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곤충기 5 거위벌레의 요람 저자: 오쿠모토 다이사부로 역자: 이종은 감수: 김학열 출판사: (주)고려원미디어 (책머리에) (이 책에 나오는 곤충들 1.) '곤충기'는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가 약 60 년 간의 연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하여 쓴 책입니다. 원서는 분량이 많고, 모두 10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중에서 특히 재미있고 중요한 부분만을 추려서 고쳐 쓴 것입니다. 총 8권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권은 파브르의 전기입니다. 초여름의 산길을 걷고 있으면 나뭇잎을 돌돌 말아서 만들어 놓은 작은 통 같은 것이 길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두견새의 투서'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만든 것은 바로 거위벌레라는 작은 곤충입니다. 거위벌레는 자기 몸의 몇십 배나 되는 나뭇잎을 거뜬히 말 수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 보면 속에 알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애벌레를 키우기 위한 '요람'인 것입니다. 꿀꿀이바구미는 도요새 주둥이처럼 길고 구부러진 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입은 도대체 어디에 사용할까요? 거위벌레의 긴 목, 꿀꿀이바구미의 긴 입. 곤충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자신의 몸을 발달시켜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세공품을 만들거나 섬세한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긴 더듬이를 가진 하늘소는 애벌레 시기에 나무 속에 파고 들어가 목재를 먹고 자랍니다. 고대 로마의 미식가들은 이 벌레를 요리해 먹었습니다. 매우 고급스런 요리였다고 합니다. 파브르는 책에 나와 있는 그 요리를 실제로 만들어 먹어 보았습니다. 과연 맛은 어떠했을까요? 길가에 죽어 있는 두더지나 쥐는 썩으면 독 성분을 배출합니다. 그런데 송장벌레가 이것을 깨끗이 묻어 버립니다. 덕분에 자연이 깨끗이 유지됩니다. 정작 송장벌레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I. 봄을 단장하는 꽃무지 1. 꽃무지의 사계 라일락꽃 예배당 파브르 선생님은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한 후에야 남프랑스의 오랑주 교외에 있는 세리냥 근처에 넓은 토지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가 1879 년, 선생님이 쉰다섯 살 때의 일입니다. 그 곳은 프로방스어로 '아르마스'라 불리는 곳입니다. 황무지란 뜻의 아르마스는 야채나 포도도 재배할 수 없는 자갈투성이의 메마른 땅으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 땅을 아주 싸게 살수 있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자기 집과 주변의 정원을 일부러 '아르마스'라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건조한 황무지에는 가시투성이의 엉겅퀴나 수레국화 따위가 무성하게 꽃을 피우고 있고, 그 꽃 주위에는 벌이나 곤충들이 가득 모여 붕붕거리며 날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아르마스는 곤충들에게도, 또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천국 같은 정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원래 아르마스에서 자라던 야생 식물을 그대로 둔 채 진기한 식물을 많이 심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랜 '꿈'이었습니다. 이제는 곤충을 대상으로 마음껏 자연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문에서부터 선생님의 숙소이기도 한 연구소 건물까지는 작은 길이 이어져 있고, 그 양쪽에는 라일락이 늘어서 있습니다. 5월이 되어 라일락이 활짝 꽃을 피우면 가지가 무거운 듯이 양쪽으로 휘어져 향기 가득한 아치를 만듭니다. 그 아치 밑은 마치 꽃으로 만들어진 교회 같습니다. 봄날 아침, 반짝이는 햇빛을 받으며 라일락꽃 축제가 열립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축제처럼 창마다 온통 깃발이 펄럭이거나 축포가 펑펑 터지지는 않습니다. 술을 마시고 큰 소란을 피우는 떠들썩한 축제는 더욱 더 아닙니다. 라일락꽃 예배당에서 선생님은 혼자 조용히 기도를 드립니다. 활짝 핀 한 송이의 라일락꽃을 천천히 올려다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바치는 것입니다. 매년 봄이 찾아오고, 매년 같은 꽃이 피고, 매년 같은 곤충들이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관찰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자연을 찬양하는 파브르 선생님의 말은 한마디, '아아!'하는 놀라움의 소리뿐입니다. 25,25, 꽃 축제의 손님들 곤충들이 잇달아 이 꽃 축제에 참가합니다. 꽃의 꿀을 모으기 위하여 먼 곳에서 찾아 온 것입니다. 노랑과 검정 줄무늬의 모피를 입은 듯한 띠호박벌 무리는 몸은 커다랗지만 조용한 벌입니다. 추위에도 강해서, 갑자기 해가 저믈어 다른 곤충들은 모두 서둘러 모습을 감추어도 태연히 꿀을 모으고 있습니다. 꽃 속에 머리를 힘껏 밀어 넣고 꽃가루투성이가 되어 열심히 일합니다. 그래도 기온이 너무 많이 내려가면 기운을 잃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김을 내뿜어 따뜻하게 해 주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일벌레인 꿀벌도 많이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정원에 있는 꿀벌상자에서 기르는 것들입니다. 팔과 다리의 솜털에 꽃가루 덩어리를 붙인 채 꿀을 삼켜서 꿀 주머니에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벌집으로 돌아가 다시 뱉어 냅니다. '어머, 이 꿀벌은 다른 것과 조금 다른데.'하고 생각했다면 벌이 아니라 등에의 일종인 꽃등에입니다. 벌과 달리 등에나 파리류에는 날개가 두 장 밖에 없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위협적인 침은 없어도 벌과 꼭 닮은 모습을 한 덕분에 적으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손으로 잡아도 괜찮습니다. 투명한 날개가 무지개 빛깔로 반짝거려 마치 돌 비늘 조각을 보는 듯 합니다. 사나운 말벌이나 쌍살벌이 다가왔습니다. 이 벌들은 나방의 애벌레를 잡아서 단단한 큰턱으로 잘게 씹어 자신의 애벌레에게 먹이는데, 달콤한 꿀도 좋아합니다. 유난히 큰 벌이 굉장한 속도로 날아와 꽃 앞에서 멋진 공중 정지비행(호버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헬리콥터를 보는 듯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긴 입을 내밀고 꿀을 빨고 있는데, 이것도 벌이 아니고 유리날개 나방류의 일종입니다. 나방이 낮에 비행을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나방에 붙어있는 아름다운 비늘 가루가 날개에는 붙어있지 않아서 투명합니다. 그래서 유리나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하얀 날개에 검은 무늬가 있는 중간 크기의 나비류가 있습니다. 이쪽 저쪽으로 변덕스럽게 날갯짓을 하면서 공중에서 서로 쫒고 쫒기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꽃에 앉아서 꿀을 빨기도 합니다. 약간 큰 나비가 큰배추흰나비, 작은 것이 배추흰나비인데, 두 나비는 모두 양배추 밭에서 자라나 꿀을 빨기 위해 여기까지 날아온 것입니다. 같은 휜나비 중에서도 레몬 빛깔을 띠며, 날개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멧노랑나비입니다. 씩씩하게 날갯짓을 하는 큰 나비는 산호랑나비입니다. 노란 바탕에 검은 줄무늬 모양이 있고, 오렌지와 빨강을 섞은 색깔의 초승달 모양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의 아이들도 이 축제를 보러 왔습니다. 나비들이 꽃보라처럼 춤추는 것을 보고 좋아라며 손으로 잡으려 합니다. 산호랑나비가 바쁘게 날갯짓을 하면서 꽃의 꿀을 빨고 있는 곳에, 가장 어린 안나가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양손으로 휙 잡으려 했으나 산호랑나비는 그만 어느새 날아가 버렸습니다. 호랑나비류는 재빠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잡을 수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안나는 다른 사냥감을 노립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기온이 낮기 때문에 꽃 속에 파묻혀 잠에 빠져 있는 꽃무지를 겨냥했습니다. 꽃무지는 풍뎅이의 일종으로, 초록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곤충입니다. 이것이라면 어린 안나라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습니다. 안나는 대여섯 마리의 꽃무지를 잡아서 꽃잎을 깐 상자 안에 집어 넣었습니다. 안나는 호화로운 꽃침대에 재워 줄 생각이지만 꽃무지에게는 역시 귀찮은 장소일 것입니다. "자, 이제 그만 하렴."하고 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 점심때가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꽃무지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붕붕 날아가려고 하자 아이들은 꽃무지의 다리를 실로 묶어 머리위로 빙글빙글 돌리며 놀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어릴 때는 자주 곤충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것이 지금 곤충 연구를 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떤 곳에 어떤 곤충이 숨어 있는지를 느낌으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어릴 때부터 도시에서 자라나 곤충 따위는 잡은 적도, 죽여 본 적도 없는 사람보다는 곤충의 기분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꽃 축제의 손님들 중에서도 꽃무지는 유난히 돋보입니다. 어깨와 탄탄해 보이는 몸은 마치 청동을 닦아서 만든 것처럼 빛이 납니다. 꽃무지의 딱지날개 양쪽은 약간 잘록하게 들어가 있는데, 그 딱지날개를 접은 채 잘록한 부분의 아래쪽에서 엷은 막과 같은 날개를 살짝 밖으로 내어 재빨리 날아오를 수가 있습니다. 꽃무지도 풍뎅이의 일종이지만, 딱지날개를 펴지 않으면 아랫날개를 펼 수 없는 수염풍뎅이에 비하여 재빨리 날아오르고, 나는 솜씨도 훨씬 능숙합니다. 다음에 꽃무지와 보통 풍뎅이를 잡으면 하늘로 던져 올려 비교해 보기 바랍니다. 꽃무지는 그대로 붕 하고 날아가 버리지만 보통 풍뎅이는 날개를 편 채 아래로 뚝 떨어져 버릴 것입니다. 꽃무지는 수도 많고 얼마든지 잡을 수가 있으므로 연구 재료로도 안성맞춤입니다. 25,25, 꽃무지의 큰 잔치 꽃무지란 이름은 이 곤충이 자주 꽃 속에 파고 들어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장미꽃 속에서 잠자고 있는 초록빛 에메랄드 같은 이 곤충을 본 적이 있습니까? 꽃 속에 파묻혀 꿀과 꽃내음에 취한 듯이 앉아 있는 꽃무지는 꿀이 있는 꽃이면 무엇이든 좋은 모양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꽃의 꿀만이 아닙니다, 잘 익은 과일류도 아주 좋아합니다. 실제로 몸이 크기 때문에 꽃의 꿀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라일락꽃 축제가 열릴 무렵부터 3개월 정도 지난 8월 초에 새로운 꽃무지들이 번데기에서 깨어납니다. 선생님은 성충이 되어 반짝거리는 꽃무지를 15 마리 정도 잡아서 철망을 친 사육상자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이 곤충의 등은 검푸르게 빛나는 청동색이고, 진한 보라색입니다. 매일 주는 먹이는 집에 있는 과일이나 참외류입니다. 성충이 된 꽃무지는 살구, 배, 포도, 수박, 무엇이든 잘 먹습니다. 아니 잘 먹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한 식충이로, 먹을 것에 한 번 달라붙으면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잘 익어서 부드러워진 과일 속에, 처음에는 머리를, 마지막에는 몸통째 집어 넣습니다. 밤낮없이 쉬지않고 먹기만 합니다. 먹을것만 넣어 주면 절대로 날아다닌다거나 사육 철망에 기어올라 도망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잔치가 2주일이나 계속되자 그렇게 열성적이던 파브르 선생님도 지쳐 버렸습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계속 먹어대는 곤충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제 1권에서 말했듯이, 양이나 소의 배설물을 동그랗게 만들어 자신의 집 안에 옮겨 놓고 하루 종일 먹는 똥풍뎅이 스카라베 사쿠레도, 먹는 양으로 비교하면 꽃무지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 긴 잔치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리고 짝짓기나 새끼들 시중은 도대체 언제부터 하게 되는 것인지 선생님은 궁금했습니다. 꽃무지의 식욕은 점점 더해집니다. 약간 무른 서양 배와 너무 익어 잼처럼 된 무화과를 정신없이 먹고 있습니다. 달콤한 것에는 사족을 못 쓰는 모양입니다. 맛있는 과일이 열리는 계절이 되면 꽃무지들은 과일 외의 다른 것은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25,25, 여름잠, 겨울잠 그러는 사이, 여름의 무더위는 점점 더해 갑니다. '햇님은 매일 매일 하늘 아궁이에 땔감을 한 다발씩 더 지핀다.'라는 프로방스 농부들의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더위입니다. 추위나 더위가 너무 기승을 부리면 인간도 원기를 잃어 버리지만 곤충들도 그런 계절에는 어딘가에 꼭 틀어박혀 잠으로 세월을 보냅니다. 대단한 식충이였던 꽃무지도 드디어는 먹는 것을 멈추고 사육상자 바닥의 모래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맛있는 과일을 주어도 이제는 모래 속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날씨가 너무 덥기 때문입니다. 9월이 되어 서늘해지면 꽃무지들은 다시 땅 위로 기어 나옵니다. 멜론 껍질이나 포도를 주면 좋아서 핥지만 먹는 방법은 휠씬 점잖아졌습니다. 적당히 식사를 하고는 그만 먹습니다, 초여름의 그 왕성한 식욕의 주인공과는 딴판입니다. 겨울이 왔습니다. 꽃무지들은 또 모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짝짓기도 새끼들의 시중도 그 해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다음해에 하는 걸까요? 선생님은 꽃무지는 추위에 약한 곤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깊이 5,6센티의 모래속에 들어가서도 겨울을 납니다. 애벌레 시기에는 추위에 더 강한 듯합니다. 몇 년 전에 선생님이 눈 속에서 얼어 있던 애벌레를 조금씩 따듯하게 헤 주자 기운을 차려 움직인 적이 있습니다. 애벌레 시기에 갖추었던 추위에 강한 체질을 성충이 되어서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해를 넘겨 3월 말쯤 날씨가 따뜻해지면 꽃무지들은 흙 속에서 기어나와 철망을 기어오르는 등 활동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꽃무지들에게 무얼 주면 좋을까?" 파브르 선생님이 살던 시대에는 온실에서 키운 과일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지요. '단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겠지.'하고 생각한 끝에 벌꿀을 조금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생각 끝에 선생님은 귀한 대추야자 열매를 주었습니다. 대추야자는 이집트와 아라비아 산 야자나무의 일종으로, 달콤한 열매가 열립니다. 더운 곳에서 나는 이런 진기한 나무 열매를 프랑스 산 꽃무지들은 조상 대대로 먹어 본 적이 없겠지만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꽃무지들은 4월 말에 체리가 나올 때까지 대추야자 열매만 핥고 있었습니다. 5월도 신나게 보낸 꽃무지는 드디어 식욕이 떨어져 갔습니다. 짝짓기를 할 때가 된 모양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알을 낳을 장소를 준비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꽃무지는 부엽토, 즉 썩어서 흙처럼 된 마른 잎 속에 알을 낳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육 상자의 모래 속에 작은 항아리를 묻고, 속에는 부엽토를 넣어 두었습니다. 항아리 입구는 바깥쪽 흙과 거의 비슷한 높이로 해 두었습니다. 하지가 되자, 마침내 꽃무지들이 차례로 항아리 속의 부엽토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조금 지나서 다시 밖으로 기어나온 꽃무지는 1,2주일 정도 지나자 밖을 이리저리 헤매더니 얕은 모래 속에서 죽어버렸습니다. 6월 말경에 항아리 속의 부엽토를 파해쳐 보니, 따뜻한 부엽토 속에는 알과 금방 부화된 애벌레가 많이 있었습니다. 부엽토 속이 따뜻한 것은 박테리아가 마른 잎을 썩여서 분해하려고 한창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낙엽 더미를 휘저으면 김이 날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꽃무지의 일생을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꽃무지는 여름에 번데기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면 바로 짝짓기를 하여 산란하고, 바로 죽어 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꽃무지는 성충이 된 초여름에는 실컷 먹고, 한여름은 잠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일어나 또 조금 먹은 후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자고, 봄이 시작될 무렵에 다시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 때는 그다지 식욕이 없으므로 꽃에 파묻혀 꿀을 빨면서 보내고, 6월이 되면 짝짓기를 하여 알을 낳습니다. 25,25, 꽃무지의 달력 햇볕이 잘 드는 아르마스 정원 구석에는 낙엽 더미가 쌓여 있습니다. 부엽토를 만들어 화분에 넣거나 밭의 비료로 쓰기 위하여 갈퀴로 긁어 모아 놓은 것입니다. 초여름에 이 곳을 파헤쳐 보면 그 속에서 꽃무지 번데기와, 번데기에서 막 우화한 성충 및 작은 애벌레 등이 동시에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 이 애벌레는 어미보다 먼저 태어난 거야?'하고 이것을 처음 보면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성충은 번데기 껍질만 벗었을 뿐, 아직 아름다운 꽃무지의 색이 아닌 하얀 색깔을 하고 있는 반면에 애벌레는 며칠 먼저 알에서 깨어난 만큼 많이 자라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작은 애벌레는 겨울을 난 성충이 6월경에 낳은 알에서 부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약 1 년 정도 걸려서 성충이 되겠지요. 그리고 지금 성충이 된 것은 지난해 6월에 산란된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가 성장한 것입니다. 이 어린 성충은 이제부터 과일을 실컷 먹으며 즐거운 시절을 보낸 후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꽃의 꿀을 빨다가 6월에 알을 낳을 것입니다. 2. 꽃무지의 애벌레 시절 낙엽 속으로 파고드는 어미벌레 6월 말쯤, 파브르 선생님은 아르마스 정원의 소나무 그늘에 쌓아 올린 낙엽 더미를 파헤쳐 보았습니다. 따뜻한 부엽토 속에는 하얗고 통통한 꽃무지 애벌레가 많이 있습니다. 이 속은 전부 먹을 것이고, 1 년 내내 후끈후끈해서 애벌레에게는 낙원과 같은 곳입니다. 1 년 동안 지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잘 살펴보니 네 종류의 꽃무지가 모여 있습니다. 가장 많은 것은 광꽃무지이고 그 나머지는 금색꽃무지, 칙칙한금색의 광가슴검정꽃무지, 그리고 몸이 작은 침꽃무지입니다. 모두 다 너무나 닮았습니다. 아침 9시경부터 파브르 선생님은 이 낙엽 더미 옆에서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겨울을 난 암컷이 낙엽 더미로 알을 낳으러 찾아올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연이어 날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눈을 크게 뜨고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날은 그래도 은근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사방에서 붕붕 날개 소리를 내며 꽃무지가 날아왔습니다.(금색 꽃무지: 프랑스의 대표적인 꽃무지. 5월경에 나타나 장미, 라일락의 꿀을 빤다. 몸길이는 14--21 밀리) 어디에 착륙할 것인가 생각이라도 하듯이 낙엽 더미 위를 빙빙 돌고 있습니다. 보통 갑충은 붕붕거리며 둔탁한 동작으로 날지만 꽃무지의 경우는 매우 자유 자재로 마치 벌처럼 날렵하게 납니다. 이윽고 툭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낙엽 속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낙엽 더미 안쪽의 썩은 잎이 있는 습한 곳까지 파고 들어간 듯합니다. 그 곳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썩은 낙엽을 먹게 됩니다. 선생님은 얼마 동안 이대로 내버려두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꽃무지의 성충은 잘 익은 과일이나 꽃의 꿀밖에 먹지 않습니다. 장미 꽃잎 침대에서 귀족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이 아름다운 갑충이, 산란 시기가 되면 갑자기 이런 축축하고 썩은 낙엽 더미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은 전혀 먹지 않는 이런 이상한 것을 자신의 애벌레가 먹는다는 것을 어미 곤충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애벌레 시기에는 분명 자기 자신도 그것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까요?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고, 그리고 번대기 껍질을 벗고 완전히 변태를 할 때까지 1 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는데도 말입니다. 어미는 애벌레 시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모양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즉, 뱃속의 알이 자라나면 빨리 부엽토를 발견하여 알을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몸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25,25, 가루를 빻는 기계처럼 두 시간 정도 지난 후, 선생님은 낙엽 더미로 다시 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암컷이 파고 들어간 부분의 낙엽을 한 장 한 장 헤치며 알을 찾아보았습니다. 거무스름하게 썩은 낙엽 속에 하얗고 동그란 알들이 뿔뿔이 흩어지듯 낳아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알의 지름은 3 밀리 정도입니다. 12일 정도 지나자 알에서 작은 애벌레가 나왔습니다. 하얀 몸에 털이 듬성듬성 나 있습니다. 꽃무지를 키우는 일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화분에 부엽토를 채우고 애벌레를 넣어 두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너무 마르지 않도록 가끔 분무기로 물을 뿌려 줍니다. 반대로 습기가 너무 많은 장마철에는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신경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이따금 새로운 부엽토와 바꾸어 주기만 하면 다음해에는 틀림없이 성충 꽃무지가 됩니다. 같은 풍뎅이의 일종인 장수하늘소와 사육법이 거의 비슷합니다. 성장은 매우 빨라서 8월 초순이면 이미 애벌레는 중간 정도의 크기가 됩니다. 알에서 여기까지 자라는 데는 4주일이 걸립니다. 애벌레가 먹기 사작할 때부터 계속해서 그 배설물의 양을 재어보니, 자그마치 11,978 세제곱밀리나 되었습니다. 애벌레는 한 달 동안에 태어났을 때의 크기보다 몇천 배나 많은 음식을 먹은 것이 됩니다. 썩은 낙엽은 영양분이 적으므로 아무래도 많이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모양입니다. 꽃무지 애벌레의 몸은 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가루 빻는 기계와 같습니다. 낙엽 더미 속에 파뭍혀 썩어서 물러진 나뭇잎을 1 년 내내 밤낮으로 잘게 씹어서 위와 장으로 소화시키고 있습니다. 수풀 속에 떨어진 잎의 부드러운 부분은 금방 썩어 버리지만, 옆맥 등은 강해서 언제까지나 그대로입니다. 꽃무지 애벌레들은 이런 것들도 튼튼한 큰턱으로 부수어서 척척 삼켜 버립니다. 장 속으로 들어간 것은 소화되어 영양분은 흡수되고 나머지는 배설됩니다. 그 배설물은 흙으로 돌아가 비료가 되고, 이것을 또 식물이 흡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25,25, 애벌레는 등으로 걷는다. 3센티 정도의 크기로 자라난 애벌레를 자세히 관찰해 봅시다. 이 애벌레는 통통한 몸이 어묵을 닮았습니다. 탄력있고 비교적 강한 피부에는 듬성듬성 털이 나 있습니다. 꽁무니 쪽은 속이 까맣게 들여다보이는데, 이것은 소화된 음식물 찌꺼기입니다. 다리는 약해서 아직 걷기에는 이른 듯합니다. 밖에 내놓으면 애벌레는 금방 몸을 바퀴처럼 둥글게 말아 몸을 보호하려 합니다. 억지로 펴려고 할 때 저항하는 힘은 놀랄 정도로 강합니다. 잠시 내버려두면 애벌레는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가 도망가려고 합니다. 그 때, 놀랍게도 애벌레는 뒤로 누워 등으로 기어가기 시작합니다. 꽤 빠른 속도입니다. 아무리 바로 놓아 주어도 역시 빙그르르 몸을 뒤집어 등으로 느릿느릿 기어갑니다. 등의 근육이 매우 강하고 솔처럼 빳빳한 털이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이 애벌레가 기는 모습을 관찰하기에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한 쪽 입구는 크고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유리관 속에 애벌레를 넣어 가게 해 보았습니다. 뒤집혀진 애벌레가 굼실굼실 기어가는 사이 유리관의 두께가 애벌레의 두께와 같은 지점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온몸이 유리관과 닿아 있으므로 이제는 뒤로 젖히든 아래로 향하든 마찬가지입니다. 등근육의 혹이 몸의 뒤쪽에서 앞쪽으로 조금씩 운동이 전해지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 줍니다. 머리를 흔들면서 큰턱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재듯이 나아갑니다. 선생님은 유리관을 천천히 돌려 보았지만 애벌레는 다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등으로 기어가려고만 합니다. 부엽토 안을 기어다닐 때도 이런식일 것입니다. 25,25, 고치 만드는 법 애벌레는 그 상태로 겨울을 나고, 6월경이 되면 슬슬 다음 변태를 준비합니다. 즉, 번데기가 되기 위해 단단한 고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고치는 알과 같은 모양으로, 크기는 체리만합니다. 단, 네 종류의 꽃무지 중 가장 작은 침꽃무지의 고치는 그것보다 조금 작습니다. 네 종류의 번데기 고치는 언뜻 보기에는 거의 비슷하지만 금색꽃무지 고치의 표면에는 자신의 배설물 알갱이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광꽃무지와 광가슴검정꽃무지의 고치에는 낙엽 부스러기가 잔뜩 붙어 있습니다. 고치를 면도칼로 잘라 보면, 안쪽은 매끄럽게 갈아 놓은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색깔은 고동색을 띠고 있는데, 처음에는 점토처럼 부드러웠는데 말라서 딱딱해진 것 같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곤충학 책을 보니, '왕풍뎅이, 장수풍뎅이, 꽃무지는 흙 속에서 고치를 만든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은 스스로 확인할 때까지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썩은 낙엽의 한가운데에 있는 애벌레들 주변에 점토 따위가 있을 리 없지요. 누에 나방이나 참나무산누에나방과 같이 멋있는 고치를 만드는 나방 종류는 애벌레가 명주실을 토해 냅니다. 그러나 꽃무지의 애벌레는 실을 토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고치를 만드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이 애벌레는 뱃 속의 시멘트를 재료로 사용합니다. 이 애벌레는 왕성하게 먹고 커질 무렵,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많은 양의 배설물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번데기가 될 때가 가까워지면 그 때부터는 별로 배설하지 않습니다. 배설물 시맨트를 몸속에 저장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성장한 애벌레의 꽁무니 쪽을 보면 크고 거무스름해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멘트 통'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고치를 만들려는 커다한 애벌레를 한 마리씩 유리병 속으로 옮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유리병 안에 각각 솜털과 가위로 잘게 자른 종이, 파슬리 씨와 당근 씨를 넣어 보았습니다. 애벌레들은 각각 주어진 재료 속에 파고 들어가, 얼마 후 훌륭한 고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완성된 것은 물론 솜털 고치, 종이 부스러기 고치, 파슬리 씨 고치, 당근 씨 고치입니다. 모두가 멋있고 예쁜 고치였습니다. 애벌레는 배설물 시멘트를 내어 동그란 꽁무니 끝을 흙손처럼 사용하여 조금씩 몸 주위에 고치를 만들어 갑니다. 솜털도, 종이 조각도 모두 이 시멘트로 붙여서 바깥쪽을 들러쌉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칼 끝으로 이제 막 만들어진 고치에 구멍을 뚫어 보았습니다. 속에 든 애벌레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었습니다. 구멍으로 빛과 공기가 들어가서인지 애벌레는 불안한 듯 부서진 곳으로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머리와 꽁무니 끝을 붙이는가 싶더니 배설물 알갱이를 큰턱으로 물고 다리로 감쌌습니다. 기어 다니는 데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다리의 역할을 이 때 알았습니다. 애벌레는 다리로 배설물 알갱이를 감싸 안고, 큰턱으로 씹어 반죽한 뒤 고치의 부서진 부분에 갖다 붙인 다음 머리로 눌러 평평하게 합니다. 재료가 부족하면 또 꽁무니에서 배설물 알갱이를 꺼내어 같은 동작을 반복합니다. 이 정도의 기술이라면 고치가 조금 부서져도 걱정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엽토와 배설물로 이루어진 단단한 고치 속에서 애벌레는 껍질을 벗고 번데기가 됩니다. 그리고 얼마 동안 잠을 잔 후, 드디어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꽃무지가 되어 8월의 눈부신 햇빛속으로 날아가 큰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25,25, 아프리카의 거대한 꽃무지 지금까지 프랑스의 꽃무지에 대하여 이야기했지만 꽃무지류는 온 세계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진한 녹색에 작고 흰점이 있는 흰점박풍뎅이나 선명한 녹색을 한 풀색꽃무지, 그리고 진주와 같은 광택을 띠는 검정과 금록색의 풍이, 청풍이, 검정풍이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여름에 상수리나무 숲에 가면 이러한 꽃무지류가 수액을 빠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눈에 띌 만한 멋진 꽃무지 무리가 있는 곳은 열대 지방입니다. 열대지방의 꽃무지는 색깔이 화려하거나, 멋진 뿔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엄청나게 큽니다.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꽃무지는 아프리카의 골리앗큰뿔꽃무지입니다. 골리앗큰뿔꽃무지는 그 이름대로 머리에는 튼튼한 뿔이 나 있고, 앞가슴과 딱지낙개에는 아름다운 모양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입니다. 그 크기만 본다면 갑충류라기보다는 파충류의 거북이를 연상시킵니다. 이 무리는 주로 서아프리카의 자이르나 코트디부아르라는 나라의 큰 밀림 지대에 분포하며, 모두 다섯 종류가 알려져 있습니다. 골리앗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거인으로, 후에 이스라엘 왕이 되는 양치기 소년 다윗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미의 거대한 갑충 중에는 헤라클레스장수풍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이름을 딴 것입니다. 서양의 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성서'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름을 동물이나 식물에 곧잘 붙입니다. 골리앗큰뿔꽃무지 그림이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1771 년의 일이었습니다. 곤충을 좋아하는 금은 세공사인 영국인 드루리가 '박물도감'이라는, 동판화 그림이 가득 그려진 호화로운 책에 실었던 것입니다. 그 그림의 기본이 된 표본은, 영국 해군의 리나운 호를 타고 서아프리카의 적도 지망으로 탐색을 떠난 오글비라는 의사가, 죽어서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주은 것이었습니다. 오지의 밀림 지대에서 강을 따라 흘러온 것입니다. 이 곤충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처음 본 오글비는 틀림없이 깝짝 놀랐을 것입니다. 표본은 런던으로 옮겨져 10 파운드에 판매되었는데, 이 표본을 산 사람이 바로 드루리입니다. 그 당시 10 파운드라면 1 년 동안 열심히 일해야 겨우 벌 수 있는 돈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만 원은 될 것입니다. 드루리라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자주 큰 돈을 투자하여 진기한 곤충의 표본을 사서 호화로은 도감을 출판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파산해 버렸다고 합니다. 