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곤충기 2 용감한 사냥벌 저자: 오쿠모토 다이사부로 역자: 이종은 감수: 김학열 출판사: (주)고려원미디어 1. 방투산에 오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무서움) 프로방스의 벌거숭이산 프랑스의 서쪽에는 피레네 산맥이 있고, 동쪽에는 알프스 산맥이 있습니다. 피레네는 스페인과 국경을 이루고, 알프스는 이탈리아, 스위스와 국경을 이룹니다. 프랑스 중심에는 높은 산이 거의 없지만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에 딱 하나 특별히 높은 산이 있습니다. 이 산이 피레네와 알프스를 빼고는 프랑스의 제일 높은 해발 1,909 미터의 방투산입니다. 지중해에 접한 남프랑스의 기후가 나타나는 산기슭 주변에는 따뜻한 지방을 좋아하는 올리브나무와 마른땅을 좋아하는 타임(유럽이 원산인 백리향의 일종) 같은 향초가 있습니다. 향초란 말려서 요리에도 사용하는 향기 짙은 풀입니다. 2,000 미터 가까운 높은 산이므로 더운 여름에도 위로 갈수록 점점 기온이 내려가서, 산꼭대기는 1 년 중 반 이상이 눈으로 덮여 있고 그 부근에는 북극권의 식물까지도 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투산을 오르다 보면 온대에서 한대까지의 식물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산을 무척 좋아해서 일생 동안 서른번이나 올라갔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스물세 번째 등산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그것은 1865 년 8월의 일이었습니다. 등산객은 전부 여덟 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파브르 선생님을 포함한 세 명은 식물 연구를 위해 등산을 계획했지만 나머지 다섯명은 단순히 산 꼭대기에서 해 뜨는 것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다섯 명에게는 이 때의 경험이 너무나도 괴롭고 혹독했기 때문에 그 다음 다시는 이 산을 오르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방투산은 평야 가운데 우뚝 솟아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올라가 보면 바위투성이로, 흔한 도로 공사용 돌을 쌓아 올린 산처럼 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말해서 산기슭에서 1,909 미터나 되는 산꼭대기까지 걷기 힘든 돌멩이투성이 길이 계속 이어져 있습니다. 상큼한 잔디, 시원한 계곡물, 이끼 낀 아름다운 바위, 혹은 몇 백년 묵은 나무의 그림자, 이러한 것은 이 산에 없습니다. 옛날에 마르세유 가까이에 토론 군항을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낸 그대로 벌거숭이산인 것입니다. 가도 가도 용의 비늘 같은 하얀 석회암 파편 투성이로,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돌이 발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 떨러집니다. 괴로운 밤 파브르 선생님 일행은 등산 전날에 산기슭의 베드완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산길을 안내할 안내원과의 교섭도 끝났고, 내일 몇 시에 출발할 것인가도 정해졌습니다. 이제 가지고 갈 식료품을 골라야 합니다. "뭐니 뭐니해도 양의 넓적다리 살이 좋지요. 마늘 즙을 바르고 꼬치를 해서 천천히 잘 구워^5,5,5^."라고 파브르 선생님이 처음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구운 닭고기도 마늘로 맛을 냅시다." 그러자 파리의 식물원에서 온 식물학자 베르나르 베를로가 질린 듯이 말했습니다. "당신네 남프랑스 사람들은 정말로 마늘을 좋아하는군요." "그건 그렇죠. 마늘은 남프랑스 사람들의 힘의 원천이지요. 시인인 베리길리우스도 마늘을 넣은 맛있는 요리를 시 속에서 노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역시 식물학자인 테오르드 드라크르가 말했습니다. 떠들기 좋아하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이 모여 메뉴를 정하느라 여간 소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겨우 필요한 물건이 정해졌습니다. 오늘밤은 어쨌든 푹 자둘 필요가 있습니다. 내일은 산 위에서 밤을 새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은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눈이 더 말똥말똥 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바로 일요일이었습니다. 일행이 묵고 있던 베드완 마을의 호텔은 레스토랑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밤새껏 발소리와 이야기소리로 웅성웅성했습니다. 당구대 위에서 당구공이 딱딱 부딪치는 소리, 쨍 하고 컵이나 유리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납니다. 더 시끄러운 것은 술을 마시고 큰소리로 합창하는 소리와 노래를 부르거나 지껄이면서 밤길을 걷는 사람들의 소리입니다. 근처 술집에서는 나팔을 부는 소리까지 들려 왔습니다. 이래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워낙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하는 파브르 선생님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몇 번이나 건배를 해야 속이 차는 거야^5,5,5^." 그러던 중에 잘 자라는 인사말이 들리고, 의자와 식탁을 치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휴, 이제야 전부 돌아갔구나.'하고 생각한 순간 이번에는 끼, 끼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듣기 싫은 이 소리인데, 무얼까?'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불고기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 일행의 내일 식량이 될 불고기 꼬치를 돌리는 소리입니다. 굽는 기구가 뻑뻑해서 돌아갈 때마다 삐걱거리는 바람에 이런 비명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얇은 마룻장 한 장을 사이에 둔 2층에서 자고 있던 파브르 선생님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습니다. 양의 넓적다리 살이 좋다고 맨 먼저 말한 것도 파브르 선생님이니, 꼬치를 꽂아 천천히 굽자고 말한 사람이 누구냐고 따질수도 없고, 답답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이윽고 날이 어슴푸레 밝아 왔습니다. 짐을 나를 당나귀가 창 밑에서 울고 있습니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아, 괴로운 밤이었어. 꼬박 밤을 세웠군." 식량과 물건을 당나귀의 등에 실은 길 안내원이 "출발!" 하고 외쳤습니다. 모두들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4시. 안내원이 노새와 당나귀를 끌고 맨 앞에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아직 어스푸레한 빛 속에서 길가의 풀이나 나무를 조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어깨에 고도계를 걸치고, 손에는 메모지와 연필을 들고 천천히 따라나갑니다. 으르렁거리는 위 고도에 따라 그 곳에 나 있는 식물의 종류가 틀리기 떄문에 그 장소의 대표적인 식물을 발견할 때마다 고도를 재어 확인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고도계를 가지고 왔는데, 선생님이 멈춰 서면 전부 다가와 고도계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멋쩍은 표정으로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물통 속의 럼주를 꿀꺽 하고 한입 마시는 것입니다. 아침 공기가 차고 상쾌하여 럼주를 입에 넣고 걷는 기분이 무척 좋었던 것입니다. 럼주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럼주는 뭔가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해 각성제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없으면 곤란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제부터 식물을 발견해도 더 이상 고도계를 자주 꺼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럼주는 선생님이 매우 좋아하는 술이기도 했습니다. 산을 올라감에 따라 기온이 점점 내려가 올리브와 호랑가시나무등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이 먼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포도와 아몬드나무가 사라지고, 뽕나무와 호두나무가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신에 회양목이 점점 많아집니다. 식물상이 매우 단조로워지는 것입니다. 밭은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이 근처 시원한 곳을 좋아하는 너도밤나무 지대가 시작되기 전의 지역으로 산박하가 많아졌습니다. 산박하는 프로방스에서 당나귀후추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식물로, 이 곳에서 만들어진 당나귀후추가 향료로 들어갑니다. 모두들 배가 점점 고파져서 머릿속으로는 벌써 치즈를 씹어 먹는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나귀의 등에 실은 도시락 주머니를 이따금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앴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 배가 고픈 정도가 아닙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위가 으르렁거리다.'라고 표현한 그대로, 뭔가를 덥석 물고 싶은 식욕, 늑대의 식욕이 모두에게 끓어올랐습니다. 거기서 파브르 선생님은 점심 식사를 할 때까지 배고픔을 잊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길가에 얼마든지 나 있는 '수영'이라고 불리는 식물을 씹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수영을 똑 꺽어서 껍질을 조금 벗겨 씹자 모두들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습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생님이 와작와작 씹고 있으니까 누군가가 머뭇머뭇하면서 수영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앞을 다투어 수영을 뜯기 시작했습니다. 일행은 하교길의 어린이들처럼 쓴 수영을 씹어 허기와 갈증을 잊으며 마침내 너도밤나무가 심어져 있는 지대에 도착했습니다. 너도 밤나무는 여기저기에 하나 둘씩 덤불처럼 나 있었습니다. 여기는 아직 너도 밤나무가 자라기엔 기후가 너무 더워서 제대로 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수도 많고, 키가 작은 나무가 나타나더니, 이윽고 튼튼한 줄기를 가진 훌륭한 나무가 보입니다. 주변이 검고 깊은 밀림처럼 되었습니다. 땅 위에는 변함없이 큰 석회암 덩어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이 정도 높이면 겨울에는 눈이 쌓입니다. 거기에 미스트랄이라는 프로방스 지방 특유의 무서운 북서풍이 휘몰아치기 때문에 너도 밤나무의 가지는 눈과 바람의 힘에 꺽이거나 굽습니다. 방투산이라는 이름도 바람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한 시간 이상 더 올라가면 너도 밤나무는 다시 키가 작아지면서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이번엔 너무 추워서 역시 키가 자라지 않는답니다. 산 위에서의 진수 성찬 이윽고 샘물에 도착했습니다. 겨우 도시락을 먹을 장소에 도착한 것입니다. 더 이상 수영은 필요 없습니다. 땅속에서 솟아나는 물이 가는 물줄기를 이루어, 너도 밤나무 줄기를 파내고 만든 몇 개의 물통에 괴어 있습니다. 산에 있는 양치기들이 양들을 몰고 물을 먹이러 오는 장소입니다. 물의 온도는 정확히 섭씨 7 도. 8월의 인간 세상은 지옥의 가마솥 속처럼 덥지만 이 곳의 물은 손이 끊어질 듯이 차갑습니다. 목이 말랐던 일행은 손으로 물을 떠서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식탁보 대신에 시트가 고산 식물의 아름다운 주단 위에 펼쳐졌습니다. 이제 진수 성찬을 차립시다. 먼저, 밤새도록 소리와 냄새로 일행을 괴롭힌, 그 양파즙을 친 양의 넓적다리 고기와 크고 둥근 빵 덩어리, 그리고 구운 닭고기. 모두가 특히 먹고 싶어하던 당나귀후추가 든 손바닥 크기만한 치즈. 그 바로 옆에는 아를 지방의 이름난 살라미 소시지가 있는데 후추가 덩어리로 붙어 있어 몹시 매운 맛이 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남프랑스의 명산물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올리브입니다. 소금물에 절인 푸른 올리브와 기름에 담근 검은 올리브 두 종류가 있습니다. 과일은 희고 노란 멜론으로, 이로써 각자의 취향에 맞도록 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중해 명산물인 안초비, 즉 기름에 절인 멸치가 든 단지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이 깨지지 않도록 소중히 가져온 포도주를 꺼내어 너도밤나무로 만든 물통 속에 넣어 차게 했습니다. 후식으로는 양파가 있습니다. 소금을 쳐서 날로 먹습니다. 이것도 남프랑스 식입니다. 파리에서 온 식물학자 두 사람은 마늘과 향료가 많이 든 이 남프랑스 풍의 요리를 실제로 보고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그러나 먹기 시작하자마자 맨 먼저 이 진수 성찬을 칭찬했습니다. 자, 준비가 끝났습니다. "전부 식탁에 앉아." 하고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산에서는 뭐든지 군대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평생 잊지 못할,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의 연회 같은 신나는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말 한 마디 없이 먹을 것을 한입 가득 넣고 게걸스럽게 먹었습니다. 양의 넓적다리 고기도, 빵 덩어리도 놀랄 만큼 빨리 없어졌습니다. 보통 때의 세 배쯤 되는 식욕이었지요. 그리고 남은 음식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먹어 치우다가는 오늘 밤과 내일 먹을 음식까지 없어지겠는데.' 그러나 맹렬한 식욕도 차츰 가라앉아, 이제는 먹으면서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입을 모아 이 메뉴를 생각한 파브르 선생님을 칭찬했습니다. 내일 먹을 음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부터는 천천히 맛을 보며 먹을 수 있습니다. 작은 꽃에 상제나비가 날아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미나리의 일종인 고운 꽃에 홍줄노린재도 있습니다. "이 올리브 참 맛있는데. 역시 본고장이야."라고 말하며 소금물이 뚝뚝 떨어지는 파란 올리브를 칼 끝으로 찔러 먹는 사람, "안초비도 맛있어요."라며 단지째 안고서 사프란으로 노랗게 물들인 이 작은 생선을 두 토막으로 잘라 빵에 얹어 우적우적 먹는 사람, 그리고 살라미 소시지 속에 든 파란 후추알을 씹고는 매워서 어쩔 줄 몰라 물을 마시는 사람^5,5,5^. '이것이 맛있다, 이것이 최고야.'하고 각자 자신의 입맛에 제일 잘 맞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단 한 가지는 모두들 똑같이 칭찬했습니다. 당나귀후추가 든 치즈였습니다. 이 치즈를 맛보기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 남겨 두었습니다. 치즈를 씹은 후 포도주를 마시면 저절로 "음, 이거야."하는 말이 모두의 입에서 나옵니다. 방투산의 맑은 공기와 빛나는 고산 식물이 음식을 한층 더 맛있게 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이프와 여송연에 불이 붙여졌습니다. 배를 두드리며 풀 위에 뒹굴면 햇볕이 따뜻해서 기분 좋게 졸음이 오기 시작합니다. '아, 구름이 흘러가는구나. 꼼짝하기 싫은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원 일어서!"하고 누군가가 명령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너무 한가하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해가 질 때까지 산꼭대기에 도달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산은 점점 더 험해집니다. 길 안내원은 물건을 실은 당나귀와 노새를 데리고 완만한 서쪽길을 택했습니다. 너도밤나무 지대의 위쪽, 1,550 미터 지점에는 큰돌로 만든 오두막집이 있습니다. 안내원은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자스라고 불리는 이 집에 먼저 도착해서 등산객 일행을 기다릴 것입니다. 당나귀도 사람도 이 곳에서 하룻밤을 지낼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 일행은 이대로 올라가 산등성이를 타고 산꼭대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해가 진 뒤 하늘에 남아 있는 어슴푸레한 석양빛을 받으며 안내원이 먼저 가 있는 자스까지 내려갈 계획이었습니다. 짙은 안개에 뒤덮이다. 자, 산등성이에 도착했습니다. 남쪽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파브르 선생님 일행이 지금 올라온 곳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북쪽을 보면 무의식중에 발이 움츠러듭니다. 전체가 깎아지른 듯이 솟아 있는 절벽과 가파른 계단처럼 무서운 경사면으로 이어져 1,500 미터 정도의 벼랑으로 되어 있습니다. 돌을 던져 보면 도중에 멈추지 않고 튀어 구르며 떨어집니다. 한참 아래쪽에는 툴랑강이 한 가닥 은빛 리본처럼 빛나고 있는데 돌은 그곳까지 떨어지겠지요. 선생님 일행은 일부러 큰 바위 덩어리를 깊은 골짜기에 떨어뜨려 그것이 재미있는 소리를 내며 낙하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파브르 선생님은 큰 돌 밑에서 곰보나나니 떼를 발견했습니다. 평지에서는 길가의 제방에 항상 한 마리씩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해습니다. 그런데 이 방투산 꼭대기 부근에서는 한 개의 돌 밑에 몇백 마리가 떼지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떼를 지어 무엇을 하는 것일까?'하고 파브르 선생님이 좀더 자세히 관찰하려는데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습니다. 아침부터 모두들 걱정은 하고 있었지만 남풍이 갑자기 비구름을 몰고 온 것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 일행은 구름 속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주위는 짙은 안개로 완전히 뒤덮였습니다. 두세 발짝 앞도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몸은 점점 축축하게 젖어 왔습니다. "테오도르, 어디 있나?" 파브르 선생님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친구인 식물학자 테오도르 드라카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기한 고산 식물을 찿으러 멀리 간 것 같습니다. 모두가 확성기처럼 손을 입에 대고 "드라크르, 드라크르!" 하고 힘껏 불렀습니다. 그러나 대답이 없습니다. 목소리는 웅웅 하는 소리를 내며 소용돌이치는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갈 뿐입니다. 드라크르를 찾아야 합니다. 구름에 완전히 감싸여 있기 때문에 두세 걸음만 떨어져도 벌써 상대방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일곱 명 중에 방투산의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파브르 선생님뿐이었습니다. 서로 헤어지지지 않도록 일곱 명은 손을 꼭 잡고, 파브르 선생님이 일행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러나 마치 눈을 가리고 있는 것 같아서 찾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헤맬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좋을지조차 몰랐습니다. "방투산에 익숙하니까 괞찮아. 안개가 몰려오는 걸 보고 아직 밝을 때 자스까지 달려서 내려갔을 거야. 우리도 빨리 자스로 가자.” 벌써 빗물에 속옷까지 흠뻑 젖어 몸이 추워졌습니다. 젖은 바지가 다리에 달라붙었습니다. 목숨을 건 첫걸음 그런데 큰일났습니다. 드라크르를 찾으려고 왔다갔다 헤매는 동안 파브르 선생님 일행은 마치 눈이 가려진 채 빙빙 돌려진 것처럼 되었습니다. 어느 쪽이 북쪽이고, 어느 쪽이 남쪽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는 짙은 안개에 싸여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발 밑은 어느 쪽을 향해도 가파른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산꼭대기를 포기하고 오두막집에 피난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든 방향을 정해 달려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북쪽은 아까 본 무서은 절벽입니다. 굴러 떨어지면 목숨은 없습니다. 내려가는 곳은 어쨌든 남쪽이어야 합니다. 이대로 조난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잠시 동안 어찌할 바를 볼랐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은 각각이었습니다. "이대로 여기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자." "아니야, 비는 언제 그칠지 몰라. 이렇게 흠뻑 젖은 채로 여기 있다가는 밤이 되면 얼어 죽어." 선생님도 큰 걱정이었습니다. 이 때 파브르 선생님에게 의지가 될 만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파리의 식물학자인 베르나르 베를로입니다. 이 사람은 식물채집 경험이 많고, 산에도 물론 익숙했습니다. 지금도 침착한 행동으로 파브르 선생님의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베를로 씨, 잠깐" 파브르 선생님은 한쪽으로 베를로를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쨌든 나침반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일을 자세히 떠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구름은 처음에 남쪽에서 왔습니다. 그렇죠?" "그렇습니다. 남쪽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극히 극히 약한 바람이긴 했지만 남쪽에서 북쪽으로 분 것이죠?" "그렇습니다. 비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비스듬히 내렸습니다. 맞아요, 파브르 씨. 비가 내려오는 쪽이 남쪽이군요. 그쪽이 안전한 길입니다.” "아니,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정상이 구름으로 감싸여 있으니까 바람은 빙빙 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5,5,5^." "혹시, 바람이 방향을 바뀌지 않았다면 몸의 왼쪽이 오른쪽보다 좀더 젖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몸의 방향을 별로 바꾸지 않았고, 비는 왼쪽에서 맞았기 때문이지요. 만져서 확인해 볼까요?" "아, 그렇군요. 왼쪽이 심하게 젖었어요. 당신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파브르 씨." "틀리면 어떡하죠?" "아닙니다. 틀림없습니다." 베를로는 힘있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생각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전부 자기 옷의 안쪽을 만져 보았습니다. 모두들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심하게 젖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파브르 선생님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바람의 방향은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쪽이 남쪽입니다. 여러분, 나를 따라오세요. 비가 내려오는 쪽을 향해서 갑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리고 전부 손을 잡았습니다. 선두는 파브르 선생님, 맨 뒤는 베를로입니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큰소리로 뒤쪽의 베를로를 향해 말했습니다. "용기를 냅시다!" "좋습니다. 갑시다." 베를로의 믿음직한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선생님 일행은 목숨을 건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북쪽이라면 아까 떨어뜨린 바위처럼 골짜기의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지겠지요. 드디어 파브르 선생님이 먼저 한 발을 내딛자 우르르 하고 사람들의 발이 저절로 움직여집니다. 한 발, 두 발, 세 발^5,5,5^, 일곱 명은 잔뜩 긴장된 채로 산을 내려왔습니다. 발은 이제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습니다. 스무 걸음 정도를 단숨에 뛰어내려 왔습니다. 아아, 이제 안심입니다. 역시 이쪽이 남쪽이었습니다. 만일 그 때 북쪽으로 향했다면^5,5,5^, 하고 생각하니 지금도 오싹합니다. 돌멩이투성이의 급한 언덕길을 우르르 무사히 내려왔습니다. 돌이 구르며 소리를 냅니다. 단단한 대지를 밟는 기분, 이것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돌이 구르는 소리조차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늘의 음악처럼 들렸습니다. 쐐기풀의 길 안내 몇 분 후에 일행은 너도밤나무 지대의 가장자리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곳은 산등성이보다 안개가 더 짙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대야 겨우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장소가 보일 정도였습니다. 아이구, 맙소사! 산 넘어 산이군요. 이런 짙은 안개 속에서 너도밤나무 숲 속 깊은 곳에 있는 자스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파브르 선생님에게 좋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에는 명아주와 쐐기풀이 나 있습니다. 더욱이 쐐기풀은 만져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걸어가면서 손으로 주위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따금하고 아프면 이것은 쐐기풀이 나 있다는 증거입니다. 맨 뒤의 베를로도 열심히 손을 휘저었습니다. 쐐기풀의 따가움은 특별해서 보통 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지만 그 아픔이 지금은 오히려 기쁨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선생님과 베를로만큼 식물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오두막집을 발견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무작정 산을 내려가 이대로 베드완 마을로 돌아가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럴 때에는 절망한 나머지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베를로는 식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브르 선생님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모두들 파브르 선생님과 베를로의 설명을 일단 믿기로 하고 손을 휘젓기 시작했습니다. "아야, 아이 따가워, 아야!"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습니다. 이렇게 쐐기풀에서 쐐기풀로 산길을 타면서 일행은 마침내 오두막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산속 오두막집에서의 연기 공세 오두막집에 들어서자 다행스럽게도 안에 드라크르가 와 있었습니다. 물건을 옮긴 안내원도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네를 산등성이에 두고 왔으면 어떡하나 하고 많이 걱정했네." "미안하네. 나도 무척 마음을 졸였어. 어쨌든 그 옷을 벗고 불부터 쬐게. 감기 걸리겠네." 주워 온 마른 가지가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습니다. 불을 쬐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자 모두들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난로 앞에는 가까운 산골짜기에서 가져온 눈 덩어리가 봉지에 담겨져 거꾸로 걸려 있었습니다. 녹여서 저녁 식사 때 마실 물로 쓸 것입니다. 산 속의 오막살이집에 침대는 없습니다. 마룻바닥에 너도밤나무잎이 깔려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도대체 언제부터 여기에 깔려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에게 밟혀 가루처럼 부서진 채 지금은 흙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산 속의 밤은 몹시 춥기 때문에 난롯불이 꺼지지 않도록 깨어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지만 특별히 부탁하지 않아도 불을 지피는 일손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방안이 마치 훈제실처럼 연기로 꽉 차 있어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천장 한쪽이 무너져 큰 구멍이 나 있을 뿐 굴뚝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심코 숨을 크게 들이쉬면 콜록콜록 하고 연기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목숨만이라도 구한 것에 기뻐했는데 이제는 연기 정도에도 불평이 나옵니다. 어젯밤에 이어 오늘 밤도 아무래도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꽃과 나비의 낙원 날이 밝기 전에 모두 일어났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 해돋이를 구경할 예정입니다. 비도 그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화창한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현기증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벼운 고산병에 걸린 것이겠지요. 고도계를 보니, 수은주는 지상에서보다 약 140 밀리바 내려가 있었습니다. 즉, 평상시보다 5분의 1정도 공기가 희박해진 것입니다. 모두가 건강하다면 이 정도는 보통이겠지만, 전날의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발걸음은 무겁고 숨이 찼습니다. 침착하게 한 발씩 천천히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스무 걸음 정도 걸으면 발을 멈추고 '하아, 하아.'하고 숨을 몰아 쉬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간신히 산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산꼭대기에는 석실 같은 예배당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의 찬 공기를 피하기 위해서 그 안에 들어가자마자 물과 럼주를 서로 빼앗듯이 하며 마셨습니다. 드디어 럼주는 다 마셔 버렸습니다. 이윽고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지평선 저 끝까지 방투산이 삼각형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윤곽은 보라색 선을 두르고 있습니다. 남쪽과 서쪽은 끝없는 평야입니다. 해가 좀더 높이 떠오르면 거기에 론 강이 한가닥 은실처럼 보이겠지요. 북쪽과 동쪽으로는 파브르 선생님 일행의 발 밑으로 흰 구름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어서, 훨씬 낮은 곳의 산봉우리들이 섬처럼 검게 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훨씬 저편의 앞프스 방향을 보면, 몇 개의 높은 봉우리가 얼음산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고산 식물입니다. 선생님 일행은 마법의 경치로부터 눈을 떼고 식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8월은 식물 채집 시기로는 조금 늦은 편입니다. 대부분의 식물에 있어서 꽃이 만발하는 시기가 지난 것입니다. 이 산에서 식물을 채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7월 초순입니다. 게다가 7월 말에는 이렇게 높은 곳까지 양 떼가 오기 때문에 식물 채집은 그 전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양 떼가 풀을 뜯어먹은 후에는 남은 것밖에 채집할 수 없으니까요. 7월에는 방투산 꼭대기의 한쪽으로 꽃발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침 안개 속에 핀 꽃 가운데에 장미빛 암술을 가지 쿠릴열도벗꽃이 떼지어 나타났습니다. 녹색의 큰 꽃잎을 석회석 위에 펼친 제비꽃과 지치, 그리고 왜지치, 서양 말랭이 등의 식물도 꽃을 활짝 피우고 있습니다. 태양이 더 뜨겁게 내리쬐면 흰 날개에 검은 선이 있고, 피처럼 빨간 네 개의 반점을 가진 나비가 꽃에서 꽃으로 재빨리 나는 것이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비 가운데 하나인 아폴로붉은점모시나비라는 호랑나비류입니다. 그 애벌레는 꿩비름 줄기를 와작와작 먹습니다. 방투산의 산꼭대기는 박물학자에게 천국 같은 곳입니다. 이 천국을 생각하면 파브르 선생님에게는 등산의 고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같이 온 사람들 중 식물과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후 두 번 다시 함께 등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2. 