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필 문학의 대표작 도연초 전2권 중 제1권 지은이: 요시다 겐코 옮긴이: 송숙경 펴낸곳: (주)을유문화사 [ (저자 소개) * 요시다 겐코(C. 1283--1352) 일본의 수필가, 가인, 속명은 가네요시, 와가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63세 때 자신이 골라 엮은 (겐코 법사집)에 285수, (속 천재 와카집) 등에 16수의 작품을 남겼다.(도연초)는 그가 50세 무렵에 완성한 수필로, 하나의 '길'에 자기 자신을 투입하려고 절망하고, 그 길을 찾아 정진한 심경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 [ (옮긴이 소개) * 송숙경 전북 군산 출생, 경성관립사범 여자연습과 졸업, 휘문출판사 (한일사전) 편찬위원, (태양신문)(일어판) 편집위원 역임 편저: (한한일영 현암소사전) 역서: (젊은이를 위한 인생론), (문제아,이상아), (부하를 움직이는 화술), (대멍청이) [ (머리말) 요시다 겐코의 (도연초)는 일본 중세(1330 년 전후)문학의 대표적 작품이고, 에도 시대 초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독자를 차지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고 있는 보배로운 일본의 고전이다. 그러기에 메이지 이래 귀중한 고전의 교재로서 교과서에 널리 채용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고전 문학 작품의 정화라고 일컬어지는 (도연초)를 번역함에 있어서 벅찬 사명감과 동시에 두려움에 흡사한 주저마저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어로서, 아니 일본 고전의 특질을 여실히 구사한 이 문장이 구구절절 명문이라 하지만, 우리말로 옮겨 놓고 보니 그 문구가 나의 천박한 어휘 속에서는 잘 대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 뜻하는 바를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주저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 작품의 번역은 오랜 세월을 두고 나의 내적인 욕망의 대상이었으며 동경이었다. 우리말에 멋이라는 말이 있다. (도연초)는 그 첫마디에서 끝까지 한 구절도 멋 아닌 게 없고, 각 단은 멋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멋이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감동으로 바뀌고, 그 감동을 다시 멋으로 바꾸어(우리말로 바꾸어)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간신히 터지지 않도록 부둥켜안고 살아온 셈이다. 물론 터뜨려서 좋을 기회가 아니었고, 터뜨릴 수 있는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허망한 꿈인 양 혼자서 그 멋에 도취되어 왔다고나 할까. 그 작업이 우연한 기회에 얻어지고, 졸렬한 문구 속에 그 원작의 멋을 담아 보게 된 것은 우선 희열에 가까운 나의 심정이기도 하다. 다만 민족 감정을 초월한 하나의 고전으로 그 글의 뜻을 똑바로 전달하려고 노력은 했으나, 흡족하지 못한 바를 자인하는 한편, 널리 독자 여러분의 질정을 바라는 바이다. 끝으로 62, 67, 135, 144, 158--160, 219 단은 그 내용이 일본의 언어, 역사, 풍습, 고실 등의 '풀이'여서,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하므로 부득이 생략하였음을 밝혀 둔다. 역자 씀 [ 상권 서단 이렇다 할 볼일도 없어서 무료하기도 하려니와 서글퍼질 만큼 쓸쓸한 감회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벼루를 향해 가슴에 떠오르는 이런 일 저런 일들을 두서없이 적어 내려가노라면 야릇하게도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복받쳐 올라서 미칠 것만 같다.(1) 제1 단 각설하고, 이왕에 이 세상에 태어났을 바에는 누구나 '아아, 그렇게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5,5,5^ 하고 부러워할 일이 오죽이나 많으랴, 우선 첫째로 천황의 자리를 바란다는 것은 매우 황공무지한 일이려니와, 황족 분들의 자자손손까지도 여느 사람들과는 인종이 다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고귀하게 태어나는 일은 무슨 까닭일까.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인 섭정이나 관백(옛날 일본에서 천황을 보필하여 나라를 다스리던 중요한 직위)의 집안은 물론, 보통 재상가라도 시종이나 경호무관을 하사 받는 지체는 부럽기 그지없다. 그 아들이나 손자의 대에 내려가면서 설사 관위가 낮아진다 하더라도 그런대로 인간의 품위나 고상한 기품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이하의 지체 낮은 사람이 제 나름대로 요행히 출세해서 내로라고 으스대는 일은, 자신은 장하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정말 딱하고 뇌꼴스럽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세상에 중처럼 선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처지도 없으리라, "사람들로부터 나무 끄트러기처럼 여겨지고 있네요"라고 세이쇼나곤(2)이 (마쿠라노소시)(3)에 쓰고 있는 것도 생각해 보면 과연 그럴듯한 일이다. 그러한 승려에게 때로는 어울리지 않는 권세가 부여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중이 권세가 있다고 해서 아무리 뽐내 보았댔자 별로 신통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조가(4) 스님의 말씀대로, 세간에 명성이 자자하다는 것 자체가 불제자인 중들에게는 오히려 괴로운 일이어야 하며, 부처님의 계율과도 위배되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외곬으로 둔세 수행을 하는 중을 보면, 경건하게 여겨져 '저렇게 되고 싶구나!'하는 생각도 일지 않겠는가. 인간은 뭐니뭐니해도 용모나 풍채가 뛰어나게 훌륭하기를 누구나가 바랄 것이다. 말하는 모습도 역겹지 않고 애교도 있으면서 수다스럽지 않은 그런 사람과는 언제까지나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런데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이 뜻밖에도 어이없는 본성을 드러내게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으리라, 또, 신분이나 가문 그리고 용모 등은 타고나는 것이니 하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마음은 현명하고 슬기롭게 하려고만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용모나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도 학문이 없고 보면 근본이 비천하고 얼굴이 상스럽게 생긴 인간들과 동렬로 보여서 보잘것없는 처지로 밀려 버리고 말게 되는 것은 어쨌든 간에 유감스러운 일이다. 될 수만 있다면 정식 학문, 즉 한학을 배우고 한시를 지으며 와카(5), 음악 등 예능에도 통달하고, 또 조정의 고실에도 정통하며, 정무나 의식 등에서 여러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일이 무엇보다도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물론 필적도 졸렬하지 않아 술술 써 내려갈 수 있고, 목소리가 청아해서 여러 사람의 선창을 맡아 남들을 탄복시키면서도 한편 약간의 술을 즐길 줄 아는 일이 남자로서의 매력이라고 하겠다. 제2 단 옛적에 훌륭했던 성왕 성대의 정치를 돌이켜보고 연구해 보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백성이 걱정하고 나라가 손상되는 일 따위는 아랑곳없이 호화 극치의 생활을 즐기는 것이 몹시 장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으스대며 거만하게 구는 인간들이야말로 매우 한심스러운 무리라고 생각한다. "의관에서 승마나 탈것(수레 따위)에 이르기까지 있는 것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라. 결코 미려함을 탐내어서는 안된다"고 구조 모로스케(6) 공은 그 유계에서 경고하고 있다. 준토쿠인(7)이 궁중 생활을 이모저모 기록한 (김비미쇼)(8)에도 "천자께서 입으실 옷은 허술한 것이 좋다"고 씌어 있다. 제3 단 만사에 뛰어난 사람이라도 사랑이나 그리움의 정취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 않은 사나이는 몹시 부족된 감이 있어서, 마치 아름다운 옥잔의 밑이 빠진 것같은 기분이 들 것이 틀림없다. 밤이슬, 찬서리를 맞으며 실의를 달래어 정처없이 방황하기도 하고, 부모의 꾸지람이나 동네 사람들의 뜬소문 따위에 마음을 쓸 여유도 없이 이런가 저런가 사색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항시 혼자 쓸쓸히 누워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그러한 일들이 오히려 즐겁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호색으로 지새운다는 것도 아니며, 한편 여자가 볼 때 친밀감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그런 일이 남자로 태어난 행복이 라고나 할까. 제4 단 사람은 임종할 때의 일을 언제나 마음에 두고 불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격조 높고 품위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제5 단 불행으로 인해서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사람이라면(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속세를 떠난다는 그러한 형식적인 방법으로 불문에 들어가는 식이 아니고0 기척도 없이 문을 닫아 걸고 속세에 희망 따위를 걸 생각도 버린 채 초연히 속세와 인연을 끊고 나날을 살아가는 그런 처세가 좋다고 여겨진다. 아키모토 주나곤(9)은 "유배지의 달이 아름답기는 해도 죄인의 처지로 보면 오히려 슬프기만 하다. 죄인이 아닌 몸으로 저 달을 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말했다는데, 과연 그렇게 생각이 듦직도 하다. 제6 단 내 몸이 고귀한 신분이라면 물론이고 비천한 신분이라면 더욱 자식이란 것은 없는 편이 좋다. 가네아키라(10) 친왕, 구조 고레미치, 하나조노 아리히토 등 모두가 자기의 일족이 단절되기를 원하고 계시다. 소메도노 요시후사(11)도 "자손은 없는 편이 좋다. 자손이 못나고 용렬한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는 대목이(오카가미) (12)에 씌어 있다. 쇼토쿠(13) 태자도 생전에 자신의 능을 만들 때, "이곳을 끊어라, 저곳도 잘라라. 자손이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서니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제7 단 묘지를 뒤덮인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이 사라질 줄 모르고 언제까지나 그대로 반짝이고 있으며, 화장터에서 연기가 흩어질 줄도 모르는 채, 인생의 목숨이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머물러 살아 남는 그러한 것이라면, 아마 애련의 정서 같은 것도 없으리라, 이 세상은 무상하다고 하나 바로 그 무상한 데가 좋은 것이 아닌가. 이 세상의 생물을 보더라도 사람만큼 수명이 긴 것도 없다. 하루살이는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을 다 못 기다리며, 한 여름의 수명뿐인 매미는 봄도 가을도 알 턱이 없지 않은가! 에누리없이 춘하추동한 해를 살아가는 것만도 더없이 흐뭇한 일이다. 아쉽고 섭섭하다 생각하면 천년을 산다 해도 하룻밤의 꿈과 같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살아 남지 못할 이 세상에서 보기 흉하게 노쇠한 자기의 몰골을 보아서 무엇하리. 명이 길면 망신살이 뻗치게 마련이다. 길어도 40을 다 못 채우고 죽는 것이 보기 싫지 않고 적당하다고 하겠다. 그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나면, 염치없이 보기 흉한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 끼여들기를 원하고, 서양이 지는 황혼의 주제에 자식 손자를 귀엽다 어루만지며, 그들이 번영하는 장래를 볼 때까지의 수명을 바라며 덮어놓고 속된 욕심을 탐하는 마음만 깊어져, 인생의 정취나 세상의 인정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제8 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데는 색욕보다 더한 것이 없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향기 따위는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일시적으로 의상에 훈향된 것, 금방 날아가고 바래면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코를 간질이는 좋은 향기는 반드시 마음이 도취되는 것이다. 구메(14)의 선인이 빨래하는 여인의 걷어올린 하얀 종아리를 보고 신통력을 상실했다고 하는 데, 진정 수족이나 살갗이 매끈하게 기름지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것은 살아 있는 싱싱한 매력이기 때문에 선인이라 할지라도 그 아름다움에 정신이 매혹되어 신통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제9 단 여자에게는 머리털이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남의 눈을 끄는 매력이리라. 그 사람의 신분이라든가 성격 등은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말씨만 들어도 짐작할 수가 있다. 대체 여자란 언제 어떠한 경우,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모습에서도 남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당황하게 하는 것이어서, 모든 여자들이 경계하는 생각 없이 마음을 턱 놓고, 잠이 들지도 않는다거나, 자기 몸이 아깝다고 여기지도 않는다거나, 참을 수 없으리라고 여겨지는 일에도 잘 참고 견딘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색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데서 나오는 소행인 것이다. 실로 애욕의 본능의 근원은 뿌리 깊고 단단하다. 여섯 가지의 자극, 곧 육진에서 생긴다고 하는 욕정은 많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런 것에서는 아쉬움 없이 깨끗이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한 가지 애욕, 즉 색정의 번민만은 노약과 현우의 구별없이 다 같이 피하기 힘든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의 머리칼로 꼰 밧줄은 능히 큰 코끼리라도 꼼짝 못하게 잡아맬 수가 있으며, 여자가 신던 나막신으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가을철에 암컷을 그리는 수사슴이 반드시 몰려온다고 전해져 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꾸짖고 두려워하고 삼가야 할 것은 이 번뇌인 것이다. 제10 단 사람이 사는 주택의 꾸밈새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비록 나그네길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즐거운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정취를 느끼는 뜻있는 사람이 안온하게 살고 있는 곳에는 스며드는 달빛마저도 한결 다정스럽게 느껴지는 법이다. 두드러지게 호사스럽고 대단하지는 않으나 정원의 수목도 어딘지 모르게 새삼스럽지 않은 아취가 풍기고, 자연스럽게 자란 뜨락의 풀포기에도 정취가 담겨져 있으며, 툇마루나 대오리 울타리도 제법 쓸모있게 배치되어 있는데다, 놓고 쓰는 세간들도 고풍이 감돌아서 차분하게 느껴지는 일 따위는 참으로 아늑하고 품위 있는 정경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목수들이 공을 들여 아름답게 꾸민 저택에다 당나라에서 들여온 것이나 야마토의 진귀한 세간들을 늘어놓고, 뜰에 심은 정원수까지도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공적으로 가꾸어져 있는 것들은 보기에도 번거로울 뿐더러 깊은 실망을 안겨 주게 된다. 그렇게까지 해놓고 대체 언제까지 살아 보겠다는 것일까. 그야말로 순식간에 연기로 화해서(타서) 잿더미로 변하고 말수도 있을 것을^5,5,5^ 하고, 흘낏 보는 순간 느끼게 된다. 대개는 주택의 모습으로 그 주인의 면모를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고토쿠다이지(15)의 사네사다의 바깥채에 솔개가 날아들지 못하도록 새끼줄을 이리저리 쳐놓은 것을 사이교(16) 법사가 보고, "솔개가 날아든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괴롭겠는가. 이 어른의 아량이 겨우 그 정도였던가"하고 그 후로는 문후도 가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 후 아야노코지노미야(17)가 계시는 고사카도노 지붕 위에 언젠가 새끼줄을 쳐 놓으신 것을 보고 문득 저 고토쿠다이지의 일이 생각났는데, 이건 또 어이없게도 "까마귀가 떼를 지어 날아와서 연못의 개구리를 잡아먹기 때문에 개구리를 불쌍히 여겨서 하신 일"이라고 누군가가 귀띔을 해주어, 과연 갸륵하신 처사라고 생각했다. 도쿠다이지에도 무슨 사연이 있었으리라. 제11 단 10월의 어느 무렵, 구루스노라는 곳을 지나서 한 산마을을 찾아간 일이 있었는데, 아득하게 이어지는 이끼 낀 오솔길을 따라 깊숙한 곳에 고요하게 자리를 잡은 암자가 있었다. 나뭇잎으로 뒤덮인 물받이 대통에서 방울지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외에는 그냥 고요하기만 할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청수를 긷는 샘가에 시렁이 있고 그 곳에 국화꽃이나 단풍잎이 꺾여 흩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역시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하고도 살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깊은 감회에 젖어 두리번거리다보니 정원 저쪽에 큰 밀감나무의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데, 그 주위에 단단히 울타리가 쳐진 것이 보여, 감상에 젖어들던 나는 그만 흥이 깨져, '이 나무가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5,5,5^'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제12 단 기분이 잘 맞는 사람과 차분히 마주앉아서 흥취가 있는 이야기건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건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달랜다는 것은 즐겁고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기분이 맞는 사람도 드물려니와, 조금도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상대를 하는 것은 혼자 고독하게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심정이 되리라. 