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크리스타니아 표류전설] 제4권 ...(1) 제1장 세계를 본 사람 1 어둠이 밀려드는 동녘 하늘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보라색 로브를 걸친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에 쥔 떡갈나무 지팡이가 그의 몸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도구였다. "신수의 어금니 성채가 무너지고 말았구나……." 깊은 한숨과 함께 나온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수민족 이 쓰는 말도, 암흑민족이 쓰는 말도 아니었다. 그 사나이의 낯선 혼 잣말은 얼마간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몸이 춤추듯 떠올랐다. 느릿한 속도이긴 했지 만 주위의 나무들보다 높이 올라갔다. 상승하는 동안 남자는 지팡이 를 살짝 끌어안은 것을 빼고는 조금도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주문을 외웠던 것이다. '공중 부유'라고 부르는 고대어 마법이었다. 남자는 마술사였다. 원하는 만큼 올라가고 나서 남자는 또 다른 주 문을 외우며 연기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주문의 효과로 평상시보다 시력이 배 이상 좋아졌다. 덕분에 폐 허가 된 성채의 모습이 아주 자세히 보였다. 하지만 성채만 폐허가 된 게 아니었다. 성채 주위의 나무들까지 온통 불길에 휩싸였다는 증거 가 숲 전체에 걸쳐 나타나 있었다. 이제 불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불타버린 나무들이 아직도 여 기저기서 흰 연기를 뿜어냈다. 숲이 불타는 바람에 생긴 광장엔 벌써 원추형 천막이 무수하게 들 어서 있었다. 베르디아군이 주둔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올겐스하고 거쉰은 무사할까?" 옛 친구인 용병들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이 남자가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동안 이곳 크리스타니아는 정말 엄 청나게 변모했다. 신수의 어금니 용병들도 태반은 교체되었을 것이 다. 아직도 그 친구들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이 성채와 운명을 함께 했을지도 모른다. 신왕 바르바스가 기적을 행사했던 것이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이 렇게까지 엄청나게 성채가 파괴될 수는 없다. 힘을 휘두른 뒤 신왕은 베르디아의 수도인 도튼의 거대한 성에서 휴식의 잠을 자고 있을 것 이다. "다시 잠에서 깨어날까?" 남자는 눈을 감았다. 눈동자에 얼마 전까지 가 있던 세계의 모습이 어렸다. 그곳에서 최 후의 전쟁에 맹렬히 가담할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새까만 피부를 가진 엘프 여성의 슬픈 소원은 끝내 이루어질 수 없 는 것일까? "그나저나 내가 갈 곳이 마땅찮아졌군." 지금부터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 마술사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 했다. 우선은 길이 어긋난 친구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서두를 일은 아니 었다. 꼭 방문하고자 했던 어금니 성채가 사라진 이상 어디로 가든 마찬 가지였다. 그에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크리스타니아에 얼마든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땅으로 내려서자 마술사는 등짐에서 낡아 보이는 책을 끄집 어냈다. 특수한 풀로 떠서 만든 종이를 가죽 표지로 엮은 두툼한 책이 었다. 사실 정확히 말해 그건 책이 아니었다. 4분의 1 정도만 문자로 채워 졌을 뿐 나머지는 모두 백지 상태였다. 그 책의 저자는 마술사 자신이 었다. '세계를 본 사람, 이를 기록하다.' 책제목은 없고 서문 비슷한 말만 표지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귀퉁 이에 나셀이라는 마술사 자신의 서명이 단정하게 덧붙여 있었다. 대륙의, 아니 전세계의 운명을 결정 지을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 었다. "어떤 미래가 올 것인가?" 자문하듯 중얼거리며 마술사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 발길을 되돌려 걷기 시작했다. 서쪽 하늘에 걸린 노을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 나름대로의 색을 부 여하고 있었다. 옅게 깔린 구름들이 그 속에서 마치 왕궁의 융단처럼 빨갛게 물들어갔다. 다낭. 거대한 대륙의 최북단에 위치한 풍요로운 반도. 