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곤충기 6 남가뢰의 비밀 저자: 오쿠모토 다이사부로 역자: 이종은 출판사: (주)고려원미디어 (책머리에) (이 책에 나오는 곤충들 6) '곤충기'는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가 약 60 년 간의 연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하여 쓴 책입니다. 원서는 분량이 많고, 모두 10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중에서 특히 재미있고 중요한 부분만을 추려서 고쳐 쓴 것입니다. 총 8권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권은 파브르의 전기입니다. 갑충의 일종인 알락가뢰와 남가뢰는 매우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배가 많이 튀어나온 이 곤충은 날 수가 없습니다. 암컷은 배에 몇천 개의 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많은 알을 낳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은 애벌레를 키우는 데 너무나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 가운데 몇백분의 1, 아니 몇천분의 1 만이 성충이 됩니다. 그렇지만 어미의 수와 같거나 그것보다 조금만 더 많이 살아 남아도 종족을 보존하기에는 충분합니다. 파브르는 이 곤충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 겪는 모험과, 비밀로 가득 찬 애벌레의 생활을 오랫동안 꾸준히 연구하여 명확하게 풀어갔습니다. 과학자는 천재적인 범인을 추적하는 탐정과 같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조롱박먼지벌레는 모래 사장에 살고 있는 검은색 갑충입니다. 매우 강해 보이는데도 충격을 주면 곧 '죽은 흉내'를 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다른 곤충들 중에서도 이와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있을까요? 재미있는 실험을 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딱정벌레류는 땅 위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갑충과 지렁이 등을 덮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정원을 관리하는 곤충'이라고 불리는 '익충'입니다. 프랑스에는 많은 종류의 딱정벌레가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금색딱정벌레를 소개하겠습니다. I. 박물학자의 탄생 장관으로부터의 편지 1868 년의 일입니다. 남프랑스 아비뇽의 중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고 있던 파브르 선생님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봉투를 뜯어 보니, '교육부 장관 빅토르 뒤루이의 사무실로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전에 만난 일이 있는 뒤루이 장관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장관 또한 파브르 선생님의 재능을 인정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어딘가 다른 고등 학교의 교장이나 교감이라도 시켜 주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파브르 선생님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매우 기뻐했겠지요.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은 지금 살고 있는 아비뇽을 떠나면 곤충을 연구할 수 없게 되고, 또 회의도 많아져서 더 바쁘게 될 것 같아 오히려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의 편지를 썼지요. 그러자 교육부에서 또다시 편지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급히 올 것.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보내 당신을 체포할 것이오. 빅토르 뒤루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체포'라는 말에 매우 놀라 곧 파리로 향했습니다. 기차로 하루만에 파리에 도착한 파브르 선생님은 바로 교육부 장관실로 갔습니다. 천장이 높고 넓은 멋진 방에 들어가자 뒤루이 장관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것을 읽어 보십시오. 지난번에 내가 화학 실험 비용을 내려고 했을 때는 거절했지만 이것만은 거절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정부에서 발간하는 신문이었습니다. 신문에는 이번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게 된 사람들의 명단이 실려 있었는데, 그 가운데 '장 앙리 파브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명예로운 일이었습니다. 감사의 말에 앞서 선생님은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뒤루이 장관이 말했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우리 둘이서만 수여식을 합시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당신이라도 싫다고는 하지 못하겠지요." 장관은 빨간 리본이 달린 훈장을 선생님의 가슴에 달아 주고 양볼에 입맞춤을 해 주었습니다. '훈장이란 철 세공품에 지나지 않으며, 리본은 단지 천 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뒤루이 씨 같은 훌륭한 사람이 나를 이해해 주고 이렇게 특별히 수여해 준 것이라면 천 조각에 불과한 리본이라도 아주 귀중한 것이다. 이 사람의 고마운 마음에 대한 기념품으로 소중히 간직해 두자.' 파브르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책상 서랍 속에 잘 넣어 두었습니다. 장관이 준 것은 훈장뿐 아니라 큰 책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1867 년, 즉 1 년 전에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 박람회의 보고서였습니다. 만국 박람회에 출품된 세계 각국의 여러 산물에 관한 기록으로 아주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뒤루이 장관은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이 책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곤충에 관해서도 조금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1200 프랑이라는 큰 돈이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네주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아무리 거절해도 장관은 다시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 여행 경비는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 수여식과 훈장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아니, 가지고 가십시오. 내 명령으로 이 곳까지 오시게 했으니까요. 남는 돈은 연구비로 써 주십시오." 장관은 파브르 선생님이 얼마나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끝내 받지 않으면 정말 화낼 겁니다. 그리고 내일 나와 함께 황제 폐하를 뵈러 가게 될 것입니다." 장관은 즐거운 듯 말했습니다. 당시 황제는 나폴레옹 3세로 세계 역사에 이름을 남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세의 조카입니다. 황제와 만난다는 말만 듣고도 파브르 선생님은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이대로 아비뇽으로 도망칠 방법이 없을까^5,5,5^.' 선생님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것을 알아챈 장관이 말했습니다.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요? 그랬다가는 헌병에게 체포됩니다. 아니, 도망 같은 것은 아^36^예 생각도 못하게 취리히 궁전까지 내 마차로 함께 갑시다." 황제 나폴레옹 3세 다음날 아침, 장관과 파브르 선생님은 궁전의 한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듯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스카라베 사쿠레들이 등에 굵은 세로줄 무늬가 있는 갈색 프록 코트를 입고 어색하게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방에는 이미 탐험가, 지질학자, 식물학자, 고고학자 등 전국에서 모여든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훈장을 받은 학자들이 황제에게 각각 5분 정도씩 자신의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러 와 있는 것입니다. 나폴레옹 3세는 총총걸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얼굴이었지만 보통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붉은 띠를 어깨에 비스듬히 매고, 반쯤 감은 듯한 눈은 조금 졸리는 듯이 보였습니다. 장관이 순서대로 학자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여러 방면에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황제는 그들과 차례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마침내 파브르 선생님의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 때 연구중이던 '남가뢰의 과변태'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남가뢰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이 연구만으로도 파브르 선생님의 이름은 곤충학사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조금 긴장하여, '폐하'라고 해야 할 것을 '당신'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황제의 방을 나와 장관 관저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자리는 뒤루이 장관의 바로 옆입니다. 이것 또한 상당한 영예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한시라도 빨리 남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비뇽의 다리, 백리향의 향기가 넘치는 언덕, 올리브 나무에 붙어서 울어대는 매미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도 보지 않고서 돌아갈 생각인가요?" 장관은 놀란 듯이 말했습니다. "예, 장관님. 저에게는 들판의 살아 있는 박물관 쪽이 훨씬 더 매력적입니다." "그럼, 언제 떠날 작정입니까?" "내일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파브르 선생님은 장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날 일찍 파리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파브르 선생님과 남가뢰와 나폴레옹 3세'라고 하는 이 일화는 이것으로 끝나지만 이 두 사람을 연결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고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폴레옹 1세의 출생지인 코르시카 섬입니다. 1849 년, 스물다섯 살 때부터 4 년 간 파브르 선생님은 이 섬의 중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면서 섬의 풍부한 자연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테오 팔코네' 코르시카 섬은 남프랑스의 큰 항구 도시인 마르세유에서 동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해상에 있습니다. 훨씬 더 남쪽에 있는 큰 섬은 사르데냐 섬입니다. 나폴레옹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이 섬은 프랑스 본토에는 코르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코르시카는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중심 도시는 아작시오. 이 이름도 현지에서는 아작쵸가 됩니다. 보나파르트라는 이름도 프랑스 식이고, 현지에서는 프오나파르테가 됩니다. 이렇게 코르시카의 지명, 인명, 언어가 프랑스와 다른 것은 이곳이 원래 이탈리아의 도시인 제노바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1861 년까지 이탈리아는 통일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노바 공화국, 사르데냐 왕국, 이탈리아 왕국 등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확실히 코르시카는 마르세유보다 제노바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러나 서로 인접해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일반적으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1720 년경부터 코르시카 사람들은 제노바 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습니다. 코르시카 사람들은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모두 한데 모여서 사는 대가족제를 이루고 있어서 가족끼리 결속이 잘 되고 무엇보다도 명예를 중히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문의 명예가 손상을 입게 되면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남자든 여자든 단검을 몸에 지니고 다녔고, 명예가 손상되었을 때는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투쟁적인 기질이 있었습니다. 복수는 코르시카의 말로 '벤데타'라고 하며, 신성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정말 사소한 일로 인해 두 가문이 몇십 년이나 서로 피 흘리는 싸움을 벌이는, 끊임없는 벤데타가 펼쳐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보다 약간 이전 시대의 작가인 프로스페르 메리메는 1839 년에 코르시카를 여행하고, 그 때의 인상을 토대로 하여 '마테오 팔코네'라는 단편 소설을 썼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코르시카의 항구 마을 포르드 베키오 근처의 산기슭에 마테오 팔코네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테오는 뛰어난 사수였습니다. 120보나 뗠어진 바위산에 사는 야생 양을 한 발에 명중시킬 정도였습니다. 머리든 심장이든 겨냥한 곳에 정확하게 명중시켰습니다. 마테오에게는 포르투나트라는 열 살 먹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포르투나트 소년이 혼자 집을 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허벅다리에 피를 흘리며 도망쳐 왔습니다. 그 사람은 지명 수배자로서, 정부군과 싸우다가 이 곳까지 쫓겨오게 된 것입니다. "너, 마테오 팔코네의 아들이지?"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를 숨겨 줘. 쫓기고 있단다." 그래서 소년은 짚 더미 속에 그를 숨겨 주었습니다. 곧 정부군이 들이닥쳐서 지명 수배자를 찾았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고, 포르투나트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찾기를 단념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는 순간, 대장의 머리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소년의 눈앞에 은시계를 달랑달랑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그 지명 수배자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면 이것을 주겠다." 소년은 그 은시계가 갖고 싶은 나머지 그만 손가락으로 짚 더미 쪽을 가리키고 말았습니다. 남자가 체포되어 병사들에게 끌려갈 때 마테오 팔코네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번 감추어 준 사람을 은시계가 탐이 나서 정부군에게 팔아 넘겼다는 것은^5,5,5^." 명예를 중히 여기는 코르시카의 남자들에게 있어서 배신이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테오는 아들을 뒷산 골짜기까지 데리고 가서 최후의 기도를 올리게 한 뒤 총으로 쏘았습니다. 명예를 더럽힌 사람은 죽음으로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일지라도, 그리고 대를 이을 오직 하나뿐인 아들일지라도. 주위가 온통 산이어서 포도와 산양의 치즈를 제외하면 농산물이라곤 그다지 풍부하지 않은 이 섬 사람들이 너무나도 강하게 저항하자 안절부절못하던 제노바 공화국은 결국 이 섬을 주민과 함께 프랑스에 팔아 넘겨 버렸습니다. 그것은 1768 년의 일이었습니다. 프랑스 쪽에서도 코르시카를 사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곳을 사 봤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은 일만 생길 거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때, 섬과 함께 한 사람의 전술의 천재도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그는 아직 태어난 지 1 년 정도밖에 안 된 아기였습니다. 그 아기의 이름은 나폴레옹 프오나파르테, 아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 이후에 프랑스 황제가 된 사람입니다. 아름답지만 무섭기도 한 자연 코르시카는 바다에 우뚝 솟아오른 산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섬 전체가 온통 산이고, 섬의 평균 고도도 568 미터나 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는 해발 2000 미터를 넘어, 정상은 거의 1 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는 산들도 있습니다. 앞에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와 이탈리아의 제노바에 가깝다고 했지만 지중해의 섬이기 때문에 아프리카와도 가깝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사막 지대로부터 시로코라는 모래 섞인 더운 열풍이 불어오면 이 섬의 평지는 매우 뜨거워집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알려져 있던 이 섬은, 중세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이 차지했습니다. 그러다 이윽고 그리스도 신자들에 의해서 되찾아진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은 이 섬의 인종과 문화는 매우 복잡합니다. 동^5,23^식물의 종류 또한 무척 많고, 북방계의 것과 남방계의 것이 서로 복잡하게 섞여 있습니다. 산기슭 쪽에는 야생 무화과나무와 딸기나무 등의 관목이 우거져 있고, 야생 시클라멘도 피어 있습니다. 높은 산에는 침엽수림이 있고, 더 위쪽의 눈 덮인 곳까지 올라가면 은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밀짚꽃이 피어 있습니다. 해안에는 서양명주고둥과 통고둥, 시리아소라고둥 등 여러 가지 색과 모양의 조개가 모래톱 위에 밀려 올라와 있습니다. 모래톱에 밀려온 해초를 들면, 조롱박먼지벌레를 비롯해 크고 아름다운 갑충들이 놀라서 급히 도망칩니다. 길바닥에 널린 소와 염소의 똥에는 스카라베 사쿠레와 들소넓적뿔풍뎅이가 많이 몰려와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곳의 스카라베 사쿠레가 아비뇽 근처에 있는 레잔그르 언덕의 것보다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갈수록 같은 종류의 갑충이라도 그 크기가 훨씬 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코르시카의 스카라베 사쿠레와 아비뇽의 스카라베 사쿠레는 겉모습은 똑같지만 종류가 틀렸던 것입니다. 코르시카의 스카라베 사쿠레는 이집트의 것과 같은 종류였습니다. 코르시카와 그 남쪽의 사르데냐 섬은 옛날에는 유럽 대륙이나 아프리카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 섬에 사는 동^5,23^식물 중에는 대륙의 것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르시카산호랑나비와 코르시카쐐기풀나비는 이 두 섬에서만 살고 있습니다. 코르시카산호랑나비는 산호랑나비보다 작고, 꽁무니가 짧으며 앞다리의 모양이 다릅니다. 코르시카쐐기풀나비는 앞다리의 검은 무늬가 적기 때문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본토의 쐐기풀나비와 한눈에 구별됩니다. 또한 코르시카의 높은 산의 동굴 속에서만 살고 있는 라스파유 달팽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산에는 남방 식물이 사람의 키 정도로 비교적 낮게 빽빽이 우거져 있어서, 누구든 일단 그 속으로 도망치면 도저히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숲은 '마키'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메마른 토지 때문에 큰 나무들이 자라기 어려웠던 이 섬에서는 화전 농업이 성행했습니다. 즉, 농부들이 밭에 비료를 주는 대신에 건조한 계절에 숲에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숲이 타면 그 나무의 재가 비료가 되므로 그 곳을 갈아서 밭을 만듭니다. 그 밭에서 밀 등의 농작물을 수확한 뒤에 그대로 내버려 두면 완전히 타 버리지 않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다시 사람 키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밀림이 빽빽하게 우거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코르시카 사람들은 마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이 섬에 온 것은 스물다섯 살이 되던 1849 년의 일입니다. 작가 메리메가 코르시카를 찾아온 지 10 년 후의 일입니다. 선생님은 아작시오 중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마르세유 항구에서 배를 타고 18시간이나 걸리는 이 섬의 자연은 친근감 있는 남프랑스의 아비뇽 교외와 방투산, 그리고 그 주변에 비하면 좀더 아프리카에 가까웠기 때문에 젊은 파브르 선생님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유향이라는 향료를 뽑아 낼 수 있는 나무의 향기로운 꽃들이 많이 피어 있는 숲 속을 거닐면서 선생님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섬의 훌륭한 자연은 나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 또한 이 자연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5,5,5^.' 파브르 선생님은 바스테리카라는 곳에서 몇백 년 된 밤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른 몇 사람이 손을 잡고 둘러싸면 겨우 닿을 만한 거목의 줄기에서 굵직한 가지가 많이 늘어뜨려져 있어, 마치 그 나무 한 그루가 하나의 숲과도 같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이겨낸 것만이 지닐 수 있는 장엄한 모습에 선생님은 넋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해안으로 나가면 넓고 큰 바다가 강렬한 햇빛 속에서 잔잔히 밀려옵니다. '^5,5,5^ 발 밑에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눈부신 바다, 머리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화강암, 물가 바로 옆으로 하얗게 펼쳐져 있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 그리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진한 향기를 내뿜는 넓은 덤불. 그것이 높은 산까지 뒤덮여 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노송나무이다.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런 광경이다^5,5,5^.' 멀리 프랑스 본토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학교가 쉬는 날이면 젊은 파브르 선생님은 주머니에 빵 한 덩어리를 넣고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이 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식물을 채집하거나 조개 껍질을 주워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코르시카의 조개에 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욱이 그 때 선생님은 수학에 관한 연구에도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식사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습니다. 르키앙과 모칸 당통 파브르 선생님은 코르시카에 4 년쯤 있었는데, 그 사이에 두 사람의 학자를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아비뇽의 식물학자 르키앙, 다른 한 사람은 툴루즈의 박물학자 모칸 당통입니다. 르키앙은 채집 경험이 풍부한 식물학자로서, 코르시카의 식물에 관해서는 거의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는지를 금방 가르쳐 주었고, 어떤 식물이든 모르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르키앙과 함께 채집을 하면서 파브르 선생님도 채집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르키앙은 코르시카 섬에서 어이없이 죽어 버렸습니다. 르키앙의 도움 덕분에 많은 식물을 채집하여 정리하고 있던 파브르 선생님은 몹시 슬퍼하고 낙담했습니다. 먼 훗날 파브르 선생님은 아비뇽 거리에 세워진 르키앙 기념 박물관을 관리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파브르 선생님을 지도해 준 모칸 당통은 르키앙보다도 훨씬 폭넓은 학문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모칸 당통과 함께 파브르 선생님은 몇 번이나 코르시카의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 때의 인상 역시 동생에게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화강암으로 형성된 이 산의 정상은 매서운 비바람 때문에 금세라도 무너져 내릴 듯하다. 게다가 벼락이 칠 때마다 무거운 얼음과 같은 눈이 떨어져 내려 조금씩조금씩 바위의 표면이 깎이고 있단다. 깊은 골짜기에는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쌩쌩 사납게 불고 있다. 비탈에 쌓인 눈의 두께는 20 미터에서 30 미터나 되고 그 표면을 따라 조금씩 녹은 얼음물이 졸졸 흘러내린다. 그것은 거대한 입을 벌린 분화구에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깊은 호수가 된다. 이 푸른 호수는 흐린 날에는 마치 잉크처럼 검게 보인단다. 하늘 높이 원을 그리고 있던 독수리가 큰소리로 울면서 골짜기 밑으로 휙 내려간다. 그것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깊고 깊은 골짜기란다. 그 소리를 생각하면 금세라도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떠 현실로 되돌아오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단다.' 모칸 당통은 파브르 선생님과 함께 코르시카의 여러 산에서 식물을 채집했을 뿐만 아니라, 파브르 선생님이 생물학 논문을 쓸 때에는 알기 쉽고 정확하게 짜여진 문장을 쓰도록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그 가르침은 파브르 선생님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느 날은 식사 후 간식 시간에 갑자기 달팽이를 해부하여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포도나무에 침을 꽂아 즉석에서 해부용 칼을 만든 모칸 당통은 달팽이의 내장을 꺼내어 각 기관들을 그리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생애에 딱 한 번 파브르 선생님이 받은 박물학 수업이었습니다. 모칸 당통은 파브르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수학을 연구하고 있군요. 그것도 좋지만 당신에게서는 박물학에 관한 정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박물학을 공부하세요. 틀림없이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에 이끌린 파브르 선생님은 수학 연구를 그만두고 박물학을 공부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학위를 받아 출세를 하려고 생각했었다면 지금까지 수학 연구를 위해 투자한 시간은 헛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수학은 파브르 선생님의 두뇌 회전을 빠르게 하고, 사물을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학생이었을 때는 박물학이 아직 완전한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모칸 당통이 말했던 것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그것은 역시 생물이었습니다. 모칸 당통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어도 결국에는 박물학 쪽을 선택했겠지만, 코르시카의 자연 속에서 당통이 들려준 말이 파브르 선생님의 결의를 더욱 확고하게 했던 것입니다. II. 흰줄벌살이가뢰의 수수께끼 1. 알락가뢰와 남가뢰 산길의 '길앞잡이' 교육부 장관에 의해서 파리에 불려간 파브르 선생님은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남가뢰의 과변태'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부터 알락가뢰와 남가뢰라는 갑충과, 그 신비한 변태에 관해서 선생님이 발견한 것을 이야기해 봅시다. 몹시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산길을 걷고 있을 때면, 작은 벌레가 발 밑에서 뛰어올라 조금 앞쪽에 사뿐히 내려앉을 때가 있습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붉은 보라색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아름다운 갑충입니다. 이쪽에서 다가가면 또 펄쩍 뛰어서 다시 살짝 내려앉습니다.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한낮에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으면, 이 벌레가 마치 앞장서서 길 안내를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길앞잡이, 길 안내자 등으로 불려 왔습니다. 포충망을 가지고 있으면 잡아서 자세히 살펴보세요. 아름다운 색을 하고 있으나 긴 어금니가 나 있는 무서운 얼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길앞잡이의 동료는 모두 육식성으로, 개미나 작은 갑충 등 지상에 있는 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아름다운 벌레에게는 독이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독살스럽다.'라는 말이 있지요? 아름다운 벌레도, 뱀딸기와 같은 새빨간 열매도, 화려한 색깔의 버섯도 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만지거나 먹어서는 안 됩니다. 확실히 독을 지닌 동물과 식물 중에는 일부러 눈에 잘 띄는 색을 한 것(이것을 경계색이라고 합니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이 모두 독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독성을 지니지 않은 길앞잡이도 옛날부터 잘못 인식되어 온 벌레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비단벌레와 딱정벌레도 사람들에 따라서 독을 지닌 벌레로 취급해 멀리해 왔습니다. 길앞잡이와 흡사한 느낌을 주는데 정말로 독이 있는 갑충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가뢰와 알락가뢰 종류입니다. 길앞잡이와 남가뢰, 알락가뢰 등은 다 같은 갑충이지만 분류학적으로 먼 관계이고, 몸의 각 부분의 구조와 습성도 꽤 다릅니다. 하지만 종류에 따라서는 겉보기에 많이 닮은 것도 있습니다. 특히 뒤에서 이야기하게 될 황색띠띤가뢰와 청가뢰는 매우 아름다운 종류로서, 길앞잡이와는 종류가 다르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차이를 쉽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남가뢰와 알락가뢰 종류는 몸 속에 칸타리진이라는 성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칸타리진은 30 밀리그램이라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독이 약이 된다. 독이라고 하는 것은 잘만 사용하면 오히려 몸에 이로운 약이 되기도 합니다.(반대로, 좋은 약도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됩니다.) 무서운 독인 이 칸타리진도 아주 최근까지도 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을 부스럼 위에 발라 일부러 물집을 만들어 악화되기 전에 낫게 하거나, 소변이 자주 막히는 환자에게 극히 적은 양을 먹여 소변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먹여 독살하는 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가뢰와 알락가뢰는 중국과 유럽에 많이 분포하며, 약의 원료로도 유명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청가뢰라고 하는 금녹색의 아름다운 종을 약으로 사용했고, 특히 남프랑스와 스페인 산이 유명하여 미국에까지 수출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과 같은 시기의 남프랑스 시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한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의 작품 '프로방스의 소녀'에서는, 주인공인 젊은 뱅상이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읊고 있습니다. 이윽고 또다시 여름은 오고, 올리브 나무가 멋지게 가지를 뻗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나는 아주 흰 꽃이 피어 있는 과수원에 가서, 한창 더울 때에 물푸레나무에 올라가 몸통이 녹색으로 빛나고 냄새가 강한 칸타리드를 잡는다. 그리고는 그놈을 가게에 팔러 간다^5,5,5^. 여기에서 '몸통이 녹색으로 빛나고 냄새가 강한 칸타리드'란 바로 청가뢰를 뜻하는 것입니다. 칸타리드잡이는 남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여름 한철의 즐거운 놀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칸타리진이라는 독 성분은 이 칸타리드에서 채취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겠지요. 칸타리진을 몸에 지닌 곤충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남가뢰과에 속하는 것으로는 청가뢰류, 띠띤가뢰류, 줄먹가뢰류, 남가뢰류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남가뢰과의 갑충이지만 모양새는 매우 다릅니다. 이들은 갑충임에도 불구하고 딱지날개가 부드럽고 복부가 꽤 불룩하며, 몸 속에 칸타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남가뢰와 흰줄벌살이가뢰도 이런 부류의 벌레입니다. 공통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 남가뢰과의 벌레들은 모두 다른 벌레의 집에 들어가서 그 알과 식량을 빼앗아 먹습니다. 그 때, 타인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모험을 합니다. 이런 종류의 갑충들은 애벌레 시기에 대변신을 합니다. 그리하여 알에서 갓 태어난 애벌레 시기와 그 다음 시기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다릅니다. 게다가, 그 다음 시기의 애벌레는 생각지도 못할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애벌레라도 변신의 각 단계마다 완전히 다른 곤충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변합니다. 남가뢰와 알락가뢰류의 대모험에 관한 이야기를 오랜 시간을 들여서 연구, 정리한 사람이 바로 파브르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이 연구는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파브르 선생님이 남기신 업적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대모험에 관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첫 번째는 알락가뢰의 일종인 흰줄벌살이가뢰입니다. 