또 서로 주고받는 말은 어떤 일이건 간에 과연 그렇구나 하고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손 치더라도, 약간 의견이 다른 사람이 "나는 그렇게는 생각지 않는다"는 식으로 논쟁하고 "그러니까 이렇다"라고 반발도 한다면,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쓸쓸한 고독감 따위도 약간은 위로가 될 듯도 싶으나, 실은 약간의 불평을 말할 때에도 자기와 의견이 같지 않은 사람은 보통 막연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동안은 그런 대로 좋겠지만, 진실로 마음이 맞는 벗과 비교한다면 큰차이와 간격이 있음이 분명한 일이어서, 어떻든 간에 마음은 쓸쓸할 따름이다. 제13 단 홀로 등잔불 아래 책을 펼쳐 놓고 옛사람을 벗으로 삼는 것은 각별한 위로가 되는 일이다. 그 책이란, 명문을 모은 책의 감명 깊은 대목들, 백씨 문집, 노자의 명언들, 장자의 제편 등이고, 또한 일본 학자들이 쓴 것도 옛 시대의 것은 정취가 있는 것이 많다. 제14 단 와카라는 것은 한시문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이다. 매우 비천한 두멧구석 나무꾼의 행동도 '와카'로 노래하면 순박한 정서가 어리고. 무시무시한 멧돼지도 '싸리꽃을 깔고 누웠다'고 표현하면 부드럽고 풍류스러워진다. 요즈음의 와카는 어떤 대목만이 멋있게 표현되었구나 하는 것은 있어도, 옛날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어떨는지. 언외에 스며드는 여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것은 없다. 와카를 짓는다는 일만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다고도 하지만, 과연 그럴는지^5,5,5^ 지금도 옛날 그대로 쓰고 있는 문구나 노래의 수식어는 옛날 사람들이 쓴 것과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옛것은 역시 순수하고 부드럽고 가체가 정결하며 정취 깊게 느껴진다. 특히 "료진히쇼(당시의 가요집)"의 문구는 한층 정취 깊은 것이 많은 듯하다. 옛날 사람들의 것은 무심히 읊어 내린 듯한 말씨라도 모두가 희한하게만 들리는 것일까. 제15 단 아무데라도 좋다. 잠시 길을 떠나 여행을 하면 흐릿한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하다. 객지의 이곳저곳, 특히 시골이나 두메산골 같은 데를 기웃거리노라면 모두가 낯설고 생소한 일뿐이다. 서울에 가는 인편을 구해서 편지도 보낸다. "그 일과 또 저 일도, 이왕 하는 김에 잊지 말고^5,5,5^" 하는 식의 부탁도 흥미롭다. 그런 객지에서는 모든 일에 한결 마음이 쓰인다. 지니고 다니는 소지품마저도 좋은 물건은 더욱 돋보이고, 무슨 재간을 지닌 사람이거나 잘 생긴 사람들도 여느 때보다 훨씬 빛나 보인다. 절이나 신사에 슬쩍 들어가서 며칠씩 기도를 올린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제16 단 가구라(궁중에서 연주되는 제악)는 참으로 우아하고 재미있다. 대개 악기는 피리와 필률이 쓰이는데, 언제나 듣고 싶은 것은 비파와 와곤(일본 고유의 거문고)이다. 제17 단 산중에 있는 절에 얼마 동안 묵어 가며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면 무료하거나 어수선한 마음이 말짱히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제18 단 사람은 스스로 검소하여 사치를 물리치고 치부하지 않으며 세속적인 탐욕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훌륭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예부터 현명한 사람이 부유했다는 예는 극히 드물다. 중국의 허유라는 사람은 몸에 지닌 재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물도 손으로 떠 마실 형편이었는데, 이 모양을 보고 어느 사람이 표주박을 주자 그대로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었더니, 어느 날 바람이 몹시 불어 나무에 부딪쳐 덜그렁거리자 시끄럽다고 하여 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 손으로 물을 떠 마셨다고 하는데, 그 얼마나 속이 후련하고 홀가분했으랴. 또 손신이라는 사람은 겨울철 설한풍에 이불이 없어서, 짚이 한줌 있던 것을 밤에는 펴고 자고 아침에는 치워 버렸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매우 훌륭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기록에 남겨서 후세에 전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편 사람은 이러한 것을 말로도 전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제19 단 절후 따라 계절이 바뀌는 것은 어떠한 일에서나 감흥이 있는 일이다. 사물의 정취는 가을이 으뜸이라고 누구나가 말함 직한데, 그것도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보다 한층 마음이 들뜨는 것은 역시 봄의 경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새의 물음 소리도 한결 봄기운이 감돌고 화장한 양지 쪽의 울타리 밑에 풀 싹이 돋아날 무렵부터, 벚꽃도 봉오리 끝이 터지게 될 무렵이면, 공교롭게 비바람이 계속되어 꽃은 피는 둥하다가 성급하게 져 버리고 만다. 벚꽃나무 가지가 푸른 잎으로 덮일 때까지는 공연히 애가 쓰이게 마련이다. 귤나무 꽃은 그 냄새를 맡으면 옛사람이 그리워진다고 해서 이름이 났지만, 역시 매화의 향기라야 더욱 옛일들이 회상되어 그리운 추억이 되살아나게 된다. 또 황매가 곱게 피고 등나무 꽃송이가 송이송이 드리워진 모양 등,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어려운 정경들이 많다. 여름으로 접어들어 4월 8일의 관등회 무렵부터 신록이 우거져 나뭇가지가 무성해질 때가 되면 모든 정취도 그리움도 쌓여 가는 것이라고 어느 분이 말씀하셨는데 과연 그대로다. 6월은 단오 명절에 창포잎을 처마 끝에 꽂을 무렵, 못자리에서 모를 쪄 옮겨 심을 무렵, 뜸부기가 요란스레 울어대는 등, 무엇 하나 심란하지 않은 것이 없다. 6월경, 가난한 시골집에 박꽃이 하얗게 보이는 가운데 지펴 놓은 모깃불에서 매콤한 연기가 맴돌고 있는 것도 정취 있는 모습이다. 6월 그믐께 미나즈키마라이(각지의 신사에서 참배인을 찌로 만든 테 속으로 지나가게 해서 부정을 씻어 준다는 행사)도 재미있다. 가을이 되어, 7월 7석을 제사하는 행사는 진정 우아하고 품위 있는 일이다. 차차 밤기운이 차가워질 무렵, 기러기 울며 날아올 무렵, 싸리나무의 밑줄기 잎이 단풍이 질 무렵, 올베를 베어 말리는 일 등 이것저것 마음이 끌리는 일이 겹치는 것은 역시 가을철에 제일 많다. 또 태풍이 분 다음날 아침 등은 퍽 흥미로운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늘어놓다 보니 그들은 모두가 "겐지모노가타리"나 "마쿠라노소시"에서 이미 써먹은 것이지만, 새삼스럽게 그것을 다시 말한다고 해서 안 된다는 법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을 털어놓지 않으면 배가 불러오는 것 같아서 좋지 않기 때문에 붓 가는 대로 적어 내려가는 수필이라는,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고 보면, 언젠가 찢어 없애면 남아 볼 것도 아닌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겨울의 메마른 풍경이 또한 가을보다 나았지 못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물가 풀포기에 단풍잎이 떨어져 걸려 있는데 거기에 서리가 하얗게 온 날 아침, 마당으로 낸 가느다란 도랑이 졸졸 흐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은 참으로 풍치가 있는 일이다. 해도 다 저물어서 설맞이를 서두를 무렵이면 각별히 감흥이 깊다. 살풍경한 것으로 여겨져 보는 사람도 없는 겨울 달이, 차갑고 맑은 스무날 지나서의 밤하늘은 어쩌면 그다지도 을씨년스러우랴. 궁중의 세말 행사는 무척 존엄하게 느껴진다. 조정의 의식 등이 빈번하고 신춘의 준비가 다망한데, 거기에 겹쳐 불명회니 '노자키노쓰카이' 등이 개최되는 모양은 실로 대단하다. 섣달 그믐날 밤의 '쓰이나'(악귀를 쫓고 병마를 제거하는 궁중 의식의 하나)의 의식에서 곧바로 신년 원단의 '시호하이'(1월 1일 새벽에 궁중에서 천지 사방을 예배하는 의식)로 이어지는 것이 흥미있게 여겨진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관솔에 불을 붙여 야반이 지나도록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찾아다니며 무슨 일인지 떠들썩하게 떠들어대고, 발이 건공중에 뜬 것처럼 허둥대다가 새벽녘부터는 역시 잠잠해지는 것도 가는 해의 애착이 남아 마음 쓸쓸한 이리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돌아오는 밤이라 해서 그믐날 밤 영혼에 제사지내는 것은, 이젠 교토에서는 없어진 풍습인데도 간토 지방에서는 아직도 행하고 있는 것은 감회 깊은 일이다. 이렇게 해서 밝아 가는 새해의 하늘 풍경은 어제와 별로 달라졌다고는 생각되지 않건만, 어제와는 달리 한결 청신하고 신기한 기분이 든다. 교토의 큰 거리에도 집집마다 대문 앞에 소나무가 세워지고, 명랑한 즐거움이 넘실거리는 것 또한 각별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제20 단 뭐라고 불렸다든가 하는 은자가 "이 세상에 집착을 가지지 않는 나에게 있어서 꼭 한가지 하늘(자연)의 경치만이 마음에 나아서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했다는데, 과연 그렇게도 생각될 만하다. 제21 단 모든 번거로운 시름은 달을 보면 달래어지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달만큼 흥미로 운 것은 없다"고 해서 서로 말다툼을 했다는 것은 흥취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서는 무엇이나 다 감명 깊게 여겨지는 법이다. 달이나 꽃은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생각해 보면 바람만큼 사람에게 감흥을 일으키게 하는 것도 없을 성싶다. 그리고 또한 바위에 부딪치며 흐르는 맑은 물의 모습도 사철의 구별없이 좋은 것이 다. "원수(중국의 강 이름)와 상강(중국의 강 이름)은 밤낮으로 왕도를 향해 동쪽으로 흘러, 잠시도 나를 위해 머무를 줄 모르난다"고 읊은 시를 본적이 있었 는데, 매우 감회가 깊었었다. 혜강도 "산이나 호수에 놀며, 새나 물고기를 보면 몹시 즐겁다"고 말했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 물 맑고 풀 성한 곳을 찾아 서성거리는 일처럼 마음을 달래는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제22 단 무슨 일이거나 옛 시대의 것만이 그립게 생각된다. 현대는 왠지 자꾸만 저속해지는 것만 같다. 저 목공들이 만든 기물 따위도 옛날 것의 모양이 훨씬 흥미있어 보인다. 편지의 문 구도 옛날의 것은 모두가 멋지다. 여느 때 주고받는 말도 한심스럽게 되어가는 듯하다. 제23 단 쇠퇴해 가는 말세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궁중의 고풍어린 모습은 세속적으로 물들지 않아서 매우 좋다. 인수전에 부설되어 있는 지붕 없는 마루를 '로다이'라고 하는 것이라든지, 천황이 아침 수라를 드는 방을 '하사가레이노마'라고 하며, 전각마다 명칭이 붙어 무슨 전, 무슨 전하고 문마다 이름이 달라 무슨 문, 무슨 문 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들리는 것이다. 천민의 집에도 있게 마련인 들창문을 '고지토미', 좁다란 청마루를 '고이타지키', 높다랗게 단 미닫이 창문을 '다카야리토' 따위로 부르는 것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궁중에서 고관들 중 공사를 주로 맡아서 하는 상석 관원이 관아에서 공사를 지휘하는 모습은 물론이지만, 각 관방의 하급 관리들이 익숙한 솜씨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모습도 볼 만하다. 또 몹시 쌀쌀한 날씨로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인 밤중에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란 정말 우습기도 하다. 나이시도코로의 방울 소리는 우아한 멋을 풍긴다고 도쿠다이지의 태정대신이 말했다고 한다. 제24 단 사이구(18)가 노노미야(19)에서 재계하고 계실 동안의 모습이야말로 더없이 우아하고 고상하며 정취 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교'라든가 '호토케'라는 말을 그대로 하기를 송구스럽게 여겨 '나카고', '소메가미' 등으로 이르는 것도 재미있다. 대저 신사라는 것은 몹시 엄숙하고 신비로우며 아취가 감도는 곳이다. 어쩐지 묵중하기만 한 숲의 모습도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해서 엄하게 느껴지는 데다가 생울타리가 빙 둘려 있으며, 신전에 바치는 비쭈기나무 가지에 하얀 '유'(흰 종이. 옛날에는 닥나무 껍질을 썼다고 함)를 걸어놓은 것을 위엄이 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신사 중에서 특히 더 정취가 풍기는 곳은 이세, 가모, 가스가, 히라노, 스미요시, 미와, 기부네, 요시다, 오하라노, 마쓰노, 우메노미야 등이다. 제25 단 '아스카가와노 후치세(일본나라 지방을 흐르는 비조천의 늪과 여울이라는 뜻으로, 흐름의 형태가 잘 변해서 흔히 이 세상의 무상함을 비유하는 데 쓰이는 말)' 만큼이나 변하기 쉬운 이 세상이어서, 시절이 바뀌고, 슬픔과 기쁨이 엇갈려, 영화의 극치를 이루었던 저택의 터전이 사람 없는 허허벌판이 되기도 하고, 그대로 집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사는 이는 바뀌게 마련이다. 복사꽃과 자두꽃은 예와 다름없이 피어는 있어도 말 못하는 그들인지라 누구와 더불어 옛날을 회상하며 이야기하리, 더구나 본 일도 없는 먼 옛날의 고귀했던 사람들의 유적만큼 덧없고 허망한 것은 없으리라. 교고쿠도노, 호죠지 등을 볼 때에도 평소의 염원 이 단절되고 사업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습이 감회를 한층 더 깊게 해준다. 미치나가코(20)가 호사스럽게 전당을 조영하고 장원을 많이 받아, 내 일족만이 천황을 보필해서 후견의 역할을 하며 국가의 중진으로서 언제까지나 영화를 누리리라고 생각하던 시점에서는, 설사 어떻게 세상이 바뀐다 해도 이토록 쇠망해 버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대문이나 금당 등은 최근까지 있었는데, 얼마 전에 남쪽의 정문은 소실되고, 금당은 그 후 쓰러진 채 다시 일으켜 세울 도리도 없는 듯 방치된 대로 있다. 다만 무료주인(법성사에 있던 아미타불을 모신 불당)만이 겨우 유구로 남아 있다.16척의 아미타불 아홉 좌가 매우 존귀하게 늘어서 계시다. 고제이다이나곤(21)이 쓴 액자, 가네유키(22)가 쓴 법당 문의 네모진 현판이 아직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어딘지 애수가 깃들여 보이기조차 한다. 훗케잠마이도(법화경 등을 독송하여 그 진리를 탐구하려는 수행을 하는 불당) 등도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이것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존속할 것인가. 그토록 자취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여기저기의 구적에는 하찮은 초석만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명확하게 여기가 무슨 유적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조차 없다. 그러기에 모든 일에 있어서 죽고 난 후세의 일까지를 처리 조치해 둔다는 것은 참으로 덧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26 단 바람이 미처 불기도 전에 퇴색해 버리는 꽃과 같이, 변하기 쉬운 사람의 인정 속에 젖어 있던 이전의 일을 상기하면, 그 무렵 감명 깊게 들었던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과는 다른 세계(속세와 불문을 이르는 말)의 사람이 되어 버리는 덧없는 속세의 상정은 사람이 죽어서 이별하는 일보다 더욱 슬픈 일인 것이다. 그러기에 묵자가 흰 실이 어떠한 빛으로 물들어 갈까 하고 근심하여 슬퍼하고, 양주가 길의 갈림길이 끝내 이별로 끝남을 한탄했다는 것도 과연 그럴싸한 일이다. 호리카와인(23)의 100수의 와카 중에, 옛날 잘 찾아 다니던 애인의 집 앞을 몇 년 만에 지나다 보니, 울타리는 헐었고 사는 이도 없는지 삘기에 섞여서 뜰 앞에는 오랑캐꽃이 피어 있을 뿐이로구나 라는 노래가 있다. 그 쓸쓸한 정경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리라. 제27 단 천황의 양위 의식이 거행되고, '산슈노진기(일본 황위의 상징으로서 역대의 천황이 즉위할 때 이어받는 세 가지 보물)'인 검과 곡옥(구부러진 옥돌)과 거울을 인도할 동안은 더없이 허전한 것이다. 새로 상황이 된 분(여기서는 하나조노 상황을 가리킨다)이 퇴위하신 그해 봄에 지으신 와카 중에, 마당을 쓴 하인들도 모르는 체하는 상황의 처소에 그런 일은 아랑곳없는 정원의 꽃만이 져서 마당 가득히 깔리는구나. 라는 노래가 있다. 새 천황의 세대가 시작되는 분주한 행사에 쫓겨 상황전을 찾아뵙는 사람이 없는 것은 매우 쓸쓸한 일이다. 이런 때야말로 사람의 진심이 역력히 나타나는 것이리라. 제28 단 천황이 복을 입는 양암 중의 시기처럼 숙연한 일은 없다. 그 여막의 형편을 보면, 마루청을 내리깔고 갈대로 엮은 엉성한 발을 드리우고, 일용품 따위도 허술하며, 시중드는 근시들의 복장도 여느 때와 달리 대검에서 허리띠까지도 거칠고 엉성한 모양이 오히려 황송하게 보인다. 제29 단 조용히 생각해 보면, 모든 일에서 지나간 세월의 그리움만은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뒤, 기나긴 밤을 달랠 양으로 대수롭지도 않은 소지품을 정리하고 남겨두지 말자고 생각되는 낙서 따위를 찢어 버리다 보면, 지금은 고인이 된 사람이 글씨 연습 삼아 쓴 것이나 소일 삼아 그린 그림을 발견하기라도 하게 되면 당장 그 시절의 회상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의 편지조차 오래 전의 것이어서 이건 어느 때의 것, 이건 어느 해의 것이던가 하고 생각해 보는 것도 감회가 깊은 일이다. 더욱이 고인의 손때 묻은 도구 따위가 무심히 그리고 변함없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다. 제30 단 사람이 죽고 난 뒤처럼 슬픈 일은 없다. 중음인 49일 동안 절에 가서 불편하고 좁은 곳에 여럿이 모여서 추도하는 법사라도 하게 되면 정말 어수선하고 분주하다. 날짜가 지나가는 일처럼 빠른 것도 없을 것이다. 어느덧 법사도 끝나고 49일의 최종일이 되면 더욱 허탈해져서, 서로들 주고받는 말도 없이 제각기 물건을 가지고 뿔뿔이 헤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면 새삼스럽게 슬픔에 가슴이 메이는 일도 많을 것이다. "이러이러한 일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 극히 주의하고 기피해야 한다."는 등의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토록 슬픔에 잠겨 있는 와중에 무슨 그런 말을 해야 하나, 사람의 마음이란 역시 그런 것이로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세월이 흘러간다고 해서 조금도 잊혀질 리는 없건만 고인도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은 날이 갈수록 정이 소홀해진다'고 말하고 있으니, 잊혀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죽은 당시처럼 절실하지는 않다는 말인가. 