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회 소감 새로운 책이 나오면 예외없이 책방으로부터 사인회를 하자는 제의가 들어오는데, 나는 이 사인회라는 걸 지금까지 한번도 해본 일이 없다. 사인하기를 딱히 싫어하는 까닭은 없지만, 좌우지간 귀찮다는 것과 부끄럽다는 명분으로 사인회만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이 하는 사인회 현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싫지 않아서,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며 '제법 좋은 구두를 신고 있군.' 이라든가 '글자 가지고 되게 멋부리고 있군.' 이라든가 '사진보다 훨씬 늙었잖아.' 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거꾸로 말하면,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절대로 사인회를 하지 않는다. 사인회란 존재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이거나 그런건 결코 아니다. 사인회를 하면서 사인을 청하는 독자가 안 오는 것만큼 거북살스러운 일도 없다. 팬이 기노쿠니야(紀伊國屋) 서점 둘레를 일곱 바퀴쯤 에워싸고 사인을 기다리는 정도라면 문제는 다르지만, 그렇게 쉽사리 일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무라카미 류(村上龍)* 씨조차도 '저 말이지, 그게 한 동안 끊어질 때가 있거든.' 하는 정도니까, 하물며 다른 작가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랴. 내가 시부야에 있는 세이부 백화점 서적 매장에서 목격한 사인회를 예로 들자면, 이십 분동안 한 명의 독자도 오지 않는 모 작가가 있었다. 그 작가의 건너편에서는 다케미야 케이코(竹宮惠子)*의 사인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그 쪽은 밀치고 떠밀리고 야단법석이다. 얼마 안 있어 모 작가 쪽도 따분해진 듯 다케미야 케이코 쪽을 들여다보느라 기웃기웃거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불쌍했다. 이런 일만큼은 절대로 당하고 싶지 않다고 절실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사인이 들어 있는 책 얘기인데, 가령 헌책방에 내 사인이 들어 있는 책을 팔러 가면 가격을 쳐 주는가 하면, 그런 일은 결코 없다. 헌책방 아저씨에게 들은 얘기로는 사인이 들어 있어 비싸지는 책은 기껏해야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카이코 켄(開高健)* 세대까지로, 그 다음 젊은 세대 작가의 서명 따위 낙서나 다름없다고 한다. 낙서라니 그 또한 섬뜩하다. ------------------------------------------------------------------------ * 무라카미 류 : 소설가. 우리에겐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어필했던 작가이다. * 다케미야 케이코 : 만화가. * 엔도 슈사쿠 : 소설가이자 예술원 회원. 그의 작품은 <침묵>을 비롯, 많이 소개되어 있다. * 카이코 켄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