비단벌레를 사냥하는 노래기벌 한 권의 책과의 만남 한 권의 책을 읽고, 밝은 빛이 보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책 속에 쓰여 있는 말이 마음속을 갑자기 환하게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해 오던 사람이 그 문제에 관해 훌륭한 생각을 정리해 놓은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열리는 듯합니다. 그 책이 안내자가 되어 마음 속의 난로에 장작이 쌓이고, 책에서 옮겨 붙은 불꽃으로 순식간에 그 장작이 타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이 불이 없다면 난로의 장작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겠지요. 이러한 독서는 그 사람의 새로운 생각의 출발점이 되지만 그 계기는 대체로 우연히 옵니다. 어떻게 눈에 띄었는지 모르는 몇 페이지, 혹은 몇 줄의 문장이 우리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운명을 바꿔놓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1854 년 어느 겨울밤이었습니다. 당시 아비뇽에 살고 있던 파브르 선생님은 가족이 모두 잠든 후 난로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장작은 모두 타 버렸지만 재는 아직 뜨겁고, 가까이 가면 따뜻했습니다. 독서에 열중한 선생님은 생활에 대한 걱정은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열여덟 살에 사범학교, 즉 교사 자격을 얻는 학교를 졸업한 파브르 선생님은 초등 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 졸업 자격인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854 년, 지금은 아비뇽의 중학교에서 자연 과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된 지도 꽤 오래 되었고, 모두들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봉급은 무척 적었습니다. 1 년에 1,600 프랑이라는 선생님의 봉급은 같은 경력을 가진 다른 선생님보다도 적은 액수였습니다. 부잣집의 마구간 청소부가 받는 돈보다도 적었습니다. 그 당시 학교 선생님의 봉급이 워낙 적었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대학 졸업 자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높은 교수 자격을 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불리했던 것입니다. 사정은 이러했지만 파브르 선생님은 특별히 얽매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선생님 댁은 가족이 많았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실험 기구와 책은 지금과 달리 매우 비쌌습니다. 책 한 권 값이 한 달치 봉급과 같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늘 공부할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아아, 마음껏 학문을 하고 싶다.' 그리고 아직 젊었던 선생님은 자신이 어느 방면에 재능이 있는가를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 때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한 권의 곤충학 잡지를 뒤적이다가 어떤 글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레옹 뒤프르는 사람이 쓴 벌에 대한 연구 논문이었습니다. 레옹 뒤프르는 당시의 이름난 곤충학자로 대서양 연안의 랑드 지방에 살던 의사였는데, 비단벌레를 잡아 애벌레의 먹이로 삼는 어떤 벌의 습성에 관해 자세히 조사했던 것입니다. 벌 가운데에는 꿀만 모으지 않고 애벌레를 위해 다른 벌레를 잡는 종류도 있습니다. 물론 파바르 선생님은 그 때 처음으로 곤충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곤충과 식물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이 태어난 곳은 남프랑스의 지중해에서 100 킬로 이상이나 들어간 르에르그 산지로, 선생님은 어린 시절을 자연과 더불어 그 곳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시절에 관한 선생님의 추억 속에는 곤충에 대한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앞날개 끝부분의 오렌지색이 선명한 상제나비를 처음 보았을 때의 일, 여름밤 숲 속에서 지^6,3^, 지^6,3^, 하고 우는 실베짱이의 정체를 발견했을 때의 일, 금록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딱지날개를 가진 금색딱정벌레를 잡았을 때의 일, 눈앞의 엉겅퀴꽃 위에서 날개를 치며 꿀을 빠는 호랑나비의 아름다움에 취해 최면술이 걸린 것처럼 멍청해져 버린 일 등 곤충의 아름다움과 신비한 움직임이 이 때 마음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곤충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난로 속의 장작은 벌써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태울 불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읽은 레옹 뒤프르의 벌에 관한 논문이 불꽃이 된 것입니다. 그 때까지 파브르 선생님은 곤충학 연구를 아름다운 나비와 벌 등을 잡아와 표본을 만드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곤충을 표본상자에 진열하고, 책을 통해 이름을 찾고,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않은 것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곤충 연구의 전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연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 마리 한 마리의 곤충에 확실히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 이상의 것을 조사해도 혼한이 생깁니다. 그러나 곤충이 자연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조사하는 것, 즉 생태 연구라는 별도의 훌륭한 분야가 있다는 것을 뒤프르의 논문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에게는 그 논문이야말로 하늘이 준 계시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다!' 이렇게 확실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실제로 그 벌을 조사해 본 결과 차례로 새로운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레옹 뒤프르의 생각에 틀린 점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 때 쓴 논문으로 선생님은 프랑스 학사원의 실험 생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레옹 뒤프르로부터 논문을 칭찬하는 편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자기의 자못을 비판한 사람에 대한 뒤프르의 다정한 격려 편지에 젊은 파브르 선생님은 무척 감동했고, 새로운 힘이 솟았습니다. 여기서 파브르 선생님의 연구의 출발점이 된 레옹 뒤프르의 논문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그것은 비단벌레를 사냥하는 벌, 즉 비단벌레노래기벌에 관한 연구입니다. 레옹 뒤프르의 연구 비단벌레노래기벌은 사냥벌이라고도 불리는 벌의 일종입니다. 벌 중에는 꿀벌처럼 꽃의 꿀과 꽃가루를 모으며 한 마리의 여왕벌을 중심으로 집단 생활을 하는 것도 있지만 사냥벌처럼 혼자 생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냥벌의 암벌은 다른 벌레를 사냥하여 집 속에 모아 두고 애벌레의 먹이로 삼습니다. 이런 습성 때문에 사냥벌이라고 불려지는 것입니다. 먹이가 되는 것은 벌의 종류에 따라 정해져 있어서, 딱딱한 날개를 가진 비단벌레 등 갑충을 사냥하는 노래기벌, 여치나 메뚜기 종류를 사냥하는 구멍벌, 거미를 사냥하는 대모벌, 굼벵이를 사냥하는 나나니 등 여러 종류의 사냥벌이 있습니다. 1839 년 7월의 일이다. 시골에 사는 친구가 지금까지 레옹 뒤프르가 잡아 본 적이 없는 두줄비단벌레라는 종류를 두 마리 보내 왔습니다. 그 때 친구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뒤프르선생님은 곤충을 모으고 계시니까 이 아름다운 갑충을 보시면 반드시 기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정원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어떤 벌이 날아와 무릎 위에 이것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같은 벌이 또 한 마리를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진기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보냅니다^5,5,5^. 비단벌레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는 보석이나 금은 세공품처럼 아름다운 것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는 옛날에 비단벌레의 날개를 공예품에 사용했습니다. 일본 법륭사의 '비단벌레의 장'을 비롯한 공예품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친구가 보내 준 종류는 진기한 것이었기 때문에 뒤프르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 이듬해 7월에 왕진도 할 겸 그 친구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작년에 멋진 비단벌레를 저에게 보내 주셨지요. 그것이 잡힌 것이 꼭 이때쯤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더 많이 잡고 싶은데, 잡힌곳이 정원이었지요?" "글쎄요,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그 벌이 날아올지^5,5,5^." "기온이 낮아서 말이죠? 어쨌든 장소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먼저 단서가 될 만한 벌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뒤프르와 그 친구는 정원의 작은 길에서 벌을 찾아 보았지만 그 날은 날씨도 흐리고 기온도 낮아서 역시 벌은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벌은 땅에 구멍을 파서 집을 만든다는 사실을 뒤프르는 대강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벌집을 찾기로 했습니다. 땅 위에 작은 두더지 무덤처럼 흙이 조금 쌓인 곳이 벌집입니다. 금방 찾았습니다. 위쪽의 흙을 파내고 보니 우물 같은 구멍이 땅속으로 깊숙히 뚫려 있었습니다. 삽을 사용해서 천천히 파내려갔습니다. 이윽고 땅 속에 그렇게도 잡고 싶었던 비단벌레의 날개가 산산이 흩어져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드디어 날개뿐만 아니라 완전한 형태의 비단벌레를 서너 마리 파냈습니다. 금색과 에메랄드 그린으로 빛났습니다. 뒤프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그 때 흩어진 흙 속에서 한 마리의 벌이 기어 나왔습니다. 이것이 비단벌레를 사냥하는 벌이었습니다. 벌집이 무너졌기 때문에 먹이에서 도망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벌은 본 기억이 있습니다. "아하, 그 노래기벌 아냐? 이놈이 비단벌레를 사냥하는 벌이었구나." 뒤프르는 무척 놀랍습니다. 프랑스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자신의 고향인 랑드 지방과 스페인에서 지금까지 몇백 년 동안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흔한 노래기벌이라는 벌의 일종이었습니다. '이 벌은 항상 꽃의 꿀을 빠는 놈이다. 그럼 비단벌레는 벌 자신이 먹는 것이 아니라 애벌레의 먹이구나.'라고 생각한 뒤프르는 또 다른 벌집에서 두 마리의 애벌레를 발견 하였습니다. 한 시간도 안 걸려서 뒤프르와 친구는 비단벌레노래기벌 집을 세 군데나 팠습니다. 몸이 완전한 비단벌레 15 마리와 조각난 비단벌레의 많은 파편들이 나왔습니다. 이 파편을 모으니까 15 마리가 넘었습니다. 즉, 세 군데의 벌집에 30 마리 이상, 하나의 벌집에 평균 10 마리 이상의 비단벌레가 묻혀 있었습니다. 땅속에서 파낸 비단벌레와 그 조각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다이아몬드의 광맥을 파낸 것 같은 광경이었습니다. 이 정원 안에는 비단벌레노래기벌 집이 최소한 25개 정도는 있는 것 같습니다. 즉, 10 마리 곱하기 25개로, 적어도 250 마리의 비단벌레가 이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이 됩니다. 지방에 따라 노래기벌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이 벌의 애벌레는 육식성이지만 다 자라면 꽃의 꿀밖에 빨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파꽃에 꿀을 빨러 와 있는 노래기벌 60 마리 정도를 순식간에 잡을 수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런 지방의 노래기벌집 속에는 비단벌레가 저장되어 있을 것이므로 노래기벌에게 잡히는 비단벌레의 수를 전부 합하면 꽤 많은 수가 되겠지요. 이렇게 생각한 뒤프르는 땅속에 몇천 마리의 비단벌레가 묻혀 있을 것을 상상하니 어이가 없어졌습니다. 뒤프르는 30 년 이상이나 랑드 지방에서 곤충을 채집했으나 이 비단벌레는 한 마리도 야외에서 잡은 적이 없었습니다. 곤충은 몸이 작아서 숨기가 쉽기 때문에, 수가 매우 적고 진귀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는 사실상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단벌레노래기벌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두줄비단벌레를 얼마든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줄비단벌레는 보통 어디에 있을까요? 20 년 전에 단 한 번, 오래된 졸참나무의 구멍 속에 죽은 비단벌레가 끼워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비단벌레의 애벌레는 졸참나무 속에서 자랄 것이라는 확신이 선 것입니다. 멋진 보석 광산 그러나 사실 비단벌레노래기벌은 졸참나무 숲이 있는 점토질의 흙보다 소나무가 심겨진 해안 부근의 모래땅에 많이 있습니다. '소나무 숲에 많이 있는 노래기벌의 애벌레는 도대체 무엇을 먹고 있을까?' 뒤프르는 이것이 알고 싶었습니다. 뒤프르는 어느 해안의 소나무 숲에 도착하여 곧 노래기벌 집을 발견했습니다. 벌집은 사람이 밟아서 단단해진 길에만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벌집을 파내다 보면 먼저 파낸 벌집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선 벌집의 입구에 짚을 꽂고 그주위에 정사각형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한 변이 40센티 정도입니다. 그리고 모종삽으로 깊이 40센티 정도로 주위를 판 후, 이것을 땅 위로 들어올려 뒤집어서 조심스럽게 부숩니다. 이 방법으로 20개 정도의 벌집을 차례차례 파 뒤집었습니다. 그 즉시 흙을 부수다 보면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비단벌레가 발견됩니다. 노래기벌의 애벌레는 알에서 갓 깨어난 것에서부터 큰것까지 고루 있었습니다. 벌의 애벌레들이 먹이인 비단벌레를 먹거나, 고치에 빨강, 파랑, 에메랄드색으로 빛나는 비단벌레의 파편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뒤프르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비단벌레는 모두 400 마리가 넘었습니다.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곤충 채집을 해 온 뒤프르도 이렇게 멋진 보석 광산을 파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아름다워!" 하고 비단벌레의 아름다움에 놀랐지만, 점점 이 갑충을 대량으로 저장하는 노래기벌의 뛰어나 능력에 감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400 마리가 넘는 먹이 중에 비단벌레 이외의 것은 단 한 마리도 섞여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래기벌은 비단벌레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 곤충학자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조사해 보니 그 비단벌레 가운데에는 두줄비단벌레, 팔점박이비단벌레, 자주비단벌레, 청동비단벌레 등 여러 종류가 있었습니다. 비단벌레라 해도 모양과 크기가 종류에 따라 꽤 다른데, 모양과 색이 달라도 비단벌레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벌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단벌레노래기벌은 애벌레를 위해 어떻게 집을 만들고 비단벌레를 저장할까요? 표면이 단단한 길에 만들어져 있는 벌집은 햇볕이 잘 들어 말라 있습니다. 부드러운 모래 땅은 파기는 쉬워도 파는 도중에 술술 부서져 버립니다. 또 잘 파 놓았어도 비가 조금만 오면 집 전체가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단단하고 건조한 땅을 고르는 것은 매우 현명한 습성이라 하겠습니다. 노래기벌은 구멍 파기의 명수입니다. 큰턱과 앞다리의 끝부분을 사용해 점점 파들어 가는데, 앞다리의 끝부분에 나 있는 딱딱한 털이 갈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파낸 터널 입구의 폭은 벌의 몸뿐만 아니라 먹이인 비단벌레도 통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벌은 이런 것을 정확히 계산한 걸까요? 구멍은 처음에 수직으로 들어가다 도중에 직각으로 굽어 있습니다. 터널 속 가장 깊숙한 곳에 버찌만한 크기의 독방을 다섯 개 정도 만들어 그 속에 비단벌레를 세 마리씩 넣습니다. 보통 비단벌레 세 마리가 애벌레 한 마리분의 식량이지만 비단벌레가 큰 종류이면 한 마리 혹은 두 마리일 때도 있습니다. 다 자란 노래기벌이 꽃의 꿀만을 빨며 살아가는 데 비해 애벌레는 육식성입니다. 벌은 자신은 먹지도 않는 먹이를 고생하며 잡아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를 위해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이 노래기벌은 애벌레의 먹이로 비단벌레라는 종류만을 사냥한다는 것입니다. 썩지 않는 비단벌레 그 밖에도 흥미 있는 일이 있습니다. 집 속에 저장된 비단벌레나 뒤프르가 벌에게서 빼앗은 비단벌레는 전부 완전히 죽었는데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리, 더듬이, 몸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관절도 매우 부드럽고 자유 자재로 움직입니다. 한 군데도 부서진 곳이 없고 흠집도 없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땅속은 차고 공기와 빛이 없으니까 비단벌레가 항상 신선한 상태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벌에게서 금방 빼앗은 비단벌레라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겠지요. 뒤프르는 벌집에서 파내 온 비단벌레를 종이에 싸 두고 이틀이 지나서야 표본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비단벌레를 만져 보니 딱딱해지지도 썩지도 않았습니다. 관절도 부드러웠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비단벌레를 몇 마리 해부해 보니 내장도 살아 있을 때와 같았습니다. 보통 죽은 후 12시간만 지나면 내장은 건조해지거나 썩어 버립니다. 그러나 노래기벌에 의해 죽은 비단벌레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일주일, 때로는 2주일 지나도록 썩지 않습니다. 그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벌은 먹이가 썩지 않도록 방부제를 주사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뒤프르는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음식을 소금에 절이거나, 연기를 쐬어 훈제하거나, 혹은 살균해서 통조림으로 만들어 오래 보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선한 날고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벌은 소량의 독을 주사하여 순식간에 먹이를 죽이고, 게다가 독은 시체가 썩는 것을 막는 방부제 역할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기하게도 '썩지 않는 시체'를 관찰한 뒤프르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특별한 방부제를 사용하길래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뒤프르는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레옹 뒤프르의 '특별한 방부제'라는 생각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아니, 방부제는 아니야.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비단벌레가 그렇게 오랫동안 신선한 상태로 보존될 수가 없어.' 이런 생각이 선생님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파브르 선생님의 연구의 출발점이기도 하였습니다. 3. 바구미를 사냥하는 혹노래기벌 (1) '썩지 않는 시체'의 수수께끼 카르팡트라스의 벼랑길 레옹 뒤프르의 훌륭한 논문을 읽고 나서부터 파브르 선생님의 머릿속은 노래기벌에 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나도 어떻게 해서든 이런 사냥벌의 생태를 연구해 보고 싶다. 아직 이 벌에 대해서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반드시 있을 거야.' 그 해만큼 봄이 오기를 기다린 적은 없습니다. 선생님은 난로 옆에서 뒤프르의 논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봄이 와서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며 휴일마다 야외에 나가 계속 벌을 관찰하던 선생님은 드디어 노래기벌의 한 종류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뒤프르가 연구한 그 비단벌레를 사냥하는 노래기벌이 아니었습니다. 무척 닮았지만 더 큰 종류인 혹노래기벌이었고, 이 벌의 먹이는 비단벌레가 아니라 바구미였습니다. 바구미는 주둥이가 길어서 코끼리 코처럼 보이는 벌레로, 비단벌레와 같이 딱딱한 날개를 가진 곤충, 즉 갑충의 일종입니다. 레옹 뒤프르가 연구한 비단벌레노래기벌은 정원의 좁은 길이나 사람이 밟아 평평하고 단단해진 땅에 구멍을 팝니다. 그런데 이 혹노래기벌이 집을 만드는 곳은 절벽같이 경사가 급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수직의 흙에 옆으로 구멍을 파 나갑니다. 집을 만드는 장소는 햇빛이 잘 들고 건조한 벼랑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살고 있는 아비뇽 부근의 카르팡트라스라는 마을 부근에는 이런 장소가 많이 있었습니다. 9월 하순경, 단단한 사암의 얇은 판이 행랑방처럼 벼랑에서 튀어나와 있는 곳의 아래쪽과, 사람의 주먹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움푹 패인 곳에 이 벌은 집을 팝니다. 벌집의 구석진 곳까지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겠지요. 혹노래기벌은 꿀벌처럼 모두 힘을 합쳐 생활하지는 않지만 벌집은 언제나 10개 정도씩 가까이에 모여 있습니다. 벌집은 항상 암컷이 만듭니다.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쬘 때 이 벌들이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집 입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보니 암벌들이 매우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돌덩어리를 큰턱으로 뽑아 밖으로 내밀거나, 구멍 속에 들어가 강한 앞발을 갈퀴처럼 사용해서 흙을 긁어 내고 있습니다. 구석에서 파낸 흙은 뒤쪽으로 재빨리 밀어냅니다. 그래서 때때로 벼랑을 타고 흙이 줄지어 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벌집을 비로부터 보호해 주는 행랑방처럼 튀어나온 바위 밑에서 쉬면서 흙투성이가 된 더듬이와 날개를 청소하는 벌도 있습니다. 이 벌들은 구멍 파기에 지쳤든가, 아니면 순서대로 작업을 마친 벌이겠지요. 구멍 입구에 노란색과 검은색 반점의 모난 큰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 있는 벌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벌들은 붕붕거리며 근처의 마을 쪽으로 날아갑니다. 그러면 집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수벌이 곧바로 쫓아 갑니다. 암컷과 수컷이 쌍을 이루면 다른 수컷이 나타나 방해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 때 수컷끼리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날개로 위협하는 소리를 내며 격투가 시작되면 두 마리의 수컷은 승부가 날 때까지 먼지투성이가 되어 땅 위를 뒹굽니다. 암컷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르는 척하며 결과를 기다린 후, 이긴 쪽과 짝이 됩니다. 수컷은 암컷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수컷의 수는 암컷의 수와 같지만 구멍 주위를 얼슬렁거리며 암컷을 기다릴 뿐 구멍을 파는 일이나 사냥을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2, 3일 사이에 집은 완성됩니다. 지난해의 벌집 구멍을 조금 더파서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그만큼 빨리 됩니다. 다른 종류의 노래기벌은 매년 다른 장소에 새로운 집을 짓지만 혹노래기벌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벌집 구멍을 조금씩 보수하여 사용합니다. 벌집의 지름은 사람의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가파른 벼랑에 직각으로 10센티나 20센티쯤 들어가다가 그 다음에는 급하게 굽어져 있습니다. 파기 쉬운 곳을 찾아서 파들어 가기 때문이겠지요. 큰 벌집 중에는 길이가 전부 50센티나 되는 것도 발견됩니다. 그 구멍의 구석에는 작은 방이 몇 개 만들어져 있고, 각 방에는 먹이인 갑충이 대여섯 마리씩 저장되어 있습니다. 먹이의 무게는 자신의 두 배 파브르 선생님은 먹이인 갑충을 보고 한눈에 그것이 큰 바그미라는 것을 알았는데, 자세히 조사해 보니 네점박이바구미라는 종류였습니다. 혹노래기벌의 암컷이 무엇인가를 안고 어디선가 붕 하고 날아옵니다. 자세히 보면 먹이인 무거운 바구미를 껴안고 있습니다. 날아와서 먼저 구멍 근처의 땅에 털썩 내린 후, 바구미를 큰턱으로 물고 때로는 똑바로, 때로는 비스듬히 가파른 절벽으로 열심히 끌고 올라갑니다. 도중에 가끔 바구미와 함께 떨어지기도 하지만 절대로 먹이를 놓지는 않습니다. 이런 일쯤으로 녹초가 되는 벌은 없습니다. 먹이와 함께 먼지투성이가 되면서도 끝까지 끌어올려 반드시 집 속으로 가지고 들어갑니다. 혹노래기벌이 먹이를 땅에 끌며 걸을 때는 굉장히 무겁게 보이는데, 날면서 옯길 때는 매우 쉬워 보입니다. 바구미는 이 벌과 크기는 거의 비슷하지만 훨씬 무겁기 때문에 혹노래기벌의 나는 힘은 엄청난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무게를 달아 보니 혹노래기벌의 체중은 150 밀리그램, 네점박이바구미는 250 밀리그램이었습니다. 먹이 쪽이 약 두 배 정도 무겁습니다. 즉, 비행기가 무거운 장갑차를 가볍게 나르는 것과 같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이 벌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던 중, 드디어 싫증이 난 혹노래기벌이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그 때 벌은 먹이를 안고 날자마자 순식간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 대단한 힘에는 선생님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벌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파브르 선생님은 짚으로 벌을 쿡쿡 찌르기도 하고 뒤집기도 하면서 벌에게서 먹이를 빼앗는 데 성공했습니다. 먹이를 빼앗긴 혹노래기벌은 '아니 바구미는 어디 갔지?'하는 것처럼 당황해서 두리번두리번 찾아다니거나 벌집으로 들어가 보기도 합니다. 역시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밖으로 나와 또 사냥을 하러 날아갑니다. 솜씨 좋은 벌은 10분도 걸리지 않아서 새로운 바구미를 안고 돌아옵니다. 그것을 파브르 선생님이 또 빼앗아 버렸습니다. 같은 벌에게서 계속 여덟 번이나 먹이를 빼앗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벌은 질리지 않고 여전히 다시 사냥을 하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벌이 가엾어서 아홉 번째는 그만두었습니다. 이렇게 벌에게서 직접 빼앗거나 집 속에 저장된 것을 파내어서 선생님은 100 마리 정도의 바구미를 손에 넣었습니다. 레옹 뒤프르는 비단벌레노래기벌이 비단벌레와 다른 벌레를 확실히 구별해서 비단벌레만을 잡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혹노래기벌도 바구미만을 골라서 잡는다는 것은 예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100 마리의 바구미를 모두 조사해 보니 훨씬 더 놀라웠습니다. 혹노래기벌이 모은 것은 물론 전부 바구미이지만 그것도 모두 한 가지 종류인 네점박이바구미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네점박이바구미만을 고를 수 있었을까요? 이 종류만 특히 맛있다거나 특별한 영양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아. 이 네점박이바구미는 이 근처에 있는 바구미 가운데 가장 크고, 수도 가장 많기 때문일 거야.'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노래기벌 가운데는 다른 벌을 먹이로 하는 것과 갑충을 먹이로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갑충을 사냥하는 여덟 종류의 노래기벌 중 일곱 종류는 각각 한 종류나 두 종류의 바구미를 사냥하고, 나머지 한 종류는 비단벌레를 사냥하는 것입니다. '과연 노래기벌들은 전부 자신의 몸 크기에 어울리는, 그리고 자기가 잡기 쉬운 먹이를 고르는구나.'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노래기벌의 먹이는 이렇게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것일까?' 파브르 선생님에게 또 다른 의문이 생겼습니다. '비단벌레와 바구미는 형태도 색깔도 전혀 닮지 않았는데 어떻게 양쪽 모두 노래기벌의 표적이 되는 것일까?' 파브르 선생님은 이 의문을 어떻게든지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구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레옹 뒤프르가 비단벌레에 관해 조사한 것처럼 파브르 선생님도 바구미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벌이 침을 쏘아 움직이지 못하게 된 바구미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벌에게 쏘인 후 얼마간 시간이 지나도 먹이인 바구미의 몸 색깔은 살아 있을 때와 같고 관절도 부드럽게 잘 움직입니다. 해부를 해 보면 내장의 상태까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습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기어 다닐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죽은 곤충의 경우 보통 몇 시간만 지나면 더울 때는 건조해져서 관절이 부서져 버리고, 습기가 많을 때는 썩어 곰팡이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벌이 잡아온 바구미는 유리관이나 종이 봉투 속에 넣어 한 달 이상 두어도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레옹 뒤프르는 벌이 방부제를 주사한다고 했지만 그런 대단한 효과를 가진 방부제가 있을까요? '어쩌면 바구미는 살아 있을지도 몰라요.' 선생님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뒤프르씨가 틀렸다. 그것을 증명해 보자.' 바구미는 분명히 살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신선한 상태로 있는 것이다. 벌레는 움직이진 않아도 식물처럼 조용히 아직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증거로, 바구미가 아직 똥을 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처음 일주일 동안은 가끔씩 똥을 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똥을 누지 않게 되었을 때 해부를 해 보니 내장 속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바구미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톱밥을 넣은 유리병 속에 벤젠을 몇 방울 떨어뜨린 후 바구미를 집어넣고 15분 정도 지나면 바구미가 뒷다리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몇 시간 전에 벌에게 쏘인 바구미에서부터 3, 4일 전에 쏘인 것 까지를 되풀이해서 실험해 보았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습니다. 그러나 몸의 운동은 쏘인 진 오래된 것일수록 둔했습니다. 잘 살펴보면 먼저 더듬이가 천천히 흔들리고, 앞다리의 끝부분도 떨립니다. 그 다음에 가운뎃다리, 뒷다리 등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지만 그 이후엔 완전히 멈춰 버립니다. 벌에 쏘인 후 10일이 지난 것은 벤젠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전류를 사용해 보았습니다. 한쪽 바늘을 꽁무니에, 다른 쪽 바늘을 목 아래에 찔러 전류를 통하게 하자 먼저 다리 끝부분이 떨리고, 그 다음으로 가슴 위에 접혀 있는 다리가 꽉 죄어졌습니다. 그리고 전류를 끊으면 다리가 축 늘어졌습니다. 이 운동은 처음 며칠 동안의 실험에는 매우 격렬했지만 점점 약해지다가 나중엔 움직임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른 갑충은 어떨까 생각한 파브르 선생님은 하늘소와 딱정벌레 붙이를 벤젠과 황산 가스로 죽인 후 몸에 전류를 통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죽인 곤충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역시 바구미는 살아 있었어!' 