시시한 말을 주고받으며 웃는 일조차 있다. 유해는 인기척 없는 먼 산중에 묻어 두고 세속 따라 성묘나 하는데, 얼마 안가서 석탑에는 이끼가 끼고 나뭇잎이 떨어져 덮이며, 찾아오는 이도 없이 다만 저녁 바람이나 밤에 떠오르는 달만이 이곳을 찾아주는 친지가 된다. 그래도 가꿈 생각이 나서 살아있던 그날을 그립게 여기는 사람이라도 있을 동안은 또 좋다고 하자. 그 사람마저도 얼마 후에 죽어 없어지면, 다만 전설처럼 말로만 전해 들은 후세의 사람들은 애통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마련이다. 이렇게 후사를 돌보는 일조차 없어지면 어느 때의 사람인지 그 이름마저도 잊혀지고, 해마다 묘지에 무성한 풀만이 뜻있는 사람의 감회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비바람에 송뢰가 요란스럽던 노목도 천년을 못다 기다리고 도기에 찍혀 장작이 되며, 묵은 묘지는 쟁기에 흙이 뒤엎여 곡식을 심는 밭두렁으로 되고 만다. 이렇게 그 흔적도 없어져 버리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제31 단 눈이 매우 아름답게 쌓인 날 아침, 용건이 있어서 어느 분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더니, "오늘 아침의 이 아름다운 눈을 어찌 생각하느냐는, 한마디의 말도 쓰지 않는 그러한 비뚤어진 분이 부탁하시는 일을 어찌 들어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섭섭하고 딱하신 마음씨이십니다"라고 답장에 씌어 있었던 것은 매우 즐겁고 멋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고인이기에, 이렇게 조그만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제32 단 9월 20일경, 어느 분을 수행하여 밤이 새도록 달을 보며 거닌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문득 생각이 난다면서 수행하는 나에게 전갈하여, 어느 집에 잠시 들르셨다. 제멋대로 무성하게 자란 풀잎 위에 담뿍 이슬이 맺혀 있는 뜰에 섰노라니, 아마도 평소 옷에다가 훈향을 하는지, 향내가 그윽하게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쳐 간다. 누가 이토록 고요하고 멋있게 사는지, 정말 마음속까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분(모시고 간)은 적당한 동안 계시다가 나왔으나, 그런 일조차 품위있게 느껴져서 몸을 달그림자에 숨기고 보고 있자니, 그 집 주인은 손님을 전송한 후, 미닫이문을 조금 더 열고는 조용히 달을 보는 듯했다. 만일 그냥 안으로 들어가버렸더라면 얼마나 실망이 되었을 것인가. 손님은 떠나고, 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알 턱이 없는데도^5,5,5^ 이와 같은 일은 평소에 쌓아 온 수양에 따른 것이리라. 애석하게도 그분은 얼마 후에 별세했다는 소문이었다. 제33 단 현 황궁의 신축이 완성되어 고실에 정통한 사람들에게 공개했던 바, 어디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해서 그렇다면 새 궁성으로 옮기는 행차가 가까워진 어느 날, 겐키몬인(24)이 뒤늦게 관람하고서 "먼저 황궁의 반월형 창문의 모양은 둥글고 더구나 전이 없는 것이었는데"라고 지적한 일은 매우 적절하고 훌륭한 일이었다. 새 창문은 나뭇잎 끝처럼 톱니가 있었고, 또 나무로 전이 둘러져 있었기 때문에 그건 잘못된 것이라 해서 다시 고쳐 만들었다. 제34 단 가이코라는 조개는 소라고둥같이 생겼으나, 그보다 작고 입 언저리가 삐죽하게 나온 조개의 딱지다. 무사시노쿠니 가네자와(25)라는 갯벌에서 많이 나는데, 그 고장 사람들은 헤나타리라고 하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이야기다. 제35 단 글씨를 잘 못 쓰는 사람이 그런대로 거침없이 편지를 여기저기 써 보내는 것은 좋으나, 필적이 나빠서 창피하다고 하여 남에게 대필시키는 일은 꼴보기 싫은 일이다. 제36 단 오랫동안 찾아가지 못하고 있을 무렵, 얼마나 원망을 하고 있으랴 싶어 자신의 게으름이 되새겨져 변명할 말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 쪽에서 "손이 빈 하인이 있는지요? 한 사람만 보내 주십시요"라고 전갈을 보내온 것은 드물게 보는 순진한 태도여서 매우 즐겁다. 그러한 심정을 가진 사람이 좋다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과연 지당한 말이다. 제37 단 항상 허물없이 친숙하게 지내는 사람이 어쩌다 눈치를 보고 서먹서먹하게 체면을 차리는 시늉을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무슨 그런 짓을 하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역시 범절이 있어서 좋게 보인다. 또 별로 친숙하게 지내지 않는 사람이 격의 없는 친밀한 말을 건네주는 일도 매력이 있게 여겨진다. 제38 단 명예와 이익에 쫓겨서 조용한 여가도 없이 평생을 고뇌 속에 지내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재산이 많으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재산은 과실을 구하고 고뇌를 초래하는 중개 역할을 한다. 죽고 나면, 황금을 쌓아올려서 북두칠성을 괼 만큼 많은 재산이 있다 해도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고작이다. 우매한 사람이 재물로 장식하고 눈을 즐겁게 하는 도락도 별로 신통치 못하다. 큰 수레에 살찐 말, 황금 주옥으로 꾸민 장식도 뜻있는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황금은 산에 버리고 주옥은 못에 던질지어다. 이욕에 눈이 어두워 갈팡질팡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불후의 명예를 길이 후세에 남기는 일이야말로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지위가 높고 신분이 존귀한 일이 반드시 훌륭한 것도 아니다. 어리석고 시시한 인간일지라도 요행히 좋은 가문에 태어나고, 운수가 좋으면 높은 지위에 올라가 호강을 마음껏 누릴 수도 있다. 훌륭하고 뛰어난 현인과 성인이 자기 스스로 택하여 낮은 지위에 머무르고, 시운을 만나지 못하고 마는 경우도 또한 많다. 그렇기에 오로지 고관 대작만을 바란다는 것은 두 번째로 어리석은 일이다. 지혜와 성품에 있어서는 세상에 뛰어나게 탁월하다는 명예를 남기고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명예를 사랑한다는 일은 세간에 인기가 좋은 것을 바라고 남의 칭찬을 기뻐하는 일이 된다. 칭찬을 하는 사람도 남을 비방하는 사람도 다 그다지 오래 이 세상에 머물러 잇지 않으며, 그것을 전해 듣는 사람 역시 얼마 후에는 죽어 버린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부끄러워하고 누구에게 알아 달라고 호소하겠는가. 더구나 명예란 자칫하면 비방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명성이 자기 죽은 후에 남아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명예를 바라는 것은 그 다음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그래도 더욱 지혜를 구하고, 현자가 되고 싶은 소망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한마디 한다면, 노자의 말대로, 지혜가 세상에 나타나면서부터 크나큰 허위가 따르게 되었고, 또 인간의 재능이란 인간의 욕망이 거듭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남의 말을 들어서 알고 남에게 배워서 안다는 것은 진실한 지혜가 아니다. 어떠한 것을 진정한 지혜하고 하면 좋을까. 장자의 말과 같이, 가와 불가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또 무엇을 일러 선이라고 하는가. 진정한 인간이란, 지혜도 없고, 덕도 없고, 공도 없고, 명예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이걸 알며, 누가 전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것은 또 진정한 사람이 그 덕을 숨기고 어리석음을 가장하기 때문도 아니다. 원래부터 현우, 이해의 경계에서 처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혹의 마음으로 '명리'의 요점을 추궁해 보면 이상과 같다. 만사는 다 잘못으로 귀일 한다. 결국 논할 바가 못 되며 원할 바도 아니다. 제39 단 어느 사람이 호넨쇼닌(26)에게 "염불을 외는 도중에 잠이 와서 수업을 게을리 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어찌하면 이 지장을 없앨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잠이 깨어 있을 때 염불하시오"라고 대답한 것은 훌륭한 일이었다. 또 "극락왕생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정해져 있고,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도 훌륭하다. 더욱이 또, "의심하면서라도 염불하면 그것만으로도 극락에 왕생한다"고 하셨는데, 이것 또한 훌륭한 말씀이다. 제40 단 이나바라던가 하는 사람의 딸이 용모가 아름답다는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구혼했는데, 이 여자는 밤만 먹고 살며 도무지 곡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별난 여자는 결혼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그 부모가 허락지 않았다. 제41 단 5월 5일에 가모에서 거행되는 경마를 보러 갔던 바, 수레 앞을 사람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 각기 수레에서 내려 울타리 곁으로 다가갔지만, 역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도저히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때 건너편에 있는 가죽나무에 중이 한 사람 올라가 나무 가랑이에 걸터앉아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은 나뭇가지를 움켜잡고 몹시 졸고 있어서 몇 번이나 떨어질 뻔했고, 그럴 때마다 눈을 뜨곤 했다. 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저런 바보 같으니라구, 저런 위태로운 나뭇가지 위에서 잘도 안심하고 졸고 있구먼^5,5,5^" 하고 비웃기에 마음 속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대로, "우리들의 사기도 지금 이 순간에 닥칠지 모른다. 그걸 모르고 구경하는 데 정신이 팔려 해 가는 줄도 모르다니, 그 어리석음은 저 증보다 더한데^5,5,5^"라고 했더니, 앞에 있던 사람들이 "정말 그렇군요.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지요"라고 하니까 근방 사람들이 모두 돌아다보며, "이리도 들어오십시오"하고 자리를 비켜서며 안쪽으로 불러들여 주었다. 이런 정도의 이치는 누구나 모를 리가 없겠지만, 마침 그때 여러 사람들은 구경하느라 넋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한마디가 매우 감동적이었던가 보다. 인간은 목석이 아니므로, 때에 따라서는 정도 이상으로 감동되는 수도 없지 않은 것이다. 제42 단 가라하시노추죠 마사키요라는 사람의 아들에 교가소즈라고 불리는, 교상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강의하는 학승이 있었다. 상기되는 병이 있어서 차츰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콧속이 막히고 숨도 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치료를 했으나, 자꾸만 병세가 중하게 되어 온통 얼굴이 붓고 덮어 씌운 것같이 되어서 눈도 보이지 않고 니노마이(27)에 쓰는 탈같이 되어 버렸는데, 그 형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마치 귀신의 몰골 그대로여서, 눈은 머리 꼭대기로 올라 붙고 이마에 코가 붙는 식으로 되어, 나중에는 승원 안에서도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대로 방 안에 틀어박혀서 오래오래 살다가 더욱 형편없이 된 뒤에 죽고 말았다. 세상에는 참 괴상한 병도 다 있다. 제43 단 봄도 다 갈 무렵, 하늘이 화창하고 아름답던 날, (슬슬 거닐다가) 품위가 있어 보이는 어느 집 깊숙한 곳에 심어 놓은 정원수들도 어딘지 유서 깊어 보이고, 뜰 앞에 떨어져 흩어져 있는 꽃잎도 풍취가 깃들여 있어서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아쉽게 생각이 되어 쑥 들어가 보니, 사랑채의 남향으로 난 격자문을 모두 닫아 버리고 고요한데, 동쪽을 향한 맨 끝의 여닫이문이 적당히 열려 있어, 쳐 놓은 발의 풀어진 틈으로 들여다보니, 용모가 좋은 듯한 20세 가량의 젊은 남자가 편하게 쉬고 있는 듯하면서도 매력 있는 세련된 모습으로 책상에 책을 펴 놓고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누구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제44 단 허술한 대나무 사립문을 열고, 아직 나이 어려 보이는 남자가, 달빛으로 빛깔은 알아보기 어려우나 윤이 흐르는 가리기누(귀족의 평상복)에 진한 보라빛 구쿠리바카마(통이 넓은 바짓가랑이 밑에 솜을 두어 접어 넣고 그 속에 끈을 꿰어서 잡아매는 형식으로 만든 하의)를 받쳐입고 마치 유서 있는 듯한 모습으로 표시가 나지 않게 시동을 한 사람 거느리고 저쪽 논두렁 길을 볏잎에 맺힌 이슬에 젖으면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음색으로 피리를 흥겹게 불며 지나간다. 그 필 소리를 아름답게 느낄 만큼 들을 줄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하고 생각하니, 그의 행방이 알고 싶어져 바라보며 뒤를 따라가노라니, 피리 불기를 그치고 산기숡에 선 솟을대문 안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받침대 위에 끌채를 기대어 세워 놓은 수레가 보이는 것도 시골에서는 눈에 띄는 일이어서 하인에게 물어본즉, "아무아무 전하께서 계시는 곳인데, 아마도 불사가 계시는 모양입니다"하라고 대답한다. 과연 불당에는 승려들도 와 있다. 차가운 밤바람에 실려서 향 냄새가 사무치게 느껴진다. 바깥 전각과 불당 사이의 낭하를 오가는 여인들이 의상에 훈향한 향기가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그윽하게 풍겨오는 아취는 보는 사람이 없는 두메산골인데도 배려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제멋대로 무성하게 자란 가을의 들판은 흠뻑 이슬에 젖어, 벌레 우는 소리도(이슬이 너무 많이 맺혀 있는 것을) 불만스러운 듯 울어대고, 도랑물 흐르는 소리도 조용조용하기만 하다. 교토의 하늘보다 오가는 구름발도 좀더 빠른 것일까. 달이 숨바꼭질하는 모양도 변화가 심해서 짐작하기 어렵다. 제45 단 긴요(28)의 형으로 료가쿠 소조라는 분은 성격이 매우 까다롭고 순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거하는 승원 옆에 커다란 팽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팽나무의 스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분은 이 별명이 싫다고 해서 그 팽나무를 베어 버렸다. 그런데 팽나무는 없어졌어도 그 뿌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그루터기의 스님'이라고 불렀다. 더욱 화가 나서 그 그루터기를 판 버렸는데 그 그루터기를 파낸 자리가 웅덩이로 되어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웅덩이 스님'이라고 불렀다던가. 제46 단 야나기하라(경도 시내를 가리킨다)에 '강도의 스님'이라고 불리는 중이 있었다. 그것은 그분이 자꾸만 강도를 만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이름을 지어서 불렀다고. 제47 단 어떤 사람이 기요미즌칸논(경도에 있는 관음 입상 11좌를 모신 절)에 참배하러 가는 도중 늙은 여승과 길동무가 되었는데, 도중에 그 여승이 "재채기, 재채기" 하고 계속해서 외며 걸었기 때문에, "보살님은 무엇을 그리 외십니까" 하고 물어 보았으나 대답도 하지 않고 여전히 계속해서 외어 대는데, 하도 여러번 물어 보니까 그만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 "아니 재채기를 할 때 이렇게 주문을 외지 않으면 죽는다지 않습니까, 내가 유몰 키운 아기가 지금 히에이잔(경도시 동북쪽에 있는 영산으로,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이 있다)에서 동자중(고승을 모시는 나이 어린 중)이 되어 계신데, 지금 이 순간에도 재채기를 하시지나 않을까 해서 이렇게 자꾸 외는 겁니다."라고 했다. 특별한 정성을 기울여서 기른 아기였던 모양이다. 제48 단 미쓰치카쿄(29)가 상황의 처소에서 "금광명최승왕경"의 강론 법회를 지휘하는 직책을 맡아서 상황전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상황 어전에 초대되어 식사를 하사 받았다. 그런데, 미쓰치카쿄는 사양치 않고 먹고 나서는 난잡해진 식상을 어전에 드리워 있는 발 안으로 밀어 넣고 나가 버렸다. 여관들이 "아이 지저분해. 누구더러 치우라는 것일까" 하면서 투덜거렸는데, 상황께서는 "법도에 잘 통한 사람의 행동이로구나. 훌륭한 일이로다" 하고 몇 번이나 칭찬을 하셨다고. 제49 단 늙은 다음에 비로소 불도에 들어가 수행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옛 무덤은 대개가 나이 젊어서 죽은 사람들의 것이다. 우연히 병을 얻어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무렵에야 비로소 지난날의 잘못을 인식하게 되는 법이다. 그 잘못이란 다름이 아니다. 미리 해야 할 일을 미루어 놓고, 서서히 해도 좋을 일을 서둘러 가며 살아온 일이 뉘우쳐지는 것이다. 그때(다 죽게 된)에 '아차' 하고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인간은 언제나 무상(죽음을 뜻함)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이라면 이 속세간에서의 사념도 적어지고 불도 수행에 정진하는 마음도 돈독해지리라. 옛날 어느 중은, 누군가가 와서 맹 중요한 용건을 이야기하면 으레 대답하기를, "지금 몹시 바쁜 일이 있어. 당장 눈앞에 다가와 있어서^5,5,5^"라고 하며 귀를 막고 염 불만 하다가 마침내 극락왕생 했다고 젠린(절 이름)의 "주인(책 이름)"에 기록되어 있다. 또 신카이라는 중은 너무나 이 세상이 순간적인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나머지, 조용히 앉아 있는 일조차 없이 늘 엉거주춤하게 쭈그리고만 있었다고 한다. 제50 단 오초(화원천황의 연호) 시절, 이세라는 지방에서 여자가 요괴가 된 것을 데리고 교토로 올라왔다는 소문이 퍼져서 한 20일 동안 매일 장안 사람들이 여자 귀신 구경을 하려고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어제는 사이온지에 나타났다. 오늘은 상황전에 갈 것이다. 지금은 저기에 있다더라" 하고 떠들어댔지만, 실제로 보았다는 사람도 없으려니와 거짓말이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상하를 막론하고 온통 귀신 이야기로 법석이었다. 