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곤충기 3 매미 노래의 비밀 저자: 오쿠모토 다이사부로 역자: 이종은 감수: 김학열 출판사: (주)고려원미디어 (책머리에) (이 책에 나오는 곤충들 3) '곤충기'는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가 약 60 년 간의 연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하여 쓴 책입니다. 원서는 분량이 많고, 모두 10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중에서 특히 재미있고 중요한 부분만을 추려서 고쳐 쓴 것입니다. 총 8권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권은 파브르의 전기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곤충 가운데 특정한 지역에만 사는 것에는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또, 파브르가 살던 시대의 프랑스의 여러 가지 풍습과 습관에 관해서도 간혹 설명을 하였습니다. 현대의 곤충학자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보충해 두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매미와 나방, 나비, 그리고 이들 애벌레의 생활을 소개하겠습니다. 매미는 여러 해 동안 흙 속에서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먹으며 살다가, 한여름에 땅 위로 기어 나와 나무 위에서 큰소리로 노래합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래하는 걸까요? 그리고 매미 자신은 어떤 소리를 듣고 있을까요? 파브르는 매우 독특한 실험으로 이같은 수수께끼에 도전하였습니다. 큰배추흰나비의 애벌레는 굉장한 대식가입니다. 그렇지만 먹이인 양배추가 옛날부터 맛있는 야채였을까요? 파브르는 배추벌레와 양배추의 관계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은 유럽에서 가장 멋있는 나방입니다. 어느 날 밤에 그 수컷들이 집 안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금방 태어난 나방의 암컷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암컷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진 파브르는, 연구 끝에 오늘날 우리가 '페로몬'이라 부르는 특별한 물질이 있음을 밝혀 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는 언제나 일렬로 행진합니다. 만약 이 행렬이 지나가는 길이 둥근 원처럼 되어 있다면 송충이는 계속해서 빙빙돌까요? 이 실험은 파브르와 송충이 사이의 인내력 싸움이 되었습니다. 본능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여기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I. 매미 노래의 비밀 1. 매미와 개미 이야기 한여름의 가수 긴 장마와 함께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이면 나무 위에서 '지'하고 울어 대는 벌레가 있습니다.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지만 소리나지 않도록 살며시 다가가 봅시다. 나무줄기를 꼭 닮은 갈색 매미가 배를 움츠렸다 폈다 하면서 열심히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털매미지요.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하면 '짓' 하는 한마디와 함께 오줌을 찍 뿌리고 날아가 버립니다. 더위가 심해지면 '지, 지'하고 우는 유지매미가 나타납니다. 마치 튀김감이 기름에 튀겨지는 듯한 소리입니다. '맴맴'하고 우는 참매미는 아름다운 녹색에 검정 무늬가 있는 멋진 매미입니다. 맴맴맴맴 하는 소리는 마치 사람이 코를 잡고 매미 소리를 흉내내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옻칠을 한 것처럼 검게 빛나는 몸에 금빛 솜털이 나 있고, 투명한 날개에 풀빛 줄무늬가 있는 당당한 모습의 말매미는 큰소리로 '샤샤샤'하고 웁니다. 산에 가면 이른 아침과 저녁 어두워질 무렵에 맑고 높은 소리로 '쓰르쓰르쓰르'하고 우는 저녁매미가 있습니다. 이 저녁매미는 제주도에 서식하고 있으며 우는 소리가 정말 시원합니다. 여름이 거의 지나가고 슬슬 여름방학 숙제가 걱정이 될 무렵에 울어대는 것이 애매미입니다. '줄줄줄줄 주울주울'하고 되풀이하여 우는 소리는 마치 "여름이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라고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밖에도 우리 나라에는 멋진 매미가 많이 있는데, 전부 18종쯤 됩니다. ------------ 게으름뱅이로 취급된 매미 프랑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라 퐁텐이라는 시인이 쓴 '우화'를 배웁니다. 이것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모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이솝 우화집'과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짧은 이야기가 읽기 좋은 시의 형태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외우기 쉽고 내용도 오래오래 가슴에 남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것을 프랑스어의 표준으로 삼아 아이들에게 암송시켜 왔습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어렸을 적에 라 퐁텐이 쓴 '매미와 개미 이야기'를 큰소리로 몇 번씩이나 읽고 외웠습니다. 그것은 이런 시입니다. 여름내 노래하던 매미는 북풍이 불어오자 무척 생활이 곤란해졌다. 파리나 지렁이를 한 도막도 먹지 못한 매미는 옆집에 사는 개미네 집에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으니 내년 봄까지 먹을 식량을 조금 빌려 달라고 부탁하러 갔다. "부탁입니다. 수확하기 전에 꼭 이자까지 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매미는 개미에게 말했다. 개미는 빌려 주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은 개미의 가장 작은 결점이지. "더운 여름엔 뭘 하시고?" 빌리러 온 매미에게 개미가 물었다. "밤이나 낮이나 여러분을 위해 노래를 불러 드렸어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요? 좋은 일이군요.그럼 이번엔 춤을 추면 되겠군요." 여기에서는 매미를 놀기만 하고 장래의 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인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나이가 들면 비참한 꼴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 이 이야기의 목적인 듯합니다. 한편 개미는 부지런한 가정 주부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신의 일만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꽤 인색하고 심술궂어 보이는군요. 고생을 많이 한 파브르 선생님은 이런 몰인정한 이야기가 무척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럼 이번에 춤을 추면 되겠군요."라고 심한 말을 한 개미에게 분개하는 대신 매미를 동정했습니다. 이 이야이 속에서 라 퐁텐이 매미에 대해 쓴 것은 물론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겨울이 되면 매미가 굶주린 채 나타나서, 가느다란 대롱 같은 입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밀이나 지렁이 도막을 구걸할 것이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이런 오해는 모두 라 퐁텐이 진짜 매미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라 퐁텐의 '우화'에는 동물들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져 있습니다. 자주 등장하는 여우나 늑대라든가 고양이, 염소, 까마귀, 쥐, 족제비 같은 동물들을 라 퐁텐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들을 자세히 보아 두었다가 정확하고 멋지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우가 포도송이를 따먹으려다 닿지를 않자 "흥! 저런 포도는 어차피 시어서 먹지도 못할걸 뭐."하고 억지를 부리는 이야기에서는 여우가 깡충 뛰어오르는 동작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동물들은 라 퐁텐이 살고 있던 지방에서는 사람들 눈에 잘 띄었기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북부 자방은 너무 추워서 매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쪽 지방인 파리에 사는 라 퐁텐은 매미를 우는 벌레인 여치나 귀뚜라미의 일종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라 퐁텐은 17세기 사람인데, 19세기 이후에 라 퐁텐의 '우화'에 훌륭한 삽화를 그려 넣은 화가 그랑빌이라는 사람도 마찬가지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 그림 중에 개미는 가정 주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면, 매미는 차양 달린 큰 모자를 쓰고 기타를 든 떠돌이 악사 모습입니다. 몹시 추워 보이는 모습으로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개미 아줌마는 입구에 있는 커다란 밀푸대 옆에서 매미를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문장에는 확실하게 매미라고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매미'는 아무리 보아도 여치인 것입니다. 그랑빌도 매미가 어떤 벌레인지 몰랐기 때문에 매미라는 말에서 여치의 모습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하긴 여치도 밀 알갱이 같은 건 먹지도 않고, 겨울에 모습을 보이는 일도 없습니다만. 프랑스 북부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매미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몰랐던 것입니다. ------------ 인도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라 퐁텐의 '우화'는 이솝의 이야기 등을 고쳐 쓴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의 이솝 역시 먼 옛날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를 모아서 썼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개미에게 냉대당한 매미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 것입니다. 지금도 남프랑스에 가면 선물 가게에서 매미 모습을 한 꽃병 등을 많이 팔고 있습니다. 매미는 프랑스의 명물이 된 것입니다. 프랑스 남쪽에 위치한 따뜻한 프로방스 지방에는 매미가 아주 많아서 끊임없이 울어댑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지방의 세리냥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미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곳 농민들에게 매미가 겨울에 나온다고 얘기했다면 웃음거리가 되었겠지요. 농촌에서는 겨울이 올 때쯤이면 올리브 나무를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뿌리를 흙으로 덮어 줍니다.그 때 쟁기로 흙을 파서 뒤집으면 땅속에서 매미의 애벌레인 굼벵이가 많이 나옵니다. 또 여름에는 이 굼벵이들은 둥근 우물 같은 구멍을 파고 흙 속에서 나와, 나무줄기나 가지에 붙어 번데기에서 깨어난 뒤 성충이 되는 것을 농촌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 역시 매미의 생활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스야말로 올리브와 매미 소리로 아주 유명한 나라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솝 우화집'으로 알려진 이야기를 정말로 이솝이라는 사람 혼자서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솝이든 또 다른 사람이든 그는 매미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잘못이 발생했을까요? 아마 그리스 작가도 그 이전에 다른 작가가 쓴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을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 이야기의 근원이 그리스보다 더 오랜 문화를 가진 나라 인도에서 전해진 전설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기 위해 인도 사람이 쓴 아야기의 주인공은 실은 매미가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곤충으로, 이 이야기와 꼭 같았을 것입니다. 인도 이야기에 나오는 그 곤충이 그리스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솝은 매미를 대신 썼겠지요. 그것을 사람들이 그대로 맏었고, 또한 널리 퍼졌을 거라는 게 파브르 선생님의 의견입니다. '이솝 우화집'을 자세히 읽어보면, '개미와 매미'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더 나옵니다. '개미와 쇠똥구리'가 그것입니다. 그 이야기에서는 제 1권에서 말한 쇠똥구리가 개미에게 먹을 것을 부탁합니다. 겨울은 왔는데, 쇠똥이 큰비에 떠내려가 버리자 쇠똥구리는 배가 고파 개미네 집에 가서 "뭐든 먹을 것을 좀 주세요."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개미는 매미에게 했던 것처럼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말대로 이 이야기에는 원형이 있고, 거기에 적당한 벌레나 동물을 끼워 맞추었던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라 퐁텐의 '우화'에서 '게으름뱅이'라는 평판을 얻은 매미의 명예를 되찾아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분명히 매미는 큰 소리로 잘 울어댑니다. "한두 마리라면 몰라도 몇백마리가 모여서 하루종일 울어대면 머리가 지끈지끈하지요."하고 말하는 선생님은 시끄러운 소리를 대단히 싫어합니다. 세리냥에 있는 파브르 선생님 댁 정원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두 그루가 우뚝 서 있습니다. 바로 집의 출입문 앞쪽입니다. 매년 여름이 되면 매미들이 이 나무에 몰려와서 아침부터 밤까지 '맴맴, 매앰매앰'하고 계속 울어댑니다. 매미들의 시끄러운 합창이 울려퍼지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의 매미는 우리 나라의 매미보다 더 단조롭고 기계적인 소리로 웁니다. 아침 일찍이나 저녁 무렵에 일을 해 두지 않으면 그 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한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한탄합니다. 아아, 매미여, 마법에 걸린 벌레여, 고요함을 좋아하는 나를 괴롭히는 벌레여,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사람들은 천천히 네 노래를 듣기 위해 너를 바구니 속에 넣어 길렀다 하네.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이라도 잘 때라면 너희들 한 마리쯤 노래하는 건 상관없겠지.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고 있을 때 몇백마리씩 모여 한꺼번에 울어대면, 그것도 바로 귓가에서 울어대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너희들 편에서 보자면 너희들이 먼저 이 곳에서 살아왔다고 주장하겠지. 이 두 그루의 플라타너스는 훨씬 옛날부터 너희들의 것이었다고. 너희 말대로다. 이 나무 그늘에 나중에 온 것은 나야. 하지만 너희들을 관찰해서 너에 관한 올바른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나를 위해 그 연주 소리를 조금 작게 해 주지 않겠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파브르 선생님은 마음을 고쳐 먹고 매미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매미의 생활을 실제로 조사하여 라 퐁텐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매미와 개미가 나무 위에서 만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관계는 앞의 이야기와는 반대입니다. 개미야말로 먹을 것을 구하려고 매미에게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 마음씨 착한 매미 7월의 남프랑스 지방에는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아 공기도 흙도 바싹 말라 있습니다. 그런 때에도 매미만은 맛있는 주스를 나무줄기에서 빨아먹을 수 있습니다. 매미를 잡게 되면 그 입을 잘 살펴보세요. 가느다란 대롱처럼 되어 있답니다. 이 대롱 속에는 더 가느다란 대롱이 또 들어 있는데, 그것을 능숙하게 나무줄기에 찔러 넣어서 나무 즙을 빨아 먹습니다. 매미가 밀 알갱이라든지 지렁이 도막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입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매미는 맛있는 나무 즙과 자기 노래의 매력에 취해 있습니다. 나무줄기에 뚫은 작은 구멍에서는 주스가 나옵니다. 한여름에는 어느 곤충이나 목이 마르게 됩니다. 매미가 나무 줄기에 구멍을 뚫어 마치 우물 물이 넘치듯이 구멍에서 주스가 흘러내리면 그 냄새를 맡고 많은 벌레들이 달려옵니다.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며 옆에서 주스를 핥아먹는 정도입니다. 모여든 벌레들을 살펴보면 말벌이나 파리, 집게벌레, 땅벌, 대모자루맵시벌, 꽃무지 그리고 개미까지 보입니다. 작은 벌레들은 달콤한 우물가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서 매미의 배 아래로 기어 들어가려고 합니다. 마음 착한 매미는 몸을 좀 들어올려서 이 성가신 어린애들을 들여보내 줍니다. 큰 벌레들은 옆에서 한 입씩 훔쳐먹다가 뒤로 물러나고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주위에 있던 벌레들은 점점 더 뻔뻔스러워집니다. 나중에는 서로 가까이 가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정작 이 우물을 판 매미는 쫓겨날 형편이 됩니다. 이 때 제일 뻔뻔스럽고 끈질긴 것이 실은 개미인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개미가 매미 다리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심지어 밤에 매미가 나무줄기에서 자고 있을 때조차 개미가 다리에 달라붙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밤중에 매미가 '지지' 하고 우는 때가 있지요. 그것은 개미에게 물려서 깜짝 놀란 매미 소리입니다. 끈질긴 개미는 매미 날개를 물어 당기기도 하고, 등 위를 서슴없이 걸어 다니기도 합니다. 매미의 가느다란 대롱 같은 입을 물어 우물에서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개미도 있었습니다. 꼬마들에게 이렇게 시달림을 받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매미는 '짓'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 버립니다. 물론 뻔뻔스러운 무리에게 오줌을 뿌리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욕을 당해도 개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합니다. 그야말로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입니다. '자, 이제 내 거다'하고 우물물을 마시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무 즙을 빨아올릴 펌프인 매미 입이 없어지자 눈 깜짝할 사이에 우물은 말라 버립니다. 이제 라 퐁텐의 '우화'가 사실과 얼마나 다른지 알겠지요? 하지만 개미가 매미에게 한 심한 행동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2,3주일동안 나무 즙을 마시며 큰소리로 노래를 하고 나면 매미는 수명이 다해 아래로 툭 떨어집니다. 햇볕을 받아 매미의 몸은 곧 마르고 사람들에게 밟히기도 합니다. 그러면 땅 위를 돌아다니며 언제나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개미들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달려들어 자신들의 집으로 끌고 갑니다. 때때로 '비비'하고 날개를 떠는 듯한, 아직 살아 있는 매미를 잔인한 개미들이 잘게 잘라 내고 있는 것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자연이라는 이야기 속에서는 악역도 주역도 없습니다. 개미 역시 그렇게 해서 땅 위를 깨끗이 함으로써 자연 속에서 자신들의 일을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2. 땅 위로 나오기까지 좋은 날씨를 기다리며 파브르 선생님보다 100 년 이상이나 이전 사람으로, 18세기 프랑스에 레오뮈르라는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박물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미를 해부해 몸의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레오뮈르는 매미가 없는 북부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남프랑스의 아비뇽에서 우편 마차로 보내진 알코올에 적신 매미를 연구 재료로 썼습니다. 그래서 매미가 어떻게 해서 우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매미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레오뮈르와는 달리 매미의 본고장이라 할 남프랑스에 살고 있습니다. 7월이 되면 매미가 선생님 댁 정원에서 제 세상을 만났다는 듯 큰소리로 울어대므로 선생님 댁이 마치 매미의 집처럼 됩니다. 도대체 매미네 집인지 선생님 댁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여름 내내 매미를 보고 노래를 들은 덕택에 파브르 선생님은, 죽은 표본밖에 몰랐던 레오뮈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매미의 신비한 생활사에 관해 많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살아 있는 벌레를 가지고 연구를 해야 재미도 있고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6월 20일, 즉 하지 무렵부터 매미가 울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에는 장마가 없기 때문에 이 때부터 태양은 뜨겁게 내리쬡니다. 이 뜨거운 햇볕에 마르고,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혀서 굳어진 이 작은 길을 잘 살펴보면 둥근 구멍이 나 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지요. 이것은 매미가 땅 위로 기어나온 터널로서 출구인 셈입니다. '굼벵이'라고도 불리는 매미의 애벌레는 땅속에서 땅 위로 나와 허물을 벗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충이 되면 성장은 끝납니다. 그 이상 더 커지지도, 모습을 바꾸는 일도 없습니다. 6월 말에 파브르 선생님은 매미 애벌레가 막 기어나온 구멍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무척 딱딱해서 마치 콘크리트 같은 구멍이 많이 나 있었습니다. 애벌레는 일부러 단단한 지면을 골라서 땅 위로 나오는 것입니다. 검보라금풍뎅이 같은 똥풍뎅이의 집 둘레에는 보통 흙이 쌓여 있지만 매미 구멍 주위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똥풍뎅이의 경우는 땅 위에서 땅 속으로 파들어가기 때문에 파낸 흙을 밖으로 옮겨 구멍 입구에 쌓아 올립니다. 애벌레는 그와 반대로 땅속에서 땅 위를 향해 파고 있으므로 파낸 흙을 땅 위로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매미 구멍의 깊이는 40센티 정도입니다. 그것은 위로 난 터널처럼 똑바로 파져 있습니다. 이 터널 바닥에는 꽤 넓은 방이 만들어져 있으며, 벽은 울퉁불퉁하지 않고 시멘트를 칠한 듯 깨끗이 손질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파냈을 흙은 이 속에도 없습니다. 터널 길이가 약 40센티, 지름이 2.5센티이면, 이 매미가 판 흙의 양은 대략 우유병 하나보다 조금 많은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 흙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게다가 이상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매미 터널이 많이 있는 곳의 흙은 무척 건조해서 부슬부슬 떨어져 내리기 쉽습니다. 그런데도 이 터널과 바닥의 벽에는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 수분과 끈기가 있는 시멘트 같은 흙이 덧발라져 있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탄광이나 광산을 파는 사람들은 갱도 벽에 기둥을 세워서 안이 무너지지 않도록 합니다. 매미 애벌레도 마찬가지로 터널 벽을 시멘트로 굳히고 있습니다. 그 속을 자주 오르내리기 때문에 갈고리처럼 생긴 다리에 걸렸을 때라도 벽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애벌레는 성충이 되는 시기가 오면 슬슬 땅 위로 나가려고 합니다. 땅 위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조심성 많은 애벌레는 재빨리 땅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이 터널은 갑자기 판 것이 아닙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본격적으로 만든 방입니다. 애벌레는 오랫동안 이 곳에서 지냅니다. 벽을 덧칠해 놓은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동안 있을 장소였다면 이 정도로 꼼꼼히 만들지는 않겠지요. 매미 애벌레는 여기에서 바깥 날씨를 살피고 있습니다. 너무 땅 속 깊이 있다면 바깥 날씨를 알 수 없습니다. 우화(번데기가 날개있는 성충으로 변하는 일)하려고 할 때 비가 와서 기온이 내려가면 날개를 잘 펼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좋은 날씨가 될 때까지 땅속에 있는 방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애벌레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이 터널 속을 깨끗이 고르고 주위 벽을 굳힙니다. 그 기간은 몇 주일 또는 몇 개월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맨 윗부분만은 손가락 하나 두께만큼 남겨 둡니다. 천장을 뚫어 바깥과 통하게 되면 적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애벌레는 터널을 타고 올라가 흙 지붕을 통해 바깥 날씨를 알아 냅니다. 비가 올 것 같거나 찬바람이 불 것 같으면 애벌레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날씨가 좋아질 듯하면 흙 지붕을 튼튼한 앞다리로 긁어 내고, 드디어 바깥 세상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 파낸 흙은 어대로 사라졌을까? 자, 아직도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파낸 흙의 행방입니다. 하나의 터널을 파면 대개 우유병 하나보다 조금 많은 정도의 흙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흙의 행방은 아직 모릅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터널 밖에도 터널 안에도 없습니다. 또 하나, 바짝 말라 있는 땅속에서 애벌레는 벽을 굳히는 시멘트를 어디에서 구해 온 것일까요? 하늘소나 비단벌레의 애벌레처럼 나무 속에 살고 있는 애벌레는 나무를 갉아먹으며 터널을 파 나갑니다. 애벌레는 큰턱으로 조금씩 갉아먹은 나무를 소화해서 그 찌꺼기를 뒤쪽으로 내보냅니다. 그 찌꺼기, 다시 말해 톱밥 같은 똥이 애벌레가 만든 터널을 메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 때 소화된 나무는 조금씩 그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터널 속에 작은 공간이 하나 생깁니다. 하늘소나 비단벌레 애벌레들을 이 좁은 방에서 살게 됩니다. 매미 애벌레도 이 방법으로 터널을 만드는 것일까요? 그러나 매미 애벌레는 파낸 흙을 먹지는 않습니다. 흙은 영양이 없기 때문에 매미의 먹이가 되지 않습니다. 매미는 성충이 되고 나서 2,3주 정도 살면 잘 사는 것이지만,굼벵이 시절은 몇 년이나 계속됩니다. 유지매미는 5,6 년, 북아메리카의 십칠년매미는 이름대로 17 년이나 땅속에서 지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연구한 프랑스 매미는 4 년 정도 땅속에서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4 년 이상의 오랜 땅속 생활 내내 이 지하의 터널에서만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이 되면 땅 위쪽에 가까운 곳은 너무 추워서 애벌레는 더 깊은 곳으로 기어들어갑니다. 또 나무뿌리를 찾아 땅속을 이동합니다. 하나의 나무뿌리에서 즙이 나오지 않게 되면 다른 뿌리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그럴 때면 애벌레는 튼튼한 앞다리를 곡괭이처럼 사용하여 흙을 파고, 그것을 몸 뒤쪽으로 밀어내면서 가겠지요. 땅속에 있던 애벌레가 바깥으로 나오기 직전에 있던 방은 꽤 넓습니다. 마른 흙을 파내 주위 벽에 발라 굳히는 것만으로는 이런 넓은 방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필요 없는 흙을 없애기 위해 매미는 뭔가 좋은 방법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자, 애벌레의 비밀을 엿볼까요? ------------ 매미의 오줌 땅속에서 나오는 순간 매미 애벌레의 몸은 진흙투성이입니다. 그 진흙은 젖어 있지도 말라 있지도 않습니다. 날카로운 앞다리에는 진흙이 단단하게 달라붙어 있곤 합니다. 다른 다리도, 등도 진흙투성이입니다. 마치 진창길에 넘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틀림없이 바짝 말라붙은 땅속에서 나왔을 텐데 왜 이렇게 더럽혀져 있을까요? 몸 전체가 흙투성이로, 밀가루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새하얗게 되어 있다면 몰라도 진흙투성이가 되어 나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조금씩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선생님은 운 좋게 애벌레가 출구를 파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안전을 위해 남겨 둔 흙 지붕이었습니다. 땅 위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매미가 어디서 나올지 짐작도 할 수 없는데 정말로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이 애벌레는 그때 막 흙 지붕을 허물던 중이었습니다. 그 때의 애벌레 모습을 선생님은 이렇게 노트에 적고 있습니다. 우화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애벌레와 비교하면 땅속에 있는 굼벵이는 훨씬 옅은 색을 띠고 있다. 눈은 하얗고 침침하게 흐려 있어 사물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 보면 잘 보이는 눈이 있다 해도 깜깜한 지하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땅 위에 나온 애벌레의 눈은 검다. 더구나 광택이 나고 무척 잘 보이는 듯하다. 우화할 때 땅 위에 나온 애벌레는 꽤 멀리까지 기어가서 나무에 달라붙어 발판을 삼는다. 그러므로 밖으로 나왔을 때는 확실히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애벌레는 터널 바닥에 있는 방에서 지내는 동안 점점 더 눈이 잘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옅은 색깔의 땅속 애벌레는 밖으로 나온 애벌레보다 몸이 크다. 마치 물집처럼 퉁퉁하게 부풀어 있다. 잡아 보면 몸에서 찍 하고 물이 나온다. 이것은 무엇일까?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일단 '오줌'이라고 해 두자. 바로 이 오줌이 매미 애벌레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흙에 오줌을 버무려 마른 흙 가루를 찰기가 있는 시멘트 같은 진흙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 다음엔 배를 미장이의 흙손처럼 써서 흙을 죽죽 발라 벽을 굳힌 것입니다. '과연 그렇군. 이제 알았다. 애벌레가 금방 밖으로 나왔을 때 몸에 붙어 있던 것이 바로 이 진흙이었어.'하고 선생님은 깨달았습니다. 애벌레가 우화해서 성충이 되면 이젠 흙을 팔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오줌만은 계속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무 즙을 배불리 빨아먹은 후 필요 없는 수분을 그때그때 내보낼 수 있게 대비해 둔 것입니다. 그래서 매미가 울고 있을 때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잡으려고 손을 내밀면 오줌을 찍 뿌립니다. 매미는 애벌레 때도, 성충 때도 오줌을 적절히 사용하는 데는 명수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살던 지방에서는 옛날부터 매미를 신장병 약으로 써 왔습니다. 매미의 성충을 여름에 채집해서 실로 묶어 햇볕에 말립니다. 그것을 소중하게 보관해 두었다가 신장이 아프거나 오줌을 누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그 매미를 푹 곤 물을 마십니다. 선생님 자신도 몸이 나빠졌을 때 물론 그 때 선생님은 그 사실을 모르셨죠. 이 국물을 마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마음은 고맙지만 역시 이런 약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선생님은 쓰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매미는 이렇게 약으로 쓰여 왔습니다. '오줌 누기가 어려운 사람에게 쓰는 약으로 왜 매미를 사용했는지는 간단하다. 매미를 잡으려고 하면 도망칠 때 꼭 사람 얼굴에 오줌을 뿌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미를 약으로 쓰면 그 힘을 닮아 틀림없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신을 싫어한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어떠했을까요? 한방약처럼 마셔 보면 정말로 효력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옛사람들의 지혜는 어리석어 보여도 그렇게 간단히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중요한 수분의 보급 매미 애벌레가 아무리 물집 같은 몸을 하고 있어도 긴 터널 벽을 전부 축축하게 할 만큼 많은 오줌을 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줌을 많이 써 버리면 무엇이든 마셔서 다시 보충해야 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보충할까요? 벌레가 만든 터널을 아주 조심스럽게 파 보니 바닥에 무엇인가 단단한 것이 있었습니다. 나무뿌리였습니다. 물론 살아 있는 나무 뿌리로서 자르면 즙이 나옵니다. 방 벽에 이 뿌리가 드러나 있습니다. 두께는 연필 정도에서 볏짚 정도까지 여러 가지였습니다. 이 나무뿌리는 우연히 이 곳에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애벌레가 일부러 찾아낸 것일까요? 이것은 우연히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애벌레가 나온 구멍을 주의해서 파 보면 방바닥 쪽에서 반드시 이런 작은 뿌리가 나옵니다. '이거다, 이거야. 이 살아 있는 나무뿌리가 애벌레가 물을 마시는 장소로군.' 이제 알았죠? 애벌레의 오줌 주머니는 여기에서 보급되는 것입니다. 오줌 주머니가 비어서 목이 마르면 애벌레는 방 벽에 나와 있는 이 나무뿌리에 가느다란 대롱 같은 입을 찔러 넣어서 쭉쭉 빱니다. 지하에 음료수 통이 있는 것이지요. 그럼, 이 물통이 없을 때 뱃속이 텅 비도록 오줌을 써 버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번 실험해 봅시다. 파브르 선생님은 아침 일찍 정원에 나와 애벌레가 땅속에서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을 때입니다. 드디어 애벌레들이 기어 나왔습니다. 그것을 붙잡아 유리 시험관에 넣고 푸석푸석하게 마른 흙을 위에 넣어 보았습니다. 흙의 깊이는 15센티로 했습니다. 애벌레가 나온 터널은 보통 이것의 세 배 정도이고 흙도 더 단단한 것입니다. 자, 애벌레는 이 시험관 바닥에서 위로 올라올 수 있을까요? 다만, 이것은 벌써 땅 위로 나온 애벌레이므로 몸 속에 오줌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줌 주머니는 텅 비어 있고, 더구나 시험관 속에는 살아 있는 나무뿌리도 없어서 물을 보급받을 수 없습니다. '이 애벌레가 밖으로 나오려면 꽤 고생하겠는걸.'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과연 생각했던 대로였습니다. 애벌레가 흙을 앞다리로 긁어 내도 부슬부슬 무너질 뿐 시멘트처럼 벽에 달라붙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해 봐도 소용없습니다. 3일동안 발버둥을 친 애벌레는 마침내 녹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4일째에는 죽고 말았습니다. 오줌으로 가득 찬 애벌레라면 물론 다른 결과가 나왔겠지요. 터널 천정을 막 뚫기 시작하던 애벌레를 붙잡아 시험과에 넣어 보았습니다. 이 애벌레의 경우 밖으로 나오는 것은 간단했습니다. 오줌을 조금씩 싸서 흙에 습기를 주면 흙은 진흙이 되어 끈기가 생기므로 벽에 바를 수가 있습니다. 애벌레는 좁은 길을 내고 오줌을 조금씩 사용해 가면서 올라왔습니다. 결국 10일이나 걸렸지만 밖으로 나올 수는 있었습니다. 이 때 애벌레가 판 터널은 여느 때보다 좁았는데, 그것은 물을 보급받지 못하게 되자 물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3. 우화하는 매미 우화의 수수께끼 애벌레가 지하 출구로부터 밖으로 나오면 그 뒤에 송곳으로 판 것 같은 큰 구멍이 뻥 뚫립니다. 깜깜한 어둠의 세계에서 나온 애벌레에게 바깥의 밝은 세계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하지만 이제부터 얼마 동안은 애벌레들에게 아주 위험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작은 새 같은 동물들이 활동하지 않는 어두컴컴한 새벽에 땅속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애벌레는 밖으로 나와 땅 위를 기면서 꼭 붙들 수 있는 것을 찾습니다. 나무 숲이나 밀 같은 식물, 또는 관목 줄기 같은 것이 발판이 됩니다. 이 지방에 가장 많은 물푸레나무매미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나아갑니다. (1) 발판이 될 만한 것이 발견되면 애벌레는 그것에 기어올라 튼튼한 앞다리로 꽉 움켜잡습니다. 물론 다른 다리도 사용하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갈고리 모양의 두 개의 앞다리입니다. 그리고 나서 애벌레는 잠시 그대로 쉽니다. 