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동물원 츠츠이 야스다카 차 례 ............................................... 조건반사 나르시시즘 욕구불만 우월감 사디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최면암시 게젤샤프트 게마인샤프트 원시공산제 의회제민주주의 매스 커뮤니케이션 근대도시 미래도시 역자후기 조건반사 1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병원인 듯한 하얀 방의 침대에 누워 있었고, 의사인 듯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완전히 의식을 회복했군요." 하고 두목같은 사나이가 말했다. "이제 괜찮습니다." 필시 대수술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내가 운전하던 차가 입체교차로의 가장 위에 있는 고속도로의 가드 레일을 부수고 바로 밑의 고속도로에 떨어졌고, 마침 때 맞추어 달려오던 덤프 트럭에 부딪쳐 날아 갔으니 말이다. 거기까지는 기억하고 있다. 그 때는 이제 죽는다는 각오를 했고, 살아 나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살아나 버렸다. 그건 좋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식으로 되살아 났는가가 문제가 아닐까. 의식을 회복하여 처음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성한 몸으로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스타일리스트이다. 불구로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도대체 어디를 당했을까. 한쪽 다리일까. 한쪽 팔일까. 아니면 양다리. 양팔. 혹시 눈사람이 된 건 아닐까. 아직 말을 할 수 없으니 의사에게 물을 수도 없어, 나는 시트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 보았다. 양쪽 다 붙어 있는 것 같다. 다음으로 양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이것도 붙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절단 후 잠시 동안은 사지의 감각이 남아 있다고 하니, 이것도 믿을 게 못된다. 며칠 후 겨우 입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필시 대수술이었겠지요." 어느 날 나는 곁으로 다가 온 의사에게 그렇게 물었다. "물론이지요." 하고 말하는 의사는 왠지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당신이 우리 병원으로 옮겨져 왔을 때는 정말 두 눈 뜨고는 봐 줄 수가 없었지요. 굉장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사지가 모두 멀쩡한가요." "멀쩡하구 말구요." 하고 의사는 말했다. "외견상으로는 다른 사람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외견상이라니요." 나는 말을 가로 막았다. "그렇다면 내 몸의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다는 말인가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급히 두 눈을 감고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아니, 아니, 말하지 마세요. 듣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 "듣고 싶지 않소!" 하고 나는 소리쳤다. "그렇습니까?" 의사는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요." 그렇게 말하고 의사는 병실을 나갔다. 다음 날 아내가 문안을 왔다. "여보. 수술이 성공적이어서 다행이에요." "다행인지 아닌지, 아직 모르잖아."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신문에 당신 일이 크게 보도 되었어요." "그건 그럴거야." 나는 겐모치 다이스케(劍持大助)라는 대중작가이다. 유명인이 사고를 내었으니 신문에 크게 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매일 나와요." 하고 아내가 말했다. "매일이라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럴 수밖에요. 당신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내는 차마 말할 수 없다는 듯이 머뭇머뭇 거렸다. 나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 다음 말은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인데." 아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이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장기 이식수술을 했음에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상은 생각도 하기 싫다. 나 외에는 모두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다. 본인인 나만 모르고 있다. 지금 알면 쇼크를 받아 회복에 지장이 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고 싶어서 일부러 사실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기자회견을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다음 날 의사가 와서 말했다. "모두 모여 있습니다." 기자들 눈에 벗어나면 장사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는 만큼, 나는 회견에 응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은 채 응접실로 들어서자 기자와 카메라 맨들이 몇 십 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겐모치 선생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아주 좋아요. 오늘이라도 퇴원하고 싶은 정도입니다." "식욕은 어떻습니까?" "좋아요. 자꾸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 "그럴 것입니다." 하고 기자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킥킥 거리며 웃었다. 그 때 두목 의사가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사실은, 돼지 위장을 이식했습니다." 우우우 - , 하고 나는 신음을 뱉어냈다. 아무리 이식을 해야 한다고 해서 돼지라니...... 죽는 게 낫다. 두려워 하던 일 중에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절망으로 눈 앞이 캄캄해졌다. "성욕은 어때요?" 내 표정에는 아랑 곳 없이 기자들은 무례하게 질문을 던졌다. "아직 잘 모르겠어." "인간 간호부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는가요?" "무슨 그런 실례의 말을!" 나는 화를 냈다. "겨우 돼지 위장 하나 붙였다고 해서 나를 돼지 취급하다니." 곁에 있던 예의 두목 의사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사실은 심장은 개의 심장으로......" "개, 개라고?" 나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도 모르게 혀를 내밀면서 식식 거렸다. 가메라 맨들이 기회는 찬스다! 하고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이게 무슨 짓이야! 사진 찍지 마!" 나는 절규했다. "내 이미지는 이제 산산이 부숴졌어. 왜 인간의 장기를 이식해 주지 않았어!" "너무 급해서 말이죠. 게다가 준비된 장기도 없고 해서." 두목은 내가 너무 흥분하자 두려운 듯이 그렇게 변명했다. "선생님의 재능이 너무도 아까워서 그랬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나는 마구 고함을 질렀다. "왜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어!"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장기이식학계에 커다란 공헌을 하신 겁니다." 기자 하나가 약을 올리 듯이 말했다. "그 따윗 것 개에게나 줘 버려!" 나는 마구 고함을 질렀다. "장기이식의 진보! 저주 받아라!" 의사가 말했다. "의학계뿐만 아니라 이번 일은 세계 심리학회로부터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울부짖었다. "처지를 바꿔 놓고 생각해 봐. 시발. 제 몸이 아니라고 나를 장난감 다루 듯이......" "그렇지만 선생님은 SF작가가 아닌가요." 하고 짐짓 귀티를 부리며 부인 기자가 말했다. "그러므로 이런 일에는 더욱 더 협력을 하셔야 하지 않아요?" 나는 외쳤다. "닥쳐! 그건 나의 자유다. 협력하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나는 발로 바닥을 마구 내질렀다. 그 때 기자들이 나의 발을 가리키며 킥킥거리고 있음을 알고, 문득 나는 발 동작을 멈추었다. 두목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 , 사실은......" "또 뭐요?" 하고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신음하듯 물었다. "저, 간은 말의......" "마, 마, 말이라고?" "예. 그렇지만 그냥 그렇고 그런 말이 아닙니다. 타로부렛(thoroughbred) 한살백이......" "타로부렛이건 뭐건 말은 말이다." 나는 울부짖었다. "아아, 나는 인간동물원이다." 다음 날 신문에는 울부짖고 있는 내 사진과 함께 이런 기사가 실렸다. <나는 인간동물원이다! 울부짖는 겐모치 선생> 2 장기이식에 관한 논란은 긍정론 부정론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이미 몇 십년 동안이나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긍정론이건 부정론이건 제공자와 피제공자의 인격존중이라는 점을 중시하였다. 그리고고 제공자의 인권 존중이라는 문제가 보다 중시 되어 왔다. 장기를 받아 들이는 쪽은 그것으로 인하여 목숨을 구하는 것인 만큼 불만이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생각들이 의학계와 매스컴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수술 후에 일어나는 분쟁들은 모두 제공자 쪽에서 제기한 것이었다. 개 중에는 기특한 사람들이 장기위탁제공자 조합을 결성하기도 하였지만, 회원수가 적은 데다 제공을 승락한 사람들이 언제 죽을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급할 때는 아무 소용도 없고, 또 노인이 되어 버리면 장기도 노후화하여 이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 이외의 동물 - 즉 개, 원숭이, 돼지, 말 등의 장기를 이식하는 일이 새로운 연구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장기양도권의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받아 들이는 사람의 존엄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의견도 있긴 하였지만, 외과의사들은 그런 말은 귀에도 담지 않고 열심히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반 여론이나 매스컴도 과학의 발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유형 무형으로 원조를 하였기 때문에 연구는 진전되어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이식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남은 것은 실제의 수술을 언제, 누가 어디서 실시할 것인가라는 문제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참 때를 잘 못 골라 사고를 낸 셈이다. 물론 내장은 엉망진창, 의식은 불명, 도저히 이식의 가부를 본인에게 물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 환자를 앞에 두고 의사단은 아내를 구워 삶았던 것이다. 아내의 입장으로서는 국민학교 1학년생을 데리고 재가하는 것도 별 재미없는 일로, 돼지건 말이건 뭐라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고 매달렸음에 틀림 없다. 그 여자의 천박한 머리로는 도저히 남편의 프라이드 문제까지 고려할 수 없는 것이다. 난 화가 났지만 아내가 승락했다고 하니 의사와 병원에 대해 인권침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 대신에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말자 아내를 그냥 한 대 쳐버렸다. 퇴원하고 나서가 큰 일이었다. 병원에서는 매스컴의 공세를 의사들이 몸으로 막아 주었지만, 집에 돌아 오고보니 고립무원이다. 아침부터 전화 벨은 끊임 없이 울린다. 수화기를 들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화기를 들면, 집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오지 마라고 해도, 가겠습니다,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할 수 없이 오라고 하면, 텔레비전, 신문, 주간지 기자들이 카메라 맨을 대동하고 밀려 와, 아내와 아이에게까지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그리고 수술 경과를 살펴보기 위한 의사단의 정기검진 때는 집 안팍의 정원과 도로에까지 기자단과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는 바람에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어쩌다가 산책이라도 나가면,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하지 않는가 하고 카메라 맨들이 가재미 눈을 하고 뒤를 밟기 일수여서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날 의사단과 함께 심리학회의 선생님들을 만났다. "꼭 좀 실험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개와 말의 장기를 이식한 인간이 그 행동과 심리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우리 나라 과학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 꼭 좀 협조해 주십시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화를 벌컥내고 학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인간이야. 생쥐도 아니고 몰모트도 아니라고. 뭐 과학의 발전이 어째? 그런 명목으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이 엉터리 학자 놈들. 으아아, 도저히 못 참겠다. 당장 나가!" 책상을 뒤집고, 그릇을 던지고, 발로 차면서 마구 발광을 했다. 학자들은 찻물을 뒤집어 쓰고, 의사들은 담배재 세례를 받으면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물론 이 일은 신문과 주간지에 대문짝 만하게 보도되었고, 그것은 사실을 왜곡한 센세이셔널한 내용이었다. <과학의 발전을 저주하는 겐모치 다이스케! 포효하고 발광의 두 시간!> <흉폭성은 동물 장기이식의 영향? 난조 히로야 심리학 교수 평> 이것을 계기로 매스컴의 보도는 한결같이 나에 대한 악의에 가득 찬 것으로 바뀌어 갔다. 이를테면 내가 히스테리를 일으킨 데 대한 기사 가운데는 '힝힝거리면서'라든지, '이빨을 드러내고' 따위의 문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의사와 학자들은 텔레비전이나 잡지의 좌담에서 나를 <과학의 진보에 편견을 가지고 있고, 생명을 구해 준 사람에게 은혜를 느끼지 못하는 성격파탄자>로 악평을 하면서 나를 저주했다. 아직 국민학교 1학년인 아들은 이웃 아이들에게 <암캐의 아들>이라 놀림을 받고 울면서 돌아 오는 일이 허다하였다. 나의 심장이 암캐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나중에 알아보니 여성 주간지 기자가 이웃 아이들에게 눈깔 사탕을 사주면서 그렇게 놀려 보라고 가르쳐 준 것이었다. 물론 주간지에는 이렇게 실렸다. <암캐의 아들이라 놀림 받고 울고 있는 겐모치 다이스케의 장남, 겐이치 군> 매스컴과 대중은 늘 누군가 유명하면서 혐오스런 사람이 있기를 갈망한다. 탁 깨놓고 비난할 수 있는, 이른바 매스컴의 표적이 될만한 악인이 어딘가 있어야만 속이 시원한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이전부터 꽤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완고한 남성주의자였기 때문에, 매스컴의 악인으로 등장할 소질은 충분했던 것이다. 거기에 이번 이식수술까지 곁들였으니 말 할 것도 없다. 나에게 즉각 대악인이라는 레테르가 붙게 되었고, 내가 그렇게도 애용했던 매스컴들은 이제 모두 적으로 변해 버렸다. 활동범위는 좁아지고 아내는 이웃에게 백안시되고, 친척도 멀어져 갔다. 그러나 만일 가정해서 내가 심리학자들의 테스트를 즐겁게 받아들였다면 이 정도의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인가?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악인 취급을 받지는 않겠지만, 광대 취급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 없다. 나는 그것이 더 싫었다. 악인이 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심리학적 실험 한번 하지 않은 지금에도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해설하고, 이런 것은 개의 심장을 가졌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조건반사라는 둥, 이런 잘못된 행동은 말에게 자주 보이는 것이라는 둥, 나를 직접 만나 보지도 못한 학자들까지 마구 지껄이고 글을 갈겨대는 것이다. 만일 테스트를 받았더라면, 짐승들의 장기가 미치는 영향 때문에 내가 보였을 기묘한 행동들이 청천백일 하에 드러나, 인간 취급조차 받을 수 없었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오히려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3 옛날, 내가 작가가 되기 전의 샐러리맨 시절, 공처가로 유명한 계장이 있었다. 이 계장은 밤마다 아내에게 너무 열심히 서비스를 하다보니 회사에서는 매일 꾸벅 꾸벅 조는 형편이었다. "어이 봐, 또 시작했어." 동료와 부하 직원이 보는 가운데 이 계장, 자신의 의자에 반드시 허리를 걸치고는 노를 젓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조건반사 실험을 한다는 명목으로 졸고 있는 이 계장에게 자주 장난을 쳤다. 귓가에다 입을 갖다대고 그의 부인이 내는 신음소리를 흉내내는 것이다. "여봉, 으응, 여어보옹." 그러면 계장! 비몽사몽간에 마구 허리 운동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코믹한 모습, 그 슬픈 몸짓, 그 괴이한 자태. 우리들은 배를 잡고 눈물을 질금거리며 웃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시험자에게 있어 조건반사 만큼 재미있는 실험은 없다. 게다가 그것이 파블로프가 실험 대상으로 삼은 개가 아닌 인간일 경우, 턱 없이 재미있다. 그러나 피실험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평상시 아무리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일단 걸려들면 바로 광대로 전락, 그 때부터 절대로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나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자신이 피실험자가 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퇴원하고부터 나는 나에게 장기를 제공한 놈들, 즉 예의 그 동물 세 마리가 나의 몸에 가하는 너무도 당돌한 행동을 몇 번이고 경험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전화 벨이 울리면 나는 침을 질질 흘린다. 이것은 아마도 암캐 때문일 것같은데, 이 암캐는 아무래도 심리학 교실에서 조건반사 실험용으로 키우던 개였던 모양이다. 게다다 아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는 너무도 왕성한 나의 식욕. 상에 음식이 놓이자 말자 나의 입에서는 대량이 허연 침이 거품을 뿜으며 턱을 타고 흘러내려, 금방 방석이 축축히 젖어 버린다. 일단 먹기 시작하면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귀찮아져서, 기어커 코를 음식 그릇에 처박고 만다. 밥에 고기 종류를 올려 놓는 덮밥을 좋아하게 되었고, 동시에 뜨거운 것을 피하게 되었다. 한번 뜨거운 된장국에 코와 이마를 대고부터는 밥을 국에 말아 먹는 방법을 개발해 내었다. "여보, 제발 그만 둬요."' 하고 어느 날, 드디어 참고 참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버릇 없는 행동을 하면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아요." "나도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어. 그렇지만 본능같은 것이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는 걸 어떡해. 어쩔 수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아내는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보는 눈길이 왜 그래. 짐승보듯이 나를 보지 마." 나는 화가 나서 외쳤다. "내가 이렇게 괴상한 짓을 하게된 것은 다 자네 책임이야!" 아내는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단 말인가요. 정말 당신을 그냥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 게 좋았다는 말인가요.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이식 수술을 하지 말아 주세요, 남편을 이대로 죽게 해 주세요, 하고 내가 말했어야 했단 말인가요?" 아내는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닥쳐. 시끄러워. 신경이 터질 것 같아." 도심이긴 하지만 집 주위의 주택가는 조용하다. 가끔씩 자가용 차가 지나가는 정도로 사람 왕래도 적다. 나는 잠시 동안 하릴 없이 싸돌아 다녔다. 그러는 사이에 분노도 점차 사그러졌다. 그러다가 오줌이 마려웠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사람들 눈에 들키면 큰 일이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길가의 전봇대가 유난히 눈에 띄는게, 다리를 들어올리고 소변을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아랫도리를 모두 벗고 전봇대에 한쪽 다리를 끄덕 들어 올려 걸치고 힝힝 거리며 오줌을 누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라는 생각하면서 전봇대 앞에 우두커니 서서 전봇대 아랫둥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점차로 나의 인내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래서는 안돼 - 나는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전봇대가 어디 그 하나 뿐이더냐. 조금 노이로제 기운이 솟아 오를 즈음에 등 뒤에서 기척을 느끼고 나는 캥, 하고 한번 짖은 다음 뒤를 돌아 보았다. 열 마리가 넘는 주인 없는 개들이 내 뒤를 졸졸 따라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암캐의 심장이 숫캐들을 불러 모은 것이리라. 숫캐의 눈을 바라 보는 순간, 어처구니 없게도 나의 심장은 마구 고동치는 것이 아닌가. 상냥한 얼굴을 하고 다리 아래로 다가오는 그 귀여운 개들, 난 그만 저도 모르게 네발로 기면서 킁킁 하고 콧소리를 내며 그들의 콧등을 얼굴로 마구 부비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본다면 미친 놈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는 인간의 이성은 남아 있었다. 나는 인간의 처와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벌떡 일어섰다. 쉿, 쉿 하고 개를 쫓아내고 발 뒤축으로 땅을 탁 탁 치면서 히히힝 - 하고 울부짖었다. 숫캐들은 깜짝 놀라 도망쳤다. 과연 나는 늘 이렇게 나의 몸 속의 개적 인간, 말적 인간, 그리고 돼지적 인간에게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자신이 없었다. 언젠가는 필시 터무니 없는 짓을 하고 말 것이란 강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매스컴을 적으로 돌려 버린 지금, 과연 내가 소설가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쓰고 있는 장편이 완성되기만 하면, 출판하겠다고 신청해 오는 출판사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팔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나의 팬 뿐만 아니라, 대악인이 쓴 소설이라 하여, 그 때까지 나의 이름을 몰랐던 매스컴 대중까지 모두 책을 살 것이기 때문에. 팔릴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 장편은 나의 자전소설이기 때문이다. 선인이건 악인이건 유명인은 유명인. 유명인의 자전이 팔리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 있어 선인의 전기보다는 악인의 전기가 더 재미 있는 법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적한 주택가를 걸어 가고 있는데 문득 나의 시선은 골목 어귀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에 머물렀다. 내일이 쓰레기 회수일인 모양이다. 돌담 아래에는 쓰레기 봉지가 산처럼 쌓여 있고, 대부분의 봉지에서 음식 찌꺼기들이 길 가로 흘러 나와 있었다. 나는 우뚝 멈추어 섰다. 위장이 쪽 움추려 드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야채 조각, 캬베츠 꼭다리, 썩은 사과, 생선 뼈, 스파게티 찌꺼기, 밥 알, 감자 껍질, 등등...... 시선이 거기 머무는 그 순간, 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 내렸다. 내 속의 돼지적 인간이 나의 육체로 하여금 파렴치한 짓을 하게금 하는 그 충동과 싸우면서, 나의 팔 다리는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몇 분 동안 나는 눈을 똑 바로 뜨고, 벌벌 떨면서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면 안돼. 절대로 안돼. 안돼." 나는 큰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하면 안돼. 절대로......" 점점 소리가 낮아지면서 나의 발은 자연스럽게 쓰레기 더미 쪽으로 이끌려 갔다.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코를 찌르는 향긋한 음식 내음이 한층 더 나의 식욕을 북돋았다. 아까 식사 도중에 밖으로 나온 것이 잘못이다.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 생각이 스쳐 간 순간, 나는 이미 쓰레기 더미 속에 한쪽 무릎을 꿇고 닥치는대로 봉지를 튿어, 한 손에는 무우 꽁지를 들고 얼굴을 봉지 안에 박아 넣고서는 썩은 토마토를 마구 씹기 시작했다. 진득한 쓰레기 국물이 얼굴에 묻었지만, 난 오히려 즐거웠다. 나는 콧소리를 내가면서 더욱 열심히 먹었다. "아아, 나는 지금 너무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어." 내 속의 이성적인 인간이 머리 저 한 구석에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퍼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때...... "팟!" 셔터 누르는 소리와 프래쉬의 빛이 나의 모습을 일순간 밝음 속에 드러냈다. 곧 바로 나는 이성적인 인간으로 되돌아 왔다. "크, 큰 일이다." 가로등 불빛 아래 등을 둥글게 말고 큰 길로 도망치는 사나이, 저 놈은 S사의 카메라 맨, 놓치면 안돼, 나는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사나이를 추격했다. <아아 슬픈 조선반사!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겐모치 선생> 그런 기사가 내일 조간에 나와버리면 대사건이다. 나는 마치 나는 듯이 카메라 맨을 뒤쫓았다. "서, 도망치지 마!" 나의 외침을 듣고 골목길을 순찰하던 경찰관이 뛰어 나왔다. "무, 무슨 일이야." "도둑이오!" 나는 뛰어가면서 카메라 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누가 좀 잡아 줘요!" 하고 외쳤다. 경찰은 나와 나란히 뜀박질을 하면서 날카롭게 휫슬을 불었다. "서라, 서지 않으면 쏠테다." 경찰은 권총을 빼들었다. 그러나 카메라 맨은 서지 않았다. 잡히면 마지막, 카메라가 부숴질 것임은 너무도 분명했다. 특종이 들어 있으니, 놈도 필사적이다. "좋아. 위협사격이다." 경찰은 공중으로 한 발을 쏘았다. 그 소리에 갑자기 나의 발이 튀어 올랐다. 스타트 총성인 줄 알고 내 속의 경마적 인간이 마구 내달리며, 트로브렛 당세마의 관록을 보이며 밤 안개를 가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카메라 맨을 추월하여 앞으로 나갔다. 선두를 달리면서 내 속의 이성적 인간은 얼굴을 뒤로 돌리고, 뒤에서 달려오는 카메라 맨을 잡으려 하지만, 발이 멈추어 주질 않는다. 나는 이빨을 갈면서 외쳤다. "아아, 큰 일이다. 이 말은 도망 말이다." 나르시시즘 로보트 공학 3원칙(작성자 - 아이작 아시모프) 제1조 로보트는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을 간과함으로써 인간을 위기에 처하게 해서도 안 된다. 제2조 로보트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지 주이진 명령이 제1조에 반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제3조 로보트는 제1조 및 제2조에 위반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1 2주일 전에 주문한 로보트가 오늘에서야 배달되었다. "주문하신 중고품이 잘 입수되지 않아서 늦었습니다. 이것을 찾느라 무척 고생했더랬습니다. 자, 보세요." 아파트 거실로 관처럼 생긴 통을 매고 들어 온 중고 로보트 세일즈 맨은 두껑을 열면서 사근 사근하게 말했다. "주문한 그대로가 아니면 사지 않겠소." 나는 퉁명스럽게 그에게 말했다. 모처럼의 휴일 아침의 단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손님, 일단 한번 보시라니까요. 웃음이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두껑을 열었다. "자, 보십시오." 나무 상자 안을 들여다 보는 순간, 나는 잠이 싹 달아났다. 대단한 특제품이었다. 밝고 명랑한 얼굴. 조금 못 생기긴 했지만 내 취향에 꼭 맞는 얼굴이었다. 눈 아래에 주근깨까지 적당히 깔려 있었다. 서몬 핑크 빛의 도톰한 입술은 내 가슴을 마구 고동치게 했다. 촌스런 가정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멋진 육체를 감출 수는 없었다. 유방은 그렇게 크게 부풀어 오르진 않았지만, 그것은 그녀의 근육이 팽팽이 조여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무릎에서 발목으로 뻗은 선은 상하체의 비율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흐음 - " 나는 콧소리를 냈다. 기분 나쁜 듯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인상을 폈다가는 아까부터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세일즈 맨이 값을 더 올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다행히도 난 원래부터 표정을 그리 자주 바꾸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멋지게 속 마음을 감출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볼의 근육 만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두 세번 실룩거리는대로 가만 두었다. "로보트 치고는 잘 만들어졌군." "로보트가 아닙니다." 중고 로보트 세일즈 맨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드로이드, 또는 휴머노이드라고 해주시면 고맙겠는데요." <로보트>라는 말은 단순히 기계 인간이란 의미이지만,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라는 말은 <인간과 닮은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난 로보트로 충분해." 하고 나는 눈을 치켜 뜨면서 세일즈 맨을 흘겨 보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행이 어떻든 아무래도 좋아. 이것은 기계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었다해도 기계는 어디까지나 기계. 기계에게 아부할 필요는 없잖아. 로보트로 충분해." 이 유행도 모르는 똥고집 - 세일즈 맨은 그런 말을 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한번 흘겨 보고는 목을 갸웃했다. "그럼 설명해 드리지요. 이 귀여운 아가씨의 육체는 인간과 똑 같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근육과 같은 탄력성을 가진 플라스틱으로 내장에 해당하는 기계 장치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피부를 한번 봐 주십시오. 이것은 진짜 여성을 능가하는 흡착력과 매끄러움을 띠고 있지요. 마찰할 때 발생하는 열도 마치 인간을 대하는 듯 합니다.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손으로 심어서......" "이제 됐네." 나는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로보트를 발가 벗기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것은 이미 알고 있네. 내 질문에 대답만 해주면 돼." "예, 알겠습니다." "고장은 나지 않는가?" "이 예쁜 아가씨는 고장난 곳을 스스로 수리하고, 제가 알아서 부품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단 한 곳 만은 스스로 수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아가씨의 머리에 들어 있습니다. 전자 두뇌가 바로 그것이죠. 이것이 고장나면, 인간으로 말하자면 정신착란이 일어나는 거지요." "정신착란이라. 좀 골치 아픈데." "걱정 마십시오. 로보트 공학 3원칙 제3조를 아시는지? 아무리 발광을 해도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해를 끼칠 정도가 되면 스스로 폭발해 버립니다." "발광을 일으키면 어떡하면 좋지?" "전화로 저를 불러 주십시오.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세일즈 맨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이 로보트의 이전 주인 말인데......" 나는 그를 똑 바로 보면서 물었다. "왜 이것을 팔았을까?"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분도 손님처럼 독신 셀러리 맨이었지요." "이 로보트는 가정부 일과, 그리고 또......" 나는 말 끝을 흐렸다. "그......말하자면, 밤 일 상대도 해 주는 모양인데, 이전 주인이 그 중요한 곳에 상처를 입혔다든지, 너무 심하게 다루어서 닳아버렸다든지, 그런 일은 없겠지?" "절대로 없습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그럴 경우는 제 스스로 수리를 하지요. 그리고 항상 자신의 육체를 신품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안드로이드입니다." "잘 알겠네." 나는 만족했다. "그럼 이 로보트의 목소리를 들어 보고 싶네." "물론 들어 보셔야죠." 세일즈 맨은 그녀 위로 상체를 숙였다. "마리, 새 주인이시다. 인사 올려." 그 때까지 나무 상자에 반듯이 누워 천정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던 그녀는 느닷없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윙크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윙크는 어디서 배웠느냐." 그녀는 나무 상자를 나와 내 앞에 서서, 인사를 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마리라고 합니다." 허스키 보이스였다.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지만, 아직 거래가 끝나지 않은 만큼 약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마리라고. 그건 사람 이름 아냐?" 나는 기분 나쁜 듯이 소리 높혀 그렇게 말했다. "로보트는 로보트로 족하다. 이제부터 너를 로보트라 부르기로 하겠다." 그리고 나는 세일즈 맨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격은?" 세일즈 맨이 제시한 가격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렇지만 일단 일 할은 깎는 것이 상식이다. 세일즈 맨은 한참이나 우는 시늉을 하다가 내가 제시한 가격을 받아 들였다. 나는 그녀를 샀다. 2 세일즈 맨이 돌아가자 말자, 나는 그녀를 점검하기 위해 벌거벗기려 했다. "아이. 싫어요."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다급히 스커트를 갈무리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어디를 봐도 도저히 로보트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집요하게 스스로에게 다짐을 주었다. 이것은 기계이다.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상관 없다. 신경 쓰지 마라. 나는 억지로 스커트를 벗기려 했다. "점검이다. 가만 있어." "그렇지만." 그녀는 교태를 부리는 듯이 몸을 배배 꼬았다. "아직 대낮인 걸요." "입 닥쳐. 주인에게 반항할 생각이냐." 억지로 벗기려 했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역시 대낮은 대낮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서둘 것 없다. "좋아. 그럼 커피를 한 잔 가지고 와." "예, 주인님." 그녀는 눈 인사를 한 다음 예쁘게 몸을 돌려 부엌으로 들어 갔다. 기분 좋게 잘록 들어 간 그녀의 허리와 팽팽하게 튀어 나온 그녀의 히프를 눈으로 전송하고서 나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커피를 기다렸다. 혼자 있는 이상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이 기분을 억누르고 있을 필요는 없다. 과연 결혼을 기피하는 독신 남성이 늘어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독신 남성용 섹스 로보트, 가정부 로보트가 판매되던 초창기에는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 고가품이었다. 게다가 완전하지도 못 했다. 그래도 오만하고 고고한 현대 여성에게 질려버린 남성들은 너도 나도 앞을 다투어 그것을 샀다. 개량을 거듭하면서 모든 점에서 그 기능은 여성을 능가할 정도가 되었다. 로보트의 인기가 높아져 갔다. 기혼 남성조차 첩 로보트, 1번 로보트, 2, 3, 4번 로보트 등을 사재기 시작했다. 드디어 섹스용과 가정부용의 기능을 겸비한 로보트가 발매되자, 참고 참던 여성들은 일치 단결 궐기하여 결사적인 반대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섹스 로보트 금지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로보트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섹스 로보트는 오나니 보다 위생적이다>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법안은 부결되었다. 한 가지 이상한 일은, 아무리 로보트가 발달해도 여성용 <남성 섹스 로보트>는 만들어지지 않느다는 사실이다. 제조업자도 남성이었기 때문에 이윤을 줄여서라도 동성의 지지를 얻는 길을 택하자고 서로 합의를 보았을 것이다. 거기에 반해 여성 로보트 쪽은 새로운 타입의 제품이 앞을 다투어 판매되었다. 우선 모든 성격, 모든 인종, 모든 육체적 특징을 가진 여성 로보트가 판매되자, 그 다음은 남성으로서의 기능을 갖지 않은 남성 로보트 - 즉 동성애용의 호모 로보트(상품명 호모트)라는 것이 등장했다. 드디어 마조히즘 로보트, 사디즘 로보트, 변태성욕자를 위한 여자애 로보트, 할머니 로보트, 한 몸에 두 개의 로보트가 붙은 스테레오 쌍둥이 로보트, 사용처가 불분명한 질 폐쇄 로보트, 거기에다 계간애호자 로보트(상품명 꼬끼오트) 까지 등장하여 눈을 어지럽혔다. 이 때부터 로보트라는 말 대신에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어미의 oid는 <......을 위한 것>, <......성질을 가진 것>이란 뜻이다. 아직 말단 샐러리 맨으로 로보트를 살 돈이 없었던 나는 이런 사회적인 추세를 방관만 하고 있었다. 물론 학생용 오나니 안드로이드라든지, 엉덩이 부분밖에 없는 안드로이드(상품명 오나노이드)라면 싸게 구입할 수 있긴 하였지만, 그 정도로 다급하진 않았기 때문에 사지 않았던 것이다. 로보트 붐을 타고 남자에게 버림 받은 여자들이 길거리에 넘쳐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즐길 상대라면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었다. 여자에게는 전대미문의 결혼불황 시대였다. 그러다가 승진하는 바람에 보수도 불어났고, 아파트로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이윽고 로보트를 살 마음이 일어났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신품과 별 차이 없는 고품질 중고 로보트를 구할 수 있다는 정보도 자연스럽게 입수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것을 손에 넣을 줄을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가슴을 두근 거리고 있다. 오늘 밤, 이 로보트와 침대에서 즐길 생각을 하면,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기뻤다. 그녀가 커피를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 왔다. 여자다운 몸짓으로 내 손에 놓인 커피 잔에 커피를 따랐다. 가정적인 분위기에 목말랐던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분을 애써 지우려 노력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후후후, 하고 웃었다. 내가 왜 이렇게 센티맨탈해 지지, 이것은 기계에 지나지 않는데, 그냥 단순한 인형이 아니냐...... "맛이 어떠세요." 목을 조금 갸웃하면서 귀엽게 물었다. "아주 좋아." 나는 한 모금 후루룩 - 들이키고는 칭찬해 주었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뜨겁게 해 줘." "예, 주인님."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 했다. "저어, 방 청소를 할까요." "아. 해 줘." 사실은 좀 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억지로 그런 기분을 억눌렀다. 참, 어이없군. 기계와 대화를 해서 뭘 하겠다고......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그녀에게 서먹서먹하게 대했다. 청소, 요리, 세탁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을 곁눈으로 살피면서도 안 보는 척 했던 것이다. 사실은 그녀를 안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지만, 아까처럼 거부 당하는 것이 싫어서 참기로 했다. 