그럴 즈음, 히가시야마에서 아고인 쪽으로 향해서 가다 보니, 시조에서 북쪽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치조무로마치에 귀신이 있다'고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이마데가와 근방에서 바라다보니 인노온사지키(상황께서 축제를 구경하시는 전각) 근방은 도저히 사람이 지나갈 수 없을 만큼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설마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일을 가지고 저렇게들 야단법석일 수야 있으랴 싶어서 종자를 보내어 알아보도록 했으나, 아무도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날이 저물도록 법석을 떨다가 드디어는 싸움까지 벌어지는 어이없는 일마저 일어날 지경이었다. 그 무렵, 세간에는 사람들이 2,3일 가량 앓다가 일어 나는 병이 퍼졌는데, 그 귀신 소문은 이러한 병이 퍼질 징조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51 단 가메야마도노(상황의 별궁) 안에 있는 연못에 오이가와의 물을 끌어들일 양으로 근처에 사는 오이 지방의 백성들에게 명령해서 수차를 만들게 했다. 많은 돈을 하사하고 날짜를 소비해서 정성껏 만들어 물에 장치했는데도 수차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리저리 손을 대고 고치고 애서 보았으나 끝내 돌아가지 않고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수차에 익숙한 우지 지방의 마을 사람들을 불러다가 만들도록 했더니, 힘도 안 들이고 만들어 내어 장치해서 가동해 보니 과연 잘 돌아가서 자유로이 물을 퍼올릴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무슨 일에든 그 전문적인 요령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랑 존중할 만한 일이다. 제52 단 닌니지라는 절에 있는 중이 늘그막에 이르기까지 이와시미즈에 있는 하치만구를 한 번도 참배하지 못한 일이 못내 아쉬워, 어느 날 결단을 내려 혼자서 걸어서 길을 떠났다. 그런데 산기슭의 고쿠라쿠지와 고라진자들만을 참배하고는 그게 다인 줄 알고서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는 동료들에게 "오랜동안 염원하던 일을 이젠 다 마쳤소이다. 늘 듣던 바보다 훨씬 더 존엄하더군요. 그런데 참배인들이 모두 다 산 위로 올라가는 걸 보고 무엇인가 있는가 보다 싶기는 했어도, 하치구에 참배했으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산 위까지는 안 갔지요"라고 말했다. 사소한 일에도 안내라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제53 단 이것도 닌나지의 중의 이야기. 동승이 머리를 밀고 중이 되는 기념이라 해서 절에 있는 중들이 모여 주연을 베풀고 각기 재주를 피워 보이며 놀았는데, 한 중이 흥에 겨운 나머지 곁에 놓여 있던 세발 달린 솥을 집어들고 코를 누르고 얼굴을 쑤셔넣어 가까스로 뒤집어쓰고는 춤을 덩실덩실 추니, 만장은 더없이 흥겨워졌다. 그렇게 얼마 동안 춤을 추다가 솥을 벗으려고 했으나 솥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일좌의 주흥도 깨어지고, 어쩌면 좋을지 쩔쩔매게 되었다.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는 동안 목 둘레의 살이 째져 피가 흐르며 자꾸만 부어올라 숨마저 막힐 지경이 되었다. 솥을 두드려 부수려고도 했지만 쉽사리 부서지지도 않았다. 세게 두드리면 속에 든 머리가 울려서 견딜 수가 없으니 두드려서 깰 수도 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솥에 달린 세 개의 발 위에 홑저고리를 씌워서 손을 잡고 지팡이를 짚게 하여 장안의 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데리고 가는 도중에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자꾸만 들여다보곤 하여 매우 귀찮았다. 의사의 집에 도착해서 의사와 마주앉은 그 꼴이야말로 괴상하기 짝이 없었으리라. 말하는 목소리도 웅얼대는 소리로만 들리고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의사도 "이러한 일은 의서에도 기록돼 있지 않으며 배운 치료법도 없다"고 하기에 다시 닌나지로 데리고 돌아왔는데, 그의 늙은 모친과 친척들이 머리맡에 모여 앉아 울며 안타까워했으나 본인에게는 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설사 귀와 코가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목숨만은 건질지도 모르니 힘껏 솥을 잡아빼는 수밖에 없다"고 하기에, 짚의 속줄기를 목 둘레에 빙 둘러 끼워넣어 쇠솥과 목 사이를 떼어놓고는 목이 빠져라고 솥을 잡아당기니, 귀와 코는 떨어져 나갔어도 어쨌든 솥은 빠졌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중은 그 뒤 오랫동안 병석에서 신음했다고 한다. 제54 단 닌나지에 굉장히 예쁜 동승이 있었다. 어떻게 하든지 꾀어 내어서 함께 놀고 싶어하는 중들이 있어서, 예능에 출중한 중도 권유하여, 눈에 띄게 훌륭하게 장만을 한 도시락 상자를 궤에 넣어 나라비노오카(인화사 부근에 비슷한 언덕이 셋 있어서 지어진 이름. 이 둘째 언덕 기슭에 이 책의 저자의 묘소가 있다)의 적당한 곳에 묻어 두고 그 위에 단풍잎을 흩어서 표가 나지 않게 해놓고, 어소로 쓰이던 닌나지에 들어가 동승을 교묘하게 꾀어내서 데리고 나왔다. 그들은 매우 즐거워하며 이리저리 뛰놀다가 먼저 이끼 낀 곳으로 다가가 죽 늘어서서, "매우 피곤하다. 아아, 이럴 때 이런 곳에서 단풍잎을 때어 술을 데울 수 있는 재간이 있는 사람은 없을까. 수도를 많이 쌓은 스님들께서 기도를 해보시면 어떻소" 하고 떠들어대며, 도시락을 묻어 놓은 곳에 서 있는 나무 밑을 향해서 염주를 삭삭 비비고 돌리며 호들갑스레 인계를 맺어 보이는 등 수선을 피우다가, 단풍잎을 흩어놓은 곳을 파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장소를 잘못 기억한 줄 알고 그 근방을 모조리 파 보았어도 끝내 도시락 궤는 없었다. 도시락이 든 궤를 묻을 떼 딴사람이 보고 있다가 중들이 절에 들어간 사이에 훔쳐간 것이다. 중들도 이 실패에는 무슨 변명이 있겠는가, 흉할 정도로 입씨름만 하고 화를 내며 돌아갔다. 지나치게 재미있게 하려고 꾸미는 것은 반드시 실패하게 마련인 것이다. 제55 단 가옥을 건축할 때에는 그 구조를 여름철에 맞도록 하는 것이 좋다. 겨울에는 어떠한 곳에서나 참고 견딜 수 있지만, 더울 때에 나쁜 주택은 참기 어렵다. 마당에 주는 물 따위도 괴어 있는 깊은 물은 시원한 맛이 없고, 얕고 흐르는 물이 훨씬 시원하다. 집의 세부 조작에 있어서도 미닫이가 들어열개보다 방이 밝다. 천장이 높으면 겨울에 춥고 등불이 어두워서 좋지 않다. 또 건축에는 무엇으로 써야 좋을지 모를 그런 곳을 만들어 두는 것이 보는 데도 재미가 있고, 또 다목적으로 쓸모가 있어서 좋은 것이라고 여럿이서 이야기한 적도 있다. 제56 단 오랫동안 적조하게 지내다가 만난 사람이 자기 주변에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을 계속하는 것은 정말로 싱거운 일이다. 스스럼없이 친밀한 사이라도 얼마 동안 적조했다가 만나면 공연히 겸연쩍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품위가 없는 사람들은 잠깐 외출한 일을 가지고도 재미가 있었다고 숨쉴 사이도 없이 보고 들은 이야기에 열중하게 된다. 인품이 좋은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많이 모인 가운데의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해도 자연히 좌중의 여러 사람이 모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법이다. 인품이 거칠거나 저속한 사람은 누구에게라도 지목하지 않고 여러 사람을 향해서 이야기를 걸어, 당장 눈앞에 보았다는 투로 허풍을 떨어대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모두 '와아' 하고 웃어넘기지만, 그건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재미있는 말을 해도 몹시 흥겨워하지 않는 것과, 별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데도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그 사람의 인품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남의 행동을 비평하거나, 학문이 있는 사람이라면 학문을 규명하고 비평할 때 자기를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몹시 좋지 않은 일이다. 제57 단 남이 좋다고 칭찬하며 꺼낸 와카의 노래 자체가 서투른 것일 때 몹시 딱하게 생각된다. 조금이라도 그 방면에 조예가 있다면 그런 와카를 좋다고 여겨 화제로 삼을 리는 없을 것이 아닌가. 모든 일에 있어서 별로 잘 알지도 못하는 방면의 이야기를 끈질기게 되풀이하는 것은 옆에서 듣고 있기에도 딱하고 거북한 일이다. 제58 단 "불도를 구하는 마음만 있다면 사는 곳 따위는 관계가 없으리라. 굳이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속인과 함께 살면서, 극락왕생을 비는 데야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것은 도무지 후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실토를 한다면, 이 세상을 무상히 여기고, 반드시 생가의 미혹의 경지에서 빠져나와 오도를 얻고자 한다면, 무엇이 흥겨워 임금에게 사관하며 가정을 영위하는 등 부질없는 세간사를 공들여 이어가겠는가. 마음이란 주위 환경의 인과 관계에 끌려서 움직이는 것이어서, 조용한 경지에 있지 않고서는 불도의 수행은 어려운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그 기량이 옛날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할 뿐더러, 속세를 피해 심산 깊이 파묻혀서 수도한다손 치더라도 굶주림을 막고 추위를 방지하는 수단을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형편이고 보면, 자칫하면 세속적인 욕심을 탐하는 것같이 보이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있음직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속세를 버린 보람이 없다. 그런 정도의 일이라면 구태여 세상을 등질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일방적인 해석인 것이다. 어떻든 간에 일단 불도에 들어가 속세를 싫어하여 떠나려는 사람이라면, 설령 욕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권세가의 끝없는 탐욕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안니 것이다. 종이로 만든 허술한 침구, 삼베옷, 한 바리때의 음식, 산 채로 끓인 국 등등의 거칠고 허술한 의식이 얼마나 남에게 폐를 끼치랴(별로 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구하면 얻어질 것이고 소망하는 일은 조속히 충족된다. 중의 행색이고 보면 삼가는 점도 있기 때문에 욕심이 있다 손치더라도 자연히 그것은 악과는 소원하고 선에 가까운 것이 많게 마련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산 보람으로는 과연 둔세한다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곬으로 탐욕만을 일삼고 오도로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탐욕만을 일삼고 오도로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인간이 모든 축생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59 단 출가한다는 중대사를 발신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마름에 걸리는 평소의 뜻을 모조리 처리해 버리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야 한다. '좀더 이일이 끝나거든^5,5,5^' '기왕이면 그 일을 해치우고서^5,5,5^' '이것과 저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남의 비방을 들을지도 모른다. 장래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깨끗이 종결을 지어 놓고서^5,5,5^ '이제까지 오랜 도안 그렇게 해 내려왔으니 그 일이 낙착되는 것도 멀지 않다, 급히 서둘러서 떠들어댈 일이 아니다' 따위로 생각이 미치게 된다면, 피치 못할 일만 자꾸 거듭되어 끝이 없고 결단을 내리는 날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대체 세상 사람들을 보면, 얼마간 분별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모두가 이러한 예정으로 일평생을 지나쳐 버리는 것 가다, 근처에 난 화재를 벗어나려고 달아나는 사람이 불을 향해서 "아, 잠깐만 기다려 주어!"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생명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부끄러움도 아랑곳없이 재산이나 보화를 내버리고 달아나는 법이다. 수명도 사람의 욕망을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 무상이라는 죽음이 닥쳐오는 것은 무이나 불이 덮쳐오는 것보다도 빠르고 피할 길도 없는 것이 아닌가. 죽음에 임박하여 늙은 부모나 어린 자식, 또 주군의 은혜, 친지의 정애 등을 버릴 수 없다고 해서 안 버리고 버틸 수가 있단 말인가. 제60 단 신조인(인화사에 딸린 절 이름)에 조신소즈라고 부르는 매우 지식이 높은 고승이 있었다. 토란 뿌리를 매우 좋아해서 언제나 많이 먹었다. 설교를 하는 자리에서도 커다란 사발에 수북이 담아 무릎 옆에 놓고 먹어가며 경서를 강의했다. 병이라도 나면 이레나 두 이레를 병의 치료라고 하며 방안에 틀어박혀 좋은 토란 뿌리를 골라다가 실컷 먹곤 했는데, 그럴라치면 대개의 병은 낫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코 남에게 먹으라고 권하는 일도 없이 언제나 혼자서만 먹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가난했으나 그의 스승이 임종시에 돈 200 칸(일본의 옛날 화폐 단위, 1000 문과 같다)과 승방 하나를 남겨 주자, 그 승방을 100 칸에 팔아 총액 300 칸의 돈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돈을 토란 뿌리의 대금이라 정하여, 교토에 사는 사람에게 맡겨 두고 10 칸씩 찾아다가 토란을 마음대로 사먹고 있었는데, 다른 비용으로는 쓰는 일없이 전부 그 돈을 다 소비해 버렸다. "300 칸의 대금을 가난한 처지에서 얻었으면서도 다른 일에 쓰지 않고 그렇게 몽땅 써 버리다니^5,5,5^ 정말로 드물게 보는 신심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것이 사람들의 중론이었다. 그분이 어는 중을 보고 '시로우루리'라는 별명을 지었다. "시로우루리가 무어냐, 어떻게 생겼느냐"고 사람들이 묻자, "그런 건 나도 알지 못한다.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저 중의 얼굴 같은 것이리라"고 했다고 한다. 이 스님은 용모 풍채도 썩 잘났으며 힘도 세고 대식가인데가 글씨도 잘 쓰고 학문이나 변설이 남달리 뛰어나서 1종의 대표가 될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닌나지 안에서도 가장 존경을 받았으나, 세사를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괴짜여서 만사를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여간해서 남과 보조를 맞추는 일이 없었다. 법회 등 좌석에서 남들과 함께 자리를 할 때에도 식사가 나오게 되면 여러 사람들 앞에 상이 다 차려지기도 전에 자기 앞에 놓은 음식을 먼저 먹어 버리고, 돌아가고 싶으면 혼자서 거침없이 돌아가곤 했다. 절에서 식사 시간도 지키지 않고, 자기가 먹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밤중이건 새벽녘이건 상관없이 먹으려, 잠이 오면 밤낮의 구별없이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느라 아무리 중대한 일이 있어도 개의치 아니했다. 잠이 깨면 몇 날 몇 밤이라도 자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어 무엇인가 외며 돌아 다니는 등 모든 것이 여느 사람과는 달리 유별났지만 남들에게 미움을 받는 일도 없고, 그렇나 행동도 무언중에 허용이 되어 있었다. 그 사람의 덕이 도저했기 때문인 것이다. 제61 단 황태자 탄생시에, 떡을 찌는 시루를 떨어뜨려 부수는 일어 꼭 정해져 있는 풍습은 아니다. 후산이 쉽게 나오지 않고 늦어질 때 하는 방예인 것이다. 그래서 쉽게 후산을 했을 경우에는 하지 않는다. 신분이 낮은 백성들 사이에 생긴 일로서, 확고한 어떤 전거 같은 것은 없다. 오하라라는 마을에서 만드는 시루를 사다가 쓴다. 매우 옛적의 물건들을 두는 곳집에 있는 그림을 보면, 가난한 백성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있는 곳에 시루를 떨어뜨리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제62 단 ^5,5,5^ (생략) 제63 단 궁중의 고시치니치(정월 8일부터 1주일 동안, 즉 진언종의 기도하는 기간)의 기도 직책을 맡은 아사리가 경호하는 병사를 소집하는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도둑에게 습격 당한 이래 경호할 사람이 필요하다 해서 그렇게 야단스럽게 되어 버린 모양이다. 그해 1년 동안의 운수는 이 기도가 무사히 진행되느냐 어떠냐 하는데 달렸다고 하는데, (천하태평을 비는 기도에) 무사들을 동원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제64 단 우차(소가 끄는 귀인용 수레)의 다섯 가닥의 술이 달린 끈은 반드시 사람에 따라 다는 것이 아니고, 그 가문에 따라 결정되어 있는 최고의 관위에 달하면 그 끈을 단 수레를 타는 것이라고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제65 단 요즈음의 관은 옛날의 그것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옛적 관을 가진 사람은 관의 전을 이어 붙여서 쓰고 있는 형편이다. 제66 단 당시의 좌대신, 고노에 이에히라 공이 만발한 홍매 가지에 꿩을 한 쌍 곁들여서 주며, 이 가지에 꿩을 달아서 어전에 바치도록 하라고 오타카가이(황실 전용의 매를 기르고 매사냥을 주최하는 직책)인 시모쓰케노 다케카쓰라는 사람에게 명령했던 바, "꽃이 핀 가지에 꿩을 매다는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또 한 가지에 두 마리를 다는 방법도 모르옵니다."라고 하므로, 그러한 것을 잘 아는 주방 사람에게 하문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었으나 요령부득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다케카쓰에게 명령하기를, "그렇다면 자신이 마음대로 시행하라"고 했더니, 다케카쓰는 꽃이 한 송이도 붙어 있지 않은 매화나무 가지에 꿩을 한 마리 매달아서 진상했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잡목의 나뭇가지나 매화나무 가지의 꽃이 봉오리진 것이나 다 떨어진 데에 매달며, 잣나무 등에도 매달 수가 있습니다. 가지의 길이는 7자 또는 6자, 가지를 벤 자리는 끝을 비스듬하게 자른 후 그 뒷면에서 뾰족한 곳을 다듬어, 비스듬한 칼자국이 5푼쯤 되게 하고 가지 중간에 꿩을 매다는데, 꿩의 발을 가지에 얹어 자연스럽게 디딘 것처럼 하는 가지와, 잡아매는 방법에도 규중이 있습니다. 