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곤충기 4 전갈의 결투 저자: 오쿠모토 다이사부로 역자: 이종은 감수: 김학열 출판사: (주)고려원미디어 책머리에 (이 책에 나오는 곤충들 4) '곤충기'는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가 약 60 년 간의 연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하여 쓴 책입니다. 원서는 분량이 많고, 모두 10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중에서 특히 재미있고 중요한 부분만을 추려서 고쳐 쓴 것입니다. 총 8권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권은 파브르의 전기입니다. 거미는 곤충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벌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훌륭한 솜씨를 가진 벌레입니다. 여기서는, 배가 검은 독거미로 알려져 있으며 땅에 수직으로 구멍을 파고 숨어 살면서 먹이를 잡는 나르본늑대거미와, 기하학을 배운 것처럼 멋진 그물을 치는 호랑거미 종류들의 생활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갈은 우리 나라에서는 조금 낯설지만 더운 나라에서는 흔합니다. 강한 독을 지녔고, 생김새도 무서워서 유럽에서는 옛날 그리스시대부터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갈자리'라는 별자리도 있을 정도입니다. 거칠고 메마른 땅에서 전갈이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던 파프르 선생님은 아르마스의 정원에 전갈을 여러 마리 잡아다 기르면서 그들의 놀라운 생활을 자세히 조사했습니다. 두 팔을 가슴에 모으고 풀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마귀를 보면 마치 기도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기도하는 벌레'라는 뜻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러나 이 벌레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자세로 가만히 먹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먹이가 아무 생각없이 다가오면 낫처럼 생긴 앞다리를 번개같이 펼쳐 가엾은 벌레를 무참히 잡아먹습니다. I. 나르본늑대거미 1. 독거미 연구 거미는 친구다. 위대한 역사가인 미슐레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하지만, '곤충'이라는 대단히 시적이고 아름다운 책도 썼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미슐레가 쓴 이 책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어릴 때 무척 가난했던 미슐레는 인쇄소 지하실에서 홀로 활자 줍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어두운 방이어서 오후가 돼야 겨우 환기통 철창 사이로 어린 소년이 갖고 있는 활자 상자에 비스듬히 햇볕이 들곤 하였습니다. 이 때 거미 한 마리가 벽의 한쪽 귀퉁이에서 살금살금 기어 나와 거미줄 끝에 매달려 햇볕이 비치기 시작한 활자 상자 가장자리에 사뿐히 내려앉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두운 방에 빛이 든 기쁨을 소년과 함께하기 위하여 온 것 같았습니다. 미슐레는 그 때까지 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나 거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서도 느껴 보지 못했던 따뜻한 친밀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거미줄을 타고 쑤욱 내려오는 거미를 볼 때면 언제나 미슐레가 '곤충'이라는 책에서 그린 이런 정경을 머리에 떠올리곤 했습니다. "친구가 되어 줄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벗이 될 벌레를 찾지만, 그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는 일은 없어."라고 혼자말로 중얼거리곤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거미의 생활을 열심히 연구하게 된 것은 이 미슐레의 글 때문이기도 했지만, 거미의 습성에는 묘한 점이 많아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거미가 연구실에 들어와도 쫓아내지 않는다. 거미가 내 책장이나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거미줄을 쳐도 그대로 내버려둔다. 집 밖에 있는 거미집도 자세히 살피면서 돌아다닌다. 거미와 친숙하게 지내면서 단순히 인생의 괴로움이나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거미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 거미는 때때로 해답을 준다. 그럼, 이제부터 파브르 선생님의 관찰 실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웬지 거미를 싢어한다. 거미는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같이 곤충이 아닙니다. 거미는 다리를 여덟 개나 갖고 있으며, 몸이 곤충과 같이 머리, 가슴, 배 등으로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미의 머리와 가슴은 붙어 있어서 '두흉부'라고 부릅니다. 거미는 배 끝에서 실을 내어 멋진 그물을 쳐 놓고 거기 날아든 벌레를 잡습니다. 그물을 치지 않는 거미는 땅 위나 나무줄기, 또는 집 안의 벽 위를 기어다니면서 사냥을 합니다. 거미들 중에는 사람이 사는 집에 살고 있는 것도 많고 들이나 산에서 살고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비나 장수풍뎅이와 같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곤충에 비해 거미는 그 생김새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봅니다. 거미를 보면 곧바로 발로 짓밟아 버리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편, 거미가 여러 가지 해충을 잡아먹는 좋은 벌레라는 것도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 때문에 프랑스에는 거미에 관한 속담도 있습니다. "아침 거미는 가벼운 근심거리가 생길 징조이고, 낮 거미는 약간 돈이 생길 징조이며, 밤 거미는 머지않아 좋은 일이 있을 징조"라고도 하고, "거미를 보는 즉시 죽여 버리면 좋은 일이 생긴다."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이 거미를 싫어해 왔던 이유는 그 모습이 흉측한 것 말고도, 벌레가 거미에게 물리면 곧 죽어 버리기 때문에 거미에는 독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미의 독은 약해서 벌레를 죽일 정도는 되나 사람에게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미 연구가들은 전세계 거미들 중 99.9 퍼센트는 사람에게 해가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약한 독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 문제는 거미의 생김새에 있습니다. 남미에는 새잡이거미(왕땅거미)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거미 종류가 있습니다. 그 크기는 어른 손을 한껏 폈을 때만큼 크며 몸에는 센 털이 나 있습니다. 종류에 따라서는 그 털이 보라색 광택이 나서 대단히 아름다우나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은 소름이 끼칩니다. 이런 놈에게 물리면 단번에 죽어 버린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일본의 한 백화점에서는 진열장의 보석을 지키는 데 이 거미를 썼다고 합니다. 이 거미가 진열장 속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도둑도 보석에 손을 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새잡이거미의 독 역시 약해서 보통 거미와 다름없습니다. 이런 거미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무르는 것을 보면 모두가 그 용기에 감탄하겠지요. 실제로 미국 같은 데서는 이 거미를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 돌봐 주면 20 년 이상도 산다고 합니다. 진짜 독거미 앞에서 전세계 거미의 99.9 퍼센트가 사람에게는 거의 영향을 주지않는 약한 독밖에 갖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나머지 0.1 퍼센트 중에는 무서운 독을 갖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유럽에 살고 있는 진짜 독거미 중에 말미냐트과부거미라는 것이 있습니다. 과부란 남편을 잃은 여인을 뜻하는데, 이 거미의 암컷은 짝짓기 후 수컷을 먹어 버리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거미는 스스로 과부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코르시카 섬에서 이 말미냐트과부거미를 관찰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이 태어나서 자란 이 작은 섬의 중학교에서 파브르 선생님은 4 년 간 학생들에게 물리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 곳의 생물들 중에는 남프랑스보다 더 남쪽 계통의 종류가 많고, 그 중에는 아프리카와 공통되는 종류도 있습니다. 말미냐트과부거미는 밭에서 살면서 두렁과 두렁 사이에 그물을 치고 메뚜기 등을 잡아먹습니다. 검은 벨벳을 덮은 것 같은 몸에 진홍색 반점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아름다운 거미입니다. 코르시카 섬의 농부들 이야기대로라면 이 거미에 물리면 심한 고통을 받다가 죽는 수도 있는 듯 합니다. 의사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다랑주라늑대거미를 무서워합니다. 이 거미에 물리면 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손발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며 미친 듯이 춤을 추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거미에 물렸을 때 생기는 증상을 다랑주라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랑주라병은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남부 유럽에 널리 유행하였는데,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격렬한 춤을 추면 낫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치유를 위한 음악까지 작곡되어 그 곡명도 다랑주라라고 불렀습니다. 환자가 생기면 특별한 악단이 찾아와서 이 곡을 연주해 병을 고쳤다고 합니다. 유명한 작곡가인 로시니나 쇼팽도 이 곡의 형식을 따라 다랑주라라는 템포가 빠른 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조사해 보면 이 다랑주라늑대거미도 사람의 몸에 해를 끼칠 만큼의 독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14세기에서 17세기에 유행한 다랑주라병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열에 들뜬 것처럼 춤추기 시작하는 그 병은 지금은 '집단 히스테리'라는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랑주라늑대거미와 비슷한 종류는 파브르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정착해서 살았던 세리냥의 집 정원에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몸길이가 2--3센티 정도로 대단히 크고 건장해 보이는 나르본늑대거미입니다. 나르본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큰 도시인데, 원래는 랑그도크 지방과 프로방스 지방을 합쳐서 나르본 지방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거미는 그 나르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미였으므로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보기에 강한 독을 갖고 있을 듯하여 옛날에는 이 늑대거미 종류를 '독거미'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그 때는 나르본늑대거미가 아니고 나르본독거미라고 했습니다. 영어로는 이 거미 종류를 늑대거미라고 합니다. 늑대처럼 먹이에 덤벼드는 억센 거미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거미연구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이 나르본늑대거미를 이용해 거미의 습성을 조사하려고 했습니다. 나르본늑대거미의 집의 모양새, 먹이를 노리면서 기다리는 방법, 먹이를 잡았을 때 죽이는 방법 등을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검은배독거미 나르본늑대거미는 배의 아랫쪽이 검은색이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은 '검은배독거미'라고 불렀습니다. 다리에는 회색과 흰색의 점무늬가 있습니다. 밭으로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른 돌투성이 땅에서 이 거미는 살고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세리냥의 자기 집 정원을 아르마스라고 불렀습니다. 아르마스란 프로방스 말로 '황무지'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나르본늑대거미의 집이 20개쯤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정원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관찰하는 동안 거미의 집 앞을 지날 때면 꼭 잠깐씩 들여다보곤 합니다. 거미는 집 속에서 밖을 엿보고 있습니다. 두 개의 큰 눈과 네 개의 아주 작은 눈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있습니다. 거미에게는 이 밖에도 두 개의 큰 눈이 더 있으나 가려져 있어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넓은 빈터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곳이 무성한 숲이었으나 포도주를 만들어 팔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내고 포도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후 포도 뿌리에서 즙을 빨아먹는 진딧물의 일종인 포도뿌리혹벌레가 전국에 크게 번지면서 프랑스의 포도나무가 모두 죽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 이 곳의 포도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후로 아무도 돌보지 않아 봄, 가을의 장대비로 땅 표면에 있던 기름진 흙이 씻겨 내려가면서 여름이면 딱딱하게 말라 버리는 거친 땅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남은 것이라고는 얼마 안 되는 잡초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작은 돌뿐입니다. 그래도 나르본늑대거미에게는 이런 곳이 천국 같은 곳이어서 한 시간만 찾으면 100개 정도의 집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많습니다. 나르본늑대거미의 집을 파보면 깊이가 30센티쯤 됩니다. 집은 지름이 2--3센티가량 되는 둥근 우물 같은 구멍으로 처음에는 곧장 내려가다가 밑에서는 옆으로 구부러져 있습니다. 집의 입구는 망루로 쓸 수 있는 벽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은 짚이나 풀잎, 또는 모래를 배 끝에서 나오는 거미줄로 엮어서 만든 튼튼한 것입니다. 일단 망루가 완성된 다음에도 거미는 집의 입구 근처에 있는 마른 풀을 쉴 새 없이 끌어당겨서 거미줄로 엮어 벽을 보수합니다. 집 근처에 모래가 많으면 그 모래알을 거미줄로 엮어서 튼튼한 돌담을 만드는 일도 많습니다. 이렇게 만든 것은 분명히 마른 잎을 엮어서 만든 것보다 튼튼하겠지요. 집의 입구에서 얼마간 들어간 곳까지는 안쪽 벽이 거미줄 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거미줄로 다진 것이지만 먹이가 근처를 지나갈 때면 이것을 발판으로 사다리를 오르듯 재빨리 밖으로 기어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미를 '낚는' 방법 파브르 선생님은 거미를 잡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먼저 풀 이삭을 거미집 입구에서 흔들어 벌레가 날 때 내는 소리를 흉내내 보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에 앞서 이 거미류를 연구한 레옹 뒤프르는 이런 방법으로 거미를 입구까지 꾀어 집 옆에서 칼로 비스듬히 흙을 찔러 입구를 막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르본늑대거미는 조심성이 많아 좀처럼 밖으로 기어 나오지 않습니다. 중간까지 나온 뒤 거기에 머물면서 밖에서 어떤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살핍니다. 그리고 이 근처의 흙은 무척 단단하여 칼이 단번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미리 크게 자란 풀 이삭을 준비합니다. 그것을 구멍 속 깊이 밀어 넣고 움직이거나 빙빙 돌리면 거미는 귀찮다는 듯이 그것을 뭅니다. 거미가 물고 늘어진 것이 손에 느껴지면 풀 이삭을 살살 당깁니다. 그러면 거미는 구멍 안쪽의 벽에 다리를 걸고 버팁니다. 이것을 천천히 끌듯이 당겨 올립니다. 이 때,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몸을 될 수 있는 대로 낯추는 것이 좋습니다. '앗, 사람이다!'하고 생각하면 거미는 물고 있던 풀 이삭을 놓고 구멍 깊은 곳으로 싹 숨어 버립니다. 조금씩조금씩 입구까지 거미를 끌어내어 입구 밖으로 나오는 순간 휙 낚아챕니다. 천천히 하면 달아나 버립니다. 마침내 거미는 풀 이삭을 문 채 집 밖으로 낚여 나옵니다. 밖으로 나온 거미는 '아차! 실수했구나.'하는 얼굴로 그 곳에 멈추어서 도망치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마음대로입니다. 집 구멍을 손으로 막고 보릿짚으로 슬슬 종이 주머니에 몰아넣으면 됩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이 찾아낸 좀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벌레를 쓰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호박벌을 여러 마리 잡아 왔습니다. 그것을 거미집보다 지름이 큰 유리병에 넣고 거미집 입구에 거꾸로 씌웁니다. 공처럼 생긴 털투성이의 이 벌은 처음에는 윙윙 소리를 내면서 병 속을 날아다니다 얼마 안 가서 거미집 구멍을 발견하고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벌은 땅속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구멍을 보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거미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은 듯합니다. 벌이 구멍에 들어가면 안에서 거미가 올라옵니다. 밖에서 들으면 거미에게 잡힌 벌이 발버둥치는 듯한 소리가 윙윙 희미하게 들립니다. 그 소리는 곧 조용해집니다. 그 때 유리병을 치우고 가늘고 긴 핀셋을 구멍에 넣어 벌을 꺼내 봅니다. 벌은 벌써 죽어 있습니다. 꿀을 빨아올리는 긴 주둥이를 길게 늘어뜨리고 꼼짝도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핀셋으로 끄집어 낸 벌에는 거미가 매달려 구멍 입구까지 딸려 올라왔습니다. 거미는 입구까지 와서 사람이 있는 것을 눈치채면 먹이를 놓고 집 속 깊은 곳으로 후다닥 도망쳐 버립니다. 그럴 때는 먹이인 벌을 입구나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아두면 먹이를 되찾으러 구멍에서 나옵니다. 그 때 재빨리 구멍을 돌이나 손으로 막아 버립니다. 그러면 거미는 도망칠 곳을 잃어버려 간단히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큰 호박벌도 단숨에 죽인다. 그 당시 파브르 선생님은 거미를 잡아다 키우는 일보다 거미가 어떻게 먹이를 공격하는가 하는 것에 더 흥미를 가졌습니다. 즉, 제2권에 소개된, '사냥벌'이 먹이를 쏘아 마비시키는 공격 방법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알고 싶어었던 것입니다. 거미는 사냥벌과 같이 먹이를 마비시켜 애벌레의 식량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곧바로 먹어 버리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빨리 죽이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거미의 먹이가 되는 벌레들 중에는 억센 놈도 있습니다. 힘센 큰턱으로 무는 여치라든지, 독침을 갖고 있는 말벌이나 호박벌 등도 이 거미집 입구 근처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거미는 이런 상대를 어떻게 공격할까요? 다른 거미, 예를 들면 호랑거미의 경우는 자기가 친 그물에 걸린 먹이 옆으로 달려기서 거미줄을 던집니다. 그러면 먹이는 거미줄에 온몸이 감겨 꼼짝못하게 됩니다. 이 때 독이빨로 물어 버린 후 옆에서 먹이가 죽기만 기다립니다. 이렇게 해서 거미는 위기를 넘깁니다. 그러나 늑대거미는 땅에 구멍을 파고 사는 거미입니다. 공중에 거미줄을 치지도 않고 거미줄로 상대를 꽁꽁 묶을 수도 없습니다. 늑대거미의 경우는 먹이에 달려들어 날뛰는 상대를 다리로 누르고 이빨로 뭅니다. 그러면 먹이의 어느 곳을 물까요? 호박벌을 써서 실험해 보면, 거미와 벌이 구멍 안에서 만났구나 생각되는 순간 핀셋으로 아무리 빨리 끄집어내도 벌은 벌써 주등이를 축 늘어뜨리고 완전히 죽어 있습니다. 즉사한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선택한 먹이는 호박벌류 중에서도 제일 큰 종류로 힘도 세고 거미의 이빨 못지않은 독침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미가 반드시 싸움에서 이깁니다. 뿐만아니라 승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며 거미는 가벼운 상처 하나 입는 일이 없습니다. 거미는 도대체 벌의 어디를 어떻게 물까요? 거미가 벌을 무는 곳은 구멍 속입니다. 따라서 그 순간을 볼 수가 없습니다. 파브르 섬생님은 거미에 희생된 호박벌의 몸을 확대경으로 자세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흔적은 없었습니다. 거미의 이빨은 아주 가늘어서 큰 구멍 같은 것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거미와 벌을 유리병 속에 함께 넣어 보았지만 거미와 벌은 모두 놀라 당황하고만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싸우러 들지 않았습니다. 유리병에 꿀벌이나 그 밖의 작은 벌을 넣어 주면 거미는 밤중에 덤벼듭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거미에게 먹힌 벌의 시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큰 호박벌쯤 되면 거미는 유리병 속에서는 공격하지 않습니다. 무서워서일까요? 유리병의 크기가 크면 거미와 호박벌은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는 시험관 속에 두 마리를 넣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시험관 아래쪽은 두 마리가 나란히 설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제 서로간에 심한 격투가 벌어지겠지요. "됐다! 이제는 거미가 벌을 무는 광경을 보게 된다."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지만 역시 실패였습니다. 서로 상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만 했습니다. 거미는 자기 집 밖에서는 대단히 겁이 많아져 싸움을 걸지 않으며, 호박벌의 침도 역시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먼저 상대를 공격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래서는 실험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음, 실험실에서는 안 되겠는걸.' 이렇게 생각한 파브르 선생님은 다시 집 밖의 거미집까지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급소를 알고 있었어! 호박벌은 땅에 구멍이 있는 것을 보면 곧 그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성질이 있어서 거미에게 물리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구멍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힘센 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눈앞의 꽃에 윙 하며 아주 큰 보랏빛어리호박벌이 날아왔습니다. "이거야! 이거!" 선생님은 포충망을 휘둘러 보랏빛어리호박벌을 잡았습니다. 이것은 온몸이 짙은 검은색이며 날개가 보라색으로 번득이는 큰놈입니다. 이 벌에 쏘이면 매우 아프고 심하게 부어오릅니다. 선생님은 이 벌을 여러 마리 잡아서 유리병에 넣고 거미집 위에 덮을 생각이었습니다. 먼저 풀 이삭을 따서 거미의 집에 찔러 넣고 살살 거미를 꾑니다. 거미가 배가 고파서 한판 벌일 생각이 충분히 있으면 이 소리를 듣고 위로 올라올 것입니다. 그래도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면 그 집은 그만두고 다음 집으로 옮깁니다. 이렇게 찾아낸 거미의 집에 보랏빛어리호박벌이 들어 있는 유리병을 덮어씌웠습니다. 억센 벌은 유리병 속에서 윙윙거리고 있습니다. 거미가 집 속에서 나왔습니다. 입구에서 주의 깊게 벌의 모양을 살핍니다. 10분, 15분, 30분^5,5,5^ 시간이 지나갑니다. 얼마 후 거미는 집 속 깊은 곳으로 되돌아가 버렸습니다. '야! 상대가 너무 커. 이래서야 내가 당해.'라고 생각했을까요? 선생님은 다음 거미집에서도 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다음도, 그 다음다음도 마찬가지로 거미는 입구 근처에서 노리고만 있지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역시 안 되겠는데. 이 방법으로 안 되면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될까^5,5,5^?" 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선생님은 계속하여 거미집을 바꿔 가며 끈기 있게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연히 성공했습니다. 구멍 속에 있던 거미는 아마 대단히 배가 고팠던 모양입니다. 유리병을 덮어씌워 보랏빛어리호박벌이 윙윙거리자 후다닥 기어 나왔습니다. 순식간의 일입니다. 거미가 덤볐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써 벌은 죽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거미가 어디를 물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거미가 벌을 문 채로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니 거미의 이빨은 벌의 목덜미에 꽉 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급소를 알고 있었어!" 파브르 선생님은 감탄하였습니다. 목덜미는 가슴으로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신경의 중심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아침 8시부터 참을성 있게 여러 개의 거미집에 말벌이 든 유리병을 덮어씌워 거미가 벌의 목덜미를 무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제는 거미 독의 효력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이 필요합니다. 목 이외의 다른 곳을 무는 일이 있는가? 그 때 독의 효력은 어떤가? 벌레의 어디를 물면 가장 효력이 큰가? 이런 것이 알고 싶은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나르본늑대거미를 열 마리 이상 잡아서 유리병 속에 넣었습니다. 선생님의 연구실에 있는 큰 테이블 위는 이제 독거미투성이입니다. 겁이 많은 사람은 비명을 지를 지경입니다. 유리병 속에 먹이를 넣어 주어도 거미가 공격하는 일은 없으나 먹이를 핀셋으로 집어 그 주둥이에 대어 주면 곧 뭅니다. 먹이는 불쌍한 보라빛어리호박벌입니다. 목을 물리면 그렇게 억센 호박벌도 금방 죽습니다. 가슴을 찔렸을 때는 곧 죽지 않고 유리병 속에서 윙윙 몸부림치며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30분도 채 안 되어 쓰러져서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다리나 몸통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것마저 다음날 아침이면 멈춰 버립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목이 아닌 다른 곳을 물려도 독의 효력은 나타나지만 바로 죽지는 않습니다. 즉, 급소를 물지 않으면 거미도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통 같은 곳을 찌르면 벌의 반격을 받기 쉽습니다. 거미가 벌의 침이 있는 바로 옆을 물었을 때 거미의 입 근처를 벌침에 찔린 일이 몇번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거미는 다음날 죽습니다. 따라서 단번에 죽여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파브르 선생님이 거미집 입구에 어리호박벌 같은 위험한 큰 먹이를 놓아 주었을 때 거미가 왜 그렇게 좀처럼 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는지 이제 잘 알게 되었습니다. 보랏빛어리호박벌과 같이 큰 상대는 자칫 급소를 무는 데 실패하면 자기가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거미는 어리호박벌이 목의 급소를 내보일 때를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슬픈 실험 이번에는 여치 종류를 거미의 사냥감으로 써 보았습니다. 몸길이가 10센티 이상이나 되는 중베짱이, 머리가 크고 억센 큰턱을 갖고 있는 북방여치, 여치붙이 등이었습니다. 이렇게 몸이 큰 놈들이라도 목덜미를 물리면 순식간에 죽어 버립니다. 그러나 몸통 부분 등을 물렸을 때는 꽤 오래 살아 있습니다. 거미에 배를 물린 여치붙이는 유리벽에 열다섯 시간 동안이나 몸을 붙이고 있다가 죽으면서 미끄러져 떨어졌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오래 전에 사냥벌의 일종인 노래기벌의 독성을 시험할 때 비단벌레나 바구미의 신경 중심에 펜촉으로 암모니아를 주사하여 마비시킨 일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거미가 하는 것을 흉내내어 보았습니다. 가는 바늘 끝에 암모니아를 한 방울 묻혀서 어리호박벌이나 중베짱이의 목덜미를 찔러 보았습니다. 찔린 벌레는 곧바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거미에게 물렸을 때와는 달리 죽지 않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암모니아는 거미의 독처럼 강하지 않아서 그럴까요? 선생님은 거미의 독이 얼마나 강한가를 시험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곤충이 아닌 동물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 때 선생님은 집에서 새끼참새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가엾은 일이긴 했지만 새끼참새의 한쪽 다리를 거미에게 물려 보았습니다. 피가 조금 나왔고 물린 곳이 붉게 되다니 뒤이어 보라색으로 변했습니다. 새끼참새는 다른 한쪽 다리로 통통 뛰고 있습니다. 식욕은 왕성했습니다. 선생님의 딸들이 파리나 빵 부스러기, 살구 조각 등을 던져 주면 잘 먹었습니다. 거미의 독은 참새에게 효과가 있을 정도로 강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다시 건강해질 것이라고 선생님도 안심하였습니다. 거미에게 물리고 나서 열두 시간쯤 지났습니다. 참새는 더욱 건강해졌습니다. 모이도 잘 먹었고, 모이를 늦게 주면 짹짹 응석을 부립니다. 그러나 물린 다리는 여전히 아픈 모양입니다. 이틀 후 참새는 기운이 없어지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때때로 몸을 떨었습니다. 딸들은 손바닥으로 새끼참새를 감싸고 입김으로 따뜻하게 해 주었으나 결국 죽어 버렸습니다. 그 날 저녁 식사 때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집안 식구 모두가 그런 참혹한 실험을 한 파브르 선생님을 나무라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사실은 마음 속으로 크게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독의 효력은 동물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들로 시험을 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양상추 밭을 파헤치는 말썽꾼 두더지를 이용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두더지와 같이 몸집이 작은 포유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 죽게 됩니다. 잘 키울 수 있을까? 두더지를 큰 통에 넣고 여러 가지 곤충을 주었습니다. 중베짱이나 매미를 주면 즐겨 먹습니다. 마침내 두더지의 코끝을 나르본늑대거미에게 물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통에 놓아 주자 두더지는 끓임없이 코끝을 앞발로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약간 욱신거리는 모양입니다. 얼마 안 되어 식욕이 떨어지고, 다음날 저녁때는 매미를 주어도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물린 지 하루 반이 지나서 두더지는 죽어 버렸습니다. 참새나 두더지의 실험 결과 나르본늑대거미의 독은 곤충이 아닌 동물에게도 위험하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같은 큰 동물에게 이 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합니다. 현대의 거미 연구가들에 따르면 이 거미의 독은 처음에 말했던 바와 같이 사람에게는 대단한 것이 못 되는 모양입니다. 참새나 두더지와 비교하여 사람의 몸은 엄청나게 커서 아주 적은 양의 독으로는 효과가 없겠지요. 2. 늑대거미의 집 털실로 만든 망루 파브르 선생님은 나르본늑대거미를 대상으로 관찰과 실험을 되풀이하다가 본능적인 묘한 표현법을 여러 가지 발견하였습니다. 앞서 말한 거미의 집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자세히 조사해 봅시다. 파브르 선생님은 큰 화분에 흙을 넣고 철망을 씌운 다음 그 속에서 거미를 살게 했습니다. 햇볕이 잘드는 연구실 창가에 화분을 놓아두면 정원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나르본늑대거미는 일단 구멍을 파고 살게 되면 그 후로도 줄곧 그 속에서 사는 듯합니다. 선생님은 매일 거미를 보고 있었으나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가끔 입구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기어 나오는 일은 있으나 조금이라도 위험을 느끼면 재빨리 구멍 속으로 숨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늑대거미는 구멍 입구에 망루 같은 원통 모양의 벽을 만든다고 앞에서 말했는데,그 재료는 모두 작은 돌 부스러기나 마른 풀 등 바로 집 근처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재료를 구하러 멀리까지 가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이 거미에게 여러 가지 재료를 마음껏 준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로 큰 망루를 압구에 만들까?'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이 거미를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곳에서 흙을 가져다 큰 화분에 담았습니다. 화분의 높이는 20센티 정도로 하고 물을 조금 뿌려서 질척하게 한 다음 거미집 구멍 정도로 굵은 갈대를 세우고 주위에 흙을 넣어 탕탕 쳐서 굳혔습니다. 갈대를 빼내면 곧은 우물과 같은 구멍이 생깁니다. 그리고 나서 속에 나르본늑대 거미를 넣으면 됩니다. 거미는 그 속에서 만족스러운 듯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일을 생각하여 위에 철망을 덮어 둡니다. 늑대거미는 이 화분에서 도망칠 수는 없으나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화분 속에 거미를 지나치게 많이 넣지 않는 것입니다. 이 거미는 자칫 잘못하면 서로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거미가 어떤 망루를 만드는지 봅시다. 파브르 선생님이 넣어 준 것은 어항 밑에 깔아 주는 둥근 자갈과 짧은 가죽 끈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재미없다고 생각한 파브르 선생님은 5--6센티로 자른 여러 가지의 굵은 털실을 더 넣어 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색의 털실을 쓴 것에는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거미는 눈을 여덟 개나 갖고 있습니다. 그 중 네 개는 구멍 속에 있을 때도 번쩍이는 것이 보일 정도로 큽니다. 이 잘 보일 듯한 눈으로 어느 색인가를 고를지도 모른다고 선생님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털실의 색은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흰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미가 작업을 하는 것은 밤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파브르 선생님은 일하고 있는 거미를 볼 수 없었지만 아침이 되면 매일 조금씩 거미가 망루를 쌓아 올린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달이 지났습니다. 충분한 재료를 공급받은 거미는 야외에 사는 다른 동료가 지금까지 만든 일이 없는 훌륭한 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구멍 입구에 먼저 작은 돌을 쌓고 그 위에 가죽 끈과 털실을 거미줄로 엮어 높이 4--5센티나 되는 털실 원통 같은 것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털실의 색은 마구 섞여 있었습니다. 