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지은이 : 나쓰메 소세끼 출판사 : 범우사 제 1 부 선생과 나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이라 불렀다. 따라서 여기서도 다만 선생이라고 쓸 뿐, 본명은 밝 히지 않겠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편이 나로 서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에 대한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언제나 그분을 '선생' 이라고 말하고 싫어진다. 펜을 들었는데도 마음은 마찬가지다. 서먹서먹한 머릿글자 따위는 도무지 쓸 마음이 나지 않는다. 내가 선생과 알게된 것은 가마쿠라 에서였다. 그 당시 나는 젊음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그 런데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해수욕장에 간 친구로부터 그곳으로 꼭 오라는 엽서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여비를 좀 마련해서 떠나기로 했다. 그 돈을 마련하는 데는 2,3일이 걸렸다. 그런데 내가 가마쿠라에 도착한 지 사흘이 되기도 전에, 나를 그곳으로 부른 친구는 급히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전보를 받았다. 전보의 내용은 그 친구의 어머니가 병환이 나셨다는 것이었는데, 친구는 그것을 믿지도 않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고향의 부모로부터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강요당하고 있던 터였다. 그는 요즘의 관 습으로 볼 때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여름 방학이면 당연히 집에 돌아가야 할 텐데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도쿄 근처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전보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고 하 며 의견을 구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의 어머니가 병환이 나셨다면 그는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는 결 국 고향으로 떠났다. 따라서 모처럼 그곳까지 찾아간 나는 홀로 남게되었다. 그런데 개학일이 아직 멀었으므로 가마쿠라에 더 머물러도 좋고 돌아가도 괜찮은 처지였 던 나는 정해둔 숙소에서 당분간 머무르기로 했다. 친구는 주고쿠의 부잣집 아들로 상당히 여유 있는 처지였지만 학교나 나이가 그러했기 때문에 생활 정도는 나와 그다지 차이가 나 지 않았다. 따라서 혼자 남게 된 나는 굳이 형편에 맞는 숙소를 찾아야 할 일이 없었던 것 이다. 숙소는 가마쿠라에서도 좀더 떨어진 곳에 있었다. 따라서 당구나 아이스크림 같은 상류층 생활에 접하려면 긴 논길을 넘어야 했다. 인력거로 간다 해도 20전은 들었다. 그러나 개인 소유의 별장은 여기 저기 아주 많았다. 게다가 바다는 아주 가까워서 해수욕하기에는 상 히 편리한 위치에 있었다. 나는 매일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서 숙소를 나섰다. 낡고 그을린 초가집 사이를 지나서 바 닷가로 내려가면 이 근처에 이렇게 많은 도시인이 몰려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피서객 들이 모래 사장을 오가고 있었다. 어떤 때는 마치 대중탕처럼 바닷물 속에서 검은 머리가 우글거리는 일도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나도 그런 흥청거리는 분위기에 휩쓸려 모래 위에 엎드려 보기도 하고 무릎을 파도에 적시면서 바닷가 를 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는 선생을 그렇게 혼잡한 상황에서 알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바닷가에는 간이 찻 집이 두 곳 있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 중의 한 곳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근처에 큰 별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개인마다 전용 탈의장이 없는 그 부근의 피서객에게 는 어쩔 수 없이 그런 공동 탈의장과 같은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휴식도 취하는 한편, 거기다 수영세탁을 맡긴다든지 소금 기 있는 몸도 씻고, 또한 모자와 양산을 맡기기도 했다. 수영복이 없는 나로서도 소지품을 도난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바다로 들어갈 때마다 벗어둔 그것을 찻집에 모두 맡기곤 했다. 내가 그 찻집에서 선생을 본 것은, 때마침 선생이 옷을 벗고 이제 막 바다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그때 나는 선생과는 반대로 젖은 몸으로 바람을 쏘이면서 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눈을 가리는 수많은 검은머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특정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는 선생을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바닷가는 혼잡했고, 내 마 음 또한 들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곧 선생에게 눈길을 돌린 것은 선생이 서양인 한 명을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인의 유난히 하얀 피부는 내가 찻집으로 들어선 순간 내 주의를 끌었다. 순수한 일본 유카타를 입고 있던 그는 그것을 의자 위에 팽개쳐둔 채 팔짱을 끼고 바다 쪽을 향해 서 있 었다. 그는 그야말로 팬티 하나밖에 걸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이상했다. 나는 그 이틀 전에 유이 해변까지 가서 모래 위에 쭈그리고 앉아 서양인들이 바다로 들어 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적이 있었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은 약간 높은 언덕 위였는데, 바로 그 옆에 호텔 뒷문이 있었으므로 내가 거기에 앉아 있는 사이에 왜 많은 남자들이 바 다로 들어가려고 나왔으나 모두 몸통 과 팔, 그리고 넓적다리를 드러내놓고 있지 않았다. 여 자들은 지나치게 몸을 가린 편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머리에 고무로 만든 모자를 써서 적갈 색과 감색, 그리고 남색을 파도 사이에 띄우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있는 내 눈에는 팬티 하나만 걸친 차림으로 점잖은 체하고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그 서양인이 너무나 이상해 보였다. 그는 곧 자기 곁을 돌아보더니 거기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일본인에게 무엇인가 한두 마 디 지껄였다. 그 일본인은 모래 위에 떨어진 수건을 막 집어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들자마자 곧 머리를 싸매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분이 바로 선생이었다. 나는 단지 호기심에서 나란히 물가로 내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 가에 이르자마자 그들은 곧 물속에 발을 넣었다. 그러더니 얕은 물가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비교적 넓은 곳에 이르자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다 쪽을 향해 머리가 아주 작게 보일 때까지 헤엄쳐 갔다. 그러더니 다시 몸을 돌려 곧장 물가까지 돌아왔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 샘물 로 씻지도 않고 바로 몸을 닦더니 옷을 입고 재빨리 어디론지 가버렸다. 그들이 나간 다음, 나는 여전히 아까 그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나는 멍하니 선생을 생각 다. 어쩐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도무지 언제 어디서 만난 사람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나날의 생활에 진절머리가 나다 못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심하고 따분하기만 했다. 그래서 선생을 보았던 시간을 헤아려 다음날 역시 일부러 찻집까지 나가 보았다. 그런데 서양인은 오지 않고 선생 혼자서 밀짚모자를 쓰고 왔다. 선생은 안경을 벗어 선반 위에 놓고 바로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더니 총총걸음으로 물가로 내려갔다. 선생이 어 제와 같이 떠들어대고 있는 피서객들 사이를 지나서 혼자 헤엄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문득 그 뒤를 쫓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얕은 물을 머리 위까지 튀기며 꽤 깊은 곳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선생을 목표로 삼아 양손을 번갈아가며 물살을 헤치면서 헤엄쳐 나갔다. 그런데 선생은 어제와는 달리 일종의 반원형을 그리며 묘한 방향에서 해안 쪽으로 돌아가 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끝내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육지로 올라가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 손을 흔들면서 찻집으로 들어서자, 선생은 이미 단정히 옷을 입은 차림으로 나 와 엇갈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다음날도 같은 시간에 물가로 나가서 선생의 얼굴을 보았다. 그 다음날도 그 일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말을 걸 기회도, 인사를 할 기회도 가질 수 없었다. 더욱이 선생의 태도 는 비사교적이었다. 날마다 같은 시간에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돌아갔다. 주위가 아무리 떠 들썩해도 거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처음에 함께 왔던 서양인은 그후 전혀 모습 을 나타내지 않았다. 선생은 언제나 혼자였다. 언젠가 선생이 여느 때와 같이 곧장 바다에서 올라와서 항시 같은 장소에 벗어둔 유카타 를 입으려고 했을 때, 어찌된 일인지 그 옷은 모래 투성 이였다. 선생은 그것을 털기 위해서 등을 돌려 유카타를 두세 번 털었다. 그러자 옷 밑에 두었던 안경이 판자 틈새로 떨어졌다. 선생은 휜 바탕에 검은 무늬의 천으로 된 유카타 위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서야 안경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듯,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 걸상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안경을 집어들었다. 선생은 "고맙소" 하고 말하며 안경을 받아쥐었다. 다음날 나는 선생의 뒤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 다음 선생과 같은 방향으로 헤엄 쳐 나아갔다. 바다로 200미터쯤 나가자, 선생은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말을 건넸다. 넓고 푸른 바다에 떠있는 사람이라곤 그 근처에 우리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한 빛이 시야에 들어오는 물과 산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자유와 환희에 넘치는 근육을 움직이 며 물속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선생 역시 갑자기 팔다리의 움직임을 멈추더니 고개를 젖 혀 위를 향한 채 물결 위에서 눈을 감았다. 나도 그 흉내를 냈다. 푸르디푸른 하늘이 눈을 쏘듯이 강렬한 빛을 내 얼굴에 퍼부었다. "정말 기분이 좋은데요" 하고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속에서 일어나듯이 자세를 가다듬은 선생은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 하며 나를 재 촉했다. 비교적 강한 체질인 나는 물속에서 좀더 놀고 싶었다. 그러나 선생이 돌아가자고 말 했을 때 나는 즉시 "예, 돌아가기로 하죠" 하고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 은 다시 왔던 길을 헤엄쳐 바닷가로 돌아왔다. 나는 그때부터 선생과 아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이 어디에 묵고 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3일째의 오후로 생각된다. 선생과 찻집에서 만났을 때, 선생은 갑자 기 나에게 "당신은 아직도 여기에 더 머무를 생각이오?" 하고 물었다. 별다른 계획이 없었 던 나는 그런 물음에 대해 미리 준비해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 고 대답했다. 그러나 싱글싱글 웃고 있는 선생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갑자기 쑥스러워졌 다. 그래서 "선생께선?" 하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내 입에서 나온 '선생'이 란 말의 시초이다. 그날 밤 나는 선생의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라기보다도 일반 여관과 달리 넓은 절의 경내 에 있는 별장 같은 건물이었다.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선생의 가족이 아니라는 것도 알 았다. 내가 선생, 선생하고 불러대자 선생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것은 연 장자에 대한 내 입버릇에 불과하다고 변명을 했다. 나는 일전에 보았던 서양인에 대해서 물 어보았다. 선생과 나는 그 서양인의 희한한 점과 그가 벌써 가마쿠라를 떠났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나는 선생에게 일본인하고는 그다지 교제가 없으면서도 외국인파 가까이 지낸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말도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선생에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 나로서는 암암리에 상 대방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선생의 대답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은 잠시 깊이 생각하고 나서, "도무지 당신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군요. 뭔가 착각한 것이 아닐까요?"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왠지 모르게 실망을 느꼈다. 나는 월말에 도쿄로 돌아왔다. 선생이 그 피서지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 그것보다 훨씬 이 전의 일이었다. 나는 선생과 헤어질 때 "앞으로 자주 찾아뵈어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물었 다. 선생은 간단히 "네, 오세요"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선생과 상당히 가까 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으로부터 좀더 따뜻한 말을 기대하고 말을 건넸던 것 이다. 따라서 어딘지 내키지 않는 듯한 대답을 듣자 자존심이 좀 상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빈번히 선생으로부터 무안을 당했다. 선생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 같기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자주 가벼운 실망을 느끼면서도 그런 일로 인해서 선생과 멀어질 생각은 없었다. 오 히려 그와 반대로 불안한 생각에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더욱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싶 어졌다. 보다 앞으로 나아가면 내가 기대하고 있는 그 무엇이 언젠가는 눈앞에 시원스럽게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젊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 대해서 젊은 피가 그토록 솔직히 움직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왜 선생에 대해서만 유독 그런 기분이 드는 지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을 선생이 돌아가신 지금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선생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선생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때 그때의 쌀쌀맞은 인사와 냉담한 태도는 나 를 멀리하려고 하는 불쾌함의 표현이 아니었던 것이다. 딱하게도, 선생은 자신에게 가까이하 려고 하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가치가 없으니 단념하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남의 애정 을 받아들이지 않는 선생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경멸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물론 선생을 또 방문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도쿄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수업이 시 작될 때까지는 아직도 2주일의 여유가 있었으므로 그 동안에 한번 가보려고 생각했다. 그러 나 돌아와서 2,3일이 지나는 사이에 가마쿠라에 있었을 때의 기분이 점점 희미해졌다. 게다 가 채색된 대도시의 공기가 기억의 부활에 따르는 강한 자극과 함께 내 마음을 짙게 물들였 다. 나는 거리에서 학생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기대와 긴장을 느끼곤 했다. 나는 잠시 선생에 대한 일을 잊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어 한 달쯤 지나자, 나는 긴장감이 풀리며 무엇인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어딘지 불안한 얼굴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몹시 갖고 싶어하는 마 음으로 내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내 머리에는 다시금 선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또 선생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선생 댁을 처음 찾아갔을 때, 선생은 집에 없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것은 그 다음 일요일로 기억된다. 맑게 갠 하늘이 온몸에 배어드는 듯이 느껴지는 화창한 날씨였다. 그날도 선생은 외출하고 집에 없었다. 가마쿠라에 있었을 때, 선생은 거의 날마다 집에 있 다고 말하곤 했다. 오히려 외출을 싫어한다는 말까지도 했었다. 번번이 선생을 만나지 못한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까닭 모를 불만을 마음 한 구석에 느꼈다. 나는 바로 현관을 떠나지 는 않았다. 하녀의 얼굴을 보고 약간 주저하면서 그곳에 서 있었다. 지난번에 명함을 전해 준 기억이 있는 하녀는 나를 기다리게 하고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부인 같은 분이 대신 나왔다.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그 부인은 정중한 태도로 선 생의 행선지를 일러주었다. 선생은 매월 그날이 되면 조시가야의 묘지에 잠들어 있는 어느 고인에게 꽃을 바치러 간다는 것이었다. "방금 나가셨는데, 10분도 채 되지 않았어요" 하고 부인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번화한 거리로 100미터쯤 걸어가자, 나도 산책이 라도 할 겸 조시가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 심도 생겼다. 그래서 곧장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묘지 바로 앞에 있는 묘목밭의 왼쪽으로 들어가서 양쪽에 단풍나무가 심어진 넓은 길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길 끝에 보이는 찻집에서 선생 같은 분이 불쑥 나왔다. 나 는 그분의 안경테가 햇빛에 반짝이는 데까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느닷없이 "선생님"하 고 큰소리로 불렀다. 선생은 깜짝 놀라 멈춰서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쩐 일로‥‥‥ 어쩐 일로‥‥‥‥." 선생은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했다. 그 말은 고요하기만 한 대낮에 이상한 어조로 되풀 이되었다. 나는 갑자기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선생의 태도는 오히려 침착하기만 했다. 음성은 오히려 너무나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듯한 일종의 우울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묘지까지 찾아가게 된 경위를 선생에게 이야기했다. "누구의 묘를 찾다갔다고 하던가요? 아내가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해주었나요 ? " "아닙니다, 그런 말씀은 전혀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래요? -하긴 초면인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는 할 리가 없지요. 말할 필요가 없는 거니 까. " 선생은 겨우 납득이 간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선생과 나는 거리로 나서기 위해 묘 사이를 빠져나왔다. 거기에는 이사벨라의 묘라든지, 신의 종복 로긴의 묘,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솔도파 등이 서 있었다. 전권공사 모모라는 것도 있었다. 나는 안득열이라고 새겨진 자그마한 묘 앞에서 "이 것은 뭐라 읽나요?" 하고 선생에게 울었다. 그러자 선생은 "안드레나고나 읽히게 할 생각이 었겠죠"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선생은 그런 묘표가 나타내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유형에 대해서 나만큼이나 해학과 비꼼 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둥근 묘석이나 가늘고 긴 화강석으로 된 비석을 가리키며 연달아 이것저것 말하는 것을 처음에는 말없이 듣고 있던 선생은 드디어 "당신은 죽음이란 사실을 아직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것 같군요" 하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도 더 이 상 말을 하지 않았다. 묘지의 경계에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뒤덮듯이 서 있었다. 그 밑으로 왔을 때, 선생은 높은 우듬지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조금 더 있으면 정말 볼만하지요. 이 나무가 온통 단풍이 들면 이 근처의 땅은 그야말로 황금빛 낙엽으로 뒤덮이게 되지요." 선생은 한 달에 한 번씩 이 나무 밑을 어김없이 지나는 것이었다. 저편에서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며 새로운 묘지를 다듬고 있는 남자가 괭이 든 손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 다. 목적지가 없는 나는 다만 선생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선생은 여느 때보다도 말이 적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거북함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함께 걸어갔 다. "곧바로 댁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 " "네, 특별히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남쪽으로 비탈길을 내려갔다. "선생 집안의 묘소가 그곳에 있습니까?" 하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오 " "그럼 어느 분의 묘가 있습니까? -친척 되는 분의 묘인가요? "아닙니다. " 선생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을 냈다. 그런데 100미터쯤 걸어갔을 때 선생은 뜻밖에 말을 이었다. "거기에는 내 친구의 묘가 있지요." "그러면 친구 분의 묘를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시는 겁니까?" "그렇소. " 생은 그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후 나는 가끔 선생을 방문하게 되었다. 갈 때마다 선생은 집에 있었다. 선생을 만나는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나는 더욱더 빈번히 선생의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나에 대한 선생의 태도는 처음이나 가까워진 후에도 그다지 변함이 없었다. 선생 은 언제나 차분하고 조용했다. 어떤 때는 너무 조용해서 적막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처 음부터 선생은 가까이 하기 어려운 신비함을 간직한 분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 떻게 해서든 가까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어디선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선생 에 대해서 그러한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나 혼자뿐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직 감은 그후 자신에게만은 입증되었으므로 나는 덜 떨어졌다는 말을 듣더라도,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예측했던 나 자신의 직감을 어쨌든 믿음직스럽고 또한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을 양팔을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 - 그가 바로 선생이었다.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선생은 언제나 조용했다. 침착하기만 했다. 그러나 때로는 표현 할 길 없는 먹구름이 그의 얼굴을 스칠 때가 있었다. 유리창에 검은 새 그림자가 비치듯이- 비치는가 하면 곧 사라지기는 했지만 - 내가 처음으로 선생의 미간에서 그 먹구름을 본 것 은 조시가야 묘지에서 갑자기 선생에게 말을 걸었을 때였다. 나는 그 이상한 순간에 이제까 지 경쾌하게 진행되고 있던 심장의 혈액의 흐름을 약간 둔화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일 시적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마음은 5분도 지나기 전에 평소의 탄력을 회복했다. 나는 그 때 이후 그 먹구름에 대해 잊고 있었다. 밖에도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소춘도 다 저물어가는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나는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문득 선생이 특별히 주의를 끌게 한 큰 은행나무를 눈앞에 떠올리게 되었다. 잘 헤아려보니 선생이 한 달에 한 번이면 으레 성묘를 가는 날이 사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날은 수업이 오전에 끝나는 한가한 날이었다. 나는 선생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조시가야의 은행잎은 벌써 다 져버렸을까요?" "아직 벌거숭이는 안되었을 거요." 선생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한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곧 입을 열었다. "이번에 성묘가실 때는 저도 같이 가도 괜찮을까요? 선생과 함께 그 근처를 산책하고 싶 군요. " "나는 성묘하러 가는 것이지, 산책하러 가는 것이 아니오." "하지만 그 길에 산책을 하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 선생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선생은 입을 열었다. "내가 하려는 것은 진짜 성묘뿐이니까요. " 그 말로 미루어 선생은 어디까지나 성묘와 산책을 명확히 구분 짓고 넘어가려는 듯이 보 였다. 나와 함께 가고 싶지 않다는 구실인지, 나로서는 그때의 선생이 마치 어린애 같아서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더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성묘라도 좋으니 저도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저도 성묘를 할테니 말입니다. " 나로서는 사실상 성묘와 산책의 구별이 거의 무의미한 것같이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자 선생의 미간이 약간 흐려졌다. 눈에서도 이상한 빛이 엿보였다. 그것은 간단히 괴로움이나 혐오감이나 두려움이라 할 수 없는 미미한 불안감 같은 것이었다. 나는 곧 조시가야에서 " 선생님" 하고 불렀을 때의 기억을 뚜렷이 떠올렸다. 그 두 가지 표정은 전혀 달랐다. "나는" 하고 선생은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에게 말할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어서 남과 같이 그곳으로 성묘를 가고 싶지 않은 거요. 아직 내 아내도 같이 간 적이 없소." 나는 정말 이상한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선생을 연구할 생각으로 선생 댁에 드나든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만 지난날과 다름없이 지내고 있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때의 내 태도는 내 생활을 통해 볼 때 오히려 값진 것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오로지 그렇게 했 기 때문에 선생과 인간다운 따뜻한 교제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 호기심이 다 소 선생에 대해 연구적으로 작용했다면 두 사람 사이를 잇는 애정의 끈은 그 순간 툭 끊어 져버렸을 것이다. 젊은 나는 자신의 태도를 전혀 자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만약 잘못해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결과 가 벌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렇지 않아도 선생은 차가운 눈으로 연구 대상 이 되는 것을 언제나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 달에 두세 번은 반드시 선생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 발길이 점점 빈번해진 어 느 날, 선생은 갑자기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뭣 때문에 이렇게 자주 내 집에 찾아오는 거요?" "뭣 때문이라고 할 만한, 뭐 그런 특별한 뜻은 없습니다. - 그런데 혹 방해가 되는지요?" "방해가 된다고는 말하지 않았소. " 정말 귀찮다는 기미는 선생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수 없었다. 나는 선생의 교제 범위가 극히 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선생의 동창생 가운데 그 당시 도쿄에 있는 사람은 거 의 두세 명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선생과 동향인 친구들 중 때로 객실에서 자리 를 같이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도 선생에게 나 정도의 친숙감 밖에는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하고 선생이 말했다. "그러니 당신이 이렇게 찾아오는 것을 기 뻐하는 거요. 그래서 왜 이리 자주 오느냐고 물었던 것이오. " "그건 또 무슨 뜻이죠 ? " 내가 이렇게 반문하자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 니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나이가 몇이오 ? " 이 문답은 그야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나는 그때 끝까지 캐묻지 못하고 돌아와 버렸다. 그러고도 나흘도 지나지 않아서 또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은 객실로 나오자마자 웃 음을 터뜨렸다. "또 오셨군요. " "네 왔습니다. " 이렇게 말하며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다른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했다면 틀림없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의 경우에는 전혀 반대였다. 화가 나기는 커녕 오히려 유쾌하 기까지 했다.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 그날 밤 선생은 요전에 했던 말을 되풀이 했다. "나는 외로운 사람인데, 어쩌면 당신도 외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나는 외로워도 나이를 먹었으니 죽은 듯 이 지낼 수 있지만 젊은 당신은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껏 행동하고 싶을 것 니다. 쉴새없이 움직이며 무엇인가에 부딪치고 싶을 겁니다‥‥‥‥." "저는 조금도 외롭지 않습니다. " "젊을수록 외롭게 마련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왜 이리 자주 나를 찾아오는 겁니까? " 그때도 선생은 지난번에 한 말을 또다시 입에 담았다. "당신은 나를 만나도 역시 외로운 기분이 어느 구석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그 외로움을 뿌리채 뽑아드릴 힘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이제 곧 다른 방 향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뻗게 될 것입니다. 얼마 안 가 우리 집으로는 발길을 돌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는 쓸쓸하게 웃었다. 다행스럽게도 선생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경험이 없는 그 당시의 나는 그 예언에 내 포되어 있는 명백한 의의마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선생을 만나러 갔다. 그러다 가 언제부터인지 선생 댁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아주머니하고도 대화 를 나누게 되었다. 보통 인간으로서 나는 여자에 대해 냉담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나이가 어린 나는 지금까지 여자와 교제다운 교제를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원인인지는 몰라도 나는 길거리 에서 마주치는 알지도 못하는 여자들에게 흥미를 갖는 정도였다. 선생 부인은 언젠가 현관 에서 보았을 때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그때 받은 인상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외는 특기할 만한 점이 없는 부인이었다. 그것은 그 부인에게 특색이 없다는 것보다는 특색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다고 해석하는 편 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부인을 선생에 부속된 일부분처럼 대하고 있었다. 부인 도 자기 남편을 찾아오는 학생이라는 점에서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던 것 같다. 그러 니 중간에 서 있는 선생이 없다면 두 사람 사이엔 아무 감정도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부인에 대해서는 다만 아름답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느낌도 남아 있지 않다. 어느 날 나는 선생 댁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때 부인이 나와서 곁에서 술을 따라주 었다. 선생은 여느때 보다 유쾌하게 보였다. "당신도 한잔하지" 하며 선생은 자기가 마신 술잔을 부인에게 건네주었다. "저는‥‥‥‥ 하며 부인은 사양하다가 난처하다는 듯이 받았다. 부인 은 아름다운 눈썹을 모으더니 내 잔의 반 정도밖에 따라주지 않은 잔을 입술에 갖다댔다. 부인과 선생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별일이군요, 저더러 마시라고 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당신이 싫어하니까 그랬지. 하지만 가끔 마시면 좋아요. 기분이 좋아지니까. " "조금도 좋아지지 않아요, 괴롭기만 하지. 하지만 당신은 무척 즐거운가보군요, 조금만 마 셔도. " "때론 아주 기분이 좋아지지. 그러나 언제나 그건 건 아니야. " "오늘밤은 어떻죠 ? " "오늘밤은 아주 기분이 좋군. " "그러면 밤마다 조금씩 드시면 되겠네요." "그래서야 되나. " "그렇게 하세요. 그러는 편이 쓸쓸하지 않고 좋으니까." 선생 댁에 사는 사람이라곤 부부와 하녀, 이렇게 세 사람뿐이었다. 갈 때마다 너무나 조용했다. 큰소리로 웃는 일도 없었다. 어떤 때는 집안에 있는 사람이라곤 선생과 나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애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하고 부인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요" 하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는 아무런 동정심도 일지 않았다.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 는 나는 아이를 그저 귀찮은 존재로만 여기고 있었다. "아이 하나 얻어다줄까? " 하고 선생이 말했다. "얻어온 애는 그렇지 않아요" 하며 부인은 또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언제까지 생길 리가 없지" 하고 선생이 말했다. 부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대신 내가 "왜 그렇죠?" 하고 물었을 때 선생은 "천벌이니 까" 하고는 큰소리로 웃었다. 내가 아는 한, 선생과 부인은 금술이 아주 좋은 부부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산 적이 없으 므로 물론 깊은 내막은 알 까닭이 없지만 선생은 객실에서 나와 마주앉아 있다가 하녀를 부 르지 않고 부인을 부를 때가 있었다. ( 부인의 이름은 시즈라 였다. ) 선생은 "어이 시 즈" 하며 언제나 미닫이 쪽을 돌아보았다. 그 부르는 소리가 퍽 다정하게 들렸다. 대답을 하 고 나온 부인도 무척 고분고분했다. 가끔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부인이 동석할 때는 그러한 정다움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선생은 가끔 부인과 함께 음악회나 연극도 보러 갔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여느 때처럼 선생 댁 현관에서 인기척을 내려 하자 객실 쪽에서 누군가의 목 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어보니 평범한 대화가 아닌 말다툼 같았다. 선생 댁은 현관 다음이 바로 객실이어서 현관 문 앞에 서 있던 나는 그 말다툼의 상황만은 거의 짐작이 갔다. 그리 고 가끔 높아지는 남자의 목소리로 그 중의 한 사람이 선생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상대 는 선생보다 소리가 낮아서 누군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부인인 것 같았다. 그런데 부인 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현관에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바로 결단을 내려서 그대 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책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창문 아래서 내 이름을 부르는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창문을 열었다. 선생은 산책을 하자고 말했다. 아까 허리띠 사이에 감싼 시계를 꺼내 보니 어느새 여덟시가 지나고 있었다. 나는 돌아온 그대로 아직 하카마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곧 그 차 림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날 밤 나는 선생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선생은 원래 주량이 적은 분이었다. 어느 정도 마시고 그래도 취하지 않으면 취할 때까지 마셔보겠다는 배짱도 없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그만 마셔야겠소" 하며 선생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얼마 전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생선뼈가 목에 걸린 것처럼 괴로웠다. 솔직하게 말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도 그만두는 것이 좋겠지 하며 생각을 바꾸면서 묘하게 안절부절못했다. "오늘밤은 좀 이상해대 보이는군요" 하고 선생 쪽에서 말을 꺼냈다. "실은 나도 좀 이상합니다. 그걸 느끼시겠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실은 조금 전에 아내와 말다툼을 해서 그것 때문에 속 좁게도 신경이 곤두선 것 같군 요." 하고 선생이 또 말했다. "무슨 일로‥‥‥‥ 나는 언쟁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내가 나를 오해하는 것이었어요. 오해라고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결국 화를 내고 말았지요." "어떻게 선생을 오해했다는 거죠 ? " 선생은 내 질문에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아내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라면 나 역시 이렇게까지 괴로워하지 않아요. " 선생이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이것 역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였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 두 사람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생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잘못한 겁니다. 화를 내고 나왔으니 아내는 여간 걱정을 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여자란 생각하면 불쌍하지요. 내 아내는 나 외에는 전혀 의지할 곳이 없으니." 선생은 잠시 말을 중단했는데 별로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듯 곧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이란 무척 마음든든한 존재 같아서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이봐요, 나 는 당신 눈에 어떻게 비칩니까? 강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약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 "그 중간쯤으로 보입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이 대답은 선생에게 조금 의외였던 것 같 다. 선생은 다시 입을 다물더니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선생 댁은 내 하숙집 부근을 지나서 가야 했다. 그런데 하숙집 부 근의 길모퉁이에서 헤어지는 것이 웬지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댁 앞까지 바래다드릴까 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은 갑자기 손을 내저으며 그만두라고 말했다. "너무 늦었으니까 빨리 돌아가요. 나도 어서 가야겠소, 아내를 위해." 선생이 마지막에 덧붙인 "아내를 위해"라는 말은 묘하게 그때의 내 마음을 아늑하게 했 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돌아가서도 마음 편히 잘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 "아내를 위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선생과 부인 사이에 일어난 말다툼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것으로도 알 수 있 었다. 그리고 여간해서는 그런 일지 없다는 것도 그후 줄곧 그 댁을 드나든 나는 대충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날 선생은 이런 감상까지 털어놓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여자를 한 명밖에 몰라요. 아내 이외의 여자에겐 전혀 관심이 없습니 다. 아내도 나를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남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들은 가 장 행복하게 태어난 한 쌍이어야 합니다. " 나는 지금 앞뒤 상황이 기억나지 않아 선생이 무엇 때문에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확실 하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선생의 태도가 진지했다는 것과 차분한 어조였다는 것만은 지금 도 기억에 남아 있다. 다만 그때 내 귀에 인상깊게 울린 것은 "가장 행복하게 태어난 한 쌍이어야 합니다"라는 마지막 한마디였다. 선생은 왜 행복한 인간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고 전제했을까. 나는 그것이 좀 이상했다. 선생은 과연 행복할까, 아니면 행복해야 하면서도 과히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한때뿐, 어느덧 어 딘가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이 외출 중이라 부인과 단둘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 다. 그날 선생은 요코하마를 출범하는 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는 친구를 전송하러 신바시 에 가고 없었다. 요꼬하마에서 배를 타는 사람은 대체로 아침 여덟시 반 기차로 신바시를 떠나는 것이 당시의 통례였다. 나는 어떤 책에 대해 선생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어서 미리 선생의 승낙을 얻은 약속 시간 아흡시에 방문했다. 선생의 신바시 행은 그 전날 작별 인사 를 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친구에 대한 예의로 그날 갑자기 취해진 것이었다. 선생은 전 송만 하고 곧 돌아올테니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객실로 올라가서 선생을 기다리는 동안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의 나는 이미 대학생이었다. 처음으로 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에 비하면 상당히 어른 이 된 기분이었다. 부인과 상당히 친해진 뒤였다. 나는 부인에 대해 조금도 거북함을 느끼지 않았다. 마주앉아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지극히 사소한 담화에 지나지 않아 서 지금은 모두 잊어버렸지만 단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기 전 에 미리 말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선생은 대학 출신이었다. 나는 그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이 아무것도 하 지 않고 놀고 있다는 것은 도쿄로 돌아온 조금 후에야 알았다. 그때 나는 어쩌면 저렇게 놀 고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선생은 전혀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선생의 학문이나 사상 에 대해서는 선생과 가까이 지내는 나 외에는 경의를 표할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나 는 그 사실이 늘 안타까웠다. 선생은 다만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나서서 잘난 체하고 말 하기란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아서"라고 대답하고는 말문을 닫았다. 나는 그 대답이 너무 겸 손해서 도리어 세상을 냉혹하게 평하는 말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선생은 동창생 중 지금은 저명 인사가 된 이 사람 저 사람을 들추어 아주 혹평을 가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골적으로 그 모순을 들어 운운했다. 그러한 내 태도는 반항이라기보다는 세상이 선생을 너무 몰라주는 것이 아타깝기 그지없는 감정의 발로였다. 그때 선생은 침울한 태도로 "역시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감명도 줄 수 없는 하찮은 인간이니 할 수 없지요"라고 말했다. 선생의 얼굴에는 무엇이라 표현할 길 없는 독특한 표정이 역력히 새겨졌다. 그것이 과연 실망인지 불평인지 비애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다음 말이 안 나을 정도로 강 한 것이어서 나는 그 이상 아무 말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부인과 대화를 하는 동안 화제의 초점은 자연히 선생에게 모아졌다. "선생은 왜 저렇게 집에서 생각하고 공부만 할 뿐 사회에 나서서 일을 하지 않는 겁니 까?" "그분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 일을 싫어하니까요." "그런 일이 시시하다고 깨달아서일까요?" "깨닫고 깨닫지 않고가 아니고, - 하긴 여자인 나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뜻은 아닐 거예요. 그분 역시 무엇인가 하고 싶을 테니까요. 그러면서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까 딱하지요." "하지만 선생은 건강이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건강이야 좋으시죠. 아무 지병도 업습니다. " "그러면서 왜 활동할 수 없을까요?" "그것을 알 수 없어요. 그것을 알 수만 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걱정이 되지 않을 거예요.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딱하고 가엾기만 한 겁니다. " 부인의 말투에는 강한 동점심이 넘쳐 흘렀다. 그래도 입가에는 미소가 엿보였다. 객관적으 로 보면 오히려 내가 진지했다. 나는 언짢은 얼굴로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부인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젊었을 때는 저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때는 전혀 달랐지요. 그런데 완전히 변해버린 것 입니다. " "젊은 시절이란 언제를 말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학생 시절이지요. " "학생 시절부터 선생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러자 부인의 얼굴은 갑자기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부인은 도쿄 출신이었다. 나는 그것을 선생으로부터도, 부인 자신으로부터도 듣고 알고 있 었다. 부인은 "사실은 잡종이지요"라고 말했다. 부인의 부친은 돗토리 출신인데 비해 모친은 에도라고 했던 시절의 이치가야 출신이어서 부인은 농담조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선생은 전혀 방향이 다른 니이가타 출신이었다. 그러니 부인이 만일 선생의 학생시절을 알 고 있다면 그것은 고향 때문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얼굴빛이 붉어진 부인은 그 이상 말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선생과 알게 되면서부터, 그리고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여러 가지 문제로 선 생의 사상과 정서에 접근해보았지만 결혼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듣지 못했 다. 나는 때로는 그것을 선의로 해석해보기도 했다. 나보다는 세상을 오래 산 선생이니 지 난날의 멋진 로맨스를 젊은이에게 들려준다는 것을 일부러 삼가는 것으로 여겼다. 때로는 또 나쁘게도 받아들였다. 선생만이 아니라 부인도 나에 비해 한 시대 이전의 인습 속에서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과거사를 돌이킬 때면 정직하게 자신을 개방할 만큼의 용기가 없다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긴 어느 쪽도 다 추측에 불과했지만, 게다가 추측의 이면에는 두 분이 결혼하기까지의 화려한 로맨스에 대한 가정도 있었다. 그러한 내 가정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다만 연애의 반쪽 면만을 상상으로 그린 데 불과했다. 선생은 아름다운 연애의 이면에 무서운 비극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극이 선생 에게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는지를 상대인 부인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인은 지금까지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 선생은 그 일을 끝까지 부인에게 감추고 죽었다. 선생은 부인의 행복 을 파괴하기 전에 먼저 자기 생명을 파괴해 버렸다. 나는 지금 이 비극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 비극 때문에 탄생했다고 할 수 있는 두 분의 연애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이다. 두 분다 나한테는 거의 아무것 도 말해주지 않았다. 부인은 조심하느라 그랬고, 선생은 그 이상의 깊은 이유 때문에. 단 한가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언젠가 꽃필 무렵 나는 선생과 함께 우에노 에 간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한 쌍의 남녀를 보았다. 그들은 정답게 꼭 붙 어서 꽃이 만발한 거리를 걷고있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꽃보다는 그쪽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이 많았다. "신혼부부 같군요" 하고 선생이 말했다. "퍽 다정해 보이는데요" 라고 내가 응수했다. 선생은 쓴웃음조차 지어 보이지 않았다. 두 남녀를 시선밖에 두는 방향으로 발을 돌리고 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연애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겠죠?" "네. " "당신은 방금 저 남자와 여자를 보고 놀렸지요. 그 놀림 속에는 당신도 연애를 하고 싶지 만 상대가 없는 데 대한 불쾌함이 담겨 있었을 겁니다. " "그렇게 들렸나요 ? " "그래요. 만족스러운 연애를 해본 사람은 더 따뜻한 소리를 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런데 연애는 죄악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소?" 그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기쁜 표정이었다. 그곳을 빠져 나와 꽃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숲속으로 올 때까지는 같은 문제를 말할 기회가 없었다. "연애는 죄악입니까?" 하고 내가 갑자기 물었다. "죄악입니다, 분명히. " 그렇게 대답하는 선생의 말투는 앞에서와 같이 상당히 강했다. "왜 그렇죠 ? " "왜 그런지는 곧 알게 될 겁니다. 곧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랑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 " 나는 일단 내 가슴속을 점검해보았다. 그러나 그곳은 의외로 공허했다. 짐작되는 것은 아 무것도 없었다. "내 가슴속에는 이렇다 할 목적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선생에게 아무것도 감추고 있 지 않습니다. " "목적물이 없으니까 움직이는 겁니다. 있으면 안정되리라는 생각에 움직이고 싶은 거지요. " "지금 저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데요." "당신은 어딘가 허전함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 집으로 움직여 온 것 이 아닙니까 ? " "그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애하고는 다릅니다. " "그것이 바로 연애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이성에 대한 갈망의 예비 단계로 먼저 동성인 나한테 움직여 온 것입니다. " "저는 그 두 가지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 "아니, 같습니다. 나는 남자로서 도저히 당신에게 만족을 드릴 수 없는 인간입니다. 게다 가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더욱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점에 대해 정 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한테서 딴 곳으로 작용해 나가는 것은 할 수 없지요. 그러나 오히려 나는 그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 그러자 이상하게도 나는 슬퍼졌다. "제가 선생한테서 멀어진다고 생각하신다면 할 수 없지만, 저는 아직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 선생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해야지요, 연애는 죄악이니까. 우리 집에 찾아와봤자 만족은 얻지 못해도 위 험은 없지만, - 이봐요, 아주 까만 긴 머리로 결박당했을 때의 심정을 알고 있습니까?" 나는 그 심정을 상상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선생이 말하 는 죄악이라는 뜻은 상상이 가지 않아 잘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약간 불쾌해졌다. "선생, 죄악이라는 뜻을 좀더 분명하게 말씀해주시죠. 아니면 이 문제를 여기서 끝맺어주 십시오. 나 자신이 죄악이라는 뜻을 확실히 알 때까지 말입니다. " "내가 잘못했소. 나는 당신에게 진실을 말할 생각이었는데, 실은 당신을 약올리고 있었군 요. 내가 잘못한 거요." 선생과 나는 박물관 뒤쪽에서 우구이스다니 방향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울타리 사 이에서 넓은 정원의 일부에 우거진 얼룩 조릿대가 그윽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당신은 내가 왜 매달 조시가야 묘지에 묻혀 있는 친구의 묘를 찾아가는지 알고 있습니 까? " 선생의 이 질문은 참으로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더구나 선생은 이 질문에 대해 내가 대답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선생은 비 로소 눈치를 챈 듯 이렇게 말했다. "내가 또 실수를 했군요. 애태우게 한다는 것이 나쁘다고 여기고 설명하려 하면 그 설명 이 다시 당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되고. 정말 어쩔 수가 없군요. 이 문제는 이것으로 끝냅시 다. 어쨌든 연애는 죄악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서도 신성한 것입니다. " 나는 선생의 말을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연애에 대 한 이야기는 다시 입에 담지 않았다. 아직 젊은 나는 자칫 편협적인 생각에 빠지기 쉬웠다. 적어도 선생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 던 모양이다. 나한테는 학교 강의보다도 선생과의 담화 쪽이 훨씬 더 유익했다. 교수의 의견 보다도 선생의 사상 쪽이 고마웠다. 결국 교단에 서서 나를 지도해주는 훌륭한 사람보다도 자기 자신만을 지키면서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선생이 오히려 훌륭하게 보였다.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하고 선생이 말했다. "극히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던 나는 그때 자신이 만만 했었다. 그런데 선생은 그 자신감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신은 열에 들떠 있습니다. 열이 식으면 싫어질 겁니다. 나는 지금 당신이 나를 그렇게 까지 보아준 데 대해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당신에게 일어날 변화를 예측해볼 때 더욱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 "저를 그렇게도 경박스럽게 보고 있습니까? 그렇게도 믿을 수 없습니까 ? " "그저 딱하다고 생각합니다. " "딱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러자 선생은 귀찮다는 듯이 정원 쪽으로 눈을 돌렸다. 얼마 전까지 무거운 듯이 짙은 빨간색으로 정원을 방울방을 물들이고 있던 동백꽃은 이제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생 은 객실에서 그 동백꽃을 자주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믿지 않는다고요? 특별히 당신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나는 모든 사람을 믿지 않습 니다. " 그때 울타리 너머에서 금붕어 장수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큰길에서 200미터쯤 깊이 꺾어 들어 온 좁은 골목은 의외로 조용했다. 집안은 평소 와 다름없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옆방에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묵묵히 바 느질이나 하고 있는 부인의 귀에 내 말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것을 전혀 잊고 있었다. "그러면 부인도 믿지 않습니까? " 하고 나는 선생에게 물었다. 그러자 선생은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남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저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면 누구나 확실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 "아니,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했지요. 한 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몹시 두려워졌 던 것입니다. "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좀더 깊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자 미닫이 저쪽에서 "여보, 여보" 하고 부르는 부인의 목소리가 두 번 들려왔다. 선생은 두번째 때야 비로소 "뭐요?" 하고 대꾸했다. 부인은 "잠깐만요" 하며 선생을 옆방으로 불렀다. 그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상상할 여유를 주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선생은 객실 로 돌아왔다. "어쨌든 나를 너무 믿어서는 안됩니다. 곧 후회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기만당 한 앙갚음으로 잔혹한 복수를 하게 될 겁니다. " "그것은 무슨 뜻이죠 ? " "전에는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 으려는 결과를 낳는 겁니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현재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보다 한층 쓸쓸한 미래의 나를 참는 대신 쓸쓸한 지금의 나를 참으려 합니다.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에 충만된 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그 대가로 모두 이 쓸 쓸함을 맛보아야 할 것입니다. " 나는 이러한 각오를 갖고 있는 선생에 대해 할말을 잃었다. 그후 나는 부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무엇인가가 마음에 걸렸다. 선생은 부인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갖고 대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만일 그렇다면 부인은 그것으로 만족할까. 부인은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지도,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 다. 나는 부인과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부인은 나와 만날 때마다 평범하게 대했으며, 선생이 동석하는 자리가 아니면 부인과 나는 얼굴을 마주볼 기 회가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이 있었다 -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선생의 그러한 각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다만 냉철한 눈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현대를 관찰한 결과일까? 선생은 앉아서 생 각하는 성격의 사람이었다. 선생의 두뇌쯤 되면 이러한 태도는 앉아서 세상사를 생각하고 있어도 자연히 나오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선생의 각오는 통절 한 체험적인 각오 같았다. 불에 타서 냉각해 버린 석조 가옥의 윤곽과는 달랐다. 내 눈에 비 치는 선생은 분명히 사상가였다. 그러나 그 사상가의 정리된 주의의 이면에는 강한 사실이 엮어져 있는 것 같았다. 자신과 분리된 타인의 사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통절하게 맛본 사실, 피가 끓고 맥박이 끊어질 정도의 사실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내 마음대로 추측해본 결론은 아니다. 선생 자신이 이미 그렇다고 고백한 바 있었 다. 다만 그 고백이 뭉게구름 같긴 했지만. 내 머리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것이 씌 워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왜 무서운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업었다. 선생의 고백은 안개 가 낀 것처럼 희미했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내 신경을 떨게 했다. 나는 선생의 그러한 인생관에 영향을 주었을 어떤 열렬한 연애 사건을 가정해보았다 (물 론 선생과 부인 사이에 있었던) 언젠가 선생이 연애는 죄악이라고 했던 것에 비추어볼 때 다소 그것이 실마리가 되긴 했다. 그러나 선생은 부인을 사랑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연애에서 이런 염세에 가까운 각오가 나을 리가 언다. "전에는 그 사람 앞에 무 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으려는 결과를 낳는다"라는 선생의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말이 될지언정 선생과 부인 사이 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 같았다. 조시가야에 있는 그 누구의 묘 - 이것도 가끔 내 머리속에 떠오르곤 했다. 나는 그것이 선생과 깊은 관계가 있는 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의 생활에 가까워지면서 가까워질 수 업는 나는 선생의 머리속에 있는 생명의 단편으로서 그 묘를 내 머리속에도 받아들였 다. 그러나 그 묘는 나에게는 전혀 생명이 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는 되지 못했다.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자유로운 왕래를 방해하는 요물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다시 부인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때는 해는 짧아지고 웬지 모르게 조급함이 감도는 으스스한 계절이었다. 그 무렵 선생 댁 부근에서는 며칠 동안 도난 사건이 있었다. 도난당한 시간은 모두 초저녁이었다. 대단한 것을 도난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도둑이 들었다 하면 무엇인가 훔쳐갔던 것이다. 따라서 부인은 무서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에게는 외출을 해야 할 사정이 생겼다. 선생과 동 향 친구로 지방 병원에 근무하던 사람이 상경을 해서 선생은 다른 2, 3명과 함께 어느 음식 점에서 그 친구를 대접해야 했다. 선생은 사정을 말하고는 돌아올 때가지 나더러 집을 지켜 달라고 했다. 나는 쾌히 승낙했다. 내가 갔를 때는 불이 켜져 있기도 하고, 아직 켜져 있지 않은 곳도 있는 저녁때였다. 착실 하고 빈틈없는 선생은 벌써 집에 없었다. "늦으면 안된다고 하며 방금 나갔습니다. " 이렇게 말한 부인은 나를 선생의 서재로 안내했다. 서재에는 책상의자 외에 많은 서적이 멋진 가죽 표지를 나란히 하고 유리문 너머로 전등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부인은 나에게 화로 곁에 놓인 방석 위에 앉으라고 하고는 "잠시 이곳에 있는 책이라도 읽으시지요" 하며 나갔다. 나는 마치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손님 같은 기분이어서 미안했다. 