푸른 칡덩굴을 통째로 두 군데 잡아매는 것이 좋으며, 덩굴로 잡아 맨 끄트머리는 매의 어깻죽지의 깃과 같은 길이로 끊고 그 끝을 쇠뿔처럼 구부리는 것이 상례랍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 아침 꿩이 매달린 그 나뭇가지를 어깨에 메고 중문에서부터 자세를 가다듬고 들어갑지요. 처마 물이 떨어지는 곳에 높은 디딤돌을 따라 걷고,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겨서는 안 되며, 매의 짧은 솜털 등을 약간 흩고, 전각 난간에 메고 간 나뭇가지를 걸쳐 놓습니다. 수고했다는 표시로 하사하시는(대개는 나중에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의류) 옷을 머리 위에 쓰고 공수하여 읍을 한 다음 물러나옵니다. 그런데 첫눈이라고 하지만 신발 끝이 파묻히지 않을 정도라면 이런 행사는 하지 않습니다. 또 매의 짧은 솜털을 흩어놓는 것은, 매는 대개 다른 새를 잡을 때 허리의 잘록한 곳을 찍어 물기 때문에, 천황께서 기르시는 매가 잡았다는 형식을 취하기 위한 것이지요"라고 했다. 나뭇가지에 꽃이 핀 것을 꺼리는 까닭이 무엇일까. 매화꽃의 조하를 매단 가지에 꿩을 달아 진상했다는 이야기가 "이세모노가타리" (30)에 나와 있었는데, 조화는 상관없다는 말이 되는가 보다. 제67 단 ^5,5,5^ (생략) 제68 단 규슈에 모모라고 하는 오료시(경찰관)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무를 만병에 잘 듣는 약이라 해서 오랜 세월 동안 매일 아침 두 개씩 구워 먹고 있었다. 어느 날, 집 안에 아무도 없는 큼을 타서 적의 군사들이 몰려들어 공격해 왔는데, 이쪽에 두 사람의 병사가 나타나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잘 싸워 적병을 모두 쫓아 버렸다.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어, "여느 때 이곳에 계신 적도 없는 두 분께서 이렇게 적을 무찌르시다니, 도대체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오랜 세월을 두고 믿고 의지하여 매일 아침 잡숫고 계신 무입니다."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깊이 믿어 의심하지 않으면 이러한 공덕도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제69 단 쇼샤잔(31)의 쇼쿠쇼닌(32)은 법화경을 독송한 공덕이 쌓여 육근(심신)이 청정한 경지에 이른 분이었다. 어느 날 객지에서 주막에 들어가니 콩깍지를 때서 콩을 삶고 있었는데, 부글부글 끓는 소리를 들으니 "남도 아닌 너희들이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나를 삶아 이렇게 고통을 주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토드락토드락하고 불에 타는 콩깍지의 소리에서는 "본의가 아니다. 불에 타는 이쪽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지만,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 원망하진 말아라" 하는 말로 들리더라고. 제70 단 겐오 시대, 세이쇼도(궁중에서 제악을 연주하는 곳)의 음악회에 명비파로 알려진 겐조라는 비파가 없어졌을 무렵이기 때문에, 대신인 후지와라 가네스에 공이 또 하나의 명비파인 보쿠바노비와를 치게 되었는데, 자리에 앉아 우선 비파줄를 더듬어 보니, 줄받침이 하나 없었다. 회중에 소쿠이(밥알을 으깨어 풀처럼 만든 것)가 있어, 그것을 빚어서 줄 밑에 받쳐 놓았는데, 신전에 진설을 하는 동안 충분히 말랐기 때문에, 연주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 어떠한 원한이 있었던지, 배관하고 있던, 쓰개치마를 쓴 여자가 슬쩍 다가와서 줄받침을 빼어내고서 다시 그 자리에 가만히 놓았었다는 이야기다. 제71 단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제창 그 얼굴 모습이 짐작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제로 만났을 때에는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얼굴과 같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옛날 이야기를 들어도 그게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 근처였으리라고 상상하고, 또 인물도 역시 현재의 사람들 중에서 연상하게 되는 것은 누구나가 다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또 자칫하면 현재의 사람이 하는 말도, 눈앞에 보이는 일도, 혼자 마음 속으로 '이런 일이 언젠가 있었는데^5,5,5^' 하고 생각되며, 그게 언제였는지는 분명히 생각나지 않지만 꼭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이 이렇게 생각되는 것일까. 제72 단 매우 천하게 보이는 것은, 앉아 있는 주변에 여러 가지 도구 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는 것, 벼루 상자 속에 붓이 많이 들어 있는 것, 불당에 부처님이 너무 많은 것, 앞뜰에 돌이나 초목이 많은 것, 집안에 자식 손자가 많은 것, 남과 만났을 때 수다스러운 것, 불공드릴 때 좋은 공덕을 너무 많이 적어 읽는 일. 많아서 보기 흉하지 않은 것은, 책장 속의 책과 쓰레기통의 쓰레기 정도. 제73 단 세간에 유포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사실 그대로면 재미가 없는 것인지, 대개는 모두 거짓말로 꾸며진 것들이다. 인간이란 원래가 실제 이상으로 말을 만들어 붙이는 법인데, 더구나 세월이 흐르고 장소도 멀다 보면 제멋대로 이야기를 꾸미게 되고, 또 그것을 붓으로 문장을 만들어 기록하게 되면 그것으로 아주 결정이 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방면의 명인들의 굉장한 재능 등을 이야기할 대도, 세상은 좁고 그 방면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함부로 추어올려서 신역에라도 도달한 양 말하지만, 그 방면의 정통한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처음부터 믿으려 하지 않는다. 소문으로 듣는 바와 실제로 보는 것과는 무엇이든지 서로 다른 것이다. 바로 즉석에서 탄로 나고 말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대는 거짓말 같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남의 말을 들은 대로 으스대며 옮기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의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주 그럴듯하게, 가끔 어떤 곳은 좀 희미해서 잘 모르는 체해 가며, 그대로 전후 관계를 적당히 들어맞도록 이야기하는 거짓말은 실로 무서운 일이다. 자기에게 체면이 서는 그런 거짓말에 대해선 사람들은 누구나 심하게 반대하지는 않는 법이다. 또 듣는 사람들이 모두 재미있게 여기는 거짓말을 자기 혼자서만, "그건 그렇지가 않은데^5,5,5^"라고 해 보았댔자 별수 없기 때문에, 아무 소리 않고 듣고 있는 도안 '그렇군요" 하고 한마디쯤 거들어 주다 보면, 증인이 되고 점점 그 거짓말은 사실인 것처럼 결정이 되어 버린다. 여하간에 거짓말이 많은 세상이다. 그래서 '보통 흔히 있는, 희한할 건덕지도 없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면 만사에 그르침이 없을 것이다. 저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고 놀랄 일뿐이다. 품위가 있는 사람은 결코 괴상한 이야기는 옮기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신불의 영험이나. 현신불의 전기 등까지도 한결같이 믿어서는 안 된다는 듯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속세의 거짓말을 정중하게 믿는 것도 바보스럽거니와 '설마 그런 일이 있을라구' 하구 의심만 하는 것도 별수 없는 일이니, 대개는 그런 양으로 적당히 취급하여 외곬으로만 믿지도 말고, 또 지나치게 의심하거나 업신여기거나 하지도 않는 평이 좋은 것이다. 제74 단 개미와 같이 모여서 동서로 내닫고 남북으로 달리는 인간들. 고귀한 신분을 지닌 사람도 있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도 있다. 늙은이도 있으며 젊은이도 있다. 제각기 갈 곳이 잇고 모두 돌아갈 집이 있다. 저녁에 잠들며 아침에 일어난다. 도대체 인간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을 탐하고 이를 얻으려고 쉬지 않고 바동거린다. 몸을 보양해서 무엇을 기대하겠다는 것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늙음과 죽음뿐이다. 이 두 가지의 결말이 다가오는 것은 매우 급하고 빠르며 잠시도 머물지를 않는다. 이것이 닥쳐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미혹에 빠진 사람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명리에 눈이 어두워 죽음이 바로 임박해 오는 것을 생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임종이 다가오는 것을 슬퍼한다. 언제까지나 살아 있기를 바라는 나머지 만물이 변화한다는 이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제75 단 한가해서 쓸쓸한 것을 고민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 다른 아무 일에도 상관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련만. 세상 일어 순응하다 보면 마음은 외계의 속진 속에 묻혀서 미혹되기 쉽고, 남과 교제를 하게 되면 자신의 말이 남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자기본심을 상실하게 된다. 남들과 어울려 시시덕거리고, 사물을 놓고 말다툼을 하며, 원망하거나 기뻐하는 등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사람에 따라 언제나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 저런 생각이 자구만 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이해손득으로 한없이 고민하게 된다. 그것은 분명히 미혹된 데다가 취해 있는 것이며, 그 취한 속엣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리저리 달리고 돌아치며 분주히 굴고, 멍하니 본심을 잊고 잇는 것은 누구나 다 이와 같은 것이다. 당장 불도를 깨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속적인 관계에서 떠나 몸을 조용히 하고 속사에 끼여들지 않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는 일이야말로 임시적이나마 즐거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생활, 인사, 기능, 학문 등 세속적 관계를 끊어 버리라고 "마카시칸"(33)에도 씌어 있다. 제76 단 세상에서 매우 인기가 있는 사람들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속에 중이 간혹 섞여서 얼찐거리는데 그런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하고 느껴진다. 그러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승려는 인간 세상의 속된 인연에는 관계치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77 단 세상에서 떠들썩하게 사람들이 떠드는 소문의 출처를 관여할 만한 처지도 아닌 사람이 그 내정을 상세하게 알고 있어서, 남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문의하기도 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고 여겨진다. 하여튼 시골 구석에 살고 있는 중들이 속세 사람들의 신상 문제 따위를 자기 일처럼 캐어묻고, 어떻게 이토록 자세히 알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지껄여대는 모양이다. 제78 단 당세의 희한한 사건 등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퍼뜨리고 장난질을 치는 것은 별로 좋게 여겨지지 않는다. 세간에서 이미 옛말처럼 되어 버릴 때까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은 매우 품위가 있어 보인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있을 때, 그 한패들끼리만 주고 받는 우스갯소리나, 물건 이름의 별명 등을 잘 알고 있는 한동아리들이 운만 띄워 서로 눈짓하고 웃어대거나 해서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으레 세상의 처세가 서툴거나 인품이 좋지 않은 천박한 사람이 하는 짓이다. 제79 단 무슨 일에나 깊이 파고들지 않는 자세가 좋다. 인품이 고상한 사람은 알고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자랑삼아서 지껄여대지는 않는 법이다. 시골 구석에서 나온 사람일수록 흔히 무엇이든 아는 체하며 얼른 대답을 받아 한다. 시골 사람이라도 그 말을 듣고, 아 참 그렇군, 내가 몰라서 무안하구나 하는 점도 없지 않으나, 자기가 잘난 체하는 모습은 세련되지 않고 옹색해 보인다. 자신이 정통해 있는 일에 대해서는 특히 입이 무겁고 상대방이 묻지 않는 한은 말을 꺼내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이다. 제80 단 누구나 자기의 생활과 인연이 먼 것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중은 무도를 존중하고, 무사는 활도 당길 줄 모르는 주제에 불법을 깨달은 듯한 얼굴을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렌가(34)를 짓고 음악을 익히려 한다. 그러기 때문에 소원하게 여기는 자기의 본업보다도 그러한 일에서 남의 멸시를 받게 된다. 중만이 아니다. 공경대부나 고관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까지도 대체로 무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무도란 백전백승한다고 해서 반드시 무용이 뛰어나고 영웅이라고 결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수가 좋아서 적을 무찌를 때에는 누구나 용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다만 패색이 짙고 화살이 동이 났어도 최후까지 적에게 항복하지 않고 깨끗이 죽음으로써 비로소 무용이란 명성이 나타나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목숨이 있는 동안은 무용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도리와는 멀고 짐승과 흡사한 무의 행위는, 무가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그 길을 좋아해도 무익한 일이다. 제81 단 병풍이나 장지문에 쓴 글씨나 그려진 그림이 매우 서툴고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은, 보기 흉하다기보다는 그 집의 주인이 시시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한다. 도시, 가지고 있는 소지품에 의해서 소유자의 품위가 멸시를 받는 일은 있기도 하리라. 그렇다고 망가지지 않도록 한답시고 품위도 없고 보기 흉하게 만들어 내거나, 희한한 것으로 하려고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을 만들어 붙이거나, 난잡하리만큼 지나치게 꼼꼼히 손을 대어서 속되게 해놓은 것이 싫다는 말이다. 좀 예스러운 듯하고 그다지 호들갑스럽지도 않으면서 별로 비용도 들지 않고 품위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제82 단 "얇은 비단을 씌운 표지는 빨리 상해서 곤란하다"고 어떤 사람이 말하자, 돈아(35)가 "얇은 비단은 위아래 끝이 풀어져 버리고, 자개 장식을 한 족자는 금조개 조각이 떨어진 뒤가 운치가 있어서 좋은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그것은 의외로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선봉으로 된 책자나 두루마리로 된 서적이 몇 권의 전집물로 되어 있을 때, 그것들이 가지런하지 않고 장정도 똑같지 않은 것을 보고 볼썽사납다고들 하지만, 고유소즈(36)는, "물건을 쭉 고르게 한 벌로 갖추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똑같지 않은 데가 좋은 것이다"라고 한 말도 무척 실감이 있는 말이다. 어떤 사물이든 아주 완벽하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약간 미진한 대로의 것이 더욱 흥미롭고 앞으로의 희망이나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 "궁전을 건조할 때에도 반드시 손질할 곳을 남겨 두는 법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고 한다. 옛 현인이 만든 불전이나 외전 등의 서적에도 장이 빠진 것이 많이 발견된다. 제83 단 지쿠린인의 좌대신인 사이온지 긴히라는 태정대신(영의정에 해당하는 재상)으로 승진하려면 아무런 지장이나 장애도 없이 순조로울 텐데도, "그렇게 되어 보았자 별로 신통할 것 같지도 않다. 좌대신에서 그만두자"하고 불도에 귀의해 버렸다. 후지와라 사네야스(서원사가에서 분가한 집안의 좌대신)가 이러한 일에 감복되어 역시 태정대신의 자리를 원하지 않았다. "역경"의 건괘에도 "항룡유회(높이 오른 용은 결국은 떨어지게 마련이어서 오히려 후회를 남긴다)"라고 씌어 있다. 달은 차면 기울고, 사물은 성한 뒤에는 쇠하는 법. 무슨 일이든지 앞이 꼭 막혀 있는 것은 파탄에 가까워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제84 단 법현삼장(37)이 인도에 건너갔을 때, 고향에서 가지고 온 쥘부채를 보고 슬퍼하고, 또 병이 나서 누웠을 때는 고향인 한나라 음식을 먹고 싶어했다는 말을 듣고, "그토록 훌륭한 분이 무던히 심약한 것을 타국 사람들에게 보였구먼^5,5,5^" 하고 어떤 사람이 말하자, 고유소즈가, "온화하고도 인간미가 있는 스님이로구나"라고 말한 것은, 판에 박힌 중 같지가 않아서 품위있게 느껴진다. 제85 단 사람의 마음이란 순직하기만 한 것이 아니어서, 전혀 거짓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본래 순직한 마음의 소유자가 왜 없겠는가. 자기 자신은 순박하지 못하나, 남이 현명한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다. 몹시 어리석은 사람은 어쩌다가 현명한 사람을 보면 오히려 이를 미워한다. 그리하여,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 작은 이익을 마다하여 거짓으로 꾸며서 좋은 평판을 얻고자 한다"고 비방을 한다. 자신의 정신상태와는 차이가 있으니까, 이런 종류의 험구를 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은 그 바탕이 어쩔 수도 없는 숙맥이어서 고칠 수가 없다. 설사 거짓말로라도 작은 이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가장을 해서는 안 된다. 결코 어리석은 짓을 흉내내어서는 안 된다. 미치광이의 흉내를 낸다고 해서 큰길을 마구 뛰어다닌다면 그것은 역시 미치광이인 것이다. 악인의 흉내라고 해서 사람을 죽인다면 역시 악인인 것이다. 천리를 달리는 준마를 흉내내는 말은 역시 준마에 속하고, 훌륭한 성천자 순임금을 흉내낸다면 그는 역시 순임금의 동렬이 되는 것이다. 