그리고 높다랗게 솟은 절벽 때문에 대륙으로부터 격리된 육지의 고도. 이 땅에는 한 왕국이 번성하고 있다. 북방의 섬으로부터 범선을 타고 찾아든 표류민들의 후예. 사람들은 믿고 있다. 다낭이야말로 슬픈 표류민들을 위해 자비로운 신들께서 성지의 일부를 떼주신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절벽 너머의 세계를 이렇게 부른다. 신들이 거주하는 대륙, 크리스타니아라고. 태양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신수의 어금니 성채를 둘러싼 격전이 끝나고 이미 닷새가 지났다. 딜란트는 폐허가 된 성채와 주변 부락들에 대한 현장 조사를 마쳤 다. 이제 용병단의 생존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했 다. 대부분은 전사했고 극히 일부분만이 살아남아 도망쳤다. 이번 전쟁에서 예비 족장 바디오를 비롯해 수많은 희생자를 낸 맹 호부족이 복수심에 불타 패잔병들을 추격하고 있지만 그다지 성과는 없었다. 오히려 딜란트는 무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복수는 그들 부족에게 신성한 행위였으므로 그걸 막는다고 들을 리가 없었다. 신왕의 기적에 힘입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내용상으로는 패배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채를 지키던 소수의 적병 때문에 베르디아 의 주력군이 혹독한 타격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손실을 당하고서는 계획했던 은빛늑대부족의 시레네 대부락 침공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기적을 사용한 신왕도 힘을 회복하기 위해 휴면에 들어갔 다. 신왕이 언제 다시 기적을 사용할 수 있을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근에 흩어져 있는 은빛늑대부족의 부 락을 소탕하고 가도와 사잇길을 제압하는 것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는 이곳 폐허에 성채를 재건한 뒤 무기와 식량을 비축해서 다시 치르 게 될 전투를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전략이야말로 지금까지 베르디아군이 영토를 늘려온 방법이었 다. 시간은 걸리지만 가장 확실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이미 다 취해놓았다. 물자조달을 위해 딜란트가 가장 신뢰하는 노기 사 벡을 이슬로 성채로 파견한 것이다. 감시자라고 불리는 신수 포르티노를 섬기는 고고부족은 북녘 구릉 지대를 잃고 남녘 산악지대로 쫓겨갔다. 주기의 신수왕 페네스의 종 자들인 은빛늑대부족도 지배지인 삼림지대의 절반을 빼앗겨 저항력 을 잃어가고 있었다. 점령 초기에는 반항과 불복종 움직임이 들끓었 지만 지금에 와선 그 기운도 많이 꺾였다. 심지어는 베르디아 제국의 용병이 되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완강히 싸움을 걸어왔던 신수의 어금니도 이번 전투로 완전히 소 멸되고 말았다. 은빛늑대부족의 대부락 시레네만 함락시키고 나면 은 빛늑대부족과의 싸움은 거의 매듭지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쟁은 끝날 수 없었다. 이스칼리아 동부에는 '백 개의 호수와 천 개의 늪'이라고 불리는 다습한 초원지대가 있는데 그곳은 결계의 신수왕 루미스를 섬기는 큰 뱀부족의 영토였다. 그리고 거기서 남쪽으로 옮겨가면 어금니부족, 갈기부족, 발굽부족 등 유력한 부족의 지배지인 와이아나 지방의 초 원지대가 나왔다. 게다가 크리스타니아의 중앙부에는 옛 신들을 섬기는 왕국이 아직 도 굳건히 버티고 있고 남북 크리스타니아 대륙을 연결하는 러브래들 대지협지대에는 다낭에서 온 사나이가 조직력을 발휘해 강력한 군사 국가로 거듭난 진홍부족의 제국이 있었다.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남북의 크리스타니아를 다 지배한다 해도 신왕 바르바스는 바다를 건너 저주받은 섬 로도스, 나아가 북쪽 대륙까지 공격해 들어갈 것임 에 틀림없었다. 그때까지 자신이 살아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전쟁중에 죽음 을 당할지도, 신왕에게 주살당할지도 모른다. 딜란트는 지금으로선 실질적인 베르디아군의 최고지휘관이었다. 그러나 신왕의 충실한 부하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지배 를 관장하는 이 신을 혐오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신왕 에겐 혐오감을 초월하여 압도적인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반항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누군가가 신왕을 쓰러뜨려 주기를 남 몰래 기대 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왕은 그런 딜란트의 생각을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면서 도 딜란트를 기용했다. 