2. 흰줄벌의 집 속을 엿보면 흰줄벌의 대단지 파브르 선생님은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시절, 카르팡트라스 시의 초등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의 변두리에는 벼랑이 하나 있는데, 그 곳은 햇볕이 잘 비치고 구멍을 뚫기가 쉬웠으므로 수많은 벌이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이 벼랑은 마치 벌의 주택 단지와 같았습니다. 5월에 이 곳에 와 보면 흰줄벌만도 두 종류나 있습니다. 두 종류 모두 큰 집단으로 구멍을 파고, 터널과 같은 집을 짓습니다. 하나는 등검은흰줄벌, 다른 하나는 털보흰줄벌인데, 집의 형태는 조금 다릅니다. 등검은흰줄벌은 집 입구에 흙을 조금씩 붙여서 대롱이 튀어나온 것처럼 만듭니다. 그것은 조금 굽어 있고, 길이와 굵기는 사람 손가락 정도의 크기입니다. 이 벌은 여러 마리가 모여서 집을 짓기 때문에 그 장소에는 수많은 대롱이 달려 있습니다. 털보흰줄벌은 등검은흰줄벌보다 훨씬 더 많지만 오로지 터널을 파기만 할 뿐 입구에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습니다. 이 벌은 보통 오래된 돌담 사이라든가, 아무도 살지 않는 오래됨 집의 벽 같은 가파른 곳에 구멍을 파고 집을 짓습니다. 이 벌들은 특히 이와 같은 남쪽 방향의 벼랑을 좋아해서 엄청나게 많은 수가 떼를 지어서 집을 짓습니다. 따라서 벼랑 전체가 구멍투성이가 되므로 마치 스펀지 같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벌이 판 구멍 입구는 두 종류 모두 마치 터널처럼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구멍 속은 구불구불하고, 깊이는 2,30센티나 되는 것도 있습니다. 막다른 곳에는 작은 방이 서너 개 만들어져 있고, 벌은 그 곳에 꿀과 꽃가루를 저장한 뒤 알을 낳습니다. 벌이 집을 짓는 때는 5월 중순 이후입니다. 그 때는 벌의 무리 모두가 구멍 파기 공사와 꿀과 꽃가루 저장에 여념이 없기 때문에 벼랑 전체가 윙윙거립니다. 벌에 쏘일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도저히 그 근처에 갈 수가 없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이 흰줄벌들의 주택 단지를 찾아온 것은 여름 방학 때인 8--9월이었습니다. 이 때에는 그렇게 많던 어미벌이 일을 끝마치고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벌집 주위에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벌집 주위에는 거미가 거미줄을 잔뜩 쳐 놓았습니다. 시험 삼아 이런 집을 파 보면 구석의 작은 방 속에 벌의 애벌레와 번데기가 들어 있습니다. 다음해 봄이면 성충이 되어 나올 것입니다. 이 곳 전체에 어느 정도의 애벌레와 번데기가 있을지는 너무 많아서 예측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애벌레들은 희고 토실토실 살이 쪄 있어서 아주 맛있어 보입니다. 틀림없이 영양분이 잔뜩 들어 있겠지요. 그러니 다른 벌레가 노리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어떤 벌레가 흰줄벌의 애벌레를 노리고 있을까요? 먼저 흰고 검은 반점을 지닌 흰점재니등에가 있습니다. 이 등에가 흰줄벌의 집에서 집으로, 천천히 날고 있습니다. 벌의 애벌레에 알을 낳으려는 것이겠지요. 깨어난 등에의 애벌레는 벌의 애벌레를 먹고 자랍니다. 그리고 그 등에를 노리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벌집 주위의 거미줄에는 알을 낳은 흰점재니등에가 많이 걸려서 죽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 장의 주인공인 흰줄벌살이알락가뢰가 있습니다. 이름이 너무 기니까 지금부터는 알락가뢰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알락가뢰도 역시 거미줄에 많이 걸려 있습니다. 이 동료의 시체 사이를 암컷을 찾아 헤매는 수컷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짝짓기를 끝마친 암컷은 배가 큰 몸체를 꽁무니부터 조심스럽게 흰줄벌의 구멍 속으로 집어 넣습니다. 역시 알을 낳으려는 듯이 보입니다. 이 곤충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등에도 알락가뢰도 흰줄벌의 집 속의 알과 애벌레, 그리고 저장해 놓은 꿀과 꽃가루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벼랑의 흰줄벌 집을 괭이로 파 보았습니다. 흰점재니등에와 알락가뢰가 어떻게 흰줄벌의 집 속에 몰래 들어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나중에 온 '식객' 8월 초순에 흰줄벌의 집을 파 보면 긴 터널 끝에 흰줄벌의 작은 방이 있고, 입구 가까이에 또 다른 작은 방이 만들어져 있는 것도 있습니다. 두 개의 작은 방의 형태는 전혀 다릅니다. 입구의 작은 방을 만든 것은 뿔가위벌이라고 하는 다른 벌이기 때문입니다. 흰줄벌이 열심히 파 놓은 터널을 뿔가위벌이 제멋대로 빌려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식객'입니다. 뿔가위벌은 스스로는 구멍을 파지 않고 흰줄벌의 모래로 된 집을 이용하거나 새로이 공사를 마친 집을 빌리거나 합니다. 실제의 주인이 집 깊숙한 곳에 작은 방을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와서 비어 있는 입구 근처에 진흙으로 방을 만듭니다. 서툰 솜씨로 비뚤비뚤하게 조그마한 방을 만들고 그 안을 서너 개로 갈라서 애벌레의 작은 방으로 쓰는 것입니다. 뿔가위벌의 집짓기는 언제나 이처럼 보잘것없습니다. 흰줄벌의 터널을 빌리지 않을 때에는 돌담 사이의 달팽이 껍질이나 말라 버린 식물의 꽃술 속에 진흙으로 작은 방을 짓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흰줄벌의 방은 아주 근사합니다. 비뚤지도 않고 끝마무리까지 정성을 기울여서 예술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훌륭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에는 집의 터널 끝을 더욱 깊이 파고 두꺼운 마개로 입구를 막아 버립니다. 이렇게 가장 깊숙하고 안전한 곳에 살고 있으니 흰줄벌의 애벌레는 자기 스스로 명주실을 토해 내어 고치를 만들 필요가 없겠지요. 단지 말끔히 손질하여 매끈한 방안에서 뒹굴고 있을 뿐입니다. 반대로 뿔가위벌의 애벌레는 튼튼한 고치를 짭니다. 이 벌의 작은 방은 적이 들어오기 쉬운 터널 입구에 있고, 얇은 흙벽으로 보호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번데기가 될 때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치 속에 꼼짝않고 틀어박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흙벽 때문에 피부에 상처를 입지도 않는 것입니다. 흰줄벌의 집 속에는, '뭔가 먹을 만한 것이 없을까?'하고 많은 적들이 들어옵니다. 예를 들면 진드기 종류, 개미붙이, 그리고 수시렁이 등입니다. 흰줄벌처럼 어미가 튼튼하고 안전한 방을 만들어 줄 경우에는 애벌레가 알몸으로 지내지만, 뿔가위벌과 같이 어미가 허름한 집밖에 만들어 주지 않을 경우에는 애벌레 스스로 튼튼한 고치를 만들어서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방의 위치와 형태의 차이, 그리고 고치가 있는지 없는지로 그것이 흰줄벌의 것인지 뿔가위벌의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식객, 또 그 식객의 식객 그런데 파브르 선생님이 뿔가위벌의 고치 몇 개를 갈라 보니, 뿔가위벌의 애벌레가 아니라 전혀 다른 번데기가 들어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번데기는 매우 색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번데기가 들어 있는 고치는 조금만 흔들어도 속에 있는 번데기가 움직이며 벽을 두드려 소리를 냅니다. 따라서 일부러 고치를 갈라 보지 않아도 흔들어 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번데기의 목은 굵고, 머리 쪽에는 강한 가시가 여섯 개나 있습니다. 그리고 몸 전체에는 가시와 털이 잔뜩 나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 특이한 소리가 나는 고치를 채집하여 얼마동안 집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러자 그 속에서 나온 것은 흰점재니등에였습니다. 많은 벌집이 있는 벼랑을 자세히 살펴보니 흰점재니등에의 번데기가 뿔가위벌의 집에서 몸 윗부분만 밖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모두 탈피하고 껍질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등 부분과 목에 걸쳐서 성충이 탈출했을 때 갈라진 금이 나 있었습니다. 번데기는 여섯 개의 가시가 튀어나와 있는 머리 부분으로 뿔가위벌의 애벌레가 만든 고치를 찢고, 다시 그 가시를 사용하여 뿔가위벌의 단단한 집 벽에 터널을 파고서 집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부드러운 몸을 한 연약한 흰점재니등에의 성충에게는 두꺼운 고치를 부수어 버릴 만한 힘도, 흙을 팔 도구도 없습니다. 따라서 번데기 시절 동안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여 뿔가위벌의 집 벽에서 반 정도 몸을 앞으로 내밀고 있습니다. 그 번데기의 등이 갈라지면서 성충이 나오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터널을 좀더 깊숙이까지 파 들어가 흰줄벌 애벌레의 작은 방에 도달했습니다. 속에는 애벌레가 있습니다. 이것은 5월에 낳은 알이 자란 것입니다. 다른 방에는 같은 5월에 태어난 알인데도 벌써 성충이 된 흰줄벌이 꼼짝않고 있습니다. 불과 며칠 차이로 태어난 것인데도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같은 터널 깊숙한 곳의 작은 방에는 흰줄벌 대신 성충이 된 뿔살이꽃벌이라는 다른 벌이 들어 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것도 사실은, 흰줄벌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애벌레와 저장해 둔 식량을 먹고 성장하는 벌입니다. 뿔살이꽃벌은 뿔이 등에 나 있다는 것과 다른 곤충의 집에서 산다는 것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흰줄벌의 작은 방 속에는 달걀 형태의 얇은 껍질에 싸인, 이전에는 본 적 없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곤충학적 상식으로도 정말 이상한 것입니다. 속에는 무엇인가 들어 있습니다. 얇은 막 밑의 껍질은 황색으로, 부서지기 쉬워 보입니다. 고치는 아닙니다. 그리고 크기로 생각하면 물론 달걀도 아닙니다. 체절마다 힘줄이 들어 있고, 작은 구멍이 죽 늘어서 있습니다. 이것은 호흡을 하기 위한 구멍, 즉 기문이겠지요. 이 얇은 껍질을 통해 손과 발을 움직이고 있는 속의 것이 비쳐 보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일까요? 껍질을 터뜨리자 흰줄벌살이알락가뢰가 나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장의 주인공입니다. 흰줄벌의 터널 입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흰점재니등에와 알락가뢰의 어미들이 그 때 낳은 알이 지금 이렇게 흰줄벌의 집 속에서 성장한 것입니다. 좀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이 남쪽 방향에 있는 벼랑에, 먼저 흰줄벌이 긴 터널을 파고 그 깊숙한 곳에 알을 낳아 두는 작은 방을 만듭니다. 그러면 뿔가위벌이 몰래 들어와서 터널 입구 주위를 빌려 제멋대로 진흙 방을 만듭니다. 그렇게 하여 그 두 종류의 벌에게 각각의 기생충, 즉 알과 애벌레를 먹거나 애벌레를 위해서 저장해 둔 식량을 먹는 벌레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즉, 뿔가위벌레에는 흰점재니등에가 기생하며 애벌레를 먹고, 흰줄벌에는 뿔살이꽃벌과 알락가뢰가 각각 모여들어 기생을 하는 것입니다. 방심하거나 허점을 보여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알락가뢰가 틀어박혀 있는 이상한 껍질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알 수 없는 것은 흰줄벌의 집 속에서 발견한,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틀어박혀 있는 이상한 형태의 껍질입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갑충 중에서 이런 껍질 속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갑충의 애벌레가 번데기로 될 때 들어가 있는 고치가 아닙니다. 흰줄벌 연구를 시작한 첫해인 1855 년에 처음으로 이 신비로운 껍질을 보았을 때, 파브르 선생님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일단 그 의문을 두 가지로 정리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의문 1) 확실치는 않지만 이 껍질은 다른 벌레의 것일 수도 있다. 흰줄벌의 집에 어떤 곤충이 먼저 기생을 하고, 그 곤충에 알락가뢰가 다시 기생을 하여 그 몸의 내부를 먹고, 지금 그 껍질속에 있는 것일까? 한 마리의 벌레에 이중의 기생충이 기생한다는 것일까? 알락가뢰는 흰줄벌의 애벌레와 식량을 먹고 생활한 제 1 기생충의 번데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 2) 이 기생충이 알락가뢰이든 다른 벌레이든 흰줄벌의 작은 방은 터널의 깊숙한 곳에 있고, 튼튼한 마개로 막혀 있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들어간 것일까? 돋보기로 아무리 자세하게 살펴보아도 빈 집을 노리는 것들이 작은 방의 문을 갉아먹거나 파낸 흔적은 전혀 없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3 년 동안 열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알락가뢰가 틀어박혀 있는 이상한 껍질의 정체는 곤충의 세계에서도 매우 드문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이런 생활 방식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째서 알락가뢰는 이런 성장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일까? 발견자인 파브르 선생님은 물론, 그것을 몇 번이나 읽고서 여러분들에게 얘기하고 있는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서두르지 말고, 지금은 선생님이 관찰한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3. 알락가뢰의 특이한 습성 36시간 걸린 산란 파브르 선생님은 알락가뢰가 들어 있는 이 기묘한 껍질을 많이 채집했습니다. 이것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락가뢰의 성충이 껍질 속에서 나와 짝짓기하고, 산란하는 것을 연구실에서 몇 번이나 관찰했습니다. 껍질에서 나오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큰턱으로 콱 물고서 다리로 차 버리면 껍질은 간단히 찢어져서 쉽게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넣어 둔 병 속에서 알락가뢰는 잇달아 껍질을 찢고 나왔습니다. 암컷이 껍질에서 머리를 내밀고 이제부터 몸 전체를 빼내려고 할 때에, 2시간 정도 먼저 나온 성질이 급한 수컷이 다가와서 탈출을 도와줍니다. 암컷이 밖으로 나가서 자유롭게 되면 기다리고 있던 수컷과 쉽게 짝짓기를 합니다. 그 후, 두 마리의 알락가뢰는 다리와 더듬이에 묻어 있는 먼지를 털 듯이 입으로 훑고서 헤어집니다.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수컷은 2,3일 꼼짝 않고 있다가 그대로 죽어 버립니다. 암컷도 짝짓기 후 산란을 끝내면 바로 죽습니다. 카르팡트라스 벼랑의 흰줄벌 터널 입구에 있는 거미줄에 걸려 죽어 있는 것은 이렇게 역할을 다한 알락가뢰의 어미들이었던 것입니다. 알락가뢰는 이처럼 성충이 되고 얼마 안 있어 죽어 버리므로 파브르 선생님은 이 벌레가 무엇인가 먹고 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벌레의 몸을 해부해 보니 소화 기관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무엇인가를 먹는 것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락가뢰의 암컷은 짝짓기가 끝나면, 알을 낳기에 좋은 장소를 찾기 시작합니다. 야외에서의 산란 장소는 어디일까요? 흰줄벌이 파 놓은 터널 깊숙한 곳의 작은 방에 몰래 들어가서 알을 낳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알락가뢰가 튀어나온 그 이상한 껍질의 주인, 즉 수수께끼의 벌레의 몸에 알을 낳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것은 흰줄벌의 작은 방에는 밖에서부터 들어간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작은 방의 마개는 처음부터 빈틈없이 막힌 채 조금도 뚫린 흔적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알락가뢰의 암컷이 몰래 들어가서 알을 낳았다면, 뚫고 들어간 흔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브르 선생님은 이것이 무척 궁금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알락가뢰가 나온 그 껍질의 진짜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수수께끼의 벌레도 살아 있는 것은 결코 채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모르는 것 투성이다. 곤충에 관한 나의 지식이 너무나 부족한 탓일까?' 선생님은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곤충에 대한 연구에는 끈질긴 인내가 가장 중요합니다. 끈질기게 참고 해 나가는 사이에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알락가뢰가 알을 낳는 장소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카르팡트라스의 벼랑에서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으면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여름 방학 중이라고 해도 아비뇽에서 20 킬로 이상 떨어진 이 벼랑까지 와서 하루 종일 관찰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자동차로 금방이지만 그 당시는 하루에 몇 번밖에 없는 합승 마차로 덜커덩거리며 아비뇽에서 카르팡트라스까지 다녀야 했습니다. 결국 채집해 온 것을 가지고 연구실에서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짝짓기를 막 끝마친 암컷을 몇 개의 큰 병에 넣었습니다. 그 속에는 각각 애벌레의 작은 방이 잇는 흰줄벌의 집을 통째로 넣어 두었습니다. 작은 방 속에는 애벌레와 번데기가 들어 있는데, 막아 둔 뚜껑이 조금 부서져서 속에 있는 벌의 애벌레가 밖에서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병마개로 쓴 코르크 내부에는 흰줄벌이 파는 터널과 같은 정도의 지름으로 구멍을 파 놓았습니다. 구멍은 막다른 곳으로 되어 있습니다. 병을 옆으로 눕히면 카르팡트라스 벼랑의 흰줄벌의 집과 같은 느낌이겠지요. 알락가뢰의 암컷은 '어디에 알을 낳으면 좋을까?'하듯이 커다란 배를 무겁게 끌면서 유리병 속의 이쪽 끝까지 왔다갔다하고 있습니다. 꽤 당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입 끝의 수염으로 더듬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약 30분 동안 여기저기 찾아본 후에 알락가뢰의 암컷은 흰줄벌의 작은 방에 있는 흙더미가 아니라 코르크 마개에 파 놓은 터널에 꽁무니를 밀어 넣었습니다. 머리는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는 알을 낳기 시작한 듯합니다. 선생님이 지켜보니 계속해서 알을 낳고 있습니다. 산란이 끝난 것은 무려 36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알을 낳았을까요? 2,000개가 넘는 알의 수 알 낳기를 마친 암컷이 떠난 자리에는 산더미 같은 알이 있었습니다. 배가 그렇게 불룩했던 것은 이렇게 많은 알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의 형태는 보통 알과 다를 바 없는데, 희고 매우 작습니다. 길이는 0.7 밀리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산더미 같은 알을 열심히 세어 보았습니다. 알이 뭉쳐져서 하나의 덩어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셀 수 없었지만 대략 2.000개 정도는 될 것 같았습니다. 병마개에 파 둔 구멍 속에 산란하고 있는 암컷을 몇 번이나 살펴보았지만 알을 낳고 있는 때에는 전혀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하나의 알을 낳고서 그 다음 알을 낳을 때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대략 1분에 1개, 1시간에 60개로 하여 여기에 36시간을 곱해 보면 2,160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5,5,5^ 어쨌든 엄청나게 많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렇게 알의 수가 많다는 것은 틀림없이 이 알에서 부화된 애벌레가 도중에 죽는 일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이 정도 낳지 않으면 종족이 끊겨 버릴 것입니다. 이 병 속에서의 관찰로 알의 형태와 수, 그리고 낳는 방법까지 알게 된 파브르 선생님은 카르팡트라스의 벼랑까지 가서 흰줄벌의 터널 속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알 덩어리는 언제나 터널 입구에서 3,4센티 들어간 곳에 있었습니다. 처음에 파브르 선생님은 알 하나하나를 흰줄벌의 작은 방 속에 낳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암컷은 알을 전부 터널 입구에 낳아 놓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고, 어미답지 못한 행동이군!'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한심해 하였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북풍이 불면 날아갈뿐더러, 육식성 무리가 오면 단숨에 먹어 치울 텐데.' 추위가 닥쳐오기 전까지는 거미, 진드기, 수시렁이의 애벌레 등 여러 육식성 무리들이 이 터널 속을 배회합니다. 그러면 이제 막 알에서 부화된 작은 애벌레는 간단하게 잡아먹혀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많이 낳는 것일까요? 그러나 어미에게 독이 있듯이 이 알에서도 분명히 좋지 않은 냄새가 나거나 또는 맛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릴 무엇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알은 한 달쯤 지난 9월 말, 혹은 10월 초에 깨어납니다. 아직 그렇게 춥지 않으므로 작은 애벌레들은 금방 뿔뿔히 흩어져서 각자 흰줄벌의 작은 방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기르고 있던 병 속의 애벌레는 1 밀리 정도의 크기에 검은색이었는데, 분명히 다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로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코르크에 뚫린 구멍 속에서 더욱 서로 몸을 붙인 채 자신들의 알 껍질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이 꼼짝 않고 있습니다. 애벌레들의 옆에는 선생님이 준비해 둔 흰줄벌의 애벌레가 들어 있는 흙 덩어리가 있고, 두꺼운 뚜껑이 반 정도 부서진 작은방 속의 벌의 애벌레와 번데기가 보이는데도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은 그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애벌레 덩어리를 침 끝으로 이리저리 휘저었더니 그제서야 애벌레들은 아주 조금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몇 마리의 애벌레를 억지로 무리에서 떼어 놓아도 곧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 버립니다. 이렇게 알 껍질에 바싹 모여 있으면 좀더 따뜻하겠지요. 어떤 이유에서 이처럼 바싹 붙어 있는 습성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그 까닭을 모른 채 알 껍질에 꽉 매달려 있는 이 무리를 뿔뿔이 떼어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들판에서는 어떨까?' 파브르 선생님은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겨울 방학에 카르팡트라스까지 갔습니다. 이 곳을 지나면서 선생님은 사범 학교를 갓 졸업하고 처음으로 초등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 때 파브르 선생님은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큰길을 지나 벼랑길까지 오니 겨울의 추위 속에서 흰줄벌의 주택 단지는 매우 조용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둥근 구멍이 많이 비어 있습니다. 그 속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니 이 곳도 역시 병 속처럼 애벌레들이 서로 뒤엉켜서 알 껍질에 꼭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가시와 발톱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일까? 겨울을 넘기고 그 다음해, 1865 년 4월말까지 애벌레에게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습니다. 애벌레는 매우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몸길이는 1 밀리 이하이고 피부는 딱딱합니다. 검고 윤이 나는 피부는 약간 녹색을 띠고 있습니다. 등은 가운데 부분이 높고, 배 밑은 편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몸은 가늘고 긴데 머리에서 가슴 중간까지는 등이 불룩하고, 나머지 부분은 쭉 가늘게 되어 있습니다. 목 부분은 마디로 잘록해져 있습니다. 입 주위는 적갈색이고, 네 개나 되는 눈 주위는 특히 색깔이 짙습니다. 입 부분은 매우 짧고, 가시 같은 털이 조금 나 있습니다. 큰턱은 강하고 예리하며, 길게 튀어나와 있어서 잘 드러납니다. 큰턱 이상으로 잘 드러나는 부위는 다리로서, 매우 튼튼하며 끝 쪽에 강한 발톱이 나 있습니다. 무엇인가에 매달릴 때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애벌레는 또 꽁무니 끝에서 투명한 접착제 같은 액체를 분비하여, 미끄러지기 쉬운 곳에서는 이것으로 몸을 부착시켜 디딤판으로 이용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유리판 위에 이 벌레를 놓자 애벌레는 즉시 이 액을 분비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리판을 세우든 거꾸로 하든 애벌레는 딱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작은 벌레가 매끈하지 않은 곳을 기어갈 때에는 꽁무니 쪽에 나 있는 두 개의 가시를 사용합니다. 애벌레는 몸통을 가시로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에 몸을 쭉 내밀어서 내민 만큼 앞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물론, 발톱으로도 고정시킵니다. 이렇게하여 자벌레처럼 앞으로 조금씩 나아갑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어린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아무 곳이나 쓱쓱 기어다니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흰줄벌의 터널을 나와서 이 애벌레가 사는 장소는 틀림없이 매우 미끄럽고, 게다가 한 번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인 그런 장소일 것입니다. 애벌레의 발톱과 가시, 그리고 순간 접착제와 같은 액체는 그런 생활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겠지요.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살고 있는 미끄럽고 떨어지기 쉬운 위험한 장소는 도대체 어디일까?' 수수께끼 같은 이 문제를 파브르 선생님은 얼마나 많이 생각해 보았는지 오릅니다. 그러나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발톱, 가시, 큰턱, 사물을 붙들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애벌레는 지금, 흰줄벌의 터널 입구에 뭉쳐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게다가 그 강력한 접착제 같은 투명한 액체로 유리판에서까지 쉽게 달라붙어 있다니, 점점 더 모르겠다. 어쨌든 봄이 되어 이 애벌레들이 움직이게 되면 무엇인가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마침내 1856 년 봄이 왔습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의 끈질긴 관찰과 실험에도 불구하고, 이 해에도 역시 알락가뢰의 생활의 수수께끼를 풀 수 없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알게 된 것은 그 때까지 생각해 온 예상들이 모두 빗나갔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빗나간 예상이라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에 관해서 조금 설명해 두기로 합시다. 배가 고프다! 4월 말, 연구실에 놓아둔 병 속의 애벌레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까지 스펀지 같은 알 껍질 더미에서 꼼짝 않고 있던 작은 애벌레들이 갑자기 활발하게 사방 팔방으로 흩어지더니 몹시 바쁜 듯이 이리저리 맴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 무엇인가는 아마 먹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이 애벌레들은 9월 말에 알에서 부화된 후부터 지금까지 7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기간 동안 꼼짝 않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동면하는 동물처럼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볍게 살짝 건드려 보면 금방 움직였던 것입니다. 깨어나서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파진 애벌레들이 이제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는 것이겠지요. 도대체 애벌레는 무엇을 먹을까요? 물론, 그것은 흰줄벌의 작은 방 곳에 있겠지요. 알락가뢰는 맨 나중까지도 이상한 껍질 속에 든 채로 이 흰줄벌의 작은 방 속에 있었으니까요. 벌의 작은 방 속에는 벌이 모아 놓은 꿀 혹은 애벌레가 있을 뿐입니다. 9월 말 알락가뢰가 알에서 깨어난 직후에, 흰줄벌의 작은 방 뚜껑을 허물어 주었을 때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은 그 속에 든 벌의 애벌레와 번데기를 전혀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 이번에는 맛있게 먹겠지.' 파브르 선생님은 또 열려 있는 흰줄벌의 작은 방과 닫혀져 있는 작은 방을 알락가뢰의 애벌레의 근처에 놓아 보았습니다. 애벌레를 벌의 방안에까지 넣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 보아도 역시 먹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주 통통한 벌의 애벌레의 몸위에 직접 놓아두었습니다. 그러나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은 전혀 식욕이 없는 듯합니다. 이것저것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아도 헛일이었습니다. '배가 몹시 고파 있을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이 찾고 있는 것은 흰줄벌의 애벌레와 번데기가 아니다. 틀림없이 벌이 저장해 놓은 꿀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흰줄벌이 저장해 놓은 꿀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벌집은 파브르 선생님이 살고 있는 아비뇽 근처에서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은 꿀이 저장되어 있는 벌의 작은 방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5월이 다 가도록 허탕만 치던 끝에 마침내 뚜껑이 막힌 흰줄벌의 작은 방을 몇 개 발견했습니다. 오랫동안 신선한 꿀이 가득 든 흰줄벌의 갖은 방을 애타게 찾아다녔던 파브르 선생님은 서둘러서 그 방에 작은 문을 뚫었습니다. 어떻게 될지 한시라도 빨리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흰줄벌의 작은 방 속에는 꽃가루와 벌꿀을 뒤섞여 만든 듯한 검은 꿀이 반 정도 들어 있었습니다. 조금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꿀의 표면에는 깨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애벌레가 떠 있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애벌레를 제거하고서 한 마리씩, 혹은 몇 마리씩 알락가뢰 애벌레를 꿀 위에 놓아 보았습니다. 다른 작은 방 속에는 벌의 애벌레를 그대로 둔 채, 알락가뢰의 애벌레를 한 마리는 꿀 위에, 다른 한 마리는 작은 방 벽에, 또 다른 한 마리는 문 입구에 두어 보았습니다. 이것들을 모두 유리관 속에 넣고 밖에서 관찰한 것입니다. '애벌레가 무엇을 먹을까? 자, 이제 알 수 있겠군.' 선생님은 잔뜩 긴장하여 지켜보았지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변함없이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흰줄벌의 작은 방 입구에 놓아둔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속으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고 유리관 속만 서성거릴 뿐입니다. 작은 방 벽에 놓아둔 것과 꿀 옆에 놓아둔 것들도 마찬가지로 발에 꿀이 묻자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나가려고 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꿀 위의 특등석에 놓아둔 애벌레는 끈적끈적한 꿀이 다리에 묻자 바둥거리다가 마침내 빠져 죽어 버렸습니다. 모두 실패입니다. 벌의 애벌레와 번데기, 그리고 벌꿀이 가득 든 작은 방, 파브르 선생님은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갖고 싶어한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준 것입니다. "작은 벌레들이여, 너희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사니? 어떻게 해야 가르쳐 주겠니?" 파브르 선생님은 실망하여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실험을 통해서 벌레들과 대화해 온 선생님이지만 이 때만은 몹시 기운이 빠져 버렸습니다. 연구실에서의 실험에 실패한 선생님은 처음부터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다 싶을 일을 과감하게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즉, 바쁜 시간을 쪼개어 카르팡트라스에 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흰줄벌이 일하는 계절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 1 년도 선생님의 관찰이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지나가 버렸습니다. 다음해 봄을 기다려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4. 수수께끼 해결의 실마리 뉴포트 씨로부터 얻은 힌트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그 해에 파브르 선생님은 선배로서 존경하는 곤충 연구가인 레옹 뒤프르 앞으로 알락가뢰에 관한 편지를 썼습니다.(제 2권의 벌에 관한 이야기에서 나왔던 학자입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 주었습니다. '제가 어느 꽃벌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어린 애벌레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알락가뢰 애벌레와 매우 비슷했습니다. 제가 그 애벌레를 과학 잡지에 발표했는데, 영국의 뉴포트 씨가 그것이 남가뢰의 애벌레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뉴포트 씨는 몇십 년 동안 남가뢰에 관해 연구해 온 학자로서 이미 남가뢰의 애벌레가 벌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알락가뢰가 살짝 들어가 살던 흰줄벌의 터널 속에서 남가뢰의 성충이 죽어 있는 것을 파브르 선생님은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아니, 이게 왜 여기에 있지?'