거짓말로라도 현을 배우는 사람은 현인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제86 단 다이라노 고레쓰구라는 분은 한시에 능숙한 재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평생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오로지 독경에 힘쓰며, 미이데라의 중 엔이소조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분포 연대에 미이데라가 탔을 때, 절의 주인인 엔이소조에게, "지금까지는 스님을 데라호시라고만 불러야겠소이다"라고 했다는데 기가 막힌 재담이다. 제87 단 머슴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일은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다. 우지라는 곳에 사는 사나이가 교토에 사는 구카쿠보라고 하는 풍류인이자 세속을 떠난 중을 처남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친하게 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우지의 사나이가) 마중하러 말을 보냈더니 "아, 먼 곳까지 수고가 많았다. 저 말구종에게 술을 내다 주어라" 하고 술을 내보내 주니, 말구종은 냉수 마시듯 마구 꿀꺽꿀꺽 마셔댔다. 칼을 차고 기운도 있어 보이는 이 말구종이 매우 믿음직해서 데리고 가노라니 우지 조금 못 미쳐서 고하타라는 곳에 이르렀다. 그때 저쪽에서 나라호시(38)가 병사를 몇 사람 호위로 데리고 오는 것과 마주쳤다. 그런데 이 말구종은 "날이 저물어 가는 이 산중에 수상한 놈들이다. 게 섰거라" 하며 칼을 빼들고 달려들었기 때문에, 그쪽의 병사들도 칼을 빼들고 덤비며, 활에 살을 메우는 병사도 있었다. 구카쿠보는 두 손을 싹싹 비벼가며, "이 사람은 지금 형편없이 술에 취해 있으니 무리한 말씀이오나 널리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빌었기 때문에 모두들 한마디씩 조소를 남기고 가버렸다. 그런데 이 말구종은 구카구보에게 "당신은 유감스러운 짓을 했단 말이오. 내가 언제 술에 취해 있었단 말입니까. 모처럼 공훈을 세우려고 칼을 뽑았는데 잘도 방해를 놓았군요" 하며 함부로 마구 베며 달려들었다. 그래서 "산적이다, 산적이야" 하고 고함을 쳐서 그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보니, "내가 산적이다" 하고 마을 사람들을 마구 베며 설치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상처를 입히고 두들겨서 잡아 묶어 버렸다. 말은 피투성이가 되어 우지의 주인집으로 돌아갔는데, 깜짝 놀란 하인들이 허둥지둥 달려가 찾아보니 구카쿠보는 구치나시바라라는 곳에 신음하며 뒹굴고 있었다. 하인들이 메어다가 치료를 해서 목숨만은 건졌으나, 허리의 상처 때문에 끝내 병신이 되고 말았다. 제88 단 어떤 사람이, 오노 도후(39)가 쓴 "와칸로에이슈"(40)라고 하면서 가지고 있는 것을 딴사람이 "그 상전서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만, 시조다이나곤 긴토쿄(41)가 선집한 책을 그보다 훨씬 먼저 세대에 살던 도후가 쓴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들어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좀 이상합니다 그려"라고 하자, 그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며 더욱더 소중하게 간직했다고 한다. 제89 단 "꼬리가 둘로 갈라지고 요괴스러운 늙은 고양이가 깊은 산중에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더라"고 어떤 사람이 말하자, "산중이 아니라 마을 근방에서도, 고양이가 오래 묵어서 꼬리가 갈라지고 요괴가 되어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있는 것이다"라고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는 이야기를, 무슨 아미타불이라던가 하는 렌가(42)를 짓고 있는 중이 교간지 근방에 살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혼자서 길을 가는 사람은 모쪼록 주의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 어느 날 남쪽 마을에서 렌가를 짓느라 밤이 이슥해서 혼자 돌아오는데, 개울가에 이르렀을 때, 소문에 듣던 고양이 요괴가 정면으로 불시에 발밑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뛰어올라서 목 부위를 물어뜯으려고 하지 않겠는가. 정신없이 그것을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힘이 쭉 빠진 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개울로 빠져 들어가면서 "사람 살류! 고양이 괴물이오. 어서^5,5,5^" 하고 소리치자, 여기저기 집에서 횃불 따위를 켜들고 달려와 보니, 잘 아는 중이라, "이게 어찌된 일이오" 하고 개울에 빠진 것을 끌어냈다. 그래서 렌가에서 상품으로 받은 부채와 벼루집 등 가지고 있던 것도 모두 물 속에 떨어뜨린 채, 겨우 살아났다는 얼굴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집으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실은 집에서 기르던 개가 어두운 곳에서도 주인을 알아보고 반가워서 뛰어오른 것이었다고. 제90 단 어느 유명한 승직(43)의 사동인 오토즈루마루라는 아이가 야스라도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친교르 맺고 늘 오가고 했는데,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는 것을 스님이 "어딜 갔다 왔느냐" 하고 물었더니, "예, 야스라도노에게 다녀왔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 야스라도노는 속인이냐, 중이냐"고 스님이 거듭 물으니, 사동은 몸을 가다듬으며 "글쎄요, 어떻더라, 머리는 보지 못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더라고, 왜, 머리만이 보이지 않았을까. 제91 단 샤쿠제쓰니치란, 점을 치는 음양도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 옛날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누가 이런 말을 시작해서 사람들이 이 말에 신경을 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일진의 날에 일어난 일은 성공을 볼 수 없고, 이날 말한 일은 잘 도지 않으며, 이날 얻은 것은 없어지게 마련이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길일을 골라 한 일이 성공되지 못한 것을 헤아려 보아도 (그 비율은) 같은 것이리라. 그 이유는, 인간의 세계란 무상하여 변하기 쉬운 경계여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존재하고 있지 않으며, 시작은 있다 해도 끝은 없는 것이다.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소망은 허사가 된다. 인생의 마음도 도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만물은 모두 환상의 변화임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이 한 가지라도 잠시나마 머무르는 것이 있으랴. 한 곳에 정지해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이 이치를 모르는 것이다. 길일에 악을 행하면 반드시 흉이요, 흉일에 선을 행하면 반드시 길하다고 한다. 길흉이란 행하는 사람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지, 어찌 날짜에 좌우된단 말인가. 제92 단 어떤 사람이 활쏘는 연습을 하면서 두 개의 화살을 손에 쥐고 과녁을 향했다. 그것을 보고 그 스승이 이르기를, "활쏘기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두 개의 화살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음 화살을 믿고 처음 쏘는 화살은 대단치 않고 생각하는 마음이 생긴다. 활을 쏠 때마다, 이것 하나밖에 없으니, 꼭 적중시켜야지 하고 마음먹고 쏘아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단 두 개의 화살이니 스승 앞에서 그 한 개를 소홀히 쏠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히 소홀해지는 마음을 본인은 알지 못하고 있지만, 스승에게는 그것이 명백히 판단이 되는 것이다. 이 활쏘기의 교훈은 만사에 통한다. 불도 수행을 하는 사람은, 저녁에는 내일 아침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아침에는 저녁때가 있다고 생각하여 나중에 다시 한 번 충분히 수행하리라는 심산을 가지게 된다. 하물며 찰나적인 순간에서 자신의 게으름 따위를 알아차릴 수가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 결행해야 할 것을 해내는 일이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제93 단 "소를 팔 사람이 있다. 사려는 사람이 내일 그 대금을 지불하고 소를 끌어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날 밤중에 소가 죽어 버렸다. 사려고 하던 사람은 득을 본 것이고, 팔려던 사람은 손해를 입은 것이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곁에 있던 자가 말하기를, "소 임자는 분명히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또 큰 이득도 있다. 그 이유인즉 생명이 있는 것이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소가 그렇거니와 그 소 임자도 그렇다. 뜻하지 않게 소는 죽었고, 뜻하지 않게 그 임자는 살아 남았다. 하루의 생명은 만금보다 귀중하다. 소값 따위는 거위의 솜털보다도 경미하다. 만금을 얻고 한 푼을 잃은 사람이 어찌 손해를 보았다고 하겠는가"하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이치는 하필이면 소임자에게만 해당되겠는가" 하고 비웃었다.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러기에 인간이 죽음을 미워한다면 생을 사랑해야 한다. 살아서 생명을 유지하는 즐거움을 하루라도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이 즐거움을 잊고 일부러 애써서 다른 즐거움을 원하고, 이 귀중한 조명의 기쁨이라는 보배를 저버린 채, 위험한 일로 다른 보화를 탐한다면 만족이란 얻을 수 없다. 살아 있는 동안 생을 즐기지 않고 있다가 죽음에 임박해서 갑자기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이 도리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두 생을 즐기지 않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또 그러한 일은 생사가 일여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모두 그 모습에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도리를 깨달은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더욱더 비웃는 것이었다. 제94 단 재상인 사이온지 사네우지 공이 조정에 출사하는 도중, 칙서를 받든 무관을 만났는데, 그 무관은 공을 보자 말에서 내려 인사를 했다. 공이 뒤에 말하기를 "아무개는 칙서를 받들고 있으면서 말에서 내린 자다. 그런 자가 어떻게 임금을 받들어 모시겠는가"라고 했기 때문에, 그 무관은 추방되고 말았다. 그럴 때에는 말 위에 탄 채로 칙서를 높이 들어 보이면 되는 것이고, 하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95 단 "책갑의 끈구멍에 끈을 달 때에는 어디다 달면 좋을까요" 하고 어느 박식한 사람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축에 달아야 한다는 말도 있고 표지에 달아야 한다는 말도 있으니, 어느 쪽도 상관없다. 또 문갑에는 축에 달아서 붙이는 것도 보통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제96 단 '털진득찰'이라는 풀이 있다. 독사에게 물린 곳에 이 풀을 짓이겨서 붙이면 당장에 해독이 되어 낫는다고 한다. 기억해 두면 좋을 것 같다. 제97 단 그것에 달라붙고 엉겨 붙어서 그것을 못 쓰게 만들고 파괴해 버리는 것이 무수히 있다. 사람의 몸에는 이가 있고, 집에는 쥐가 있고, 나라에는 도적이 있고, 소인에게는 재물이 있고, 군자에게는 인의가 있고, 승려에게는 불법이 있다. 제98 단 고승이 남긴 말을 기록해서 "이치곤호단"이라고 이름을 붙인 서적이 있어서 읽어 보았더니, 동감으로 여겨지는 대목들이 있었다. 1. 할까말까 망설이는 일은 대개의 경우 하지 않는 편이 좋다. 1. 내세의 안락을 원하는 자는 '누카미소(고운 겨하고 소금을 섞은 것으로, 채소 따위를 절이는 재료)'를 담는 항아리 한 개도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 늘 읽는 경서나 본존불까지도 훌륭한 것을 가지지 않는 편이 좋다. 1. 속세를 떠난 수도자는 아무것도 지니 것이 없어도 지장이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해나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1. 신분이 높은 사람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 된 기분으로, 유능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살아가면 된다. 1. 불도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한가로운 몸가짐으로 세 속의 일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을 첫째로 삼는다. 이 밖에도 몇 가지 더 있었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제99 단 재상인 고가 모토토모 공은 미남인 동시에 부유한 사람이어서, 모든 일에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차남인 모토토시 경을 '게비이시(현재의 경찰총감 같은 직함)의 장관에 임명해서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던 시절, 관청의 용품을 두는 궤가 헐어서 보기 흉하다고 하기에 훌륭한 것으로 다시 만들도록 일렀다. 그러자, "이 궤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어서, 그 시초도 알 수 없으려니와 이미 수백 년을 거친 물건이오. 역대 상전의 공물은 헐고 낡은 것이 자랑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 간단히 개조하기는 난처하옵니다" 하고 옛 고사에 정통한 관리들이 주장했기 때문에, 이 궤를 개조하는 일은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제100 단 대정대신인 고가 미치미쓰가 세이료덴(천황이 평상시 기거하는 전각)의 전상에서 물을 마시는데, 시종이 토기를 가져다 드렸더니, "나무 그릇을 바치도록 해라"하여, 목기로 물을 마셨다고. 제101 단 어떤 사람이 대신의 신임 피로연 지휘를 맡았을 때에, 서기가 들고 있던 칙서를 받아들지 않고 그냥 시신덴(천황이 의식을 거행하는 전각)으로 승전해 버렸다. 생각하면 엄청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돌아서서 내려올 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는데, 6 품 벼슬인 게키(천황의 칙서 등을 기초하거나 기록하는 직명) 야스쓰나라는 사람이 머리 위로부터 비단으로 얼굴을 가린 한 여관에게 부탁하여 그 칙서를 남몰래 슬쩍 전달했던 것이다. 매우 훌륭한 처사였다. 제102 단 미쓰타다라는 3 품 벼슬에 있던 사람이 쓰이나(섣달 그믐날 밤에 악귀를 몰아내는 의식) 행사의 지휘를 맡았을 때, 박식하기로 유명한 우대신 긴카타 공에게 그 절차를 묻고 가르침을 받으려 했더니, '마타고로라는 사나이를 스승으로 삼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 마타고로라는 사람은 나이가 많은 경비원인데, 조장의 모든 행사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관백인 고노에 쓰네타다 공이 진영에서 자리에 앉았을 때, 무릎 밑에 까는 깔개를 준비해 놓지 않아서 게키를 불렀다. 그때 마타고로는 불을 때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대뜸 말하기를, "틀림없이 무릎 밑에 까는 깔개를 가져오라시는 말씀일 겁니다"라고 귀띔해 주었다고 한다. 보통으로 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어서 매우 재미있는 일이었다. 제103 단 사가라는 곳에 있는 고우타 천황의 전당인 다이카쿠지도노에서 시종들이 수수께끼를 하면서 쉬고 있는 곳에 의사인 단바노다다모리(44)가 들어왔다. 시종인 건아키라 경이, "내 나라의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 타다모리가 무엇"이라 하여 다다모리를 걸어서 수수께끼를 내놓은 것을, "가라헤이시(중국에서 전래한 병이라는 뜻. 헤이시를 헤이시로 비유해 한 말)"라고 풀고서 모두 함께 웃었기 때문에, 화를 내고 나가 버렸다. 제104 단 황폐한 저택 으슥한 곳,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여자가 부정한 몸을 근신해야 할 무렵이어서 혼자서 쓸쓸히 틀어박혀 있는 것을 어느 분이 찾아 주고 싶어 초저녁 달이 으스름할 즈음, 남몰래 슬쩍 방문했더니 개가 몹시 짖어댄다. 하녀가 나와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하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안내를 시켜 집 안으로 들어섰다. 불안스러운 모습으로, 어떻게 하루 해를 보내고 있을까 하고 몹시 딱하게 여겨진다. 조잡한 마루청에 잠시 서 있노라니 차분하고 젊디젊은 목소리로 "들어오시지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여닫기가 매우 뻑뻑한 미닫이를 열고 들어갔다. 안의 모습은 별로 황폐하지도 않은 데다 등불이 은은하게 켜져 있고, 세간 등이 아름답게 보여 평소의 품위 있는 향기가 은근히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그러한 거처였다. "문을 꼭 닫아걸어라. 밤에 비가 내릴지도 모르니 타고 오신 수레는 문 아래 넣어 두고, 시종 드시는 분들은 어디 어디에^5,5,5^"라고 하녀에게 일렀다. 그리고 "오늘 밤은 안심하고 잘 있겠지요"라고 주고받는 말도 바로 가까운 곳에서 소근대는 것이어서 은근하게만 들린다. 각설하고, 요즈음 지내온 일 등을 자상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첫닭이 운다. 그래도 계속해서 과거사에서 앞으로 닥쳐올 일 등을 차분하게 조용히 주고받다 보니 이번에는 닭이 마구 울어대서, 벌써 밤이다 밝았는가 싶어서 물어보기는 하였지만, 밤이 어두울 동안에 서둘러 돌아가야 할 그런 장소도 아니어서 잠시 더 머물고 있는데, 문 사이가 환하게 밝아진 것이 보여, 잊지 못할 정애어린 말들을 남기고 방을 나서니, 나무들의 가지 끝이나 뜰의 풀포기도 눈이 부시도록 푸른 4월경의 새벽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으리만큼 아름답고 정취 깊은 것이었다. 그때의 일이 회상되어(지금도 이 근방을 지날 때에는) 그 집의 계수나무의 큰 덩치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한없이 돌아다보곤 한다는 것이다. 