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이상한 하루 며칠 전 느닷없이 디킨즈의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읽고 싶어져 모 대학 서점에 가서 찾아 보았지만, 그게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참고 자료 창구에 있는 여점원에게 '저 미안하지만, 디킨즈의 <데이비드 커퍼필드>를 찾고 있는데요.' 라고 말하자, '어떤 분야의 책입니까?' 라는 질문을 되받았다.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저도 모르게, '네?' 하고 말하자, 상대방 역시, '네?'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디킨즈의 <데이비드 커퍼필드>인데요.' '그러니까 그게 어떤 종류의 책이냐구요?' '음 그러니까, 즉 소설입니다.' 라는 대화가 있고, 결국 그 소설에 관해서는 소설 카운터에 문의하라는 결론이 나왔다. 순간 '서점의 참고자료 담당이 디킨즈를 모르다니.' 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뭐 요즘 젊은 사람들은 디킨즈 따위 전혀 안읽으니까, 그런 무식함 또한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이란 우리가 그렇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꽤나 대담한 변화를 이룩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로서는 그 여점원에게 차라도 한잔 같이 하자고 꼬드겨서는, '그럼, 저 샤롯트 브론테는 알고 있나? 푸시킨은? 스타인 백은 또 어때?' 하고 소상하게 추궁해 보고 싶었지만, 그 사람도 상당히 바쁜 듯 했고, 나 역시 결코 한가하지는 않았으므로, 유감스럽게도 그 일은 단념했다. 서점에서 나와 볼일을 다 끝내고 나자 배가 고프길래, 언뜻 눈에 들어온 예쁘장한 양식집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좀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는 대충 다섯 시경이면 저녁을 먹으니까 덕분에 늘 한산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제법 기분이 좋다. 시끄럽지도 않고, 메뉴도 천천히 고를 수 있다. 메뉴판에 '양식도시락 2500엔'이라는 것이 있어, '음, 이건 어떤 것들이 들어 있죠?' 라고 웨이트리스에게 물어 보았다. '여러 가지가 들어 있어요.' 하고 그녀는 딱부러지는 어조로 말했다. '저 말이죠, 그야 도시락이라고 써 놨을 정도니까 여러 가지가 들어 있을 거라는 건 알겠지만, 예를 들어 어떤 것들이 들어 있지요?' '그러니까, 양식풍 먹을 거리가 여러 가지 들어 있다니까요.' 라고 한다. 이래가지고서야 '염소 씨 집배원'풍의 미로에 빠져 헤매게 될 것 같아, 나는 양식 도시락은 단념하고 다른 일품요리를 주문했다. 딱히 그녀에게 화를 내는 건 아니지만, 도시락에 뭐가 들어가는지 한 가지나 두 가지쯤은 가르쳐 주어도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 나로서도 그걸 미끼삼아 무슨 껄끄러운 짓을 하려는 꿍꿍이 속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식사를 마친후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백화점 앞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어, 안으로 들어가 트위드 상의를 찾아 보기로 했다. 그 얼마 전에 담당 편집자인 키노시타 요코씨가 '무라카미씨, 언제나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고 다니니, 도대체 돈은 다 어디에다 쓰는 거예요.'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윗도리가 있길래, '좀 사이즈가 작은가' 싶은 생각이 들어 시험 삼아 소매에 팔을 꿰어보니 여점원이 어디선가 바람처럼 날아와, '손님, 그건 사이즈가 아주 작은 거예요. 손님한테는 도저히 무리입니다.' 라고 내뱉듯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음, 그런 것 같군요. 좀 큰 사이즈가 있으면...' 하고 말하려 했더니, 이미 그 자리에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돌아오기를 마냥 기다렸지만, 도무지 돌아올 기미가 안 보여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째 뭐가 뭔지 통 영문을 알 수 없는 하루이다. 타인으로부터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부당한 취급을 당했다는 기분도 들고, 반대로 내쪽이 상대방을 부당하게 취급한 듯한 기분도 든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판단을 못하겠다. 어쩌면 서점의 그 여점원은 집으로 돌아가 식탁에서 '참, 엄마. 오늘 이상한 손님이 와서 말이죠, 알지도 못할 책 이름을 대면서, 내가 무슨 책인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노골적으로 바보취급을 하잖아요, 기가 막혀서.' 하고 투덜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는 '응, 양식 도시락이라고 메뉴에 씌어 있으면 암말 말고 주문해서 먹을 것이지.' 하고 주방장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있을지 모른다. 백화점의 여점원은 '자기 옷 사이즈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옷을 입어 보는 그런 촌놈을 상대하고 있을 새가 어딨어.' 하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대방의 말에도 각각 일리가 있는 듯하다. 어쩌면 내가 살아 가는 방식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려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이란 무척 까다롭다. ♣ 이 글에 등장하는 키노시타 요코(가명)는 '고소 공포'에서 나를 바보 취급한 사람과 동일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