나는 자세 를 가다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러자 다실 쪽에서 부인이 하녀에게 무엇인가 이르는 소 리가 들려왔다. 서재는 다실 복도 막다른 곳을 꺾은 모퉁이에 있어서 마룻대 위치에서 말하 면 객실보다 오히려 동떨어진 조용함이 감돌았다. 부인의 말소리가 끝나자 그후로는 잠잠했 다. 나는 도둑놈을 기다리는 기분에서 잠자코 있으면서도 어딘가를 살폈다. 30분쯤 지나자 부인이 다시 서재 입구에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나! " 부인은 약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부인은 손님처럼 그럴싸하게 점잔을 빼고 있 는 나를 우습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앉아 계시면 답답하시지 않나요? " "아닙니다, 답답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지루하실 텐데요. " "아니에요. 도둑놈이 오지나 않나 하고 긴장하고 있으니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 부인은 홍차 찻종을 든 채 웃으면서 그곳에 서 있었다. "여긴 구석이라 집을 지키는 데는 좋지 않을 것 같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 미안하지만 한가운데로 옮기시겠어요? 지루하실까봐 차를 가져왔는데 괜찮으시다 면 다실에서 드시지요." 나는 부인의 뒤를 따라 서재에서 나왔다. 다실에는 멋지게 생긴 긴 화로 위에서 쇠 주전 자의 물이 끓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차와 과자를 대접받았다. 부인은 잠을 이루기 어렵다 는 생각에서 찻종에 손을 대지 않았다. "선생은 가끔 그런 모임에 나가십니까? " "아니에요, 여간해서 나가시지 않아요. 요즘은 점점 더 사람들을 대하기 싫어하시는 것 같 아요." 이렇게 말한 부인의 모습에서 별로 난처해하는 기색을 엿볼 수가 없어서 나는 그만 대담 해졌다. "그러면 아주머니만 예외입니까? " "아니에요, 나도 싫어하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 "그건 거짓말이겠지요"라고 내가 말했다. "아주머니 자신도 거짓말 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말하시는 거지요? "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 "제 생각엔 선생이 아주머니를 좋아하니까 세상을 싫어하게 된 것 같은데요. " "학문을 하는 분답게 상당히 이론에 능하시군요. 텅 빈 이론만 만들어내는 일에 말입니다. 세상이 싫어졌으니까 나까지 싫어졌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같은 이론에서 말입니다. " "양쪽 다 말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제 말이 옳을 겁니다. " "저는 그런 논의를 싫어합니다.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따지는 걸 좋아하더군요. 재미있다 는 듯이 말입니다. 빈 잔으로 용케도 싫증내지 않고 술잔을 주고받는 격이죠." 부인의 말은 다소 매서웠다. 그러나 결코 혹독한 것은 아니었다. 부인은 자신이 지력이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인정케 하고 거기서 일종의 긍지를 찾을 정 도로 현대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부인은 그것보다 더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마음을 소중 하게 여기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더 끌고 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부인의 눈에 공연히 시비를 걸어 오는 사람으로 비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부인은 다 마신 홍차 찻종 바닥을 들여다보며 잠자코 있는 내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 잔 더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즉시 찻종을 부인에 게 건네주었다. "몇 개 ? 하나? 둘?" 각설탕을 집어든 부인은 내 얼굴을 보면서 찻종에 넣을 설탕 수를 물었다. 부인의 태도는 교태라고는 할 수 없을지언정 앞서 말한 매서운 말을 애써 지우려는 애교에 넘쳐 있었다. 자는 묵묵히 차를 마셨다. 다 마시고도 잠자코 있었다. "왜 그리 잠자코만 계시죠?" 하고 부인이 의아한 눈초리로 물었다. "무슨 말을 드리면 또 시비를 걸어온다고 꾸짖으실 것 같아서요"라고 나는 대 답했다. "설마 ! " 하고 부인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것을 기회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에게 공통 된 흥미거리라 할 수 있는 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머니, 아까 그 이야기를 계속해도 될까요? 아주머니에게는 텅 빈 이론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건성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 "그러면 말하세요. " "지금 아주머니가 갑자기 없어지신다면 과연 선생은 현재와 같이 살아 제실 수 있을까 요?" "그것은 모르지요. 그런 일은 선생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어요. 나한테 물어볼 문제가 아닙 니다. " "아주머니, 저는 진지합니다. 그러니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정직하게 대답해 주셔야지요 " "정직하게 말한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몰라요." "그러면 아주머니는 선생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계십니까? 이것은 선생에게 묻는 것보다 오히려 아주머니에게 여쭈어볼 문제라 생각되는데요. 직접 듣고 싶군요." "그런 것을 그렇게 정색을 하면서까지 물을 필요가 있을까요?" "심각한 얼굴로 물을 필요가 없다, 당연한 말을. 그런 뜻인가요?" "대충 그렇지요. " "그 정도로 선생에게 충실한 분이 갑자기 업어지면 선생은 어떻게 될까요? 세상 어느 곳 을 봐도 재미없는 선생은 아주머니가 갑자기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 입장에서가 아 니라 아주머니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아주머니 입장에서 볼 때 선생은 행복하게 될까요, 불행하게 될까요 ? " "내가 볼 때 그건 뻔한 거지요(선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선생은 내가 없으면 불행해질 뿐입니다. 아니, 살 수 없을지도 모으지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자부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지금 선생을 인간으로서 가능한 한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고 믿고 있 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나타나도 선생을 나만큼 행복하게 해드릴 수 는 없다고 장담할 만큼 생각해드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차분하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 "부인의 그 신념은 선생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것은 별문제입니다. " "역시 선생이 싫어한다는 것입니까? " "그분이 나를 싫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싫어할 까닭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선생은 세상이 싫은 것입니다. 세상이라기보다 요즘은 인간이 싫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나도 그 인 간의 한 사람으로서 좋아할 까닭이 없지요." 나는 부인이 말한 싫어한다는 의미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부인의 이해력에 감탄했다. 부인의 태도가 구식 일본 여성답지 않다는 것도 나에게 는 일종의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서 부인은 그 무렵 유행하기 시작했던 소 위 새로운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여자와 깊이 사귀어본 적이 없는, 세상 물정에 전혀 어두운 청년이었다. 남자로서의 나는 이성에 대한 본능으로, 동경의 목적물로서 항상 여자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운 봄의 구름을 바라보는 황홀한 기분으로, 그저 막연히 꿈꾸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실제로 여자 앞에 나서면 갑자기 감정이 변하곤 했다. 나는 내 앞에 나타난 여자 에게 매혹되는 대신 여자를 대하면 오히려 이상한 반발을 느꼈다. 그러나 부인을 대할 때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보통 남녀 사이에 가로놓인 사고방식의 차이라는 것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부인이 여자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부인을 다만 성실한 선생의 비평가 및 동정가로서 보았던 것이다. "아주머니, 일전에 제가 선생은 왜 보통 사람들처럼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고. " "네, 그렇게 말했지요. 그건 사실이에요. " "전에는 어떠셨죠 ? " "당신이 희망하는, 그리고 내가 희망하는 믿음직스러운 분이셨어요. " "그런데 왜 갑자기 변했습니까? " "갑자기가 아닙니다. 차츰차츰 저렇게 되신 거예요." "아주머니는 언제나 선생과 같이 계셨지요?" "물론 같이 있었지요, 부부인데." "그러면 선생이 그렇게 변한 원인을 분명히 알고 계실텐데요." "그러니까 괴롭지요.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더욱더 괴롭군요. 저로서도 도저히 알 수 없 는 일이에요.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분에게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는지 몰라요." "선생은 뭐라고 하셨나요 ? " "아무 할 말이 없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런 성격이 되었다고만 할 뿐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거예요." 나는 잠자코 있었다. 부인도 말이 없었다. 하녀는 자기 방에 틀어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 았다. 나는 도둑 생각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당신은 그 책임이 제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고 갑자기 부인이 물었다. "아닙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겐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니까요" 하고 부인이 또다시 말했다. "그래도 저는 선생을 위해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합 니다. " "선생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니 걱정하지 마세요. 믿으셔도 됩니다. 그건 제가 보증하 죠." 부인은 화로의 재를 긁어서 고르게 했다. 그리고 물병의 물을 쇠주전자에 부었다. 쇠주전 자는 금세 조용해졌다. "나는 드디어 참을 수 없어서 선생에게 물었지요. 내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 겠느냐고요. 고칠 수 있는 결점이라면 고치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선생은, 당신에게 결점 따 위는 있지도 않아, 결점은 나한테 있어라 고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너무 슬퍼서 참을 수 없어요. 눈물이 나와서 내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더욱더 묻고 싶어진답 니다. " 부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처음에 나는 부인을 이해심 많은 여성으로 대했다. 그런데 내가 그런 기분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부인의 태도가 점점 달라졌다. 부인은 내 두뇌에 호소하는 대신 내 심장을 움직이게 했던 것이다. 자신과 남편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또 없어야 하는데도 역시 무엇인가 있다. 그래서 눈을 크게 뜨고 찾아내려 하면 역시 아무 것도 없다. 부인이 괴로워하는 요점은 바로 거기 에 있었다. 부인은 맨 처음에는 선생의 세계관이 염세적이니까 그 결과로서 자신도 싫어한다고 단언 했다. 그런데 부인은 그렇게 단언하면서도 그 생각대로 믿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을 털어 놓자마자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되었다. 부인은, 선생은 자신을 미워한 결과 드디어는 세 상 모든 것이 싫어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그 추측을 밝혀내어 사실화할 수 없었다. 선생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남편다웠다. 친절하고 다정했다. 의심의 뭉 치를 그날 그날의 정분으로 감싸서 살며시 가슴속 깊이 간직해두었던 부인은 그날 밤 그 보 따리를 내 앞에 풀어놓았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고 부인은 나에게 물었다. "나로 인해 그렇게 되었는지, 아니면 당신이 말한 인생관이니 하는 것 때문인지,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나는 무엇이든 숨길 생각은 업었다. 하지만 거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뭐라 대답하든 부인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거기에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 그 순간, 부인은 예기했던 것이 어긋났을 때 볼 수 있는 가련한 표정을 나타냈다. 나는 즉 시 내 말을 보충했다. "그러나 선생이 아주머니를 싫어하지 않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저는 선생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뿐입니다. 선생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분이시죠. " 부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이렇게 말했다. "실은 좀 집히는 데가 있지만‥‥‥‥." "선생이 저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 말입니까? " "네, 만일 그것이 원인이라면 내 탓은 아니니까, 그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아주 편해질테지 만‥‥‥‥." "어떤 일인데요 ? " 부인은 잠시 멈칫하며 무릎 위에 모으고 있던 자기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판단해주세요, 말씀드릴 테니. " "제가 할 수 있는 판단이라면 해드리지요. " "전부 다 말할 수는 없어요. 그랬다간 선생으로부터 날벼락이 떨어질 테니까요. 큰소리가 나지 않을 대목만 해드리겠어요. " 나는 긴장한 나머지 침을 꿀꺽 삼켰다. "선생이 아직 대학에 다니실 때 아주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졸업을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떠났어요. 너무나 갑자기 죽었지요. " 부인은 내 귀에 속삭이듯 낮은 소리로 "실은 변사했어요"라고 말했다. 그것은 "어쩌다가?" 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말투였다. "이 정도로밖에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부터였습니다, 선생의 성격 이 점점 이상하게 된 것은. 왜 그분이 죽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선생도 역시 모르고 계실 거예요. 하지만 그때부터 선생이 달라진 것을 보면 그렇게 단정지을 수도 없는 일이지 요.." "그분의 묘입니까, 조시가야에 있는 것이 ? " "그것도 말해선 안될 문제니까 대답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사람이 친구 한 명을 잃었다고 해서 그 정도로 변할 수 있을까요? 나는 정말 그것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점을 판단해주셨으면 해요. " 내 판단은 오히려 부정적인 면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내가 파악한 사실의 한계 내에서 부인을 위로하려 했다. 부인 역시 내게서 위로를 얻으려는 듯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나는 근본적으로 사건의 큰 뿌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부인의 불안도 실은 그곳에 떠도는 옅은 구름과 같은 의혹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사건의 진상은 부인 자신 도 모르는 바가 많았다. 알고 있는 것조차 나에게 전부 들려줄 수 없었다. 따라서 위로하는 나도, 위로 받는 부인도 물결 위에 떠돌면서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는 셈이었다. 흔들리면서 부인은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면서 미덥지 않은 내 판단에 매달리려고 했다. 열시쯤 되자 현관에서 선생의 구두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부인은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잊은 것처럼 앞에 앉아 있는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후닥닥 일어섰다. 그리고 격자문을 여 는 선생을 거의 마주치는 순간에서 맞이했다. 나는 뒤에 처져서 천천히 부인을 따라 나갔다. 하녀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선생은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부인의 기색은 더 좋았다. 방금까지 부인의 아 름다운 눈에 고여 있던 눈물과 검은 눈썹에 모은 여덟 팔자를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그 변 화가 너무나 이상하여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만일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면(실제로 그것은 거짓으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부인이 해댄 하소연은 감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특 히 나를 상대로 지어낸 여성 특유의 헛된 장난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하긴 그때의 나는 부 인을 그만큼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었다. 나는 부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진 것을 보고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그렇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선생은 웃으면서 "정말 수고하셨소. 도둑놈은 오지 않았나요?" 하고 나에게 물었다. 그러 고는 "오지 않아서 맥이 풀리지나 않았소?"하고 말했다. 돌아오려고 할 때, 부인은 내게 "수고를 끼쳐서 미안합니다" 하고 가볍게 인사했다. 그 태 도는 바쁘신데 틈을 내주어 미안하다는 것보다는 애써 왔는데 도둑놈이 들어오지 않아서 미 안하다는 농담처럼 들렸다. 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까 내놓았던 양과자 남은 것을 종이 에 싸서 내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소맷자락에 넣고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가을밤 의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돌아 떠들썩한 시가지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 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날밤 일을 머리에 떠올려 되도록 빠짐없이 이렇게 적어보았다. 밝히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서 기억을 되살리긴 했지만, 실은 부인으로부터 과자를 받아 돌아갈 때 의 기분으로는 그날 밤의 대화를 그다지 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그 다음날 점심을 먹 으러 학교에서 돌아와서 전날 밤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과자 봉지를 보자마자 그 속에서 초 콜렛이 입혀진 다갈색 카스테라를 꺼내어 양볼이 미어지게 먹었다. 그리고 그것을 먹으면서 이 과자를 나에게 준 두 사람은 틀림없이 행복한 한 쌍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 각을 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기까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은 없었다. 나는 선생 댁에 출입하는 김 에 의복을 뜯어 빨아 재양이는 일과 바느질까지 부인에게 부탁했다. 그때까지 일본 속옷이 라는 것을 입어본 일이 없는 내가 셔츠 위에 검은 옷깃을 단 것을 겹치게 된 것은 그때부터 였다. 아이가 없는 부인은 그런 일이 소일거리가 된다며 일을 하니까 몸도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이건 손으로 짠 것이군요. 이렇게 바닥이 좋은 옷감은 여지껏 다뤄본 적이 없어요. 그 대 신 어찌나 바느질하기가 힘든지 몰라요.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아서 말이에요. 글쎄 바늘을 두 개나 부러뜨렸다니까요. " 부인은 이런 불만을 호소할 때도 그다지 귀찮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겨울로 접어든 어느 날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다. 어머니가 보내신 편지 에는, 아버지의 병세가 더 나빠졌다는 것과 지금 당장 어떻게 되시지야 않겠지만 연세가 연 세인 만큼 되도록 돈을 좀 마련해 오라는 말이 부탁하듯이 덧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신장병을 앓고 계셨다. 중년 이후에 나타나기 쉬운 아버지의 병은 만성이었다. 그러나 본인도, 가족도 주의만 하면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양생 덕분에 지금까지 그럭저럭 견디어온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머 니가 보내신 편지에 의하면 그렇게 주의를 잘하시던 아버지가 뜰로 나가 무슨 일인가 하다 가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집안 식구들은 가벼운 뇌일혈로 잘못 알고 응급 치료를 했다. 나중에 의사로부터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역시 지병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졸도와 신장병을 결부시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겨을 방학이 시작되려면 아직 며칠 더 있어야 했다. 나는 학기말까지 기다려도 지장이 없 으리라 생각하고 하루 이틀 그대로 있었다. 그러자 하루 이틀 사이에 아버지가 누워 있는 모습, 어머니의 걱정하는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때마다 두 분에 대한 동정과 괴로움을 가 눌 길 없던 나는 드디어 고향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향에서 여비를 보내올 수고와 시 간을 덜기 위해 나는 작별 인사 겸 선생 댁에 가서 필요한 돈을 잠시 빌리기로 했다. 선생은 감기 기운이 있어 객실로 나오기가 귀찮은 듯 나를 서재로 들어오라고 했다. 서재 로 들어서자 겨울이 되면서부터는 보기 어려운 그립고도 포근한 햇빛이 유리창을 통해 책상 덮개 위를 비치고 있었다. 선생은 볕이 잘 드는 그 방안에 커다란 화로를 두고 삼발이 위에 놓인 놋대야에서 떠오르는 수중기로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아예 큰 병이면 몰라도, 사소한 감기는 오히려 괴롭군요"라고 말한 선생은 쓴웃음을 지 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선생은 병다운 병을 앓은 일이 없었다. 선생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저는 감기 정도라면 참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병은 딱 질색입니다. 그건 선생도 마찬가 지일 것입니다. 한번 당해보시면 잘 아실 거예요. " "그럴까요? 나는 이왕 병이 들려면 죽을병에 걸렸으면 하는데." 나는 선생의 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즉시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의 내용을 말하 고는 염치없이 돈을 부탁했다. "걱정이 많겠소. 그 정도라면 비상금으로 둔 것이 있을 테니 가져가시오. " 선생은 부인을 불러 필요한 금액을 말했다. 그것을 안방 찻장 서랍에서 꺼내온 부인은 휜 종이 위에 정중하게 놓더니 "걱정되시겠어요"하고 말했다. "여러 번 쓰러지셨나요?" 하고 선생이 물었다. "편지로 봐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 그렇게 여러 번 쓰러지나요?" "그렇지요. " 그때 나는 선생 장모도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어렵겠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렇지요.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을 정도지요. 구역질은 하십니까 ? " "글쎄요, 그런저런 얘기는 써 있지 않아서. 아마 그러시진 않을 것 같아요. " "구역질을 하지 않으셨다면 아직 괜찮아요"라고 부인이 말했다. 그날 밤 나는 기차로 도쿄를 떠났다. 아버지의 병세는 생각보다 중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배가 도착했을 때는 잠자리 위에 양 반다리를 하고 "모두 걱정하니까 그냥 이렇게 있는 거다. 뭐 일어나 있어도 되는데"라고 말 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는 어머니가 한사코 말리는데도 이부자리를 걷어치우게 했다. 어 머니는 마지못해 견직물의 이불을 개켜놓으면서 "아버지는 네가 돌아오니까 갑자기 기운이 나시는 모양이구나"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버지가 그다지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 같 지는 않았다. 형님은 직장 관계로 머나먼 규슈에 가 있었다. 만일의 경우가 아니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뵐 수도 없는 처지였다. 누이동생은 다른 지방으로 시집을 갔다. 따라서 동생도 급 한 경우 당도할 수 있게 불러들일 수 있는 자식은 아니었다. 삼 남매 가운데 그래도 자유스 러운 자식이 학생의 몸인 나였다. 그런 내가 어머니의 분부대로 학업을 내팽개치고 방학 전 에 돌아왔다는 것이 아버지로서는 상당히 흐뭇했던 것 같았다. "이 정도의 병 때문에 학교를 쉬게 해서 안됐구나. 어머니가 너무 떠들썩하게 편지를 보 낸 게 탈이지." 아버지는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펴놓았던 요를 걷어치우게 하고 평소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다가 다시 도지면 안됩니다. " 나의 이 주의를 아버지는 유쾌한 듯이, 그러나 극히 가볍게 받아넘겼다. "아니 괜찮다. 평소처럼 조심만 한다면." 실제로 아버지는 괜찮은 것 같았다. 집안에서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셨는데 숨도 차지 않 고 현기증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안색만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나빴는데 그러한 증상은 갑 작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우리들은 그 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선생에게 편지를 써서 빌린 돈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정월에 올라가 갚아드릴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부친의 병세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 이 정도라면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다는 것, 현기증도 구토증도 전혀 없다는 것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끝으로 선생의 감 기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선생의 감기 따위는 그다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편지를 보면서 결코 선생의 답장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 편지를 보낸 뒤 부모님 과 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멀리 있는 선생의 서재를 떠올렸다. "이번에 도쿄에 갈 때는 표고버섯이나 갖다드려라." "예, 그런데 선생이 말린 표고버섯을 드실지 모르겠네요. " "맛이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 나는 표고버섯과 선생을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이 좀 이상했다. 그런데 선생으로부터 답장이 왔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특히 그 내용이 특별한 용건을 담고 있지 않아서 놀랐다. 선생은 그저 너무 자상해서 답장을 보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런 생각이 들자 그 한 통의 간단한 편지가 나에게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선생 한테서 받은 첫 편지였던 것이다. 첫 편지라고 하니까 나와 선생 사이에 서신 왕래가 빈번히 있었던 것처럼 들릴지 모르나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겠다. 나는 선생의 생전에 단 두 통의 편지밖 에 받은 적이 없다. 그 한 통은 지금 말하는 이 간단한 답장이며 또 한 통은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특히 내 앞으로 보낸 상당히 긴 편지이다. 아버지는 병 성질상 운동을 삼가야 하기 때문에 자리를 걷게 한 후로도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날씨가 매우 온화한 오후 뜰로 내려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만일을 염 려해서 내가 곁에 따라다녔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내 어깨에 손을 얹으시라고 했지만 아 버지는 웃으시면서 응하지 않았다. 나는 무료한 아버지의 상대로 자주 장기판을 향했다. 두 사람 다 게으름장이여서 각로를 쬐면서 장기판을 틀 위에 얹어놓고 말을 움직일 때마다 이불 밑에서 손을 꺼냈다. 가끔 한 쪽에서 잡아가지고 있는 상대의 말을 잃어버린 채 다음 승부 때까지 양쪽 다 모르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것을 어머니가 각로의 재 속에서 찾아내어 부젓가락으로 집어내는 우스꽝스 러운 일도 있었다. "바둑은 틀이 너우 높은데다가 다리가 붙어 있어서 각로 위에서는 두지 못하는데, 거기다 비하면 장기판은 좋지. 이렇게 편안하게 둘 수 있으니까 게으름장이한테는 안성마춤이지. 자, 또 한판 두자." 아버지는 이겼을 때는 꼭 한판 더 두자고 했다. 그런가 하면 졌을 때도 한판 더 두자고 했다. 다시 말해서 이겨도 져도 각로를 죄면서 장기를 두고 싶어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은거 다운 오락이 신기하기도 하여 재미를 느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젊은 나의 기력은 그 정 도의 자극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장기 말을 쥔 주먹을 머리위로 뻗어 가끔 대담 한 하품을 했다. 나는 도쿄의 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넘쳐흐르는 심장의 피 속에서 활동, 활동이라는 고동 이 계속 들리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그 고동 소리가 어느 미묘한 의식 상태에서 선생의 힘 으로 강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선생을 비교해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볼때 양쪽 다 살아 있는 지 죽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사나이였다.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면에서 말하면 양 쪽 다 제로였다. 그러면서도 장기를 두고 싶어하는 아버지는 오락 상대로서도 나한테는 어 딘가 부족했다. 일찌기 유홍가를 드나든 적이 없는 선생은 환락의 교제에서 얻은 친숙 이상 으로 언제부턴가 내 두뇌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두뇌라고 하니까 웬지 모르게 비정하게 느껴지므로 가슴이라고 고쳐 말하고 싶다. 내 살 속에 선생의 힘이 파고 들어가 있다 해도 피 속에 선생의 생명이 흐르고 있다 해도 그때의 나는 조금도 과장된 면이 없다고 생각되었 다. 나는 아버지가 나의 진짜 아버지이며, 선생은 또한 말할 필요도 없이 전혀 남이라는 명 백한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리면서 처음으로 대단한 진리라도 발견한 것처럼 놀랐다. 내가 고향집에서의 생활에 따분해졌을 무렵, 이제까지 희한하게 보였던 나는 부모님의 눈 에도 점점 진부하게 비쳐지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여름 휴가 등으로 고향에 돌아가본 사 람이라면 누구나 다 느꼈을 것이다. 내려가서 1주일 정도는 아무 데나 앉지도 못하게 하면 서 끔찍하게 대해주지만 그 고개를 넘어서면 서서히 열이 식으므로 결국엔 있으나마나한 존 재로서 소흘히 취급받게 된다. 나도 고향에 돌아간 지 얼마 안되어 그 고개를 넘었다. 옛말 로 말하면 유생의 집에 기독교의 냄새를 끌어들이듯 새로운 문물에 물든 나는 아버지나 어 머니와 너무나 거리감이 느껴져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물론 나는 그러한 것을 겉으로 드러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미 몸에 배어 있어서 아무리 나타내지 않으려 해도 어느새 부모님의 눈에 띄게 되고 만 것이다. 드디어 나는 그러한 분위기가 싫어졌다. 빨리 도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의 병세는 그만그만하시어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해, 일부러 먼 곳에서 왜 용하다는 의사를 모셔다 신중하게 진찰해보았지만,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이외에 이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나는 겨울 방학이 끝나기 얼마 전에 도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으로, 막상 떠난다고 하니까 부모님의 안색이 달라졌다. "벌써 간다고? - 아직 빠르지 않니 ?"라고 어머니가 말했다." "4,5일 더 있다 가도 상관없잖니 ?" 하고 아버지도 서운한 듯이 한마디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도쿄로 돌아와보니 설날 대문 앞에 장식하는 소나무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거리에는 차가운 바람만 불 뿐, 어디를 보아도 정월다운 풍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즉시 선생 댁에 돈을 돌려드리러 갔다. 표고버섯을 함께 가져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내놓기가 뭣해서 어머니가 갖다드리라고 했다는 말을 앞세우며 부인 앞에 내놓았다. 표고버섯은 새 과자 상자에 들어 있었다. 정중하게 감사의 뜻을 표한 부 인은 옆방으로 가려다가 그 상자를 들어보고는 가벼운 데 놀랐는지 "이건 무슨 과자예요?" 라고 물었다. 부인은 친해지면서 그런 식으로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 같은 면모를 보 이곤 했다. 두 분 다 부친의 병에 대해 걱정하며 이것저것 물었는데,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병세를 듣고보니 조만간 어떻게 되실리야 없겠지만 병이 병인지라 아주 조심해야겠습니 다. " 선생은 신장병에 대해 나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자신이 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태연히 있는 것이 그 병의 특징이지요. 내 가 알던 어떤 장교는 결국 그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죽었어요. 어째 든 곁에서 자고 있던 부인이 어떻게 손쓸 새도 없었으니까요. 한밤중에 조금 고통스럽다며 부인을 깨웠다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감쪽같이 죽어 있었다나요. 더구나 부인은, 남편이 자고 있는 줄만 알았다더군요." 그때까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불안해졌다. "저회 아버지도 그렇게 될까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겠군요. " "의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 " "낫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별일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 "그러면 괜찮을 겁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면. 내가 방금 말한 경우는 본인이 전혀 모 르고 있었고, 더구나 매우 난폭한 군인이어서. "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내 얼굴빛이 변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선생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인간은 건강하든 그렇지 못하든 무력한 존재지요. 언제 어떤 일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선생도 그런 것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 "아무리 건강한 나라도, 그런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지요. " 선생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감돌았다. "너무나 허무하게 죽는 사람도 더러 있지 않습니까? 아무 이유 없이 자연히 말입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은 사람도 있지요. 부자연스러운 폭력으로. " "부자연스러운 폭력이란 무슨 뜻이죠 ? " "딱 잘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자살하는 사람은 모두 부자연스러운 폭력을 쓰는 게 아닐까요? " "그러면 죽게 하는 것도 역시 부자연스러운 폭력 덕분이군요." "죽게 되는 쪽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군, 그렇게 말하면 그렇군요. " 그날 나는 그 정도로 이야기를 끝내고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아버지의 병은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선생이 말한 자연히 죽는다든지, 부자연스런 폭력으로 죽는다는 말 도 그때뿐, 그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정도의 말로 그후로는 떠올려보지도 않았다. 나는 이제까지 몇 번이고 착수하려다가 그만둔 졸업 논문을 드디어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해 6월에 졸업할 예정인 나는 졸업 논문을 규정대로 4월내에 완성해야 했다. 2,3,4하며 남는 시일을 손꼽아보면서 나는 다소 불안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은 훨씬 전부터 자료를 수 집하고 노트를 모으는 등 남 보기에도 바쁘게 서두르는데, 나만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 고 있었다. 나는 해가 바뀌면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결심만 믿고 드디어 시작했다. 그리고 금세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제까지 머리속으로 윤곽만 그리면서 뼈대만은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머리를 감싸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논문 의 규모를 좁혀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가다듬은 생각을 계통적으로 정리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다만 서적에 있는 자료를 늘어놓고 거기에 대해 결론만 조금 덧붙이 기로 했다. 내가 선정한 논문의 주제는 선생의 전공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내가 논문의 주제를 선정하는 데 있어 선생의 의견을 물었을 때 선생은 좋다고 했다. 그래서 착수와 동 시에 아무 진전도 없어 당황한 나는 즉시 선생한테 가서 내가 읽어야 할 참고 서적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선생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쾌히 알려줌과 동시에 필요한 서적을 두세 권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선생은 논문을 쓰는데 있어 조금이라도 지도해줄 생각은 없 다는 뜻을 비쳤다. "요즘엔 너무 책을 읽지 않아서 새로운 것은 모릅니다. 학교 선생에게 묻는 것이 좋을 것 입니다. " 나는 그때, 선생은 한때 대단한 독서가였는데 웬일인지 요즘은 책에 흥미가 없는 것 같다 는 말을 부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논문 문제는 제쳐놓고 뚱딴 지같이 책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은 왜 전처럼 책에 흥미를 갖지 않습니까? " "이렇다 할 이유는 없지만‥‥‥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만큼 훌륭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리고 또 뭡니까? "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누군가 무엇을 물었을 때 모 르면 치욕으로 느껴져서 창피했는데, 요즘은 모른다는 것이 그다지 수치스럽게 여겨지지 않 아서 악착같이 책을 읽으려는 의지가 샘솟지 않는군요. 한마디로 말해서, 이제 늙었다고 할 수 있지요. " 선생의 어조는 오히려 담담했다. 세상을 등진 사람의 말처럼 쓴맛을 띠고 있지 않아서 그 런지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나는 선생을 늙었다고 생각하지도, 훌륭하다고 감탄하지 도 않았다. 그후 나는 논문 때문에 얼이 빠진 정신병자처럼 눈을 빨갛게 하고 괴로워했다. 나는 1년 전에 졸업한 선배들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을 알아보았다. 어떤 사람은 마감날이 되어서야 허겁지겁 차를 타고 사무실로 달려가서 겨우 당도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섯시를 15 분 정도 넘겨서야 가지고 가서 하마터면 거절당할 것을 주임교수의 호의로 겨우 제출한 사 람도 있었다. 나는 불안을 느낌과 동시에 배짱 껏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책상 앞에 서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가 하면 어두컴컴한 서고에 들어가서 높은 책장의 이곳저곳을 돌 아 보았다. 나의 눈은 호사가가 골동품이라도 캐낼 때처럼 등표지의 금문자를 찾아 헤맸다. 매화꽃이 피면서 매섭던 바람은 이제 그 꼬리를 남쪽으로 바꾸었다. 그것이 한바탕 지나 가자 여기저기서 벚꽃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도 나는 마차를 끄는 말처럼 앞만 보며 논문에 전념했다. 드디어 4월 하순이 되어 예정했던 것을 겨우 다 쓸 때까지 나는 선생 댁 문턱을 넘지 않았다. 내가 자유롭게 된 것은 겹벚꽃이 떨어진 가지에, 어느덧 푸른 잎이 눈에 띄지 않게 뻗기 시작한 초여름이었다. 나는 새장을 빠져나온 새처럼 넓은 세상을 한눈에 멀리 바라다보며 자유롭게 날개를 단다. 나는 즉시 선생 댁에 갔다. 길을 걷다보니 탱자나무 울타리의 무스름 한 가지 위에 새싹이 눈트고 있고, 석류나무의 마른 줄기에 나는 다갈색 잎이 부드러운 햇 빛을 받아 나고 있는 것이 간간이 내 눈길을 끌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것을 보 는 것은 회한함을 느꼈다. 선생은 즐거워하는 내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이제 논문은 정리 되었습니까? 다행입니다. " "덕분에 겨우 끝났습니다. 이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실 제로 그때의 나는 빼야 할 일을 모두 끝내 이제부터는 자랑스럽게 놀아도 된다는 들뜬 기분 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다 완료된 문에 대해 충분한 자신과 만족을 갖고 있었다. 나는 선 생 앞에서 자꾸만 그 내용을 재잘거렸다. 선생은 여느 때와 같은 태도로 "당연한 말이오"라 든지, "그래요?"라고 말할 뿐 그 이상의 비평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엇진지 모르게 불만스럽다기보다는 다소 맥빠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날 나는 소극적인 선생의 태도에 역 습을 시작할 정도로 활기에 차 있었다. 나는 희망찬 새 삶을 시작하는 대작으로 선생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선생, 어딘 가로 산책을 나가시죠. 밖으로 나가면 기분이 아주 좋아지실 겁니다." "어디로 말입니까 ?" 나는 아무 데라도 좋았다. 그래도 이왕이면 교외로 나가고 싶었다 한 시간 후 나는 목적했던 대로 선생과 함께 시내를 빠져서 촌락이라고도, 도시라고도 할 수 없는 조용한 곳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나는 상록교목의 생울타리에서 여리고 부드러 운 잎을 뜯어 나뭇잎을 불었다. 가고시마 출신인 어떤 친구의 흥패를 내면서 자연스럽게 배 워 익힌 나는 나뭇잎피리를 썩 잘 불었다가 우쭐거리는 모습으로 불어대자 선생은 모른 체 하며 딴 곳만 또 걸었다. 이윽고 여린 새잎에 갇힌 듯 나무가 울창한, 약간 높은 집 아래나 있는 좁은 길에 이르렀다. 문설주에 박혀 있는 표찰에 100원이 팍고 되어있어서 개인 저택 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선생은 완만한 경사가 길게 가지런히 쳐져 있는 입 구를 보면서 "들어볼까요?" 하고 말했다. 나는 즉시 "정원수를 가꾸는 식물원이군요 라고 대꾸했다. 정원수 숲속을 한참 돌아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에 집이 있었다. 짝 열려 있는 장 지문 안쪽은 팅 빈 채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안았다. 다만 처마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큰 어항 속에서 금붕어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용하군요. 주인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괜찮겠지요. "우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철쭉꽃이 타는 듯이 어우러져 퍼어 있었다. 선생은 .중에서 주황색의 키 큰 나무를 가리키면서 "이것은 기리시 찔거요"라고 말했다. 10평 남짓한 땅에는 온통 작 약이 심어저 있었는데, 아직 계절이 아니어서 꽃이 피어 있는 것은 한 그루도 업었다. 이 작 약밭 옆에 있는 낡고 긴 평상 위에 선생은 큰 대자로 누웠다. 나는 그 한쪽에 자리잡고 담 배를 퍼됐다. 선생은 푸르고도 투명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새 잎의 색깔에 자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 새잎의 색채를 바라보니 하나 하나가 모두 달랐다. 같은 단나무라도 같은 색깔을 가지 에 달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느다란 삼목 모종의 꼭대기에 던져 씌워진 선생의 모 자가 불어오는 바 나는 즉시 그 모자를 집어들었다. 여기저기 묻은 흙을 손톱으로 튀기면서 선생을 불렀다. "선생 모자가 멀어졌습니다. " "고맙소. " 몸을 반쫌 일으켜서 모자를 받아든 선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상한 질문을 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인데, 당신 집에는 재산이 좀 있습니까? "대단한 정도는 아닙니다만. " "대충 어느 정도 됩니까? 실례이지만." "글쎄요, 산과 논밭이 조금 있고, 돈은 전혀 얼을 겁니다. " 선생이 우리 집의 경제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선생의 살림살이에 관해 아무것도 물어본 적이없었다. 선생과 알고 지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선생이 어떻게 해서 놀고 지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후에도 그 의혹을 떨쳐버릴 수가 업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노골적인 문제를 묻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 여기고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새잎의 색조로 지친 눈을 쉬게 하고 있던 나는 무의식중에 그 의혹이 되살아났다. "선생은 어떻습니까? 재산이 어느 정도 됩니까? "내가 부자로 보입 니까 ? " 선생의 옷차림은 언제나 검소했다. 게다가 식구도 몇 안되어 집도 그다지 넘지 않 았다. 그러나 그 생활의 물질적 풍요함은 그 집에서 살지 않는 내 눈에 환히 느껴졌다. 요컨 대 선생의 생활은 사치스럽다고는 할 수 업지만 옹색하거나 쩨쩨해 보일 정도로 여유가 없 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것 같은데요"라고 내가 말했다. "하긴 어느 정도 돈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결코 부자는 아닙니다. 부자라면 더 큰 집에서 살겠지요." 이메 선생은 몸을 일으켜 평상에 양반다이를 하고 있 었는데, 말을 마치자 대나무 지팡이 끝으로 땅에 동그라미 같은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 을 다 그리자 이번에는 스틱을 볶은 듯이 똑바로 세웠다. "그래도 예전엔 부자였는데. " 선 생의 말은 독백처럼 들렸다. 그래서 바로 뒤를 잇지 못한 나는 그만 잠자코 있게 되었다. " 그래도 예전엔 부자였지요. " 같은 말을 되줄이한 선생은 다음에는 내 얼굴을 보며 미소지 었다. 나는 그만 뭐라고 대답하지 못했다기보다 오히려 구변이 업어서 대딥하지 못했다. 그 러자 선생은 다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부친의 병환은 이제 좀 어떠십니까?" 나는 아버지의 병세에 대해 정월 이후로는 아무것 도 므르고 있었다. 다달이 고향에서 부쳐오는 어음퐈 함께 간단히 보내오는 소식은 언제나 아버지의 필적이었는데, 당신의 병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업었다. 게다가 서체도 정착했 다. 그런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떨림이 조금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아무 말씀도 엄으시던데, 이제 좋아지셨나 봅니다. " "좋아지셨으면 좋겠는데, -증세가 증세인 만큼." "역시 퍼려울까요? 하지만 당분간은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 아무말씀신 업으 신 걸 보니." "그렇습니 까 ? " 나는 선생이 우리 집 형편과 아버지의 병환에 대해 물어는 것을 대수롭지 않은 담화-단순히 생각나는 것을 알고 싶어하는 일상적인 담화 정도로 여겼 다. 그러나 선생의 말 저변에는 그 두 가지를 결부시키는 큰 의미가 있었차. 지난날 선생이 경험한 것을 전혀 알고있지 못한 나는 물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당신 집에 재산이 있다면 바로 지금 잘 처리해두어야 할 겁니다. 쓸데없는 참견 같지만 부친이 아직 건강하실 때 받을 것은 제대로 받아놓는 것이 좋을 거예요. 정작 일이 일어나 고 나면 까다로운 것이 재산 문제이니까요. " "싸, 그렇습니까 ? " 나는 선생의 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이런 일에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고 있었다. 나 는 물론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그 누구도 그런 데 신경을 쓸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선생 답지 않게 너무나도 실제적인 면을 들추어내며 이야기하는 데 나는 조금 놀랐다. 그머나 연 장자에 대한 평소의 경의(간촌)가 나로 하여금 입을 다물게 했다. "부친이 돌아가신 경우를 가정해서 말한 것이 거슬렸다면 사과하겠소. 하지만 인간은 죽게 마련이지요.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지요." 선생의 말투는 평소와는 달리 고뇌에 차 있었다. "그런 일은 전혀 염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카고 나는 변명했다. 그러자 선생이 다시 물었다. "형제는 몇이라고 했지요? " 그런 다음 선생은 내 가족 상황을 묻고 친족 유무를, 그리고 숙부와 숙모가 있느냐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인가요 ? " "그리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지요. 대부분 시골 사람들이니까요." "시골 사람은 왜 나쁘지 않다는 겁니까?" 다그치는 듯한 선생의 말에 나는 어찌할 바를 물랐다. 그러나 선생 "당신 집에 재산이 있 다면 바로 지금 잘 처리해두어야 할 겁니다. 쓸데없는 참견 같지만 부친이 아직 건강하실 때 받을 것은 제대로 받아놓는 것이 좋을 거예요. 정작 일이 일어나고 나면 까다로운 것이 재 산 문제 이니까요. " "싸, 그렇습니까 ? " 나는 선생의 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이런 일에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물론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그 누구도 그런 데 신경을 쓸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선생답지 않게 너무나도 실제적인 면을 들추어내며 이야기하는 데 나는 조금 놀랐다. 그머 나 연장자에 대한 평소의 존경의 가능성이 나로 하여금 입을 다물게 했다. "부친이 돌아가 신 경우를 가정해서 말한 것이 거슬렸다면 사과하겠소. 하지만 인간은 죽게 마련이지요. 아 무리 건강한 사람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지요." 선생의 말투는 평소와는 달리 고뇌에 차 있었다. "그런 일은 전혀 염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카고 나는 변명했다. 그러자 선생이 다시 물었다. "형제는 몇이라고 했지요? " 그런 다음 선생은 내 가족 상황 을 묻고 친족 유무를, 그리고 숙부와 숙모가 있느냐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모두 좋은 사람들인가요 ? "그리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지요. 대부 분 시골 사람들이니까요." "시골 사람은 왜 나쁘지 않다는 겁니까?" 다그치는 듯한 선생의 말에 나는 어찌할 바를 물랐다. 그러나 선생의 이야기는 그 개와 아이들 때문에 끝을 맺지 못해, 나는 결국 그 결론을 듣지 못하고 말았다. 선생이 신경쓰는, 재산이 어엉다는 식의 쓸 데없는 걱정은 그때의 나한테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내성격이나 퍼지로 볼 때 그때의 나는 그러한 이해 문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아직 사회 험 이 업고 또 실제로 그런 일에 부딪친 일이 얼었기 때문에 그랬을테지만, 어든나는 돈이라면 웬지 멀리 여겨졌다. 선생의 이야기에서 단 한 가지 끝까지 듣고 싶었던 것은, 사람은 유사 시엔 누구나 다 악인이 묀다는 말의 의미였다. 나는 그 대목에 대해서는 더 깊이 듣고 싶었 다. 개와 아이들이 가버린 뒤, 새잎으로 가득 찬 넓은 정원에는 다시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 리고 우리는 침묵에 갇힌 사람들처럼 잠시 봄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아름다운 하늘의 푸른색이 점차 빛을 잃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는 대개 단풍나무폈는테, 그 가지에 아 주 예쁘게 돋아난 연녹색 새잎이 점점 짙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멀리 떨어진 도로에서 짐 차를 끌고 가는 시끄러운 울림이 들려왔다.마을 사람 누군가가 정원수 따위를 싣고 잿날 에 라 나가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그 소리를 듣자 갑자기 명상에서 숨을 되 돌린 것처럼 일퍼섰다. "이제 서서히 돌아갑시다. 낮이 왜 길어진 것 같지만 역시 이렇게 마음편히 있다보니 벌 써 날이 저무는군요." 선생의 등은 방금 평상에 반듯이 누워 있던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나는 두 손으로 그것을 털어주었다. "고맙소. 진이 붙어 있지는 않소?" 선생의 이야기는 그 개와 아이들 때문에 끝을 맺지 못해, 나는 결국 그 결론을 듣지 못하 고 말았다. 선생이 신경쓰는, 재산이 어엉다는 식 쓸데없는 걱정은 그때의 나한테는 전혀 관 심 밖의 일이었다. 내 성격이나 퍼지로 볼 때 그때의 나는 그러한 이해 문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생 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아직 사회 경험이 업고 또 실제로 그런 일에 부딪친 일이 얼었기 때 문에 그랬을테지만, 어쨓든 나는 돈이라면 웬지 멀리 여겨졌다. 선생의 이야기에서 단 한 가지 끝까지 듣고 싶었던 것은, 사람은 유사시엔 누구나 다 악 인이 묀다는 말의 의미였다. 나는 그 대목에 대해서는 더 깊이 듣고 싶었다. 개와 아이들이 가버린 뒤, 새잎으로 가득 찬 넓은 정원에는 다시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리 고 우리는 침묵에 갇힌 사람들처럼 잠시 봄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아름다운 하늘의 푸른색이 점차 빛을 잃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는 대개 단풍나무폈는테, 그 가지에 아주 예쁘게 돋아난 연녹색 새잎이 점점 짙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멀리 떨어진 도로에서 짐차를 끌고 가는 시끄러운 울림이 들려왔다. 마을 사람 누군가가 정원수 따위를 싣고 잿날에라 나가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그 소리를 듣자 갑자기 명상에서 숨을 되돌린 것처럼 일퍼섰다. "이제 서서히 돌아갑시다. 낮이 왜 길어진 것 같지만 역시 이렇게 마음편히 있다보니 벌 써 날이 저무는군요." 선생의 등은 방금 평상에 반듯이 누워 있던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나는 두 손으로 그것을 털어주었다. "고맙소. 진이 붙어 있지는 않소?" 그때 선생이하도얄미울수가 없어서 걸어가면서도 내가 묻고 싶은 것을 일부러 묻지 않았 다. 그러나 선생은 아무 B3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내 태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여느때처럼 침묵을 지키면서 차분하게 걷고 있어서 나는 조금 기분이 나빴다. 무슨 말이든 한마디해서라도 선생을 약올리고 싶은 마음뿐이 었다. "선생. " 무슨 일이오 ? " "좀전에 선생은 조금 흥분하셨지요. 저 식물원 뜰에서 쉬고 있을 때 말입니다. 나는 선생이 흥분한 것을 좀처럼 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별난 모습을 보데 된 느낌이었숱 니다. " 그 순간 선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반웅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또 빗 나갔다고도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선 생이 느닷없이 길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곱게 깎아서 손질한 산울타리 밑에서 옷자락을 걷 어을리고 방뇨를 했다. 나는 선생이 방툐를 하는 동안 멍청히 서 있었다. "야아, 실례. "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는 또 걷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선생을 약을 올리려 던 생각을 단념했다. 한참 걷다보니 조용하기만 하던 주위가 점점 시끄러워졌다. 이제까지 여기저기 보이던 넘은 밭의 경사진 사면과 평지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길 양쪽 으로는 집들이 즐비타게 늘어서 있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집터 구석구석에 완두 덩굴을 대 나무 가지에 휘감게 하고 철사로 울을 쳐서 닭을 가두어 기르는 광경이 평화롭게 보였다. 시내에서 돌아오는 짐 싣는 말의 행렬이 끊임엄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런 광경에 정신을 팔 다보니 얼마 전까지 가슴속에 품고 있던 문제를 말끔히 잊고 쌀았다. 선생이 갑자기 되돌아 왔을 때도 사실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아까 그렇게 홍분한 것처럼 보였습니까? " "그렇게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아니 그렇게 보였다 해도 상관없어요. 사실 홍된했 었으니까. 나는 재산 얘기만 나오면 언제나 흥분합니다. 당신에게는 어떻게 보일는지 모르지 만 그래도 나는 대단히 집념이 강한 사람이지요. 남에게서 받은 모욕이나 손해는 10년이 지 나도, 20년이 지나도 결코 잊지 못합니다. " 선생은 아까보다도 더 흥분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놀란 것은 결코 그 말투 때문이 아니 었다. 오히려 선생의 말이 내 가슴속을 파고드는 의미 그 자체였다. 선생의 입에서 그런 말 이 나오다니, 나로서는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선생의 성격상 그렇게 지독한 면이 있으리라 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선생을 좀더 약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하지만 고매하게 보이는 면모를 높이 사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의 기분에서 선낑을 약올리려고 했던 나는 그 말을 듣자 몸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선생은 이렇게 발했다. "나는 속았습니다. 더구나 같은 피가 흐르는 친척이 나를 속였던 것입니다. 나는 결코 그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부친 앞에서는 선량하기만 하던 그들은 부친이 돌아가시자마 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부도덕한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나는 그들로부터 받은 모욕과 손 해를 어릴 적부터 오늘날까지 떨쳐버리키 못하고 있소.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기억을 안고 살게 될 거요. 죽을 때까지 그것을 잊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나는 아직 똑수를 못하고 있소. 생각해보면 현재 나는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짓을 하고 있소. 나는 그들을 증오하 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같은 인간을 대체로 미워하는 것을 배웠소. 나는 그것으로 충 짝하다고 생각하오." 그날의 담화도 결국 그것뿐, 그 이상 발전하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선생의 태도에 위축 되어 더 진척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시가지 변두리에서 전차를 탔는데, 차 안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전차를 내리자 곧 헤어져야 했다. 헤어질 때 선생의 표정은 또 달라져 있 었다. 선생은 평소보다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6월까지 아주 홀가된하게 지낼 수 있겠군요. 어쩌면 당신 생애에 카장 마음편 히 지낼 수 있는 시기가 ?1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놀아요. " 나는 웃으며 모자를 벗었다. 나는 그때 선생의 얼굴을 보며 저런사람이 어떻게 인간을 미워할 수 있을까 하는 의혹에 사로잡혔다. 그눈, 그 입 어디에서도 켬세적인 그릴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사상 문제에 대해서는 선생으로부터 크나큰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같 은 문제에 대해 가르침을 받으려 해도 받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때때로 선생의 이야기는 핵심에 이르지 못하고 끝나기도 했다. 그날 교외에서 나눈 이야기도 그러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드키어 어느 날. 나는 무례하게도 선생에게 그러한 넋두리를 털어 놓았다. 그러자 선생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 머리가 나빠서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선생께서 확실히 알고 있으면 서도 분명히 말해주지 않는 것은 정말 너무하십니다. " "나는 아무 것도 감추고 있지 않 소." "감추고 계 십리다. " "당신은 내 사상이라든지, 의견이라는 것을 내 과거와 혼동해서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오? 나는 보잘것없는 사상가이지만 내가 깨달은 바를 무조건 숨기지는 않습니다.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내 과거를 당신에게 모두 털어놓아야 한다면 그건 또 문제 가 다릅니다. " "저로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팍됩니다. 선생의 자거가 낳게 한 사상이니, 저로서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두 가지를 분리시킨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업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흔 이 깃들지 않은 인형이 주어진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엄습니다. " 선생은 어처구니가 엄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궐련을 쥐고 있는 선생의 손이 조 금 떨렸다. "당빈은 대담하군요. " "그저 진지한 것뿐입니다. 진지하게 살아온 분의 인생에서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 "내 과거를 파헤쳐서라도 말입니까?" 파혜쳐서라는 말이 갑자기 무서운 울림으로 내 귀를 때렸다. 그때 나는 내 앞에 앉아 있 는 사람은 한 사람의 죄인이며 평소에 존경하고있던 선생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선생 의 널굴은 몹시 창백했다. "당신은 정말로 진지합니까?" 하고 선생이 다짐조로 물었다. " 나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사람들을 계속 의심하고 있소. 그러니 실은 당신도 의심하고 있 다고 할 수 있소. 그러나 웬지 당신만은 의심하고 싶지 않군요. 당신은 너무나 순수해 보입 니다. 나는 죽기 전에 단 한사람이라도 믿고 싶소. 당신은 그 안 사람이 될 수 있겠소? 아 니,되어주소? 진정 당신은 진지합니까?" "만일 내 생명이 진지한 것이라면, 내가 지금 말한 것 역시 진지합니다. " 내 목소리는 떨렸다. "좋습니다" 하고 선생이 말했다. "그럼 얘기해드리지요. 내 과거를 조 금도 남김없이 얘기해주겠소. 그 대신‥‥‥ 아니, 그것은 상관없소. 그러나 내 과거는 당신 에게 그다지 도줌이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듣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 지금은 얘기할수 업으니 그렇게 알고 계세요. 적당한 시기가 되기 전에는 얘기할수 엄으 니까. " 그날 나는 하숙집으로 돌아와서도 웬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 내 논문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예상대로 통과되었다. 졸업식 날 나는 냄새가 나는 낡은 동복을 고리짝 속에 서 꺼내 입었다. 식장에 서보니 너나할것얼이 더워 보였다. 나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 두꺼룬 나사(툴천)에 쉽싸인 몸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잠시 서 있는 동안에 손에 든 손수건이 흠 뻑 젖을 정도였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하숙집으로 돌아간 나는 그 두꺼운 교복을 얼 른 벗어버렸다. 하숙 집 이층의 창문을 열고 망원경처럼 똘똘 만 졸업장의 구멍을 통해 보이는 만큼의 세상을 멀 리 바라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 졸업장을 책상 위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큰 대자로 누웠다. 그렇게 누워서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또 앞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그 연결점에서 어떤 구분을 지어주는 이 졸업장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 기도 하고 업는 것 같기도 해서 이상야룻한 종이로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선탱 댁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어 갔다. 오래전에, 졸업하는 날의 저녁 식사 는 딴 데서 하지 말고 선생 댁 식탁에서 함께 들자고 약속했던 터였다. 약속대로 식탁은 객 실의 툇마루 가까이 마련되어 있었다. 무의가 있는, 풀먹인 두꺼운 식탁보가 전등빛을 받아 아름답고도 깨꿋하게 빛나고 있었다. 선생 댁은 식사를 할 때는 반뜨시 서양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하얀 리넨 위에 젓가락과 밥 그룻이 놓여졌다. 