골리앗큰뿔꽃무지는 아프리카의 오지에서도 극히 드물게 잡힐 뿐이어서 그 수가 아주 적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글 속의 베로니아라는 나무의 꽃에 많이 모인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아냈습니다. 그 꽃은 높이 솟은 나뭇가지 끝에 피기 때문에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침 일찍, 아직 어둠이 걷히기 전에 그 나무에 오르면 골리앗은 베로니아 꽃 속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그 때는 간단히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마치 증기 기관 같은 날개 소리를 내며 붕붕 날아오른다고 합니다. 그런 점은 프랑스의 꽃무지와 똑같습니다. 단지 몸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 골리앗이 활발하게 날기 시작하면 도저히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어느 탐험가는 이 갑충을 새처럼 총으로 쏘아 떨었뜨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애벌레 또한 어마어마하게 커서, 아카시아나무 같은 큰 나무의 썩은 부분을 먹고, 백조 알처럼 큰 고치를 만듭니다. 아프리카의 밀림 지대에는 큰 나무가 많이 있어서 이런 커다란 갑충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골리앗이나 그 외의 멋있는 곤충, 그리고 수풀 속에 사는 새나 짐승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도록 밀림을 잘 보존해야 하겠습니다. II. 나무 속의 떡갈나무하늘소 수염이 긴 갑충 하늘소 무리는 모양과 색깔이 아름다워서 풍뎅이나 사슴벌레, 그리고 비단벌레, 딱정벌레 등과 함께 곤충 채집가에게 매우 인기있는 곤충입니다. 전세계에 약 2 만여 종이 알려져 있는 하늘소의 특징은 긴 수염같이 생긴 더듬이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까만 몸에 하얀 점이 찍힌 커다란 알락하늘소는 밀감밭에 살며, 애벌레는 밀감나무 속에서 자랍니다. 졸참나무하늘소는 회색 바탕에 엷은 노란색 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란색 점들은 죽은 뒤 얼마쯤 지나면 하얗게 변색해 버립니다. 이 곤충은 마치 열대산 거대 갑충처럼 매우 큽니다. 상수리나무 줄기에 앉아 있는 것을 찾아내어 잡으려고 손을 내밀자 '착'하고 방어 태세를 취하며 위협합니다. 또, 등을 잡으면 앞가슴과 가운데 가슴을 서로 비벼 삑삑 소리를 냅니다. 이 곤충의 큰턱에 물리기라도 하면 손가락에서 피가 나올 정도입니다. 초여름의 산에 핀 단풍나무 꽃에 포충망을 휘둘러 보세요. 작은 꽃하늘소 무리가 포충망 속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산에서 베어낸 목제 더미를 살펴보면 흑점박이루리하늘소나 오리나무하늘소 등 작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종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늘소 무리의 대부분은 튼튼한 큰턱으로 나무줄기를 갉아 내고 거기에 알을 낳습니다. 여름에 졸참나무하늘소 등이 상수리나무 가지에 상처를 내면 그곳에서 수액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 수액이 발효하여 술처럼 되면, 그곳에 장수풍뎅이나 풍이, 사슴벌레, 왕오색나비나 먹그림나비와 같은 네발나비 종류가 모여듭니다. 무서운 말벌도 날아옵니다. 밤에는 빨강과 노랑색의 아랫날개가 선명한 회색뒷붉은나방이나 파타뒷노랑나비 같은 밤나방의 무리도 모여듭니다. 하늘소류는 살아 있는 나무뿐 아니라 죽어서 쓰러진 나무에도 알을 낳으며, 그 애벌레는 나무의 속을 먹습니다. 그리고 나무의 표면에는 버섯이 자라나 나무의 양분을 섭취합니다. 다른 나무의 씨앗도 썩어서 넘어진 이 나무 위에 떨어져 싹을 내고 자라기 시직합니다. 이윽고 숲 속에 쓰러진 나무는 너덜너덜 벗겨지고, 결국에는 아주 없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하여 숲은 깨끗해집니다. 나무는 죽음으로써 다시 새로운 생명을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소는 그 역할을 돕는 동시에 스스로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소를 해충이라고 할 수만은 없겠지요. 25,25, 하늘소 애벌레의 생활 파브르 선생님이 살던 시대에는 겨울이 찾아올 무렵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난로에 피울 장작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 옆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보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장작을 만들기 위한 일, 즉 장작패기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직업이 나무꾼인 사람이 있어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장작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산에 나무하러 가시고^5,5,5^.' 하는 옛날 이야기가 있는데, '나무를 한다'는 말은 나무를 베거나 산에 떨어져 있는 마른 가지를 주워서 장작을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굵은 나무를 능숙하게 가르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나무의 결을 잘 보고 갈라질 만한 방향으로 탁탁 두드려 쫙 쪼갭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힘을 둘여도 쐐기나 도끼가 나무속으로 파고 들어가 뽑아내기만 어려워질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장작을 패다 보면 속에 터널이 숭숭 뚫려 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머리가 커다란 하랸 벌레가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소의 애벌레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집으로 장작을 팔러 오는 나무꾼에게 벌레먹은 늙은 상수리나무가 있으면 갖다 달라고 부탁해 두었습니다. 물론 이 하늘소 애벌레의 생활 방식을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무꾼 아저씨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심하게 벌레먹은 상수리나무는 장작으로도 쓸 수 없어서 아무도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무야말로 파브르 선생님에게는 보물입니다. 이윽고 나무꾼이 벌레가 많이 먹은 통나무를 가져와 정원에 털썩 내려 놓았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정말 괜찮습니까?" 벌레가 뚫은 구멍에서는 떫은 냄새가 나는 갈색 수액이 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자, 기대하는 것이 들어 있을까?' 선생님은 즐거워 하며 금이 간 곳에 쐐기를 박고 곤봉으로 두드렸습니다. 쐐기가 점점 깊이 박히자 통나무는 우지끈 소리와 함께, 쫙 하고 둘로 갈라졌습니다. 역시 벌레가 먹어서 약해진 부분이 둘로 갈라진 것입니다. 자아, 속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먼저, 말라서 빈 공간을 이룬 부분이 있고, 그 곳에 무당벌레의 무리가 모여 있습니다. 이 속에서 겨울을 나려고 한 것입니다. 비단벌레의 애벌레가 오래 전에 파 놓은 터널에는 나뭇잎을 씹어서 막아 놓은 뿔가위벌의 집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그 터널의 입구와 비단벌레의 애벌레가 있던 방 뒤에는 잎사귀를 말아서 만든 가위벌의 집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이 벌들은 야삭빠르게도 다른 벌레가 뚫은 구멍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액이 배어 나와 있는, 아직 살아 있는 조직에 선생님이 찾고 있던 희고 큰 하늘소 이벌레가 있었습니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껍질에 싸인 이 살찐 애벌레는 떡갈나무하늘소라는 종류의 이벌레입니다. 튼튼한 큰턱으로 나무속을 와작와작 먹은 다음 꽁무니로 나무부스러기 같은 갈색 배설물을 내보내는 이 애벌레는 몸 전체가 마치 하나의 창자 그 자체입니다. 그야말로 기어 다니는 소화기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나무를 쪼개면 두 종류의 애벌레가 나옵니다. 하나는 사람 손가락 크기만하고, 다른 하나는 연필처럼 가늘고 작습니다. 그리고 번데기와 이제 막 밖으로 나온 성충도 있습니다. 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여름이 되어 무더위질 때까지 숨어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떡갈나무하늘소는 성충이 되어 밖으로 나갈 때까지 3,4 년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성충의 모습은 참나무하늘소와 비슷하며 길고 멋있는 더듬이의 아래쪽은 대나무 뿌리처럼 울퉁불퉁합니다. 온몸이 짙은 갈색을 띤 대형 하늘소입니다. 25,25, 나무속을 먹고 사는 애벌레 하늘소의 암컷이 나뭇가지에 상처를 내고 알을 낳으면, 이윽고 알에서 부화된 애벌레는 큰턱으로 나무를 갉아서 터널을 파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그냥 파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는 나무를 먹고, 뒤로는 배설물을 내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큰턱을 살펴보면 역시 매우 튼튼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큰턱을 움직이는 근육도 강하게 발달되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머리 쪽이 꽁무니 쪽보다 큰 것입니다. 비숫한 생활을 하고 있는 비단벌레의 애벌레도 체형이 이와 비슷합니다. 애벌레는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무를 갉아먹고 소화시킵니다. '나무만 갉아먹고도 영양이 충분할까?'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늘지도 모르겠지만, 나무는 셀룰로오스(섬유소)로 되어 있어 몸 속에서 그것을 녹여 영양분으로 바꿔 주는 소화 효소만 있으면 영양분이 됩니다. 즉, 벌레의 몸 속에서 분해된 나무는 당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나 말이 풀을 먹어 소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이 소화 효소가 없어서 섬유질인 풀이나 나무만 먹는다면 먹어도 영양이 부족해게 됩니다. 하늘소 애벌레의 다리는 모두 여섯 개이고 길이는 1 밀리 정도로 매우 빈약합니다. 게다가 점점 비대해지기 때문에 이런 빈약한 다리로는 기어다니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제1장에서 본 꽃무지의 애벌레는 뒤로 누워서 등에 난 털과 혹처럼 생긴 근육으로 기어갔습니다. 하늘소의 애벌레도 몸통의 일곱마디 아래 위에 타원형의 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치 흡반처럼 불룩해지거나 오그라들어서 기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애벌레는 뒤쪽의 흡반을 부풀려 터널 속에 몸을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나서 앞쪽 흡반을 오므려 약간 전진합니다. 다음에는 앞쪽 흡반을 부풀려서 몸을 고정하고, 뒤를 오므려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아런 방법은 터널 안에서는 괜찮지만 평면 위를 걸을 때는 곤란합니다. 탁자위의 애벌레는 몸을 구부린다고 해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거칠거칠한 나무 위에 두어 보았습니다. 애벌레는 느릿느릿 몸을 비틀며 나아갑니다. 그러나 그 때도 여섯 개의 작은 다리는 전혀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있는 것일까요?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이 다리를 사용했는데, 점점 필요치 않게 되자 퇴화해 버린 것이 아닐까요? 25,25, 하늘소 애벌레가 느끼는 세계 그런데 이 애벌레에게는 눈이 있을까요? 확대경으로 아무리 보아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긴 눈이 있다고 해도 어두운 터널 안에서는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귀는 잘 들릴까 궁금하여 파브르 선생님은 애벌레 옆에서 단단한 것으로 '콩콩, 딱딱'하고 두드려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압니다. 나무속엔 아^36^예 소리가 없기 때문에 들을 필요도 없는 걸까요? 그러나 딱따구리는 나무를 두드려 보고 거기서 나는 소리로 속에 애벌레가 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하여 나무에 구멍을 뚫고 먹어 버립니다. 따라서 나무 속에는 소리가 있는 것입니다. 후각은 어떨까, 하고 살아 있는 상록나무 속에 구멍을 뚫고 애벌레를 옮겨 보았습니다. 상록나무는 매우 강한 향기를 내는 나무입니다. 그 곳에서도 애벌레는 평온하게 있습니다. 냄새에도 둔감한 듯합니다. 선생님은 또 장뇌와 나푸탈렌을 벌레 옆에 놓아두고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 시험해 보았으나 여전히 이 벌레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였습니다. 이 애벌레는 특히 상수리나무를 좋아하니까 물론 상수리나무의 맛을 구분할 미각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듬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별로 예민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바늘로 콕 찌르면 겨우 반응하는 정도입니다. 이 모든 것으로써 이 벌레가 느끼고 있을 세계를 상상해 보면 상당히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즉, 하늘소 애벌레가 느끼는 세계는 단순히 상수리나무를 갉아먹고 싶다는 기분과, 뭔가에게 방해를 받으면 방해받았다는 것을 알 정도의 감각 세계입니다. 그 밖에 빛은 물론 물체의 형태와 색도 보이지 않는 어둡고 고요한 상태입니다. 그런 생활이 나무 터널 속에서 3,4 년이나 계속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때때로 이런 공상을 했습니다. '만약 개의 머리로 어떤 것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어떤 식으로 느껴질까? 또 파리의 눈으로 주위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5,5,5^?' 벌레의 뇌로 뭔가를 생각한다면, 개의 뇌로 생각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늘소의 애벌레에게 있어 유일한 기쁨은 상수리 나무 수액이 스며들어 떫은 맛이 나는 살아 있는 나무를 갉아 먹는 일뿐일 것입니다. 이 애벌레는 문자 그대로 기어 다니는 소화기입니다. 좀더 정확한 것은 하늘소의 애벌레가 돠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겠지요? 25,25, 나무속에서의 3 년 그러나 이 '기어다니는 소화기'같은 벌레가 앞을 내다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 놀랄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 능력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합시다. 3,4 년 동안 애벌레는 나무 속에서 이쪽저쪽으로 터널을 파며 성장해 갑니다. 딱따구리에게 잡아먹히거나, 곰팡이에게 당하거나, 다른 벌레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있지만 무사히 자란 것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됩니다. 그 다음에 드디어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충이 된 하늘소가 애벌레 시기에 파 놓은 터널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속에는 톱밥이 잔뜩 쌓여 있고 몹시 구불구불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릴 때 파놓은 터널은 가늘고 좁아서 송충이 된 지금은 지나갈 수 없습니다. 파브르 선셍님은 굵은 상수리나무 가지를 두 개로 갈라 속을 칼로 도려내어 작은 방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방과 나무껍질 사이의 가장 엷은 부분은 2센티미터 정도로 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장작 속에 숨어 있던 새로운 하늘소 성충을 방에 집어 넣고, 두 개로 갈라진 가지를 합친 다음 밖에서 철사로 묶어 두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개 만들어 두었습니다. 6월이 되자 속에서 사각사각 나무를 갉고 있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나무를 2센티미터만 갉으면 하늘소는 밖으로 나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속에 든 하늘소는 한 마리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철사를 풀고 열어 보니 속에는 약간의 나무 부스러기만이 널려 있었습니다. 하늘소의 큰턱이 아주 튼튼해서 나무껍질에 상처를 낼 수 있고 머리카락 한 묶음 정도는 싹둑 잘라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은 2센티의 나무 벽을 갉아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 몇마리나 있었습니다. 하늘소는 나무 안쪽에서는 혼자서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밖으로 나오기 위한 준비를 애벌레 시절에 해 두는 것입니다. 애벌레는 나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터널을 파 갑니다. 그리고 거의 나무껍질 부분까지 와서 멈춥니다. 그러므로 성충은 엷은 껍질을 아주 약간만 안쪽에서 긁어 내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애벌레는 다시 약간 안쪽으로 내려가 번데기가 되기 위한 방을 만듭니다. 방은 타원형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습니다. 길이는 8센티에서 10센티, 너비는 2.5센티에서 3센티, 그리고 천장의 높이는 1.5센티 정도입니다. 번데기의 방은 3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장 바깥쪽은 큰턱으로 깎은 나무 부스러기, 그 안쪽은 새하얀 광물질 같은 것, 그리고 그 속이 다시 나무 부스러기로 되어 있습니다. 안쪽은 비단처럼 매끄럽게 되어 있는데 그 한가운데의 새하얀 것은 무엇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화학을 가르친 적도 있었으므로 이런 물질을 밝혀 내는 것은 문제없었습니다. 새하얗고 돌같이 딱딱하며 부서지기 쉬은 이 물질을 선생님은 초산 속에 넣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부글부글 거품을 내면서 천천히 녹았습니다. 작은 조각까지 모두 녹는 데에는 몇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렇게 녹인 용액에 수산염을 더하자 불투명하고 하얀 침전물이 생겼습니다. 이로써 그석은 탄산석회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애벌레는 나무를 먹으면서 그 속에 함유되어 있는 석회분을 위속에 저장해 둡니다. 그리고 작은 방 속에서 고치를 만들 때 그것을 토해 내어 나무 부스러기를 다지는 것입니다. 애벌레는 고치 속에서 껍질을 벗고 번데기가 됩니다. 번데기의 머리는 반드시 출구를 향하고 있습니다 애벌레 시절에는 몸이 부드러워서 어느 쪽으로든 간단히 방향을 바꿀 수 있지만 성충이 되면 딱딱해져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머리를 출구로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애벌레들은 이런 것도 훤히 알고 있나 봅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바깥은 하늘소가 활동하기에 딱 좋은 세상이 됩니다. 번데기 껍질을 벗어 던진 하늘소는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온몸에 힘이 넘치고, 눈부신 태양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늘소는 눈앞의 나무 부스러기를 발톱으로 할퀴고 하얀 석회벽을 큰턱으로 쿡쿡 찔러 뚜껑을 부숩니다. 나무 부스러기도 금방 무너지고, 엷은 나무껍질만 부수면 바로 바깥입니다. 상쾌한 공기가 훅 하고 불어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저 기어 다니는 소화기 같은 애벌레가 어떻게 이처럼 여러 가지 일을 이루어 냈을까요? 감각이 무척 둔해 보이는 애벌레가 이 정도로 정성스럽게 충붕한 준비를 해 두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므로 더욱 놀라울 뿐입니다. III. 큰버드나무하늘소와 곤충 요리 진기한 요리 '콧소스' 파브르 선생님이 살고 있는 남프랑스에서는 카톨릭 축제가 자주 열립니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카니발이 있고, 그 기간의 마지막 화요일에는 '마르디 그라'라고 하여 먹고 마시며 훙겹게 지냅니다. 파브르 션생님은 가깝게 지내는 두 사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번 마르디 그라 때에 저희 집에 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고대 로마 시대의 진기한 요리를 맛보게 해 드리지요. 진품이지만 먹기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5,5,5^." 두 사람은 기꺼이 초대에 응했습니다. 여기서 그 두 사람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사람은 고향 마을의 초등 학교 선생님이신 줄리앙 선생님이십니다. 초등 학교 시절 파브르 선생님을 가르치기도 하신 줄리앙 선생님은 과학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고 견문이 넓은 사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마리우스 기그라는 목수입니다. 그는 앞을 못 보지만 손바닥에 도형을 그려 주며 자세히 설명하면 톱이나 대패를 사용하여 어떤 것이라도 훌륭히 만들어 냅니다. 마리우스는 중년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빛의 아름다움이나 색깔의 훌륭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초등 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한 것을 늘 안타까워했던 그는 파브르 선생님은 만나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어서 무척 좋아했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면 줄리앙 선생님과 마리우스가 선생님의 집을 찾아옵니다. 추운 겨울, 따뜻하게 타오르는 난롯불 옆에서 세 사람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은 선생님에게도 커다란 즐거움이었습니다. 화제는 철학이나 문학, 과학, 그리고 주변의 밭에서 이따금 발굴되는 고대 로마 시대의 화폐와 그에 얽힌 역사 등입니다. 그런데 오늘 두 사람을 초대하여 선생님이 대접하려고 하는 것은 '콧소스'라는 아주 진기한 요리입니다. '콧소스'란 고대 로마 시대의 박물학자인 플리니우스가 쓴 책에 나오는 것입니다. 플리니우스는 고대 로마의 장군으로, 그 당시 알려져 있던 자연현상이나 동^5,23^식물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은 모두 읽고, 사람들 얘기에도 귀를 기울여 그것을 '박물지'라는 큰 책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로마의 장군이라고 하면 웬지 프로방스와는 인연이 먼 사람처럼 생각되지만 프로방스 지방과 이탈리아는 의외로 가까워서 사람들의 왕래도 빈번하였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프로방스 지방은 원래 그리스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리스인은 올리브나 포도를 프로방스에 가지고 와서 심었습니다. 그리하여 프로방스의 풍경은 그리스인에 의하여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리스인 다음으로 온 사람들이 로마인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살고 있는 세리냥 부근에도 로마로 통하는 오래된 도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던 시대에 정비된 것입니다. 이웃에 사는 농부들이 가끔 밭을 갈다가 찾아낸 로마 시대의 오래된 화폐를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옵니다. "이런 것이 나왔습니다. 얼마 정도나 할까요?" 거기에는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플리나우스는 방투산 기슭의 작은 마을에 피서차 자주 왔었다고 합니다. 그는 79 년에 일어난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피해를 입은 마을사람들을 구한 다음 분화 모양을 자세히 봐 두려고 화산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지식을 쌓기 위한 플리니우스의 용기 있는 태도는 후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콧스스에 대하여 풀리니우스는 '상수리나무 속에 들어 있는 하얗고 큰 애벌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수리나무 속의 애벌레라면, 그것은 사슴벌레나 하늘소와 같은 곤충류의 애벌레이거나 꿀벌레나방 같은 나방류의 애벌레일 것입니다. 대단히 사치스러웠던 고대 로마의 귀족이나 부자들은 진기하고 맛있는 것을 찾아 , 이런 벌레에까지 손을 뻗쳤습니다. 이 외에 공작새의 혀를 넣어 끓인 국이나 모기 눈알 스프 등도 유명합니다. 모기의 눈알만을 어떻게 모으는지 궁금하지요? 우선 동굴에 사는 모기를 많이 먹은 박쥐의 배설물을 주워 옵니다. 그리고는 물에 잘 씻습니다. 모기를 많이 먹은 박쥐의 배설물 속에는 딱딱해서 소화하기 어려운 모기의 눈알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25,25, 소나무 그루터기의 애벌레 파브르 선생님이 콧스스 요리를 실제로 만들어 본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의 곳곳에서 나무가 마구 베어지고 있지만 선생님이 살던 시대에도 수풀이나 삼림이 베어져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베어서 장작으로 쓰거나 목재로 팔아 버린 뒤 그냥 방치해 두었기 때문에 황무지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아르마스 근처에도 훌륭한 소나무 숲이 있었습니다. 개똥지빠귀나 언치새 따위의 작은 새들이 가득 모이는 곳이었는대, 언젠가 그 소나무가 완전히 베어져 버려 선생님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로부터 2,3 년 후 선생님이 다시 가 보니 큰 그루터기만 남아 썩어 있었습니다 .그루터기는 깊이 뿌리를 박고 있어서 파내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 속에는 썩은 나무를 좋아하는 갑충의 애벌레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루터기 속에 어떤 갑충의 애벌레가 들어 있는지 살펴보자.' 그렇게 생각한 선생님은 어느 화창한 겨울 오후에 가족과 함께 그 곳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이제는 늠름한 청년이 된 폴이 나이든 선셍님 대신 썩어서 푸석푸석 해진 소나무 그루터기를 곡괭이로 파 줍니다. 생각한 대로 엄지손가락만한 하얀 애벌레가 많이 나왔습니다. 하늘소의 애벌레인 둣한데, 무슨 하늘소의 애벌레인지 그 종류까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길러서 성충이 되면 알 수 있겠지요. 이 그루터기를 먹이로 해서 유리병이나 화분에 넣어 두면 간단히 기를 수 있습니다. 그 때 선생님에게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맞아, 이것이 플리니우스의 책에 나오는 콧소스다. 좋아! 고대 로마 요리를 직접 한번 해 보는 거야!' 플리니우스의 '박물기'를 읽은 후부터 '콧소스는 무슨 맛일까?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데.'라고 생각하고 있던 선생님은 이 애벌레들을 많이 채집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떤 하늘소의 애벌레인지도 알아보고, 요리에도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카니발의 마지막 화요일, 요리를 하고 손님도 초대하게 된 것입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콧스스를 요리해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책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콧스스 본래의 맛을 바꾸지 않기 위하여 꼬치에 끼워서 솣불로 구운 다음 소금만 약간 치기로 했습니다. 강한 불에 구우면 기름이 똑똑 떨어져 불이 붙어 버립니다. 그 정도로 살의 대부분은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윽고 노릇노룻하게 구워져 향기롭고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의 가족들과 초대된 두 사람은 기대 반 염려 잔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 다 구워졌습니다. 뜨거울 때 먹도록 합시다." 파브르 선생님이 말하자, 모두 꼬치를 들고 후후 불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줄리앙 선생님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서 꿈툴거리던 하얀 벌레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기라도 하는지, 가장 작은 것을 들고 조심조심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우스 기그는 살아 있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태연히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음, 아주 맛있어. 마치 아몬드 같은 맛이 나는데!" 가족들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껍질은 너무 질겨." 껍질은 마치 질긴 소시지 같았습니다. 그 점만 제외한다면 상당히 맛있다고 모두들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이 껍질을 고양이에게 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식탁 밑에서 앞발을 뻩쳐 받아먹던 고양이가 이 요리만큼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강아지도 냄새만 잠깐 맡고 나서는 고춧가루 바른 빵이라도 받았을 때처럼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강아지에게도 이것은 이상한 것으로 느껴지나 봅니다. 사람도 이상한 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먹고 싶은 마음이 선뜻 생기지 않습니다. 오랑주에 처음 시장이 생겼을 때, 마을 여자들이 생선가게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파브르 선생님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글세, 이런 것을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요리해서 먹는 거지? 구워서 멋을까, 데쳐서 먹을까? 빵에 발라 먹으면 맛이 없을 거야." 그 곳에는 성게가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성게를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새까맣고 가시투성이인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파브르 선생님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콧소스는 단순히 숯불에 굽는 것보다 껍질이 바삭바삭하게 될 때까지 튀기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요리법만 잘 연구한다면 콧스스는 틀림없이 맛있는 요리가 될 것입니다. 25,25, 콧스스는 밀가루로 자라는가? 필리니우스는 콧스스에 대하여 이런 말도 하고 있습니다. "밀가루로 키우면 휠씬 맛있게 된다." '그럴 수 있을까?'하고 파브르 선셍님은 생각했습니다. 썩은 나무나 약해서 시든 나무 속에 숨어 있는 하늘소의 애벌레가 밀가루로 자란다는 말은 전혀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필리나우스가 쓴 '박물지'라는 책에는 이상하고 믿어지지 않는 것이 많이 쓰여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자의 성질'이라는 항목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동물 중에서 사자만이 자비심을 나타내 보인다. 사자는 자기 앞에 엎드린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리고 화를 낼 때도 여성보다 남성에게 화를 잘 낸다. 또 심하게 배고플 때가 아니면 아이를 덮치는 일은 없다.' 옛날 사람이라면 믿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카멜레온에 대해서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5,5,5^ 이 동물에게서 특별히 기이한 점은 그 색채이다. 이것은 끊임없이 그 눈과 꼬리와 몸의 색을 변화시키고, 더구나 자기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물체의 색과 똑같이 바꾼다^5,5,5^.' 물론 이것은 사실입니다. 파브르 선셍님은 플리니우스가 쓴 것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콧스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까요? 콧스스가 밀라루로 자랄 수 있을지 없을지, 파브르 선생님은 실제로 실험을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유리병 속에 밀가루를 채우고 그 속에 소나무 그루터기에서 잡아온 콧스스 몇 마리를 넣어 보았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애벌레들이 밀가루에 파묻혀 몸 옆쪽에 있는 호흡 구멍이 막혀 버려서 질식하거나, 먹을 것이 없어 말라 죽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플리니우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콧스스들은 병 속의 밀가루를 먹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애벌레들은 밀가루 속에 터널을 파며 먹어 들어가 홍차 색깔의 배설물은 내놓습니다. 이런 상태로 1 년은 기를 수 있었지만 선생님은 거기서 기르는 것을 중지하였습니다. 썩은 나무를 먹이로 하여 기르고 있던 보통 애벌레들과 겉보기에 전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계속 기른다면 성충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은 플리니우스의 말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25,25, 콧스스의 정체 물론 이 애벌레들이 변태하여 어떤 하늘소가 되는가를 알기 위하여 썩은 나무로 기르고 있던 쪽은 계속 길렀습니다. 