하는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뒤프르 씨의 답장을 받고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남가뢰의 성충은 그 모습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같은 부류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알락가뢰와 남가뢰는 비슷한 습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알락가뢰의 애벌레도 분명히 남가뢰의 애벌레와 같이 벌의 몸에 달라붙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해 보고 싶은 실험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봄까지는 아직 1 년이나 더 기다려야 하니까 실험 계획을 짤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습니다. 유레카(드디어 발견했다.)! 미침내 다음해 4월이 되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연구실에서 키우고 있는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마침 뿔가위벌을 채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몇 마리 잡아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들어 있는 병 속에 넣어 보았습니다. 뿔가위벌은 흰줄벌의 집 입구에 붙어 사는 식객입니다. 15분 정도 후에 파브르 선생님은 벌을 꺼내 그 몸을 돋보기로 살펴보았습니다. 다섯 마리의 알락가뢰 애벌레가 뿔가위벌의 가슴 털에 꼭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알았다! 이제 문제는 해결됐다!' 선생님은 흥분했습니다. 사실은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었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본 것과 같은 기분이었던 것입니다. 확실히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남가뢰의 애벌레처럼 털투성이 벌에 달라붙어서 벌의 집 깊숙한 곳까지 들어갑니다. 그 때 마침, 파브르 선생님의 집 앞에는 라일락 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 곳에 여러 벌들이 꿀을 찾아 날아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암컷보다 빨리 성충이 된 흰줄벌의 수컷을 여러 마리 잡아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함께 두어 보았습니다. 결과는 언제는 같았습니다. 애벌레들은 벌의 털투성이 가슴에 깊숙이 숨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의 실패를 생각하면 역시 신중히 해야 합니다. '야외에 나가서 실제로 이일을 확인해 보지 않으면^5,5,5^.' 다행히도 때마침 4월의 부활절 휴일이 있었습니다. 흰줄벌의 큰 주택 단지가 있는 카라팡트라스의 벼랑에 다다랐을 때 선생님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야외에서는 과연 어떻게 될까? 또 전처럼 실망만 하는 것은 아닐까?' 비가 올 듯한 좀 추운 날이었습니다. 봄 꽃이 조금 피어 있었지만 벌은 날아와 있지 않았습니다. 기온이 너무 낮아서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벌집 입구에는 많은 흰줄벌이 추위 때문에 움직일 수 없어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털투성이 벌은 저온에 강한 편이지만 오늘은 그들에게도 역시 추운가 봅니다. 해님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핀셋으로 흰줄벌을 한 마리씩 벌집 터널에서 집어 내어 돋보기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흰줄벌에는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등에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 것도 똑같았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도 계속 살펴보았지만 모두 똑같이 알락가뢰를 등의 털에 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수수께끼 같은 알락가뢰의 생활에 대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온 선생님은 이 발견에 너무나 기뻐, '유레카(드디어 발견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알몸으로 목욕탕에서 뛰어나온 고대 그리스 학자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벌의 가슴에 달라붙어서 그 다음날부터 날씨가 좋아져서 따뜻해지자 흰줄벌들은 집에서 빠져 나와 꽃에 모여들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여기저기 날고 있는 흰줄벌을 집 바로 근처와 먼 곳에서 각각 잡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달라붙어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몸의 털에 두세 마리의 알락가뢰 애벌레를 달고 있었습니다. 알락가뢰가 거의 없는 아비뇽에서는 같은 시기에 흰줄벌을 잡아 보아도 몸에 알락가뢰 애벌레를 달고 있는 것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흰줄벌의 터널에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뢰가 많은 카르팡트라스에서는 벌의 4분의 3 정도가 이 애벌레를 몇 마리씩 몸에 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까지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많이 모여 있던 터널 입구를 찾아보았지만 애벌레는 벌써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깊숙한 곳의 작은 방에서 성충이 된 흰줄벌이 방문을 부수고 처음으로 밖으로 나아갈 때나 비와 바람을 피할 때, 밤이 되어 집에 돌아왔을 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알락가뢰의 어린 애벌레가 벌에 매달려서 먼저 가슴 털 속으로 들어가겠지요. 그 후에 애벌레는 벌의 등쪽으로 이동하는 듯합니다. 애벌레는 벌이 멀리까지 날아가도 결코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꼭 매달려 있습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이렇게 흰줄벌에 달라붙어 있는 것은, 물론 식량이 저장되어 있는 깊숙한 곳의 작은 방을, 그것도 딱 좋은 시기에 넘겨 받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혹시나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새에 달라붙는 잎벌레처럼 먼저 흰줄벌의 피를 빨아먹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파브르 선생님도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알락가뢰들이 흰줄벌의 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부드러운 곳에 멈춰서 피를 빨아먹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알락가뢰가 벌의 액체를 빨아먹고 있다면 틀림없이 움직일 것입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이 있는 장소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 곳은 날개의 마디 바로 위, 등의 가운데쯤에 해당합니다. 이 곳은 벌의 몸 가운데에서도 가장 딱딱한 부분입니다. 애벌레들이 머리는 밑으로, 꽁무니는 위로 향하여 마치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듯한 자세로 이 곳에 꼼짝않고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더라도 피를 빨아먹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큰턱과 발톱 꽁무니에 있는 가시, 그리고 꽁무니 끝에서 분비되는 접착제를 사용해서 애벌레는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매달려 있는 애벌레를 건드리면, 애벌레는 또 다시 벌의 다른 털 속에 매달립니다. 알락가뢰의 어린 애벌레가 흰줄벌의 몸에서 피를 빨아먹지 않는다는 것을 좀더 확실히 알기 위해서 파브르 선생님은 병 속에 벌의 표본을 놓아 보았습니다. 완전히 말라서 바삭바삭하게 된 표본은, 이로 갉아먹으면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빨아도 피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애벌레들은 이 표본의 어깨 쪽으로 다가가서 그 곳에 열심히 물구나무서기를 하여 매달려 있습니다. 살아 있는 벌에 매달려 있을 때와 똑같습니다. 이것으로 이 애벌레가 흰줄벌의 몸에 매달려 있는 것은 피를 빨아먹기 위한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매달리기 위한 도구였다. 그렇다면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벌의 털을 갉아먹고 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선생님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털을 갉아먹기 위해서는 큰턱이 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알락가뢰 애벌레의 큰턱은 예리하긴 하지만 너무 가늘고 길어서 무엇을 갉아먹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먹이를 찌르거나 찢기에는 적합하겠지만 물거나 갉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달라붙어 있어도 벌은 조금도 싫어 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피를 빨린다면 벌도 간지럽거나 따갑겠지요. 그러나 벌이 애벌레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떤 이유로 달라붙는 것일까요? 그 답은 이미 확실해져 있습니다. 어린 알락가뢰가 흰줄벌의 등에 달라붙는 것은 조금 후에 만들어질 벌의 작은방 속에 데리고 가 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은 흰줄벌이 꽃 사이를 날아다니거나, 비바람을 피하기 위하여 집에 들어갈 때 벽에 스쳐도 절대로 벌에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벌은 자주 브러시 같은 발로 비비거나 먼지를 터는데, 그 때에도 떨어지지 않도록 벌의 털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그 모습은 꼭, 네 개의 날개와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하늘을 나는 거대한 털투성이 고래에 매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 역시 이것 때문이었어. 그래서 가뢰의 애벌레가 그런 가시, 발톱, 그리고 접착제를 가지고 있었던 거야.' 오랫동안 이 특이한 애벌레의 몸 구조를 살펴 온 선생님은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오랜 의문이 풀렸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그 꽁무니 끝에서 나오는 순간 접착제 같은 투명한 액체는 굉장한 발견입니다. 미끄러질 듯하면 꽁무니 끝에서 접착제를 조금 분비해 자신의 작은 몸을 벌의 어느 부위에나 착 달라 붙게 하는 것입니다. 몸 전체에 나 있는 딱딱한 털도 평평한 곳을 걸을 때는 방해가 되지만 벌의 털에 달라붙는 데는 큰 도움이 되는 도구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벌의 털에 달라붙는 가뢰 애벌레의 생활 습관을 알면 알수록 어린 벌레가 이렇게 기묘한 생활에 적합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달려드는 상대는 수컷뿐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흰줄벌의 몸을 떠나서부터는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몹시 궁금하지만 그 전에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4월에 파브르 선생님이 카르팡트라스에서 발견한 가뢰 애벌레의 숙주는 모두 흰줄벌의 수컷이었습니다. 그 추운 날에 선생님이 핀셋으로 터널에서 꺼낸 것은 전부 수컷이었던 것입니다. 꽃 위에 있던 것도 마찬가지로 수컷이었습니다. 암컷이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는 벌집을 파 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암컷은 수컷보다 한 달 더 늦게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수컷이 먼저 나오는 것은, 나비와 같은 다른 곤충에서처럼 벌에게서도 자주 있는 일입니다. 털보흰줄벌과 같은 터널 속에 살고 있는 뿔가위벌도 수컷이 암컷보다 먼저 성충이 됩니다. 수컷은 빨리 성충이 되어 밖으로 나와서 암컷이 나오면 바로 짝짓기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뿔가위벌의 수컷은 아주 이른 봄에 밖으로 나오는데 그 때는 너무 추워서 가뢰의 어린 애벌레가 아직 활동하기 전입니다. 따라서 이 벌이 터널을 지나갈 때는 입구에서 꼼짝 않고 하나로 뭉쳐 있는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매달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뿔가위벌 수컷의 몸에서는 가뢰의 애벌레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겠지요. 가뢰의 애벌레가 이 벌의 수컷을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연구실에서 뿔가위벌 수컷의 몸 위에 가뢰의 애벌레를 놓으면 곧 달라붙었습니다. 하나의 터널 속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것이 뿔가위벌의 수컷, 그 다음이 흰줄벌의 수컷이고, 그 뒤로 거의 동시에 뿔가위벌과 흰줄벌의 암컷이 나옵니다. 그래서 흰줄벌의 수컷이 터널 속을 통과할 때쯤 활동을 시작한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이 재빨리 흰줄벌의 수컷에 달라붙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애벌레에게 있어서는 그 순간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인 것입니다. 이 때에 멍청하게 있으면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이 아직 꼼짝 않고 있는 동안에 터널에서 나온 벌들도 결국은 애벌레들에게 잡힙니다. 벌들이 터널 속에서 밤을 지내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거나 추워지면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4월 중에는 수컷들이 모두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뢰의 애벌레가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습니다. 확실하게 수컷의 털 속에 숨어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로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면 잡을 상대를 찾지 못해서 서성거리고 있는 애벌레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따라서, 5월이 오고 흰줄벌 암컷이 마침내 밖으로 나올 때쯤이면 터널 속에서 애벌레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암컷이 집 속에서 알락가뢰의 애벌레를 몸에 달고 나오는 일은 없습니다. 4월 말에 집에서 막 나온 암컷을 잡아 보았지만 애벌레를 몸에 달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암컷에게로 옮겨 간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가뢰가 마지막에 달라붙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는 암컷입니다. 지금은 수컷의 몸에 붙어 있지만 방을 만드는 것도, 식량을 저장하는 것도 수컷의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수컷이 알락가뢰를 터널의 깊숙한 곳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가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수컷의 몸에만 달라붙어 있다가는 굶어죽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흰줄벌의 수컷에서 암컷의 몸으로 옮겨 가야 합니다. 그 시기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틀림없이 수컷과 암컷이 짝짓기할 때일 것입니다. 만약 이 생각이 맞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벌이 자신들의 자손을 만들기 위해서 짝짓기할 때에, 가뢰의 애벌레는 벌의 애벌레와 그의 식량을 먹어 버리기 위하여 수컷에서 암컷으로 옮겨 가는 것이니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그것을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터널의 깊숙한 방에서 채집해 와 아직 가뢰가 붙어 있지 않은 암컷 위에 알락가뢰가 많이 달라붙어 있는 수컷을 놓아 본 것입니다. 두 마리의 벌을 억지로 눌러서 수컷과 암컷의 몸을 붙여 놓았습니다. 15분에서 20분 정도 지나 살펴보았더니,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수컷에서 암컷에게로 옮겨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부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을 들판에서 실제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벌이 집을 만드는 것은 5월 중순에서 하순경입니다. 그래서 학교가 쉬는 날인 목요일, 정확히는 1857 년 5월 21일에 파브르 선생님은 카르팡트라스로 갔습니다. 벌의 방 속으로 알락가뢰가 들어가는 순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5. 잇달아 풀린 수수께끼 소용돌이치는 벌떼 속에서 파브르 선생님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대로 카르팡트라스의 벼랑에서는 흰줄벌이 터널을 파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흰줄벌들이 즐겁게 춤을 추며 햇빛과 열을 선사해 주는 태양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벌떼라기보다는 소용돌이치는 구름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구름 속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수천 마리의 흰줄벌이 아주 빠른 속도로 무리를 떠나 날아갑니다. 근처의 들판으로 꿀을 따러 가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수천 마리의 벌이 멀리서부터 돌아와 무리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들은 꿀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때까지도 파브르 선생님은 이 벌의 성질을 잘 몰랐습니다. '이것 참, 큰일났다 벌떼들에게 에워싸이면 위험한데. 더군다나 짓고 있는 집에 손을 대기라도 하면 화가 난 벌떼들이 순식간에 덤벼들어 일제히 쏠 거야.' 선생님은 벌에게 쏘여서 보름달같이 둥글게 부푼 얼굴로 학교에 가서 수업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니,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전에 말벌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심하게 당한 경험이 있는 파브르 선생님은 주춤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 곳까지 와서 그냥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알락가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아무리 무서워도 소용돌이치는 벌떼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밀한 관찰에는 시간과 노력이 드는 법입니다. 몇 시간, 혹은 하루 종일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윙윙거리는 이 대군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벌의 주택 단지의 흙을 파야 합니다. 그리고 돋보기를 사용하여 벌의 방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조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벌의 침을 막아 보려고 마스크와 장갑을 낀다면 세밀한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에잇, 어쩔 수 없다. 비록 얼굴이 바뀔 만큼 벌에게 쏘일지라도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가뢰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파브르 선생님은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벌떼 속으로 뛰어들기 전에 먼저 꿀을 따러 나간 흰줄벌을 포충망으로 잡아서 조사해 보았습니다. 구멍을 파고 집을 짓는 것은 물론 모두 암컷이었고, 그 털에는 확실히 가뢰의 애벌레가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장소는 수컷과 마찬가지로 동일합니다. '자, 들어간다!' 파브르 선생님은 양볼의 옷깃을 세우고 단추를 모조리 끼웠습니다. 그렇지만 얼굴과 귀는 어쩔 수 없이 무방비 상태입니다. 마침내 벌떼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괭이질을 하여 터널을 파 들어가니 흰줄벌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더욱 요란스러워졌습니다. 무척 겁이 났지만 끝까지 꾹 참고 흙덩이를 파 들고 쏜살같이 도망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단 한 방도 쏘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벌들도, 꿀벌이나 말벌처럼 흥분하여 선생님의 뒤를 따라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안전한 곳까지 피해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선생님이 파낸 흙덩이는 터널의 입구 쪽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곳에는 흰줄벌의 작은방은 없고 뿔가위벌의 방뿐입니다. '이것 참, 다시 해야겠군. 조금 더 침착하게 깊은 곳을 파야 해.' 다시 한 번 파브르 선생님은 벌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더 시간을 들여서 깊은 곳의 흙덩이를 파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쏘일 거라고 생각하며 선생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흰줄벌들은 여전히 덤벼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흰줄벌은 순하구나. 아, 잘됐다.' 선생님은 안심하고 더 많은 벌집 터널을 파냈습니다. 그렇지만 얼굴 주위를 날아 다니는 벌에 신경이 쓰여서 손을 제대로 놀릴 수가 없어 집 속의 끈끈한 꿀을 실수로 밖으로 쏟아 버리거나, 괭이로 애벌레를 죽인다거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 흰줄벌을 눌러 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집을 부술 때마다 화난 벌의 날개 소리는 높아갔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동료의 집이 부서지고 있는데도 흰줄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열심히 일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쏘지 않는 벌 자신의 보금자리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면 즉시 수리에 들어가는 흰줄벌도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부서진 집 주위를 맴도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을 망가뜨린 사람을 쫓아오는 것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때때로, 상당히 화가 난 듯한 벌이 선생님의 눈앞 5,6센티 정도에서 맴돌며 따가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뭐야, 이 바보같이 큰 물건은?'하고 말하듯이 잠시 동안 투덜거리다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립니다. 정말 순한 벌입니다. 흰줄벌들은 한 군데의 장소를 골라서 집을 짓고 있지만 특별히 서로 협력해서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제멋대로 일하고 있을 뿐이고, 적이 와도 힘을 모아 쫓아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자신의 집을 습격해 온 적을 침으로 쏘아서 쫓아 버리지도 않고, 그저 부서져 가는 집에서 황급히 도망쳐 나올 뿐입니다. 손으로 잡지 않는 한 침으로 쏘지 않는 것입니다. 꿀을 따는 벌과 사냥벌 중에도 순한 벌이 많이 있습니다. 떼를 지어 살고 있는 벌 중에서는 꿀벌과 말벌만이 즉시 적을 쏘거나 힘을 합해 쫓아낸다는 것을 그 후에 알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 벌의 순한 성질 덕분에 파브르 선생님은 윙윙거리는 벌떼 속에서도 느긋하게 허리를 굽혀 터널 속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한 방도 쏘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사람이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놀란 듯이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 괜찮아요? 벌에게 마법이라도 걸었어요?" 땅에 놓아둔 파브르 선생님의 채집용 도구들인 상자, 병, 유리관, 핀셋, 돋보기와 같은 물건들은 미신을 많이 믿는 시골 사람에게는 마치 마법의 주문을 걸기 위한 도구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터널 깊숙한 곳의 벌집을 살펴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입구가 아직 열린 채로 꿀도 조금밖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이미 꿀을 가득 저장하고 뚜껑으로 막아 놓은 것도 많았습니다. 밀실의 비밀 뚜껑으로 막혀 있는 작은 방을 열어 보니, 안의 상태는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이미 꿀과 꽃가루를 먹어 버린 흰줄벌의 애벌레도 있고, 얼마 후면 다 먹게 될 애벌레도 있습니다. 그리고 배가 불룩한 이상한 형태를 한 것도 있습니다. 꿀은 끈적끈적하고 강한 냄새가 나며, 색깔은 갈색입니다. 그 위에 벌의 알이 떠 있는 작은 방도 있습니다. 알은 희고 아름다우며, 바나나 같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길이는 4.5 밀리, 폭은 1 밀리도 안 됩니다. 알은 언제나 하나뿐이며 꿀에 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찾고 있는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어디 있을까요? 강한 발톱과 가시투성이를 한 놈은 약삭빠르게 흰줄벌의 알 위에 올라타고 있었습니다. 흰줄벌의 알을 꿀에 떠 있는 구명 보트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선생님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실은 이 때 또 하나의 다른 대발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단지 '5월 21일의 대발견'이라고만 기억해 주세요. 어느 사이에,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이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이 곳까지 몰래 들어왔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이 살펴본 작은 방의 어디에도 이 벌레가 들어올 만한 틈은커녕 금이 가 있는 흔적조차 없습니다. 모두 분명히 뚜껑이 닫혀 있습니다. 마치 추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밀실 살인 사건', 아니 '밀실 살충 사건'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과학자는 명탐정이 되어야 합니다. 추리 소설에서는 이런 경우, 범인은 대개 문을 부수고 침입한 자가 아니고, 문이 닫히기 전부터 들어와 있던 자임이 밝혀집니다. 알락가뢰가 벌의 꿀 저장소에 들어간 것은 문이 닫히기 전이 아닐까요? 그런데 아직 문이 닫히지 않은 방, 즉 흰줄벌이 아직 알을 낳아 두지 않은 작은 방 속에는 꿀이 가득 저장되어 있어도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렇다면 빈 집을 노리는 알락가뢰가 몰래 들어가는 것은 흰줄벌의 암컷이 알을 낳고 있을 때나, 혹은 알을 다 낳고서 집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 버리기 직전 중 어느 한 때인 것입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언제 방 속으로 들어가는지를 실험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흰줄벌이 아무리 순하다고 해도 산란중일 때와 뚜껑을 만들어 달고 있는 순간에 그 방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엿본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지금이라면 병원에서 위 속을 보는 데 사용하는 파이버스코프(가는 대롱 모양의 카메라)등 편리한 것이 많기 때문에 쉽게 볼 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파브르 선생님 시대에는 그런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실험을 거듭하고 열심히 생각한 끝에, 파브르 선생님은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알락가뢰가 벌의 작은 방 속에 들어가는 것은 벌이 알을 꿀의 표면에 낳는 바로 그 순간이 틀림없다.' 그 이유를 알아볼까요? 꿀의 늪에 빠져 버림 먼저, 벌이 알을 낳은 후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들어간다는 생각이 맞는지 어떤지 실험을 통해 확인해 봅시다. 꿀이 가득 저장되어 있고, 벌의 알도 들어 있는 흰줄벌의 작은 방 뚜껑을 뚫어서 유리병 속에 넣은 뒤 그 곳에 알락가뢰의 애벌레 몇 마리를 집어 넣어 보았습니다. 애벌레들은 꿀이 가득 든 단지를 보고도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유리병 속을 서성거리며 돌아다닐 뿐입니다. 벌의 작은 방이 들어 있는 흙덩이 위를 걷거나 그 집 입구에 살짝 들어가 안의 상황을 엿보는 것도 있습니다. '이제야 해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애벌레들은 곧 밖으로 나왔습니다. 작은 방 속의 꿀이 들어 있는 곳까지 가서 이제 막 꿀에 도달하려는 순간에 위험하다고 느낀 듯이 도망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너무 서두른 놈은 꿀에 다리가 빠져서 넘어지거나 비틀거리다가 꿀 속에 떨어져 빠져 죽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해 보았습니다. 먼저, 꿀과 알이 들어 있는 작은 방의 뚜껑을 뚫은 후에 여러 마리의 알락가뢰 애벌레를 안쪽 벽, 혹은 꿀의 표면에 놓아두었습니다. 벽 위에 놓인 애벌레는 매우 당황하여 밖으로 나왔습니다. 또 꿀의 표면에 놓인 애벌레는 그 위에서 잠시 동안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에는 끈적끈적한 꿀에 발이 묶여 도망가려고 발버둥치던 끝에 꿀 속에서 죽어 갑니다. 즉, 꿀이 저장되어 있고 알도 낳아져 있는 흰줄벌의 방 속에 알락가뢰의 애벌레를 살게 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전에는 흰줄벌의 애벌레가 들어 있는 집에 그 애벌레 대신 알락가뢰의 애벌레를 살게 해 보려던 것이 실패로 끝났지만, 흰줄벌의 알이 들어 있는 집 속에 알락가뢰의 애벌레를 살게 하려고 한 지금도 역시 실패한 것입니다. 이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흰줄벌이 집 뚜껑을 열심히 만들고 있을 때 벌의 털에서 떨어져 스스로 작은 방 속으로 들어가서 꿀까지 더듬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꿀의 표면에 몸이 조금이라도 닿게 되면 순식간에 꿀로 몸 전체가 끈적거리게 되어 알락가뢰는 벌꿀의 깊은 늪에 빠져서 죽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벌이 알을 낳는 순간입니다. 깊은 늪의 구명 보트 완성된 벌의 작은 방 문을 뚫었을 때 최초로 눈에 들어온 광경은 약삭빠르게 벌의 알 위에 타고 있는 알락가뢰의 애벌레였습니다. 벌의 알은 알락가뢰의 애벌레에게 있어서 무서울 정도로 깊은 늪에 떠 있는 '구명보트'인 것입니다. 그런데 벌의 털 속 깊은 곳에서 꿀의 늪 중심에 떠 있는 이 보트로 어떻게 옮겨 탔을까요? 꿀에 닿으면 그것으로 끝장일 텐데요.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흰줄벌의 집 속에 있는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언제나 한 마리 뿐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계속 이 알락가뢰 애벌레와 흰줄벌을 관찰하면서 많은 흰줄벌의 집을 들여다보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알락가뢰가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벌의 털 속에는 보통 몇 마리의 어린 알락가뢰 애벌레가 매달려 있고, 모두 다 벌의 집에 침입할 기회를 잡으려고 필사적입니다. 애벌레들이 알에서 깨어난 것은 9월 말 혹은 10월 초였습니다. 지금이 5월 중순이니까 이제 7,8개월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애벌레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플 텐데도 왜 기회가 왔을 때 모두들 일제히 작은 방 속으로 달려가지 않는 것일까요? 어째서 한 마리씩밖에 벌집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요? 아무래도 무슨 비밀이 있는 듯합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수수께끼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벌의 꿀에 닿지 않고 알에 옮겨 탄다는 것. 둘째, 벌의 털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많은 수의 애벌레 중 한 마리밖에 벌의 집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이 두 가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실마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흰줄벌의 어미가 산란관을 길게 내어 그 끝에서 알이 반 정도 나온 순간, 벌의 등에서 꽁무니 끝까지 옮겨 와 기다리고 있던 알락가뢰들 중 가장 좋은 장소에 있던 놈이 꿀에 떠 있는 알 위로 살짝 뛰어 타는 것입니다. 이때 알은 알락가뢰의 애벌레에 비해서는 무척 크기 때문에 그 위에 두세 마리 정도는 탈수 있을 듯한데 어째서인지 한 마리밖에 옮겨 타지 않는 듯합니다. 두 마리 이상이 알을 먹게 되면 영양이 모자라는 것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아무리 애써도 그 순간을 볼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파브르 선생님의 추측의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어미벌에서 알로 옮겨 간다니, 이 어린 벌레에게는 인간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 넘는 지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냥벌과 스카라베 사쿠레 등의 생활을 관찰하면서 이미 곤충의 놀라운 본능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은 이 정도는 쉽게 해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벌이 애벌레를 위해서 열심히 작은 방을 만들어 식량을 저장하고 그 위에 알을 낳으면, 빈 집을 노리는 가뢰의 애벌레가 그 곳에 재빨리 뛰어내려서 옮겨 타는 것입니다. 그 뒤, 어미벌은 작은 방을 지키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뚜껑을 만들고, 계속해서 그 옆에 제 2의 작은 방을 만듭니다. 아마 그 제 2의 작은 방의 알 위에도 또 다른 가뢰의 애벌레가 옮겨 타겠지요. 어미의 털에는 몇 마리의 알락가뢰 애벌레들이 매달려 있는데, 이들은 같은 일을 반복해서 모두 벌집 속에 든 알 위에 올라타게 됩니다. 벌의 알이 최초의 먹이 놀라운 재주로 먹이와 자신이 살 곳을 마련하는 어린 알락가뢰 애벌레를 좀더 연구해 보도록 합시다. 뚜껑이 닫히자마자 곧 흰줄벌의 집을 열어 보면, 알 위에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타고 있습니다. 벌의 알은 아직 낳았을 때 그대로입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앞으로 무엇을 할까요? 검고 어린 애벌레는 흰 알 위를 돌아다니며 조사해 결정적인 장소를 찾아내면, 여섯 개의 다리로 중심을 잡고 날카로운 큰턱의 송곳니를 알의 얇은 껍질에 찔러서 찢습니다. 