그 동안에 조금 물렁물렁했던 앞다리가 말라서 새우 껍질처럼 단단해지면 몸이 고정됩니다. (2) 먼저 등 한가운데에 세로로 틈이 생깁니다. 그 틈은 점점 커져 속에 들어 있는 연녹색의 매미 몸이 보이게 됩니다. 갈라진 틈은 등 전체로 넓어지지만 꼬리 부분까지 갈라지지는 않습니다. (3) 양쪽의 겹눈이 껍질에서 나오면 그 사이에 세 개의 홑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껍질이 갈라진 틈에서 속에 있는 녹색 몸이 불거져 나옵니다. 등 한가운데 제일 부풀어 있는 곳으로 피가 흘러들어 쿵덕쿵덕하고 맥이 뛰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탈피가 시작되면 연이어 진행됩니다. 이제 머리가 빠져 나옵니다. 다음은 입이 나오고 계속해서 다리가 껍질에서 빠져 나옵니다. 마치 새로운 별에 도착한 우주인이 우주복을 벗는 것 같습니다. (4) 반 이상 나온 녹색 매미는 윗몸을 뒤로 젖혀 하늘을 향합니다. 가늘고 긴 풀의 새싹 같은 쪼글쪼글한 날개는 아직 젖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매미의 꼬리 끝만 아직 껍질 속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거의 밖으로 나왔습니다. 반쯤 빈 껍질은 작은 나무줄기에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매미는 드디어 머리를 숙이고 몸을 뒤로 젖히며 훌렁 뒤집습니다. 몸은 아직 연녹색으로, 이 부드러운 몸에 개미 같은 것이 달겨들기라도 하면 어이없이 당하고 맙니다. 쭈글쭈글하던 날개는 혈액이 날개죽지까지 흘러들자 조금씩 펴집니다. (5) 날개가 충분히 마르면 매미는 아주 천천히 몸을 다시 세워 머리를 들고 보통의 앉은 자세로 되돌아옵니다. 지금 다리를 헛디뎌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상처를 입겠지요. 드디어 꼬리 부분이 껍질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몸 전체가 완전히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여기까지 30분 걸렸습니다. 차츰 날이 밝아 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매미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날개는 아직 젖어 있으며, 날개의 맥이 연녹색 혈관처럼 보입니다. 가슴 부분은 연한 갈색이지만 그 외의 부분은 모두 연녹색입니다. 어쩌면 그리도 예쁠까요! 이 부드러운 매미의 몸이 팽팽해지고 색이 나기 위해서는 잠시 바람과 태양볕을 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화가 시작된지 3시간 지났지만 별로 변한 것은 없습니다. 앞다리의 갈고리를 이용해 자신이 빠져 나온 껍질에 매달려 있는 연약한 녹색 매미는 산들바람만 불어도 떨어질 것 같습니다. '언제쯤 갈색으로 변할까?'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색은 점점 짙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보통 매미 색깔이 되는 데는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나무에 기어오르기 시작한 매미는 이렇게 해서 세 시간 반만에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물론 더 늦은 시간에 우화를 시작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쨍쨍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울기 시작하겠지요. 등에 갈라진 금이 있긴 하지만 껍질은 망가지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풀숲이나 나무줄기에 꼭 매달려서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그대로 붙어 있는 일도 있습니다. 갈색의 얇은 껍질로 되어 있는 이 마른 껍데기는 언제까지나 여름날 매미에 대한 추억을 다음 계절에 전하고 있습니다. ------------ 매미 요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박물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매미는 그리스인들에게 매우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껍질이 깨지기 전의 매미는 아주 맛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껍질이 아직 깨지지 않았다고 한 말로 미루어, 이것은 여름이 되어 우화하려고 땅속에서 나온 애벌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땅 위에 나와 있는 매미 애벌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등이 갈라지기 시작하면 바로 우화가 진행되므로 단단해지기 전에 요리해서 먹으려면 서둘러야 됩니다. '하지만 매미가 정말 맛있을까? 한번 확인해 보자.' 7월 아침이었습니다. 벌써 해가 높이 떠서 쨍쨍 비치고 있습니다. 이런 날에는 애벌레가 땅 위에 많이 나와 있겠지요. 파브르 선생님네 가족 다섯명이 모두 나와 애벌레를 찾았습니다. 사람이 많이 다녀서 단단해진 길이 매미가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입니다. 껍질이 갈라지기 시작하면 곤란하므로 애벌레를 잡으면 곧바로 물을 담은 컵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더 이상 우화되지 않겠지요.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이나 찾은 끝에 겨우 애벌레 네 마리를 채집할 수 있었습니다. 애벌레들은 컵에 담긴 물 속에서 죽어 버린 것도 있었고, 곧 죽을 것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좀 불쌍하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맛있다는 매미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 간단한 방법으로 요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 기름을 넣고 양파를 잘게 썰어 넣은 뒤, 애벌레를 넣고 소금을 넣어 뿌려 볶았습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요리한 매미를 조금씩 먹어 보았습니다. "음, 제법 맛있긴 한데^5,5,5^." 이것이 가족 모두의 대답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아침부터 매미를 찾아 돌아다니느라 모두들 배가 꽤 고팠는데도 더 이상은 먹고 싶지 않다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새우 맛과 좀 비슷하긴 했지만 메뚜기를 꼬치구이 한 것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껍질은 무척 질겨서 마치 얇은 꺼풀 한 쪽을 씹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요리 방법이 별로 좋지 않았던 탓도 있습니다. 기름을 더 많이 넣고 바싹 튀기면 껍질이 바삭바삭해서 꽤 먹을 만했을 겁니다. 곤충을 먹는다는 것을 징그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먹어 버릇하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미래의 식량난을 대비해서 곤충을 식량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더욱 연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4. 매미의 노래 어디로 소리를 낼까? 매미를 연구한 레오뮈르는 북프랑스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매미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알코올에 넣어 남프랑스에서 마차로 보내 온 매미를 해부해서 매미가 어떻게 우는지를 알아냈습니다. 레오뮈르 이외에도 매미의 발음 기관을 연구한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매미 소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생물은 연구할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분명히 뭔가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겠지요. 선생님 댁 정원에는 살아 있는 매미가 얼마든지 있어서 실컷 연주를 들려줍니다. 살아 있는 곤충은 표본이나 글보다도 더 좋은 연구 재료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근처에서 볼 수 있었던 매미는 다섯 종류입니다. 물푸레나무매미, 산매미, 붉은매미, 검은매미와 애매미 등입니다. 물푸레나무매미와 산매미는 흔한 종류이지만, 남은 세 종류는 그 수가 적은 희귀종으로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다섯 종류 중에서 가장 큰 물푸레나무매미는 그 숫자 역시 많아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곤충학 책에 매미의 발음 기관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져 있는 것도 이 물푸레나무매미입니다. 물푸레나무매미라 해도 우리 나라의 매미에 비하면 중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종류는 우리 나라에 있는 매미 중 가장 작은 호좀매미 정도의 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는 것은 수컷 매미이며, 암컷은 전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수컷을 뒤집어 보면 가슴 아래쪽, 즉 뒷다리가 붙어 있는 곳에 비늘처럼 생긴 단단한 판이 두 장 있습니다. 이것을 배판이라 하는데, 그 밑에 발음 기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젖혀 보면 그 밑에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이 큰 구멍을 '공명실'이라고 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살고 있는 프로방스 지방 말로는 이 공명실을 '교회'라고 하고, 공명실의 오른쪽과 왼쪽을 각각 '기도실'이라고 부릅니다. 기도실에는 비누 방울 같은 무지개 빛 막이 있습니다. 이것을 '경막'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귀의 고막처럼 소리를 듣는 역할을 합니다. 프로방스 말로도 '거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빛이 나고, 사물이 비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겠지요. 교회와 거울과 뚜껑이 되는 판, 이 세 가지가 매미가 울기 위한 기관이라고 남프랑스 사람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소리가 나오지 않는 가수를 두고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그 사람은 거울이 깨졌다."고 말합니다. 평범한 시밖에 쓰지 못하는 시인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매미의 경우는 침으로 찔러서 '거울'에 구멍을 내거나, 가위로 배판을 싹둑 잘라 내도 노래를 멈추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공명실에서는 소리를 울리게 해서 크게 할 뿐, 여기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소리를 내는 기관은 여기에 없습니다. 매미 등에 있는 뒷날갯죽지 바로 밑에는 양쪽으로 작게 튀어나온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등판이라고 하는데, 그 안쪽에 발음막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발음막에 조갯살을 닮은 강한 발음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발음근이 오므라들면 발음막이 당겨져서 소리가 나게 됩니다. 발음막이 당겨져서 나는 소리는 마치 얇은 금속판 같은 것이 아래로 꺼졌다, 올라왔다 할 때 뻬코뻬코 하고 울리는 것과 같습니다. 발음근은 1초 동안에 약 1백 번이나 늘어났다 줄었다 하고, 그에 따라 발음막이 소리를 냅니다. 이렇게 해서 발음막에서 나는 작은 소리가 공명실 안에 울려 큰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는 것입니다. ------------ 죽은 매미를 울게 하는 방법 매미가 우는 구조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핀셋으로 죽은 매미의 발음근을 하나 집어서 당겨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길 때마다 발음막에서 소리가 납니다. 물론, 큰소리는 아닙니다. 매미가 살아 있을 때처럼 공명실에서 소리가 잘 확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무 위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을 붙잡아 손 안에서 필사적으로 울어대는 매미를 한 번에 조용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배판이나 경막에 상처를 내어도 소용없습니다. 조금 난폭한 짓을 해도 매미는 계속 울어댑니다. 그러나 등판 아래 조그맣게 패인 곳에 핀을 집어 넣어 안쪽에 있는 발음막을 찔러 봅시다. 발음막에 조금이라도 구멍이 나면 그 순간 소리가 뚝 그쳐 버립니다. 아주 조금, 발음막을 핀으로 찌른 것뿐이므로 매미는 소리만 내지 못할 뿐 잘 날아 다닙니다. 물론 매미의 이런 발음 기관의 구조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이 핀으로 단번에 매미를 조용하게 하면 모두들 깜짝 놀랍니다. 물푸레나무매미가 울기 시작하는 것은 아침 7시나 8시경입니다. 프랑스의 여름은 낮이 길어서 오후 9시쯤 되어야 해가 지는데,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매미는 계속 울어댑니다. 그러나 날씨가 나빠서 바람이 너무 차면 매미는 노래를 멈춰 버립니다. 반대로 제주도의 저녁매미 같은 것은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나 해질 무렵에 웁니다. 그러나 낮이라도 비가 올 듯이 어두워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쓰르쓰르쓰르'하고 시원스런 소리로 울기 시작합니다. ------------ 깽깽매미의 노래 물푸레나무매미의 반 정도 크기인 산매미를 파브르선생님이 살고 있는 지방에서는 깽깽매미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는 소리에서 딴 이름입니다. 이 매미는 물푸레나무매미보다 작으며, 사람이 가까이 가면 훌쩍 날아가 버려서 매우 잡기 어려운 종류입니다. '깽! 깽! 깽!'하고 언제나 같은 소리로 귀가 따갑게 울어서, "계속 울어대는 산매미 소리가 가장 신경에 거슬린다."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합니다. 한여름, 파브르 선생님 집 앞에 있는 두 그루의 커다란 플라타너스나무에서 깽깽매미 수백마리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시작하면 그 소리가 마치 자루에 호두를 가득 넣고 힘껏 흔들어 대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도 깽깽매미는 물푸레나무매미보다 아침에 우는 시간이 조금 늦고, 저녁에도 빨리 그쳐 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작은 깽깽매미가 어떻게 그런 큰소리를 낼까요? 깽깽매미는 배에 소리를 울려서 크게 합니다. 깽깽매미의 뱃속은 거의 반이 비어 있고, 이 텅 빈 배와 가슴으로 소리를 반향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저녁매미도 역시 배가 텅 비어 있어 울리는 소리를 잘 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깽깽매미 배의 텅 빈 부분을 가위로 잘라 내고 그 곳에 손을 대고 막아 보았습니다. 건강한 매미는 그래도 잘 웁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낮고 굵어졌습니다.그래서 종이통을 나팔처럼 만들어서 그 구멍에 대 보자 소리가 더욱 커지고 낮아졌습니다. 이번에는 그 종이통을 유리관에 집어 넣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소리가 더 퍼져서 매미 소리가 마치 소 울음 소리 같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이 실험을 하고 있을 때 어린이들도 연구실에 있었는데 모두 깜짝 놀라 달아나 버렸습니다. 언제나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매미 소리가 아니라 마치 괴물이 지르는 소리 같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무서웠던 것입니다. ------------ 매미는 왜 우는 걸까? 발음 기관의 구조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하고, 이번에는 매미가 왜 우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보통은 수컷이 암컷을 부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어떤 일이라도 일단 의심해 보고,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 파브르 선생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세리냥에 이사 와서 아르마스라고 이름 붙인 집에 살며 물푸레나무와 깽깽매미와 친해진 지 15 년이 흘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매년 여름이면 매미의 모습을 보거나 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관찰했습니다.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매미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매미는 플라타너스 나무줄기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암컷 수컷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태양이 조금씩 서쪽으로 저물어 가면 매미들도 태양을 따라 이동합니다. 볕을 쬐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대롱 입을 나무에 찔러 넣어 나무즙을 빨아먹으면서 조금씩 장소를 옮겨가지만 노래만은 그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는 것일까요? 수컷이 암컷을 부르기 위해 우는 것이라지만 플라타너스나무 위에는 암컷과 수컷이 다리와 다리, 배와 배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러 큰소리로 노래해서 상대를 불러들인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수컷이 큰소리를 질러서 암컷이 날아온 경우를 선생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수컷이 아무리 울어도 암컷은 모른 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매미는 눈이 아주 좋기 때문에 충분히 상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왜 일부러 노래를 부를까요? 이 지방의 농부들은 밀을 추수하는 자신들을 위해 매미가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매미가 '세고, 세고, 세고'하고 우는데 그것은 프로방스 말로 밀을 '베어라, 베어라, 베어라'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벌레가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은 많이 있습니다. 수컷의 노래를 암컷은 어떤 기분으로 들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여기에서 단념하고 "벌레의 진짜 기분을 인간은 알 수 없다."고만 말했습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 댁에 있는 두 그루의 큰 플라타너스 나무에는 언제나 많은 매미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렸던 것은 아닐까요? 이 두 그루의 플라타너스 나무 외에는 매미들이 좋아하는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암컷도 수컷도 모두 이 나무에 모여 있었고, 그래서 수컷이 일부러 암컷을 부를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현재까지의 연구로는 역시 암매미는 좋은 목청으로 울어대는 수컷을 좋아해서, 그런 수컷의 노래에 이끌려 날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미에 관한 연구 논문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수컷 털매미가 열심히 울고 있으면, 그 소리에 반해서 나무줄기 위쪽에 암컷이 날아와 앉습니다. 그리고 뒷걸음질로 수컷에게 가까이 갑니다. 그러면 수컷은 갑자기 우는 방법을 바꿉니다. 그것을 들은 암컷은 멈춰 서고, 수컷은 몸을 떨면서 지그재그로 걸어 암컷에게 다가갑니다. 그리하여 수컷과 암컷이 서로 마음에 들면 짝짓기가 시작됩니다. ------------ 매미는 귀머거리인가? 선생님이 매미 노래의 효과를 의심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노래를 듣는 데 적합한 귀는 보통 다른 소리도 잘 듣습니다. 게다가 민감한 귀를 갖고 있다면 이상한 소리가 날 때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노래를 잘하는 작은 새는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어서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거나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놀라서 노래를 멈추고 훌쩍 날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매미는 어떨까요? 매미는 눈이 다섯 개나 됩니다. 우선 커다란 겹눈이 두 개, 머리 한가운데에 작은 루비 같은 홑눈이 세 개 있습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나 잘 봅니다. 사람이 다가가면 매미는 곧 도망치지 않습니까? 그럼, 매미가 앉아 있는 나무 뒤에 몰래 숨어 다섯 개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휘파람을 분다든지, 손뼉을 짝짝 쳐 보거나 돌을 서로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내 본다면 어떨까요? 작은 새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날아가 버리겠지요. 아무리 발소리를 죽여도 인간의 낌새를 금방 느끼니까요. 그런데 매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여전히 노래를 계속합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매미의 귀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만 보기로 합시다. 파브르 선생님은 마을 사무소에 가서, "대포를 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하고 부탁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한 끝에 가장 큰소리를 내 보기로 한 것입니다. 마을에는 축제 때 쏘는 작은 대포가 있었습니다. 물론 진짜 탄환을 쏘는 것이 아니라 불꽃놀이처럼 탕 하는 소리뿐인 공포를 울리는 것입니다. 만약 매미가 대포 소리에도 도망가지 않는다면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됩니다.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자 사무소의 직원들은 흥미있어하며 말했습니다. "네? 매미의 귀가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좋습니다. 선생님 댁으로 가서 멋있게 대포를 쏘아 드리지요." 대포는 두 대였습니다. 아주 중요한 의식을 거행할 때처럼 화약을 잔뜩 넣었습니다. 대포 소리가 울려 유리가 깨지면 안 되므로 창문은 모두 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매미가 울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 대포를 놓았습니다. 특별히 매미에게 보이지 않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무 꼭대기에서 울고 있는 매미들은 아래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으니까요. 모인 사람들은 파브르 선생님의 가족과 대포를 쏘는 사람까지 모두 여섯 명입니다. 우선 울고 있는 매미 수를 조사하여 소리의 크기와 리듬을 기록하였습니다. 자, 드디어 도화선에 불을 붙입니다. 모두들 대포 소리에 고막이 터지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매미 소리의 변화를 알 수 있도록 귀를 막은 손을 조절하면서 매미 쪽을 향했습니다. "발사!" 대포 소리가 꽝 하고 울려 퍼졌습니다.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에 땅이 울렸습니다. 그러나 매미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매미는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았고, 우는 방법도 소리의 크기도 조금 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매미 소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해 한 번 더 쏘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같았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매미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은 큰소리로 이야기한다."는 격언을 매미에게 적용해도 좋을 거라고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여치나 매미 같은 '우는 벌레'가 태양빛 아래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이나, 개구리가 비가 올 듯한 날에 열심히 울고 있는 것을 보면 암컷을 부르기 위해 노래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이 생물들은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난 기쁨과 자신들이 이렇게 살아 있다는 즐거움을 나타내기 위해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선생님은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이나 동물의 귀의 역할을 잘 살펴보면 각각 들리는 음의 범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박쥐는 날아가면서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높은 음을 스스로 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물에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것을 듣고 부딪히는 것을 피합니다.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음을 초음파라고 하는데, 동물이나 곤충 중에는 초음파를 내거나 듣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동물만의 멋진 음의 세계가 있는데 인간이 알지 못할 뿐입니다. 매미는 경막으로 소리를 듣는다고 알고 있으나 대포 소리같은 것은 매미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에는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들렸다해도 자신과는 관계없는 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대신 동료 매미 소리는 사람보다 더 민감하게 알아듣는 것이겠지요. 매미의 암컷은 수컷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가 이름난 가수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는 것보다 더욱 감동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수컷도 그 이상의 좋은 기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 알에서 깨어나 다시 땅속으로 마른 나뭇가지에 낳은 알 매미 애벌레는 땅속에서 자라지만 어미인 매미가 땅속에 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물푸레나무매미를 예로 들어 알에서 애벌레까지의 성장 과정을 알아보기로 합시다. 물푸레나무매미는 뽕나무나 벚나무, 복숭아나무 등 여러 종류의 마른 나뭇가지에 산란합니다. 대체로 지푸라기같이 가는 것부터 연필 정도의 굵은 것까지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마른 가지에 알을 낳는 일은 없습니다. 나뭇가지 끝의 마른 부분에 낳는 것이 가장 많습니다. 땅속에서 나와 멋진 매미가 되어 2,3주 지나면 매미의 암컷은 산란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정확히 7월 중순입니다. 매미의 산란 모습을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파브르 선생님은 철저히 준비를 했습니다. 매미가 알을 낳을 때에 제일 먼저 선택할 만한 알맞을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그것은 트루보랑이라는 식물의 가지였습니다. 이것은 줄기가 길고 매끄러운 식물이어서 매미가 알을 낳은 후에 긁힌 자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장치를 해 둔 것은 아닙니다. 트루보랑의 마른 줄기를 베어내지 않고 남겨 둔 것뿐입니다. 매미는 마른 줄기에 줄지어 와서 알을 낳습니다. 7월 15일이 되자 벌써 암매미가 트루보랑에 모여듭니다. 이제부터 알을 낳으려는 매미는 한 가지에 한 마리씩 앉습니다. 암컷 한 마리가 자신의 가지를 정하여 그 가지를 독차지하는 것입니다. 그 매미가 날아가 버리면 뒤에 다음 매미가 옵니다. 그렇게 민감하던 매미도 알을 낳고 있을 때만은 인간이 얼굴을 들이대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확대경으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알 낳는 일에 몰두해 있는 것입니다. 곁에서 자세히 보고 있으면 배끝을 실룩실룩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1센티 정도의 가느다란 관이 조용히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나무 속을 찌르고 들어갑니다. 산란관입니다. 저렇게 가느다란 것이 용케 부러지지도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면 양쪽이 톱처럼 되어 있고, 한가운데는 송곳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 양쪽의 톱은 무척 단단하며 위아래로 엇갈리게 움직이도록 되어 있어, 단단한 나무껍질이라도 슥슥 자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암컷은 가만히 있습니다. 산란관을 나무껍질에 집어넣고 나서 그 속에 알을 다 낳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정도였습니다. 매미는 이렇게 나무껍질에 0.5--1센티 정도의 깊이로 구멍을 파고, 그 속에 몇 개의 알을 낳습니다. 이 구멍을 '집'이라고 하는데 밖에서 보면 무엇엔가 긁힌 자국처럼 보입니다. 알을 다 낳은 매미는 산란관을 천천히 빼냅니다. 그리고 1센티 정도 위로 올라가 거기서 다시 산란관을 집어 넣어 홈을 내고 새로운 집을 만들어 알을 낳습니다. 매미는 이렇게 아래에서 위로 알을 낳으면서 가지를 올라갑니다. 나중에 나무껍질을 보면 1센티 간격으로 알을 낳은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조사한 물푸레나무매미의 경우, 하나의 집 속에 낳은 알의 수는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적으면 7개, 많으면 15개였습니다. 평균 10개 정도입니다. 암매미가 차분히 산란을 마쳤을 때는 30--40개나 되는 긁힌 자국이 나무껍질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마리의 암매미가 300--400개 정도의 알을 낳은 셈입니다. 레오뮈르가 매미를 해부해서 암컷의 뱃속에 들어 있는 알의 수를 세어 보았을 때도 역시 300--400개였다고 합니다. 매미는 정말 이렇게 많은 알을 낳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이 죽는다 해도 몇 마리는 살아 남을 것입니다. 매미가 다른 곤충들에 비해 특별히 위험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매미는 눈이 좋은 데다 조심성도 많아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재빨리 날아서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나는 것도 꽤 빠른 편이지요. 높은 나무 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상에 있는 적은 무섭지 않습니다. 하지만 새처럼 날개가 있는 적은 무섭습니다. 예를 들면, 참새는 매미를 좋아합니다. 선생님 댁 지붕 위의 참새는 자주 플라타너스 줄기에서 열심히 울어대고 있는 매미 무리에 재빨리 덤벼듭니다. 잡힌 매미는 '지지' 하고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지만 새의 강한 부리에 걸리면 당장에 찢겨서 새끼새의 먹이가 되어 버립니다. 매미 편에서 보면 생명이 달린 일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도취되어 정신없이 울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참새의 공격을 알아채면 재빨리 찍 하고 오줌을 뿌리며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매미가 이렇게 많은 알을 낳는 것은 새에게 먹힐 경우를 대비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적이 있습니다. 최초의 적은 산란할 때 찾아오며 알에서 깨어난 후에도 주위는 적투성이입니다. ------------ 알을 노리는 무서운 적 암매미가 열심히 알을 낳고 있을 때 적이 다가옵니다. 그 적은 매미 뒤에서 열심히 자기 알을 낳아 매미의 알을 전부 망쳐 버립니다. 그것은 매미알좀벌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벌로서 몸길이가 겨우 4.5 밀리 정도밖에 안 됩니다. 매미 다리에 밟히기만 해도 죽어 버리는 이 작은 벌은 자기 몸보다 100배 이상 큰 매미 옆에서 알을 낳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매미 한 마리에 세 마리나 모이기도 합니다. 매미가 하나의 집에 알을 낳고 다음 집을 만들기 위해 조금 위로 이동하면, 곧 매미알좀벌이 매미집 위로 다가갑니다. 그리고는 유유히 아주 작은 산란관을 매미의 알 사이로 집어 넣습니다. 매미가 열심히 낳은 소중한 알들이 이 벌의 애벌레의 식량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매미에게는 아주 가혹한 이야기지만 벌들도 필사적입니다. 어미매미가 중대한 일을 마치고 안심하고 날아가면, 집 속에 낳은 알들 중 대부분은 이미 이 벌에게 당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매미알좀벌은 집 하나에 한 개의 알을 낳습니다. 이 알은 곧 깨어나 매미 알이 깨어나기 전에 전부 먹어 치웁니다. 매미는 아주 잘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매미알좀벌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벌이 자기를 따라다니는 것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작은 벌 같은 것은 그냥 밟아 버리면 될 텐데, 하고 보는 사람은 생각하지만 매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잘 생각해 보면 만약 이 벌이 없다면 매미 수는 너무 많이 늘어나 버립니다. 엄청난 수의 매미가 모여서 나무 즙을 빨아먹으면 금세 나무가 말라버리겠지요. 나무가 말라 버리면 매미는 결국 멸종하게 됩니다. 매미가 많은 알을 낳고, 이것을 매미알좀벌의 애벌레가 먹는 방법으로 균형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눈앞에서 깨어난 알 물푸레나무매미의 알은 상아빛입니다. 양쪽 끝이 조금 뾰족하면서 가늘고 긴 알은, 럭비공처럼 아주 작게 만들어 잡아 늘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길이 2.5 밀리, 너비 0.5 밀리 정도입니다. 이것이 집 안에 몇 개씩 산란되어 있습니다. 산매미 알은 조금 더 작습니다. 여기서는 물푸레나무매미의 알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합시다. 9월이 끝날 즈음에는 알의 빛깔이 노랗게 변해 갑니다. 그러다 10월 초순에는 알 끝부분에 두 개의 점이 생깁니다. 이것이 안에 들어 있는 애벌레의 눈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정원과 근처 언덕에서 트루보랑 가지를 조사하여 알이 깨어난 증거를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애벌레가 나온 뒤에 남은 하얀 알 껍질이었습니다. 그러나 껍질은 발견했어도 애벌레가 둥지에서 나오는 장면은 관찰할 수 없었습니다. 레오뮈르도 같은 실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가 아비뇽에서 보내 준 매미 알을 모두 망쳐 버렸습니다. 매미 알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유리관 속에 넣은 집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 늘 몸에 지니고 다녔지만 깨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연구실 안 같은 그늘이나 주머니 속의 온기로는 충분하지 않겠지요. 햇볕이 필요합니다. 몸이 떨릴 정도인 아침 추위 뒤에 갑자기 내리쬐는 태양, 즉 여름의 마지막 강한 햇볕이 매미를 깨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매미 알 껍질이 새로 발견되는 것은 추운 밤이 지나고 태양이 비치기 시작한 날입니다. 그런 날, 선생님이 벼르고 가 보아도 애벌레는 이미 어디론가 모습을 감춘 뒤입니다. 그래도 가끔씩은 작은 가지에 실 같은 것이 나와 있어 매미 새끼가 그것에 걸려서 버둥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 실을 끊어진 거미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월 27일이 되었습니다. '아! 올해도 보지 못하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선생님은 정원에 있는 트루보랑의 마른 가지를 잘라 냈습니다. 조금 살펴보고 나서 매미집이 붙어 있는 것을 여러 개 묶어 연구실로 가져갔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대경으로 관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날 아침은 무척 추워서 가을로 들어선 후 처음으로 난로에 불을 지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무심히 마른 가지들을 난로 앞에 있는 의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마른 가지들을 하나씩 떼어서 확대경으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 바로 눈앞에서 애벌레가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단념해 버렸던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갓 태어난 애벌레가 한꺼번에 12 마리나 집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한아름이나 되는 나뭇가지 속에서 자꾸자꾸 나옵니다. 선생님이 가지고 들어온 알은 충분히 자라 있었습니다. 거기에 난롯불의 열기가 갑자기 닿자, 마치 밖에서 햇볕이 갑자기 내리쬐는 것과 같았던 모양입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요. 