다"라고 말하자, 선니는 "그 사나이는 잘하겠지만 내 솜씨보다는 못할 것이외다"라고 대답하고는 문살을 한 칸씩 도려내고 새 종이를 붙이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을 요시카게가, "모두 뜯어내고 새로 바르는 편이 훨씬 편할 것 같군요. 더구나 새 종이를 군데군데에 바르니까 보기에도 얼룩얼룩해서 보기 싫은 듯합니다"라고 거듭 말했다. 그러나 선니가 "나도 오늘 일(막부의 집정이 다녀가는 일)이 끝나면 싹 뜯어내고 새로 바르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오늘만은 일부러 이렇게 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무엇이든지 해진 곳만 수리해서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아직 젊은 사람에게 일러주고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한 것은 매우 훌륭한 생각인 것이었다. 세상을 다스리는 길은 검약이 그 근본이 된다. 선니는 비록 여성이기는 하지만 성인의 정신과 상통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천하를 통치할 만한 (훌륭한) 사람을 자식으로 가진 어머니의 뛰어남이 실로 보통 사람과는 현격하게 다르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제185 단 아키타의 아다치 야스모리(24)는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훌륭한 승마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말을 끌어내 왔을 때, 말이 발을 가지런히 하여 문턱을 훌쩍 뛰어넘는 것을 보고, "이 말은 기분이 흥분되어 서두르는 말이다"라고 말하고, 안장을 다른 말 등에 옮겨 놓게 했다. 또 발을 쭉 뻗고 문턱을 차는 말을 보자, "이 말은 둔감하여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라고 말하며 타지 않았다. 그 길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이토록 조심을 할 수가 있겠는가. 제186 단 요시다라고 하는, 말을 썩 잘 타는 사람이 말하기를, "말이란 어느 말이나 고집이 센 동물이다. 그래서 사람의 힘으로 대항해서 다툴 수는 없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타려고 예정되어 있는 말을 우선 잘 관찰하여 그 강한 점과 약한 점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재갈 안장 따위의 마구에 위험한 곳은 없는지 검사하고, 그래도 미심쩍은 점이 있어서 개운치 않다면 그 말을 타고 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주의를 늘 잊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을 말 잘 타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여간해서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비결이다"라고 했다. 제187 단 모든 방면에 있어서 전문가는, 설사 그 솜씨가 아직 서투르다고 치더라도, 매우 훌륭한 비전문가와 나란히 솜씨를 겨루게 될 때, 반드시 더 우수하다. 그것은 늘 주의하는 마음을 소홀히 하거나 아무렇게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과, 오로지 제멋대로 하는 것과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이다. 예능이나 기예뿐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의 동작이나 배려에 있어서도, 안달하며 조급하게 굴지 안고 주의깊게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성공의 근원이 된다. 재간을 부려 제멋대로 행하면 실패하게 마련인 것이다. 제188 단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을 절에 보내어 중을 만들고, 자식에게 이르기를 "학문을 닦아서 인과응보의 이치를 깨닫고 설경 등을 해서 생활의 수단으로 하라"고 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설경사(설법을 전문으로 하는 중)가 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선 말타기를 배웠다. 가마나 수레 따위를 보내 오지 않고 말을 가지고 와서 자기를 도사로 초대할 때, 말을 탈 줄 몰라 엉덩이가 안장에 잘 놓여지지 않고 낙마를 하거나 해서 한심한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불사가 끝난 위에 시주하는 집에서 술이라도 권하게 될 경우, 중이 아무런 재간도 없으면 시주한 사람이 싱겁게 여기리라고 생각되어 '소가'라고 하는 당시의 유행가를 배우기로 했다. 이 두 가지 재간이 점점 익숙해지고 요령을 터득하게 되자 이 사람은 좀더 잘하고 싶어져서 더욱 열성으로 연습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에 몰두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설경을 배울 여가도 없이 늙어 버리고 말았다. 비단 이 중만이 그렇겠는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흔히 이러한 종류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젊은 시절에는 무슨 일에 있어서든 입신양면을 하고, 큰 일을 성취하며, 예능도 배워 몸에 익히고, 학문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잘래 이루어질 소망에 기대를 걸고 온갖 방면에 뜻을 두면서도, 한평생이란 길고 긴 것이라고 생각하여 서두르거나 부지런히 하지 않고, 우선 눈앞에 놓인 당면의 일을 치르다 보니, 기대하고 소망하는 일들을 손댈 사이도 없이 자기의 몸은 그만 늙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어 놓거나 능숙해지거나 하지도 못하고, 늘 뜻을 두고 있던 바와 같이 입신양명도 못한 채,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연령이 되어, 달려서 고갯길을 구르는 수레바퀴 모양으로 급속히 노쇠해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통해서 주로 실현하고자 소망하는 일 주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를 판가름하여 그 중 첫째가 무엇인가를 결정해 놓고, 그 밖의 일들은 애초부터 단념하여 한 가지 일만 골똘하게 익혀 나가는 것이 좋다. 하루 동안, 아니 한 시간 동안에도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속에서 조금이라도 쓸모가 많은 일을 골라서 하고, 그 밖의 일은 내쳐 버리고 중요한 것을 서둘러 해야 할 것이다. 어느 쪽도 버리지 않으려고 마음에 꼭 쥐고 있다가는 한 가지 일도 이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바둑을 두는 사람이 한 수도 헛되이 하지 않고, 상대방의 선수를 잡아 작은 이익을 버리고 큰 이익을 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세 개의 바둑돌을 버리고 열 개의 바둑돌을 얻는 일은 용이하다. 그러나 열 개의 (바둑)돌을 버리고 열 한 개의 돌을 얻기란 몹시 어렵다. 한 개라도 승산이 좋다고 생각되는 편으로 좇아서 해야 하겠지만, 열이란 수가 되면 버리기가 아까워지고 크게 차이가 없는 것과는 바꾸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도 버리지 않고 저것도 얻으려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그것도 얻지 못하고 이것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교토에 사는 사람이 갑자기 히가시야마(경도 동쪽에 있는 산 이름)에 볼일이 있어서 그곳에 도착을 했다고 하더라도 니시야마(경도의 서쪽에 있는 산 이름)에 가는 편이 훨씬 이롭다고 깨달았다면, 그릇에서 당장 되돌아서서 서쪽으로 가야 한다. 기왕에 이곳까지 온 길이니 이 말을 우선 전해야 하겠다, 언제 어느 날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니 니시야마의 일은 이곳의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서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해서 하기로 하자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때의 게으름이 결국에 가서는 일생의 게으름으로 되고 만다. 이러한 점을 모쪼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가지 일을 반드시 성공해 내겠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일이 허사가 되는 것을 한탄해서는 안 된다. 위험한 일도 피하지 말아야 하며, 남의 비방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른 모든 일과 바꾸지 않고는 한의 대사를 이룩할 수는 없다. 제189 단 오늘은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도, 다른 급한 볼일이 생겨서 그 일에 파묻혀 이럭저럭 하루 해를 보내게 되고, 기다리는 사람은 무슨 일이 생겨서 안 오는데,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 불쑥 찾아오는 등, 기대하고 있던 일은 모두 비뚤어지고 뜻하지 않던 방면의 일만이 제대로 잘되는 수가 있다. 매우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던 일은 의외로 술술 풀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일이 걱정을 끼치기도 한다. 매일 흐르듯 지나가는 현상은 미리 예상하고 있는 대로 되지 않는다. 1 년 동안의 일도 그러하고, 일평생을 일도 또한 그러하다. 