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룰루 영화관(2) 지난 주에 이어 영화 이야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페일 라이더>는 오래간만의 대형 서부극이라는 이유로 업계의 주목을 모았는데, 개봉 첫 주에 벌써 흥행 순위 넘버 원으로 치솟았다. 이스트우드의 인기는 과연 놀랄 만한 것이다. 관객 쪽의 반응도 활기차고, 작품의 완성도도 꽤 높다. 스토리는 대충 <쉐인>하고 비슷하다. 그렇다고 해서 <쉐인>의 팬들이 <페일 라이더>를 탐탐해 할까 하면, 전혀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쉐인>과 <페일 라이더>는 줄거리가 비슷한 반면 내용상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기묘한 상관관계에 있는 영화다. <쉐인>의 알란 랏드가 전후의 민주주의적(이건 물론 일본의 영화 관람법이지만) 모랄리즘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음에 반해, 이스트우드는 슈퍼 내츄럴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무기적인 마초 역을 맡고 있어, 까끌까끌한 감촉이 무척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비평도 <페일 라이더>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장르에서 한 작품을 낼 때마다 세련미를 더해 가고 있다.' 라든가, '과거 십 년 동안 최고로 완성도가 높은 웨스턴 무비.' 라는 의견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는 블루스 새티스가 맡았는데, 영상은 <타이트 로프> 때처럼 극단적으로 어둡지는 않다.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뉴욕에서는 웬지 흥행에 실패한다는 정설이 있는데, 이번에는 내용이 좋다는 평판이 나 뉴욕 동부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같은 마초 영화이면서 <람보 2> 쪽은 비평가들에게 곤죽이 되도록 혹평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억 달러나 수익을 올려, 올 여름 최고의 대 히트작이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다음에 인질 사건이 일어나면 미국이 취해야 할 길은 이미 결정돼 있다.' 고 말했다고 한다. 신문에는 바주카포를 맨 레이건을 그린 만화가 실렸는데, 표제에는 <레간보 2>라고 씌어 있었다. 베이루트 사건에 대한 미국의 일반인들이 품고 있는 욕구 불만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이상으로 심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로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지게 개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우익적 정치 메시지에 대해 생리적인 불쾌함을 표명하고 있다. 스텔론 자신도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이긴다.' 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과연 상당하다. '그렇다면 스텔론 씨는 베트남 전쟁 당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고 어느 신문이 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매일 체중 조절을 하면서 (그의 어머니는 트레이닝 센터를 경영하고 있었다) 열 아홉 살 때는 부잣집 자식들만 모아 놓은 스위스의 어떤 미국대학에 입학했는데, 거기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체조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런 후에 마이애미 대학 연극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베트남 전쟁은 종결되고 말았다. 이런 남자가 베트남 전쟁을 다시 한번 하라는 따위의 말을 내뱉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게 그 글을 쓴 컬럼니스트의 의견이다. 뭐 그건 그렇다치고, 작품 자체는 지극히 평범하여 딱히 평을 하고 자시고 할 만한 영화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부극이라면 <페일 아리더>가 개봉되고 일주일 후에 개봉된 로렌스 캐스던 제작, 감독, 각본의 <실버 래드>가 정말 멋진 서부극으로, 내 자신의 취향으로 하자면 <페일 라이더>보다 이 쪽이 몇 배나 더 재미있다. 간단히 말해, 지금까지 히트한 서부극의 재미있는 부분을 전부 긁어모은 데다, <스타워즈>나 <레이더스>적인 속도감을 가미하여 보는 이들을 스크린 속으로 쭉쭉 빨아들이는 타입의 작품으로, 저거야 바로 저거. 하는 사이에 두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과연 로렌스 캐스던이다 라고 할까, 정말 대단하다. 스토리 자체는 이른 바 '흔히 있는 얘기'인데, 연출도 카메라의 움직임도 홀딱 반할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신선하여, 지루한 부분이 한군데도 없다. 캐스팅도 절묘. 신문은 '만약 이 영화가 서부 영화를 부활시킬 수 없다면, 이후 어떤 영화도 서부극의 부활을 가능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고 절찬을 했는데, 나 역시 동감이다. 스필버그가 프로듀서를 맡고 스토리를 쓴 <구니스>는 완전히 기대에 어긋났다. 공전의 양식이 활력을 잃기 시작하던 무렵의 디즈니 영화와 실로 비슷하다. 스필버그도 이쯤에서 조금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팬들에게 싫증을 줄 것 같다. 신문에 의하면 올 여름 시즌의 영화는 흥행이 상당히 저조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작년 여름에도 나는 미국에 있으면서 한 달 반 정도 영화를 마구 봐댔는데, 그에 비하여 올해의 작품군에는 어쩐지 활기가 부족하다. 무조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실버래드> 정도이고, 그 영화도 영화관이 터져나갈 듯 만원은 아니었다. 작년에는 <고스트 바스터즈> <크레믈린> <가라테 기드> 등, 영화관이 시끌법석한 영화가 줄지어 있었다. 미국인들의 견해로는 '작년에는 올림픽도 있었고, 마이클 잭슨의 투어도 있었고, 대통령 선거도 있었고 해서, 그런 상승 효과가 작용했지만, 올해는 축제가 다 끝난 뒤니까.' 라서 그렇단다. 영화뿐만 아니라 올 미국의 여름은 상당히 저조하다. 그것만 저조한 게 아니다. 나의 서핀 솜씨도 몹시 저조하다. 중고 서핀보드를 사서 매일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는데, 이 부근 소년들처럼 재주 좋게 파도를 타기가 꽤 힘들다. 파도에 혼쭐이나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도 몸이 울렁울렁하는 지경이다. 쿠게누마 해안*과는 몹시 다르게 생겨 먹은 모양이다. 파도에 관한 한 권위자인 안자이 미즈마루 씨에 의하면 '한 달쯤 지긋하게 들여다 보고 있지 않으면 못탄다.' 는데, 한 달이나 파도를 보고 있다가는 그것만으로 휴가가 끝나 버린다. ------------------------------------------------------------------------- * 쿠게누마 해안 : 후지사와의 앞 바다, 사가미만에 있는 해안. 에노시마의 오른쪽이다. 왼쪽이 시치리가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