기계한테 거부 당해서는 인간의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그녀의 동작, 표정, 말하는 태도 - 그 모든 것이 현대여성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우아함과 고귀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를 만든 남자들이 현대 여성에게서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내 머리 속에는 그녀를 안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책을 읽어도,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의 침실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가슴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다. 부엌에서 저녁 설겆이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 가 팔을 홱 - 잡아챘다. "자, 이리 와." 그녀는 맑고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똑 바로 쳐다 보더니 벌벌 떨면서 길다란 눈썹을 아래 깔았다. "어디 가시려고......" "모른 척 시침 떼지 마." 나는 엉겁결에 고함을 치고 말았다. "내가 무얼 하든 일일이 너에게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어." 그녀를 질질 침대로 끌고 가면서 나는 말했다. "자, 이제부터 주인님의 밤 일 상대를 하는 거다. 알았어? 이 기계 년." "이렇게 난폭하게 하지 않으셔도......좀 상냥하게 대해 주세요."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입 닥쳐." 나는 난폭하게 옷을 벗기면서 고함쳤다. "기계 따위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니. 뭐, 좀 상냥하게 대해 달라고? 흥. 네가 무슨 인간이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난 그게 싫어서 비싼 돈을 주고 너를 산 것이다. 알았어. 알았으면, 냉큼 옷을 벗지 못해." "아아, 제발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 시작했다. 이전 주인한테 꽤 귀여움을 받은 모양이다. 좋아, 버릇을 고쳐 줄테다.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옷을 벗으려 들지 않는 그녀에게 다가 가서, 짙은 감색의 가정부복의 옷깃에 손을 넣고 좌악 - 찢어 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상의가 갑자기 벗겨지자 그녀는 놀란 듯 양 손으로 가슴의 하얀 블래지어를 감쌌다. "너무 하세요." "너무 하긴 뭐가 너무해. 내 마음이다. 알았어. 내 마음이야." 그녀는 방울 방울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고 그녀의 브래지어와 팬티를 벗겨 버렸다. "그 따위 눈물, 어차피 소금물에 지나지 않아. 제법 신경 쓰서 만들어 놨군." 일단 옷을 다 벗기자, 울건 말건, 나는 그녀의 배 위로 올라 갔다. 3 이런 섹스를 뭐라 해야 할까. 오나니일까. 여하튼 참고 참았던 탓인지 최초의 섹스는 눈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말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보트 판매회사의 선전문구처럼 그녀는 조금도 타오르지 않았고, 내 몸 아래에서 언제까지고 훌쩍 훌쩍 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어차피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불 타오르든 않든, 그런 것은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 반쯤은 오기로 나는 몇 번이나 그녀를 범했다. 그리고는 눈이 핑핑돌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몸이 오슬 오슬 추워서 나는 재채기를 하면서 눈을 떴다. 문득 옆을 보니 벌거 벗은 그녀가 나에게 몸을 기댄 채 모포 속에 들어가 있었다. "어이." 나는 외쳤다. "로보트 주제에 사람과 같은 침대에서 자도 되는 거야." "안 자요." 그녀는 방긋 웃으면서 눈을 떴다. "그냥 이렇게 누워 있는 것 뿐이에요." 시계를 보니 벌써 8시 반이나 되었다. 나는 깜짝 놀라, "큰 일이다. 회사에 늦겠다." 나는 화를 내면서 그녀를 나무랐다. "이침 준비는 해 뒀니. 커피는?" "아 - 잉, 어제 밤 일, 기억하세요." 그녀는 나긋한 표정으로 나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당신, 너무 난폭했어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 빨리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해. 그리고 옷도 내 주고." "아 - 잉." 그녀는 나의 내 볼에 자신의 볼을 부비면서 말했다. "나를 그렇게 안고 싶었어요? 어제 참, 나 어땠어?" "버르장머리 없이, 왜 이래." 나는 고함을 쳤다. "그리고 왜 이리 추워." "이것은 당신 잘못이에요. 내가 음식을 정리하는데 당신이 마구 침대로 끌고 갔잖아요. 그래서 냉장고 문이 열려 있는 거예요." "닫고 와. 자, 빨리." 나는 그녀의 몸을 침대에서 밀어냈다. "제발 빨리 해, 회사에 늦겠다." "이전 주인은 이렇게 난폭하지 않았는데." 원망스런 듯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를 째려 보았다. "잘 들어. 두번 다시 그런 말을 했다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다. 여하튼 지금 너의 주인은 나다. 빨리 일어나." "아 - 잉. 나 예쁘지 않아요?" 나는 어이가 없어 큰 소리로 외쳤다. "뭐가 예쁘니. 넌 기계다." 그녀는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비명처럼 소리쳤다. "알았어. 알았어. 넌 예쁘다. 예뻐." 그녀는 어깨를 마구 흔들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그렇게 내뱉듯이 말하지 말고, 좀 상냥하게 해 줘요. 넌 정말 예뻐, 하고 말예요. 어제 밤은 정말 좋았다고." 나는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억누르면서 말했다. "어제 밤, 넌 정말 좋았다." 그녀를 부드럽게 애무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이쁠 수 있니." 하고 말했다. "당신은 어제 나를 안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죠, 그렇죠?" "아아, 물론 그렇고 말고." "마리라고 불러봐요." "그래, 나의 마리." "그래서 당신 그렇게도 난폭했군요. 옷을 찢은 것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렇죠?" "물론 그렇고 말고, 마리." "그럼, 나를 사랑하고 있군요." "물론 그렇고 말고, 마리, 널 사랑해." "아아, 아아, 다시 한번 말해 주세요." "널 사랑해." "자꾸 말해 주세요." "그만, 보자, 보자니까." 나는 울화통을 터뜨렸다. "이건 인간 여자보다 더 해. 까불지 마. 기어 오르고 있어. 부숴버릴까 보다." 그녀는 다시 와 -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벌거벗은 채로 욕실로 뛰어 들어 갔다. 이제 더 머뭇거릴 수 없다. 나는 할 수 없이 연거푸 하품을 하면서 벌거벗은 채로 일어나, 옷을 찾아 입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녀는 욕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나간다." 나는 외쳤다. "돌아 올 때까지 청소, 세탁, 저녁 준비, 전부 해 둬. 알았지." 그리고 나는 아파트를 나왔다. 그 날 회사에서 나는 세일즈 맨에게 전화를 했다. "도대체 그 따위 나르시스 로보트를 주면 어떡해, 엉." 나는 분통을 터뜨렸다. "덕분에 감기까지 걸렸어. 어쩔 셈이야." 나는 어제 밤과 오늘 아침 일을 모두 그에게 말했다. "이상한데요. 그럴 리가 없는데." 라고 세일즈 맨은 말했다. "제가 점검했을 때는 정상이었습니다만." "필시 전 주인이 버릇을 잘못 들인 것 같애. 칭찬하고, 귀여워 해주고, 버르장머리 없이 키웠던 것 같애. 그러니까 저런 나르시스트가 되 버린 거지. 틀림 없어."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라고 세일즈 맨은 말했다. "그녀가 나르시스트가 된 것은 틀림 없이 선생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 일 것입니다. 너무 난폭하게 다루자 그만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급하게 스스로 자신감을 되찾으려 애를 쓴 것이죠.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나르시스트는 반동적인 마음의 작용 때문으로......" "너무 귀여움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음에 틀림 없다." 나는 내 생각을 꺾지 않았다. "여하튼 이런 상태로는 곤란해. 빨리 수리를 해 줘." "그럼 오늘 밤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회사가 끝나고, 아파트로 되돌아 왔을 때는 이미 어두컴컴했다. 아프트에는 불 빛 하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어이, 어디 있어?" 룸 램프를 켜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 안은 내가 아침에 나올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흩어져 있고, 청소는 물론이고, 부엌에 들어서자 어제의 음식 찌꺼기들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어이, 어디 있어?"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욕실 문을 열었다. "여기 있었군." 그녀는 벌거벗은 채였다. 그런데 어이 없게도 큰 거울 앞에 서서 당당히 오나니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에게 기계라고 욕을 얻어 먹어, 자신의 나르시시즘이 파괴될 지경에 이르자, 황급히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부터 줄곧 여기 있었니." 나는 화를 내면서 물었다. "일도 안 하고, 도대체 그 꼴이 뭐야. 이 쓸데 없는 기계 년." "그런 말 마세요." 그녀는 머리카락을 마구 휘저으면서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그렇게 외쳤다. "나를 모욕하지 마세요." "수 만 번이라도 말해 줄테다. 너는 기계다. 우둔한 기계 인형이다. 너를 보면 구토가......" "아아, 제발 그만 두세요." 그녀는 느닷없이 손바닥으로 나의 입을 막았다. 기계다운 굉장한 힘이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손발을 버둥거렸다. "미안해요. 이런 짓을 해서." 그녀는 여전히 나의 입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더 이상 모욕을 당하면 난 그만 부숴지고 말 거예요. 난, 스스로 나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지만 안심하세요. 당신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아무리 내가 입을 막아도 코로 숨을 쉬면 되잖아요." 그러나 아침부터 감기에 걸린 나는 코가 막혀 있었다. 욕구불만 1 "우리 결혼도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 왔군. 많이 기다려 지지?" 나는 약혼녀 아츠코에게 말했다. "그럼요, 정말 기다려져요." 그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는 게 틀림 없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내 이야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다. 내 방에서, 그것도 둘 만 있는데도. 그리고 벽에 걸린 평면형 스테레오는 한창 유행하고 있는 베트남 무드 뮤직을 흘려 보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약혼자인 나에게 그녀가 이렇게 서먹서먹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물론 '너무 사랑하기에' 따위의 고급스런 이유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것이다. 그녀는 나의 성적 능력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저 -, 벤씨." 드디어 그녀는 머뭇머뭇하면서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왜." "저 - ,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자기, 그 쪽은 괜찮아요?" 나는 일부러 모른 척 했다. "그 쪽이라니, 뭐 말인데." "몰라, 알면서." 그녀는 볼을 불키며 말했다. "섹스 말이니?" "그래요." "그렇게 걱정스러우면 시험해 보면 될 것 아냐." 나는 턱으로 침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안 돼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옛날 봉건시대 이상으로 처녀를 존중하는 시대여서, 여성 주간지들의 철저한 순결교육으로 아가씨들은 혼전 성교를 싫어하게 되었다. 처녀와 비처녀의 식별이 간단한 혈액검사로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남성들 쪽이 결혼의 절대 필수조건으로 처녀성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최근의 남성 잡지에도 책임이 있다. 특집을 꾸몄다 하면, <비처녀의 99%는 성병>이라든지, <남자를 안 여자의 피는 탁하다> 따위의 기사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오래 전부터 <결혼 상대로서, 여자를 많이 알고 있는 남자는 무해하지만, 남자를 많이 알고 있는 여자는 유해하다>는 정도의 상식은 가지고 있다. 남성은 그냥 발사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몇 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던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죽을 때까지 순결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다르다. 남성 호르몬을 체내에 흡수하기 때문에, 많은 남자와 자면 잘 수록 체질도 변화하고, 피도 탁해진다.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에게 몇 남성의 체질이 극히 적은 비율이지만 섞이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아무리 불공평하다고 하소연해 보아야, 사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생물학적인 숙명이다. 남성은 오히려 바람을 피우며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 씨뿌리기를 생각해 보면 된다. 씨앗을 여기저기 뿌려 두어야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씨앗이 뿌려지는 대지는 어떤가. 대지는 뿌려진 씨앗을 소중히 기르면 된다. 대지가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씨앗을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너무 번거롭지 않는가. 그런데 몇 십 년 전만 해도, 프리섹스가 구가되던 시대가 있어서, 처녀가 경멸 당하고, 처녀성을 존중하는 남성을 골동품 취급하는 시대가 있었다. 이것은 사실 성의 자유를 구가하려는 여자들의 음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리학적인 지식이 없는 바보 사나이들은 그냥 이 수법에 넘어가서, <문제는 애정이다>, <처녀는 재미없다> 따위의 말을 지껄였는데, 이것은 자기 스스로 바보올시다 하고 만천하에 공언하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자 거기에 대한 반동이 일어났다. 처녀가 아니면 어때, 하고 여자를 잘 이해하는 듯이 떠벌리는 남성이야말로 저능하고 불결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매스컴의 화려한 선동도 있어서, 여성들까지 덩달아 처녀성을 중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모든 것이 예날과는 180도로 달라져, 아가씨들은 이전보다 더 병적일 정도로 섹스를 두려워 하게 되었고, 혼전 성교까지도 불결시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결혼할 사이가 아니니?" 라고 나는 아츠코에게 말했다. "싫어요, 싫어." 그녀는 드세게 머리를 가로 저었다. "혼전 성교를 한 다음 날, 약혼자가 교통사고를 죽어서 독신으로 살다가 자살한 여자가 있었데요. 오늘 아침 입체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어요." "아아 그것, 나도 보았어."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러나 교통사고는 결혼하고 나서도 일어 날 수 있잖아. 그건 그렇고, 넌 왜 그렇게도 나의 성적 능력에 관심이 많지." "흥, 당연하죠. 중요한 것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아츠코는 얼굴을 붉혔다. 혼전 성교는 싫어하면서, 침대에서의 능력이나 기교 만은 필요 이상으로 중시한다. 이것도 여성 주간지의 영향이다. 한편으로는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선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침실의 테크닉을 주입시킨다. 그럼 어떤 여자가 만들어질까. 머리 속에는 섹스의 지식이 가득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녀막 만은 죽을 때까지라도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올드 미스형의 소녀나 아가씨, 즉 불결한 처녀라는 괴물을 생산하여 사회 전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아가씨들이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 독신 시대의 욕구불만을 일거에 해소하려고, 남편에게 과다한 섹스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 일이다. 나는 아츠코에게 말했다. "확실히 말해 두겠어. 나는 성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기를 낳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능력이야. 네가 나에게 어느 정도의 섹스 서비스를 기대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나친 서비스 정신은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리 알도록." "아니?" 아츠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럼 재미 없잖아요. 부부란 베드에서 서로 만족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잖아요." 이런 것이 다 주간지에서 얻은 지식이다. "잘 알고 있군. 그렇지만 그런 것에 대해 너무 기대감을 가진다면, 나에게는 짐이 돼." 나는 아츠코와의 결혼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최근의 남성은 독신을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은 결혼난을 겪고 있다. 아츠코 정도의 얼굴이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내 생각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다. 아츠코는 나의 표정을 보고 당황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결혼하게 되면 당신도 바뀔 거예요. 그래요. 반드시 바뀔 거예요." "그럴까."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요. 반드시 그럴거예요." 갑자기 그녀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뚫어져라 나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자기, 혹시 지금 유행하는 오나니스트는 아니겠죠?" 나는 순간 움찔했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지금의 독신 남성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오나니스트야." "아아, 그렇다면 자기도?" "그렇다." 나는 인정했다. "그러나 병적인 오나니스트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독신 남성의 오나니라는 것은 생리적으로 필요한 거야. 특히 요즘처럼 젊은 아가씨들이 정조관념이 투철해서는 욕망을 풀 출구가 없잖아. 욕구불만의 남자들에게 성 범죄를 범하지 않게 하는 의미에서라도 오나니는 필요해. 게다가 오나니는 몸에 나쁜 것이 아니라구. 그런 합리적인 근거가 있기 때문에 당당히 그 자신이 오나니스트임을 고백하는 독신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고. 그런 것 정도는 자네도 알고 있잖아." "알고 있어요." 그녀는 그것을 인정했다. "단지 내가 걱정스런 것은 그 버릇이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예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 나는 웃었다. "독신 시대의 오나니 습관은 결혼하면 낫게 되어 있어." "그런가요." 아츠코는 반신반의하는 듯했다. 한 달이 지난 후, 나는 아츠코와 결혼했다. 2 처음부터 아내는 건방지게도 나를 가르치려 하였다. 나도 처음에는 조금은 장단을 맞추어 주었지만, 그 이상은 서비스하지 않았다. 결혼 전에 단호하게 못을 박아 두었기 때문에, 아내도 심하게 서비스를 요구하는 법은 없었다. 결혼 초기에는 나도 아내의 육체에 푹 빠졌지만, 그러는 사이에 점점 지겨워졌다. 아무리 여성 주간지에서 가르치는 지식을 머리 속에 쑤셔 넣었다 하더라도, 어차피 여자란 마찬가지이다. 테크닉의 종류에도 한도가 있고, 일이 년 지나면, 아내가 갑자기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무드를 잡아도 조금도 감동하지 않게 되고 만다. 부부생활이란 기교가 아니란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내도 그런 진리를 깨달은 것 같다. 내 일이 바빠짐에 따라 침대에서의 부부생활도 지겨워져, 이제는 거의 하지도 않게 되어 버렸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죽을 때까지 지겨워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칠 십이고 팔 십이고 되어서까지 침대에서 <에스키모의 백곰 사냥>이라든지, <호텐토트 족의 히말라야 공격> 따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도 아니다. 악마의 섹스다. 한편, 세간에는 오나니스트 독신주의자가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자를 안지 못하는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지만, 어느새 중독현상이 일어나, 결국에는 여자야 있건 말건, 오나니의 독특한 쾌감을 스토이즘적으로 즐기는 남성이 늘어난 것이다. 교육자들도 처음에는 비행에 빠지는 것 보다는 낫다고 묵인하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 무책임한 매스컴 문화인들이 너무도 정조관념이 투철할 여성들에 대한 반감도 작용한 탓인지, <여자보다 좋은 오나니>, <여자들을 골려주자>, <오나니 있는 곳에 결혼은 필요 없다>, <오나니를 재평가하자> 따위의 말을 제멋대로 지껄여 대어, 점점 오나니 예찬론자가 늘어 가는 추세였다. 반 세기 정도 전부터 새로운 유행은 항상 철저하게, 폭풍처럼 만연하는 풍조가 있었다. 오나니 시대의 막은 열렸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그제서야 PTA(교사와 학부형 협의회)가 다급하게 대책을 세웠지만 이미 때는 늦어, 문득 주위를 살펴보니 세상은 오나니 일색으로 물들어 버렸고, 젊은이는 말 할 것도 없고 중년 남성층에까지 퍼져 나갔다. 결혼한 남성도 한 때 잊고 있던 오나니를 재인식하고 뛸듯이 좋은 그 맛에 푹 빠져, 마누라를 돌보지 않고 오나니당에 가입하고 만다. 나는 그런 대중의 흐름에 편승하여 오나니 습관에 빠져 들었다. 마침 아내가 임신하여 부부생활이 뜸해진 것을 기회로 오나니를 시작한 것이다. 일단 시작하고 보니 도저히 그만 둘 수 없었다. 부부의 성생활은 너무도 단조롭지만, 이 쪽은 천변만화의 공상의 날개를 펼 수 있어 너무 너무 재미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좋은 것을 두고 그런 섹스적인 재미없는 섹스를 지금까지 계속해 왔는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이상했다. 게다가 내 쪽에서 상대의 표정이나 감촉을 살필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내로부터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정복욕을 만족시킬 수 있다. 또 일부러 소리를 높이는 따위의 오버 액션도, 몸을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으므로 피로감도 적다. 그래서 몸 컨디션도 좋아, 다음 날 일하기에도 좋다. 아내는 이윽고 아들을 낳았다. 그 후에도 나는 아내 몰래 혼자서 즐겼다. 처자식이 있는 남성의 경우, 이렇게 숨어서 몰래 즐기는 것이 자극적이서, 쾌감은 더 증가한다. <<아내 몰래 오나니를 즐기는 스릴과 흥분>>이라는 안내 책자도 등장했다. 그 전부터 오나니 입문서, 안내서, 학술서 등이 서점가를 강타했다. <<오나니 입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오나니 기초강좌>>, <<가정에서 하는 자위 150가지>>, <<오나니, 이 주일 마스터>>, <<최신 유행 히트 오나니집>> 등이 있다. 드디어 주간지나 신문에도, <오나니 마이니치>, <자위통신>, <수음 아사히> 등이 등장하였고, 소설 분야에서도 <실신을 주제>로 한 대중물이 퇴조하고, <자위를 주제>로 한 것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섰다. 장편 역작 <<오나니광>>이 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오나니문학이 꽃을 피웠고, 드디어 <오나니 문춘> 등의 문학잡지, <마스터베이션 미스테리 매거진> 등 추리소설 잡지, <자위일본> 등의 전문지도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 문화적인 동향과 더불어 텔레비전, 라디오에도 오나니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하고, 사회 - 즉 마스터 오브 세레모니가 아닌, 마스터 오브 베이션이 대활약을 하기 시작하자, 정보산업 모든 분야가 문자 그대로 매스 커뮤니케이션화 하여 오나니 문명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오나니 붐은 미친듯이 마구 질주하기 시작하였고, 모든 문화산업 분야가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다. 옛날부터 오나니의 전당이었던 각 대학에서는 대학자치회가 대학자위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크리스챤 대학에서는 미사 시간이 자위시간으로 바뀌었다. 산업계도 이런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오나니를 하면서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오나니 고객을 위한 차를 개발하였고, 오나니스토용 화장품 MV5, 정력제 수음 호르몬이 가게에 즐비하였고, 거리를 걸어 가는 남자라는 남자는 모두 오나니 모드, 길거리에 흘러 나오는 음악도 오나니 블루스 일색이었다. 물론 옛날부터 여성 편을 자처하고 있던 여성주간지가 이런 풍조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애인의 오나니를 방지하는 법>, <당신의 남편은 왜 오나니를 하는가> 따위의 특집을 꾸미고, 그런 내용을 담은 단행본도 이어서 출간하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오나니 붐의 책임은 여성에게 있는가, 남성에게 있는가>라는 대담이나 토론회를 비롯하여, 심야에서 아침까지의 생방송에서 남성 대표를 등장시켜 정조관념이 투철한 여성이 남성의 오나니 붐을 일으킨 근본원인이라고 여자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였다. PTA대표의 주부가 남자들은 모두 괴상한 동물이라고 눈을 흘기면서 욕을 하는 등, 심각한 욕구불만을 표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태는 점점 남성과 여성의 욕구불만 경쟁으로 나아갔다. 문명의 진보는 항상 인구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여성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중혼죄나 간통죄 등의 법률이 만들어지자, 점점 출산율이 줄어 들었다. 여성도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하고 싶어 했다. 침대에서는 남자에서 온갖 서비스를 요구하는 주제에 아기는 낳기 싫어했다. 그리고 머리 좋은 아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겨우 하나 아니면 둘만 낳아서 철저하게 교육하였다. 소수정예주의라고나 해야 할까, 이러한 교육 마마에게 걸린 아이들이 불쌍하다. 그 경우의 남자아이는 격심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가진 채 성장하여, 여성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점점 더 인구는 줄어 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나니 붐이 일어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서로에 대한 적의가 이렇게 명확한 형태로 부상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출산율은 눈에 보일 정도로 내려갔다. 정부도 황급히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결혼장려금을 지출하자는 안이 국회에 제출될 정도로 큰 문제로 발전한 것이다. 3 "그런데, 다음 달 제4과의 매출목표액은 정해졌는가." 회의 석상에서 영업부장이 오나니를 하면서 그렇게 물었다. "예, 예, 예, 예, 예이 - ." 마침 그 때 절정에 다다른 제4과의 과장은 눈알을 희번득거리고, 천식 발작을 일으켰는지 마구 기침을 해댔다. "오, 오 천 육 백 만 엔 입니다." 말을 끝내자 말자 그는 사정했다. 그의 정액은 데스크 위를 날아 올라, 열려진 창을 통해 햇빛이 반짝 반짝 빛나는 한 낮의 빌딩을 벗어나 큰 길 위로 떨어져 내렸다. "나이스 슛." 제 3과장이 감탄사를 발했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의 영업회의를 끝내기로 하겠습니다." 비서과장이 빨리 끝내려고 서둘러 말하면서 손 운동에 스피드를 가했다. "다음 달 회의는 13일 오전 9시 입니다." 회사가 끝나고, 나느 빌딩을 나와 전철 역으로 향했다. 도중에 오나니 기구 가게에 들렀지만, 딱히 눈을 끄는 신품이 없어서 그냥 전차에 올라탔다. 전차 안에서도 손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오나니를 하고 있는 승객이 몇 명 눈에 띄었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승객이 일을 벌이기 시작하자, 질세라 가세한 남자도 있었고, 헐레벌떡 전차에 올라타서는 바로 일을 시작하는 성급한 사나이도 있었다. 여자 승객들은 눈쌀을 지푸리고 모른 척 이리저리 눈만 굴리고 있다. 아침 저녁, 복잡한 전차 안에서 손으로 여자를 더듬는 치한도 이제는 찾아 볼 수 없다. 오나니를 하더라도 손수건으로 가리고 하기 때문에 외설죄에 걸리지 않는다. 때때로 치한에게 놀림을 당한 여자 승객은 여성 특유의 허영심을 발휘하여 일부러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 자기 자신이 이런 오나니 시대에서조차 남성의 관심을 끄는 존재임을 과시하려 하기 때문에, 그게 싫어서도 치한은 더 줄어 들었던 것이다. 그와 더불어 불쌍하게도 치한평론가 오이즈미 고하치 씨는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전차 안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가스카 씨를 만났다. 그도 퇴근하는 길이다. "여어, 요즘 어때요. 하고 있어요." "물론이죠. 그 쪽은 어때요." "나도 여전하죠." 우리는 여자 승객들이 듣건 말건 큰 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히히득거렸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댁의 부인께서도 당신을 감시하는가요?" 라고 나는 가스카 씨에게 물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랬죠." 라고 가스카 씨는 말했다. "지금은 하지 않아요." "호오." 나는 호기심이 나서 그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어떻게 부인을 교육시켰지요?" "교육이 아닙니다. 너무 심하게 감시를 하니, 내가 화를 냈지요. 화장실 안까지 들여다 보더라구요." "앗, 그건 우리 집하고 똑 같군요." 나는 놀라서 외쳤다. "집 안 여기저기 거울을 걸어 두고 감시를 하니까, 남은 곳은 화장실밖에 없지요. 할 수 없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일을 벌이고 있으면, 갑자기 문을 열고 아이와 함께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는 거예요. '아가. 잘 봐. 아빠는 저렇게 치사한 짓을 한단다. 넌 어른이 되어도 저런 짓을 하면 안 돼'." "우리 집도 마찬가지예요." 가스카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그런 일을 당하고 너무 화가나서, 아내와 자식을 침대로 끌고 가 다리에 묶어 두고, 보는 앞에서 대 여섯 번 손장난 시범을 해 보여주었지요. 나의 그런 행동에 쇼크를 받았는지, 그로부터 전혀 감시를 하지 않더군요. 이제는 말도 걸지 않아요. 그렇지만 잔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훨씬 좋아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호방하게 웃어젖혔다. 그런 방법도 있군, 하고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차에서 내려, 아파트에 이르는 교외의 넓은 길을 걸으면서, 나는 말했다.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심심한데 걸어 가면서 한번 해 볼까요." "좋죠." 우리들은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걸어면서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저기 참새가 놀고 있군요." "아, 있네요." "저 놈을 맞춰 볼까요." "재미있겠는데요. 해 봅시다." "지금 상태는?" "곧 나올 것 같아요." "준비." "준비." "그럼, 하나, 둘." "셋." 길 한가운데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던 참새는 발사된 나의 정액에 다리가 묶이고, 가스카의 정액에 눈을 맞아, 멋지게 벌렁 나자빠졌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아아, 이 얼마나 유쾌한 한 때인가. 이 가뿐한 즐거움이야 말로 오나니의 특징이 아닌가. 저 축축하고 지지부진한 남녀관계에 비한다면, 이 얼마나 산뜻하고 야성적이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남성의 섹스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남성의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쾌감이야말로 인간으로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만이 즐길 수 있는 근원적인 쾌감이다. 활짝 핀 얼굴로 집에 들어가자 아내는 의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못마땅하게 내 얼굴을 흘끗 흘끗 살폈다. 그 바람에 들뜬 기분을 잡쳐 버리고 말았다. 아내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 가 있었다. 무리도 아니다. 나는 무려 여섯 달 동안 아내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던 것이다. 여섯 달 전에 한번 한 것도 아내가 술에 취해 나를 덮쳤기 때문이었다. 포박과 다름 없는 상태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정하고 말았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고 말았다. "밥은 아직 안 먹었소." "아직 안 먹었어요." 메마른 음성으로 그녀는 말했다. "가케후에게 공부를 시키고 있어요. 끝날 때까지 기다리세요." 그녀의 얼굴에는 기미 따위가 가득 나 있다. 결혼 전의 모습이라고는 티끌 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나의 아내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모든 부인네들이 그렇다. 욕구불만으로 자신의 바람을 자식에게 모두 쏟아 부어, 자식 교육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도 마찬가지 이다. 좋으실대로, 하고 나는 다다미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할 일이 없다. 이러니까 틈만 나면 오나니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심한 악순환이다. 아내는 키약, 키약 고함을 지르면서 머리 나쁜 내 아들을 나무라고 있다. 우리 집의 거실 풍경이다. 그 옆방에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공상에 빠져 들어 가면서 손 운동을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니까. 몇 번 말해야 알겠니. 거기는 자궁이 아니라 난소. 자궁은 봐, 여기야. 알았니. 이것이 자궁체고, 이것은 외자궁구, 자, 이번에는 소음순을 가리켜 봐. 아니라니까. 거기는 요도구잖니. 넌 왜 그렇게 머리가 나쁘니. 그래서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릴 수 있겠니. 너 정말 아버지처럼 되고 싶니?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정신 차리고 외워야지. 이것만 하고 나면 텔레비전 심야 영화 시간이야. 옛날 포르노 영화로 공부를 하는 거야. 내일은 일요일이니 이 엄마가 스트립 쇼에 데려다 줄께. 아무리 휴일이라도 공부를 쉬어서는 안 돼. 그것만 끝나면 네가 좋아하는 수학 공부하면서 놀아도 좋아. 알겠니?" 우월감 1 내가 여태까지 살던 하라주쿠 역 앞의 아파트에서 이곳 아오야마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기 전부터 이미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건축업자의 말로는 건축을 하는 동안 줄곧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여러가지 형태의 압력, 위협, 진정, 억지 부리기 등을 해 왔다는 것이다. "단지 쪽 사람들은 아마도 이 주택지로 이사 오는 당신들에게도 반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업자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단지 쪽을 턱으로 가리키고,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저 놈들은 단독주택에 대해 굉장한 악의를 품고 있지요." 내가 산 주택은 이전에 큰 아파트가 서 있던 200평 정도의 토지로, 열 몇 평의 아담한 주택이 여덟 채가 새로 조성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가생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여덟 채의 주택의 삼 면을 4층 짜리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이 무슨 짓을 했습니까." 나는 건축업자에게 물었다. "건축 재료를 실은 트럭이 단지 내 도로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주택은 아오야마 로에서 수 십 미터 안으로 들어 온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큰 도로에서 단지 내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 올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도로는 개인의 도로가 아니잖아요." "그러나 단지를 위해 만든 도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뒷길로 들어 가라는 거지요. 뒷길은 좁아서 트럭이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지요?" "단지에는 보스가 있습니다. 대표 몇 명에게 술을 선물했지요. 그래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다음에는 단지를 향하여 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단지의 도로로 집을 들락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뒷길로 출입하라고요." "아하, 그래서 집이 이렇게 이상하게 되었군요." 내가 산 집은 현관은 단지 쪽으로 나 있지만, 문은 뒷길로 나 있다. 다시말해 집을 출입할 때는 뒷문으로 들어 가서, 집 벽을 타고 나 있는 작은 길을 지나 현관까지 돌아 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현관을 나서면 눈 앞에 벽이 가로막고 있다.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업자는 설명했다. "이 담으로 말 할 것 같으면, 처음에는 이처럼 높은 담이 아니었지요. 나즈막한 관목으로 담을 대신했더랬어요. 그런데 단지 사람들이 이 쪽으로 문을 낼까봐 일부러 인부를 고용하여 침목을 박아 넣고, 높은 담을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이 담은 단지 사람 전원의 합의로 만든 것이므로 함부로 막대기를 뽑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담 저편을 보니 높은 목책이 처져 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도 목책 만한 높이로 담을 쌓아 올린 것입니다. 어쩔 수 없었지요. 햇빛이 들지 않아 좀 안됐지만요." 이 말을 듣고 아내가 말했다. "이웃과 사이가 나쁘면 생활에 지장이 많아요." "괜찮아. 우리는 우리. 이 주택에 들어 오는 사람들과 사이 좋게 지내면 그것으로 그만이야." 라고 나는 말했다. "이 여덟 채에 들어 오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분들 뿐입니다." 건축업자가 말했다. "모두 일류 문화인들 뿐이죠." 그 말을 듣고 나는 안심했다. 주택지 사람들끼리 단결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이사한지 며칠 내로 다른 사람들도 속속 이사를 왔다. 오른 쪽 이웃은 변호사, 건너편은 부부 모두 탈렌트, 그 외에도 프로덕션 사장, 디자이너, 번역가, 건축설계사들이었다. 나도 젊은 사회평론가이므로, 일단 문화인들만이 소롯이 모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사 온 사람은 컴퓨터 평론가라는 명함을 내밀면서 인사를 하러 왔다. 장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여하튼 샐러리 맨은 한 사람도 없고, 제각기 그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얼굴이 팔린 사람들이었다. 우리 주택가 여덟 채는 한 달로 채 안 되어 부인네들의 사교를 계기로 모두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 이상만 모였다 하면, 반드시 아파트 단지 사람들 흉을 보았다. "저 목책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우리가 담을 쌓았으니 철거해도 될 텐데 말이야." "애들이 저 목책을 발판 삼아 담 위로 올라 온다구요. 담 위에서 거실을 빤히 들여다 보면서, 야아, 밥 먹니, 하고 외치지를 않나, 시끄러워 죽겠어요." "무엇보다 위험해요. 저 목책을 타고 도둑이 들면 큰 일이지요." 그런 말이 화근이 되었는지, 정말로 목책을 발판 삼아 침투한 도둑이 변호사 집을 털어 간 것이다. 