알의 내용물이 넘쳐 흐르면 알락가뢰 애벌레는 '정말 맛있구나'하는 얼굴로 벌컥벌컥 마십니다. 교묘하게 침입한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이 방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태어나서 7개월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가, 그렇게 많은 고생과 모험 끝에 가까스로 손에 넣은 식량이니까요. 이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매우 생각이 깊은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알락가뢰의 애벌레도 다음엔 꿀을 먹게 되는데, 이 방의 진짜 주인인 흰줄벌의 애벌레 역시 알에서 깨어나면 같은 꿀을 먹고 자랍니다. 한 군데밖에 없는 꿀을 알락가뢰와 흰줄벌의 애벌레가 서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두 마리가 나누어 먹기에는 양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서둘러서 알을 물어뜯어 먹어 우선 경쟁자부터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벌의 알은 훌륭한 영양원입니다.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알의 노른자위를 먹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나 이 구명 보트의 내용물을 다 먹어 오그라들면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꿀의 늪에 빠져 버리지 않을까요? 어린 알락가뢰 애벌레는 처음에는 뚫은 알의 껍질에서 흘러 나오는 내용물을 맛있게 빨아먹습니다. 알 위에서 쉬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던 이 어린 애벌레는 하루하루 줄어드는 노른자위를 보면서 '좀더 없을까?'하며 계속 빨아먹습니다. 그러나 알의 주위의 가득 차 있는 꿀을 핥는 모습은 한 번도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알이 구명 보트인 동시에 유일한 식량인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애벌레가 정말로 알만 먹고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선생님은 이 흰줄벌 집의 꿀에 작은 종이 조각을 띄우고 그 위에 알락가뢰를 태워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종이 뗏목을 송곳니로 찔러 보고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그 곳에서 내려와 끈적끈적한 꿀에 빠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실험을 해 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때의 어린 애벌레는 아직 꿀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한편, 알이 들어 있는 흰줄벌의 작은 방을 사용하면 알락가뢰의 애벌레를 쉽게 기를 수 있습니다. 뾰족한 침을 물에 조금 적셔서 애벌레를 건드리면 딱 달라붙어 버리기 때문에 그대로 천천히 벌의 알에 올려놓아 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태연히 알을 물어뜯어 먹으며 잘 자랍니다. 알락가뢰 애벌레의 첫 식사는 역시 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벌의 알은 구명 보트인 동시에 반드시 필요한 최초의 음식인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알에서 깨어난 알락가뢰 애벌레를 무턱대고 꿀과 벌의 애벌레로 키우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깜짝 놀랄 정도의 변신술 일주일이 지나 알락가뢰의 애벌레에게 내용물을 모두 빨려 버린 벌의 알은 얄팍한 껍질만 남았습니다. 최초의 식사가 끝난 것입니다. 그 때엔 이미 애벌레의 크기가 처음의 두 배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서 등 쪽으로 갈라지면서 그 속에서 깜짝 놀란 만큼 새로운 모습을 한 애벌레가 튀어나왔습니다. 게다가, 그 애벌레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꿀의 늪에 몸을 내미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까지의 애벌레를 제1령 애벌레라고 하고, 여기에서 탈피하여 나타난 것을 제2령 애벌레라고 합니다. 이 새로운 제2령 애벌레가 벗어 버린 껍질은 흰줄벌의 알 껍질에 달라붙어서 꿀 위에 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애벌레의 '진수식'을 위한 파도 때문에 꿀 속에 가라앉아서 사라져 버립니다. 자, 그럼 알락가뢰는 이제 어떻게 될까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정리해 봅시다. 알락가뢰의 어린 애벌레, 즉 제1령 애벌레는 7, 8개월 동안 식사도 전혀 하지 않고 터널 입구에서 흰줄벌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초로 성충이 된 수컷 흰줄벌은 이 터널에서 밖으로 나올 때, 애벌레의 옆을 비비듯이 지나갑니다. 그 때가 기회입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벌의 가슴 털을 꼭 붙들고 그 속에 숨어듭니다. 3,4주 지나서 벌이 짝짓기할 때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수컷에서 암컷의 털 속으로 옮겨 가고, 그 다음에는 암컷의 산란관에서 나오는 알에 옮겨 탑니다. 이렇게 어려운 모험을 몇 번이나 거듭한 끝에 애벌레는 겨우 꿀이 가득 채워진 흰줄벌의 집 중앙에 떠 있는 알 위에 자리잡습니다. 이런 재주는 모두 애벌레의 몸과 그 몸에 붙어 있는 여러 가지 도구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의 껍질을 찢는 데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큰턱이 필요하게 됩니다. 큰턱을 이용해 벌의 알을 찢어서 다 먹어 치우면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으로 변신을 하고, 그 다음엔 꿀 속에 떠서 여유있게 저장되어 있는 꿀을 먹는 것입니다. 그 후로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다시 한 번 속에 가뢰가 들어 있는 이상한 껍질을 분명히 기억해 두세요. 제 4장에서 모든 것이 명백하게 밝혀집니다. III. 남가뢰의 대모험 1. 남가뢰의 생존 꿀벌에 달라붙는 이 지금까지 알락가뢰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해 온 흰줄벌살이알락가뢰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일단 접어 두고, 이제 남가뢰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알락가뢰와 남가뢰는 서로 가까운 종류로서 그 성장 과정도, 겪는 고생도, 꿀벌류의 집에 들어가서 빈틈을 노린다는 점도 매우 비슷합니다. 남가뢰는 매우 특이한 형태를 한 갑충입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처음 보았을 때에는 도저히 갑충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정도입니다. '조금 부드러운 듯한 날개를 가진 벌레구나.' 선생님은 맨 처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마치 결혼식 때 입는 옷이 세탁 잘못으로 오그라들어 등에 달라붙은 것 같아. 게다가 배는 너무 크게 불러서 배 전체가 드러나 보이는군.' 그래도 갑충은 틀림없는데 움직임도 둔하고, 웬지 이상야릇한 느낌입니다. 이러한 점은 알락가뢰나 남가뢰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그러나 남가뢰의 몸 색깔은 가지와 비슷하여 아름답습니다. 이 색을 짙은 노란색으로 바꾸고 몸을 좀더 날씬하게 한다면 역시 흰줄벌살이알락가뢰와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여 이 벌레를 손으로 잡으면 다리의 관절에서 노란색의 액을 분비합니다. 남가뢰의 피입니다. 손에 묻으면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고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벌레도 자세히 살펴보면 행동하는 것이 꽤나 애교스러워 점점 좋아집니다. 이처럼 모양은 그다지 보기 좋지 않은 곤충이라도 알에서 어미가 될 때까지의 생활사를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오싹오싹한 스릴까지 만끽할 수 있습니다. 알에서 막 깨어난 남가뢰의 애벌레는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마찬가지로 꽃벌류에 달라붙어서 벌의 방 속까지 따라 들어가 그 알과 식량을 빼앗습니다. 이 애벌레는 검은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달리 황색이지만 생김새는 매우 닮았고, 역시 날카로운 발톱과 큰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꿀벌의 몸에서 발견된 이 애벌레의 정체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박물학자들조차도 알 수 없었습니다. 스웨덴의 대박물학자 린네는, 꿀벌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벌레라하여 이 벌레를 '꿀벌의 이'라고 불렀고, 레옹 뒤프르 역시 '꿀벌의 기생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충과 애벌레에 각기 다른 이름이 붙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생김새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꿀벌의 이'를 남가뢰와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꿀벌의 이'가 사실은 남가뢰의 애벌레라는 것을 밝혀 낸 사람이 영국의 박물학자 뉴포트입니다. 알락가뢰를 연구하기 시작한 지 2 년째인 1856 년,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을 때에 뉴포트의 연구 보고서를 읽은 파브르 선생님은, 알락가뢰와 남가뢰의 애벌레는 함께 흰줄벌의 몸에 달라붙어서 그 집의 작은 방에 몰래 숨어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1875 년 5월 21일, 마침내 흰줄벌의 작은 방 속에서 벌의 알 위에 탄 남가뢰의 애벌레를 본 것입니다. 이것이 제 2장에서 이야기한 '5월 21일의 대발견'입니다. 이전에 파브르 선생님이 알락가뢰의 생활 방식을 확인하기 위해 흰줄벌의 집을 파다가 그 속에서 남가뢰의 시체를 발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남가뢰가 알락가뢰처럼 알을 낳으려고 카르팡트라스 벼랑에 있는 흰줄벌의 터널 입구를 서성거리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뉴포트와 다른 학자들의 연구가 '남가뢰는 흰줄벌의 터널 속이 아닌 밖의 흙을 파서 알을 낳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파브르 선생님도 남가뢰의 산란 방식을 알아내느라 무척 고생했을 것입니다. 놀랄 만큼 많은 알 뉴포트의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남가뢰의 암컷은 벌의 터널 속이 아니라 햇빛이 잘 비치는 마른 풀밭을 5,6센티쯤 파고, 그 구멍속에 알을 낳은 뒤 흙으로 덮어 둔다고 합니다. 암컷은 며칠 간격으로 서너 번 이렇게 알 덩어리를 낳습니다. 산란 시기는 4월에서 5월까지입니다. 그리고 한 번에 낳는 알의 수만도 실로 엄청납니다. 첫 번째에 낳는 알의 수가 가장 많은데, 예를 들어 루리가뢰라는 종류는 뉴포트의 계산에 따르면 4,218개나 낳는다고 합니다. 같은 암컷이 그 후에도 두세 번 더 산란하므로 전부 다 합치면 정확히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많은 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알락가뢰의 알이 2,000개 이상인 것에 놀랐지만 남가뢰는 그 이상입니다. 알락가뢰는 흰줄벌이 성충이 되어서 터널에서 나올 때 반드시 통과하는 입구 주변에 알을 낳아 둡니다. 따라서 알에서 깨어난 알락가뢰의 애벌레들은 그 장소를 옮기는 일 없이 꼼짝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남가뢰처럼 벌의 거주지에서 떨어진 곳에다 낳지 않기 때문에 벌이 반드시 통과하는 곳까지 찾아가기 위한 모험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남가뢰의 애벌레에게는 알에서 깨어난 즉시 모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알락가뢰보다 죽을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알락가뢰보다 훨씬 많은 알을 낳는 것입니다. 알의 수로 높은 사망률을 메우는 것이 남가뢰의 생존 방식입니다. 남가뢰의 알은 5월 말 혹은 6월에 깨어납니다. 알은 대개 1개월만에 깨어납니다. 알락가뢰의 알도 마찬가지로 태어난 지 1개월만에 깨어났습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9월에 깨어나자마자 다음해 5월까지 추운 겨울과 봄 사이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꼼짝 않고 흰줄벌의 터널 입구에서 벌이 자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좀더 좋은 계절에 태어나는 남가뢰 애벌레들은 자신들을 키워 줄 벌을 찾아 자신의 다리로 직접 대모험 여행을 떠납니다. 꽃에 숨어서 벌을 기다림 남가뢰의 애벌레는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비슷하지만 황색이고, 가늘고 긴 작은 벌레입니다. 봄철에 여러 종류의 벌을 잡아 보면 그 털 속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흙 속에서 깨어난 이 작은 벌레가 어떻게 해서 벌의 털에 달라붙었을까요? 뉴포트의 책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갓 태어난 남가뢰는 흙 속에서 나오는 즉시 옆에 있는 식물에 기어오른다. 그 중에서도 고들빼기 같은 국화과의 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 꽃 사이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벌이 꽃에 꿀을 빨러 오면 재빨리 그 털에 매달려서 그대로 옮겨 가는 것이다.' 운 좋게도 파브르 선생님은 남가뢰의 애벌레 무리가 국화과의 꽃에 기어 올라온 것을 실제로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뢰를 연구하기 시작한 지 2 년째인 1858 년 5월 23일의 일이었습니다. 그 장소는 카르팡트라스의 벼랑길입니다. 태양이 따갑게 내리쬐는 벼랑에는 흰줄벌의 대군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등검은흰줄벌로 터널 입구를 지키듯이, 밑을 향해 굽어 있는 대롱과 같은 것을 달고 있습니다. 벼랑 밑길을 따라서는 드문드문 풀이 나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벌의 터널 공사를 견학하고 있었습니다. '벌이 새로운 비밀을 알려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면서, 바로 그 옆에 있는 풀밭의 한 복판에 엎드렸습니다. 하늘은 푸르고 상큼한 풀냄새가 납니다. 그 때 선생님의 옷에 작은 황색 벌레가 잇달아 기어 올라온 것입니다. 몸 전체에 황색 가루처럼 들끓고 있는 이 벌레를 보자마자 선생님은, '앗, 남가뢰의 애벌레다!'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애벌레는 옷에 일어 있는 보푸라기 속에 숨으려고 올라온 것이지만 역시 꽃과 달라 초조해진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뉴포트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벌레들이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없었겠지요. 벌의 털에 달라 붙어 있는 장면은 이미 보아서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장소에서 이 벌레들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남가뢰의 애벌레가 벌의 몸에 달라붙는 것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파브르 선생님은 무척 기뻤습니다. 그 곳의 풀밭에는 꽃이 많이 피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국화의 일종인 쑥부쟁이였습니다. 뉴포트가 남가뢰의 애벌레를 관찰했다는 곳도 역시 고들빼기나 민들레 같은 국화과의 작은 꽃이었습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먼저 국화 종류부터 조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여기 있는 세 종류의 꽃, 특히 쑥부쟁이꽃 위에는 작은 남가뢰가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 꽃은 가는 꽃잎이 많이 모여서 하나의 꽃부리를 이루는데, 그 속에 작은 벌레가 무려 40 마리나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식물들과 같은 곳에서 자라는 개양귀비와 산겨자 등도 조사해 보았지만 이들은 국화의 일종이 아니었고, 따라서 꽃위에 자리잡고 있는 벌레도 없었습니다. 남가뢰의 애벌레가 벌에 달라붙기 위해서 이용하는 것은 가는 꽃잎이 모여 피는 국화과의 꽃들뿐입니다. 이와 같은 꽃에는 벌레가 잘 오고, 숨을 곳도 많기 때문이겠지요. 진짜 고생은 지금부터 이런 꽃부리에 숨어 있는 것들은 첫 번째 시험을 이미 통과한 듯 차분해져 있지만 땅 위나 풀 밑에는 아직도 엄청난 수의 어린 애벌레가 매우 불안한 듯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장소에 따라서는 마치 개미집이라도 파헤친 듯이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풀의 꼭대기까지 서둘러서 기어오르고, 또다시 황급히 내려갑니다. 떡쑥의 하얀 솜털 속에 숨었다가 금세 또다시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닙니다. '아니야, 이 곳이 아니야. 아아,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금방이라고 울 듯한 표정입니다. 선생님이 엎드려서 내려다보니, 주위 10제곱미터 범위 내에 이 어린 애벌레들이 모여 있지 않은 풀잎은 한 장도 없을 정도입니다. 어느 잎이든 벌레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마침 남가뢰의 애벌레가 흙 속의 알 더미에서 막 깨어난 상태였습니다. 운이 좋은 놈은 벌써 쑥부쟁이꽃 위에 진을 치고 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놈들은 아직 마땅한 장소를 발견하지 못해서 필사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벼랑 밑의 풀밭에 엎드려 있는 선생님의 몸에 기어 올라온 것은 아직도 헤매고 있는 바로 이런 놈들이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수의 어린 애벌레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보니, 이것이 모두 같은 어미벌레에서 태어났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뉴포트가 남가뢰의 산란 능력에 관해서는 이미 얘기했지만 보고서에 쓰인 알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파브르 선생님은, '정말 그렇게 많이 낳을까? 잘못 센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했던 것입니다. 녹색의 풀밭은 길 양쪽으로 계속 이어져 있지만 남가뢰의 애벌레들이 많이 있는 곳은 흰줄벌의 집이 있는 벼랑의 앞쪽뿐입니다. 애벌레들이 멀리서부터 이 곳까지 온 것은 아닙니다. 모두들 건강하고, 긴 여행으로 지쳐 있는 것은 한 마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가뢰의 알이 태어난 흙 속의 구멍은 벌의 주택 단지 앞인 이 풀밭 속에 있어야 합니다. 남가뢰라고 해서 아무 곳에나 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틀림없이 흰줄벌의 주택 단지를 알고 있어서 그 근처에 산란하는 것입니다. 흰줄벌의 집 바로 앞의 꽃 위에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수의 남가뢰 애벌레가 있기 때문에, 날아온 벌들은 거의 모두 이 애벌레들에게 달라붙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지요. 선생님이 지켜보는 사이에 국화과의 꽃 위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애벌레 전체로 봤을 때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흰줄벌이 거의 날아오지 않을 듯한 풀 위와 땅 위를 아직도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잡아서 조사해 본 수컷과 암컷 흰줄벌들은 모두 등에 남가뢰의 애벌레를 몇 마리나 매달고 있었습니다. 이 곳을 날아다니고 있는 다른 꽃벌의 일종, 예를 들어 흰줄벌에 기생하는 뿔살이꽃벌의 몸에서도 이 애벌레는 똑같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기생벌들은 흰줄벌의 식량이 저장되어 있는 방에 알을 낳고, 살짝 가로채려고 옆에서 기회를 엿보며 터널을 파고 있는 흰줄벌의 주위를 뱅뱅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려고 쑥부쟁이꽃에 앉았을 때 남가뢰 애벌레들이 재빨리 달라붙은 것입니다. 도둑놈이 도둑놈에게 잡혀 버린 꼴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뿔살이꽃벌의 털에 몰래 숨은 남가뢰 애벌레는 결국은 죽게 됩니다. 왜냐하면 뿔살이꽃벌은 흰줄벌의 작은 방의 흙 뚜껑에 침처럼 강한 산란관을 푹 찔러서 알을 낳기 때문입니다. 알은 그 흙 뚜껑에 완전히 끼여 버린 꼴이 되기 때문에 남가뢰 애벌레는 흰줄벌의 작은 방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가 달라지면 그러나 이 남가뢰 또한 다른 도둑놈에게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가령, 살이 쪄서 자고 있는 애벌레 시절에 다른 강도에게 당해서 산 채로 잡아먹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벌레의 세계에서는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잇달아 노상 강도가 되거나, 그 반대로 먹이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순서대로 잡아먹기나 잡아먹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험악한 싸움은 생물의 세계에서는 피할 수 없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서로 죽고 죽이는 이 싸움을 볼 때마다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각기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용하는 그 방법들을 보고 마음속 깊이 감탄하기도 합니다. 남가뢰의 애벌레는 어떻게 해서든지 흰줄벌의 털에 달라붙지 않으면 안 됩니다. 흰줄벌에게 기생하는 뿔살이꽃벌의 털에 달라붙으면 결국은 흰줄벌의 작은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애벌레는 본능적으로 정해진 상대를 고르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고르는 것일까요? 쑥부쟁이꽃 위에는 때때로 등에와 파리들도 꿀을 빨아먹으러 날아옵니다. 그러면 남가뢰 애벌레는 이런 벌레에도 역시 달라붙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등에와 파리를 포충망으로 잡아서 조사해 보니 대개 남가뢰 애벌레가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보통의 사냥벌들은 가을에 구멍 집을 파지만 곰보나나니만은 봄에 구멍을 파서 거염벌레를 저장합니다. 이 곰보나나니에도 남가뢰의 애벌레가 모여 있습니다. 곰보나나니는 아주 적은 양의 꿀을 빨아먹는데, 남가뢰 애벌레는 이런 벌에도 꼭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썩은 고기에서 애벌레를 키우는 검정파리와 꽃등에, 또는 애벌레를 위해서 거염벌레를 집에 저장해 두는 나나니의 몸에 달라붙어 있어도 흰줄벌의 집 속으로 데려가 줄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파리와 등에에 달라붙은 애벌레는 절망적입니다. 나비와 거미의 몸에 달라붙은 것도 물론 똑같은 운명입니다. 2. 남가뢰의 모험 여행 남가뢰의 제 1 단계 모험 그런데 이 때 쑥부쟁이꽃 위에서 어린 남가뢰 애벌레는 어떤 식으로 흰줄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애벌레들은 10--15 마리, 혹은 훨씬 더 많은 수가 모여 같은 꽃부리 속의 꽃잎 끝에서 머리를 밑으로 하고 반쯤 파묻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애벌레의 몸이 노란 꽃의 색깔과 비슷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습니다. 알락가뢰 애벌레의 경우는 흙의 터널 속에 웅크리고 있었으므로 녹색빛을 띤 검은색을 하고 있었던데 비해 꽃에 숨은 남가뢰는 꽃의 색깔과 같은 황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가뢰의 애벌레는 벌이나 다른 것이 날아와서 꽃이 흔들리면 법석대며 돌아다닐 뿐 그 외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죽은 것처럼 꼼짝 않고 있습니다.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꽃에 숨어 있는 모습은 마치 꿀을 빨아먹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꿀을 찾고 있다면 꽃에서 꽃으로 좀더 돌아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애벌레는 꼼짝 않고 있습니다. 움직일 때라고는 "앗, 벌이 날아왔다!"하고 서둘러서 나와서는, "역시 다르구나."하고선 실망하여 되돌아올 때뿐입니다. 애벌레들이 꼼짝 않고 있을 때에 짚 같은 것으로 꽃을 톡톡 치면 톡 튀어나옵니다. 쑥부쟁이꽃은 가운데에 황색의 작은 꽃이 모여 있고 그 주위를 흰 꽃잎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꽃이 흔들리면 애벌레들은 잠복하고 있던 황색의 작은 꽃에서 주위의 흰 꽃잎 쪽으로 뛰어나갑니다. 꽃잎 끝에 오면 꽁무니 끝의 가시와 그 곳에서 분비되는 순간 접착제 같은 점액으로 몸을 지탱하고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반신을 젖혀서 손발로 허공을 할퀴듯이 휘저으며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듯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으면 애벌레들은 맥이 빠진 듯 꽃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 조금 전처럼 조용히 있습니다. 애벌레들의 손이 닿는 곳에 무엇인가를 놓아두면 재빨리 잡습니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입니다. 그만큼 애벌레들은 빨리 무엇인가를 붙잡아 이 곳에서 다음 장소로 가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털이 없는 매끈한 것에 옮겨 타면 '이것은 아니구나.'라고 하듯이 황급히 본래의 꽃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한 번 짚을 잡을 애벌레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서 다시 한 번 짚을 내밀어 보면 두 번 다시 속지 않습니다. 작은 곤충에게도 사물을 기억하는 힘, 즉 학습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번에는 짚 대신에 털투성이의 벌과 촉감이 같은 것을 내밀어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옷에서 잘라낸 나사(두꺼운 바탕에 보푸라기를 일게 한 모직물)와 작은 벨벳 조각과 목화, 그리고 떡쑥입니다. 이런 것들을 내놓았더니 애벌레들은 쉽사리 달라붙습니다. 그렇지만 벌의 몸과 달라서 불안한 듯합니다. '아, 이것이 아니구나, 아니야.'라고 하듯 또다시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남가뢰의 애벌레들이 떡쑥 위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떡쑥은 머리 부분에 목화와 같은 하얀 솜털이 있어서 벌의 몸과 비슷하지만 그래도 역시 아닙니다. 만약 이런 것들에 달라붙은 채로 애벌레들이 안심해 버린다면 결국은 줄기와 잎에 붙어 있는 식물의 솜털 속에서 그대로 죽게 되겠지요. 털이 나 있는 벌레라면 무조건 파브르 선생님은 다음에는 여러 곤충으로 실험해 보았습니다. 먼저, 흰줄벌의 몸에 이미 달라붙어 있는 남가뢰의 애벌레를 떼어 내고서 벌의 날개를 꽃에 대어 봅니다. 그러자 아주 살짝 댄 것만으로도 벌써 남가뢰의 애벌레가 털에 매달려 벌의 몸에 숨어들어 갑니다. 애벌레들은 벌의 어깨와 날개 부위에 재빨리 숨어들어 꼼짝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벌이 집 안까지 데려다 주겠지요. 남가뢰 애벌레들의 대모험의 제 1 단계는 이것으로써 끝난 것입니다. 흰줄벌 다음으로, 같은 장소에서 꽃에 찾아드는 다른 벌레를 포충망으로 잡아 실험을 계속해 보았습니다. 꽃등에, 검정파리, 꿀벌, 그리고 작은 나비 등입니다. 그랬더니 남가뢰는 어느 것에든 똑같이 쉽게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달라붙게 되면 꽃에는 절대로 되돌아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갑충류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실험을 할 수 없었지만, 뉴포트는 남가뢰의 애벌레를 병 속에서 관찰한 결과 애벌레들이 털이 난 갑충의 몸에도 달라붙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훨씬 뒤에 가서는 남가뢰의 애벌레가 금색꽃무지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곤충들을 시험해 본 후 이번에는 커다란 거미를 잡아서 꽃 위에 놓아 보았습니다. 그러자 남가뢰 애벌레들은 주저 없이 거미에 옮겨 타고는 다리의 마디까지 더듬어 올라가서 꼼짝 않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남가뢰의 애벌레는 털이 나 있고 잡을 수 있는 생명체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좋은 것입니다. 파리든 벌이든 손이 닿는 대로 달라붙습니다. 물론 잡은 상대가 흰줄벌의 집에 데려다 주지 않는 벌레인 경우에 애벌레들은 모두 죽습니다. '과연, 그렇구나.' 선생님은 감탄했습니다. 남가뢰의 암컷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알을 낳는 데에는 역시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틀린 벌레에 달라붙는 것을 보면, 본능적인 행동이 여기에서는 불완전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많은 알을 낳는 것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림 지금까지 보아 온 것처럼 남가뢰의 애벌레는 짚이든 풀이든 무엇이나 내밀기만 하면 즉시 달라붙습니다. 매끈하든 털투성이든 상관없이 달라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달라붙은 뒤엔 상대가 벌레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전혀 다른 행동을 합니다. 벌레의 몸에 달라붙은 경우 그것이 파리, 등에, 나비, 거미 및 갑충이라도 마음에 드는 장소에 자리잡으면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벌레에 달라붙는다는 본능은 이것으로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와 벨벳 같은 천이라든가 목화와 떡쑥의 솜, 그리고 짚과 풀잎 위인 경우 애벌레들은, 서성거리다가 본래의 꽃에 되돌아가려고 초조해합니다. 잘못 달라붙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은 애벌레들은 자신들이 달라붙은 것이 무엇인가를 도대체 어떻게 아는 것일까요? 눈으로 보고 아는 걸까요? 보아서 알 수 있다면 처음부터 이런 잘못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달라붙은 상대의 근육의 진동 등으로 아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남가뢰의 애벌레에게 작년에 채집한 흰줄벌의 표본을 꺼내 주었더니 그것을 잡고서 안심하는 것입니다. 수시렁이에게 갉아먹혀서 속이 텅텅 비어 있는 오래된 흰줄벌표본의 가슴에 놓아두어도 똑같습니다. 시각도 아니고 촉각도 아니라면 남가뢰의 애벌레들은 흰줄벌의 털과 솜을 어떻게 구별하는 것일까요? 냄새로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남가뢰의 애벌레는 냄새에 대한 감각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짚과 풀잎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면서, 벌레라면 죽어서 바싹 마른 것이라도 상관없이 달라붙는 것입니다. 모든 벌레에게서 나는 공통적인 냄새는 어떤 것일까요? 작은 겨자씨만한 남가뢰의 애벌레가 어떻게 그런 뛰어난 감각을 가질 수 있을까? 흰줄벌의 생활을 살펴보러 왔던 선생님은 우연히 흰줄벌의 큰 주택 단지 앞의 풀밭에 엎드렸다가 일제히 알에서 깨어난 남가뢰의 애벌레를 발견한 것입니다. 덕분에 그 생태를 조금 알 수 있었지만 그 날은 그것으로 하루를 다 보냈습니다. 사실은 남가뢰가 벌의 집 속에 어떻게 몰래 들어갈 수 있을까를 자세히 조사해 보고 싶었지만 벌써 아비뇽 행 합승 마차가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이 카르팡트라스의 변두리에서 관찰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내일은 금요일,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이 곳에는 알락가뢰는 얼마든지 있지만 남가뢰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다음에 언제쯤 남가뢰의 애벌레를 오늘처럼 발견할 수 있을까? 이대로 조금만 더 이 곳에 있으면서 좀더 자세히 조사하고 싶다. 이 흰줄벌의 집을 파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텐데^5,5,5^.' 하고 선생님은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지금까지 안 것과 모르는 것 파브르 선생님은 처음에 카르팡트라스의 벼랑에 흰줄벌들이 큰 주택 단지를 짓고 있는 것을 보고 벌의 생활을 조사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벌의 생활을 살펴보는 동안 벌이 저장해 둔 식량과 벌의 애벌레를 노리고 터널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는 기생충들, 즉 흰점재니등에와 알락가뢰를 살펴보는 것이 더 재미있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알락가뢰를 살펴보는 동안에는 다시 남가뢰에게 점점 더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남가뢰의 애벌레는 어딘지 모르게 똑같은 행동을 하는 듯하다^5,5,5^.' 그러나 애벌레끼리는 닮았어도 알락가뢰의 성충과 남가뢰의 성충은 겉모습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이 벌레들을 서로 연관지어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벌의 털 속에 달라붙어 있는 이 황색 벌레는 남가뢰의 애벌레이다'라는 뉴포트의 힌트도 있었고, 1857 년 5월에 벌의 집속에서 남가뢰를 본 적도 있습니다. 1857 년 봄부터 다음해에 이르는 1 년 동안에 파브르 선생님이 남가뢰에 관해서 살펴본 것을 가지고 남가뢰의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남가뢰의 애벌레가 벌에 달라붙은 것은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마찬가지로 식량이 있는 벌집까지 데려다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후로는 남가뢰의 애벌레가 어떻게 벌의 몸에서 떨어져 그 집 속에 들어가는가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5월 23일, 파브르 선생님이 카르팡트라스 벼랑에 갔을 때 흰줄벌을 비롯한 여러 벌을 포충망으로 잡아 그 몸에서 남가뢰의 애벌레를 채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지고 돌아와 천천히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알락가뢰의 애벌레 때의 실험과 똑같이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남가뢰의 작은 애벌레 또한 흰줄벌의 애벌레를 주어도 전혀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꿀이 저장되어 있는 방의 뚜껑을 뚫고 입구 주위에 놓아두어도 결코 꿀 쪽으로 다가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방 입구에서 더 이상 앞으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애벌레를 방의 벽에 붙여 놓거나 직접 꿀 위에 놓아 보았지만 벽에 붙여 놓은 것은 곧 밖으로 나가 버리고, 꿀에 놓아 둔 것은 바둥거리다가 그대로 죽어 버렸습니다. 남가뢰의 애벌레도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꿀에 닿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장인 것입니다. 어떻게 벌집 속에 들어가서 꿀에 빠지지 않은 채 제대로 자라는가 하는 비밀을 선생님은 꼭 밝혀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흰줄벌의 집을 파 보면 때때로 죽어 있는 남가뢰의 애벌레가 발견됩니다. 