선생님은 새로운 발견의 기쁨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혹노래기벌의 먹이가 된 바구미는 죽지도 않았고, 방부제에 의해 신선함이 유지되고 있는 시체도 아니었습니다. 이 벌레는 몸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신경이 마비된 것뿐입니다. 벌의 공격으로 날거나 기는 힘은 한순간 없어져 버렸지만 호흡과 소화에 필요한 힘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힘도 천천히 없어져 갑니다. 그래서 혹노래기벌 애벌레의 식량으로서 필요한 기간까지는 바구미가 살아 있으므로 내장도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헌 먹이는 싫어! 사실 파브르 선생님이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혹노래기벌이 바구미를 쓰러뜨리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벌이기 때문에 공격할 때는 분명히 침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구미와 같은 갑충은 몸 전체에 갑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아서 이음새에도 틈이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쏘는 것일까요? 벌의 침에 쏘인 먹이를 돋보기로 보아도 작은 흠집 하나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실제로 벌이 쏘는 장면을 보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그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혹노래기벌이 사냥을 위해 구멍에서 나오면 여러 방향으로 날아 오릅니다. 그리고 아무 방향에서나 먹이를 안고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이 근처 어느 곳에나 바구미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10분정도 지나면 돌아옵니다. 먹이를 잡아 쓰러뜨리는 시간도 그 속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그다지 멀리 가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혹노래기벌이 바구미를 쓰러뜨리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근처를 꽤 오래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반나절쯤 다녀 보고는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벌의 뒤를 따라가 보아도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으므로 현장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작은 곤충은 100 미터 정도만 벗어나면 거의 보이지 않는데다가, 숲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바구미를 벌집 구멍 근처에 두어 보자. 혹노래기벌은 내 눈앞에서 침을 쏘는 것을 보여 줄지도 몰라.'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부터 파브르 선생님은 살아 있는 네점박이바구미를 하루 종일 찾아 다녔습니다. 다음날도 있을 만한 장소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래서 겨우 구한 것이 단 세 마리였습니다. 그 바구미는 모두 약한 상태로 다리의 끝부분이 부러지거나 더듬이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다시 한 번 벌의 대단함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찾아도 거의 벌견되지 않는 바구미를 벌은 순식간에 얼마든지 잡아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벌이 잡아오는 바구미는 번데기에서 갓 나온 것처럼 반짝반짝거리는 아름다운 것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어서 잡아온 약한 바구미로 실험해 보았습니다. 혹노래기벌이 먹이를 가지고 벌집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선생님은 벌집 구멍 입구 바로 곁에 바구미를 놓고 기다렸습니다. 바구미는 왔다갔다하며 움직입니다. 바구미가 벌집에서 멀리 벗어나면 처음 놓아 둔 장소에 다시 가져다 놓으면서 기다리고 있자니 혹노래기벌이 큰 머리를 내밀며 벌집 속에서 나왔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가슴은 쿵쿵 뛰었습니다. 벌은 잠시 동안 벌집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바구미를 발견하고는 접근했습니다. 자, 드디어^5,5,5^, 하고 선생님은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벌은 선생님의 귀중한 바구미를 잡기는커녕 그 등 위를 그대로 타넘어 버렸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열심히 잡아온 바구미를 상대도 하지 않고 붕 날아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다른 벌집의 벌에게도 같은 실험을 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이 취향이 까다로운 사냥벌은 파브르 선생님이 잡아온 헌 먹이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러던 중 선생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벌을 괴롭혀 침을 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면 어떨까?' 바구미와 혹노래기벌을 잡아 병 속에 넣고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민감한 벌은 놀란 나머지 바구미를 쏘기는커녕 달아나려고 발버둥칠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바구미의 다리에 난 가시 때문에 상처만 입을 것 같았습니다. 역시 안 되겠다고 단념하려는 순간 갑자기 멋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 벌이 바구미를 벌집 속에 넣으려고 애 쓸 때 다른 것과 바꿔 보자. 틀림없이 잘 될 거야.' 선생님은 벌이 열심히 벼랑 아래쪽에서 먹이를 끌어올릴 때 핀셋으로 먹이를 뺏고, 대신 선생님이 잡아온 바구미를 슬쩍 주었습니다. 필사의 일격 이 방법은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끌고 가던 먹이가 갑자기 없어지자 혹노래기벌은 어쩔 줄 모르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 때 파브르 선생님이 재빨리 준비한 다른 바구미를 집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벌은 휙 달려들어 옮기려 했습니다. 물론 먹이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벌은 살아 있는 먹이와 마주치자 놀란 듯이 큰턱으로 바구미의 긴 주둥이 부분을 꽉 물어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바구미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립니다. 그 때 벌이 앞다리로 바구미의 등을 꽉 눌러 가슴의 관절이 열리자 침이 달린 꽁무니를 바구미의 몸 아래로 집어 넣습니다.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고 보는 동안 재빨리 독침을 두세 번 더 쏘았습니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바구미는 꿈틀 하고 경련을 일으킬 틈도 없었습니다.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그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벌은 이 바구미를 거꾸로 뒤집어 안고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세 마리의 바구미를 모두 이용해서 실험해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그것을 확인한 선생님은 실험할 때마다 혹노래기벌이 처음 가져온 먹이를 빼앗아 나중에 천천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벌에 쏘인 바구미의 몸을 아무리 조사해 봐도 흠집이나 피가 난 자국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구미의 운동 능력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침으로 찔러 표뵨으로 만들어 두면 몇 주일, 경우에 따라서는 몇 달이나 발버둥칩니다. 이렇게 생명력이 상한 바구미가 한순간, 불과 한 방울의 독에 의해 힘없이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순간적으로 벌레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맹독성인 청산가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벌은 이보다 더 강한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독의 강약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벌이 쏜 바구미의 가슴 한 부분에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벌에게 쏘인 부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2) 과학적인 살인자 산 채로 움직이지 못하게 함 먹이를 바꿔치기 하는 실험에서 노래기벌이 먹이인 바구미의 어느 부분에 침을 쏘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이 벌이 가진 비밀을 조금은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냥을 할 때는 총으로 쏘아 잡습니다. 그렇게 해서 잡은 먹이는 피투성이로 무참히 상처가 나 있습니다. 그런데 노래기벌의 먹이를 보면 상처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바구미는 마치 방금 태어난 것처럼 윤기가 납니다. 이런 멋진 살인은 사람으로서는 무리겠지요. 곤충 중에는 머리를 떼어 내도 오랫동안 버둥거릴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 곤총을 지금 당장 여기서 깨끗하게 죽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난폭하게 벌레를 밟아 죽인다면 간단하겠지만,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상태로 벌레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어렵겠지요. 예를 들면, 곤충 채집을 하는 사람은 벤젠이나 황산 가스 또는 여러 가지 독가스를 사용해서 벌레를 죽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독가스를 사용해도 벌레는 한동안 버둥거리므로 몸에 묻어 있던 가루가 벗겨지거나 더러워져 버립니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는 청산가리 혹은 황화탄소로 불리는 독가스가 있습니다. 이것을 사용하면 벌레는 순식간에 죽어 버립니다. 벌레를 깨끗이 죽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화학 약품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죽은 벌레는 금방 썩어 버립니다. 맛이 조금이라도 변하거나 냄새가 나는 것은 벌의 애벌레도 먹지 않습니다. 먹이는 신선한 고기여야만 됩니다. 옛날에 긴 항해를 할 때에는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가축을 산 채로 실었지만 벌은 살아서 움직이는 먹이를 자기의 집 속에 넣지는 않습니다. 사실 노래기벌의 알과 애벌레는 매우 약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침이 달린 긴 다리를 휘두르는 튼튼한 바구미와 함께 두면 눈 깜짝할 사이에 상처를 입어 죽어 버립니다. 먹이는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해야 하며, 살과 내장도 살았을 때와 같이 신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뛰어난 해부학자와 생리학자가 모인 자리에서 이 문제를 의논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언제까지나 맛이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되는 음식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보존 식품입니다. '벌이 침으로 주사하는 독에는 강한 살균력이 있기 때문에 먹이가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하고 과학자들은 생각하겠지요. 레옹 뒤프르도 벌이 일종의 방부제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기한 방부제'가 고기를 상하지 않게 한다는 생각은, 잘 모르는 사실을 정체 불명의 방부제라는 또 다른 잘 모르는 것과 바꿔치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 때, 애벌레가 먹는 것은 단순한 보존 식품이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먹이이며 단,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학자들은 생각 끝에, 그것은 먹이를 마취시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겠지요. 그렇습니다. 먹이를 죽이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몸을 마취시키는 것이 좋겠죠. 마취시키는 방법은 한 군데 또는 몇 군데를 잘 찔러 몸을 움직이게 하는 신경 기관에 상처를 내거나, 아예 잘라 내서 움직이는 능력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신경 기관을 노리다. 신경 기관을 찌르면 된다고 하더라도 곤충의 신경 기관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몸의 어디에 있을까요? 분명히 사람을 비롯한 다른 고등 동물의 뇌나 척수처럼 머리 속과 등뼈 속에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틀렸습니다. 사실 곤충은 등뼈를 가진 고등 동물을 뒤집어 등을 아래로 한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몸의 중심 신경이 몸의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 즉 배와 가슴이 연결된 부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곤충을 마취시키기 위해 침을 찌르는 곳은 아래쪽입니다. 해부학자라면 칼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어느 부위든지 잘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벌은 쏘고 싶은 곳이라 해서 아무 곳이나 쏠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은 두꺼운 갑옷을 입은 갑충입니다. 그리고 벌이 가진 수술용 칼이라고는 침 하나 뿐입니다. 이것은 가늘고 약해서 두꺼운 갑옷을 뚫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침을 사용해서 찌를 수 있는 부위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부위는 갑옷의 틈, 즉 관절 부위입니다. 이 곳에 틈이 생기면 그 틈으로 침을 찌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리 관절을 하나하나 찌른다면 싸움도 길어지고, 벌이 위험에 처하게 되므로 수술을 몇 번씩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단번에 상대의 움직을 멈추게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벌이 침을 꽂는 곳은 다리나 날개 등으로 각각의 운동 기관이 퍼져 나가는 신경의 중심입니다. 신경 중심은 몇 개의 신경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경절은 몸의 아래쪽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서로 두 가닥의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충에는 반드시 세 개의 가슴 신경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두쌍의 날개와 세 쌍의 다리로 가는 신경이 나와 그 운동을 지배합니다. 이 세 개의 신경절이야말로 찔러야 할 급소입니다. 이 곳을 독침으로 찔러서 신경을 마비시키면 먹이의 운동 능력은 없어지게 됩니다. 벌의 약한 침으로 바구미를 쏠 때는 갑옷의 틈새를 노려야 됩니다. 틈새는 두 군데 있습니다. 한 군데는 목과 앞가슴이 연결되는 관절이고 다른 한 곳은 앞다리와 가운뎃다리 사이의 관절입니다. 이 곳에 침을 찌르면 운동 신경의 중심부까지 다다릅니다. 이 때 다리를 마비시키기 위해 찌르는 곳이 앞다리와 가운뎃다리 사이의 부위입니다. 아마 해부학자들도 같은 의견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벌이 쏘는 곳은 바로 이 곳입니다. 벌의 생각은 해부학자의 의견과 일치합니다. 성충의 운동 기관을 움직이고 있는 가슴 신경절은 세 개인데 이들의 간격은 각각 다릅니다. 곤충에 따라서는 세 개가 서로 들러붙은 것도 있지만 이는 별로 흔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신경절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움직이므로, 이 가운데 하나에 이상이 생겨도 다른 신경절에 의해 움직이는 다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노래기벌의 먹이로 가장 좋은 것은 세 개의 가슴 신경절이 서로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어서 거의 한 덩어리로 된 것입니다. 신경절 중 하나에 독이 퍼지면 다른 것도 함께 못쓰게 되는 몸의 구조를 가진 벌레가 먹이로 알맞습니다. 갑충류 가운데 신경절이 이렇게 덩어리로 뭉쳐진 것으로는 먼저 쇠똥구리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노래기벌의 먹이로는 너무 큽니다. 그리고 배설물 속에서 살기 때문에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노래기벌로서는 아무래도 접근하기 쉬운 상대가 못 됩니다. 신경절이 매우 가깝게 있는 것으로는 풍뎅이붙이를 들 수 있는데, 이것도 시체를 먹는 곤충이기 때문에 노래기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밖에 통나무좀 등이 있지만 이것은 몸이 너무 작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비단벌레와 바구미입니다. 여기까지 조사해 보면 모두 놀랄 것입니다. 노래기벌이 고른 먹이는 이 비단벌레와 바구미입니다. 노래기벌은 프랑스에 여덟 종류가 있지만 여덟 종류 모두 다른 갑충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바구미와 비단벌레는 겉으로 보기에는 닮은 곳이 하나도 없지만 신경 기관이 한곳에 뭉쳐있다는 점은 서로 일치합니다. 곤충에 관해 박식한 사람도 이 이상 현명한 선택을 하는 곤충은 없으리라 생각하겠지요. 이런 훌륭한 선별법으로 사실상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너무 훌륭하게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어쩌면 이쪽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암모니아 주사 실험 이번에는 직접 실험을 해 봅시다. 노래기벌이 하는 수술을 사람이 흉내내 보는 것입니다. 상대를 못 움직이게 하는 동시에 신선한 상태로 오랫동안 보존하는 것, 즉 벌이 침을 사용해서 한 것을 파브르 선생님도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 수술은 매우 간단합니다. 침이나 펜 끝을 사용해서 벌레의 앞가슴 관절을 가볍게 찔러 가슴의 신경절에 약품을 한 방울 집어 넣는 것입니다. 찌르는 장소는 양쪽 앞다리 사이의 조금 뒤쪽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사용한 것은 암모니아이지만 물론 이것보다 독한 약품이면 아무것이나 좋습니다. 잉크를 조금 묻히는 정도로 펜 끝에 암모니아를 묻혀 벌레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가슴의 신경절이 한 군데 모인 벌레와 신경절이 서로 분리된 벌레의 경우, 나타난 결과는 놀랄 정도로 달랐습니다. 신경절이 가까이 모인 곤충 가운데 파브르 선생님이 실험해 본 것은 풍뎅이의 일종인 스카라베 사쿠레, 왕쇠똥구리, 그리고 비단벌레류와 바구미류였습니다. 이것들은 A그룹이라 합시다. 신경절이 뿔뿔히 흩어진 곤충으로는 딱정벌레와 번지벌레, 그리고 하늘소류, 딱정벌레붙이와 먼지벌레붙이 등을 실험해 보았습니다. 이것들은 B그룹이라 합시다. A그룹의 경우는 금방 효과가 나타납니다. 암모니아 방울이 신경절에 닿음과 동시에 경련을 일으킬 사이도 없이 벌레의 운동은 완전히 멈추어 버립니다. 혹노래기벌에 쏘였을 때에도 이렇게 빨리 운동이 멈춰지지는 않습니다. 튼튼하고 힘이 센 스카라베 사쿠레가 눈 깜짝할 사이에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놀랄 만큼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벌의 침과 암모니아의 독을 바른 펜 끝이 일으키는 작용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합니다. 사람이 주사한 스카라베 사쿠레와 비단벌레, 그리고 바구미는 꼼짝 않고 3주일이 지나도 1개월이 지나도, 경우에 따라서는 2개월이 지나도 몸의 관절이 유연하고, 내장은 처음과 같이 신선합니다. 배설도 하며, 전류를 통하면 꿈틀꿈틀거리며 경련을 일으킵니다. 다시 말해서 노래기벌의 먹이인 비단벌레나 바구미와 똑같은 반응을 나타냅니다. 노래기벌에 쏘인 벌레와 암모니아로 신경절을 못쓰게 된 벌레는 똑같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실험이면 증명은 간단해.'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벌이 방부제를 주사한다는 생각은 역시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벌레는 움직이지 못하지만 죽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 숨이 붙어 있기 때문에 내장도 보통 때처럼 신선한 상태입니다. 때로는 암모니아를 주사했을 때 움직임이 그대로 멈추는 것은 다리뿐일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독이 충분히 퍼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더듬이에는 운동 능력이 남아 있습니다. 이 경우 암모니아를 주사한 후 1개월 이상이 지나도 더듬이를 건드리면 움직였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죽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노래기벌에 쏘인 바구미도 더듬이를 움직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암모니아를 주사하면 스카라베 사쿠레와 바구미와 비단벌레는 금방 움직임이 멈춥니다. 그러나 깊게 찌르거나 주사한 액이 너무 많으면 진짜 죽어 버려, 2,3일 뒤엔 썩고 맙니다. 반대로 주사가 약하면 잠시 동안 마취 상태로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마취에서 깨어나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자연이 준 지혜 갑충 가운데 가슴의 신경절이 서로 떨어져 있는 B그롭은 암모니아의 효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가장 강한 것은 딱정벌레와 먼지벌레류입니다. 크고 튼튼한 스카라베 사쿠레조차 금방 움직임을 멈추는 주사도 딱정벌레와 이보다 작은 먼지벌레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단지 강한 경련을 일으킬 뿐입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약해져서 결국은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같은 벌레에 두세 번 계속 주사해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주사하면 상처가 커져 결국은 죽어 버리기도 합니다. 같은 B그룹에 속하는 갑충 중에서도 먼지벌레붙이와 하늘소류는 암모니아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주사하면 처음에는 경련이 일어나고 잠시 후에는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스카라베 사쿠레와 바구미와 비단벌레에서는 이러한 마취 상태가 지속되는 반면에 먼지벌레붙이와 하늘소의 경우에는 잠깐 동안만 마취 상태에 빠졌다가 잠시 후에는 원래대로 활발히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를 못 움직이게 하려면 암모니아의 양을 늘려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죽게 됩니다. 이처럼 암모니아를 주사하는 방법은 신경절이 모여 있는 갑충에게는 효과적이지만 신경절이 떨어져 있는 것에게는 일시적인 마취 상태로밖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래기벌은 생리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해부학에 정통한 사람처럼 먹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대손손 이런 우연이 거듭되어 조금씩 이렇게 먹이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까요? '도저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그 배후에는 자연의 오묘한 신비가 있기 때문이야. 그것이 본능이라는 거야.'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 귀뚜라미를 사냥한는 구멍벌 부드러운 먹이 사냥벌은 종류도 많고, 먹이도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노래기벌은 갑충을 사냥하는 사냥벌입니다. 갑충처럼 몸이 튼튼한 갑옷으로 감싸인 곤충을 먹이로 삼는 경우, 벌이 그 먹이를 마취시키기 위해 침을 찌를 곳은 갑옷의 연결 부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노래기벌은 먹이로 적합한 비단벌레와 바구미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곤충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 곳을 독침으로 쏘면 전신의 운동 능력을 마비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갑옷을 입지 않은 어떤 곤충이 먹이일 경우엔 벌은 어떻게 할까요? 이 경우에 벌은 상대의 몸 아무 곳이나 쏠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사냥벌이 어떻게 하는지 귀뚜라미를 사냥하는 구멍벌을 가지고 조사해 봅시다. 구멍벌은 노래기벌과는 다른 종류로서 귀뚜라미 외에 민충이를 사냥합니다. 이 벌이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되어 벌집에서 기어 나오는 때는 무더운 7월 말경입니다. 그리고 8월 중에는 엉겅퀴꽃의 꿀을 빨면서 활발히 활동합니다. 꽃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호리호리하고 얌전하여 용감한 사냥벌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윽고 9월이 되어 귀뚜라미가 몸이 꽤 커졌을 때 이 벌은 구멍파기와 사냥을 시작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지금까지 혹노래기벌의 사냥을 관찰했기 때문에 혹노래기벌에게 사용했던 방법을 구멍벌에게도 써 보았습니다. 즉, 구멍벌로부터 먹이인 귀뚜라미를 빼앗고, 그 대신 살아 있는 다른 먹이를 주어 보았습니다. 구멍벌은 운반해 온 먹이를 일단 벌집 구멍 밖에 두고 혼자 구멍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사이에 먹이를 바꾸어 둡니다. 또 이 벌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잡아 온 귀뚜라미를 빼앗고 새 귀뚜라미를 주려고 하면 사람의 손바닥 위로 올라와 먹이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싸우는 법을 쉽게 관찰할 수가 있고, 실험하기도 쉬운 벌입니다. 실험에 사용할 살아 있는 귀뚜라미는 편평한 돌을 뒤집으면 돌밑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 때문에 간단히 잡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실험에 사용할 귀뚜라미는 올해 태어난 어린 귀뚜라미로 날개도 아직 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것이 성충이 되면 깊게 구멍을 파고 땅속에 숨어 잡기 어렵지만 어릴 때는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잡은 귀뚜라미를 사용해 실험을 해 보도록 합시다. 무서은 결투 햇볕이 잘 드는 모래땅의 비탈에 있는 벌집 구멍에는 수많은 벌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 벌은 편평한 곳에 우물 모양의 벌집을 팝니다. 구멍벌 한 마리가 붕 하고 날아왔습니다. 먹이를 안고 사냥에서 돌아온 것입니다. 벌은 일단 벌집 근처에 앉았습니다. 귀뚜라미의 더듬이를 큰턱으로 물고 있는 벌은 그 크고 무거워 보이는 먹이를 꼭 안고 있습니다. 귀뚜라미의 몸무게는 구멍벌의 두 배 정도 되어 보입니다. 벌도 무거운 귀뚜라미를 여기까지 운반해 오느라 힘이 들어서 '휴'하고 한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힘을 내어 먹이를 운반해 갑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는 비탈 위의 벌집 가운데에 앉았다가 또다시 먹이를 끌고 갑니다. 벌은 선생님이 곁에서 보고 있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귀뚜라미 위에 걸터앉아 큰 턱으로 더듬이 하나를 물고 끌어당깁니다. 간신히 벌집 입구까지 끌고 온 먹이를 그냥 두고 벌은 혼자서 급히 벌집 속으로 들어갑니다. 2, 3초 후에 벌은 다시 밖으로 기어 나와 기쁜 듯이 날개를 움직여 '지^6,3^, 지^6,3^' 하는 소리를 냅니다. 그러고 나서 귀뚜라미의 더듬이를 물어 구멍 속으로 운반합니다. 조금 전 벌이 혼자서 빌집 속으로 들어갔을 때, 파브르 선생님은 벌이 잡아 온 귀뚜라미 대신 다른 건강한 귀뚜라미를 벌집 구멍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두었습니다. 구멍벌은 구멍에서 나와 이상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구멍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먹이를 가지러 갑니다. 귀뚜라미는 무서워서 팔짝팔짝 뛰며 달아납니다. 구멍벌은 쫓아가 확 달려듭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벌과 귀뚜라미는 서로 한동안 잎치락뒤치락하며 뒹굽니다. 자, 어느 쪽이 이겼을까요? 벌의 움직임은 매우 빠릅니다. 그러나 귀뚜라미의 다리 힘도 강합니다. 특히 뒷다리로 강하게 차면 벌은 나가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역시 사냥벌은 먹이를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마리가 훍 위에서 무섭게 싸운 결과 벌이 이긴 것입니다. 귀뚜라미는 뒤집혀져 있습니다. 벌은 드디어 수술 준비를 합니다. 이 장면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벌은 귀뚜라미의 배와 자신의 배를 겹치게 하여 귀뚜라미의 꽁무니 끝에 달린 큰 털 한 개를 턱으로 뭅니다. 그리고 앞다리로 상대의 튼튼한 뒷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동시에 가운뎃다리로는 거친 숨을 들이쉬는 귀뚜라미의 배의 옆면을 조르고, 뒷다리로는 귀뚜라미의 턱을 밀어젖혀 목 아래 부위가 확 벌어지게 합니다. 이 과정은 모두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귀뚜라미는 벌에게 완전히 눌려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또한 구멍벌은 배를 안쪽으로 구부려 세우고 있기 때문에 귀뚜라미가 큰턱으로 물려고 애써도 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한 다음 벌은 귀뚜라미의 벌어진 목에 독침을 쏩니다. 다음에는 가슴의 두 번째 몸마디 틈 사이에, 그리고 가슴과 배가 연결된 부위에 각각 한 번씩 쏩니다. 모두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수술을 마친 구멍벌은 천천히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아직 고통스럽게 다리를 떠는 귀뚜라미를 자신의 집 속으로 옯깁니다. 꽃에 앉아 꿀을 빨아먹을 때는 그렇게 점잖고 우아하게 보이던 벌이 지금은 이렇게 무서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자기 새끼를 위한 싸움입니다. 세 번의 독침 조금 전에 벌어진 필사의 격투를 좀더 자세히 관찰해 봅시다. 비단벌레와 바구미 같은 노래기벌의 먹이는 움직임이 둔하고, 재빨리 도망가지도 못하는 갑충입니다. 상대방을 공격할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튼튼한 갑옷으로 몸을 보호할 뿐인데, 노래기벌은 그 갑옷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멍벌의 먹이인 귀뚜라미는 그런 먹이와는 전혀 다릅니다. 즉, 귀뚜라미는 벌에게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뚜라미의 무서운 큰턱에 물리기라도 하면 벌의 몸은 찢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두 개의 강한 뒷다리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두 줄로 나 있습니다. 이 다리로 팔짤팔짝 도망치거나 벌을 차 버릴 수도 있습니다. 구멍벌이 인간만큼 크다고 하면, 귀뚜라미는 당나귀 정도의 크기가 될 것입니다. 만일 큰 어금니에 가시투성이 다리를 가진 당나귀를 주사기 하나로 상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해 보면 구멍벌은 대단한 상대와 싸우는 것입니다. 구멍벌은 귀뚜라미의 강한 뒷다리를 무척 경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귀뚜라미를 거꾸로 뒤집어 앞다리로 귀뚜라미의 뒷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귀뚜라미에게 차일 염려도, 귀뚜라미가 도망갈 염려도 없어집니다. 또한 구멍벌은 귀뚜라미의 큰 턱을 뒷다리로 세게 누르기 때문에 귀뚜라미의 큰턱에 물릴 걱정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멍벌로서는 먹이가 대항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빗나가지 않게 침을 쏠 수 있도록 꽁무니 끝의 큰 털 하나를 입으로 무는 것도 귀뚜라미의 몸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지요. 이처럼 벌은 매우 교묘한 전법을 사용합니다. 벌은 독침을 귀뚜라미의 몸에 세 번 쏩니다. 처음엔 목 아래에 그 다음엔 앞가슴 바로 밑에, 그리고 마지막은 가슴과 배가 연결되는 부위입니다. 귀뚜라미의 여섯 개의 다리를 움직이는 것은 세 개의 신경절입니다. 