알이 들어 있는 집 입구의 나무 섬유 틈에서 가늘고 긴 타원형의 작은 벌레가 나왔습니다. 모양은 알과 같고 커다란 검은 점이 두 개 찍혀 있습니다. 이것이 애벌레 눈입니다. 알이 집의 바닥에서부터 출구까지 위쪽으로 이동해 간 것일까요? 설마^5,5,5^. 알이 걸을 수는 없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파브르 선생님은 가지를 뚝 잘라 집을 열어 보았습니다.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처음엔 얇은 비닐 주머니처럼 보이는 알이 원래대로 있는 것 같았으나 속은 비어 있었습니다. 알의 앞쪽 끝에 큰 구멍이 나 있어 그 속에서 이상한 모양의 애벌레가 나온 것입니다. ------------ 탈출을 위한 멋진 궁리 갓 태어난 애벌레는 매우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애벌레는 조금 전에 말했듯이 매미 알에 검고 큰 눈을 두 개 찍어 놓은 것 같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배 부분에 생선 지느러미 같은 것이 딱 붙어 있습니다. 잘 보면 이 지느러미 같은 것은 앞다리 두 개가 나란히 하나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애벌레가 알에서 깨어날 때나 나무 속 집에서 밖으로 나올 때, 앞다리를 나란히 모은 이 지느러미를 지렛대처럼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이 지렛대를 써서 앞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다른 네 개의 다리는 또 다른 하나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지만 아직 전혀 쓰이지 않은 듯합니다. 확대경으로 보니 더듬이도 주머니 속에 들어 있습니다. 마디도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몸 전체는 미끈미끈해 보이고 털은 조금도 나 있지 않습니다.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매미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 이상한 애벌레에게는 이름을 붙이는 편이 좋겠는데, 도대체 무엇이라고 이름 지으면 좋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전부터 곤충학자들이 일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학술 용어를 만드는 것이 불만스러웠기 때문에 간단하게 '제 1 애벌레'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현재는 '전유충(애벌레가 되기 바로 전 단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전유충은 집 속에서 탈출하기에 아주 좋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 속에서 만들어진 집에서 밖으로 나오는 길은 매우 좁고, 알들로 빽빽합니다. 구석 쪽에서 낳은 것은 먼저 깨어난 다른 형제들의 알 껍질 사이를 빠져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걸리지 않고 빠져 나오기 쉬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쩐지 바나나 알맹이가 반쯤 벗겨진 껍질에서 쑥 빠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다시 말해 이 애벌레는 탈출용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셈입니다. 집에서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여 온몸이 빠져 나오기까지 30분, 아주 천천히 밖으로 나옵니다. 전유충은 밖으로 나오면 곧 탈출용 껍질을 벗어 버리고 1령 애벌레가 됩니다. 1령 애벌레는 더듬이와 긴 다리, 흙을 파기 위한 곡괭이 같은 앞다리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걸리는 것이 많아서 도저히 밖으로 쑥 빠져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유충의 모습은 탈출하기 위한 멋진 아이디어라고 말해도 좋겠지요. 1령 애벌레는 전유충 껍질에 꼬리 끝을 집어 넣은 채 거꾸로 매달려 일광욕을 하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땅에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듬이는 비교적 길고 잘 움직입니다. 마디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고, 앞다리의 강한 갈고리를 접었다 폈다 하기도 합니다. 준비 운동이라고나 할까요? 이 작은 벌레가 이렇게 거꾸로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은 정말 이상하게 보입니다. 흔들리며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반 시간 만에 땅으로 떨어지는 것도 있고, 몇 시간씩이나 매달려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들이며 껍질을 벗은 후에 생긴 새로운 피부가 단단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전에 보았던, 애벌레가 매달려 있는 하얀 거미줄 같은 것은 전유충의 껍질이었던 것입니다. ------------ 땅속 여행의 시작 땅 위에 떨어진 애벌레는 이제 드디어 자신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곳에는 위험이 많습니다. 아주 약한 바람에도 이 작은 벌레는 휙 날아가 버립니다. 딱딱한 바위 위, 마차 바퀴 자국에 괸 물 속, 단단한 마른 땅이라든지 질척질척한 진흙탕 위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10월 말입니다. 이제부터 북풍이 강하게 불어오고 점점 추워질 것입니다. 곧 서리도 내리겠지요. 이런 약한 벌레가 땅 위에서 어물쩍거리면 개미에게 당하든지 추위에 얼어 죽든지 하겠지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땅속 깊이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습니다. 알을 망치는 작은 매미알좀벌에서 벗어나 겨우 깨어나도 많은 애벌레가 이 때 땅 위에서 죽거나 적에게 먹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미 매미는 300--400 개나 되는 알을 낳는 것입니다. 매미를 사육하기 위해 파브르 선생님이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은 애벌레가 파고 들어가기 쉬운 부드러운 부엽토였습니다. 부엽토란 낙엽 등이 땅에 떨어져 썩어서 된 검은 흙입니다. 연노랑색의 작은 애벌레를 보기 쉽도록 검은 흙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을 체로 쳐서 돌이나 쓰레기를 골라냈습니다. 선생님은 흙을 유리 그릇에 담았습니다. 흙의 두께는 10센티 정도,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백리향을 심고 밀알도 뿌렸습니다. 유리 그릇 바닥에는 구멍이 없습니다. 사실 물 빠질 구멍이 있는 편이 좋으나 애벌레가 구멍으로 도망가면 곤란합니다. 풀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만 물을 주기로 했습니다. 준비가 갖추어지고 밀알의 싹이 터서 작은 잎이 자라기 시작했을 때 파브르 선생님은 매미의 작은 애벌레 여섯 마리를 땅 위에 놓아주었습니다. 애벌레는 생각보다 활발히 움직였습니다. 땅 위를 꽤 빠르게 돌아다녔습니다. 들어갈 장소를 찾는 것이겠지요. 유리 그릇을 기어 오르려고 하는 것도 있었지만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느 것 하나 파고 들어갈 생각을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애벌레들은 아직도 돌아다니기만 합니다.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생각한 선생님은 구근의 부드러운 흰 뿌리와 신선한 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변함없이 돌아다니기만 합니다. 아마 애벌레들은 땅속으로 들어가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찾고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선생님이 준비한 흙은 부드럽고 조건도 퍽 좋을 텐데 어째서 빨리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요? 보통 땅에 떨어진 애벌레는 먼저 그 주위를 한바퀴 돌아 봅니다. 이때 딱딱하게 굳은 땅은 갈고리 모양의 앞다리로 팔 수 없으므로 알맞은 장소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맬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장소를 찾지 못하면 피로에 지쳐 그대로 죽어 버리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애벌레들을 위해 준비한 유리 그릇 안의 흙은 부드럽고 상태도 아주 좋은 것이므로 이런 고생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선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은 컴퓨터의 프로그램처럼 애벌레의 행동 방법 속에 짜여져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정해진 대로 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애벌레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앞다리를 곡괭이처럼 써서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물 같은 구멍이 파졌습니다. 작은 벌레는 구멍 속으로 내려가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땅속 세계에서 몇 년 씩이나 생활하게 됩니다. ------------ 겨울의 추위를 피해서 다음날 파브르 선생님은 그릇을 뒤집어 종이 위에 흙을 펴고 속을 살펴보았습니다. 애벌레 여섯 마리는 모두 뒤집힌 흙 위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리 그릇 바닥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흙 가운데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24시간 동안 이 애벌레들은 터널을 파고 있었습니다. 유리 바닥만 없었더라면 틀림없이 더 밑에까지 파 내려갔을 것입니다. 땅속을 파다가 애벌레들은 풀뿌리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애벌레들은 그 뿌리에 가는 침 같은 입을 찔러 넣어서 즙을 빨아먹었을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유리 그릇 바닥에는 밀의 흰 뿌리가 닿아 있었지만 거기에 애벌레가 붙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벌레는 도중에 발견한 나무나 풀뿌리의 즙을 빨기보다는 우선 추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땅 밑으로 밑으로 깊이 파 들어간 것입니다. 애벌레가 언제 처음으로 식사를 하는지 선생님은 볼 수 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종이 위에 쏟아 놓았던 부엽토를 다시 유리 그릇에 담고, 여섯 마리의 애벌레도 다시 흙 위에 놓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곧 구멍을 파기 시작하여 땅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선생님은 유리 그릇을 연구실 창가에 놓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땅속 온도도 지상의 온도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로부터 1개월 후인 11월 말에 또 유리 그릇을 뒤집어 보았더니, 애벌레들은 땅 밑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풀뿌리에 붙어 있지도 않았고 커지지도 않았습니다. 전유충의 껍질을 벗은 때 그대로였으며, 움직임만 약간 둔해져 있었습니다. 겨울이라고는 해도 아직 11월입니다. 벌써부터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겨울 동안은 식사를 전혀 하지 않는 게 아닐까요? 곤충 중에는 알에서 깨어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혹독한 계절을 보내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 6권에서 다룰 흰줄벌이 바로 그렇습니다. 매미 애벌레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겨울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흙 속은 겨울에도 바깥만큼 추워지지 않기 때문에 땅속 깊이 파고들어 우선 겨울잠을 잡니다. 그리고 봄이 와서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가까이에 있는 나무뿌리에 침같이 생긴 입을 찔러 넣어 처음으로 주스를 마시는 게 아닐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매미의 생활을 이렇게 예상해 보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관찰하여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4월이 되자 선생님은 유리 그릇에 있는 백리향을 뽑아 뿌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매미 애벌레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뿌리에 붙은 흙을 조금씩 파 보다가 겨우 발견했지만 안타깝게도 애벌레들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역시 추위 때문이었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백리향의 즙을 마실 수가 없어서 굶어 죽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매미 애벌레를 사육하기 위해서는 겨울 추위가 흙 속까지 미치지 못하도록 두꺼운 흙이 필요하겠지요. 또 애벌레가 좋아하는 식물의 뿌리가 꼭 필요합니다. 커다란 화분에 나무를 심고 매미 애벌레를 기르는 것은 가능하지만 흙 한가운데 것을 어떻게 관찰하면 좋을까요? 몇 번씩이나 파내어 살펴본다면 애벌레들이 어디론가 섞여 들어가 찾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4 년 후의 여름을 기다리다. 파브르 선생님은 갓 태어난 매미 애벌레가 땅속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실제로 보지 못했습니다. 밭일을 할 때 땅을 깊이 파헤치면, 잘 자라서 몸이 튼튼해진 애벌레가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흙을 파기 시작할 때 나는 땅울림으로 위험을 느낀 애벌레는 뽀족한 입을 식물 뿌리에서 떼고 구멍 구석으로 피해 버립니다. 그래서 나무뿌리에서 즙을 빨아먹고 있는 모습은 도저히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친절한 이웃 농부들은 선생님을 위해 3월에 밭을 갈다가 파낸 매미 애벌레를 모두 100 마리나 모아 주었습니다. 이 애벌레들은 크기에 따라 뚜렷하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등에 오므라진 듯한 날개를 달고 있으며, 충분히 자라 올 여름에는 우화할 것 같은 종류와 중간 정도의 것, 작은 것 등 세 가지입니다. 각각 1 년씩 연령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최근에 깨어나 땅으로 막 들어간 것은 것은 너무 작아서 도저히 발견할 수 없었을 테니까 이것까지 합하면 매미가 땅속에서 지내는 기간은 4 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의 매미의 생활은 이미 조금은 알려져 있습니다. 매미가 처음 울기 시작하는 것은 하지가 될 때쯤입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면 매미들은 숫자도 많아지고 더욱 열심히 울어댑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조금씩 조용해집니다. 지상에 늦게 나온 것 중에는 9월 중순경까지도 혼자서 쓸쓸히 울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매미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성충 매미 수명은 2,3주 정도이지요. 깜깜한 지하에서 땅 파기 4 년, 그리고 태양빛을 받으며 2,3주. 매미의 일생은 이렇게 지나갑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시끄럽다고 해서 매미의 노래를 탓하기에는 매미가 너무 불쌍하다고, 소음을 아주 싫어했던 파브르 선생님조차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의 애벌레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해서 그 멋진 날개로 하늘을 날고 나무 즙을 마음껏 빨며, 큰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것은 겨우 2,3주뿐인 것입니다. 즐거운 생활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힘든 생활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II. 진딧물과 천적들 금작화의 축제 6월이 오면 파브르 선생님이 사는 아르마스의 정원은 숨막힐 만큼 달콤한 꽃향기로 가득합니다. 그 향기의 주인공은 바로 노란꽃이 잔뜩 피어 있는 금작화나무입니다. 금작화라면 양치 식물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콩류, 즉 콩과에 속하는 식물입니다. 콩류에는 꽃집에서 팔고 있는 스위트 피처럼 나비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모습에 향기 좋은 꽃을 피우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스위트 피 같은 화초가 아니라 등나무처럼 커다란 나무로 자라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열대 지방에는 큰 나무로 자라 괴물같이 거대한 깍지 속에 콩이 열리는 것도 있습니다. 남프랑스의 황무지에서도 잘 자라는 금작화는 화초가 아니라 나무처럼 자라는 콩과의 식물입니다. 12세기경 영국에는 노란 금작화를 투구에 꽂고 싸움터로 나가기로 유명한 왕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으로부터 플랜태지닛 왕조가 시작되는데, 이 플랜태지닛이라는 이름 속에는 플랜트, 즉 '식물'과 '쥬네'라고 하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이 '쥬네'란 금작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노란 금작화가 남프랑스의 산과 황야를 물들일 무렵이면 그리스도교의 성체일이라는 축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꽃이 핀 이 금작화 나뭇가지를 많이 꺾어서 축제장을 꾸밉니다. 같은 시기에 들판에 피는 새빨간 개양귀비꽃과 함께 바구니를 가득 채우거나 아름다운 꽃다발로 만들어 향로의 연기 속으로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이 금작화로 만들어 내는 것은 말하자면 '지식의 꽃다발'입니다. 많은 벌레들이 이 나무를 집으로 삼고 생활하므로, 주의 깊게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끝없는 지식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 개미의 목장 시원한 여름이면 금작화 줄기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작고 검은 진딧물(물론 바퀴벌레와는 다릅니다)이 생깁니다. 너무 많은 진딧물이 모여 있어서 녹색 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진딧물을 확대경으로 살펴보면, 꽁무니 끝에 두 개의 짧은 뿔이 나 있습니다. 이 작은 진딧물들은 실은 매미와 가까운 곤충입니다. 매미가 대롱 같은 입으로 나무 즙을 빠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딧물도 가는 침처럼 생긴 입을 나무나 풀에 찔러 넣어서 즙을 빨아먹습니다. 진딧물이 식물의 즙을 빨고 있으면, 개미가 다가와 더듬이 끝으로 진딧물의 꽁무니에 난 두 개의 뿔관을 톡톡 칩니다. 그러면 진딧물은 꽁무니 끝으로 주루룩 하고 투명한 물방울을 내고, 개미는 그것을 좋아라 핥아 먹습니다. 진딧물의 꽁무니 끝에서 나오는 이 물방울은 무척 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것을 '감로'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바로 진딧물이 식물에서 빨아먹는 즙 속에 있던 당분입니다. 개미는 진딧물로부터 달콤한 물을 받는 대신에 진딧물을 잡아먹으러 오는 적으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 준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진딧물을 두고 '개미의 암소'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목축이 성한 유럽에 딱 맞는 표현입니다. 개미 중에는 나무 껍질 위에 진흙 같은 것으로 독특한 지붕을 만들어 진딧물을 보호해 주는 것도 있습니다. 금작화가 핀 곳에서 파브르 선생님이 관찰을 하고 있는 동안 많은 개미들이 줄지어 바쁘게 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진딧물의 감로를 잔뜩 마시고 내려왔습니다. 참 열심히들 일을 합니다. 그러나 진딧물이 워낙 많은 데다 그 수는 자꾸 늘어나므로 개미가 아무리 열심히 감로를 마셔도 다 마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진딧물의 꽁무니 끝에서 나오는 감로가 남아서 뚝뚝 떨어져 아래쪽 가지와 잎도 끈적끈적해집니다. 진딧물이 많이 붙어 있는 나무 밑에 자동차를 세워 두면 이 감로 때문에 먼지가 들러붙어 차 지붕과 트렁크 위가 찐득찐득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한참 뒤에 돌아온 차 주인은 그것을 보고 '이상하군.'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합니다. 올 여름에 주의해서 보면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진딧물은 나무와 풀의 즙을 마시고 새끼를 쳐서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이대로 계속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즙이 없어진 나무와 풀은 결국 말라 버리지 않을까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딧물이 내는 달콤한 당분을 핥으러 파리나 벌 등 여러 가지 곤충이 모여드는데, 그 가운데에는 진딧물을 잡아 먹을 목적으로 오는 벌레, 즉 진딧물의 천적들도 많이 있습니다. ------------ 모여드는 천적 서로 엉킨 채 나무 즙을 빨고 있는 진딧물 무리를 향해 머리가 작고 하반신이 뚱뚱한 구더기 같은 괴물 한 마리가 머리를 흔들흔들하며 다가옵니다. 그리고 몸의 윗부분을 뱀처럼 세우고 갑자기 진딧물 한 마리를 공격합니다. 날카롭게 나온 입 끝으로 진딧물을 찌르듯이 물어 올려서는 진딧물의 체액을 쭉 하고 빨아먹습니다. 불쌍한 진딧물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곧 빈 껍데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자 괴물은 그 껍데기를 휙 하고 옆으로 던져 버리고 곧 다른 진딧물을 붙잡아 체액을 빱니다. 이렇게 차례차례 계속해서 다른 진딧물을 습격합니다. 배가 잔뜩 부른 괴물은 잠시 쉬더니 또 다시 무시무시한 식사를 시작합니다. 이 괴물이 바로 진딧물의 천적입니다. 이렇게 친구들이 계속 먹히고 있는 동안 다른 진딧물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진딧물 수가 너무 많아서 꽉 끼어 있을 때에는 친구가 잡아먹혀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친구들이 죽어서 땅에 떨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가 괴물의 큰턱에 물려 높이 쳐들리고, 마침내는 쪼글쪼글한 빈 가죽 주머니처럼 되어 휙 내던져지는데도 주위의 진딧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즙만 계속 빨아먹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잡힌 진딧물들이 친구들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페로몬'이라는 물질을 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곁에 있던 것들은 위험을 느끼고 밑으로 떨어집니다. 밑으로 떨어진 진딧물들은 천천히 걸어서 다시 나무에 붙어 즙을 빨기 시작합니다. 만약 인간이 진딧불의 입장이라면 무서워 견딜 수 없었겠지만 진딧물들은 어떨까요? 그것은 물론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자연은 진딧물에게 인간이 느끼는 정도의 공포심이나 복잡한 감정을 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즉, 진딧물은 이런 경우에도 '일이 귀찮게 됐군.'하는 정도로밖에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괴물은 먹는 속도가 무척 빠르고 대식가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상당히 나쁜 식사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의 진딧물을 먹기 시작했는가 하면, 도중에 휙 던져 버리고 다시 다른 것을 물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 빨아먹고는 버리고 또 조금 빨아먹고는 버리는 동안에 괴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죽기 일보 직전의 진딧물과 쭈글쭈글한 가죽 주머니처럼 되어 버린 시체 더미가 생깁니다. 마치 죽음의 신이 큰 낫을 휘두르며 지나간 것 같은 풍경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괴물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진딧물을 희생 시키는지 그 수를 세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 피에 굶주린 벌레를 유리관 속에 넣고 진딧물이 잔뜩 붙은 금작화 가지를 넣어 주었습니다. 괴물은 길이 16센티에 이르는 가지를 뒤덮고 있던 진딧물들을 하룻밤 새에 전멸시켰습니다. 가지에는 약 3백 마리의 진딧물이 있었습니다. 2,3주간 계속 먹으며 성충이 되는 이 괴물은 대충 계산해서 수천 마리의 진딧물을 먹는 것입니다. 정원에 있는 장미의 새싹 등에 붙은 진딧물과 이 괴물을 함께 가져와서 여러분도 길러 보면 좋겠지요. 진딧물을 실컷 먹은 이 벌레는 이윽고 가지 같은 모양의 갈색 번데기가 됩니다. 이 번데기에서 어떤 무서운 녀석이 나올까 생각했는데, 드디어 나온 성충은 황색과 검정색의 호리호리하고 귀여운 등에였습니다. 이 등에를 보면 "아! 이건 나도 알아."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뜰이나 숲의 공터 같은 곳에서 공중 정지 비행을 하는 헬리콥터처럼 공중의 한곳에 머물고 있는 작은 등에인 것입니다. 이름은 꽃등에. 성충이 되면 진딧물이 내는 즙을 핥거나 꽃의 꿀을 빨아먹는 데 그치는 이 등에가 애벌레 시절엔 이런 무서운 육식성 괴물이었습니다. ------------ 우담화 꽃 진딧물의 천적은 꽃등에 애벌레만이 아닙니다. 금작화에 붙어 있는 새카만 진딧물 무리의 옆이나 나뭇잎 뒤를 보면 가늘고 긴 실이 여러 개 붙어 있고, 그 끝에 하얀 알갱이가 붙어 있습니다. 태양 광선이 나뭇잎에 비칠 때면 녹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알갱이는 풀잠자리라고 하는 연녹색의 연약한 벌레의 알입니다. 이 실 끝에 붙은 알 껍질이 깨지면 마치 우담화가 핀 것처럼 보입니다. 우담화란, 3천 년에 한 번 핀다는 불교 이야기 속의 귀한 꽃입니다. 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도 역시 진딧물을 먹습니다. 그 몸을 확대경으로 잘 살펴보면, 입 부분에 딱 벌어진 두 개의 커다란 어금니가 붙어 있고 등은 혹투성이입니다. 아것이 만약 크다면,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스테고사 우루스라는 공룡처럼 무시무시한 생물이 되겠지요. 더구나 걷는 것도 빠르고 민첩합니다. 그러므로 진딧물에게는 꽃등에 애벌레보다도 더욱 무서운 천적이 풀잠자리 애벌레인 것입니다. 풀잠자리 애벌레는 큰턱 끝으로 진딧물을 푹 찔러서 입도 움직이지 않고 진딧물의 체액을 빨아먹어 버립니다. 커다란 집게 같은 큰턱의 끝은 먹이의 체액을 빠는 대롱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풀잠자리 애벌레는 이상한 일을 합니다. 체액을 빨아먹고 난 진딧물의 껍데기를 갖다가 자신의 등에 자꾸 붙입니다. 마치 누더기 조각을 잔뜩 등에 짊어져서 자신이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윽고 풀잠자리 애벌레는 희고 작은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됩니다. 그러나 그 전에 대량의 똥을 눕니다. 풀잠자리 애벌레는 그 때까지 전혀 똥을 누지 않다가 번데기가 되기 직전에 많은 똥을 한꺼번에 누는 것입니다. 하얀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부화하여 연약한 풀빛 벌레가 나옵니다. 풀잠자리도 밤이면 전등불에 모입니다만 밤에 전등불에 모이는 풀잠자리는 눈이 금빛으로 빛나서 자세히 보면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충도 애벌레와 마찬가지로 진딧물을 마구 먹어 치웁니다. 무심코 풀잠자리를 손으로 잡으면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풀잠자리라는 이름은 풀빛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기보다는 냄새가 고약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진딧물의 천적은 또 있습니다. 둥글고 빨간색 등에 검은 점이 찍힌 아름다운 무당벌레 역시 이 진딧물을 게걸스럽게 먹어 버립니다. 프랑스에서 무당벌레는 무척 사랑받는 벌레로, 프로방스 지방 처녀들은 무당벌레를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가르쳐다오 무당벌레야. 내가 시집갈 때는 어느 쪽으로 가게 될까 자꾸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있는 무당벌레는 손가락 끝까지 올라간 후 붕 하고 날아가 버립니다. 이 무당벌레가 만약 교회쪽으로 날아가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 처녀에게 "에이, 수녀가 되겠군."하고 놀려대고, 만약 젊은이 쪽으로 날아가면 "곧 결혼하겠네."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옛날의 시골 처녀들은 무당벌레를 손가락에 놓고 그런 점치기 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는 무당벌레가 '신의 벌레' 또는 '마리아의 벌레'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모습이 귀엽고, 점치기 놀이를 할 수 있으며, 실질적인 이유로는 식물의 해충인 진딧물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벌레는 진딧물에게는 무척 무서운 존재입니다. 진딧물 무리 속에 날아간 무당벌레는 한쪽 끝부터 우적우적 진딧물을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무당벌레 역시 육식성이므로 성충과 함께 많은 진딧물을 먹어 치웁니다. 애벌레는 둥글둥글한 성충과는 모습이 전혀 달라서 푸른 빛이 도는 회색에 오렌지색 무늬가 있는 가늘고 긴 벌레입니다. 움직임은 꽤 민첩한 편으로, 바쁜 듯이 돌아다니며 진딧물을 공격합니다. 애벌레는 마침내 갈색 번데기가 되고, 2,3주 정도 지나면 빨강과 검정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무당벌레가 됩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은 마치 새로 나온 자동차 같습니다. ------------ 무서운 좀벌 이처럼 꽃등에나 물잠자리, 그리고 무당벌레 애벌레와 그 성충이 합세하여 진딧물 무리를 공격해 체액을 빨기도 하고 무지막지하게 먹어 버립니다. 그러나 진딧물의 적은 그 밖에도 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적은 위의 천적들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진딧물을 해치웁니다. 그것은 진딧물과 거의 같은 크기의 작은 벌로서 날고 있을 때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좀벌 종류입니다. 좀벌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몸길이가 2 밀리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듬이가 실처럼 길고 허리는 가늘고 잘룩하며, 허리가 시작되는 부분은 빨간색입니다. 그 외에는 전체가 검은색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진딧물이 잔뜩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살펴보다가 마침 이 좀벌이 날아와 진딧물 몸에 알을 낳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나뭇가지째 시험관 속에 넣고 확대경으로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지금 한 마리의 좀벌이 진딧물의 등 위를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아마 한 마리의 진딧물을 골라낸 것 같습니다. 꽁무니를 구부려 그 끝을 앞쪽으로 내밀었습니다. 꽁무니 끝에는 물론 알을 낳기 위한 관이 침처럼 가늘게 달려 있습니다. 좀벌은 마치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서 찌르는 것처럼 진딧물의 배에 산란관을 푹 찔러 넣었습니다. 찔린 진딧물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좀벌의 산란이 모두 끝났습니다. 달콤한 즙으로 터질 듯한 진딧물의 뱃속에 벌이 알을 낳은 것입니다. 좀벌의 애벌레는 진딧물 몸 속에서 깨어나 그 내부를 먹으며 자랍니다. 알을 다 낳은 좀벌은 가는 산란관을 도로 넣은 후 다리를 비비기도 하고 다리 끝으로 날개를 다듬기도 합니다. 자손을 남긴다는 가장 중요한 일을 무사히 끝냈으므로 만족해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쉬는 것은 아닙니다. 곧 또 다른 제 2, 제 3의 진딧물을 찾아 산란을 계속합니다. 좀벌은 종류가 많고, 진딧물의 종류에 따라 기생하는 좀벌도 다릅니다. 파브프 선생님이 시험관 속에 넣어 기르면서 관찰하였더니, 좀벌이 알을 낳은 진딧물은 뱃속에서 깨어난 좀벌의 애벌레가 몸 속을 파먹자 점점 괴로워하는 듯했습니다. 대롱 같은 입으로 즙을 빨던 가지에서 떠나 가까이에 있는 잎에 머물다가 이윽고 바짝 말라서 빈 껍데기처럼 되어 버립니다. 종류에 따라서는 가지에 붙은 채 바짝 말라 버리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라 버린 진딧물의 등에 둥근 구멍이 뚫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좀벌이 나와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뒤에는 매미 껍질을 축소한 듯한 진딧물 껍질만 남게 됩니다. 이 껍데기는 나무에 꼭 붙어 있어서 붓으로 떼어 내려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진딧물의 다리만으로 나무에 들러붙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살며시 침 끝으로 떼어 내 뒤편에서 배를 보니, 거기에는 세로로 터진 금이 있고 비단실 같은 것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좀벌 역시 벌 종류라서 번데기가 될 때는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진딧물의 배가 저절로 찢어졌는지 좀벌의 애벌레가 찢었는지는 모르지만 껍데기 속에서 만들어진 벌의 고치가 이 찢어진 틈에서 밖으로 비어져 나와 껍데기 전체를 나뭇가지에 꼭 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좀벌에게는 비바람을 막아 주는 오두막 구실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진딧물은 다른 육식 곤충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벌레입니다. 제일 먼저, 진딧물은 식물의 즙을 빨아먹고서 살을 만듭니다. 식물의 즙은 대지와 공기와 햇빛으로 만들어 낸 영양입니다. 진딧물이 만든 살, 즉 진딧물 자신의 몸을 다른 육식 곤충들이 먹고 자랍니다. 그 곤충들도 다른 벌레나 새에게 먹힙니다. 이렇게 해서 영양은 계속 전해져 갑니다. 그것은 마치 양, 소, 토끼와 같은 초식 동물이, 여우, 사자, 늑대 같은 육식 동물에게 먹히는 것과 같습니다. 차례로 '생명의 연금술', 즉 생명의 신비한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III. 큰배추흰나비와 양배추 1. 양배추의 흰나비 나비와 나방의 차이 나비는 옛날부터 아름다움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꽃에 앉은 나비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나방은 기분 나쁜 것, 싫어하는 것의 대표 격입니다. 더구나 애벌레인 털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나비와 나방은 어디가 어떻게 다를까요? 나비는 낮에 날아다니지요, 나방은 밤에 불빛을 보고 옵니다. 나비의 더듬이는 나무 막대 같은데, 나방의 더듬이는 꼬챙이나 가는 수염 같습니다. 나비의 몸체는 가늘지만 나방의 몸체는 통통하다거나, 나방은 독이 있다거나, 아니 그보다는 나비는 깨끗하지만 나방은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말한 나비와 나방의 차이에는 모두 예외가 있습니다. 우선 나방 중에도 낮 동안 날아 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 삼지무늬나방과 금무늬나방이 유명하고, 동남아시아와 남미에 가면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나방이 낮에 날아 다닙니다. 또 나비와 나방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프리카 동남쪽에 있는 큰 섬인 마다가스카르의 비단큰제비나방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듬이의 모양도 그렇습니다. 나비 중에는 팔랑나비처럼 가는 수염 같은 더듬이를 가진 것도 있고, 나방 중에는 막대기 모양의 더듬이를 가진 것도 있습니다. 몸의 굵기도 여러 가지라서 굵고 가는 것만으로는 나비와 나방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앞날개와 윗날개가 이어져 함께 날개짓을 할 수 있는 '연결기'가 있고 없음에 따라 나비와 나방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라플즈팔랑나비라고 하는, 연결기가 달린 나비도 있습니다. 결국 나비와 나방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나비는 깨끗한데 나방은 더럽다고 말하지만 수수하게 보이는 나방의 날개도 자세히 보면 매우 정취 있는 색과 무늬를 갖고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나비와 나방을 합쳐 인시류, 즉 '날개에 비늘이 달린 곤충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날개를 현미경으로 보면, 가루가 생선비늘처럼 줄지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인시류의 대부분은 나방으로, 극히 일부분만을 나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비의 종류는 전세계적으로 약 2 만여 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약 200여 종의 나비가 살고 있습니다. 지금 본 것처럼 구별이 확실하지 않은 이 두 곤충을 영어로는 버터플라이(나비)와 모스(나방)로 구별하고 있지만 양쪽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언어도 많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는 나비도 나방도 '빠삐용'이라고 말합니다. 