따라서 남가뢰의 애벌레도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마찬가지로 이 흰줄벌의 집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을 실제로 확인했던 것이 '5월 21일의 대발견'입니다. 1857 년 5월 21일에 선생님은 카르팡트라스 벼랑에 있는 흰줄벌의 큰 주택 단지까지 가서 윙윙거리는 벌떼 속에서 벌집을 파낸 것입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이 큰 주택 단지의 흰줄벌 집 속에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알락가뢰의 생활에 관해서는 곧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남가뢰의 성충은 이 주위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생활의 수수께끼를 풀 자신이 없었습니다. 여섯 시간 동안 열심히 괭이질을 하여 땀투성이가 된 선생님은 마침내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들어 있는 흰줄벌의 집을 여러 개 손에 넣었습니다. 주의해서 벌의 작은 방 문을 뚫어 본 결과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잇달아 발견되었습니다. 벌꿀의 늪 중앙에 떠 있는 흰줄벌의 알 위에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파브르 선생님은 무척 기뻤지만, 특히 어느 하나의 방을 보았을 때는 심장이 터질 것같이 기뻤습니다. 그 방에는 검은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아닌 황색 남가뢰의 애벌레가 있었던 것입니다. 약간 거무스름하고 걸쭉한 꿀 위에 속이 다 빨린 벌의 알이 오그라든 껍질이 되어서 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것은 분명 그 '황색의 이'였습니다. 남가뢰 애벌레의 생활은 바로 여기에서 밝혀졌습니다. 알락가뢰 애벌레의 생활 방식과 같았던 것입니다. 남가뢰의 애벌레는 벌이 알을 낳은 순간 벌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알을 타고, 알과 함께 주르르 떨어져서 꿀의 표면에 떠 있게 됩니다. 스릴 만점의 대모험입니다. 어쨌든 꿀 위에 떨어지면 죽는 것이니까요. 알락가뢰와 남가뢰의 애벌레는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겠지요. 먼저 벌의 알을 먹고, 그 다음에 대변신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남가뢰의 애벌레를 기를 때마다 실패했던 것은 꿀과 애벌레와 번데기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흰줄벌의 알 위에만 올려 놓았더라면 잘 자랐을 것입니다. 카르팡트라스에서 돌아온 파브르 선생님은 알락가뢰와 함께 남가뢰도 집에서 기르려고 했습니다. 알락가뢰는 잘 길렀습니다. 그러나 꽃 위에 그렇게 많던 남가뢰 애벌레는, 많은 흰줄벌의 작은 방에서는 단 두 마리밖에 발견되지 않았고, 게다가 그 두 마리도 곧 죽어 버렸습니다. 다시 찾아보았으나 좀처럼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6월 25일이 되어서야 제2령 애벌레를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이것으로써, 남가뢰와 알락가뢰는 습성이나 변태 방식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선생님은 머지않아 틀림없이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IV. 과변태라는 변신술 꿀의 늪에 떠 있는 보트 지금까지 알락가뢰와 남가뢰 애벌레의 재주를 보았습니다. 애벌레는 지금 흰줄벌의 방 속에 교묘히 숨어 들어가 약삭빠르게 벌의 알 위에 타고 있습니다. 그럼, 이 구명 보트를 다 먹어 치우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도록 합시다. 먼저, 알락가뢰의 애벌레입니다. 1주일 정도면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흰줄벌의 알을 다 먹어 치우고, 둥글게 부풀어 있던 알은 공기 빠진 고무 보트처럼 납작하고 얇은 껍질이 되어 버립니다. 이제는 꿀 위에 떠서 애벌레를 걸쭉한 꿀의 늪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얇은 '뗏목'이 되어 있습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이 뗏목 위에서 최초의 탈피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애벌레 자신이 꿀의 늪에 두둥실 뜰 수 있는 형태로 변신합니다. 그 자체가 보트 모양이 되었으므로 이제 더 이상 빠지지 않습니다. 완전히 능숙하게 떠 있습니다. 멋지게 변신을 한 애벌레는 지금까지 구명 보트 역할을 해 온 흰줄벌 알의 얇은 껍질을 버리고 꿀의 늪 속에 사뿐히 들어가 그대로 두둥실 뜹니다. 이제 더 이상 벌의 알 껍질도, 자신의 껍질도 필요 없습니다. 이 때의 알락가뢰 애벌레는 몸길이가 2 밀리 정도로, 알을 편편하게 만든 모양이며 색은 아주 흰색입니다. 그것이 마치 흰 보트처럼 꿀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것입니다. 이 제2령 애벌레를 돋보기로 보면, 벌컥벌컥 꿀을 넘길 때마다 소화관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공기를 빨아들이는 구멍, 즉 기문은 등쪽에 있기 때문에 호흡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목숨 걸고 살아온 스릴 만점의 생활과는 영 딴판입니다.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야.'하면서 달콤한 꿀을 마음껏 먹으며 사는 것입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35--40일에 걸쳐서 꿀과 꽃가루를 뒤섞은 이 걸쭉한 액체를 먹지만 흰줄벌의 애벌레는 이 식량을 2주 만에 다 먹어 치웁니다. 따라서, 만약 벌의 애벌레가 살아 남아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함께 꿀을 먹었다면 순식간에 알락가뢰 애벌레가 밀려났을 것입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벌의 알을 먼저 먹은 것은 무척 다행한 일입니다. 게다가, 이 벌의 알은 단백질이기 때문에 영양이 풍부합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가 최초로 하는 식사가 벌의 알이라는 것은 여러 모로 참 멋진 일입니다. 제2령 애벌레가 완전히 크는 것은 7월 초순경입니다. 이 때쯤이면 방 속에는 꿀이 거의 없어지고, 살찐 애벌레와 빨간 배설물 덩어리만 구석 쪽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꿀이 없어지면 수평으로 있던 애벌레는 수직으로 서게 됩니다. 2 밀리 정도였던 애벌레가 지금은 벌써 12 밀리 정도나 됩니다. 아직 꿀이 남아 있는 곳을 들여다보면, 애벌레는 걸쭉한 꿀 위에 떠 있습니다. 그 때 꿀 속에 잠겨 있는 배는 아주 불룩해서, 마치 요트 밑에 다는 무게추처럼 애벌레가 전복되지 않도록 해 줍니다. 자칫 잘못하여 뒤집히면 등쪽의 기문에 꿀이 묻어 순식간에 질식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튀어나온 배가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돋보기로 이 애벌레의 눈을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제1령 애벌레 시절에는 뛰어난 순발력으로 옮겨 타야 했기 때문에 눈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네 개씩이나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빛이 전혀 없는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눈 같은 것은 필요 없겠지요. 다리도 겨우 0.5 밀리 정도 튀어나와 있을 뿐입니다. 탈피한 후의 애벌레는 꿀 위에 떠서 식량을 소화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좀더 자세히 보려고 애벌레를 꿀 속에서 끄집어내어 딱딱한 것 위에 놓아 보니 배가 너무 튀어나와서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습니다. 옆으로 눕히면 안정이 됩니다. 애벌레는 꼼짝 않고 몸통만 천천히 구부릴 뿐입니다. 다리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제1령 애벌레 시절에는 그토록 민첩하게 움직였던 작은 애벌레가 지금은 살이 쪄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그런 몸이 되었습니다. 정말 놀랄 만한 변신이지요. 선생님은 몸 속을 조사하기 위해서 해부를 해 보았습니다. 특히 소화관을 주의해서 살펴본 결과 이외로 애벌레의 소화관은 성충의 소화관과 완전히 동일한 구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락가뢰는 애벌레와 성충 모두 똑같이 아주 짧은 식도와 소화를 위한 중장(가운데 창자)이 있습니다. 성충의 중장은 텅텅 비어있지만 애벌레의 경우에는 주황색 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상도 못 할 두 번째의 변신 식량을 깨끗이 다 먹어 치운 가뢰 애벌레는 며칠 동안 꼼짝 않고 조용히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소화관 속의 벌꿀을 완전히 소화시키면서 때때로 빨간 배설물을 배설합니다. 그 후에는 몸을 오므려서 둥글게 됩니다. 그 사이에 몸의 표면에서 벗겨진 얇고 투명한 껍질은 애벌레의 바깥쪽을 감싸는 껍질이 됩니다. 이렇게 얇은 껍질이 생기면 흰 보트 같았던 애벌레가 그 속에서 변신을 시작합니다. 몇 시간 후에 애벌레의 몸은 딱딱하고 튼튼하게 되며 엷은 갈색으로 변합니다.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언뜻 보면 마치 번데기 같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변신으로 몸길이는 12 밀리, 폭은 6 밀리입니다. 알락가뢰 애벌레는 최초의 탈피 때에 놀라운 변신을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기묘한 변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를 한 애벌레는 갑충 가운데는 물론, 모든 곤충을 다 살펴보아도 없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이 애벌레의 상태를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두 번째의 변신 이후 모습을 나타낸 이 제3령 애벌레는 번데기와 매우 닯았다는 뜻에서 '의충'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알락가뢰가 의충의 단계에 이르면 곤충의 변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변합니다. 그렇지만 내부를 해부해 보면 바로 앞 단계인 제2령 애벌레 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경계도 소화관도 같습니다. 단지 지금은 소화관 속이 텅텅 비어 있을 뿐입니다. 나비나 보통 갑충의 경우, 돌아다니던 애벌레에서 움직이지 않는 번데기가 되고, 다시 성충이 됩니다. 번데기는 쉬는 기간인 동시에 대변신의 기간입니다. 알락가뢰도 의충 상태에서 대변신을 하는 것일까요?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껍질에 든 상태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6월에 다음 단계로 변태를 합니다. 그 때까지의 기나긴 나날을 엷은 껍질 속에서 잠자고 있던 의충은 이윽고 변화를 시작합니다. 먼저 등 부분이 부풀고, 몸의 아래쪽은 처음에는 편편하다가 점점 가운데 부분이 움푹 들어갑니다. 6월 말쯤에는 고무 풍선처럼 둥글게 부푼 의충의 각질 피부가 1 년전의 제2령 애벌레의 피부처럼 속에서부터 벗겨집니다. 역행하는 변태 의층에서 벗겨진 껍질은 이전에 제2령 애벌레의 몸에서 벗겨진 엷은 껍질의 안쪽에 생긴 새로운 껍질이 되는데, 몸에 달라붙지 않고 분리되어 있습니다. 즉, 제4령 애벌레는 제2령 애벌레의 엷은 껍질과 의충의 껍질, 이렇게 이중의 보호막으로 싸여 있는 것입니다. 제2장에서 파브르 선생님이 처음 보고 무척 신기해했던, 가뢰의 애벌레가 들어 있는 엷은 황색의 찢어지기 쉬운 껍질을 기억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애벌레가 속에 든 채로 벗겨져서 생긴 이 의충의 껍질이었던 것입니다. 흰줄벌의 집 속에서 처음으로 이 껍질을 덮어쓴 애벌레와 번데기를 발견했을 때 선생님은, 알락가뢰가 다른 벌레 속에 숨어들어 그 벌레의 몸을 먹으면서 그 속에서 변태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변태를 하는 갑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깥쪽의 얇은 껍질은 찢어지기 쉬운 부드러운 상태입니다. 속껍질은 바깥쪽의 껍질과 마찬가지로 얇지만 갈색입니다. 이 이중의 껍질 안쪽에 제4령 애벌레가 어렴풋이 보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껍질을 찢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안에 있는 것은 꿀의 늪에 떠 있는 보트 모양의 제2령 애벌레와 꼭 닮은 새로운 애벌레가 아니겠습니까? 정말 뜻밖의 일입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는 거꾸로 되돌아가서 다시 제2령 애벌레 형태가 된 것입니다. 제4령 애벌레를 제2령 애벌레와 구별하는 미묘한 차이는 몸통이 조금 호리호리하다는 것과 몸 양쪽에 있는 알맹이 같은 것, 그리고 큰턱의 날카로운 끝부분 정도입니다. 좀더 날씬한 것은 뱃속이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 애벌레를 시험 삼아 껍질에서 꺼내도 보통은 누운 채로 전혀 몸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꾸벅꾸벅 졸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가끔 기지개를 켭니다. 그러나 이 애벌레를 껍질째 거꾸로 세우면 천천히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갑니다. 단지, 껍질 속이 좁기 때문에 겨우겨우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뿐입니다. 하지만 제4령 애벌레 상태로 이틀 정도 지나면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처음 얼마간은 몸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껍질에서 꺼내어 침으로 찔러 보아도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유리관에 넣어서 거꾸로 세워 보아도 이제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기는커녕 꼼짝도 않습니다. 그러나 피부는 여전히 부드럽고, 겉보기에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제3령 애벌레, 즉 의충 시기인 약 1 년 동안 전혀 움직이지 않다가 탈피를 하고 이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에 또다시 깊은 잠에 빠지는 것입니다. 제4령 애벌레는 이후에 또다시 탈피하여 진짜 번데기가 되는 순간에 아주 잠시 동안만 잠에서 깨고 곧 다시 번데기 시절의 깊은 잠에 빠집니다. 이 잠은 성충이 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의충을 많이 채집해서 병 속에 넣고 여러 형태로 놓아두었습니다. 이윽고 따뜻한 계절이 왔습니다. 병 속을 보았더니 놀랍게도 껍질 속에 있던 제4령 애벌레와 그로부터 변신한 번데기가 어느 사이에 머리를 위로 한 본래의 자세로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솜씨입니다. '이 껍질 속은 너무 좁아서 움직여서 돌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는데.'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방향을 바꿀 수 있었을까요? 실은 탈피한 직후 아주 잠깐 동안은 몸이 아직 유연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천히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야외에서는 다릅니다. 흰줄벌의 방 속에서는 이런 것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제2령 애벌레가 의충으로 변신할 때에는 언제나 수직에 가까운 방의 형태대로 머리를 위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충을 상자 속과 병 속에 아무렇게나 놓아두면 거꾸로 있던 애벌레와 번데기는 모두들 빙글 돌아서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갑니다. 제4령 애벌레가 탈피하여 된 번데기는 일반적인 갑충의 번데기와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이한 변신에 비하여 번데기는 아주 평범한 것입니다. 색은 황색을 띤 흰색입니다. 속에 들어 있는 성충의 더듬이와 다리의 형태는 밖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다리는 아주 예쁘게 접어서 몸에 딱 붙여 놓았습니다. 한 달 후에 번데기는 껍질을 벗고, 알락가뢰 성충이 됩니다. 껍질을 벗는 것이 이것으로 다섯 번째, 최후의 탈피입니다. 처음에는 하얗던 몸이 점점 황색이 됩니다. 그나 성충이 된 알락가뢰는 아직 2주정도 더 껍질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때때로 흰 배설물을 배설합니다. 그리고 그 배설물을 제4령 애벌레의 껍질 및 번데기의 껍질과 함께 다리로 밀어 차 버립니다. 8월 중순쯤 드디어 성충이 밖으로 나옵니다. 새로운 알락가뢰는 이중의 얇은 껍질을 속에서부터 찢은 다음 흰줄벌의 방 뚜껑을 부수고 터널을 따라서 슬금슬금 기어 나옵니다. 그리하여 겨우 밝은 바깥 세상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성충으로서의 생활을 즐기는가 했더니 그것도 잠시뿐, 수컷은 짝짓기를 하고서 금방 죽어 버립니다. 암컷 또한 2,000개의 알을 낳고는 곧 죽습니다. 남가뢰의 경우 그럼, 이번에는 남가뢰의 생활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1857 년 5월 21일 카르팡트라스의 벼랑에서 알락가뢰가 들어 있는 흰줄벌의 집을 잔뜩 파냈을 때, 우연히 남가뢰의 애벌레가 들어 있는 작은 방을 두 개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방의 하나에는 꿀 위에 흰줄벌의 알이 떠 있고, 그 알 위에 마치 황색 '이' 같은 남가뢰의 제1령 애벌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이 작은 벌레가 어떻게 해서 이 곳에 들어왔는지는 이제 잘 알겠지요? 다른 하나의 방에는 걸쭉한 꿀 위에 몸길이 4 밀리 정도의 희고 작은 애벌레가 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알락가뢰의 제2령 애벌레와 상당히 다른 반면, 풍뎅이 애벌레와는 매우 흡사합니다. 배를 자세히 보면, 맥박이 빠르게 뛰고 있고, 꿀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애벌레가 바로 한 번 탈피한 남가뢰의 제2령 애벌레였던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벌집 속을 자세히 보려고 뚜껑을 완전히 부셔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카르팡트라스에서 아비뇽까지 돌아오는 마차가 덜컹거리자 속에 있던 꿀이 흘러나와 남가뢰 애벌레들이 모두 죽어 버렸습니다. 남가뢰의 애벌레들을 무척 갖고 싶었던 선생님은 6월 25일에 다시 한 번 카르팡트라스의 벼랑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운 좋게 이전보다 훨씬 많이 자란 남가뢰 애벌레 두 마리를 파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마리는 아질 반정도 밖에 꿀을 먹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더 많이 자란 애벌레는 조심스럽게 상자에 넣고, 작은 것은 알코올을 채운 유리관 속에 넣어 표본을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해부해서 뱃속을 조사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기의 애벌레는 눈이 없고 매우 통통하게 살이 쪄 있습니다. 황색이 도는 흰색을 띠며, 돋보기로 보면 가는 배내털이 나 있습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풍뎅이의 애벌레와 많이 닮았습니다. 완전히 성장했을 때의 몸길이는 2.5센티나 됩니다. 알코올에 넣어 둔 것을 해부하여 보았더니, 몸 속에 11개의 신경이 있고 소화관은 성충과 똑같았습니다. 남가뢰의 제2령 애벌레에게는 튼튼한 다리와 큰턱, 강한 발톱이 있어서 흙을 파는 능력을 가진 듯합니다. 하나의 방 속에 저장되어 있는 꿀을 다 먹어 치우면 그 곳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지 않고 더 많은 식량을 찾아서 다른 작은 방으로 옮겨가겠지요. 꿀과 함께 유리관에 넣어 기른 더 자란 애벌레는 7월초에 탈피 했습니다. 알락가뢰의 애벌레와 많이 닮은 제3령 애벌레, 즉 의충이 나왔습니다. 남가뢰의 의충은 움직이지 않으며, 몸은 딱딱하고 옅은 황색입니다. 몸길이는 2센티 정도로, 활처럼 조금 굽고 볼록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남가뢰와 알락가뢰의 애벌레를 비교해 보면, 알락가뢰의 경우 애벌레 시절을 껍질 속에서 보내는 것에 반하여, 남가뢰는 그 껍질의 등에 갈라진 금이 있어 반쯤 벗은 것처럼 보입니다. 8월말이면 의충의 머리와 등에 갈라진 금이 생기고 남가뢰의 번데기가 반쯤 나와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남가뢰의 경우는 제3령의 의층에서 직접 번데기로 탈피하여 나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반쯤 껍질을 벗고 있는 번데기를 전부 벗겨 보면, 의충의 껍질 밑에 또 한 장의 껍질이 있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제4령 애벌레의 껍질입니다. 즉, 의충의 상태를 거친 후에 남가뢰 또한 제2령의 애벌레와 똑같은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번데기가 됩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기를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마리뿐이었지만 이 번데기는 9월말에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남가뢰 성충은 곧바로 벌의 작은 방에서 밖으로 나오는 걸까요? 짝짓기와 산란이 이른봄에 행해지는 것을 보면, 가을과 겨울은 그대로 흰줄벌의 작은 방 속에 틀어박힌 채로 지내겠지요 과변태라는 특별한 변신 지금까지 파브르 선생님이 이야기해 온 이상한 변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보통 곤충들의 애벌레는 번데기가 될 때까지 몇 번이나 탈피를 합니다. 곤충의 껍질은 딱딱하여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늘어나지 않으므로 껍질 속에 든 애벌레가 더 크게 자라기 위해서는 껍질을 벗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곤충의 애벌레는 몇 번 탈피한 후에도 모습이 그렇게 딴판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나비와 나방의 애벌레의 경우, 번데기가 될 때까지 여러 번 탈피하지만 크기만 변할 뿐 모습은 별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락가뢰와 남가뢰 애벌레의 변신술에 파브르 선생님은 더울 놀란 것입니다. 알락가뢰와 남가뢰는 변화하는 생활 환경에 맞추어서 도중에 모습이 변합니다. 양쪽 모두 알에서 막 깨어난 제1령 애벌레는 제일 먼저 흰줄벌의 몸에 달라붙어 그 집 속에서 벌의 알 위에 옮겨 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꿀의 늪에 떨어지면 그대로 빠져 죽습니다. 그 때문에 잘 보이는 눈과 발톱, 가시와 같은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흰줄벌의 알을 다 빨아먹는 애벌레는 꿀 위에 두둥실 떠서 그것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그에 맞추어 몸이 변합니다. 먼저, 날카로운 큰턱은 꿀을 퍼내는 숟가락처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습니다. 발톱이 나 있는 다리나 가시 같은 편리한 도구는 이제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이런 불필요한 것이 있으면 꿀에 달라붙어서 빠져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운동할 필요도 없고 어딘가에 부딪힐 걱정도 없는 캄캄한 방 속에서는 딱딱한 피부와 눈도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때의 애벌레는 전혀 보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달지 부드러운 보트와 같은 몸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변태를 하는 모든 곤충 중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그 다음의 형태, 즉 의충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요? 다 자란 애벌레는 번데기와 비슷한데, 그 후에 또다시 애벌레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이유를 파브르 선생님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알락가뢰와 남가뢰의 애벌레는 번데기가 될 때까지 네 번 탈피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탈피할 때마다 그 모습이 완전히 변합니다. 그러나 몸 속을 해부해 보면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보통 갑충은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상태를 순서대로 거쳐 가는데, 알락가뢰와 남가뢰의 애벌레는 몇 번이나 변태 준비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보통의 곤충처럼 변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이 벌레의 변태 방법이 '보통의 변태 이상의 변태'라는 의미에서 '과변태'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이 과변태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알락가뢰와 남가뢰는 다 자랄 때까지 많은 위험에 부딪히게 됩니다. 남가뢰의 경우, 국화과의 꽃을 타고 올라가지 않으면 흰줄벌에 달라붙을 기회는 없습니다. 꽃 위에서 기다리거나 꽃무지, 나비, 다른 벌 등에 달라붙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흰줄벌에 달라 붙었더라도 그것이 수컷인 경우에는 솜씨 좋게 다시 암컷에게로 옮겨 타야 합니다. 암컷의 몸 위에는 몇 마리의 애벌레들이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벌이 낳은 알 하나에는 단 한 마리의 애벌레만이 옮겨 탈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자칫 실수하여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꿀의 늪에 떨어져 빠져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운 좋게 벌의 집에 들어갈 수 있다 해도, 도중에 다른 기생충들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지요. 따라서 알락가뢰와 남가뢰의 어미는 그렇게 많은 알을 낳는 것입니다. 애벌레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복권을 산 것과 같습니다. 당첨되어서 살아 남는 것은 극히 운이 좋은 놈입니다. 그리고 암컷은 배가 터질 만큼 많은 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몸이 무거워서 빨리 달리거나 날 수도 없습니다. 새나 도마뱀들에게 발견되면 순식간에 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벌레들이 칸타리진이라는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흰줄벌도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알락가뢰와 남가뢰들이 노리고, 뿔살이꽃벌이 노리고, 또 집 입구에는 뿔가위벌과 같은 식객까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팡트라스의 벼랑에는 이 벌이 구름의 소용돌이처럼 떼를 지어 날고 있습니다. 만약 천적들이 없었더라면 그 수가 어마어마했겠지요? 자연계는 정말 놀라울 만큼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알락가뢰, 남가뢰가 속한 가뢰과의 곤충에는 많은 종류가 있고 모습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들도 이런 대변신을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아직 그 생활사가 알려져 있지 않은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V. 큰조롱박먼지벌레의 '죽은 흉내' 1. 왜 '죽은 흉내'를 내는 걸까? 모래 사장의 이상한 발자국 이 장의 주인공인 큰조롱박먼지벌레와 다음 장의 주인공인 금색딱정벌레는 비교적 서로 가까운 사이입니다. 양쪽 모두 육식성 갑충으로서, 다른 곤충이나 지렁이, 달팽이 등을 공격하여 먹어 치우거나 때로는 큰 동물의 시체 등을 먹기도 합니다. 특별한 종류를 제외하고는 날지 못하고 땅 위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먼지벌레라는 좀 불쌍해 보이는 이름을 가진 벌레의 동료들은 해안에 떠밀려 온 해초 밑이나 강가, 호숫가, 자연적으로 먼지나 쓰레기가 쌓인 곳 등지에 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정말 더러운 쓰레기장은 인간이 많이 모여 살게 됨으로써 생겼습니다. 종류에 따라서는 그런 곳을 좋아하는 곤충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금 말한 것 같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이 먼지벌레류는 인간보다 더 일찍부터 이 지구상에 존재했고, 다른 벌레의 시체를 먹거나하여 자연을 깨끗이 하는 데 도움이 되어 왔습니다. 몸길이가 보통 1--2센티 정도로 작기 때문에 이것을 전문적으로 채집하는 곤충 채집가는 적지만, 돋보기로 보면 매우 아름다운 형태를 하고 있고 색도 무지개처럼 빛납니다. 표본을 잘해서 진열해 두면 꽤 보기 좋습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류는 먼지벌레로서는 특별히 크고, 몸은 옻칠을 한 듯 검은 광택이 납니다. 큰턱과 톱날처럼 깔쭉깔쭉한 것이 달려 있는 큰 앞다리가 독특하므로 다른 먼지벌레와는 한눈에 구별됩니다. 몸의 중심 부위가 잘록한 것이 호리병박 같은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대학 졸업 자격 시험에 합격해서 희망에 부풀어 있던 파브르 선생님의 젊은 시절의 일입니다. 열여덟 살에 사범 학교를 졸업한 선생님은 곧 초등 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그 후엔 아비뇽의 중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던 선생님은 몇 년 동안 혼자 열심히 공부하여 툴루즈 시의 대학에서 검정 시험을 쳐 졸업 자격을 땄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 과학, 또는 박물학의 학사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시험에 합격한 선생님은 툴루즈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아비뇽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중해안의 세트라는 시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이 곳에 머무르면서 느긋하게 해안 식물을 연구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몇 년 전 코르시카에 있었을 때 아작시오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특이한 형태의 조가비 등과 함께 많은 해안 식물을 채집하여 연구한 일이 있는 파브르 선생님은 그 이후로 해안 식물에 특별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7월의 어느 아침 일이었습니다. 아직 기온이 낮아 공기가 차가운 세트의 해변에는 겟메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반들반들한 녹색 잎에 큰 장미빛 꽃이 피고, 거의 바닷물 근처까지 덩굴이 뻗어 있습니다. 모래 위에는 보기 드문 작고 둥글넓적한 넓적달팽이가 있습니다. 이런 식물과 작은 동물들을 보면서 주의하여 걷다 보면 마른 모래 사장 위에 이상한 발자국이 두 줄로 계속 이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이런 발자국은 본 적이 없는데.'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물론 해안의 모래 사장에는 물떼새, 큰 갈매기 등 새들의 발자국이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혹은, 소라게가 남긴 발자국도 작은 타이어 자국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이 발견한 발자국은 이런 것들과는 달랐습니다. 선생님은 그 발자국의 주인을 꼭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식물 채집을 중단하고 그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발자국이 끝난 곳을 조금 파자 멋진 갑충이 나왔습니다. '아, 큰조롱박먼지벌레구나.' 선생님은 이 벌레를 도감에서 보아 알고 있었습니다. 곤충 채집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싶어하는 아주 멋있는 종류인 것입니다. 파낸 큰조롱박먼지벌레를 기어가게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모래 위에 조금 전에 발견한 것과 같은 발자국을 남기면서 기어가다가 모래 속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 벌레는 야행성입니다. 밤에 벌레를 사냥하여 먹고, 날이 밝으면 모래 속으로 들어가서 낮 동안 계속 잠을 자는 것입니다. 발자국을 따라가면 몇 마리라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세트의 모래 사장에서 큰조롱박먼지벌레를 파냈을 때, 파브르 선생님은 이 벌레의 이상한 습성을 알아차렸습니다. 즉, 이 벌레를 툭 쳐서 땅 위에 뒤집어 놓으면 마치 죽은 것처럼 꼼짝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의 광경은 선생님의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40 년이 지난 후 여러 벌레들이 하는 '죽은 흉내'에 관해서 연구해 보려고 했을 때, 이 벌레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죽은 흉내'를 내는 벌레 벌레 중에 이렇게 다리를 움츠리고 전혀 움직이지 않는 벌레는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통 '죽은 흉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나뭇잎 위에는 바구미를 비롯한 수많은 벌레가 있는데 그것들은 손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죽은 듯이 툭 떨어져 버립니다. 일단 떨어져 버리면 나무 밑에는 풀이 많이 자라 있어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좀처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겨우 찾아내 보면 그 벌레는 뒤집힌 채 꼼짝 않고 죽은 척 팔다리를 오므리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것을 보면, 이 벌레는 죽은 척하여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생각할 것이며, 곤충학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벌레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새다. 따라서 바구미처럼 나는 동작이 둔한 것은 새의 표적이 되었을 때 죽은 척하여 풀 속으로 툭 떨어져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죽은 흉내'를 내는 것일까요? '죽은 흉내'를 내면 적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미신은 옛날 이야기 속에도 있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합니다. 옛날에, 돈이 궁해진 두 남자가 곰을 잡아 그 가죽을 팔기로 했습니다. 둘은 곰을 잡으러 갔지만 사람보다 훨씬 힘이 센 곰에게 오히려 쫓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그만 넘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죽은 척하고 있었는데, 곰이 살금 살금 다가와서 앞발로 한 번 휙 굴려 보고 킁킁거리며 냄새도 맡았습니다. 그리고는 '벌써 썩어 가는군.'하면서 그냥 가 버렸습니다. 이 옛날 이야기에는 이 곰이 머리가 아주 둔한 곰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사실 곰은 이런 것에 속지 않습니다. 새들조차 벌레가 뚝 떨어져서 죽은 흉내를 내고 있어도 발견한 즉시 먹어 치웁니다. 어린 시절, 작은 새둥지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파브르 선생님은 잡은 새를 새장 속에 넣어 길렀는데, 이 새들에게 죽은 메뚜기와 파리 등을 주면 순식간에 먹어 버렸습니다. 벌레가 움직이지 않아도 신선하기만 하다면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벌레가 아무리 '죽은 흉내'를 내더라도 살아 남을 수는 없습니다. 