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를 즐기는 법 출판에 관계된 업계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하노라면, '무라카미씨는 요즘 어떤 잡지를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까' 란 질문을 종종 받는다. 오늘날의 잡지 전쟁은 극단적으로 치열하니까, 그런만큼 만드는 쪽도 꽤 진지한 상황 분석을 해 가며 임하지 않는 한 도저히 살아 남지 못하리라. 하지만 그렇게 물어 본들 나는 잡지를 열심히 보는 독자도 아니고, 어쩌다 기분이 내키면 손에 집에 들고 팔락팔락 넘기며 훑어 보는 정도이므로, 어느 잡지가 현재 제일 재미있고, 어느 잡지가 가장 선구적인지 그런 건 도저히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판단은 고사하고 이렇게나 엄청난 양의 비슷비슷한 잡지가 서점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지금, 내게는 선택의 여지, 그 자체의 실태를 파악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대체 그 누가 오후 네시 반의 어슴프레한 어둠과 오후 네시 삼십 오분의 희끗희끗 어둠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혹 그런 것을 차이라고 부를런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행인지 불행인지 조금은 막연한 기준 하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 류의 선별 작업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요컨대 잡지의 종류가 하도 많아서 어느게 어느 잡지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 친구가 '좋은 잡지란 폐간된 잡지이다.' 란 말을 했는데, 그 기분 이해가 간다. 구태여 실명은 들지 않겠지만, '그 잡지도 몇 년 전에 폐간을 했더라면 아쉬워했을텐데.' 싶은 잡지도 몇 종류인가 머리에 떠오른다. 거꾸로 폐간된 잡지는 두 번 다시 입수할 수 없으니까─당연한 일이다─'빠짐없이 나올 동안에 좀 더 소중하게 다룰 것을' 하는 후회스런 기분에 자칫 빠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없는 <해피 엔드 통신> 같은 잡지는, 나도 기꺼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없어져 버려 유감이다. 이런 얘기를 당시 <해피 엔드 통신>에서 편집을 맡고 있던 카가 야마히로씨에게 하면, 그는 시니컬하게 입술을 삐죽이며 '모두들 그렇게 말씀을 하지만, 없어지고 난 다음에 동정을 산들 아무런 소용도 없잖습니까.' 라고 한다. 뭐 만드는 쪽에서 보면 그 말이 지당한 정론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카가 야마히로가 들으면 '철 지난 동정론'의 한 변형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개 글쟁이로서 비교적 일하기가 수월했다고 생각한 잡지는 잘 망한다. 예의 <해피 엔드 통신>도 원고료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일은 기분 좋게 할 수 있었고, 중앙공론사에서 나오던 <우미(海)>에서도 갓 등단한 신출내기치고는 피츠 제럴드나 카버의 번역을 나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화출판국에서 나오던 란 잡지에서도 여러 가지로 즐겁게 일을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잡지들은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나 같은 글쟁이가 한가롭고 기분좋게 일할 수 있는 잡지는 어쩌면 조만간에 소멸될 운명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신조사의 <대컬럼> 같은 것 역시 두 번 다시 출간되지 않을 것 아닌가? 읽는 잡지 중에 훌훌 넘기면서나마 비교적 열심히 보는 것이 있다면, 먼저 <플레이 가이드 저널>이란 관서지방의 정보지를 들어야만 할 것이다. 이 잡지에는 관서지방의 일 엔짜리 영화에서부터 콘서트, 그 밖의 잡다한 정보밖에 실려 있지 않으니까, 동경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따라서 당연한 일이지만 동경의 일반 서점에서는 팔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종류의 '쓸모없음'을 꽤 좋아한다. 게다가 자잘한 정보를 꼼꼼하게 체크해 가다 보면 동경과 관서지방 사람들의 여러 사상들에 대한 개념이 미묘하게 다름을 알 수 있어 제법 재미있다. 예를 들어 관서지방의 TV방송국은 <원숭이들의 혹성> 시리즈 다섯 편, <소화잔협전(昭和殘俠傳)> 세 편을 한꺼번에 연속 방영하는 무지막지한 일을 하고 있다. 아무리 정월 초하루라고는 하지만, 동경의 TV방송국은 이런 일을 별로 안한다. 정월 초하루 아침부터 밤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어이, 저 원숭이 잘 만들었지.' '정말이네요.' 라는 둥 얘기하면서, <원숭이들의 혹성>을 다섯 편이나 연달아 보면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설음식을 먹기도 하는 관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머리는 덜컥덜컥거린다. 그리고 나카지마류의 컬럼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신난다. <플레이 가이드 저널> 이외에는 <광고 비평>이란 잡지에서 TV CF 소개 기사를 골라 읽는다. 어째서 그런 걸 읽는가 하면, 나는 텔레비전에도 CM에도 거의라고 해도 좋을만큼 흥미가 없고, 대부분의 CF를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 CF를 문장이나 선전용 사진만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상당히 괴이하고, 더 나아가 별 도움도 안되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여기 '이리 김'의 광고 필름에 대한 소개가 있어 조금 발췌해 본다.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이토 시로와 부하 미네 노보루. 이토:야마시타군, 자네는 며칠전에 이리 김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고, 틀림없이 그렇게 얘기했지? 부하:아, 예. 공부가 부족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하 생략) 이런 식인데, 문장만을 읽고 있으면 이게 어떻게 연가 제1위의 CF가 될 수 있는지, 그 재미의 질을 잘 파악할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 본 사람은 재미있다고 하니... 하고 심각하게 '이리 김' CM의 영상을 상상하곤 하는 오늘, 요즘입니다. ♣ 누군가 'TV CM 걸작편'이란 비디오 모음집 같은 것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잘 팔리지 않을까? 그리고 '메이킹 오브 이리 김'이라든가 말이죠. ♣ 카가 야마히로는 이후에도 잡지사를 몇 군데나 망하게 했다.