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남자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애인이랑 데이트를 하거나 마누라와 거리를 걷곤 하다가 제일 괴로운 일은 옷은 사는데 따라가야 하는 일이다. 한 가게 두 가게 정도라면 그래도 참을만 한데, 대여섯 가게를 따라다니다가, '아무래도 제일 처음에 가 본 옷집으로 다시 가야겠어.' 라고 하면 정말이지 맥이 풀리고 만다. 여자 쪽도 남자가 레코드 매장이나 장난감 가게 같은 곳에서 넋을 빼고 열중하고 있는데 쫓아 다녀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녀들이 옷 고르기에 보이는 집념에는 남자들이 지닌 모든 취미의 가지 수를 하나로 다 합쳐도 감히 따라가지 못할 만큼의 정열과 처철함이 있어, 그 에너지가 때로는 우리들 남성을 압도하고 경악케 한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나는 어제 다이칸야마에서 시부야, 아오야마 3가를 경유하여 하라주쿠까지 걸어야 하는 비운을 겪었다. 나는 그나마 용의주도하게 조깅화를 신었기에 망정이지, 힐을 신고 그만큼의 거리를 걷는 에너지를 집념이라 부르지 않고 달리 어떤 표현이 가능하랴. 그건 그렇고 세상에 널려 있는 부띠끄란 데는 남자에겐 참으로 서먹서먹한 곳이다. 시간 때우기도 곤란하고, 웬지 서 있기조차 힘겹다. 손님이 많아 복잡할 때 그냥 멍하게 서 있으면 다른 손님한테 폐를 끼치게 되고, 그렇다고 원피스나 핸드백에 별다른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일일이 상품을 구경하며 시간을 죽일 수도 없다.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외국에 가면 신기하게도 그런 일이 없다. 마누라의 부띠끄 순례에 동참하면서 심심하여 몸둘 바를 몰랐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가게 쪽에서 함께 들어오는 손님의 동반자에게까지 그 나름으로 신경을 쓰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로라 아슈레이>에서는 마누라가 옷을 고르고 있는 사이에 귀여운 여점원이 나를 상대하며 '동경에서 오셨나요? 좋은 곳인가요? 나도 가 보고 싶군요. 난 뉴올린스에서 태어났어요. 뉴올린스에 가보셨나요?' 등등의 얘기를 해주었고, 호놀룰루의 한 구석지에 있는 어느 부띠끄에서는 소파에 앉아 쉬도록 권하며 콜라와 프리첼까지 대접해 주었다. 그런 옷가게라면 남자쪽도 또 가고 싶어진다. 동경의 부띠끄도 남자의 입장을 좀 염두에 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남자는 단순히 CASH AND CARRY(돈을 내주고 날라다 주는 사람)가 아니니까요. 남자도 멀쩡한 육신을 지닌 인간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