제105 단 북쪽 집 그늘에 녹다 남은 눈이 꽁꽁 얼어붙은 곳에 밀쳐놓은 수레 채에 서리가 내려앉아서 새벽 달빛에 한층 반짝반짝 빛나고, 그 달빛이 때때로 구름에 가려지는 그런 추운 날씨에,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불당의 낭하에서 보통 신분이 아닌 듯한 남자가 여자와 함께 문턱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긴지 좀처럼 그칠 것 같지도 않다. 여자의 머리 모양새며 얼굴 생김이 매우 아름다워 보이는 데다,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향내가 바람결에 풍겨오는 것도 정취 깊은 일이다. 이야기의 말 끝 따위가 간간이 들려오는 것에도 왜 그런지 마음이 끌린다. 제106 단 고야산(45)의 쇼쿠쇼닌(46)이 교토에 올라갔을 때에, 아주 좁다란 길에서 말을 탄 여자와 마주쳤는데, 그 말고삐를 잡고 가던 마부가 잘못해서 스님의 말을 도랑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스님은 매우 심술궂게 힐책하며 "이건 어이도 없는 난폭한 짓이로군. 불제자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비구보다는 비구니가 못하고, 비구니보다 우바새(속인으로 계를 받은 남자)가 못하며, 우바새보다 우바이(속인으로 있으면서 계를 받은 여자)가 못하다. 그러하거늘 제일 못한 악행이로다" 하고 욕을 하자, 그 마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요"라고 말했다. 스님은 더욱 조기가 등등하여, "무엇이 어떻다구, 이 무식한 악당놈아"라며 거칠게 꾸짖고는, 더할 수 없는 욕을 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듯 가버렸다. 이것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욕설이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제107 단 여자가 말을 건넨 데 대해 대답이 금방 적절하게 나오는 남자는 그리 혼하지 않다고 해서, 가메야마인이 재위중이실 때, 장난을 좋아하는 여관들은 젊은 귀족들이 입궐할 때마다 "꾀꼬리 울음 소리를 들으셨습니까"라고 물어보아 시험을 했다. 그러자 어느 분이 "시시한 나에게는 그런 게 들리지 않소이다"라고 대답했다. 다음에 내대신 도모모리 공은 "이와쿠라에서 들은 것 같소이다"라고 대답했는데, "이 대답이 무난하다. 시시한 나 같은 사람은 어쩌구 하는 대답은 구성 없다" 고들 비평을 했다고 한다. 하여튼 남자는 여자에게 흉잡히지 않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조도지의 관백인 구조 다다노리라는 분은, 어렸을 때 백모인 안키몬인이 잘 가르쳤기 때문에 말씨 따위가 품위가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고 한다. 좌대신인 사이온지 사네오 공은 "아주 비천한 하녀가 보고 있을 때에도 몹시 겸연쩍어 마음이 쓰이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여자가 없는 세상이라면 옷매무새나 관 따위도 아무렇게나 하고 살아도 된다고 말이 되어, 아마도 몸치장 따위를 하는 사람은 없을 성싶다. 이토록 남자들이 마음을 쓰게 되는 여자라는 것이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가 생각해 보면, 도시 여자란 본성이 모두 비뚤어져 있다. 아집이 강하고, 탐욕이 심하며, 사물의 도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다만 미혹한 곳으로 재빨리 생각이 돌아 말을 잘하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때에도 물으면 대답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저것 잘 분별하고 있는가 싶어 보고 있노라면 어이없는 말까지도, 묻지도 않는데 지껄여대다. 깊이 사색하고 겉치레를 꾸미는 일은 남자의 지혜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거짓말이 탄로가 나는 줄도 모르고 있다. 순박하지 못하고 모자라는 것은 여자다. 그러한 여자의 마음에 영합하여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은 정말 싫은 일이 아닌가. 그러기에 어찌 여자 따위에 공연히 마음을 쓸 것인가. 만일 또 현명한 여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여자와는 친숙해지기도 어렵거니와 재미도 없을 것이다. 요컨대 애욕의 세계에서 살아갈 양으로 여자의 마음에 영합할 경우에만 상냥하기도 하고 재미있게도 느껴지리라. 제108 단 잠깐 동안의 시간을 아깝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시간을 초월하는 것을 잘 깨닫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리석어서 시간이 아까운 줄을 모르는 탓인지. 어리석어서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에게 주의를 준다면, 한푼의 돈은 매우 적지만 이것을 모으면 가난뱅이를 부자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기에 상인이 한푼의 돈을 중하게 여기는 마음씨가 절실한 것이다. 시간도, 잠깐 동안은 멍청하게 하고 있어도 크게 변동이 생기지는 않지만 이렇게 죽 계속해 나간다면 목숨이 다 되어 죽을 때가 금방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은 먼 장래의 세월을 아끼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눈앞의 짧고 하찮은 시간이 헛되이 소비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야 한다. 만일 누군가가 찾아와서, 당신의 수명은 내일뿐이라고 예고한다면 오늘 하루가 저무는 동안 무엇을 즐기며 무엇을 이룩하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오늘이라는 날도 내일이면 죽으리라는 예고를 들은 경우와 어찌 다를 바가 있을까. 하루 동안에 식사. 배변. 수면. 회화. 보행 등 불가피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그 나머지 얼마 안 되는 짤막한 시간을, 쓸모없는 짓으로 메우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시시한 일을 생각하여 시각을 옮겨 나갈 뿐만 아니라, 하루를 허비하고 그것이 한달로 쌓여서 마침내 일생을 공허하게 보내게 된다. 이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사영운(중국의 옛날 문장가)이라는 사람은 "법화경"의 번역자였는데, 늘 영달공명의 즐거움을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혜원스님은 그를 염불 수행의 도량인 백련사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잠깐 동안의 사간을 아끼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다. 시간을 왜 아끼는가 하면, 마음 속에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신변에 번잡스러운 일들이 없는 경지가 되어, 그렇게 해서 중지하고 싶은 자는 중지하고, 다시 불도 수행을 하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109 단 나무 잘 타기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휘해서 높은 나무에 오르게 하여 나뭇가지 끝을 자르게 했을 때, 매우 위험하다고 여겨질 동안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고 있다가 다 작업이 끝나서 내려올 때. 이미 지붕 높이 만큼이나 내려오는 것을 보고서야"잘못 디디지 말고 주의해서 내려오너라" 하고 일렀다. "이 정도까지 내려왔으면 뛰어내려도 될텐데 왜 이제서야 그런 주의를 주십니까?" 하고 물으니, "바로 그거야. 눈이 아찔해지고 가지가 휘청거릴 때에는 누구나 다 자신이 주의를 하기 때문에 말할 필요도 없지. 실수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길 때 으레 일어나게 마련이니까"라고 대답했다. 비천한 천인의 말이기는 한지만 성인의 훈계와 일치하고 있다. 축국에서도 어려운 공을 성공적으로 차고 난 뒤 안심하게 되면 반드시 공을 땅에 떨어뜨린다고 어딘가에서 읽은 일이 생각난다. 제110 단 쌍륙 솜씨가 뛰어났다는 사람에게 그 이기는 비법을 물었던 바, "이기려고 마음먹고 치면 안된다. 지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말을 써라. 어떻게 하는 것이 지는 수가 되는지 판단한 뒤에 그 수를 쓰지 말고 한 칸이라도 더 버틸 수 있는 수를 쓰면 된다"고 대답했다. 이 말은 과연 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의 가르침이라고 할 만하다. 몸을 닦고 나라를 유지해 나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제111 단 "바둑이나 장기, 쌍륙을 즐기며 매일 지내는 사람은 사중죄나 오역죄보다도 더한 악사라고 생각한다"고 어느 성인이 말씀하셨는데, 언제까지나 귀에 남는 훌륭한 말이라고 여겨진다. 제112 단 내일은 먼 나라로 길을 떠날 예정이라는 사람을 향해서, 조용한 마음으로 해야 할 그런 일을 누가 바라겠는가. 긴급하게 서둘러야 할 중요한 일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나, 또는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사람이 다른 일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또 남의 슬픔이나 경사 등에 인사를 차라리 않는다고 해서 왜 그러느냐고 원망할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점점 많아져서 병이라도 생기거나, 더구나 세상을 등지고 이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그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속세의 습관이나 규칙은 어느 것이나 하나도 버려 둘 수 없는 것뿐이다. 이러한 속세의 어수선한 일들을 모르는 체 외면해 버릴 수만도 없다 하여 일일이 해내려고 하다간 욕망도 많아지고, 육신도 피로해지며, 마음의 여유도 없이, 일생은 지저분하고 자잘한 의리에 얽매여 허망하게 끝나고 말 것이다. 진정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나의 생애는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모름지기) 모든 관계를 내던져 버려야 할 때가 왔다. (이제 이렇게 된 바에는) 신의도 지키지 말자. 예의도 아랑곳하지 말자. 이런 심정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로부터는 미치광이라는 말을 들어도 좋다. 제정신을 잃었다든가 인정머리가 없는 놈이라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 욕을 먹어도 태연하다. 칭송을 받았댔자 관여할 바가 아니다. 제113 단 40을 넘어선 사람으로 색정적인 방면이 드러나지 않고 은근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공공연하게 남녀 관계 등을 입밖에 내거나 남의 신상을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것 따위는 어울리지도 않으려니와 매우 거북한 일이다. 대체로 보기 흉하고 듣기 거북한 것은 늙은이가 젊은이 틈에 끼여 남을 웃기려고 지껄이는 꼴이다. 또 시시한 신분이면서 점잖은 분들을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하는 꼴. 가난한 집구석에서 술잔치를 좋아하고 손님을 청해서 잘 대접하려고 애쓰는 꼴. 제114 단 재상인 사이온지 긴스케 공이 사가라는 곳에 갔을 때 아리스가와 근방, 물이 흐르는 곳에서 사이오마루(47)가 소를 급히 몰아댔기 때문에 소가 마구 텀벙거리는 물이 수레 앞 칸막이 판자 위로 좍좍 끼얹어지는 것을 다메노리라는 사람이 수레 뒤쪽에 배석하고 있다가 "괘씸한 소몰이꾼이로구나. 이런 곳에서 소를 마구 몰아대면 되겠는가"라고 했는데, 재상은 기분을 상하시어 "네가 수레를 몰아도 저 사이오마루보다 더 잘하지는 못하리라. 너야말로 괘씸한 놈이다"라고 하며, 수레에 그의 머리를 부딪쳐 주었다. 이 솜씨 있는 사나이는 우즈마사도노(48)가 부리던 사나이로, 궁중에 근무하는 소치기꾼이었다. 이 우즈마사도노는 소를 몹시 좋아하여 그를 모시는 여관들의 이름도 모두 소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불렀다고 한다. 제115 단 셋쓰 지방의 슈쿠가와라라는 곳에 보로보로(49)들이 많이 모여서 구품정도(50)에 왕생하기를 기원하여 염불을 외고 있는 곳에 외부에서 들어온 한 사람의 보로보로가 "혹시 이 중에 이로오시보라는 분이 계십니까?"라고 물었는데, 여러 사람들 주에서, "여기 있습니다. 나를 찾는 붕은 누구십니까?"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거 매우 반갑습니다. 나는 시라본지라는 사람이온데, 나의 스승이신 모모라는 분이 도고쿠 지방에서 이로오시에게 살해를 당했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서 스승님의 원수를 갚으려고 찾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이로오시는 "참 잘 찾아오셨소이다. 말씀하신대로 그러한 일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곳에서 마주 상대하게 되면 이 도량을 부정하게 할 터이니, 이 앞의 개울가로 나가서 대결을 하십시다. 그럼 여러분, 제발 어느 족에도 가담하지 말아 주십시오.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모처럼의 불사에 방해가 되니까요"라고 교섭을 해두고, 두 사람은 개울가로 나가서 대결을 하다가 힘껏 상대방을 서로 찔러 함께 죽어 버렸다. 이 보로보로라는 중들이 옛적에는 없었던 것인가. 근세에 와서 보로무지 본지 등 등의 명칭을 붙인 자가 그 시초라고 한다. 속세를 버린 듯하면서도 집념이 깊고, 불도에 뜻을 둔 듯하면서도 싸움을 일삼는다. 제멋대로 굴며 파렴치한 듯한데도,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두려움이나 생에 대한 애착을 느끼지 않고 담담하게 여기는 점이 개운한 맛이 있어, 남의 이야기를 들은 대로 옮겨 쓰는 것이다. 제116 단 사원의 명칭이나, 그렇지 않은 다른 모든 물건에도 이름을 붙이는데, 옛날 사람은 별로 파고들거나 멋을 부리지 않고 그냥 수수하고 평이하게 붙였다. 요즈음은 깊이 생각하고 학식을 과시하려는 것같이 들리는 것이 많은데, 그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다. 사람 이름도 눈에 익지 않은 어려운 글자를 쓰려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무슨 일에나 희귀한 것을 찾아내고 좀 변질적인 설을 좋아하는 것은 천박한 인간이 흔히 하는 짓이다. 제117 단 친구로 삼는 데 난처한 것이 일곱 가지가 있다. 그 첫째로는 신분이 고귀한 사람, 둘째로는 젊은 사람, 셋째로는 병이 없고 강건한 사람, 넷째로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 다섯째로는 무용을 구사하려는 무사, 여섯째로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 일곱째로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좋은 친구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무엇을 잘 주는 친구, 둘째로는 의, 셋째로는 지혜가 있는 친구다. 제118 단 잉어탕을 먹은 날은 머리카락이 엉키지 않는다고 한다. 잉어 뼈는 아교를 만들 정도니까 매우 끈적끈적한 것이다. 잉어만은 천황의 어전에서도 요리할 수 있다고 하니까 고귀한 물고기인 것이다. 새에서는 꿩이 제일이다. 꿩이나 송이버섯 등은 천황의 목욕탕 위에 걸려 있어도 상관없다. 기타의 물품은 그런 데 둘 수도 없고 두어도 천하게 보인다. 중궁의 어소 목욕탕 위칸, 검은 옻칠을 한 선반 위에 기러기가 놓여 있는 것을 사이온지 사네카네 공이 보시고, 귀가하자 당장에 편지를 보내어, "그러한 것이 원모양 그대로 선반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예전에도 본 적이 없다. 매우 보기 흉한 일이다. 똑똑한 사람이 곁에서 모시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한다. 제119 단 가마쿠라(51) 앞바다에서 잡히는 가다랭이라는 물고기는, 그 근처에서는 다시없는 고급 물고기로 요즈음 인기가 높다. 그 가다랭이도 가마쿠라의 늙은이는 말하기를, "이 물고기는 우리들이 젊었을 무렵에는 높은 분들 앞에는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놈의 대가리는 천민들도 먹지 않고 잘라내어 버렸으니까요"라고 했다. 이러한 것들도 세말이 되고 보면 상류사회에까지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제120 단 중국에서 도래하는 외래품은 약을 제외하고는 없어도 지장은 없을 것이다. 서적 따위는 이젠 많이 퍼져 있으니까 그것을 베껴서 읽어도 될 것이다. 당나라 배가 순탄치도 않은 항로에 쓸모없는 물품만을 만재하여 굉장히 많은 것을 수송해 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먼 곳의 물품을 보배로 삼아서는 안된다"거나 또"얻기 어려운 물건은 존귀하지 않다"고 옛날 한적에도 씌어 있다고 한다. 제121 단 가축이라면 우선 말과 소. 잡아매 놓고 고생을 시키는 것은 가엾은 일이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하는 수 없다. 개는 집을 지키고 도둑을 막는 그 임무가 사람보다 월등하므로 길러도 좋은 동물이다. 그러나 어느 집에나 있는 것이니 특별히 사육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밖의 새나 짐승은 모두 필요치 않다. 산야를 달리며 사는 짐승을 우리 속에 가두어 놓거나 쇠사슬로 잡아매고, 나는 새는 깃을 자르고 새장에 넣어 두니, 구름을 그리워하고 산과 들을 생각하며 잠시인들 슬픔이 가실 날이 있으리. 그 정이 내것인 양 참고 견디기 어렵다면, 분별 있는 사람이 어찌 이를 즐기리오. 결코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생물을 괴롭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그 옛날 걸왕이나 주왕과 같이 잔학한 마음인 것이다. 왕자유(52)가 새를 사랑한 것은, 삼림 사이에서 그들이 즐기는 것을 바라보면서 거니는 벗으로 삼은 것이지, 잡아다가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총체적으로, 진귀한 새라든가 기이한 짐승을 나라에서는 사육하면 안 된다고 한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제122 단 인간의 재능은, 서적에 잘 통하고 성인의 가르침을 아는 것을 첫째로 한다. 다음은 글씨를 능숙하게 쓰는 일인데,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예는 배워 두는 것이 좋다. 학문을 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다음에는 의술을 배우는 것이 좋다. 내 몸을 보양하고 남의 몸을 도와주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정성을 다하는 데에도 의술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에 활을 쏘는 궁도와 말을 타는 기마술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육예 중에도 들어 있다. 반드시 배워서 익혀야 한다. 문, 무, 의의 세 가지 길은 분명히 그중 하나가 결여되어도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배우려 하는 사람을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다음에 음식물은 인간에게 있어서 목숨을 기르는 중요한 것이다. 