구멍벌은 이 신경절이 각각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세 번 다 정확하게 신경절이 있는 곳을 쏩니다. 침에 쏘인 귀뚜라미는 언뜻 보기에는 죽은 것 같지만 사실은 이 귀뚜라미도 노래기벌에 쏘인 비단벌레나 바구미처럼 살아 있습니다. 귀뚜라미는 갑충과는 달리 피부가 부드럽고 몸 속의 움직임까지 잘 보이기 때문에, 벤젠이나 전기를 사용해 실험하지 않더라도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거꾸로 뒤집혀 있는 귀뚜라미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2주일이 지나도 배가 떨리고 있습니다. 천천히 호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더듬이와 꽁무니 끝에 달린 털도 때때로 움직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구멍벌에 쏘인 귀뚜라미를 유리관에 넣어 두었더니 40일이 지나도록 신선한 상태였습니다. 구멍벌의 애벌레는 2주일이면 크게 자라므로 끝까지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벌의 멋진 사냥을 보고 있으면, 마치 인간이 즐기기 위해 사냥를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암벌이 애벌레를 위해 먹이를 찾고, 상대방과 싸울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거는 것입니다. 또한 필사적으로 본능의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다 자란 벌은 꽃의 꿀만 빨며 생활합니다. 애벌레 시기에 자기가 귀뚜라미를 먹은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렸겠지요. 지금은 귀뚜라미를 먹고 싶은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본능이 귀뚜라미를 사냥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다그칩니다. 마음속에는 '귀뚜라미를 사냥해야만 돼.'라는 생각이 끓어오르고 있어서 다른 일들은 조금도 생각할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없게 되는 것이겠지요. 파브르 선생님은 실험을 위해 방해를 했을 때 암벌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이 가장 순수하게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5. 랑그도크구멍벌의 사냥 (1) 곤충 관찰자의 고생 연구의 어려움 비단벌레노래기벌이나 혹노래기벌과 같이 갑충을 먹이로 삼는 벌과, 구멍벌처럼 귀뚜라미 등 몸이 부드러운 벌레를 먹이로 삼는 벌의 사냥 방법을 지금까지 관찰했습니다. 이제 파브르 선생님은 구멍벌의 일종인 랑그도크구멍벌의 사냥법을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랑그도크란 남프랑스에 있는 지방 이름으로 프로방스보다 스페인 쪽에 가까운 곳입니다. 이 벌은 랑그도크 지방에 많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랑그도크구멍벌도 민충이라는 날개가 짧은 여치를 사냥합니다. 먼저 이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파브르 선생님이 곤충을 관찰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에 대해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는 화학자는 먼저 잘 생각하여 실험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일하기 편리할 때 약품을 섞거나 플라스크 밑의 알코올 램프에 불을 붙입니다. 실험 시간도 장소도, 그 외의 조건도 자신이 좋을 때에 하게 됩니다. 게다가 실험실 안으로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 "여어, 굉장히 긴 관이군요. 이거 얼마죠?"하는 등의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없겠죠. 그런데 대상이 살아 있는 생물인 경우에는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주인공은 학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입니다. 계절, 시간 등의 조건이 변하면 자연은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따라서 순간순간 변하는 자연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생물의 움직임을 인간이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관찰의 기회가 오면 주저없이 재빨리 포착해야만 합니다. "기회라는 신의 머리에는 앞머리밖에 나지 않는다."라는 유럽 속담이 있습니다.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뒤쪽은 미끄러워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장소에 실험 도구가 없으면 그 근처에 있는 재료를 대신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기회란 평소에 열심히 찾지 않으면 절대로 만날 수 없습니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어 뜨거워진 비탈길, 절벽 사이의 좁은 길, 지반이 약해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위험한 벼랑길 등을 며칠이고 인내를 가지고 계속 다녀야 합니다. 또한 한곳에 머무르며 기회를 엿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안에서 문을 잠근 연구실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이 곳을 지나갈지 모릅니다. 그것도 열심히 관찰하고 있을 때 지나가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열심히 관찰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가와 "뭘 하고 계십니까?"라든가 "개암나무 막대기는 사용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우물을 팔 때 지하의 물길을 발견하기 위해 개암나무 막대기를 사용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이렇게 말을 걸어 오는 것은 그래도 괞찮습니다. 기분 나쁘게 멀리서 아무 말 없이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마 땅속에 숨겨진 보물 상자를 마법을 써서 찾고 있는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이윽고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곁으로 다가와서 살피며 비웃습니다. '뭐야, 바보같이. 나이깨나 먹어 벌레나 들여다보고^5,5,5^.' 이런 사람이 관찰을 방해하지 않고 금방 사라져 주기라도 하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입니다. 곤충 연구가가 하는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살던 시대에는 산림감독원이 있었습니다. 아비뇽의 이웃 마을 산림감독원이 꽤 오래 전부터 선생님을 감시해 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 밭이나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시간에 파브르 선생님의 주위를 서성거렸습니다. 땅이나 비탈진 면을 조심스럽게 파고 있는 모습을 줄곧 엿보기도 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을 집 없는 떠돌이로, 야채 도둑으로, 혹은 정신병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선생님이 식물 채집통을 어깨에 맨 것을 보고는 틀림없이 밀렵꾼이라고 단정했니다. 즉, 다른 사람의 땅에 들어가 산토끼 집을 발견하면 그 양철통에서 죽제비를 꺼내, 구멍에서 나오는 토끼를 사냥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현장을 덮쳐 정체를 밝히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습니다. 이 때 무심코 주위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먹기라도 했다가는 이것을 구실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을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물론 파브르 선생님은 한 번도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땅에 엎드려 모래를 파고 있는 왜코벌을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바로 옆에서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봐, 이라 와!" 바로 그 산림감독원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파브르 선생님이 도대체 무엇을 할까 궁금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당신?"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다 큰 사람이 이렇게 더운 날씨에 벌레가 나는 것을 본다고? 어림없지. 난 안 속아." 일이 복잡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 때 감독원의 눈길이 우연히 파브르 선생님의 옷깃에 머물렀습니다. 옷깃에는 붉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약식 훈장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런, 큰일났군. 밀렵꾼이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대단한 사람인 모양이야.' 이렇게 생각했는지 감독원은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을 계속 감시할 거요."하는 짧은 말을 남기고 급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교육부 장관의 특별한 배려로 받은 것이지만 이럴 때 매우 효과가 있었습니다. "방투산에서 식물 채집을 할 때 약식 훈장을 달고 있으면 안내원은 여느 때보다 호의적 이고, 당나귀까지 말을 잘 들었다."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비꼬아 말했습니다. 가엾게도 머리가 이상한가 봐! 또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랑그도크구멍벌을 관찰하려고 파브르 선생님은 아침 일찍부터 계곡의 바위에 앉아서 벌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때 포도밭에서 일하는 여자 세 명이 다가왔습니다. 뭔가 열심히 생각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세 명의 여자들은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도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무더운 한절이 지나가고 저녁때에 아침에 만난 여자들이 돌아왔습니다. 포도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있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아직도 아침에 앉아 있던 바위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계속 여기서 벌을 관찰했던 것입니다. '혼자서 이런 계곡에서 하루 종일 땅만 보고 있었어!' 여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선생님 앞을 지나가며 한 사람이 급히 성호를 긋고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가엾게도 머리가 이상한가 봐. 안됐어^5,5,5^." 그리고는 세 명이 동시에 성호를 그었습니다. 점잖기는 하지만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곤충의 본능을 조사하려고 이렇게 고생하며 관찰하고 생각하는 파브르 선생님을 마을 사람들은 머리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너무나 무거운 먹이 그러면 이제부터 랑그도크구멍벌에 관해 이야기합시다. 이 벌은 꽤나 관찰하기 힘듭니다. 일정한 장소에서 집을 파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가 각각 따로 떨어져 생활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이 벌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집단 생활을 하는 벌이라면 같은 장소에서 몇 마리라도 바꾸어 가며 차례차례 실험을 반복할 수 있지만 이 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랑그도크구멍벌이 먹이를 침으로 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민충이를 잡아 벌이 사냥해 온 먹이와 바꿔 놓으려고 해도 제때에 나타나지 않으면 실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벌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먹이는 약해져서 역시 실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파브르 선생님은 계곡의 바위에 앉아서 벌이 오기를 끈질기게 기다립니다. 이 장소에서 전에도 몇 번이나 랑그도크구멍벌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랑그도크구멍벌이 집을 짓는 장소는 낡은 벽에서 돌이 빠져 나와 생긴 움푹한 곳이라든가, 혹은 계곡의 벼랑에 편평한 돌이 튀어나와 비를 맞지 않는 곳입니다. 이런 장소에는 때때로 남프랑스에 많은 큰 보석뱀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곳은 태양빛이 구석구석까지 비쳐서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곳은 천장에서 흙먼지가 떨어져 흙이 쌓여 있기 때문에 벌이 구멍 파기에도 적합합니다. 며칠을 끈질기게 기다린 결과, 드디어 파브르 선생님의 눈앞에 랑그도크구멍벌이 나타나서 구멍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이 벌의 먹이인 민충이가 무겁기 때문에 먼저 구멍을 파 두고 그 다음에 근처에서 사냥을 하는 것일까?'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구멍은 이미 완성돼 있었고 지금은 잘 막아 둔 입구를 파는 것이었습니다. 큰턱과 다리 끝으로 벌집 입구의 문을 열어제치고는 곧장 날아갑니다. 그러나 빨리 날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10 미터 정도 날아가다가 땅에 앉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옆에서 보고 있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기기도 하고 날기도 하면서 한동안 무엇을 찾고 있습니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것은 민충이였습니다. 마취된 상태였지만 다리 끝부분과 더듬이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벌이 미리 침으로 쏘아 걷지 못하게 해 둔 먹이입니다. 수술을 마친 벌은 미리 파 둔 벌집의 문을 열기 위해 먹이를 안전한 장소에 두고서 혼자 돌아왔던 것입니다. 자, 이제는 먹이를 벌집까지 운반해야 합니다. 벌은 먹이 위에 올라타고 더듬이를 큰턱으로 꽉 뭅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을 주어 조금씩 끌고 갑니다. 길이 울퉁불퉁하여 끌기 곤란하면 큰 먹이를 안고 조금씩 날면서 운반합니다. 먹이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비단벌레와 바구미를 옮기는 노래기벌이나 왜코벌처럼 먹이를 안고 단숨에 집까지 날아가지는 못합니다. 다른 벌들이 먹이를 안고 공중을 가볍게 날 때도 이 벌은 무거운 먹이를 끙끙대며 끌고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먹이를 끌어당기던 랑그도크구멍벌이 갑자기 먹이를 놔 두고 서둘러 벌집으로 가는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큰 먹이가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넓게 팠던가?'하고 염려가 되었던지 벌집을 조금 더 넓게 팝니다. 그래서 집 입구를 조금 더 크게 한 후에 다시 먹이에게로 돌아옵니다. 먹이인 민충이는 거꾸로 뒤집혀 있습니다. 다시 먹이를 옮기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3 미터 정도만 더 끌고 가면 됩니다. 그런데 벌은 또 먹이를 두고 걱정스러은 듯이 벌집으로 갑니다. '집 안은 잘 정리되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 듯이 벌집 안으로 들어가 안을 조사합니다. 이번에는 금방 밖으로 나와 다시 먹이의 더듬이를 몰고 끌고 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벌은 이윽고 먹이를 벌집 속에 넣었습니다. 랑그도크구멍벌이 먹이를 주로 끌고 가는 것은 잘 날지 못해서가 아니라 먹이가 무겁기 때문입니다. 혼자 사는 랑그도크구멍벌 이 벌이 먹이를 안고 있을 때는 조금밖에 날지 못합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봅시다. 어느 날 랑그도크구멍벌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방금 잡은 민충이를 벌집으로 끌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구멍벌은 농가의 벽 아래까지 와서 멈추었습니다. 그 벽은 최근에 새로 칠해졌고 높이는 7,8 미터 정도였습니다. 지붕을 덮은 기와 밑에는 오랜 기간 동안 흙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그 곳에 벌집이 패어 있었습니다. 랑그도크구멍벌은 먼저 먹이를 밑에 두고 지붕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벌은 한동안 주위를 맴돌다가 기와 밑에 있는 벌집을 발견하고는 구멍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약 10분 정도 후에 작업이 끝나고 벌은 다시 먹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이 무거운 민충이를 지붕까지 끌고 올라가야만 합니다. 이 때 다른 벌처럼 랑그도크구멍벌도 먹이를 안고 날아 올라가면 간단하지만 그렇게는 안 됩니다. 벌은 높이가 7,8 미터 되는 수직의 벽을 먹이를 안고 똑바로 기어 올라갑니다. 벽은 흙손으로 깨끗이 발라져 있어 다리가 자주 미끄러집니다. 이런 곳을 먹이에 올라탄 채 조금씩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벽 표면이 약간 거칠거칠하기 때문에 이것을 다리 끝부분에 난 발톱으로 걸고 올라갑니다. 먹이를 끌고 올라가는 속도는 평지에서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대단한 힘입니다. 잠깐 사이에 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민충이를 말굽 모양의 기와 밑에 놓고, 아까 판 벌집을 다시 손질합니다. 그런데 먹이를 잘못 두어 밑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벌은 다시 먹이를 주워 위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기와 밑에 먹이를 놓았습니다. 선생님이 또 떨어지겠네, 하고 생각하는 순간 먹이는 또다시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졌습니다. 사람이라면 실망했겠지요. 그러나 벌은 태연하게 또 '영차영차!'하고 끌어 올립니다. 이번이 세 번째.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서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제대로 벌집 속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옯기기 어려운 곳인데도 벌이 먹이를 안고 날지 않는 것은 역시 민충이가 무겁기 때문이겠지요. 구멍벌의 먹이인 귀뚜라미는 이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에 안고 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벌은 조건이 좋은 장소를 발견하여 먼저 벌집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건이 좋은 장소는 모두들 좋아하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이지요. 그러나 랑그도크구멍벌은 먹이인 민충이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고 있고, 무거워서 옮기기도 어렵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먹이가 있는 곳 근처에 집을 짓고 혼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잡은 먹이가 무거운가 가벼운가, 또 많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벌과 혼자 생활하는 벌이 구분됩니다. (2) 현명한 본능 먹이 교체 작전 파브르 선생님은 랑그도크구멍벌도 먹이를 공격할 때 귀뚜라미를 상대하는 구멍벌과 마찬가지로 민충이의 가슴 신경절을 침으로 몇 번 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벌이 먹이를 공격하는 순간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야외에서 우연히 랑그도크구멍벌을 발견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좀처럼 민충이를 공격하는 광경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민충이를 끌고 가는 랑그도크구멍벌을 발견했다고 합시다. 벌이 민충이를 쓰러뜨리는 장면을 보려면, 그 벌이 끌고가는 먹이를 살아 있는 다른 민충이와 교체하면 됩니다. 서둘러 민충이를 잡아 와야만 합니다. 몇 분 더 지나면 벌집 속으로 먹이가 들어가 기회는 영영 없어져 버립니다. 이전에 혹노래기벌을 연구할 때에도 파브르 선생님은 먹이인 네점박이바구미를 찾느라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이틀이나 그 주위를 찾아다닌 끝에 약한 바구미를 세 마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몇 분 정도밖에 없습니다. 민충이는 넓은 포도밭의 어디쯤에 있을까요? 머릿속에서 째깍째깍 하고 시게 바늘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야,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 선생님은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포도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민충이를 찾았습니다. 만역 포도밭 주인이 보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겠지요. 그러나 지금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민충이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그 때였습니다. 민충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선생님은 재빨리 민충이를 잡아 랑그도크구멍벌이 있는 장소로 뛰어갔습니다. '아직 괜찮을까^5,5,5^.'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벌은 아직 벌집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먹이를 끌고 오는 중입니다. "아! 아직 시간이 있어."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외쳤습니다. 벌이 운반하는 먹이의 꽁무니를 핀셋으로 집어 올리려고 했습니다. 벌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리로 버팁니다. 민충이의 더듬이를 꽉 문 채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세게 잡아당기면 벌도 함께 딸려 옵니다. 그래도 벌은 먹이를 놓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선생님은 가방에서 가위를 꺼내어 민충이의 더듬이를 싹둑 잘랐습니다. 그러자 필사적으로 버티던 벌은 갑자기 먹이가 가벼워진 것에 놀라 긴장된 얼굴로 멈추었습니다. 입에 물고 있는 것은 더듬이뿐, 먹이의 본체는 저쪽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때 재빨리 자신이 방금 잡아 온 민충이와 바꾸었습니다. 랑그도크구멍벌은 입에 물고 있던 잘린 더듬이를 내뱉고 살아있는 민충이를 보았습니다. 자, 벌은 민충이를 어떻게 할까요? '침으로 쏘는 장면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선생님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벌은 공격하지 않고 먹이 주위를 돌며 살펴봅니다. 그리고 나서 다리로 눈을 비빕니다. '이상한데, 어떻게 된 거야? 아까와 먹이가 다르잖아.'하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랑그도크구멍벌은 파브르 선생님이 바꿔 놓은 민충이에게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선생님은 민충이를 집어 더듬이를 벌의 입 앞에 대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구멍벌은 선생님이 내민 민충이에 대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벌은 대담하여 먹이를 한 번 빼앗기면 사람의 손바닥까지 먹이를 찾으러 오는데 지금은 잡으려 하지도 않고 귀찮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민충이를 아래로 내려 놓았습니다. 그러자 먹이인 민충이가 무서운 벌 앞으로 태연하게 기어갑니다. 공격하길 기대했으나 벌이 오히려 뒷걸음질치다가 붕 하고 날아가 버립니다.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그 후 많은 구멍벌 집을 찾아 그 안을 조사한 결과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랑그도크구멍벌이 저정해 놓은 먹이는 전부 암컷 민충이였습니다. 암컷 민충이의 뱃속에는 알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영양분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윈 수컷 민충이를 애벌레의 식량으로 사용한다면 영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양과 색깔이 똑같은 민충이의 암컷과 수컷을 어떻게 구별했을까, 하고 선생님은. 벌의 안목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민충이의 암컷은 꽁무니에 칼처럼 생긴 산란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산란관으로 암수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멍벌은 도대체 어떤 지혜로 암수를 구분할까요? 다리만 마취된 민충이 앞에서 벌집 문을 연 랑그도크구멍벌이 마취시킨 먹이로 돌아와 먹이를 끌어 가기 시작하는 장면을 관찰해 보도록 합시다. 민충이의 몸은 침에 쏘여 마취되어 있습니다. 구멍벌의 먹이인 귀뚜라미도 똑같은 상태였습니다. 다리로 설 수가 없어, 옆으로 혹은 뒤집혀져 있습니다. 그러나 더듬이와 입에는 아직 힘이 남아 있어서 더듬이를 움직이거나 입을 벌립니다. 그래서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물 수도 있습니다. 몸은 호흡을 하는지 약하게 떨리고 있습니다. 다리는 힘이 빠져있는 상태이고, 특히 가운뎃다리는 다른 다리보다 경련이 심합니다. 침으로 살짝 눌러 보면 몸을 부르르 떱니다. 일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지만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벌레는 서거나 기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똑같은 상태입니다. 민충이는 다리만 마취된 것입니다. 이처럼 다리만 마취되는 것은 민충이가 특별한 신경을 가지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귀뚜라미를 사냥하는 구멍벌이 하는 것처럼 목, 가슴, 그리고 가슴과 배의 연결 부위를 세 번 쏘지 않고 한 번만 쏘기 때문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랑그도크구멍벌이 민충이를 공격하는 장면을 아직 못 보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민충이에게는 아직 힘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벌의 애벌레에게는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랑그도크구멍벌의 집에서 민충이를 꺼내어 보니 금방 마취되었을 때와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민충이의 몸을 조금 전에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파먹고 있었습니다. 작은 벌의 애벌레가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고 큰 먹이인 민충이를 물어뜯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머벌이 알을 낳은 장소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구멍벌은 귀뚜라미의 가슴, 즉 앞다리와 가운뎃다리 사이의 조금 옆쪽에 알을 낳았습니다. 랑그도크구멍벌은 구멍벌과 같은 장소이지만 좀더 아래쪽, 즉 뒷다리 윗부분에 알을 낳습니다. 이 곳이 알에게는 가장 안전한 장소 같습니다. 사실 랑그도크구멍벌의 벌집을 파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민충이를 보면 거꾸로 뒤집혀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벽에 다리를 뻗치고 일어나기에는 방이 너무 넓습니다. 몸을 꿈틀거리는 것 외에는 벌의 애벌레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듯합니다. 벌의 애벌레에게는 민충이의 날카로운 발톱과 강력한 큰턱도, 칼과 같은 산란관도 닿지 못합니다. 마취 상태가 이 정도라도 먹이가 몇 마리 모이면 벌의 애벌레는 위험해집니다. 그러나 벌집 속의 민충이는 단 한 마리뿐입니다. 구멍벌의 경우 하나의 벌집 속에 귀뚜라미를 3,4 마리 저장해 둡니다. 따라서 위험하지 않도록 먹이가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해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랑그도크구멍벌은 먹이를 단 한 마리만 넣어 두기 때문에 민충이에게 발버둥칠 힘이 남아 있어도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으로 쏘는 횟수도 적을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수술의 명수 벌의 애벌레는 민충이의 다리가 닿을 염려가 없는 곳에 붙어 있으므로 결코 위험에 처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먹이는 몸이 절반 정도만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벌집까지 끌어 와야 되는 어미벌은 무척 힘들겠지요. 먼저 먹이의 다리 끝에는 아직 힘이 조금 남아 있기 때문에 발톱을 길가의 풀에 걸고 버티면 끌고 가기가 매우 힙듭니다. 안 그래도 무거워서 짜증이 나는 판인데, 풀숲에 필사적으로 발톱을 걸고 대항하면 벌은 이것을 떼어 놓느라 녹초가 되겠지요.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민충이의 큰턱입니다. 이 턱에 물리면 벌의 몸은 찢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랑그도크구멍벌이 먹이를 운반할 때는 이 무서운 큰턱 위에 걸터앉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더듬이 아랫부분을 물고 옮길 때, 혹시 먹이가 뒤집혀져 있으면 큰턱은 벌의 몸과 거의 닿을 정도입니다. 벌의 다리가 길어 몸이 높아지므로 민충이에게 물리지 않을 뿐입니다. 혹시 무엇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무서운 큰턱에 물리고 말겠지요. 이 큰턱과 풀숲에 거는 발톱의 힘이 없어진다면 운반하기 쉽겠지요. 벌은 기발한 동작으로 이 양쪽 다리의 힘을 없애 버립니다. 그것은 극히 간단한 수술인데, 이 수술이 끝나면 민충이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아무런 저항도 못하게 됩니다. 랑그도크구멍벌의 수술 방법에 대해 파브르 선생님이 기록해 놓은 것을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랑그도크구멍벌은 마취시킨 민충이를 끌어 가는 도중에 주위의 풀잎에 매달려 저항하면 멈추어서 수술을 한다. 벌은 먹이의 등에 올라타고 목의 관절을 눌러 쫙 벌린다. 다음엔 큰턱으로 먹이의 목줄기를 잡고 머리 깊숙한 곳을 더듬는 것처럼 하면서 깨문다. 아마도 뇌의 신경절을 깨무는 것 같다. 관절의 얇은 막에 상처를 내거나 피를 내는 일은 없다. 단지 이런 간단한 수술로 먹이의 움직임은 금방 멈춰 버린다.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지.'하고 생각하여 나도 수술을 해 보았다. 살아 있는 민충이 두 마리를 잡아 와서 랑그도크구멍벌이 하던 것처럼 뇌의 신경절 부위를 핀셋으로 집고 힘을 꽉 주었다. 그러자 민충이는 벌이 수술한 것처럼 금방 쭉 뻗어 버렸다. 역시 간단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동시에 나도 벌과 똑같이 수술을 해냈다고 뽐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수술한 두 마리의 민충이는 모두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수술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대로 4,5일 두니까 썩어 버렸다. 랑그도크구멍벌이 수술한 민충이는 10일이 지나도 신선하게 살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벌이 수술한 후 몇 시간이 지나면 민충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리, 더듬이, 산란관, 입 주위의 수염, 그리고 큰턱도 전부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즉, 완전히 수술 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랑그도크구멍벌은 벌집 속으로 먹이를 운반할 때 필요한 시간만큼만 먹이를 마취시키는 것이다. 운반할 때까지만 저항을 못하게 하는 랑그도크구멍벌은 확실히 수술의 명수이다. 벌과 똑같이 훌륭하게 수술했다고 생각한 나는 사실상 잔인한 짓을 하고 만 것이다. 구멍벌은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훌륭한 솜씨로 먹이의 뇌를 건드려 필요한 시간만큼만 마취시켰다. 난폭한 방법으로 수술한 나는 민충이의 뇌를 손상시켜 버렸던 것이다. 그제서야 랑그도크구멍벌이 마취를 시킬 때 왜 독침을 사용하지 않는지 잘 알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에 독이 퍼지면 민충이는 순식간에 죽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이 사냥벌의 목적은 물론 민충이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벌의 애벌레는 죽어서 썩어 버린 먹이는 먹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벌과 똑같이 민충이를 훌륭하게 수술했다고 기뻐한 파브르 선생님은 벌의 교묘한 솜씨에 새삼스럽게 감탄하였습니다. 