그리고 언제나 깨꿋이 세탁된 새하얀 것이었다. "식탁보도 칼라나 커프스와 다를 바가 업어요. 더러워진 것을 쓸바에야 아예 처음부터 색 깔이 있는 것을 쓰는 것이 낫지요. 이왕이면 아주 새하얀 것이라야지요." 그런 말을 듣고보니 과연 선생픈 마음이 깨끗한 사람 같았다. 서재도 아주 깨끗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주의력이 업는 내 눈에도 선생의 그러한 면모가 눈애 띄곤 했다. 언젠가 내가 부인에게 "선생은 왜 까다로우시죠?" 하고 물었을 때 부인은 "하지만 옷 같은 것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편이에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쌩은 " 사실 난 정신적으로 까다로운 편입니다. 그래서 늘 괴롭다고 할 수 있지요. 생각하떤 정말 바보 같은 천성을 지녔다오" 하고 웃었다. 정신적으로 까다롭다는 말은 속된 표현을 쓰자면 신경질적이란 똔인지 윤리적으로 결백하다는 뜻인지 종잡을 수가 업었다. 부인도 이해가 가 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날 밤 나는 전제나처럼 휜 식탁보가 덮인 식탁 앞에 선생과 마주보며 앉았다. 불인은 우 두 사람을 좌우에 두고 정원 쪽을 정면으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축하합니다 ! "선생은 나를 위해 건배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웬지 모르개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물론 나 자신이 그 말에 덩달아 기뼈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빱았던 것은 사실 기다. 그러나 선생의 말투도 결코 나로 하여금 기쁨에 들뜨게끔 신이 나 있지도 않았다. 선 생은 웃으며 잔을 들어올렸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조금도 장난기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동시에 진정코 축하하 는 뜻의 표시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선생의 웃음은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경우 항시 축 하합니다 하고 말하기 좋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인도 한마디했다."정말 장하세요. 부모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나는 갑자기 병석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서 빨리 졸업장을 갖다 보여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선생의 졸업장은 어떨게 했습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어떻게 했 지 -어디다 두었소? " 하노 선생이 부인에게 물었다. "아, 어딘가 있을 거예요." 두 사람 다 졸업장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식사 준비가 다 되자 부인은 곁에 앉아 있던 하녀를 물러가게 파고 자신이 직접 식사 시 중을 들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손님에 대한 선생 댁의 관례인 것 같았다. 처음 한두 번은 거북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밥그릇을 부인 앞에 내미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차? 아니면 밥? 식욕이 아주 좋으세요." 부인도 그런 식의 말을 거리낌없이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계절이 계절인 만큼 그날은 그렇게 놀림을 당할 정도로 식욕이 당기지 않았다. "아니, 왜 벌써 그만 드세요? 요즘은 양이 줄으셨나봐요." 부인은 아녀를 불러 식탁을 치우게 한 다음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가져오게 했다. "이것은 집에서 만든 거예요. " 별로 할 일이 없는 부인은 아이스크림을 손수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할 정도의 여유가 있 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두 그릇씩이나 먹었다 "드디어 이제 졸업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소? " 하고 선생이 물었다. 선생은 마루 쪽으로 반쯤 자리를 옳겨 문턱에서 등을 장지문에 기대고 있었다. 나는 다만 졸업했다는 의식만 있을 뿐 앞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상태였다. 부인은 얼른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보더니 "교사? " 하고 물었다. 그래 도 아무 말이 없자 이번에는 "그러면 공무원 ?"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카도 선생도 그 만 웃고 말았다. "실은 아직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없습니다. 직업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해덕 일 조차 없으니까요. 첫째 무엇을 하는 것이 좋고 나쁜지는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선택을 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딴 당신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속편한 말을 한 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사람은 당신처럼 속편한 말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사실 내 친구 중에는 졸업하기 전부터 중학교 교사 자리 를 구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속으로 부인의 말을 인정했다. 그러나 나는 이렇 게 대답했 다. "어느 정토 선생에게 물를었나봅니다. " "좋지 않은 물이 들었군. " 선생은 쓴웃음을 지었다. "물들어도 좋으니 그 대신 지난번에 말했듯이 아버님이 살아계 신동안에 재산이나 좀 받아두시오. 그러지 않으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세 상이 니 까. " 나는 선생과 함께 교외 식물원의 넓은 뜰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철쭉꽃이 한창이던 5월 초순의 일을 떠볼렸다. 고때 돌아오는 길에 선생이 흥분된 어조로 나에게 이야기했던 격한 말을 다시 듣는 듯 했다. 그것은 격렬하게 들렸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무서운 말이었 다. 그러나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는 않는 말이 "아주머니, 댁의 재산은 왜 많습니까? "왜 그런 걸 묻죠? " "선생에게 여쭈어보았는데 말씀빼주시지 않아서 그럽니다. " 부인은 웃으면서 선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랑스럽게 말할 정도가 안되니까 그런가보죠." "하지만 어느 정도 있어야 선생같이 지낼 수 있는지 알아야 고향집에 가서 아버지와 담판 을 지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어서 말씀해주시죠. " 선생은 정원 쪽을 보며 모른체하고 담배만 피우고 있다. 따다서 이야기의 상대는 자연히 부인이 될 수밖에 엄었다. "어느 정도라고 할 만픔 많지는 않습니다. 그럭저럭 살아갈 정도지요. 그건 그렇고, 당신은 앞으로 정말 무엇이든 해야 할 거예요. 선생처럼 빈등빈등 놀고 있어서야‥‥‥‥ "빈등빈등 놀고만 있지는 않소. " 선생은 얼굴만 약간 돌린 채 부인의 말을 부정했다.그날 밤 나는 열시가 넘어서야 선생 댁에서 나왔다. 2,3일내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했다. "또 당분간은 뵙지 못할 것 같군요." "9월애는 돌아오시겠죠. " 나는 이미 졸업했으니까 반드시 9월에 돌아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한더위의 8월을 도쿄까지 나와서 보낼 생각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직상을 구하기 위해 애쓸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 9월쯤이면 올 겁니다. " "부디 몸조심하세요. 어쩌면 우리도 이번 여름엔 어디로든 퍼서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올 여름은 몹시 더을 거라고 괘서요. 가게 되면 그림 엽서라도 보내드리겠어요. "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만일 가시게 된다면." 선생은 그런 이야기를 싱글싱글 뭇으면서 듣고 있었다. "아니, 아직 확고하게 계획을 세운 건 아니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선생은 갑자기 나를 붙들며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아버님의 병환은 좀 어떠시오?" 나는 아버지의 병세에 대해 거의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아무 소식이 업는 것으로 미루어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체 쉽게 생각할 병은 아닙니다. 요독증이 나타나면 그만이니까요. " 나는 요독증이라는 말도, 그 의미도 몰랐다. 지난 겨을 방학 때 고향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어도 그런 용어는 전혀 듣지 못했던 것이다. "정성껏 보살펴드리세요" 하고 부인도 한마디했다. "독이 뇌까지 퍼지면 손을 쓸 수 엄게 되지요. 웃을 일이 아닙니사," 실감이 나지 않는 나는 웬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웃음을 머즘고 말했다. "어차퍼 완쾌될 수 얼는 령이니 아무리'걱정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 "그렇게 단념한다면야, 그렇겠지만." 부인은 지난날 내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 생각이 나서인지 침울한 얼굴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나또 아버지 생각만 하면 그렇게도 안타까을 수가 언었다. 그러자 선생이 갑자기 부인을 쳐다보며 말했파. "시즈, 당신은 나보다 먼저 죽게 될까?" "왜 그런 걸 몫죠?"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오. 아니면 내가 당신보다 먼저 떠나려나. 대개 남편이 먼저 죽고, 마누라가 뒤에 남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퇴어 있잖소."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대체로 남편이 아내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 "그래서 먼저 죽는다는 이치인가. 그러면 나도 당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게 되겠군. " "당신은 예외라구요. " "그런가. " "그럴 것이, 무엇보다도 당신은 아주 건강한 편이에요. 병이라고는 나본 적이 없잖아요. 아무래도 내가 먼커 가계 될 것 같아요." "먼저 라 -. " "네, 꼭 그럴 거예요." 선생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웃었다. "하지만 만일 내가 먼저 죽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요? " "어떻게 하긴 윌 어떻게‥‥‥부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거리고 말았다. 죽음 에 대한 선생의 상상적인 비애가 부인의 마음을 약간 어지럽힌 것 같았다. " 그러나 다시 철굴을 든 부인의 표정은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어떻게 하다니요? 어쩔 도리가 없지요, 뭐. 안 그래요, 여보? 노소부정이라는 말도 있잖 아요. " 부인은 일부러 나를 쳐다보며 애써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다시 주저앉아서 이야기기 끝날 때까지 두 사람 상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 하고 선생이 물었다. 선생이 먼저 죽을 것 같느냐, 아니면 부인이 선생보다 먼저 죽을는지는 물론 나로서는 자 신있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다만 웃고만 있었다. "저 역시 사람의 수명에 대해선 뭐라 말할 수가 없군요." "하긴 그건 정해진 운명이니가요. 태러날 때 이미 정해지는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지요. 선생의 부친과 모친은 거의 함께 돌아가셨다고 할 수 있지요. "돌아가신 날을 말하는 겁니까?" "같은 날 돌아가신 건 아니지만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지 요. 왜냐하면 잇따라 돌아가셨으니까요. " 그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잇따라 돌아가셨다니 정말 이상하게 여겨졌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한꺼번에 돌아가셨습니까? " 그러자 부인이 내 질문에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선생은 그것을 가로막았다. "그런 이야기는 그만둬요. 이제 다시 그런 얘길 해 무슨 소용 있겠소 ?" 선생은 손에 든 부채를 일부러 탁탁 쳤다. 그러고는 다시 부인을 돌아보았다. "시즈, 내가 죽으면 이 집을 당신에게 주겠소. " 그러자 부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주시는 김에 땅도 주세요." "땅은 남의 것이니 안되겠지. 그 대신 내가 갖고 있던 것은 모두 당신에 게 주겠소. " "정말 고맙군요. 하지만 외국 서적은 주셔도 제게 아무 소용이 없는걸요. " "헌책방에 팔면 되잖소." "팔면 얼마쯤 될까요? " 선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은 자신의 죽음이라는 언훗날의 문제에 대해 쉽사리 얘기를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은 반드시 부인보다 앞서리라는 가정 아 래 이야기를 끌고나갔다. 부인도 처음에는 그저 실없는 농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같았 는데 그러한 이야기는 어느덧 감상적인 여인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죽으면, 고대체 몇 번이나 그 말을 하는거죠? 제발 부탁이니 어지간 히 해두세요. 내가 죽으면이란 말을 그만 좀 하세요. 기분이 나쁘단 말이에요. 당신이 돌아 가시면 무엇이든 당신 뜻대로 해드릴께요. 그러면 되잖아요? "선생은 정원 쪽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부이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오래 있었컨 것 같아 그 슥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과 부인은 현관까지 따라나왔다. "병석에 누워 계신 분께 잘해드리세요" 하고 부인이 말했다. "그럼 9월에" 하고 선생이 말했다. 나는 인사를 하고 격자문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현관과 대문 사이에 있는 울창한 물푸레나무 한 그루가 내 앞길을 막기라도 하는 것처럼 야음 속에 따지를 랜고 있었다. 나는 두새 걸음 걸으면서 거무스름한 잎으로 덮인 그 우듬 지를 런고 가을이 되떤 활짝 필 꽃과 그 향기를 마음속에 그렸다. 오래전부터 나는 선생의 집과 이 물푸레나무를 항상 연관시켜 생각해올 정도로 가슴깊이 새기고 있었다. 내가 우연 히 그 나무 앞에 서서 이 집의 현관을 다시 넘게 될 오는 가을플 생각할 때 지금까지 격자 문 사이에서 비치고 있던 현관의 전등불이 갑자기 거졌다. 선생 부부는 이제 안으로 들어간 것이리라. 나는 혼자서 어두운 밖으로 나갔다. 나는 곧바로 하숙집으로 가지 않았다. 고향으로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과 사야 할 물 건이 있는데다가, 잔뜩 먹어서 부담스런 위를 생각해 별생각 없이 끄 번화한 시가지 쪽으로 걸어갔다. 거리는 아직 초저녁이었다. 별일도 없어 보이는 남녀들로 복잡한 거리에서 나는 오늘 나와 함께 졸업한 친구 한 명을 만났다. 그는 나를 억지로 어느 술집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곳에서 맥주 거품과 같은 그의 기염을 듣게 되었다. 내가 간신히 하숙집으로 돌아 간 것은 열두시가 넘어서 였다. 나는 그 다음날도 무더위를 무릅쓰고 고향에서 사오라는 물 건들을 사러 돌아다녔다. 편지에 써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닌 것 같았 는데 막상 사러 다니다보니 대단히 귀찮게 여겨졌다. 나는 전차 안에서 땀을 닦으며 남에게 시간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이렇게 피해를 주면서 전혀 미안하다는 의식을 갖지 않는 시골 사람들을 밉살스럽게 생각했다. 나는 이번 여름을 무의미하게 지낼 생각은 없었다. 고향에서의 일정을 미리 짜두었기 때 문에 그것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책도 준비해야 했다. 나는 반나절을 마루젠(컸촘)의 이층에 서 눌러 있을 각오를 했다. 나는 나와 관계 깊은 부문의 서적 선반 앞에 어서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뒤졌다. 물건을 사는 데 이어 가장 성가셨던 것은 여자의 장식용 깃이었다. 나이 어 린 사내 점원에게 말하면 얼마든지 갖고 나와 보여주었지만 막상 사려고 드니 어느 것이 좋 은지 알 수 없어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값이 천차만별이었다. 싸겠지 하고 물어 보면 아주 비싸고 너무 비쌀 컷 같아 묻지 않은 것은 오히려 아주 쌌다. 아무리 비교해보아 도 어디서 가격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나는 정말로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 다. 진작 선생 부인에게 부탁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나는 가방을 샀다. 물론 국산 하등품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쇠장식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어서 촌놈을 놀나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가방을 사게 된 것은 어머니의 귀때문이었다. 어 머니가 보내신 편지에는 졸헙하면 새 가방을 사서 그 속에 모든 선물을 넣고 돌아오라는 말 이 씌어 있었다. 나는 그 구절을 읽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말이 일종의 익살맞은 호소로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 부부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말한 대로, 그로부터 사흘째되던 날 기차로 도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겨울부터 부친의 병환에 대해 여러 가지 주의를 선생으로부터 받 은 나는 가장 걱정해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웬일인지 별로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의 어머니를 상상하켜 어머니만 가옅게 되리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이미 마음 한구석으로 아버지는 어차피 돌아가실 분이라는 것을 각오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는 규슈에 계신 형에게 보낸 편지에도 아버지는 회복되시기 힘 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직무상의 사정도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직장에 냥해를 구해 이번 여름에 잠시라도 고향에 다녀가는 것이 좋다는 말도 쌨다. 또한 연로하신 두 분만이 시골에 살고 계시는 것을 생각하면 딱한 마음이 앞서서 자식으로서 송구스럽기 그지업다는 감상적인 문구까지 썼다. 사실 나는 가슴속애 담고 있는 말을 그대로 쌨다. 그러 나 그렇게 쓴 뒤의 기분은 쓸 때와는 달라져 딨었다. 나는 그러한 모순을 기차 안에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 자신이 주체성이 엄 고 경박하게 생각되었다. 그러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또한 선생 부부를 떠올렸다. 특히 2,3일 전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던 메의 대화를 기억해냈다. "어느쪽이 먼저 죽을까?" 나는 그날 밤 선생과 부인 사이에 오가던 이야기블 되새겨보았다. 그리고 그 물음에는 누구도 자신을 갖고 대답할 수 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쪽이건 먼저 죽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선생은 어떻게 할까. 부인은 어떻게 할까. 나는 선생도 부인도 지금과 같은 태도로 있을 수밖에 얼 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죽음에 직면해 있는 아버지를 둔 내가 어떻게 할 수 엄듯이). 나는 인생의 덧엄음을 생각하며 채텀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타고난, 어찌할 수 업는 무상한 삶을 가슴깊이 새겼다. 제 2부 양친과 나 집으로 돌아가서 보니 의외로 아버지의 병세는 지난번에 찾아뵈었을 때와 그다지 달라지 지 않은 상태였다. "아, 네가 왔구나 ! 그렇지, 어쪘든 졸업을 랬으니 내 마음이 뿌듯하다 잠싼 기다러라. 내 좀 씻고 오마." 아버지는 뜰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버지는 낡은 밀짚모자 뒤에 볕을 막기 위해 옭아맨 구중중한 손수건을 펄럭거리면서 우물이 있는 뒤쪽으로 돌아갔다. 학교를 졸업 하는 것을 보통 사람으로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그것을 너무나 기뻐해주는 아버 지 앞에서 몸룰 바를 몰랐다. "졸업을 하다니, 정말 장하구나 ! " 아버지는 그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숨과 졸업 한 날 밤 선생 집 식탁에서 "축하합니다 ! " 라는 말을 할 때의 선생의 표정을 비교해보았 다. 그런데 겉으로는 축하해주면서 마음속으로는 비꼬는 듯한 선생 쪽이, 대단하지도 않은 일을 최한하게 여기며 기뻐하는 아버지보다 오히려 고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결국 아 버지의 무지에서 오는 촌스러운 태도에 실망을 느쪘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대학 졸업생은 해마다 몇백 명이 나 되니까요. " 나는 드디어 그렇게까지 말했다. 그러자 야버지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쏠업한 것을 대 단하게 생각해서만 한 말은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나는 그보다 좀더 깊은 의미를 두고 한 말이다. 그것을 네가 알아준다면‥‥‥‥ 나는 아버지로부터 그다음 말을 듣고 싶었다. 아버지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결 국 이렇게 말했다. "말하자면 내가 잘줬다는 것이다. 너도 알다시퍼 난 키금 병중에 있지 않 느냐. 지난 겨을 너를 만났을 때 어쩌면 3월이나 4훨 정도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웬 행운인 지 지금까지 이렇게 버티고 있다. 사는 데 별 불편언이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네가 졸업해 주었다. 그러니까 기쁘지.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이 내가 죽은 뒤에 졸업하는 것보다는 건강 할 때 졸업해주는 것이 부모의 딥장에서는 기쁘지 쟈겠느냐. 큰 뜻을 지닌 네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대학을 졸업한 걸 가지고 장하다, 장하다 하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렴. 경우가 좀 다르지 않겠니. 다시 말해서 졸업은 너보다 내게 있어서 잘 줬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나는 한마디도 할 수가 언었다. 무엇이바 사과를 드려야 할지,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어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의연하게도 당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내 가 졸업하기 전에 죽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 졸업이 아버 지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 것인지 생각지도 않고 있었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방 속에서 조심스럽게 졸업장을 꺼내어 부모님 앞에 내놓았다. 졸업장은 가방 속에서 짓눌려 원래 형태를 잃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정성스럽게 폈 다. "이런 것은 둘둘 만 그대로 들고 와야 하는데. " "안에 심이라도 넣었으면 좋았을걸" 하 고 어머니도 한마디하셨다. 아버지는 졸업장을 한담 들여 다음 일어서서 가더니 졸업장을 사람들의 눈에 잘 될 수 있게끔 정면에 두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 즉시 무슨 말인가 했 겠지만 그때의 나는 평소와는 달랐다. 부모님에 대해 조금도 거역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 는 잠자코 아버지가 하는 대로 두었다. 그런데 일단 접혀서 난 자국븐 쉽게 펴지지 않았다. 적당한 위치에 놓자마자 자연히 쓰러 지려 했다. 나는 은밀히 어머니를 따로 만나 아버지의 병세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프_았다.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것처럼 저렇게 뜰에도 나가 무슨 일 인가 하시는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야. 아마토 좋아지신게지. " 놀랍게도 떠머니는 너무나 태연했다. 도시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술과 논밭에 둘러싸여 살다보니 어머니는 이런 일에 있어서는 전혀 무식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난번에 아버지 가 쓰러지셨을 때는 그렇게도 놀라서 슬픔에 잠겼던 어머니가 아니신가. 나는 묘한 생각 이 들었다. "하지만 의사는 그때 아주 어렵다고 선고하지 ◎았습니까? " "그러니. 사람의 몸만큼 묘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어렵다고 했는데 지감까지 아무 일이 없으니 말이다. 역시 처음에는 걱정이 되어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마시라고 했 는데 그 성질에 어디가만히 계실 분이냐. 조심하시기야 하지만 고집이 워낙 세신 분이라 당 신이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여간해어 내 말 따위는 들으려 하지 않으니. " 나는 요전에 돌아 왔을 때 무리하게 이부자리를 치우게 하고 수염을 깎던 아버지의 모습과 태도를 떠올렸다. "이젠 괜찮아. 어머니가 너무 수선을 떨어서 탈이지. " 그때의 말을 생각해볼 때 반드시 어 머니만 나무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곁에서 조금쯤은 주의를 드려야지요.' 그렇게 말하쳐고 했던 나는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 병의 성격에 대해 내가 아는 한 가르치듯이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선생과 선 생의 부인한테서 얻은 지식에 불과했다. 어머니는 별로 감동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다만 "그 래 ? 역시 같은 병이란 말이지. 안됐구나. 그래, 그분들은 몇 살 때 돌마가셨다더냐 ? " 하 고 물었다.할수없이 나는 어머니와는 그 정도로 얘기를 끝내고 직접 아버지를 대했다. 아버지는 나의 주의를 어머니보다는 진지하게 들었다. "그래, 네가 말한 대로다. 하지만 내 몸은 필경 내 몸이떠, 내 몸에 대한 양생법은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 말을 글은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한마디했다. "그것 봐라. " "하지만 말씀은 저렇게 하셔도 아버지는 당신 스스로가 분명히 각오를 하고 계시고 있어 요. 이번에 제가 졸업해서 돌아온 것을 매우기뻐하신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당신이 살아 계실 때 졸업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건강하실 때 졸업장을 가지고 쐈으니 그것이 기쁘 다고 말씀하셨어요. " "그야 겉으로는 그렇게 말씀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 "그럴까요 ? " "아직도 10년, 20년은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하긴 가끔 나한 테도 듣기 거북한 말씀을 하시지 -나도 이 상태로는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오. 내가 죽으면 당신은 어떻게 따겠소? 흔자서 이 집에서 살 생각이냐고 말이다. " 나는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흔자 남게 될 때의 이 낡고 넓은 시골집을 상상 해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 흔자 이 살림을 이끌어가실 수 있을까. 형은 뭐라고 할까. 어머니는 뭐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또 이 땅을 떠나 도쿄에서 마음편히 살차갈 수 있을까. 나는 어머 니를 눈앞에 두고 문득 선생의 주의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나눠 가질 것을 나눠 가지라는 주의를 떠올렸다. "어쪘든 스스로 죽는다, 죽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치고 쉽게 죽는 예는 언 으니까 안심이 된다. 아버지도 죽는다, 죽는다 하면서 앞으로도 몇 해 더 사실지 모르는 일 이다. 그보다는 아무 말도 따지 않는 건강한 사람이 위험하지. " 나는 이론에서 온 것인지, 통계에서 온 것인지도 알 수 엄는 어머니의 그 진부찬 말을 그 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위해 팥밥을 지어 손님들을 청해 대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논을 하셨다. 나는 고향집에 온 날부터 어쩌면 부모님이 그런 일을 벌 일지도 모른따는 생각이 들어 은근히 우려하고 있었다. 나는 즉시 거절했다. "너무 떠들색한 일일랑 그만두세요. "나는 시골 손님이 싫었다. 마시고 먹어대는 것을 목적으로 들이닥치는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좋겠다는 식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리 집에 그들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했었다. 하물며 나를 취해 오는 경우 나는 너무나 괴로 우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렇게 무 지한 사람들을 모이게 해서 떠드는 일을 그만두시라고 할 수가 엄었다. 그래서 그저 너무 떠들색한 일이라고만 주장했다. "거창하다 거창하다고 하찌만 조금도 거창하지 않다. 대학졸 업이 일생세 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 잔치 정도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싫다고 만 하지 마라." 어머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것을 마치 며느리라도 얻은 것처럼 대단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손님들을 초대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초대하지 않으면 말들 이 많으니까. " 아버지의 말이었다. 아버지는 그들이 뒤에서 찰지도 모를 험담을 염려하시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자기들이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으면 이러쿵저러쿵 험담 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달리 시골에서는 말이 많으니까." 아버지는 그런 말씀도 하셨다. "아버지 체면도 있으니까" 하고 어머니가 덧붙였다. 나는 고집을 부릴 수만은 없었다. 어쨓든 두 분 뜻에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그저 저를 위해서라면 그만두시는 것뿐입니다.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니, 그것은 또 생각해봐야 할 문제지요. 부모님 체면을 깎는 일이라면 어찌 제 고집만 부릴 수 있겠어요." "그렇게 이유를 대면 곤란하다. " 아버지는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굳이 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지만 너도 남들에 대한 의리 정도 는 알고 있을 것이다. " 이런 상황이 되면 어머니는 여자인 만큼 종잡을 수 없는 말을 늘어 놓기 힐쑤다. 그 대신 말수로 보면 아버지와 나를 합해도 오히려 대적할 수 없을 정도다. " 공부를 많이한 사람은 자칫 이론적으로만 흐르게 되어 좋지 않다. " 아버치는 다만 그 말만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간단명료한 말을 통해 평소 나에 대해 못마땅해하시는 점을 그대 로 드러내셨던 것이다. 나는 그때 내 말투가 불손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아버지의 불평 만 억지라고 여겼다. 그날 밤 아버지는 다시 기분을 바꾸어서 손님을 초대할 경우 언제가 좋75느냐고 하며 내 형편을 물◎다. 형편이 좋고 나쁘고도 언이 이 낡은 집에서 그저 빈등 빈등 지내는 나에게 그런 것을 묻는 것은 아버지가 한풀 꺾였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이었다. 나는 이렇듯 자상하신 아버지 앞에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는 아버지와 의논 하여 손님들을 초대할 날을 정했다. 그런데 그 며칠 전에 아주 큰 일이 컬어졌다. 그것은 메이지 천황의 병환 보도였다. 신문 지상을 통해 일본 전역에 보도된 이 사건은 보잘것없는 시골집에서 다소의 우여곡절을 거척 겨우 매듭짓게된 나의 졸업 축하 행사를 물거품이 되게 했다. "안하는 것이 좋겠다. " 안경을 쓰고 신문을 보고 있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말씀은 없으셨지만 아버지든 당신의 병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같았다. 나는 바로 얼마전의 졸업식에 예년처럼 참석하셨던 폐하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식구수에 비해 상당히 넓은, 쥐죽은 듯이 고요한 고옥에서 나는 고리짝을 풀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시끄럽고 복잡하기만 한 도쿄의 하눅집 이층에서 멀리 달리는 전차 소리를 들으면서 한장 두장 책장을 넘기며 공부하던 때가 훨씬 더 마음 편하고 능률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상에 기댄 채 선잠을 자기 일쑤였다. 때로는 베개까지 꺼내어 본격적으로 낮잠을 자기도 했다. 잠에서 깨면 매미 소리가 요란했다.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계속되는 것 샅은 그 소리는 갑자기 요란스럽게 귀청을 휘저어 어지럽게 했다. 잠자코 그 소리를 듣다보면 웬 지 슬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붓을 들어 몇몇 친구에게 짧은 편지도, 긴 편지도 썼다. 그 친구들 중 몇 명은 도료에 남아 있었다. 또 멀리 고향에 내려가 있는 친구도 있었다. 답장을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아무 소식도 보내리 않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물론 선생을 잊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온 후의 자신을 제목으로 원고지 3매 정도를 잔글씨로 메운 글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봉할 때 선생은 과연 도쿄에 있을까 하는 생각 을 했다. 그런데 선생이 부인과 함께 집을 비을 때는 미망인처럼 짧은 머리를 한, 10세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어디선가 과서 집을 지키곤 했다. 언젠가 내가 선생에게 저분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선생은 누구일 것 같냐고 되물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선생의 친척으로 잘못 보았다. 그러자 선생은 "내겐 친척이 없어요"라고 대답했 다. 선생은 고향에 있는 친척들과는 전혀 소식을 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궁금해한 그 집 봐주는 ◎인은 선생과는 무관한 부인의 친척이었다. 나는 선생에게 우편물을 보낼 때 문득 폭이 좁은 허리띠를 뒤로 편하게 맨 그 여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만일 선생 부부가 어디로 피서를 떠난 뒤 이 우편물이 도착하면 그 아주머니는 이것을 바로 피서지로 보내줄정도의 기지와 친절심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견지에는 뭐 그리 특별한 내용도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나는 허전했다. 그리고 선생으로부터 답장이 오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끝끝내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난 겨을 방학 때처럼 장기를 두려고 하지 않았다. 장기판은 먼지가 쌓인 채 도코노마 구석에 치워져 있었다. 폐하의 병환보도 이후, 아처지는 다만 무슨 생각인가를 깊이 하는 것 같았다. 매일 신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당신이 제일 먼저 읽으셨다. 그리고 그 읽을거리를 일부러 나에게까지 갖다주었다. "이것 보아라, 오늘도 천자님에 대해 자세히 나왔다. " 아버지는 폐하를 항시 천자님이라고 했다. "황송한 말씀이지만 천자님의 병환도 이 아버지의 병톼 비슷한 것같구나. "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고뇌에 찬 깊은 먹구름이 깔려 있었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쉽싸였다. "하지만 괜찮을 거다.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도 아직 이렇게 살아있을 정도이니. " 아버지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자위하면서도 눈◎에 닥친 것 같은 위험한 사태를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정말로 당신의 병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계세요. 어머니가 말씀 하셨듯이 10년이고 20년이고 사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진 않아요." 어머니는 내 말을 들으며 당흑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께 장기라도 두자고 권해보렴." 나는 도코노파에서 장기판을 가져다가 먼지를 털었다. 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쇠약해져만 갔다. 따라서 언겐가 나를 놀라게 했던, 손수건 달린 낡은 밀짚모자는 자연히 방치되었다. 나는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선반 위에 놓여 있는 그 모자를 바라볼 때마다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이전처럼 가볍게 움직씨실 때는 좀더 삼가해주었으면 하고 걱정했었다. 아버지가 전혀 움직이시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게만 되니 역시 이전의 모습이 건강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자주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완전히 기분 탓이지"라고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는 폐하의 병과 아버지의 병을 결부시켜 맹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만 생각되지 않았다. "기분 닻이 아니에요. 정말로 몸이 나쁜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기분 때문이 아니라 건강이 나빠지시는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멀리서 유명한 의사라도 불러다가 한번 진찰 받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금년 여름은 너도 재미가 없겠구나. 힘들게 공두해 졸업했는데 축하도 못해주고 아버지의 건강도 저렇고. 게다가 천자님도 병환중이시고. -이럴 줄 알았으면 네가 돌아왔을 때 바로 손님들을 초대할 걸 그랬구나. " 내가 돌아온 것은 7월 5,6일로 부모님이 내가 졸업한 것을 축하하는 마음이기 위해 손님들을 초대해야BS다는 말을 꺼낸 것은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서였다. 시간에 누애받지 않는 느긋한 시골로 돌아온 나는 그 덕택에 마음에도 업는 사교상의 고통에서 구제받게 된 셈이었는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조금도 그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천황 폐하가 서거했다고 보도되었을 때 아버지는 그 신문을 손에 들고 "아아, 아아! " 하며 울부짖었다. "아아, 아아! 천자님도 결국 꼴아가셨구나. 이제 나도‥‥‥‥ 아버지는 그다음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검정색의 얄은 천을 사러 시내로 나갔다. 그것으로 깃대의 깃봉을 싸고, 또 그것으로 깃대 끝에 9센티미터쫌 되는 너풀거리는 것을 달아 대문 옆에서 길 쪽으로 비스듬히 내밀어 꽃았다. 깃발도, 너풀거리는 검은 천도 바람 한 점 업는 허공에 축 늘어졌다. 우이 집낡은 대문의 지붕은 짚으로 이어져 있었다. 비바람에 시달리고 날리 기도 한 그 짚의 빛갈은 이제 너무나 변해서 엉은 잿◎을 떤데다후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곳마저 눈에 띄었다. 나는 혼자서 문밖으로 나가 너풀거리는 천과 하얀 메린스 천, 그리고 천에 염색한 빨간색 동그라미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구중중한 짚쓰로 이은 지붕에 비치는 것도 바라보았다. 나는 전에 선생으로부터 "당신의 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습니까? 우리 고향 마을하고는 아주 다른 구조인가요?"라고 질문받았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내가 태어난 이 낡은 집을 선생에게 보이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 선생에게 보여드리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다시 흔자뻐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 앞으로 가서 신문 을 읽으며 저 멀리 떨어진 도쿄를 그려보았다. 나의 상상은 일본 제일의 도시가 그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하는데 촛점이 모여졌다. 나는 그 어두움 속에서도 움직여가지 않으면 제구실을 못하는 술렁대는 도시 속에서 한 점의 등불과 같은 선쟁 집을 보았다. 그때 나는 그 등불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소용돌이 속에 자연히 쉽쓸리고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뭇했다. 머지않아 그 등 불 8한 바람처ET 사라져버릴 운15(에 처해 있다는 것도 예기하지 못했다. 나는 이번 사건에 대해 선생에게 편지를 쓰려고 붓을 들었다. 그러나 열 줄 정도 쓰카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미 쓴 부분을 갈기갈기 쩐어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선생에게 그런 말을 써보냈자 아무 소용이 엄고 전례에 비추어 탈장도 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허 전했다. 그래서 편지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답장이 왔으면 한다. 8월 중순경에 나는 어느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내웅은 지방에 중팍교 교사 자리가 있는데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경제상의 필요에 의해 그런 자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 자리도 처음에는 자기한테 왔는데, 더 좋은 지방으로 가게 되어 남는 쪽을 나에게 양보하기 위해 일부러 알려준 것이었다. 나는 즉시 답장을 내어 싫다고 했다. 친구들 중에는 아주 애를 쓰면서 교직슬 구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친구를 소개시켜주면 어떻겠느냐고 써보냈다.나는 그 이야기를 답장을 보낸 뒤에야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두분 다 내가 거절한 데 대해 이의는 업었다. "그런 곳에 가지 않아도 또 좋은 자리가 생길 것이다. "이런 위로의 말을 통해 나는 두분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알 우 있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부모님은 이제 갖 졸업한 나에게는 너무나 걸맞지 않는 위치와 수입을 기대하고 있는 것같았다. "요즘은 아주 괜찮은 자리를 구하기가 상당히 힘든 형편이에요. 특히 형과 나는 전공도 다르고 시대도 달라서 두 사람을 똑같이 생각하시는 것은 무리 입니다. " "하지만 졸업한 이상 적어도 독립째서 살아가주지 않으면 내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된다. 남들이 댁의 둘째아드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아무 대답도 못한대서야 나도 창퍼하지 않겠느냐 ? "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버지의 사고 범위는 그 나이가 되도록 살아온 정든 고향 마을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아버지즌 그 고장의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대학을 졸업하면 월급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 적어도 100엔쯤은 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질문을 받았을 때 부B러운 일이 업도록 갓 졸헙한 내가 어서 빨리 독릴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대도시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던 나는 부모님 입장에서 볼 때 흡사 발을 허공으로 내뻗는 비멍상적인 인간자 다름엄었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나는 가슴속에 담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털어놓기는 너무나도 거리감이 심한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그저 침묵만을 지켰다. "네가 자주 들먹거리는 선생이라는 분에게라도 부탁하면 어떻겠느냐? 바로 이럴 때 말이 다." 어머니는 선생을 이렇게 밖에 해석하지 못했다. 그 선생은 나더러 고향에 돌아가면 부친이 살아 계실 때 하루라도 빨리 재산을 받아두라고 충고했던 사람이다. 졸업했으니까 취직 자리를 알선해주겠다던 사람은 아니었다."그 선생은 뭘 하는 사람이냐 ? " 하고 아버지가 물었다.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선생이 아무 것도 하고 있 지라다는 것을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말쏭드린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는 분명히 그 말을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니, 그게 웬말이냐? 네 가 그렇게도 존경 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인가 하고 있을 법한데. "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은근히 나를 비꼬았다. 아버지의 생각으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사회에 나가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위치에서 일하고 있다, 필경 놈팡이니까 놀고 있다 고 결론짓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일정한 수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놀고 있는 것은 아니잖니, " 아버지는 그런 말도 했다. 그래도 나는 잠자코 있었다. "네 말대로 훌릉한 분이라면 분명히 어언 자리든 알선해줄 수 있을 텐데. 그래 부탁은 해보았느냐?"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아니오. " "그렇담 할수없지. 왜 부탁하지 않았느냐? 편지라도 내보지 그러니?" "네. "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는 분명히 당신의 병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가 왕진하러 올 때마다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대서 장대를 난처하게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의사도 역시 조심하여 환자를 불안하게 하는 말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후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당신이 돌아가신 뒤의 집안일을 머리속으로 그려보는 것 같았다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것도 한마디로 좋다 나쁘다 할 수 없 군. 애써 가르치고 나면 그 자식은 펼코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말이야. 이거야 원 부모 자식을 떨어져 있게 하기 위해 공부시킨 꼴이 되었군 그래. " 학문을 한 결과 형은 지금 아주 먼 지방에 가 있다. 대학 교육을 받은탓으로 나는 또 도쿄에서 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 기껏 기른 자식들이 이렇게 되었으니 아버지가 그런 푸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파. 기나긴 세월 살아 정든 시골집에 단 흘로 남게 될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틀림없이 착잡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 시골집에 대한 애착심이 대단했다. 당신이 돌아가신 뒤 외로운 어머니 흘로 텅 빈 넓은 집을 지키며 살아갈 일을 생각하는 마음이니 그것 또한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도쿄에서 좋은 직창을 구하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의 처사도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모순이 있는 처사를 우습게 여기는 한편, 그 덕분에 도쿄로 갈수 있게 된 것을 기뻐했다. 나는 부모님 체면상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가장해야 했다. 나는 선생에게 보전 편지에 집안 사정을 아주 자세히 적썼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으니 취직 자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도와줄 마음은 있어도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선생에게는 그다지 기대할 바가 언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썼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생으로부터 이 편지 에 대해 답장이 꼭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멋을 봉하기 전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깼노라고 말했다. "선생에게 편지를 깼어요.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말이에요. 좀 읽어보시겠어요 ? " 그러나 어머니는 내 예상대로 읽지 않았다. "그래 ? 그러면 빨리 보내렴. 그런 일은 곁에서 신경을 쓰지 않아 도 스스로 서둘러야 한다. " 어머니는 나를 아직 어린애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카실은 나 역시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편지만 보내서는 크게 기대할 수 얼어요. 아무래도 9월쯤 제가 직접 도쿄에 가봐야 될 것 같아요." "그야 그렇겠지만, 어쩌면 좋은 자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하루라도 빨리 부탁해두는 것도 좋지 않겠니 ?" "네, 어쩽든 답장은 올테니까 그때 또 말씀드릴께요." 나는 이런 일에 있어서 아상하고 봄꼼한 선생을 믿고 있었다. 나는 선생의 답장을 은근히 기다렸다. 그러나 내 기대는 결국 빗나가고 말 았다. 1주일이 지나도 선생으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아마 어디론가 퍼서를 떠나신 모양이에요." 나는 어머니에게 변명 비슷한 말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어머니에 대한 변명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뭔가 사정 이야기를 꾸며서라도 선생의 태도를 변호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것이다. 나는 가끔 아버지가 병환중이라는 사실을 잊곤 했다. 차라리 지이라도 어서 도쿄로 가야35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 자신도 당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었다. 앞날듸 일을 걱 하면서도 그에 따른 조처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선생 충고한 재산 분배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 앞에서 꺼내지 못하고 말았다. 9월 초가 되자 나는 도쿄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더옥더 간절했디 나는 아버지에게 당분간 종전처럼 생활비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에 이렇게 죽치고 있다가는 아버지 말씀대로 좋은 자리를 얻기 힘들어요. " 나는 아버지가 바라는 그럴듯한 취직 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쿄 가려고 하는 것처럼 말했다. "물론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만 보내주시면"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런 자리는 도저히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 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버지는 어디까씨나 그 대 상황을 믿고 있었다. "그건 얼마 안되는 기간일테니 어떻게든 대주마. 그 대신 너무 오래 끌면 안된다. 쇈찮은 직장을 구하자마자 독립해야만 한다 원학교를 졸업하면 그 다음날부터 남의 도움은 받지 않아야 마땅하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을 쓸 줄만 알지 벌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같구나. "아버지는 그밖에도 여머 가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가운데에 "옛날에는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했는데, 요즘에는 부모가 자식들 인해 고생만 하고 있다. " 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런 말을 그저 묵히 듣고 있었다. 잔소리가 대충 끝난 것 같았을 때 나는 조용히 자리를 일어서려고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언제 떠날 생각이냐고 물었다. 나는 빠를수록 았다. "어머니와 의논하여 떠날 날을 정,래라. " "그렇게 하겠습니다. " 그때의 나는 아버지 앞에서 의외로 얌전했다. 나는 가능한 한 아버 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시폴을 떠나려 했다. 아버지는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네가 도쿄로 떠나면 우리 집은 다시 쓸쓸해지겠구나. 어쪘든 나외 어머니뿐이니까. 그래도 내가 몸만 먼강하다면 걸정이 업겠지만 지금 같아선 언제 갑자기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겠구나." 나는 가능한 한 아버지를 위로하고는 내 책상이 있는 방으로 돌이왔다. 그리고 책들로 어지럽혀진 방안에 앉아, 허탈감에 빠진 것 길은 아버지의 표정과 말을 몇 번이나 되새겨보았다. 그때 또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지난번과는 다른 애매미의 올음소리였다. 나는 여름 방학 때 고향에 돌아와서 지글지글 끓는 듯한 매미 소리기 들리는 가울데 잠자코 앉아 있노라면 이상하게 슬픈 기분에 사로잡힐때가 많았다. 나는 언제나 이 벌레의 세찬 울음소리와 함께 마음쓱 깊이 뭐라 형언할 수 업는 애수에 젖어들었다. 그럴 때마다 니는 봄짝도 하피 않은 채 나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나의 애수는 이번 여름 귀성한 이래 점차 정취를 바꾸어왔다. 매미의 소리가 애매미 소리로 변하듯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의 운명이 커다란 윤회 속에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쓸쓸하게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과 말을 다시 떠올리면서 편지를 띄웠는데도 답장을 보내주지 않는 선생을 생각했다. 선생과 아버지는 나에게 정반대의 인상을 준 점에 있어서, 비교를 할 때나 연상을 칠때 언제나 동시에 내 머리에 떠을랐다. 나는 아버지에 관한 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내가 아버지 곁을 떠난다면 정분상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미련이 있을 뿐이 다. 그런데 선생에 관해서뜬 아직 그다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들려주겠다고 약속한 그 사람의 과거도 아직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서 나에게 있어 선생은 어두움에 쉽싸인 사람 같았다. 나는 꼭 그 단계를 벗어나 밝은 곳까 지 가야 직성이 풀릴 것같았다. 선생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커다란 고통 피 아닐 수 업었다. 나는 어머니와 의논한 끝에 도쿄로 떠날 날을 정했다. 드디어 내가 떠나려고 서두르고 있을 때-분명히 떠나기 이틀전의 저녁 무협으로 기억되 는데-느닷엄이 아버지가 쓰러졌다. 나는 책과 옷가지로 가득 찬 고리짝을 밧줄로 얽어매고 있었다. 아버지는 목욕탕에 막 들어간 뒤였다. 아버지의 등을 밀러 쓸어갔던 어머니 가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알믐으로 뒤에서 어머니에게 안겨 있었다. 그래도 객실 로 옮겨왔을 때는, 이제 괜찮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좀더 결과를 보기 위해 머리맡에 앉아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식히고 있던 나는 아흡시쯤 되어서야 겨우 저녁을 먹는 등 마 는 등했다. 다음날이 되자 아뻐지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기운을 차렸다.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혼 자서 화장실에 가기도 했다. "이제 괜찮다. " 아버지는 지난 연말 쓰러졌을 때 하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때는 과연 그 말대로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는 이번에도 어쩌면 그때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사 는 그저 조심하는 것이테일 중요하다는 말만 할 뿐 어떻겠느냐는 물음에는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불안한 나머지 결국 출발하려던 날 도쿄로 떠날 수가 없었다. "좀더 상태를 지켜보고 마음을 정하겠습니다" 하고 나는 어머니에게 내 뜻을 전했다. "그렇게 괘주겠니 ?" 하고 어머니가 부탁조로 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뜰에도 나다고 집 뒤쪽으로 돌아다닐 정도의 기력이 있을 때는 태평하 기 이를 데 업었으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지나칠 정도로 걱정하며 애를 태됐다. "너는 오늘 도쿄로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아버지가 물었다. "네, 조금 연기했습니다. "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업었다. "나 때문이냐?" 하고 아버지가 되물었다. 나는 잠시 우물투물했다. 그렇다고 하면 아버지의 중태를 됫받침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나는 결코 아버지의 신경을 과민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마음을 정 확히 래뜰어보고 있는 것같았다. "안됐구나. "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뜰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서 방바닥에 나등그러쩐 있는 고리짝을 타라 보았다. 고리짝은 언 제라도 들고 나갈 수 있게 단단히 묶어진 채로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앞에 서서 다시 끈 을 풀까도 생각했다. 나는 불안감에 쉽싸인 가운데 3,4일을 보냈다. 그러자 아버지가 또 다시 쓰러졌다. 의사는 절대 안정을 취할 것을 명렁했다. "어쩌면 좋단 말이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씨로 나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불안에 떨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형과 누이동생에게 전보를 칠 준비 를 했다. 그러나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거의 고통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저 감기에 걸렸을 때와 다름이 업었다. 게다가 식욕은 평소보다 더 좋았 다. 곁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들드려 하지 않았다. "어차퍼 죽게 될테니 맛있는 거나 실컷 먹고 죽어야지." 맛있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이 우스왕스럽게도, 비참하게도 들렸다. 아버지는 진짜 맛있 는 것을 먹을 수 있는 도시에서는 살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밤이 이슥해지자 아버지는 찹쌀 과자를 구어달라고 해서 우두둑우두둑 셉었다. "어쩌면 러렇게도 허기지셨을까. 저런 걸 보면 역시 속에 튼튼한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구 나. " 어머니는 실망해야 할 곳에 도리어 의지하려는 격이었다. 그러면서도 환자의 경우에만 사 용하는 허기진다는 옛말을 무엇이건 먹고 싶어하는 뜻으로 사용했다. 백부가 문병왔을 때 아버지는 한사코 말리면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브렇게까지 못가게 하는 주된 이유는 심심하니까 더 있다 가라는 것이었다. 또한 어머니와 내가 맘대로 먹지 못하게 한다는 불만을 호소하려는 것도 그 목적의 하나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병세는 별 차도 업이 일주일도 넘게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동안 나는 규슈 에 있는 형에게 긴 사연의 편지를 보냈다. 누이동생케게는 어머니가 내도록 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마도 이것이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두 사람에게 보내는 최후의 편지가 될 것이리 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쪽 다 다급해지면 전보를 칠 테니 오라는 밀서도 적어 보냈다. 형 은 언제나 눈코 뜰 새 엄이 바쁜 직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힌 누이동생은 임신중이었다. 그러니 아버찌가 위독하시기 전에는 불진 들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 렵게 오기는 왔지민 모든 것이 끝난 뒤에 오게 되면 또한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언었다. 따라서 나는 전보를 치는 시기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졌다. "그 정도로 사태가 악화되면 저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 다는 것만은 알고 계십시오." 역이 있는 도시에서 모셔온 의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와 어머너는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그 의사의 주선으로 도시의 병원에서 간호원 한 명을 데려을 수 있었 다. 아버지는 머리맡에 와서 인사하는 하얀 옷차림의 여자를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한 표컹 을 지었다. 아버지는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다가온 죽음 그 자체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 곪 나으면 다시 한 번 토쿄로 놀러 가자. 사람이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은 살아 있을 때 해두는 것이 좋지 . " 어머니는 할수없키 "그때는 저노 데려가주세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가 하면 때때 로 아버지는 몹시 니·약한 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죽으면 부디 어머니를 잘 모시도록 해라. " 나는 그 "내가 죽으면"이라는 말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도료에서 떠나오기 전, 선생이 부인에게 그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한 것은 내가 졸업하던 날 밤의 릴이었다. 나는 웃음을 띤 선생의 얼굴촤, 가당치도 않다고 하벼 귀를 막곤 하던 부인의 모습을 떠올 렸다. 그때의 "내가 죽으면"은 단순한 가정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것은 언제 일어날지 보르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나는 선생에 대한 부인의 태도를 따를 수는 없었 다. 그러나 겉으로는 어떻게튼 아버지플 위로하기 위해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그렇게 나약한 말씀을 하시면 안될니다. 이제 곧 일어나셔서 도쿄로 놀러 가기로 했지 않습니까 ! 어머니와 할께 말이에요. 이번에 가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너무 많이 변했거 든요. 전차의 새 선로만 해도 눈에 띄게 늘어났으니까요. 전차가 다니게 되면 자연히 그 근 방의 집도 달바지고, 게다가 시 구획 개정도 있고 해서 도쿄가 잠자코 있을 때라곤 아마 하 루 24시간 가운데 1분도 안될 거예요." 한수없이 나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재잘거렸다.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들고 있었 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니 자연히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졌다. 근처에 있는 친척들은 이틀에 한 사람 정도 번갈아나며 문병을 왔다. 그 중에는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서 평 소에는 얼굴조차 보기힘든 사람도 있었다. "어떤가 했는데, 이런 상태라면 괜찮다. 말하는 데도 별지장이 얽고 무엇보다도 얼굴이 조금도 축이 나지 않았잖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돌 아간 사람도 있었다. 내가 돌아왔을 매만 왜도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앴던 집안이 이런 일 로 점점 떠들색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전혀 변함이 얼는 듯한 아버지의 병세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어머니, 그리고 백부는 한자리에 모여 상의한 끝에 드디어 형과 누이동 생에게 전보를 쳤다. 형으로부터는 즉시 오』S다는 답장이 왔다. 매제로부터도 출발자겠다는 통지가 왔다. 누이 동생은 지난번에 임신했을 매 유산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그런 일이 없도록 아주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온 매제가 누이동생 대신 을 것 같았다. 이렇게 불안정한 가운데도 나는 아직 차분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었다. 때 로는 책을 펼쳐놓고 10페이지나 계속해서 읽을 시찬까지 가졌다. 단단히 묶어놓았던 내 고 리짝은 언젠가 끈이 풀어졌다. 나는 우선 필요한 대로 그 속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꺼냈다. 나는 도쿄를 떠날 때 마음속으로 짜두었던 이번 여름 동안의 일과를 돌이켜보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은 그 일과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불쾌 감을 몇 번티나 맛보았다. 그러나 이번 여름만큼 일이 뜻대로 진척되지 않은 적도 드물었다. 이것이 바로 세상살이라 는 '생각이 들면서도 웬지 나는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그런 불쾌감에 쉽싸인 채 앉아서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병을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 아가신 뒤의 일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선생의 일을 떠올렸다. 나는 이 불쾌감의 양끝에서 사회적 신분과 교육 정도, 그리고 성격이 전연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버지의 머리맡을 떠라 여기저기 어지럽혀져 있는 책에 파묻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 있는 곳에 어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낮잠이라도 자지 그러니. 