나르본늑대거미는 색깔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합니다. 선생님의 연구실에 들러 이 여러 가지색으로 된 원통을 본 사람은 선생님이 어떤 실험에 쓰려고 일부러 만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니, 이것은 거미가 제 힘으로 만든 것이오."하고 선생님이 말하면 누구나, "네? 거미가요?"하고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재료만 있으면 나르본늑대거미는 멋있는 망루를 만드는 것입니다. 거미가 이렇게 훌륭한 뜨개질의 명수일 거라고 그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노리고 기다렸다 덮친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나 비기 올 듯한 때면 거미는 집의 입구를 뚜껑을 만들어 덮습니다. 이 뚜껑은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무 조각이나 먹다 남은 먹이를 거미줄로 엮은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잠자리 머리나 메뚜기 다리 같은 것이 섞여 있습니다. 그 모양은 마치 적의 목을 자기집 문간에 장식해 놓은 '목 사냥족'과 같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미는 단순히 그 곳에 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거미가 왜 이런 뚜껑을 만드는지는 잘 모릅니다. 8월이 되어 햇볕이 제일 강할 때 뚜껑을 만들지만, 며칠 지나면 햇볕은 변함없이 강한데도 거미는 이 뚜껑을 뚫고 일광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10월이 되어 비가 올 듯한 때에도 뚜껑을 만드나 얼마 뒤 여전히 비가 오는에도 뚜껑을 뚫는 일이 있습니다. 뚜껑을 덮는 이유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잘 알 수 없습니다. 뚜껑을 만들고 나서 얼마 후에 뚫고, 다시 만들고는 뚫는 일이 되풀이 되는 동안에 가장자리의 원통형 벽은 조금씩 커집니다. 거미는 집 안에서 이 원통형 벽이 있는 곳까지 올라와 번쩍이는 눈빛으로 무언가 노려보고 있습니다. 먹이가 가까이 다가오자 거미는 원통형 망루 위에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달려들어 먹이의 목덜미에 독 이빨을 찔러 넣었습니다. 제아무리 재빠른 벌레라도 거미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거미는 그 대신 먹이가 조금이라도 멀리 지나가면 결코 덮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 곳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는 노리면서 기다리는 점에 있어서는 참을성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많이 먹어서 저장할 수가 있으므로 한 번 먹고 난 다음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기르고 있던 거미에게 먹이 주는 것을 몇 주 동안 깜박 잊은 적이 있었는데도 거미는 아주 건강했습니다. 다 자라면 집 속에 틀어박히는 나르본늑대거미도 어릴 때는 집을 파지 않고 땅 위를 기어다닙니다. 먹이를 찾으면 뒤를 쫓아가 그것이 풀잎으로 기어올라 날아가려는 순간에 갑자기 달려들어 잡아 버립니다. 갓 태어난 어린 거미가 파리를 잡을 때도 그 날쌘 동작에 놀랄 정도입니다. 파리가 날려는 순간 거미가 덮치는 속도는 고양이가 쥐를 발톱으로 움켜쥐는 것 이상으로 재빠른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자라서 배가 둥글게 부풀어 무거워지면 더 이상 이런 날쌘 동작은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거미는 구멍을 파고 그 속에서 기다리다가 덤비게 됩니다. 거미가 구멍을 파는 것은 가을을 지나 차차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입니다. 9월이 되면 이 거미의 배는 검은 벨벳 앞치마를 두른 것처럼 변합니다. 달밤에 거미들은 서로 만나서 짝짓기를 합니다. 그 뒤에 미처 도망가지 못한 수컷은 먹혀 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10월이 되면 구멍을 파기 시작합니다. 거미의 집은 처음에는 연필 두께 정도이나 점점 커져서 2 년쯤 지나면 지름이 2--3 정도가 됩니다. 시간은 되돌이킬 수 없다. 밖에서 거미를 채집하여 방으로 가져왔을 때 화분에 있는 흙에 우물 모양의 구멍을 뚫어 주면 거미는 곧 구멍에 들어가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잘 지냅니다. 그리고 이 때에는 구멍을 그 이상 넓히거나 더 깊이 파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거미를 구멍이 없는 흙 위에 놓아 봅시다. 건강해 보이는 거미는 곧 구멍을 파겠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몇 주가 지나도 거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먹이를 주어도 흥미가 없는 얼굴을 하고 덤벼들지도 않습니다. 도데체 어떻게 된 걸까요? 점점 기운이 없어져서 그대로 죽어버립니다. 몸은 튼튼하니까 구멍을 파고 저 멋진 망루를 만들면 되는데, 그리고 메뚜기든 무엇이든 덤벼들면 한 방이면 그만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멍하니 넋을 잃고 있다가 거미는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더 어린 거미로 실험해 봅시다. 2월 말에 파브르 선생님은 여섯 마리의 어린 거미를 구멍 속에서 채집하였습니다. 완전히 자란 거미의 약 반 정도 되는 크기였습니다. 구멍의 지름도 사람의 새끼손가락 정도였습니다. 구멍 주위에 파낸 흙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집은 방금 판 것인 듯합니다. 이런 거미로 실험을 하면 조건에 따라 두 가지 결과가 나옵니다. 먼저 연필 끝으로 3센티 정도 깊이의 구멍을 만든 다음 거미를 놓아주면 거미는 부지런히 구멍을 파고 들어가 그것을 더 깊은 구멍으로 만들고 곧 이어 망루도 만듭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미리 흙에 구멍을 뚫어 주지 않았을 경우 거미는 아무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주어도 먹지 않고 죽어 버립니다. 거미의 일생에서 구멍을 파는 시기는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가 지나면 땅 파는 방법을 잊어버리거나 땅을 파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연필로 구멍을 만들어 준 곳의 어린 거미는 밖에서 자기 집을 파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움푹 팬 곳을 자기가 파던 구멍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계속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구멍을 뚫어 주지 않은 쪽의 거미는 전혀 구멍을 파려고 하지 않습니다. 곤충에게는 끝나 버린 일을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하여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시계의 바늘이 뒤로 돌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3. 알을 지키는 어미거미 알을 싼 비단 주머니 8월 초의 일이었습니다. 아르마스의 뜰에서 아이들이 큰소리로 파브르 선생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좋은 것을 찾아낸 모양입니다. "아빠! 이리 와 보세요. 좋은 것이 있어요." 선생님이 달려가 보니 만년향 숲 속에서 큰 나르본늑대거미 암컷이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 거미가 무엇을 먹고 있는 거예요?"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잘 들여다보니 이 거미는 다른 거미를 먹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종류가 아닌 같은 종류의 수컷이었습니다. 계절은 아직 좀 이른 편이나 짝짓기가 끝난 다음 이 거미의 암컷이 수컷을 먹어 버린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무서운 신부를 잡아다 모래가 가득 든 화분에 넣고 위에 철망을 덮었습니다. 배가 불러 있었기 때문에 곧 알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열흘쯤 지나서 평상시와 같이 일찍 일어나 연구실에 들어간 선생님은 이 거미가 알을 낳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모래 위에 거친 비단 그물이 단단하게 처져 있었습니다. 그 크기는 사람의 손바닥 정도였습니다. 거미는 이 그물 위에 동전 크기만한 둥근 방석 같은 것을 거미줄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배 끝에 거미줄을 내는 혹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그물을 치고 있는 광경은 마치 사람이 비단을 짜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둥근 방석 가장자리에는 많은 거미줄이 붙어 있어서 중심부는 약간 오목하게 되어 있습니다. 곧 이어 거미는 그 방석 중심에 노란색의 끈끈한 알 덩어리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거미는 또다시 배 끝을 위아래로 움직여 이 알 덩어리에 많은 거미줄을 덮어 씌웠습니다. 다음엔 아래쪽의 거친 그물과 이 둥근 방석을 묶고 있는 거미줄을 다리로 뚝, 뚝 잘라 버립니다. 모두 자르고 나면 이번에는 이빨로 이 둥근 방석을 물고 가장자리를 조금씩 치켜올려 밑에 있는 거친 그물에서 떼어 내어 알 위로 말아 갑니다. 송편을 빚을 때 얇고 넓적하게 만든 반죽의 가장자리를 모아서 떡소를 싸는 것과 비슷합니다. 깨끗하고 예쁜 비단 공이 생겼습니다. 크기는 버찌만한데, 거미줄이 강해서 상당히 튼튼합니다. 거미는 아침 5시부터 시작하여 9시까지 알 주머니를 다 만들었습니다. 어미는 많이 피곤한지 이 둥근 알 주머니를 품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음날부터 거미는 이 알 주머니를 꼬리에 달고 다닙니다. 거미는 이 주머니를 결코 떼어 놓지 않습니다. 8월에 이 거미가 집에서 나온 것은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 뒤 집이 알 주머니를 만드는 장소로서 너무 비좁기 때문에 그대로 밖에서 지내는 것입니다. 수컷과 암컷이 만나는 것은 집 밖에서입니다. 수컷은 이 무서운 암컷을 찾아 집 안에까지 들어 갈 용기가 없었을까요? 넓은 곳에서라면 짝짓기를 한 후 재빨리 도망갈 기회가 조금은 있겠지요. 그래도 잡아먹히는 일이 많습니다만. 알 주머니를 다 만든 이 암컷은 이것을 몸에 붙인 채 끌고 다니면서 3주 정도 집 밖을 헤매 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알 주머니는 절대로 떼어 놓지 않는다. 나르본늑대거미의 어미가 알 주머니를 몸에 붙인 채 끌고 다닐 때 좀 짓궂은 장난을 해 봅시다. 파브르 선생님은 핀셋으로 주머니를 잡아당겨 빼앗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거미는 있는 힘을 다해 주머니를 움켜잡고는 핀셋을 물었습니다. 따각따각 소리가 날 정도로 심하게 물어뜯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무리해서 빼앗으려 하자 선생님과 거미 사이에 힘겨루기라도 벌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주머니를 놓아 주자 거미는 곧바로 배 끝에 알 주머니를 다시 붙인 다음 사람 쪽을 노려보면서 도망쳤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안간함을 다해 저항하는 거미로부터 알 주머니를 무리해서 떼어 내서 다른 어미의 알 주머니와 바꿔치기를 해 보았습니다. 거미는 곧바로 그 알 주머니를 다리로 꼭 잡아 배 끝에 붙였습니다. 아마도 다른 거미의 알 주머니라도 상관없는 듯합니다. 어느 것이나 아주 비슷하니까요. 실험을 거듭하면서 더욱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빼앗은 알 주머니 대신 점왕거미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알 주머니를 주어 보았습니다. 같은 거미줄로 되어 있어서 감촉은 아주 비슷하지만 모양은 전혀 다릅니다. 나르본늑대거미의 알 주머니는 공 모양인데 점왕거미의 알 주머니는 원뿔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미는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른 종류의 거미의 알 주머니를 몸에 달고도 매우 만족해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나르본늑대거미의 주머니와 닮은 코르크 공을 주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거미는 촉감이 전혀 다른 이 코르코 공도 기꺼이 자기 것처럼 꼭 붙드는 것입니다. 이 거미는 눈이 여덞 개나 있으므로 코르크 공쯤은 한눈에 자기 주머니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미거미는 이것을 소중하게 품고, 입가에 있는 수염으로 더듬어 보고 나서 진짜를 갖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몸에 붙여 끌고 다니는 것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좀더 실험을 해 보겠습니다. 흙 위에 진짜 알 주머니와 코르크 공을 함께 놓고 거미가 이것을 구별하는가를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거미를 그 곳에 놓아 주면 놀라운 속도로 달려가 갖는 것을 알주머니인 때가 있는가 하면 코르크인 때도 있습니다. 즉, 어느 쪽이든 먼저 다리에 닿은 것을 잡아 버리는 것입니다. 네 개의 코르크 공을 흙 위에 놓고 그 사이에 알 주머니를 한 개만 놓으면 거미는 어떻게 할까요? 이 때 거미는 대개 코르크 공을 갖습니다. 즉, 다리에 닿는 것을 갖는 셈입니다. 글쎄요, 물렁물렁하고 둥근 코르크 공이 알 주머니와 닮았기 때문에 거미가 헷갈린 것일까요? 솜을 공같이 뭉친 것이나 종이를 공같이 만든 것을 주어도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에 만족하여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옅은 갈색의 코르크는 거미줄로 된 알 주머니에 흙이 묻은 것과 같은 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런 색깔에 속은 것일까요? 솜 뭉치나 종이 공은 흰색이어서 거미줄로 된 주머니와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색깔이 완전히 다른 것을 주면 어떻게 할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빨간색 비단실 공을 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미는 이것도 소중히 끌어안는 것이었습니다. 참을성이 많은 선생님이지만 거미의 어리석음에 질려서 실험은 이 정도로 끝내 버렸습니다. 어미거미는 다리에 무엇이든 알 주머니 비슷한 것이 와서 닿기만 하면 그것으로 마음을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르본늑대거미의 어미는 알 주머니를 아주 소중하게 여깁니다. 한시도 자기 몸에서 떼놓지 않습니다. 집을 팔 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기저기 땅 위를 기어 다닐 때, 그 후 집 속에서 입구까지 나와 일광욕을 할 때나 위험을 느껴 집 속 깊이 숨어 버릴 때에도 이 알 주머니만은 절대로 몸에서 떼어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거미줄에 달아서 끌고 다니는 이런 큰 주머니는 여덟 개나 되는 다리에 엉킬 것처럼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데도 거미는 막무가내입니다. 늦여름의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알 주머니를 달고 있는 어미거미가 집의 깊은 구석에서 입구 쪽으로 올라옵니다. 알 주머니를 갖고 있지 않을 때 나르본늑대거미는 입구에서 몸 위부분을 뻗친 모습으로 기분좋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몸을 거꾸로 세워 몸의 윗부분을 집 속에 넣고 꽁무니쪽을 밖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흰 알 주머니를 뒷다리로 잡고 여기에 햇볕이 잘 들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거미는 알 주머니에 고루 햇볕이 들도록 그것을 다리로 천천히 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햇볕이 잘 쬐는 반나절 동안 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어미거미는 3--4주 동안이나 계속 매일 이렇게 알 주머니에 햇볕을 쬐어 줍니다. 새는 알을 까려고 새집에 웅크리고 앉아 가슴에 품어 주지만 이 거미는 알을 햇볕에 쬐어 따뜻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4. 여행은 바람을 타고 알에서 깨어난 새끼거미 9월 초가 되면 알 주머니 속의 새끼거미들이 알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기다립니다. 알 주머니에는 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안에서 새끼들이 깨어난 것을 알고 어미가 알 주머니를 쪼개는 것인지 또는 알 주머니가 저절로 터지는 것인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여러 마리의 새끼들이 속속 밖으로 나옵니다. 새끼들은 곧 어미의 다리를 타고 등에 기어오릅니다. 새끼의 수는 200 마리도 더 되어 어미의 등을 꽉 채웁니다. 이렇게 되면 알 주머니는 필요없게 되므로 밖으로 버려집니다. 어미의 등에 올라간 새끼들은 9월 초에서 다음해 4월초까지 7개월 동안 어미의 등을 떠나지 않고 붙어 있게 됩니다. 어미도 새끼를 한시도 떼어 놓지 않습니다. 때때로 파브르 선생님 댁의 옆 도로로 집시들이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고 떠들썩한 축제를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집시 어머니는 해먹(기둥이나 나무 사이에 매달아 침강으로 쓰는 그물 모양의 물건)같이 생긴 것에 어린아이를 넣어 가슴에 걸고, 또 다른 아이는 무동을 태워서 빠르게 걷습니다. 조금 자란 아이들은 어머니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가고, 그 바로 옆을 그 위의 형제들이 걸어갑니다. 그리고 제일 큰 아이는 밭둑에서 오디를 찾으며 맨 뒤를 따라갑니다. 검붉은 오디는 대단히 달고 맛이 좋습니다. 집시들은 축제가 있는 마을이나 거리를 찾아가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릅니다. 춤을 추고 점도 쳐 주고 해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버는 이들은 가난하긴 하지만 걸어가는 모습은 아주 자유롭고 즐거워 보입니다. '그러나 어린애를 많이 데리고 다니는 집시의 어머니도 늑대거미의 어미와는 상대가 안 됩니다. 거미의 어미가 데리고 다니는 새끼는 무려 200 마리가 넘으며 그것도 전부 어미의 등에 달라붙어 있으니까요.'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쓰고 있습니다. 새끼보는 일은 등에서 새끼거미들은 아주 온순해서 등에 꼭 달라붙은 채로 가만히 있습니다. 물론 다른 형제들과 싸우는 일도 없습니다. 잘 보면 서로 다리를 꼭 끼고 있습니다. 등 위를 덮고 있는 새끼거미가 너무나 많아 어미거미의 모습은 털실을 감아 놓은 공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어미는 새끼를 등에 업은 채로 집 속에서 꼼짝 않고 있거나, 날씨가 좋으면 일광욕을 합니다. 어미의 등에 살아 있는 누더기 모양으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새끼들은 먼지같이 밀려 떨어지는 수가 많습니다. 특히 집의 깊은 곳에서 위로 올라와 새끼들에게 일광욕을 시키려 할 때면 구멍의 벽에 어미의 등이 닿아 새끼가 쓸려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재빠른 새끼거미는 제 힘으로 곧 어미의 등에 기어 올라갑니다. 어미거미도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애써 새끼를 찾는 일도 없습니다. 떨어진 새끼 몇 마리에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새끼의 수는 200 마리가 넘으니까요. 어미거미는 이렇게 모든 힘을 다하여 새끼를 업고 있으나 이런 열성이 곧 새끼에 대한 애정인가 하면 아무래도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미거미는 제 새끼이든 다른 새끼이든 상관없이 등에 업고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것입니다. 제 1권을 읽은 사람은 에스파냐뿔똥풍뎅이의 어미가 다른 암컷이 만든 캡슐 모양의 육아용 구슬을 자기 것처럼 소중히 여기며 정성을 다해 돌보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육아용 구슬이라면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르본늑대거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등에 새끼를 가득 태우고 있는 거미 옆에 다른 어미의 새끼를 여러 마리 붓으로 털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떨어진 새끼거미들은 다른 어미거미의 다리를 타고 그 등으로 기어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미거미도 다른 어미의 새끼가 기어오르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둡니다. 등은 이제 꽉 차서 만원입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어미거미의 가슴 쪽에까지 매달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넘쳐흘러도 눈이 있는곳만은 남겨 둡니다. 어미거미의 눈이 가려지면 걷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말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다시 다른 어미의 새끼거미들을 털어 주었습니다. 이번에도 어미거미는 이 새끼거미들을 아무렇지고 않은 듯 업어 버립니다. 벌써 등은 꽉 차 있어 거미의 모습은 거미라기보다는 털실 공입니다. 새끼거미들은 쇨 새 없이 떨어지고 다시 기어오릅니다. 더 이상 새끼가 기어오른다면 이 어미는 꼼짝못하게 될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새끼거미들을 제 어미에게 돌려보내 주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즉, 새끼 거미를 등이 비어 있는 거미의 옆에 3분의 1씩 털어 주었습니다. 어느 새끼가 어느 어미의 것인지 구별할 수 없어 적당히 나누었지만 어미거미도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다른 집 새끼거나 자기 새끼거나 가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미의 등에서 털어 낸 새끼들이 있는 곳에 종류가 전혀 다른 흰 왕거미를 가져다 놓아 보았습니다. 새끼들은 잘됐다는 듯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거미의 몸 위에 기어오릅니다. 흰왕거미는 깜짝 놀라 필사적으로 다리를 휘둘러 귀찮은 새끼거미를 멀리 쫓으려고 하지만 새끼들은 막무가내로 끈질기게 물고늘어져 열 마리 정도가 등에 올라탔습니다. 이렇게 되자 흰왕거미는 '에잇, 기분 나빠!'하는 듯이 나자빠지면서 등을 땅 위에 부벼 댑니다. 이 와중에 다리가 떨어져 나가거나 죽게 되는 어린 새끼거미들도 있지만 흰왕거미가 일어나면 다시 '와아'하고 모두 다리에 매달려 등 위로 기어 올라갑니다. 흰왕거미는 다시 등을 땅에 부빕니다. 그렇게 계속 반복하는 동안에 마침내 혼줄이 난 새끼거미들은 기어오르는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좀 무서운 실험을 했습니다. 사육용 화분에 두 마리의 나르본늑대거미를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두 마리 모두 등에 새끼를 업고 있습니다. 이 거미는 좁은 곳에 두 마리 이상 있으면 곧 싸움을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어미거미들끼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서로 떨어져 있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화분이 작아 두 마리의 거리는 25센티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아침, 드디어 두 마리의 어미가 싸움을 시작하엿습니다. 잠시 후, 진 놈은 배가 천장을 향해 뒤집어져 있고 이긴 놈이 그 위를 타고 앉았습니다. 양쪽 모두가 큰 이빨을 벌리고 상대를 물려고 기회를 노리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 노려보다가 역시 위에 타고 앉은 것이 상대를 물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조금씩조금씩 상대를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싸움에 진 어미의 등에 있던 새끼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 새끼들은 아주 태평입니다. 어미가 먹히고 있는 동안에 무서운 적의 등에 올라가서 다른 새끼들과 섞여 꼭 달라붙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긴 어미도 상대의 새끼들이 기어오르는 것을 내버려둡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어미를 계속 지켜 보았는데 자기 새끼와 적의 새끼를 가리는 듯한 행동은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태양 광선으로 살게 된다면 아주 추운 1월이나 2월에 거미 집을 파 보면 깊숙한 곳에 새끼를 업은 어미가 있습니다. 비나 눈이 와도 무사히 견뎌내는 듯합니다. 어미는 이렇게 7개월 동안이나 새끼를 업고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기간 동안 새끼들은 먹을 것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처음에 파브르 선생님은 어미가 무언가 먹을 것을 새끼에게 먹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새끼가 먹는 것을 보려고 참을성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미는 혼자만 열심히 먹고 있을 뿐입니다. 새끼들은 어미가 맛있게 먹이를 먹는 동안 등에 달라붙은 채 꼼짝도 않습니다. 무언가 먹고 싶다는 듯 어미의 입 쪽으로 가는 것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모두들 먹는 일에는 흥미가 없는 듯 전혀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미 몸에서 무언가 영양분이 있는 액이 나와서 새끼들이 그것을 빨아먹는 걸까요? 아닙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새끼가 어미의 몸에 입을 대고 액을 빠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미 쪽도 조금도 몸무게가 줄어드는 일이 없습니다. 새끼에게 액을 빨리고 있다면 몸무게가 줄어들 것입니다. 알 때의 영양분이 몸 속에 남아 있어서 새끼들이 그 에너지로 활동하고 있을까요? '아니야, 그렇제 않아. 영양분은 새끼거미가 나중에 필요한 많은 거미줄을 내기 위한 원료가 될테니까 지금 다 써 버릴 수는 없을 거야. 무언가 다른 곳에서 영양분을 얻고 있는 것이 틀림 없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하였습니다. 새끼거미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며, 가마히 달라붙어 있다고는 해도 조금쯤은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미의 등에서 떨어졌을 때 재빨리 기어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언제나 힘을 낼 준비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관차도 석탄이나 전기 등의 에너지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동물의 몸은 석탄을 태우거나 전기 에너지를 쓰는 대신 먹을 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체들은 몸 속에 불을 피우는 날로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나르본늑대거미의 새끼는 어미의 등에서 사는 7--8개월 동안 몸의 크기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운동량은 대단히 적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억지 않고도 알 때 어미로부터 물려받은 에너지만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일광욕을 하고 있는 동안 태양의 빛에서 직접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는지도 모르지.'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계를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석탄이나 석유를 태우거나 전기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석탄이나 석유는 원래 오랜 옛날의 고사리류 식물이 땅 속에 묻혀서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오랜 옛날의 식물도 근원을 따지고 보면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은 것입니다. 식물의 잎 속에는 엽록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엽록소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을 원료로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녹말 같은 탄수화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을 광합성이라고 합니다. 전기의 경우, 예를 들어 화력 발전이라면 석유를 태워서 그 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꾼 것입니다. 결국 이 지구상의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의 빛과 열에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오랫동안 아무것도 안 먹은 새끼거미가 건강한 것은 태양에서 직접 에너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문득 생각해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생각은 통하지 않습니다. 태양빛을 쬐었을 때 몸은 더워지지만 배는 부르지 않다고 누구든 말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동물에게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파브르 선생님이 이런 생각을 해 본 까닭은, 선생님은 잔혹한 것을 무척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동물이 살아가기 위해 다른 동물을 잔혹하게 먹어 버리는 일을 어떻게든 그만두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도, '먹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나 동물을 자주 어려운 지경에 빠뜨립니다. 충분히 먹었으면서도 '더 많이, 더 많이'하는 식으로 나무를 베어 밭을 늘리는 등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먹기위하여 정말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고통이나 '악'이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없어질 수는 없을까 하고 선생님은 늘 생각했습니다. '아아, 태양빛을 쬐는 것만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브르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언젠가 과학이 발달하면 우선 사람의 먹을 것이 화학적으로 합성되고, 이어서 태양에너지 자체를 직접 사람의 에너지로 쓸 수 있는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 때가 되면 사람의 도덕성도 변화하여 잔혹한 일이나 무참한 일이 사회에서 없어지게 되겠지, 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희망했던 것입니다. 나르본늑대거미의 새끼들은 실제로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확실한 것은 어미가 새끼들에게 정성스럽게 일광욕을 시키는 것입니다. 알이 주머니 속에 있을 때부터 어미는 집 밖에서 알 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충분히 햇볕을 쬐게 합니다. 새끼가 등에 달라붙게 된 뒤에도 마찬가지로 일광욕을 시킵니다. 그리고 새끼는 보통때는 가만히 있으나 언제라도 재빨리 움직일 수 있습니다. 즉, 에너지가 몸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험삼아 '후욱' 불어 보면 강한 바람을 맞은 것처럼 일제히 흩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역시 일광욕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에만 도움이 될 뿐 영양분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높이높이 올라가고 싶다. 4월의 어느 맑은 날 오전, 가장 따뜻한 시간에 드디어 새끼거미들은 어미의 몸을 떠나 여행을 시작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사육용 화분 속의 어미와 새끼거미의 행동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움직임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어미거미가 새끼들을 등에 업은 채로 집의 입구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새끼들의 출발을 도울까요? 아닙니다.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척 입구에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마치 '나가고 싶은 녀석들은 마음대로 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새끼거미들은 한 덩어리씩 떼를 지어 어미의 등에서 떠나갑니다. 땅 위를 몇 걸음 걸은 다음 사육용 화분을 덮고 있는 철망을 타고 위를 향해 기어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나르본늑대거미는 언제나 땅 위를 걸어다니거나 집 속에 꼭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끼거미들은 모두가 위로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새끼거미는 몸집이 작아 철망 사이를 통과하여 밖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위에 있는 둥근 테를 붙잡고 그 속에 거미줄을 치거나 둥근 테에서 가까운 철망코까지 거미줄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 거미줄을 타고 줄타기를 하듯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작은 앞다리를 크게 벌려 허공 속을 더듬는 시늉을 하기 때문에 선생님은 '좀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은 모양이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철망 위에 작은 나뭇가지를 끼워 높이를 두 배로 해 보았습니다. 새끼거미들은 앞을 다투어 이 나뭇가지를 타고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가지 끝에 닿으면 거기서 거미줄을 내보냈습니다. 아주 가느다란 거미줄은 아주 약한 바람에도 쉽게 날려서 주변에 있는 물건에 붙어 버립니다. 새끼거미의 거미줄은 아주 끈끈합니다. 마치 서커스의 높은 기둥 끝에서 당겨진 줄과 같습니다. 그리고 새끼들은 줄타기를 하는 사람과 같이 이 줄을 타고 왔다갔다합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생각한 선생님은 이번에는 높이가 3 미터나 되는 갈대 하나를 화분에 세워 주었습니다. 새끼거미들은 이번에는 계속하여 높이 올라가다가 꼭대기에 닿자, 그 곳에서도 역시 꽁무니에서 거미줄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거미줄은 공중에 떠서 펄럭이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물건에 곧 달라붙어 버립니다. 새끼거미는 이런 거미줄에 하나씩 매달립니다. 마치 장대 끝에 매단 장식과 같이 거미줄이 쳐져서 약한 바람에도 펄럭거리고 있습니다. 거미줄은 아주 가늘어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햇빛에 비추어 보면 반짝거릴 뿐입니다. 그래서 새끼들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요술 무대를 구경하는 것 같습니다. 이 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휙 하고 불면 가는 거미줄이 끓어지면서 공중을 떠돌게 됩니다. 그리고 곧 빠른 공기의 흐름에 실려 연구실 창 밖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공중에 있는 새끼거미가 흰 점으로 보이며, 거기에 붙은 거미줄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을 내는가 하는 순간 벌써 그것으로 끝이 나 버립니다. 새끼거미들은 거미줄에 매달린 채 바람의 방향을 따라 상당히 먼 곳까지 이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멋진 여행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많은 새끼거미들이 바람과 빛 속으로 이리저리 흩어지게 됩니다. 거미와 같이 육식을 하는 벌레의 경우, 한곳에 뭉쳐서 산다면 먹이를 빼앗으려고 서로 싸움을 하게 되거나 서로 잡아먹는 일까지 생깁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형제가 서로 한 마리씩 떨어져 있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떼의 새끼거미들은 1--2주에 걸쳐 조금씩 떠나갑니다.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씨에는 아무도 출발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때는 언제나 날씨가 좋은 날을 택하는 법입니다. 뒤에 남은 어미거미 새끼거미들이 모두 거미줄에 매달려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 버리고 아무도 남지 않아도 어미거미는 별로 슬퍼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몸이 마르지도 않고 살찌지도 않은 변함없는 모습입니다. 