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 나는 태어나서 지금껏 투표라는 걸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어째서냐고 물으면 한마디로 뭐라고 잘 대답할 수 없어 '글쎄요, 왜일까요?' 하고 얼버무리고 마는데, 좌우지간 투표는 안한다. '그런 행위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누가 말한다면, '아마 그렇겠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투표는 안된다. 정치적 관심이나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투표는 안한다. 들은 얘기에 의하면 그리스 같은 나라에서는 선거에 투표를 하는 일이 국민의 의무로서 법률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당한 이유 없이 투표권을 포기하면, 그 밖의 여러 가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야 그런 일은 없으니까, 투표를 하지 않더라도 일단을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가 있다. 어느 쪽이 제도로서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논의가 분분할테지만, 나 개인으로서는 일본의 방식이 좋지 않은가 생각한다. 투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투표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사람은 각양각색이다. 내 주위에도 투표 따위 안한다는 사람이 꽤 있다. 어째서 선거 때 투표를 하지 않는가에 대한 그들(나를 포함하여)의 이유는 거의가 대동소이하다. 그 첫째는 선택의 질이 너무나도 허왕되다는 것, 둘째는 현재 행해지고 있는 선거의 내용 그 자체가 무척 수상쩍은 데다, 신뢰감을 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세대는 예의 '가두시위'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많고, 시종 '선거 따위 기만이다'라는 선동에 젖어 있었으므로, 나이를 먹어 그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어도 그렇게 순순히 투표소에 가거나 하질 않는다. 정당의 종적 관계와는 무관하게 한결같은 신념으로 지내 왔다는 생각도 있다. 무얼 했는데 하고 물어도 뭘 했는지 거의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무엇보다 선거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니까, 무언가 명확한 쟁점이 있고, 오늘날의 정당들이 지니고 있는 도식적인 종적 조직이 없어진다면, 우리도 투표소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기권이 많은 것은 민주주의가 쇠퇴한 현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나의 의견을 말하자면 그런 경우를 제공할 수 없었던 사회 시스템 그 자체 속에 민주주의 쇠퇴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표면상의 원칙론으로 기권자에게만 책임을 몰아부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마이너스 4와 마이너스 3 중 그 어느쪽을 고르기 위하여 투표소까지 가라고 한들, 안가요, 그런 곳엔. 치바에 살고 있을 때, 지방선거가 있었다. 내가 앞뜰에서 고양이랑 놀고 있으려니, 동네의 우두머리격인 아줌마가 밭에서 갓 뽑은 시금치를 들고 와서는 '저 말이죠, 이 부근 사람들은 모두 누구누구씨한테 투표하기로 정했어요'란다. 무슨 소린지 잘 알 수 없어 '네, 그렇습니까'라고 했더니, 그 아줌마는 '누구누구씨한테 표를 던지면 도로 정비라든가 하수구 청소 같은 걸 잘 해준데요'라며 시금치를 두고 돌아갔다. 내가 그것이 투표 의뢰임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그때는 과연 치바로구나 하고 감탄스러웠다. 나는 여러 동네에 살아봤지만, 시금치를 미끼로 투표의뢰를 받다니, 치바 말고는 없을 것이다. 물론 시금치는 맛있게 먹고, 투표하러는 가지 않았다. 나야 빠짐없이 세금도 물고 있으니까 하수구 청소쯤 해주는건 마땅한 일이다. 경험으로 봐서도 그 누구누구씨한테 투표를 하기 보다는 매일 구청에다 전화를 걸어 직접 불편을 호소하는 편이 하수구 청소도 빨리 해주고, 지당한 절차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 있으면 투표하러 가기가 더욱 더 싫어진다. 치바에 사는 것 자체는 상당히 즐거웠지만. 그러나 내가 이대로 투표를 한번도 하지 않고 일생을 마칠 수 있을까 하면,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한 나의 직감에 불과하지만, 금세기 중에 반드시 중대한 정치의 계절이 다시 한번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싫어도 스스로의 입장을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가치 체계들이 철저하게 전복되어, '무엇이든 적당하게' 처리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나 역시, 저 영화 <빅 웬즈데이>의 마지막 장면처럼 투표용지를 손에 들고 투표소로 향하게 될지 모르겠다. 뭐 이건 그냥 단순한 예측이고, 내가 하는 예측의 대부분은 빗나가니까 대단한 얘기는 못되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 머지 않은 장래에 벌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다. 이런 점은 미국의 1920년대와 그에 뒤따르는 대공황에 관한 역사책을 읽고 있으면 절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미증유의 번영과 화려하고 향락적인 문화를 구가하고 있었던 1920년대의 미국은 단 하루만에 와해되고, 그후로는 어둡고 무거운 나날과 전쟁이 찾아온다. 물론 서로 다른 두 시대와 사회를 겹쳐 놓고 견주어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억지스런 일이지만, 그 경제적 번영의 얄팍함과 흥청망청거리는 사회양상, 그리고 세계적인 부의 편재 상황을 보더라도, 1920년대의 미국과 우리시대 사이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수많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하여 만약 저 대공황에 필적하는 붕괴가 도래했다고 하면, 당시의 미국과 별다를 바 없이 현재의 방만한 문화주변에 기생하며 생식하고 있는 인사들 대부분은 ─혹 나도 그 중 한 사람일지 모르겠지만─흔적도 없이 어딘가로 흩어져 버리고 말 것이 환히 내다 보인다. 내가 이런 말을 해 본들 별 설득력도 없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이제 슬슬 그러한 가치붕괴에 대비하여 스스로를 재확인해야 할 시기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