풀숲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 만약 새들에게 발견되면 그대로 잡아먹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죽은 흉내를 내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얘기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옛날부터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학자가 설명하면 대충 듣고서 옳다고 하는 것을 먼저 의심해 보는 것이 선생님의 습관입니다. 육식성 갑충 '그래, 옛날에 본 그 큰조롱박먼지벌레를 이용해서 이 문제를 연구해 보자.'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다행히도 세트 시에는 친구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세트 해안에 많이 있었으므로 그 친구는 세리냥의 선생님 댁까지 12 마리나 되는 큰조롱박먼지벌레를 산 채로 보내 주었습니다. 이 때 친구는 큰조롱박먼지벌레를 넣은 상자 속에 두점거저리라는 얌전한 벌레도 함께 넣어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몸을 가진 두점거저리는 큰조롱박먼지벌레의 큰턱에 갈기갈기 찢겨 잡아먹혔습니다. 얌전한 두점거저리는 큰조롱박먼지벌레에게 있어서 진수성찬이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살아 있는 큰조롱박먼지벌레를 새삼스레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벌레의 가슴 부분은 옻칠을 하거나, 혹은 흑요석을 닦아서 만든 것처럼 완전히 검은색으로 빛나고, 몸통은 잘록했습니다. 사냥벌도 그렇지만 이렇게 허리가 잘록한 벌레는 몸통을 여러 각도로 돌릴 수 있습니다. 송곳니는 매우 커서 적을 잡아먹을 수 있는 굉장한 무기가 됩니다. 이 큰턱은 프랑스의 곤충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지요. 단, 유럽에 있는 가장 멋진 갑충인 유럽사슴벌레만은 큰턱의 크기에 있어 이 큰조롱박먼지벌레보다도 크고 멋집니다. 그렇지만 사슴의 뿔과 같은 사슴벌레의 큰턱과 송곳니는 단지 장식물에 불과합니다. 수컷끼리 큰턱으로 싸우는 일도 있지만 큰조롱박먼지벌레처럼 육식성이 아니기 때문에, 적을 물어 찢는 데에는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사슴벌레 암컷의 큰턱은 작은 대신 날카로운 송곳니와 같습니다. 암컷은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에 이 송곳니로 구멍을 파고, 그 속에 알을 낳습니다. 수컷의 경우는 상대방을 겁주거나, 나무 위에서 집어 던져 버리는 게 고작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렇게 날카롭지 않은 것입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탁자위에 놓고 살짝 건드려 보면 이 벌레는 도망가기는커녕, '한번 해 볼래?'하듯이 싸울 자세를 취합니다. 그리고는 흙을 파기에 적절한 톱니 같은 앞발과 큰턱을 벌리고 머리를 쳐들어 검게 빛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이것은 조금 전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몸통의 이음매가 가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렇게 가슴을 펴고 큰 머리를 뒤로 젖혀서 상대방을 위협할 때는 확실히 매우 강해 보입니다. 개미귀신과 같은 집 선생님은 이 벌레를 가지고 어떤 실험을 할까 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가, 먼저 두 종류의 용기를 만들었습니다. 각각 모래를 채운 큰 유리병과 화분이었습니다. 유리병의 입구는 검은 종이로 막았습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들을 용기 속에 풀어놓자마자 모두 즉시 구멍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밑으로 숙이고, 큰턱 끝을 마치 삽처럼 사용하여 모래를 파내기 시작합니다. 톱날 같은 앞다리는 파낸 흙을 몸의 뒤쪽으로 계속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주위에는 흙이 높이 쌓이고 금세 깊은 구멍이 파였습니다. 그렇지만 모래가 얕기 때문에 곧 구멍의 밑바닥이 보였습니다. 유리병에 넣은 것은 파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병 밑바닥에 닿아 더 이상 깊게 팔 수 없자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옆으로 파기 시작하여 모두 30센티 정도의 구멍을 팠습니다. 밑바닥이 유리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이 벌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을 때에는 입구를 덮은 검은 종이를 들어 보면 됩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는 파고 싶은 만큼 판 모양입니다. 다시 입구에 올라가서 정성들여 잔손질을 했습니다. 즉, 떨어진 벌레가 미끄러워서 올라갈 수 없을 정도의 비탈을 만드는 것입니다. 명주잠자리의 애벌레인 개미귀신이 만드는 절구형 집과 매우 비슷하지만 훨씬 크고 더 거칠게 되어 있습니다. 절구 밑부분에 큰조롱박먼지벌레가 있습니다. 집게와 같은 큰턱을 반쯤 벌리고 사냥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 볼까?' 파브르 선생님은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때 마침 집 앞의 플라타너스에서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 지독히도 시끄러운 이 매미를 한 마리 잡자.'라고 생각한 파브르 선생님은 포충망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잡은 매미를 유리병 속에 넣고 그 옆에서 소리를 냈더니, 잠자고 있던 큰조롱박먼지벌레가 곧 깨어났습니다. 입 주위의 수염이 흔들거렸습니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자신이 파 놓은 절구형의 비탈을 올라와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매미가 보이자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재빨리 구멍 속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접근해 큰턱으로 매미를 물고는 그대로 구멍 쪽으로 갔습니다. 큰 사냥감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입구는 절구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있습니다. 그 큰 입 속으로 매미가 빨려들 듯이 끌려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안이 너무 좁아 매미는 큰 날개를 버둥거릴수도 없습니다. 매미와 큰조롱박먼지벌레의 싸움은 확실하게 승부가 나 버립니다. 일단 여기에 끌려 들어온 이상 어떤 벌레라도 도저히 살아 나갈 수는 없습니다. 매미는 마침내 큰조롱박먼지벌레의 터널 속으로 완전히 끌려 들어 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움직일 틈조차 없습니다. 구멍 밑바닥에서 큰조롱박먼지벌레는 매미가 죽을 때까지 큰턱으로 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위쪽으로 올라온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입구를 막기 시작했습니다. 안심하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문을 닫는 것입니다. 마침내 밑으로 내려와서는 걸신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매미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먹이를 먹으면 그것이 완전히 소화되어 배가 고파질 때까지는 입구를 열지 않습니다. 40 년 전, 세트 시의 해안에서 큰조롱박먼지벌레를 발견했을 때는 이 벌레가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길러 보면 벌레의 생태를 잘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벌레는 무서운 겉모습에서도 상상할 수 있듯이 살벌한 육식성 벌레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 벌레를 먹이로 주어 보았는데, 금색꽃무지나 청동풍뎅이 같은 딱딱한 날개를 가진 벌레들도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습니다. 딱딱한 갑옷을 입고 있어도 일단 벌레의 큰턱에 물리면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는 벌레들이 지나가다가 굴러 떨어지도록 절구형의 입구를 만들지만 개미귀신처럼 밑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그 부근을 지나가는 벌레가 있으면 직접 뛰어나와 순식간에 잡아 버립니다. 아침이 되면 모래 위에 이 벌레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벌레는 밤 동안에 밖을 돌아다니면서 거저리나 스카라베 사쿠레 같은 것까지 사냥합니다. 사냥물은 먼저 지하에 있는 자기 집 속까지 끌고 들어간 다음 그 곳에서 안심하고 먹습니다. '죽은 흉내'의 명수 파브르 선생님이 큰조롱박먼지벌레를 친구에게 부탁한 것은 '죽은 흉내'를 내는 이 벌레의 습성에 관하여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벌레를 꼼짝못하게 만들기는 정말 간단합니다. 큰턱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등을 잡고 두세 번 탁자 위에 툭 떨어뜨린 뒤 뒤집어 놓았더니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리는 배 앞으로 바싹 잡아당기고 더듬이는 옆쪽으로 하고 있으며 큰턱은 벌려진 채입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는지 시간을 재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같은 날, 같은 기상 조건 하에서, 같은 벌레로 실험해 보아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왜 오랫동안 꼼짝 않고 있거나, 또는 곧 일어나서 움직이는지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조건을 생각해 보았지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결과만을 기록해 두기로 했습니다. (1) 큰조롱박먼지벌레는 때에 따라서 1시간 이상이나 죽은 체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20분 정도다. 종 모양의 유리 뚜껑을 씌워서 성가신 파리가 오지 않도록 해 두면 완전히 죽은 듯한 상태로 있다. 다리 끝도, 더듬이도, 그리고 입 주위의 수염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2) 그러나 얼마 지나면 벌레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리 끝이 먼저 움직이고, 그 다음에 더듬이와 입 주위의 수염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이윽고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벌레는 잘록하게 들어간 몸통 부분에서 몸을 구부리고, 머리와 등을 뒤로 휙 뒤집어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도망치려고 한다. (3) 다시 한 번 탁자 위에 톡 떨어뜨려서 충격을 주었더니, 곧 또다시 조금 전의 죽은 듯한 상태가 된다. (4) 두 번째는 처음보다 더욱 오랫동안 '죽은 흉내'를 낸다.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잇달아 충격을 주면 움직이지 않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진다. 죽은 체하고 있는 시간은 각각 17분, 20분, 25분, 33분과 같은 식으로 길어진다.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실험이 계속됨에 따라 죽은 체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왜일까요? 귀찮은 적을 어떻게 해서든 포기시키기 위해서 '죽은 흉내'를 조금씩 길게 하는 것일까요?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 벌레는 언제까지나 '죽은 흉내'따위는 내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괴롭히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질려 버린 것일까요? 탁자 위에 떨어뜨려서 충격을 주어도 벌레는 금세 일어나 허겁지겁 도망칩니다. 죽은 흉내를 내도 전혀 효과가 없자 더 이상은 헛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실험으로 미루어 이 꾀 많은 벌레는 처음에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적을 속여 보려고 한 것 같습니다. 공격이 계속 반복됨에 따라 벌레는 잠시 동안 '죽은 흉내'작전을 되풀이하며 조금씩 그 시간을 늘려 갑니다. 그렇지만 '이젠 틀렸다, 작전은 실패했다!'라고 생각되면 부리나케 도망가 버리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좀더 실험을 해 봅시다. 정말로 벌레가 적을 속이려 한다면 반대로 이쪽이 속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큰조롱박먼지벌레는 탁자 위에 뒤집혀져 있습니다. 이 벌레는 자신의 몸 밑에 있는 탁자의 판이 딱딱해서 몸을 숨길 만한 구멍 같은 것은 도저히 팔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렇게 튼튼한 큰턱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오랜 시간 동안 '죽은 흉내'를 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먼지벌레가 좋아하는 파기 쉬운 모래 위라면 좀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하여 구멍을 파고, 도망가려 할지도 모른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틀렸습니다. 딱딱한 나무 위나 유리 위, 부드러운 모래 위, 그리고 흙 위에서도 벌레는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즉, 오랫동안 '죽은 흉내'를 내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놓여진 장소의 성질은 관계가 없습니다. '음, 이제 좀 알겠다. 벌레가 인간처럼 적을 속이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역시 틀린 생각이다.' 선생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속이고 속는 벌레와 사람 충격을 준 큰조롱박먼지벌레를 파브르 선생님이 계속 보고 있자, 벌레도 파브르 선생님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더듬이 밑의 그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벌레도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지 모른다.'라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벌레에게 눈꺼풀 같은 것은 없습니다. 반짝반짝하게 닦은 보석 같은 눈은 깨어 있을 때나 잠자고 있을 때나 똑같습니다. 인간이라는 이 큰 동물에게서 벌레는 어떤 인상을 받고 있을까요? 이 작은 벌레는 인간이라고 하는 거대한 괴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벌레에게 있어 인간은 너무나 거대해서 눈에 전부 들어오지도 않는, 즉 없는 것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래 사장에서 사람이 다가가면 벌레는 금방 도망쳐 버립니다. 그것은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라든가, 땅울림이라든가, 혹은 냄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벌레에게 인간은 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옆에서 유심히 보고 있는 한 벌레가 움직일 리 없습니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은 인간이 눈싸움을 그만두고 어디론가 가고 난 후가 되겠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벌레에게 보이지 않도록 조금 떨어져 있기로 했습니다. 속일 필요가 없게 되면 언제까지나 '죽은 흉내'따위는 내지 않겠지요. 선생님은 숨소리를 죽이고 한쪽 구석에 숨어 있었습니다. 벌레는 금방 도망쳐 버렸을까요? 아니,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어딘가에 조용히 숨어 있어도 벌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벌레는 눈이 너무 좋아서 방 구석에 있는 파브르 선생님이 아주 잘 보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냄새로 선생님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한참 동안 그냥 두어 보자.' 그렇게 생각한 선생님은 방에서 나가 있기로 했습니다. 먼저 성가신 파리가 방해하지 않도록 큰조롱박먼지벌레에 유리 뚜껑을 씌워 놓고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창문과 문은 꼭 닫아 두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밖에서 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방안은 완전히 조용합니다. 밖에서 약 30분 남짓 시간을 보낸 후에 벌레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보니, 벌레는 조금 전과 다름없이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큰조롱박먼지벌레를 계속 바꾸어 가면서 여러 번 실험을 반복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이런 죽은 듯한 모습을 하는 것은 적을 속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옆에 적이 없어도 계속 죽은 듯이 있는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벌레의 세계에서 생각해 봐도 이 벌레가 이렇게까지 해서 몸을 보호할 필요는 없습니다. 약한 벌레라면 모르겠지만, 갑옷으로 무장하고 큰턱을 휘둘러 싸움에서는 언제나 승리하는 이 벌레에게는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벌레는 모래 사장의 왕초인 것입니다. 다른 어떤 벌레라도 큰조롱박먼지벌레에게 걸리면 일격에 당해 버립니다. 가장 힘이 센 스카라베 사쿠레나 거저리도 이 벌레를 공격하기는커녕 도리어 먹이가 됩니다. 그렇다면 큰조롱박먼지벌레는 다른 벌레들이 아닌 새들을 겁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먼지벌레는 대개 맛이 쓰기 때문에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는 아닙니다. 게다가 이 벌레는 낮 동안에는 구멍 속에 숨어 있고, 밖으로 나오는 것은 새들이 이미 없어진 밤 동안입니다. 따라서 새의 부리를 겁낼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이 강한 벌레에게 적다운 적은 이 모래 사장에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벌레는 조금만 놀라면 곧 죽은 체할 정도로 겁쟁이인 것입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죽은 흉내'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세트의 모래 사장에는 매끈조롱박먼지벌레라고 하는 종류도 살고 있습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에 비해 훨씬 더 작지만 형태는 아주 비슷합니다. 흑요석으로 만든 것처럼 검은 광택이 나고, 비슷한 큰턱과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적을 덮치는 것도 큰조롱박먼지벌레와 같습니다. 그런데 힘도 약하고, 몸도 훨씬 적은 이 매끈조롱박먼지벌레는 좀처럼 죽은 흉내를 내지 않는 대신 조금만 충격을 줘도 허겁지겁 도망쳐 버립니다. 선생님은 의아했습니다.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금방 죽은 듯이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 시간 가까이 꼼짝 않는 그 크고 강한 벌레에 비해 이 작은 벌레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만약 실제로 죽은 흉내를 내는 것이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작전이라면,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 쪽은 오히려 이 약한 벌레가 아닐까요? 만약 큰조롱박먼지벌레가 충격을 받아 꼼짝 않고 있을 때 적이 덮쳐 오면 어떻게 할까요? 먼저 파리를 봅시다. 날씨가 더워지면 파브르 선생님의 방에는 파리가 많이 들어옵니다. 지금까지는 유리 뚜껑을 덮어 파리들이 큰조롱박먼지벌레에 모여들지 못하게 했지만 이번에는 그 뚜껑을 없애 보았습니다. 파리가 이 벌레를 살짝 건드리기만 했는데도 지금까지 죽은 듯이 있던 큰조롱박먼지벌레의 다리 끝이 간들간들 흔들렸습니다. 마치 약한 전류에라도 닿은 것처럼 떠는 것입니다. 만약 그 파리가 금방 날아가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계속 입 주위에 앉아서 핥거나 하면 팔다리를 더 많이 흔들다가 결국은 벌떡 일어나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합니다. 파리와 같이 나약한 적이 상대라면 속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위험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죽은 흉내'를 그만두어 버린 듯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 선생님은 몸집이 크고 힘도 센 커다란 떡갈나무하늘소를 잡아 왔습니다. 긴 더듬이를 가지고 있는 이 벌레는 초식성이어서 나무를 갉아먹을 뿐이지만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모습의 벌레는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떡갈나무하늘소는 잡목림에 사는 벌레이고 큰조롱박먼지벌레는 모래 사장에 사는 벌레로, 살고 있는 장소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훨씬 거대한 이 곤충을 보았을 때의 공포는 큰조롱박먼지벌레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짚 끝으로 살짝살짝 밀자 떡갈나무하늘소는 뒤뚱뒤뚱 걸어서 뒤집혀 있는 큰조롱박먼지벌레를 밟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큰조롱박먼지벌레는 곧 다리 끝을 떨었습니다. 떡갈나무하늘소가 계속 그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건드리자, '죽은 흉내'를 내고 있던 큰조롱박먼지벌레는 견디다 못해 일어나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파리가 귀찮게 할 때와 같습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자기보다 크고, 본 적도 없는 이 무시무시한 벌레를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지 않았을까요? 이 때야말로 계속 죽은 흉내를 내고 있으면 좋을 듯한데 큰조롱박먼지벌레는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또, 다음과 같은 실험도 해 보았습니다. 벌레가 놓여 있는 탁자 다리를 작은 돌로 가볍게 톡톡 두드려 본 것입니다. 탁자가 흔들릴 만큼 두드린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탁자를 가볍게 칠 때마다 뒤집혀서 꼼짝 않고 있던 벌레는 다리 끝을 살짝살짝 떨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빛의 영향을 조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방안의 어두운 곳에서 실험을 했지만 이번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는 창문 쪽으로 장소를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은 듯이 조용하게 있던 이 벌레는 어떻게 할까요? 선생님은 꼼짝 않고 있는 벌레를 무척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벌떡 일어나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것으로 실험은 충분하겠지요. 파리가 핥았을 때, 하늘소가 건드렸을 때,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을 때, 그리고 눈부신 빛이 내리쬐었을 때, 이 큰조롱박먼지벌레는 벌떡 일어나서 도망쳤습니다.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은 체하고 있었다면, 이 때야말로 꼼짝 않고 '죽은 흉내'를 계속 내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잽싸게 도망쳤습니다. 따라서, 상대를 속이려고 죽은 체하고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정신을 잃은 사람의 얼굴에 물을 끼얹으면 의식이 돌아오는 것처럼 뭔가 조그마한 것을 계기로 의식이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요? 비단벌레는 기절해 있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와 같이 '죽은 흉내'를 내는 벌레를 더 찾아보았습니다. 여러 번의 실험 끝에, 큰비단벌레의 일종으로 흰 반점이 있는 광택비단벌레가 큰조롱박먼지벌레처럼 간단한 충격에 오랫동안 죽은 체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벌레는 살구나무를 좋아하여 종종 그 줄기나 가지에 앉아 있습니다. 이 비단벌레에 충격을 주면 손과 발을 몸에 딱 붙이고 한 시간 이상이나 꼼짝 않고 있습니다. 그럴 때는 더듬이도 오므리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계속 충격을 주었더니 재빨리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벌레가 이렇게 죽은 것처럼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일 듯합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와 광택비단벌레의 실험 결과는 매우 비슷합니다. 단지, 꼼짝 않고 있는 광택비단벌레를 그늘에서 양지로 옮겨 놓았을 때만이 조금 달랐습니다. 따뜻하고 눈부신 햇볕을 몇 초 간 쬐게 하면 이 비단벌레는 곧 딱지날개를 펼쳐서 그것으로 몸을 세워 날아가려고 합니다. 원래 한창 더운 낮 동안 살구나무 위에서 햇볕을 받으며 꼼짝 않고 있는 벌레이기 때문에 빛과 열을 무척 좋아하는 것입니다. 더위를 이렇게 좋아한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은 파브르 선생님은, 이 벌레가 죽은 흉내를 내고 있을 때 차게 해 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물론, 너무 차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얼음처럼 차게 해 버리면, 어떤 벌레든 추위로 인해 움직일 수 없게 되겠지요. 게다가, 파브르 선생님 시대에는 여름에 얼음을 구하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물론, 파리나 마르세유 같은 대도시의 사치스러운 레스토랑에 가면 얼음이나 아이스크림이 있지만 이 곳은 시골입니다. 방투산 정상에라도 올라가지 않는 한 눈과 얼음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극히 간단한 냉각법이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 집의 우물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물물의 온도는 여름의 경우, 연구실의 온도보다 평균 12--13 도 정도 낮습니다. 이 우물물로 천천히 식혀 주면 벌레가 활동력을 잃어버리지는 않겠지요. 두세 번 톡톡 충격을 주어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만들어 놓고서, 뒤집힌 광택비단벌레를 유리병에 넣어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마개로 꽉 막은 뒤 차가운 물이 가득 찬 양동이 안에 넣었습니다. "아빠가 또 실험을 하고 있어."라고 말하며 아들 에밀이 도와 주었습니다. 물이 미지근해지지 않도록 때때로 차가운 물로 갈아 넣어 주었습니다. 이 때 유리병이 흔들려 충격을 받지 않도록 매우 조심했습니다. 이런 상태로 다섯 시간이 지나도록 비단벌레는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물에 잠긴 병 속에서 꼼짝 않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에밀이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실험을 중지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오랫동안 이 벌레는 꼼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벌레가 적을 속이기 위해 죽은 체한다는 생각을 충분히 바꿀 수 있겠지요. 벌레는 정말로 정신을 잃은 것입니다. 실험에 이용된 광택비단벌레는 처음에는 충격을 받아 자고 있는 듯한 상태가 되고, 그 이후로는 주위의 온도가 낮기 때문에 평상시와 달리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큰조롱박먼지벌레를 사용해서 같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광택비단벌레의 경우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의 경우, 움직이지 않는 상태는 아무리 길어도 50분 이상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또, 차게 해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처음부터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즉, 광택비단벌레는 뜨거운 햇볕을 무척 좋아하지만 큰조롱박먼지벌레의 경우는 늘 지하에 있고, 밤이 되어 선선하게 된 후에야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낮은 온도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물물로 차게 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마취제를 맡게 하면 또 다른 실험입니다. 이번에는 황산 에테르라는 마취제를 사용했습니다. 작은 병 속에 이 약을 두세 방울 넣고, 건강한 줄금풍뎅이와 광택비단벌레를 함께 넣어 보았습니다. 둘 다 마취제로 인해서 금방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죽어 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파브르 선생님은 곧 두 마리를 밖으로 꺼내어 뒤집어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밖에 내놓았습니다. 벌레는 충격을 받아서 정신을 잃어버린 때와 똑같은 상태입니다. 광택비단벌레는 손과 발을 몸에 딱 붙이고 있습니다. 금풍뎅이쪽은 다리를 단단히 붙이고서 딱딱해져서 꼼짝도 않고 있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일까요? 살아 있었습니다. 2분 정도 지나자 금풍뎅이가 다리끝을 떨면서 입 주위의 수염을 조금씩 실룩이기 시작했습니다. 더듬이도 천천히 움직이고, 이어서 앞다리를 움직였습니다. 15분 정도 지나자 가운뎃다리와 뒷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충격에 놀라서 죽은 듯이 있던 벌레가 잠에서 깨어날 때와 같은 순서입니다. 광택비단벌레는 언제까지나 꼼짝 않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파브르 선생님도 '죽어 버렸구나.'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밤 동안에 마취에서 깨어난 벌레는 다음날에는 평상시처럼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에테르를 사용했을 때에는 유심히 보고 있다가 벌레가 움직이지 않게 되자 재빨리 밖으로 꺼냈기 때문에 마취제로 인해서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약은 줄금풍뎅이보다 광택비단벌레에게 훨씬 강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비단벌레는 충격과 저온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마취제에도 역시 아주 민감했습니다. 광택비단벌레는 간단한 충격만으로도 한 시간 정도 꼼짝못하게 할 수 있지만 금풍뎅이는 2분 정도만 지나면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죽은 흉내'로 몸을 보호할 수 있다면, 금풍뎅이는 왜 이 광택비단벌레만큼 그 전술을 필요로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 검은 광택비단벌레는 몸집이 크고 등이 매우 딱딱합니다. 표본으로 만들 때 침으로 찌르려고 해도 좀처럼 침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한 벌레입니다. 금풍뎅이가 광택비단벌레보다 '죽은 흉내'에 서투른 이유는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같은 종류의 벌레라도 하나의 충격에 대해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광택비단벌레는 언제까지라도 꼼짝않고 있지만 다른 비단벌레의 경우는 어떨까요? 조사해 보면 종류에 따라서 각양각색입니다. 유럽붉은테비단벌레와 아홉점박이비단벌레로 같은 실험을 해 보니, 유럽붉은테비단벌레는 파브르 선생님이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죽은 듯한 상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벌레는 충격을 주어도 선생님의 손가락과 핀셋에 매달렸습니다. 뒤집어 놓아도 곧 일어났습니다. 아홉점박이비단벌레의 경우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움직이지 않게 되지만 그 시간은 매우 짧아서 4,5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돌 밑에서 때때로 발견되는 둥근모래거저리는 충격을 주면 한 시간 이상이나 '죽은 흉내'를 냅니다. 이것은 큰조롱박먼지벌레의 죽은 체하는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몇 분밖에 지속되지 않습니다. 이 벌레도 역시 거저리의 일종으로, 큰조롱박먼지벌레와 비슷한 벌레이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큰조롱박먼지벌레보다도 이 벌레와 더욱 가까운 종류인 두별거저리는 뒤집어 놓으면 둥근 등을 이용해 바로 일어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아주 작은 갑충을 이용하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엽충, 배설물벌레, 넓적송장벌레, 바구미류, 붉은가슴금풍뎅이, 꽃무지, 무당벌레 등입니다. 이 갑충들은 거의 언제나 몇 분, 혹은 몇초 만에 일어나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다리가 짧고 도망가는 것이 늦은 갑충이기 때문에 '죽은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도망치는 것이 빠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흉내'를 내는 것은 몇몇에 불과하고, 버둥거리기만 하는 쪽이 더욱 많은 것입니다. 결국, 어느 벌레가 '죽은 흉내'를 오랫동안 내는지는 거의 예상할 수 없습니다. 여러 벌레들로 실험을 해 보아도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좀더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2. 벌레가 아는 죽음과 잠 동물들도 어린아이들도 '죽음'은 모른다. 어떤 것이라도 자신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흉내를 낼 수는 없습니다. '죽은 흉내'를 내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지요. 큰조롱박먼지벌레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죽은 흉내'를 낸다면, 먼지벌레는 죽음이 어떤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곤충은, 아니 동물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이 무섭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어떨까요? 동물들도 어린아이들처럼 그런 걱정 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목숨에 끝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동물과 '죽음'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선생님 집에서 기르고 있던 새끼고양이가 죽었습니다. 이틀 전부터 이상하게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상자 속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늘 이 새끼고양이와 함께 뛰어놀았던 네 살짜리 막내딸 안나는 차갑고 뻣뻣하며, 살아 있을 때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나는 이 고양이를 오랫동안 이상한 듯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죽은 고양이를 손으로 쓰다듬거나 이름을 불렀습니다. "우유를 주면 먹을까?" 접시에 우유를 따라 주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새끼고양이는 오늘 기운이 없어 보여. 점심밥을 주어도 먹질 않아. 자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 깨어날까?" 