20 년 후에 온 기회 운명이란 변덕스러운 것입니다. 쫒아가면 도망가고, 잊어버리고 있으면 쫒아옵니다. 물론 매일 곤충을 관찰했기 때문에 이런 행운을 잡을 수 있었겠지만. 파브르 선생님은 랑그도크구멍벌이 민충이를 쏘는 것을 보려고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고생한 보람도 없이 그 순간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20 년이 지난 1878 년 8월 초순, 파브르 선생님이 '곤충기' 가운데 '랑그도크구멍벌'편을 쓰고 있을 무렵에 선생님의 아들 에밀이 달려와 연구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빨리, 빨리!"하고 에밀이 외쳤습니다. "빨리요, 아빠. 벌이 플라타너스 밑에서 먹이를 옯기고 있어요." 파브르 선생님은 매일 저녁 식사 후 가족들에게 곤충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에밀은 이야기를 매우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의 관찰을 도와 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에밀이 말한 대로였습니다. 선생님이 달려가 보니 멋진 랑그도크구멍벌이 정원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민충이의 더듬이를 물고 열심히 옮기는 중이었습니다. 벌이 향하고 있는 곳은 가까운 건물 쪽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옛날에도 비슷한 장소에서 보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벌도 틀림없이 건물 벽을 똑바로 기어 올라가 지붕 기와 밑의 벌집 속에 민충이를 저장하겠지요. 오늘의 이 벌은 파브르 선생님이 20 년 전에 본, 벽을 기어 올라가던 그 벌의 자손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20 년쯤 거슬러 올라간 것 같습니다. 이 벌을 보려고 집안 사람들 모두 일손을 놓고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도 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 벌의 대담함에 모두 감탄했습니다. 벌은 먹이의 더듬이 밑부분을 입으로 물고 끌고 갑니다. 모두들 열심히 보고 있었지만 파브르 선생님만은 몹시 안타까워 했습니다. "아, 살아 있는 민충이가 여기에 있다면^5,5,5^." "살아 있는 민충이? 나한테 있어요. 아침에 잡았어요."하고 에밀이 말했습니다. "정말이냐? 빨리 가지고 오너라." 파브르 선생님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에밀이 쏜살같이 달려가 자기 공부방에서 세 마리의 민충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암컷이 두 마리, 수컷이 한 마리였습니다. "고맙다!"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요? 이것이면 실험 재료로 충분합니다. 20 년 전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자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때마침 민충이가 있었을까요? 잠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파브르 선생님 댁의 큰 플라타너스에 물까치가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미스트랄이라는 이 지방 특유의 폭풍이 물까치의 집을 날려 버렸습니다. 집 속에 있던 네 마리의 새끼 중 세 마리가 죽고 한 마리가 살아 남았습니다. 새끼물까치는 식성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몸이 큰벌레를 먹이로 잡아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에밀은 민충이를 새끼물까치의 먹이로 잡아 두었던 것입니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물까치에게 은혜를 베푼 덕에 선생님은 뜻하지도 않던 행운을 잡은 것입니다 침을 쏘는 순간 구경하던 식구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여 랑그도크구멍벌의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한 후, 파브르 선생님은 핀셋으로 벌이 옮기고 있는 먹이를 빼앗고 그 대신에 에밀이 가져온 암컷 민충이를 주었습니다. 구멍벌은 먹이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는 초조해진 듯 제자리걸음을 하였지만 곧 새 먹이에게로 다가왔습니다. 통통하게 살찐 민충이는 비틀거리느라 벌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벌은 큰턱을 쫙 빌려 통통하게 살찐 민충이의 등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옆쪽을 향해 꽁무이를 굽혀 끝에 달린 독침으로 먹이의 가슴을 겨낭하여 쏘았습니다. 그러나 이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몇 번 쏘았을까요? 민충이는 이윽고 움직임이 둔해져 저항도 못하고 그저 쏘이고 있을 뿐입니다. 구멍벌은 침착하게 겨냥한 곳을 정확히 침으로 쏘고 있습니다. 민충이의 가슴과 배는 거의 땅에 닿을 정도라 위에서 벌이 어떻게 쏘는지 자세히 볼 수가 없습니다. 손으로 먹이를 잡고 조금 들어올리면 잘 보일 테지만 그렇게 하면 벌이 도망가겠지요. 랑그도크구멍벌은 먹이의 가슴을 침으로 쏜 후 이번에는 목 아래를 노립니다. 그 때 벌은 민충이를 꽉 눌러 목 아래가 크게 벌어지게 해서 조심스럽게 찌릅니다. 이 부위는 식도가 있는 곳입니다. 그 속에 있는 신경을 찌르면 큰턱과 더듬이도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구멍벌이 실제로 쏜 것은 가슴에 있는 신경절이었습니다. 가슴은 딱딱하기 때문에 대신 목으로 침을 찔러 넣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슴을 쏘인 민충이는 몸을 떨지도 못합니다. 실이 떨어진 꼭두각시처럼 목숨이 없는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하게 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구멍벌로부터 먹이를 빼앗고 또 다른 암컷을 주었습니다. 벌은 아까와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면 수컷 민충이는 어떻게 될까요? 암컷 민충이를 다시 빼앗고 이번에는 수컷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없어진 먹이를 찾으러 우왕좌왕하였습니다. 서너 번 벌앞에 수컷을 내밀었지만 벌은 수컷 주위를 돌며 귀찮다는 듯한 몸짓을 하더니 붕 하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수컷 민충이는 벌의 애벌레에게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뱃속에 알이 가득 찬 암컷이 아니면 애벌레의 식량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 년 전에는 실험에 실패해서 낙심했지만 그 당시의 실패의 원인이 이제 확실해진 것입니다. 마취된 먹이는 오래 산다. 벌에게 수술을 받은 두 마리의 민충이는 다리의 힘이 쭉 빠져 기거나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눕혀 놓으면 계속 그대로 있습니다. 더듬이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배를 떨거나 입을 움직이기 때문에 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지는 못하지만 감각은 살아 있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침으로 몸을 찌르면 부르르 떱니다. 이 두 마리의 먹이와 포도밭에서 방금 잡아 온 건강한 민충이 두 마리를 사용해서 또 다른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아무런 상처도 없는 민충이 한 마리를 어두운 통 속에 넣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밝은 곳에 넣어 두었습니다. 둘 다 먹이는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밝은 곳에 있던 것은 4일 만에 어두운 곳에 있던 것은 5일 만에 죽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밝은 곳에 있던 벌레는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치지만 어두운 곳에 있는 벌레를 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발버둥친 놈이 그만큼 더 배가 고파 일찍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한편 벌에게 수술을 받은 민충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먹이를 넣지 않은 어두운 상자에 넣었습니다. 이 민충이는 17일 간 살아 있었습니다. 벌에 쏘이지 않은 민충이는 똑같은 어두은 상자 속에서 5일 만에 죽었는데 벌에게 쏘인 놈은 이렇게 오래 삽니다. 언뜻 보면 좀 이상하지만 사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활동적일 때는 벌레가 발버둥을 치므로 그만큼 힘을 써 버립니다. 반면에 마취되어 있을 때는 길게 누워만 있습니다. 심장처럼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기관만 희미하게 움직일 뿐입니다. 움직이는 벌레는 먹이가 없기 때문에 4일 동안 힘을 다 써 버려 결국은 죽고 맙니다. 움직이지 않는 쪽은 에너지를 조금씩 사용하여 17일 간이나 살아 있습니다. 사냥벌의 애벌레는 반드시 신선한 먹이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활발히 움직이는 먹이를 벌집 속에 가둬 두면 4,5일 사이에 벌집속에서 죽어 썩어 버립니다. 그 후에 알에서 깨어난 벌의 애벌레는 먹이가 없어 결국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벌의 침에 쏘인 먹이는 희미하게 숨을 쉬며 조용히 2,3 주일 동안 살아 있습니다. 이 기간은 벌의 알이 깨어나 애벌레로 성장하기에 충분한 기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벌이 먹이를 마취시켜 두면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애벌레가 상처를 입을 위험이 없어지고, 둘째는, 먹이가 오래 살아 썩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방법입니까! 그러나 결국 먹이는 벌에 쏘인 상처 때문에 죽게 되지 않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여 다른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구멍벌이 쏜 두 마리의 민충이를 어두운 곳에 넣어 두었습니다. 이것들에게 먹이를 먹이면 오래 살까? 물론 마취된 민충이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긴 더듬이를 움직이고는 있지만 마치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입도 조금 움직일 수 있습니다. '설탕물은 마실 수 있겠지.'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즉, 이 곤충은 사람으로 치면 묽은 죽밖에 못 마시는 약한 병자인 것입니다. 샐러드용 야채와 같이 늘 즐겨 먹던 것은 무리입니다. 지푸라기 끝에 설탕물을 묻혀 거꾸로 누운 벌레의 입에 한 방울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더듬이와 입이 움직였습니다. 벌레는 맛있게 한 방울의 설탕물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한 방울씩 벌레가 그만 마실 때까지 설탕물을 주었습니다. 식사는 매일 한두 번 주었습니다. 결국 설탕물을 먹은 민충이 한 마리는 21일 동안이나 살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먹은 민충이는 17일을 살았으니 먹은 만큼 더 산것이겠지요. 사실은 설탕물을 먹이는 사이에 사고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손이 떨려 두 번씩이나 식탁에서 마룻바닥으로 민충이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앗, 하고 선생님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민충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빨리 죽었다고 생각됩니다. 또 다른 한 마리는 떨어뜨린 적이 없어서 40일 간이나 살았습니다. 이것으로 파브르 선생님의 예상이 확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즉, 랑그도크구멍벌의 침에 쏘인 민충이는 독침에 쏘인 상처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서 죽는 것입니다. (3) 어리석은 본능 현명함과 어리석음은 종이 한 장 차이 랑그도크구멍벌이 본능대로 멋진 솜씨를 발휘하는 것을 지금까지 보아 왔습니다. 본능은 타고난 것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지혜입니다. 본능을 가진 곤충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히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곤충이 보통 때와 다른 경우에 부딪힐 때 얼마나 어리석은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를 봅시다. 놀랄 만한 지혜에 놀랄 만한 어리석음이 숨어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본다면 곤충들의 본능이 하는 역할은 불가사의합니다. 본능에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예를 들면, 꿀벌은 애벌레를 위해 벌집을 만들 때 정육각형의 작은 방을 만듭니다. 이 각각의 방은 '최대와 최소'라는 어려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해 줍니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의 공간과 최대의 강도를 갖춘 방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려운 수학과 물리학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사냥벌의 암컷은 훌륭한 방법으로 먹이를 마취시킵니다. 그 방법은 곤충의 몸을 자세하게 알고 있는 학자조차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본능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하는 한 곤충은 어떤 일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양복의 단추를 잘못 끼웠을 때처럼 일의 순서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본능은 매우 바보스런 것만을 명령하게 됩니다. 그러면 본능의 어리석음을 실제로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실험 1.) 랑그도크구멍벌이 벌집 바로 근처까지 먹이를 끌고 왔을 때 민충이의 더듬이를 가위로 잘라 봅시다. 옯기고 있던 물건이 갑자기 가벼워지자 벌은 이상하다는 듯 멈춥니다. 먹이를 살펴보니 더듬이 밑부분이 1 밀리 정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자 그 남아 있는 곳을 물고 다시 열심히 끌기 시작합니다. '그럼 이건 어떠니?'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두 개의 더듬이를 모두 남김없이 잘랐습니다. 그러자 벌은 민충이의 수염을 물고 끌기 시작했습니다. 벌이 벌집 입구에 먹이를 두고 구멍 안으로 들어갔을 때, 선생님은 먹이의 수염도 남김없이 잘라 벌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두었습니다. 구멍에서 나온 벌은 열심히 민충이의 머리를 살펴보았지만 물만한 곳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매우 곤란해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입을 크게 벌리고 민충이의 머리를 통째로 물려고 하지만 도저히 무리입니다. 민충이의 머리가 너무 크고 반질반질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민충이와 같은 곤충의 피부는 딱딱하고, 표면은 밀랍같은 것으로 코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미끄럽습니다. 벌은 몇 번이나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만 되지 않습니다. 뒷다리로 날개를 비비고, 앞다리를 물거나 눈을 싹싹 비비기도 합니다. 상당히 초조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여섯 개나 되는 다리와 긴 산란관은 끌어당기지 않을까요? 그 가운데 하나라도 끌어당기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지만 벌은 민충이의 머리만 살피고 있습니다. "자, 여기를 물어 봐." 파브르 선생님이 랑그도크구멍벌의 얼굴 앞에 민충이의 앞다리와 산란관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까지 초조해졌습니다. 그러나 내민 곳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머리만 열심히 살펴봅니다. 아까부터 줄곧 선생님이 옆에 있고, 뭔가 새로운 것이 계속 나타나니까 벌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것일까요? "그럼 혼자서 천천히 생각해 봐." 선생님은 벌을 그대로 놔두고 정원을 산책했습니다. 조금 후에 선생님이 그 곳에 다시 와 보니 구멍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힘들여 판 벌집의 입구도 열려 있고, 민충이도 아까 놓인 장소에 그대로 있습니다. 결국 벌은 어쩔 수가 없었나 봅니다. 먹이의 다리를 물고 당기기만 하면 될 텐데^5,5,5^. 벌은 먹이도 벌 집도 다 버린 채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민충이를 잠재우기 위해 큰턱으로 뇌를 꽉 물었을 때는 그 훌륭한 기술에 감탄했지만, 똑같은 벌이라도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처럼 간단한 것도 할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텅 빈 벌집의 문단속 (실험 2.) 벌이 먹이를 집 속에 넣고 알을 다 낳은 후 벌집 입구를 막고 있을 때의 실험입니다. 벌은 꽁무니를 벌집 쪽으로 두고 앞다리를 사용해서 입구 밖의 흙을 마치 개가 구멍을 파 듯이 집 쪽으로 퍼붓습니다. 모래는 고무 호스에서 나오는 물처럼 뒤쪽으로 날아갑니다. 때때로 랑그도크구멍벌은 큰턱으로 모래알을 파내어 이것을 하나하나 집 입구에 쌓아 모래산을 튼튼하게 하는 받침돌처럼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마로 밀고 큰턱으로 두드려 단단히 다집니다. 입구는 순식간에 막힙니다. 여기서 선생님은 구멍벌을 뒤로 제치고 칼 끝으로 조심조심 구멍 속에 든 흙을 꺼내 입구를 완전히 열어 버렸습니다. 벌의 알은 먹이에 낳아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끄집어낸 먹이를 상자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가만히 지켜본 구멍벌이 어떻게 하는가를 관찰했습니다. 벌은 완전히 열려진 벌집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아까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합니다. 뒤쪽으로 흙을 파냅니다. 구멍 속이 텅 비어 있는데도 입구를 정성들여 막고 있습니다. 먹이도, 먹이 위에 낳은 알도 구멍 속에는 없는데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열심히 이마로 흙을 밀고 있습니다. 입구가 또다시 닫혔습니다. 벌은 만족한 듯이 한 번 둘러보고 나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구멍벌은 벌집 속에 들어가 잠시 동안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벌집 안에는 알도,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민충이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텅 빈 벌집을 둘러본 후에도 정성들여 벌집 입구를 막은 것입니다. 벌은 나중에 이 벌집을 사용할까요? 일단 문을 닫은 후 다른 먹이를 가지고 돌아와 다시 한 번 알을 낳을까요? 그렇다면 이 벌집 입구를 막은 것은 자신이 없는 동안에 누군가가 벌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됩니다. 실제로 사냥벌 가운데는, 다음 장에 나오는 나나니처럼 임시로 입구를 닫는 종류가 있습니다. 도중에 일을 중지할 때에는 벌집 입구를 돌로 잠시 막아 둡니다. 그러나 랑그도크구멍벌은 벌집입구를 매우 정성들여 완전히 막았습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입구를 막으면 다시 파내기가 힘들 텐데^5,5,5^, 게다가 새 민충이가 반드시 이 근처에서 잡힌다는 보장도 없으니 역시 이 곳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혹시나 해서 일주일 후에 다시 벌집을 파 보았습니다. 입구는 여전히 막혀 있었습니다. 벌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벌은 벌집 안에 들어갔을 때 먹이와 알이 없어진 것을 몰랐을까요?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러나 일단 하기 시작한 일은 중지할 수가 없기 때문일 거야.' 즉, 곤충의 행동은 본능에 의해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어 일단 톱니바퀴가 구르기 사작하면 한 번 다 돌 때까지 멈추지 않는 기계와 같습니다. 벌은 이처럼 필요 없는 행동을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말로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합니다. 구멍벌은 무슨 생각으로 텅 빈 벌집 입구를 막았을까요? '할 수 없지 뭐. 사냥은 끝났고 알도 낳았으니까, 이번에는 어쨌든 입구를 막지 않으면 안 돼.' 벌은 이렇게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도 파브르 선생님은 몸이 좀 큰 메뚜기류를 먹이로 하는 흰줄구멍벌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이 벌도 랑그도크구멍벌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랑날개구멍벌의 산수 실력 또 다른 실험으로 본능의 어리석음을 확인했습니다. 노랑날개구멍벌은 애벌레의 먹이로 귀뚜라미를 잡습니다. 귀뚜라미는 보통 노랑날개구멍벌 애벌레 한 마리당 네 마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벌집 속을 들여다보면 귀뚜라미는 두세 마리밖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노랑날개구멍벌의 애벌레에게 직접 먹이를 주며 키워 보았습니다. 벌집 속에서는 두세 마리밖에 먹지 않는 애벌레도 선생님이 한 마리씩 주면 네 마리나 먹습니다. 애벌레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귀뚜라미 네 마리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데 어째서 벌집 속에는 두세 마리밖에 들어 있지 않을까요? 귀뚜라마의 몸 크기는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구멍벌 집이 비탈중간에 있을 때 아래쪽을 살펴보면 귀뚜라미가 떨어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벌이 끌고 올라가다 떨어뜨린 것입니다. 아마 벌은 자기가 떨어뜨린 것까지 수에 넣은 것 같습니다. 즉, 이 벌은 정해진 횟수만큼의 먹이를 잡아들이지만 일단 그 횟수만 사냥하면 잡아들인 먹이의 개수에 관계없이 일을 끝내고 맙니다. 따라서 벌집 입구에서 떨어뜨린 먹이가 있더라도 다음 동작인 벌집 입구를 막는 일로 순서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사냥을 네 번만 하면 귀뚜라미 수가 모자라더라도 일은 그것으로 끝납니다. 이 경우 벌은 프로그램을 도중에 바꿀 수 없는 컴퓨터처럼 본능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일을 마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본능을 볼 때, 곤충에게는 역시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하는 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해 온 정해진 일을 따르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무척 영리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신의 지혜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인간과는 달리 곤충은 한 마리 한 마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종족 전체의 뒤쪽에 '자연'이라는 신이 붙어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인간도 한 사람 한 사람은 현명한 듯하지만 자연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보면 결국은 곤충과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열심히 생활하는 곤충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도 파브르 선생님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6. 나나니의 사냥 수리수리, 나를 닮아라. 나나니는 매우 호리호리한 벌입니다. 허리가 너무 가늘어서 가슴과 배가 하나의 실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허리에는 오렌지색의 띠가 있고, 다른 부위는 까만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생김새는 같은 사냥벌 종류인 구멍벌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습성은 매우 다릅니다. 구멍벌류는 귀뚜라마와 민충이류, 그리고 메뚜기 등을 사냥하지만 나나니가 사냥하는 것은 몸에 털이 없는 나방의 애벌레입니다. 이렇게 먹이가 틀리기 때문에 사냥 방법도 서로 다릅니다. 나나니가 좋아하는 것은 모래가 적고 점토와 석회 성분이 섞여 파기 쉬운 흙으로, 길가나 햇볕이 잘 드는 비탈에 집을 짓습니다. 4월 초순에 이런 장소를 살펴보면 나나니의 일종인 곰보나나니가 날아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 10월이 되면 먹다리나나니, 은털나나니, 털보나나니가 나타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네 종류의 나나니를 관찰하여 여러 가지를 조사하였습니다. 네 종류 모두 벌집을 직각으로 우물처럼 팝니다. 우물의 지름은 연필 두께 정도로 가늘고 깊이는 5센티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작은 방이 한 개 있습니다. 작은 방이라고는 하지만 우물의 바닥이 조금 넓게 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에 간단히 만들 수 있습니다. 나나니는 큰턱과 앞다리 끝으로 구멍을 팝니다. 뼈다귀를 얻은 개가 이것을 묻으려고 구멍을 파는 것처럼 이 벌도 앞다리 끝으로 바쁘게 흙을 파헤칩니다. 이따금 구멍의 바닥에서 벌이 날개와 몸을 떠는 소리가 '지지짓'하고 들립니다. 이것은 벌이 구멍 속에서 모래알을 빼려고 힘을 쓰는 소리입니다. 옛날 중국인들은 곤충의 행동에 매우 관심이 많았는데, 벌이 나방의 애벌레를 땅속에 묻는 것을 보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묻은 장소에서 또 벌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건 틀림없이 나방 애벌레가 벌로 변한 거다. 그래, 맞아. 벌은 나방 애벌레를 땅속에 묻고 '수리수리, 닮아라, 나를 닮아라.'하고 주문을 외운 것이 틀림없어."하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벌집을 돌 뚜겅으로 덮다. 나나니는 때때로 큰턱 사이에 모래알을 물고 벌집 안에서 밖으로 기어 나옵니다. 그리고 조금 날아가서 물고 온 것을 벌집 구멍에서 5센티 정도 떨어진 곳에 떨어뜨립니다. 그러나 꺼낸 모래알 가운데 크고 편평한 것은 구멍에서 먼 곳으로 옮기지 않고 구멍 가까이에 늘어놓습니다. 이것들은 나중에 다시 사용합니다. 나나니가 일을 하면서 벌집 밖을 걸을 때에는 멋진 제복을 차려입은 병정이 행진할 때처럼 점잖을 빼는 것 같습니다. 가는 실 같은 허리를 쭉 펴고 마치 헤리콥터가 방향 전환을 하듯 몸 전체를 한 바퀴 빙 돌립니다. 파낸 흙을 버리러 갈 때는 땅바닥과 평행으로 하여 뒤로 납니다. 구멍 속에서 꽁무니를 먼저 꺼낸 벌은 몸의 방향을 바꾸는 시간도 아까운 듯이 그대로 뒤로 납니다. 먹다리나나니와 은털나나니의 경우, 땅속에 구멍을 파는 사이에 햇볕이 다다르지 않아 그늘이 지면 벌집 가까이에 놓아둔 크고 편평한 돌 부스러기를 가져와 벌집의 뚜껑으로 사용합니다. 크고 편평한 돌 부스러기가 없으면 벌은 근처로 찾으러 가서 적당한 것을 물어 옵니다. 이 때 물어 오는 것은 집 입구보다 조금 큰 것입니다. 큰턱 사이에 돌 부스러기를 물고 와서는 구멍 위에 톡 떨어뜨리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립니다. 단, 이렇게 편평한 돌 부스러기로 벌집 입구를 임시로 막는 것은 먹다리나나니와 은털나나니뿐입니다. 다른 두 종류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햐면 곰보나나니는 먼저 먹이를 사냥하고 나서 그 근처에 구멍을 파기 때문에 먹이를 곧장 구멍 속에 넣을 수 있으므로 임시로 입구를 막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종류, 즉 털보나나니는 또 조금 다릅니다. 다른 세 종류는 벌집 하나에 먹이를 한 마리밖에 넣지 않지만 몸도 작은 털보나나니는 먹이를 다섯 마리나 넣어 둡니다. 그래서 털보나나니는 짧은 시간 안에 적어도 다섯 번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그때마다 넓적한 돌 부스러기로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비탈 위로 뜨겁게 내리쬐고 있습니다. 사냥할 시간이 되면 먹다리나나니와 은털나나니는 나방 애벌레를 물고 위에 올라탄 채 끌고 옵니다. 그리고 어제 막아 두었던 편평한 돌 부스러기를 치웁니다. 이 돌 부스러기는 다른 돌 부스러기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데도 벌은 금방 찾아내어 입구를 엽니다. 그리고 먹이를 벌집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알을 낳습니다. 그런 뒤 다리를 갈퀴나 비처럼 사용하여 입구 근처의 흙과 모래를 쓸어넣어 막으면 일이 끝납니다. 벌집 위치를 기억하다. 은털나나니가 임시로 벌집 입구를 막는 것까지 관찰한 선생님은 내일 또 관찰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일 이 장소를 정확히 찾아내기 위해 지도를 그리고 볏짚으로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벌집을 다시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다음날 아침, 선생님이 평소보다 조금 늦게 벌집에 도착했는데 벌은 벌써 집 속에 나방 애벌레를 넣고 그 위에 알을 낳은 다음 입구까지 막아 버린 후였습니다. 자기 집을 찾아내는 정확한 거억력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벌은 벌집에서 떠나 어디선가에서 밤을 지내고 다음날 다시 돌아와 금방 벌집을 찾아내는데, 특별히 이 근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나나니도 랑그도크구멍벌처럼 그때그때 되는 대로 여기저기 집을 지어 알을 낳습니다. 땅이 마음에 들고 볕이 잘 드는 곳이면 집을 짓기 때문에 이 곳도 우연히 발견한 것이겠지요. 말벌이나 꿀벌의 경우는 크고 튼튼한 집을 짓고 항상 집 근처를 날아다니므로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나니는 어제 처음 온 이 곳에 지은 집에 정확히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무거운 먹이를 안고 그 근처를 훤히 알았던 것처럼 벌집이 있는 곳으로 정확하게 돌아옵니다. 물론 해맬 때도 있습니다. 벌집이 쉽게 발견되지 않으면 먹이를 높은 곳, 즉 풀 위나 나뭇가지 위처럼 나중에 찾기 쉬운 곳에 올려 놓습니다. 그렇게 먹이를 일단 적당한 장소에 놔둔 후에 벌집을 다기 찾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벌이 집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보고 그대로 종이에 그려 보았습니다. 그려진 선은 빙빙 돌거나, 뒤로 돌아오는 등 매우 복잡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미로와 같아 벌이 얼마나 헤매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간신히 벌집을 발견하면 편평한 돌부스러기를 들어내고 속에 들어갈 것처럼 하다가 아까 놓아둔 나방 애벌레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그런데 너무 헤맨 나머지 나방 애벌레가 있는 곳도 쉽게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벌집을 찾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면 벌은 찾기를 멈추고 나방 애벌레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만져 보거나 큰턱으로 조금 물어보아 확실히 자기의 먹이인지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급히 집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 후에도 두세 번 더 벌집 찾기를 중단하고 먹이를 확인하러 갑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벌이 이처럼 몇 번이나 나방 애벌레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먹이를 확실히 기억해 두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기억력이 뛰어난 벌은 어제 파 놓은 집을 쉽게 찾습니다. 나방 애벌레의 약점은 어디인가? 네 종류의 나나니 애벌레의 먹이는 나방의 애벌레입니다. 털보나나니는 나방 애벌레 중에서도 특히 자벌레만 사냥합니다. 자벌레는 자벌레나방이라는 나방의 애벌레로서 나뭇가지로 가장하여 붙어 있습니다. 자벌레에도 꽤 많은 종류가 있지만 털보나나니는 자벌레이면 무엇이나 사냥하기 때문에, 벌집 속에는 색깔이나 모양이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자벌레가 모여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털보나나니 자신이 몸이 작고 힘이 약한 벌이기 때문에 모두 몸이 작은 자벌레뿐입니다. 자벌레가 발견되지 않을 때는 작은 자벌레만한 나방 애벌레를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털보나니니의 집 속을 보도록 합시다. 벌에 쏘여 몸을 둥글게 꼰 다섯 마리의 먹이는 벌집 속에 타이어를 쌓아 둔 것처럼 놓여 있습니다. 가장 위에 놓인 나방 애벌레에 알을 낳습니다. 