이 빠삐용이라는 말은 프랑스어의 선조 격인 라틴어의 '파필리오'에서 온 것으로, 파필리오에는 나비 외에도 천막이나 깃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람에 펄럭펄럭 휘날리는 깃발이나 팔랑팔랑 날아가는 나비, 둘 다 파필리오라는 말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 밖에도 필리핀에서는 파로파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쿠프쿠프, 이탈리아에서는 파르팍파라라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 또는 더 오랜 옛날부터 나비는 인간의 혼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밤에 화톳불이나 촛불에 이끌려 나방이 왔나 보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 속으로 뛰어들어 '지직'하고 타 죽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무척 이상하게 여깁니다. 벌레가 자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것을 한 번 더 젊게 되살아나기 위해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비와 나방은 '죽음과 재생'의 상징이 되었고 불멸의 혼으로 영원히 맺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나비와 나방을 푸쉬케(혼)로 불렀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하얀 나비를 죽은 사람의 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모두 인간이 마음대로 상상한 것일 뿐입니다. 나비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이 지구상에 존재한 아름다운 곤충입니다. 자, 나비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파브르 선생님이 조사한 것을 읽어 보기로 합시다. ------------ 배추흰나비는 양배추를 좋아해. 보통 나비의 애벌레는 나무나 풀을 먹는 배추벌레 아니면 송충이입니다(나방의 애벌레뿐만 아니라 호랑나비의 애벌레 중에도 송충이 모습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먹이는 나비의 종류에 따라 정해져 있습니다. 호랑나비와 남방제비나비의 애벌레는 귤나무, 탱자나무, 산초나무의 잎을 먹습니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는 무나 양배추를 먹습니다. 나비는 언제나 애벌레의 음식물이 될 식물을 찾아 날아다닙니다. 그리고 더듬이와 앞다리로 만져서 확인한 후 식물 위에 알을 낳습니다. 나비는 식물들의 독특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도 식물의 냄새를 맡고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식물인지를 먼저 확인한 후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절대로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비 중에서 파브르 선생님이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큰배추흰나비였습니다. 이 나비는 우리 나라에는 없으나 유럽과 히말라야 지방에 걸쳐 살고 있는 배추흰나비의 일종으로 양배추잎을 아주 좋아합니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수프의 재료가 되는 귀중한 양배추를 갉아먹는 이 해충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어머니나 할머니를 도와 '배추벌레'를 잡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양배추와 이 배추벌레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배추흰나비나 큰배추흰나비의 먹이가 되는 양배추가 옛날부터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요? 밭에 난 양배추는 보았어도 산이나 들판에 나는 야생 양배추는 아직 본 적이 없겠지요? 그러고 보니 다른 야채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배추나 무, 당근, 배추 등이 아주 먼 옛날부터 그렇게 맛있고 먹을 게 많은 야채로 자연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과 맛을 가진 야생 식물을 인간이 연구하여 개량해 낸 것입니다. 양배추의 원산지는 유럽이라고 합니다. 자연 상태에 있을 때는 줄기가 껑충하게 길고, 잎도 단단하며 좁은 데다 맛이 쓰고 냄새가 강한 식물이었습니다. 이런 야생 식물을 발견하여 먹기 좋고 맛있는 야채로 개량하려고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조금씩조금씩 인간의 손이 가서 양배추의 모양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우선, 야생 양배추는 단단하고 맛없어 보이는 잎이 달린 야생 식물에서, 크고 두터우며, 맛있는 잎이 많이 달리는 야채로 개량되었습니다. 인간은 양배추를 많이 심고 그 중에서 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내어 그 씨를 다시 뿌리는 식으로 식물을 계량해 갑니다. 양배추 잎은 커다라 구슬 모양으로 감겨지고, 햇빛이 닿지 않는 중심 부분은 희고 부드럽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무게가 50 킬로나 되는 커다란 것도 재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원예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지요. 그 후 인간은 양배추의 꽃봉오리를 개량하여 맛있게 만들자는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꽃봉오리가 많이 모여 커다란 모양이 되도록 개량된 것이 콜리플라워와 브로콜리입니다. 식물은 꽤 여러 가지로 발달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재배법에 의해 길게 자란 줄기에 작은 싹이 많이 열리도록 개량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눈양배추입니다. 또한,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줄기도 연구 결과 살이 많이 붙어서 크고 둥글게 부풀고 연하게 되었습니다. 양배추는 인간이 개량하려고 생각한 대로 모양을 바꾸어 인간의 음식물로, 또는 가축의 사료로 훌륭한 야채가 된 것입니다. 양배추는 인간의 말을 잘 듣는 아주 신기한 식물입니다. ------------ 배추흰나비의 보물 유럽에서는 양배추가 가장 오래 전부터 재배된 야채 중의 하나입니다. 가장 처음 재배된 야채가 누에콩, 그 다음이 완두콩, 양배추는 그 다음으로 오래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5,23^로마 시대에 이미 매우 귀중하게 취급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밭에서 재배해 왔습니다. 보통 역사책에는 인간을 많이 죽인 전쟁이나 왕에 대해서는 자세히 써 있으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양배추나 밀의 조상이 무엇인지, 그것들을 언제 어떻게 밭에서 재배하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인간의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먹는 식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특히, 옛날부터 인간이 재배해 온 양배추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양배추는 인간의 보물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맛있게 먹는 것은 인간만이 아닙니다. 배추흰나비와 큰배추흰나비들도 양배추를 먹이로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줄흰나비 등도 양배추를 먹습니다. 배추흰나비와 큰배추흰나비의 애벌레인 배추벌레는 양배추 종류라면 겉모양이 아무리 달라도 맛과 냄새로 곧 아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많은 시간을 들여 끈기 있게 연구하여 만들어 낸 모든 종류의 양배추들을 게걸스럽게 와작와작 먹어 치웁니다. 그런데 이런 양배추를 재배하기 이전에는 배추벌레들은 무엇을 먹고 자랐을까요? 아무리 보아도 인간이 양배추를 재배하고 난 이후에 배추흰나비 종류가 생겼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문명을 이루기 전부터 나비는 물론 이 세상에 있었습니다. 인간이 없어진다고 해도 나비는 살아 남겠지요. 다만, 배추흰나비와 큰배추나비의 경우는 인간이 양배추 밭을 많이 만든 덕분에 더 크게 번식하고 있습니다. 즉, 이 나비들은 인간의 문명과 합께 번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 십자화 식물 외에는 먹지 않는다. 먼 옛날 배추흰나비와 큰배추흰나비의 애벌레는 해안에서 자라던 야생 양배추의 조상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식물은 어디서나 자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수도 적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흰나비 종류는 양배추 외에 같은 종류의 야생 식물도 먹었습니다. 양배추 종류의 식물은 네 장의 꽃잎이 십자가 모양으로 피어서 십자화 식물로 불려 왔습니다. 현재는 그 대표적인 것의 이름을 따서 유채과 식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갓이나 무, 냉이 등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양배추와 마찬가지로 콕 쏘는 냄새가 납니다. 그 냄새의 원인은 유황 성분을 포함한 물질에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큰배추흰나비의 애벌레를 산겨자라는 야생 식물로 길러 보았습니다. 산겨자도 유채과 식물의 하나입니다. 이 식물은 길가나 담 밑에서 자라는데, 꺾으면 진한 냄새가 납니다. 선생님은 산겨자를 화분에 심고 거기에 배추벌레를 올려놓고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위에서부터 커다란 철망 바구니를 씌웠습니다. 배추벌레들은 산겨자 잎을 우적우적 먹기 시작합니다. 양배추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먹는게 아니라 맛있다는 듯 게걸스럽게 먹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틀림없이 고치도 만들고 나비도 되었습니다. 먹이를 바꾸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산겨자처럼 강한 냄새가 나지 않는 다른 유채과 식물, 예를 들어 흰겨자 같은 것을 주어도 마찬가지로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양상치, 누에콩, 완두콩 잎은 전혀 먹지 않았습니다. 이 식물들은 양배추류가 아닌 것입니다. 양배추의 배추벌레는 유채과 식물이라면 무엇이나 잘 먹지만 그 외의 것은 절대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미인 나비는 마구잡이로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언제나 알을 낳는데 필요한 애벌레의 먹이, 즉 애벌레가 먹을 수 있는 풀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겉보기에는 완전히 다르더라도 유채과 식물이면 바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럼 큰배추흰나비의 어미는 자신의 애벌레가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어떻게 구별할까요? 어떻게 그것이 유채과 식물인지 아는 것일까요? 나비는 알을 낳기 전에 잎을 조금 갉아먹어 보는 것일까요? 아니죠, 나비의 입은 도르르 말린 가느다란 대롱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못 합니다. 물론 잎의 즙이 어떤 맛인지 알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럼 꽃으로 구별하는 걸까요? 나비는 꽃의 구석에 있는 꿀샘에 입을 대고 쭉쭉 마시니까요. 그러나 어미나비가 애벌레의 먹이를 찾아올 때는 아직 꽃이 피기 전일 때가 많습니다. 나비는 그 식물 주위를 날며 더듬이로 톡톡 건드려 검사를 합니다. 이런 간단한 동작만으로 먹이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유채과 식물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 위해 꽃을 자세히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씨의 모양이나 네 장의 꽃잎이 십자형으로 피어 있는지를 잘 보고 나서야 유채과 식물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배추흰나비는 눈으로 보고 더듬이로 만지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애벌레의 먹이임을 알아내 버립니다. 식물은 서로 아주 다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식물학을 공부한 사람도 '이 꽃은 어떤 종류일까?'하고 갸우뚱할 때에 나비는 즉시 구별을 합니다. 큰배추흰나비는 천성적으로 냄새로 식물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겠지요. 프랑스에서 큰배추흰나비는 보통 1 년에 두 번 크게 번식합니다. 한 번은 4월에서 5월 사이, 그리고 또 한 번은 9월입니다. 마침 밭에는 큰 양배추가 있을 즈음입니다. 나비의 달력은 농작물 달력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먹을 것이 준비되어 있을 때에 먹는 쪽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태어난 나비도 있지만 그 때는 길가에 나 있는 야생 유채과 식물을 먹으며 그럭저럭 살아갈 뿐 크게 번식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별로 두드러지지도 않지요. 또 먹을 것이 적으면 나비의 크기도 작아집니다. ------------ 태어난 후 첫번째 식사 갓 낳은 배추흰나비의 알은 레몬빛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밝은 오렌지색이 됩니다.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무척 예쁩니다. 그것은 끝을 조금 잘라낸 듯한 원추형으로, 둥근 바닥 쪽을 밑으로 하여 낳은 것입니다. 그리고 세로로 홈이 패여 있고 옆으로도 줄이 많이 나 있습니다. 배추흰나비는 알을 군데군데 떨어뜨려 낳지만, 큰배추흰나비는 한군데에 무더기로 낳습니다. 식물에 부착하여 산란된 알의 수를 세어 보면 2백 개가 넘는 것도 흔합니다. 암컷이 알을 낳고 있는 곳에 너무 가까이 가면 나비는 곧 도망가 버립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내버려두면 계속 알을 낳습니다. 꽁무니를 천천히 움직여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으로 조금씩 비켜 가면서 낳습니다. 약 일주일이 지나면 알이 깨어납니다. 덩어리로 산란된 모든 알이 한꺼번에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한 마리의 애벌레가 모습을 드러내면 다른 것들도 연달아 나옵니다. 마치 하나의 알이 깨어날 때의 충격이 수면에 돌을 던졌을 때 이는 파문처럼 전해지는 모양입니다. 사마귀 알이 깨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충격이 퍼지면서 모든 형제들이 한꺼번에 눈을 뜨는 것처럼 보입니다. 알은 잘 익은 식물의 씨앗처럼 저절로 터지며 열리지는 않습니다. 애벌레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옵니다. 먼저 알 위쪽에 큰 구멍을 뚫습니다. 출구 주위에 금이 생기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알에서 나온 애벌레가 알껍질을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애벌레가 나온 뒤에 이 아름다운 껍질을 확대경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플라스틱같은 같은 막으로 된 캡슐입니다. 반투명하고 조금 딱딱한 듯한 껍질의 모양은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약 20개 정도의 줄이 세로로 나 있으며, 마치 마법사가 쓰는 가늘고 긴 모자처럼 보입니다. 배추벌레를 탄생시킨 이 작은 모자는 누군가가 정성들여 만든 세공품이라 해도 좋을 만큼 훌륭합니다. 최초로 알이 깨어나기 시작해서 두 시간 정도 지나자 모든 알에 구멍이 뚫리고 애벌레들은 알 껍질 위에서 오랫동안 그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니 애벌레들은 그 예쁜 모자를 전부 먹어 버릴 태세입니다. 갓 태어난 애벌레는 웨하스를 갉아먹듯 알 껍질을 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갉아먹어 갑니다. 하룻밤 동안에 알 껍질을 다 먹어 치워 바닥 부분만이 둥글게 모자이크처럼 남아 있습니다. 배추벌레의 첫 식사는 이 얇은 주머니 같은 알 껍질인 것입니다. 애벌레는 반드시 이것을 먹고 난 다음에 양배추의 푸른 잎을 먹습니다. 그러나 다른 벌레에게서는 이런 일을 별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왜 갓 태어난 배추벌레는 이런 색다른 과자를 먼저 먹는 것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양배추 잎의 표면은 밀랍을 바른 것처럼 매끈매끈하고, 심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갓 태어난 배추벌레가 미끄러져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그러므로 안심하고 식사하기 위해서는 꽉 잡을 수 있는 것이 필요하고, 그 발판은 스스로 비단실을 뽑아 만들면 됩니다. 그러나 갓 태어난 작은 애벌레는 비단실을 만들어 낼 장치는 갖고 있어도 몸 속에 실을 만들 재료는 별로 없습니다. 알 껍질은 애벌레가 내는 비단실과 같은 재료, 즉 단백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껍질을 먹고 몸 속에서 비단실로 바꾸는 일은 애벌레에겐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작은 배추벌레는 먼저 알 껍질을 먹고 몸 속에서 비단을 만들어 그것을 뽑아 발판으로 삼은 뒤 걷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식물성 먹이는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영양도 적어서 빨리 비단실을 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알 껍질을 완전히 먹어 버린 작은 배추벌레들은 연한 오렌지빛이 도는 황색으로, 흰 털이 듬성듬성 곤두서 있습니다. 커다란 머리는 검게 빛나며 몸 크기에 비해서 힘이 센 벌레입니다. 특히 머리 부분이 큰 것은 턱이 단단하기 때문인데, 이 머리만 봐도 많이 먹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배추벌레는 아직 2 밀리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양배추잎에 조금만 닿아도 곧 머리를 흔들며 발판을 만듭니다. 그 실은 몹시 가늘어서 확대경으로 보지 않으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도 아주 가벼운 이 작은 벌레의 발판으로는 충분한 것이지요. ------------ 대식가로부터 밭을 지키려면 드디어 애벌레가 잎을 먹기 시작합니다. 거침없이 먹어 가자 2,3일 만에 작은 벌레의 몸길이가 많이 커집니다. 2 밀리였던 몸길이가 곧 4 밀리가 됩니다. 그 동안에 한번 탈피하여 2령이 되면 모습이 바뀝니다. 노란 피부에 검은 점이 많이 생긴 것입니다. 갓 탈피한 애벌레는 연한 피부가 단단해질 때까지 하루이틀 쉴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쉰 다음에는 전보다 더한 기세로 다시 와작와작 양배추를 먹기 시작합니다. 이런 식으로 몸이 점점 커지고 또 자꾸 먹으면, 몇 주일 만에 양배추는 구멍투성이가 되어 버립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식욕이 좋을까요. 애벌레는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는 위를 갖고 있나 봅니다. 농부들이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것을 보면서 어렸을 때 밭에서 배추벌레를 잡던 일을 생각해 내고 추억에 잠겼습니다. 배추벌레가 머리를 흔들며 양배추를 먹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참 잘도 먹습니다. 다 자란 배추벌레 무리에게는 양배추를 아무리 많이 주어도 두 시간이면 두꺼운 줄기만 남습니다. 먹을 것을 주는 일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잎줄기까지 갉아먹습니다. 큰배추흰나비는 배추흰나비보다 우람한 데다 잎줄기도 먹고, 게다가 무리를 지어 먹기 때문에 밭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벌레로부터 밭을 지킬 수 있을까요? 이미 말했듯이 양배추는 고대 그리스^5,23^로마 시대부터 밭에서 재배되었습니다. 물론 배추흰나비들도 그 밭으로 날아왔습니다. 자기들이 먹을 풀이 이렇게 맛있고 커다랗게 되어 죽 늘어서 있었으니 나비들 역시 '와! 신난다. 맛있겠다.'하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그 시대의 농민들에게 있어 배추벌레는 큰 골칫거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인 플리니우스라는 사람은 '박물지'라는 책 속에 당시 사람들의 습관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벌레들로부터 양배추를 지키기 위해 양배추 밭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백마의 머리 뼈를 얹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특히 암말의 뼈가 가장 효과적으로 밭의 해충을 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물론 이런 로마 시대의 예방법 같은 것을 조금도 믿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살고 있던 프로방스 지방에도 실은 그것과 매우 비슷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미신일수록 오래 남는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하지만 프로방스에서는 양배추 밭에 말의 머리 뼈 대신 달걀 껍질을 막대기 위에 씌워 놓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효과가 있습니까?"하고 파브르 선생님이 이웃 농부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있고말고요."하고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옛날부터 해 왔으니까요. 보세요. 달걀 껍질이 하얗게 빛나지요? 그러면 그것에 이끌려 나비가 알을 낳으러 옵니다. 그렇지만 햇빛이 내리쬐고 알껍질을 먹을 수가 없어서 작은 배추벌레는 금방 죽어 버린답니다. 그만큼 배추벌레 수는 줄어들지요." 파브르 선생님은 또 물어 봅니다. "그럼, 이 하얀 달걀 껍질 위에 나비가 알을 낳고 있는 모습이나 배추벌레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한 번도. 그래도 옛날부터 해 오던 거니까요."하고 농부들은 점잖게 대답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간이 벌레로부터 양배추를 지키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끈기를 가지고 양배추 잎사귀에서 배추벌레를 잡아 내거나, 찾아낸 배추벌레의 알을 손가락으로 부수거나 할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은 손은 아주 많이 가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벌레들이 갉아먹은 자리가 없는 깨끗한 양배추를 손에 넣기란 이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에는 양배추 밭에 농약을 뿌립니다. 그래서 배추벌레는 모두 죽어 버리지만 그 대신 농약이 양배추 속으로 스며들어 사람 몸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옛날의 미신과 같은 방법으로는 양배추에 곧잘 벌레가 끼고 배추벌레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조금 몸에 나쁘더라도 깨끗하고 반짝반짝하는 양배추가 좋은가, 아니면 벌레먹은 양배추로 만족할 것인가. 결국 사람 손이 덜 가고 깨끗해 보이니까 약을 뿌리는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습니다. 게걸스럽게 먹고 자꾸 크는 것, 그리고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어 날아 오르는 일, 배추벌레의 생활은 이것뿐입니다. 배추벌레는 쉴 틈도 없이 게걸스럽게 갉아먹고 소화를 합니다. 이 때 배추벌레는 몸 전체가 다 소화기관이 됩니다. 배추벌레들은 몇 마리씩 모여서 먹다가 가끔씩 부르르 몸을 터는 것 외에는 먹고 쉬기만 합니다. 또 무리 전체가 머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데, 마치 훈련 받는 군인처럼 모두가 똑같이 움직입니다. 적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겁을 주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햇볕이 따뜻하니까 즐거워서 몸을 움직이는 것일까요? 배추벌레가 하는 운동다운 운동은 이것뿐입니다. ------------ 번데기가 될 장소를 찾아서 파브르 선생님이 산겨자로 기르고 있는 배추벌레들은 지금 잘 자라고 있습니다. 처음과 비교해 보면 꽤 컸습니다. 계속 먹기만 하며 한 달이 지나자, 대식가인 배추벌레들도 더 이상 먹지 않게 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철망 바구니 위를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기어올라갑니다. 배추벌레들은 머리를 흔들면서 실을 토해 내며 걱정스러운 듯 우왕좌왕합니다. 어딘가 멀리 가고 싶은 듯하지만 바구니 속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가을이 끝나고 차츰 추워질 무렵 선생님은 배추벌레가 잔뜩 붙어 있는 양배추 몇 개를 화분에 심어 정원에 있는 작은 온실 속에 놓았습니다. 양배추 화분이 외국에서 온 다른 귀중한 식물과 합께 온실 속에 놓여 있는 것은 웬지 아주 이상한 느낌입니다. 밭에는 양배추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선생님, 이걸 도대체 어쩔 생각이세요?"하고 묻거나 비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사람들이 비웃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확실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매우 추울 때는 큰배추흰나비의 애벌레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11월 말이 되자 충분히 자란 배추벌레들이 양배추에서 나와 온실 벽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진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온실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안에 있던 배추벌레들이 모두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배추벌레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겨우 몇 마리를 찾아냈습니다. 온실에서 50걸음 정도 떨어진 담에 가만히 있습니다. 벽 위의 불룩한 곳 아래쪽이나 우묵하게 들어간 곳을 좋아하는 듯 애벌레는 그 곳에 붙어서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봄이라면 일주일 만에 나비가 되지만 가을에는 그대로 그 곳에서 겨울을 납니다. 큰배추흰나비의 애벌레는 매우 튼튼합니다. 여름의 더위도, 늦가을의 추위도 잘 참아 냅니다. 번데기도 바깥 바람이 휙휙 부는 곳에 붙어 있습니다. 또 다른 무리는 온실에서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가둔 채로 놓아 두었습니다. 모두들 밖으로 나가려고 며칠간은 화분에 씌워 놓은 철망 위를 왔다갔다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어다녀도 편평한 벽 같은 곳은 없고 번데기가 될 시기는 다가왔기 때문에, 드디어 단념하고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되기로 결심한 듯합니다. 모두들 우선 바구니의 철망에 실을 토해 하얀 비단 같은 얇은 천을 짰습니다. 이것은 번데기가 될 때 깔 것이 됩니다. 역시 비단실을 써서 바닥에 꼬리 끝을 단단히 붙입니다. 그리고 몸의 앞쪽은 강한 실로 안전띠처럼 묶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개의 점으로 몸을 고정시키고 가만히 있으면 이윽고 등가죽이 터져 배추벌레는 애벌레 시대의 낡은 옷을 벗어 버립니다. 그러면 속에서 아직 몸이 부드러운 번데기가 나타납니다. 이 때는 자기 몸을 지킬 고치를 만들지 않으므로 번데기는 바깥 바람을 직접 쐬게 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갈색 벽 위에서 번데기가 된 것은 갈색을 띠지만 녹색 잎 위에서 번데기가 된 것은 녹색을 띤다는 점입니다. 2. 큰배추흰나비의 천적 익충과 해충 이 세계는 모두 인간을 위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인간 중심의 사고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자연을 파괴해 온 사람들은 근래에 와서야 겨우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지나치게 제멋대로 굴어서 다른 동물이나 식물을 멸종시키면 드디어는 인간 자신도 멸망해 버립니다. 우선, 인간만이 늘어나고 다른 생물의 수와 종류가 줄어 버린 세계는 아름답지도 즐겁지도 않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여러 가지 생물이 조금씩 양보하고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지구는 모든 생물을 위해 존재합니다. 조금이라도 영양 있는 물질이 있는 곳에는 인간이 열심히 일해서 만든 것이든 아니든 그것을 먹으러 많은 생물들이 모여듭니다. 식탁의 음식물이 맛있으면 그만큼 많은 생물들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과수원에 멋진 사과가 열리면 그 속에 곤충의 애벌레가 들어가 인간과 쟁탈전을 벌입니다. 우리의 과학이 아무리 진보해도 애벌레를 제거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너무 약을 많이 쓰면 배추벌레는 죽지만 인간에게 해를 주게 되고, 조금 쓰면 작은 애벌레들이 맛있는 과일을 먼저 차지해 버립니다. 우리들은 밭에서 맛있는 양배추를 재배하지만 그것은 큰배추흰나비에게도 역시 맛있는 먹이입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배추벌레가 양배추 쟁탈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인간의 편이 되어 배추벌레를 해치우는 벌레가 있습니다. 이런 벌레는 인간에게 이롭기 때문에 익충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이 마음대로 그렇게 부르고 있을 뿐, 벌레 쪽에서 특별히 '좋아, 인간을 도와 주지.'라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한 일이 인간을 도와 준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군'과 '적', '익충'과 '해충' 등의 분류는 모두 인간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늑대와 같이 가축이나 인간을 습격한다든지, 산토끼나 곤충처럼 인간의 농작물을 먹어 버리는 것은 '적'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해치워 주는 것은 '아군'이 됩니다. 그러나 어느 생물이든지 필사적으로 싸워 먹을 것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익충의 대부분은 몸이 작은 것일수록 솜씨도 뛰어납니다. 양배추를 지켜주는 최고의 아군도 아주 작은 벌레입니다. 너무 작아서 보통 사람들은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농부들이 이 벌레를 양배추에서 본다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아주 작은 이 벌레의 공을 모두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우선 큰배추흰나비가 알을 낳으면 그 즉시 알벌이라는 작디작은 벌이 날아와 나비 알에 자신의 알을 낳습니다. 몸길이는 0.4 밀리로 겨우 눈에 보일까말까하는 정도의 크기입니다. 이 벌의 새끼는 나비 알을 먹고 자랍니다. 알벌에게 당하지 않은 나비 알이 무사히 깨어나 한두 번 껍질을 벗을 즈음이면 또 다른 작은 벌이 찾아옵니다. 이번 것도 몸길이가 3 밀리 정도이지만 알벌에 비하면 거인에 속합니다. 그것은 배추벌레고치벌입니다. 배추벌레고치벌의 역할은 배추벌레 몸 속에 알을 낳는 것입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배추벌레를 몸 속부터 먹으며 자랍니다. 물론 이 경우 배추벌레는 나비가 되지 못하고 죽어 버립니다. 배추벌레에게는 무서운 천적인 것입니다. 이 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 배추벌레의 천적인 기생벌 따뜻한 봄날, 밭 가까이에 있는 담이나 울타리를 살펴보면 노란 덩어리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아주 작은 고치 덩어리입니다. 수를 세어 보니 20--30개쯤 됩니다. 이 덩어리에 배추벌레가 붙어 있는데 몹시 약해진 모습입니다. 벌써 죽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고치는 배추벌레고치벌의 애벌레들이 만든 것으로, 속에는 벌의 번데기가 들어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고치 덩어리를 고스란히 채집해 왔습니다. 그리고 확대경으로 조심조심 헤쳐 보았습니다. 고치들은 표면의 실로 서로 엉겨붙어 있었습니다. 5월이 되면 거기에서 작은 벌떼가 나와서 양배추 밭으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배추벌레를 찾아 또 알을 낳는 것입니다. 이 벌을 기르기는 간단합니다. 바구니 속에 배추벌레를 넣고 창가에 내놓으면 벌이 배추벌레의 냄새를 맡고 어디선가 날아옵니다. 창가에 배추벌레가 있다는 것을 멀리서도 아는 작은 벌의 감각은 대단합니다. 배추벌레가 충분히 자라서 양배추를 떠나갈 때가 되어도 연구실의 바구니 속에 있는 것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철망 바구니에 붙어 거기서 번데기가 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애벌레들 중에 무척 몸이 무거운 듯 동작이 둔한 것이 있습니다. 어쩐지 병이 난 것 같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침을 메스처럼 사용하여 그 중의 몇 마리를 해부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몸 속에서 연녹색의 액체에 잠겨 있는 녹색 덩어리가 나왔습니다. 연녹색 액은 배추벌레의 피입니다. 확대경으로 이 덩어리를 보았더니 아주 작은 애벌레가 느릿느릿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수는 적을 때가 10--20 마리 정도이고, 많을 때는 50 마리나 됩니다. 이것이 배추벌레고치벌의 애벌레들입니다. 벌의 애벌레들은 무엇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확대경으로 배추벌레 몸 속을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애벌레들은 배추벌레 속의 작은 지방 알갱이나 근육, 그리고 주요 기관은 먹지 않습니다. 배추벌레의 내장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배추벌레 뱃속에서 꺼낸 애벌레들을 작은 유리 접시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배추벌레를 침으로 조금 찔러 피를 내고 그 속에 벌의 애벌레들을 담갔습니다. 이렇게 준비한 것이 마르지 않도록 그 위를 종 모양의 유리로 덮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배추벌레의 피를 다시 내어 영양을 공급했습니다. 살아 있는 배추벌레의 몸 속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보아 주었더니 작은 애벌레들은 모두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배추벌레의 피를 마시고 아주 건강합니다. 이렇게 충분히 자라자 이 애벌레들은 배추벌레의 뱃속을 떠나듯 유리 접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책상 위로 내려온 애벌레들은 이윽고 번데기가 되기 위해 고치를 만들 시기였으나 제대로 되지 않아 죽어 버렸습니다. 실을 치기 위한 발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여기에는 배추벌레가 언제나 만들어 주던 비단 깔개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자세히 관찰을 했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배추벌레고치벌의 애벌레는 배추벌레를 먹는 것이 아니라 그 피를 수프처럼 마시는 것입니다. ------------ 지친 배추벌레 이 기생벌의 애벌레를 좀더 자세해 살펴봅시다. 희고 연약한 이 애벌레들은 몸 앞쪽이 뾰족하고, 꽁무니를 조금 움직일 수는 있지만 앞으로 나가는 일은 없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입은 작은 구멍 같습니다. 이빨도, 단단한 집게도, 큰턱도 없어서 물 수가 없습니다. 이것으로써 이들의 먹이가 액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벌의 애벌레들은 먹이를 씹는 것이 아니라 먹이의 체액을 빨아먹는 것입니다. 피해를 당한 배추벌레를 해부해도 몸 속에 상처 자국은 조금도 없습니다. 뱃속을 먹힌 배추벌레는 건강한 배추벌레와 마찬가지로 잎을 먹고 기어다니기도 합니다. 별로 불안한 기색도 없고 괴로운 듯 몸을 비틀지도 않습니다. 다른 벌레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배추벌레가 번데기로 될 때가 가까워지면 기생벌이 들어 있는 배추벌레는 피곤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점점 병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추벌레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할 일을 잊지 않습니다. 착실하게 실을 토해 발판을 만들고 나서 죽어 갑니다. 이 발판은 물론 배추벌레 자신이 번데기가 되기 위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기생벌이 이것을 이용해서 고치를 만듭니다. 배추벌레고치벌이 기생하는 배추벌레는 점점 뱃속의 벌이 애벌레에게 영양을 빼앗기기 때문에 영양 실조로 죽어 갑니다. 기름이 떨어진 램프의 불꽃이 꺼지는 것처럼 천천히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생벌 쪽이 곤란해집니다. 배추벌레가 잎을 먹고 소화해서 피를 만들며 살아가지 않으면 배추벌레고치벌의 작은 애벌레들은 먹을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배추벌레는 약 1개월, 즉 배추벌레고치벌의 애벌레가 완전히 자랄 때까지는 살아 있습니다. 산 채로 식량이 되는 셈입니다. 두 벌레의 성장 달력은 꼭 들어맞습니다. 배추벌레가 완전히 식사를 끝내고 번데기가 되려 할 때, 몸 속의 기생벌의 애벌레들도 충분히 자라서 밖으로 나와 번데기가 됩니다. 피를 마셔야 하는 벌의 애벌레들이 더 이상 마시지 않아도 될 때, 나비 애벌레는 이미 몸 속의 피를 다 빨려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배추벌레의 몸이 갈수록 야위어도 어쨌든 계속 지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벌의 애벌레는 목숨이 위험해질 만한 상처는 절대로 내지 않습니다. 배추벌레가 죽으면 둘 다 죽어 버리니까요. 따라서 벌의 애벌레들은 구멍 모양의 작은 입으로 물어뜯는 일없이 피만 쭉쭉 빨아먹습니다. 