게다가 베르디아군의 최고지휘관으로 임명하 기까지 했다. 아마도 신왕은 충성 따위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신왕이 추구하는 것은 딜란트가 품고 있는 절대적인 공포심. 그것 이야말로 신왕이 관장하는 지배의 법칙이었다. 신왕은 영원한 지배자이며 딜란트는 이 잔혹한 신에게 예속을 강 요받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딜란트는 신왕의 첨병으로서 계속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그것이 암 흑기사단을 존속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며 암흑민족을 번영시키 기 위한 수단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신왕에게 인간은 가축이나 노예에 불과했다. 신이 이 세계를 만들 었으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신왕이 세계를 정복하 는 그날에는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시대는 먼먼 과거의 일이 되고 말리라. "딜란트 경과 말을 나누고 싶은데……." 허탈감 비슷한 생각에 휘감겨 불타버린 성채의 끄트머리에 왔을 때 갑자기 나무 그늘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내리깔아 그렇게 말하면 목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로 쉰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나무 뒤에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냐?" 딜란트는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발길을 멈추 고 되물었다. "그림자부족의 이살리라는 사람이다." "아르케나의 백성인가?" 딜란트의 양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운명의 고지자라는 별명을 가진 아르케나는 멀리 서부 핀갈지방을 지배하는 신수였다. 이 신수의 종자들인 그림자부족은 이번 대전에서 중립을 지키며 양쪽 진영에 용병을 내보내고 있었다. 신수 아르케나 는 마술을 관장하고 있었으므로 그 종자 중에는 마술사가 많았다. 아 군인 경우에는 아주 믿음직한 전력이었다. 그러나 신수 아르케나와 그림자부족의 의도는 아무도 알 수가 없 었다. 고지자로서 운명을 변동시키는 요인을 감시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 지만, 그들이 자신들이 바라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비밀리에 활약 하고 있다는 소문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신수 아르케나와 그림자부족 은 미래를 예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지한 대로 미래를 실현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체를 알지 못할 신수이며 부족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무슨 생각으로 접근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용건을 말하라!" 단도직입적으로 딜란트가 물었다. "경을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이 있다. 잃어버린 대지에서 번성하고 있는 왕국의 기사다." "다낭의 기사!"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커졌다. 다낭에서 찾아온 레일즈라는 이름의 젊은이와 만나고 헤어진 것이 겨우 하루 전의 일이었다. 그는 지금쯤 일행들과 함께 '회합의 땅'을 향해 여행을 계속하고 있을 터였다. 거기서 신왕 바르바스와 대결할 것이다. 애당초 달걀로 바위치기일 것이나 딜란트의 마음 한구석엔 그 젊은이에 대한 기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신수의 어금니 성채가 압도적인 전력차를 극복하고 베르디아군과 조금도 밀리지 않는 싸움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휘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우람찬 장년의 사내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보니 오히려 섬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강인한 의지력은 확실해 보였다. 