어미거미에게는 새끼가 집을 떠나서 외롭다는 감정은 없는 것입니다. 어미거미는 다시 부지런히 사냥을 시작하였습니다. 새끼를 등에 업고 있을 때의 어미거미는 아주 적게 먹어서 파브르 선생님이 먹이를 주어도 맹렬히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이 때는 바로 추운 겨울이어서 행동이 둔해지기도 했고, 등의 새끼가 방해가 되어 먹이를 공격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제는 행동도 자유롭고 날씨도 좋아서 선생님이 메뚜기나 수염풍뎅이 같은 먹이를 입구에서 흔들면 거미는 곧 구멍에서 나와 달려듭니다. 매일 큰 먹이를 한 마리씩 먹어 버립니다. 긴 세월 동안을 거의 먹지 않고 지냈지만, 이제는 맹렬히 먹을 계절이 된 것입니다. 나르본늑대거미는 장수하는 생물인데, 파브르 선생님이 키운 것은 5 년 동안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르본늑대거미의 새끼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성질은 거미줄에 매달려 바람에 실려 가서 어딘가에 도착하고 나면 돌연 없어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땅 위를 걸어다니거나 땅속에 집을 팔 뿐 다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II. 긴호랑거미 1. 거미 새끼를 흩뜨린다. 터지는 씨의 먼 여행 식물들 중에는 열매가 익을 때 속에 있는 씨를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이동시키려고 하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물총참외가 있습니다. 길가의 쓰레기장 같은 곳에 이 식물이 생겨서 크게 자라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쓰레기장의 흙은 양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선가 씨가 날아든 것이겠지요. 박과 식물에 속하는 어떤 야생 오이류는 열매 길이가 4센티 정도이며 겉면은 곰보처럼 거칠거칠합니다. 잘못하여 입에 넣으면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의 쓴맛이 납니다. 열매가 익으면 속은 녹아 버리고 그 안에는 씨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겉껍질이 줄어들면서 속을 꽉 죄어 물을 넣은 풍선을 꽉 쥘 때처럼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코르크 병마개가 안에서 밀릴 때와 같이 꼭지가 그대로 빠져 버립니다. 그 때 액체와 씨가 한꺼번에 힘차게 밖으로 튀어나갑니다. 따라서 잘 모르는 사람이 잘 익은 열매가 달린 이 식물의 넝쿨을 건드리면 퐁, 퐁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얼굴 위로 오이 냄새가 나는 액체와 씨가 폭탄같이 쏟아져 나와 깜짝 놀라 때가 있습니다. 봉선화 열매도 익었을 때 사람이 건드리면 풍선이 터지듯이 씨가 튀어나옵니다. 봉선화의 학명은 성급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이 붙어 있기도 하지요. 그 밖에도 숲 속 어두 컴컴한 곳에 있는 물봉숭아나 팬지 등 열매가 터지면서 씨를 멀리 날리는 식물은 많습니다. 또 전혀 다른 방법으로 씨를 멀리 퍼뜨리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민들레나 망초 같은 국화과 식물의 씨에는 새의 깃털 같은 털이 붙어 있어서 바람의 힘으로 어디까지나 멀리멀리 날아갑니다. 씨에 프로펠러나 날개 같은 것이 달려 있는 식물도 있습니다. 꽃무나 느티나무, 단풍나무의 종자는 빙빙돌면서 아주 먼 곳까지 나들이를 삼습니다. 그래도 식물이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씨일 때뿐입니다. 일단 뿌리가 나오고 나면 더 이상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알에서 깨면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는 거미 종류에도 봉선화의 씨와 같이 알 주머니에서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긴호랑거미 종류입니다. 폭탄과 같이 터지는 집 호랑거미 종류는 제1장의 늑대거미의 종류들과는 달리 땅속에 집을 파는 일이 없이 나무의 가지와 가지 사이에 멋진 그물을 칩니다. 이것이 바로 '거미집'입니다. 이 그물로 멋모르고 날아든 나비나 잠자리를 잡아서 먹이로 삼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사는 지방에는 긴호랑거미가 많습니다. 노랑색, 검은색, 은백색의 아름다운 줄무늬를 가진 큰 거미입니다. 이 거미의 알 주머니도 나르본늑대거미의 알 주머니와 같이 튼튼한 거미줄로 만든 것으로 서양 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예쁘고 귀여운 이 거미줄 주머니는 좀처럼 파괴되지 않을 뿐 아니라 물도 스며들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머니를 칼로 잘라 펼처 보면 대단히 가는 갈색 거미줄로 된 쿠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쿠션에 싸인 또 다른 주머니가 있고, 그 속에 아름다운 오렌지색 알이 들어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끈기 있게 알의 수를 세어 보니 500개 정도나 되었습니다. 호랑거미 종류의 알 주머니는 식물의 씨를 싸고 있는 꼬투리와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알의 주머니가 터지면서 안에 있던 새끼거미가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런 모습을 보려고 지난해 가을부터 긴호랑거미를 연구실에서 키우고 있습니다. 사육용 화분 안에서 거미는 알 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 어미가 만든 알 주머니를 선생님은 두 개의 덩어리로 나누었습니다. 한 덩어리는 작은 나뭇가지 묶음 위에 놓은 다음 화분에 넣어 철망을 씌워 두고, 다른 한 덩어리는 마당의 풀 위에 놓아 비나 바람을 맞게 해 두었습니다. 다음해 2월 말경 파브르 선생님은 봄이 가까워졌으므로 이제는 조금씩 알이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위로 알 주머니를 잘라 헤쳐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몇 개의 알만이 깨어나서 새끼거미가 안에 있는 주머니에서 갈색 쿠션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알은 아직 낳았을 때 그대로였습니다. 모든 알이 한꺼번에 깨어나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조금씩 보름 가까이 걸려서 깨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거미는 갈색 쿠션 속으로 숨어 들어가 그대로 4개월이나 꼼짝않고 있습니다. 알 주머니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튼튼한 거미줄로 되어 있어서 안에 있는 새끼들이 아무리 힘을 써도 터뜨리고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깨어난 새끼가 밖으로 나오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요? 야외에서 관찰해 보면 6--7개월 더운 계절에 알 주머니는 저절로 터집니다. 주머니의 뚜껑이 벗겨지는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다른 곳이 터지는 것입니다. 아마도 알 주머니가 태양열로 데워지면 안쪽 공기가 팽창하여 '뻥'하고 터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총참외의 경우에는 속에있는 물이 튀어나오지만 거미의 알 주머니는 속에 있는 공기가 팽창하여 터지는 것입니다. 마당에 놓아둔 알 주머니가 이제 막 터졌습니다. 새끼들이 속에서 갈색 쿠션을 비집고 밖으로 튀어나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한편 파브르 선생님이 연구실 안에 놓아둔 알 주머니는 언제까지나 터지지 않습니다. 역시 여름의 태양이 내리쬐어 알 주머니를 뜨겁게 하지 않으면 안 되나 봅니다. 다시 말하면 호랑거미 새끼들은 공기 폭탄 집 속에 갇힌 셈입니다. 그 집이 폭발하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폭발로 인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새끼 중 일부이며 다른 것들은 아직 갈색 쿠션 속에 있으면서 차례로 밖으로 나옵니다. 새끼들은 모두 밖으로 나오기 전에 속에서 한 번 탈피를 합니다. 그리고 헌 껍질을 벗은 것부터 조금씩 떼를 지어 바깥 세계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출발입니다. 먼저 근처의 나뭇가지에 올라가 햇볕을 쬐면서 나들이 준비를 합니다. 새끼들은 배 끝에서 거미줄을 내어 약한 바람에 날립니다. 그렇게 하여 거미줄이 길어지면서 적당한 바람이 부는 순간 휙 사라져 버립니다. 그 순간에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멀리멀리 새 땅을 찾아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2. 호랑거미의 그물 치는 법 벌레를 잡는 새그물 공중을 마음대로 날아 다니는 잠자리나 나비를 잡으려고 할 때 우리들이 흔히 쓰는 것은 포충망입니다. 맨손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새와 같이 재빨리 나는 것은 포충망으로도 안 됩니다. 가을이 되면 남쪽 나라에서 지빠귀나 개똥지빠귀 같은 철새가 하늘이 어두워질 정도로 많이 떼를 지어 날아옵니다. 이런 새들을 잡는 데에 사람들은 옛날부터 어떤 도구를 써 왔습니다. 실이 가늘어 눈에 잘 띄지 않는 큰 새그물이 그것입니다. 유인용 새를 실로 묶어서 땅 위에 놓고 소리내어 울게 합니다. 그러면 그 새 소리에 끌린 새 떼가 모여듭니다. 이 때 잘 보이지 않는 그물이 다리나 목에 엉켜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물론 이런 잔인한 방법은 이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미들 중에도 이런 그물을 쓰는 것이 있습니다. 가는 거미줄로 짠, 눈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그물을 나무와 나무 사이에 쳐 놓고 힘차게 날아든 멍청한 벌레를 멋지게 잡습니다. 거미의 그물은 접시나 공기같이 생긴 것, 나뭇가지 위에 이불 모양으로 펼쳐진 것 등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으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호랑거미나 왕거미 종류가 치는 둥근 그물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마당에 멋진 그물을 치고 있는 호랑거미에 가까운 종류는 여섯 가지입니다. 긴호랑거미, 붉은호랑거미, 왕거미, 흰왕거미, 오칸왕거미, 크라털왕거미가 그것들입니다. 이 거미들이 그물을 치는 모습을 관찰해 봅시다. 관찰한다고는 하지만 거미는 단번에 그물을 끝내지 않습니다. 따라서 참을성 있게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름날 저녁에 키가 큰 만년향나무 숲에 들어가 보면 그물을 치고 있는 거미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강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해가 지기 전부터 그물을 치기 시작하는 것은 젊은 거미입니다. 배의 크기는 후추씨 정도로 늦가을에 볼 수 있는 배가 통통한 성숙한 거미에 비하면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그물을 치는 솜씨만은 이 젊은 거미도 성숙한 것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숙한 거미는 늦은 밤에야 그물을 만들기 시작하므로 관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7월의 어느 저녁, 앞으로 2시간 후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게 될 때 젊은 거미가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마당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느긋하게 관찰하기로 하였습니다. 프랑스는 위도가 높은 편이라 파브르 선생님이 살던 곳이 남쪽이라 해도 여름에는 낮의 길이가 길어 해지는 시간은 9시경입니다. 따라서 파브르 선생님은 일찌감치 저녁 식사를 마치고 7시경부터 한가롭게 거미가 그물을 치는 것을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낮 동안의 타는 듯한 더위도 가시고 매미 소리가 멎으면서 대신 여치가 '찌이'하고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거미 꽁무니에는 거미줄을 내는 돌기가 보통 세 쌍, 즉 여섯 개가 있습니다. 이것을 '실돌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돌기 하나하나에는 실을 내는 또 다른 가는 관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 관의 수는 하나의 돌기에 수백 개나 되며 여기서 가는 거미줄이 나오는 것입니다. 거미의 뱃속에는 거미줄의 원료가 되는 끈적끈적한 액체, 즉 점액을 만드는 기관('사선'이라고 합니다.)이 있습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점액이 가는 관에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기와 닿아 거미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선의 구조도 돌기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앞 주머니용 거미줄, 그물의 날줄로 쓰는 거미줄, 씨줄로 쓰는 거미줄, 강한 적에게 던지는 투망과 같은 흰 거미줄 등 쓰임새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의 거미줄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모하게 짜여진 거미의 몸을 보면 방직 공장의 기사라도 놀랄 것입니다. 그물을 만드는 순서 서로 떨어져 있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쳐 있는 거미집을 보면 맨 처음의 거미줄을 도대체 어떻게 걸었는지 정말 수수께끼입니다. 그렇다고 거미줄을 치면서 공중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하고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때로는 개울 건너편까지 거미줄을 쳐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요? 그러나 이런 일은 거미에게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낮에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온 거미는 우선 꽁무니에서 몇 개의 긴 거미줄을 내어 공중에 펄럭이게 합니다. 그 거미줄이 저쪽 나뭇가지에 찰싹 붙으면 그만입니다. 이제는 거미줄을 당겨 빳빳하게 한 뒤 이것을 타고 걸을 수가 있습니다. 결국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미줄을 타고 걸으면서 꽁무니에 있는 실돌기에서 거미줄을 내어 뒷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그물을 쳐 나가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상당히 거칠고 짜임새가 없는 것같이 느껴지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거미에게 그 나름대로의 생각 같은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다음은 어떻게 된다는 식으로, 몸 속에 미리 짜 놓은 컴퓨터 같은 본능이 명령하는 대로 순서를 따라 몸이 움직여 주는 듯합니다. 따라서 새끼거미는 어른거미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거미줄로 복잡한 그물을 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대강 발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발판은 아직 거칠고 줄도 가늘어 금방 끓어집니다. 그래서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이번에는 튼튼한 거미줄이 한 줄 쳐집니다. 그 다음엔 가운데에 흰색의 작은 방석 같은 것이 만들어집니다. 거미의 그물은 이 곳을 중심으로 빙빙 돌려 가면서 쳐지는 것입니다. 이 방석같이 생긴 것을 바퀴통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차 바퀴의 한가운데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얼마 안 되어서 거미는 바퀴통을 떠나 먼저 만든 튼튼한 거미줄을 타고 그물의 바깥쪽 테두리가 되어 있는 거미줄 쪽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곧 다시 바깥쪽에서 한가운데로 되돌아갑니다. 이렇게 왕복할 때마다 튼튼한 날줄이 쳐지는 것입니다. 위로 올라갔다가 쓰윽 밑으로 떨어져서는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달려간 다음 다시 가운데로 되돌아갑니다. 이런 일을 되풀이하는 동안 날줄의 수가 늘고 그물은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거미가 하는 것을 얼핏 보면 아주 제멋대로인 것 같습니다. 날줄을 타고 그물 바깥쪽으로 가서 그 위로 약간 걸어간 다음 다시 가운데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이렇게 쳐 놓은 거미줄은 약간 길게 늘어져 있으나, 거미는 그것을 힘껏 다리로 밟아 팽팽히 당겨 나머지 부분을 중심에 있는 바퀴통에 모아 놓습니다. 따라서 흰색의 바퀴통은 점점 커집니다. 거미는 아주 절약가입니다. 남은 거미줄을 모아서 만든 거미줄 방석도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는가는 차차 알게 될 것입니다. 날줄에서 씨줄로 완성된 그물을 본 사람은 거미의 그물이 너무나 규칙적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날줄을 칠 때에 분명히 옆으로 차례차례 칠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다릅니다. 거미는 몇 개의 날줄을 가지런히 치고 나면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가서 반대 방향으로 거미줄을 치는 것입니다. "음, 그럴듯해."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감탄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확실히 거미가 쓰고 있는 방법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한쪽에만 날줄을 여러 개 강하게 쳐 놓으면 그물 전체가 일그러져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반대쪽으로 잡아당기는 힘을 주어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젊은 거미라도 벌써 건축가로서 힘을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거미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날줄을 치고 있는 광경을 본 사람은 반드시 일그러진 그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완성된 그물을 보고는 더 놀라게 됩니다. 거미의 그물은 규칙적이며 예술 작품과도 같이 훌륭합니다. 날줄과 날줄 사이의 간격은 모두 같아 넓거나 좁은 일이 없습니다. 마치 컴퍼스로 재면서 거미줄을 친 것 같습니다. 저기 치고 여기 치고 하면서 어떻게 이리도 깨끗하게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날줄의 수는 거미의 종류에 따라 정해져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세어 본 바로는 왕거미가 21개, 긴호랑거미가 32개, 붉은호랑거미가 42개였습니다. 이 갯수는 틀린 일은 전혀 없습니다. 날줄을 모두 치고 난 거미는 중심 부분에 가만히 자리잡습니다. 이제부터 이 바퀴통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임시로 쓸 씨줄을 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퀴통을 중심으로 거미는 보일 듯 말 듯한 가는 거미줄로 날줄과 날줄 사이를 가로질러 좁은 간격으로 거미줄을 쳐 나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분은 성숙한 거미가 만들었을 경우 사람의 손바닥 정도로 크지만 젊은 거미의 것은 훨씬 작습니다. 이 가는 거미줄로 된 부분을 파브르 선생님은 '쉼터'라고 불렀습니다. 쉼터를 만들고 나면 이번에는 굵은 거미줄을 치기 시작하니다. 거미는 거미줄의 굵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 굵은 거미줄은 잘 보입니다. 거미는 약간 비스듬하게 돌면서 소용돌이 모양으로 착착 거미줄을 쳐 나갑니다. 이 씨줄과 씨줄 사이의 간격은 넓어서 젊은 거미의 경우에도 1센티는 됩니다. 이렇게 쳐진 씨줄도 실은 아직 진짜 그물이 아니고 발판에 불과합니다. 그물의 구석에 눈코가 큰 곳이 있어서 그 틈으로 먹이가 도망치면 안 되므로 거미는 거기에도 미리 거미줄을 쳐서 막아 둡니다. 자, 이제부터 드디어 본격적인 거미집 그물 만들기가 시작됩니다. 거미는 날줄이나 발판용 씨줄을 밟아 가면서 먼저와는 달리 바깥쪽에서 중심으로 좁은 간격으로 그물을 치기 시작합니다. 이 때의 거미의 움직임은 아주 빨라 갑자기 그네를 뛰듯 거미줄에서 거미줄로 뛰거나 생각지도 않은 동작을 하여 눈이 아찔아찔합니다. 선생님은 거미가 일하는 모습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하여 몇 번이고 관찰을 되풀이했습니다. 거미가 열심히 그물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파브르 선생님은 어릴 때 할머니가 하시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할머니는 일을 잘하는 분이셨습니다. 저녁 식사 후 어린 파브르에게 사람을 잡아먹는 도깨비나 늑대 이야기를 해줄 때에도 쉴 새 없이 손으로 무슨 일이든 하고 있습니다. 그 중 선생님이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삼베를 꼬아서 실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거미는 할머니가 한 것과 같이 실을 솜씨 좋게 꼬아 냅니다. 다만 거미는 손 대신 두 개의 뒷다리를 써서 꽁무니의 실돌기에서 나오는 거미줄을 교묘하게 꼬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거미가 걸어갈 때 거미 그물의 중심쪽에 있는 다리를 안다리, 바깥쪽에 있는 다리를 바깥다리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거미는 먼저 바깥다리로 실돌기에서 거미줄을 뽑아 내어 그것을 안다리로 받습니다. 안다리로 받은 거미줄을 지금 머물러 있는 날줄 위에 일단 놓습니다. 그 때의 거미 솜씨는 아주 능숙합니다. 거미는 바깥다리로 발판인 거미줄을 짚고, 붙이기에 꼭 알맞은 날줄까지 이 거미줄을 안다리로 끌어 갑니다. 날줄에 닿으면 끈적거리는 이 새 씨줄은 곧 붙어 버리게 됩니다. 묶지 않아도 되니 참으로 간편합니다. 끝마무리 거미가 잘게 빙빙 씨줄을 쳐 나가고 있을 때, 먼저 쳐 놓은 발판 거미줄은 이제는 필요가 없어져 방해만 됩니다. 그래서 거미는 이 발판 거미줄을 벗겨서 둥글게 말아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작은 매듭처럼 되어 날줄에 붙어 언제까지나 남아 있게 됩니다. 이렇게 씨줄을 치기 시작한 거미는 한시도 쉬지 않고 이 날줄에서 저 날줄로 빙빙 돌면서 조금씩 중앙으로 향해 다가가게 됩니다. 30분 내지 1시간 정도 걸려서 씨줄을 쳐 나갑니다. 빙빙 도는 횟수는 붉은호랑거미 그물의 경우 약 50 회, 긴호랑거미나 왕거미는 약 30 회 정도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 횟수를 세는 동안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끝으로 가운데의 '쉼터'에 이르면 씨줄 치는 일을 중단합니다. 그리고는 중심부의 거미줄 방석, 즉 바퀴통을 떼어 뭉쳐 버립니다. '이제는 표적으로서의 일이 끝났으니 버리는 모양이군.'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절약가인 거미가 거미줄 덩어리를 버리는 것 같은 아까운 일을 할 리가 없습니다. 거미는 이 거미줄 덩어리를 먹기 시작합니다. 이것도 단백질로 되어 있어 위에서 소화되므로 영양분으로 쓰이거나 다시 거미줄의 원료가 될 것입니다. 자연은 낭비를 하지 않습니다. 절약으로 말하자면, 선생님의 할머니도 아무리 작은 실밥이라도 버리지 않고 잘 뭉쳐 두었습니다. 이 방석을 먹어 버림으로써 그물 만드는 일은 끝이 납니다. 호랑거미 종류들은 머리를 밑으로 숙이고 다리를 두 개씩 가지런히 모은 채 그물 한가운데에 자리잡습니다. 이제는 벌레가 날아오는 것을 끈기 있게 기다릴 뿐입니다. 그런데 파브르 선생님은 거미가 일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재미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중엔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많습니다. 동물들 전체를 보면 어떨까요? 귀뚜라미나 여치와 같이 잘 우는 벌레를 조사해 보면 오른쪽 날개를 바이올린의 활과 같이 써서 왼쪽 날개의 발음기에 비벼 소리를 냅니다. 그러니까 이런 벌레들은 오른손잡이인 셈입니다. 우렁이 종류에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꼬인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거미는 양손, 아니 양다리를 똑같이 능숙하게 씁니다. 그물을 칠 때 오른쪽이나 왼쪽 마음대로 쓰는 양손잡이인 것입니다. 3. 덫의 본체 끈적끈적한 줄 호랑거미나 왕거미의 그물을 잘 보면 날줄과 씨줄이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씨줄에는 맑은 물방울이 군데군데 붙어 있어서 햇볕을 받으면 반짝거립니다. 사실 이 물방울은 물이 아니고 끈적거리는 점액인 것입니다. 손을 대 보면 끈적거리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물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기 때문에 밖에서 자세히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네모난 유리판을 가져다 그물 밑에 깔고 그것을 그대로 들어올려 유리판에 그물을 찰싹 붙였습니다. 이것을 연구실로 가져와 확대경이나 현미경으로 조사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크게 확대된 그물의 씨줄을 보고 파브르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거미줄에는 꼬임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상당히 강도가 더해질 것입니다. 더구나 이 거미줄은 아주 가는 관으로 되어 있었고, 그 속에는 끈적거리는 액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관을 자르자 그 끝에서 속에 있는 점액이 흘러나오는 것이 현미경으로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참으로 잘 만들어진 실입니다. 이 씨줄 속에 든 액체가 조금씩 스며 나오므로 거미의 그물은 늘 끈적끈적하여 나비나 나방이 와서 달라붙으면 도망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릿짚으로 이 씨줄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철썩 붙어 버립니다. 짚을 떼려고 하면 거미줄은 마치 고무줄처럼 늘어납니다. 길이가 두 배에서 세 배까지 늘아 나며, 그 이상 당기면 끓어지지는 않고 보릿잎에서 떨어져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이 거미줄은 용수철같이 꼬여 있어서 늘어날 때는 꼬임이 펴지고 떨어지면 다시 제대로 꼬이게 되는 셈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감탄하였습니다. 이런 정도라면 상당이 힘센 벌레가 붙어서 야단법석을 떨어도 잘 끓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씨줄이 공기와 맞닿아 끈끈한 기운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관 속에서는 쉴 새 없이 점액이 스며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멋진 장치이지요. 그러나 날줄에서는 점액이 스며 나오는 일이 없어 끈적거리지 않습니다. 거미줄 위를 마음대로 다니는 거미 호랑거미나 왕거미 종류들은 이런 그물을 나무와 나무 사이에 치고 먹이를 잡습니다. 그러면, 이런 그물 위에서 움직이는 거미 자신의 다리는 왜 다라붙지 않는 걸까요? 거미는 바깥쪽에서 중심으로 씨줄을 치다가 쉼터에 가까워지면 그 곳에서 중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이 곳의 거미줄은 끈적거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미는 이 곳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날아온 먹이가 그물에 걸려들면 쉼터에 있던 거미는 재빨리 먹이 쪽으로 달려갑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몇 번이나 그런 장면을 보았으나 그 때마다 거미는 걷는 데 별로 힘들어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럴까요? 선생님은 어릴 때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자주 친구들과 같이 삼베밭에 작은 새를 잡으러 가곤 하였습니다. 장대 끝에 끈끈이를 발라 그것으로 새를 잡는 것입니다. 이 끈끈이를 다룰 때 손가락 끝에 미리 기름을 바라두면 달라붙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 거미도 다리 끝에서 무언가 기름 비슷한 것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하고 선생님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실험을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보릿짚에 기름을 엷게 발랐습니다. 이것을 그물의 씨줄에 대어 보니 달라붙지 않았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거미줄은 기름기가 있는 것에는 달라붙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실험을 위하여 호랑거미의 여덟 개 다리 중 하나를 잘라 냈습니다. 거미에게는 못할 일이지만 실험을 위해서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확실히 달라붙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이 다리를 유화탄소라는 약품 속에 15분쯤 담가 두었습니다. 유화탄소는 기름을 녹여 버리므로 거미의 다리에 있는 기름은 이것으로 깨끗이 씻길 것입니다. 이렇게 기름을 씻어 낸 거미의 다리로 그물을 건드리니 보통 벌레의 다리나 보릿짚과 같이 잘 달라붙습니다. 그러므로 호랑거미의 다리 끝에서 기름기 있는 액체가 나와 거미줄에 달라붙지 않는다는 추측은 옳았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실험을 한 번 해 보세요. 다리를 잘라내지 않고도 가능합니다. 살아 있는 거미의 다리를 휘발류나 벤젠으로 씻고 나서 거미줄에 올려놓아 봅시다. 그러면 거미는 자기 줄에 다리가 붙어 꼼짝못하게 됩니다. 거미는 자기 그물에 묶여 오도가도 못 하는 불쌍한 처지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거미는 걱정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다리 끝에서 기름이 나오는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걸어다니게 됩니다. 아무리 다리에서 기름이 나온다고 해도 너무 오랫동안 끈적끈적한 그물 위에 있게 되면 틀림없이 점점 달라붙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거미는 자기가 항상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중심부, 즉 쉼터에는 점액이 나오는 씨줄을 치지 않는 것입니다. 거미는 그물 가운데에서 끈기 있게 먹이를 기다립니다. 먹이가 걸려들면 급히 달려가서 거미줄로 돌돌 말아 독이빨로 물고 꽁무니에 달아서 중심까지 끌고 나옵니다. 그리고 끈적거리지 않는 거미줄로 된 쉼터에서 마음놓고 천천히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곳은 거미의 쉼터인 동시에 식당인 셈입니다. 실잣기 명수 파브르 선생님은 끈적거리는 거미줄을 유리에 붙여 연구실로 가지고 와서 유리 종처럼 생긴 뚜껑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물이 든 접시를 넣어 두었습니다. 안의 습도를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잠시 후 안의 공기 전체가 축축해지면서 거미의 씨줄에 물방울이 가득 붙었습니다. 곧 그 물방울은 점점 많아졌고, 마침내는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거미줄 속에 가득하던 점액이 없어지고 안에 투명한 물방울이 구슬같이 이어져 있습니다. 즉, 호랑거미의 씨줄 속에 있던 점액은 습기를 아주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서, 유리 뚜껑을 덮으면 안의 습도가 매우 높아져 거미줄 안의 점액이 한꺼번에 밖으로 스며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긴호랑거미는 아주 이른 새벽부터 그물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 때 아침 안개가 끼면 하던 일을 그만두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물의 주축이 되는 튼튼한 거미줄이나 날줄만은 쳐 놓으나, 끈적거리는 씨줄은 이슬에 젖으면 못쓰게 되므로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호랑거미는 뜨거운 대낮에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햇볕이 쨍쨍 쬐면 거미줄이 말라서 끈적거리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되지만 안에서 조금씩조금씩 스며 나오는 점액 때문에 언제나 싱싱하고 끈적끈적합니다. 대낮에도 공기중에 포함되어 있는 극히 적은 습기를 이용해 꼭 알맞은 정도로 거미줄 안의 점액이 스며 나오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미가 거미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거미의 종류에 따라서는 매일 밤 새로 그물을 치는 것도 있으므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2개월 동안에는 1 킬로미터 정도의 씨줄을 생산하는 셈입니다. 더욱이 이 가는 거미줄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속이 빈 관으로, 안에는 점액이 들어 있고 잘 늘어나도록 꼬여 있는 것입니다. 씨줄 이외에 물론 날줄도 만듭니다. 그리고 호랑거미의 알 주머니 속에 있는 쿠션을 만드는 갈색의 솜 같은 거미줄도 낼 수 있습니다. 알 주머니는 끈적거리지 않는 튼튼한 비단 천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거미줄을 만드는 일과 그것을 멋지게 다루는 솜씨는 사람도 거미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먹이가 걸리면 곧 알게 된다. 파브르 선생님이 관찰한 호랑거미 종류 중 긴호랑거미와 붉은호랑거미는 밝은 낮에 그물 위에 나와서 먹이를 노리며 기다리고 있으나, 나머지는 낮에는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그물 위로 나오는 종류들이었습니다. 낮에 숨어 있는 거미를 찾아보니 그물에서 멀지 않은 나무 그늘 속에, 나뭇잎을 서너 장 엮어 집을 만들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잠자리, 나비, 메뚜기와 같은 벌레들 중에는 대낮에 날아 다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놈들 중 덤벙거리는 놈이 거미그물에 걸려드는 것은 낮 동안의 일입니다. 그럼 집에 숨어 있던 거미는 발버둥치고 있는 먹이를 그대로 내버려둘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거미는 곧 모습을 나타내어 먹이를 잡습니다. 그렇다면 거미는 어떻게 먹이가 그물에 걸린 것을 알까요? 거미는 그물이 흔들리는 것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실험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죽어서 운직이지 않는 메뚜기를 호랑거미의 그물 위에 가만히 붙여 봅시다. 거미는 그물 중앙에서 노리고 기다릴 때는 그 옆에 놓아 보고, 낮에 거미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때는 그물 중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아 봅니다. 그 때 호랑거미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먹이인 메뚜기를 거미가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가까이 놓아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래도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긴 보릿짚을 가지고 죽은 메뚜기를 건드려 흔들 흔들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물의 중앙에 있던 거미는 재빨리 달려오고, 집에 숨어 있던 거미는 슬슬 모습을 나타내서 메뚜기를 거미줄로 빙빙 감는 것이었습니다. 그물을 가볍게 흔들어만 주면 거미는 곧 먹이에 덤벼드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오랬동안 아비뇽의 중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친 적이 있어 '진동'이라는 현상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실험 기구도 많이 있었습니다. 거미가 그물의 진동으로 붙잡힌 먹이를 알아챈다는 사실을 좀더 확실하게 증명하려고 선생님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소리는 공기의 진동입니다. 진동의 실험에 쓰이는 소리굽쇠를 쳐서 부웅 하는 소리를 낸 다음 이것을 거미의 그물에 대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미는 놀랍게도 철로 된 소리굽쇠에 달려들어 거미줄로 친친 감아 버렸습니다. 그것을 씹어 본 거미는 '어쩌면 이렇게 딱딱할까?'하며 어이없어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미는 눈으로 보는 능력이 없는 걸까요? 실험에 쓴 메뚜기는 회색이었습니다. 그래서 보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붉은색 물체로 다시 실험하여 보겠습니다. 거미에게 붉은색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쉬운 대로 사람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색을 고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미의 먹이가 되는 벌레들 중에 새빨간 것은 좀체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 끝에 파브르 선생님은 빨간 털실로 작은 덩어리를 만들어 거미줄로 붙여 보았습니다. 