안나는 '죽음'을 처음으로 본 것입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무척 큰일이 일어난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새끼고양이의 시체를 안나 몰래 정원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새끼고양이는 이제 식사때에 탁자 밑에 와서 야옹야옹 울 수 없습니다. 안나도 친구였던 고양이가 영원히 깰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졌다는 것을 느낀 듯합니다. 안나는 처음으로 '죽음'이라고 하는 엄숙한 무언가를 본 것입니다. 물론, 아직 확실하게는 아니지만^5,5,5^. 인간조차도 어릴 때에는 잘 모르는 '죽음'을 벌레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 때 갑자기 최면술에 걸린 칠면조가 떠올랐습니다. 칠면조와 최면술 오래 전 로데즈라는 곳에서 잠시 살았을 때, 초등 학생이었던 파브르 선생님은 칠면조로 장난치기를 즐겼습니다. 학교가 쉬는 목요일이면 파브르 선생님과 친구들은 재빨리 라틴어 숙제와 그리스어 단어 외우기를 끝마치고 마을 어귀에 있는 강으로 놀러갔습니다. 아이들은 바지를 무릎 위까지 올리고, 물살이 약한 아베롱 강에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고기라고는 하지만 손가락만한 미꾸라지입니다. 물풀 사이에 숨어 있는 미꾸라지를 작살이 없어 포크로 잡았습니다. 운 좋게 명중한 때에는 모두들 기뻐 날뛰었습니다. 포크에 찔린 미꾸라지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습니다. 매우 야만스러운 놀이지만 스릴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쉽사리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미꾸라지라도 필사적입니다. 포크가 다가오는 것을 흘끗 보고는 꼬리를 흔들어 흙탕물을 일으키고 사라져 버립니다. 미꾸라지잡이에 싫증이 나면 근처의 사과밭에 갔습니다. 나무에 올라가 사과를 따서 주머니 속에 넣고는 도망치는 것입니다. 미꾸라지잡이와 사과 따먹기 외에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근처의 농가에서는 칠면조를 많이 키우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를 노려서 울타리를 넘어 몰래 숨어듭니다. 각자 칠면조를 한 마리씩 잡아서 목을 잡고 머리를 날개 밑에 끼워 넣듯이 합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안아 올려서 두세 번 흔들어 땅 위에 놓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칠면조는 가만히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농가의 마당에 있던 많은 칠면조들은 잇달아 모두 최면술에 걸립니다. 그리고 이 커다란 검은 새는 죽은 듯이 데굴데굴 뒹굴어 버립니다. 잡힌 칠면조가 발버둥치면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 칠면조 주인이 "이놈들!"하면서 채찍을 들고 달려나옵니다. 아이들은 "와!"하고 웃으며 울타리를 넘어 잽싸게 도망칩니다. 지금도 그 때처럼 칠면조를 재울 수 있을까요? 마침 파브르 선생님 집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축하 요리로 쓸 칠면조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칠면조를 잡아서 어릴 때처럼 최면술을 걸어 보았습니다. 먼저, 칠면조의 머리를 잡아 날개 밑에 깊이 끼우고 그대로 2분 정도 천천히 흔들어 주었습니다. 칠면조는 멋지게 최면술에 걸렸습니다. 선생님의 어릴 적 솜씨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땅에 내려놓은 칠면조는 마치 목숨이 없는 깃털 뭉치처럼 보였습니다. 이 칠면조의 가슴이 뛰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들 "앗, 죽었구나."하고 말하겠지요. 마치 경련을 일으켜서 죽은 새와 같습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정말 이 새가 죽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깜짝 놀랐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 칠면조는 깨어났습니다. 머리가 아직 빙글빙글 도는 듯했지만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최면 상태가 계속되는 시간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적당하게 쉬게 하면서 몇 번이나 칠면조에게 최면술을 걸어 보니, 움직이지 않는 상태는 때로는 30분이나 계속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불과 몇 분밖에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곤충을 사용한 실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최면 시간이 다른 이유는 아직 모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여러 새들을 이용하여 실험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집에서는 색시닭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이 새는 닭보다 조금 작고, 아름다운 무늬를 하고 있습니다. 색시닭은 칠면조보다 더욱 깊이 최면에 걸렸습니다. 정말로 죽어 버린 것이 아닐까, 또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몸을 지켜보고 있어도 호흡을 하고 있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걱정이 된 파브르 선생님은 새의 몸을 조금 굴려 보았습니다. 새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굴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겨우 날개 밑에서 목을 빼내어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도망갔습니다. 30분이 넘게 잔 것입니다. 다음은 거위입니다. 선생님의 집에는 거위가 없기 때문에 거위를 기르고 있는 이웃집에 빌리러 갔습니다. 거위는 나팔 같은 목소리로 시끄럽게 꽥꽥거렸습니다. 이 크고 무거운 새에게도 같은 실험을 해 보니, 역시 금방 잠들어 버렸습니다. 칠면조나 색시닭의 경우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암탉과 집오리로도 실험해 보았습니다. 이 새들 또한 얌전하게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최면술은 작은 새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일까요? 비둘기의 경우는 3분 정도밖에 잠을 자 주지 않았습니다. 검은 방울새는 더욱 어려워서, 단 몇 초 간 잠을 잤을 뿐입니다. 따라서, 몸이 작은 새는 움직임이 활발하므로 그만큼 최면술에 걸리기 어렵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곤충도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큰조롱박먼지벌레는 한 시간이나 '죽은 흉내'를 내지만, 그것보다 훨씬 작은 매끈조롱박먼지벌레는 파브르 선생님이 아무리 충격을 주어도 '죽은 흉내'를 내지 않았습니다. 큰 광택비단벌레는 오랫동안 잠을 자지만 작은 유럽붉은테비단벌레는 '죽은 흉내' 따위는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실험으로는 몸집의 크기에 따른 차이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 충격으로 인한 깊은 잠 새의 경우, 지극히 간단한 방법으로 죽은 듯한 상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새들은 정말로 적을 속이기 위해서 '죽은 흉내'를 내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새라도 죽은 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최면에 걸린 것입니다. 사실 이런 방법으로 새를 잠들게 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로데즈 시절, 초등 학생이었던 파브르 선생님과 친구들은 칠면조를 잠들게 하는 요령을 어떻게 익혔을까요? 책에서 읽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어린아이들의 놀이인 것입니다. 큰조롱박먼지벌레에 충격을 주어서 죽은 듯한 상태로 만든 것은 파브르 선생님이 곤충에게 최면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벌레의 상태는 칠면조와 똑같습니다. 벌레도 새도 죽은 듯이 다리를 오므리고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후 양쪽 모두 자극을 받으면 빨리 눈을 뜹니다. 예를 들면 새에게는 소리가 그 자극이 되고, 벌레에게는 빛이 자극이 됩니다. 또한, 새든 벌레든 종류에 따라 잘 걸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데, 웬지 몸이 크면 그만큼 더 걸리기 쉬운 듯합니다. 사람들 중에도 최면에 걸리기 쉬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최면술사는 걸리기 쉬운 사람을 잘 골라 내어 최면을 거는 것입니다. 그런데 벌레는 죽은 듯한 상태에서 원래대로 돌아올 때 몇 가지 특징을 나타냅니다. 그것을 자세히 조사해 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테르의 증기를 빨아들인 벌레는 정말로 잠자고 있습니다. 사람을 속일 생각으로 꼼짝 않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벌레들은 거의 죽음 입구에까지 가 있지만 죽기 전에 유리병에서 꺼내면 천천히 회복되어 눈을 뜹니다. 그 때에는 먼저 다리 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입 주위의 수염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나서 더듬이가 흔들립니다.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손발을 뻗쳐 기지개를 켜거나 눈을 비비듯이, 벌레의 경우도 조금씩 작은 부분부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충격 때문에 잠든 상태에 있던 벌레가 눈을 뜰 때를 살펴봅시다. 에테르로 마취되었을 때와 같은 순서로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역시 다리 끝, 입 주위의 수염, 더듬이 등의 순서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만약, 벌레가 정말로 적을 속이기 위해서 일부러 '죽은 흉내'를 내고 있었다면, 이런 순서로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위험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벌떡 일어나서 재빨리 도망치면 될 테니까요. 곰 앞에서 죽은 체하고 있던 사람은 곰이 가 버리자 천천히 기지개를 켠다든가 눈을 비비지 않고 재빨리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갑니다. 물론, '죽은 흉내'로 곰이 속아넘어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벌레는 역시 일부러 이런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의 머리를 날개 밑에 넣고 흔들면 잠들어 버리듯이, 또는 사람이 몹시 놀랐을 때 손발이 마비되거나 충격으로 실신을 한다거나 심하면 죽는 일도 있듯이 벌레의 경우도 놀라서 손발이 오므라들고 잠시 동안 정신을 잃는 것입니다. 충격이 가벼우면 곤충은 일시적인 경련을 일으켰다가 곧 본래대로 돌아와서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나 그 충격이 강하면 오랫동안 잠든 상태처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흉내'라는 것은 올바른 말이 아닙니다. 원래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벌레가 그것을 흉내낼 리가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전갈의 독 또한, 벌레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 즉 자살하는 일도 없습니다. 자살하는 것은 인간뿐입니다. 매우 감수성이 풍부한 동물이 간혹 슬픔 때문에 여위어서 죽은 일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인을 잃은 개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죽어 버리거나, 멀리서 데려온 고양이가 본래의 집을 그리워하며 죽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기 스스로 몸을 던지거나 목을 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부터 '전갈은 자살을 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전갈은 자신의 주위가 완전히 불로 둘러싸여 있으면 꽁무니 끝의 독침으로 자신의 몸을 찔러서 목숨을 끊음으로써 불에 타는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이 말은 사실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실험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파브르 선생님은 전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프랑스 지방에서 살고 있는 커다란 랑그도크전갈입니다. 화분 속에 모래를 깔고 돌 조각으로 은신처를 만든 뒤에 철망을 덮어씌웠습니다. 전갈은 모두 24 마리 정도였습니다. 이 전갈은 아르마스에서 가까운 황무지에 가면 평평한 돌 밑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먼저, 이 전갈의 독성을 알아야 합니다. 랑그도크전갈에 쏘이면 어떻게 될까요? 파브르 선생님 자신은 전갈에게 쏘인 적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 이 무서운 벌레를 연구실에서 키워도 맨손으로 만지지 않도록 주의만 한다면 쏘이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전갈에게 쏘여서 아주 혼이 난 적이 있는 나무꾼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나무꾼 한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도시락을 먹은 후 잠시 낮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그 때 나도 모르게 '앗,따가워.'하고 소리 치면서 잠이 깼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아픔이란, 마치 달구어진 쇠에 살짝 데인 것 같았어요. 무엇인가 했더니 전갈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큰 놈이었다구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무꾼이 손가락을 펴 보였습니다. 전갈의 크기는 과장 없이 정말 그 정도였습니다. "아프지만 참고 다시 일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순식간에 부풀어올랐지요. 선생님, 이 정도로 부었다구요." 나무꾼이 다리를 들어서 보여 주었습니다. "선생님,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 정도로 부었어요. 집까지는 800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다리를 질질 끌면서 겨우 돌아왔습니다. 허벅지까지 부어오르더니 점점 위로 퍼지더군요. 다음날은 이 곳까지^5,5,5^." 나무꾼은 겨드랑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3일 동안은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다리를 그 위에 쭉 펴고 있었습니다. 마치, 내 다리가 아니라 소시지 같은 것이 하나 달려 있는 것 같았는데 따끔따끔 아프기도 했습니다. 찜질을 했더니 겨우 부은 것이 가라앉았어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혼났습니다요, 선생님." 이 나무꾼은 자기 친구가 당했던 이야기까지 덧붙였습니다. 그 사람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발견하고 부축해서 겨우 집까지 데리고 왔답니다. "정말로 죽은 줄 알았습니다." 나무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허풍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전갈에 쏘이면 누구라도 끔찍한 일을 당합니다. 독성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전갈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쏘면 어떻게 될까요? 정말로 죽는지 어떤지를 실험으로 확인해 봅시다. 전갈은 정말 자살하는 것일까? 사육장에서 큰 전갈 두 마리를 꺼내 화분 속에서 싸우게 했습니다. 도망치려고 하면 짚 끝으로 찔러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자 흥분한 두 마리의 전갈이 마침내 결투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전갈들은 두 개의 집게를 앞으로 내밀고는 서로 상대방을 등 쪽으로 쑥 내밀고 있습니다. 둥글게 말아 올린 꽁무니 끝에는 침이 있고, 독이 든 물방울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떨어질 듯합니다. 양쪽 모두 상대의 허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격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싸움은 끝나 버립니다. 독침이 상대에게 정확하게 찔리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입니다. 몇 분 지나자 찔린 쪽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승리한 전갈은 패한 전갈을 머리부터 천천히 먹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긴 시간을 들여서 먹습니다. 때려눕힌 상대를 전부 씹어 먹는 데는 4,5일 걸립니다. 전갈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전갈도 자신의 독으로 죽는다는 것을 이로써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번에는 전갈이 정말로 자살을 하는지 어떤지 확인해 봅시다. 빨갛게 타오르는 석탄불을 원 모양으로 놓고서, 키우고 있던 전갈 중 가장 큰 놈을 석탄불이 타오르는 원 속에 놓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부채로 바람을 부쳐 보냈습니다. 불이 아주 뜨겁게 활활 타올라서 조금이라도 닿으면 전갈이 '앗, 뜨거워.'하고 외칠 것 같습니다. 이윽고 전갈이 석탄불에 부딪쳤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든 불에 닿습니다. 딱딱한 갑옷을 입고 있는 전갈도 역시 불에는 약한가 봅니다. 이쪽으로 가도 몹시 뜨겁고 저쪽으로 가도 역시 뜨겁고, 이제 제 정신이 아닌 전갈이 독침이 붙어 있는 꽁무니를 움직였습니다. 꼭 칼춤을 추는 듯한 모양입니다. 만약 전갈이 진짜 자살한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찌르겠지요. 그런데 부들부들 몸을 떨던 전갈이 갑자기 똑바로 몸을 쭉 뻗은 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전갈은 죽은 것일까요? 최후로 몸부림을 쳤을 때, 이쪽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독침으로 자신의 몸을 찔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전갈은 자살한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진 파브르 선생님은 전갈을 핀셋으로 집어 석탄불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전갈은 다시 살아나서 원래대로 건강해졌습니다. 다른 전갈로 실험해 보아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불 속에서 잠시 동안 고통스러운 듯이 몸부림치는가 하면, 갑자기 몸을 쭉 펴고 움직이지 않아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합니다. 그리고, 불에서 꺼내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갑자기 기절한 전갈을 보고 자살했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겠지요. 전갈이 다시 살아나는지 어떤지는 틀림없이 확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쉽게 믿지 말고 확인해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5,5,5^.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갈이 자살한다는 이야기가 매우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될 인간의 특권 전갈이 자살하는지를 실험할 때 파브르 선생님은 매우 신중했습니다. 선생님은 인간만이 죽음을 알고 있고, 자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단지 호기심만으로 조사해 본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안다는 것, 그리고 자살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인간의 지적인 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자살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지만 그것은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될 특권인 것입니다. 자연은 날카로운 검이나 독약과 같은 특권을 일부러 인간에게 주어서 인간을 시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한 번밖에 없다. 따라서 소중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은 기쁨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슬픔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우리들에게 주어진 아주 소중한 것이므로 끝까지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없는 사람이 하는 짓이다. 죽음 속으로 도망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인간만이 즐거운 인생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알고 있고, 또한 인간만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죽은 사람을 숭배한다. 인간 이외의 어떤 동물도 이런 숭고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VI. 정원의 살인 청부업자 1. '정원 관리인' 딱정벌레 수집가의 보석 딱정벌레는 모습도 색도 아름다운 갑충입니다. 주로 잡목림에 많이 있는 벌레이지만 논두렁이나 넓은 정원, 공원 등에도 살고 있습니다. 여름에 산길을 가면 땅 위를 허겁지겁 걸어가고 있는 딱정벌레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한자로는 '보행충'이라고 쓰고, 보통 딱정벌레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벌레의 습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딱정벌레가 보고 싶으면 숲 속의 썩은 나무나 돌 밑을 찾아보면 됩니다. 꼼짝 않고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산길 옆으로 굴러 떨어져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많습니다. 딱정벌레는 날지 못합니다. 이렇게 평평하고 미끈하게 내려온 어깨를 한 갑충은 대개 날 수 없습니다. 딱지날개 밑의 날기 위한 날개와 근육이 퇴화한 것입니다. 날 수 없는 벌레의 경우에는 산과 강이 경계가 되어 그것을 넘어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강 하나, 골짜기 하나만 있어도 같은 종류의 색과 형태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즉, 딱정벌레는 좁은 지역 안에서 특별하게 변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훨씬 세밀한 방법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딱정벌레 수집가는 그 세밀한 변이를 나타내는 딱정벌레를 많이 모아서 연구를 하거나 보고 즐깁니다. 각양각색의 딱정벌레가 죽 나열된 모습은 정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전세계의 아름다운 나비와 갑충을 모은 곤충 전람회에 가면, 그 속에 틀림없이 딱정벌레를 채집해 놓은 멋진 표본 상자가 몇 개씩 있을 것입니다. 화려한 색을 한 곤충은 보통 열대 지방에 많지만 딱정벌레류는 북쪽으로 갈수록 아름다운 종류가 많습니다. 딱정벌레는 겨울에 썩은 나무 속과 그늘진 땅속에 숨어 있는 것을 채집합니다. 특히 프랑스의 알프스와 피레네 산의 눈 속에서 파낸 아름다운 딱정벌레의 그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빛나는 모습은 마치 루비 덩어리 같습니다. 검은 종류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녹색과 보라색이 나기도 하고, 등 쪽에 아름다운 조각 모양이 있기도 합니다. 프랑스에는 금색딱정벌레라고 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과 같은 종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깊은 산속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딱정벌레는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독이 있다고 생각되어 사람들이 무서워하기도 했습니다. 제2장에서 이야기한 '화려한 색을 가진 버섯에게는 모두 독이 있다.'라는 생각과 같은 것이겠지요. 확실히 딱정벌레를 잡으면 입과 꽁무니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액을 분비하게 때문에 그렇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독은 없습니다. 딱정벌레의 잔혹한 공격 파브르 선생님은 유리로 된 넓은 사육장 속에 모래를 깔고 금색딱정벌레를 25 마리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아주 어릴 때 처음으로 산호랑나비 등과 함께 잡아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던 벌레입니다. 금색딱정벌레는 아르마스 정원에 얼마든지 있는 것으로, 나무 판자나 화분 조각을 모래 위에 놓아두면 그 밑으로 계속 숨어듭니다. 이 딱정벌레에게 줄 먹이를 찾으러 정원에 나간 선생님은 우연히 소나무행렬송충이를 발견했습니다. 제3권에서 이야기한 바로 그 소나무행렬송충이들입니다. 소나무행렬나방이라는 나방의 애벌레인 이 송충이들은 소나무에서 내려와 흙 속에 숨어 들어가서 번데기가 되기 때문에 지금 적당한 장소를 찾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을 많이 채집해서 딱정벌레의 사육 상자 속에 넣어 주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육장 속에 넣은 150 마리의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은 습성대로 줄을 지어서 앞으로 갑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에게는 긴 털이 나 있습니다. 이것을 맨손으로 건드리면 이 털이 피부 속에 들어가 부러져서 가렵습니다. 딱정벌레는 이런 소나무행렬송충이를 먹을까요? 소나무행렬송충이는 딱정벌레가 숨어 있는 판자 옆까지 기어왔습니다. 자, 지금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판자 조각을 휙 들었습니다. 갑자기 밝아지자 놀란 딱정벌레들은 곧 사냥감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그 중 한 마리가 재빨리 소나무행렬송충이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뒤를 서너 마리가 따라갔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의 행렬에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살인 청부업자인 딱정벌레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소나무행렬송충이 무리를 덮쳤습니다. 그것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행렬에 뛰어든 딱정벌레들은 닥치는 대로 소나무행렬송충이를 잡아서 등이든 배든 가리지 않고 날카로운 큰턱으로 물어뜯어 버렸습니다. 금색딱정벌레에게는 소나무행렬송충이의 털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의 껍질이 찢겨지자 소나무 잎이 들어 있어 녹색이 나는 창자가 튀어나왔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도 몸을 뒤로 젖히거나 굽히면서 대항해 싸우고 있습니다. 다리로 붙들고 늘어지거나, 입에서 점액을 토해 냅니다. 흙 속으로 들어가려고 바둥거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거의 반 정도 흙 속으로 들어갔다 싶으면 어느새 딱정벌레가 덮쳐서 배를 물어 끄집어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어땠을까요? 창자가 찢겨진 벌레들은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겠지요. 소리 없는 벌레의 비통한 울부짖음을 들으려면 마음의 귀를 가져야 합니다. 그 귀를 가지고 있는 파브르 선생님은 이런 잔혹한 일을 시킨 것을 후회했습니다. 딱정벌레는 소나무행렬송충이의 몸을 한입 물어뜯은 뒤 동료가 없는 곳으로 가서 먹습니다. 다 먹고 나면 허겁지겁 되돌아와서 또 다시 한입 물고 갑니다. 그 곳에 소나무행렬송충이들이 있는 한 그 일은 계속됩니다. 5분쯤 지나자 행렬의 송충이들은 모두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습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는 150 마리, 딱정벌레는 25 마리였으니까 딱정벌레 한 마리가 각각 여섯 마리의 사냥감을 해치운 것입니다. 실은 인간도 딱정벌레처럼 자신들이 먹을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딱정벌레를 잔혹하다고 했지만 사람도 딱정벌레도 죽이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먹고 있을 뿐입니다. 현대인들에게도 그 마음속에는 아주 옛날, 이리나 북방 큰곰을 상대로 싸웠던 원시인들과 같은 무시무시함이 숨어 있습니다. 그 야만성이 때때로 고개를 내밀어 신문에 실리는 사건이 되거나, 더 큰 살인 사건, 즉 전쟁이 되기도 합니다. 역사책을 읽으면 전쟁과 살육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불행한 일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져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나라도 많아졌습니다. 인간은 점점 지금보다도 훨씬 더 지혜롭고 품위있게 되어 갈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리스와 로마를 비롯한 고대 사회에는 노^36^예 제도가 있어서 기계와 가축 대신에 인간을 부렸습니다. 여자도 옛날에는 노^36^예와 가축에 가까웠습니다. 성서에도 최초의 남자 아담의 열세 번째 갈비뼈(즉, 없어도 괜찮은 뼈)로 최초의 여자 이브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되어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파브르 선생님 시대의 여성들은 아직 법적으로도 차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여성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여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교단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여자는 아무것도 몰라도 좋다. 남자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때는 더 많았던 것입니다.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화합한다면 결국에는 전쟁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모두가 진정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국경도 없어지고 여권도 필요없게 되겠지요. 그러나 그런 시대가 도대체 언제나 올지 모르겠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야만성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인간이 야수처럼 싸우거나 다투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먹을 것 때문입니다. 음식을 요구하는 위가 존재하는 한, 그렇기 때문에 인간도 딱정벌레도 맹수도 서로 잡아먹으며 끊임없이 투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들끼리 서로를 죽이는 일만은 그만둘 수 없을까요? 소나무행렬송충이의 독도 무섭지 않다. 파브르 선생님은 '정원 관리 벌레'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딱정벌레의 습관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생각이었습니다. 정원의 해충을 퇴치하는 익충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벌레의 평판이 사실인지 아닌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딱정벌레는 무엇을 사냥하는가, 인간의 정원과 화단에서 어떤 해충을 제거해 주는가 등등을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소나무행렬송충이를 준 결과, 이 딱정벌레에 대한 평판은 정확한 것 같았습니다. 4월 말경 파브르 선생님은 정원에서 여러 번 소나무행렬송충이의 행렬을 보았습니다. 그 행렬을 모조리 잡아다가 사육 상자 속에 넣었더니 딱정벌레들은 곧 이들을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한 마리의 송충이에 몇 마리의 딱정벌레가 동시에 달려드는 일도 있습니다. 순식간에 딱정벌레의 송곳니에 배를 물어뜯긴 송충이는 즉사합니다. 갈기갈기 찢겨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송충이의 몸을 딱정벌레들이 물고 가서 먹어 치웁니다. 큰 덩어리를 물고 있는 딱정벌레는 자기 혼자서 다 먹으려고 멀리까지 갑니다. 그것을 발견한 동료들은 곧바로 그 뒤를 따라가서 강도 같은 짓을 합니다. 두세 마리가 먹이를 서로 빼앗으려고 야단입니다. 결국에는 먹이를 가운데 두고 서로 잡아당기며 쟁탈전을 벌입니다. 그렇지만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지면 그것으로 싸움도 끝납니다. 이전에 파브르 선생님은 소나무행렬송충이에 관해서 연구하다가 털벌레의 털에 찔리는 바람에 피부가 짓무르고 무척 가려워서 애를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벌레는 틀림없이 얼얼한 맛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도 금색딱정벌레는 그 소나무행렬송충이를 매우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소나무행렬송충이를 주면 남김없이 몽땅 먹어 치웁니다. 먹이가 된 소나무행렬송충이에게는 뾰족한 털이 많이 나 있지만 딱정벌레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단, 소나무행렬송충이 중에서도 가장 긴 털이 나 있는 불나방의 애벌레만은 식충이인 딱정벌레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상자 속에 이 불나방의 애벌레를 넣어 보면, 며칠이 지나도 딱정벌레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이 털투성이의 속은 맛있는 불나방의 애벌레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애벌레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고 건드려 보기도 하지만 털이 너무 길어서 속을 물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이 애벌레는 상처도 입지 않고 유유히 가 버립니다. 그렇지만 불나방의 애벌레도 언제까지나 안전하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을 때 동료가 도와 주면 딱정벌레는 맹렬한 기세로 공격해 올지도 모릅니다. 네 마리의 딱정벌레가 불나방의 애벌레 주위를 에워싸고 공격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마치 고슴도치를 노리고 있는 하이에나 같습니다. 애벌레는 앞뒤에서 공격을 받아 마침내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 군데라도 일단 상처를 입으면 그 뒤로는 다른 애벌레와 마찬가지로 쉽게 잡아먹히는 것입니다. 딱정벌레는 파브르 선생님이 준 박각시나방의 애벌레와 송충이, 즉 나비나 나방의 애벌레를 즐겨 먹습니다. 그렇지만 먹이가 너무 작거나 크면 먹지 않습니다. 너무 작으면 먹은 것 같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화려한 색에 몸이 큰 유포르비아박각시라는 박각시의 애벌레와, 큰공작산누에나방의 애벌레라면 한입 물려도 상대를 내동댕이칠 수 있습니다. 몇 번이나 달려들어도 계속 내동댕이쳐지고 만 딱정벌레는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도저히 안 되겠다.'