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주자의 맥주 봄이 가까워 오면 웬지 모르게 장거리 레이스가 하고 싶어져 며칠전 '아스카 히나마쯔리 고대 마라톤'이란 델 출전하였다. 출발 지점이 아스카촌의 이시부따이 고분 앞이고, 오니노마나이타와 아스카 절, 다카마쯔 총 등을 바라보며 42킬로미터를 주파하는 꽤 신날 듯한 코스이다. 날씨도 좋고, 따뜻하고, 이시부따이 고분 옆에 벌렁 누워, 필립 로스의 <해부학 강의>를 읽으며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마음이 푸근하게 누그러진다. 벌써 봄이다. 풀 마라톤에 출전하는 것은 그것이 세번 째였는데, 두번 째가 1983년 호놀룰루에서 였으니까, 약 2년 반 만에 뛰는 42킬로미터인 셈이다. 호놀룰루 전 해에는 역시 아테네에서 풀 마라톤 코스를 뛰었고, 틈이 생기면 10킬로, 20킬로에도 간간이 출전했다. 하지만 호놀룰루 이후에는 좀 생각한 게 있어서, 한동안 레이스에 출전하는 건 삼가고, 혼자 느긋하게 뛰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나는 몇 번을 뛰어도 세 시간 반 이하로 시간이 단축되는 법이 없는 '아주 평범한' 아마츄어 런너니까, 그리 잘난 소리는 할 수 없고, 할 마음도 없다. 그러나 굳이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이름있는 시민 마라톤 대회는 해를 거듭할 때마다 비대해지고, 어떤 종류의 대회는 좀 지나치다 싶게 요란스럽다. 일본의 TV방송국이 마구 설쳐대는(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호놀룰루는 별도로 하더라도, 좀 이름이 있다 싶은 대회 같으면 참가자를 끌어 모이기 위한 상품이 있는가 하면, 기념 T셔츠를 선물로 주기도 하고, '무슨 무슨 달리기 동호회'가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프래카드까지 내세우고는 우루루 몰려 들기도 하고, 그럴싸한 '완주증'을 발급하기도 하고, 길기만 할 뿐 별 다른 의미도 없는 개회식, 폐회식이 있고, 정말이지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은 듯한 느낌이다. 물론 그저 놀이에 불과하다고 한다면야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나로서는 그런 것들이 적잖이 성가셔─그런데 그 세부적인 모습이 어쩌면 문학상 파티하고 그렇게 비슷할까─대회에 나가는 것을 당분간 삼가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출전했던 대회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뛰었던 이름도 없는 10킬로미터 레이스였다. 이 10킬로미터짜리 레이스는 주말 아침에 포트맥 호반에 있는 출발점에 가기만 하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참가할 수 있는 지극히 부담 없는 대회로, 그러니까 물론 권위도 아무것도 없다. 참가자는 오, 육십 명 정도로, 연령도 천차만별, 모두들 저하고 싶은 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접수처에 앉아 있는 여자가 참가자가 이 달러(였다고 기억한다, 아마도)를 내면 '오 예, 저기에 있는 오렌지주스 마시고 싶으면 마음껏 마셔요. 저쪽에 있는 롤 케어크도 좋을대로 드시구요.' 라고 말하며, 참가비를 냈다는 표시로 손에 꽝하고 스탬프를 찍고, 노트에 주소랑 씨명을 쓴다. 출전 번호라든가 등등의 표시는 일절없다.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자 모두들 모여요. 그럼, 출───발.' 하고 1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다. 다 뛰고 나면 '수고하셨습니다. 몇 분 몇 초입니다.' 하고 가르쳐 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꿀꺽꿀꺽하고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는, 롤 케이크를 씹어 먹고, 마지막까지 앞뒤를 다투었던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호놀룰루나 오메 대회가 틀려 먹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호놀룰루는 그 나름으로 즐거웠고, 오메만 해도 가능하다면 한 번 뛰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워싱턴 D·C에서 참가했던 것 같은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경주가 아마츄어 런너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우리는 적어도 그런 기초적인 것을 잊어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본 각지에다 구태여 미니 호놀룰루 마라톤을 출현시켜야 할 필요성 따위 전혀 없는 것이다. 반듯한 코스와 정확한 시계와 유효 적절한 급수와 주최자측의 따뜻한 배려만 있으면 그것으로도 훌륭한 경주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아스카 마라톤'은 실제로 뛰어 보니까 이름에 걸맞지 않게 상당히 힘든 코스였다. 아스카에서 걸어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주지하고 계시리라 생각하는데, 이 부근은 높 낮이의 차가 격렬한 울퉁불퉁한 지역이라, 언덕 하나를 넘으면 또 바로 다음 언덕이 있어,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낙차가 약 백 미터는 된다. 그러니까 늘 평지를 달리던 감각으로 뛰다 보면, 후반에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게 되고 만다. 원래 나는 언덕길에 약한 편은 아닌데, 요즘에는 진구가이엔이나 쇼난 자전거 도로 같은 평탄한 코스만 달린 탓에 그 높낮이를 이기지 못하고, 35킬로미터를 지난 지점에서부터는 그만 언덕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해져, 결국 오르막길은 걷고 말았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이제부터 또 크로스 컨트리로 착실하게 단련을 하여,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그 코스에 도전해 보고 싶다. 그러나 기록이야 어찌 됐건, 42킬로미터를 다 뛰고 난 다음에 꿀꺽꿀꺽하고 단숨에 마시는 맥주의 맛은 그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라고나 표현해야 할 맛으로, 그 맛을 능가할 만큼 맛있는 것을 나는 달리 생각해 낼 수 없다. 그러니까 대개 마지막 5킬로미터쯤은 늘 '맥주, 맥주' 하고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리며 달리는 거나 다름없다. 이렇게 마음 속까지 맛있어지는 맥주를 마시기 위하여 42킬로미터라는 먼, 먼 길을 달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때로는 좀 잔혹한 조건 같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정당한 거래인 듯하기도 하다. 자, 이렇게 하여 일 년 간 계속되었던 이 연재 칼럼도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쉬게 되었습니다. 애독해─까지는 안되더라도─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와 함께 또 지상에서 언젠가 뵐 날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 요즘 필립 로스의 소설이 갑자기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나뿐일까? 그리 재밌다는 평판도 못 들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