혼란의 시대 가 아니었다면 역사 속에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대지 다 낭이 열렸기 때문에 출현한 용사라고도 할 수 있었다. 10년 전에도 다낭에서 온 레이든이라는 젊은이와 그 일행이 막 잠 에서 깨어난 신왕에게 도전하여 혼의 그릇 노릇을 하는 표류왕의 육 체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완전한 각성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런 뒤 지금까지도 신왕과 줄기차게 싸우고 있었다. 크리스타니아의 역사를 바꾸려는 용사들이 잃어버린 대지에서 속 속 올라 올 때마다 딜란트는 놀랍기만 했다. 그 조그마한 반도에서 도 대체 어떤 역사가 이루어졌기에 그런 젊은이들이 나오는지 언제고 한 번 다낭에 가보고 싶었다. "그렇다, 다낭 왕국의 정규 기사다. 베르디아군과 동맹을 맺을 용의 가 있다고 한다." "동맹이라니?" 딜란트는 무심결에 쿡 웃고 말았다. 면회를 요청하는 사람이 레이든이나 레일즈와 달리 보통내기에 불 과한 모양이었다. 전쟁의 승패가 가려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접촉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딜란트는 그 기사의 생각이 손에 잡힐 만큼 분명하게 느껴졌다. 일반적인 인물에겐 그런 반응이 당연했다. 다낭 사람들이 누구나 영웅이나 용사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동맹, 그건 어림없는 생각에 불과해. 혹시 항복해 온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지." 신왕 바르바스의 지배 법칙에는 대등한 동맹관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절대적인 상하관계뿐이다. "그건 직접 만나보고 나서 말해도 좋지 않을까?" 그림자부족이 다시 제안했다. "신왕의 기적에만 의존해 전쟁을 치르면, 아마 백 년이 지나도 끝 나지 않을걸. 다낭 기사단을 아군으로 삼으면 크리스타니아 전체를 지배하기가 훨씬 용이해지지." "유감이지만 크리스타니아를 정복하고 싶은 것은 내 의사가 아니 다. 그리고 신왕 폐하에게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지배의 신왕에게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아군이 늘어나면 경 의 부하들이 치러야 할 희생이 줄어든다. 다낭 정복을 위해 싸우면 암 흑기사단의 젊은이들 또한 수없이 죽어나갈 것이다." 마음속을 들여다보듯 이살리는 딜란트의 가장 아픈 구석을 건드렸 다. 신왕은 베르디아군의 소모 따위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딜란트에게 그것은 최대의 관심사였다. "만난다고 해서 손해볼 건 없지 않아? 목숨 걸고 덤벼드는 자처럼 무서운 상대가 없다는 사실은 경이 더 잘 알고 있잖아?" 그 말은 맞았다. 그 사실은 지난 전투에서도 뼈저릴 정도로 톡톡히 경험했다. 목숨을 버릴 각오가 돼 있는 한 명의 전사는 죽음을 두려워 하는 열 명의 전사와 필적한다. "그래, 그래도 좋겠지……." 이살리라는 자의 말투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만난다고 해서 손 해볼 건 없다는 말은 분명했다. 지난 전투의 결말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신왕이 사용한 기적의 힘도 알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겁에 질리게 만들어두면 다낭을 침공 할 때 철저하게 저항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전장에서 당당하게 싸워 목숨을 잃는다면 그나마 위안이 되지만, 신왕의 기적에 의한 개죽음 같은 것은 전사들에게는 그 이상이 없는 치욕이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목숨을 걸 사람은 드물게 마 련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대지의 왕국은 암흑민족과는 고향이 같았다. 그렇기 때문 에 근본적인 정신 구조는 서로간에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슥해지고 나서 내 천막으로 오라. 어차피 정식 회담을 열 수는 없다. 같은 기사끼리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자." 이살리는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르케나 종자에게는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순간이동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을 사용한 것이리라. "다낭의 기사라……. 앞으로 똑같은 괴로움을 지고 살아가게 되겠 군." 딜란트는 중얼거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굴엔 언제나 그렇듯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웃음을 당하는 상대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딜란트는 사무칠 정 도로 깊이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