예정하던 소망이 모두 허물어지는가 하면, 어쩌다가 또 들어맞는 수도 있어서, 점점 더 사물의 결과를 어림잡을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세상사란 무상하여, 정해진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 두는 것만이 진실이고 틀림이 없다. 제190 단 남자는 정말 아내를 가지지 않는 편이 좋다. "언제나 혼자 살고 있어서^5,5,5^."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매우 품위가 있어 보인다. '아무개의 사위가 되었단다"라거나, 또는 "그 여자를 맞이해서 함께 살고 있다더라" 따위의 소문을 듣게 되면 정말 멸시해 주고 싶어진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평범한 여자를 아주 좋은 여자인 양 생각하여, 아마도 그래서 함께 있는 것이리라고 공연히 추측해 보기도 하고, 또는 그것이 아름다운 여자인 경우라면, 이 사나이를 소중히 사랑하여 "나의 태양이여!", "나의 불존이여^5,5,5^"라고 떠받들고 있으리라는, 고작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되는 것이다. 더구나 가사를 관리하고 꾸려 나가는 여자는 정말 한심하고 딱하다. 자식이 생기고 그걸 귀엽다고 뒷바라지를 하는 것 따위, 우울하기만 하다. 남자가 죽은 후, 머리를 깎고 보살이 되어서 늙어 가는 모습은 남자가 죽고 난 후에까지도 망신을 톡톡히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고 할지라도 아침 저녁 함께 살다 보면 반드시 싫증도 나고 마음에 맞지 않는 일도 생겨서 미워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처지도 매우 어중간해서 난처한 상태에 놓이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따로따로 살면서 가끔 만나러 다니는 편이 오랜 세월을 지나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친교가 이어져 갈 것이다. 어쩌다 잠깐 다니러 왔다가 그날 밤을 그곳에서 머무르거나 하게 되면 새로운 느낌이 들 것이다. 제191 단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모든 사물은 볼품이 없어진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한심하다. 모든 물건의 장식이나 빛깔 따위도 어두운 밤에 보는 것이 더욱 좋다. 낮이라면 간략하고 수수한 차림새도 무관하리라. 그러나 밤에는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복장이 매우 돋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의 모습도 밤에 등불 밑에서 보는 편이 좋은 것도 돋보여서 볼품이 있고, 말을 하는 목소리도 어둠 속에서 듣는 편이 조심성 있는 말은 한층 품위가 깃들여 좋다. 향기로운 냄새도, 악기의 소리도 오로지 밤이 더욱 좋다. 이렇다 할 각별한 일도 없는 밤에, 그것도 이슥한 후에 문후차 참상한 사람이 매우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정말 훌륭하게 보인다. 젊은 사람들끼리, 늘 주의해서 보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때라고 정해 놓고 주시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히 기탄없이 털어놓고 함께 어울리는 경우에는 더욱, 여느 때나 특별한 축하의 경우를 막론하고 몸차림은 단정히 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주 멋이 있고 잘생긴 남자가 해가 저문 뒤에 머리 손질을 한다거나, 여자도 밤이 이슥할 즈음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거울을 들고 얼굴의 화장을 간단히 고치고 나오는 일등은 매우 정취가 깊이 좋은 것이다. 제192 단 신사나 불각에도 사람들이 참배하지 않는 날, 밤에 참배하러 가는 것이 좋다. 제193 단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마음을 추측하고 그 지혜의 정도를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 따위, 결코 적중할 리가 없다.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어쩌다가 바둑 두는 것을 배워서 제법 재간 있게 두는데, 매우 현명한 사람이 바둑 두는 일에 아주 서투른 것을 보고 제 재주나 지혜에 미치지 못한다고 단정하거나, 각종의 전문 기술자가 자기 전문 분야에 통하지 못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모든 점에서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일은 크나큰 착오라고 할 것이다. 글자만의 학문에 능통한 중이나, 좌선 공부만 하고 있는 중이 서로 상대방을 촌탁하여 자기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어느 쪽도 다 착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와 같은 사회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과 맞서거나 비교해서는 안 된다. 또 이러니저러니 비평을 해서도 안 된다. 제194 단 달관한 사람이 사람을 보는 눈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세사를 허위로 꾸며대어 남을 속이는 일이 있을 경우, 아주 순수하게 받아들여 그 사람의 말대로 속아넘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보다 한층 더 번잡하게 거짓말을 덧붙여서 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유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 야간 이상하구나 하고 느끼기는 하지만, 모두들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사람도 있다. 또 이렇게 저렇게 추측하고, 제법 알기나 하는 양 매우 지혜로운 체하며 수긍하고 머리를 끄덕이며 싱그레 웃기까지 하지만, 기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맹탕인 사람도 있다. 또 생각나서, 거짓이겠지 생각하면서, 그래도 무슨 잘못이겠지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또 허위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별로 색다른 일도 아니지 않느냐 하며 손뼉을 치고 웃어넘기는 사람도 있다. 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하지도 않고,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면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라고,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이 시침미를 떼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도 있다. 또 그 허위의 진상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비방하거나 하지 않고 그 허위를 날조한 사람과 동조하고 협력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조차도, 사리에 밝은 사람 앞에서는 그 각양각색의 허위를 내포한 정도가 말끝에서나 또는 표정에서 완전히 노출되고, 거짓말의 탈이 벗겨지고 마는 법이다. 하물며 달관한 경지에 있는 무슨 일이나 통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미혹에 빠진 우리들 범인의 심정을 꿰뚫어 알아차리는 것은, 손바닥 위의 물건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추를 가지고 불법에까지 미쳐 논해서는 안 된다. 제195 단 어떤 사람이 고가라는 곳의 논두렁길을 가노라니, 차림새가 귀족풍인 사람이 나무로 만든 지장보살의 불상을 논 가운데 고인 물에 담가 놓고 정성 들여 씻고 있었다. 참 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보고 있노라니까, 가리기누를 입는 사람이 두세 명 어디선가 오더니, "아, 여기 계셨군"하며 그 사람을 모시고 가버렸다. 이분이 바로 고가의 내대신인 미치모토 공이었다. 여느 때(25)의 그분은 정말로 더없이 훌륭한 분이었다고 한다. 제196 단 도다이지의 신여가 도지(동경에 있는 절이 이름)의 와카미야하치만구에서 나라로 돌아갈 때, 겐지의 성을 가진 공경대부들이 모두 나와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26) 이 고가 내대신이 이때는 근위대장으로 선봉에서 벽제를 지휘했다. 이때, 태정대신인 사다자네 공이, "사원의 전사 앞에서 벽제를 치는 것은 어떨까. 좀 죄송스러운 일인 것 같군"이라고 했는데, 고가 내대신은 "경호하는 자의 동작은 무관의 계통이 알고 있는 일입니다"라고만 대답했다. 그 행사가 끝나고 난 뒤에 고가 내대신은, "이 태정대신께서는 '호쿠산쇼'(27)만 읽고, '세이큐키'(28)는 알지 못하고 계시다. 신의 바로 밑에 있는(부하) 악귀의 재앙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신사에서 특히 더 공들여 벽제를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제197 단 모든 명산 대찰의 중뿐만 아니라, 궁중에서 잡역을 맡아서 처리하는 하급 여관에 이르기까지 '조가쿠'라는 단어가 "엔기시키('정선' 연간에 편집이 완성된 법률 내규)"에 기재되어 있다. 조가쿠라는 말은 모든 정원이 한정되어 있는 하급 관리에 공통되는 명칭이다. 제198 단 '요메이노스케'(29)뿐만이 아니고 "요메이노사칸"(30)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정사요략에 기재되어 있다. 