너도 몸시 지쳤겠구나." 어머니는 내 기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 역시 어머니로부터 그런 이해를 받을 정도로 어 리지는 않았다. 나는 간단하게 자기 싫다고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방 입구페 서 있었다. "아버지는 어떠세요? " 하고 내가 물었다. "지금 잘 주무시고 계시다. " 그러더니 어머니는 갑자기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내 곁에 앉았다. "선생한테선 아직 아무 소식도 없니 ? " 어머니는 그때의 내 말을 믿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선생으로부터 반드시 답장 이 올 거라는 말을 자신있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탈을 한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 라는 그런 답장이 오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그러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 으면서도 어머니를 기만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편지를 내보면 어떻겠니 ? "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아무 소용이 없을 편지를 몇 통 더 보내는 것이 어머니를 위안하는 길이 된다면 그럴 ◎ 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목적으로 선생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은 나 자신에게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야단맞고 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선생 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이 훨씬 더 두려웠다. 내 부탁에 대해 아직것 답장을 보내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런 부탁을 한 나를 무시해서파 아닐까 하는 그릇된 추측도 하게 되었다. "편지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일은 편지를 통해서는 좋은 결과를 바라 힘듭니다. 아무래도 제가 도쿄로 가서 직접부탁하며 돌아다녀 야겠어요. " "하지만 아버지가 저러고 계시니 언계쫌이나 도쿄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 "그러니까 나가지 않겠습써다. 회복되실지 안되실지 확실히 알 수 없는 한 결로 떠나지 않겠습너다. " "그거야 당연한 말이긱.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중환자를 외면하 고 어떻게 마음편히 도쿄로 갈 수 있겠느냐?" 처음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가염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왜 이런 이야 기를 이렇게 어수선할 때 꺼냈는지 이해할 수 점었다. 내가 아버지의 병을 잊은 채 차분히 앉아 있거나 책을 읽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처럼, 어머니도 눈앞의 환자 생각을 잊은 채 다른 일을 생각할 만픔 여유가 있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했다. 그때 "실은" 하며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실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네가 취직을 하면 얼마나 안심하실까 해서 말이다. 그런대 기금 상태로는 쉽게 일어나시지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저렇개 말씀도 잘하시고 정신도 말 짱하니 저럴 때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가 아니겠너." 별볼일없는 나는 효도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결국 나는 선생에게 한 줄의 편지도 보내지 못했다. 형이 왔을 때 아버지는 누워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평소에도 아버지튼 다른 일은 제쳐두 고라도 신문만은 꼭 읽는 분이었다. 그런데 을석에 눌게 된 뒤로는 심심하고 따분해서인지 더욱더 읽으려 했다. 어머니도 나도 굳이 만류하지 않고 가능한 한 환자가 하고 싶어하는 다로 놔두었다. "이렇게 기력이 좋으시다면 괜찮겠군요. 아주 안 좋으신 줄 알고 왔는데 예상외로 좋으신 데요. " 형은 아버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분 좋게 나누는 대화가 내 귀에는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게 들렸다. 그러나 아버지 앞을 물러나와 나와 마주앉았을 때 의 형의 표정은 침울해 보였다. "신문 같은 것을 읽으시게 하는 건 몸에 좋지 않잖니 ? "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전혀 막무가내시니 어쩔 도리가 없어표. " 형은 내 변명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한참 후에 형은 말했다. "정신은 말짱하신 건가. " 형은 아버지의 이해려이 병 때문에 평소보다는 훨씬 둔해진 것으로 생각하는 딘양이 었 다. "그거야 정상이지요. 저는 조괌 전에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서 20분 정도 여러 가지 이야 기를 나누었는데 이상한 점은 느낄 수 없었어요. 저 상태로은 어처면 왜 갈지도 모릅니다. " 형과 비슷하게 도착한 매제의 의견은 우리들보다 훨씬 더 낙관적이었다. 아버지는 매제에 게 누이동생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몸이 그러하니 함부로 기차 같은 걸 타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좋지 않지. 힘들게 문 병을 온다 해도 오히려 내가 더 걱정이 되니까 말이야. " 그런가 하면 비런 말씀토 하셨다. "이제 곧 나으면 갓난아기 얼굴이나 보러 오래간만에 내가 찾아가면 될테니 걱정없다. " 노기(」년j) 대장이 자진했을 때토 아버지는 제일 먼저 신문으로 그걸 알았다 "큰일났구나, 큰일났어 ! "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은 갑작스런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때는 드디어 머리가 어떻게 되신 줄 알고 섬뜩했다. " 나쿵에 형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실은 저도 놀랐습니다. " 매제도 동감이라는 말투였다. 그 무렵의 신문은 실제로 시골 사람에게는 날마다 기다려지는 기사 뿐이었다. 나는 아버 지의 머리맡에 앉아서 신문을 구석구석까지 읽었다. 읽을 시간이 얼을 때는 살며시 내 방으 로 가져가서 남김엄이 훌어보았다. 나는 군복을 입은 노기 대장과 여관(t율) 같은 복장을 한 그 부인의 모습이 눈에 선해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엄었다. 비통한 바람이 시골 구석까지 불어닥쳐 ◎ 늘어진 나무와 풀을 한창 흔들고 있을 때 뜻밖 에도 선생으로부터 전보가 날아들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만 보아도 개가 짖어대는 곳에서는 한 통의 전보조차 대사건이 아닐 루 엄었다. 그것을 받은 어머니는 역시 놀란 표정으로 일부러 나를 사람이 엄는 곳으로 불라냈다. "무슨 일이냐 ? " 어머니는 내가 전보를 뜯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전보에는 좀 만나고 싶은데 올 수 있느냐는 의미의 말이 간단하게 적혀 있었 다. 그런 내용을 보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틀림없이 부탁했던 일자비 얘기 때문일 거다. " 어머니는 전보의 내용을 그런 식으로 해석했다. 나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치고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 이 들었다. 어쨌든 형과 매제까지 불러들인 내가 아버지의 병을 모른체하고 도쿄로 나갈 수 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상의한 끝에 갈 수 언다는 전보쁠 치기로 했다. 가능한 한 간략한 말로 부친이 위독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자세 한 이야기는 편지로 하겠다고 하고는 그날 중으로 편지를 자세히 써서 보냈다. 부탁했던 취 직 이야기로만 믿은 어머니는 "정말로 운이 나쁠 때는 어쩔 도리가 업구나" 하며 아쉬운 표 정을 지었다. 그날 보낸 편지는 상당히 긴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이번에야말로 선생으로부터 뭔가 확실한 소식이 올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러자 편지를 낸 이틀 후에 또다시 전보가 날아들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오지 않아도 된 다는 문구만 있었다. 나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보였다. "아마 편지로 자세히 적어 보낸 모양이구나." 어거니는 어디까지나 선생이 나를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것이라고만 해석하고 있 는 것 같았다. 나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선생의 평소 태도로 미루어 아무래도 이상하게 여겨졌다. "선생이 일자리를 알아봐준다"-그런 일은 있을 수 없 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겠든 제가 보낸 편지는 아직 삳아보지 못했을 거고, 이 전보는 그전에 낸 것 같습너다. " 나는 아버지에게 당연하기 이를 데 엄는 말을 했다. 어머니는 지당하다는 듯이 "그렇군" 하고 대답했다. 내 편지를 받아보기 전에 선생이 이 전보를 쳤다는 것이 선생의 태도를 해 석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도. 그날은 마침 주치의가 시내에서 원장까지 데리고 오기로 한 날이어서 어머니와 나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언었다. 그 두 명의 외사는 환자에게 관장 등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 돌아갔다.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들은 후로는 대소변 배설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누운 채초 하고 있었다. 깔끔한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자 어쩔수 엄이 자리 위에서 용변을 보았다. 그러나 병 때문에 머리가 점점 둔 해지는지 날이 갈수록 귀찮아하더니 그대로 배설했다. 때로는 이부자리와 욧잇도 더럽히고, 곁에 있는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는데도 본인은 오히려 태연했사. 하긴 병의 성격상 소변의 양은 아주 적어졌다. 의사는 그것을 걱정했다. 식욕도 점차 떨어졌다. 가끔 무엇을 먹고 싶어해도 혀에서만 식 욕이 나는지 막상 목구멍 밑으로는 극히 조금밖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신문 도 손에 들 기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베갯맡에 있는 돋보기는 언제까지나 검은 집에 넣어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친하게 지낸 사쿠라는 사람은 지금은 10리 정도 떨어진 곳 에 살고 있는데, 언젠가 그카 문병을 왔을때 였다. "아아, 사쿠야" 하며 아버지는 흐리멍덩한 눈을 그에게로 돌렸다. "사쿠야, 정말 잘 왔다. 사쿤는 건강해서 부럽군. 나는 이제 절망적이야. " "그럴 리가 있나. 너는 자식들이 둘이타 대학을 졸업했으니 그까짓 병에 걸렸다고 해서 낙담할 것 엄어. 나를 좀 보라구. 마누라는 벌써 저세상으로 가버렸고, 자식도 없이 그저 이 렇게 살고 있잖아. 건강하면 뭘해. 아무 낙도 얼는걸." 관장을 찬 것은 사쿠써가 왔다간 2,3일 후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의사의 조치 덕분에 아주 편해졌다꼬 기뻐했다. 자신의 수명에 대캐 다소 자신감이 생겼다는 듯이 기분이 좋아졌다. 곁체 있던 어머니는 그 기분에 끌렸는지, 환자의 기력을 돋구어주려는 뜻에서였는지 선생으 로부터 전보가 온 것을 마치 내가 아버지의 회망대로 도꾜빼 취직이라도 된 것처럼 이야기 했다. 그자리에 있던 나는 입술을 들색들색 했지만 어머니의 말을 가로막을 수도 천어서 잠 자코 듣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환자는 당연히 기뻐했다. "정말 잘됐군요" 하고 매제도 한마디했다. "무슨 자리인지는 아직 모르느냐 ? " 형은 이렇게 물었다. 나는 이제와서 부정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애매한 대답을 하고 는 슬며시 자리를 떴다. 아버지의 병세는 최후의 일격만이 남은 듯빤 상태로까지 치닫더니 거기서 잠시 주춤하는 것 같았다. 짊안 식구들은 밤마다 운명의 그날 이 오늘밤이 아닐까, 아니면 내일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버지는, 곁에 있는 사람이 보기 딱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 있어 서 간호하기에는 오히려 수웜했다. 혹시나 해서 한 사람릭 번갈아가며 일어나 있었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각자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다가 잠이 오지 않을 때 환 자가 신음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것 같은 나는 한밤중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버 지의 머리맡까지 달려가 살펴본 일도 있었다. 그날 밤은 어머니가 일어나 있을 차례였다. 그러나 어머이는 아버지 곁에서 팔베개를 하 고 잠들어 있었다. 아버지도 깊은 잠에 빠진 사람처럼 조용히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살금살금 걸어서 잠자리로 돌아왔던 것이다. 형과 나는 같은 모기장 속에서 잤다. 매제는 손님 대접을 한다고 따로 떨어져 있는 객실 에서 혼자 잤다. "세키(떠)군도 딱하게 됐군. 저렇게 며길씩이나 일에 묶여 돌아가지도 못하니. " 세키란 매제의 성씨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쁜 처지도 아니니 저렇게 있어주는 거지요. 매제보다는 형이 더 난처하 게 됐습니다. 이렇게 길어지니. " "난처해도 할수없지. 다른 일과는 달라서." 형과 나는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형이나 나는, 아버지는 어차피 일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일어나지 못할 거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우리들 은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자식된 도리로 그것 을 겉으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직 회복되리라 믿고 계신 것 같다"라고 형기 나에게 말했다. 형의 말처럼 아버지는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아는 사람들이 문병을 오면 아버지는 꼭 만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래서 얼굴을 대하면 반드시 내 졸업 축하 잔치에 초대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아쉬워했 다. 하지만 당신의 병이 나으면- 하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네 졸업 축카 잔치를 벌이지 못한 것은 잘되었구나. 나 때는 몹시난처 했지. " 형은 그런 말로 내 기억을 로드겼다. 나는 술로 난장판이 된 그때의 흔란함을 떠을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억지로 권하며 돌아다니던 아버지의 태도도 내 눈에 는 대단히 불쾌하게 비쳤었다. 우리들은 그다지 사이좋은 형제는 아니었다. 떠렸을 때는 자주 싸움을 해서 동생인 나는 언제나 을게 마련이었다. 학교를 들어가서의 전공 차이도 완전히 성격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대학에 다닐 때의 나는, 특히 선생과 접촉하게 된 나는 멀리서 형을 지켜보며 항상 동물 적이라고 여겼다. 나는 오랫동안 형을 만나지 못해서, 또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물에 시간팡으로나 거리상으로 형과는 언제나 거리감이 있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나니 형제 간외 그러운 정이 어디선가 자연스레 솟아났다. 때가 때인 만픔 그것도 큰 훤인으로 작용했 다. 두 사람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죽어가 는 베개맡에서 형과 나 는 악수를 했던 것이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셈끼냐?" 하고 형이 물었다. 그런데 나는 전혀 방향이 다른 질문을 형에게 던졌다. "도대체 우리 집 재산은 어느 정도일까요?" "나는 모른다. 아버지는 아직 아무 말씀도 없으시니. 하지만 재산이라고 해야 돈으로 치면 런한 것이지."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선생으로부터의 답장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직 편지는 오지 않았니 ?" 하며 버머니는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선생, 선생이라니,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 하고 형이 물었다.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물어본 것에 대한 설명을 그 즉시 흘려 버린 형에 대해 불쾌한 감정이 일었다. "하긴 그때 듣기는 했지만. " 형은 분명히 듣긴 들었는데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애써 선쟁을 형에게 이해시키고 싶 지는 않았다. 그러나 화가 났다. 역시 형다운 면이 드러났다는 생각이 들먼다. 선생, 선생 하며 내가 존경하는 이상 그 사람은 반드시 저명 인사여야 한다고 형은 생각 하고 있었다. 적어도 대학 교수 정도로 추측하고 있었다.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사람 그것이 대체 뭐 그이 존경할 만한 점이냐-형의 감정은 그 점에 있어서 아버지와 너무나 똑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으니 놀 고 있다고 속단하는 데 비해, 형은 능력이 있는데도 빈등거리는 것은 형편없는 사람에 한한 다는 식의 말투였다. "에고이스트는 좋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겠다는 것은 뻔뻔스럽코도 태만한 생각 이니까.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야지, 그러지 않는 건 잘못된 일이야. " 나는 형에게 자신이 말하는 에고이스트란 말의 뜻을 잘 알고 있느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래도 그 사람 덕택에 취직을 하게 된다면 좋기야 하겠지, 아버지도 기뻐하실 것 아니 냐? " 형은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선생으로부터 소실한 소식이 오지 않는 이상 나는 그렇게 믿지도 못하고 또 입밖에 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속단으로 모두에게 퍼뜨려진 지 금 갑자기 그것을 부정할 수도 얼는 노릇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재촉하지 않아도 선생의 편 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편지에 어떻든 집안 식구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직당을 알선해놓았다는 말이 씌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기도 했다. 죽을 지경에 이른 아버 지를 위해서라도, 그 아 버지를 조금이라도 안심시켜드리고 싶어하는 어머니에 대한 체면상, 일하지 않는 사람은 사 람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형에 대한 채면상, 그밖에도 매제와 백부 그리고 숙모에 대한 체면상, 내가 코금도 신경쓰지 않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아버지가 노란빛의 이상한 것을 토했을 때 나는 언젠가 선생과 그 부인에게서 들은 위험 한 사태가 생각났다. "저렇게 오랫동안 누워 있으니 위도 나빠지겠지" 하고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머금었다. 형과 내가 다닐에서 만났을 때 형이 나에게 말했다. "너도 들었느냐 ? " 그것은 왕진 왔던 의사가 돌아가면서 형에게 말한 것을 들었느냐는 뜻이었다. 나는 설명 을 듣지 않아도 그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여기로 돌아와 집안일을 이끌어갈 생각은 엄느냐?" 하며 형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흔자서는 도저히 대나갈 수 엄을 거야, " 형이 또 말했다. 형은 나를 흙냄새를 맡으며 헛되이 죽어가도 억물할 게 업는 인물 정도 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책만 읽는다면 시골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고, 게다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너 그보다 좋 은 일이 어디 있겠니 ?" "형님이 돌아오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브냐?" 형은 한마디로 물리쳤다. 형의 태도에는 이제부터 한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무엇인가 해내겠다는 의지가 충만되어 있었다. "네가 싫으면 하긴 백부깨 부탁드리면 되겠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너와 나 둘 중에 하나 가 맡아야 할 것이다. " "그보다는 어머니가 과연 이곳을 떠나실지 떠나지 않으려 하실지가큰 의문입이다. " 형제는 아직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의 일에대해 이런 식으로 대화 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가끕 헛소리론 하기도 챘다. "노기 대장에게 미안하다. 정말로 면목이 업다. 아니오, 저도 바로 뒤를 따라‥‥‥‥ " 종종 그런 말까지 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무서운 느낌이 든 모양이 었다. 그래서 되도록 집안 식구 쏘두가 아버지의 머리맡에 모여 앉아 있게 했다. 정신이 말 짱할 때는 자꾸만 허전해하는 환자 역시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특히 방안을 둘러보고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아떠지는 반드시 "오미쓰(겔)t)" 하 며 물었다. 묻지 않아도 눈으로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자주 일어서서 어머니를 부르러 갔다. "무른 일이에요?" 하며 어머니가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환자 방에 들어오면, 아 버지는 다만 어머니의 얼굴만 응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전혀 엉뚱한 말을 할 때도 있었다. "오미쓰, 당신에게도 여러 가지로 신세를 많이 졌소." 그렇게 다정한 말을 건넬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러한 말에 언제나 눈물지었다. 그천 뒤 에는 반드시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던 건강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지금은 저렇게 처량하게 말하지만 옛날에는 몹시 지독했단다. " 어머니는 아버지가 빗자루로 등을 때렸을 때의 일을 비롯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이 제까지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들온 형과 나는 여느때와는 다른 기분으로 써머니의 말을 아 버지의 추억거리처럼 귀담아들었다. 아버지는 당신 눈앞에 어렴풋이 나타난 죽음의 그림자를 목격했으면서도 유언 같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럴 때 무슨 말이든 들어둬야 하지 않을까? " 하며 형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겠군요"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먼저 서둘러 그컨 이야기를 꺼내 는 것도 환자를 위해 생각해볼 문제라고 여겼다. 두 사람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백 부에게 상의했다. 그런데 백부도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죽는 것도 억울할 게고, 그렇다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유 언을 재촉하는 것 또한 도리가 아닐지도 모르니. " 뎔국 그 문제는 흐지부지되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흔수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여전히 아 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그저 잠을 자는 것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기뻐했다. "그저 저렇게 편히 잠들어 있으면 곁에 있는 사람도 힘이 덜 드니 고맙지 뭐냐. " 아버지 는 이따금 눈을 뜨고는 갑자기 아무개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브런데 그 아무개는 바 로 조금 전까지 곁에 앉아 있던 사람의 이름에 한해 있었다. 아버지의 의식에는 어두운 곳 과 밝은 곳이 생겨서 그 밝은 곳만이 어둠을 레매는 횐 실처럼 어느 정도 사이를 두고 연속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어머니가 혼수 상태를 일상적인 수면으로 오해한 것도 무리는 아니 었다. 그러더니 아버지는 엄점 혀가 꼬부라졌다. 무엇인가 말을 꺼내도 끝이 명료하지 않게 끝 나기 때문에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가 많았다. 그래도 말하기 시작할 때는 위 독한 상태의 환자라고 생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찬 소리를 냈다. 그러면 우리들도 물론 평소 보다 더 큰 소리를 지르면서 아버지의 귓가에 입을 갖다대야 했다. "더리를 식히면 기분이 좋으세요? " "응. " 나는 간호원을 상대로 아버지의 물 베개를 바꾸어서 새로운 얼음을 넣은 빙낭을 이마 위 에 얹어놓았다. 깨진 모난 얼음 파편이 봉지 속에서 고르게 자리를 잡을 동안 나는 아버지 의 머리가 흘딱 벗어진 이마 끝에서 그것을 부드럽게 누르고 있었다. 그때 형이 복도를 따 라 들어와버 말없이 우편물을 건네주었다. 비어 있는 왼손을 내밀어 그 우편물을 받아든 나는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보통 편지에 비해 왜 무거 웠다. 봉투 또한 보통 봉투가 아니었다. 그리고 보통 봉투에는 들어갈 수도 없는 분량의 편 지였다. 반지로 싸서 봉한 자,리를 풀로 정성스럽떼 붙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형에게서 건네받았을 때 즉시 등기우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뒤로 돌려 보니 거기에는 선생 의 이름이 또박또박 씌어 있었다. 손을 놓을 수 없는 나는 그 즉시 겉봉을 뜯을 수 없어서 일단 그것을 품속에 넣었다. 그날은 환자의 상태가 유난히 나빴다. 내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아떠지 곁을 떠났을 때 복도에서 마주친 형은 "어디 가니 ? " 하며 마치 보초병 같은 말투로 물었다. "아무래도 상태가 좀 이상하니 되도록 아버지 곁에 있도록 해라" 하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품속에 넣었던 편지에 손도 대보지 못한 채 다시 병 실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눈을 뜨고 그곳에 쭉앉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저기는 누구, 여기는 누구라고 일일이 설명해주자 아버지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 였다. 끄덕이지 않을 때는 어머니가 큰소리로 아무개입니다, 이제 아셨어요? 하고 다짐을 받 기도 했다. "정말 여러 가지로 폐를 끼치게 되었군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혼추 상태에 빠졌다. 머리맡을 에워싸고 있던 사람 들은 한동안 말없이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일어서서 옆 방으로 갔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일어섰다. 드디어 나도 세번째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 으로 갔다. 내가 자리를 뜬 것은 아까 품속에 넣어둔 우편물을 뜯어 보아야겠다는 목적 때 문이었다. 그것은 환자의 머리맡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당히 두툼해서 거기서 금방 다 읽을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소 여유가 있을 때 읽으려고 했었다. 나는 섬유질이 강한 겉봉을 마치 갈퀴질을 하듯 잡아 찢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가로 세 로로 줄이 있는 종이에 단정하게 쓴 원고 같은 것기었다. 그리고 봉하기 쉽게 네모로 접혀 있었다. 나는 접혀진 양지를 반대로 꺾어서 읽기 좋게 폈다. 나는 그 많은 종이에 씌어진 내용이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와 동시에 병실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이 글을 읽기 시작해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아버지 는 반드시 어떻게 된다, 적어도 형이나 어써니, 아니면 백부가 나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따라서 나는 선생에게서 온 우편물을 마음놓고 읽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한참 망설이다가 맨 첫 페이지 를 읽었다. 그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었다. 당신이 내 과거를 알고자 했을 때 입을 다물어야 했던 용기 얼는 나는 지금 당신에게 그 것을 거리낌없이 말해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당신이 상경 하기를 기다리는 동한 다시 잃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자유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지 않으면 내 과거를 당신에게 간접적인 경험으로써 들려줄 기 회를 영원히 놓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 그렇게도 내게 약속했던 말이 완전히 거짓이 입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 해야 할 이야기를 부득이 글로 들려드리기로 했습니다. 나는 거기까지 읽고는 이렇게 긴 글이 왜 씌어졌는지를 비로소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내 취직 문제 같은 것에 대해 선생이 편지를 보내을 리는 엄을 거라는 생각 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글 쓰기를 싫어하는 선생이 왜 그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 게 써서 나에게 보낼 생각이 들었을까. 선생은 왜 내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까. '까유를 얻었으니 이야기하겠다. 그러나 그 자유는 또한 영원히 잃게 될 수밖에 없다. '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이면서 그게 과연 무슨 말일까 하고 고심했다. 나는 갑따기 불안 에 사로잡혔다. 나는 계속해서 다음을 읽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병실 쪽에서 큰소리로 나를 부르는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다시 깜짝 놀라서 일어섰다. 복도를 뛰어서 집안 식구 모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방에 들어서는 순간 드디어 아버지에게 최후의 순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병실에는 어느새 의차가 와 있었다. 되도록 환자를 편하게 해주려는 뜻에서 관장을 시도 하는 중이었다. 간호원은 어젯밤의 피로를 풀기 위해 별실에서 자고 있었다. 옆에서 돕는 데 익숙하지 않은 형은 서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형은 내 얼굴을 보자 "좀 도와줘" 하 며 자신은 자리에 앉았다. 나는 형을 대신해서 기름종이를 아버지 엉덩이에 댔다. 아버지는 조금 편안해진 듯했다. 30분 정도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있던 의사는 관장 결과 를 확인한 후 또 오겠다고 하고는 돌아갔다. 돌아갈 때,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언제라도 불러달라는 말을 덧붙 였다. 나는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병실에서 물러나와 선생의 편지를 읽으려 했 다. 그러나 나는 초금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자마자 또 형이 큰소리로 부를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 부르게 되면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손이 떨렸다. 나는 선생의 편지를 별생각없이 그저 페이지만 넘겼다. 나는 봄꼼하고 차분하게 칸을 메 운 글자의 획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나 그것을 읽을 여유는 없었다. 문장을 여기저기 골라서 읽을 여유마저 갖지 못 할 것 같았다. 나는 맨 끝 페이지까지 들추어보고 다시 원래대로 접어서 책상 위에 두려고 했다. 그매 우연히 결말에 가까운 한 구절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이 편지가 당신 수중에 들어갈 무협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세 상을 떠난 뒤일 것입니다. 타는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술렁이던 내 가슴이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 는 끝 페이지부터 다시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에 한 구절섹의 비율로 거꾸로 읽 어나갔다. 나는 눈깜짝할 사이에 내가 알아야 할 일을 알려고 어른거리는 글자를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으려 했다. 그때 내가 알려고 했던 첫은 다만 선생의 안부뿐이었다. 선생의 과거, 언젠가 선생이 나에게 들려주겠다고 약속한 베일에 싸인 그 과거, 그런 것은 전혀 알 고 싶지 않았다. 나는 거꾸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업는 이 긴 편지를 가슴 졸이며 접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의 상태를 보러 병실 문앞까지 갔다. 환자의 머지 맡은 의외로 조용했다. 의지할 곳 없는 사람처럼 지친 얼굴을 하고 그곳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손짓으로 불러서 "어떻습니까, 상태는?"하고 물었다. 그러자 어 머니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어떠세요? 관장을 하고나니 기분이 좀 좋아지셨어 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커지는 고개 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분명히 "고맙다"라고 했다. 아버지의 정신 상태는 의외로 몽롱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병실을 물러나 내 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들어간 나는 시계를 보면서 기차 시간표를 흠어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서서 허리띠를 고쳐 묶고는 소맷자라 속에 선생의 편지를 넣었다. 그런 다음 부엌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정신없이 병원으로 뛰어 갔다. 나는 아버지가 2,3일 정도는 더 지탱할 수 있을지를 의사에게 분명히 물어보려 했다. 주사 를 놓아서라도 더 지탱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려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의사는 부재중이었 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시간이 업었다. 마음도 안정되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인력거를 타고 역으로 달려갔다. 나는 역 벽에다 종이 쪽지를 대고 연필로 어머니와 형 앞으로 편지를 썼다. 편지는 극히 간단한 것이었다. 사정 이야기도 하지 않고 떠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 쓴 편지를 급히 우리 집에 전해 달라고 인력거꾼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용감무쌍하게 소쿄행 기차에 뛰어 올라타고 말았다. 나는 굉굉 울리는 삼등 열차 안에서 소맷자락 안에 넣어둔 선생의 편지를 다시 꺼내서 비로 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갔 다. 제 3부 선생과 유서 나는 이번 여름 당신으로부터 두세 번 편지를 받았습니다. 도쿄에서 좋은 직장을 얻고 싶 으니 잘 부탁한다고 씌어 있었던 것은 분명히 두런째 편지라고 기억합터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는 어떻게 해보려고 했습니다. 적어도 람장만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백 하건대 나는 당신의 부탁에 대해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잘 알다시피 교제 범위가 좁다기보다는 이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나 는 그러한 노력을 시도할 긴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중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틈 속에서 이대로 미이라처럼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무렵의 나는 "아니면"이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일 때마 다 몸이 오싹했습니다. 나는 절벽 끝까지 뛰어가서 갑자기 밑바닥이 보이지 않쓴 골짜기를 들여다본 사람처럼 비겁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비겁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번민했습러다. 유감스럼게도 그때 나는 당신의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당신의 진로 문제, 당신의 호구지책 같은 것은 나에게 있어서 전 혀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찌되든 상관얼었습니다. 나는 그런 것에 신경쓸 정도로 여유 있는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귄지꽃이에 꽃아놓은채 여전히 팔짱을 끼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집 아들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며 졸업하자마자 취직, 취직하면 서 조바심을 내는 것일까, 나츤 오히려 불쾌한 기분으로 먼 곳에 있는 당신에게 그런 식으 로 한마디 던지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서운해할 것 같은 당신에 대해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는 것이라 생각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그건 결코 당신을 화나게 하기 위해 실없이 둘러대는 말이 아닙니다. 내 본의는 다음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믿 습니다. 어쨌든 무슨 소식이든 전해야 했는데 잠자코 있었던 나의 이 무심함에 대해 깊이 사과하는 바입니다. 그후 나는 당신에게 전보를 쳤습니다. 사실 그때 나는 잠시 당신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알고 싶어하던 내 과거를 숨김 없이 얘기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쿄로 갈 수 있다는 당신의 답신에 실망한 나는 한동안 그 전보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 다. 당신도 전보만으로는 미홉했는지 그후 다시 긴 편지를 보내주어서 상경하기 어려운 당 신의 처지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무례한 사나이라고 생각할 까닭이 없 습니다. 한 분밖에 안 계신 아버지의 병환을 됫전으로 돌리고 퍼떻게 떠나을 수 있겠습니까. 그 아버지의 생사를 잊고 있었던 내 태도야말로 괘씸할 따름이지요 - 사실 나는 그 전보 를 쳤을 때 당신의 아버지에 대해 잊고 있었 니다. 당신이 도쿄에 있었을 때는 낫기 어려운 병이니 주의해야 한다고 그렇게도 충고했으면서도. 나는 이렇게 모순된 인간입니다. 아 니, 내 머리보다는 잊씨 어려운 내 과거가 나를 압박한 결과 이렇게 모순된 인간으로 변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점에 있어서도 충분히 나의 아집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용서를 받아야 합 니다. 당신의 편지 -당신이 보내준 최후의 편지 -를 읽었을 때 나 는 당신에게 그저 미안한 생각이 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뜻의 답장을 모내려고 붓 을 들었지만 한 줄도 쓰지 못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이왕 편지를 쓸바에야 이런 식으로 써서 보내고 싶었으며, 그러기에는 다소 시기가 빠것 같아 그만두었던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곳으로 올 필요가 없다는 전보를 다시 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후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글을 더본 적이 업는나로서는 어떤 사건이 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뜻대로 표현할 수 업는 것이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 다. 나는 자칫 당신에 대한 나의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런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하고 붓을 놓아도 어찌할 수 엄었습니다. 나는 한 시간도 채 못되어 또다시 쓰고 싶너졌던 것입니다. 당신이 볼 때 그것온 책임감을 중히 여기는 내 성격 닻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요. 하긴 나도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퍼 나는 바깥 세상과 거의 접촉을 끕고 살아가는 사람이므로 나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의무라는 것이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나는 그런것에 얽깨여 살아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 러나 나는 결코 의무라는 의식이 둔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당신도 잘 알Bn지만 오 히려 나는 너무 예민해서 어떤 자극에도 견딜 수 엄을 만큼 의지력이 약해 소극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 약속한 이상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몹시 괴로워 견딜 수 업을 것입니아. 그래서 나는 당신에 대채 그러한 감정이 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놓아둔 붓을 집어들 어야 합니다. 게다가 나는 쓰고 싶습니다. 의무감을 제쳐두고라도 내 과거를 쓰고 싶은 것입니다. 내 과 거는 나만의 경험이니 나만이 소유할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을 남에 게 말해 주지 않고 죽는다는 것은 싸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듭니 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업는 사람에게 내 경험을 줄바에야 차라리 내 생명과 함께 매장해 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여기에 당신이라는 한 사나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 과거는 간접적으로나마 타인의 지식은 되지 않고 결국 내 과거로 끝났을 것입니다. 나 는 수천만이나 되는 일본인 중에서 오직 당신에게만 내 과거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진실한 사람이니까요. 당신은 성실하게 인생 그 자체에서 산 교훈을 얻 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조금도 꾸밈얼이 당신의 머리 위에 던쩍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무서워하거자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주시하고는 그 중에서 당신에게 참고가 될 만한것을 포착하십시오. 내 가 말하는 어둘다는 의미는 본디 윤리적으로 어둘다는 것입니다. 나는 윤리적으로 태어난 사나이입니다. 또 윤리적으로 자란 사나이입니다. 그 윤리상의 생각은 오늘날의 젊은이와 상당히 다른 데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달라도 엄연히 나 자신의 것입니다. 급한 대로 대용해 쓰는 빌린 옷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힘찬 도약을 하려는 당신에게는 어 느 정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현대의 사상 문제에 대해 자주 내 의견을 듣고자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 다. 그리고 그런 문제페 대한 내 태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을 경멸까 지는 안했지만 결코 존중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 깊이를 갖지 못했으며 당 신은 자신의 과거를 갖기에는 삶에 있어서 너무나 연륜이 짧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당신의 의견에 대해 나는 가끔 웃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딘지 불만스서운 표정을 짓곤 했지요. 결국 당신은 나의 과거를 한 편의 그림처럼 당신 앞에 편쳐달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당신이라는 사람을 높이 사게 되었습니다. 대담하게도 내 마음속에서 어떤 살아 있는 것을 파악하려는 결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내 심장을 터뜨려 정열적으로 흐르는 피를 훌쩍홀쩍 아시려고 했기 매문입니다. 그때 나는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죽는 것 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훗날을 약속하고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스스로 심장을 쩐어서 그 피를 당신의 얼굴에 끼얹으려 하고 있습니다. 내 심장 의 고동이 멈출 때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면 나는 쯔것으로 만족합니 다. 내가 양친을 잃은 것은 스무 살도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언젠가 아내가 당신에게 이야기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두 분은 같은 병로 세상을 떠나셨습너다. 더구나 당신이 의아해 한 것처럼 거의 동시라고 할 정도로 연달아 돌아가셨슘니다. 사실 아버지의 병은 무서운 장티푸스였습니다. 그젓이 곁에서 간호를 하셨던 어머니에게 전염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두 분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소충한 독자였습니다. 우리 집은 왜 부유하여 나는 아무 부족함 엄이 자랐습너다. 나는 내 과거를 돌아볼 때 그때 양친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적어 도 아버지나 어머니 중에 어느 한 분만이라도 살아 계셨다면 그 대범한 기망을 오늘날까지 지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듐니다. 어이얼게도, 나는 이 세상에 흔자 남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너무 어려 세상 물정에 도 어둡고 경험도 엄고 분별도 얼었슘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머니는 그자리에 있을 수 업는 처지였습니다. 따라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도 모르고 짐종을 맞았습니다. 그러 나 처머니는 그것을 알고 계셨는지, 아니면 곁에 있는 사람이 말해준 것처럼 실제로 아버지 가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믿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다말 숙부에게 모든 일을 부탁했습니다. 어머니는 그자리에 있던 나를 가리키면서, "아무쪼록 이 아이를 잘 부탁드리어요" 하소 말했습니다. 오래전에 부모님은 내가 도쿄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 문제도 부탁하려는 것 같았습러다. 그래서 "도 쿄로"라고만 덧붙이자 숙부는 바로 뒤를 이어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대답 했습니다. 어머니는 심한 열에 견딜 수 있는 체질이었는지 숙부는 "정말로 대단한 분이니다 "라고 하며 어머니를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할 때 과연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습L다.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가 걸린 그 무시무시한 병명을 알고 있었니다. 그리고 본인도 그 병에 전염되었 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도 그 병으로 세상을 터나리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는지 왁실치 않습니다. 게 다가 열이 높을 때 어머니의 입에사 나오는 말아무리 그것이 사리에 맞는 분명한 것이라 해 도 어머니는 그것을 전혀 기억하시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터‥‥‥ 하지만 = 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너다. 다만 어떤 일을 이런 식으로 해석 하기도 하고 또 너무 복 잡하게 생각하는 내 버룻은 이미 그때부저 조그씩 싹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 에게도 미러 말해두어야 하지만, 그 실례(출린)로는 당면 문제와는 그다지 관계도 얼는 이러 기술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겨집러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읽어주십시오. 타고 난 성격 때문인지, 개인의 행위에 있어서 하는 행동에 있어서 그후 나는 더욱더 다른 사람 의 퍽의(점볶)를 의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나의 번민과 고뇌에 상당히 작용』 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니 기억해두십시오. 이야기가 본줄거리를 벗어나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지므로 다시 되돌아갑시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긴 편지를 쓰는 데 있어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어쩌면 다 소 침착한 편이 아닌 생각하고 있숨니다. 온 세상이 잠들면 들리기 시작하는 저 전차의 ? 림도 이제 끊어졌습너다. 덧문 밖에는 어느덧 애틋한 벌레의 을음소리가 이슬이 맺히는 가 을을 은근히 생각나게 하는 격조로 회미하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옆방에서 곤히 자고 숱니다. 펜을 들자 한자 한획이 만들어지면처 펜 끝에서 울리고 있었 다. 나는 오히려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종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다소 글을 써보지 않아서 이 야기가 옆으로 빗나가는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머리가 흔란해져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쪘든 이 세상에 흔자 남은 나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숙부를 의지하는 길 외에는 달리 도 씨가 얼었습니다. 숙부는 또한 모든 것을 떠 맡아서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리고 내 회망대로 도쿄로 나갈 수 있게 주선해 주었습니 다. 나는 도쿄로 나와서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때의 고등학교 학생은 지금보다 훨씬 과 격하고 거칠고 촌스러됐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학생은 한밤중에 어떤 직공과 싸워서 나막 신므로 그의 머리에 상처를 입힌 일도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서 서로 정신얼이 치고박다가 결국 그 학생은 교모를 상대방에게 뺏기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그 모자 뒤에는 마름모볼 의 흰 천에 그 학생의 이름이 명확하게 씌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복잡해져 하 마터면 그 직공은 경찰에서 학교로 조회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나서서 애쓴 결과 일이 커지지 않고 잘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절도있는 환경에서 자란 당신들에게는 그렇게 난폭한 행동이 분명 어처구니없게 느껴질 것입니다. 나 역시 너무나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대신 그들은 오늘날의 학생들에게서는 찾아블 수 엄는 순박한 점을 갖고 있 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내가 다달이 숙부로부터 받은 돈은 당신이 부친에게서 받은 학자금 에 비하면 훨씬 적었습니다(물론 물가 도 다르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급생 중에서 경제적으로는 결코 남을 부러할 만 큼 쪼들 릴 정도의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지듬 돌이켜보면 오히려 남의 부러움을 사는 편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다달이 보내주는 생활비 외에 책간-나는 그 시절부터 책을 아주 좋아 했습니다-이나 비상금을 숙부에게 자주 청구해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 었으니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숙부를 철석같이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감사하는 마음드로 숙부 를 고맙게 여기고 존경했습니다. 숙부는 사업가였습니다. 현회 의원도 되었습니다. 그래서인 지 정당과도 어떤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버지의 친아우이지만 그런 대외 활동면에서 볼 때 숙부는 아버지하고는 성격이 전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조상이 물 려준 유산을 소중하게 지켜가는 막실한 성품을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낙이라면 차를 즐기고 꽃을 가꾸며 시집 읽기를 좋아하시는 정도였지요. 서화와 골동품에도 취미가 있으 셨던 것 같았습니다. 집은 시골에 있었지만 5리쫌 떨어진 도시-그 도시에는 숙부가 살고 있 었습니다-에서 가끔 고물상이 똑자나 향로 등을 가져와서 아버지에게 보이기쏘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버지는 부자였지요. 비교적 품위있는 취미를 지닌 시골 신사였습니 다. 그러니 성격상으로 볼 때 활달한 숙부하고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 면서도 두 사람은 이상하게 사이가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숙부를 당신보다 훨씬 활동적인 믿음직스런 사람이라는 말씀을 마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처럼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 려 받은 사람은 아무래도 그 특유의 재능이 둔해진다, 즉 남과 경쟁할 필요가 엄으니까 그 러한 재능을 발휘하지 않게 괸다고도 했습니다. 그 말은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오히려 내 마음가짐에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너포 잘 기억해두어라. " 그때 아버지는 일부러 내게 눈길을 돌리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씀을 잊 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 정도로 믿고 칭찬한 숙부를 내가 어찌 의심할 수 있었겠습 니까. 그러잖아도 나는 숙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모든 면에서 그분의 도움을 받지 많으면 안되었던 나에게 있어 이제 그분은 단순히 자랑거리만은 아니였습니다. 나의 존재에 반드시 필요한 인간이 된 것입니다. 내가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처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부모님이 떠나버린 우리 집 에는 숙부 부부가 새로운 주인으로 들어와 살고 있었습니다. 숙부 부부가 우리 집으로 이사 를 오기포 한 것은 내가 도쿄로 가기 전에 결정된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흘 로 남은 내가 집에 없는 이상 그링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숙부는 시내에 있는 몇몇 사업체에 관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업상으로는 그때 살던 집에서 기거하는 편이 5리나 떨어진 우리 집으로 옳겨와 사는 것보다 편리파다 하며 웃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어떻게 집을 처리하고 내가 도쿄로 나 가느냐는 논의가 있을 때 숙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습니다. 우리집은 유서깊은 가문으 로, 그 부근에서는 그래도 좀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신의 고향 마을에서도 그럴 것입니다만 시골에서는 상속인이 있는데도 유서깊은 집을 없애거나 판다는 것은 큰 사건이 되는 것입 니다. 지금의 나라면 그 정도의 일쯤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겠지만, 그 당시는 아직 어려서 도쿄로는 나가고 싶고 집은 그대로 두어야 했기에 그 문제로 상당히 고민했었지요. 숙부는 할수없이 비어 있는 우리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내에 있는 집도 그대로 두고 두 집을 왔다갔다하는 편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이의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나는 도쿄로 나갈 수만 있다면 어떤 조건이라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애 같은 나는 고향을 떠났어도 여전히 마음의 눈으로 고향집을 그리며 바라보고 있었 습니다. 거기에픈 아직도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나그네와 같은 마음에서 그리워 하고 있었습니다. 방학이 되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아무리 도쿄를 그리워하며 고향을 떠나온 나였지만 마음 든든했던 것입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지내다가 방학이 되면 돌아갈 수 있는 그 고향집을 자주 꿈에서 보았습니다.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숙부는 어떤 식으로 양쪽 집을 왕래하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온 가족이 우리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평소 에는 시내에 있었겠지만 방학이 되자 휴양 겸 기분 전환도 할 겸 시골에 와 있었습니다. 숙 부 가족 모두 내 얼굴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나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보다 오히려 더 활 기 넘치는 집안 분위기에 기뻐했습니다. 숙부는 원래 내 방이었던 곳을 차지하고 있던 맏아 들을 쫓아내고 나를 들어가게 했습니다. 방이 많으니 나는 다른 방도 괜찮다고 하며 사양 했지만 숙부는 그래도 엄연히 네 집이니까 하면서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가끔 부모님 생각이 나긴 했지만, 나는 아무 불편한 일없이 그해 여름을 숙부의 가족과 함께 지내고는 다시 도쿄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그해 여름의 사건으로 내 마 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 것은, 이제 갓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에게 숙부 부부가 입을 모 아 결혼을 권유한 일이었습니다. 숙부 부부는 그 이야기를 서너 번이다 한 것 같습니다. 나 도 처음에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놀라기 만 했습니다. 두 번째는 분명히 거절했습 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드디어 그 이유를 반문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간단했습니다. 빨리 아내를 맞이하여 이 집으로 돌아와서 돌아가신 부친의 뒤를 이어 가문을 이끌어가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은 방학이 되면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 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내가 필요하니까 결혼을 해야 한다. 이 치상으로 볼 때 그 이야기는 일리가 있습니다. 특히 시골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수 긍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도 절대로 그렇게 하기가 싫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도 쿄로 공부를 하러 나간지 얼마 안된 나는 망원경으로 사물을 보듯, 결혼 같은 것은 먼 훗날 의 일로만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숙부의 뜻을 거절하고 드디어 다시 고향을 떠났습니 다. 나는 혼담을 그것으로 잊고 있었습니다. 내 주위에 있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살림을 한 답시고 쪼들려서 궁한 띠가 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 자유스러웠습니다. 그리 고 모두 미혼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보이는 학생들 중에도 잘 알고 보면 가정 사정으로 인하여 부득이 아내를 맞이한 자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어린애 같은 나는 그런 것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특별한 처지에 있었던 사람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 해서인지 가능한 한 학생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가정내 이야기는 거의 입밖에 내지 않았 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나 자신이 그런 경우였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다만 어린애처럼 마음 가볍게 학업에만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학년말에 나는 또 고리짝을 얽어매고 부모님의 모가 있는 시골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사시던 우리 집에서 다시 숙부 부부와 그 아이들의 변하지 않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나는 또다시 고향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 냄새는 나에게 여전히 그리운 것이었습니다. 1학년의 단조로움을 깨는 변화로서도 고마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길러낸 그 고향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곳에서 나는 다시 숙부로부터 결혼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숙부의 말은 지난해의 권유를 되풀이한 것뿐이었습 니다. 이유도 지난번과 같았습니다. 다만 지난번에 권유했을 때는 아무런 대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분명히 가장 중요한 당사자를 내세우고 있어서 나를 더욱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습 니다. 그 당사자란 바로 숙부의 딸, 즉 나의 사촌 누이였습니다. 그 누이동생과 결혼하면 서 로가 좋다. 숙부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도 살아 계실 때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하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숙부에게 그런 식의 말을 한 것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숙부의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된 것으로, 미리 눈치챈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놀랐습니다. 놀랐지만 숙부의 희망이 무리가 아니라 는 것도 잘 알았습니다. 나는 둔해서였을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 사촌 누 이동생에게 무관심했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시내에 있는 숙부 집에 자주 놀러 갔었습니다. 그날 갔다 그날 돌아오기도 하고, 거기서 며칠 묵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이동생하고는 그때부터 친했습니다. 당신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오빠와 누이동생간의 연애가 성립된 예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내 편의대로 부연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거의 같이 있다시피 하고 너무 친한 남녀간에는 연애에 필요한 자극제라 할 청신한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향내는 향을 피운 순간 느낄 수 있듯이, 또 술맛은 술을 입에 대는 순간 알 수 있듯이, 연애의 느낌에도 그러 한 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순간이 없이 지나쳐버리면 서로 스스럼이 없 어지고 친근감만 짙어질 뿐 연애의 감정은 점점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 을 바꾸려 해도 도저히 누이동생을 아내로 맞이할 마음은 나지 않았습니다. 숙부는 만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결혼을 연기해도 좋다고 했습니 다. 그렇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는 속담도 있듯이 가능하다면 당장 약혼만은 해두는 것 이 어떻겠느냐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마음에 없는 나로서는 결국 마찬가지 이야기였 습니다. 나는 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숙부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누이동생은 울었습니 다. 그녀는 나와 맺어지지 않아서 슬픈 것이 아니라 여자로서 청혼을 거절당한 것이 창피하 고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내가 누이동생을 사랑하지 않듯이 누이동생도 나를 사랑하지 않 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도쿄로 나갔습니다. 내가 세 번째로 고향에 내려간 것은 그후 또 1년이 지난 초여름이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학년말 시험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쿄를 도망쳐 나왔습니다. 나로서는 고향이 그토록 그리웠 던 것입니다. 당신도 그런 기억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만, 태어난 곳은 공기의 색깔이 다릅니 다. 흙 냄새 또한 다릅니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아기자기하게 감돌고 있습니다. 1년 중 7,8월의 두 달을 그러한 분위기에 감싸여, 은신처에 들어간 뱀처럼 잠자코 있는 그 시간이야 말로 나에게는 더없이 포근하고 안락한 때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단순한 나는 사촌누이와의 결혼 문제에 대해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싫은 것은 거절한다, 거절해버리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깨끗해진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 습니다. 그러니 숙부의 뜻에 내 의지를 굽히지 않았는데도 나는 오히려 태연할 수 있었습니 다. 