역시 가만히 붙여 놓기만 해서는 거미는 꼼짝도 않습니다. 그래서 보릿짚으로 살짝 건드려 주었더니 거미는 곧 달려듭니다. 거미들 중 덤벙대는 놈은 털실을 건드려 보고, '앗, 먹이다! 먹을 수 있다!'라고 생각한 듯 곧 털실 덩어리를 거미줄로 감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도 털실을 이빨로 씹는 것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알아차렸는지 제자리로 돌아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털실을 거미줄에서 떼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조심성이 많은 거미는 숨은 곳에서 나와 다리로 한 번 건드려 보고 곧 버립니다. 어느 경우나 털실을 보릿짚으로 건드려 주면 달려오는 것은 같습니다.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이 확실합니다. 눈을 여덟 개나 갖고 있으면서도 거미는 상당한 근시인 것입니다. 마치 공상 과학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만일 사람보다도 큰 괴물 거미의 덫에 걸려도 가만히만 있으면 거미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다만 이 거미 그물을 흔들지 않고 어떻게 빠져 나올까 하는 것이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겠지요? 한 줄의 전화선 멀리 떨어져 숨어 있는 거미는 먹이가 거미줄에 걸렸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멋진 장치를 갖고 있습니다. 호랑거미의 그물을 자세히 보면 중심으로부터 한 줄의 튼튼한 거미줄이 거미가 숨은 집까지 비스듬히 늘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거미줄은 그물의 중심에만 연결되어 있을 뿐 다른 씨줄들과는 관계가 없으며, 숨어 있는 집과 그물의 중심을 직선으로 잇고 있는 것입니다. 이 거미줄의 길이는 보통 50센티 정도이나 종류에 따라서는 2--3 미터 정도로 긴 것도 있습니다. 숨어 있던 거미가 먹이에 다가 갈 때에는 이 거미줄을 이용합니다. 긴급용 줄사다리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거미줄의 쓰임새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이 줄은 그물의 중앙과 이어져 있으나 그물의 어디에 먹이가 걸려도 알 수 있도록 장치되어 있습니다. 즉, 이 줄은 단순한 줄사다리가 아니고 전화선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호줄이라고 합니다. 실험을 통해 그것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메뚜기를 잡아다가 그물에 걸었습니다. 메뚜기가 요동을 치자 거미는 곧 이 줄사다리를 타고 숨어 있던 집에서 모습을 나타내 덤벼들었습니다. 메뚜기를 꽁꽁 묶은 다음 이빨로 물고 나서 꽁무니 끝의 실을 내는 돌기에 붙여서 숨어 있던 집까지 끌고 갑니다. 거기서 마음 놓고 먹기 위한 것입니다. 같은 거미를 2,3일 그대로 놓아두어 배가 고파질 무렵, 다시 한 번 메뚜기를 그물에 걸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 신호줄을 가위로 싹둑 잘라 두었습니다. 메뚜기는 그물 위에서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으나 거미는 나타지 않습니다. 신호줄이 끊겨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크게 소동을 피우고 있는 메뚜기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거미는 꼼짝도 않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줄사다리가 잘라져서 나올 수가 없는 것인지도 몰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다른 거미줄을 타면 거미는 곧 메뚜기가 있는 곳까지 문제없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메뚜기가 한 시간쯤 소란을 피웠으나 거미는 여전히 모르는 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신호줄이 느슨해져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드디어 거미는 사정을 살피러 나왔습니다. 다른 거미줄을 타고 그물에까지 이른 거미는 메뚜기를 보자 곧 처치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신호줄을 새로 친 다음 그 거미줄을 타고 먹이를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통통하게 살찐 왕거미가 2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나무 사이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 거미는 밤에만 그물 위에 있고 낮에는 숨어 있는 종류입니다. 거미가 어디에 있는가는 신호줄을 따라가 보면 곧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가 보니 마른 나뭇잎을 거미줄로 엮어 만든 간단한 집에서 거미의 배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머리만 울 안에 숨기고 꽁무니는 그물을 향한 모습인데, 이런 자세로는 먹이가 걸려도 그 곳을 쳐다볼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대낮이라 먹이를 잡을 때가 아니라는 뜻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좀더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거미는 한쪽 뒷다리를 집 밖으로 내밀고 신호줄을 누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있다면 안심하고 낮잠을 자고 있어도 그물에 걸린 먹이의 진동이 다리에 전해질 것입니다. 실로 훌륭하면서도 능청스러운 방법이 아닐까요? 실제로 파브르 선생님이 그물에 메뚜기를 붙여 주니까 거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쪽으로 날 듯이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거미줄은 흔들립니다. 거미는 이 흔들림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속아 숨은 곳에서 나오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거미는 산 먹이가 소란을 피울 때와 바람에 흔들릴 때의 진동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것은 정말 훌륭한 통신 수단이라고 하겠습니다. 호랑거미는 머리를 밑으로 하고 여덟 개의 다리를 쫙 펴서 그물 한가운데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육식동물은 참을성이 대단합니다. 먹을 것이 언제 지나간다는 것을 기약할 수 없으므로 그 때까지는 어찌 되었든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날도 많은 듯합니다. 끝까지 아무것도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오지 않으면 결국 굶어 죽게 되겠지요. 먹이가 그물에 걸리면 거미는 그 진동을 다리로 느끼고 먹이 쪽으로 달려가지만 그 때까지는 끈기 있게 기다립니다. 그러나 무언가 방해가 될 듯한 것이 옆에 다가오면 그물을 흔들어 쫓는 듯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거미줄로 뱅뱅 파브르 선생님이 거미를 관찰하고 있던 어느 날의 일입니다. 그날은 하루 종일 흐리고 폭풍이 지나갈 듯한 날씨였습니다. '비를 싫어하는 거미이니까 오늘은 거미줄을 치지 않겠지.'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으나 저녁때 한 마리의 왕거미가 실삼나무 잎사이로 모습을 나타내고 그물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괜찮을까?"하고 선생님이 중얼거리는데 구름이 걷히면서 달빛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거미의 일기 예보 능력은 대단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등불을 손에 들고 거미를 관찰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은 곳에서는 강한 바람이 불고 있는 듯 구름이 깨끗이 걷혀 맑은 하늘이 보입니다. 아르마스의 정원에 고요한 밤이 다가왔습니다. 백리향이나 라벤더 같은 것이 어두운 밤하늘에 향기를 뿌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한 마리의 나방이 날아와서 거미줄에 걸렸습니다. "드디어 성공!" 거미의 식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어둠 속에서 등불의 빛만으로는 자세하게 관찰할 수가 없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거미들 중에서 낮 동안 줄곧 그물에 있으면서 먹이를 잡는 종류인 긴호랑거미를 관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먹이가 걸려들 때를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자나방이나 등에와 같은 작은 벌레를 잡아다가 호랑거미의 그물에 붙여 주었습니다. 그물의 진동을 느낀 거미는 곧 벌레가 있는 곳으로 달려옵니다. 그리고 상대가 얼마나 강한 놈인가를 지켜보더니, 이 정도라면 문제없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거미는 먹이에 정면으로 다가서서 꽁무니를 구부려 실을 내는 돌기로 살짝 벌레를 건드렸습니다. 이 동작으로 거미줄 끝이 붙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앞다리로 먹이를 빙빙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솜씨입니다. 실돌기 끝에서 나온 실로 빙빙 돌리며 벌레의 몸을 감습니다. 마치 모터로 실을 감는 것처럼 벌레의 몸은 거미줄로 하얗게 감겨 갑니다. 이번에는 좀더 억센 벌레를 그물에 걸리게 해 보겠습니다. 무서운 낫과 같은 앞다리를 갖고 있는 황사마귀나 독침을 갖고 있는 말벌을 써 보겠습니다. 이런 벌레들이 실제로 야외에서 긴호랑거미의 거미줄에 걸려드는 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실험해 보았습니다. 거미는 조심성이 아주 많습니다. 상대가 강하다는 것은 싸우는 자의 육감으로 곧 알게 되나 봅니다. 정면으로 달려들면 당하리라고 느낀 거미는 빙 돌아서 반대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뒷다리로 실돌기에서 폭이 넓은 띠 모양의 것을 끌어내어 계속해서 던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끈적거리는 실입니다. 옛날 로마의 무사가 상대를 걸어서 잡을 때 썼던 그물 이상의 무서운 무기입니다. 거미는 먹이의 움직임을 살펴 상대의 전후 좌우에 알맞게 거미줄을 던집니다. 사마귀는 앞다리를 휘두르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말벌은 꽁무니에서 침을 내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거미는 먼 곳에서 그물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투망식이라면 거미줄이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하듯이 빙빙 돌리는 방법을 사용하면 거미줄은 조금만 있어도 되겠지만 먹이에 가까이 가야 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선생님이 풍뎅이를 주었을 때 거미는 먼저 거미줄을 던져 어느 정도 몸이 움직일 수 없게 만들고, 그 다음에 늘 하는 회전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역시 거미줄은 절약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완전히 묶은 다음에 거미는 이빨로 한 번 물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한발 뒤로 물러나서 기다립니다. 얼마 후 독의 효과가 나타날 무렵 거미는 먹이 옆으로 갑니다. 상대가 아주 작을 때는 거미줄에 감긴 먹이를 그 자리에서 먹어 버립니다. 그러나 몸집이 커서 먹는 데 시간이 걸릴 만한 것은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곳까지 운반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처음 돌린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돌립니다. 회전할 때 감긴 그물의 날줄을 풀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끝나면 꽁꽁 묶인 먹이를 그물에서 떼어 내어 꽁무니에 매답니다. 이렇게하여 거미가 움직이면 먹이는 집까지 끌려가게 됩니다. 한 번 문 효과 앞에서 거미가 먹이를 가볍게 물었다고 했지요? 이 때 독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것으로 먹이는 온몸이 마비되어 버릴까요? 보통 단번에 상대를 해치우려는 나르본늑대거미나 사냥벌 등은 찌를 곳, 무는 곳을 잘 찾아 상대의 급소에 단 한 번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호랑거미의 경우는 아무데나 상관없이 가볍게 무는 모양입니다. 호랑거미가 문 곳으로 어느 정도 강한 독이 들어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기르고 있던 호랑거미의 그물에 메뚜기가 걸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미가 거미줄로 돌려 감고 나서 가볍게 물었을 때 그 메뚜기 빼앗아 조사해 보았습니다. 친친 감겨 있는 거미줄을 천천히 풀어 보면 메뚜기는 죽지 않고 있습니다. 죽기는커녕 힘찬 몸부림을 시작합니다. 마치 거미에게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은 것같이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손 안에서 몸부림 치고 있던 메뚜기를 아래로 내려놓으면 비실비실 걸을 뿐 힘차게 뛰지는 못합니다. '그런 무서운 일을 겪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아 잘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겠지. 곧 회복할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한 파브르 선생님은 메뚜기를 먹이인 양상추와 함께 상자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메뚜기의 건강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양상추도 먹지 않았습니다.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면서 이틀 후에는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 가지 메뚜기 종류로 실험해 보았으나 모두 결과는 같았습니다. 늑대거미 정도로 강하지는 않지만 독은 역시 독인 듯합니다. 그렇게 강하지는 않더라도 꽁꽁 묶으니까 이런 정도로 충분한 모양입니다. 그러면 거미는 먹이를 어떻게 먹을까요? 오후 1시경 긴호랑거미가 메뚜기를 잡았습니다. 그물 한가운데에서 거미는 메뚜기의 허벅다리가 붙어 있는 곳에 입을 대고 꼼짝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은 상처에 입을 대고 빠는 듯했습니다. 사실 거미는 야금야금 씹어먹는 것이 아니고 입 속에서 소화액이 나와 먹이를 녹인 다옴 꿀꺽꿀꺽 마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체외 소화라고 합니다. 메뚜기의 속알맹이는 입을 댄 곳에서부터 녹아서 거미에게 빨아먹히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먹이가 살아 있어서 피가 몸 속을 돌고 있는 것이 먹기에 더 편할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시간 간격을 두고 거미가 식사하는 것을 들여다보았습니다. 6시간이 지나 밤 9시에 보아도 처음 볼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이 긴호랑거미는 아직도 메뚜기를 빨고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먹이를 빼앗아서 조사해 보았습니다. 메뚜기는 겉으로 볼 때는 변함이 없었지만 속은 완전히 텅텅 비어 있었으며, 몸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거미는 밤동안에 먹는 방법을 조금 바꾸었던 것입니다. 허벅다리의 상처 부위에서는 빨아먹을 수 없는 곳을 마저 먹기 위하여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맨 나중에는 먹이를 잘근잘근 씹어 끝까지 액을 빨고 나서 둥근 찌꺼기를 입 밖으로 토해 버립니다. 거미의 먹이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우연히 그물에 걸리면 무엇이든 좋아합니다. 나비, 잠자리, 벌, 풍뎅이, 메뚜기 등의 곤충은 모양이 서로 달라 어디가 급소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미는 먹이의 몸 아무데나 무는 것이겠지요. III. 게거미 옆으로 걷는 거미 지금까지 땅에 깊은 집을 만들고 땅 위에서 활동하면서 먹이를 잡는 나르본늑대거미 종류와, 나뭇가지 사이에 거미줄로 그물을 치고 날아드는 먹이를 잡는 긴호랑거미를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꽃에 숨어 있다가 꿀을 따러 오는 먹이를 잡는 거미 종류들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런 거미를 게거미라고 합니다. 꽃은 꿀을 좋아하는 벌레들의 레스토랑입니다. 다른 거미와 같이 덫을 쓰지 않는 이 거미는 먹이가 되는 벌레가 모여드는 곳에서 꾹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걷는 방법이 게와 꼭같아 게거미라는 이름이 붙은 이들은 종류가 많으며, 살받이거미라고 불리우는 것도 있습니다. 살받이란 옛날에 활을 쏠 때 과녁 뒤에 산 모양으로 쌓아 올린 흙을 말하며, 과녁을 벗어난 화살이 여기에 꽂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삼각형을 닮은 살받이거미의 배가 그 살받이와 모양이 비슷하여 그런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5월부터 6월에 이르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프랑스 남부의 황무지에 가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분홍색 꽃이 있습니다. 한 겹으로 된 장미 같은 이 꽃은 프랑스어로 시스트라고 하며, 지중해 연안 지방의 야생화입니다. 이른 아침 공기가 서늘한 동안에 피었다가 반나절 만에 시들어 버리므로 반나절꽃이라고도 불립니다. 꿀벌은 이 꽃에 꿀을 따려고 찾아듭니다. 몸에는 꽃가루가 잔뜩 붙어 노란색이 되어 있습니다. 관 모양의 긴 주둥이로 꿀을 따는데 정신을 팔고 있을 때 꽃 뒤쪽에서 꽃과 같이 아름다운 색을 가진 어떤 생물이 숨을 죽이고 다가와 갑자기 달려듭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벌이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습니다. 물린 곳은 뇌에 이어지는 신경의 중심, 즉 급소입니다. 벌을 문 것은 게거미였습니다. 이 거미의 독은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물린 곳이 급소인 만큼 꿀벌은 곧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죽어 버립니다. 독침을 갖고 있는 벌을 단번에 해치우는 것을 보면 사냥 솜씨가 아주 훌륭합니다. 사냥꾼인 게거미는 침착하게 꿀벌의 피를 다 빨아먹고 나서 시체는 던져 버립니다. "열심히 일하는 꿀벌이 왜 죽어야 하며, 그의 피가 왜 빨아먹혀야 할까요? 사람이 사는 세상에도 흔히 있는 일이듯,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힘센 자에게 왜 무참하게 봉변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이런 참혹한 광경을 볼 때면 파브르 선생님은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게거미는 대단히 아름다운 색깔을 가졌습니다. 손으로 만져 보고 싶어질 정도로 귀여운 거미입니다. 살아 있는 보석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 몸은 비단과 같이 매끈거리고, 새하얗거나 주황색을 띠고 있습니다. 더욱이 다리에까지 장미빛 둥근 테가 몇 개나 그려져 있고 등에는 분홍색 장식이 있으며, 종류에 따라서는 연한 초록색 띠가 가슴 양쪽에 있는 것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하여 알 주머니를 지킨다. 게거미는 늘 반나절꽃에서 살며 알도 반나절꽃의 높은 가지 끝에 낳습니다. 5월 말경 게거미의 암컷은 거미줄을 끌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가지 위에 거미줄로 된 작은 비단 주머니를 만듭니다. 그리고 마른 잎 두세 장을 거미줄로 얽어 비단 주머니와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흰 비단 주머니가 다 만들어지면 거미는 그 속에 알을 낳고 흰 비단 뚜껑을 덮습니다. 그리고 나서 끝으로 주머니 위를 엷은 시트와 같이 거미줄을 쳐서 덮고 엮어 둔 잎의 한구석에 숨어 버립니다. 통통하던 배는 알을 낳은 후에는 납작해집니다. 어미는 바닥에 납작 붙어 있으면서 계속 알을 감시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알에게 좋지 않은 짓을 할 듯한 것이 다가오면 숨어 있던 곳에서 휙하고 나가 쫓아 버리곤 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연구실에 사육용 화분을 준비하여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보릿짚으로 가만히 알 주머니를 건드리자 어미거미는 양쪽 앞다리를 들고 덤벼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미거미를 떼어 놓으려고 해도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너무 거칠게 다루면 거미가 다칠 염려가 있어 이 기특한 어미를 다루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알 옆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무리하게 떼어 놓아도 곧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르본늑대거미도 알 주머니를 지킬 때는 필사적이었습니다. 게거미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르본 늑대거미는 자기의 알 주머니를 빼앗기고 다른 거미의 것이 주어졌을 때도 아무런 구별 없이 힘껏 껴안고 있었습니다. 게거미도 다른 게거미가 만든 흰 비단 알 주머니로 옮겨 주자 그것을 힘껏 지킵니다. 이것은 어미의 애정이라기보다는 본능일 것입니다. 다리 밑에 비단 주머니가 있으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입니다. 나르본늑대거미는 다른 거미의 알 주머니뿐만 아니라 코르크 공을 주어도 그것을 껴안고 있었습니다. 게거미의 경우는 어떨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누에고치로 게거미의 비단 주머니와 아주 비슷한 것을 만들어 알을 지키고 있는 게거미를 핀셋으로 집어다 그 위에 놓아 보았습니다. 그랫더니 게거미는 곧 그 곳에서 도망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게거미는 나르본늑대거미보다 영리한 것일까요? 아니면 선생님이 만든 가짜 알 주머니가 진짜 알 주머니와 별로 닮지 않아 속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5월 말에 알을 다 낳고 난 게거미의 암컷은 알 주머니 위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야위어서 몸에는 주름까지 생겼습니다. 배가 무척 고플 거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거미가 좋아하는 꿀벌을 주어 보았습니다. 핀셋에 잡혀 있는 꿀벌이 윙윙 소리를 냈습니다. 조금만 움직이면 곧 맛있는 먹이가 손에 잡히는데도 게거미는 전혀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미거미는 더욱 여위어 갔습니다. 어미거미는 알 주머니 속에서 알이 깨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긴호랑거미의 새끼들은 튼튼한 알 주머니 속에 갇힌 채로 버려졌습니다. 새끼들이 안에서 주머니를 뚫고 밖으로 나올 능력은 물론 없습니다. 그래서 주머니가 스스로 폭발하여 갈색 쿠션째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게거미의 알 주머니 바깥쪽에는 마른 잎이 붙어 있어 이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튼튼해서 잘 터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안의 새끼들이 제 힘으로 구멍을 만들고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므로 어미가 밖에서 구멍을 만들어 나오는 것을 도와 줄 필요가 있습니다. 깡마른 어미가 알맞은 시기에 새끼들을 알 주머니에서 탈출시키기 위하여 5--6주 동안이나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알 주머니에 구멍을 만들고 나면 어미거미는 주머니를 지키기 위해 위를 덮은 채로 죽어 버려 바싹 마른 시체가 되는 것입니다. 꿀벌을 죽이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렇게 밉던 게거미가 아주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햇볕을 쬐고 바람에 실려 7월이 되면 새끼들은 알 주머니에서 빠져 나옵니다. 게거미의 새끼들도 나르본늑대거미의 새끼들처럼 여행을 할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사육용 화분을 덮고 있는 철망 위에 가는 나뭇가지 묶음을 놓아 주었습니다. 새끼거미들은 그물코를 빠져 나와 나뭇가지 위로 기어 올라가 그 곳에 거미줄을 치고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이틀 정도 그 곳에 가만히 있던 새끼들은 이윽고 여기저기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출발할 때가 된 모양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화분을 연구실 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새끼들은 드디어 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단, 전부 한꺼번에 출발하지는 않습니다. 갈팡질팡 큰 혼잡이 일어났습니다. 꽁무니에 거미줄을 달고 휙 밑으로 떨어지는 놈, 반대로 가지로 되돌아가는 놈 등 가지각색입니다. '아, 그래. 햇볕이 모자랄 거야.' 햇볕이 방안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 햇볕이 쬐는 창가로 장소를 옮겨 주니까 새끼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변했습니다. 갑자기 활발해지더니 서너 마리씩 떼를 지어 나뭇가지에 휙하고 올라가서 꽁무니로부터 우리 눈으로는 잘 볼 수 없을 만큼 가는 거미줄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람 부는 방향을 확인 하는 듯 거미줄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는 그대로 날아 창에서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실삼나무의 짙은 초록색을 배경으로 햇볕에 반짝거리는 빛나는 점처럼 보였습니다. 새끼거미는 위로 올라가 실삼나무에서 드디어 사라져 버렷습니다. 다른 놈들도 그 뒤를 따라 사방으로 바람을 따라 제멋대로 흩어져 갑니다. 그러는 동안에 새끼들 전부가 거미줄을 바람에 휘날리며 출발 준비를 끝냈습니다. 모두 한꺼번에 나는 광경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마치 불꽃놀이 같았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게 마치 무언가가 폭발한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화려한 출발인가! 새끼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한껏 소리치고 싶은 광경입니다. 그러나 저렇게 작고 가냘픈 새끼들은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다 자란 어미를 보게 되는 것은 봄날 반나절꽃 위에서일 것입니다. IV. 랑그도크전갈 1. 모래 속의 집 무서워했던 전갈 모험 소설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열대 지방을 탐험하던 사람이 아침에 침대에서 내려와 가죽 장화를 신으려고 합니다. 그 때 무언가 이상한 예감이 들어 가죽 장화를 거꾸로 털어 봅니다. 그러자 안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고 큰 검은색 전갈이 나옵니다. 만약 이것에 찔렸다면^5,5,5^. 아무리 용감한 탐험가라도 소름이 끼칠 것입니다. 열대 지방에서는 연상 게임을 할 때 '가죽 장화'라고 하면 '전갈'이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전갈은 아프리카나 인도와 같은 열대 지방의 생물로 지구상에 약 600여 종 있으며,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뿐아니라 지중해 연안 지방은 기후 풍토가 아프리카의 북부와 닮아서 아주 건조하고, 여름에는 대단히 덥습니다. 이런 건조한 황야 같은 곳에 전갈이 살고 있습니다. 모습도 무섭고 독이 있어서 전갈은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루크레티우스라는 학자는 "두려움이 여러 가지 신을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깊은 숲 속의 어둠, 우뢰나 산사태, 홍수, 그리고 심한 가뭄 등 자연의 위대한 힘을 보게 된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배하는 어떤 위대한 존재를 생각하고 그것을 두려워하여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선과 악의 신이 있다고 믿게 된 시초인 것입니다. 별자리에 전갈의 이름이 붙어진 것도 이를 두려워한 사람들이 하늘 높이 떠받들었기 때문입니다. 별점을 칠 때 전갈은 10월과 11월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전갈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 생활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알코올에 담겨 있는 전갈을 해부하여 몸의 구조는 정확히 조사할수 있으나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는 잘 모릅니다. 특히 파브르 선생님 시대에는 전갈의 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늘 바위나 돌 밑에 숨어서 혼자서 살고 있고, 잘못 건드리면 물려서 큰일나므로 자세히 조사한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전갈을 파브르 선생님이 어떻게 연구하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처음 랑그도크전갈을 본 것은 젊은 시절, 아비뇽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 당시 선생니은 론 강을 끼고 거리의 건너편에 있는 뵈르누브 언덕에 자주 가곤 하였습니다. 목요일에는 수업이 없었으므로 뵈르누브 언덕에 가서 하루 종일 수많은 돌을 들추었습니다. 왕지네를 채집하려는 것이었는데, 선생님은 이 지네를 연구하여 논문을 쓸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돌을 들추면 때때로 큰 지네 대신 다른 무서운 생물이 나타나는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랑그도크전갈이었던 것입니다. 전갈은 꼬리를 등 위로 말아 올리고 돌 밑에 파 놓은 집 입구에서 가위처럼 생긴 양쪽 다리를 벌리고 덤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꼬리 끝의 구부러진 침에는 투명한 독방울이 번쩍이고 있습니다. 이런 놈에게 찔리면 무서운 일을 당합니다. 선생님은 소름이 끼쳐 돌에서 얼른 손을 뗍니다. 이 시절의 파브르 선생님은 하루 종일 왕지네를 채집하느라 녹초가 되곤 했지만 마음은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학문을 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자연을 직접 관찰하는 즐거움이 선생님의 마음속을 환하게 비춰 주고 있었습니다. 지식이란 정말 사람의 마음을 끌고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 때 채집한 것은 왕지네뿐으로 전갈에는 손을 대지 않았으나 언젠가 이 전갈도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선생님은 막연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50 년이 지났습니다. 세리냥에 아르마스라고 이름 붙인 집을 갖게 된 선생님은 곤충의 연구에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벌이나 쇠똥구리 등의 생활을 조사하고 거미에 대한 연구도 대강 끝난 이제, 드디어 랑그도크전갈을 연구할 때가 온 것입니다. 세리냥의 언덕 남쪽, 돌투성이 황무지는 전갈의 천국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북쪽으로는 랑그도크전갈이 거의 살지 않습니다. 전갈은 거친 땅의 돌 밑에 한 마리씩 따로 떨어져서 숨어 살고 있습니다. 전갈의 집 구조는 아주 간단합니다. 넓적한 돌 밑을 보았을 때 조금 우묵한 곳이 있으면 거기가 전갈의 집인 것입니다. 허리를 굽혀 그 구멍 속을 들여다보면 주인인 전갈이 구멍 입구에서 두 개의 집게로 버티고 꼬리를 머리 위까지 쳐들고는 곧 찌를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섣불리 손을 대면 틀림없이 당하게 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우선 핀셋으로 독침이 있는 꼬리를 누리고 머리부터 두꺼운 종이 주머니 속에 넣은 다음 도망치지 못하게 입구를 막고 양철 상자 속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채집하면 안전합니다. 집게와 독침 그런데 남부 유럽의 전갈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가장 널리 분포하고 있는 것은 검은전갈이라는 작은 종류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주 쓰지 않는 우물 뚜껑을 열어 보면 컴컴한 곳애 숨어 있으며, 가을비가 계속해서 내리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저는 침대 속까지 기어드는 수가 있습니다. 아주 무서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독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위험하다기보다 모습만 무서운 벌레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연구하고자 한 랑그도크전갈은 검은전갈보다는 훨씬 몸집이 크고 무서운 전갈입니다. 수도 적고 사람들 집에 들어오는 일은 더군다나 없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황무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몸의 길이는 8--9센티 정도이고 보릿짚과 같은 색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전갈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몸은 머리와 가슴이 붙어 있는 두흉부와 복부(배)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입의 양쪽에는 작은 집게가 두 개 붙어 있습니다. 그 뒤에 눈에 잘띄는 큰 집게가 두 개 있고 다리는 네 쌍, 즉 여덟 개입니다. 이 다리로 기어다니거나 흙을 팝니다. 전갈의 몸은 여러 개의 체절로 되어 있습니다. 전갈의 꼬리라고 불리는 부분은 사실은 배의 일부입니다. 이것은 손도끼로 홈을 파낸 것과 같은 삼각형의 체절이 다섯 개 연결되어 있으며, 끝에는 무서운 갈고리침이 달린 여섯 번째의 체절이 붙어 있습니다. 갈고리침 끝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있어 물과 같이 투명한 독액이 나옵니다. 갈고리침은 아주 단단해서 이것으로 마분지를 찌르면 푹푹 뚫어질 정도입니다 침은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서 전갈이 배를 반듯하게 펴면 침 끝이 밑을 향하게 됩니다. 전갈은 양쪽 집게로 꽉 누르고 적의 머리 위에서 이 침으로 찌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갈의 필승 전법입니다. 상대는 전달의 집게에 정신이 팔려 위에서 독침이 덮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으므로 대개는 순식간에 당하고 맙니다. 걸을 때나 쉴 때나 전갈은 항상 꼬리를 위로 치켜 올려 머리 위에 놓고 있습니다. 얼굴이라기보다는 뺨의 옆에 생긴 손과 같은 큰 집게는 가재의 집게와 같습니다. 전갈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면서 양쪽의 집게를 앞으로 겨누어 무엇이든지 더듬어 봅니다. 적과 싸울 때도 이 집게는 큰 역할을 하며, 잡은 먹이를 씹을 때는 집게를 손처럼 놀려서 먹이를 입까지 가져갑니다. 다리 끝은 나무를 자른 것과 같이 뭉툭하나 구부러진 발톱이 달려 물건을 잡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전갈은 둔해 보이는 몸매이지만 이 발톱을 이용하여 사육 상자의 그물눈을 타고 기어오르기도 하고, 천장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여덟 개나 되는 전갈의 눈은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두흉부의 한가운데에 큰 눈이 두 개 있는데, 이것이 번쩍일 때는 나르본늑대거미의 눈을 생각하게 합니다. 전갈은 곤충이 아니라 거미에 가까운 벌레입니다. 전갈의 눈은 광각 렌즈와 같이 둥글게 튀어나와 있어서 주위를 넓게 살필 수 있는 대신 근시가 틀림없습니다. 나머지 두 그룹의 눈은 모두 아주 작고 몸의 앞쪽 끝에 좌우로 세 개씩 한 줄로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눈을 가진 전갈에게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전갈은 집게를 앞으로 뻗어 앞에 있는 물건들을 더듬으며 걷습니다. 또 전갈의 배 쪽, 다리가 붙어 있는 곳에는 '절상판'이라는, 얇은 머리빗을 여러 개 세워 놓은 것 같은 이상한 기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갈에만 있는 기관인데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아직껏 확실하지 않아서 학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호흡에 쓴다든가, 소리를 듣는다든가, 냄새를 맡는다든가, 짝짓기할 때 이용한다던가 등등 참으로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이 절상판은 전갈이 가만히 있을 때는 배에 찰쌀 달라붙어 있으나 걸을 때는 오른쪽과 왼쪽이 교대로 배에 직각이 되도록 세워집니다. 