다른 세 종류의 나나니는 애벌레 1 마리에 나방 애벌레 1 마리밖에 없습니다. 그 대신 몸이 크고 통통하게 살찐 것뿐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먹다리나나니의 집에서 나방 애벌레를 꺼내 무게를 재어 본 적이 있는데, 그 무게가 벌의 15배나 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인간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마치 사냥꾼이 엄청나게 큰 구렁이를 잡아 울퉁불퉁하고 풀뿌리와 돌이 많은 길로 끌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사냥꾼에게는 이러한 일이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면 나나니는 이렇게 큰 나방 애벌레를 어떻게 공격하고, 또 어떻게 마취시키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파브르 선생님이 관찰한 사냥벌의 먹이는 비단벌레, 바구미, 귀뚜라미, 민충이 등이지만 나방 애벌레는 이들과 전혀 다른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방 애벌레의 몸 구조는 고리가 연결된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몸의 고리 부분을 체절이라 하며, 이것이 연결되어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체절 가운데 앞에서 세 번째의 고리 부분에 있는 다리는 나중에 나방이 되어서도 그대로 남습니다. 이것을 진짜 다리라 하고, 그외에 다른 체절에 있는 것은 가짜 다리, 즉 배다리(복각)라고 합니다. 배다리는 애벌레 시기에만 있고 성충이 되면 없어집니다. 각각의 체절에는 감각과 운동의 중심이 되는 신경절이 있습니다. 나방 애벌레의 체절은 머리를 제외하고 전부 12개 있기 때문에 신경절도 12개가 있는 셈입니다. 물론 머리에는 뇌가 있습니다. 노래기벌은 비단벌레와 바구미의 한곳에 집중된 신경절을 쏘았습니다. 구멍벌은 귀뚜라미의 운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 가슴의 신경절을 차례로 쏘았습니다. 이 경우엔 신경절은 단지 세 군데였지만 나방 애벌레는 12군데나 됩니다. 그래서 한 번 쏘아서는 다른 신경절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즉, 한 군데의 신경절이 못쓰게 되어도 옆의 신경절까지 금방 못쓰게 되지는 않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나니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나방 애벌레에게 침을 쏠까요? 매우 흥미있는 문제이긴 하나 관찰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나나니는 무리를 지어 살고 있어서 이 벌을 상대로 실험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 번만 쏘는 것일까? 파브르 선생님은 나나니의 연구를 시작한 이래, 벌이 나방 애벌레를 공격하는 것을 아직 두 번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나나니의 침이 먹이의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체절에 꽂히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확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벌에 쏘여 마취된 먹이를 꺼내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확대경으로 살펴보아도 상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뾰족한 침으로 마취된 나방 애벌레의 체절을 찌를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하나하나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체절을 침으로 찌르자 나방 애벌레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앞뒤의 체절을 찔렀을 때는 조금 움직입니다. 침을 찌르는 곳이 네 번째나 다섯 번째 체절에서 멀어질수록 심하게 버둥거립니다. 특히 제일 뒤쪽의 체절은 조금 찔렀는데도 심하게 요동칩니다. 그러므로 벌은 침을 단 한 번, 그것도 네 번째 또는 다섯 번째 체절에 쏘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이 두 체절은 틀림없이 특별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나방 애벌레의 첫 번째 체절에서 세 번째 체절에는 각각 한 쌍의 다리가 있습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체절에는 다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체절에는 가짜 다리가 전부 여덟 쌍 있습니다. 나방 애벌레는 작아서 나나니가 네 번째 또는 다섯 번째 체절을 한 번 쏘는 것만으로 진짜 다리와 가짜 다리 모두에 독이 펴져 온 몸이 마비됩니다. 즉, 침 한 방으로 나방 애벌레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됩니다. 또 나나니는 알을 마취된 나방 애벌레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체절 사이에 낳습니다. 나나니의 알이 애벌레가 되어 이 곳부터 파먹기 시작하더라도 나방 애벌레가 발버둥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게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더 많은 벌을 관찰한 파브르 선생님은 어쩌면 이것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가을 하게 되었습니다. 별로 크지 않은 야도충과 나방 애벌레의 경우는 독의 효과가 확실히 나타납니다. 즉, 침으로 급소를 찔리면 움직임이 딱 멈춰집니다. 그러나 나나니 중에는 아까 말한 것처럼 자신의 15배나 되는 거대한 먹이를 잡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큰 나방 애벌레의 경우도 작은 야도충처럼 단 한 방으로 모든 감각이 마비될까요? 찌른 곳이 급소를 벗어나거나 독액이 모자라면 거대한 나방 애벌레가 벌집 속에서 어떤 소란을 피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벌의 알과 애벌레들은 깨지거나 몸이 터져 죽고 말겠지요. 파브르 선생님은 털보나나니와 은털나나니의 먹이가 된 작은 나방 애벌레의 체절 중 벌이 쏜 곳이 아닌 체절을 핀으로 찔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나방 애벌레는 요동을 쳤습니다. 그런데 곰보나나니가 잡아 온 살이 찌고 큰 나방 애벌레는 어느 곳을 찔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즉, 몸 전체가 마비된 것입니다. 큰 나방 애벌레를 상대할 때 곰보나나니는 신중하게 몇 번이나 침을 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실제로 관찰할 수가 있었습니다. 쥘과 함께 본 자연의 심오함 파브르 선생님에게는 여러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선생님의 연구를 많이 도와 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줠은 특히 곤충이나 식물을 좋아하고 감각이 뛰어난 아이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나나니처럼 '나를 닮아라, 나를 닮아라.'하고 주문을 외우지는 않았지만 쥘은 선생님을 무척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자 한편으로는 선생님과 정반대인 면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쥘의 건강을 위해 노력도 많이 했지만 결국은 중병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쥘의 병이 깊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함께 방투산에 올랐던, 식물을 좋아하는 테오도르 드라크르였습니다. 드라크르는 편지를 받자마자 파리에서 아름다운 식물의 알뿌리를 보내 왔습니다. 선생님이 이것을 병상에 있는 쥘에게 보여 주자 쥘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쥘의 마지막 기쁨이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곤충기' 제1권의 끝부분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어릴 때부터 그토록 꽃과 곤충을 좋아했던 너는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너의 날카로운 눈은 작은 것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너를 위해 이 책을 쓰려 했고, 너는 기쁘게 이 글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네 자신이 이 일을 계속하리라 믿었다. 아아,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너는 이 책의 첫부분밖에 모르는 채 천국으로 떠나고 말았으니. 이제 나는 너의 이름을 네가 그토록 좋아했던 신기한 습성을 가진 벌에 붙여 언제까지나 이 책 속에서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세 종류의 신종 벌에 율리우스노래기, 율리우스왜코벌, 율리우스나나니라고 쥘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쥘이라는 이름은 학명으로 쓰이는 라틴어로 '율리우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쥘이 아직 건강했을 때의 일입니다. 쥘과 선생님은 론 강을 끼고 아비뇽 해안에 있는 레잔그르 언덕에서 스카라베 사쿠레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쥘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앗, 곰보나나니에요, 아빠!" 쥘이 가리킨 백리향나무 밑둥치에는 곰보나나니 한 마리가 바쁘게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두 사람은 함께 중얼거리며 얼굴을 가까이 대고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벌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바쁘게 잡초의 가는 뿌리를 뜯어 내기도 하고, 땅속에 머리를 처박기도 하면서 갈라진 땅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 벌은 지금 구멍을 파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땅속에 숨겨져 있는 먹이를 찾고 있는 증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토끼 굴에서 토끼를 쫒아내려는 개와 비슷합니다. 이윽고 땅속에서 큰 야도충을 끄집어냈습니다. 야도충은 배추밤 나방의 애벌레입니다. 낮에는 땅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식물의 잎을 갉아먹습니다. 사냥벌은 야도충의 목을 확 깨문 뒤 결코 놔주지 않습니다. 곰보나나니는 신화 속의 영웅처럼 이 괴물의 등에 올라타고 배의 끝부분을 굽혔습니다. 그리고는 상대의 몸 구조를 잘 아는 외과의사처럼 천천히 야도충의 모든 체절의 아랫부분을 차례로 찌릅니다. 실수 없이 차분하게 일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벌은 먹이의 복잡한 신경 조직을 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본 결과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습이다. 벌은 모두 본능의 명령대로 행동합니다. 곤충은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을 자신의 머리로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본능에 의해 어쨌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본능의 명령은 정확히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생물학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소질이 아들에게 전해진다는 유전설과, 강한 것 혹은 환경에 적응한 것만이 살아 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사라져 버린다는 자연도태설과 생존경쟁설 등입니다. 그러나 이 학설들로 본능의 신기한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파브르 선생님과 아들 쥘에게는 바로 눈앞에서 곰보나나니와 야도충이 펼치는 광경이 마치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비하고 숭고한 힘의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곤충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행동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함이 곤충의 행동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광경은 한 순간 번개처럼 두 사람의 마음속에 진리의 빛을 던졌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마음 깊이 감동했고, 두 사람의 눈에서는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7. 풍뎅이를 사냥하는 배벌 (1) 땅속에 들어가는 수수께의 벌 작은 새처럼 큰 벌 프랑스에 있는 벌 가운데 가장 크고 멋있는 모양을 한 것은 배벌류입니다. 가을이 되어 산과 들에 안개가 낄 무렵이면 머리에 오렌지 색깔을 띤 북쪽의 아름다운 상모솔새가 나무에 붙어 있는 벌레를 잡으러 정원으로 날아옵니다. 상모솔새는 작은 새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는데, 배벌 가운데는 이 새만큼 크게 보이는 종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잡아 크기를 재어 보면 새보다 크지는 않지만 살아 움직이는 벌은 엄청나게 크게 보입니다. 띠호박벌이나 어리호박벌, 혹은 말벌처럼 크고 무서운 벌들도 이 배벌에 비교하면 작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프랑스에는 많은 종류의 배벌이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살고 있는 프로방스 지방의 대표적인 배벌은 뜰배벌입니다. 이것은 몸길이가 4센티 이상이나 되며, 날개를 펴면 6.5센티나 됩니다. 뜰배벌의 암컷은 검은 바탕에 노란색의 큰 반점을 가지며, 날개는 양파 껍질 같은 주황색을 하고 있습니다. 몸은 울퉁불퉁하고 다리에는 센털이 나 있습니다. 머리도 매우 딱딱해 보입니다. 걸음걸이는 어색하고 서툴러 보이지만 날개 소리도 안 내고 사뿐히 날았다가 사뿐히 앉는 모습은 매우 유연합니다. 수컷은 암컷과 닮았으나 훨씬 작으며, 더듬이가 길고 더 호리호리합니다. 뜰배벌을 처음 본 곤충 채집가는 누구나 깜짝 놀랍니다. '이렇게 멋진 벌도 있을까? 이놈을 잡아 표본 상자에 정리하면 보기 좋겠는걸.'하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큰 벌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틀림없이 이놈은 무서운 독침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감히 잡을 엄두도 못 내겠지요. 이보다 훨씬 작은 말벌에 쏘여도 몹시 아픈데 이렇게 큰 벌에 쏘이면 얼마나 아플까요. 쏘인 곳이 주먹만하게 부어오르고, 빨갛게 달궈진 쇠에 닿은 듯이 욱신거리겠지요. 뜰배벌을 겨냥해 포충망을 휘두르려는 순간, 곤충 채집가는 이런 생각이 들어 손을 멈추고 맙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곤충 채집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 당당한 배벌을 무척 잡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야외에서 이 벌을 만나면 손이 나가질 않았습니다. 이렇게 조심하는 이유는 전에 말벌에게 쏘여 고생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배벌이 엉겅퀴꽃 등에서 꿀을 빨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태연하게 손끝으로 잡습니다. 상대가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어도 파브르 선생님은 전혀 조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배벌은 매우 얌전한 곤충으로서, 무서운 독침은 자식의 먹이가 되는 벌레를 마취시킬때만 사용합니다. 그리고 나나니와 달리 배벌은 굵어 재빠르게 굽히지 못하기 때문에 쏘려고 할 때 피할 수가 있습니다. 또 혹시 쏘였다 하더라도 별로 아프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냥벌의 독은 별로 강하지 않습니다. 이 벌들의 독침은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취만 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프로방스 지방에는 뜰배벌 외에 이것과 비슷하지만 몸이 조금 작은 두줄배벌이라는 종류가 있습니다. 그 외에 육점긴배벌이라는 종류도 있습니다. 이것은 크기가 작고, 배는 가늘고 깁니다. 수는 매우 많아 근처 모래 언덕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주로 두줄배벌과 육점긴배벌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두줄배벌과의 만남 파브르 선생님의 오래된 기록을 펴 봅시다. 1857 년 8월 6일이라 쓰인 페이지에는 '아비뇽 교외의 잇사르 숲에서 왜코벌에 대한 연구를 할 때 두줄배벌을 만났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때마침 여름 방학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두 달 동안은 곤충들과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머릿속은 갖가지 계획으로 꽉 차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마치 곤충을 무척 좋아하는 학생 같았습니다. 곤충을 관찰하러 가는 선생님의 모습은 퍽 인상적입니다. 어깨에는 튼튼한 괭이를 메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삼베를 빨갛게 물들일 때 꼭두서니라는 식물의 뿌리에서 얻은 염료를 사용했는데, 선생님이 멘 괭이는 이 꼭두서니를 팔 때 사용하는 특별한 괭이입니다. 그리고 큰 배낭을 젊어지고 있습니다. 배낭 속에는 채집품을 종이에 싸서 넣는 상자와 핀셋, 그리고 확대경 등 많은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검고 큰 박쥐 우산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매미조차 울음을 멈추고 있습니다. 무지개 빛 눈을 가진 등에가 햇볕을 피해 파브르 선생님의 박쥐 우산 아래로 피난왔습니다. 선생님이 앉아서 관찰하는 장소는 작년에 배벌이 많이 발견되었던 곳입니다. 이 부근에는 떡갈나무가 여기저기 심겨져 있어서 나무 아래에는 썩은 낙엽이 쌓여 부엽토 층이 되어 있습니다. 부엽토 밑은 모래땅입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더위가 조금 덜해지자 어디선가 두줄배벌이 날아왔습니다. 그 수는 점점 더 불어났습니다. 파브르 선생님 주위를 붕붕 날고 있는 것을 대강 세어 보니 12 마리 정도였습니다. 생김새와 나는 모습으로 두줄배벌이라는 것을 금방 알았습니다. 땅에 닿을 듯이 날며 여기저기 왔다갔다합니다. 때때로 땅 위에 앉아 더듬이로 모래땅을 통통 두드리며 땅속을 자주 살핍니다. 뭔가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행동을 수십 번 반복하며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을까요? 먹이를 찾는 것은 아닙니다. 꿀이 필요하다면 주위에 꽃들이 많이 피어 있으니까 그 곳으로 갔겠지요. 지금 이 벌은 꽃에는 관심이 없고 땅속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곤충의 습성을 조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몸이 작아서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한번 놓쳐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그 곤충이 무엇을 먹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에 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것과 전혀 모르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파브르 선생님 시대에는 배벌의 습성에 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곤충 껍질의 수수께끼 사실 땅에 닿을 듯이 날고 있는 두줄배벌은 전부 수컷들입니다. 수컷은 더듬이가 길고 몸이 가늘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수컷들이 찾고 있는 것은 땅속에서 고치를 뚫고 나오는 암벌입니다. 땅속에서 기어 나온 암컷은 몸에 묻은 흙을 털거나 눈을 비빌 사이도 없이 3,4 마리의 수컷에게 둘러싸입니다. 수컷은 암컷보다 먼저 고치에서 나와 짝짓기를 하기 위래 암컷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등에들은 파브르 선생님의 박쥐 우산에서 나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암컷은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씩 어두워지자 수컷들도 하나 둘씩 날아가 버립니다. 결국 오늘은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도 몇 번이나 잇사르 숲에 가 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수컷들은 여전히 땅에서 가까이 날고 있었지만 암컷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벌집이 있는 장소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허탕치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암컷 한 마리가 땅속에서 기어 나온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암컷이 기어 나온 곳을 괭이로 팠습니다. 그리고 부엽토가 섞인 모래를 손으로 부수며 자세히 조사했습니다. 사방 1 미터의 흙을 판 끝에 겨우 바라던 것을 찾았습니다. "있다!" 선생님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선생님이 발견한 것은 벌집 속에 있는 한 개의 고치였습니다. 고치에는 애벌레가 먹었던 먹이의 껍질이 쪼그라든 채 붙어 있었습니다. 비록 구멍이 뚫어져 있었지만 고치는 아직 새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까 본 암컷이 바로 이 고치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치에 붙어 있는 벌레 껍질은 땅 속의 습기와 잔 풀뿌리 때문에 무슨 벌레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머리 부분의 형태와 큰턱, 그리고 전체적인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풍뎅이류의 애벌레 같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오늘도 수수께끼를 완전히 풀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선생님은 몹시 피곤했지만 고치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쪼그라든 벌레 껍질을 발견했기 때문에 기분은 좋았습니다. 곤충 연구라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어깨에는 무거운 도구를 메고, 찾던 곤충이 나타나면 그것을 하루 종일 관찰하거나 필요하면 그 곳을 파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으로 갈 때쯤이면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기도 합니다. 또 8월의 더위에 머리가 빙빙 돌 정도입니다. 눈도 아프고 목도 타고 죽을 지경입니다. 게다가 여기서 집까지 아직도 더운 열기가 남아 있는 길을 몇 킬로나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늘 벌레의 잔해를 발견하여 기뻐서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이라면, 당신은 박물학 연구를 계속해도 좋습니다. 머지않아 큰일을 성취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출세의 수단은 되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충고를 했습니다. 땅속에 판 터널 파브르 선생님은 그 날 발견한 쭈글쭈글한 벌레 껍질을 물에 넣어 편 후에 열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풍뎅이의 애벌레였습니다. 함께 파낸 고치는 확실히 장담은 못하지만 아마 그 때 땅속에서 기어 나온 배벌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배벌의 먹이는 풍뎅이가 거의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몇 번 더 잇사르 숲에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풍뎅이라 하더라도 종류가 많기 때문에 무슨 풍뎅이인지 모릅니다. 배벌이 잡은 것은 무슨 풍뎅이일까요? 그리고 배벌의 알과 애벌레를 찾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디를 파야 할까요? 넓은 모래 벌판에서 직감으로 여기저기 파 보지만 파브르 선생님이 찾는 알과 애벌레는 없었습니다. 마치 지도도 없이 보물을 무턱대고 찾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땅에 닿을 듯이 낮게 날고 있는 수컷 배벌은 본능의 힘으로 암컷이 있는 위치를 대충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컷이 날고 있는 곳에 암컷이 있겠지만 그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한 마리의 수컷이 날고 있는 범위를 재어 보니 사방 100 미터나 됩니다. 이렇게 넓은 범위의 흙을 1 미터 깊이로 파내어 자세히 조사하는 것은 큰 공사입니다. 도저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생님이 초조해하는 가운데 계절이 바뀌어 수컷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땅속에서 나오거나 들어가는 곳을 알아내어 괭이로 팔 수밖에 없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본 결과 우연히 그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암컷 배벌은 다른 사냥벌과는 달리 집을 만들지 않습니다. 큰턱과 다리로 흙을 파 들어가며, 파낸 흙을 뒤로 밀어내dj 들어온 통로를 막습니다. 땅속에서 벌이 머리를 내밀 때에는 흙이 조금 볼록하게 쌓이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벌이 기어 나오면 터널은 무너져서 입구가 막힙니다. 땅속으로 들어갈 때도 아무 곳이나 파 들어갑니다. 그러면 암컷은 땅속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요? 바로 풍뎅이의 애벌레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컷은 수컷과 한 번 짝짓기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엔 애벌레를 위해 먹이를 준비하고 알을 낳는 것만 생각하므로 땅 위로 올라오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암벌은 거의 땅속에서 터널을 파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강한 큰턱과, 마치 갑충처럼 딱딱한 머리와, 센털이 난 튼튼한 다리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흙 속으로 터널을 파 들어가는 것입니다. 특히 8월 말경에는 암컷은 식량을 준비하거나 알을 낳기 때문에 땅속에서 매우 바쁘게 일을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암컷이 땅 위로 나오기를 기다린 것은 바보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암컷이 있을 만한 곳을 더 파 보자.' 선생님은 열심히 암컷이 있을 만한 곳을 파 보았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그러나 그렇게 파 보아도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고치만 몇 개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고치는 모두 이전에 선생님이 발견한 것과 똑같이 구멍이 뚫어져 있고, 겉에는 풍뎅이 애벌레의 쭈그러진 껍질이 붙어 있었습니다. 열심히 파 매려가자 이번에는 구멍이 안 뚫린 두 개의 고치를 발견했습니다. 속에는 죽은 벌이 들어 있었습니다. 고치 속에서 거의 다 자랐는데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죽은 것이라고 추리한 선생님의 생각은 정확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두줄배벌의 것과는 모양이 조금 다른, 역시 죽은 벌이 들어 있는 고치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육점긴배벌의 고치였습니다. 고치에 붙어 있는 쪼그라든 벌레 껍질은 역시 풍뎅이의 애벌레였지만 두줄배벌이 잡은 풍뎅이와는 종류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때 선생님이 발견한 것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여기저기 쑥밭이 될 정도로 흙을 파헤쳤지만, 아무리 해도 진짜 원하는 보석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보석이라는 것은 물론 살아 있는 풍뎅이의 애벌레에 낳아진 배벌의 알과 애벌레입니다. 이 두 종류의 배벌의 먹이는 어떤 풍뎅이의 애벌레일까요? 이것만 알아내면 문제는 훨씬 간단해집니다. 이 때 파헤쳐진 흙에서 배벌의 고치와 함께 풍뎅이의 애벌레와 번데기, 성충이 발견되었습니다. 성충은 유럽수염풍뎅이, 수염풍뎅이, 줄드풍뎅이였습니다. 풍뎅이의 애벌레는 크기가 다양했고, 번데기도 몇 개 발견되었습니다. 이것들은 문제 해결에 훌륭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이 풍뎅이의 번데기에 붙어 있는 애벌레 시기의 껍질과, 벌의 고치에 붙어있는 쪼그라든 애벌레의 껍질을 비교해 보면 벌의 애벌레가 먹는 풍뎅이의 종류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견된 많은 실험 재료로부터 육점긴배벌의 고치에 붙어 있던 애벌레의 껍질이 유럽수염풍뎅이라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즉, 육점긴배벌은 유럽수염풍뎅이의 애벌레를 사냥하는 것입니다. 줄드풍뎅이는 배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두줄배벌이 사냥하는 것은 줄드풍뎅이의 애벌레도, 유럽수염풍뎅이의 애벌레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두줄배벌의 먹이는 어떤 풍뎅이일까요? '두줄배벌의 고치에 붙어 있는 이 풍뎅이의 애벌레 껍질은 도대체 어떤 풍뎅이의 것일까?' 훨씬 나중에야 배벌의 알과 애벌레를 발견하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흙을 파는 장소를 잘못 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나무뿌리가 많은 곳을 피하여 파기 쉬운 곳만 팠습니다. 그런데 부엽토가 두껍게 쌓인 나무 밑부분이야말로 꼭 파야 했던 장소였던 것입니다. 풍뎅이의 애벌레는 부엽토 속에 숨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 때 배벌의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더 이상 계속해도 선생님이 필요로 하는 연구 재료는 잇사르 숲에서는 파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잇사르 숲은 선생님이 살고 있는 아비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더운 날씨에 그 곳까지 걸어가는 것도 큰 고충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어디를 파야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집념이 강한 파브르 선생님도 이번에는 지쳐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여름 방학이 끝났습니다. (2) 배벌 애벌레의 식사 방법 산더미처럼 쌓인 보석 그리고 23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리냥 마을 어귀의 아르마스에 살고 있는 파브르 선생님은, 지금은 학교를 그만두고 책을 쓰면서 곤충 연구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1880 년 8월 14일의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느때와 같이 한손에 확대경을 들고 정원에서 곤충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정원 구석에서는 파미에 씨가 퇴비 더미를 다른 장소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파미에 씨는 아르마스의 정원 손질이나 밭일을 해 주는 사람입니다. 파미에 씨는 비료로 사용하기 위해 낙엽과 풀을 쌓아 썩인 퇴비더미를 정원 구석에 놓아 두었는데 ,선생님의 애견인 뷔르가 이 퇴비 더미를 통해 집 밖으로 뛰쳐나가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기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파비에 씨가 큰소리로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선생님, 빨리 와 보세요. 빨리요!" 선생님이 급히 뛰어가 보니 거기에는 그렇게 갖고 싶었던 보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파헤쳐진 퇴비 속에 두줄배벌의 암컷이 놀랄 만큼 많이 숨어 있었습니다. 썩어서 반쯤 흙이 된 낙엽 더미 속 여기저기에 암컷의 큰 얼굴이 들여다보였습니다. 옛날 잇사르 숲에서 그렇게 애써 찾아도 몇 마리밖에 발견되지 않던 배벌의 고치가 무수히 많았습니다. 게다가 벌의 애벌레가 먹은 풍뎅이 애벌레의 껍질이 달린 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23 년 전의 추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습니다. 배벌이 땅에 가까이 나는 것을 볼 때마다 언젠가 반드시 이 벌의 생활사를 밝히고 말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기회가 없었는데, 오랫동안 찾던 배벌의 고치가 자신의 집 정원에 그것도 이렇게 많이 있는 것입니다. 고치에는 빠짐없이 구멍이 뚫어져 있었지만 전부 깨끗했습니다. 지금 얼굴을 내밀고 있는 배벌들이 바로 이 고치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이 벌이 7월에 고치를 뚫고 나온다는 것을 파브르 선생님은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부엽토 속에는 풍뎅이 종류가 많이 있었는데, 성충보다 애벨레와 번데기가 더 많았습니다. 