잘 조리하고 맛을 아는 사람은 큰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수공이다. 이것은 만사에 필요하며 기타의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는 다능은 군자의 수치가 되는 바이다. 시가에 능숙하고 음악에 뛰어나 있는 것은 우아하고 품위있는 취미로서 군신이 모두 이를 중히 여기고 있지만, 현대의 안목으로는 이 예악지도로 치세하려던 옛 군자의 이상은 어쩐지 좀 어리석은 방법인 듯하다. 마치 황금은 뛰어난 것이지만 철의 용도의 다양하고 넒은 데에는 그 효용이 미치지 못함과 같다. 제123 단 쓸데없는 짓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거나 그릇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나라를 위해서, 천황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 많고, 그러다 보면 그 나머지 여유란 극히 적다. 우선 생각해 보라. 인간으로서 부득이 해야 할 일은 첫째 음식이요, 둘째로 의복, 셋째로 주거다. 세 속의 대사는 이 의식주의 세 가지에 불과하다.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으며 비바람에 맞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이 인생의 낙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병에 걸린다. 병에 걸리게 되면 그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의료를 내칠 수는 없다. 그러한 뜻에서 약까지 포함된 네 가지 것이 부족함을 가난하다고 하고, 그 네 가지 것이 부족하지 않음을 부유하다고 한다. 그 네 가지 이외의 것을 바라 발버둥치며 안달하는 것을 사치라고 한다. 이 네 가지 일을 검소하게 다스리기만 한다면, 어떠한 사람이라도 부족하다거나 가난하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제124 단 제호(53) 법사는 정토종 중에서도 누구 못지 않은 분인데도 학자라는 티를 내지 않고, 다만 밤낮 염불에만 전심하여 안온한 나날을 보냈다. 이렇게 80세까지 산 그 모습에는 진정 호감이 간다. 제125 단 친지가 별세하여 49재에 어느 고명한 스님을 모셔 공양을 의뢰했는데, 그이 설법이 지극하여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그 스님이 돌아가고 난 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여느 때보다도 더 지극하게 오늘은 감사하게 느껴졌다"고들 주고받으며 감탄하는데, 누군가가 말하기를 "여하간에 저토록 고마이누(54)와 흡사한데 말입니다. (굉장하군요)"라고 해서 감격은 식어 버리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식으로 스님을 칭찬하는 법이 어디 있을까? 또 "남에게 술을 권하기 위해서라고 해서 자기가 먼저 마시고 상대에게는 무리하게 권하는 것은 검으로 남을 베려는 것과 같다. 검이란 날이 양쪽에 있어서 번쩍 들어 상대를 치려고 할 때는 먼저 자기 머리가 베어지기 때문에, 남을 제대로 벨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취해서 곯아떨어지면 남은 더 마시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했다. 검으로 베어 본 경험이 있단 말인가. 정말 우스운 이야기다. 제126 단 "노름판에서 지는 일이 자꾸만 계속되어 끝장이 날만큼 되어 재물을 몽땅 걸려고 할 때에는 그와 맞서면 안 된다. (지금까지 지는 운수를 가졌던 사람이) 이번엔 그와 반대로 계속해서 이길 운수가 돌아온 것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그 시운을 아는 것을 잘하는 노름꾼이라고 한다"고 누군가가 말했다고. 제127 단 새로 고쳐서 이익이 없는 일이라면 고치지 않는 편이 좋다. 제128 단 미나모토노 마사후사라는 고관은 학문이 뛰어난 훌륭한 인물인데, 대장으로 승진을 시킬까 생각하고 계실 무렵, 고후시미인의 측근자가 "지금 기막힌 일을 목격했습니다'라고 아뢰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니 "마사후사 경이 매에게 먹이려고 살아 있는 개의 다리를 자르고 있는 것을 중울타리 구멍으로 보았습니다"라고 아리었다. 상황께서는 매우 징그럽고 밉게 여기시어, 평상시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것도 싹 가시고 승진도 시키지 않고 말았다. 그토록 훌륭한 분이 매를 기르고 있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으나, 개의 발을 잘랐다는 이야기는 전혀 터무니도 없는 일이었다. 거짓말로 아뢴 것은 애석한 일이었으나, 그러한 말을 들으시고 그 행동을 미워하신 것은 존귀하신 뜻이었다. 도대체 상아 있는 생물을 죽이고 사처를 입혀 가며 싸우게 하여 그것을 보고 즐기려는 인간은 축생과 한 무리이다. 모든 조수, 아주 작은 벌레에 이르기까지 주의해서 그 모습을 살펴보면, 새끼를 사랑하고 어미를 따르며 부부가 함께 동거하고, 시기하거나 성을 내거나 욕심이 많거나, 또는 제 몸을 아끼고 목숨을 소중히 다루는 것은 물론 어리석은 짐승이어서 사람보다도 더욱 지독하다. 그러나 그 어리석은 축생에게 고통을 주고 목숨을 앗아 버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쌍하지 않은가. 일체의 생물을 보고 자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니다. 제129 단 안회(공자의 제자 중 가장 덕을 많이 쌓은 사람)가 언제나 마음에 둑 주의한 것은 남에게 고생을 시키지 않는 일이었다. 대체로 사람을 괴롭히고 무리한 일을 강요하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며, 아무리 천한 백성의 의사라도 빼앗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어린 아이들을 속이고 야유하여 그것을 재미있게 여기는 일이 있다. 어른들이야 그게 정말이 아니고 장난이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어린이의 마음에는 몹시 두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울고 싶은 심정이 실로 심각하다. 이러한 어린애들을 조롱하고 재미있어 한다면 그 마음은 이미 자비심을 떠난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기뻐하거나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한 일이려니, 누가 이 실제의 모습을 파악할 수가 있으랴. 눈앞에 보이는 형태에 지배되고 있음이다. 신체를 손상하는 일보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그 사람을 한층 더 심한 타격에 몰아넣는다. 병에 걸리는 일도 대개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경우는 적다. 발한제를 먹고 땀을 내려고 애를 쓰지만 담이 안 나는 수가 있으나, 좀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식은땀이 흐른다. 이를 보아도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능운관의 현판 글씨를 쓰느라 마음을 괴롭혔기 때문에 순식간에 호연토록 백발이 되었다는 예화이다. 위나라 명제가 능운관이라는 높은 건물을 세웠을 때, 현판에 글씨를 쓰지 않은 채 그 건물 맨 꼭대기에 달아 버렸다. 그래서 위탄이라는 서도에 능한 사람을 콘 광주리에 담아 도르래를 걸어서 매어 달고 현판을 쓰게 했다. 그가 현판을 다 쓰고 광주리에 담긴 채 내려왔을 때에는 그이 머리는 백발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제130 단 모든 일에 있어서 남과 다투지 않고 자신을 억제하여 남을 따르며, 내 일을 뒤로 미루고 남의 일을 먼저 앞세우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모든 유흥에서도 승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기는 재미로 즐긴다. 자신의 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을 확신하여 좋아한다. 그러니까 지면 자연히 흥미없고 시시하게 느끼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내가 짐으로써 남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라면 더욱 유흥이나 승부가 재미있을 리 없다. 남을 부만 속에 몰아넣고 자기 마음을 위로한다는 것은 도덕에 어긋난다. 친한 사이에서도 장난 삼아 상대를 속여넘기고 자신의 지혜가 뛰어난 것을 좋아한다. 이것도 예의에 벗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시초는 즐거운 유흥의 주연에서 시작된 일이 언제까지나 소멸되지 않는 원한을 만드는 예가 많다. 이는 HEN 호전적인 기질이 가져오는 폐해인 것이다. 만일 남보다 우월하게 되려고 생각한다면, 학문을 깊이 연구해서 학재로 남보다 뛰어나려고 소망함이 좋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도를 닦느냐 하면 자기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고, 한 동료들과 다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높은 벼슬도 사퇴하고, 이익도 추구하지 않고 헌신짝 버리듯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문의 힘이 아닐까. 제131 단 가난한 사람은 재화를 존중하고, 노인은 완력을 존중하여 소중히 여긴다. 자신의 분수를 자각하고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재빨리 손을 때는 것이 지자의 취할 길인 것이다. 만일 중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용하지 않은 그 사람의 잘못이다. 자신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리하게 강행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이 분수를 잃으면 도둑질을 할 것이요, 노인이 역부족한 짓을 한다면 병을 얻을 것이다. 제132 단 도바라고 불리는 신작로는 도바에 별궁이 세워진 후에 붙인 이름이 아니다. 옛날부터 불려 내려오는 명칭인 것이다. 모토요시 신노오(55)가 원단에 축하의 말씀을 올릴 적에 그 말소리가 매우 낭랑해서 북쪽에 있는 다이고쿠덴(하연이 베풀어지던 궁전)에서 도바의 신작로까지 들렸다는 것이 "리호오오노키(의전을 맡아 보던 중명친왕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백 연도 훨씬 예전부터 있던 명칭이라는 것이 증명이 됨)고 한다. 제133 단 천황의 침소는 동족으로 베개를 두는 것이 정해져 있는 규칙이다. 대체로 동족에 베개를 두고 동방의 양기를 받는 것이 좋기 때문에 공자도 동족으로 머리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침전의 설계는 남쪽으로 베개를 두게 하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시라카와인은 언제나 북쪽으로 베개를 두시었다.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는 것은 피해야 한다. 또 남쪽에 대신궁이 있다. 대신궁 방향에 발을 뻗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나 대신궁의 요배는 동남쪽을 향하고 하기 때문에 정남은 아니다. 제134 단 다카쿠라인의 유골을 모셔 두고 늘 독경을 올리며 공양하는 곳을 홋케도라고 부른다. 이 홋케도에서 독경을 맡아서 하는 율사 한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거울을 들고 자신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니, 자기 얼굴이지만 얼마나 보기 흉하고 망측하게 생겼는지 스스로 한심스럽기 그지없어 거울을 보는 일은 고사하고 거울 자체에도 혐오증을 느끼게 되어, 그 뒤로는 오랫동안 손에 거울을 들지 않고 경원하는 동시에 남의 앞에 나서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만 홋케도에 근무하는 데만 정성을 기울여, 나머지 시간은 집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다고 들었는데, 드물게 보는 기특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현명한 듯한 사람도 남의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자기 자신의 일은 통 알지 못하고 있다. 자기의 일을 모르면서 남의 일을 잘 알 수는 없다. 그러기에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을 사물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자기 꼴이 흉측한 것도 모르고, 마음이 어리석은 줄도 모르며, 재간이 없는 것도 신분이 천한 것도 깨닫지 못하고, 늙어빠진 줄도 병에 걸려 있는 줄도 모르며, 더구나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수행중에 있는 불법에 매우 미숙한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내 자신의 결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남의 비방인들 알 수 있으랴. 그러나 용모는 거울에 비치고, 나이는 세어 보면 안다. 그래서 자신을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알고는 있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용모를 고쳐라, 나이를 젊게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신의 보잘것없는 바를 알면, 왜 얼른 거기에서 물러서지 못하는가 말이다. 늙었구나 생각되면 왜 조용히 물러나 몸을 편안하게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불도 수업이 소홀하다고 생각되면 왜 깊은 주의를 이 점에 집중하지 않느냐 말이다. 도대체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용모가 흉하고 마음이 암우하면서 벼슬을 하려 하고, 무지한 주제에 뛰어난 학재를 지닌 사람들 틈에 끼여들며, 재주가 없고 예능이 서투르면서 명인과 동석하고, 흰머리를 가지고 장년들과 함께 어울리며, 더구나 미치지 못할 일을 바라 그 일이 안된다고 한탄을 하며, 오지도 않을 일을 기대하고 남의 눈치를 보며 아첨을 하는 것은 모두 다 남이 주는 치욕이 아니다. 욕심에 이끌려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욕되게 하는 짓이다. 욕심이 그칠 줄 모르는 이유는, 목숨이 다되어 끝나는 일대사, 즉 죽음이 당장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제135 단 ^5,5,5^ (생략) 제136 단 전의 와케노 아쓰시게라는 사람이 고 법황 어전에 사후했을 때, 식사를 올리는 수라상이 들어왔는데, "방금 올리는 수라상의 음식물을 무엇이든지 글씨로든 효능이든 물어보십시오. 제가 책을 보지 않고 대답하거든 한방 약초책과 대조해 보십시오. 책과 일치되어 틀림이 없을 것이옵니다"라고 제의했다. 그때 마침 내대신 아리후사 공이 들어와서, "나도 그 김에 공부를 좀 시켜 주시오"라며, "소금이란 한자는 무슨 변에 씁니까"라고 물었다. 전의가 "흙토변이지요"라고 대답하자 "학재의 정도는 그만하면 잘 알겠소이다. 이젠 그만두지요. 물어볼 기분이 나지 않소이다"라며 온통 크게 웃어대는 바람에 전의는 쩔쩔매고 물러나고 말았다. [ (각주 해설) 1) 이 책의 첫마디를 장식하는 '무료하고 쓸쓸한 나머지'라는 말은 일본 고전에서도 제일 멋있는 서두라고 해서 유명하거니와, 한자로 쓴 '도연'과 수상이라는 말 '구사'를 하나로 묶은 "도연초"를 이 작품의 제명으로 한 것도 재치 있는 일이다. 2) 헤이안 시대의 여류 문학가. 황후를 모시어 궁중에 기거하며, 예리한 감각과 기지로 "마쿠라노소시"를 쓴 무라사키 시키부와 여류 문학의 쌍벽을 이루었다. 3 세이쇼나곤의 지은 수필의 제명. 4) 헤이안 시대의 명승. 명리를 피해서 미친 사람 행세를 하고 산중에 들어가 살았다. 5) 일본 특유의 정형시. 일반적으로31음으로 구성되는 단가를 가리킨다. 6) 당시의 천황의 외조부. 매우 뛰어난 정치가로, 정치가의 규범을 기록해서 후세에 남겼다. 7) 제84대 천황. 국란으로 사도라는 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별세. 8) 준토쿠 천황의 저서. 궁중 행사, 고실을 92항에 걸쳐 한문으로 기록했다. 9) 고이치조 천황의 근시로, 이 말은 특히 유명하여 여러 문헌 속에 소개되어 있다. 10) 가네이키 친황은 다이고 천황의 황자. 학재에 뛰어났다. 구조 고레미치는 태정대신. 하나조노 아리히토는 시라카와 천황의 황자. 11) 세이와 천황의 의조부. 12) 저자 미상의 역사 설화. 13) 요메이 천황의 황자. 매우 영특하고 학문에 뛰어났다. 14) 공중을 나는 신통력을 지녔다는 전설적인 인물. 15) 좌대신이고 가인. 16) 와카를 지으며 풍아한 세월을 보낸 스님. 17) 가메야마 천황의 황자. 18) 천황이 즉위할 때 그 대리로 선정되어 이세진구에 봉사하던 미혼의 황녀, 또는 황족의 딸. 19) 사이구가 이세진구에 봉사하러 가기 전 3 년 동안 몸을 재계하고 수양하던 곳. 궁전밖에 마련되었었다. 20) 후지와라 미치나가. 헤이안 중기의 전신으로, 네 명의 딸이 대대로 황후가 되어 극성의 시대를 구현했다. 교고쿠도노. 호죠지도 그가 창건한 것. 21) 후지와라 유키나리의 '행성'을 음독한 말. 서도에 뛰어났다. 22) 글씨의 명수. 흔히 불당 문짝에 불화를 그리고 설명을 네모진 종이에 써서 붙인다. 23) 제73 대 호리카와 천황. 16 명의 중신들에게 1년에 100수씩의 와카를 지어 바치게 했다. 24) 후시미 천황의 생모. 25) 현재의 요코하마시. 가네자와를 옛적에 부르던 이름. 26) 일본 정토종의 개조. 범속은 염불의 공덕으로 극락왕생 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27) 무악에서, 못난이의 장난 놀음에 쓰는 탈. 28) 후지와라 긴요. 종2 품이며 가인. 29) 후지와라 미쓰치카가 원명. 종 3 품의 행정관이었음. 30) 헤이안 시대의 설화. 약 125 편으로 된, 작자 미상의 남녀 정사 이야기. 31) 효고 지방에 있는 산. 32) 쇼샤잔에 엔코지라는 절을 세운 법사. 33) 천태종의 관심을 설명하고. 수행의 근원이 되는 책. 34) 일본 특유의 시가의 한 형태. 이를테면 '와카'의 윗구를 한 사람이 지으면 그 아랫구를 한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이 지어서 짝을 치우는 따위. 35) 와카에 능한 남포쿠쵸 시대의 중. 36) 헨쇼인이란 절의 중. 37) 중국 동진 사람. 십 수년간 인도에서 수행, 불상과 경문을 가지고 돌아와서 번역했다. 삼장은 모든 불전에 통한 중의 경칭. 38) 나라에 있는 여러 대찰의 스님을 이르는 말. 39) 헤이안 시대의 유명한 서예가. 40) 와카나 한시의 명구를 발췌해서 모은 작문과 습작의 교본. 후지와라 긴토가 편집했다고 한다. 41) 후지와라 긴토의 관명. 42) 제80 단 주 34)참조. 43) 원문에는 다이나곤호인이라고 되어 있으나. 전기 미상의 인물이므로, '어느 유명한 승직'이라고 해두었다. 44) 다다모리는 중국 귀화인의 자손이었다. 45) 와카야마켄에 있는 산. 진언종의 총본산인 곤고부지가 있어, 이 절의 대명사로도 쓰인. 46) 전기 미상의 인물. 47) 소몰이꾼의 이름. 48) 내대신 노부키요라는 사람. 49)보화종의 중을 뜻하는 '고무소'의 예스러운 일컬음. 50) 극락 세계에는 죽은 사람의 기근에 따라 아홉 계급의 등급이 있는 일. 그 극락정토에 가기 위해서 염불을 한다. 51) 가나가와켄 동남부의 도시. 가마쿠라 막부가 있던 곳. 52) 진나라 사람. 글씨로 유명한 왕희지의 아들. 53) 이 책의 저자의 동시대의 사람으로, 중인 동시에 훌륭한 가인이기도 했다. 54) 사자와 비슷한 짐승의 상. 악마를 방지한다고 해서 사원이나 신사 앞에 세운다. 55) 요세이 천황의 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