피를 다 빨려서 거의 죽게 된 배추벌레는 머리를 흔들흔들하면서 마지막 힘을 다해 실을 뽑아 깔개를 준비해 둡니다. 마침내 준비가 다 되었을 때 기생벌의 애벌레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봄에 태어나 배추벌레 몸 속에 있던 애벌레들은 6월에 나옵니다. 대개 저녁 무렵에 배추벌레의 배 아래쪽이나 옆쪽에 구멍을 하나 뚫고 나옵니다. 등쪽에는 절대로 구멍을 뚫지 않습니다. 그 구멍은 두 개의 체절이 연결되는 부위에 만들어집니다. 이 곳이 가장 연하여 찢기 쉬웠겠지요. 물어뜯는 입을 가지지 못한 벌의 애벌레는 그 곳을 쭈글쭈글하게 만들어 구멍을 내는 것일까요? 분명히 벌의 애벌레들은 이 공격 지점에 와서 번갈아 입으로 빨았겠지요. 이 곳으로 벌의 애벌레들이 모두 잇달아 나와서 배추벌레의 몸에 기어 오릅니다. 배추벌레의 몸에 뚫린 구멍은 곧 아물어 버립니다. 확대경으로 자세히 보아도 어디에 구멍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피도 번져 나오지 않습니다. 불쌍한 배추벌레는 피가 거의 다 빨려 버린 것입니다. 배추벌레를 손가락으로 집어 꾹 누르자 약간의 피가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겨우 구멍이 있던 자리를 알아냈습니다. 기생벌의 애벌레가 나와 버린 뒤에도 배추벌레는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해 가며 번데기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만들려고 필사적으로 실을 뽑아 내기도 합니다. 정말 가엾습니다. 그런 배추벌레와는 상관없이 이번에는 기생벌의 애벌레들이 자신의 고치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머리를 힘차게 뒤로 젖히고 황색 실을 입에서 토해 냅니다. 처음에는 배추벌레가 발판으로 친 하얀 실을 붙이고, 다음엔 동료가 짜서 만든 것에 붙여 갑니다. 이렇게 하여 서로가 만든 것을 딱 붙여 하나의 덩어리로 만듭니다. 그 덩어리 속에 각각의 애벌레들의 방이 있는 셈입니다. 처음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직 진짜 고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작은 방을 만들기 위해 대충 만든 엉성한 뼈대입니다. 그 속에서 배추벌레고치벌의 애벌레들은 자신의 작은 방을 마련합니다. 그것은 결이 곱고 예쁜 비단 고치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사육용 바구니 속에서 작은 고치 덩어리를 많이 모았습니다. 사육용 바구니 속에 든 배추벌레 중 4분의 3에서 이런 고치 덩어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봄에 태어난 배추벌레들은 그만큼 기생벌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고치 덩어리를 유리관에 넣고 우화한 벌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솜 마개를 해 두었습니다. ------------ 배추벌레고치벌과 배추벌레살이금좀벌 고치를 만들고 나서 2주 후인 6월 중순에 배추벌레고치벌이 고치 속에서 나왔습니다. 처음에 유리관 속에는 모두 50 마리 정도 있었습니다. 고치에서 나온 벌들은 유리관 속에서 붕붕거리며 부산스럽게 날아다니면서 열심히 상대를 찾아 짝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작디작은 벌들의 미친 듯한 춤에는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유리관은 끝을 솜으로 막아 밝은 쪽을 향해 놓아두었는데, 암컷은 밖으로 나가려고 솜 마개와 유리 사이에 몸을 반쯤 박고 있습니다. 수컷은 암컷 주위를 시끄럽게 맴돕니다. 떠들썩한 결혼식은 이렇게 오전 내내 계속되다가 오후에는 쉬고 다음날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은 벌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무엇을 먹을까요? 애벌레 때에는 배추벌레의 체액을 빨았으므로 육식성이지만 성충이 된 지금은 분명히 꽃의 꿀을 빨겠지요? 파브르 선생님은 잼을 물에 녹여서 종이 테이프에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작은 배추벌레고치벌들을 몇 마리씩 여러 용기 속으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너무 작기 때문에 핀셋으로 집을 수도 없습니다. 잠시 생각한 선생님은 곤충이 빛 쪽으로 모여드는 성질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벌이 들어있는 유리관을 탁자 위에 눕혀 놓고, 유리관의 한쪽 끝을 햇빛드는 창 쪽으로 향하게 합니다. 그러면 곧 유리관 속의 벌들이 모두 밝은 쪽으로 모여들어 붕붕댑니다. 거기에 시험관이나 병 같은 다른 용기를 준비하여 탁자 위에 눕혀 놓습니다. 새로운 용기의 막힌 쪽 끝을 창 쪽으로 향하도록 하고, 열린 입구 쪽으로 유리관을 가져가면서 마개를 얼른 뺍니다. 두 개의 용기는 입구와 입구 사이가 조금 벌어져도 괜찮습니다. 벌들은 밝은 쪽을 목표로 똑바로 모여드니까요. 그럼 이제부터 배추벌레고치벌이 어떻게 배추벌레의 배에 알을 낳는지 알아보기로 할까요? 먼저 1리터들이 병을 탁자 위에 눕혀 놓고 바닥 쪽이 햇빛이 드는 창 쪽을 향하게 했습니다. 그 속에 배추벌레가 잔뜩 붙은 양배추 잎을 한 장 넣습니다. 그 배추벌레 중에는 완전히 자란 것도 있고 중간 정도의 것도 있으며, 알에서 갓 나온 것도 있었습니다. 실험이 오래 걸려도 배추벌레에게는 양배추가 있고, 배추벌레고치벌에게는 잼을 바른 종이 테이프가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빛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선생님은 유리관 속에 있는 배추벌레고치벌의 무리를 다른 병으로 옮겼습니다. 이것으로 벌이 배추벌레에 알을 낳는 장면을 관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추벌레들은 양배추를 덥석덥석 먹고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기생벌의 위험 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듯합니다. 그러나 기생벌이 거의 다 자란 배추벌레에 앉으면 배추벌레는 상반신을 벌떡 세워 흔들어 버리듯 아래로 쳐내립니다. 벌은 한번에 쫓겨나 버립니다. 처음부터 벌은 커다란 배추벌레에 알을 낳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커다란 배추벌레에 알을 낳지 않는 까닭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곧 번데기가 될 것은 벌의 애벌레가 자라기엔 시간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잠시 보고 있으니 벌은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허물을 벗은 작은 배추벌레의 등에 앉아, 긴 더듬이로 똑똑 두드리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알을 낳습니다. 이렇게 벌들은 계속해서 작은 배추벌레를 노려 알을 낳습니다. 그러나 한번 알을 낳은 배추벌레에게는 다른 벌이 알을 낳지 않습니다. 이미 알이 낳아져 있다는 것을 어미벌은 어떻게 아는 걸까요? 한편, 창가에 놓고 바구니를 씌워 둔 배추벌레를 보고 있는 사이에 충분히 자란 애벌레 쪽으로 역시 몸길이가 3 밀리 정도인 다른 종류의 벌이 날아왔습니다. 또 다른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배추벌레살이금좀벌이라는 종류입니다. 이것도 작아서 바구니 틈 사이를 자유롭게 빠져 다닙니다. 배추벌레살이금좀벌은 번데기가 되기 직전의 커다란 배추벌레와 새 번데기에 알을 낳았습니다. 이 배추벌레는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되었지만 다른 것들이 나비가 될 때 이 번데기의 가슴 부분에는 구멍이 뚫리고 그 속에서 벌이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배추벌레의 적이 되는 벌은 모두 세 종류가 되었습니다. 우선 나비 알에 자신의 알을 낳는 알벌, 다음에는 작은 배추벌레에 알을 낳는 배추벌레고치벌, 그리고 충분히 자라서 번데기가 되기 직전인 배추벌레나 막 번데기가 된 것에 알을 낳는 배추벌레살이금좀벌입니다. 경우에 따라 이런 벌의 기생률이 90 퍼센트 이상이나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추벌레가 200개의 알을 낳아도 20 마리밖에는 나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벌 외에도 새나 거미, 사마귀가 노리고 있으므로 200개의 알 중에서 무사히 자라 나비가 되는 것은 서너 마리 정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 철학자 밀의 감동 파브르 선생님이 이런 실험과 관찰을 반복하고 있던 어느 날 파브르 선생님의 친구이자 영국의 경제학자이며 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이 연구실로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알벌이 큰배추흰나비의 알에 열심히 자기 알을 낳고 있는 창 가까이에 밀을 앉게 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곤충들이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합니다. "하! 배추벌레에게 이렇게 작은 적이 있습니까?"하고 말하며 밀은 선생님에게서 확대경을 받아 열심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밀이 보는 앞에서 벌의 암컷은 가는 침으로 나비의 알과 알 사이를 여기저기 계속 찌릅니다. 밀은 한 시간 이상이나 벌의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숨을 내쉬며 확대경을 내려놓았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작은 생물들 사이에서조차 벌어지는 무서운 생명 쟁탈전을 이만큼 생생하게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 인간과 맹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군요, 이런 살생이." 밀은 파브르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을 생각한 후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작은 알이 이때부터 다른 벌레에게 당하지 않으면 안 되다니!" "그렇습니다. 매우 잔인한 일이지요. 그러나 만약 이 벌들이 없었다면 큰배추흰나비가 너무 많아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양배추가 바닥나고 나비도 자멸하게 되지요. 나비로서도 이미 먹힐 것을 예상하고 알을 많이 낳지요. 만약 나비가 줄어들면 벌도 그에 따라 줄어들게 됩니다. 자연은 한 종류의 생물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너무 많아져서 이 지구상을 전부 양배추나 밀밭으로 만들어 버리면, 결국 생각지도 않은 천적이 나타나겠지요." "인간의 천적은 인간이 아닙니까? 인간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전쟁이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아니, 그것만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작은 적일지도 모르고, 인간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겠군요." 그렇게 말하고 철학자와 박물학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땅 위에 커다란 플라타너스 그늘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IV. 큰공작산누에나방의 능력 1. 큰공작산누에나방의 밤 잊을 수 없는 광경 어느 해 5월 6일, 아르마스 정원에 백합 향기가 가득한 따뜻한 밤의 일입니다. 파브르 선생님 댁에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은 파브르 선생님과 아들 폴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이라고 하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멋진 산누에나방류가 선생님 댁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것도 놀랄 만큼 많이 말입니다. 그 날 밤을 파브르 선생님은 '큰공작산누에나방의 밤'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이란 우리 나라의 산누에나방과 비슷한 크기의 나방으로, 몸 전체에 벨벳 같은 밤색 털이 나 있습니다. 날개의 푸른 눈동자 무늬는 빨강으로 테를 둘러 불꽃이 번뜩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공작 날개를 닮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날 아침 한 마리의 암컷 큰공작산누에나방이 파브르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우화했습니다. 고치에서 금방 나와 아직 날개가 젖어 있는 큰공작산누에나방이 조금씩 몸을 펼 때 철망 바구니를 씌워 가두어 둔 것입니다. 특별히 어떻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잡은 벌레를 금방 죽여서 표본을 만들지 않고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랬듯이 무심코 철망 속에 넣어 둔 것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길 참 잘했습니다. 그 날 밤 9시쯤, 집안 사람들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선생님의 옆방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옆방은 폴의 방입니다. 이렇게 늦은 밤에 도대체 폴이 무엇을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 빨리 좀 오세요, 빨리요. 새처럼 큰 나방이 방 안에 잔뜩 있어요." 선생님이 달려가 보니 폴은 잠옷을 벗어 반벌거숭이가 된 채, 잠옷으로 나방을 잡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놀람과 기쁨으로 흥분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폴이 지금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무지막지하게 큰 나방이 떼지어 방안을 날고 있었으니까요. 벌써 네 마리를 잡아 참새 통에 넣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물론 그것이 큰공작누에나방임을 금방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우화한 암컷의 일을 생각해 냈습니다. "자, 옷을 입고 통은 거기에 놓아도 좋으니 함께 가자.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마." 그렇게 말하고 선생님과 폴은 곧 연구실로 달려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부엌 옆을 지나는데, 깜짝 놀란 가정부가 앞치마를 휘두르며 나방을 털어 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큰 나방이 있을까요, 주인님. 저는 처음에 박쥐인 줄 알았어요."하고 가정부가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그냥 내버려두세요. 아무 일 없으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안심시키고 서둘러 계단을 오릅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은 집 안 곳곳에 있었습니다. 집 전체가 큰공작산누에나방에게 점령된 것 같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 암컷이 있는 방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마침 연구실에 있는 두 개의 창 중에 하나는 밤새껏 열어 놓은 터여서 나방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폴은 촛불을 들고 연구실에 들어 갔습니다. 당시는 아직 전기가 없었습니다. 아! 그 때 선생님과 폴이 본 풍경은 정말로 멋진, 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나방들이 수없이 펄럭펄럭 날개 소리를 내면서 철망 바구니 주위를 날아다니며 앉았다 날았다,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내려왔다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방들은 선생님이 손에 들고 있는 촛불에 날아듭니다. 큰 날개로 불꽃을 한 번 부치자 불이 꺼져 버렸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커다란 나방들이 어깨에 부딪히고 옷에 앉았다가, 다시 얼굴에 닿을 듯이 날기도 합니다. 큰 박쥐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마술사의 동굴 속 같았습니다. 불이 꺼지자 무서워진 폴은 자기도 모르게 파브르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도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걸까요. 선생님은 다시 초에 불을 붙이고 불꽃을 손으로 막으면서 나방의 수를 세어 보았습니다. 대략 20 마리 정도였습니다. 이 외에도 부엌과 아이들 방과 그 밖의 장소에 날아든 것도 있으니까, 전부 합하면 파브르 선생님 댁에 모인 나방 수는 전부 40 마리 정도는 되겠지요.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이 40 마리의 큰공작산누에나방은 모두 수컷이었습니다. 산누에나방의 수컷은 훌륭한 더듬이를 가지고 있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모두들 연구실 안에서 오늘 아침 막 태어난 미래의 신부감에게 결혼 신청을 하러 온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 곳에 암컷이 있다는 걸 알았을까요? 오늘밤은 이 수컷들을 방해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기로 합시다. 촛불은 이 나방들에게 아주 위험합니다. 나방은 빛을 보면 그것에 덤벼드는 게 아니라 끌려들어서 자기 몸을 불태워 버리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나방을 그대로 둔 채 밤새도록 차근차근 실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로부터 8일 동안 선생님은 큰공작산누에나방을 관찰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산누에나방류의 애벌레는 식성이 아주 좋은 커다란 벌레입니다. 그 대신 성충이 되면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먹으려 해도 성충이 되면 입이 없어집니다. 마치 로켓이나, 전지의 에너지만으로 나는 비행기 같습니다. 그래서 기르는 것이 아주 편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헤매지 않아. 파브르 선생님이 관찰한 8일 동안 나방이 계속해서 날아오르는 시간은 언제나 밤 8시부터 10시까지로 깜깜할 때였습니다. 특히 많이 오는 때는 하늘이 완전히 흐려서 달이 뜨지 않고, 갑자기 비가 올 듯한 무더운 밤이었습니다. 밖은 캄캄해서, 정원에 나가 보면 눈앞에 내민 손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둠이 짙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새카만 어둠 속을 뚫고 암컷이 있는 곳까지 날아오는 것일까요? 게다가 선생님 댁 주위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 우선 대문 앞에는 멋있게 자란 큰 플라타너스 나무가 두 그루나 있습니다. 대문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작은 길을 따라서는 백합과 장미가 심어져 있습니다. 또한 미스트랄이라는 심한 북서풍을 피하기 위해 소나무와 노송나무를 북쪽에 심었습니다. 또 다른 나무들도 빽빽히 들어서 있어 마치 성벽처럼 집을 에워싸고 있는 것입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밤에, 그것도 수목이 빽빽히 늘어서 있는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 나오지 않으면 집까지 도착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캄캄할 때는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조차 올리브 노목의 구멍에 틀어박혀 밤 사냥을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수컷 나방들은 헤매는 일도 없이 능숙하게 날아오는 것입니다. 날개를 살펴봐도 숲에 긁힌 상처나, 찢어진 곳은 없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은 이런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는 걸까요? 혹시 나방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광선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고 해도 집 주변에는 나무가 빽빽히 서 있어 멀리서 이 집 연구실 탁자 위의 바구니 속에 암컷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의 수컷들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암컷이 있는 연구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부엌인 폴의 방, 다른 곳에도 많이 와 있었습니다. 나방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어도 정확한 목표 지점을 틀리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부엌이나 폴의 방에 램프나 촛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그 불빛에 유혹되었겠지요. 그러나 암컷이 없는 어두운 방에도 몇 마리 날아 들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큰공작산누에나방은 눈으로 보고 확인하면서 날아드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갓 태어난 암컷이 멀리 있는 수컷에게 자기가 있음을 알려 가까이까지 불러들이는 것은 뭔가 다른 종류인 듯합니다. 그것은 소리일까요, 냄새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모르는 특별한 감각일까요? 도대체 이 나방은 무엇에 의해 이 곳까지 이끌려 왔을까요? 또 나방은 몸의 어느 부분으로 그것을 알아내는 것일까요? 풀고 싶은 의문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더듬이를 잃으면 어떻게 될까? 선생님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더듬이였습니다. 암컷 나방의 더듬이는 가늘고 긴데, 수컷의 더듬이는 부채처럼 펼쳐져 멋있습니다. 이것은 암컷에게 펼쳐 보이기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일을 하는 감각 기관일까요? 더듬이는 어둠 속을 날아와 암컷을 발견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한 가지 실험으로 확인해 봅시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의 밤'이 있던 다음날 파브르 선생님은 연구실 안에서 전날 밤부터 남아 있던 수컷 나방 여덟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나방들은 언제나 닫혀 있는 창틀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어젯밤 방안을 마음껏 날아다니다가 밤 10시쯤에 열려 있던 창으로 나가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험을 하는 데는 이 여덟 마리로도 충분합니다. 잘 드는 가위로 다른 곳을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여 더듬이 두 개를 모두 바짝 잘라 냈습니다. 이런 수술을 해도 나방은 아프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느 나방이나 한두 번 날개를 파닥일 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그대로 창틀 위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날이 저물었습니다. 이 나방들은 더듬이 없이도 암컷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낼 수 있을까요? 암컷을 둔 장소를 계속 바꾸어 가며 실험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통 속의 암컷을 연구실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놓으려고 집의 현관 앞에 놓았습니다. 연구실과의 거리가 50 미터 정도는 되는 곳입니다. 밤이 되기 직전에 파브르 선생님은 더듬이를 자른 여덟 마리의 수컷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여섯 마리는 벌써 창에서 날아가 버려 남아 있는 것은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그 두 마리는 바닥에 떨어져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젖혀 보아도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었습니다. 더듬이를 잘린 상처로 인해 이렇게 약해진 것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아무튼 나머지 여섯 마리는 건강하게 날아가 버렸습니다. 자, 날아간 나방들은 더듬이 없이도 어제의 장소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놓인 암컷이 든 통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통이 놓여 있는 곳은 집 밖의 마당으로, 그 곳은 불빛도 없이 거의 암흑 속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가끔씩 등불과 포충망을 들고 보러 가서, 날아 온 나방을 잡아 더듬이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는 입구 옆에 있는 방에 집어 넣고 문을 닫아 두었습니다. 10시 반이 지나자 이제 나방이 날아오지 않습니다. 오늘 실험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결과를 보았더니 날아온 것은 25 마리였으나 그 중에 더듬이가 잘린 것은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연구실을 건강하게 떠나간 것 중 한 마리만이 다시 통 쪽으로 올 수가 있었던 셈입니다. 즉, 더듬이를 잘린 것 중 6분의 1 만이 돌아온 셈이므로 이것만으로는 확실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수를 더 늘려서 다시 해 봅시다. 다음날 아침, 입구 쪽 옆방에 잡아 놓은 큰공작산누에나방 수컷을 보았더니 모두 힘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바닥에 날개를 편 채로 가만히 붙어 있습니다. 만져 보아도 마치 죽은 듯한 모습입니다. 어쨌든 선생님은 24 마리의 더듬이를 떼어 냈습니다. 혹시 밤이 되면 건강을 회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도록 나방을 넣어 둔 방문을 열어 두었습니다. 암컷이 들어 있는 통은 한 번 더 장소를 바꾸어 집 뒤편의 지하실에 두었습니다. 지하실의 문은 물론 수컷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 놓았습니다. 전날 더듬이가 잘리고도 날아왔던 한 마리의 수컷 나방은 벌써 죽었고, 그 날 더듬이가 잘린 24 마리 중 16 마리만이 밖으로 날아갔습니다. 나머지 여덟 마리는 가만히 있기만 합니다. 이 수컷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겠지요. 자, 방금 밖으로 나간 더듬이 없는 16 마리 중 몇 마리나 암컷이 든 통으로 찾아올까요? 결국 이 수컷들은 단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그 날 저녁 잡은 것은 일곱 마리였는데, 모두 더듬이가 달린 수컷뿐이었습니다. 이 결과로 보아 아무래도 더듬이는 수컷이 암컷을 찾을 때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것으로도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짧은 생명을 불태워서 4일째의 저녁에는 또 14 마리의 수컷이 날아왔습니다. 새로 온 것 뿐입니다. 모두 방 하나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다음날, 나방은 낮 동안에는 가만히 있으므로 등을 조금 문지른 뒤 등에 있는 털을 떼어 냈습니다. 털은 금방 떨어집니다. 나방으로서는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겠지요. 선생님은 이 털을 벗겨 내어 표시를 한 것입니다. 밤이 되자 표시를 한 14 마리의 나방은 모두 건강하게 펄럭펄럭 날아올랐습니다. 물론 암컷이 든 통은 또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두 시간 정도 후에 파브르 선생님은 20 마리를 잡았으나 그 중 등의 털을 벗겨 표시를 한 것은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전에 더듬이를 잘린 것은 한 마리도 오지 않았습니다. 등의 털이 벗겨진 14 마리의 나방 중 나머지 12 마리는 어떻게 된 걸까요? 죽어 버렸을까요? 하룻밤 가두어 놓았다고 그렇게 많이 죽어 버린 걸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단 하나의 답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 수컷의 생명은 원래 짧고, 더구나 그 모든 것을 암컷을 만나는 데 바치는 것이다.' 큰공작산누에나방 수컷의 일은 암컷과 짝짓기하는 일뿐입니다. 그리고 이 나방은 그것을 위한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을 멀리서, 게다가 나무 숲 속을 멋지게 빠져 날아와 암컷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틀 밤이나 사흘 밤 사이에 신부를 찾아 모든 노력을 다 하다가 그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시간이 되면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수컷은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합니다. 먹이조차 먹지 않습니다. 보통 나비나 나방은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며 평소에는 말고 있던 입을 길게 늘여서 꿀을 마시는데, 큰공작산누에나방이나 산누에나방 종류는 먹이를 먹는 데 필요한 제대로 된 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쓸 수 있는 것은 애벌레 시기에 모아 둔 에너지뿐입니다. 이 에너지를 성충이 된 후 암컷을 찾는 데 다 써 버리고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명이 짧은 것이겠지요. 더듬이를 잘린 수컷들은 거의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래 생명이 짧아서 벌써 죽어 버렸을지도 모르고, 다른 곳에서 다른 암컷을 찾아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것만으로는 더듬이가 없어서 암컷을 찾지 못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더듬이의 역할은 아직 잘 모른다고 하는 편이 좋겠지요. 통 속에 잡혀 있던 암컷은 8일 동안 살아 있었습니다. 그 동안 철망에 가만히 붙은 채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배가 커서 몸이 무거우므로 너무 오랫동안 날 수도 없을 테고, 수컷처럼 날아다니며 에너지를 쓰지도 않습니다. 암컷에게는 알을 낳아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으므로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알을 낳을 때까지는 그리 간단히 죽지도 않습니다. 8일 동안 선생님은 매일 밤 통을 놓는 장소를 바꾸었지만 날아온 수컷의 수는 모두 150 마리나 되었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은 이 근처에서 쉽게 잡을 수 없는 희귀한 종류인데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날아온 것일까요? 이 나방의 애벌레는 살구나무 잎을 먹고, 살구나무 줄기의 움푹한 부분에 고치를 만드는데 이 근처에는 살구나무가 많지 않아서 이 나방도 적습니다. 지난 2 년간 파브르 선생님은 근처에 있는 살구나무를 찾아 나무 밑과 그 주변에 자라는 풀 등 고치가 붙어 있음직한 장소를 조사해 보았지만 큰공작산누에나방의 고치는 발견하지 못햇습니다. 그러므로 8일 동안에 150 마리의 수컷이 날아온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분명히 아주 먼 곳, 반경 2 킬로 이상 떨어진 곳에서 날아 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정도 먼 곳에는 살구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멀리 있는 수컷들이 어떻게 파브르 선생님의 연구실에 새로운 암컷이 태어난 사실을 알았을까요? 9일째에 암컷이 죽어 버렸다. 보통 멀리 있는 것을 발견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빛에 의해 아는 것. 이것은 눈으로 보아서 아는 방법인데, 큰공작산누에나방이 암컷이 있는 장소를 본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몇 킬로 떨어져 있는, 더구나 파브르 선생님의 연구실 안에 있는 암컷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뢴트겐처럼 사물을 투시하는 힘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러므로 시각은 분명히 아닙니다. 다음은 소리는 어떨까요? 암컷이 인간의 귀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특별한 소리를 내어 수컷에게 신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파브르 선생님도 소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어떤 소리든 간에 몇 킬로나 떨어진 먼 곳까지 도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는 냄새입니다. 수컷은 파브르 선생님의 집까지 와서 암컷 쪽으로 곧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여기저기를 헤매고 나서 겨우 암컷을 찾아냅니다. 이것은 우리들 인간의 감각으로는 냄새를 쫓아 찾아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암컷 나방의 냄새를 인간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보다 뛰어난 후각을 가진 수컷이 느낄 수 있는 '알려 주는 발산물'을 암컷 나방은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한 가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알려 주는 발산물'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보다 냄새가 더 강한 것을 암컷 곁에 두어 알려 주는 발산물 냄새를 없애는 실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암컷이 있는 방에 나프탈렌을 부순 가루를 여기저기 뿌리고, 통 속과 암컷 옆에도 큰 접시에 잔뜩 담아 놓았습니다. 방에 들어가기만 해도 괴로울 정도로 냄새가 아주 심하게 났습니다. 마치 가스 공장 같았습니다. 이것으로 암컷의 냄새는 지워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 두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방은 언제나처럼 많이 날아왔던 것입니다. 방안으로 들어온 나방은 나프탈렌 냄새로 꽉 찬 공기 속에서도 암컷이 있는 통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이렇게 되면 암컷이 틀림없이 '알려 주는 발산물'을 내어 수컷을 부르고 있을 것이라는 파브르 선생님의 생각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런데 파브르 선생님은 더 이상 실험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9일째에 통 속의 암컷이 죽어 버린 것입니다. 다만 그 전에 철망에 알을 낳아 놓았습니다. 수컷과 짝짓기를 하지 않고 낳은 알은 깨어나지 못하므로 이 알에서 애벌레가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파브르 선생님의 실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 암컷 나방을 통에서 꺼내어 수컷과 짝짓기를 시켰다면 암컷은 알을 100개 이상 낳았을 것이고, 그 중 반은 암컷이었을 것입니다. 이 나방은 비교적 쉽게 자라므로 다음해에는 많은 암컷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방이 죽어 버렸으므로 다음해까지 아무 실험도 할 수 없습니다. 다음 번에야말로 주의해서 암컷 나방을 많이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실험해서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름 동안 파브르 선생님은 애벌레 수집을 했습니다. 즉, 어린이들이 발견한 애벌레를 한 마리씩 산 것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어린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어린이들에게는 이것이 좋은 아르바이트가 되었습니다. 학교가 쉬는 목요일이면 아이들은 들판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가끔씩 큰공작산누에나방의 커다란 애벌레를 찾아내 가지고 막대기에 얹어 조심스럽게 가지고 왔습니다. 사실 어린이들 대부분은 애벌레를 무서워합니다. 신발로 벌레를 밟으면 녹색 즙이 나오는데, 그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너나없이 그것이 아주 위험한 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이 무서워하며 가지고 온 애벌레를 파브르 선생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면, 모두들 선생님의 대담함에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살구나무 잎을 먹이로 주며 모아 온 애벌레를 튼튼하게 길렀습니다. 어느 것이나 훌륭한 고치를 만들어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겨울 동안 고치가 붙어 있음직한 살구나무 밑을 찾아 헤매어 몇 개를 더 보탰습니다. 이 중에서 크고 손에 잡으면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것이 암컷 고치일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실험 준비를 마쳤습니다. 2. 야간 비행의 길잡이 2 년째와 3 년째의 실험 그러나 기대했던 실험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 해는 5월에 갑자기 겨울이 되돌아왔던 것입니다. 남프랑스의 5월은 원래 기후가 자주 변하지만 그 해는 특히 심했습니다. 미스 트랄이라고 하는 굉장한 북서풍이 불어 닥쳐 집 앞의 플라타너스 가지들을 꺾어 놓고 잎을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마치 12월의 추위 같았습니다. 밤이 되면 난로에 불을 피워야 했고, 장롱 속에 넣어 두었던 스웨터를 다시 꺼내 입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나방들도 이 추위가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좀처럼 우화하지 못해습니다. 기온이 낮아 번데기에서 나온 나방들도 모두 날개가 잘 펴지지 않고 위축된 듯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암컷 몇 마리가 통 속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지만 밖에서 모여든 수컷도 그 해에는 아주 적었습니다. 그래도 사육한 고치에서 태어난 수컷을 표시하여 정원에 놓아 주었기 때문에 수컷들이 근처에 있기는 합니다. 