따라서 지난 1년간 그런 문제로 고민을 한 적이 없었으므로 변함없이 활기찬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와 보니 숙부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과거의 호의적인 기색으로 나를 품에 안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범하게 자란 나는 돌아온 4,5일간은 그런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내다가 어떤 기회에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 다. 그런데 묘한 것은 숙부의 태도만이 아니었습니다. 숙모도 이상했던 것입니다. 사촌누이 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학교를 나와서 도쿄의 고등상업학교에 진학할 생각이라며 편지를 통해 그 상황을 문의했던 숙부의 아들까지 이상했습니다. 그러자 나는 내 성격상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내 마음이 이렇게 변했 을까. 아니, 왜 저쪽이 저다지도 변했을까. 갑자기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거슴츠레한 내 눈을 씻어주어 세상을 바로 보게 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마음 한 구석으로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살아 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 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긴 그 무렵에도 나는 결코 이치에 어두운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미신의 덩어리도 강한 힘으로 내 피 속에 잠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잠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혼자서 산에 올라 부모님의 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애도의 뜻과 감사의 마음으 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내 앞날의 행복이 이 차가운 돌 밑에 누워 있는 그들의 손에 달려 있기라도 하듯, 그들에게 나의 운명을 지켜달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혹 시 당신은 웃을지도 모르겠군요. 나 역시 웃음이 나오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 나 나는 그러한 인간이었습니다. 나의 세계는 손바닥을 뒤엎듯이 변했습니다. 하긴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첫 경험은 아니 었습니다. 그러니까 내 나이 16,7세 때였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사실 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그 놀라움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내 눈을 의 심하며 비볐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정말 너무나 아름답구나 하며 외쳤습니다. 16,7세라 하면 사내도 여인도 속된말로 총각티, 처녀티가 나게 마련입니다. 성에 눈뜬 나 는 세상에 있는 아름다운 것의 대표자로서 처음으로 여인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 지 이성 그 자체에 대해 조금도 몰랐던 눈먼 장님의 눈이 갑자기 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내가 숙부의 태도에 생각이 미친 것도 그와 똑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이 뜨였던 것입니다. 아무 예감도, 준비도 없이 너무나 갑자기 말입니다. 어느 순간, 그와 그의 가족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 보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있다가는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숙부에게 맡겨두었던 재산에 대해 완전히 알아두지 못한다면 돌아가신 부 모에 대해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부는 너무나 바쁘 다는 말처럼, 잠자리가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이틀 정도 집에 돌아오면 사흘쯤은 시내 쪽에 서 지내는 식으로 양쪽을 왕래하면서 왠지 모르게 침착성을 읽은 얼굴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습니다. 아무런 의심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는 나도 숙부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바쁘다고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일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재산에 대해 시간이 걸리는 얘기를 하려는 내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다만 나를 피하려는 구실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 다. 나는 좀처럼 숙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나는 숙부가 시내에 첩을 두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나는 그 소문을 중학교 동급생 이었던 친구로부터 들었습니다. 숙부라고 해서 첩을 두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아버지가 살 아 계실 때 그런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친구는 그 얘 기 외에도 숙부에 대해 떠도는 소문을 들려주었습니다. 한때 사업이 기울었으나 최근 2,3년 사이에 갑자기 번창해졌다는 것도 그 한 가지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는 숙부를 더욱 더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나는 숙부와 담판을 지었습니다. 담판이라고 하면 조금 귀에 거슬릴지 모르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그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숙부는 나를 어린애 다루듯이 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의심에 찬 눈으로 숙부를 대했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해결될 리 가 없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지금 그 담판의 전말을 상세하게 쓰지 못할 정도로 앞이 바쁩니다. 실 은 나는 이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부터 하고 싶은 것을 겨우 꾹 참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을 만나 조용히 얘기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 나 는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못할 뿐더러 귀중한 시간을 아낀다는 뜻에서 쓰고 싶은 일도 생 략해야 합니다. 당신은 아직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이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 는 악인은 없다고 말했던 것을. 많은 선량한 사람이 유사시에는 갑자기 악인이 되니까 방심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을. 그때 당신은 나더러 좀 흥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습니 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선량한 사람이 악인으로 변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한마디로 돈 이라고 대답했을 때 당신은 못마땅해하는 얼굴을 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그 얼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고백하지만 나는 그때 숙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보 통 사람이 돈을 보고 갑자기 악인이 되는 예로서,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는 예로서 증오와 항께 나는 숙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대답은 심오한 사상에 접하고 싶어하는 당신에게는 어딘가 부족했을 것입니다. 진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 로서는 그것이 산 대답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흥분해 있었으니까요. 나는 차가운 머리로 새 로운 것을 말하는 것보다는 뜨겁게 달은 혀로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다 더 살아 있 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피의 힘으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말이야말로 사람의 마음 을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강한 것에 가장 강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 다. 한 마디로 말해서, 숙부는 내게 남겨진 재산을 속였던 것입니다. 그 일은 내가 도쿄로 나 와 있던 3년 동안 쉽게 행해졌습니다. 모든 것을 숙부에게 맡기고 마음을 푹 놓고 있던 나 는, 쉽게 말해서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바보였습니다.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고상하다고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때의 나 자신을 돌아보면 왜 좀더 나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던 가 하는 생각과 함께 정직하기만 했던 나 자신이 그렇게 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다시 한 번 그때 그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당신이 알고 있는 나는 이미 속세에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사람이라는 것을. 더 럽혀진 햇수가 많은 사람을 선배라고 부른다면 나는 분명히 당신보다 선배일 것입니다. 만일 내가 숙부의 뜻대로 사촌누이와 결혼을 했다면 그 결과 나는 물질적인 면에서 상당 히 유리한 입장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생각해 보나마나한 문제입니다. 숙부는 딸을 나에게 억지로 떠맡기려는 심산이었습니다. 집안을 위해서라는 좋은 뜻에서가 아니라 아주 야비한 이해심에 사로잡혀 내게 결혼 얘기를 꺼냈던 것이지요. 나는 사촌누이를 사랑하지도 싫어하 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숙부의 제의를 거절한 것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더군 요. 속는다는 것은 숙부나 나나 마찬가지였지만 기만당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사촌누이와 결혼을 하지 않는 쪽이 상대방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금은 내 고집대로 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특히 그 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당신의 눈에는 그러한 것이 분명 어이없는 고집으로밖에는 보 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나와 숙부 사이에 다른 친척이 끼여들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친척도 전혀 믿 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숙부가 나를 기만했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사람도 반드시 나를 기만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칭찬하던 숙부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 혀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그들은 나를 위해 내 소유로 남아 있는 재산에 관한 모든 것을 매듭지어주었습니 다. 그것은 돈으로 따지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것을 잠자코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숙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또한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소송을 할 경우 모든 것이 매듭지 어지려면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겁이 났습니다. 나는 학업에 힘써야 할 학생의 신분으로서 그 귀중한 시간을 빼앗겨야 한다는 사실에 괴롭기만 했습니다. 나는 궁리 끝에 읍내에 사는 중학교 동창에게 부탁해서 내가 받은 것을 모두 돈으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 정도로 끝내기를 잘했다고 충고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영원히 고향을 떠나리라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다시는 숙부의 얼굴을 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나는 고향을 떠나기 전에 다시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묘를 찾아갔습니다. 나는 그것을 마 지막으로 그 묘를 찾아간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의 옛친구는 그 일을 내 말대로 처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도쿄로 떠나온 지 아주 오래 지나서야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시골에서 논밭을 팔려 해도 쉽게 팔리지 않고 그러한 약점으로 인해 돈을 떼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때 내가 받은 돈 은 시가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액수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게 남은 재산이라 고는 집에서 갖고 나온 얼마 안 되는 공채와, 나중에 그 친구가 보내온 돈뿐이었습니다. 그 렇게 해서 내게 남겨진 유산은 원래보다 엄청나게 줄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내가 잘못해서 줄어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속상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생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나오는 이자의 절반도 쓰지 못했습 니다. 그렇듯 여유 있는 나의 학생 생활이 나로 하여금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처하게 했 습니다. 돈에 여유가 있었던 나는 시끄러운 하숙집을 나와서 따로 집을 마련하려는 생각도 해보았 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살림살이도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집안 살림을 맡길 할머니라도 두어야 했던 것입니다. 또 집을 비울 때도 아무 걱정 없이 맡길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을 두어야 하는 까다로움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심심하던 차에 집이나 한번 구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산책도 할 겸 홍고다이 서 쪽으로 내려가서 고이시가와의 언덕을 따라 전통원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근방은 전차길 이 되면서 모습이 너무나 달라졌는데, 그 무렵 왼쪽은 병기제작소 흙담으로, 오른쪽은 들판 도 언덕이라고도 할 수 없는 빈터가 온통 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나는 그 풀숲에 서서 아 무런 생각도 얼이 건너편의 벼랑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도 경치가 좋기는 하지만 그 당시 에는 그쪽의 풍경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로 눈을 돌리더라도 짙푸른 풀 숲으로 우거진 그 일대는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문득 혹시 그 근 방에 괜찮은 집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초원을 가로질러 좁다란 길 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아직 도회지처럼 발전하지 못한 그 근방의 즐비한 집들은 당시로서는 몹시 낡고 지저분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노천을 벗어나 골목골목 안 다닌 곳 없 이 그 근방을 빙빙 돌아다녔습니다. 마지막에는 막과자 가게의 아주머니에게 이 근방에 아 담한 셋집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글쎄요" 하며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셋집은 좀..." 하면서 전혀 집히는 데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 있어 봤자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다시 "일반 가 정의 하숙은 안되겠습니까? "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조 용한 가정집에서 하숙을 하는 것이 오히려 따로 살림을 차리느라 번거롭지도 않고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게에 앉아서 아주머니가 알고 있는 그 집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어느 군인 가족이라기보다 그 유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아주머니의 말 에 의하면 그 집주인은 청일전쟁 때인지 언제 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죽었다는 것이었습니 다. 1년 전쯤만 해도 이치가야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근처에 살았었는데 마구간까지 있는 그 집이 너무 넓어서 그것을 팔고 이곳으로 이사왔지만 식구도 없어 적적하다며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로부터 그 집에는 미망인 과 외동딸, 그리고 하녀 외에는 식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용해서 아주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그런 집에 갑자기 찾아갔다가 신원도 알 수 없는 학 생이라는 명목 아래 그 즉시 거절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학생으로서의 내 차림은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거부 감 을 주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학의 제모를 쓰고 있었습니 다. 이 말에 당신은 웃을지도 모르겠군요. 대학의 제모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하면서 말 입니다. 그러나 그 무렵의 대학생이라면 지금 세상과는 달리 세상 사람들로부터 꽤나 신망 을 받는 편이었답니다. 그러니 나는 그 사각 모자에 일종의 자신감을 갖게 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소개장 같은 것도 없이 막과자 가게의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그 군인 유가족 집 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그 집 미망인을 만나 찾아온 뜻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내 신상과 학교, 그 리고 전공 등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정도면 괜찮겠다는 결정을 내린 듯했습니다. 그 즉시 부인은 언제라도 옮겨와도 좋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 부인은 빈틈 이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또 태도가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군인의 부인은 모두 다 이런 가 하고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감탄했을 뿐만 아니라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격을 지닌 사람이 뭐 그리 적적해할까 하는 의아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즉시 그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내가 쓰게 된 방은 맨 처음 그 집을 찾아갔을 때 부 인과 얘기를 나누었던 객실이었습니다. 그 방은 그 집에서 제일 좋은 방이었습니다. 그 당시 홍고 근방에는 고등 하숙이라는 집이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학생으로서 차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 모양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새 주인으로서 들어앉게 된 방은 그것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훌륭했습니다. 그 방에 들어서자마자 학생 신분인 나에 게는 과분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방은 다다미 여덟 장의 넓이로, 도코노마 옆에는 선반이 있고 툇마루 반대쪽에는 벽장 이 붙어 있었습니다. 창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 대신 남향의 툇마루에 눈부신 햇살이 하나 가득 내리비치고 있었습니다. 내가 옮겨오던 날 그 방의 도코노마에는 꽃꽂이한 꽃이 있었고 옆에는 거문고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시와 서, 그리고 차를 즐 기는 부친 곁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운치 있는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그렇게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식을 언제부터인지 경멸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모은 여러 가지 물건은 바로 그 숙부로 인해 엉망이 되었지만 그 래도 몇 가지는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고향을 떠날 때 그것들을 중학 시절의 옛친구에게 맡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보기 좋을 것 같은 족자 4,5점만 고리짝 밑에 넣어 가지 고 왔습니다. 짐을 옮기자마자 그것을 꺼내서 도코노마에 걸어놓고 즐길 생각이었습니다. 그 런데 방금 말했던 거문고와 꽃을 보자 갑자기 용기가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 꽃 은 나를 환영하는 뜻에서 꽂아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하긴 거문고는 그전부터 거기에 있었으니까 달리 둘 곳이 없어서 그 대로 세워둔 것이었겠지요. 이런 얘기를 하면 당신의 머리 속에는 자연히 젊은 여인의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하긴 나도 짐을 옮기기 전부터 그러한 호기심이 일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어서 내 태도가 자연스럽지 못했는지, 교제에 익숙지 못해서인지 나는 그 집의 따님을 처 음으로 보았을 때 어쩔 줄 몰라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따님도 얼 굴을 붉혔습니다. 나는 그 아가씨를 만나기 전에는 부인의 모습과 태도로 그녀의 모든 것을 상상하고 있었 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상은 따님에게 과히 유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군인 부인이니까 저럴 것이다, 그 부인의 따님이니까 이럴 것이다라는 식으로 상상해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따님의 얼굴을 본 순간 그 생각은 말끔히 떨쳐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이성의 향내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후로는 도코노마 정면에 자리한 꽃이 싫 지가 않았습니다. 또한 그 옆에 세워져 있는 거문고도 눈에 거슬리지가 않았습니다. 꽃은 시들었다 싶으면 어느새 새로운 꽃으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거문고도 직각으로 꼬부 라져 비스듬히 마주 보이는 방으로 자주 옮겨지곤 했습니다. 나는 내 거실에서 책상 위에 턱을 괴고 그 거문고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나로서는 거문고를 잘 타는 건지 못 타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까. 그러나 복잡하게 얽힌 소리를 내지 못한 것을 보면 잘 타는 편은 아니 라고 여겨졌습니다. 그저 꽃꽂이 수준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나도 꽃꽂이 솜씨는 좀 볼 줄 알지만, 따님은 결코 잘 하는 편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내 방의 도코노마에는 여러 가지 꽃이 줄기차게 놓여졌습니다. 그러나 꽃꽂이 솜 씨는 마냥 같았습니다. 그리고 꽃병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문고 연주는 꽃꽃이보다 더 이상했습니다. 띄엄띄엄 튕기기만 할 뿐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 다.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비밀 이야기나 하듯 무슨 소리인지 거의 들리지가 않았 습니다. 더구나 꾸중을 듣는 소리라도 나는 날 이면 그 소지마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서투른 꽃꽂이를 즐기면서 서투른 거문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는 고향을 떠날 때 이미 염세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그때 뼛속 깊이 스며든 것이지요. 나는 내가 증오하는 숙부나 숙모, 그리고 그 밖의 친척들을 마치 인간의 표본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차를 타도 옆에 앉 아 있는 사람을 슬며시 경계할 정도였습니다. 가끔 상대방이 얘기라도 걸어오면 더욱더 경 계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어둡고 답답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납덩어리 를 삼키듯 답답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금 말했듯이 어찌된 일인지 신경은 날카롭 고 예민해지기만 했습니다. 내가 도쿄로 나와서 하숙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어 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독립해보려는 생각이었다고 말하면 그뿐이지만, 예전 같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고이시가와로 옮겨간 후로도 한동안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생 각해도 부끄러울 정도로 불안과 공포심에 사로잡혀 주위 사람들을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이 상하게도 머리와 눈은 예민한데 입은 그와 반대로 점점 더 둔해졌습니다. 나는 그 집 식구 들의 일거일동을 고양이처럼 관찰하면서 잠자코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들에 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빈틈없는 주의를 쏟기도 했습니다. 나는 물건을 훔치지 않은 소매 치기와 같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왜 따님을 좋 아했는가, 어떻게 그녀의 어설픈 꽃꽂이 솜씨를 흐뭇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는가, 또한 왜 그 서투른 거문고 연주를 듣기 좋아했는가-당신이 만약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왠지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을 뿐이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해석은 명석한 당신에게 맡기기로 하고 나는 다만 한마디 덧붙여 두겠습니다. 나는 돈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을 믿지 못했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믿음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상 한 것도, 또 나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모순된 것도 내 마음속에서는 태연하게 양립하고 있었 던 것입니다. 나는 그 집 미망인을 항상 아주머니라고 불렀으니 이제부터는 미망인이라고 하지 않고 아 주머니라고 하겠습디다. 아주머니는 나를 말이 없는 사람, 얌전한 청년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내 눈 이나 두려움에 휩싸인 듯한 내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내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알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인지 알 부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런 면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나를 아주 의젓하다 고 하며 자못 존경하는 듯이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순진한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학생은 자신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라 고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처음에 나와 같은 학생을 집에 둘 생각은 없었 던 것 같습니다. 관청에 다니는 사람을 두거나 무슨 일인가에 객실을 빌려줄 생각으로 이웃 사람들한테 부탁해두었던 것이겠지요. 월급이 많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일반 가정에 하숙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둘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아주머니는 그 상상의 인물과 나를 비교 해서 나를 아주 대범하다고 하며 칭찬했던 것입니다. 하긴 그렇게 절약하는 생활을 하는 사 람에 비해 나는 돈에 있어서 만은 대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질의 문제는 아 니기에 나의 내면 생활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문제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여자인 만큼 그런 면을 나의 모든 면모와 결부시켜 생각하려고 했던 것이겠지요. 아주머니의 그런 태도는 자연히 내 기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이리저리 두 리번거리며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안정감을 갖게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주머니를 비롯한 그 집 식구들이 비뚤어진 내 눈과 의심 많은 내 마음 자세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내게 그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던 것입니 다. 나는 상대방을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점차 차분해질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이해심이 많은 분이라서 나를 그렇게 대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아주머니 말대로 실제로 나를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사실은 소극적인 내 면모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머니 쪽에서 속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찾게 되자 나는 점차 그 집 식구들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와 따님하고도 농담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차를 끓여놓았다고 하며 건넌방으로 오라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는 내 쪽에서 과자를 사 갖고 들어가 두 사람을 내 방으로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나는 교제 범위가 넘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까운 공부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방해받는 일이 전혀 싫지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언제나 한가한 분이었습니다. 따님은 학교에 가 는 데다가 꽃꽂이와 거문고까지 배우고 있어서 틀림없이 바쁠 거라 생각되었는데, 예상외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얼굴만 보면 함께 잡담을 하며 시 간을 보냈습니다. 나를 부르러 오는 사람은 대개 따님이었습니다. 따님은 툇마루를 직각으로 꺾어서 내 방 앞에 와 서기도 하고, 다실을 빠져나와 건넌방의 맹장지 뒤에서 모습을 나타낼 때도 있었습 니다. 따님은 거기서 잠시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꼭 내 이름을 부르면서 "공부하세요?"라고 묻습니다. 대개 나는 어려운 책을 책상에 펴놓고 들여다보고 있었으므로 옆에서 보면 무척 이나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 고 있지 않았습니다. 눈은 책장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하고 있었지만 이제나저제나 따님이 부르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내 쪽에서 움직이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건넌방 앞에 가서 "공부하세요?"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따님의 방은 다실과 이어진 다다미 여섯 장의 방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다실에 있는 경우도 있고 따님 방에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그 두 방은 칸막이가 있긴 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녀가 왔다갔다하며 딱 누구의 방이라고 할 수 없게 사용하고 있었습니 다. 내가 밖에서 말을 던지면 "들어오세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주머니였습니다. 따님은 그곳에 있어도 함부로 대답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끔 무슨 일이 있어서 따님 혼자서 내 방에 들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경 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이상하게도 불안에 휩싸인 느낌이었습니다. 젊은 아가씨와 마주 보고 앉아 있다는 것만이 그 이유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왠지 안절부절못하며 차분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배반하는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태도로 인해 그 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따님은 오히려 태연했습니다. 과연 이 아가씨가 거문 고를 복습할 때 소리마저 변변찮게 내지 못했던 사람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너무 오래 있을 경우 다실에서 아주머니가 불러도 "네" 하고 대답만 할 뿐 금방 일어서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따님은 결로 어린애가 아니었습니다. 내 눈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보였습니다. 아니, 그렇게 보이려고 행동하는 흔적이 역력했습니 다. 따님이 내 방에서 나가고 나면 나는 후유 하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와 함께 어딘지 서운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계집애처럼 굴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요 즘의 청년들과 비교해 보면 더욱더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렵의 우리들은 대 채로 그러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좀처럼 외출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집을 비울 때도 따님과 나만 남 겨놓고 나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우연인지 고의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 하는 것이 좀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아주머니의 태도를 잘 관찰해보면 왠지 자기 딸과 나를 가까이하게 하려고 애쓰는 듯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은근히 경계하는 면 도 있어서 처음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주머니가 어느 쪽으로든 태도를 분명히 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것은 모순되는 태도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숙부에게 기만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나는 더 한층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의 그런 태도가 어느 쪽이 진심일까 하고 추정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 이상한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 유를 알아낼 수가 없었던 나는 여자라는 단어 하나에 그 이유를 돌리고 참기도 했습니다. 필경 여자니까 저렇다, 여자란 결국 어리석은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는 언 제나 그렇게 결론을 내리곤 했던 것입니다. 그 정도로 여자를 깔보았던 나는 따님만은 도저히 깔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여자에 대한 내 이론이 그녀에게는 전혀 작용하지 못할 만큼 무력했습니다. 나는 그녀에 대 해 거의 신앙에 가까운 절대적인 사랑을 갖고 있었습니다. 종교에만 쓰는 이 말을 젊은 아 가씨에게 적용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그 믿음에 변함이 없습니다. 진짜 사랑은 종교심과 그리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나는 따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아름다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따님을 생각하 면 나도 모르게 고상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만일 사랑이라는 불가사의한 것에 양끝이 있어 서 그 높은 쪽에는 신성한 느낌이 작용하고 낮은 쪽에는 성욕이 작용하고 있다면, 나의 사 랑은 틀림없이 그 높은 극점에 이르러 있었을 것입니다. 나 또한 인간이기에 육체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따님을 보는 나의 눈과 따님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육체적 인 면을 전혀 띠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모친에 대해 반감을 품음과 동시에 따님에 대해서는 사랑이 더 깊어만 갔으니, 세 사람의 관계는 하숙을 목적으로 했던 당초보다는 점차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러한 변화는 거의 내면적이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제까지 내가 아주머니를 오해한 것이 아닌가 하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에 대한 아주머 니의 모순된 태도가 어느 쪽도 거짓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것 이 엇갈려 아주머니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머니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양쪽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아주머니가 가능한 한 따님을 나 에게 접근시키면서 동시에 나를 경계하고 있는 것은 모순 같지만, 그러면서도 한쪽 태도를 완전히 뒤바꾸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두 사람을 가까이하게 하고 싶어하는 태도가 뚜렸했습 니다. 그저 두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 해석되었습니다. 따 님에 대해 육체적인 면에서 접근하려는 마음이 싹트지 않았던 나는 아주머니의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아주머니에 대한 오해는 완전히 떨쳐버리 게되었습니다. 아주머니의 태도를 이리저리 종합해본 결과, 나는 이 집에서 기대 이상으로 신뢰받고 있 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믿음은 처음부터 얻었다는 증거까지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전혀 믿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런 발견이 조금은 기이할 정도로 받아들여졌습 니다. 나는 남자에 비해 여자가 더 직관력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여자가 남자에게 속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를 그렇 게 보아온 내가 따님에 대해 같은 직관력을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 기 짝없는 일이지요. 나는 절대로 남을 믿지 않으리라 결심했으면서도 따님만은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를 믿고 있는 아주머니를 이상하게 생각했으니까요. 나는 고향 이야기를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나는 되도록 아주머니의 얘기만 들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결코 그러려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있 을 때마다 내 고향 이야기를 꺼내며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마침내 나는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고향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돌아간다 해도 무슨 소용 이 있겠는가, 고향에 있는 것이라고는 부모님의 묘뿐이라고 말했을 때 아주머니는 대단히 감동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따님은 울었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털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나자 속이 후련했습니다. 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은 아주머니는 과연 자기 생각이 적중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 었습니다. 그리고 그후로는 나를 자기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대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주머니의 그런 태도가 조금도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남을 믿지 못하는 내 버릇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 다. 내가 아주머니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사소한 일에서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거듭됨에 따라 의혹은 점차 깊어가기만 했습니다. 어느 순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 지만 아주머니가 숙부와 같은 뜻에서 따님을 나에게 접근시키려 애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친절하게 보였던 사람이 갑자기 교활하기 이를 데 없 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쓰디쓴 심정으로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처음부터 아주머니는 식구가 적어 쓸쓸하기 때문에 하숙생을 두어 보살피는 것으로라도 무료함을 달랠 생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것을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점차 친해져 내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후에도 그 말에 대해 조금도 의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 집의 경제 상태는 그다지 풍족한 편이 아니 었습니다. 이해 문제에서 생각해볼 때 나와 특수한 관계를 맺는 것은 상대방에게는 결코 손 해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다시 경계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따님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애정을 갖고 있 는 내가 그 어머니에 대해 아무리 경계심을 갖는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나는 스스로를 비웃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이 바보야 ! " 하고 욕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모순이었다면 내가 아무리 바보였다 하더라도 그토록 괴로워하지 않고 끝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번 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아주머니와 마찬가지로 따님도 나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나 아 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음모하여 일을 이렇게 진척시키 고 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불쾌한 정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헤어날 길 없는 궁지에 몰린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님을 굳게 믿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신념과 망상의 갈림길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나에게는 어느 쪽 이건 상상이며 또한 어느 쪽이건 진실이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학교에 착실히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의 내용은 마치 먼 곳에서 들려 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책의 활자는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번지기 전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던 것입니다. 게다가 나는 말수가 적어 졌 습니다. 그러자 몇몇 친구들은 그것을 오해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명상에라도 잠 겨 있는 것처럼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나는 그러한 오해를 해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 침 누군가가 나를 위해 가면을 빌려주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그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 미안하여 발작적으로 들떠서 떠들고 다니며 그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하숙하고 있는 집은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이었습니다. 친척도 많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따님의 학교 친구가 놀러오는 일은 있었지만 방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 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리를 낮춰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런 일이나 에 대한 조심에서라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그리 막되고 거친 편은 아니었지만 집안 사람들을 어렵게 여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 오히 려 하숙생인 내가 주인 같고 주인인 따님이 식객의 위치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여담으로 하는 것뿐으로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 가 지 기분에 거슬리는 일이 있긴 했습니다. 다실에서, 아니면 따님 방에서 갑자기 남자의 말소 리가 들려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말소리가 역시 나를 찾아오는 손님과는 달리 너무나 낮 은 소리였습니다. 따라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만큼 더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앉아 있긴 해도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못 하기 일쑤였지요. 그럴 때면 우선 저 사람은 친척일까, 아니면 그저 아는 사이일까 하고 생 각해봅니다. 그리고 젊은 남자일까, 아니면 나이가 좀 든 사람일까 하고 궁금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그런 것을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렇다고 일어서서 장지문을 열고 가볼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정도가 아니라 견딜 수 없는 파동 에 휩싸여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나는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반드시 그 사람의 이름을 물었 습니다. 그런데 따님과 아주머니의 대답은 언제나 간단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에게 다소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이면서 만족스러울 때까지 캐물을 용기는 없었습니 다. 물론 내게는 그럴 권리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자신의 품격을 중히 여기라는 교육을 받은 자존심과 현재 그 자존심을 배반하고 있는 몹시 욕심난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그 들은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과연 조소의 뜻이 아니라 호의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호의처 럼 보이기 위한 것일까. 나는 그 즉시 해석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침착성을 잃고 있었습니 다. 그래서 결국 나는 무시당한 것이다, 무시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게 되 는 것입니다. 나는 자유로운 몸이었습니다. 설령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또 어디로 가서 어떻게 지내든, 또는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하든 그 누구와도 의논할 필요가 없는 몸이었습니다. 나는 과감히 아주머니에게 따님을 달라는 말을 해볼까 하고 결심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코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거절당할 경우 내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그 대신 지금까 지와 다른 위치에서 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이었으므로 그 정도의 용기는 마음만 먹으면 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엔가 끌려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무엇 보다도 다른 사람의 수법에 말려드는 것은 화가 복받치는 일이었습니다. 숙부에게 기만당한 적이 있는 나는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에게 기만당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것입니 다. 책만 사들이는 나를 보고 아주머니는 옷도 좀 해 입으라고 했습니다. 사실 내가 갖고 있 는 옷이라고는 시골에서 짠 무명옷 뿐 이었습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비단실이 들어 있는 옷은 입지 않았습니다. 내 친구 가운데 요코하마의상인 아들로 집이 왜 잘사는 친구가 있었 는데, 어느 날 그 친구의 고향에서 방한용의 비단 속옷이 소포로 오자 친구들 모두 그것을 보고는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얼굴을 붉히며 변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러고는 애써 만들어 보낸 속옷을 고리짝 깊숙이 처넣고 입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 들 은 그 정도로 끝내지 않고 달려들더니 일부러 그 옷을 입혔습니다. 그러자 운 나쁘게 그 속옷에 이가 뵈어들었습니다. 친구는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 말많던 속옷을 둘둘 말아서 산책을 나간 길에 그것을 네즈의 큰 시궁창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때 함께 걷고 있던 나는 다리 위에 서서 그 친구의 행동을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 역시 조금도 그것 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당시 나도 왜 철이 든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스스로 외출복을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나는 졸업해서 수염을 기르는 때가 오지 않으면 옷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상한 고집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책은 필요하지만 옷은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내가 사들인 책이 얼마나 많은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들인 책은 모두 읽느냐고 묻더군요. 그 책들 중에는 사전도 있었 는데, 당연히 훑어보아야 했겠지만 책장조차 잘리지 않은 데도 왜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불필요란 것을 산다면 책도 옷도 매 한가지라 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내게 이것저것 잘 해준다는 명목 아래 따님이 좋 아할 만한 허리띠나 옷감을 사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아주머니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자기 혼자서는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나더러 함께 가야 한다고 말 하더군요. 그리고 따님도 같이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다른 분위기에서 자 란 나는 학생의 신분으로서 젊은 아가씨와 함께 돌아다닌다는 것이 왠지 썩 내키지 않았습 니다. 그 무렵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습관이라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편이었으 니까요. 그래서 다소 주저했지만, 용기를 내어 같이 나갔습니다. 따님은 대단히 고운 옷을 입고 나섰습니다. 살결이 하얀데다가 분을 잔뜩 발랐으니 더욱 더 눈에 띄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따님을 유심히 훑어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이상하게 도 그 시선을 어김없이 내 쪽으로 돌렸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니혼바시로 가서 이것저것 맘에 드는 것을 샀습니다. 그런데 사는 동안에 도 자꾸 마음이 변했기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주머니는 일부러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이것은 어떠냐, 저것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때로는 옷감을 따님의 어 깨에서 가슴으로 드리워놓고 나더러 몇 걸음 뒤로 가서 보아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때마 다 그것은 좋지 않다라든지, 그것은 잘 어울린다는 등 어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런 일로 시간이 걸려 어느덧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나에 대한 답례 로 저녁을 사겠다고 하더니 기와라다나라는 대중적 연예장이 있는 좁은 골목길로 나를 데리 고 들어갔습니다. 골목길도 좁았지만 음식점 또한 좁았습니다. 그 근방 지리에 전혀 어두웠 던 나는 아주머니가 그 정도로 발이 넓은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밤이 이슥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은 일요일 이어서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월요일이 되어 학교에 나가니 이른 아침부터 급우 한 명이 나 를 놀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아내를 맞이했느냐고 짓궂게 물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 고는 아내가 대단한 미인이던데 하며 칭찬을 했습니다. 니흔바시로 외출을 나갔던 날 그 친 구는 어디선가 우리를 본 것 같았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주머니와 따님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그러자 아주 머니는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꽤 당황했겠군요 하며 내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남자 는 이렇게 해서 여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로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주머니의 눈 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기회에 나는 내 뜻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더라면 좋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마음 한구석 깊이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 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모두 털어놓으려다가 순간적으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이 야기의 각도를 약간 다른 방향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장 중요한 내 얘기는 쏙 빼고서 말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따님의 결혼에 대한 아주머니의 의중을 살폈습니다. 아주머니는 따님의 혼담이 두세 번 있었다는 것을 분 명히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학교에 다니는 어린 나이이므로 그다지 서두르진 않는다 고 설명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말은 하지 않아도 따짐의 아름다운 용모를 상당히 자랑스러워 하는 듯했습니다. 결정을 하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따님 외에 자식이 없기 때문에 쉽게 결혼을 시키지 않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시집을 보낼 것인가, 아 니면 데릴사위를 맞이할 것인가, 그것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아주머니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들 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나로서는 기회를 놓친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내 얘기는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나는 적당히 얘기를 끝맺고 내 방으로 돌아가 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곁에 앉아서 너무하다는 등의 말을 하며 웃고 있던 따님은 어느새 한 쪽 구석에 가서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일어서려고 돌아봤을 때 그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뒷모습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더군요. 따님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따님은 찬장 앞에 앉아 있었습니 다. 그녀는 30센티미터쯤 열려 있는 찬장 틈새로 무엇인가를 꺼내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들 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틈으로 그저께 산 옷감이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 옷도, 따님 것도 찬장 구석에 함께 포개져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서려 하자 아주머니는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나에게 어떻 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묻는 아주머니의 태도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 느냐고 반문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갑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 물음이 그렇게 빨리 결 혼시키는 것이 좋겠느냐는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을 때 나는 가능하다면 천천히 하는 쪽이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기 생각도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와 따님, 그리고 나의 관계가 이러할 때 또 한 명의 남자가 개입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가정의 일원이 된 결과 내 운명은 너무나도 이상하게 뒤바뀌었습니다. 만일 그가 나의 인생에 끼여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렇게 긴 사연의 편지를 당신에게 남길 필 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마가 지나가는 길목에 서 있다가 그 순간 내 일 생을 어둡게 한 그 그늘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과 같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문제의 그 남자를 그 집으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물론 아주머니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므로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아주머니의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아주 머니는 내게 거절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를 데려오지 않을 수 업는 이유 가 충분히 있었지만, 거절하라는 아주머니 쪽은 합당한 구실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 는 아주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내 생각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편의상 그 친구의 이름을 K다고 부르겠습니다. 나와 K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지요. 어린 시절부터라면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고향 출신이었습 니다. K는 진종의 스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장남은 아니었지요. 차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의사 댁에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태어난 지방은 본원사파의 세력이 상당히 강한 곳 이 어서 진종의 스님은 다른 데 비해 물질적으로 풍족한 편이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만 일 스님에게 딸이 있을 경우 혼기가 닥쳐오면 단가에서는 의논을 통해 적당한 곳에 시집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 비용은 스님의 호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았지요. 그런 까닭으로 진종의 절은 재정적으로 왜 풍족한 편이었습니다. K가 태어난 집도 그런 대로 꽤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차남을 도쿄로 유학 보낼 정도로 여유가 있었는지 그것은 확실히 알 수 없었습니다. 또 그렇게 해주겠다는 제의가 있었기 때 문에 양자로 보낸 것인지 어떤지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째든 K는 어느 의사 의 양자로 갔습니다. 그것은 중학교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실에서 선생님이 출석 을 부를 때 K의 성씨가 갑자기 달라져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K가 양자로 들어간 집도 왜 잘사는 편이었습니다. K는 그 집에서 학자금을 받아 도쿄로 나왔던 것입니다. 도쿄로 나온 시기는 나와 달랐지만 어쨌든 온 후로는 나와 같은 하숙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절엔 한 방에 두세 명씩 책상을 늘어놓고 같이 생활했지요. K와 나도 한 방을 사용했습니다. 산에서 생포된 동물이 우리 안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바깥을 노려보 는 격이라고나 할까, 두 사람은 도쿄와 도쿄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다미 여섯 장 방안에서는 천하를 우습게 보는 것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야말로 착실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결심했 습니다. 특히 K는 더욱더 그러했습니다. 절에서 태어난 그는 언제나 정진이라는 말을 썼습 니다. 그리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그 정진이라는 말 한마디로 압축시킬 수 있는 것 이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K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K는 중학교 시절부터 종교나 철학과 같은 어려운 문제로 나를 몹시 난처하게 했습니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자주 꺼낸 것은 그의 부친의 감화를 받아서인지 또는 그가 태어난 집, 즉 절이라는 다소 특별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는 상 당히 뛰어난 승려의 면모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원래 K의 양가에서는 그를 의사 로 만들 작정으로 도쿄로 내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고집이 센 그는 의사가 될 생각으로 도 쿄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런 생각이라면 양부모를 기만하는 것밖 에 되지 않는다고 하며 그를 힐난했습니다. 