유리병이나 화분 속의 애벌레는 먹이인 나무 부스러기 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 부스러기가 너무 마르지 않도록 적당하게 습기를 맞춰 주거나 때때로 배설물은 버리고 새로운 나무 부스러기를 주면서 2 년간 계속 길렀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도 비슷한 기간이 지나면 크게 자랄 것입니다. 7월 초, 한 마리의 애벌레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습니다. 머지않아 번데기가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애벌레는 몸 주변의 작은 나무 부스러기를 밀어내고 작은 방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껍질을 벗고 새하얀 번데기가 되었습니다. 성충의 모양을 완전히 갖추고 있습니다. 다리를 움츠리고 더듬이를 한바퀴 몸에 감은 모습이 마치 기도하는 미라가 된 듯합니다. 다음날 엷은 살색이 된 번데기는 조금씩 진해졌습니다. 번데기가 되고 나서 2주일이 지나자 드디어 속에서 성충이 나왔습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 하늘소는 학명이 에르가테스 파베르인 큰버드나무하늘소였습니다. 파베르는 라틴어로 대장장이라는 뜻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하늘소가 어째서 대장장이인지 모르겠어."라고 하지만 파브르 선생님의 이름도 프로방스어로 대장장이란 뜻입니다. 이 프로방스어 또한 원래 라틴어가 변화한 것입니다. 큰버드나무하늘소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하늘소중 하나입니다. 몸길이는 제 2장에 나오는 떡갈나무하늘소와 비슷한데 앞가슴이나 딱지날개의 폭이 넓어 전체적으로 넓적한 느낌이 듭니다. 25,25, 야행성 곤충은 싸움을 좋아할까? 파브르 선생님은 야행성인 하늘소가 밤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기로 하였습니다. 폴이 밤 11시경에 석유등을 가지고 소나무 숲까지 나와 주었습니다. 오래된 소나무 그루터기를 석유등으로 하나하나 비추어 보았지만 큰버드나무하늘소는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집에서 기르고 있는 것들을 관찰하기로 하였습니다. 연구실 탁자 위에 놓아 둔 몇 개의 화분에 나무 부스러기를 넣고 위에서부터 철망을 씌운 후, 암수 각 한 마리씩을 넣었습니다. 먹이는 서양 배나 포도, 메론 등 전에 기른 적이 있는 떡갈나무하늘소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과일입니다. 낮에는 나무 부스러기 속에 숨어서 좀처럼 밖에 나오지 낳는 이 벌레들은, 밤이 되자 철망을 긁거나 나무 부스러기 위를 천천히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과일은 매일 바꾸어 주지만 전혀 먹지 않습니다. 떡갈나무하늘소와는 행동과 식성이 완전히 다릅니다. 한 달이나 지켜보아도 암컷과 수컷은 서로 모른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어 짝짓기를 하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양쪽 모두 상대방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맞부딪치면 싸움을 시작합니다. 이 하늘소는 크고 날카로운 큰턱을 가지고 있어 사람이 손가락을 물리면 피가 나올 정도입니다. 상대방 벌레의 다리를 싹뚝 잘라 버릴 수도 있습니다. 보통 하늘소의 경우, 한 바구니 속에 열마리 정도를 함께 길러도 싸움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큰버드나무하늘소들은 넓은 화분 속에 단 두 마리씩 밖에 들어가 있지 않은데도 다리가 잘리거나 더듬이가 반밖에 남지 않은 것이 점점 늘어납니다. 같은 종류인 유럽버드나무하늘소들도 역시 이런 식으로 싸움을 합니다. 이것이 아마 이 종류의 공통된 성질인 듯합니다. 무더운 7월 어느 날 밤 11시경, 큰 버드나무를 파보면, 유럽버드나무하늘소가 나뭇가지에 가만히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석유등 불빛으로 비추어도 도망가려 하지 않습니다. 버드나무하늘소를 기를 때 파브르 선생님은 오래된 버드나무 조각이나 무화과, 서양 배 등을 주었습니다. 이 벌레는 해가 지면 매우 활발해집니다. 철망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상대방을 만나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서로 맞붙어 싸움을 합니다. 선생님이 이 벌레를 채집한 시기가 너무 빨라서인지 잡힌 것은 숫컷뿐이었습니다. 암컷은 숫컷보다 늦게 우화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벌레들이 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야행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빛은 살아 있는 생물의 성질을 평온하게 하고, 어둠은 사악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도 싸움을 하는데, 그것은 인간도 반은 야행성이기 때문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해 뜨는 시간에 일어나 오전 내내 관찰하고, 생각하고 씁니다. 그리고 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밝은 낮에 생각한 것과 어두운 밤에 생각한 것은 다릅니다. "인간의 정신이 어두운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말합니다. 야간형이 좋으냐, 주간형이 좋으냐 하는 질문이 나오면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적어도 인간의 눈은 야행성 포유류의 일종과는 달리, 어둠 속에서는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그로므로 낮에는 일어나고 밤에는 자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쥐나 다람쥐 같은 작은 포유류 중 밤에 민첩하게 활동하는 것이 많은 이유는, 낮에는 매나 독수리 등이 무서워서 나무 구멍 등에 숨어 지내기 때문입니다. 파브르 선생님과 그의 가족들은 벌레를 먹는 것을 뭔가 특별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인간의 조상은 원래 곤충이나 달팽이, 개구리 등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지냈음이 틀림없습니다. 바다 주변의 사람들이 조개를 잡아서 먹은 것은 벌레를 먹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맘모스나 거대한 들소, 그리고 고래나 큰 코끼리 등은 언제나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배설물 화석을 코프로라이트라고 하는데, 그것을 분석해 봐도 아주 옛날 사람들이 벌레류를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지금도 자주 먹고 있는 벌레는 메뚜기입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논에 있는 메뚜기를 잡아 식용유로 조려서 먹는데, 마치 새우와 같은 향기로운 맛이 납니다. 그래서 지방에 따라서는 메뚜기를 육지의 새우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지금처럼 상품유통이 활발하지 않던 시대에는 산간 지방 사람에게 있어 메뚜기는 중요한 동물성 단백질원이었습니다. 양잠이 성행하는 지방에서는 고치를 끓여 실을 뽑은 후 속에 들어 있는 누에번데기를 먹었습니다. 물에 사는 날도래 애벌레와 물방개도 맛있습니다. 그리고 흙속에 큰 집을 만드는 좀말벌의 애벌레도 진미로 즐겨 찾습니다. 특히 좀말벌의 애벌레를 잡기 위해서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개구리의 살점에 풀솜을 붙이고 기다리고 있으면 벌이 다가와 둥지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하얀 풀솜은 눈에 잘 띄므로 그것을 표시로 벌집을 찾아냅니다. 그런 다음 연기를 내어 벌질 속에 있는 많은 애벌레를 잡습니다. 이렇게 잡은 벌의 애벌레는 조림을 하거나 쌀과 함께 밥을 지어 먹습니다. 태국에서는 우리 나라보다 곤충을 훨씬 많이 먹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곤충이 많기 때문입니다. 태국에서 물장군은 고급 식품입니다. 그대로 삶거나 튀겨서 먹기도 하지만 잘게 부수어 특수한 조미료로 쓰기도 합니다. 물장군은 노린재에 가까운 곤충으로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냄새를 좋아합니다. 제3권에서 나온 기름으로 볶은 매미 요리도 맛있지만 태국에서의 또 다른 매미 요리법을 소개하겠습니다. 태국에서 흔히 먹는 매미는 애매미와 같은 작은 종류입니다. 비슷한 크기의 것이라도 소리가 크게 울리는 저녁매미류는 배가 텅비어 있어서 음식으로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애매미는 매우 민감하여, 포충망을 가지고 다가가면 금방 저쪽나무로 푸드득 하고 날아가 버려서 도저히 잡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숲으로 가 보면 젊은 여자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아주 쉽게 손으로 잡아서 양동이 속에 넣습니다. 그 솜씨는 감탄할 만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다가가 보니 그 나뭇가지에는 찹쌀을 반죽하여 만든 끈끈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날아와 앉은 매미들은 끈끈이에 붙어 도망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과연 이런 방법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잡을 수 있겠지요. 양동이에 대량으로 잡힌 매미의 날개를 뜯어 내고 작은 새우로 만든 조미료로 맛을 내어 기름에 잘 볶습니다. 그러면 바삭바삭하고 맛있는 요리가 됩니다. 곤충은 우리 나라나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먹고 있습니다. 아라비아나 사막 지대에서는 가끔 풀무치의 일종이 크게 불어나 하늘이 어두워질 만큼 덮쳐 와서는 나뭇잎을 모조리 먹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잡아서 데치거나 볶거나 기름에 튀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먹고 있습니다. 대량으로 잡아 건조시켜서 가루로 만들어 햄버거 등에 이용하면 아프리카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메뚜기는 소나 닭에 비하여 성장이 빠르고 먹이는 잡초로도 충분하므로 간단하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단백질인 것입니다. 조만간 온 세계가 진지하게 미래의 식량으로 곤충을 연구할 시기가 올 지도 모릅니다. IV. 거위벌레의 요람 '두견새의 투서' 초여름 무렵 신록이 우거진 산길을 걷다 보면 졸참나무나 상수리나무, 오리나무 따위 밑에 작디작은 롤 캐비츠 같은 것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손으로 만져 보면 나뭇잎을 말아 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마는 방법이 너무 완벽하여 좀처럼 풀어지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두견새의 투서'라고 불렀습니다. 마침 두견새나 그 일종인 뻐꾸기가 남쪽에서 건너와 막 울기 시작할 무렵에 이것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투서'란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일을 글로 써서 몰래 보내는 것입니다. 누가 썼는지 모르도록 하여 사람들에게 어떤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정치에 대한 비판 등을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하였습니다. 물론 이 작은 롤 캐비츠 같은 것은 두견새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만든 장본인은 바구미에 가까운 아주 작은 갑충입니다. 거위벌레라는 이름을 가진 이 곤충은 나뭇잎을 꼭 감아서 '투서'를 만들고 속에 알을 낳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이 롤 캐비츠에 의해 보호되고, 더욱이 그것을 먹고 자랍니다. 나뭇잎으로 만든 소형 롤 캐비츠는 거위벌레의 요람이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에는 거위벌레가 몇 종류가 되지 않는데, 선생님은 이 얼마되지 않는 거위벌레에 대하여 열심히 연구하였습니다. 거위벌레는 목이 무척 길어서 매우 기묘하고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잎을 말 때의 거위벌레는 "사람은 겉모양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말처럼 놀라운 솜씨를 발휘합니다. '곤충이 만들어 내는 것은 그 곤충이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까? 아니면 곤충이 가지고 있는 도구와 만들어 내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것일까?' 파브르 선생님은 거위벌레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곤충이 가지고 있는 도구란 큰턱과 다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곤충을 보기만 해도 무엇을 만들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 보았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연구하기 위하여 두 종류의 거위벌레, 즉 개암거위벌레와 장다리 거위벌레를 비교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25,25, 붉은 핏방울 같은 갑층 개암거위벌레는 목과 머리가 검고, 몸은 눈에 잘 띄는 붉은색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벌레가 잎사귀 위에 있으면 마치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렀을 때 나온 붉은 핏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머리는 작고 목은 갑자기 가늘게 들어가 있으며, 입은 짧고 끝이 마치 드라이버처럼 넓게 퍼져 있습니다. 다리는 묘하게 길어서 뒤뚱뒤뚱거리며, 잎을 갉아먹어 동그란 구멍을 냅니다. 개암거위벌레는 그 이름처럼 개암나무나 산오리나무의 잎을 먹습니다. 개암나무는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살고 있는 남프랑스는 덥고 건조하여, 시원한 지방에 분포하는 이 나무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이렇게 먹이가 되는 개암나무가 적기 때문에 개암거위벌레도 거의 없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밑에서 받을 수 있도록 박쥐 우산을 거꾸로 잡고 나뭇가지를 막대기로 두드리는 방법으로 곤충을 채집하는데, 이 채집법은 나뭇잎 뒤쪽에 숨어 있는 벌레를 잡을 때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하면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벌레가 후두둑 떨어집니다. 그러나 몇 년간이나 이런 방법을 써 보아도 개암거위벌레만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벌레는 매년 봄이 되면 오직 한 곳에만 발생합니다. 그것은 에그 강변에 있는 한 그루의 회색오리나무였습니다. 그 나무에서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도 같은 종류의 나무가 몇 그루 더 있었으나 이 거위벌레가 발견되는 곳은 언제나 이 나무뿐이었습니다. 왜 이 나무에만 개암거위벌레가 있을까요? 에그 강은 수량이 적어, 1 년에 반은 물이 말라붙어 강바닥에는 돌멩이가 데굴데굴 구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가 계속 내리거나, 봄이 되어 알프스 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면 많은 물이 에그 강으로 흘러 들어와 둥근 돌과 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집니다. 그러나 그것도 일주일 정도밖에 계속되지 않습니다. 이윽고 강물은 다시 줄어듭니다. 그나마도 햇볕이 강하면 금방 말라 버립니다. 이런 급작스런 물의 흐름은 상류의 계곡 부근에 있는 생물을 하류로 옮겨 줍니다. 홍수 뒤의 에그 강변에서는 알프스 고산 식물까지 채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고산 식물은 물의 흐름을 따라 옮겨진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후가 맞지 않아 결국은 모습을 감추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들 중 살아 남는 것도 조금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가장 큰 달팽이가 물의 흐름을 타고 오는 수가 있습니다. 프랑스 요리에 쓰이는 달팽이는 홍수에 의해 홀러와 강 주위에서 크게 번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색오리나무에 붙은 개암거위벌레도 이런 식으로 상류 지방에서 온 것입니다. 애벌레가 들어 있는 잎사귀 요람이 물에 떠서 그대로 흘러오다가 이 회색오리나무에 붙어서 살게 된 것입니다. 강변에 남겨진 요람 속에서 나온 개암거위벌레는 높은 산에서 자라고 있는 개암나무나 오리나무가 없으므로, 그 대신 회색오리나무를 먹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관찰을 시작한 후 3 년 동안 개암벌레는 이 나무에서 계속 발생했으나 사실은 선생님이 아기 훨씬 이전부터 여기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개암거위벌레는 원산지에 있는 것과 모습이 다를까요? 이것을 조사하기 위하여 선생님은 고산 지방의 개암거위벌레를 구해서 형태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확대경으로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5,25, 요람 만드는 법 이제, 개암거위벌레가 저 신비한 요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보기로 합시다. 제 5장에 나오는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는 잎을 연하고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잎자루에 뽀족 입울 찔러 넣지만 게암거위벌레는 다릅니다. 그리고 이 거이벌레의 입을 보면 어떤 방법을 쓸지 대강 알 수 있습니다. 개암거위벌레는 주둥이바구미류처럼 뽀족한 입은 가지지 않았지만 그 대신 잎을 싹둑 자를 수 있는 큰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거위벌레가 개암나무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세요. 이 벌레에 비하면 개암나무 잎사귀는 상당히 넓은 융단 같습니다. 이런것을 어떻게 깨끗이 말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능숙하게 잎맥을 잘라서 나뭇가지에서 올라오는 수분을 막아 연하고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 큰턱으로 잎의 뿌리에 가까운 곳을 한쪽에서 싹둑싹둑 잘라가고, 중심부의 잎맥도 조금만 남기고 다 자릅니다. 그러면 잎의 끝쪽이 시들어 늘어지게 됩니다. 이 늘어진 잎의 뒤쪽이 안쪽이 되게 하여 한가운데의 굵은 잎맥을 중심으로 반으로 접어서 잎의 끝쪽부터 빙글빙글 말아 올립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롤의 뒤쪽 입구는 잎의 남은 부분으로 덮고, 아래쪽 입구는 잎의 가장자리를 안쪽으로 접어 넣어서 막습니다. 그 롤의 가운데에는 알이 한 개 들어 있습니다. 작디작은 롤 캐비츠는 가지에 붙은 채로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파브르 선생님은 이런 요람을 많이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속에서 애벌레가 어떤 식으로 자라는지 자세하게 조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 이 개암거위벌레는 보통 갑충처럼 충분히 자라도 땅을 파고 들어가 번데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암거위벌레의 애벌레는 요람 속에서 바로 번데기가 되는 것입니다.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이 요람은, 이윽고 바람에 날려 땅 위에 떨어집니다. 안쪽에서부터 먹히고 썩어 들어가 너덜너덜해진 이 요람 속에 그대로 있어서는 추운 겨울을 날 수가 없습니다. 개암거위벌레는 그것을 잘 일고 있다는 듯이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이미 진한 붉은 조끼를 입은 성충이 되어 너덜너덜해진 요람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나무껍질 밑으로 숨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여름이 지난 다음 이 벌레의 성충을 채집하려면 고목의 껍질을 드라이버로 벗겨 보면 됩니다. 벌레가 뚝 떨어지면 찾을 수 없으므로 밑에 망을 쳐 두어야 합니다. 25,25, 요람을 만드는 작은 천재 파브르 선생님은 롤 캐비츠와 비슷한 형태로 요람을 만드는 다른 거위벌레를 관찰해 보았습니다. 이름은 장다리거위벌레입니다. 장다리거위벌레는 개암거위벌레처럼 붉은색인데, 몸이 더 둥글고 땅딸막합니다. 걸음걸이를 보아도 그렇게 건장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이 벌레가 바로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한 요람을 만드는 장본인입니다. 더욱이 이 벌레가 사용하는 재료는 잎이 딱딱한 서양호랑가시나무입니다. 아직 부드러운 새 잎을 택하기는 하지만 가시나무의 잎이 워낙 두꺼워서 말기에 힘이 듭니다. 잎맥을 잘라도 좀처럼 시들지 않습니다. 잎을 마는 바구미류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는 이 장다리거위벌레가 가장 다루기 힘든 재료를 사용하여 가장 훌륭한 요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장다리거위벌레는 먼저 잎의 뿌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가운데 잎맥만 남기고 왼쪽과 오른쪽을 자릅니다. 그러면 가운데 굵은 잎맥만 남고, 잎은 처지게 됩니다. 얼마 후 호랑가시나무의 잎이 시들어 부드러워지면 양쪽에서 잎표면을 안으로 하여 반으로 접습니다. 그리고 나서 잎의 뿌리쪽을 둥글게 조금 말아 알을 낳은 후 잎끝에서부터 말아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롤 캐비츠의 가장자리를 입으로 꼼꼼히 접에 안쪽으로 여미면, 길이 1센티의 요람이 됩니다. 작업중인 장다리거위벌레를 발견할 때마다 이 벌레는 롤 캐비츠의 끝부분에 입을 댄 채 꼼짝않고 있었습니다. 마치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런 식으로 잎사귀가 접힌 채로 고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다리를 움츠리고 밑으로 떨어져 버리므로 관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집에서 기르기로 하였습니다. 장다리거위벌레는 기르기 쉬운 벌레입니다. 사육 상자 속에서도 계속 작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단, 이 벌레는 밤에만 활동합니다. 밤 10시쯤 되면 잎사귀를 자르기 시작하여, 다음날 아침에는 벌써 요람이 완성되어 있습니다. 왜 밤에만 활동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서양호랑가시나무 잎사귀가 딱딱한 것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낮에는 이 딱딱한 잎이 바싹 말라 작업을 하기가 한층 힘들어집니다. 밤에는 공기도 차고 밤이슬도 내려 잎사귀가 부드러워집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깨끗이 말아 올린 잎사귀에 햇빛이 비치면 튼튼하게 고정되어 풀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거위벌레와 주둥이바구미류를 비교한 결과 그 몸의 구조는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잎을 말아야 한다는 본능의 명령만 있다면 벌레들은 도구를 훌륭히 사용합니다. 그런데 장다리거위벌레의 애벌레는 요람 안쪽의 잎사귀가 말라 있으면 먹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립니다.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생기거나 썩어서 부드러운 것이 아니면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유리병 속에 젖은 모레를 넣고 요람을 그 위에 놓은 뒤 뚜껑을 덮어 두었습니다. 이렇게 그대로 내버려두면 됩니다. 6월에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요람 속에서 계속 자라 2개월이 지나면 아름답고 씩씩한 노란색 애벌레가 됩니다. 요람을 부수고 속을 들여다보면 용수철이 달린 인형처럼 팔짝팔짝 버둥거립니다. 그러나 거위벌레의 애벌레는 다른 바구미의 애벌레만큼 살이 찌거나 통통하지는 않습니다. 25,25, 생명의 중간 휴식 파브르 선생님이 장다리거위벌레를 관찰한 해는 여름 내내 햇빛이 무척 따가웠습니다. 공기가 매우 건조하여 도처에서 산불이 일어났고, 알프스 지방에서만도 산불 때문에 모두 타 버린 마을이 몇 개나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무심코 버린 성냥불로 마른 농작물이 전부 타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늘도 땅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말랐습니다. 이럴 때 장다리거위벌레의 애벌레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물론, 파브르 선생님이 기르고 있는 유리병 속의 애벌레들은 습기를 보충받고 있으니까 염려없습니다. 그러나 숲 속의 서양호랑가시나무 밑에 있는 요람 속의 애벌레들은 어떨까요? 나무뿌리 밑의 풀들도 바삭바삭하게 말라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 요람 속을 살펴보러 가기로 하였습니다. 6월에 장다리거위벌레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던 서양호랑가시나무 밑에는 아직 요람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12개를 주울 수가 있었습니다. 요람들은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금방 말라 버려서, 미치 잘 만들어 놓은 식물 표본처럼 깨끗한 초록색 그대로였습니다. 바삭바삭 소리가 나서 부서질 정도로 말라 있었습니다. 요람 한 개를 열고 속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속에는 애벌레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알에서 나온 후 거의 자라지 않은 것일까요? 도대체 이 애벌레는 살아 있는 것일까요? 움직이지는 않지만 죽었다면 이렇게 예쁜 색깔을 가질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늘 끝으로 살짝 찔러 보니 역시 움직입니다. 두 개, 세 개, 요람을 계속 열어 보니 속에 든 애벌레의 상태는 모두 똑같았습니다. 이 애벌레들은 성장이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처음에 롤 캐비츠 형태로 말려졌을 때 잎사귀 중심의 잎맥에 의지해 매달려 있던 요람에는 나뭇가지에서 아주 조금이지만 수액이 공급되었습니다. 그때 애벌레는 요람의 속을 조금 갉아먹었습니다. 그후 요람은 땅 위에 떨어지고 순식간에 바삭바삭하게 말라 더 이상 애벌레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애벌레의 발육도 멈추고 그대로 꼼짝없이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요? 물론 그것은 비입니다. 비가 와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잎사귀를 부드럽게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장다리거위벌레뿐 아니라 주변의 대지와 식물, 동물들도, 그리고 인간도 모두 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래 이 지방에는 건조한 땅을 좋아하는 동식물이 많이 모여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 햇볕은 너무 심합니다. 4월 내내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태양만 쨍쨍 내리쬐었으니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전에 파삭파삭한 요람에 습기를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람을 물 위에 띄워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람을 안쪽부터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점점 성장해서 마침내는 전부터 기르고 있던 유리병 속의 애벌레와 크기가 거의 같아졌습니다. 요람이 말라서 딱딱해지면 비가 와서 부드러워질 때까지 몇 달이라도 멀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장다리거위벌레 애벌레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다른 잎말이바구미류는 잎으로 된 요람이 마르면 그냥 죽어 버립니다. 하지만 개암거위벌레가 어는 정도까지 건조한 상태를 견뎌낼 수 있는지는 관찰할 수가 없었습니다. 손에 넣을 수 있는 요람의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입니다. 파브르 선셍님이 본 잎말이바구미류 중에서 건조에 가장 민감한 것은 장다리거위벌레였습니다. 이 요람은 마른 호랑가시나무 밑에 굴러다니고 있고, 크기가 작아서 햇볕을 받으면 금방 한가운데까지 말라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다리거위벌레의 애벌레는 몇 개월이라도 먹지 않고 지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열흘 정도만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이 장다리거위벌레는 10개월 동안이나 먹지 않았어도 요람만 부드러워지면 금방 다시 먹기 시작하여 제대로 성장합니다. 이렇게 중간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면, 생명이라는 것은 정말로 불가사의합니다. 건조에 견디기 위한 생명의 중간 휴식은 사막에서 훨씬 더 많이 일어납니다. 사막에서는 1 년치의 비가 하루에 내리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자고 있던 식물의 씨앗이 일제히 싹을 틔워 주위가 온통 꽃밭이 됩니다. 그리고 물이 고이는 곳에는 작은 새우류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막에 따라서는 25 년에 한 번 정도밖에 비가 오지 않는 곳도 있으나 그런 곳에서도 고인 물 속에는 반드시 이런 새우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새우의 알은 마르고 염분이 많은 땅속에서 25 년 간이나 조용히 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 속에 넣으면 다른 형태의 생물이 되는 도톨도톨한 '시몽키'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도 이런 새우류의 알입니다. 개구리 중에도 건조한 기후에 특히 강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사막에 사는 두꺼비의 일종으로, 흙 속에 구멍을 파고 8,9개월 동안 꼼짝 않고 있습니다. '은혜의 단비'가 오면 물이 고인 웅덩이에 와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습니다. 알은 하루나 이틀 만에 부화하고, 올챙이는 4주 만에 개구리가 됩니다. 그리고 다시 구멍 속에서 비를 기다립니다. V.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 가지를 '싹뚝' 자르는 벌레 거위벌레에 이어 그와 가까운 동료인 주둥이바구미의 일종을 소개하겠습니다. 주둥이바구미류는 나무줄기에 상처를 내어 줄기가 시들기 시작하면, 거기에 달린 열매 속에 알을 낳습니다. 주둥이바구미 중에는 이 외에도 잎을 말아서 마치 여송연 같은 형태를 만드는 종류가 있습니다. 여송연이란 담배 잎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말아서 피우도록 한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관찰한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는 이 무리에 속합니다.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는 황철나무 잎을 만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황철나무뿐 아니라 그에 가까운 포플러 잎도 맙니다.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는 몸은 아주 작지만 멋있고 예쁜 갑충입니다. 등은 청동색, 배는 남색으로 빛나는 이 벌레의 몸체가 만약 바단벌레처럼 컸다면 눈에 잘 띄어 유명해졌을 것입니다. 이 곤충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싶으면 5월 말에 포플러 가지를 찾아보면 됩니다. 키가 크고 쭉 뻗은 포플러의 가지 끝에서는 이파리들이 늦봄의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리며 빛나고 있습니다. 바람이 없는 나무 밑쪽에서는 올해 말 나온 어린 가지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벌레가 일하고 있는 곳은 바로 부드러운 잎사귀를 가진 밑가지의 사람 눈높이쯤 되는 부분입니다. 곤찰하기에 아주 좋은 곳에서 활동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하루 종일 벌레를 지켜보고 있으면 초여름의 강한 햇볕에 머리가 띵해집니다. 역시 연구실에서 천천히 관찰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집에서도 여전히 활동해 줄까, 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조금 걱정을 하면서 포플러 가지에 있는 왕철나무잎말이바구미들을 잡아 왔습니다. 잎사귀가 시들어 버리지 않도록 물이 있는 모래 속에 그 가지를 꽂아 두었습니다. 이 바구미들은 마음놓고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도 점점 대담해져서 확대경을 바로 옆까지 가져가 관찰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새밀한 행동까지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알을 낳는 것은 물론, 여송연을 만드는 것도 암컷입니다.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가 선택하는 곳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포플러 줄기의 아래쪽 부분, 즉 몇 줄기 뻗어 나온 생생한 어린 가지입니다. 그 어린 가지 가운데 너무 부드럽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잎을 사용합니다. 이런 잎의 가장자리는 아직 부드럽게 부풀어 있어서 약간 끈적끈적합니다. 이것은 이 바구미들이 일하기에 아주 좋은 상태입니다. 25,25, 공중에서의 큰 사건 높은 잎사귀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태연히 일하고 있는 이 기술자가 지닌 도구는 무엇인지 잠깐 살펴보기로 합시다. 