결국 멀리서 날아온 수컷의 수는 아주 적었고, 게다가 지난해처럼 정열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방안에 들어갔다가는 곧 또 다른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기온이 낮아서 암컷의 '알려 주는 발산물'이 수컷에게 이르기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알려 주는 발산물'은 기온이 높으면 발산하기 쉽고, 낮으면 발산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어쨌든 1 년 간의 고생이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다음해에 파브르 선생님은 다시 한 번 해 보았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의 애벌레를 잡아 기르고 열심히 고치를 찾았습니다. 5월이 왔을 때는 많은 큰공작산누에나방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기후도 따뜻하므로 이 연구를 하던 첫해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수컷이 찾아오겠지요. 파브르 선생님의 예상대로 매일 밤마다 수컷이 10 마리, 20 마리, 혹은 더 많이 떼를 지어 날아왔습니다. 배가 커서 무거워 보이는 암컷은 날개조차 움직이지 않고 통의 철망에 꼭 붙은 채 가만히 있습니다. 밖에서 수컷들이 큰 소란을 피워도 조금도 반응이 없습니다. 집안 식구 중에 가장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이 암컷의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아무 냄새도 안 나고, 가장 귀가 좋은 사람이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 보아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인간의 코나 귀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2 마리, 3 마리, 또는 더 많은 수컷이 통의 철망 위에서 퍼덕이거나 가끔씩 앉기도 합니다. 여기저기 힘차게 돌아다니다가는 바쁜 듯이 날개를 퍼덕거려 철망을 탁탁 치고 있습니다. 수컷끼리는 경쟁자이지만 싸움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서로 질투하는 기색도 없습니다. 다만 어느 것이나 철망 속으로 들어가려고 필사적일 뿐입니다. 철망 위의 수컷들은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날아올라 방안을 빙빙 날기 시작합니다. 몇 마리는 그대로 열린 창을 통해 밖으로 날아갑니다. 그와 반대로 다시 새로운 수컷이 날아옵니다. 10시경까지 통의 철망 위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암컷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수컷들이 열심히 날고 있습니다. 통의 위치는 매일 바꾸었습니다. 북쪽 방에 두었다가 남쪽 방에도 두고, 지하실에 두었다가 건물의 오른쪽에도 두었다가, 50 미터나 떨어진 건물 왼쪽에도 놓았습니다. 물론 문만은 열어 놓았지만 수컷들이 헤매도록 여러 가지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소를 생각해 보아도 수컷은 변함없이 간단하게 날아옵니다. 분명히 장소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장소를 기억하고 있다면 우선 먼젓번 장소로 가서 그 곳에 암컷이 없음을 확인하고 난 다음 다른 장소를 찾을 텐데,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기억이 아니라 무엇엔가 이끌려 온 것입니다. 불가사의한 통신 자, 암컷은 철망 속에 들어 있습니다. 수컷들은 인간들이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이는 눈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 암컷을 집어 넣는다면 수컷은 어떻게 할까요? 또는, 암컷이 자기가 있는 곳을 알려 주는 어떤 물질을 발산하고 있다면, 용기를 바꾸어 그 물질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가게 하거나 또는 나가지 못하게 해 보면 어떻게 될까요? 파브르 선생님의 시대는 마침 무선 전신이 실용화되기 시작한 때였는데, 선생님은 암컷이 인간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전자파 같은 것을 몇 킬로나 떨어진 수컷들에게 발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즉, 일종의 무선 전신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곤충은 인간이 생각도 못할 발명을 얼마든지 하고 있다.' 어쨌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박테리아, 즉 세균이 병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몰랐던 때에는 병에 걸리면 무슨 일에 뒤탈이 났다거나 신이 노한 것이라 해서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미경의 발명에 의해 눈에 잘 보이게 되자 병에 대한 치료법도 생각하기 쉽게 되었고,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과학의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일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나방의 통신 방법은 파브르 선생님 시대에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암컷을 여러 상자 속에 집어 넣어 보았습니다. 양철, 나무, 두꺼운 종이 등으로 만든 상자를 빈틈없이 막고, 초를 녹여 밀봉했습니다. 이것이라면 공기도 새지 않습니다. 또, 공기가 통하지 않는 이중 유리 상자에도 넣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닫아 두었더니 수컷이 한 마리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뚜껑이 꼭 닫히지 않아 공기가 통하는 상자를 썼습니다. 그것을 서랍 속의 도구 상자 속에 넣어 본 것입니다. 그랬더니 암컷을 책상 위의 철망 통에 넣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수컷 나방들이 계속 날아왔습니다. 어느 날 밤의 일입니다. 선생님은 암컷을 양복장 구석에 있는 모자 상자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수컷들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양복장 문에 부딪쳐, 탁탁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멀리서 날아온 이 수컷들은 옷장 문 저편에 암컷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자를 꼭 닫아만 두면 상자 재료가 나무이건 종이이건 금속이건 간에 암컷의 신호를 완전히 끊어 버리므로 '무선 전신 같은 것'은 아니겠지요. 암컷이 보내고 있는 신호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을 멀리까지 전하려면 용기 뚜껑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어야 하는 셈입니다. 안과 밖에서 공기가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전에 나프탈렌을 뿌려서 나방의 냄새를 지우는 실험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알려 주는 발산물'이라는 생각이 틀린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래도 그에 대해 한 번 더 실험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미 암컷은 다 죽었고 고치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 다음해, 즉 4 년째 되는 해에 한번 더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큰공작산나방을 실험 재료로 쓰는 것은 일단 단념했습니다. 그것은 이 나방처럼 밤에 짝짓기를 하는 나방은 관칠하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방에게는 빛이 필요 없으나 인간은 빛이 없이는 사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촛불을 사용하면 나방이 펄럭거려서 꺼져 버리고, 등불은 빛이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빛이 있으면 나방이 그쪽으로 이끌려 버립니다. 수컷은 곧바로 불꽃 쪽으로 가서 몸의 털을 태워 버립니다. 그러면 이번엔 불에 덴 상처가 아파서 언제나 하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실험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등불처럼 유리 덮개가 있으면 유리에 달라붙어 마치 최면술에 걸린 듯 가만히 있습니다. 불빛에 취해서 암컷은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불꽃에 이끌리는 벌레를 상대로 할 경우 밤에 관찰을 하기란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큰공작산누에나방을 이용한 연구를 단념하고, 낮 동안에 활동하는 나방으로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V. 햇빛 속의 애기공작산누에나방 작은 공작산누에나방 실험 대상을 찾고 있던 파브르 선생님은 애기공작산누에나방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고치는 부드럽고 가벼운 흰 비단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안에는 공작산누에나방의 것과 똑같지만 크기가 훨씬 작은 번데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3월 말에 작은 고치에서 애기공작산누에가 우화했습니다. 선생님은 연구실의 철망 통 속에 애기공작산누에나방을 넣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이것으로 밖에 있는 수컷들에게 암컷이 우화했음이 알려지겠지요. 이 암컷은 1주일이나 철망에 가만히 앉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제까지 서너 번 이 암컷 나방을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컷은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수컷이 정말 올까요? 선생님의 책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암컷의 일을 멀리서도 알 수 있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곤충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었던 대로 수컷들이 날아왔습니다. 바람을 타고 온 수컷들 파브르 선생님 가족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 폴이 몹시 흥분된 얼굴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손에 쥔 멋진 나방을 선생님에게 내미는 것이 아닙니까! 폴의 눈은 선생님에게, "이것이죠?"하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거야!" 큰소리로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나방이야! 자, 모두들 숟가락을 내려놓고 연구실로 가자. 식사는 나중에 하고." 집안 식구들은 선생님의 뒤를 따라 연구실로 달려갔습니다. 너무나 신비로운 광경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오렌지색 수컷 나방들이 줄지어 팔랑팔랑 창으로 날아듭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합니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신비스러운 풍경에 모두들 점심 식사는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파브르 선생님의 연구실로 들어오고 있는 멋진 더듬이를 가진 수컷들은 통 속의 암컷이 보낸 마법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어느 수컷이나 북쪽에서 옵니다. 그 이유는 곧 이해가 됩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 지방 특유의 북서풍인 미스트랄이 무섭게 휘몰아쳐 활짝 피었던 살구꽃을 날려 버렸던 것입니다. 남프랑스에서는 봄이 오기 전에 언제나 이런 바람이 붑니다. 이 날은 기온은 급상승했어도 바람은 아직 그치지 않았습니다. 수컷 나방들은 모두 이 북서풍을 타고 날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수컷들이 큰공작산누에나방에 대해 선생님이 추리했던 것처럼 암컷이 내는 '알려 주는 발산물'에 이끌려 왔다면 바람 아래쪽인 남쪽에서 왔어야 합니다. 이렇게 모두 북쪽에서 온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까요? '바람을 거슬러 도달하는 냄새가 있을까?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선생님은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아직 밖에 있는 수컷 나방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연구실 앞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벽을 살피기도 하고 땅 위에 닿을 듯 말 듯 날아다니기도 하는 것을 보니, 암컷이 있는 장소를 정확히 발견하지 못했나 봅니다. 꽤 먼 곳에서 여기까지 날아왔는데, 막상 와 보니 더 이상은 목적한 장소를 찾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수컷들은 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 암컷이 있는 통 위에서 파닥거리기 시작합니다. 두 시간이 지나자 수컷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그 날 온 수컷의 수는 전부 10 마리. 그 후 일주일 동안은 한낮에만 수컷이 찾아왔는데, 그 수는 날이 갈수록 적어졌습니다. 결국 일주일 동안 날아온 수컷의 수는 전부 40 마리 정도였습니다. 애기공작산누에나방은 낮에 활동하는 나방입니다. 이 나방이 짝짓기를 하는 데는 태양빛이 필요합니다. 이 나방보다 더 크지만 아주 닮은 모습을 한 큰공작산누에나방을 밤에만 활동하는데, 비슷한 종류끼리 어쩌면 이렇게 습성이 다를까요? 아무튼 수컷 나방이 냄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바람 아래쪽에서 날아온 것이 아니라 바람 부는 쪽에서 암컷이 있느 곳까지 날아온 수수께끼는 아지 풀리지 않습니다. 낮 동안 활동하는 다른 종류의 나방으로 연구를 계속할 필요가 있겠지요. VI. 배버들나방의 결혼 마른잎을 닮은 나방 수컷 나방이 멀리 있는 암컷을 어떻게 찾아내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파브르 선생님은 다른 종류의 나방을 찾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좋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웃 농가의 아이들이 언제나 파브르 선생님 댁에 순무나 토마토를 팔러 오는데, 어느 날 아침에는 일곱 살쯤 된 남자 아이가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찾아왔습니다. 찢어진 바지에 새끼줄로 허리를 묶고, 맨발인 채로 야채 바구니를 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야채 값을 치르자 남자 아이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습니다. "저어, 이거 필요 없으세요? 오늘 토끼한테 줄 풀을 뜯다가 울타리 옆에서 찾아냈어요." 그래서 보았더니 나방고치가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은 무척 기뻤습니다. "필요하고말고. 더 많이 찾아오너라. 그러면 일요일에 오랑주까지 가서 회전목마를 태워 줄게. 오늘은 2수를 주마. 어머니께 드릴 야채 값과는 따로 넣는 것이 좋겠다." 2수만 있으면 커다란 알사탕을 하나 살 수 있습니다. '이 고치를 많이 가져와야겠어. 그러면 굉장한 부자가 될 거야.'하고 이 아이는 생각했나 봅니다. 금세 밝은 표정이 되더니 더부룩한 머리를 긁으며 돌아갔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그 고치를 살펴보았더니 둥그스름하고 비교적 큰 것입니다. 누에고치와 아주 비슷한데, 표면이 제법 단단하고 낙엽 색깔을 띠고 있습니다. 책에서 찾아보니 졸참나무에 발생하는 마른잎 모양의 나방, 즉 배버들나방의 고치인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나방을 이용하여 큰공작산누에나방과 애기공작산누에나방의 연구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배버들나방은 옛날부터 연구 재료로 자주 쓰여 온 유명한 나방입니다. 곤충학 책에는 이 나방의 수컷이 아주 먼 곳에서부터 암컷이 있는 곳으로 날아온다고 써 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에 암컷이 담긴 통을 놓아두면 멀리 떨어진 숲에서 수컷들이 계속 날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제로 보게 될까요? 이 나방은 선생님이 살고 있는 지방에서는 매우 희귀한 것입니다. 특히 파브르 선생님 댁 정원에서는 지난 20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남자 아이는 그 후 배버들나방의 고치를 발견하지 못했나 봅니다. 이후로 3 년 동안 선생님은 이 나방의 고치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친구나 이웃 사람들, 아이들에게까지 부탁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마른 잎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고치가 붙어 있음직한 작은 돌을 살펴보기도 하였으며, 졸참나무 줄기나 빈 구멍 속을 찾아 봐도 고치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8월 28일, 다갈색의 푹신푹신해 보이는 나방 한 마리가 우화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한 대로 배버들나방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철망 통 속에 나방을 넣어 연구실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곳은 전에 큰공작산누에나방을 놓았던 자리로, 정원을 향해 열려진 두 개의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방의 한가운데입니다. 철망 속의 암컷은 밝은 쪽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날개와 더듬이조차 움직이지 않는 것이 큰공작산누에나방의 암컷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수컷은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마귀가 망쳐 놓은 실험 3일째 되는 날, 배버들나방의 화려한 결혼 축하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그 때, 선생님은 수컷 기다리기를 단념하고 정원에서 다른 벌레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쯤 뜨거운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시간에 문득 연구실 쪽을 보다가 창 쪽에서 나방 떼가 세차게 날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물론 전부 수컷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너무나 기뻐서 가 보았더니 수컷 나방들은 방으로 들어가는 것, 나오는 것, 벽에 앉아 쉬는 것 등 여러 가지였습니다. 바깥 벽과 노송 나무에까지 앉아 있습니다. 수컷들은 여러 방향에서 날아왔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 수가 점점 줄어 들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모임의 첫 장면을 놓친 것을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수컷의 수는 대략 60 마리.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 동안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암컷 한 마리에 이렇게 많이 모여든 것입니다. 얼마나 먼 곳에서 날아온 것일까요? 수컷들은 암컷이 들어 있는 통 위를 빙빙 날더니 밖으로 나갔다가 곧 다시 방으로 들어와 빙빙 돌고 있습니다. 통 위에 앉을 듯이 펄럭펄럭하면서 한편으로는 밀고 당기며 가장 좋은 장소를 차지하려고 애쓰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철망에 가로막혀 그 이상 암컷에게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암컷은 전혀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수컷들은 세 시간 이상이나 미친 듯이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해가 기울고 기온이 조금 내려가자 나방의 소란도 마찬가지로 잠잠해졌습니다. 하나 둘 밖으로 날아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내일을 준비하려는 것인지 창틀에 앉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오늘의 축하연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사고가 일어나 결국 파브르 선생님은 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오후 늦게 황나사마귀 한 마리를 다른 사람에게서 얻은 선생님은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었으므로 따로 간직해 두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그만 깜빡 이 사마귀를 배버들나방 암컷이 들어 있는 통 속에 넣어 버린 것입니다. 사마귀와 나방을 한 군데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선생님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마귀는 작고 빈약한데 나방은 저렇게 살쪄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 것입니다. 다음날, 작은 사마귀가 낫처럼 생긴 양 앞발로 커다란 나방을 단단히 붙잡고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한 선생님은 '아차!'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하룻밤 동안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생각했던 연구도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이후로 3 년 간은 재료를 구하지 못했고, 파브르 선생님의 연구도 중단되었습니다. 강한 냄새에도 방해받지 않는다. 그로부터 3 년이 지난 후, 파브르 선생님은 계속 찾아다니던 배버들나방의 고치 두 개를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두 개 모두 8월 중순경에 우화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두 마리 다 암컷 나방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다시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우선, 큰공작산누에나방을 가지고 했던 것과 같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암컷이 든 통을 여기저기 숨겨 본 것입니다. 그러나 큰공작산누에나방과 마찬가지로 배버들나방의 수컷도 언제나 선생님의 생각을 꿰뚫어보고 정확히 그 통 쪽으로 날아왔습니다. 옷장 구석에 놓아도 통 뚜껑에 틈이 있으면 곧 냄새를 맡고 찾아왔습니다. 통이 꽉 닫혀 있으면 배버들나방은 안에 있는 암컷을 전혀 알아채지 못합니다. 통을 밖에 내놓아도 수컷은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통의 재료가 무엇이든 뚜껑만 꼭 닫아 두면 결과는 같습니다. 통을 만든 재료에 따라 전달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역시 암컷이 특별한 '알려 주는 발산물'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졌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으로 실험했을 때는 암컷 나방이 발산하는 냄새를 나프탈렌의 강한 냄새로 지워 보았습니다. 그러나 큰공작산누에나방은 속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을 배버들나방에게 한 번 더 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냄새가 강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한 모두 사용해 보았습니다. 나프탈렌, 라벤더 기름, 석유, 썩은 계란 냄새가 나는 유화 알칼리 등을 각각 12개의 병에 담아 암컷을 넣은 통 속과 주변에 죽 둘러싸듯이 늘어 놓았습니다. 그 이상 늘어놓으면 통 속의 암컷이 질식해 버릴 정도였습니다. 오전중에 이런 준비를 모두 끝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 두면 오후에 수컷이 모일 즈음에는 방안은 굉장한 냄새로 가득 차 있겠지요. 잠시 후 연구실에 한 발짝 들어가 보니 심한 냄새가 풍깁니다. 마치 가스 공장과 향수 제조소, 석유 공장과 화학 약품 공장의 냄새를 뒤섞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이 방에서 언제나 파이프 담배를 피우므로 담배 냄새까지 배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냄새의 대혼란 속에서 수컷은 암컷의 '알려 주는 발산물'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더구나 암컷이 들어 있는 통에는 두꺼운 천이 덮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컷들은 통을 향해 날아왔습니다. 암컷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암컷의 희미한 냄새도 지워졌을 것입니다. 그런 공기 속에서도 암컷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통 위에 걸친 천 밑으로 파고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연구는 모두 허사였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 때 나프탈렌으로 실험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은 셈입니다. 역시 암컷이 무엇인가 '알려 주는 발산물'을 내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역시 '알려 주는 발산물'이었다. 그런데 우연한 일로 하나의 힌트를 얻었습니다. 선생님은 수컷이 암컷을 찾을 때 눈으로 찾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작은 졸참니무 가지에 앉은 암컷을 유리 상자 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리 상자를 열린 창 바로 앞의 탁자 위에 놓았습니다. 창으로 들어온 수컷들은 유리 상자에 갇힌 암컷의 모습이 싫어도 보이겠지요. 그런데 창으로 들어온 수컷들은 모두 암컷이 갇혀 있는 유리 상자 위를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안에 들어 있는 암컷의 모습이 잘 보일 텐데도 그 곳을 지나쳐 방의 어두운 구석 쪽으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지난 밤부터 조금 전까지 암컷이 들어 있던 철망 통이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수컷 나방들은 철망 통 위에서 펄럭펄럭 날개짓을 하며 그 곳을 떠나려하지 않았습니다. 안에 암컷이 없다는 것을 보면 알 텐데도 결국 오후 내내 이 철망 통 곁에서 보냈습니다. 정말 일이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수컷 나방들은 바로 옆에 있는 유리 상자 속의 암컷에게는 눈도 주지 않고 전날 밤 암컷이 들어 있던 통 쪽으로만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발산물이군."하고 선생님은 확신했습니다. 유리 상자에 갇혀 있기 때문에 암컷에서 나오는 발산물은 밖으로 새지 못합니다. 그러니 냄새가 배어 있는 통 쪽으로 수컷들이 모인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적의 성으로 숨어든 왕자가, 유리 방에 갇혀 있는 공주를 보면서도 텅 빈 감옥의 쇠창살에 매달려 있는 격이니까요. 암컷이 수컷 나방을 강하게 이끄는 이 마법의 발산물을 만드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듯합니다. 수컷이 방안에 많이 있을 때도 새로운 통에 암컷을 넣은 직후에는 암컷 쪽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30분만 지나면 조금씩 옵니다. 암컷의 발산물이 공기 중에 퍼지기 시작하면 언제나처럼 모여드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알게 되자 여러 가지 실험을 더 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오전중에 파브르 선생님은 우선 암컷을 통 속에 넣어 졸참나무의 작은 가지에 앉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 두면 이 졸참나무 가지에 암컷의 '알려주는 발산물'이 배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수컷이 날아올 때가 가까워지자 파브르 선생님은 암컷의 발산물이 밴 작은 가지를 통에서 꺼내어 열린 창 가까이에 있는 의자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암컷은 통에 넣은 채 탁자 위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창으로 들어온 대여섯 마리의 수컷 나방들이 헤매고 있습니다. 열심히 암컷을 찾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가 겨우 목표물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아침부터 잠시 전까지 암컷이 앉아 있었던 의자 위의 작은 가지였습니다. 수컷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가지에 앉아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가벼운 가지가 수컷 나방들에게 밀려 바닥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작은 가지는 수컷들이 퍼덕이는 힘 때문에 바닥 위를 질질 미끄러집니다. 그 가지가 나방 떼와 함께 미끄러져 갈 때, 새로운 나방 두 마리가 들어 왔습니다. 두 마리는 지금껏 작은 가지가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아 열심히 암컷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열심히 찾고 있는 바로 곁에 암컷이 있는데도 수컷들 중 어느 하나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끌어당기는 힘의 비밀 발산물을 배게 하는 것으로는 특별히 이 작은 가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무명 천이나 플란넬 천, 솜이나 종이라도 암컷을 잠시 동안만 그 위에 놓아두면 수컷은 그 곳으로 날아옵니다. 나무나 유리, 대리석, 금속 등 단단한 것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면이나 플란넬 천이나 모래처럼 작은 구멍이 많이 뚫린 것입니다. 금속, 대리석, 유리 등은 수컷을 끌어당기는 힘을 금방 잃어버립니다. 역시 발산물이 배기 쉬운 것이 좋습니다. 냄새가 가장 잘 배는 것, 예를 들어 플란넬 천을 쓰면 매우 인상 깊은 일이 생깁니다. 가늘고 긴 시험관 바닥에 낮 동안 계속 암컷이 앉아 있던 플란넬 천을 집어 넣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수컷들이 이 관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꺼내 주어도, 수컷들은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성질을 이용하면 수컷 나방을 잡을 덫을 만들 수 있겠지요. 나방 중에는 농작물을 망쳐서 해충으로 불리는 것이 많이 있는데, 암컷의 냄새를 이용하면 수컷을 대량으로 모아 없애 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 방법은 파브르 선생님 시대로부터 100 년 가까이 지난 후에야 실용화되어 지금은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실험을 한 선생님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 있는 수컷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서 그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암컷 나방은 인간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나방에게는 아주 강한 '알려 주는 발산물'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방해하려고 선생님이 준비한 나프탈렌과 라벤더 기름 같은 냄새는 인간에게는 강하게 느껴져도 나방은 별로 느낄 수 없는 것이었겠지요. 암컷이 잠시 동안 앉았던 것에는 모두 이 발산물이 배어서 암컷 자신과 마찬가지로 수컷을 불러들이는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발산물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종이 위에 암컷을 잠시 놓아두면 그 주위로 수컷이 떼를 지어 오는데, 그 종이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얼룩이 있다든지 축축하다든지 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알려 주는 발산물'을 내는 방법은 나방에 따라 다릅니다. 갓 태어난 암컷은 처음엔 아무것도 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큰공작산누에나방의 암컷은 대략 그 다음날이 되어서부터, 즉 40시간 정도 지나서 수컷을 불러 들이게 됩니다. 배버들나방의 경우는 더욱 시간이 걸려 2, 3일이 지나야 합니다. 그럼 더듬이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배버들나방의 수컷은 훌륭한 더듬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큰공작산누에나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채 같은 더듬이로 냄새를 알아내는 것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큰공작산누에나방 때 했던 것처럼 더듬이를 잘라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수술을 받은 것은 한 마리도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모릅니다. 다른 원인으로 돌아오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현재는 우수한 측정 방법을 사용한 여러가지 실험에 의해 곤충의 '알려주는 발산물'의 정체가 밝혀져, '페로몬'이라고 하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페로몬을 이용하여 농작물을 망치는 나방 등을 대량으로 제거하는 일도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페로몬은 멀리 떨어진 곳까지는 발산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방의 수컷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암컷을 찾아 넓은 지역을 날아다닙니다. 그래서 냄새도 잘 맡고, 잘 찾아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페로몬을 예언한 것입니다. 인간은 코로 냄새를 느끼지만 곤충이 발산물을 느끼는 방법은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고 선생님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공기 중에 냄새의 작은 입자가 퍼지는 것이 아니라 전자파처럼 '냄새파'가 사방팔방으로 퍼져 곤충이 더듬이로 그것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수컷이 냄새를 맡고 온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수컷 나방이 멀리서부터 암컷이 있는 곳까지 날아오는 방법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물론 곤충만이 냄새를 이용하여 말보다 더욱 확실히 통신을 주고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개도 냄새 맡는 능력이 인간의 2 만 배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인간이 냄새에는 둔감한 동물일지도 모릅니다. 냄새란 무엇인가, 또 곤충들의 통신 수단은 무엇인가를 연구해 보면 거기에는 아주 복잡한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VII. 소나무행렬송충이의 행진 1. 소나무행렬송충이의 공동생활 진주 같은 알 여러분 중에는 송충이란 소리만 들어도 새파랗게 질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벚나무 가지에서 죽 실을 늘여 내려온 송충이가 목덜미에 닿기라도 한다면 비명을 지르고 싶겠지요. 그렇지만 묵묵히 기어가고 있는 송충이를 잘 보세요. 무척 색이 예쁜데다 잎을 사각사각 먹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조차 하답니다. 흔히 독송충이라고들 합니다만 정말로 독이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송충이하고는 꼭 친해졌으면 합니다. 송충이에게 잎을 주어 길러 보면 사각사각 잎을 먹는 모습 등이 점점 귀엽게 느껴집니다. 이윽고 껍질을 벗고 크게 자라면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됩니다. 그리고 잠시 자는 듯한 상태로 있다가 나방이 되어 날아가 버립니다. 송충이에서 나방으로, 정말이지 대변신이 아닐까요? 송충이와 배추벌레 같은 털 없는 벌레의 변신은 아주 옛날부터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이 장에서는 소나무행렬송충이라고 하는 털 벌레의 생활 방법에 대해 알아봅시다. 이것은 솔나방이라고 하는 나방의 애벌레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아르마스 연구소와 그 근처에는 세 종류의 소나무가 있습니다. 아레포소나무와 파라솔소나무, 그리고 해안송입니다. 그 소나무에는 소나무행렬송충이가 많이 발생하여 실을 토해 크고 흰 텐트 같은 것을 만듭니다. 이것이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의 집입니다. 이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소나무 잎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때문에 소나무가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망가져 버립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를 퇴치하려고 한다면, 겨울 동안 끝이 두 갈래로 된 긴 막대기로 소나무행렬송충이가 만든 텐트를 뜯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버려두면 소나무는 벌거숭이가 되어 버립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생활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년이나 2 년, 또는 그 이상, 송충이에 대해 잘 알게 될 때까지 소나무가 아무리 망가져도 텐트를 뜯어 내지 말고 소나무행렬송충이가 먹는 대로 내버려둬야 합니다. 그러자면 커다란 소나무가 완전히 말라 버릴 수도 있겠지요. 