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듣는 음악 가끔씩 무슨 앙케이트 같은 데서 취미는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 난처해 하는 일이 있다. 제대로 대답하자면 독서와 음악이 되겠지만, 요즘 같은 세월에 책도 읽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테니까, 엄밀하게 말해 이걸 취미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한 기분이 든다. 귀찮으니까 그런 때에는 대개 겸손하게─그렇지도 않은가─'무취미' 라고 대답한다. 하긴 소설을 쓰게 되고부터는 독서가 일의 일환이 돼 버린 셈이니깐, 현실적으로는 이미 그걸 가지고 취미라고 할 수 없다. 음악만이 간신히 취미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음악만큼은 어떻게든 취미인 채로 남겨 두고 일에는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글쓰기를 업으로 하면서 어떤 특정한 분야를 피해 가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자라난 가정에는 나 이외에 음악을 자진하여 듣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따라서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어느 누구의 지도나 어드바이스도 받을 수가 없었다. 요즘과는 달리 상세한 가이드북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튼 용돈을 모아 마구잡이로 레코드를 사들여선, 수긍이 갈 때까지 무턱대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에 산 레코드를 지금 뒤적거려 보면 '꽤나 두서없이 모아 들였군.' 하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걸 알 턱이 없으니, 바겐세일 때만 되면 레코드를 사기 위해 헤매다니고 그러고는 레코드판이 닳아 빠지도록 들어댔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 들은 연주는 평생토록 귀에 새겨져 있는 법이고, 더군다나 몇 장 되지 않는 레코드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니까, 그 무렵에 산 레코드는 지금의 내게는 일종의 표준 연주로 되어 버렸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글렌 굴드*의 연주로 내내 들었기 때문에, '3번'하면 굴드의 연주가 머리 속으로 파뜩 떠오르고, '4번'하면 박 하우스*의 연주가 떠오른다. 훨씬 나중에 박 하우스가 연주하는 3번과 굴드가 연주하는 4번을 사기는 했는데, 그걸 듣고 있으면─연주는 물론 나무랄 데가 없지만─아무래도 안정감 없이 느껴진다. 귀가 '3번은 도전적으로, 4번은 정통적으로'라는 연주 기준을 머리 속에다 철썩같이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현악 사중주곡중 15번과 17번만 해도 그렇다. 그 경우에는 15번은 줄리어드 현악 사중주단이고, 17번은 비엔나 콘체르토 하우스 현악 사중주단으로. 라는 경이적인 커플링이다. 들어 보시면 알겠지만, 이 두 개의 연주 단체는 서로 극단적일만큼 정반대쪽에 자리하고 있다. 줄리어드는 엄격하고 딱딱하며, 후자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15번 엄격하고 딱딱한 곡이며, 17번은 부드럽고 따뜻한 곡이다. 모차르트란 사람은 과연 다면성을 지닌 천재 작곡가다.' 하고 오래도록 믿고 있었을 정도였다. 스무 살이 넘어 다른 레코드로 15번을 들어 보고서는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도 15번이 듣고 싶은 걸 하고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손이 줄리어드의 레코드(물론 새로 산 것) 쪽으로 가고 만다. 기묘한 일이다. 이런 예를 일일이 들자면 끝이 없다. 한 마디로 바겐용 레코드를 계통없이 마구 사 들인 결과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계통없이 들쑥날쑥 했던 점이 음악을 듣는 재미를 오히려 두드러지게 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취향이 편협하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던 것은,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덕분이다. 나는 무슨 일이든 대개 이런 식으로 우회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물꾸물 추진해 나가는 성격이라, 무엇엔가 도달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실패도 많이 한다. 그러나 한번 그게 몸에 배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흔들림이 없다. 이런 얘기는 딱히 자랑삼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성격은 자칫하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기 쉽고, 자기 자신 그 스타일을 교정하려고 해도 마음 먹은 대로 수월스레 바꿔지지 않는 것이다. 타인이 무언가를 권유하면 대부분은 듣고 흘려 버리고, 타인에게 무언가를 진지하게 권유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 왔으니까 새삼스레 어쩌고 저쩌고 할 것도 없다. 그건 그렇다치고, 보통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란 스무 살을 경계로 점점 둔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해력이나 해석능력은 훈련하기에 따라 높아질 수도 있지만, 십 대에 느끼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감동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유행가도 듣기에 시끄러워지고, 옛날 노래가 좋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 주변에 있는, 왕년에는 록 매니어였던 청년들도 점차 '요즘의 록 같은 그런 빈약한 건 들을 기분이 안 나.' 라고 얘기하게 됐다. 그 기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푸념 따위만 늘어놓아 봤자 별소용이 없으니까, 나는 비교적 솔직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전미(全美) 히트 차트 같은 것에도 귀를 기울이며, 귀가 노화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힘쓰고 있다. <컬쳐 클럽>이라든가 <듀란 듀란>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웸>의 저 은근함은 비교적 마음에 들어하는 오늘, 요즘입니다. -------------------------------------------------------------------------- * 글렌 굴드(Glenn Gould) : 자신의 독특한 해석과 기법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던 전설적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 박 하우스(Wihelm Backhaus) : 독일의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