먼저, 다리 끝에는 날카로운 갈고리 발톱이 있습니다. 이것으로써 나뭇가지나 잎사귀 표면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 갈고리 발톱 밑에는 솔과 같은 하얀 털이 나 있어 손가락을 대 보면 찰싹 붙는 느낌이 듭니다. 이것을 이용한다면 벽에서나 천장에서도 거뜬히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늘고 긴 입은 매우 튼튼한데, 끝은 드라이버처럼 평평하고 큰턱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잎맥이나 가는 나무줄기를 자릅니다. 그런데 여송연의 재료가 되는 나뭇잎은 살아 있습니다. 인간의 혈관에 피가 흐르고 있듯이 잎맥 속에는 수액이 흘러, 구부려도 금방 원상태로 돌아갑니다. 이 바구미가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한다고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잎을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을까요? 사람이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에게 충고를 해 줄 수 있다면 이렇에 말할 것입니다. "잎을 가지에서 잘라내어 땅위에 떨어뜨리면 되지. 그러면 시들어서 부드러워지니까 바로 접을 수 있지." 그러나 이 바구미의 어미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안 돼. 땅 위에는 풀이 많이 나 있지 않니? 저 풀은 우리들에게는 나무보다도 키가 크고, 만약 저 사이에 잎사귀가 떨어지면 일하기가 어려워. 궁중에 매달려서 하는 것이 가장 좋아." 그리고 이렇게 덧붙일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야. 이것은 아이들이 먹을 것이니까 처음부터 말라서 파삭파삭하면 곤란해. 적당히 부드럽게 살아 있어야 해. 그러니까 나무에서 완전히 잘라내면 안 돼." 어미바구미는 잎자루 부분에 앉아 그 곳에 긴 입을 꽂아 넣고 송곳으로 뚫듯이 빙글빙글 돌리고 있습니다. 이윽고 작은 구멍이 뚫리고 나무에 조그마한 상처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작업입니다. 나무줄기에서 잎으로 보내진 수액은 이 상처 부분에서 멈춰 버려 잎사귀 끝까지 가지 않게 됩니다. 잎은 시들어서 축 늘어집니다. 이렇게 하여 잎이 부드러워져서 일하기 쉽게 되는 것입니다.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는 어디를 막으면 물이 멈추는지 그 핵심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25,25, 말아서 형태를 만든다. 포플러 잎은 창 끝을 약간 넓혀 놓은 모양으로, 그 크기와 두께는 이 작은 벌레에게는 20 평 정도의 넓은 융단과도 같습니다. 이것을 공중에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마는 작업으로, 두 번째 작업에 해당합니다. 잎을 시들게 한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는 잎을 겉에서 안쪽으로 말기 시작합니다. 한쪽의 세 개의 다리는 이미 말아 올린 부분에 걸치고, 반대쪽다리는 아직 말지 않은 부분에 걸치고 있습니다. 갈고리 발톱이 여기서 큰 역할을 합니다. 양쪽 다리로 걸치고 잎을 몸 한가운데로 끌어당기는 듯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말아 갑니다. 한쪽 다리의 갈고리 발돕을 뗄 때는 다른 다섯 개의 발톱을 꽉 박아 넣고 아주 신중하게 합니다. 잠깐이라고 힘을 빼 버리면 공들여 말아 놓은 부분이 원상태로 되돌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잎은 수직으로 매달려 있고 표면은 니스를 칠한 둣 매끌매끌하지만 갈고리 발톱과 착 달라붙는 솔이 달린 구두를 신고 있는 이 벌레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작업은 시간이 꽤 걸립니다. 확대경으로 보고 있어도 진척 상태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누르고 있는 동안에 접혀진 잎사귀가 굳어져 풀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앞사귀의 탄력이 강해서 공들여 말아 놓은 부분이 원상태로 되돌아가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바구미는 살망하지 않고 천천히 다시 고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일을하면 언젠가는 요람이 완성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는 매달려 있는 잎사귀의 끝에서 위쪽으로 뒷걸음질로 말아갑니다. 한 번 둥글게 말고 나서 또다시 금방 말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고정이 되지 않았을 때 손을 떼면 확 풀어져 버리기 때문에 그대로 가만히 누르고 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말아 놓은 잎을 누른 채 천천히 귓걸음질쳐서 다음 부분을 말아 갑니다. 마치 농부가 밭이랑을 한 줄씩 갈아나가는 것과 같은 방법입니다. 드디어 모양이 만들어졌습니다.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이 잎사귀 위를 몇 번이나 왕복한 끝에 드디어 여송연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완전히 말아 놓고 나서 지금은 잎의 뿌리 부분에 있습니다. 이곳이 중요한 곳입니다. 이 바구미는 드라이버처럼 평평한 입 끝으로 잎을 만 이음새를 한 점 한 점 눌러 붙이고 있습니다. 마치 다리미로 양복에 줄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놀러 붙이기만 해서 잎사귀가 붙을까요? 실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앞에서 포플러의 어린 잎은 가장자리 부분이 끈적끈적하다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 풀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시들어서 길이 들여진 잎은 이것으로 딱 붙여져 풀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하여 요람이 완성되었습니다. 지푸라기 정도의 굵기에 길이가 3센티미터쯤 되니까 가늘게 만 여송연과 꼭 닮았다고, 담베를 좋아하는 파브르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상처가 나서 꺾인 잎자루에 잎으로 만 여송연이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만드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는 하나를 만 뒤 조금 쉬고 나서 다시 다른 잎을 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룻밤 걸려서 하나 더 말아 냅니다. 25,25, 무엇을 위하여 여송연을 만들었을까?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가 이처럼 고생하며 잎사귀를 말아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이제 잘 알았겠지요? 물론 나중에 먹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힘이 많이 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들여 만든 황철나무잎말이바구미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단 여송연을 풀어 봅시다. 풀어보니, 속에 알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가 들어 있는 것도 있고, 서너 개가 한꺼번에 들어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노란 알입니다. 잎사귀에 단단히 붙어 있지 않아서 금방 똑 떨어져 버립니다. 알이 산란되는 장소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중앙에 있기도 하고 끝부분에 있기도 합니다. 주둥이바구미류는 열심히 잎을 마는 도중에라도 뱃 속의 알이 적당한 상대로 자라면 갑자기 낳아 버립니다. 말아 올리는 잎 안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이 여송연 속에서 조금 시든 잎을 먹고 자랍니다. 이 여송연은 애벌레의 식량이 됨과 동시에 애벌레를 지켜 주는 요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바구미의 수컷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암컷바구미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같은 잎사귀 위에는 언제나 수컷이 있습니다. 즐겁게 구경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뭔가 일이 있으면 도와 주려는 것일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수컷이 아주 잠깐 암컷을 돕는 것을 본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주 서툰 솜씨로 잎을 반 정도 말아 주고는 금방 그 곳을 벗어나 좀 떨어진 곳에서 꼼짝 않고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컷이 잠깐이나마 도와 준 것은 암컷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것 같습니다. 곤총의 세계에서는 수컷이 좀처럼 집을 만들거나 새깨를 기르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VI. 꿀꿀이바구미의 송곳 코끼리 코를 닮은 입을 가진 곤충 여러분은 오래된 쌀 속에서 바글거리는 작고 까만 벌레를 본 것이 있습니까? 만약 발견하면 손바닥에 얹어 놓고 확대경으로 들여다보기 바랍니다. 잘 살펴보면 미치 코끼리처럼 코가 길게 늘어져 있는 작은 곤충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등도 구부러져 코끼리를 닮았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코처럼 보이는 것은 앞머리로서, 머리의 일부가 늘어난 것입니다. 그 끝에 입이 붙어 있어서 이 길게 늘어진 부분 전체를 '구기'라고 부릅니다. 이 작고 까만 벌레는 바구미입니다. 바구미류는 종류가 많은 곤충 중에서도 단연 으뜸입니다. 제 2권에서 소개한 흑노래기벌의 사냥감이었던 넉점박이바구미도 물론 같은 종류입니다. 바구미는 애벌레도 성충도 모두 식물을 먹습니다. 암컷이 긴 입으로 식물의 열매나 줄기 등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알을 낳으면, 애벌레는 그 속에서 자랍니다. 그러므로 종류에 따라서는 농작물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해충이 되기도 합니다. 갑충 도감을 보면, 바구미 종류에는 바구미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열대의 야자나무 속을 파먹는 장수풍뎅이만큼이나 큰 대형 종류까지 크기와 형태가 여러 가지입니다. 뉴기니 등지에 있는 보석바구미나 남미의 다이아몬드바구미처럼, 벌레라고 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보석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도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바구비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한창 유럽으로 보내져, 브로치 등으로 가공되어 여성들의 옷을 장식했습니다. 앞 장에서 나온 주둥이바구미류나 거위벌레류도 분류학적으로 과는 다르지만 바구미에 가까운 갑충류입니다. 신록이 짙어질 무렵, 숲에 가서 양산을 거꾸로 받치고 막대기로 가지를 두드려 보세요. 바구미류가 다리를 움츠리고 후두둑 떨어질겁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곤충 채집가들이 써 오던 방법으로, 파브르 선생님도 자주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가을에 밤을 먹다가 이상한 맛이 나서 몸을 떤 적은 없습니까? 자세히 보면 노란 밤 속이 갈색으로 변색되어 있습니다. "툇,툇, 벌레 먹은 밤이다."하고 뱉어 버리지 말고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속에 애벌레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바로 밤바구미라는 바구미의 애벌레입니다. 인간이 만든 기계 중에는, 도대체 어디에 사용 하는지 그냥 보기만 해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태를 한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위치를 넣고 기계가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장의 주인공인 꿀꿀이바구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 특이하게 긴 부리와 긴 다리를 가진 벌레를 처음 본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이 벌레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꿀꿀이바구미는 밤이나 도토리 열매에 알을 낳아, 애벌레가 그 열매를 먹고 자랍니다. 그 때문에 이 긴 부리와 긴 다리의 도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찰해 보도록 합시다. "그런 것을 관찰해서 뭐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세상에는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십히 매달리는 사람들을 바보취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특별히 돈이 되지 않아도 이 세상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몸을 위한 빵뿐 아니라 지식의 빵도 필요하다.'는 것이 파브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25,25, 걷는 데 거추장스러운 긴 주둥이 파브르 선생님이 살고 있는 지방에서 가장 흔한 꿀꿀이바구미종류는 떡갈나무꿀꿀이바구미입니다. 떡갈나무꿀꿀이바구미의 주둥이 역시 가늘고 길며, 가볍게 아래쪽으로 구부러져 있습니다. 너무나 긴 나머지 걸을 때 등줄기를 펴지 않으면 자기 발에 걸려서 넘어질 것 같습니다. 이 벌레의 긴 주둥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구 중 무엇과 비슷할까요? 구멍을 뚫는 송곳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 주둥이 끝에는 튼튼한 큰 턱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단한 강철이나 다이아몬드 이빨을 끝에 봍인 송곳 같은 것이 아닐까요? 밖에서 이 벌레가 활동하는 것을 관찰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선생님은, 10월 초에 드디어 그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전문가인 선생님도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10월이 되면 벌써 찬바람이 불어 벌레들은 이미 죽었거나 어딘가에 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벌레는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 특유의 미스트랄이라는 북서풍이 쌩쌩 불어와, 입술이 꺼칠꺼칠해져 갈라질 것 같았습니다. 이런 때에 곤충을 관찰하러 숲에 나가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꿀꿀이바구미가 떡갈나무 도토리에 알을 낳는다면 도토리가 아직 덜 익었을 때를 택할 것이다. 좀더 지나면 도토리리는 갈색으로 익어 땅 위에 떨어져 버린다. 그러니 이 때를 놓쳐서는 안 되지.' 선생님은 주의를 살피며 숲 속을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앗, 역시 있었습니다! 한 마리의 꿀꿀이바구미가 도토리 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긴 주둥이의 반 정도를 도토리 속에 찔러 넣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가까이 다가가서 지켜보려고 했지만 강한 바람 때문에 가지가 흔들려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가지를 싹뚝 잘라 땅위에 놓고 보았습니다. 벌레는 일에 몰두하느라 주위의 변화에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주둥이의 반을 도토리에 찔러 넣은 채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나무가 우거진 그늘에 앉아서 꼼짝 않고 관찰하였습니다. 바람이 차가워 손가락은 굳어지고 콧물이 나옵니다. 감기에 걸릴 것 같았습니다. 바구미의 부리는 주둥이바구미류에서 볼 수 있듯이 다리 꿑부분이 끈적끈적하여 착 달라붙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치 강력한 접착제를 바른 구두를 신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수직으로 된 유리면도 태연히 오를 수가 있는 꿀꿀이바구미로서는 도토리의 미끌미끌한 표면을 걷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 꿀꿀이 바구미는 다리에는 한껏 힘을 주고 주둥이를 송곳처럼 꽂은 채 그것을 중심으로 천천히 돌고 있습니다. 이것을 반복하며 주둥이를 조금씩 깊이 찔러 넣습니다. 1시간쯤 지나자 주둥이의 끝부분까지 도토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도토리에 주둥이를 꽂은 이 바구미는 얼마 동안 쉬고 있는 듯 합니다. 확실히 무척 힘든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일을 매서운 북풍이 쌩쌩 불고 있는 한가운데서 지켜보고 있는 파브르 선생님의 인내심도 대단합니다. 잠시 후, 이 꿀꿀이바구미는 주둥이를 빼냈습니다. '자, 다음에는 또 무엇을 보여 줄까?' 파브르 선생님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꿀꿀이바구미는 공들여 뚫어 놓은 구멍을 버리고 도토리에서 떨어져 마른 잎 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까지 관찰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입니다. 추운 날에 일부러 나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25,25, 단단한 열매에 주둥이를 찔러 넣는다. 날씨가 좋은 어느 날, 다시 숲에 나간 파블 선생님은 많은 꿀꿀이바구미를 채집하였습니다. 천천히 자세하게 관찰하려면 역시 연구실의 사육 상자 속이 최고입니다. 이 꿀꿀이바구미가 좋아하는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서양호랑가시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입니다. 이 세나무의 도토리는 모두 꿀꿀이바구미 애벌레의 먹이가 되지만 그 중에서도 서양호랑가시나무의 도토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서양호랑가시나무와 떡갈나무는 크게 자라지만 졸참나무는 사람들이 타넘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까지만 사랍니다. 서양호랑가시나무의 도토리는 가늘고 길며, 그리 크지 않고 표면은 약간 까칠까칠합니다. 반면, 떡갈나무의 도토리는 땅딸막하며 볼품이 없고 주름이 져 있습니다. 세리냥의 아르마스 근처의 언덕은 건조해서 이 나무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졸참나무에 가장 멋있는 도토리가 열립니다. 한가운데가 볼록한 알 모양으로, 깍정이에는 가시 같은 비늘이 있습니다. 꿀꿀이바구미에게는 이 도토리가 훌륭한 집인 동시에 식량으로 가득 채워진 창고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도토리가 달려 있는 이 세 종류의 나뭇가지를 몇 개 잘라 와, 물을 넣은 컵에 꽂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꿀꿀이바구미의 암컷과 수컷 몇 쌍을 가지에 얹고 그 위에 철망을 씌웠습니다.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크고 주중이도 길어서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자, 이제는 참을성 있게 지켜보는 일만 남았습니다. 선생님이 지켜보기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 꿀꿀이바구미들이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암컷 한 마리가 도토리 위를 걸어다니며 주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미끄러짐 방지용 구두를 신고 있으므로 어떤 곳이라도 잘 걸을 수 있습니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도토리를 만난 모양입니다. 그 긴 주둥이를 박아 넣으려 합니다. 하지만 긴 주둥이가 문제입니다. 암컷은 앞발로 버티고 뒷발로 엉덩방아를 찧는 자세로 주둥이를 힘껏 들어올렸습니다. 사람이라면 긴 송곳의 아래쪽을 잡고 뚫을 수 있지만 꿀꿀이바구미의 경우는 자기 입이기 때문에 언제나 송곳의 끝밖에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훌륭하게 찔러 넣었습니다. 구멍을 뚫는 방법은 그 매서운 북풍이 불던 날 본 것과 뚝같습니다. 꿀꿀이바구미는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빙글빙글 반원을 그리며 구멍을 뚫어 갑니다. 25,25, 목숨을 건 작업 그런데 파브르 선생님은 숲에서 꿀꿀이바구미가 도토리에 주둥이를 박은 채 어설픈 자세로 죽어 있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 벌레들은 불쌍하게도 작업중에 사고로 죽은 것이지만 그 모습은 어딘지 우스꽝스럽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처음에 벌레는 주둥이 끝을 도토리에 찔러 넣었습니다. 그런데 도토리에 달라붙어 있던 발이 미끄러진 것입니다. 그래서 단단한 부리 끝은 열매에 꽅힌 채 장대 높이 뛰기를 할 때의 장대처럼 붕하고 뚝바로 떠올라 버렸습니다. 벌레의 몸은 공중에 뜬 채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시 발이 도토리에 닿지 않습니다. 불쌍하게도 꿀꿀이바구미는 그렇게 며칠을 발버둥치다가 결국 죽은 것입니다. 인간의 경우는 작업하기 좋게 몸을 발달시키는 대신 도구를 발명하였지만 곤충의 경우는 도두를 발명하는 대신에 자기의 몸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떼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레서 하나가 잘못되면 이런 위험한 사고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관찰을 시작한 꿀꿀이바구미의 직업은 잘 되어 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작업은 매우 느립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암컷은 어슬렁어슬렁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가고, 쉬었다가는 다시 반원을 그리곤 합니다. 숨울 죽이고 가만히 주의하여 보고 있는 선생님 쪽이 지쳐 버렸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 벌레가 송곳 같은 긴 주둥이를 빼내고 꽁무니를 구멍에 대고, 그 속에 산란하는 순간이 보고 싶었습니다. 두 시간을 꼼짝 않고 지켜보고 있던 파브르 선생님이 결국은 가족들을 불렀습니다. "잠깐씩 교대해 주렴. 난 조금 쉬어야겠어. 꿀꿀이바구미가 주둥이를 빼내고 알을 낳을 것 같으면 불러 줘. 부탁해." 그렇게 말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긴 의자에 깊숙이 않아 휴식을 취했습니다. 건강한 선생님도 요즘에는 나이 탓인지 쉽게 피로해집니다. 특히 작은 것을 볼 땐 눈이 더욱 피곤합니다. 옛날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곳에서도, 북풍이 심하게 불어대는 곳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몇 시간이고 관찰했었는데^5,5,5^. 숲 속이 아니라 집 안에서 관찰할 수 있어서 천만다헹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이 꿀꿀이바구미의 작업은 8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폴의 차례가 되어 지키고 있던 저녁 무렵에 드디어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아빠, 꿀꿀이바구미가 부둥이를 빼냈어요." 긴 송곳이 도토리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자,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요? 선생님과 가족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았지만^5,5,5^. 아아, 이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꿀꿀이바구미는 뚫은 구멍을 버리고 옆으로 가 버렸습니다. "어이, 이봐, 또 그냥 버리니?" 이렇게 파브르 선생님은 때때로 가족의 도움을 받아 가며 10월 내내 꿀꿀이바구미의 구멍 뚫는 작업을 관찰하였습니다. 작업에 걸리는 시간은 제각기 다릅니다. 보통 두 시간 정도이나 길 때는 반나절도 걸립니다. 만약 알을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꿀꿀이바구미는 무엇 때문에 저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고생헤 가며 우물처럼 깊은 구멍을 뚫는 걸까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미 알이 낳아져 있는 도토리 속의 상태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25,25, 도토리 속은 어떻게 되어 있나? 꿀꿀이바구미가 작업을 해 놓은 도토리는 겉으로 구분하기 쉽습니다. 깍정이에 싸인 채 가지에 매달려 있지만 잘 살펴보면 깍정이 가까이의 초록색 껍질 위에 바늘로 찌른 듯한 상처가 나 있고, 갈색으로 변한 그 주위는 약간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깍정이 부분에 상처가 난 도토리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구멍만 뚫린 채 상처 주위가 아직 갈색으로 변하지 않은 것을 골라 벗겨 보았습니다.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꿀꿀이바구미가 구멍만 뚫어 놓고 알은 낳지 않은 도토리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알이 낳아져 있습니다. 도토리를 갈라 보면, 입구는 깍정이에서 상당이 먼 곳에 있어도 알은 반드시 도토리 깍정이가 입혀진 쪽 바닥 부분에 있습니다. 그곳은 부드럽고 우유 같은 즙이 있어 맛있는 부분입니다. 알에서 금방 나온 애벌레는 이 부드러운 부분을 먼저 먹고 힘을 냅니다. 그리고 조금 크면 뒤쪽의 단단한 부분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단단한 부분을 스스로 와작와작 갉아먹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어미바구미가 송곳으로 뚫어 놓은 구멍을 이용합니다. 구멍 속에는 송곳으로 구멍을 뚫을 때 나오는 부수러기처럼 잘개 부서진 떡잎 부수러기가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먹고 있는 동안에 단단한 부분도 스스로 갉아먹을 수 있게 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꿀꿀이바구미가 하는 일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암컷이 송곳으로 구멍을 뚫기 전에 도토리 위를 그렇게 천천히 돌아다닌 것은, 다른 누군가가 그 속에 이미 알을 낳지 않았는지 신중히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2권에서 에스파냐뿔똥풍뎅이의 암컷은 배설물 속에 이미 알이 낳아져 있는지 없는지를 굼방 판단했지만, 꿀꿀이바구미의 암컷은 도토리 위를 천천히 돌아다님으로써 속에 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내는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암컷이 뚫어 놓은 작은 구멍을 보고 알아내는 걸까요? 도토리는 식량이 가득 들어 있는 팡고와 같지만 애벌레 두 마리의 식량으로는 부족합니다. 애벌레 한 마리가 도토리 속의 식량을 깨꿋이 먹어 버리고 아주 조금밖에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미가 열심히 살펴본 것입니다. 실제로 선생님이 관찰해 보았더니 한 개의 도토리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애벌레만 있었습니다. 어미는 여기저기 돌아다녀 본 후, 아무도 알을 낳지 않은 도토리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드디어 송곳으로 구멍을 뚫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에 걸쳐 구멍을 뚫고도 그것을 그대로 두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꿀꿀이바구미의 암컷은 주둥이가 끝까지 들어가는 깊은 우물을 파고 속의 즙을 마시는 걸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처음에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단 한 모금의 즙을 마시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일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수컷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컷도 긴 입을 가지고 있으므로 도토리에 깊은 구멍을 팔 수 있을 것입니다. 거렇지만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식사를 위해서라면 어린 잎을 한 입만 씹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수컷도 그 종도로 만족하는데, 알을 낳기에 바쁜 암컷이 자신의 식사를 위하여 우물파는 일에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많이 낭비할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도토리에 구멍을 뚫는 것은 역시 알을 낳기 위해서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많은 도토리를 갈라 보고 나서, 선생님이 미리 예상했던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알은 언제나 바닥에 놓어져 있습니다. 즉,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벌레는 먼저 거기서 가장 부드럽고 즙이 많은 알맹이를 먹습니다. 그러나 도토리 알맹이도 점점 단단해집니다. 도토리가 어려서 너무 부드러워도 안 됩니다 그래서 어미꿀꿀이바구미는 도토리 알맹이 하나하나에 구멍을 파서 적당한지 그렇지 않으지 맛본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애벌레가 먹기에 아주 좋은 상태라고 생각되면 알을 낳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것을 버리고 다른 도토리를 찾으러 갑니다. 암컷은 자신의 애벌레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습니다. 시간을 들여 구멍을 팠어도 도토리 알맹이가 좋지 않으면 아낌없이 버립니다. 어미의 이런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애벌레에게 도토리의 바닥 부분을 먹이기 위해서라면 깍정이에서 옆으로 구멍을 조금만 뚫으면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깊은 구멍을 파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그 우물을 팔 때 나오는 먹기 좋은 떡잎 부스러기를 애벌레에게 만들어 주기 위함입니다. 애벌레는 잘게 부서진 이 먹이를 먹으면서 우물 속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도토리 깍정이 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그것은 어미가 상당히 서둘러 일했을 때가 아닐까요? 25,25, 숲의 어머니, 떡갈나무 유럽에는 봄이 오면 검정노래새라는 작은 새가 아름다운 소리로 웁니다. 가을철이면 이 새는 꿀꿀이바구미를 줄겨 쪼아먹습니다. 물론 꿀꿀이바구미를 먹는 새가 이 새만은 아닙니다. 이 벌레는 여러 새들의 중요한 식량이기도 합니다. 꿀꿀이바구미는 다른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식물이 너무 많이 늘어나는 것을 조졸하는 일입니다. 떡갈나무는 해마다 큰 통을 몇 번이고 가득 채울 만큼 도토리 열매를 맺습니다. 동물들도 영양이 많은 도토리를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습니다. 도토리를 좋아하는 다람쥐나 언치새가 여기저기서 모여들어 나무 구멍 속에 모아 두거나 먹어 치웁니다. 그러나 어느 동물보다도 먼저 손을 쓰는 것은 꿀꿀이바구미입니다. 이 벌레는 아직 파란 도토리에 알을 낳습니다. 그 도토리는 금방 갈색이 되어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나중에 주워 보면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애벌레가 알맹이를 먹고 성충이 되어 그 구멍으로 나온 것입니다. 한 그루의 떡갈나무에서 이런 구멍 뚫린 도토리가 한 바구니가 넘게 나올 정도로 꿀꿀이바구미는 열심히 알을 낳습니다. 그럴 즈음 사람들이 떡갈나무 숲으로 모여듭니다. 유럽에서는 가을이 되면 돼지에게 도토리를 먹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을 찌운 후 잡아서 소시지나 베이컨을 만들어 겨울 식량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겨울에는 사람들이 먹을 것도 적고 돼지에게 먹일 사료도 부족하므로 옛날부터 이렇게 도토리를 이용해 왔습니다. 마울에는 도토리 줍는 날이 정해져 있어, 그 날은 일제히 숲으로 모여듭니다. 아버지가 긴 장대로 나무 위쪽을 두드려 도토리를 떨어뜨리고, 어머니는 낮은 가지에 달린 열매를 따서 앞치마에 모읍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땅 위에 떨어진 도토리를 찾아냅니다. 마치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즐겁습니다. 한 집에서 큰 자루에 하나 가득씩 주워 모읍니다. 그렇게 하여 도토리는 돼지의 먹이가 되고, 또 머지않아 맛있는 베이컨과 소시지가 됩니다. 사람들은 벌레가 먹어 텅 빈 도토리를 보고 "아니, 또 벌레먹었잖아."하고 화를 내지만 그것은 숲이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냐, 떡갈나무는 모든 생물을 위해서 있는 거야. 그것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거지." 인간이 자신들의 형편만을 생각하고 다른 생물들에게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면, 결국 인간 자신이 멸망하게 될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5,25, 뱃속에 숨겨진 산란관 꿀꿀이바구미의 알이 도토리의 어디에 산란되어 있었는지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알은 도토리의 바닥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처럼 입구에서 먼 곳에 알을 낳을 수 있었을까요? 또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은 벌레가 도토리 위쪽에 알을 낳든 아래쪽에 낳든 상관없지않느냐."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세한 일에 의문을 품고 생각해 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까요? "아니야, 학문이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거야."