변호사 부인의 보석류가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다. 우리도 우리를 지켜야 한다. 저 막대기를 모조리 뽑아버리자." 변호사 집에 모인 여덟 채의 주인 8명이 의논한 결과, 8집의 연대 책임 하에 각 집에서 한 사람씩 나와 철거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말 할 것도 없이 단지 내에는 샐러리 맨들이 대부분이라서 아침에 일찍 나가기 때문에 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문화인들은 심야족들이 많다. 따라서 쓸데없는 소동을 피하기 위해서 일요일 밤 1시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문화인들은 목책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말았다. 예상대로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이 나무들을 어떡하면 좋지?" "가지고 가면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어." 라고 변호사가 말했다. "그럼 여기 한꺼번에 모아 두도록 하죠." 이렇게 하여 나무를 도로 한 귀퉁이에 쌓아두고 집으로 돌아 온 것은 새벽 세 시 경이었다. 그 날 점심 때가 지나 눈에 불을 켠 단지 사람들이 내 집으로 쳐들어 왔다. "목책을 뽑은 사람이 당신이오?" 눈을 허옇게 뜬 중년의 주부가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주택지 사람들이 함께 철거한 것입니다." "누구 허락으로 없애버렸지요?" 라고 보스로 보이는 초로의 사나이가 따졌다. 처의 보고를 받고 변호사와 탈렌트가 달려 왔기 때문에 나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 목책 때문에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라고 변호사가 말했다. "그 일 때문에 우리가 힘을 모아 뽑아 버렸지요." "그건 이미 아는 일이야." 초로의 사나이가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구 허락으로 뽑았는지 묻잖아?" "아무 허락도 받지 않았습니다." 라고 변호사가 말했다. "당신들은 누구 허락으로 이런 목책을 만들었지요?" "참 어처구니 없어." 단지의 아낙네들이 입에 입을 모아 소리를 질러댔다. "저 도로는 단지의 도로에요. 우리가 무얼 만들든 당신네들이 무슨 상관이야." "자, 그렇다면 당신네들은 우리들한테 도둑이 들어도 좋다는 말인가요?" 라고 탈렌트의 남편이 말했다. "그게 우리 하고 무슨 상관이오." 라는 걸직한 목소리가 되돌아 왔다. "저것은 우리가 돈을 모아 만든 목책이에요. 당장 원래대로 해 놓으세요." "우리는 도둑을 막아야 합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로 목책을 원 위치할 수 없습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단지의 아낙네들이 입에 입을 모아 욕을 퍼부었다. "단독주택에 살면 단 줄 알아." "다음에는 벽을 허물고 문을 만들 사람들이다." "문을 만들었단 봐라." 2 대도시의 주변의 점점 확장되고 중심부의 건물이 고층화되면 처음에 형성된 단지가 점점 슬램화되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주택단지 주위의 아파트 단지가 좋은 예이다. 이 단지는 도쿄에서도 가장 오래된 단지이다. 아오야마 부근의 지가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을 때 지은 것이라 무척 싸다. 단 오천 엔 - 그리고 그 금액은 당연히 현재도 마찬가지이다(만일 집세를 올렸다가는 무슨 소동이 벌이질 지 모른다). 예를들어 방 두 개에 부엌, 욕실이 딸린 집이 도쿄의 한복판인 아오야마에 위치하고 있고, 게다가 집세가 오 천엔이라면 아무도 교통이 불편한 교외로 이사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주민들도 처음에 입주한 사람들이 그대로 살고 있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이제 노인이 되어 그곳에 살고 있다. 이 노인들이 요컨대 단지의 우두머리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자식들이 결혼해서 살고 있다. 즉 3대에 걸친 가족들이 방이 두 개 뿐인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슬램가의 결속력이 강하다는 것은 어느 나라건 마찬가이다. 어느 날 내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하려 왔다가 단지 내의 길거리에 차를 세워 둔 적이 있었다. 이 거리는 주차금지는 아니지만, 단지내 사람들이 제멋대로 주차금지 팻말을 세워 놓고 차량을 단속하였다. 친구는 그 팻말을 보지 못했다. 친구가 우리 집을 나서서 차를 세워 둔 곳으로 가보니 수 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차를 둘러 싸고는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대었다는 것이다. "야아, 그렇게 욕을 얻어 먹기는 머리 털나고 처음이었어. 마치 흑인 슬램가에서 길을 잃은 백인같은 꼴이었지." 나중에 친구는 몸서리 친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돈이 많다하더라도 노인이 많고, 가족이 많은데다 방이 좁으면 가난해 보이게 마련이다. 해가 쨍 하니 뜬 날이면 단지의 이쪽 저쪽에 이불과 귀저기가 좌르르 널려 장관을 이룬다. 눈에 띄이는 것은 모두 냄새나는 것들 뿐이다. 콘크리트 벽이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더 불결해 보인다. 그와는 달리 단독주택 쪽을 살펴보면, 초로의 변호사 부부와 독신의 예능 프로덕션 사장을 제외하면, 모두 신혼에 가까운 젊은 사람들 뿐이다. 그래서 빨랫줄에 널린 것만 보아도 깨끗하고 화려한 것들 뿐이다. 단지 사람들이 그런 풍경을 보면 울화통이 치밀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단지는 4층, 단독주택은 2층, 단지가 주택을 삼 면으로 감싸고 있기 때문에 모든 방향에서 마치 주택을 감시하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그런 증거가 있다. 가령 창문을 열고 단지 쪽을 살펴보면 이 쪽을 노려 보는 사람이 반드시 한 사람 이상은 있는 것이다. 대체로 할아버지 아니면 할머니이긴 하지만. 그래서 여름에는 더욱 행동이 불편해진다. 이 쪽을 들여다 보고 싶은 심정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좁은 아파트에 살 때는 넓고 멋진 옆 집을 때때로 내려다 보면서,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언제나 저런 집에 살아 보나, 하고 부러워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단지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제 이사할 능력도 희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좁아서 답답하다고 늘 놀러 다닐 수 있는 형편도 못 될 것이다. 가족이 불어 났다고 단지 아파트를 자식들에게 양도하고 노부부 만이 교외의 집 아니면 다른 아파트로 이사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러나 십 몇 년 전과는 달리 교외의 집세도 만만치 않은 실정인 데다, 일본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쿄 한복판에 살아왔기 때문에 퇴직금도 벌써 동이 나 꼼짝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젊은 부부는 또 방 두 개의 공간에서 만족할 만한 부부생활도 즐길 수 없다. 그렇다면 별거하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원래 노인에게 거주권이 있는 관계로 그들을 쫓아 낼 수도 없고,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 해도 도심지에서는 공단 주택의 집세도 만만치 않아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물론 젊은 샐러리맨이라 교외에 집을 지을 돈도 없다. 이런 연유로 어쩔수 없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실은 너무 불쌍하지만, 놈들은 그런 열등감을 버리지 못하고 쓸데없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오니 불쌍하게 생각해 줄 마음이 싹 없어지고 만다. 오히려 이쪽은 우월감을 내세워 본전이라도 찾으려는 심리로 일부러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다. 원래 우리에게도 우월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프트에서 산다는 열등감은 지금처럼 허명이 위세를 부리는 시대가 아니었을 때, 모두들 한번은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말을 던져 우월감을 과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 행동을 하니 대립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겨우 목책을 뽑아버린 다음 날, 단지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대낮부터 목책을 치기 시작하더니 저녁 나절이 되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해줄까도 했지만 쓸데없는 일같아 입을 다물자, 우리를 얕보았는지 놈들의 행동은 날이 갈 수록 점점 도를 더해 갔다. 어느 날, 아내가 울면서 들어왔다. "왜 그래?"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더니 플라스틱 버케츠가 박살이 나 있지 뭐예요? 어제 산 건데." 아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단지 놈들의 소행임에 틀림 없다. 쓰레기 집결장은 우리 단독주택지와 단지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른 집의 버케츠도 마찬가지로 모두 박살이 났다고 한다. 그로부터도 몇 번 버케츠가 부숴지자 아내는 아예 한 블록 떨어진 다른 지역에 쓰레기를 갖다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얼마 후 이번에는 탈렌트 부부 집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집 남편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문제의 목책을 기어 오른 단지 아이들이 제 부모한테 사주를 받았는지 시끄럽게 떠들다가 드디어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화를 내면서 나무라면, 그게 재밌다고 더 야단법썩을 떨었다. 간질병이 있는 탈렌트가 입에 거품을 물고 고함을 질러대자 아이들은 그제서야 겁을 내고는 목책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 그런데 한 아이가 허둥거리며 뛰어내리다가 그만 발이 나무에 걸려 땅에 머리를 찧어 피를 흘리고 말았다. 꼬마가 우 - 왕! 하고 울음을 터뜨리자 그 어머니가 뛰어나와 단독주택 사람이 아이를 밀어서 머리가 터졌다고 울면서 고함을 질러대고, 그것을 들은 이웃의 주부와 남자들이 맨발로 뛰쳐나왔다. 그런 소동이 벌어지는 틈에 누군가가 소방소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까지 출동시키는 큰 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단지 사람들에게 밀치고 채이고 손가락질 당하는 탈렌트 부부를 구하려고, 우리 단독주택 사람들도 목책을 넘어 달려갔다. "도대체가 이런 목책을 만든 것부터가 잘못이다." 흥분의 극에 달한 탈렌트가 입에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뭐라고!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사과 한 마디 없이 목책이 뭐 어쨌다고?" "치료비를 물어야 해!" "맞다, 맞아. 안 내면 경찰에 고발해야 한다." 이 때 변호사가 등장했다. "자,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이 사람이 아이를 떠미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잖습니까?"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그렇구 말구. 아이들이 목책에 올라가서 이 쪽을 보고 떠들어 대는 통에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우립니다. 이 목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이것만 치워버린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요." 보스같은 노인이 나서서 외쳤다. "어이! 새파란 놈. 입 닥쳐. 문제는 자네들의 오만불손한 태도야. 한결같이 대가리에 피똥도 안 마른 놈들, 이기주의자들, 왜 잘 못했다고 사과하지 않아. 순순히 머리를 숙이면 될 것 아냐." 애초부터 말로 해서 통할 사람들이 아니니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는 사이에 단지 사람들의 수는 점점 불어났다. 군중에게 당할 수 없는 것이다. 변호사는 자기 아내에게 경찰을 부르게 하고, 우리들이 경찰을 둘러싸고 절절이 호소하는 사이에 탈렌트 부부는 살짝 도망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쌍방간에 과실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가버렸지만, 단지 사람 십여 명은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목책 앞에 남아서 밤이 되어도 떠나지 않고 고함을 치고 욕을 퍼부었다. 이래서는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 "이럴 바에는 우리도 반격을 가하는 게 어때요?" 라고 탈렌트 부부가 9시 경에 술상을 차려놓고 8가구 모두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그 집에 가보니 단지 쪽에서 이쪽을 잘 볼 수 있게 2층 창문을 모두 열어젖혀 두고, 그럴 듯하게 술상을 차려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넓지도 않는 베란다에서 연예계 프로덕션 사장이 데리고 온 하와이안 밴드 트리오가 생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처마에는 맥주 홀같이 빨간 등을 달고 집안의 불이란 불은 모두 밝혀 그야말로 불야성이었다. 이윽고 부어라, 마셔라, 얼씨구 절씨구 분위기는 고조되어 갔다. 그렇게 취하지도 않은 주제에 일부러 고래 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것은, 자! 봐라, 너네들이 사는 방 두개 짜리 아파트에서는 이렇게 할 수 없지롱, 하고 약을 올리면서 우리 쪽을 부러워 하도록 할 심산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디스코로 불을 지르자, 변호사와 프로덕션 사장은 질세라 '타도공단주택'을 외쳐댔다. 드디어 기세가 오르자 전원 입을 모아 약 올리는 노래를 합창. 개집보다 좁고 괴롭지만 어쩔수 없잖아, 아 좁은 방에 맞게 방 두 개짜리 왈츠나 추자 3 원래 이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허영심이 남달랐다. 문화인이란 애당초 허영심이 강하기 마련인데, 확실히 말해 나도 그렇다. 그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이렇게 일본에서 제일 비싼 아오야마의 주택지로 비집고 들어와야 속이 시원했던 것이다. 다른 녀석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오야마에 살기만 하면 일류 문화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고, 우리 집은 아오야마에 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을 할 때마다 우월감을 맛 본다는 것이 거짓 없는 심경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 단지 녀석들도 아오야마에 산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방 두 칸짜리 좁은 단지에 살고 있건 말건,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는 자랑스럽게 아오야마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 아무도 단지에 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에, 아! 그런 곳에 살고 있습니까 하고 감탄하므로, 그것이 그들에게 우월감과 만족감을 주는 것이리라. 그러나 단지 주변에 하나씩 단독주택이 생기면서 진짜로 우월감을 맛보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기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보면, 우월감이건 열등감이건 어차피 자신의 감정을, 그것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는 지극히 언짢은 내면의 일부분을 상대에게 투영하여 미워하는 것이므로, 서로 상대방의 꼬리를 물고 한 없이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강아지같은 꼴이었다. 여하튼 아오야마로 옮기고 나서부터 땅 귀신이 도우는지 나의 일도 순풍에 돛단 격이었다. 어느 날, 어느 종합잡지가 <단지특집>을 한다고 해서 100매짜리 평론을 청탁해 왔다. 마침 단지 자식들에게 당해서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던 참이라 <단지박멸론>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공적인 미디어를 이용하여 사적인 울분을 토로하는 것이라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좋잖아! 평론가라면 다들 하는 일인데, 게다가 나처럼 별볼일 없는 경박한 평론가 주제에. 그리하여 나는 바로 며칠 전에 일어났던 일을 일사천리로 원고지 100매에 옮겨서 마감날에 맞추어 편집부에 가져다 주었다. 이것이 잡지에 실리자, 마침 여기저기서 단지 대 단독주택지의 분쟁이 연일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의외로 평판이 좋아서, 이 잡지 저 잡지에서 글을 쓰 달라고 아우성, 이윽고 나는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의 프로그램은 단지부정론자와 단지예찬론자 두 편으로 갈려 토론을 벌였는데, 부정론자인 나와 예찬론자인 상대편 평론가 둘이서 독무대로 설전을 벌였다. 적이 '도쿄 시내에 주택을 세우면 시민 세 사람을 바다로 밀어 넣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하면, 나는 '그렇다면 단독주택을 세우지 않으면 정부가 주택만큼 넓은 아파트 단지를 세워 줄 것인가'하고 반론을 펴고, 적이 단지의 이점을 하나 하나 들면 나는 단지의 결점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답게 철저하게 발론을 펴는 박력에 넘치는 토론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또 평판을 불러일으켜, 방송국이나 잡지사에서 우리 집과 단지를 취재하러 와서 양쪽 편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서로 매스컴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비방하기 시작하자 쌍방의 감정은 더욱 격해져 갔다. 단지 대 주택지, 세기의 대결전! 이런 제목의 보도가 불에 기름을 붓는 식으로 대립을 더욱 격화시켰다. 우리 집에는 주택지 사람들로부터 격려의 편지가 쇄도하였고, 죽일 놈하고 욕을 하는 단지 사람들의 투서가 매일 우편함을 가득 채웠다. 다시말해 어느새 우리가 사는 주택지와 단지의 대립이 전 일본의 주택지와 단지의 대립으로 비화되었고 그 초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 선두에 선 것이 바로 나였기 때문에 나에 대한 단지 사람들의 협박은 날이 갈 수록 처절해져서, 벽 너머로 오물을 던진다거나, 부모에게 세뇌된 아이들이 하루 종일 차례대로 작은 폭죽같은 것을 유리창 쪽으로 던져 펑펑 터뜨리는 바람에 임신한 아내는 기어코 유산하고 말았다. 더욱 화가 치민 나는 <단지는 일본의 암흑가>, <슬램화한 단지는 비행청소년의 온상>이라고 마구 갈겨대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단지의 슬램화는 어느정도 문제시되어 정부에서도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고 한다. 나의 평론을 계기로 매스컴도 이 문제를 내세워 드디어 주택공단은 도심의 낡은 단지를 모두 철거하고 보다 공간이 넓은 고급 빌딩을 세우자는 정책을 실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된 그 날 밤, 방송국 사람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지금 단지 사람들을 취재하고 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단지에게 쫑겨나는 것도 모두 당신 탓이라고 입에 입을 모아 외치고 있습니다. 폭동이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할 테면 해 보라지. 상대해 줄 테니. 어이, 벽장에 있는 라이플 이리 줘!" 하고 나는 외쳤다. 이 때 변호사가 가보인 일본도를 빼들고 뛰어 들어 왔다. "놈들이 왔어. 당신 집이 최전선이야. 여기서 싸우자." 탈렌트가 불법소지물인 권총을 들고 뛰어 들어오면서 말했다. "죽어도 우리는 하나다!" 또 다른 집 사람들도 목도, 피켈, 방망이 등을 들고 모여 들었다. 나는 아내를 뒷편에 있는 컴퓨터 평론가 집으로 피신시켰다. 컴퓨터 평론가는 장난감같은 광선총을 들고 나타났다. 탈렌트의 아내는 기가 센 여자답게 식칼을 들고 들어섰고, 변호사 아내는 은장도를 들고 가담했다. 이 층 창을 살짝 열고 단지 쪽을 살펴보니 놈들은 수백 명이 모여 중앙 통로를 지나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손에 돌맹이, 벽돌, 공기총, 각목 등을 들고 있있다. 말 그대로 폭도였다. 변호사가 외쳤다. "왔다!" 텔레비전 아나운서는, "이제 곧 전투의 서막이 올라갈 것 같은 긴박한 상황입니다." 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중계를 하기 시작했다. "밤의 열기 속에서 거리는 긴박한 공기에 감싸여 있고, 음산한 정적만이 감도는......" 선두에 선 단지의 보스로 보이는 노인이 공기총으로 나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좋았어. 나를 쏘겠다는 말이지." 나는 라이플 방아쇠를 당겼다. 공기총을 든 노인이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꼬구러졌다. 그것을 보고 눈이 뒤집힌 폭도들은 우와! 하고 야수처럼 함성을 지르면서 우리를 향해 돌진해 왔다. 이렇게 하여 그 후 십 수년 동안, 일본 전국을 비참한 내란으로 몰아넣은 단지 대 주택지의 일대 격전의 서막은 나의 라이플 총성에 의해 열렸던 것이다. 사디즘 1 "탈렌트 도바 히사요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습니다. 지금 여기 왔어요." 부하 이다가 벌벌 떨면서 보고했다. "그 더치 와이프 제작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할 수 없지. 좋아, 내가 가서 만나 보지." 응접실에는 도바와 그녀의 변호사로 보이는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나와 꼭 닮은 더치 와이프를 만들었죠. 게다가 목소리와 성질 부리는 것까지 나와 똑 같다니 말이나 되요." 하고 그녀는 눈을 흘기면서 나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미소를 띄우면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는 유명 여성과 닮은 더치 와이프를 제작할 때는 반드시 본인의 양해를 구하고, 동시에 거액의 권리금을 지불합니다. 무단으로 더치 와이프를 생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흥, 정말 어처구니 없군. 자기와 닮은 더치 와이프를 만드는 데 동의할 사람이 어딨어. 나라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걸. 그런데 왜 그런 것을 만들었죠." 하고 도바는 일부러 눈길을 딴 곳에 두고 말했다. 나는 또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요즘들어 유명 연예인들이 돈을 낼테니 자신과 닮은 더치 와이프를 만들어 달라고 줄을 서는 실정입니다. 더치 와이프의 모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즉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말이라고 해서 유명 연예인은 자신의 인기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 합니다. 사실 더치 와이프 제작이 늦어져서 인기가 떨어진 여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러자 도바 히사요는 눈꼬리를 위로 치켜 세웠다. "나를 모욕할 생각인가요. 더치 와이프를 만들었다가는 오히려 인기가 떨어질 뿐이에요. 나는 더치 와이프를 만들지 않았지만 딱히 인기가 떨어지거나 하지 않았다구요. 오히려 나와 꼭 닮은 더치 와이프가 밀매 시장에서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는 실정이에요." 나는 가슴을 내밀고 힘차게 주장했다. "밀매라니, 무슨 말씀을. 당신과 닮은 더치 와이프따위는 만든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밀매는 말도 안됩니다. 도대체 당신은 더치 와이프를 어디서 보았습니까." 도바 히사요는 억울하다는 듯이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 "참, 기가차서! 난 그런 것은 본 적도 없어요. 그렇지만 신문이나 주간지에 크게 실린 것을 보았고, 게다가......" 도바는 곁에 있는 변호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 사람도 보았다고 해요." 변호사는 호주머니 속에서 사진을 꺼냈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귀사의 제품임에 틀림 없지요. 도바 씨와 꼭 닮은 더치 와이프입니다. 도바 씨의 양해 없이 이런 제품을 만들었다면 이것은 명백히 인권침해, 초상권 침해, 더치 와이프법 위반, 안드로이드법 위반입니다." 나는 사진을 이러 저리 돌려 보면서 말했다. "흐 - 음. 이 사진은 초점이 맞지 않는군요. 멍청한 놈이 찍은 사진 같은 데요. 변호사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찍은 사진이오. " 나는 머리를 땅에까지 숙이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이것 참 실례했습니다. 이 사진만으로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렇지만 만일 이것이 우리 회사 제품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R5형이라는 놈일 것입니다." 변호사는 수첩을 끄내들고 보았다. "맞소! 이 더치 와이프의 제작번호는 이것입니다. R5형 13M1095." 나는 그 말을 듣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노래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아하. 번호까지 적어 두셨군요. 진작 그렇게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곁에 있는 이다에게 명했다. "어이, 창고에 가서 R5형 13M을 한대 가지고 와." 이다는 내 말을 듣고 당황한 듯, "여기 가져 오라는......" 하고 물었다. "그래!"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정말 가져 올까요." 하고 그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아, 걱정 말고. 빨리 가져 와." 이다는 벌벌 떨면서 응접실을 나섰다. "보시는 바처럼 우리 회사의 더치 와이프는." 하고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첫째, 이것은 더치 와이프이기 전에 하나의 안드로이드입니다. 즉, 십 수년 전까지는 로보트로 알려져 있었던 기계 인형이긴 하였지만, 그 후 로보트 공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드디어 인간과 꼭 닮은 안드로이드, 다시 말해 '인간과 닮은 것'이란 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도바 히사요는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것은 알고 있어요. 나에게 강의할 생각인가요." 그래도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발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로보트 기술이 이 정도가 되니, 원래 남자들이란 생각하는 게 모두 비슷한 것이라, 더치 와이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 도바는 내뱉듯이 말했다. "듣기 싫어요. 남자들은 불결해요." "그렇지만 지금처럼 안드로이드형 더치 와이프가 유행하게 된 데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여성의 힘이 강해지면서 남성들은 모두 여성 공포증에 걸려버린 것입니다. 결혼하면 여자 턱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야 하고, 이혼하면 막대한 위자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건 남자가 멍청하니까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 중에는 가정보다도 일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남자는 결혼해서 가장이 되어 구속되는 것을 꺼려하여 독신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섹스를 어떻게 처리하는냐 하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창녀촌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도저히 욕구불만 때문에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래서 더치 와이프 법률이 국회에 통과하게 된 것입니다." 곁에 있는 변호사가 말을 덧붙혔다. "그 법률안 가운데는 어느 특정 인물과 닮은 더치 와이프를 본인의 허락 없이 제작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들어 있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남성이라는 존재는 항상 유명한 여자 배우를 동경합니다. 남성들 입에 오르내리는 미녀를 안음으로써 자신의 명예욕, 권력의지, 정복욕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명 탈렌트를 모델로 한 더치 와이프가 그만큼 팔리는 데서도 증명되는 일입니다." "전부 승락을 받고 만들고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그 R5형의 몇 번인지, 그 물건이 나와 꼭 닮았다면 당신 어떻게 하겠어요?" 도바 히사요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다가 그 안드로이드형 더치 와이프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 왔다. 2 "이것이 바로 그 물건입니다. 과연 닮았는지 자세히 살펴 봐 주십시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는 내심 겁을 먹고 있었다. 닮은 것이다. 아니 닮은 정도가 아니다. 완전히 꼭 같은 것이었다. 키, 근육, 용모, 표정, 목소리, 그리고 성격까지도...... 이다는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계산이 서 있었다. 나는 변호사에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선생께서 본 물건과 같은 것입니까." "같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도바 씨와 전혀 닮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제발 농담 좀 하지 마시오. 완전히 꼭 같지 않소. 사람을 놀리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요!" 변호사는 조롱 당했다는 듯이 강한 어조로 따지고 들었다. "잠깐만!" 하고 도바 히사요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녀는 일어서서 자신과 너무 닮은 더치 와이프에게 다가가서 여기저기를 샅샅이 살펴 보았다. "이게 과연 나를 그렇게 닮았을까?" 변호사가 당황해서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완전히 꼭 같잖소!" 도마 하시요가 말했다. "그렇지만 내 코가 이렇게 크단 말예요. 게다가 눈이 너무 찢어졌어요." 나는 옳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보세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 때 안드로이드 더치 와이프가 도바 히사요를 노려 보면서 말했다. "왜 사람을 샅샅이 훑어보면서 흠담을 하고 그래요. 자꾸 그러면 가만 있지 않을 거예요." 도바 히사요는 그 목소리가 너무도 자신 것과 꼭 같아서 흠칫했다. 그러나 금방 냉정을 되찾고 말했다. "로보트 주제에 말이 많아." "난 로보트가 아니예요." 눈을 위로 치켜 뜨면서 더치 와이프가 말했다. "나는 이렇게 히스테릭하지 않아." 도바 히사요는 변호사를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도 이렇게 갈라터지지 않았고, 이렇게 버릇없이 굴지도 않아요." 더치 와이프가 그 말을 듣고 따지고 들었다. "뭐, 버릇이 없다고!" 변호사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분명히 닮았어요." 도바는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그런 실례의 말을." "어이, 여기 와서 앉아 봐!" 하고 나는 더치 와이프에게 명했다. 그녀는 내 곁으로 와서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 앉았다. 스커트가 위로 걷혀 올라가서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도바 히사요는 소파로 되돌아가서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으면서 말했다. "나는 저렇게 야하지도 않고 행실이 나쁘지도 않아요." "그렇지요, 그렇구 말구요. 조금도 닮지 않았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닮았어." 하고 변호사가 초조한 어조로 말했다. "닮지 않았어요." 하고 더치 와이프까지 끼어 들었다. "내가 이런 여자하고 닮았다니 말도 안 돼. 아이! 기분 나빠." "내가 이렇게 크게 입을 벌리고 고함치듯이 말을 한단 말인가요. 웃기지 마세요." 하고 도바 히사요가 말했다. "얘기가 다르잖소. 그럼 나는 뭘 하러 여기 온 건지 이유를 모르겠구만." 하고 변호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면서 초조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서 가슴을 쭉 펴더니 말했다. "일은 어디까지나 일. 단언하건대 이 안드로이드 더치 와이프는 도바 히사요와 닮았다. 완전히 꼭 같다." "나는 안드로이드가 아니다." 하고 R5형 더치 와이프가 울부짖었다. "나를 모욕하지 마세요. 용서할 수 없어요." 하고 도바 히사요는 화를 내면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외쳤다. "지금부터 당신을 해고하겠어요." 변호사는 울면서 외쳤다.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고객은 처음 봤어." 더치 와이프는 기뻐서 소파 위에서 펄쩍 뛰었다. "좋다, 좋다!" 변호사는 더치 와이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외쳤다. "보시오. 까불고 버릇 없는 것까지 당신하고 꼭 같지 않소!" 도바는 제 집도 아니면서 거침없이 외쳤다. "빨리 나가버려!" "아아! 저런 여자는 공짜로 줘도 안 한다." 하고 변호사는 화가 잔뜩 나서 나가버렸다. 나는 도바 히사요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잖아요. 조금도 닮지 않았지요?" "그럼요, 조금도 닮지 않았네요." 하고 도바 히사요는 힘 주어 대답했다. 나의 덫에 걸려 든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과 닮은 것을 싫어하는 법이다. 게다가 그것이 여성이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자신의 결점을 닮은 것은 절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말로 자신의 결점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는 인간 따위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결점을 모른다 해도 좋을 것이다. 도바 히사요는 거만하고 제멋대로 이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또 그녀는 자신의 성격과 맞는 제멋대로인 여성 역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게다가 그런 역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연기력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은 저 자신 있는 그대로 행동했기 때문인데도 말이다. 도바 히사요는 말했다. "그런데, 아까 당신이 말한 그대로 더치 와이프가 판매되면 탈렌트로서 선전에 유리하다고......" "그렇구 말구요. 한번 만들어 보시지요." "우아하고 상냥하고 얌전하게 만들어 주신다면." 나는 손을 부비면서 말했다. "물론이죠. 당신과 꼭 같이 우아하고, 상냥하고, 얌전한 모습 그대로 만들어 드리죠." 더치 와이프가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흥, 웃기고 있네." "그럼 다시 올께요."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녀는 응접실을 나갔다. 이다가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했다. "십년 감수했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그렇게 닮았는데도 인정하려 않다니 말이죠." "여자란 다 그런 거야."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다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렇게 거만하고 남자를 남자로 보지도 않는 도바 히사요를 그냥 그대로 찍어낸 듯한 더치 와이프가,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다니,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요." "난 왜 그런지 잘 알지. 남자에게는 공격욕과 파괴본능이라는 것이 있지. 이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사회에서 일을 잘 하는 남자가 될 수 있는 거야. 그러나 그런 욕구를 여자에게 사용하고 싶은 충동도 있지. 최근의 여성들은 상냥한 남자만을 선호하고 거친 남자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 때문에 저 도바 히사요 같은 여자도 존재하게 된 것이야. 바로 이 때가 찬스야. 그런 여자와 같은 더치 와이프를 만들어 주면 남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좋은 거지. 여하튼 이 물건이 안드로이드인 만큼 아무리 거칠게 다루어도 괜찮고, 부숴버릴 수도 있으니 얼마나 자극적이겠어." "과연. 제멋대로 구는 건방진 여자를 마음대로 부림으로써 정복욕을 충족시키는 것이로군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나도 이 놈을 한 대 구입하고 싶어졌는대요." 도바 히사요를 닮은 R5형 더치 와이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다를 째려 보고 있었다. 3 잔업까지 해서 하루 일을 끝낸 나는 책상에 앉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쉬고 있었다. 서둘러 집에 돌아 갈 필요가 없다. 최근 일에 열심인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결혼하지 않은 독신이다. 사업상 집에는 회사에서 제조하는 더치 와이프가 몇 십 종류나 비치되어 있다. 그러나 금방 싫증이 나버리는 것들 뿐이다. 그러나 저 R5형 - 도바 히사요와 닮은 더치 와이프는 아직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늘 밤 한번 사용해 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참이었다. 아까 창고에서 꺼내온 것이 아직 응접실에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일단 데리고 가서 내일 출고 전표를 끊으면 된다. 재고품은 사원에게 반액으로 판매하고 있다. 응접실에 가 보니 R5형 더치 와이프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놔 둘 참이야."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달겨드는 그녀를 눌러 앉혔다. "알았어, 알았어. 자 우리 집으로 가도록 하자. 나를 따라 와." 그녀는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아래 위를 훑어 보았다. 이윽고,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로봇 주제에......나는 조금 화가 치밀었다. "이리 와, 오라니까." 나는 그녀의 팔을 잡고 당겼다. "왜 이래요." 그녀는 나의 팔을 홱 하니 뿌리쳤다. 안드로이드답게 과연 힘이 세긴 셌다. 나는 비틀 거렸다. "흥." 그녀는 나의 얼굴을 곁눈으로 흘겨보고 입을 비죽거리면서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도바 히사요 그대로 였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이 로봇 년이!" 나는 고함을 치면서 그녀를 덮쳤다. 좋다, 여기서 해버리자 -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나를 힘껏 밀쳐냈다. "난 로봇이 아니야. 나를 잘 보란 말이야." 나는 가슴 속에서 미친 듯한 사디즘의 충동이 솟구쳐 올랐다. 최근 들어 이처럼 흥분한 적은 없다. 굉장한 자극이었다. "건방진 것." 나는 손으로 그녀의 볼을 힘껏 쳤다. "욱......" 불의의 습격을 받은 그녀는 눈을 희번득거리더니 자신의 투피스 상의를 두 손으로 갈갈이 찢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미친 자식. 야만인. 짐승." 그녀는 붉은 혓바닥이 들여다 보일만큼 입을 크게 벌리며 외쳤다.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머리 위로 솟구쳐 올랐다. 과연, 이 물건이 잘 팔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만일 진짜로 여자에게 이런 폭력을 가했다가는 어김없이 폭력죄로 구속 당할 테지만, 이건 안드로이드니까 아무 이상 없다. 게다가 이 안드로이드 R5형의 더치 와이프는 다른 더치 와이프와는 달리 최후까지 저항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스릴 만점이다. 그녀는 소파 뒤로 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어딜 도망 가려고." 나는 소파를 뛰어 넘어 그녀를 잡고 쓰러뜨리고는 브라우스를 사정 없이 찢어버렸다. 엷은 핑크색을 띤 그녀의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아까 나에게 맞은 볼은 발갛게 부어 올라 있었다. R5형 더치 와이프의 피부는 열을 띠면 발갛게 되는 특수한 프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양, 캭 캭, 고함을 치면서 번쩍 세운 손톱으로 나의 얼굴을 노리고 달겨 들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비틀고 다른 한 손으로 스커트를 벗겼다. 검은 팬티와 핑크색 허벅지가 그러났다. "고릴라. 인간도 아닌 놈!" 그녀가 비명을 지르면 지를 수록 나는 더욱 흥분했다. 나의 얼굴은 그녀의 손톱에 핥켜 피부가 째지고 피가 흘러 나왔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그녀의 브래지어를 찢어버리고 소파에 밀어 붙혔다. 물론 그녀는 저항을 계속한다. 입을 벌리고 나를 물어 뜯으려 했다. 발로 차려 한다. 나의 목을 조르려 한다. 이건 레슬링이다. 