제199 단 히에이잔의 요고가와(31)라는 절에 사는 교센(32) 법사가 말하기를, "중국은 여(33)의 나라이다. 율(34)의 음은 없다. 일본은 율만 있는 나라여서, 여의 음이 없다"라고. 제200 단 담죽의 잎은 가느다랗고 길며, 왕대의 잎은 넓다. 세이료덴(35)의 동쪽으로 흐르도록 만들어 놓은 도랑 곁에 심어 놓은 대나무는 왕대나무이고, 지주덴(36) 편으로 가까운 곳에 심어 놓은 대나무는 담죽 혹은 솜대라고도 하는 대나무다. 제201 단 '퇴범' '하승'(37)이라는 두 개의 탑은 중인도 영취산에 있는데, 산 외곽에 있는 것을 '하승'이라 하고, 산의 안에 있는 것을 '퇴범'이라고 한다. 제202 단 10월을 '가미나즈키'라고 부른다. 그러한 글자를 쓴다고 해서 신사를 행하기를 꺼려하거나 사양해야 한다는 설은, 기록 같은 것도 없고 또 특별히 근거가 될 만한 문헌도 없다. 다만 이 달에 어느 신사에서도 축제나 행사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는지도 모른다. 또 이 달에는 모든 신들이 고타이진구에 모인다는 설도 있으나, 역시 근거 없는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세(황대신궁의 소재지)에서는 특별한 제월로 해야만 이야기가 들어맞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행사도 없다. 10월에 천황이 신사에 참배하기 위해서 거둥하신 예가 많다. 그러나 대개는 불길한 경우에서였다. 제203 단 조정에 죄를 지은 사람의 집에 전동(화살을 꽂아 두는 통)을 걸어 놓는다는 법규를 지금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천황이 미령하시거나, 또는 나쁜 병이 유행되거나, 인심이 흉흉해서 세상이 소란하거나 할 때에는 고조노 덴진(38)에 전동을 걸어 놓는다. 구라마데라의 수호신인 유기노묘진도 전동이 걸리던 신이어서, 고조노 덴진과 같은 신이다. 게비이시쵸(현재의 검찰청)의 죄인을 다루는 관리가 등에 걸고 있는 전동을 죄인의 집 대문에 걸어 놓으면 누가 감히 그 밑으로 출입을 하겠는가. 이 방법이 없어진 후, 현재에는 죄인의 집 대문을 봉하게 되어 있다.? 제204 단 죄인을 가시가 돋친 매로 때릴 때에는 형틀에 잡아매고 때리는 법이다. 형틀의 형태나 잡아매는 방법 따위를 현재는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제205 단 히에이잔(39)에서 덴쿄다이시(40)를 앞에 내세우고 맹세를 하거나 기청(41)하게 하는 것은 지에소조가 비로소 시작해서 쓰기에 이른 것이다. '기청문'이라고 하는 것은, 법무를 담당하는 관리에게는 그 직책이 없다. 옛날, 성군이나 명군인 천자가 통치하던 시대에는 이 기청문이라는 것에 의거해서 행하여지는 정치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기청문을 쓰는 일이 부쩍 늘어 널리 행하여지게 된 것이다. 또 금기령에서는, 물과 불은 부정함이 없다고 인정하고, 그 용기에는 부정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06 단 도쿠다이지의 우대신 긴타카공이 게비이시쵸의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 그 관청이 장관의 저택 중문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판결이 행하여지고 있는 동안에, 그 관청의 한 속관의 소가 고삐가 풀려서 관청 안으로 들어가 장관이 앉는 자리에 올라가서 벌렁 드러누운 채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이건 괴상하고도 괘씸한 일이라 하여 소를 점쟁이에게 보내어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고 관리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재상인 아버지 사네모토 공이 듣고, "소에게 분별이 있을 수 없다. 다리가 있는 이상 어딘들 못 가겠는가. 말단에 있는 관리가 어쩌다 출근할 때 타고 오는 소를, 그것도 말라빠진 소를 몰수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라고 하며, 소를 그 주인에게 돌려주고 소가 누워 있던 자리의 다타미만 새것으로 바꾸어 깔도록 명령했다. 그랬어도 아무런 뒤탈도 없었다고 한다. 괴이한 일을 보아도 그것을 괴이하다고 믿지 않고 평범하게 생각해 버릴 때에는, 그 괴이한 사물은 오히려 파멸되어 버리는 법이라고 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제207 단 가메야마에 별궁을 건립하기 위해서 대지를 고르는데, 큰 뱀이 수없이 많이 모여 있는 고총을 발견했다. 이 땅의 주인이라고 해서 그 상황을 보고했더니, "그러면 어쩌면 좋겠는가"라고 하문하셨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것이니 함부로 파내 버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누구나가 대답을 하는데, 사이온지 대신 혼자만이, "국왕의 영토 내에 사는 하찮은 뱀 따위가 황궁을 조영하는데 무슨 요사스런 방해를 할 것인가. 귀신이란 옳지 못한 일은 하지 않는 법, 뱀 따위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염려할 바 못 되니 파다가 버리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부들이 고총을 파헤치고 뱀을 모두 잡아다가 강물에 띄워 버렸다. 물론 아무 탈도 없었다고 한다. 제208 단 경서 등 두루마리로 된 것을 끈으로 잡아맬 때, 위아래로 비스듬하게 십자 형으로 그 두 줄의 끈 중간에 끈의 끝을 넣어서 옆으로 잡아빼는 방법이 흔히 쓰여지고 있다. 그렇게 잡아매는 것을 보고 닌나지의 고슌 스님이 풀어서 다시 매도록 일렀다. "이건 요즈음에 새로 생긴 방법이다. 아주 좋지 않은 방법이어서 싫다. 올바르게 하려면 그냥 휘휘 감아서 위에서 아래로 끝을 넣어 매도록 하라"고 말했다 한다. 나이도 많고 이러한 일들을 많이 아는 스님이었다. 제209 단 남의 논을 놓고 소송을 하여 재판을 하던 자가 소송에 지고 나자 분통이 터질 만큼 상대방이 미웠다. 그래서, "그 논에 있는 벼를 모조리 베어 버리도록 하라"고 사람들을 보냈더니, 그자들은 논에 가는 도중에 있는 논의 벼부터 베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소송을 했던 논이 아니잖소. 왜 상관도 없는 논의 벼를 베는 거요?" 하고 물으니, 그자들은 "소송을 했던 상대편의 논도 벼를 벨 이유가 없는 것을 베러 가는 판국이니, 어느 논의 벼를 베거나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원래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왔으니 닥치는 대로 베어 버릴 작정이오"라고 대답했다고.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가 매우 재미있는 것이었다. 제210 단 '요부코도리'(42)라는 새는 봄철의 새라고만 말하고 있을 뿐, 어떠한 새라는 말이 분명히 적혀 있는 책은 없다. 진언종의 어느 수법서 중에, 요부코도리가 울 때 초혼제를 행한다고 적힌 곳이 있는데, 그것은 '티티새'라는 새를 이르는 말이다. "만요슈(가수의 이름)"의 나가우타(화가의 한 예)에도 '요부코도리'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티티새도 요부코도리와 그 모습이 비슷하게 닮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211 단 무슨 일이거나 기대하고 의지해서는 안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굉장히 아무 일에나 기대를 가지기 때문에 원망을 하기도 하고, 분통을 터뜨려 화를 내기도 한다. 권세가 있다고 해서 그 권세를 의지하거나 믿어서는 안된다. 강력한 것은 먼저 멸망하기 때문이다. 재산이 있다고 해서 믿어서는 안 된다. 순간적으로 상실하기 쉽기 때문이다. 학문이 있다고 해도 거기에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 좋다. 공자와 같은 성인도 불우했기 때문이다. 덕이 있다고 해서 믿어서는 안 된다. 행실이 훌륭했던 안회도 불행했으니 말이다. 주군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언제 어떻게 죄를 얻어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복이 충실하게 복종한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 배반하여 도망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남의 호의도 기대할 수는 없다. 반드시 변하기 때문이다. 약속을 믿어서도 안 된다. 성의 있게 지켜지는 일이란 드물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나 남을 믿고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좋을 때에는 기뻐하고, 형편이 불여의할 때라도 별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지도 않는다(남을 의지하거나 믿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좌우가 훤하게 트여 있어 지장이 되거나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고, 앞뒤가 탁 열려 있기 때문에 막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주위가 빙 돌아가며 꽉 막혀서 틈새가 없으면 짓눌리고 비뚤어져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배려하는 범위가 비좁아서 협소하거나 과격할 경우에는 이리저리 충돌하고 거역하며 파탄이 생기게 마련이다. 넉넉하고 온화하면 털끝 하나도 손상이 없다. 인간은 천지간에 가장 존귀한 존재다. 천지는 광대무변하다. 인간의 본성도 또한 천지와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의 마음이 관대하여 제한이 없다면, 회로의 정도 지장이 될 바가 없으며, 외적인 사물로 인해서 괴로워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제212 단 가을달은 다시없이 좋은 것이다. 