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 들녘 (addhpf2 ) [크리스타니아 표류전설] 제2권 ...(2) 01/20 09:22 311 line "저 균열이 잃어버린 대지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이 사람들은 저 길을 통해 찾아왔습니다." "신수왕 루미스의 결계가 무너졌다는 이야긴가?" 그 전사는 망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신왕 바르바스가 한 짓일 거야." "마치 손톱으로 그어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거쉰이 어이없어 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이곳도 본격적인 위험에 직면하는군." "그런 일은 없습니다!" 마리스가 얼굴을 붉히며 반론을 제기했다. "비록 혼란을 겪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이곳 세계는 주기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루미스의 결계조차도 깨졌으니 페네스의 주기라고 언제까지고 견 딜 수 있겠어?" 거쉰은 오히려 유쾌한 말투였다. 마리스는 물론 납득한 것은 아니 었지만 그 이상의 반론은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신의 성벽 위에 도달할 때까지는. "우와, 이게 바로 잃어버린 대지인가." 거쉰은 절벽 저 멀리로 보이는 다낭의 땅을 보며 소리 치고는 절벽 끝에까지 다가가 그 밑을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사이아가 그걸 보고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멀리 부락이 보이는걸." 깃털 망토 전사가 이마께에 손을 얹고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집들이 심하게 부서져 있는데 전쟁이라도 났었나?" "얼마 전에 있었던 지진 때문이지." 그렇게 대답하면서 레일즈는 놀랐다. 그가 마을의 상태까지 보고 있다니……. 레일즈의 눈에 하크 마을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레일즈의 이야기를 듣고 거쉰도 마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군. 저렇게 평화로워 보이는 곳에 사 는 너희들이 일부러 우리 대륙에 온 이유가 뭐지? 평화를 누리는 건 나쁜 게 아니잖아." "영원히 누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레일즈는 그 자리에서 말을 되받았다. "우리들에게는 이곳에서 결말을 봐야 할 일이 있다. 양날검 공작은 나에게 복수하겠다고 했다. 그자는 내 목숨을 노리고 지옥 끝까지라 도 쫓아올 것이다. 그자가 복수하려 한다면 나도 맞상대를 할 수밖에 없다." "네가 그 사나이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질 않아." 거쉰은 북북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로 레일즈를 노 려보았다. "어찌 됐든 이곳 세계에 남겠다는 이야기로군." "남는다." 상대방의 험한 사슬에 기가 눌리면서도 레일즈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그러나 너희들과 싸울 생각은 없다. 지금의 나에게 적은 그레일뿐 이다." "지금의 너에게 그렇단 말이지?" "부탁입니다. 그들이 대륙에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분들은 우 리와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힘으로 쫓아내려 하는 것은 올 바르지 않습니다. 나는 이분들에게 협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리스는 다섯 명의 이방인이 방문한 정도로는 주기가 어 지러워질 까닭이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건 마치 자신에게 암시 를 걸기 위해 하는 말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부족 사람들도 많을 텐데." 거쉰의 말에 마리스는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 렸다. "그래, 어쨌든 쓸데없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아. 마리스가 이들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 난 눈 감아줘도 좋아." 거쉰은 그렇게 말하며 동료들을 쭉 훑어보았다. "저들의 결심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 위험을 잘 알면서 이곳에 머 무르려 하는 것이니 그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장신의 전사가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너라면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지." 거쉰이 피식 웃었다. "난스, 너는?" "찬성은 하지 않아. 저들이 우리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힐지도 모르 니까. 그러나 은빛늑대 소녀가 이들을 보호한다면 그것까지 막을 생 각은 없어." 깃털 망토의 전사가 돌아보며 대답했다. "이곳 세계에 질서 따위가 남아 있나?" 거쉰이 명쾌하게 받아치자 난스라 불린 사나이는 울컥 화가 난 얼 굴로 거쉰을 노려보았다. "이살리와 타닐은 반대하지 않지?" 새까만 옷으로 몸을 감싼 사나이와 은발의 타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정했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도 좋다." 