때문에 이렇게 하여 몸의 균형을 잡는다고 하는 학설도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세리냥의 언덕에서 잡은 두 마리의 전갈을 네모난 나무 사육 상자에 넣었습니다. 거기에 돌이나 기왓장 등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자 두 마리의 전갈은 당황하고 있습니다. 뒤에 있던 전갈이 앞에 다른 전갈이 있는 것을 모르고 걸어가다가 부딪치는 일이 있습니다. 집게 끝이 앞에 있는 전갈에 닿으면 닿은 쪽의 전갈이 진저리를 하듯 몸부림을 치고 뒤로 물러나 방향을 바꿔 도망쳐 버립니다. 아주 겁이 많은 놈입니다. 전갈 마을을 만들다. 파브르 선생님은 전갈을 키우는 방법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관찰하기 쉽고 자연 상태에 가까운 방법은 없을까? '이 아르마스의 마당은 원래 거친 땅이어서 전갈이 좋아할 텐테^5,5,5^. 그래, 여기에 전갈을 데려다 살게 하면 된다. 정원에 전갈의 마을을 만들어 주자.'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마음먹었습니다. 위험한 전갈을 놓아 키운다면 아마도 보통 가정이었으면 가족들이 반대했을 것입니다. "애들이 쏘이면 어떻게 해요?"라고 부인이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의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연구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장소는 로즈메리 관목 울타리가 바람을 막아 주고 햇볕이 잘 드는 북쪽의 구석진 곳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돌투성이인 데다가 차진 붉은 흙이어서 전갈의 집으로는 그리 좋은 곳이 못 되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구덩이를 크게 파고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군데를 전갈집 입구와 같이 조금 오목하게 파고 그 위에 넓적한 돌을 덮어 지붕으로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인공적인 집에 전갈이 살아 주느냐입니다. 어찌 돼든 잡아 온 20 마리의 전갈을 각 집의 입구에 놓아 보았습니다. 그러자 전갈들은 스스로 슬슬 돌 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음에 쏙 든 모양입니다. 인구 20의 전갈 마을이 생겼습니다. 전갈은 이웃이 가까우면 서로 싸우므로 집을 띄엄띄엄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등불로 비추면서 밤에도 조사할 수 있도록 집을 나란히 줄지어 만들었습니다. 먹이는 걱정 없습니다. 이 근처는 전갈들의 진짜 집과 아주 비슷하여 벌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선생님은 전갈이 제 힘으로 혼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실 테이블 위에서 정원의 전갈 마을뿐 아니라 연구실 한가운데 놓인 큰 테이블 위에도 화분을 이용하려 사육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무언가 생각에 잠겼을 때 이 테이블 주위를 빙글빙글 몇 번이고 도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그 주위를 돌았는지 마룻바닥의 타일이 닳아 걸은 자국이 나 있을 정도입니다. 그 큰 테이블 위에 우선 큰 화분을 여러 개 가져다 놓았습니다. 체로 친 모래를 화분에 가득 채우고 깨진 화분 조각을 두 개씩 반 정도 묻었습니다. 이것이 전갈의 집 지붕입니다. 그 위에 철망을 씌워 한 개의 화분에 수컷과 암컷으로 생각되는 두 마리의 전갈을 짝을 지어 살게 하였습니다. 어느 것이 수컷이고 어느 것이 암컷인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일단 뚱뚱한 갓을 암컷, 여위고 날씬한 것을 수컷으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확인하려면 해부해 보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해부를 하려면 전갈을 죽여야 하므로 적당히 판단을 내려 본 것입니다. 그 중에는 정말 암컷과 수컷 한 쌍이 된 것도 있을 것입니다. 벌레를 기를 때에는 어떻게 다루느냐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손으로 만지면 기운이 빠져 곧 죽어 버리는 것, 반대로 위험하여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 등 다양합니다. 전갈은 물론 후자에 속합니다. 도망 친다고 해서 당황하여 손으로 막으려 든다면 쏘이고 맙니다. 가구 틈에 들어가 버리면 언제 나와서 쏠지 알 수 없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애완동물과 당분간 같이 지내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도망가지 못하게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장치를 하였습니다. 화분에 철망을 씌우고, 철망과 화분이 맞닿는 곳에 진훍을 발라 그 틈새를 막았습니다. 이렇게 해 두면 전갈이 땅을 판다고 해도 도망쳐 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연구실 안의 전갈은 선생님이 먹이를 준비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철망 위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벌레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구멍은 솜으로 막아 두었습니다. 전갈은 햇빛을 싫어합니다. 사육장의 전갈들은 곧 선생님이 미리 넣어 준 화분 조각 밑을 파고 마음에 드는 집을 만들었습니다. 구멍을 파는 모습이 잘 보였습니다. 전갈은 네 번째 다리로 몸을 버티면서 앞쪽의 여섯 개의 다리로 훍을 팠습니다. 보기와는 달리 흙 파는 일에 빠르고도 능숙했습니다. 그리고는 꼬리를 수평으로 뻗쳐 파낸 흙을 뒤로 쭉 밀어냅니다. 큰 집게는 보기에는 억세지만 구멍을 파는 일에는 절대로 쓰지 않습니다. 이것은 먹이를 먹을 때와 적과 싸울 때, 그리고 걸으면서 앞을 더듬을 때만 사용합니다. 전갈은 이렇게 다리로 흙을 긁고 꼬리로 밀어내며 살 집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고는 끝으로 화분 조각으로 된 지붕 밑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테이블의 유리병 속에서 키우는 작은 검은 전갈은 스스로 구멍을 파지 않는 대신 어두컴컴하고 습한 나무 틈새에 있을 뿐입니다. 전갈들이 사라져 버렸다. 한편 마당에 살게된 전갈 마을 주민들은 모두 곧 선생님이 모래 위에 놓아 준 돌 밑에 숨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살아갈 집을 척척 파기 시작했습니다. 안에서 밀려나오는 모래가 입구에 쌓이는 것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2--3일 지나서 돌을 들어 보았습니다. 살아갈 집이 훌륭하게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돌 밑이 입구가 되고 그 곳에서 안을 향하여 넓은 방이 파여 있습니다. 전갈은 날씨가 좋은 낮 동안은 입구에 나와서 가만히 있습니다. 햇볕을 받은 돌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돌을 치우면 재빨리 집 속 깊이 숨어 버립니다. 집의 길이는 7--8센티 정도이고 밤이나 흐린 날, 비 오는 날에는 낮에도 집 속에 웅크린 채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전갈들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혹시 추위로 죽지나 않았나 걱정이 되어 돌을 들춰 보니 전갈은 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덤빌 태세를 취합니다. 추울 때는 그런 모습으로 집속에서 가만히 있으나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입구까지 나와서 햇볕으로 따뜻해진 돌로 등을 데우는 것입니다. 겨울 동안에 하는 일은 이것뿐입니다. 그러나 4월이 되자 전갈의 생활은 갑자기 변했습니다. 사육장 안의 것들은 화분 조각 밑에서 기어 나왔습니다. 낮에도 몸이 무거운 듯 천천히 산보를 하거나 철망에 기어올라 가만히 있거나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집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정원에 있는 전갈 마을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우선 몸집이 작은 것들 중 몇 마리가 밤중에 어디론가 달아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곧 돌아오겠지, 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빠져 나간 것들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큰 것들도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모습을 감추어 버려 전갈 마을은 거의 텅 비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모두들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이 전갈 마을은 자연 상태에 가장 가까우므로 여기서 관찰해 보려고 했던 선생님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한 것입니다. 열심히 찾아 보았으나 도망친 것은 한 마리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몹시 실망했습니다. 사육장만으로는 실험하기에 너무 장소가 좁습니다. 어떻게 마당에서 기를 방법이 없을까 하고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정원에는 전갈을 기르기에 안성맞춤인 울타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콘크리트에 회벽을 바른 단순한 울타리지만 높이가 1 미터나 되고 땅 속으로도 1 미터 정도 묻혀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전갈이 도망치려고 벽 밑을 파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 울타리는 선인장 같은 다육 식물이 겨울 동안 바람을 직접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벽의 표면은 매끄럽습니다. 선생님은 이 울타리 안에 모래를 깔고 기와 조각 대신 넓적한 돌을 여러 개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갈을 잡아다 풀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는 한 마리의 전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전부 20 마리는 되었는데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탈출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전갈은 벽 타는 데 명수입니다. 검은전갈 같은 것은 건물 2층까지도 올라오는 수가 있습니다. 회벽을 바른 울타리가 아무리 매끄럽다고 해도 전갈이 도망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해는 결국 연구실 테이블 위에 놓인 화분 속에서 전갈을 관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와 같이 강력한 햇볕이 없어서인지 테이블 위의 전갈들은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어쩐지 기운이 없어 좋은 실험 재료가 되지 못했습니다. 첫해의 실험은 이렇게 끝나 버렸습니다. 유리로 만든 사육장 겨울 동안 전갈을 기르는 방법에 대하여 이것저것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파브르 선생님은 유리로 둘러싸인 넓은 사육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방의 벽이 모두 유리라면 전갈의 발톱도 미끄러질 뿐 기어오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목수에게 부탁하여 유리로 된 사육장을 만들고, 나무 틀을 매끄럽게 하기 위하여 손수 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모래를 깔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천장을 덮고 더운 날에는 안의 온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천장 뚜껑을 열어 주었습니다. 화분 조각도 스무 개 정도 넣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산책할 길이나 광장이 있는 사육장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전갈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리면을 기어오르지는 못하나 매끄럽게 칠해 놓은 가는 나무틀을 한 발짝 한 발짝 기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전갈들의 기어오르기 경기장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끈질긴 노력의 대가로 전갈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유입니다. 꼭대기까지 올라온 전갈을 발견했을 때 파브르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곧 핀셋으로 집어서 밑으로 떨구었으나 아무래도 위험했습니다. 뚜껑을 항상 닫아 놓을 수는 없으므로 생각 끝에 선생님은 비눗가루를 올리브 기름에 풀어 나무틀에 칠했습니다. 이것으로 도망칠 위험이 조금은 줄어들었으나 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초를 칠한 종이에 기름을 발라 틀에 붙인 뒤에야 겨우 탈출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세 가지 사육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원의 전갈마을, 연구실 테이블 위의 화분, 그리고 유리로 만든 사육장이 그것입니다. 그 밖에 물론 언덕으로 나가서 전갈의 집을 가끔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 세 번째 것이 관찰에 가장 도움이 되었으나 각각의 관찰 결과를 종합해서 전갈의 생활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전갈인 만큼 활발한 벌이나 쇠똥구리와는 취급하는 방법에서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파브르 선생님은 걱정이 되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말수가 적은 전갈들이여. 그대들은 앞으로 나에게 생활의 비밀을 말해 줄 것인가." 2. 전갈의 식사 보기보다 적게 먹는 전갈 전갈을 키우면서 파브르 선생님이 제일 먼저 알게 된 사실은, 전갈은 정말로 조금밖에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갈이 지닌 거대한 집게나 독침 같은 무기를 본 사람은 누구나 이 벌레는 분명히 맹렬하게 먹이에 달려들어 마구잡이로 먹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집을 조사하면 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도깨비 동굴같이 먹이 찌꺼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발견한 것은 아주 적은 찌꺼기였습니다. 매미충의 초록색 날개, 풀잠자리 투명한 날개, 작은 메뚜기의 일부분, 이런 것들이 조금 있을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을 때도 많습니다. 이것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정원의 전갈 마을을 잘 조사해 보면 더욱 확실합니다. 전갈에게는, 마치 병원에 입원하여 정해진 시간 이외에는 식사를 할 수 없는 환자와 같이 먹지 못하는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6--7개월이나 되는 긴 기간을 전갈은 집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겨울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이 때에는 무엇을 주어도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꼬리를 이용하여 먹이를 밖으로 밀어낼 뿐입니다. 3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조금씩 먹기 시작합니다. 때때로 작은 지네나 노래기를 씹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작은 먹이라도 한 마리만 먹으면 그 후로 오랫동안 먹이를 입에 대지 않습니다. 저런 정도의 무기를 갖고 있으니까 머지않아 큰 먹이를 잡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하겠지, 하고 생각하던 파브르 선생님은 그만 맥이 빠져 버렸습니다. 전갈은 작은 먹이밖에 잡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대단한 겁쟁이입니다. 사마귀 새끼와 마주쳐도 깜짝 놀란 듯한 모습이고, 날개를 자른 배추흰나비를 먹이로 넣어 주었을 때도 퍼덕거리는 나비에 놀라 도망쳐 버립니다. 이런 겁 많은 모습을 보면 웃음이 터질 지경입니다. 여간 배가 고프지 않으면 상대를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정말 싸울 뜻이 있다면 어떤 상대에게도 지지 않을 텐데 도대체 왜 이렇게 온순할까요? 4월이 되어서 전갈이 배가 고파졌을 때는 어떤 것을 먹이로 주면 좋을까요? 전갈은 살아 있는 생물만 먹습니다. 이 점은 사마귀나 거미와 같습니다. 죽은 것은 씹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몸이 크거나 딱딱해도 안됩니다. 처음에 파브르 선생님은 특별히 선심을 쓸 생각으로 큰 메뚜기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전갈은 그것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딱딱해서일까요? 오히려 저 억센 메뚜기 다리에 채일까 봐 겁이 나는지 가까이 가지도 않습니다. 이번에는 배가 통통하고 몸이 연하여 맛있을 것 같은 귀뚜라미를 여섯 마리나 야채와 함께 넣어주었습니다. 귀뚜라미는 전갈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즐거운 듯이 노래를 부르며 야채잎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집에서 나와 걷고 있던 전갈이 다가갔습니다. 귀뚜라미도 전갈을 보고 있었으나 태평입니다. 오히려 집게가 귀뚜라미들 중 한 마리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전갈이 깜짝 놀라 싹 방향을 틀어 도망쳐 버립니다. 여섯 마리의 귀뚜라미는 선생님이 넣어 준 지 한달이 넘도록 전갈과 같이 살았으나 그 때까지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 밖에 쥐며느리나 노래기 등 전갈이 사는 거친 땅에 살고 있는 벌레들을 주어 보기도 하고 애거저리와 같이 전갈의 집 근처에 살고 있어서 꼭 먹이가 될 것 같은 벌레를 주어 보았습니다. 길앞잡이도 주어 보았으나 전갈은 어느 것도 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딱딱한 벌레는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랑거리면서 작은 벌레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쯤 적당한 것을 찾았습니다. 5월의 일이었습니다. 몸길이가 1.5센티 정도 되는 딱정벌레의 일종으로 딱지날개가 말랑거리는 갈색날개썩덩벌레가 아르마스의 마당에 많이 생겨난 것입니다. 꽃이 피어 진노랑색이 된 털가시나무 주위에 이 썩덩벌레의 대군이 구름같이 날고 있었습니다. 2주일 동안 계속해서 생기더니 그 후에는 한 마리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 말랑거리는 딱정벌레라면 전갈도 먹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서너 마리 잡아 두었다가 어슬렁거리고 있는 전갈 옆에 놓아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선생님을 기다리게 하던 끝에 겨우 한 마리의 전갈이 먹을 생각이 난 것 같습니다. 아주 무표정하게 땅 위에 꼼짝 않고 있는 벌레 쪽으로 걸어가서는 마치 나무열매를 집듯이 집게 끝으로 잡았습니다. 이것이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리고 나서 귀부인이 포크로 식사를 하듯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씹기 시작하였습니다. 겨우 전갈이 식사할 때의 동작을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갈색날개썩덩벌레는 물론 아직껏 살아서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전갈은 꼬리의 독침을 입 앞에까지 가져와서 가만히 찔렀습니다. 먹이는 곧 얌전해졌으나 전갈은 씹으면서 몇 번이고 더 찔렀습니다. 큰 입으로 덥석덥석 먹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질겅질겅 씹고 있습니다. 몇 시간 동안이나 씹힌 갈색날개썩덩벌레는 나중에는 우그러진 둥근 공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찌꺼기는 목에 걸리기 때문에 삼킬 수 없습니다. 전갈은 집게를 핀셋처럼 사용해 이 찌꺼기를 입에서 꺼냈습니다. 긴 식사가 겨우 끝났습니다. 아주 적은 먹이를 상당한 시간에 걸쳐 먹은 셈입니다. 한 번 먹고 나면 다음 식사는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독침으로 찌른 먹이를 먹고도 괜찮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독이 상처를 통해서 몸 속의 피와 섞이면 위험하지만 입으로 먹이와 함께 들어갔을 때는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나비 날개의 장식 전갈은 밤에 식사를 합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전갈의 사육장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주로 밤에도 관찰할 수 있는 유리 사육장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습니다. 전갈에게 겨우 식욕이 생기기 시작한 때의 일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마당에 있는 리라꽃에 날아든 배추흰나비류와 산제비나비를 12 마리 정도 채집하여 가져왔습니다. 안된 일이지만 눈을 감고 날개를 반쯤 가위로 자른 뒤 사육장 안에 넣어 주었습니다. 날개가 잘린 나비는 땅위에서 팔딱거리고 있습니다. 저녁 8시경, 몇 마리의 전갈이 각자의 집에서 슬슬 나왔습니다. 집 입구에서 잠시 가만히 있는 것은 지금 밖으로 나가도 별일 없는지를 엿보고 있는 중일 겁니다. 전갈은 꼬리를 둥글게 등으로 말아 올리거나 끝만 쳐든 모습으로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사육장 앞에 등을 매달고 그 불빛으로 관찰합니다. 날개가 반밖에 없는 12 마리의 나비들은 땅 위에서 변함없이 팔딱거리고 있습니다. 겁쟁이인 전갈도 조금은 익숙해진 모양입니다. 걸으면서 나비를 우연히 밟기도 하지만 놀라지 않습니다. 때로는 날개를 잘린 나비가 야단법석을 떨다 전갈의 등에 올라 가기도 하지만 전갈은 상관 않고 나비를 태운 채로 걷습니다. 또 때로는 우연히 전갈의 집게 밑에 들어가는 나비도 있어 입 바로 옆에서 팔딱거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갈이 붙들어서 무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전갈은 나비 같은 것은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가끔 이런 일은 있습니다. 땅 위에서 팔딱거리는 나비를 전갈이 갑자기 입으로 물었습니다. 전갈은 그대로 나비를 문 채 아주 기쁘다는 듯 집게를 휘두르며 계속 걷습니다. 이 때 집게는 앞을 더듬을 뿐입니다. 산 채로 물린 나비는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칩니다. 그 모습은 마치 올림픽 경기 우승자의 머리에서 흰 장식물이 펄럭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비가 심하게 발버둥치므로 전갈은 걸으면서 독침으로 푹푹 찔러 조용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는 내던져 버립니다. 선생님이 주워서 조사해 보니 머리만 물려 있었습니다. 일주일 후, 나비를 몇 마리나 먹었는지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나비의 몸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머리만 깨 물린 것이 서너 마리 있을 뿐이었습니다. 즉, 전갈이 활동하고 있는 일주일 동안 이런 정도의 적은 양밖에 먹지 않았다는 것이 됩니다. 사육장에는 25 마리나 있었지만 어느 전갈이든 나비의 머리를 조금 깨문 정도의 식사로 배가 채워진 듯합니다. 도대체 전갈은 보통때 무엇을 먹는 것일까요? 그것은 역시 땅 위에 있는 벌레들이겠자요. 예를 들면, 풀만 있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메뚜기나 여치 종류입니다. 전갈은 늘 이런 종류를 먹고 있다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나비의 계절인 봄이 지나자 파브르 선생님은 메뚜기나 여치의 애벌레를 전갈에게 주어 보았습니다. 이 때쯤에는 날개가 짧고 몸도 말랑거리는 애벌레가 마당에 가득합니다. 전갈의 먹이로 꼭 알맞을 것입니다. 그 중에는 회색, 녹색, 배가 부른 것, 깡마른 것, 죽마를 탄 모양, 다리가 긴 것, 다리가 짧은 것 등 여러 가지의 메뚜기나 여치가 있습니다. 메뚜기와 여치는 간단히 말하면 더듬이의 길이로 구별하는데, 긴 것이 여치이고 짧은 것이 메뚜기입니다. 밤이 되자 선생님은 유리 사육장의 등불 빛이 닿을 만한 곳에 메뚜기 새끼들을 놓아주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메뚜기는 별로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얼마 안 되어 전갈이 구멍에서 기어 나왔습니다. 전갈이 조용조용 걸어올 때 메뚜기들은 팔짝 뛰었습니다. 그 바람에 전갈은 깜짝 놀라 움츠러들었습니다. 배추흰나비가 팔딱거렸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맛좋은 먹이가 있는데도 결코 달려들지 않습니다. 메뚜기가 가만히 있으면 부딪히거나 몸을 타넘으면서 상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우연히 어떤 메뚜기가 스스로 전갈의 집게 한가운데 뛰어든 일이 있었습니다. 메뚜기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하여 전갈이 집게에 조금만 힘을 주면 잡힐 지경입니다. 그래도 전갈은 아무 일도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작은 녹색 여치 새끼가 톡 튀어 전갈의 등에 올라탄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냥 그대로 둡니다. 악어 위에 작은 새가 올라탄 것 같습니다. 방해가 되면 꼬리로 쫓는 경우는 있으나 싸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전갈은 소식가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갈이 완전히 변신할 때가 있습니다. 5월이 되어 짝짓기의 계절이 되면 갑자기 전갈은 엄청난 대식가가 됩니다. 엄청나다는 말은 이제부터는 보통의 먹이뿐 아니라 자기 동료까지도 먹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사육장의 화분 조각을 들춰 보면 자기 동료를 머리에서부터 우적우적 먹고 있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나 꼬리만은 먹지 않습니다. 전갈은 먹힌 전갈의 꼬리를 며칠이고 입에 물고 다닙니다. 왜 꼬리만은 먹지 않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그 끝부분에 독 주머니가 있어서 맛이 쓰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꼬리 이외에는 전부 먹어 버립니다. 어떻게 그렇게 먹을수 있는지 이상합니다. 자기 몸과 같은 크기의 양을 뱃속에 넣을수 있는 밥주머니가 있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잘 씹은 후 꽉 짜서 넘기기 때문에 밥주머니보다 훨씬 큰 것을 아주 깨끗하게 먹을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됐습니다. 그래도 보통때는 이렇게 많이 먹지 않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때에만 나타나는 습관입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전갈은 몇 년이나 살까? 전갈은 보통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이것을 조사하는 일은 비교적 간단한 일입니다. 연중 여러 계절에 전갈을 채집해 보면 그 때마다 여러 가지 크기의 전갈이 잡힙니다. 조사 결과, 크기로는 5 단계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제 1 단계의 것은 몸길이가 1.5센티이고 제일 큰 제 5 단계의 것은 9센티였습니다. 이 사이에 3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각 그룹은 1 년 정도씩 또는 좀더 나이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기르고 있던 것들은 1 년 동안 크기가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갈은 5 년 이상 사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먹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천천히 오랜 세월에 걸쳐 성장하는 것입니다. 먹이를 전혀 주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전갈을 쿡 찔러 보면 언제나 건강하게 반응을 합니다. 그런 상태가 6--7개월 동안이나 계속 되는데 이에 필요한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몸 속에 영양분이나 지방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벌레는 자기 몸을 깍아 가면서 힘을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해부해 보아도 몸 안에 특별한 지방 종류는 없습니다. 공장에서라면 한 덩어리의 석탄을 이용하여 일 년 간이나 계속 기계를 돌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의 전갈들은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처음과 같이 건강하고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이 활력은 도대체 어디서 올까요? 우리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전갈도 곤충처럼 크면서 탈피(허물벗기)를 합니다. 그 때에는 역시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이 때 먹이를 먹지 못하면 쇠약해집니다. 특히 작은 전갈들은 금방 죽어 버립니다. 3. 전갈의 독 독거미와의 결투 전갈은 보통 작은 먹이를 잡을 때는 절대로 독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독액을 될 수 있는 한 쓰지 않고 아껴 두려는 속셈일 것입니다. 그저 집게로 잡고 천천히 먹습니다. 먹이가 발버둥쳐서 귀찮게 할 때만 몇 번 침을 놓아 조용하게 합니다. 독침이 정말 필요한 때는 강적을 맞아 자기가 당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들판에서의 전갈의 적이 무엇인지 관찰할 기회는 없었으나 전갈이 마음먹고 싸우는 장면은 실험으로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독이 얼마나 강한가를 시험해 보려고 여러 종류의 강적들과 결투를 시켜 보았던 것입니다. 먼저, 가장 강하다고 생각되는 상대는 나르본늑대거미였습니다. 선생님은 큰 유리병 속에서 랑그도트전갈과 나르본늑대거미를 대결시켜 보았습니다. 제 1장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나르본늑대거미는 크고 강한 거미입니다. 무서운 독이빨을 갖고 있어 단 한 번 무는 것으로도 먹이를 쓰러뜨립니다. 그러면 어느 편이 이길까요? 독거미의 몸은 전갈만큼 딱딱한 것도 아니고 탄탄해 보이지도 않지만 동작이 빨라 상대에게 갑자기 달려들 수 있습니다. 전갈이 미처 싸울 준비 자세를 갖추기 전에 독이빨로 콱 물고 살짝 빠질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예상으로는 동작이 빠른 거미가 승리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습니다. 대결이 시작되면 독거미는 두 앞다리를 들고 이빨을 한껏 펴면서 싸울 준비를 갖춥니다. 이빨 끝에서는 독물 방울이 반짝거립니다. 전갈은 집게를 앞으로 치켜들고 천천히 다가갑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미의 몸을 재빨리 집게로 눌러 버렸습니다. 이제 거미는 급해졌습니다. 독이빨로 물려고 하나 집게로 집혀 있어서 상대의 몸에 이빨이 닿지 않습니다. 그 때 전갈은 천천히 꼬리를 거미의 등 쪽으로 돌렸습니다. 결코 재빠른 일격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마디투성이의 꼬리를 휘둘러 찔렀습니다. 그리고 거미의 몸에서 침을 바로 빼지 않고 돌려 가면서 밀어 넣었습니다. 독액을 충분히 주입하는 것이겠지요. 독은 금방 효과를 나타냅니다. 독거미는 다리에 경연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여섯 마리의 거미를 써서 이 무써운 싸움을 되풀이해 보았지만 언제나 전갈이 어이없을 만큼 쉽게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독거미를 발견한 전갈이 천천히 다가가 집게로 적을 누르고 침으로 찌르면 거미는 곧 죽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거미를 발로 밟았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죽을까요?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전갈은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죽인 거미를 질근질근 씹어 먹어 버렸습니다. 그 큰 거미가 마치 요술처럼 전갈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소식만 하는 이런 벌레는 뱃속에 저장이 가능합니다. 아무튼 특별한 위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독거미가 갑자기 휙 덤벼들었다면 어느 정도 싸움이 되었을 텐데 앞다리를 들고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는 동안에 전갈에게 깨끗이 진 것입니다. 만약 거미줄을 치는 거미류와 상대하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은 거미줄을 치는 거미 중에서 가장 강한 왕거미, 호랑거미, 붉은호랑거미 등을 전갈 앞에 놓아 보았으나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하고 말았습니다. 거미류는 전갈의 모습만 보면 무서워지는지 흔히 쓰는 투망전법도 써 보려 하지 않습니다. 이 거미들은 거미줄 위에서 싸울때는 사마귀든 말벌이든 큰 메뚜기든 가리지 않고 끈적거리는 거미줄 투망을 써서 뱅뱅 돌려 묶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전갈이라도 문제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그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아주 비참하게 지고 맙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실험은 하지 않았으나, 반대로 거미줄 위에 전갈을 놓아 보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물론 호랑거미와 왕거미는 사는 장소가 전갈과 다르기 때문에 보통때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전갈은 본능적으로 거미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또는 먹지 못하는 것인지를 알겠지요. 사마귀와의 승부 파브르 선생님은 다음으로 전갈과 무서운 육식 곤충이 황나사마귀를 대결시켜 보았습니다. 화분 속에 큰 전갈과 큰 사마귀를 함께 넣은 것입니다. 사마귀는 전갈이 다가오면 빈틈없이 양쪽 낫(앞다리)을 앞으로 벌려 준비 자세를 취하고, 날개를 펴서 될 수 있는 대로 자기를 크게 보이려고 합니다. 고양이나 사람을 상대할 때도 사마뒤는 이런 모습으로 상대방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전갈은 그대로 다가가서 쉽게 집게로 사마귀의 몸을 눌러 버립니다. 그리고는 독침으로 사마귀의 두 앞다리 사이의 가슴 한가운데를 찌르고 침을 빙빙 돌려 상처를 깊게 합니다. 침을 뽑았을 때엔 침 끝에 투명한 독방울이 반짝거립니다. 찔린 사마귀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킵니다. 배로 거칠게 숨을 쉬면서 다리만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앞다리, 더듬이, 입의 동작이 차례로 멎어 버리고, 15분이 지나자 사마귀는 완전히 죽어 버렸습니다. 전갈이 특별한 곳에 선택하여 찌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우연히 사마귀의 가슴 한가운데 있는 신경계의 중요한 부분을 찌른 것이지만 만약 이런 급소가 아니고 다른 곳을 찌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실험할 때마다 새로운 전갈을 이용하였습니다. 적을 한 번 찔렀을 때 독액을 모두 써 버렸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독액을 갖고 있는 다른 전갈을 준비하여 특히 큰 암사마귀를 그의 상대로 선택했습니다. 사마귀는 상반신을 치켜들고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잘 돌아가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전갈의 빈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물론 양쪽 앞다리를 들어 싸울 준비를 하고 날개를 비비면서 싸악싸악 위협하는 듯한 소리도 냅니다. 사마귀가 휙 움직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톱니같이 생긴 앞다리로 드디어 전갈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잘한다."하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나올 뻔했습니다. 전갈이 언제나 너무 간단하게 상대를 해치우자 선생님은 은연중에 사마귀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귀가 꼬리를 꼭붙잡고 있는 동안은 전갈도 독침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마귀가 전갈의 꼬리를 잡은 것은 우연한 일인 듯합니다. 움직이는 것을 그저 잡은 것뿐이었습니다. 