배를 정통으로 걷어차였을 때는 너무도 아파,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굉장한 힘이었다. 이러한 반항이 더욱 더 남자의 욕망을 북돋우고 공격욕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그런만큼 아픔이 크면 클 수록 쾌감이 높아져 갔다. 지금 자신이 여자를 범하고 있다는 의식이 남자의 사디즘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녀의 얼굴을 쳤다. 그녀는 입 주위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입 안에 넣어 둔 붉은 잉크 주머니가 터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통에 찬 표정은 너무도 박진감이 있어 도저히 안드로이드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점점 더 흥분되어 갔다. 검은 팬티를 찢어버렸다. 그녀는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무서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거침없이 그녀를 넘어 뜨리고 덮쳤다. 행위를 하는 사이에 그녀는 몇 번이고 고통과 쾌감이 뒤섞인 비명을 질렀다. 버둥거렸다가, 까무러쳤다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바로 조금 전 남자를 남자로 생각지 않는 도바 히사요의 무례한 태도가 떠올라 다시금 화가 치민 나는 R5형 더치 와이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바로 곁의 책상 위에 놓인 재털이를 집어 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용서해 주세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나는 외쳤다. "뭐, 용서 좋아하네. 넌 좀 더 맞아야 해." 그리고 나는 최후의 일격으로 그녀의 목을 졸랐다.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그녀의 목을 힘껏 졸랐다. 드디어 그녀는 코피를 흘리면서 기절하고 말았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라고는 하지만 기계는 역시 기계이다. 기계가 실신할 리가 없으니 이것은 당연히 목을 졸릴 때는 실신하라는 정보를 그녀의 머리 속에 심어 놓은 소형 전자두뇌의 작동 때문인 것이다. 행위가 끝나고 나는 바지를 걷어 올렸다. R5형 더치 와이프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즉 처녀였음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물론 기계에 처녀 따위가 있을 리가 없으니, 이것도 처음부터 피를 흘리도록 장치해 둔 것이다. 그녀는 축 늘어져 있었다. 인간이라면 죽었다고 해야 겠지만, 기계이니 고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금 심하게 다룬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쬐끔만 후회했다. 안드로이드의 수리비는 결코 싼 편은 아닌 것이다. 그 때 응접실의 전화 벨이 울렸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아, 과장님이세요." 부하인 이다였다. "어디 계셨던가요. 회사 안을 온통 뒤지고 있는 참입니다." "무슨 일로 그래." "도바 히사요가 자신의 더치 와이프 제작을 부탁하러 아까 찾아 왔더랬습니다." "아, 그래. 지금 어디 있어." "이상한데요. 거기 응접실 아닌가요?" "그래, 맞아." "그녀를 응접실에 안내하여 기다리게 했는대요. 거기 없습니까?" "없어. 여기 오지 않았는데. 아까부터 여기는 나와 R5형 더치 와이프밖에 없었어." "농담하지 마십시오. 아까 R5형 더치 와이프는 내가 창고에 갖다 넣었습니다." "그, 그렇다면, 여기 있는 것은, 진, 진짜로 도바......" 나는 수화기를 든 채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1 서른 세 살이나 되고서도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니 도대체 이런 사태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불능자는 아니다. 여자와는 아직 한번도 자보지 못했지만, 성적 불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다른 사람처럼 이불에 텐트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나면 반드시 팬티가 젖어 있다. 그럴 때면 왠지 자신이 더러운 짐승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팬티를 세탁기에 넣지도 않고 그냥 버리는 것이다. 나의 직업은 회사원. 회사는 섬유 대기업으로, 직위는 광고부 대리. 당연히 다수의 미인 모델을 관찰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고, 또 내 기분에 따라서는 손을 내밀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럴 기분이 전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로지 그런 여자들이란 전시된 상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거리에 넘쳐 흐르는 포르노 사진집을 보아도 불결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고, 포르노 소설에도 불결감밖에 느끼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불륜의 사랑에 빠진 드라마 속의 유부녀들은 아무리 동정할만한 사정이 있다해도 음란에 지나지 않고, 매독에 걸린 놈은 자업자득, 임질병의 만연은 깨소금 맛, 삼각관계로 싸움을 벌이는 놈은 미친 놈, 실연해서 우는 놈은 바보 멍텅구리에 지나지 않는다. 독신생활 그 자체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지만, 한 가지 곤란한 것은 번듯한 직장에 돈 있는 독신남인 나를 이 사회가 가만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줄을 잇는 연담을 하나 하나 거절하는 나를, 세상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저 자식은 오나니스트임에 틀림 없어, 고양이하고 그 짓을 하고 있을 거야, 사체애호자일 거야 라는 둥 중상모략성 발언이 끊어질 날이 없다. 심지어는 양성구유에다 귀두가 둘 달린 기형이라는 억측까지 소문으로 나도는 판이니, 세상이란 이렇게 무서운 곳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나는 정신분석의를 찾아 가기로 했다. 정신분석의라는 것은 수년전만 해도 일본에는 거의 없었다. 일본인은 물질 이외의 것에 돈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여, 개업해도 환자가 오지 않을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신분석의란 찾을래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미국화되어 가면서 직업병에다 노이로제, 스트레스성 자폐증, 옛날에는 이름조차 없었던 정신장애의 미국화병이 점점 늘어나 갑자기 정신분석의의 필요성이 높아져, 이윽고 미국을 능가하는 정신분석 붐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의사도 환자도 분석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가지 트러블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정신분석을 과대평가하여 폐암도 낫게 한다는 거짓 선전이 나오기도 하고, 분석의가 진찰료를 지불하지 않는 거짓말병에 걸린 환자와 법정에서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의사가 분석 도중에 환자의 광기에 전염되어 무용병에 걸리기도 하고, 환자가 갑자기 의사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색정병에 걸린 여자 환자가 의사의 아이를 출산하는 등,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속출하였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분석치료용의 여러가지 도구도 등장하고, 분석방법도 개량을 거듭하였다. 오늘날에는 정신분석은 정신장애를 위한 다른 어떤 치료법보다도 안심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것이 되어 있다. 설비가 부근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평판이 난 K라는 의사의 병원으로 갔다. 간호원의 안내를 받아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진료실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훨씬 젊은 K라는 의사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자, 이리 앉으시죠." 의사와 마주보고 손걸이 의자에 앉으면서 나는 세 평 정도 넓이의 방 안을 휙 둘러 보았다. "소파는 없는 모양이죠." "예, 소파는 없습니다." "왜 없지요. 정신분석이라는 것은 환자를 소파에 눕게 하여 진찰하고, 치료하는 것인 줄 압니다만." 의사는 웃었다. "아닙니다. 자유연상이라든지 최면법은 흘러 간 기술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말을 통해서만 그 의식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최신 기계를 사용하면 의사는 환자의 정신생활을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신생활을 함께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호오. 대단하군요." "아시겠습니까."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자세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디가 좋지 않아서 왔습니까."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이것을 정신이상이라 할 수 있습니까." "아아. 그런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이상이라면 이상일 수도 있겠지만, 정신병은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여자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어린아이들과 놀려고만 하고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틀림없는 정신병이지만서도." "그런 사람도 있는가요?" "많이 있습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이가 찼는데도 여자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기는 고사하고, 새총놀이만 하는 한 남자가 정신병원으로 왔습니다. 얼마간 입원을 한 후, 의사는 이제 낫지 않았을까 하여 환자에게 물었습니다. '퇴원한 다음 맨 먼저 뭘 하고 싶지요?' 환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새총놀이를 하겠습니다.' 의사는 아직 낫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다시 환자를 입원시켰습니다. 또 얼마 후 의사는 환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곧 퇴원하게 될 것이오. 그래서 예쁜 여자를 만났다고 해요. 그럼 당신은 맨 먼저 뭘 하겠어요.' 환자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지요. '여자의 옷을 벗기겠습니다.' 의사는 이제 됐다 하고 기뻐서 물었습니다. '좋아요, 좋아요, 그리고 나서?' '여자의 팬티를 벗기죠.' 이제 나았다 하고 의사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나서?' '팬티 고무줄을 빼서 새총을 만들겠습니다.'" 나는 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난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편이지요. 회사에서도 광고부 대리, 즉 중견사원으로서 가장 핵심적인 자리에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나의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의사는 잘 알았다는 듯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지요. 억압된 성적 충동이 근로의욕이나 창작욕으로 승화되는 경우지요. 옛날부터 예술가에게 그런 타입이 많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랬다고 합니다. 만일 그에게 보통 사람만큼의 성욕이 있었더라면, 그만큼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욕이 일어나면 일을 잘 못하게 된다는 말인가요."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성욕이 일어나, 결혼할 마음도 생기고, 가정을 가지게 되면 사회적인 신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일하기가 쉬워지지요." "그렇다면 치료해 주십시오. 조금 일을 못하게 되어도 좋습니다. 변태 취급을 당하게 되면 사회적인 신용도에 문제가 생기니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저 방으로 가실까요." 2 의사는 유리 문에 <사이코럼 치료실>이라 적힌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실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가 놓여져 있고, 벽에는 적 청 녹 황의 형광도료가 잔뜩 발라져 있었다. "하하하, 정신병원 안에 디스코 테크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이것은 디스코 테크가 아닙니다. 최면효과를 강화하고, 또 의식내용을 가시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보조수단으로서, 이런 기이한 문양을 그려 둔 것이죠. 또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디스코 테크식의 스테레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의사가 벽의 스위치를 켜자 실내에는 굉장한 비트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런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아파져요." 하고 나는 의사를 향해 외쳤다. "에! 뭐라고요?" 하고 의사는 내 귀에다 대고 외쳤다. "말 소리도 들리지 않잖아요." "그래서 좋은 것입니다." "아녜요. 미칠 것만 같아요." "그렇지만 미친 사람은 이렇게 해서 낫는 것이죠." "이 기계는 뭔가요?" "이것은 사이코럼입니다. 당신의 뇌에서 나오는 일종의 전기를 가시적인 내용으로 정보를 교환하여, 당신의 의식내부의 세계를 당신과 나에게 의사체험하게 해주는 것이죠." "정말 놀랍군요.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에, 뭐라고요?" "그런 것도 가능하냐구요?" "곪지는 않습니다." 의사는 나의 후두부에 컴퓨터로 보이는 기계에서 나온 코드의 끝에 달린 플라치나 침을 쏙 쏙 몇 개나 찔러 넣었다. 그 다음에 양 손목에 전극을 대고 고무 테이프로 감았다. "조금 불편하군요. 꼼짝을 할 수 없어요." "움직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의사는 진공관이 스무 개 이상이나 달린 헬멧을 나에게 덮어 씌우고, 자신도 다른 하나를 덮어쓰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뭘 하게 되지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부터 당신과 나는 당신의 정신 세계 내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찾아내어, 당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그러면 당신은 여성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정신 이상의 원인을 명확히 인식했을 때, 그 환자의 정신 이상은 치유된다는 것이 프로이트 이후로 하나의 원칙입니다. 지금도 그 진리에는 변함이 없지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호주머니 안에서 알약을 꺼냈다. "이것을 먹으세요." "이것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쿵짜라작작 삐약 삐약이 되지요." "의사라는 사람이 환자에게 이런 약을 먹여도 되는 거예요?" "치료를 위한 투약이니 아무 상관 없습니다. 이것을 먹으면 심리적인 압박이 사라져서 간단히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알았습니다." 알약을 다섯 개 먹고 조금 있으니, 마치 술에 취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어때요?" 하고 의사가 물었다. "얼씨구 지화자 입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의사는 기계에 달려 있는 스위치 하나를 올렸다.(이하의 묘사를 위하여 작자는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하이미날 다섯 알을 먹었다. 문장이 다소 지리멸렬하게 되겠지만, 이것은 실험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작자 자신이 몽환상태에서 기술해 나갈 생각이다 - 작자) 3 언제 제 정신을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사무실로 보이는 장소에 서 있었다. 사무실로 보이는 곳, 이란 그곳이 내가 늘 일을 보는 사무실과 약간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창틀은 뒤틀려 있고, 방은 삼각형, 마루 면적 보다도 천장의 면적이 훨씬 더 좁은 그런 장소였다. 아무래도 나는 이미 나의 정신세계 내부로 들어 와 있는 것 같았다. 곁에는 K의사가 서 있고, 주위를 멀뚱 멀뚱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하고 의사가 물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같은데요." "호오, 당신은 늘 회사 일을 머리에 담아두고 있군요. 일에 열심이시군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당신의 부하들인가요?" 나는 평사원용의 데스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을 둘러보고 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이 사람들은 모두 중역들입니다. 저기서 일을 하는 사람은 사장입니다." "그렇군요. 당신은 사장이나 중역들을 눈짓 하나로 부하처럼 부리고 싶어하는군요." "남자라면 누구나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에요. 게다가 사실, 우리 회사의 사장이나 중역들은 평사원 정도의 능력밖에 없어요." "아주 엄한 눈을 가지셨군요. 아니, 그런데 저 쪽 문을 열고 회사 안으로 들어 선 세 명의 여자, 누구지요?" "아, 저 아가씨들은 광고부에서 고용한 패션 모델이에요." "저 아가씨들이? 도저히 저들이 모델이라고는 믿을 수 없군요. 얼굴은 호박, 몸은 젓가락, 피부는 거칠거칠, 가슴은 절벽, 게다가 여드름 투성이가 아니오?" 라고 의사는 괴이쩍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나와 모델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모델이란 원래 저렇습니다." "그런가요? 아무리 미인이라도 당신의 눈에는 저런 모습으로 비치는 것 같군요." "글쎄요. 흥미 없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라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나 의사는 이상하리만치 그녀들에게 흥미를 보였다. 그는 나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저 여자들, 여자로서 기능을 가졌겠지요?" "글쎄요, 나도 어느 정도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지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경험이야 없지만 여성의 생식기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그럼 시험해 볼까요." 의사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더니, 모델 하나를 끌어 안고 바닥에 쓰러뜨렸다. "당신은 의사가 아니오? 아무리 상상 속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파렴치한 짓을. 그것도 회사의 사무실에서, 창문도 다 열려 있는데, 게다가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나는 깜짝 놀라 그렇게 외쳤다. "괜찮아요." 의사는 거침없이 모델의 스커트를 걷어 올리고, 모델 주제에 구식 팬티를 입고 있다고 투덜거리기도 하면서 그것을 아래로 내렸다. "이것은 당신의 내면세계인 만큼, 어디까지나 의사체험에 지나지 않으므로 무슨 짓을 해도 괜찮습니다. 당신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마음대로 해 보세요." 의사는 하반신 벌거숭이가 되었다. 사무실 안 사람들이 어이없는 눈길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당, 당신은 여기서 그 추악한 짓을 할 생각인가요?" 하고 나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습니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 나는 당신의 섹스에 대한 이미지를 분석해 보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정신분석의의 직업상의 즐거움이기도 하지요." 그는 노를 젓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돌렸다. 고개를 돌린 채 의사에게 물었다.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하셨지요?" 의사는 숨을 헐떡이면서 간신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여기는 법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마음 속에는 경찰의 검열이라는 것이 없으니까요. 무법지대이지요." "과연 그렇군요." 나는 평사원용의 데스크에 앉아 장부를 정리하고 있는 사장 앞에 섰다. "어이, 사장." "어, 광고부 대리 아냐?" 사장은 얼굴을 들고 반갑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빙긋 웃은 다음, 책상 위에 놓인 재털이로 사장의 얼굴을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다. 사장은 바닥에 쓰러졌다. "아......" 사무를 보고 있던 중역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한번 째려보자 그들은 벌벌 떨면서 다시 자리에 앉아 하던 일을 계속했다. "죽였군요." 의사가 허리춤을 추스리면서 내 곁으로 다가 와 바닥에 드러누운 사장을 내려다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글쎄요, 죽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 여자들은 어땠어요?" "형편 없더군요." 의사는 바닥에 누워 있는 세 명의 여자 모델을 턱으로 가리켰다. "하나는 노파처럼 성기가 바삭 바삭 메말랐고, 또 하나는 질폐색이고, 나머지 하나는 구멍이 없더군요." 그는 나를 흘끗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당신은 여성에 대해 굉장한 반감을 가지고 있어요. 이상할 정도로. 그리고 무시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내 발 아래 쓰러져 있는 사장의 얼굴이 점차 노인의 얼굴로 변해 갔다. 의사는 그것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 노인은 누구지요?" "우리 아버지와 닮았는데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요. 당신은 사장과 아버지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릴 적에 아버지를 경멸했습니다. 지금은 아버지 대리, 즉 당신에게 권위를 가진 회사의 사장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여성 기피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요?" "어린 시절에 무슨 사건이 있었군요. 그럼 과거로 한번 돌아가 볼까요." 갑자기 주위의 풍경이 바뀌더니, 넓디 넓은 해안가 모래 위에 우리는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까의 모델 세 명이 드러누워 있고, 그 곁에 <이 곳은 무의식>이라 쓴 푯말이 서 있었다. 나의 발 아래는 아버지가 죽어 널부러져 있고, 문득 나의 손에는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다. "여기는 어딥니까?" 하고 의사가 물었다. "어린 시절 살던 해안가입니다." "당신은 어린 시절, 바이얼린을 배웠던가요?" 그는 나의 손에 들린 바이얼린을 가리키며 물었다. 굉장히 고급스런 바이얼린이었다. 바이얼린에는 <스피로헤타바리우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무릎으로 꺾어 부순 다음 던져 버렸다. "아버지는 억지로 당신에게 바이얼린을 하게 했군요." 나는 비명처럼 외쳤다. "아버지는 바이얼린을 잘 켰어요. 아버지는 늘 그것을 어머니에게 자랑했지요." 나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악기는 여체의 상징." 하고 의사는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외쳤다. 바다 저편에는 흔들 흔들 에로틱하게 움직이는 배 한 척이 다가왔다. "엄마, 엄마는 왜 가버렸는가요?" 하고 나는 울면서 외쳤다. "배는 여자의 상징. 그리고 바다는 어머니의 상징." 하고 의사가 외쳤다. "엄마, 제발 기다려 줘." 하고 나는 바다로 뛰어 들어가 헤엄치기 시작했다. "모태회귀원망(母胎回歸願望)." 하고 의사는 외쳤다. 그도 나를 따라 바다로 뛰어 들었다. 헤엄을 치는 사이에 바닷물은 점차로 끈적 끈적한 유백색의 액체로 변해갔다. "이것은 젖이다." 하고 의사가 외쳤다. 바다 속에서 거대한 탑이 솟구쳐 올랐다. 그 끝에서 분수처럼 하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이 부근의 바다는 정액으로 되어 있다." 라고 의사가 말했다. "저 탑은 필시 음경이다." 하고 의사는 외쳤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 탑은 귀두로 변했다. "싫어. 엄마. 왜 빨리 죽었어? 왜 나를 오래토록 귀여워 해 주지 않았어. 운 좋게 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죽어줬는데도 말이야. 왜 내가 아버지보다 더 멋진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 있어 주지 않았어." 나는 울면서 외쳤다. "걱정하지 마시오. 저 페니스는 당신 것이오." 음경처럼 생긴 탑이 내 쪽으로 넘어져 왔다. "앗!" "거세 콤플렉스." 하고 의사가 외쳤다. 드디어 배에 도착하여 나와 의사는 하얗고 매끈 매끈한 갑판 위로 올라섰다. 순간 순간 형태를 바꾸어 가는 갑판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나는 울었다. "엄마. 왜 엄마는 죽은 아버지만 칭찬해 줬어? 내가 더 힘이 센데 말이야. 훨씬 더 센데 말이야." 4 원래의 진료실로 되돌아와 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당신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고, 게다가 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애정을 한 몸에 받게 되어 좌절을 몰랐기 때문에 강렬해진 것 같습니다. 또 당신의 어머니는 아직 아름다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머니의 사후, 어머니의 모습은 당신 마음 속에서 점점 이상화되어, 그것이 다른 여성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다는 거죠?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나의 여자에 대한 혐오감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는데요?" "약간 거친 치료 방법인 것 같습니다만,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다른 사람에 대한 존경심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 치료를 하셨군요. 도대체 누구를 존경하게 만들었는가요?"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면, 그 아버지와 동일시된 사장에 대해 존경심을 품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일에 대해서도 더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여성에게 존경받고 싶다는 바람이 일어나게 되어, 당연히 여성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아버지를 존경하게 만들었는가요?" "당신의 말에 따르면, 당신의 어버니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계셨다고? 그래서 당신의 어머니 입장에 서게 하여, 어머니와 동일시하는 방법을 택했지요." "아, 그랬군요. 어처구니 없는 선생님이시군. 그렇지만 선생님, 환자라는 것은 의사를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일이 많다고 하더군요." 의사는 안색이 바뀌었다. "큰 일이다. 너무 치료를 서둘렀어. 실패다." 나는 의사 쪽으로 몸을 기대면서 윙크를 보냈다. "아잉, 선생님! 오늘 밤 시간 있으세요." 최면암시 1 처음부터 음탕한 마음을 품고 와카코를 아오야마 묘지로 끌고 간 것은 아니다. 우연히 호주머니에 돈이 얼마 없을 때, 밤의 아오야마 묘지 앞 길에서 문득 그녀와 마주친 것이다. 디스코 테크로 데리고 갈 정도의 돈은 가지고 있었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아슬아슬해서는 도저히 놀 기분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사족인데, 바로 그 때 돈은 얼마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돈이 많다. 은행에 1천 8백 만엔 정도의 예금을 가지고 있고, 나의 수입은 월 약 백 2십 만 엔. 그 증거로 나는 아오야마의 고급 맨션에서 독신생활을 즐기고 있다. 와카코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이, 쿠마 군, 어디 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야, 넌?" "나도." 나는 카피라이터, 그녀는 프리 모델이다. 이전부터 그녀와는 마음이 잘 맞았다. 나는 그녀를 근처의 스낵으로 안내하여, 진피스 따위를 마시게 하고,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로 배를 잡고 웃게 만들고, 나중에는 머리가 아프다고 말할 정도로 즐겁게 해주었다. 그녀가 완전히 나의 페이스에 말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냥 즐겁다고 낄낄거리고 웃을 정도로 마음의 율동이 일치되었음을 확인한 다음, 우리는 스낵을 나섰다. "쿠마 군이 이렇게 좋은 사람인 줄은 예전에 미쳐 몰랐어.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개성이 강한 남성을 만나면 일반적으로 여자는 일종의 데자 뷰 현상을 일으켜, 그 남자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개성이 강렬하다는 것은 반드시 그 사람의 인격이 훌륭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강렬한 개성의 소유자는, 첫째, 미치광이, 둘째, 정신박약아, 세째, 취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특이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쉽게 잊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개성을 가진 남자에 대해 일단 호감을 가진 여자는 바로 그 남자에게 푹 빠져 버린다. '당신 같은 사람은 다른 데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어요' 하고 말하는 여자가 바로 거기에 속한다.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SF소설을 읽어보면 텔레파시를 가진 사람끼리는 반드시 연인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그렇게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들어 가볼까." 하고 나는 묘지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좋아, 재미있겠다. 들어가, 들어가."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돌계단을 올라 묘지로 들어갔다. 둥근 달이 떠서 묘지 안은 무척 밝았다. 묘석이 많아서 앉을 장소는 애써 찾지 않아도 된다. 장방형으로 잘 단장된 관목 더미 속의 <다나카지묘>라고 쓰인 곳으로 들어가, 1937년에 죽은 육군 중좌의 앞에서 우리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모기가 많아." 하고 와카코가 말했다. "모기 정도는 괜찮아. 집에 가서 약을 바르면 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 맞아." 뜨거운 애무를 하다가 나는 기어코 와카코를 묘 앞에 뉘었다. 묘석에 머리를 올리자, 그게 꼭 베개 역할을 해주었다. 와카코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밑에서 나를 세차게 끌어 당겼다. 이미 몸도 마음도 모두 나에게 빼앗겨 버린 상태였다. 나의 행동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행위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바지를 벗어 몇 겹으로 깨끗이 접어 묘 위에 올려서 육군 중좌의 눈을 가려 두었다. 속바지 만은 벗지 않고, 무릎 아래까지만 내렸다. 모기에게 조금이라도 덜 물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와카코의 팬티를 벗기고 다음 행동으로 들어갔다. 속바지를 완전히 벗지 않은 데에는 또 다른 하나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인 즉슨,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였다. 여자는 스커트를 입고 있으므로 그냥 일어서면 그만이다. 그러나 남자 쪽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전에 쇼윈도의 장식을 거들어 주었을 때,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양복을 입은 남자 마네킹이 하반신을 다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너무도 보기 민망스러웠다. 완전 누드라면, 최근들어 그것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는 만큼, 그런대로 봐 줄 수는 있다. 또 여자가 상반신에 쉐터같은 것을 하나 걸치고 하반신을 벗고 있으면, 올 누드보다 오히려 에로틱해 보인다. 그러나 남자가 그렇게 하면 그로테스크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속바지만 입는 것도 그리 좋은 꼴은 아니지만, 완전히 벗는 것보다는 낫다. "아아, 좋아, 마치 무중력상태에 빠진 것 같아." 하고 행위 도중에 와카코는 신음하면서 말했다. "여기는 우주공간. 우리는 지금 우주의 한 복판에 있는 거야." 하고 나는 장단을 맞추었다. "정말!" "정말이고 말고." "나, 가라앉는 것 같아." "자유낙하!" "아아, 아아, 자기, 더 세게 해줘." "그게 안 돼, 속바지를 다 벗지 않아서 움직이기가 곤란해." 하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까짓 것 벗어버리면 그만이잖아." "할 수 없군." 나는 행위를 중단하고 속바지를 벗어던졌다. "이젠 벗었어." "세차게." "좋았어." 나는 다시 돌격했다. 이윽고 와카코는 경련을 일으키면서 머리를 묘석에 부딪치기도 하는 등 발버둥을 치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나는 묘 앞에 세워진 대나무 통에 고인 빗물을 손으로 떠서 그녀의 얼굴에 끼얹었다. "여기는 어디?" "아오야마의 묘지." "우주공간이 아니었네. 내 팬티는 어디?" "여기." 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어이, 와카코, 내 속바지 못 봤니?" "난 몰라. 네가 벗었잖니." "그런데 없어, 이상해, 그 쪽을 한번 찾아봐 줘." "여기도 없어." "쥐가 물어 갔을까?" "묘지에 무슨 쥐가 있겠니?" "쳇, 할 수 없군." 아무리 찾아 보았지만 나의 속바지는 없었다. 모기들이 엉덩이를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냥 바지를 입었다. 맨 살에 그냥 바지를 걸쳤기 때문에 기분이 게름측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척 이상한 일이었다. 꽤 넓은 범위에 걸쳐 철저히 수색을 해보았지만 내 속바지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마지막으로 관목 담 밖으로 나와서 라이터 불을 켜고 찾아보았다. 우리 뒤를 이어 묘지 안으로 들어 온 아베크가 라이터 불빛을 보고 캭! 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속바지를 포기하고 우리는 묘지를 나서니, 아까의 아베크가 기절해 있었다. 돌계단에서 넘어진 것 같았다. 2 와카코와 맨션 앞에서 헤어지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모기에 물린 엉덩이에 연고를 바르고 있는데 마침 뉴스가 시작되었다. "방금 들어 온 뉴스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늘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을 하는 이마후시라는 나이 든 어나운서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우주중계용 제 6호 유인통신위성이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는 원고를 내려다 보다가 순간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얼굴을 들고도 잠시 머뭇머뭇,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곤혼스럭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것은, 그것은 한 장의 속......속바지 라고 합니다." 그는 더욱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핑크 빛 바탕에 녹색 줄 무늬가 그려진 속바지인 것으로 보이는 물체라고 합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제 6호 위성이 촬영한 문제의 물체입니다." "내 속바지다!" 하고 나는 외쳤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수 많은 별들을 배경으로, 우주공간을 소리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그것은, 그것은 바로 내가 아오야마 묘지에서 벗어던졌던 그 속바지였던 것이다. 나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그 현실에 백치처럼 입만 멍하니 벌리고 텔레비전 화면만 바라보았다. "천문대에 문의하였지만 그 영문을 알 수 없다 합니다. 기상청 쪽도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물체는 현재 제 6호 위성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실황중계되고 있고, 각국의 천문대, 기상청, 우주과학연구소에 대단히 흥미로운 반향과 흥분을 일으키고 있는 것......" 나는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왜. 어떻게 나의 속바지가 아오야마 묘지에서 우주공간으로 날아갔을까, 나는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반중력성 섬유로 만들어져 있지 않는 한, 단 한 장의 속바지가 지구의 인력권을 탈출할 리가 없는 것이다. "스튜디오에 나와 있는 사회평론가 오야키 씨의 견해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하고 이마후시 어나운서가 말했다. "이것은 절대로 속바지가 아닙니다." 라고 평론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 색채 감각은 분명히 지구인의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핑크 빛 바탕에 녹색 줄 무늬가 든 속바지를 입는 정상적인 인간이 있을까요? 때문에 이것은 다른 천체에서 날아 온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우주과학연구소장 이도가와 씨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라고 어나운서가 말했다. "선생께서도 저것은 속바지가 아니라고 보십니까?" "속바지가 아닐 것입니다." 라고 소장은 말했다. "우주선의 파일럿이건 인공위성의 직원이건, 속바지를 입는 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속바지가 우주공간을 날아다닌다는 것은 어떤 상황하에서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고 이마후시 어나운서가 다시 물었다. "가령 이 물체가 회수되어 속바지임이 확인되었을 경우, 어떤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그 경우는." 소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그 속바지의 존재를 부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소장은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우주과학연구소의 입장은 이 속바지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중앙천문대 소장을 모시겠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절대로 아는 게 없습니다." 이 문제로 곤혹스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던 모양으로, 드디어 소장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로,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주 속바지에 관한 뉴스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어나운서가 말했다. "새로운 뉴스가 들어오는대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이후의 뉴스특집 시간에는 예정을 변경하여 우주 속바지 특집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스컴이란 이런 쓰잘데 없는 일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방영할 뉴스가 너무 없든지, 매스컴 대중이 진귀한 뉴스에 목말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공간의 그 물체가 속바지라는 것을 알면 소동이 멈추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방송국에 전화를 걸기로 했다. 색깔이나, 오른쪽 봉합부가 떨어질 것 같은 것이라든지, 어디를 보나 내 속바지 임에 틀림 없었고, 여하튼 나의 속바지가 전세계에 중계되고, 파렴치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만큼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국 교환에게 보도부를 부탁했다. "여보세요. 보도부입니다." "저 - , 지금 뉴스에 나온 속바지에 대해서 말인데요." "아아,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은 그 속바지가 내 것임을 알리려고." "뭐라고요? 당신의 속바지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요?" "증명할 수 있지요. 그 속바지의 브랜드를 확실히 알고 있고, 지금 우주공간을 떠도는 그 속바지 안에 팬티가 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과 주소는?" 