거쉰은 밝은 목소리로 레일즈 일행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거쉰님." 마리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사했다. 레일즈 일행도 겨우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싸움으로 번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잘 해결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야." 그때 검은 옷의 전사가 묘한 눈길로 거쉰을 바라보았다. "자넨 싸움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이 이방인들한테 는 너무 호의적이잖아?" "여자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지. 미인의 부탁은 거절할 수가 없거 든. 운이 좋으면 미인이 실수해서 나한테 사랑에 빠질 수도 있으니 까." 검은 옷의 전사는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저 연기가 피어오르 는 곳에는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해지더란 말이야.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우리들 세계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거쉰의 말에 나머지 네 사람이 낄낄거렸다. 특히 장신의 전사는 과 연 거쉰답다며 즐거워했다. "우리들은 성채로 돌아간다. 결계부족과 봉인부족에게 발견되지 않기를 기도하마."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거쉰은 레일즈 일행과 헤어지려 했다. "잠깐만!" 레일즈는 당황해하며 거쉰을 불렀다. "왜, 아직도 용건이 남았나?" 돌아보는 거쉰의 얼굴에 귀찮은 표정이 어렸다. "너희들 성채로 우리도 데려가 주지 않겠나? 양날검 공작과 싸우기 에는 아직 나의 힘이 부족하다. 더욱 힘써서 단련을 하지 않으면 이길 엄두가 나질 않아. 그리고 너희들은 이곳 세계의 여러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니, 너희들과 함께 있으면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떠도는 것 보다 훨씬 빨리 이곳 세계를 알 수 있지 않겠어?" "진심이야?" 거쉰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레일즈를 쳐다봤다. "물론, 진심이다." "이것 참……." 거쉰은 어이가 없어서인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배 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제발 웃기지 좀 말아줘." "난 심각해." 레일즈가 골이 나서 말했다. "그러니까 웃긴다는 거야.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넌 내 손님이다. 아무도 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못하게 하겠어." 거쉰은 레일즈에게로 성큼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툭 쳤다. 웃음소 리가 점점 더 커졌다. 레일즈도 굳었던 얼굴을 풀면서 일행을 돌아보 았다. 거쉰의 웃음소리에 그들도 긴장이 다소나마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레일즈는 그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결정해 버린 데 대해 미안한 마음 이 들었다. "이야긴 들은 대로지만……." 이미 저질러놓은 일이지만 우선 그들의 의견을 확인해봐야 했다. "다낭에는 돌아갈 수 없어. 달리 갈 데도 없고." 밧소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건 아무래도 재미가 없는걸." 빙 둘러 하는 말이었지만 어쨌든 동의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 또한 행운신의 이끄심!" 샤일론은 느릿한 말투로 찬성의 뜻을표했다. "난 레일즈를 따라갈 테야." 사이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곁에 서 있는 비인에게 동의를 구했다. "다, 당연하지." 비인은 웃는 얼굴로 답했지만 그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알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고마워, 모두들." 레일즈는 일행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2 크리스타니아와 다낭을 포괄하고 있는 포셀리아는 태초의 거인이 죽으면서 비롯되었다. 태초의 거인은 거대한 하나 또는 만물의 시조 라고도 불린다. 만물은 이 거인의 주검에서 탄생했다. 생명도 물질도, 나아가 힘도……. 그 육체를 이어받아 태어난 것이 신들이다. 신성한 왼손으로부터는 빛의 지고신 패리스가, 사악한 오른손으로 부터는 암흑신 패라리스가 태어났다. 그리고 나머지 네 기둥의 주신 과 수많은 종속신들이 거인의 육체를 이어받아 탄생했다. 거인의 머리카락은 세계나무가 되어 허공에 뿌리를 내렸다. 이 나 무는 혼돈의 힘을 빨아들여 가지가 휘어지게 생명의 열매를 맺었다. 마찬가지로 거인의 온 몸을 덮고 있던 비늘에서는 용왕이 탄생했 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최강의 종족이며 분화되지 않은 정령의 힘을 체내에 비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들에 의한 세계 창조가 시작되었다. 신들은 혼돈에 법을 부여하고 질서를 만들어냈다. 정령의 힘이 분 화되고 정령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신들은 자신들이 거주하기 위한 성지로서 물질계를 창조한다. 