과연 사마귀가 이길수 있을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피로해진 것인지 또는 질려서인지 사마귀는 무심코 앞다리의 힘을 풀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사마귀의 죽음을 부른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마귀의 앞다리 힘이 풀리자마자 전갈의 독침이 사마귀의 배를 찔렀던 것입니다. 승부는 끝났습니다. 용수철로 움직이던 인형이 고장난 것처럼 사마귀의 몸에서 힘이 한꺼번에 빠져 버리고, 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사마귀와 전갈이 결투를 하도록 해 보았으나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마귀는 어디를 찔러도 대개 즉사했습니다. 찔린 장소가 어디든 별로 관계가 없었습니다. 독의 효과 파브르 선생님은 처음에 사마귀가 이렇게 빨리 죽는 것은 그 몸의 구조가 정밀하게 되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몸의 구조가 복잡하게 되어 있으면 쇼크를 받았을 때 그만큼 이상이 생기기 쉽게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몸의 구조가 단순한 벌레일수록 독에 대해서 더 강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 선생님은 땅속에 구멍을 만들고 사는 땅강아지나 몸집이 큰 메뚜기 같은 것을 전갈에게 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땅강아지나 메뚜기도 마찬가지로 곧 죽었습니다. 그런데 포도밭의 해충인 어리여치는 전갈에게 찔려도 비교적 오래 살았습니다. 이것은 제 2권에서 랑그도크구멍벌의 사냥감이었던 살찐 여치의 한 종류입니다. 전갈은 이 벌레의 몸통을 찔렀으며 그 순간 이 벌레는 짧은 날개를 떨며 '찍'하고 아프다는 듯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상태로 살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틀이 지나자 어리여치는 다리를 조금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잘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포도즙을 짚에 묻혀 마시게 해 보았습니다. 어리여치는 맛있다는 듯 마셨습니다. 그리고 조금 기운을 차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7일째 되던 날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전갈의 독침에 찔리면 어떤 벌레라도 결국은 죽어 버립니다. 독의 효과가 빨리 나타나느냐 조금 늦게 나타나느냐는 찔렸을 때의 독의 양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의 양을 측정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전갈은 때에 따라 독을 많이 뿜기도 하고 적게 뿜기도 하는 듯합니다. 여러 마리의 어리여치를 써서 실험해 보니, 곧 죽는 것도 있고 오랫동안 괴로워하다 죽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오랫동안 괴로워하다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갈의 상대를 바꿔 보았습니다. 그 결과 여치 종류들이 메뚜기 종류보다 전갈의 독에 대한 저항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여치 종류인 향나무여치로 시험해 보았습니다. 등을 찔리고도 이 벌레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걷고 있습니다. 간혹 조금 뛰어오르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30분 정도 지나면 독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배가 앞으로 구부러지며 걷지 못하게 되어 버립니다. 6시간이 지나면 옆으로 쓰러져서 발버둥치지만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는 동안 점점 기운이 빠져 이틀 후에는 죽어 버렸습니다. 이번 상대는 노란색과 검은색 무늬를 가진 왕잠자리입니다. 저녁때가 되면 아르마스의 정원에 쳐진 생울타리를 따라 커다란 왕잠자리가 모기를 잡아먹으면서 이리저리 날고 있습니다. 잠자리들은 놀라운 운동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경 구조도 복잡하고 미묘할 것이 틀림없다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예상한 대로 전갈에 찔린 왕잠자리는 순식간에 죽어 버렸습니다. 활기찬 매미는 어떨까요? 한여름이 되면 하루 종일 배를 떨면서 플라타너스나무에서 쉴 새 없이 울어대는 활기찬 매미도 전갈에 찌리면 곧 죽습니다. 운동을 많이 하는 벌레는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빨리 쓰러지는 듯합니다. 몸이 큰 딱정벌레 종류는 갑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상처를 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눈을 여덟 개나 갖고 있으면서도 더듬어서 찌르는 전갈이 딱정벌레의 관절과 관절 사이에 있는 얇은 막을 골라 가며 찌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전갈이 찌르기 쉽게 하려고 딱정벌레의 딱딱한 딱지날게를 가위로 잘라 등의 연한 부분을 드러내 보았습니다. 딱정벌레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전갈의 독에 대한 반응을 알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여러 가지 종류의 벌레를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잔혹한 일은 질색이지만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 딱정벌레들을 전갈과 대결시켜 보았습니다. 유럽장수풍뎅이, 하늘소, 쇠똥구리, 먼지벌레, 꽃무지, 왕풍뎅이, 금풍뎅이 등 특별히 딱딱하고 몸이 큰 것들이었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일단 전갈에 찔리기만 하면 죽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상당한 시간 동안 독에 저항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쇠똥구리는 경련을 일으키듯이 움츠렸다가 다리를 뻗어 몸을 들어올립니다. 다리의 신경에 이상이 생겨 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단 넘어지면 다리만 버둥거릴 뿐입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면 죽습니다. 참나무에 기생하는 참나무하늘소와 유럽산사나무, 협죽도에 기생하는 작은참나무하늘소도 처음에는 쇠똥구리와 같이 다리를 뻗칩니다. 이런 상태가 꽤 오래 계속되다가 3--4시간 후에 죽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다음날 죽는 것도 있습니다. 꽃무지나 왕풍뎅이, 긴 더듬이를 갖고 있는 솔수염풍뎅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색먼지벌레는 독침에 찔리면 심하게 발버둥을 쳐서 보기에도 애처롭습니다. 다리를 쫙 뻗고 몇 번이나 넘어졌다 일어났다 하며, 입에서는 진한 갈색 액체를 토합니다. 다음날까지도 고통스럽게 다리 끝을 꿈틀꿈틀 떨며 살아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습니다. 이에 비하면 유럽장수풍뎅이는 아주 조용히 죽어 갑니다. 마치 수행을 쌓은 수도사와 같습니다. 유럽장수풍뎅이는 뿔을 가졌지만 온순한 벌레로, 씩씩함이나 훌륭한 모습에 관한 한 이 딱정 벌레가 프랑스에서 제일입니다. 이 몸집이 큰 장수풍뎅이는 전갈에 찔린 직후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합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터벅터벅 걷고 있습니다. 과연 벌레의 거인이라고 선생님이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독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서 이 몸집이 큰 벌레가 마치 코끼리가 쓰러지듯 비틀거리며 배를 위로 하고 자빠져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쓰러진 채로 3--4일 동안이나 가벼운 발버둥을 치다가 그대로 조용히 죽어 갑니다. 전갈의 독에 강한 나방 나비나 나방의 종류들은 어떨까? 앞서 배추흰나비의 종류를 먹이로 주었을 때 잠깐 보았지만 좀더 자세히 실험해 보겠습니다. 나비는 약해 보이므로 단번에 손쉽게 당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실험 결과, 예상대로 산제비나비나 큰멋쟁이나비는 찔린 즉시 모두 죽었습니다. 박각시나방의 한 종류인 유우포르비아박가시나방도 탈박각시나방도 모두 마찬가지로 즉사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큰공작산누에나방은 전갈의 독에 끄덕없습니다. 이 나방은 제 3권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수컷이 멀리서 암컷을 찾아 몇 킬로를 날아오는 그런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진 나방입니다. 물론 이렇게 몸집이 큰 나방이라면 공격하는 전갈 쪽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나방의 몸이 많은 털로 덮여 있어서 침이 연하고 포근한 털 속에 박혔는지, 제대로 몸에 꽂혔는지 확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큰공작산 누에나방의 등이나 가슴에 있는 털을 없애고 피부가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전갈의 독침이 꽂히는 곳이 확실히 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이 거대한 나방은 끄덕 없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전갈의 독침에 찔린 큰공작산누에나방을 철망 상자에 넣어 테이블 위에 놓아 두었습니다. 나방은 하루 종일 철망에 붙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다음날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철망을 붙들고 있는 나방을 선생님이 일부러 자빠뜨려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큰공작산누에나방은 파닥파닥 떨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죽을까요? 천만에요. 날개를 파닥거리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서 다시 철망으로 기어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오후에 다시 한 번 나방을 뒤집어 놓아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다시 철망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찔린 지 4일째 되던 날, 나방은 기진맥진하여 그물에서 떨어졌으나 죽기 전에 알을 낳아 놓았습니다. 독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고 수명이 다한 것입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방의 큰 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훨씬 몸이 작은 누에나방도 마찬가지로 전갈의 독에 강합니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별로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완강한 지네 다음 상대는 곤충류가 아니고 지네입니다. 전갈과 지네는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원의 전갈 마을에서도 전갈이 지네를 잡아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지네 종류 중에서 가장 강한 스코로펜드라 모르시탄스라는 지네와 대결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다리가 22쌍이나 되며 마치 작은 용처럼 생긴 이 지네는 가끔 전갈과 함께 하나의 돌 밑에 있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먹이를 찾아 밤새 헤매고 다니던 지네가 전갈의 집에 끼여든 것입니다. 두 마리는 싸우는 일도 없이 꼼짝 않고 있지만 언제나 평화롭게 지내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선생님이 전갈과 지네를 유리병 속에 함께 넣고 대결시키자 과연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병 안을 발빠르게 빙빙 돌던 지네가 계속해서 전갈을 건드리자 전갈이 드디어 화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던 전갈이 지네의 머리 근처를 집게로 꽉 물었습니다. 지네는 몸을 뒤틀며 발버둥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전갈은 침착하게 꼭 누르고 독침으로 서너 번 지네의 몸을 쿡 쿡 찌릅니다. 지네도 피사적입니다. 독이빨을 벌리고 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전갈의 두 집게에 눌린 상태로는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싸움이 끝나 갈 무렵 파브르 선생님은 일단 둘을 떼어 놓았습니다. 지네의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좀 약해진 듯합니다. 상처를 핥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세 시간 후에는 다시 기운을 차렸습니다. 전갈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싸움은 다시 시작됩니다. 이렇게 모두 일곱 번이나 전갈의 독침에 찔린 지네는 4일째 되던 날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강한 독거미는 전갈의 일격에 즉사했고, 사마귀나 쇠똥구리 같은 딱정벌레도 마찬가지로 곧 죽었습니다. 이 벌레들은 곤충침으로 몸 한가운데를 찔러 표본 상자의 코르크 판에 붙여 두어도 몇 주일 동안 다리를 움직이고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큰공작산누에나방이나 누에나방은 끄떡없는 듯하고, 지네는 모두 일곱 번이나 찔리면서도 4일 동안이나 소란을 피우며 돌아다녔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습니다. '동물의 몸 구조에는 복잡하고 정밀한 것과 비교적 단순한 것이 있다. 그리고 정밀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수록 고장나기 쉽고 단순한 것일수록 고장이 덜 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생각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벌레가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은 전갈이 그 꼬리 끝에 숨기고 있는 비밀을 완전하게 알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쓰고 있습니다. 꽃무지의 애벌레는 강하다. 전갈이 지닌 독의 효과에 관한 실험을 하던 중 생각지도 않았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생물을 연구하다 보면 이런 뜻밖의 일들이 자주 생깁니다. 몇 번이고 실험해도 늘 같은 결과를 얻게 되어 그로써 확실한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실험 결과가 튀어나와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전갈의 독이 갖는 성질에 관하여 새로운 면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선생님이 여러 가지 벌레로 되풀이하여 실험하였기 때문입니다. 11월 말이라 곤충들이 모두 모습을 감추어 버린 시기의 일이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다른 실험재료가 없어진 때라 꽃무지의 애벌레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마당 한구석에는 마른 잎을 산더미 같이 쌓아 만든 부엽토 더미가 있는데, 그 속에는 언제나 꽃무지의 애벌레가 우글거렸던 것입니다. 추워져도 전갈의 운동 능력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한편 꽃무지의 애벌레는 따뜻한 부엽토 더미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꽃무지의 애벌레를 전갈과 대결하게 해 보았습니다. 꽃무지의 애벌레는 이상하게도 배를 뒤집어 등으로 걷습니다. 전갈과 함께 좁은 화분 속에 넣으면 애벌레는 등으로 걸으면서 힘껏 도망칩니다. 화분 가장자리를 따라 빙빙 도는 애벌레를 전갈은 쳐다보고만 있다가 가까이 다가오면 옆으로 피합니다. '이놈은 별로 맛이 있어 보이지 않아. 그렇다고 무서운 적도 아니야.'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합니다. 전갈은 물론 죽이는 것이 좋아 죽인다는 식의 살인광은 아닙니다. 할 수 없이 선생님은 짚으로 벌레들을 쿡쿡 찌르거나 서로 부딪치도록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전갈은 드디어 꽃무지의 애벌레를 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모양입니다. 꼬리 끝의 독침으로 쿡 찔렀습니다. 꽃무지 애벌레의 몸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전에 다 자란 꽃무지를 전갈이 찌르도록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애벌레도 다 자란 꽃무지와 마찬가지로 당장 경련을 일으키며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몸을 지키려고 돌돌 말고 있던 애벌레는 태연히 몸을 펴고 다시 슬슬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찔려서 상처를 입었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등을 땅에 대고 평상시와 같은 속도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완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태도입니다. 부엽토 위에 놓아 주면 곧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두 시간 후에 파 보니까 찔리기 전과 같이 건강하였습니다. 다음날이 되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여 꽃무지의 애벌레에게는 독이 효과가 없을까요? 애벌레의 몸에서 저렇게 피가 흐르는 걸 보면 심하게 찔린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표면에만 상처가 났을 뿐이고, 독이 몸 속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지.'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독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건강한 꽃무지의 애벌레에게 그 정도 상처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어.'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해 이번에는 같은 애벌레를 다른 전갈의 상대가 되게 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처를 입은 애벌레는 기운차게 걷고 있습니다. 부엽토로 돌려보내자 곧 속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전갈의 독쯤은 아무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이 애벌레 한 마리만이 특별한 체질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파브르 선생님은 다시 열두 마리의 애벌레를 이용하여 같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그것도 한 마리에 대하여 두세 번씩 찔리도록 해 보았습니다. 모든 애벌레들이 쿡 찔리면 아프다는 듯 멈칫하면서 몸을 말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보드라운 땅 속으로 도망쳐 버립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며칠이고 계속하여 조사해 보았으나 전갈의 독 때문에 몸이 불편해진 듯한 기색이 보이는 애벌레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이 애벌레들은 죽기는커녕 훌륭하게 설충으로 자랄 수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이들을 키워 보기로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다음해 6월, 전갈에게 찔렸던 12 마리의 애벌레들은 모두가 고치를 짓고 그 속에서 번데기로 변했습니다. 전갈의 독은 꽃무지의 애벌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독에 저항하는 능력 이렇게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보면서 파브르 선생님은, 렌츠가 쓴 고슴도치와 살무사에 관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새끼가 딸린 고슴도치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고슴도치가 있는 큰 사육장에 커다란 살무사를 넣었더니 고슴도치는 킁킁 냄새를 맡으면서 이 독사에게 다가갔습니다. 고슴도치는 냄새는 잘 맡는 대신 눈은 그리 좋은 편이 못 됩니다. 고슴도치는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이 살무사 쪽으로 다가가서 빨간 입을 킁킁거리며 옴몸의 냄새를 맡습니다. 무서운 살무사는 쉿, 쉿 하고 위협하듯 숨을 뿜으며 고슴도치의 코끝과 입을 몇 번이고 물었습니다. 보통의 동물들이 살무사에게 이런 일을 당한다면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혀를 날름 내밀어서 상처를 핥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킁킁거리며 살무사의 냄새를 맡다가 이번에는 혀를 물렸습니다. 그래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뱀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고슴도치는 드디어 살무사의 머리를 한입에 넣고 그대로 씹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이빨도 독샘도 상관없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뱀을 정확하게 반만 먹고 나서 새끼에게 돌아가 젖을 먹였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고슴도치는 뱀의 나머지 부분을 모두 먹어 버렸습니다. 어미고슴도치도 그의 젖을 먹은 새끼도 모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렌츠는 이 보고서에서 고슴도치가 살무사에게 물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의 종류나 그 작용은 여러 가지로 다릅니다. 독사의 독, 복어의 독, 벌의 독, 남가뢰의 독, 그리고 버섯이나 바곳 등 식물의 독은 각각 다른 것입니다. 고슴도치뿐 아니라 멧돼지나 집에서 기르는 돼지도 뱀에 물려도 아무렇지 않으며, 독사를 잡아 머리에서부터 먹어 버립니다. 또 사람은 가뢰를 두세 마리만 먹어도 심한 고통을 당하다 죽는 반면에 새나 개구리는 가뢰를 먹어도 별 탈이 없습니다. 복어도 자신의 독(테트로도톡신이라는 물질)을 먹어도 좀처럼 죽지 않습니다. 독과 그의 작용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모르는 것이 많으나 조금씩 그 정체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파브르 선생님이 생각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지금의 터키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에는 폰토스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미트리다테스라는 왕은 적에게 독살되지 않으려고 평소에 독을 조금씩 마셔 몸속에 독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나라가 침략을 받아 멸망하게 되었을 때에는 자살하려고 독을 먹어도 죽지 못하여 곤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의 '미트리다테스'라고도 할 수 있는 고슴도치는 독사를 조금씩 먹는 동안에 독에 대한 저항력이 생긴 것이 아니고 그런 특별한 성질을 몸에 지니고 태어난 것입니다. 꽃무지 애벌레의 경우도 확실히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성질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전갈이 꽃무지 애벌레가 살고 있는 부식토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갈과 꽃무지의 애벌레가 들판에서 부딪힐 일은 없는 것이고, 꽃무지 애벌레가 전갈의 독에 대해 저항력을 가질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애벌레는 태어날 때부터 전갈의 독쯤은 별게 아닌 것입니다. 독사를 먹는 고슴도치가 독에 대한 저항력을 갖게 된 이유는 잘 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뻐꾸기가 다른 새들이 싫어하는 털 벌레를 잘 먹는 이유는 털이 위벽에 찔려도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왜 꽃무지 애벌레는 사는 장소가 달라 찔리는 일도 없는 전갈의 독에 대해 저항력을 갖고 있을까요? 그리고 꽃무지 애벌레 이외에도 전갈의 독에 대해 저항력이 큰 애벌레가 또 있을까요? 전갈의 독에 강한 애벌레의 비밀 파브르 선생님은 여러 가지 곤충의 애벌레를 이용하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곤충의 애벌레들은 대부분 전갈에 찔려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곤충학 책에도 쓰여져 있지 않은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집 앞에는 두 그루의 협죽도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럽산사나무의 꽃에 날아드는 작은 참나무하늘소가 그 줄기에 심한 피해를 주고 있었습니다. 협죽도에는 시안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들어 있으나 이 벌레는 도리어 그 향기를 좋아합니다. 협죽도의 독이 얼마나 강한가를 말해 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으려고 보니까 젓가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처의 협죽도 가지를 깍아 젓가락을 만들어 그것으로 식사를 했는데 그만 목숨을 잃었습니다. 협죽도의 독은 그 정도로 강합니다. 그런데 작은 참나무하늘소에게 피해를 입은 협죽도의 가지를 쪼개 보면 그 안에 이 하늘소의 애벌레가 열 마리쯤 들어 있습니다. 실험할 재료를 찾고 있던 선생님은 이 애벌레를 쓰기로 했습니다. 공들여 키운 귀한 협죽도를 못쓰게 만든 벌입니다. 처음에는 성충을 잡아다가 실험해 보았습니다. 전갈에 찔린 하늘소는 곧 죽었으나 애벌레는 아무 탈이 없습니다. 협죽도의 작은 조각들과 함께 병에 넣으면 애벌레는 다시 먹이를 먹으며 자랍니다. 참나무에서 사는 몸이 큰 참나무하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왕풍뎅이, 왕사슴벌레 등도 마찬자기로 성충은 죽지만 애벌레는 전갈의 독침에 대해 저항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실험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꽃무지, 장수풍뎅이, 하늘소, 왕풍뎅이, 왕사슴벌레 등의 애벌레는 식물을 먹는 통통한 벌레들입니다. '이 벌레들은 먹이 때문에 독에 대한 저항력이 큰 것일까? 아니면 몸 속의 두꺼운 지방층이 독으로부터 목숨을 보호해 주고 있는 거일까?' 파브르 선생님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지방층이 얇은 육식성의 깡마른 애벌레로 실험해 보자.'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프랑스에 있는 먼지벌레 중 제일 강한 상어껍질먼지벌레를 잡아 왔습니다. 검고 큰 이 먼지벌레를 전갈과 대결시키자 금색먼지벌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심한 고통 속에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 먼지벌레의 애벌레는 어떨까?" 날씬한 육식의 이 애벌레는 꽃무지나 장수풍뎅이의 애벌레와 같은 두꺼운 지방층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 애벌레 또한 전갈의 독에 대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애벌레는 이 실험을 한 지 2주일 후에 땅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고 다시 성충이 되어 지상에 나왔습니다. 이것으로써 애벌레 시기에 먹는 먹이, 또는 살이 쪘거나 여위었거나 하는 것이 독에 대한 저항력을 나타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벌레의 종류를 바꾸어서 실험해 보았습니다. 산누에나방과 누에나방을 제외한 나비나 나방의 종류가 전갈의 독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알락굴벌레나방이라는 나방으로 실험해 보았으나 역시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아름다운 알락굴벌레나방은 곧 조용히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나무줄기 속에 살고 있는 이 나방의 애벌레는 어떻게 될까? 애벌레는 독침에 찔려도 아무 탈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있던 곳으로 다시 되돌려 주었더니 전처럼 나무 속에서 줄기를 먹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번데기가 되고, 훌륭한 성충으로 성장했습니다. 누에는 어떨까요? 선생님의 집 근처 농가에서는 누에나방의 애벌레인 누에를 많이 키우고 있었습니다. 5월 말, 다 자란 스무 마리 정도의 누에를 얻어 전갈의 독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테이블에 노르스름한 누에 피가 튀었습니다. 그러나 뽕잎 위에 되돌려 주니까 누에는 전과 같은 식욕으로 뽕잎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도 빠짐없이 훌륭한 고치를 완성했습니다. 마지막엔 모든 고치에서 흰누에나방이 나왔습니다. 모두가 상처 하나 없었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의 우람한 애벌레도 피가 흐를 정도로 찔리게 한 후 먹이인 살구나무 가지 위에 놓아 주면 다시 게걸스럽게 살구잎을 먹기 시작하며, 훌륭히 자라서 멋진 고치를 만듭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과 누에나방의 경우는 성충도 전갈독에 저항력이 강한 것은 죽지 않았습니다. 몸의 구조에 열쇠가 있다 전갈에 찔렸을 때의 반응으로 보아 독의 효과에 따라 곤충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애벌레, 번데기, 성충 등으로 변화하면서 몸의 모양이 완전히 변하는 '완전 변태'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애벌레 때의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는 '불완전 변태'를 하는 것입니다. 완전 변태를 하는 것들의 애벌레는 전갈에 찔렸을 때 아무렇지 않으나 성충은 죽게 변합니다. 불완전 변태를 하는 것들은 모두가 죽어 버립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처음에 실험했을 때는 몸의 구조가 복잡하고 예민한 것일수록 전갈의 독에 약해 보였습니다. 나르본늑대거미, 호랑거미, 사마귀등과 같이 특별히 예민하고 동작이 빠른 것들은 깨끗하게 즉사합니다. 먼지벌레와 같이 왠만해서는 잘 죽지 않는 것은 심하게 괴로워 하며 경련을 일으키다 죽습니다. 힘이 센 쇠똥구리는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습니다. 장수픙뎅이나 꽃무지는 며칠 동안 고통스러워하다가 조용히 죽어 버립니다. 그보다 좀더 둔하게 보이는 것이 메뚜기나 여치 종류이고, 효과가 더 늦게 나타나는 것이 몸의 구조나 기능이 단순하여 하등인 것으로 생각되는 지네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정리한 뒤 '신경 조직이 발달한 것일수록 독에 약하다.'고 일단 결론을 지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완전 변태란 무엇일까요? 보통 곤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쓰는 '변태'란 말은 무엇보다도 모양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송충이나 배추벌레가 나방이 되고 나비가 되며, 부엽토에 살고 있는 소시지 모양의 애벌레가 꽃무지나 장수풍뎅이가 되는 것이 단순히 몸의 모양만 변화된 것일까요? '아니다. 그렇지 않다. 몸 속의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듯하다.' 전갈의 독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즉, 변태를 함으로써 벌레의 몸 조직은 완전히 새로워져서 더욱 복잡하고 정밀한 것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딱정벌레는 갑옷 같은 딱딱한 겉껍질과 뿔, 더듬이, 또 억센 다리나 날개가 발달하여 모습이 아름다워지고 좀더 기능적으로 변합니다. 또한 변태를 한 곤충의 내부에서는 더욱 큰 변화가 일어나서 벌레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감수성이 예민한 것으로 변합니다. 즉, 한층 더 예민하고 복잡한 행동을 하는 생물이 되는 것입니다. 애벌레는 단순히 먹고 자랄 뿐입니다. 몸 전체가 소화기관과 같고, 구조도 아주 단순했으나 변태를 끝낸 성충은 훨씬 정밀한 것이 됩니다. 그 대신 성충은 애벌레보다 충격에 약하며 고장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애벌레에게는 별 것 아닌 전갈의 독으로도 성충은 금방 죽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변태하면서 벌레는 보다 완전하게 되지만 그만큼 저항력은 없어진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메뚜기나 여치 같은 불완전 변태류는 몸의 구조가 완전히 변하는 일은 없습니다. 애벌레와 성충의 구조가 같습니다. 그래서 전갈에게 찔리면 어미도 새끼도 곧 죽는 것이겠지요. ---------- 면역과 혈청 이렇게 생각하던 파브르 선생님에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애벌레 때 조금씩 독에 접촉시켜 주면 성충이 되었을 때 독에 대해 저항하는 힘, 즉 면역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병을 이기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면역성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 발견된 지 얼마 안 되는 시대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애벌레 때에 전갈에 찔린 후 계속 자란 성충에 전갈의 독을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박각시나방으로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애벌레 때 전갈에 찔려 면역성이 생겼다고 생각되는 나방도 성충이 된 다음에 다시 찔리면 곧 죽었습니다. 결국 애벌레 때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나방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습니다. '가만 있자. 애벌레 때에 찔리고 나서 성충이 되기까지 날짜가 적어서 면역이 생기지 않은 것일까?'하고 선생님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면역이 생기기까지 좀더 시간이 걸려야 한다면, 성충이 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꽃무지의 애벌레를 써서 시험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10월에 한 번, 그리고 다음해 5월에 또 한 번, 모두 두 번 찔린 것으로 열두 마리를 준비했습니다. 이들 애벌레는 7월 말에 무사히 성충이 되었습니다. 처음 주사한 후 10개월, 두 번째 주사한 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정도면 면역이 생기는 데 충분한 시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다 자란 열두 마리의 꽃무지도 전갈에게 찔리면 보통 것들과 다름없이 모두 죽어 버려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전갈에게 찔려도 아무렇지 않은 꽃무지의 애벌레는 피 속에 독을 없애는 성질을 가진 어떤 물질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애벌레의 이런 피를 성충에게 옮겨 주면 독에 대한 면역성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 당시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혈청 요법과도 같습니다. 혈청 요법이란 파브르 선생님이 전갈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기 10 년쯤 전인 1890 년에 독일의 베링에 의하여 발견된 항독소를 이용한 치료법입니다. 디프테리아나 파상풍 같은 병원균은 독소를 만드는데, 그 독소를 실험 동물의 혈액 속에 주사하면 그 독소를 약하게 하는 물질, 즉 항독소가 혈액 중의 액체 성분인 혈청 속에 생깁니다. 이 혈청을 디프테리아나 파상풍에 걸린 사람에게 주사하면 아주 잘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혈청 요법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꽃무지의 애벌레를 바늘로 찔러 흐르는 피를 유리 접시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가는 유리관으로 그 피를 빨아냈습니다. 그 후 다 자란 꽃무지의 연한 등에 침으로 상처를 내고 유리관 속의 피를 집어 넣었습니다. 꽃무지는 수술 후에도 원기 왕성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애벌레의 피가 성충의 몸 안에 조금 들어간 셈입니다. 이틀쯤 지나 주사한 액이 꽃무지의 온몸에 퍼지는 것을 기다려 전갈과 대결시켰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꽃무지에 대한 혈청요법은 효과가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역시 실패였습니다. 전갈에게 찔린 꽃무지는 수술을 받지 않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곧 죽어버렸습니다. 확실히 이런 실험은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반복해서 해 보지 않고는 진실을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생물을 대상으로 할 때는 조건이 복잡하여 좀처럼 간단하게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4. 