나는 주소를 말했다. "그렇게 명예로운 일은 아니니, 제발 소동을 부리지 말아주세요." "네, 물론이죠. 곧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무척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를 끊고 뉴스를 보고 있자니, 10분도 지나지 않아 방송국 기자가 차를 타고 맨션으로 찾아 왔다. "스튜디오로 가서 특집 프로에 출연해 주십시오."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농담하지 마시오. 난 그럴 생각으로 전화를 한 게 아니란 말이오." 기자는 오히려 나보다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농담을 하는 게 아닙니다. 출연해 주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생길 것입니다." 마치 정부 관리같은 어투였다. 나는 재판소에 출두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차를 타고 스튜디오로 납치 되었다. 생방송 5분전, 넓은 스튜디오에는 출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난 속바지만 찾으면 그만이라구요."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디렉터에게 말했다. "부탁합니다. 제발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디렉터의 대답은 냉혹하기 짝이 없었다. "안 돼요. 포기하세요." 그리고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럼, 그 속바지가 당신 것이란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고 어나운서가 의심스런 눈길을 던지면서 물었다. "속바지 안에 팬티가 들어 있습니다." 그 때 게스터로 초대된 평론가가 끼어 들었다. "잠깐, 그렇다면 당신은 속바지와 팬티를 동시에 벗어요? 늘?" "아니, 그 때는 너무 급해서 그랬지요." "왜 그렇게 서둘러 옷을 벗어야만 했나요?" 하고 주부 대표인 듯한 여자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하고는 관계 없잖아!" 하고 나는 고함을 쳤다. "언제, 어디서 벗었지요?" 하고 SF 작가가 물었다. "한 시간 반정도 전에, 아오야마 묘지에서." "아오야마 묘지 안에서 왜 그렇게 서둘러 속바지와 팬티를 동시에 벗아야만 했지요?" 하고 평론가가 따지고 들었다. "나는 속바지만 찾으면 그만이야. 속바지를 회수하면 내 것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잖아!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남의 프라이버시를 캐려고 그래!" 하고 나는 참다 못해 울부짖었다. "이것은 나에 대한 폭력이다. 매스컴의 폭력이다!" 3 그로부터도 한참 동안 매스컴은 속바지 소문을 주요 뉴스로 다루었다. 속바지는 한 곳에 가만 머물러 있지 않고, 지구로부터 점차로 멀어지면서 천천히 자유낙하를 계속하였기 때문에 회수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 때문에 나의 속바지인지 빨리 확인할 수 없었다. 여하튼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나였다. 속바지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다른 사람 눈에 매명행위로 비쳤던 듯하다. 친구들은 경멸 섞인 눈으로 나를 보았고, 여성 주간지는 <속바지 씨>라고 나를 불렀고, 여자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절교를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다고 인터뷰에 불려나가는 것은 물론, 나중에는 CM에까지 나가게 되었다. 신문과 텔레비전은 처음에는, 왜 속바지가 우주에 출현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모든 방면의 과학자를 동원하였지만, 아무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점차로 <속바지인가 아닌가>라는 테마로 경박한 문화인들을 불러내어 논쟁을 붙이기도 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속바지가 알려지자 <속바지 패션 쇼>가 개최되었으며, 드디어 <도쿄 속바지 대행진>이라는 많은 사람이 참가하는 이벤트까지 열리기에 이르러, 매스컴의 경박함은 그 극에 달하였다. 발 빠른 메이커는 바지 대신 입는 사이케 속바지, 파렴치 속바지 등의 신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자, 줏대 없는 젊은 것들이 미친듯이 그 제품을 선호하여 며칠 안에 거리에는 속바지의 대홍수. 유행에 편승하는 골빈 SF작가가 <<우주의 속바지>>를 단행본으로 발표하자, 일 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게다가 <우주를 날아라, 우리의 속바지>라는 언더그라운드 송까지 발표되는 실정이었다. 우주를 날으는 속바지 일본의 남아 보아라 사이케의 찬란한 줄 무늬 아, 파렴치한 그 용맹한 모습 고향의 별을 뒤로 하고 우주를 날았다 날았다 속바지 찬차라찬 여하튼 굉장한 노래임에는 틀림 없다. 한편 와카코는 심한 열을 내어 입원하였다. 전화로 연락을 받고 나는 바로 병문안을 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빨간 반점이 나 있었고, 간지러운지 손가락으로 마구 긁고 있었다. 모기에 물린 것이 실수였다. 뎅그열에 걸린 것이다. 묘지에서 사는 모기 자식이 이 뎅그열의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이다. 절교 당할 각오를 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나에게 감사했다. "신문에서 봤어. 나에 대해서, 입을 다물어 줬더라. 정말 고마워."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너에 대해서는 말해서 안 되지." "자기, 정말 입이 무거워. 나, 자기가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애." "고마워. 나도 네가 좋아." "우린 똑 같이 곤경에 빠졌어. 역시 묘지에서 그런 짓을 하면 안되는 것 같아." "그 육군 중좌가 질투심으로 우리에게 벌을 내린 것일까?" "자기, 병이 나으면, 이번에는 묘지가 아닌 조용한 곳에서 우리 사랑하도록 해." "그래, 맞아." "그 때처럼 날 우주로 데려다 주는 거지 응?" "우주라고?"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자기, 무슨 생각해?" 나는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와카코, 너 암시에 걸리기 쉬운 타입이니?" "응 그래. 한번 최면술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금방 걸려 버리더라." "아, 이제야 알 것 같아. 그 때 나도 모르게 네게 최면 암시를 걸었던 것 같아. 반복행위를 계속하는 사이에 넌 최면암시에 걸리기 쉬운 상태에 빠졌던 거야. 그리고 너와 나 둘 중 하나가 염동력, 다시말해 텔레키네시스(telekinesis)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 없어. 지금 우주 공간에 있다는 암시와 염동력이 작용하여 속바지가 우주로 이동한 것이지." "그렇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겠네. 그런데, 자기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할 생각이야?"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더 이상 웃음거리가 되기는 싫어." 며칠 후, 속바지는 제 6호 통신위성에 의해 회수되어, 나의 속바지임이 확인되었다. 내가 말한 그대로 그 안에는 더러운 팬티가 있었고, 내가 말한 그대로의 브랜드 제품임에 밝혀졌다. 그 메이커는 일약 유명해졌고, 속바지의 색채감각을 혹평한 그 평론가를 상대로 명예훼손및 여업방해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속바지는 내 손으로 돌아왔지만, 다음 날 조간에는 사진까지 곁들여서 이런 기사가 게재되었다. 우주 속바지 무사히 주인의 품으로! 환희하는 미스터 속바지 젠장, 나는 하나도 재미없다. 뭐가 재미있단 말인가. 사건이 해결되자 나의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렸다. 매스컴 대중이라는 존재는 정말 잘 잊는다. 다음 날부터 매스컴은 속바지 사건 따위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다른 뉴스를 흘려보내기 시작하고, 사흘이 지나자 아무도 나를 등 뒤에서 손가락질 하지 않았으며, 일 주일이 지나자 나에게 절교를 선언했던 여자 친구들이 찾아오게 되었고, 친구들은 다시 일거리를 들고 나를 찾아 왔다. 와카코와는 그 후, 두번 관계를 가졌지만 지겨워지고 말았다. 여름이 지나고 초가을에 들어 선 어느 날, 나는 아오야마 길거리에는 우연히 CM걸 유리코를 만났다. 이전부터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던 나는 근처의 스낵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기분이 달아오를 즈음에 더 재미있는 곳을 가자고 일어섰지만, 마침 현금 가진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오야마 묘지를 걸었다. 모기가 없어 좋았다. 묘석에 앉아 가벼운 애무를 하는 사이에 나와 유리코는 그만 흥분하고 말았다. 나는 그녀를 쓰러뜨렸다. 한참동안 패팅을 한 다음, 나는 바지를 벗고 속바지를 무릎까지 내렸다. 왜 완전히 벗지 않았는가 하면, 모기 때문이 아니라 날씨가 너무 서늘했기 때문이다. 한참 행위를 하는 중에 유리코는 마치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나, 마치 땅 속으로 잠겨 드는 것 같아." 나는 급히 움직임을 중단했다. 이 시대는 지하자원개발 붐이 일고 있다. 지하 수백 킬로미터의 지층에서 나의 속바지가 발견되면 또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젤샤프트 1 스페이스십라인 2000GT를 부자유은행 앞 차도에 대고, 나와 에가와는 천천히 차에서 내려 은행으로 들어섰다. 사이토는 운전석에서 대기하게 하였다. 부자유은행 지점은 들어서서 오른쪽에 카운터가 있고, 왼쪽에는 고객용 소파가 한 줄로 놓여져 있었다. 손님이 적은 시간을 미리 조사해 두었다. 소파에는 중년 여자 한 사람과 고등학교를 갓 나온듯한 여사무원 하나가 앉아 있을 뿐이었다. 에가와를 입구 측면에 서게 하고, 나는 구석 카운터 쪽으로 갔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카운터는 보통예금 창구이고, 다음이 정기예금, 그 다음이 주식 배당 순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가장 구석의 재무상담 창구 앞으로 나아가, 카운터 위에 보스턴 백을 올려 두고, 지퍼를 좌 - 악 열어젖힌 다음 총신이 짧은 자동소총을 끄집어냈다. "나는 강도다. 조용히 해." 나는 소파 위에 올라서서 은행원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모두 손 들어. 이상한 행동을 하면 죽이겠다. 난 지금까지 네 명을 죽였어. 더 죽이고 싶어 미칠 지경이야." 이 말은 사실이었다. 갑자기 은행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나와 가까운 곳의 소파에 앉아 있던 중년여자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입구 쪽으로 걸어가려 하였다. 입구에 서 있는 에가와가 권총을 경비원 등에 갖다대고 있었다. 그는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중년여자를 향해 낮게 외쳤다. "움직이지 마. 소파에 가만 앉아 있어." 중년여자는 오른쪽으로 약간 몸을 기울인 채 소파에서 일어서려 하다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바닥에 쓰러진 여자의 두개골에서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금과장!" 하고 나는 안쪽 벽에 붙은 책상에서 양 손을 든 채 눈을 희번득거리고 있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그는 나를 응시하는 자세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네 발 아래 비상경보 부자가 있다는 것은 나도 알아. 밟고 싶으면 밟아. 단, 그랬다가는 4년 전에 유방암으로 죽은 네 마누라가 사는 곳으로 가게 될 거야." 그는 애교 있게 웃었다. "네가 명령해. 돈이라 돈은 모두 카운터에 내 놓으라고." "모두, 현금을 카운터 위에 올려 놓으세요." 예금과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지시했다. "나중 일은 내가 책임 질테니, 아무 염려 말고 전부 내 놔." 십 여 명의 은행원들은 머뭇거리면서 카운터에 현금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 때 팍! 하고 에가와가 든 소음총이 불을 뿜었다. 보통예금 담당 남자의 얼굴에 빨간 구멍이 뚫리고, 남자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거리다가 책상 위에 힘 없이 쓰러졌다. "방범 벨에 손을 대면 모두 이렇게 될 거야." 라고 에가와가 말했다. "쓸데없이 시간을 끌면 죽는 사람만 늘어 날 뿐이야." 너무 놀라서 의자에서 아래로 미끄러진 여사원이 네 발로 엉금엉금 기면서 흐느껴 울었다. 스커트 사이로 오줌이 줄줄 흘러 내렸다. 여사원 두 사람이 카운터에 현금을 쌓아 올리면서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 "빨리 하세요. 돈이라 돈은 모두 카운터에 올려 놓으세요. 책임은 내가 지겠어요. 침착하세요. 아니, 침착하지 않아도 좋아요. 여하튼 서두르세요." 예금과장이 총을 맞을까봐 벌벌 떨면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명했다. 그도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시간을 측정하면서 서서히 카운터 쪽으로 나아가, 보스턴 백에 현금을 넣기 시작했다. 동전은 밀쳐버리고 고액권만 백 안에 넣었지만, 그래도 보통예금 카운터에 이르기도 전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만큼 가득 찼다. 나는 에가와에게 자동소총을 건네주고, 백을 단단히 잠그고 난 다음, 에가와의 권총을 받아 들었다. "잠시 그대로 있는게 좋을 거야." 어차피 나가고 나면 경찰에 신고할 것은 뻔한 일이지만, 나는 여하튼 그렇게 말해 두었다. 에가와가 경비원의 뒤통수를 개머리 판으로 쳤다. 경비원은 중년여자 위에 쓰러졌다. 나와 에가와는 통행인의 의심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은행을 나서서 일부러 인도를 보통 걸음으로 걸어 가, 사이토가 대기시켜 둔 차에 올라탔다. 나는 뒷좌석에, 에가와는 앞 자리에 앉았다. G는 출발이 빠르다. 그러나 교차로에서 신호등에 걸려 하는 수 없이 멈추어 섰다. 다행히 다음 신호가 파랑이었다. 교차로를 벗어날 때쯤, 백미러에 은행원 하나가 인도로 나와 우리를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고함을 쳐대는 모습이 비쳤다. 우리가 습격한 부자유 은행은 시내 중심부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 있는 지점이었다. 그 때문에 조금만 벗어나면 넓은 국도를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다음 교차로에서도 신호에 걸리고 말았다. 작은 동네의 교차로임에도 꽤 신호대기 시간이 길었다. 우리는 초조했다. 겨우 파란 신호가 떨어졌을 때,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차다!" 하고 나는 외쳤다. "사이토, 다음 신호부터는 정지하지 말고 무조건 달려!" 우리가 탄 차는 시속 2백 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창을 깨고 자동소총을 밖으로 내밀었다. 커브 길을 돌았을 때, 뒤에서 최초의 경찰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차는 웅 - 웅 - 소리를 내면서 빠른 속력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우리 차 앞에는 다른 차가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껏 속력을 낼 수 없었다. 그 때 경찰차를 추월하여 경찰 오토바이가 맹렬한 스피드로 접근해 왔다. "개자식. 빨리 죽고 싶은 모양이군." 나는 자동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오토바이는 갑자기 앞 머리를 위로 올리더니, 뒤뚱뒤뚱 인도로 치고 들어가 행인 한 사람을 깔아버린 다음, 양복점의 큰 윈도 글래스를 부수고 가게 안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우리 차는 앞을 달리고 있는 트럭을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을 약간 침범했다. 그 때 반대편에서 달려 오던 트럭 한 대가 우리 차를 피하려고 핸들을 꺾는 순간, 인도 끝에 붙어 있는 소화전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 트럭 위에 다시 두 대의 승용차가 연쇄충돌을 일으키고는 폭발하여 차체에 불이 붙었다. 불이 붙은 승용차에 뒤를 따르던 경찰차가 또 부딪쳤다. 우리가 탄 차는 이윽고 큰 도로로 접어 들었다. 그러나 두 대의 경찰차와 몇 대의 경찰 오토바이가 여전히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자동소총을 마음껏 쏘아댔다. 에가와도 조수석 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권총을 난사했다. 선두 오토바이에 탄 경찰이 에가와가 쏜 총탄을 맞고, 얼굴 반쪽이 날아가버렸다. 오토바이는 밭 한가운데로 나둥그러졌다. 다음 오토바이의 경찰은 내가 쏜 자동소총을 몇 발 맞았다. 그의 오토바이는 도로 한 복판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그 오토바이에 경찰차가 부딪쳤다. 거기에 또 경찰차가 부딪쳤다. 도로에 흘러내린 가솔린에 불이 붙어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 불 구덩이 속에서 불덩어리가 된 오토바이 한 대가 탈출해 나왔다. 오토바이를 탄 경찰관도 불덩어리였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뭐라고 외치면서 검은 숯덩이로 변할 때까지 우리를 따라왔다. 2 다행히 일제검문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가 탄 차는 시내로 들어 올 수 있었다. 시내에서도 몇 대의 오토바이를 만나 가슴을 덜컹했다. 최후의 한 대가 우리를 추격해 왔다. "저 커브길에서 우회전!" 하고 나는 사이토에게 말했다. "경찰병원 차고로 들어 가." 경찰병원 뒷문으로 들어가 지하 차고로 들어서서, 나는 평소 잘 알고 있는 경비원에서 윙크를 하면서 말했다. "추적 당하고 있으니 잘 부탁해." "걱정 마세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소에 차를 넣고 셔터를 내려 버려." 우리는 넓은 차고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사무실로 차를 몰고 들어가서 셔터를 내려버렸다. 그 사무실은 차 수리장소로, 차를 개조하기 위한 도구와 도료가 갖추어져 있다. 우리 세 명은 재빨리 푸른색 차를 빨간 색 차로 바꾸어버렸다. 익숙하기 때문에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작업이 끝나자 우리는 보스턴 백과 무기를 들고 수리장 구석의 문을 통해 경찰병원 복도로 들어섰다. 가능한 다른 사람 눈을 피해가며 우리는 외과병동의 성형외과 수술실로 들어섰다. 마침 얼굴이 익은 외과의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어, 또 왔군." 하고 그는 손을 흔들며 환영해 주었다. "빨리 좀 해 주게." 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 그는 수술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로 시작하지. 저기 누워." 현대의 성형수술은 너무 간단하다. 한 시간만에 관상을 바꾸어 버린다. 세 시간 만에 우리 세 사람의 수술이 끝났다. "갑자기, 미안하네." 하고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천만에. 일인데 뭘." "또 신세를 지겠네." "언제든지." 우리는 외과병동을 나서서 계단을 내려와, 지하 3층의 보일러실로 들어갔다. 보일러실 구석에는 개구멍이 하나 있다. 우리는 수백 미터나 되는 개구멍을 걸어갔다. 이 구멍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진 탓에, 옛날에는 구멍이었던 것이 지금은 복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넓어졌다. 머리 위에는 군데 군데 전등까지 달려 있는 것이다. 개구멍을 나서면 경찰병원의 시체수용실. 서늘한 그 방을 통하여 우리는 경찰서 복도로 들어섰다. 우리는 먼저 무기고로 갔다. 담당자와는 잘 아는 사이다. "여어, 왔어." 담장자는 나를 보고 빙긋이 웃으며, 나와 에가와가 들고 있는 총을 턱으로 가리켰다. "어땠어. 효과 좀 보았니." "물론, 덕분에." 우리는 그의 책상 위에 자동소총과 권총을 올려 놓았다. 계장은 탄창을 점검하고, 다시 빙긋이 웃었다. "아주 화려하게 휘둘렀구만." "응, 화려했지." "내일 신문이 기다려지는데." "자, 분명히 돌려 주었네."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와." 그 다음 우리는 감식과 곁의 증거물보관소로 갔다. "그래, 결과는?" 하고 실장이 물었다. "멋지게 했죠." 그는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여기에 보관하는 것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지." 우리는 잠시 얼굴을 마주보면서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그 방을 나선 후, 나는 에가와 사이토와 헤어져 수사1과로 들어섰다. "과장님, 도대체 어디 갔다 이제 오세요. 얼마나 찾았다구요." 1과의 형사가 나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은행강도 수사회의가 곧 열릴 겁니다." "알고 있어." 나는 책상으로 걸어가면서 대답했다. "일제 검문을 하고 있을 테지." "예, 시내 곳곳에서 하고 있는데,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 사이토가 방으로 들어 왔다. "수사과장님, 수사회의가 준비되었으니 출석해 주십시오." "수고가 많군. 금방 가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복도로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신문기자들이 나를 둘러쌌다. 최근들어 사건이 너무 없어 안달을 하고 있던 그들은 오랫만에 사망자가 열 명이나 넘는 큰 사건에 흥분하여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과장님, 수사 상황을 알려 주십시오." "범인의 윤곽은 잡았는가요?" "뭐든 좋습니다. 한 마디만 해 주세요." "제발 한 마디만." "지금으로서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들을 밀치면서 회의실로 들어섰다. "범인을 발견했습니까?" "반드시 범인을 잡겠습니다." 나는 빙긋이 웃었다. "반드시, 잡도록 하겠습니다." 수사회의에는 에가와도 출석해 있었다. 현재의 수사상황의 보고와, 금후의 수사방법에 관한 토론을 한 다음, 에가와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1과장, 범인 검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은가?" "예, 서장님. 3주일 이내로 반드시 범인을 검거할 생각입니다." 나는 에가와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좋았어."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3주일 정도면 신문이나 텔레비전, 주간지 모두가 이 사건과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부 써먹을대로 써먹어서 진을 빠질 시기이지. 그 정도 시기에 체포하는 것이 이상적이겠군. 그보다 더 시간을 끌면 일반 대중들이 사건에 대해 모두 잊어버릴지도 몰라. 잊어버린 다음 범인을 잡아봐야 재미 없어." "옳은 말씀이십니다. 서장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에가와에게 윙크를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에가와의 말이 유머로 들렸는지 바보처럼 웃고만 있었다. 3 그로부터 3주일 동안 매스컴은 별 다른 뉴스가 없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목적으로 <3인조은행강도사건> 만을 과장하여 열심히 울겨 먹었다. 나도 서장 에가와와 함께 자주 텔레비전에 출연하였다. 3주일이 지나자 이제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써먹을 것이 없어졌고, 대중들도 <3인조은행강도사건> 보도에 질려 버렸다. 매스컴은 다시 새로운 뉴스 거리를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옛날과는 달리, 천하태평을 구가하는 21세기 초기의 세상에는 뉴스가 될만한 사건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최근의 경향을 보면, 재미있는 뉴스를 보도할 수 없는 것이 매스컴의 태만 때문이라는 사고방식이 일반대중들에게 침투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매스컴은 그 책임을 경찰에 전가하여, 대중들의 주의도 거기에 따라 점점 경찰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건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수사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범인이 아직 검거되지 않고 있는 것도 경찰의 태만 때문이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범인을 체포할 수만 있다면, 매스컴은 뉴스를 얻을 수 있어 크게 기뻐할 것이다. "이제 슬슬 체포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은데." 하고 어느 날 서장실로 들어 선 나는 에가와에게 말했다. "응, 내일이라도 체포되도록 하지." 하고 에가와도 동의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사이토에게 그렇게 연락해 두겠어." 그 날 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아내와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내일부터 외국으로 도망 친 흉악범을 잡으러 출장을 가야 해. 잠시 집을 비울테니 그런 줄 알아." "또, 출장이야. 재작년에도 삼 개월이나 집을 비웠잖아." 라고 아내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낸들 어쩌겠어. 일 때문인 걸." 다음 날, 에가와, 사이토, 그리고 나는 증거물보관실 앞에서 만나, 실장에게 맡겨 둔 보스턴 백을 받았다. 내용물 그대로. 그리고 무기탄약 보관소로 가서 범행 때 사용했던 자동소총과 권총을 받았다. 시체안치소를 지나 개구멍을 걸어서, 경찰병원 보일러실로 나왔다. 그리고 외과병동으로 가서 정형외과 수술실에서 얼굴을 고쳤다. 서장은 에가와의 얼굴로, 나의 부하였던 사이토는 흉악범 사이토의 얼굴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수리실로 들어가 빨간색으로 바뀐 차를 원래의 파랑색으로 바꾸었다. 준비는 되었다. 우리 셋은 차에 타고 경찰병원의 차고를 나섰다. 시내 한복판을 차창 밖으로 총구를 일부러 내밀고 일부러 천천히 달렸지만, 아무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 "이 쪽 경찰들은 근무 태만이로군." 하고 에가와로 변신한 서장이 말했다. "가볍게 소동을 피워야겠군." 그리하여 우리는 할 수 없이 경찰차와 오토바이에 쫓기면서 추격전을 벌였던 그 곳으로 가기 위해 교외로 향했다. 물론, 우리들이 습격했던 부자유은행 지점이 있는 작은 마을로 향하는 길을 따라. 몇 분 후에 우리는 그 마을의 은행 앞에 도착했다. 과연 이 마을의 주민들은 그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부러 천천히 차를 몰고 가자, 우리 쪽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길가에 서서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일부러 은행 앞에 잠시 차를 세워 두기도 하고, 천천히 차를 몰며 동네 거리를 빙빙 돌았다. 네번째로 은행 앞에 왔을 때, 드디어 눈 앞에 경찰차가 나타났다. 경찰차는 뒤에서도 다가 왔다.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경찰차가 나타났다. 우리는 포위 당했다. 물론 우리는 저항하지 않았다. 우리는 얌전하게, 무사히 체포되었다. 우리는 경찰에 연행되어 얼굴 익은 형사의 취조를 받았다. 한치 빈틈 없는 진술서를 이미 머리 속에 그려두었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취조를 받고 있는 듯한 시늉만 내면 되었다. 이윽고 경찰서 복도에 매스컴 관계자들이 밀려 들어왔다. "서장의 발언을 요구합니다." "서장은 어디 갔어요." "서장은 지금 없습니다." "그럼 수사1과장이라도 나와야지." "1과장은 출장 중입니다." "젠장, 이렇게 중요할 때." 아무리 안달을 해도 일인 이역을 동시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로부터 몇 주일은 모든 잡지, 신문은 우리들에 관한 기사로 가득 찼다. 우리 세 사람은 형무소의 독방에 감금되었다. 그러나 그 독방에도 개구멍이 나 있고, 내 사무실 책상 밑으로 통하였다. 마찬가지로 에가와의 독방에도 서장실로 통하는 개구멍이 있다. 우리는 어쩔수 없을 경우에만 책상으로 가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되었다. 그렇게 자주 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천하는 태평하여, 경찰이 할 일은 거의 아무 것도 없으므로. 수 차례의 공판의 열렸다. 방청석은 늘 만원사례였다. 우리는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매번 기묘한 행동이나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을 던져 청중들의 심리를 만족시켜 주고, 매스컴을 만족시켜주고, 대중을 만족시켜 주었다. 이윽고 우리 세 사람은 사형 언도를 받았다. 그리고 사형수 독방으로 수감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경찰병원으로 은밀로 호송되어, 세번째 성형수술로 원래의 얼굴을 되찾고, 다음 날부터 정상적으로 출근하였다. 범인에게 사형 선거가 내려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매스컴을 비롯한 일반대중은 모두 그 사건을 잊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은 뉴스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재미 있는 사건이라도 없을까 하고 경찰서를 기웃거리고, 대중들은 늘 그렇듯이 왜 재미있는 뉴스를 보도하지 않느냐고, 이것은 명백히 매스컴의 근무 태만이라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그러면 매스컴은 늘 그랬듯이 대중의 관심을 경찰로 이끌어 가기 시작했다. 이런 태평한 세상에서 경찰 따위는 정말 불필요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세금만 없애는 쓸데없는 조직이다, 사건이 없으므로 경찰을 폐지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화인들은 이런 여론에 동조하여 <경찰폐지론>을 외쳐대고, 일반대중도 거기에 찬성하기 시작했다. "서장님, 이제 슬슬 다음 사건을 일으킬때가 온 것 같군요." 어느 날 할 일도 없이 서장실로 들어 선 나는, 이미 에가와의 껍질을 완전히 벗어버린 서장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래. 이대로 가다가는 정부도 경찰조직 축소 계획을 세우게 될지 모를 형편이야. 그렇게 되면 우리에겐 큰 타격이다. 우리 경찰 고위층은 좀 더 확실한 사건을 많이 만들어야 하고, 부하들에게 그것을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대중에 대한 서비스에도 좋고, 매스컴도 좋아할 테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경찰과 매스컴과 범죄자는 이익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누구를 범인으로 할까요." "수사2과장이 주범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사람을 한번 죽여 보고 싶다는 거야. 그리고 감식과장도 이전부터 희망하고 있고. 나도 한번 더 하고 싶고요." "그건 나도 마찬가집니다." "안 돼, 우리 세 사람은 한번 쉬어야 해. 자넨 벌써 세번이나 했지 않나. 거기에 대해 불만을 품는 자들이 많아."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일을 벌이는 가요?" 서장은 책상 앞으로 몸을 숙이고, 눈을 번득거리면서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경찰로 변장하여 오토바이를 타고서 현금우송차를 노리는 거야. 원래 경찰이 경찰로 변장을 하는 일이니, 절대로 실수가 없으리라 생각하는데......" 게마인샤프트 1 관리인은 중년의 독신자로, 배가 불룩 튀어 나오고, 불그래한 볼에 늘 웃음을 머금은, 조금 음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맨션 관리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예술가 타입의 남자였다. "맨션이 마음에 드는군요. 꼭 이 맨션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라고 내가 말했다. "그렇습니까.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실제로 살아 보시면 더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라고 관리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라고 곁에 있던 아내가 물었다.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관리인은 당황한 듯 기침을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여하튼 이렇게 호화로운 L 맨션에는 선생님처럼 고명하신 분이 사셔야지요." 그는 예의상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일부러 나타내면서 손바닥을 부볐다. 나는 텔레비전 사회자이면서 재즈 음악 평론가이다. 나는 일 년전만 하더라도 거의 일거리가 없는 무명인사로, 돈이 없어 생활조차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으면서 갑자기 시청자의 주목을 받아, 일년도 안 되어 텔레비전계의 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탈렌트 출신의 미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도 겨우 일주일 전의 일이다. 지금까지 살던 구차한 셋방은 매스컴 관계자들이 취재를 왔을 때 보여주기 민망할 정도였다. 나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도심지에 있는 이 호화 L 맨션을 구입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맨션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가요?" 라고 아내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관리인에게 물었다. "모두 유명하신 분들 뿐입니다. 프로야구단 대일의 가네시마 투수 부처, 인기 그룹 헌터즈의 오카자키, 모델 요시이 데루미 씨 등이죠. 좋으신 분들 뿐입니다. 모두들 가족처럼 사이 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가족처럼>이라는 말을 힘 주어 강조했다. "그 관리인, 어딘가 기분 나빠요." 아내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진 듯했다. 이틀 후, 우리는 가구를 마련하여 맨션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가 산 집은 3층 한 구석으로, 옆에는 헌터즈의 오카자키가 살고 있었다. 맨션은 부엌, 침실, 거실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정리가 끝난 다음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넓은 것 같더니만 이렇게 가구를 놓고 보니 그렇지도 않아." "정말 그래요. 이 거실만한 방이 하나 쯤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생각없이 옷장 문을 열었다. 앗, 하고 나는 그 자리에 막대기처럼 서고 말았다. 그 문 저편에는 우리 거실과 똑 같은 방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우리 방과 똑 같이 소파가 놓여져 있고, 거기에 아내가, 또 하나의 아내가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편 벽에도 문이 하나 있고, 그 문을 열고 저편 방을 들여다 보고 망연히 서 있는 나 자신의 뒷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앗!" 하고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문을 닫고 아내 쪽으로 돌아섰다. "왜 그래요?"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아내가 물었다. "방이 하나 더 있어. 그, 그 뿐만 아니야, 네가 있어. 나도 있고."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과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지금 이사를 왔으니까요." 아내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또 다른 너와 내가 있어." "어머, 그것 참 재미있군요. 이제 식사나 하러 가요."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발 내 말 좀 들어. 이것과 똑 같은 방이 하나 더 있단 말이야." 라고 나는 울부짖었다. "그게 어디 있는데요?" 나는 벽을 치면서 외쳤다. "이 건너 편!" "그럴지도 모르죠. 건너편에도 다른 사람이 사는 방이 있을 테니까요. 나 오늘 저녁은 이탈리아 요리를 먹고 싶어요." "아아, 아아, 정말이란 말이야." 나는 소파에 벌렁 누워 팔 다리를 버둥거리며 말했다. "뭐가 정말이란 말예요? 갑자기 소가 됐나요? 그래요! 스테이크 먹으러 가요." "잘 들어. 이 방은 3층 가장 구석에 있어." "알고 있어요. 난들 왜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이 벽 밖은 맨션의 밖인 셈이다. 옆 방이 있을 리가 없잖아." "당연하지요. 이제 그만 하고 빨리 저녁 먹으러나 가요." "식사는 그만 둬. 자넨 너무 살이 쪘어." "그래요?" "결혼만 하고 나면 돼지처럼 살이 쪄도 괜찮다는 거야?" "그래요. 돼지도 괜찮아요. 중국집에 갈까요?" "아아아, 말이 안되는군." 나는 울듯이 외쳤다. "추울테니 코트를 입고 가야겠군요. 그런데 내 코트가 어디 갔지, 아, 여기 뒀었지." 아내는 옷장 문을 열려 했다. 나는 전광석화처럼 소파에서 뛰어나가면서 외쳤다. "그만 둬." 그러나 아내는 서슴 없이 옷장 문을 열고 코트를 집어냈다. 나는 앗! 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내의 뒤에서 옷장 안을 들여다 보았지만 거기에는 아내의 옷만 가득 했을 뿐이었다. 2 그 날 밤, 밖에서 식사를 마치고 맨션으로 들어 설 때, 외출하는 패션 모델 요시이 데루미를 만났다. 이전부터 나와 안면이 있는 요시이는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당신도 이 곳으로 이사를 왔어?" "응, 잘 부탁해." 하고 아내가 말했다. "나도 잘 부탁해." 하고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일주일 만에 아내에게 지겨움을 느끼기 시작한 나의 눈에는 육감적인 요시이의 몸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낮에 보았던 그 환각이 마음에 걸렸지만, 브랜디를 컵 채 벌컥벌컥 들이키고 그 날 밤은 세상 모르게 잠들었다. 아내와 나란히 누워자면서도 새벽에 요시이의 꿈을 꾸었다. 옷장 문을 열면, 이쪽과 똑 같은 방이 하나 있고 거기에 요시이가 서 있고, 또 그 건너편에는 끝도 없는 지옥의 공포가 있는 것이다. 목이 말라 눈을 떴다. 침대를 벗어나서 방금 꾸었던 꿈을 생각하면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앗! 하고 나는 놀랐다. 꿈이 현실로 바뀐 것이다. 조금 다른 것은, 그 방이 이쪽과 완전히 같지 않고, 독신여성용의 가구가 놓여져 있고, 침대에는 전라의 요시이가 대담한 포즈로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이것도 필시 꿈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차피 꿈일테니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요시이의 방으로 들어가 살그머니 문을 닫았다. 비록 꿈이라 해도 아내에게 들키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 백도의 각으로 다리를 벌리고 잠들어 있는 요시이 데루미에게 접근해 가면서, 나는 가운을 벗어던지고 그녀와 마찬가지 전라가 되었다. 너무 거칠게 움직이면 꿈에서 깨어날 위험이 있을 것이므로, 나는 그녀의 몸 위에 살그머니 올라탔다. 피부로 전해지는 그녀의 풍성한 유방의 부드러움, 따스함은 도저히 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필시 이것은 개똥 리얼리즘의 꿈이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눈을 뜨고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벌써 왔어. 와줘서 정말 기뻐." 그녀는 그렇게 놀라는 기색도 아니었다. 꿈이라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나는 그녀를 안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 십 분 사이에 벌어진 정사는 세부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꿈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도 생생했다. 나는 환희의 비명을 마구 질러댔다. 일이 끝난 다음 나는 가운을 갈아 입고 다시 잠들어 버린 요시이 데루미의 곁을 떠나, 문제의 그 문을 열고 아내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꿈치고는 너무 잘 짜여진 이야기라 생각하면서, 나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혹시, 하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다음 날 아침, 방송국 복도에서 요시이 데루미를 만나고 나서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안녕, 어제 밤 즐거웠어. 호호호." 그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남기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망연히 복도에 선 채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현실이었단 말인가. 그럼 어제, 옷장 문 너머로 방이 하나 있었던 것도 환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맨션 전체가 비상식 공간으로 감싸여 있는 것이다. 관리인이 왜 그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는지를 그제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나는 요시이 데루미의 일이 끝날 때까지 스튜디오 앞 로비에서 기다렸다. 십 분이 조금 더 지난 다음, 그녀는 밖으로 나왔다. "할 이야기가 있어. 아니,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 라고 나는 요시이에게 말했다. 요시이는 당황하지도 않고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 밤 일 말이지. 나에게 설명해 줄 의무가 있는 것 같군. 좋아, 찻집으로 가." 나는 그녀와 함께 방송국 지하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가서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자, 이제 말을 해 줘. 