하고 선생님은 말합니다. 양복에 호박 조각을 비비면 보푸라기나 털이 달라붙는 것을 처음 본 사람은, 그것이 전기의 작용이며 그로부터 현대 문명이 크게 발전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전기에 대한 연구도 처음에는 아이들 장난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관찰하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무심히 지나쳐 버려서는 안됩니다. 아주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 중대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꿀꿀이바구미는 어째서 도토리의 바닥에 알을 낳았을까요? 알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알은 입구에 산란된다. 알에서 나온 애벌레가 자기 혼자서 우물 속을 지나 아래까지 내려간다.' 파브르 선생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관찰을 해 본 후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속 관찰 해 보니 어머꿀꿀이바구미는 구멍을 뚫고 난다음 긴 주둥이를 도토리에서 빼내고 구멍 입구에 꽁무니 끝을 잠깐 대고 나서 도토리를 떠났습니다. 선생님은 그 때 곧바로 도토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알이 입구 쪽에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입구에는 없었습니다. 알은 벌써 우물 바닥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닥까지 굴러 떨어진 걸까요? 아니, 그것은 무리입니다. 우물 속은 좁고 게다가 속에는 잘게 부서진 떡잎 부스러기가 가득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바닥으로 알이 들어간 걸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꿀꿀이바구미는 알을 도토리 밖에서 낳아 그것을 긴 주둥이로 그멍 속에 꾹꾹 밀어넣은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하면 알은 찌그러져 버릴 텐데요. 파브르 선생님도 어떤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었습니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어리여치 중에는 긴 산란관을 가지고 있어서 흙 속에 알을 낳는 것이 있습니다. 또 벌 중에도 말총벌이라는 종류는 자기 몸보다 몇배나 긴 한란관을 가지고 있어서, 나무줄기 바깥쪽에서 속에 있는 하늘소 애벌레의 몸에 알을 낳기도 합니다. 그러나 꿀꿀이바구미의 꽁무니 끝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알을 낳는 모습을 보아도 꽁무니 끝이 아주 잠깐 구멍 입구에 닿을 뿐입니다. 할 수 없이 꿀꿀이바구미를 해부해 본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뱃속에 긴 주둥이와 같은 길이의 산란관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주둥이를 송곳처럼 사용하여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난 후, 꿀꿀이바구미의 암컷은 빙그르 방향을 바꿔 구멍 입구에 꽁무니 끝을 꼭 갖다 댑니다. 그리고 긴 산란관을 쭉 뻗쳐서 우물 바닥 즉 도토리 바닥에 알을 낳습니다. 그것이 너무 빨라서 밖에서는 아무리 보아도 잘 몰랐던 것입니다. 꿀꿀이바구미의 긴 주둥이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주둥이만큼이나 긴 산란관이 뱃속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VII. 완두바구미와 인간의 역사 사냥하는 생활에서 기르는 생활로 몇만 년 전의 옛날 원시 시대 사람들은 맘모스나 사슴, 멧돼지의 조상을 사냥하거나 물고기, 조개 등을 잡으며 생활하였습니다. 물론 달팽이나 곤충도 잡아먹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무나 풀의 열매를 발견하여 먹기도 하고 또 그 잎사귀와 뿌리를 씹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도움이 되는 동물을 사육하고, 풀이나 나무를 심어서 늘려 가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목촉과 농업의 시초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생활을 수렵과 채집 생활이라 하고, 그 후의 생활을 농경 생활이라고 합니다. 농경이 시작 되면서 인간의 생활은 매우 편해졌습니다. 항상 뭔가 먹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려야 하는 수렵 채집 생활에 비하여, 씨앗이나 모종을 심어 돌보면 일정한 수확을 가져다 주고 식량의 저장도 가능한 농경 생활은 사람들에게 여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때문에 문화도 발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렵 채집 생활에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대략 20제곱미터의 토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농경 생활에서는 먹을 수 있는 식물만 심기 때문에 같은 면적에서 6,000배 이상의 사람들이 살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농경을 배우고부터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식물은 인간에 의해 지배되고, 인간의 형편에 맞게 길러지며 점점 변화해 왔습니다. 보리든 콩이든 야채든, 맛있고 먹을 부분이 많은 것으로 점점 바뀐 것입니다. 그대신 이러한 재배 식물은 인간의 손을 벗어나면 금방 주위 식물과의 경쟁에 져서 시들어 버리거나 원래의 야생 상태로 되돌아가 버립니다. 식물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재배되어 와서 도대체 언제, 어디서, 누가 발견하여 심기 시작했는지 알아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 재배 식물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람은 파브르 선생님과 같은 시대의 스위스 식물학자인 드 칸돌입니다. 그 이후 많은 학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겉보리나 콩, 야채의 역사가 조금씩 밝혀졌습니다. 재배 식물의 역사는 인간 생활의 역사 바로 그것입니다. 역사책에는 주로 전쟁이나 혁명, 임금님 이야기가 적혀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이런 식물에 대하여 아는 편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인간에게는 은인이라고 해도 좋을 식물 가운데 하나인 완두를 예로 들어 봅시다. 보통 완두콩이라고 불리는 이 콩을 인간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소중히 키워 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크고 더 부드럽고 맛있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연구해 온 것입니다. 완두콩은 성질이 온순해서 인간이 바라는 대로 따라 주어 현재의 맛있는 콩이 된 것입니다. 야생 완두콩은 작고 딱딱하며, 독특한 맛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야생종을 그 옛날 인류가 곰의 아래턱 따위를 쟁기 대신 사용하여 땅을 갈고 씨를 뿌려 키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런 옛날 일에 대해서는 기록도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책에는 완두콩에 관한 것이 나오지만 그보다 더 옛날 일은 문서로 남겨진 것이 없어서, 토기나 집 벽에 그려진 그림 등을 근거로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완두콩 그림이 정확히 그려진 것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완두콩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야생 완두가 세계 어디에나 있으며, 가장 오래된 기록이 어느 나라에 남아 있는가 등을 조사해 보아야 합니다. 어쨌든 인간이 콩을 재배하기 시작한 지 8천 년이 지났고, 더욱이 야생종과 재배 품종은 서로 생긴 모양과 성질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조사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도 여러 사람의 노력 덕분에 지금은 완두콩의 원산지가 지중해 연안 지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완두콩은 1,500 년 전인 5세기에 이미 유럽에서 중국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1,000 년 가까이 지난 15세기에는 미국 대륙에 건너 왔으며,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장의 주인공인 완두콩바구미도 완두콩보다 조금 늦게 온 세계에 퍼져 나갔습니다. 25,25, 맛있는 것에는 벌레가 붙는다. 인간이 야생 식물을 개량하여 크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 식물을 만들어 내자, 곤충들도 금방 날아와 그것을 자기의 먹이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물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잘 개량되어 열매는 맛있지만 약해져서 경쟁이 치열한 자연 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양이나 돼지를 야산에 풀어서 기르면 눈 깜짝할 사이에 곰이나 이리에게 먹혀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야생 양이나 맷돼지였을 때는 빨리 뛰어 도망가거나 뿔이나 어금니로 몸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보호를 받아 가축화되자 완전히 겁쟁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개량한 야채도 가축과 마찬가지로 약해져서 벌레에게 당하고 맙니다. 공들여 키우고 있는 작물을 해치는 곤충을 우리는 해충이라고 부르지만, 해충들은 농부들로부터 마치 세금을 거둬들이듯이 자기의 몫을 챙겨 갑니다. 작물이 맛있으면 맛있는 만큼, 그리고 인간이 많이 만들면 많이 만든 만큼 해충들도 많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넓디넓은 밭 전체가 한 종류의 콩이거나, 큰 창고의 천장까지 같은 콩만 쌓여 있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콩을 먹고 사는 벌레에게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아, 마음껏 먹어 보자.'하고 곤충들은 신이 나서 날아오는 것입니다. 물론 벌레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자연은 모든 생물에게 공평합니다. 작물을 키우는 인간에게도, 그것을 먹으러 오는 벌레에게도 같은 태도로 대할 뿐입니다. 때로는 햇볕에 검게 그을고, 때로는 비에 젖어 가면서 무거운 쟁기로 밭은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풀을 뽑아 열심히 작물을 키우면 자연은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그 결실은 그 곳에 날아온 작은 벌레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기도 합니다. 힘든 밭일 때문에 허리가 굽고 햇볕에 온통 그은 인간을 위하여 자연은 완두콩 깍지를 부풀리지만, 그것은 동시에 완두콩바구미를 위해서 부풀려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25,25, 완구콩바구미의 등장 이 완두콩을 챙겨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장의 주인공인 완두콩바구미입니다. 완두콩바구미와 다음 장의 주인공인 강낭콩바구미는 '바구미'라는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바구미와는 달리 주둥이 부분이 길게 늘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늘소나 잎벌레에 가까운 콩바구미류 갑충입니다. 대청소할 때 선반이나 책장 뒤에서 입춘 무렵에 뿌린 콩이 나오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콩을 잘 살펴보면 큰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그 구멍은 콩바구미가 뚫어 놓은 것입니다. 콩바구미류는 북극과 남극을 제외한 전세계에 있는데, 그 종류도 이미 알려진 것만 2,400백여 종이나 됩니다. 그 중의 반은 주로 콩과에 속하는 야생 식물의 씨를 먹습니다. 완두콩이나 강낭콩, 대두 등 인간이 재배하는 콩을 먹어서 해충이 된 것은 20여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완두콩바구미의 생활을 연구하기 위하여 먼저 아르마스 정원에 완두콩을 뿌려 두었습니다. 5월 중순이 되어 하얗고 예쁜 완두 꽃이 필 무렵, 완두콩바구미가 그 완두콩이 있는 곳에 나타났습니다.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 이 황무지에 완두 꽃이 핀 것을 벌레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추운 겨울 동안 이 벌레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정원에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껍질 밑에 숨어 있는 것을 선생님은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배추휜나비가 날개를 펴고 않아 있는 것 같은 콩꽃 위를 완두콩바구미들이 기어다니며 꽃가루 따위를 먹고 있습니다. 머리는 작고 입은 뾰족하며, 갈색과 회색의 얼룩무늬 옷을 입고 있습니다. 5월은 완두콩바구미가 짝짓기를 하는 계절입니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햇볕이 너무 강하면 암컷과 수컷이 한 조가 되어 꽃잎 그늘로 숨어듭니다. 내일이면 다시 밖으로 나와 큰 소란을 피울 것입니다. 꽃의 계절은 이렇게 지나갑니다. 5월 말이 되어 콩깍지가 달리기 시작하면 곧 완두바구미는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오전 10시경, 선생님이 관찰하고 있을 때 어미는 완두콩 깍지 위를 이리저리 바쁜 듯이 왔다갔다하면서 살피고 있었습니다. 가끔 꽁무니 끝에서 바늘 처럼 가는 산란관을 꺼내어 완두콩 깍지를 푹 찌릅니다. 알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바구미류라면 먼저 코끼리 코 같은 긴 주둥이로 구멍을 꿇고 나서 그 속에 알을 낳겠지만 이 벌레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둥이가 짧아서 구멍을 뚫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두콩바구미의 어미는 꿀꿀이바구미가 한 것처럼 요령 있게 구멍을 뚫지 않고, 콩깍지 표면에 드문드문 알을 낳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살던 시대에는 아직 완두콩바구미도 다른 바구미와 같은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벌레가 구멍을 파고 알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완두콩바구미가 너무나 쉽게 콩깍지 표면에 알을 낳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되면 알은 더위나 추위, 또 다른 예측할 수 없는 날씨에 그대로 방치되고 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방법에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콩 수에 비하여 낳아 놓은 알의 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콩 하나로 완두콩바구미의 애벌레 한 마리가 자랍니다. 콩 하나에 두 마리이면 실량이 그만큼 모자랍니다. 그런데도 이 어미벌레는 하나의 깍지 속에 든 콩알 수 같은 것은 상관없이 엉터리로 알을 낳습니다. 선생님이 살펴보니 콩깍지 하나에 낳은 알의 수는 깍지 속의 콩알 숫자보다 훨씬 많아, 콩 한알에 다섯 개에서 여덟 개, 많을 때는 열 개의 알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5,25, 콩을 살려 둔 채 먹는다. 알은 가늘고 길며 호박색을 띱니다. 길이는 기껏해야 1 밀리 정도입니다. 어머가 알을 낳고 10일 정도 지난 후에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은 콩깍지의 얇은 껍질 속으로 차고 들어가 조금씩 기어다닙니다. 기어다닌 자리에는 하얀 터널처럼 꾸불꾸불한 흔적이 생겨 밖에서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면 드디어 애벌레는 깍지 안쪽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이윽고 애벌레는 깍지 속에 들어 있는 콩에까지 이르러 구멍을 뚫고 속으로 들어갑니다. 구멍 입구는 초록색 콩에 붙은 작은 점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엷은 초록색 콩 위에 그 곳만 갈색으로 변해 남아 있습니다. 애벌레가 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콩 위에서 반 정도 되는 부분입니다. 약간 볼록하게 나온 콩의 배꼽 아래쪽에는 콩이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 있어서 그 곳에 구멍을 뚫으면 콩이 죽어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요? 즉, 완두콩바구미 애벌레는 콩을 죽이지 않고 교묘하게 알맹이만을 먹습니다. 이 벌레가 다 자라 성충이 되어 콩에서 나오면 콩에는 큰 구멍이 뻥 뚫려 있지만, 그 콩을 땅에 심으면 거뜬히 싹을 틔웁니다. 완두콩은 깍지 속에 여러 개 들어 있기 때문에, 자유로이 기어다니던 애벌레는 처음 갉아먹은 장소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콩의 밑쪽, 지구로 말하면 남극에 해당되는 곳은 고무 공의 배꼽처럼 볼록합니다. 갉아먹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콩에게는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애벌레에게 갉아먹히지 않도록 어쩌면 씁쓸한 즙에라도 둘러싸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콩알이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애벌레는 콩 하나를 몽땅 먹어야 제대로 자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좀더 컸다면 콩 한 알에 여러 마리의 애벌레가 파고 들어갔을 것입니다. 25,25, 콩 한 알에 벌레 한 마리 완두콩바구미가 성충이 되어 큰 구멍을 뚫고 나가고 난 뒤 콩을 확대경으로 관찰해 보면, 바삭바삭해진 껍질 위에 진한 갈색의 작은 구멍이 뻥뻥 뚫려 있습니다. 콩 한 알에 그런 구멍이 대여섯 개나 뚫려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알에서 갓 깨어난 작은 애벌레가 파고 들어간 흔적입니다, 그런대 콩에서 나가는 완두콩바구미의 수는 항상 콩 한알당 한 마리입니다. 다른 애벌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5월 말부터 6월에 걸쳐 아직 충분히 익지 않은 부드러운 완두콩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표면을 보니 속에 애벌레가 파고 들어간 표시인 갈색 점이 드문드문 찍혀 있습니다. 그런 콩의 껍질을 벗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애벌레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속의 떡잎을 잘게 잘라 보았습니다. 콩 속에는 아주 작은 애벌레가 몇 마리 있었습니다. 살찐 몸을 단단히 구부리고 자기가 뚫은 둥근 구멍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애벌레들은 제각기 평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막 먹기 시작해서 먹을 것이 충분했기 때문에 아직 싸움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부 먹을 것으로 만들어진 칸막이 벽은 두꺼워서 애벌레끼리 서로 마주칠 일도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선생님은 밭에 있는 완두콩을 매일 하나씩 견본으로 가져와 갈라 보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특별하게 달라진 점이 없었습니다. 작은 애벌레들은 각각 자기가 뚫은 구멍 속에서 콩 알맹이로 이루어진 주위의 벽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콩의 중심부에 있던 한 마리가 갑자기 다른 애벌레들보다 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와 거의 동시에 다른 애벌레들은 먹는 것을 딱 멈춰 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다 귀찮다는 듯 그대로 움직이지 않더니, 결국은 편안하게 죽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이상하게도 이 작은 애벌레들은 녹아서 모습이 없어지고 콩은 전부 단 한 마리의 애벌레가 차지하게 됩니다. 다른 콩깍지 속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선생님은 그 원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콩의 한가운데는 특별히 부드럽고 맛있으며, 게다가 영양도 많을 것입니다. 모두 그 중심부를 목표로 파먹어 들어갑니다. 그러는 동안, 그 중 한 마리가 먼저 중심부에 도착합니다. 이것으로 경쟁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들 중 한 마리가 중심에 다다랐다는 것을 다른 애벌레들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먼저 도착한 애벌레가 콩을 갉아먹는 소리로 알아내는 걸까요? 어쨌든 그것으로 경쟁은 끝나 버리고 맨 먼저 중심부에 도달한 것 외에는 전부 죽어 버립니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팥을 먹는 팥바구미 종류를 관찰하여 또 다른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팥바구미에게 파먹힌 팥을 살짝 데쳐서 면도칼로 잘게 자르자, 속에서 애벌레와 번데기의 시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시체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니 몸에 물어뜯긴 상처가 있었습니다. 성충이 되어 나간 팥바구미 애벌레에게 물어뜯겨 죽었을 것입니다. 역시 애벌레끼리의 싸움에서 살아 남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체의 수는 처음 낳은 알의 수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 나머지 알은 어떻게 된 걸까요? 이번에는 콩 속에 남아 있는 먹다 남은 찌끼기와 배설물 덩어리를 물에 담가 불려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속에서 애벌레가 벗은 껍질과 시체가 잔뜩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뿔뿔이 흩어져 머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몸이 약간 남아 있는 시체에는 역시 물어뜯긴 상처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작가 에드러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라는 소설에서는 고양이 시체가 벽 속에 든 채 시멘트로 발라져 있었지만 싸움에서 진 팥바구미의 3령, 즉 알에서 깨어난 후 껍질을 두 번 벗은 애벌레 시체는 이렇게 콩의 벽 속에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25,25, 완두콩바구미의 실수? 어쨌든 콩 속은 좁아서 콩 하나에 한 마리의 애벌레밖에 자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완구콩바구미의 애벌레는 다 자라면 몸이 커지므로 하나의 콩속에 두 마리는 무리입니다. 만약 먹을 부분이 많은 누에콩이라면 그것을 먹는 바구미가 5,6 마리 이상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게다가 누에콩과 완두콩은 알맹이 구조가 다릅니다. 누에콩에는 부드러운 부분이 많지만 완두콩은 부드럽고 맛있는 곳이 한가운데에 조금 있을 뿐입니다. 누에콩이라면 하나의 콩으로 여러 마리의 애벌레를 기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완두콩바구미의 어미는 하나의 콩깍지 위에 이처럼 많은 알을 낳았을까요? 나중에 경쟁에서 진 애벌레들이 괴로움을 겪게 될 텐데요. 다른 곤충, 예를 들면 스카라베 사쿠레, 구멍벌, 송장벌레 등은 어미가 먹이의 양에 맞추어 적당한 수의 알을 낳습니다. 파리는 먹을 것이 대량으로 있으면 엄청난 수의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 제 6권에 등장하는 남가뢰처럼 애벌레가 도중에 죽을 확률이 높은 것은 몇천 개의 엄청난 알을 낳습니다. 완두콩바구미의 경우는 위의 어떤 경우와도 다릅니다. 콩깍지 위에서 콩을 한 알씩 잘 살펴보며 알을 낳는다면,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각각 자기의 식량을 정확히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런 바보 같은 방법으로 알을 넣는 걸까요? 이 벌레의 경우 본능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일단 완두콩바구미의 난폭한 산란법에 대해 알아보기를 단념하고 다음과 같이 추리해 보았습니다. '이 완두콩바구미의 먹이는 원래 완두콩이 아니었다. 최초의 먹이는 누에콩이었다 아주 옛날 사람들이 다른 먼 나라에서 프랑스로 누에콩을 가지고 왔을 때 이 콩바구미도 함깨 옮겨 온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야, 콩바구미는 훨씬 옛날부터 있었어." 확실히 완두콩바구미는 완두콩 이외의 야생 콩과 식물도 먹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사람이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프랑스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완두콩을 프랑스로 가지고 들어왔을 때, 완두콩바구미가 야생 콩류로 부터 그것으로 옮겨 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야생 콩보다 완두콩이 더 달고 맛있다고 생각했듯이 벌레들도 더 맛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완구콩바구미가 완두콩을 먹게 되면서부터 이 벌레에게는 곤란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야생 콩의 경우는 하나의 콩깍지 속에 콩이 20알 이상이나 들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콩은 작지만 수가 많으므로 모두 충분히 먹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콩깍지 속에 4,5개의 콩밖에 들어 있지 않은 완두콩 위에서도 어미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 알을 낳는 것입니다. 25,25, 콩껍질 한 장을 남기고 그런데 살아 남은 한 마리의 애벌레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까지는 이 콩이 전부 이 애벌레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식량으로 이루어져 있는 주위의 벽을 야금야금 먹으며 점점 크게 자라납니다. 무더운 7월이 가까워질 무렵 완두콩바구미의 애벌레는 이제 콩 속에서 성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콩껍질이 매우 단단해져 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밖으로 나가면 좋을까요? 이 벌레는 구멍을 뚫을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안에서 콩을 깨뜨릴 힘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없습니다. 이 벌레는 애벌레 시절에 밖으로 나갈 준비를 확실하게 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번대기를 거쳐 성충이 되었을 때는 밖으로 나갈 힘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을 미리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합니다. 애벌레는 단단한 큰턱으로 속에서 으드득으드득 갉아 갑니다. 이대로 계속하면 맨홀처럼 아주 동그란 구멍이 뻥 뚫리는데, 뚫리기 바로 직전에 작업을 멈춥니다. 이제 단 한 장의 껍질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훌륭하게 구멍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홈을 팝니다. 이 정도면 성충이 되었을 때 머리로 살짝 밀기만 해도 그멍이 열릴 것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해 두면 번데기가 되어 조용히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적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이 탈출용 구멍은 밖에서 보면 까맣게 되어 있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애벌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이렇게 구멍을 뚫는 걸까요? 선생님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속에 애벌레가 들어 있는 완두콩의 껍질을 벗기고 작은 유리관에 넣었습니다 껍질이 벗겨진 콩의 표면이 말라서 딱딱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애벌레는 콩 속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얼마 후면 성충이 되겠지요. 만약 애벌레가 스스로 생각해서 탈출용 구멍을 판다면 천장 가까이까지 왔을 때, '이제 곧 밖이구나. 이 정도에서 얇게 남겨 두자.'하고 생각하고 구멍 파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선생님이 콩껍질을 벗겨 버렸기 때문에 그 밑부분을 얇게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벌레는 계속 파서 그대로 구멍을 뻥 뚫어 버렸습니다. 지금부터 번데기가 될 때까지 이렇게 출입구를 열어 두면 위험할 텐데도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것을 본 선생님은 그 이유를 차차 알게 되었습니다. 콩 속에서 바깥쪽으로 계속 먹으며 구멍을 파고 있던 애벌레는 껍질 부근까지 이르면 단단하고 맛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먹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이제 이 정도에서 남겨 두자.'하고 생각하여 멈춘 것이 아니라, 역시 그때그때 적절한 반응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25,25,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이유 8월이 되면 완두콩 위에 동글동글하고 까만 원이 생깁니다. 그것은 어느 콩이든 단 하나뿐입니다. 9월에는 이 뚜껑이 밑에서 위로 열리며 새로운 성충이 나옵니다. 그 무렵이면 8월의 더위도 수그러져 비가 내리고 주위에는 가을꽃이 활짝 피어 있을 때입니다. 콩깍지도 벌어져 있어서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완두콩바구미는 즐거운 듯 가을 햇살 속에서 꽃의 꿀을 빨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가을은 짧아서 겨울 추위가 성큼 다가옵니다. 완두콩바구미들은 머지않아 나무껍질 밑이나 다른 어떤 곳에 숨어들어 겨울을 나야 합니다. 그 중에는 9월이 되어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콩 속에 있는 것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듬해가 되어 따뚯한 봄이 돌아오면 활짝 핀 완두꽃으로 모여듭니다. 이렇게 하여 완두콩바구미는 얼마든지 퍼져 나가 밭에 있는 완구콩을 모조리 먹어 치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벌레에게도 예외없이 천적이 있습니다. 8월 초쯤, 콩바구미의 애벌래가 속에서 얇은 콩껍질 한 장만을 남기고 출구를 준비할 즈음 작은 좀벌이 날아옵니다. 붉은 갈색을 띤 이 암컷 좀벌의 꽁무니 끝에는 긴 침이 붙어 있습니다. 좀벌은 콩깍지 위에 않아 더듬이로 탁탁 두드리며 속을 조사합니다. 그리고 그 긴 침을 깍지 위에서 속으로 찔러 넣습니다. 침은 콩깍지를 지나 콩에 남겨진 얇은 껍질을 꿰뚫고 구멍 속에 숨어 있는 애벌레나 번데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애벌레나 번데기의 몸 속에 알을 낳습니다. 자기가 나중에 밖으로 나가기 위하여 파 놓은 구멍과 얇은 껍질 한 장이 좀벌에게 고스란히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좀벌의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충분히 자라 콩바구미의 애벌레나 번데기를 먹고 자랍니다. 아무리 걱정없이 지내고 있는 벌레라고 해도 반드시 천적은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가 너무 늘어나서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VIII. 강낭콩 바구미 하느님이 주신 식량 강낭콩은 프랑스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콩입니다. 파브르 선생님도 가난했던 시절에 삶아서 기름과 식초를 친 강낭콩을 먹고 배고픔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늘 이 콩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강낭콩은 하나님이 특별히 내려주신 음식이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강낭콩은 부드럽고 맛있으며, 영양도 많습니다. 또 많이 재배하기 때문에 값도 싸서 파브르 선생님이 살고 있는 프로방스 지방의 시골 사람들은 '가난한 자를 배부르게 하는 콩'이라고 했습니다. 실로 이것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 해도 좋을 만큼 고마운 음식입니다. '이 콩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프랑스에 있었을까? 만약 외국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면 그 원산지는 도대체 어는 나라일까?' 파브르 선생님이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이것을 해치는 해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식물과 곤충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옛날부터 어떤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든 반드시 그 식물을 좋아하는 벌레가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선생님은 농부들에게 물어 보기로 했습니다. 