전갈의 결혼 전갈 극장 무서운 북서풍이 기승을 부리던 겨울이 가고 따뜻한 계절이 되었습니다. 제비가 따뜻한 아프리카에서 돌아오고 곧 뻐꾸기도 울기 시작할 것입니다. 추운 겨울 동안에는 바삭거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던 아르마스의 전갈 마을이 차차 소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워지면 전갈이 집 밖으로 나와 서성거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결코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 때 끔찍하고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돌을 들추어 보니 그 곳에는 전갈이 두 마리 있었는데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앞에서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날씨가 따뜻해지자 들뜬 전갈이 아무 생각 없이 옆집에 들었다가 변을 당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주의 깊게 살펴보니 희생되는 쪽의 전갈은 모두 별로 크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뿐아니라 색은 연한 갈색이고, 배는 홀쭉했습니다. '그래, 먹히는 놈은 수컷이야.'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암컷은 훨씬 크고 배가 뚱뚱합니다. 그리고 몸의 색이 짙어 쉽게 구별이 됩니다. 우연히 집으로 찾아든 수컷을 해치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선생님은 그 비밀을 밝히고 싶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유리로 된 온실 같은 사육장에 랑그도크전갈을 놓아 주고 자세히 관찰하였습니다. 20 마리의 전갈 모두가 선생님이 마련해 준 기와 조각을 찾아 그 밑에 숨어 있다가 날씨가 따뜻해지자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4월 중순이 되면서 전갈의 동작은 더욱 활발해지고 밤 7시부터 9시경에 활동을 시작합니다. 파브르 선생님네 식구들은 모두 저녁 식사 후 등불을 들고 전갈이 사는 유리 궁전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기르고 있는 개 톰까지도 물론 이 전갈의 극장으로 옵니다. 그러나 이 개는 무심한 얼굴로 모두의 발 밑에 누워서 반쯤 잠들어 있습니다. 전갈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때때로 한 쪽 눈을 뜨고 아이들이 놀아 주지 않나 하는 표정입니다.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꼬리를 흔들어 대지만 모두가 전갈에만 관심이 있어서 톰을 상대해 주지 않습니다. ---------- 어둠 속의 춤 등불 빛을 비춰 주면 모래 위에 놓인 기와 조각 밑에서 한 마리 한 마리 전갈들이 기어 나와 밝은 쪽으로 모여듭니다. 밤에 활동하는 나방은 불빛에 끌려오는데 전갈도 그에 못지않게 불빛을 따라 모입니다. 불빛을 받아 벽에 비춰진 전갈의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 같습니다. 스페인 풍의 춤을 추고 있는 괴물과도 같아 전갈들은 어슬렁어슬렁 어둠 속에서 나타나 불빛 아래 모여 발걸음도 가볍게 빙 둘러 춤추고 있는 대열에 미끄러지듯 끼여듭니다. 공격할 때는 둔해도 이런 때에는 몸이 가벼워져 가뿐하게 뜁니다. 전갈은 지금 결혼 상대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게가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부딪히면 뜨거운 것에 손이 닿은 것처럼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어떤 것은 상대와 조금 장난을 치다 갑자기 도망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곳에서 잠깐 쉰 다음 다시 모여 있는 곳으로 되돌아옵니다. 때때로 여러 마리가 한데 엉겨 심한 몸싸움을 할 때가 있습니다. 다리와 다리, 집게와 집게가 엉키고 꼬리를 치켜들고 서로 부딪치기도 합니다. 머리에는 다이아몬드를 흩어 놓은 것 같은 작은 빛이 점점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빛을 받은 전갈의 빛나는 눈물입니다. 크고 작은 전갈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서로 죽고 죽이는 난투극이라도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컷과 암컷이 벌이는 놀이입니다. 얼마 후 이 난투극은 조용해지고 전갈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어느 놈도 상처 같은 것은 입지 않았습니다. 다시 전갈들이 등불 빛으로 줄줄이 모여듭니다.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서로 머리가 부딪치기도 하고 다른 전갈의 등 위를 걷기도 하지만, 밟힌 쪽이 꼬리를 휙 흔드는 게 고작입니다. 별로 화를 내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서로 싸움 같은 것을 할 때가 아닌 것입니다. 기껏해야 꼬리 끝으로 상대를 치는 정도입니다. 전갈은 독침을 쓰지 않고, 꼬리로 상대를 칠 뿐입니다. 그런데 두 마리의 전갈이 머리와 머리를 맞대고 집게를 뒤로 올려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서로 곧게 뻗은 꼬리를 부비면서 끝을 몇 번이고 얽는 동작을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서로 떨어져 반대 방향으로 가 버렸다. 이 두 마리의 전갈은 그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후에 이것은 약혼자끼리의 인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애정을 고백할 때 전갈은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입니다. 전갈을 바라보고 있으면 언제까지라도 싫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과 가족들은 밤이 깊어 가는 것도 잊고 불빛 속의 전갈 극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귀중한 기록 그 때까지는 전갈의 생태에 관해 보고 된 기록이 거의 없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작은 일도 빼놓지 않으려고 관찰한 사실을 그 때마다 일기 형식으로 써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의 선생님의 나이는 벌써 80세를 넘어 밤 늦게까지 관찰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4월 25일, 선생님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마리의 전갈이 얼굴을 마주 대한 채 집게를 앞으로 내밀어 서로 붙들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암컷과 수컷이 다정하게 악수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두 마리는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유리벽을 따라 기어갑니다. 앞에 서서 뒷걸음을 치고 있는 것이 수컷입니다. 암컷은 집게를 꼭 잡힌채 수컷과 얼굴을 마주하고 수컷이 끄는 대로 따라갑니다. 때때로 멈추게 될 때도 수컷은 암컷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전갈은 이렇게 산책을 즐기는 것입니다. 시골 마을에서도 일요일의 저녁 축제가 끝나면 젊은이들이 한 쌍씩 손을 잡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을 합니다. 전갈의 연인들은 조금 가다가 휙 하고 방향을 바꿉니다. 앞서는 것은 언제나 수컷입니다. 암컷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수컷은 암컷과 나란히 붙어 꼬리로 암컷의 등을 살짝 긁어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암컷은 특별한 반응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한 시간 이상 왔다갔다하고 있는 한 쌍의 전갈의 산책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벌써 늦은 시간이라 선생님은 점점 졸음이 왔습니다. 식구들이 대신 자세히 관찰을 해 주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10시가 다 되었을 때 수컷은 암컷을 기와 밑의 집 입구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수컷은 암컷의 한쪽 집게만 놓아주고 다른 쪽 집게로는 암컷의 집게를 꼭 잡은 채 다리로 흙을 파고 꼬리로 그 흙을 밀어냅니다. 그러자 집 입구가 뻥 뚫립니다. 수컷은 자기가 먼저 들어간 다음 암컷을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두 마리 모두가 들어가면 안에서 입구를 막습니다. 그 날 밤 선생님은 전갈의 꿈을 꾸었습니다. 긴 꿈이었습니다. 전갈이 담요 속으로 기어 들어와서 독특한 걸음걸이로 슬슬 걸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얼굴 위를 걷는 것도 있었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전갈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선생님에게는 즐거운 꿈이었습니다. 다음날, 선생님은 날이 샐 무렵 어제의 전갈집 기와 지붕을 제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는 암컷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수컷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갈의 결혼식을 볼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헛일이었습니다. 구혼하는 수컷 전갈의 결혼식을 확실히 보지 못한 채 6월이 되었습니다. 불빛이 지나치게 강하면 전갈이 그것에만 끌릴 것이라 생각한 선생님은 지금까지 밤 동안 관찰에 쓰던 등불을 사육장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어두컴컴해서 사육장 안이 자세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안에다 매달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전갈들끼리 손을 잡는 방법을 자세히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손을 잡은 전갈들은 암컷과 수컷이 서로 잡고 있는 것일까, 또는 한쪽이 다른 한쪽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등불을 유리 안쪽에 놓아두면 전갈은 모두 빛 쪽으로 모여듭니다. 그 중에는 등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등의 유리에 얼굴을 대고 밝은 쇼윈도의 장식물을 쳐다보는 어린아이처럼 넋을 잃고 빛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드디어 불빛 아래서 수컷과 암컷이 서로 마주보며 물구나무서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꼬리를 부벼 대더니 두 마리가 함께 산책을 떠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적극적인 것은 역시 수컷이었습니다. 수컷이 자기 집게로 암컷의 집게를 꼭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암컷은 집게를 붙잡힌 채 수컷에게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수컷은 암컷의 집게를 제대로 잡을 수 없으면 암컷의 몸의 일부 중 어디든 물고 끌고 가는 일도 있습니다. 암컷의 다리와 꼬리를 붙들고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을 파브르 선생님도 가끔 보았습니다. 암컷 중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데 파브르 선생님이 유심히 살펴보니까 수컷이 이 산책에 끌어내는 것은 작은 암컷뿐입니다. 수컷이 큰 암컷에 손을 대면 암컷은 꼬리를 쳐서 쫓아 버립니다. 그러면 수컷은 곧 단념하고 다른 데로 가 버리는 것입니다. 크고 살찐 암컷은 아마도 지난해에 이미 결혼을 한 듯합니다. 밤 동안 불빛 아래서 손을 마주 잡고 걷던 한 쌍의 전갈은 곧 기와 밑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기와를 제치고 보니 산책할 때의 자세와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손과 손을 마주잡고 얼굴을 꼭 맞대고 있을 뿐입니다. 가끔 두 마리의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을 놓고 싸우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때도 수컷끼리 서로 격투를 하거나 독침을 찌르려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각각 암컷의 집게를 하나씩 쥐고 힘으로 당겨 서로 암컷을 빼앗으려고 할 뿐입니다. 그 대신 두 마리의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의 집게를 붙잡고 각자 자기 쪽으로 당길 때는 정말 온 힘을 다합니다. 수컷들은 있는 힘을 다해 다리를 뻗치고 있기 때문에 꼬리의 뿌리 쪽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입니다. 서로 필사적으로 당기므로 두 마리의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을 둘로 찢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암컷의 집게가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그럴 때도 수컷끼리 꼬리로 상대방을 치는 일은 없습니다. 좀처럼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수컷끼리 다른쪽 집게로 상대를 붙잡으려는 바람에 세 마리가 둥글게 원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앞뒤로 왔다갔다,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마치 빠른 왈츠를 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한 마리의 수컷이 갑자기 손을 떼어 버립니다. 지쳐서 포기한 것까요? 그리고 나서 진 놈은 모두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가 다시 새로운 암컷을 찾습니다. 이긴 쪽은 곧 두 손으로 암컷의 집게를 붙들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산책을 시작합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4월 중순경, 전갈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때로부터 9월초까지 4개월 동안은 어두워지기만 하면 이런 일이 거듭됩니다. 수컷은 암컷을 붙들고 산책에 끌어내는 데에 열중합니다. 그것도 뜨거운 여름철에는 한결 더 심해집니다. 봄 동안에는 손을 마주잡고 산책하는 것들을 볼 수 있으나 7월에는 세 쌍 또는 네 쌍의 암수가 다정하게 산책하고 있는 광경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기와 밑에 들어가 있는 두 마리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만 하였습니다. 한밤중에 가만히 기와를 들춰 보기만 해도 안 됩니다. 지붕이 벗겨지면 전갈들은 곧 그 곳에서 나와 다른 곳을 찾으려고 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며칠이고 참을성 있게 조사하였으나 결국 기와 밑에서의 전갈의 생태는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전갈의 결혼은 함밤중에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두 마리의 전갈 중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먹는 것은 결혼식이 끝난 후의 일입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수컷은 재빠르게 집 밖으로 달아나려 하지만 미처 도망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면 암컷은 수컷을 붙잡아 독침으로 찌른 다음 우적우적 먹어 버립니다. 암컷의 독침에 찔릴 때 수컷은 저항도 없이 당하고 맙니다. 본능에 따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요? 수컷의 이런 최후를 보면 그렇게 애써서 암컷을 산책에 끌어낸 수컷의 처지가 가엾어집니다. 몸집이 큰 암컷 전갈은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자기 새끼들은 정성껏 지키지만 조금 자란 어린 전갈이 집 앞을 지나가면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집게로 잡자마자 독침으로 찔러 즉사시킨 다음 먹어 벌립니다. 이 사육장 안에서도 이런 식으로 작은 전갈이 모두 큰 암컷에게 먹혀 버렸습니다. 그러나 암컷이 이와 같은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것은 이 시기뿐입니다. 8월이 되어 암컷이 낳은 새끼가 집을 나가면 암컷은 온순해져 유리 궁전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5. 전갈의 새끼 기르기 7월에 태어난 새끼들 파브르 선생님이 읽은 책에는 전갈의 새끼가 9월에 태어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처음에는 이 책의 내용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 지방에는 랑그도크전갈 외에도 검은전갈이 있었는데 이것은 몸이 작고 기르기가 쉬워 테이블 위의 유리병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마분지로 된 뚜껑을 제치고 관찰하였습니다. 7월 22일 아침 6시경의 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실험에 대해 생각하며 부엌을 빙빙 돌아다니면서 빵을 씹는 것으로 아침 식사를 끝냈습니다. 연구실로 가서 검은전갈이 든 병 뚜껑을 제치자 검은 전갈의 등에 새끼들이 올라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 검은전갈의 경우는 9월이 아닌가? 어쩌면 사육징의 랑그도크전갈에게도 벌써 새끼가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이렇게 생각한 선생님은 사육장까지 달려가서 기와 조각을 하나씩 들취 보았습니다. "잘했어! 늦지 않았군!" 25장의 기와 조각 중 석 장의 기와 조각 밑 집 속에 새끼가 태어나 있었습니다. 여러 마리의 흰 새끼가 어미의 등에 올라타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칫 책만 믿고 기와 조각 밑을 보지 않았더라면 관찰할 기회를 놓쳐 다음해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뻔했던 것입니다. 사육장에는 배가 뚱뚱하여 새끼를 갖고 있을 듯한 암컷이 더 있었으나 이들 암컷은 결국 그 해 안에는 새끼를 낳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새끼를 갖고 있는 암컷을 한 마리씩 작은 사육 상자에 따로따로 넣었습니다. 그런데 새끼를 낳은 암컷을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조사해 보니 등에 타고 있는 새끼들 이외에 배 밑에도 새끼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제부터 등으로 기어 올라갈 것들입니다. 짚으로 찔러서 어미가 비키도록 하니까 새끼뿐 아니라 알도 낳아 놓았습니다. 그 때까지 전갈은 알을 낳지 않고 직접 새끼를 낳는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전갈은 알을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발견입니다. 알을 확대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안에 아주 작은 새끼가 다리와 집게를 몸에 꼭 붙이고 예쁘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알을 싸고 있는 것은 단단한 껍질이 아닌 연하고 얇은 막입니다. 랑그도크전갈은 이런 알을 30--40개나 뱃속에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낳은 알은 곧 깨어납니다. 알에서 깨어 나오는 것이 너무나도 빨라 지금까지 직접 새끼를 낳는다고 알려졌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미 전갈이 입 가까이에 있는 작은 집게로 솜씨 좋게 알의 얇은 막을 찢어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갈은 솜씨가 없어 이런 세밀한 일에는 안 어울릴 것 같아 보이나, 사실은 놀라 정도로 세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속에 들어 있는 새끼에게는 조금도 상처를 입히지 않습니다. 전갈의 새끼는 제 힘으로는 알 밖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미는 고양이나 양의 어미가 갓 낳은 새끼를 정성껏 핥아 주듯이 새끼가 알에서 깨어 나오는 것을 돕는 것입니다. 어미의 등을 타고 막이 깨끗하게 찢겨 밖으로 나온 랑그도크전갈의 새끼는 흰색으로 몸길이가 보통 9 밀리 정도 됩니다. 그런데 검은전갈의 새끼는 4 밀리 정도입니다. 어미가 집게를 땅에 대 주고 있어서 새끼들은 이 것을 계단삼아 슬슬 어미의 등 위로 기어 올라갑니다. 어미의 등에서 새끼들은 서로 어울려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엿한 발톱을 갖고 있어서 미끄러져 떨어질 여려는 없습니다. 붓 끝으로 조금 건드리는 정도로는 떨어 낼 수 없을 만큼 단단히 매달려 있습니다. 이런 자세로 어미와 새끼 모두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릿짚으로 찌르니까 어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집게를 치켜듭니다. 꼬리를 뒤흔들면 새끼가 떨어질까 봐 염려되어서인지 꼬리는 가만히 두고 있으나 집게를 크게 벌려 무섭고 험악하게 싸울 태세를 갖춥니다. 선생님은 짚으로 새끼를 몇 마리 떼어 내어 어미가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미는 땅에 떨어진 새끼들에 대해서는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새끼는 발을 조금 버둥대다가 땅에 닿아 있는 어미의 집게를 타고 다른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마치 여행객들이 트랩을 타고 비행기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나르본늑대거미의 새끼는 땅에 떨어지면 재빨리 어미의 등으로 기어 올라가나 전갈의 새끼는 그렇게 재빠르고 날쌔지는 못합니다. 이번에는 많은 새끼를 땅에 떨어뜨려 보았습니다. 새끼들은 근처에 흩어져서 우물쭈물하고 있습니다. 어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이 된 모양입니다. 양쪽 집게를 반원형으로 모으고 모래와 함께 새끼들을 긁어 모습니다. 그 동작이 아주 난폭해서 새끼가 다칠까 염려될 정도였으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새끼들은 일단 어미 옆으로 모이게 되면 곧 제 힘으로 등까지 기어 올라갑니다. 만약 새끼들이 자기 새끼가 아니라면 어미는 어떻게 할까요? 등에 타고 있는 새끼들을 붓 끝으로 떨어 여러 마리를 땅에 떨어 뜨린 다음 자기 새끼를 업고 있는 다른 어미 옆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어미는 자기 새끼와 같이 집게로 긁어 모아 등에 기어오르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기 새끼와 남의 새끼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은 나르본늑대거미의 경우와 많이 닮았습니다. 새끼를 등에 태운 어미는 걸어 다니는 일 없이 집 안에 가만히 있으면서 나르본늑대거미의 경우처럼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허물을 벗어야 커진다. 전갈의 새끼들은 일주일 정도 어미의 등에서 꼼짝 않고 있습니다. 그 때 껍질이 누더기 모양으로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껍질이 모두 벗겨지고 나면 날씬해지면서 진짜 전갈 같은 모습이 됩니다. 그전까지는 윤곽이 희미해서 얇은 잠옷을 입은 것 같았습니다. 처음 껍질을 벗는 방법은 그 후 커 가면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진짜 탈피(허물벗기)와는 다릅니다. 보통 탈피할 때에는 헌 껍질에 흠이 생기고 그 곳이 터지면서 벌레가 빠져 나오지만, 이 때만은 몸의 여기저기가 동시에 벗어지면서 누더기같이 떨어져 나갑니다. 이렇게 한 겹 벗어지고 나면 새끼 전갈들은 한층 활발한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등에서 가볍게 내려와 땅 위에서 놀게 됩니다. 몸도 훨씬 커져서 허물 벗기 전에는 9 밀리 정도이던 것이 한꺼번에 14 밀리가 됩니다. 검은전갈도 4 밀리 정도이던 것이 7 밀리 정도가 됩니다. 새끼는 태어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체중은 늘지 않고 몸의 부피만 커졌습니다. 새끼가 벗어 버린 껍질은 흰 끈처럼 되어 어미 전갈의 허리 근처에 가득 붙어 있습니다. 새끼들을 위해서는 이것이 훌륭한 발판 구실을 합니다. 어미의 등을 오르내리는 데 이용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새끼를 붓으로 떨어뜨려 보았습니다. 새끼의 움직임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릅니다. 흰 끈 모양의 껍질 한쪽을 작은 집게로 물고 꼬리를 위로 치켜든 채 경쾌한 동작으로 등에 올라갑니다. 이 벗은 껍질은 어미의 몸에 약 일주일쯤 붙어 있으면서 발판 구실을 합니다. 흰색이던 새끼의 몸이 곧 옅은 황색이 됩니다. 또 배와 꼬리는 붉은색이 되고, 집게는 반투면의 호박 구슬과 같은 엷은 황색이 됩니다. 작은 전갈은 아름다운 공예품 같습니다. 독만 없다면 애완용으로 기르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벌레입니다. 혼자서 살 때가 온다. 새끼들은 어미의 등에서 내려와 그 주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너무 멀리 가면 어미가 집게로 긁어 모읍니다. 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봅시다. 새끼들은 대부분 어미의 옆에 있으나 어미의 몸 밑으로 파고 들어가 머리만 내놓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벗어 버린 흰 껍질 또는 높이 치켜든 어미의 꼬리 끝에서 서로 높은 곳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습니다. 새끼들은 결국 태어나서 2주일 정도 어미의 등이나 그 주변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어미전갈에게 메뚜기를 주어 보았습니다. 어미가 먹고 있는 곳에 한 마리의 새끼가 다가서서 보고 있었으나 자기 다리가 어미의 입 근처에 슬쩍 닿자 깜짝 놀란 듯 도망쳐 버렸습니다. 또 다른 새끼는 어미의 입에 삐죽 나와 있는 메뚜기를 한 번 씹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무 딱딱해서 먹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마침내 새끼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으려고 흩어지는 때가 다가옵니다. 어미는 이제 차차 자기 새끼와 먹이를 구별 할 수 없게 되는 모양입니다. 이런 어미의 옆에 언제나 머물러 있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나오는 왕비와 같이 이 전갈의 어미는 이제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자기의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작고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새끼들을 햇볕이 잘 드는 돌투성이 황무지에 데려다 주기로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같은 또래의 크기가 비슷한 친구들이 사람의 손톱보다 조금 큰 정도의 돌 밑에 구멍을 파고 한 마리씩 살고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 살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는 거다. 힘껏 해 봐." 이렇게 중얼거리며 파브르 선생님은 작은 전갈을 한 마리, 한 마리 모래 위에 놓아주고 각각 제 힘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V. 황나사마귀 기도하는 벌레 사마귀는 우리 나라 어디에나 살고 있어 누구나 잘 아는 벌레입니다. 무서운 육식 곤충이지만 풀을 베는 낫과 같은 두 앞다리를 들고 싸울 태세를 취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쳐다보는 모습은 한편 귀여워 보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매미 등과 같이 남부 지방에서만 살고 있는 곤충입니다.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잘 알려진 사마귀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황나사마귀, 색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빗살수염사마귀, 그리고 눈이 양쪽으로 툭 튀어나오고 몸이 작은 뿔눈사마귀 등이 그것입니다. 여기서는 황나사마귀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마귀는 매미처럼 요란하게 울어 대지 않아 우리의 관심을 끌지는 않지만 프랑스 남부의 시골 사람들은 사마귀를 자주 보기 때문에 '기도하는 벌레'라는 별명도 붙여 주었습니다. 특히 황사마귀가 얇은 베일 같은 녹색 날개를 등에 붙이고 두 개의 풀 베는 낫과 같은 다리를 앞으로 모은 채 싸울 준비를 갖춘 모습은 마치 신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마귀의 라틴어 학명도 '만틴스'인데, 만틴스란 옛 그리스의 신전에 살면서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신의 뜻을 점치는 무녀를 말하니다. 시골 사람들이 붙인 이름과 학자가 그리스어로 붙인 이름이 우연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귀의 본래의 성질은 믿음이 깊은 무녀나 비구니와는 전혀 다릅니다. 상대와의 거미를 잘 알 수 있도록 두 눈은 떨어져 있고 입은 뽀족하여 전체적인 머리 모양이 삼각형으로 보입니다. 그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게다가 목은 180 도 돌게 되어 있어서 뒤쪽까지 볼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뒤에서 가만가만 다가가도 곧 눈치를 챕니다.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두 개의 앞다리는 옆으로 다가선 것을 꽉 잡는 무서운 무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먹이를 잡으면 절대로 놓지 않고 뾰족한 입으로 씹어 먹어 버립니다. 얼마 전에 사마귀의 사진을 한쪽 벽만하게 확대한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이 곤충의 온몸에서 풍기는 살기는 대단했습니다. 낫처럼 생긴 앞다리는 펴면 상당한 거리까지 나아갈 수 있고 그 동작도 대단히 빠릅니다. 만약 사마귀가 사람처럼 커진다면 세계 타이틀을 가진 권투선수라도 순식간에 당하고 말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낫과 같은 앞다리와 예리한 눈을 제외하면 사마귀의 모습은 온순하다 못해 연약하게까지 보입니다. 초록색 다리와 몸통은 대단히 가늘고, 긴 날개는 얇고 투명합니다. 낫처럼 생긴 앞다리를 잘 살펴보면 크게 네 개의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밑마디는 길고 강하며, 이것은 용수철 같은 재빠른 잽을 퍼부을 수 있는 힘의 근원입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넓적다리와 종아리에 해당되는 넓적다리마디와 종아리마디에는 예리한 톱니와 같은 가시가 많습니다. 이 가시로 먹이를 꼼짝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런 장치라면 미끄러져 빠져 나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종아리마디 끝은 날카로운 침 같아서 무엇이든지 찌를 수 있습니다. 이 낫은 잡을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전혀 방해되지 않으며, 펼 때도 놀랄 만큼 재빠릅니다. 먹이가 옆으로 다가왔을 때의 사마귀의 공격 속도 또한 놀랄 만큼 빠릅니다. 지금까지 몸은 움직이지 않고 눈(머리)만 움직이면서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갑자기 휙 하고 낫을 펴면서 뻗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야외에서 이 벌레의 생활을 항상 관찰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파브르 선생님은 사육 상자에 넣고 기르기로 하였습니다. 늘 사용하던 종 모양의 철망으로 된 사육 상자를 열 개 준비하였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만든 것은 아닙니다. 가축을 키우는 농촌에서 파리가 많아 식탁의 음식을 덮어 두는 망을 얼마든지 팔고 있는 것입니다. 큰 화분에 모래를 깔고 거기에 백리향 잡초를 심은 다음 넓적한 돌을 놓고 사마귀를 넣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망을 씌웁니다. 한 마리씩만 넣기도 하고 여러 마리를 같이 넣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햇볕이 잘 드는 선생님의 연구실에 있는 큰 테이블 위에 이들 사육 상자를 놓았습니다. 사마귀는 그 속에 갇혀 있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먹이를 넣자마자 잡아먹어 버립니다. 문제는 살아서 움직이는 먹이가 아니면 먹으려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손이 모자랄 때 늘 하는 식으로 동네 아이들 서녓에게 먹이 잡는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그 대가로 샌드위치나 멜론 등의 간식 거리를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갈대로 짠 바구니나 대바구니에 근처에서 잡은 메뚜기나 방아깨비를 넣어 가져옵니다. 영리한 아이들은 귀한 벌레를 잡으면 '이런 거 필요하지 않으세요? 하고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아르마스의 정원에서 포충망으로 사마귀의 먹이를 채집합니다. 이렇게 채집한 여러 가지 먹이를 주고 사마귀가 상대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공격하는가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도깨비다! 사마귀보다도 큰 풀무치를 시작으로 육식과 초식을 반반씩 하는 등줄여치, 머리가 뾰쪽한 방아깨비, 그리고 랑그도크구멍벌의 먹이인 꼬마여치, 그 밖에 육식을 하는 억센 호랑거미와 십자왕거미와도 싸우게 해 보았습니다. 사마귀는 보통때도 이런 상대들과 싸움을 할까요? 아마도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육 상자 안에 이런 큰 벌레를 넣어 보면 조금도 주저하는 일 없이 싸움을 시작합니다. 나무나 풀 위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사마귀는 아마도 손이 닿을 만한 곳에 다가온 것이면 무엇이든 상대할 것입니다. 사마귀가 보통 야외에서 잡아먹는 것은 잠자리, 메뚜기, 나비, 등에, 꿀벌등 자기보다 몸이 작은 종류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몸이 큰 메뚜기가 아무런 생각 없이 다가오면 사마귀는 긴장되어 몸을 떨며 재빨리 싸울 태세를 갖춥니다. 앞뒤의 날개가 모두 배의 돛 모양으로 확 펼쳐지면서 두 개의 낫을 가슴 앞에 치켜들고 언제든지 상대를 칠 수 있는 자세를 취합니다. 사람이 "도깨비다!"하면서 겁줄 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더욱이 배에 있는 두 개의 날개를 부벼서 '쉿,쉿'하며 화가 난 독사의 소리를 냅니다.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을 개시하는 데 이 이상 효과적인 자세는 없을 것입니다. 성난 마녀인가, 귀신인가 할 지경입니다. 보통 먹이를 잡을 때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낫을 펴 들지만 지금은 상대의 몸이 크기 때문에 일단 위협부터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사마귀는 대담한 곤충입니다. 고양이나 사람이 괴롭히려고 해도 똑같이 위협합니다. 중국에 '당랑의 도끼'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랑'이란 사마귀를 뜻합니다. 사람이 탄 수레를 향해 사마귀가 낫을 위로 치켜들고 위협하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상대에 대해 분수를 모르고 저항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마귀는 이런 위협적인 자세로 몸이 큰 메뚜기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메뚜기는 평소와 다름없는 멍청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곤충의 피부는 딱딱하여 언제나 얼굴 표정에 변함이 없습니다. 마치 철의 가면을 쓴 것과 같아서 메뚜기가 이 윤기 나는 얼굴 밑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식은땀이 흐르거나 얼굴이 창백해지겠지요. 메뚜기가 움직이는 대로 사마귀의 머리가 천천히 돌아갑니다. 빈틈없이 지키다가 언제든지 달려들 자세입니다. 사마귀는 메뚜기를 노려봅니다. 바로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습니다. 이제 겨우 메뚜기는 위험을 느끼게 된 모양입니다. 지금이라도 힘센 다리로 휙 하고 뛰면 도망칠 수 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메뚜기는 그대로 멍하니 서 있습니다. 그러다 스스로 사마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뱀이 노려보면 작은 새는 오금을 못 쓰고 그 자리에 굳어 버린 듯 서서 날려고도 하지 않고 뱀에게 먹히고 맙니다. 메뚜기의 경우도 그것과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멍하니 흔들거리며 사마귀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사마귀의 윗몸이 얼핏 움직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 개의 낫이 메뚜기의 몸에 콱 박혔습니다. 번개처럼 날쌘 행동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메뚜기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습니다. 강한 팔이 메뚜기를 죄고 있어서 입으로 물려고 해도, 다리로 차려고 해도 헛된 일입니다. 