우선 그 맨션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유령이 사는 집이야?"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옛날 일이라 잊어버렸지만, 그 맨션을 설계한 사람은 위상기하학의 전문가였대." "위상기하학이라면 뫼비우스의 띠라든지, 크라인씨의 병 따위 말이야?" "아, 잘 알고 있잖아.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그 맨션은 토폴로지 맨션으로, 4차원적으로 비틀어진 공간이 여기저기 만들어져 있어." "그렇다해도, 옷장 문을 열면 어느 때는 그냥 옷장이고, 어느 때는 다른 방이 나타나는 것도 가능해?" "간단히 말하면, 공간의 비틀림은 그 때 옷장 문을 여는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받게 돼." "그 관리인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맨션을 세웠을까?" "그 사람은 아주 독특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 현대는 대가족이 무너지고 핵가족 시대가 되지 않았니. 그래서 도시인은 고독감을 느끼고 있어. 그래서 같은 맨션에 살고 있는 사람끼리라도 일치단결 게마인샤프트를 결성하여 가족처럼 관계를 가지며 살자는 거야." 관리인이 가족처럼 지내자고 역설하던 그 말을 그제서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잠깐! 그렇다면 넌 나 뿐만 아니라 맨션 내의 다른 누구와도 잘 수 있다는 말?" "그럼." 그녀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 그렇다면......내 아내도 맨션에 사는 다른 남자와 잘 수 있다는 말이로군. 즉, 어제 밤처럼 다른 남자가 원한다면....." 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렇게 되는 셈이지. 그 대신이 당신도 다른 여자와 마음대로 잘 수 있잖아." 그녀는 킥킥 웃으며 나의 반응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만......" 나는 머뭇거렸다. "가족처럼 지내기 위해서는 서로 비밀을 가져서는 안되는 거야. 서로의 비밀을 공유해야만 되지 않겠어." 나는 바로 그 순간 맨션에 혼자 남아 있는 아내가 마음에 걸려,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실례. 급한 일이 있어서." "당신은 아직 완전히 맨션의 주민이 되지 못 한 것 같아." 요시이 데루미는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전속력으로 차를 달려 맨션에 도착했다. 아내는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허겁지겁 왜 그래." 다행히 아직 남자의 손길이 아내에게 뻗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냐, 아냐, 아무 일도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을 저었다. "당신 없을 때 주간지와 예능잡지사 기자가 전화를 했어. 신혼생활을 취재하고 싶다면서." 라고 아내는 보고했다. "한꺼번에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좋아. 내일 저녁에 파티를 열도록 하지." 다음 날, 아내가 파티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보러 간 다음, 벨이 울렸다. 누구일까, 초대한 주간지 기자가 오기에는 이른 시간이고......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문을 열고 복도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중년의, 지저분한 차림의 여자였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바로 몇년 전까지 같이 살았던 내연의 처, 가와자키 아야코임을 알고는 끼약! 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헤어질 때도 살이 뒤룩뒤룩 쪘지만, 지금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데다 시커멓게 거을은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때에 절은 화려한 색상의 원피스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야, 당신 굉장히 출세했더군. 이런 맨션에 다 살고 말이야." 비열한 웃음을 띠고 비꼬으듯이 말한 다음 아야코는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방 안으로 들어 와 이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무슨 용건으로? 여기 오면 안 돼." 나는 비명처럼 외쳤다. "그렇게 차갑게 굴지 마. 난 당신의 아내라구. 내가 바에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당신 공부를 시켰잖아. 그래서 이렇게 출세했고." 그녀는 립스틱이 묻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자네와는 이미 헤어졌잖아. 그리고 자네와 결혼한 기억은 더욱 없고 말이야." 나는 잔뜩 겁을 먹고 벌벌 떨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말이야, 당신은 후일 성공하면 반드시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잖아. 아, 정말 고생한 보람이 있어. 정말 훌륭하게 자라서 정말 잘 됐어, 당신!" 아야코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입가에는 노파처럼 주름을 잔뜩 잡고 입술을 쑥 내밀었다. "당신, 키스해 줘." "난 이미 결혼한 몸이야. 그렇지만 자네에게 입은 은혜를 잊은 적은 없어. 자네와 정식으로 결혼할 생각을 했던 것만은 사실이야." "나를 봐." 나는 벌벌 떨면서 또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헤어지기 전의 일이다." 나를 무조건 끌어 안으려는 그녀를 피하면서 나는 외쳤다. "부탁이야. 오늘 만은 그냥 돌아가줘. 난 이미 아내가 있는 몸이야. 제발 포기해 줘. 아내가 이제 곧 돌아 올 거야." "그래. 잘 됐군. 나 그 사람을 좀 만나봐야겠어. 그 사람에게 하소연하여 당신을 돌려 받을 거야." 아야코는 소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나는 겁을 잔뜩 먹었다. "부탁이야. 돈을 달라면 주겠어. 지금은 없지만 반드시 줄께. 제발 오늘 만은 돌아가 줘. 주간지 기자가 취재를 오게 되어 있어." 울먹이며 간절히 애원하면서도 나는, 아무리 궁여지책이었기로서니 어떻게 이런 돼지 같은 여자와 짧은 시간이나마 동거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내 표정에 비쳐 나온 듯 했다. 아야코는 갑자기 거만한 몸짓으로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난 돌아 갈 수 없어. 주간지 기자들이 오면 그들에게 인사라도 하지 뭐. 나, 이 사람의 아내예요, 잘 부탁해요......" 나는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만일 그랬다가는 큰 일이다. 당장 스캔들 기사로 보도되어, 나는 파산하고 말 것이다. "나를 협박하러 온 거야, 얼마면 돼, 말해." 나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외쳤다. "무슨 그런 실례의 말을. 내연의 아내가 정식으로 결혼을 해달라고 하는데, 협박이라니. 돈 따위는 필요 없어. 결혼만 해주면 돼." 아야코는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신음했다. "누가 너 같은 돼지하고......" 아야코는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언제까지고 울고 있었다. 명백히 의도적으로 나를 골탕 먹일 심산이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테이블 위의 커다란 꽃병을 들고, 아야코의 뒤로 접근하여, 힘껏 머리를 내리쳤다.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아야코는 대량의 콧물과 침을 흘리며 개구리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그녀를 안아 올려, 제발 다른 방으로 사라져버리라고 빌면서, 돼지처럼 무거운 시체를 옷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옷장 문을 닫는 순간 아내가 돌아왔다. "왜 그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잖아." "아니, 아무 일도 없어. 그만 꽃병을 깨뜨려서 말이야. 비싼 꽃병인데, 너무 아까워." 다행히 아내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을 뿐, 딱히 의심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십 분 후에 첫 손님이 들어서고부터, 잠깐 사이에 방 안은 기자들과 카메라 맨으로 가득 차버렸다. 아내와 나는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도 취하고, 질문에 대답하고, 방 안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침대와 부억까지 사진에 담았다. "이건 뭐죠?" 하고 얼굴이 두텁기로 소문난 기자 하나가 옷장 문을 잡고 물었다. "잠깐! 거기는 안 돼. 아니, 안됩니다." 라고 나는 비명처럼 소리쳤다. 아야코의 시체가 다른 방으로 이동해 버렸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만일 그대로 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문을 막아서려 했다. "왜 그래. 그냥 보여주면 되는 걸. 내 옷이 들어 있어요." 하고 아내는 자신의 옷을 보여주고 싶었던지 자랑스럽게 옷장 문을 열었다. 옷장 안에는 아내의 코트와 드레스가 가득했을 뿐,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 갑자기 화장실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기자 하나가 화장실에서 걸음에 날 살려라 하고 달려 나왔다. "크, 큰일이다. 화장실에 여자 시체가 있다." 하고 그는 외쳤다. 나는 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이제 나는 파멸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은 끝났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어떻게든 말을 둘러대지 않으면......나는 황급하게 화장실로 달려 가, 기자들의 등 뒤에 서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벌써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렸다. "뭐가 있다는 거야? 아무 것도 없잖아?"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자, 그 기자는 변명하기에 바빴다. "분명히 보았는데." "자네, 취한 것 아냐? 사람을 놀라게 하면 안돼." 라고 내가 말했다. 모두 방으로 돌아 온 다음, 이번에는 열려진 옷장에서 벌거벗은 요시이 데루미가 나타났다. 모두들 입을 좌악 벌렸다. "아, 손님이 계셨네, 미안." 그녀는 겸연쩍게 인사를 한 후 다급히 옷장 속으로 들어 가 안에서 문을 잠궈버렸다. "방금 그 여자는 모델 요시이 데루미이다." "벌거 벗었더라." "그래 맞아. 확실히 두 눈으로 보았어." "나도 보았어." 하고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나는 못 봤는데. 다들 취한 것 같군. 그런 환상도 다 보고." 라고 나는 시치미를 뗐다. 옷장 문을 다시 열어보았지만 아내의 옷만 가득 걸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수근거리는 기자들을 달래면서, 열심히 술을 권했다. 모두들 술이라면 기를 쓰는 사람들이라 정신 없이 취하게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술이 깨고 난 다음 기억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파티를 연 다음 날 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맨션의 분위기가 확 바뀌어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그것은 분명히 관리인의 방이었다. 앗! 하고 나는 침실 쪽으로 뛰어 가 보았다. 역시 그 곳도 관리인의 침실로 바뀌어 있었다. 침대 위에는 관리인과 아내가 자고 있었다. 물론 벌거숭이로. 아내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시트로 얼굴을 가렸다. "이 새끼! 이제보니 이런 짓을 하려고 이런 맨션을 지었어." "잠깐, 잠깐. 모든 사람이 가족처럼 사이좋게 지내자는게 나의 변함없는 생각이 올시다." 라고 관리인을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야." "그렇지만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지 않겠소." "서로의 비밀? 그게 무슨 뜻이야?" "자, 보시죠." 하고 관리인은 침대 곁의 커텐을 걷었다. 커텐 뒤의 유리 장농 안에는 시체들이 나란히 포르말린 병에 들어 있었다. 아야코의 시체도 있었다. 관리인이 하나 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가네시마 투수의 옛날 약혼자, 이 남자는 가네시마 부인의 옛날 기둥서방, 이 사람은 오카자키 아츠시의 전 매니저, 이것은 요시이 데루미가 작년에 낳은 아이, 이것은 재작년에 낳은 아이, 이것은......" 원시공산제 1 1969년 1월 19일. 동경대학 야스다(安田)강당은 함락되지 않았다. 20일간이나 버텼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버텼다. 학생들은 강당 안에서 진을 치고 공격을 계속하는 기동대에 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들은 강했다. 드디어 교수들의 간청에 못 이겨 기동대는 학교에서 철수했다. 더 이상 농성을 계속하다가는 학생들 가운데 아사자가 나올 지경이었다. 경찰은 인명을 중시한다는 방침 때문에 철수한 것이다. 물론 대학입시도 유산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정부는 학생들이 기동대 철수 후에도 강당을 떠나지 않자,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동경대학을 봉쇄하고 말았다. 아카몽(赤門 - 동경대학의 문.), 정문을 비롯하여 동경대의 모든 출입구는 봉쇄되었고, 철조망이 쳐졌다. 담 위에도 철조망이 설치되었다. 그 벽의 주위를 경찰들이 밤낮으로 순찰을 돌았다. 그러나 그 상태로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반 년이, 일 년이 지나도 아무도 탈주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은 순찰마저 중지해 버렸다. 동경대 부근은 접근하는 사람조차 없어졌고, 그 주변은 점점 황폐해져 갔다. 5년 후에는 혼고(本鄕) 2, 3, 4, 5, 6정목(丁目), 이케노하다(池之端) 1, 2정목, 유시마(湯島) 4정목, 야요이 1, 2정목 등에는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백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2 나는, 오늘, 마츠오카 아저씨에게, 책을, 받았습니다, 그 안에, 아무 것도, 씌어져 있지 않은 책입니다, 새 하얀, 책입니다. 마츠오카, 아저씨는, 이것은, 노트라 하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이, 노트라는 책에, 이런저런 것을, 그려보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문학부락의, 안에 있는, 도서관이라는 곳에는, 책이, 많이, 있습니다. 그, 책들처럼, 나도 이, 노트라는 책 속에, 빼곡이, 얼마 전에 마츠오카 아저씨에게, 배운, 글자로, 이런저런 것을, 적어볼,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도서관, 안에 있는, 책처럼, 어려운 것은, 적을 수, 없습니다. 도서관, 안에 있는, 책은,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내가, 알 수 없는, 글자가, 가득, 적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글자만, 읽어보아야, 뭐가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책은, 필시, 아무데도, 쓸모가 없음에, 분명합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오늘, 마츠오카, 아저씨를, 만나서, 그렇게 생각한 대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츠오카, 아저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책은, 전부, 쓸 데가, 없다. 채소, 재배하는 법도, 씌어져 있지 않고, 물고기 잡는 법도, 사는 법도, 씌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마츠오카, 아저씨의, 아버지는, 마츠오카의, 할아버지가, 아직, 어릴 적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책, 속에는, 인간의, 지식이, 가득, 들어 있어." 그렇다면, 지식이라는 것은, 쓸데없는 것인 듯 합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그것을, 물어보고 싶어도, 마츠오카,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내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산시로 연못에서, 붕어, 양식을, 하고 있을 때, 연못에 빠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물어 볼 수가, 없습니다. 마츠오카, 아저씨에게는, 아버지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나는, 너무 너무 이상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이상해서, 저번에,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왜,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있단다. 그렇지만, 누가 너의, 아버지인지, 어머니도, 알 수가 없단다. 혹시는, 마츠오카, 아저씨가, 어버지일지도 몰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럼, 마츠오카, 아저씨가, 나의, 아버지란 말이야?"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우리가 사는, 문학부락에도, 또, 야스다 강당 건너편에 있는, 자연계부락에도, 최근들어, 아버지가, 없는 아이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마츠오카, 아저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마츠오카,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동경대, 안에는, 모든 것이, 공동소유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재산이나, 소유물을, 가져서는 안된단다. 때문에, 남자가, 한 여자를, 혼자 차지하는 것도, 좋지 못한 일이란다. 남자는, 어떤 여자와도, 섹스를, 해도 괜찮단다." 섹스란, 무엇일까요?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혹시, 저번에, 어머니가, 야스다강당의, 뒷편에 있는, 지진연구소에서, 자연계부락의, 아저씨와, 하고 있었던, 그것을,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들, 문학부락의, 사람들은, 낮에, 산시로 연못에서, 붕어, 양식을 하거나, 이쿠도쿠원에서, 채소를, 재배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것이, 문학부락의, 일입니다. 자연계부락의, 사람들은, 은행나무 길 곁의, 논에서, 벼를, 재배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일입니다. 그 날, 모두 함께, 산시로 연못에, 있을 때, 어머니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찾아서, 지진연구소에, 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어머니와, 자연계부락의, 빼빼 마른, 아저씨가, 마룻바닥에, 드러누워,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더 살이찌고, 훨씬 더 덩치가 컸음에도, 빼빼마른, 아저씨가, 어머니 위에, 올라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한, 씨름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빼빼 마른, 아저씨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헉 헉, 거렸습니다. 어머니는, 샛빨간, 얼굴로, 하아 하아, 했습니다. 빼빼 마른, 아저씨는, 어머니, 위에서, 아래 위로, 움직이며, 어머니를,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마치, 지진처럼, 마루가, 삐걱 삐걱, 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고,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서, 황급히, 도망쳤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지진 연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섹스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어떤 여자와도, 그것을 해도, 좋다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일 것입니다. 나는, 같은 부락의, 삿짱을 좋아하고, 자연계부락의, 릿짱도 좋아합니다. 또 둘 다, 나를 좋아하니까, 어느 한쪽과, 섹스를 하면, 다른 한쪽이, 화를 낼 것입니다. 누구랑 해도 좋다면, 어느 쪽도, 화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것입니다. 내가, 만든 것을, 모두가 함께, 가진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자연계부락의, 사람들이, 재배한, 쌀을, 자연계부락 사람들만이, 먹어버린다면, 우리들은, 밥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문학부락의, 사람들도, 채소나, 붕어를, 자연계부락 사람들에게,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곤란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문학부락 사람과, 자연계부락 사람은, 때때로, 야스다강당에, 모여, 쌀과, 붕어와 채소를, 맞바꿉니다. 그렇지만, 가끔씩, 싸움이 일어나, 멱살을 잡기도 하고, 두들겨 패기도, 합니다. 화염병을, 던지기도 하고, 각목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싸움만 하면, 사이가, 나빠지므로,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방, 싸움을, 그만 둡니다. 그 대신에, 일년에, 한번, 1월 18일에, 양쪽 부락사람들이, 큰 싸움을, 벌이도록, 정해 두었습니다. 누가 먼저, 야스다강당을, 점령하는가, 시합을, 합니다. 이긴 쪽은, 강당, 옥상에서, 붉은 깃발을, 흔듭니다. 진 쪽은, 밑에서, 호수로, 물을 뿌립니다. 언제부터,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열심히, 이런 일을, 하는 것인 만큼, 여기에는 필시, 나같은, 어린아이는,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을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아직,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넓디 넓은, 동경대라는, 나라는,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마츠오카, 아저씨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치외법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그, 치외법권, 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동경대라는 나라가,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문학부락 뒷편에는, 높은 벽이, 주욱, 이어져 있습니다. 그 벽, 건너편으로,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합니다. 벽 위에는, 가시가 달린, 철사가, 많이, 걸려 있습니다. 그 때문에, 벽을, 넘어서, 저편으로 갈 수 없습니다. 벽의, 건너편에는, 무엇일 있을까요? 벽의,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들, 부락의, 뒤편에는, 붉고, 커다란, 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문은, 한번도 열린 적이, 없습니다. 열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열려고, 밀어도, 당겨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열리지 않게, 되어 있다 합니다. 문의,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문의,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는, 모르지만, 자연계부락의, 뒤편에도, 역시, 벽이 있다 합니다. 그러니까, 이, 동경대라는, 나라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동경대 나라 사람들은, 누구 하나, 벽 건너편으로, 가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아. 벽의,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벽의,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3 오늘, 도서관의 책을, 조금 읽었다. 그러나,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책의, 의미를 알고 싶다. 그 책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츠오카 아저씨에게는, 이미, 나에게 가르쳐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마츠오카 아저씨도, 그 책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도대체, 그 책은, 누가 읽는 것일까.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마치 신처럼 대단할 것임에 분명하다. 왜, 나는, 그 책을 읽고 싶어하는가 하면, 그것은, 벽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그 책은, 필시, 그것을 가르쳐 줄 것임에 틀림 없다.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누구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더니, 얼굴을 새파랗게 하고, 그런 것, 모르는 것이 좋아, 라고 한다. 마츠오카 아저씨는, 벽 너머에는, 악마가 있다고, 했다. "어떤 악마인가요?" "자본주의라는 악마. 그러니 절대로 아카몽을 열어서는 안 돼. 아카몽을 열면, 금방, 자본주의라는 악마들이, 문 안으로 밀고 들어 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요?" "나도, 잘 몰라.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을 뿐이야. 무서운 놈이란 것만은, 틀림이 없어." 우리들은, 자본주의가 아닌, 공산주의라고 한다. 그러므로 무섭지 않다고 한다. 공산주의라는 것은, 누군가가 만든 것을, 모두 함께 가지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여자애도, 어떤 남자 하나가 아닌, 모두가 가질 수 있다. 남자도, 어떤 한 여자가 아니라, 모두가 가질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오늘, 지진연구소에서, 자연계부락의 미이짱과 섹스를 했다. 미이짱은 좋다고, 큰 소리로, 응 응, 하다가, 나중에는, 하아 하아, 마지막에는, 와아 와아, 라고 외쳤다. 너무 소리를 크게 냈기 때문에, 같은 부락에 사는 삿짱이, 그 소리를 듣고 다가와서, 나에게 말했다. "넌, 우리 모두의 것이야. 그러니, 나에게도, 섹스를 해 줘." 미이짱이 그 말을 듣고, 화를 냈다. "방해 하지 마.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삿짱도 그 말을 듣고, 화를 냈다. "악마. 너는, 이 사람을, 혼자서 가지려 하고 있어. 악마. 자본주의 악마." 그리고 서로 머리카락을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줄을 몰랐다. 공산주의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좋지 못한 점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문연구소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따라 오라고, 나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아카몽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가면서,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셔츠하고, 양말을, 구하려 가는 거야." "누구에게, 받아요?" "자본주의 사람이, 살짝, 가지고 왔대." 나는, 깜짝 놀랐다. 이전부터, 의아해 하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도대체 누가, 만드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었다. 또, 저, 수도에서 나오는, 물이라든지, 전기, 가스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물이나, 전기, 가스도, 모두 자본주의에서, 오는 거로군요." "그게 아니야. 물이나, 전기, 가스는, 거의 모두 공급이 중단되었지만, 자본주의가, 선을 끊지 않은 것을, 그냥 쓰는 거란다." "살짝, 쓴다면, 도둑질이 아닌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 보았다. 나는 말했다. "셔츠나, 양말도, 공짜로, 받아요? 그럼, 우리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거지로군요." "그렇지 않아." 어머니는, 무엇때문인지, 당황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결코, 공짜로, 받는 것은, 아니야." "자본주의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와요?" "지하철의, 혼고 3정목, 역에서, 지하의, 개구멍을 통하여, 아카몽까지, 온다고 해." 지하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역이란, 무엇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너무도, 많다. 아카몽 곁에서, 어머니와 둘이서, 자본주의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쪽 구석의, 벽 아래서, 40은 넘었을 듯한, 품위 없는 남자가 나와서, 반갑게, 어머니를, 껴안았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얘는 누구야?" 그 남자는, 나를 보고, 당황하면서 어머니를 밀치고, 물었다. "내 아들이예요." 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귀여운 아이로군." 그 남자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대학 갈 나이로군." "대학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묻자, 남자가 말했다. "대학이란 것은 말이야, 어려운 것을 공부하는 곳이지. 대단한 사람이, 많아서, 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곳이야." 그렇다면, 그, 대학이란 곳에 가면, 필시, 저 도서관에 있는, 어려운 책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반드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대학에 가고 싶어." 내가,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말하자, 남자는, 품위 없게 웃으면서, 나에게 속삭였다. "사실은, 여기도 대학이야." 나는,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어머니에게, 셔츠와, 양말을, 가득 담은 푸대를, 넘겨 주었다. 어머니는, 그 푸대를, 나에게 넘겨 주었다. "먼저, 집에 가도록 해. 아무도 보지 못하게, 조심해야 해." 왜, 나더러, 먼저, 집으로 가라, 하는 것일까. 그렇다. 어머니는 저 남자와, 필시 섹스를 할 것이다. 셔츠와, 양말 대신에, 섹스를 하게 하는 것이다. 틀림이 없다. 필시 그럴 것이다. 남자는, 등을 돌리는, 나에게, 빨간 상자를 주었다. "이것은, 캬라멜이라는 것이야. 아주 맛 있지. 먹어 봐." 자본주의의 음식 따위는,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받아 두기로 했다. 어머니보다 한 발 앞 서, 집으로 돌아 온, 나는, 그 캬라멜이라는 것을, 하나, 먹어 보았다. 깜짝 놀랐다. 세상에서, 이렇게 맛 있는 것도 있었는가. 나는, 너무 맛있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렇게, 달 수 있단 말인가. 혀 위에서, 그것은 그냥 녹는 것이었다. 입 천정에, 찰싹 달라 붙는 것이었다. 아아, 아아. 이것이, 자본주의였단 말인가. 자본주의에는, 이렇게 맛 있는 것이, 아직도, 많고 많을 것이다. 아아, 자본주의, 좋아. 밤이 되었다. 오늘 밤은, 문학부락과, 자연계부락 사이에, 일년에 한번 있는, 야스다강당, 쟁탈전의, 축제가 벌어진다. 나도, 처음으로 이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야스다강당 앞, 광장에서, 우리들은, 헬멧을 덮어 쓰고, 각목을 휘두르며, 처참한 싸움을 벌였다. 모두들, 눈이 뒤집혔다. 나도, 눈이 뒤집혔다. 그렇지만 축제인 만큼, 진짜로, 패거나, 찌르지는 않는다. 올 해는, 문학부락이, 이겼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스다강당의, 맨 꼭대기, 옥상에 올라갔다. 이, 옥상은, 동경대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9층이나, 된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경대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낮은, 건물에서는, 동경대 주변의, 숲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숲 건너편도 보인다. 아아,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숲 저편에 높이 솟은, 자본주의의, 건물들. 그것은, 동경대 안에 있는, 건물보다도, 훨씬 더 높고, 더 크고, 훨씬 더 밝았다. 밤 하늘을 향하여, 여기저기, 솟아 올라서, 창이란 창은, 전부 불을 밝히고, 아아, 저 건물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위, 건물에는, 적색, 황색, 녹색, 오렌지색, 푸른색, 조명이, 내가 모르는 글자를 그리면서, 반짝이기도 하고, 꺼지기도 하고 있었다. 나는, 야스다강당 아래서, 자연계부락 사람들이, 호수로 뿌리는 물줄기를 맞으며, 비틀거리면서, 자본주의 쪽을 바라보고, 굳게, 결심했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저 곳으로 가겠다. 무슨 수를 쓰든, 이 동경대에서, 도망쳐서, 자본주의 쪽으로 가고 말겠다. 저렇게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 악마일 리가 없다. 필시 좋은 곳일 것이다. 가자. 나는, 반드시, 간다. 그리고, 달콤하고, 맛 있는, 캬라멜을, 배가 터지게, 먹어보자. 달콤하고, 맛 있는, 캬라멜을, 배가 터지게, 먹어보자. 의회제민주주의 1 개회중이었으므로 각의는 원내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다. 우리 정치부 기자들은 의사당 내의 대기실에서 각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의가 끝나면 오후 4시, 관방장관의 정례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대기실의 전화기 시끄럽게 울렸다. 전화기에 가장 가까이 있던 내가 수화기를 들었다. "예. 기자 대기실입니다." "당신은 누구요?" 다급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치연예>의 아카즈카였다. "나야. <오락국회>의 이시무라." "모두에게 알려 줘. 대 사건이다. 총리와 외무대신과 대장성대신이 관저에서 국회 각의에 참가하러 가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만났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데?" "처참한 사고였어. 세 사람 모두 중태야. 지금, 구급차로 아카사카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아마 절망적일 거야." "그 정도의 사고였어?" "처참해. 사지가 모두 떨어져 나가버렸어." "병원으로 가자!" 나는 수화기를 집어던지고 방을 나서면서 다른 기자들을 향해 외쳤다. "총리, 외무대신, 대장성대신이 교통사고로 중상, 아카사카 병원!" 기자들은, 오오오오, 라는 묘한 소리를 지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도마리이케초에 있는 아카사카병원까지 갔지만, 면회사절이었다. 수술 중이라 의사도 만날 수 없었다.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환자 가족과 각료들도 달려 들어 왔다. "환자의 상태는?" "수술 경과는?" "보고해. 보고해." 모두들 대합실에서 고함을 지르고 야단법석을 떨자, 깜짝 놀란 외과부장이 달려 왔다. "이렇게 떠드시면 안됩니다. 여기는 병원입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누가 그런 걸 몰라요. 가족의 입장이 되어 봐요. 현재 상황 정도는 알려 줘야잖아요." "그럼 말씀 드리지요." 외과부장을 한 마디 한 다음, 텔레비전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짐짓 한숨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총리, 외무, 대장성대신의 심장은 지금으로부터 각각 30분전, 20분전, 10분전에, 정지하였습니다." 우왕! 하고 각 대신의 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미 죽었단 말 아니오?" 라고 나는 외쳤다. "왜, 빨리 발표하지 않았소?" 외과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회복할 수 없는 뇌사상태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죽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세 사람의 뇌는 아직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보같은 소리 말아요! 뇌세포는 인간의 몸 가운데서도 가장 연약해서, 피가 돌지 않으면 제일 먼저 죽는 조직이 아니오. 심장이 정지된 후에도 살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돼요." 라고 아카즈카가 외쳤다. 외과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수술중에 세 사람의 뇌가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 전에 두부를 절단하고, 뉘를 적출하여, 배양액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 직후에 수술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수술은 실패했지만, 환자는 살아 있다는 말이로군." 라고 내가 말했다. "뇌만은 살아 있지요." "당장 뇌 이식 수술을 해 주세요. 지금은 국회가 열리는 중이고, 중요한 문제가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게다가 해산을 눈 앞에 두고 있기도 하구요. 지금 그 세 사람이 죽어버리면 큰 일입니다." 라고 인기 연극배우 출신의 관방장관이 비통한 표정으로 외쳤다. 외과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간단히 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왜 그렇지요?" 나는 20년전의 일본 최초의 심장이식수술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심장은 움직이지만 뇌가 죽은 환자 쪽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지 않소. 그렇다면 제공자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오. 사지가 멀쩡한데, 뇌사상태에 빠진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아요." 라고 외과부장은 기어이 울화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도대체 제공자란 무엇을 말하는 가요. 뇌 제공자인가요, 아니면 육체 제공자인가요?" "아니, 그렇다면 뇌는 육체에 들어가지 않는단 말예요?" 라고 행실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여배우 출신 후생대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연하지. 원래 뇌란 육체에 속하지 않는 것이야." 라고 프로레슬러 출신 방위청장관이 말했다. "역시 이번 경우는 뇌가 없는 육체 제공자라고 해야겠지. 인격이란 뇌가 주고, 육체가 종이란 말이야. 특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일본의 수뇌(首腦)이니 말이야." 라고 코미디언 출신 문부대신이 말했다. "뇌 없이 어슬렁거리는 육체는 기계라고 해야겠지요." 라고 미남배우 운수성 대신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아카즈카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일년 전에, 배양액 속의 뇌에 매직 핸드와 스피커를 접속하여, 팔을 움직이고 목소리를 낸 실험을 한 적이 있었잖소. 이 병원에서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렇소.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요. 만일 성공한다면, 대신으로서 행동하는 데 지장도 없을 것이고. 즉, 도장을 찍거나, 외국 손님과 악수를 하거나, 재떨이를 던지거나, 컵에 든 물을 뿌릴 수도 있을 것이고, 국회에서 질문에 답변할 때도, 비록 일어설 수는 없다하더라도, '개새끼'하고 고함을 지를 수도 있고 말이죠." "그렇다면 대신들이 하는 일은 거의 다 할 수 있는 셈이지." 라고 아카즈카가 맞장구를 쳤다. "아니 아니, 그 정도로는 곤란해요. 선거 운동할 때 웃을 수 없잖아요." 라고 관방장관이 말했다. "여기, 대신의 부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길 바래요." 라고 총리 부인이 말했다. "맞아요. 남편이 기계가 된다니, 말이 안돼요." 라고 외상부인이 히스테릭하게 말했다. "난 아직 젊은데." 하고 울먹이는 얼굴로 대장성 대신의 아내가 외쳤다. "그렇다면 역시, 육체제공자를 찾아야 하겠군요." 라고 아카즈카가 중얼거렸다. "이 가운데 세 명의 대신의 위하여 육체를 제공하고 싶은 분은 없습니까?" 라고 관방장관이 대합실 안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그런 기특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선천적 무뇌증 인간이 어디 있을텐데." 라고 나는 외과부장에게 물었다.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런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죽는 게 보통이라서......" 하고 외과부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육체는 건강한데, 뇌사한 환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군요." 라고 아카즈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최근의 뇌의학의 발달로 며칠간은 뇌를 살려 둘 수 있습니다." 라고 외과부장이 대답했다. "그러다간 때를 놓치고 말아요. 아, 이렇게 중요한 문제들이 많은 이 때에......" 