그런데 대담하기 이를 데 없는 그는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기만 은 괜찮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때 그가 사용한 길이라는 말은 아마 그 자신도 잘 알지 못하 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도 물론 알 수 없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젊은 우리들에게는 뜻조차 확실히 알 수 없는 그 단어가 왠지 가슴깊이 울려 퍼졌습니다. 설사 그 뜻을 모른다 해도 고상한 생각에 이끌려 가는 것을 거역할 까닭이 없었다 고나 할까요. 어쨌든 나는 K의 생 각을 부채질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동조가 K에게 어느 정도 힘이 되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외곬으로만 생각하는 그는 설령 내가 아무리 반박했어도 역시 자 신의 생각을 절대로 굽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 그에게 동조한 나 역시 다소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쯤은 나이가 어린 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만한 각 오가 없었다 해도 어른이 된 눈으로 과거를 돌아다볼 필요성이 있을 경우 내가져야 할 책임 은 당연히 감수하겠다는 말로 그의 생각에 동했던 것입니다. K와 나는 같은 과에 입학했습니다. K는 양부모 님이 보내주는 학비로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태연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양부모가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으리라는 안도감과, 알게 되 더라도 상관없다는 배짱으로 밀고 나가는 셈이었지요. 오히려 당사자인 K가 나보다 더 태 연했던 것입니다.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맞이한 여름 방학에 K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 고메의 어느 절 방 한 칸을 빌려 공부나 하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도쿄로 돌아온 것은 9월 초였는데, 아니나다를까 그는 어느 지저분한 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의 거처는 본당 바로 옆에 있는 아주 좁은 방이었는데, 그는 거기서 자기 생각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 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그때 그의 생활이 점점 승려답게 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손목에 염주를 감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하나 툴 세는 흉내를 해 보였습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렇게 염주 고리를 세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도무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습 니다. 둥근 고리로 되어 있는 것을 한 알씩 세어 가면 도대체 어디서 끝을 맺는 것인지 알 수가 얼었던 것입니다. K는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그 동작을 멈추려 했을까요.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자주 그것을 생각합니다. 나는 또 그의 방에서 성서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불경에 대해서는 그의 입을 통해 몇 번들은 기억이 있지만, 내가 기독교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뭐라 대답해준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성서를 보자 좀 놀랐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K는 이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세상 사람들이 그 정도로 아끼는 책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기회가 있으면 코란도 읽어보겠다고 했습 니다. 그는 모하멧과 검에 대해서도 대단한 흥미를 갖고 있는 듯했습니다. 두 번째 여름 방학 때는 그는 고향으로부터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집에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전공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도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습 니다. 당신 또한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니 그 정도의 일은 잘 알겠지만, 세상은 학생의 생 활이나 학교의 규칙 등에 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한 편이지요. 학교와 관련된 일이라면 그 어느 것도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 되었다 고나 할까요. 또한 우리들은 비교적 학교 울타리 내에서만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교내에서 일어난 일은 그 무엇이든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려 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K는 그 점에 있어서 나보다 세상을 잘 알고 있 었다 고나 할까요. 그는 태연한 얼굴로 다시 돌다왔습니다. 우리는 고향에서 함께 오게 되었 데, 나는 기차에 오르자마자 K에게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K는 아무 일도 없 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세 번째 여름 방학은 마침 내가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묘가 있는 땅을 영원히 떠나리라 결심했던 때였습니다. 그때 나는 K에게 고향에 내려가자고 권했지만 그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매년 집으로 돌아가서 뭘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 도쿄에 남아 공부할 생 각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혼자서 도쿄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해 여름 방 학 때 고향에서 보낸 그 두 달 동안 내 일생에 있어 얼마나 기막힌 일이 있었는지는 이미 말한 그대로이니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불평과 우울, 그리고 고독감을 가슴에 안은 나는 9 월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K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운명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변 조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양부모에게 편지를 내어 자신의 기만을 솔직히 털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그럴 각오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양부 모로부터 이제 와서 어찌하겠느냐며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할 도리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게끔 만들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째든 대학에 들어와서까지도 양부모를 속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또 계속 속인다 해도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 았는지도 모르지요. K의 편지를 받아본 양아버지의 분노는 대단했습니다. 부모를 속인 발칙한 놈에게 도저히 학자금을 보낼 수는 없다는 엄한 답장을 그 즉시 보내왔으니까요. K는 그것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K는 그와 전후해서 생가에서 보내온 편지도 보여주었습니다. 그 편지 또한 양 부모가 보낸 편지보다 더 엄한 힐책의 말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양부모에 대한 의리 때문인 지, 친부모 또한 아들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보냈더군요. 그 사건으로 인해 K 가 다시 생가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달리 타협책을 강구해서 계속 양부모 밑에 머무를 것인 지는 둘째치고 당장 시급한 문제는 매달 필요한 학자금이었습니다. 나는 그 점에 대해 K에게 무슨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K는 야간 학교의 교사 라도 할 생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즘과 비교해볼 때 그 당시는 예상외로 세상 인심이 좋 아서 학생들이 할 만한 일이 왜 있는 편이었습니다. 나는 K가 그렇게 해서라도 학업을 계 속해 나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일단의 책임은 있었습니다. K 가 양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려고 했을 때 동조한 것은 바로 나였 으니까요. 그러나 나 또한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즉시 물질적 보 조를 자청했습니다. 그러자 K는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그의 성격상 스스로 해나가는 것이 친구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마음 편하리라고 생각이었겠지요. 그는 대학에 들어 온 이상 자신의 생활쯤은 혼자 힘으로 해나가지 못하고서야 어찌 사나이라 할 수 있겠느냐 는 말까지 했습니다. 나는 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차마 K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 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대로 하게 하고 나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K는 원하던 일자리를 곧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라면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에게 그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 로 조금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새로운 짐을 진 채 힘차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나는 그 의 건강이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강인한 기질을 지닌 그는 웃기만 하면서 내 주의에 전 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그와 양부모와의 관계는 점점 복잡해졌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적어진 그는 전처럼 나와 얘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결국 그 전말을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해결 점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끼여들어 타협 을 시도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편지를 통해 K에게 어서 빨리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권유했지만 K는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K는 학년 중이라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겠지만, 저쪽에서 보면 지독한 고집쟁이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 점이 사태를 더욱더 악화시킨 것 같았습니다. 그는 양가의 감정을 상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생가의 노여움도 사게 되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내가 쌍방을 융화시키기 위해 편지를 썼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내 편지에 대해서 아무 답장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얼버 무려 덮어지고 말았으니까요. 나도 화가 났습니다. 이제까지도 내친걸음이라 K에게 동정하 고 있었던 나는 그 이후로는 무조건 K편을 들기로 했습니다. 결국 K는 생가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동안 양부모가 대준 학자금은 생가 에서 변상하기로 되었지요. 그 대신 생가에서도 조금도 상관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는 K 멋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의절 당한 것입니다. 그 정도로 냉혹하게 말한 것이 아 닐지도 모르지만, 본인은 그렇게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K에게는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그의 성격이 그렇게 된 것은 어쩌면 계모의 손에 의해 자랐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었지요. 만 일 그의 친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그와 생가와의 관계가 그 정도로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 니다. 그의 부친은 말할 것도 없이 승려였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의리가 굳은 것을 보면 오히려 무사를 닮은 면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K의 사건이 일단락된 뒤, 나는 그 매형으로부터 긴 사연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K가 양자 로 간 가정은 그 매형의 친척에 해당되어 그 일을 주선했을 때도, 그를 다시 생가로 돌아가 게 하는 일을 했을 때도 그 사람의 의견이 중요시되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나는 K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그후 K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알려달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누이가 걱정하고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답장을 해달라는 부탁도 들어 있었습니다. K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절에 남은 형보다 남의 집에 시집간 그 누이를 더 따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매이지만 그 누이와 K는 나이 차가 꽤 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 서 K는 어린 시절 오히려 계모보다는 누이 쪽을 어머니처럼 여겼던 것 같습니다. 나는 K에게 그 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K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기한테도 누이에 게서 같은 내용의 편지가 두세 번 왔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K는 그때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누이는 생활에 여유가 없는 집으로 출 가했기 때문에 아무리 K를 돕고 싶어도 물질적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였던 것입니 다. 나는 K와 같은 답장을 그 매형 앞으로 보냈습니다. 최후의 경우엔 내가 어떻게 해볼 테 니 안심하라는 뜻을 강한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K의 앞날을 걱정하는 그 누이를 안심시키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나를 경멸했 다고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생가와 양가에 대해 어느 정도 보복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 했던 것입니다 K가 생가로 다시 돌아간 것은 1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2학년 중반에 이를 때까지 약 1 년 반 동안 그는 혼자 힘으로 학업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무리한 노력으로 인해 그는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무척 지친 듯했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양부모와 영원히 인연을 끊을 것이냐 아니냐 하는 골치 아픈 문제도 한몫 했을 것입니다. 그는 점점 감상적 으로 되어갔습니다. 때로는 자기 혼자만이 온 세상의 불행을 모두 짊어지고 서 있는 것 같 은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부정하면 그 즉시 발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 신의 앞날을 밝혀줄 빛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생각으로 안달복달하곤 했습니다. 학문의 길에 들어설 때는 누구나 크나큰 포부를 갖고 새로운 여행길을 떠나고 싶어하게 마련입니다. 1년 이 지나고 또 2년이 지나면서 졸업할 날이 눈앞에 다가오면 갑자기 앞날에 대한 생각에 정 신이 번쩍 들어 자포자기하기 일쑤인데, K의 경우 그의 초조함은 지나칠 정도로 심했던 것 입니다. 드디어 나는 그를 진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제 제발 쓸데없는 짓일랑 그만두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편히 쉬면서 한가롭게 지내는 것이 앞날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정직하기 이를 데 없는 K의 성격에 비추어볼 때 내 말을 쉽게 듣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한 바였지만, 실 제로 말을 꺼냈을 때는 생각했던 것보다 설득하기가 무척 힘들어 난처했습니다. K는 학문 만이 자신의 목적의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의지력을 길러 강인한 사람이 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되도록 어려운 상황과 부딪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 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별난 사람으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 친구였지요. 게다가 그는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 의지는 조금도 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는 오히려 신경쇠약에 걸려 있을 정도였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그에게 지극히 동감이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최후엔 나 자신도 이 세상을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긴 그 말은 완전히 가식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무슨 힘을 지녔는지는 모르 지만, K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끌려가곤 했으니까요. 드디어 나 는 K에게 함께 살면서 향상의 길을 같이 겪어나가는 것이 어뤘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 다. 나는 그의 강직성을 꺾기 위해 그 앞에 무릎을 꿇기조차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그를 내 하숙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내 방에는 대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다미 네 장의 방이 딸려 있었습니다. 현관을 들어 서서 내 방으로 오려면 반드시 그 방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거처하기에는 상당히 불편한 방이었습니다. 나는 그 방에 K를 있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다미 여덟 장의 내 방에 책상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옆방은 함께 쓸 생각이었으나, K는 비좁아도 자기 혼자 있는 것이 편 하다고 하여 그 방을 쓰게 했던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주머니는 내 생각에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하숙집의 입장에서 보면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을,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을 두는 것이 이롭긴 하지만 장삿속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러치 않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였습니다. 나는 결코 성가시게 하는 사람 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설령 그렇더라도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 은 싫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폐를 끼치고 있는 나 역시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고 따지고 들자, 아주머니는 내 마음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변명을 해댔습니 다. 나는 결국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다른 핑계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런 사람을 데려오면 나를 위해서도 좋지 않으니 그만두라고 말입니다. 왜 나를 위해 좋지 않으리라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번에는 아주머니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사실 나도 굳이 K와 같이 있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매달 생활비를 돈이라는 형태 로 내밀면 그는 틀림없이 주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만큼 독립심이 강한 사나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내 하숙집에 있게 하면서 2인분의 식대를 은밀히 아주머니에게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K의 경제 사정에 대해서는 아주머니에 게 한마디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는 다만 K의 건강에 대해서는 말을 해두었습니다. 혼자 놔두면 점점 더 편협해질지 모 른다는 말도 했습니다. 또한 K가 양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과 생가하고도 거의 절연 상태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을 안아서 내 몸의 열을 상대에게 옮겨 줄 각오로 K를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따뜻이 돌봐달라는 부탁을 아주머니뿐 만 아니라 따님에게도 해두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해서 겨우 아주머니를 설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K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렇게 해두는 것 이 좋으리라 생각하고 내키지 않는 얼굴로 짐을 옮겨온 K가 덤덤한 얼굴로 맞이했습니다. 아주머니와 따님은 친절하게 그의 짐을 정리해주며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주었습니다. 내 얼굴을 봐서 그런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 해석한 나는 기쁨을 가눌 길 없었습니다. K가 여 전히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내가 K에게 새로운 환경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나쁘지 않다는 그 한마디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나쁘지 않은 것만이 그 전부는 아닐 것 입니다. 그가 지내던 곳은 쾨쾨한 냄새가 나는 북향의 더러운 방이었습니다. 먹는 것도 방과 마찬가지로 형편없었습니다. 내 하숙집으로 옮겨온 그는 그야말로 깊은 산골에서 부족할 게 없는 넓은 세상으로 옮겨온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듯했 습니다. 우선 그 억센 성품이 그 첫째 이유이고, 또 하나는 그의 주장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불교의 교의가 몸에 밴 그는 의식주에 대해 사치스럽게 말하는 것을 마치 부도덕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옛 고승이라든지, 성도의 이야기를 읽은 일이 있는 그는 툭하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는 육체에 대해 채찍질 을 가하면 가할수록 영혼은 그만큼 더 빛나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되도록 그와 부딪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얼음을 볕이 잘 드는 곳에 내놓고 녹일 연구를 했던 것입니다. 언젠가 녹아서 따뜻한 물이 되듯 그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닫게 될 때가 틀림없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 역시 아주머니로부터 그런 식의 취급을 받은 결과 점차 쾌활해졌던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K에게도 그 방법을 써볼 생각이었습니다. 한두 해 사귄 친구 사이가 아 니므로 K와 나는 성격이 판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집에 들어온 후로 다소 안 정감을 찾은 나처럼 K도 이곳에서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마음의 평정을 찾게 되리라 생각했 던 것입니다. K는 나보다 의지가 강한 사나이였습니다. 공부도 나의 배 정도는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나보다는 훨씬 머리가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전공이 달랐으므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도 나보다는 K가 언제나 성적이 우수했습니다. 나는 평소 부터 어떠한 면으로도 K에게 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K를 내 거처 로 억지로 끌고 왔을 때는 내가 더 분별심이 있다는 것을 자신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고집과 인내를 뚜렷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특히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니 잘 들어주십시오. 육체든 정신이든, 우리들의 모든 능력은 외부의 자극으로 발달도 하고 파괴도 되지만 자극이 점점 강해질 경우 정신을 잘 차리지 않으면 아주 좋지 않은 방 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하는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밥통만큼 뻔뻔스러운 것도 없다고 합니다. 죽만 먹다 보면 그것보다 딱딱한 것을 소화시키는 능력 이 언제부터인지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먹는 연습을 해두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러나 이것은 다만 익숙해진다는 뜻은 아 닌 것 같습니다. 자극을 점점 강화함에 따라 영양 기능의 저항력이 점차 강해진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그 반대로 위의 기능이 점점 약해진다면 어떤 결과가 될 것인지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이지요. K는 나보다 머리가 좋긴 했지만 거기에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 했던 것입니다. 다만 어려움에 익숙해져버리면 결국 그 어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 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생을 하다보면 그것 자체가 곧 공덕이 되는 것으로, 그 고 생이 결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질 때 누구나 평정을 찾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도 볼 수 있지요. 나는 K를 설득할 때 그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반박을 하고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 사람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그 증거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그렇 게 되면 나 역시 그 사람들과 K와의 차이점을 명백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K가 내 이 야기를 받아들일 경우엔 별문제가 없겠지만, 그의 성격상 이야기가 그 정도로 진행되면 쉽 게 물러서지 않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 오히려 더 열을 띠게 되지요. 그리고 방금 말한 것처 럼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그는 무서운 사나이였습니다. 아니, 위대했습 니다.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나아갑니다. 결과상으로 보면 그는 다만 자기의 성공을 때려 부수었다는 점에서 위대한 것에 불과하지만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 게다가 는 가벼운 신경쇠약 증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만일 내가 그를 설득 했다 해도 그는 틀림없이 격렬해졌을 것입니다. 그와 싸우는 것은 겁나지 않았지만, 고독감 을 참지 못했던 내 처지를 돌이켜볼 때 차마 친구인 그를 그런 고독감에 빠뜨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고독감에 빠뜨린다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는 일이었 지요. 그래서 나는 그가 내 하숙으로 옮겨온 후에도 당분간은 그의 신경을 돋을 만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새로운 환경예서 그가 생활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습 니다. 나는 아주머니와 따님에게 되도록 K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은밀히 부탁했습니다. 지 금까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며 지내온 것이 K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에서였지요. 철은 쓰지 않으면 녹슬어 삭아버리듯이 그의 마음에도 녹이 슬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며 웃어버렸습니다. 따님은 일일이 예를 들 며 K의 괴상한 면을 설명했습니다. 화로에 불이 있느냐고 물으면 K는 없다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져오겠다고 하면 필요 없다고 하며 거절을 한다는 것이지요. 춥지 않느 냐고 물으면 춥지만 필요 없다고 말하고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 야기를 듣자 나는 쓴웃음을 짓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미안한 생각에 무슨 변명이든 해 야 했습니다. 하긴 봄철이므로 굳이 불을 필 필요는 없지만 그런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 붙 일 수도 없겠다는 따님의 말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주인집의 두 여자와 K를 어떤 식으로든 가까이 지내게 하려고 노 력했습니다. K와 내가 이야기를 나눌 때 그들을 부른다든지, 그들과 내가 함께 있을 때 K 를 끌어들이는 등 그 상황에 세 사람을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K는 그것을 과히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쓸데없이 잡담이나 하는 것이 뭐가 재미있느냐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저 조용히 웃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K가 그 일 때문에 나를 경멸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나는 실제로 그의 경멸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도 모릅니다. 그의 사고력은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나도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 다. 그러나 눈만 높고 실제로는 거기에 따르지 못하면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불구자나 다를 바가 없지요. 나는 무엇보다도 그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 생각했습니 다. 그의 머리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의 이미지로 꽉 차 있다 하더라도 그 자신이 훌륭해지 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를 인간답게 하는 첫째 수단으로 서 먼저 이성과 가까워지게 하는 방법을 짜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공기에 그를 바래게 한 다음 녹슬기 시작한 그의 혈액을 새롭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시도는 점차 성공했습니다. 처음에는 융합하기 어렵게 보였던 것이 점점 하나로 되어 가는 듯했지요. 또는 자기만의 세계 이외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 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여자는 그렇게 무시할 존재가 아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언제나 K는 여자에게서도 자신과 같은 지식과 학문을 발견하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지 못하면 그 즉시 경멸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의 그는 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남녀를 한결같이 같은 눈으로 관찰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만일 우 리 두 남자끼리만 영원히 이야기를 나눈다면 두 사람은 다만 직선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지당한 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때 따님에게 정신을 빼앗긴 채 열을 올리고 있던 중 이어서 자연히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K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책에만 파묻혀 있던 K의 마음이 풀려 가는 것을 보자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 았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성공에 따른 희열을 가눌 길 없었습 니다. 나는 K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주머니와 따님에게는 내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놓았 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도 무척 흐뭇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K와 나는 과는 같아도 전공 과목이 달라서 방의 시작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먼저 돌아가면 다만 그의 빈방을 지나가기만 했지만, 늦으면 간단히 인사 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K는 책에서 눈을 떼고 맹장지를 여는 나 를 흘긋 봅니다. 그리고 언제나 지금 오느냐는 말을 합니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때 도 있고 또는 다만 "응" 하고 대답하고는 지나가 버릴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간다에 볼일이 있어서 평소보다 훨씬 늦게 귀가했습니다. 나는 빠른 걸음으 로 문 앞에 이르러 격자 문을 드르르 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따님의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분명히 K의 방에서 나는 것 같았습니다. 현관에서 곧장 들어가 면 다실과 따님 방이 이어져 있고, 거기서 왼쪽으로 돌면 K의 방과 내 방이 있었으므로 그 집에서 지낸 지가 왜 오래된 나는 어디서 나는 누구의 소리인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지 요. 나는 곧 격자 문을 닫았습니다. 그 순간 따님의 말소리도 딱 멎었습니다. 내가 신을 벗 기 위해 - 그 당시 나는 멋지긴 하지만 손기 많이 가는 편상화를 신고 있었는데 - 허리를 굽혀 구두끈을 풀고 있을 때 K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착각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K의 방을 지나가려고 칸막이의 미닫이를 열었을 때 거기에는 두 사람이 다소 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K는 언제 나처럼 지금 돌아오느냐고 말했습니다. 따님도 앉은 채로 "이제 오세요?"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분상 그랬는지, 그 간단한 인사가 약간 딱 딱하게 들렸습니다. 왠지 부자연스럽게 들렸던 것입니다. 나는 따님에게 아주머니는 하고 물 었습니다. 나는 그저 별뜻 없이 물었습니다. 평상시보다 집안이 좀 조용한 것 같아 그렇게 물어본 것뿐이었습니다. 과연 아주머니는 집에 없었습니다. 하녀도 아주머니와 같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집에 남아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K와 따님 둘뿐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 습니다. 이 집에서 지낸 지가 꽤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 아주머니가 따님과 나만 남겨둔 채 외출을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나는 따님에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나 따님은 웃기만 했습니다. 나는 이럴 때 웃는 여자가 싫었습니다. 그것을 아가씨들의 공통점이라 여기고 그냥 넘겨버리면 그만이지만, 따님 역시 별일도 아닌 일에 잘 웃는 여자 였습니다. 그러자 따님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곧 평소의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차분한 어조 로 급한 일은 아니지만 잠깐 일이 있어서 나갔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숙생인 나에게 그 이상 캐물을 권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옷을 갈아입고 막 앉으려 할 때 아주머니와 하녀가 돌아왔습니다. 이윽고 저녁 식탁 에서 모두 얼굴을 마주할 시각이 되었습니다. 하숙을 들어왔을 당시만 해도 모든 면에서 손 님으로 취급되어 식사 때마다 하녀가 상을 가져왔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 현상이 사라지고 식사 때는 언제나 주인 가족과 함께 들게 되었습니다. K가 새로 옮겨왔을 때도 나는 그를 나와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대신 나는 발이 달린, 얇은 판자로 만든 멋진 식탁을 아주머니에게 선물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느 가정에나 그런 식탁이 있지만, 그 당시 에는 그런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는 가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일부러 오차 노미즈의 가구점을 찾아가 내가 생각한 모양대로 만들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저녁 식탁에서 아주머니는 언제나 똑같은 시간에 오던 생선 장수가 오늘따라 오지 않아 우리에게 먹일 생선을 사러 시내에 가야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랬었군, 하숙생을 두고 있 는 이상 그것도 지당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 따님은 내 얼굴을 보더니 또 웃기 시작했 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주머니로부터 꾸중을 듣더니 그 즉시 웃음 을 거두었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쯤 지났을 때 나는 K와 따님이 함께 얘기하고 있는 것을 또 목격했습니 다. 그때 따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 즉시 무엇이 그리 우습냐고 물 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가버렸습니다. 따라서 K도 여느 때처럼 이제 왔느냐고 말을 걸 시간도 없었습니다. 따님 역시 그 즉시 장지문을 열고 다실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녁 식사 때 따님은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때도 왜 그렇게 생각하느 냐는 말을 못했습니다. 다만 아주머니가 따님에게 노려보는 듯한 눈길을 던지는 것을 눈치 챘을 뿐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나는 K에게 산책이라도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덴즈인 뒤쪽 으로 해서 식물원 거리를 빙 돌아 다시 도미자카 아래로 나왔습니다. 왜 긴 거리를 산책했 지만 그 동안에 나눈 이야기는 극히 적었습니다. K는 나보다 말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나 역시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산책을 하면서 그에게 이야기를 걸려고 했 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주로 하숙집 가족에 대해서였습니다. 나는 그가 아주머니와 따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답만 해 댔습니다.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극히 간단했습니다. 그는 주인집의 두 겨자에 대해서보다는 전공 과목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눈앞에 2학년 말 시험이 닥 쳤을 때이니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가 더 학생다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 다. 그리고 그는 슈에덴보르그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무식한 나를 기가 죽게 했습니다. 우리들이 그런 대로 시험을 다 보았을 때, 아주머니는 앞으로 1년만 더 고생하면 되겠다 는 말을 하며 기뻐해 주었습니다. 또한 아주머니의 유일한 보람이라 할 수 있는 따님의 졸 업도 그리 멀지 않았던 것입니다. K는 나에게 여자들은 머리 속이 텅 빈 채 학교를 졸업하 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K는 학교 공부 이외에 따님이 익히고 있는 바느질과 거문고, 그 리고 꽃꽂이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나는 세상 물정에 너무 나 어두운 그를 보며 웃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가치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예전처럼 그와 논쟁을 벌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다지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그 런가 하면, 과연 그렇군 하고 수긍하는 기색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점이 유쾌했습 니다. 그의 무뚝뚝한 모습은 여전히 여자를 경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여자의 대표자 로서 내가 알고 있는 따님에게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제 와서 돌이켜보니, K에 대한 내 질투심은 그때 이미 어느 정도 싹트고 있었던 것 같습니 다. 나는 여름 방학 때 어딘가 좀 가자고 K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K는 가고 싶지 않은 듯 이 대꾸했습니다. 물론 그는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이유 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 이유도 없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책이나 읽는 편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피서지를 찾아가 시원한 곳에서 공부를 하 는 것이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고 주장하자, 그는 그렇다면 너나 혼자 가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왠지 K혼자 이곳에 남겨둔 채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그러잖아도 K와 주인집 식구들이 점점 친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과히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목적한 대로 되어 가는 데 대해 기분이 나쁘다니, 그 또한 모순이 아닐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바 보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다 못한 아주머니가 우리 이야 기에 끼여들었습니다. 그 결과 드디어 우리 두 사람은 보슈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K는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은 친구였습니다. 나도 보슈는 처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고 배가 맨 처음 닿은 곳에서 내렸습니다. 그곳은 호다라고 했던 것 같습니 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정말 형편없는 벽촌이었습니다. 우선 어디 서나 비린내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들어갈 경우 파도가 어찌나 거센지 손발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주먹만한 커다란 돌이 밀어닥치는 파도로 서로 부딪쳐 시종 대굴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곳이 곧 싫어졌습니다. 그러나 K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얼굴만은 태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어딘가 한 군데는 반드시 상처가 났습니다. 나는 그를 설득하여 그곳을 떠나 도미우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도미우라에 서 나코로 옮겨갔습니다. 그 당시 그 부근의 바닷가는 주로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해수욕을 즐기기가 좋았습니다. K와 나는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서 멀리 보이 는 푸른 바다와 가까이 있는 물 바닥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위 위에서 물을 내려다보니 유난 히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보통때 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붉은빛이 도는 푸른색의 작은 물고기가 훤히 비치는 물결을 타고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책을 읽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K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코의 그런 모습은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인지, 경치에 넋을 잃고 보 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가끔 눈을 들고 K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K는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 는 한마디뿐이었습니다. 나는 내 곁에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이 K가 아니라 다님이 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K 또한 나와 똑같 은 생각에 잠겨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생각 이 들 때면 그 자리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벌떡 일 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잔 잔한 시나 노래를 구성지게 읊조리는 정서적인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야만 인처럼 아우성을 친다고나 할까요. 언젠가 나는 갑자기 그의 목덜미를 뒤에서 홱 잡아당긴 일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해서 바다로 처넣으면 어찌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K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등을 돌린 채 마침 잘됐다, 그렇게 해달라고 대답했습니 다. 그 순간, 나는 목덜미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었습니다. 그 무렵 K의 신경쇠약은 상당히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나는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졌습니다. 나는 나보다 태연한 K를 보고 부러워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밉기도 했습 니다. 도무지 그는 나와 상대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신감처 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단순히 자신감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품 고 있는 의혹은 그것에 멈추지 않고 그 근본을 분명히 밝혀야겠다는 데 미쳤습니다. 그는 학교 공부나 일상사에 있어서 어떤 희망을 되찾았단 말인가. 다만 그것뿐이라면 K와 나는 이해 관계에 있어 굳이 충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그를 따뜻이 돌봐준 보 람을 느끼며 흐뭇해했겠지요. 그러나 만일 그가 따님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것이라 면 나는 결코 그를 용서할 수 없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그는 내가 따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 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나도 K의 눈에 될 정도로 유별나게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K는 원래 그런 면에 있어서는 둔한 편이었습니다. 내가 K를 데려온 것도 그 친 구라면 그런 점에 있어서 안심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나는 과감히 속마음을 K에게 털어놓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으로 결정한 일 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나로서는 그것을 털어놓 을 기회를 잡는 것도, 그 기회를 만들어낼 재간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내 주위 를 둘러싸고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상했던 것 같습니다. 내게 여자에 관해 캐묻는 사람이 한 명도 얼었으니까요. 물론 그들 중에는 그런데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았겠지만 설혹 관심 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비교적 자유로운 생각과 생 활에 젖어 있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학생 시절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마음 한구석 깊이 자리한 도덕심 때문이었는지, 수줍음 때문이었는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K와 나는 아무 이야기나 허물없이 나눌 수 있는 사이였습니다. 어쩌다가 사랑이라든지 연애와 같은 이야기도 입에 올리긴 했지만 언제나 추상적인 이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물 론 그런 것을 화제로 삼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주로 책과 학문 이야기를, 그리고 장래 계획 이나 포부를 비롯해 정신 수양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갑자기 신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그 분위기를 깰 수가 없는 법입니다. 두 사람은 그저 진지한 가운데 마음을 주고받았습니다. 나는 따님에 대한 이 야기를 K에게 털어놓을까 하다가 몇 번이나 속을 끓이며 괴로워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K의 머리 어느 한 곳을 뚫어 부드러운 공기를 불어넣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눈에는 별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도 당시의 나로서는 사실 실행에 옮기기가 무척 힘들 었지요. 나는 여행지에서도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비겁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기회를 잡기 위 해 K를 관찰했지만 너무나도 초연한 그의 태도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의 심장 주위는 검은 옻칠로 두껍게 처발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The아 넣으려는 피는 심장 속으로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고 모두 튀어나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K의 태도가 너무나도 강하고 도도했기 때문에 오히려 안심이 된 적도 있습니 다. 그러면 잠시나마 그를 의심했던 것을 후회함과 동시에 마음속으로 그에게 사과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과를 할 때면 스스로 너무나도 초라해지는 것 같아 갑자기 나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그러나 잠시후면 이전의 의심이 되살아나 마음이 몹시 산란해졌습니 다. 모든 것이 의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유리한 점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생각 되었습니다. 외모에 있어서도 K 쪽이 여자들에게 호감을 줄 것 같았습니다. 성격도 나처럼 소극적이지 않아 여자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딘가 얼빠진 것처럼 보이 면서도 강직하고 사나이다운 데가 있는 점도 나보다 유리했습니다.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실력 면에서도 나는 K와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이렇게 모든 면에 서 K가 뛰어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잠시 마음이 놓였다가도 또다시 불안해졌 던 것입니다. K는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지겨우면 일단 도쿄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이상하게 도 그런 말을 듣게되면 나는 갑자기 돌아가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사실은 K를 도쿄로 보내 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슈의 밭을 돌아 그 반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따가운 햇볕 아래 힘들어하면서, 이제 다 왔다는 말에 속아 계속 걷는 나그네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걸 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걷고 있는 의미를 알 수 가 없었습니다. 나는 농담조로 K에게 그렇 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더우면 바다에 들어갔다가 가자고 하면서 아무 데서나 마음 내키는 대로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강한 햇볕을 받게 되자 몸이 나른해지며 힘이 쭉 빠졌습니다. 그렇게 걷다보면 더위와 피로 때문에 자연히 기진맥진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병이 날 정 도의 상태는 아니지요. 내 영혼이 갑자기 남의 몸 속으로 들어가, 내 몸이 내 몸같지 않다 고나 할까요. 나는 평상시와 같이 K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왠지 묘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친밀감도 미움도 여행 중에 한해서만은 특별한 성질을 띠게 되었습니다. 즉 두 사람은 더위와 바닷물 때문에, 또한 지칠 정도로 걷다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여느 때와는 달리 머리를 써야 할 복잡한 문제는 들 먹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상태로 드디어 조시까지 갔는데, 가는 길에 단 한 번 심각한 어조로 논쟁을 벌였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 우리는 보슈를 떠나기 전에 고미나토라는 곳에 서 도미의 포구를 구경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다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일이 라 뚜렷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곳은 니치렌이 태어난 날 도미 두 마리가 해변으 로 밀려 올라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마을의 어부들은 도 미를 잡는 일을 꺼려왔기 때문에 포구에는 도미가 아주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는 배를 빌려 일부러 그 도미 구경을 하러 갔습니다. 그때 나는 그저 파도에만 눈길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파도를 타고 움직이는, 약간 보랏빛을 띤 도미를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K는 나만큼 흥미를 갖지 못했던 것 같 습니다. 그의 머리 속은 도미보다는 니치렌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곳에 탄생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니치렌이 태어난 마을에 있는 절이라 탄생사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곳은 아주 훌륭한 사찰이었습니다. K는 그 절에 가서 주지를 만나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두 사람의 옷차림은 상당히 희한하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특히 K는 바람에 모자를 날려버려 삿갓을 사서 쓰고 있었습니다. 둘 다 때가 덕지덕지한 옷에다 땀으로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승려를 만나는 일은 그만두자고 했 습니다. 그러나 고집이 센 K는 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나보고 그렇게 싫으면 밖에서 기 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나도 현관으로 들어섰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거절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승려란 의외로 너그러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라 우리는 넓고 훌륭한 개길로 안내되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K와 생각이 상당히 달라서 승려 와 K의 담화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K는 니치렌에 대해 열심히 물었습니다. 니 치렌은 소니치렌이라고 할 정도로 초서에 뛰어나다는 말에 글씨를 못쓰는 K는 그렇게 사소 한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K 는 그런 이야기 보다는 더 깊은 뜻의 니치렌을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승려 가 K를 만족시켜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절 경내를 나오자 K는 자꾸만 나에게 니치렌에 대한 이야기를 들먹였습니다. 나는 덥고 지쳐서 적당히 대꾸하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귀찮아 서 완전히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그 다음날 밤의 일로 기억되는데, 숙소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우리는 갑자기 어려운 문제를 논한 일이 있습니다. K는 어제 자기가 말했던 니치렌 에 대해 내가 진지하게 상대해주지 않았던 것을 불쾌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 향상하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바보라고 하면서 나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웠습니다. 그 런데 나의 가슴속에는 따님의 일이 맺혀 있어서 모욕에 가까운 그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는 인간다운이라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그러자 K는 그 말은 자신의 결점을 빗대 어 한 것이 아니며 따져들었습니다. 과연 나중에 생각하니 K의 해석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인간답지 않다는 것을 K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그 말을 쓰기 시작한 나는 이미 그 의도가 반항적이어서 그것을 반성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 또한 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 자 K가 자기의 어떤 면이 인간답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 너는 인간답지 못하다. 아니, 너무 인간다운지 모른다. 그러나 겉으로는 인간답지 않은 말을 한다. 또 인간답지 않게 행동하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수양이 모자라 다른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대답만 하고는 조금도 내 이야기를 반박하려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반응에 나는 맥이 풀렸 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 이야기를 끝맺었습니 다. 그의 기세도 점점 숙어들었습니다. 만약에 내가 옛날 사람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대 로 안다면 그런 식으로 공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있는 대로 안다면 그런 식으로 공 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초연한 태도마저 보였습니다. K가 말한 옛날 사람이란 물 론 영웅도 아니거니와 훌륭한 인물도 아닙니다. 영혼을 위해 육체를 학대하고 도를 위해 자 신의 몸을 채찍질하는 사람, 말하자면 잦은 고난을 이겨내고 수행에 힘쓰는 사람을 가리킵 니다. K는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유로 자신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모른다며 그것 을 몰라주는 내가 너무 야속하다고 말했습니다. K와 나는 그 이야기를 끝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다시 행상 길 에 오른 사람들의 자세로 돌아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걷다가도 그날 밤일이 퍼득퍼득 생각났습니다. 나에게는 다시없이 좋은 기회였는데 왜 그것 을 놓쳐버렸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인간다운이라는 추상적인 말 대신 더 직 접적이고 간단한 말로 K를 공격했어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입니다. 사실 내가 그런 말을 쓴 것은, 따님에 대한 감정이 토대가 된 것이니 만큼 사실을 증류해서 만든 이론을 K 의 귀에 불어넣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그에게 들이대는 쪽이 내게 더 유리했을 테니까 요.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중학 시절부터 같이 공부하며 쌓아온 우정이 우리 두 사람을 너무나 단단히 묶고 있어 그것을 저버릴 용기가 없었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입 니다. 고상한 척했다 해도, 허세를 부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해도 할말은 없지만 내가 말한 '고상'이나 '허세'라는 말의 뜻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이해해 준 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우리는 시커멓게 탄 모습으로 도쿄로 돌아왔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 내 기분은 또 달 라졌습니다. 인간다운 이라든지 인간답지 않다든지 하는 그럴 듯한 구실은 거의 잊혀진 상 태였습니다. 현실을 외면한 듯한 K의 모습도 전혀 자취를 감춘 듯했습니다. 아마도 그때는 영혼이 어떻다, 육체가 어떻다라는 문제가 그의 마음 어디에도 자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과 같은 얼굴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도쿄를 휘둘러보았 습니다. 그리고 료고쿠에 가서 더운데도 샤모를 먹었습니다. K는 그 기세로 고이시가와까지 걸어서 가자고 했습니다. 체력 면에서는 K보다 내가 강했으므로 나는 서슴지 않고 응했습 니다. 집에 도착한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습니다. 우리는 까맣 게 탔을 뿐만 아니라 생각 없이 걸어다니다 보니 상당히 말랐던 것입니다. 그러자 따님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어머니의 말씀이 우습다고 하며 예전처럼 또 웃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해도 따님의 그런 웃음에 가끔 화가 났던 나도 그때만은 유쾌한 분위기에 젖어 들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웃음소리나마 아주 오랜만에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따님의 태도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 랜 여행길에서 돌아온 우리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는 여러모로 여자의 손길이 필요했는데, 그 뒷바라지를 해준 아주머니는 그렇다 치고 무슨 일이든 따님이 나에게 먼저 마음을 써주 고 K를 뒷전으로 미룬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을 너무 눈에 띄겠끔 하게 되면 오히려 내 입장이 난처해졌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쾌하기까지 했지만 다행히도 따님은 요령 을 잘 부려 나를 기쁘게 했습니다. 즉 따님은 나만 알 수 있도록 그 특유의 친절 심을 베풀 어주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K는 별로 못마땅해하는 기색도 없이 평상시처럼 지낼 수 있었 던 것이지요. 나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는 동안 여름도 다 가고 9월 중순부터는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K와 나는 각기 강의 시간이 달랐으므로 드나드는 시간도 달랐습니다. 