풍뎅이 가운데에는 프랑스의 갑충 중에서 가장 큰 유럽장수풍뎅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종류가 많은 것은 꽃무지류로서 각각 둥글고 딱딱한 고치속에 들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금색꽃무지, 곰보가슴꽃무지, 유럽꽃무지 등 세 종류였습니다. 꽃무지의 애벌레는 거꾸로 누워 등에 난 털로 살금살금 기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꽃무지 애벌레와 금방 구별이 됩니다. 꽃무지의 애벌레는 몇백 마리나 있었습니다. 알에서 갓 깨어난 작은 것에서부터 곧 고치를 만들어 번데기가 될 큰 애벌레까지 전부 있었습니다. 옛날엔 그렇게 노력해도 알아내지 못했던 두줄배벌의 먹이의 정체를 이제 알아냈습니다. 훨씬 전에 발견한 두줄배벌의 고치에 붙어 있던 수수께끼의 애벌레 껍질과, 이 퇴비 더미 속의 꽃무지 애벌레가 번데기로 될 때 벗은 껍질을 비교해 본 결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아하, 그래. 두줄배벌의 먹이는 꽃무지의 애벌레였어." 책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것보다 자신의 노력에 의해 알게 된 사실은 그만큼 값진 것입니다. 선생님은 '고생 끝에 발견한 새로운 사실'에 무한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두줄배벌은 애벌레 한 마리당 꽃무지 애벌레 한 마리를 잡아 줍니다. 넓은 잇사르 숲에서는 어디를 파야 될지, 정말 뜬구름 잡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지도도 없이 보물 찾는 일은 끝났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집 정원의 퇴비 더미를 조금만 파헤쳐도 충분한 재료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조사할 수가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아비뇽에서 이 곳 세리냥 마을로 이사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선생님은 두줄배벌이 꽃무지 종류, 특히 금색꽃무지, 곰보가슴꽃무지, 유럽꽃무지의 애벌레를 먹이로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세 종류의 꽃무지들은 부엽토 속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애벌레는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두줄배벌은 세 종류의 애벌레 모두를 자기 애벌레의 먹이로 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연구한 또 다른 한 종류의 작은 배벌인 육점긴배벌은 잇사르 숲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염풍뎅이의 애벌레를 먹이로 삼습니다. 세리냥처럼 주위에 잡초밖에 없는 모래땅에는 유럽수염풍뎅이가 없기 때문에, 그 대신 이와 매우 닮은 서양수염풍뎅이를 식량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의 곤충학자 파세리니라는 사람의 책에는 '몸이 큰 뜰배벌은 유럽장수풍뎅이의 애벌레를 먹이로 한다.'라고 쓰여진 사실도 파브르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뜰배벌이 먹는 장수풍뎅이, 두줄배벌이 먹는 꽃무지, 그리고 육점긴배벌이 먹는 수염풍뎅이는 겉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풍뎅이과에 속합니다. 어째서 전부 풍뎅이과에 속하는 갑충만 먹는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그런데 꽃무지와 풍뎅이는 무엇이 다를까요? 꽃무지는 풍뎅이과에서도 풍이의 일종으로, 등쪽의 딱딱한 날개를 접은 채로 아래쪽 날개를 펴서 붕붕거리며 자유롭게 납니다. 한편, 보통 풍뎅이류는 등쪽의 딱딱한 날개까지 편 상태에서 아래쪽 날개로 날지만 꽃무지만큼 능숙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종류를 잡아 한꺼번에 공중으로 던져 올려 보면, 꽃무지는 날쌔게 아랫날개를 펴서 붕 날아가지만 풍뎅이는 땅에 툭 떨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풍뎅이는 주로 저녁부터 밤동안 활동하지만 꽃무지는 낮에 활동하며 이름 그대로 꽃 속에 파고들거나 나무의 즙을 빱니다. 그리고 낮에 활동하기 때문에 눈이좋고, 색깔도 아름다운 종류가 많습니다. 기념할 만한 9월 2일 손수레로 부엽토 더미를 다른 곳으로 옯기는 일은 파비에 씨가 해 줍니다. 그 사이 파브르 선생님은 풍뎅이의 애벌레들을 병에 넣어 둡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진 부엽토 더미에 다시 넣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갓 깨어난 배벌은 많았지만 아직 알을 낳을 때는 아닌가 봅니다. 지금은 배벌의 알과 애벌레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9월경에 알을 낳겠지요. 옮기느라 뒤죽박죽이 된 퇴비 더미가 원상태로 되려면 앞으로 1 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지금 당장 조사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다음해를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이 곳 세리냥에는 그 밖에도 연구하고 싶은 곤충이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이윽고 낙엽이 지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꽃무지와 배벌들이 더 많이 모이도록 정원 안의 낙엽과 풀들을 모아 퇴비 더미를 높게 쌓아 올렸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듬해 8월이 되자 거의 매일 퇴비 더미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오후 2시경, 소나무에 의해 그늘이 진 퇴비 더미에 햇볕이 들자 근처의 꽃에서 꿀을 빨던 수컷 배벌들이 모여들어 퇴비 더미 주위를 붕붕거리며 날아다닙니다. 그 때, 퇴비 더미 속에서 암컷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이것을 발견한 수컷들이 암컷에게 달려듭니다. 금방 상대가 정해져 한 쌍의 배벌이 함께 울타리를 넘어 어디론가 신혼 여행을 떠납니다. 이것은 옛날, 파브르 선생님이 잇사르 숲에서 가끔씩 본 광경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8월 말에는 수컷은 보이지 않습니다. 암컷도 퇴비 더미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지하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월 2일, 드디어 퇴비 더미를 파헤치기로 작정했습니다. 아들 에밀이 괭이로 파고, 선생님은 파헤쳐진 흙더미 속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연구에 욕심이 많은 파브르 선생님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파헤쳐진 부엽토 속에서는 꽃무지의 애벌레가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거꾸로 뒤집힌 것을 보니 가운데에 하얀색 알이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물론 배벌의 알입니다. 또 다른 꽃무지 애벌레의 배에는 배벌 애벌레가 머리를 쳐박고 살을 파먹고 있었습니다. 거의 껍질만 남아 있는 꽃무지 애벌레의 배 위에서 크게 자란 배벌의 애벌레가 마지막 한입을 먹고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그 옆쪽에는 피로 물들인 것 같은 빨간색 명주실로 고치를 만들고 있는 배벌 애벌레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미 완성된 고치도 있었습니다. 알부터 꽤 몸이 큰 애벌레, 번데기에 이르기까지 배벌의 성장 과정을 한눈에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광경은 처음입니다. 이 기념할 만한 9월 2일을 확실히 기억해 두자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23 년 간 파브르 선생님을 고민에 빠뜨린 배벌의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더 열심히 연구해야 합니다. 꽃무지의 뱃속을 파먹다. 파브르 선생님은 높이가 낮고 주둥이가 넓은 병에 부엽토를 넣고, 흙 가운데를 손끝으로 약간 오목하게 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오목한 곳에 배벌의 알이 붙어 있는 꽃무지 애벌레 한 마리를 넣어 둔 뒤 병 입구를 유리관으로 덮었습니다. 헝겊으로 덮으면 병속이 건조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 두면 배벌 애벌레가 꽃무지의 애벌레를 먹이로 삼아 성장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배벌의 알이 붙어 있는 꽃무지 애벌레의 몸은 반쯤 부엽토에 묻혀 있습니다. 배벌은 애벌레를 위해 특별한 방을 만들지 않습니다. 어미벌은 부엽토 속을 터널 파듯이 구멍을 뚫으며 다니다가, 꽃무지 애벌레를 발견하면 째빨리 침을 쏘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애벌레의 배 위에 알을 하나 낳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애벌레를 찾기 위해 터널을 파기 시작합니다. 벌에 쏘여 마취된 꽃무지 애벌레가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배벌의 애벌레는 알에서 깨어나 꽃무지 애벌레를 먹고 고치를 만듭니다. 배벌의 알은 다른 벌의 알과 비교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희고 조금 길쭉하며 길이는 약 4 밀리, 폭은 1 밀리 정도입니다. 배벌은 알을 꽃무지 애벌레의 배에서 약간 뒤쪽, 즉 몸 속의 배설물이 갈색으로 보이는 곳에 낳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관찰하는 사이, 이윽고 배벌의 알이 깨어났습니다. 갓 깨어난 작은 애벌레는 얇은 알 껍질을 꽁무니에 매단 채로 처음 알이 붙어 있던 곳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작은 애벌레는 거꾸로 뒤집힌 먹이의 배에다 구멍을 내어 파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과연 애벌레는 열심히 먹이를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날 관찰해 보니 꽃무지 애벌레의 배 껍질에 구멍이 나 있고, 배벌 애벌레는 이 구멍 속으로 목까지 집어 넣어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배벌 애벌레의 크기는 알의 크기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먹이인 꽃무지 애벌레의 크기는 대체로 길이가 30 밀리, 폭이 9 밀리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먹이는 배벌 애벌레의 600--700배 정도나 됩니다. 만일 꽃무지의 애벌레가 꽁무니로 치기라도 하면 배벌의 어린애벌레는 터져서 죽고 말겠지요. 그러나 어미벌이 침으로 꽃무지 애벌레를 마취시켜 두었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없습니다. 이 어린 애벌레는 어미의 젖이라도 빠는 것처럼 태연하게 거대한 괴물의 배에 구멍을 뚫어 목까지 집어 넣고는 내용물을 빨아먹습니다. 끝까지 선선한 고기를 먹는다. 배벌 애벌레의 작은 머리는 매일 조금씩 더 먹이인 꽃무지 애벌레의 몸 속으로 들어갑니다. 몸에 뚫은 구멍의 크기는 변함없는데 몸의 절반이 길고 가늘게 쭉 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애벌레는 꽤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애벌레처럼 극히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냥벌의 애벌레 중에서 이와 비슷한 모양을 한 것이 있습니다. 먹이가 커서 먹는 데 시간이 걸리면 이런 모양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민충이를 먹는 랑그도크구멍벌이라든가 야도충을 먹는 곰보나나니의 애벌레가 그렇습니다. 작은 먹이를 많이 먹는 애벌레의 경우에는 몸이 가는 부분과 굵은 부분으로 나눠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파리를 많이 먹는 왜코벌의 애벌레는 먹이 하나를 먹어 치우면 곧 다른 먹이를 먹기 때문에 몸 모양은 별로 변하지 않습니다. 배벌 애벌레의 경우, 큰턱으로 먹이에 한 번 구멍을 뚫으면 먹이의 내부를 완전히 먹어 치울 때까지 길게 늘어난 상반신을 결코 먹이에서 빼는 일이 없습니다. 왜 이처럼 한곳으로만 먹이를 먹을까요? 그것은 꽃무지의 애벌레가 배벌 애벌레에게는 단 하나뿐인 먹이이기 때문입니다. 고치를 만들어 번데기가 될 때까지 이것만 먹고 커야 하고, 그리기 위해서는 꽃무지 애벌레의 몸을 순서대로 먹어서 마지막까지 죽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배벌의 애벌레는 어미벌이 낳아 준 장소에서 조심스럽게 먹이를 먹습니다. 작은 애벌레의 목은 길어져 점점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갑니다. 이 때 벌의 애벌레는 꽃무지의 애벌레가 사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곳부터 파먹기 시작해서 점점 중요한 곳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벌의 애벌레가 처음에 먹이를 물어뜯으면 상처에서 꽃무지의 체액이 흘러나옵니다. 이것을 먼저 먹으면 소화도 잘 되고, 영양도 많겠지요. 배벌의 애벌레에게는 이것이 어미벌의 젖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작은 애벌레가 체액을 조금 빨았다고 해서 몸이 큰 꽃무지의 애벌레가 금방 죽지는 않습니다. 다음으로 먹는 곳은 내장 바깥쪽에 있는 지방질입니다. 이것을 먹고 나서 껍질 바로 밑에있는 근육을 먹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내장입니다. 이 때쯤이면 꽃무지의 애벌레는 살아 있기는 하지만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먹는 곳은 신경과 호흡기입니다. 이것까지 먹히게 되면 꽃무지 애벌레는 결국 죽게 됩니다. 그 때까지 배벌의 애벌레는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먹이를 충분히 먹고 이제 통통하게 살이 찐 배벌의 애벌레는 긴 목을 속이 텅 빈 먹이로부터 빼내어 고치를 만들 준비를 합니다. 배벌은 이 고치 속에서 번데기로 되고 다시 벌이 되어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산 채로 먹는 비결 먹이의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에서는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 전에 말한 먹는 순서는 조금 틀릴지도 모릅니다. 실험을 하며 자세히 조사해 봅시다. 꽃무지의 애벌레는 처음에는 통통하게 살이 찌고, 기름기가 도는 흰색입니다. 그것이 배벌 애벌레에게 점점 먹혀 들어감에 따라 점차 헐렁헐렁해지고 주름투성이가 됩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바싹 말라 납작한 봉투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처럼 바싹 말라 보이거나 납작해지더라도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썩지는 않습니다. 꽃무지 애벌레는 배벌의 애벌레가 몸을 점점 파먹어 들어가도 쉽게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꽃무지 애벌레의 마지막 남은 가장 중요한 곳을 먹었을 때는 마침내 꽃무지 애벌레도 죽습니다. 만일 배벌의 애벌레가 처음부터 꽃무지 애벌레의 신경을 먹어 치우면 어떻게 될까요? 이 실험은 매우 간단합니다. 선생님은 바늘을 불에 달구어 망치로 편 후, 물에 담갔다가 칼처럼 갈아서 작고 날카로운 메스를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메스로 꽃무지 애벌레의 몸에 아주 작은 상처를 내고 이 곳으로부터 신경을 끄집어냈습니다. 그랬더니 별로 대단치 않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애벌레는 금방 죽어 버렸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바닥에 흙을 깐 병 속에 이 애벌레를 넣고 유리관으로 뚜껑을 덮었습니다. 즉, 배벌의 애벌레가 먹는 꽃무지 애벌레와 똑같은 상태로 해 둔 것입니다. 하루가 지난 후, 꽃무지 애벌레의 몸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더니 썩어서 녹아 버렸습니다. 이와는 달리, 똑같은 조건을 갖춘 병 속에 배벌의 애벌레가 4분의 3이나 먹어 치운 꽃무지 애벌레를 넣어 보았으나 죽지도, 썩지도 않았습니다. 메스로 신경을 잘린 꽃무지 애벌레는 금방 죽고 썩어 버린 반면 배벌이 수십 차례 갉아먹어 몸 속이 거의 텅 빈 꽃무지의 애벌레는 아직 죽지 않은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상처를 낸 장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배벌은 혈액, 지방, 근육의 순서로 갉아먹기 때문에 먹이를 죽이지 않고 마지막까지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배벌의 애벌레가 파브르 선생님이 한 것처럼 먼저 신경을 갉아 먹었다면 먹이는 역시 금방 죽고 말았겠지요. 먹이가 죽고 24시간이 지난 후에는 썩은 꽃무지 애벌레의 몸 속에서 나온 독 때문에 벌의 애벌레도 죽고 맙니다. 어머벌은 먹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독침으로 신경의 중심을 쏩니다. 마치 아주 노련한 의사가 환자를 전신 마취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은 억지로 신경을 잘라 끄집어냈던 것입니다. 벌이 침으로 쏜 경우, 신경은 독에 의해 마비되기 때문에 근육의 움직임도 딱 멈춰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호흡기나 심장을 움직이는 신경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꽃무지 애벌레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입니다. 등쪽은 파먹지 않음 배벌 애벌레의 식사 방법을 좀더 자세히 조사해 봅시다. 먼저, 먹이의 어느 부위에 입을 대는지 정해져 있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꽃무지 애벌레를 갉아먹고 있는 배벌 애벌레의 위치를 조금 옮겨 보았습니다. 꽃무지 애벌레는 벌써 처음 크기의 4분의 1, 또는 3분의 1 정도가 되었습니다. 먹이의 뱃속에 찔러 넣은 긴 목을 함부로 빼면 안 됩니다. 붓 끝으로 조금씩 당겨서 겨우 밖으로 꺼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뒤집힌 꽃무지 애벌레의 몸을 원래대로 바르게 해서 부엽토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꽃무지 애벌레의 뱃속을 갉아먹던 배벌 애벌레를 먹이의 등에 올려놓았습니다. 과연 배벌의 애벌레는 먹이의 등을 깨물어 구멍을 낸 후 내용물을 갉아먹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점심때부터 계속해서 관찰을 했습니다. 배벌의 애벌레는 가늘고 작은 머리를 웁직이고 있습니다. 머리를 꽃무지 애벌레의 몸에 갖다 대지만 아무 곳도 물지 않습니다. 해가 졌는데도 배벌의 애벌레는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걱정스럽게 움직일 뿐입니다. 진짜 배가 고파지면 결국 물어뜯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보았을 때도 어제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배벌의 애벌레는 전날보다 훨씬 더 걱정스런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살펴보지만 먹이의 몸을 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반 나절이 지나도록 별다른 반응이 없자 선생님은 배벌의 애벌레를 꽃무지의 애벌레로부터 들어냈습니다. 벌써 24시간이 지났습니다. 배벌의 애벌레는 무척 배가 고플 것입니다. 왜 물지 않을까요? 등에는 이빨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알에서 갓 깨어난 어린 애벌레조차 먹이의 껍질에 구멍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때보다 몸도 훨씬 커지고 힘도 세기 때문에 먹이에 구멍 정도는 간단히 낼 수 있습니다. '꽃무지 애벌레의 등이 딱딱하지도 않고, 배벌 애벌레의 이가 약하지도 않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먹이의 등을 잘못 갉아 중요한 기관을 손상시키면 먹이가 죽는다는 사실, 그리고 죽은 먹이가 썩으면 결국 자신도 죽게 된다는 사실을 배벌의 애벌레가 알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야. 물어뜯어려고 하지 않는 것은 본능에 의해 몸에 밴 순서와 틀리기 때문일 거야.'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곤충의 경우는 순서가 달라지면 결코 다시 고쳐서 할 수가 없습니다. 배벌의 애벌레가 먹이를 물어뜯어 구멍을 내는 동작은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배벌의 애벌레를 먹이의 등에 계속 그대로 두었다면 아마 죽고 말았겠지요. 선생님은 이 애벌레의 머리를 다시 원래대로 꽃무지 애벌레의 배 쪽 구멍으로 넣어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원상태가 되었지만 한 번 먹이에서 몸이 빠져 나온 애벌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식사의 중단은 곧 죽음 선생님은 이번엔 먹이를 먹고 있는 배벌의 애벌레를 일단 빼내어 같은 먹이의 배 위에 다시 놓아두는 실험을 했습니다. 작은 애벌레는 필사적으로 여기저기를 살펴보거나 기어 다닙니다. 그러나 아무 곳도 물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실험 때 등에 올려 놓은 애벌레와 똑같이 망설이고 있습니다. 등과 똑같이 배의 아무 곳이나 무턱대고 물어뜯으면 중요한 신경을 건드릴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파브르 선생님이 메스로 상처를 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꽃무지 애벌레는 죽어서 썩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알에서 깨어난 바로 그 곳 외에는 먹이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어미벌은 특별한 장소를 골라 알을 낳습니다. 어쩌면 그 곳이 에벌레에게는 가장 좋은 장소 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왜 그 곳을 선택했는지 우리들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애벌레가 먹는 곳은 어미벌이 알을 낳은 곳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 외의 곳은 결코 물어뜯지 않습니다. '정해진 곳만 물어라.'하고 본능이 애벌레에게 엄하게 명령했기 때문이겠지요. 먹이의 배 위에 놓여진 애벌레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가 간신히 처음 자기가 뚫은 구멍으로 머리를 집어 넣고는 천천히 꽃무지 애벌레의 몸 속으로 들어가 완전히 처음 상태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꽃무지 애벌레가 갑자기 썩어 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배벌 애벌레가 원래대로 먹이의 구멍 속에 머리를 집어 넣었는데도 꽃무지 애벌레가 썩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브르 선생님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추측했습니다. '애벌레가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는 도중에 방해를 받아 먹는 순서가 뒤섞였을 거야. 그래서 나중에 원상태가 되더라도 전에 먹던 곳을 잊어버린 거겠지. 애벌레가 먹이의 내장에 함부로 머리를 들이대고 갉아먹어서 꽃무지 애벌레가 죽어 버린 거야.' 그러나 원상태로 돌아간 애벌레 중에는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고치까지 만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배벌의 애벌레가 먹이를 먹을 때 방해를 받으면 죽는다는 것을 다른 방법으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어미배벌이 애벌레에게 주는 꽃무지 애벌레는 완전히 마취되어 전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럼, 죽은 듯이 마취된 먹이 대신에 활발히 움직이는 먹이를 주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은 당장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꽃무지 애벌레가 몸을 둥글게 말아 배벌 애벌레를 터뜨리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땅속에서 꺼낸 꽃무지 애벌레를 코르크 판 위에 뒤집어 놓고 끈으로 꽉 묶어 두었습니다. 배벌의 애벌레는 알에서 깨어난 장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곳에는 결코 구멍을 뚫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배벌이 알을 낳는 곳과 똑같은 장소에 조심스럽게 작은 구멍을 뚫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배벌의 작은 애벌레를 꽃무지 애벌레 위에 놓고 아까 뚫은 구멍으로 머리를 집어 넣은 뒤, 이 상태로 오목하게 들어간 부엽토 위에 놓고 뚜껑을 덮어 두었습니다. 꽃무지 애벌레는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다리로 할퀴거나 큰턱으로 물 수도 없습니다. 이틀이 지나도록 별다른 이상이 없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먹이가 마취되어 있지 않더라도 움직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꽃무지 애벌레는 결국 썩기 시작했고, 이 썩은 먹이를 먹은 배벌의 애벌레도 죽어 버렸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실험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꽃무지 애벌레는 원래 활발히 움직였지만 꽉 묶여 있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배벌의 애벌레가 꽃무지 애벌레를 물어뜯으면 꽃무지 애벌레는 아파서 내장과 근육을 수축시킨다. 그래서 특히 강한 근육이 경련하거나 움직이므로 먹기가 힘들어진 배벌의 애벌레는 아무 곳이나 함부로 물어뜯게 되고, 결국 꽃무지 애벌레는 죽게 되는 것이다. 마취시킨 먹이를 먹을 때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먹이는 아픔을 모르거나 또는 아파도 움직이지 못하므로, 배벌의 애벌레가 물어뜯어도 움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프다고 근육을 수축시키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배벌의 애벌레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고 정확한 곳을 깨물어 정해진 방법대로 먹을 수가 있다. 역시 배벌이 하는 대로 확실히 마취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동안 배벌의 애벌레에 관한 흥미가 점점 더해진 파브르 선생님은 또 다른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늘 먹던 것과 다른 먹이 그럼, 배벌에게 꽃무지 애벌레 이외의 것을 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정원의 부엽토 속에는 풍뎅이류의 애벌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완전히 성장한 애벌레의 3분의 1 크기인 유럽장수풍뎅이의 애벌레 두 마리를 골랐습니다. 이것은 꽃무지 애벌레의 크기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펜 끝에 암모니아를 묻혀 그 중 한 마리의 신경 중심을 찔러서 몸을 마취시킨 후 배에 상처를 내어 두줄배벌의 애벌레를 놓아두었습니다. 이 먹이는 두줄배벌 애벌레의 식성에 잘 맞았습니다. 물론 배벌 중 가장 큰 뜰배벌은 장수풍뎅이를 먹고 크게 성장하기 때문에 파브르 선생님이 실험에 사용한 뜰배벌의 친척인 두줄배벌이 이것을 먹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이윽고 두줄배벌의 애벌레는 장수풍뎅이 애벌레의 뱃속에 반 정도 들어갔습니다. 어쨌든 일이 잘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3일 만에 장수풍뎅이 애벌레는 썩기 시작했고 배벌의 애벌레도 함께 죽어 버렸습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암모니아 주사가 서툴렀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애벌레가 무심코 다른 곳을 물어 버렸을까요? 이것만으로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활발한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코르그 판에 묶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배에 작은 구멍을 뚫고, 배벌 애벌레의 목을 그 곳에 대 주었습니다. 그러나 또 실패였습니다. 2,3일 사이에 장수풍뎅이 애벌레는 썩어 버리고 배벌의 애벌레도 그것을 먹고 같이 죽어 버렸습니다.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먹기 복잡하고 어려운 먹이라는 것과, 또 근육을 수축하거나 하여 먹기 어려웠던 것이 원인이었겠지요. 파브르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직접 수술을 하지 않고, 마취에 능숙한 곤충의 힘을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마취의 명수 랑그도크구멍벌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입니다. 운 좋게 세 개의 랑그도크구멍벌 집에서 이들의 먹이인 민충이와 민충이의 몸에 붙은 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민충이는 살이 쪄서 배벌의 먹이와 크기가 비슷한 데다가, 더욱이 랑그도크구멍벌에 의해 마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험 재료료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세 마리의 민충이를 각각 부엽토가 든 병 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랑그도크구멍벌의 알을 떼어 낸 후 민충이의 배에 상처를 조금 내어 배벌의 애벌레를 그 곳에 놓았습니다. 이런 색다른 먹이를 애벌레는 과연 먹을까요? 선생님이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가운데 애벌레는 태연스럽게 먹이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3, 4일 간 계속 애벌레는 민충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민충이의 얇은 껍질을 통해 배벌의 애벌레가 계속 양분을 빨아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애벌레의 식욕은 꽃무지 애벌레를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왕성했습니다. 그런데 4일째 되는 날 민충이 세 마리가 모두 썩기 시작했고, 동시에 배벌의 애벌레들도 죽어 버렸습니다. 만약 파브르 선생님이 민충이의 배 위에 랑그도크구멍벌의 알을 그대로 두었다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은 민충이를 먹고 성장했겠지요. 그리고 민충이는 2주일간 먹혀 뱃속이 텅 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었겠지요. 이런 운명을 가진 랑그도크구멍벌의 애벌레가 선생님의 실험에 의해 같은 크기의 배벌 애벌레로 바뀐 것입니다. 이처럼 먹음직한 먹이도 먹는 곤충이 바뀌게 되면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금방 썩어 버리는 것입니다. 먹는 법의 명수 랑그도크구멍벌의 애벌레가 먹으면 민충이는 오래 살고, 두줄배벌 애벌레가 먹으면 금방 썩어 버리는 이유에 관해 파브르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애벌레는 각각 특별한 식사 방법을 알고 있다. 즉, 먹는 방법은 먹이의 몸 형태에 따라 정해져 있다. 랑그도크구멍벌의 애벌레는 조상 때부터 먹어 온 민충이라는 먹이를, 생명에 지장이 없는 곳부터 조금씩 파먹기 때문에 미충이는 최후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배벌의 애벌레는 꽃무지 애벌레를 먹는 방법은 알고 있어도 민충이를 먹는 법은 모른다. 맛있다는 것은 알지만 먹는 순서를 모르기 때문에 먹이 몸 속의 중요한 기관을 실수로 물어뜯어 결국 먹이가 죽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파브르 선생님은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배벌의 애벌레도 먹이인 민충이가 신선할 때에는 건강하게 자랍니다. 그러다가 도중에 죽는 이유는 먹이가 죽기 때문입니다. 즉, 먹이가 썩으면 프토마인이라는 독이 생기고, 이 독에 의해 벌의 애벌레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만일 애벌레가 순서대로 민충이를 먹을수만 있다면 늘 먹던 것과 다른 먹이라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꽃무지 애벌레를 먹는 배벌 애벌레의 솜씨는 정말 대단해. 단 한 마리의 먹이를 산 채로 2주일씩이나 파먹을 수 있다니^5,5,5^." 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사냥벌들은 꽃무지 애벌레와 민충이가 자기 자식들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애벌레들은 어떻게 먹는 법을 알게 되었을까요? 만일 애벌레가 무턱대고 먹이를 물어뜯으면, 먹이는 금방 썩게 되고 애벌레도 중독되어 죽어버립니다. 자손을 늘리기 위해서는 갓 태어난 애벌레들일지라도 먹어도 될 부분과 먹어서는 안 될 부분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어려운 일을 한치의 실수도 없이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실험해 본 배벌의 애벌레들은 모두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부터 그렇게 먹는 법을 익혀 온 명수들의 자손들이었겠지요. 이처럼 먹는 법의 명수라 해도 민충이를 먹이로 내밀었을 때는 방법이 틀려 먹이가 썩어 버렸고, 그래서 결국 자신도 죽고 만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 시대의 진화론자들의 입장에서 이것을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벌의 애벌레는 어느 날 우연히 정확히 먹는 법을 발견했고, 이것이 자손에게 물려지는 사이에 먹는 법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상황에 알맞은 우연히 그렇게 차례차례로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배벌이 꽃무지라는 먹이를 선택할 때까지는 거미, 메뚜기 등 여러 가지 벌레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보았을까요? 