언제나 달은 이러한 것인 줄 알고 가을달의 훌륭함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한심스러운 일이다. 제213 단 존귀하신 분 앞의 화로에 불을 넣을 때에는 부젓가락으로 집는 일은 하지 않는다. 토기에 담은 불을 직접 화로에 옮겨 비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덩어리가 뒹굴어 떨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서 숯을 쌓아야 한다. 이와시미즈하치만구에 상황께서 납시었을 때에, 시중드는 사람이 정한 흰옷을 입고 불을 담는데, 손으로 숯을 화로에 넣었다. 그것을 본 어느 박식한 노인이, "흰옷을 입었을 때에는 부젓가락을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말하더라고. 제214 단 '상부련'이라는 악곡은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 애태운다는 뜻의 명칭이 아니다. 원래는 '상부련'이라고 쓰는데, 발음이 서로 같아서 그렇게 쓸 따름이다. 진나라 왕검이 대신이 되어, 자기 집에 연꽃을 심어 놓고 관상했을 때에 만들어진 악곡인 것이다. 구 후로, 대신을 '렌푸'라고 했다. 제215 단 아손(종4품, 종5품 벼슬의 경칭)이던 다이라노노부토키가 늙은 후, 옛날을 회상하여 이야기하기를, "사이묘지(43)의 도키요리 공이 어느 날 저녁에 부르신 적이 있었는데, '곧 가겠습니다'라고 전갈을 해놓고도 히타타레(무가의 출임복)가 없어서 우물쭈물하고 있자니, 또 전갈이 오기를 '히타타레 따위가 없을 것인즉 밤이니까 좀 이상한 모양이라도 상관없으니 빨리 오도록'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후줄근한 헌 히타타레를 걸치고 집 안에서 휴식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들어갔더니, 술주전자와 토기를 가지고 나오셔서, '이 술을 혼자 마시기가 무엇해서 오시라고 했지요. 그런데 안주가 아무것도 없군요. 다들 잠이 든 모양인데, 무언가 안주가 될 만한 게 없나 좀 찾아 보시겠고?'라고 하신다. 촛불을 종이로 한쪽을 가려서 들고 구석구석을 찾아보다가 부엌 찬장의 작은 접시에 된장이 조금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겨우 이것을 찾아냈습니다'라고 가져다가 보였더니, '아, 이거면 되었소'라고 하시며, 몇 잔의 술을 드시고는 매우 기분이 좋아져 즐거워하셨다. 그 무렵에는 그렇게 검소했지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제216 단 사이묘지의 호조 도키요리 공이 쓰루오카하치만구에 참배하고 오는 길에, 아시고가 요시우지에게 미리 전갈을 보내 놓고 들른 일이 있었는데, 접대하는 절차는 매우 간소해서, 첫째 잔의 안주는 전복을 얇게 저며서 말린 것이고, 둘째 잔의 안주는 대하, 셋째 잔의 안주는 인절미가 나오고, 그걸로 접대가 끝났다9일세를 풍미하는 권력자이자 지배자에 대한 대접으로는 지나치게 간소했다는 뜻이다). 이 좌석에는 주인 부부와 류벤 스님이 주인측의 사람으로 배석하고 있었다. 각설하고, 도키요리 공이, "매년 얻어 가지는 이 고장의 염색물(족이 지방의 특산물이다)을 보는 일이 기대 됩니다"라고 하자, 주인은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하며 여러 가지 염색물 30 필을 그가 보는 앞에서 여자들을 시켜 고소데(귀족이 정장 밑에 입는 옷인데, 후에는 화려한 감으로 만들어 입게 되었다)로 만들도록 한 다음, 돌아간 후에 상납했다. 그 당시 목격한 사람이 최근까지 생존해 있어서 들려준 것이다. 제217 단 어느 대부호가 말하기를 "사람이란 모든 일을 제쳐놓고라도 다만 외곬으로 이득을 몸에 지녀야 한다. 가난한 것으로는 살아 있는 보람이 없다. 부자만이 인간이다. (그래서) 이득을 차지하려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을 제쳐놓고 물품을 많이 갖고자 하는 마음가짐의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마음가짐이란 다름이 아니다. 인간은 늘 변함없는 것이라는 사고 방식을 단단히 마음에 가지는 것이며, 인생은 무상하다는 관점 따위는 아^36^예 꿈에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첫째로 지켜야 할 주의점이다. 다음에는 만사에 필요를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인간이 이 세상에 생존하고 있는 한, 자신의 일이거나 남의 일이거나 간에 욕망은 끝이 없어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욕망 그대로를 이룩하려고 한다면, 백만의 금전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돈은 조금도 남아나지 않는다. 욕망은 끝이 없어서 많은 돈이라도 다 없어지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한계가 있는 재산을 가지고 한계가 없는 욕망에 추수해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욕망이 마음 속에 싹트는 일이 있다면, 자기를 멸망케 하는 악념이 습격해 왔다고 완강히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아주 적은 낭비도 해서는 안 된다. 마음에 금전을 노예를 부리듯 혹사한다면, 영원히 가난에서 헤어날 수는 없다. 적어도 금전을 주군과 같이, 신불과 같이 황공하게 여기고 존중하여 결코 마구 부려서는 안 된다. 다음에는,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있어도 결코 원망하거나 화를 내거나 해서는 안 된다. 다음에는 정직하게 행동하며 약속은 굳게 지키는 것이 좋다. 이러한 규칙을 잘 지켜가며 이득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조속한 시일 내에 부가 찾아드는데, 그것은 마치 불을 잘 건조된 것으로 옮겨 가며,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바와 같을 것이다. 금전이 쌓여 그칠 줄 모르더라도 주연이나 쾌락을 좋아하지 말고, 주택을 꾸미지 말지어다. 욕망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늘 편안하고 즐겁기 그지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도대체 인간이란 욕망을 다하고자 해서 재산을 욕구 한다. 금전을 재보로서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욕망이 있어도 그 욕망을 채울 수 없으며 돈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건 아주 가난뱅이와 다를 바가 없다. 무엇을 낙이라고 하겠는가. 부자가 되기 위한 이러한 태세는 인간의 욕망을 거부하고 가난함을 한탄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욕망을 성취하고야 즐거움을 가지는 것보다는 욕망이 없는 편이 더욱 좋다. 부스럼이나 악성 종기 따위로 앓는 사람이 물로 씻어 내고 습포하고서야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애당초부터 그러한 질환을 앓지 않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은가. 이렇게 따지고 생각해 보면 가난도 유복도 구별이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의 최상 이념도, 그 불성의 본질에서 본다면 최하의 '리소쿠(범부에서 성불에 이르기까지를 육계급으로 나눌 때 그 최하위를 이르는 말)'와 다를 바가 없다. 대욕은 무욕과 흡사하다는 결론이 된다. 제218 단 여우는 사람을 무는 짐승이다. 미나모토노 모토토모 공의 저택에서 근시가 잠을 자고 있다가 여우에게 발을 물어 뜯겼다. 닌나지에서 밤중에 법당 앞을 지나가는 말단 중에게 여우가 세 마리씩이나 달려들어 물어뜯는 바람에 칼을 뽑아서 여우들을 막았는데, 두 마리의 여우를 찌르기는 했으나 한 마리만 죽고 두 마리는 달아나 버렸다. 중은 온통 몸에 상처를 입었으나 별 탈은 없었다고. 제219 단 ^5,5,5^ (생략) 제220 단 무슨 일이나 편벽진 변두리 지방이나 시골의 것은 용렬하지만, 덴노지(44)의 무악만은 교토의 무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덴노지의 악사는, "이 절의 무악은 기준이 되는 12율을 열 두 개의 횡적으로 가락을 맞추어서 악기의 음색이 아주 자 조정되어 있으며, 다른 어느 곳의 것보다도 우수한 이유는 쇼토쿠다이시 시절의 표준음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저 로쿠지도(45) 앞에 있는 종이 기준이 된다. 그 음색은 오지키죠(46)의 진정한 것이다. 그것이 추위나 더위로 오르내리기 때문에 2월 15일 석존 입멸의 법회에서 2월 22일 쇼료에까지 7일간을 표준으로 한다. 이 일은 매우 대단한 비밀이 되는 중요한 이야기다. 이 단 한 가지의 가락을 기준으로 해서 어느 음률이나 지정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대개 종소리는 오지키죠가 기준이 된다. 이것은 무상한 가락으로, 기원정사의 무상원의 종소리인 것이다. 사이온지의 종을 오지키죠로 주조하려고 몇 번이나 개조했지만 잘 되지 않았는데, 먼 변두리 지방의 절에서 적당한 것을 찾아냈다고 한다. 조콘고인(47)의 종소리 또한 오지키죠다. 제221 단 "겐지, 고안 연대에는 가모 축제날의 방면의 장식(48 단)으로, 좀 이상한 감색 헝겊 4,5필로 말을 만들고, 거미줄을 그린 의상을 입고, 와카의 뜻풀이 문구를 실현한다고 거리를 누비고 따라다니던 것을 늘 보아 왔는데, 그것을 무척 재미있게 생각하며 보았던 것이지요"라고 나이가 많은 묘호도의 하급 관리들이 지금도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이 즈음에는 그 방면의 장식물도 세월 따라 호사스러움도 각박해지고, 각양각색의 무거운 장식물 등을 몸에 달아, 양쪽 소매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고, 자신은 창 하나 들지 못한 지경이 되어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꼴은 정말 보기 싫고 밉상스럽다. 