농부들은 자기가 재배하는 작물에 대한 것은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콩을 삶아 먹기 때문에 만약 해충이 있다면 강낭콩 깍지를 벗길 때 금방 방견할 것입니다. "강낭콩에 벌레는 없습니까?" 선생님이 묻자 모두들, '바보 같은 걸 물어 보는군.'하는 듯한 얼굴을 했습니다. "선생님, 강낭콩에 벌레 같은 것은 없어요. 완두콩이나 누에콩 등은 모두 벌레가 먹지만 강낭콩만을 괜찮죠. 강낭콩까지 벌레에게 주어 버리면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사나요." 그렇습니다. 다른 콩은 모두 콩바구미류에게 해를 입지만 강낭콩만은 유일하게 벌레에세 해를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렇게 크고 맛있는 콩이 유일하게 벌레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사살을 조금 이상해게 여겼습니다. '이 콩도 감자나 고추처럼 어딘가 먼나라에서 들여왔는데, 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해충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을 거야.' 25,25, 농작물의 세계 여행 파브르 선생님은 고대 로마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 시 속에도 캐비추나 베이컨 수프, 뜨거운 재 속에 넣어 요리한 알, 소금을 친 물고기 등에 대해서는 매우 자세히 쓰여 있지만 강낭콩에 대해서만은 나오지 않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아직 이 콩이 없었을까요? 강낭콩을 프랑스어로는 '아리코'라고 하는데, 선생님운 늘 이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혀 프랑스 말 같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신대륙의 어느 나라 말 같은 느낌입니다. 마침 그 무렵 파브르 선생님의 고향 마을 학교 선생님이신 줄리앙 선생님이 빌려준 잡지 속에 재미있는 것이 쓰여 있었습니다. 남미에 관해서 잘 알고 있는 당시의 유명한 시인이 이 아리코라는 말에 대하여 언급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아리코라는 말은 원래 남미 인디언의 말로서 17세기에 프랑스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아야코'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프랑스로 건너와 아리코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멕시코를 비롯한 그 주변 나라가 아리코, 즉 강낭콩의 원산지였던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예상한 대로입니다. 신대륙에서 퍼져 나간 식물은 강낭콩뿐만이 아닙니다. 토마토, 고추, 감자, 담배도 모두 멕시코와 페루의 고산 지대가 원산지인 식물입니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태국이나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 그리고 인도 등에도 상당히 매운 고추가 있어, 그 나라 사람들은 고추가 빠진 요리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고추가 아시아에 전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의 고추는 일본에서 전해졌습니다. 또, 일본에는 16세기에 스페인 사람과 포르트갈 사람이 전했습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에 전해진 것도 거의 비숫한 시기입니다. 우리 나라나 태국 둥에서 고추가 많이 쓰이게 된 것은 아마도 기후나 풍토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는 겨울이면 대단히 추워집니다. 그런데 고추를 먹으면 몸이 따뜻해집니다. 반면, 태국처럼 더운 나라는 화끈하게 매운 것으로 식욕을 자극할 필요가 있습니다. 토마토도 신대륙의 안데스 산맥에서 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를 특히 좋아해서 황금 사과로 불리며, 스파게티 소스나 고기 요리의 재료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채소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이탈리아에 토마토가 없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토마토 없는 식탁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하고 이탈리아의 주부와 요리사들이 양손을 내저으며 말합니다. 25,25, 감자가 널리 퍼지기까지 토마토보다 훨씬 중요한 작물로서 주식이 된 것은 감자입니다. 감자도 안데스 고지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는데, 그 덕분에 유럽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유년 시절을 보낸 르에르그 지방의 추운 산속에서도 감자는 잘 자랍니다. 보리나 포도를 재배할 수 없는 토지에서도 감자만 있으면, 인간의 식량이 되는 것은 물론, 돼지를 기를 수도 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곤충기' 외에도 수십 권에 이르는 과학책을 썼는데, 그 가운데는 프랑스에 감자가 들어오게 된 과정과 역사가 쓰여 있습니다. 유럽에 처음으로 갑자가 들어온 것은 16세기 중엽으로, 스페인 사람이 그 열매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후 유럽 각지로 퍼졌으나 처음에는 꽃이나 잎을 감상하는 것이 주된 용도였고 식용으로는 쓰이지 않았습니다. 1616 년에 루이 13세가 먹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것은 임금님이 신기해서 한 번 먹어 본 것일 뿐, 실제로는 매우 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음식이든 처음에는 모두 독이 있다거나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며 좀처럼 손을 대지 않는 법인데, 감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신대륙에서 들여온 감자는 오랫동안 단순히 진기한 식물로서 식물원 등에 심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 말엽 파르망체라는 프랑스 사람이 감자가 식용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널리 보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파르망체는 전쟁 당시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을 때 감자를 먹어 보았던 것입니다. 감자는 원래 안데스 산지에서 자라던 식물이므로 춥고 매마른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다른 작물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쁜 기후가 계속되어도 감자는 사람들을 굶주림으로부터 구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뜨거운 재 속에 묻어 두면 따끈따끈하여 소금만 쳐도 매우 맛있는 음식이 되고, 베이컨 등과 함께 삶으면 더욱 맛있습니다. 가루로 만들어 반죽하지만 않는다면 밀가루 등과 비교했을 때에도 훨씬 손이 덜 가는 작물입니다. 파르망체는 당시의 왕, 루이 16세에게 감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루이 16세도 그 생각에 동감하고 감자를 프랑스 전역에 보급하는 일을 적극 도와 주었습니다. 그래서 루이 16세는 어느 날 감자 꽃다발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왕이 가지고 있는 저 수선화 같은 아름다운 꽃은 무엇일까?' 유행에 민감한 귀족들은 그 정체를 필사적으로 알아내어 자신의 정원에서 길렀습니다. 드디어 거리의 꽃가게에서도 감자꽃이 팔리게 되었지만 팔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꽃을 뿐이고, 정작 중요한 감자를 먹으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축에게도 먹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독이라도 들어서 죽어 버리면 큰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독이 있다는 소문이 일단 퍼지면 그것을 해명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감자의 싹에는 약간의 독이 퍼함되어 있지만 그 곳을 잘라 내고 먹으면 됩니다. 파므망체는 파리 근교에 넓은 밭에 감자를 심었습니다. 첫해의 수확은 농부 몇 사람에게 매우 싼 값으로 팔았으나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음해에는 그냥 주어도 반가워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파르망체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감자 수확 시기가 가까워질 무렵, 근처의 마을마다 '감자에 손을 대는 것을 금지한다.'는 방을 내걸었습니다. 만약 이를 위반하는 사람이 있으면 처벌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밭 주변에 보초를 세워 엄중히 감시하도록 앴습니다. 단, 보초는 낮에만 세웠습니다. 경계가 너무 삼엄하자 농민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게다가 '가져가지 마시오.'하면 누구나 가져가고 싶어집니다. '저렇게 보초를 세우고 있는 것 보면 틀림없이 비싸고 중요한 물건일 거야.' 그리하여 보초가 없는 밤중에 감자를 살짝 훔쳐가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고, 점점 더 대담해진 농민들은 감자 열매를 파내어 큰자루에 한가득 채워서 가져갔습니다. 농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자가 널리 보급되길 바라고 있던 파르망체는 눈물을 훌리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감자는 온 프랑스에 퍼지게 되었고,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작물이 된 것입니다. 이상이 파브르 선생님이 소개한 감자의 역사입니다. 25,25, 강낭콩바구미의 출현 그러면 다시 강낭콩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강낭콩은 원신지에서 강낭콩을 좋아하는 콩바구미가 붙지 않은 상태로 프랑스에 수입된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고맙게도, 옛날부터 프랑스에 있던 콩바구미들은 이 진기한 콩을 먹을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해충이 없는 상태로 살 수는 없었습니다. 파브르 선생님 시대에는 신대륙과의 왕래와 무역이 갈수록 성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때쯤인가 멕시코에서 대량으로 들여온 강낭콩 속에 벌레 몇 마리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남프랑스의 다른 지방에 살던 친구가 벌레에게 심하게 파먹혀서 구멍투성이가 된, 마치 스펀지 같은 강낭콩을 선생님에게 보내왔습니다. 그 속에는 콩바구미를 닮은 벌레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강낭콩바구미가 드디어 프랑스에도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을 보내 준 친구의 편지를 읽어 보니, 그 지방에서는 이 콩바구미, 즉 강낭콩바구미가 크게 발생하여 강낭콩을 시장에 내다 팔기는커녕 자신이 먹을 것도 겨우 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에게 이 벌레에 대하여 조사해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자, 이제 서둘러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머지않아 선생님이 사는 지방도 이 벌레의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6월 중순이었습니다. 아르마스 정원에는 강낭콩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벌레가 가득 들어 있는 구멍투성이의 콩알을 접시에 담아 해가 잘 드는 콩밭에 두었습니다. 자신의 밭을 실험 대상으로 희생할 각오를 하고 이 무서운 벌레를 풀어놓은 것입니다. 마침 꽃도 피어 있고 콩깍지도 열려 있었습니다. 물론 실험용으로 일부는 유리병에 넣어 연구실에 남겨 놓았습니다. 같은 콩바구미 종류인 완두콩바구미의 생활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부더 어떻게 될지는 선생님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벌레들은 붕 날아올라 맛있는 콩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곧장 거기에 앉을 것입니다. 그리고 꽃이나 콩깍지 위를 돌아다니다가 알을 낳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벌레먹은 콩이 담긴 접시를 땅에 내려놓자 벌레들은 딱지날개를 펴고 차례차례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강낭콩에 않은 것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 동안 자유로이 날아다니다가 이 밭으로 다시 돌아올까요? 아닙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선생님은 꽃과 콩깍지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콩바구미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알을 낳아 놓지도 않았습니다. 완두콩바구미를 관찰해 본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이 알을 낳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분명한데,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걸까요? 한편, 유리병 속에 남겨 둔 임컷은 바삭바삭 마른 완구콩 위에 드문드문 알을 낳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계절에 실험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아르마스에는 8월과 9월에 열매를 맺는 각기 다른 품종의 강낭콩이 심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용하여 다시 실험을 해 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몇 주일쯤 지난 후, 강낭콩바구미를 정원에 놓아 주었습니다.그러나 결과는 지난번과 꼭 같았습니다. 강낭콩바구미는 강낭콩 밭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밭뿐만 아니라 연구실에서도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밭에서 금방 따 온 깍지가 붙은 강낭콩 덩굴을 유리병 속에 넣고 벌레를 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암컥이 알을 낳은 곳은 콩 위가 아니라 유리병 벽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요? 그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자 선생님은 콩깍지에 들어 있는 신선한 강낭콩을 주면서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애벌레들은 이쪽저쪽으로 열심히 돌아다닐 뿐 아무것도 먹지 않다기 그만 죽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콩바구미는 완전히 익지 않은 콩은 먹지 않는다. 완두콩바구미와는 달리 강낭콩바구미는 곡물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완전히 익은 건조한 콩만 먹는 것이 틀림없다.' 이 생각이 옳다면 콩바구미가 콩밭에 아^36^예 오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파브르 선생님은 오래되어 딱딱한 콩을 유리병 속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생각한 대로 알에서 나온 애벌레들은 이 단단한 콩을 갉아먹기 시작하더니 콩 속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25,25, 제일 좋아하는 곳은 창고 안 강낭콩은 보통 충분히 익은 뒤 덩굴과 콩깍지가 바삭바삭하게 마를 때까지 밭에 내버려둡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콩을 꺼내기가 쉽습니다. 콩깍지를 두드리면 간단히 터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콩깍지 속의 콩이 마를 무렵에 이 강낭콩바구미가 찾아와 알을 낳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밭에서 콩을 늦게 거두면 콩과 함께 이 콩바구미의 알과 애벌레도 곡물 창고 속으로 침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콩바구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강낭콩이 가득 채워져 있는 창고 안입니다. 쌀바구미도 논의 벼에는 붙지 않지만 쌀 뒤주 속에는 들어갑니다. 강낭콩바구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콩바구미가 창고 속에 침입하면 큰일나지.' 파브르 선생님은 유리병 속에 이 벌레를 기르고 있으면서도 오싹했습니다. 콩 한 알로 20 마리나 키울 수 있습니다. 더구나 1 년 사이에 3 대, 4 대가 계속 태어납니다. 콩 알맹이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애벌레는 자라서 어른벌레가 되고, 알을 낳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 수가 늘어나 콩 속이 가루가 될 때까지 계속 먹어 대는 것입니다. 완두콩바구미의 경우, 마지막까지 콩 속을 파먹어 들어가는 것은 단 한 마리이며, 콩 속에 터널을 파고 주위의 벽을 먹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콩을 심으면 싹이 돋아나고, 요리를 해도 아직 먹을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낭콩바구미의 경우는 콩 속을 완전히 다 먹어 버립니다. 선생님은 3 년 간 강낭콩을 심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습니다. 강낭콩바구미는 강낭콩 이외의 콩도 잘 먹습니다. 완전히 익은 콩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강낭콩바구미는 곡물 창고의 무서운 해충입니다. 단, 렌지콩만은 웬지 잘 먹지 않습니다. 이 벌레가 만약 콩뿐만 아니라 대맥, 소맥, 쌀, 옥수수 등의 곡류도 먹는다면 그야말로 무서운 일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런 곡류들을 넣은 유리병 속에 이 강낭콩바구미를 풀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런 곡류에서는 애벌레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원두나 해바라기 씨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곡류는 먹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강낭콩바구미의 어미벌레는 예외입니다. 어미벌레는 동그랗고 작은 것이라면 옥수수든 원두든 상관없이 알을 낳습니다. 그런 산란법은 정말로 질릴 정도입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입에 맞는 먹이가 없어서 죽어 버리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입니다. 강낭콩바구미의 암컷은 만져 보아 표면이 매끄럽고 둥글에 되어 있는 것이라면 유리알에라도 알을 낳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유리병에 알을 낳은 것입니다. 입 주위의 짧은 수염으로 더듬어 보고 알을 낳는 것을 결정합니다. 알을 낳고 5일 정도 지나면 애벌레가 깨어납니다. 갓 깨어난 애벌레는 단단한 큰턱과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애벌레들은 비록 작지만 잘도 돌아다니면서 먹을 콩을 찾습니다. 드디어 콩을 발견하면 열심히 갉아먹기 시작하여 4,5주 사이에 충분히 자란 애벌레가 됩니다. 기리고는 이윽고 번데기가 되고, 마침내 성충이 되어 나오게 됩니다. 자라는 기간이 짧아서 이 벌레가 활동을 시작하는 봄부터 가을이 끝날 무렵까지 1 년 동안에 어미에서 새끼로 몇 세대나 반복됩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길러 본 바로는 4세대를 반복했습니다. 한 마리의 벌레에서 약 80 마리의 다음 세대가 깨어났습니다. 그 수의 반이 암컷이고 그 벌레들이 다 자란다고 하면 그 해 말에는 500 만 마리가 넘는 엄청난 수가 됩니다. 물론 실제로는 먹을 것도 부족해지고 천적도 있어서 다 살아 남지는 못합니다. 히지만 아무리 큰 창고라도 강낭콩바구미가 몇 마리만 침입하면 안에 저장해 두었던 콩은 몇 년 안에 전부 못쓰게 되고 맙니다. 콩 속에서의 애벌레의 생활은 완두콩바구미와 비슷합니다. 애벌레는 콩 속에 방을 만들어 주위의 벽을 먹고, 마지막에는 콩껍질만 남긴 채 번데기가 됩니다. 그리고 성충이 되면 그 콩껍질을 밀어내고 뻥 뚫어진 동그란 구멍에서 나옵니다. 성충이 되고 나서는 별로 먹지 않지만 콩이 창고 속에 있는 한 대대로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살아갑니다. 실제로 콩이 가득 채워져 있는 창고처럼 꿈 같은 장소는 밖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누가 그 좋은 곳을 나가겠어요?"하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IX. 들판의 매장충, 송장벌레 1. 죽은 것들의 뒤처리 생명의 연금술사들 매년 봄이 되면 많은 벌레가 모습을 나타냅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나무와 풀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벌레들의 먹을 것이 준비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란 초식 벌레를 육식 벌레가 먹고, 또 그 육식 벌레를 작은 새가 쪼아먹을 수 있으므로 새, 짐승들도 새끼를 낳아 수를 늘려 갑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면 이 지구상은 생물로 가득 차 버리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또 많은 생물이 죽어 갑니다. 여러분은 산이나 들판을 걷다가 벌레나 새의 시체를 본 적이 있습니까? 도대체 동물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동물은 죽으면 금방 썩기 시작합니다. 나무나 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가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박테리아는 동물의 몸을 분해하여 자신들의 양분으로 삼아 수를 점점 늘려 갑니다. 만약 박테리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건이 썩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죽어서 말라 버린 동물이나 낙엽등이 언제까지나 땅 위에 남는다면 주변이 온통 그런 것으로 뒤덮여 버릴 것입니다. 한편, 생물이 죽으면 곧 여우나 솔개 등 다른 동물이 와서 먹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동물이 오지 않아도 시체 처리 전문인 곤충들이 처리해 줍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살던 시대에는 논 옆에서 농부의 곡괭이에 맞아 죽은 두더지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두더지가 밭에 구멍을 파고 작물의 뿌리를 갉아먹는 나쁜 짓을 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풍뎅이 애벌레나 지렁이 등을 먹을 뿐 작물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먹이를 찾을 때 어쩔 수 없이 밭의 흙을 파헤쳐 놓을 뿐입니다. 시골에 가면 울타리 근처에 아이들이 돌을 던져서 죽인 도마뱀이나 장지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동물은 죽여 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뱀을 발견하면 그 즉시 죽여 버렸던 것입니다. 또 태픙이 불면 새끼새가 둥지에서 떨어져 그대로 죽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동물 시체에는 시체를 치우는 들판의 매장충들이 몰려옵니다. 가장 먼저 오는 개미는 조금씩 고기를 물어뜯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파리가 모여듭니다. 먼 곳에서 시체 냄새를 맡고 달려오는 것입니다. 같은 무렵, 사방에서 몸이 까맣고 얇은 넓적송장벌레와 반짝반짝 빛나는 동그란 풍뎅이붙이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배가 하얀 수시렁이, 날개가 짧아서 등이 둥그렇게 된 깡마른 모습의 반날개 등이 하나 둘 몰려옵니다. 이 벌레들은 아주 열심히 시체를 뜯어먹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곤층이 모여드는 둥물의 시체를 발견하면, 언제나 주의해서 보았습니다 사실은 그 옆에서 천천히 관찰해 보고 싶었지만 길가에서 시체를 만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와서 귀찮은 질문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4월말 무렵, 발 옆에서 뒹굴고 있는 두더지 시체를 발견한 선생님은 주위를 삺펴본 뒤 막대기와 구두 끝으로 시체를 뒤집어 보았습니다. 시체 밑에서는 엄청난 숫자의 시체 처리 요원들이 큰 소란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새까만 딱지날개를 가진 넓적송장벌레는 허둥지둥 도망치며 구석 쪽으로 파고 들려고 합니다. 햇빛이 반사될 정도로 반짝거리는 루리풍뎅이붙이는 뒤뚱뒤뚱 도망칩니다. 옅은 갈색에 까만 반점이 박힌 옷을 입은 수시렁이가 날아오르려고 하다가 뒤집혀 새하얀 배가 보입니다. 모두들 죽은 두더지를 먹거나 그 속에 알을 낳고 있었습니다. 죽은 동물이 썩으면 프토마인이라는 독소가 나옵니다. 그것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에게는 위험한 것이지만 이 벌레들은 그런 유독성 시체를 태연히 먹어 버립니다. 자신들의 몸을 통하여 시체를 분해하고 무해하게 만들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즉, 시체를 양분으로 삼아 자손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이 벌레들은 지상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시대에 연금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납이나 동과 같은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비법으로, 아라비아나 유럽에서 여러 형태로 발전되었습니다. 연금술사 중에는 가짜 학자나 사기꾼도 있어서 욕심 많은 왕이나 부자 귀족에게 황금을 늘려 준다고 속여서 받은 금을 가지고 밤중에 몰래 도망간 일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금속이나 약품을 섞어 열을 더하는 과정에서 화학이나 야금학을 발전시키게 되었고, 근대 과학에도 공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연금술사는 황금을 늘리지 못했지만 벌레들은 시체에서 거뜬히 새로은 생명을 탄생시캤습니다. 이 벌레들은 '생명의 연금술사'입니다. 이 벌레들이 사라진 후 시체는 길가에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낡은 구두처럼 바싹 마른 가죽과 뼈만 남았습니다. 이제 독이 나올 염려는 없지만 수시렁이나 혹줄풍뎅이 등은 아직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딱딱한 껍질과 뼈만 남은 시체를 맡아서 털 하나 힘줄 하나까지 깨끗이 먹어 치워 다시 생명의 보물 창고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런 일꾼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두더지 시체를 원상태로 해 두었습니다. 25,25, 구멍 파는 멋쟁이 벌레 밭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들은 두더지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들쥐, 생쥐, 뱀, 도마뱀 등입니다. 이런 시체를 주의해서 살펴보면, 매장충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활동이 활발한 벌레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송장벌레입니다. 이 벌레는 시체에 모이는 것들 중에서도 유난히 멋있고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습성도 다른 종류와 매우 다릅니다. 송장벌레를 잡으면 독특한 냄새가 납니다. 그것은 향수에 사용하는 사향 향기와 비숫합니다. 붉은 더듬이는 끝이 불룩하여 솔처럼 되어 있고, 딱지날개에는 아름다운 주홍색 무늬가 나 있어 빨간 조끼를 입은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벌레들이 장례식 때처럼 검은 색만 입고 있는 데 비하면 대단히 멋있고 눈에 잘 띕니다. 송종벌레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모두 비숫한 모양을 하고 있어, 이 붉은 조끼가 마치 유니폼처럼 보입니다. 송장벌레는 큰턱의 어금니로 고기를 잘라 가지 않습니다. 이 벌레는 땅을 파고 수확물을 통째로 흙 속에 묻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진짜 매장충인 것입니다. 넓적송장벌레와 수시렁이, 풍뎅이붙이 등은 새끼들의 식량을 확보함과 동시에 자기들도 그 고기를 우적우적 먹습니다. 그런데 송장벌레는 자기가 먹은 양은 아주 적고 대부분을 흙 속에 묻어 애벌레의 식량으로 삼습니다. 송장벌레는 걸음걸이가 매우 둔하고 움직임도 어색하지만, 시체를 구멍 속에 매장하는 일은 멋있고 솜씨 좋게 해치웁니다. 두더지처럼 큰 동물이라도 몇 시간 이내에 깨끗이 묻어 버립니다. 다른 벌레들은 바삭바삭해진 시체의 빈 껍질을 땅 위에 남기지만 송장벌레는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도록 깨끗이 땅속에 묻어 버립니다. 일이 끝아면 흙만 조금 부풀어올라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송장벌레는 들판을 청소라는 벌레들 중에서도 가장 빨리 일을 해치우는 부지런한 곤충입니다. 파브르 선생님 이전에 살던 곤충학자에 의하여 송장벌레는 인간과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라코르데르라는 사람이 쓴 '곤충학 서설'이라는 책 속에는 송장벌레의 지혜를 증명하는 두 개의 예가 실려 있습니다. 라코르데르는 두 학자의 연구를 인용하여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1) 클레르빌은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송장벌레가 한 마리의 생쥐 시체를 흙 속에 묻으려고 했는데, 땅이 너무 단단하였다. 그러자 송장벌레는 그 옆의 부드러운 곳에 구멍을 파고 쥐를 묻으려고 했지만 쥐가 너무 무거워서 옮길 수가 없었다. 송장벌레가 날아가 버려서 포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는데, 잠시 후 네 마리의 동료와 함께 돌아왔다. 동료들은 이 송장벌레를 도와 쥐를 옮겨서 묻었다. 라코르데르는 이에 덧붙여 "이러한 행위를 보니 송장벌레에게는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레디치가 보고한 이야기도 송장벌레에게 이성이 있다는 것을 중명하고 있다. 그레디치의 친구가 두꺼비를 햇볕에 말려 표본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래서 송장벌레에게 먹히지 않도록 땅 위에 나무막대를 꽂고 그 위에 두꺼비를 얹어 두었다. 그러나 이것도 소용없었다. 송장벌레는 막대기의 밑둥을 파고 넘어뜨려서 두꺼비와 함께 묻어버렸다. 라코데르는 곤충이 사물에 대해 정확히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궁리를 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송장벌레의 지혜를 증명하는 이 두가지 이야기가 정말일까, 하고 버릇처럼 먼저 의심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곤충을 연구하려면 무엇보다도 솔직하게 사물에 대해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약삭빠른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곤충 연구를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어린아이처럼 모두 믿어서도 안 된다. 가능한 한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믿는 것이 중요하다. 곤충이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송장벌레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전에 실험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25,25, 두더지 시체로 송장벌레를 불러모은다. 파브르 선생님은 송장벌레를 직접 길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송장벌레를 많이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이 사는 지방에는 송장벌레 무리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북쪽에는 송장벌레 종류가 많지만 세리냥 부근에는 가슴무늬송장벌레 한 종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수도 적습니다. 봄이 되자 선생님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겨우 서너 마리의 가슴무늬송종벌레를 채집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2 마리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들판을 마냥 돌아다녀서는 송장벌레를 필요한 수만큼 채집할 수가 없습니다. 이 벌레를 잡는 데는 4월이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이쪽에서 벌레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벌레가 오도록 만들자.'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정원에 송장벌레가 좋아하는 것을 놓아두면 됩니다. 그래서 죽은 두더지를 정원에 많이 놔두기로 하였습니다. 송장벌레들은 두더지 시체를 찾아 멀리서부터 모여들 것입니다. 아르마스 정원에도 밭이 있어서 야채를 조금 심기는 했지만 역시 대부분의 땅이 돌멩이투성이로 매말라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세 번, 이웃의 농부들이 아스파라거스나 양배추 등의 야채를 팔러 집으로 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농부에게 부탁했습니다. "죽은 두더지가 많이 필요한데요." 이 농부는 밭에 터널을 파고 장난을 치는 두더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에 덫을 치거나 발견하는 대로 곡괭이로 쳐서 죽이고 있었습니다. "두더지요? 밭을 온통 망쳐 놓는 그 두더지 말입니까? 죽은 놈도 좋다면 매일 두세 마리는 갖다드릴 수 있습니다만 죽은 두더지로 무엇을 하시려구요?" "연구에 필요해서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농부는 자신의 적인 두더지를 파브르 선생님이 갖고 싶어하는게 이상해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어쨌든 갖다 주기로 하였습니다. 