라고 관방장관이 신음처럼 외쳤다 "대상자만 있다면 수술은 간단한가요?" 라고 내가 물었다. "환자 가족의 동의만 있다면, 지금의 기술로 백 퍼센트 성공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조직적합성, 거부반응, 혈액형 등, 모든 난점이 모두 해결되어 있으니까요." 모두들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2 침묵을 깨트리면서 관방장관이 깨달음을 얻은 듯이 외쳤다. "짐승이다! 짐승을 쓰면 된다!" 나는 손뼉을 치면서 찬성했다. "그렇다. 육체제공자가 동물원의 짐승이라면, 가족의 양해를 구할 필요도 없이, 당장 수술을 할 수 있다." 총리대신 부인은 깜짝 놀라 외쳤다. "그만 두세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나는 고릴라나 침팬지의 아내가 되긴 싫어요." 연극배우 출신답게 관방장관은 비통한 표정으로 총리부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모님, 우리 당은 지금 해산을 눈 앞에 두고, 중대한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세 명의 대신의 두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제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총리의 뇌는 영원히 짐승의 육체와 동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뇌사한 환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당장 재이식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문부대신이 한 마디 거들었다. "게다가 내가 알기로, 고릴라라는 놈은 그게 무척 크답니다. 나는 사모님께서 결코 그것을 싫어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이전에 총리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총리 부인의 볼이 발개졌다. "아이, 창피하게 무슨 말씀을. 할 수 없네요. 정 그렇다면, 양해할 수밖에 없지요. 그 대신에 다음에는 젊은 사람 몸에 이식시켜줘야 해요." "물론이지요. 히히히히." 하고 문부대신은 경박스럽게 웃으며 좋아라 했다. 후생대신이 부러운 듯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고릴라! 참 좋겠다. 내가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네." 아카즈카가 외쳤다. "그렇다! 고릴라가 좋아. 힘이 세고 튼튼해서 자객도 접근하지 못할 거야. 게다가 지금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고릴라 눈깔>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다고요." 외과부장은 엄숙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그럼, 당장 동물원에 전화를 하겠습니다. 수컷 고릴라 여유분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관방장관이 물었다. "세 사람 다 고릴라로 할 생각인가요?" 총리대신 부인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구별하지요? 가능하다면 고릴라는 제 남편 하나만 해 주세요." 외무대신 부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제 남편은 바다표범으로, 아니, 물개로 해주세요." "그렇지, 물개는 정력 하나는 끝내주니까. 수컷 한 마리가 수백 마리 암컷을 상대하죠." 하고 문부대신이 웃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난 그런 의미가 아닌데......" 후생대신이 한 마디 거들었다. "그 대신에 바람 피울 거란 각오는 단단히 해 두세요." 외무대신 부인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럴까요?" 관방장관이 확인하듯 말했다. "물개가 좋아요. 서커스에서도 인기가 있고 말이죠." "우리 주인은 말로 해주세요. 절대로 말이어야 해요." 라고 외무대신 부인이 질세로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 말, 말 하고 외쳐댔다. 모두들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관방장관이 말했다. "말, 좋지요. 사라브렛 가운데 힘 센 놈을 하나 고르면, 경마를 좋아하는 셀러리맨 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화를 건 외과부장이 보고했다. "고릴라는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폴레옹을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물개는 그린스커스단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하타 군을, 사라브렛은 인기절정의 한 살백이 아카사카호마레. 모두 가격이 비싸지만, 괜찮겠지요." 관방장관이 말했다. "비용은 모두 당비로 충당하겠어요. 수술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립니까?" 외과부장은 자신있게 말했다. "우리 병원의 일류 기술진을 총동원하겠습니다. 오늘 밤에 세 마리 모두, 아니, 세 분 모두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관방장관은 한 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내일의 본회의에는 출석이 가능하단 말이죠." 나를 비롯한 정치부 기자들은 기사작성을 위해 재빨리 대합실을 벗어났다. 그 다음 날, 물개를 등에 태운 말의 고삐를 쥔 고릴라가 국회에 등원하였다. 3 대기하고 있던 기자, 카메라 맨, 어나운서들이 세 마리를 둘러쌌다. "총리, 컨디션은 어떠세요?" "캭, 캭." "외무대신, 기분은 어떠신가요?" "끽, 끽." "이래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도대체 어떻게 취재를 하란 말이오. 취재는 고사하고 오늘의 국회 질의에 응답도 못하겠습니다." 라고 나를 비롯한 기자들은 세 마리를 수행하고 있는 관방장관에게 분노에 찬 눈길을 던졌다. "아직 대신들도 새로운 발성기관에 익숙하지가 못해서 그래요. 오늘 하루만 참아 주세요. 어이, 자네. 대장성대신의 머리를 쓰다듬다니, 실례 아닌가!" 라고 관방장관이 말했다. "그렇지만 좋아라 하는데요." 대장성 대신이 화가 났는지 기자를 걷어 차버렸다. "그것 봐, 까불면 그렇게 되는 거야.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대신. 귀빈 접대용 헬리콥터를 사는 건 말입니다만, 오늘 결재를 해 주셔야 합니다." 라고 외무차관이 나서서 외무대신 곁에 서며 말했다. "끽, 끽." "그럼 구입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관방장관이 외쳤다. "이제 개회시간이 되었어. 자, 길을 비켜 줘. 빨리 길을 열어." 총리는 화가 났는지, 두 손을 좌 - 악 벌리더니 기자들을 옆으로 힘껏 밀쳐버렸다. 기자들은 종이 휴지처럼 양쪽 벽에 부딪치고는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나는 오른 팔에 약간 멍이 들었을 뿐이지만, 불쌍하게도 아카즈카는 관절 두 곳에 복합골절을 당하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날만은 결석도 거의 없이, 중의원 본회의장은 가득 차 있었다. 의원 대부분이 탈렌트 출신이기 때문에, 오늘 국회의 텔레비전 중계 시청률이 얼마나 높은지를 잘 알고 있었다. 무론 방청석도 만원 사례였다. "빰빠라빰, 빠빠빠, 빰빠라빰." 의장석 아래의 오케스트라에서 팡파레가 울려 퍼졌다. 이 주의 인기가요 사회자 출신의 의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즐거운 음악소리와 함께 오늘도 여러분의 안방을 찾아 뵙는, 이 시간은 당신의 프로그램입니다. 중의원 본회의." 본회의장을 내려다 보는 부조정실에서 어나운서가 중계를 시작했다. "여러분의 은하 방송이 보내드리는 중의원 본회의. 오늘은 스폰서는 중앙경마장." 세 명의 치어 걸이 대장성 대신과 함께 중앙 단상에 올라 춤을 추면서 CM 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의 말, 대장성 대신 모두 함께 가자, 중앙경마장 인기절정 아카사카호마레 대장성이 뒤를 밀어 줍니다 대장성 대신이 스탭을 밟기 시작하자, 총리대신도 나서서 몽키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국회중계, 오늘의 해설은 <오락국회>의 기자이며 국회평론가이기도 한 이시모리 씨가 되시겠습니다." 어나운서가 곁에 앉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시모리 씨,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이시모리 씨. 오늘의 본회의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에, 에, 오늘의 본회의는 말할 것도 없이, 어제 교통사고를 만나 짐승의 육체에 뇌를 이식한 총리, 외무, 대장성 각 대신이 어떻게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인가, 아마도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그것이 알고 싶어서 텔레비전을 켰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어떤 유쾌한 상황이 벌어질지 추측하신다면?" "오늘 야당측은 꽤 신중하고 예리하게 관련질문을 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 늘 흥분 잘하는 총리가 저 고릴라의 강렬한 힘을 가지고, 어떻게 질문자를 묵사발로 만들지,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관련질문 말이죠, 어떤 질문이 나올 것 같습니까?" "당연히 어제 밝혀진 농림대신의 스캔들이 맨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농림대신의 스캔들이란, 며칠전, 원래 남자가수였던 농림대신은 자신을 찾아 온 젊은 여자가수 지망생을 맨션으로 유혹하여 강간을 했다는 혐의이다. "아아, 그 문제로군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농림대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군요." "에에, 그는 어제 밤 늦게 아카사카에서 게이샤들과 야단법석을 떨면서 놀다가, 경찰에 적발되었는데, 바쁘다고 경찰의 임의동행에 불복하였고, 화가 난 경찰이 강제연행했다고 합니다." "법무대신은 왜 지휘권을 발동하지 않는지요?" "법무대신은 탈렌트시대의 매니저로부터 돈을 갚지 않는다고 고소를 당했지요. 지금 그럴 정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광고가 끝나고, 탈렌트를 괴롭히기로 유명했던 르뽀 기자출신 야당의원이 대표질문자로 일어섰다. 그러나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말을 하거나, 농담과 유머어를 몰랐기 때문에 인기도 없었고, 이야기도 재미 없었다. "의원이나 대신의 질이 저하되었다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만." 라고 어나운서가 나에게 말했다. "뭐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옛날 의원이나 대신이 질이 높았던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옛날 공업시대의 의원이나 대신들이 더 악질이지 않았을까요. 현재의 의원이나 대신은 원래 탈렌트 출신들이 많은 만큼, 여성주간지 등에서 많은 공격을 받고 있지요. 그것은 사생활에 대한 유권자나 언론의 간섭이 심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을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을까요?" "에에. 저는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여자가수를 울리기도 하고, 탈렌트에게 별명을 잘 붙이는 야당의원이 일어서서 총리를 <고릴라 눈깔>이라 불렀기 때문에, 총리가 화를 내며 소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의자를 들어 의원석으로 던졌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왜냐하면 말이죠. 지금은 정보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즉 탈공업시대에는 몇 명의 탈렌트의원들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의원 거의 대부분이 탈렌트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드디어 총리는 각료석에서 의원석으로 뛰어 내려와 야당의원을 하나씩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의원들의 몸둥이가 의원석 공중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외무대신을 그것을 보고 너무 즐겁다고, 앞 발을 마주치면서 꺄 꺄 하고 외쳐댔고, 대장성 대신도 흥분하여 말발굽 소리를 울리면서 의원석으로 돌진하였다. 국회본회장은 눈깜짝할 사이에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렇습니다. 정보사회에서는 의원이나 대신 대부분이 탈렌트 출신이지요. 공업사회에서는 대다수의 국민의 눈은 오로지 공업발전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국민이 매스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민의 그 관심을 정치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즉시 매스컴 관계자가 국회의원으로 진출하여 대신이 되는 것,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앉아서 방송을 하고 있는 부조정실의 유리창을 깨고 재털이가 방청석, 기자석으로부터 날아 들었다. 어나운서와 함께 나는 재털이를 피하기 위해 마이크를 끌어안고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갔지만, 결코 입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텔레비전의 인기는 유명한 동물 탈렌트가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런 때, 국회에 고릴라, 물개, 말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회제민주주의, 의회민주정치가 아니겠습니까?" 매스 커뮤니케이션 1 천 명을 처치한 가계였다. 먼 조상 때부터 아버지대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여자 천 명과 잤다. 자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가훈이었다. 신다로의 아버지 신우에몽은 가훈을 지켜, 여자 천 명과 자고, 그것도 만족하지 못해 2천 명의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그러나 1,347명째에 좌절하고 말았다. 병으로 쓰러져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신우에몽은 13세가 된 장난 신다로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난 이제 내일이 없는 몸이다. 비원의 2천 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원통하다. 그래서 너에게 유언을 남길 생각이다. 너는 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반드시 죽을 때까지 합께 2천 명의 여자를 안아라. 너를 위해 나는 막대한 재산과, 넓은 산림, 토지, 게다가 커다란 집을 남겨 놓았다. 벌여 놓은 사업은 제멋대로 잘 굴러 갈 것이다. 너는 평생 일하지 않고 먹고 놀 수 있다. 2천 명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 재산을 아무리 낭비해도 좋고, 집이 망해도 좋다. 그리고 네 어머니와 관리인에게, 네가 여자와 잘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라고 지시해 놓았다. 그러니까 너는, 사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쓸데없는 학문 따위는 할 생각도 하지 마라. 오로지 2천 명을 향하여 맹진하라. 알았느냐. 나의 유언을 잊지 마라."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쳇, 제멋대로군, 하고 어린 신다로는 생각했다. 아들이 뭘 하든 아들의 자유가 아닌가.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라해도 아버지가 그 삶을 구속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신다로의 어머니와 관리인은 신다로의 의지와는 관계도 없이, 신우에몽이 말한 그대로, 신대로가 사춘기가 되자, 여자를 조달해 주기 시작했다. 가정부를 매일 갈아치우면서, 억지로 신다로가 관계를 맺도록 해주었다. 때로는 가정부가 이제 막 시골에서 올라 온 처녀로, 힘이 세어 도저히 신다로의 힘으로는 무리라고 판단될 때는 어머니와 관리인까지 출동하여 발버둥치는 여자의 손발을 잡아 주었다. 돈은 얼마든지 있었으므로, 아무리 사고가 생겨도 위자료 지불로 해결되었다. 신다로도 원래 그런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젊고 건강하고, 게다가 사춘기라서 여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더군다나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피도 그랬다. 말하자면 보통사람보다는 더 밝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스스로 여자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고교 동급생, 찻집의 웨이트레스, 때로는 연상의 여대생이기도 했다. 여대생의 경우는 아무 탈이 없었지만, 웨이트레스나 이웃집 여고생과의 관계에서는 몇 번이나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돈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문제는 위자료로 해결되었다. 새로운 여자를 안았을 때, 신다로는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장부에 큰 글씨로 적어 두었다. 상대 여자의 이름, 나이, 직업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 수가 백 명에 달한 것은 신다로가 고등학교 3학년 가을이었다.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신다로는 대학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살던 시대와 분위기가 다르잖니. 요즘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좋은 여자를 안을 수가 없잖니. 또 외국인 여성을 상대할 때도 있을테니, 외국어도 배워 둬야지." 대학에서는 종횡무진 여대생들을 정복하고 다녔다. 창녀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의 주위에는 아직 그가 손도 대보지 못한 여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매년, 4월이 되면 신입생이 대거 입학하여,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가을 축제 때는 다른 대학이나 여자대학, 전문대학 등과 교류를 가지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2천명 달성의 욕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배운 것이라곤 여자를 어떻게 꼬실 것인가라는 주제 뿐이었기 때문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솜씨가 몸에 배었다. 그는 무의식 중에도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며,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을 명확히 의식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것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장렬한 삶의 방식이라는 나름대로의 인생관을 가지게도 되었다. 평생 그럴듯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고 허무하게 죽어가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기계라면 수 초만에 해치울 수 있는 일을 평생 동안 해도 다 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인간이나, 자신이 한 일 모두가 무위로 돌아가고, 결국 인간으로서 아무런 쓸모도 없이 죽어간 인간, 잘못된 출발을 하고서도 평생 깨닫지 못하고 죽어간 인간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어림잡아 계산을 한다해도 전인류의 반 수 이상은 그럴 것이라고 신다로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의미하지만 무의미한대로 2천명 정복의 목표를 정하는 것도, 인간의 의지를 시험해 보고, 인간의 성적 능력의 한계를 안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인간적 목적으로서 결코 부끄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신다로는 이윽고,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여대생의 경우도 역시 여러가지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자료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여자. 법원에 고소하는 여자. 임신하는 여자.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자. 개 중에는 첩이라도 좋다고 눈물을 흘리는 여자 등, 여러가지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었다. 돈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머니는 신다로가 대학 일학년 때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버지의 말 그대로, 사업은 제멋대로 번창해 갔다. 그 때부터 장부는 신다로 자신이 기록했다. 창녀를 찾아가면 쓸데없는 소동은 필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신다로는 창녀는 대학 졸업 후의 즐거움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졸업이 다가오자, 장부에는 3백 명이 넘는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신다로는 대학을 졸업했다. 전국 각지의 창녀촌을 찾자고 신다로는 일어섰다. 그러나 그 해, 1958년 4월 1일, 전국적으로 매춘금지법이 실시되었다. 출발선에서 김이 새버린 신다로는 맥이 빠졌다. 2 물론 창녀촌이 사라졌다고 해서, 매춘부들의 갱생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국의 단속은 매춘의 알선자, 뚜쟁이 등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매춘행위 자체가 처벌 받는 일은 거의 없었고, 거리마다 반드시 그런 곳이 암암리에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다로는 처음에는 별 어려움 없이 상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매춘부들의 수는 점차로 줄어들었다. 신다로가 목적을 달성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다로 자신도 사회적으로 책임감을 가질 그런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학생시절처럼 터무니 없이 돌격을 감행할 수 만은 없게 되었다. 창녀들을 섭렵한 신다로는 잠시 고급 콜 걸이나 불량 하이틴을 상대로 사냥을 했다. 그러나 수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일년 동안 겨우 80명 정도를 사냥했을 뿐이었다. 아무리 신다로지만, 여자라면 아무라도 OK는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 상대를 고르는 기준이 있었다. 이를테면 성병을 가지고 있다면 목적 수행에 큰 차질이 일어날 것이므로, 가능한 한 안전한 여자를 골랐고, 또 반드시 미인이라고 못을 박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자라고 보기 힘든 그런 얼굴은 가렸다. 그래서 더욱 더 상대를 찾기 힘들어졌던 것이다. 또 3년이 흘렀다. 신다로가 손에 넣은 여자의 수는 이윽고 5백명에 달했다. 목표의 1/4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더욱 여자를 손에 넣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었고, 또 나이도 26세나 되었다. 중년이 되기 전까지 적어도 천 명은 정복해 두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들자 신다로는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더욱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그 당시 출현한 롯본기(六本木)족 사이에서 수면제 놀이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신다로도 성적 유희를 즐길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롯본기족이 되었다. 물론 그 그룹 내의 여자들을 사냥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그들 그룹 안에는 롯본기 족의 생태를 조사하기 위해 기자 하나가 잠입해 있었다. 바로 그에게 신다로는 2천명 정복의 비밀이 발각되고 말았다. 롯본기족이 영화, 텔레비전, 주간지 등을 장식하다가, 드디어 신다로에 대해서도 크게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요주의! 이 사나이, 여성의 적!> <남자 중의 남자? 색마? 비원의 2천명 정복.> 그런 기사가 신다로의 얼굴 사진과 함께 주간지에 대서특필되자, 모든 여자들이 신다로의 얼굴을 알아보고 손가락질을 하는 등, 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신다로의 사업은 점점 어려워졌다. 옛날은 물론이고, 지금 시대에 2천명 중의 한 사람이 되겠다고 스스로 몸을 내미는 얼간이 같은 여자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가끔씩 신다로에게 접근해 오는 여자는 위자료를 뜯어먹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매스컴은 신다로의 막대한 재산에 대해 조사하고, 그것을 상세히 보도했던 것이다. 그런 기사가 보도된 후로, 옛날에 신다로에게 몸을 빼앗겼던 여자들이 줄을 지어 밀고 들어와 돈을 요구했다. 신다로는 곤란에 빠지고 말았다. 돈을 내지 않으면 고소 당하고 만다. 폭행을 한 것이 아닌 만큼 형무소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재판이다, 출두다 하여 목적 수행을 위한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신다로는 옛날 여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오는 사람마다 돈으로 해결하였다. 돈을 주었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여자의 욕망에는 한이 없다. 신다로가 여자에게 준 위자료 일람표가 모여성주간지에 대서특필되자마자, 나에게는 왜 조금밖에 주지 않았느냐고 고소하는 여자, 신다로가 위자료를 깎았다고 주간지에 달려가 호소하여 기사로 내고 싶어하는 여자들이 수도 없이 나타나서, 신다로의 악명은 날이 갈 수록 높아만 갔다. 드디어 신다로를 텔레비전에 출연시켜, 여자들과 대결을 벌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물론 처음에는 신다로도 열심히 출연을 거부했지만, 매스컴은 집요했다. 나중에는 출연 의뢰도 거의 협박에 가까웠고, 출연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고 협박하여, 신다로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당일, 방송국의 스튜디어에 가보니, 옛날에 신다로와 잤다고 자칭하는 여자 십여 명, 여류평론가 세 명, 여류작가 세 명, 나아가 여성주간지, 부인잡지의 여성편집자, 부인유권자회 의장, PTA대표 등 삽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손톱을 세우고 이빨을 갈면서 신다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국에서는 처음부터 그럴 의도였던 듯, 리허설도 없이 바로 생방송으로 들어갔다. 광고가 끝나고 사회자의 소개가 있자, 여자들은 즉시 맹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신다로와, 신다로의 입장을 옹호하는 평론가, 사회자에게조차 발언 기회도 주지 않고 여자들은 손가락을 하고 욕설을 퍼부어 댔다. 이런 난봉꾼인 줄도 모르고 처녀를 바치고 말았다고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여자, 짐승이다, 짐승이다 하고 외치는 여류작가, 여성의 적이라고 울부짖는 여류평론가, 신다로에게는 달갑지도 않는 그 매스컴에 영원히 등장하지 못하게 해주겠다고 어이없는 협박을 하는 주간지 편집자, 나중에는 신다로의 성격적 결함에서 성적 능력에 이르기까지 비판이 가해지니, 이미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는 신다로, 이런 대공세에 정면에서 반박도 할 수 없어, 다만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이란 존재가 산산히 찢겨져 나가는 것을, 입술을 꼭 깨물고 참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으며, 원래 신다로를 옹호해 주기로 한 사회평론가는 너무도 격렬한 여성들의 공격에 주눅이 들어, 오로지 그렇지요, 옳으신 말씀, 아무렴요, 라고 고개만 열심히 끄덕이다가, 종내는 여성들의 편을 들어 신다로를 비판하면서, 매스컴계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대세에 따라 행동하는 태도를 보였고, 불쌍한 신다로, 혼자서 고독하고 외롭게 몸을 움츠리고 자신의 향해 날아오는 온갖 욕설을 얻어 먹고 있었다. 이윽고 보다 못한 사회자가 아직도 욕을 퍼붓고 있는 여성들의 자리에 붙어 있는 마이크의 스위치를 끄라고 지시하고, 신다로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을 텐데요?" 신다로는 엉엉 울면서 카메라를 향하여 호소했다. "남성 여러분. 이 프로그램을 보고 계시는 전국의 남성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는 나에게 공감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천 명을 정복하고, 나아가 2천 명을 정복한다는 것은 남자가 남자로서 권위를 가졌던 시대의, 남자의 꿈이 아니었습니까? 여러분, 왜 제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까? 왜 내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욕을 얻어 먹어야 한단 말인가요. 도, 도, 도와주세요." 신다로는 울먹였다. 그러나 신다로의 절규는 프로그램이 거의 끝날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그 반도 방영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 뿐만 아니라, 신다로의 말에 더욱 화가 치민 여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신다로의 양복은 걸레가 되었고, 얼굴은 손톱 투성이가 되어 구사일생으로 방송국을 탈출하였다. 이 해프닝은 주간지와 잡지에 다시금 대서특필되어, 이제 신다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고, 이미 그에게 몸을 주려는 여자는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가끔은 그 당시 긴자에 출몰하기 시작한 미유키족 여자애가 그에게 꼬리를 쳤지만, 그것도 모두 신다로와의 관계를 떠들어서 텔레비전에 나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녀들의 올가미에 걸린 신다로는 점점 매스컴에서 악인 중의 악인으로 소문이 퍼져나갔고, 결국 신다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돈을 위자료로 그녀들에게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불행은 겹쳐 일어나는 법. 신다로 집안의 관리인들까지 매스컴에 세뇌되어 신다로를 미워하였고,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정부들은 신다로의 집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시집도 갈 수 없게 되었다 하여, 모두 고액의 위자료를 받고 나가버렸다. 다른 관리인들도 단결하여 상식을 넘는 퇴직금을 요구하고, 신다로가 기가 죽어 있는 찬스를 이용하여 강제로 돈을 빼앗아 갔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사업도 잘 되지 않아, 신다로가 경영하는 가게는 하나씩 문을 닫았다. 3 에로틱한 영화가 유행하고, 수면제 놀이 대신에 진통제 놀이가 십대들 사이에 열화처럼 번져나가고, 바니 걸 찻집이나 남성주간지가 화제를 제공하기 시작하자, 신다로를 대하는 매스컴의 태도 또한 달라져 갔다. 신다로는 30세가 되었다. 장부에 기록된 여성의 이름은 6백 몇십 명에 달했지만, 마음 고생을 많이하고 정력을 너무 소모하여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그러나 남성주간지가 여권 반대의 깃발을 높이 올리기 시작하고부터, 신다로는 다시금 매스컴에 등장하게 되었다. 단 이번에는 <우리의 히로>, <남자 중의 남자>, <플레이 보이의 영웅>으로 말이다. 여기에 공명하여 다른 잡지, 주간지도 신다로의 2천 명 정복의 대계획에 찬성을 표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인생의 즐거움도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은 현대의 여성적인 젊은 남성의 출현을 탄식하고 있던 평론가들은 한 목소리로 신다로의 원대한 꿈과 실천에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여자들과 함께 신다로를 힐난하였던, 그 사회평론가도 사회적 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금방 거기에 동조하였다. 그렇게 되자 매스컴에 등장하고 싶은 마음에, 신다로 흉내를 내어 천 명 정복의 기원을 선언하는 젊은이들, 신다로에게 강연을 의뢰하는 청년단체도 등장했다. 이윽고 신다로를 악마 취급하던 여성주간지 조차도, <진짜 남성! 이 사람을 보라!> <의지의 인간! 힘의 인간! 미스터 2천 명> 라는 따위의 타이틀을 내걸고 신다로의 강건함을 찬미하고, 남자란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였으니, 그야말로 지조없고 경박한 매스컴의 정체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윽고 주간지의 표지에 신다로의 얼굴 사진이 전면 게재되니, 그는 일약 톱 클래스의 유명인, 매스컴계의 스타로 부상하였다. 물론, 늘 권위나 대세에 대항하는 심술꾸러기 미니 코미나 반체제적 문화인이 신다로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런 것들은 너무도 발언력이 나약하다. 매스컴은 대중 모두가 신다로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나아가 그의 비원을 이룰 수 있도록 협조하기로 했다. 사업이 모두 망하는 바람에 수입이 없어 집을 팔고 산을 팔아 여자들에게 위자료를 지불해 왔던 관계로 신다로는 꽤 궁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비원의 달성도 거의 포기하고 있었지만, 텔레비전 출연료, CM출연료, 강연료, 원고료 등이 들어옴에 따라, 물론 옛날의 수입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다시 다른 사람만큼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텔레버전이나 주간지에서는 신다로의 엽색행각을 재료로 쓰기 위해서, 거액의 취재비를 그에게 지불해 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어딘가서 여자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바치기까지 했던 것이다. 신다로의 새로운 상대는 매번 신다로와 함께 매스컴에 등장하여, <신다로 씨, 892번째 상대를 만나다!> <900번 째는 누드 모델 아가씨!> 따위로 크게 보도되었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되고 보니 여자들은 옛날처럼 돈을 뜯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의 카사노바 신다로의 품에 한번 안기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게 되었고, 바로 그 당시 등장한 하라주쿠족 여자애들도, 신다로와 하룻밤을 자고 유명해지고 싶어서 일편단심으로 그에게 접근하여 몸을 제공하게 되었으니, 과연 매스컴의 힘이란 대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천 명을 돌파했을 때부터, 신다로가 맛 본 여자의 수는 매스컴 스스로 중계방송하듯이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동경역전, 오사카역전, 그외 타지방의 번화가에는 2천명까지 앞으로 몇 명이라고 전광판에 게시되었고, 신문에도 신다로 전용 칼럼이 마련되어, 그 수자가 매일 줄어들어가는 것을 대중은 설레이는 가슴으로 지켜보았다. 이미 신다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도 없이, 그는 매스컴의 요구에 응하여 매일 새로운 여자를 안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때부터 신다로는 여자 귀한 줄을 몰랐다. 애로틱한 텔레비전 드라마에 자극을 받은 아파트촌 마담들은 갑자기 신다로를 방문하여 당황하게 만드는 것을 재미로 언제든지 옷을 벗었고, 신주쿠 부근을 어슬렁거리는 히피 여자와 불량 여고생들은 신다로를 보았다 하면 서로 옷을 벗고 싶어 안달을 했다. 그 외에 CM전용 탈렌트, 패션 모델은 말할 것도 없고, 양가집 규수나, 유명한 탈렌트까지 그에게 못먹혀서 안달을 했다. 이미 하루에 한 명만 안아서는 소화할 수 없을만큼 지망자를 거느린 신다로는 하루에 두 명, 세 명 여자를 안지 않으면 안되었다. 장부에는 여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1,300명, 1,400명으로 늘어갔다. 드디어 신다로 34세가 된 여름, 1,500명을 돌파해버렸다. 마치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화살처럼, 매스컴과 여자들에 둘러싸여 얼씨구 절씨구 잘 나갔던 한 때였다. 아무리 조상으로부터 선천적인 자질을 부여받은 신다로라고는 하지만, 그도 인간이기는 마찬가지, 볼이 파이고, 눈이 쏙 들어가서, 얼굴만 보아서는 도저히 50이하로는 보이지 않는 몰골이 되었다. 실제로 그는 이미 중년에 접어들기도 하였고, 몸에 좋다는 정력제는 모두 먹어보았지만, 매일 여자의 몸에서 몸으로 옮겨다니는 생활을 하다보니, 만성신장염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재수없게 CM 걸과 하룻밤을 보내고 매독에 걸리고 말았는데, 이어서 관계를 맺은 아파트촌 유한마담에게 임질까지 옮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아갔지만, 정밀검사 결과 고환암에 걸렸다는 진단까지 내렸으니, 우리의 스타 신다로 불쌍하기 짝이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 남은 생명, 일 년도 안되는 신다로는 아버님의 유언도 지킬 수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이 불행한 소식을 듣고 가장 당황한 것은 매스컴, 여기서 그가 죽어버리면 애써 인기 화제로 만들어 놓은 테마가 사라지게 되고, 여태껏 소비한 취재비 기획비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릴 참이니, 도저히 가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쯤은 죽어 있는 신다로로 하여금 아침부터 밤까지 정사를 하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미 반쯤은 죽어버린 불쌍한 신다로, 악화된 매독균이 뇌를 침범하여 반쯤은 미쳐서, 꿈인지 생신지로 모르고 쉴새 없이 관성으로 허리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태양이 노랗게 보이던 것은 이미 옛날, 잠에서 깨어나면 눈 앞에는 불꽃놀이가 총천연색으로 펼쳐지고, 이곳이 지옥인지 천국인지, 꽃병인지 사람 얼굴인지 술병인지도 구별하지 못하고, 길을 걸을 때면 우체통이 여자인줄 알고 마구 입을 맞추고, 아래로 구멍 뚫린 그곳에 오줌을 흥건히 살 뿐만 아니라, 버스를 타면 얼씨구나 하고 여자 차장을 쓰러뜨려 올라타고, 이윽고 발가벗은 몸으로 여자대학의 캠퍼스를 마구 헤집으며 다니는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풍경을 제공하게 되었지만, 대중들은 신다로를 동정하여, 그래 더 해라, 열심히 해라, 힘내라 신다로! 하고 응원가를 보내니, 경찰은 매스컴의 뒷 공작에 기름 칠을 당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중의 여론의 무시하면 미움을 살 뿐이라는 계산때문에, 보아도 못 본 척, 멋대로 해도 아무도 간섭을 않자 신이 난 신다로, 백화점이건 길가건 여자만 보면 그 자리에서 겁탈을 하였는데, 강간을 당한 여자는 정보사회에 몸을 바쳐 봉사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뿌듯한 가슴으로, 절대로 결코 반드시 불평을 하지 않았고, 가끔씩 고소하겠다고 방방 뛰는 여자는 매스컴이 돈으로 해결을 하였으니, 신다로는 점점 하고 싶은대로대로대로대로로로로. 신다로는 거품을 입에 물고, 광기에 가득한 눈을 위로 쭉 잡아째고, 관성이 붙은 허리를 섹시하게 앞으로 뒤로 왕복운동을 하면서 비틀비틀, 기자, 어나운서, 카메라 맨, 보도진의 행렬을 꽁무니에 거느리고 거리라는 거리는 모두 돌아 다니는데, 성병에 걸린 창녀든, 못난이 미스 일본이든 가릴 것 없이 치마만 둘렀다 하면 무조건 올라타고 보았으니, 최종적으로 마지막으로 마침내는 세면발이에다 전 일본에 유행하는 불결한 병이란 병은 모두 한 몸에 끌어안게 되어, 붓대가리는 갈라터진 진짜 붓대가리처럼 갈라터졌고, 반쯤은 이미 미쳤지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의지만은 강렬하기 짝이 없었다. 이리하여 우리의 신다로, 섹스의 꼭두각시가 되어, 아수라지옥과 매스컴 지옥의 열반의 경지에 들어서, 35세가 되던 해에 드디어 1,999명을 채웠고, 이제 한 명! 이라는 절대절명의 클라이맥스에 텔레비전의 모닝 쇼에 초대되어 가다가, 방송국 로비에서 그만 탁! 쓰러졌는데, 놀라서 마구 달려 온 의사가 임종 초 읽기를 선언하자, 당황한 방송국 관계자들이 마침 홈 드라마가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 문을 열고 들어서는 대졸 청순무결 완벽한 처녀 탈렌트로 하여금 신다로의 그곳을 만지게 하니, 우리의 신다로, 최후의 힘을 본능적으로 짜내어, 지금이라도 당장 꺼져버릴 듯한 생명의 불꽃을 일으켜 울며불며 반항하는 청순무결한 탈렌트의 처녀막을 갈라터진 그 붓끝으로 꿰뚫고, 습관이 된 예의 그 앞뒤 왕복운동을 미친듯이 거듭하다가 사정과 함께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파란만장한 일생을 매듭지으니, 바로 여기서 매스컴의 조력으로 신다로는 멋지게 2천 명을 정복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근대도시 1 아내와 나는 그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달동네의 담배가게의 문을 열고, 주인을 불렀다. "실례합니다." 안 쪽에서 노파가 나타났다. "셋방 광고를 보고 왔어요. 이층 방을 좀 보러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할아범! 할아범!" 하고 노파는 서둘러 안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소리쳤다. 안쪽에서 할아버지가 나왔다. 부부인 듯한, 사람 좋아 보이는 두 노인은 왠지 우리에게 어색한 몸짓을 보였다. 우리는 노부부의 안내를 받아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계단 곁이 다다미 네 장 반 짜리, 안 쪽이 여섯 장 짜리였다. 옛날 집이어서 넓었다. "야! 이렇게 넓은 방이 한 달에 5천 엔. 정말 싸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그래요." 하고 아내가 맞장구를 쳤다. "지금까지 보신 분들은 모두 그런 말을 하더군요." 