제222 단 다케다니에 살던 조간보(호넨 스님의 제자)가 도니조노인(49)에 문후했을 때,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어 주는데 어떠한 일이 제일 영험이 많겠는가"라고 하는 하문이 계셨다. 조간보는 광병진언(부처의 광명을 주는 진언)과 보협인다라니(50)라고 말씀을 올렸는데, 그 제자들이, "왜 그렇게 대답하신 거니까. 염불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하시지 않고서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의 종지이기 때문에 염불이 제일 입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지만, 정작 아미타불의 칭호를 외는 일이 망인의 명복을 빌어 크나큰 영험이 있다는 경문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니, 만일 그러한 말이 어느 경문에 있느냐고 거듭 하문하시면 대답할 도리가 없어서, 거점이 확고한 경문을 생각하여, 이 진언다라니를 말씀드렸던 것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제223 단 다즈(51)의 내대신의 유명은 '다즈기미'라고 했다. '다즈'란 학을 말하지만, 학을 길렀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말을 잘못 전해진 말이다. 제224 단 점을 잘 치는 아리무네 법사가 가마쿠라에서 상경해서 찾아왔는데, 우선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이 정원이 이토록 넓은 것은 참 생각이 부족한 증거로, 안될 일이다. 생각이 있는 자라면 재배를 하도록 하라. 좁다란 오솔길만 하나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모두 밭으로 만드시오"라고 충고를 했다. 과연 조그마한 땅이라도 그냥 놀려 둔다는 것은 좋지 않다. 식량이 되는 거나 약종을 심는 것이 좋다. 제225 단 오노 하사스케가 말하기를, 미치노리(52)법사가 춤 동작 중에서 보기 좋은 부분을 골라 이소노젠시라고 불리는 여자에게 가르쳤다. 흰옷(민간의 평상복) 위에 사야마키(날밑이 없는 단도)를 허리에 차게 하고, 에보시(모자의 일종)를 쓰게 했기 때문에 오토코마이라고 이르게 되었다. 그 젠시의 딸 시즈카라는 여자가 그 춤을 이어받았는데, 이것이 바로 '시라뵤시'라는 춤의 기원인 것이다. 그는 신불의 유래, 축복하는 노래들을 불렀는데, 그 후, 미나모토노 미쓰유키(가인이며 학자)가 많은 시라뵤시의 가사를 지었다. 또 고토바인의 어작도 있는데, 이것은 가케기쿠에게 가르치시기도 했다고 한다. 제226 단 고토바인이 재위하시던 무렵, 시나노의 전 국사로 있던 유키나가는 학문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백낙천의 신악부의 시를 어전에서 두 패로 나뉘어 문답 토론하는 명단에 들어, 출사하라는 전갈을 받았는데, 이때 시치도쿠노마이 중에 두 개의 덕을 잊어버려서 말을 못하고, '고토쿠노칸쟈'라는 별명을 얻게 되어, 비관한 나머지 학문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한 것을, 재간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절의 머슴이라도 아깝게 여기던 지친 스님이 자기 밑에 두어 녹을 주기로 했다. 이 유키나가가 "헤이케모노가타리"(53)를 저작하여 생불이라고 하는 장님에게 가르쳐 소리로 말하게 했다. 그래서 히에이잔의 이야기는 특별히 분명하게 기록이 되었고, 구로호간 요시쓰네의 행적도 매우 상세하게 진술되어 있다. 다만 가바노칸쟈라고 부르는 노리요리(54)의 행적은 소상히 몰랐던지, 많은 일화가 빠져 있다. 무사에 관한 일이나 궁마에 대한 이야기는, 생불이 간토 지방 출신이기 때문에, 직접 무사들에게 질문해서 우키나가에게 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그 생북의 타고난 천부의 음성을 지금의 비와호시(55)들이 흉내내어 배우고 있다. 제227 단 로쿠지라이산(밤과 낮 여섯 번 부처의 덕을 칭송하는 문구를 노래처럼 가락을 붙여서 외는 일)은 호넨 스님의 제자인 안라쿠라는 중이 경문을 모아서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외며 수행한 방법이다. 그 후, 교토 서쪽 변두리에 있는 우즈마사라는 곳에 살던 젠칸보라는 중이 음보를 붙여 음악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일념의 염불'(56)의 시초인 것이다. 이것은 고사가인의 치세에서 비롯되었다. '법사찬(당나라 선도 스님이 만든 것)'에 가락을 붙여서 외는 일도 젠카보가 시작한 것이다. 제228 단 센본노샤카넨부츠(57)는 가메야마 천황의 분에이 연호 시절에 뇨린 스님이 시작했다고 한다. 제229 단 좋은 세공을 하려면 약간 무딘 칼을 쓴다고 한다. 저 옛적의 명공이라는 묘칸의 칼은 날이 그다지 예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230 단 고조에 있는 황거에는 도깨비가 살고 있었다. 도다이나곤이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으면, 재상 어른들이 구로도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데, 문 앞에 쳐놓은 발을 들고 들여다보는 자가 있어서, "누구냐?"며 돌아다보니, 여우가 사람처럼 엎드려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여우다. 여우다!"하고 고함을 지르니까, 여우는 당황하여 그만 달아나고 말았다. 아직 재주가 미숙한 여우가 둔갑하려다가 그만 탄로가 나 버린 것이다. 제231 단 후지와라 모토후지라는 분은 겨룰 사람이 없을 만큼 요리에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사람의 집에서 매우 크고 훌륭한 잉어를 내놓았는데, 누구나가 다 모토후지가 칼을 써서 잉어를 다루는 솜씨를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경솔히 말을 꺼내기도 무엇하여 주저하고 있는 터에 그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어서, "요전부터, 백 일 동안 잉어 요리를 할 것을 마음 속에 계획하고 있었는데 오늘만 그것을 아 할 수도 없고 하니, 이쪽에서 무리로라도 얻어 요리하고 싶소이다"라고 요리를 했다. 매우 시의에 적당한 눈치 있는 처사였다고 흥미롭게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태정대신인 사이온지 사네카네 공에게 들려 드렸던 바, "그런 일은 나라면 매우 번거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요리할 분이 안 계시다면 그걸 주십시오, 제가 해드리지요'라고 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 아닌가. 무슨 백을 동안 잉어 요리를 한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씀하신 것이 오히려 흥미롭게 여겨졌다. 대체로 무엇인가 해 보여서 흥미를 돋우기보다는 흥미를 돋우지 않는 수수한 방법이 훨씬 낫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에서는, '아, 마침 잘 오셨군요'라고 접대하는 것도 매우 좋지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런 분위기로 대접하는 것이 더욱 좋다. 남에게 물품을 주는 경우에도, 별로 이렇다 할 이유없이 자연스럽게 내밀려 '이것 드리고 싶어도'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기분일 것이다. 어딘지 아까워하는 듯한 눈치를 보이며, 달라고 졸라대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마음이나. 내기를 걸어 지고서 한턱을 내는 것처럼 빙자하는 것은 참으로 좋지 않은 일이다. 제232 단 모름지기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는 식으로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어떤 사람의 자식이 풍모도 제법 좋은데, 그의 부친 앞에서 남과 대화를 하는데 사서의 문구 따위를 인용해 가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똑똑해 보이기는 했지만 좀 반지빠른 것 같아서 좋지 않게 느껴졌다. 또 어떤 사람에게서 비와호시(비파를 타는 중. 대개는 장님이 비파를 타며 향간을 돌아다닌다)의 "헤이케모노가타리"를 듣기로 상의하고 비파를 빌려 왔는데, 줄을 괴는 기둥이 한 개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서 끼워라"고 하니까, 여러 사람 중에서 인품이 천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헌 주걱이 없을까"라고 하는 걸 보니, 손톱이 길다. 아마 비파를 탈 줄 아는가 보다. 장님이 타는 비파 따위는 그러한 처치조차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방면에 조예가 있음을 여러 사람 앞에서 과시할 심산이었는지 모르나, 그러한 말은 옆에서 듣기에는 매우 거북했던 것이다. 주걱 자루는 노송나무로 만든다던가 하는데, 별로 신통한 재료는 아니라는 것이 잘 아는 사람의 말이었다. 젊은 사람은 자칫하면 좋게도 보이고 또 나쁘게도 보이는 법이다. 제233 단 만사를 실수 없이 하려고 한다면, 무슨 일에나 진심을 다하여 사람 차별을 하지 않고 공손하며, 말수가 적은 것이 제일 좋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가 다 그러하지만, 특히 젊고 풍모가 뛰어난 사람이 모든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이 의연한 몸가짐을 가지는 것은 잊을 수 없는 매력 있는 일이다. 모든 과실은 아주 익숙한 체하고, 능숙한 솜씨를 자랑하려는 데서 생기며, 특히 남을 깔보고(제가 무엇을 하랴, 내가 제일이지), 우쭐대는 데서 생기는 법이다. 