농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선생님이 사실을 두더지 껍질을 이용해서 조끼라도 만드실 모양이야. 벨벳처럼 부드럽고 포근해서 류머티스에 좋지 않을까?' 두더지 시체는 두세 마리씩 양배추 잎에 싸여서 전달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두더지의 수는 모두 30 마리나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정원 구석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아두었습니다. 두더지가 '썩어서' 송장벌레에게 먹히게 될 순간을 기다리기만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 썩은 두더지를 보러 갔습니다. 물론 가까이 가면 심한 냄새가 났습니다. 송장벌레의 생활을 어떻게든 알고 싶다는 열정이 없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들 폴만이 선생님을 도와 주었습니다. "아빠, 송장벌레한테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요." "그래, 사향 같은 냄새가 난단다." "사향?" "중국 오지에 있는 노루의 일종에서 채취한 향수야. 값이 매우 비싼 거지." "그럼 송장벌레에서도 향수가 나오지 않을까요?" "글쎄, 아직 아무도 해 본 사람이 없단다. 네가 연구해 볼래? 성공하면 큰 부자가 될 텐데." 폴과 파브르 선생님은 교대로 두더지를 보러 갔습니다. 바람이 불어 썩은 고기 냄새가 퍼져 나가면 송장벌레는 사방팔방에서 모여듭니다. 선생님의 채집법을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처음에는 네 마리밖에 없던 파브르 선생님의 사육상자 속에 10 마리의 송장벌레가 더해졌습니다. 이 정도면 어떤 실험이라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25,25, 시체라면 무엇이든 오라. 송장벌레는 자신의 몸 크기에 맞는 먹이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것을 그대로 이용할 뿐입니다. 송장벌레의 먹이의 크기는 여러 가지입니다. 작은 것으로는 생쥐, 중간 크기로는 들쥐, 그리고 큰 것으로는 두더지, 큰 뱀 등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큰 것은 한 마리가 혼자 처리할 수 없습니다. 먹이는 보통 송장벌레 자신의 몇백 몇천 배의 무게이므로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겨우 밑으로 파고 들어가 살짝 흔드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제 2권에서 보았듯이 사냥벌의 일종인 나나니나 노래기벌, 구멍 벌 등은 먼저 장소를 선택한 다음 벌집 구멍을 파고, 그 장소까지 사냥물을 안고 날아가거나 더듬이를 물고 질질 끌고 갑니다. 송장벌레의 경우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파기 쉽고 부드러운 픍 위에 먹이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너무 단단한 땅 위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강한 뿌리를 가진 잔디가 철망처럼 온통 둘러쳐져 있는 곳이라든가, 시체가 덤불에 걸려 땅위에서 몇 센티 위로 솟아올라 있는 일도 있습니다. 농부들이 곡괭이로 두더지를 쳐서 골프 공처럼 날아가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체를 흙 속에 묻기 위해 송장벌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한 가지의 매장법만 알았더라면 도저히 이 세상에서 살아 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두 가지 예를 보고, 송장벌레는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벌레의 일하는 태도를 여러 가지 경우로 나누어 자세히 조사해 보기로 합시다. 송장벌레는 먹이를 고르지 않습니다. 짐승이든 새든 개구리든 뱀이든 무엇이든지 흙 속으로 치워 버립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사육 상자 속의 송장벌레에게 외국산 금붕어와 관상용 잉어를 주어 보았는데, 그것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도 물론 대환영입니다. 양의 갈비, 비프스테이크 조각 등이 상해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면, 벌레들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맛있는 냄새로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이 벌레가 일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으며, 기르기도 간단합니다. 화분 속에 흙을 가득 채우고 물을 뿌려 약간 촉촉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도망가지 않도록 망사를 씌워 놓습니다. 단, 고양이가 두더지를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유리로 만든 작은 온실에 사육 상자를 놓아두었습니다. 25,25, 훍 속에 잠기는 두더지 그런데 송장벌레는 어떻게 두더지를 흙 속에 묻을까요? 선생님은 먼지 파삭파삭해서 파기 좋은 흙 위에 두더지를 놓고 거기에 송장벌레 네 마리를 넣었습니다. 수컷 세 마리에 암컷 한 마리입니다. 송장벌레들은 재빨리 시체 밑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밖에서는 벌레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시체 밑에 들어간 송장벌레가 밑에서 흔들흔들 흔들어 가끔씩 시체를 들어올립니다. 마치 두더지가 다시 살아난 듯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입니다. 아주 가끔씩 두더지 밑에서 송장벌레 한 마리가 올라와 두더지 주위를 기어다니며 먹이를 점검하듯이 털 속을 더듬고 있습니다. 이 일은 대부분 수컷이 합니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두더지 밑으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잠시 후 다시 모습을 나타내어 한 번 더 두더지를 살펴보고 갑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됩니다. 두더지는 전보다 훨씬 심하게 흔들립니다. 그러는 동안 두더지 밑에서 올라온 흙이 그 주위에 높이 쌓여 갑니다. 두더지 자신의 무게와 그 밑에서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송장벌레의 움직임으로 두더지는 천천히 잠겨 갑니다. 두더지가 깊이 잠기면 주변의 흙이 무너져 내려 마지막에는 시체를 완전히 덮어 버립니다. 송장벌레는 정말 훌륭한 매장충입니다. 처음에는 흙이 수북하게 솟아올라 송장벌레가 밑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으므로 두더지는 아주 서서히 충분한 깊이까지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송장벌레의 일 처리 방법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두더지 밑의 흙을 파서 무거운 두더지를 흔들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하며 밑으로 파고들도록 할 뿐입니다. 흙이 부드러울 때는 시체 밑을 그저 파기만 해도 시체는 쉽게 땅 속으로 들어갑니다. 튼튼한 다리 끝으로 흙을 잘 파고, 시체 밑에 들어가 잘 흔들기만 하면 됩니다. 게다가 송장벌레는 좁아서 통과하기 힘든 곳에서도 두더지를 흔들어 먹이의 몸을 가늘고 길게 한 뒤 어떻게든지 통과시켜 버립니다. 이 방법이 실은 송장벌레의 작업을 위해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두더지의 모습이 흙 속에 잠겨서 보이지 않아도 흙 표면이 아직 약간이라도 움직이고 있다면 송장벌레가 아직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송장벌레가 일을 계속하도록 좀더 두어 봅시다. 2, 3일 후에 파브르 선생님은 흙 속을 다시 파 보았습니다. 가족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폴에게만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두더지는 완전히 모습이 변해 있었습니다. 푸르뎅뎅하고 나쁜 냄새를 피우는 쭈그러든 고깃덩어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털도 없어졌습니다. 이렇듯 고깃덩어리처럼 만들고, 털까지 없애 버리는 데는 상당한 가공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털이 있으면 애벌레가 먹기 힘들 것 같아 벗겨 버린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썩어서 떨어져 나간 것까요? 송장벌레의 먹이를 파내어 보니, 새의 경우는 몸체의 날개가 완전히 벗겨져 있고, 꼬리와 날개 등 큰 깃털만 남아 있었습니다. 물고기나 파충류의 경우에는 비늘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럼, 가공된 두더지 주변을 잘 살펴봅시다. 송장벌레는 구멍을 파고 있었습니다. 그 벽은 단단해서 마치 잘 지어진 공장 같았습니다. 제 1권에서 배설물 빵을 만들던 뿔뚱풍뎅이의 방에 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합니다. 고깃덩어리는 그 속에 저장되어 있는데, 털이 없어진 것 이외에는 몸의 어느 한 부분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송장벌레들이 아직 갉아먹지 않은 것입니다. 이 고깃덩어리는 새끼를 위한 먹이입니다. 어미들이 고기 즙을 약간 맛볼지도 모르지만 먹지는 않습니다. 이 가공품 옆에 있는 송장벌레는 암컷과 수컷, 두 마리뿐입니다. 묻을 때는 네 마리가 하나가 되어 일했는데, 나머지 수컷 두 마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이 찾아보니 두 마리의 수컷들은 지표면 가까이에 얌전히 있었습니다. 먹이를 묻을 때는 수컷이 몇 마리가 됐든 모두들 도와 주지만 다 묻은 후에는 암수 한 쌍만 집 속에 남습니다. 도와 준 수컷들은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송장벌레의 수컷은 가족을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합니다. 다른 벌레의 경우 수컷은 새끼 키우는 일을 도와주지 않고, 모두 어머벌레에게 맡깁니다. 그러나 송장벌레의 수컷은 자기 새끼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할 뿐 아니라 다른 집 아이들에게도 신경을 써 줍니다. 한 쌍의 암컷과 수컷이 고생하며 두더지를 묻고 있을 때면, 다른 수컷 벌레들이 날아와 함께 두더지 밑을 열심히 파서 묻어 주고는 사라집니다. 그러면 남은 암컷과 수컷이 힘을 합하여 애벌레가 먹기 쉽도록 천천히 두더지를 가공하는 것입니다. 애벌레의 식사 준비가 완전히 끝나면 암컷과 수컷은 뿔뿔이 어디론가 가 버립니다. 다른 송장벌레의 일을 도우러 가는지도 모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가족을 위하여 일하는 수컷을 본 것은 지금까지 두 번뿐입니다. 한 번은 꼬마쇠똥구리라는 똥풍뎅이의 일종이고, 두 번째가 이 송장벌레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도와 줘야지.'하고 생각하여 하는 행동은 아닌 듯합니다. 송장벌레의 수컷은 가끔 시체를 묻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자기 새끼들을 위해서든 아니든 시체만 있으면 무조건 묻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25,25, 성장이 빠른 애벌레 그럼 송장벌레의 애벌레가 어떻게 자라는지 직접 살펴보기로 합시다. 4월 중순경에 사육 상자 안에서는 송장벌레들이 큰 쥐를 파묻고 있었습니다. 5월에 그것을 흙에서 파내어 보니, 검은 아스팔트처럼 걸쭉하게 녹은 기분 나쁜 덩어리가 되어 15 마리의 애벌레에게 먹히고 있었습니다. 애벌레들은 모두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성충 몇 마리도 이 썩은 쥐에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분명히 그 애벌레와 나란히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송장벌레 새끼의 성장은 매우 빠릅니다. 큰 쥐가 땅속에 묻히고 나서 2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애벌레들은 벌써 번데기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걸까요? 보통은 이런 썩은 음식을 먹으면 프토마인이라는 독에 중독되어 죽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송장벌레에게는 반대로 그것이 매우 좋은 양분이 되어 성장을 돕고 있다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하였습니다. 게다가 이 음식은 빨리 먹지 않으면 녹아서 흙 속에 스며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송장벌레의 애벌레들은 빨리 먹고 빨리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장벌레의 애벌레는 흙 속에 있는 다른 벌레의 애벌레와 마찬가지로 눈이 없는 하얀 벌레입니다. 창 끝처럼 뾰족한 몸은 딱정벌레의 애벌레와 비슷한 형태이며, 검고 강한 큰턱으로 먹이를 자릅니다. 또한, 다리는 짧지만 매우 빨리 기어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던 성충들의 몸에는 진드기가 심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4월에 보았을 때는 아주 깨끗했는데, 5월이 끝날 무렵에는 진드기투성이가 된 것입니다. 이 진드기는 송장벌레에게 딱 달라붙어서 선생님이 붓으로 비벼도 금방 떨어지지 않습니다. 배에 있는 것을 문지르면 등 쪽으로 도망가 버립니다. 갑충의 몸에 달라붙는 이 일당을 살이응에라고도 부르는데, 자수정 같은 빛을 발하는 금풍뎅이의 배에도 이런 진드기가 붙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열심히 일한 것만이 좋은 몫을 갖는 것은 아니다. 송장벌레나 금풍뎅이와 같이 이 세상을 깨끗이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벌레도 이런 진드기 때문에 몹시 혼이 나고 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렇게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이 진드기는 송장벌레나 금풍뎅이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 아니라 몸을 청소하거나 먹이를 나누어 먹습니다. 25,25, 왜 서로 잡아먹을까? 6월 초, 애벌레가 먹이를 충분히 먹고 다 자랐을 무렵이면 송장벌레는 이제 더 이상 동물의 시체를 땅속에 묻지 않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사육 상자 안에 죽은 쥐와 참새를 넣어 주어도 송장벌레들은 그것에 모여들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땅속에서 나와 비틀거리며 기어다닐 뿐입니다. 그 때 선생님은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흙 속에서 나오는 것들은 모두 다리 끝이 조금씩 잘려 있었습니다. 중간부터 싹뚝 잘려서 막대기처럼 되어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다리가 하나뿐인 것도 있었습니다. 벌레들은 부자유스러운 다리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몹시 지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구나 몸에는 진드기가 잔뜩 붙어 있습니다. 이 벌레가 비틀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다른 송장벌레가 흙 속에서 얼굴을 내밉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덤벼들어 엉겨붙어 싸웁니다. 전에는 서로 도와 주며 그토록 사이좋게 지냈었는데, 이번에는 서로 죽이고 잡아먹는 것입니다. 사육 상자 속에는 먹을 것이 충분히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송장벌레들이 배가 고파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너무 나이가 들어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요?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송장벌레는 일이 많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는 평화를 지키지만 할 일이 없어지면 동족끼리 싸우는 습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작하는 것은 송장벌레뿐만이 아닙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전에 뿔가위벌이라는 벌이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벌은 어릴 때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벌이지만, 알을 낳고 자기의 임무가 완전히 끝나 버렸을 때는 곧장 옆에 있는 동료 벌의 방문을 부수고 꿀을 엎지른 뒤 알을 빼앗아 먹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방에까지 밀고 들어가는 일도 있습니다. 또 사마귀의 암컷은 짝짓기가 끝난 후, 자기의 상대를 먹어 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귀뚜라미도 훍 속에 알을 낳은 후 암컷과 수컷이 서로 할퀴며 심하게 싸웁니다. 새끼를 키우기 위한 준비를 끝마치면 벌레의 일생도 그것으로 끝나 버리는 걸까요? 벌레 중에는 성질이 매우 거칠어져 기계가 부서져 고장나듯이 제어 장치가 말을 듣지 않아 성질이 매우 거칠어 지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25,25, 번데기로의 변신 송장벌레의 애벌레도 다른 갑충과 같이 변태를 합니다. 부모가 준비해 준 식량을 먹고 충분히 자란 애벌레는 흙 속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리나 등을 굼실굼실 움직여 번데기가 되기 위한 작은 방을 만듭니다. 애벌레는 자신의 작은 방 안에 꼼짝 않고 있으면서 번데기로 변태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이 때 살짝 건드리면 갑자기 몸을 빙글빙글 돌립니다. 곤충의 번데기는 무엇인가가 몸에 닿으면 대개 실룩실룩 움직이거나 뱅글뱅글 돕니다. 예를 들면 제 3장에 나온 큰버드나무하늘소의 번데기도 그렇습니다. 붕대를 둘둘 감은 갈색 미라 같은 번데기가 갑자기 끔틀거리면 누구나 놀라겠지요. 애벌레가 막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되었을 때 해부해 보면, 변신도중이라서 근육도 완전히 녹은 상태인데 어떻게 방글빙글 돌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합니다. 애벌레가 작은 방에 들어온 지 10일이 지나면 번데기가 됩니다. 그리고 여름에 성충이 된 송장벌레는 혼자서 즐겁게 가을을 보냅니다. 이윽고 추워지면 훍 속으로 파고 들어가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땅 위로 나오는 것입니다. 2. 송장벌레의 능력을 시험하다. 땅이 단단할 때는 어떻게 하나? 클레르빌과 그레디치라는 사람이 송장벌레의 지혜에 대하여 보고한 것을 앞에서 보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송장벌레에게는 인간과 같은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땅이 단단해서 동물의 시체를 묻을 수 없을 때, 송장벌레는 동료에게 도움을 청해 힘을 합하여 부드러운 흙으로 시체를 옮겨서 묻는다는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실험을 통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먼저 화분 한 가운데에 벽돌 한 장을 묻고 그 위에 모래를 뿌린 뒤 종 모양의 철망을 씌워 두었습니다. 이것이 단단한 땅의 대용품입니다. 송장벌레는 이 곳에 구멍을 팔 수 없습니다. 벽돌은 주변의 땅과 비슷한 높이로 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주위는 파기 쉬운 흙으로 되어 있습니다. 클레르빌의 보고와 같은 조건이 되도록 생쥐 한 마리가 필요했습니다. 두더지는 너무 크고 무거우므로 파기 쉬운 흙 위까지 옮기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생쥐 정도의 크기라면 송장벌레가 힘을 합치는 경우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댁에 죽은 생쥐 없습니까?"하고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물으며 다니자 모두들 "또 시작되었군."하고 비웃었습니다. "여전히 그 매장충을 돌보고 있군요. 두더지와 생쥐는 맛이 다른 모양이죠?"하면서도 선반 등에 쥐덫을 놓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많던 생쥐가 정작 필요해지자 좀처럼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정말 공교로운 일입니다. 드디어 생쥐를 구했습니다. 밤낮으로 생쥐만 생각한 탓인지 선생님은 생쥐를 잡아서 무척 기뻐하는 꿈을 꿀 정도였습니다. 이 생쥐는 마을에서 떨어진 오두막에서 잡혔습니다. 그 곳은 집없는 부랑자들이 지내도록 만들어 놓은 시설입니다. 안에는 짚만 조금 깔려 있을 뿐, 하룻밤만 지내면 온몸에 이가 옮는 불결한 곳이었습니다. 레오뮈르라는 18세기의 곤충학자는 학문이나 새로운 지식을 좋아하는 귀족 부인들에게 송충이가 허물을 벗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처럼 신분 높은 부인들과 친분이 있었던 레오뮈르와, 이가 득실대는 오두막의 쥐를 다루고 있는 자신과는 같은 곤충학자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벌레의 고통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의 고통도 체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과연 파브르 선생님다운 생각입니다. 선생님은 고생 끝에 얻은 생쥐를 모래만 얇게 뿌려 놓은 벅돌 한 가운데에 놓아 보았습니다. 화분 속에 있는 송장벌레들은 모두 일곱 마리로, 그 중 암것은 세 마리입니다. 송장벌레들은 지금 벽돌 옆의 흙 속에 숨어 있습니다. 어떤 것은 흙 표면에서 가까운 곳에 꼼짝 않고 있었고, 어떤 것은 구멍 속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벽돌 위에 새로운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오전 7시에 암컷 한 마리와 수컷 두 마리가 밖으로 나와 시체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세 마리는 모두 생쥐밑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생쥐가 조금 흔들렸습니다. 송장벌레가 온 힘을 다하여 밑에서 끌어내리듯 흔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벽돌 위에 얇게 깔린 모래를 파고 있었습니다. 쥐의 주변에 모래가 얕게 올라왔습니다. 시체는 2시간 정도 그렇게 흔들리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습니다. 벽돌 표면이 드러났으므로 언제나 흙 속에서 이루어지던 송장벌레의 작업이 지금은 훤히 보입니다. 구멍을 팔 때는 보통 자세였던 송장벌레가 시체를 움직일 때는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매우 기뻤습니다. 거꾸로 누워 무거운 통이나 공을 굴리는 곡예사 같은 자세입니다. 송장벌레는 여섯 개의 다리로 쥐의 털을 단단히 잡고 다리로 떠받쳐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기서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모양입니다. '정말 이상하다.'라고 느낀 듯 수컷 한 마리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쥐를 살피고 그 주위를 돌아봅니다. 쥐를 다리로 살짝 건드려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쥐의 밑을 들어갑니다. 또 시체가 흔들립니다. 밖에 나왔던 송장벌레가 자신이 밖에서 본 것을 모두에게 알렸을까요? "여기는 안 되니까 좀더 파기 쉬운 곳으로 쥐를 옮겨가자."라고 모두에게 말했을까요? 선생님이 관찰한 바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에 송장벌레가 시체를 흔들 때 다른 것들도 똑같이 했지만 그 방향을 모두 달랐습니다. 생쥐는 벽돌 끝까지 움직여 간 듯 하더니 다시 반대로 돌아왔습니다. 모두 제각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각자의 필사적인 노력도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송장벌레들은 3시간 동안이나 쥐의 시체를 조금 씩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면서 헛수고만 하고 있었습니다. 25,25, 수컷이 잘 하는 일 수컷 송장벌레 한 마릭 다시 나와서 주변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는 듯이 벽돌 바로 옆쪽의 흙에 구멍을 파 보고 있었습니다. 흙의 질을 시험하는 걸까요? 자신의 몸이 반 정도 들어갈 만큼 파다가 멈추었습니다. '좋아, 여기면 될 거야.'하고 느끼기라도 한 듯합니다. 망을 보러 나왔던 송장벌레는 다시 쥐 밑으로 돌아가 일을 시작합니다. 쥐는 벽돌에서 떨어진 곳으로 2센티 정도 나아갔습니다. "옳지, 잘한다." 파브르 선생님도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옮겨지지는 않습니다. "잘한다, 잘해."하고 보다 보면, 쥐는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립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나아지지 앟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그 사이에 두 마리의 수컷이 또 밖으로 나와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의 수컷이 살펴본 지점은 벽돌 마로 옆이었으므로 무거운 쥐를 많이 옮기자 않아도 좋았으나 이 두 마리의 수컷들은 그 곳에서 좀더 떨어져 있는 화분 바닥 전체를 헤매고 돌아다니면서 활퀴어 보거나 얕게 파 보았습니다. '어쨌든 이 지긋지긋한 벽돌 위를 벗어나야 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철망의 가장자리 부분이 좋겠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두 마리가 몇 번이나 그 주변을 시험적으로 파고 있었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이 멘 가마처럼 흔들흔들,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하던 쥐는 드디어 모두의 일치된 노력으로 벽돌 주위의 모래산을 넘어 파기 쉬운 흙 위에 옮겨졌습니다. 마치 쥐의 시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송장벌레들이 흙 속에서 나와 사냥감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밑에 파고든 채 누워 다리로 쥐를 떠받쳐 올리고 조금씩 밀고 갑니다. 송장벌레들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시험삼아 판 지점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일을 간단합니다. 쥐는 점차 부드러운 흙 속으로 잠겨 들어갑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1시가 되었습니다. 송장벌레가 장소의 상태를 잘 살펴보고 쥐를 올기는 데 6사간이나 길린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벌써 점심 시간이 지났습니다. 선생님의 부인이 조금 전에 부르러 왔었지만 선생님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그냥 돌아갔습니다. 언제나 상냥한 선생님이지만 연구를 방해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는 것을 온 가족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을 통하여 수컷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멍을 파고 묻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수컷은 밖으로 나와 땅 위의 상태를 살피고, 어째서 잘 묻히자 않는지 그 원인을 찾거나 다른 장소를 찾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언제나 수컷입니다. 암컷보다도 수컷이 이런 일을 더 잘하는 걸까요? 이 실험에서 처음에는 한 마리의 수컷이, 다음엔 두 마리의 수컷이 밖을 살피러 나와서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였습니다. 암컷은 수컷들에게 정찰을 맡기고 쥐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이후의 실험에서 이 수컷의 역할을 좀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송장벌레는 쥐의 아래쪽 땅이 너무 단단해서 팔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서 건너편의 파기 쉬운 흙에 구멍을 파 놓은 다음 그 곳으로 시체를 옮겨가는 것은 아닙니다. 송장벌레들은 쥐나 두더지의 무게를 느끼고 그 털이 손에 닿았을 때에야 비로소 흙을 파고자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클레르빌의 보고에서는 송장벌레가 파기 쉬운 땅에 먼저 구멍을 파서 준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2개월 동안 몇 번이나 같은 실험을 반복한 파브르 선생님은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냈습니다. 25,25,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는가? 또한 클레르빌의 보고에 의하면, 송장벌레는 조금 곤란한 일이 생기면 동료를 부르러 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쥐를 묻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도 파브르 선생님이 실험헤 본 것과,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1권에 나온 사카라베 시쿠레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당시의 곤충학 책에 의하면 '스카라베 시쿠레는 굴리던 똥구슬이 구멍 속에 빠지거나 혼자서 옴직일 수 없을 때면 동료를 부르러 간다. 그리고 잠시 후면 동료 서너 마리와 함께 날아와 힘을 합해 똥구슬을 구멍에서 꺼낸 뒤 동료들은 돌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학자가 쓴 책이었으므로 이 이야기가 스카라베 시쿠레의 습성으로 믿어지고 있었으나 파브르 선생님은 그것에 의문을 갖고 사실을 확인해 보았던 것입니다. 이 경우, 나중에 온 서너 마리는 사실은 도둑이었습니다. 그것을 인간 마음대로 친절한 동료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송장벌레의 이야기도 역시 그대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맨 처음 쥐를 발견한 송장벌레가 네 마리의 동료를 데리고 왔다고 하지만 클레르빌은 정확히 표시라도 해 둔 걸까요? 어떻게 다른 것과의 구분이 가능했을까요? 돌아온 송장벌레들 중에 동료를 찾으러 갔던 송장벌레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확인한 걸까요? 그것이 바로 중요한 점입니다. 실험과 관찰은 반드시 엄밀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주변에 있던 송장벌레 다섯 마리가 쥐 냄새에 이끌려 왔아가 쥐를 묻었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고 선생님은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실험해 보면 더욱 확실해집니다. 벽돌 위에 쥐를 놓았을 때에서는 송장벌레 세 마리가 6사간이나 걸려서 사냥감을 부드러운 흙이 있는 곳까지 옮겼습니다. 그 때 동료가 도와 주었더라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 화분 속에는 네 마리의 송장벌레가 더 있었습니다. 그들은 얕은 흙 속에 숨어 있었는데, 열심히 일하고 있던 벌레들과 그 전날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입니다. 그런데도 쥐를 옮기던 송장벌레들은 한가한 이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일을 끝내 버렸습니다, "아니야. 세 마리나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서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딱딱한 벽돌보다도 훨씬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서 몇 번이나 더 실험해 보았지만, 송장벌레가 일부러 동료의 도움을 청하러 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른 송장벌레가 나중에 합세하는 일은 가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냄새를 맡고서 스스로 날아온 것입니다. 그 송장벌레는 자기가 오고 싶어서 온 것이지 불러서 온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있던 무리는 도중에 합세하는 동료를 섫어하지도 않지만 환영하지도 않는 듯합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설험용 송장벌레들이 살고 있는 화분을 작을 유리 온실에 넣어 두었는데, 그 온실 속에서 송장벌레 한 마리를 잡은 적이 있습니다. 이 벌레는 안으로 들어올 둣 철망 위에 붙어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 이 주변을 날다가 시체 냄새를 맡고 온실 속으로 들어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송장벌레가 친절하게 동료를 도와 주는 벌레라고 칭찬하는 것은 인간의 일방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25,25, 가죽끈을 물어뜯는 것이 특기 부드러운 땅이라도 사냥감을 묻을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강한 풀뿌리가 그물처럼 둘러쳐진 곳입니다. 그 사이의 흙을 파고 큰 먹이를 묻으려고 하면 끈 같은 뿌리가 방해가 되어 그물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송장벌레는 이런 장애물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할까요? 흙을 파는 공사장 인부의 기술 외에도, 송장벌레는 또 다른 기술을 하나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뿌리나 풀뿌리, 포도 덩굴 등 먹이를 흙 속에 묻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싹둑 자르는 기술입니다. 삽이나 괭이뿐 아니라 가위도 필요한 것입니다. 먼저 그것을 실험해 보도록 합시다. 파브르 선생님은 부엌 화로에서 삼발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삼발이란 주전자나 냄비 따위를 불 위에 얹을 때 두는 발이 셋 달린 철제 틀입니다. 선생님은 이 삼발이에 가죽끈을 몇 가닥 묶어 놓았습니다. 이것으로써 잔디가 뿌리를 뻗친 것과 똑같은 그물이 완성되었습니다. 