선생님 댁 바로 앞, 대문을 나와 몇 발짝 안 되는 곳에 소나무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냥 내버려둔 덕분에 이 소나무에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집을 30개 정도나 지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는 추운 겨울, 그것도 밤 동안에 활동합니다. 대문 바로 앞에 송충이의 집이 있으면 등불 빛으로 밤에 송충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밖에 놓아 기르면서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습성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알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8월 초에 사람의 눈높이쯤에 있는 소나무 가지를 찾아봅시다. 주의해서 보면, 칙칙한 녹색의 솔잎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하얗고 아주 작은 통 같은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이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알 덩어리, 즉 솔나방의 알입니다. 소나무 잎은 두 장이 한 쌍으로 되어 있는데, 그 밑부분에 통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통의 길이는 3센티, 폭은 4--5 밀리 정도입니다. 이 알 덩어리를 손으로 만져 보면 벨벳처럼 부드럽고, 반대쪽으로 쓸어 보면 표면이 거꾸로 일어납니다. 이것은 어미 나방이 알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꽁무니 끝에 있던 털을 붙인 것입니다. 훅 하고 불거나 붓으로 몇 번씩 문질러도 털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가 와도 괜찮습니다. 솔나방의 꽁무니 털은 매우 떨어지기 쉽지만 이렇게 알에 붙으면 모피 코트처럼 알을 보호하게 됩니다. 그 털 덮개를 핀셋으로 떼어 보면 작은 진주 같은 알이 줄지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알은 세로로 아홉 줄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한 줄에 알이 35개 있으므로 대략 300개의 알이 한 통 속에 있는 셈입니다. 알들은 서로 꼭 붙어 있어서 떼어 낼 수가 없습니다. 어미나방은 어떻게 이런 예쁜 알을 규칙적으로 낳을 수 있을까요? 정말 감탄할 일입니다. 곤충은 때때로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예술 작품을 만드는 수가 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가 만든 작은 텐트 9월이 되자 통 속에서 작은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깨어났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갓 태어난 소나무행렬송충이를 관찰하기 쉽도록 알이 붙은 소나무 가지를 몇 개 꺾어 컵에 담근 뒤 창가에 두었습니다. 작은 소나무행렬송충이가 아침 8시경 알에서 부화했습니다. 가을의 늦은 아침, 아직 태양이 창을 비추지 않고 있습니다. 어미나방이 붙여 놓은 털 덮개를 조금 들어 주었더니 작은 송충이의 검은 머리가 꾸역꾸역 나와 알 천장을 씹기도 하고 아래에서 뜯어먹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은 소나무행렬송충이의 몸길이는 1 밀리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연한 황색이지만 껍질을 벗으면 예쁜 진갈색이 됩니다. 그리고 잘 보면, 이 소나무행렬송충이 털에는 짧고 검은 것, 길고 흰 것이 섞여 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의 머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색입니다. 몸 전체에 비하면 머리가 매우 큰 편입니다. 머리 둘레가 몸 굵기의 두 배나 되니까요. 이렇게 머리가 큰 이유는 태어난 직후 단단한 솔잎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튼튼하고 큰 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큰 머리는 알에서 갓 태어난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첫번째 특징입니다. 잠시 동안 무리들과 알 덮개 위를 돌아다닌 뒤 작은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모두 솔잎 끝으로 기어갑니다. 다른 잎 쪽으로 기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우적우적, 우적우적'하고 식사가 시작됩니다. 마침내는 솔잎을 줄기만 남겨 놓고 깨끗이 갉아먹습니다. 가끔씩 잔뜩 배가 부른 벌레들 서너 마리가 한 줄로 기어갑니다. 행렬 연습을 하는 듯이 보이지만 곧 헤어져 서로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며 기어갑니다. 콕콕 찔러 보면 송충이들은 마치 '싫어, 싫어'하듯이 상반신을 들고 몸을 흔듭니다. 드디어 컵을 놔 둔 창가에 아침 해가 비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몸이 따뜻해진 작은 애벌레들이 자신이 태어난 두 장의 솔잎 밑부분 쪽으로 제각기 모여들어 실을 뽑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자신이 붙잡고 있던 잎을 발판으로 하여 얇은 비단으로 된 둥근 텐트 같은 것을 만듭니다. 한낮의 따뜻한 시간에 이 반투명한 덮개 아래에서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기분 좋게 자고 있습니다. 오후에 그늘이 지면 이 무리는 쉬고 있던 장소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여 다른 곳에 모여서 사방 3센티 정도로 흩어져 다시 잎을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이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해가 잘 드는 곳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밤에만 잎을 먹게 됩니다. 이렇게 알에서 갓 태어난 것이라도 소나무행렬송충이는 자기 재능을 한껏 발휘합니다. 즉, 알 껍질에서 나와 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벌써 행렬을 만들어 기고, 실을 토해 텐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실을 뽑는 힘은 지금은 아주 약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24시간만 지나면 둥근 비단 텐트가 도토리만큼 커지고, 2주일 후엔 작은 사과만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위에 아무리 두껍게 실을 걸쳐 놓아도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커다란 텐트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집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아직 추위가 심하지 않으므로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작은 송충이는 이 오두막의 기둥이 되는 소나무 잎을 우둑우둑 갉아먹고 있습니다. 송충이들의 거처는 집인 동시에 먹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솔잎이 심까지 갉히면 드디어 말라서 풀풀 떨어지고, 송충이가 만든 비단 텐트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들고 맙니다. 그러면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처음부터 다시 새 텐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새 텐트를 만드는 위치는 전보다 높아집니다. 처음에 사람 눈높이에 있던 가지에서 깨어난 소나무행렬송충이 떼는 점점 높이 올라가서 나중에는 아주 높은 가지에 집을 만들게 됩니다. 깨어난 뒤 몇 주일 후에야 겨우 최초의 탈피가 시작됩니다. 색이 연하고 따끔따끔한 느낌의 볼품없는 소나무행렬송충이가 허물을 벗으면 몰라볼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 됩니다. 진갈색의 등에는 붉은 점이 있고, 해가 비치면 금색 점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털 뭉치가 있기도 합니다. 송충이의 몸길이는 이 때 2센티 정도,폭은 3,4 밀리 정도가 됩니다. 겨울에 대비한 집 짓기 11월이 되고 드디어 심한 추위가 다가오면 튼튼한 겨울집이 필요해집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소나무의 높은 곳에 잎이 빽빽하게 난 가지 끝을 골라 비단 텐트를 만듭니다. 우선 성긴 망으로 중심이 될 잎을 싸고 주위의 잎을 모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잎이 붙은 작은 가지를 몽땅 덮어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겨울을 견디어 내기 위해 비단과 솔잎으로 만들어진 소복한 모양의 제대로 된 집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면 송충이가 만든 집은 사람의 주먹 두 개를 합한 정도의 크기가 됩니다. 그것이 자꾸자꾸 늘어나 겨울이 끝날 무렵에는 부피가 2리터나 되는 큰 것이 됩니다. 집은 달걀 모양으로, 아래쪽은 길게 잡아당긴 것처럼 가늘며 중심이 되는 작은 가지를 감싸고 있습니다. 날씨만 좋으면 매일 밤 7시부터 9시경까지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집에서 나와 이 텐트의 축이 되는 가지 부분으로 내려갑니다. 그런 다음 잎을 먹기 위해 가까운 가지로 퍼져 갑니다. 이 때 어느 소나무행렬송충이든 반드시 기어가면서 가지에 실을 토합니다. 그래서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지나가는 집 아래쪽은 모두가 토한 실로 뒤덮입니다. 이렇게 해서 집은 더욱 더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이 달걀 모양의 집 꼭대기에는 연필 굵기 정도의 둥근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습니다. 이것이 출입구입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는 그 곳을 통해 밖으로 드나듭니다. 하얀 집의 겉으로는 푸른 솔잎 끝이 삐죽삐죽 밖으로 나와 있고, 잎과 잎 사이에는 실이 둘러쳐져서 넓은 베란다처럼 되어 있습니다. 송충이들은 낮 동안 이 베란다에 나와서 겹치듯 누워 낮잠을 잡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가위로 집을 싹둑싹둑 세로로 잘라 안이 잘 보이도록 열었습니다. 선생님이 제일 먼저 놀란 것은 집 속에 든 잎이 전혀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는 어릴 때 약한 임시 텐트를 만들고 안의 잎을 싹둑싹둑 갉아먹었습니다. 날씨가 나쁠 때도 숨어 있는 집 속에는 며칠씩 먹을 식량이 충분했습니다. 애벌레가 아직 어리고 약할 때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특히 위험했으므로 이것은 아주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크게 자라 튼튼해지고 겨울집을 지을 시기가 되면,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절대로 잎을 갉아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텐트의 골격이 되는 솔잎을 갉아먹으면 잎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게 되고, 북풍이 불면 가지에서 풀풀 떨어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 비단 텐트의 기둥이 없어져 버리니까요. 따라서 지금은 절대로 갉아먹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집 속의 솔잎은 겨우내 싱싱하게 살아 기둥이 되어 줍니다. 눈이 쌓이고 얼어붙을 것 같은 북풍이 휘몰아치는 계절의 은신처는이렇게 튼튼해야만 하겠지요. 이제껏 집 속의 솔잎을 갉아먹고 있던 애벌레들이 본격적으로 텐트를 만들기 시작하자 이제부터는 속에 있는 잎을 갉아먹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니, 참으로 신기할 뿐입니다. 집 속에는 많은 솔잎이 가는 가지에 달려 있는데, 그 중에는 소나무행렬송충이의 허물이나 배설물이 말라서 실에 걸려 흔들거리기도 합니다. 집의 안쪽은 마치 쓰레기 더미 같습니다. 비단을 친 아름다운 겉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주위에는 두꺼운 비단과 솔잎이 뒤섞인 튼튼한 벽입니다. 안은 하나로 연결된 방인데, 달걀 모양 텐트의 기둥이 되는 푸른 솔잎이 늘어서 있어 미로처럼 되어 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집 속에서 쉴 때는 떼를 지어서 이 기둥에 앉아 있습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먹는다. 아침 10시경이 되자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텐트 속에서 나옵니다. 그 곳은 해가 잘 드는 베란다 같이 되어 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그 곳에서 줄곧 낮잠을 잡니다. 모두들 밀쳐내기 놀이라도 하듯 잔뜩 뭉쳐서 기분 좋게 햇볕을 쬐며, 때때로 머리를 흔들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어 캄캄해지면 실컷 자고 일어난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제각기 집 위로 기어가 여기저기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밝은 진갈색 줄무늬가 하얀 텐트 위의 곳곳에 꼬물꼬물하며 묵묵히 기어다니는 모습은 정말로 멋집니다. 제각기 기어다니는 송충이들은 끊임없이 입 끝으로 실을 토해 발 밑에 붙입니다. 그래서 비단 덮개는 점점 두꺼워지고, 집도 크고 튼튼해집니다. 가까이에 있는 푸른 잎에 계속 실을 걸쳐 집 기둥에 연결시켜 갑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매일 밤 두 시간 정도나 집 표면을 기어다니며 실을 걸쳐 벽을 두껍게 만듭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는 자신들이 경험해 보지 않았는데도 혹독한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됩니다. 이제부터 찬비와 천둥과 눈이 찾아오고, 심한 북풍이 불게 될 것을 소나무행렬송충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겨울의 무서움을 알 리가 없겠지요. 그렇지만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마치 그런 일쯤은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충분히 겨울을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마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되어 이 소나무에 고드름이 달렸을 때 우리 모두 여기서 꼭 뭉쳐 잔다면 아주 재미있을 거야. 자, 일하자구!" 파브르 선생님은 '자, 일하자구!'하는 부분을 일부러 라틴어로 썼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말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의 일생은 쇠똥구리가 구슬을 굴려 언덕을 올라가는 것처럼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여 겨우 일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예기치 않은 불행이 덮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끝까지 실망하지 않고, '자, 일하자구!'라고 말하며 스스로 용기를 냈습니다. 온실 속으로 집을 옮기다. 비가 내리거나 매서운 북풍이 쌩쌩 불 때, 희미한 등불을 한 손에 들고 뒷마당에 있는 소나무까지 가서 송충이를 살펴보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집을 여섯 개 정도 가져와서 유리로 된 작은 온실 속에서 기르기로 했습니다. 그 속은 바깥보다 조금 따뜻한 정도였지만, 어쨌든 직접 비나 바람이 닿지는 않습니다. 집이 붙어 있는 작은 가지의 밑부분을 온실 속의 큰 화분에 꽂고, 각 집에는 송충이의 먹이로 작은 나뭇가지 다발을 곁들여 주었습니다. 그것을 다 먹어 치우면 다시 가지를 바꿔 줄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집을 여섯 개나 온실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등불을 들고 이 온실을 방문합니다. 비단실로 집을 보강하는 일이 끝나면 이번에는 식사를 합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는 여전히 실을 토하면서 바로 곁에 있는 신선한 솔잎 다발 쪽으로 꾸물꾸물 기어갑니다. 그 멋진 행렬을 볼 때마다 파브르 선생님은 감탄하곤 했습니다. 갈색 모피를 걸친 듯한 무리가 작은 소나무 가지에 이르면, 한 솔잎에 두세 마리씩 모여 잎을 갉아먹습니다. 그 수가 많을 때는 무게 때문에 작은 가지가 휘어지기도 합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모두 위쪽을 향해 앉아서 솔잎을 게걸스럽게 갉아 먹습니다. 검고 큰 머리는 등불에 비쳐 번들번들 빛나고 있습니다. 발 밑의 모래 위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알갱이는 소나무행렬송충이의 똥입니다. 다음날 아침이면 모래땅 위는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짙은 녹색 배설물로 완전히 덮여서 모래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싸니 소나무가 벌거숭이가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파브르 선생님 가족은 소나무행렬송충이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서 저녁 식사 후면 온실에서 소나무행렬송충이 구경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식사는 한밤중까지 계속됩니다. 겨우 배가 불러지면 제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부지런한 소나무행렬송충이가 모두 집 속으로 돌아가는 것은 한밤중인 2시경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금세 벌거숭이가 되어 버리는 소나무의 작은 가지 뭉치를 매일 바꾸어 주느라 바빴습니다. 집에 틈이 생겨도 집 속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위로 싹둑싹둑 잘랐을 때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자기들 집이 갈라지는 대사건이 일어났을 때 송충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선생님이 집을 가위로 자른 시간은 점심때쯤으로 마침 송충이들이 텐트 위에서 푹 잠들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난폭한 짓을 해도 송충이들은 집 위에서 자기만 합니다. 이렇게 큰 구멍이 뚫리면 날씨가 추워져 바람과 눈이 휘몰아칠 때 무척 고생을 하게될 텐데도, 갈라진 틈을 걱정스레 돌아보는 송충이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위험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여전히 집에 난 커다란 틈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갈라진 틈을 보고도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송충이는 집 위를 기어다니며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실을 둘러칠 것입니다. 가끔씩 몇 마리가 갈라진 틈 쪽으로 오기는 하지만, '아, 큰일났군!'이라든가 '골치 아픈 일이 생겼군, 어쩐다?'하는 듯한 낌새는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갈라진 틈을 가운데로 잡아당겨 붙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그 곳까지 와서도 그저 갈라진 틈을 건너갈 뿐입니다. 상처 없는 텐트 위를 기듯이 그대로 산책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갈라진 곳까지 온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몸을 쭉 펴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건너편에 실을 치면서 그 곳을 건너갑니다. 건너간 다음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묵묵히 길을 갑니다. 같은 장소에 다른 놈이 왔습니다. 이 소나무행렬송충이도 조금 전의 송충이가 친 실 위로 자신의 실을 쳐서 건너편으로 갑니다. 송충이들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각자 한 줄씩 실을 치면서 갈라진 틈을 건너갑니다. 매일 밤 같은 일이 반복되는 동안에 갈라진 틈엔 드디어 얇은 비단 망이 쳐졌습니다. 송충이들이 급히 서둘러 텐트를 수리하는 일은 끝까지 없었습니다. 비슷한 일들이 겨울이 끝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갈라진 틈은 그 이상의 수리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위에 얇은 덮개가 걸쳐진 것뿐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온실 밖에서 일어났다면 이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모두 얼어 죽어 버렸겠지요. 이 실험을 한 번 더 해 보아도 같은 결과였습니다. 송충이는 텐트에 구멍이 나 있어도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송충이들은 이미 두꺼워진 비단 위를 계속 기어다니며 비단실을 낭비하면서도 이렇게 크게 찢어진 곳을 특별히 수리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평상시의 일을 여유 있게 계속할 뿐입니다, 이것 역시 곤충들의 어리석은 본능의 한 예일지도 모릅니다. 집을 크게 하는 방법 겨울을 지내기 위한 커다란 집 속에는 처음엔 아주 많은 소나무행렬송충이가 있습니다. 이 작은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어미가 낳은 여러 개의 알통에서 나온 형제들입니다. 작은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대단치 않은 일로도 쉽게 죽습니다. 만약 어미 한 마리가 낳은 300개 정도의 알이 전부 자란다면 그 수가 너무 많아져서 솔잎이 완전히 없어져 버리겠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가을까지 살아 남은 소나무행렬송충이는 한 집에 몇 마리뿐입니다. 이제 겨울에 대비하여 튼튼한 텐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때는 여럿이 함께 있는 편이 힘을 합칠 수가 있어서 좋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가 나무 위를 돌아다닐 때는 길 표시로 반드시 비단실을 토합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이 실을 더듬어 가는데, 그 때 잘못하여 다른 집에 사는 송충이의 실을 따라가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남의 비단실을 따라간 소나무행렬송충이가 다른 집에 받아들여질까요? 개미나 벌의 경우,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가면 심한 봉변을 당합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어떻게 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어떤 집에 다른 집의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을 자꾸자꾸 맞아들인다면 그 집에 많은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집중되어 커다란 집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집 근처 소나무에서 잎을 갉아먹고 있는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을 집이 붙어 있는 가지째 잘라 와서 모래에 꽂았습니다. 다음에는 집에서 멀리까지 나온 다른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잔뜩 매달린 가지를 꺾어, 미리 꺾어 온 가지의 잎들과 뒤섞이도록 하여 모래에 꽂았습니다. 가만히 지켜보았더니 집이 다른 소나무행렬송충이들끼리도 전혀 싸움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집에 되돌아갈 시간이 되자 실을 더듬어 한 집으로 모두 돌아갑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사이좋게 뒤엉켜서 모두가 힘을 합쳐 실을 뽑아 이불을 조금 두껍게 한 뒤 침실 속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 다음날도 같은 일을 반복해서 아주 간단하게 어느 하나의 집에 사는 송충이들을 통째로 다른 집 속에 옮겨 넣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주위에 있는 세 개의 집에서 송충이들을 가져와 하나의 집을 네 배의 크기로 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기 집이 멀어서 돌아가는 것을 단념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살던 집은 지금은 텅 빈 채 불과 몇 센티 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선생님이 이 빈집에 다시 한 번 살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 같은 방법으로 간단하게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 있습니다. 한겨울인 2월의 화창한 날이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는 두 개의 소나무행렬송충이 무리가 자연스럽게 합류라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외톨이라면 이 작은 벌레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수백 마리가 모여 힘을 합쳐야 비로소 겨울 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두꺼운 텐트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일하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송충이들을 위해서도 일하는 것이 됩니다. 즉,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행복과도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사회는 아주 모범적입니다. 먹을 것은 얼마든지 있다. 소나무행렬송충이의 공동 생활이 이렇게 잘 이루어지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먹을 것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솔잎 한두 장이면 소나무행렬송충이의 하루 식량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소나무 한 그루엔 아주 많은 양의 솔잎이 붙어 있으므로 먹을 것을 뺏으려고 싸울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육식성 곤충이나 그 밖의 동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두 마리의 딱정벌레가 한 마리의 지렁이를 동시에 발견했을 경우, 또는 두 마리의 사자가 한 마리의 영양을 발견했을 경우엔 반드시 먹이를 차지하려고 싸우게 되고, 때로는 서로 죽이는 일조차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도 사실 언제나 굶주려 있는 육식 동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과 인간, 나라와 나라가 싸우기도 하고 전쟁을 하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식량 문제에 있습니다. 그러나 소나무행렬송충이에게는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서로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닮았고, 또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실을 뽑는 일이 능숙하고 서툴다든지, 강하고 약하다든지, 또는 부지런하고 게으름을 피운다든지 하는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 열심히 똑같은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공동 생활이 잘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런 송충이들의 사회야말로 얼마나 멋진 평등 사회인가 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에 비해 인간 사회는 어떤가요? 평등은 인류의 커다란 목표입니다. 불평등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은 인간 사회에 완전한 평등이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르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는 멍청하면 불평등한 대접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조금씩 고쳐 갈 수만 있다면 오히려 행복한 일이다. 언제나 같은 하나의 음만으로는 아무리 그 수를 늘린다 해도 음의 하모니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약한 음과 강한 음, 낮은 음과 높은 음처럼 제각기 다른 음이 있어야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불협화음도 필요한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불협화음이 있음으로써 처음으로 화음의 훌륭함이 분명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또 그들이 각자 개성을 지니고 있을 때 비로소 인간 사회가 복잡하고 재미있어지고, 예술과 과학도 진보, 발전해 간다는 것입니다. 2. 멈추지 않는 행진 파뉴르쥬의 양 프랑스에는 '파뉴르쥬의 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만 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 기원은 16세기 프랑스 작가 라블레라는 사람의 '팡타그뤼엘 이야기'입니다. 그 책 속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인공 팡타그뤼엘은 장난을 치려고 양을 많이 갖고 있는 상인의 양 한 마리를 배 위에서 바다로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양들이 그 뒤를 따라 줄지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또한 라블레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럽고 무능한 양의 성질은 선두가 어디로 가든 꼭 뒤따라간다는 것이다." 소나무행렬송충이는 바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언제나 선두의 뒤를 따라가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양 이상으로 충실합니다. 선두에 선 송충이 뒤를 다른 송충이들이 모두 한 줄로 서서 열심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선두의 송충이가 아무 계획 없이 우왕좌왕, 꾸불꾸불 기어가면 다른 송충이들도 고지식하게 행렬을 이루어 따라갑니다. 그래서 솔잎을 좋아하는 이 털벌레에게 소나무행렬송충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이 벌레들은 모두 기어가면서 실을 토해 그 비단실 위로만 갑니다. 어느 송충이가 행렬의 선두가 되는지는 그 때의 상황에 따라 결정됩니다. 실은 아주 가늘어 확대경으로 보아야만 겨우 희미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다음에 따라오는 송충이가 이 가는 실 위에 자기 실을 토하므로 실을 이중, 삼중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행렬이 지나간 뒤에는 비단 리본이 남게 됩니다. 이 비단 길은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송충이들은 도로에 자갈이나 돌을 깔아 포장하는 대신 비단실을 까는 것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사치스럽지 않습니까? 왜 이런 사치스러운 일을 하는 걸까요?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다른 털벌레들처럼 각기 자기가 원하는 대로 기어다닐 수 없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합니다. 먼저, 소나무행렬송충이가 식사를 하기 위해 외출을 하는 것은 언제나 밤이 된 후입니다. 송충이들은 어두울 때 소나무 꼭대기의 집에서 나옵니다. 줄기를 똑바로 타고 내려와 새로운 솔잎을 구하러 아래쪽 가지에 도착합니다. 집 가까이에 있는 위쪽 가지를 전부 먹어 치우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식사가 끝난 뒤 밤이 깊어지고 추위가 심해지면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직선 코스로 가면 기껏해야 1 미터 정도의 거리이지만 묵묵히 기어가는 송충이들은 똑바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집이 있는 솔잎에서 가는 가지로, 가는 가지에서 작은 가지로, 작은 가지에서 큰 가지로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길을 더듬어 자기들의 집까지 되돌아가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헤매기 십상인 이 길을 주위를 살펴보면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 송충이들은 머리 양쪽에 다섯 개의 눈이 분명히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작아서 확대경으로 보아도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눈으로 사물을 확실히 본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빛을 희미하게 느끼는 정도겠지요. 게다가 지금은 밤이라서 그런 작은 눈이 있다고 해도 어둠 속에서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냄새에 의지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가 냄새를 맡아 알아내는 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송충이가 냄새를 맡는 힘은 아주 약해서 방향을 탐지할 정도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우선 소나무행렬송충이에게 오랫동안 솔잎을 먹이지 않아 배가 고프도록 했습니다. 그리고는 송충이 행렬 바로 옆에 작은 소나무 가지를 닿지 않도록 주의해서 놓아두었지만 송충이들은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의 가장 예민한 감각은 닿았을 때의 감각, 즉 촉각인 것입니다. 솔잎이 입에 닿으면 곧 갉기 시작하지만 닿지 않으면 바로 곁을 지나가더라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길잡이는 비단실 그러면 소나무행렬송충이가 집으로 돌아갈 때 의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어가면서 뽑은 실입니다. 제 1권의 미노타우로스금풍뎅이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 머리는 소이고 몸은 인간인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이 있었습니다. 한 번 길을 잃으면 두 번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미궁에 갇혀 있던 이 괴물을 물리친 것이 그리스 신화의 영웅 테세우스입니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라는 처녀에게서 받은 실꾸러미를 풀면서 미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때는 그것을 거꾸로 더듬어 밖으로 나왔는데, 만약 이 실로 표시하지 않았더라면 미궁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겠지요. 솔잎 한 장 한 장은 송충이에게 굵은 기둥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빽빽이 나 있는 곳은, 특히 밤이라면, 크레타 섬의 미궁처럼 빠져 나가기가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소나무행렬송충이에게는 비단실이 '아리아드네의 실'이 되어 틀림없이 돌아가는 길을 알게 됩니다. 송충이들은 식사 때는 뿔뿔이 흩어지지만 솔잎을 잔뜩 먹고 돌아올 시간이 되면 자신들이 실로 만든 길을 따라 다시 한 줄로 묵묵히 기어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겨울이라도 날씨만 좋으면 낮부터 멀리까지 외출하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모두가 나무에서 내려와 땅 위를 헤매는데, 사람의 걸음으로 50보 정도의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이것은 먹을 것을 찾아 떠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태어난 소나무에는 아직 잎이 잔뜩 남아 있는 데다가,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밝을 때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외출하는 것이 건강을 위한 산책일까요, 근처를 둘러보기 위한 여행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번데기가 될 때 기어들 모래 땅을 미리 살펴보는 것일까요? 설마 곤충이 이렇게까지 계획적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겠지요? 이렇게 멀리 나올 때에도 표시가 되는 실을 잊은 일은 물론 없습니다. 실치기는 이런 때일수록 더 필요한 것입니다. 행렬이 길게 이어질 때는 길에 깔린 비단실의 폭이 아주 넓어져서 돌아오는 길을 찾기에 편하지만 그래도 길을 찾느라고 갈팡질팡하는 때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랫동안 헤매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무리 전체가 그대로 바깥에서 자는 일도 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에게 이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몸을 서로 붙이고 추운 밤을 지새는 것뿐입니다. 어쨌거나 추위에는 꽤 강한 벌레입니다. 그리하여 다음날이 되면 다시 길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왔던 길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의 행렬은 길 표시인 비단실을 잘 찾습니다. 이 길 표시를 맨 앞의 송충이가 발로 느끼면 이젠 별 문제없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11월경에 소나무행렬송충이는 이제부터 닥칠 흑심한 겨울에 대비하여 집을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 갑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 한 마리가 토한 실만으로는 북풍이 쌩쌩 불어치는 겨울에 자신의 몸을 보호할 따뜻한 거처를 만들 수 없겠지요. 많은 송충이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눈과 바람, 차가운 안개도 견뎌낼 수 있는 훌륭한 집을 도저히 만들 수 없습니다. 