제234 단 남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모를 바도 아니면서 솔직히 대답하는 것이 무슨 주제넘는 일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상대방이 당황하거나 어리둥절할 대답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그 사람이 다소는 알고 있지만 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 묻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또 정말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백하게 설명을 해준다면 그다지 온당하게 들릴 것이 아닌가. 남은 아직 듣지 못한 소문 따위를 자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해서, "그건 그렇고, 그 사람의 일은 딱하기도 해^5,5,5^" 허위 건성으로 말을 꺼내어, 아니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느냐고 되받아 묻게 하는 것 등은 좋은 일은 아니다. 세간에서는 소문이 파다하더라도 혹시 못 들은 사람도 개중에는 있을 터이니, 흐릿하지 않게 분명히 말해 주는 것도 나쁜 일일까(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것은 처세에 서툰 사람이 흔히 저지르는 일이다. 제235 단 주인이 살고 있는 집에,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제멋대로 출입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주인이 살지 않고 비어 있는 주택에는 지나다니는 통행인도 함부로 드나들며, 여우나 올빼미 따위도 사람의 기척이 없어서 두렵지 않기 때문에 거침없이 들어가서 살기도 하고, 나무의 정령이라든가 하는 기괴한 도깨비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또, 거울이란 것에는 색도 형태도 없기 때문에 일체의 물건의 형체가 비쳐 보이는 것이다. 만일 거울에 색이 있다면, 또는 형태가 있다면 아무것도 비치지는 않으리라. 또 창공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포용한다. 우리들 인간의 마음에도 여러 가지 일이나 생각들이 자유로이 밀려들어 비치게 된다는 거도, 마음에는 주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에 도사리는 주인이 있다면, 흉중에 많은 생각이 파고 들어오지는 않으리라. 제236 단 단바라는 지방에 이즈모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 이즈모타이샤에서 분령을 모셔다가 새로 훌륭하게 조영한 신사가 있다. 시다의 모라는 사람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가을 어느 날, 쇼카이라는 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신자들에게 권유하며, "어서들 오십시오. 신사에 참배하십시오. 찹쌀 인절미를 대접하겠습니다"하고 데리고 가서,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고 더욱 신심을 돈독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신전 앞에 놓인 사자와 고마이누(악귀를 물리친다 해서 신전 앞이나 큰 대문 앞에 놓는 조각 장식물)의 위치가 바뀐 채 반대로 등이 보이게 놓여 있는 것을 스님이 보고 매우 감격하여, "아아, 참 훌륭도 하여라, 이 사자의 위치는 매우 신기하다. 무슨 오랜 유래가 있을 것이니라" 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아니 여러분들, 이 기특한 일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래서야 됩니까?"라고 했기 때문에 모두들 그제야 이상하다고 생각하여"정말, 다른 곳과 다르군요. 상경해서 이야깃거리로 해야겠어요"라며 떠들썩했다. 스님은 더욱 깊은 감격에 싸이고 마음이 끌려서 그 신사의 신관을 불러, "이 신사의 사자의 위치가 바뀌었는데, 아마도 무슨 유래가 있겠지요. 궁금하니 들려주시오"라고 하였다. "하, 그것 말씀이죠. 동네의 악동들이 장난을 한 겁니다. 괘씸하게시리^5,5,5^"라고 대답하고는 사자 옆으로 다가가더니 사자 조각상을 똑바로 돌려놓아 버렸다. 스님의 감격의 눈물은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고. 제237 단 버들가지로 만든 상자에 물건을 넣을 때, 세로로 넣느냐 가로로 넣느냐는 물건에 따라 가를 것이다. "두루마리 따위는 세로로 넣고 버들가지 사이로 노끈을 꿰어 넣어서 잡아매는 것이다. 벼루도 세로로 넣는 편이 붓이 뒹굴지 않아서 좋다"고 어느 우대신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가데노코지 가(58)의 능서한 사람들은 결코 세로로 놓는 일은 없다. 반드시 가로로 놓이도록 넣어 둔다. 제238 단 나카하라노 지카토모(근위부의 하급 관리로 경마의 명수였고 무악에도 능숙했다)가 자찬이라고 해서 7개조의 조문을 써 놓은 것이 있다. 어느 것이나 모두 마술에 관한 일로서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 예에 따라서 자찬 일곱 가지를 게시해 본다 1.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꽃구경을 하며 돌아다닐 때, 사이쇼코인 근방에서 사나이가 말을 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번 더 말을 달리면 말이 거꾸러지고 반드시 낙마할 것이다. 잠시 보고 있어 봅시다'라고 하며, 발을 멈추고 서서 보고 있노라니, 그 사나이가 또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을 거꾸러뜨리고 말을 타던 사나이가 흙탕 속으로 뒹굴어 떨어졌다.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해서 모두들 감탄했다. 1. 금성께서 아직 동궁으로 계실 무렵, 마데노코오지도노가 동궁전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미나모토노 토모치카가 출사하고 있던 방에 볼일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논어의 서너 군데를 펼쳐 놓고, "방금 동궁께서는, '자줏빛이 붉은빛의 자리를 빼앗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59)는 문구를 보시고자 하시어,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발견이 되지 않으니, 이 문구를 찾아보라는 분부가 계셨다"고 한다. "그것은 제17양화 제18에 있을 겁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 되었구나. 고맙다"고 좋아하시며 가지고 가셨다. 이런 정도는 아이들이라도 별로 큰 일이라 생각지 않지만, 옛날 사람들은 조그마한 일에도 자찬을 했던 모양이다. 고토바인께서, "와카에 소매와 소맷자락을 한 수에 함께 넣어 지으면 안 되는 것일까"하고 하문하신 일이 있었는데, 사다이에 경이(고킨슈)의 예를 들어, 소맷자락과 소매를 한 수의 와카 속에 끼워 넣어서 부른 노래를 외며, "그러한 것이 있사오니 무슨 지장이 있겠습니까?"라고 상주했는데, "기에 임하여 얼른 그 적절한 예를 가진 노래를 외고 물으심에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길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다행한 일이었다. 행운인 것이다"라고 굉장한 일처럼 기록에 남기고 있다. 또 구조 고레미치 공의 탄원장에도 역시 대단치도 않은 제목을 들어 자찬한 대목이 있다. 1. 교토의 히가시야마에 있는 죠자이코인의 범종에 새겨진 명문은 스가와라 아리카네 경의 초고로, 후지와라 유키후사가 정서한 것이다. 그 명문이 바로 주형에 옮겨지려고 할 때, 이 사업을 맡은 법사가 그 초고를 내어 보이는데, '저녁 때 구름 같은 꽃으로 둘러싸인 절의 종소리는 백 리 밖에까지도 멀리 전해진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요토인(한자운의 이름)을 밟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운이 다르기 때문에 백 리란 틀린 것이리라"고 말했다. "잘 보여드렸습니다 그려. 모두 저의 공입니다"라고 필자인 아리카네에게 통지를 했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스교라고 고치시기 바랍니다"라고 회답이 왔다. 그런데 스교라고 고치는 것도 이상하다. 혹시 스호라는 뜻인지. 하여간 분명하지가 않다. 스교라는 말이라면, 그것은 너댓 걸음을 뜻하여, 얼마 멀지 않다는 뜻이 된다. 역시 종소리가 멀리 들린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이 된다. 1. 여러 사람이 함께 동반하여 히에이잔의 세 탑(동탑, 서탑, 황천)을 순례한 일이 있었는데, 요가와의 죠교도 안에 류게인이라고 쓴 헌 현판이 있었다. 이 절의 중이 아주 심각하게 사리(서열가의 이름)인지 고제이(서열가의 이름)인지, 어느 쪽의 필적인지 알 수 없고,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고 전해진다는 말을 하자 그 자리에서, "고제이라면 뒷면에 서명 낙관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바, 뒷면에 먼지가 쌓여 아주 벌레집이 되어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을 잘 털고 닦아서 살펴보니, 고제이의 관위 서명과 낙관, 연호까지 분명히 보였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매우 감격했다. 1. 나라다지에서 도겐 스님이 강의를 했을 때, '팔재(불도의 수행을 방해하는 여덟 가지 재난)'라는 말을 잊어서, 가까이 앉은 제자들에게 "생각이 나는가, 기억하고 있는가"고 물었더니, 아무도 몰라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쪽 방에서 "이것 이것이 아닙니까"라고 출반주하여 스님이 몹시 탄복하시었다. 