하고 노파가 말했다. "아, 우리보다 앞 서 이 방을 본 사람들이 많군요." "그런데, 왜 아무도 들어 오지 않았는지, 이상하군요." 라고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말예요, 이것 때문이지요." 하고 노파는 창을 열어보였다. 우리는 놀랐다. 창 건너편에 철도가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선로는 고가도로 위에 설치되어 있어, 창을 열면 몇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기차바퀴가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 참 곤란하군. 위치는 정말 좋은 집인데......" 내가 새로 취직한 회사는 여기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교외에 살고 있었고, 회사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다. 아직 아기도 없었으므로, 아내와 도내로 옮기려고 여기저기 방을 찾아다니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맨션, 아파트, 모두 비싸서 우리들의 저금이나 나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집은 너무 쌌을 뿐만 아니라, 위치도 내가 너무 너무 싫어하는 혼잡한 지하철을 5분 정도만 참으면 되는 거리였다. "어떻게 생각해?" 하고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난 참을 수 있어. 문제는 당신이야." 하고 아내는 말했다. 처가집은 철공소이다. 어릴 적부터 소음에는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약간의 소음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나도 학생 시절에는 이런 집에서 하숙을 했어. 처음에는 시끄러웠지만 금방 익숙해졌지. 나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문제는 기차가 지나갈 때 얼마나 흔들리는가 하는 것이야." "열차가 지나갑니다!" 하고 노파가 말했다. 가장 가까운 선로로 화물열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높이며 창 밖을 지나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큰 소리도 아니었고, 진동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진동은 괜찮아. 여보, 이 방을 빌리도록 해." 하고 아내가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집을 살 때까지만 참자구." 라고 내가 말했다. "요즘은 전기 기관차로 바뀌어 소리도 적고, 게다가 화물열차는 거의 지나가지 않으니까요. 화물열차는 대체로 저 안쪽 레일을 달리는 게 보통이지요. 가까운 레일 쪽은 거의 객차가 지나가지요. 진동도 적어요." 라고 노파가 말했다. "이 방을 빌리도록 하지요." 라고 나는 노파에게 말했다. 노부부의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그렇지만 뭔가를 숨기는 듯한 인상이었다. 사흘 후, 우리는 담배가게 이층으로 이사를 했다. 짐을 정리하고 청소도 마쳤다. 우리는 여유롭게 새 방에서 마주 보고 앉았다.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이젠 좀 늦잠을 잘 수 있게 되었군." "참 잘 됐어. 무엇보다 당신 건강이 중요해." "그럼 우리 저녁이나 먹으러 나갈까." "밥은 벌써 지어 놓았어." 우리는 상을 펴고 새 집에서 첫 식사를 할 참이었다. 창문을 열고 고가도로 위를 바라보니 화물열차가 먼 쪽 레일 위를 달리고 있었다. 최근에는 거의 다가 전기열차여서 매연도 없었다. 열차 때문에 묘하게도 무드 있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덜컹, 덜컹 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창 가까운 레일 위를 객차를 단 기관차가 다가왔다. 빠 - 앙, 하는 소리와 함께 기관차가 지나가고, 객차 열량이 서서히 창 밖을 통과했다. 창 밖을 내다보니 검은 차량만이 불빛을 받아 번득였다. 그 때. 뭔가 빨간 것이 창 안으로 날아 들어와 밥 위에 점점이 박혔다. "어, 이건 뭐지? 휴지일까?" 하고 나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아내는 숨을 딱 멈추면서 말했다. "이건, 생리대다!" 자세히 보니 분명히 그것은 여성용 생리대 종이였고, 붉은 피가 엷은 핑크 빛 종이에 선명히 배어 있었다. "객차 화장실에서 날아 온 거다. 어, 어, 어, 어떤 여자가 이런 것을 버렸어. 젠장, 밥을 버려, 아니 그릇 채 버려 버려." 나는 미친듯이 소리쳤다. "아아아아, 밥상 위에 떨어진 이건 또 뭐야!" 하고 아내는 울먹이는 소리로 외쳤다. 밥상 위에 누런 오물이 점점이 박혀 있고, 된장국 위에도 실낱같은 핏줄기가 떠 있었다. "똥이다!" "오늘 저녁은 망쳤다." "저녁이 문제가 아냐. 자네 쉐터를 봐!" "아아아아, 당신 얼굴!" "속았다. 어쩐지 그 노인네들 수상쩍더라니. 객차는 무슨 객차! 화장실이다. 그것은 움직이는 화장실이다!" 나는 격앙된 얼굴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 방문을 활짝 열었다. 방 안에는 이미 나의 외침을 들은 노부부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내 얼굴을 보세요. 그리고 이 옷을 보세요. 한 벌밖에 없는 이 양복을 좀 보시란 말예요. 왜 처음부터 똥을 뿌리고 다니는 열차라고, 말하지 않았죠?" 노파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리는 자식이 없는 몸이에요. 방세를 받지 않으면 먹고 살고 없는 걸요." 노부부는 서로 부둥켜 안고 울면서 외쳤다. "우린 돈이 없어요. 방세를 받아야만 해요. 아아, 이렇게 치욕스럽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고 싶어." 죽고 싶다고 외쳐대는 노부부 앞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힘 없이 이 층으로 올라 왔다. 노부부도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아닌가. 2 그 똥 사건 때문에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했다. 그 노부부도 피해자라고 한다면, 도대체 가해자는 누구인가. 직접적인 가해자는 그 생리대를 버린 여자 및 객차의 대소변을 싼 성별 연령미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나도 기차를 타고 화장실을 사용한 적이 많았고, 열차의 승객, 즉 국철 이용자는 모두 가해자가 되는 셈이다. 진정한 가해자는 그런 화장실을 만들어 놓은 국철이다. 국철의 레일은 일본 전국을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다음 날, 나는 똥 피해의 조사에 착수하였다. 마침 우리 회사에는 NEAC2200 모델 200 컴퓨터가 있었고, 대체적인 통계는 간단히 조사할 수 있으며, 나는 얼마든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국철의 일 년 승객수는 1967년도 70억 2천 8백 십만 5천명이다. 이것을 365일로 나누면, 하루 승객수가 나온다. 하루에 1천 9백 25만 7천명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 국철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사람들이 모두 열차에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들자면 전철에는 화장실이 없다. 전철 이용자가 전체 이용자의 약 90%라고 하자. 그러면 화장실이 달린 열차의 승객수는 1백 92만 5천 7백명. 그 가운데서도 신간센 이용자는 제외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신간센 화장실은 저장식이므로, 똥 피해를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신간센 하루 이용객 15만 1천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1백 7십 7만 4천 7백 명, 이 가운데 십 분의 일이 열차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다고 하자. 또 대변을 보는 사람을 소변 보는 사람의 십 분의 일이라 하자. 소변 인구는 17만 7천 4백 7십 명, 대변 인구는 1만 7천 7백 17명이 된다. 그리고 성인 남자의 일회 소변량은 약 5백 CC, 대변량은 3백 그램. 이것을 소변인구와 대변인구에 곱하면 어떻게 될까. 소변은 8천 8백 73만 5천 CC, 대변은 5백 32만 4천 백 그램, 즉 국철이라는 무법조직은 하루에 5천석의 소변과 5톤의 대변을 일본 전국에 뿌리고 다니는 셈이다. 과연 이런 일이 허용되어도 좋단 말인가. 피해자는 당연히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의 경우처럼, 마구 버려진 대소변이 직접 방 안으로 튀어 들어 오는 것은 드물 것이다. 일본 국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를 받고 있다. 현대의 열차는 고속으로 달리기 때문에 대소변은 포말 상태로 공기 중에 흩어져 흔적도 없다. 바로 이 때문에 더 무서운 것이 아닐까. 누군가 한번 달리는 열차에서 빨간 잉크를 흘려 보내는 실험한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뒤에 오는 열차의 차창이 샛빨갛게 변했다고 한다. 그만큼 비거리가 멀다. 선로 곁을 걸어 갈 때는 절대로 하품을 해선 안된다. 소변에다 대변, 게다가 대장균, 잘못하면 맨스의 피, 회충 알 따위를 폐 가득 들어마시게 된다. 매독이나 임균도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몸이 떨렸다. 어제 밤에 날아 든 똥 오줌 속에 섞인 매독균이 내 눈 속에 들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재빨리 목욕탕에 들어가 온 몸을 씻고 방 안을 깨끗이 청소했으니 그래도 나은 편이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똥 오줌이 섞인 공기를 들이 마신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냥 그대로 밥을 먹고 섹스를 하고, 키스를 할 것이다. 이 보다 더 더러운 일이 세상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런 일을 어디다 어떻게 호소하면 좋을지를 몰라 나는 조사를 해보았다. 그러난 국철에는 고객불편상담과라는 것이 없었다. 과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창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마루노우치 1정목 1번지에는 국철의 서비스 센터라는 것이 있다. 나는 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젊은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어제 밤의 일을 이야기하고, 이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만한 곳이 없느냐고 물었다. "여기는 승객 서비스 센터입니다. 그런 일은 가까운 역의 역장을 찾아가 문의해 보시는게 어떨까요." 하고 말했다. "이건 전국적인 문제입니다. 일개 역장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전국적? 아, 전국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국철총재에게 편지를 쓰시는게 어떨까요." 나는 어이가 없어 전화를 끊어버렸다. 국철총재가 이름도 없는 일개 시민의 편지를 읽어 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나는 답답한 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국철 역으로 전화를 걸었다. 젊은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역장실입니다." "역장이십니까?" "역장은 지금 부재 중입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남자는 느긋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가 좀 과장된 듯하군요." "농담이 아니오. 뭐가 과장되었단 말이오.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럼 그 생리대를 가지고 와 보세요." "그런 걸 누가 보관해요. 그냥 버렸어요." "그럼 더러워진 옷을 가져와 보세요." "세탁했어요. 바로 씻지 않으면 옷에 배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증거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나는 분개했다. "뭐라고! 사과를 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텐데 말버릇이 그게 뭐야! 좋아. 역장에게 전해 둬. 금방 증거를 가지고 가겠다고." "그러지요. 전해 두지요." 그는 킥킥 거리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날 나는 회사에서, 회사 일을 봐주는 목수에게 부탁하여 베니어판과 각목으로 가로 3미터, 세로 1.5미터의 판넬을 만들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뭘 할려고?" 라고 아내가 물었다. "창 밖에 붙여두고 일 주일 사이에 얼마나 오물이 들어붙는지 보려고." "그 더러운 짓을 왜 해?" "증거를 만들어 호소할 생각이야." 판넬을 창 밖에 대자 방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일 주일 후에 나는 판넬을 뜯어냈다. 판넬의 표면을 보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더러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표면에는 엷은 갈색의 알록달록한 환상적인 무늬가 춤을 추고 있었고, 여기저기 빨간 반점이 찍혀 있었다. 오른쪽으로 아래 두 군데, 흑갈색으로 말라붙은 대변 속에 작고 하얀 것이 꿈틀거리는 것은 아무래도 구더기인 것 같았고, 판넬 한복판 쯤에는 회충알로 보이는 하얀 거품같은 것이 붙어 있는데, 그 왼쪽에는 어이없게도 콘돔이 하나, 게다가 끈적한 내용물이 오른쪽 아래로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있고, 신문지, 소화가 덜 된 채소 조각, 빨간 홍당무, 허연 무우, 노랗게 늘어진 것은 귤의 속 껍질, 코를 찌르는 그 악취, 아내는 한번 보고는 비명을 지르더니 백짓장처럼 새하얘진 얼굴로 소매로 코를 막으면서 방을 뛰쳐나가 계단을 뛰어내려 맨발로 골목길로 뛰쳐 나갔다. 3 나는 판넬을 들고 역까지 가려 했지만, 택시가 승차를 거부하였으므로 하는 수 없이 나는 판넬을 들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큰 길로 가면 행인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가능한 한 사람들이 적은 뒷길을 따라 걸었다. 그래도 가끔씩 곁을 스치는 사람은 심한 악취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역무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구내로 들어가 역장실에 판넬을 내려놓자, 두 명의 역무원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그런 것을 사무실에 들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게 뭡니까?" 하고 역장이 외쳤다. "일 주일 전에 전화를 걸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가지고 오라 해서 가지고 왔을 뿐이에요." 하고 나는 사정을 설명했다. "누누누 누구야! 어떤 놈이 이런 것을 가지고 오라 그랬어? 너희들이냐?" 하고 역은 화를 내며 두 역무원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제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선로에서 가깝다 하더라도 이렇게 더러울 리가 없습니다." 라고 젊은 역무원이 말했다. "자네는 내 말을 믿을 수 없단 말이지? 이 증거를 보고도!" 라고 나는외쳤다. "이것을 보니 더 신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판넬에 일부러 오물을 갖다붙여서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오." 그들은 기가차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너무 화가나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역무원을 노려보고 있는데, 역장이 코를 잡고 외쳤다. "빨리 들고 나가. 이런 행동은 협박이다. 돌아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 경찰이 등장하면 일이 복잡해 진다. 그들도 공무원. 공무원들 끼리는 서로 통하는 법인 만큼, 내 쪽이 불리하다. "씨팔. 기억해 둬. 반드시 복수를 할 테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그만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똥 판넬을 들고 역을 나섰다. 울고 또 울면서 집까지 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피해를 입은 데다, 사기꾼 취급까지 받은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어떻게 복수를 할까 고뇌하고 있는데, 화가인 동생이 지나다가 우리 집을 들렀다. 이 동생은 신진 전위작가로 사이케델릭한 현 시대의 총아로 지목받고 있었다. "형, 뭘 하고 있어?" "도련님, 제발 저이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아까부터 더러운 판자를 방 안에 들여 놓고 그것만 바라보고 한 숨만 짓고 있어요.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햐아! 이것 정말 대단해. 형이 만든 작품이야?" 동생은 판넬 앞에 서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건 그림이 아니야! 대소변이 달라붙은 베니어판일 뿐이다." 나는 사건의 경위를 동생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것을 전위 국전에 내 봐. 무조건 특선이야. 내가 보증하지. 아니, 내가 추천해 줄께. 형은 이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몰라서 그래. 이건 걸작이라구. 햐아! 정말 대단해. 굉장해. 냄새까지 대단해." 동생은 똥 판넬을 보고 그 자리에서 뿅 - 가버린 것이다. 나는 동생의 추천으로 그 판넬을 표구하여, 일본최대의 전위미술단체의 가을 전람회에 출품했다. <국철>이라는 제목을 단 그 작품(?)은 동생이 말한 그대로 국전에서 특선을 먹고, 일류 주간지의 표지에도 게재되고,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생각지도 않은 수 십 만 엔의 상금을 받고, 게재지로부터도 다액의 보수도 받았다. 신문사와 각종 주간지의 기자들이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나는 찬스다 하고, 그 작품이 탄생한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작품은 이른바 해프닝 미술로, 선생님은 손 하나 대지 않으셨다는 말씀이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국철이 얼마나 비위생적인지를 이제야 잘 아시겠지요." 이 기사를 읽은 국철 총재는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화가난 모양이었다. 국철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을 향하여, 총재는 그 작품은 가짜다, 엉터리다, 이름을 팔고 싶어하는 삼류화가의 작품일 뿐이다, 하고 외쳤다 한다. 이 기사를 읽은 텔레비전 방송국이 대담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나와 국철대표로 젊은 사무원 하나를 스튜디오에서 대결시키려 하였다. 나의 상대인 젊은 사무원은 동경대 출신의 시건방진 사나이로,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거만한 태도에다, 고급관리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다. 논쟁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그런 작품은 엉터리오. 당신이 자신의 배설물을 발라서 만든 것임에 틀림 없어요. 아무리 그렇지만, 그만큼 더러울 리가 없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하루만이라도 우리 집 창문에 서 있을 수 있겠소?" 하고 나는 도발적으로 말했다. "물론이죠.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나는 텔레비전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러분 잘 들으셨죠. 시청자 여러분. 지금 이 사람이 한 말을 들어셨겠죠. 그럼 우리 집 창 문 앞에 한번 서 보시지요. 절대로 취소해서는 안됩니다." 전국의 시청자가 듣고 보았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불쌍한 그는 국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음 날 일찌감치 내 방의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며 서야만 할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텔레비전을 보았던 매스컴 관계자들이 취재를 하러 우리 집으로 몰려 들었다. 이윽고 그 젊은 사무원도 멋진 양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낡은 양복을 입었으면 한 마디 해 줄 참이었지만, 그는 미리 선수를 치고 나왔던 것이다. 그는 그 날 하루 종일 내 방의 열어 둔 창문 앞에 서서 선로를 바라보았다. 용감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눈을 똑 바로 뜨고 지나가는 열차를 지켜보는 그 모습을, 카메라 맨들은 교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휴식을 취한 것은 점심 때 뿐이었다. 그는 도시락 두껑을 열고 활짝 열린 창문 앞에서 맛 있게 먹어치웠다. 열차는 몇 대나 통과했다. 그러나 휴지조각 하나가 날아와 그의 멋진 양복에 찰싹 달라붙은 것 외에는 눈에 띄이는 오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어떻습니까? 그 그림이 엉터리라는 것을 이제 아셨죠." 그 날 저녁, 그는 의기양양하게 그렇게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안색은 올 때에 비해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안개로 변한 오물을 호흡을 통해 마셨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후 그는 하루에 60회라는 격렬한 설사를 하고, 수도 없이 토약질을 하던 끝에, 그 날 밤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질이었다. 미래 도시 1 "아, 여보세요. 예." "저, 저, 지하교통국입니까?" "예." "저, 저, 여기는 말이죠. 지하 32구 H3번지의 말이죠." "예." "오카무라라고 하는데요." "예." "저, 말이죠. 나와 같은 층의, 아주 가까운 곳인데, 지하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데......" "아, 잠깐. 여보세요, 미안하지만, 무슨 신고를 하실 생각인가요?" "아니, 신고는 신고인데......" "말이죠. 지하도로 관계라면 지하도로국에 해 주시죠?" "예, 예, 그래서 도로국에 얘기를 했더니 도청 교통국에 연락을 하라고 해서요." "예."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저, 그래서 말이죠. 저, 우리 집 쪽으로 점점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우리 집 근처 사람들은 모두 퇴거했는가요? 난 아무런 연락도 못 받았는데요." "아, 그런 일은 없을 텐데요." "예?" "도로국에서는 뭐라 하던가요?" "예, 도로국에서는 말이죠, 신노선 위의 주택은 모두 철거했기 때문에, 그래서 도청 쪽하고 의논해서 공사허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말이죠, 그 쪽에서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신노선 공사를 허가해 주는가요?" "그럴 리가 없지요. 그렇지만 만약을 위해서, ...그 공사하는 곳이, 당신 이름은......" "오카무라입니다." "오카무라 씨는 공사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예, 예." "보았습니까?" "보았습니다." "흐 - 음. 당신이 사는 같은 층에서 그렇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같은 층입니다. 벌써 다섯 집 건너 쪽까지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럼 말이죠, 잠깐만요." "예."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조사를 해 보지요." "예, 예." "그런데, 몇 번지라고요?" "우리 집 말인가요. 32구의 H7번지입니다." "32구 H7번지라." "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예, 예." "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흐 - 음, 그러니까, 32구의 최신 주소록을 보면 말이죠, 32구에는 H라는 층 표시가 없군요. 아,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네, 그래서 말이죠. H가 도대체 몇 층......저, 당신 댁은 지하 몇 층인가요?" "지하 8층입니다. 저, H이니까요, 지하 8층이지요." "그렇군요. 헛 참, 그런 층 표시가 없는데." "아니, 정말, 그럴 리가......그렇지만 우편물은 잘 오는데요." "H7번지로 말입니까?" "예, 예." "네, 그렇지만, 이것 참 이상하군요." "정말 이상하군요." "그럼 말이죠." "예." "그럼, 빨리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예, 저, 여보세요." "네." "실례합니다만, 당신 성함은......" "시마다입니다." "지하교통국의 시마다 씨로군요. 저, 내일 전화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조사해 보도록 하지요." "그럼, 내일, 몇 시경에 전화를." "글쎄요. 오늘 이 시간 정도에." "저, 저, 그런데 말이죠, 빨리 부탁 드리겠습니다. 공사 소음이 말이죠......어제부터 갑자기 커지더니, 이 쪽으로......" "네." "잠을 잘 수가 없군요. 그리고 말이죠, 어머니가 계시는데." "네." "병에 드셔서 말이죠." "네." "게다가 공사를 무척 서두르는 것 같아서 말이죠. 이런 진행 속도라면, 대단히 말이죠......" 2 "예." "저, 저, 어제 전화를 걸었던 오카무라라고 합니다." "네." "지하 32구 H7번지의." "아, 네." "저, 시마다 씨 계시는가요?" "아, 시마다 말씀이죠. 에 - , 아 - , 그러니까,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시마다는 오늘 출근 안했어요." "아, 그렇습니까? 저, 그렇다면 잠시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저, 급한 일이라." "네." "사실은 어제도 말이죠, 시마다 씨에게 설명 했습니다만, 저, 지하차의 신로선 공사를 말이죠, 저, 우리 집 근처에서 하고 있어서요." "네." "알겠습니까?" "네." "이쪽은 퇴거 얘기, 전혀 들은 적이 없고, 지하도로국에서는 저, 도청에서 공사허가가 나왔다고 하는데." "여보세요. 저." "네." "그런 일이라면 저, 담당자가 있으니 그 쪽으로." "네." "그럼, 잠시만 담당자 바꿔 드리겠습니다." "네." "여보세요." "네." "전화 바꿨습니다." "저, 저기 시마다 씨에게 말씀드린 건인데, 오늘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했는데요." "시마다 말입니까? 저, 잠시 외출했는데요." "네, 외출이라고요?" "예." "조금 전에 전화 받으신 분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네, 아니, 아니, 오늘 출근했습니다." "결근이 아니란 말이죠?" "네네, 오늘 출근했습니다." "외출이라고요?" "예." "그러면 시마다 씨가 아니면 모를 것 같으니." "네네." "저, 몇 시정도에 돌아오시나요?" "네, 그게 말이죠." "잘 모르시는가요?" "네, 잘 모르겠습니다." "저, 급한 일인데요. 외출한 곳이라도." "네. 그렇다면 돌아오는데로 그 쪽으로 전화를 걸게 하지요." "아니, 제가 외출을 해야 하니까, 이따가 다시 전화를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게 낫겠군요." "네, 그렇군요." 3 "네. 여보세요." "저, 여보세요. 아까 전화로 말씀드린 오카무라라고 하는데요, 저기 시마다 씨 돌아오셨는가요?" "네, 시마다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 시마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요." "네? 아직이요?" "예." "저, 아까 그분이십니까?" "네." "그런데 벌써 퇴근시간이 아닌가요?" "아, 그렇군요." "퇴근시간에는 돌아오시겠지요? 급한 일이라 내일이면 좀." "아니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퇴근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올 것 같은데요." "좀 급한 일이라서, 그렇다면, 저." "그렇지요, 내일 다시." "아, 여보세요." "예." "그렇다면 국장님 계십니까?" "네, 국장 말인가요?" "네, 저, 좀 굉장히 급한 일이라, 저, 과장님이라도 좋습니다." "네네, 잠시 기다려 주세요." "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아, 아, 돌아 왔군요. 시마다 바꿔드리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아,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시마다 씬가요?" "예예." "어제 전화했던 오카무라입니다만?" "아아." "저, 그 지하차의 공사 건으로, 저." "아, 아, 아아아, 안녕하세요." "아까도 전화를 했었는데." "아, 예예." "저, 오늘 또 공사를 하고 있는데요." "아아." "큰 플라스틱 관을 말이죠." "아아." "그 관을 연결해서 말이죠." "아아." "점점 공사가 진척되어 세 집 옆에까지 와서 말이죠, 그 안에 굴 뚫는 차가 들어 있는데 말이죠." "아아." "오늘은 그냥 가버리긴 했는데 말이죠." "아아." "그래서 저, 우리 집 번호가 교통국에 없었던가요?" "예. 그래서 말이죠, 오늘 지하도로국 쪽에 조사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만." "아." "그랬더니 말이죠, 지하도로국에서는." "아, 뭐라고." "그 32구의 공사는 지금 G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이죠." "에? 뭐라고요?" "저, 여보세요." "예. 여보세요." "댁은 지하 8층이죠?" "그렇습니다. 지하 8층입니다." "저, 지하도로국에서는 말이죠, 현재, 32구에서 벌어지는 공사는 지하 7층 뿐이고, 지하 8층은 말이죠, 새 도로를 만들고 있지 않다고."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그래서 말이죠, 여보세요." "예예. 여보세요." "그래서 말이죠, 현장 지도를 보면 확실히 공사는 지하 7층에서만 하고 있어요. 저, 저, 말입니다. 틀림없이 댁은 지하 8층입니까?" "틀림 없어요. H입니다. H로 우편물도 오는 걸요. 그러니까 8층이에요. 지하 8층." "그래서요, 공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댁과 같은 층입니까?" "네. 그것은 벌써 말씀드렸잖습니까?" "세집 옆까지 와 있다는 말씀이죠?" "네." "허 참, 이건 도대체 뭐라고 하면 좋나, 어떡하면 좋지? 참 이상하군요." "이쪽으로 오셔서 보시면 알 텐데요." "네, 그것은 조금......" "바쁘십니까?" "네." "저, 그러나 이건 말이지요, 오늘이라도 공사중지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정말." "정말 댁으로 우편물이 온단 말이죠?" "네, 우편물이 옵니다." "그러면 저, 이렇게 하지요. 우체국에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네? 지금 그 쪽에 물어서 해결이 될까요?" "글쎄요. 즉시 해 보도록 하지요." "빨리 해주셨으면 합니다. 여보세요." "네네." "내일이면 옆집이 부숴질 것입니다. 급히 서둘러 주세요." "네. 일단 내일 아침 일이 시작되자마자 물어 보겠습니다." "아니? 내일이라고요? 저, 지금 물어 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지금이오? 벌써 퇴근시간이 지나서 사람이 없을 텐데요." "누군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그럼 지금 전화를 걸어 보겠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바로 저에게 전화를 주시겠습니까?" "네네." "저, 여기, 전화번호를." "아, 죄송합니다. 잠깐만, 네네." "ML의 5의 879022입니다." "ML의 5의 8790." "22입니다." "22요. 네, 그럼, 바로." "네, 부탁드릴께요. 잘 부탁드립니다." 4 "네, 도청 보안과입니다." "저, 저, 죄송합니다만, 지하교통국 시마다 씨 부탁드립니다." "네? 벌써 퇴근시간이 지나 아무도 없는데요." "네? 시마다 씨는 계실텐데. 저, 시마다 씨가 이쪽으로 전화를 걸어주겠다고 했는데요." "네." "전화가 오지 않아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전화를 걸었는데요." "네네, 그러나 벌써 퇴근했을 텐데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여보세요." "네네." "역시 퇴근하고 없군요. 지하교통국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고맙습니다." "네." 5 "네, 시마다입니다." "시마다 씨? 오카무라입니다." "네." "저, 지하 332구의." "아, 오카무라 씨? 네네." "저, 우체국 쪽은?" "네, 전화로 조금 조사를 해보았는데요." "네." "그러니까, H7번지라고, 역시 있었습니다." "네네." "그런데 도청 주소록에는 없습니까?" "아니오. 오래된 주소록에는 있을 거에요. 저 말이죠. 우체국 얘기로는 32구, 그 쪽 8층은 모두 H였다고 합니다." "지하 8층." "네, 지하 8층. 그것이 말입니다. 예의 2005년에 도내 인구가 1억을 넘었을 때 말이죠, 예의 지하주택지의 대정리를 해서 말입니다. 지하를 더 파낸 것입니다." "네." "그 때 말입니다. 먼저 있던 주택이 천장을 높게해서 그 후부터 8층 이하의 천장도 높게 했다는 것입니다." "네네." "그래서 결국 그 때까지의 지하 7층, 다시말해 G기호의 레벨이 꼬여 지하 8층, 지금의 댁의, 그 H기호의 집의 레벨과 같은 높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꼭 같은 높이는 아닌 듯 합니다만." "아, 그래서 우리 집 천장이 다른 집보다 낮군요. 그래서, 저, 우리 집의 마루도 통로보다 5,6단 아래 있었군요. 그래 맞아. 그래서 마루와 스칠듯한 위치에 공기 취입구가 있는데, 거기서 밖을 내다보면 한 층 밑의 통로가 보이는군요. 아아, 조금 어긋나 있었단 말이죠." "네." "저, 그런데, 왜 정리했을 때 우리 집만 남게 되었을까요?" "그게 말이죠. 그 때 댁은 세운지 얼마되지 않아서요. 무너뜨릴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댁만 남겨 놓았고, 그 집에 H기호를 붙였다고 합니다." "네? 그럼 H기호는 우리 집 뿐이란 말인가요?" "네. 그래서 댁의 한 층 밑은 곧바로 I기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32구는 G의 바로 밑이 바로 I로 되어 있고, I가 바로 지하 8층입니다. H는 댁뿐입니다." "H는 우리 집 뿐이란 말입니까? 허 참, 저, 여보세요." "네네." "일단 말입니다. 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말입니다. 바로 공사중지명령을 말이죠, 내리지 않으면." "네, 그렇죠, 물론이죠. 이쪽에서도 사정을 알게 되었으니 곧 바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 다시 굴을 뚫는 차가 와서 말이죠." "네." "두 집 건너편을 부수고 있어요." "네." "저, 플라스틱 튜브가 있고요." "네." "그 안에 굴 뚫는 차가 달리고 있어요. 이미 다 부순 곳까지 재료를 날라 와서 말이죠." "네." "굉장한 소리가 나서요, 집이 흔들리고, 우리 어머니가요, 아, 들리시죠?" "네네, 굉장한 소리군요." "지금 당장 중지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낮에는 옆 집을 부술 거예요." "네, 당장." "바로, 명령, 공사중지명령 내려주실 수 있으시죠?" "빨리, 저, 제 권한으로 할 수는 없으니, 바로 국장에게 신청하여, 저, 비상사태니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럼, 빨리." "네, 부탁드립니다." 6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아, 국장님이십니까?" "저, 시마다 씨에게 저기, 32구의 H7번지의, 저." "네, 당신이로군요. 예의 굴착차 건으로." "네네, 그래서 말입니다. 차가 벌써 옆집까지." "네." "아까 옆집까지 들어왔어요." "네." "벌써 저, 공사를 하고 있는데. 저기, 중지명령 이미 내리셨는가요?" "저런,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지금 내렸습니다. 이젠 안심하십시오." "네, 그렇습니까?" "네네. 정말 죄송합니다. 폐를 끼쳐 드렸군요. 이쪽의 부주의 때문에, 곧 사죄드리러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심려가 크셨지요?" "네, 고맙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거듭거듭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네, 그러나 오카무라 씨." "네." "이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벌써 말이죠. 지금, 그쪽으로 명령서를 가지고 급히 갔으니까요. 이상사태이니 만큼 말이죠. 정말 폐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 지금 옆집와 우리 집 사이의 벽을." "네네, 바로 중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시끄럽군요. 정말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요? 지금 굴착차의 굉장한 소음이 들리는데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잘 들리지 않는데요. 여보세요." 역자 후기 지하철에 앉아 그의 소설을 읽다가 다른 사람 눈길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만 풋 -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이 많다. 그의 언어 능력은 거의 불가사의에 가깝다.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배를 잡고 웃게 만든다. 번듯하게 보이는 모든 것의 이면에 감추어진 음모나 위선을 그의 언어는 유머러스하고 그로테스크하게 까발긴다. 비록 그의 소설이 독자가 속한 어떤 집단의 위선을 까발기고 있다해도, 읽는 이는 자기 자신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고 통쾌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90년 발표되어 몇 백 만 명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학부 다다노 교수>>는 <대학>, <문학>, <교수>라는 단단한 권위의 틀과 <제도 = 권력>을 도발적으로 풍자한 작품으로 그의 매력을 마음껏 드러낸 작품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제도>의 굴레를 쓰고 있다. 가족, 회사, 학교, 가치, 규범 등의 <제도 = 권력>은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반드시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고, 또 우리는 그것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그것이 우리는 압박한다 하더라도 어떤 식이든 그런 것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인간의 사회생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츠츠이 야스다카는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그 문학의 공간 시간 속에서, 우리를 제도의 저편으로 이끌고 간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모두 이런 제도가 내면화하고 있는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인 메카니즘을 풍자한 것이다. 처절하면서도 재미있게. 가령 <동경대학>이라는 언어를 살펴보자. <동경>은 일본의 중심이고, <대학>은 제도를 유지시키는 가치를 제조하는 곳이다. 그 두 가지가 결합된 <동경대학>(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학 쯤 될 것이다)은 60년대와 70년대 일본의 반권력 운동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야스다카는 그런 일본적 상황이 바로 허위의식이었음을 밝히기 위해, SF적인 상황설정으로 그 권위의 중심을 웃음거리로 바꾸어 놓는다. 그가 소설의 재료로 삼는 영역을 가볍게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도대체 한 인간이 이만한 폭의 자료를 정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날 정도이다. 그러면서 늘 읽는 사람을 웃겨주니, 그것도 불가사의하다. 미래의 일본을 보면서 웃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우리는 자신의 위선과 허위의식에 대한 하나의 각성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특이한 작가의 재미있는 작품을 웃으면서 읽을 수만 있다면 책을 산 사람이나 역자 모두 대성공이다. 1996년 4월 9일 양억관 저자 츠츠이 야스다카(筒井康隆) 1934년 오사카에서 태어남.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려, 초등학교부터 특별 영재교육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하였고 도시샤(同志社)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였다. 대학시절부터 시나리오를 썼고, 졸업 후에는 이라는 SF 동인지를 창간하여 일본 SF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1964년 <<48억의 망상>>(처녀 단편집) 1968년 <<베트남관광회사>>, <<아프리카의 폭탄>>, <<환상의 미래, 아프리카의 피>> 1969년 <<내 사랑 늑대>>, <<영장류 남으로>> 1971년 <<탈주와 추적의 삼바>> 1972년 <<가족 8경>>, <<속물도감>> 1974년 <<내 피는 타인의 피>> 1975년 <<나나세 다시 한번>> 1976년 <<메타모르포제 군도>> 1977년 <<오이디푸스의 연인>> 1979년 <<위대한 탈주>>, <<우주위생박람회>> 1981년 <<미예공(美藝公)>>, <<허인(虛人)들>>(泉鏡花상 수상), <<에로틱 가도>>. 이 해에 클라리넷 재즈 음악가로 데뷔. 1982년 연극배우로서도 활약함. 1983년 <<筒井康隆全集>> 24권 간행 시작하여 85년에 완결됨. 영화 <스타>를 제작하고, 그 자신 이누가미 박사 역으로 출연함. 1986년 <<나그네 라고스>> 1987년 <<꿈의 기사키 분기점>>(谷崎潤一郞 상 수상), <<노래와 요설의 전기(戰記)>> 1988년 <<신일본탐정사보고서>>, <<베티 부푸 전>>, <<약채반점>> 1990년 <<문학부 다다노 교수>> 이후 <<파프리카>>(국내 번역 출간) 등을 발표하였고, 1994년에는 그의 글이 중학교 검인정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그러나 그 글 가운데 간질환자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이 들어 있다 하여 비판을 받게 되고, 저자가 절필을 선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역자 양억관(梁億寬) 1956년 경남 울산 생. 경희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악마를 위하여>>, <코인로커 베이비스>>, <<69>>, <<맹상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