내가 K보다 늦게 돌아오는 날 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였는데, 언제 돌아 오더러도 K의 방에서 따님의 모습을 볼 수 없었 습니다. K는 나를 보면 "지금 돌아오느냐"는 말을 변함없이 했습니다. 그러면 나 역시 거의 기계처럼 간단하면서도 무의미한 인사로 답했습니다. 분명히 10월 중순의 일이었을 겁니다. 늦잠을 자서 키모노 차림 그대로 급히 학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신도 편상화를 묶을 시간이 아까워서 짚신을 아무렇게나 신고 뛰어나갔습니 다. 그날은 강의 시간표 상으로는 내가 K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습니다. 그런 생 각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현관 격자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러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K의 목소리가 난데없이 들려왔습니다. 또한 따님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여느 때와 달리 손이 많이 가는 신을 신고있지 않았기 때문에 곧장 현관으로 올라가 칸막이의 미닫이 를 열었습니다. 나는 언제 나처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K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따님은 벌 써 그곳에 없었습니다. 나는 K의 방에서 마치 도망치듯 떠나는 그 뒷모습만을 언뜻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K에게 왜 이리 빨리 돌아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K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내 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앉아있다 따님이 차 를 가져왔습니다. 그때 따님은 처음으로 "이제 오셨어요?"하며 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 러나 나는 웃으면서 아까는 왜 달아났느냐고 물을 정도로 호탕한 사나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왠지 그 일이 마음에 걸려 속만 끓이는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따님은 금세 일어 서서 툇마루를 따라 저쪽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K의 방 앞에 멈춰 서서 방문을 사이에 두고 뭐라 몇 마디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금 전에 나누던 이야기의 계속인 것 같았으나 앞의 말을 듣지 못한 나는 좀처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따님의 태도는 점점 태연해졌습니다. K와 내가 함께 집에 있을 때 도 K의 방 툇마루로 와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의 방에 들어가서 한참 있기도 했습니다. 물론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사람으로서 우편물을 갖다준다거나 세탁물을 두고가는 정도의 왕래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따님을 독차지하고싶은 열망에 불타고 있던 나에게는 그런 일도 도가 지나친 경우로 보았습니다. 어떤 때는 따님이 일부러 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피하고 K에게만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K에게 그 집에서 나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 나 그렇게 하면 내가 K를 거의 강제로 끌고 온 데 대해 자존심이 서지 않게 될 뿐이었습니 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추운데다 비까지 내리던 11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외투를 적시면서 여느 때와 다 름없이 곤냐쿠엔마를 지나 좁은 언덕길을 올라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K의 방은 텅 비어 있었지만 화로에는 갈아넣은 불이 훈훈하게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방의 화로도 당연 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차가운 손을 빨리 따뜻한 숯불에 쬐려고 급히 내 방 칸막이를 열 었습니다. 그러나 내 화로에는 차가운 재만 하얗게 남아 있을 뿐 불씨마저 꺼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때 내 발소리를 듣고 아주머니가 나왔습니다.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방 한가운데 서 있는 내모습을 보더니 안되었다는 듯이 외투를 벗겨주고 기모노를 입혀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춥다고 하자 즉시 건넌방에서 K의 난로를 갖다주었습니다. 내가 K는 돌아왔느냐고 묻 자, 아주머니는 돌아왔다가 다시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날도 K는 나보다 강의가 늦게 끝나 는 날이었으므로 나는 다소 의아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아마 무슨 볼일이 있는 모양 이라고 했습니다. 한동안 나는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집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아 아무 소리도 들리 지 않는 가운데 초겨울의 추위와 외로움이 뼛속 깊이 느껴졌습니다. 그 즉시 나는 책을 덮 고 일어섰습니다. 문득 번화한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비는 겨우 지친 것 같았지만 하늘은 아직 차가운 납처럼 무겁게 보여서 나는 준비성 있게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포병공창의 뒤 편 토담을 따라 동쪽으로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그 당시는 아직 도로 개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무렵이어서 비탈길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파른 편이었습니다. 또한 내려가면 남쪽이 높은 건물로 막혀 있고 배수 사정도 좋지 않아서 도로는 마치 곤죽처럼 질척거렸습니다. 특 히 좁은 돌다리를 건너 야나기초 도로로 나가는 길은 더욱 심했습니다. 굽이 높은 왜나막신 이나 장화를 신고서도 함부로 걸어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누구나 다 양쪽으로 진흙이 밀 쳐져 길 한가운데 자연스럽게 난 좁고 긴 곳을 아주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 폭 은 겨우 5,6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어쩔 도리 없이 길에 깔려 있는 좁은 띠를 밟으 며 건너편으로 가는 것과 다를바 없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그 길을 지나가려면 모두 한 줄 로 서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걸어가야 했습니다. 나는 바로 그 좁은 띠 위에서 K와 탁 마주 쳤습니다. 발에만 신경을 쓰며 걷고 있던 나는 그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그를 전혀 보지 못 했습니다. 갑자기 앞이 막혀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야 비로소 거기에 서 있는 K를 보았던 것입니다. 나는 K에게 어디를 갔다오는 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K는 그냥 저 기라고만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대답은 불성실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K와 나 는 좁은 띠 위에서 서로 몸을 돌려 비켜섰습니다. 그러자 K의 바로 뒤에 한 아가씨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근시인 나는 그전까지는 그 여자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K를 지나가게 한 후에야 얼굴을 보고 바로 주인집 따님이라는 사실에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따 님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 무렵의 소쿠하쓰는 오늘날과는 달리 앞머리를 앞으로 쑥 나오게 빗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머리 한가운데 뱀처럼 칭칭 감았던 것입니다. 나는 멍하니 따님의 머리를 보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길을 양보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지나가기 쉬운 곳을 비워주어 따님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나기초의 길로 나온 나는 도무지 어디로 가야 좋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재미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진흙탕이 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진창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K에게 따님과 함께 외출한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K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습 니다. 마사고초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온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는 그 이상 묻는 것 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따님은 내가 싫어하는 그 웃음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어디에 갔다온 것 같은지 알아맞춰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성격이 불과 같았 던 나는 젊은 여자로부터 그렇게 불쾌한 취급을 당하자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 에 눈치가 빠른 사람은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서 아주머니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K는 오히려 태연했습니다. 따님은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체하는 것인지, 정말 너무 순진하 기만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 치고 따님은 생각이 깊은 편이었지 만 그만한 나이의 아가씨들에게 공통된, 내 눈에 거슬리는 점도 결코 없다고 만은 할 수 없 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점은 K가 들어온 후에야 비로소 눈에 띄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K에 대한 질투심으로 돌려야 할지, 아니면 나에 대한 따님의 기교를 봐야 할지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말했듯이, 나는 사랑의 이면에는 반드시 감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남이 볼 때 아주 하찮은 일에 대해 언 제나 그런 감정이 고개를 들려고 했으니까요. 이것은 여담이지만, 그러한 질투심은 사랑의 일면이 아닐까요. 나는 결혼을 한 다음부터는 그런 감정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 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애정 역시 결코 처음처럼 뜨겁지도 않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가슴속에 담아두고만 있던 내 마음을 그 즉시 상대에게 털어놓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상대란 결코 따님이 아닙니다. 바로 아주머니입니다. 아주머니에게 따 님을 달라고 하며 속시원하게 담판을 벌일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결심은 했으면 서도 나는 그 결심을 단행할 날을 하루하루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런 내가 당신의 눈에는 꽤나 우유부단한 사나이처럼 보이겠지요. 그렇게 보인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사실 내가 결심한 대로 행동하지 못한 것은 의지력이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내 하숙집으로 오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교묘한 수법에 속아넘어가기가 죽기 보다 싫다는 생각 에 사로잡혀, 결심은 섰어도 그것을 조금도 실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k가 온 후로 는 어쩌면 따님이 k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에 사로잡혀 마음먹은 대로 실 행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따님이 나보다 k에게 마음이 기울이고 있다면 내 가슴속에 품고있는 연모의 정은 입에 담을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 존심이 상하는 고통과는 완전히 뜻이 다릅니다.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상대가 딴사람에게 사랑의 눈길을 The고 있다면 어떻게 그런 여자를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 세 상에는 상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기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온갖 세상사에 닳고닳은 사나이이거나 아니면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를 모르는 덜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가슴속의 열정은, 일 단 결혼만 하게되면 그런 대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면 된다는 식의 생각에는 따를 수 없을 만큼 열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지극히 고상한 사랑의 이론가 였지요. 동시에 대 단히 비현실적인 사랑의 실천가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한 집에서 살면서 상대인 따님에게 내 마음을 직접 털어놓을 기회도 여러 번 있 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하고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어떤 전통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내 감정을 그토록 억제한 것은 결코 그런 관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본인, 특히 젊은 여인은 그런 경우 상대에게 아무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만 큼 용기가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을 때 낮잠을 자다보면 눈은 떠져서 주위 것이 다 보이긴 하는데 도무지 손발이 움직여지 지 않을 때가 있지요. 때때로 나는 그와 같은 고통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한 해가 가고 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K에게 화투를 할 생각 인데 친구를 데려오지 않겠느냐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K가 그럴 정도로 가깝게 지내 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고 대답하는 바람에 아주머니는 그만 눈이 휘둥그래지며 깜짝 놀라 고 말았습니다. 정말 K에게는 친구라고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 다. 길에서 만났을 때 인사를 나눌 정도의 친구는 몇 명 있었지만 그들 역시 함께 화투를 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러면 내가 아는 사람이라도 불러오라고 말했지만 나 역시 말소리를 높이며 그런 놀이를 할 기분이 아니어서 적당히 대답을 하고 이 야기를 끝맺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자 K와 나는 결국 따님에게 끌려나가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가운데 내내 같은 사람들끼리 치는 화투여서 분위기는 조용하기만 했 습니다. 더구나 그런 놀이엔 영 흥미가 업는 K는 마치 팔짱을 낀 채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나는 K에게 도대체 백인일수의 노래를 알고있느냐고 물었습니다. K 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따님은 아마도 내가 K를 무시한 것 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는 눈에 띄게 K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더군요. 드디어는 두 사람이 한패가 되어 나를 공격하는 인상을 띠었습니다. 그 렇게 되면 나 역시 상대의 태도에 따라 싸움을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도 K의 태도는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디서도 득의에 찬 모습을 찾아 내지 못한 나는 그 자리를 아무 일 없이 끝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3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주머니와 따님은 아침부터 이치가야에 있는 친척집 에 간다고 하며 나갔습니다. K나 나는 아직 개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집에 있었습 니다. 나는 책을 읽을 마음도, 그렇다고 산책을 나갈 마음도 없어서 그저 화롯가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턱을 받친 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옆방에 있는 K도 아무 기척도 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양쪽 다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하긴 그런 일은 두 사람 사이에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열시 쫌 되었을 때 K는 갑자기 칸막이의 미닫이를 열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습 니다. 그는 문턱 위에 선 채 나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여느 때처럼 따님과 관계가 있는 일이었겠지요. 그런데 따님과의 일에는 언제나 아주머니도 따라다녔지만, 요즈 음에는 K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인물로 끼여들어 그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입니 다. K의 얼굴을 마주본 나는 그를 희미하게나마 일종의 방해자로 의식하면서도 확고하게 그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묵묵히 있었습니다. 그 러자 K는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오더니 내가 불을 쬐고 있는 화로 앞에 앉았습니다. 나는 화롯가에서 팔꿈치를 들어 화로를 K 쪽으로 약간 밀어붙이는 것처럼 했습니다. K는 여느 때와는 다른 말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아주머니와 따님은 이치가야의 누구를 찾아간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아마도 숙모일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K는 그 숙모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역시 군인의 부인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 자 K는, 대체로 여자들은 설날로부터 15일쯤 후에야 세배를 다니는데 왜 그렇게 빨리 간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나 역시 그 이유는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K는 좀처럼 아주머니와 따님 이야기를 그만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나도 대답할 수 없는 사사로운 일까지 물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계속 물어대는 것이 귀찮다기보다는 이 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의 그를 생각하니 그의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나는 그에게 오늘따라 왜 그런 말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곽 다문 그의 입 언저리가 떨리듯 씰룩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래 말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그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면 먼저 입언저리를 우물우물하는 버릇이 있었습니 다. 마치 입술이 의지에 반항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 데 그의 말의 무게도 담겨져 있었는지, 일단 말이 입을 통해 나오면 그 소리는 보통 사람보다 두 배나 강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언저리에 눈길을 돌렸을 때 그 즉시 나는 또 무슨 말이 나오겠구나 하고 느끼긴 했지만 그것이 과연 무슨 이야기일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로서는 놀라 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엄숙함마저 감도는 그 무게 있는 입으로 그가 따님에 대해 품 고있는 연모의 정을 털어놓았을 때의 내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나는 그의 마법봉 때문에 순간적으로 화석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K처 럼 입을 우물우물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공포의 덩어리, 아니 고통의 덩어리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분명 하나의 덩어 리였습니다. 마치 돌이나 철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갑자기 굳어버렸던 것입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굳어 버렸지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나는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곧 아차, 내가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내가 한 발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가 없더군요. 아니, 그럴 정도의 여유가 없 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겨드랑이 밑에서 배어 나온 기분 나쁜 땀이 셔츠에 스며드는 것을 묵묵히 참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K는 여느 때처럼 무거운 입을 열고는 자신의 심 정을 띄엄띄엄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습니다. 그 괴로움은 마치 커다란 광고 처럼 또박또박한 글씨로 내 얼굴에 찍혀졌을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둔한 K일지라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겠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자기의 이야기에 만 온 정신을 쏟고 있어서 내 표정 따위는 주의 깊게 살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의 고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무게가 있고 둔한 대신 여간해서는 어떻게 잘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의 고백에 귀를 기울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그러니 사소한 이야기까지 들먹거리면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게 마련인데, 그래도 그의 이야기의 핵심만은 내 가슴에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로 인해 나는 앞에서 말한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일종의 공 포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즉 상대는 나보다 강하다는 공포감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K의 이야기가 대충 끝났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 역시 그의 면전에 다 대고 똑같은 고백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털어놓지 않는 것이 나을까 - 나는 그런 이 해를 따지느라 잠자코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또한 말할 기분이 나지 않았습니다. 점심 식사 때 K와 나는 자리를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입맛이 당기 지 않는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K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머 니와 따님은 언제 돌아올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간 후 얼굴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K는 아침때와 마찬가지 로 조용했습니다. 나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나는 당연히 내 속마음을 K에게 털어놓아야 했다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 미 때가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따님 이야기가 나왔을 때 K의 말을 가로막고 내 쪽 에서 역습을 하지 못했던 것을 마음속 깊이 후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K가 이야기를 끝마 쳤을 때라도 그 자리에서 내 심정을 털어놓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 의 고백을 다 들은 지금에 와서 내가 똑같은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고통을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후회 로 인해 나는 머리가 깨질 듯했습니다. 나는 K가 다시 칸막이 미닫이를 열고 돌진해오기를 바랐습니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아까 는 불의의 습격을 당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 당시 나는 K의 공격에 대해 아무 준비 태세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나는 오전에 잃은 것을 기필코 되찾고 말리라는 결심을 하고 있 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눈을 치켜 뜨고 미닫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K의 방에서는 여전히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그 고요함에 신경이 쓰여 도저히 차분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K는 지금 미닫이 저쪽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것이 마음에 걸려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평상시에도 그렇게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아무 말 없이 있는 일이 많았는데, 나는 K가 조용히 있을수록 그의 존재 마저 잊고 있기 예사였 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때 나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 지만 내가 먼저 미닫이를 열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 말을 꺼낼 기회를 놓친 나는 K가 다시 접근해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조용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참다가는 K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기라고 할 것만 같았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툇마루로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다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별로 생각은 없었지만 쇠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찻잔에 부어 한 잔 마셨습니 다. 그런 다음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나는 일부러 K의 방을 피해서 집을 나와 거리로 나섰 습니다. 물론 어떤 목적지를 정하고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던 것뿐입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정월의 거리를 걸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다녀도 내 머리 속은 K의 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 역시 머리 속에서 K의 일을 떨쳐버릴 생각으로 걸어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부러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 그런 일을 갑자기 나에게 털어놓았을 까, 그리고 그렇게 털어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열정이 격화된 이유는 무 엇일까, 또한 어떻게 그가 그토록 변할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기가 힘 들었습니다. 나는 그의 강인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가 성실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 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취할 태도를 결정하기 전에 그에 대해 정리해두어야 할 점이 많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동시에 앞으로 그를 상대한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 빴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거리를 걸어다니면서도 자기 방에 조용히 앉아 있을 그의 모습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아무리 내가 딴 생각을 하며 돌아다닌다 해도 그의 마음 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즉 나에게는 그가 마치 요망 스런 괴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영원히 그의 앙화를 입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내가 지칠 대로 지쳐 집에 왔을 때 그의 방은 여전히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내가 집에 들어가자 곧 인력거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바퀴가 오늘날과는 달 리 고무바퀴가 아니어서 그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멀리서도 귀에 울릴 정도였지요. 이윽고 인력거는 문 앞에서 멈췄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라는 말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30분 정도 지난 후였는데, 아주머니와 따님 의 나들이옷은 옆방에 마구 벗어 던져진 채 어지럽혀져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식사가 늦어 질까 봐 부랴부랴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그러한 친절심은 K와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식탁에 앉으면서부터 한마디라도 내뱉는 것을 아까워 하는 사람처럼 쌀쌀맞은 대답만 했습니다. K는 나보다 더 말이 없었습니다. 모처럼 함께 외 출을 했던 두 여인은 평소보다 한층 더 기분이 들떠 있어서 푹 가라앉은 K와 내 태도는 더 눈에 띌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나더러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기분이 좀 언짢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따 님이 K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K는 나처럼 기분이 언짢다고는 대답하지 않았 습니다. 다만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따님은 왜 말하고 싶지 않느냐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때 나는 문득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K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나 는 K가 과연 뭐라 대답할지 궁금했습니다. K의 입술은 여느 때처럼 약간 떨리고 있었습니 다. 그의 버릇을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분명히 대답할 말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는 것처 럼 보였을 것입니다. 따님은 웃으면서 또 무엇인가 어려운 것을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말했 습니다. K의 얼굴은 약간 붉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나는 평소보다 좀 빨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식사 때 내가 기분이 언짢다고 한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아주머니는 열시쯤 메밀당수를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내 방은 이미 불이 꺼진 뒤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아니, 벌써 하며 칸막이의 미닫이를 살짝 열었습니다. 어 렴풋한 불빛이 K의 책상에서 내 방으로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K는 아직 안 자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내 머리맡에 앉더니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몸을 덥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찻잔을 내 얼굴에 들이대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질척한 메밀 당수를 아주머니가 보는 앞에서 들이마셨습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늦게까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물론 한 가지 문제로 속만 끓일 뿐 속시원하게 결론을 내리진 못했습니다. 갑자기 K가 지금 옆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 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봐 하고 불러보았습니다. 그러자 저 쪽에서도 어이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K 역시 잠들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미닫이 너머로 아직 안 자고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K는 이제 자야겠다는 간단한 대답을 보내왔습니다. 나는 다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5,6분 정도 지났을 때 벽장을 드르르 열고는 잠자리를 펴는 소리가 선 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지금 몇 시나 되었느냐고 또 물어보았습니다. K는 한시 이 십분 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이윽고 램프를 후하고 불어 끄는 소리가 나더니 온 집안이 어둠에 싸 이며 적막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내 눈은 그 어둠 속에서 더욱더 말똥말똥해지기만 했습니다. 나는 거의 무의식 상 태에서 이봐 하고 K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K도 이전과 같은 어조로 어이 하며 맞장구를 쳤 습니다. 드디어 나는 오늘 아침 그가 해준 이야기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 쪽 의향은 어떠냐는 말을 꺼냈습니다. 나는 물론 미닫이 너머로 그러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 은 없었지만 K의 대답만은 즉시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K는 아까 부터 이봐 하고 부른 데 대해 두 번 다 어이라고 고분고분 대답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 무응답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하고 주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또 퍼뜩 불길한 생 각이 들었습니다. K가 건성으로 한 대답은 다음날이 되어도 또 그 다음날이 되어도 쉽사리 행동으로 나타 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의 태도로 보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자진해 서 언급하려는 기색을 결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긴 그럴 기회도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와 따님이 함께 집을 비우기 전에는 두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 차분히 그런 이야기 를 나눌 수 없었으니까요. 나는 그런 것쯤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묘하게 속이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처음에는 K가 먼저 접근해오기만을 기다리며 준비 태세를 갖 추고 있던 나는 기회만 오면 내가 먼저 입을 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나는 은밀히 집안 사람들의 행동을 주시했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태도나 다님 의 행동은 평상시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K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전이나 그 후로 그들의 태도에 뚜렷한 변화가 없다면 그의 고백은 다만 나만 알고 있는 사실로서, 가 장 중요한 상대나 그 감독자라 할 수 있는 아주머니에게도 아직 털어놓지 않았다는 것이 분 명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다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기회를 만들 어서 일부러 이야기를 꺼내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가운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 여기고 그 문제는 잠시 그대로 덮어두기로 했습니다. 말은 그리 간단하지만, 그렇게 마음먹기까지는 조수의 간만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엇갈리 며 심한 기복이 있었습니다. 나는 K가 잠잠히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여러 각도로 분석 했습니다. 또한 아주머니와 따님의 말이나 행동을 지켜보며 두 사람의 마음이 과연 겉으로 나타난 그대로일까 하며 의심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가슴속에 장치된 복잡한 기 계가 과연 시계바늘처럼 분명하고 거짓없이 반상의 숫자를 가리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 니다. 결국 나는 한가지 문제를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한 끝에 그러한 결론을 내리며 겨우 안정을 찾은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서 안정을 찾았다는 말은 그 상 황과는 맞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는 동안 다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강의 시간이 같은 날은 함께 집 을 나섰습니다. 시간이 맞으면 돌아올 때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따라서 K와 나는 다른 사람 의 눈에는 전과 다름없이 친한 사이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서로 다른 꿈 을 꾸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길에서 K에게 질문 공세를 폈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일전의 그 고백은 나에게만 한 것인가 또는 아주머니와 따님 에게도 한 적이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취할 태도는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아직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일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내 추측이 들어맞자 나는 내심 기뻤습니다. 나는 K가 나보다 뻔뻔스 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배짱에 도저히 따라갈 수 언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 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묘하게 그를 믿고 있었습니다. 학자금 때문에 3년 동안이 나 양부모를 기만한 그였지만 내가 그를 믿는 마음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 사건 때문에 그를 믿게 되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 아무리 의심 많은 나였지만 그의 명 백한 대답을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또 그에게 앞으로 가슴속에 담고 있는 열정을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것이 다만 고백으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그 고백에 이어 그것을 실현시킬 생각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눈길을 아래로 떨군 채 묵묵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속마음을 숨기지 말라, 모든 것을 말해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기가 속마음을 숨길 까닭이 어디 있겠느냐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알고 싶어하는 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나도 길거리에 서서 모든 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쯤에서 이야기를 끝낼 수밖에 없 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한 몸에 받으면서 넓은 책상 한구석에서 새로 들어온 외국 잡지를 이리저리 뒤적거 리며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임 교수님으로부터 전공 과목에 관해 다음주까지 어떤 사항 을 조사해 오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사항을 좀처럼 찾지 못해 잡지를 두세 번씩이나 다시 빌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필요한 논문을 겨우 찾아내어 그것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폭이 넓은 책상 너머에서 나지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보니 거기에 K가 서 있었습니다. K는 상체를 책상 위 로 구부리 듯하여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남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소리를 내어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 상식이므로, K의 그런 동작은 그리 별난 일이 아니 었으나 나는 그때 따라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K는 낮은 소리로 공부를 하는 중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좀 검토할 것이 있다고 대답했 습니다. 그래도 K는 여전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좀전과 똑같 이 낮은 소리로 함께 산책이나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나는 조금 기다려주면 나가겠 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그럼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바로 내 앞의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러자 나는 정신이 산란해져서 갑자기 잡지를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왠지 K가 무슨 결심을 하고 담판이라도 지으러 온 것처럼 여겨져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나는 읽 기 시작했던 잡지를 덮어놓고 일어서려 했습니다. 그러자 K는 태연한 얼굴로 벌써 끝났느 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괜찮다는 짤막한 대답을 하고 나서 잡지를 반납한 후 K와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목적지를 정한 것도 아니어서 다쓰오카초에서 이케노하타로 나와서 우에노 공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는 일전의 그 일에 대해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전후 상황 을 종합해볼때 K는 그 일 때문에 일부러 나에게 산책을 하자고 하며 끌고 나온 것 같았습 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로 보아 아직도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구체화할 엄두는 내지 못한 듯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다만 막연하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말은 그러한 연애의 구렁 속에 빠진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는 뜻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현재 의 자신에 대해 나의 의견을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평상시와 다른 그의 면 모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남의 평판을 거리낄 정도로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혼자서 거침없이 해나가는 배짱도 있고 용기도 있는 사나이였습니다. 양부모와의 결별 사건으로 그의 그러한 면모를 확실히 알고 있는 내가 이번만은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K에게 왜 지금 내 의견을 필요로 하느냐고 묻자, 그는 여느 때와는 달리 자신 없는 말투로 나약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갈피를 잡지 못해 자기 자 신조차 알 수 업는 상태이므로 나에게 올바른 판단을 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기 회를 놓치지 않고 즉시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캐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 그것을 결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 니다. 그 즉시, 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고는 그에게 물러서라고 말하면 물러설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말문이 막힌 듯했습니다. 그는 만지 괴롭다고만 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얼굴에는 괴로운 빛이 역력했습니다. 만일 상대가 따님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에게 힘이 되어줄 따뜻한 말을 그 까칠하고 해쓱한 얼굴에 단비 처럼 듬뿍 퍼부어 주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정도의 아름다운 동정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라 는 것을 스스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달랐습니다. 나는 마치 목숨을 건 결투라도 하는 사람처럼 K를 주시했습니다. 나의 눈, 나의 마음, 나 의 몸, 이렇게 나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모든 것이 조금도 빈틈없이 K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순진한 K는 빈틈투성이라기보다 오히려 모든 것을 활짝 열어놓았다는 말 이 어울릴 정도로 경계의 빛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가 간직하고 있던 요새의 지도를 순순히 넘겨받아 그것을 그의 눈앞에서 천천히 훑어볼 수 있었던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K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휘청거리고 있는 것을 알아챈 나는 단 일격으로 그 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만 착안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의 허를 틈탔습니다. 갑 자기 나는 그를 향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정색을 했습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기 는 하지만 사실 그 정도의 긴장감도 있었으므로 스스로 우스꽝스럽다 거나 부끄럽게 느낄 여유는 없었습니다. 나는 먼저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보슈를 여행하고 있을 때 K가 나에게 사용했던 말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했던 말을 그와 똑같은 말투로 다시 그에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에게 복수를 하 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복수 이상의 잔혹한 의도로 그 말을 했습 니다. 나는 그 한마디로 K가 헤쳐나가야 할 연애의 앞길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K는 진종사에서 태어난 사나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학 시절부터 결코 생가의 종지에 가까운 사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교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이런 말을 한 다는 것이 좀 우습긴 하지만, 나는 다만 남녀간의 문제와 관계가 있는 점에 대해서만은 K 의 사고방식을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K는 정진이라는 말을 좋아했습 니다. 나는 그 말속에는 금욕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보다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어서 나는 무척 놀랐습니다. 도 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회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신조였으므로, 그에게 있어서 섭욕과 금욕은 물론이거니와 욕정을 떠난 연애 그 자체도 도의 방해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K가 고학을 할 때 나는 자주 그로부터 그의 주장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 렵부터 따님을 연모했던 나는 당연히 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내 태도에 그는 언제나 가엽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정보다는 모멸에 더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지난날 K와 나 사이에는 그러한 일이 있었으므로 내가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라는 말을 했을 때 K의 마음은 무척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그 한마디로 그가 공들여 쌓아올린 탑을 발로 걷어차 무너뜨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계속 쌓아올릴 수 있게 하려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탑이 도에 이르건 하늘에 이르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내가 두려워한 것은 K가 갑자기 생활 태도를 바꾸어 나와 충돌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한 그 말은 단지 이기심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다." 나는 그 말을 두 번이나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K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래 바보다"하고 한참 후에 K가 대꾸했습니다. "그래, 난 바보다." K는 그 자리에 딱 멈춰선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땅만 내려다보고 있 었습니다. 그러자 한순간 나는 섬뜩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K가 절도를 하다 들키자 무서운 강도로 변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의 눈빛을 보고 싶었지만 그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나는 K와 나란히 걸어가면서 그의 다음 말을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아니, 어떤 기회를 노 리고 있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나는 K를 감쪽같이 속일 마음까지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도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만한 양심은 있었으므로, 만일 누가 내게 다가와 너는 비겁하다라는 말 한마디라도 왜주었다면 그 순간 나는 퍼뜩 나 자신으로 돌아 왔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K가 그 사람이었다면, 고 순간 나는 틀림없이 얼굴이 화끈했을 것 입니다. K는 나를 타이르기에는 너무나도 순수했습니다. 너무나도 단순했습니다. 너무나도 마음이 착했습니다. 그러나 눈이 어두워진 나는 그의 그러한 면모를 높이 사기는커녕 오히 려 그것을 이용했습니다. 그러한 점을 이용해 그를 쓰러뜨리려 했던 것입니다. 한참 후에 K는 내 이름을 부르더니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연히 내가 발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K도 멈춰 섰습니다. 나는 그때야 겨우 K의 눈빛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습니나. K는 나보다 키가 컸으므로 자연히 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게 되었습니 다. 나는 그러한 태도로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양에게 늑대 같은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얘기는 그만두자"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눈과 말속에 는 비통한 느낌이 서려 있었습니다. 한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K는 "그만둬" 하고 부탁하듯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에게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을 던졌습니다. 마치 늑대가 틈을 노리다가 양에게 달려들어 숨통을 물어뜯듯이. "그만두라니, 내가 먼저 꺼낸 얘기가 아니잖아. 사실은 네가 먼저 꺼낸 얘기잖아. 하지만 네가 그만두고 싶다면 그만둬도 상관없어. 그러나 입으로만 그만두면 뭐해, 네 마음속에 그 만둘 만한 각오가 되어있어야지. 도대체 너는 생각과 행동이 어쩜 그렇게 다를 수가 있니?" 내가 그렇게 말하자 키가 큰 그는 자연히 내 앞에 위축되어 작아진 것 같았습니다. 누누 이 말했듯이, 그는 고집이 센 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순수해서 자신의 모순 점을 심하게 비난받으면 결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에 겨우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느닷없이 "각오라니?" 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내 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각오, -그런 각오야 못할 것도 없지" 바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독백을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니, 마치 꿈을 꾸며 하는 말 같았습니다. 우리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끝맺고 고이시가와의 하숙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 습니다. 비교적 바람이 없는 따뜻한 날씨였지만, 어쨌든 겨울이어서 공원 안은 쓸쓸했습니 다. 특히 서리를 맞아 생기를 잃은 삼목나무의 다갈색 우듬지가 거무스름한 하늘을 향해 우 뚝 줄지어 솟아 있는 것을 돌아다보았을 때는 추위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저녁놀로 물든 홍고다이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가려고 고이 시가와의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그때쯤 되자 겨우 외투 밑으로 훈훈함이 느껴졌습니다. 서두른 탓도 있겠지만 우리는 돌아갈 때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가서 식탁에 가 앉자 아주머니는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K가 산책을 나가자고 해서 우에노에 갔다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이런 추운 날씨에, 하며 놀라 는 표정이었습니다. 따님은 자꾸만 우에노에 무슨 구경할 만한 것이라도 있었느냐고 물었습 니다. 나는 그런 것 때문에 간 것이 아니라 그저 산책을 했을 뿐이라고 대꾸했습니다. 평소 에도 말이 없는 K는 여느 때보다 더 말이 없었습니다.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도, 따님이 웃 어도 제대로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밥을 삼키듯이 급히 먹고는 내가 식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자기 방으로 가버렸습니다. 그 당시는 각성이라든지, 새로운 생활이라는 말이 아직 생소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K 가 과거의 생활 자세를 미련 없이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지 못한 것은 그에게 현대적 인 사고방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미련 없이 내버릴 수 없는 고귀 한 과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 하나를 믿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 니다. 따라서 K가 사랑의 목적물을 향해 돌진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그 사랑이 소극적이 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렬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해도 그는 함부로 행동 할 수 없었습니다. 앞뒤 상황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K는 반드시 감정을 억누르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 봐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지난날의 자세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에게는 현대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집과 인내심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두 가지 점에 대해서만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우에노까지 산책을 갔다온 날 밤, 나는 비교적 마음이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K가 방 으로 가버리자 얼른 그를 뒤쫓아가 그의 책상 곁에 버티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두서 없는 잡담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귀찮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내 눈에는 어느 정도 승리의 빛이 빛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 음성에는 분명히 득의의 울림마저 담겨 있었 을 것입니다. 나는 한참 동안 K와 함께 화로에 손을 녹이다가 내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다 른 일에 있어서는 도저히 그를 따르지 못했던 나도 그때만은 그를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자 신감이 있었습니다.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내 아픔을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눈을 뜨자 중간 미닫이가 60센티미터쯤 열려있고 거기에 서 있는 K의 검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방에는 초저녁 때처럼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때 K는 벌써 잠이 들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K는 언제나 늦게까지 자지 않는 편이었습 니다. 나는 유령처럼 서 있는 K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K는 무슨 일이 있어 서가 아니라 단지 화장실에 가는 길에 자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안 자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K는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그의 안색과 눈빛은 전혀 알 수가 없었 습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차분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더니 K는 열었던 미닫이를 꽉 닫아버렸습니다. 그러자 내 방은 다시 어두워졌습니다. 나는 그 어둠보다 조용한 꿈을 꾸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고는 아무 의식이 없 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되어 간밤의 일을 생각해보니 왠지 이상했습니다. 나는 어 쩌면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 K에게 간밤의 일을 물어보았습니다. K는 분명히 미닫이를 열고 내 이름을 불렀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서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대답을 얼버무렸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대답에 맥이 빠졌을 때, 오히려 K는 요즈음은 잠을 푹 잘 수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같은 시간에 강의가 시작되는 날이어서 우리는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아침 부터 간밤의 일이 걸렸던 나는 학교에 가는 길에 또다시 K를 추궁했습니다. 그러나 K는 역 시 내가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일에 대해 무엇인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느냐고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K는 강한 말투로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습니다. 어제 우에노에서 "그 얘기는 이제 그만두자"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환기시키는 듯한 말 투였습니다. K는 그런 점에 있어서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문득 거기에 생각이 미 친 나는 그가 한 '각오'라는 말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았던 그 두 글자가 이상하게도 신경이 나는 K가 과단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사 건에 대해서만은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납득하고 있었습니 다. 즉 나는 일반적인 것을 납득했을 뿐만 아니라 예외의 경우에 대해서도 자신을 갖고 있 다는 생각에 득의에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각오'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되 풀이하는 동안 그 득의는 점점 색이 바래지더니 결국에는 완전히 사그라지려 했습니다. 그 러자 나는 이런 경우 K도 예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모든 의혹, 번민, 고뇌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 는 의혹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새로운 빛으로 각오라는 두 글자를 뚫어지게 바라본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만일 그때 내가 그러한 놀라움을 잊지 않고 그가 입에 담았 던 각오의 뜻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슬픈 일이지만 나 는 애꾸눈이었습니다. 나는 다만 그 말을 K가 따님에 대한 연모의 정을 밀고 나간다는 의 미로 해석했습니다. 과단성 있는 그가 그 성격을 따님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도 유감없이 발 휘하려는 것을 그가 말한 각오의 의미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도, 나에게도 최후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그 즉 시 그 소리에 따라 용기를 냈습니다. 나는 K보다 먼저, 더구나 K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에 일을 추진해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습니다. 나는 조용히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K가 없을 때, 또 따님이 외출을 하고 없을 때 아주머니와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없으면 한 사람이 집에 있는 날만 계속되어 도저히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꾀병을 앓기로 했습니다. 아주머니와 따님, 그 리고 K도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을 했지만 나는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는 열 시경까지 이불 을 둘러쓰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K도 따님도 나가고 온 집안이 고요해진 뒤 이 불 속에서 나왔습니다.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습니다. 