하는 듯한 모습으로 가 버렸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넣어 준 유포르비아박각시와 큰공작산누에나방, 이 두 종류의 힘센 나방의 애벌레들은 2주 동안이나 딱정벌레의 사육 상자 속에서 태연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무지개 색 딱지날개 보통 딱정벌레는 땅 위를 돌아다니기만 하고 나무에는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맛있는 먹잇감이라도 풀잎 위 20센티 정도의 높이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만약 이 벌레가 나무나 풀에 잘 올라간다면 양배추를 구멍투성이로 만드는 해충인 배추흰나비의 애벌레도 간단하게 퇴치해 주겠지요. 그러나 딱정벌레 중에는 나무 위에 살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명주딱정벌레의 일종입니다. 이런 종류는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털벌레를 계속 해치웁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놀랄 만한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척 넓은 황무지였던 육군 연습장에서였습니다. 그 곳에는 서양호랑가시나무가 몇천 그루나 심어져 있었지만 그 나무의 잎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진 산누에나방 애벌레가 그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 위에서 저는 한 마리의 오색딱정벌레를 발견했습니다. 분주하게 기어다니고 있는 산누에나방 애벌레를 잡아서 오색딱정벌레에게 내밀자 조금도 겁내지 않고 재빨리 달려들어서 한입에 물어뜯어 버렸습니다. 몇 마리의 산누에나방 애벌레를 주는 대로 다 먹어 치웠습니다. 한편, 연습장을 걷고 있는 동안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무지개 빛깔의 덩어리였습니다. 이 무지개 빛 덩어리 속에는 놀랍게도 오색딱정벌레의 딱지날개가 가득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올빼미가 오색딱정벌레를 배불리 먹은 뒤 소화하기 어려운 딱지날개만을 뭉쳐서 내뱉은 것이었습니다. 올빼미와 매에게는 소화가 잘 안 되는 동물의 뼈와 새의 딱딱한 날개 등을 모아서 이처럼 한꺼번에 내뱉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 덩어리를 영어로는 '펠릿'이라고 합니다. 깨끗한 펠릿이 길가에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하나의 덩어리 속에는 수십 마리분의 오색딱정벌레의 날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올빼미에게 잡아먹힌 오색딱정벌레의 수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 엄청난 수의 딱정벌레가 그보다 더욱 많은 털벌레를 계속 먹고 있는 것입니다. 금색딱정벌레는 털벌레 외에도 민달팽이, 그리고 특히 지렁이를 즐겨 잡아먹습니다. 아무리 커다란 지렁이라도 쉽게 공격합니다. 어느 날 파브르 선생님은 40센티나 되는 손가락 굵기의 지렁이를 딱정벌레들에게 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여섯 마리의 딱정벌레가 한꺼번에 지렁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커다란 지렁이가 몸부림치며 뒹굴면서 대항해도 딱정벌레는 물고 있던 것을 절대로 놓지 않고 이리저리 공격하여 결국 지렁이를 해치웠습니다. 등이 딱딱한 벌레라도 갑충인 꽃무지를 딱정벌레의 사육 상자에 넣어 주었을 때의 일입니다. 2주 정도가 지나도 꽃무지는 무사했습니다. 아무도 꽃무지에게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옆을 지나갈 때 잠깐 쳐다보는 정도입니다. 맛이 없어 보이는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딱딱한 갑옷에 싸여 있기 때문에 공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시험삼아 꽃무지의 딱지날개와 아랫날개를 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금방 살인 청부업자들이 다가와 부드러운 배를 물어뜯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뱃속을 텅텅 비웠습니다. 즉, 이 꽃무지가 진수성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딱딱한 갑옷 때문에 도저히 공격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냥 지나쳐 버린 것입니다. 검고 살찐 털벌레의 일종인 남색잎벌레 애벌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대로라면 딱정벌레가 달려들지 않지만 딱지날개를 떼어 버리면 순식간에 잡아먹힙니다. 털벌레의 애벌레는 몸이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털벌레류에는 야채 등을 마구 먹어 치우는 해충이 많지만 지상에 내려오면 딱정벌레에 의해 퇴치될 것입니다. 갑충의 딱지날개가 몸을 완전히 덮고 있는 경우에는 딱정벌레도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만약 딱지날개가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달려 있으면 이 육식성 벌레는 솜씨 좋게 사냥물의 딱지날개를 들추고 물어뜯습니다. 딱정벌레가 쌍무늬풍뎅이와 떡갈나무하늘소 등의 갑충을 덮칠 때는 뒤에서 끈질기게 공격하여 솜씨 좋게 딱지날개를 벌립니다. 마치 굴의 껍질을 벌려서 알맹이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바로 전날에 깨어난 큰공작산누에나방의 성충을 주어 보았습니다. 이 나방의 애벌레는 딱정벌레를 멀리 내던져 버렸지만 성충도 이에 못지않게 강합니다. 날개를 펼치면 둘레가 14센티나 되는 멋진 거인입니다. 딱정벌레는 조심조심, 이 커다란 사냥감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때때로 가까이 다가가서 배를 물려고 합니다. 그러나 딱정벌레의 큰턱이 조금만 닿아도 커다란 나방은 발버둥치며 날개를 땅에 파닥거려 공격자를 멀리 던져 버립니다. 금색딱정벌레라도 도저히 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방의 날개를 떼어 놨더니 역시 딱정벌레들에게 당해 버렸습니다. 그 강력한 날개가 없으면 몸을 보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달팽이의 거품을 싫어한다. 달팽이라면 어떨까요? '정말 몹시 배가 고파 있다면 어떻게 할까?' 파브르 선생님은 이틀 동안 딱정벌레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다음, 사육장 속에 달팽이 두 마리를 넣어 주었습니다. 달팽이는 껍질 속에 들어가 있고, 그 껍질은 모래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잇달아 다가온 딱정벌레들은 달팽이 옆에서 일단 멈추긴 하지만 달팽이의 껍질을 조금 핥아 보고는, '맛이 없겠다.'하는 얼굴로 가 버렸습니다. 달팽이는 물리면 끈끈한 거품을 뿜어 내는 것입니다. 이 거품에서는 좋지 않은 맛이 나기 때문에 딱정벌레는 먹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몹시 배가 고픈 늑대 같은 벌레의 사육장 속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다음날이 되어도 달팽이는 무사했습니다. 이 거품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 파브르 선생님은 달팽이의 껍질을 깨고 아주 조금 몸을 드러내 보았습니다. 그러자 곧 딱정벌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대여섯 마리의 딱정벌레가 일제히 달팽이의 부드러운 몸에 달려들어서 물고 뜯고 합니다. 거품만 내지 않는다면 달팽이는 맛있는 요리인 것입니다.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놈이 제일 먼저 달팽이를 물어서 고기를 잘게 찢습니다. 다른 놈은 그 동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기다리지 못하고 그 고기를 빼앗으려는 놈도 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달팽이의 속은 텅텅 비어 버렸습니다. 다음날, 딱정벌레들이 열심히 달팽이를 찢어 먹고 있을 때 파브르 선생님은 그것을 꺼내고 상처가 없는 달팽이로 바꾸어 넣어 보았습니다. 껍질 속에 숨어 있는 달팽이입니다. 이 달팽이에 물을 똑똑 떨어뜨려 주면 생기가 돕니다. 달팽이는 껍질에서 몸을 내밀고 딱정벌레들을 태연하게 바라봅니다. 부드러운 몸을 겁 없이 내놓고 있기 때문에 보고 있는 쪽이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배가 고픈 딱정벌레들이 계속 식사를 하고 싶어서 와락 덤벼들 것 같지만 조금도 그런 기색은 없습니다. 이 맛있는 달팽이가 몸을 껍질 밖으로 내밀고 있는데도 딱정벌레는 한 마리도 달려들지 않습니다. 딱정벌레가 달팽이를 물려고 하면 달팽이는 몸을 움츠려서 껍질 속으로 들어가 곧 거품을 냅니다. 딱정벌레들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달팽이는 25 마리의 무서운 늑대(딱정벌레)들 속에서 계속 살고 있었지만 다행히 무사했습니다. 달팽이의 껍질이 깨진 곳 없이 건강하고, 비가 내린 후 껍질 밖에 몸을 내민 모양으로 풀에 달라붙어 있을 때에도 딱정벌레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딱정벌레는 껍질이 없는 달팽이가 아니면 공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원 관리 벌레'라고 불리고 있는 딱정벌레라도 잎을 계속 먹어 치우는 해충인 달팽이 퇴치를 위해서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합니다. 껍질이 깨져 상처를 입은 달팽이라면 순식간에 먹어 치워 버리겠지만^5,5,5^. 쇠고기와 생선을 주면 딱정벌레는 동물성이면 무엇이나 먹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쇠고기를 딱정벌레에게 주어 보았습니다. 이 딱정벌레는 쇠고기라고는 지금까지 먹은 적도 본 적도 없었겠지요. 그러나 딱정벌레는 신나게 달려들어 잘게 찢어 먹어 치웠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도 딱정벌레는 쇠고기뿐만 아니라 포유류의 고기를 먹을 기회는 없었겠지요. 이따금씩 농부의 곡괭이에 맞아 죽은 두더지를 먹는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딱정벌레는 굼벵이나 털벌레 등의 곤충과 마찬가지로 쇠고기도 무척 좋아합니다. 단, 생선은 먹지 않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정어리를 주어 보았지만 모여든 딱정벌레들은 조금 갉아 보고는 두 번 다시 모여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딱정벌레의 사육 상자 속에 물을 가득 담은 그릇을 넣어 두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딱정벌레는 식사를 한 후 물을 마십니다. 특히 달팽이를 먹고 나면 입이 점액으로 끈적끈적하기 때문이겠지요.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은 사람처럼 입을 헹구거나 점액과 모래가 섞여 끈적거리는 다리를 씻습니다. 입도 다리도 깨끗이 씻은 딱정벌레들은 널빤지 조각 밑으로 다시 돌아가 조용히 쉽니다. 2. 서로 잡아먹는 비밀 여우와 두꺼비 나비와 나방의 애벌레는 물론 민달팽이까지 눈에 띄기만 하면 죽여서 먹어 버리는 금색딱정벌레는 정원 관리인이라든가 정원 벌레라는 이름이 적합합니다. 왜냐하면 채소밭이나 꽃밭은 이 곤충에 의해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것이나 먹어 치우는 무서운 이 육식성 곤충에게도 적은 있습니다. 주된 적은 여우와 두꺼비입니다. 여우나 두꺼비는 먹을 것이 떨어지면 할 수 없이 살도 별로 없고 껍질뿐인 데다가 쓴맛까지 나는 딱정벌레를 먹는 것입니다. 여우의 배설물 속에는 토끼의 털이 들어 있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는데, 그 속에 딱정벌레의 날개가 들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즉, 배설물 속에 금색의 금속 파편 같은 것이 들어 있어서 반짝반짝 빛나기도 합니다. 여우에게 있어서 딱정벌레는 먹을 것도 없고 맛도 없지만 배가 고프면 이런 것이라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조금은 보탬이 되겠지요. 이처럼 여우는 비교적 곤충을 잘 먹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솝 우화집'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매미와 여우'라는 이야기입니다. 매미가 높은 나무줄기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밑을 지나가던 여우가 '옳지, 매미를 잡아먹자.'라고 생각하고는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멋진 소리로 우는 동물은 도대체 누구일까? 얼굴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 야, 좀 내려와서 얼굴을 보여 주지 않을래?" 여우의 속셈을 눈치챈 매미는 나뭇잎을 찢어서 떨어뜨렸습니다. 나뭇잎이 팔랑거리며 떨어져 내려오자 여우는 매미라고 생각하여 확 달려들었습니다. 이것을 본 매미는 나무 위에서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여우야. 너의 배설물 속에 우리 동료들의 날개가 빛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 그래서 내려가지 않는 거야." 두꺼비도 딱정벌레를 잡아먹은 증거를 남깁니다. 여름이 되면 파브르 선생님은 아르마스 정원에서 이따금씩 이상한 것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도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것은 새끼손가락 크기의 검은 덩어리로, 마르면 바삭바삭 부서져 버립니다. 부서진 것을 자세히 보면 개미의 머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얼까? 누가 이렇게 수백 마리의 개미 머리를 뭉쳤을까?' 처음에 선생님은 올빼미가 토해 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올빼미는 먹이를 먹은 후 소화가 안 되는 것을 뭉쳐서 토해 냅니다. 그러나 올빼미가 먹기에는 개미는 너무 작습니다. 작은 개미를 일일이 쪼아먹을까요? "그래, 범인은 두꺼비다!" 개미를 이렇게 많이 잡아먹을 만한 것은 이 정원에는 두꺼비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실험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르마스 정원에는 오래 전부터 큰 두꺼비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저녁 무렵 정원을 산책하다가 이 두꺼비를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두꺼비는 선생님을 금빛 눈으로 한동안 바라보다가 무거운 몸을 뒤뚱거리며 어슬렁어슬렁 어디론지 가 버리곤 하였습니다. 가족들은 이 두꺼비를 '철학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럼, 실제로 이 철학자가 개미 머리를 모으는지 실험해 봅시다. 이 두꺼비를 바구니 안에 넣고 한동안 먹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2,3일 뒤, 정원에서 발견된 것과 똑같은 검은 배설물 덩어리를 배설했습니다. 배설물 속에는 개미의 머리가 꽉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꺼비가 개미를 특히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위에 더 좋은 먹이가 있으면 개미보다 그쪽을 택합니다. 두꺼비가 개미를 주로 먹는 이유는 땅 위를 기어가는 다른 곤충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개미가 잡기 쉽기 때문입니다. 두꺼비의 배설물 속에는 때때로 딱정벌레의 날개가 꽉 차 있을 때도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속 파편을 뭉쳐 놓은 것 같은 이 배설물 속에는 개미의 머리도 조금 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두꺼비는 기회만 있으면 딱정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정원의 관리인인 두꺼비는 또 하나의 소중한 관리인인 딱정벌레를 이렇게 잡아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면 익충이 익충을, 아군이 아군을 죽여 버리는 것이 됩니다. 단, '익충'이라든가 '해충'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멋대로 붙인 것입니다. 두꺼비가 딱정벌레를 먹는 것은 자연계의 모든 것이 인간의 형편에 맞게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상처난 놈은 공격당함 정원의 식물을 해치는 민달팽이나 털벌레들을 잡아먹는 관리인인 금색딱정벌레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동료끼리 서로 잡아먹는 버릇입니다. 어느 날 파브르 선생님은 정원 입구에 있는 플라타너스 그늘로 딱정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딱정벌레를 채집하여 기르려고 생각하던 중이라 무척 기뻤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딱정벌레는 딱지날개의 끝부분이 조금 떨어져 나갔습니다. 동료들끼리 싸우기라도 한 것일까요? 선생님은 이 상처난 딱정벌레를 25 마리의 건강한 딱정벌레가 들어 있는 사육 상자 속에 함께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어제 잡아 넣었던 딱정벌레가 죽어 있었습니다. 어젯밤에 다른 동료들이 이 상처난 딱정벌레를 공격하여 떨어져 나간 딱지날개 쪽에서 뱃속을 파먹은 것입니다. 먹는 방법이 무척 능숙하여 딱정벌레의 형태는 그대로였습니다. 다리, 머리, 그리고 가슴 껍질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뱃속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배에 큰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제외하면 그대로 표본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것을 보고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기르고 있는 딱정벌레는 먹이가 항상 풍부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달팽이, 풍뎅이, 사마귀, 지렁이, 굼벵이, 털벌레, 그 외에도 딱정벌레가 좋아하는 먹이를 자주, 그리고 충분히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딱딱한 갑옷이 조금 떨어져 나간 동료를 먹은 것은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상처난 동료를 죽여 편하게 해 주는 것, 또는 날개가 부서진 동료를 잡아먹는 것은 딱정벌레류의 습관일까요? 일반적으로 곤충에게는 동료를 불쌍히 여기는 감정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상처를 입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동료를 보고도 멈춰서기는커녕 도와 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육식성 곤충들끼리는 더욱 살벌합니다. 부근을 지나가던 곤충이 상처를 입은 동료 쪽으로 다가가기에 도와 주거나 위로하러 가겠지 생각했으나 이것은 큰 오해였습니다. 다가간 놈은 상처난 동료를 물어뜯습니다. 그리고 맛이 있으면 전부 먹어 치워 결국 상처의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시켜 줍니다. 딱정벌레들도 평상시에는 평화롭게 생활합니다. 먹이를 먹을 때도 동료들과 싸우는 일은 없습니다. 입으로 찢은 먹이를 가로채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상처난 동료가 있으면 모두 합세하여 잡아먹는 것입니다. 널빤지 조각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도 물론 서로 죽이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사육 상자 속에 든 25 마리의 금색딱정벌레들은 몸을 모래 속에 반쯤 숨기고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널빤지 조각을 치워 버리자 모두 놀라서 이리저리 도망칩니다. 당황하여 서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싸우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는 항상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6월이 되어 날씨가 무더워질 무렵 사육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죽은 딱정벌레가 있었습니다. 몸 형태는 그대로인데 속은 전부 파먹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또 한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는 것 같았지만 뒤집어 보니 역시 파먹혀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딱정벌레는 계속 죽어 갔습니다. 이 딱정벌레들은 나이가 들어 죽은 것일까요? 아니면 힘이 약해진 놈이 잡아먹힌 것일까요? 또는 건강한 딱정벌레가 다른 동료들에게 잡아먹힌 것일까요? 이것을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파먹히는 때는 주로 한밤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살을 알고 싶어하는 선생님은 한낮의 살인 사건을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죽는 것은 수컷뿐 6월 중순경, 파브르 선생님의 눈앞에서 암컷 한 마리가 수컷을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수컷은 몸이 조금 작고 앞다리의 폭이 넓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암컷은 수컷의 꽁무니 부분에 붙어 있었습니다. 건강하게 보이는 수컷은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암컷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가려고 애를 쓸 뿐이었습니다. 앞으로 나가려는 수컷과 끌어당기는 암컷은 마치 줄다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컷의 저항은 단지 이것뿐입니다. 암컷과 수컷이 이렇게 한동안 싸우고 있을 때 이 곳을 지나던 다른 수컷이 '아아, 나도 조금 있으면 저렇게 되겠지.'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필사적으로 힘쓰던 수컷이 마침내 암컷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힘이 빠져 버렸다면 그대로 암컷에게 먹혀 속이 텅 빈 시체가 되었겠지요. 그리고 나서 며칠 후 파브르 선생님은 똑같은 광경을 다시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끝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공격하는 것은 암컷이고 먹이가 되는 쪽은 수컷이었습니다. 수컷은 허둥지둥 도망치려고만 할 뿐 전혀 반격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수컷의 몸에 상처가 생기자, 암컷은 상처 부위에 머리를 처박고 속을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수컷은 다리를 한 번 부르르 떨고는 그대로 죽어 버렸습니다. 사육 상자 안에 죽어 있는 것은 모두 수컷입니다. 하나같이 이렇게 죽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건강한 수컷들도 조만간 이렇게 죽게 되겠지요. 6월 중순경, 사육 상자 속에는 전부 25 마리의 딱정벌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8월 초에는 암컷 다섯 마리만 살아 있었습니다. 나머지 20 마리는 수컷이었고, 속이 텅 빈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전부 암컷이 잡아먹은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암컷에게 잡힌 수컷은 전혀 저항도 하지 않고 앞으로 도망가려고만 할 뿐입니다. 싸움이라면 공격당하는 쪽도 상대에게 덤벼드는 것이 보통인데, 딱정벌레의 수컷은 자신의 꽁무니가 물어뜯겨도 저항하지 않습니다. 반격하거나 암컷을 물어뜯어도 될 텐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서로 죽일까? 수컷 딱정벌레가 암컷에게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물어뜯기는 것을 보니, 제4권에서 이야기한 랑그도크전갈의 수컷과 사마귀 수컷이 생각납니다. 수컷 전갈들은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에게 얌전히 먹혀 버립니다. 그 때 수컷은 암컷을 독침으로 쏘지 않습니다. 콕 쏘면 암컷은 금방 죽어 버릴 텐데도 수컷은 그냥 잡아먹혀 버립니다. 사마귀의 수컷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딱정벌레와 전갈, 그리고 사마귀의 경우에 어쩌면 이것은 짝짓기의 의식일지도 모릅니다. 잡아먹히더라도 수컷이 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일까요? 수컷들은 짝짓기의 역할이 끝났기 때문에 암컷의 먹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들판에서 돌을 뒤집어 보았을 때는 암컷이 수컷을 먹고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육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살찐 암컷은 자신의 뱃속에 든 알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이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수컷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특별한 의미는 없는지도 모릅니다. 암컷은 수컷이든 무엇이든 근처에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먹어 치우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채식주의자인 민충이류 중에도 산란 시기가 가까워지면 아직 건강한 수컷을 잡아 몸에 구멍을 뚫어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먹어 치우는 것이 있습니다. 알을 낳기 위해서는 고기, 즉 단백질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사육 상자 속에 살아 남은 다섯 마리의 암컷 금색딱정벌레는 수컷을 먹어 치운 후엔 먹이를 별로 먹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달팽이 껍질을 반쯤 부수어 먹기 좋게 해 주어도 별로 맛있게 먹지 않았습니다. 널빤지 조각 밑에서 잠만 자고 밖에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알 낳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선생님은 딱정벌레의 알과 애벌레가 보고 싶어서 매일 살펴보았지만 암컷은 알을 낳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0월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자 네 마리의 암컷이 죽어 버렸습니다. 살아 남은 한 마리는 더 이상 시체를 갉아먹지도 않고 흙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11월이 되어 방투산 꼭대기에 눈이 내릴 무렵에도 암컷은 조용히 잠만 자고 있습니다. 암컷은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알을 낳는 것일까요? 딱정벌레에 관한 파브르 선생님의 연구는 여기서 끝나고 있습니다. 금색딱정벌레 이야기는 약 30 년에 걸쳐 써 온 '곤충기'의 마지막 10권째에 나옵니다. 그 때 벌써 80세가 된 파브르 선생님은 몸이 쇠약해져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선생님이 곤충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계속 생각해 온 것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것은 곤충들을 움직이고 있는 자연의 법칙에 관한 것입니다. 곤충들은 살기 위해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먹이를 구합니다. 이 법칙은 물론 인간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경우는 다른 동물보다 더 죄가 깊습니다. 인간은 '먹기 위하여' 다른 동물을 죽이지만 이를 넘어선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더 식량이나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인간들끼리 싸웁니다. 선생님이 미워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든 야만성과 잔인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인간의 문명이 좀더 진보하여 인간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전쟁이 없어지기를 기원했습니다. (곤충이란 무엇인가? 6) 기생하는 곤충 (기생자와 숙주) 이 책에서 본 알락가뢰나 남가뢰, 제니등에는 꼬마꽃벌류에 기생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기생이란 무엇일까, 그 밖에도 기생하는 곤충이 또 있을까 하는 것에 관하여 생각해 봅시다. 곤충의 경우 기생하는 곤충(기생자라고 합니다)은 기생당하는 곤충(숙주라고 합니다)의 몸을 먹어 치워 버립니다. 보통 기생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회충이 기생하는 경우와 떡갈나무나 느티나무에 겨우살이가 붙는 것처럼 기생자가 숙주를 죽이지 않으면서 숙주의 영양분을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곤충의 경우, 이용당한 것은 거의 죽게 됩니다. 제3권에서 본 개미와 진딧물의 경우, 개미가 다른 곤충들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 주는 대신 진딧물은 꽁무니에서 달콤한 감로를 내줍니다. 이것은 양쪽 다 이익이 되기 때문에 공생이라 불리지만 기생의 경우에는 숙주에게 이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큰배추흰나비의 경우, 알에는 알벌이 알을 낳고, 애벌레에는 배추흰나비좀벌과 배추벌레고치벌이 날아와 산란관을 꽂아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 알벌들은 나비의 알이나 애벌레의 몸을 속에서부터 파먹고 자랍니다. 물론 이것도 기생입니다. (좀벌의 역할) 모든 곤충에는 그것에 기생하는 좀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곤충이 백만 종이 있다면 그것과 같은 수, 즉 백만종의 좀벌이 있습니다. 이들은 몸은 작지만 가장 무서운 천적이 되어 어떤 한 종류의 곤충만이 너무 불어나지 않도록 조절해 줍니다. 또, 이 좀벌에 기생하는 좀벌도 있습니다. 이를 2차 기생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귤나무깍지벌레라는 깍지벌레에는 두줄좀벌과 외줄좀벌이라는 좀벌이 기생합니다. 그리고 그 좀벌에는 얼룩광택좀벌류가 2차 기생을 합니다. 이들 좀벌류는 모두 몸길이가 1 밀리 이하로, 날아다닐 때는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벌입니다. 2차 기생의 예를 좀더 들어 보면, 수중다리좀벌이라는 몸길이가 2 밀리에서 7 밀리 정도인 작은 벌의 일종이 있습니다. 수중다리좀벌은 보통 집파리에도 기생하지만 기생파리류에도 기생합니다. 기생파리류는 이름 그대로 기생하는 파리입니다. 누에기생파리라는 파리도 기생파리의 일종인데, 이것은 농부가 열심히 기른 누에에 알을 낳아 죽여 버립니다. 이런 처치 곤란한 파리를 죽이는 것이 수중다리좀벌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좀벌류는 익충입니다. (천적을 이용하다.) 좀벌과 같은 익충을 곤충학자가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멋지게 성공한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귤나무에는 여러 가지 곤충이 붙어 있지만 그 중에 루비깍지벌레라는 깍지벌레의 일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귤 외에도 감나무와 차나무에도 피해를 주는 해충으로 몸 전체가 루비색의 밀납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살충제를 뿌려도 제대로 구제할 수 없었습니다. 나무에 달라붙어 수액을 빨아먹기 때문에 나무가 약해집니다. 게다가 달콤한 배설물을 배설하는데, 끈적끈적한 배설물이 나무에 붙으면 검댕병이라는 병이 발생합니다. 이 루비깍지벌레도 천적인 좀벌을 이용하면 살충제보다 훨씬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루비깍지벌레 방제용 농약을 만들던 농약 회사가 그 약의 제조를 중지하기도 했습니다. (자연계의 균형) 이 좀벌은 1 년에 두 번 세대 교체를 하기 때문에 1 년에 1세대밖에 발생하지 않는 루비깍지벌레보다 번식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좀벌에 기생하는 천적은 없습니다. 곤충 가운데는 2차 기생뿐 아니라 3차, 4차 기생까지 있다고 하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생자는 숙주에 의존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100% 기생하여 숙주를 멸망시키면 안 됩니다. 자연은 이것도 조화 있게 조절하여 어느 한쪽의 수가 너무 늘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벼룩의 서커스 17세기 프랑스에는 벼룩을 길들여 서커스를 시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서커스는 곧 유명해져서 당시의 왕인 루이 14세도 일부러 궁궐로 이 사람을 불러 서커스 구경을 했을 정도입니다. 벼룩 서커스는 17세기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꽤 성행했습니다. 무대는 책상 위의 한 장의 종이입니다. 구경꾼도 책상 주위에 않아 구경합니다. 출연하는 벼룩들의 목은 매우 가는 금침으로 묶여 있습니다. 벼룩들은 평상시에는 작은 나무 상자 속에 깔아 둔 모피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식사는 하루에 두 번, 벼룩을 기르는 주인의 팔뚝에서 피를 빨아먹도록 해 줍니다. 두 마리 벼룩이 무대에 등장하면 자기 체중의 2천 배나 되는 롤러나 대포를 끌어당깁니다. 또, 주인이 "해!"하고 소리를 지르면 벼룩은 안고 있던 공을 찹니다. 그리고 은으로 만든 둘레 5센티 정도의 고리를 벼룩 가까이 가져가 "뛰어!"라고 하면 뿅 하로 뛰어 고리 속을 빠져 나갑니다. "집으로 돌아와!"하면 나무 상자 속으로 다시 뛰어 들어옵니다. 벼룩을 훈련시키는 데는 4개월이나 걸리지만 100여 마리의 벼룩 가운데 스타가 되는 것은 약 20 마리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실 벼룩이나 모기 같은 흡혈 곤충은 탄산가스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동물이 내뱉는 숨 속에는 탄산가스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목표로 모여들어 피를 빠는 것입니다. 그래서 벼룩 주인은 일일이 말을 걸거나 숨을 크게 내뿜어 명령하는 것입니다. 독이 있는 곤충 알락가뢰나 남가뢰에게는 칸타리진이라는 독이 있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습니다. 이 독은 매우 강해서, 이들 곤충 두세 마리를 건조시켜 만든 가루를 사람에게 먹여 독살시킨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독을 가진 곤충은 많이 있습니다. 먼저 벌 종류가 그렇습니다. 꽁무니 끝의 독침에 쏘이면 아플 뿐만 아니라 심하게 부어오릅니다. 말벌에 쏘이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물질은 인간의 몸 속에도 극히 적은 양으로 존재하여 신경 작용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벌의 독이 들어가면 그 물질이 너무 많아져서 인간의 몸 속에 큰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로 화제가 되는 독충으로는 독나방이 있습니다. 나방이나 털벌레를 보면 '쏘인다' '염증이 생긴다'하고 떠드는 사람이 있지만 진짜 독나방은 의외로 적습니다. 보통 정원에서 발견되는 것은 애벌레가 동백나무나 산다화의 잎을 갉아먹는 차독나방 정도겠지요. 이 애벌레의 털에 찔리면 부어오르거나 가렵습니다. 만약 찔렸을 경우에는 긁지 말고 물로 몇 분동안 씻어 내고 항히스타민제라는 약을 바르면 됩니다. 암모니아는 효과가 없습니다. 그 외에 독을 가진 곤충으로는 폭탄먼지벌레처럼 꽁무니에서 독한 안개를 내뿜는 것과 청색개미반날개처럼 불쾌한 곤충이 있습니다. 딱정벌레 찾는 법과 사육법 산비탈이나 응달진 북쪽 비탈에서는 딱정벌레가 집단으로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이런 곳을 노려 채집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입니다. 그 밖에도 봄부터 가을까지 딱정벌레가 활동하는 시기에 함정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종이컵 등을 딱정벌레가 다닐 만한 곳에 묻고 컵바닥에 꿀이나 식초를 조금 넣어 둡니다. 그러면 딱정벌레가 먹이에 끌려 컵 속에 빠집니다. 이 때 나오지 못하는 것을 채집하는 것입니다. 딱정벌레류는 항상 숲 속이나 풀밭을 기어다니다가 만나는 다른 곤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이런 함정에 걸려들기 쉽습니다. 먹이로는 살아 있는 곤충이나 작은 동물, 달팽이, 지렁이 등을 좋아하며, 날고기, 날생선도 먹는 것 같습니다. 흙이 너무 건조해지지 않도록 이따금씩 물을 주고, 서로 잡아먹는 일이 있으니까 하나의 사육 상자에 너무 많이 기르지 않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