사마귀는 펼쳤던 날개를 제자리에 접고 보통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천천히 메뚜기를 씹어먹기 시작합니다. 풀무치나 등줄여치와 같이 몸집이 크고 강한 상대를 맞으면 사마귀는 지금 이야기한 것처럼 무서운 자세로 위협하지만 온순한 방아깨비나 꼬마여치를 상대할 때에는 잠깐 그런 자세를 보이다가 곧 달려듭니다. 왕거미를 상대할 때도 거미의 독이빨쯤은 상관하지 않고 곧 붙잡아 먹어 버립니다. 사마귀는 상대가 무섭다고 여겨질 때만 이런 도깨비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암컷보다 몸이 작고 홀쭉한 수컷은 암컷을 찾아내서 짝짓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풀밭을 여기저기 잘 날아다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비같이 언제까지나 공중을 나는 것은 아니어서 4--5 미터 이상은 날지 못합니다. 게걸스러운 암컷과는 달리 수컷은 훌쭉하게 마른 만큼이나 아주 적게 먹습니다. 알을 낳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기가 돌아 다니는데 필요한 만큼만 먹으면 되고, 그래서 가끔씩 파리나 메뚜기 같은 작은 먹이를 먹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수컷의 날개는 날기 위해 쓰지만 암컷의 날개는 상대를 위협하는 데 쓰는 일이 더 많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암컷을 이틀쯤 굶긴 후 사마귀와 비슷한 크기의 풀무치를 주면 날개만 남기고 모두 먹어 버립니다. 무서운 식욕입니다. 두 시간쯤 지나면 먹이의 몸은 벌써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사마귀가 맨 처음으로 공격하는 곳은 상대의 목입니다. 한쪽 낫을 먹이의 몸 한 가운데에 박아 꽉 잡은 다음 또 하나의 낫으로 목을 누릅니다. 그리고 입으로 몸에 있는 신경의 중심을 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먹이는 움직이지 않게 되므로 다음부터는 마음대로입니다. 육식을 하는 벌레는 상대의 목 위쪽이 급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3장에 나온 게거미도 꽃에 숨어 있다가 꿀을 따러 오는 꿀벌을 덮쳐 벌의 목 뒤쪽을 이빨로 물어 버립니다. 아프리카의 평원에서 얼룩말을 습격하는 사자도 먹이의 목을 노립니다. 먹이를 사냥하는 곤충 중에는 사냥벌과 같이 먹이의 몸을 마비시켜 살아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과 이 사마귀나 살받이게거미와 같이 상대를 죽여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들이 공격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먹이의 몸에 있는 약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는 해부학자에 못지않습니다. 선생님은 이들의 무서운 본능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난폭해지는 암컷 파브르 선생님은 여러 가지 실험을 위해 많은 사마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사육 상자만 해도 열 개나 되어 연구실 한가운데 놓인 큰 테이블 위가 꽉 찰 정도였습니다. 선생님은 생각 끝에 사육 상자의 수를 줄이려고 한 상자에 여러 마리의 암컷을 넣기로 했습니다. 많이는 한 상자에 12 마리까지 넣었습니다. 상자가 크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넣어도 뛰놀 만한 장소는 충분합니다. 배가 큰 암컷은 여름에는 별로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천장 그물에 매달려 가만히 있습니다. 야외에서도 그렇게 기다리다 먹이가 지나가면 눈 깜짝할 사이에 재빨리 낫을 펼칠 것입니다. 이런 육식성 곤충을 한 사육 상자에 같이 살도록 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먹이가 없어지면 온순하기로 이름난 당나귀도 싸움을 합니다. 하물며 사마귀라면 싸움이 심할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마귀의 먹이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루 두 번 메뚜기를 넣어 주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사마귀는 자기에게 다가온 메뚜기를 잡아먹을 뿐 동료들끼리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결혼의 계절이 다가와 배가 커지면서 뱃속에 알이 생기자 사마귀들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난폭해졌던 것입니다. 사육 상자에 수컷은 한 마리도 넣지 않았으나 암컷끼리 서로 질투가 심해져 적의를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것 같은 도꺁비 자세로 서로를 위협하면서 심한 싸움을 하고 동료를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싸움은 먹이인 메뚜기나 등줄여치를 상대로 할 때 이상으로 무서웠습니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생님이 관찰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옆에 있던 두 마리가 윗몸을 치켜들면서 싸울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머리를 빙빙 돌리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 노려 보다가 등에 있는 날개를 배에 부비며 쉿쉿 하는 소리를 냅니다. 이 결투는 낫으로 몇 차례 잽을 날리는 정도로 끝나는 수도 있으나 곧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어 한쪽이 먹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때는 역시 다른 먹이처럼 머리에서부터 씹어먹습니다. "악인도 동료끼리는 서로 잡아먹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으나 사마귀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먹이가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때도 가끔 동료를 잡아먹습니다. 사마귀의 수컷은 목숨을 건다. 사마귀가 결혼하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 파브르 선생님은 하나의 사육장에 암수 한 마리씩을 넣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한 쌍이라면 다른 것의 방해를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먹이도 충분히 넣어 주었습니다. 8월 말경 날씬하게 생긴 수컷 사마귀는 암컷을 사랑하게 된 모양입니다. 암컷을 향하여 가슴을 제쳤습니다. 그런 자세로 한참 동안 암컷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암컷은 전혀 무관심한 태도입니다. 드디어 수컷이 암컷에게 다가갑니다. 갑자기 수컷은 날개를 펴고 한바탕 흔들어 댑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암컷의 등에 올라타고 떨어지지 않도록 몸의 균형을 잡습니다. 오랫동안 그런 자세로 있다가 드디어 짝짓기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시간은 5--6시간이나 계속되는 수도 있습니다. 짝짓기를 끝낸 수컷은 운좋게 도망치는 것도 있으나 사육 상자 안에서는 대개의 경우 암컷에게 먹혀 버립니다.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광경이지만 수컷은 온순하게 아무런 저항도 없이 먹히고 맙니다. 수컷은 태어날 새끼들의 영양분이 되겠지요. 이 살인귀 같은 암컷의 사육 상자에 다시 새로운 수컷을 넣어 주면 암컷은 그 수컷과도 짝짓기를 하고 역시 먹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암컷은 이렇게 사육 상자에 넣어 준 일곱 마리의 수컷과 차례로 짝짓기를 하고 모두 먹어 버렸습니다. 야외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아닐 거야. 야외에서는 수컷이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이 좀더 많을 거야.'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야외에서도 목이 없는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있는 암컷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컷은 목을 잃고도 몸만은 살아 있어서 훌륭히 짝짓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말 그대로이지요. 짝짓기를 할 때 암컷이 뒤를 돌아보면서 수컷의 몸을 씹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 파브르 선생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램포드의 오믈렛 가을이 되어 풀이 차츰 갈색으로 변해 갈 무렵이면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황나사마귀의 알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돌 위나 포도나무의 그루터기, 죽은 나뭇가지 등에 사마귀는 이런 알 덩어리를 낳습니다. 가늘고 긴 알 덩어리의 크기는 폭이 2센티, 길이가 4센티 정도로 보릿짚의 색깔과 같습니다. 사마귀의 알 덩어리의 구조는 대단히 교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가운데에는 축이 되는 딱딱한 부분이 있고, 알을 보호하기 위해 굳은 거품으로 싸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알에서 깬 작은 새끼가 밖으로 나가기 쉽도록 처음부터 작은 틈이 많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암컷은 알을 낳는 동안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이렇게 복잡한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알을 밖에서 싸고 있는 거품은 몸 밖으로 나오면 곧 굳어 버립니다. 이것은 단순히 알이 상처를 입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추위로부터 알을 보호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물리학자 램포드가 한 실험 중에는 공기가 열을 잘 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달걀을 깨뜨려 충분히 저어 거품이 생기게 한 후 그 거품 속에 차가운 치즈를 넣고 오븐에다 익힙니다. 조금 있으면 뜨겁고 말랑말랑하여 아주 맛있어 보이는 오믈렛이 생기는데 한가운데에 넣은 치즈는 차가운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알의 거품 속에 들어 있는 많은 공기가 열이 전달되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븐의 열은 공기에 가로 막혀 안에 들어 있는 치즈까지 좀처럼 전달되지 않습니다. 사마귀의 알은 이 램포드의 오믈렛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겨울의 추위도 거품에 싸여 알 하나 하나에는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불의 솜에 공기가 가득하여 덮고 있으면 우리의 체온을 빼앗기는 것을 막는 동시에 밖의 낮은 온도가 안으로 전해지는 것을 막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한편 황나사마귀와 크기가 거의 같은 빗살수염사마귀의 알 덩어리는 작아서 버찌 씨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됩니다.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에는 전혀 거품이 덮여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빗살수염사마귀의 알은 겨울이 오기 전에 깨어나 새끼로 겨울을 나기 때문에 방한용 거품은 필요가 없는 셈이지요. 벌레들의 생활은 아주 경제적이어서 낭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우연히 생긴 것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사육 상자 속의 사마귀가 알을 낳는 것을 관찰하였습니다. 황나사마귀가 알을 완전히 낳기까지 약 2시간이 걸렸습니다. 알을 완전히 낳고 나면 어미는 알 덩어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미련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어미다운 점은 조금도 없습니다. 알 낳는 임무만 끝나면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태도입니다. 때로는 사육 상자 안에 먹이로 넣어 준 메뚜기가 다가서서 알 덩어리를 타고 앉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마귀의 어미는 전혀 아는 체도 하지 않습니다. 가령 눈앞에서 알을 갉아먹는 놈이 있다고 해도 사마귀는 태연할 것입니다. 알 덩어리 같은 것은 이제는 완전히 잊어버린 과거인 듯합니다. 사마귀 중 어떤 것은 알 덩어리를 한 번만 낳지만 두 번, 세 번 낳는 것도 있습니다. 처음의 두 개는 크기가 전번 것의 반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 알 덩어리에는 몇 개의 알이 들어 있을까?' 파브르 선생님이 조사해 본 결과 큰 알 덩어리 안에는 약 400개의 알이 들어 있었고 가장 적은 것이라도 200--300개 정도는 되었습니다. 따라서 세 번을 낳았다면 전부 1000개 정도의 알을 낳은 셈입니다. 그래서 사마귀의 알 덩어리를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을 때 날씨가 따뜻해지면 많은 새끼사마귀가 계속해서 태어나므로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들이 전부 자란다면 사마귀투성이가 되어 버리겠지만 도중에 다른 벌레나 새에게 잡아먹혀 상당수가 죽기 때문에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고마운 약 '데이뇨' 풀이 마르고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철이면 사마귀의 알은 눈에 잘 뜁니다. 그래서 프로방스 지방의 농민들은 이 알 덩어리를 잘 알고 있으며, 이것을 '데이뇨'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데이뇨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이, "데이뇨는 저 기도하는 벌레가 낳은 알의 덩어리예요."하고 가르쳐 주면 모두 크게 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마귀의 알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황나사마귀가 밤 동안에 알을 낳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귀나 사마귀의 알 덩어리는 모두 봐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두 가지를 연결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데이뇨는 눈에 잘 뜁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엔가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시골 사람들은 생각했고, 마침내는 약이 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의 시골 약국에서는 모두들 데이뇨가 동상에 잘 듣는다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추울 때면 손발이 보라색으로 부어오르면서 가렵고, 심하면 이것이 터지면서 마치 불에 덴 것같이 됩니다. 이 때 데이뇨를 둘로 쪼갠 다음 짜서 흐르는 즙을 동상 부위에 문질렀던 것입니다. 모두들 잘 듣는다고 믿고 있으나 파브르 선생님은 정말인지 의심스러웠습니다. 1895 년의 겨울은 무척 추웠습니다. 그래서 손에 물을 묻히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손이 부어오르고 심하면 터지는 등 동상으로 고생을 하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가족들도 모두 동상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데이뇨를 써 보았으나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가려운 것도 낫지 않았고 부은 것도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여러 사람들이 동상에 데이뇨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약과 병의 이름이 같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프로방스 말로 동상을 데이뇨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약 중에서도 과학적으로 조사해 보면 의외로 효과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데이뇨를 끈기 있게 매일 문질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사마귀의 알 덩어리와 동상이 같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동상이라는 말이 먼저 생기고 여기에 사마귀 알 덩어리가 효과적이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지만 데이뇨가 치통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좀 못미더운 일인 것 같습니다. 더욱이 치통이 있을 때 데이뇨를 몸에 지니고만 있어도 좋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지방의 부인들은 겨울이 되기 전데 데이뇨를 채집하여 소중하게 찬장 속에 넣어 두거나 주머니 깊숙이 꿰매 놓기도 합니다. 꿰매 놓는 것은 손수건을 꺼낼 때 같이 묻어 나와서 잃어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네 사람이 이가 아프다고 데이뇨를 빌리러 오면 주머니 깊숙이 꿰매 두었던 것을 빌려 줍니다.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돼요. 집에는 이것 하나밖에 없고 더 이상 채집할 수도 없어요." 이렇게 단단히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치통약을 그냥 웃어넘겨서는 안 돼. 신문에 광고가 나는 약중에도 이 이상 효과가 있다고 단정할 만한 것은 없으니까." 사실, 의학과 약학이 크게 발달한 현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여 병에 걸린 사람들이 열심히 쓰던 비싼 약이 실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밝혀지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VI. 빗살수염사마귀 괴상한 모습 프랑스 남부에 살고 있는 사마귀 중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빗살수염사마귀가 역시 제일입니다. 특히 애벌레의 모습이 희한합니다. 꼬리를 등 위로 치켜올리고 네 개의 가는 다리로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쉴 새 없이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배의 아래쪽은 얇은 나뭇잎을 가늘게 잘라 석 장을 세로로 세워 붙여 놓은 듯한데, 꼬리를 등 위로 치켜올리고 있어서 잘 보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얼굴입니다. 가늘고 긴 눈은 튀어 나와 있고 그 사이에 뾰족한 뿔 같은 것이 돋아 있습니다. 도대체 이 뿔은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요? 빗살수염사마귀의 애벌레는 회색이지만 다 자라면 엷은 초록색과 흰색, 장미빛이 섞인 아름다운 색체를 띠게 됩니다. 빗살수염사마귀의 알은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깨어납니다. 그래서 10월이 되면 파브르 선생님은 풀 사이를 뒤져서 이 사마귀의 새끼를 채집하는데 알에서 깬 지 한두 달쯤 된 것이 많습니다. 이것들은 큰 테이블 위의 철망 사육 상자에 넣어 둡니다. 사마귀 새끼들은 아직 작아서 큰 먹이는 물론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작은 메뚜기 새끼를 잡아다 주어 보았지만 먹기는커녕 메뚜기 새끼가 우연히 다가서면 사마귀 새끼는 뾰족한 머리를 숙여 박치기를 해서 메뚜기 새끼를 쫓아냅니다. 앞에서 설명한 마법사의 모자와 같은 삼각형의 뿔은 산양의 뿔과 같이 상대를 받는 데 쓰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하튼 먹이는 주어야 합니다. 파리라면 어떨까요? 살아 있는 파리를 사육 상자 안에 넣어 주니까 사마귀 새끼는 능숙한 솜씨로 잡아 맛있게 먹어 버렸습니다. 동작이 대단히 빠릅니다. 하루에 한 마리의 파리면 이 새끼사마귀는 그것으로 충분할 뿐 아니라 배가 한껏 부른 모양이었습니다. 때로는 그 후 며칠이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수도 있습니다. 그 험상궃은 모습 때문에 먹이도 무척 많이 먹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빗살수염사마귀는 아주 적게 먹는 곤충이었던 것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빗살수염사마귀는 더욱 더 먹지 않게 되면서 천장에 매달린 채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먹이를 주고 싶어도 파리를 잡기가 어려웠으므로 이것은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동안 모든 사마귀는 꼼짝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날, 선생님은 사마귀 사육 상자를 창가에 놓아두었습니다. 일광욕을 하면 조금 움직이기는 하지만 식욕은 별로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선생님이 겨우겨우 잡아 온 파리를 주어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겨울을 나는 모양입니다. 야외에 있는 애벌레들도 돌 틈 같은 곳에 숨어서 꼼짝 않고 추운 겨울을 견뎌 내는 듯합니다. 거꾸로 매달려 쉰다. 그럭저럭 봄이 왔습니다. 3월에 사마귀 새끼들은 탈피를 하였습니다. 이제는 배도 고플 것입니다. 이제 또다시 먹이를 구하는 일이 큰일입니다. 작은 파리를 구할 수 없어 꽃등에를 주어 보았습니다. 이것도 지나치게 큰 모양인지 머리로 박치기를 하여 제쳐 놓았습니다. 다행이 새끼여치를 손에 넣었습니다. 아직 몸도 말랑말랑합니다. 사마귀 새끼는 이것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러나 새끼여치는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기에 가장 흔히 눈에 띄는 것이 양배추 밭에서 볼 수 있는 왕배추흰나비와 배추흰나비입니다. 선생님은 이 나비를 포충망으로 잡아서 사육 상자에 넣어 주었습니다. 철망에 붙어 있는 나비를 새끼사마귀가 꽉 잡았습니다. 그러나 나비가 큰 날개를 훨훨 움직이자 먹이를 놓쳐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선생님은 나비의 날개를 가위로 잘라 버렸습니다. 그러자 사마귀는 발버둥치는 나비를 붙잡고 그대로 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끼사마귀는 나비의 머리와 가슴의 반만 씹어 먹고 나서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양으로 배가 꽉 찬 것입니다. 황나사마귀에 비하면 정말로 아주 소식가인 셈입니다. 빗살수염사마귀는 네 개의 다리로 철망 천장에 매달리는 것을 대단히 좋아해서 항상 그런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가 가장 편한 모양입니다. 가끔 움직일 때는 낫을 펴서 철망에 걸고 몸을 힘껏 당기는 방법을 씁니다. 그것은 아주 짧은 거리이기는 하나 이 벌레의 산책에 해당됩니다. 야외에서도 이 사마귀가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나 철망이라는 것이 이 벌레에게는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런 자세로 잠을 자고 사냥을 하며 탈피도 하면서 10개월을 지내다 결국 죽었을 때야 비로서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벌레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5월 중순경에 빗살수염사마귀는 아름다운 색채를 가진 훌륭한 사마귀로 성장하였습니다. 이제는 꼬리를 치켜들지도 않았습니다. 날개도 발달되어 암컷이나 수컷 모두도 잘 날며 몸의 크기도 비슷해집니다. 이 빗살수염사마귀의 크기는 황나사마귀와 크게 차이가 없으나 성질은 놀랄 만큼 서로 다릅니다. 한 상자에 여섯 마리까지 같이 넣어도 싸움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커져도 그리 많이 먹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하루에 파리 한 마리, 많아야 두 마리 정도로 배가 꽉 차는 것입니다. 황나사마귀의 그 험상궂은 도깨비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짝짓기할 때도 수컷은 암컷의 옆에 붙어 있으나 짝짓기 후 먹혀 버리는 비극 따윈 없습니다. 7월 중순경까지 수컷과 암컷은 같은 사육 상자 안에서 평화롭게 잘 지냅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사이가 좋지도 않습니다. 그럭저럭 지내는 동안에 수컷은 점점 약해져서 결국 철망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수컷이 죽고 난 다음에 암컷은 알을 낳습니다. 그 알 덩어리는 아주 작아서 길이가 1센티 정도입니다. 황나사마귀와 빗살수염사마귀는 전체적인 모양은 비슷한데 성질에 있어서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먹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황나사마귀는 먹이를 많이 먹는데 빗살수염사마귀는 아주 적은 양만을 먹습니다. 이런 점이 두 사마귀가 성격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고기를 많이 먹고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성격이 괄괄해지고, 빵이나 야채를 조금만 먹어도 만족해하는 사람은 온순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황나사마귀와 빗살수염사마귀는 생김새가 아주 닮았는데 어떻게 해서 한쪽은 많이 먹어 성질이 거칠어지고, 한쪽은 적게 먹어 온순한 성질이 될 수 있을까요? 결국 곤충의 성질도 몸의 생김새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성질을 결정하는 또 다른 본능의 법칙이 있을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난꽃이 사마귀가 되었을까? 사마귀의 종류는 열대 지방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약 2000종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사마귀 종류는 6종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길이가 9센티 이상이며 황나사마귀나 빗살수염사미귀보다 훨씬 크고 힘이 센 왕사마귀입니다. 그리고 가장 작은 것은 몸길이가 1.5센티 정도인 작은 좀사마귀입니다. 말레이시아 태국에 있는 꽃사마귀는 매우 특이합니다. 이것은 분홍색의 난꽃과 모양이나 색이 꼭 닮았습니다. 꽃 옆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는 꽃과 전혀 구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 사마귀가 가만히 나뭇가지에 붙어 있으면 나비와 같은 곤충이 꽃으로 잘못 알고 꿀을 따러 제 발로 다가옵니다. 이것을 노리고 기다렸다가 낫처럼 생긴 앞다리로 휙 낚아채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난꽃이 사마귀로 변한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직후의 사마귀 애벌레는 붉은색과 검은색 비닐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움직임이 빨라 나뭇잎 사이를 이리저리 톡톡 뛰어다닙니다. 아마 이 때에는 힘이 약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노린재와 닮게 하여 새나 그 밖의 곤충들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그것이 한 번 허물을 벗으면 바로 분홍색의 난꽃 모양으로 변신하여 나무에 가만히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꽃을 닮아서 먹이가 되는 벌레들을 속일 뿐 아니라 벌레를 잡아 먹는 새까지도 속이게 됩니다. 참으로 교묘한 방법입니다. 어떻게 이런 색과 모습으로 변신하게 되는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곤충이란 무엇인가 4) 곤충은 어디에서 왔을까? (적은 단서)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물, 예를 들면 코끼리, 기린,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했는가 알고자 할 때, 그 자료로써 도움이 되는 것은 화석입니다. 화석은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동물이 땅속에 묻혀 뼈가 돌처럼 된 것을 말합니다. 고생물학자들은 오래된 지층 속에서 파낸 동물의 화석을 연구하여 그 동물이 살았을 때의 모습을 재현합니다. 그리고 그 동물이 지금 살고 있는 동물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4천만 년 전에 북아프리카의 물가에서 살던 멧돼지만한 크기의 동물이 몸이 점점 커지고 어금니가 발달하면서 코끼리 종류로 진화해 왔다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곤충의 경우는 몸의 중심에 뼈가 없고, 피부가 딱딱하다고는 하지만 공룡이나 포유류의 뼈처럼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진흙 위에서 죽은 곤충의 몸 위에 또다시 진흙이 쌓여 몸의 흔적이 남습니다. 이것에 의해 3억 년 전의 석탄기에는 날개를 편 길이가 70센티나 되는 옛잠자리와 거대한 바퀴벌레 등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보석 속에 곤충이 갇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보석은 호박이라 불리며 소나무의 진이 굳어서 된 것입니다. 소나무의 줄기나 밑둥 부근을 기어다니던 곤충이 뚝 떨어진 송진에 갇혀 그대로 흙에 묻혀 버린 것입니다. 4천 5백만 년 전 발트해 부근에는 소나무 숲이 많았기 때문에 그 부근에서 '곤충이 든 호박'이 발견됩니다. 호박 속에 갇혀 있는 곤충은 대체로 개미, 파리 등 작은 곤충들이지만 이것이야말로 귀중한 보석 속의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처럼 얼마 되지 않는 자료를 단서로 학자들은 곤충류가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추리해 왔습니다. (조상은 삼엽충) 곤충, 거미, 응에, 새우, 게 등을 통틀어 절족동물이라 부르며, 이들의 조상은 6억년 전부터 바닷속에서 살았던 삼엽충이라 생각됩니다. 삼엽충에서 다리 수가 줄어들고, 그 대신 다리의 관절이 발달하여 거미, 전갈, 응에 등의 조상이 생겨난 것입니다. 육지로 올라와 다리 수가 많은 상태로 진화해 온 것은 지네와 노래기가 되고, 다리 수가 적어지는 쪽으로 진화 된 것은 곤충이 된 것입니다. (멋진 입, 훌륭한 다리) 몸의 제 2절부터 몇 개의 체절이 제1절과 합쳐져, 전체적으로 큰 머리 부위를 형성 합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체절에 붙어 있던 다리는 입의 일부, 즉 턱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먹이를 꽉 깨물거나 잘 씹을 수가 있습니다. 메뚜기나 왕잠자리의 입처럼 튼튼하고 복잡한 입은 이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머리 부분 바로 뒤의 세 개의 체절은 잘 발달하여 흉부(가슴)를 형성합니다. 이것은 곤충의 앞가슴, 가운데 가슴, 뒷가슴으로 구분되며, 각각의 가슴에는 완전한 다리가 한 쌍씩 붙어 있습니다. 다리가 너무 많아도 기어다니기 불편하기 때문에 다른 다리들은 점점 퇴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꽁무니 끝부분의 다리는 자손을 남기기 위한 교미기와 산란기로 변형 되었다고 합니다. 가슴 뒷부분이 복부(배)입니다. 이렇게 해서 몸이 머리, 가슴, 배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다리를 여섯 개 가진 곤충에 가까워집니다. 아직 날개는 없습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억 년 전의 일로 추정됩니다. (날개가 생기다) 그 다음의 석탄기가 되면 바퀴벌레의 조상처럼 날개가 있는 곤충이 출연합니다. 이것은 등쪽 옆부분이 편평하게 옆으로 늘어나 발달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날개치기를 못하고 글라이더나 날다람쥐처럼 공중을 미끄러지듯 날았을 것이라고 상상됩니다. 그러던 중 날갯죽지의 관절과 근육이 발달하여 자유롭게 날개치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의 예가 대형 옛잠자리입니다. 옛잠자리가 나는 방법은 현재의 잠자리처럼 능숙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익수룡이나 새도 아직 없었기 때문에 공중을 나는 것은 곤충류밖에 없었습니다. (꽃과 곤충) 1억 3천만 년 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 곤충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꿀을 빨고 그 대신 꽃가루를 옮기는 나비, 나방, 벌, 등에류가 나타났습니다. 나비나 나방의 입은 꿀을 빨수 있도록 긴 대롱으로 되어 있으며, 축 늘어져 있으면 방해가 되기 때문에 항상 둥글게 말고 있습니다. 나비와 나방은 날도래 같은 곤충에서 발달되었습니다. 날도래의 날개가 크게 펼쳐지고, 표면의 털이 변화하여 뾰족한 날개 모양의 아름다운 색을 가진 비늘이 된 것입니다. 곤충의 수가 늘어나면 곤충끼리의 싸움도 일어납니다. 벌류는 사냥벌처럼 풀을 먹는 초식성에서 진화하여 다른 곤충을 잡아먹거나, 잡아서 애벌레의 먹이로 삼거나, 알을 기생시키게 되었습니다. 꿀벌과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개미는 흙 속에 집을 짓고 널리 퍼졌습니다. 일개미, 병정개미 등은 사회 생활을 하는 곤충입니다. 개미 중에는 나뭇잎을 잘라서 발효시켜 버섯을 재배하는 것, 그리고 다른 개미의 집에 쳐들어가 자신의 노예로 삼는 것 등 인간의 문명과 유사한 생활 방식을 가진 것도 있습니다. 인간과 곤충은 진화의 방향은 틀리지만 둘 다 많이 진화했다는 점은 같습니다. 전갈에 쏘였을 때 '사갈처럼 싫어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는 뱀, '갈'은 전갈을 뜻하는 것으로 원래는 중국에서 나온 말입니다. 중국에는 전갈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겠지요. 뱀도 전갈도 모습이 무서울 뿐만 아니라 독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러나 뱀 중에 독이 없는 것도 있듯이 전갈 중에도 독이 약한 것이 있습니다. 쏘였을 때 작은 곤충이라면 죽지만 "아야!"하고 끝날 정도의 약한 독입니다. 전갈에 쏘였을 때 몸에 나타나는 반응도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먼저 불에 달군 쇠에 닿은 것처럼 통증이 심하고 쏘인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면서 이 통증이 다른 부위로 퍼지는 경우가 있고, 쏘인 부위의 조직이 썩은 것처럼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처가 가벼울 때는 몇 시간내에 통증이 가시지만, 심한 경우는 며칠 동안이나 계속됩니다. 온몸에 증상이 나타나는 겨우도 있습니다. 쏘인 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침이 나오고 호흡이 곤란해집니다. 증상인 경우는 온몸에 심한 경련이 일어나고, 호흡이 멈춰 결국 죽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전갈에 쏘이면 먼저 의사에게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프랑스에서의 몇 마리의 전갈을 기름에 담가 죽여서 약을 만듭니다. 전갈에 쏘였을 때 먼저 상처 부위를 이 기름으로 씻으면 낳는다고 믿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거미들 거미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기후가 따뜻한 남쪽 지방의 집에는 몸집이 매우 큰 농발거미가 살고 있습니다. 이 거미는 바퀴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 유익한 거미입니다. 또한 물 속에서 생활하는 거미도 있습니다. 이 거미는 몸이 붙어있는 작은 공기 방울을 모아 물 속에 집을 짓습니다. 마치 용궁 속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양이 개미를 닮은 종류도 있습니다. 두 앞다리를 쳐들고 마치 개미의 더듬이처럼 움직입니다. 한편, 다른거미집에서 식객처럼 생활하는 종류도 있습니다. 이 종류는 자신도 거미줄을 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거미의 거미줄에 걸린 작은 먹이를 가로채어 먹습니다. 또한 끈적끈적한 거미줄을 올가미처럼 던져 먹이를 잡는 종류도 있습니다. 나무의 밑둥치 부근에 가늘고 긴 주머니 모양의 거미줄이 있으면 파리를 잡아서 그 거미줄 위에 놓아보세요. 파리가 도망치려고 날개짓하면 거미줄의 진동을 느낀 거미가 재빨리 튀어나와 파리를 잡습니다. 땅속에서 생활하는 거미를 잡아 화분 속에 흙을 넣고 연필로 구멍을 뚫은 후 넣어 주면 화분 테두리에 거미집을 짓습니다. 그러면 때때로 먹이를 주면서 습성을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정원이나 베란다에서도 거미를 쉽게 사육할 수 있습니다. 거미와 사귀면 사귈수록 거미의 습성을 이해하게 되고 또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사마귀는 육식성 곤충이기 때문에 한 장소에 모여 살지 않습니다. 한 마리씩 초원의 풀 위나 나뭇잎 위에서 눈을 번뜩이며 먹이를 노리고 있습니다. 채집한 사마귀는 사육 상자에 넣어 간단히 기를 수 있습니다. 단, 먹이는 살아 있는 곤충을 주어야만 합니다. 죽은 곤충이라도 사마귀의 눈앞에서 조금 움직여 주면 물어뜯습니다. 알 덩어리는 겨울에 발견됩니다. 발견된 알 덩어리를 그대로 가져와 마분지로 만든 상자 속에 넣어 둡니다. 방이 너무 따뜻하면 겨울에 알이 깨어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5월경, 알에서 많은 애벌레가 깨어납니다. 처음 먹는 먹이는 장미와 국화과의 잡초에 붙어 사는 진딧물입니다. 한동안 진딧물을 먹고 몸이 커진 사마귀는 다음엔 초파리를 먹이로 합니다. 포도 껍질이나 우유를 그릇에 넣어 두면 초파리가 모여들어 알을 낳고 점점 수가 불어납니다. 이것을 망사로 덮어씌운 뒤 그릇째로 사육 상자에 넣어 새끼사마귀와 함께 둡니다. 이렇게 해 두면 계속 먹이가 공급됩니다. 물을 주는 것도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