또한 그것을 먹이로 받은 애벌레는 몸의 어느 부위든 가리지 않고 모든 곳을 물어뜯는 사이에 정확히 먹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을까요? 벌의 애벌레가 지닌 본능이 진화론자들의 말처럼 그렇게 조금씩 습득되어진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갖고 있던 것인지에 관해 함부로 논의하기보다는 실험과 관찰에 의해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그런데 두줄배벌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꽃무지 애벌레의 몸에서 일단 떨어져 나간 배벌의 애벌레는 스스로 먹이에 새로운 구멍을 뚫고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곤충의 애벌레 가운데는 알에서 갓 깨어났을 때는 강한 이빨이 있어서 물어뜯을 수가 있지만 허물을 벗으면 이빨이 없어지고 액체를 빠는 데 필요한 입으로 바뀌는 것이 있습니다. 배벌 애벌레의 경우도 어느 때부터인가 그 이빨이 없어져 물어뜯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꽃무지 애벌레에서 한 번 떨어져 나온 배벌의 애벌레를 다시 원래의 장소로 가져 가면 꽃무지 애벌레는 죽어서 썩어 버립니다. 어것은 배벌 애벌레의 몸이 다른 장소의 공기에 닿았기 때문에 상처 부위로 세균이 들어가 썩게 되었겠지요. 이 때 상처난 부위를 깨끗이 소독했다면 살지 않았을까요? 현대 과학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생각할 거라고 짐작됩니다. 파브르 선생님 시대에는 세균의 역할이라든가 부패의 원인에 관한 학문이 별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까 본 것처럼 어미벌이 알을 낳은 장소에서 애벌레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꽃무지의 애벌레가 썩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알에 살균력이 있는 점액이 칠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실험으로부터 100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도 많고, 꼭 한 번 조사해 보고 싶은 내용도 아직 많습니다. (3) 지하 벌집 속에서의 드라마 배벌의 고치 만들기 배벌의 애벌레가 성장하는 기간은 평균 12일 정도입니다. 고치를 만들 때쯤이면 먹이인 꽃무지 애벌레의 몸은 쭈글쭈글해지고,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게 되면 곧 죽습니다. 완전히 성장한 배벌의 애벌레는 이제는 쓸모 없어진 쭈글쭈글한 꽃무지 애벌레의 껍질을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방 안쪽 벽을 깨끗이 치우고 고치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애벌레는 먼저 입에서 토해낸 명주실을 방 천장에 둘러칩니다. 그러면 피처럼 빨간색 그물이 됩니다. 애벌레는 이 그물을 기초로 고치 윗부분을 만듭니다. 주둥이가 넓은 병에 부엽토를 깔고 이것을 약간 오목하게만 해두면 천장이 없기 때문에 실을 제대로 치지 못합니다. 그러면 배벌의 애벌레는 빨간색을 띤 두꺼운 삼베 같은 것을 오목한 바닥에 까는 것이 고작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죽기도 합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천장 대신 둥글게 만 종이를 씌웠습니다. 안쪽을 보고 싶으면 그 종이를 들어올리면 됩니다. 24시간 후에는 고치가 됩니다. 애벌레는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치 안에서는 벌레가 계속 실을 뽑아 내어 벽을 두텁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갓 만들어진 고치는 짙은 빨간색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한 밤색으로 변합니다. 모양은 가늘고 긴 타원형이며, 길이는 26 밀리, 너비는 11 밀리 정도입니다. 이것은 암컷 고치의 크기이고, 수컷고치는 이보다 작아서 길이는 17 밀리, 너비는 7 밀리 정도입니다. 이 고치는 타원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에 머리가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머리가 있는 쪽은 고치가 부드럽고, 꽁무니 쪽은 딱딱합니다. 고치는 이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깥쪽 고치는 얇고 부드러워 뚫기 쉽습니다. 꽁무니 쪽은 바깥쪽과 안쪽의 고치가 착 달라붙어 있습니다. 안쪽의 고치는 튼튼하고 탄력이 있으며, 게다가 꽤 단단합니다. 고치를 다 만든 애벌레가 위에서 진한 적갈색 위액을 토해 내어 명주로 된 안쪽 고치를 적셔 플라스틱처럼 딱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고치의 꽁무니 쪽에 이 액체가 많이 괴어 바깥쪽과 안쪽의 고치를 접착시키는 것입니다. 배벌이 성충이 되는 때는 7월 초순입니다. 벌이 고치에서 밖으로 나올 때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멋지게 나옵니다. 먼저, 고치의 머리 아래쪽이 둥글게 깨끗이 찢어져 모자가 벗어지듯이 열립니다. 어떻게 했길래 안쪽의 뚜껑이 이처럼 멋지게 열릴까요? 큰턱을 가위처럼 사용해 싹뚝싹뚝 자를까요? 그러나 이처럼 깨끗하게 잘린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큰턱은 면도칼처럼 날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정확하고 깨끗하게는 자르지 못하겠지요.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깨끗해게 고치에서 나오는 또 다른 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 7권에서 설명한 왜코벌입니다. 선생님은 왜코벌이 고치 만드는 법을 참고로 하여 배벌이 고치 만드는 법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순서입니다. 1. 배벌은 방의 벽에 명주실을 쳐서 매우 얇은 바깥쪽 고치를 만듭니다. 2. 실로 안쪽에 자신이 들어갈 고치를 만든 후, 입에서 토해 낸 갈색 액채로 이것을 딱딱하게 만듭니다. 3. 안쪽 고치에 뚜껑을 만듭니다. 즉, 애벌레는 먼저 안쪽의 고치를 만들고 그 다음에 뚜껑을 만들기 때문에 이음새가 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벌이 안에서 밀면 뚜껑이 딱 하고 열리는 것입니다. 시체처럼 쭉 뻗다 배벌의 애벌레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해 두고, 그 먹이가 되는 꽃무지 애벌레에 관한 이야기를 합시다. 어미배벌은 꽃무지 애벌레를 마취시켜 전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마취가 안 된 꽃무지 애벌레는 조금만 건드려도 발버둥치며 몸을 둥글게 오므립니다. 머리와 꽁무니를 딱붙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똑바로 펴려면 힘이 듭니다. 배벌은 꽃무지 애벌레의 배에 알을 낳습니다. 혹시 먹이가 몸을 둥글게 말아 배벌의 알과 갓 깨어난 애벌레를 꽉 죄기라도 하면 큰일나겠지요. 그래서 이 죄는 힘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꽁무니도 움직이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배벌의 애벌레가 먹이 먹는 순서가 틀려지기 때문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사냥벌의 침에 의해 마취된 먹이를 꽤 많이 보았지만 이 꽃무지 애벌레처럼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없었습니다. 나방 애벌레라든가 귀뚜라미, 메뚜기, 민충이처럼 껍질이 부드러운 먹이는 침으로 찌르면 몸을 움직이거나 비트는데 이 꽃무지 애벌레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입은 벌리기도 하고 다물기도 하며, 짧은 수염과 더듬이를 떨기도 합니다. 그러나 침끝으로 몸의어디를 찔러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진짜 죽은 것이 아닐까 생각될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배벌이 어디서 어떻게 이런 완벽한 수술을 하는가를 알게 되면 한층 더 놀랄 것입니다. 배벌은 부엽토 속에 숨어 있는 풍뎅이의 애벌레를 어둠 속에서 사냥합니다. 몸 주위로는 계속해서 흙이 떨어져 내리기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벌의 몸을 한입에 찢어 버릴 정도로 무서운 꽃무지 애벌레의 큰턱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게다가 위험하다고 느끼면 꽃무지 애벌레는 몸을 둥글게 오므려 자신을 보호합니다. 이렇게 해서 단 한군데의 약점인 배를 감추는 것입니다. 이런 상대를 제압하여 마취에 필요한 곳을 정확히 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배벌이 꽃무지 애벌레를 공격하는 장면과 그후에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조사해 보고 싶었지만 공격은 퇴비 더미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땅속에서의 사냥 퇴비 더미 속에 들어간 배벌의 행동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아마 배벌은 전에 본 곰보나나니와 똑같은 감각으로 꽃무지 애벌레를 발견한 것이다. 곰보나나니는 땅속에 있는 야도충을 찾아낼 때 더듬이로 땅을 두드리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배벌은 부엽토 더미 속으로 파고들어가 살이 통통하게찐 꽃무지 애벌레를 발견하게 된다. 공격을 받은 꽃무지 애벌레는 재빨리 몸을 둥글게 말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그러나 배벌은 꽃무지 애벌레의 목을 깨문다. 둥글게 만 몸을 펴는 일은 사람이 해도 힘이 들 정도이므로 벌에게는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곳, 약점이 있다. 그 곳은 꽃무지 애벌레의 목아래쪽이나 목구멍 부위가 분명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애벌레가 벌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고 몸을 둥글게 말 때 목 부위는 밖으로 드러나 있어, 벌은 이 곳을 침으로 찌른다. 목에 침을 찔린 애벌레의 몸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신경이 마비되어 근육이 둔해진 꽃무지 애벌레의 몸은 쭉 펴지게 됩니다. 그러면 배를 완전히 드러내게 되고, 이 때 배벌이 그 위에 알을 낳는 것입니다. 이렇게 먹이에 알을 낳은 어미벌은 그대로 터널을 파 나가 또 다른 먹이를 찾아내어 다시 침으로 마취시킨 뒤 알을 낳는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이 추리가 맞다면 목 아래를 한 번 쏘이는 것으로 몸이 완전히 마비되는 꽃무지 애벌레의 신경 조직은 다른 곤충과는 다르다는 뜻이 됩니다. 보통 애벌레는 각 체절마다 하나의 신경 중심을 가집니다. 곰보나나니의 먹이인 야도충이 그렇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나나니는 큰 야도충의 경우 완전히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첫 체절에서 끝 체절까지 몇 번이나 체절의 신경 중심을 침으로 쏩니다. 만일 꽃무지 애벌레가 야도충과 똑같은 신경 조직을 가진다면 침으로 한 번 쏘인 것만으로는 마비가 안 될 것입니다. 꽃무지 애벌레는 힘도 세고, 또 몸을 방어하므로 이 애벌레를, 그것도 땅속에서 각 체절마다 침으로 쏜다는 것은 벌에게 있어서도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애벌레의 급소를 단 한 번쏘아 완전히 마비시켜야 합니다. 그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꽃무지 애벌레가 몸을 둥글게 말았을 때 벌이 쏠 수 있는 곳은 목 아랫부분밖에 없습니다. 아마 이 곳에 신경절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추리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꽃무지 애벌레를 해부하여 신경 조직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먼저, 애벌레를 벤젠에 48시간 담가 지방을 녹였습니다. 해부 결과는 선생님이 추리한 것과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배벌이 마치 훌륭한 생물학자처럼 느껴졌습니다. 꽃무지 애벌레의 가슴과 배의 신경절은 한 덩어리로 되어 목 아랫부분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얀색을 띤 작은 원통형으로 길이가 약 3 밀리, 폭은 0.5 밀리였습니다. 배벌이 침으로 이곳을 푹 찔러 단번에 온몸을 마취시키는 것입니다. 세 종류의 배벌 모두가 풍뎅이류의 애벌레를 먹이로 사냥합니다. 즉, 뜰배벌은 유럽장수풍뎅이의 애벌레를, 두줄배벌은 꽃무지 애벌레를, 그리고 육점긴배벌은 수염풍뎅이의 애벌레를 땅속에서 수술합니다. 배벌도 모든 곤충들의 애벌레 가운데 특별히 신경절이 한군데 모여 있는 풍뎅이의 애벌레만을 먹이로 고르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구나. 다른 배벌도 틀림없이 풍뎅이의 애벌레를 먹이로 할 거야.'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왕성한 번식으로 밭의 야채 뿌리를 갉아먹음으로써 해를 끼치는 왕풍뎅이의 애벌레도 아마 배벌류의 애벌레를 위한 먹이가 되겠지요. 중세 유럽에서는 농민들이 카톨릭 신부님에게 부탁하여 왕풍뎅이류를 파문시킨 일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즉, 왕풍뎅이를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추방시켰던 것입니다. 여름날 저녁, 솔잎을 마구 먹어 치우는 풍뎅이가 있습니다. 밤색바탕에 흰 반점이 찍히고, 멋진 더듬이를 가진 이 수염풍뎅이의 애벌레도 틀림없이 배벌의 일종인 주홍배벌 애벌레의 먹이가 되겠지요. 이런 풍뎅이류의 애벌레는 대개 농작물을 해치는 해충이기 때문에 이들을 잡아먹는 배벌은 익충이 되는 셈입니다. 등으로 기는 신기한 벌레 마지막으로 꽃무지 애벌레의 이상한 습성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애벌레에 대해서는 제 5권에서 한 번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먼저 기는 법을 보도록 합시다. 꽃무지 애벌레는 언제나 거꾸로 뒤집혀서 등을 땅에 대고 기어다닙니다. 배를 위로 하고, 다리는 버둥거릴 뿐입니다. 등에 난 거친 솔 같은 털을 이용해 지렁이가 기어가듯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양한 곤충의 세계에서도 이렇게 기어 다니는 것은 없습니다. 어느 정도 퇴화하긴 했지만 가슴에 정확히 세 쌍의 다리가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는 모습을 처음 보는 보는 사람은 모두 이 벌레가 죽기 전에 발버둥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몸을 똑바로 해 두면 다시 거꾸로 뒤집습니다. 몇 번을 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는 등으로 기어 다닙니다. 이것이 이 벌레가 편평한 장소에서 움직이는 방법입니다.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렇게 거꾸로 기는 곤충은 꽃무지 애벌레밖에 없습니다. 오래되어 안이 썩은 버드나무나 나무 밑둥, 그리고 부엽토 더미를 파헤쳤을 때 살이 통통하게 찐 흰 벌레가 나오면 기어가게 해 봅시다. 만일 등으로 기어가면 꽃무지 애벌레가 틀림없습니다. 등으로 기어가긴 하지만 다리로 기어가는 다른 애벌레와 빠르기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미끌미끌한 곳을 다리로 기는 애벌레는 잘 미끄러집니다. 이에 비해 등에 솔같이 딱딱한 털이 나 있는 혹을 가진 꽃무지 애벌레가 더 빠르게 기어갈지도 모릅니다. 윤이 나는 판자와 종이 위, 그리고 유리관 위에서도 꽃무지 애벌레는 부엽토 위에서와 똑같이 기어갑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테이블 위에 놓고 기어가게 해 보니 1분에 20센티나 움직였습니다. 까칠까칠한 종이 위에서도 20센티였습니다. 미끄워서 기어다니기 힘든 유리관 위에서도 1분에 10센티나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수염풍뎅이와 유럽장수풍뎅이 등 다른 배벌의 먹이가 되는 풍뎅이류의 애벌레는 어떨까요? 꽃무지의 애벌레는 수염풍뎅이의 애벌레와 겉모양도 매우 비슷하며, 희고 통통하게 살이 쪄 있습니다. 머리 부분은 적갈색의 모자를 쓴 것 같고, 구멍을 파거나 식물의 뿌리를 끊기도 합니다. 또한 검고 튼튼한 큰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풍뎅이류의 애벌레는 꽃무지 애벌레보다 조금 강한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리 끝을 자세히 살펴보면 굽은 발톱이 달려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으면 몸을 둥글게 말아 옆으로 누워 버립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기어가지도, 가꾸로 눕지도 못한 채 다리를 버둥거릴 뿐입니다. 이 벌레는 항상 몸을 오므린 채로 있습니다. 몸을 바로 펴는 일이 없습니다. 축축한 모래 위에 두어도 역시 움직이지 않고 몸을 낚싯바늘처럼 하고 옆으로 누워 있을 뿐입니다. 땅속으로 들어갈 때는 딱딱한 머리와 큰턱을 구멍 파는 기계처럼 사용하고 다리도 이 작업을 조금 거들어 줍니다. 이렇게 해서 수염풍뎅이 애벌레는 간신히 얕은 구멍을 팝니다. 그리고 몸에 나 있는 짧고 딱딱한 털을 조금씩 움직여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유럽장수풍뎅이 애벌레는 몸이 수염풍뎅이 애벌레의 네 배나 되는 것 말고는 모양이 거의 같습니다. 몸이 굽어 있는 것과 다리로 설 수 없는 것도 같습니다. 차이는 단지 몸이 훨씬 크다는 것뿐입니다. 배벌과 꽃무지의 결전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배벌은 어두운 땅속에서 풍뎅이류의 애벌레를 잡는 것이 특기입니다. 그러므로 아까 말한 것처럼 밝은 곳에서 꽃무지 애벌레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배벌이 땅 위에서 먹이를 공격하는 것을 보려는 생각은 아예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시험삼아 두줄배벌 암컷과 꽃무지 애벌레를 유리병에 함께 넣어 보았습니다. 밑져야 본전입니다. 그런데 병 속에서 무서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처음부터 포기하지 말고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벌이 있다는 걸 알아린 꽃무지 애벌레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몸을 뒤집어 유리병 속을 거꾸로 기어 다니고 있습니다. 거꾸로 기어 다니는 꽃무지 애벌레에게 덤벼들어 꽁무니에 올라탄 배벌이 머리 쪽으로 다가가려고 하자, 꽃무지 애벌레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배벌을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이러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드디어 배벌이 꽃무지의 목줄기를 꽉 물었습니다. 배벌은 신중하게 마취시킬 곳을 찾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배벌에게 목줄기를 물린 채 거꾸로 기고 있던 꽃무지 애벌레가 갑자기 몸을 둥글게 말면서 머리를 확 흔들어 배벌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배벌은 또다시 꽃무지의 꽁무니에 올라가 머리 쪽으로 움직여 목줄기를 물고 꽁무니로 침을 쏠 곳을 겨냥합니다. 꽃무지 애벌레는 필사적으로 몸을 꼬거나 뒹굴기 시작합니다. 배벌도 꽃무지 애벌레의 목줄기를 문 채로 같이 뒹굽니다. 이윽고 배벌이 애벌레의 목 아래쪽 급소에 침을 한 차례 쏩니다. 침에 쏘인 애벌레는 곧 근육이 굳어져 꼼짝 못하게 됩니다. 이로써 꽃무지 애벌레의 급소는 목 아래쪽 부위라는 파브르 선생님의 추측이 옳았다는 게 증명된 셈입니다. 땅속에서도 이 유리병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배벌의 승리로 끝이 나겠지요. 오히려 땅속에서는 흙이 방해가 되어 꽃무지 애벌레가 도망치기 어려우므로 배벌이 싸우기 편한 상황이 되겠지요. 브르네오 섬의 거대한 배벌 배벌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자세히 설명했으나 한 가지 더, 열대지방에 사는 몸이 큰 거대 종에 관해 덧붙이겠습니다. 프랑스의 뜰배벌도 크고 용맹스러운 벌이지만 남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는 믿지 못할 정도로 큰 종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르네오 섬에 사는 배벌은 몸길이가 뜰배벌의 몇 배나 됩니다. 벌을 좋아하는 어느 생물학자는 이 벌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내가 보르네오의 최고봉인 키니발루 산 기슭을 걸어갈 때였습니다. 갑자기 울창한 수풀 속에서 뭔가 큰 물체가 붕 하고 큰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지나갔습니다. 순간적으로 '벌이다!'라고는 생각했지만 너무 커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몸에는 검은색 바탕에 황백색의 반점이 있었습니다. 또 나타나겠지, 하고는 나무 그늘에 앉아 쉬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기다렸을 때였습니다. 길 저편에서 황백색 반점을 띤 검은 물체가 똑바로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검은 물체를 포충망으로 잡았습니다. 이 때의 느낌은 마치 말벌을 잡았을 때와 비슷했습니다. 포충망 속에 갇힌 벌은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포충망에 구멍이 뚫리고 검고 큰 벌의 머리가 튀어나왔습니다. 벌에 익숙한 나조차도 이렇게 간단히 포충망을 물어뜯어 구멍을 내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 때 내 머릿속에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읽었던 '파브르 곤충기'에 쓰인 배벌에 관한 내용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배벌은 허리가 굵어 몸을 날쌔게 굽힐 수 없기 때문에 쏘려고 하면 피할 수가 있다. 게다가 쏘이더라도 별로 아프지 않다.' 그래서 나는 침착하게 포충망을 뚫고 나오는 거대한 벌을 손으로 잡았습니다. 확실히 허리가 굵어 재빨리 침을 쏠 수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 거대한 벌은 도대체 어떤 먹이를 사냥하는 것일까요? 보르네오 섬에 있는 거대한 풍뎅이류로는 모랜캄푸장수풍뎅이와 아틀라스장수풍뎅이가 있는데, 이들의 애벌레를 사냥하는 것일까요? 이 벌의 생활에 관해서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열대지방으로 가서 그런 연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곤충이란 무엇인가? 2.) (곤충에는 뼈가 없다.) (곤충의 몸의 구조) 살아 있는 곤충을 잡으면 자세히 살펴본 후 손으로 만져 보세요. 손톱으로 톡톡 쳐보면 단단한 느낌이 듭니다.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는 물론 메뚜기 등도 피부가 꽤 단단합니다. 사람의 피부와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람의 피부는 부드럽습니다. 그래도 흐물흐물하지 않고 똑바로 서서 걷거나 달리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길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 속에는 단단한 뼈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뼈에 근육이 붙어 있어서, 이 근육이 수축되거나 이완되는 힘에 의해 운동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에게 뼈가 없다면 문어 같은 연체 동물과 마찬가지로 흐물흐물해져서 물 속이 아니면 생활할 수 없겠지요. 곤충의 경우는 몸 속에 뼈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단한 피부에 근육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외골격이라 하지요. 사람으로 친다면, 철갑옷과 투구를 쓰고 걸어 다니는 중세 유럽의 기사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곤충뿐만 아니라 새우, 게, 그리고 거미류도 외골격을 하고 있고, 움직이는 부분은 관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절족 동물'이라고 부릅니다. 육상에서 사는 절족 동물 중에서도 종류와 수가 가장 많고 널리 퍼져 있는 것이 곤충입니다. (대단한 운동 능력) 곤충의 운동 능력은 대단합니다. 예를 들면 벼룩은 순간의 점프로 약 30센티 정도 뛰어오릅니다. 이것은 자기 키의 200배나 됩니다. 사람으로 치면 높이뛰기에서 신장이 1 미터 50센티인 사람이 300 미터나 뛰어오르는 것이 됩니다. 또 잠자리와 나방의 일종인 박각시 중에는 시속 40 킬로의 속도로 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파리 중에는 호버링(공중 정지 비행)과 급상승 등 자유 자재로 날 수 있는 종류도 있습니다. 원래 곤충은 지구상에서 최초로 공중을 난 생물이었습니다. 곤충의 경우, 대형 동물들처럼 화석을 많이 남기기는 어렵지만 가끔씩 발견되는 화석을 분석해 본 결과 약 3억 년 전에 벌써 날개가 있는 곤충들이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파충류가 공중을 날 수 있게 된 것이 이보다 1억 년 후이며, 새의 경우는 파충류보다 4천만 년 정도 후입니다. 곤충은 하늘을 날게 된 덕택으로 먹이를 잡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수컷이 암컷을 발견하기도 쉬워졌습니다. 그리고 곤충 중에는 잠자리처럼 물체를 잘 볼 수 있는 겹눈과, 참나무산누에나방처럼 더듬이가 발달한 것도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헬리콥터나 비행기에 성능이 좋은 레이더나 안테나가 달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안테나라는 말은 라틴어로 곤충의 더듬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곤충은 작은 몸에 비해 힘이 매우 센 편입니다. 흑노래기벌은 자기 몸무게보다 두 배나 무거운 바구미를 안고 가볍게 날고, 꿀벌은 몸무게의 300배나 되는 것을 끌 수 있습니다. 이 힘은 사람으로 치면 큰 트럭 세 대를 한꺼번에 끌어당기는 것과 맞먹는 것입니다. 곤충이 이처럼 대단한 운동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도 탄탄한 외골격에 강한 근육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외골격은 건조한 날씨에도 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표면이 밀랍 같은 물질로 덮여 있어서 물을 흡수하지도 않고, 또한 내부의 수분이 날아가는 것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사막에서도 곤충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피부가 갑옷처럼 딱딱하므로 몸이 커짐에 따라 이것을 벗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곤충이 성장을 위해 껍질을 벗는 것을 탈피(허물벗기)라고 하는데, 탈피한 직후에는 피부가 부드럽고 적에게 공격당하기 쉬우며 약간의 잘못으로도 죽어 버리기 쉽습니다. 곤충 중에는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 번데기 성충이라는 믿기 어려운 변화, 즉 변태를 하는 것이 많은데, 그 때마다 탈피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만큼 위험도 많이 따르는 것입니다. (엄청난 번식력) 곤충은 어느 곳에나 많이 있습니다. 무에 붙어 있는 배추흰나비의 애벌레는 농부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순식간에 잎을 갉아먹어 버리며, 장미의 새순에 붙는 진딧물은 일주일도 채 안 되어 새순을 총총히 둘러쌀 정도로 수가 불어납니다. 곤충이 늘어나기 위한 무기의 하나가 이처럼 무서운 번식력입니다. 예를 들면, 파리 한 마리는 약 1,000개의 알을 낳습니다. 만약 이것이 전부 살아 남았다고 가정하고, 이 중 절반이 암컷이라고 하면 다음 세대는 500 X 1000개의 알을 낳는 꼴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는 500 X 500 X1000 = 2억 5천만 개의 알을 낳는 것이 되고, 또 그 다음 세대는 500 X 500 X 500 X 1000 = 1250억^5,5,5^ 이라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로 늘어나게 됩니다. 어떤 학자의 계산에 의하면 이런 식으로 1 년 간 늘어난 파리를 모아 한 덩어리롤 만들면 지름이 1억 5천 3백 6십만 킬로인 원이 된다고 합니다. 그 길이는 지구에서 태양까지를 이을 수 있는 거리입니다. 물론 이것은 계산일 뿐이고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구상에는 그 정도 되는 파리의 애벌레를 키울 만한 먹이도 없고, 또한 파리의 애벌레가 크게 발생하면 다른 곤충과 새들이 이들을 잡아먹습니다. 그래도 먹히지 않은 파리가 많을 경우에는 파리들 사이에 전염병이 발생해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조건만 좋다면 곤충은 이처럼 엄청난 번식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꿀벌과 파브르 선생님 고대 그리스 시대나 옛날 유럽에서 벌꿀은 귀중한 음식이었습니다. 술도 벌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만드는 꿀벌도 소중하게 보호하였습니다. 꿀벌의 집에서는 꿀 외에도 양질의 밀랍이 생산되는데, 밀랍은 신에게 바치는 양초의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꿀벌은 신을 섬기는 좋은 벌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꿀벌에 관한 연구는 파브르 선생님 시대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파브르 선생님 자신은 꿀벌에 관한 연구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벌목에 속하는 개미에 관해서도 별로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꿀벌도 개미와 같이 여왕벌, 일벌, 수벌이 있어서 각각 일을 나누어 하고 있습니다. 꿀벌이나 개미집 속에는 역할이 확실하게 정해진 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꿀벌과 개미를 '사회성 곤충'이라고 부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혼자 사냥을 해서 새끼를 키우는 사냥벌을 연구했습니다. 사냥벌의 생활은 고독합니다. 자기 혼자서 묵묵히 힘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파브르 선생님의 관심을 끈 것이 아닐까요? 선생님도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연구를 하지 않았습니까? 모두 어울려 떠들썩하게 일을 하는 꿀벌의 생활은 파브르 선생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곤충기'에 꿀벌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벌과 개미류 벌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 모양과 습성도 매우 다양하지만 꿀벌과 말벌, 그리고 쌍살벌처럼 멋진 집을 지어 사회 생활을 하는 벌이 가장 진화된 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가장 원시적인 것은 애벌레가 식물을 먹고 성장하는 종류입니다. 여기에 속하는 벌들은 허리가 가늘지 않습니다. 사냥벌처럼 먹이를 침으로 마취시킬 필요가 없으므로 허리를 갑자기 굽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개미는 배벌에 가까운 종류로부터 갈라져 나와 주로 땅속에 집을 짓고 생활합니다. 자신이 직접 일을 하거나 다른 개미를 잡아 노예로 삼는 것도 있습니다. 땅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날개가 필요 없으므로 결혼 비행 후에는 날개가 떨어져 나갑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진화론에 반대했습니다. 사냥벌의 생활사를 보면 우연히 사냥 방법을 알게 되고, 이것이 자손에게 전해져 점점 능숙하게 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정확한 것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벌류의 관계는 대략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묵자책 250--251쪽 참조.) 벌을 찾는 법과 사육법 파브르 선생님이 관찰한 벌의 교묘한 생활사를 읽으면 곤충이 진짜 이런 일을 할까 하고 신기하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야외에 나가서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벌은 대체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근처에 있습니다. 깊은 산속보다 절이나 묘지 등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지금까지 많은 벌을 보았을 텐데 주의 깊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스쳐 자나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검은색 바탕에 옆으로 오렌지색 띠를 두른 것은 대모벌, 꽁무니를 쭉 늘이고 우아하게 나는 것은 나나니입니다. 끈질기게 따라가서 무엇을 하는지, 가능하면 자세하게 메모해 둡시다. 파브르 선생님의 '곤충기'에 쓰인 대로 관찰될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려 보면 더욱 즐겁겠지요. 비가 드리치지 않는 농가의 처마 밑에 매달아 둔 대나무를 조사해 보면 진흙과 이끼로 입구를 막은 벌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감탕벌이나 루리나나니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벌이 지은 집입니다. 가는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서 실이나 테이프로 붙인 다발을 처마에 달아 두면 벌이 날아와 집을 짓기도 합니다. 어리호박벌은 오동나무를 매달아 두면 집을 짓는데, 이 벌은 도시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