최후로 창조된 것은 정령계와 물질계를 연결하는 중간세계, 곧 요 정계였다. 신들은 생명의 열매를 소중히 키워 각계에 거주할 생명체 를 만들어냈다. 정령계에는 정령을, 요정계에는 요정을, 그리고 물질계에는 인간을 비롯해 수많은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그 중 인간은 신들의 육체를 이어받아 물질계에 삶을 얻었다고 한 다. 그런 까닭에 이 세계의 주인이 될 운명을 타고나게 된 것이다. 혼돈은 정화되고 세계 창조는 계속 진행되어 갔다. 그러나 세계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그리고 세계 창조가 완성되지 못한 채 신들의 시 대는 종말을 맞이했다. 신들 사이에 움트기 시작한 사소한 불화로 인해 신들의 대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창조주들은 빛과 어둠의 군단으로 나뉘어 서로 를 멸망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지고신과 암흑신뿐만 아니라 그 밖의 신들도 신들의 대전쟁이 한 창이던 때 모두 육체를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위대한 신들의 불멸의 혼은 물질, 요정, 정령의 3계로 산화되어 갔다. 강대한 힘은 감추어진 채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에 개입하는 수단을 신들은 잃어버리 고 말았다. 이리하여 신들의 시대는 끝나고 인간이 세계를 다스리는 역사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다낭 사람들의 고향 섬에서, 그리고 북의 대륙 알레크라스트를 비 롯한 지상세계 대부분의 땅에서……. 그러나 멸망의 운명을 벗어난 신들도 적긴 하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은 알려지지 않은 신화다. 그들은 빛의 군단에도 어둠의 군단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신들이었 다. 중립신들은 신들의 대전쟁을 우려하며 세계 창조를 계속하려 하 였다. 그러나 암흑신은 자기편이 아닌 모든 신을 멸망시키려고 중립신들 을 향해 수백이 넘는 용왕을 파견했다. 중립신들은 용왕에게 쫓겨 남쪽으로 도망쳤다. 도망가는 도중에 많 은 신들이 용왕에게 불타버려 혼만 남은 존재가 되었다. 중립신들은 남쪽 대륙에 모여들어 실로 파멸의 시간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립신의 좌장격이라 할 페네스는 용왕의 눈을 속이기 위 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신의 육체를 버리고 불멸의 혼을 짐승의 육체에 봉하여 신수가 되는 것이었다. 중립신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신들은 최후의 기적을 행한 뒤 신수가 됐다. 최후의 기적이란 남쪽 대륙을 바다보다 높이 융기시 켜 외계로부터 봉쇄하는 것. 그리고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영겁에 걸쳐 반복되는 주기에 의해 대륙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이 봉쇄된 대륙에서 중립신들은 세계 창조를 계속하여 완성된 세 계를 구축했다. 인간을 비롯해 수많은 생명체는 신수에게 종속되어 주기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하여 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수천 년 동 안을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러나 신수들조차 영원한 평화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파국의 때가 찾아왔던 것이다. "그것이 신수 후지와 바르바스가 떨어져나갔던 이유다." 거쉰은 말린 고기를 물어뜯으면서 포셀리아와 크리스타니아의 창 세 신화 이야기를 마쳤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레일즈는 차분한 표 정으로 듣고 있었다. 신의 성벽에서 강을 따라 반나절 정도 거슬러 올라간 숲 속에서였 다. 이미 해가 져서 주위는 어둠의 장막에 싸여 있었다. 툭툭 불똥 튀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장작불에서 날아오르는 불 길이 사람들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날이 새기까지는 아직도 많 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신화 이야기를 끝내고 거쉰은 나뭇가지를 잡고 땅바닥에 선을 그 리기 시작했다. 무얼 그리는지 궁금해하며 레일즈는 몸을 내밀어 나 뭇가지 끝을 바라보았다. 그림은 곧 완성됐다. 거쉰은 손에 들었던 나뭇가지를 장작불 속에 던져넣었다. 완성된 그림은 원을 두 개 붙여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 것이 크리스타니아 대륙이라고 거쉰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크리스타니아는 남북, 두 개의 대륙으로 나뉘어 있어. 북의 대륙은 7개 지방으로 다시 나뉘지만 남쪽 대륙에 대해선 우리도 잘 몰라. 신 수민족 중에서도 소수의 부족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거의 왕래가 없 기 때문에……." 북 크리스타니아 대륙은 7개 지방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동쪽에 는 와이아나, 서쪽에는 핀갈, 남부에는 러브래들의 지협지대가 있고, 북부가 이곳 이스칼리아이다. 이 네 지방은 신수민족이 지배하고 있 다. 북서부의 반도가 배반의 땅, 즉 베르디아다. 이 땅에는 선주민격인 신수민족과 암흑민족이라 불리는 표류민이 공존하고 있으며 부활을 이룬 신왕 바르바스를 절대 군주로 삼는 제국이 존재한다. 