한 마리 한 마리의 작은 힘이라도 합치면 드디어는 넓고 탄탄한 건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모두 함께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날씨만 좋다면 언제나 건물을 더욱 튼튼하게 넓혀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꼭 함께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비단실은 길 표시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송충이 한 마리 한 마리를 연결시켜 사회를 이루는 귀중한 끈, 즉 생명줄입니다. 대장 송충이 그런데 어떤 행렬에도 선두가 되는 송충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송충이를 대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달리 더 좋은 이름이 없어서 대장이라고 했지만 이 대장은 다른 대원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한 줄로 섰을 때 우연히 맨 앞에 있었기 때문에 대장이 된 것뿐입니다. 이들 송충이 행렬에 어떤 사고라도 생겨 뿔뿔히 흩어진다면, 다시 일렬로 섰을 때 맨 앞에 있는 송충이가 대장이 되는 것입니다. 갑자기 대장역이 되면, 소나무행렬송충이는 특별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열 뒤에 붙어서 조용조용 기어다니는 다른 송충이들과는 달리, 상반신을 흔들며 살피듯이 전진합니다. 대장이 되면 주위를 살피며 기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 송충이가 길을 살피며 가장 가기 쉬운 곳을 찾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 곳에 아직 길 표시 실이 없어서 곤란해 하고 있는 것뿐일까요? 뒤에 따라오는 송충이들은 발 사이에 실이 느껴지므로 안심하고 따라가지만 대장은 길 표시가 없다면 큰 걱정입니다. 대장은 번들번들 검게 빛나는 머릿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것을 알면 재미있겠지요. 가만히 관찰하면 대장에게는 사물을 분간하는 힘이 조금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너무 거칠거칠한 곳이나 미끄러운 곳, 또는 발을 디디기 어려운 모래땅은 피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동료 송충이들이 쳐 놓은 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행렬의 길이는 다양합니다. 선생님이 본 가장 긴 행렬은 12 미터나 되며, 세어 보니 300 마리나 되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행진하는 모습은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긴 끈 같습니다. 송충이가 두세 마리밖에 없는 때라도 순서는 분명합니다. 두 번째 것은 첫번째의 꽁무니를 만지면서 그 뒤를 따라갑니다. 온실 속에서 선생님은 긴 것에서 짧은 것까지 여러 행렬을 보았습니다, 자, 이 행렬의 성질을 조사하기 위해 어떤 실험을 해 보면 좋을까요? 선생님은 두 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우선 대장을 없애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실로 된 길을 끊어 보았습니다. 대장 송충이를 살짝 없애 보아도 행렬의 진행 방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송충이가 곧 대장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발 밑의 실을 끊어 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행렬 한가운데에 있는 소나무행렬송충이 한 마리를 없애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주의해서 가위로 이 송충이의 몸길이만큼 실을 완전히 잘라내어 한 올도 남지 않도록 했습니다. 행렬은 완전히 둘로 나뉘어 두 마리의 대장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앞과 뒷줄이 아주 조금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경우 뒷줄 대장이 앞줄에 따라 붙자 다시 처음대로 한 줄의 행렬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렇지만 두 행렬이 끝까지 합류하지 않는 경우도 지주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두 행렬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빗나가 멀어져 갑니다. 그러나 어느 행렬이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길 표시인 비단실을 발견하고 언젠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행렬을 연결해 보았더니 이제까지 해 본 두 가지 실험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다른 실험을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표시를 자르고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원을 그리며 빙빙 돌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입니다. 눈앞의 비단 길이 언제까지나 계속된다면 소나무행렬송충이는 끝없이 그 길은 빙빙 돌아다닐까요? 야외에서는 이런 원형의 길을 좀처럼 볼 수 없으므로 그것을 잘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선생님이 처음에 생각해 낸 것은 행렬의 뒤에 있는 비단 길표시를 핀셋으로 집어서 살짝 구부리고, 그 끝을 행렬의 대장 송충이가 있는 곳에 갖다 놓는 일이었습니다. 대장 송충이가 그 끝을 지나가면 다른 송충이들도 얌전히 뒤를 따라오겠지요. 처음에는 이것을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해 보니 쉽지가 않습니다. 비단실이 너무 가늘어서 핀셋으로 집으면 실에 들러붙어 있던 모래알의 무게 때문에 툭 끊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다 선생님이 아무리 조심을 해도 뒤에 오던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비단실에 전해지는 진동을 느끼고 상반신을 들어올려 비단 길에서 떨어지곤 하는 것입니다. 더 난처한 일은 대장 송충이가 선생님이 눈앞에 내민 끈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실 끝이 부자연스럽게 툭 끊어져 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이상한데, 이것은 제대로 된 길이 아니야.'하고 생각하는 듯 이 길을 비스듬히 벗어나 원래의 길에서 빗나가 버립니다. 선생님이 억지로 송충이를 만들어 놓은 길 쪽으로 가게 하려고 해도 송충이들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몸을 움츠리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엔 행렬 전체가 불안한 듯 멈춰 버립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무척 손이 많이 가는 데다가 실패의 연속입니다.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둥근 길을 마침 발견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집이 붙은 소나무 가지를 모래 속에 꽂아 두었는데 그 곁에는 지름이 1.5 미터인 커다란 야자나무 화분이 몇 개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송충이의 행렬이 그 화분을 기어올라 가장자리까지 가는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이 가장자리가 송충이들이 줄지어 가기에 알맞았나 봅니다. 도자기로 된 화분의 표면이 슬슬 무너져 내리는 모래와 달리 걷기에도 좋기 때문이겠지요. 게다가 평평하게 되어 있어서 좋은 휴식처도 되는 모양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바라던대로 둥근 길이 되겠지요. 이제는 기회가 오기만 기다릴 뿐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곧 찾아왔습니다. 1896 년 1월 30일, 점심때가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마침 선생님이 관찰을 하고 있을 때, 많은 소나무행렬송충이가 일렬로 화분을 기어올라 가장자리까지 오는 것입니다. 화분 가장자리에 도착한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일렬로 서서 그 위를 기어갑니다. 다른 송충이들도 뒤따라 올라와서 행진에 참가합니다. 드디어 행렬의 대장이 출발점으로 되돌아와 빙빙 도는 송충이 고리를 멋지게 완성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송충이는 참가시키지 않는 편이 좋겠지요. 송충이 수가 너무 많아져서 멋진 행렬이 혼란스러워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화분 가장자리에서 땅 위까지 이어져 있는 비단 길을 걷어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두꺼운 붓으로 뒤따라 올라오는 무리들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긴 솔을 사용하여 화분 옆을 꼼꼼히 문질러서 실을 깨끗이 떼어 냈습니다. 냄새 등이 남아서 나중에 송충이들이 그것에 의지해 화분 가장자리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 정말로 진기한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행렬은 완전히 고리 모양이 되어 끊긴 곳이 없으므로 더 이상 대장도 없습니다. 모두들 길 표시에 이끌려 앞서가는 것의 뒤에 붙어서 기어갈 뿐입니다. 원을 이룬 전체 행렬이 묵묵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말로 '파뉴르쥬의 양'처럼 다른 송충이의 뒤를 따라서 아무 생각도 없이 걷고 있을 뿐입니다. 눈치를 채고 길을 바꿀 대장이 없는 것입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파브르 선생님의 계략에 감쪽같이 걸려든 것입니다. 지옥의 순례 소나무행렬송충이는 비단으로 길 표시를 깔며 화분 가장자리를 기어갑니다. 그래서 비단 길은 점점 더 두꺼워집니다. 선생님이 화분 옆의 실을 솔로 깨끗이 떼어 버렸으므로, 이 둥근 길 어디에도 옆으로 새는 곳이 없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이 둥근 고리 덫 위에서 어떻게 할까요? 지쳐 쓰러질 때까지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빙빙 돌까요? 옛날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 중에 '뷰리단의 나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나귀를 두 개의 구유 한가운데로 데려가자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과 왼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똑같이 강해서, 결국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는 것입니다. 당나귀를 완전히 바보 취급한 이야기입니다. 유럽에서는 곧잘 당나귀를 완고하고 어리석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양쪽의 귀리를 부지런히 다 먹어 치워 인간의 잘못된 생각을 비웃겠지요. 파브르 선생님의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선생님의 덫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화분 가장자리를 몇 번이나 돌고 나면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배도 고플 테고, 또 이 곳엔 숨을 곳도 없습니다. 큰맘 먹고 길을 벗어나면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고, 더구나 그 바로 옆에는 맛있는 푸른 소나무 가지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동안은 행렬이 빙빙 돌겠지. 그리고 나서 자신들의 실수를 눈치채고, 고리에서 나와 아래로 내려올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대장이 없는 이 행렬의 송충이들은 다른 송충이의 뒤만 따라갑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나아가는 것이 한 마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시계 바늘이 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행진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송충이를 속이려고 했던 선생님 쪽이 오히려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니, 너무나 감쪽같이 걸려들었기 때문에 놀랐다기보다는 질려 버렸습니다. 몇 시간이나 행진이 계속되는 사이에 비단실로 된 길 표시는 점점 두껍고 넓어져서 마침내 폭이 2 밀리나 되는 멋진 리본이 되었습니다. 그 비단 리본이 화분의 갈색 바탕 위에서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지나가는 길은 변화가 없었지만 송충이들의 걸음걸이는 빨라졌다 늦어졌다 합니다. 속도를 재어 보니, 1분에 평균 9센티로 그 동안 조금도 쉬지 않았습니다. 어두워지고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온실 속에 있는 모든 집에서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계속 나왔습니다. 이 송충이들은 파브르 선생님이 먹이로 준 작은 가지에 덮인 잎을 먹으러 나오는 것입니다. 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솔잎을 먹으러 출동합니다. 기온이 따뜻했기 때문입니다. 화분 가장자리에서 일렬로 돌고 있는 소나무행렬송충이들도 슬슬 식사를 시작할 때입니다. 10시간이나 행진한 뒤라 배도 무척 고프겠지요. 바로 곁에는 신선한 솔잎도 있습니다. 그 곳은 화분 가장자리에서 내려가기만 하면 바로 닿습니다. 그러나 바보 같은 이 송충이들은 자신들의 리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밤 10시경에는 행렬이 거의 나아가지 못하고 꽁무니만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10시 반쯤 선생님은 화분 위에 있는 송충이를 그대로 두고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송충이들이라도 밤에는 분명히 아래로 내려와 내일은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행진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선생님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어리석었습니다. 날이 밝자 선생님은 곧 송충이를 보러 갔습니다. 송충이들은 전날 밤과 마찬가지로 한 줄로 늘어서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조금 따뜻해지자 잠에서 깨어난 송충이들은 다시 행진을 시작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탑돌기입니다. 고지식한 것까지 전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 날 밤은 날씨도 나쁘고 기온도 갑자기 내려갔습니다. 정원의 송충이들은 그런 일을 미리 알고 집 속에서 두문불출입니다. 다음날 새벽에는 정원의 나무에 서리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해 두 번째의 서리였습니다. 정원 연못에는 얼음이 얼었습니다. 온실의 송충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선생님이 가 보니 온실 속의 송충이들은 모두 집 속에 틀어박힌 채였습니다. 그러나 화분 가장자리에서 덫에 걸린 송충이들만은 그대로 거기게 있습니다. 이 송충이들은 무척 추웠겠지요. 선생님은 이 송충이들이 고리 모양이 아니라 두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찐빵처럼 꽉 뭉쳐서 겨우 추위를 견뎌낸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아무리 해도 끊어지지 않았던 송충이의 고리가 혹심한 겨울 추위 때문에 간신히 둘로 나뉜 것입니다. 아마 이것이 살아날 기회가 되겠지요. 둘로 나뉜 집단에는 각각 대장이 생기고, 대장은 스스로 길을 선택하면서 나아가므로 이 마법의 고리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대장 송충이가 커다란 검은 머리를 걱정스러운 듯 망설이며 흔들고 있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혹시 밖으로 나갈 길을 찾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허사였습니다. 잠시 후 열이 길어지자 두 행렬은 연결되어 버렸고 원래의 고리로 되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아주 잠깐 동안에 대장이 되었던 두 마리도 보통 대원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옥의 행진이 시작되었고 이것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습니다. 또다시 바람 없는 활짝 갠 밤이 왔습니다. 별이 빛나는 대신 추위가 심해져 서리가 내렸습니다. 날이 밝은 뒤에 보니 화분의 송충이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해가 나고 송충이들의 몸이 따뜻해지자 최초로 걷기 시작한 송충이는 리본에서 벗어난 곳에 있었습니다. 이 송충이는 갈피를 못 잡고 길 표시가 없는 곳을 기기 시작합니다. 화분 가장자리에서 내려와 안쪽의 흙 위를 기어가고 있습니다. 그 뒤를 따른 것은 여섯 마리 뿐이었습니다. 다른 것들은 몸이 아직 따뜻해지지 않아 움직일 수 없었겠지요. 늦어진 것들은 다시 쓸데없는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화분 안쪽으로 들어온 일곱 마리는 어떻게 할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기대에 차서 지켜보았지만 이 송충이들에게도 별로 좋은 일은 없었습니다. 우선은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던 송충이들이 야자나무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야자나무 잎은 먹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나무에서 흙으로 내려와 다시 화분 가장자리로 되돌아왔을 때 동료들의 행렬이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곧장 그 행렬에 합류했습니다. 역시 빙빙 도는 덫에서 밖으로 빠져 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언제쯤이면 송충이들이 이 곳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요? 이 모습을 보고 있던 파브르 선생님은 오래된 전설을 떠올렸습니다. 악마에게 저주받아 손발이 제멋대로 춤추기 시작해서 멈출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춤의 굴레에서 구원 받으려면 머리에 교회의 성수를 한 방울 떨어뜨려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한 방울의 물방울이 이 소나무행렬송추이들 위에 떨어져 굴레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까요? 이 마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두 가지 기회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모두는 고통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우선 첫번째 기회는, 추위로 움츠러들거나 더위로 기는 속도가 빨라졌을 때 생깁니다. 예를 들어, 날씨가 추워지면 소나무행렬송충이의 열이 흩어졌다가 다시 한 덩어리로 모입니다. 이런 와중에 리본 길 위에서 벗어나는 것들이 생깁니다. 이 때 길에서 벗어난 송충이 중 다른 것과는 틀린 행동을 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결국은 이 무리가 새로운 길을 발견해서 자기 동료들을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회는 파김치가 되어 단념해 버리는 데서 생겨납니다. 송충이 하나가 지친 나머지 멈춰 서 버리면 행렬에 틈이 생깁니다. 쉬고 있던 송충이는 자기 앞에 아무도 없으므로 대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송충이가 새로운 길을 발견하면 이 탑돌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빙빙 돌아가는 송충이 열차가 구해지려면, 탈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몇 번씩이나 송충이 고리가 끊어져 두세 개의 활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잠시 후엔 원래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송충이들이지요. 이대로 전멸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거듭되는 실패 얼어붙을 듯 추운 밤이 지나고 드디어 4일째가 되었습니다. 별로 변한 것은 없지만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전날 화분 안쪽으로 내려간 일곱 마리의 송충이들이 남겼던 실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화분 가장자리의 둥근 길과 연결되어 있는 이 실을 몇 마리의 송충이가 더듬어 화분 흙으로 내려가 야자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야자나무에 올라갔던 것들 역시 원래의 무리와 다시 합류했습니다. 고리가 이어져서 다시 원래대로 되어 버린 것입니다. 드디어 5일째입니다. 전날 밤에는 서리가 많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온실 안은 괜찮았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온실의 유리 주위가 조금 따뜻해지자 동그랗게 뭉쳐 있던 송충이들이 곧 잠에서 깨어나 화분 가장자리를 다시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일렬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유스럽게 행진합니다. 오늘도 몇 마리의 송충이들이 화분 안쪽 길을 더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송충이들도 작은 원을 그렸을 뿐 다시 원래의 길로 되돌아왔습니다. 나머지 송충이들은 변함없이 행렬을 잇고 있습니다. 무리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송충이의 수는 양쪽이 비슷합니다. 같은 방향으로 화분 가장자리를 기고 있는 두 행렬은 가끔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조금 흩어져 나아갑니다. 송충이들이 피곤해하자 혼란은 더욱 심해집니다. 그러는 중에 더 이상 기지 못하고 멈춰 서는 것이 나왔습니다. 행렬은 몇 개로 나누어지고, 어느 열이나 대장이 생겨서 길을 찾으려고 상반신을 들어올려 흔들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이제 금방입니다. 오랫동안 고생했던 송충이들도 곧 이 마법의 길에서 해방되겠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또 허사가 된 것입니다. 저녁 무렵 뿔뿔이 흩어져 있던 행렬은 원래대로 한 줄이 되어 다시 빙빙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추위 뒤에 갑자기 더위가 찾아왔습니다. 벌써 2월 4일입니다. 날씨가 무척 좋아서 기분도 아주 상쾌한 날입니다. 온실 속의 송충이들도 활발하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마치 꽃다발 같은 송충이 행렬이 크고 흰 텐트 같은 집에서 나와 모래 위를 꾸물꾸물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화분 가장자리에서도 행렬의 고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고 있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대장 송충이 하나가 더위로 흥분을 했는지 화분 가장자리의 제일 끝부분에 와서 탄탄한 두 다리로 버티고, 몸을 공중에 던지는 듯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찾는 듯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송충이가 몇 번이나 이런 행동은 했으므로 그 때마다 행렬이 멈췄습니다. 송충이들은 머리를 흔들며 꽁무니를 들썩거립니다. 드디어 탐험가 한 마리가 화분 가장자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로 뒤를 네 마리의 송충이가 따라갑니다. 그러나 행렬의 다른 송충이들은 최면술에 걸린 듯 변함없이 고리를 돌고 있습니다. 열에서 벗어난 다섯 마리의 탐험가는 화분의 옆구리 부분에서 오랫동안 어디로 갈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일단 화분 중간까지 내려간 뒤, 다시 비스듬하게 방향을 위로 바꾸어 행렬에 합류하고 맙니다. 또 실패입니다. 배가 고픈 송충이들을 유인하기 위해 화분 밑 20센티 정도 되는 곳에 작은 소나무 가지를 놓아두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솔잎 냄새를 맡고, 눈으로도 보았을 텐데 송충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적지의 바로 코 밑까지 왔으면서도 다시 화분의 가장자리 쪽으로 기어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화분의 중간까지는 새로운 비단 길이 깔렸습니다. 뜻밖의 행복한 결말 실험이 시작되고 나서 8일째 되는 날, 송충이 한 마리가 화분 옆길을 계속 기어가 화분 가장자리에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저녁 때까지는 모든 송충이들이 원래의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7일간, 즉 168시간 동안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화분가장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피곤해서 쉰 것과 추위 때문에 움츠리고 있던 때를 생각하여 행진 시간을 반으로 보아도 84시간 동안 행진한 셈이 됩니다. 그리고 매분 평균 9센티씩 전진한다고 하면, 송충이들이 기어간 거리는 453 미터로 거의 0.5 킬로나 됩니다. 화분의 둘레가 1.35 미터이므로 송충이들은 335 회나 가장자리를 행진한 것입니다. 곤충은 보통 정해진 행동에서 벗어나면 놀랄 정도로 어리석은 짓을 하지만, 이 송충이들의 어리석음에는 파브르 선생님도 두 손 들었습니다. 송충이는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하거나 고쳐 생각하지 않습니다. 0.5 킬로나 되는 거리를 335바퀴나 돌고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행렬이 흩어져서 우연히 길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송충이들은 틀림없이 죽을 때까지 화분 가장자리를 기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어리석음이 송충이 종족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앞의 실을 충실히 더듬어 가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송충이보다 머리가 좋아서 스스로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궁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좋은 머리 때문에 무서운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하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자기들의 동료만 너무 늘어나서 결국 지구를 멸망시킬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크게 보았을 때, 인간과 송충이 중 어느 쪽이 더 우수한지 간단히 말할 수 없지 않을까요? (곤충이란 무엇인가 3.) 몸이 작아서 다행이다. (그리스 신화의 괴물) 그리스 신화에 켄타우로스라는 괴물이 나옵니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로서 산과 들을 말처럼 빨리 돌아다니고 활을 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 밖에도 날개 달린 말인 페가수스가 나옵니다. 이것도 '말처럼 빨리 달리고, 새처럼 날 수 있다면'하는 인간의 공상에서 생겨난 것이며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선, 페가수스에게는 날개를 움직일 근육이 없습니다. 만약 정말로 나는 것이라면 그 커다란 몸을 공중에 뜨게 할 강력한 근육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또 체중이 무거워져 버립니다. 즉 페가수스도 켄다우로스도 설계상 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꿈을 모두 실현시킨 것이 곤충 중에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마귀가 그렇습니다. 사마귀는 네 다리로 걷는데, 두 개의 앞다리는 날카로운 낫처럼 되어 있어 한순간에 먹이를 붙잡아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날개는 네 장이나 되어 필요할 때면 멀리까지 훨훨 날아갑니다. 사마귀야말로 '켄타우로스 + 페가수스 + 네 장의 날개'인 굉장한 생물입니다. 그럼, 켄타우로스와 페가수스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째서 사마귀만은 설계 실수도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그것은 역시 곤충의 몸이 작기 때문입니다. 곤충처럼 몸이 작고 가벼우면, 공기나 물의 무게와의 관계가 인간이나 그 밖에 몸집이 큰 동물의 경우와는 전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사마귀는 가느다란 네 개의 다리로 충분히 몸을 지탱할 수 있고, 네 장의 얇은 날개로도 바람을 타고 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작기 때문에 가능하다.) 제 2권의 '곤충이란 무엇인가'에서, 몸길이의 200배나 훌쩍 뛰는 벼룩의 점프력, 체중의 300배를 잡아당기는 꿀벌의 힘,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파리와 등에의 능력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모두 곤충의 몸이 작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벼룩만 해도 그 몸 구조 그대로 인간처럼 커진다면, 비실비실하며 뛰어오르기는커녕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망가져 버리겠지요. 벌이나 파리도 만약 그 모습 그대로 독수리처럼 커진다면, 날개도 더욱 튼튼해야 하고, 날개를 움직이는 가슴 근육도 강해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체중이 늘어 지금처럼 자유 자재로 날 수는 없겠지요. 나비 같은 것도 그대로 커진다면, 날개를 한 번 파닥이는 것만으로도 부러져 버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갈 수 있는 것은 몸이 작고 가볍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이 작으면 먹는 것도 적습니다. 무 하나의 잎으로 수십 마리나 되는 배추흰나비가 자랄 수 있고, 콩 한 알로 콩바구미 한 마리가 우화합니다. 그래서 암컷 한 마리가 수백, 수천의 알을 낳아도 조건만 좋으면 많은 수가 성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슬 한 방울이면 마실 물로 충분하고, 나무 껍질 밑, 돌 밑에 숨어 살 수가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상승 기류에 날려 올라갈 때면 놀랄 만큼의 거리를 이동하기도 합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의 배 위에서 촘촘한 그물을 던지면 아주 많은 벌레가 걸려든다고 합니다. 벌레가 살고 있는 나무가 떠내려가 섬에 도착하여 그 분포(생물이 생활하는 지역)가 넓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하와이 제도처럼 바다 한가운데 새로 생긴 섬에 사는 많은 종류의 곤충은 모두 이렇게 날아왔거나 떠내려 온 것입니다. (물의 표면막은 강하다.) 풀잠자리처럼 가볍고 작은 곤충이 공중을 날고 있을 때는 공기의 저항이 매우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또 물에는 표면 장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연잎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물방울이 데굴데굴 굴러 둥근 구슬이 됩니다. 물과 같은 액체는 될 수 있는 한 표면적을 작게 하여 줄어들려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표면적이 작은 둥근 모양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작은 곤충이라면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의 표면 장력을 좀처럼 이길 수 없습니다. 벌레가 아무리 열심히 눌러도 물방울의 표면 막은 좀처럼 터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실수를 해서 반대로 물방울 속에 갇혀 버리면 이번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해 빠져 죽어 버립니다. 연못이나 개울의 수면 위를 능숙하게 걸어다니는 소금쟁이의 다리 끝을 잘 살펴보세요. 다리 아래의 수면이 조금씩 꺼져 있습니다. 소금쟁이의 다리 끝에는 털이 나 있고 여기에서 기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체중이 가벼운 소금쟁이는 물의 표면 막을 터뜨리지 않고, 즉 물 속에 다리를 푹 집어 넣는 일이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수면에 먹이가 떨어지면 소금쟁이는 그 진동을 알아채고 곧장 그 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물 위에서의 움직임이 익숙하지 않은 먹이를 침같이 뾰족한 입으로 찔러서 체액을 빱니다. 소금쟁이는 육식성 노린재 종류와 비슷한 생활을 하지만 노린재에게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반면 소금쟁이에게는 달콤한 냄새가 납니다. 이렇게 곤충들은 자신들의 작은 몸을 이용해서, 덩치 큰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벌레는 또 몸이 작고 빨리 자라므로 세대 교체도 빠르고, 또 주위 환경에 적응해서 모습을 바꾸는 일, 즉 진화도 빠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한 세대가 약 25 년이지만 곤충은 1 년 동안에 4세대나 5세대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 무척 빨리 늘어나고, 돌연변이로 달라진 것도 생겨나기 쉬운 것이 아닐까요? 곤충이 놀랄 만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거나 종류가 많은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비의 혁명 학명은 스웨덴의 박물학자인 린네라는 사람이 생각해 낸 것으로 생물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산호랑나비의 학명은 '파필리오 마카온'입니다. '파필리오'는 라틴어의 '나비'라는 뜻으로, 학명은 모두 라틴어로 만듭니다. '마카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용사이자 의사이기도 했던 사람의 이름입니다. 이처럼 곤충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것이 많습니다. 학명은 사람의 성과 이름처럼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파필리오를 '속명', 마카온을 '종명'이라고 합니다. 호랑나비의 학명은 파필리오 쿠스투스라고 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산호랑나비와 호랑나비는 종은 다르지만 같은 속의 나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청띠제비나비는 그라피움 사르페도르(Graphium sarpedor)로서 속도 다릅니다. 그리하여 같은 호랑나비일지라도 가까운 속과 먼 속의 구별이 가능합니다. 또는 산호랑나비를 영국에서는 '스왈로 테일'이라고 부르지만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각 나라마다 마음대로 부른다면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린네가 오래 전부터 라틴어로 통일하였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나비 중 큰배추흰나비는 피에리스 브라시카에(Pieris brassicae)이며 배추흰나비는 피에리스 라파에(Pieris rapae), 줄흰나비는 피에리스 나피(Pieris napi)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미 찾는 법과 사육법 매미는 어디에 가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소리내어 울고 있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매미를 채집할 때는 옆으로 빠져 나갈 수 없는 작은 포충망이 좋습니다. 나뭇가지에서 울고 있는 매미를 발견하면 살짝 다가가서 포충망을 덮어 씌워 잡습니다. 포충망을 덮어씌울 때 위에서부터 덮어씌우는 것이 좋은지 밑에서부터 덮어씌우는 것이 좋은지는 여러분이 연구해 보세요. 조금만 연습하면 백발백중 잡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잡지 않도록! 적당히 놓아주기 바랍니다. 매미를 채집하여 바구니에 넣어 두면 곧 죽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살려 두기 위해서는 실로 묶어서 매미가 좋아하는 나무에 붙여 두는 방법이 좋습니다. 단, 이렇게 해 두면 참새나 까마귀와 같은 새나, 고양이, 말벌 등에 의해 잡아먹히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나무에 직접 철망 등을 씌워 그 속에 매미를 풀어 놓아도 좋겠지요. 이러한 방법으로 2--3주 정도 기를 수 있습니다. 마른 나뭇가지를 넣어 두면 알을 낳기도 합니다. 매미가 알을 낳은 나뭇가지를 응달 쪽의 나뭇가지에 묶어 두면 알은 자연히 깨어납니다. 나비 찾는 법과 사육법 나비와 나방은 많은 종류가 있으나 이들의 애벌레가 먹는 식물의 종류는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 주위에서 생활하고, 사육하기도 쉬운 호랑나비류를 예를 들어 사육법을 설명하겠습니다. 귤나무나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호랑나비나 남방제비나비가 날아와 알을 낳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다가가서 잘 관찰하면 잎 뒷면에 작은 진주 모양의 알을 낳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잎이 먹힌 곳을 찾아보면 애벌레가 있습니다. 알을 낳게 하고 싶을 때는 호랑나비의 암컷을 채집하여 비닐 주머니에 풀과 함께 넣습니다. 또한 꿀이나 칼피스를 물에 타서 탈지면에 묻힌 후 넣어 줍니다. 나비가 이것을 먹지 않을 때는 이쑤시개 등으로 주둥이를 살짝 눌러서 먹이에 대줍니다.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잘 씻어서 종이를 깐 후 귤 잎을 주면 애벌레는 와작와작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밑에 깐 종이는 매일 갈아 줍니다. 청소를 하거나 먹이를 줄 때 애벌레의 몸을 건드리지 않도록 합니다. 5령 애벌레가 되면 많이 먹으므로 풀이 없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번데기가 될 때는 큰 용기를 옮겨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