1. 겐죠 승정을 모시고 '가지코스이(원래는 부처님께 기도를 하고 정화수를 올리는 일을 이르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궁중의 진언원에서 행해지는 행사를 가리킨다'의 의식을 보게 되었는데, 그 의식이 다 끝나기 전에 승정께서 돌아가시는데, 경호무사들이 경비하는 초소까지 나갔는데도 모시고 온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근방의 중들을 시켜서 찾아오라 하셨으나, "모두 같은 모습의 중들이 너무도 많아서 찾아낼 수가 없다"고 하며,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아, 거 참 야단이군. 당신이 좀 찾아다 주시오"라고 말씀하시어, 다시 들어가 이내 모시고 온 중을 데리고 나왔다. 1. 2월 15일, 달이 밝은 밤이 이슥한 후, 센본노샤카도에 참배하고 살짝 뒤로 들어가서 얼굴을 가리고 설교를 듣노라니까, 품위가 고상하고 종용한 여자가, 그 모습으로나 기품으로나 특별한데,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내 무릎에 바싹 다가앉았다. 옷에서 풍기는 향내가 내 옷에까지 옮겨질 정도로 바싹 다가앉았기에 좀 어색해져서 약간 비켜 앉았는데, 그 여인은 더욱 바싹 다가오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그 모습이 겸연쩍어 벌떡 일어나서 나오고 말았다. 그 후, 어느 어전에 출사하는 나이든 여관이 농담을 하다가 문득, "당신은 정말로 멋이 없는 사람이라고 내려다보았던 일이 있었죠. 매정하신 분이라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는 걸요"라고 하기에, "정말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군요"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의 내용을 후일에 듣게 되었는데, 그날 밤, 법화 강의를 들으러 가던 날, 방 안에 있던 어느 부인이 나를 발견하고 시녀의 한 사람을 단장시켜서 내 곁에 내보내시며, "잘되거든 말을 걸어 보아라. 그리고 그 상황을 보고하라. 매우 흥미로울 일이로다"라고, 계략을 꾸몄던 일이라고 한다. 제239 단 명월은 8월 15일과 9월 13일인데, '누수(28관의 하나로 서쪽 7관 중 제2관을 이른다)'라고 한다. 이 성수는 청명하기 때문에 달을 상완하기에 적당한 밤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제240 단 남의 눈을 피해 가며 만나러 가는 연정의 길은 보는 눈이 많아서 두렵고, 또 어둠 속에 숨어서 서로 만나고 싶어도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데도 기어이 만나고자 하는 그러한 연정이야말로 깊고 깊어, 사랑에 젖은 대목대목을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한데 비해서) 부모 형제가 허락하고 일방적으로 맞아들여 한 집안에 살게 하는 것은 매우 겸연쩍은 일임에 틀림없다. 세상을 살아가기에 역부족인 그런 여자가, 어울리지도 않는 나이 많은 법사에게나, 또는 비천하더라도 돈 있고 부유한 점에 마음이 끌려, "옆에서 누군가가 권유해 준다면^5,5,5^" 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이쪽이나 저쪽이 모두 구미에 맞도록 이른바 중매쟁이 근성으로 치켜세워 놓는 바람에 알지도 못하고 말려지지도 않은 여자를 맞아들인다는 일 따위, 정말로 싱거운 노릇이다. 그러한 여자의 경우, 무슨 말을 해서 이야기를 꺼내겠는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의 괴로움도, 남의 눈을 피해 가며 그리움을 참고 가시밭길을 걸어온 고생 따위를 서로 회상해 가며 이야기하는 정서가 그칠 날이 없다는 그러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사에, 제3자인 딴사람이 중매를 들어서 결합되는 일에서는 무척 기분에 맞지 않는 일도 많으리라. 그것이 신분이 높고 격조 있는 여자라 하더라도, 신분이 낮고 용모도 흉하며 나이가 들은 늙은 남자가 생각할 때. '이렇게 비천한 나 같은 놈에게 아까운 여자의 일생이 짓밟히는 일이 있겠는가'라고 여자에게 대해서도 경멸하는 기분이 생기기도 하고, 또 자신은 여자와 마주앉아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지고 열등감도 생길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아^36^예 멋거리는 찾아볼 수도 없고 싱겁기만 할 것이 아닌가. 매화의 향기가 그윽이 풍기는 봄날 밤, 으스름한 달빛 아래 서성대면서, 또는 궁전 뜰풀에 맺힌 이슬을 헤쳐 가면 떠오르는 새벽달이 차가운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신상에 회상되는 추억을 더듬어 볼 만한 소재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남녀의 애정이라든가 연정 따위는 아^36^예 포기하고 원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을 것이다. 제241 단 만월은 둥글지만 잠시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곧 기울어지고 만다.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도 변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도 없다. 병이 위중해졌다가도 회복해서 다시 삶을 영위할 사이도 업이 임종은 박두해 온다. 그러나 아직 병세가 위중하지 않고 죽을 것 같지도 않을 동안에는, 언제까지나 변화 없이 평범하게 삶을 계속하리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어서, 살아 있는 동안에 많은 일들을 성취하고 마음 편안하게 불도를 닦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병이 들어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소망하던 일들은 하나도 성취된 것이 업고 아무 보람도 없이 느껴지며, 지난날의 나태하던 일을 후회하고, 이번에 만을 다시 회복해서 목숨을 이어가게 된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저 일도 부지런히 성취하겠다고 마음에 다짐하며 기원을 가지지만, 그대로 병이 위중해진다면 정신을 잃고 죽어 버리고 만다. 세상에는 이러한 유형의 사람만이 있는 듯싶다. 이러한 것을 누구나 우선적으로 마음에 새겨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망을 이룩해 놓고 난 뒤에 한가한 몸이 되어서 불도를 닦으려고 한다면, 그 소망이 언제까지나 그칠 줄을 모르니 어찌하겠는가. 환상처럼 덧없는 일생 동안에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모든 소망은 모두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어떠한 소망이 마음 속에 일어나거든 그것은 부질없는 망상이구나 하고 생각하여, 무엇이건 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을 즉각 내버리고 불도에 향할 때, 장애가 없어지고 소행도 없어 심신이 언제까지나 여유있고 평온해지는 것이다. 제242 단 언제까지나 인간이 역경과 순경에 쫓겨다니는 것은, 다만 고와 낙 때문이다. 낙이란 누구나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낙을 그지없이 좇게 마련이다. 그 즐겨 바라는 것의 첫째는 이름이다. 이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행실이 훌륭하다고 하는 명예와, 학예가 뛰어나다고 하는 명예인 것이다. 둘째로는 색욕이고, 셋째로는 식욕인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이 세 가지보다 더한 것은 없다. 이는 인간 세상의 진정한 사리를 거꾸로 보는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이어서, 지저분하고 복잡한 사태를 야기한다. 부질없는 욕망을 바라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제243 단 (내가) 여덟 살 나던 해, 부친에게 묻기를, "부처님이란 어떠한 것일까요"라고 했더니, 부친은 "부처는 사람이 된 것이란다"라고 했다. 또 묻기를 "사람이 어떻게 해서 부처가 된 것일까요"라고 했더니, 부친은 또 "부처의 가르침을 얻어서 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문답은 계속되었다. "가르치신 부처님은 누가 가르치셨나요?" "그것도 그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되는 거이다." "그럼 맨 처음에 가르치신 첫째 부처님은 어떤 부처님인가요?" "글세,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땅 속에서 솟아났을까?" 부친은 이렇게 대답하며 웃으셨다. 그 뒤 부친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꾸만 추궁을 당하다 보니 대답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지요"라며 함께 흥겨워했던 것이다. [ (주석) 1) 헤이안 시대의 여류 가인. 2) 가마쿠라 시대의 가인. 문장가. 3) 12개월을, 매달 특수한 경치 등을 묘사하고, 행사를 기록한 책이름. 4) 황태후의 이름. 5) 유명한 가인. 6) 교토의 한 지명. 7) 교토에 두 군데 있는데, 늙은이와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자선 시설로서 설치되었다가 나중에는 단순한 사원으로 되었다. 8) 가마쿠라 말기의 가인. 혁신적 기풍이 있어서 체포되어 유배되었다. 9) 후지와라 모리차카. 종 3품이었던 스님. 10) 야마토 시대의 한 호족으로, 음양도를 가학으로 하던 집안의 자손. 11) 거북의 등껍질을 불에 구워 그 형상으로 점을 치는데, 그 형상을 이르는 말. 12) '무슨 식의^5,5,5^"라는 말은 옛날에도 있었다는 이야기. 13) 다카쿠라 천황의 황후. 14) 헤이안 시대의 여류 시인. 6가선. 36가선의 한 사람으로 지목된다. 