대륙 중앙부에 위치하는 포레슬은 망각의 대지라 불린다. 와이아 나, 핀갈, 러브래들, 이스칼리아의 네 지방에 둘러싸인 이 황야에는 신수 섬기기를 거부한 채 온전히 육체를 지닌 신들의 강림을 기원하 는 고민족이라 불리는 민족이 살고 있다. 그리고 잃어버린 대지, 곧 다낭은 이스칼리아의 북쪽에 인접한 반 도다. 그런데 최근 십 년 동안의 전쟁으로 크리스타니아의 세력권은 크게 바뀌고 있다. 이스칼리아 지방의 서북부와 핀갈 지방의 북부는 베르디아군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신수민족에게 다행인 것은 신수민족 최대의 부족인 은빛늑대부족 을 광대한 삼림이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칼리아 중부의 숲엔 수백 개에 달하는 은빛늑대의 부락들이 있는데 그 모두를 공격해 무 릎 꿇린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요 3년 동안에는 십여 명 정도의 단위로 벌이는 소규모 전투가 대부분이었고, 마리스의 부락 하켄처럼 때때로 하나의 부락을 둘러싸고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베르디아군과 하켄 부락 사이에도 은빛늑대의 부락이 여러 군데 더 있었기 때문에 설마 다른 부락을 제치고 신수의 어금니 성채에 가 까운 부락을 노려 공격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마리스에겐 정 말 미안해." 하켄 이야기가 나오자 거쉰은 정말 미안했던지 살집 좋은 몸을 움 츠렸다. 그리고 신수의 어금니 성채에는 천 명 규모의 전사가 모여들 어 있으며 이 성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열 배 이상의 군대가 필요할 것이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마리스는 슬픈 미소를 지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레일 이 노리는 것은 마리스의 목숨이었다. 성채에서 멀리 떨어져 있든 가 까이 있든 관계가 없었다. "신수의 어금니에는 거의 모든 부족에서 전사들이 모여들었지. 그 래서 숫자는 적지만 아주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 중에는 마법사도 있다구." "마법사? 수인과 다른 사람들인가?" 레일즈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되물었다. "수인은 마법사가 아니야. 신수로부터 능력을 부여받았을 뿐이라 구." 거쉰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레일즈의 눈에는 그것도 마법의 일종으로 보였다. 다낭에서는 사제들이 일으키는 기적조차 신성마법 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마술을 쓰거나 정령을 부리는 사람도 있지." "정령사까지?" 레일즈는 문득 사이아와 비인을 쳐다봤다. 두 사람도 의외였던 듯 눈을 반짝였다. "암흑민족만큼은 아니지만 여기 있는 이살리도 그 가운데 하나야. 마술을 쓰는 사람이지." 그렇게 말하며 거쉰은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나도 마술사랍니다." 사이아가 기뻐하며 검은 옷의 마술사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관 심 없다는 듯 고개를 끄떡할 뿐이었다. 레일즈는 무뚝뚝한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마술사가 있다는 사실은 어쨌든 든든했다. 마술사들이 가담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전력이 현저히 차이 가 난다. 베르디아의 암흑민족에게는 마술사와 정령사, 나아가선 암 흑신을 신봉하는 어둠의 사제들마저 전투에 가담하기 때문에 그들의 마법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역시 마법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 법일 터였다. "우리들의 사정은 대충 말했다. 너희들이 신수의 어금니에 가담하 려면 포레슬에 사는 고민족이라고 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그들 가운데에는 엘프와 드워프도 있지.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건 곤란 한 문젠데. 우리들 사이에선 베르디아 말을 쓸 줄 아는 사람도 여럿 있지만보통 대화 때에는 크리스타니아 말밖에 쓰질 않거든." "대백조부족이라고 하면 어떨까? 오랫동안 분리되어 있어서 말이 변했다고 하면 문제 없을 것 같은데." "이거 웬일이야, 네가 다 의견을 내고." 거쉰은 장신의 전사 칼리오를 보고 웃었다. 그가 승인자라는 별명 을 가진 황금사자 딜레온 부족의 사람이라는 것을 레일즈는 이미 알 고 있었다. 신수 딜레온은 신수왕은 아니지만 그의 승인이 없으면 신수왕의 말조차도 권위를 얻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신수의 종자인 만큼 사자 부족은 정의와 공평을 소중히 여긴다고 거쉰은 가르쳐 주었다. 레일즈도 그의 성실성은 신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자한 사나 이였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위엄이 느껴졌다. 다낭에서 흔히 보는 귀 족들처럼 자기의 지위와 권력에 의존할 뿐인 그런 위엄이 아니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뒷받침된 진정한 위엄이었다. "어떻게 둘러대도 의심받을 게 틀림없어. 이왕 거짓말을 할 거면 큰 거짓말을 해야 들키지 않는 법이지." 이살리가 목을 울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정확히 핵심을 찌르는데." 밧소가 싱글거리며 이살리에게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