식사는 머리맡에 갖다놓을 테니 더 누워 있는 것이 좋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몸에 이상이 없는 나는 다시 누울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수를 하고 여느 때처럼 다실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그때 아주머니는 직사각형 모양의 화롯가에 앉아 식사 시중을 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아침 식사도 점심 식사도 아닌 어중간한 식사를 하면서 어떤 식으로 이야 기를 꺼내야 좋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으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기분이 좋지 않은 환자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나는 식사를 끝내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내가 일어서지 않자 아주머니도 화롯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하녀를 불러 상을 내가라고 한 뒤 쇠주전자에 물을 붓고 화 롯가를 닦기도 하며 내기분과 분위기를 적당히 잘 맞춰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뭐 하실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없다고 하더니 왜 그러느냐 고 반문했습니다. 나는 실은 조금 말씀드릴 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무슨 일이냐 고 하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표정이 어 서 나는 다음 말이 술술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말을 이리저리 돌린 끝에 요즈음에 K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 어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뜻밖이라는 듯이 "무슨 말을?" 하며 다시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던가요?" 하며 오히려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K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아주머니에게 전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아니오" 하고 얼버무린 뒤, 곧 그렇게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떳떳 지 못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K에게 뭘 부탁 받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K에 관한 용건은 아니라고 고쳐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 니는 "그래요?" 하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말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나는 "아주머니,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아주 머니는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 놀라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잠시 아무 말도 못한 채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얘기를 꺼냈으므로 나는 아주머니의 눈길만 받으며 가만 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십시오! 제발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제발 제 아내로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듯이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나이가 나이신 지라 나보다는 훨씬 침착했습니다. "그건 좋은데,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래서 내가 "갑자기 그러고 싶었습니다"고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 고는 "신중하게 생각한 건가요?" 하고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꺼냈지만 그 생각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한 어조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세 번 문답이 오갔지만 그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남자처럼 호탕한 아주머니는 보통 여자와는 달리 이런 경우 대단히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이었습 니다. 아주머니는 "좋아요, 그렇게 하죠" 하고 말했습니다. "선뜻 그러겠다고 뽐내며 말할 처지도 아닙니다. 부디 그렇게 해주세요. 아시다시피 아버지도 없는 가엾은 아이입니다" 하 며 나중에는 오히려 아주머니 쪽에서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는 간단하고도 시원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15 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주머니는 아무 조건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친척들과 의논 할 필요도 없고 나중에 알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본인의 의향조차 물어볼 필요가 없 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친척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본인에게는 미리 알려 송낙을 받는 것 이 도리가 아니겠느냐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괜찮습니다. 본인이 싫어할 사람에게 내가 딸 을 줄 리가 있겠어요 ?" 하고 말했습니다.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일이 너무나도 쉽게 풀렸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기분이 이상했습니 다. 과연 괜찮을까 하는 의혹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내 운명은 정해졌다는 생 각을 하자 기분이 새로워졌습니다. 점심때쯤 나는 다실로 가서 아주머니에게 아침에 했던 이야기를 따님에게는 언제 전할 생 각이냐고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기만 알고 있으면 언제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식이었습 니다. 그거니까 왠지 내가 청혼을 받은 입장으로 느껴져 나는 그대로 다실에서 나오려고 했 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만일 빠른 것을 원한다면 오늘이라도 좋다, 집에 돌아오면 즉시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는 다시 내 방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두 사람이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것을 멀 리서 듣고 있을 일을 떠올리자 도저히 차분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나는 모 자를 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또 언덕 밑에서 따님과 마주쳤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 는 따님은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듯했습니다. 내가 모자를 벗으며 "지금 오세요?" 하고 묻자, 따님은 벌써 나았느냐고 물으며 의아해했습니다. 나는 "네, 나았어요. 다 나았습니다" 하고는 스이도바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나는 사루가쿠초에서 진보초 거리로 나가서 오가와마치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평 소 그 부근을 걷는 것은 헌 책방을 기웃거리며 책 구경만 하고 값만 물어보는 것이 목적이 었는데, 그날은 낡을 대로 낡은 책을 쳐다볼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오로지 집에서 일어나고 있을 일만 생각했습니다. 나는 얼마 전에 아주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따님이 집으로 돌아간 후의 일을 상상했습니다. 따라서 내가 아무 목적 없이 거리로 나온 것은 그 두 가지 일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가끔 길 한복판에서 자신도 모르 게 문득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지금 쫌은 아주머니가 따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때는, 지금 쫌은 끝났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만세이바시를 건너서 묘진 언덕을 지나고 홍고다이에 이르러 다시 기쿠자카 를 내려가서 결국에는 고이시가와의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내가 걸었던 거리는 그 세 구 역에 거쳐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거닐면서도 K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대체 왜 그랬는지 도 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상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K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못할 만큼 긴장했었을 뿐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뿐이지만, 내 양심상 그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 양심이 K에 대해 다시 살아난 것은 내가 집의 격자문을 열고 현관에서 객실로 갈 때, 즉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방을 지나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책에서 눈을 들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이제 오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병은 다 나았니? 의사한테 가 보았니?" 라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충동이란 무엇이라 형용할 길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K와 내가 단둘이 황야의 한복판에라도 서 있었다면 나는 반드시 양심에 따라 그 자리에서 사죄했을 것입니다. 그러 나 집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양심에 따라 순수하게 행동하지 못하 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때의 그 순수성은 다시는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저녁 식사 때 나는 또 K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K는 다만 기 분이 가라앉아 있을 뿐 나에게 조금도 의심쩍은 눈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K와 나 사이에 오간 이야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아주머니는 여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나 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 채 밥을 먹었습니다. 그때 따님은 평소처럼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가 자꾸 부르자 옆방에서 금방 나가겠다는 대답만 했습니다. 그러자 K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결국에는 아주머니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마 쑥스러워서 그럴 거라 고 하며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K는 더욱더 이상하다는 듯이 왜 쑥스럽느냐고 캐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보았습니다. 나는 식탁에 앉을 때부터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고 그 결과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K에게 설명해주기 위해 내 앞에서 아주머니가 모든 것을 털어놓기라도 하면 어떡하 나 하고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정도의 일은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여자 인 만큼 나는 애가 탔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K는 다시 입을 다물었습니다. 평소 보다 다소 기분이 좋았던 아주머니도 결국 내가 두려워했던 데까지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 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나는 겨우 마음이 놓여 내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K에게 취할 태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변명을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변명도 K를 맞대놓고 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비 겁한 나는 드디어 내 마음을 K에게 설명하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나는 그대로 2,3일을 보냈습니다. 그 동안 K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게다가 아주머니와 따님의 태도는 계속 내 마음을 설레게 했으므로 나는 더 욱더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다운 기질을 지닌 아주머니는 내 일을 언제 식탁에서 K에게 폭로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 이후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띌 정도로 달라진 따님의 행동도 K의 마음을 어둡게 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나와 그 집 식구들 사이에 성립된 새로운 관계를 K에게 알려야 할 처 지였습니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약점을 지녀 자신의 일을 정당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나로서 는 그것이 지극히 험난한 과제로 여겨졌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그 이야기를 K에게 다른 기회에 말해주라고 할 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물론 내가 없을 때 말입니다. 그러나 직접과 간접의 구별만 있을 뿐 결과상으로 면목이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주머니가 먼저 꺼낸 이야기처럼 꾸며대 달라고 했다가는 그 이유를 캐물을 것이 뻔했습니다. 만일 아 주머니에게 모든 사정 이야기를 털어놓고 부탁하게 되면, 나는 내 약점을 사랑하는 여인과 그 모친 앞에 그대로 드러내는 꼴이 되니까요. 따라서 신중하고 빈틈없는 나로서는 그것이 나에 대한 신뢰도와 중요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하기 전 부터 신용을 잃는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성실한 마음으로 길을 걷겠다는 것이 그만 발을 헛디딘 꼴이 되고 말 았습니다. 아니, 교활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존재 라고는 오로지 하늘과 나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일어서서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 고 나아가려고 하면 방금 미끄러졌던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곤경에 빠지곤 하는 것 입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미끄러졌던 것을 숨기려 했습니다. 동시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나는 그러한 갈등에 휩싸인 채 또다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꼴 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5,6일쯤 지난 어느 날 아주머니는 갑자기 나에게 K에게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 었습니다. 나는 아직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왜 하지 않았느냐고 캐물었습니다. 아주머니의 그 물음에 나는 그만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그때 아주머니가 나를 놀라게 한 말 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쩐지 내가 얘기하니까 얼굴이 이상해지더군요. 당신도 나빠요, 그렇게 친한 사이면서도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다니." 나는 그때 K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별다른 얘기는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머 니는 숨길 게 뭐 있겠느냐,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고 말하고는 그때의 K의 모습에 대해 자 세히 들려주었습니다. 아주머니의 말을 종합해보면, K는 그 결정적인 타격을 그가 참아낼 수 있는 가장 차분한 자세로 맞이한 것 같았습니다. K는 따님과나 사이에 맺어진 새로운 관계에 대해 처음에는 "그렇습니까?" 하고 단 한마디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머니가 "당신도 축하해주세 요"라고 말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며 미소지으면서 "축하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실의 미닫이를 열기 전에 다시 아주머니 를 돌아보면서 "결혼은 언제 합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축하하는 뜻에서 무슨 선물이라도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그럴 수가 없군요" 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아 주머니 앞에 앉아 있던 나는 그 맡을 듣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괴로움에 휩싸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주머니가 K에게 말한 지 이틀쯤 지나서 였습니다. 그동안 K는 나에게 이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대해주었 음으로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의 초연한 태도는 비록 마음과는 다르다 해도 탄복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그와 나를 비교해 보면 그가 훨씬 훌륭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책략으로는 이겼 지만 인간으로서는 졌다'라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나는 그때 K가 나를 얼마나 경멸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남몰래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K의 발아래 무릎 을 꿇고 용서를 빈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대로 밀고 나갈 것인가, 아니 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인가 하며 고민하다가 어쨌든 다음날까지 기다려보기로 결심한 것은 토요일 밤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K는 자살해버렸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일 을 생각하면 오싹 소름이 끼칩니다. 언제나 머리를 동쪽으로 하고자는 내가 그날 따라 베개 를 서쪽으로 두고 이부자리를 편 것도 무슨 우연의 일치였던 것 같습니다. 나는 머리맡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문득 눈을 떴습니다. 그러자 언제나 닫혀져 있는 K와 내 방 사이 의 미닫이가 요전날 밤처럼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날 밤처럼 K의 검은 그 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떤 암시를 받은 사람처럼 잠자리 위에 팔꿈치를 짚고 일 어서면서 K의 방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램프가 희미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도 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불은 발로 걷어찬 것처럼 아래쪽에 겹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K는 맞은편을 향해 푹 엎드려 있었습니다. 나는 "어이" 하고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어이, 왜 그래?" 하 며 나는 다시 K를 불렀습니다. 그래도 K는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나는 곧 일어서서 문턱가지 갔습니다. 그러고는 희미한 불빛으로 K의 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내가 받은 첫 느낌은 K로부터 갑자기 사랑의 고백을 들었을 때와 거의 같은 것이었 습니다. 내 눈은 그의 방을 둘러보는 순간 마치 유리로 만든 의안처럼 그 힘을 잃어버렸습 니다. 마치 막대기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습니다. 그런 느낌이 지나가자 나는 다시 정말 큰일났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후회의 검은빛이 내 미래를 가로지르며 앞날을 어둡게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덜덜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나는 책상 위에 있는 편지에 눈이 갔습니다. 그것은 예상했던 대로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겉봉을 뜯었습니다. 그 러나 내가 예상했던 내용은 전혀 씌어 있지 않았습니다. 나로 하여금 도저히 참기 힘든 문 구가 씌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아주머니와 따님의 눈 에 띌 경우 그들이 나를 얼마나 경멸할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었습니다. 나는 잠시 편지를 훑어보고 우선 살았다는 안도감에 휩싸였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이목에 대한 체면상 살았다 는 뜻으로, 내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그리고 추상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자신은 의지가 약하고 결 단성이 없어서 도저히 앞날에 대한 희망이 없으니 자살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까지 내가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이 극히 시원스럽고 간단하게 덧붙여져 있었습니 다. 도와준 김에 사후의 처리도 부탁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에게 폐를 끼치게 되 어 미안하니 대신 사과 말씀을 잘 드려달라는 구절도 있었습니다. 또한 고향에 연락해달라 는 부탁도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모두 한마디씩 씌어 있는데도 따님의 이름만은 어디서 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유서를 끝까지 읽은 후 K가 일부러 그녀의 일에 대해서 는 쓰지 않았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통절하게 느낀 것은, 나중에 먹물이 남아 덧붙인 것으로 보이는, 좀더 빨리 죽어야 했는데도 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모 르겠다는 뜻의 문구였습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말아서 다시 봉투에 넣었습니다. 나는 일부러 그것을 모든 사 람의 눈에 띄게끔 원래대로 책상 위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 미닫이에 묻어 있는 피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나는 갑자기 K의 머리를 안은 것처럼 양손으로 조금 들어올렸습니다. 나는 죽은 K의 얼 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엎드려 있는 그의 얼굴을 밑에서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그만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섬뜩한 느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머리가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위에서 방금 만졌던 차가운 귀와 평소와 다름없는, 5부로 깎은 탐스러운 머리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나 는 조금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만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앞의 참혹한 광경으로 인해 일어난 단순한 공포가 아 니었습니다. 그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에 의해 암시된 운명의 공포를 깊이 느꼈던 것입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방안을 빙빙 돌았습니다. 무의 미하더라도 당분간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이제 어떻게 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저 방안을 빙빙 돌 기만 했습니다. 마치 우리 안에 갇힌 곰과 같은 모습으로. 나는 지금 안으로 가서 아주머니를 깨올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에 게 그렇게 참혹한 광경을 보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렇다 치더라 도 따님을 놀라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솟구쳤습니다. 나는 또다시 방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램프를 켰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시계를 보았습니다. 그때만큼 시계가 느림 보처럼 여겨진 적도 없습니다. 내가 일어난 시간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동이 틀 무렵이 었다는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방안을 빙빙 돌면서 먼동이 트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나는 영 원히 어두운 밤이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일곱시 전에 일어났습니다. 강의가 여덟 시부터 있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지각을 하는 것이 뻔했으니까요. 그래서 하녀는 여섯 시경에는 일 어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내가 하녀를 깨우러 간 것은 여섯 시가 안되서였습니다. 그러 자 아주머니는 오늘은 일요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내 발소리에 잠이 깬 듯했습니 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일어나셨으면 잠시 내 방까지 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잠 옷 위에 평소에 입는 하오리를 걸치고 내 뒤를 따라왔습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이 제까지 열려 있던 칸막이 미닫이를 닫았습니다. 그러고 아주 낮은 소리로 엄청난 일이 생겼 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턱으로 옆방을 가리키는 시늉을 하면서 "놀라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 다. "아주머니, K가 자살을 했습니다" 하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아주머니는 돌처럼 굳어지며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나는 갑자기 아주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나빴습니다. 아주머니에 게도 따님에게도 정말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와 마주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던 것입니다. K에게 용서를 빌 지 못했던 나는 아주머니와 따님에게 그렇게 라도 사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 니다. 즉 나의 양심이 평소의 나를 잊게 하고 얼떨결에 참회의 입을 열게 했던 것입니다. 그 러나 아주머니가 내 말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은 나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 다. 아주머니는 창백한 얼굴로 "뜻하지 않은 사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고 나를 위로하듯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미안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나는 다시 일어서서 방금 닫았던 미닫이를 열었 습니다. 그때 K의 램프에 기름이 떨어졌는지 방안은 아주 캄캄했습니다. 나는 내 방의 램프 를 들고 와서 입구에 선 채 아주머니를 돌아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숨어 있는 듯이 뒤에 서서 다다미 네 장으로 된 K의 방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았습 니다. 그리고 그곳은 그대로 두고 덧문을 열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의 아주머니의 태도는 과연 군인의 미망인답게 요령이 있었습니다. 나는 의사한테 로 갔습니다. 또 경찰에도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아주머니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습 니다. 아주머니는 그러한 수속이 끝날 때까지 어느 누구도 K의 방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했 습니다. K는 작은칼로 경동맥을 단숨에 끊고 죽었던 것입니다. 그 밖의 상처는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꿈속에서처럼 희미한 불빛을 통해 보았던, 당지를 바른 미닫이에 문에 있던 피는 그의 목덜미에서 내뿜어진 것이었습니다. 나는 대낮의 환한 빛을 통해 분명히 그 흔적을 다시 보 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피가 그토록 세차게 용솟음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아주머니와 나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K의 방을 청소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피 의 대부분은 그의 이불에 흡수되어 다다미가 과히 더럽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뒤처리를 하는 데 그리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아주머니와 나는 그의 시체를 내 방으로 옳겨놓고 평소 잠자 는 자세로 가로 눕혔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그의 고향으로 전보를 치기 위해 집을 나섰습 니다. 내가 돌아왔을 때는 K의 머리맡에 향이 피워져 있었습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향냄새로 코가 멍해진 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앉아 있는 두 여인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내 가 따님의 얼굴을 본 것은 어젯밤 이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따님은 울고 있었습니다. 아 주머니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울음을 잊고 있던 나는 비로소 슬픈 기분 에 젖게 되었습니다. 내 가슴은 그 슬픔 때문에 얼마나 홀가분해졌는지 모릅니다. 고통과 공 포에 휩싸인 나에게 한 방울의 생명수가 되어준 것은 바로 그때의 슬픔이었습니다. 나는 묵묵히 두 사람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도 분향을 하라고 권했습 니다. 나는 분향을 마친 후 다시 묵묵히 앉아 있었습니다. 따님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 았습니다. 가끔 아주머니와 한두 마디 주고받긴 했지만 그것은 눈앞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습니다. 따님은 아직 K의 생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 다. 나는 그래도 따님에게 어젯밤의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그토록 무서운 광경을 목격시킬 경우 그로 인해 그 아름다움이 파 괴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생각을 도외시하고 행 동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 아름다운 꽃을 함부로 채찍질하는 것과 같은 불쾌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향에서 K의 부친과 형이 왔을 때, K의 유골을 묻을 장소에 대해 나는 내 의견을 말했 습니다. 그의 생전에 우리는 조시가야 근방을 자주 산책했었습니다. K는 그곳을 몹시 마음 에 들어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농담조로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니 죽으면 이곳에 묻어주겠 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그 약속대로 K를 조시가야에 묻어주었다고 해서 얼마만큼의 공덕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한 달에 한 번은 그곳 을 찾아가 K의 묘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참회를 새롭게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네 들이 돌보지 않았던 K를 친구인 내가 모든 면에서 자상히 돌봐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에서 인지 K의 부친이나 형은 나의 의견을 들어주었습니다. K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의 친구 가둔데 한 명으로부터 K가 자살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잖아도 나는 벌써 몇 번이나 그런 질문으로 인해 괴로 움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아주머니나 따님도, 고향에서 온 K의 부친과 형도, 통지를 받고 온 K의 친지도, 그와는 아무런 연고도 업는 신문기자까지도 반드시 그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나의 양심은 그때마다 콕콕 찔리듯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서 빨 리 네가 죽였다고 고백해버려라"라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다만 그가 내 앞으로 남긴 편지의 내용만을 되풀이했을 뿐, 그 외는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질문을 하여 똑같은 대답을 들은 K의 친구는 품속에서 신문을 한 장 꺼내더니 그것을 나에 게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그 친구가 가리키는 데를 읽었습니다. 거기에는 K가 부친과 형으로부터 의절 당한 뒤 세상을 비관하다가 자살했다는 내용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신문을 접어서 친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친구는 K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자살했다고 보도된 신문도 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너무 바빠서 신문을 읽을 틈이 없었던 나는 전혀 그런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항시 신문의 기사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집안 식구에게 폐가 되는 기 사가 실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었습니다. 특히 따님이 중인으로 연루되어 그 이름만이라도 실릴 경우 도저히 견딜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다른 식으로 보도된 신문은 없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는 그 두 가지 외에 는 본 것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지금의 집으로 옮겨온 것은 그 일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아주머 니나 따님도 그전의 집에서는 더 이상 살기 싫어했고, 나 역시 그날 밤의 기억이 밤마다 떠 올라 견딜 수가 없어서 서로 상의한 끝에 이사를 한 것입니다. 이사를 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나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하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드디어 따님과 결혼을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일이 예정대 로 잘 진행된 셈이므로 경사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아주머니나 따님도 무척 행복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행복에는 언제나 검은 그림자가 따라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 행복이 언젠가는 나를 슬픈 운명으로 몰아넣게 될 도화선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결혼했을 때 따님이 - 아니, 이제는 따님이 아니니까 아내라고 하겠습니다. - 아내가 무 슨 생각에서였는지 K의 묘를 참배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나는 왠지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래서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우리가 함께 찾아가면 K가 무척 기뻐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아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자, 그녀가 왜 그런 얼굴을 하느냐고 묻는 바람에 나는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나는 아내의 뜻대로 조시가야에 있는 K의 묘를 찾아갔습니다. 나는 K의 새 묘에 물을 뿌 려 씻어주었습니다. 아내는 그 앞에 분향하고는 꽃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머리 숙여 합장했습니다. 틀림없이 아내는 나와 결혼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K에게 기뻐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저 내가 나빴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K의 묘를 어루만지면서 훌륭한 묘라고 말했습니다. 그 묘는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채석장에 가서 골라 만들었기 때문에 아내는 특히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 새로운 묘와 새로운 내 아내, 그리고 땅 밑에 묻 힌 K의 새로운 백골을 비교하면서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을 가슴깊이 되뇌이지 않을 수 없 었습니다. 나는 그 이후로는 결코 아내와 함께 K의 묘를 찾아가지는 않으리라 마음먹었습 니다. 죽은 벗에 대한 그러한 느낌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습니다. 실은 나도 처음부터 그것을 두려워했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결혼마저 불안감에 휩싸인 채 치렀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 러나 나 역시 자신의 앞날조차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기에 어쩌면 그것이 나의 의식을 뒤바 꾸고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불빛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으로 서 언제나 아내와 얼굴을 대하고 있다보니, 나의 헛된 희망은 호된 현실 앞에서 드디어 어 이없게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보면 갑자기 K가 생각 나서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즉 아내는 K와 나를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하는 끈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어떤 면에서도 부족한 점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다만 그 점에 있어서만은 그녀를 멀리하려 했습니다. 그러면 여자란 그 즉시 그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를 수밖에 없지요. 가끔 아내는 왜 그러느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캐묻곤 했습니다. 웃어넘길 때도 있지만 때로는 아내가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결국 "당신은 나를 싫어하고 있지요? "라든지 "틀림없이 내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지요?" 라는 원망의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그때마다 나는 너무나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결단성 있게 모든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놓으려 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 나 정작 하려고 하면 갑자기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용기가 꺾이곤 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이해해주리라 믿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것은 꼭 이야 기해야겠습니다. 그 당시 나는 아내에게 무엇을 숨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만일 내가 죽은 벗 에 대한 일을 아내에게 숨김없이 털어놓고 참회의 말을 늘어놓았다면, 아내는 기쁨의 눈물 을 흘리며 나를 용서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나에게 어떤 이해 타산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었습니다. 다만 아내의 기억에 차마 어두운 그림자를 드 리울 수가 없어서 털어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순수한 영혼에 한 점의 오점이라도 가하는 일 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년이 지나도 K의 일을 잊을 수 없었던 나는 항상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그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책만 파고들었습니다.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그 결과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질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목적을 만 들어서 그 목적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린다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일이었으므로 마음이 편하 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도저히 책에 빠져들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또다시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가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내는 그러한 내 태도에 대해, 당장 생활에 곤란을 느끼지 않으므로 마음이 해이해져서 그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처가에도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데다가 나 역시 돈 을 벌지 않아도 지장 없는 처지에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나 에게는 어느 정도 독단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소극적으로 된 주된 원인은 그것 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나는 숙부에게 기만당했을 때 남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절 실히 느꼈으며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는 완벽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나만은 틀림없는 사람이라는 자신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K의 일 때문에 보기 좋게 무너져버리고 나 자신도 숙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습니다. 남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나 자신에게 조차 혐오감을 갖게 되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에 빠져들지 못한 나는 그야말로 술에 흠뻑 빠져 나 자신을 잊어버리려고 했던 때도 있 었습니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마시기는 했으므로 흠뻑 취해 그 대로 곯아떨어지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그런 유치한 방법은 곧 나를 더욱더 염세적으로 만 들어버렸습니다. 나는 술에 흠뻑 취했을 때도 문득 내 위치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일 부러 이런 짓까지 하면서 자신을 기만하는 바보 같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 각이 들면 눈도 마음도 술 을 마시기 전의 상태로 되기 일쑤였습니다. 때로는 그렇게 의식 을 잃어보지도 못하고 그저 침울해지기만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경우 인위적인 방법으 로 기분을 푼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반드시 침울한 반동이 뒤따랐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아 내와 장모님에게 언제나 그렇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런 내 모습을 언제나 좋게 해석하곤 했습니다. 장모님은 나를 꾸짖는 듯한 말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나에게 그것을 숨겼 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에게 뭐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 코 심한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아내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난 적이 한 번도 없 었으니까요. 아내는 무엇이 언짢으냐, 기탄 없이 말해달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리고 건 강을 위해 술을 끊으라고 충고했습니다. 때로는 울면서 "당신은 요즘 사람이 달라졌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K씨가 살아 있었다면 당신은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 또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한 적이 있 는데, 내 대답과 아내가 말한 것의 뜻은 전혀 달랐으므로 나는 마음속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설명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나는 가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술이 잔뜩 취해 집 에 늦게 들어간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웃었습니다. 또는 아무 말을 하지 않 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눈물을 뚝뚝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어쨌든 내 마음이 좋 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아내에게 사과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사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술을 끊었습니다. 아내의 충고로 끊었다기보다는 나 스스로 싫어져 서 끊었다는 말이 더 좋을 것입니다. 술은 끊었지만 도대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읽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뭐 때문에 공 부하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저 쓴웃음만 지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몹시 서글펐습니 다. 아니, 이해시킬 수 있는데도 이해시킬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서글펐습니다. 나 는 외로웠습니다. 그 어느 것과도 고립되어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시에 나는 K가 자살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는 내 머리 속에 '사 랑'이라는 한마디만이 꽉차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너무나 간단하고도 직선적으로 생각했었습니다. K는 틀림없이 사랑의 실패를 비관해 죽었다고 간주해버렸던 것입니다. 그 러나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해버릴 문제가 아니었습니 다. 현실과 이상의 충돌, 그러한 표현만으로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K가 나 처럼 외롭고 허전한 나머지 갑자기 자살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오싹 소름이 끼쳤습니다. 나도 K가 걸어간 길을 똑같이 걷고 있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바 람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장모님이 병이 나 앓아 눕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불치병이라 했습니다. 나는 온 갖 정성을 다해 간호해드렸습니다. 그것은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마 음에서였는데, 그보다 더 큰 의미로 말하면, 결국 인간을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 는 그때까지도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왠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놀고 지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으로 지내던 내가,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의의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나는 일종 의 속죄라 할 수 있는 기분에 젖어들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장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 결과 나와 아내는 이 세상에 단둘이 되었습니다. 아내 는 나에게 이제 의지할 사람이라곤 당신 한 사람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 마저 의지할 수 없는 나는 아내의 얼굴을 보자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아내 야말로 불행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실제로 불행한 여자라는 말을 입밖에 내 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내 말의 뜻을 이 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울었습니다. 평소에 자기를 왜곡된 마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하며 나 를 원망했습니다. 장모님이 돌아가시자 나는 아내에게 더욱더 잘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다만 아내에 대한 사 랑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게 된 데는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치 장모님을 정성껏 간호할 때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해주자 아내는 행복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복해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나를 이 해할 수 없어서 생긴 어렴풋한 불만도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나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러한 불만이 사라질 리는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커졌을 겁니다. 여자들은 크나큰 애정보다는 다소 의리를 저버리더라도 자기만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자보다 너 강하기 때문이니까요. 어느 날 아내는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겠느냐는 말을 했습 니다. 나는 다만 젊었을 때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애매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 내는 자기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하더니 곧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내 가슴에는 가끔 무서운 그림자가 순간적으로 번쩍였습니다. 처음에는 그것 이 우연히 밖에서 나를 덮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등이 오싹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내 마음이 그 끔찍한 번쩍거림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나 중에는 밖에서 엄습해오지 않아도 원래 내 가슴속에 잠재해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러한 생각이 들 때마다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기기도 했 습니다. 그러나 나는 의사나 그 누구와도 그 문제에 대해 상의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나는 다만 깊은 죄의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매달 K의 묘를 찾 아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장모님을 그토록 극진히 간호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에게 잘해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나는 그 죄 의식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행인으로부터 마구 채찍질 당하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곤 했습니 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채찍질 당하는 것보다 나 스스로 채찍질해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니, 채찍질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죽은 셈치고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결심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될까요. 나와 아내는 언제나 사이가 좋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 자,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그 그림자가 아내에게는 항상 암흑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아내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은 셈치고 살아가려던 나는 가끔 외부의 어떤 자극으로 인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습니 다. 그러나 내가 어느 한 곳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어디선가 무서운 힘이 나타나 내 마음을 꽉 죄고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이 나에게 "너는 아무 것도 할 자 격이 없는 사나이다"라는 말을 무시무시한 어조로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 한마디 로 인해 사기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일어나려고 하면 또다시 나를 짓 눌렀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왜 내 일을 방해하느냐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러면 정체불명의 그 힘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 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다시 무력해지고 말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 같은 나의 내면에는 항상 그토록 괴로운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주십시오. 나는 아내가 안타까워하는 것 몇 배의 안타까움을 안고 살 아왔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러한 굴레 속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을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느냐고 하며 소스라치게 놀랄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내 마음을 꽉 죄고 있는 정체불명의 그 무서운 힘은 나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서 죽음의 길로는 자유로이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움 직이지 않으면 몰라도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길 외에 내가 나아갈 곳이란 없었 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이미 두세 번이나 운명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어 가장 쉬운 방향으로 나아 가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아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그 길 을 선택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모든 것을 틸어놓지도 못한 내가 아내를 내 운명의 희생물로 삼아 아내의 천수를 강탈하는 극악무도한 짓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나에게 는 나의 숙명이 있듯이, 아내에게는 아내의 운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두 사람이 하 나가 되어 불 속에 뛰어든다는 것은 너무나도 참혹하고 극단적인 일로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내가 죽은 후의 아내를 상상해보니 너무나도 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당신밖에 없다고 하던 그녀의 말을 나는 가슴 깊이 새겨두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최후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할 수밖에 없었 습니다. 아내의 얼굴을 보고 그만두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비현실적인 자세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가끔 불만스러운 눈초리를 보냈습 니다. 기억해주십시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가마쿠라에서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도, 당신과 함께 교외로 산책을 나갔을 때도 나는 언제나 우울한 기분에 젖어 있었습니다. 내 뒤에는 언제나 검은 그림자가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 온 셈이었습니다. 당신이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내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 니다. 9월이 되면 또 만나자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가 을이 가고 겨울이 되어 그 겨울이 다 지나더라도 반드시 만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여름에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습니다. 그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은 천황으로 시작되어 천황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이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우리 세 대가 그가 없는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런 내 심정을 아내에게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 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러면 순사라도 하지 그러느냐고 하며 나를 놀렸습니다. 나는 순사라는 말을 거의 잊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그다지 쓸 일이 없는 말이라서 기억이 라는 창고 속에서 그저 썩고 있었다 고나 할까요. 아내의 농담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 말이 생각났을 때 나는 아내에게 만일 내가 순사 한다면 그것은 메이지의 정신에 따른 것이 될 것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대답도 물론 농담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때 왠지 거의 쓸모가 없던 그 말에 새로운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천황의 장례식 날 밤 나는 평상시와 다 름없이 서재에 앉아 있다가 예포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에게는 그것이 메이지가 영원히 사 라졌다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것은 노기 대장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호외를 손에 들고 아내에게 순사다, 순사다 하고 정신없 이 외쳤습니다. 나는 신문에서 노기 대장이 죽기 전에 남긴 글을 읽었습니다. 서남전쟁때 군기를 탈취 당 한 이래 변명할 여지가 없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어느덧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는 뜻 의 구절을 보았을 때 나는 무의식중에 노기 대장이 죽을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햇수를 손가 락으로 헤아려보았습니다. 서남전쟁은 1877년에 일어났으므로 그 때까지는 35년이라는 세월 이 흐른 것입니다. 즉 노기 대장은 35년 동안이나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 죽을 기회를 기다렸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그에게는 살아 있던 35년이 괴로웠을까, 아니면 칼로 배 를 찌르는 순간이 괴로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로부터 2,3일 후 나는 드디어 자살할 결심을 했습니다. 노기 대장이 죽은 이유를 내가 잘 모르듯이 당신도 내가 자살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이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니, 각 개인의 성격 차이라 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에게 나라는 존재를 이해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의 글을 통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내를 남겨두고 떠납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아내에게 의식주의 걱정이 없다 는 것만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공포감을 안겨주고 떠나고 싶지 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피를 보이지 않고 죽으려 합니다. 아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에서 사라질 생각입니다. 아내에게는 급사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싶습니다. 정신이 이상해져서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죽으려고 결심한 것도 이미 열흘이나 되었습니다. 그 동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 서전과 같은 이렇게 긴 글을 써서 당신에게 남겨두기 위해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당신을 만 나 직접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쓰다보니 오히려 글로 이야기하는 것이 나라는 존 재에 대해 좀더 분명히 묘사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이렇게 글로 이야기하는 나는 색다른 분위기에 무조건 젖어들어 쓴 것은 아닙니다. 내 지난날은 나만이 경험한 것으로서 나 외에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거짓없이 써서 남겨두는 것은 나라는 인간을 알아두는 데 있어서 당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 각합니다. 와다나베 가잔은 한단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죽을 날을 1주일이나 미루었다 는 이야기를 바로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본인에게는 그것이 죽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글을 남기게 된 것도 다만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나 자신의 뜻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받아볼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벌써 사라졌 을 것입니다. 아내는 열흘 전부터 이치가야에 있는 숙모 댁에 가 있습니다. 숙모가 병환이 나셨는데 돌봐드릴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가 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아내가 집에 없는 사이에 이렇게 긴 글의 대부분을 썼습니다. 그러고 가끔 아내가 오면 쓰던 글을 즉시 감추 었습니다. 나는 나의 지난날을 선과 악.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참고 자료로 남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내만은 분명히 예외로 하고 말입니다. 나는 아내에게는 아무 것도 알리고 싶지 않 습니다. 내 과거에 대한 아내의 기억을 가능한 한 순수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니까요. 아내가 살아 있는 한, 내가 죽은 뒤에도 당신에게만 털어놓은 나의 이 모든 비밀을 그저 당신의 가슴속에 고이 간직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