절세의 미인으로서, 후세에까지 미인의 대칭으로 쓰여지고 있다. 15) "고마치소스이쇼"라는 한문 서적. 16) 당시의 유명한 한학자. 17) 명승 구카이의 시호. 18) 당나라 현장이 인도에 갔을 때의 기록. 19) 동진의 중 법현이 인도에 갔을 때의 기록. 20) 당나라 고종이 장안에 건립한 큰 절. 21) 옛날부터 궁중에 중들이 모여서 기도를 울리던 곳. 22) 도바 천황의 유모. 23) 가마쿠라 막부의 집정. 독재 정권을 확립했고. 불도에 귀의했는데.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각 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민정을 살폈다고 한다. 하치노키라는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4) 아키타성의 성주, 권세가 한창이었으나 참소를 받아 죽음. 25) 정신이 이상해지지 않았을 때. 26) 나라에 있는 도다이지의 승병이 조정에 강경한 상소를 하기 위해서 상경할 때에도 도다이지의 진수신인 다무케야마 하치만구에 있는 신여를 메고 상경한다. 그리고 교토에 체재중에는 도지에 그 신여를 안치해 둔다. 그 때문에 겐지 출신의 공경들은 몸을 사리고 조정에 출사도 하지 않는다. 일이 모두 끝나고 신여가 돌아갈 때, 신여를 따라 얼마 동안 지키며 열을 지어 전송하게 되어 있었다. 27) 후지와라 긴토가 지은, 의식, 의전의 고실을 기록한 책의 이름. 28) 좌대신이었던 미나모토노 다카아키라가 지은, 의전의 기록을 모은 책의 이름. 29) '요메이노스케'라는 말은 "겐지모노가타리"에 나오는 말이나, 그 뜻이 매우 난해하여 아무도 잘 알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명목만 있고 그 실제의 직무나 직책도 알 수 없는 관직의 명칭이다. 30) '요메이노사칸'이란 법제의 연구 자료를 모아서 유별한 것. 31) 히에이잔에 있는 엔랴쿠지라는 절이 3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맨 깊숙한 곳을 요코가와라고 한다. 32) 이 법사의 전기는 미상. 33) 중국에서는 음조를 여율, 즉 음양의 두 가지 음률로 나누고 '여'를 정악으로 사용한다. 34) 율여의 율. 35) 천황이 평상시 기거하는 궁전. 36) 대례를 거행하는 궁전. 37) '하승'은 국왕이 참배할 때 수레에서 내려 걸어가는 경계를 표시하고, '퇴범'은 범부를 물리치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38) 교토의 고조에 '스쿠나히코'라는 신을 모신 신사로, 의약. 금기 등을 법으로써 창시했다고 하는 신. 39) 예부터 왕성 진호의 영산으로 알려져 있고, 천태종의 총본산인 엔랴쿠지가 있는 곳이다. 40) 히에이잔의 개조. 41) 원래의 천항께 직소하는 것을 말하는데, 후에는 신불께 맹세하여 거짓이 없다는 것, 또는 약속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록하는 일. 그 글을 기청문이라 함. 42) 예로부터 어떠한 새를 이르는 말인가에 대해서 문제가 되어 있으며, 일설에는 '뻐꾸기'라는 말도 있다. 43) 가마쿠라 막부의 집정인 호조 도키요리가 건립한 절인데. 후에도키요리 공이 은서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44) 오사카에 있는 절. 45) 여섯 시에 독경을 하고 염불을 하는 법당. 46) 음률의 기본으로 삼는 음조. 47) 고사가 천황이 가메야마 지방에 건립한 절. 48) 게비이시쵸의 하급 관리로, 원래는 죄가 있어서 체포된 자가 사면되어 경호원으로 채용된 자들이 축제의 행렬에 참가한다. 그 소매나 치마바지에 장식을 달고 참가했는데. 그 장식을 말한다. 49) 고후카쿠사 천황의 중궁. 50) 광명진언 중에 있는 경문. 51) 후지와라 모토이에. 52) 뛰어난 학자로, 법제에도 밝고, 그 자손이 많았는데 모두 준재였다고 한다. 53) 헤이케 일문의 영화, 몰락, 멸망을 묘사하고, 불교의 인과관, 무상관을 기조로 해서 일본어와 한문을 섞어 가며 대화를 삽입한 산문체의 서사시. 일본 군기와 소리 등, 문학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했다. 54) 미나모토노요시토모의 여섯째 아들. 형인 요리토모를 도와 요시쓰네와 협력해서 '헤이케'를 멸망시킨 공이 지대했으나, 형의 의심을 사서 죽음을 당했다. 55) 비파를 타고 소리를 창하는 중. 이 단에서 보이는 "헤이케모노가타리"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56) 염불을 골똘하게 외면 반드시 극락정토에 환생한다는 설인데, 즉 진심으로 외는 염불은 한 번 외어도 족하다는 말이 된다. 이에 반해서 염불을 많이 외어야 한다는 설은 '다념의 염불'이라고 한다. 57) 교토의 기타노라는 곳의 동북쪽에 있는 석가를 본존으로 하는 대보은사의 불당을 센본노샤카도라고 불렀고, 이곳에서 염불을 외는 법회가 행해졌는데, 이 행사를 말한다. 58) 서도에 유명한 집안. 59) 자줏빛은 간색 가운데 아름다운 것. 붉은빛은 정색. 간색이 정색을 밀어내고 도리어 정색인 듯이 나타내는 것. 곧 간신이 임금께 아첨하여 현신을 밀어내는 것이다. [ (해설) "도연초"의 성립, 내용과 저자의 인격 구성에서 표현된 문장 "도연초"의 편집에 대해서 일설로는 저자가 죽은 후, 그 제자인 이마카와 료순이라는 자가 사람을 보내어, 자기가 살던 초암의 벽에 도배지 대용으로 쓰인 반고지 등을 뜯어 모아서 꾸민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학구적인 학자들의 조사로 "도연초 고사본"을 분석한 결과, 저자 자신이 아니고는 편집할 수 없는 성질의 퇴고를 가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러, 전술한 바의 전설은 재고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또 현재 그 전모로 밝혀진 243 단의 분량을 가진 "도연초"의 형태로 볼 때, 그 시대적인 고증이, 문장의 내부 징증으로 보아 1330 년경, 그러니까 일본사로는 고다이고 천황 시대, 저자의 나이 50세 경이었을 때라고 한다. 물론 약 1 년여 동안에 이 글이 편집되었다고 추정되기는 하지만, 전문을 차곡차곡 써 내려간 것은 아니다. 수시로 써 놓은 수상을 그의 인생관에 따라 통일적으로 편집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30세에 출가한 저자가 그 무렵부터 낙서의 성격을 띤 문장을 약 20 년에 걸쳐 완성했으리라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 그 문장의 배열을 볼 때, 같은 제목의 글이 일군을 이루고 한곳에 모아져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원칙적으로 글의 추이는 실로 미묘한 고도의 연상에 의해서 이어져 있지만, 때로는 일변해서 기분 전환도 감행하고 있다. 이러한 수단으로 엮어지는 교묘한 연쇄의 분위기가 연가의 그것과 같은 취지를 풍기고 있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저자가 렌가하이카이(유머를 주로 한 연가)에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상, 하 2권의 분할이다. 상하권의 분량은 상권이 136 단 하권이 107 단인데, 이것은 편의상 임의적으로 나눈 것이 아니며, 상하권을 평행으로 나란히 읽어 보면, 상권과 하권 사이에 같은 감동의 기복의 파상이 평행되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동류의 사상이 나란히 놓여진 경향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출가할 즈음, 물론 인생을 달관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40을 넘고 50에 이르러 "도연초"를 완성할 무렵에는 어느 정도의 체관을 얻은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하나의 '길'에 자기 자신을 투입하려고 절망하고 그 길을 꾸준히 구했다. "도연초"의 문장 안에서도 '길'이라고 하는 내용에는 불도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 이외의 전문적인 학예의 길을 뜻하는 경우도 있어, '길'을 아는 자의 기쁨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며, 그 한 가지 '길'에 자기 자신을 살리기를 갈망하여 끊임없이 길을 찾아 정진한 것이다. 그 궁극의 경지에 오입하여 안주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으나, 좀처럼 그 소망은 만족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가 상식이 풍부했으며 두뇌가 명석하여 화한의 학식에 통하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어, 하나의 '길'에 철두철미 몰입하지 못하게 된 것이리라. "도연초"는 50세를 넘은 저자의 심경을 반영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염원한 궁극의 오달을 얻지 못했어도 그의 이성으로 알아낸 것, 그의 지성으로 판단한 것, 그의 감성으로 느낀 것 등이 그의 내부에 존재하고, 그것이 체험을 통해서 납득된 결과, 각각 그들의 뜻이 자각을 환기하기에 이르러, 일군의 수상집이라는 형태로 뭉쳐지고 정착된 것이 "도연초"라고 할 수 있으리라. 결국 이 정도가 자신의 정체라는 것을 저자가 진정한 체관으로 귀결시키게 된 문학적 소산이랄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문장에 대해서 부언한다면 간결하고 함축성이 있으며, 표현을 애써 잡아늘인 흔적이 한 곳도 없다는 점도 특징의 하나가 된다. 그 문장 표현의 특징은 와카와 한학 두 가지 방면의 소양이 근본을 이루고, 두 가지가 간결과 함축으로 조화를 유지하면서 일체가 되어 표현된 문학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이 해설은 "도연초"를 일본 고전 문학의 본질로서 20여 년간 연구를 거듭한 가와세 가즈마 씨 교주의 "도연초" 해설을 간추려서 번역한 것임을 밝혀 둔다. 역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