물론 두더지는 이 그물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이 장치를 송장벌레가 있는 화분 속 구석구석에 묻고 그 위에 얇게 흙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두더지를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 두면 잔디뿌리의 그물망과 똑같은 장애물이 되어 송장벌레들도 두더지를 간단히 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이 그 곳에 송장벌레들을 풀어 놓자, 재빨리 구멍을 파기 시작하여 두더지를 흙 속에 묻으려고 하였습니다. 송장벌레는 점심때가 지나고도 한참을 더 걸려 두더지를 깨끗이 묻어 버렸습니다. 평상시보다 일이 조금 늦어졌을 뿐, 특별히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더지는 그대로 흙 속에 묻혀 버린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일을 했는지 알아보려고 선생님은 삼발이를 파내어 보았습니다. 가죽끈 그물은 두더지의 몸이 빠져 나가도록 모두 뚝뚝 잘려 있었습니다. 송장벌레는 그 튼튼한 큰턱으로 가죽끈을 간단히 잘라 버린 것입니다. 역시 선생님이 생각한 대로였습니다. 이 정도의 기술이 없다면 먹이를 척척 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를 좀더 어렵게 해 봅시다. 두더지 몸체를 가죽끈으로 막대기에 묶어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비큐를 구울 때처럼 두 개의 Y자형 막대기를 흙 속에 박은 다음, 두더지를 묶은 막대기를 걸었습니다. Y자형 나무 막대를 짧게해서 두더지의 몸이 땅에 거의 닿도록 해 두었습니다. 보통 때라면 그 무게 때문에 자연스럽게 밑으로 내려올 먹이가 구멍이 깊어져도 흙 속으로 잠기지 않습니다. 두 개의 Y자형 막대기가 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벌레들은 '이상하다.'하며 어리둥절해합니다. 구멍을 파는 속도가 떨어졌습니다. 이윽고 수컷이 상태를 보러 흙 속에서 나왔습니다. '점말 이상하군.'하고 두더지 몸 위에 올라가 살펴보던 수컷을 드디어 두더지를 묶어 놓은 가죽끈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것부터 자르지 않으면 안 돼.'하고 작정이라도 한 듯 열심히 그것을 갉아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툭 소리가 나더리 끈이 잘라졌습니다. 두더지는 비스듬히 흔들거렸습니다. 두더지의 몸은 막대기에 두 군에로 묶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더지 몸의 반이 묻혔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만은 송장벌레가 아무리 애를 써도 구멍 속으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벌레들은 열심히 두더지를 끌어당기기도 하고 흔들기도 해 봅니다. 다시 한 마리의 송장벌레가 위로 올라왔습니다. 두더지 몸에 올라가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 감긴 끈을 발견하였습니다. 끈은 금새 툭 하고 끊어졌습니다. 이것으로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이으고 두더지는 흙 속에 점점 잠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잘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해. 두더지를 묶어 놓은 끈은 너희 송장벌레에게는 잔디뿌리와 같고, 이런 일에는 익숙해져 있을 테니까 말이야. 이런 일을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하면 너휘들은 멸종해 버리고 말 거야."하고 파브르 선생님은 칭찬했습니다. 25,25, 공중에 뜬 생쥐 이번에는 농부들의 곡괭이에 맞은 두더지가 덤불에 걸려 있을 때 어떻게 하는지 시험해 보았습니다. 공중에 어중간하게 걸려 있는 시체를 송장벌레는 어떻게 할까요? 맛있는 냄새가 나는 두더지가 머리위에 떠 있고 땅에 묻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일 때, 송장벌레는 포기하고 사라져 버릴까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든 밑으로 끌어내릴 방법을 생각할까요? 사냥감을 밑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 귀찮아 내버려두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파브르 선생님은 생각했지만 어쨌든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송장벌레가 들어 있는 화분 한가운데에 튼튼한 줄기를 가진 백리향을 심었습니다. 백리향의 키는 20센티가 약간 넘습니다. 그 위에 생쥐를 얹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몸의 여기저기를 작은 가지로 얽어 놓았습니다. 화분 속의 송장벌레는 14 마리입니다. 하지만 14 마리가 모두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땅속에 숨은 채 나오지 않거나 땅속에 묻은 것을 부지런히 가공하는 것도 있습니다. 한두 마리만이 밖에 나와서 일하는 경우가 보통이고, 많으면 서너 마리입니다. 지금은 두 마리가 백리향의 그루터기 위에 얹어 놓을 쥐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송장벌레들은 화분 위에 덮인 철망을 지나 백리향 그루터기 바로 위까지 다가왔습니다. 거기서 몸을 뻗쳐 쥐를 붙잡았습니다. 송장벌레는 백리향 가지 위의 공중에 붕 뜬 상태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등과 다리를 사용하여 먹이를 밀고 흔들었습니다. 두 마리의 송장벌레는 이런 방법으로 얽힌 가지에서 쥐를 떼어냈습니다. 나중에 좀더 힘껏 힘을 주자 쥐는 툭하고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다음은 간단합니다. 여는 때와 마찬가지로 두 마리의 송장벌레는 쥐를 흙 속에 묻었습니다. 이 실험에서 특별히 새롭게 발견된 것은 없었습니다. 송장벌레는 똑같은 일을 이번에는 백기향 가지 위에서 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옆으로 옮기려고 했기 때문에 쥐가 자연스럽게 백리향에서 떨어져 오히려 일이 쉽게 되었습니다. 25,25, 막대 넘어뜨리기 경쟁 다음에는 그레디치라는 사람의 보고가 맞는지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그레디치의 친구는 두꺼비의 표본을 만들 때 송장벌레가 와서 낚아채 가지 않도록 땅 위에 세워 둔 막대기 위에 그것을 얹어 두었습니다. 송장벌레는 막대기 주변에 구멍을 파고 그것을 쓰러뜨린 후 사냥감을 묻어 버렸다고 그레디치는 보고하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일까요? 물론 실험에 사용하는 것이 두더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가죽끈으로 두더지의 다리를 묶고 이것을 막대기에 연결하였습니다. 막대기를 땅에 똑바로 세우자 두더지는 막대기를 따라 흔들거렸습니다. 단, 두더지의 머리와 어깨가 땅에 닿도록 막대기를 너무 길지 않게 해 두었습니다. 송장벌레들은 두더지의 몸이 닿은 곳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두더지의 코, 머리, 어깨의 순서로 구멍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만큼 막대기가 기울어지고, 드디어 두더지의 무게 때문에 막대기가 넘어졌습니다. 이것만 보낟면 송장벌레들이, '여기를 파면 막대기가 쓰러져서 두더지가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야.' 하고 생각하고 막대기를 넘어 뜨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송장벌레의 훌륭한 지혜'하고 감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도릅니다. 하지만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을까요? 송장벌레가 생각하고 한 걸까요, 아니면 우연히 막대기가 넘어진 걸까요? 실험을 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실험을 하면 좋을까요? 파브르 선생님은 우선 막대기를 비스듬히 세워 보았습니다. 두더지는 기울어지면서 막대기 밑둥에서 5센티 정도 떨어진 땅에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 두면 송장벌레는 절대로 막대기의 밑둥을 파지 않습니다. 두더지의 머리와 어깨가 닿은 부분의 흙만 팝니다. 매달아 놓은 위치를 아주 조금만 바꾸어도 그레디치가 말한 송장벌레의 이야기는 거짓말이 되고 맙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이런 식의 다주 간단한 실험으로 그때까지 사람들이 믿고 있던 사실들은 두집어엎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고 꼭 확인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실험을 한 가지 더 해 봅시다. 막대기는 기울게 하든 똑바로 세우든 상관없습니다. 단, 막대기에 묶인 두더지가 땅에 닿지 않도록 해 둡니다. 송장벌레는 어떻게 했을까요? 나무 밑둥을 파고 막대기를 쓰러 뜨렸을까요? 아닙니다. 송장벌레는 막대기의 밑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몇 번이나 실험을 반복하여 두더지의 몸이 땅에 닿아 있지 않는 한 송장벌레가 막대기의 밑둥을 파서 막대기를 넘어 뜨리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레디치의 친구는 두꺼비를 말릴 때, 도대체 어떤식으로 해 둔 걸까요? 송장벌레들이 막대기를 넘어뜨렸다면 분명 그 두꺼비는 땅에 닿아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습기 찬 땅에 두꺼비가 닿아 있으면 건조 되지 않을 것이므로 그레디치의 보고는 앞뒤가 맞지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레디치처럼 벌레에게서 인간과 같은 지혜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공상을 섞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맙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은 결코 매사를 적당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벌레에게도 이성이 있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것은 실험을 해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도 않고 공상을 섞어 이야기를 만들어 버리면 이번에는 그것을 읽은 사람이 그대로 받아들여서 새로운 이론이 되어 버리므로 곤란해 지겠지요. 25,25, 우연의 연속 파브르 선생은 또 다른 실험을 생각해 냈습니다. 먼저 막대기를 똑바로 세운 다음 생쥐의 뒷발을 가죽끈으로 묶어서 매달고 머리 쪽이 땅에 닿지 않도록 해 두었습니다. 생쥐의 몸은 막대기에 딱 붙어 있습니다. 송장벌레 두 마리가 기어 나왔습니다. 이 벌레는 흙 속에 있어도 먹이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습니다. 먹이가 매달려 있는 막대기에 기어올라 생쥐의 털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등품이야. 상태도 딱 좋아 자, 일하자구." 이렇게 말하기라도 한 듯 활발히 움직입니다. 여기서 송장벌레들은 단단한 땅위에 있는 먹이를 다른 장소로 옮길 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 합니다. 즉 두 마리의 송장벌레들이 쥐와 막대기 사이에 파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막대기에 딱 붙어서 등으로 쥐를 흔듭니다. 두더지보다 훨씬 가벼운 생쥐는 시계추처럼 흔들리거나 막대기에 탁탁 부딪기도 합니다. 오전내내 송장벌레들은 이런 헛수고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는 틈틈이 쥐의 몸 위를 기어다니며 살필 뿐입니다. 한참후에 드디어 일이 진척되지 않는 이유를 알아낸 듯합니다. 송장벌레들은 쥐의 다리가 묶여 있는 부분에서 약간 밑쪽을 물어뜯기 사작하였습니다. 발뼈까지 물어뜯었을 때, 우연히 다리를 묶어 놓은 가죽끈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상황이 잔디뿌리가 많을 때와 같다고 느낀 송장벌레들은 여느때와 같이 마찬가지로 큰 턱으로 가죽끈을 툭 잘랐습니다. 쥐는 땅에 쿵 하고 떨어졌습니다. 그 다음엔 역시 그것을 간단히 흙 속에 묻어 버렸습니다. 쥐를 묶어 놓은 끈을 자른 것은 확실히 아주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끈은 안 보이게 숨겨진 것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눈에 잘 띄었습니다. 그것을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 이 벌레들은 오전 내내 등과 다리로 열심히 쥐를 흔들기만 했던 것입니다. 가죽끈이 발견된 것은 완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잘라낸 것 뿐입니다. 원칙이나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끈 자르기 전에는 쥐의 다리뼈만 열심히 물어뜯고 있었겠지요. 쥐의 다리를 잘라 버리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긴 하지만 쥐의 발이 작고 가늘다면 계속 물어뜯는 사이에 잘라 지겠지요. 파브르 선생님은 이번엔 쥐의 발을 철사로 묶어 보았습니다. 아무리 강한 큰 턱을 가지고 있는 송장벌레도 철사를 자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선택한 새끼쥐는 다 자란 쥐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송장벌레들은 이번에도 쥐의 발을 물어뜯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발을 잘라 버렸습니다. 다리하나가 빠져서 묶은 곳이 느슨 해진 데다가 또 송장벌레가 계속 흔들자 쥐는 결국 땅에 털썩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먹이의 뼈가 두껍고 단단할 경우에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두더지나 큰 쥐, 참새 등의 발을 철사로 묶어두면 송장벌레에게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끈질긴 송장벌레들은 그런 먹이를 상대로 1주일 동안 도전합니다. 먹이는 날개와 털을 뜯겨 완전히 초라한 꼴이 되고 맙니다. 그러는 동안 먹이가 말라서 바삭바삭 해지면 결국 단념하고 사라집니다. 인간의 생각대로라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막대기 밑둥을 파서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송장벌레에게는 결코 그런 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또다른 실험을 해 봅시다. 이번에는 막대기 위쪽이 Y자 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둘로 갈라진 가지의 길이는 1센티미터 정도입니다. 그리고는 가죽끈보다도 훨씬 자르기 힘든 삼베 실로 생쥐의 뒷발 두 개를 악간 위 쪽으로 묶었습니다. 그런 다음 쥐의 다리 사이를 벌려 막대기의 한쪽 가지에 걸어 놓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흔히 정육점 앞에 토끼가 이런 식으로 걸려 있습니다. 이것을 벗기려면 쥐의 몸을 아주 약간 위쪽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이 장치를 만들어 놓고 잠시 기다리자 송장벌레 다섯 마리가 다가 왔습니다. 벌레들은 쥐의 몸을 흔들어 본 후 발을 물어뜯기 시작하였습니다. 들에서 쥐나 두더지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을 때는 언제나 이런 방법을 사용합니다. 쥐의 발을 자르는 대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송장벌레 중의 한 마리가 묶여 있는 두 개의 발 사이로 파고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쥐의 양 발이 등에 닿았기 때문에 언제나 그랬듯이 등으로 쥐의 몸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발로 버티고 여러 번이나 흔두는 동안에 쥐의 몸이 약간 위쪽으로 올라가 가지에서 벗겨지면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아주 잘된 일이긴 하지만 이것도 역시 계획된 걸까요? 쥐를 떨어뜨리려면 위쪽으로 밀어 올리면 쥐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송장벌레 스스로가 생각한 걸까요? 이것을 보고 송장벌레에게도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파브르 선생님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실험을 생각해 냈습니다. 선생님은 송장벌레가 쥐를 떨어뜨릴 방법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단지 쥐의 양 발에 등이 닿았기 때문에 평소처럼 밀었을 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쥐는 Y자형 가지에 살짝 걸려 있었기 때문에 송장벌레가 등으로 살짝만 밀어도 벗겨지도록 되어 있었던 덕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철사로 생쥐의 쥣발을 한데 묶은 후, 철사를 2센티 정도 늘어뜨려서 끝에 작고 둥근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Y자형으로 된 가지에 이 고리를 걸었습니다. 가지는 크게 벌어져서 거의 수평이 되어 있으므로 이 고리를 벗기려면 아주 약간만 밀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자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벌레는 언제까지나 쥐의 발만 물어뜯고 있습니다. 큰 생쥐의 발은 두껍고 단단하여 송장벌레가 아무리 열심히 물어뜯어도 좀처럼 잘라지지 않습니다. 쥐의 몸을 밀어도 그저 흔들리기만 할 뿐 막대기에서 벗겨지지는 않습니다. 결국 생쥐는 송장벌레의 먹이가 되지 못하고 막대기에 걸린 채 바싹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쥐를 묶고 있는 철사 고리를 약간만 밀면 벗겨지는데도 불구하고 송장벌레들은 끝끝내 이 고리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송장벌레의 힘이 약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송장벌레는 금풍뎅이처럼 힘이 센 곤충입니다. 이 벌레의 단단한 어깨로 밀면 짧은 Y자형 나무에 걸린 고리를 벗겨 내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송장벌레들은 그런 방법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송장벌레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실험을 함께 봅시다. 파브르 선생님이 기르고 있던 송장벌레들은 화분 속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도망치려고 합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벌레도 할 일이 있으면 그것에 몰두하느라 다른 일은 잊어버리는데, 사육장 속에서는 일이 없어서 심심할 것입니다. 그래서 송장벌레들은 두더지를 흙 속에 묻어 구멍 속에서의 일을 끝내면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철망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내려와 보기도 하고, 또 날아 보기도 합니다. 붕 날아 봐도 금방 철망에 부딪칠 뿐입니다. 그래도 송장벌레들은 일어나서 또다시 같은 행동을 시작합니다. 밖은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어 길에 버려진 죽은 도마뱀이나 맛있는 먹이를 찾으러 가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더구나 송장벌레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썩은 고기 냄새가 멀리서 이 철망 속까지 퍼져 올 것입니다. 그러면 이 송장벌레들은 그 곳에 가고 싶어서 못 견딥니다. 그런 송장벌레는 둥근 철망이 덮이고 가장자리도 모래로 꼭꼭 다져진 화분 속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철망의 테두리 밑쪽을 파면 송장벌레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송장벌레들은 지금까지 몇 번씩이나 이 철망의 밑둥을 판 적이 있습니다. 2개월 반이나 이 곳에서 길러지는 동안 송장벌레들은 철망 밑둥 근처를 2센티 정도 파고 모래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대로 조금만 더 밑으로 파고 들어간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속에 들어 있던 14 마리의 송장벌레 가운데 이 화분에서 탈출하는 데에 성공한 것인 단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이었을 뿐 특별히 생각하고 나간 것은 아닙니다. 만약 생각하고 도망간 것이라면 14 마리나 되는 다른 송장벌레들도 모두 밖으로 나가는 구멍을 발견하여 줄지어 도망갔을 것입니다. 25,25, 철망 속의 칠면조 그렇다고 해서 송장벌레가 다른 벌레보다 유별나게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여러 가지 벌레를 사육해 보았는데, 구멍을 파는 능력을 가진 다른 벌레도 정확히 구멍을 파고 도망간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금풍뎅이나 뿔똥풍뎅이, 그리고 쇠똥구리 등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고, 더욱이 모두 구멍을 파는 기술자들인데도 이 철망 밑을 파서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한 곤충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이런 어리석음은 벌레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휠씬 고등한 동물에게서도 흔히 볼수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북아머리카의 조류를 연구하여 아름다운 도감을 펴낸 오듀본이라는 사람은 야색 칠면조를 잡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칠면조가 잘 다니는 숲 속 공터에 말뚝 몇 개를 박고 그 위에 큰 철망을 덮어 둡니다. 그리고 그 철망 한가운데의 땅을 비탈지게 파서 지하도를 만듭니다. 이 지하도는 밖으로 나가는 터널입니다. 그리고 지하도 입구와 그 주위에 옥수수를 뿌려 둡니다. 야생칠면조들은 뿌려진 옥수수를 먹으며 지하도를 지나 철망 한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옥수수에 홀려서 지하도에 들어간 칠면조는 맞은편이 밝은 데다가 먹이도 있어서 그 곳이 출구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곳은 바로 철망 안이었습니다. 들어왔던 입구는 언제라도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칠면조는 밖으로 되돌아 나간다는 것을 전혀 생각해 내지 못합니다. 칠면조들은 그믈망 사이로 목을 내밀고 꾸룩꾸룩 울면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칩니다. 그렇지만 철망 안만 빙굴방글 돌 뿐입니다. 이렇게 하여 칠면조들은 모두 잡히고 맙니다. 조금 전에 자신들이 왔던 통로를 거슬러 가면 간단히 밖으로 나갈수 있는데도, 칠면조는 전혀 생각해 내지 못한다고 오듀본은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흔히 칠면조는 어리석은 새라고 말하지만 이 새가 올빼미에게 공격받았을 때는 아주 눙숙하게 그 허를 찌른다고 오듀본은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때 칠면조는 매우 영리해 보입니다. 송장벌레의 경우도 이 철면조와 비슷한 일을 언제까지나 반복합니다. 송장벌레가 철망 가장자리에 파 좋은 얕은 구멍 속에서 쉬고 난 뒤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는 언제나 조금이라도 빛이 보이는 쪽으로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철망 안쪽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 방향으로 조금만 더 파면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빛에 이끌릴 뿐입니다. 송장벌레는 스스로 생각하거나 판단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송장벌레의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 본능입니다. 곤충의 몸 속에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이 정해진 행동 양식이 짜여져 있으므로 자연 속에서 마주치는 문제는 훌륭히 해결합니다. 그러나 그 밖의 일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입니다. 즉, 응용 문제는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곤충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반응을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곤충이란 무엇인가 5.) 곤충의 비행 기술 (최초로 하늘을 날다.) 아주 옛날, 이 지구상에는 하늘을 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최초로 하늘을 난 것은 곤충입니다. 어떻게 해서 날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몸의 양쪽에서 얇은 판 같은 것이 튀어나와, 이것을 움직이는 근육이 발달하여 날게 된 것이라고 사람들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생각이 맞는지 어떤지는 제쳐두고, 어쨌든 3억 년 전에는 날개 있는 곤충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대형 바퀴벌레나 대형 잠자리는 서투르게 파닥파닥 날갯짓하며 짧은 거리를 비틀비틀 날았을 거라도 생각됩니다. 그것에 비하면 현제의 잠자리, 나비, 파리는 아주 능숙하고 빠르게 날수가 있습니다. 보통 파리나 등에류는 시속 8 킬로, 나비나 벌은 시속 30 킬로로 날 수 있고, 잠자리와 박각시 중에는 시속 80 킬로 이상의 굉장한 속도를 내는 것도 있습니다. 1,000분의 1초 정도의 고속 셔터로 사진을 찍어 곤충의 나는 모습을 봅시다. (나비의 나는 법) 나비가 나는 모습입니다. 날개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칠 때 날개가 묘하게 꼬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날개 앞부분으로 공기를 감싸 뒤로 보내고 있습니다. 뒷날개는 그 공기를 뒤로 자연스럽게 보냅니다. 이렇게 하여 공기중에 뜨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도 생겨서 날수가 있는 것입니다. 날개를 힘껏 밑으로 내리쳤을 때는 꽁무니가 위로 올라가 몸 전체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그 다음 다시 날개를 쳐 올릴 때는 가능한 한 공기의 저항이 적어지도록 날개가 미묘하게 꼬이는 것입니다. 나비는 일직선으로 날지 않고 상하로 물결 모양을 그리며 납니다. 그러므로 팔랑팔랑, 둥실둥실 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나비가 나는 방법은 다른 곤충들에 비해 그다지 능숙한 편은 아닙니다. (좀더 능숙하게) 나비는 몸에 비해 날개의 폭이 넓고 비교적 천천히 날개를 젓지만, 벌이나 박각시의 경우는 몸이 굵고 튼튼하며 날개의 면적도 좁아서 날개치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예를 들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초파리는 1초에 250번 정도 날개를 치고, 깔따구라는 작은 모기의 일종은 1초에 약 1,000번 이상이나 날개를 칩니다. 잠자리는 앞날개와 뒷날개를 따로따로 움직이므로 나는 법이 매우 복잡합니다. 잠자리는 이 방법으로 자유 자재로 공중을 날고, 더구나 왕잠자리 등은 굉장한 속도를 냅니다. 또, 된장잠자리 등은 바다 위를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날아다닙니다. 한편 매미나 벌, 그리고 나방이 나는 것을 보면 앞날개와 뒷날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두 장의 날개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날개 수가 적은 쪽이 날기에도 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즉, 날개 수가 정리되어 점점 세련되어 가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파리나 둥에처럼 처음부터 날개가 두 장밖에 없는 곤충은 보다 진화된 방법으로 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개의 날개를 가졌던 초기의 비행기가 현재의 제트 전투기처럼 한 장의 짧은 날개로 발전된 것과 비슷합니다. (좀더 빠르게) 실제로 파리나 등에는 휠씬 눙숙하게 나는 곤충입니다. 공중에서 정지한 상태로 계속 비행(호버링)하거나 뒤로 날기, 공중 회전 등을 자유롭게 합니다. 기생파리 중에는 비행중인 벌의 뱃속에 알을 낳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앞에서 파리나 둥에류는 시속 8 킬로로 난다고 했는데, 종류에 따라서는 시속 40--50 킬로의 속도를 내는 것도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는 시속 65 킬로로 달리는 자동차 주위를 빙글빙글 돌거나 살짝 앉을 수도 있다고 하니, 있는 힘을 다해 난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곤충의 날개는 매우 가벼운 재료로 되어 있고, 더구나 시맥이 있어 튼튼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맥에는 피가 통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이 살아 있습니다. 아주 작은 모기류 중에는 잠자리의 시맥에서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일락 말락한 모기이지만 그 모기에게도 날개에 시맥이 있고, 그 시맥 속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날개 접는 법) 항상 날기만 하는 나비 등은 예외지만, 좁은 나무 틈새로 파고 들어가려는 곤충들에게는 날개가 방해가 됩니다. 이 곤충들은 모두 대단히 능숙하게 날개를 접고 있습니다. 갑충의 경우 앞날개는 단단한 갑옷처럼 되어 있고, 그 밑에 접은 얇은 뒷날개를 이용하여 납니다. (날개와 근육) 곤충이 날개를 1초동안 몇십 번, 또는 몇 백번 칠 수 있는 것은 몰론 근육을 줄이고 늘이기 때문입니다. 근육이 붙어 있는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잠자리와 파리를 비교해 봅시다. 잠자리의 근육은 날개의 기부(몸체에서부터 날개가 시작되는 부분)에 딱 붙어 있습니다. 앞날개와 뒷날개의 근육이 각각 늘거나 줄어들어서 날개를 움직입니다. 한편, 파리의 경우는 근육이 날개에 붙어 있지 않고 가슴에 붙어 있습니다. 이 강한 군육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 가슴의 모양이 바뀌면서 날개를 움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5,25, 다윈, 월리스, 그리고 갑충들 진화론을 최초를 발표한 사람은 영국의 다윈입니다. 파브르 선생님은 진화론에는 반대했지만, 다윈과는 편지도 주고 받으며 서로 존경하는 사이 였습니다. 다윈도 생물을 좋아했는데, 특히 갑충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갑충 채집에 열중했습니다. 어느 날, 다윈은 고목 껍질 밑에서 갑충을 채집하다가 진기한 종류 두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두 마리를 양손에 잡고 보니, 한 마리가 더 있었습니다. 다윈은 당황한 나모지 한 손에 잡고 있던 것을 입에 넣고 다른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이 때 입 속에 넣었던 곤충이 몹시 쓴 액을 내뿜었습니다. 열성적인 댜윈이었지만 이 때만큼은 참을 수가 없어 '퉤퉤'하고 벌레를 뱉어내고, 다른 것도 모두 놓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생물학자로서의 눈과 느낌을 키워 진화론을 생각해 내는 바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윈과 같은 시대에 같은 진화론을 생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역시 영국인인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입니다. 월리스 또한 갑충 채집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는데, 집이 가난하여 학교에는 가지 못하고 혼자서 박물학을 공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남미나 인도네시아의 섬에서 조류와 곤충을 채집하여 런던의 수집가나 박물관에 보내는 채집가가 되었습니다. 월리스가 발견한 세계 최대의 하늘소에는 월리스장수하늘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25,25, 거위벌레 찾는 법과 사육법 새로 나뭇잎이 자라기 시작하는 5, 6월에 거위벌레의 요람을 채집하러 갑시다. 채집이라 해도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거위벌레가 좋아하는 나무를 발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거위벌레들이 좋아하는 나무는 오리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가시나무, 때죽나무, 목련 등입니다. 잎사귀와 나뭇결, 나무 모양의 특징을 잘 보고 찾기 바랍니다. 거의벌레의 종류에 따라 요람을 잘라 버리는 것과 잘라 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잘라 내는 것은 나무 밑을 찾아보면 주울 수 있을 것입니다. 거의벌레의 요람을 채집해 오면, 뚜껑 있는 플라스틱 용기나 유리병 속에 젖은 화장지 등을 깔고 그 위에 놓아둡니다. 요람이 마르지 않도록 주의하기만 하면 됩니다. 곰팡이가 생겨도 상관없습니다. 요람이 만들어진 후 4,5일 지나면 요람 속의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나 잎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0일 정도 자라면 번데기가 되고, 다시 일주일 후면 성충이 됩니다. 거위벌레는 매우 빨리 자라는 갑충입니다. 25,25, 하늘소 찾는 법과 사육법 하늘소는 야간 채집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후덥지근하고 비가 올 듯한 밤에 하얀 시트를 펴 놓고 전등으로 벌레를 불러들이는 방법입니다. 낮에는 포충망 등을 받치고 나뭇잎을 막대기로 두들겨 잡거나, 포충망을 플숲에 마구 휘둘러 잡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하늘소가 많이 모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산에서 베어 온 목제를 쌓아 놓은 곳에 가서 목제를 살펴보면 쉽게 발견됩니다. 솦 속에서 시들거나 마른 나무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속에 하늘소의 알이나 애벌레가 들어 있습니다. 애벌레가 속에 있다는 것은 구멍에서 배어 나온 수액이나 비어져 나온 배설물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마른 나무는 톱으로 잘라 집으로 가져와도 괜찮습니다. 가지고 온 나무는 뚜껑 있는 어항 속에 넣어 둡니다. 직접 햇빛을 쬐지 않도록 조심하고, 가끔씩 분무기로 물기를 주면 몇 개월 후엔 성충이 우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 걸릴 때는 몇 년이나 기다려야 될 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